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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화진 . . . . 9회 일치
|이름 = 함화진
'''함화진'''(咸和鎭, [[1884년]] ~ [[1948년]])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국악인이다. 아호는 오당(梧堂)이다.
[[대한제국 고종|고종]] 21년인 1884년에 대대로 왕실의 악사를 지낸 [[양근 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함화진(咸華鎭)이었다. 함화진의 집안은 세습적인 악사 가문으로 증조부 함윤옥은 [[조선 순조|순조]]와 [[조선 헌종|헌종]] 때 악사였고, 할아버지 함제홍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로 불렸다. 큰아버지 함재홍은 젓대, 아버지 [[함재운]]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함화진은 [[이왕직 아악부]]의 수장인 제2세 아악사장을 역임한 함재운의 장자로 태어나 이병문에게서 거문고를, [[명완벽]]에게서는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국악이론 부문에서도 일인자가 되었다. 10대 시절인 [[1900년]]에 가전악(假典樂)이 된 뒤 [[190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 그 뒤 아악사를 차례로 지냈다. [[1932년]]에는 아버지가 맡았던 자리인 제5세 아악사장에까지 올랐고, [[1939년]]에 은퇴했다.
일제 패망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이왕직아악부가 사라지고 함화진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이 결성되었다. 대한국악원은 아악 전통을 고수하던 구 이왕직아악부와는 달리 창악, 기악, 창극, 무용, 농악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음악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 대한국악원이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계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참여파를 형성하면서, 이 단체를 이끈 함화진은 [[남로당]] 불법화와 [[좌익]] 세력 색출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려 피검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국악계의 대표 격으로 [[조선문예회]],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성이 강한 음악인 단체에서 활동한 일이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에 수록된 국악인은 함화진과 [[김기수 (국악인)|김기수]] 두 사람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1884_1_0014405|함화진|咸和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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