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없습니다
대홍려(大鴻臚)는 고대 중국의 관직이다.
전한에서도 전객을 설치하였으며, 경제 때 대행령(大行令)으로 고쳤다가<ref>단, 실제 사료상으로는 대부분
대행으로 기록되어 있다.</ref>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대홍려로 고쳤다.
대행으로 기록되어 있다.</ref>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대홍려로 고쳤다.
;속관
*행인령(行人令): 태초 원년에 대행령으로 고쳤다.
*역관령(譯官令)
*별화령(別火令): 태초 원년에 설치하였다.
*군저장(郡邸長): 처음에는 소부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그 다음에는 중위에 배속되었었다.
*행인령(行人令): 태초 원년에 대행령으로 고쳤다.
*역관령(譯官令)
*별화령(別火令): 태초 원년에 설치하였다.
*군저장(郡邸長): 처음에는 소부에 배속되어 있었으며, 그 다음에는 중위에 배속되었었다.
각 속관은 승 1명씩을 두었다.
===후한===
다시 대홍려로 고쳐 설치하였으며, 제후와 귀순한 주변 이민족을 관리하였다. 정원은 1명으로, 봉록은 중(中) 2천 석이었다. 종묘의 의례를 주관하였으며, 제후왕이 입조하였을 때의 의례도 도맡았다. 또한 태자 · 제후 · 제후의 습작자 · 책봉된 이민족은 대홍려가 불러들여 인수를 내렸다.
다시 대홍려로 고쳐 설치하였으며, 제후와 귀순한 주변 이민족을 관리하였다. 정원은 1명으로, 봉록은 중(中) 2천 석이었다. 종묘의 의례를 주관하였으며, 제후왕이 입조하였을 때의 의례도 도맡았다. 또한 태자 · 제후 · 제후의 습작자 · 책봉된 이민족은 대홍려가 불러들여 인수를 내렸다.
승 1명을 두었으며, 봉록은 비(比) 천 석이었다. 속관으로는 대행령 1명 · 대행승(大行丞) 1명, 예랑(禮郞) 47명이 있었다.
각주 ¶
{{각주}}
{{전한의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