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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순정
         그 뒤 [[연산군]]의 조정에서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1506년]] [[이조판서]]로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홍경주]] 등과 함께 반정을 모의하기 시작하였다.
  • 심정 (1471년)
         [[1502년]]([[연산군]] 8년) 알성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병충분의[[정국공신]](秉忠舊義靖國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시|의정부]] [[좌의정]] 행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반정]]에 동조, 가담하여 [[정국공신]] 3등관에 녹선되고 화천군에 봉군되었다. 1507년 중추부지사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1518년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을 거쳐 [[조광조]] 일파의 탄핵으로 파직, [[정국공신]] 훈호도 삭탈되자 원한을 품고 [[홍경주]] 등과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 인사를 모조리 숙청하였다. 이때 사림파 중에서도 [[조광조]] 일파를 부정적으로 보는 [[남곤]], [[김전]] 등을 끌어들이게 된다.
         [[훈구파]] 대신으로서, [[1519년]](중종 14년) 여름 [[남곤]], [[홍경주]]와 모의하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와 그의 신진 사류들을 모조리 숙청시키거나 실각시켰다. 이때 한 궁녀가 나뭇잎에 꿀을 발라 쓴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퍼트리며 사건을 확대시켰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한 일로 [[1519년]] [[이조판서]]가 된 뒤 [[남곤]], [[홍경주]] 등과 함께 조정을 장악하였다. 의정부 [[우참찬]], [[이조판서]], [[한성부 판윤]], 의정부 [[좌참찬]]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거쳐 [[1519년]] [[12월]]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조판서가 되자 [[1520년]] [[1월]] 상소를 올려 6조의 낭관들 중에 [[음서 제도]]로 임명된 낭관들이 많으므로 인사이동시킬 것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그 뒤에도 조광조와 친한 [[김식]]을 비롯한 조광조 일파에 대한 탄핵을 계속하였으며, 그와 친한 인물들도 수시로 규탄, 비판하였다.
         조광조 일파가 제거된 이후 일부 [[사림파]] 도학자들은 기묘사화의 원흉으로 지목된 몇몇 대신과 협력자들에 대한 제거 계획을 시도했다. 성균관 학유였던 안처겸(安處謙)과 부수찬이었던 [[안처근]](安處謹) 형제가 후에 훈구파의 영수인 '''심정''', [[홍경주]] 등을 제거하고 배신자, 변절자로 지목된 남곤, [[김전]] 역시 제거하려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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