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원'''(姜大元, Dawon David Kahng, 1931년 5월 4일-1992년 5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반도체 물리학자이다.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한국전쟁 기간중에 통역장교로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1955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였다.<ref>IEEE transactions on electron devices, Vol. 23, No. 7, p. 787 (1976).</ref>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1956년에 석사 및 195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는 성장중인 산화층을 통과하여 실리콘에 불순물을 확산시키는 연구를 하였다. 1959년부터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였으며, 여기서 1960년에 [[마틴 아탈라]](Martin Mohammed John Atalla)와 공동으로 금속-산화층-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MOSFET]])을 최초로 개발하였고, 결정성 실리콘 기판에 설치된 강한 전기장 전자 장치(hot electron device)에서 불순물 주입을 연구하였다.
1964년부터는 연구팀을 이끌었는데, 여기서는 [[고주파 쇼트키 다이오드]], 강유전성 [[반도체]], 전하와 결합된 발광물질 등을 연구하였다.
1967년에는 부상 갑문형 비휘발성 반도체 기억장치 (Floating Gate non-volatile semiconductor memory)를 최초로 개발하였다. 1988년에 벨 연구소를 은퇴하고 곧이어 미국 [[뉴저지주]]에 설립된 [[NEC연구소]]의 초대소장으로 부임하였다. 1992년 5월 13일 학술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중 뉴저지 인근 공항에서 대동맥 동맥류(動脈瘤, aneurysm) 파열로 쓰러져 응급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ref>New York Times, 1992년 5월 28일 section D, 21면.</ref> 그와 부인 강영희씨 사이에 다섯명의 자녀들 두었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한국물리학회]] 종신회원을 지냈으며, 1975년에는 프랭클린 연구소에서 물리분야에 수여하는 [[스튜어트 밸런타인 메달]], 1986년에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공과대학 '자랑스런 졸업생상(Distinguished Alumni Awards)'을 수상하였다. 수십편의 논문과 몇 권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수십편의 미국 특허를 얻었다. [[MOSFET]]을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2009년에 미국 상무부 산하 특허청의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에 올랐다.
* [http://www.invent.org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199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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