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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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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
대한제국의 황제들
고종은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다. 아명은 이명복[1].
철종이 사망한 뒤 조대비에게 옹립되었고, 생부인 흥선대원군가 섭정을 보았다. 그러나 대원군은 고종이 20살을 넘어 22살이 될때까지도 친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고종의 왕권에 대한 집착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그러나 고종이 성인이 된지 한참된 상태에서 대원군이 계속 섭정을 할 수는 없었고 결국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친정을 하게 된다.
친정 초기에는 박규수 같은 통상개화파를 주로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한편으로는, 대원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들을 중용하기도 했다.[2] 이 때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고 박규수 등의 개화파를 중용해 개방을 서두른 걸 보면 기본적으로 전근대 군주로서의 능력은 있었던 듯.
그럴 때 운요호 사건이 터지는데 사실 이 과정에서 신미양요 때 멀쩡했던 영종도가 맥없이 당했다고 고종을 까는 건 조금 부당하다. 이미 대원군이 당백전이나 청전으로 재정상태가 개판이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던 것(...). 아무튼 박규수같은 개화파들은 개방을 할 좋은 기회라 여겼고 이에 고종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그러고 난 뒤 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 청의 영향력이 강해진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희대의 병크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바람에[3] 여기에 위협을 느낀 민씨와 고종은 청과 일본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 이후 10여년동안 조선은 청이 주류로, 그리고 일본이 보조로 마지막으로 미국등의 열강이 찔끔찔끔 이권을 뺏어먹는 형편이 되고(...), 결국 이는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동학의 교주였던 최시형의 탄원시도로 시작한 이 운동은 결국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박살내고 전주성을 점령하자 놀란 조정은 청군에게 병력을 급파해주길 요청한다. 그런데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홍계훈의 대포에 밀려 더이상의 북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청과 미리 텐진조약을 맺은 일본은 청이 조선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조선에 병력을 상륙시킨다. 어찌됐든 일본이 개입하자 놀란 농민군과 조정은 전주화약을 맺어 일단 농민군의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해주는걸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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