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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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80 | |
김창희(金昌熙 / Chang-Hei Kim) | |
생년월일 | 1973년 7월 3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경상남도 마산회원구 |
학력 | 양덕초-마산중-마산고-한양대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7년 2차 1라운드 (전체 9번, 해태) |
소속 팀 | 해태-KIA 타이거즈 (1997~2003) br 두산 베어스 (2003~2006) br 삼성 라이온즈 (2006~2009) |
지도자 |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3~2014) br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2014) br KIA 타이거즈 2군 주루코치 (2015) br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2016) br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7~2018) br KIA 타이거즈 2군 작전주루코치 (2019~) |
프런트 |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10~2012) br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원 (2015) |
목차
소개 ¶
前 KBO 리그 선수이자 現 KIA 타이거즈의 스태프. 현역 선수 시절에는 해태/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외야수로 활약하였다. 등번호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44번, 두산과 삼성에서는 63번을 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해태의 마지막 홈런을 쳐낸 선수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2001년 7월 29일 경기의 對 삼성전에서 해태가 8:6으로 삼성에게 패했는데, 당시 8:5에서 마지막에 한점을 추격하는 솔로홈런을 쳤었다.
네이버 검색에서 동명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게 밀릴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눈에 띄지 않는 야구선수였지만 이 사진 하나로 힛갤에 올라간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초창기 야갤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원래 별명은 창희언니였지만 롤링창희 짤방의 힛갤입성 후, 롤링창희가 대세가 됐으며 그 후 아웃카운트를 착각하고 3루에서 그냥 덕아웃으로 들어오다 다시 돌아가는 사건 이후 퇴근창희라는 별명이 새로 추가되었다.
비록 개그요소로서의 유명세로 인해 평가 절하되는 느낌이 있지만, 대학리그 시절에 이병규와 버금가는 수준의 최상위급 타자였다. 1997년 당시 모기업의 재정이 악화된 해태 타이거즈가 땡잡은 타자라고 했을 정도였다.
선수 시절 ¶
두산 베어스 시절.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해당 사진은 2007년 4월 10일 SK와의 경기 중 장면. br 여담으로 이 사진으로 인해 롤링창희, 퇴근창희(...) 라는 별명이 생겼다. |
프로 데뷔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했으며, 2003년 손혁과 함께 진필중을 상대로 현금 트레이드되어 두산 베어스로 가게 된다. 그 후 2006 시즌을 앞두고 강봉규와 함께 강동우와 맞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경기 도중 거성으로부터 '저런 선수가 있어야 팀이 산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작 거성은 그한테 밀려 해태의 외야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기 몫을 해낸다는 뜻. 2007년도 한 경기에서 야구인생 최초로 그날의 수훈선수상을 받게되자 감격의 눈물을 보여 많은 이들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해태 시절 신인 때부터 .263의 타율과 9홈런을 기록하며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냥 저냥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당시 이순철의 부진으로 인해 그 분, 최훈재, 로또와 더불어 해태 외야의 한 축을 담당했다.[1] 1998년에는 약간 성장하여 .267에 12홈런 64타점으로 팀내 홈런 4위, 타점 3위를 기록했으며, 이종범이 나간 자리를 메워 줄 외야수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의 성적이 그의 커리어하이였으며, 타고투저가 극심한 1999년에도 비슷한 성적을 내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다 2000년부터는 점점 성적이 떨어지더니 벤치선수로 전락하였다. 급기야 2002 시즌 후 그는 진필중의 트레이드 맞상대가 되고 만다.
여러 코치들의 평에 의하면 발은 빠르지 않지만 낙구지점 판단력이나 송구과정 등의 외야수 수비 플레이에 있어선 국내 최고라고 한다.[2] 팀 내에서는 두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강봉규 선수와 친한 선후배 사이인 듯. 2009년 시즌 종료 뒤로는 김창희가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게 됨에 따라 강봉규가 홀로서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도자 시절 ¶
2009년 9월 은퇴 선언을 했으며, 은퇴 이후로는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2012년 11월 14일 삼성 전력분석원에서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돌아와 2군 외야 수비코치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수비코치로서의 능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2014 시즌이 종료되고 선동열 감독이 사퇴한 뒤에는 코치진에서 물러나고 삼성 시절과 마찬가지로 전력분석원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그런데, 김기태 감독 부임후 다시 2군 주루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 현재는 1군 수비코치로 있으면서 경기 중에는 1루 주루코치를 하고 있다.
2017 시즌에는 김민호 코치가 다시 1군으로 올라오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여담 ¶
연도별 성적 ¶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7 | 해태 | 102 | 315 | .263 | 83 | 20 | 1 | 9 | 43 | 41 | 2 | 32 | .419 | .330 |
1998 | 124 | 439 | .267 | 117 | 23 | 1 | 12 | 64 | 49 | 5 | 53 | .405 | .343 | |
1999 | 117 | 341 | .261 | 89 | 12 | 0 | 10 | 39 | 55 | 5 | 64 | .384 | .378 | |
2000 | 97 | 250 | .236 | 59 | 8 | 1 | 5 | 37 | 36 | 3 | 53 | .336 | .368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1 | KIA | 88 | 232 | .280 | 65 | 10 | 0 | 5 | 25 | 28 | 3 | 35 | .388 | .373 |
2002 | 114 | 310 | .216 | 67 | 12 | 0 | 5 | 35 | 28 | 4 | 31 | .303 | .283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3 | 두산 | 121 | 288 | .274 | 79 | 12 | 2 | 3 | 36 | 36 | 5 | 29 | .361 | .338 |
2004 | 110 | 301 | .276 | 83 | 17 | 1 | 4 | 31 | 37 | 2 | 37 | .379 | .355 | |
2005 | 84 | 221 | .271 | 60 | 9 | 0 | 3 | 35 | 26 | 4 | 40 | .353 | .379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6 | 삼성 | 114 | 307 | .221 | 68 | 12 | 1 | 8 | 38 | 35 | 6 | 34 | .345 | .297 |
2007 | 100 | 251 | .247 | 62 | 14 | 2 | 3 | 22 | 20 | 2 | 22 | .355 | .305 | |
2008 | 103 | 227 | .282 | 64 | 13 | 0 | 1 | 19 | 29 | 2 | 33 | .352 | .373 | |
2009 | 71 | 126 | .238 | 30 | 5 | 0 | 0 | 14 | 7 | 1 | 16 | .278 | .322 | |
KBO 통산 br (13시즌) | 1345 | 3608 | .257 | 926 | 167 | 9 | 68 | 438 | 427 | 44 | 479 | .365 | .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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