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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광역시/인물
         * [[김승관]] - 북구(대구)
  • 문선엽
         시즌 최종성적은 69경기 212타수 68안타(2루타 22개 3루타 3개 홈런 14개) 32삼진 7사구 21볼넷 .321 .397 .651 OPS 1.048. 비록 1군에는 못 올라왔지만 14개의 홈런으로 삼성 2군 선수로는 5번째[* 2014 시즌까지 삼성 2군 선수 중 10개 이상 홈런을 친 선수는 [[김승관]](2003년 13개), 곽용섭(2003년 13개), [[모상기]](2007년 10개, 2008년 12개, 2011년 21개), [[김헌곤]](2011년 10개) 4명 뿐이었다. 2015 시즌에는 문선엽에 이어 [[김정혁]]도 홈런 10개를 쳤다. 상무 시절 22홈런을 친 [[박석민]]이나 경찰 시절 박석민과 똑같이 22홈런을 [[최형우]]도 삼성 2군 시절에는 홈런 10개를 못 쳤다.]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타율도 다시 3할로 복귀하면서 타격만큼은 삼성 2군 선수 중 최상위급인 걸 보여줬다.
  • 박석진 (야구선수)
         [[2004년]] [[7월 12일]] [[노장진]]·[[김승관]] ↔ [[김대익]]·박석진의 2:2 트레이드로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였고, 2004~2006 시즌 3년간 15승 5패 2세이브 23홀드를 기록하며 활약하였다.
  • 손민한
         [[2001년]]에는 [[신윤호]]와 함께 15승으로 최다승 및 승률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2002년]]과 [[2003년]]에 또 다시 부진에 빠져, 한 자리수 승리에 그쳤다. [[2004년]] 전반기에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으나 8세이브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 [[7월 12일]] [[박석진]], [[김대익]]과의 트레이드로 [[노장진]], [[김승관]]이 입단하여 [[노장진]]이 마무리를 맡게 되자 [[2004년]] 후반기부터 다시 선발로 전향하여 9승을 거두어 재기 가능성을 보였다.
  • 이승엽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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