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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Manuel de Godoy y Álvarez de Faria, 1767-1851
## == 이력 ==
## 간단한 이력, 연표형식.
== 생애 ==
1793년에 [[프랑스]]와 [[전쟁]]을 했으나, 패배하고 1795년 바젤 협약으로 화평을 맺어 〈평화공(平和公)〉이라고 불리게 된다.--여러분 전쟁하고 지면 평화공이 될 수 있습니다.--
Manuel de Godoy y Álvarez de Faria, 1767-1851
[[스페인]]의 정치가, 재상. 하급 귀족 출신이었지만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무능하고 실정을 거듭하여 평가는 매우 나쁘다.
[[스페인]]의 정치가, 재상. 하급 귀족 출신으로 근위병이 되었다가,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고 그 뒷빽으로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무능하고 실정을 거듭하여 평가는 매우 나쁘다.
## == 이력 ==
## 간단한 이력, 연표형식.
== 생애 ==
1767년,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고 하며,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로 재상에 임명되어 스페인의 권력자가 된다.
1767년,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평범한 하급 귀족이었으나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마누엘 고도이는 하급 귀족으로스는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의 청년이 스페인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1793년에 [[프랑스]]와 [[전쟁]]을 했으나, 패배하고 1795년 바젤 협약으로 화평을 맺어 〈평화공(平和公)〉이라고 불리게 된다.--여러분 전쟁하고 지면 평화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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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 함대를 모두 날려버린걸 생각하면 '''[[스페인]]의 [[원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 당시 기준에서 상당히 호색한이었던 모양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작 [[나체의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를 주문제작했던 본래 소유주였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역시 고도이가 주문제작한 작품이다.
* 당시 기준에서 상당히 호색한이었던 모양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작 [[나체의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를 주문제작했던 본래 소유주였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역시 고도이가 주문제작한 작품이다. 본래 종교적으로 엄격했던 스페인에서 나체의 마하 같은 작품은 너무나 선정적이라서 제작되기 어려웠는데, 권력자인 고도이였기 때문에 그 같은 작품을 주문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참조 ==
* 『프라도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2. 생애 ¶
1767년,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평범한 하급 귀족이었으나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마누엘 고도이는 하급 귀족으로스는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의 청년이 스페인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이후에는 유럽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프랑스 제국에 접근하였고, 스페인 해외 식민지를 노리는 영국과 대립하게 된다. 1801년에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영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805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전멸하고 만다. 이로서 스페인은 18세기에 걸쳐서 건설한 함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중남미 교역 항로를 영국에게 빼앗겨서 제해권을 상실한다.
1807년에 고도이는 포르투갈 정복을 노리는 나폴레옹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점령한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의 영유를 인정받았는데, 고도이는 황태자 페르난도(후의 페르난도 7세)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황태자가 즉위하면 파면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파면 이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알가르브를 영유하는 대신 스페인에 프랑스 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베리아 반도에 프랑스 군이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이라,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던 스페인 국민의 반발을 불렀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태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상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영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5. 참조 ¶
- 『프라도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 코토반크 : https://kotobank.jp/word/ゴドイ-65472#E4.B8.96.E7.95.8C.E5.A4.A7.E7.99.BE.E7.A7.91.E4.BA.8B.E5.85.B8.20.E7.AC.AC.EF.BC.92.E7.89.88
- 세계사의 눈 : 호야와 반도전쟁 : http://www.kobemantoman.jp/sub/1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