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K리그"에 대한 역링크 찾기

K리그의 역링크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2016시즌 [[K리그]]를 앞두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순위산정방식의 변경을 알리면서 발생한 논란이다.
         K리그는 1983년 발족한 이래 늘 가지고 있던 고민이 흥행이었고, 이 흥행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각종 리그운영을 포함한 제도적인 변경을 꾸준히 시도해 왔었다. 과거 [[리그컵(K리그)]]시절에 있었던 규정변경은 물론이고, K리그도 리그운영이 최초의 풀리그체제에서 스플릿제도로의 변화까지 있었던 운영변경점을 봐도 K리그의 흥행을 고려한 변경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2015시즌까지 K리그는 클래식과 챌린지를 막론하고 다음과 같은 순위결정방식을 따랐다.
         K리그 역사를 살펴보면 승점이 같아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례가 매우 드물 뿐더러 결국에는 매 경기 승점 3점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비를 신경쓰지 않고 경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K리그 말고 유럽의 리그만 봐도 리그 1위팀은 승점을 잘 쌓기 위해 공격도 공격이지만 승리를 굳히기 위해 수비를 신경쓰고, 이에 따라 대량실점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무의미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만약 이로 인해 순위가 갈리더라도 스플릿 라운드의 A/B여부를 가른다거나 승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
         또한 K리그도 분데스리가와 마찬가지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오히려 '''골 수는 줄었는데 관중이 늘고, 골 수가 늘었는데 관중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연맹은 그 어떤 명확한 해답을 내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근거라고 내 놓은 분데스리가와 J리그 모두 연맹의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제시할 수 없다. 한마디로 2016년 한국프로축구연맹 활동중에 최대의 뻘짓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
         K리그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두환 시절의 3S정책과 맞닿아 있던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나,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스포츠 지원정책의 기치는 '''"(저 북괴놈들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국제적인 스포츠 업적을 거두어 세계만방에 걸친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국제 스포츠계에서 업적을 쌓는다는 명분이 대한축구협회 시절에 세운 기치이며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설립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프로축구협회 정관: 제1조 목적, 이 법인은 한국프로축구의 수준향상과 저변확대는 물론 국제교류 등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 전한 여가 선용을 도모하고, 스포츠 활성화와 지역사회를 비롯한 '''국가 발전 및 국제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분류:축구]] [[분류:K리그]]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2012시즌부터 [[K리그]]에 적용한 정책.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다.
         K리그는 2011시즌까지 상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남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이는 K리그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며, 그간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구단들과 연맹이 대처해 왔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는 연맹과 K리그 구단들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으나, 경기장이나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티켓에 시즌권(=연간회원권)과 배포한 무료티켓을 합산하여 나온 결과라고 추측할 수 있다.
         결과가 상당히 처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K리그 팬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로 '''간만에''' 연맹이 제대로 된 일을 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특히 직관을 나가는 팬들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점철되는 걸 바라보느니 차라리 까발릴 건 까발리고 제대로 된 마케팅 활동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K리그]]
         [[분류:축구]] [[분류:K리그]]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K리그 우승자가 누군지. FA컵 우승자가 누군지 궁금하기보다 승강여부가 더욱 흥행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한 대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K리그의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부터 적용된 공식경기이며 리그 외 대회의 성격을 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나온 기록은 클래식-챌린지 어느 쪽에도 기록되지 않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 승강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는 차기 [[K리그 클래식]]에 등록되고, 패자는 [[K리그 챌린지]]에 등록된다.
         K리그의 승강제가 아직 과도기였던 2013시즌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과도기였던 2013시즌만 한시적인 형태의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구조를 갖고 있었으며, 2014시즌부터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규정이 안착된다.
         클래식 팀은 스플릿 B의 차하위 팀(=11위)이, 챌린지 팀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차기 K리그 클래식 진출을 두고 겨루게 된다.
         2013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승강 플레이오프가 3번 열렸지만 '''단 한번도 K리그 클래식 팀이 승자가 되어 잔류에 성공한 이력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팝콘을 뜯게 만드는 동인이 되며 챌린지 진출팀에게는 희망을, 클래식 진출팀에게는 절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엄밀히 말하자면 대다수의 팀들에게 있어 남일과도 같지만, K리그 팬들에게 있어서는 '''내년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경기'''다. 각종 대회의 우승은 가시권에서 멀어지면 그대로 대다수의 팀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 되지만 이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그 결과에 따라 내년에 함께할 팀이 정해지며, '''승격팀에게는 팀의 부흥'''을 가져다 주고 신흥 강호가 될 가능성을 선사하지만, 패자팀에게는 '''끊임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K리그 클래식에서 챌린지로 떨어지면 천단위 관객이 '''백단위'''로 줄어들고, 반대로 승격되면 백단위가 '''천단위'''로 늘어나는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또한 강등되면 보통은 지원금이 뚝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주축선수를 팔아버리는 상황도 각오해야 하며 '''팀이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팀에서 임하는 자세가 라이벌전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해당 팀의 팬들은 물론이고 여타 팀들에게 있어서 팝콘뜯기 아주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셈. 덕택에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나누기나 FA컵 결승전을 뛰어넘는 흥행 카드가 되는 마술이 펼쳐진다. 팬들에게 있어선 우승에 대한 열망보다 승강이 더욱 중요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3시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K리그]]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분류:축구]] [[분류:K리그]]
  • K리그 챌린지
         K리그 챌린지는 대한민국 차상위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이다.
         K리그 챌린지의 발족은 승강제 도입과 관련한 이슈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 허나 K리그는 선수들의 수준만 보면 아시아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을지언정 리그 자체가 가진 상업성은 아시아 최하위 수준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라서 새로 프로축구구단을 창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허나 ACL참가조건에 대해 승강제 여부를 보겠다는 AFC의 발언에서 승강제 도입문제가 이슈화되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부리그에 참가할 팀을 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K리그 가입금에 대한 조건을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간 미적했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K리그 신규구단 창설을 위한 상태로 전환된다.
         특히 축구에 대해 한이 많은 부천, 안양을 중심으로 프로화를 진행 및 시민구단이 창설되고, 또 수원 FC나 충주 험멜과 같이 기존 [[내셔널리그]] 팀들이나 [[R리그]]에 참가했던 경찰청 축구구단들이 기준을 충족하면서 2013시즌부터 챌린지에 참가할 6개 팀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 2012시즌 K리그에서 강등된 광주와 상주가 챌린지에 합류하며 2013시즌을 원년으로 K리그 챌린지가 시작된다.
         본래는 기존의 K리그가 1부리그로써 [[K리그 클래식]]이란 명칭을 부여받고, 새로 만들어질 2부리그가 K리그라 불릴 예정이었다. 이는 다른 리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기존 1부리그가 갖고 있던 명칭을 2부리그가 부여받는게 당연한 수순으로 받여들여지는 축구계의 풍조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의 관계처럼 새로 1부리그에 부여하는 이름이 명확하게 다른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의 명칭이 상당히 헛갈릴 우려가 있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이런 이유로 2부리그도 단순히 K리그의 이름을 물려받는게 아니라 K리그 클래식처럼 충분히 구분가능한 명칭을 짓는 것이 공론화되었고, K리그 챌린지란 이름이 공식화된다.
         그러나 이 챌린지란 이름도 기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운영하던 U-18대회인 챌린지리그와 또 같은 이름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챌린지 리그는 [[K리그 주니어]]로 명칭을 변경하는 원인이 된다.
         2013시즌은 8개 팀이 약 40주 일정에 가깝게 치뤄야 했으므로 [[홈 & 어웨이]] 방식을 쓰되 서로 5번씩 만나는 구조로 운영되었다. 우승팀은 2014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 진출자격을 부여받았다. 상주가 여기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하면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을 이루게 되었다.
         2014시즌은 상주가 승격하고 K리그 클래식에서 3개팀이 내려오면서 10개팀 체제로 운영하게 되었다. 10개팀이 되었기 때문에 2013시즌과 같이 5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에서 4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로 운영방식이 변경되었다.
         또한 2014시즌부터는 정규시즌이 끝나면 챌린지 우승팀은 K리그 클래식에 자동으로 진출하고, 2위에서 4위팀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거쳐 클래식 11위팀과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체제가 정립된다. 이 신설규정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대전이 클래식으로 승격되었으며, 챌린지 4위였던 광주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 자격으로 당시 클래식 11위팀인 경남과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이김으로써 승격을 이루게 된다.
         또한 2014시즌에 처음 운영되었던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받게 되어 챌린지의 통산기록으로 산입되었다.
         또한 챌린지에 기록되는 선수의 성적은 모두 정규시즌 중에 획득한 것으로만 한정했었다가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성적을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되, 시즌이 끝나고 시상할 때는 산정기준에서 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과거 K리그K리그 챔피언십을 운영하였던 방식과 유사하게 바뀐 셈.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2위부터 4위팀들끼리 벌어지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 획득을 위한 경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정규시즌의 연장선이 아니므로 별개의 대회로 취급했었으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PO도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함으로써 챌린지 PO의 승자는 챌린지의 최종순위 2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챌린지와 플레이오프 사이에서는 기록이 호환되지 않았다가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항목 참고.
         [[K리그]]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분류:축구]] [[분류:K리그]]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하는 공식경기 중 하나로 [[K리그 챌린지]]의 정규 라운드가 종료되고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해 열리는 플레이오프대회다.
         [[K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하고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로 나뉜 이후 2014시즌부터 열린 대회이다. 2013시즌은 K리그에 있어 승강제 도입의 과도기적 기간이었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는 있었으나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별개의 대회는 없었다. 이후 2014시즌부터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시행과 정착이 시작되었다.
         첫 대회가 열렸던 2014시즌에는 이 대회 역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규정한 공식경기지만 챌린지의 기록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기록했었다. 이는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엄밀히 말하면 챌린지의 정규 라운드의 연장선이 아니라 승강 플레이오프라는 [[승강제]]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대회로 보기 때문이며, K리그의 소식을 전하는 공식매체인 [[K리그 웹진]]에서도 2014시즌의 데이터는 챌린지와 호환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K리그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보고 이 데이터를 공식으로 집계하기 시작하였으며, K리그 웹진 2015년 12월호에서는 다 통합하여 데이터를 공개하였다.
         단, 개인기록과 팀 기록을 통해 시상할 때는 과거 [[K리그 챔피언십]]과 마찬가지로 '''공식기록으로는 인정하나 정규라운드 시상과는 별개'''로 본다.
         준플레이오프는 K리그 챌린지 3위팀과 4위팀이 3위팀의 홈에서 경기를 갖는다. 리그 3위와 4위의 차별을 두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둔다.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처음 시행되었던 2014시즌에는 리그 4위였던 [[광주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었고, 또 기세를 이어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5시즌도 리그 3위였던 [[수원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어 2016시즌에 클래식에 안착하는 등,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안습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2015시즌 2위였던 대구는 마지막 한 경기를 놓치면서 상주 상무에게 1위자리를 놓치며 2위로 내려왔는데 대구는 수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자동승격권을 놓친것과 더불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마저 놓치는 등 2위 징크스를 K리그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응원팀이 K리그 챌린지에 있는 팬들은 ㅋㄲㅈㅁ를 외치는 중. 물론 여기와 관련없는 클래식 팬들은 매번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팝콘뜯고 구경하는게 다반사다.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2014시즌]]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2015시즌]]
         [[K리그]]
         [[K리그 챌린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분류:축구]][[분류:K리그]]
  • K리그 클래식
         상위항목: [[K리그]]
         K리그 클래식은 2012년 기존 K리그가 [[아시아축구연맹]] AFC의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에 따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승강제]]를 도입함으로써 구분된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리그다.
         K리그는 [[수퍼리그]] 시절부터 승강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승강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팀이 창설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것이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약간의 축구붐이 조성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업팀의 프로화를 통한 K리그 참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상황.
         단적으로 K2리그를 출범하고 리그 우승팀을 프로화시켜 승격을 시키는 방안을 시작으로 실업축구단들의 참가를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프로팀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장기적으로는 K리그의 프로팀 숫자를 늘리고, 늘어난 팀 수를 바탕으로 상위와 하위리그를 나눠 승강제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K2리그라는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본래 K리그의 승강제 구성을 위해 탄생한 2부리그 격 세미프로리그였다. 하지만 2번이나 우승팀들이 승격을 거부함으로써 승강제는 아예 물 건너가게 되었고, K2리그는 내셔널 리그로 이름을 바꿔 완전히 별개의 리그가 되어버린다.
         이후 함맘은 2009년에 '''승강제가 없는 리그는 ACL참가 불가'''라는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390028.html]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여기에 낚여 2012년까지 승강제를 마련하겠노라는 계획서를 제출하게 되고, 이 계획에 따라 진행하여 K리그는 2012년에 승강제 도입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현실이 되었다.]].[* 이런 연맹의 노력이 무색하게 2016년 현재 ACL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승강제가 없는 [[A-리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ACL에 참가하고 있는 걸로 봐선... 안습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이로써 2012년에 승강제 계획안이 발표되고, 2013시즌부터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리그의 명칭은 '''K리그 클래식'''이 되었다.
         2016년 기준, K리그 클래식의 리그 수준은 아시아 '''최고'''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통틀어 1위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ACL 무대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허나 AFC의 최근 트렌드가 축구 개발도상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4장을 배정받던 과거완 달리 현재는 3.5장으로 줄었다. 현재 AFC의 정책이 점점 UEFA의 정책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는 기존 강호들은 3.0장으로 줄어드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의 평가에서 K리그는 세계적으로 30위 내에는 꾸준히 들어가는 리그다. [[http://iffhs.de/the-strongest-league-in-the-world-2015/|2015년 발표만 봐도]] [[그리스]], [[네덜란드]]와 비슷한 점수를 받는 상황. 그리고 [[스코틀랜드]]보다 순위가 더 높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봐도 결코 무시할 리그는 아니다.
         허나 기존에 비해 월등히 경기수가 많아진 44경기이기 때문에 [[K리그 리그컵]]대회는 폐지가 불가피해지게 되었다. 이는 리그컵에 대해 AFC가 아시아 클럽 대항전에 배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발표함으로써 K리그는 리그컵이 폐지되는 원인이 된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12개팀을 이룰 예정이었기 때문에 최하위 2개팀, 13위와 14위팀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12위는 [[K리그 챌린지]] 우승팀과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뤘다.
         K리그 클래식은 AFC에서 인정하는 ACL 진출 가능 리그이다. 2016년 기준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나머지 1개 티켓은 K리그의 결과에 따라 부여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FA컵]]의 결과에 따라 진출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는 대한민국 FA컵 문서에서 다룬다.
         [[K리그 클래식/2016시즌]]
         [[K리그]]
         [[K리그 챌린지]]
         [[분류:축구]] [[분류:K리그]]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상위항목: [[K리그 클래식]]
         || 정식명칭 ||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
         대한민국 축구리그 중 최상위 리그로써 34번째 대회로 정식 명칭은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이다. 후원사는 현대오일뱅크.
         [[상주 상무 프로축구단]] - [[K리그 챌린지/2015시즌|2015시즌 K리그 챌린지]] 우승자격으로 승격
         [[수원 FC]]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2015시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의 승자자격으로 승격
          1. 순위결정방식이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에서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으로 다득점이 득실차(=골득실)보다 우선적용되는 변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소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에서 다룬다.
          1. 전북의 심판매수 사건으로 인해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사항은 [[2013 K리그 심판매수]] 항목을 참고.
         [[K리그]]
         [[K리그 챌린지/2016시즌]]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2016시즌]]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2013 K리그 심판매수]]
         [[분류:축구]] [[분류:K리그]]
  • 강원 FC
         2008년 11월 10일에 창단한 구단으로 2009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구단의 법인지배구조는 [[시민구단]]이고, 연고지는 도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야구의 사례와 빗대어 광역연고구단으로 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딱히 광역연고와 도시연고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연고지는 "구단과 협약을 맺은 지자체의 행정지역과 그 범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연고지 협약을 맺은 지역이 강원도 전체를 대표하는 강원도청이기 때문에 강원FC의 전체 이름은 "강원도민프로축구단"으로 정한 바 있다.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 2009 || K리그 || 15 || 13 || 16강 || - || 창단 ||
         || 2010 || K리그 || 15 || 12 || 32강 || - || ||
         || 2011 || K리그 || 16 || 16 || 4강 || - || ||
         || 2012 || K리그 || 16 || 14 || 16강 || - || ||
         || 2013 || K리그 클래식 || 14 || 12 || 16강 || - || 승강 PO, 챌린지 강등 ||
         || 2014 || K리그 챌린지 || 10 || 3 || 4강 || - || ||
         || 2015 || K리그 챌린지 || 11 || 7 || 16강 || - || ||
         || 2016 || K리그 챌린지 || 11 || 대회진행중 || 대회진행중 || - || ||
         강원의 초기 돌풍을 일으켰던 공격수 [[김영후]]는 [[MBC]]에서 방영했던 [[맨땅에 헤딩]]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내셔널 리그의 공격수에서 K리그의 득점왕 후보에 이르기까지 그 활약이 상당히 인상깊었기에 그 이야기가 모티브를 제공했던 건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드라마의 흥행은 망했다고 전해진다.
         [[K리그]]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
         [[분류:축구]] [[분류:K리그]]
  • 강원도
         2016년 현재 강원도 내 지방자치단체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스포츠 팀으로는 [[K리그]]의 [[강원 FC]][* 메인 연고지는 [[강릉시]]이며 가끔 [[춘천시|춘천]]과 [[원주종합운동장|원주]]는 물론 [[알펜시아 리조트|평창]]에서도 홈경기를 치른다.]와 [[한국프로농구]]의 [[원주 DB 프로미]] 등이 있다. [[KBO 리그]]의 경우 과거 [[삼청태현|인천광역시를 제1연고지로 삼았던 팀들]]의 광역연고권에 강원도가 포함된 적이 있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야구장]]이 세워지기 전인 1980년대 초·중반에는 [[삼청태현|삼미, 청보, 태평양]]의 홈경기가 춘천야구장에서 분산 개최된 적도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1982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치른 공식 홈경기 장소도 [[숭의야구장|인천]]이 아닌 춘천이다. 물론 이 때는 [[숭의야구장]]이 공사 중이어서 춘천에서 경기를 연 것이다. 이 때 야구 경기가 열렸던 춘천야구장은 철거되었고 [[의암 야구장]]이 그 대체 성격으로 완공되었다.] 현재는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영서지역 고등학교(강원고, 원주고)와 영동지역 고등학교(설악고, 강릉고)들을 대상으로 신인 1차 지명권을 갖고 있지만 홈경기 개최 권한과 신인 지명권 관할 지역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WKBL]]에서는 [[아산 우리은행 위비|우리은행 농구단]]이 오랫동안 춘천 연고팀으로 있었지만 2016~2017 시즌부터 돌연 [[아산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강원도 연고의 농구팀은 [[원주 DB 프로미]]만이 남게 됐다.
  • 강철 (축구인)
         1993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 (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하여, 1994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1996년 [[광주 상무 불사조|상무]]에 입대해 1998년 군복무를 마치고 [[부천 SK]]에 복귀하였으며, 2002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2001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LASK 린츠]]로 이적하여 활약하였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49427& 강철·최성용 오스트리아 동반진출]</ref> 2000-01 시즌 결과 팀은 최하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결국 시즌 종료 이후 [[K리그]]의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73437& 강철, 5억 5천에 전남 컴백]</ref> [[FA컵]]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전남 드래곤즈]]에서 [[김태영 (1970년)|김태영]], [[마시에우 루이스 프랑쿠|마시엘]]과 함께 구축한 강력한 3백이 유명하였다.
         하지만 2003년에 당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1년여 동안 지루한 재활치료 기간을 보내 [[K리그 2004|2004시즌]]에는 정규 리그에 뛰지 못하였고, 2004년 9월 1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K리그]] 홈 경기를 끝으로 프로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ref>[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7&key=200408311025018534 전남 수비수 강철, 은퇴]{{깨진 링크|url=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7&key=200408311025018534 }}</ref>
         2010년 11월 8일, [[황선홍]] 감독과 함께 [[포항 스틸러스]]로 팀을 옮겨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으며,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끝으로 황선홍 감독이 팀을 떠남에 따라 포항과 결별하였다. 2015년 12월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amatch/news/read.nhn?oid=055&aid=0000362386 축구협회 기술부위원장에 강철 전 포항 코치 선임 ]</ref>
         2018년 4월 30일 [[황선홍]] 감독이 [[FC 서울]]의 감독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고, 이에 황선홍을 보좌하던 강철 코치도 같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1=정지훈|제목=[K리그1 POINT] 2년 만에 막내린 황선홍 체제, 강철 코치도 떠난다|url=http://interfootball.heraldcorp.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092|날짜=2018-04-30|확인날짜=2018-04-30|뉴스=인터풋볼}}</ref>
         * [[K리그 1999|1999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K리그 2000|200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K리그]] 준우승 2회 : [[K리그 1994|1994년]], [[K리그 2000|2000년]]
         * {{K리그 선수|19980212|강철}}
         |제목= [[한국프로축구연맹|<span style="color:#22559E;">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
         {{1999 K리그 베스트 11}}
         {{2000 K리그 베스트 11}}
         [[분류:LASK 린츠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세미프로)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FC 서울의 수석 코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1996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00년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오스트리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푸스발-분데스리가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오스트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고무열 (축구선수)
         고무열은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팀인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 지명된 후 [[숭실대학교]]에 진학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강원FC, ‘득점 기계’ 김영후-‘대학 최고 MF’ 권순형 우선 지명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39&aid=0001945650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1-18}} }}</ref> 2010년 3월 29일 [[숭실대학교]] 소속으로 출전한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정기전에서 골을 넣으며 1-1 무승부에 힘썼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대학 선발, 日과 비겨 공동우승 |url=http://news.donga.com/3/all/20100329/27190463/1 |출판사=동아닷컴 |date={{날짜한글화|2010-3-29}} }}</ref>
         이후 [[2011 K리그 드래프트|2011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신인선수 드래프트 결과 |url=http://www.welfare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4103 |출판사=웰페어뉴스 |date={{날짜한글화|2010-11-9}} }}</ref> 고무열은 새롭게 부임한 감독이자 [[포항 스틸러스]]의 레전드인 황선홍의 번호인 18번을 받았고,<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신예 고무열, 황 감독 눈도장 '꽝' |url=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24768&news_area=060&news_divide=06002&news_local=&effect=4 |출판사=경북일보 |date={{날짜한글화|2011-1-26}} }}</ref> 시즌 전 13번의 연습 경기에서 11골을 터뜨리며 눈도장을 찍었다.<ref>{{뉴스 인용 |제목=‘경기당 3골’ 화끈한 공격력으로 재무장한 포항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211165459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1-2-11}} }}</ref> [[2011년]] [[3월 20일]], 고무열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수원 2-0 제압… 황선홍, ‘수원 징크스’ 깼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20171208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1-3-20}} }}</ref> 2011년 5월 5일 [[K리그 컵 2011|K리그 컵]]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전반 8분 프로 데뷔 골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집중력 앞세운 포항, 인천 맹폭 3골차 완승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60100052500003755&ServiceDate=20110505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1-5-5}} }}</ref> 이어 10월 30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는 2골 1도움으로 팀의 3-1 승리를 이끄는 등,<ref>{{뉴스 인용 |제목=‘2골1도움’ 고무열, 최종전 맹활약으로 신인왕 찜|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1978307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1-10-30}} }}</ref> [[K리그 2011|2011 시즌]]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그 해 신인 선수들 중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2011 K리그 시상식의 '신인선수상' 부문에서는 당시 [[광주 FC]] 소속의 이승기(57표)에 이은 2위(48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떠오르는 신예’ 이승기, 2011 K리그 신인왕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707353 |출판사=아시아경제 |date={{날짜한글화|2011-12-6}} }}</ref> 2012년에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여파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였으나, 후반기 조금씩 되살아나 팀의 정규리그 3위와 [[FA컵 2012|FA컵]] 우승을 이끌었다. 2013년에는 정규리그 34경기에 나서 8골 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K리그 클래식 2013|정규리그]] 우승과 [[FA컵 2013|FA컵]] 우승에 기여하였고, 2013 K리그 시상식에서는 [[K리그 영플레이어상|영플레이어상]]과 더불어 [[K리그 베스트 11]] 미드필더의 부문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14 시즌에도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과의 1차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팀의 8강 진출을 이끄는 활약을 보였으나, 시즌 막바지에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 시즌을 조금 일찍 마감하였다.
         |[[K리그 2011|2011]] || 24 || 9 || 4 || 1 || 4 || 1 || - || -
         |[[K리그 2012|2012]] || 39 || 6 || 5 || 2 || - || - || 4 || 0
         |[[K리그 클래식 2013|2013]] || 34 || 8 || 4 || 2 || - || - || 4 || 0
         |[[K리그 클래식 2014|2014]] || 27 || 5 || 1 || 0 || - || - || 9 || 2
         |[[K리그 클래식 2015|2015]] || 30 || 6 || 2 || 0 || - || - || - || -
         * [[K리그]]
         ** [[K리그1]] 우승 : 2013, 2017
         ** [[K리그2]] 우승 : 2018
         * [[K리그]]
         **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K리그 영플레이어상]]
         **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K리그 베스트 11|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미드필더(MF) 부문
         * {{K리그 선수|20110248}}
         {{K리그 영플레이어상}}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산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능곡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
  • 고슬기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2008년]], [[상주 상무 피닉스|상무]]에 지원하기 전까지 [[FA컵 (대한민국)|FA컵]] 1경기 출장에 그쳤다. 상무에서 정규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9년]] 11월에 제대할 때까지 37경기에 나서 5골을 성공시켰다. 전역 후 원 소속팀 포항으로 돌아와 1경기를 소화한 후 [[2010년]] [[울산 현대 축구단]]으로 이적하여 2011 [[리그컵]] 우승, 2011 [[K리그]] 준우승, 2012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여하였다. 2013년 카타르 [[엘자이시 스포츠 클럽|엘자이시]]로 이적하였다. 2014년 5월 23일 카타르 리그가 2014-15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제 폐지를 선언하자, 알자이시는 고슬기와 계약 해지를 발표하였다. 2015년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 {{K리그 선수|20050082}}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엘자이시 SC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부리람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태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타이 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태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고슬기 (축구선수)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2008년]], [[상주 상무 피닉스|상무]]에 지원하기 전까지 [[FA컵 (대한민국)|FA컵]] 1경기 출장에 그쳤다. 상무에서 정규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9년]] 11월에 제대할 때까지 37경기에 나서 5골을 성공시켰다. 전역 후 원 소속팀 포항으로 돌아와 1경기를 소화한 후 [[2010년]] [[울산 현대 축구단]]으로 이적하여 2011 [[리그컵]] 우승, 2011 [[K리그]] 준우승, 2012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여하였다. 2013년 카타르 [[엘자이시 스포츠 클럽|엘자이시]]로 이적하였다. 2014년 5월 23일 카타르 리그가 2014-15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제 폐지를 선언하자, 알자이시는 고슬기와 계약 해지를 발표하였다. 2015년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 {{K리그 선수|20050082}}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엘자이시 SC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부리람 유나이티드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태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곽태휘
         중앙대에 입학한 곽태휘는 실력을 인정받아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주장 완장까지 차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런 곽태휘를 눈여겨본 팀은 K리그의 안양 LG (현 FC 서울)였다. 안양 LG는 곽태휘가 중앙대를 졸업한 이후 바로 프로로 데려가겠다면서 입단 제의를 해왔고 곽태휘는 안양의 제안을 수락했다. 꿈에도 그리던 K리그 입성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전남 감독을 지내며 그를 눈여겨본 [[허정무호|허정무 감독]]의 부름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기 시작해 [[조광래호|조광래 체제]]를 거쳐 [[최강희호|최강희 체제]]까지 꾸준히 부름을 받았다. 다만 [[유리몸]]이 항상 문제였는데 2008년 한해에만 2번(3월,11월) 수술대에 오르는 등 전남에서는 2시즌 반을 뛰는 동안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른 적이 없었다. 2011년 울산 입단 이전까지는 K리그에서의 족적은 그다지 크지 않다. 서울에서는 유망주 및 백업 수준이었고 전남에서도 2007년 FA컵 결승에서 골을 기록해 우승에 기여한것이 다였다. [[전남 드래곤즈]]가 하위권을 탈피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2009년에는 한 시즌내내 전열에서 이탈해 있었다.
         2011년에는 [[울산 현대]]로 이적한 후 [[김호곤]] 감독의 베스트 일레븐만 주구장창 돌리는 전술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부상 없이 한시즌을 소화하면서 리그컵 우승과 [[K리그]] 정규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8월 24일 [[아챔|ACL]] 8강 1차전 [[산둥 루넝]]과의 홈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산둥의 공격수 [[그라치아노 펠레]]를 꽁꽁 묶는 활약을 펼쳤다. 시즌 후반기에는 오스마르, 곽태휘 둘 다 발이 느려 발 빠른 크랙에게 손쉽게 돌파당하는 취약점이 두드러지면서 오스마르가 중원으로 올라가고 [[김남춘]]과 중앙 수비진을 구성했다.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마지막 라운드 징계로 심판 매수로 인해 승점이 삭감되어 승점이 동률이 된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전북을 꺾고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도 곽태휘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5월 12일 강원FC 와의 경기에서 헤딩으로 시즌 첫 골을 기록하였다. [[김원균]]과 함께 감독이 바뀌었음에도 계속해서 주전 센터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부상 루머가 있는 이웅희를 제외한다고 쳐도 지난해 K리그 베스트11 후보였던 [[황현수]], [[대구 FC|K리그1 팀]] 주전에 있었던 [[김동우(축구선수)]], [[김원식(축구선수)|김원식]] 등 30대 초반이나 20대인 경쟁자를 모두 넘고 37세의 나이로 주전을 지키는 것은 어찌됐건 대단한 일. 하지만 이후 김동우와 김원균에게 밀려 8월 중순 현재 대기명단에도 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곽태휘로서는 아시안컵은 그간의 오명과 불운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데에 성공한 본인에게는 만족스러운 대회였을 것이다. 아시안컵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곽태휘만 나오면 축구팬들은 불안해하고 신뢰하지 못했었는데, 곽태휘 또한 몇 차례의 큰 실수나 불안한 수비를 보여주며 불안감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작 리그에서는 그러한 모습은 거의 없었고 전남, 울산 시절에는 항상 수비진의 리더로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안정적으로 수비를 하여 대표팀에서의 모습을 의아해하는 K리그 팬들도 많았다. 아시안컵 기간 그의 활약상은 그가 항상 불안하고 수비를 못하는 선수가 아니었음을, 팀 전술을 알맞게 맞추고 선수의 적절한 기용과 조합에 따라서 전력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지난 브라질 월드컵 이후 180도 달라진 대표팀과 함께 좋은 예가 되었다.
         그러나 2016년 들어서 급격한 노쇠화를 드러내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중동에서 다시 K리그로 복귀한 2016년 중순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는데, 예전부터 고질적인 약점인 느린 발과 민첩성이 노쇠화와 겹치는 바람에 대표팀과 소속팀인 서울에서도 구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 K리그 클래식 우승 : 2016
          * K리그 준우승 : 2011
          * K리그 베스트 11 : 2011, 2012
         ||<:><-12><table align=center><#ee1111> '''{{{#ffffff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12><#ee1111> '''{{{#ffffff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 광주 FC
         2010년 12월 16일에 창단한 구단[* 창단식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인은 10월에 이미 나 있던 상태였다.]으로 2011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K리그의 16번째 구단이며, 순서상 6번째 [[시민구단]]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두고 활동한다. 정식명칭은 "광주시민프로축구단".
         그러나 광주광역시의 신생구단 창단은 상당히 지지부진하여 2008년 연고협약 종료시점까지 광주로 오려는 팀은 없어 창단이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고, 2009년에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울산 현대미포조선 축구단을 K리그 참가조건으로 유치하려 했으나 이 역시도 울산미포조선은 애초에 K리그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았기에 2번과 4번을 혼용하는 대안 역시 폐기된다.[* 기업구단을 유치하려 했던 이유는 2001년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금액과는 달리 K리그 1년 운영비가 120억 수준이라는 것에 기겁(...)한 감이 있다. 2001년 시점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K리그 구단의 1년 운영비는 40억 수준이었는데 지금와서 보면 택도 없이 낮은 금액.] 또한 이 상무와의 연고협약 과정에서 광주광역시는 이미 한국프로축구연맹에 K리그 참가를 전제로 이미 회원가입비 + 축구발전금으로 40억원을 납부한 상황이었는데... '''만약 팀 창단을 하지 않으면 이 40억이 공중분해되는 마술이 펼쳐질 상황'''이라 결국 시에서 직접 나서는 5번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상무와 연고협약이 연장된 2년의 유예기간 안에 창단을 안 할시에는 그대로 돈이 날아가는 조건이었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2011 || K리그 || 16 || 11 || 32강 || - || 창단 ||
         || 2012 || K리그 || 16 || 15 || 16강 || - || 챌린지 강등 ||
         || 2013 || K리그 챌린지 || 8 || 3 || 16강 || - || ||
         || 2014 || K리그 챌린지 || 10 || 2 || 16강 || - || 승강PO, 클래식 승격 ||
         || 2015 || K리그 클래식 || 12 || 10 || 16강 || - || 승격팀의 첫 잔류사례 ||
         || 2016 || K리그 클래식 || 12 || 대회진행중 || 대회진행중 || - || ||
         [[K리그]]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
         [[분류:축구]] [[분류:K리그]]
  • 김기희 (축구선수)
         어린 시절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김기희는 [[2011년]] [[대구 FC]]에 입단, 3월 5일 광주 FC와의 리그 원정 경기(3:2, 광주 승)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다. 입단 첫 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주전 센터백이었던이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방출당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입단 첫 해에는 12경기에 출전했다.
         [[2012년]] [[3월 31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K리그]]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이 골로 팀은 전북에 3-2 역전승을 거뒀다.
         [[2016년]] [[2월 18일]] [[중국 슈퍼리그]] [[상하이 뤼디 선화|상하이 선화]]로 K리그 역대 최다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며 이적했다. 이적료는 6백만 달러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기희 전북 이적, 전북 A대표팀 수비라인 가동 |url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61823 |출판사 = 스포츠조선 |저자 = 하성룡 |날짜 = 2013-07-09 }}</ref>
         * {{K리그 선수|20110119}}
         {{2015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카타르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중국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미국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알사일리야 SC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하이 뤼디 선화의 축구 선수]][[분류:시애틀 사운더스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
         [[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부경고등학교 동문]][[분류:장평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덕천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중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미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병석
         [[2009년]] [[몬테디오 야마가타]]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일본]] 무대에 진출하여 2시즌 간 리그 22경기에서 출전 2골을 기록하였다. 계약 기간 만료 후 [[J리그 디비전 2]]의 [[사간 도스]]에 입단하여 1년 간 활약하였으나 국내 복귀를 마음먹고 [[K리그]] 행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알나스르 (리야드)|알나스르]]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 {{K리그 선수|20120265}}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비토리아 FC의 축구 선수]][[분류:몬테디오 야마가타의 축구 선수]][[분류:사간 도스의 축구 선수]][[분류:알나스르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이랜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그리너스 FC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포르투갈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프리메이라리가의 축구 선수]][[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서울전농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포르투갈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병석 (축구선수)
         [[2009년]] [[몬테디오 야마가타]]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일본]] 무대에 진출하여 2시즌 간 리그 22경기에서 출전 2골을 기록하였다. 계약 기간 만료 후 [[J리그 디비전 2]]의 [[사간 도스]]에 입단하여 1년 간 활약하였으나 국내 복귀를 마음먹고 [[K리그]] 행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 {{K리그 선수|20120265}}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비토리아 FC의 축구 선수]][[분류:몬테디오 야마가타의 축구 선수]][[분류:사간 도스의 축구 선수]][[분류:알나스르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이랜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그리너스 FC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포르투갈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프리메이라리가의 축구 선수]][[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서울전농초등학교 동문]][[분류:한양중학교 동문]][[분류:한양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포르투갈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병채
         [[K리그]]의 [[FC 서울]],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불사조]], [[경남 FC]], [[부산 아이파크]], 그리고 [[내셔널리그 (대한민국)|내셔널리그]]의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뛴 적이 있다.
         * {{K리그 선수|20000120}}
  • 김병채 (축구선수)
         [[K리그]]의 [[FC 서울]],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불사조]], [[경남 FC]], [[부산 아이파크]], 그리고 [[내셔널리그 (대한민국)|내셔널리그]]의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뛴 적이 있다.
         * {{K리그 선수|20000120}}
  • 김성주(축구선수)
         2015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 [[마틴 레니]]가 우선 지명을 하며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했다.
         6월 28일 [[안산 경찰청]]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후반 주민규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이번 승리로 원정 7연승을 달성하며 K리그 챌린지 역대 원정연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되었다.[14] 1득점을 기록한 주민규가 MOM 선정. 9승 4무 3패, 리그 2위 유지.
         2016년 [[상주 상무]]에 입대하여 11경기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21경기 1도움을 기록하였고, 9월에 전역하여 [[서울 이랜드 FC]]로 복귀하여 5경기를 뛰었다. [[K리그]] 데뷔를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했기 때문에 실력에 의문을 갖는 팬들이 많았지만, 2년 연속으로 [[상주 상무]]의 클래식 잔류를 도왔다는 점에서 클래식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듯.
         2017년 12월 19일 [[울산 현대]]로 이적하면서 다시 [[K리그1]] 무대를 밟게 되었다. [[http://naver.me/F78dTvPp|#]]
  • 김승규
         [[울산 현대|울산]] 입단 후 3번째 시즌인 2008년 처음 데뷔 경기를 가졌다. 그런데 그 경기가 바로 한 시즌 성적이 좌우되는 '''준 플레이오프''' 경기였고, 상대 팀은 [[울산 현대]]의 숙적이자 '''[[영남 더비]]'''의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였다. 이 경기에서 연장전 말미에 승부차기용 선수로 김영광을 대신해 투입되었고, 상대 1,2번 키커의 슈팅을 연달아 막아내면서 소속팀 [[울산 현대|울산]]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켰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였으며 '''이 때부터 [[포항 스틸러스]] 팬들은 ~~김승규의 해외 진출을 기원할 정도로~~ 김승규와 지긋지긋한 악연을 쌓기 시작한다.'''
         2시즌을 벤치에서 쉬고 2011년에 다시 [[K리그]]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무대도 마찬가지로 준 플레이오프 경기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을 상대로 연장전에 교체 투입되었고 2008년과 똑같이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플레이오프로 진출한 울산의 상대는 이번에도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포항]]이었는데,''' 경고누적이었던 김영광 대신 선발 출장한 김승규는 '''전반전에만 포항의 페널티킥을 2개 연속으로 막아내는 신기를 선보였다.~~울산 골키퍼 벤치 3년이면 페널티킥은 그냥 막는다.~~ ''' [[울산 현대|울산]]은 후반전 설기현의 결승골로 포항을 1-0으로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였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에 무릎을 꿇었지만 정규시즌을 6위로 마친 울산이 6강 PO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준우승이라는 이변을 일으킨 데에는 김승규의 공이 컸다.
         그러나 11월 [[정성룡]]과의 차기 수문장 맞대결로 펼쳐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염기훈]]의 ~~오른발~~크로스를 펀칭을 잘못해 자기 골문으로 집어넣으며 자책성 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K리그]] 우승을 놓고 맞대결한 [[포항 스틸러스]]와의 시즌 최종전 홈경기에서는 90분 동안 포항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놓고 후반 추가시간 95분에 상대의 세트피스에 이은 정면슈팅을 잡지 못해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결국 김원일에게 골을 허용한 후 그라운드에 누워 버리며 [[멘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성룡]]과의 국가대표 수문장 경쟁을 놓고 언론의 계속된 보도로 인해 [[정성룡]]뿐만 아니라 김승규도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어린 나이에 K리그에 입성할 만큼 촉망받는 유망주였기에 연령별 대표팀을 고루 거쳤다.
         8강전은~~설레발의 지존~~언론들이 흘리는 진정한 위기 1번째인 한일전, 경기 전부터 ~~설레발의 원조~~일본 대표팀의 아시안 게임 2연패를 호기롭게 자신하며 한국 앞마당에서 멀티를 까겠다며 어그로를 끄는 등 이슈가 많았으나~~막장 드라마식 복선~~정작 경기를 시작하니 어디서 많이 본~~철퇴축구??~~ 전술을 들고 나온 일본은 대 토너먼트에 적합한 전술을 고르긴 했지만~~[[광전사(스타크래프트 시리즈)|울산의 영광을 일본에게]]~~정작 쓰는 놈은 일본인지라... 마치 일본앞에서 스시타카 했던 [[조광래|평화왕]]마냥 K리그 출신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대한민국 팀에겐 마치 상대가 안경벗고 싸우자는 형국이라... 신나게 가패삼을 시전하던 중 후반 31분 약간 혼전인 상황에서
         2013년 11월 15일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도 출전하여 2:1 승리에 기여했다. [[정성룡]]의 부진으로 인해 새로운 차기 국대 주전 골키퍼 후보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K리그]]와 국대 두 곳 모두 김승규가 더 좋은 폼을 보여 주었기에.
          * K리그 클래식 준우승 : 2011, 2013
          *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베스트 11 골키퍼부문 : 2013
         ||<:><-12><#ee1111> '''{{{#ffffff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 ||
         현역 골키퍼 중 페널티킥 방어에 관한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페널티킥을 잘 막기로는 세계적인 수준이었던 선배 [[이운재]]도 인정하는 실력. 공식 경기에서 허용한 페널티킥보다 막은 페널티킥이 더 많다고도 한다. 특히 K리그 플레이오프 등 큰 경기에서 막아낸 임팩트 있는 선방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는 연장전 동안 승부차기를 생각했으며 종료 10분을 남기고, 상대의 슈팅과 스타일을 파악했다고 말할 정도. 그래서 [[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41003002306155|선수들에게 천천히 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페널티킥 선방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알랴줌|나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데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 [[이범영]],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과는 대한민국 골키퍼 계보를 이을 신흥 라이벌이다. 흡사 [[김병지]], [[이운재]], 김영광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구도이다. 연령별 대표를 거치면서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해 왔으며, 올림픽 대표로서 런던 올림픽을 치르며 이범영이 치고 나가는가 하면, 아시안게임에선 김승규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엎지락 뒤치락하며 경쟁 중이다. 그 중 A대표팀에서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김승규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백업으로 뛰는 [[이범영]]의 한 살 터울 동생인 이범수 또한 김승규와 동갑이라서 연령별 대표팀에서 수차례 만나 경쟁을 벌여왔던 탓에 김승규는 이범영, 이범수 형제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 [[2015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에 진출하고 무실점으로 활약을 인정받으면서 눈도장을 새롭게 찍은 김진현 때문에 [[김승규]]와 [[이범영]]이 주전에서 약간 밀려난 감이 있다. 하지만 [[이운재]]가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 다른 골키퍼들도 실력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김진현, 이범영과의 경쟁은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전북 현대 모터스]]의 [[권순태]]와 [[포항 스틸러스]]의 [[신화용]]도 [[K리그 클래식]]에서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므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시험을 해 본다면 더욱 더 치열한 경쟁이 될 듯 하다.
  • 김승대
         ||<-5><table bordercolor=#000000><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bgcolor=#ffffff><:>[[K리그/개인상#s-5|{{{#EE3224 '''영플레이어상'''}}}]] ||
          * 2013년 3월 17일, 수원전에서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뤘다.
          * 2013년 7월 3일, 서울전에서 K리그 클래식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 2013년 11월 3일, 부산전에서 K리그 클래식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 2018년 3월 11일, 전남전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통산 98경기 [[20-20 클럽#s-2|24득점 20도움]]을 달성했다.
          * 2018년 3월 31일, 울산전에서 K리그 통산 100경기 출장기록을 달성했다.
         || K리그 클래식 || 100경기 || 25골 || 20도움 ||
         === K리그 클래식 ===
         ||<#00703c> '''{{{#eee156 2013.10.19}}}'''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북}}}''' ||<#00703c> '''{{{#eee156 득점}}}''' [* K리그 클래식, FA컵, ACL 통틀어 프로 데뷔골] ||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절했지만, 황진성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컵]]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나름 선전하긴 했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탑 클래스로 평가를 받던 이명주와의 환상의 콤비가 깨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2017년에는 재차 부진에 빠지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될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는 등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13일 '''포항이 김승대 임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5693|단독 기사]]가 떴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인 [[이명주]]가 [[포항 스틸러스|친정]]과 [[FC 서울|마음 급한 황새]]를 사이에 두고 K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식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김승대까지 포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포항 팬덤은 순간 들끓어 올랐다.
         옌볜 푸더가 알바니아 국대 출신인 발데트 라마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황일수]]를 영입하면서 김승대가 [[FA]]로 풀리게 되었고,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으로 포항으로 복귀했다! 게다가 [[FC 서울]]로 도망간 [[이명주|자신의 옛 파트너]]와 다르게 제주에서 황일수와 트레이드를 제안하고, 복수의 K리그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포항행을 결정지은 것이 알려지면서 근래에 숱하게 통수를 맞은(...) 포항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19326&redirect=true|#]] --특히 포항 거주 팬들 사이에서 '''쌍사드립'''[*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쌍용사거리'''라고 알려진 동네가 있다. 옛날에 쌍용차 대리점이 있던 자리인데 대리점이 옮기고 나서도 고유명사로 붙어버렸다. 술집과 노래주점이 많아서 포항 사람들이 술먹고 노는 주요 거점이다. 김승대가 포항 토박이다 보니 --친구따라-- 쌍사에 출몰했다는 썰이 많아서 흥한 드립.]이 흥했다--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00703c> '''{{{#eee156 K리그 클래식}}}''' ||<#00703c> '''{{{#eee156 1회}}}''' ||<#00703c> '''{{{#eee156 2013}}}''' ||
  • 김영후
         김영후는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교 졸업 후 [[2006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 어떤 팀에도 지명받지 못하였고, [[일본]] [[J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의 입단테스트를 받았으나 실패했다.
         [[2007년]] 팀을 [[내셔널리그 (대한민국)|내셔널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당시 논의되고 있던 [[K리그]]와의 승강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었으나, 결국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승격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201233082233 울산미포조선, 내셔널리그 연맹에 승격 유보 공식 전달 ]</ref>
         [[2008년 12월]] 팀의 [[내셔널리그 (대한민국)|내셔널리그]] 2연패를 이룩한 뒤 '[[2009 K리그 드래프트|2009 K리그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08년]]까지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에서 함께한 [[최순호]]가 초대 감독으로 선임된 새롭게 창단된 [[강원 FC]]에 우선 지명으로 입단하여 전 소속팀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승격의 꿈을 대신하였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81118083804 강원FC, ‘득점 기계’ 김영후-‘대학 최고 MF’ 권순형 우선 지명 ]</ref> [[K리그 2009|2009 K리그]]에서 시즌 초반엔 좀처럼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며 주변의 우려를 샀지만 시즌 개막 후 1달만인 [[4월 11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뽑아냈다. 이후 골 폭풍을 몰아치며 리그 27서울에서 13골 8도움을 기록해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 [[2009년]] [[K리그 영플레이어상|K리그 신인상]] 수상
         * {{K리그 선수|20090144}}
         |내용='''[[K리그 신인선수상]]'''
         |기간='''[[K리그 2009|2009년]]'''
         {{K리그 신인상}}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FC 안양의 축구 선수]][[분류:선전 FC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중국 갑급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중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2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은중
         [[2004년]] 1월 [[대전 시티즌]] 복귀 대신 언젠가 다시 서울으로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K리그]]의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로 이적하였으며, 이로 인해 많은 대전팬들이 그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34&article_id=0000077750 김은중,이적료 10억원에 안양 이적 ]</ref><ref> [http://m.isplu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9052737&cloc=#_adtep/ ‘레전드’ 김은중이 말하는 대전 “미안하다 사랑한다”]</ref> 서울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활약하던 중 [[K리그 2007|2007 시즌]] 잔부상과 이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정조국]]과 [[박주영]] 등에 주전 자리를 내주기도 하였으나 [[2008년]] [[K리그 2008|K리그]] 준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5년]] [[5월 22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8번째로 20-20 클럽에 가입하였고,<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3387 '샤프'김은중, 20-20 클럽 가입 시상식 ]</ref> [[2008년]] [[5월 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2번째로 [[K리그 득점-도움 기록#30-30 클럽|30-30 클럽]]에 가입하였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7406 김은중(서울), 30-30 달성 ]{{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7406 }}</ref>
         [[2009년]] [[K리그 자유계약선수제도|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김은중은 신생팀 [[강원 FC|강원]]으로의 이적을 추진하였으나 불발되었고,<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90206111611 김은중, 강원FC행 불발… 해외진출도 모색? ]{{깨진 링크|url=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90206111611 }}</ref> 결국 [[K리그]] 선수 등록 마감일 내에 소속팀을 찾지 못하였다.<ref>[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contents_id=AKR20090303079900007 김은중 '어디로'..K-리그 미등록 ]{{깨진 링크|url=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contents_id=AKR20090303079900007 }}</ref> 2009년 [[K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된 김은중은 [[중국 슈퍼리그]]의 [[광저우 푸리|창사 진더]]에 입단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131241272237 김은중, 중국 수퍼리그 창사 진더 입단]</ref>
         [[중국]]에서의 2009 시즌을 끝내고 [[2009년 12월]],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이 확정되어 K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2010년]] [[8월 28일]] [[대전 시티즌]]과의 서울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K리그 통산 10번째로 [[K리그 득점-도움 기록#40-40 클럽|40-40 클럽]]에 가입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 동안 정규리그에서만 13골 10도움, 컵대회 포함 17골 10도움으로 개인 통산 최다 공격포인트을 기록하며 [[제주 유나이티드]]의 정규리그 준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고, [[2010년]] [[K리그 최우수선수상|K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343&aid=0000007408 MVP 김은중 "다시 태어난 기분"]</ref> [[K리그 2011|이듬해]] [[7월 2일]] 강원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는데, 각각 시즌 3, 4호 골이자 역대 K리그에서 7번째로 100호 골을 달성하는 선수로 기록되었다.<ref name="경남, 콜롬비아 출신 공격수 조르단 영입">{{뉴스 인용 |제목=김은중, 역대 7번째 개인통산 100호골 달성 |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3859 |출판사=파이낸셜뉴스 |저자=송영두 |날짜=2011년 7월 3일 |확인날짜=2011년 11월 8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17101137/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3859 |보존날짜=2014년 8월 17일 |깨진링크=예 }}</ref>
         하지만 2013 시즌에는 노쇠화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3년]] [[7월 28일]], 김은중은 [[포항 스틸러스]]로 임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베테랑 공격수 김은중 6개월간 임대 영입 |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217688 |출판사=파이낸셜뉴스 스타N |저자=장우영 |날짜=2013년 7월 28일 |확인날짜=2013-07-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11000723/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217688 |보존날짜=2013-12-11 |깨진링크=예 }}</ref> 26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고, [[K리그 클래식]] 우승, [[FA컵 (대한민국)|FA컵]] 우승에 일조하였다.
         === K리그 ===
         김은중은 2015년 방영된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의 선수단의 [[벨기에]] 전지 훈련 당시 스페셜 코치로 선수단을 지도한 바 있다.<ref>[http://m.kyeongin.com/view.php?key=990550/'청춘FC K리그 레전드 김은중 스페셜 코치 등장]</ref>
         * '''[[K리그2]]'''
         : {{1위(메달)}} '''우승 (1)''': [[K리그 챌린지 2014|2014]]
         * '''[[K리그1]]'''
         : {{2위(메달)}} '''준우승 (1)''': [[K리그 2008|2008]]
         * '''[[K리그1]]'''
         : {{2위(메달)}} '''준우승 (1)''': [[K리그 2010|2010]]
         * '''[[K리그1]]'''
         : {{1위(메달)}} '''우승 (1)''': [[K리그 클래식 2013|2013]]
         * [[2004년]] [[K리그 올스타전]] MVP 수상
         * [[2006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2010년]] [[K리그 최우수선수상]] 수상
         * [[201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K리그 선수|19970315}}
         |내용='''[[K리그1 MVP]]'''
  • 김정남 (축구인)
         '''김정남'''(金正男, [[1943년]] [[1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이다. 2005년에 [[울산 현대 축구단]]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2008년 12월에 8년간 감독을 맡았던 [[울산 현대 축구단]] 감독직에서 물러나 같은 팀의 고문을 맡았다. [[K리그]]에서 210승으로 역대 감독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70516|저자=|제목=열혈팬이 찾아낸 귀중한 1승|날짜=2012-06-19|출판사=스포츠서울}}</ref>
         {{K리그1 감독상}}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수비수]][[분류:축구 스위퍼]][[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산둥 루넝 타이산의 축구 감독]][[분류:칭다오 중넝의 축구 감독]][[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196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6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7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7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1986년 FIFA 월드컵 참가 감독]][[분류:1980년 AFC 아시안컵 참가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분류:중국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불교 이탈자]][[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분류:K리그1 감독상 수상자]]
  • 김지혁 (축구선수)
         '''김지혁'''(金志赫, [[1981년]] [[10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부산광역시]] 출생으로 [[부경고등학교|경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승부조작]] 혐의로 K리그에서 영구제명되었다.
         [[2001년]] [[부산 아이파크|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4년 동안 [[리그컵 (대한민국)|하우젠 컵]]을 포함하여 5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2005년]]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한 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2254 울산 골키퍼 김지혁 영입 ]{{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2254 }}</ref> 그 해 리그에서 4경기를 뛰었고,
         [[2006년]] 리그에서 19경기를 뛰었지만, [[2007년]] [[리그컵 (대한민국)|하우젠 컵]]을 포함하여 5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2008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한 뒤<ref>[http://www.steelers.co.kr/news/steelers/view.asp?seq=1415 포항, 베테랑 골키퍼 김지혁 영입 ]{{깨진 링크|url=http://www.steelers.co.kr/news/steelers/view.asp?seq=1415 }}</ref> 그 해 리그에서 19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고 있으며, [[2008년]] [[FA컵 (대한민국)|FA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2010년]] 광주 상무 불사조([[상주 상무 피닉스]] 전신)에 입대하여 등과 경쟁을 하며 출장을 해갔으나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혐의가 인정이 되면서 K리그에서 영구제명과 함께 퇴출되었다. 이후 2012년 승부조작 가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금품 수수 혐의는 그대로 인정되어 징계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5|2005년]])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남상업고등학교 동문]]
  • 김치곤 (축구선수)
         [[2002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서 데뷔하여, 그 해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한 후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고, [[2009년]] [[FC 서울]]의 주장에 선임되었다.<ref>[http://www.fcseoul.com/news/news/news_view.jsp?seq=1525 2009시즌 FC서울의 새로운 캡틴 김치곤 ]{{깨진 링크|url=http://www.fcseoul.com/news/news/news_view.jsp?seq=1525 }}</ref>
         [[2010년]] [[현영민]]을 상대로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에 트레이드됐다. 이적 후 주전 수비수로 리그 28경기에 출전하였고 [[K리그 2010|2010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하여 리그 41경기를 소화한 후 [[2012년]] [[9월 10일]] 전역하여 원 소속팀으로 복귀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에는 팀을 준우승을 이끄는 등 맹활약을 바탕으로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에 선정되었다.
         * [[2013년]]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DF 수상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8|2008년]])
         * [[K리그 클래식]] 준우승 1회 ([[K리그 2013|2013년]])
         * {{K리그 선수|20020093}}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래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말레이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
  • 김치우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름이 '치우'인 것과 경기를 지배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치우천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왼발 킥이 뛰어나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오른발킥은 그리 좋지 못해 '오른발의 맙소사'라는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FC 서울]] 역사상 가장 극적인 골 중 하나로 꼽히는 2010년 [[K리그 챔피언십|K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서울에서 추가시간 중 동점골을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넣기도 하였다.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고, [[2005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메리디안 수페르리가|프르바리가]]의 [[FK 파르티잔]]에서 6개월간 임대 생활을 하며 2004-05 시즌 리그 우승에 공헌한 뒤, [[2005년 6월]] 인천 유나이티드로 복귀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506301340490500 김치우, 파르티잔에서 인천 복귀 ]</ref> [[200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에 승선한 뒤 연봉 문제를 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와 갈등을 빚었고, [[2007년 1월]]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521521 프로축구 인천-전남, 김치우-이동원 맞교환]</ref>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한 이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FA컵 2007|2007년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고, 대회 MVP를 차지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12020075 '챔프전 1골-1도움' 김치우, FA컵 MVP ]{{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12020075 }}</ref> [[2008년 7월]] [[FC 서울]]로 이적하여,<ref>[http://www.fcseoul.com/news/news/news_view.jsp?seq=1288 FC서울 국가대표 수비수 김치우 영입 ]{{깨진 링크|url=http://www.fcseoul.com/news/news/news_view.jsp?seq=1288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K리그 2009|2009 K리그]]에선 시즌 중반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6월 8일]], [[탈장]] 증세를 보이며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도 결장하였다. [[7월 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서울에서 복귀하였다.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와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출전하여 극적 동점골을 터뜨려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 도중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주로 왼쪽 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잔부상으로 상무에서의 시즌을 모두 소화하지는 못하였다. [[9월 10일]] 전역하여 원 소속팀인 서울로 복귀하였다.
         2017시즌까지 [[FC 서울]]에서 선수 경력을 마친후, 2018년 1월 [[K리그 챌린지]]의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8010215260016§ion_code=10&key=&field=&search_key=y 단독 'FA' 김치우, 부산 유니폼 입는다.... 서울과 작별]</ref>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5|2005년]])
         ** [[K리그 클래식]] 우승 3회 ([[K리그 2010|2010년]], [[K리그 2012|2012년]], [[K리그 2016|2016년]])
         ** [[K리그 클래식]] 준우승 1회 ([[K리그 2008|2008년]])
         * {{K리그 선수|20040037}}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세르비아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FK 파르티잔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세르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세르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태환 (1989년생 축구 선수)
         '''김태환''' (金太煥, [[1989년]] [[7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우측 윙어가 주 포지션으로 현재 [[K리그1]] [[울산 현대 FC|울산 현대]]에서 뛰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성인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대구 FC]]와의 연습광주에 출전하였다.
         [[2009년 12월]] [[FC 서울]]에 입단하였으며, [[K리그 2010|2010 시즌]]에 리그컵 포함 19광주에 출장하였다.
         [[2013년 1월]]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다. [[7월 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16라운드 전북과의 원정 광주에서, 부상자가 발생해 성남이 자발적으로 아웃시킨 공을 [[전북 현대|전북]] [[이동국]]이 광주를 재개하기 위해 성남 골키퍼 쪽으로 찬다는 것이 너무 강하게 날아가 그대로 성남의 골망을 가른 후 발생한 몸싸움 상황에서 상대팀 선수를 밀쳐 데뷔 후 첫 레드 카드를 받았다.
         * [[K리그]] 우승 2회 ([[K리그 2010|2010년]], [[K리그 2012|2012년]])
         *{{K리그 선수|20100052}}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광주남초등학교 동문]][[분류:광주북성중학교 동문]]
  • 김한윤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K리그 통산 430경기에서 143장의 옐로카드를 받아 이 부분 1위에 올라있다. [[K리그]] 사상 최초로 100장의 경고를 받은 선수이며 K리그 통산 9번째, 필드 플레이어로는 6번째로 400경기 출장기록을 세웠다. K리그의 대표적인 '''unsung hero''' 1997년 데뷔하여 2013년 40세로 은퇴할 때까지 언제나 묵묵히 팀의 후방을 책임지며 팀의 심장 역할을 했다. 거친 이미지에 가려 오랫동안 제대로 된 평가가 드물었지만 그의 성실함을 아는 팬들은 누구나 그의 진가를 인정했다. 상대팀일 땐 그렇게 짜증나다가도 우리편이 되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 없었던 선수.
         하지만 이내 이 영입은 [[신의 한수]]임이 드러났다. 4월 20일 러시앤캐시컵 상주전에서 골을 기록했고 4월 24일 K리그 7라운드 대전전에도 득점을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상운 등 젊고 빠른 선수들을 대거 보유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최악의 3월을 보낸 부산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노련미와 녹슬지 않은 수비력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재산이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팀의 든든한 후방지원조이자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어 주었고 이를 믿고 겁없이 돌격한 젊은 선수들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해냈다.
         그리고 2012년 부산은 마침내 '''질식수비'''라는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닥공에 이은 K리그의 또다른 히트 상품이 되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news&mod=read&office_id=260&article_id=0000000517|분석 기사]]
         K리그의 레전드 중 한 명 임에도 지난 몇년 연고이전 팀의 선수라는 색안경과 거친 플레이로 저평가 받았던 이 노장은 실력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물론 서울 팬들은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가 은퇴 후 다른 팀에서 현역 복귀를 하는 것을 보며 터지는 복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 김형범
         '''김형범'''(金炯氾, [[1984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K리그]]와 [[리그컵 (대한민국)|리그컵]]을 합산하여 K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프리킥 득점을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pro/2008/0922/20080922101020100000000_6029835175.html 프리킥의 달인 김형범, 이천수-고종수 넘었다) ]{{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pro/2008/0922/20080922101020100000000_6029835175.html }}</ref>
         결국 타의에 의해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으며,<ref>[http://www.hyundai-motorsfc.com/web/News/MotorsNews/MotorsNewsView.aspx?idx=3674 미드필더 김형범 영입 ]</ref> 이적 후 첫 시즌에 치른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서울에서 5골을 넣으며 팀의 대회 8강 진출에 혁혁한 공헌을 했다. [[2006년 7월]] 팀 동료인 [[염기훈]]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부상을 입기도 하였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3&aid=0000034403 전북 염기훈 김형범, 교통사고... 큰 부상은 안 당해 ]</ref> 회복 이후 [[AFC 챔피언스리그 2006|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2006년]] [[K리그]] 최초로 팀을 [[FIFA 클럽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데 공헌하였고, [[FIFA 클럽 월드컵]] 5-6위전에서 [[오클랜드 시티 FC]]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17000551&cid=0101110300000&dataid=200612170021000004 김형범 펄펄…전북 5위 마감 ]</ref> 하지만 [[2007년]] 3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K리그]] 2라운드 서울에서 무릎 부상을 입어 6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은 후 9월 복귀하였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70317144942 전북 김형범 부상 심각… 시즌 아웃 위기 ]</ref><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3270008 김형범 측, "시즌 마감 보도 사실 아냐" ]{{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3270008 }}</ref><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9140080 '6개월 만에 복귀' 김형범, '전북 구세주' 기대 ]{{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9140080 }}</ref> 또한 [[2008년 11월]],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와의 [[K리그]] 플레이오프 서울에서 발복 부상을 입어<ref>[http://www.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81124142629 '프리킥의 달인' 김형범, 발목 인대 파열… 남은 서울 못 뛴다 ]</ref> 6개월 동안 재활치료를 받다가 [[2009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K리그]] 15라운드 서울에서 복귀하였으나, 그 서울에서 무릎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진단을 받는 등<ref>[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101827/language/ko-KR/Default.aspx 김형범, 8개월 만의 복귀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눈물' ]{{깨진 링크|url=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101827/language/ko-KR/Default.aspx }}</ref><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30085 '지독한 불운아' 김형범, 무릎 부상 '시즌 아웃' ]{{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30085 }}</ref> 연속적으로 큰 부상을 입어 많은 서울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K리그 2012|2012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 이적하였다. [[4월 23일]] 프리킥 득점을 성공시키며 [[2010년]] [[9월 26일]] 이후 1년여 만에 골을 기록하였다.
         [[2006년]] [[K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으나, 교통사고를 당하여 부상을 입어 [[보띠]]가 대신 엔트리에 포함되었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9859 올스타전 선발 전북 김형범, 부상으로 보띠로 교체 ]{{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9859 }}</ref>
         [[2009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K리그]] 15라운드 서울에서 후반 31분 교체 투입되어 복귀전을 치렀으나, 후반 41분 [[곽희주]]의 태클에 넘어져 무릎 부상을 입어 교체 아웃되자, 이에 격분한 [[전북 현대 모터스]]의 일부 서포터들이 서울가 끝난 후 [[곽희주]] 선수를 비난하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단 버스의 출발을 1시간 이상 지연시키고 물병을 투척하는 등 위협을 가하며 사과를 요구하였고, 이에 대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7월 15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에 벌금 70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205016 김형범 부상에 '발끈한 팬' 못 말린 전북, 700만원 벌금 ]</ref>
         * [[2008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5|2005년]])
         * {{K리그 선수|20040070}}
         {{2008 K리그 베스트 11}}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부리람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태국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타이 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
  • 남궁도
         [[2010년]],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다가, [[2012년]], [[대전 시티즌]]으로 1년 임대를 하기도 했으며, [[2013년]], [[K리그]] 신생팀 [[FC 안양]]으로 이적하였으나 2014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 {{K리그 선수|20010003}}
         [[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FC 안양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경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함열 남궁씨]][[분류:벨기에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벨기에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코칭스태프]][[분류:벨기에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남궁웅
         [[2003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여 그 해 리그에서 22서울를 뛰었으나, [[2004년]] 리그에서 5서울를 뛰는데 그쳤다. [[2005년]]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해 [[2006년]] [[11월 17일]] 군복무를 마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복귀하여, [[2006년]] [[11월 25일]] [[K리그]] 플레이오프 [[성남 일화 천마]]와의 서울에서 뛰었다. [[2007년]] [[리그컵 (대한민국)|하우젠 컵]]을 포함하여 9서울를 뛰는데 그쳤지만 [[2008년]] [[K리그 컵|하우젠 컵]]을 포함하여 16경기를 뛰었고, [[2008년]] [[K리그]] 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2009년]]에 부상을 당하여 서울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간간히 [[R리그|2군 리그]]에 출전하였지만, [[K리그 2010|2010 시즌]]이 끝날 때까지 정규 리그에는 한 서울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 [[K리그]]: [[K리그 2004|2004]], [[K리그 2008|2008]]
         * [[K리그 컵]]: [[리그컵 2008|2008]]
         * {{K리그 선수|20030115}}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페락 FA의 축구 선수]][[분류:크다 FA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말레이시아 슈퍼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말레이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혜화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함열 남궁씨]]
  • 리그컵(K리그)
         [[K리그]]의 리그컵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프로축구구단을 위한 대회다. 1992년에 처음 시작되어 2011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폐지라고는 했지만 2016년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아직 리그컵을 공식경기로 보고 있다. 이는 다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리그컵의 전신은 1986년에 열린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본다. 이 당시는 [[수퍼리그]]가 발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점으로, K리그 구단의 수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10개월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어 추가로 신설된 대회였다.[* 85년도 기준, 당시 8개 팀이 [[홈 & 어웨이]]로 3번씩 만나는 구조였기 때문에 21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흥행은 엄청난 대참패라서 2016년에 리뉴얼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혁에서도 이 대회는 전혀 이야기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도 '''"1992년, 정규리그 이외 최초로 별도 컵대회인 아디다스 “컵” 신설"'''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당시 대회는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대회였다.] 연맹에서 K리그의 역사를 논할 때 프로-세미프로로 합동 운영했던 수퍼리그를 K리그의 일부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http://www.kleague.com/kr/sub.asp?avan=1001124800|리뉴얼 이전 자료]에는 남아있다.]
         또한 상금이 생겼기 때문에 팀에 대한 시상뿐만 아니라 우수선수에 대한 시상도 이루어졌다. 이 당시에 시상하던 기준이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본 K리그에 통용될 정도로 한국프로축구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K리그외에도 별도로 운영되는 대회가 태어났기 때문에 팀에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스쿼드를 꾸릴 필요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는 각 구단들이 선수층을 보다 두껍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협회 입장에선 FA컵을 대체하는 대회로 여길 수 있었으며, 좋게 표현하면 구단들은 프로무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신인들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두번째 대회에 좀 나아졌냐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리그가 끝난 10월에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상으론 제법 널널했을텐데도 각 팀은 1주일에 2번씩 경기를 치루는 하드코어한 일정을 보낸다. 이쯤되면 운영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을 지경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K리그의 상금과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고나서부턴 각 구단이 2군리그와 비슷하게 취급하게 된다.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K리그가 스폰을 받기 시작한 94시즌에는 1년동안 정규리그를 마치고 우승팀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 이때는 우승상금만 보면 아디다스컵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리그컵간에는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하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직후인 95년도에는 최대 획득가능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981096|우승상금이 1억 5천만원으로 책정]되며 리그컵과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1억5천만원을 셋으로 나눠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우승팀(통합챔피언 우승)에게 주었다. 한 팀이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둘 다 차지하면 1억5천을 그 팀 혼자서 갖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다른 팀이라면 5천만원은 준우승자에게 주는 상금이 되는 셈.] 전기나 후기 중 하나만 우승해도 리그컵보다 더 큰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그컵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과 함께 FA컵의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어서게 됨은 물론이고, 이 두 대회의 흥행과 함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리그컵을 구태여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초에 리그컵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한국프로축구의 발족과 함께 늘 대두되었던 부족한 경기수를 채우고 흥행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리그컵이 탄생하고 10여년이 지나니 팀 수가 3배가량 늘어나 경기 수가 부족하지도 않고, 상금은 그다지 오르지도 않아 팀이 리그컵에 참가할 때마다 주전선수를 대폭 기용하지도 않아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오히려 비주전 선수들은 R리그에서 뛰면 되기 때문에 리그컵이 초창기에 갖고 있던 이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리그컵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외면받고 있었던 것도 사라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 K리그 승강제 도입관련 ==
         또한 AFC에서는 리그컵에 대해 "ACL 참가티켓과는 관련없는 대회"라고 못박으면서 가장 중요하지 않는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다보니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종이컵 취급을 받던 리그컵 폐지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 K리그 승부조작 ==
         2011시즌에 발생한 승부조작이 대부분 정규리그보다는 리그컵에서 주로 발생했다는 것도 대회가 사라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K리그 승부조작]]에서 다룬다.
         K리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어쨌거나 현재로써는 공식 기록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대회가 되었다. 리뉴얼 이전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에서도 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찾는건 상당히 어렵다. 비교적 협회보다 자료정리가 더 잘 되어 있고, 일반에 공개하는 자료양이 훨씬 많은 연맹임에도 그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협회쪽은 FA컵의 위상이 상당함에도 경기 관중 수나 카드 이력등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협회가 비판받는 대표적인 부분.]
         [[분류:축구]] [[분류:K리그]]
  • 문기한
         [[2008년]] [[FC 서울]]에 입단하였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1군 출장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여 2군 리그에 머물렀고, 그 해 [[리그컵 (대한민국)|리그컵]]을 포함하여 3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2011년 4월 2일 [[황보관]] 신임 감독 아래서 약 3년 만에 리그 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에도 간간히 경기에 출전하며 [[K리그 2011|2011 시즌]] 총 리그 13경기에 출전하였다. 하지만 이듬해에 다시 입지가 좁아지며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치자 2013 시즌을 앞두고 [[안산 경찰청 축구단|경찰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경찰 축구단에서 2시즌 간 49경기에 출전한 후 [[K리그 챌린지 2014|2014 시즌]] 종료 후 원 소속 구단인 서울로 복귀하였다.
         * [[K리그]] 우승 2회 ([[K리그 2010|2010년]], [[K리그 2012|2012년]])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8|2008년]])
         * [[K리그 베스트 11#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수상자 (2013–현재)|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 ([[K리그 챌린지 2017|2017]])
         * {{K리그 선수|20080057}}
         {{2017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 U-18팀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천 FC 1995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북중학교 동문]][[분류:서울동명초등학교 동문]][[분류:K리그2 베스트 11 수상자]]
  • 문선민
         '''문선민'''(文宣民, [[1992년]] [[6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현재 [[K리그1]]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고 있다.
         2017 시즌을 앞두고 [[K리그 클래식]]의 [[인천 유나이티드]]와 계약했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6120815243450§ion_code=10&cp=se&gomb=1 인천, ‘신데렐라’ 문선민 영입...공격 강화]</ref> 4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2018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K리그]] 홍보대사로 임명된 [[감스트]]의 [[관제탑 댄스]]를 본인의 대표적인 골 세레머니로 하고 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852359.html 문선민의 ‘관제탑 댄스 세리머니’ 아세요?]</ref>
         * {{K리그 선수|20170229}}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축구 공격수]][[분류:축구 윙어]][[분류:외스테르순드 FK의 축구 선수]][[분류:유르고르덴 IF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스웨덴 진출 축구 선수]][[분류:스웨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알스벤스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신정초등학교 동문]][[분류:스웨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18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남평 문씨]]
  • 박재정 (가수)
         * 2016년 [[K리그]] 홍보대사
  • 박정석 (축구인)
         * [[K리그]] 우승 2회 : [[K리그 1998|1998]]
         * {{K리그 선수|19970068}}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루마니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독일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루마니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박주영
         ||<:> '''2018 K리그 기록''' ||<:> 15경기 1골 ||
         현재 대한민국 대구출생의 K리그 클래식의 [[FC 서울]]에서 뛰고 있으며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32경기에 출장, 1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으며 그 해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득점왕 등을 휩쓸었다. 특히 프로축구 최초의 만장일치 신인상을 이끌었던 점과 당시 사기캐릭으로 불리던 고려대 선배 이천수와 MVP 경쟁을 했다는 점은 K리그 역사상 최고의 루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 K리그 클래식 우승 : 2016
         ||<#dcdcdc> 2005 ||<|4> [[FC 서울]] ||<|4> [[K리그 클래식]] || 19 || 12 || 3 || 2 || 0 || 1 || 11 || 6 || 1 || - || - || - || - || - || - || 32 || 18 || 5 ||
         ||<#dcdcdc> 2015 ||<|4> [[FC 서울]] ||<|4> [[K리그 클래식]] || 23 || 7 || 2 || 1 || 2 || - || - || - || - || - || - || - || - || - || - || 24 || 9 || 2 ||
          *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신인왕 : 2005
          *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베스트 XI : 2005
         ||<-5><table bordercolor=#000000><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bgcolor=#ffffff><:> [[K리그/개인상#s-5|{{{#EE3224 '''신인상'''}}}]] ||
         ||<:><table align=center><-12><#ee1111> '''{{{#ffffff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프리킥도 상당히 뛰어나다. K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프리킥 장인 [[이천수]], [[김형범]], [[염기훈]]보다는 떨어지지만 그 다음 티어는 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대표팀에서 프리킥을 전담하는 손흥민보다는 한수 위였다.
          *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혐오도 9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독자연구|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풋볼 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http://oi62.tinypic.com/2q22yid.jpg|##]]. 모나코 시절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식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절 보여준 워크에식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들 테베스는 2, 아드리아누와 카사노는 3.'''~~
          * 피파에서는 K리그 시절 초기에는 상당히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 부진해 능력치가 유망주 급으로 변화. 모나코 이적후 70대 중반의 아시아인 치고는 상당히 쓸만한 능력치로 둔갑했다. 피크시절에는 80까지도 올라가며 아시아 최강 포워드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아스날에서 셀타로 이적할시 약간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나고 결정력이 좋은 포워드임에도 셀타에서 삽질이 반영되어 아스날 재복귀시 70대 초반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월드컵에서 삽질 후 6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15년 FC서울 복귀시엔 능력치가 60대 중반까지 너무 다운돼 대표팀에서도 써먹기 힘든 레벨까지 떨어졌다. 16년에 60대 후반까지는 복귀했으나 데얀(77) 아드리아노(72)에 비하면 조커 이상으로 쓰기 힘든 능력치가 되었다. [[http://www.futhead.com/players/165889/|능력치로 보는 그의 일대기]]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반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반영해 70대 초반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
  • 박진섭
         [[2000년]]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135586& 울산, 올림픽대표 박진섭 영입 ]</ref> 팀의 [[K-리그]] 2회 준우승 ([[2002년]], [[2003년]])에 공헌하였다. [[2005년]]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2139 '꾀돌이' 박진섭, 성남 일화로 이적 ]</ref> [[K리그 2006|2006년 K-리그]] 우승, [[K리그 2007|2007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2008년]] 팀의 성적 부진으로 [[김학범]] 감독에서 [[신태용]]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팀 개편의 일환으로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다.<ref>[https://www.busanipark.com/news/view.php?menu=&category=1&num=5077 부산아이파크, K리그 베테랑 김효일, 박진섭 영입 ]{{깨진 링크|url=https://www.busanipark.com/news/view.php?menu=&category=1&num=5077 }}</ref>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5|2005년]])
         * [[K리그]] 준우승 1회 (2002년, 2003년)
         * [[K리그 컵]] 준우승 2회 (2002년, [[리그컵 2005|2005년]])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6|2006년]])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7|2007년]])
         * [[K리그 컵]] 준우승 1회 ([[리그컵 2006|2006년]])
         * {{K리그 선수|20020028}}
         {{K리그 챌린지 감독}}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2000년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광주 FC의 코칭스태프]][[분류:광주 FC의 축구 감독]]
  • 박진섭 (1977년)
         [[2000년]]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135586& 울산, 올림픽대표 박진섭 영입 ]</ref> 팀의 [[K-리그]] 2회 준우승 ([[2002년]], [[2003년]])에 공헌하였다. [[2005년]]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2139 '꾀돌이' 박진섭, 성남 일화로 이적 ]</ref> [[K리그 2006|2006년 K-리그]] 우승, [[K리그 2007|2007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2008년]] 팀의 성적 부진으로 [[김학범]] 감독에서 [[신태용]]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팀 개편의 일환으로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다.<ref>[https://www.busanipark.com/news/view.php?menu=&category=1&num=5077 부산아이파크, K리그 베테랑 김효일, 박진섭 영입 ]{{깨진 링크|url=https://www.busanipark.com/news/view.php?menu=&category=1&num=5077 }}</ref>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5|2005년]])
         * [[K리그]] 준우승 1회 (2002년, 2003년)
         * [[K리그 컵]] 준우승 2회 (2002년, [[리그컵 2005|2005년]])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6|2006년]])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7|2007년]])
         * [[K리그 컵]] 준우승 1회 ([[리그컵 2006|2006년]])
         * {{K리그 선수|20020028}}
         {{K리그 챌린지 감독}}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2000년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광주 FC의 코칭스태프]][[분류:광주 FC의 축구 감독]]
  • 박진옥
         [[경희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 2005 [[K리그]] 자유선발로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박진옥 선수의 킥력과 수비 센스를 눈여겨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의 수비 전술에서도 항상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2005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였다.
         2013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자유 계약(FA) 신분으로 팀 동료인 [[윤원일]], 오봉진과 함께 전격적으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3136080|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대전 시티즌 입단 후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으나 팀의 [[K리그 챌린지]]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2014 시즌을 앞두고 [[K리그 챌린지]] 소속 팀인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687597|광주 FC로 입단하여]] 1년간 활약하였다.
  • 배슬기 (1985년)
         '''배슬기'''([[1985년]] [[6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현재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며, 포지션은 [[수비수#센터백|센터백]]이다.
         졸업하고 [[건국대학교]]에 입학한 배슬기는 [[2009 K리그 드래프트]]에 지원했으나 어느 팀에도 지명되지 못하고, [[내셔널리그 (대한민국)|내셔널리그]]의 [[인천 코레일 축구단|인천 코레일]]에 입단하였다. [[내셔널리그 2008|2008년]]에는 9전남, [[내셔널리그 2009|2009년]]에는 22전남에 출장하며 인천 코레일의 수비를 책임졌다.<ref>{{뉴스 인용 |제목='서른 즈음에' 막 홈에서 데뷔한 사나이|url=http://sports.news.nate.com/view/20130709n04127 |출판사=김현회 칼럼 |date={{날짜한글화|2013-7-9}} }}</ref>
         전역 후 [[2012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하였는데, 1985년생의 배슬기는 그 해 최고령 지원자 3명 중 하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잉글랜드부터 K3까지…'우리가 올시즌 이색 신인!'|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113777 |출판사=스포츠서울 |date={{날짜한글화|2012-3-1}} }}</ref> 결국 4순위로 [[포항 스틸러스]]에 지명되어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비록 [[K리그 2012|2012 시즌]]에는 한 전남에도 출장하지 못했지만, [[2013년]] 4월 13일 [[경남 FC]]와의 원정전남에 선발 출장하며 리그에 데뷔하였고,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총 세 전남에 출전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4|2014 시즌]]에는 출전 횟수를 조금씩 늘려갔으며, 5월 3일 열린 [[성남 FC]]와의 전남에서는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에는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같은 포지션의 팀 동료 [[김광석 (축구 선수)|김광석]], [[김원일 (축구 선수)|김원일]]보다 많은 전남에 나섰다.
         |[[K리그 2012|2012]] || 0 || 0 || 0 || 0 || 0 || 0
         |[[K리그 클래식 2013|2013]] || 3 || 0 || 0 || 0 || 0 || 0
         |[[K리그 클래식 2014|2014]] || 14 || 1 || 0 || 0 || 4 || 0
         |[[K리그 클래식 2015|2015]] || 27 || 0 || 2 || 0 || colspan="2"|-
         |[[K리그 클래식 2016|2016]] || 26 || 1 || 1 || 0 || 3 || 0
         |[[K리그 클래식 2017|2017]] || 36 || 2 || 0 || 0 || colspan="2"|-
         |[[K리그1 2018|2018]] || 17 || 0 || 0 || 0 || colspan="2"|-
         * [[K리그]]
         ** [[K리그 클래식 2013]] 우승
         * {{K리그 선수|20120123}}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코레일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진도군 출신]][[분류:축구 센터백]][[분류:축구 수비수]]
  • 서울 (동음이의)
         * [[FC 서울]]은 [[K리그]] 소속 프로축구단이다.
  • 서형욱
         [[1999년]] '토탈사커'라는 축구전문 웹진을 운영하며 축구계에 발을 디딘 서형욱은 [[UEFA 유로 2000]]기간에 [[SBS SPORTS]]채널에서 분석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 9월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2001년]] [[2001년 9월|9월]]부터는 스포츠일간지 굿데이의 축구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축구관련 각종 방송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였다. [[2002년]] [[2002년 FIFA 월드컵|한일 월드컵]]기간 중에는 27세라는 어린나이에 [[MBC]]에서 일본에서 벌어지는 주요경기의 축구해설을 도맡았다. [[2003년]] 축구의 본고장 [[잉글랜드]] [[리버풀]]로 1년간 유학을 떠난 그는 [[스포츠서울]]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유럽축구 소식과 축구칼럼을 연재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04년]]부터 [[2012년]]까지 [[MBC]]와 [[MBC Sports+]]의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월드컵]], [[A매치]], [[UEFA 유로]], [[UEFA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K리그]] 등의 경기를 중계했다. [[2012년 4월]] [[MBC]] 총파업 당시 노조집회에 강연을 나갔다가 [[MBC]] 축구해설위원직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2817065 MBC, 노조집회 방문 서형욱 축구 해설위원 계약해지 통보] 머니투데이. 2016년 04월 04일</ref> 그후 [[MBC Sports+]], [[JTBC]]를 거쳐 [[tvN]]에서 2013/201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등을 중계하였고, 2016년 [[리우 올림픽]]의 MBC 축구 중계진에 기존의 [[김성주]]와 [[안정환]]에 더하여 서형욱이 추가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579850 MBC, 리우올림픽 해설위원 공개…송종국 재계약 불발] 이데일리. 2016년 07월 05일</ref>
         ** '''[[2005년 4월]] ~ [[2005년 9월]]''' [[KBS]] 비바 K리그 메인 패널
  • 서형욱 (스포츠해설가)
         [[1999년]] '토탈사커'라는 축구전문 웹진을 운영하며 축구계에 발을 디딘 서형욱은 [[UEFA 유로 2000]]기간에 [[SBS SPORTS]]채널에서 분석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 9월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2001년]] [[2001년 9월|9월]]부터는 스포츠일간지 굿데이의 축구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축구관련 각종 방송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였다. [[2002년]] [[2002년 FIFA 월드컵|한일 월드컵]]기간 중에는 27세라는 어린나이에 [[MBC]]에서 일본에서 벌어지는 주요경기의 축구해설을 도맡았다. [[2003년]] 축구의 본고장 [[잉글랜드]] [[리버풀]]로 1년간 유학을 떠난 그는 [[스포츠서울]]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유럽축구 소식과 축구칼럼을 연재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04년]]부터 [[2012년]]까지 [[MBC]]와 [[MBC Sports+]]의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월드컵]], [[A매치]], [[UEFA 유로]], [[UEFA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K리그]] 등의 경기를 중계했다. [[2012년 4월]] [[MBC]] 총파업 당시 노조집회에 강연을 나갔다가 [[MBC]] 축구해설위원직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2817065 MBC, 노조집회 방문 서형욱 축구 해설위원 계약해지 통보] 머니투데이. 2016년 04월 04일</ref> 그후 [[MBC Sports+]], [[JTBC]]를 거쳐 [[tvN]]에서 2013/201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등을 중계하였고, 2016년 [[리우 올림픽]]의 MBC 축구 중계진에 기존의 [[김성주]]와 [[안정환]]에 더하여 서형욱이 추가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579850 MBC, 리우올림픽 해설위원 공개…송종국 재계약 불발] 이데일리. 2016년 07월 05일</ref>
         ** '''[[2005년 4월]] ~ [[2005년 9월]]''' [[KBS]] 비바 K리그 메인 패널
  • 송제헌
         2월 27일 [[광주 상무]]와의 [[K리그]]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491&gid=&cpage=21&spage=21|개막전 홈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전반 13분 [[김민균]]이 슛이 튕겨져 나오자 이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팀 1호골이자, 자신의 시즌 첫 골이었다. 팀은 이후 상무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최성국]]~~에게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주며 1:2로 패배.
         3월 6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492&gid=&cpage=20&spage=11|2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장]]했으나, 전 시즌 우승팀인 포항의 공세에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이지 못하고 밀려버렸다. 송제헌도 후반 14분에 결정적 1:1 찬스를 맞이했으나, 날려버리고 말았다.
         시즌 총평을 해보자면, 본인이 해결하려는 마인드로 경기를 풀어갔기에 팀과 엇박자가 났으나, 차츰 자리를 잡아가며 19경기 출전해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본인의 등장을 K리그에 알렸다. 다만 [[황일수]]와의 연계 플레이는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원 톱 공격수보다는 윙포워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황일수와의 연계가 돋보이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3월 5일 [[광주 FC]]와의 [[K리그]] 1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632&gid=&cpage=19&spage=11|원정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송제헌은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활발하게 측면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월 13일 [[강원 FC]]와의 [[K리그]] 2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635&gid=&cpage=19&spage=11|홈 개막전에서 선발 출장]]해 선제 골을 기록했다. 송창호의 패스를 받은 송제헌은 중거리에서 강력한 슈팅을 날려, 골을 기록했다. 대구는 이 골을 앞세워 1:0으로 승리했다.
         7월 9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K리그]] 17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735&gid=&cpage=16&spage=11|홈경기에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오랜만에 선발 출장인지 활발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쉬움이 남는 움직임이였다. 활발한 움직임에 비해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7월 23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19라운드 경기에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0796&yy=2011|선발 출장]]했지만, 전반 17분, 후반 40분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며,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김현성의 골에 관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아쉬운 움직임에 퇴장이 더해져 안타까움까지 자아냈다.
         9월 25일 토요일 [[수원 삼성]]과의 [[K리그]] 26라운드 경기에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786&gid=&cpage=15&spage=11|선발 출장]]했다. 이 날 두 골을 먹혔지만, 경기 직전 송제헌이 헤딩 골을 성공시키며 한 골을 만회했다. 시즌 6번째 골이었다.
         10월 30일 [[울산 현대]]와의 [[K리그]] 최종 라운드 경기에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C%86%A1%EC%A0%9C%ED%97%8C&sid=1807&gid=&cpage=13&spage=11|투톱으로 선발 출장]]했다. 활발한 움직임을 펼치면서 골을 노렸으나 [[김영광]]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고, 경기는 0:0으로 마쳤다.
         2011시즌은 25경기 8골을 기록하며 자신이 골을 넣을 줄 아는 공격수임을 입증했다. 2011 K리그 베스트 공격수 부문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나 2골을 몰아넣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때부터였나요? 전북이 송제헌을 노리던 것이...~~ 송제헌의 활약에 힘입어 [[대구 FC]]는 전북에 승리한다. K리그 5R 경기에서 위클리 베스트 미더필더 부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전력 강화를 노리던 고향 팀인 [[경남 FC]]에 입단하며 [[K리그 챌린지]]에서 새로운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46445|#]] 그리고 2017년 경남에서의 기록은 인천의 기록에서 '''1도움만 빠진''' (...) 14경기 3골.
  • 신영록 (1987년)
         [[200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5년 동안 리그에서 21서울를 뛰는 데 그쳤고, [[2005년]]에서야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를 상대로 [[K리그]] 데뷔골을 기록하였다.<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39&aid=0000000887& |제목=18세 신영록, 입단 3년 만에 `프로 데뷔골` |확인날짜=2010-08-21 |출판사=스포탈코리아 }}</ref> [[2008년]]부터 [[차범근]] 감독에게 팀의 주전으로 중용받으며 서울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고, [[K리그 2008|2008 시즌]]에 18서울에서 6골을 집어 넣었다. 국내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009년]] 1월 [[터키]]의 [[부르사스포르]]로 이적하였다. 신영록은 해외에 금세 적응해 24서울에서 6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2009년]] [[10월 9일]] 계약금 지급문제로 [[부르사스포르]]를 떠나 [[대한민국|한국]]으로 귀국하였고,<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2085393& |제목=신영록, 터키리그와 ‘굿바이’ |확인날짜=2010-08-21 |출판사=동아닷컴 }}</ref>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톰 톰스크]]와 계약했으나 부르사스포르와의 계약금 지급 문제로 [[터키축구협회]]의 이적동의서 발급이 늦어지면서 공식으로 입단할 수 없었다.
         * [[K리그]] 우승 2회 ([[K리그 2004|2004년]], [[K리그 2008|2008년]])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6|2006년]])
         * {{K리그 선수|20030117}}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부르사스포르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터키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신화용
         ||||||<tablealign=center><:><-12><#ee1111> '''{{{#ffffff 200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tablealign=center><:><-12><#ee1111> '''{{{#ffffff 2015 K리그 대상 특별상 }}}''' ||
         '''K리그, FA컵, ACL 모두 우승 경험을 해본 선수'''
         대한민국 [[K리그1]] 수원의 주전 골키퍼이자 '''한때 K리그1 TOP 3 안에 드는 골키퍼였고 2015 시즌 최고의 골키퍼'''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를 모두 거친 --포스텍에 갔다면 그랜드슬램-- '''포항의 성골 중 성골'''이었다. 거기에 포항 태생으로 '''팀 내의 단 1명 뿐인 [[로컬 보이]]'''였으나 2016 시즌 이후 수원으로 이적했다.
         K리그 베스트 일레븐 GK에 선정된 2009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K리그 최고의 골리 중 한 명이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으로 인해 시상식과 국가대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2015년에 '''특별상'''을 받기는 했지만 공로상에 가까운 여론 무마용 상이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팀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게 됐지만 주전 자리에는 K리그의 레전드인 '''[[김병지]]'''가 버티고 있었고 포항 유스 출신으로 기대받던 송동진, 1년 전 이미 입단해서 청소년 대표에서 뛰고 있던 '''[[정성룡]]'''까지 있어서 김병지의 백업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2005 시즌이 끝나고 송동진은 군 입대, 김병지가 이적하면서 신화용은 정성룡과 주전 경쟁을 하게 된다. 2006년에는 정성룡이, 2007년에는 신화용이 더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2007년 플레이오프부터 정성룡의 독무대가 또다시 펼쳐지며 정성룡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2008년 정성룡이 성남으로 갔지만 같은 해 김지혁이 이적해오면서 리그 경기 대부분을 김지혁에게 내줬지만 ACL에서만큼은 6경기 전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다가. 2009년 초부터 김지혁을 밀어내고 신화용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K리그]]는 물론[[AFC 챔피언스 리그]] 에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 팬 한정으로 골머리를 앓던 수비[* 이 때 포항의 주력 수비수가 [[황재원]], 김형일. 타 팀 팬들은 군침 흘리며 탐을 냈지만 매주 포항의 경기를 지켜보는 포항 팬들은 가끔씩 벌이는 정줄 놓는 수비에 그냥 뒷목만 잡았다.]문제를 혼자서 다 커버했다. 2009년 포항은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에게 패배하여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이러한 선방쇼 덕에 신화용은 다른 쟁쟁한 골키퍼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뽑힌다.'''[* 당시 경쟁자들이 모두 실점률 1점대를 찍을 때 홀로 0점대(0.95) 실점률을 기록했다.]
         이 해에 K리그 1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하셨다.
         그리고 이어진 활약상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상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상[*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상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남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영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상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영진들 보고 있나?~~ ~~경영정상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남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상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백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6년|작년 시즌]], 세오타임(SEO TIME)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던 수원 수비 안정화의 일등공신. 2017 K리그 클래식 클린시트 1위.'''
         3월 31일 제주와의 K리그1 4라운드에 선발 출전 해 복귀했으나 복귀 이후에 경기력이 좋지 않다.
         4월 11일 K리그1 6라운드 강원 전에서는 명단제외. 노동건과 김선우에게 엔트리를 내주었다.
         8월 25일 K리그1 26라운드 경남전에서 네게바의 패널티킥을 막아내고 그 뒤로도 좋은 선방을 펼치면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오랜만에 본인의 노련함이 빛났던 경기.
          * 2006년 3월 12일, 전북전에서 프로 데뷔이자 K리그 데뷔전을 치뤘고, 첫 실점을 기록하였다.
          * 2006년 3월 15일, 광주전에서 K리그 첫 무실점 경기를 치루었다.
          * 2010년 10월 16일, 부산전에서 K리그 통산 100경기 출전을 기록하였다.
          * 2014년 3월 29일, 상주전에서 K리그 통산 200경기 출전을 기록하였다.
          * 2017년 3월 29일, 대구전에서 K리그 통산 300경기 출전을 기록하였다.
  • 안지호 (축구 선수)
         '''안지호'''([[1987년]] [[4월 24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수비수#센터백|센터백]]이다. [[2018년]] 현재 [[K리그2]] [[서울 이랜드 FC]]에서 활약하고 있다. '''안현식'''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2017년 현재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2007년 11월, [[2008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하여 1순위로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어 입단하였으나, 시즌 시작 전에 [[이동원 (축구 선수)|이동원]]과의 맞트레이드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인천 이동원, 대전 신인 안현식과 맞트레이드 |url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0730323 |출판사 = OSEN |저자=박상경 |날짜 = 2008-01-17 }}</ref> [[2008년]]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팀 동료인 [[안재준]]과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를 든든하게 지키는 수비수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안현식은 선후배들의 승부조작을 논의하는 회식자리서 입막음용으로 200만 원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K리그]] 선수로서의 활동 및 모든 자격이 영구히 상실되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으며, 자진신고한 점이 참작되어 2년간 보호관찰 후 복귀 심사를 거치기로 했다. [[경남 FC]]는 안현식에 대한 처벌로 팀에서 방출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프로축구연맹]]의 징계 감경으로 예정보다 6개월 일찍 징계가 해제되었고 2014년 [[고양 자이크로 FC|고양 Hi FC]]에 입단하였다. [[고양 자이크로 FC|고양]]의 서포터스 알타이르는 이에 반발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 운동을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승부조작 연루’ 고양 안현식, “속죄하는 마음으로…” |url = http://www.interfootball.co.kr/news/view.php?gisa_uniq=2014040417285660§ion_code=99&cp=se&gomb=1 |출판사 = 인터풋볼 |저자=한재현 |날짜 = 2014-04-04 }}</ref><ref>{{웹 인용 |url=http://m.bbs3.agora.media.daum.net/gaia/do/mobile/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1198&objCate1=1&pageIndex=1 |제목=고양 Hi FC와 계약을 체결한 안현식 선수 방출 요구 서명 |확인날짜=2014-05-25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1211131318/http://m.bbs3.agora.media.daum.net/gaia/do/mobile/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1198&objCate1=1&pageIndex=1 |보존날짜=2018-12-11 |깨진링크=예 }}</ref> 2015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려고 했으나 많은 [[대전 시티즌]] 팬들의 반발로 결국은 무산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영입 취소-사장 퇴진…어수선한 대전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36&article_id=0000013771|출판사=풋볼리스트 |날짜=2015-01-12 }}</ref>
         [[5월 27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서울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강원 FC|강원]] 입단 후 첫골을 기록하였고, K리그 챌린지 12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다.<ref> {{뉴스 인용 |제목= 고양전 결승골 안현식 12라운드 `베스트 11' |url=http://www.kwnews.co.kr/nview.asp?s=701&aid=216052700130|출판사=강원일보 |날짜=2016-05-28 }} </ref>
         [[K리그2 2018]] 시즌을 앞두고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였다.<ref> {{뉴스 인용 |제목=서울 이랜드, 강원서 활약한 수비수 안지호 영입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801/sp2018010408091193650.htm|출판사=스포츠한국|날짜=2018-01-04 }} </ref> 3라운드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 서울에서 후반 8분 경, 세트피스 공격에 나선 와중에 대전 수비수 [[조태근]]과 몸싸움을 벌이다 주먹으로 조태근의 가슴을 치는 파울을 범했다. 처음에는 주심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으나, 이내 VAR 판정이 내려졌고, 안지호는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80318010008036|제목=대전시티즌 마수걸이 첫 승 신고, 서울 이랜드 상대로 1-0승리 거둬|출판사=중도일보|저자=금성진|날짜=2018-03-18}}</ref> [[5월 19일]] [[부천 FC 1995]]와의 [[K리그2 2018|K리그2]] 12라운드 원정 서울에서 80분 경 우측 코너킥 상황에서 [[최오백]]이 올린 공을 그대로 헤더를 한 것이 득점으로 연결되었고, 서울 이랜드에서의 첫 골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interfootball.heraldcorp.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778|제목=[K리그2 리뷰] ‘최오백 1골 1도움’ 서울E, 부천 원정서 3-0 완승...7위 도약|출판사=인터풋볼|저자=정지훈|날짜=2018-05-19}}</ref> [[10월 7일]] [[성남 FC]]와의 31라운드 원정 서울에서, 86분 경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골문 앞으로 돌려놓은 공을 [[조찬호]] 선수가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안지호의 서울 이랜드에서의 첫 어시스트가 기록되었다.
         * {{K리그 선수|20080041}}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파주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자이크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이랜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안지호 (축구선수)
         '''안지호'''([[1987년]] [[4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수비수#센터백|센터백]]이다. [[2018년]] 현재 [[K리그2]] [[서울 이랜드 FC]]에서 활약하고 있다. '''안현식'''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2017년 현재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2007년 11월, [[2008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하여 1순위로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어 입단하였으나, 시즌 시작 전에 [[이동원 (축구 선수)|이동원]]과의 맞트레이드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인천 이동원, 대전 신인 안현식과 맞트레이드 |url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0730323 |출판사 = OSEN |저자=박상경 |날짜 = 2008-01-17 }}</ref> [[2008년]]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팀 동료인 [[안재준]]과 함께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를 든든하게 지키는 수비수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안현식은 선후배들의 승부조작을 논의하는 회식자리서 입막음용으로 200만 원을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K리그]] 선수로서의 활동 및 모든 자격이 영구히 상실되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으며, 자진신고한 점이 참작되어 2년간 보호관찰 후 복귀 심사를 거치기로 했다. [[경남 FC]]는 안현식에 대한 처벌로 팀에서 방출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프로축구연맹]]의 징계 감경으로 예정보다 6개월 일찍 징계가 해제되었고 2014년 [[고양 자이크로 FC|고양 Hi FC]]에 입단하였다. [[고양 자이크로 FC|고양]]의 서포터스 알타이르는 이에 반발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 운동을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승부조작 연루’ 고양 안현식, “속죄하는 마음으로…” |url = http://www.interfootball.co.kr/news/view.php?gisa_uniq=2014040417285660§ion_code=99&cp=se&gomb=1 |출판사 = 인터풋볼 |저자=한재현 |날짜 = 2014-04-04 }}</ref><ref>[http://m.bbs3.agora.media.daum.net/gaia/do/mobile/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1198&objCate1=1&pageIndex=1 고양 Hi FC와 계약을 체결한 안현식 선수 방출 요구 서명]{{깨진 링크|url=http://m.bbs3.agora.media.daum.net/gaia/do/mobile/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1198&objCate1=1&pageIndex=1 }}</ref> 2015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려고 했으나 많은 [[대전 시티즌]] 팬들의 반발로 결국은 무산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영입 취소-사장 퇴진…어수선한 대전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36&article_id=0000013771|출판사=풋볼리스트 |날짜=2015-01-12 }}</ref>
         [[5월 27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강원 FC|강원]] 입단 후 첫골을 기록하였고, K리그 챌린지 12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다. <ref> {{뉴스 인용 |제목= 고양전 결승골 안현식 12라운드 `베스트 11' |url=http://www.kwnews.co.kr/nview.asp?s=701&aid=216052700130|출판사=강원일보 |날짜=2016-05-28 }} </ref>
         [[K리그2 2018]] 시즌을 앞두고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였다.<ref> {{뉴스 인용 |제목=서울 이랜드, 강원서 활약한 수비수 안지호 영입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801/sp2018010408091193650.htm|출판사=스포츠한국|날짜=2018-01-04 }} </ref> 3라운드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8분 경, 세트피스 공격에 나선 와중에 대전 수비수 [[조태근]]과 몸싸움을 벌이다 주먹으로 조태근의 가슴을 치는 파울을 범했다. 처음에는 주심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으나, 이내 VAR 판정이 내려졌고, 안지호는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80318010008036|제목=대전시티즌 마수걸이 첫 승 신고, 서울 이랜드 상대로 1-0승리 거둬|출판사=중도일보|저자=금성진|날짜=2018-03-18}}</ref> [[5월 19일]] [[부천 FC 1995]]와의 [[K리그2 2018|K리그2]] 1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80분 경 우측 코너킥 상황에서 [[최오백]]이 올린 공을 그대로 헤더를 한 것이 득점으로 연결되었고, 서울 이랜드에서의 첫 골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interfootball.heraldcorp.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778|제목=[K리그2 리뷰] ‘최오백 1골 1도움’ 서울E, 부천 원정서 3-0 완승...7위 도약|출판사=인터풋볼|저자=정지훈|날짜=2018-05-19}}</ref> [[10월 7일]] [[성남 FC]]와의 3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86분 경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골문 앞으로 돌려놓은 공을 [[조찬호]] 선수가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안지호의 서울 이랜드에서의 첫 어시스트가 기록되었다.
         * {{K리그 선수|20080041}}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파주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자이크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이랜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어경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고 팀에서 퇴출되었다.
         |rowspan="2" align=center valign=center|'''[[성남 일화 천마]]''' ||rowspan="6"| [[K리그]]
         | [[K리그 2008|2008]] || 0 || 0 || 1 || 0 || 0 || 0 || colspan="2"| -
         | [[K리그 2009|2009]] || 7 || 0 || 0 || 0 || 4 || 0 || colspan="2"| -
         | [[K리그 2009|2009]] || 1 || 0 || 0 || 0 || 0 || 0 || 2 || 0
         | [[K리그 2010|2010]] || 1 || 0 || 1|| 0 || 0 || 0 || colspan="2"| -
         | [[K리그 2010|2010]] || 16 || 4 || 0 || 0 || 0 || 0 || colspan="2"| -
         | [[K리그 2011|2011]] || 8 || 0 || 0 || 0 || 1 || 0 || 2 || 1
         * {{K리그 선수|20080339}}
         * [http://www.kleague.com/record/record_player.aspx?team_id=K10&player_id=2008339 K리그 홈페이지 개인 기록]{{깨진 링크|url=http://www.kleague.com/record/record_player.aspx?team_id=K10&player_id=2008339 }}
  • 여효진
         [[2006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69667 안태은-여효진 등 내년 신인선수 입단 계약 체결]</ref> 잇단 부상으로 인하여 그 해 단 한차례의 리그 경기에도 뛰지 못했다. [[2007년]] [[광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해 그 해 리그에서 19경기를 뛰었지만, [[2008년]] 리그 2경기와 [[하우젠 컵]] 4경기를 포함하여 뛰는데 그쳤다. [[2009년]] 군 복무를 마치고 [[2010년]] [[도치기 SC]]로 임대 이적하였고, [[2011년]]에 [[FC 서울]]에 복귀하였다.
         * [[리그컵 (대한민국)|K리그 컵]] 우승 1회 ([[리그컵 2006|2006년]])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10|2010년]])
         * {{K리그 선수|20060070}}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도치기 SC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자이크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대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의령 여씨]][[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염동균 (축구선수)
         '''염동균'''(廉東均, [[1983년]] [[9월 6일]] ~ )은 [[K리그]]의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골키퍼]]로 뛰었던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다.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하여 [[K리그 2010|2010]] 시즌까지 72경기를 뛰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군복무 차원에서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뛰었다.
         [[K리그 2011|2011]] 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여 주전으로 뛰었으나, 2011년 6월 26일, [[K리그 승부조작 사건]] 이후 자진신고 기간에 승부조작에 가담했음을 밝혔으며,<ref>{{뉴스 인용|제목=전북 골키퍼 A 승부조작 자진신고, 전북 손해 이만저만 아니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6270100235370019449&ServiceDate=20110626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노주환 |날짜=2011년 6월 26일}}</ref>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 {{K리그 선수|20020088}}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옥천초등학교 (강원) 동문]][[분류:강릉중학교 동문]][[분류:강릉제일고등학교 동문]]
  • 오범석
         ||<:><-12><#0055a4> '''{{{#ffffff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 ||
         옥동초등학교, 학성중학교, 포항제철고를 졸업했고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2003년 [[K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오른쪽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및 중앙 수비수를 오가며 팀 내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성장했고 2004년 팀의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9년 [[K리그]] 복귀를 타진,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덕분에 울산은 [[김동진(축구선수)|김동진]]-오범석이라는 국가대표급 측면 수비라인을 완성할 수 있었고 이들은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2010시즌 울산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런 배경 탓인지, 아르헨티나전의 참패 이후 오범석이 인맥으로 뽑혔다는 [[음모론]]이 마구 돌았다. 그러나, '''오범석은 K리그 풀백 중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뛰어난 수비수였다'''. 실제로 오범석이 포항에서 활약했을 당시 적극 기용했던 감독이 [[세르지우 파리아스]]였다. 파리아스가 오범석을 인맥 때문에 썼을 리는 없고, 오범석의 실력과 잠재력을 보고 주전으로 쓴 것이다.
         애초부터, 2010 월드컵 국가대표에 오범석이 승선한 과정이 해당 위치에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 2명(오범석과 [[최효진]])을 뽑아놓고 막판에 오범석을 최종적으로 뽑은 것이다. 만약,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오범석이 K리그에서 쌓은 활약상과 성적은 전부 뻥카고 날조였다는 말도 안되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어찌됐든 일단 K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때, 기술위원회가 오범석을 추천한 것이 외압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래 기술위원회가 이럴 때 스탯을 분석하면서 좋은 선수들을 추천하라고 만들어놓은 기관이다.''' 게다가, 오범석이 당시 조광래의 말대로 전혀 국대 승선이 힘든 상태였던 것도 아니라는 것은 K리그를 보는 축구팬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당장에 오범석 군입대를 한 이후 수원의 우측 수비가 구멍이 뻥뻥 뚫린 것만 봐도...
         2015년 5월 16일 K리그 클래식 11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제주의 [[정영총]]이 헤딩 경합 상황에서 같은 팀의 [[강수일]]과 충돌, 기절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달려오던 강수일과 몸통, 머리가 같이 부딪치면서 중심을 완전히 잃고 머리부터 그라운드에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바로 옆에서 정영총이 정신을 잃은 것을 본 오범석이 신속하게 정영총의 기도를 확보하고 의료진 투입을 요청하면서 정영총이 경기장에서 의식을 찾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데에 일조했다. [[신영록]], [[박희도(축구선수)|박희도]], [[마우리시오 몰리나|몰리나]] 등이 경기장에서 쓰러졌을 때 주변 동료들이 신속하게 초기 조치를 해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것과 더불어서 경기장 내 초기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
  • 유병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7라운드까지 무득점으로 일관하다가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네 골을 터뜨린 것부터<ref>{{웹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432 |제목=유병수 4골 '펄펄' 6년 만에 진기록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인일보}}</ref> 시작해, 강원전까지 네 경기에서 아홉 골을 몰아쳤다. 비슷한 시기에 [[김영후]] 또한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은 이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재조명했다.<ref>{{웹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080011 |제목=유병수-김영후는 전생에 부부?...득점 사이클 '비슷'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OSEN}}</ref><ref>{{웹 인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508870 |제목='찰떡궁합(?)' 김영후-유병수, 올해도 경쟁은 계속된다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아이뉴스24}}</ref> 이후 유병수는 대전전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리그 20골을 기록, K리그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과 최연소 20골을 달성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22골을 기록하며 17골을 기록한 [[호세 오르티고사]]를 5골로 따돌리고 [[K리그 2010|2010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1071805472239&ext=na |제목=유병수, 올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1-07}}</ref> 2011년 2월 22일 유병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2013년 12월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2230096 |제목=유병수, 인천과 2013년까지 계약 연장 |출판사=OSEN |날짜=2011-02-23}}</ref>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남 FC|경남]]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절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절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상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병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의 승선이 거론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도 그에 대해 관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3연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806415&code=980201 |제목=신인 유병수, 허정무호에 ‘깜짝 승선’|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향뉴스}}</ref> 그리고 [[2009년]] [[6월 3일]]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평가전에 후반 교체 출전하여 A매치에 데뷔하였지만<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90604122105§ion_code=10&key=%C0%AF%BA%B4%BC%F6&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A매치 데뷔 유병수, UAE전 승리 위한 '비밀병기'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오만전이 A매치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삭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2009/0804/20090804101020201000000_7288524317.html |제목=6월 허정무호 오만전, FIFA A매치서 제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서울}}</ref>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10월 4일]],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열릴 한일전을 앞두고 유병수를 발탁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고<ref>{{웹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0041004362234&ext=na |제목=한일전 명단 발표…유병수-신형민 대표팀 복귀 |확인날짜=2010-10-04 |출판사=마이데일리}}</ref> 경기가 끝나기 9분 전에 교체 투입되며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 [[K리그 2009|2009]] || 27 || 12 || 1 || 0 || 7 || 2 || colspan="2"| - || colspan="2"| -
         | [[K리그 2010|2010]] || 28 || 22 || 3 || 3 || 3 || 0 || colspan="2"| - || colspan="2"| -
         | [[K리그 2011|2011]] || 12 || 3 || 0 || 0 || 1 || 1 || colspan="2"| - || colspan="2"| -
         * [[K리그 득점상]]: [[K리그 2010|2010]]
         * {{K리그 선수|20090061}}
         |내용='''[[K리그 득점상|K리그 득점왕]]'''
         |기간='''[[K리그 2010|2010년]]'''
         {{K리그 최다 득점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유상철
         2009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의 감독직을 맡으면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1년 7월 [[왕선재]]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첫 프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나 2012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한 후 팀을 떠났다. 2014년 초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임명된 후 2014년과 2015년 1, 2학년 대학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2015년 전국체육대회 남자 축구 대학부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2017년 48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17년 12월 4일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면서 5년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1994년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에서 데뷔하였다. 주로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하였으나 1998년 월드컵이 종료된 이후엔 부진한 공격진에 고심하던 감독에 의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기용되었으며 그 해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2002년 10월 시즌 종료까지 8서울를 남기고 있던 친정팀 울산 현대로 복귀하였다.<ref>[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34&content_id=19 유상철, 울산 현대로 복귀]{{깨진 링크|url=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34&content_id=19 }}</ref> 팀의 우승을 위해 남은 8서울에서 경기마다 1골을 넣어 전승을 기록하겠다는 말을 남긴 유상철은 이 8서울에서 9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울산은 우승컵을 들진 못했지만 유상철의 활약으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2003년 6월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다시 이적해<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98762& 유상철, 일본 J리그 다시 간다]</ref> 2003년과 2004년 팀의 [[J리그]] 2연패에 이바지한 뒤, [[2005년]]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로 재복귀하여<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37068 '유비' 유상철, 또다시 '울산맨']</ref> 그 해 K리그 우승에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앓아<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94267 유상철, "부상 회복 늦어 은퇴 결심"]</ref> 2006년 3월 12일,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와의 [[K리그]] 홈 개막전을 끝으로 본인이 선수 생활을 시작한 울산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ref>[https://sports.v.daum.net/v/20060312164010840 눈시울 붉힌 유상철, 24년 그라운드여 '안녕']</ref>
         [[K리그 베스트 11]]에 수비수(1994년), 미드필더([[K리그 1998|1998년]]), 공격수(2002년) 부분에 모두 선정된 경험이 있고, 1998년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백, 중앙 수비수 등 대부분의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710 유상철 역시 멀티 맨!]{{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710 }}</ref>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비수의 근성과 미드필더의 재간, 스트라이커로서의 결정력을 동시에 갖추었고, 대인마크 능력을 키웠다.
         200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83861 유상철, 22일 축구꿈나무들에게 장학금 전달]</ref>하였으며, 2005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진행하는 '2005 K-리그 유소년클럽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62787 K리그 유소년캠프, 유상철 김병지 김태영 등 참가]</ref>
         *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1998년]] [[K리그]] 득점왕 수상
         * [[1998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K리그]] 우승 2회 ([[K-리그 1996|1996년]], [[K-리그 2005|2005년]])
         * [[K리그]] 준우승 2회 ([[K-리그 1998|1998년]], 2002년)
         * {{K리그 선수|1997006}}
         |내용='''[[K리그 득점상|K리그 득점왕]]'''
         |기간='''[[K리그 1998|1998년]]'''
         |제목=K리그
         {{K리그 최다 득점자}}
         {{1994 K리그 베스트 11}}
         {{1998 K리그 베스트 11}}
         {{2002 K리그 베스트 11}}
  • 윤기원 (축구선수)
         연초중학교, [[거제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2010 K리그 드래프트|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목되어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종합>홍명보호 '주전 수비수' 홍정호 1순위 제주行, 145명 지명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0&oid=003&aid=00029592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09-11-17}} }}</ref>
         입단 후 1년 가까이 2군에서 뛰었고,<ref>{{뉴스 인용 |제목=아듀 문학, "심장이 뜨거웠던" 그 7년간의 기록 |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30879 |출판사=오마이뉴스 |date={{날짜한글화|2011-3-2}} }}</ref> [[2010년]] [[11월 7일]], [[K리그 2010]]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 |제목=제주, 인천과 0-0 무승부...정규리그 2위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110715445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1-7}} }}</ref> 이 경기가 끝난 후 [[허정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윤기원의 발견은 큰 소득이며 앞으로 기대해볼 만한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f>{{뉴스 인용 |제목=대개혁 예고한 허정무 감독, "내년 목표는 6강 진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1107182018§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1-7}} }}</ref>
         [[K리그 2011|2011 시즌]]에 앞서 그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1번 등번호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인천 유나이티드, 2011 시즌 등번호 확정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551193&rrf=nv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11-2-20}} }}</ref> 이후 2011 시즌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 피닉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김정우 두 골' 상주, 인천 꺾고 첫 승 올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0515522647§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1-3-6}} }}</ref> 이 경기를 포함해 그는 정규 리그 5경기와 [[리그컵 2011|K리그 컵]]에 2경기 출장하는 등 점점 출전 횟수를 늘리고 있었다.
         | [[K리그 2010|2010]] ||rowspan=2|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 ||rowspan=2| [[K리그]] || 1 || 0 || 0 || 0 || 0 || 0 ||colspan="2"|-|| 1 || 0
         | [[K리그 2011|2011]] || 5 || 0 || 0 || 0 || 2 || 0 ||colspan="2"|-|| 7 || 0
         * {{K리그 선수|2010066|윤기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201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축구 골키퍼]][[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거제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자살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한 사람]]
  • 윤상철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서울숭곡초등학교|숭곡초등학교]], [[경신중학교 (서울)|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서울)|경신고등학교]], [[건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골 에어리어 안에서 슈팅 타이밍을 비롯해 빼어난 득점 감각을 가져 '얼룩치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세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동대문운동장|동대문]]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꿈의 구장 제1탄 동대문 운동장|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33&article_id=0000000080|출판사=한국프로축구연맹|date={{날짜한글화|2005-11-03}}}}</ref>
         [[1988년]] 드래프트 1순위로 [[FC 서울|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1997년]]까지 몸담으면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1990년]] [[FC 서울|럭키금성 황소]]의 [[K리그]] 우승과 [[1989년]]과 [[1993년]] [[K리그]] 준우승 등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1990년]] [[K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4년]]에는 24골을 기록하여 [[K리그]] 한 시즌 최다골 신기록을 세우며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여, 당시로서는 역대 선수들 중 유일하게 [[K리그 득점왕]]을 2번 차지하였다. [[1993년]] [[K리그 도움왕]]을 차지하여, [[삐야뽕 쁘온|피아퐁]]과 함께 [[K리그 득점왕]]과 [[K리그 도움왕|도움왕]]을 모두 차지하였다. [[1993년]] [[9월 28일]] [[대우 로얄즈]]와의 원정 서울에서 [[K리그]] 통산 6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고, [[1997년]] [[4월 6일]] [[성남 FC|천안 일화 천마]]와의 원정 서울에서 [[K리그]] 통산 6번째로 [[K리그 득점-도움 기록#30-30 클럽|30-30 클럽]]에 가입하였다.
         [[1997년]] [[8월 13일]] [[전북 버팔로]]와의 [[K리그]] 원정 서울에서 2골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K리그|K리그 정규리그]]와 [[리그컵 (대한민국)|리그컵]] 합산 통산 100골을 기록하였으며, 개인 통산 K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101골로 늘렸다.
         [[1997년]] [[9월 27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K리그]] 15라운드 서울에서 [[K리그]] 사상 최초로 프로 통산 300서울 출장 기록을 세웠다.
         윤상철은 [[1993년]] [[8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와의 서울, [[1994년]] [[5월 25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버팔로]]와의 서울, [[1994년]] [[11월 5일]] [[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과의 서울, [[K리그]]와 [[리그컵 (대한민국)|리그컵]] 합산 통산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많은 나이로 인하여 1997시즌 이후 재계약에 실패하여 소속팀으로부터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되어 [[K리그]] 무대에서 은퇴하게 되었고<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00020911601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0&officeId=00020&pageNo=16&printNo=23743&publishType=00010|저자=|제목=윤상철-김판근 탈퇴 공시|날짜=1997-12-20|출판사=동아일보}}</ref>, [[1998년]] [[오스트레일리아]] [[내셔널 사커 리그]]의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FC]]로 이적하였다. [[1999년]] [[뉴캐슬 브레이커스]]로 옮겨 활약하였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FC 서울]]에서 활약한 원클럽맨이자 레전드로 2007년 8월 1일 [[FC 서울]] 홈서울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하였으며<ref>{{뉴스 인용|url=http://m.fcseoul.com/mobile/news_tv/fcnews_view.jsp?seq=835&tcd=news&pg=194|저자=|제목=K리그 전설의 득점왕들의 시축'|날짜=2007-07-29|출판사=FC서울 홈페이지 공식 뉴스}}</ref><ref>{{뉴스 인용|url=http://m.fcseoul.com/mobile/news_tv/fcnews_view.jsp?seq=841&tcd=news&pg=193|저자=|제목=왕년의 득점왕들이 돌아왔다! 피아퐁과 윤상철
         |날짜=2007-08-01|출판사=FC서울 홈페이지 공식 뉴스}}</ref> 2014년 [[우리동네 예체능]] 프로그램을 통한 레전드 매치 참가, 그 외에도 인터뷰 등에서 친정팀인 FC 서울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v.sports.media.daum.net/v/20160311060208789|저자=|제목=K리그 개막 특집 인터뷰 -'전설의 득점왕' 윤상철·김현석 "올 시즌 득점왕은 데얀과 아드리아노"
         * '''[[K리그1]]'''
         : {{1위(메달)}} '''우승 (1)''': [[K리그 1990|1990]]
         : {{2위(메달)}} '''준우승 (2)''': [[K리그 1989|1989]], [[K리그 1993|1993]]
         : {{4위(메달)}} '''4위 (2)''': [[K리그 1988|1988]], [[K리그 1992|1992]]
         * [[1989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1990년]] [[K리그 득점상]] 수상
         * [[199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1993년]] [[K리그 도움상]] 수상
         * [[1993년]] [[K리그 개인 수상 목록#감투상|K리그 감투상]] 수상
         * [[199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1994년]] [[K리그 득점상]] 수상
         *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이관우
         [[1999년]] [[일본]] [[J리그]]의 [[아비스파 후쿠오카]]로의 입단을 추진하였고 계약까지 성사되었으나, 당시 [[드래프트 (스포츠)|드래프트]] 공시 상태였던 관계로 이적이 무산되었다. 결국 [[2000년]] [[K리그]]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고 여러 차례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6년]] [[3월 29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 서울에서 K리그 통산 51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661 대전, 이관우 선수 20~20 기록 달성]{{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661 }}</ref> [[2006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으나,<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60723000006 대전 이관우, 수원으로 이적 확정]{{깨진 링크|url=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60723000006 }}</ref> 그 과정에서 [[대전 시티즌]]과 마찰을 빚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363173& 상처입은 이관우, 대전 남을까]</ref>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 후에 좋은 활약을 펼쳐 [[K리그 2006|2006년 K리그]] 준우승, [[K리그 2008|2008년 K리그]] 우승 등에 공헌하였고, 이적 6개월 만인 [[2007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하였다.<ref>[http://www.bluewings.kr/news/news_view.asp?seq=1624 2007 새출발 수원, 주장 이관우-부주장 이정수 선임]{{깨진 링크|url=http://www.bluewings.kr/news/news_view.asp?seq=1624 }}</ref> [[2007년]] [[8월 25일]] [[대구 FC]]와의 원정 서울에서 K리그 통산 21번째로 [[K리그 득점-도움 기록#30-30 클럽|30-30클럽]]에 가입하였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4950 수원 이관우 K리그 통산 21번째 30~30 기록 달성]{{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4950 }}</ref> [[2006년]]과 [[2007년]]에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2009년]]부터 부상에 계속 신음하며 경기 한 번 나가는데 1억인 귀하신 몸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2시즌 간 단 8서울만 나갔고 [[K리그 2010|2010 시즌]] 후 수원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음식점 사업을 하다가 [[홈 유나이티드 FC]]의 [[이임생]]감독의 제의에 2013년 [[홈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였고, 그곳에서 날카로운 프리킥 등을 선보였다.
         이후 한동안 선발되지 못하다가, [[2006년 FIFA 월드컵]] 이후 취임한 [[핌 페르베이크]]호의 예비명단에 승선했지만,<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607280040 '베어벡 1기' 36명 발표, 이관우 신영록 발탁]{{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607280040 }}</ref>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었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60810160721 대만전 엔트리 발표, 기존 멤버 중용 이관우, 조병국 탈락]{{깨진 링크|url=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60810160721 }}</ref> [[2008년]] 취임한 [[허정무]] 감독에 의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하였지만,<ref>[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7&key=200801171027298299 이관우·김병지, 1기 허정무호 발탁 ]{{깨진 링크|url=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7&key=200801171027298299 }}</ref> 소속팀에서와는 달리 대표팀에서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08년 [[동아시안컵]] 출전 이후 선발되지 못하였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80130220010 ‘전반 교체 아웃’ 이관우, 김병지… 아쉬움 남긴 복귀전]{{깨진 링크|url=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80130220010 }}</ref><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02200174 ‘북한전 59분’ 이관우, 또 평범했던 마에스트로]{{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02200174 }}</ref> 이관우 본인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는 큰 미련은 없고, 클럽에서만 주력하겠다는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46113 이관우, "대표팀 욕심은 없다. 오로지 우승"]</ref><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70921081103 ‘상종가’ 이관우, “대표팀 보다는 K리그 최고가 되고파”]{{깨진 링크|url=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70921081103 }}</ref><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03160108 '데뷔 첫 2골' 이관우, "대표팀보다 팀 내 경쟁이 우선"]{{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03160108 }}</ref><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775617 '허 감독님 보셨죠' 2골 이관우, 대표 탈락보다 팀 승리가 우선]</ref>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조모컵|조모컵 2008]]의 K리그 올스타 선수로 선발되었던 [[박원재]]가 급성 위염으로 제외되자, 대신 엔트리에 포함되었다.<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8321 조모컵 2008 선수 변경 (박원재 → 이관우) ]{{깨진 링크|url=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18321 }}</ref>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8|2008년]])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6|2006년]])
         * {{K리그 선수|20000056}}
         |제목=K리그
         {{2003 K리그 베스트 11}}
         {{2006 K리그 베스트 11}}
         {{2007 K리그 베스트 11}}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중화초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홈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
         [[분류:싱가포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싱가포르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칭스태프]][[분류:수원 FC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싱가포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수원 FC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
  • 이성운 (축구선수)
         [[2001년]] [[성남 일화 천마]]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하였으나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성남에서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자 [[경찰 축구단|경찰청]]에 입대하였다. [[2007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며 [[K리그]]로 복귀하였고 [[2009년]] 해외 진출을 모색하였으나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대전 한수원]]의 서보원 코치의 요청으로 대전 한수원에 입단하였다.
         * {{K리그 선수|20010095}}
  • 이승기 (축구 선수)
         '''이승기'''(李承琪, [[1988년]] [[6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현재 [[K리그1]]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고 있으며,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 [[울산대학교]]를 졸업한 후 이승기는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고향 팀 [[광주 FC|광주]]에 입단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광주시민프로축구단 우선 지명 선수 14명 공시|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343&aid=0000006269|출판사=베스트일레븐 |저자=김지은 |날짜=2010년 11월 2일}}</ref>
         * 시즌 전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와의 연습 광주에서 부상을 당해<ref name="축구 선수 이승기의 무산된 K-리그 데뷔전" /> [[K리그 2011|K리그]] 개막 후 약 한 달 후인 [[2011년]] [[4월 6일]]에서야 [[부산 아이파크]]와의 [[K리그 컵 2011|리그컵]] 광주에서 데뷔.<ref>{{뉴스 인용|제목='한지호 결승골' 부산 시즌 첫 승, 광주 1-0 제압 |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60412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날짜=2011년 4월 6일}}</ref>
         * 3일 후 [[4월 9일]]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와의 광주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광주-상주, 득점 없이 무승부...김정우, 5G 연속골 무산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40916321827§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이경헌 |날짜=2011년 4월 9일}}</ref> 그리고 약 한 달 만인 [[5월 1일]] [[대전 시티즌]] 전에서 데뷔 골을 터뜨림<ref>{{뉴스 인용|제목=-프로축구- 광주 첫 2연승..대전 2-1 제압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041804 |출판사=연합뉴스 |저자=배진남 |날짜=2011년 5월 1일}}</ref>
         * 그는 [[K리그 2011|K리그]]에서 25광주 출장 8골 2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2011|2011년 K리그]] 신인상을 수상.
         * 2014 시즌에도 잔부상을 겪었지만 26경기에 출전하여 5골 10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클래식 2014|2014 K리그 클래식]] 도움왕에 오름과 동시에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2016년]] [[9월 14일]]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였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복귀 하였다.
         * 2017년 9월 1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 홈광주에서 전북의 공격수로 선발출전해 전반 14분과 19분, 21분에 잇달아 연속골을 넣었고, 7분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한 것으로, K리그 사상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이다.
         * [[K리그1]] 우승 3회 ([[K리그 클래식 2014|2014]], [[K리그 클래식 2017|2017]], [[K리그1 2018|2018]])
         * [[K리그 챌린지]] 우승 1회 ([[K리그 챌린지 2015|2015]])
         *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 2017
         * [[K리그 도움상|K리그 클래식 도움왕]] : 2014
         * [[K리그 신인상]] : 2011
         * {{K리그 선수|20110188|이승기}}
         |내용='''[[K리그 신인선수상]]'''
         |기간='''[[K리그 2011|2011년]]'''
         |내용='''[[K리그 도움상#K리그 클래식 수상자 (1983-현재)|K리그 클래식 도움왕]]'''
         |기간='''[[K리그 클래식 2014|2014년]]'''
         {{K리그 클래식 도움상}}
         {{K리그 신인상}}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 임은주 (1966년)
         * 1999년 ~ 2003년 [[K리그]] 전임주심
  • 장현규 (축구선수)
         이후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자로 연루되어 포항 스틸러스와 계약해지 되었고,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의 징계를 받았다.
         | [[K리그 2004|2004]] ||rowspan=4| [[대전 시티즌]] ||rowspan=9| [[K리그]] || 14 || 2 || 2 || 0 || 8 || 0 ||colspan="2"|-|| 24 || 2
         | [[K리그 2005|2005]] || 15 || 0 || 2 || 0 || 9 || 0 ||colspan="2"|-|| 26 || 0
         | [[K리그 2006|2006]] || 24 || 0 || 2 || 0 || 12 || 0 ||colspan="2"|-|| 38 || 0
         | [[K리그 2007|2007]] || 16 || 0 || 1 || 0 || 3 || 0 ||colspan="2"|-|| 20 || 0
         | [[K리그 2008|2008]] || [[포항 스틸러스]] || 20 || 1 || 4 || 0 || 2 || 0 || 2 || 0 || 28 || 1
         | [[K리그 2009|2009]] ||rowspan=2|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불사조]] || 26 || 3 || 1 || 0 || 3 || 0 ||colspan="2"|-|| 30 || 3
         | [[K리그 2010|2010]] || 21 || 0 || 2 || 0 || 0 || 0 ||colspan="2"|-|| 23 || 0
         | [[K리그 2010|2010]] ||rowspan=2| [[포항 스틸러스]] || 1 || 0 || 0 || 0 || 0 || 0 ||colspan="2"|-|| 1 || 0
         | [[K리그 2011|2011]] || 2 || 0 || 0 || 0 || 3 || 0 ||colspan="2"|-|| 5 || 0
         * {{K리그 선수|2004095}}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울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전하초등학교 동문]][[분류:현대중학교 동문]][[분류:현대고등학교 (울산) 동문]][[분류:울산대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
  • 조영철 (축구선수)
         [[2015년]] 7월 자신의 고향팀인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와 2년 6개월을 맺고 입단하여 8년 만에 국내로 복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260074 K리그 첫 경험 조영철, ‘고향’ 울산 현대 입단] </ref>
         2015 시즌 후, 울산 입단 3개월 만에 군 복무를 위해 상무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39&aid=0002046297 조영철 등 K리거 18명, 2016년 상무 입대 확정] </ref> 그리고 2016년 5월 21일 [[성남FC]]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K리그]] 데뷔골을 넣었으나, 팀은 2:3으로 패했다.
         * {{K리그 선수|20150273}}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요코하마 FC의 축구 선수]][[분류:알비렉스 니가타의 축구 선수]][[분류:오미야 아르디자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축구 윙어]][[분류:축구 공격수]][[분류:학성고등학교 동문]][[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울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조진호 (축구인)
         선수 시절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남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남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남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K리그 클래식]]에서의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안영규]], [[정석민]], [[임창우]] 등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져나가는 등 악재를 겪었고 시즌 개막 후 11라운드까지 1승을 거두는데 그치자 계약조건을 토대로 사임, 사실상 경질되었다.<ref> [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5/sp2015052110281493650.htm/ 대전 조진호 감독, 성적부진으로 사의 표명] </ref>
         그뒤 독일에서 지도자연수를 받은뒤,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ref>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43&aid=0000055866?? 상주, 신임 사령탑에 조진호 전 대전 감독 선임] </ref>2016시즌 상주를 최초로 리그 상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64222/ 조진호 감독, “첫 상위 스플릿 진출 선수들에게 고맙다”] </ref> 이는 [[박항서]]도 하지 못한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상위 스플릿으로 확정지은 것이다.
         조진호 감독 사망 이후 [[K리그]]에 소속된 각 구단들 또한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메세지를 올렸으며, 특히 [[경남 FC]]는 추모에 더해 '그동안 멋진 경쟁에 감사했다'는 메세지를 추가로 남겼다.
         [[10월 10일]] 당일 [[스위스]] 베른 주 빌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시작 전 선수들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모든 K리그 경기에서도 추모 묵념을 진행했으며, [[10월 14일]] [[수원 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에서는 부산 측 원정 서포터석에 조진호 감독의 사진을 걸었며, 이 날 [[이정협 (축구 선수)|이정협]]은 패널티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뒤 조진호 감독의 사진 앞에 달려가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10월 15일]] [[대전 시티즌]]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대전 홈팬들이 조진호 감독이 대전을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시켰던 2014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경기 시작 후 14분 동안 응원을 하지 않으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한편 이번 조진호 감독의 사망을 통해 감독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재조명받으며 감독이라는 자리가 선수들보다 더 힘든 직업인지를 깨우쳐 주고 선수들과는 달리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개선과, 건강검진 의무화 및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리그는 2018년부터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의 건강검진을 의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2017시즌 K리그 시상식에서 조진호 감독에게는 특별 공로상이 주어졌고, 아들 조함민 군이 대신 시상식에 참여했다.
         * [[K리그 챌린지]] : 우승 ([[K리그 챌린지 2014|2014]])
         * [[2014년]] [[K리그 감독상|K리그 챌린지 최우수 감독상]]
         * [[2014년]] [[K리그 챌린지]] 5월의 K리그 감독상
         * [[2017년]] [[K리그]] 특별 공로상
         * {{K리그 선수|19980131}}
         {{K리그 챌린지 감독상}}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주석 (1978년)
         그는 [[K리그]]의 [[서울 이랜드]]와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를 좋아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ref>[http://m.sport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2934978/힙합 뮤지션 주석, 맨시티-서울E와 사랑에 빠지다]{{깨진 링크|url=http://m.sport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2934978%2F%ED%9E%99%ED%95%A9 }}</ref>
  • 차범근
         }}</ref> 했다. [[1990년]] [[11월 23일]] [[K리그 클래식|K리그]] 팀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아, [[1991년]] [[K리그 클래식|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1994년]] 시즌을 마치고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어 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997년]] [[1월 7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는데, 당시 대표팀의 상황은 어수선했다. 불과 한 달 전인 [[19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1996년 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에 2-6으로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며 [[박종환 (축구인)|박종환]] 감독이 불명예 퇴진했고, 선수단의 분위기도 매우 어수선했다.. 차범근은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여 [[1998년 FIFA 월드컵|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질 이후 차범근은 [[1999년]]까지 [[중국 슈퍼리그]] [[선전 훙쫜|선전 핑안]]의 감독을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K리그 클래식|K리그]]에 승부 조작이 있다는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1998년]] [[8월 12일]] [[대한축구협회]]는 이 일로 그에게 5년 간 [[대한민국]] 국내 지도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로 인해 이듬해 선전의 감독에서 물러나 귀국한 후 한동안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여 유소년 육성에만 전념하고 [[문화방송|MBC]]에서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다가 징계가 해제된 [[2003년]] 말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을 맡게 되어 현장에 복귀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483405& 차범근, 프로축구 수원 사령탑]</ref> 이듬해 [[2004년]]에는 [[K리그 클래식|K리그]]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감독 생활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고,<ref>[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973&content_id=921 차범근 감독,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기분"]{{깨진 링크|url=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973&content_id=921 }}</ref> [[2005년]]에는 [[K리그 컵대회|컵대회]] 우승을 차지하였다.<ref>[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1205&content_id=1150 수원 차범근 감독, “선수-팬-구단이 하나 되어 이룩한 결과"]{{깨진 링크|url=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1205&content_id=1150 }}</ref> [[2008년]]에는 자신의 [[K리그 클래식|K리그]] 통산 2번째 우승과 [[K리그 컵대회|컵대회]]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더블]]을 달성하였다.
         시즌 후 겨울 이적 시장에서 [[마토 네레틀랴크|마토]], [[이정수 (축구 선수)|이정수]], [[조원희]] 등 주축 선수들이 이적했지만 이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한 상태에서 [[K리그 2009|2009 시즌]]에 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10위에 머물렀다.
         이후 [[강민수]], [[조원희]], [[염기훈]] 등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여 시즌을 준비하였으나 [[K리그 2010|2010 시즌]] 초반에도 부진한 모습을 이어가자 팬들 사이에서 퇴진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2010년]] [[4월 24일]] [[강원 FC]]와의 화성에서 패하며 5연패를 기록한 뒤 인터뷰에서 퇴진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차범근 감독 "5연패는 내 책임, 원한다면 물러나겠다" |url=http://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3204857&date=20100424&page=1 |archiveurl=http://blog.netster.co.kr/blog/board/view.php?&ss%5Bfc%5D=13945&bbs_id=gamiblog&S_BlogNum=669&page=43&doc_num=72179 |archivedate=2010-04-25 |출판사=뉴시스|저자=박상경|날짜=2010-04-24}}</ref>
         * [[K리그]] 준우승 1회 (1991년)
         * [[K리그]] 우승 2회 ([[K리그 2004|2004년]], [[K리그 2008|2008년]])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6|2006년]])
         * [[2004년]], [[2008년]] [[K리그]] 감독상
         *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축구 선수로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한 것 외에도 [[셀틱 FC]]에서 활동하였고 현재는 [[K리그 클래식]]의 [[FC 서울]]에서 뛰고 있다.(2015.11. 은퇴)
         {{K리그1 감독상}}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대한민국 국적의 축구 해설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축구 공격수]][[분류:SV 다름슈타트 98의 축구 선수]][[분류: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축구 선수]][[분류: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독일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독일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197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86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7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7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72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76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FIFA 센추리 클럽]][[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선전 FC의 축구 감독]][[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감독]][[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1998년 FIFA 월드컵 참가 감독]][[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체육훈장 기린장 수훈자]][[분류:체육훈장 백마장 수훈자]][[분류:화성시 출신]][[분류:연안 차씨]][[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칭스태프]][[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K리그1 감독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최문식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 [[K리그]] : 우승 ([[K리그 1992|1992]])
         * {{K리그 선수|19980209}}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성국 (축구선수)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컵 2006|K-리그 컵]]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남 '컵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남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08년]] [[12월 22일]]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에 입대하였고,<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최원권, 상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0}} }}</ref> 등번호 10번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광주 상무 내년시즌 배번 확정... 최성국 10번, 김용대 1번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1190355§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1}} }}</ref> 그는 제대 후 [[성남 일화 천마]]로 복귀하여 [[K리그 2010|2010 시즌]] 4경기를 소화하였다.
         [[2011년]] [[1월 10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최성국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수원, 공격수 최성국 영입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11016004047§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10}} }}</ref> 수원에 입단한 후, [[2011년]] [[3월 5일]] [[FC 서울|서울]]과의 [[K리그 2011|2011 시즌]]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 |제목=‘게인리히 데뷔골’ 수원, K리그 슈퍼매치 완승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0614522512§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이민선 |날짜=2011년 3월 6일 }}</ref> [[2011년]] [[4월 15일]] [[강원 FC|강원]]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마토 4호골’ 수원, 2-0 완승…강원 시즌 6연패 수렁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41520291628§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홍재민 |날짜=2011년 4월 15일 }}</ref>
         === K리그 승부 조작 ===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백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상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영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영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영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 [[K리그]] : [[K리그 2005|2005]]
         * [[K리그]] : [[K리그 2007|2007]]
         * [[K리그 신인선수상]] : 2003
         * [[K리그 컵]] 득점왕 : [[리그컵 2006|2006]]
         * 조모컵 2008 MVP : [[K리그 올스타전|2008]]
         * {{K리그 선수|2003070|최성국}}
  • 최승인
         '''최승인'''([[1991년]] [[3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현재 [[대한민국]] [[K리그 챌린지]] [[부산 아이파크]]에서 활약하고 있다.
         유스 시절부터 [[부산 아이파크]]의 산하 유스팀인 [[신라중학교]]와 [[동래고등학교]]에서 활약하며 중학생 신분으로 [[K리그]] 2군 리그인 [[R리그]]에 출전하여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등 기대를 받았다.
         2011년 [[쇼난 벨마레]]에 입단하였으나 쇼난 입단 직후 장기 부상을 입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실업 리그인 [[일본 풋볼 리그]]의 [[츠바이겐 가나자와]]로 임대 이적하였다. 2011년 쇼난에서 방출된 후 K리그 드래프트에 지원하였으나 지명받지 못하였고 [[K3리그|챌린저스리그]] [[충북 청주 FC|청주 직지 FC]]에 입단했고 당시 감독인 [[김종현 (1973년)|김종현]] 감독의 지도하에 자신감과 경기력을 끌어 올리게 됐다.
         [[K리그 드래프트 2013|2013년 드래프트]]에서 입단 테스트 끝에 [[강원 FC]]에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2013 신인선수선발 드래프트 추가지명 |url = http://www.gangwon-fc.com/index.php?mid=notice&page=2&document_srl=61355 |출판사 = 강원 FC |날짜 = 2013-02-26 }}</ref>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골을 기록하며 분전하였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하였다.
         * {{K리그 선수|20130189}}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츠바이겐 가나자와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동래고등학교 동문]][[분류:신라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덕상초등학교 동문]][[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원권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 [[K리그]] 우승 1회 (2000년)
         * [[K리그]] 준우승 2회 (2001년), (2002년)
         * {{K리그 선수|20000118}}
         [[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 FC의 코칭스태프]]
  • 최현 (축구인)
         [[2001년]]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하였다. 그 해 주전으로 뛰진 못했으나 다음해에 있을 한,일 월드컵 상비군,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2002, 2003년부터 2년 동안 리그에서 40경기를 뛰었으나, 이후 부상으로 인해 2년 동안 단 한 차례의 리그 경기에도 뛰지 못했다. [[2006년]] [[부천 SK]]가 [[제주특별자치도]]로 연고 이전 후 구단 명칭을 변경한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유나이티드]]에서 계속 활약하였고, 2년 동안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의 부주장을 맡으며 경기 출장도 다시 이어갔다 [[2008년]] [[경남 FC]]로 이적하였지만,<ref>[http://www.gsndfc.co.kr/newsinfo/news_view.asp?f_gbn=bodo&idx_key=137 경남FC, 선수보강 (고경준, 최현, 김영근) ]{{깨진 링크|url=http://www.gsndfc.co.kr/newsinfo/news_view.asp?f_gbn=bodo&idx_key=137 }}</ref> 리그 개막 직전 발목부상으로 인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에 경남에서는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그 해 [[부산 아이파크]]로 다시 이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05260028 부산, 경남 GK 최현과 신승경 맞트레이드 ]{{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05260028 }}</ref>
         2013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U-18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의 GK 코치로 활동하였다. 2015 시즌 중반 [[이창원]] 감독이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선임되자, 후반기의 감독 대행을 맡아 포항제철고의 [[K리그 주니어]] 2015년 후기 리그 무패 우승 과 2015년 대교눈높이 왕중왕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K리그 선수|20010021}}
         [[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최효진 (축구선수)
         '''최효진''' (崔孝鎭, [[1983년]] [[8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다. 현재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고 있다.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여, [[K리그 2005|2005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K리그 2007|2007 K리그]] 우승과 [[FA컵 2007|2007 FA컵]] 준우승, [[FA컵 2008|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받았고,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 2008년, 2009년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전 경기 출장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특히 16강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FC|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39&aid=0001950957 |제목=(ACL 리뷰) '최효진 해트트릭' 포항, 뉴캐슬 6-0대파하고 8강행 |날짜=2009-06-24 |출판사=스포탈코리아 }}</ref>
         [[2010년]],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FC 서울]]로 이적한 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이적 첫 해 [[K리그 2010|2010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하였다. 시즌이 끝난 후,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상주 상무 피닉스|상무]]에 입단하였다. 상무에서 주전 라이트 백으로 활약하며 [[2012년]] [[9월 10일]] 전역할 때까지 53경기에 출전하였다. 전역 후 FC 서울에 복귀하였으나, [[2013년]] [[차두리]]의 입단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전매특허인 부지런한 몸놀림과 특유의 탱크같이 시원한 돌파로 공수를 오가며 공격을 지원한다. 수비상황에서의 근성 또한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넘어지는 순간까지 공을 눈에서 떼지 않는 집중력과 근성은 그를 [[K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으로 만들었다.
         * [[2008년]], [[2009년]], [[2010년]] [[K리그 베스트 11]] DF 부문 선정
         * [[K리그]] 준우승 1회 ([[K리그 2005|2005년]])
         * [[K리그]] 우승 1회 ([[K리그 2007|2007년]])
         * [[K리그]] 우승 2회 ([[K리그 2010|2010년]], [[K리그 2012|2012년]])
         * {{K리그 선수|20050087|최효진}}
         {{FC 서울 역대 K리그 베스트 11}}
         {{2008 K리그1 베스트 11}}
         {{2009 K리그1 베스트 11}}
         {{2010 K리그1 베스트 11}}
         [[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중동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
  • 프로 스포츠
         현대에는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준프로라는 개념도 잘 살펴보면 프로선수와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 가령 [[K리그]]에 뛰는 선수들은 명백히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음은 물론이고 성적에 따라 연맹에서 추가적인 상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 회사로부터 스폰받는 돈도 있다. 하지만 세미프로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만 봐도 이런 면에서 K리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분류는 상당히 무의미해 진 상황이다.
         또한 아마추어 리그인 K3도 K리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적어도 인기 종목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경계는 사실상 전통적인 방식으론 더 이상 경계를 가르기가 어려워 졌다고 볼 수 있다.
  • 한정국 (축구선수)
         [[부산상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일화 천마에 [[1994 K리그 드래프트|드래프트]] 1순위로 계약금 7000만원, 연봉 1500만원에 입단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일화 소속으로 70경기를 뛰며 4골 4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특히 [[1995년]] [[포항 스틸러스]]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는 선취골을 기록해 일화의 [[K리그]] 3연패 달성에 기여하였다. 일화는 한정국의 골에 힘입어 1차전을 비긴 뒤 [[포항스틸야드|스틸야드]] 2차전까지 무승부로 끝내고, [[안양시]]에서 치러진 3차전에서 [[이상윤 (축구인)|이상윤]]의 골든골로 승리해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1997년]]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하면서 기량 하향곡선을 그렸다.
         * {{K리그 선수|19980178}}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부산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한준희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KBS 2TV]] : [[비바! K리그]]
  • 황보관
         '''황보 관''' (皇甫 官, [[1965년]] [[3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감독, 축구 클럽 경영자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소속의 행정가였다. [[일본]] [[J리그]] 팀 [[오이타 트리니타]]의 코치, 감독을 거쳐 오이타 구단의 부사장 및 이사를 맡았고 [[2010년]]부터 오이타의 감독직을 다시 맡게 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K리그]] 팀 [[FC 서울]]의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 무대에 복귀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117일 만에 사임하고 [[최용수 (축구인)|최용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사임한 후 [[대한축구협회]]로 옮겨 기술교육국장을 맡았고 [[이회택]]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이 되었다. 본관은 [[영천 황보씨]]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8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1995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여 [[1996년]]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는 등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였다. [[1998년]] 시즌 중 은퇴하였다.
         * [[1988년]] [[K리그 신인선수상]]
         * [[1988년]] [[K리그 베스트 11]]
         *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 [[K리그]] 우승 1회 (1989년)
         * [[K리그]] 준우승 1회 (1994년)
         * {{K리그 선수|19980224}}
         |내용='''[[K리그 신인선수상]]'''
         |기간='''[[K리그 1988|1988년]]'''
         |임기 = [[K리그 2011|2011]] 시즌
         |제목= [[한국프로축구연맹|<span style="color:#22559E;">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
         {{K리그 신인상}}
         {{1988 K리그 베스트 11}}
         {{1994 K리그 베스트 11}}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황연석
         [[1995년]] [[성남 FC|일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 시즌 30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쳐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노상래]]에 밀려 신인왕에 선정되지는 못하였다. 일화 축구단이 [[천안시]]를 거쳐 [[성남시]]에 둥지를 튼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며 [[K리그 2004|2004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때까지 팀에 4회의 리그 우승을 안겨주었다.
         2004 시즌 [[K리그]]에 처녀 출전하게 된 인천으로 이적한 후 큰 기대를 받았으나 2시즌 간 리그 14경기 출전 1골에 그쳤다. 하지만 [[2004년]] [[대구 FC|대구]]와의 리그 경기에서 기록하였던 오버헤드 킥 골이 한 시즌 간 가장 멋있는 골을 터뜨린 선수에게 주어지는 [[일간스포츠]] 제정 [[키카골]]에 선정되었다.
         *{{K리그 선수|19970250}}
13255의 페이지중에 80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6-05-21 12:46:52
Processing time 0.0825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