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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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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 . . . 61회 일치
         {{다른 뜻|한명회 (드라마)||[[한국방송공사]]의 대하 [[드라마]]}}
         |이름 = 한명회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압구정 한명회는 [[1415년]](태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와 이초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척]](李逖)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태된 지 7개월만에 태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배에는 태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영흥]]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국호를 낙점받아왔다. [[한상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성림]](李成林)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절하였으므로, 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그는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한강(韓康)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세조]]의 사돈이었던 [[한확]]과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韓渥)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ref>광윤-강-악-방신-녕-영정-확, 광윤-강-사기-악-공의-수-상질-기-명회</ref> 그가 태어난지 얼마 뒤 동생 [[한명진]]이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10개월도 안되어 태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태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hwan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2700&cloc=rss%7Cnews%7Csociety 한명회, 황보인 사위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ref>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상덕 (조선)|한상덕]](韓尙德)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재상 [[황보인]]이 한명회를 보고는 큰 인물이 될것을 예견하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그는 거절하였다.<ref name="hwan1"/> 이에 종조부인 [[참판]] [[한상덕]]이 "그([[황보인]])는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니 만약 혼례를 받아들인다면 부귀하게 될 것"이라며 수락할 것을 권고했으나 한명회는 "처가의 권세에 힘입어 부귀 영화를 바라보겠습니까. 이는 저의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라며 거절하였다.<ref name="hwan1"/>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하였다. [[경덕궁]]직으로 있을 때 그는 역시 같은 [[경덕궁|경덕궁직]]에 있던 무사 [[홍달손]](洪達孫), [[홍윤성]], [[양정]] 등을 만나 사귀게 되는데, 한명회는 이들 30여 명을 [[조선 세조|수양대군]]에게 적극 천거하여 이들의 인맥을 통해 거사를 일으킬 병력을 모으게 된다.
         그는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강력한 지도자와 엄격한 법 집행만이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느슨한 법집행과 온정주의는 도적과 부패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명회의 계책을 들은 [[권람]]은 [[수양대군]]을 찾아가 이를 고하였다.
         {{인용문2|제 친구인 한생(韓生, 한명회)은 뜻이 웅대하여 간국(幹局)이 있고, 둘도 없는 [[국사]](國士)로 적합한 인물이며, 지금의 [[관중 (춘추)|관중]](管仲), [[악의]](樂毅), [[사마중달]],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께서 [[춘추 시대]] [[오나라]]의 계찰(季札)의 절개와 지조를 지키시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이 세상을 평치(平治)하시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권람의 진언}}
         [[권람]]의 진언을 받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 대군]] 이용(李瑢)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의 충자(冲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쿠데타|반정]](反正)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수양대군]]은 세력과 사람이 없어서 실패할 것을 염려하였다. '형세(形勢)가 고단(孤單)하고, 세력은 미약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하며 묻자 한명회는 당위성을 역설하며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독려하였다.
         수양대군이 머뭇거리자 한명회는 대의명분이 있음을 꾸준히 설득하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의 안정을 구가해야 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유년 시절 [[조선 태종]]이 세종의 아들들을 데리고 산책을 갈 때 어느 점쟁이가 둘째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 말을 반복 언급, 주지시켰다. 확신이 선 수양대군은 그를 신뢰하였고, 모든 비밀 계략과와 밀모(密謀)는 그의 지휘에 맡겨졌다.
         한명회의 독려에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날 사병들을 동원하여 비밀리에 매복시키고, 그날 저녁 [[한성부]]를 점령하였다. [[홍윤성]]과 [[홍달손]]이 이끌고 온 군사들과 합류, [[김종서]]와 [[황보 인]]의 집을 습격하여 이들 일파를 제거하였다. 당시 [[집현전]] 학사들 중에는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막강한 권력에 반발하는 뜻에서 한명회를 지지하는 여론도 조성되었다.
         이어 한명회는 모사가들을 시켜 잔존 세력을 숙청한 후, 직접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집에 찾아가 [[김종서 (1383년)|김종서]] 등과 [[황보인]] 일족을 참살케 한 후 군기녹사(軍器錄事)·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 1등관이 되었다.
         [[1455년]](단종 3년) [[경연]] [[참찬관]](經筵參贊官) 겸[[사재감|판사재감사]](兼判司宰監事) 지예조사(知禮曹事)를 거쳐, 그해 [[6월]] [[우부승지]](右副承旨)가 되었다. [[1455년]](세조 즉위) [[6월]] [[조선 세조|세조]]가 [[조선 단종|단종]]의 양위를 받아 [[조선]]국왕으로 즉위하자 한명회는 다시 [[승정원]][[좌부승지]](左副承旨)에 [[좌익공신|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가 곧이어 그해 가을 [[승정원]][[우승지]]에 올랐다.
         [[1456년]](세조 2) [[2월]] [[성삼문]]과 [[집현전]] 학사들이 [[조선 세조|세조]] 3부자를 연회장에서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조선 세종|세종대왕]]으로부터 [[집현전]] 학사들이 [[조선 단종|단종]]을 부탁한다는 유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명회는, 연회장에 별운검으로 임명된 [[성승]], [[유응부]], [[하위지]] 등을 의심하고 이들의 출입을 차단한다.
         셋째 딸을 [[조선 세조|세조]]의 차남 [[조선 예종|해양대군]]에게 출가시켰으나, 셋째 딸은 아들 인성대군을 낳고는 산욕으로 요절한다. 외손자 [[인성대군]] 마저 요절하면서 한명회는 [[조선 예종|해양대군]]과는 다소 껄끄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조선 예종|해양대군]]이 곧 [[조선 예종|예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한명회는 활쏘기에도 능했고 문예보다는 병법과 병권에 재능을 보였다. 오지였던 북방으로 파견을 나가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었고 북방의 야인들을 토벌한 뒤에는 경계를 견고하게 하는데 남다른 공적을 쌓았다. 이 일로 한명회에 대한 세조의 또다른 신임을 얻게 되어 1461년 특명으로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다시 [[보국숭록대부]]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임명되고 [[판병조사]](判兵曹事)와 [[병조판서]], [[판의금부사]]를 겸임했다가 [[1462년]](세조 7년) 여름 [[대광 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우의정]]이 되었으며, 황해, 평안, 함길, 강원 4도 체찰사를 겸하였다. [[1463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 한확 . . . . 9회 일치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 [[여비 한씨]], [[선덕제|선종]]의 후궁 공신부인은 그의 넷째, 다섯째 누이이다. 검소하고 청렴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과 함께 [[조선 세조|세조]]의 즉위를 도왔고, [[1418년]]의 [[세종]]의 책봉 고명과 [[1455년]] [[조선 세조|세조]]의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는 누이들이 황제의 후궁인 점을 활용하여,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둘째 딸은 [[조선 세종|세종]]의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 증]]에게 출가하였고, 여섯째 딸은 [[조선 세조|세조]]의 장남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비 [[인수대비]]로서 [[조선 세종|세종]], [[조선 세조|세조]] 2대에 걸쳐 사돈이 되었다. [[한명회]]의 일족이다.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한강(韓康)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세조]]의 측근이었던 [[한명회]]와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韓渥)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ref>광윤-강-악-방신-녕-영정-확, 광윤-강-사기-악-공의-수-상질-기-명회</ref>
         1450년(문종 즉위년) 문종이 즉위하자 판중추원사로 소환되었고, 그해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1452년]](문종 2년) 초에 귀국, 그해 의정부 좌찬성이 되었다. 이후 [[한명회]], [[신숙주]], [[권람]], [[정인지]] 등과 긴밀히 연락하며 사돈 [[조선 세조|수양대군]](首陽大君)의 즉위를 도왔으며 [[명나라]]에 있는 누이 [[공신부인]]과 죽은 [[여비 한씨]]의 후광에 힘입어 이들의 거사를 은밀히 지원하였다.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KBS 2TV]], [[1994년]]~[[1994년]] 배우:[[박웅]])
         * [[한명회]]
         [[분류:명나라의 황족]][[분류:음서]][[분류:조선 세종]][[분류:한명회]][[분류:청주 한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난공신]][[분류:좌익공신]][[분류:조선의 부원군]]
  • 이민우(배우) . . . . 7회 일치
         [[한명회]]에서 [[연산군]]을 맡았다. 주인공 한명회가 죽은 이후를 다루는 후반 4회분에서 극을 사실상 주도하는 역할이며, 연산군 연기로 호평받으면서 이를 기점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 '''19세'''에 이런 연기를 한다(...)[* 상술하였듯, 이 연기로 아역상을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r7eVSaqU59Q|# 기생씬]] 특히 [[폐비 윤씨]]([[장서희]])가 사사된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눈물콧물 흘리고 할머니인 [[인수대비]]에게 가서 한맺힌 절규를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http://flvs.daum.net/flvPlayerIn.swf?vid=bYfGnkJ3L-U$&ref=bbs.movie.daum.net|# 절규신]] --배우들 다 굶어 죽으라고--
         참고로 한명회의 연산군은 맡았던 배역 중에 유일하게 '''즉위했던''' 왕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전부 세자나 세손 등 즉위 전의 아동 시절을 맡았다. 즉, 모두 아역 시절을 연기했다. --기억력도 엄청 정확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y7_cAnvH1P4|#]]--
         ||<|2> 1994년 || KBS2 || [[한명회(드라마)|한명회]] || '''[[연산군]]''' || ||
         || 1995년~1996년 || KBS1 || [[찬란한 여명]] || [[박영효]] || [* 한명회에서의 연산군이 아역에서 성인으로의 전환점이었다면 박영효 역할은 본격적인 성인 연기 도전의 시작이었으나, 드라마 시청률이 낮았던 탓인지 크게 기억되진 않은 듯 이 부분도 2013년 3월에야 추가되었다.] ||
          * 1994년 [[KBS 연기대상]] 아역상 《당신이 그리워질 때》, 《춘향전》 《한명회
  • 장순왕후 . . . . 6회 일치
         |아버지 = 상당부원군 [[한명회]]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 '''아버지''' : 영의정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領議政 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 1415~1487)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KBS2]], [[1994년]], 배우:[[박인나]])
         [[분류:1445년 태어남]][[분류:1461년 죽음]][[분류:조선의 추존왕후]][[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한명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조선 예종]]
  • 폐비 윤씨 . . . . 6회 일치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날짜=2009-03-14|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남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위되었다.
         여기서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연산군]]이 즉위함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반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 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상]] 등이 있다.
         훗날 [[조선 연산군|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면서 [[1504년]]에 [[갑자사화]] 등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로 인해 [[한명회]], 한치형 등의 사람들이 부관참시를 당한 데 이어 그 이외의 사람들이 사사되거나 유배되었다.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KBS]], [[1994년]], 배우 : [[장서희]])
  • 김형일(배우) . . . . 4회 일치
         특이하게도 같은 시대를 다룬 드라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와 [[왕과 비]]에서 두 번 다 [[홍윤성]] 역을 맡았다. 한명회에서는 의리 있고 호쾌한 쾌남 역할이었으나, 왕과비에서는 반대로 의리라고는 쥐뿔도 없이 박쥐처럼 이리저리 권세에 붙는 찌질이로(특히 세조 말 ~ 성종 초 부분에서) 표현되었다.
          * [[한명회]]- [[홍윤성]]
  • 장서희(1972) . . . . 4회 일치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직후에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뽀뽀뽀]]'의 뽀미언니(7대)를 맡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 인기를 얻지 못해 조연이나 단역 생활에 머물러야 했다. 《[[허준(드라마)|허준]]》이나 《[[태조 왕건]]》,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등의 인기 드라마에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고, 특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에서는 '''[[폐비 윤씨]]'''역을 맡으며 열연을 펼쳤으나, 이후 작품 출연에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지금이야 조연 배우도 연기를 잘하면 ‘명품 조연’, ‘신 스틸러’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 통보 없이 배역에서 잘리거나 감독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등 무명 배우의 설움도 끊임없이 겪어야 했다. 그래서 [[문화방송|MBC]] 지하에 화장실 하나를 정해두고 서러울 때마다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 1994 || [[한국방송공사|KBS]] || [[한명회(드라마)|한명회]] || [[폐비 윤씨]] || ||
  • 한규복 (1881년) . . . . 4회 일치
         그의 집안은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종조부인 [[개국공신]] [[한상경]]<ref>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의 동생으로, 한명회를 양육하였다.</ref>의 후손으로, 유암 [[한계윤]](柳岩 韓繼胤)의 20대손이다. [[한계윤]]은 [[한명회]]와 6촌 형제간이며, 외할아버지는 [[성달생]]으로 [[성승]]과 [[성삼문]]은 각각 외삼촌과 외사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몰락하여 하급 무관을 역임하다가 5대조부터는 증직 벼슬만이 전한다. 한규복의 할아버지 한수익(韓守益)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사후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증조부 한도흥(韓道興)은 [[호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고조부 한윤기(韓潤琦)는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외할아버지 백우혁(白佑赫)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 한명진 (1426년) . . . . 4회 일치
         '''한명진'''(韓明溍, [[1426년]] ~ [[1454년]])은 [[조선]] 초기의 문신, 공신이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에 참여하였으며,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고 [[한명회]]의 아우이다.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KBS]], [[1994년]]~[[1994년]] 배우:[[서영진]])
         [[분류:1426년 태어남]][[분류:145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한명회]][[분류:정난공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청주 한씨]]
  • 정진(1941) . . . . 3회 일치
         | 본명 = 정수황 <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8447402 '한명회' 배우 정진 별세…향년 75세]2016. 6.2 작성 연합뉴스</ref>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중퇴하였으나 연극연출가 [[이해랑]](李海浪)에게 픽업되어 [[1962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를 하였고 5년 후 [[1967년]] [[동양방송|TBC 동양방송]] 특채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첫 출연하였으며 [[영화배우]] 데뷔는 [[1973년]] [[영화|사극 영화]] 《오타 줄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로 데뷔하였다. 이후 [[198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사극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설중매 (드라마)|설중매]]》에서 [[한명회]](韓明澮) 역을 배역하여 [[1985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 [[1984년]] [[MBC]]《[[설중매 (드라마)|설중매]]》 ... [[한명회]] 역
  • 최종원(국회의원) . . . . 3회 일치
         그리고 1998년에 [[왕과 비]] 한명회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사극]]에선 주로 간교하고 노회한 역을 잘 맡는다. [[한명회]], [[하륜]], 이인평, 이인겸 등.
          * [[왕과 비]]([[KBS 1TV]], 1998): '''[[한명회]]''' 역
  • 김봉근(배우) . . . . 2회 일치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KBS]])
  • 박칠용 . . . . 2회 일치
         * [[1994년]] [[KBS]]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 [[엄흥도]] 역
  • 임혁주 . . . . 2회 일치
         *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 [[구치관]] 역
  • 효령대군 . . . . 2회 일치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KBS]], [[1994년]]~[[1994년]], 배우:반석진)
  • 김성겸(탤런트) . . . . 1회 일치
          * [[한명회(드라마)]] - 성승
  • 세조 . . . . 1회 일치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한명회]] 등을 비롯한 모사나 왈패들을 모으며 정국 불안을 주시하다 동생 [[안평대군]] 일파가 정변을 꾀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쳐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참살하고 궁을 장악하여 실권을 잡는다(계유정난). 그 후 반 수양대군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단종을 협박하여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 예종 . . . . 1회 일치
         또한 부친이 추진하던 '경국대전'의 편찬에 심혈을 기울이고 한명회 등의 구공신 세력에 대해서도 견제를 꾀했으나 불과 20살의 나이로 급사하고 만다. 평소 시호를 '예'(睿)로 해달라고 했던 말을 좆아 시호를 예종이라 하게 된다.
  • 장성원 (배우) . . . . 1회 일치
         |부모 = 아버지 [[한명회]] <br/>어머니 이경옥
  • 한인수(탤런트) . . . . 1회 일치
          * [[한명회(드라마)]] - [[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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