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1891년 "을(를) 전체 찾아보기

1891년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최두선 . . . . 6회 일치
         휘문의숙을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1917년]]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를 알게 되어 그가 운영하던 [[중앙학원]]의 학감으로 초빙되었다. [[1919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등이 피체되면서 중앙학교의 학교장직을 맡아보게 되었다.
         광복후 교육계를 떠나 경성방직주식회사 사장, [[1947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선임되었다. [[동아일보]]사 사장 재직 중 유엔총회에 한국대표의 한 사람으로 파견되었다. [[1946년]]에는 [[김구]], [[김성수 (1891년)|김성수]], [[조소앙]] 등의 신탁통치 반대 운동, 미소 공위 반대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 뒤 형 [[최남선]] 등이 일제 강점기 후반 친일행위를 했다고 비판, 매도되었으나 다행히도 그는 형 [[최남선]]에게 연좌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에 대한 부당한 비판을 우려한 [[김성수 (1891년)|김성수]],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등이 그를 각별히 신경쓰고 배려하였다.
         [[1955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사망하자 [[신익희]], [[함태영]] 등과 함께 그의 국민장 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성수의 사망 직후 [[인촌 김성수 기념사업회]]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60년]] [[김포공항|인천비행장]]으로 환국하는 [[조병옥]]의 시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 [[김성수 (1891년)|김성수]]
         [[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국무총리]][[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한문학자]][[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김성수 (1891년)]][[분류:윤보선]][[분류:박정희]][[분류: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주 최씨]][[분류:마르부르크 대학교 동문]][[분류:예나 대학교 동문]][[분류: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동문]][[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인촌기념회]]
  • 현진건 . . . . 3회 일치
         | 친척 = 재종조부 현학표(玄學杓)<ref>현학표는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할아버지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현학표의 조카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재종조부가 된다.</ref> <br /> 6촌 형 현홍건(玄鴻健) <br /> 6촌 형 현석건(玄奭健) <br /> 6촌 형 [[현정건]](玄鼎健)<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형제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형이 된다.</ref> <br /> 6촌 누나 [[현송자]](玄松子)<ref>[[현영운]](현진건의 5촌 숙부)과 그의 2번째 아내 [[배정자]] 사이에서 출생한 딸이다.</ref> <br />6촌 자형 [[이철 (1903년)|이철]](李哲)<ref>[[현송자]]의 2번째 남편이다.</ref> <br /> 6촌 아우 현성건(玄盛健) <ref>현성건 또한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이복 동생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아우가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운(玄轍運) <br /> 5촌 숙부 [[현영운]](玄暎運)<br /> 5촌 숙부 현양운(玄暘運) <br /> 5촌 숙부 현붕운(玄鵬運)<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숙부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조카 현진건이 이들의 사촌 형제인 5촌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5촌 당숙이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 (1891년)|현철]](玄哲)<ref>본명은 현희운(玄僖運).</ref> <br /> 5촌 숙모 [[배정자]](裵貞子)<ref>[[현영운]]의 2번째 아내이다.</ref> <br /> 장인 이길우(李吉雨) <br /> 사돈 [[박종화]](朴鍾和)<br />사돈 [[윤치호]](尹致昊)<ref>친형이자 호적상 6촌 형인 현정건의 처당숙</ref><br />사돈 [[윤치영]](尹致瑛)<ref>삼촌이자 호적상 5촌 숙부인 현영운의 사위 윤치오의 동생</ref><br />사돈 [[윤보선]](尹潽善)
         [[1920년]], 현진건은 양아버지 현보운의 동생 [[현철 (1891년)|희운]](僖運)의 소개로 11월, 문예지 『[[개벽 (잡지)|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개재하면서 처음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보다 앞서 현진건은 『개벽』에 번역소설 「행복」(아르치바세프 원작)과 「석죽화」(쿠르트 뮌체르 원작)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자전적 성격도 동시에 가진 것으로 알려진 「희생화」는, 그러나 당시 문예평론가 [[황석우]](黃錫禹)로부터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등 예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ref>황석우, 「희생화와 신시를 읽고」, 『개벽』 6호, 1920. 12.</ref> 이라는 혹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술과 관련해 하루는 『조선문단』에 함께 작품을 기고하던 염상섭이나 [[김동인]]·나도향·[[양주동]] 등과 잡지사에 모였다가 저녁에 술을 마시는데, 술에 취해 저마다 "나는 조선의 [[괴테]]가 될 테니 자네는 (조선의) [[톨스토이]]가 되게", "나는 베르렌이 될테니 너는 [[안톤 체홉|체홉]]이 되라" 등의 주정을 늘어놓으면 곧잘 "그놈의 톨스토이, 괴테 좀 집어치우시오" 하고 큰소리치곤 했으며<ref>「문단이면사」(46) '방인근과 조선문단', 『경향신문』 [[1983년]] 12월 24일자 제7면 기사.</ref>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명월관에서 있었던 사원들끼리의 송년회식 자리에서 「동아일보」 사장에게 "이 놈아, 먹어, 먹으라고."하며 술을 권하다가 급기야 뺨까지 때렸다. 하지만 사장은 현진건을 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다만 이때 현진건에게 뺨을 맞았던 동아일보 사장이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였는지 [[김성수 (1891년)|김성수]]였는지는 사람마다 증언이 다르다).
  • 이갑성 . . . . 2회 일치
         [[1951년]] [[5월 16일]] [[이시영]] [[부통령]]의 사퇴로, [[부산 피난지]]에서 열린 [[제2대 국회]]에서 실시한 제2대 부통령선거에서 여당격인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 소속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재적 국회의원 210명 중 재석의원 151명에 의해 선출된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소속 [[김성수 (1891년)|김성수]]와 경합했는데,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당선표수 미달, 3차 투표에서 73표를 얻어 낙선, 78표를 얻은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 이인 . . . . 2회 일치
         *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페이지</ref>
         * [[김성수 (1891년)|김성수]]
  • 김상기 . . . . 1회 일치
         * [[김상기 (1918년)|김상기]](金相琪, [[1918년]] ~ [[2011년]])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으로 [[김성수 (1891년)|김성수]]의 둘째 아들이다.
  • 병 속의 악마 . . . . 1회 일치
         1891년에 발표되었다. 뉴욕 헤럴드(New York Herald)에서 2월-5월, 블랙 앤 화이트 런던(Black and White London)에서 3월에서 4월에 걸쳐서 연재되었다. 1893년 발표된 단편집 Island Nights' Entertainments에 수록되었다.
  • 서상일 . . . . 1회 일치
         * [[김성수 (1891년)|김성수]]
  • 오세창 . . . . 1회 일치
         임정 환국 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ref>
11532의 페이지중에 8개가 발견되었습니다 (0개의 페이지가 검색됨)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