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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홍(金壽弘, 1601년 ~ 1681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인, 작가로 자는 하보(夏甫), 본관은 (신)안동이다. 서인 소속이었으나 복제논쟁 때 서인의 당론을 따르지 않고 남인의 당론에 동조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명나라 연호를 사용하자는 주장에 대해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자는 입장을 취하였다. 돈녕부도정 김광환(金光煥)의 아들이며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손자이다.
김수홍(金壽弘, 1601년 ~ 1681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인, 작가로 자는 하보(夏甫), 본관은 (신)안동이다. 서인 소속이었으나 복제논쟁 때 서인의 당론을 따르지 않고 남인의 당론에 동조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명나라 연호를 사용하자는 주장에 대해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자는 입장을 취하였다. 돈녕부도정 김광환(金光煥)의 아들이며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손자이다.
생애 ¶
1634년 생원시에 입격, 생원이 되었으며 곧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636년 성균관 유생으로 후금의 사신 용골대(龍骨大)를 참살하고 그 국서(國書)를 소각할 것을 상소하였다.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승지·참판 등을 거쳐, 1681년 지돈령부사가 되었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으나 효종 사후 1660년 제1차 자의대비 복상문제 때, 당론을 따르지 않고 같은 서인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제(朞年制) 주장을 비난하고, 남인의 복제 주장에 동조하여 논란이 되었다.
1674년(현종 15) 제2차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 때, 역시 1660년의 제1차 자의대비 복상문제 때와 마찬가지로 당론을 따르지 않고 같은 서인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제(朞年制) 주장을 비난하고, 남인의 복제 주장에 동조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1674년(현종 15) 제2차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 때, 역시 1660년의 제1차 자의대비 복상문제 때와 마찬가지로 당론을 따르지 않고 같은 서인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제(朞年制) 주장을 비난하고, 남인의 복제 주장에 동조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명청 교체기의 중국 연호 사용에서도, 명나라 숭정(崇禎) 연호 사용을 주장하자는 송시열과 영력 연호를 사용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청나라의 강희(康熙) 연호를 쓰자고 주장하였다. 송시열과 송준길에게 편지를 보낼 때도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여 이들을 풍자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족 관계 ¶
* 고조부 : 신천군수 증좌찬성 김생해(金生海)
** 증조부 : 돈녕부도정 증영의정김극효(金克孝)
*** 종조부 좌의정 증영의정 청음 김상헌(金尙憲)
**** 당숙 김광찬(金光燦)
***** 9촌형제 김수증(金壽增)
***** 9촌형제 김수항(金壽恒)
***** 9촌형제 김수흥(金壽興)
*** 할아버지 : 우의정 증영의정 선원 김상용(金尙容)
**** 백부 김광형(金光炯)
***** 사촌 김수창(金壽昌)
**** 숙부 이조참판 부제학 수북 김광현(金光炫)
***** 사촌 김수인(金壽仁)
***** 사촌 김수빈(金壽賓)
***** 사촌 김수민(金壽民)
**** 아버지 : 돈녕부도정 김광환(金光煥)
**** 어머니 : 숙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
** 증조부 : 돈녕부도정 증영의정김극효(金克孝)
*** 종조부 좌의정 증영의정 청음 김상헌(金尙憲)
**** 당숙 김광찬(金光燦)
***** 9촌형제 김수증(金壽增)
***** 9촌형제 김수항(金壽恒)
***** 9촌형제 김수흥(金壽興)
*** 할아버지 : 우의정 증영의정 선원 김상용(金尙容)
**** 백부 김광형(金光炯)
***** 사촌 김수창(金壽昌)
**** 숙부 이조참판 부제학 수북 김광현(金光炫)
***** 사촌 김수인(金壽仁)
***** 사촌 김수빈(金壽賓)
***** 사촌 김수민(金壽民)
**** 아버지 : 돈녕부도정 김광환(金光煥)
**** 어머니 : 숙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