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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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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 . . . 19회 일치
         2013년 4월 24일, 중국 외교부장이 윤병세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을 만났으며, "관련국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내놓아 문제를 대화와 협상의 궤도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f name="news.sbs.co.kr">{{웹 인용 |url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754349|제목 = 중국 외교부장, 대화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강조|저자 = SBS뉴스|날짜 = 2013-04-25|확인날짜 = 2013-04-27}}</ref> 이어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정하고 책임있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ref name="news.sbs.co.kr"/> 나아가 중국은 박근혜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고, 대한민국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밝혔다.<ref name="news.sbs.co.kr"/>
         박근혜는 취임사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공식 언급<ref>[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966 [박근혜 정부 출범_취임사로 본 국정운영] 경제부흥ㆍ국민행복ㆍ문화융성…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ref>한 이래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ref>[http://www.korea.kr/celebrity/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757873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구축]</ref> 가 대표적인 통일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2014년 3월 28일 독일 통일의 상징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해결, 남북한 공동 인프라 구축, 남북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북한에 제시하는 '[[드레스덴 선언]]'을 천명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32888471 朴대통령 '드레스덴 선언'이산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核 버리면 經協 확대]</ref> 이어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준비는 시대적 소명"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하천·산림 관리 공동 협력 사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문화사업 준비 등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으로 옮기자는 작은 통일론을 제안하였다.<ref>[http://www.fnnews.com/news/201408151515276744 박 대통령 8.15 경축사 행간에 담긴 의미]</ref> 2015년에 들어와서는 박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광복·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제목=[박근혜 대통령 신년사로 본 새해 구상] 경제회복 최우선… 남북관계 개선 통해 통일기반 구축 |확인날짜=2015-02-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214093238/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보존날짜=2015-02-14 |깨진링크=예 }}</ref>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결 정책이며<ref>[http://www.ajunews.com/view/20140503193440291 북한 노동신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비난']</ref>하였고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서도 이산가족 상봉이나 지원에 따른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 북남관계 개선의 선차적인 고리가 아니라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가 최우선이라며 맹비난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0029 북한 국방위 "박근혜 '드레스덴 연설' 공식 비난"]</ref> 또한 8.15경축사에서 제안한 대화 및 협력에 대해서도 금강산 관광객 총살이나 천안함 및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죄없이 5.24 조치 해제 등 대북정책 기조전환을 압박했다.<ref>[http://www.nocutnews.co.kr/news/4074931 北, 朴 8.15 경축사 비난…5.24 조치 해제 촉구]</ref>
         |박 대통령의 중동순방 귀국 직후 미국대사 병문안, ‘종북 논쟁’ 과열,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
         대통령 당선 후 경제 정책으로는 복지, 경제민주화, [[창조경제]]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장기침체된 경제에 대한 해법으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금융완화적 경기부양방안인 [[초이노믹스]]를 내세우고 있다.<ref>[국회 경제포럼] 근혜노믹스와 초이노믹스, 이혜훈 전 새누리당 의원, UCLA 경제학 박사, 이투데이 2014-09-03</ref> 대북정책으로는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중시하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핵심 대북정책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의 비핵화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이룬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ref>‘신뢰’와 ‘비핵화’를 기반으로 ‘한반도 긴장 완화’ 이룬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외교안보정책 키워드는 ‘중용’, 피플투데이 2013년 05월 02일</ref>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은 임기 초반에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ref>'진행형' 세월호참사 속 박근혜정부 1년6개월 맞아, 연합뉴스 2014.10.19</ref> 임기 중반으로 가면서도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한미일과의 군사적 동맹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는 비판과 함께 외교정책이 중국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ref>美·中 갈등 심화… 박근혜 정부 '3대 외교 정책(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모두 꼬일 수도, 조선일보 2013.12.02</ref><ref>박 대통령 ‘친중 반일’ 이면엔 미·중 사이 줄타기, 경향신문 2013-10-09</ref> 여기에 중국 또한 일본과의 관계회복을 도모하는 쪽으로 외교정책을 선회하여, 박근혜 정부 들어 동북아에서 한국만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45437 유연해지는 중국의 대일 외교, 우리는, SBS뉴스 2015.04.24]</ref><ref>[http://www.hankookilbo.com/v/374aee9c3ef94bacbe98e033f3245f76 말 한마디 못한 채… 한국 외교 속수무책, 한국일보 2015.04.27]</ref>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일본의 아베 정권과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철저한 전략적 외교로 실속을 챙기는 가운데 한국만이 외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ref>[http://news.jtbc.joins.com/html/407/NB10872407.html 고도의 외교술로 실속 챙긴 아베…한국외교는 수렁에, JTBC, 2015-04-30]</ref><ref>[http://kr.wsj.com/posts/2015/04/30/%EC%95%84%EB%B2%A0-%EC%B4%9D%EB%A6%AC%EC%9D%98-%EB%8A%A5%EC%88%98%EB%8A%A5%EB%9E%80%ED%95%9C-%EC%99%B8%EA%B5%90%EC%88%A0-%EB%B0%95%EA%B7%BC%ED%98%9C-%EB%8C%80%ED%86%B5%EB%A0%B9-%EC%95%95%EB%B0%95/ 아베 총리의 능수능란한 외교술, 박근혜 대통령 압박, 월스트리트저널, 30. April 2015]</ref><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51959901 박근혜 정부, 미-중 사이 갈팡질팡…아베의 '친미 외교'에 완패] 한국경제 2015-05-19 </ref>
         직책=[[한반도]]의 국가 원수|
  • 전인범 . . . . 5회 일치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 이기택 . . . . 4회 일치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강원도 . . . . 3회 일치
         한반도 중동부에 있는 [[도(행정구역)|도]]. [[경기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와 맞닿는다. [[휴전선]] 이북 지역을 제외한 실질 행정구역은 7시 11군으로 총 18개 시군으로 이루어진다.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154만 5천여 명이다(외국인 제외).
         실질적으론 휴전선 이남만 관리하고 있지만 법률상으론 휴전선 이북에도 강원도의 행정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알다시피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북부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경기도]]와 더불어 남북으로 분단된 도 2개 중 하나다.[* 서해 5도가 과거 황해도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인천광역시 소속이라 [[황해도]]는 사실상 북한 땅이다. 때문에 황해도는 분단된 도로 보지 않는다.] 참고로 [[북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북한)|강원도]]가 유일하게 분단된 도다. 북한은 휴전선 이북의 경기도 지역을 [[황해북도]]나 강원도로 흡수해 버려서 북한의 행정구역상 휴전선 이북 지역에는 경기도에 속하는 지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석탄]], [[철광석]], [[텅스텐]] 등의 주요 생산지로서 [[북한]]과 분리된 상태인 한반도에서 [[자원]] 공급처로서 기능했다. 때문에 급증하는 [[광물]] 수요로 인해 [[광부]]들이 인기를 끌어 서울 사람들보다 고소득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택도 없지만 당시엔 전국 규모의 [[요정]](料亭)들이 성업하고, 한때 개도 입에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1990년대를 전후하여 잇따른 [[자원]] 수입과 [[중국]]과의 [[수교]]로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행되어 20여년의 영화(榮華)는 사그러지게 된다. 현재 [[영월군]] 상동읍을 비롯 [[정선군]] 고한읍, [[태백시]] 철암동 같은 지역은 과거의 영화는 사라지고 문자 그대로 철저히 [[망했어요|망했다]]. 지역경제가 안사니 인구가 다 떠나버려 10분의 1이상으로 인구가 급감했고 폐광을 제대로 막지않아 주변 [[환경]]도 [[현실은 시궁창|시궁창]]이 되었다.
  • 태종무열왕 . . . . 3회 일치
         [[1993년]] [[성균관대학교]]의 김영하 교수는 [[천리장성]]의 예를 들어 축소된 강역으로 [[만주]]의 요동땅을 밟지못하고 고토를 잃고 살다가 [[조선]]에 와서야 겨우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를 내놓으면서 당의 [[한반도]] 경략에 발맞추어 외세와의 공조로 [[백제]]만을 겨우 정복한 [[신라]]는 "통일을 완수할 힘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고 '통일신라 시대' 대신에 '신라와 발해' 내지는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백제]]의 영토를 흡수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차지하게 된 신라는 후대의 한반도 통일국가인 [[고려]], [[조선]]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에 7세기 말에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삼한일통'이나 '삼국통일'과 같은 말은 [[19세기]]까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계속 쓰였다.<ref>박노자,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3000/2008/07/021163000200807160719009.html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인가]. 《한겨레21》 제719호 (2008년07월16일)</ref>
  • 황준국 . . . . 3회 일치
         *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직책 =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고인범 . . . . 2회 일치
          * 2012년 TV조선 월화드라마 [[한반도(드라마)|한반도]]
  • 곽희성 . . . . 2회 일치
         * [[2012년]] [[TV조선]] 월화드라마 《[[한반도 (드라마)|한반도]]》 .... 민동기 역
  • 김진향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 문무왕 . . . . 2회 일치
         [[태종 무열왕|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나당 전쟁]]에서 격퇴함으로써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왕후는 파진찬 [[선품공|김선품]]의 딸 [[자의왕후]]이다.
         16년([[676년]]) 7월 당군이 도림성(道臨城)을 공격해 현령(縣令) 거시지(居尸知)를 죽였다.<ref name="삼국사기-676">《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6년(676)</ref> 11월에 사찬 [[시득]](施得)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 해전|기벌포]](伎伐浦)에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라는 패했지만, 다시 나아가 22회에 걸친 크고 작은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여 당군 4천여 명을 목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6"/> 이후 당은 백제령 안에 있던 웅진도독부를 [[요동]]의 [[건안성]](建安城)으로 옮기고, 평양에 두었던 안동도호부도 [[요동성]](遼東城)을 거쳐 신성(新城)으로 옮기는 등 한반도에서 자국의 병사들을 철수시켰다.<ref name="자치통감-677">《자치통감》 권202 唐紀十八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儀鳳 2년(677)</ref>
  • 백일섭 . . . . 2회 일치
         * [[2006년]] 《[[한반도 (영화)|한반도]]》 ... 북한국방위원장 역
  • 이순재(1935년 10월) . . . . 2회 일치
         가상의 대통령 역도 몇 번 맡았는데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대물(드라마)|대물]], [[한반도(드라마)|한반도]] 등이 그 예. 그런데 이렇게 가상의 대통령일 때는 주로 차기 대선을 앞둔 임기 후반이고, 후임 대통령이 될 등장인물에게 우호적이다. 대체역사물인 [[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에서는 국왕이 아닌 국왕의 최측근 역을 맡았다.
  • 이원석(1981년) . . . . 2회 일치
         * 《[[한반도 (드라마)|한반도]]》 (2012년, TV조선) - 김정식 역
  • 장다경 (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한반도 (드라마)|한반도 ]]》 (TV조선, 2012년) - 오현진 역
  • 최재환(배우) . . . . 2회 일치
         || [[2012년]] || [[TV조선]] || [[한반도(드라마)|한반도]] || 박광태 || ||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회 일치
         프랑스가 독일에게 발리고 강화조약을 맺으면 인도차이나 연방의 소유권을 넘겨 받을 수 있는 디시전이 발동한다. 이러면 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이 해금되는데, 미국은 중일전쟁과 그에 딸린 각종 이벤트 때문에 일본을 싫어할게 뻔하므로 이 디시전을 발동한다.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면 미국의 애완견[* 민주화, 중국 지역을 중화민국에게 반환, 모든 괴뢰국 해방, 한반도가 대한민국으로 독립, 영미와 군사 통행권&불가침 조약 체결, 불만도 +20%, 미국의 괴뢰국화.]으로 전락한다. 인공지능이 잡을 경우 100% 미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에게 엠바고 처먹기를 선택하고, 이후 "진주만 공습" 디시전을 갈긴다.
  • 강유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데뷔''' ||<(> 2002년 KBS prime '한반도 유머 총집합'[br]2004년 [[KBS]] [[공채]] 19기 [[개그우먼]] ||
  • 고성국 . . . . 1회 일치
         * 《동북아경제권과 한반도 발전전략》(공저), 길벗, 1994
  • 궁예 . . . . 1회 일치
         신라 효공왕 7년([[904년]]) 7월에 궁예는 신라의 제도를 참작해 관직을 설치하고, 국호를 [[마진 (태봉)|마진]]<ref name="cho02">안정복은 궁예의 국호 '마진'에 대해서 당시 후고구려 북쪽에 있던 발해(진국震國)를 의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마진을 '마하진단(摩訶震檀)'의 줄임말로 보아, '마하'는 범어로 '크다'는 뜻이고 '진단'은 동방을 뜻하는 것으로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만주와 연해주까지 아우르는 대동방국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17/2008121701603_4.html</ref> 으로 고쳤으며 연호를 정하여 [[무태 (태봉)|무태]](武泰)라 했다. 또한 [[공주]](公州) 지역의 호족으로 장군을 칭하고 있던 홍기가 궁예에게 귀부했다.
  • 김동명(가수) . . . . 1회 일치
         2014년 10월 24일에 통일부 주체로 [[https://www.youtube.com/user/mounikorea/search?query=%ED%95%9C%EB%B0%98%EB%8F%84+%EB%B6%80%ED%99%9C%ED%94%84%EB%A1%9C%EC%A0%9D%ED%8A%B870|'''부활과 함께하는 한반도 부활 프로젝트 70''']]의 일환으로 부활은 보컬 김동명과 테너 안세권(feat.)의 보이스로 담은 싱글 부활 '[[To be ONE]]'을 발표했다. 이 노래에선 부활 밴드와 더불어 김동명의 맑고 울림 있는 보이스와 안세권의 힘 있는 목소리와 인생 연륜의 청춘 합창단이 서로 어우려져 통일으로의 아름다운 숙원을 표현해 냈다. 2016년 6월 1일은 '하나의 코리아'를 염원하는 NGO단체 '하나의 코리아'에서 제작한 싱글곡 (14개 곡 수록)중 1번 김동명 보이스로 해석한 부활의 윤동주의 '''서시'''는 고요하지만 통일에의 강한 의지의 끈을 잘 해석했다.
  • 김상중(배우) . . . . 1회 일치
          * [[한반도]](2006) - 고종황제 역
  • 김원태 . . . . 1회 일치
         1909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일제강점기]] 관료로 근무하였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한반도의 북쪽 끝 함경북도 온성군 군수로 재직하였다.
  • 남유진 . . . . 1회 일치
         이렇게 남유진 전 시장이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찬양에 정신이 팔린 동안 [[구미시]]에 있던 공장들은 줄줄이 도산했으며, 크나큰 오판으로 인한 잘못된 정책 수립으로 주택을 과잉 공급하여 집값이 3년간 무려 30%나 폭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마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상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북한|한반도의 윗 동네]]랑 다를 게 뭔가 싶을 정도이다.
  • 대한민국 . . . . 1회 일치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국가. [[한반도]]의 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막부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막부 체계가 나타난 이유는 일단 조정이 군사적으로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단 도호쿠 지방까지 정벌이 완료되자, 일본 조정은 막대한 군비가 드는 국군(國軍) 제도를 폐지해버리고, 군사를 수도의 경비대와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다자이후의 경비병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섬나라]]인 일본은 일단 혼슈 평정이 완료되자 당장 외적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고, 군사력의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에 이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국가의 재정을 아끼게 된 것이다.
  • 아기발도 . . . . 1회 일치
         [[고려]] 말 [[한반도]]를 침공한 [[왜구]]들 중 한 무리의 장수였던 인물이다. 음차로는 '아지발도'라고 한다.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1회 일치
         [[고려]] 말기에 한반도 남부를 침공하였던 [[왜구]]의 장군 [[아기발도]]가 대표적인 아기장수 설화의 하나인 [[아기장수 우투리]]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전에는 [[인터넷]] 상에서 간간히 주장되던 이야기였으나, 2016년 1월에 이를 다룬 논문이 나온 바 있다.
  • 울릉군 . . . . 1회 일치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 이산하(시인) . . . . 1회 일치
         >[[제주도|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 [[한라산|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 [[백두산]]에서 / [[한라산]]에서 / [[지리산]]에서 / [[무등산]]에서 / 그리고 피어린 [[한반도]]의 산하 곳곳에서 / [[NL|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싸우다 / 장렬히 산화한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 이 시를 바친다!
  • 이인 . . . . 1회 일치
         [[1945년]] 광복이후 [[백관수]],[[김병로]]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안재홍]]과 협상을 적극적으로 벌으나, 건준위원장 [[여운형]]이 [[안재홍]]과 이인의 협상결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창당에 참여, 당무부장이 되었다가 10월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후 [[미군정]] 특별범죄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首席大法官) 겸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군정청 특별범죄심사회 수석대법관이 되면서 그는 [[한민당]]을 탈당하였다.
  • 이인영(정치인) . . . . 1회 일치
         한반도재단 동북아전략연구소 소장
  • 장헌식 . . . . 1회 일치
         [[1895년]] [[일본]]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그해 [[3월]]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의숙]] 보통과에서 수학했다. 당시 근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뽑아 보낸 관비 일본 유학생들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 이후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이자 친일파로 활동하게 되는데, 장헌식도 그런 인물들 중 하나였다.
  • 정서임 . . . . 1회 일치
         * 칭찬합시다 운동중앙회 2017 방송부문 연기대상(한반도 통일위원회 주최)
  • 정형돈 . . . . 1회 일치
         * [[KBS N 라이프|KBS KOREA]] 《한반도 유머총집합 - 무성영화, 개그로 보는 단편 문학선, 무제, 처세술 시리즈, 추억의 영화 Best5》
  • 창원시 . . . . 1회 일치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 창작:치킨교 . . . . 1회 일치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 최영진 (1948년) . . . . 1회 일치
         * 주 뉴욕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사무차장
  • 탈북자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망명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주체로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61006/80664378/1#csidx6390859011994e7a8d6c822b9a35888 (참조)]]
  • 태영호 . . . . 1회 일치
         20년간 중요 외교관으로 지내던 태영호는, 2016년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된다. 태영호는 2016년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태영호와 친분이 있었던 [[BBC]]의 스티브 에번스 한반도 특파원은, 개인적으로 태영호와 만나면서 직전까지 탈북을 하려는 어떤 눈치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 풍계리 . . . . 1회 일치
         한반도 서북쪽에 있는 지역. 함경북도 길주군에 위치한다.
  • 한방의학 . . . . 1회 일치
         4세기 중엽 [[한반도]]의 도래인을 통하여 일본에 한방이 전파되었다.
  • 한상덕 . . . . 1회 일치
         *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 3D
  • 한승조 . . . . 1회 일치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 조약|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3/h2005030411490221950.htm 한국일보 - 한승조 "일본 식민지 지배는 축복"]</ref>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친일파|신친일파]]<ref>[http://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5/03/007100002200503132126035.html 한겨레신문 - 한-일 우익 ‘역사왜곡’ 연대조짐] :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반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반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 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f>라고 부르기도 한다.
  • 허정숙 . . . . 1회 일치
         허정숙은 [[기독교]]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오래도록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미국]] 숭배를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우리는 종교인들의 신앙 생활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미국놈을 하느님처럼 숭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을 바에야 조선의 하느님을 믿어야지…․<ref name="geonkj">대한불교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 《한반도 평화ㆍ통일문제와 한국불교》(대한불교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 2011) 22페이지</ref>”라고 하였다.
  • 황교안 . . . . 1회 일치
         |직책 = [[한반도]]의 국가 원수
  • 황두진 . . . . 1회 일치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반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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