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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파

목차

1. 소개
2. 학문
3. 퇴계학파와의 갈등
4. 몰락

1. 소개


남명 조식을 시초로 하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를 나눌때 그 오른쪽(서부)에 속하는 학파다. 영남학파중 하나로 분류되며, 조선의 붕당에서 대북라는 세력의 주축을 형성했다.[1]

2. 학문


기본적으로 들은 '실천으로 옮기지도 않으면서 론으로만 떠드는 행위'를 굉장히 혐오했고, 에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을 책으로 써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보다는 제자들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것에 좀더 중점을 두었다.

에 따라 남긴 저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들의 시초인 조식의 사상을 그의 애제자인 정인홍 정리한 남명집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켜야될 '성'으로 보았고, 것을 공성하려하는 잡념나 악심들을 막는걸 중요하게 여겼다. 러한 학문적 특징때문에, 들은 군사학 역시 해박하게 공부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시기 들은 의병장으로써 크게 활약했다.

한편으로는 들의 학문의 시조인 조식은 노장사상역시 받아들였다고 하며, 때문에 퇴계학파로부터 라는 말까지 듣는다.

3. 퇴계학파와의 갈등


들은 전술했듯 론만 왈가왈부하면서 정작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혐오했으며, 때문에 조선 성리학 론을 집대성하려한 퇴계 황과 그의 학파와는 앙숙었다.[2] 황은 조식을 두고 '오만해 중용란것을 모르고, 노장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고, 에 조식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천리를 논한다.'라고 그를 간점적으로 비꼬았을 정도였다.

러한 논쟁은 둘모두가 죽고난뒤 조식의 제자인 정인홍 황과 그의 스승 언적 문묘에 모셔진것에 분개해 상소를 올리면서 더더욱 격화된다.

... 신 일찍 故 찬성 조식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 일찍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번에 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과연 괴벽의 도리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 미 70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한 행실을 한 것며 세상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상소는 아마 자신의 스승을 깊 존경했던 정인홍 자신의 스승 학문적으로 퇴계에 비해서 전혀 밀리지 않는데 오히려 그가 문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학문적으로 반대방향었던 퇴계가 모셔진것에 불만을 품어 낸것지만, 로 인해 두학파의 사는 거의 완전히 갈라졌다.

4. 몰락


붕당 형성되면서 들은 처음에는 퇴계등 기타 영남학파와 함께 동인을 형성했으며, 후 정철의 처리문제로 인해 류성룡등 퇴계파와 갈라져 북인을 형성하다. 후 유영경등 일부 소북인사들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대북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선조 말기 들은 후계로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의 가장큰 지지세력으로 남았다. 에 대한 보상으로 광해군 즉위뒤 유영경등의 탁소북 제거되고 난뒤, 그들은 청소북과 함께 광해군 시기 정국을 장악했으며, 광해군 중기때엔 아예 국정의 중심을 대북 잡기까지 한다. 아예 광해군 말기때는 그가 대북을 견제하기 위해 서인의 세를 키운 행적까지 보일 정도였다. [3]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 쫓겨난뒤, 남은 대북들은 정인홍등 중심인물들 모두 참수당하는 등 철저하게 서인들에게 숙청되었고, 그결과 정국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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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엄밀히 말해서 대북=남명학파는 조금 무리가 있는 주장다. 아주 틀렸다 볼 수는 없지만, 첨등 애초에 남명학파도 아니면서 대북인 경우도 있고, 곽재우등 남명학파면서 대북과는 사가 그리 좋지 못한 도 있기 때문.
  • [2] 조식은 기론에 관한 논쟁을 '입만 나불댈줄 아는 유생놈들 실천에는 신경쓰지 않고 론가지고만 키배하는 짓'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 [3] 그 보답은 인조반정으로 돌아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