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 ¶
센노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찰을 빚어 할복한 뒤, 리큐의 양자 쇼우안(少庵)은 교토에서 재흥을 허락받아 후신안(不審庵) 같은 리큐와 연고가 있는 다실을 재건했다. 또한 불교에 들어가 있던 아들 소우탄(宗旦)을 환속시켜서 가문을 이어받게 하고 다도를 보급하는 것을 맡겼다. 소우탄은 도쿠가와 가문 등에 자식들을 다두(茶頭)로서 임관시켜 가문을 부흥시켰으며, 소우탄의 자식 대에 센 가문은 셋으로 갈라진다.
- 장남 소우세츠(宗拙) : 장남인데 경력을 알 수 없다. 의절당했다는 설이 있으며, 카가 번 마에다 가문(加賀藩前田家)에 임관했다는 설도 있다.
- 차남 이치오우 소우슈(一翁宗守) : 칠기 가문에 양자로 나갔다가 돌아왔다.「무사시노코지 센캐(武者小路千家)」를 일으켰다.
- 삼남 코우신 소우사(江岑宗左) : 정식으로 소우탄의 뒤를 이어 「오모테센케(表千家)」를 일으켰다. 키슈 도쿠가와 가문(紀州徳川家)의 다두(茶頭)로 임관했다.
- 사남 센소우 소우시츠(仙叟宗室) : 카가 번 마에다 가문에 임관했다가, 이후에 「우라센케(裏千家)」를 계승했다.
그리고 센가의 7대 죠신사이(如心斎)는 더 이상 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오모테, 우라, 무사시노코지에서 각 1명만 센케(千家)라는 이름을 쓰기로 합의하였다. 이렇게 세 가문이 성립된 것이다.
이후로 이 세 가문은 협력하면서 다도의 보급에 종사하였다.
3. 평가 ¶
여러 다도 유파 가운데서도 명성이 높다. 특히 우라센케는 16대 센 겐지츠(千玄室)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의 차녀 마사코 내친왕(容子内親王)과 결혼하여, 황족과 인척 관계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 황족, 일본을 국빈들이 와서 다도를 배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