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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승엽

* 가수/한국, 불교/인물
이름 편승엽
본명 편정범
출생일 1964년 8월 14일, 충청남도 홍성군
본관 절강 편씨
신체 180cm, 75kg, O형
직업 가수
자녀 1남 4녀
종교 불교

목차

소개

1964년 8월 14일,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사업가인 아버지 편무철과 어머니 이춘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는 여동생 1명밖에 없는데 여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형제 많은 집의 아이들 보면 부러웠다고 한다.[1]

그래도 어릴 때는 꽤 유복하게 자라왔으며 오류중학교와 마포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부도가 나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형편이 어려워지자 밖에 나가 노동일을 하는 등 힘든 일을 해야 했다. 불편한 일 평생 안 해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노래와 연기 등 관심이 많은 그는 생계를 위해 탤런트 시험에도 응시했지만 결국엔 낙방...

그런 외아들이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가족들의 노력으로 1991년, <서울 민들레>라는 곡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생방송은 커녕 무대에서도 그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수희와의 인연으로 1992년, 트로트곡 <찬찬찬>을 부르게 되면서 대 히트를 쳤다. 그리고 방송국, 행사, 무대 등 그를 섭외하는 곳은 어디든지 뛰어가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중 갑자 <찬찬찬>이라는 곡이 유명해지게 됐다. 성이 편씨라는 희성이라 그런지 그의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꽤 있다 카더라.

이 곡으로 인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스타가 되었고 1995년에는 거의 가요계 정상에 오르게 됐다.

결혼 생활

한창 전성기를 구축해 나갔던 그는 동료 여성과 1988년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생활 7년만에 결별하게 된다. 그는 이혼의 아픔을 딛고 바로 가수길은정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되어 앨범을 내면서 활동을 계속 하게 된다.[2]

하지만 2002년, 길은정이 결혼 생활 당시 자신에게 모욕, 폭언을 했다는 글을 올리자 그걸 본 편승엽은 명예훼손 및 인신모독으로 경찰에 고소장을 넘겼다. 결국 2년 뒤 법적으로 길은정의 유죄판결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이혼하게 된다. 그 후 방송에 나와 길은정과의 관계를 방송에서 털어놓았다고.

그 뒤 또 다른 일반인인 이유정과 재혼해 슬하 두 자녀를 두고 현재까지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여담

여담으로 연예계 최강 동안으로 유명한 이승환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한다.[3] 그의 아버지도 매우 동안에 붕어빵이라 동네 주민들이 둘을 머리가 백발인지 흑발인지로 구별한다.

길은정 포함 총 3번 결혼하였고 3명의 여자 사이에 자녀 5명(1남 4녀)이동국과 동급, 애국자가 있다. 그중에 딸 편수지(예명 편지)는 걸그룹 비피팝의 리더다.

연예계에서 이덕화와 더불어 소문난 낚시광이라고 한다.

키가 180cm나 되므로 우람한 체격이다.(165cm이라 하는 데도 있다)

딸이 서해고에 다녔었는데 학교축제에 직접 오셔셔 노래를 불렀다. 근데 학생들 대부분이 편승엽을 못 알아봤다.

음반

  • 2002년 5집 <그대와 함께 / 잊혀진 여인>
  • 1998년 4집 <사랑을 위해 / 그날까지>
  • 1996년 3집 <초대받고 싶은 남자 / 사나이 가슴에 비가 내리네>
  • 1992년 2집 <찬찬찬 / 그리워질 날들이 가득히 남겨진 때문에>
  • 1991년 1집 <서울 민들레 /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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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60년대 당시 평균 출산율 4명대인 걸 감안한다면...
  • [2] 당시 길은정은 직장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결국 투병 10년째인 2005년 사망했다.
  • [3] 그래서 동안 이승환과 동갑드립의 희생양이었지만 사실 편승엽이 더 나이가 많다. 1살 차이인 건 안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