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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동(1970)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11년도까지는 공포의 쿵쿵따, X맨, 놀러와, 무한도전 등을 통해 예능에서 원톱을 차지하기 시작한 유재석과 유일하게 어깨를 나란히 했던 진행자이자 동반자였다. 2005년부터 한국 갤럽에서 조사하는 올해의 인물 코미디언·개그맨 부문에서 2010년에 유재석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본 몇 안 되는 개그맨.[* 다른 사람은 2011년에 1위를 한 김병만.]
         이후 체육인 출신으로 인지도를 알린 경우가 몇 사람 더 있는데, 2000년대 초반 KBS에서 야구선수 출신인 [[강병규]]를 데려왔고 예능인이 적성에 맞긴 해서 한 때 잘 나갔지만, 사생활 및 인성 문제로 각종 논란거리를 만든 끝에 불법도박으로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현재는 방송계에서 완전히 퇴출됐다. 2000년대 중반에는 [[최홍만]]이 주목받았으며, 국내에서는 2000년대 후반 즈음부터 뜸해졌지만 일본에서는 그 특유의 장신 기믹 때문에 상당히 인지도가 있었고 예능에 자주 출연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추성훈]]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 이후 방송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나 각종 논란에 휩쓸린 뒤 현재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한 CF 위주의 가벼운 연예활동만을 하고 있다. 현재는 [[무한도전]] 출연을 계기로 여러 예능에 고정출연하고 [[윤종신]]의 기획사까지 들어간 ~~셀럽이자 건물주인~~ [[서장훈]]과, 잘생긴 얼굴로 김흥국만큼 막 나가는(...) 드립들을 날려대며 주목받은 ~~나이트는 전문가지만 축구는 알지도 못하는~~ [[안정환]]이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활약하고 있다. ~~솔샤르는 미드필더인가요??~~
         강호동이 스타급 MC로 뛰어오른 가장 큰 계기는 역시 [[공포의 쿵쿵따]]로서 당시 유재석과의 호흡은 지금도 여전히 회자될 정도. 이후 [[천생연분]], 야심만만, [[X맨을 찾아라]]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2003년과 2005년 SBS 연기대상 MC부문 특별상[* 2004년은 유재석이 수상하였으며 별도 연예대상이 없던 SBS의 사실상 예능부분 최고상이었다]을 수상했고, 2003년에 백상예술대상 TV 예능상을 수상한다. 이후 위의 프로그램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며 정체기가 찾아오지만 토크쇼인 [[황금어장]], 일반인 대상 예능인 [[놀라운 대회 스타킹]], 리얼 버라이어티 [[1박 2일]]을 차례로 성공시키면서 2000년대 후반 예능계의 투톱인 유강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KBS, MBC, SBS 방송 3사에서 대상을 총 5회 수상한다.[* KBS: 2008, 2009년 2회 연속 수상/MBC: 2008년/SBS: 2007년, 2010년] 또 2008년에는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인이 최초로 받은 대상'''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5년 후인 2013년에 유재석이 같은 상을 수상하면서 방송부문 대상 4관왕을 달성한다. 참고로 이때 시상자가 '''강호동'''.]
         2000년대를 지나 2011년까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들을 이끌던 도중인 2011년 8월 10일 갑자기 강호동이 1박 2일을 이번 달까지 촬영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11일엔 제작진 측에서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하차의사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을 때 내려오고 싶다는 의사였다고. 결국 1박 2일은 시한부 종영의 운명을 맞았으며, 강호동이 이를 사실상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면서 구설수에 휘말렸다. 한편으로 종편행을 위해 방송계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 진심으로 화가 날 때 버릇이 있는데, 오묘한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리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씨름 선수 시절 전설적인 이만기와의 경기에서 강호동의 도발에 이만기가 "깝쭉거리지 마라, 이XX야"[* [[https://youtu.be/2OERy8f9K3c=5m1s|이 영상]]에서 자세히 들어보면, '깝치지 마라, 이 새끼야' 정도로 들린다.]라고 경고하자, 일순간 무표정이 되며 혀를 날름거리더니 심판에게 격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1박 2일/2011년 상반기 여행지#s-10|1박 2일]] '무섭당 vs 바보당' 편에서는 [[이수근]]이 적 팀의 교란작전에 말려들어 자신의 팀을 분간하지 못해 진행을 지체시키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자 [[https://youtu.be/2OERy8f9K3c=5m5s|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다만 답답함에 소리지르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안날 수도 있다.--그럴만 했다--또 전현무의 무례한 진행 논란이 있었던 KBS 연예대상 때에도 전현무가 볼살을 툭툭 치며 도발하자 일순간 웃던 표정이 돌변하며 혀를 날름거리며 굉장히 무서운 표정을 지었는데, 그걸 보았던 윤종신 왈 "촬영 중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고... 그 이후 카메라가 살짝 안잡힐 때에 살짝 경고하듯 한 손으로 전현무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는데 전현무가 생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프게 쥐었다고 한다. [[https://youtu.be/p4vgYV1K7Wc?t=2m8s|아형 초창기에도 잠깐 혀를 날름대는 장면이 나와 주변이 기겁했을 정도.]][* 이렇게 후배들 때리는 컨셉을 잡다보니 강호동의 최전성기인 2000년대 중후반 에도 강호동을 싫어하는 안티팬들이 상당했고 대다수가 저 컨셉을 이유로 들었다. 동시기 [[유재석|다른 한 축을 형성하던 사람]]은 젠틀하다고 찬양이 넘치다 못해 싫은 소리는 한풀 꺾인 2010년대 후반에나 나왔으니 아무래도 방송 컨셉과 역할의 숙명이라 할 수 있겠다.] 강라인에 오래 있어보면 이걸 잘 아는지, 강라인 베테랑 이승기가 출연한 2018년 4월 21일분 아는 형님에서 방송을 위해 강호동의 볼을 뿅망치로 치고서 강호동을 끌어안으며 괜찮다 할 때까지 눈치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강호동을 카메라 유무 때 둘 다 겪어봐서인 듯. 그리고 토크 중, [[민경훈]]이 예전에 강호동에게 하극상 이단옆차기를 날렸을 때 이승기는 그걸 보고 엄청 놀랐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때 강호동이 혀를 날름대며 진짜 화가 난 모습을 봤다고. 정작 민경훈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라 하고 카메라 꺼지고 바로 사과했을 듯-- 이수근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식겁했을 정도.
          * [[김종국]]이 연예계에서 누구보다도 무서워하는 선배가 강호동이라고... 비슷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진짜 이미지 싸움에 들어가면 '''전직 운동 선수'''였던 강호동에게 김종국이 몸 전체의 완력에서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X맨> 시절 김종국은 힘과 운동신경을 중심으로 나서는 현재의 '능력자'보다는 헬스 매니아 '국관장'이라든가 [[윤은혜]]와의 이미지 등으로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강호동과 서로 물리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렇다 해도 김종국은 강호동이 공과 사를 가릴때 사적으로 친한 동생중 하나이다. 사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그렇듯이 강호동 앞에선 의외로 약하고 기가 죽는 모습들을 많이들 보이는 편들에 속하며, 김종국도 그렇고 위에도 나와 있지만 --버럭쟁이(?)-- [[박명수]]도 그렇고, 뼈굵은 [[유재석]]도 2000년대 초반 <[[공포의 쿵쿵따]] 1기>에서 강호동한테 엄청 많이 털리고 당했었는데 뭘... 별 수 있나? --이런 강호동에게 [[은혁]]은 [[회사]] [[후배]]라면서 개기고 악담을 했었으니...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65968|#]] 일단 늦게 들어왔으니 따지고 보면 후배는 맞지만...--
          * 방송 도중 출연진들과 사생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유재석과는 정 반대로 방송 도중 출연진들과 [[사생활]] 이야기가 거의 안 나오는 편이다. [[정형돈]]의 주사 일화[* 정형돈은 평소 술에 취하면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지마 고해성사를 하는 버릇이 있는데, 강호동이 진행하던 우리동네 예체능에 같이 출연하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어느날 술에 취해 호동에게도 같은 짓을 했고 이에 호동이 (형돈과 같이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하하(가수)|하하]]에게 전화를 걸어 형돈의 술버릇이 원래 그런지 물어봤다는 일화가 무한도전을 통해 공개된 바가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같은 프로 출연자들과 연락처를 주고받는다는 점, 그리고 이상한 일(...)이 생기면 거리낌없이 물어볼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는걸 알 수 있다.]를 보면 다른 연예인들과 교류를 아예 안하는 건 아닌것으로 보이는데, 본인이 그런 일을 언급하는게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지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지는 불명. 하지만 과거 [[신정환]]이 활동할 당시에는 [[유재석]], 신정환과 모두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었고 이로 인해 사생활 이야기도 방송에서 많이 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여름]], [[시골]]에 있는 강호동의 친척집에 세사람이 모두 놀러갔을때 근처 산에서 내기 고스톱을 했는데, 강호동이 혼자 계속 이겨서 유재석과 [[신정환]]의 돈을 다 따 버렸고, 돈이 없어지자 옷벗기 내기까지 해서 그 둘의 상의까지 다 벗겼다고 한다. 유재석과 신정환이 서울로 돌아갈 차비가 없으니 차비라도 달라고 하자, 강호동이 무릎달리기를 해서 이기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여 그 둘이 상의를 벌거벗은채로 무릎달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재석이 신정환을 이기자 강호동은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러더니 뽀뽀를 하면 둘다 돈을 돌려주겠다고 해서 결국 두사람이 잠시 뽀뽀를 시도하려다가 너무 굴욕적이어서 포기했다고 하고 강호동은 그 모습을 보며 웃겨서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고 한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 밝힌 일화.[[https://www.youtube.com/watch?v=ypipz3uNsfk|영상]] 유재석은 '''[[완전한 사육|사육당하는 느낌이었다]]'''라고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하지만 방귀 사건은 영원히 미스테리로--] 또한 신정환을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로 포장마차까지 불러내서, 여자 씨름 선수인 자기 후배가 신정환의 팬이라고 하면서 소개시켜줬다가 그 여자후배가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던 신정환을 몰래 따라가서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힘으로 벽에 강하게 밀친 뒤 덮쳐서, 신정환이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는 일화도 강호동-신정환이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공개한 바 있다. 따로 교류하는 것으로 보이는 동생들로는 원래 친분으로 유명한 유재석과 X맨 시기에 합을 맞췄던 김종국과 하하 그리고 1박 2일부터 신서유기까지 따르는 이수근과 은지원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 성향이 워낙 공과 사를 가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방송에선 거의 말을 안하는 편이고 반대로 동생들이 썰을 푸는 편. 참고로 동갑내기들이랑은 완전 어색한 사이로 상술했듯 박명수는 강호동을 무서워하고 김구라와는 교류자체가 없고 [* 근데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 강호동인지라 정작 아들인 김동현과는 친하다.] 지상렬이 그나마 친한데 반말하고 지낸지 얼마 안되었다고 아는형님에 나와서 밝혔다. 그래도 지상렬은 강호동이 결혼전에 아내의 친구를 소개팅 시켜줄 정도로 친분이 있는 편이다.
  • 김구라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와 같은 해 1993년 뮤지컬배우 데뷔에 이어 같은 해 [[1993년]]에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하였으나,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며 [[2000년대]] 초반에 접어들어서는 인터넷 방송 위주로 활동을 하였는데 1998년 SBS가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 때문에 코미디 프로그램을 폐지하면서<ref>{{뉴스 인용
  • 김민희(1982)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 2000년대 중반 이후 ===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 김보성(배우)
         각설하고, 시각 장애 판정을 받았기에 당연히 병역의무는 '''[[면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데뷔 초부터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닌데, 전성기 당시에도 정통 연기파 [[배우]]라기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액션배우로서 활약했던 만큼 애초에 큰 자랑거리도 아닌 군면제 판정을 굳이 공개적으로 계속 언급하기도 어려웠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결국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스티브 유]]를 비롯한 연예인 병역기피로 여론이 크게 들끓던 무렵, 군대를 면제 받은 연예인 명단이 그 사유와 이를 조롱하는 평가들과 함께 인터넷에 나돌면서, 김보성한테는 '''"맨날 의리 의리 하는 녀석이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오줌]] 싼다(...)."'''는 식으로 평이 달려 있어, 김보성이 마치 군대에 가기 무서운 나머지 [[병역비리]]로 군면제를 받았다는 식의 악성 [[루머]]가 퍼지게 된다. 이를 보고 [[빡]]친 김보성이 자신의 복지카드(카드 형태의 장애인등록증)를 직접 인증하며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사연을 다시금 털어 놓으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보상심리|단순히 면제라는 이유]]로 무작정 까고 보는 [[찌질이]]들도 있긴 하다.~~
         어머니가 설정식 시인의 딸 설정혜라고 한다. 즉, 김보성은 설정식 시인의 외손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실제 김보성의 취미중 하나가 시짓기인데, 2000년대 초반 신혼 시절에 아내와 함께 출연한 예능프로에서 부터 아내를 위한 자작시를 꾸준히 발표하며 현재까지도 종종 자작시를 짓곤 한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WQ6UJDYi34A|주식에 빠져서는 이런 시도 짓는다(...)]] [[두시탈출 컬투쇼]]에서는 [[시인(문학)|시인]] 김보성으로 자신의 시를 읽어준 적이 있다.
  • 김수미(1949)
         [[1998년]]에 [[BMW]]의 최고급 대형 세단인 [[BMW 7시리즈|7시리즈]](E38형 740iL V8 4.4 [[DOHC]])를 구입했는데, 김수미의 전속 운전기사가 이 차에 탑승해서 단지 시동만 걸었을 뿐인데 차량이 [[급발진]]하는 바람에 당시 김수미가 출연하고 있었던 연극의 공연 벽보를 붙이고 계셨던 시어머니가 차에 치어 숨지고 말았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81700329119012&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8-17&officeId=00032&pageNo=19&printNo=16514&publishType=00010|#]] 이 사건으로 김수미는 피해자 신분으로 소송에 휘말렸으며, 시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한때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다. [[BMW]]를 상대로 강력하게 [[급발진]] 결함 규명 및 보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패소했다. 김수미는 그렇게나 존경하던 시어머니를 너무 어이없게 잃은 탓에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 [[2000년대]] 초에는 수 년 동안 병에 걸려 연기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무속]] 신앙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퍼졌고, 김수미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한 내용으로 시어머니의 영혼에게 [[빙의]]되어서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물론 진짜 원인은 '''극도의 우울증과 [[PTSD]]'''[* 당시 증언을 보면 환청과 환시까지 있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에, 신내림이 아니라 더한 상황으로 받아들였어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 실제로 당시 김수미가 빙의 등을 주장했을 때 상당수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으며 병상에서 삭발까지 했다.--[[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그리고 BMW는 20년 후 거하게 일을 일으키는데.....]]--
  • 김시진(야구감독)
         그러나 그의 조련을 겪은 투수들은 한동안 좋은 스탯을 보여 주다가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부진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조용준]], [[오주원|오재영]], [[신철인]], [[황두성]] 등 많은 투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했다.[* 김수경은 2007년까지 10승을 올리더니, 우리 히어로즈로 바뀌자마자 [[DTD|추락했다]]. 조용준은 2005 시즌 이후부터 기약없는 재활에 [[노답|들어갔고]], 신철인은 2006 시즌 이후로 1군에서 '''사라졌다'''가. 그리고 다시 조용준, 신철인은 2010년에 모두 [[방출]]당했다. 황두성 역시 2009 시즌 이후로 공기화됐고, 2011년에 은퇴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인 건 엄청난 연투를 시키면서도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등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투수관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연투를 시키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등 오직 감으로만 투수교체를 한다. 코치 시절부터 연투와는 상관없이 그저 지나 이기나 무조건 기용하는 선수만 기용하고 병적인 좌우놀이 성향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의 신철인의 '''6연투 기사'''는 김시진의 투수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076&aid=0001995931|6연투를 시켰다는 기사]]
         그러나, 이 항목에 꽤나 부정적으로 서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코치 김시진으로서의 평은 이미 높을만큼 높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야구가 그렇듯이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은 대부분 혹사 탓이 크다. 지금에서야 투수코치 권한이 조금 늘어났지만 지금도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독이 투수운용의 전권을 휘두르며 불펜투수를 노예질하기 마련이다. 또 롯데 자이언츠에 있는 2군 투수들이 왜 크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면, 황폐화된 2군 코치진을 첫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염종석|코치]][[윤형배|진의]] 실적부터 의문스럽고, 코치 숫자는 항상 부족하다. 또한 현장의 평이나 아마추어 시절 평가를 종합해 보면 롯데는 절대 자질이 좋지 않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 김용만(코미디언)
         '''2000년대 초반 신동엽과 함께 한국 예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 현 시대 배려형 진행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유재석]]이 스스로 가장 영향을 받은 진행자라고 자주 말할 정도로 배려형 진행에 있어선 대부격의 인물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와 야외촬영 등 장소와 녹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양질의 분량을 중시하는 유재석에 비해, 지붕이 있는 스튜디오를 선호하며 짧고 간결한 녹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유가 녹화를 짧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피투게더에서 밝혔다. 본인도 말을 많이하면 녹화가 길어진다고.(...) 참고로 그의 전성기 시절은 녹화분량이 그리 많이 필요치 않던 스튜디오 토크쇼의 황금기였기에 배려형 진행이 돋보일 수 있었다. 또한 영혼의 콤비를 자랑하던 선배 [[이경규]]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는 듯.]
         [[2000년대]] 초중반에 [[브레인 서바이버]] MC, [[대단한 도전]] MC 등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MBC 굴지의 예능 MC로 발돋움한다. 당시 MBC 예능을 쥐락펴락했던 [[이경규]]에게는 좌용만 우[[조형기|형기]]가 있었으며, 단독 MC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당시 [[이휘재]], [[남희석]]보다 높은 등급의 MC였으며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과 비슷한 등급이었다. 당시 [[유재석]], [[강호동]]은 MC로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 [[MBC 방송연예대상]]을 몇 차례나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 해씩 걸러가며 이경규와 김용만이 대상을 나눠먹는 정도였다.
         절친인 김국진과는 MBC 이적 이후 서로간의 리즈시절과 슬럼프 기간이 정확하게 교차하는 묘한 관계가 있다. 과거 [[테마게임]] 때인 김국진의 전성기 시절 김용만은 그 그늘에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김용만이 [[목발]]을 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 있어서 방송을 쉬기도 했고 연예계를 떠날 생각도 했을 정도다. 반면 김국진이 여러 가지 문제로 방송을 접었을 때인 2000년대 초반에 김용만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2000년대 후반 김국진이 방송을 복귀하면서 재기에 성공할 때 김용만은 부진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랄 거 없이 비슷한 처지... 였으나...~~ 참고로 김용만이 아래 사건으로 [[섹션TV 연예통신]] MC 자리에서 하차하자, 그 자리에 김국진이 들어가기도 했다. 2010년 MBC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 방송에서는 두 사람이 특별 MC로 함께 나온 적이 있다.
         [[규라인]]에 소속되어있다. 한 때 2000년대 초~후반 모두 대부분 이경규와 같이했는데, 2015년에 재기하고는 이경규와 함께 하는 모습이 없다.[* 2016년 3월자 [[나를 돌아봐(예능)|나를 돌아봐]]에서 밝히길, 이경규는 김용만에게 '''쉰 김에 푹 쉬라고''' 했다.] 고는 했지만 [[한끼줍쇼]] 등에 일회성 출연하면서 이경규와 많이 엮인 모습을 보여줬다. 여전히 캐미는 좋은 편.
  • 김종국(코미디언)
         이후 다른 선배 개그맨들처럼 '[[6시 내고향]]'등의 [[리포터]]로 출연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전격적으로 [[탤런트]]로 전업을 선언했다. [[드라마]]에서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개그캐릭으로 자주 등장하며 ~~[[내가 고자라니|이상한 쪽으로 십수년만에 주목을 받아버린]]~~ ''''[[야인시대]]'의 '[[신불출(야인시대)|신불출]]''''역이나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의 '[[온군해]]', '[[장희빈]]'의 김해성[* [[숙빈 최씨]]의 외이종사촌 형부. [[장희재]]의 사주를 받아 숙빈을 독살하려다 발각되어 희빈 장씨가 중전 자리에서 물러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다.], '[[천추태후]]'에서도 [[김치양]]의 집사인 '이주정',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의 [[정별감]], [[또 오해영]]의 최 이사 등이 있다. [[이재포]]와 더불어 탤런트로서의 인지도가 개그맨으로서의 인지도보다 훨씬 높은 '탤개맨'과에 속한다.
  • 김진욱(스포츠해설가)
         4. [[방화#s-3.1|불지른 것]]보다 점수를 많이 냈으면 승, 적게 냈으면 패.[* 이 스타일,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 [[롯데 자이언츠]]의 [[2000년대]] 후반 팀 스타일이 딱 이거와 비슷하다.]
         일각에서는 상대팀이 자멸하듯 무너졌다는 점 때문에 '''운장'''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유력한 4강권 경쟁팀이었던 기아와 SK가 추락하고, 막판까지 넥센과 3 4위 순위 결정을 놓고 치열하게 다툰 등 2013년 두산 전력은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 팀 중 최약체로 평가받고 있었다. 심지어 2012년 두산보다도. 오죽했으면 한국시리즈 전에 [[류중일]]의 경험과 김진욱의 천운이라는 식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1361315|기사도 떴다.]]
  • 남진(가수)
         || '''종교''' ||<(> [[개신교]] → [[불교]] → [[개신교]]([[장로회]])[* [[1993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잠시 불교로 [[개종]]했다가 [[2000년대]] 이후에 다시 개신교로 재개종했다. 개종 직후에는 [[평강제일교회]]에 다녔다가 이단 논란으로 인해 죽전 새에덴교회로 옮겼다. 2017년 새에덴교회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540954&code=61221111&cp=nv|장로로 임명]]되었다.] ||
  • 박재일(농구선수)
         [[스몰 포워드]]로서 비교적 단신인 190cm의 신장이지만 당시 보기 드물었던 토종 덩커로 [[2000년대]] 초반 KBL의 대표적인 "하이 플라이어"였으며, 점프력이 좋은 선수의 숙명과도 같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30세의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한 비운의 선수.
         국내에는 보기 드물었던 단신 덩커로 전병석(연세대-안양 SBS), [[석명준]](중앙대-인천 전자랜드)과 비교되기도 하나 이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가졌던 전천후 스몰 포워드였다. 다만 2000년대 KBL 특성상 스윙맨 자리에는 박재일 스타일의 다재다능한 포워드 보다는 받아먹기 전문 3점슈터의 역할이 더 컸던 터라, 역량에 비해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거기에 특유의 점프력이 가져온 무릎부상탓에 정작 KBL에서는 겨우 다섯 시즌밖에 뛰지 못한 채 은퇴하게 되었는데, 운동 능력이 절정이던 20대 초반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게 결과적으로는 안좋은 선택이 되고 말았다.[* 당시 상무 [[추일승]] 감독이 박재일의 무릎을 관리하는데 특별히 신경을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프로팀의 재활시스템 보다는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센터자원이 없는 팀 특성상 박재일에게 마냥 휴식을 줄수도 없는 상황이라 혹사를 피할수는 없었다.]
  • 서민정(영화배우)
         [[2000년대]]에 주로 활동했으며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떠나면서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했다가 [[2017년]] 복귀했다.
  • 서세원(1956)
         또한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TV 토크쇼는 초기에는 진지한 대담에 가까웠는데 1979년에 방영된 '화요일에 만납시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 '11시에 만납시다' 가 대표적이다. 이것이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농담 섞인 형태로 변한 것으로 대표되는 것은 1989년 3월부터 방송된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쟈니 윤 쇼' 였는데 시기적으로 서세원의 스타데이트와 유사하다.] 이후 서세원은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 로 흥행하게 된다. 주 코너는 '토크박스' 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다만, 이 프로그램의 컨셉[* 주사위 던져서 토크 주제를 정하는 것]은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http://ja.wikipedia.org/wiki/%E3%83%A9%E3%82%A4%E3%82%AA%E3%83%B3%E3%81%AE%E3%81%94%E3%81%8D%E3%81%92%E3%82%93%E3%82%88%E3%81%86|고키겡요(ライオンのごきげんよう)(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http://www.youtube.com/watch?v=6cwPZFAmAnE|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했다. [[http://jamja.tistory.com/686|#]]
  • 서현진(배우)
          * [[걸그룹]] [[밀크(걸그룹)|밀크]]가 갑자기 해체된 후 일시적으로 공백기가 있었다. 당시는 [[2000년대]] 중반이었는데, [[SM엔터테인먼트]]에서 서현진을 [[소녀시대]]의 멤버로 투입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밀크(걸그룹)|밀크]] 팬카페가 [[소녀시대]] 팬카페로 바뀌었는데, 바로 [[소녀시대]] 팬카페인 '[[화수은화]]'다.
  • 신정아(큐레이터)
         1997년, 신정아는 금호미술관에 자신이 미국 [[캔자스 대학교]]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금호미술관 측에서는 일단 이력서를 받아두었다가 전시장 [[영어]] 안내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신정아의 영어실력은 별 볼일 없었다고 한다. 일단 영어실력 미달로 캔자스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으니.[* 이후 2000년대 미술계 거장이 내한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신정아가 영어로 질문하는 것을 들은 한 학자는, 자칭 '[[예일 대학교|예일대]] 박사'의 영어 실력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놀랐다고 한다.]
         타고 다니던 차는 E46 [[BMW 3시리즈]] 세단이다. 지금이야 수입차들의 가격대가 옛날에 비해 많이 내려갔고 [[리스]]나 [[할부]] 등으로 차를 사는 경우가 많고 3시리즈 정도의 수입차는 고소득층만 탈수있는 차는 아니지만, 당시 [[2000년대]] 중반에는 [[수입차]]의 가격대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서 수입차 자체가 국내에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큐레이터가 고소득 직업도 아닌데, 큐레이터의 소득으로 타고 다니기는 당시에는 조금 벅찬 차종이었다. 그 승용차는 어머니가 사 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명의는 [[조계종]] 소속 [[승려]] 심 모씨로 되어 있다.
  • 심현섭(코미디언)
         2000년대 후반부터는 본인도 개그 외 분야에 더 전념하면서 개그맨으로선 거의 잊혀졌다.
         [[2000년대]] 후반, 의외로 개그보다는 정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는 약간 비중있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했다. 재독 작가 이미륵의 일대기를 다룬 [[SBS]]-[[독일]] 합작 특집극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일본]] [[장교]]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 안성준 (1969년)
         [[2000년대]] 초반 기업인으로서 연예 기획자와 선거 기획자로 활동하였으며 [[2004년]]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2005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홍보자문을 맡으면서 정당인에 명부를 올렸다. [[2005년]], 한나라당 문화예술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의 권유로 한나라당문화예술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위원시절 [http://news.nate.com/view/20050630n11351 국회 정책토론회] '이동통신업체의 디지털 음원시장 진출에 따른 문제점' 을 기획하였다. 한편, 2007년 대선 당시 선거기획자로서 2007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방송정책토론회([http://www.hannara.or.kr/hannara/vision/vision.jsp 정책비젼대회])와 [[한나라당]] 대선경선후보 [http://news.nate.com/view/20070719n01172 검증 청문회] 를 전국 생중계 연출하였다.
  • 유지인(1956)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윤소영 (1954년)
         [[1980년대]] [[운동권]] [[민중 민주]]계열의 이론적 기초가 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을 정초했다. [[1990년대]]에는 [[루이 알튀세르|알튀세르]]와 [[에티엔 발리바르|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 재구성 작업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고, [[2000년대]]에는 자신의 작업을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 윤정수(코미디언)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까지 각종 [[예능]]에 항상 사이드킥으로 얼굴을 자주 비추던 개그맨이다. [[김용만]], [[박수홍]] 등과의 조합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듯. 작은 키, 거의 없는 목, 알이 꽉 찬 튼실한 장딴지, 태릉인 등의 이미지로 활동했다. 연예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여 레스토랑 사업이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 윤종신
         2000년대 초, 영화 OST를 프로듀싱하며 [[카메오]]로 출연, 이후 논스톱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도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라디오 스타]], [[패밀리가 떴다]], [[나는 가수다]] 등 굴지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예능 늦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실 윤종신은 90년대 당시부터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입담과 예능감을 길러왔기에 올드팬에게는 윤종신의 활약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 첫째, 음악가로서의 윤종신은 2010년대에 이르러 그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10년 5월, 매달 1곡 이상을 발매하는 음악적 실험인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이는 2018년 말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월간 윤종신은 본능적으로, 막걸리나, 오르막길, 탈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내며 음악인으로서의 윤종신을 널리 알렸다. 특히, 2017년 6월 발매한 싱글곡 [[좋니]]가 대히트하며 데뷔 27년만에 공중파 1위를 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2000년대에 비해 창법도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다. 2018년 현재 19집 가수이며, 2019년 초 대망의 20집이 나올 예정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군대에서 알게 된 작/편곡가 이근호와 매우 자주 함께 작업한다. [[http://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57|인터뷰 참조.]]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시간, 지친 하루, 오르막길 등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걸쳐 이근호의 손을 거친 명곡이 상당히 많다. 알고보면 하림, 조정치 등에 버금가는 전속 어시스턴트. 이근호는 클래식 작곡에 능하여, 윤종신이 흥얼거리는 멜로디에 코드와 반주를 입히고 편곡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근호씨는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10/2014031002695.html|2014년 창작동요대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동요뿐만 아니라 성가 등도 작곡하는 듯.
         2010년대의 라이브가 2000년대보다 훨씬 듣기 좋다. 예를 들어,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키를 낮추고도 겨우겨우 [[https://youtu.be/3UolEfWBAn4|불렀던]] '''담배 한 모금'''을 2015년 작사가 콘서트에서는 원키로 가뿐히 [[https://youtu.be/dbq_o9Y2lng|부른다]]. [* 최고음 3옥 도]
         === 2000년대: 방송과 음악의 갈림길에서.. ===
         앞서 언급한 8~10집은 5집과 함께 윤종신을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된다. 평론가들은 대개 10집과 5집을 윤종신의 디스코그라피 중 으뜸으로 꼽는다. 참고로 한겨레에서 만든 음악웹진 백비트에서 선정한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http://www.soribada.com/#/Music/HotChart/BestAlbumSub.php?articleNo=103|'Behind The Smile'(10집)이 51위,]] [[199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http://www.soribada.com/#/Music/HotChart/BestAlbumSub.php?articleNo=362|'우 (愚)'(5집)가 27위에 선정되었다]]
         ==== 2000년대 ====
         제대 후 활동 폭을 넓힌 그는 [[2000년대]] 초반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영화감독 [[장항준]]과 함께 비실형제로 [[카메오]]로 출연, 이후 본격적으로 예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 2002년 [[똑바로 살아라]][* 심지어 주제곡까지 불렀다. 2번째로 나온 에피소드에선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설정이었는데 나중에 TV에 출연해서 이 노래까지 불렀다.]에 또 카메오로 2번정도 출연했고, 2003년 [[논스톱4]]에서 교수 역할을 맡는 등 점차 활동의 폭을 넓혀 3사를 종횡무진하는 예능인으로 성장했다.
          * 시계 뿐 아니라 2000년대 중후반 부터 슈퍼스타 K나 라디오스타 등에서 보여준 깔끔한 코디가 호평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윤종신의 패션 센스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윤종신의 코디를 칭찬하고 있지만 '윤종신 코디', '윤종신 스타일리스트'는 한 때 검색어 자동 완성이 되었을 정도. 본인도 라디오스타 MC들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본인의 스타일리스트에 대한 칭찬을 인용하곤 하는 것을 보아 실제로 스타일리스트의 공이 꽤 큰 것으로 보인다. 튀지 않고 무난한 패션으로 키가 큰 편이 아니고, 특히 안경을 낀 일반인들은 롤 모델로 따라 입을만하다.
  • 이영돈 (1956년)
         * [[2000년대]] 초중반《[[추적 60분]]》 책임 프로듀서, MC
  • 이재룡(1964)
         [[2000년대]] 초반, 연예계를 휩쓴 X-File 논란에서 "유호정과 쇼윈도 부부이며, 곧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실렸고, 실제로 연예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섰을 때에도 같이 했던 것 같다. 정작 부부는 "우리보고 벌써 [[이혼]]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면서요? 허허허"하며 웃어넘기는 분위기. [[최수종]] - [[하희라]]부부와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얻었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지만, 눈에 띄는 일 없이 지금까지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듯.
  • 이창훈(배우)
         사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브라운관]]에 모습을 보이는 모습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래봬도 신인 시절이던 [[1990년대|90년대]] 초반만 해도 [[이병헌]]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재목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 이혁재(1973년 7월)
         [[2000년대]]만 해도 대단한 전성기를 누리며 꾸준한 활동을 하던 방송인이었으나, 후술할 룸살롱 폭행 사건으로 인해 급격히 몰락해, 현재는 공중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금지어]] 수준의 인물이 되었다.
  • 이후락(전 국회의원)
          * [[울산광역시|울산]]([[울주군|울주]] 포함)과 [[경주시]], [[포항시]](영일 포함)등을 합쳐 '''[[경상동도]]'''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허경영|문득 경전도, 전경도가 생각난다.]]~~ [[2000년대]] 들어 [[행정구역 개편]]이 이슈가 되었을 때도 비슷하게 경포울 통합 구상이 나오기도 했다. [[경상도]]가 다른 도들보다 면적이 너무 넓기도 하고 인구면에서도 3개 도시만 합치더라도 수도권 제외한 전국평균급은 찍으며 울산 같은 경우 [[창원시]]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중심부와는 생활권이 다르고 오히려 인접한 경주/포항과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
  • 채연(1978년 12월)
         그런데 무려 5년 만에 컴백하면서도 별다른 홍보를 안 했던 탓인지 [[멜론]] 실시간 차트에서 잠깐 90위권에 머물다 곧 100위 밖으로 이탈해 버렸다. 2집 '둘이서'로 정점을 찍은 후 인기 연예인으로서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름이 꽤 알려진 가수였기에 이런 성적은 충격적. 그렇지만 [[2000년대]] 초중반 이미 많은 사랑을 받았고, [[2010년대]] 이후로는 주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안 봐도 비디오' 성적이 나쁘더라도 채연에게 큰 타격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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