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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목차

1. 소개
2. 생애
3. 평가
4. 여담
5. 참조
6. 분류

1. 소개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2. 생애

파르마 공작 필리프의 딸로서, 1765년 황태자였던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였다. 아둔하고 무기력하다는 야유를 들은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스페인의 국정을 담당했다.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이후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한다.






3. 평가

나폴레옹 전쟁을 앞두고 무능한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국정의 전권을 맡기고, 결국 국민 폭동과 나폴레옹 침공을 부르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스페인이 몰락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악평을 받는다.

4. 여담

  • 소녀 시절의 초상화는 상당히 미인인 편이지만, 아이를 많이 낳은 탓인지 미모가 쇠퇴하여 중년 이후에는 상당히 심술궃은 아줌마(…) 같은 외모의 초상화가 많다. 1765년 작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초상화[1]와 1800년 쯤에 그려진 카를로스 4세 가족[2]의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
  • 프란시스코 드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Familia de Carlos IV, 1800-1801)」에서, 제목이 된 국왕을 제치고 중앙에 당당한 포즈로 배치되어 있어 그녀의 정치적 위상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아 루이사 자신도 고야의 초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6.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