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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그러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과 정책 추진 도중 잡음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2월 8일 일본 [[도쿄 방송|TBS]] [[NEWS23|지쿠시 데쓰야 NEWS23]] 특별 회견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라는 발언<ref>[http://www.tbs.co.jp/news23/old/onair/taji/s00208.html News23 多事争論 パックオ(変えろ!)] {{웨이백|url=http://www.tbs.co.jp/news23/old/onair/taji/s00208.html |date=20130928003045 }} 일본 TBS 2000.02.08</ref><ref>[http://news.donga.com/3//20000210/7507479/1 <DJ, 김정일 긍정평가>南北정상회담 조기성사 의지] {{웨이백|url=http://news.donga.com/3//20000210/7507479/1 |date=20130927202210 }} 동아일보 2000.02.10</ref> 을 해서 한동안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색깔론 공세를 받게된다.<ref>[http://news.donga.com/3/all/20011012/7747281/1 <전문가들의 진단>왜 색깔 공방 인가] 동아일보 2001.10.12</ref> 여기에 [[대북 불법 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햇볕정책은 본격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인 2000년 6월 12일 5억 달러를 현대그룹을 통해 북한에 송금한 이 사건은, 2003년 특검으로 [[현대상선]], [[현대전자]], [[현대건설]] 등이 5억 달러의 비밀 자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3020670042 [대북 송금] "현대건설도 1억5천만弗 줬다"] 조선일보 2003.02.06</ref> 특검 도중인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살하면서 파문이 일었다.<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3080470037 정몽헌 회장 돌연 투신자살] 조선일보 2003.08.04</ref> 여기에 김대중의 측근인 [[박지원 (1942년)|박지원]]은 SK등 대기업 자금 1억원 수수 및 대북 불법 송금 혐의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으며 특검은 종결되었다.<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6&M=05&D=26&ID=2006052601067 박지원씨 징역3년 법정구속 현대비자금 150억은 무죄] 조선일보 2006.05.26</ref> 한편, 김대중은 퇴임 이후 첫 외신과의 인터뷰였던 2004년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에 1억 달러를 지원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대북 불법 송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20874 DJ, "대북 송금은 후회 안한다"-FT인터뷰] 머니투데이 2004.06.19</ref> 이렇듯 햇볕정책이라는 명분 하에 2000년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고 불법을 무릅쓰며 현금까지 지원했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은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등 두차례 도발을 감행했으며 2003년엔 미국과의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시 핵실험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3&M=07&D=28&ID=0307281903 "北, 美와 대화 진전없으면 곧 核실험"] 조선일보 2003.07.28</ref>
  • 김미화
         * [[1998년]] [[현대건설]] 현대개봉훼미리타운
  • 김용건
         | [[현대건설]]
  • 심옥진
         * [[1973년]] [[현대건설]] 입사
         * [[현대건설]] 해외토목담당 상무이사
         * [[1992년]] [[1월]] ~ [[1996년]] [[12월]] [[현대건설]] 부사장 - [[현대건설]] 기술관리본부 본부장 겸임 · [[현대건설]] 기술연구소 소장 겸임
         * [[1999년]] [[1월]] ~ [[2000년]] [[3월]] [[현대건설]] 사장<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4349957 연합뉴스]</ref>
         * [[2000년]] [[3월]] ~ [[2001년]] [[3월]] [[현대건설]] 고문
  • 유인촌
          [[현대건설]] [[사장]] 당시의 [[이명박]] 전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 윤도현
         * [[현대건설]] - 힐스테이트 (2006년) ([[고소영]], [[임권택]]감독과 공동 출연)
  • 정몽근
         * 1968.03 ~ 1973.12 [[현대건설]] 근무
  • 최희암
         이후 [[현대건설]]에 취업하여 [[이라크]]에서 근무하였고, 귀국 후 [[현대건설]]에서 퇴사하여 에서 체육 교사로 임용되었으나 곧 사임하였고 [[1986년]]부터 [[연세대학교]] 남자 농구단 감독을 맡으며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선수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분업화하고, 외곽슈터 중심의 농구를 통해 연세대학교를 강호로 만들었다. 실업팀과 대학팀을 망라한 [[농구대잔치]]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특히 [[1993년]]-[[1994년]] 농구 시즌 우승은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 태진아
         인터넷 상에선 "태진아와 특정 관계인 상대의 딸은 파혼을 당해 자살했고, 그 통에 남편인 현대건설 조아무개 사장 또한 사표를 냈으며, 당시 부사장이었던 [[이명박]]이 사장으로 승진했다"고 퍼져나갔다. 즉, 원래 사장이 될 위치가 아니었던 젊은 이명박이 조아무개사장의 생각외의 낙마덕에 사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 https://news.v.daum.net/v/20150226164009725 | 세상을 놀라게한 간*사건들(한겨레 신문기사)]] [* (한겨레 기사내용) 1975년에는 가수 태진아(본명 조방헌)씨가 현대건설 사장 조아무개씨의 부인인 김아무개씨와 간통한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람의 신분과 나이 차이(태씨 21살, 김씨 47살)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 태씨는 김씨와 만날 때마다 50만원씩 받았다고 진술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는 쌀 한가마(80㎏)가 5000원 남짓하던 시대였다. 태씨는 조 사장과 김씨가 협의이혼을 하고 고소가 취소된 뒤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사건 뒤 조씨는 현대건설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명박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런 이유로 2010년께 인터넷에는 태진아씨 간통 사건 덕분에 이 대통령이 청와대를 차지했다는, '태진아 나비효과'라는 글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에는 당시 인터넷의 이런 루머들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사로 내보냈다. ~~정작 딸이 자살했다는 내용은 없다~~
         사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태진아가 없었으면,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이 되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좀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 일단 1975년 현대건설 사장을 하던 조아무개씨의 경력을 살펴보자.
         > 초기 울산공업센터 개발의 책임자는 현역군인들이었다. 황인권 울산특별건설국장을 비롯해서 정래혁 상공부상관, 조성근 국토건설청장 등이 모두 육사를 나온 장성들이었다. (중략) '''조**'''씨는 앞의 글에서 다룬 안경모씨가 차장으로 있던 국토건설청 청장으로 역시 현역 육군 소장이었다. '''조 청장은 박정희대통령과 육사 동기'''로 나중에 '''건설부 장관'''과 '''대한통운 사장''', '''현대건설 사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이런 군부 엘리트가 초창기 울산공업센터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 1972년 현대건설사장
         70년대 이후 현대건설과 대아건설등 건설회사 사장 역시도 70~80년대 [[중동건설 붐]]등 박정희 정부의 해외건설 관련 정부의 대변인 역할이었을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현대건설은 [[197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는데, 참고로 사우디 산업항 공사로 벌어들인 돈은 9억 3000만 [[미국달러]]로,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고 전해진다.[[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09077§ion=sc3|#]] 이런 대규모 건설 수주는 정부와 민간기업이 서로 협조해서 이루어지기때문에, 조아무개 사장은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중심에 서고, 당시 부사장이었던 이명박은 실제로 회사경영을 하는 형태였다고 전해진다.
         즉, 건설업계는 여러가지로 정치적일수밖에 없는데, 특히 해외진출의 경우 정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므로, 조아무개는 '''건설회사와 정부와 중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사장'''으로 현대건설 대아건설 사장을 역임한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그룹전체의 대외로비업무는 회장인 정주영이 맡아서 하는것이고 조아무개는 정주영과 정부의 사이에 매끄럽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게 맞다.
         결국, 당시 현대건설의 실제 경영자는 부사장인 이명박이었다고 보는게 맞고, 조아무개가 떠나간후에 회사업무는 사장 이명박이 그룹전체 대외업무는 정주영이 맡아서했을것으로 보는게 맞다.
         조아무개씨가 [[현대건설]]의 사장으로 1972~1977년을 재임한것을 보면, 태진아의 그 사건은 1975년으로 현대건설 사장 퇴직은 이후 2년뒤의 일이므로 상당히 무관해 보인다.
         게다가 조아무개씨는 [[현대건설]]에서 [[대아건설]]로 바로 이동한걸로 보면, 그 사건의 여파가 있었을까가 의문이다.
         게다가 현대건설 대아건설등이 현재의 대기업 현대도 아니다. 현대가 삼성 못지 않은 대기업이 된 것은 70년대 건설붐과 현대차 이후라서 거의 80년대는 되어야 그 정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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