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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 (1934년)


생애

경성부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ref>{{뉴스 인용
|제목=김정일총비서 비전향장기수 김창원에게 생일 70돐상
|출판사=조선중앙통신
|날짜=2004-10-28
}}</ref>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살고 있었다. 이때 나이가 10대 중반으로 어렸으나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군에 입대할 수 있게 나이를 올리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며 참전하였다.

1953년에는 조선로동당에도 입당하였고 평양에서 학교를 마치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석탄공업성에서 에너지 분야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혼인하여 가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공작원으로 남파<ref>{{뉴스 인용
|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90222604
|제목=풀려나는 미전향 장기수들
|출판사=문화일보 (연합뉴스 인용)
|날짜=1999-02-22
|확인날짜=2008-08-06
}}</ref> 되었으며,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전주교도소 등에서 복역하였다.

수감 기간 중에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전향하지 않았고 1999년에 출소하였다. 총 수감 기간은 약 31년이다. 출소 후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고령자로 건강이 좋지않은 김종호를 돌보면서 생활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다시는 뵈올 수 없게된 그 인자하신 모습
|출판사=통일뉴스
|저자=권오헌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03
|날짜=2003-11-25
|확인날짜=2008-09-06
}}</ref>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어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하고서 음악가로서 활동하면서 노래 〈행복 속에 기쁨 속에〉, 〈내 사랑, 내 삶의 노래〉 등을 작사하고 작곡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북송 비전향장기수 '특별' 대우
|출판사 = 동아일보 (연합뉴스 인용)
|저자 = 신유리
|url = http://www.donga.com/fbin/output?rellink=1&code=a__&n=200706170047
|날짜 = 2007-06-18
|확인날짜 = 2008-09-06
}}{{깨진 링크|url=http://www.donga.com/fbin/output?rellink=1&code=a__&n=200706170047 }}</ref> 2008년 4월에 《로동신문》에 수기〈태양의 노래는 영원합니다〉를 발표하는 등 김정일을 향한 지지를 표명했다.

각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