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정보
담양군 이거(潭陽君 李璖, 1439년 1월 8일 ~ 1450년 3월 10일)는 조선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회간(懷簡)이다.
| 이름 = 담양군 <br /> 潭陽君
| 자녀 = 강양군(양자)
| 본명 = 이거 <br /> 李璖
| 왕가 = 전주 이씨
| 왕조 = 조선
| 친척 = 문종(이복 형) <br /> 계양군(동복 형)
| 출생일 = 1439년1월8일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450년 3월10일 (12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원인 = 병사
| 별칭 = 아명(兒名) 이융(李瀜) <br /> 호(號) 쌍송(雙松) <br /> 초기 작위명 담양정(潭陽正)
| 시호 = 회간(懷簡), 양도(良悼), 금헌(琴軒)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직업 = 왕족
| 종교 = 유교(성리학)
}}군]](君) |
| 본명 = 이거 <br /> 李璖
| 왕가 = 전주 이씨
| 왕조 = 조선
세종]](부) <br /> 신빈 김씨(생모) <br /> 소헌왕후(적모) |
| 출생일 = 1439년1월8일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450년 3월10일 (12세)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원인 = 병사
파주]] |
| 시호 = 회간(懷簡), 양도(良悼), 금헌(琴軒)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조선}} |
| 종교 = 유교(성리학)
담양군 이거(潭陽君 李璖, 1439년 1월 8일 ~ 1450년 3월 10일)는 조선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회간(懷簡)이다.
생애 ¶
7세 때인 1445년 담양정(潭陽正)에 책봉되었고, 1447년에 담양군(潭陽君)에 진책되었다.
5개월이 지난 1450년 3월10일에 향년 12세로 별세하였다.
이때 그가 남경우의 딸과 이미 약혼한 것을 두고, 상복을 입느냐 마느냐 논쟁이 벌어졌다. 담양군은 사망 직전 남경우의 딸과 약혼했고,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인을 청하는 납채(納采)를 하기 전에 신랑이 죽었기 때문에, 담양군의 약혼자가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예조에서 남경우의 딸은 이미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날까지 정하였으니, 성혼(成婚)의 예절과 같이 당연히 상복(喪服)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조 판서 정인지(鄭麟趾)는 이존의 제도와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인용하여 상복을 입지 않아도 괜찮다고 주장하였다. 문종은 남경우의 딸이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담양군 이거와 약혼했던 남경우의 딸은 뒤에 소헌왕후의 친정아버지 심온(深溫)의 증손자 심미(深湄)와 혼인하였다.
자녀가 없어서 문종의 명으로 진안대군의 증손자인 강음령 이은생(江陰令 李銀生)이 상주(喪主)가 되었다. 강음령은 뒤에 가음령(嘉音令)으로 개봉되고 가음정(嘉音正)으로 승진하였지만 그의 양자가 되지는 않았다. 양자는 그의 동복 친형 계양군 증 (桂陽君 璔)의 둘째 아들 강양군 숙 (江陽君 潚)을 사후양자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