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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광역시/인물 . . . . 20회 일치
* [[김새론]] - 해운대구
* [[김동광]] - 해운대구
* [[김영우(스윗소로우)|김영우]] - 해운대구
* [[김영재(프로게이머)|김영재]] - 해운대구
* [[김재유]] - 해운대구
* [[김지연(펜싱)|김지연]] - 해운대구
* [[금단비(배우)|금단비]] - 해운대구
* [[류원(배우)|류원]] - 해운대구
* [[박수아]] - 해운대구
* [[박지원(fromis_9)|박지원]] - 해운대구
* [[서율(베리굿)|서율]] - 해운대구
* [[이영유(배우)|이영유]] - 해운대구
* [[유나(AOA)|유나]] - 해운대구
* [[유오성]] - 해운대구
* [[윤지수]] - 해운대구
* [[이충권]] - 해운대구
* [[정의윤]] - 해운대구
* [[최자혜]] - 해운대구
* [[크리틱]] - 해운대구
* [[태인호]] - 해운대구
- 이기택 . . . . 8회 일치
1980년 [[5.17 내란]]으로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규제되었다가 1984년 해금되면서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동래구 지역구에는 이미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한 자신의 비서 출신 [[박관용]]이 있었다. 이에 지역구를 [[해운대구]]-[[남구(부산)|남구]]로 옮기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산 해운대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 [[서석재]]의 뒤를 이어 통일민주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당시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을 때 위원장을 맡아 원만한 청문회 진행으로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노무현]]이 5공비리 청문회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조연으로 활약(?)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남/해운대) || '''[[신한민주당]]''' || '''159,127 (43.00%)''' || '''당선 (1위)''' ||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해운대) || '''[[통일민주당]]''' || '''54,223 (48.30%)''' || '''당선 (1위)''' || 1990년 탈당[br]([[3당합당]] 반대)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해운대/기장 갑) ||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 55,163 (47.65%) || 낙선 (2위) || ||
- 김승목 . . . . 3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이기택]] 후보와 민주정의당 [[유흥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 [[민주한국당]] || || '''당선'''[*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반 당선] || ||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해운대구]]-남구) || [[민주한국당]] || || 낙선 || ||
- 부산광역시 . . . . 3회 일치
[[해운대구]]''' || 海雲臺區 || 162,981 || 428,054 || 51.46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thumb/5/59/Haeundae2011.JPG/120px-Haeundae2011.JPG|[[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
- 고인범 . . . . 1회 일치
* 2012년 KBS 2TV 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 - 양만호
- 김정태(영화배우) . . . . 1회 일치
* 과거 경기 연천 [[정관신도시]]에 살았으며 정관의 많은 상가들에서 그의 사인을 볼 수 있다. 현재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사는 걸로 보여진다.(살림남 시즌1 참고)
- 김태희 . . . . 1회 일치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 김혜은(탤런트) . . . . 1회 일치
|| KBS2 || [[해운대 연인들]] || 육탐희 (육복자) || ||
- 박근혜 . . . . 1회 일치
박근혜는 [[2009년]] [[10월 31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종시는 국회가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한 약속"이라며 "세종시 문제를 개인적인 정치 신념으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말하였다. [[정운찬]] 총리의 면담 제안에 대해서도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다면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해야지 내게 할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하였다. "[[행정복합도시]]라는 말 속에 문화시설과 교육, 과학 등을 다 포함한 자족기능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약속을 지키고 부족하면 플러스 알파로 더 잘되게 해야지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지적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세종시 수정 발언에도 불구하고 [[11월 27일]] "할 말을 이미 다 했고, 입장(원안+알파(α))에 변함이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였다.<ref>[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54434 박근혜 "세종시 원안+α 변함없다"]</ref>
- 박상면(배우) . . . . 1회 일치
|| [[해운대 연인들]] || 부영도 || ||
- 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해운대구 출신 인물]]
- 솔비 . . . . 1회 일치
'동행(同行)' 초대전, 부산 해운대 장미라사에디션
- 송재호(배우) . . . . 1회 일치
* [[해운대]]
- 연경흠 . . . . 1회 일치
* [[올림픽 브레이크]] 덕분에 야구 경기가 없던 2008년 8월 3일, 해운대로 놀러갔다가 같이 간 [[이여상]]이 뜬금 뉴스 인터뷰를 따냈는데, ~~이영상?????~~그 옆에 같이 있던 사람이 바로 연경흠이다. 그러나 이영상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서 연경흠이 옆에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 이재용(배우) . . . . 1회 일치
|| [[해운대 연인들]] || 이순신 || ||
- 전혜빈 . . . . 1회 일치
2013년 8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센텀119안전센터에서 《심장이 뛴다》 인트로를 촬영중인 모습.
- 정몽규 . . . . 1회 일치
HDC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종합부동산인프라기업]]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40만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했고, 대표사업지로는 ‘[[삼성동 IPARK]]’, ‘[[수원 IPARK CITY]]’, ‘[[해운대 IPARK]]’ 등이 있다. [[주택사업]] 뿐 아니라 [[도시개발사업]]과 [[건축]], [[토목]], [[플랜트]], [[SOC개발사업]] 등 다양한 건설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17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풍요로운 삶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룹 철학 선포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5월 투자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분할하고 정몽규 회장은 HDC 회장으로 취임했다. HDC는 자회사 관리와 부동산 임대사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집중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집중 회사로 주택, 건축, 인프라 부문에서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 정형돈 . . . . 1회 일치
* [[Y-STAR]] 《Live Power Music - 부산 해운대 (8월 1일) : MC》
- 허남성 . . . . 1회 일치
* 《[[해운대 연인들]]》 (2012년, KBS2)
- 홍학표(배우) . . . . 1회 일치
이후 방산업체와 건설업체 등을 경영했던 그는 2006년에 족발, 보쌈, 순대 등 토속적인 먹을거리들을 주메뉴로 하는 음식체인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좀 벌었고, 2008년에 씨푸드 레스토랑을 [[부산]] [[해운대]]에 열어 성공하고 서울에 입성하여 나름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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