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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월

{{음악가 정보

|이름 = 문호월

|원어이름 = 文湖月


학력 = [[휘문고등학교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출생일 = 1905년?

출생지 = {{국기
대한제국}} 경상북도 김천

|사망일 = 1953년? (49세?)

사망지 = {{KOR}}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대구]]

|가족 = 손목인(사촌 동생)


|활동시기 = 1927년 ~ 1948년

|종교 = 개신교


{| class="infobox bordered" style="width:21em; cellpadding=2; font-size:85%; text-align:center;"
! colspan="2" style="background:khaki" | 대표작
|-
style="width:80%;"
섬색시
| style="width:20%;" | 1933년
|-
style="width:80%;"
노들강변
| style="width:20%;" | 1934년
|-
style="width:80%;"
앞 강물 흘러흘러
| style="width:20%;" | 1935년
|-
style="width:80%;"
관서천리
| style="width:20%;" | 1935년
|-
style="width:80%;"
천리타향
| style="width:20%;" | 1937년
|}
문호월(文湖月, 1905년? ~ 1953년?)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생애

경상북도 김천군 출생이나 생년에 1905년1908년 등 여러 설이 있다. 작곡가 손목인과는 사촌 간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는 설과 일본에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는 설이 있으며, 1927년경부터 기타 연주자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작곡가로 데뷔한 것은 1933년오케레코드에서 김능인, 신불출의 가사에 곡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933년 윤백단의 〈장한가〉, 서상석의 〈귀향〉, 이난영의 〈고적〉 등을 발표한 데 이어, 1934년 초에 박부용이 노래한 〈노들강변〉이 크게 히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사촌 동생인 손목인도 고복수 노래의 〈타향〉으로 단숨에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문호월은 3박자 대중가요와 트로트, 신민요에 고루 능하여 다양한 음악을 구사했으나, 신민요 히트작이 많아 초기 신민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힌다. 1940년에 발표한 〈반달 뜨는 밤〉 이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 활동이 드물어졌고, 사망 시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문호월의 고향인 김천에는 '신민요의 황제'로도 불리는 〈노들강변〉<ref>{{뉴스 인용
|저자=이동순
|제목=<nowiki>이동순의 가요이야기 .27 신민요 '노들강변'을 부른 가수 박부용</nowiki>
|출판사=영남일보
|url=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culture/article.shtml?id=20080327.010190804030001
|날짜=2008-03-27
|확인날짜=2008-07-27
}}</ref> 을 기념하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자료

* {{서적 인용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날짜=2006-12-15
|출판사=소도
|출판위치=서울
id={{ISBN
9788990626264}}
|페이지=105~106쪽
|꺾쇠표=예
}}

각주

<references/>

외부 링크


{{토막글|작곡가|기타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