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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 . . . . 187회 일치
         |이름=전
         |그림설명=청계천8가에 있는 전일 흉상
         |친척= 여동생 [[전순옥]], 여동생 [[전순덕]], 동생 전
         |웹사이트=[http://www.chuntaeil.org/ (재) 전일재단]
         '''전일'''(全泰壹, [[1948년]] [[9월 28일]] ~ [[1970년]] [[1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이다. [[1960년대]]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전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상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남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아버지에게 재봉 일을 배웠으나 [[1964년]] 동생 전삼을 데리고 다시 가출, [[서울]] 청계천으로 올라와 서울 평화시장의 의류제조회사에서 시다(견습공)로 일하였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운 재봉 기술로 서울 평화시장의 피복점 보조로 취업해 14시간 노동을 하며 당시 차한잔 값이던 50원을 일당으로 받았다. [[1965년]] 구두닦이로 구두통을 메고 [[평화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그해 가을 의류제조 회사인 [[삼일사]]에서 시다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삼일사에 입사했다.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일의 노동자로서의 반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순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를 조사하였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영래, 《전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 노동실 설문조사와 노동자 집회 ====
         그는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아 암기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불이익에 저항하였다. 그는 [[동대문구청]]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 대해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상의 감독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갔지만, 근로감독관은 평화 시장의 참혹한 얘기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f name="chungg">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2권》 (녹두, 1993) 265페이지</ref> 가뜩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전일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노동이나 근로 기준법조차 사업주들의 편이라는 현실은 그를 한동안 허탈 상로 몰아 넣었다.<ref name="chungg"/> 그는 청계천 일대의 노동 실를 직접 조사, 설문하여 이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멸과 비웃음 뿐이었다. 처음에 약간 말투가 어눌했던 그는 부랑자로 몰리거나, [[노동청]] 공무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동자 권리 청원은 언론들도 외면했고, [[경향신문]] 등에만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인용문2|1970년 여름 무렵, "아마도 한두 달 동안" 전일은 김씨의 외삼촌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그가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들었다. 재단사 전일은 키가 작았다. 얼굴도 작았다. "땅땅했다"라고 김씨는 회고했다. "뭐랄까, 아주… 아주 자그마했어.<ref name="ganaess"/>"|[[1970년]] [[8월]]~[[9월]] 무렵 전일이 근무하던 미싱회사 사장 외조카의 증언}}
         {{인용문2|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야수와 같은 북괴는 평화 속에 잠긴 남녁 땅을 피로 물드렸다.<ref>전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27쪽</ref>}}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박정희]]에게 보낸 진정서에서 그는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아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어 은미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한번 밟(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ref>전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36쪽</ref>…(이하 생략)…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요.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곳(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ref>전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38쪽</ref>"라고 했다.
         [[1970년]] [[9월]] 전일은 [[한미사]]의 재단사가 되었다가, 같은 [[9월]] [[왕성사]]의 재단사가 되었다. 재봉사보다 지위가 높은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 뒤 다시 노동실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진정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내용이 [[경향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자, 전일 등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임금, 노동 시간,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 조합]] 결성 등을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일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약속 위반으로 인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으며, [[자본가]]들도 삼동회는 [[사회주의]] 조직이라고 헐뜯음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해 [[10월]]부터 그는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시위를 주관하였다.
         [[노동청]]에서는 [[11월 7일]]까지 법을 개정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법 개정을 약속한 11월 7일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11월 8일]] 전일은 동료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하자"고 제의했고, 거사 날짜는 [[11월 13일]]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작성하였다.
         이에 따라 전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상의 남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영래]]는 [[1983년]] [[전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남성의 이름을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김개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일의 벗의 이름 '김개남(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남을 전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일·조영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ref name="chock283">조영래, 《전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 전일은 3분 가량 방치되었으며, 이때 누군가가 [[근로기준법]]을 불타고 있는 전일을 향해 던졌다.
         {{인용문2|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한 회원이 [[근로기준법]] 책을 전일의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이렇게 하여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은 이루어졌던 것이다.<ref name="chock283"/>}}
  • 박근혜 . . . . 129회 일치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영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영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영재·허남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반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박근혜는 대기업 관련 범죄·[[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 18개 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 특활비 · 공천개입 등 혐의 3개에 대해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전자는 2심, 후자는 1심 판결이 나온 상이다. 2018년 4월 6일 18개 혐의에 대한 1심에서는 혐의 16개에서 일부유죄 및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으며,<ref name=":0" />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 원으로 형량이 늘어났다.<ref name=":2" /> 2018년 7월 20일 혐의 3개에 대한 1심에서는 2개가 인정되어 징역 8년 및 추징금 33억 원을 선고받은 상이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20/0200000000AKR20180720096900004.HTML|제목=박근혜 '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1심 징역 8년…33억 추징(2보)|성=송진원|이름=|날짜=2018-07-20|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2개 재판을 합치면 혐의가 총 21개, 형벌은 총 33년형과 벌금 200억 원과 추징금 33억 원이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어났다. 현재 이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상가가 위치해 있다.<ref name="kys">[[강용석의 고소한 19]] 1화</ref>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어머니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영, 장남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인용문|"그날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요.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요. 어머니께서는 집안을 정리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집안이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니께선 만약의 사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1년 뒤인 [[1990년]] [[9월]] 근화보는 1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고,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근영]]과의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영수 숭모회는 다툼의 원인은 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 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인용문|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이다.<ref>{{뉴스 인용|제목='반격의 세월'에 최민이 있었다.|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0711|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7-05}}</ref>}}
         이 때 박근혜의 여동생과 남동생인 [[박서영]]과 [[박지만]]은 최민이 언니인 박근혜를 속이고 있으니 구하여 달라며, 당시 대통령이던 [[노우]]에게 A4용지 12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단독 입수]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1990년 노우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6709|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8-06}}</ref>
         최민은 [[1994년]] 사망하였으며, 이후 박근혜는 [[언론]]에서 최민에 대하여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라며 두둔하였다. 이에 논객인 [[조갑제]]는 '박대표는 한번 믿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안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라고 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최민 목사, 저에게 고마운 분 네거티브하려면 뭘 못지어 내나"|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6402|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6-14}}</ref>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었고, 이재오, 이방호는 낙선하였으며,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 전국구 8석이라는 예상 외의 높은 지지율을 달성하였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총 12명이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박근혜는 꾸준히 친박연대 및 무소속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을 요구하였다. 친박 측과 앙금이 남아있던 [[강재섭]]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고 [[박희]] 전 의원이 대표로 부임한 뒤 마침내 친박무소속연대 소속 의원과 친박연대의 지역구 의원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여 한나라당 내 친박의원 의석수는 6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의원 5명은 당명 개정, 독자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양정례]], [[서청원]], [[김노식]]은 당선무효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박근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성군수]]로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이석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이석원 후보는 무소속의 김문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박근혜는 "달성군민이 판단한 것도 존중한다"고만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상처입은`선거의 여왕 박근혜, 침묵 끝 한마디] {{웨이백|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date=20100607172404 }}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ref> 차기 대선 후보로써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5.1%를 기록하는 등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ref>(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52755 박근혜 지지율 2.3% 하락) 충청일보 2010년 6월 3일</ref> 박근혜는 2010년 하반기부터 차기 대선 행보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복지를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박근혜는 인사말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적 복지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맞춤식 생활 보장형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3860 박근혜 대권 행보 시작‥공청회 '대선출정식' 방불] mbc 2010년 12월 20일</ref> 이후 12월 27일 박근혜의 대선 구상을 내놓을 '국가미래연구원'이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대한민국 내 학자들과 [[이한구 (정치인)|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박근혜, 빨라진 대권 행보‥'싱크탱크' 출범] {{웨이백|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date=20130927121326 }} mbc 2010년 12월 27일</ref> 그러나 [[심재철 (1958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도"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4333 한나라당 심재철 "박근혜 복지, 솔직하지 못해"] mbc 2010년 12월 25일</ref>
         한편 경선 8일 뒤인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반대로 무산되었다. [[전일]]의 여동생이자 구 [[민주통합당]]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전순옥]]은 진정으로 [[전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28/0200000000AKR20120828048951001.HTML?did=1179m 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 연합뉴스, 2012년 8월 28일</ref> 그러나 [[이상일]] 대변인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f name="ReferenceB">{{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제목 = 北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전면전 준비' 언급|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13-03-08|확인날짜 = 2013-04-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311025446/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보존날짜 = 2013-03-11|깨진링크 = 예}}</ref> 북한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절을 선언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하여 공개적인 적대행위의 의사를 밝히며 위협하였다.<ref name="ReferenceB"/> 이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ReferenceB"/> 국방부 또한 북한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ref name="ReferenceB"/>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결 정책이며<ref>[http://www.ajunews.com/view/20140503193440291 북한 노동신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비난']</ref>하였고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서도 이산가족 상봉이나 지원에 따른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 북남관계 개선의 선차적인 고리가 아니라 정치군사적 대결상 해소가 최우선이라며 맹비난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0029 북한 국방위 "박근혜 '드레스덴 연설' 공식 비난"]</ref> 또한 8.15경축사에서 제안한 대화 및 협력에 대해서도 금강산 관광객 총살이나 천안함 및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죄없이 5.24 조치 해제 등 대북정책 기조전환을 압박했다.<ref>[http://www.nocutnews.co.kr/news/4074931 北, 朴 8.15 경축사 비난…5.24 조치 해제 촉구]</ref>
  • 김태희 . . . . 102회 일치
         | 이름 = 김
         | 사진설명 = 김희(2020년)
         |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성군]] <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295599 '이기적인 유전자' 김희-이완, 훈훈한 부부의 매력분석], 머니투데이, 2016년 4월 9일 확인</ref>
         | 수상 = [[김희의 수상 및 후보 목록|수상 목록]]
         '''김희'''(金泰希<ref>{{뉴스 인용|저자1=장주영|제목=[인터뷰①] ‘그랑프리’ 김희, “서른은 나를 당당해지게 했다”|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315791|날짜=2010-09-03|확인날짜=2018-07-05|뉴스=매일경제}}</ref>, [[1980년]] [[3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00년 "화이트"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 [[이영애]]의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2002년 독립 영화 《[[신도시인]]》에 출연했다. 이후 시트콤 《[[해변으로가요]]》(2004), 《[[스크린 (드라마)|스크린]]》, 《[[천국의나무]]》(2006)와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3년에는 《[[천국의 계단]]》에서 악역 한유리 역할로 얼굴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로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드라마 《[[작은아씨들]]》과 《[[목련꽃아래서]]》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중천 (영화)|중천]]》(2006), 《[[싸움 (영화)|싸움]]》(2007)에 출연했으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최승희 역할을 연기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드라마 《[[마이프린세스]]》(2011), 《[[나와 스타의 99일]]》(2012),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에서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5년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1980년 대구에서 어났다. 이후 경북 구미 으로 이사 하였다. 김희 본인의 가족으로는 부모와 언니 김희원, 남편 [[이완 (1984년)|이완]]이 있다. 연예인 [[비 (가수)|비]]와 동료.<ref name="씨네21">{{웹 인용 |제목=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희|url=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3569|출판사=[[씨네 21]]|저자=이혜정|날짜=2006-12-22|확인날짜=2014-02-25}}</ref> 6학년에는 언니를 대신해 교복 모델로 활동했다.<ref name="씨네21"/> 졸업하고,<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중학내내 전과목 100점…공주대접도 당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3771618|출판사=뉴시스|저자=김지은|날짜=2011-03-30|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재학 시절 학원 홍보 전단지 모델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경북 구미 에서 김희 모르면 간첩? 학창시절 인기-성적표 공개!|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91530327|출판사=[[한국경제]]|저자=김명신|날짜=2009-09-15|확인날짜=2014-02-25}}</ref>
         1999년 의류학과에 입학하여 2005년 졸업했다.<ref name="일요시사"/><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단체 졸업사진, 2005년 서울대 졸업당시 김희 모습 ‘똑같아’|url=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16050025|출판사=[[서울신문]]|저자=김채현|날짜=2012-05-16|확인날짜=2014-02-25}}</ref>
         김희는 이후 [[대구 도시철도|도시철도]]에서 광고대행사 [[디자이너]]를 우연히 만나 2000년 "화이트" 광고를 찍으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웹 인용|url=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31893|제목=네이버 영화 김희|웹사이트=[[네이버]]| 확인날짜=2011-01-20}}</ref><ref name="일요시사">{{웹 인용|url=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제목=<이색설문> 연예인 별별랭킹 베스트|웹사이트=일요시사|저자=최현경|날짜=2013-11-12|확인날짜=2014-02-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8224215/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보존날짜=2014-02-28|깨진링크=예}}</ref> 광고 촬영 이후 여러 곳에서 모델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ref name="MBC">{{에피소드 인용|제목=[MBC 스페셜] 희의 재발견|url=http://www.imbc.com/broad/tv/culture/mbcspecial/commingsoon/1792451_27375.html|네트워크=[[MBC]]|날짜=2011년 4월 1일|회=516}}</ref>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서 중등 정연 역을 맡으며 스크린에 첫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 당시 [[영화 감독]] [[오기환]]은 잡지 표지모델로 섰던 김희를 보고 테스트도 안 해도되니 그냥 데려 오라고 말했다.<ref name="MBC"/> 이후 대학생활의 숙원이었던 어학연수를 가기 전 홍두현 감독의 독립영화 《[[신도시인]]》 출연을 제안받아 출연했고 2002년 개봉했다.<ref name="씨네21"/> 같은 해 경험삼아 [[SBS 시트콤]] 《[[레츠고 (시트콤)|레츠고]]》에 출연했으나, 2개월만에 종영되고 배우의 길에 대한 고민을 했다.<ref name="MBC"/>
         그러던 중 2003년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SBS 드라마]] 《[[스크린 (드라마)|스크린]]》에 출연했는데, 연기력으로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ref name="MBC"/> 같은 해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에 수진 역할로 출연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4&aid=0000092055|제목=권선징악 주제 현대판 흥부놀부전, SBS새 일일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웹사이트=[[파이낸셜뉴스]]|저자=정명진|날짜=2003-10-23 |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출연한 [[SBS 수목미니시리즈|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처음으로 악역인 한유리 역할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8.4%, 최고 시청률 43.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1031246131001|제목=‘천국의계단’ 권상우 “아베마리아 음악 나오면 달려야 할 것 같다”|뉴스=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0-11-03 |확인날짜=2014-02-25}}</ref> 김희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ref name="MBC"/>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ref name="SBS연기대상">{{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1|제목=이병헌, SBS '연기대상 수상'|출판사=뉴시스|저자=민성진|날짜=2004-01-01 |확인날짜=2014-02-25}}</ref> 하지만 일부는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연기력 비판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드디어 연기인생 한판승 거두나?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1141557551110&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배국남|날짜=2011-01-14 |확인날짜=2012-03-08}}</ref>
         2007년 12월 12일 메가박스 코엑스의 《싸움》 무대인사에서 김희.
         김희는 2004년, [[KBS 2TV|KBS2]] 《[[구미호 외전]]》에 이어 [[SBS 월화드라마|SBS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 하버드 의대생 이수인 역할로 출연했다.<ref name="김은">{{뉴스 인용 |제목=작품속 김희, 이렇게 바뀌었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61711531396823&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은|날짜=2007-06-19|확인날짜=2014-03-05}}</ref> 그녀는 이 두 작품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연기상,<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04931 |제목=김희-이완 남매, 최초로 신인연기상 동시수상 |날짜= 2004-12-31 |출판사= 스타뉴스 |확인날짜= 2010-10-02 }}</ref>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과 네티즌최고인기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1978489 |제목=김희의 하루’ 네티즌들 관심 가득 “뭘해도 예뻐요” |날짜= 2008-06-20 |출판사= 한국경제 |확인날짜= 2010-10-02 }}</ref>
         이 드라마를 통해 자리를 확고히 한 김희는, 2006년 제작비 130억,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중천 (영화)|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공연하며 소화 역할로 첫 장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ref name="김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ref>최지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1410 '국내' '이 상을 <하얀거탑> 폐인 분들께 바칩니다'] 매거진t 2007년 10월 4일</ref> [[대종상영화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0063392 ‘가족의 탄생’최우수작품·시나리오상…대종상 이변] 국민일보 2007년 6월 9일</ref> 그녀는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ref>{{웹 인용|url=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sca=28|제목=제28회 청룡영화상|출판사=청룡영화상|확인날짜=2014-02-27}}</ref> 하지만 연기력에서 “대사 소화가 부족하고 표정연기가 풍부하지 못했다”, “평면적 연기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ref name="김은"/> 《[[중천]]》은 관객수 15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중천' 참패, CJ 주가 폭락|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319790|출판사=뉴시스|저자=김용호|날짜=2007-02-19|확인날짜=2014-03-05}}</ref> 2007년에는 영화 《[[싸움 (영화)|싸움]]》의 윤진아 역할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공연하며 연기력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보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으나,<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연기력과의 싸움에서 '웃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99002|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정명화|날짜=2007-12-05|확인날짜=2014-03-05}}</ref> 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톱스타 마케팅, 더 이상 안 통한다!|url=http://osen.mt.co.kr/article/G1010070161|출판사=OSEN|저자=이명주|날짜=2010-10-07|확인날짜=2014-03-05}}</ref>
         김희는 2008년 3월 19일 방영된 [[KBS 1TV|KBS]] 《[[수요기획]]》의 이라크전 5주년 특집으로 만들어진 돌아갈수 없는 땅, 바그다드 편 내레이션을 맡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희 '목소리만으로' 안방극장 찾는다|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3/h200803172051179197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이현아|날짜=2008-03-17|확인날짜=2014-03-0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404032016/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3/h2008031720511791970.htm#|보존날짜=2008-04-04|깨진링크=예}}</ref>
         2010년 9월 7일 《그랑프리》 시사회에서 김희.
         김희는 2009년 4년 만에 첩보액션 드라마 《[[아이리스 (드라마)|아이리스]]》의 여주인공 최승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아이리스`, 가장 진지하게 준비한 작품"|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273866|출판사=MK 뉴스|저자=진향희|날짜=2009-05-12|확인날짜=2014-03-05}}</ref>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9.9%,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아이리스’ 실체 추적하는 감성적 액션 주목하세요…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27557&cp=nv|출판사=국민일보|저자=진정희|날짜=2012-11-14|확인날짜=2014-03-05}}</ref> 연기력에 있어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에서는 첩보원 역할에 걸맞지 않다는 평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멍때리는' 김희? 연기논란 재점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02914300874627&type=1&outlink=1 |출판사=머니투데이 |날짜=2009-10-29 |확인날짜=2010-01-02}}</ref>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처음으로 연기력으로 우수연기상을 받았는데,<ref>[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김희, '아이리스'로 연기력 논란 극복하고 상도 받고 눈물 '펑펑']{{깨진 링크|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 리뷰스타 2010년 1월 1일</ref> 이에 대해 “우수연기상은 인기로 받은 인기상이 아닌 연기자로 인정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연기로 인정 못 받고 있다고 그간 생각했다.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저자1=김지연|제목=김희 "연기력 논란,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91500362265489&type=1&outlink=1|날짜=2010-09-15|확인날짜=2015-12-14|뉴스=머니투데이}}</ref> 2010년 1월 김희는 소속사를 [[나무엑터스]]에서 자신의 형부가 설립한 루아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1인 기획사 대열 합류… 전 소속사와 협업관계 유지 |url=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05720 |출판사=[[일간스포츠]] |날짜=2010-01-11 |확인날짜=2010-01-11}}</ref> 9월 16일에는 영화 《[[그랑프리 (영화)|그랑프리]]》에서 서주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추석영화열전⑥]'그랑프리' 김희, 연기논란 잠재우고 흥행퀸 '찜'|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1608154987413|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조범자 |날짜=2010-09-16|확인날짜=2015-07-17}}</ref> 김희의 연기력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으나, 16만 명의 관객수를 끝으로 상업적 실패를 거뒀다.<ref>{{뉴스 인용|제목=[울림과스밈] ‘그랑프리 실패’ 김희에게는 ‘약'|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42216.html|출판사=한겨레|저자=김진철|날짜=2010-10-05|확인날짜=2015-07-17}}</ref> 11월 22일에는 몇몇 내용을 편집해 만든 《[[아이리스: 더 무비]]》가 개봉했다.<ref>{{웹 인용|제목=씨네21 - 아이리스 더 무비|url=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출판사=[[씨네21]]|날짜=2010|확인날짜=2012-02-2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525/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예}}</ref> 12월 13일에는 《[[아이리스]]》의 스핀오프작 《[[아테나: 전쟁의 여신]]》 1회에 회상신으로 특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짧아서 아쉬워"..이병헌·김희 `아테나` 깜짝 등장|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138166593198520&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 |날짜=2010-12-14|확인날짜=2012-02-29}}</ref>
         김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희..'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방영된 SBS 퓨전사극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희는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옥정]] 역할을 연기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진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과 함께 김희의 연기력 논란, [[한국사|역사]] 왜곡 등으로 문제를 지적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장옥정' 독기만 품은 김희, '착한' 장희빈은 어디갔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39334|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최두선 |날짜 = 2013-05-28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김희 "연기력 혹평에 자존심 상처··독하게 해보겠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007259|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최준용 |날짜 = 2017-05-24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종영 '장옥정',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었나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7910 |출판사 =오마이뉴스 |자지 =김성규 |날짜=2013-06-26 |확인날짜 =2017-09-09 }}</ref>
         2014년 5월 29일, 김희는 중국 사극 드라마 《[[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며 중국 데뷔를 알렸다. 그녀는 극중 왕희지의 아내 씨루이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중국 드라마 출연..'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 참석|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453046606094168&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4-05-30|확인날짜=2015-08-05}}</ref> 김희는 자신의 역할 씨루이에 대해 "뻔한 여성상이 아닌, 순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희 "中드라마 '서성 왕희지', 유학 동경해 선택한 작품"[TD포토]|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6553404869440017|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5-03-17|확인날짜=2015-08-05}}</ref> 이듬해 2015년에는 한국 브라운관으로 복귀해, [[SBS TV|SBS]]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에 한여진 역할로 출연했다. 김희에게는 2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복귀작으로 최고 시청률 20.4%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최우수연기상,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SAF 연기대상] 김희, 최우수연기상 수상 "'용팔이' 덕에 행복한 한 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16&aid=0000174514|출판사 =SBS funE |저자 =김재윤|날짜 = 2016-01-01|확인날짜 =2017-09-09}}</ref>
         2013년 10월 31일 '맛있는 김치 김희와 함께 배워요! LG 디오스 김치톡톡 클래스' 행사에서 김희.
         김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연미인으로도 꼽힌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 최고미녀 왜 김희인가|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101131845363&sec_id=540101&pt=nv|저자=윤대헌|출판사=스포츠 칸 |날짜=2011-01-13 |확인날짜=2011-01-20}}</ref> [[중국]]에서 뽑은 [[한국]] [[여배우]] 순위 1위에도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중국인, 김희가 최고…송혜교 이다해 순|url=http://morningnews.co.kr/article.php?aid=129319437931191006|출판사=모닝뉴스 |날짜=2010-12-24 |확인날짜=2011-01-20}}</ref> 또, [[전지현]]·[[송혜교]]·[[손예진]]·[[한가인]]·[[이나영]]·[[한지민]]·[[한예슬]] 등과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미인]]으로 불린다.
  • 태종무열왕 . . . . 93회 일치
         |이름 = 종무열왕
         |별명 = 종공(太宗公), 종 춘추공(太宗春秋公), 춘추지(春秋智)
         |어머니 = [[문정후|천명공주]]
         |묘호 = 종(太宗)
         '''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3년]]~[[661년]] [[음력 6월]])은 [[신라]](新羅)의 제29대 [[임금]](<small>재위:</small> [[654년]]~[[661년]])이다. '''무열왕'''(武烈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661년]] 재위한지 8년만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를 지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며, 묘호(廟號)는 종(太宗)이다.<ref name="김영하">김영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83%9C%EC%A2%85%EB%AC%B4%EC%97%B4%EC%99%95&ridx=0&tot=42 종무열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삼국유사》 종춘추공조는 [[661년]]에 무열왕이 사망할 당시에 향년 59세였다고 기록했는데, 이를 토대로 역산하면 [[무열왕]]은 [[진평왕]] [[건복 (신라)|건복]] 20년([[603년]])에 어난 것이 된다.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순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종춘추공</ref>
         이듬해인 [[648년]] 12월에 김춘추는 드디어 아들 [[김문왕|문왕]](文王)과 함께 직접 [[당나라|당]](唐)에 입조하였고<ref>《자치통감》 권199 唐紀十五太宗文武 貞觀 22년(648)</ref> [[당 종|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자감 (중국)|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대제|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으며, 신라의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했다. 당 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에 종의 호출로 사적으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김춘추는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조(天朝)를 섬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사온데, 백제가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천병(天兵)을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요,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종에게 원병 파병을 호소해, 종의 허락을 받아냈다.<ref>《삼국사기》 [[:s:삼국사기/권05/진덕왕|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 “二年...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強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 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則梯航述職 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詔授春秋爲特進 文王爲左武衛將軍 (2년... 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니, 이에 내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 춘추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으로 춘추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으로 삼고,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남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상에서 고구려 순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남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김춘추가 귀국한 화 3년([[649년]])부터 신라는 관복을 당풍으로 바꾸고,<ref name="신라-64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3년(649)</ref> 화 4년([[650년]]) 진덕여왕이 직접 당의 왕업을 찬미하는 「[[평송|오언평송]](五言太平頌)」을 지어 비단에 수를 놓아 보냈으며, 신라의 고유 연호를 폐지하고 당의 [[영휘]](永徽) 연호를 쓰는 등 친당 정책을 더욱 가속화하였다.<ref name="신라-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진덕여왕 5년([[651년]])에는 중국의 제도를 본뜬 정월 초하루일 백관(百官)들이 모여 행하는 하정례(賀正禮)를 처음으로 조원전(朝元殿)에서 치렀으며, [[품주]](稟主)가 [[집사부]](執事部)로 개편되어 왕정의 기밀 사무를 맡았다. 좌이방부(左理方府)가 설치되고, [[파진찬]](波珍湌) [[김인문]](金仁問)이 다시 당에 파견되어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 벼슬을 받고 숙위를 맡았다.<ref name="신라-65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5년(651)</ref>
         진덕여왕 8년([[654년]]) 3월에 진덕여왕이 승하하고, 진골 세력은 상대등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은 이를 사양하고 춘추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춘추는 사양하다가 마침내 국인의 천거를 받아들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ref name="신라-654">《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1년(654)</ref> 《삼국사기》는 신라의 시조(始祖) [[박혁거세|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여왕까지의 28명의 임금을 성골, 무열왕부터 마지막 [[경순왕]](敬順王)까지를 진골이라고 하였으며, 무열왕부터 [[혜공왕]]에 이르는 8명의 임금이 재위한 시기를 중대(中代)로 분류하였다.<ref>《삼국사기》 권제12 신라본기 제12 경순왕</ref> 한편 《삼국유사》는 진덕여왕 이후 무열왕부터의 왕계를 하고(下古)로 분류하고 있다.<ref>《삼국유사》권제1 왕력(王曆)</ref>
         즉위 직후 무열왕은 아버지 [[김용춘]]을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어머니 [[천명공주]]를 문정후(文貞太后)로 추봉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였으며, 5월에는 이방부령(理方府令) 양수(良首) 등에게 이방부격(理方府格) 60여 조를 제정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는 문희 소생의 맏아들 법민(法敏)을 자로 삼고, 나머지 문희 소생의 왕자들에게도 관등을 수여하였다. [[대각간|대각찬]](大角湌) 김유신에게는 딸 [[지소부인|지소공주]]를 시집보내 중첩된 혼인관계를 이루었다.<ref name="신라-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2년(655)</ref>
         당에도 즉위를 알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무열왕 즉위년에 [[당 고종|고종]](高宗)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신라왕의 책봉을 받았으며,<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의 33개 성을 탈취하였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은 3월, 영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우위중랑장(左右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ref name="신라-655"/> 또한 무열왕 3년([[656년]])에는 {{출처|날짜=2018-06-30|1=신라의 개국 공신인 사로 6촌장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당에서 귀국한 김인문을 [[군주]](軍主)로 삼았으며, 가을 7월에는 김문왕을 다시 당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6">《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3년(656)</ref> 귀국한 뒤 문왕은 무열왕 5년([[658년]]) 정월에 부왕으로부터 집사부의 [[중시]](中侍)로 임명되고,<ref name="신라-65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5년(658)</ref> 김인문도 무열왕 6년([[659년]]) 여름 4월에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하는 사신으로서 당에 파견되는 등,<ref name="신라-65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6년(659)</ref> 친족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즉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무열왕 7년([[660년]]) 정월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ref name="신라-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7년(660)</ref> 왕권을 보다 전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영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백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백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백제를 무너뜨린 뒤, 당군 사령관 소정방은 9월 3일에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이끄는 1만 군사만을 사비성에 남아서 지키게 하고, 포로로 잡은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왕족과 고위 신료, 1만 2천 명의 백제 백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신라측 인사로 소정방과 동행한 것은 김인문과 사찬 김유돈(金儒敦), [[대나마]](大奈麻) 중지(中知) 등이었으며, 왕자 김인(金仁泰)가 [[사찬]](沙湌) 일원(日原) · [[급찬]](級湌) 길나(吉那) 등이 신라군 7천 명을 데리고 유인원을 도와 사비성을 수비했다.<ref name="신라-660"/> 당에서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비롯한 5도독부를 설치하고, 웅진도독으로 왕문도(王文度)를 파견하여 9월 28일에 [[삼년산성]](三年山城)에서 무열왕을 만나 고종의 조서(詔書)를 전달하였는데, 예물을 주는 과정에서 왕문도는 급사(急死)하여 다른 사람이 대신 일을 마쳤다고 한다.<ref name="신라-660"/>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백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백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남쪽 산마루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백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상(忠常) · 상영(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백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백제를 멸망시킨 뒤 무열왕은 변경의 수자리 군사를 폐지하였다.{{출처|날짜=2018-06-30}} 또한 압독주(押督州)를 옮겨 설치하고 도독을 임명하였다.<ref name="신라-66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8년(661)</ref>
         무열왕 8년([[661년]]) 음력 6월 59세로 사망하였다. 시호(諡號)를 무열(武烈)이라 하고, 영경사(永敬寺)의 북쪽에 장사를 지냈으며, 묘호(廟號)를 올려서 종(太宗)이라고 하였다. [[당 고종]]은 무열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성문(洛城門)에서 애도식을 거행하였다.<ref name="신라-661"/>
         * 한국과 중국, 일본을 누빈 외교가로서, 《일본서기》에는 [[고토쿠 천황]] 3년인 다이카 3년(647년)에 사신으로 왔던 김춘추에 대해 “용모가 아름답고 쾌활하게 담소하였다(美姿顔善談笑)”<ref name="일본서기-647"/>고 평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삼국유사》에도 무열왕이 병사를 청하러 당에 들어갔을 때, 당의 황제(종)가 무열왕의 풍채를 보고 칭찬하여 "신성한 사람(神聖之人)"이라 부르며 그를 붙잡아두어 시위(侍衛)로 삼으려 했지만 극구 청하여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f name="유사-기이1"/>
  • 이소선 . . . . 89회 일치
         |자녀 = [[전일]]<br/>[[전삼]]<br/>[[전순옥]]<br/>[[전순덕]] [[윤손하]]
         '''이소선'''(李小仙, [[1929년]] [[12월 30일]] ~ [[2011년]] [[9월 3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인 [[전일]]이 [[평화시장]]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활동하다 분신하자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노동운동가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대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4717.html 노동자의 대모 이소선씨 별세], 한겨레, 2011년 9월 3일</ref> 민주화 운동 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 모임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상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어머니 김분이는 이미 열넷이었던 장녀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홉살 아들과 이소선을 데리고 이웃 마을인 [[박서면]]으로 후처 살이 재가를 하였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어머니는 해어진 이후로 큰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의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소선의 언니는 1남 3녀를 낳고 살다 1964년에 사망하였고, 이소선은 언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것은 전일의 동상 재막식 이후에 조카들이 찾아와 알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917591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1) - 목걸이로 부활한 ‘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29일</ref>
         [[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늦봄 열다섯살 이소선은 정신대에 끌려간다며 결혼을 재촉받았지만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면사무소 직원이 명령서를 가져왔고 대구에 있는 방직공장으로 끌려갔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9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정신대에서..."],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0), 2014.06.12</ref> 방직공장은 대마로 베를 짜서 군복을 만드는 곳이었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1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0 한밤 중 토마토 몰래 따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1),2014.06.12</ref> 이소선은 콩깻묵과 옥수수에 밀가루를 섞은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일은 방적기가 쉼 없이 돌아가도록 실을 이어주는 것이었고, 공장 안은 먼지가 뿌옇고 햇빛도 들지 않아 불결하였다. 함께 작업하던 여성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2173503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1) - ‘근로 정신대’의 슬픈 기억], 경향신문, 2009년 2월 22일 </ref>
         이소선은 1947년 전상수와 결혼하였다. 전상수의 아버지는 대구시 남산동에서 포목상을 하였다. 전상수는 의류 제조 공장에 다니다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에 가담하였다. [[미군정]]과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사건이 마무리 된 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재봉틀을 마련하여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았다. 이소선은 중매로 결혼하였고 결혼 전에야 신랑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4180521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5) - 결혼하기 싫어 사흘 굶어], 경향신문, 2009년 2월 25일</ref> 이소선은 남편에게 그리 정이 가지 않았다. 1948년 음력 8월 24일 첫 아들 [[전일]]을 낳았다. 전일을 갖을 때 잉어가 구슬을 가슴에 안겨주는 몽을 꾸었다고 한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3 "시집가기 싫어"... 아버지 산소로 도망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4), 2014.06.12</ref>
         전상수는 여러 사업을 크게 벌리다 일이 어렵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갔다. [[한국 전쟁]] 직전이었다. 이소선은 둘째를 임신한 상에서 [[자갈치시장]]에서 지냈다. 1950년 6월 15일 둘째 [[전삼]]을 낳았다. 집도 없이 시장에서 지내다 전상수가 포목점에 취직하여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3137 자갈치시장서 둘째 낳은 소선, 고생은 계속됐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5), 2014.06.12</ref>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장사가 잘 되어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산 적도 있지만 공장을 크게 늘린 일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었다.<ref name="경향30">[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42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0) - 아득한 행복했던 순간], 경향신문, 2009년 3월 15일</ref> 장마철 큰 비에 창고 지붕이 무너져 재료를 모두 못쓰게 된 것이다.<ref name="오마이뉴스1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490 "말짱한 젊은 년이 뭐가 아쉬워 구걸을 다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8), 2014.06.12</ref> 전상수는 점점 술에 취해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일이 풀리지 않아 빚을 지면 가재를 모두 팔아 정리하고 가족을 길바닥에 둔채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017511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7) - 지우고 싶은 남편의 기억], 경향신문, 2009년 3월 10일</ref> 1953년 셋째 [[전순옥]]이 어났다.<ref name="경향30" />
         {{인용문2| 내가 밥을 구해오면 삼이가 이런다. 엄마, 우리 밥은 왜 색깔이 뻘겋고 까맣고 여러 색깔이냐고 물어. 이집 저집에서 얻어오니 콩밥도 있고, 보리밥도 있고 하니 울긋불긋 하지 않았겠냐. 그 말을 들으니 막 설움이 치받아 올라오는 거야. 여기 가슴에서. |이소선<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51755255&code=210000&s_code=af077#csidx9d453f1619bfab5b3362c807fe859ba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4) - 걸식·행상 ‘힘겨운 서울살이’],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전상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남편이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순덕]]이 어났고 전일은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상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가 병약해지자 집안의 살림은 전일이 꾸려야했다. 전일은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신문팔이며 삼발이 장사를 했지만 시원치 않았다. 받아온 삼발이 값을 치뤄야 하는 월말이 되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 전일은 무작정 가출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9174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6) - 전일의 가출],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서울에서 다시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하던 가족은 시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대구의 시댁으로 내려갔다. 전일은 부산까지 떠돌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대구에 왔다. 대구에서 다시 모인 가족은 다시 재봉일을 하며 살았고 정식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전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일은 스스로 쓴 수기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러나 전상옥의 사업은 결국 망했고 다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소선은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전상옥을 보며 절망을 느꼈다. 전상옥이 집을 나가 버리자 남은 가족들은 꼼짝없이 굶게 되었다. 1964년 이소선은 일을 구하기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520 몽땅 굶어죽을 판... 서울로 가자],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4), 2014.06.12</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식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일은 남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삼을 발견하였다. 전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일은 남대문에서 돈을 벌고 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순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이소선은 지인의 집에 남편이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길로 집을 나와버렸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배추 잎을 주워 살며 거지들 틈에서 지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886 중앙시장에서 배추 잎 줍기... 하루 백원벌이 인생],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8), 2014.7.8</ref> 이소선은 중앙시장에서 신임을 얻어 노점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전일은 평화시장에서 월급을 받게 되니 다시 집을 장만하고 함께 살 희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전일은 수제비집에서 우연히 동생 순옥이를 만났다. 전순옥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 올 때 따라 왔다.<ref name="오마이뉴스3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0 일이네 가족, 다시 한곳에 모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0), 2014.7.15</ref>
         [[파일:전일 판잣집.jpg|섬네일|이소선 가족이 살던 쌍문동 208번지 판잣집. 전일이 지었다.]]
         당국은 이재민에게 천막 하나를 주고 [[도봉동]] 개울가로 내몰았다. 이소선의 가족은 [[쌍문동]] 공동묘지 근처 208번지로 이사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2175815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5) - 판자촌에 다시 모인 가족], 경향신문, 2009년 4월 22일</ref> 이소선이 살던 쌍문동 집은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간혹 단속반이 와서 헐고 갔기 때문에 시멘트 블럭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었다가 헐리면 다시 세웠다. 전일은 단속반이 집을 헐며 블럭을 부수면 다시 사야하기 때문에 단속반이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미리 집을 헐어 두었다고 한다.<ref name="경향46">[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317454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6) - 쌍문동 208번지], 경향신문, 2009년 4월 23일</ref> 이 무렵 전일은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었으며 동생 순옥이 만한 어린 소녀들이 퀴퀴한 다락방에서 쉴 새 없이 일하다 폐병을 앓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전일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자세히 말하곤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6185902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7) - 춥고 배고픈 어린 시다들], 경향신문, 2009년 4월 27일</ref>
         전일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 사람이 앉아야 해서 전일은 단속반 때문에 집을 헐었다 지을 때 마다 방을 조금씩 넓혀 지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 /> 쌍문동 판잣집은 1980년 재개발 때 철거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9184720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8)], 2009년 4월 29일</ref> 1969년 6월 남편 전상수는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f name="연표">[http://www.chuntaeil.org/?r=home&c=1/12/18 이소선 어머니 걸어오신 길], 전일재단</ref>
         {{참조|전일}}
         [[파일:이소선 2.jpg|섬네일|전일의 장례식에서 영정을 안은 이소선]]
         {{인용문2|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전일의 유언}}
  • 도영(1996) . . . . 72회 일치
         ||<#FF0133><:>'''{{{#white 별명}}}'''||<(> 도코몽[* 도영+코코몽.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도영이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닮았다는 말이 있어서], 토끼왕자, 도깽, 당근총각[* [[토끼]]를 닮아서 지어진 별명. 당근가게 망한 애라는 별명도 있다.], 또잉[* ‘도영’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따오윈’인 것을 모른 채 자신을 ‘또잉’이라고 소개해서 지어진 별명.], 우동[* “우리 동영이”의 줄임말. 비슷한 경우로, [[재현(NCT)|재현]]은 “우리 재현이” 즉 ‘우재’라는 별명이 있다.], 토평고 6대천왕[* 아이비클럽 일일카페에서 본인피셜 학교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멤버들피셜 멤버들앞에선 1대천왕이라고 한다고..형은 잘생긴 외모덕에 토평고4대천왕 출신.--], 미코[* 미성의 코러스. 뮤비뱅크에서 자신의 키워드로 써서], 도룡[* 도영+공룡. 언뜻 공룡도 닮아서], 왕증이[* 왕 큰데 앙증 맞아서(...) 그런데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하는 별명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왕증이라고 대답했다.], 팩폭남[* 팬들과 밀당하는 밀당남. ~~요정이라는 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 삼청이[* 청순 청아 청초(...)], 직진남[* 형인 공명과 똑같이 직진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 TV프로그램에서 형의 가상 와이프에게 직진질문을 한 것을 보여주었다.], 도영글래스[* 유리잔같이 소중히 다뤄야하는 존재로 가장 잘 삐지는 멤버이다. 용의 전화에 그렇게 저장 되어있다.], 도영왕댜님[* 도영 자신이 정한 별명이다.], 도영임굼님[* SM 할로윈때 임금님 코스프레를 했는데 NCT 나잇나잇에서 임금님보단 유니크하게 임굼님이라고 도영이 바꾸었다.] ||
         루키즈쇼에서 용과 부른 미공개 곡이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곡이 [[https://www.youtube.com/watch?v=5SIOGkxd_B0|Piece of mind]]. 제목이 밝혀지기 전에는 가사에 나오는 단어인 '귓속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은 J.cole의 sideline story의 트랙을 빌려와 그 위에 멜로디와 랩을 붙인 곡으로 용이 연습생 시절 힘들고 지칠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노래였다고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Piece of mind 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루키즈 쇼에서 두 사람이 부른 또다른 곡인 [[https://www.youtube.com/watch?v=HjMaLw-57qw|Switch off(가제:백열등)]] 또한 정식 발매되기를 원하는 팬들이 종종 있다.
         [[일곱 번째 감각]]에서 중간중간 나오는 가성이나 백 코러스를 주로 도영이 담당했다. 재현과 쌍둥이 안무를 이루며[* 실제 무대에서는 라이브를 위해 수정되었다.] 같이 노래하거나, 혹은 재현의 바로 뒤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NCT 127의 소방차 활동은 참여하지 않아 같이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무한적아 때부터 127 정식 멤버로 합류하게 되면서 재현-도영-일로 이어지는 보컬 파트를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무한적아, Cherry Bomb, Chain 등이 대표적인 예.
         127 활동에서는 클라이막스의 고음파트를 일이 주로 맡는 편이라 한동안은 도영의 고음 파트를 보기 어려웠지만 2018년 NCT U Boss 활동에서 클라이막스 고음을 맡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v9bf_dVtXQ|boss 고음 더 올려부른 도영]]
         NCT 2018 Empathy에 랩퍼라인인 용, 마크, 루카스와 함께 참여한 [[https://www.youtube.com/watch?v=gUWDiXBNohY|Yestoday]]에서 장점인 음색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본인이 밝히기를 쏟아내는 랩들 사이에서 보컬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나와야 매력적으로 들릴까를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두개의 랩 verse 사이를 이어주는 좋은 이음새가 될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불렀다고 한다. 마지막 후렴의 Sorry that I walked away는 해외팬들이 특히 좋아하는 부분.
          * 루키즈에 공개되기 전인 2014년 8월 Mnet EXO '90:2014'에서 공개된 [[https://www.youtube.com/watch?v=OJzA6krTUMo|'빛']] 리메이크 음원에 참여하였다. 당시 음원에 함께 참여했던 재현, 쟈니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유타는 이 시점에 이미 루키즈로 공개된 상.
          * 2016년 02월 15일 디자인유나이티드 브랜드 모델로 용, 유타 와 함께 발탁되었다.
         || 2016년 12월 30일 || 너의 목소리 (Sound of Your Heart) || SMTOWN, Steve Barakatt || 너의 목소리 (Sound of Your Heart) || 이동우, 예성, 써니, 루나, 슬기, 웬디, 일, Steve Barakatt와 공동 ||
         || 2017년 8월 7일 || Stay in my Life || 일, 용, 도영 || [[학교 2017]] OST Part 4 || [[https://www.youtube.com/watch?v=4e2DvKk2Z6E|MV]] ||
         || 2018년 01월 30일 || Radio Romance || NCT U(일, 도영) || [[라디오 로맨스]] OST Part.1 || [[https://www.youtube.com/watch?v=RrafLzFwfxE|MV]] ||
         || 2016년 7월 28일 ~ 2016년 9월 22일 || [[엠넷| Mnet]] || [[엠카운트다운]] || 인턴 MC [* 인턴 MC를 하는 6주간 도영은 고정, 공동MC로 NCT 멤버들이 바뀜 7월 28일은 용, 8월 11일은 유타, 18일은 재현, 25일은 마크, 9월 8일과 22일은 제노 ] ||
         || 2018년 2월 22일 || [[Mnet]] || [[엠 카운트다운]] || 스페셜 MC[* 용과 공동] ||
         || SBS 파워 FM 라디오 '''NCT의 night night!''' 스페셜 DJ[* 예능으로 자리를 비운 재현을 대신하여 쟈니와 함께했다. 디제이 애칭은 ‘도디' 용과 하루씩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 2017년 8월 15, 17, 19일 || 오후 11:00~12:00 주파수 107.7MHz ||
          * 2월생이지만 빠른 년생을 치지 않고 만 7세에 96년생들과 같은 학년으로 입학했다. 같은 소속사의 레드벨벳 조이와 동갑내기로 지내고 있으며, [[용]],[[쟈니]],[[유타(NCT)|유타]]에게는 형으로 부르고 있다. NCT는 외국인 멤버들이 다수에 빠른 년생인 멤버도 많아서 그룹 전체가 출생연도대로 호칭을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종아리 근육이 튼튼해서 멤버 [[해찬]]에게 [[https://www.youtube.com/watch?v=t7AI_srMfQY|종아리 몬스터]][* 너무 길다고 최근 [[https://www.youtube.com/watch?v=b1515pa6i1Q|JM으로]] 줄여주었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브이앱 등에서 종아리를 쓰담쓰담 당할 때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일(NCT)|일]]도 도영의 튼실한 다리를 언급하며 몸을 바꿀 수 있다면 도영과 바꿔서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바꾸고 싶은 몸으로 본인 이름이 올라온 걸 보고 기대했던 도영은 이 대목에서 실망을 내비쳤다.--
          * 손가락이 길고 예쁜 편이다. TOUCH 뮤직비디오에서 [[일(NCT)|일]]의 사진을 찍는 장면에 나오는 손의 주인공이 도영이라고. [[https://twitter.com/doyoung__21/status/1011677891447230465|#]]
          >'"왠냐면는... 형이 권도 학원을 다닐 때 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녀서 그래요.'" (내일은 시구왕)
          이 말을 들으면 운동을 전혀 안 배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린 시절 육상부에서 높이뛰기를 했고 [* 물론 그다지 잘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검도도 잠깐 배웠다고 한다. 운동 하나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형과 같은 권도는 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게 검도. 대련보다는 검법 형 수련을 중시하는 해동검도를 배웠는데 안무 외우는 속도가 멤버들 중에서도 빠른 편인 게 이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DJ--멤버--들의 추측이 있기도 했다.[* 본인은 안무를 빨리 외우는 비결에 대해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안무를 빨리 외운다'라고 대답했다.] 다만 커가면서 점점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진 듯하다. 지금은 스스로 운동이랑은 잘 안 맞는 거 같다고 얘기하는 편.[* 엔시티 안무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땡볕에서 땀 흘리는 걸 싫어하고 춤추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 집안에서 막내로 말투나 발음, 행동이 모애교다. ㄴ받침에 ㄴ을 첨가해서 발음할 때가 많은데 "이천넌" "재현니" "미안내" 등. 팬들이 귀여운 말투에 반해 "미안내"를 미안해 대신 사용한다. --십덕 포인트다.-- 라디오 등에서 팬들이 몇번 사연을 보낸적이 있어서 도영 본인도 자신의 말투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 밝히기로는 비염 때문에 그런 발음이 나오는 거라고. 루키즈 시절 ~ 데뷔 초에는 좀 더 심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MC를 볼 때는 의도적으로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거의 그런 발음을 찾아볼수 없으나 아직도 브이앱 등 편안한 방송에서는 귀여운 말투가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_dSpySAVA|ㄴ발음모음]]
          * 학창시절 친구들의 SNS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도영이 요리를 꽤 잘한다고 한다. SNS에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도영이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반찬들이 가득한 밥상이 있다. [* NCT LIFE 한식왕 도전기 1화 자신 있는 한식 만들기 미션에서 닭갈비를 만든 바 있다. --7위--][* 형 공명의 말에 따르면, 엄마 아빠 안 계시면 형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본인 피셜로는 제대로 된 요리는 잘 못하고 금방 해 먹을 수 있는 김치찌개나 볶음밥 같은 생활요리를 잘한다고 한다. 숙소에서도 용, 재현, 해찬과 함께 요리를 주로 맡는 멤버 중 한 명인듯.
  • 김영철(배우) . . . . 68회 일치
         >[[KBS]] 드라마 [[조 왕건]](2000)의 [[궁예(조 왕건)|궁예]]
         '''우리들 마음 속의 영원한 [[궁예(조 왕건)|궁예]]이자 [[김두한(야인시대)|의송 김두한]].'''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종(조선)|이방원]],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남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조 왕건]]'에서는 [[궁예(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남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남자]], [[공주의 남자]],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출연. 그 중 [[위기의 남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반기, 2012년 상반기, 2012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언론통폐합]] 이후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80년대 TV 문학관에서 거의 주인공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선우휘]] 원작의 단독 강화에서는 대사 없는 시체로 나온 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이병주 원작의 변명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프랑스]] 지식인[* 원작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던 블로크 교수의 총살 에피소드이다. 김영철은 여기서 1인 2역으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탁인수와 프랑스 교수 블로크를 모두 맡았다], [[심훈]] 원작의 [[상록수(소설)|상록수]] 주인공,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공 등이다. 체육인 출신이었던 덕에 젊은 시절에는 몸도 좋았던지라 KBS 특집극에서 [[손기정]]을 맡은 적도 있다.[* KBS 1TV에서 82년 1월에 5부작으로 방영했던 '맨발의 영광'이란 미니시리즈이다. 2013년에 작고한 [[강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 손기정의 빛에 가려진 또 한 명의 [[마라톤]] 영웅인 남승룡 선수 역을 했다.] 대하드라마 [[토지(소설)|토지]]에서 김환 역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던 KBS 대하드라마 [[조 왕건]]의 '''[[궁예(조 왕건)|궁예]]''' 시절.[* 궁예가 출연하던 2000년~2001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세대는 1988년생~1994년생이다.] 궁예를 보고 장래희망에 [[미륵]]을 적은 학생도 많다 카더라.[* '애꾸눈 대머리'라는 외모가 [[사가트]]를 연상케 해서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조 왕건]]의 [[궁예(조 왕건)|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이 두 역할은 김영철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기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물론 최고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했던 궁예와는 다르게 김두한 역을 맡았을때는 기존의 인기요소였던 격투, 활극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는 바람에 1부보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였는데 몇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어 현재는 이쪽 김두한이 안재모 김두한보다 더 인기가 좋다.]
         <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반효정]])와 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절,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절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옴 마니 반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절에 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당시 1999년~2000년대 초반에 [[개그콘서트]]로 큰 인기를 얻은 동명이인 [[김영철(개그맨)|개그맨 "김영철"]]의 활약으로 중견 배우 "김영철"로서의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였는데, [[조 왕건]]으로 대부분 중년배우에게 큰 관심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김영철이 누구냐?"고 물으면 "궁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조 왕건' 이후 어떤 새로운 사극이 나와서 다른 배우가 궁예 역할을 한다해도 김영철만큼 할 수 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궁예 = 김영철"이라는 확고한 공식을 만든 그야말로 사극계의 [[레전설]].
         [[야인시대]]에서도 후반기에 명연기를 보였으나, 해방 당시의 김두한은 20대 후반이었는데 김영철은 당시 50에 근접한 나이라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고[* 광복을 기점으로 김두한 배역이 김영철로 교체되는데,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28세지만 당시 김영철 배우의 나이는 만 50세, 연나이 51세였다. 김두한이 사망한 나이보다 겨우 3살 적었다. 그래서 김두한과 동년배 혹은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문영철이나 이정재 등은 훨씬 젊어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김영철 배우의 외모를 젊게 잡아 40세라고 쳤어도 김두한 역으로의 교체는 김두한이 약 40세 정도인 4대 총선 도전때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DTs3S_44w|이 자가 바로 20대입니다 어머니! 뭐,뭐라고?]]-- 후반기 줄거리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방영 당시에는 [[안재모]]가 맡은 청년기 시절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주목은 조 왕건만 못했다. 야인시대의 후반기 방송분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주 시청자였다. 하지만 종영후에는 청년기가 잊혀진반면 후반기는 [[심영물|명언도 더 발굴되고 넷상에서 언급도 더 많이된다.]] 방영된지 10년도 넘게 지났음에도 김영철의 인생 연기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김영철이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인터넷에서는 [[조 왕건]], [[야인시대]],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세 작품으로 개그용 패러디 제조기 배우가 되고 말았다.''' 상당한 내공의 배우였기때문에 연기력은 극찬을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김영철 주역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면서 임팩트가 컸던 세 인물[* [[궁예(조 왕건)]], [[김두한(야인시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로 유명한 강사장.]은 비정상인 성격에 행적도 심할 정도로 황당했기 때문에 현재 합성물 필수요소로 쓰이는 수준. 물론 김영철 입장에서는 연기에 충실한 것이지만 배역 자체가 문제.
         다만 배우 본인은 이렇게 강렬했던 궁예와 김두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조 왕건의 후반부때 휴식을 취하다가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위기의 남자]]에 출연한적도 있고... 연기자는 어찌되었든 평생 연기를 해야하니까 이미지가 한쪽으로 고착되는 것은 사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SdOXX3gMU|뉴스 인터뷰 영상 링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궁예 이미지로 굳어지는게 다소 안타깝다는 뉘앙스로 직접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궁예 캐릭터에 애정도 있었는지 조 왕건 이후 현대사인 [[서울 1945]]를 제외하면 한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2008년 [[대왕 세종]]에서 [[종(조선)|종 이방원]] 역을 맡았는데 그동안 사극 섭외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바로 궁예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86918|#]]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궁예와 김두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만으로 김영철이라는 배우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 본인이 그런 배역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서인석]]도 [[견훤(조 왕건)|견훤]]으로 인해 이후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견훤 이미지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2005년 MBC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 [[전두환]] 혹은 [[노우]] 역할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전두환 역의 캐스팅은 아마도 조 왕건 때 삭발 연기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지만[* 그런데 김영철 특성상 전두환보다는 노우가 더 잘 어울린다. 김영철과 서인석이 포지션도 은근히 비슷해서... 여담으로 우연이지만 김영철과 노우는 같은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같은 시기에 영화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을 촬영할 때라서 무산되었다. 그 대신 --진 [[대머리]]-- [[이덕화]]가 전두환 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실 제5 공화국에 출연한 몇몇 등장배우를 보면, 조왕건에 나왔던 배우들이다. 견훤역의 서인석이 노우 배역으로 출연하고, 아자개역의 [[김성겸]]은 [[최규하]] 배역으로 나온다. 또한 석총역의 [[신충식]]은 신현확 역으로 나온다.][* 여담이지만, 전두환 역할은 특성상 김영철보다는 이덕화가 훨씬 잘 어울리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인다. 거기다가 이덕화는 대머리인지라 전두환 역할에 잘 어울린다.] 조왕건 제작진이 김영철 캐스팅 전에 궁예 역으로 이덕화를 고려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흥미롭다.
         2008년 [[KBS 2TV]]의 [[드라마#s-2|드라마]] '돌아온 뚝배기'에서는 '''뚝배기집 사장'''을 맡았다.[* 김운경 작가가 자신의 대표적인 히트작인 서울 뚝배기를 직접 리메이크 하였으나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종영되었다. 돌아온 뚝배기에서 김영철이 맡았었던 역할은 서울 뚝배기 에서는 [[오지명]]이 연기했었다.] 또한 [[대왕 세종]]에서 종 [[이방원]]을 연기했는데, 여기서는 [[종간]] 역을 맡았던 [[김갑수]]가 [[도승지|지신사]] [[황희]]로 나와 '보스와 최측근'으로서의 인연을 이어갔다.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우연히도 [[대왕 세종]]에서 종 역을 맡은 것 덕분에[* 그런데 2016년 방영한 [[장영실(드라마)|장영실]]에서도 또 종을 맡게 되어서 최초로 종을 두 번이나 맡게 되었다.] 가뜩이나 헷갈리는 두 왕이 더 헷갈리게 생겼다.[* 여담이지만 야사에 따르면 [[세조(조선)|수양대군]]은 할아버지 [[종(조선)|이방원]]을 그대로 빼닮았다고 한다.]
         2014년에도 KBS 2TV의 [[월화 드라마]] [[양은 가득히(2014)|양은 가득히]]에 출연했는데 위에 나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맡은 역할과 비슷한 대기업 회장 '한오' 역할을 맡았다. 딸과 대립[* 착한남자의 '서정규'처럼 말 안 듣는 딸을 속으로는 사랑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이 시한부 환자라 딸을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이 답답해서 초반부터 구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포지션의 대립. '한오'는 자기 사업에 대해서는 냉혈하고 지독하지만, 딸만큼은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사랑하며 길렀는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후반부가 되어서야 자신의 비리와 딸의 과거 연인을 암살하도록 했던 사실을 딸에게 들킨 뒤에도 바로 막지 못하고 조금씩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대립하는 구도.]한다는 점, 부인이 어리다는 점[* [[전미선]]이 재혼한 아내 역할을 했다. 물론 30대인 박시연보다는 덜하지만 전미선과도 20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난다. 극중 나이차이는 실제 배우끼리의 나이 차이보다는 적은 듯 묘사된다.], 여주인공인 딸 외에 아들[* 딸의 이복남동생.]이 있다는 점[* '착한 남자'에서의 아들은 늦둥이라 어린이지만, '양은 가득히'에서의 아들은 성인(후술될 항목에 예능에 같이 출연한 '아들' [[손호준]]이 맡은 역할)이다.], 결국 남자 주인공과 딸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 스토리상 '유사점이 많은 역할'을, '같은 방송국'에서, '같은 배우'가 연기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다른 점도 많기는 하다. 결국 마지막에 감옥만 갈 뿐 드라마 끝까지 살아있는 채로 끝났다는 점에서, 중간에 죽은 '착한 남자'에서의 역할보다는 행복한 역할인 듯.]
         2016년 상반기에 방영하는 드라마 [[장영실(드라마)|장영실]]에 [[종(조선)|종]] 역으로 출연한다. [[대왕 세종]]에 이어 또다시 종 이방원을 연기하게 되었다. 야인시대에서 연기한 배역인 김두한의 실제 외손자 [[송일국]]과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거기에 비슷한 시기 그 앞 시대를 다룬 사극도 있어 [[유아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유아인]] 문서 참조.
         그 후 2017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갑자기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조 왕건)|궁예]]의'''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기침소리]] '''장면과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의 '''[[4달러|사딸라!]]''' 장면이 [[트위치]]를 비롯한 많은 편집영상에서 [[밈]]화 되었다. 그렇게 현재의 저연령층에도 다시한번 인지도를 터뜨린 배우...
  • 김재규 . . . . 68회 일치
         ||<:> '''수상''' || ~~[[대한민국 훈장|충무무공훈장]]~~[* 삭선이 그어진 것은 서훈이 취소되었기 때문. [[2006년]] [[3월 21일]] 정부는 서훈을 취소할 수 있게 개정된 상훈법 규정에 따라 [[전두환]], [[노우]] 전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 및 기업인 174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으며, 10·26사의 주범인 김재규 또한 그 대상에 포함되어 8개 훈·포장을 박탈당하였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38076|기사]] ] [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천수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삼일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국선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광복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통일장~~[br]~~[[대한민국 훈장|청조근정훈장]]~~[br][[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 아지즈 훈장[* 당시 건설부장관으로서 몸소 중동에 방문해 (한국 기업을 통한) 중동 개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획득했다.] ||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반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절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반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우려해서 [[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에는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 앉혔고, 정말 유능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육군 장군은 [[사단장]], [[군단장]] 수준에서 전역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김종오]], [[박병권]], [[민기식]], [[김용배]], [[김계원]], [[이세호]], [[임충식]] 등은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12.12 군사반란 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보여준 추가 워낙 커서 앞의 인물들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김재규도 이런 케이스로, 월남전의 영웅인 [[채명신]] 장군 또한 [[대장(계급)|대장]]을 못 달고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에 제8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 [[최민]]에 대한 조사, 그리고 [[/항소이유보충서|경고]] ===
         >'''[[최민|최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최민]]의 조사를 지시했고, [[10.26 사]]가 발생하기 3일 전 [[최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었다. 이 보고서엔 최민과 [[박근혜]] 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최민의 문란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언론에서 공개한 시점이 2012년 말, 즉 [[18대 대통령 선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직전]]이였기 때문에 당시엔 [[찌라시]] 취급을 받으며 묻혀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위 항소이유서에서 보다시피 '''현재 [[최순실]]이 [[박근혜]]와 함께 기업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40년전 최순실의 아버지 [[최민]]은 박근혜와 함께 부정한 방법으로 여기저기서 돋을 뜯어내었다. 1970년대 아버지가 했던 사기행각을 딸년이 그대로 2016년까지 써먹은 셈이다. 당연히 [[최민]]의 범죄행각을 비판하는 민원이 빗발쳤으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에게 직언을 할 용기를 가진 관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수만이 직언을 했다 핍박받는 실정이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거기다가 김재규의 말이 아예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 최민을 대질시켜놓고 친국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당시 김재규는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으로 의전상 부총리였다. 대통령의 왼팔이 '''일개 사이비 종교인을 고자질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체면을 구긴 일이다. 2017년 기준으로 보자면 [[검찰총장]]이 사이비 교주 하나 기소했다고 대통령에게 친국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이다. 거기다가 김재규가 최민이 저지른 온갖 부정의 입증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오히려 최민(정확히는 박근혜)을 신뢰하는 꼴을 보였다. 이는 김재규 입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모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인 자신보다 어디서 굴러와 영애를 홀린 사이비 종교인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있던 충성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즉, [[10.26 사]]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민]] - [[박근혜]]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겼다. 김재규는 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기며 최후의 순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5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5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BSqOsrVdY3Y?t=12m31s|당시 실제 육성]]
         어쨌든 거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김재규가 이동한 곳은, 엉뚱하게도 중정이 아닌 [[육군본부]]였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암살장소인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부장인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박정희를 죽인 사실을 은폐하고 불순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 국무위원과 장성들을 깨끗하게 속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사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육군본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체포되면서 사를 장악하지 못했다. 김재규가 육군본부로 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순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사건에 대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은 알려진 바와 같이 [[12.12 군사반란]] 때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긴급체포하여 군을 장악하게 되었고, 김재규는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80년 5월 20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박선호, 유성옥, 김원과 같이 사형이 확정되어 기각 4일 만인 5월 24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소수의견으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내란목적이 아니라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단순살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형사3부 판사인 양병호와 서윤홍은 '''[[내란]] 목적이라기에는 암살후 김재규의 움직임이 너무나 어설펐기 때문에 내란을 목적하고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고 그저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본 것'''이며 최종판결 당시 민윤기 등 6명의 판사들이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로 인해 소수 의견을 낸 판사 6명은 신군부의 보복으로 전부 법복을 벗어야 했으며 특히 양병호는 보안사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 훗날 양병호는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당시 판결문은 비공개 처리되어 묻혀버렸으나[* 80도306 판결 참조. 내란죄에 있어서 목적에 대한 인식의 정도는 미필적 인식, 즉 자신의 행위가 범죄발생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상만 되도 행위자가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인해 구성요건이 충족된다. 즉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일 때 국헌문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은 없었으나, 대통령의 사망이 국헌문란을 가져올 것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도 국헌문란에 대한 목적의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소리다.], 훗날 공개되면서 당시 몇몇 재판관들의 용기있는 소수의견들이 밝혀졌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11034|한홍구,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참조]].
         유야무야 하면서 유신이 장기화 되었다면, '''최악의 경우 [[북한]]처럼 반대세력이 모두 숙청되거나 [[중국]], [[싱가포르]]처럼 정도는 덜해도 독재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가 만약 이 상로 정치에 참여하였다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박씨 일가가 다스리는 독재국가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김재규를 긍정하는 사람들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 강신옥, 장호권, 이해학 등이 있다. 보면 알겠지만 주로 교계 사람들로, 민주혁신계 중에서도 약간 보수적인 사람들 쪽이다. [[http://www.nocutnews.co.kr/news/1153519|함세웅 신부는 "김재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79530|효림 스님은 "여러가지 정황 근거로 봤을때 재평가할 가치는 충분하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좀더 시일을 요구할 뿐 명예 회복은 희망적"이라고 보고 김재규의 행적과 뜻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작업에 매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경순왕 . . . . 57회 일치
         |섭정 = [[상대등|상대등 김웅렴 공]]<br/>[[마의자|자 김공]]
         |자녀 = 슬하 8남 3녀 <br/> (장남 [[마의자|자]])<br />(차남 [[김덕지|김황(굉,나주김씨)]])
         |모후 = 계아
         [[신라|신라 김씨]](또는 [[신라|계림 김씨]]) 시조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27세손이며, [[문성왕]]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흥대왕(神興大王)에 추존(追尊)된 [[김효종 (신라)|효종]](孝宗)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계아후(桂娥太后)이다.
         왕후(王后)는 [[죽방부인]](竹房夫人)으로 슬하에 두왕자를 두었다. 첫째가 [[마의자|자]](太子)이고, 둘째가 김황(굉,나주김씨)왕자이다.
         [[935년]] 11월 그는 재위 8년만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군되었다. 또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지고 [[경주시|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는데 그 품위가 [[자]](太子)보다 높았다. 신란궁(神鸞宮)을 하사 받고, [[경주시|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신라 김씨'''(新羅 金氏){또는 '''계림 김씨'''(鷄林 金氏)} 시조 [[김알지]]의 7대손인 미추왕(신라 13대)에 이르러 비로서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알지의 28세손)이 [[935년]] 11월 [[고려 조]] 왕건에게 나라를 손국하기 까지 38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경순왕은 이름이 부(傅)이며,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대아찬]](大阿飡)을 지낸 [[김효종 (신라)|김효종]]이고, 어머니는 [[신라 헌강왕]]의 딸인 계아후이다.<ref>성은 김(金)씨이다. 출처: 한국고대인명사전 - 헌강왕(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73670&cid=42953&categoryId=42953)</ref>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가계는 [[신라 문성왕]](文聖王)-상대등 '김안'(金安)-각간 '김민공'(金敏恭)-추존 의흥왕 '김실홍'(金實虹. 일명 仁慶)-추존 신흥왕 [[김효종 (신라)|김효종]](金孝宗)-경순왕(敬順王)으로 이어진다.
         왕후(王后)는 [[죽방부인]](竹房夫人)으로 슬하에 두아들을 두었다. 첫째가 [[마의자|자]](太子)이고, 둘째가 김황(굉,나주김씨)왕자이다.
         [[931년]] 고려 [[고려 조|왕건]]의 알현이 있었는데, 수십일을 머물면서 왕건은 부하 군병들에게 정숙하여 조금도 범법하지 못하게 하니, 왕경의 사녀(士女)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승냥이와 이리를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고려 조|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ref name="nate01"/> [[고려 조|왕건]] 일행이 [[경주]]를 방문한 어느 날에는 그는 [[고려 조|왕건]]의 손을 붙잡고 [[견훤]] 때문에 살 수가 없음을 하소연하며 통곡하기도 했다.
         [[935년]] 10월에 경순왕은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어짐에 따라,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 하기로 결심하자, [[마의자|자]]와 막내아들 [[김덕지]] 및 이순유(李純由) 등이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경순왕은 이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국서를 보내 [[고려 왕건]]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일설에는 어전에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두왕자는 양국(讓國) 반대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통곡하며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그 길로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마의자|자]](太子)는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을 캐어 먹다가 일생을 마쳤는데 후대에 [[마의자]](麻衣太子)라 부르며, 둘째아들 황(굉,나주김씨) 왕자는 [[화엄종]]에 귀의하여 중이 되어 법수사(法水寺)·[[해인사]](海印寺)에 주석(駐錫)하며 망국의 한을 달랬는데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한다.
         [[935년]] 11월 경순왕이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시켜 항복 국서를 [[고려 조]]에게 받치니 천년([[기원전 57년]] ~ [[935년]])의 [[신라]](新羅)는 멸망했다.
         [[935년]] 11월 [[고려 조]]는 상(太相) 왕철(王鐵) 등을 보내 경순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경순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에게 가는데 향나무 수레와 구슬로 장식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지니, 길이 막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것과 같았다. [[고려 조|조 왕건]]이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영접하여 위로하며,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내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또 [[고려 조|조 왕건]]은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경순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 신란공주(神鸞公主)라 하고, 시호는 효목(孝穆)이라 했다. 아홉째 딸인 '부인 왕씨'(夫人 王氏)도 아내로 삼게 하였다.
         [[935년]] 12월 경순왕을 정승공(正丞公)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하고 위계를 자(太子)의 위에 두고 녹봉으로 1,000섬을 주었다. 또 왕을 모시고 온 관원과 장수들도 모두 다 관직을 주어 등용시켰다. 신라를 [[경주]]로 고치고 식읍으로 삼도록 하고, [[경주]]의 [[사심관]]에 임명하여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고려 조|조 왕건]]도 경순왕의 백부 김억렴(金億廉)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녀가 제5왕후인 [[신성왕후]] 김씨이다. 슬하에 왕욱(王郁)을 두었으며, 왕욱(王郁)의 아들이 고려 제8대 왕 [[고려 현종]]이다.
         이후 경순왕은 첫째딸을 [[고려 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고려 경종|경종]]은 그를 특별히 배려하여 상보령(尙父令)으로 삼고 식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그는 [[고려 조]]부터 [[고려 혜종]]·[[고려 정종|정종]]·[[고려 광종|광종]]·[[고려 경종|경종]]대까지 5대에 걸쳐 살았으며, [[고려 조|조 왕건]]이 죽은 후에도 왕 다음으로 높은 존재로 인식되고 그 영향력이 컸다.
         [[978년]](고려 경종 3) 평흥국(太平興國) 3년인 [[무인년]] [[4월 4일]]에 붕어(崩御)하였다.
         경순왕릉비는 [[1748년]](영조 24) [[연천 경순왕릉|경순왕릉]] 있근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 마을 민가에서 후손 [[경주 김씨]] 김빈(金礗)과 김굉(金硡) 등이 발견한 것으로, 비문 내용은 10여자 정도 남아 있는데 자연풍화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다.<ref name="dk01"/> 이후 한국전쟁 당시 경순왕릉에서 300m 떨어진 고랑포리 시가 지역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73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이전되었다가, [[1987년]] 경순왕릉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크기는 높이 132cm, 너비 65cm, 두께 16cm 이며, 상는 1면만 겨우 남아 10여개의 문자만 판독되고, 내용은 거의 알 수 없다.<ref name="dk01"/>
  • 김태우(god) . . . . 53회 일치
         ||<rowbgcolor=#C0C0C0> [[남궁인]] || → || '''김우''' || → || [[김우(유젝보이)]] ||
         ||<#878787> '''{{{#EEE156 이름}}}''' ||<(> 김우 ||
         라기보다 아이돌답지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 특히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의 메인보컬들이었던 [[강타]], [[강성훈]], [[신혜성]]은 미소년들이었는데 반해 god의 메인보컬인 이쪽만 유독 튀는(...)외모를 지녔다. 또다른 유명한 [[NRG]]를 봐도 이쪽은 메인보컬이 리더이자 맏형인 [[이성진]]인데 이 쪽도 나이가 당시 아이돌 멤버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충분히 잘 생긴 외모다.] 여러 가지로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보통 아이돌은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보컬 멤버라고 해도 키가 190이 넘어버리면 주변 멤버랑 밸런스가 안 맞아서 뽑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박진영은 김우를 메인보컬로 선택했다. 심지어 김우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네 멤버와 같이 연습하던 두 명의 연습생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중의 한 명이 배우 [[김선아]]다. 초창기에는 김선아의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god 멤버인 데니 안부터 부인했었으나 박준형이 1박2일에 출연해 사실임을 인증했다.]
         데뷔한 후 방송 모니터링을 했는데 본인 모습을 보자 멤버 전원 물론 본인도 충격받았다고 한다.[* 데뷔 첫 무대인 [[한밤의 TV연예]]에서의 '어머님께' 무대로 엔딩 크레딧 올라갈 시점에 나왔다.] 우는 건 물론 그 때 당시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당시 god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의 인상은 정말 노래를 잘 하나보다 싶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김우가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때 충격이 컸는지 5집부터는 지금처럼 수염을 기르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그나마 나아지긴 했는데 [[노안]] 이미지가 추가되고 곰 이미지는 더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04년 윤계상이 연기자로 전업(정확히는 그만두려 했다)해서 탈퇴하고 6집, 7집을 4인 구도로 활동하다가 2005년을 마지막으로 god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솔로로 나섰다. 베이스가 탄탄하다보니 솔로 활동도 잘 했고, 여러 가수의 피처링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피처링해준 곡이 본인 곡보다 잘 나간 느낌이 좀 있다. 심지어 [[MC몽]]의 'I love U, Oh Thank U' 같은 곡은 많은 사람이 김우의 노래로 알고 있다.[* 다만, MC몽보다 수록이 늦긴 해도 김우의 개인 앨범 1집 '하고 싶은 말'에도 이 곡이 실려 있으니...]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영과 계약한 상였던 것으로, 박진영이 싸이더스에 김우를 '임대'해 주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상]]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남느냐 박진영과 계약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상]]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컬투]]의 [[정찬우]]가 수색대 부사관 출신인데, 어느날 복무했던 부대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찾아가보니 그가 복무했을 당시 [[대대장]]이였던 분이 김우가 소속된 부대의 [[참모장]]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셋이 같이 술을 마셨는데, 그 분이 하는 말이 "자네가 수색대 나온 덕에 연예계에서 잘 됐잖아. 그래서 내가 김우를 수색대로 보냈다. 하하하."(?!)[* 이 이야기는 2016년에 컬투쇼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어찌되었건 현역 복무(그것도 '''이기자부대''') + 연예병과 고사(固辭)를 한 덕에 [[까임방지권]]을 제대로 득템한 연예인. 사실 원래는 복무 중 연예병사에 지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포기했다. 당시 연예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일종의 면접으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갔는데, 먼저 근무하던 나이 어린 연예인 후배 선임이 군대식으로 서열을 잡는답시고 한 깐깐한 행동들로 인해 열받아서 연예병사를 고사하고 말았다고. 금방 몇몇 동료들이 진상을 털어놓긴 했으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훗날 김우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갔을 때 그 후배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연예계 활동 중에 내 눈에 띄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정작 이 말을 한 본인은 이후 그 행동을 되돌아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후배와 또 만났는데 그 후배가 '미안해요. 그때는 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저희가 총대 멘 겁니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며 김우는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질이 문제다--
         그래도 근본은 가수였던지라, 비록 연예병사는 아니었으나 2008년 31사단에서 진행하던 국군의 날 행사에서 노래는 불렀다. [[사열]]날엔 가만히 있더니, 행사 당일 "이기자! 상병 김우, 금일부로 진급했습니다! 병장 김우입니다!"라고 자길 소개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김우 뒤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이병]] [[성시경]]. ~~성시경도 키가 있으니 곰이 두 마리~~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백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영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우 본인도 "군대에 남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상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반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2009년 2월 25일 제대 후 그 해 9월 3일 EP 'T-Virus'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타이틀곡은 '[[사랑비(김우)|사랑비]]'. 곡도 세련된 멜로디와 김우의 목소리와 창법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고, 또 앨범 전체적으로도 [[박진영]]의 느낌이 아닌 김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은 앨범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190cm이 넘는 키로 곡과 잘 매치되지 않는 ~~군인 냄새 나는~~ 춤을 추는 바람에 '춤만 좀 빼달라'는 부탁을 많이 들었음에도 꿋꿋이 춤을 췄다. ~~god 때도 춤은 못 췄다~~[* 김우는 춤을 못추지 않고 오히려 잘 추는 편이다. [[문희준]]도 [[20세기 미소년]] 방송분에서 김우에게 "190 넘는 사람 중에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평가해준 바 있다.]
         2011년 3월 29일 정규 2집 앨범 'T-School'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메아리'.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2009년에 발매했던 '사랑비'보다는 뭔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비'의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기대치가 높았던 데다 이 시기 [[8eight|이현]], [[휘성]], [[케이윌]] 등의 남자 솔로 가수들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탓에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저 세 가수의 경우는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들과 비교할 때 부족해 보일 뿐, 타이틀곡 자체는 음원 사이트에서 [[씨엔블루]]나 [[걸스데이]], [[포미닛]] 등 아이돌들 사이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꽤나 선전했다. 또 앨범의 수록곡 'Brothers&me'는 [[박진영]]과 [[비(연예인)|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타이틀곡 '메아리'의 뮤직비디오에서 김우의 1인 2역 연기를 볼 수 있다... ~~곰 두 마리가 한 집에 있어!~~
         2012년 11월에 출연한 고쇼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직 중인 연구원인 아내를 "서울대 박사"라고 지칭한 부분을 두고, 몇몇 네티즌들의 학력위조 드립이 있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이대 대학원 생명공학부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가 아님에도 '서울대 박사'라고 칭한 것을 문제시한 것. 하지만 [[청춘불패]]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우 자체가 상식이 뚜렷한 편이 아니서 생긴 불찰. 일반적인 [[학력위조]]와 달리 학력을 사칭하여 이득을 꾀한 것도 아니다보니, 딱히 큰 논란은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말부터 소속 가수인 메건 리와 계약 해지를 둘러싼 마찰이 일어났다. 메건 리는 미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면서 소울샵측과 계약 해지를 주장했고, 길건은 메니징 소홀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김우 처가 쪽 인물들의 경영 간섭. 오히려 이들은 김우 [[본인]]에 대해서는 불만 없다는 식으로 밝힌 것으로 봐서는 본인의 [[인성]]은 원만한 모양.
         [[청춘불패 시즌1]] 초반에는 막 전역한 참에 여자 아이돌들과 방송을 하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으며 [[유리(소녀시대)|유리]]와 러브라인을 엮으려는 시도도 계속 됐으나, 막상 그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던 것은 당시 신인으로서 방송 분량이 아쉬웠던 [[한선화]]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자 아이돌이다 보니 웬만큼 힘든 일은 전부 김우의 몫이 되어 제대하고도 여전히 삽질, 망치질, 곡괭이질 등등의 작업이 떠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의자왕]]의 꿈을 품고 시작했지만 결국 [[곰|곰우]]로 끝난 방송.
         1인으로 3차 도전을 한 490회 방송에선 상금을 타면 후배의 뮤직비디오 제작비에 보탠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 인터뷰 때 중학교 시절 당시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던 [[김제동]]에게 "가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 독기를 품어 노력을 한 끝에 가수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데뷔 이후 김제동이 "우야,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김제동에 "형은 안돼요!"라고 받아쳐 [[역관광|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체를 숨겨줘야 할 김성주 역시 ''''감싸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라면서 대놓고 포기했다. 김구라가 성시경 드립을 치자 맞장구를 쳐주면서 다시 능청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포인트. 심지어 결승전에서는 상대 출연자가 정체 들키면 떨어지는 거 아니냐니까 본인까지 룰을 헷갈려서 다시 물어보는 장면도 있었다. 정체를 드러낸 뒤에는 세 아이를 갖고 난 뒤 살이 쪄서 노래가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살을 25kg나 뺐다고 하며[* 그것 때문인지 판정단인 김구라가 1라운드 상대인 [[쿵푸하는 팬더]]를 김우로 생각했다.] 2라운드에서 판정단인 이승철이 '가수에게 목소리는 지문과 같다'는 말에 감명받아서 더 열심히 노래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 문무왕 . . . . 46회 일치
         |부왕=[[종무열왕]]
         |이전 왕=[[종무열왕]]
         [[종 무열왕|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나당 전쟁]]에서 격퇴함으로써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왕후는 파진찬 [[선품공|김선품]]의 딸 [[자의왕후]]이다.
         {{출처|[[661년]]부터 [[68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61년부터 [[678년]]까지 친정하였고 [[676년]] 아우 [[김인문]](金仁問)이 잠시 [[권력|실권]] 탈취 기도를 한 바 있으며 678년부터 681년 붕어할 때까지 아들 [[신라 신문왕|김정명]](훗날 [[신라 신문왕|신문왕]])이 [[왕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날짜=2018-06-28}}
         《[[삼국사기]]》는 왕이 [[681년]]에 승하했다고만 했을 뿐 왕이 언제 어났는지, 사망 당시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문무대왕비』에 따르면 왕이 승하할 당시의 나이가 56세였다고 하는데,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문무왕의 생년은 [[진평왕]] [[건복 (신라)|건복]] 43년([[626년]])에 해당한다.
         {{Cquote|어느 날 김유신의 맏누이인 [[영창부인|보희]](寶姬)가 서형산(西兄山)<ref group="주">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의 [[선도산 (경북)|선도산]](仙桃山)</ref> 꼭대기에 올라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온 나라 안에 흘러 펼쳐지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잠에서 깬 뒤에 동생인 문명왕후에세 꿈 이야기를 했다. 문명왕후는 자신이 언니의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며 비단치마를 주었다. 며칠 뒤에 김유신이 뒷날 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金春秋)와 축국(蹴鞠)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김유신은 자신의 집으로 김춘추를 데리고 와서는 주연을 베풀며 맏누이인 보희에게 옷고름을 달게 했다. 하지만 보희는 마침 일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고 동생인 문명왕후가 대신 나와서 바느질을 하였다. 김춘추는 그녀의 어여쁜 모습에 반하여 곧 청혼을 하여 결혼하였고, 그녀는 곧바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뒷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金法敏)이다.|《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
         [[진덕여왕]] 4년([[650년]])<ref group="주">[[진덕여왕]] 4년부터 [[신라]]의 독자 연호가 아닌 [[당나라|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ref>에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당 고종|고종]]에게 〈[[한국의 삼국시대 시가#치당평송|치당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법민에게 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1">《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661)</ref> [[655년]] 자로 봉해졌다.<ref name="삼국사기-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2년(655)</ref> [[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멸망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종 무열왕 7년(660)</ref> 이어 [[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원년([[661년]]) [[6월]] 상중(喪中)이던 문무왕에게 당은 [[고구려]]를 치는 당군과 [[웅진도독부]]에 고립된 당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신라]]가 [[백제]] 부흥군(復興軍)을 진압하는데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해왔다. 평양으로 먼저 군량을 보내면 웅진으로 통하는 물자 수송로가 끊어질 것이고, 그 수송로가 끊어지면 [[웅진도독부]]의 당군들은 [[백제]]군에게 궤멸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왕은 8월에 직접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시이곡정(始飴谷停)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대전 계족산성|옹산성]](甕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백제 부흥군을 9월 25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해 27일에 함락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1"/>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웅현성(熊峴城)을 쌓아 [[웅진도독부]]로 통하는 군량수송로를 다시 개통시킨 뒤, 상주(上州) 총관(摠管) 품일(品日)과 일모산군(一牟山郡) 수 대당(大幢)·사시산군(沙尸山郡) 수 철천(哲川)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우술성]](雨述城)을 쳐서 또 함락시키고, [[10월 29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당의 조문 사절을 맞이했다. 한편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소정방]]이 보낸 함자도(含資道) 총관(摠管) 유덕민(劉德敏)<ref group="주">《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대감(大監) 문천(文泉)이라 표기됨</ref>이 와서 문무왕에게 당군에 대한 군량 지원을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1"/> 왕은 이듬해 1월 [[김유신]]으로 하여금 수레 2천여 대에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이들 군은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고 귀환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2">《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2년(662)</ref>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남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백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반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7년([[667년]]) 7월에 3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고, 당에서는 신라의 장군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장군으로 발탁하고 대아찬 일원(日原)은 당의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는데, 문무왕은 지경과 개원에게 각각 파진찬과 [[대아찬]]의 관등을 주고, 일원을 운휘장군으로 명한다는 고종의 칙명은 왕궁 뜰에서 받도록 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7년(667)</ref> 또한, 같은 달 고종은 유인원과 신라의 [[종무열왕#가계|김인]](金仁泰)에게 명하여 비열성(卑列城)<ref group="주">지금의 [[강원도]] [[안변군]]</ref>의 길을 따라, 신라 병사를 징발해 다곡(多谷)·해곡(海谷) 두 길을 따라 평양으로 모이도록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 가을 8월에 문무왕은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 9월에는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해 이적(李勣)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렸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신라군은 당군을 배제한 단독 작전수행 대신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배를 계속 띄워 당군의 동정을 살폈고, 당군이 아직 평양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고 먼저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먼저 고구려로 갈 길을 뚫기로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하지만 칠중성을 치기 전, 겨울 10월 2일에 평양성 북쪽 2백리 지점에 도착한 이적은 신라측 이동혜(尒同兮) 촌주(村主) 대나마 강심(江深)에게 부쳐,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칠중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곧바로 평양으로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신라군은 칠중성 공격을 포기하고 수곡성(水谷城)으로 향했지만,<ref name="삼국사기-671"/>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을 때 이적은 어느새 돌아가버렸고, 신라군도 그냥 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7"/> 12월에 당은 다시 웅진도독부의 유진장군(留鎭將軍) 유인원을 보내어 고구려 정벌을 돕게 하면서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정절(旌節)을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7"/>
         8년([[668년]]) 2월 [[이세적|이적]] 등이 이끄는 당군이 고구려의 [[부여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연남건|남건]]이 5만의 군사로 그 땅을 수복하려 애썼지만 설하수(薛賀水)에서 3만 명이 죽는 대패를 당하고 퇴각했다.<ref name="고구려-668">《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668)</ref> 3월에 신라는 북방의 요충지였던 비열홀(比列忽, 비열성)에 주를 설치하고 파진찬 용문(龍文)을 총관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8">《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668)</ref> [[6월 12일]]에{{refn|group=주|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인궤가 신라군과 함께 평양으로 간 것이 5월이라고 기록돼 있다.<ref name="삼국사기-671"/>}} 당의 우상(右相)<ref group="주">정확한 관직명은 요동도안무부대사(遼東道安撫副大使)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 겸 웅진도안무대사(熊津道安撫大使) 행군총관(行軍摠管) 우상(右相) 검교자좌중호(檢校太子左中護) 상주국(上柱國) 낙성현개국남(樂城縣開國男)이다.</ref> 유인궤가 당 고종의 칙명을 받들고 신라의 숙위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자 왕은 [[각간]] 인문을 보내 성대한 예식으로 맞이하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에 유인궤는 약속을 마치고 신라의 선발군을 이끌고 고구려 땅인 천강(泉岡)으로 향하고, 문무왕 역시 [[6월 21일]]에 한성주에서 후발부대를 사열했다. 이때 신라군의 주요 장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ref name="삼국사기-668"/>
         | '''비열도총관(比列道摠管)''' || 이찬 김인(金仁泰)
         [[7월 16일]]에 한성에 도착한 왕은 여러 총관들에게 당군과 회합할 것을 명했다. 한편 비열성주행군총관 김문영 등은 사천(蛇川)의 벌판에서<ref name="삼국사기-668"/> 고구려의 [[대막리지]] 남건이 거느리고 온 군사와 충돌했는데, 함께 있던 당의 번병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와중에 김문영의 신라군은 앞으로 나서서 고구려군과 맞서 크게 이겼고, 신라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 난 다음에야 당병은 겨우 고구려군과 싸웠다고 한다.{{출처|날짜=2018-06-27}} 이 사천에서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대당소감(大幢小監) 본득(本得)은 훗날 문무왕에 의해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은상으로 받았고, 전사한 한산주소감(漢山州小監) 김상경(金相京)도 그와 준하는 상이 내려졌다. 다만 아술(牙述)의 사찬 구율(求律)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을 건너가서 적과 싸워 크게 이겼음에도, 군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험한 곳에 들어갔다 하여 포상에서는 제외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상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도를 보였고, 이적의 도가 신라 군영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상 신라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온 문무왕은 [[10월 22일]]에 논공행상을 벌여 서라벌에 남아있던 김유신에게 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와 식읍 500호, 궤장을 하사하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에게도 각각 위계 한 등급씩을 올려 주었다.<ref name="김유신-하"/> 또한 인문을 대각간, 다른 이찬과 장군들을 모두 각간으로 삼고 소판 이하에게는 모두 관위 1등급씩 더해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10월 25일]]에 왕은 욕돌역(褥突驛)에 이르러 국원사신(國原仕臣) 용장(龍長) 대아찬에게 사적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천 명을 포로로 거느리고 [[11월 5일]]에 서라벌로 들어온 왕은 다음날 문무 관료들과 함께 선조묘에 전쟁이 끝났음을 고하고, [[11월 18일]]에는 전사자들의 신분에 맞춰 부의(賻儀)를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68"/>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상이었던 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백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Cquote|과인은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전란의 시기를 맞이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능히 영토를 안정시켰고 배반하는 자들을 치고 협조하는 자들을 불러 마침내 멀고 가까운 곳을 평안하게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위로하였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두루 상을 주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벼슬에 통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살게 하였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줄여주니,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이 풍족하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언덕과 산처럼 쌓였고 감옥에는 풀이 무성하게 되니, 혼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관리와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스스로 여러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고 힘쓰느라고 다시 심한 병이 되었다.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았고 오랫동안 자의 자리에 있어서,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부터 아래로는 뭇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임금을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나라 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위(魏)나라 임금의 서릉(西陵)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남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10일 뒤에 곧 고문(庫門) 바깥의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진(城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자는 시행하도록 하라.|《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21년(681)}}
         * 부왕 : [[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4년]]~[[661년]]) - 신라 제 29대 왕
  • 은혼/613화 . . . . 44회 일치
          * 드디어 밝혀지는 하타 황자의 어두운 과거사--누가 그런걸 바래--
          * 충격적이게도 엄청난 꽃미남으로 살고 있던 하타 황자는 왕위를 빌미로 일어난 정쟁에 휘말며 형과 헤어지고 만다.
          * 가츠라 고타로는 하타 황자를 인질로 잡아 그의 행성과 지구간의 동맹을 체결, 해방군의 이목을 돌리려 한다.
          * 이마에 외설물을 달고 살아가는 오우고쿠별 사람들. 과거 하타 황자는 왕위를 둘러싼 정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왕이 병에 걸려 언제 붕어할지 모르는 상황. 왕궁 오우고쿠성에선 왕위 계성을 놓고 두 파로 갈라져 지저분한 당파 싸움을 벌인다. 이에 오우고쿠 왕이 가신들을 불러 두 파벌을 화합시키고 후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 지금도 하타 황자를 따라다니는 영감, 그의 이름은 네스로 젊은 시절 하타 황자를 옹립하려는 파벌의 리더였다. 이 무렵은 제법 이지적인 이미지였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책맞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네스의 파벌은 오우고쿠왕이 하루라도 더 옥좌에 있길 바란다면서도 하타 황자가 온갖 생물을 애호하는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점이 자신들을 이끌어준다며 은근히 하타 황자를 앞세운다. 지금은 그 모양 그 꼴이지만 놀랍게도 이 시절의 하타 황자는 꽃미남에 탈모도 없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세월--
          * 반대 파벌은 하타 황자의 형 바루카스 황자를 옹립하려 한다. 그들의 대표인 단이란 신하가 네스의 발언을 비웃으며 "그런건 왕에 어울리는 소질이 아니다."라고 디스한다. 군략도 정치도 능한데다 장남이기까지 한 바루카스야 말로 후계자에 적합하다고 강변한다. 그 말대로지만 정작 오우고쿠왕은 바루카스에게 승계한다고 명언하지 않았다. 단은 이 점을 따지는데 네스가 그를 비웃는다. 바루카스의 재능이야 네스도 인정하는 바지만, 그에겐 단 한 가지 결점이 있다.
          * 그렇다. 오우고쿠 행성은 수컷의 상징인 이마의 외설물... 아니 "치당네쿠스코"란 기관, 줄여서 "칭코"의 크기야 말로 남자의 가치이자 인격의 척도로 통했던 것이다. 다른게 다 별로여도 칭코만 크면 굉장한 사람이고 하다못해 택시라도 칭코가 큰 쪽이 잘 잡는다. 단도 작은 편이지만 황자인 바루카스야 말로 정말 눈물나게 작은 칭코의 소유자였다. 이 점이 후계자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 신하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사이 왕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다. 숨도 가빠지는데 아무래도 눈 앞에서 신하들이 이런 키배질이나 하고 있으면 암이 발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오우고쿠왕은 각혈하고 쓰러진다. 신하들은 정신없는 병림픽 탓에 뒤늦게 깨닫고 왕의 주위로 모여든다. 왕의 상를 보아 가망이 없다 여긴 것인지 이와중에도 칭코가 큰 쪽과 작은 쪽, 어느 쪽이 왕위를 이어야겠냐고 묻고 자빠졌다. 죽어가던 오우고쿠 왕은 마지막 기력을 짜내 말한다.
          * 문제의 두 황자는 선왕의 묘 앞에 모인다. 아버지의 유언을 곱씹으며 바루카스는 자신의 형이며 모든 것을 갖췄던 남자, 드라고니아 황자를 떠올린다. 결국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그를 잊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는 일찍이 구룡공자라 불린 호걸로 5세에 그 칭코가 마치 용의 수염처럼 길었고 재능은 용의 뿔처럼 하늘을 찔렀던 천재였다. 회상에 나오는 것도 일단은 5세 버전인데 칭코만 큰게 아니라 여러가지가 다 크다.
          * 씁쓸하고 하드보일드한 과거의 사건. 하타 황자는 형님의 기억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더럽게 한심한 현실이지만. 가츠라 고타로에게 인실로 잡힌 현실의 하타 황자.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가츠라는 다음엔 기절로 안 끝난다고 협박하며 이쪽으로 향한 총구를 치우라고 한다. 가츠라는 이런 난세에도 지구의 동물을 지키려고 방주까지 가져온 점에 감탄한다. 하지만 지구엔 그가 감당 못할 맹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라며 그의 목숨을 담보로한 교섭을 시작한다.
          * 그의 발언을 듣고 하타 황자와 그 부하들은 물론 무전으로 상황을 전해듣던 자작 제독과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까지 경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우고쿠 행성과 지구의 동맹. 하지만 사카모토 조차 이런 상황에서 가능할리 없다고 여긴다. 그 멍청한 하타 황자도 고작 지구인들을 위해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란 소리냐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가츠라는 단지 동맹이 되라는 거지 싸우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노리는건 해방군이 "설마 지구에도 동맹이 있었다니"하고 동요하는 것. 일시적으로 해방군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대로 달아나든 말든 상관없다. 일시적으로 생긴 틈으로 해방군 본부를 단숨에 점령, 전쟁을 멈춘다는게 카츠라의 구상이다.
          가츠라는 지구의 종 전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 말하는데 하타 황자는 "까딱하면 종 하나가 사라지는 방법"이라고 아우성 친다. 자신은 그저 컬렉션이나 채우러 온 건데 누가 이런 들개를 들였냐고 악을 쓴다.
          * 잠자코 있던 영감, 네스가 "당신 지시"라고 말하다 "멸종돼도 좋은 종이란 보호해야 하는 종도 구분 못하냐"고 욕을 먹는다. 빈정이 상한 네스는 알겠다며 "거기 흰 돼지랑 상위비비를 함께 없애라"며 답지 않게 하드보일드한 자세로 명령한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며 한순간 생긴 권력에 취한다. 그는 지금 황자의 목숨을 쥐고 있는건 자신이라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대답 안 하냐 돼지"라고 갈구고 하타 황자가 "꿀꿀"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하자 "저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돼지를 연기하며 자신과 상위비비를 쏘라는 의미"라고 갖다 붙인다. 이 양반 어떻게든 하타 황자를 치워버릴 생각이다.
          * 네스가 서있던 창살 쪽에서 누군가의 손이 뻗어나온다. 네스는 황자가 당한 것처럼 목을 조여진다. 마다오 하세가와 다이조의 부활. 생각지도 못한 역습이다.
          * 상황이 완전히 꼬여버리자 네스도 돼지처럼 소리지르며 아우성친다. 네스는 황자가 "복수"[* 하타 황자가 첫 등장했을 때 마다오한테 쳐맞았다.]한답시고 이런 녀석을 주워오니까 이렇게 된 거라고 원망한다. 황자는 황자대로 꼴좋게 됐다고 서로 디스하고 쏴죽이라고 명령해댄다. 부하들은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총에 맞는다.'''
          칭코가 작아 설움 당했던 신하 단은 이 방주에도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나타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에 사격을 가한다. 정말로 황자까지 죽이려 들어서 가츠라와 마다오가 황자완 네스를 놓아준다. 총격은 당연히 가츠라 측에도 향하는데 엘리자베스가 몸을 날려 가츠라는 무사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한다. 하세가와는 가까스로 총알을 피한다.
          무전으로만 상황을 듣던 사카모토는 총성을 듣고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지금 가츠라 측은 대답할 겨를이 없다. 함께 듣던 자작 제독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빛낸다. 완전히 꼬인 것 같았던 상황이 한 번 더 꼬인다. 단은 바루카스 황자가 추방 당했을 때부터 반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타 황자가 인질로 잡힌 건 그야말로 호기. 단은 바보같이 칭코만 큰 녀석들을 구축하고 "작은 칭코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한다. 하타나 네스 같은 무리에게 나라를 맡기면 당연히 망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지구와 동맹을 해버리면 나라는 커녕 행성이 망할 기세. 그는 시간에 맞춰 반역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만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라며 쓸데없이 큰 칭코와 함께 사라지라 말한다.
          그런데 단은 곧바로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 그는 하타 황자에게 한 가지 물어볼게 있다며 바루카스도 추방하고 나라도 엉망으로 만든 주제에 어째서 "아직도 황자로 남아있는지", 왜 왕위를 잇지 않고 있는지 말하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있는거 없는거 다 불어버릴 법도 한데 왠지 하타 황자는 무겁게 침묵한다.
          * 침묵을 깨뜨리는 무전. 가츠라의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바루카스가 하타에게 작별을 고한 그때. 하타 황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 이지아(배우) . . . . 43회 일치
         || '''데뷔''' ||<(> [[2007년]] [[MBC]] 드라마 '[[왕사신기]]' ||
         || '''가족''' ||<(> 조부: [[김순흥]][br]형제자매: 1남 3녀 중 [[3녀|셋째]][* 남동생은 본인과 성이 같으며, 위로 두 언니는 성이 다르다고 한다. 즉 [[이부형제]].][br]前 배우자: [[서지]](1997년 ~ 2006년)[[http://www.youtube.com/watch?v=opEBfpCcdtM|#]] ||
         [[2004년]] [[배용준]]과 함께 [[LGU+|LG텔레콤]] CF 촬영으로 연예계에 들어왔으나 후속 활동이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왕사신기]]에서 수지니 역으로 데뷔. 큰 배역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때의 모습이 [[칼리(그라나도 에스파다)|칼리]]의 컨셉이 되었다.
         일단 [[왕사신기]]라는 대작의 주조연급으로 데뷔했는데, 대다수의 연예인이 단역을 전전하면서 겨우겨우 조연을 잡아 올라가는 것에 비해 단 한 번에 주조연 역을 따냈으면서도 단역 경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지아의 배경에 대한 구설수가 있었으며, 특히 배용준[* 당시 이지아가 소속 되었던 엔터테인먼트사는 키이스트. 배용준 역시 키이스트 소속이면서 동시에 최대주주이다.]의 패키지 출연[* 인기있는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를 묶어서 출연계약을 맺는 것. 제작사 측에서는 흥행력이나 지명도 있는 배우를 기용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지아에게 있어 평생 짊어가야 할 짐이자, 그녀의 활동에 있어 발목을 잡는 굴레[* [[서지]]와의 결혼 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이거 하나 때문에 국내에서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비호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덕망 있는 가문이니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이지아도 해외에 유학가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자랑 언플질을 한 것은 쉴드 불가능이라 그야말로 가루가 되듯이 까였다. ~~[[서지|전 남편]]은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파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자기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사진 자작극에 이어 또다시 병크 적립~~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이긴 하다.
         === '''정우성과의 열애와 서지와의 이혼''' ===
         2011년 4월 21일 [[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5025394|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식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웬만한 스캔들에는 반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15년 전의 복수~~ '믿을 수 없어''서지와 이지아라니!'말부터 '애도 2명이나 낳았대'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지와 아이들이 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96년 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97년 결혼. 당시 혼인신고에서는 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상은으로 나와 있었다. [[서지]]와 부부로 산지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니라 위자료 청구소송.
         2011년에 했던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으로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남으로 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어쨌든 그녀와 연관성이 짙은 남자만 해도 [[서지|한국 굴지의 대중 뮤지션]], [[배용준|전설적인 한류 탤런트이자 사업가]], [[정우성|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남 배우]]이다.
         소송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 모 재벌의 황혼이혼사건에서는 1000억 청구해서 50억, 즉 5% 받았다.] 설령 다 받아낼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을 숨겨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상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신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고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지가 빠른 속도로 재혼을 하면서 서지가 재혼을 위해 먼저 이지아에게 정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설이 신빙성있게 돌고있는 상. 이지아에게도 한국에서의 연기생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털어내야할 문제이기도 했고...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남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비판론을 뒷받침하는 의견으로는, 서지는 자신의 글에서 누구를 저울질하고 잘못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지만 이지아는 자신이 피해자인마냥 행동[* 게다가 당시 그녀가 보였던 언행들 중에는 거짓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다소 있다]한 것이, 사랑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디 있느냐며 추억을 짓밟은 사람이라고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조용히 비밀로 묻어두었던' 추억을 짓밟은 게 가장 나쁜 짓이었다는 게 대부분의 여론.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뒷말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 라든가 '비공식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
         97년 결혼 이후 "서지의 비공식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00년에 이미 별거(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생활보다 소송기간이 더 길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서지의 행동이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며~~[* 하술된 기사 내용에 이 부분은 사실상 거짓] 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 [* 서지 측에서 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하니.
         그러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결혼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디스패치]]의 [[http://www.dispatch.co.kr/107147|반박 기사]]가 나왔다. 디스패치가 네바다 등기소까지 뒤져서 취재한 결과 결혼식의 증인이 다름아닌 이지아의 이복 언니였다는 것. 이는 “양 측이 동의를 했고 많은 지인들은 두 사람의 교제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지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확인된 이지아의 교통법규 위반 사실이나 쇼핑, 가족 왕래 증언 등으로 볼 때, 결혼생활에 자유가 없었다는 이지아 측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애꿎게 덤터기를 쓰게 된 이유는 역시 '''[[정우성]]'''. 옹호/비판이 대립하는 서지, 이지아 측과는 달리 이쪽은 절대적인 동정을 받고 있는 처지다.
         15년 전(1996년 11월 20일) [[스포츠서울]][* 그런데 15년 후에 이혼기사를 가장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도 '''스포츠서울'''이었다.--15년을 벼르고 별렀다-- --15년? [[JTBC]]는 [[언론통폐합|30년을]] [[동양방송|별렀는데]]--]에서 이 진실을 보도한 적이 있으나, 당시는 오보취급 당하고 묻혔다. ~~15년 묵은 성지~~ --[[맨 인 블랙]]-- --[[서지|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 식으로 본의 아니게 정의구현을 당하고 있는 [[신은경(배우)|신은경]]--
         2007년에 이지아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은 적이 있는데, 허리춤에 수놓아진 자수를 두고 'Leejiatoes'--이지아 발가락--라고 해석해 이것을 거꾸로 읽으면 seotaijeeL이 된다는 설이 퍼졌으나, 소속사에서 이 글자는 'irresistible'이라고 밝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irresistible이 맞는다.[* '저항 할 수 없는' 이라는 뜻과 함께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이라는 뜻도 있는 단어다][* ~~그런데 irresistible은 2004년 발매된 서지 7집 issue의 앨범커버에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에, 본인은 힘든 기간을 가졌다고 하면서 여전히 서지를 따라다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였다.~~ 앨범커버 왼쪽 하단에 잘려져서 쓰여져 있고, irresistible이라는 단어 자체가 흔하게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는 그냥 끼워맞추기식 추측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김보름 . . . . 37회 일치
         보름달이 뜬 날 어나서 이름이 '보름'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1">{{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10117.010260730400001|제목=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 정화여고 김보름|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2010년 12월 2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남녀 종합빙상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17-덕정고)이 4분21초18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고 김보름(17)이 4분22초30을 기록 뒤를 이어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201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tnsport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제목=[빙상] 이승훈, 빙상선수권대회 5000m 우승...아시안게임 출전권 획득 - STN|언어=ko|확인날짜=2017-03-05}}</ref>
         2011년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고등부 3000m에서 1위는 대회신기록인 4분17초42의 박도영(덕정고)이 차지했고 2위는 대회신기록인 4분22초21의 김보름이 차지했고 3위는 4분24초04의 임정수(청학고)가 차지했다. 1500m에서는 1위는 대회신기록인 2분4초37의 박도영이 차지했고 2위는 2분5초49의 김보름이 차지했고 3위는 2분7초16의 임정수가 차지했다.<ref name=":4">{{저널 인용|제목=제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 스케이팅|url=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A0%9C92%ED%9A%8C_%EC%A0%84%EA%B5%AD%EB%8F%99%EA%B3%84%EC%B2%B4%EC%9C%A1%EB%8C%80%ED%9A%8C_%EC%8A%A4%ED%94%BC%EB%93%9C_%EC%8A%A4%EC%BC%80%EC%9D%B4%ED%8C%85&oldid=8386539|날짜=2012-03-11|언어=ko}}</ref>
         2012년 2월 16일 서울 공릉동 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대학부 3000m 결승에서 김보름(19)은 4분18초11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17일 열린 1500m에서도 2분05초로 우승한 김보름은 대구-경북 동계체전 선수 중 유일한 2관왕 타이틀을 획득했다.<ref name=":5">{{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218.010200737070001|제목=대구경북 유일한 2관왕 ‘빙속 스타’ 김보름 “소치올림픽 금메달도 꿈만은 아닐 것”|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8}}</ref>
         2012년 11월 4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8초60으로 박도영(4분21초18-한국체대)과 임정수(4분25초23-한국체대)를 여유있게 제치고 대회신기록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6일 열린 1500m 경기에서도 김보름이 2분02초98로 역시 한체대 출신인 노선영(2분05초00-용인시청)과 박도영(2분05초71)을 꺽고 대회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6">{{웹 인용|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799136|제목='빙속 질주' 스피드스케이팅 시즌 시작됐다|날짜=2012-11-07|확인날짜=2017-03-10}}</ref>
         2012년 12월 22, 23일 이틀간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과 박도영이 각각 170.241점과 174.147점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30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4분16초19의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 중간합계 선두에 올랐다. 23일 1500m와 5000m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2일 열린 500m에서 남지은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 1위에 오르며 대회신기록으로 우승을 확정지어서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중국 창춘에서 펼쳐지는 2013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8B%A4%EC%8B%9C-%EB%B3%B4%EB%8A%94-%EB%B0%B4%EC%BF%A0%EB%B2%84%EC%8A%A4%ED%83%80-vs-%EB%AF%B8%EB%A6%AC-%EB%B3%B4%EB%8A%94-%EC%86%8C%EC%B9%98%EC%8A%A4%ED%83%80|제목=다시 보는 밴쿠버스타 vs 미리 보는 소치스타!|날짜=2012-12-24|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월 7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3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3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37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팀추월에서는 박도영, 김보름, 임정수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1초86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8&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김보름은 2013년 1월 21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3 전국남녀 종별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33으로 3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1&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2일 열린 1000m에서 1분20초38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1500m에서 2분00초9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에서 4분18초0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4&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3년 3월 21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종목별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2초69로 9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59초15로 1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노선영(용인시청)-박도영(한국체대)로 구성된 팀추월 대표팀이 3분05초32의 기록으로 네덜란드(3분00초02), 폴란드(3분04초91)에 이어 3위에 올라 사상첫 팀추월 메달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sworld.tistory.com/513|제목=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이상화,모범 2연패 달성|날짜=2013-03-25|뉴스=스포츠 월드|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0월 2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20)은 4분18초89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박도영(20-한국체대)이 4분21초30으로 2위에, 노선영(24-강원도청)이 4분21초37로 3위에 등극했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23_0012457099&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5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44의 대회신기록으로 노선영(강원도청-2분02초77)을 제치고 우승했다. 5000m에서도 김보름은 이주연이 2008년 남긴 기존 대회기록(7분46초20)에 7초가량 앞선 7분39초14로 우승, 3광왕의 영예를 안았다. 여자 1500m 및 3000m에서는 팀추월 우선선발 대상자인 김보름과 노선영, 박도영(한국체대) 외에 양신영(전북도청), 전예진(한국체대)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0/25/20131025004859.html|제목=[종별빙속] 모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성=세계일보|날짜=2013-10-25|뉴스=[종별빙속] 모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김보름은 2013년 12월 23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8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77로 2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1&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000m에서 4분18초76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4&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4일 열린 1500m에서 2분03초54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3&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5000m에서 7분26초06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5&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50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1월 7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4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1초01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6&detailClassCd=03&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19초94로 2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6&detailClassCd=02&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2월 28일 서울 노원구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전에서 김보름은 3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3연속 2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ref name=":15" />
         2014년 3월 8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고빙상인추모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3초05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02&detailClassCd=03&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9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4분21초75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02&detailClassCd=04&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2014년 3월 13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전국남녀 대학대항스피드스케이팅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24초88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26&detailClassCd=04&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14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49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26&detailClassCd=03&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2014년 10월 29일 부터 31일 까지 서울 노원구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24초06으로 1위에 올랐고, 전예진(한국체대-4분24초29)이 뒤를 이어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413|제목=빙속여제 이상화 적수가 없다|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1500m에서는 노선영(강원도청)이 2분05초00으로 1위, 김보름이 2분06초75로 2위, 박초원(노원고등학교)이 2분06초99로 3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giantorenge.tistory.com/269|제목=2014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날짜=2014-11-01|뉴스=OOOOOOOOrenge|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4분14초43으로 3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전예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15초39로 9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3분39로 6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5초05 6위로 마쳤으나<ref name=":26">{{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88/112286|제목=[스피드 스케이팅] 김보름, 전예진 여자 매스 스타트|성=daum.net|이름=|날짜=11/16/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ref name=":24" /> 2014년 11월 21일 서울 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7분26초63을 기록, 9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0|제목=[포토Q]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김보름 '아쉬운 9위' - 스포츠Q(큐)|날짜=2014-11-21|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2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 04초0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전예진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김보름은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5984206|제목=[영상] '전예진, 김보름 출전'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여자 매스스타트|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3초78로 10위에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6/2014120600407.html|제목='질주 재가동' 이상화, 빙속WC 3차대회 500m 1차레이스 金|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6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전예진이 3분08초49로 7위를 차지했다. 7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24로 20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3초56 4위로 마쳤으나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 2014년 12월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실내빙상장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4분13초61로 13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m.nocutnews.co.kr/news/4340083|제목=이상화, WC 4연속 金…男 팀추월, 사상 첫 金 - 노컷뉴스|확인날짜=2017-03-22}}</ref> 1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8초33으로 6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43으로 18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이바니 블론딘(캐나다, 8분24초01)과 불과 0.02 차이나는 8분24초03의 기록으로<ref name=":27">{{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87|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전예진, 김보름 출전)|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28">{{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9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시상식(김보름 은)|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김보름은 이날 월드컵포인트 80점을 추가, 총점 168점으로 클라우디아 페흐스타인(독일), 다카기 미호(일본) 등을 제치고 블론딘(350점), 이리네 슈텐(네덜란드, 320점),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 255점), 다카기 나나(일본, 200점)에 이어 5위로 뛰어올랐다.<ref name=":16">{{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121509490760404|제목=이승훈-김보름, 간발의 차로 은메달 거둬…“외모만큼 실력도 훈훈”|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31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15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2분00초99의 기록으로 13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노선영(강원도청)은 2분01초39로 16위에 올랐다. 우승은 헤더 리처더슨(미국-1분56초30)이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9237&code=61161111&cp=nv|제목=[빙상 월드컵] 이승훈 부진한 출발… 스피드스케이팅 5차 월드컵 5000m 9위|확인날짜=2017-03-17}}</ref> 2월 1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2초38로 11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2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4년 12월 23, 24일 이틀간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9회 전국남녀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은 23일 열린 500m, 3000m에 이어 24일 열린 1500m(2분04초58)와 5000m(7분34초40)까지 4개 종목 모두 1위를 휩쓸어 정상에 올라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5차 대회 결과를 바탕으로 정해지는 국가별 쿼터에 따라 내년 3월 캐나다 올라운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112803|제목=MBC 연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5일 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5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49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416&detailClassCd=03&rhCd=19&page=8&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6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54로 3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416&detailClassCd=02&rhCd=19&page=8&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박도여으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9초73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416&detailClassCd=08&rhCd=19&page=8&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2015년 2월 26일 서울 릉빙상경기장에서 열린 제96회 전국동계체전 대학부 3000m에 출전한 김보름(대구)이 대학부 3000m 4연패를 달성했다. 김보름은 이날 박도영(경기, 한국체대)과 같은 조로 경기를 펼쳤으며 차분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박도영과 거리를 유지해 나갔다가 경기 중반에 이뤘을때 치고 나가기 시작해 박도영과 거리를 벌리며 4분18초95로 여유롭게 결승선에 찍었다. 한편 김보름과 같은 조로 출전한 박도영은 4분21초13으로 최종순위 2위로 여자 대학부 3000m를 끝마쳤다.<ref>{{웹 인용|url=http://www.yachtpia.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3|제목='전국 동계체전' 여자 대학부 3,000M 김보름 선수 금메달 획득 - 해양레저전문미디어 요트피아|언어=ko|확인날짜=2017-03-15}}</ref> 27일 열린 1500m에서도 김보름(22)이 2분04초97로 참가선수 7명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내며 4회 연속 2관왕의 대업을 일궜다. 박도영(22-한국체대-2분06초50)과 남지은(20-한국체대-2분07초01)이 각각 은, 동메달을 차지했다.<ref name=":18">{{뉴스 인용|url=http://news.zum.com/articles/20096322?cm=popular|제목=[동계체전] 곽윤기, 쇼트트랙 남자 3관왕[종합]|언어=ko|확인날짜=2017-03-17}}</ref>
  • 희빈 장씨 . . . . 33회 일치
         희빈 장씨는 [[사역원]] 봉사(종8품)를 지냈던 [[장형 (조선)|장형]](張烱)<ref group="주">장형(張烱)의 형(烱)은 경으로도 읽을 수 있다.</ref>(1623~1669)과 그의 후처인 [[파평 윤씨]](1626~1698)의 막내딸로 어났다. 동기로는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전처였던 [[제주 고씨]](?~1645)의 소생인 이복 오빠 장희식(1640~?)과 윤씨 소생의 동복 언니<ref group="주">[[장희재 (조선)|장희재]]의 누나이다. 따라서 1650년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ref> 한 명, 동복 오빠인 [[장희재 (조선)|장희재]](1651<ref group="주">《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년) 11월 2일 기록에 장희재의 나이가 당 51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651년 생임을 알 수 있다.</ref>~1701)가 있다. 최근까지 그녀의 생년에 대해 흔히 미상이거나 [[조선 숙종|숙종]]의 2세 연하, 혹은 5살 연상 등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수록된 국청죄인 자근례의 공초 내용 중에 희빈 장씨가 기해생(1659년 생)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라는 [[사간원]] 헌납 [[윤빈]]의 비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683년에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직위가 포도부장이었던 기록이 존재하며<ref>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장씨의 동복 언니는 [[관상감]] 직장이었던 김지중에게 출가한 상였는데 1701년 [[김지중]]의 증언으로 미루어 김지중이 처가에 왕래하며 장희재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는 만큼 생계가 어렵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장씨의 외삼촌 윤정석은 면포를 팔던 시전상인이었는데, 면포(무명)가 국법 상 [[육의전]]만이 매매가 가능한 독점 상품이었던만큼 윤정석이 일개 장삿꾼이 아닌 [[육의전]] 상인이었음을 뜻하며 이는 윤정석이 상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윤정석은 장희재의 집과 담을 하나 두고 살았을 만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 원자 정호 사 ====
         25일 밤, [[오두인]] [[박보]] 등 [[서인]] 86인이 상소를 올려 전날 국모의 위엄을 훼손한 [[조선 숙종|숙종]]의 발언을 맹렬히 비판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명예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남인]]의 강경한 반발에 주춤하던 [[조선 숙종|숙종]]은 이 상소에 극노하여 [[오두인]] [[박보]] 등 86인을 친국하였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친오빠 [[민진원]] 형제에게도 국문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서인]]이 대거 연루되기에 이르자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적극 변호해왔던 [[남인]]은 정치보복을 위해 입장을 바꾸어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옹호한 상소의 내용을 적극 비판하며 [[서인]]에게 극형을 내릴 것을 종용한다. 이에 [[서인]]이 정계에서 완전히 축출되고 [[남인]]이 정계를 독점하게 되는 [[기사환국]]이 발발했다.
         5월 2일, [[조선 숙종|숙종]]은 당시 사대부 여성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던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언사를 낱낱이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 후 폐서인하여 강제로 출궁시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폐출은 폐비 윤씨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녀의 인성이 여후<ref group="주">한고조([[유방]])의 아내 [[여후]]를 의미한다. 여후는 중국 3대 악녀(여후, 측천무후, 서후)로 꼽히는데, 투기와 잔혹성은 여후가 단연 으뜸이다. 여후는 남편 한고조가 사망하자 그녀의 정적이었던 척부인의 혀와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돼지라고 명명하여 변소에 장식하였으며 척부인의 소생을 살해하였다.</ref> 와 흡사하다고 비교하였다. [[인현왕후]] 민씨에게 물어진 죄는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를 말한다</ref>,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주상이 노고(勞苦)하셔도 공이 없을 것'''의 부분을 말한다.</ref>, 투기로 내전(內殿)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ref group="주">서인이 장씨를 출궁시키도록 종용한 것과 옥교 사건,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서인의 반대를 의미한다.</ref>,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폐서인]] 민씨의 남겨진 물건을 모두 불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그녀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우도록 했다.<ref group="주">이후 노론은 숙종이 옳은 주장을 한 [[송시열]]을 처벌하고 정권을 갈아치운 목적이 왕비 민씨를 내쫓고 후궁 장씨를 왕비로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왕비 민씨의 폐출은 장씨의 모략이었다고 기록한다.</ref>
         숙종실록에는 장씨 소생의 왕자가 9월 16일에 사망하였는데 어난지 열흘이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6월에 이미 [[산실청]]이 설치되었으며 7월 19일 중궁전(장씨)이 해만(解娩: 해산)한 후 약방(藥房)과 정원(政院), 옥당(玉堂)이 대전과 중궁전의 안부를 물었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19일 (무신) 원본342책/탈초본18책 (10/14)</ref> 다음 날인 7월 20일, 중전 장씨의 해만 상와 산후 기후가 편안하다는 보고가 있으며 2품 이상 관원들이 문안을 올렸다. 22일에는 장씨의 유즙(乳汁: 젖)이 나오지 않아 약을 의논하는 기사가 있다. 7월 26일에는 산실청 의관이 입진하여 중궁전(장씨를 말한다)이 해만(解娩: 해산)한 지 제7일이 되었으니 산실을 철파(撤罷)하겠다는 계를 올렸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26일 (을묘) 원본342책/탈초본18책 (8/13)</ref> 같은 날 [[조선 숙종|숙종]]은 산실청 전(前) [[도제조]]와 [[우의정]] 및 여러 관원과 의관들에게 각 [[말]] 한 필과 안장을 하사하였다. 다음 날 27일에는 산실청 담당 의관이었던 [[김유현]] 등에게 숭록(崇祿: 종1품 문무관 관직)을 제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대로 수령(守令)<ref group="주">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절도사]],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감]], [[현령]] 따위를 이른다.</ref> 직을 제수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숙종]]이 의관에게 종1품 숭록의 위를 제수할 만큼 대군의 탄생을 각별히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ref group="주">이 기록 역시 숙종실록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반면에 [[숙빈 최씨]]가 [[조선 영조|영조]]를 출산하자 [[조선 숙종|숙종]]이 [[호산청]] 담당 내시와 [[의관]]에게 말을 하사한 것은 강조하여 기록하였다.</ref> 이러한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장씨가 출산한 왕자가 9월 10일 경에 탄생된 것으로 기록한 숙종실록의 기사가 허위임을 증명한다.
         대군 성수는 탄생한지 100일이 되지 않은 9월 16일에 돌연 급사하였다.<ref group="주">만일 성수가 정식으로 대군 책봉식을 거친 후에 사망했거나 갑술환국이 발생한 이후에 사망했다면 인현왕후가 복위하여 장씨가 후궁으로 강봉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법도에 따라 적서 상관없이 자동으로 적처(왕비)에게 입적되는 후계자(왕세자, 원자)와는 달리 그 외 자녀는 생모의 처첩 여부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씨를 후궁으로 강봉하려면 성수도 함께 대군에서 군으로 강봉하거나 장씨와 성수를 함께 폐서인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ref> 조정에서 신생대군(新生大君)의 사망에 대한 원인이 논의되었다. 6월부터 산실청이 세워지고 산모인 장씨가 불안한 상임이 거론되었는데 출산을 하고난 이후에도 장씨의 상가 불안하다는 기록이 있으며 9월 16일 신생대군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상가 미완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난산]]이었거나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숙종]]은 조정 백관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토로했을 만큼 둘째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1692년, 전 해(前年)에 조졸한 신생대군방에 절수된 영토와 녹봉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건의가 반복되어 허가되었다.
         갑술환국이 발발 후 12일 째가 된 1694년 4월 11일, [[조선 숙종|숙종]]은 돌연 [[장희재 (조선)|장희재]]를 긴급구속하고, 훗날 길일을 잡아 서궁([[덕수궁]])으로 입처할 폐비 민씨([[인현왕후]])의 서궁 입처를 길일과 상관없이 당장 다음날로 할 것을 명하며 민씨의 사가에 수직(호위)를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폐비 민씨가 서궁으로 입처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민씨가 스스로 죄를 간절히 뉘우치고 있으며, 두 자전(慈殿: [[장렬왕후]]와 [[명성왕후]])의 삼년상을 함께 보낸 아내이니 쫓아냈던 것은 지나친 처사<ref group="주">삼불거를 뜻한다. 칠거지악을 범한 아내일 지라도 삼불거에 해당되면 소박할 수 없으며, 이미 소박하여 새로이 혼인을 하였더라도 전처가 국가에 소송하면 이혼이 취소되어 새로운 아내는 첩으로 강등되거나 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ref> 였다."며 민씨를 중전으로 복위하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는 것은 고금을 통하는 의리이다"며 중전 장씨의 왕후새수(王后璽綬)를 거둬 희빈(禧嬪)의 옛 작호를 돌리고 거처를 옛처소인 창경궁 취선당으로 옮기라는 비망기를 내린다. 이에 대해 환국을 위해 투합했던 [[노론]]과 [[소론]]이 강경히 대립하게 되는데, 이는 [[노론]]은 [[인현왕후]]의 복위를 목적했고, [[소론]]은 희빈 장씨를 왕비로 둔 채 [[인현왕후]]를 폐서인인 상로 별궁에 모셔 편안한 여생을 맞기만을 목적했던 탓이다.
         [[조선 숙종|숙종]]의 복위 명령에 병조판서 [[서문중]]은 이조참판 [[박상]] 등과 함께 사람을 모아 ‘9년·6년과, 아들이 있고 아들이 없는 것은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현왕후]]가 비록 희빈 장씨보다 더 오래 왕비로 있었으나 왕세자의 생모인 희빈 장씨가 더 귀하다는 뜻이다. 정원(政院)은 조정백관과 신중히 공론을 한 후에 결정지어질 때까지 명을 받들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표명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6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4월 13일(경진) 2번째기사</ref> [[인현왕후]]의 복위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노론]]과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소론]]의 격렬한 언쟁이 오가던 가운데<ref>《숙종실록》에는 누락된 내용으로 《승정원일기》 4월 12일 ~ 4월 16일까지의 기사에 수록되어 있다.</ref> 4월 16일에 이르러 우의정 [[윤지완]], 공조판서 [[신익상]], 한성부우윤 [[임상원]], 병조참의 [[이유]] 등의 [[소론]]의 대표 인물들이 단체로 사직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는데<ref>《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16일 (계미) 원본356책/탈초본18책</ref> [[조선 숙종|숙종]]이 갑술환국을 일으키며 중앙을 [[소론]] 중심으로 채웠던 만큼 사가 심각했다. 이 사건은 엿새 후인 4월 17일, 영의정이자 소론 영수였던 [[남구만]]이 '이미 복위하라는 왕명은 내려졌고, 자식이 어미(國母: [[인현왕후]])의 죄를 논하며 도로 쫓아내라 마라 의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소론]]을 중재하여 결국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ref>『숙종 20년 4월 17일 1번째 기사』</ref> 이 사건을 계기로 [[소론]]은 희빈 장씨를, [[노론]]은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는데 [[소론]] 영수인 [[남구만]]은 중립을 지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먼저 제주 유배 중인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처형의 명을 내리고, 그에 이어 희빈에게 자진을 명하는 비망기를 내린다. 이에 대신들이 반대하자 숙종은 [[구익부인]]<ref group="주">한무제의 후궁으로서 무제는 그가 죽기 전에 비록 구익부인에겐 죄가 없지만 자의 어미가 살아있다면 이후에 화가 될 수 있다며 죽였다. 한무제는 즉위 초 생모와 외척에게 시달려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정사를 펼칠 수 없었고 생모가 죽고나서야 꼭두각시 황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숙종의 즉위 초기와 흡사하다.</ref> 의 예를 들지만 숙종의 나이가 젊으니 한무제와는 경우가 다르다며 대신들이 반대하였다.
         이에 숙종은 먼저 자방의 가족들을 궁으로 데려와 증언을 받아낸 후<ref group="주">이들은 형신이 시작되자 마자 동일한 증언을 하였으며 그 직후 방송되었다.</ref> 이 증언을 바탕으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첩 숙정과 선당과 동궁전의 궁인(宮人)·죽은 자방의 뒤를 이어 굿을 했던 무녀(巫女) 오례를 압송해 수일에 걸쳐 압슬형 등 최고 고문형을 가하며 범죄를 인정하는 자백을 받아낸다. 생존한 죄인은 군기시에서 처형되었다.<ref>[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4022&cat_code=0605&start_year=2009&start_month=05&end_year=2010&end_month=08&press_no=&page=6 왕권 강화, 임금에겐 달고 백성에겐 쓴 열매]</ref> 이 사건을 무고의 옥(巫蠱-獄, 여기서 무고란 무술 (巫術)이나 방술 따위로 남을 저주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이라 한다.
         "네 중궁을 모살(謨殺)하고 대역부도함이 천지에 당연하니 반드시 네 머리와 수족을 베어 천하에 효시(梟示)할 것이로되 자식의 낯을 보아 특은으로 경벌을 쓰거늘 갈 수록 만하여 죄 위에 죄를 짓느냐?"<br />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공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기에 지금껏 《인현왕후전》등 민간에 널리 보급된 소설과 야사에 묘사된 장씨의 최후의 모습이 정설로 신봉되어 왔으며, 정사가 공개된 후에도 죽음의 과정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사사 역시 자진의 한 형이니 사사된 것이다'로 절충되어 해석되는 실정이다. 또한 1961년 《인현왕후전》으로 극본을 짠 정창화 감독의 방화 《장희빈》이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아류작인 영화·드라마·서적 등이 연이어 만들어지니 [[권선징악]]의 결말을 원하는 민중들은 요녀 장희빈의 비참한 죽음만을 기억하게 된다.
         **** 차남<ref group="주">조선왕조실록 숙종 16년 9월 16일 2번째 기사에 새로 어난 왕자가 죽었는데, 이가 장씨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고, 《선원계보기략》 또한 성수를 남자(男)라고 기록하고 있다.</ref><ref group="주">중궁전(장씨)이 해산한 뒤 약방에서 대전등의 안부를 물음 『1690년 숙종16년 7월19일 승정원일기』
         | [[2013년]] || align="left" | 《[[장옥정, 사랑에 살다|장옥정 사랑에 살다]]》 || 11대 [[김희]], [[강민아]] || [[SBS]]
         애초,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후궁(희빈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의 집과 친분이 있어서 그 연줄로 조사석이 정승에 제배된 것"이라는 김만중의 발언이었는데, 숙종 15년(1689년) 2월, 김만중의 아들 김진화의 공초 내용인 "후궁(後宮)의 어미는 예전에 조 정승의 집과 같은 방(坊: 동네)에서 살았는데, 근일(近日)에는 발걸음을 끊고 왕래하지 않는다."<ref>숙종실록 숙종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2월 28일(병인) 3번째기사</ref> 는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 처갓집의 여종이었기에 조사석과 친분이 있었던게 아니라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친분이 있었던 것을 시사하며, 동시에 장씨의 어미가 조사석 처갓집의 여종이었다는 사실이 이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더욱이 조사석이 정승에 제배된 것이 장씨와의 연줄 덕이라는 소문을 배포한 자가 [[홍치상]]이었다는 점은 순수성에도 의혹을 제기하는데, [[홍치상]]은 장씨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영빈 김씨]](당시 귀인)의 이모부이기 때문이다.<ref group="주">[[홍치상]]의 첫아내는 [[영빈 김씨]]의 이모이다. [[홍치상]]의 아들인 [[홍유]]는 아비를 구명하며 [[홍치상]]이 이모인 [[숙명공주]]에게서 소문을 얻은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숙명공주]]의 아들인 [[심정보]] 또한 [[영빈 김씨]]의 이모부이다. [[영빈 김씨]]의 폐서인 사유는 궁내의 사정을 친정에 전달한 것과 주가(主家: 공·옹주를 의미)와 내통하여 분란을 일으킨 죄목이었으며, [[영빈 김씨]]는 [[인현왕후]]의 복위로 특별히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2차례나 홀로 승급에서 제외되는 등 [[조선 숙종|숙종]]의 외면을 받았다. [[기사환국]]때 교형을 당한 [[홍치상]] 또한 [[인현왕후]]의 복위로 특별히 복관되었지만 어머니인 [[숙안공주]]와 [[인현왕후]]가 모두 사망한 1702년에 다시 복관이 취소되고 국가 죄인으로 강등되었으며 [[조선 숙종|숙종]]은 이후에도 [[홍치상]]이 복관되지 않도록 다시금 엄명을 내릴 만큼 반감을 표명했다.</ref> [[홍치상]]이 계실의 지친인 [[이사명]]에게 소문을 전달했고, [[이사명]]이 사돈인 [[김만중]]에게 전달해 [[김만중]]이 [[조선 숙종|숙종]]에게 따진 것이 숙종실록 숙종 13년 6월 16일 기사에 기록된 사건의 배경이다.
         기록의 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조선 시대의 신분법 상 희빈 장씨를 얼녀 출신 천민으로 계산하기에는 오차가 있다. 희빈 장씨의 생모인 윤씨는 첩이 아닌 엄연한 정실 부인인 계실이었으며, 남의 집 여종을 첩도 아닌 정처로 삼기엔 [[장형 (조선)|장형]]의 사회적 위치 및 조건이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ref group="주">남의 집 여종을 아내로 삼은 자를 비부(婢夫)라 하는데, 비부는 아내의 주인 집에 종속되어 그 집안의 대소사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식은 탄생한 즉시 주인집의 사유재산이 된다. 이러한 한계때문에 자신의 남종이 남의 집 여종과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노인이 되도록 혼인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지극히 가난하여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양인 남성이 생계를 유지하고 대를 이을 목적으로 비부를 자청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실록 등에 기록된 강력 범죄 사건에 비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비부가 법적으로는 그 가문의 종이 아니기에 사례를 조건으로 주인의 범죄를 대리시켰거나 덮어씌운 결과인데 이는 비부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f> 첩을 처로 만들 수 없는 조선의 국법<ref group="주">[[윤원형]]이 첩 [[정난정]]을 처로 만든 전례가 있어 첩을 처로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인 양 오해되고 있지만 [[윤원형]]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사후에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던 공식적인 이유는 국법을 어기고 첩을 처로 만들었다는 죄목때문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첩실을 정실로 격상할 수 있는건 왕과 왕세자 뿐으로, 이 또한 1701년 이후로 금지되었다.</ref> 과 윤씨 소생 아들인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무과(武科)로 등용<ref>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ref> 되어 [[1680년]]에 내금위에 재직<ref>숙종실록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 中 동평군 이항의 공초내용</ref> 하였고 [[1683년]]에 좌포도청 부장에 재직<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하였던 점<ref group="주">선조16년 병조판서였던 [[이율곡|이이]]의 주청으로 납속을 낸 서얼을 허통하여 무과에 입시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숙종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청요직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무과에 합격한 서얼은 관직은 받지 못한채 무기 발령대기 상로 남거나 지방 군졸로 발령, 혹은 외적의 침입이 잦은 국경으로 발령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중인 역관의 얼자가 [[내금위]]에 재직하고 경내 좌포도청에 부장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의 후궁이 된 건 1686년 12월이니 누이의 후광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ref>, [[1689년]] 11월 13일 윤씨를 당하관인 역관의 처로 언급한 윤덕준(尹德駿)의 상소내용<ref group="주">조선시대에는 처와 첩, 적서의 구분을 명확히 구분하여 언급하거나 기록하였다.</ref>, [[1698년]]에 사망한 윤씨가 남편 [[장형 (조선)|장형]]과 전처 제주 고씨의 옆에 나란히 매장된 것<ref group="주">첩은 가문의 묘산에 매장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별히 매장되더라도 남편 부부의 무덤에서 떨어진 음지나 발치 아래에 묻어 정처와 확고한 차별을 두었다. 희빈 장씨는 1694년에 강봉되었으며 오빠 장희재가 [[노론]]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로웠던데다가 왕세자인 아들 [[조선 경종|경종]]은 [[인현왕후]]에게 입적되어 [[노론]]이 이미 모자의 연이 끊겼다고 주장했던 만큼 만약 윤씨가 첩으로서 처와 동등하게 매장되었다면 당시 탄핵이 되지 않았을 리 없으며 희빈 장씨의 사후나 경종의 사후에도 반드시 탄핵이 있었어야 정상이다.</ref> 은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이 원자가 되어서나 그녀가 왕비가 되어 [[조선 숙종|숙종]]이 특별히 장씨의 생모를 첩에서 처로 승격해주었을 가능성조차 극히 희박함을 증명한다. 이는 윤씨가 설사 여종 출신이었더라도 이미 면천한 후에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이 되어 장씨 남매를 낳았음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장씨 남매에게는 노비 종모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의 신분은 아비를 따라 중인이 된다. 물론 윤씨가 애초에 종 출신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f group="주">종(奴婢)의 정의에는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조사석의 처인 권씨는 권문세가의 딸이고 윤씨는 역관의 딸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교류하였던 것을 신분의 위계 상 윤씨를 종으로 비유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민진원]]의 특기이기도 했다는 점이 유의사항이다.</ref>
         * {{브리니커|b25h3690a}}
         [[분류:1659년 어남]][[분류:1701년 죽음]][[분류:조선의 후궁]][[분류:조선의 왕비]][[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허목]][[분류:송시열]][[분류:폐위된 비빈]][[분류:사사된 사람]][[분류:자살한 사람]][[분류:사형된 사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인동 장씨]][[분류:조선 숙종]][[분류:조선 경종]][[분류:희빈 장씨]][[분류:17세기 한국 사람]]
  • 태영호 . . . . 31회 일치
         [[북한]]의 [[외교관]].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공사로 활동했으며, 2016년 8월 [[탈북]]했다. 탈출 과정에서 '용호'라는 가명을 썼다.
         빨치산 가문에서 어난 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20년간 중요 외교관으로 지내던 영호는, 2016년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된다. 영호는 2016년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영호와 친분이 있었던 [[BBC]]의 스티브 에번스 한반도 특파원은, 개인적으로 영호와 만나면서 직전까지 탈북을 하려는 어떤 눈치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관으로서 영호는 런던의 극좌단체 행사에 참가하여 북한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언론이 북한에 대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호는 영국 내의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스티브 에번스 특파원의 발언에 따르면 영호는 영국의 중산층과 같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2016년 8월 17일, 갑자기 영국에서 고위급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는 소식이 퍼졌으며 곧 그가 영호 영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가족과 함께 탈북한 영호는 한국 [[망명]]행을 택했는데, 1997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 장승길이 망명한 이래 최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이었다.
         영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상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영호의 탈북 요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 공사의 자녀 중 북한이나 영국 현지에 남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8월 20일,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망명한 영호 공사가 고의적비밀누설죄, 국가재산횡령범죄, 미성년성교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하며 영호를 비난했다.[[http://www.focus.kr/view.php?key=2016082000192002762 (포커스뉴스)]]
         영호의 아버지 병렬은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로서, 빨치산 시기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했다. 1913년 생 병렬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서 1997년에 사망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영호는 북한에서 중시하는 [[출신성분]]이 매우 좋은 인물로서, 이 때문에 북한의 외교관은 통상 3년간 근무하지만 주영 북한 대사관에서 10년 동안 근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영호의 형 형철 역시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이다.--물론 영호가 탈북한 이상 형 역시...--
         영호의 부인 오혜선(50세) 역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며,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984년 사망)의 친척이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오혜선 역시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호의 큰 아들은 26세로 영국에 거주하며 현지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덴마크]]에서 어난 작은 아들은 2016년 망명 당시 19세로, 영국 가디언 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명문대학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름은 'Kum Tae'. 둘째 아들에게는 [[영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갑자기 페이스북에서 소식이 끊겨서 다들 걱정했는데 망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안심했다고.--너 숙청당한줄 알았어--
         영호 영사의 둘째 아들은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팬으로, 누적시간이 368시간에 달하였다. 차남이 쓴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 사실 북한을 까는 [[밈]]의 일종이다.].
  • 박명수(MC) . . . . 29회 일치
         개그콘서트의 부흥과 함께 콩트 프로그램의 몰락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MBC소속 개그맨들은 MBC라는 둥지를 떠나 다방면에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놀러와 등에 출연하며 MBC와 연을 잇는 한 편, KBS와 SBS에도 게스트 출연을 이어갔지만 후술할 리얼버라이어티 붐 이전까지 상당한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 패널 역할로 많이 뛰긴 했지만 비슷하게 패널 역할로 많이 뛰었고 이따금씩 케이블 MC나 공중파 꼽사리를 끼는 김현을 보고 인기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역시 박명수의 이 당시 인기란 것은 미묘한 부분이 있다. 흔히 박명수가 방송에서 이야기하던 사업의 집중기가 바로 이 때다.
         [[유재석]] 외에는 몇 줄 안되는 것을 봐도 알겠지만, 유재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의 tv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모습은 모두 유재석과 같이 있을때, 편안해할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한도전 대기실 몰래 카메라나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재석에겐 맛있는 음식 등을 챙겨주면서 본인들은 거들떠도 안봐 왜 재석만 챙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은 2009년 김연아 특집때다. 물론 박명수는 "얘가 살아야 우리가 다 살아!!"라며 쿨하게 무시해주신다.] 그리고 대략 2012년 장기 파업간에 [[노홍철]]과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을 보다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박명수는 항상 밥을 혼자 먹는다고 한다. 천하의 유재석에게도 밥먹자고 한 적이 없는데 그 파업기간동안 노홍철에게 같이 짬뽕 먹자는 전화를 해서 굉장히 놀라웠다고 한다. 또 노홍철 역시도 2009년 의좋은 형제들이나 2011년 짝 특집까지만 해도 유재석에게 쌀을 갖다주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제일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2014년 도둑들 특집때는 유재석을 튀통수치고 박명수와 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많이 발전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사실 방송분을 이미 2007년 부터 박명수가 노홍철만큼은 인정하고 이뻐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미존개오로 뜬 정형돈은 인정안해도 노홍철에게는 '너(노홍철)는 인정해'. and '길바닥출신이긴 해도 잘해'라며 박명수식 애정표현인 셈(...)] 또 프로그램 상에서는 티격격하지만 정준하와도 잘 지내는 듯.[* 2011년 짝 특집때 서로 애정을 표하며 짝이 되기도 했고, 2014년 비긴어게인 특집때도 친구케미를 보여주고 2016년에 서로 국물을 떠다주는 sns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티격격 하는건 방송컨셉이라는 건 이미 2013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때 밝혀졌다. 싸움거는 박명수에게 뻘쭘해진 정준하가 왜 방송만 들어가면 그러냐고 묻자, 할게 없어서 라고 대단한 것이 좋은 예.] 또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시절에는 정형돈과도 많이 엮였고,[* 설문조사에서 정형돈이 5위, 박명수가 6위를 도맡아 해서... 다만 박명수와 정형돈은 성격상 서로 잘 맞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직설적이고 마음에 없는 좋은 소리를 못하는 쿨남 박명수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정형돈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게 방송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했고.] 하하와는 소속사가 같아서 하하를 많이 도와줬다. 당시 하하는 웃음담당이라 하하가 별로 웃기지 않아도 크게 웃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프가 뽑은 외모 순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절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절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순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반해 스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그 시기 이승철은 대마초 사건으로 1996년까지 지상파 출연 정지가 되어있는 상였고 방송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승철은 주로 콘서트 무대에서 활동했는데 그가 '라이브의 황제' 라는 별명을 갖게 만드는 일조하기도 했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잊혀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박명수가 이승철 모창을 개인기로 밀고 다니면서 대중들이 이승철을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고, 그 후 이승철이 출연금지가 풀리고 방송에 복귀해서도 예전과 같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게 이유가 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방송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통치거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유독 동갑내기인 [[강호동]]을 두려워한다. 애초에 강호동과는 같은 프로그램을 아예 안 하려고 한다고 한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2009년 9~11월에 1박 2일특집으로 vs무한도전 콜라보가 나올예정이었지만 박명수가 [[이명한(PD)|이명한]], [[김호(PD)|김호]]에게 필사적으로 말렸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 박명수는 과거 신인 시절에 강호동이 제대로 화가 나 식당 하나를 완전히 접어놓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어서라고 한다. 강호동이 저렇게 화가 난건 처음이고 그 후로 무서워서 피한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에너지 넘치고 욱하는 성미인 [[김수로(배우)|김수로]]나 종류는 좀 다르지만 같은 독설계인 [[김구라]] 등과도 상성이 좋지 않다. 하지만 김구라와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맞는 부분도 있기에 티격격하면서도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사이. 다만 캐릭터가 겹치는 것은 사실이기에 [[본인]]들도 짧은 시간 함께하면 참 재밌지만 길게 가면 안 된다고(...) 직접 밝혔다. --쉽게 이야기해서 [[주말부부]]같은 사이란 이야기다.--
         >수: 수천번의 알을 깨고 다시 깨고 또 깨고 어난 나이지만
         또한, 일부 무개념빠나 무개념까는 박명수가 무슨 [[이수만]]이라도 되는 것처럼(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말하기도 하는데, 이 회사 자체가 투자를 받지 않고 '''박명수의 사비만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유망한 후배를 끌어주겠다는 목적으로 쩌리멤버를 받는 것 말고는 사실상 1인 기획사나 다름없다. 라디오스타에서도 "소속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윤종신]]의 말에 긍정했다.[* 물론 여기 소속된 레벨의 연예인들 대부분이 당장 섭외 자체가 거의 안들어오는 사람들이란 걸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도움이다. 사회, 특히 연예계에서 인맥이란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면 거물 코미디언인 박명수가 빽으로 있는 것 자체가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큰 도움이 된다. 당장 잘나가는 연예인들 상당수가 TV에서 누가 누구를 "꽂아준" 얘기를 하지 않는가. 위의 이승철 케이스에서도 나오지만 방송에 아예 안 나오는 연예인들은 인지도가 있는 동료가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 '기획사'라기보다는 박명수가 후배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라인'이나 '크루'와 비슷한 형인 듯하다. ~~이 때문에 유느님을 영입하고 싶어도 돈이 안돼서 못하고 있다[* 유재석의 현 소속은 [[FNC엔터테인먼트]]이다.]~~
         [[MBC 습격 사건]] 당시, 습격사가 어느정도 가라앉고 나자 전의경 몇몇이 연예인들의 사인을 받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고, 실제로 [[엄정화]] 등의 사인을 받은 대원도 있었다. 그런데 이때 박명수가 나타나 '''"나한텐 왜 싸인 안받아!!"'''라고 호통친 적이 있었다고... --아니 처음부터 전의경들 앞을 서성이면 되지 않나-- 참고로 이때의 박명수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긴 했다.
         [[정준하]]의 바지를 최소한 2번 이상 벗긴 연예인이다. [[SS501(아이돌)|SS501]]이 나왔을 때 한 번, 뉴욕 갔을 때 한 번 벗겼다. 특히 SS501이 나왔을 때 벗겼을 때는 너무 충격적이게도 '''하반신의 모든 것'''을 벗겼는데 하필 그날 녹화현장에 SS501 여성팬들도 많아서 문자 그대로 대 망신을 당했다. 그래서 박명수도 정준하에게 엄청 미안해했다고 한다. 항상 물고 뜯던 정준하에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하라는 방송은 안하고]]~~ 그렇게 살갑게 구는 박명수는 앞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방송 후반부에선 어느 순간부터 박명수는 물론이고 무한도전이고 SS501이고 하나같이 정준하가 뭘 할때마다 과하게 환호 해주고 오버액션까지 하며 잘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 이랬는지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바로 바지 벗기기 때문. 이것 때문에 정준하는 잠시 박명수와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했다하며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심하게 우울해하는 등 마음에 상처가 컸던 것 같다. 하&수로 늘 티격격하며 정준하를 갈구는 박명수도 이 사건만큼은 몇년이 지난 지금 이야기해도 아무 반론이나 개그없이 미안했다고 숙연해지는 등 두사람 모두에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듯하다.
         2008년 7월 3일 방영된 해피투게더 방송에서 클로징 멘트로 "무한..." 하다가 대차게 까인 적이 있다[* 유재석이 당시 결혼을 앞두고 컨디션 난조로 목상가 안 좋아 박명수가 대신 클로징을 했다.]. PD조차도 자막으로 분노를 표시했다. [[http://cfile9.uf.tistory.com/media/1862A73F4DC558532E8655|#증거플짤]] 그러다가 나중에 유재석이 같은 실수를 하자 "내가 그 때 얼마나 욕을 먹었는데, (편집하지 말고) 이거 살려!"라고 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초창기 당시 박명수의 매니저였던 정석권 또한 화제를 모았다. 이름하여 '비운의 매니저' 혹은 '맹꽁이'. 박명수와 동갑내기로 서로 티격격하지만 어째 행동들을 보면 박명수에 비해 2% 부족하다. 한번은 지방에 행사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자기보다 정석권에게만 더 많이 모여서 결국 방송 출연 금지령(?)을 내렸다고도 한다. 2009년을 전후로 매니저가 바뀌었다. 현 매니저인 경호씨도 박명수의 벌칙 관련해서 아주 뜸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상기한대로 2012년 10월 10일 무한도전에서(정확하게는 미방영분도 아니고 현장 스프가 보관한 짜투리 촬영분) GD가 출연한 [[무한상사]]속 상황극에서 욕설이 포함된 장면이 한 스프의 페이스북에 공개되었다가 이내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미 네티즌 상으로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모두들 무한도전이 드디어 욕설 구설수에 휘말리는가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반응은 '저럴 줄 알았다', '욕을 하는데 기분이 안 나빠', '촬영장 화기애애하네', '원래 저러는 형(오빠)인데 뭘 그리 새삼스럽게 난리냐? 장사 하루 이틀하나?' 등의 긍정적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응이었다. 되려 19금으로 무한도전 [[감독판]](?)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사실 욕설 구설수는 무한도전 초기에도 있었다. 서울구경특집 촬영 당시 멤버들 집에 방문했는데 이때 사전 연락같은게 없었던 모양인지 너무나 이른 아침 일찍 벨을 누른 제작진에게 박명수가 욕을 했고, 당연히 편집되었다. 편집되고 재촬영 때는 박명수가 너무나 어색하게 제작진을 반겨 누가봐도 재촬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정도[* 이후 2007년 12월 22일 방영된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유재석이 그거 박명수가 욕을 해서 재촬영 한거라고 언급했다.]였으나, 해당 원본 동영상이 공개되지는 않아서 구설수에 휘말리지는 않았다. 멤버들도 종종 '엄청 웃긴 상황이 나왔는데 명수형이 욕을 하는 바람에 그냥 버린게 좀 많다'고 증언하고,[* 예전에도 김호PD가 자막으로 욕한거모았으면 어마어마한 양이 됐을 거라며 까는 자막을 깔기도했다.] 해당 유출본에서도 욕하는 박명수에게 멤버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것을 보면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욕이 터지는 것으로 보인다. 돈가방 100빡빡이 특집 때도 자신이 궁지에 몰리니 대뜸 "야 이 미X놈아!"라고 하질 않나, 한글 특집 관찰 카메라에서 비속어를 '''26개'''나 쓰지 않나[* 다른 멤버들은 10개 이하였고 그나마 많은 하하는 17개. --그 때 하하는 열받아서 욕이 많이 나온 건데 박명수보다 적으니--]...~~유재석 : 이 형은 욕이 기본 소프트웨어에요~~
          * 1994년 해제과 피리껌바(1인 4역으로 출연)[*A 이후 무한도전 취업의 신 특집에서 24년 전 [[해제과|ㅎ사]] 광고를 찍었다고 밝혔다.]
          * 1994년 해제과 아이싱[*A]
          * 희 혜교 지현이 (2009년) - 서점주인, 취업센터관계자 역
          * MBC 표준FM 《전국퀴즈열전》(1995, 아나운서 [[김희(동명이인)|김희]]와 공동 진행)
  • 서울특별시/인물 . . . . 29회 일치
         * [[강오(배우)|강오]] - 강남구
         * [[김윤]] - 강동구
         * [[김형(1967)|김형]] - 강북구
         * [[김병(강사)|김병]] - 성북구
         * [[김완(1984)|김완]] - 양천구
         * [[김진(1951)|김진]] - 종로구
         * [[김리]] - 종로구
         * [[김원(야구선수)|김원]] - 종로구
         * [[노현]] - 구로구
         * [[루]] - 관악구
         * [[우운]] - 마포구
         * [[정호]] - 관악구
         * [[정근]] - 성북구
         * [[정우]] - 용산구
         * [[용]] - 관악구
         * [[민(1993)|민]] - 도봉구
         * [[일(NCT)|일]] - 동대문구
         * [[일(블락비)|일]] - 송파구
         * [[한일(배우)|한일]] - 금천구
  • 효령대군 . . . . 29회 일치
         |부모 = [[조선 종|종]](부) ,[[원경왕후]] 민씨(모)
         [[조선]]의 제3대 국왕 [[조선 종|종]]의 둘째 아들이며,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다. [[조선 세종|조선 세종대왕]]의 둘째 형으로 성씨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 이름은 '''보'''(補)이다. 초명은 '''호'''(祜)였는데 19세에 '''보'''(補)로 [[개명]]하였다. [[자 (이름)|자]]는 '''선숙'''(善叔)이고, [[호 (이름)|호]]는 '''연강'''(蓮江)이며 [[불교]] [[법명]]도 '''연강'''(蓮江)이고,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1395년]] [[음력 12월 11일]]에 어나 92세의 천수를 다하고 [[1486년]](성종 17, 丙午年) [[음력 5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되었다. 묘소는 [[1972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현 사당은 [[1736년]](영조 12)에 왕명으로 효령대군 묘 앞에 처음 세우면서 '청권사'라고 하였다.
         * 조부 : [[조선 조|조]](1335~1408)
         * 부왕 : [[조선 종|종]](1367~1422)
         **** 손자 : 강수, 양포수
         *** 6남 : [[원천군 (1423년)|원천군 의]](原川君), (1423년 ~ 1476년) - 조선 제3대 임금 [[조선 종|종]]의 4남 [[성녕대군]]에게 출계
         * 《[[왕과 비]]》([[KBS]], [[1998년]]~[[2000년]], 배우:[[김인 (배우)|김인]])
         * 《[[대왕 세종]]》([[KBS]], [[2008년]], 배우:[[안신우]], [[유웅]])
         효령대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은 청권사(淸權祠)라 불리는데 ‘청권’의 뜻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의 우중(虞仲)왕자가 아버지 왕(太王)의 뜻을 헤아려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칭찬하면서 공자(孔子)가 청권이라고 하였다는데 유래한다.
         청권(淸權)이란 중국 주(周)나라 때 왕(太王)이 맏아들 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다. 훗날 공자가 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본떠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라 이름 하였다.<ref name="hrdg"/>
         효령대군은 아버지 [[조선 종|종]](太宗)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세종대왕]]이 '나의 형(효령대군)이 곧 청권'이라고 칭송하였고, [[정조]](正祖) 대에 이르러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로 사액(賜額)하였다.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는 [[서울특별시|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으며, [[서울특별시|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이 편집한 『조야휘언』필사본에는 '세종이 평관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여 잔치를 하는데 효령대군이 술을 권하자 일어나 받았다. 이를 보고 사신이 말하길 "임금이 형을 우대하는 것이 이와 같구나"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당시 왕실의 형제간 우애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1411년]]([[조선 종|종]] 11), 동생인 충녕([[조선 세종|세종]])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과 효령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관악사를 현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를 바꾼 이유는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 [[천안 광덕사 조선사경|부모은중장수골경합부]] - 보물 제1247호
         * [[조선 종]]
         [[분류:1396년 어남]][[분류:1486년 죽음]][[분류:사상가]][[분류:조선의 왕자]][[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학자]][[분류:조선의 승려]][[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한국의 불교사]][[분류:유교 이탈자|이보]][[분류:조선의 불교 신자]][[분류:조선 세종]][[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 종]][[분류:전주 이씨]]
  • 세정(구구단) . . . . 28회 일치
         ||<#66AADD> '''{{{#white 출생}}}''' ||<#ffffff><(> [[1996년]] [[8월 28일]] ([age(1996-08-28)]세), [[경기도]] [[안양시]] [* 아는 형님 페이스북 라이브 인터뷰에서 어난 곳이 김제라고 밝혔다. 초3 때에는 안양으로 이사를 갔다.][* [[http://www.gj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972|출생지 출처]]] ||
         I.O.I의 예능 치트키. 고정 프로인 어서옵쇼에서 아재들을 들었다 놨다 하거나, 예능에서 I.O.I를 홍보하거나 직접 자기가 고정인 프로에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멤버를 직접 데리고 나온다. 김청하, 김소혜 등을 데리고 나온 뒤 본인이 팍팍 밀어준다. 실제로 김소혜는 어서옵쇼 출연이 첫 예능이다. 주로 미는 소재는 괴력소녀와 노래방 성우 목소리. ~~그리고 임나영에게 받은 병든 닭~~ 팔씨름과 허벅지 씨름에서 씨스타를 관광우거나 다른 예능에서 멤버들과 게임을 하면 멤버들을 관광우기도 한다. 최유정은 배게 싸움에서 김세정에게 카운터를 맞고 다운됐고, 김청하는 언니이지만 어서옵쇼에서 굴욕적으로 세정에게 끌려다녔으며 방송인 홍석천, 박지윤 등도 김세정에게 관광당했다. 멤버들도 평소에는 김세정을 놀리지만 힘쓰는 게임을 들어가면 긴장한다. 하지만 전소미와의 베개 싸움에서는 도발당하고 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뿐만 아니라 FPS 게임 대결에서 전소미와 대결했으나 전소미에게 진 적도 있다.
          * 처음 목표는 3단계 통과였다고 하며, 상금을 받으면 어디에 쓰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구구단 정산과 집 구입에 보겠다고 답했다. 오디션을 준비하던 시간을 설명하며 한 장르당 30곡씩 준비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꽃길을 부르다가 장윤정의 짠짜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기교를 선보였으며 본격적으로 노래를 준비한 뒤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러가던 중 장소를 착각해서 젤리피쉬 오디션을 봤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더 큰 회사의 오디션을 보러갈 생각도 한때 했었으나 좋은 선배가수들이 있다는 점과 '용의 꼬리가 될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의 얘기에 영향을 받아 현재 기획사에 남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 2017년 6월 5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26996|기사]]를 통해 6월 12일에 공개되는 [[블락비]] [[일(블락비)|이일]]의 솔로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 2017년 6월 28일에는 [[미미(구구단)|미미]]와 [[https://www.youtube.com/watch?v=DMWkwQ6xk2U|[어반로드] 세정&미미 ①편]]에 출연했다. [[현대 i30|최고급 해치백]]을 타고[* 협찬 차량인 만큼 차량에 대해 종종 언급되었다.] 버킷리스트 항목을 작성한 후에 --무작정 가기 (단 살아있기)-- 홍대에 방문해 인력거 타기, 인형 뽑기, 벽화거리 방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6월 30일에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f4YhLDyEp38|②편]]에서 연남동에 방문하여 쿠킹 클래스 시간을 가졌고, 국 요리를 배워 둘 간의 요리 대결을 펼쳐 세정의 승리로 미미가 벌칙을 수행했다. 승패와 상관없이 결과를 예측했던 시민들과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했다. 7월 5일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6xjuXiHZyN8|③편]]에서 구구단 멤버들에게 선물을 사주기로 해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팔찌를 제작했다. 한강 시민 공원 여의도 지구에 방문해 미미를 위해 자신의 노래인 '꽃길'을 불러주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구구단의 꽃길도 기원했다. 모든 버킷리스트를 완료한 뒤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 2017년 7월 17일부터 9월 5일까지 드라마 [[학교 2017]]에 주연을 맡았다. [[학교 2017]]에서 최초로 정극 연기에 도전했는데, [[마음의 소리(시트콤)|마음의 소리]]에 특별출연을 한 것을 제외하면 전술했듯이 아이돌이라는 선입견과 첫 주연에 첫 정극 연기라는 불안한 대중의 우려와 달리 무난히 연기를 해냈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꿈꾸는 것에 대한 기쁨과 관계에 대한 행복을 [[라은호|은호]]로 다시 깨달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라는 종영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4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68203|기사]]를 통해 10월 27일에 개최되는 '제1회 더 서울어워즈'에 [[소녀시대]] [[윤아(소녀시대)|임윤아]]와 함께 여자 인기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밝혔다. 시상식 자리에 윤아와 함께 올라, 불법 다운로드와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를 학교 2017에서 했던 애교에 녹여서 보여주기도 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송강호]]는 덤. 그리고 연이어서 12월 31일 '2017 [[KBS 연기대상]]'에서 걸그룹 출신 연기자 [[류화영]]과 함께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수상을 받게 도와준 이들의 이름을 다 언급할 수 있도록 이름을 적어온 종이를 꺼내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모든 제작진과 스프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누군가의 창작물에 있어서 누가 되지 않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소감과 함께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베스트 커플상 후보에도 올랐었으나, [[쌈, 마이웨이]], [[김과장]] 등 인기 드라마 속 커플들이 수상했다. 참고로 [[현운]] 역의 [[김정현(1990)|김정현]]을 비롯한 다른 학교 2017 출연진들은 이날 연기대상 시상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난 뒤 학교 2017 박진석 PD와 김정현, 김세정이 따로 만남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날에 같은 아이오아이인 [[김소혜(1999)|김소혜]]도 참석해서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18년 1월 5일부터 방영중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스페셜 MC로 종종 나오고 있다. 이대 편에 이어 충무로편에도 출연하고 있으며, 충무로 편에선 세정의 '''놀라운 센스에 백종원이 감탄하는 모습이 몇 차례 나오기도 했다.''' 세정과 백종원 두 사람이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평가를 하는 장면이 해당 방송 분량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직접 시식을 하려던 백종원이 '우리 딸'이라고 부르며 세정을 떡볶이 시식장소로 불렀고, 세정은 떡볶이보다는 순대곱창전골에 떡 사리를 넣은 느낌이 난다거나, 굳이 여기까지 와서 먹고 싶다는 인상은 심어지지 않는 그냥 평범한 맛이라는 등 촌철살인 평가를 내렸다. 그외에도 식당의 간판, 벽지 색깔, 튀김의 종류, 떡볶이 속 만두 상, 손님 회전율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http://mlbpark.donga.com/mp/b.php?m=search&p=1&b=bullpen&id=201811150025412321&select=stt&query=%EC%84%B8%EC%A0%95&user=&site=donga.com&reply=&source=&sig=hgj9Gg-Yj3DRKfX@hljXGY-gLmlq|#]]]
          * 2018년 1월 28일[[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87661|기사]]를 통해 CF촬영차 국 방콕으로 출국했다. [[박보검]]과 함께 코카콜라 봄 캠페인 CF를 국에서 촬영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해당 광고 내용에 대해선 엠바고 상였었다. 동계올림픽 폐회식이 끝난 이후에야 엠바고가 풀려서, 갑작스런 국행이 박보검과의 코카콜라 광고 촬영 때문이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후 단계적으로 CF 스틸컷과 영상이 공개되었다. 코카콜라 PET병에 '꽃길만 걷자'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이 이번 캠페인의 특징. 그 외 비앤에이치코스메틱 아크웰 화장품 CF 계약을 체결했다.
          *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양희은]] 씨와의 듀엣곡 <엄마가 딸에게>가 공개되었다. 박세현 모녀와 함께했으며 수화 장면이 함께 실렸다. 이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출정식 행사 축하무대에 빅스 레오와 함께 올랐다. 공식 응원가인 <우리는 하나 We the Reds>를 함께 불렀으며 큰 환호를 받았다. 이날 저녁에는 이원 롭스에서 아크웰 팬사인회가 진행되었으며 5월 21일과 28일 밤 9시 30분부터는 구구단 세정과 나영, 워너원 강다니엘, 옹성우가 출연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방송되었다. 해당 방송을 통해 프로듀스 101 시즌2 촬영 당시 [[강다니엘]]의 롤모델이 세정이었음이 다시 한 번 알려졌다. 요리를 못 하기로 유명한 세정인데, 어머니가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게끔 만들어주신 요리가 냉동실에 가득 들어차있는 장면을 보면 왜 세정이 요리를 못하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요리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리 정돈을 안 하는 세정의 성격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요리 잘하는 주부들도 냉장고 특히 냉동실 정리정돈을 안하면 이런 경우가 생긴다. 참고로 세정은 구구단 멤버들 중 정리정돈을 안하는 쪽으로 독보적인 No.1이다.]
          * 9월 26일 빅픽처 패밀리 2회 2부에 김세정이 아닌 척, 몰래 카메라 형로 등장했으나 류수영이 알아봄으로써(세정씨 안경 벗어야 해요) 실패했다. 김세정과 세 여대생이 등장하는 씬이 분당 최고 시청률 8.3%를 기록했다.
          * 10월 13일 빅픽처패밀리 4회에서는 깜짝 생일파티의 주인공이 되었다. 차인표와 류수영이 세정을 검색(갓세정이니까 갓씨야? 곽씨인가,,,)하다가 녹화당일이 김세정의 생일임을 알아내고 생일상을 준비하는 에피소드가 메인테마였다. 훈훈한 생일카드 읽기와 20년전 나에게 말해보기 등의 촉촉한 얘기들이 오갔다. 김세정은 3살 세정이에게 "울어라. 그때 울지 않으면 23살 때 3살처럼 울게 된다"고 말했다. 관련 예로 입양아 봉사 시절 경험을 들어 2년 전 SNS와 대형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입양 예정아 린에게 쓴 편지[* 린아 ~ 너의 눈은 강을 닮은 것처럼 예쁘고 코는 오똑하니 자리잡아서는 조그마한 입술로 웃어줄 때마다 누나들의 마음이 사그러든단다.너의 울음소리가 시원하게 세상에 퍼질 수 있도록누나가 늘 응원할게! 눈만큼 예쁜 꿈을 꾸는 린이가 되면 좋겠다ㅎㅎ 웃는 모습만큼 우는 모습도 예쁜 린아. 세상앞에 움츠려 들지마. 넌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니까. 사랑해 린아 이 세상 모두가 널]가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1월 29일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하고 있던 [[뇌피셜]] 시즌2에 차현, 데프콘에 이어 세번째로 출연했다. ('착한 거짓말은 OK? 아이돌 말빨 원탑 세정'[* 구구단 멤버 하나, 나영과 함께 출연]...) 12분 러닝타임이니 짧고 굵다.
         ==== [[일(블락비)|일]] × 세정 "좋아한다 안 한다" ====
         ||<-4><#4477BB> {{{#FFFFFF 일 × 세정 "좋아한다 안 한다" }}} ||
          * [[블락비]] [[일(블락비)|일]]의 2번째 솔로곡에 듀엣으로 참여하였으며, 2017년 6월 12일 오후 6시에 공개되었다.
          * 아리랑 TV [[After School Club]]에 구구단 전 멤버가 출연했을 때, 해외팬의 요청에 의해 악력기를 손에 쥐게 되었다. 또래들 중 힘이 세다고 하는 미나의 경우 악력기를 어느 정도는 접을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힘들다고 얘기했으며 악력이 약한 미미의 경우 악력기를 전혀 접지 못했다. 하지만 세정은 전혀 힘든 표정을 짓지 않고 한 손으로 악력기를 완전히 접고 5초 이상을 가볍게 버텼으며 이후 악력기를 자유자재로 폈다 접은 상로 웃으며 춤까지 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 한명회 . . . . 28회 일치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압구정 한명회는 [[1415년]](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와 이초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척]](李逖)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된 지 7개월만에 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어날 때 배에는 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영흥]]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국호를 낙점받아왔다. [[한상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성림]](李成林)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절하였으므로, 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그가 어날 당시 몸이 빈약하여 일찍 죽으리라 생각하고 방치하였으나 어느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양육하였다. 그러나 종조부 [[한상덕]]은 그의 관상을 보고 '이 아이는 기우(器宇)가 예사롭지 않으니 필경에는 우리 가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그는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한강(韓康)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세조]]의 사돈이었던 [[한확]]과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韓渥)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ref>광윤-강-악-방신-녕-영정-확, 광윤-강-사기-악-공의-수-상질-기-명회</ref> 그가 어난지 얼마 뒤 동생 [[한명진]]이 어났다.
         그가 어났을 때, 10개월도 안되어 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hwan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2700&cloc=rss%7Cnews%7Csociety 한명회, 황보인 사위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ref>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상덕 (조선)|한상덕]](韓尙德)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그는 종조 할아버지들인 [[한상경]](韓尙敬)과 [[한상덕 (조선)|한상덕]]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종조 할아버지 한상환(韓尙桓)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자망산]]을 찾아가 [[류재]](柳泰齋)의 문하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친구 [[권람]] 등을 만나 사귀었는데, [[강원도]] 자망산의 유학자 [[류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 등을 만나 사귀게 된다. 이후 그는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웅지를 품게 된다.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인용문2|[[쿠데타|화란]]을 평정함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난(亂)을 다스리는 것은 강력한 [[군주]](君主)가 아니면 할 수 없네. [[수양대군]](首陽大君)께서는 활달하기가 [[한 고조]](漢高祖)와 같고 영무(英武)하기가 [[당 종]](唐太宗)과 같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천명(天命)이 그 분에게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 자네는 그 분의 필연(筆硯)을 모시고 있으면서 어찌 조용히 건의하여 일찍 결단하게 하지 않는가?}}
         수양대군이 머뭇거리자 한명회는 대의명분이 있음을 꾸준히 설득하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의 안정을 구가해야 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유년 시절 [[조선 종]]이 세종의 아들들을 데리고 산책을 갈 때 어느 점쟁이가 둘째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 말을 반복 언급, 주지시켰다. 확신이 선 수양대군은 그를 신뢰하였고, 모든 비밀 계략과와 밀모(密謀)는 그의 지휘에 맡겨졌다.
         {{인용문2|[[한 고조]]가 비록 장량(張良), 진평(陳平)의 계략을 쓰기는 했지만 승리로 이끄는 데에는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을 썼고, 당 종이 비록 방현령(房玄齡)ㆍ두여회(杜如晦)를 임용하였지만 전벌(戰伐)에는 포공 단지현(褒公 段志玄))과 악공 울지경덕(鄂公 尉遲敬德)을 선봉으로 세웠습니다.}}
         {{인용문2|사람이 한번 어났으면 죽는 것은 아무리 잘난 사람이고, 못난 사람이라 해도 면할 수 없는 일인데, 사직(社稷)을 위해 죽으면 그래도 그저 병들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감히 딴 마음을 품은 자가 있으면 내가 이 칼로 베겠다!}}
         [[1456년]] [[5월]]에는 [[명나라]] 황제가 [[감]](太監) [[윤봉 (조선)|윤봉]](尹鳳)을 보내서 그에게 특별 선물로 그에게 관복(冠服)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육신]] 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6월 1일]] [[명나라]]의 사신이 [[한성부]]에 도착하자 운검(雲劒)들이 출입하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미구의 사를 대비해,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광연루]]에 사신이 많아서 자리가 좁다는 이유로 세자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 것과, [[홍달손]]과 [[홍윤성]]을 시켜서 병력을 동원할 것이니 운검의 제장(諸將)들도 입시하지 못하게 하기를 주청하여 [[조선 세조|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윤허하였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이 운검을 차고 곧장 들어오려 하기에 운검은 안 들어와도 된다며 제지하였다. 이에 거사의 실패를 우려한 운검의 병력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민첩하게 피하였다.
         [[1463년]](세조 9년) [[의정부]][[좌의정]]이 되고, [[충훈부]]당상을 겸임하였다. [[1464년]](세조 10년)에 [[평안북도]]의 변방에 성곽을 개보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는 '[[의주]]의 하류에는 진보(鎭堡)가 설치된 곳이 없으니 만일 [[여진족]]의 침입이라도 있게 되면 외딴 성(城)은 후원(後援)이 없고, 희천(熙川)과 영흥(永興) 사이는 거리가 너무 멀어, 만에 하나 불의의 사가 발생한다면 사세가 멀리서 구원하기는 어렵겠으니, 의주 하류에는 새로이 진(후일의 인산진(麟山鎭))을 설치하고, 희천과 영흥 사이에는 새 군(훗날의 영원군(寧遠郡))을 두는 것이 이로울 것 같습니다.”라고 건의하여 [[인산진]]과 [[영원군]]을 신설하였다. 바로 [[평안도]]의 성곽 개보수 공사에 파견되어 직접 이를 감독, 관장하고 되돌아왔다.
         * {{브리니커|b24h2859a}}
         [[분류:1415년 어남]][[분류:1487년 죽음]][[분류:종묘배향공신]][[분류:사상가]][[분류:음서]][[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시인]][[분류:조선의 작가]][[분류:육군 군인]][[분류:한명회| ]][[분류:신숙주]][[분류:정난공신]][[분류:좌익공신]][[분류:익대공신]][[분류:좌리공신]][[분류:조선의 부원군]][[분류:병사한 사람]][[분류:부관참시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한국의 장군]][[분류:조선 세조]][[분류:훈구파]][[분류:영의정]][[분류: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분류:조선의 불교 신자]][[분류:대량 살인자]]
  • 윤태진(아나운서) . . . . 27회 일치
         * 정치인은 [[윤진(정치인)]] 문서로.
         || 박혜림 || '''윤진''' || 이진경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560><table bordercolor=#FFCC00><-2><#ff9900><:> '''{{{+5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6px #FFFF33;color:#ffffff"> 윤진 / 尹太珍}}}}}}''' ||
         ||<#FFCC66> '''{{{#000000 별명}}}''' ||<(> 콩[* 키가 작아서 주변의 --키 큰-- 친구들이 콩만하다는 뜻으로 붙여준 별명이다.], 나미춘[* 나 미스 춘향이야의 줄임말], 콩미춘[* 별명의 콩] , 흥미춘 [* 배성재의 텐에서 흥이 겨워서], 어깨깡패(여신) [* 배성재의 텐에서 의상만 입으면 어깨가 커 보여서], 진미디어 / 더테러라이브 / 노래방여포 [* 흥미춘의 내용을 추가해서..], 광탈[* 소사이어티 게임에서 1회만에 탈락] ||
         >'''"나 미스 춘향이야~!!"''' [* 윤진이 고정출연하는 [[배성재의 텐]]에 매회 등장하는 드립. 일명 나미춘. 따라서 나미춘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오는 것이 가능하다]
         前 KBS N SPORTS의 [[아나운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주 중의 알럽베를 책임졌었다. [[최희]], [[정인영(방송인)|정인영]] 등과 함께 KBS N SPORTS의 여성 아나운서 3대장이라고 불렸다. 단아한 이미지의 [[최희]]와 모델급 몸매를 가진 [[정인영(방송인)|정인영]]에 비해 윤진은 --정반대로--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 담당.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는 입사 동기이다.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껏 같이 붙어다닌다고 한다. 나이는 [[정인영(방송인)|정인영]]이 2살 더 많다. 의지할 수 있는 언니 같은 스타일이란다. 그런 [[정인영(방송인)|정인영]]을 보고 윤진은 '대나무 숲' 이라고 한다.
         [[2015년]] 10월 계약 기간이 만료돼 정인영과 함께 퇴사했다. KBSN측은 두 아나운서가 재계약에 별 생각이 없다고 느꼈다고 말해 그녀들의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윤진은 '정규직 전환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원만하게 언급했다. 그녀들의 퇴사 후 정작 최희 아나는 재입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윤진은 배성재의 텐에서 '정말 대단하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후배들도 엄청 치고 올라오는데 거길...'하며 말을 아꼈다.
         2017년 12월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토킹 피해를 호소해 놀라게 했다. '아파트 앞이다, 안자는 거 안다, 뺨한대 맞을까 나와라' 등등 혐오스러운 말들이 담겨있었다. 윤진은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그만두라며 그동안은 팬의 관심이겠거니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지만 그만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포스팅에 댓글은 닫았지만 여러모로 놀란 팬들이 걱정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이후로는 스토킹에 관해 언급이 나온 적은 없다.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웠다.
          * 소개팅 불패였다고 한다. 애프터 신청을 안 받은 적이 없다는 것. 정작 본인은 소개팅이 간절하지 않은 상에서 나간 적이 많아 부담스러웠다고.
          * 입사 전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2290979|윤진(농구팬)]]으로 스포츠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 윤진 귀요미 송도 존재한다. [[http://blog.naver.com/nanginks?Redirect=Log&logNo=90172313797&jumpingVid=42CB7F5B99894FDA5B6FAF20C105C511A5F9|영상]]
          * 2014 시즌을 맞이하여 윤진 송도 새로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5HZfz_Dfig|영상]]
         >[[윤진]] : '''사실 가슴이라는게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사실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쁘냐, 모양이 중요하지.''' [[http://www.podbbang.com/ch/4918?e=21367765|해당 방송 48:00부터.]]
         >--따지고 보면 서형욱은 '가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답변 이후 다른 모든 출연자들이 웃으면서도 당황했고, 서형욱은 '저는 글래머라고만 했지, 가슴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라고 말했다. 이에 윤진은 '글래머가 가슴 아닌가요? 그럼 엉덩이인가?' 라고 말하였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낀 서형욱은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에 화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지만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틈이 조금만 나면 시청자들의 각종 드립이 올라올 정도.[* 다른 여자 게스트인 [[소혜]]도 가끔 배성재에게 드립을 날린다. 윤진과 자기 중에 고르라는 둥, 고백은 하는 게 맞다고 하는 둥, 짝사랑 중이지 않냐는 둥.][* 윤진 본인은 2018년 3월에 bnt와의 인터뷰에서 배성재와의 러브라인에 대한 질문에,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게다가 케미와는 별개로 윤진 본인이 가진 끼가 여기서 막힘없이(...) 발산되는 경우가 매우 자주 나오는 편이라 사실상 베텐의 마스코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 2016년 7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아시아경제TV 프로그램 <윤진의 아이라인UP>의 MC를 맡았다.
          * 2016년 10월 16일부터, [[소사이어티 게임]]에 출연--이라고 쓰고 광탈 내지 1일 출석, 까메오 등장--하였는데, 자세한 것은 [[윤진/소사이어티 게임]] 문서 참고.
          * KBS joy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재연 배우로 6회, 11회 2번 참여했다. 6회에서는 권기인 남자친구를 잡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고 남자친구를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기에 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나왔으며, 11회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가 남자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매달리자 다시 만날까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역할로 나왔다.
          * 지난해 2017년 12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팬이 스토커 DM을 통해 아파트 앞에 있으니 나와달라라는 심한 내용을 올렸다. 이후 윤진은 인스타 DM의 메세지를 캡쳐.. 자제해 달라고 호소를 했다. 소속사도 이에 대해 강경의사를 밝혔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11192|#]]
  • 이정재(영화배우) . . . . 27회 일치
         || [[박신양]][br]([[약속#s-2|약속]]) ||<:> {{{+1 →}}} || '''이정재[br]([[양은 없다]])''' ||<:> {{{+1 →}}} || [[설경구]][br]([[박하사탕(영화)|박하사탕]]) ||
         1973년 3월 15일에 어나 [[군산초등학교]], [[군산중학교(전북)|군산중학교]],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뒤늦게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졸업 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영상예술학과에 입학하여 2008년 석사를 수료하였다. 석사논문명은 '영화 풍의 강세종 역할에 대한 연기 접근방법 연구'이며 RISS에도 등록되어 있다.[[http://www.riss.kr/link?id=T11361644|논문사이트]]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반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백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제대 후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가 맞는 옷인지도 모르겠고 갑작스레 얻은 인기와 돈 때문에 이 직업이 자신의 길인지도 잘 모르던 상에서 [[설상가상]]으로 당시 소속사 부도로 인해 그 빚을 모두 떠안게 되어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모래시계나 느낌같은 경우 2010년대에도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볼수 있는데 발연기가 무엇인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하다. 다만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 당시에 드라마에서는 뭔가 대단한 연기를 요구한 일이 별로 없었고 그 당시는 그정도했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진짜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90년대 말 [[정우성]]과 《[[양은 없다]]》를 찍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여까지 맡았던 캐릭터들과 많이 다른 쌈마이 역할이었고 영화 자체도 다소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이후 정우성과는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사이가 된다. 이 영화로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 [[한석규]], [[박중훈]], [[최민수]]와 함께 쟁쟁한 배우들. 이 때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청룡영화상 한정이고, 전체 영화상을 따지만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홍경인]]이 최연소 수상자이며, 이 기록은 안깨지는 중.]
         우습게도 청룡영화상의 저주인양 거의 10년간 암흑기가 지속된다. 물론 이영애랑 작품했던 선물도 잘되고[* 무려 [[김희]]가 이영애의 아역으로 나온 영화다] 양은 없다의 홍기역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 브라더스]]는 [[이범수]]와 함께하면서 잘된작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둘다 아주 크게 대박난 작품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동안에도 활동을 활발히 했다. 물론 90년대 중후반에 비해서 줄어들긴 했지만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 청룡영화상을 받은 해에 개봉했던 [[이재수의 난]]은 배우들 모두가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흥행 참패. 당대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의 은퇴작 인터뷰도 망했다. 장진영과 함께한 오버더레인보우, 이미연과 함께한 [[흑수선]], 곽경택 감독이 천만을 노리고 [[장동건]], 이정재를 캐스팅해 만들었던 [[풍]]은 대대적인 홍보 및 밀어주기까지 했으나 500만에 그쳤다. 문제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 500만도 적자였다는 것. 이 후 [[에어시티]]로 복귀하면서 드라마에서라도 재기를 꿈꿨으나 [[최지우]]-[[이진욱]]만 연결해주고 끝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감독이 각잡고 만든 [[트리플]]에 출연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망했다.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사의 이정재는 흥행부도수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는 거의 퇴물급의 배우가 되어갔다.
         이후 영화 빅매치에 이어 2015년 7월 22일 개봉한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 두 얼굴의 독립군인 염석진 역할을 하며 [[천만영화]] 두편을 지닌 배우가 되었다.[* 이 캐릭터의 불안정하고 이중적인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두 달 간 체중을 15킬로그램 감량한 것은 물론, 촬영 전 48시간 동안 깨어있는 상로 준비했다고 한다. 똑같이 불안정한 캐릭터인 이자성을 연기할 땐 저절로 살이 빠졌다고.]
         [[암살(2015)|암살]]에서 두얼굴의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으로 나온다. 역할을 위해 무려 15kg이나 감량했다고 한다. [[조진웅]]의 증언에 의하면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끼리 같이 밥 먹을 때 김치를 물에 씻어 먹는가 하면, [[하정우]]가 촬영 후 같이 술 마시자고 계속 꼬드겨도 끝까지 술 한방울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염석진의 불안하고 날카로운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48시간 무수면 상에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하니, 연기에 대한 이정재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고생에 보답하듯 [[암살(2015)|암살]]이 8월 15일 광복절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도둑들]]에 이어 두번째 천만 영화를 갖게 되었다.
          * [[양은 없다]]에서 만난 [[정우성]]과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절친이며, 같이 패션사업도하고 CF에도 출연하고 술도 마시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사이. 일명 청담동 부부로 불린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만나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 그야말로 절친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이지아 사건으로 위로도 할겸 만났던 자리에서 술먹고 떡이된 정우성을 업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밌는건 둘은 그렇게 친한데도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우성은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삼성동에 건축되는 18세대 고급빌라 라테라스 같은 층에 함께 입주했다. (물론 세대는 다르다... ~~이젠 집 밖으로 안나오고 빌라 안에서 놀려고~~)
          * 말끔하고 잘생긴 외모로 연기력에 종종 오해를 받는 배우 중 하나다. 범죄자나 사기꾼, 사채업자, 배신자역할의 연기에서 쿨한 외모와 달리 진가를 보이는 배우로 그가 이런 역할만 맡았다 하면 최소 중박은 치거나 상을 탔다. 그가 처음으로 사채업자 연기를 했던 [[양은 없다]]에서 그는 생애 최초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탄다. 오 브라더스에서도 사채업자를 맡아서 당시 명절 특수를 타긴했지만 중박을 쳤고, 도둑들에선 도둑놈역할로 천만배우까지 되었다.
          *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화가나 무용가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어쩐지 [[양은 없다]]에서 춤을 너무 잘 추시더라니~~
         2번 적발됐다. 첫 번째 음주운전은 1999년 9월 13일, 자신의 [[자동차]]인 [[BMW]]를 혈중 알코올 농도 0.222% 만취 상로 운전을 하다가 당시 23살 여성(회사원) 송모씨가 타고 있는 [[마티즈]] 옆 부분을 들이 박은 것이다. 당시 동료배우 정모씨와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었고, 이씨는 사고 직후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운전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출동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정재는 경찰에서 "내가 운전하지 않고 매니저가 대신했다"라고 혐의 사실을 부인을 했었다. ~~[[강정호|17년 뒤 똑같은 수법을 쓴 메이저리거가 등장하는데...]]~~ 경찰서에서는 시인하였다고 한다. 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구속 입건 및 면허 취소가 되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400209122009&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9-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4301&publishType=00010#|기사]] 그리고 첫 번째 음주 운전 사고가 난 3년 뒤 또 한 번 2002년 7월 22일 [[강남구]] 청담동 청담초등학교앞에서 음주단속 중인 경찰에게 적발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47301|기사]]
         2015년 1월16일 '동양 사' 항소심 5차 공판…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투기자본감시센터는 배우 이정재·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배임 혐의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또한 동양그룹 사로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이 동양네트웍스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이정재가 동양사와 관련이 있으며 배임혐의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아직 재판중이다.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978127|기사]]]
         ||2005||[[풍(영화)|풍]]||주연||4,094,395명||실패||
         ||1998||[[양은 없다]]||주연||329,778명||성공||
         ||2006||제29회 황금촬영상 연기대상||풍||
         ||1999||제3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양은 없다||
         ||1999||제2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양은 없다||
         ||1999||제1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양은 없다||
  • 몽키 D. 루피 . . . . 26회 일치
         아론 파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나미(원피스)|나미]]에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뒤 아론 파크로 가는 장면이 있다. 또한 드럼 섬에서는 [[상디]]와 함께 나미를 데리고 의사를 찾기 위해 드럼 록키를 올라가던 중, 라판이 일으킨 눈사에 의해 상디가 눈 속에 파묻히자 나미에게 잠시 밀짚모자를 맡기고 상디를 찾기 위해 눈으로 뛰어든다. SBS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이므로, 이걸 남에게 맡긴다는 건 '''너는 내 동료이며,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루피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밀짚모자를 씌어준 것도 나미가 처음이다. 아론 파크편에서 나미가 더 서글프게 눈물을 흘렀던 것은 그런 루피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남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반'''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상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상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절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상 셋이서 붙어다닌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다이아몬드급 멘탈의 소유자로, 어린 시절에 해적에게 납치당해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끝까지 ~~자기를 처리하려 한~~ 사보와 에이스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스릴러 바크 편에서는 어지간한 인간은 2~3개 이상 넣으면 의식이 못 버틴다는 그림자들을 100개나 넣고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사기급 주인공보정 능력~~ 정상결전 편 임펠 다운 탈출한 뒤에 벌어진 싸움도 이미 몸이 망가진 상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꼴을 당했는 데도 이런 낙천바보로 성장한 것 자체가 멘탈갑이다. 루피가 정신적 충격으로 [[멘탈붕괴]]를 일으킨 것은 에이스가 죽었을 때 뿐이며, 정확히는 에이스의 죽음을 기폭제로 그간 중첩되어 있던 막대한 정신적[* [[샤본디 제도]]에서 상황상 동료들이 [[바솔로뮤 쿠마|쿠마]]에 의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과 [[임펠 다운]]에서 탈출하기 위해 봉쿠레를 희생시킨것] , 신체적[* [[샤본디 제도]], [[임펠 다운]], [[마린 포드]]에서 받은 신체적 부담감] 부담이 터진 것이다.
         또한 도플라밍고와 루피의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리더십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패왕색 패기의 소유자로써의 카리스마는 제각자 다른 형로써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행콕의 경우는 그것이 절대적인 미모를 통한 매료로써 나타난 셈. 행콕과 같은 패왕색 패기의 소유자인 루피가 행콕의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카리스마]]에 매료되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 쪽 가계도는 700회 이상 연재된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기에 "어머니가 골 D. 로저의 딸이다"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작가가 공식적으로 부정했다.~~로저 나이가 루피 아버지뻘인데 가능할리가~~ [[D(원피스)|D]]의 경우 혈연과는 관계없는[* 로빈과 인연이 있는 [[거인족]] [[하그왈 D. 사우로]]도 D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으로 보이니 결국 어떠한 형로든 골 D. 로저와 혈연일 가능성은 낮다.
         은근히 인맥이 세다.--노골적으로 세다-- 원피스 전체에서 살펴봐도 루피만큼 인맥이 센 인물은 없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스팬담보다도 인맥이 더 세다.(…) 다만 인맥으로 은혜를 입은 일 보다는 자기 쪽에서 은혜를 입혀서 생긴 인맥이 많고, 나머지는 스스로의 인격이나 포부를 보여 거물들에게 인정받아 생긴 인맥이 대부분이다. [[스팬담|장관 아들로 어난 것 하나만 가지고 낙하산 출세하고 졸개들한테도 뒷담이나 먹고있는 누구씨]]와는 애시당초 비교하기가 힘든 부분. ~~인맥은 써야 인맥이지 쓰지 않으면 그냥 단순한 술친구다~~
         가족 인맥 덕을 본 사례는 쿠잔에게 패배하고도 살해당하지 않은 것과 반란군의 간부인 쿠마와 이완코브에게 받은 도움. 아오키지의 경우는 첫 싸움에서는 확실히 가프 덕에 살려준 것이 맞지만 최종적으로 에니에스 로비 전이 끝난 이후에 밀짚모자 일당을 내버려두고 떠난 것은 루피가 수틀리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로빈을 맡겨둬도 될 만한 인물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반코프의 경우도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기는 했지만 사실상 루피가 보여줄 수 있는 증거는 자신이 이스트블루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밖에 없었으며 나머지는 이완코브가 임펠다운에서 루피가 벌인 행적을 보아 루피가 드래곤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납득한 것이다.[* 게다가 버기와 루피 탓에 서내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비된 상에서 징베나 크로커다일 같은 거물까지 섭외했는 데도 똥줄타면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루피와 함께 탈옥한 것은 이반코브에게 있어서도 좀처럼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결국 아버지 이름만으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샤본디 제도에서 쿠마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일밖에 없다.
         그리고 임펠다운 탈옥에서부터 예전에 싸웠던 적들이 대거 재출연하면서 꽤 우호적인 관계로 나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크로커다일, 버기, Mr3 등이 있다. 특이 케이스로 인성 자체가 변한 베라미, 이 경우는 루피가 베라미를 끌어들였다기 보다는 베라미가 스스로 변한 것이지만. 또 같은 초신성으로 명백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물들과도 얽혔다 하면 친분을 만들고 인맥을 쌓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팔가 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루피를 정상결전에서 피신시키고 치료해주며 현재는 동맹[* 사실 이것도 루피를 이용해 스마일 공장을 박살낼 의도가 컸지만 아무래도 루피는 로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듯 하며, 실제로 로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알게모르게 루피를 위해 움직일 때가 많다. ]을 맺은 상이다. 물론 이들은 엄밀히 말해 징베나 행콕과 비슷할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전, 현직 칠무해이며 적이 될 사람들까지도 어느 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루피의 [[패기(원피스)|'사람을 이끄는 자질']]을 보여주는 케이스이다.
         루피가 인맥 덕을 봤다고 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면 단연 레일리. 무력 면에서나 경험 면에서나 이미 만렙을 찍은 전설급 괴물이지만 2년 후로 접어들기 전에 이미 인정받았다. 여기서 한번 인정받은 것만 가지고 키자루한테 살해당할 뻔하다가 도움받고, 정상결전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레일리 덕분에 2년동안 힘을 기를 제안도 받고, 그걸 동료들한테 전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고, 2년동안 직접적으로 지도까지 받는 등 두고두고 엄청나게 도움을 받는다. 루피가 워낙 오지랖이 넓다보니 사실상 이 정도로 루피가 받기만 한 인물도 얼마 없다. 그런데 정작 레일리에게 인정받는 과정 자체는 고작 하루만에 이루어져서 이렇게 잔뜩 덕 본 것치고는 너무 간략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사실 레일리와의 인연은 비단 레일리 한 명과의 인연이 아니다. 시당초 레일리가 루피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루피의 밀짚모자 때문이고, 즉 어릴때부터 줄곧 같이해오던 샹크스와의 인연에서 이어진 관계이며, 아직 밀짚모자의 사연이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로저까지도 얽힌 길고 긴 인연일 가능성이 크기에 당시의 레일리와 루피의 대화가 둘의 인연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레일리의 동거인인 샤키의 루피에 대한 도나 언급등을 보면 레일리 또한 루피가 어느정도 주위의 이목을 끄는 순간부터 쭉 루피의 행보를 지켜봐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하다고 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루피는 10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산적들과 함께 산속에서 살다가 최근이 되어서야 속세로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은둔자처럼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정상결전 종전 이후 루피의 과거회상이 좀 더 디테일하게 나오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루피가 '마을에서 자란 아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샹크스에게 모자를 받았을 때의 회상에서는 후샤마을 모습만 비췄고, 옷도 말쑥하게 입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실상은 숲속에서 수렵을 해서 먹고 사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데다가 키우는게 산적들이다보니 엉덩이 붙이고 교육을 받았던 적은 없을게 뻔하다.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아버지가 드래곤이다보니 거프라고 해도 애를 쉽사리 밖에 내놓고 길렀을 터가 없고, 심지어 마을을 나오고 나서는 이렇다 할만한 공백기간도 없이 첫 항해에서 그대로 1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난 이래 문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고 봐도 좋다. 오히려 자라온 환경을 생각해보면 '''글을 읽을 줄 안다는게 기적이다.'''(…)
         그래도 아무리 산 속에서 살았다곤 하지만 산적들도 신문은 읽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내용들을 가르쳐 줄 때 보이는 반응을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본인이 알려고 하는 도를 보이질 않는다. 보통 동경하는 [[샹크스(원피스)|해적]]이 생기면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처럼 그 [[몽키 D. 루피|해적]]의 정보를 신문에서 찾는 게 정상이다. 샤키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는 점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정보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매스컴 자체에 관심이 없는 듯.[* 아닌게 아니라 현상금이 올라가면 단순히 올라갔다고 좋아라 하지만, 매스컴에서 자기를 두고 떠드는 소리소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기 기사에도 관심이 없는데 남 기사에 관심이 있을까(…)] 그나마 이 해적단 내에서 나미나 로빈 정도가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고 있어 중요한 정보는 귀에 들어오는 편이다. 그런데 나머지 멤버들은 흥미있는 정보다 싶으면 들여다 보기라도 하는데 루피는 웬만해서는 그냥 말로 듣고 놀란다. ~~가만, 얘 진짜 글 읽을 줄 아는거 맞나?~~
         사실 원작이 아닌 애니 오리지널 스토리에서의 장면이지만, 루피가 딱 한 번 책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긴 했었다. 계속 비가 와서 놀지도 못하고 심심해 미칠 지경인 상에서, 로빈이 읽던 책을 보고는 무슨 책이길래 그렇게 읽냐며 물어보더니 모험기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동시에 옆에 있던 동료들은 경악) 뭐 결국에는 읽으려는 순간 상륙할 섬이 보이는 바람에 곧바로 내던지고 나가버렸지만, 사실상 원작과 애니 오리지널을 통틀어서 루피가 책에 관심을 가진 건 이 때가 유일하다.
          * [[돈 클리크]] - 정신력에서 루피가 앞섰다. 고무고무 대망치로 끝내버렸다. 사실 이 공격 직후 루피는 바다에 빠지고 전투불능 상가 됐는데 클리크가 다시 일어나서 난리치다가 깅에 의해 저지. ~~깅 아니었으면 원피스 끝났을지도~~
          *''' [[우솝]]''' - [[고잉 메리호]] 때문에 생긴 갈등이 부른 동료 간 대결. 우솝의 페이스에 심히 휘둘리고 거의 반 죽음 상까지 갔지만 결국 고무고무 총탄으로 끝내버린다.[* 이 때 우솝은 프랑키 패밀리에게 다굴을 맞아 몸도 성치 않은 상였다.] 아마 원피스에서 가장 슬픈 대결이 아니었을까.
          * '''[[겟코 모리아]] & [[오즈(원피스)|오즈]]''' - 오즈는 나이트메어 루피 상와 기어 3로 끝내고, 모리아는 기어 2 & 3 연계 기술로 끝내버리고 1000명 어치의 그림자를 되찾았다.
          * '''[[제트(원피스)|제트]]''' - 극장판 12기 한정.[* 극장판 11기에는 실력자가 없었다.] 제트와의 3 번째 대결에서 끝내 이겼다. 하지만 3 번째 대결때는 기어를 이용해서 싸워 왔으나 막판에는 단순히 무장색 강화만 써서 서로 주먹 교환에 집중했다. 이 때 제트가 신념에 신념으로 답해준다면서 핸디캡으로 오직 팔에다가만 무장색 패기를 두르고 공격을 맞아주었기에 건강과 나이 때문에 한계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던 것.[* 실제로 루피의 무장색 패기를 담은 주먹은 제트의 부하인 슈조의 무장색 패기 + 철괴에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하거나 패기를 담은 주먹에 막히기도 했다. 30년이 넘게 무장색 패기 마스터로 이름을 날렸던 제파의 패기의 힘을 생각하면 제파가 전신에 무장색 패기로 무장을 했다면 루피는 데미지를 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싸움마저도 루피의 모든 기술을 쏟아부으면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엘리펀트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점도 있고 레드 호크(불주먹)같은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사실 이런 기술은 2년 후에 루피가 등장하면서 쓴 지 얼마 안 되었던 기술이고 게다가 현재 시점으로 아직 2년 동안 수련된 상의 루피의 기술이 아직 다 나오지 않았다.]
          * [[레베카(원피스)|레베카]] - 친절을 베푸는 척 암살을 시도하려 했던 레베카를 손에 도시락을 든 상로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려 놓게 하여 그냥 간단히 제압만 했지 싸웠거나 쓰러뜨린건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루피는 레베카를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
          *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그로기 상에서 신 기술인 기어 4를 두 번이나~~몇 달의 연재분도~~ 사용한 혈투 끝에 최강기술 킹콩건으로 끝내 버렸다~~부서진 선글라스는 덤~~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 보정과 주변인물들의 도움이 굉장히 많이 작용되어 이긴 전투다.[* 일단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감마 나이프'로 치명상을 입은 상였고 , 전투 내내 로우의 능력인 '샴블즈'의 도움을 수차례받는다. 기어4의 휴우증으로 10분간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 쳐했을때 콜로세움 아나운서 '가츠'와 여러 콜로세움 자코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10분을 때운다. 원피스에서 루피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최종보스를 이긴 흔치않은 사례. 루치와 싸울당시엔 우솝이 시간을 끌어주고 크로커다일과 싸울 당시엔 로빈이 해독제를 주는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은 많지만 이들과의 싸움은 결국 루피 개인의 무력으로 1:1로 겨뤄내서 승리라는 점에서 도플라밍고와의 결전과는 사례가 다르다.] 둘다 풀피 상에서 1:1 클린 매치로 붙었다면 '''루피는 질, 아니 사망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칠무해를 주인공 보정으로 겨우 이기는데 다음 적인 '''사황'''은 우째 이길라나.--
          * '''[[크로커다일]]''' - 세 번 싸워서 두 번이나 루피를 꺾은 사나이며, 루피 의식을 뺏고 가사 상까지 몰고 간 첫 번째 인물. 왕궁에서 로빈과 여러가지 우연 등이 겹쳐서 겨우겨우 이겼다. 마지막 전투도 주인공 보정이 없었다면 못 이겼다.
          * [[오마츠리 남작]] - 극장판 6기 한정. '''지금까지 나왔던 극장판 전부를 통틀어서''' 오마츠리 남작 만큼 루피를 처참하게 만든 인물은 없었다. 동료들 전부 잃고 온 몸에 화살이 박힌 채로 오마츠리 남작에게 동료들을 돌려달라며 덤비는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개인 능력은 루피보다 한참 아래지만 루피를 핀치상로 몰고 간 계획성이나 루피만큼 동료애가 강했으나 그 성질이 삐뚤어져 있었던 만큼 극장판 6기 분위기를 여느 다른 극장판과 달리 어둡게 몰고 가는데에 한 몫했다. 여담으로 오마츠리 남작의 [[성우]]는 공교롭게도 후에 싸울 [[최종보스]] 후보 중 하나인 [[마샬 D. 티치]]를 연기한 '''[오오츠카 아키오]'''다. 한국판은 로브 루치를 연기한 [[현경수]].
  • 상디 . . . . 26회 일치
         || 한국판[* 한국판에서는 무려 세 명의 성우가 맡았는데, 각 성우의 해석이 조금씩 달라 어느 쪽이 낫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김일의 해석이 더 디테일하고 맛깔난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쓰레기 퀄리티로 욕먹는 ~~대~~원피스 Original에서 유일하게 건질 만한 게 김일의 상디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11기에서 [[브룩(원피스)|브룩]]에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캐스팅되면서 건질 게 더 늘었다~~ 다만 투니판을 맡은 박성 버전도 꽤 괜찮은 연기로 호평이 많다. 양석정 버전은 특유의 음색 탓인지 셋 중 가장 평이 좋지 않다.] || [[이유리(성우)|이유리]](대원방송), [[김영은]](투니버스), [이현주(성우)|이현주](KBS) || [김일(성우)|김일](KBS, 대원방송), [[양석정]](KBS)[* 성우 교체에 얽힌 이야기가 참 복잡한데 2006년경 터진 [[흑역사가 된 것들/성우#s-1.1|KBS 성우 스캔들]]로 인해 김일을 포함한 3명의 성우가 6개월에서 1년의 자격 정지를 당해 양석정으로 교체되었고 투니버스에서 방영될 때쯤에는 김일의 자격 정지는 풀렸지만 성우 본인이 투니버스 출연을 거부하고 있어서 결국 박성에게 넘어갔다.], [[박성]](투니버스) ||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 겸 전투원. ~~그리고 일당 내 변1~~ ~~[듀발|성형외과 의사].~~ 일명 '''검은 다리 상디'''. 여자들한테~~만~~ 굉장히 매너가 좋고 여자를 굉장히 밝히는 색골이면서 실력 좋은 요리사. 상디가 오기 전까지의 밀짚모자 일당의 식생활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루피는 출항하자마자 식량과 식수를 동내고 버섯을 뜯어먹으며 살았고 조로는 루피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계획성 없는 것은 똑같기에 식량이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바다 괴수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괴수 없으면 아사~~. 우솝은 자그마한 낚시는 곧잘 하곤 했으며 나미는 그럭저럭 요리를 잘 했지만 '''유료''' 였다(…).]전투력이 상위권이기 때문에 [[몽키 D. 루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일당 3대 주력 전투원. 그의 애칭은 검은 다리로 명성이 나 있다.
         상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상 수 십,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상는 '''늑골골절에 타박상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게 보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담배를 피우다 결국 골초가 됐는데도 미각이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면 손에 담배 냄새가 흥건히 묻어서 요리에도 냄새가 베일 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의 프로필에서 쵸파가 상디에게 느껴진느 향기는 담배와 해산물 냄새라고 되어있는데, 수트에는 담배 냄새가 베어있어도 요리전 손의 위생 관리에는 철저한 모양] 또한 담배는 해상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항상 항해생활을 해야되사 시중에서 구입하기 보단 직접 제작하는듯 하다.[* 클리크와의 전투후 루피를 간호하느라 상디의 방이 나왔는데 담배를 직접 제작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샤키]처럼 담배를 피는 또 다른 캐릭터들의 담배와 비교해봐도 형가 좀 다르다. 일반 담배와 달리 만드는 담배 특유의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묘하게 리얼하다.] 더불어 수영의 달인으로서 [[어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폐활량까지 갖추고 있으니 필시 원피스의 담배 자체가 현실의 담배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상디의 과거회상에서 담배를 처음 피우는 상디를 보고 제프가 "관둬. 담배 같을걸 피우면 혀가 돌아버린다."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거참. ~~아니면 상디의 미각과 폐활량이 패기를 쓸 줄 알거나~~]
         사내놈들은 돌 보듯 하지만 여자에게는 도가 180도로 돌변한다. 1부 당시에도 미녀 앞에선 그야말로 [[뿅가죽네]] 모드로 돌변해서 헤롱헤롱거리고, 2부에서는 이게 더욱 심해져서 접촉이나 포옹이라도 했다가는 코피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거주 주민들은 둘쨰치고 '''토착 생물들까지 전부 [[오카마]]인 섬'''에서 '''[[wiki:"국방부 퀘스트" 2년 동안]] 지냈으니''' 그럴 만도...--불쌍한 상디를 애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의없게 변짓이나 추파를 부리는 건 아니고, 오버액션은 심하게 들어가지만 기본적으로 예의는 지키면서 외모/연령 불문하고 극진하게 '모신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제프에게 받은 세뇌급 교육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호칭에서도 여성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게, 연하인 나미에겐 나미누님[* 애니메이션에서는 나미씨(상).], 연상인 로빈에겐 로빈양[* 원판에선 로빈쨩. 친숙한 사이에 부르는 호칭], 이라고 부른다.[* 연하인 [[네펠타리 비비]](16세)에게는 '~누님'이나 '~씨'가 아니라 '~양(쨩)' 이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면 뭔가 미묘할 수도 있으나, 이는 잠시 밀짚모자 일당의 배에 체류중이라 낮설 수 있는 비비를 배려함과 동시에 왕족 신분이라 공주님이라는 존칭에 익숙해져 있을 비비를 배려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OH 젠틀맨 OH~~] 그래서인지 상디를 부담스러워하긴 해도 직접적으로 싫다고 한 여성은 아직까지는 거의 없다.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상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상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 [[풀보디]] - 발라티에에서 시비가 붙었고 대결 전개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후의 장면에서의 결과는 상디가 이미 피범벅으로 만들어놓은 상였다. ~~누구든 음식물로 장난질하면 좆되는 거에요. 아주 좆되는 거야.~~
          * 부쟈크 - 극장판 2기 한정. 처음에는 거의 맨발이나 다름없는 상에서 싸웠기 때문에 졌지만 나중에 신발 신고서는 각종 발차기로 뼈를 작살내고, 막타로 내장파열로 끔살시켰다.
          * 그로키 몬스터즈 (햄버그 & 피클스 & 빅빵) - 폭시의 부하들이다. 그로키 링에서 맞붙어서 본인이 볼 보이를 맡는다.[* 물론 조로가 시켰고 처음에는 반발하다 나미가 어울린다고 하니까 바로 수긍.] 그로키 몬스터즈의 '무기 사용 금지' 규칙 위반 작렬에 그로기 상에 몰리다 조로와 10초(...)간 연합해서 먼저 햄버그를 삼등급 불고기 & 야채모듬 슈트로 날려서 빅빵의 무기에 정면으로 깔리게 하고 이어서 조로를 방해하는 피클스를 심판과 함께 날려버린다.[* 이유는 심판의 편파 판정 때문에 상디가 심판을 패고 옐로 카드를 받았기 때문.] 마지막으로 빅빵만 남자 조로와 함께 공군 파워 슈트를 사용, 마무리를 조로에게 맡겼다.
          * [[재브라]] - 칼리파한테 지고서 거품인간으로 있다가 욕조 덕분에 원상복귀 후 재브라에게 죽을 뻔한 저격왕(우솝)을 구하면서 대결 시작. 재브라의 거짓말에도 안 속아 넘어가고 여러모로 대등하게 맞붙은 끝에 디아블 잠브를 발동시켜 화룡점정 슈트로 면상을 불워 땅에 쳐박아버린다.
          * [[wiki:"와다츠미(원피스)" 와다츠미]] - 반더 데켄 9세의 부하. 크기가 마인 수준이다. [[징베]]와 함께 담당했으며 계속 몸 속에 공기를 주입하는 와다츠미에게 계속 크라켄보다 작다고 도발하면서 끝없이 크게 만든 후에 징베가 먼저 무뢰관으로 공중으로 띄운 후 상디의 헬 메모리즈로 싸그리 워버린다.
          * [[깅]] - 상디와 거의 호각으로 싸웠으나 상디가 바로 직전 파알에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상인지라 결국 자기 공격으로 인한 충격도 버티지 못한 틈에 제압하는데 성공. 다만 깅도 결국 상디에게 피니시를 먹이지 못한 채 승부 포기. 상디가 상당히 데미지를 입은 상이긴 했지만 상당히 강하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아론(원피스)|아론]] - 미호크에게 당한 상처로 인해 고전하던 조로와 함께 덤비지만 아론의 아부사메 한 방에 무릎을 꿇고 패배. 사실 이 전투 때에도 이미 그 전에 벌어진 쿠로오비와의 수중전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인 상였다.
          * [[바솔로뮤 쿠마]] - 1차전에서는 동료들 대신 희생하려는 조로 대신에 자신이 희생하려 했으나 조로에게 기절당했다.~~덕분에 조로한테 멋있는 장면 뺏겼다. 안습.~~ 2차전에서는 상디를 그랜드 라인 제2의 여인섬 핑크빛 아일랜드로 날려버린다.[* 그런데 이 때의 상디는 하필 분노로 '''[[멘탈붕괴]]'''에 가까운 상였기 때문에 더더욱 승산이 없었던 싸움이었다. ~~근데 제정신으로 덤볐어도 발리는 건 마찬가지일 거 아냐?~~ ~~상디 안습.~~] [* "젠장, 난 대체 뭘 하는 거야! 눈 앞에서 동료를 둘이나....!!"라며 '''머리를 쥐어뜯는다거나''' 루피의 만류를 '''전혀 듣지 않는''' 모습에서 당시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결론은 상디 안습.~~]
          * [[롤로노아 조로]] - 극장판 5기 한정. 이 때는 조로가 사가 일행과 합류한 상였고 마야의 구슬을 노리던 상황이었다. 결국 상디는 마야를 지키려다 조로와 맞붙었고 상디는 조로의 검에 공격을 당해 팔을 부상당하면서 멀리 날아갔다.
          * 애니판이 KBS에서 방영되었을 때에는 아이들 정서상 부적절하다는 클 때문에 '''담배가 츄파츕스로 바뀌는 굴욕'''을 겪었다. 근데 케이블 심의가 강화되어서 극장판을 제외한 TVA판 한정으로 [[투니버스]]에서도 츄파츕스로 바뀌었다.[* 항상 오렌지맛 사탕인 듯? 1기 오프닝과 초반부의 장면에서는 딸기맛 사탕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사탕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계속 오렌지맛 사탕으로 고정. 그런데 의외로 사탕이 오리지널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 많은 듯하다. 원작을 보고서야 담배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디가 무인도 표류 이후 항상 먹을 걸 가지고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탕을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도 있다(...)] KBS판에서는 주석에서도 달려있듯이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 등에서 부싯돌 튕기는 소리가 그대로 나온 반면에 이후에 방영된 투니버스판에서는 음향쪽도 완벽히 수정하여 완벽하게 사탕으로 만들었다. 북미판의 경우 [4kids] 더빙판에서는 무자비한 편집으로 악명높은 4kids답게 KBS판과 같은 츄파츕스로 만들어버렸다. 다행이게도 이후에 [퍼니메이션]에서 재발매한 DVD판의 경우 무삭제로 나왔다. 대원판은 영상 수정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냥 모자이크 처리로 때운다. 때문에 상디의 입이나 손은 항상 모자이크로 나온다. 음향쪽에서는 라이터 소리가 나는등 옥의 티가 있었지만 최소한 사탕으로 수정을 하려고 했던 KBS만큼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는 대원판 원피스의 무성의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동강동강 열매]도 변역기돌려서 뿔뿔이 열매로 만든 놈들이니까~~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토리코와의 콜라보편에서는 화면을 수정하여 '''아예 삭제됐다.''' 덕분에 손가락 모양은 담배를 쥐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지만 정작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있지 않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25회 일치
         사령관들은 능력을 다섯개 가지고 있는데 한번에 전부 해금되는게 아니라 사령관을 배치한 상로 전투를 벌여 레벨업을 시켜줘야 조금씩 해금된다. 이 레벨업으로 등급을 올릴 수도 있다.
          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정확한 스펠링은 Kinkaid지만 넘어가자.
          * 풍(Typhoon) - 액티브. 3CP 소모. 8초간 함선의 최대 속도 4노트 상승.
          * 풍(Typhoon) - 액티브. 3CP 소모. 8초간 함선의 최대 속도 4노트 상승.
          * 전시 상(State of War) - 적함이 발견되면 10% 확률로 발생. 4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0% 증가.
          * 전시 상(State of War) - 적함이 발견되면 10% 확률로 발생. 4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0% 증가.
          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독.
          * 풍(Typhoon) - 액티브. 3CP 소모. 8초간 함선의 최대 속도 4노트 상승.
          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구축함 특화.
          * 전시 상(State of War) - 적함이 발견되면 10% 확률로 발생. 4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0% 증가.
          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독.
          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독.
          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 비행사.
          * 와후(Wahoo)[* USS 와후. 미해군이 가토급 잠수함으로 더들리 모튼이 함장을 맡은 배였다. 665명을 운 [[부관연락선]] 콘론마루(곤륜환)를 격침시킨 전과로 유명하다. 콜론마루 격침 이후 일본군 해군에 의해 격침, 모튼 함장을 포함한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 - 잠수함에 배치한 상황에서 적에게 공격당할 시 발동. 어뢰 데미지 5% 증가. 고장 확률 10% 감소.
          * 전시 상(State of War) - 적함이 발견되면 10% 확률로 발생. 4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0% 증가.
          * 전시 상(State of War) - 적함이 발견되면 10% 확률로 발생. 4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0% 증가.
          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아시아계 피가 섞였다. 아버지가 중국계였다고.
          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독.
          * 전시 상(State of War) - 적함이 발견되면 10% 확률로 발생. 4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0% 증가.
  • 정승화(육군) . . . . 25회 일치
         [[경상북도]] 김천군(현 [[김천시]]) [[봉산면]] 출생이다. 상관을 잘못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임관]]한 뒤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필 강무/표무원 [[소령]]이 [[월북]]해 버리는 사건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3사단 백골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보임되어서 참전하였는데 [[군단장]]이 [[유재흥]] 장군이었고 그 전투는 [[현리 전투]]였다. 이 때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일도 있었다. 탈출할 때 한 화전민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보답으로 여러 편의를 봐주었다고 한다.
         [[5.16 쿠데타]] 때는 방첩대장(현재의 명칭은 [[국군기무사령부|국군기무사령관]])을 역임했다.회고록에 따르면 이후의 원수지간이 되는 노우와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노우는 방첩대 정보과에 있었는데, 방첩대의 특성상 정치 분야에 관여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너무 그 쪽(정치)에 열중하지 마라. 군인이라면 야전에서 일하는게 더욱 군인답지 않겠나'라고 가볍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고. 이 때 육군사관학교 제11기생들의 쿠데타 음모를 감지하였으나 육군사관학교 5기 동기생인 [[김재춘]]과 함께 이 사건을 덮기로 하였다. 김재춘은 5.16쿠데타에 가담해서 한때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으나 김종필을 중심으로한 육사 8기생 그룹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면서 군부정권 핵심부에서 밀려났다.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그래서 [[10.26 사건]] 후 계엄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에게 약점을 잡혔고, 전두환의 월권행위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당하고 말았다. 모진 [[고문(범죄)|고문]] 후 결국은 석방되었지만 이미 모든 실권은 전두환에게 넘어간 뒤였다. [[장완]](당시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당시 특전사령관)가 정 총장의 연행사건에 대해 크게 분노를 하고 신군부를 제압하려고 계획을 세우지만, 그들만으로 신군부 세력들을 막을 수 없었고 [[장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마저 믿었던 부하들에게 잡히고 만다.
         ||▲ 정승화 [[대장(계급)|대장]](左)과 장완 [[소장(계급)|소장]](右)||
         이후 남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세간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그것이 87년 대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직선제로 치러지게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김영삼]]-[[김대중]]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재야 진보진영에서 [[백기완]]까지 출마하면서 야당표의 분산으로 노우 당선(당시 김영삼과 김대중 등 두명이 하나로 단일화됬어도 노우가 대선에 당선될일은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노우는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무혈입성)이 유력하였다. 정승화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김영삼]]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공식선거운동 시작 직후 김영삼이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영입하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고 선거 바로 전날 [[김현희(1961)|김현희]]가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북풍이 불었고, 3김이 서로 먼저 대통령 해보겠다고 동시출마하는 병크까지 터뜨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우-36%, 김영삼-27%, 김대중-26%, 김종필-7%[* 보면 알 수 있듯, 3김이 단일화만 했어도 노우는 절대 당선될 수 없었다.], 즉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 노우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정승화는 노우가 당선되자 조용히 정치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 강등 조치된 장교들의 계급 환원 처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예비역 장군들의 계급 복권 대상에 포함되어 [[이규광]], [[강문봉]] 등과 함께 정승화도 '''예비역 육군대장의 자격'''을 되찾았고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1988년 시작된 5공 청문회에서는 12.12사 당시의 피해자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사의 전말을 직접증언 했다. 1993년에는 [[장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육본 헌병감), 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 등 12.12 사 당시 육본 진압군 측 장군들과 함께 전두환, 노우 등 당시 신군부(하나회) 출신 인사들을 검찰에 군사반란 혐의로 고발 했으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좆논리|모종의 이유를 들어]] 고발된 인사들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이것으로 기세등등해진 신군부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승화를 포함한 육군본부 측 장군들을 외려 군사반란, [[무고]]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는 추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 무고 혐의 역시 기각됐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이 87년에 제정된 헌법이후 최초로 발생하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하였다. 그의 기대대로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평생의 한을 푸는 듯 했으나,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전두환, 노우가 [[특별사면]] 혜택을 받아 풀려나자 "반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도 풀어준다니 이 나라가 진정으로 법치주의 국가입니까?" 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세간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사건([[12.12 사]])과 관련지어 정승화 장군을 기억하지만, 원래 군부에서 기억하는 정승화는, 휘하 장병들의 '''사격술 향상에 매우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승화 장군이 거쳐간 부대는 사격자세라던가, 격발 등 [[사격]] 기본이 탄탄하게 갖춰졌다는 참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후문.
          * 소설 [[리턴 1979]]에선 [[최규하]] 대통령의 둘도 없는 군부 파트너로, 군부 내 2인자 [[장완]]과 함께 '유신 체제를 이용한 국정 개혁'의 한 축이 된다.
          *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인 리턴1212에선 장정화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시작 배경이 12.12사이기도 하고, 이름도 저작권 및 명예훼손 관련 문제 때문에 변경한 것으로 볼수 있으나, 누가 봐도 정승화 및 그 아들(여기선 아들이 주인공)이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24회 일치
         친구를 감싸는 모습에 감동한 오카마 왕 [[엠폴리오 이반코프]]는 빠른 치료를 원하는 루피에게 '10년 분의 수명을 깎아' 자기치유력을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시술한다. 본래 사형 시간을 넘겨서야 회복될 몸이었지만, 봉쿠레의 응원과 근성으로 20시간만에 회복에 성공하고 LEVEL 6로 향하지만 에이스는 이미 사형장으로 이송된 상였다. 여기서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위해 크로커다일과 [[징베]]를 파티에 합류시킨다.
         LEVEL 3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한냐발]]을 때려 눕히지만 끝까지 버티고 계속 일어나는 한냐발에게 발이 묶인다. 그러다 [[마샬 D. 티치|검은 수염]]의 뒷치기에 한냐발이 당해 쓰러지게 되고, 루피는 자신이 [[자야]]에서 만난 남자가 바로 검은 수염이란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루피는 검은 수염에게 싸움을 걸지만 [[징베]]의 설득으로 일시 휴전 상에 들어간다.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직전, 마젤란에게 쫓겨 수세에 몰리고 Mr.2 봉쿠레의 희생으로 정의의 문을 넘어 임펠 다운을 탈출한다.
         에이스를 구출해내고, 함께 놀라운 호흡으로 해군을 쓰러뜨리며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 도중 추격해 온 [[사카즈키]]의 도발하자, 에이스는 방향을 돌려 사카즈키와 싸우기 시작한다. 이 때 루피가 흘린 비브르 카드를 주우려 할 때 그 틈을 노린 아카이누의 공격을 에이스가 대신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red 에이스 구출실패.}}}'''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한 루피는 정신을 놔버린다.[* 여담으로 PS3으로 나온 원피스 해적무쌍에선 이 장면에서 루피가 패기를 사용, 사카즈키를 두들겨 패버린 후 기절한 것으로 나왔다.왜?] 에이스가 죽자 전황은 해군전체의 타겟이 된 루피를 흰 수염 해적단과 임펠 다운의 탈주자들이 어찌해서든 지키는 형로 바뀌었고, [[징베]]가 루피를 업고 탈출을 시작한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상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상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순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의 하루종일 폴쉐미에게 처참하게 가시가 달린 글러브로 개패듯이 얻어 터지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에이스와 사보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았고, 결국 에이스와 사보가 직접 구하러 와서 폴쉐미를 관광우고(…) 서로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상결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심지어는 뭐가 해적왕이냐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사실 에이스랑 동료들을 못 지키고, 봉쿠레를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희생시켰다. 심지어 에이스는 마린포드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친할아버지인 가프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루피가 정말 처절하게 절망했다. 이런 사실은 샤본디에서 동료를 모두 잃은 일이 첫 번째 좌절이다. 다만 샤본디에서 동료들과 흩어지고, 잠시도 못 쉬고 정상결전까지 겪었다. 결국 좌절을 곱씹을 겨를도 없지만, 이때는 모두가 살아남았으니까 본인이 겪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에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몸을 해치는 일을 말리려는 징베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실 징베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속이 상할 만한 상황이다. 흰수염 본인과 에이스 외에도 흰수염 해적단의 수많은 해적들이 루피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정작 그 본인은 상처가 벌어지는데도 날뛰어 대서 혼자 개죽음을 겪으려 하는 상황이니 징베까지 덩달아 격동해서 루피를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불안정한 상였다. 징베가 '''"잃은 것만 보지말고 남아 있는 것도 봐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자 울며 날뛰던 루피도 '''[[밀짚모자 일당|사랑스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기 해적단'을 남아있는 것 한 가지로 세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일일히 하나씩 꼽아가며 세고는 남아 있는 것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이 참으로 루피다운 모습.
         634화에서는 패왕색 패기로 10만명의 [[신 어인 해적단]] 중 5만 명을 단방에 쓰러트려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줬다. --역시 패왕색 패기는 [[양민학살]]용-- --드래곤:그러라고준 패기가 아닐텐데--636화에선 [[크라켄(원피스)|크라켄]]에게 형제를 인질로 잡았다며 찌질한 명령을 내리는 호디 존스를 보고 되려 크라켄에게 너도 형제도 지켜준다며 미소를 보여주어 크라켄을 멈춰서게 한 다음, 열불난 얼굴로 묵묵히 호디 존스에게 다가가 폭발한 얼굴로 '''뭔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라면서 발길질을 괜히 [[해적왕]]드립치던 호디 존스 얼굴에 먹여줬다. 그렇게 호디를 압도하던 중 [[반더 덱켄 9세]]가 노아를 날려서 어인섬을 파괴하려 하자 공기방울을 타고 노아를 막기 위해 돌입하던 중 이미 덱켄을 처리한 호디와의 수중전에서 방울이 터질 뻔해 위기에 처하지만 공기 주입 후 털어버린다. 그리고 어인섬의 대물림된 증오를 없애기 위해 어인섬을 원점으로 돌려달라는 [[후카보시]] 왕자에게 걱정 말라고 답한다. 그리고 무장색+기어2의 조합으로 신기술 '''고무고무 레드호크([[포트거스 D. 에이스|불주먹]] 총)'''이라는 폭발하는 펀치를 호디에게 선사. --형님 불주먹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JET개틀링까지 합하면 [[아침공작]]완성-- 이어서 기어3+무장색의 엘리펀트 건으로 호디를 작살내고, 엘리펀트 개틀링으로 어인섬에 떨어지기 전에 노아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임에도 어인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루피에게서 어인섬의 한 주민은 '''[[에드워드 뉴게이트|넵튠과 우정의 술잔을 나누고 어인섬을 목숨을 걸고 지켜내 모든 어인들을 감동시킨 위대한 해적]]'''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라호시가 불러낸 해왕류 덕분에 노아는 어인섬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고, 루피는 노아를 파괴하는 걸 중단하는 동시에 호디 존스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로 인한 출혈로 실신.[* 그런데 상처가 커서 출혈이 심했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상처가 나 피가 밖으로 흐르는 상에서 기어 세컨드나 서드 같은 혈류를 빠르게 하거나 움직이는 기술을 사용했기에 출혈이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루피의 혈액형인 F를 밀짚모자 해적단에게서 구할 수 없는 데다가 어인섬의 규율인 '인간에게 수혈할 수 없다.' 탓에 한 때 피를 못 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나 [[징베]] 덕에 위기를 넘겼다. 이후 징베에게 동료가 되라고 제의했다.
         단 어인섬에서의 싸움은 아론파크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론파크에서는 루피 본인의 삽질로 물에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어인섬에서는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 전투가 가능했고 후카보시의 서포트까지 받았다. 게다가 호디는 각성 전에 이미 물 속에서 조로에게 패배한지라 포스가 많이 하락한 상였다.(...)[* 그러나 별개로 감안해야 하는 점이 있는 것이, 조로에게 패배한 호디는 ES를 고작 한 알 먹은 상였고 루피와 싸웠을 때는 ES를 병째로 털어먹고 각성해서 거의 다른 생물이나 진배없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실상 VS호디가 아니라 VS에너지 스테로이드다.~~]
         696화에서는 로의 회상에서 자신이 사황을 모두 무찌르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 때문인지 로는 누가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또한 로가 카이도를 먼저 무너뜨리자라는 말에 샹크스도 쓰러뜨리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패륜]]이니 뭐니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그러나 루피는 해적왕이 되는 것이 목적이며, 그를 위해서는 사황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니 당연한 선택이다.[* 루피는 이미 알라바스타 시점에서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는 에이스와도 싸우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샹크스를 쓰러뜨린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샹크스를 이김으로서 그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함일 뿐이고, 사황인 빅맘, 카이도, 검은수염은 루피가 쓰러뜨려야 할 이유가 있는 상대다. 빅맘은 어인섬 문제, 카이도는 로와의 동맹 때문에, 그리고 검은 수염은 말할 필요도 없는 악연의 적.[* 이게 아니라 해도 해적왕이 목표인 루피이고, 이들이 조용히 루피가 해적왕이 되도록 보고 있을 인물들도 아니니 어떤 형로든 결국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 샹크스는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정신적인 스승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니 만큼 루피가 넘어야 할 진정한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루피의 사상의 중심점은 자유에 맞춰져 있고 사황은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이기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로에게 전해들은 신세계의 상황은 루피의 기대와는 달리, 이전까지와 같이 자유롭게 모험을 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라 사황의 밑에 들어가 통제를 받으며 항해하느냐 사황을 적대하느냐로 예상 외로 갑갑한 환경이 되어있었는데, 루피가 이것을 탐탁찮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황 격파 발언은 신세계의 얘기를 듣자마자 갑툭튀로 내뱉은 말.] 루피의 사황 격파는 누구에게 원한이나 감정이 있고 없고 이전에 신세계 전체를 자유로운 바다로 만드려는 의도일 확률이 크다. 실제로 사황을 전부 쓰러뜨리겠다는 말이야 했지만 자신이 사황이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애시당초 루피가 현상금 올라가면 단순하게 기뻐할 지언정 자기한테 붙는 소문이나 명성을 기뻐하는 타입은 아니다.], 샹크스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황의 일각으로써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샹크스가 스스로 사황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서야 결국은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독자들은 전부 둘이 붙는걸 한번 보고싶을거 아냐? 어떻게든 싸우게 할거야 아마~~
         이후 선수관람석에서 베라미의 B블록의 경기를 잠시 동행하게 된 캐번디시와 지켜보는 도중 콜로세움에 참가한 [[돈 칭자오]]가 나타나 '''"[[몽키 D. 가프|가프]]는 잘 계시는가? 루피 아우"''' 하고 물어보자 생각없이 바로 아저씨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아냐고 대답하는 바람에 또다시 정체를 발각당한다. 그리고는 옆에서 이를 들은 캐번디시가 루피가 맞냐며 추궁하자 당황하며 루피가 아니고 루시라며 발뺌하고,[* 이 와중에도 돈 칭자오의 계속되는 도발에 꼬박꼬박 반응하며 자기가 루피인 것을 계속 [[인증]]한다.~~역시 바보~~ 캐번디시도 그렇고 칭자오도 그렇고 애먼 데다 원한을 품은 인물들 때문에 보통 보케 담당인 루피가 츳코미를 해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캐번디시 曰 "남의 인기나 뺏질 않나 귀신의 손자로 어나질 않나… 순 원망만 사는 쓰레기 자식." 이에 루피 曰 '''"그거 다 내 알바 아니라니까?"'''] 돈 칭자오는 가프에게 수없이 살해당할 뻔 했다며 루피의 할아버지인 '''악마 가프'''[* 돈 칭자오가 활동하던 당시의 해적들에게 있어 가프는 악마로 통했다고 한다.]에게의 빚을 손자에게 갚겠다며 루피?를 공격하고, 이에 루피는 전력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흥분한 돈 칭자오는 계속 루피를 공격하려 하나 주변의 만류로 일단 와해된다. 이후 '''경기고 뭐고 일단 밀짚모자를 잡겠다는 캐번디시를 피해''' 관람석 외벽에 매달려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와 싸우던 [[베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베라미는 엘리자벨로 2세의 왕의 펀치에 휘말려 탈락한다.
         743화에서 ~~루피는 모르는 작전이지만~~ SOP 작전이 성공하자마자 장난감 병정이었던 퀴로스가 눈깜짝할 새 도플라밍고의 목을 베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놀랍다는 듯 우와!!! 밍고가 죽었어!!! 라고 ~~연하게~~ 말한다. (...) 744화에선 쫓아오는 글라디우스를 피해 바이올렛과 함께 모양의 방에 뛰어들어간다. 동맹이 끝났다며 가버리라고 화를 내는 로의 말을 ~~당연히~~ 그대로 무시하고 해루석을 만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그의 수갑을 풀려고 하는데, 그 순간 '''잘린 도플라밍고의 머리가 말을 했다!!''' 루피는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우와!!! 밍고가 살아있어!!!"''' 라고 ~~이마저도 연하게~~ 말한다. (...)
         먼저 막아서는 피카는 조로가 담당하기로 하고 루피는 로와 함께 우시를 타고 성으로 집단 돌격, 켈리 펑크도 합류하고 로빈과 전보벌레로 합류를 결정하고[* 로의 수갑을 풀 열쇠를 비올라가 찾아내 로빈, 바르톨로메오, 레베카가 찾아가기로 했다.] 접선 장소인 해바라기 밭으로의 지름길로 갔다가 물웅덩이에 막혀 전전긍긍하던 중 분신 도플라밍고와 조우, 우시가 당하는 사가 일어난다. 루피는 기어 3를 이용해 3층으로 수직상승했고, 캐번디시의 말을 얻어타서 이동 중이다. 도중에 퀴로스도 합류. 그리고, 돈키호테 패밀리 간부들에게 고전하던 콜로세움 네임드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던 행동을 접고 '''루피에게 길을 내어주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이들의 엄호를 뒤로 하고 루피는 캐번디시, 퀴로스와 함께 해바라기 밭으로 질주하게 된다.
         769화에서는 어찌저찌해서 팔에 묶여있던 실 수갑을 풀어낸 듯, JET 개틀링으로 도플라밍고의 실인형 분신을 산산조각낸다.[* 문제는 도플라밍고의 실인형의 전투력은 본체인 진짜 도플라밍고와 비슷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루피가 본체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도플라밍고의 실인형은 퀴로스의 공격에도 당했고, 우물에서 그닥 공격력도 비중도 높지 않은 압둘라&제트에 당하는 등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실제 도플라밍고보다는 전투력이 훨씬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현재 도플라밍고는 루피의 레드호크와 로의 인젝션 삿 공격을 같은 부위에 당했기 때문에 치명상은 아닐지라도 '풀피' 상는 아니라는 점.] 직후 베라미의 기생실을 풀어줄 것을 도플라밍고에게 요구하고 기생실이 풀리자 쓰러진 베라미에게 쉬고 있으라고 하지만, 베라미가 '얼간이에게도 얼간이 나름의 인생이 있다'며 루피에게 대결을 신청하게 된다.
         하지만 베라미가 자신이 존경했던 상대에게 죽는 것이 영광이라 하자 결국 2년전에 모그타운에서 썻던 기술과 같은 기술로 마무리하고 아니나 다를까, 펑크해저드에서 시저 크라운에게 당한 갈색 수염을 보고 그랬듯이 상당히 화가 나게 되었다.--도대체가 화가 안 나면 전력을 못 내나?-- 어느 쪽이건 780화에서 베라미를 쓰러뜨리고 올라와서는 그 사이에 로까지 도플라밍고에게 살해당한 걸 보고 분노한 상로 도플라밍고의 앞에 섰다.
         그리고 781화에서 새장의 크기를 줄이며 시민 모두를 죽이려 하는 도플라밍고에게 격노하여 문답무용으로 정면 돌진...하는가 했더니 사실은 거기까지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로의 작전이었다. 공격하려던 순간 샴블즈로 뒤쪽에 있던 로와 위치를 교체, 방심하고 있던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능력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다. 도플라밍고는 깡으로 버티며 로를 공격하려 하지만 이어서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공격하고, 그로기 상가 된 도플라밍고에게 로가 혼신의 카운터 쇼크를 날린다. 그 동안 로를 막으려던 트레볼은 루피가 발차기 한 방으로 날려버린다. 하지만 정작 치명상을 입었던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실실 능력으로 부상을 치료하고 로를 짓밟으려 하는 순간 루피가 뻗은 발이 도플라밍고의 발을 받아내고, 서로 발을 맞댄 채로 노려보는 장면으로 781화 종료.
         팬덤에서는 2년 후 시점의 루피가 그렇게 강한 것 같지 않다는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논란이 크다. 도플라밍고와 싸우고 있지만 엇비슷하게 싸우는 것 같아 보여도 당장 지금의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감마 나이프에 맞아서 내장 자체가 파열된 것을 억지로 실로 급히 '''응급조치'''만을 해둔 상이기 때문에 회복이 천천히 되어가는 중이지 회복이 된 것이 아니라 '''몸 상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멀쩡한 몸 상에서는 루피를 여러번이나 간단히 농락하고 제압했던 도플라밍고였기 때문에[* 실인형이 처음 드러났을때도 그렇고, 루피와 로우의 샴블즈 + 레드호크에 당했을때도 맞으면 맞아주면 그만이라며 간단히 루피의 손을 실로 묶어버리고 제압한 등.] 루피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도플라밍고에게 제대로 상대가 안되기에 도플라밍고에게 그만한 너프를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루피도 콜로세움에서부터 계속해서 체력을 소진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루피가 패밀리의 일반간부 수준인 돈 친자오 정도와 싸울 때 도플라밍고는 최고간부보다 훨씬 윗줄의 로우와 싸우고 있었다.(...)
         784화에서 드디어 기어4가 등장. 명칭은 '''기어4 바운스 맨'''. 무장색 패기를 이용해서 탄력을 극한으로 강화한 모습이다. 고스트 루피를 연상시킬 정도로 몸집이 커지며 무장색으로 강화된 부분이 문신처럼 보인다. 이 상에서는 신체를 몇 단으로 압축, 발사하는 것으로 강력한 파워와 놀라운 스피드를 겸비할 수 있으며 육식의 월보처럼 허공을 차며 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무고무 총에 추적기능이 추가되어 도플라밍고의 움직임을 쫓아가 명중시키기도 한다.~~올레인지 공격?~~
  • 서정환 . . . . 24회 일치
         * [[해 타이거즈]] (1983년 ~ 1989년)
         * [[해 타이거즈]] 수석 코치 (1990년 ~ 1994년)
         * [[해 타이거즈]] 2군 감독 (2001년)
         '''서정환'''(徐定煥, [[1955년]] [[7월 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해 타이거즈]]의 [[유격수]]였다. 현재는 [[KBO (야구)|KBO]]의 대구 감독관이다.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 타이거즈|해]]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 타이거즈|해]]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2006년]]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해 타이거즈|해]]의 영광을 되살리는 듯했지만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탈락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그 해 시즌 중 영입한 배터리 코치 [[조범현]]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191144463&sec_id=510201&pt=nv 감독 대이동? 조범현 배터리 코치 KIA 새 사령탑] - 스포츠칸</ref>
         |제목 = 해 타이거즈
         {{1983년 해 타이거즈}}
         {{1986년 해 타이거즈}}
         {{1987년 해 타이거즈}}
         {{1988년 해 타이거즈}}
         {{1989년 해 타이거즈}}
         {{1993년 해 타이거즈}}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김연경(배구선수) . . . . 23회 일치
         2013-14 시즌에 김연경은 소속팀 페네르바흐체의 CEV 컵 우승의 선봉장으로 서며 또다시 MVP가 되는 위엄을 보여줬다. 오오. 갓연경. 게다가 [[엠스플]]에서 김연경 출전 경기를 중계해 줄 정도로 김연경의 위상을 다시 한번 올려주는 시즌이 되었다. 그런데 아로마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페네르바흐체는 바키프방크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은 득점 1위, 공격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역시 갓연경. 한편, 챔피언 결정전 1차전 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김연경은 실종자·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극기 문양을 넣은 검은색 팔꿈치 보호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고, 팀 동료들도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같이 달고 뛰었다. 김연경의 본가가 안산에 있고, 또한 초·중학교를 안산에서 나온 만큼 귀국 후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할 일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은 것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표면상~~ '대승적인 차원' 에서 배려해주는 것 뿐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전에 결정짓겠다던 이적 문제가 [[2012 런던 올림픽|올림픽]]을 지나 9월 초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김연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한배구협회]]의 [[높으신 분]]의 말씀 한마디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사실 진짜 일해야 할 곳은 계약기간과 신분부터 확실히 해줘야 할 [[한국배구연맹]](KOVO)고 [[대한배구협회]]는 이적동의서 쓰는 것이 할 일. 따라서 이 일이 [[대한배구협회]]로 가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그 높으신 분은 김연경 이적 파동 발생 때 대통령 해보고 싶으시다고 나대셔서...~~[*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임희 의원으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후보로 나선 바 있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선수와 구단, 리그 어느 한쪽의 의견을 편향되게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제배구연맹(FIVB)의 유권해석으로 넘기게 됐는데 FIVB에서는 당사자인 김연경과 흥국생명과의 재협상을 명령했다. 이는 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된 선수도 소속팀이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단년계약으로 갱신하려는 행와 함께 FA 신청 연한이 지났음에도 임대라는 이름으로 선수등록 권리를 가지려 하는 한국 배구계의 선수계약 방식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염두해둔 FIVB의 의중이었다. 다만 FIVB에서는 로컬 룰 존중이 우선이고 당사자 간의 숙고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우선적으로 제시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런 가운데 2012년 [[국정감사]] 때 '김연경 사' 가 이슈로 떠오르며[* 국정감사가 있기 전부터 김연경의 팬들이 중심이 되어 SNS를 통해 정치권에 구명 활동을 벌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화답을 하면서 불씨를 지폈다.] 정치권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19일 김연경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줄 것을 호소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8&aid=0002931824|기사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71983|기사 2]]) 이 날 국회 문방위원회가 주재한 국정감사 정책질의에서 민주당 최재천 의원 등이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에게[* 이 날 감사는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대통령 하고 싶다고 나대신~~ 대한배구협회장 임희는 출석하지 않았다.] 국제이적동의서 발급 및 FA 규정 개정을 촉구하였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89937|#]] 사가 커지자 결국 2012년 10월 22일 [[대한배구협회]]는 김연경에게 1년 기한의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FA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연경 사' 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으나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 사이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 2013년의 경과 : 진전 없이 제자리 상 ====
         문제는 그 때문에 세계급 에이스가 국내에 발목잡히고 만 것. 이에 팬들은 ~~이런 흥국생명의 입장을 알려주면 알바 취급하면서~~ 흥국생명'''만''' 깠다. 하지만 김연경도 리그의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책임도 있다. 애초에 흥국은 임대료도 못받은것으로 알려졌다. '''그걸떠나 규정 자체가 없는 상에서 구단이 리그 의사와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해 계약을 했고 리그가 이를 방치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KOVO의 주체 중 하나가 바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임을 고려하면...
         다만 국가대표 자리를 담보로 흥정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김연경을 비판하는 입장도 좀 있는 편. 사실 흥국은 선수를 쓰고 6년이나 보낼수 있었음에도 대승적 차원에서 임대를 해주었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을 악마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꼭 그런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사실 국가대표 은퇴란 카드를 꺼내들 필요도 없었다. [[임의탈퇴]] 조항은 '''V-리그에서만''' 적용될 뿐이고 협회가 이적동의서만 써 주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문제는 사가 이 지경까지 가는데 한 몫 했던 협회가 순순히 이적동의서를 써줄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서류까지 이용해 가면서 노골적으로 구단편을 들고 구조적으로도 구단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협회에게서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추가적으로 김연경 이적 파동과 직접 당사자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구단,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의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삽질을 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박상설 KOVO 前 사무총장이 기금전용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대한배구협회 임희 회장은 김연경 이적 파동이 생기려고 하던 시점에 공석이었던 KOVO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물밑 작업을 시도했었다. 여기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주최인 [[대한배구협회]]에 떡밥을 던졌고,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권광영 단장은 당시 KOVO 총재 추대위원회에 속해있어 KOVO 총재에 눈독을 들이던 임희 회장의 [[대한배구협회]]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또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온갖 비리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박상설 총장에게도 추파를 던져 박 총장에 대한 연임 지지를 약속하며 김연경의 해외진출건을 KOVO 이사회 차원에서 막아달라는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에 임희 회장이 새누리당 18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하고,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의 ITC 발급 불가에 대해 SNS 구명활동에 응하는 엉뚱한 짓으로 우왕좌왕하며 망신을 자초했다. [[http://m.mk.co.kr/entertain/home/2014/213724|해당기사]]
         다음 시즌 남녀부 샐러리캡 차이는 11억 원이다. 최근 상승중인 여자배구 인기만 보면 이를 여자배구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다. 샐러리캡은 그러나 외견상 액수만 갖고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여자부와 남자부의 시장가치, 티켓파워, 그리고 프로배구 출범시 생적 차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배구연맹 측이 왜 남녀 연봉차를 줄일 생각을 안하고 과연 결과적으로 더 늘리는 식의 결정을 했는지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남자 배구가 관중 수는 조금 더 많아도 관중의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것도 아니며 TV 시청률은 오히려 여자쪽이 더 높다. 게다가 여자 배구 쪽은 전통적으로 남자 배구에 비해 불리한 시간대 (여자 배구는 대체로 평일 취약 시간대인 오후 5시에 시합을 하며, 남자 배구는 7시에 시합을 한다)를 배정받는 상임을 감안하면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한, 프로 리그에서 뛰는 운동선수는 전문직이라 남녀 둘 다 연봉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것임에도 남자는 3시즌 동안 샐러리캡이 1억씩 오르는 데 왜 여자는 1년 오르고 2년 동결이 되어야 하는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철 체력에 승부욕 강하고 멘탈 강한 김연경이라 할지라도 2012~13년 두 해에 걸친 이적 사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가 겹쳐 앞서 농담처럼 얘기한 '''그 헬게이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3년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 3~4위 한중전에서 오른쪽 어깨 탈골 부상을 입은 채로 끝까지 경기를 뛰어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고 FIVB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벌어진 2014 세계선수권대회 대륙별 예선 초반 김연경의 결장과 대표팀의 [[카자흐스탄]]전 패배로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2014년 배구 국제대회 일정 중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일정이 겹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놓치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가 2014년 일정에 맞춰 여자대표팀을 A·B팀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에 집중하겠다는 뉘앙스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진출권을 놓고 일본에서 펼쳐진 세계 최종예선에서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패했으나, 네덜란드-일본-카자흐스탄-페루를 연파하며 대한민국은 6경기인 국전 2세트에서 무난하게 올림픽 진출권 획득. 당연하게도(?) 김연경은 맹활약. 다만 국내용 공격으로 여겨지던 개인 시간차가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한 [[양효진]], 서브 맹폭 일본 킬러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반전의 리시브 실력을 보여준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 등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현상.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대표적인 것이 박수 세리머니... 이 대회부터 김연경의 주도로 승리 후 3-3-7 박수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데 보면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응?~~]로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는 걸 보면 주장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8강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선 팀의 절망적인 수비와 서브리시브로 패배해가는 경기[* 서브 에이스만 12개나 내줬다...]에서 혼자서 공격을 다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활약했으나 3세트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후 마지막 세트인 4세트에선 좋은 찬스를 놓치고 서브범실을 범하는 등 급격히 지친모습을 보이며 안타깝게도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과장 좀 보서 김연경 VS 네덜란드라고 할 정도의 투혼을 보이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리우 올림픽]]을 마감했다. 겨우 따낸 3세트의 1승은 거진 김연경이 혼자 해먹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 8강전 직후 김연경은 유니폼을 쥐어뜯을 정도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 당시 경기를 지켜봤던 많은 국민이 안타까워했다.
         문제는, 부록에 적힌 대로 도쿄 올림픽이 열릴 때의 김연경의 나이는 32세인데, 이 정도 나이이면 슬슬 선수 생활의 황혼기이자 은퇴를 준비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물론 자기관리에 철저한 [[호날두]]나 [[이동국]]이나 불혹의 나이에도 국가대표 주전세터를 하는 [[이효희]]의 경우도 있지만, 김연경 본인의 실력도 나이의 노쇠화로 인해 조금씩 쇠퇴해 갈 무렵인데,[* 최근 열린 VNL 한일전에서 이 문제가 터졌다. 한국은 김연경이 나오고도 일본에게 시종일관 제압당하며 [[삼연벙|0대3으로 완패했다. 이후 김연경은 다시는 한일전에서 지지 않겠다며 굳은 결심을 밝혔다.]]] 올림픽은 그렇다 쳐도 김연경이 은퇴한 이후의 여자배구가 어떻게 될거냐는 우려도 충분히 나온다. 농담이 아니고 지금 현재에도 김연경이 잠시 쉬었다 들어가면 그 사이에 우리나라 경기가 헬게이트가 열리는데, 김연경 의존도가 너무 큰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도 먹혀들지는 의문이고[* '''배구도 엄연한 팀플레이 게임이다.''' 한명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그만큼 상대팀에게 철저하게 파악되어서 나중에는 부담감 때문에 그 한명도 부진하거나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엄청'''~~ 커진다. 당장 출전인원이 좀 더 많은 축구의 경우에도 한 명의 슈퍼스타로 모든 것을 풀어갈 수 없는 법인데 배구라고 예외는 없다.] 은퇴한 이후에 조직력 다지기며 대체자를 누구로 뽑느냐 등등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다. 냉정히 말해서 김연경 없는 한국 대표팀은 독일[* 김연경이 나오고도 VNL 대회 이전 맞대결에서는 독일에게 2세트까지 내주며 끌려가다가 3세트에서 내리 연속으로 역전승했고, VNL에서는 1세트를 내줬지만 2세트에서 내리 이겨서 3대1로 승리했다.]과 국[* 2018 아시안게임에선 김연경 있을때도 이겼다. 사실상 아시아 내에서 중국 다음의 강호로 떠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 이하의 수준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내내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며[* 심지어 승패와 상관 없이 조별2위가 확정이였던 대만전에서도 스타팅으로 출전했다!] 아시안 게임 예선 득점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13일동안 7경기를 치루며 체력적으로 크게 무리했다. 결국 체력적으로 한계에 내몰린 국가대표 팀은 이전부터 국에 강한 팀이였음에도 준결승에서 국한테 3:1로 패했다. 각오를 다잡은 김연경은 국가대표 팀을 이끌며 무려 32득점을 하고 결국 3:1로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땄다.[* 9월 1일, 남자 정구 금메달, 여자 배구 동메달, 야구 금메달, 남자 축구 금메달로 한일전에서 무려 4승을 거뒀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딴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이렇게 김연경은 선수 인생 중 총 4번의 아시안 게임을 뛰게 되었다.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김연경이지만 국전에서 지고 [[https://sports.news.naver.com/volleyball/news/read.nhn?oid=477&aid=0000136550|눈물]]을 보였고, 동메달 결정전이였던 한일전 전에 각오를 다졌다고 하니 마지막 아시안 게임이라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던 듯. 또한 동메달을 일본에게 놓치며 김연경 본인에게 한이 되어 남았던 [[2012 런던 올림픽]]이 생각 날 법도 하다.
  • 승리(빅뱅) . . . . 23회 일치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하지만 예능과 방송의 가벼운 이미지에 감춰져 있다. 또한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 배어있다. 방송에서 타 멤버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나쁘게 하거나 비하하여 웃기게 해도 재미있으면 된다 라는 도를 취한다. 부상당한 것을 웃으며 언급해도[* 110404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옆에서 웃고 넘기는 등 대인배. 멤버들도 승리가 회식 자리에서도 항상 본인보다 남을 챙긴다고 언급했고[* 주간아이돌 289회] 재미있는 자리가 생기면 형들에게 연락해 같이 즐길려 한다 말했다. 방송에서도 남을 험담하거나 뒷담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형들에 묻혀서 그렇지 승리의 보컬도 꽤 뛰어나다.--두각을 보이는 노래의 스타일 자체가 형들과 많이 다르다-- '눈물뿐인 바보' 에서 고음도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TqUF3Hco0|영상]] [[양(빅뱅)|양]]과 [[대성(빅뱅)|대성]]의 진하고 바디감 있는 보이스가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고 킬링파트를 담당한다면 승리는 주로 화음이나 백코러스[* [[https://www.youtube.com/watch?v=uFtM4m_D_bY|영상]]]를 담당해 노래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변성기 전이나 후 둘 다 타고난 [[미성]]으로 팝발라드가 어울리는 편이다. 양은 R&B / Soul, 대성은 Pop / Rock이 잘 맞는다면 승리는 어쿠스틱한 부드러운 장르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미성이므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강렬한-- 빅뱅 곡들에서는 승리가 주로 브릿지 부분을 부르면서 승리 특유의 맑으면서도 섹시한 음색을 세련되게 살린다.--그래서 파트가...--
         승리팬들은 승리몰이를 불편해하지만 다른 멤버들 팬들은 대부분 귀엽게 보고 넘어가는 편이다. 애초에 승리 얘기를 안하면 예능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물론 "형들에게 사랑받는 각 그룹 최고의 막내돌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할 정도로 멤버들은 승리를 예뻐한다. 하지만 예뻐한다는 말로 조금은 심한 몰이를 한것은 팬들에게 불편해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양은 듀엣을 한다면 승리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외 멤버들도 승리를 꼭 필요한 멤버라고 얘기한다. 지드래곤은 승리가 무한도전에서 자신이 없어도 빅뱅은 빅뱅이라는 말을 하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Last Dance Tour]] 서울 막콘에서 이에 대해서 양이 언급을 했는데, 막상 승리는 그에 대해 크게 상관쓰지 않는 듯 하다. 우리는 우리니까 괜찮다고.
         || '''1''' || Let's Talk About Love (Feat. [[G-DRAGON]] & [[양(빅뱅)|양]] from [[BIGBANG]]) || 승리, G-DRAGON, 양 || 승리, 함승천, 강욱진, G-DRAGON, 양 || 함승천, 강욱진 ||
         2013년 8월 2번째 솔로앨범 <Let's Talk About Love>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할 말 있어요'로 활동했다. 수록된 전곡을 작사하고 작곡 및 프로듀싱까지 참여했다. 참고로 이 앨범을 만드는 데 주어진 총 시간은 단 4주라고 과장되어 있지만 승리의 인터뷰에서 5월에 곡작업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3달 이상은 공들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기간은 매우 짧게 주고 발매는 늦게 해준 케이스-- 그래도 솔로 미니앨범 1집 당시 주어진 '3'주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1집에서는 작곡가 및 프로듀서들이 어느 정도 승리 앨범 제작에 기여한 반면 2집 작업 때에는 [[지드래곤]]의 솔로앨범(COUP D'ETAT) 제작을 위해 대부분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달려든 상였다는 것을 감안하면...--[[안습]] 양싸 제발!!-- --그리고 홍보 하나 없었다-- --프로듀서없이 혼자 완성한 앨범--
         1번 트랙 'Let's Talk About Love (Feat. G-DRAGON & 양 from BIGBANG)'에는 [[BIGBANG|동일 그룹]]의 [[지드래곤]]과 [[양(빅뱅)|양]]의 피처링이 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이지만 이 평가에는 지드래곤과 양 피쳐링의 비중이 크다. 2번 트랙 '할 말 있어요'는 극적인 훅(hook)의 비트의 변화와 Hustlin' 이라는 반복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Hustlin'은 별 의미는 없고 발음이 좋아서 선택한 단어라고. 각각 3번과 4번, 6번 트랙의 'GG BE'와 '그 딴 거 없어', 'LOVE BOX'는 2013년 승리가 진행했던 스타캐스트 속 팬들의 선택에서 승리 솔로곡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곡이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G_ZnI50c7U|꼭 이어폰으로 들어야 함]] --귀가 녹을뻔해써요-- 7번 트랙 '할 말 있어요 (Hard Remix ver.)'는 보너스 트랙으로, CD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 '''1''' || Intro(Let's Talk About Love JP Ver.) || 승리, Sunny Boy || 승리, 함승천, 강욱진, G-DRAGON, 양 || 함승천, 강욱진 ||
         || '''14''' || Let's Talk About Love -KR Ver.- || 승리, G-DRAGON, 양 || 승리, 함승천, 강욱진 || 함승천, 강욱진 ||
         승리는 음반발매 후 [[멜론]]차트에서 실시간 진입순위 13위를 달성하였다. 아이튠즈에서는 앨범차트 기준으로 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마카오,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국, 베트남등 1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중국차트에서는 발매 당일 주간 1위를 차지 하는 글로벌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또 보이그룹 개인 브랜드평판 2위에 올랐다
         --뮤비 상가...--
          * 우선 승리에게는 지금까지 솔로 앨범을 두 장이나 발매해줬다. --근데 안나온지 겁나오래됬잖아-- --지디, 양, 대성 다 한장씩 나왔는데 승리만 2013년 이후로 한장도 없는데?--
          * (옛)승리 코디는 승리 사이즈, 키 등 모두 모르는 도로 일관했다. --스토롱베이비 무대를 보자 저게 사이즈를 알면 입힐 옷이냐-- 승리가 한번은 "누나, 저도 지용이형처럼 멋있는 옷 입혀주시면 안돼요?" 라고 했으나 코디님께서 웃으시며 "야 사람이 멋있어야 뭘입어도 멋있는 거야" 라고 하셨고 승리는 그런 코디에게 "자신에게 멋진 조언을 해주셨다" 며 넘어갔다. 또한 평소 얘, 쟤, 걔 등으로 부르거나, 다른 맴버가 입고 남은 옷을 주거나, 다른멤버와 비교하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었다. 그 외에도 판타스틱 베이비는 쎈 컨셉의 노래기 때문에 쎈 이미지가 필요하다며 머리를 밀것을 강요했다. 승리는 머리를 밀고난 뒤 많이 속상해하고 죽을 것 같았다며 울었다고 했으나 이젠 진짜 괜찮다고 한 일이 있었다. [[안습]]
          * 승리: 1막에서 방송국 스프들이 '비주얼이 어떻다, 퀄리티가 어떻다' 그래서 주인공이 막 빠져나가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하여간,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20번 넘게 미팅을 했는데 맨 처음에 대본이 나왔을 때 '승현'이란 제 본명이 있었어요. 제가 싫다. 그건 내 자신이지, 뮤지컬에서도 제 속에 있는 걸 보여주기 싫다 했어요. 그런데 연출님께서 그 얘기를 듣고, "승리라는 인물 안에 '승현'이란 인물이 있다" 라며 '내 안의 또 다른 하나의 나'라는 아리아를 만드셨어요.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었죠.
          * 일본에서 꽤 인기가 있다.[* 일본계의 대도서관이라 불리는 [[히카킨|HIKAKIN]]의 게릴라 라이브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화를 정확히 알고 오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승리가 그런 케이스. 일본은 개그코드가 한국과 많이 달라 한류열풍으로 간 사람들이 일본 방송에서 크게 성공을 못할 때가 많다. 바닥부터 겪어봐야 일본 현지인의 말투나 문화, 개그코드를 이해하기 쉽다. 승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처절하고 비참한 예능현실을 많이 맛봤다. 일본 현지 예능인들도 잘 나가고 싶지 않아하는, 한국에 비유하자만 케이블 방송보다 못한 수준의 예능프로에 나가 열심히 했고, 이를 토대로 일본 방송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승리는 그나라의 문화도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리는 일본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문화를 비하하는 것은 참지 않는다. 사실 당연하지만 분위기상 그렇게 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 외에도 한국요리만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MC로써 다양한 요리를 소개하고 잡지에 코너를 만들어 한국음식 소개함] 스프에게 잘하고 방송을 열심히 해서 일본 방송에서는 MC나 고정게스트로 자리잡았다. 또한 첫 일본 CF를 승리가 따냈다. 승리만 보고 빅뱅에게 CF를 줄만큼 신임을 얻고 있다는 증거.
  • 임수정(탤런트) . . . . 23회 일치
         고교 시절 본 연극에 감명받아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1998년 나간 잡지 '쎄씨' 표지모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잡지모델을 했던 배우들로는 [[김민희(1982)|김민희]], [[이요원]], [[배두나]] 등 화려하다. 이들이 일찍 방송계, 영화계로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녀는 광고[* KTF의 브랜드였던 Na의 인터넷 모델로 활동했다.],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특이한 건 연기 공부를 '''[[충공깽|전혀 하지 않은]]''' 상로 [[연예인]]이 되었고, 데뷔 후에도 연기 수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데뷔작이던 《학교4》 나[* [[박찬욱]] 감독은 이때의 연기를 칭찬했다. 박 감독이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데, 마침 보고 있던 프로그램이 학교 4였다. 이때 임수정의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 후 [[장화, 홍련]] 오디션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박찬욱은 그녀를 기억해냈고 김지운 감독에게 강력 추천하였다고 한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 에서는 [[발연기]] 소리도 들었지만, 다작도 하지 않는 배우가 현재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가 된 건 재능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2004년 상반기 동안에는 잡지촬영, 광고 출연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가 하반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캐스팅된다. 이 캐스팅에 대해 그녀의 팬들이 이후 임수정이 배우, 연기자가 아닌 그저 대중적인 스타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고[* 사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전부터의 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경쟁작들이[* 대작드라마 전문 이환경 작가의 [[영웅시대]], 당시 서울대 출신의 미녀 탤런트로서 인기 절정이었던 [[김희]]의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만만치 않아 흥행도 보장을 못 했었다. 심지어는 KBS 관계자가 제작사 대표에게 임수정은 [[듣보잡]]이라며 빼라고 요청[[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ocial/2009/0202/20090202101050100000000_6541684867.html|#]]까지 했다고 한다.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한 건 '무식 인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드라마는 '미사폐인'을 만들 정도로 전국구 인기였고 [[소지섭]]과의 애절한 커플 연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다만 [[동안]] 탓인지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던 탓이었는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처음 본 어르신들은 그녀를 보고 '''"[[중학생]]이 연기 참 잘하네."'''라고 하기도하고 드라마에 '''술 먹는 장면'''이 나오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연기대상 땐 '''"왜 아역상 후보에 없냐"'''고 놀리기도.(...)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동안인 것도 동안이지만 극중에서 [[소지섭]]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고 목소리도 영락없는 어린애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목소리는 실제 임수정 [[목소리]]와 전혀 다르다.) 그 때문인지 중국과 국 더빙판의 경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어린이]] 캐릭터 스타일의 목소리로 더빙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이 임수정 '''최초의 성인 역.'''(...)
         2005년 많은 인기를 얻은 그녀는 영화 《새드무비》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최고의 주가였던 임수정을 포함 [[정우성]], [[신민아]], [[염정아]], [[차현]], [[손영]], [[이기우(배우)|이기우]], [[여진구]]가 나오는데 흥행하지 못한 게 신기할 뿐;; 정우성이 2000년대 중반 놈놈놈을 제외하고 '새드무비’ ‘데이지’ ‘[[중천(영화)|중천]]’ ‘호우시절’ ‘검우강호’ ‘아테나: 전쟁의 여신’까지 모조리 망해가던 침체기였고 임수정도 거품이라는 말이 생기던 시점에서 차기작을 흥행필패로 여겨져서 여배우건 남배우건 기피하던 동물영화로 선택했다. 영화 《각설탕》 이 그것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는 동시기에 개봉한 《[[괴물(영화)|괴물]]》 강세 속에서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후속작은 [[김희]]가 출연하여 16만 관객으로 폭망~~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반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남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남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2010년 9월에는 [[현빈]]과 함께 [[저예산 영화]]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출연하게 되었고 2011년 2월 24일 개봉. 두 배우 모두 무보수로 나온다고. 거기에 함께 스프의 회식과 간식 비용까지 책임졌다고 한다. 오오 [[대인배]]. 영화로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전도연]] 이후 2회 이상 3대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2번째 한국 여배우가 되었다.
         2012년 5월 17일에 개봉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것]]》에 여주인공인 '정인' 역을 연기했다.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인 결혼 후 [[권기]]를 코믹하게 잘 풀어낸 영화. 같이 연기한 [[이선균]], [[류승룡]]과의 호흡이 돋보이며 특히 [[류승룡]]의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수위가 매우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흡연은 물론 집에서 '''[[티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다거나, 남편 [[이선균]]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진다든가 --YEAAAAAAAAH!--, [[검열삭제]] 직전까지 간다거나 --[[이선균]] 이 나쁜 놈--...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배우들도 홍보를 위해 예능 한 편 정도는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여껏 나온 적이 없다. 그보다는 영화잡지 촬영이나 인터뷰로 대신한다.
         || 푸켓 || 진 || 단편영화(미개봉) || 국진출작 ||
          * 위스퍼 : 1999년에 찍은 광고로 극권을 쓴다.(...)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백기간에 지친 남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절한 일]]을 겪었다는 것.(...)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소녀인데 여자인… 이런 복합적인 민아의 캐릭터가 나를 끌어당겼다. 민아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왼손가락에 장애를 갖고 있다. 처음 연기에 고민했다. 장애의 슬픔과 10대의 사랑이 내 안에서 충돌했기 때문이다. 장애를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마음속 멍울로 해석하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실제 내 손은 아주 차갑다. 낯선 이와 악수할 때는 쑥스럽고 미안한 감정도 든다. 민아도 그런 감정의 상가 아닐까.
         >무척 슬픈 영화지만 관객들에게 펑펑 우는 영화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울음으로 토해내고 나면 영화를 보던 순간의 감정을 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이 찡한 상에서 극장을 나서면 계속 여운이 남아 사랑에 대해 오래도록 되새기게 될 것 같다.(...ing에 대해서)
         또한 동명이인 가수[* 이 분이 대학축제에 나왔을때 대학생들이 '배우 임수정'인 줄 알고 왔다가 실망해서 그냥 갔다고 한다.(...) 또한 [[스타골든벨]]에 나왔을 때는 누리꾼들이 역시나 '배우 임수정'인줄 알고 봤다가 속았다고 말했다. 사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여가수였다.], 격투기선수-연기가 힘들다고 말한 기사에 말그대로 많이 낚였다(...)[[http://mfight.co.kr/news/viewbody_ex.php?code=mfight_board_news&Page=1&number=8546&keyfield=&key=|#]], [[2008 베이징 올림픽]] 권도 금메달리스트(앞의 격투기 선수 아버지가 지인들로부터 딸 금메달 땄다고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이 분은 권도선수 은퇴 후 경찰관으로 전직했다.], 그리고 2010 여자 씨름 천하장사와도 이름이 똑같다. 가끔 임수정으로 검색하면 이 사람들이 포털사이트에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임수정 갤러리]] 등지에서는 말끝을 "~정"으로 끝내는 "임수정체"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임수정 갤러리에선 [[수정]] 버튼이 '''임수정 '''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임수정 갤러리는 '''디씨내 몇 안되는 청정구역''' 중 하나. 여기서는 임수정을 '임배우','[[크리스탈]]','클스탈','클쓰'로 지칭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권도]] 경기에서 위에서 말한 동명이인의 권도 선수 임수정이 금메달을 따자 임수정 갤러리가 털렸는데 정작 별 반응도 안하고 고정닉 한 사람이 '''"오셨어요? 갤러리 글 없는데 글 많이 쓰세요"''' 이런 반응을 보이자 털리기는 그쳐버렸다.(...)
         작품 캐스팅이나 작품 활동을 외부에 잘 알리지 않아 팬들의 애간장을 운다.(...)
         대학 진학은 하지 않았지만 싸이더스에 소속되었을 당시 [[영어]]를 종종 공부해서 행사장에서 [[나카타 히데토시]]를 비롯한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미안하다 사랑한다 1화를 보면 영어 배운 지 얼마 안 된 어린이가 하는 수준으로 영어를 말한다.(...) 국 단편 영화에선 그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영어를 길게 말하긴 하고 은밀한 유혹에선 영어 대사도 길게 하고 [[광동어]] 대사도 하는데 흥행작이 아니라서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흥행작인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말하는 일본어 대사도 어색하긴 하다.~~
         뜬금없이 [[로보트 권 V]] 사무실에 방문한 사진이 있다. [[http://jbnews.com/blog/blogOpenView.html?idxno=2641|#]] ~~[[오타쿠]] 인증~~
  • 창작:티겔 왕국 . . . . 23회 일치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상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반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남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남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남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그러나 상티겔 왕국은 달휴의 사후 점점 기울어져 갔는데, 우선 달휴가 죽고 그의 맏아들 '불운한' 달계가 즉위했으나, 그는 한달도 안되서 의문사하고(...) 그의 둘째 '천벌의' 달연이 왕위에 오른다.[* 호칭을 보면 알겠지만, 달계 암살의 유력 용의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왕위에 오르고 약 이틀도 안되어 그의 동생 달혜가 그를 암살하고(....) 또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나흘이후 그의 제수의 명을 받은 암살자에게 죽을뻔 한다(...) 그에겐 다행히, 암기가 급소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하가서 살았고, 얼마 안돼 제수는 교수형, 그리고 그의 여동생은 가택연금을 시키는걸로 마무리시킨다. 달혜는 상티겔 왕국의 왕들중 최악의 왕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그전까지 충실한 우방이었던 하이엔 왕국을 괜히 외교적으로 도발해 적대관계로 가게 하고, 북쪽의 라이엘기스 대공국[* 레잉 왕국이 멸망하기전 마지막 왕의 동생(적자가 아닌 서자였다.)이 세운 국가.]에겐 지속적으로 병력을 갈리면서(...) 국력을 낭비했으며, 그나마 우방이었던 츄프왕국과는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이 벌어지는 상인 불안한 동맹관계였다.[* 상티겔 왕국이 메롱한대도 츄프왕국이 굳이 티겔과의 관계를 끊지않은 이유는 북쪽의 숙적 크누고 공국과 그들을 지원하던 하이엔왕국 때문이었다. 즉, 크누고 공국을 제압하면 얼마든지 티겔과의 관계도 끊을 수 있었다는 애기.] 이렇게 외교적으로 불한한 상에서 내정을 잘한 편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사자족 토벌이라면서 상당한 량의 세금을 걷어갔고, 이는 지속적인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사서에만 기록된 반란의 횟수는 약 20여회정도이다... 사서가 훼손되어서 기록되지 못한 반란까지 포함하면 이횟수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달계의 아들이었던[* 달계가 죽었을당시 아직 어나지 못해 계승받지 못했다.] 달유가 귀족들에 도움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식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겡과의 일전에서 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이에 계로는 겡이 티겔을 정복하면 단순히 숲을 개간해 정착지를 늘리는 수준이 아닌, 숲을 통채로 워 농경지로 개간할것이라고 사냥꾼들에게 겁을 주어 끌어들였고, 결국 흑군과 사냥꾼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해 겡군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계로는 레이먼제국과 겡에 대항하기 위해 긴 장벽을 세우는데, 이를 '계 장벽'이라 한다. 계 장벽을 세워둔뒤, 계로는 적극적인 확장에 나서는데, 탈환지 북부에 대한 공세로 계형시기에 탈환했다가 빼앗긴 땅을 전부 되찾았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북부 원정을 감행해 한때는 겡을 멸망직전에 몰아넣기도 했다. 라이엘기스대공이 직접 군대를 몰고 회전에서 그를 패배시키면서 그것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가 된 거인족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여러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했고, 졸지에 고향을 잃게 된 그 일대 사냥꾼들은 당시 대륙 서남부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남부의 최대던 문씨나 고씨족은 박살났으므로] 신씨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으로, 어느 야만족들이 사냥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불운다는 소식은 모든 사냥꾼 씨족들을 자극시켰고, 이로인해 모든 사냥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는 사냥꾼들의 '대군주' 작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어 이어진 대군주를 정하는 회의에서 참석한 모든 씨족들이 문씨와 고씨가 몰락한 상에서 제일의 씨족이 된 신씨일족의 가문 수장 신유를 대군주로 추대하게 된다.
  • 함인섭 . . . . 22회 일치
         |친인척 = [[함영]](친조부) <br/> [[함병춘]](이복 숙부) <br/> [[함재봉]](사촌 남동생) <br/> [[함재학]](사촌 남동생)
         '''함인섭'''(咸仁燮, [[1907년]] [[5월 3일]] ~ [[1986년]] [[9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이며, 초대 강원대학교 학장, 제6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그는 [[춘천농업대학]]([[강원대학교]]의 전신)의 설립에 참여, 개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과 2대, 4~5대 학장,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원장, 강원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제3대 부통령 송암 [[함영]]의 손자이며, 26년 연하인 [[함병춘]]은 그의 배다른 이복 삼촌이었다.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함인섭이 어날 당시 할아버지 [[함영]]은 [[대한제국]]의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함영이 본처 밀양손씨와의 사이에서 장남 함병석을 1889년에 얻었고, 함병석은 다시 1년 연하인 강성흠(姜星欽)의 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그를 얻었다. 친할아버지인 [[함영]]과는 나이 차이가 34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대인 [[제1공화국]]에 사회활동을 하였다.
         [[1948년]] [[8월]]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설립,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학장서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는 [[문교부]] 국가고등고시 전형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8월 30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건국 이후 그의 할아버지 [[함영]]이 조선 말 [[독립협회]]사건과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수감된 [[이승만]]에게 관대한 한결을 내려 그 인연으로, 내각 법무장관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성사되지 않고 할아버지 [[함영]]은 [[심계원]]장과 제3대 [[부통령]]을 지냈다. 전쟁이 발생하자 그의 동생 함의섭이 일가족을 이끌고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신하였다.
         [[1964년]] 할아버지 [[함영]]이 사망했을 때 [[국민장]]이 거행되었는데, 그는 일찍 죽은 아버지와 삼촌들, 그밖에 나이 어린 이복 삼촌들을 대신해서 그가 상주 노릇을 하였다.
         함인섭의 다섯 딸 중 네명의 딸은 증조부가 되는 [[함영]] 생존시에 이미 결혼한 상였다. 함영의 부고 공고장에 승중손 함인섭의 사위 네 명의 이름도 함께 올라가 있다.
         함인섭의 손자 함영덕 역시 [[함영]] 생전에 어났는데, 함영에게는 4대손이 된다.
         * 할아버지 : [[함영]](咸台永, [[1872년]] [[10월 22일]] ~ [[1964년]] [[10월 24일]])
         본처 유순희의 묘는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 선영 내에 있다. 할아버지 [[함영]]의 묘소는 후일 동작동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 [[함영]]
         [[분류:1907년 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폐렴으로 죽은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당]][[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장관]]
         [[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함영]][[분류:이승만]][[분류:강원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상지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중동고등학교 동문]][[분류:강원대학교]][[분류:도쿄 농업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함씨]][[분류:자유 연애]][[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홍경인 . . . . 22회 일치
         || 아름다운 청년 전일에서 ||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와 [[최민식]]이 나온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일의 [[전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 [*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상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1995년 '이천 춘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일"로 수상. 당시 겨우 '''만 19세'''.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계속 보유 중이다.
         하지만... '전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백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백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선덕여왕(드라마)|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광개토왕(드라마)|드라마 광개토왕]]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
         좋은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시트콤에서 얻은 이미지 때문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 16살 때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냥 그 나이에 맞는 연기 그런게 아니라 엄석대 역이었으니. 19살 때 [[전일]] 역으로 분신자살까지 소화하며 명 연기를 펼치다가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는 주연을 못하게 된다.] 그래도 군전역 후에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며 다시 재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본좌급의 연기력을 갖고도 지나치게 작은 키 때문에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하진 못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인 [[송승헌]], [[소지섭]] 등이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소지섭]]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 [[2011년]] ||<|2> [[KBS]] || [[광개토왕(드라마)|광개토왕]] || 연살타 || ||
         || 2002년 || 남자 어나다 || 만구 ||
         || [[전일#s-7|아름다운 청년 전일]] || [[전일]] ||
         ||<|2> 해제과 || 덴티큐 ||
         ||<|3> 1995년 || 제6회 춘사대상영화제 || '''남우주연상''' || 아름다운 청년 전일 ||
         || 제1회 씨네21 영화상 || 최고의 배우상 || 아름다운 청년 전일 ||
  • 김갑수(배우) . . . . 21회 일치
         ||<:> [[안성기]], [[박중훈]][br]([[투캅스#s-2|투캅스]]) ||<:> {{{+1 → }}} ||<:> '''김갑수[br]([[백산맥(영화)|백산맥]])''' ||<:> {{{+1 → }}} ||<:> [[최민수]][br]([[테러리스트(영화)|테러리스트]]) ||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백산맥(영화)|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TV 최초 출연작은 유인촌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장미희 TV 복귀작으로 유명한 "역사는 흐른다"였다. 장미희를 사모하고 나중에는 독립투사로 변하는 천민 석하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남겼고 이후에도 특집극 찬란한 여명에서 개화승 이동인 연기,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시인 [[이상(작가)|이상]] 연기등으로 인상을 준 후 대표적인 출세작으로 2001년 방영한 [[조 왕건]]. [[궁예]]의 냉정한 책사 [[종간]]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후의 연기도 훌륭하나, 종간 역만큼은 김갑수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그 이전에도 연극계에서 유명세를 떨쳤으나[* '님의 침묵'이라는 연극에서 한용운 선생역을 연기함으로서, 그쪽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한다. 관객동원수는 자그마치 약 3만명. 그는 이 작품으로 백상 예술대상을 비롯 총 5개의 상을 받았다. 그는 이 수상을 계기로 영화 '백산맥'에 케스팅 되기도 했다.] 이 단 한 편의 드라마로 톱 중년 연기자로 단숨에 발돋움한 그는 그 이후로도 주로 현대극도 꽤 했지만 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게 된다.
         여기에 또 한번의 대박을 친 것이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의 [[수양제]]. 간지가 흐를 때는 너무 간지가 흐르고 패륜적일 때는 그야말로 수양제의 패륜적인 성격을 완벽하게 잘 보여줘서 주인공 연개소문을 [[페이크 주인공]]으로 전락시켰을 정도.--덤으로 희노애락을 다 볼 수 있었다-- 이후 [[대왕 세종]]에서 [[황희]]로 출연, [[종(조선)|종]]으로 출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과 함께 '[[궁예|보스]]와 [[종간|최측근]]' 콤비로 인연을 이어갔으며, [[추노(드라마)|추노]]에서 [[인조]]로 단 몇 장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파트너에서도 거물급 국회의원 권희수역으로 이중인격적 연기를 잘 선보였다.
         2017년 [[영화]] [[강철비]]에서 [[정찰총국]] 국장 '리한'역으로 나왔다가 [[KEPD 350|타우러스]] 맞고(...)[*스포일러 4발정도가 날아가고(...), GPS 신호가 끊기는 장면으로 간접적 묘사.] --또 --죽었다.
         || 2017년 || [[강철비]] || 리한[* 북한 정찰총국장] || 조연 || ☆ ||
         ||<|2> 2005년 || [[풍(영화)|풍]] || 국정원 간부 || 조연 || ||
         || 1994년 || [[백산맥(영화)|백산맥]] || 염상구 || 주연 || ||
         || MBC || [[밤이면 밤마다(드라마)|밤이면 밤마다]] || 허수 || 조연 || ||
         ||<|2> KBS2 || [[부활(드라마)|부활]] || 이준 || 조연 || 사망 ||
         || 2000년 || KBS1 || [[조 왕건]] || [[종간#s-2.1]] || 조연 || 사망 ||
         || MBC ||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 [[황성]] || 조연 || 사망 ||
         || 춘사대상영화제 || 새얼굴 남자연기상 ||<|4> [[백산맥(영화)|백산맥]] ||
         || 2001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우수연기상 || [[조 왕건]] ||
  • 김희철(1983) . . . . 21회 일치
         팀 내에선 이특과 함께 맏형을 맡고 있다. 이 정도로 서로간의 캐릭터가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들 두명이서 맏형을 맡은 그룹도 참 드물지 않을까(...) 아이돌 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예쁘장한 미모를 가진 대표 [[미소년]] 비주얼의 아이돌. [[여장]] 사진이 진짜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쁜 남자 연예인으로 정말 유명하다. [* 이 분야의 후임으론 같은 소속사 후배 출신의 [[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느낌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민은 희철과 닮은 꼴이다. 덕분에 10년마다 나오는 얼굴이란 짤방도 있다.]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튀어 보이는 예쁜 얼굴과, 그와 정 반대로 솔직하고 할 말 다하는 성격과 자유분방하고 아이돌계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성있는 ~~돌+I~~ 캐릭터 덕에 대중에게나 팬덤에게나 더 쉽게 각인이 되었다. 특히 이런 캐릭터가 소속 연예인 관리에 엄격하다고 알려졌던 [[SM엔터테인먼트|SM]] 출신에서 나왔다는 것에 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활동 초기부터 인지도로 최상을 찍은 멤버 가운데 하나였으며 예능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멤버들 중 하나가 되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안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룹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쉬워보이는 성격과 캐릭터덕에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의외로 희철은 사생활 관리도 매우 철저하고 '''사건 사고가 전무하다.''' 음주운전이라던가 팬들을 속상하게 할만한 열애설이 거의 없었단 게 그 증거. 최근 [[강인]], [[성민]] 등의 멤버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당하는 사가 발생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지만 희철은 슈주 멤버들 중에선 의외로 모범적인 도를 가진 멤버 축에 속한다. 그외에,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멤버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고, 멤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많이 올려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탈퇴한 중국 멤버 한경과 친하게 지내서 미니홈피에도 글을 자주 올리곤 했는데 한경이 탈퇴하자 충격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최근 한경이 매니저없이 한국 여행을 와서 희철과 찍었단 사진을 게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교류는 이어가고 있는 듯.] 또한 스스로 '''꽃은 꽃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팬들을 자신의 꽃잎이라고 부르는등 자기 사람, 자기 팬은 확실히 챙기고 아이돌로서의 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교통사고로 부상 당했을 당시 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자기 빼고 활동하라며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다리 부상때문에 팀에 차질을 주고 짐이되는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방송에서 이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자신은 다리가 아파 활동을 덜 하는 만큼 예능에서 슈퍼주니어를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중성 있는 꽃미남 비주얼에,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적인 캐릭터라는 특이한 조합 외에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도와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기에 인기를 끄는 것.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세계 단위 개인 팬덤[* '꽃잎'이라고 한다. 영어권 팬덤은 'Petal', 중화권 팬덤은 '花瓣', 일본 팬덤은 '花びら'라고 한다. 모두 꽃잎이라는 뜻이다.]을 거느리는 이유가 있다. 팬들을 내새끼들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기도. 활동도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아서 사실상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한 슈퍼주니어를 알리며 잊히지 않게 하는 멤버.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 [[희혜교지현이]] - 카메오 역 (2009.03.02~2009.09.04)
          * 청춘선율 - 신일 역 (2011.02.09~2011)[* 중국 CCTV에서 방영한 중국 드라마다]
          * (국) YAHAMA Fino ([[슈퍼주니어]])
         절친노트 출연 이후 은혁과 서로 절친이라고 부르며 친함을 과시했고, 심지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절친그램, 사생그램 등의 그와 함께 은혁의 사진들을 마구 업로드했다. 이 때문에 은혁은 덧글로 경찰을 찾았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시원이 유일하게 전도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한다.(...)
         [[연]]과 김기복 남매라고 불릴 정도로 친하며, 그 외 [[소녀시대]] 멤버들과도 친하다. 전 멤버였던 [[제시카(가수)|제시카]]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현재는 서로 언급이 없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4가지쇼]] 김희철 편에서 소녀시대가 출연했을 때는 김희철에 대해 '싹바가지', '미친사람', '정신나감' 등이라고 표현하며 가식없이 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밖에도 소속사 후배 그룹인 [[EXO]], [[레드벨벳]], [[NCT]]와 허물 없이 지낼 정도로 잘 챙겨주며[* [[NCT]] 멤버 [[용]]에게 게임용 컴퓨터를 사줄 정도로 허물없이 잘 챙겨준다], [[카라(아이돌)|카라]]의 [[구하라]]와 [[EXID]]의 [[하니(EXID)|하니]],[* 팬들은 이 두 사람을 희남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사실 희남매는 시리즈가 있는데, 1기는 김희철과 그의 누나 김희진을 합쳐 희남매, 2기는 데뷔 초 박희본과의 라디오 케미를 합쳐 희남매, 3기가 바로 EXID와 하니와의 케미인 희남매다.] [[윤보라]]와도 친하다. 또한 [[김신영]], [[AOA(아이돌)|AOA]] 멤버인 [[지민(AOA)|지민]] , [[설현]] 셋과 자주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일명 '신김치파'. 2018년 6월 2일자 아는 형님 방영분에 따르면 희철이 하도 모임 참여를 안 해서 탈퇴 직전이라고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화 참조.
         2014년 초부터는 [[홍진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홍진호의 라디오 출연 중 전화를 걸어서 반말을 까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물론 방송용으로 만들어낸 친분이 아니라 이전부터 같이 밥도 먹고 하던 사이였던 듯. 사실 홍진호와 김희철이 같은 동네의 주민이라는 것이 [[나 혼자 산다]]에서 홍진호가 게스트로 출연한 화에서 밝혀졌다. 또한 [[이두희]]와도 친분이 있는 듯. 인스타그램에는 홍진호 이두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여자한테 인기 없는 게임만 하는 오타쿠 셋이 모여'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근데, 홍진호는 라디오에서 [[연]]을 소개 받기 위해서 김희철을 더 만난다고 폭로했다.[* 물론 진심은 아닌 것이, 김희철은 과거 서로의 만남 주선을 해달라는 사람과의 인연은 바로 끊는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래서 [[박초아]]의 열애설 당시, 열애설 상대를 희철이 중개해줬다는 추측성 기사 내용에 심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이 시기,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의 재혼 드립이 언급 됐을 때, "그럼 그 소개는 내가 해주는 거네? 이런 젠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 기사 때문에 분노한 거다(...)]
          * 다른 [[가수]]들의 춤을 많이 따라한다. [[원더걸스]]가 '[[Tell Me]]'로 활동하던 시절에 예능에서 Tell Me 춤을 따라 추거나 샤이니 민의 독무를 따라 추기도 했다. [[아는 형님]] 항목에도 나오지만 춤을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꿰고 있는 수준이다. 걸그룹이 나와 대표곡 춤을 추면 대부분 따라 출 수 있고, 포인트까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 그것과는 별개로 친한 여자 연예인들도 많다. 그 중 같은 소속사인 [[연]]과 친한데 아는 여성 중에서 가장 아낀다고도 하고, 물에 빠지면 가장 먼저 구할 사람이라고 인터뷰하는 등 친 여동생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밖에 아끼는 후배로는 설리가 있다. 역시나 설리 팬들에겐 그냥 설리한테 잘해주는 오빠. 설리와는 의남매를 맺었다고 한다. 썰전에서도 설리를 감싸다가 까이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 슈퍼주니어 갤러리에 인증 와서 뜬금없이 설리 예뻐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밖에도 친한 여자 연예인으로 [[손담비]], [[박신혜]], [[송지효]] 등 황금인맥을 자랑한다. EXID 하니, AOA 설현, 지민과도 친분이 있다.
          * 한때 대중 앞에서 안습한 [[가창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2007년 9월 2일 [[SBS 인기가요]]에서 [[양파(가수)|양파]]와 함께 불렀던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U(슈퍼주니어)|U]]'로 활동하던 시절, 플짤이 수도 없이 돌아다녔던 니킥 사건이 그 예이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목 상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지만 본인이 많이 언급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그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김희철은 'U' 삑사리 이후로 자신감을 잃어 이후 활동에서 자기 파트를 빼달라고 요구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이게 본 실력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김구라]]가 희철은 고음을 잘 한다며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슈퍼주니어]]의 '[[너라고 (It's You)]]'에서 고음을 맡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기교 없는 고음을 잘하는 것으로 통한다. 멤버 [[동해(슈퍼주니어)|동해]]가 희철에 대해 고음을 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문제의 2007년도 무대 이전에 라디오에서 감기 걸린 상로 '말리꽃'을 꽤나 잘 불러 레전드 영상으로 남은 것을 보면 못 부른다고 깔 수는 없을 듯하다. [[규현]]은 그날 희철이 부른 말리꽃 음성을 MP3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슈퍼주니어]] 7집 앨범에 수록된 'Islands'와 '[[백일몽 (Evanesce)]]'에서 후반부 고음에 등장하는데 깔끔한 고음 처리에 팬들이 이거 [[예성(슈퍼주니어)|예성]]이 공익 가기 전에 부른 거 아니냐, 그런데 예성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며 헷갈려 했을 정도. (참고로 예성은 슈퍼주니어 내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고, 솔로곡과 앨범도 여러 번 발표했을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김정모와 M&D 결성 후 발표한 미니앨범에서는 가성과 고음까지 잘 소화했지만 가창력 논란이 불거질 때부터 시간이 너무 지나 팬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가창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듯하다. M&D 음악방송 출연을 늘리거나 [[불후의 명곡]]이라도 참가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진짜 참여했다. 김정모와 함께 참가했으며 캔의 '내 생에 봄날은' 을 열창했다. 김정모는 기타 연주를 맡았고, 노래는 희철이 불렀다. 무대 후반부에 캔의 배기성이 등장하며 희철의 미성과 배기성 특유의 긁는 목소리가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 뒤에 이어진 아는 형님에서도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불러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경훈과 함께 듀엣곡인 "[[나비잠]]" 을 불렀는데, 이 곡이 히트하면서 대중에게 가창력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희철의 가창력과 고음실력은 희철이 직접 작사한 'M&D'의 '달수정', '수필', '실루엣', '魂(혼)', (마마무의 휘인과 함께 부른) '나르시스', 슈퍼주니어의 멤버 동해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슈퍼주니어 8집 앨범 '[[PLAY(슈퍼주니어)|PLAY]]'의 수록곡 '[[비처럼 가지마요 (One More Chance)]]' 등에서 엿볼 수 있다. M&D의 멤버 트랙스의 정모는 희철의 보컬에 대해 정형화되지 않은 보컬이라고 언급했다.
          * [[EXO]] [[우이판|크리스]] 사건 이후 [[썰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팬들과의 믿음을 져 버렸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은 게 당장 콘서트를 일주일을 남겨놓은 상에서 ~중략~ 갑자기 나가 버렸다는 건 계약 문제를 떠나 기다렸던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 사람에 따라 얄밉게 볼 수 있는 캐릭터인데 본인 스스로 방송에서 자신의 별명은 인쓰(인성 쓰레기)라고 말하며 능숙하게 대응한다. (희철이 김희철 스프를 부르는 말인 '김스' 와 혼동할 수 있다.) 참고로 무서운 사람한테는 드립을 했을때 리액션이 예상 밖이면 '미..미..미안합니다. 죄..죄..죄송합니다. 이..이게 아닌가?' 등의 반응을 넣는다. 진짜 두려움에 떠는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레 웃고 넘기는 드립이다.
          *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 교통사고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희철을 위해 팬들이 선물한 러시안블루 고양이 '희범'[* 원래 이름은 '한제희범'이다. 그 당시 숙소 생활을 같이 하던 동료들(한경, 제이, 희철, 기범)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 너무 길어서 희범이라 부르고 있다]을 여까지 반려묘로서 아끼고 있다. 미용을 할 때 마취하는 희범이가 안쓰러워 털을 직접 미용해 줄 정도. ~~그런데 땜빵을 내버렸다..~~ 성동카페에서 희범이는 희철에게 꼭 붙어 자야 하는[* 주로 겨드랑이 사이와 허벅지 사이를 선호한다고 한다(....). 희철 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거기서 잠이 드는건지...'] [[개냥이]]라 밝혔다. [[https://youtu.be/nAZwJmkzdrA|영상]] 현재 고양이 희범, 강아지 복이(기복이)를 키우고 있다.
  • 유동근(배우) . . . . 21회 일치
         [[강원도]] [[고성군(강원도)|고성]]에서 어나 [[인천광역시|인천]]에서 성장했다. [[서울예술대학|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사극 [[용의 눈물]], [[장녹수]], [[명성황후]], [[연개소문]], [[정도전(드라마)]] 등에 출연하고 그 외에도 [[드라마]] [[야망의 전설]], [[애인]], [[아내(드라마)|아내]],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 [[민들레 가족]] 등에 출연한 배우다.
         대중은 '''[[왕]] 전문 배우'''로 기억한다. 군주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특유의 후덜덜한 발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탓도 있다. 비슷하게 카리스마형 배우로 유명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이 야인시대 2부의 그 유명한 '''[[내가 고자라니|공산당 할 거야 안 할거야!!!]]'''로 대표되는 귀청이 떨어질듯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유명하다면, 유동근은 마치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포효하는 듯한, 절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초저주파 타입의 호통이다. [[https://youtu.be/DhGlBFPcmCg|이 영상을 보면 그 특유의 성난 음색이 드러난다!]] [[사자후]]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사극의 주요 배역에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강력한 권력자 역을 많이 맡았다. [[계백]], [[연개소문]]이나 '''[[조(조선)|조(이성계)]]''', '''[[종(조선)|종(이방원)]]''', [[세조(조선)|세조]], [[연산군]], '''[[흥선대원군]]''' 등.
         '''[[용의 눈물]]에서 연기한 [[종(조선)|종]]'''은 그야말로 압권. 이때 보여준 연기는 대중에게 길이길이 남았으며, 나중에 처음으로 연기대상까지 얻는다. 용의 눈물에서는 명장면이 많았지만, 거기서도 '용의 춤[* 노쇠한 아버지 이성계를 즐겁게 하기위해 스스로 용포를 휘날리며 춤을 추던 씬.]' 부분이 압권이다. 하긴 이 장면은 유동근, 故[[김무생]], [[최명길(배우)|최명길]] 모두가 폭발한 씬이어서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특히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이 맡은 종은 '''한국 사극 역사상 최고의 연기이자 최고의 캐릭터로 뽑힌다.''' 이때 유동근의 나이 한국 나이로 이제 막 40이 넘은 나이, 배우로서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인 나이에 '''한국 사극 역사에 나아가 연기 역사에 길이 남을 연기'''를 한 것이다. 당연히 연기대상은 Get Ya. 참고로 90년도에 출연한 사극 "파천무" 에서도 카리스마있는 수양대군(후에 세조)으로 분해 당해년도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키도.
         유동근은 '용의 눈물'로 KBS 연기대상을, [[전인화]]는 '여인천하'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남편은 왕으로, 아내는 왕비로 대상 차지한 부부.''' 그것도 '''[[종(조선)|종]]'''과 '''[[문정왕후]]'''라는, '''[[조선]] 역사상 최강의 권력을 누린 왕과 왕비''' 역할이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아내인 [[김을동]]가 출연 중이던 드라마 '왕과 나'의 CP(책임 프로듀서)와 조연출을 폭행한 적이 있었다. 본인이 주장하는 폭행 이유는 "대본이 [[쪽대본]] 형식으로 너무 늦게 나와 촬영이 길어지면서 아내 몸상가 안 좋은 상라서 배려해줄 것을 부탁하는 와중에 제작진이 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도를 보여서..."였다고. 막장스러울 정도의 [[쪽대본]] 때문에 불만이 많은 상였다고 한다.
         정황을 따져보면 '왕과 나' 촬영 당시 쪽대본 & 이런 저런 사유 때문에 그 날따라 몸도 아픈 상이던 아내 전인화가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리는 바람에 유동근씨가 화가 나서 따지러 간 거 같은데...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아내가 걱정되어서 항의하는 와중에도 CP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http://star.mt.co.kr/stview.php?no=2007122719592056123&type=3|당시 인터뷰]]. 자기 자신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항의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력을 사용한건 아무래도 잘못이 맞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이 터진 후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故 [[김재형]] PD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극 제작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그리고 이걸 보고 온라인 상에선 '''용의 주먹'''이라며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 바람에 [[SBS]] 드라마는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상였다가, [[SBS]]의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NTS국장 권용관 역으로 출연이 확정되면서 4년만에 SBS 드라마로 컴백하게 되었다.(여기서 유동근 외모가 스플린터 셀 컨빅션 샘 병장과 닮았다.)
          * SBS <연개소문>(2006): 연개소문 역. 안시성 전투에서 당 종에 승리.
         배우 [[엄웅]]이 조카사위이다.[* 유동근이 [[엄웅]]의 아내 윤혜진 씨의 외삼촌이다. 즉 (유동근의 누나 유예원과 결혼하였다는) 원로배우 [[윤일봉]]이 매형.] 엄웅의 누나인 [[엄정화]]와는 유동근, 김을동 부부와 사돈지간이다. 현재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엄웅의 딸 엄지온에게는 유동근, 김을동 부부가 사실상 [[할아버지]], [[할머니]] 뻘이 된다.
  • 은지원 . . . . 21회 일치
         ||<#000000> '''{{{#FFFFFF SNS}}}''' ||<(> [[https://www.instagram.com/1_kyne_g1/|인스타그램]][* 비공개 상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 사건 때문에...]]--] ||
         ||<width=25%><:>[[이경규]][br](2010)||<:> {{{+1 → }}} ||<width=25%><#FFFFA1><:> '''1박 2일팀[* [[김종민]], [[엄웅]],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br](2011)'''||<:> {{{+1 → }}} ||<width=25%><:>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br](2012)||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반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당시 멤버들 중 가장 건강 상가 좋지 않았다. 무릎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에서도 연습을 강행하고 부상투혼으로라도 무대에 서겠다 하는 데 무한도전 작가가 이번 컴백이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자 평소에 동생들에게 해준게 없었던 못난 형이었는데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이번에는 무언가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고백하는 모습에서 '''장난기라곤 1%도 포함되지 않은''' 젝키에 대한 그의 진심과 해체 뒤에 알게 모르게 가져온 죄책감이나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은지원을 다시 봤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에 기자의 스포일러로 콘서트가 무산되어 주꾸미 축제 같은 지방행사를 뛰어야 한다고 하여 다른 멤버들이 매우 실망해서 우울해할때도 주꾸미가 높이 뛰나 우리가 높이 뛰나 붙어보자고 대체로 다독이는 반응을 보였다.
         1박 2일 복불복으로 실시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프로토스]]를 선택하여 [[이수근]](프로토스)과 함께 '팀 개그'를 결성하여 [[김종민]]([[테란]]) + [[이승기]]([[저그]])의 '팀 영웅'을 상대로 싸웠는데, 이수근이 김종민~~과 이승기~~를 상대로 견제할동안 꾸준히 기지를 확장하고 티어를 올려서 긁어모은 [[우주모함|캐리어]]떼로 마무리했다. [[김형(게임 해설가)|오오 은강...]] ~~진실은 승기가 특급 초보인지라 0.1인분 역할만 했던게 결정적 요인이였다는 것이지만. 김종민 왈 : "승기야 히드라는 일자로 가는 게 아니야. 일렬로 가면 다 죽어. 펼쳐줘야 돼."~~[* 사실 방송내에 나온 '10분동안 아무 공격도 받지 않은 지원이'라는 언급을 보아 ~~0.1인분한~~ 승기와 종민의 합동공격을 10분동안 꾸역꾸역 막아낸 수근 쪽이 더 공이 컸다고 봐야할 듯 하다.]
         제 3의 베이비 붐 세대라 부르는 79~82년에 어난 사람이 연간 86만명으로 굉장히 많은 데다가 그들이 20세가 되자 IMF 사로 인해 자원 입대를 하는 사례가 많아서 98~02년에 육군은 군 병력 과잉 사를 겪었기 때문에 3년동안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 2000년대 초반 이전에는 법적으로(병역법 시행령 제135조 7항) 입영 연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신검]] 이후 3년간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으면 대기 판정으로 현역은 보충역으로, 보충역은 제2 국민역(면제)으로 병역 처분이 한 단계씩 낮아졌었다. 1999~2003년 동안 자원 입대자들이 많아서 보충역에서 제2국민역으로 편입된 사례가 그 당시 꽤 많았다. 이렇게 [[신의 아들|신이 내린 선물을 받은 사람]]은 연평균 약 5,000여 명. 물론 2004년 이후로는 없다.
         '정신 질환으로 면제받았다.' 는 병역 비리 관련 소문이 돈 적도 있으나 사실 무근이며, 소속사에서 공식 부인한 상. 한편 아래에도 언급되는 박근혜 집안과의 관계 때문에 면제가 된 것 아니냐는 다른 형의 병역 비리의 루머도 있었으나 이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진외당고모[* 陳外堂姑母, 아버지의 외사촌 누나 또는 여동생. 자신과는 5촌.]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2011년 박근혜의 트위터에 "조카 지원이와 함께..." 라고 올라온 사진이다. 쉽게 말하면 은지원은 [[박정희]]의 누나의 손자이다. 박정희의 큰누나인 박귀희는 박정희가 어났을 당시 은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장남을 임신한 상였고 은지원의 아버지 은희만은 박귀희의 둘째 아들이다.[* 다른 기사에는 장남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기사에는 셋째 아들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즉, 은지원 아버지의 외삼촌이 바로 박정희. 이 때문에 '''연예계를 대표하는 금수저'''로 항상 언급된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결국 [[박근혜|고모]]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탄핵 인용]]'''이 되면서 '''흑역사 중의 흑역사'''가 됐다.
         결국,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어나서 두번째[* [[10.26 사건|10.26]]이 [[1979년]], 은지원이 [[1978년]]생이므로 1년 동안 대통령의 친인척이였다.]로 대통령 친인척에 포함되었다. 이런 집안 환경 탓인지 철없이 보일지 몰라도 평소의 행실은 꽤 좋다고 한다. [[1박 2일]] 멤버들 중 유일하게 [[한복]]을 제대로 입은 멤버이기도.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다시 대통령 친인척에서 지정해제되었다. 고모가 '''박근혜'''라서 그런지 최근에도 안티가 다시 많아졌다. 비록 자주 만나지 않았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출연료가 어느 정도 올랐다고 은지원이 직접 말했다. 같이 사진을 찍은 것도 있으며 특혜는 안 받았어도 가족이었던 만큼 특히 이것은 평생 지고갈 짐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97년 은지원이 데뷔한 이후 1년뒤에 [[박근혜]]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을 했었다.
         그러나 2년 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이동국]]과는 남남이 되었다.[* 은지원은 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은 상이다.] 한동안 [[카더라]]로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2016년 [[신서유기|신서유기 2]]에서 본인 입으로 '''"저는...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었습니다. 근데 아직도! 게임을 처자빠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삭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악행을 고백해야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다. 즉, 오답을 내려 하더라도 자신의 악행은 고백해야 한다는 것. 이에 [[나영석|나PD]]를 비롯한 스프들과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포복절도했고, [[이수근]]은 '''"그냥 사오정을 하든 손오공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며 병뚜껑을 집어던졌다.]라고 발언했으나, 장소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한 말이다. 게다가 은지원의 전부인이 뉴스킨 이라는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많이 탕진하는 이중고도 겪게 된다. 결국 은지원 본인은 가정에 소홀했고 부인 역시 다단계로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점을 보면[* 물론 좋은 뜻으로 은지원에게 잘해줄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 서로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 이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부부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원 본인은 부인의 행적보다도 자신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에 대해서 자책감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 어났을 때 이름은 은신기였다. 친가쪽에서 지어준 이름인데, 도저히 아이 이름을 신기로 지을 수 없었던 어머니가 호적에 올리기 전 외할아버지를 통해 작명소에서 지어온 이름이 은지원이었다. 그래서 아기수첩에는 은신기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있고, 호적에는 처음부터 은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utSwjkxjYc|#]]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절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반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죽이 맞거나, 남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반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3년 12월 은희상담소 방송을 보면([[https://youtu.be/y30hcXif7GQ|13분부터]]), 젝키 시절 하루에 스케줄 7~8개를 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 스케줄이 있었다고 한다. 멤버들을 각자 집에 내려다주고 씻고 챙기게 한 뒤 거의 곧바로 픽업하러 왔는데, 그래야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머지 멤버들을 우고 마지막으로 은지원 집에 1시간반만에 다시 갔다. 그때 침대에 누운 은지원이 너무 피곤해서 매니저한테 "너 같으면 일어나겠냐"고 한 다음, 매니저가 멤버인 줄 알고 욕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케줄이 펑크났었다고 밝혔다. 매니저는 황당하면서 자기도 피곤하니까 라이터를 입에다 물고 씹었는데, 입에서 불이 펑 터지는걸 은지원이 봤다고 한다.
          * 위에서 밝힌 바 처럼 숙소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은지원은 제일 마지막에 우러 갔다. 2009년 6월 15일 MBC 놀러와 방송([[https://youtu.be/ob09scxZhz0|7분부터]])에서 장수원의 증언에 따르면, 젝키 시절 은지원이 독재자여서, 사장님이 두 명있는 셈이었다고 한다. 원래 사장님이랑 은지원 이렇게 2명이었다고.. 지원이 형을 제일 마지막에 데리러 가서 집 앞에 기다리고 있으면, 스케줄이 늦었는데도 2~30분 후에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고 밝혔다. 그래서 왜 늦었는지 물어보면 엄마가 아침밥 차려주는 것 먹고 나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은지원은 "리더로서 힘든 것도 많은데 그 정도 권한은 있어야 하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 은혼/612화 . . . . 21회 일치
          * 이 우주선은 하타 황자의 우주선. 하타 황자는 멸망 직전의 지구에서 진귀한 생물을 빼돌리고 있었다.
          * 가츠라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하타 황자를 인질로 잡고 강제로 황자 일행의 협조를 받아내는데.
          * 원상 황자에게 축출된 자작 제독이다. 자작은 설사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이미 늦었다며, 자신이 원상 황자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해방군의 복수의 불꽃은 어찌할 바가 없다고 하는데, 다츠마는 불꽃이라면 다른데로 옮기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도중은 이미 처리된 상. 다츠마는 아직 해방군과 자작이 모르는 또다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해방군의 고향을 불운 장본인이자 천도중 조차 처리해버린 괴물. 우츠로의 존재다. 다츠마는 이대로 계속 싸우면 복수는 커녕 우츠로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거라고 말한다.
          * 다츠마는 원상에게 호출됐을 때부터 어떤 각오를 마쳤고 그걸 위한 포석도 이미 완료도었다. 가츠라 고타로. 그가 바로 탈출의 열쇠다. 가츠라에게 별동대를 맡겨 피신 시킨 것. 그는 쾌원대가 자랑하는 스텔스 함을 이끌고 본함으로 접근하고 있다. 신호만 보내면 바로 처들어올 수 있는 상. 다츠마는 숨겨두었던 통신기로 "역습의 때가 왔다"고 알린다. 그리고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다츠마는 무전기를 붙들고 성질을 부리는데 가츠라는 지극히 침착한 도로 "우리들은 별동대. 너희와 전혀 다른 이유로 잡혔다"고 설명한다.
          * 이들은 포로로 잡힌 가츠라 일행에게 "붙잡으려 하는게 아니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멸망해가는 지구에서 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렇다. 이 배는 하타 황자의 배였다. 이미 우리에는 지구의 동물원 등에서 무단으로 털취한 각종 동물들이 즐비하다. 할아범은 어차피 망할 별이고 항의할 놈도 없게 될 테니 보이는 족족 납치했다고 말한다. 하타 황자도 멸종할 생물들을 거둬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왠지 납치한 종류는 유독 개가 많다. 거의 똑같아 보이는 강아지들이지만 할아범은 "개란 워낙 종류가 많은 생물"이라 변명한다. 컬렉션을 따라 가던 황자는 아예 죽어있는 녀석도 있다고 한 우리를 가리키는데.
          * 그것은 마케이누(패견)라는 것으로 놀랍게도 살아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도 함께 죽지도 못하는 그저 살아만 있을 뿐인 생물이다. 하타 황자는 불쌍히 여기며 "죽는 편이 나은 고통을 느낄지라도 죽게 두지 않겠다."그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 황자는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상위비비"라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우리에 가보니 상위비비는 보이지 않고 똥만 보인다. 할아범은 "동물원에선 흔한 일"이라며 어느 동물원이든 가보면 똥만 있고 동물은 없더란 상황이 있다고 얼버무린다. 황자는 그런건 됐고 상위비비는 어디있냐고 찾아 이번엔 "똥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똬리를 튼 상위비비"라는 상황이 동물원에선 흔하다고 얼버무린다. 하타 황자도 안 속는 무성의한 개드립이다.
          * 그때 장막을 뚫고 나오는 손. 하타 황자 이마의 외설물을 낚아챈다. 똥도 상위비비도 처음부터 없었다. 수형인들이 우리 안에서 위장을 한 것. 똥 무늬의 장막을 내걸고 있던 것 뿐이다. 황자를 잡은 손은 "상위비비는 주변 배경에 맞게 의해서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고 조심하라 경고한다.
          * 손의 정체는 가츠라 고타로. 황자를 인질로 잡는다. 그는 종을 지키기 위한 노아의 방주 따윈 쪼잔한 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황자와 그를 구하러 온 병력들에게 "별 전체를 지키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보지 않겠나"라고 제안한다.
         그러고 보면 하타 황자와 가츠라가 만난 적은 처음 인듯.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21회 일치
         종족은 인간과 선녀 사이에서 어난 반인 반선녀이다.
         제 1 각성 형에서는 머리색이 흰색으로 변하며, 홍염의-흑혁(黑赫)의 형가 서양의 드레스 형로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제 1 각성형
         형는 거대한 하얀 천 2개가 교차되어 구성된 하얀 숄.
         변신 : 기억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선녀 고유의 능력인 변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보통 변신하는 것으로는 동년배의 다른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되며, 전투 세가 되었을 땐 이를 해제하고 싸우게 된다.
         모습은 다소 야한 형의 롱슬릿 차이나 드레스에 팔을 넣어서 입을수 있게 망토 같은 파츠가 붙어있다.
         제 1 각성 형에서는 홍염의-진홍(眞紅)으로 이름이 바뀌며 형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홍염의-진홍(眞紅) : 제 1 각성 상로 아스카가 돌입하게 되면서 홍염의-흑혁형(黑赫形)의 형가 서양의 드레스 같이 변한 형, 기존의 흑혁형 형보다 기동성에 좀더 촛점에 맞춘 형로 변화하였다.
         혁우(赫羽) : 제 1각성 상가 되었을때 등장하게 되는 보구이면서 각성 한정으로 장착되는 유일한 보구, 능력은 천경원양포의 부족한 공중 비행 능력을 완벽하게 이끌어내는 장착형 보구이며 2쌍의 날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속성은 염화(炎火) 속성이며, 단순한 비행 능력 증가 뿐만 아니라 공격시 깃털을 불꽃 조각으로 바꿔 적한테 쏘아낸다.
         천경원양포-홍금(天傾元禳布-紅金) : 츠키노 아스카가 잃어버렸던 과거의 일부 기억을 찾아 제 1각성 형로 돌입하면서, 천경원양포의 속성이 바뀌어 홍적(紅赤)의 형로 변화된 버전이다. 기존의 보호 능력 말고도 새롭게 적이 다가올때 불꽃 조각을 내보내 적을 워버리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형는 천경원양포에서 색이 붉은색으로 바뀌고, 테두리에 금색 줄이 생긴 형.
  • 태학 . . . . 21회 일치
         [[유교]] 경전에서는 고대에 이미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기]]에는 순 임금이 상상(上庠)이라는 --상상력이 증진될듯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하며, [[주나라]] 천자는 벽옹(辟雍)이라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들을 국학(國學), 학(太學), 대학(大學)으로 총칭했다.
         전한, 한무제가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 들여 학이 설치했다. 학의 학생들은 '오경박사'의 강의를 받으며 공부를 하며, 시험 성적에 따라서 낭중 이하의 관직을 가지게 되었다. 학에 쓸 교과서로서 유교 경전을 돌에 새긴 [[석경]]이 제작되어 설치됐다. 이 석경은 한나라 시기까지는 금문으로, 위나라 이후에는 고문으로 작성되었다.
         학은 수도에 설치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전한에서는 장안(현재의 시안)에, 후안에서는 낙양(뤄양)에 설치되었다. 여담으로 [[광무제]] 유수는 젊은 시절 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수업료를 내려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아르바이트--
         학의 규모는 점차 발전, 확대되었는데, 학이 생겨난 당초에는 학생 50여명에 불과했으나 후한 시대에는 무려 3만명에 달하게 됐으며, 학교 건물은 240채,1850실을 갖추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학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려는 의식도 높아서, 후한말기에 학은 [[청류파]]의 거점이 되어 외척과 환관 등 부패한 중앙 정치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후한 말기 난세가 닥치자 학 역시 국가의 후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여 쇠퇴하여 소멸했는데, 위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면서 안정된 정권을 갖추면서 낙양에 다시 학이 설치됐다. 낙양의 학은 서진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팔왕의 난]]으로 중원이 초토화 되면서 학도 깡그리 소멸한다. [[동진]] 정권은 수도 건강(지금의 난징)에 학을 재설치했다.--건강한 학--
         서진에서는 276년 공경, 대부 등 고위 관료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하여 학과는 별도로 국자학(國子學)이 설치된다. 국자학과 학은 당날 때까지 병행하여 지속되었는데, 국자죄주(國子祭酒)가 관리했다. 당나라에서는 국자감(國子監)을 둬서, 국자학, 학 이외에 사문학(四門學), 율학(律學), 서학(書學), 산학(算學) 등을 관리했다.
         고구려에서 소수림왕 때 학이 설치되었다. 신라에서는 국학을 설치했으며, 고려에서는 국자감을 설치했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으로 개칭되며, 조선에서는 성균관으로 지속되었다.
         베트남에서도 학-국자감을 두었다.
  • 김지수(배우) . . . . 20회 일치
         데뷔는 본인도 감추고 싶은 비밀인 [[흑역사]] 《여형사8080》[* [[SBS]] 초기에 방영된 3인의 여형사가 한국의 강력범죄를 해결한다는 본격 여성 버디 드라마...인데 범죄 예방과 사회경각심 고취의 목적은 고사하고 여배우들의 액션(...) 눈요기만 했다는 평으로 신문에서 비난 기사가 나자 그 다음 주로 종영했던 작품이다. 참고로 《적색지대》와 함께 [[김갑수]]에게도 흑역사로 간주되는 작품.]으로 1992년에 데뷔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은 [[SBS]]의 《머나먼 쏭바강》[* 란당팜에게 밀렸지만 [[박중훈]]의 상대 여주인공으로서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실력파라는 걸 증명한 최초의 작품.]이었다. 연예인으로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자 1998년 당시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MBC의 《[[보고 또 보고]]》에 출연하고 나서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자매 중 미운오리 취급을 받던 동생이지만 큰아들과 결혼하여, 작은아들과 결혼한 친언니와[* 즉 손위관계가 역전된 겹사돈.] 관계가 역전되는 여인 은주를 연기했다. 《[[보고 또 보고]]》 이후 《온달왕자들》, 《양은 가득히》, 《나쁜 친구들》등 시청률 30%가 넘는 히트작에 출연하였고 《신화》, 《햇빛 사냥》등의 미니시리즈에 다수 출연하였으나, 작품이 히트한 것과 별개로 배우 개인으로는 주목받지 못했다.[* 후술할 [[음주운전]]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영향이 크다.]
         이후 2008년 드라마《[[양의 여자]]》에 출연하여, 어렸을 때 입양되었으나 동생이 어난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구박만 받다가 동생을 버리고 마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기 아나운서 '[[신도영]]'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신도영]]' 역이 선악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어려운 역이었지만 심경변화 등을 잘 살린 데다가, 이 드라마의 [[한재석|다른]] [[이하나|주]][[정겨운|연]]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돋보였다. --물론 [[정애리(배우)|정애리]] 님은 예외로 칩니다--[* 정애리는 이 드라마에서 입양한 딸인 신도영을 구박하면서 친딸을 끊임없이 찾는 최정혜 교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솔직히 《양의 여자》는 [[정애리(배우)|정애리]]와 김지수의 투탑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하나]]는 극 후반에 들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보고 또 보고]]》와 《[[양의 여자]]》로 흥행력을 인정받은 데다가, 《여자, 정혜》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며 괜찮은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야심차게 출연했던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서는... 해당 항목 참조.
         2012년 5월 [[JTBC]] 드라마 [[러브 어게인]]에 출연했다. 근데 [[종편]] 시청률이 시청률이라... [[양의 여자]]가 너무 쎘던 탓인지 특유의 눈물 연기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 때 극중에서 김지수의 딸로 나온 [[김소현(1999)|김소현]]은 "지수 언니--뭐?--[* 둘의 나이 차이는 27년, 김지수가 동안이고 미혼이라 그렇지 그냥 모녀 나이 차이다. ~~김지수가 언니라 하라고 시켰나?~~] 옆에 있으면 나는 [[노안]]"이라고 [[자학]]한 적이 있었다...
         [[양의 여자]]의 대히트 이후에는 특별히 주목받은 작품이 없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양의 여자]]에서 그녀의 "닥쳐, 네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라는 명대사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보고 또 보고]]의 은주도 대단했는데 왠지 묻힌 것 같다.~~
         [[2000년]] [[7월 30일]] 혈중알코올농도 0.175% 만취된 상로 자신의 [[토요타 아발론]] 승용차를 몰고 강남구 학동교차로에서 인도로 돌진해 경계석을 들이받았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심지어 '''무면허''' 상였다고 한다. 불구속 입건되었고, '''342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당시 진행 중이던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 마이크를 [[김정은(배우)|김정은]]에게 넘겨야 했고, 이때문인지 이듬해 방송했던 MBC의 드라마 "네 자매 이야기"는 [[황수정]]이 김지수의 [[대타]]로 나서야 했다.[* 우연히도 당시 [[황수정]]은 [[김정은(배우)|김정은]]의 후임으로 2001년 3월부터 [[밤을 잊은 그대에게|밤그대]]의 DJ를 맡고 있었는데, 거액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등 갑질을 하면서 다른 배우들에게도 이미지가 나빠진 상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불과 3개월 만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밤그대]]에서 하차했고, [[성시경]]이 DJ [[대타]]로 나섰다. 그리고 마약 + 스캔들의 2연타석 역대박이 터지면서 그 이후의 [[황수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디오]]까지 합치면 3연타석 역대박--]
         [[2010년]] [[10월 5일]] 음주운전 상에서 '''뺑소니''' 사고를 냈다. 강남구 청담동에서 택시를 들이받고 도주했고 다음날 오후 경찰에 출두해 혐의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벌금 1,000만원''' 납부 명령을 받았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168546|#]] --평범한(?) 음주운전은 안한다-- --강남구 전문음주운전러--
         게다가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촬영 중 눈 주위가 파랗게 멍이 들어서 나타나 특수제작팀이 동원되어 그녀의 눈의 멍을 지워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자고 나오다가 넘어져서 그랬다는데, 보통 그런 경우에 눈 주위에 멍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눈 주위에 멍이 드는 이유는 맞아서인데(...)] 프로 배우답지 못한 김지수의 도도 문제였지만, 보통 이런 거 잘 기사화 안 되는데 그 당시 근초고왕 팀의 분위기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비단 김지수뿐만 아니라 [[감우성]] 또한 스프들과의 폭행시비로 구설수에 올랐었고, [[서인석]]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석 입건되는 등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은 이래저래 김지수의 [[흑역사]]로 남을 듯(...)
         [[2018년]] [[10월 17일]] 영화 완벽한 타인 언론인터뷰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심지어 만취상로 등장해 횡설수설했는데, 기자가 "술에 취하신 것 같다"고 묻자, "맞는데 기분 나쁘시냐? 대답할 수 있으니 질문하시라"고 답했다. 결국 소속사 측에서 인터뷰를 중단시켰고 취재진이 철수하며 언론인터뷰는 취소됐다. [[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81520&cluid=c_201810171120_00000007|#]]
          * 가녀린 외모와 달리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노보드]]. [[제트스키]], [[수상스키]]까지 즐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탔기 때문에 연예인 중에서는 보드를 잘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족으로, 배우 [[김혜리(배우)|김혜리]]는 김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녀린 외모와 달리 스포츠광이면서 두 번 이상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전과[* 김지수는 [[KBS 1TV]] [[조 왕건]]에서 김혜리가 맡았던 강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백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선행을 베풀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지 2013년, 소아암 환자 진료비를 위한 자선행사에도 기부했다.[[http://www.humanmp.co.kr/news/news_index.php?vDown=news_read&vKey=14910&vBid=02&vTable=BBS|#]] 이로 인해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개선된 듯(...)
         || KBS || [[양은 가득히]] || 박지숙 || ||
         || [[2008년]] || KBS || '''[[양의 여자]]''' || '''[[신도영]]''' || ||
         || KBS || [[화랑(드라마)|화랑]] || [[지소후]] || ||
         ||<|2> 2008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최우수상 || 양의 여자 ||
  • 박술희 . . . . 20회 일치
         |어난 곳=
         |복무=[[봉]](泰封)/[[고려]](高麗)
         |지휘=봉/고려
         |서훈 내역= 사 삼중대광(太師 三重大匡)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조|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상]](朴堤上)과 [[백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혜성(현재의 [[당진시|당진]])의 호족 출신으로 18세 때 [[궁예]]의 호위병이 되고, 뒤에 ([[고려 조|조]])의 휘하로 들어와 그를 섬겨 많은 공을 세워 두터운 신임을 얻어 대광(大匡)이 되었다. [[고려 혜종|혜종]]을 정윤(왕자)로 책봉할 때, [[장화왕후]]가 [[왕건]]의 의중을 박술희에게 전달하게 하여 [[왕무]]가 정윤이 되었으므로, 박술희가 [[왕무]]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35년]]에는 [[견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보이는 나주 탈환 작전에 [[홍유]]와 더불어 지원하였으나 백성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왕건]]은 그들 대신 [[유금필]]을 파견하였다. [[943년]] [[고려 조|조]]가 사망하기 직전에 [[고려 조|조]]로부터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부탁받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받았으며,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려 혜종|혜종]]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고려 조|조]]가 아니면 유지되기 힘들었던 [[고려]] 초기의 불안한 정치 상황은 박술희에게는 불운이었다.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박술희는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그를 지지하는 [[서경 (고려)|서경]] 세력에 의해 [[강화군|강화]] 갑곶으로 귀양을 가게 되어 얼마 후 조정의 밀명을 받은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사후 증(贈) 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에 추증, [[고려 혜종|혜종]](惠宗)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KBS]], [[2000년]]~[[2002년]], 배우:[[김학철 (배우)|김학철]])
         [[분류:암살된 사람]][[분류:생년 미상]][[분류:945년 죽음]][[분류:신라의 왕족]][[분류:봉의 군인]][[분류:고려의 무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고려 조]][[분류:고려 혜종]][[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면천 박씨]]
  • 성훈(배우) . . . . 20회 일치
          * [[아이가 다섯]] : 김상민 역. 극 중에서 프로 골퍼로 나오는데 데뷔 이래 재벌 역만 하다가 예체능 출연 이후 죄다 운동선수 역할만 맡고 있다. ~~정작 전직이었던 수영선수 역은 아직까진 없다.~~ 이 드라마에서 신기생뎐 때 여주인 [[임수향]]과 다시 같은 드라마를 찍게 되었지만 그녀와 엮이는 건 별로 없고,(일단 아주 안엮이는건 아니지만, 스토리상 이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커플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연 역을 맡고 있는 [[신혜선]]과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 드라마의 메인 커플인 [[안재욱]]-[[소유진]]보다도 반응이 좋다. 신혜선과 어색하지만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인생 배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오로지 연만 바라보는 직진남 상민과 눈치가 없어 얼떨결에 단호박녀가 된 연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임수향과는 시숙-제수의 관계가 되었다(...)
         ||<|2> 2018 || 《[[돌아와요 부산항애|돌아와요 부산항애]]》 || 김성 || 2018. 01. 17. 개봉 ||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6> 2016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455회 2016년 06월 30일 방송 우리 무슨 사이예요? 편.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이 종영되기전 신혜선과 같이 출연 했는데 극 중 너무 몰입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극 중 몰입을 위해 촬영 초반에는 민(극 중 동생, 안우연)과는 친하게, 연(신혜선)와는 쌩(?)했다고 한다~~. [[검사외전]]속 [[강동원]]과 [[아이가 다섯]]속 성훈중 누가 더 키스를 잘하냐고 신혜선에게 물었는데 성훈이라고 답했다.] ||<|5> 게스트 ||
         || [[SBS]] || 《[[런닝맨]]》[* 317회 런닝맨 VS 예능 어벤져스 편 2016년 09월 18일 방송. [[이경규]], [[한혜진(배우)|한혜진]], [[김동현(종합격투기)|김동현]], [[성훈(배우)|성훈]], [[문희준]], [[윤형빈]], [[Key(샤이니)|Key]]동반 출연. 1R 링위에서 이름표 뜯기 : 어벤져스팀 승리~~지석진은 나오자마자 성훈의 공격으로 순간삭제~~. 2R 육감대결 : 보지 못한상에서 돼지껍질을 맛본 성훈이 기권~~돼지껍질 탭아웃~~으로런닝맨팀 승리. 최종미션 복불복레이스 : 성훈이 능력자 [[김종국/런닝맨|김종국]]의 이름표를 뜯어 최종승리했다.] ||
         || [[tvN]] || 《[[내 귀에 캔디]]》[* 시즌 1. 9회 10회. 2016년 10월 20일, 27일 방송. 평양급 어깨를 자랑하며 수영을 하는 남성미를 한껏 뽐내다가도 캔디와의 통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 같은 모습들은 성훈의 재발견이었다는 반응. 특히 그는 캔디 ‘분홍’을 위해 연을 날려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세심한 사랑꾼의 면모도 보였다. 캔디 '분홍'([[허영지]])이 과거 일반인 첫사랑이 '분홍'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고 하자 성훈은 바로 분노하기도 했다(...) ~~역쉬 사랑꾼, 금사빠(헉)~~] ||
         || [[Mnet]] || 《Sing스트리트》 || 출연[* 2016년 10월 26일~12월 14일 방송. EDM의 선구자~~(?)~~인 박명수에게 디제잉을 배웠다..막방공연 전에 박명수에게 청국장파스타를 해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우월한 기럭지에 조각같은 외모, 노래도 수준급, 요리도 잘해, 거기다 성격도 좋고 겸손함까지.. 도대체 못하는게 뭐임?~~ 막방 공연때 허리통증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고 대중은 환호했다.. 결국 3표 차이로 봉규에게 1위를 내 주었다.] ||
         || [[MBC]] ||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5회 2017년 03월 26일 방송. 성훈의 옆에서 깐죽거리는 [[헨리(가수)|헨리]]의 유혹에도 성훈은 화내지 않고 웃었고 촬영 내내 물 한 모금 안 마시는 성훈..~~뭐든 열심~~ 수중 촬영에서 제작진이 [[헨리(가수)|헨리]]에게 무리한 의상을 입히려고 하자 화를 냈고 이를 지켜본 성훈은 적극적으로 "어떤 그림을 생각하는지 안다"라며 자신이 [[헨리(가수)|헨리]] 대신 인어 의상을 입었다. 성훈은 다시 돌아온 [[헨리(가수)|헨리]]에게 "스프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라"라고 했다. 수중 촬영 중 [[헨리(가수)|헨리]]가 장난을 치다가 감전 사고로 정신을 잃은척 연기했고 성훈은 "[[헨리(가수)|헨리]]가 물 밖으로 나가야한다"라며 [[헨리(가수)|헨리]]를 부둥켜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화보 찍는다고 2주나 굶었는데~~ 창백해진 얼굴의 성훈은 [[윤종신]]과 [[이국주]]가 나타나도 몰카임을 눈치채지 못했다.~~성훈이 화를 안내서 몰카인거 알고 찍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듯 하다. 성훈이 인터뷰에서 알았으면 2주간 5kg이나 걈량했겠냐고 울컥했다. 진짜로 인격이 훌륭한거 같다.~~ 뒤늦게 사를 파악한 성훈은 배신감에 [[헨리(가수)|헨리]]를 물에 빠트리며 "이거 [[트루먼 쇼]]냐"라고 소리쳤다. "몰카 한 번 당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앞으로 입조심 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 목숨을 갖고 몰카를 찍었다고 논란이 있었고 결국 6개월 만에 폐지되었다.~~ ] ||
         || [[tvN]] || 《[[현장토크쇼 TAXI]]》[* 483회. 2017년 06월 21일(실제로는 00시 30분부터 방송이므로 22일 방송) 방송. 끌리는 대로 특집. [[헨리(가수)|헨리]]동반 출연. 성훈은 [[오만석]] 대신 직접 운전했다~~예능에선 진짜 뭐든 열심이다~~ "애타는 로맨스가 국내에서 보다 해외 반응이 뜨거워서 7월부터 한달반 내내 해외~~13개국투어~~에서 팬미팅을 갖는다"고 했다. 핸드볼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 초5때 수영으로 전향해서 군대가기 전, 27살 쯤까지 수영선수를 했다고, 그만두면 공부시킬까봐 계속 했고~~헉, 이때부터 열심이었던거?~~전국대회 대회신기록까지 세워봤다고 "[[박환]]이 결정적인 은퇴 결심의 계기가 됐다. 고등학생인데도 너무 급이 다른 기록을 세워서"라고.~~하긴 1등만 금메달이니 쩝~~ 이날 성훈은 자신의 집~~이사간지 얼마안되어서 거실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디제잉 기계만 덜렁 있었는데..약 보름후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 공개된 그의 집은 박나래가 돼지우리를 연상 시킨다고 했다.헉~~을 깜짝 공개하는가 하면, 화려한 DJ 실력을 선보였다. 성훈은 '연애고수일 것 같다'는 말에 "사실 전 연애 고X"라며 "4년간 만난 여친이 있었는데, 2년간 눈도 못 쳐다봤다"고.] ||
         || 국CH3 || 《Tho kao banteung》 ||<|4> 게스트 ||
         ||<|4>월드투어 팬미팅 My Secret Romance||방콕||국||Show DC 6층 Ultra Arena[* 2017년 07월 15일[[https://www.instagram.com/p/BWnHlz_hqzf/|행사관계자 후기]]~~인스타 로그인 하시면 번역보기가 나옴~~ ] ||
          * 꾸준히 연기력 논란이 있어 왔다. 중저음의 발성과 자연스러운 시선처리는 괜찮은 편인데, 문제는 발음. 일명 사탕을 물고 말하는 듯한 발음과 대사가 조금만 길어지면 어김없이 국어책 읽기가 나온다. 이건 선배인 [[이곤]]과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임성한]]에 의해 발탁됐다는 것도(…)~~ 얼굴이나 체격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놈의 연기력이 발목을 잡는다는 평. [* 아이가 다섯에서의 김상민 역은 성훈이 데뷔 후 사실상 '''처음으로''' 맡은 ~~똘끼 넘치는~~ 밝은 ~~초딩~~ 캐릭터다. 이런 역할에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는 걸로 미루어 짐작컨대, 성훈 본인이 어두운 역보단 밝은 역이 연기하기가 좀 더 편한 듯 하다. (물론 본인도 이전보다 연기 연습에 노력을 더 기울이거나 해서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것도 있겠지만) 드라마에서 어두운 역을 많이 맡은 것과 별개로 예능에서의 모습을 보면 실제 성격이 잘 웃고 장난기 많고 천진난만한 걸로 보인다. ~~그냥 성훈 자체가 김상민이라서(...)~~ 인터뷰에서 말하길 지인들이 부르는 실제 자신의 별명이 초딩이라고(...)]
          * 맡는 역할마다 어째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캐릭터가 많다. 거기다 입양아 역도 좀 있는 편이다. 가족의 탄생, 오 마이 비너스 둘 다 미국으로 입양된 역할(...) 아이가 다섯은 부모님이 있기는 한데 떨어져 사는 설정이라 절반 가량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의 아직 얼굴조차 안나오다가 드디어 40회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박해미|이 분]]... 게다가 엄마는 상민과 민을 차별하며 민을 편애하는 도를 보이는 중이다. --이번에도.....?-- [[애타는 로맨스]]에서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혼 가정의 재벌 2세. ~~이 쯤 되면 그냥 팔자인 듯~~
          * 배우 자체가 진지한 분위기의 정극이나 사극보다는 밝고 가벼운 로코나 일상물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평이 많다. 특이하게도 이는 역대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과는 확연한 차이점.[* [[김성민(1973)|김성민]], [[이곤]], [[오창석(배우)|오창석]], [[서하준(배우)|서하준]], [[강은탁]] 등 성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배우들이 정극을 위주로 활동하는 중. 이는 신기생뎐에서 상대역이었던 임수향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마찬가지로 임 작가가 발탁한 여배우들도 임수향을 제외하고 [[이다해]], [[윤정희]], [[전소민]], [[박하나]] 등등이 주로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활동한다.~~2017년 4월부터 [[전소민]]이 [[런닝맨]]에 고정이 되면서 임 작가가 발탁한 배우들중 다른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훈과 임수향이 예외적인 케이스. 거기다 위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임성한이 발탁한 남자배우들이 이후 좀처럼 막장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성훈만 예외적으로 정극, 사극, 느와르, 로코, 소설 원작 작품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 울릉군 . . . . 20회 일치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뭍과 떨어진 지역이지만 의외로 [[청동기]]시대 유적이 확인될 정도로 사람이 산 역사가 깊다. 나리분지의 나리마을에는 청동기시대(BC 1000~300년)와 철기시대 전기(BC 300~1년) 고인돌 형의 흔적(지석묘, 무문토기,갈돌, 갈판)이 남아있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울릉군 육지 치안은 울릉경찰서가 관장하고 있으며 소방서는 없지만 포항 남구를 관할하는 포항남부소방서[* 포항시청에서 관할하는 게 아니고 경상북도청의 경북소방본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는 형이다.] 휘하의 울릉119안전센터가 사실상 울릉도 소방을 책임지고 있다. 보건소의 경우 울릉보건의료원이 관장한다.
         그밖에 사동이나 남양, 현포, 하, 천부 등의 조그만 마을들이 있다. 사동은 신항만이 들어선다고. 사동 옆에 울릉도민들의 숙원이라고 하는 [[울릉공항]] 건설이 계획되어 있다. 대부분이 가파른 산인 울릉도에는 1,500m 이상의 활주로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지만 바다에 두꺼운 [[방파제]]를 만들어 이 곳을 활주로로 쓰자는 안이다. 울릉도에 공항이 생기면 [[서울특별시]]나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같이 먼 거리에 사는 관광객들이 1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긴 하다. 현재는 버스+배로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7시간 가량 걸린다. 허나, 깊은 동해 위에 활주로를 세운다는 건 돈이 많이 들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울릉도에서 기항이 가능한 일수가 적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울릉군의 전화번호는 관용이나 공공기관 등은 790국번을, 일반용은 791국번을 주로 쓴다. 이전에는 국번 없이 무국번 형로 구성되어 있어 네자릿수 일련번호(보기:☎1234 등)를 [[1987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시외전화를 지자체 단위로 쓰던 시절에는 0566으로 배정되었다가 지금은 054가 되었다.
         ||<|2> [[이상득]]/초선[br][[민주정의당]] ||<|2> 이상득/재선[br][[민주자유당]] ||<|2> 이상득/3선 [br] 신한국당 ||<|2> 이상득/4선 [br] 한나라당 ||<|2> 이상득/5선 [br] 한나라당 ||<|2> 이상득/6선 [br] 한나라당 || --[[김형(정치인)|김형]]/초선--[* 13.7.25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새누리당-- ||<|2> [[박명재]]/재선 [br] 새누리당 ||
          * 박환 : [[박수홍]]의 아버지. [[미운우리새끼]]에서 아들(박수홍)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울릉도를 방문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도동과 저동을 잇는 해안 산책길이며, 사동 방향으로도 일부 이어져 있다.(이쪽은 2011년 8월 현재 수리중) ''''산책길' 치고는 상당히 험악한 길'''인데, 바로 옆에 강한 파도가 산책길을 강습하고, 많은 다리들은 투명다리[* 길가 하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쇠살 뚜껑을 얹어놓았다! 물론 난간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만.]라서 밑에 시퍼런 바다가 보이고, 중간에 60m 가량의 나선형 계단도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동굴]]도 있고, 등대도 있고, 기기괴계한 암석 및 절벽들과, 바로 옆에는 아름답고 어떨 때는 두려움도 느낄 수 있는 거친 바다도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관광코스라고 한다. 늦은 걸음으로 90분 가량 걸린다고. 참고로 위의 사진에서 마을이 살짝 보이는데 그 마을이 바로 저동. 2015년 9월 현재 행남등대~저동 구간은 풍 고니가 박살내서 지날 수 없다. 저동까지 가고 싶은 관광객은 저동 옛길이라는 험한 산길로 가야한다.
          * 하항목모노레일-하에 위치해 있는 모노레일로, 울릉도등대가 있는 전망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강풍이 불 경우 통제될 수 있다. 20명 정도가 되어야 출발하기 때문에, 일행이 적다면 대기시간이 최대 20~30분까지 길어질 수도 있다. 일몰을 보기에 특히 좋은 전망대. 하마을에서 모노레일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황토굴이라는 깊지는 않은 해식동굴이 있다.
          * A 코스-울릉도 관광업계에서 보통 A 코스라고 부르는 게 있다. 관광객들이 버스나 택시 대절로 울릉도를 한바퀴 도는 건데, 해안도로에서 경치를 구경하는게 메인. 가는 길마다 곰바위나 거북바위 같은 거 구경하고, 하항에서 바다 구경하고 하 등대까지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서 구경을 하고, 추산에서 역시 경치 구경하고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와 전통 투막집 구경하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나오는 4시간짜리 코스. 만약 해안도로가 끝나는 섬목 선착장에서 배까지 타고 오면 울릉도를 완전히 한 바퀴 돌 수 있다.
          * [[우데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서만 보이는 가옥 형로, 마치 유목민의 천막집처럼 가옥 사방에 짚을 엮은 거적으로 된 벽을 둘러친다. [[바다]] 한복판에 있어 [[겨울]]에 [[눈(날씨)|눈]]이 엄청나게 내리는(강수량의 2/5가 눈이다!) 울릉도 환경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울릉도에서도 과거의 유산이 되어 이 형가 딱 2채만 문화재로 남아있다.
          * [[대한민국]] 영토 중 '''평양'''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는 [[90번 지방도|울릉도 일주도로]]는 일부 구간이 여전히 미완공인 상로 남아있다. 다행히 건설사업이 다시 시작되었고 2020년까지 완전 개통할 예정이다.
  • 태미 . . . . 20회 일치
         | 이름 =
         | 사진설명 =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당시의 미(2015년)
         |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권도학과
         '''미'''({{본명|[[김경숙 (1990년)|김경숙]]}}, [[1990년]] [[4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권도]]를 시작하였고 '''세계권도품새선수권대회''' 1위를 거머쥔 실력자로서, [[청와대]]에서 [[권도]] 공연 이후 청와대 [[경호원]] 제안을 받았지만 행복하기 위해 배우를 택했다. 2007년 [[SBS]] 《[[스타킹 (2015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스타킹]]》에 출연한 이후 ‘[[얼짱]] 권소녀’로 주목을 받았다. 강인한 이미지가 강해서 탈피하고자 2016년 영화 《'''여자 전쟁: 봉천동 혈투'''》에 도전하여 출연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783206 미 “청와대 경호원 제안 받았지만 배우 택했다”] 매일경제. 2016년 08월 11일</ref>
         |2009||[[한국체육대학교]] 권도학과
         |2007||제2회 세계권도품새선수권대회 국가대표
         |2012.4||포천 세계대학권도선수대회 홍보대사
         |2011||[[더 킥]]||미||
         |2006||한국여성권도연맹회장배 전국권도품새대회 1위
         |2007||제2회 세계권도품새선수권대회 1위
         * {{인스타그램|kim30243201|미}}
         * {{페이스북|ktigerstaemi|미}}
         * {{트위터|Kim0486|미}}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남양주시 출신]][[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은혼/654화 . . . . 19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 지구에서는 아네 모네 자매와 이누카미 "코마코"가 [[사다하루]]와 합류해 용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세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작업을 거치고 나자 체력이 바닥. 그래도 이제 용혈, 터미널을 진정시키는 것으로 사는 진정될 듯 했다. 자매는 이제 막부군도 터미널로 진격할 거라 예상하고 자신들도 보조를 맞춰 접근해 보기로 결정한다.
          * 노부메의 짐작대로였다. 우츠로의 지시로 터미널을 폭주상로 몰고간 시생인들이 보고를 올렸다. 이미 터미널을 한계. "문"은 더이상 부하를 견딜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우츠로는 그 보고가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부하들도, 아네모네 자매와 이누카미들도 모두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 자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칭찬할만하다고 우츠로가 말했다. 그러니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우츠로는 진선조를 앞세운 카부키쵸 연합군이 터미널로 진격할 것도 알고 있었다.
          우츠로가 바라보는 용은 대기권에 돌입 중인 해방군 모선에서도 보였다. 자작 제독은 창 너머로 그것을 보며 "용이 입을 벌리고 세계를 집어삼치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루가쿠]]는 함선 내를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제어를 되살려보려 했지만 역부족. 지구로 추락하는건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영웅들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다카스기 신스케]]는 빈사에 달해 누워있고 이 배는 너무 손상돼서 키 조차 잡을 수 없는 상. 속수무책. 다른 말이 없었다.
          * 자작 제독은 이제 함 내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확정했다. 이미 히노카쿠츠치의 에너지가 역류하면서 배를 파괴하고 있다. 배는 곧 컨트롤이 안 되는 거대한 에너지 덩이가 될 것이고, 인력에 이끌려 확실하게 지구에 때려박을 것이다. 그 충격의 여파는 지구는 커녕 은하가 무사할지 걱정해야 할 판. 그러므로 지금으로선 배의 외부에서 모선을 공격, 추락하기 전에 우주공간에서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선내의 인원을 대피시킬 시간적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전은하의 생명과 저울질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이 배를 외부에서 파괴하는게 가능한 병력을 가진 건 한 군데 뿐. 자작 제독은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접근한 하타황자에게 전달했다.
          * 모네는 아네를 스쿠터에 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터미널에서 용이 튀어나온 뒤 시생인의 추적은 사라졌지만 상황은 좋아진게 없었다. 중상을 입은 아네는 그 시끄러운 입이 조용했다. 모네가 정신 차리라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시끄럽다"고 대꾸하는 정도였다. 아네는 괜찮다며 어서 터미널로 가길 원했지만 모네는 무리라고 대꾸했다. 이미 검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문이 파괴된 이상 그걸 멈출 수 있는건 자신들 뿐. 모네는 자기가 아네 몫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아네는 그것도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랬다간 모네는 그렇다쳐도 두 이누카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만다. 그게 문제였다. 이누카미는 영성을 띄면서 동시에 육체도 지닌다. 하지만 그 육체는 영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 대량의 검력을 써버린 지금의 이누카미들은 육체를 유지할 힘도 부족했고 그래서 몸이 작아진 것이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게 된다면, 몸이 작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는다. 코마코와 사다하루는 확실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반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상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로운 처지에 처한다.
          가츠라, 다츠마, 신스케가 동시에 리타이어 하면서 제일 바쁜 사람. 우주의 전쟁은 끝났지만 해방군 모선은 여전히 폭주 중이며 제어도 불가능해서 지구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동생 하타 황자에게 방아쇠를 맡기는 것. 어차피 함내에서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지구와 함께 죽는게 기정사실이라면, 그 전에 모선이라도 파괴해서 지구와 이 우주는 살려보자는 계산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병력은 현시점에선 하타황자의 함대가 유일. 동생에게 가혹한 선택지를 주는게 거리껴졌는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하타 황자 + 하세가와 다이조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영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그런데 해방군 모선이 지구로 향하는 걸 보고 돌입했던 일행이 전리품을 들고 튄다고 오해해서 접근했다고 우주의 운명을 건 선택지를 받고 만다. 그의 형인 자작 제독이 모선을 도저히 멈출 수 없고 차라리 자기들이 탄 채로 우주공간에서 날려버리는게 낫다고 판단, 그 날리는 역할을 하타황자에게 맡긴 것이다. 하타 황자는 "나더러 사람을 살리라는 거냐 죽이라는 거냐"고 반문했지만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힘든 선택이 눈 앞에 놓였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19회 일치
         서민 아파트의 주거 환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할 것이며, 보수 공사를 해야 주거 수준이 초기 상로 복구될 것입니다.||
          * 방문자: 트로피코인, 하류층, 생, 아동 관광객 - 총 15명 수용 가능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혔던 범죄자들은 설령 빠져나온다고 한들 재교육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용소의 농작물 생산량은 운영 계획과 더불어 농작물 상로 결정됩니다.||
         ||울창한 숲과 이 건물이 있다면 각하의 초기 경제 기반은 아주 든든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는 일을 환경주의자와 생 관광객들의 분노를 야기할 테지요.
          * 게스트: 생, 휴양객, 부유층, 아동 관광객 - 2가구 수용 가능
          * 방문자: 하류층, 생, 아동 관광객 - 총 6명 수용 가능
          * 방문자: 생 관광객 - 총 8명 수용 가능
          * 공예품: 서비스 질은 20% 상승하지만, 생 관광객이나 부유한 관광객들만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평양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티키 조각상들을 빌려올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이 조각상에 껌뻑 죽는다고 하더군요. 이 칵테일 바는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 복장 규정 없음: 평상복을 입어도 출입할 수 있습니다.[* 하류층, 생, 휴양객, 아동 관광객]
          * 방문자: 하류층, 생, 아동 관광객 - 총 16명 수용 가능
          * 괜찮은 한 해: 소형 비행선에 대통령 각하의 광고판을 만듭니다. 광고문의는 1-800-HAEMIMONT로 주십시오. 광고 수익은 국고에 보집니다.
          * 고급 복장 규정: 서비스 질이 20% 증가하지만, 생 관광객이나 부유한 관광객들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방문자: 생, 부유층 관광객 - 총 12명 수용 가능
          * 보트 투어: 마리나에서 기본적인 보트 투어를 지역에 제공합니다.[* 생 관광객만 방문한다.]
          * 아이 돌보미: 아이들은 잠시 아쿠아 월드에 두고 트로피코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세요. 우리 스프들은 아이들이 파랗게 질릴 때쯤에 물에서 꺼내줘야 한다는 것 정도는 숙지하고 있습니다. 아쿠아 파크엔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지만, 수익은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 차렷: 기본 상입니다. 황금상은 그 위상에 걸맞게 곧이 서있습니다.
          * 트로피코 생만 수용한다: 국수주의자 진영의 존경심이 40 증가합니다.
          * 방문자: 트로피코인, 생 관광객 - 총 12명 수용 가능
  • 강영식 . . . . 18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2000년 2차지명 2라운드]] [br] (전체 10순위, [[해 타이거즈|해]]) ||
         || '''소속팀''' || [[해 타이거즈]] (2000) [br] [[삼성 라이온즈]] (2001~2006) [br] [[롯데 자이언츠]] (2007~2017) ||
         ||<-5> '''[[해 타이거즈]] 등번호 15번(2000)''' ||
         === [[해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시절 ===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에 140km/h대 중후반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덩치 큰 [[왼손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응용 감독은 왼손잡이, 그 중에서도 곰처럼 덩치큰 왼손잡이 선수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승을 그렇게 많이 해봤어도 그 라인업에서 투타 막론하고 좌완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꾸준히 활용할 수 있었던 선수가 [[김정수(1962)|김정수]] 말고는 가물가물할 정도니... ] [[해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직접 거둬서 [[햄]] 구워서 [[밥]]을 해 먹일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김응용 감독이 2001년 삼성 감독으로 가자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삼성으로 데려올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이 이 정도로 대놓고 애정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다. 후에 강영식도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눈물로 [[김응용]]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여전히 꼬박꼬박 연락을 드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의 생활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733693&cpage=&mbsW=&select=&opt=&keyword=|방송 캡쳐]]로 떠도는데, 옆에서 같이 밥 먹던 어린 선수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투수 '''[[채인]]'''이다. ~~역시 좌완성애자 코감독!~~]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영식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야구)|박경]]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성이 친정팀이다 보니까 [* 원래는 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출신지가 대구인데다 대구상고를 졸업, 여담이지만 삼성리틀야구단 출신이다. 흠좀무] 삼성 선수들을 잘 알고 있으며 2008 준 플레이오프 시작하기 전에는 삼성이 1선발 공개를 빨리 안 하자, 휴일에 [[배영수]]의 집 에다가 전화 걸어서 미리 배영수가 1선발 이라는 걸 알아냈다. 어떻게 알았는가 하니 원래 배영수는 휴일에 집에 잘 없는데 전화를 받아서 그때 낌새를 쳤다고 한다(...).
         그 와중에 또 아프다고 2군을 갔다오면서 욕을 먹었다. 2군 갔다 온 이후로는 그나마 롯데 불펜 중에서는 그나마 상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팀내에서 임경완(18홀드) 다음으로 많은 홀드(16홀드)를 기록하였다.
         1군에 올라온 이후로는 몸 상가 정상은 아닌지라 1이닝을 소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뛰었는데, 7월 29일부터 무려 30경기 가까이 등판했음에도 '''자책점은 0'''이었다. --물론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는 했었다--
         6월에 이르도록 불안불안한 투구내용을 이어갔는데, 팬들은 3억 연봉을 잘하는 다른 선수에게 나눠주라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6월 중순이 넘어가자 불안하긴 해도 꾸역꾸역 막는 쪽으로 상가 좋아졌다.6월 SK전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한 [[용덕한]][* 박기혁, 강영식, 용덕한은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다. 이날 경기 전 강영식은 용덕한에게 '내 공을 받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잘 던져 용덕한이 경기 후 공이 나무랄 데 없이 좋아져 놀랐다고 대답했다.] 과 호흡을 맞추어 2이닝동안 깔끔하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이 오기는 온 모양.
         4월 4일 9회초에 팀이 4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정대현을 뒤이어 등판하였다. 채인에게 2루타를 맞고 최형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그 후에 난타당하면서 (물론 정훈과 손아섭의 콜 플레이 미스도 있었지만)0.1이닝 2실점하고 강판되었다. ~~이로써 자기보다 비싼 선수들 삼진잡겠다고 말한 것을 실천하였다.~~
         5월에는 더욱 심각해져 올라오면 좌우 가리지 않고 신나게 얻어맞으며 5경기 4.2이닝 먹는 동안 자책점을 7점이나 기록, 결국 5월 9일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 문제는 또다른 좌완 계투인 [[이명우]]마저 부진하다는 것. 신인인 [[김유영]]을 올려 테스트 중이지만 신통치 않은 상다.
         2017년 11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당했다. 이로써 해 출신 현역 투수는 [[임창용]]만 남았다
         || 2000 || [[해 타이거즈]] || 17 || 46⅓ || 0 || 4 || 0 || 1 || 0.000 || 6.99 || 50 || 8 || 27 || 38 || 7 || 1.64 ||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8회 일치
         [[2007년]] 여름,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변형]](당시 [[CJ 엔투스]])에게 두 경기를 먼저 내주고도 나머지 세 경기를 연달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스타리그]]에서 처음 우승한 선수의 본선 진출 횟수는 4회 미만"이라는 징크스를 깬 기록이자(5회 진출만에 우승), 스타리그 결승전 최초의 리버스 스윕이다.
         이후 두 시즌의 공백기 이후 김준영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로 개인리그에 복귀한다. 김준영은 [[차재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CJ 엔투스]] 코치), [[박민]](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 [[변형]](당시 [[CJ 엔투스]], 현 [[공군 ACE]])와 24강 F조에 편성되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1년여만에 만난 오영종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그 다음 대회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김준영은 재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힘겹게 16강에 진출했지만, [[이성은]](당시 [[삼성전자 칸]], 현 [[공군 ACE]])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16강을 넘지 못하는 김준영에게 게임팬들은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15일 변형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일전은 많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온갖 화제를 낳았다. 이 경기에서 김준영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확보한 변형를 상대로 전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막대한 자원 수급량을 확보했고(총 8개의 멀티 보유), 처음 택한 공격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저글링 드랍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배포를 보였다. 이후 공중유닛에 매우 강한 발키리, 골리앗 조합으로 진군하는 테란 병력을 소위 새떼라 불리는 뮤탈리스크 대부대로 무난히 격파하고, 전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상대의 본진을 싹쓸이하면서 최고의 관광 경기를 연출했다. 이 경기가 펼쳐진 16분 동안 김준영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채취했을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뽐내며 당시 최고조에 다다랐던 테란전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대인배스러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기였다. 또한 훗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의 호적수, 이후에는 팀동료로 계속 이어진 변형와의 인연이 시작된 경기이기도 했다.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영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영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영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영수]](당시 [[STX SouL]], 영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영호 (1992년)|이영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와 맞붙어, 2:0 상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진영수와 이영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상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영은 변형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 [[2007년]] '''Daum 스타리그 2007 우승''' (3:2 [[변형]])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하다가 취소한 상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과거 리그를 선도하던 저그 플레이어들의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게임팬들의 전통에 맞춰, 2006~2007 시즌 저그를 이끌었던 마재윤, 김준영, [[이제동]] 세 선수를 일컬어 '마준동'이라 불렀다. 이전 세대에는 '조진락([[조용호 (프로게이머)|조용호]], [[홍진호]], [[박경락]])', '변준([[변은종]], [[박민 (프로게이머)|박민]], [[박성준 (1986년)|박성준]])'이 저그 진영을 대표하는 플레이어였다.
         하이브테크를 올려 디파일러와 스커지를 활용해 테란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고도의 집중력과 멀티스킹을 요구한다.) 그 동안 축적한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웅진 스타즈의 선수]]
  • 박석민 . . . . 18회 일치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NC 다이노스]]의 ~~[[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다.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2008년 KIA와의 경기에서 한두데의 위엄을 수립. 15회말 유동훈에게서 사구를 얻어 출루한 후 채인의 안타성 타구에 맞아 그대로 아웃, 팀도 패배.
         유난히 1루 악송구를 많이 범해 [[채인]]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했으며,(…) [[양준혁]]의 은퇴 선언 및 손가락 부상의 악화로 인해 7월 말부터는 [[지명타자]]로서만 출장하여 시즌 끝까지 수비보다는 타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생긴 [[3루수]]의 공백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면제로이드]]로 인해 각성한 [[조동찬]]이 잘 메워 주었다.
         2010년 8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 2사 상황에서 [[강봉규]]가 안타를 기록할 때 2루 주자로 나가 있었는데,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오면서 막판에 [[포수]] [[신경현]]의 그를 피하다가 신경현과 홈 대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심판은 결국 박석민을 바로 아웃시켜 버린다.(...)[[http://yoonseokmin.tistory.com/650|관련 포스트]]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이던 11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결승 안타를 쳤다. --그리고 상대 투수 [[임훈(야구선수)|임훈]]은 [[송지선|멸망]][[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했다.]]--[* 박석민은 내야 땅볼을 친후 살기 위해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카메라가 손시헌을 비춰서~~]
         2011 시즌 후 왼쪽 중지 두번째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상가 호전될지 미지수였으나 상당히 호전되었다. 본인 말로는 '''이제 중지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을 정도'''[* 수술 전에는 중지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질 못했다. 평소에도 손가락에 붓기가 있는데, 경기 후에 붓기가 심해져 중지 두번째 마디가 보통 때의 두 배까지 붓기도 했다.]라고 한다. 손가락이 나으며 타격감도 상당히 좋아졌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미치 탈보트|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8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 홈경기를 결장할 예정이었다. 이유는 [[나고야]]에 있는 어느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간다는 이유로(...)...[* 그러고는 19시경에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그 날 [[홍성흔]]에게 홈런 2개와 5실점을 내준 상에서 9회말 '''3-5'''까지 따라잡은 이후, [[류중일]] 감독은 2아웃 2루에서 박석민을 '''대타'''로 내서 그냥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는 눈야구를 기반으로 한 OPS형 타자이다. 2009년이후 갑자기 OPS 1.0을 기록하며 타격에 소질을 보였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으며, 풀 시즌을 소화했을 때 20홈런 이상은 보장되는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컨택 또한 뛰어나 통산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비율 스텟을 자랑한다.[[WAR]]도 거의 KBO 탑급이여서 공헌도가 가장 높다. 다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비롯해 잔부상이 많기 때문인지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이로 인해 누적에서는 비율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방망이를 돌리고 몸을 터는 등 유독 요란한 [[루틴]]동작 역시 몸의 고질적인 부상들 때문에 통증을 털어내는 과정일 정도로 몸 상가 그리 좋진 못한 편. 그럼에도 매시즌 3-4-5를 찍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외에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도 얼핏보기엔 기괴한 폼이지만 오히려 타격의 정석을 충실히 지킨다며 이종열이 극찬한 바가 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양준혁]], [[김동주]], [[김균]], [[최형우]]만이 가지고 있는 통산 3-4-5(타율-출루율-장타율)를 노리는 타자로 4와 5는 달성했지만 타율이 0.296으로 조금 부족하다. 참고로 [[이대호]]도 박석민과 비슷한 3-4-5 직전의 성적을 가지고 있는데, 타율과 장타율은 되는데 통산출루율이 3할9푼대로 통산 4할을 노리고 있다.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한화 이글스|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KIA 타이거즈|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 유지태 . . . . 18회 일치
         |이름 = 유지
         '''유지'''([[1976년]] [[4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 [[영화 감독]]·[[영화 각본|각본가]], [[연극]] 감독·연출·제작자이다.
         2003년 [[단편 영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영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영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영화제와 제8회 제주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 네 번째 작품 제주영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 인디판다 국제단편영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 [[2000년]] 《[[리베라 메]]》 - 김현
         |1999||MBC||[[남자셋 여자셋]]||지||
         |2016||tvN||[[굿 와이프 (2016년 드라마)|굿 와이프]]||이준||
         * {{KMDb 사람|00004034|유지}}
         * {{Amg 이름|442011|유지 1}}
         * {{Amg 이름|302321|유지 2}}
         * {{로튼 토마토 사람|yoo_jitae|유지 1}}
         * {{로튼 토마토 사람|yu_ji_tae|유지 2}}
         *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1885 유지] - Naver 영화
         * [http://movie.daum.net/personInfo?pkey=536 유지] - Daum 영화
         *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273 유지] - CineSeoul
         * [http://www.movist.com/movies/movist.asp?id=695 유지] - Movist
         |title = 유지의 수상 목록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강릉 유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윤종신 . . . . 18회 일치
         [[1969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2남 중 [[광주]]으로 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대구광역시|대구]] [[중구(대구)|중구]]로 상경, 그 뒤 [[대원 외국어학교]][*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 후[*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가요제에서 금상으로 입상한 이후,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음악인)|정석원]]을 소개받았다.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했다. 이 때 [[장호일]]이 반대했다고 한다. 이유는 비주얼. 그래도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가창력만으로 승부한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1990년]] [[7월 15일]]''', [[015B]]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면서 그도 데뷔하게 된다.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신승훈]](11월 1일), [[윤상(가수)|윤상]](11월 30일)보다도 데뷔 날짜가 빨랐다. 종종 "나 [[노우]] 대통령 때 데뷔했어! 심지어 [[걸프전]]보다도 전이야!"라고 하기도 했다.[* 종전에도 윤종신이 윤상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드립을 쳤을 정도로 미는 개그 중 하나였다. 노우 대통령 취임은 1988년 2월 25일, 윤종신 데뷔는 1990년 7월 15일, 걸프전 발발 1990년 8월 2일이다.]
         대개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때문에 작곡 당시에는 본인이 직접 친 통기타 반주에 본인 목소리로 가이드를 넣는 것 같다. 다분히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가이드 곡이라도 편곡이 상당부분 완성된 상로 나가고, 가이드도 실력파 보컬들이 맡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팝송으로 들릴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상로 가수들에게 전달된다. 디렉터스컷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윤종신이 이효리에게 곡을 주려고 기타로 반주를 치고 멜로디를 흥얼거려서 녹음한 뒤 메일로 보냈는데 거절당했다고 한다. 헌데 나중에 이효리가 자기한테 굉장히 세련된 팝송을 들려주길래 "야 이거 좋다.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봤더니 이효리에게 온 가이드 곡이었다나. 자기는 통기타를 쳐서 흥얼흥얼 녹음한 뒤 "나중에 편곡이 되면 여기에 이런 비트가 들어갈거야, 상상되니?" 하는 식인데 이효리가 받는 가이드 곡들은 이미 완성품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윤종신 작사, 이규호 작곡의 '팥빙수'는 가요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요리 [[레시피]]를 가사로 쓴 것이라 개그소재 등으로 자주 애용된다. 어느 방송에서 가사를 어떻게 썼느냐는 질문에 "인터넷에서 [[팥빙수]] 레시피를 검색했다"고 밝혔다.[* 물론 조크다. 실제로는 이 레시피대로 하면 망한다. 음과 박자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단어를 배치한 것. 그렇게 쉽지 않다.]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푸드송의 원조' 라고 주장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 1994년에 정광가 발표한 '''김치 주제가'''가 있다.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의 그 곡. 또 1980년대 후반에 [[아기공룡 둘리]]의 삽입곡으로 나온 [[라면과 구공탄]]도 있다.] 요즘은 예능용으로 자주 써먹는다.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쿨의 "해변의 여인" 등과 함께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여름의 레전드 곡이다.
         [[1990년]] [[7월 1일]], [[015B]] 1집의 객원 보컬로 데뷔했다. [[노우]] 재임할 때 데뷔했다는 걸 개그소재로 종종 써먹는다. 윤종신이 참여한 타이틀곡인 '텅빈 거리에서'의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 뿐'이라는 가사가 공감을 샀고 앨범도 30만 장으로 크게 히트했다.
         [[1996년]] 발매된 [[015B]] 6집의 "[[21세기 모노리스]]"를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비슷한 케이스로 [[토이]] 3집, 5집에서 [[이승환]]이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대영AV에 소속되어 있던 [[015B]]가 LG미디어로 옮기면서, 대영에 남아 있었던 윤종신이 대놓고 참여하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LG미디어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사업을 정리했다. 덕분에 [[015B]] 6집은 음악 성향이 상당히 실험적으로 변한 것과 맞물려 재발매도 안 되어서 다른 앨범에 비해 현재 구하기 엄청나게 어렵다.(다만 근래에는 2006년 발매된 7집이 더 구하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앨범은 1만장 한정 판매) 아닌 게 아니라 1980~1990년대에 괜찮은 음악을 내던 음반사와 기획사들이 [[1997년 외환 위기]]로 대부분 몰락한 것이 [[MP3]]의 범람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1990년대 말에 급변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당음향, 동아기획, 대영AV, [[로엔엔터테인먼트|서울음반]] 등도 이 시기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사그라들었고,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이 기획형 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이외에 [[서지]] 5집, 토이 4집을 낸 삼성뮤직도 음반업계에서 결국 철수했다. (다만 토이 4집은 다른 회사에서 재발매 중이다.)] 그 외에도 [[하림(가수)|하림]]의 1집 앨범에서 '탁영'이라는 가명의 작사가로 활동한 적도 있다.
         당시 자신의 이별 경험을 토대로 작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들이 하나같이 궁상의 극치다. 헤어진 직후 히키코모리를 하다가 겨우 집 밖에 나와서 한 게 전여친과 자주 다니던 커피숍에서 혼자 먹는 일[* 모처럼]이질 않나... 왜 내가 울어야 하냐고 원망하다가도[* Why] 새사람을 만난 걸 알고는 잘 헤어졌으니 날 떠올리지 말라고 하질 않나[* 잘 했어요].... 여행을 떠나서[* 여행을 떠나요] 옛 애인 사진을 우질 않나[* 불놀이]... 흠좀무... 다행히도 10번 트랙 이후로는 또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듯하다.
         이를 시작으로 2010년 3월 25일, Monthly Project라는 이름의 싱글을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32509340321486|발표]]했다. 이후 2017년 현재까지 매달 곡 2~3개를 묶어 싱글 형로 발매하는 중이다. 잡지처럼 표현하자면 2017년부로 벌써 통권 100호를 넘었다.
         10월 13~14일, '부르지 않은 노래' 라는 제목으로 여껏 라이브한적 없는 노래만 모은 콘서트를 열었다. 7집 루시, 6집 나의 이십대 등 숨겨진 명곡뿐만 아니라 심지어 2집 귀퉁이에 박혀있는 '이세상에 가장 외로운 너' 같은 올드팬조차도 생경할 수 있는 노래로 셋리스트가 메워져있어 골수팬들에게는 여러모로 뜻깊은 사건. 뿐만 아니라 공연 실황은 2018년 행보 앨범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또, 비슷한 컨셉의 공연을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라고.
          *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언더그라운드 가수 역으로 특별 출연해서 '팥빙수'를 잠깐 부른 바 있으며[* 극중 내용: 꼴통 4총사(노영삼 외 3인)가 방학 중 휴가비 마련을 위해 팥빙수 장사 시작 → 윤종신이 매일 사먹으면서 '이 빙수를 먹으면 악상이 떠오른다'고 말하며 이 노래를 부름 → 1주일 뒤 빙수를 먹으면서 배가 아파오는 것을 단순히 장이 나빴던 것으로 의심하다가 그 빙수를 사먹은 종신의 어머니도 똑같이 복통을 호소 → 결국 빙수 제조 공정의 불량(위생얼음도 안 쓰고 청결상가 [[영 좋지 않다|영 좋지 못한]] 손으로 제조)을 눈치채서 빙수 장사를 접게 만들고 끝.], 어느 네티즌이 '팥빙수'에 가사만 바꾼 패러디곡 '[[보신탕]]'이 [[소리바다]]에 떠 돌아 다닌 적도 있었다.
          * [[희혜교지현이]]
         애초에 윤종신의 캐릭터는 촐싹맞고 얄밉게 깐족대기.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고 몸도 몸이니만큼,[* 항문이라든지 무좀이라든지] 몸을 쓰는 일(몸개그를 포함하여)은 어려웠던 듯하다. 대신 쉴 새 없이 말로 클을 걸거나, 특히 다른 사람이 던진 말장난을 한번 더 받아치는 '주워먹기' 개그에 뛰어나다. 그래서 기프갤에서 얻은 별명이 '''[[필리포 인자기|윤자기]]'''. 본인도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2010년 [[놀러와]] 283회에서 갑자기 윤자기 드립을 쳤다. 그 날 윤종신의 활약으로 놀러와는 음악성과 웃음을 함께 거머쥐며 흥했다. 윤종신은 자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모든 드립을 주워먹는다.''' 특히 독한 것은 그 깐족대는 캐릭터와 겹쳐서 독한 드립은 더 독하게 치는 바람에 '''말리는 시누이''' 포지션으로 정착한 것. 김구라조차도 명랑 히어로에서 '''난 최소한 앞에서 때리지 저 형은 뒤에서 친다고'''라면서 질색했다.
          *[[2012년]] [[2월]] 윤종신은 [[SBS]]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해 [[난치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모든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병으로, [[수술]]로도 완치는 불가능하며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하는 병. 윤종신은 2006년에 처음으로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너무 늦게 발견해 소장을 60cm나 잘라야 했고 지금은 약물 치료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윤종신이 지금까지 예능에서 [[치질]]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며 웃으며 했던 얘기가 사실은 이 크론병으로 인한 치루질환을 말한 것이었다고… 난치병을 웃음소재로 바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했던 윤종신의 안타까운 고백이었다. 이 소장수술을 하고서 마취가 풀리면 링거에 연결된 [[모르핀]]이 조금씩 나오도록 장치를 해 놨다고 한다. 간호사가 너무 아플 때마다 버튼을 한번씩 누르라고 했다고. 그런데 마취에 깨면서 "아, 아! 아!!!" 비명 지르며 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 그리고 3일간 기절해 있었다고 조미료 섞인 썰을 예능에서 풀었다... [* 물론 실컷 눌렀다고 해서 모르핀이 쭉 나왔을 리는 없다. 모르핀이 한번에 많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눌러도 실제로는 한두 번 밖에 안들어가도록 설계되어있다. 대체로 10분 간격으로 자동으로 투입되나, 그 사이에 몇 분 안에 한해서 누를수 있다던가. 방식으로 사용한다. 실제로 수술 후 깨어난 뒤에 모르핀 때문에 다시 기절해서 3일동안 못 깨어난다면 의료사고가 될 수 있어서 병원 뒤집어져 난리난다. 최소한 하루 이상 지난 뒤 '윤종신 수술 후 혼수상로 위독'으로 연예뉴스에 나왔어야 할 정도..] 아직도 소화기 쪽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모양. [[김구라]]에 따르면 윤종신이 배가 아파 라스 녹화가 지연된 바 있다고. [[http://naver.me/xp0l7q57|링크]]
          *정치성향은 중도 혹은 진보에 가까운 듯하다. 2008년 명랑 히어로 출연 당시에는 [[이경규]]와 함께 광우병 촛불시위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김구라가 이를 물고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2016년 박-최 국정농단 사 때 '용기를 내어' 가족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이때의 감상을 바탕으로 2016년 12월 월간 윤종신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작사 작곡했다. 마침 그 곡의 가사가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 소개되고, 이 인연으로 뉴스룸에 인터뷰로 출연하기도 했다.
          * 김구라도 칭송하는 가요계의 황자에서 김구라의 밥으로 전락한 비운의 음악가. 윤종신은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이걸 4년이 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시계매니아이다. 방송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진 [[롤렉스]] 모델만 신/구형 서브마리너, 그린 서브마리너(초록베젤), 데이토나 등이며 그 외에도 [[그호이어]]의 까레라 복각 모델을 자신의 뮤직비디오([[월간 윤종신|1월부터 6월까지, 나쁜, 못나고 못난]])에 착용하고 출연한다거나, [[세이코]]의 SKX007 모델도 방송에 차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 윤채경(가수) . . . . 18회 일치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이자 리더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상] 새로 합류한 멤버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친화력과 노련함으로 어색함 없이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이후 [[이현주(배우)|현주]]가 2016년 10월 [[APRIL]]에서 연기자 전향을 위해 탈퇴하자, [[레이첼(APRIL)|레이첼]]과 함께 2016년 11월 11일 APRIL에 합류했다. 덕분에 [[전소민(KARD)|전소민]]의 탈퇴 후 1년 만에 [[퓨리티]] 출신이자 1996년생 멤버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채경은 [[C.I.V.A]], [[I.B.I]], [[APRIL]] 총 3개의 걸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물론 [[C.I.V.A]]와 [[I.B.I]]는 프로젝트 그룹이며, 정식 그룹은 [[APRIL]]뿐이다. 그리고 채경의 APRIL 합류를 기점으로 C.I.V.A와 I.B.I의 활동은 사실상 멈춰버린 상. 아직까지 이들 활동에 대해서 [[DSP미디어]]나 본인이 부정적인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애매한 상였으며 관련된 언급 중 Prelude 쇼케이스에서 한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은 이들 활동이 결정된 것은 없다'는 듯. 그러나 2017년이 저물고 2018년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을 봐서는 C.I.V.A와 I.B.I의 활동 재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보인다.]
         4월 25일, [[https://www.youtube.com/watch?v=mTzPnh0LmDM|프로듀스101'에 출연했던 두 소녀가 간절히 외칩니다]]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연예계의 특성상 소속사에서 전혀 모르는 상에서 언론이나 연습생이 자의적으로 저런 영상을 만들었을 리 없기 때문에 이는 팬들에게 데뷔를 강하게 암시하는 메시지라고 추측된다.
          김우가 나와 듀엣 부를 여가수를 찾는데 ‘하고 싶은 말’을 지금까지 배운 트레이닝을 응용하여 부른다. 진영이 드라마 촬영을 위해 빠지면서 프로듀서가 필요하자 이상민 대표는 용감한형제의 형이라는 사람을 데려온다. 이상민 대표가 알고 있는 용감한형제의 곡이 있냐고 묻자 ‘보름달’을 부른다. 결국 프로듀서는 이상민이 맡기로 한다.
         [[APRIL]]에는 빨리 녹아든 듯하다. 티저 공개 이후 공개된 영상에서 [[APRIL]]의 멤버들이 인사를 하는데 [[http://m.dcinside.com/view.php?id=produce101&no=2865205|하트를 굉장히 완벽한 모양으로 짓는다]]. 나이 때문에 그룹 색깔과 어울릴지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합류 후 매 앨범 컨셉을 그룹에 잘 묻어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나은]]과 함께 보컬라인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포지션에 있고, 경력 덕에 댄스실력도 준수한 편이라 실력 면에서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멤버라고 볼 수 있다. 비주얼에 있어서는 짙은 쌍꺼풀, 평소에는 오목조목해보이지만 미소가 환하게 드러나는 입술과 고운 옆 등등 러블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맏언니지만 동생들한테 당해주기도 하고 같이 망가지기도 하고 전혀 꿀리지 않는 비글미를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지내는 타입이다. 물론 회사에 들어온지 가장 오래된 멤버이자 연장자로 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팀을 앞에서 잘 이끌어주는 맏언니로서 리더쉽 있는 모습도 있으며 소속사와 그룹 구성원 간의 창구 노릇을 하는 사실상 리더 역할도 하고 있다.
          * 나이에 비해 이력서에 들어간 게 매우 많다. 퓨리티 - 카라 프로젝트 - [[프로듀스 101]] - 채채 - C.I.V.A - I.B.I - APRIL 등 해 본건 정말 많다. 윤채경이 나중에 음반기획사를 차리게 되면, 이 경험들이 엄청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가수 출신 [[연예 기획사]] 사장이 많이 있다. [[연예 기획사]] 사장 [[삼대장]]부터 마삼트리오의 [[이수만]], 비닐바지의 [[박진영]], [[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다. [[WM엔터테인먼트]]의 이원민 대표도 가수와 매니저를 거친 사람이다.]
          * 쌩얼도 아주 예쁘다. 본인도 이걸 알고 있으며 인정받는지 [[I.B.I]] [[헬로 아이비아이|리얼리티]]에선 아예 쌩얼 상로 수십분 방송에 나오기도.
          * [[I.O.I]] 탈락자들 중 최초로 음방 1위 후보에 올라간 사람이다.[* 2번째는 [[모모랜드]]의 [[하(모모랜드)|김하]], 3번째는 [[(여자)아이들]]의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 4번째는 [[공원소녀]]의 [[서경(공원소녀)|김서경]]이다. 그 중 [[하(모모랜드)|김하]]와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은 음방 1위를 먹었다.] [[APRIL]] 합류 후 [[SHOW CHAMPION|쇼챔]]과 [[THE SHOW|더 쇼]]에서 몇 차례 1위 후보에 들었다. 그러나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APRIL]]에는 '''너무 강한 상대'''인 '''[[레드벨벳]]'''[* [[APRIL]]은 [[레드벨벳]] 상대 '''3전 3패'''로, [[레드벨벳]]에 [[천적]] 수준으로 굉장히 약하다. 그런데 실제로 두 그룹은 꽤 친한 사이다. [[I.B.I]]에도 [[레드벨벳]]은 가장 큰 [[천적]]이나 다름없는데, 전술한 윤채경은 말할 것도 없고 [[김소희(1995)|김소희]]는 정식 솔로 데뷔 때 [[아이돌 드라마 공작단]]으로 안면이 있는 [[슬기(레드벨벳)|강슬기]]의 [[레드벨벳]] 바로 정면에서 데뷔했다가 한 방 얻어맞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덤으로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 [[하(모모랜드)|김하]]는 윤채경과 달리 [[레드벨벳]] 상대 1승도 있다.], '''[[방탄소년단]]''', '''[[볼빨간사춘기]]''', '''[[마마무]]''', '''[[NCT]]([[NCT DREAM|DREAM]], [[NCT 127|127]])'''인지라 [[청하(가수)|김청하]] 뺨치게 전혀 대진운이 안 따른다. [[eternity]] 때는 컴백 첫 주에 [[THE SHOW|더 쇼]] 1위 맞대결을 하며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의 [[위키미키]]를 만나 [[프로듀스 101]] 이후 첫 리턴 매치를 벌였으나, 결과는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의 근소한 판정승.--[[지못미]]--[* 그런데 의외로 [[I.O.I]] 멤버들이 프듀 리턴 매치에서 이긴 게임이 적다. 그 이유는 바로 [[프로듀스 101/8회|8회]] 탈락자인 [[하(모모랜드)|김하]]인데, [[하(모모랜드)|김하]]는 '''[[청하(가수)|김청하]], [[김도연(위키미키)|도]][[최유정|댕]], [[연정(우주소녀)|유연정]], [[세정(구구단)|김세정]], [[미나(구구단)|강미나]]'''까지 이겼다! [[소연((여자)아이들)|전소연]]은 [[프로듀스 101]] 파이널에서 고배를 마신 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나영(프리스틴)|돌]][[결경|결]]에게 제대로 복수의 '''[[핵펀치]]'''를 먹여 버렸다.] 하지만 2018년 10월 21일에 다시 만난 도댕에게 복수에 성공했다.
  • 이태현(씨름) . . . . 18회 일치
         ||<#FF8000> '''{{{#white 이름}}}''' || 이현(李太鉉) ||
         '''모래판의 황자 및 지존'''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백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상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자의 위엄. 오오!--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2006년 9월에 있던 [[PRIDE]] 데뷔전에서 [[브라질]]의 히카르두 모라예스에게 1라운드 8분 8초만에 TKO패를 당했다.(얼굴에 싸커킥 '짝!') 1년 후 10월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K-1]] 히어로즈 대회에서 일본의 야마모토 요시히사를 1회 TKO로 꺾어 데뷔 첫 승을 거뒀지만 2008년에 네덜란드의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1라운드 36초만에 KO패를 당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종합격투기에서 거둔 전적은 1승 2패. 이현의 타고난 힘으로 상대를 테이크 다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결국 타격부분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었던게 실패의 요인이었다.
         어쨌든 [[대한민국]] 최고의 천하장사가 종합격투기에서 엄청난 굴욕을 겪자, 씨름팬들은 비록 이현이 씨름을 저버리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해서 비난했을지언정 이현의 고전 앞에서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씨름계의 전설인 [[이만기]]는 이 장면을 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KBS가 2011년 추석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천하장사 만만세'에서 이같이 술회했다. 당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씨름이 얻어터지는 기분이었다."'''] 씨름계의 흑화와 더불어 씁쓸하면서도 슬픈 장면이 오버랩되는 순간.
         결국 이현은 종합격투기를 떠나고 초등학교 때 은사인 [[구미시]]청 김종화 감독의 권유로 씨름판에 복귀했다. 복귀 후 다시 씨름판에 잘 적응하며 백두장사 2회를 더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두장사 최다 기록을 20회로 경신했다.
  • 정성룡(야구선수) . . . . 18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84~1992) [br] [[해 타이거즈]](1993~1995) ||
         ||||||||||||<:> '''[[해 타이거즈]] 등번호 10번(1993~1995)''' ||
         [[삼성 라이온즈]]와 [[해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골키퍼 [[정성룡]]과 이름이 같다.[* '''한자까지''' 똑같다., 심지어 출신고교도 같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1992년 시즌 종료 뒤 ~~왼손 유망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코감독]]에 의해~~ [[해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해 해가 삼성에게 완봉을 당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인 것이 유력하다. 즉 그 시즌 홈런 3개중 2개를 코감독 앞에서 그것도 연타석으로 쳤으니 [[인생경기]]를 한 셈.[* 다음 해에 김성래와 양준혁이 괴물활약을 한 것을 보면.. 프로생활을 3년이나 연장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꼈으니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1993~1995년까지 해의 몇 안되는 좌타자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원조 10번이었던 [[장효조]]에 대한 올드 삼빠들의 대한 그리움과 그 이후 10번을 단 [[양준혁]]의 인기에 의해 지금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에서 10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신인이였던 [[장성호]]였지만 1년만에 1번으로 갈아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10번을 단 선수가 [[최훈재]] 그리고 [[양준혁]].
         김응용 감독은 정성룡의 스윙을 보고 "저 스윙으로 3할을 못 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큰 기대를 했으며, 1993년 시즌에는 해 타선의 몇 안 되는 좌타자로서 원포인트 대타나 지명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하여 해의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타율은 0.246이고 홈런은 10개. 타율은 별로였지만 전반기에는 규정타석만 채우면 [[양준혁]]과 [[강기웅]] 등을 위협할정도로 3할1~2푼 수준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서 까먹은 것. 홈런을 심심찮게 터뜨렸으며[* 1993년이 126경기 체제에서는 가장 적은 18명의 두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한방이 많았다. 프로 데뷔 후 최다 출장인 107경기에 출장했다. 그리하여 당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도 유력했으나 [[김기(1969)|김기]]의 지명도에 밀려[* 팀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김기 본인의 성적이 별로였던 점을 감안하면..] 타지 못했다.
         국가대표 골키퍼를 지낸 동명의 축구선수에 지명도가 가려지고, 간혹 언급될 때에도 고향팀이자 처음 입단한 삼성 선수보다는 유독 해 선수로 언급되는 일이 많다. 이래저래 비운의 선수였던 셈. 그나마 해 시절에 우승을 한번 해본 건 다행.
         ||1993||<|3><:>[[해 타이거즈]] || 107 || 248 || .246 || 61 || 15 || 0 || 10 || 43 || 35 || 2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4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분류:해 타이거즈]]
  • 하현우 . . . . 18회 일치
         [[1981년]] [[11월 25일]], [[전라북도]] [[장수군]] 생. 현재는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다. 록 밴드 [[국카스텐]]의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1981년 11월 전라북도 장수에서 어났다. 그리고 7살쯤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와서 안산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하현우는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진아라는 인물을 만나 다시금 밴드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인터넷에 기타리스트 모집 공고를 내어 현재 국카스텐의 기타리스트인 전규호를 만났고, 전규호가 밴드에 합류하여[* 전규호의 말로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일 정도로 쓰여진 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합주는 커녕 오디션을 봐야할 자신이 멤버들을 코칭해줘야 할 정도로 연주며 뭐며 온통 엉망이고 말 그대로 열정만 넘치는 아이들이었다고. 반면 전규호는 다른 밴드에서도 기타를 해왔던 경력파였다. 이정길은 합주 자체가 안 되자 미안했는지 "형, 죄송해요. 밥 사드릴게요."라며 살갑게 굴었는데, 이에 전규호는 "실력은 없어도 사람은 착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았다는 모양.],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 진아 이렇게 네 사람은 뉴 언발란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하현우가 뉴발란스 신발을 좋아했는데, 그걸 뉴언발란스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에서 착안해 지은 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작곡하는 법을 몰라서, 하드코어, 랩, 발라드, [[서지]] 등 유명 곡의 커버를 하면서 음악을 배워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배고픔은 무시 못 할 위기로 다가왔다. 결국 의지를 상실한 멤버들은 또 다시 악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이스를 치던 진아는 팀을 떠났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절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다만 음색에 한해 비판점이 없지 않은데, 분명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지만, 음색 자체가 대중들에게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쪽은 맑고 깨끗한 음색이 매력적이라고 하나, 싫어하는 쪽에서는 째지는 음색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 특히 락이라는 장르 상 고음 가창이 잦은 하현우의 경우 '''3옥타브 미(E5)''' 이상의 초고음을 발성하는 경우가 많아 종종 이런 비판을 듣는 중이다. 물론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지, '나쁜' 음색은 아니다. 음색의 기본 미덕인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 하현우의 음색은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유튜브 등지에서 자주 보이는 하현우를 저평가하는 댓글들의 반이 음색에 대한 비판인데 밑도끝도 없이 흔한 음색이라거나 그냥 음색이 별로라거나 누구보다 별로라는 식으로 비교하는 등, 그냥 자기가 별로라고 생각하는걸 강요하는 스타일의 댓글이 많은 편.
          * [[나는 가수다 2]]에서는 '나 혼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는 '[[FANTASTIC BABY]]', '[[하여가(서지와 아이들)|하여가]]'를,[* 3옥타브대의 초고음역에서 랩을 하면서도 발음이 전혀 뭉개짐 없이 굉장히 또박또박하고 가사 전달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Go! Go! Go!'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어 상당한 수준의 [[Rap|랩]]까지 선보였다.
         그러나 무작정 약 빤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운 것이, 표현의 문학성이 상당한 데다가 팬들 사이에서 가사 해석의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그렇게 나온 다면적인 해석들이 또 설득력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 국카스텐의 모든 곡, 특히 2집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에 대한 하현우의 설명(해석이 아님)을 보고 나면 소재를 따온 방식, 담고 있는 의미, 뛰어난 비유에 감탄하게 된다. 주로 불완전하고 위로운 사물의 이미지나 신체 기관에 자아를 투영하거나(1집), 자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상황을 성찰하는 것(2집)이 큰 테마를 이루는데, 어휘 선택과 연출에서 한때 시인을 꿈꿨던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실제로 여러 장에 걸쳐서 메모한 노트를 줄이고 줄인 결과가 한 곡의 가사라고 하니까, 무의미한 단어의 연결이 아니라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이 의미의 모호함이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캘리그라피, 일러스트, 문학 등)을 양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2집부터는 가사 난이도가 하향 조정되고 전체적인 색깔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평도 있다.
         2011년 3월 2일자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기타를 치며 '붉은 밭'을 불렀는데 상당한 기타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하현우의 솔로를 들은 후 함께 게스트로 나온 [[조정치]]는 "다시 어나면 락커로 어나고 싶다"고 말했으며, [[유희열]]은 "다시 어나면 [[국카스텐]]으로 어나고 싶다"라고 평할 정도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5Ivn21mtA|당시 방송]].
         이전에 종종 보여주던 4차원스런 모습답게 나가수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면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이은미]]에게 전화를 걸어서 영어 노래 못하는데 어쩌냐고 한 시간 넘게 징징거렸다든지, 나가수 10월 A조 경연에서의 '얇은 귀여움' 드립으로 입담으로는 상대할 자가 없는 진행자 [[노홍철]]을 거의 가출 상로 만드는 지경까지 갔다.
         '''죽은 양만이 영원을 비추네'''
         '''죽은 양 만이 영원을 비추네'''
          * 주위로부터 "자신감이 넘친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본인은 자신감이라기보다 거리낄 것이 없기에 막힘이 없다고 주장한다. 말이나 도를 보면 상당히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타입. 하루 일과도 심플한 만큼[* 아침 기상→식사→TV 시청 40분→화장실→씻음→작업실→새벽 3시 귀가→숙면.][* 2010년 인터뷰에 따르면 술을 못 마신다고 언급했다. 또한 독서와 등산을 즐긴다고 한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숨길 것도 없기에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성격인 듯.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OMLE&fldid=6UOH&datanum=22319&q=%C7%CF%C7%F6%BF%EC%BF%A9%C0%DA%C4%A3%B1%B8|#]]
          * 한편 아이돌 판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실력파 아이돌들이 그 당시에 비해서 많아진 지금도 여전히 저런 생각인지는 따로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일단 하현우가 아이돌을 대하는 도는 시간이 지나며 많이 누그러진 편으로 보인다. 애초에 짤방 자체가 2011년 5월 이야기다.[* 선술했지만 2000년대 말부터 양산형식으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던 아이돌에 대한 비판이 거셌었다.] 섹션 TV 연예통신에 나와서 걸그룹을 좋아한다며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으로 [[씨스타]]를 꼽기도 했었다. 때문에 복면가왕 때 [[봄처녀 제 오시네]]와 가왕전에서 만나게 되자 정말 좋아했으며, 이후 라디오 스타에서 동반 출연을 했을 때 그 당시 무대를 극찬하였다. 그걸 보면 어쩌면 지금의 본인은 흑역사로 여기고 있을지도... [[감기 조심하세요 성냥팔이 소녀|성냥팔이 소녀]]와는 냅다 포옹까지 했다.[* 다만 이 때는 그녀가 아이돌인 [[EXID]]의 [[하니(EXID)|하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이긴 했다. 하현우가 듣자마자 알았다기보단 정말로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것이 컸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 개구리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거침 없는 도에 비해 외모는 의외로 순하고 귀여운 편이다. 그런데 [[윤도현]]과 사진을 찍을 때 안경을 벗은 모습이 은근히 배우 [[류혜영]]을 닮았다.[* 하현우의 초등학생 때 사진과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찍었는지 원시인지는 불명. 본인 말에 의하면 집에서 안경을 벗을 때도 누가 있나 확인한 다음 벗는다고 한다.] 안경 벗은 모습이 은근히 [[박해진]]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개구리상이라 웃겨보이게 생겨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절대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이목구비가 또렷해 잘생겨 보인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눈이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는 점. 갑상선 투병 설에 대해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이라고 해명까지 했다.]
         [[2011년]] [[1월 7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 1집을 재녹음하며 거지가 된 사연과 '붉은 밭'을 작곡한 이유, [[국카스텐|팀명]]의 유래 등등을 이야기했는데, 늘 그렇듯 하현우 혼자 이야기하고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침묵한다. 그나마 [[드러머]]인 이정길이 한두 마디 받쳐주긴 했다. 그리고 락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 사이에서 하현우의 이미지는 약장수가 되어 버렸다. 특히 이때 카메라가 점점 하현우의 얼굴에 줌인을 하면서 더욱 그런 이미지가 부각되었다. 그런데 후일담으로 사실 이 녹화를 할 당시에 하현우는 심한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약을 먹고 녹화에 임할 정도로 몸이 아팠다고 한다. '붉은 밭'을 부를 때를 잘 보면 고열로 인해 얼굴이 다소 울긋불긋해 보일 정도. 원래도 [[4차원]]스런 이미지의 하현우라지만, 이때의 멘트가 유난히 횡설수설한 느낌이 들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스케치북에서 불렀던 "붉은밭 어쿠스틱 ver"은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는 상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역대급 가창력을 보여줬다. [[https://www.youtube.com/watch?v=M09lPU8BF7c|#]]]
  • 권혁 . . . . 17회 일치
         불펜 투수가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경우는 최근 한국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의 엄청난 혹사를 꿋꿋히 버텨내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내는 모습이, 꼴지를 전전하던 한화가 2015시즌 가을야구 싸움을 하면서 얻은 투혼의 팀컬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언급이 많은 선수중 한 명이 되었다. 기존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김균(1982)|김균]]과 더불어 2015년 한화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페이스를 좀 되찾은 모양인지 ~~왠일로~~ 호투하면서 살아나는가 했더니, 8월 24일 청주 한화전에서 8회 3:2로 앞선 상황에서 나와 미친듯이 처맞고 1사 만루에서 강판, 바로 교체한 안지만이 그의 뒷처리를 하려다 오히려 역전을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타선 침체로 인해 3연패에 빠져 있었던 팀을 오히려 4연패로 몰아넣고... 결국 이날 안일하게 경기 운영하다 경기를 내준 [[류중일]], 9회말 흔들리던 [[데니 바티스타|바티스타]]를 상대로 영웅스윙을 시전하다 폭풍삼진당한 [[채인]]과 함께 삼성 팬들에게 개같이 까였다.[* 2011시즌 권혁의 성적은 1승 3패인데 '''3패가 모두 한화전'''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삼성은 이 시즌에 유일하게 한화에게 상대전적에서 뒤졌다. 1승은 7월 19일 SK전.] 역시 이놈은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던 차 8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에 등판하여 또 ~~왠일로~~ 호투하면서 2연승의 밑거름을 다져놓았다. 좀 들쑥날쑥해도 두산에게만큼은 강한 점도 있었는데다가 무엇보다 이날은 구속이 어느정도 돌아와서 고무적이었다. 올시즌 내내 원래 부족한 제구에 구속까지 안나와서 고전하던 차에 나온 이날 호투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5월 1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2사 주자 2루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강민호]]에게 쐐기 투런포를 맞으며 멸망했다.[* 당연히 [[김성근]]이 팔꿈치 피수술자를 억지로 떙겨써서 발생한 참사라는게 중론.] 결국 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을 기록했으며 시즌 ERA는 7.36을 마크했다. 김재영이 원 포인트로 쓰기 위해 기용된 투수라지만, 공도 4개밖에 던지지 않은채 2아웃을 잘 잡았던 상라 감독이 너무 이르게 교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5월 초 시점에서 강민호는 잠수함을 상대로 극강이었고, 애초에 김재영은 최준석, 이대호 저격용으로 끌고 온 것이기 때문에 나름 납득이 가기도...
         5월 30일 두산전 이양, --송은범--, 송창식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해 6번째 공으로 타자를 맞혀 출루시켰으나 다음 타자를 초구 땅볼로 잡아 이닝을 끝냈다. 정우람이 나머지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홀드를 챙겼고, 이 날 기록은 ⅓이닝 무실점.
         2군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 중이다. 마무리 투수인 정우람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 경기당 1이닝만 소화하고 있고, 팀내 유일한 좌완 불펜인 99년생 박주홍, 4월 이후 유일한 살려조(...)가 된 송은범 등이 페이스가 약간 떨어진 상여서 한번쯤 올려볼만도 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추격조 장민재와 이양이 2~3점대의 방어율을 기록 중이고, 박주홍은 가능한 한 경험을 쌓아야 할 입장이라서 딱히 내릴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마침 팀 불펜진 방어율도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더더욱 권혁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김성근 감독의 지시대로 2년간 그 누구보다 팀을 위해 열심히 뛴 권혁이 혹사로 인해 2군행을 택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얻었고, 이로 인해 수술을 결심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무통주사를 맞으며 던지길 원했고, 권혁은 "주사까지 맞으면서 던질 몸이 아니다"라고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김성근 감독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이미 이때는 권혁의 팔꿈치가 본인이 스스로 수술을 결심한만큼 선수생명이 위험한 상였었다.
          * [[안지만|힙합보이]]나 [[정현욱|국민노예]]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한 성깔 할 것 같은 외모,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덩치까지 겹쳐셔 별명이 '''강백호'''였으나 금방 묻혔고(...), 오히려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허구연|허구라]]가 발음하는 '''궈넥'''이 별명으로 쓰였을 정도. 그러던 와중 2012 시즌에 [[채인|채르노빌]], [[최형우|최형우라늄]], [[차우찬|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핵]]을 맡았다.[*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 ~~하지만 팬들에겐 그런 거 없고 핵폭발~~] 팀을 옮긴 첫해인 2015년, [[윤규진]]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필요한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불꽃남자''', 그 인기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대전 구장]] 내 아이돌급이란 의미인 '''대전 아이돌'''이란 별명이 추가되었다.
          * '''2003년 2월 하와이 전지훈련 때'''[* 2006년이라고 잘못 기재했었는데, 이건 아마 사진을 2003년에 촬영한 뒤 2006년에 블로그에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로그를 보면 [[이승엽]]과 [[틸슨 브리또]], [[김진웅]], [[이정호]]가 삼성에 있었고 [[손혁]]과 [[차명주]]가 [[두산 베어스]] 소속인 상이다. 당시 권혁은 입단 2년 차였다.] '''2.5M 깊이의 [[익사|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수영이 능숙하지 않음에도 깊은 데로 갔다가 빠진 경우인데,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빠져서 익사 직전까지 갔다가 인공호흡 및 응급처치로 살아난 케이스. 정황상 권혁은 당시 그곳이 그렇게 깊은 곳인 줄 몰랐던 것 같다. 물놀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맥주병 선수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폭포를 왕복하고 있었는데 권혁도 그렇게 하다가 빠진 것. 체격 건장한 운동선수라 물에 빠져도 어떻게든 나올 것 같은데 당시 권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던 걸 보면 역시 물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는 듯. 다행히 현장에 있던 [[배영수]]와 이재국 기자[* 당시 스포츠조선 소속. 현재는 스포츠동아로 옮긴 상이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의 주 패널로 잘 알려져 있다.]가 가까스로 그를 건져내서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http://blog.naver.com/namastae?Redirect=Log&logNo=40022370751|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사진도 있음.]] 그리고 13년 뒤인 2016년 현재 배영수와 권혁은 나란히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상당히 신실한 [[불교]]신자로 추정된다. 모자, 글러브에 불교를 상징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고 "다시 어난다면 야구선수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다음 생에 사람으로 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으로 어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라고 굉장히 심오하게 대답하는 등... 나름 열성신자인듯. 어떤 인터뷰에서는 부인이 올림픽 때 지리산 절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올린 그 마음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하기도 했다.
  • 김국진(MC) . . . . 17회 일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강원도]] [[인제군]] 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개그맨 7기.[* 물론 이쪽은 제명당하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명이인 성우 [[김국진(성우)|김국진]]과 같은 기수며 거기에 그 동명이인의 성우도 동향 출신이다.] 1990년대 초반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 이 항목 2번 문단에 자세하게 설명되있지만 결국엔 코미디계 선배들과 윗분들의 괘씸죄라는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항이기 때문에 근래에는 그런거 없이 코미디계 후배들도 꼬박꼬박 선배 대접을 잘 해준다. 당시 동참하진 않았지만 감자골을 제외한 [[유재석]], [[남희석]]을 비롯한 동기들이 평소 이들을 대하는 도도 마찬가지. 살벌한 그 코미디계에서도 똥군기 없이 성격좋기로 유명한 감자골 멤버들이였기 때문에 그런걸지도. ]
         나이는 1965년생인 김국진이 1972년생인 [[유재석]]보다 많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한 [[유재석]]과 동기다. [[유재석]]은 당시 대학에 입학한 만 19세에 공채개그맨 시험에 합격해서, 최연소 공채 데뷔 기록에 올랐고,[* 다만 [[유재석]]은 졸업을 하지 못했다.] 김국진은 군 복무를 마치고[* [[11사단]]에서 보병으로 복무했다.]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한 상에서 합격했기 때문에 나이 차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 [[감자골]] 사 ==
         [[1993년]] [[2월]]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였다!]]" 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19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감자골은 ~~[[이경규]]가 선처를 호소해서 선배들에게 줄빳다만 맞고~~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 ~~니들 밥줄 끊을 염려 없으니 놔줘라~~ 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방송에서 감자골 사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
         [[1995년]],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반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개그계에서 은퇴한 [[박세민]] [[이원승]], '청춘행진곡'이 폐지되어 SBS로 이적했던 [[김창준]] [[김은]] [[이웅호]] 등의 대안으로 김국진과 김용만을 영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개그맨 부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를 보라~~ ~~다른 항목의 1위와 그 아래 순위와의 격차가 많이 안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1위를 한것만 보더라도....~~ ~~솔직히 은퇴 후에, 그것도 H.O.T를 내려앉히고 1위를 찍고 있는 서지가 더 대단한데?~~ ~~근데 배우랑 탤런트 차이가 뭐지...[*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배우는 충무로에서 주로 활동하는 영화 출연 연기자, 탤런트는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로 구분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현재는 배우와 탤런트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1990년대 가요계 끝판왕 [[서지]]와 한국 영화계 원조 흥행보증수표 [[한석규]], 당시 트렌디 드라마를 휩쓰며 최진실의 뒤를 이어 TV 드라마계의 아이콘이었던 [[김희선#s-1|김희선]] 등, 다른 연예인들이 각 부문에서 10~20%대 지지율을 보였던 반면, 김국진은 개그맨 부문에서 '''55%'''라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인기를 구가했다. 게임잡지 V챔프[* [[대원씨아이]]에서 펴내던 [[V점프]]의 한국어판. 말이 한국어판이지 사실상 로컬라이징이다.]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족으로, 그는 <반달곰 내 사랑>에 앞서 2000년 초 방영될 뻔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신화]]를 통해 연속극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 당시 또다른 남자 주인공 역에는 [[김승우]], 여주인공은 [[이승연]]이 낙점되었으나 이승연은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2TV 주말극 사랑하세요? 스케줄과 겹쳐 캐스팅 제의를 포기하였고 제작진은 영화 [[거짓말(영화)|거짓말]]로 스타덤에 오른 모델 출신 [[김연(배우)|김연]]을 대타로 올리는 한편 2000년 하반기로 첫 방송일을 미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작진이 김국진과 갈등을 빚어 편성이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김국진 자리에는 KBS 슈퍼탤런트 출신 [[김우(배우)|김우]], 김승우 자리에는 박정철, 김연 자리에는 [[김지수(배우)|김지수]]가 대신 캐스팅되었고 방영일도 2001년 하반기로 변경되었다.
         심지어 평소에 옷을 사는데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하루는 겨울에 김수용과 만나서 얘기하다가 "아, 추워. 야 옷 사러가자."라고 하더니 겨울옷을 파는 가게에 가서 옷을 전혀 입어보지도 않고 연하게 특정 옷을 가리키더니 "저거 미디움 사이즈로 주세요."하더니 그냥 받아서 입고 계산해버렸다고 한다. 또 그 자리에서 옆에 있던 김수용에게도 "야, 너도 하나 입을래?"라고 하면서 또 아무렇지 않게 옷을 사줬다고 한다.
  • 마니교 . . . . 17회 일치
         마니교의 창세신화에서는 빛과 어둠의 대결이 있어, [[영혼]]은 빛의 세력이, [[물질]]은 어둠의 세력이 창조하게 되었다. 빛=영혼은 물질=육체에 갇혀 있는 상이며, 인류의 육체는 어둠=악마에 의하여 창조되어 빛=영혼을 가두는 존재이다.
         '빛의 배'인 양을 향하여 찬가를 하루에 7번 낭송하였다.
         내세에 성직자는 [[천국]]에 올라가게 되며, 일반 신도는 영혼은 해방되지 않지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행실이 좋으면 선행을 쌓기 쉬운 성직자로 어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다만 행실이 나쁘면 동식물로 어나서, 선행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이교도는 [[지옥]]에 떨어진다.
         마니는 216년 4월 14일,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마르딘 마을에서 어났다. 아버지 파티크는 파르티아의 귀족이며, 어머니 마르얌은 파르티아의 왕족 캄사라간 가문의 출신이었다. 파티크는 마니가 어나기 직전에 에르사카이 교단에 입신하는데, 이 교단은 [[유대교]] 계통의 신흥 종교로서, 신약 성서나 정통 기독교 사상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율법]]에 집중하는 금욕적인 교단이었다. 에르사카이 교단은 여성은 입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티크는 임신한 마르얌을 버려두고 떠났다가 마니가 3,4세가 되자 아들만 데리고 교단으로 다시 돌아갔다.--뭐냐--
         서기 240년, 24세의 마니는 독자적인 사상에 따라서 유교 율법을 중시하는 교단에 반발하게 된다. 이 때 마니는 타움[* 천계 동반자, 쌍생아. 지상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마니라는 인격과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또 한명의 자신으로서, 일종의 천계판 도플갱어 같은 것이다.]으로부터 계시를 얻었다고 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려 하지만 당연히 구타(…)를 당하게 되었고, 아버지 파티크가 보호하여 살아났지만 교단에서는 추방당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알게 된 친구 아브자크야, 시메온, 아버지 파티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좌천되었지만 마니는 선교를 멈추지 않고 바트 왕을 개종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바흐람 1세와 킬데르의 노여움을 불러, 바트 왕은 출두명령을 받게 되고 마니는 미프르 샤에게 도망쳐서 보호를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실각한 상였다. 마니는 마니교의 세력이 강한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려 하지만, 이미 출국이 금지되어 있어 감시당하는 몸이 된다. 마니는 제자 아브자크야와 함께 바흐람 1세를 찾아가서 탄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흐람 1세는 듣지 않고, 마니에게 무허가로 궁정에 찾아온 죄,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에 실패한 죄, 신흥 종교를 포교한 죄를 물어 쇠사슬로 묶어서 감금한다.
         크테시폰의 마니교 본부는 마니 사후 곧바로 분열에 빠진다. 마니가 후계자를 미리 지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싱과 가브리야브가 서로 후계자를 다투게 된다. 5년 간의 대립 끝에 시싱이 후계자가 되어 데인 서랄(최고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286년, 취임 후 시싱은 사프르에게 호출되어 3명의 장로와 함께 처형당하고 만다. 결국 페르시아 제국에서 탄압받은 마니교도는 [[로마 제국]]이나 주변국으로 탈출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마니교도가 급격하게 숫자를 불리게 되고, 일부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아랍계 속국왕 암르 이븐 아디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이 무렵 조로아스터교 대신관 킬데일은 유교, 불교, 힌두교, 만다교, 기독교, 무토타크교, 잔드교를 이단으로 보고 이들이 제국에서 구축되었다는 비문을 남겼다.
         이 시기의 마니교 인물로는 아브 이사 알 왈라크가 있다. 그는 마니교, 혹은 시아파로 여겨지는데 제자 이븐 아크 라원디에 따르면 마니교도 였다고 한다. 이원론 종교에 대해서 다룬 『이원론요강』, 마니교 신화를 해석한 『동방의 이방인』 등의 저술을 남겼다. 아브 이사 알 왈라크의 저작은 마니교의 복잡한 신화 체계를 억제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디자인된 새로운 형의 마니교였다. 그러나 자신의 저술에서 이슬람과 무함마드를 비방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슬람 철학자들로부터 강력하게 논리적 공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10세기 초, 압바스 왕조 18대 칼리프 알 무크타디르 치세에서 다시 마니교에 대한 탄압이 강렬하게 벌어졌다.
         중국에서 마니교는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된다. 마니광불(摩尼光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마니는 소린국(蘇隣国, 바빌로니아)의 발제(抜帝,파티크)의 왕국에서, 금살건중(金薩健種, 캄사라간가문)의 만염(満艶,마르얌)에게 어났다는 식으로 전파되는데, 만염은 목욕재계하고 청정한 가슴으로 마니를 낳았으며, 마니는 스스로 이종삼제(二宗三際)의 교리를 개시하였다고 여겨졌다. 마르얌이 가슴으로 마니를 낳았다는 것은, [[석가모니]]가 마야 부인의 겨드랑이에서 어났다는 설화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마니교는 도교와도 습합이 이루어졌는데, 돈황에서 발견된 『노자서승화호경(老子西昇化胡経)』에서는 노자가 광명의 기를 타고, 서나옥계(西那玉界)의 소린국(蘇隣国)에서 왕자로 어났으며, 출가하고 도(道)를 얻어 마니(摩尼)라고 하였다고 설명한다. 이는 『마니광불법의략(摩尼光仏法儀略)』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어, 마니교와 도교가 교류하여 습합된 흔적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도교, 불교와 습합되는 과정에서 마니교는 명교(明敎)라는 형로 변형된다.
         명교는 명나라 시대의 이단 종교 금지령에 언급되는데, 점쟁이나 무녀가 [[강신]]을 받아 [[부적]]을 그리거나 신탁을 내리고, 스스로를 「단공(端公)」「보(太保)」「사파(師婆)」로 칭하는, 「백련사(白蓮社)」, 「백운종(白雲宗)」,「미륵불(弥勒佛)」등과 같이, 「명존교(明尊敎)」 역시 금지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비밀결사 종교들은 은밀하게 숨어서 그림을 그리고 야간에 예배를 보았다고 묘사되며,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주모자를 교수형에 처하고, 신도들은 곤장을 쳐서 유배를 보낼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율령은 청나라 시대 까지 계속된다.
         마니광불 사원에서는 마니는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공양은 [[야채]]나 [[과일]]만을 하며, 노자가 영혼을 담은 [[구아바]]를 먹은 왕비에게서 어났으므로, 구아바 만은 내놓지 않는다.
         마니교의 마지막 잔존형인 경주궁 신앙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술의식인 '마니광불진언'으로서, 청정광명 대력지혜(淸淨光明 大力智慧) 무상지진 마니광불(無上至眞 摩尼光佛)이라는 열여섯자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이 진언을 외우면서 수인을 맺으면 신체가 붉은 빛에 쌓여, 사악한 기운이 정화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 박주영 . . . . 17회 일치
         ||<width=30%><:> [[박지성]][br](2008~2011) ||<width=5%><:> {{{+1 ▶ }}} ||<width=30%><bgcolor=#000000><:> {{{#FFFFFF '''{{{+1 박주영}}}[br](2011~2012)''' }}} ||<width=5%><:> {{{+1 ▶ }}} ||<width=30%><:> [[곽휘]][br](2012~2013) ||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 이후, 떨어진 폼을 전성기 시절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고 끝내 [[슈틸리케호]] [[신용호]] 모두 승선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대표팀 은퇴나 다름 없다.
         또한 2018년 FC 서울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는 와중에 경기를 뛰지 않으면서, 팀 성적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부상설 불화설 업설 등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하지만 본인이 [[SNS]]를 통해 부상설을 일축했고, [[이을용]] 감독이 '''주전 경쟁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완전히 밀렸'''음을 밝혔다.
         초년병땐 한국 공격수의 평균보다 키핑력이 좋았지만, 세계레벨에서는 키핑력을 활용하는 면에서 약점을 보였다. 낮은 레벨에서는 시야와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공을 끌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높은 레벨일 때는 약점으로 작용했던 것. 등진 상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프리미어리그 레벨의 수비수들은 박주영보다 운동능력이 뛰어났기에 박주영의 다음 동작이 따라잡히면서, 결과적으로 공을 질질 끌면서 템포만 잡아먹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모나코 이적 이후 한동안은 몸싸움에서 너무 밀려서 스피드에만 의존해야 해서 예상보다 저조한 커리어를 찍게 됐지만, 그대로 도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은 아주 크게 보강했다. 모나코 2,3년차 09/10~10/11시즌 사이의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 였다. 이 최고의 중앙 공격수라는게 무슨 골을 많이 넣는 선수라는게 아니다. 한국 최고의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은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청대때의 화려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현대축구에서 중앙 공격수는 무조건 포스트 플레이가 우선이고, 득점력은 다음이다.''' 어정쩡한 올라운드 원톱이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는 현대 축구, 특히 세계무대에서 언더둑 입장인 한국같은 팀에겐 효용성이 떨어졌다. 현대 축구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직접 때리는 임무보다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힘과 어그로를 빼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도움과 공간을 주는게 첫번째 이며 이게 커리어 중반기 스코어러론 더 빼어났던 이동국을 제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타입 특성상 골 결정력 지적은 늘 받았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한 선수라고 소개했는데 컨디션에 따라 결정력이 들쭉날쭉 했다. 라이트 팬들 입장에선 답답한 점이 많은 선수였는데 코칭 스프 입장에선 육체적 능력과 축구지능이 좋아 최전방에서 혼자 공을 지키고 뿌리며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박주영을 선발로 보낸다. 그런데 골을 시원시원하게 못넣는다. 강팀이랑 할 때만 그런게 약팀하고 할 때도 그러니 TV로 보는 팬 입장에선.
         아니, 그런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준다는 것 자체가 축구선수의 중요한 실력이니만큼 박주영은 실력없는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한 위치는 절대로 아니다. 이동국이 성실한 국가대표(내신에 강하고 수능에 약한 학생)였다면 박주영은 좀 많이 뺀질거리지만(?) 현대축구에 요구하는 장점을 확실하게 갖췄고 필요할 때 뻥뻥 잘 터뜨려줘서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던(내신은 바닥인데 수능은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학생) 캐릭터다. 박주영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양쪽에서 모두 멘탈이 매우 강한 편이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도문제나 일관성 없는 행보 등으로 인한 논란이 좀 많은 것이 문제.
          * 모나코인, 모나코박 : 병역기피 시도 후에 한국 브라운관에 자주 비치기는 하는데, 한국 스포츠계 초유의 국적미상 상의 선수라 이 선수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그가 모나코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주님영 : 주멘보다는 좀 비꼬는 성향 이 덜하지만 어쨌든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박주영의 행를 눈꼴시게 보는 일부 인물들이 이렇게 부른다.
          * 토템박, 토템풋볼 : 아스날 시절 시작된 별명이다. 신비적, 주술적 요소를 듬뿍 함유하고 있는 별명으로 박힐러, 프리스트 박 등과 그 얼개를 함께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지만.]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한다는 취지의 별명이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http://shootkim.khan.kr/493|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박주영키우기 게임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관계자의 요청에 의해 현재는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 군복무 중 다른 게임으로 고소크리 맞고 그때까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덕분에 영창도 다녀왔다. 참고로 [[지만원|고소한 사람]]은 [[엔하위키]] 시절에 작성금지 되었다가 이 [[나무위키]]에서는 해금이 되었다.
          * 2011년 6월 12일에 한살 연상의 모교 선배와 결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사회자는 [[이휘재]], 축가는 [[김우(god)|김우]]. 가나전 이후에는 선수들이 여러모로 축하(?)해줬다.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6072239332235&ext=na|결혼축하 헹가레 받고]]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070487|내동댕이 쳐져도 웃는다.]]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070442|백호에게서 음료수 세례도 받았다.]]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김진규(축구인)|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배영수 . . . . 17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나 대구칠성초, [[경운중학교(대구)|경운중]]를 거쳐 대구의 야구명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를 졸업했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했던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기도 했다. 2006년 시즌엔 8승 9패로 비록 10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팔꿈치 부상을 가진 상로 평균자책점 2.92(...).[* 2007년 [[윤석민(투수)|윤석민]], 2008~2009년 [[봉중근]], 2012년 [[류현진]], 2015~2016년 [[메릴 켈리]]의 [[윤석민상|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06년 득점지원율 0.97) 무려 1점도 되지 않는다!][* 뻥뻥 터지던 삼성의 타선은 이상하게도 배영수가 등판하던 날엔 버로우탔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그런다는 거. 그러나 2013년 드디어 타선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평균자책점이...] 심지어 후술한 것 처럼 2006년에는 정규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달고 뛴 선수의 기록이 저 정도라니... 아니, 이게 사람인가?
         결국 한국시리즈 후에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611/20061106/6bf76105.htm|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보통 선수들이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거나 일부 손상된 상황에서 수술을 받는데에 비해, 배영수의 팔꿈치는 '''아예 끊어진 상'''로 조브 클리닉 '''역대 최악의 상'''였다고.
         '''잃어버린 10km'''로 표현하는 그의 구속을 2009 시즌 들어서도 되찾지 않자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성적마저 나빠지자 결국 5월, 1승 7패의 상에서 계투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6월 11일에는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초 다시 1군에 합류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자, 결국 8월 18일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1&oid=018&aid=0002144793|#]]
         2010 시즌을 끝으로 [[FA 제도|FA]]가 되는데, [[한신 타이거즈]]에서 배영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으나, 한창 좋았던 시절의 배영수만 알고 있는 한신 스카우트 말이나 당시 배영수의 상를 보면 그저 찌라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99%. 그리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터가 배영수의 피칭을 보기도 했다. 과거 배영수의 가능성을 보고 이런 관심을 보이는 듯.
         5월 말까지 벌써 5승이나 올리면서 좋은성적으로 선발진에 큰 힘을 보주고 있었으나, 6월부터 슬슬 부진하기 시작하더니 7월 말까지 이 기간에만 승리 없이 3패를 떠안게 된다. 평균자책점도 3점대 중반에서 5점대 중반까지 상승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간 중에 QS도 2번을 기록 했으나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 된 경기 또한 4번이나 되었기에 본인 입장으로서도 매우 아쉬웠을 듯 하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295773&date=20141204&page=1|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661070|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760892|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프와 팬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반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기업)|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4월 27일 1주일만에 선발 등판했는데 4회까지는 1실점으로 틀어막았으나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뒤 보크 그리고 [[나종덕]]에게 2연속 위협구를 던졌고, 2번째 공이 헬멧에 맞았고, 처음에는 퇴장 선언을 안했으나 조원우 감독의 항의 끝에 퇴장당했다. 롯데와의 경기때 부정투구 논란이 있었던만큼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듯 하다. 8회초 김균의 동점 적시타가 터져 패전은 일단 면했다.
         5월 3일 5이닝 1실점으로 나름 잘 던졌으나 이양의 방화로 ND. 여담으로 이날 박용택에 삼진을 뽑아내며 1400K를 기록했다. 현역 최다 기록.
         5월 11일 NC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다. 추가로 역대 5번째 2100이닝을 달성했다. 이 역시 현역 최다. 그러나 9회말에야 김균의 동점 투런포가 터져 노디시전.
         5월 18일 LG전에서는 수비 지원을 못받고 4.1이닝 2실점 7K를 기록했다. 만루 장작을 쌓고 내려갔지만 용케 이양이 급한 불을 꺼 실점이 추가되진 않았고, 6회 병살타로 동점이 되어(...) ND.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과 [[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배영수가 이적 후 대구야구장에 처음으로 왔을 땐 그래도 삼성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남기기도 했으며, [[라팍]]에서 열렸던 2017년 올스타전 때에는 3루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승엽한테 2루타를 맞아주었~~다. 또한 2017년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는 이승엽/다른 삼성 출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 삼갤에서도 동정여론이 생겼다. 오히려 올스타전 때에는 팬들이 [[최형우|누구]]와는 다르게 성대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금지어 자리도 '''[[최형우|지역차별 운운하며 팬들을 엿먹이고 떠난 후 입은 입대로 털면서 사진찍을 때 코빼기도 안 비치셨던 모 선수]]'''에게 옮겨간 상.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1982)|김성]]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아이린(레드벨벳) . . . . 17회 일치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이돌 걸그룹인 레드벨벳의 리더. 팀 내에서 최연장자다. 1991년 3월 29일 대구광역시에서 어났다.
          * 2014년 레드벨벳의 슬기, [[NCT]]의 용, 쟈니와 오보이 화보를 촬영했다.
         과거 연관 검색어나 [[http://me2.do/FzfeHQ6b|인터넷 기사]]도 떴을 정도로 [[소녀시대]] [[연]]과 닮은꼴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아이린은 인터뷰에서 '[[연]]은 자기가 존경하는 선배님'이라며 영광이라고 설명했다.
         [[가사노동|집안일]]을 좋아하고 능력이 특출해 런드리데이의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취미는 '''다리미질과 빨래, 찍고 싶은 광고는 [[섬유유연제]] 광고다.'''[* 채널소시 [[연]] 편에서도 해당 내용을 밝혔다. 두 사람 다 집순이답게 섬유 유연제 뭐가 좋은지 한참을 이야기했다고...]
         두번째 출연한 주간 아이돌에서 스프의 셔츠를 다림질해 다리미 요정을 인증했다. 심지어 한 해외 다리미 브랜드가 트위터에서 아이린이 다림질을 좋아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 이미지 컬러는 {{{#hotpink 분홍색}}}이며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 이미지 애니멀은 [[고양이]]라고 한다. 아이린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9F00C5 보라색}}}이라고 한다. 침대 커버, 다이어리 등 보라색 물건은 모두 아이린 거라고...[* 이런 과로 [[소녀시대]]의 [[티파니]]가 있는데 티파니는 모든걸 다 분홍으로 맞춘다.]반대로 [[예리]]는 분홍색을 좋아하지만 이미지 컬러가 보라색이다. --잘못된 만남-- 아이린이 좋아하는 색이 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연]]과 같다. --러시안 룰렛 활동 때에는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라디오 스타 도 논란 ===
          * '''비판 측의 의견'''은 라디오 스타는 재미 위주의 프로그램이자 지상파 예능 중에도 시청률이 높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많은 연예인이 출연을 희망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은 책임감을 가지고 토크에 참여했어야 한다. 하지만 녹화 당시 [[http://i.imgur.com/Kvhh9Jb.jpg|MC들이 보기에도]] [[http://i.imgur.com/uZ5dvnD.png|과하게]] [[http://i.imgur.com/VNrH0lh.jpg|말이 없었던]] 아이린은 진행을 [[http://i.imgur.com/e7WlGm0.png|답답하게 했고]] 뮤직뱅크에서의 발랄했던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레드벨벳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도가 매우 좋지 않게 보였다. 또한, 다른 방송에서 개인기를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진구야' 개인기 재활용도 하지 않고 무조건 개인기가 없다 잡아떼는 것도 좋은 모습이라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방영 다음 날인 2016년 12월 8일 [[엠넷]]에서 방영된 [[양남자쇼]]에 출연한 아이린의 [[http://i.imgur.com/CX26ihr.mp4|발랄한]] [[http://i.imgur.com/nSlT3v2.mp4|모습들과]] 대비되어 라디오 스타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다.
          * '''옹호 측 의견'''은 대체로 아이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으로 도나 성격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린이 활약할 수 없었던 환경으로 인해 생긴 상황이라는 의견이다.
          우선 이제까지 아이린을 가까이서 많이 보아 온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라디오 스타 MC인 규현이 [[http://i.imgur.com/WkOZlpk.jpg|녹화 당시 한 말]]처럼 최대한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남자쇼에서의 모습과 대비된 이유는 양남자쇼는 레드벨벳 멤버들이 함께 출연했던 만큼 아이린이 어울릴 사람이 있었지만 라디오 스타에서는 레드벨벳 멤버 중 혼자서 게스트로 출연한 첫 토크쇼였고, 아이린이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둘째치더라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직속이자 아이돌 가수 세계에서 하늘같은 대선배였고 SM 서열 순위 1위 강타와 친하고 같은 동료였던 문희준과 토니안, 그리고 SM 선배인 규현과 대선배가수 윤종신과 김구라, 김국진[* 더군나나 김국진은 아이린이 어렸을 때인 1990년대 중후반에 인기대스타였다! 위축되는게 당연한것이다!!!] 그리고 배우로 오래 활동했던 서지혜 사이에서 있었던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서지혜와 서유리는 80년대 중반 생으로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토니 부인, 칠현 부인이라고 자칭했다.'고 할 정도로 과거 H.O.T.의 열렬한 팬이었고, 문희준과 토니는 H.O.T. 멤버였던 만큼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되는 네 사람 사이에서 91년생인 아이린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나 토크에 참여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이린이 신인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해도 데뷔한 지 2년은 된 상황이었고,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해도 연예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을 정도라면 SM이라는 국내 최대 대형 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이 되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라디오스타 논란은, 아이린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린을 제외한 다른 라디오스타 출연 게스트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서) 스케줄을 잡은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말만 적었을 뿐 아이린은 방송 내내 [[http://cfile23.uf.tistory.com/image/2645454E584906A32885C5|90도로 허리를 펴고 앉은 채로 박수를 치거나 잘 웃는 등 리액션을 계속하였고]] 다른 게스트의 과거 사진에 놀라고 비웃는 와중에도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타팬들의 의견마저도 말주변이 없었을 뿐 오히려 도가 좋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사를 겪은 이후 본인도 적극적인 리액션과 활약을 선보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을 조금씩 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2018년 3월 18일 [[레벨업 프로젝트#s-2|레벨 업 프로젝트 시즌 2]] 1000만 뷰 돌파 기념 팬미팅 현장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말했는데, 이걸 가지고 [[레드벨벳 갤러리]][* 현재 [[레드벨벳 갤러리]]는 사실상 [[국내야구 갤러리]]와 다르지 않은 상로([[레드벨벳 갤러리#s-3.4|참조]]), 온라인 상에서 포토카드를 불우는 등의 반응은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즉 진짜 팬이라고 하기 어려운 어그로들이 많은 곳.]와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남혐]]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며, 아이린의 굿즈 등을 훼손하는 사진을 올리는 등 비난했다. [[http://naver.me/5MT1aJQV|기사]][[https://youtu.be/2aCMpZhC4tw|영상]].
          * [[http://www.yonhapnews.co.kr/digital/2018/03/26/4904000000AKR20180326018200797.HTML|연합뉴스]]에서는 이상적이라 여기는 상냥하고 순종적인 여성과 자신을 위협하는 도전적인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여성관이 원인이며,[* [[https://www.fmkorea.com/986132907|"너랑 결혼까지 생각한 나를 후회한다"]]와 같은 반응은 이러한 이분법적 여성관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며,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익명성을 통해 분노와 혐오가 더욱 극단적인 형로 표출되었다는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안상수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의 견해를 인용했다.
         2000년 이후 실업 등 청년 문제가 심각한 저성장 시대에 자란 청년층은 사회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다.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을 때 그 의견이 가장 잘 수용되는 분야가 바로 서브컬처 업계이기 때문에 갑질이 계속된다는 것이 주류 언론들의 일관된 견해이다. 이들은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바탕으로 을의 사적 영역인 SNS 등을 사찰하며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 공격한다. 비록 이러한 사적 영역이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세에도 문제가 있으나 그것이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 원빈(배우) . . . . 17회 일치
         사슴같은 눈망울에 [[여성]]들의 [[마더(영화)|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분위기]],[* 데뷔초에는 확실히 이런 분위기였으나 후에는 남성적인 모습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그리고 미묘하게 반항적인 도 등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타일로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 변화에 따라 '마초' 와 '꽃미남'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레벨에 이르러서 은근히 영화마다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어난 김도진[* 어릴 때 동네에서 부르던 별명이 "김방석"일 뿐 본명은 김도진이 맞다.]은 2남 3녀 중 [[막내]]로 어나서 여량초등학교, 여량중학교,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사촌]]이 있는 [[서울특별시]]로 상경한다.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히 오디션에 도전해 케이블의 제일방송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된다.[* 지금은 [[MBC 드라마넷]]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렸을 적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던 것 같은데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최민수]] 주연의 [[테러리스트(영화)|테러리스트]]를 보고 액션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다.[* 실제로 [[권도]] 유단자라고 한다. 90년대에 예능 프로에서 [[안재모]]와 권도 대련을 하는 방송도 있었다.] [[http://todayhumor.com/?star_225458|#]]
         같은 해 [[가을동화]] 당시만 해도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똥~~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가 칭찬 반 놀림 반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잘생기면 사랑도 똥(...)으로 사냐며 많이 패러디되었다] [[극기 휘날리며]](2004년)를 거치고[* 이때만 해도 [[장동건]]에 묻어간다, 조연 배우 일부발로 나온 이야기 중 싸가지 없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원빈의 성격은 나름대로 겸손한 편이라고 알려져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영화)|마더]](2009년)에서 연기력 논란을 확실히 떨쳐버렸으며 [[아저씨(영화)|아저씨]]에서는 영화 한 편을 혼자서 끌고 나갈 수 있는 원톱 흥행 배우로서 자리매김했다.
         물론 비판 자체가 거세지는 않고, 안 좋게 보는 이가 존재는 하기에 복귀작을 이창동의 영화로 선택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과시한다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쿨하게 왜 그동안 영화를 안 찍었는지를 말해줄 필요정도는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이 많다. 하다못해 [[서지와 아이들]] 활동 시절 가수 분야의 신비주의의 끝판왕으로 평가받았던 [[서지]]도 이은성과 재혼 이후 현재는 신비주의를 많이 줄인 상이고 몇 년마다 음반은 내고 방송에는 나오고 있다.
         || 2010 || [[아저씨(영화)|아저씨]] || 주연 || [[차식]] || 6,282,774명 || 성공 ||
         || 2004 || [[우리형]] || 주연 || 김종현 || 2,479,585명 || 성공[* [[신하균]]과 공동 주연. 이 관객수를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장르도 장르이지만 2004년 당시 '극기 휘날리며'나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제외하면 별다른 흥행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2위인 [[어린 신부]]가 315만으로 우리 형은 그 해 흥행 6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인 것은 분명했다.] ||
         || 2004 || [[극기 휘날리며]] || 주연 || [[이진석(극기 휘날리며)|이진석]] || 11,746,135명 || 성공 ||
         ||<|3> 2000년 ||<|3> [[KBS]] || [[가을동화]] || 한석 역 ||
         || [[꼭지]] || 송명 역 ||
          * 2004년 제12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 올해의 신인배우상 《극기 휘날리며》
          * 2004년 제27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남자신인상 《극기 휘날리며》
  • 유승민(정치인) . . . . 17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탈당 러쉬로 존립 자체가 위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다. [[민주평화당|분열 사]]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친유|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2015년 북한 목함지뢰도발 당시, 국방부의 '확성기 강화' 지침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해 놓고, 이제까지 한 게 확성기 재개한 것이냐"''' 며 미온적인 도를 질타하였고, 사고 후 통일부에서 북한에 회담을 제안한 사를 보고 '''"좀 정신 나간 짓 아니냐"'''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보수진영의 대표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본인이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 <이것이 정치다> 1월 5일자에 유승민 의원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당시 유승민 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하여 미사일 발사 종류와 사거리, 사격고도 및 발사각도, 그리고 미사일 발사기지 위치 등의 자료를 만들어와 전원책 변호사 앞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사드배치 관련 타당성 주장을 하였는데, 전원책 변호사는 "이건 정말 정확한 자료이다", "공부를 많이 하셨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등으로 매우 호의적인 도를 보였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발의 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를 보고 국방부 종합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남생도로 바뀐 사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백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남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2017년 현재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으로 화제되고 있는 UAE와의 군사협약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도 유승민이었다. [[http://www.nocutnews.co.kr/news/772179|''UAE 파병'' 결정, 문서없이 구두로만 이뤄져]] 구두협약으로 파병이 결정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MOU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 유사시 군사개입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며 당시 2급비밀로 분류된 4건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김영 장관은 UAE가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고 파병과 상관없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MOU와 파병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후 인정했다.
         19대 대선 출마 시에도 국방위원회에서 8년, 그리고 국방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게임 체인지(Game change)를 선도하는 최강군의 구축, 그리고 북을 억제하기 위한 한국형 상쇄전략(Korean Offset Strategy)채택을 토대로 미래지향적 국방세 구축을 내걸었다.
         여담이지만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인 [[김성(1958)|김성]] 의원의 원내대표 연설 때마다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다.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면 여당은 몰라도 다른 야당들이 어느 정도 동조를 해주기 마련인데 오히려 여당(민주당)은 비웃고 다른 야당들은 '저게 뭐냐' 는 반응이니 무게감있고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두루 공감받던 유승민 의원의 연설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희망은 한여름날 쏟아지는 양이 아니라, 시린 겨울에 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그렇게 희망은 옵니다.'''
         이날 [[JTBC 뉴스룸]]에서는 원래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이슈를 가지고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인터뷰의 주제는 '지진과 [[대한민국]]의 재난대비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급작스럽게 지진 이슈에 대해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했는데, 준비도 안 되었을 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안전처의 재난대응 문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국회 지진안전 예산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원전 현황을 이야기 할때는 원전 소재지역과 가동, 건설 중인 원전의 갯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진예측시스템, 원전 소재지의 단층파악문제까지 언급하는 등 디테일한 사항까지 꿰뚫고 있어 뉴스룸 시청자들은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 [[하경]] 의원이 "유승민이 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썰전]]에서 밝혔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새누리당|여기]]는 아직 독재물이 덜 빠졌다고 팩트폭격을 추가로 가했다~~
  • 이금서 . . . . 17회 일치
         |배우자= 신란궁부인 김씨(고려 조 외손녀, 신라 경순왕 3녀)
         |친척= [[신라]] [[경순왕]](장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장모, 고려 조 장녀), 대안군 [[김은열]](처남, 신라 경순왕 4남)
         [[고려]] 조정에 출사하여 [[고려 조|조]](太祖) 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녹훈되었다.
         [[신라]] 때 중원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을 역임하고, [[935년]](신라 경순왕 8년) 11월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할 때 함께하였다고 한다. [[고려 조|조]] 때 개국공신 삼한공신에 책록되고, [[고려]]조에 출사하여 광록대부를 역임하였다.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墓誌銘)에 의하면 "신라왕 김부(金溥 : 敬順王)가 국토를 바치고 고려 조정에 들어와 조(太祖)의 딸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樂浪公主)에게 장가들어 딸<ref>신란궁부인 김씨이다.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는 출가 후 신란궁부인으로 불렸는데, 그 딸인 김씨가 다시 신란궁부인에 봉작되었다.</ref>을 낳았으니 금서의 아내가 되어 윤홍을 낳았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했다는 기록을 들어 연대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ref>이에 대해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에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할 때 병정(兵正)을 두었고 품계는 재상(宰相)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ref> 그러나 이금서가 중원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으로 고려에서 처음 벼슬을 시작했고, 그 아들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과 관련하여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하면서 병정(兵正)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은 고려 초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이금서는 [[고려]]조정에 처음 출사하였다 한다. 또한 [[고려 조|조]] 때 [[고려]]의 삼한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런데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 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일명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와 혼인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서 어난 [[경순왕]] 3녀 김씨가 이금서와 혼인할 연령이 되려면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이후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어난 이금서의 아들들이 활약할 연령이 되려면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금서의 아들들이 [[경순왕]]의 [[고려]] 귀부 이전에 활약했다는 기록들은 이러한 사실과 30여 년 이상의 연대상 오차가 생기게 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이금서(李金書)의 증손자 [[이주좌]](李周佐)를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주좌의 증조부 이금서(李金書)는 중원수 호부랑중을 역임하고 고려 조의 외손녀이며 신라 경순왕의 딸인 신란궁부인 김씨와 혼인하였고, 조부 이윤홍은 병정(兵正)을 역임하였는데, 비록 부친 이승훈(李承訓)이 칠품 관직인 정조시랑(正朝侍郞)에 그쳤다고 한미한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 장모 :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고려 조의 장녀)
  • 장태영(야구선수) . . . . 17회 일치
          *타짜의 등장인물은 [[장영(타짜)]]로.
         ||<#eeeeee><:> '''이름'''|| 장영(張泰英) ||
         [[김양중(야구)|김양중]]과는 세기의 라이벌이었으며 [[고교야구]]에서 뛸 당시에는 부산의 장영, 광주의 김양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맞수 대결은 어느 스포츠, 어느 선수에게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대결의식이 스포츠에 활기를 불어 넣는 요인이다. 나와 영이는 고향과 성장배경이 달랐어도 야구라는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온 맞수며 둘도 없는 친구다.'''
         1929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장인달의 아들로 어난 그는 5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1944년에 경남중학교에 입학해 [[유도(스포츠)|유도]]부에 입부해 유도를 배우던 그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경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생기자 야구부에 입부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남중 야구부후원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이었고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야구 하나만 보고 성장할수 있었다.
         === 양을 던지다 ===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1949년 6월 13일, 뜨거운 양 아래 5천명 수용가능한 [[동대문야구장]]에는 15,000명의 관객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들어차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눈은 두명의 투수가 그라운드에서 모든것을 쏟아 붓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양팀의 선발은 모두가 예측한대로 [[장영]]과 김양중이었다. 그러나 경기내용은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
         8회말까지 장영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남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상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그리고 대망의 11회말. 장영이 대회 첫 볼넷을 내주며 광주서중의 선두타자 김용욱을 출루시킨후 문택영이 초구 번트를 댔는데 이것이 전진수비를 하던 경남중 유격수 키를 넘기는 행운의 안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1루주자였던 김용욱은 3루까지 내달렸고 경남중의 좌익수였던 이상제가 이를 잡기위해 3루 송구를 했는데 이것이 '''3루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악송구'''가 되어 버린것이다.~~[[망했어요]]~~
         어이없는 실책들로 결국 장영이 이끄는 경남고는 통한의 패배를 안게 된다. 이후 장영은 1974년에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사실, 그 누구도 경남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평범한 에러로 우리는 3연패를 저지당하고 통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라며 회상하기도 했다.
         ||[[박현식]](좌)과 [[장영]](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정확히 말하면 당시 서울클럽이라는 야구팀 유니폼이다. 당시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데 나라에 돈이 없다보니(...) 유니폼을 따로 제작할수가 없어서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단 유니폼을 서울클럽에서 빌려서 출전했다.] ||
         ||상업은행 감독시절 장영(좌). 우측은 기업은행 감독 [[김양중(야구)|김양중]] ||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6회 일치
          수장은 소련. 소련 외에는 주목할 만한 국가가 없다시피하다. 나머지 회원국이라봤자 탄누 투바나 몽골인민공화국 정도라. 다른 두 세력(주로 주축국)을 밟아준 후 이들의 소속국을 공산화시키는 형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 상륙 패널티: 상륙 한계 이상 사단을 밀어넣으면 제한수를 초과한 사단들은 패널티를 받는다. 이 패널티가 90% 수준이기 때문에 초과된 사단들은 그냥 짐덩어리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평양 전쟁에서는 한개 군단이 한개 야전군을 막아내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정치 슬라이더 중 동원령↔동원 해제 슬라이더는 플레이어가 직접 움직일 수 없다. 반면 동원령 관련 지시전을 발동시켜 이동시킬 수 있을 뿐이다. 각 동원령들의 상는 다음과 같다.
         ==== Demilitarized(비무장 상) ====
         동원령 1단계. 군대가 없고 경찰이나 민병대 같은 준군사조직이 전부인 상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예시는 현대의 [[코스타리카]].
         인력 증가량이 0이므로 정상적으로는 군대를 꾸릴 수 없다. 1936년 코스타리카가 이 상로 시작한다. Establish a Professional Army(전문직업군 창설) 디시전을 통해 Fully Professional Army(완전한 전문직업군) 상가 될 수 있다.
         인력이 엄청 느리게 늘어서 없는 것으로 치는게 낫다. 이 단계에서 생산이 완료된 모든 유닛들은 숙련도 80을 달고 나온다. 1936년 미국이 이 상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는 Prolong Terms of Service(복무 기간 연장)디시전을 통해 징병제를 시행할 수 있다.
         동원령 3단계. 일부만 랜덤으로 징집(선발제 복무)하거나 일정한 기간만을 복무(시간제 복무)하는 단계. 선발제복무의 예시로는 제비뽑기로 징병을 하는 현대의 [[국]]이, 시간제 복무의 예시는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훈련을 받는 현대 [[미국]]의 [[주방위군]]이 있다.
         징병제/모병제 구분 없이 "Enact Partial Mobilization"(부분 동원령 시행) 디시전을 발동시키면 이 상가 된다. 20세에서 50세까지의 남성을 징집한다. 이 단계부터 생산된 유닛에게 숙련도 보너스가 붙지 않는다.
         "Enact General Mobilization"(전체적 동원령 시행) 디시전을 발동시키면 이 상가 된다.
         전쟁 말기 시나리오로 가면 독일이 이 상이다.
         "Enact Extended Mobilization"(확장 동원령 시행) 디시전을 발동시키면 이 상가 된다.
          전쟁을 벌이는 국가와 할 수 있는 행동. 해당 국가만 평화협상에 참가하는 Separate Peace와 해당 국가의 동맹 모두가 평화협상에 참가하는 For the Alliance가 있다. 전황이 좋다면 무장 해제, 군사적 통행권, 괴뢰국화, 영토 요구와 같은 굴욕적인 조건을 상대가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지지만 전황이 나쁘다면 이와 같은 조건을 내걸어야 상대가 받아들인다. 물론 그 정도까지 가면 전에 세이브한 데이터를 불러오자. 평화협상이 체결되면 평화협상으로 변동이 생긴 국토 외의 모든 국토는 전쟁 전 상로 돌아온다. 또한 평화협상 이후 일정 기간은 선전포고가 불가능하다.
         연합국의 우두머리. 섬나라라는 특성상 본토에 병력을 배치한 후 배에 워 대륙으로 수송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같은 섬나라인 일본은 세력권이 동아시아로 한정되어 있지만 영국은 사실상 세계 전역에 깃발을 꽂고 있어서 더더욱 골치아프다.
          미국의 괴뢰국. 평양 전쟁이 발발하면 마닐라가 함락되는 즉시 일본에게 점령 및 합병당한다. 이후 일본이 괴뢰국으로 다시 뱉어낸다.
  • 김재박 . . . . 15회 일치
         || '''소속팀'''[* 실업야구 시절 포함.] || [[한국화장품 야구단|한국화장품]] (1977~1981) [br] '''[[MBC 청룡]]-[[LG 트윈스]] (1982~1991)''' [br] [[평양 돌핀스]] (1992) ||
         || '''지도자''' || [[평양 돌핀스]] 수석코치 (1993~1995) [br] '''[[현대 유니콘스]] 감독 (1996~2006)'''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4, 2006)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6) [br] [[LG 트윈스]] 감독 (2007~2009) ||
          *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강귀|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절부터 시작된 행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 2013년 [[kt 위즈]] 창설로 또다시 감독 후보로 올랐으나, 이번에도 패하여 [[조범현]]이 그 자리를 가져갔다. 이후 사상 최악의 추락을 경험한 기아의 선동열, SK의 이만수 감독이 흔들리면서 기회를 찾는 듯 했지만 두 팀 모두 일단 감독의 임기를 지켜주기로 결정. 당분간 야인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2014 시즌이 끝난 후에는 감독 임기가 만료되는 팀이 3팀에다 도중하차 가능성이 있는 팀도 2팀이나 있어서 다시 얘기가 나오는 중. 그러나 기아는 일단 선동열의 임기를 2년 연장했다는 발표를 하고, SK는 [[김용희]]를, 한화는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는 발표가 나면서 야인 생활은 연장될 전망이다. 그리고 기아는 선동열이 팬들의 여론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하면서 또 얘기가 나왔으나 [[김기(1969)|김기]]가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나면서 무산.
          * 2014년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자 [[박정]]와 함께 롯데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현대와 LG 시절부터 '초기 투자'를 많이 요구하던 김재박의 스타일을 들어 박정 단독후보로 내세우면 욕먹을까봐 낸 구색맞추기 용 후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단은 [[이종운]]이 감독으로 선임되어 1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래도 [[양상문]] 역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를 이끌었고, 김재박이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프런트가 시의 적절한 지원을 하는 구단의 감독이 될 경우 호성적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2006년 경 [[네이버 뉴스]]의 댓글이 개편된 이후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이라는 비아냥성 제목으로 뉴스 댓글란에 [[꾸준글|꾸준히 게시되면서]] 퍼지기 시작한 글이 옛 [[리그베다 위키]] 시절 본 항목에 게시되었고, 이후 위키러들의 편집을 거쳐 아래와 같이 정리된 상이다. ~~과장성 자료가 다수 첨가되어있으니 적당히 필터링 바람~~
          * 1998년 5월 14일 해전,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야구)|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11번째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 번트였다면 유격수 땅볼아웃이 될 리가 없다.],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식]]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 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이미 10타자 연속 삼진을 당했는데 11타자 연속 삼진 막는다고 얻을 것도 없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다. 매경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신기록을 체크하며 경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 2005년 [[KBO 올스타전]]은 [[장종훈]] 선수생활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는데, 당시 장종훈을 계속 기용하지 않다가 9회 마지막 투아웃 이후에, 그것도 원스트라이크 이후에 선수들과 팬들이 웅성거리니까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보냄. 이 부분은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다. 2005년 올스타전은 장종훈 은퇴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장종훈이 대타로 나간 타석은 본래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의 타석이었다.[* 조인성이 빠지면 감독추천이었던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썼어야 했는데, 당시 [[신경현]]은 몸 상가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 당시 중계화면을 보면 김재박 감독도 옆에서 말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머쓱 웃으며 출장을 지시하는데, 그 표정이나 상황이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서'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경기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O 역사의 한편을 장식한 거포를 은퇴식임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마지못해' 내보낸 것 이상으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런데 당시 기사에는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99326.htm|원문은 여기]]
          * 이외에도 2000년 시즌은 특히 기록 밀어주기로 인해 시끄러웠다. [[임선동]], [[김수경]], [[정민]]의 등판을 조정해가며 결국은 3명 공동 다승왕을 만들어냈으며, 다승왕 나눠먹기라고 크게 비판받았다.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려고 한 거야 위에 써져 있고, [[박재홍(야구)|박재홍]]의 타점왕 수성을 위해 10월에 들어서면서 득점 찬스 때마다 대타로 내보내 경쟁자였던 [[타이론 우즈]]와 [[훌리오 프랑코]]를 각각 4, 5점 차로 따돌리며 타점왕 수성에 성공시키는 등의 추를 보여주었다.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605/20060527/65704010.htm|(2006 투혼) 김재박, "극마크 달았으니 무조건 이겨라"]]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5회 일치
         하지만 암살단이나 템플러보다 큰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이었다. 2012년 12월 21일 세상은 양풍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 애니머스로 돌아가기 전 유적 곳곳을 들쑤시다 보면 유노가 나타나 양풍을 막기 위한 먼저 온 자들의 시도를 말해준다.
         구 주청사의 군인들은 몰려든 군중들을 해산시켜 보려고 하지만 군중들은 해산을 거부하는 상. 이 와중에 코너와 아킬레스는 헤이덤을 발견한다. 아킬레스는 헤이덤의 행동이 지금 상황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판단, 코너를 시켜 헤이덤의 부하를 미행하게 한다. 코너는 헤이덤의 부하를 쫓아가 그가 군중에게 총을 쏘려는 순간 암살한다.
         어떤 집에 도착한 코너와 아킬레스. 술에 쩔은 집 주인은 무례하게 굴지만 아킬레스의 "그 물건을 복구할 생각이다"라는 말에 도가 달라진다. 아킬레스가 말한 그 물건이라는건 집 앞 바다에 버려저있던 배인 아퀼라. 아퀼라는 지금은 그냥 폐선이지만 한때는 "북해의 유령"이라고 불리던 대서양에서 제일 빠른 배였고, 집 주인인 로버트 폴크너는 그 배의 선장이었다. 현재는 목재가 부족해 아퀼라를 수리할 수 없는 상황. 코너가 목재를 모아오고, 폴크너가 선원을 모아오기로 한 후 헤어진다.
         암살단원들은 밴을 타고 맨해튼으로 간다. 카오디오에서는 머지않아 일어날 양풍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데스몬드는 레베카에게서 교신을 위한 원격 카메라를 넘겨받고, 윌리엄에게서 현재 상황을 전해듣는다.
         1776년 6월 16일, 코너와 애덤스는 조지 워싱턴의 총사령관 취임연설을 듣는다. 애덤스는 워싱턴만큼 총사령관에 적합한 사람이 없을거라고 말하지만, 뒷자리에서 연설을 듣고 있던 찰스 리가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찰스 리는 코너를 몰라보는 상. 애덤스는 찰스 리에게 달려드려는 코너를 제지하고는 조지 워싱턴과 대화를 소개해준다. 워싱턴은 렉싱턴-콩코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코너를 칭찬하지만, 코너는 애국자들이 한 것을 돕기만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워싱턴은 용맹한 만큼 겸손하다며 코너를 칭찬해준 후, 총사령관이 못 된 찰스 리를 위로해주러 간다.
         감방에 기절한 채로 널부러져 있던 코너는 간수들에 의해 교도소 밖으로 호송되어 마차에 워진다. 코너가 마차에서 내려졌을 때[* 정확히는 내동댕이 쳐졌을 때], 히키가 와서 리와 헤이덤이 손을 써서 즉결 처형이 되었고, 워싱턴도 처형을 관람할 예정이라며 깐죽거린다.
         코너는 수송대를 미행해 야영지에 숨어들어간다. 그곳에서 용병 대장의 대화를 엿들어 처치가 뉴욕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때, 용병들이 헤이덤을 끌고 온다. 야영지 근처에서 염탐 중이던 헤이덤이 붙잡힌 것. 용병 대장은 처치가 그에 대해 말해줬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헤이덤은 숨어있는 코너를 보고 당당한 도를 취한다. 결국 코너는 용병 대장에게 처맞던 헤이덤을 구하기 위해 용병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 전투를 벌이던 중, 헤이덤은 뉴욕에서 만나자며 용병들 사이에 코너를 버려둔 채로 가버린다.
         코너는 아버지랑 재회했지만 그게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감을 못 잡고있었다. 헤이덤은 코너처럼 식민지의 독립을 바라고 있었지만, 코너의 마을을 불우고 코너의 어머니를 죽인 찰스 리를 지지하며 워싱턴을 비방하고 있었다. 동시에, 코너는 독립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자유와 평등은 코너와 서리 같은 사람들을 뺀 백인들에게만 주어질 걸로 보였다. 생각할 것은 많지만 시간은 별로 없었다.
         코너가 워싱턴을 만나 정보를 전하는 동안, 헤이덤은 그의 서류를 멋대로 꺼내와 코너에게 알려준다. 워싱턴이 코너의 마을을 공격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서류였다. 워싱턴은 영국에 협력하는 원주민이었기에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헤이덤은 워싱턴이 마을을 불우고 땅을 황폐화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이런 일을 한두번 한게 아니라고 한다. 이에 코너는 그의 마을을 불워 카니에티오를 죽이고, 한번 더 불우려고 한 워싱턴과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숨기고 있던 헤이덤에게 화를 낸다. 그러고는 두 사람 모두 자기가 하는 일에 쫓아오거나 반대하면 죽여버리겠다고 경고과 함께 전령을 막으러 떠난다.
          * 헤이덤은 워싱턴이 14년 전에도 마을을 불웠다고 하지만 해당 시점에서 14년 전은 카니에티오가 죽은지 4년 후다. 음?
         헤이덤은 코너에게 올라탄다. 그러고는 템플기사단은 깨달음에서 어나기 때문에서 절대 파괴되지 않을거라고 선언하며 코너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코너는 목졸려 죽어가면서도 암살검을 뽑는데 성공, 암살검으로 헤이덤의 목을 찔러 죽인다.
         리는 코너에게 열쇠를 보여주며 헤이덤이 괜찮다며 자길 보냈을 때 가지 말고 남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분노한 리는 대번포트 농지, 건국의 아버지들, 암살단, 코너의 마을과 카니엔케하카 등 코너가 이뤄낸 모든 걸 불워버리고 코너를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코너가 그의 말을 해봤자 실패할 것이라며 받아치자 리는 용병들에게 코너를 끌고가게 한다.
  • 은혼/614화 . . . . 15회 일치
          * 하타 황자의 청을 뒤로하고, 바루카스 황자는 길을 떠난다. 하타가 평화로운 시대의 왕으로 어울리듯 자신에게도 어울리는 자리가 있을 거라 믿으며. 그렇게 작은 칭코도 신분도 숨긴 채 전장에 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필생의 라이벌 엔쇼우 황자. 그는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전쟁에 매달렸고 전장에서 전장으로 옮겨가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해서 도달한 곳이 이곳. 그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자작 제독은 무전기 너머로 아우에게 사과하며 자신은 자기 자리에서 도망치고 있던 거라고 고백한다. 칭코가 큰 동생과 위대한 형 드라고니아에게서. 그는 이제 도망치지 않고 하타 황자 옆에서 함께 싸우기를 다짐하며 황자 바루카스로 돌아온다.
          하타 황자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네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저거야 말로 용처럼 거대한 칭코. 틀림없이 오우고쿠 왕가의 장남이자 정통한 계승자. '''구룡공자 드라고니아'''.
          바루카스의 감동적인 연설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그쪽에도 황자가 있냐고 묻는 바루카스의 목소리는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가 완전히 혼자 떠들고 있는 사이 이쪽에선 오우고쿠별 역사에 남을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설의 황자의 귀환이.
          * 단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아니 드라고니아를 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드라고니아는 구두룡섬이란 필살기를 사용해 이들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아홉개의 귀두--결국 귀두했어 지금?--를 가진 구룡의 이름에 걸맞는 기술. 네스의 이같은 해설에도 하타 황자는 구룡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술 아니냐고, 그냥 쓰레기 용섬이 아니냐고 의심한다.--귀두룡섬이겠지--
          네스는 누구보다 먼저 그를 드라고니아로 인정한다. 분명 모습은 바뀌었지만 그 귀두, 아니 칭코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하타 황자는 눈치도 없이 칭코라기 보단 가랑이에 달린 그거가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방금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타 황자는 대체 그 설명을 어떻게 해야 지금의 형가 되냐고 따진다. 그러나 칭코만능주의자 네스는 아무튼 칭코가 크고 드라고니아 본인이라니까 됐지 않냐며 콧방귀도 뀌지 않고 눈 앞의 엘리자베스를 차기 국왕으로 떠받든다. 뒤늦게 소동을 듣고 달려온 부하들. 하타 황자는 이 개판을 보고 한 마디 해달라고 하지만 부하들은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칭코만 보고 그쪽에 붙어 버린다. 결국 이놈의 종족은 칭코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 네스를 앞세운 부하들은 오우고우 왕가의 오랜 공백기간과 바보황자(하타황자)가 망친 국정을 논하며 속히 돌아와 왕위를 이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고사한다.
          드라고니아는 자신은 엘리자베스라며 이미 왕위에 오를 자격을 잃은 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되진 못해도 그들의 왕을 되돌리기 위해 싸워줄 수는 있다고 말한다. 바로 하타 황자와 바루카스 황자다. 그들은 각기는 부족하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아니 오우고우 별의 사람들이 받쳐주면 더욱 좋은 왕이 될 거라 말한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15회 일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자신을 팩트로 까려는 사람을 메갈리아 유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한 유저에 따르면 무작정 메갈이라며 활동정지를 당한 경력이 있다. 사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신일, 푸워 등등은 칭찬하고 좋아한다면서 이병욱은 어떠냐고 그 사람의 지인이 묻자 [[구안와사|"그 안면마비 장애인새끼"]]라며 여러가지 욕설을 한것을 이병욱이 알게되자 심각하게 화를 낸적이 있다. 헌데 그 사람이 여자라 이 일이 있는 이후로 그냥 까기만 하면 무시하는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프로필이 여자거나 하면 메갈이라며 싫어한다.]]
         ||[[https://youtu.be/p0ibaMkBhIc|남구랑 신일이 피는 담배 마일드세븐(메비우스) 리뷰]]||
         그 악명높은 '''느금마엔터 민폐 [[신일(유튜버)|4]][[김윤|대]][[푸워|천]][[남구(범죄자)|왕]]'''에 임팩트가 가려저서 그렇지, 사실상 현재 느금마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지가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한다.''' 트위치에서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보면 '''[[유신(스트리머)|유신]]과 투탑'''이었다.
         게다가 비슷한 사건을 벌인 김윤는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반면에 이병욱은 법정 출두 관련 이야기 조차도 없다. --푸워와 다시 친해져서 그런건가...--
         11월 (추가바람)일 트위치에서 백경민이 느금마 엔터에 들어온 시기에 영구정지 상인 [[김윤]]의 스카이프 모습을 그대로 송출했다. 하지만 해당 녹화본이 없는 상황.
         그러다가 12월 23일에 김윤의 모습을 그대로 송출시키는 사건을 '''또''' 벌였다. 물론 아닐때에도 채팅창은 완전히 [[아비규환]].
          * 그의 방송을 한번쯤 본 적이 있었다면 알겠지만 상당히 마초적인 기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느금마 엔터 패밀리들과 스카이프 통화를 하면서 다시 어나면 여자로 어날거냐 남자로 어날거냐는 주제가 나왔었는데 이병욱만 다시 어나도 남자로 어나겠다고 말했다. 재밌는건 이때 [[로봉순]]도 있었는데 로봉순은 다시 어나도 여자로 어나겠다고 했다.
  • 정찬성 . . . . 15회 일치
         같은 해 5월에는 역시 일본의 신성인 카네하라 마사노리를 상대로 8강전을 치르지만 아깝게 분패하고 말았다. 카네하라가 상위를 차지하고 정찬성이 하위에서 서브미션을 시도하는 형로 흘러갔다. 카네하라는 정찬성의 타격을 봉쇄하며 초반을 뚜렷한 우세를 보였다. 스탠딩에서는 정찬성의 우세였고 중반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호각인 양상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카네하라의 만장일치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상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상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국내 격투기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정찬성이 도전 기회를 잃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깨가 성하지 않은 상에서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추진했다면 그나마 없는 승산이 더욱 적어졌을 것이고, 만일 본래 계획대로 프랭키 에드가가 12월 페더급 데뷔전을 치르고 승리하게 되면 정찬성이 에드가와 타이틀 도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알도와 에드가가 먼저 맞붙기 때문에 정찬성이 타이틀전을 앞두고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이 내년 복귀시기에 맞춰 바로 타이틀전 직행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개최예정인 'UFC 162' 에서 [[리카르도 라마스]]와 격돌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 매치는 페더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일 확률이 높은 상...였는데 [[앤소니 페티스]]가 무릎부상으로 결장하게 되면서 '''[[조제 알도]]와 타이틀전이 확정되었다!!'''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식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반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남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데이나 화이트도 #ufckorea라는 해쉬그와 함께 코리안 좀비가 돌아왔다며 트윗을 올렸다. 이후 인터뷰에서 정찬성은 3년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는데 역사상 그 어떤 선수보다 멋지게 복귀했다며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말미에 한국대회를 기대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정찬성이 6월 2일 오전, 열심히 연습하던 도중에 [[십자인대]]가 심하게 파열되면서, 라마스전이 취소되었다.''' 상가 많이 안 좋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출전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복귀전은 내년 하반기나 2019년이 되서야 가능할 전망이다. 라마스전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무릎 상까지 악화된다면 정찬성의 맷집이나 기량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더군다나 버뮤데즈 전 이후 어깨 부상이 재발하였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인 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격투기 팬들은 정찬성이 오래 걸리더라도 완치해서 다시 옥타곤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찬성이 생각보다 수술이 매우 잘 되어서 내년 상반기 복귀를 목표로 열심히 재활을 한다고 밝혔고,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한 최두호와 같이 "건강해져서 꼭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했을 팬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2018년 7월 중반, 정찬성이 원하던 대로 '''프랭키 에드가'''와 경기가 추진 중이라는 뉴스가 각종 해외 격투기 소식에서 나왔다. 게다가 이 소식이 나올 때쯤 정찬성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 ___#기회, #도전, #coming soon___ 해시그가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에드가와의 경기에 대한 암시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며, 각종 해외 소식에 의하면 2018년 10월 7일에 열릴 UFC 229에서 이 경기가 있을 것을 것이라고 한다.
  • 조성모(가수) . . . . 15회 일치
         ||<width=24%> [[H.O.T.]], [[김종환(가수)|김종환]][br]빛[br]사랑을 위하여[br](1998) || → ||<width=24%><#FFFFA1> '''조성모''', [[송대관]][br]'''For Your Soul'''[br]네 박자[br]'''(1999)''' || → ||<#FFFFA1><width=24%> '''조성모''', [[진아]][br]'''아시나요'''[br]사랑은 아무나 하나[br]'''(2000)''' || → ||<width=24%><:>[[god]], 진아[br]길[br]잘났어 정말[br](2001) ||
         '''대한민국 최후의 음반 황제이자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압도적 인기를 누린 솔로 가수.'''[* 당시 괴물 같던 1세대 아이돌들의 팬덤과 인기를 단독으로 상대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솔로 가수이자 심지어 음반 판매량, 수상 경력 등 커리어로는 그 당시 가요계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발라드 가수로서 아이돌을 제치고 대상을 탄 원톱 가수이다. (아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휩쓴 것뿐만 아니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도 대상 부문인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했으니 MAMA에서도 사실상 대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받지 못한 건 [[멜론 뮤직 어워드]] 뿐이다. 근데 멜론 뮤직 어워드는 조성모의 전성기가 지난 2005년에 온라인 형로 시작해서 2009년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시상식이 되었다.--][* 조성모가 최전성기 때 대상을 받은 1999년과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1999년 같은 경우 그 전 해인 1998년에는 [[H.O.T.]]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서울가요대상]]도 같은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KMTV 가요대전도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 다음해인 1999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대상은 [[핑클]]이 조성모를 제치고 수상할 정도였다. 이후 2000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KBS 가요대상]]은 [[god]]가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god]]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골든디스크 시상식]],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는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1세대 아이돌의 팬덤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원래는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O003&qid=0DyDI&q=%C8%FC%C7%D5%B4%ED%BD%BA%B1%D7%B7%EC+%BB%E7%C3%B5%BB%E7&srchid=NKS0DyDI|'''사천사''']]라는 혼성(남3, 여1) 힙합댄스그룹의 멤버였으나 공중파 방송 데뷔를 앞두고 해체돼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며[* 그런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181004 해피투게더) 그 당시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라 트레이너도 존재하지 않아, 댄서였던 다른 멤버에게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춤이 늘지 않자 일 년 반만에 팀에서 방출 되었다고. 팀은 조성모가 나간 이후 공중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부족한 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는 댄스의 피가 끓고 있다고 꾸준히 힘주어 말한다. 이날, 사천사라는 팀명은 본인이 지었다고 덧붙였으며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사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김광수(음반기획자)]] 대표[* 그러나 그 시절의 김광수 대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성모를 만나 제작자로 정점을 찍었다. [[티아라]]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자신들 앞에서 '성모가 보고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티아라 자신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김광수 대표는 자신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에 의해 발탁되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그 뒤 조성모의 활동 시기[* 김광수 사장의 픽업으로 데뷔했지만 아이돌식 프로모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솔로 가수의 필연적 롱런 방식 중 하나인 싱어송라이터 전업에 실패하면서 솔로 가수로서 입지를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그게 아니면 이문세나 이승철 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가수 역량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되는데 그것도 실패한 케이스이다.] 이후로 음반 시장이 아이돌 위주로 재편되었고 본격적인 CD 시장 붕괴로 인해 MP3 음원 판매가 주를 이루고 가수들의 색깔이 비슷해지면서 '황제', '황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가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음반 판매량에 있어서 조성모는 조용필, 신승훈, 김건모의 뒤를 이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을 갖고 있다.]
         ▲ 2009년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자신의 대표 발라드들로만 구성된 '''10분짜리 메들리를 라이브로 완창'''하는 영상이다. 본인의 콘서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청객들이 '''자연스레 [[제창]]하도록 만드는 위엄'''을 선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히트곡만으로 방송 무대에서 10분간 메들리를 완창하고 방청객들도 자연스레 제창할 수 있게 만드는 남자 발라드 가수가 한국에서 손꼽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맨 위의 소개글에서 조성모에게 '발라드 황자의 마지막 계보'라는 수식어를 괜히 붙인게 아니다.]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반 판매 순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절]]'''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지의 전격 컴백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백한 후에 여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반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절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또 5집 <가인> 활동 때 무리하게 창법을 바꾸려 했던 노력도 그의 목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만들게 되는데 이유는 잉골라로 노래하는 상에서 파워풀한 소리를 내려고 했기 때문.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 후두가 올라가면서 파워풀한 소리를 내려고 목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고, 그 말은 '''생목으로 노래한다는''' 소리가 된다. 또한 타이틀 곡 <피아노> 역시 쉬운 곡이 아니었기에 결국 목은 더 쉽게 상할 수 밖에 없으며 이 앨범으로 활동하며 목이 정말 심각할 정도로 상해버렸다.
         이들 역대 인기곡 뮤직비디오들의 캐스팅을 지금 분석해 보면 초호화 캐스팅인데, 이게 신승훈이나 이승환과 같이 가수 자체의 역량 덕분에 신인배우들이 전격적으로 캐스팅되어 뮤직비디오를 통해 주목받은 케이스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보다 초창기에는 조성모가 처음 몸 담았던 대형 기획사인 [[코어 콘텐츠미디어|GM기획]]이 영화/드라마계의 스타급 배우들을 소속 연예인으로 많이 거느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캐스팅이거나, 중/후반기에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명성이 이미 높아진 상였기에 스타급 배우들도 조성모 뮤직비디오 정도면 격에 맞다고 생각해서 캐스팅을 승낙했던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 [[http://www.youtube.com/watch?v=wsvC0aQiaCE|Ace of Sorrow (베스트)]][* 조성모와 GM을 떠나 소속사를 옮기면서 잡음이 많아지던 2002년 가을에, GM이 조성모와 체결한 계약기간 막바지에 당사자와 협의 없이 발매한 조성모 디스코그래피의 [[흑역사]]로 일컽는 베스트 앨범 'Best Of Best: Don't Forget To Remember'에 수록된 신곡이다. 이런 형의 베스트 앨범은 조성모 뿐만 아니라 소속사를 바꾸는 가수들에게 비일비재했던 전 소속사의 횡포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조성모의 경우 새소속사를 통해 발매할 5집 활동을 방해할 목적과 더불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조성모의 단물을 마지막까지 빨아먹어 보겠다는 속셈으로 발매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조성모의 역대 히트곡들이 모두 담기고 라이브 실황 음원까지 담은 4CD 구성으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명가수의 베스트 앨범으로서는 괜찮은 것 같다.] : [[권상우]], [[신은경(배우)|신은경]], [[정준호]][* 이로써 정준호는 허준호를 한 표차로 따돌리고 역대 조성모 뮤직비디오들에서 최다 출연한 배우가 된다.]
          - [[http://youtu.be/YkNF991y9RM|내것이라면 (5집)]][* 영화 '친구'의 감독인 [[곽경택]] 감독이 기획한 뮤직비디오로 꽤 화제가 되었다. 원래 이 곡이 5집 타이틀곡으로 내정되고 곽경택 감독도 그리 알고서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는 것으로 홍보도 되고 그랬었는데, 앨범 출시 막바지에 타이틀 곡이 '피아노'로 변경이 되어 '내것이라면'은 자연스레 후속곡으로 밀려났고, 게다가 기획사에서 뮤직비디오의 일부 장면을 곽경택 감독과의 상의 없이 임의로 편집한 사실 때문에 곽경택 감독이 빡돌아 기획사를 상대로 법원 소송까지 걸었다. 다행히 기획사 측에서 정식으로 곽감독에게 사과를 하는 것으로 곽감독도 소송을 취하하여 사는 일단락 되긴 했는데, 어쨌든 흥행면에서는 이미 '피아노'에 타이틀곡 자리도 밀린데다 별다른 임팩트도 없는 뮤직비디오였던지라 그렇게 묻혀져 갔다.] - [[임은경]][* TTL의 소녀 임은경 맞다. 하지만 CF 이후 연기자 활동영역에선 별다른 임팩트를 선보이지 못하고 현재는 거의 잊혀져간 추억의 스타가 되었다.]
          * 해 제과 식품 에이스
         2010년에 공채 탤런트 출신 구민지와 결혼하여 유부남이 되었다. ~~아아 들린다 여심이 단체로 쪼개지는 소리가~~ 다만 결혼 전에 아내와 관련된 좋지 않은 루머가 돌아 둘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조성모가 직접 나서 결혼식 당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울먹거리며 아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었다. 눈시울까지 붉힌 그의 진심이 전달된 덕인지 이후로는 여론도 안정을 찾아 별다른 소음이 일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상당히 애처가이다. 부인 얘기만 나와도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함박웃음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결혼 이후, 설거지 탓에 주부습진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이를 들은 다른 남성 출연자들의 어색한 반응에, 설거지는 당연히 남자가 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대응한 바 있다. [* ~~물론 그것 역시도 그 자리 남성 출연자들에게 공감을 사지는 못하였다. 그의 말에 네?? 하고 멍하니 쳐다만 볼 뿐..~~] 결혼 4년만에 임신 소식이 전해졌고, 2015년 10월 득남하여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18년 8월 26일,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영분에 아들 조봉연 군이 잠깐 등장하였는데 조성모를 쏙 빼닮은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배우 [[봉규]]의 아들인 봉시하 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 최태원 (야구인) . . . . 15회 일치
         |선수명 = 최
         '''최원'''(崔泰元<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869 |날짜=2009-03-10 }}</ref>, [[1970년]] [[8월 19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kt 위즈]]의 작전/벤치코치이다. 그의 아들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의 내야수인 최준서이다.
         신인 시절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2루수]] [[송일]]에 밀려서 주로 [[우익수]]로 활동했으나, [[송일]]이 이적 2년째인 [[1995년]] 슬럼프에 빠지자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타격을 앞세워 [[1995년]] 최다 안타상을 수상하며 주전 [[2루수]]를 차지했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을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6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에 들어갔고, 그는 이 때부터 붙박이 [[2루수]]로 활약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1995년]] [[4월 16일]] [[해 타이거즈|해]]와의 시즌 2차전에 대타로 출장한 이후, [[2002년]]까지 기록적인 1014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갔고, 이것이 팀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맞물리면서 [[1997년]] [[12월 11일]]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는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가면서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여곡절 끝에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은 해체 후 [[SK그룹]]에 인계되어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단했고 [[인천광역시|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2000년]] [[SK 와이번스]]의 초대 주장을 맡았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10160242 “반갑다 인천…이겨라 광주!”최원 코치의 특별한 가을] - 동아일보</ref> 그러나 이미 30대 초반에 접어든 그는 빈볼의 후유증으로 인해 [[2001년]]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고, 프로야구판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탓에 [[SK 와이번스|SK]] 프런트의 안 좋은 시선을 받았다.
         은퇴 후 [[SK 와이번스]] 주루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팀의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새로 선임되자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804658& KIA, 최원·장재중 코치 영입] - 연합뉴스</ref>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후 [[2009년]]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2011년]] [[KIA 타이거즈]]가 준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 1승 3패로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면서 [[조범현]]이 경질되었고, [[조범현]] 사단의 해체와 동시에 [[선동열]]이 새로 감독에 부임하자 옛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선배였던 [[김기 (1969년)|김기]]가 감독으로 선임되어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1995.4.16. 광주 해 전부터<br>종전 : [[김형석 (야구 선수)|김형석]], 622경기
         |<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900329112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09-19&officeId=00032&pageNo=12&printNo=16858&publishType=00010 '철인 최원 623연속 출장 신'] 《경향신문》1999,9,19</ref>
         * {{KBO 타자|93807|최원}}
         * [http://www.statiz.co.kr/player.php?opt=1&name=%EC%B5%9C%ED%83%9C%EC%9B%90&birth=1970-08-19 최원 - 스탯티즈]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
  • 최홍만 . . . . 15회 일치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 차츰 씨름판이 [[막장]]이 되자[*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단 해체 등으로 씨름판 자체가 존속 자체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 상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씨름판은 막장 그 자체였다.]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않고 K-1으로 전향.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였다고 주장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307310|#]]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그러나 2007년 3월 요코하마 스페셜 매치에서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것이다. 시합은 최홍만이 긴 리치를 이용하여 공세를 펼치고, 모가 간간히 오버핸드 라이트로 카운터를 노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2라운드 57초 모의 오버핸드 풀스윙 라이트가 작렬했고 최홍만은 그대로 다운당하며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다. 충격적인 첫 KO패.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최홍만이 이 무렵부터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시합을 계기로 그동안의 최홍만의 행, 즉 격투기를 등한시하고 한국과 일본 예능 활동에만 치중하는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폭발하였다. 카오클라이나 밥샙, 아케보노를 꺾을 때까지만 해도 호의적이었던 여론이 이 시합을 기점으로 완전히 돌아선다.
         그러나 12월 26일 벌어진 로드 FC 27 중국대회에서 루오췐차오를 펀치 TKO로 화끈한(?) ~~떠먹여준~~ 승리를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물음표가 많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일단 TKO이긴 한데... 상대가 쓰러지지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은 상에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다고 한다.~~이때 최홍만이 '아 뭐야~'하는 것도 들린다.~~] 이 경기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상대가 신장 193㎝에 체중 110㎏에 육박하는 나름대로 거구였다곤 하나, 그 거구란 것도 최홍만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정도고 MMA 전적도 아예 없는 걸 감안하면 최홍만이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력에서도, 체격 조건에서도 월등히 앞서는데도 수세에 몰린 모습만 보여주다가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https://m.youtube.com/watch?v=HiNa8nVTFQs|영상]].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근육이 빠진 상에서 이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눈에 보일 만큼 벌크업에 성공했으나[* 특히 팔 근육은 아오르꺼러 전에 비하면 확실히 근육이 드러날 만큼 불어있었다.] 맞추질 못했으니... 이 날 마이티 모는 챔피언이 됐음에도 환호성은커녕, 박수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젠 관중들도 별 기대를 안했다는 뜻이다.[*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지에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도 이 모양이기에 실망의 부분도 있고.]
         2011년부터는 현재는 주점을 운영하면서 조용히 지내는 듯. 그러다가 국 영화 똠양꿍 2에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299255|전해졌다.]]
         최홍만 측에서는 [[거인증]] 의혹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몇몇 의사는 최홍만의 상는 심각하며 이대로 놔두면 급사나 수명 단축이 우려된다면서 언론을 통해 수술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계속 이에 대해 답하지 않으며 부정했지만 결국에 군 면제 후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며, 얼마동안 시합을 미루고 휴식을 가졌다. 이후로는 별 문제 없이 격투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거인증]]이 맞다면 지금까지의 최홍만은 '성장 호르몬 과잉분비' 상였기 때문에 사실상 '''[[도핑]]'''을 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 없으며,[* 실제로 성장 호르몬은 운동선수들이 도핑을 위해 사용하는 호르몬이다.] 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괴력을 잃게 되었고 이후의 부진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술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 변화인지는 의사의 진단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수술을 전후하여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보일 정도로 근육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뇌수술과 같은 큰 수술을 받았다면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부담이 많이 걸릴 것이다.
         참고로 1999년도에 이미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았는데[* 키가 너무 큰 게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2미터를 훌쩍 넘는 키이므로 규정상 당연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면 5급이 나왔겠지만 [[이회창|이 분]]의 아들 덕분(?)에 병역 판정 기준이 강화되면서......] 이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 후 아예 면제를 받았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었던 게 그가 면제가 된 시점이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 입대를 이미 통지받고 나서 언론 주목까지 받은 뒤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그 전에 수술하고 면제가 되었다면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았을 텐데 입대가 결정되면서 그에게 맞는 특별 훈련복 제작이라던가 하는 여러 이슈들이 나오고, 최홍만 입대 후 생길 수 있는 문제[* 생활관 침상이 안 맞을 것이다. 화장실이 좁아서 볼일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등]들에 대해서도 연예 정보프로그램 등에 얘기가 나오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최홍만 측도 이런 관심들에 "재밌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 기대된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하고 나오겠다. 오히려 같이 생활할 훈련소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등 반응을 보이고 입대 일에도 연예정보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면서 입대를 하는데, 알고보니 이미 [[뇌하수체 종양]]에 대한 의사 진단서를 가지고 들어가서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던 상였고 입소 후 사흘만에 그 진단서로 귀가 조치를 받고 귀가하여 한달 뒤 최종 재검으로 면제까지 받게 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훈련소 입소 같은 이슈를 만들지 말고 본인이 먼저 재검 신청을 했으면 훈련소 같은 곳 갈 일 없이 면제를 받을 수 있던 부분인데 관심을 끌고, 훈련소 생활을 할 마음 없이 자신이 가져온 진단서로 귀가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입대할 것처럼 언론에 말한 부분에 대해 비난이 있었다.[* 실제로 나중에 재검에서 면제가 되건 다른 등급이 나오건, 귀가 자체는 이런 신경과 관련 진단서가 있으면 어렵지 않고 그 정도는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의 훈련소 생활에 대해 상상하면서 응원하던 대중들이나 그의 입대를 위해 특별하게 준비하던 훈련소 관계자들은 그가 2박 3일만에 금방 귀가하여 면제 판정 받은 일로 인해 바보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아마 본인도 최대한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을 하거나 이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버티다가 군입대 및 면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이슈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입소 전에 재검 신청으로 해결했다거나 훈련소를 가게 되더라도 진단서도 가져가면서 훈련소 생활을 할 것처럼 인터뷰하지 않고 귀가했다면 별다른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을 것이라 아쉽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명의 스타에게 의지한 흥행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락세를 그리면서 격투기 붐도 동시에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그가 데뷔하기 이전보다는 저변과 격투기 종목 팬층이 넓어진 상이긴 하다.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그냥 강한 한국 파이터 정도로 내보내고 있지만, K-1 내부에서의 역할은 악역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일부러 건방진 어조나 도를 보이고 있다(본인 성격이 그런 것은 아니고 프로모터에 의한 것). 때문에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특히 [[2ch]]에서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에서도 안티가 많은 상.
         그런데, [[레진코믹스]]의 양초고추장 연재 만화가인 개호주가 일본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http://www.dogdrip.net/83988346|개호주가 또!]] 그러나 10월26일 오후 7시 40분 최홍만이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으며, 향후 사건의 전개에 따라 내용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 김윤아(1974) . . . . 14회 일치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본래는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에 입학한 93년 '풀카운트'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데, 당시 풀카운트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구훈과 처음 알게 된다. 이후 여러 밴드들을 거치다가 96년 김진만을 알게되고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 인근에서 활동한다. 이후 무대 디자인 일을 하고 있던 구훈이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면서 최종 4인의 '미운오리'가 결성된다. 97년 4월 홍대클럽 "블루데빌"에서 공연하던 중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로 데뷔했다. 자우림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은 것. 별 생각 없이 지은 '미운오리'라는 이름이 막상 CD 자켓에 넣으려니 부끄러워서 하룻밤을 새서 지었다고.
         자우림의 작사/작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앨범의 수록곡 중 50~60% 정도를 작곡한다.[* 30%~40%는 기타리스트인 이선규의 곡. 나머지 10%~20% 정도는 베이시스트 김진만 작곡. ~~구훈은?~~] 앨범을 준비하면 가장 성실한 김윤아가 20곡, 기타리스트 이선규가 3곡, 김진만과 구훈이 0~1곡 정도를 써 온다고 한다.(...)
         [[본인]]을 포함한 자우림 멤버들(김윤아, 이선규, 김진만, 구훈)이 만든 것이 아닌, 즉 자우림의 자작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부른 경우도 정말 드물다. 특히 김윤아 솔로 2, 3집에는 모든 곡의 크레딧에 김윤아 작사/작곡이 붙어있다. 1집의 경우도 민요 '파랑새'와 영화 OST '봄날은 간다'를 빼면 모두 김윤아 작사/작곡. 김윤아 솔로 1집에 들어있는 [[파랑새]]는 작자미상의 민요, [[봄날은 간다]]는 [[마츠토야 유미]]의 곡이다.
         엄한 아버지께 답답할 정도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명절에 굴전을 부치다가 실수로 워먹어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매를 굵기별로 목공소에 가서 맞추고, 대학 시절에도 통금이 8시였다고.] 지금도 '''예의범절을 매우 중요시하며,'''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어린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한다. 또 파격적인 가사들과는 달리, 규칙적인 바른생활을 한다고 한다. 2011년 라디오에서 '일탈'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일탈을 싫어하고, 내가 한 일탈은 기껏해야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삭발]]한 정도"라고….~~응??~~[* 출처는 [[2011년]] [[9월 16일]] [[붐(연예인)|붐]]의 영스트리트.]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남편 김형규가 출연하면서 김윤아의 취향도 함께 공개되었는데 음악, 요리 관련 만화와 작가로는 [[권교정]]을 좋아한다고 한다. 김윤아의 만화책장에 꽂혀있는 만화책 중에는 [[요츠바랑]], [[베르세르크]], [[유시진]]의 '온' 등이 있었다. 방송에서 말하기로는 자기보다 만화책을 많이 가진 사람은 김형규가 처음이었다고. 김윤아가 소장한 만화책은 1,500권 정도라고 한다. 자신은 실용주의라서 볼 책만 사고 보지 않는 책은 집안에 두지 않으며, 거기다가 더럽기까지 하면 더더욱 두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김형규가 박스에 모아둔 상가 좋지 않은 책들은 조만간 숙청하겠다고...
         인디씬 생이었던 자우림이 이름을 얻기 시작하자 (2000년대 이후) '자우림은 김윤아 밴드일 뿐'이며 '상업적이다', '김윤아는 성형한 주제에 [[페미니스트]]인 척 한다'는 식의 비난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네티즌들에게 화가 난 김윤아가 2005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박글을 올린 적이 있다.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어 원글은 사라졌지만 관련기사가 남아 있다.[* 글 제목은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05069|자우림 김윤아, 자신 둘러싼 근거없는 이야기 반박글 올려]]
         >'''김윤아가 성형했다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했을까? 성형을 했다면 도대체 언제, 그리고 어딜 했단 말인가? 누군가 내가 잠든 사이에 나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쌍꺼풀을 만들고 코를 세우고 눈을 찢고 턱을 깎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서 나를 다시 내 침대에 돌려놓았다는 말인가? 김윤아 성형설을 침 튀기며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이상하게 나온 사진 몇 장을 주워다 늘어놓고 증거랍시고 제시하는데, 이상하게 나온 옛날 사진이라면 내 사진보다 당신 사진에 훨씬 더 많지 않을까? 나는 애초에 이런 얼굴로 어났다. 아무리 당신이 김윤아가 성형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 김윤아 <헛소리는 집어 치워라> 中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멘토로 출연한다. 초반에는 애매모호한 심사를 했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중한 도로 무서울 만큼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은미와 방시혁은 자기들 멘티만 감싸고 다른 멘토들의 제자들을 지나치게 견제해서 꼴 보기 싫고 신승훈과 김원은 따뜻하고 정확한 심사평을 하지만 냉정한 면이 부족하다는 듯. 물론 김윤아라고 안 까이는 건 아니지만(...) '''온화함과 냉정함 사이에서 적정선을 맞춘 멘토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어찌되었든 본인 이미지에 굉장히 도움이 된 프로그램인 것은 분명하다. 김윤아에게 비판적인 도를 가진 이들도 방송의 김윤아를 보고 난 뒤, 기존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평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만 [[나는 가수다]]의 경연에서도 본래 많았던 삑사리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아마도 경연의 특성상 김윤아 본인의 진성 한계음에 가까운 높은 음[* 3옥타브 레(D), 미(E) 정도 되는 듯하다.]을 아주 많이 질러대는 편곡이 많았던 데다가 당시 그녀의 건강 상가 좋은 편이 아니었던 때문인 듯.'''[* 물론 대부분은 들어도 확 티가 나는 수준은 아니었고 워낙 편곡과 무대 연출에 호평이 많아서 묻혔다.] 거기다 [[나는 가수다]] 출연 시기가 8집 앨범 발매와 거의 겹치는 때라... --그 덕분에 8집은 묻혔지--
         당시 위탄 멘토 및 앨범 준비 등으로 인해 악화된 스트레스성 안면신경마비 증상으로 얼굴 한쪽이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상로 꽤나 심각하게 진행됐었다. 이로 인해 위대한 탄생 시즌1 멘토로 생방송 결선 당시 중도 하차하게 됐고 공장에서 나온 첫 CD를 자우림 멤버들이 병문안차 들고 갔을때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이게 내 마지막 앨범이 되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4회 일치
          * 소마 등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놀지만 [[잇시키 사토시]]는 그게 사실 "완전히 얕보는 상대"에게 하는 도인 걸 알기 때문에 긴장한다.
          * 레분 섬 결전의 1일 차 종료. 그리고 다음 아침이 밝았다. 반역자의 숙소는 센트럴 측과 같은 레분 섬 내의 리조트 시설 "설원화" 호텔이었다. 토오츠키 계열의 리조트였다. 2일차 결전의 아침. 대회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반역자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출전이 결정된 [[타쿠미 알디니]]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요시노 유키]]는 그가 긴장감에 짓눌리지 않나 우려했지만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저건 주방에서 집중할 때 보이는 표정이라며 안심했다. [[사카키 료코]]는 다른 출전자들의 상를 걱정했는데 적어도 [[미토 이쿠미]]의 눈에는 아주 괜찮아 보였다.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 상황이 놀자판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없자 이쿠미가 에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에리나는 긴장해서 굳어 있는 것 보단 낫다고 했지만 트럼프에 끼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쿠미한테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아리스의 카드패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사건건 훈수를 두다가 면박을 당했다. 아리스는 에리나를 떨궈낸 후 애꿎은 히사코를 건드렸다. 트럼프를 하고 싶지 않냐고 운을 띄우자 역시 이쪽도 과민반응이었다. 몹시 끼고 싶어했던 듯 하지만 "에리나 님의 특훈을 받고도 진 주제에 그럴 순 없다"는 네거티브 상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는건 이제 히사코 뿐이고 에리나도 아무 생각 없으니 잊어버리라고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대충 치던 것 같은 소마가 쿠로키바를 상대로 패가 나면서 판돈을 쓸어갔다. 따고 보니 제정신이 들었는지 소마가 슬슬 출발할 때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십걸 멤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언급해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현
          * 소마는 언제나 그렇듯 붙임성을 발휘했다. 적이면서도 선뜻 모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두 명의 십걸은 어디에 있냐는 것. 모모의 말로는 그 둘은 전의가 너무 충만해서 못 기다린다면서 벌써 대회장에 가있다고 한다.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영 상가 좋지 않아 방에서 쉬는 상라 한다. 어제의 격전은 정말로 상상 이상의 소모를 안겼다. 특히 린도는 왠지 불쌍하게 침대 옆 구석에 처박혀서 이불을 틀어말고 있다. 소마는 여기서 [[사이토 소메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오늘도 싸워야 했다. 힘들겠냐고 말을 건네가 의외로 모모는 "소먕"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제 오늘 냉수마찰로 목욕재계를 했더니 아주 거뜬해졌다고 한다. 한겨울의 홋카이도에서. 요시노와 사카키가 기겁했다.
          * 소마가 적과 정담을 나누고 있자 다른 반역자들의 관심도 쏠렸다. 어느 정도 십걸과 친분이 있는 히사코가 모모가 평소와 달리 말이 많다고 한 마디 했다. [[잇시키 사토시]]도 거들었는데 원래 모모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제법 수다스럽다고 한다. 타쿠미도 이때만큼은 정신집중 상를 풀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이토가 냉수마찰로 목욕재계했다는 말을 듣고 "고풍스럽다"면서도 역시 그러면 컨디션이 안 좋아지지 않겠냐고 쥐가 고양이 생각을 해줬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모모가 타쿠미를 "타쿠먕"이라 부르며 "소먕"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소먕은 분명 사이토를 부르는 말. 타쿠먕은 타쿠미를 부른 것인 듯 했다.
          * 소마가 슬슬 가보자고 말했다. 타쿠미는 마지막까지 메구미의 긴장 상를 걱정했다. 하지만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적어도 서예에 매진하고 있을 때 보단 떨쳐낸 상였다.
          소마는 그녀가 "의기건양"해진 게 대견한 듯 했지만 그 상는 그렇게 오래 유지되진 않았다.
          * 결전 2일차에도 여전히 맛이간 [[카와시마 우라라]] 등장. 묘한 하이텐션 상 그대로 오늘의 참전자들을 소개했다.
          제 2카드는 타쿠미 알디니 대 에이잔 에츠야. 의외로 타쿠미에 대한 소개는 평범하다. 이탈리아 생의 유학생. 그의 눈에 보이는건 파멸인가 영광인다? 딱 상식적인 수준의 멘트. 그런데 또 에이잔에겐 가차없다. "돈과 미식의 망자". 아무튼 편파적인 건 변함없다.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이야기는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월광호에 타고 있던 시기. 도지마는 그녀만 따로 주방칸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주방엔 아무도 없었다. 오도카니 기다리는 메구미. 도지마가 일전에 "오늘부터 다른 메뉴를 시작한다"고 한 적이 있어서 그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맞는 추론이었다. 하지만 어떤 형가 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들렸다. 메구미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 신동주(야구) . . . . 14회 일치
         ||<:> [[김균(1971)|김균]](2012~2015) || → ||<:> '''신동주(2016~ )''' || → || ||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1969)|김기]](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1969)|김기]]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1969)|김기]]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 신성왕후 . . . . 14회 일치
         |배우자 = [[고려 조|조]]
         '''신성왕후 김씨'''(神成王太后 金氏) 또는 '''신성왕후'''(神成王后)는 [[신라]]의 왕족 출신 [[고려]]의 왕후로 [[고려 조]] 왕건의 제5왕후이다. [[신라]] [[신라 문성왕|문성왕]]의 후손으로 [[신라 경순왕]]은 그의 사촌 오라비였다. 그녀는 [[고려 안종|안종 왕욱]]의 생모이기도 하다. 본래는 왕후가 아니었으나, [[1010년]] [[고려 현종|현종]]에 의해 왕후로 추존되었다. 성은 김씨,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이다.
         신성왕후 김씨는 [[신라]] 왕족이며, [[신라 문성왕|문성왕]]의 5대손이며, [[신라 경순왕|경순왕]]의 큰아버지 김억렴의 딸이다. 그녀가 조의 다섯 번째 왕후가 된 것은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935년 11월 직후부터 936년 초기가 될 것이다.
         935년 11월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고려 조는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왕건은 “지금 왕이 나라를 과인(寡人)에게 주니 그 선물이 크도다. 바라건대 신라의 종실(宗室)과 결혼하여 생구(甥舅)의 친밀함이 오래 가고자 하노라.”라고 하여, 고려의 사신은 경순왕에게 조가 신라 종실과의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순왕은 “우리 백부(伯父) 김억렴(金億廉)에게 딸이 있어 덕(德)과 용모가 쌍미(雙美)한지라 이가 아니면 내정(內政)을 구비(具備)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냈다.
         신성왕후 김씨의 소생으로는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고려 안종|왕욱]](王郁)이 있는데, 그는 제5대 국왕 [[고려 경종|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 황보씨와 정을 통해 제8대 국왕 [[고려 현종|현종]]을 낳았다.<ref>《고려사절요》</ref> [[1008년]] 현종(顯宗)이 즉위하고 [[1010년]] 왕후로 추존하여 시호를 신성왕후(神成王太后)라 하고 능호는 정릉(貞陵)이라고 하였다. 원당은 [[경기도]] [[장풍군]]에 있는 현화사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1400&content_id=rp070314000001&print=Y 문화콘텐츠닷컴 〈현화사〉]</ref>.
         *** '''남편''' : 제1대 [[고려 조|조]] 신성대왕(太祖 神聖大王, 877~943 재위: 918~943)
         **** 며느리 : [[헌정왕후|효숙왕후]] 황보씨(孝肅王太后 皇甫氏, 965/966~992, [[고려 경종|경종]]의 제4비 헌정왕후)
         [[분류:생몰년 미상]][[분류:신라의 왕족]][[분류:고려의 왕비]][[분류:고려의 왕후]][[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고려 조]]
  • 신화용 . . . . 14회 일치
         ||<:><-3> MF [br] [[최욱]]
         대한민국 [[K리그1]] 수원의 주전 골키퍼이자 '''한때 K리그1 TOP 3 안에 드는 골키퍼였고 2015 시즌 최고의 골키퍼'''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를 모두 거친 --포스텍에 갔다면 그랜드슬램-- '''포항의 성골 중 성골'''이었다. 거기에 포항 생으로 '''팀 내의 단 1명 뿐인 [[로컬 보이]]'''였으나 2016 시즌 이후 수원으로 이적했다.
         2012 시즌에 온 김형일도 상무에 입대했고, '''또다시 리셋이 되버린 포항 수비진의 문제를 혼자서 다 막고 있다.''' ~~수비 가장 김형일이 떠나고 이젠 골키퍼가 가장~~ 이후 시즌 중반에 들어가자 포항 수비진들이 안정이 되면서 다소 부담은 줄어든 상. 11시즌 까지는 신화용 혼자서 막다가 팀은 지고 본인도 털리고 경우가 많았으나, 수비진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가끔씩 찾아오는 위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경우가 많아지며 빛을 발하고 있다. 시즌 중반에는 김다솔의 로테이션 기용으로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전을 지켜내며 주전 골리로써의 위치를 굳혔다.
         사실 후반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수(축구선수)|김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상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영입들보다 더 반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후에도 꾸준히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포항의 수문장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나, 김수, 황지수의 노쇠화와 김광석의 초반 부상. 김원일의 삽질(...)로 15시즌 포항 수비진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지라 신화용으로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기당 실점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김광석의 복귀 이후 김원일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으면서(...) 수비가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레 클린시트도 늘어나고 있다.
         9월 말 기준 14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하였고 제주전에서는 PK까지 막아내는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등, 포항 공격진이 여전히 득점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혼자서 팀의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10월 현재 경기당 0.82 실점으로 실점률 1위. 무실점경기 1위, 유효슈팅 선방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36라운드 기준으로 17경기 클린 시트(무실점 경기)를 달성하며 클린시트 2위인 박준혁,권순(13경기)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시즌 클린시트 1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부상 이후 폼이 하락해 결국 16시즌 후반부에는 후임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김진영이 포항의 새로운 수문장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었으나...팀의 운명이 걸린 후반부 하위 스플릿에서 김진영이 연달아 실수를 범하며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하자 막판에 주전으로 복귀. 포항의 잔류에 힘을 보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살펴보면 요근래 시즌 중에서는 가장 나쁜 시즌을 보내었다.
         국내 리그 활약상은 국대 주전 골리 [[정성룡]]과 [[김승규]]에게 밀릴 게 없지만 기량 차이가 월등하지 않는 이상 변화를 잘 주지 않는 골키퍼 포지션의 특성 때문에 김진현, [[김승규]] 경쟁구도에 경험많은 [[정성룡]]이 후배들을 받쳐주는 형가 구축된 대표팀 골키퍼 라인업에서 신화용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김승규가 나오지 못한 2014년 9월 A매치에서 조차 김진현과 [[이범영]]에 밀려 국대 승선에 실패했다.
         김진현이 2015 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컵 때 백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 원피스/852화 . . . . 14회 일치
          * [[빈스모크 레이쥬]]는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리나 기억이 혼란한 상. [[상디]]가 경비를 때려잡고 침입해 레이쥬를 확보하고 사정을 설명한다.
          * [[징베]]는 몬도르의 책을 불우고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를 해방한다.
          * 루피는 공복인 데다 부상이 낫지 않아 상가 좋지 않지만 서둘러 상디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 레이쥬는 상디에게 출생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빈스모크 저지]]의 계획에 반대했고 아이들이 감정없는 병기로 어나길 원치 않았다.
          * 어머니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시는데 다른 형제들에겐 영향이 없었지만 상디만은 감정을 가진 아이로 어났다.
          * 죄수도서실은 때아닌 화재 발생. "몬도르의 책"은 워야지만 해제가 되기 때문에 [[징베]]가 불을 지른 것이다. 안에 있던 죄수들이 불 붙은 채로 책에서 튀어나온다. 징베는 미리 물을 준비하고 있다가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나오길 기다려 불을 꺼준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상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 의료실에선 상디가 레이쥬에게 모든 걸 전한다. 레이쥬는 상디의 말을 순순히 믿는다. 본래 그녀도 푸딩이 너무 착해서 수상했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것이고, 그러다 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그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상디는 빅맘이 결혼하지 않고 제르마를 몰살시킬 작정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희생해 밀집모자 일행을 살리는건 택도 없는 일이었다고 자책한다. 그런데 레이쥬는 연한 도로 말한다.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상디와 형제들이 어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반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상디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병은 바로 그것의 영향. 어머니는 목숨을 바쳐 아들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상디의 형제들은 저지가 바라는 감정없는 인간으로 어났다. 하지만 상디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바람이 단 한 명에겐 이루어진 것이다.
          * 상디가 인간으로서 자라나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졌다. 상디는 자신이 봤던 어머니의 투병이, 결국 자신 때문이었던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레이쥬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어머니는 상디가 "인간"으로 어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저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도 상디의 탓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 한편 루피는 죄수도서실이 있는 지하를 돌파해 성의 2층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간다. 루피는 팔을 끊으려다 난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지만, 빅맘의 부하들은 그런 상의 루피도 막아내지 못한다.
          * 레이쥬는 자신의 고향이자 가문이자 가족들을 그렇게 한 마디로 평가했다. 다행히 빅맘이 원하는건 제르마의 "과학력". 상디가 도망친대도 구여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까지 관심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인질취급했던 제르마의 인간들은 죽어 마땅하다. 단순한 "살인자 집단"이니까. 상디는 다른 가족들에겐 일말의 정도 없지만, 어째서 레이쥬까지 죽음을 자청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이강돈 . . . . 14회 일치
         || 출신지 || [[경상북도]] [[포항시]][*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00200329130003&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0-02&officeId=00032&pageNo=30&printNo=15897&publishType=00010|포항시 생이다.]]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보냈다.] ||
         || [[이광은]]([[MBC 청룡]]) [br] [[김종모]]([[해 타이거즈]]) [br]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 → || [[이순철]]([[해 타이거즈]])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 → || [[김일권]]([[평양 돌핀스]])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 → ||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이호성]]([[해 타이거즈]]) || → || [[이순철]]([[해 타이거즈]]) [br]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br] [[이호성]]([[해 타이거즈]]) ||
         || [[김성한]]([[해 타이거즈]]) || → ||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 → ||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
         || [[김성한]]([[해 타이거즈]]) || → ||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 → ||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
         || [[김성한]]([[해 타이거즈]]) || → ||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 → || [[정명원]]([[평양 돌핀스]]) ||
         빙그레에서 이강돈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데뷔 첫 해 .297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빈약했던 빙그레 타선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비록 신인상은 [[MBC 청룡]]의 에이스로 급부상한 [[김건우]]에게 내줬지만, 이강돈은 빙그레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정훈(1963년생)|이정훈]], [[장종훈]], [[강정길]], [[이중화]]같은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신생 빙그레는 일약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며 프로야구를 풍미하기 시작했고, 막강 해에 도전장을 내미는 팀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빙그레는 결국 해의 벽을 넘지 못하며 1988, 1989,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1992년에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3위로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면서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때 이강돈은 모두 출전했고, 그리고 이강돈이 은퇴한 시기가 1997년이니 이강돈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상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 창원시 . . . . 14회 일치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되었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미루고 있어 결정이 안 나고 있다. 한때 창원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상로 되돌아가자'''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355831|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 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물론 통합 창원시청은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을 원상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모순|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된 상.[[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47176&ctg=1213|#]]
         [[마산]] 및 [[진해]]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생긴 매립지들.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2013년]]''' 현재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혹자는 지하 5층의 대우백화점이 없었다면 물탱크 역할을 할 구심점이 없어져 피해가 더 커졌을 거라고 한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 창원해양공원 : 구 진해해양공원. 높이 136m의 창원 솔라타워 외에 어류생학습관, 해전사체험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 [[하이트맥주]] : 하이트 제2공장이 천주산(마산역과 창원역 사이)에 있다.[* 원래는 [[한독맥주 사건|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 창원시의 지질이 화강암반이라 물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고, 1990년 페놀사 당시 이 점을 크게 활용하여 광고했다. 그 결과 하이트가 히트상품이 되었고 사명을 아예 조선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바꿔버렸다.
         또한 옛 39사단 터 유니시티 상업지구에 대형 상업시설 입점[* 영건설에서 자체 개발하는 상업시설 어반브릭스와 신세계그룹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07578|복합쇼핑몰]] 진출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계획되어 있어서 일대가 의창구의 새로운 상업지구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되며, 창원중앙역 역세권과 마산해양신도시에도 넓은 상업 용지가 있어서 창원시의 상업지구는 더욱 다핵화될 것으로 보인다.
          * [[창원사]]
  • 최준석 . . . . 14회 일치
         || '''응원가''' || '''두산 베어스 시절''' [br] 정광 - 힘내라 힘[* 날려라 준! 날려라 석! 날려라 최준석~ 홈런! ×4][*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이승엽]]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응원가기도 했고, [[중신 브라더스]]의 팀 응원가로도 쓰인다.] [br] '''롯데 자이언츠 시절'''[br]콜럼버스 1492 OST - Conquest of Paradise[* 스포츠 CF에 나오던 그 [[마성의 BGM#s-9|웅장한 마성의 BGM]] 맞다. 응원 가사는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br] 자우림 - 하하하송[* (빰빰빰빰빠밤빰) 홈! 런! 최준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밤빰) 홈! 런! 최준석!. 2015년 7월 2일 사직SK전에서 쓰이는게 확인되었다. 원래 홈런타자 돌림빵 응원가였다가 [[이대호|친구]] 응원가로 굳어졌던 노래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도 같은 멜로디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 [br] Pitbull - Celebrate[* 자~이언츠 최준석~ 자~이언츠 최준석~ 빰빠바바바빰빰 *2][* 이 응원곡의 응원동작에는 최준석의 홈런 세레머니 동작이 들어간다.] [br]'''NC 다이노스 시절''' [br]구단 자체제작[* 오~ NC의 최준석 NC의 최준석 다이노스(최준석!)(x3)][* 시즌 전에 공개한 응원가는 [[장성호]]와 [[Johnny, I hardly knew ya|원곡도 같고]] 가사마저 [[표절|복붙 수준으로 같았으나]] 이에 대해서 항의가 들어갔는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https://youtu.be/1ouaZDexyA8|비공개 처리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급하게 만든 응원가가 더 호평을 받고 있다(...).] ||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부상이 예상외로 빨리 회복되었는지 시즌 초부터 1군에서 출장하기 시작했다. 4월엔 조금 부진했지만 5월 들어 방망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FA를 앞둔 상황이라 그런지 3할대의 타율에 홈런도 쳐주며 쏠쏠히 활약하고 있지만, 좌투 선발 상대가 아닌한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라면 [[FA 제도|FA]] 선언 후 타팀으로 떠나지 않을까 팬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편 [[NC 다이노스]]에서 은퇴한 [[이호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두산 시절 [[김경문]] 감독과의 인연도 있고 해서 영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NC 측에서 영입할 계획이 '''없다'''며 일축했다. [[모창민]]이 2017년 입단 이래 최고성적을 내며 중심타선에 안착하여 굳이 최준석을 데려올 이유가 없고, FA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공언한 터였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71207053039271|기사]] [[김군]]의 입대로 포수 문제가 당장 시급한 상황임에도 FA [[강민호]] 영입이나 트레이드를 시도하지 않았다.
         2018년 1월 12일 롯데가 넥센과 1+1년 10억원에 계약한 1루수 [[채인]]을 싸인 앤 트레이드[* FA 선수가 원소속 팀과 FA 계약 체결 이후 바로 타 팀으로 트레이드하는 방식. 번거로운 보상선수-보상금 조건을 피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이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현재 코치로 활동 중인 [[김균(1971)|김균]], [[홍원기]] 등이 있다.]로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96892|영입하면서]][* 롯데는 채인의 대가로 좌완투수 [[박성민(1998)|박성민]]을 보냈다.] 최준석의 입지가 더 위로워졌다. 게다가 롯데 측에서 [[http://sports.donga.com/3/all/20180111/88133959/3|최준석, 이우민과 계약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으며 [[FA 미아]]가 될 확률이 더 높아졌다.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남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타격에서의 단점은 바깥쪽 변화구에 취약하다는 것. 실제로 타석에서 가장 멀리 서서 타격을 하는 타자 중 한명이기도 하고, 지금은 꽤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바깥쪽 [[슬라이더]]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상당히 좁게 가져가는 타격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술했듯이 볼넷을 많이 얻어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멀뚱하니 서서 삼진을 당하는 모습도 적잖이 나와 중심타자다운 적극적인 타격을 못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 정도야 [[이병규|초구부터]] [[송광민|냅다]] [[김주찬|배트를]] [[이지영(야구선수)|내미는]] 대신 [[이병규(1983)|신중하게 볼을 골라내며]] [[김균|타격을 하는]] 유형의 타자인만큼 감수할 수 있는 장점이겠으나...
         스타팅으로 쓰겠다면야 최소한 딱 한 타석을 위해 선수 3명 투입하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고 실제로 여까지는 주로 스타팅멤버로 썼고, 또한 전성기 최준석의 방망이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최준석은 해가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는 백업 내지는 대타요원으로서 주로 기용될 것인데, 백업요원에게 이런 로스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원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두산 베어스 이적 후 [[1루수]]나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고 있다. 그래도 타격 스킬에 기대를 걸었던 롯데에서는 외야수 수비 연습까지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수비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며 군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던 무릎 부상 탓에 1루 수비 범위도 대단히 좁다. 이 때문에 타격 생산력에 비해 WAR이 높은 타자는 아니다. 특히 수비기여도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스탯티즈]] WAR이 처참하다. 선수 본인이야 지금도 포수로 뛸 수 있다고 하지만 안되도 된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인만큼 진지하게 믿어선 곤란하다. 과체중으로 인한 무릎 문제로 9회말 대수비로 출장하는 것조차 힘들다. 1년에 한두번, 포수가 없는 비상사 때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1루 수비도 9회 대수비 정도 아니면 1주일에 두어번 정도만 가능하고, 사실상 풀 타임 지명타자이다.
  • 하이큐/252화 . . . . 14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는 이에 지지 않고 [[타나카 사에코]]의 고팀을 동원해 대항한다.
          * 규모만 놓고 보면 카라스노의 고팀은 이나리자키의 취주악부에 밀렸지만 고의 강한 "박자"로 상대가 리듬을 가져가지 못하게 후방지원한다.
          * 하지만 일방적이었던 응원전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카라스노 응원단이 방금 전 도착한 고팀을 앞세워 격렬한 박자를 연주한다. 이나리자키의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큰 북에서 퍼지는 묵직한 소리가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 이런 변화는 벤치에 모인 카라스노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그 소리만 듣고도 누나가 왔음을 짐작하고 움찔한다. 선수들의 이목이 응원단으로 모였다. [[히나타 쇼요]]가 맨 처음 [[타나카 사에코]] 누님을 발견했다. 이 고팀은 사에코가 결성한 팀으로 원래는 축제날 공연하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녀가 고를 두드리는 모습에 반했는지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자기들 보다 연하인 사에코를 누님이라 부르고 있다.[* 둘은 25세. 사에코는 21세.]
          다른 팀의 응원단들도 카라스노의 고팀에 시선을 뺏긴다. 바보커플도 그랬는데 여자쪽은 취주악이 좀 더 좋다고 하지만 남자 쪽은 "그래도 전통"이라며 카라스노 쪽에 점수를 더 준다. 히나타와 [[니시노야 유]]는 고팀을 보며 "멋짐사(死)"라는 괴이한 사인으로 죽을 것 같다고 심장을 움켜쥔다. 사전에 사에코와 고팀이 올 걸 알았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와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며 한시름 놓는다.
          * 카라스노의 TO가 끝나고 오지로의 두 번째 서브로 재개. 서브는 타나카에게 향한다. 타나카가 조금 위롭게 리시브한 공을 [[카게야마 토비오]]가 논스톱으로 세트업, 히나타의 속공으로 잇는다. 히나타는 미처 블록이 따라오기도 전에 스파이크를 꽂아넣으며 스코어는 7 대 5. 카라스노가 따라붙는다.
          히나타가 활약하자 고팀이 쇼요의 이름을 연호하며 찬사를 보낸다. 히나타는 엄청 기운을 받은 채로 첫 번째 서브를 준비한다. 그리고 니시노야가 코트를 나타고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온다.
          그녀가 카라스노 응원단에 고팀을 합류시킨 것은 시라토리자와 전 때 경험 때문이었다. 전교생을 동원한 압도적인 응원 덕에 이쪽이 기가 죽은 기억이 매우 분했다.
          고팀의 피리주자가 연주를 시작한다. 고팀의 연주가 이나리자키에 대항해 히나타가 편하게 서브를 칠 수 있도록 잡음을 지워준다. 여기에 고무된 히나타는 "엄청난 서브를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길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 유태공 . . . . 13회 일치
         [[전한]]을 세운 [[한고조]] 유방의 [[아버지]]. 역사상 최초로 살아 있는 상로 [[상황]](太上皇)의 존호를 받았다.
         === 상황 ===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유방은 황제가 되고 나서도 5일에 한 번은 공을 방문하였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은 서민과 같았기 때문에, 유공의 가령(家令, 집사)이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유방은 황제, 공은 신하이니 이런 도로는 황제의 위엄이 손상된다고 의견을 냈다.
         공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유방을 존경하는 도를 하여, 유방은 놀라서 공을 부축했다. 공이 그 이유를 말하자 유방은 감격하여 상황(太上皇)의 존호를 올렸다.
         서경잡기(西京雑記)에 따르면, 유방이 천하를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은 한탄을 했는데 자신은 고향 풍(豊)에 있을 때 길에서 술을 마시고 떡을 먹고, 투계(闘鶏)와 축국(蹴鞠)을 즐기는걸 좋아했으나 황제의 아버지가 되어 서민처럼 놀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방은 [[소하]]를 불러 장안 동쪽에 아버지의 고향 풍과 꼭 닮은 거리를 만들게 하고, 풍의 주민들까지 모두 이주시켜서 아버지가 놀 수 있게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방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거나 노는걸 좋아하는 [[한량]] 같은 성품이었던 듯.
  • 이갑성 . . . . 13회 일치
         [[경성부]]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남대문교회]] [[함영]] [[전도사]]를 만나 [[함영]] [[전도사]]의 집에서 하숙하면서 [[그리스도 신문]]을 배달하였다. 그뒤 신문을 보던 한 선교사의 추천으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를 만나 [[1906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병원 제약부 담당으로 재직 중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원로격인 33인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0일]] 밤 [[서울]] [[남대문로]]5가의 함영 집에서 [[함영]], [[현순]](玄楯), [[안세환]], 오상근(吳尙根) 등과 만나,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2월 22일]]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2월 27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 [[함영]](咸臺永),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오화영]](吳華英), 이인한(李寅煥),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박동완(朴東完) 등과 함께 이필주의 집에 모여, [[함영]]이 [[최남선]](崔南善)이 기초한 여러 가지 문서의 초안을 [[천도교]]계 인사 [[최린]](崔隣)으로부터 받아와, 그 취지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2월 28일]]에는 목사 [[김창준 (1890년)|김창준]]에게 [[함영]]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900매 중 약 600매를 받은 뒤 이를 다시 인쇄하고, 그날 5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설(李容卨)에게 교부하여 인쇄하게 한 뒤 학생들에게 돌리게 하였다. [[3월 1일]] 아침 일찍 이갑성은 독립선언서를 수천 장 인쇄하여 400여매를 병원 사무실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상]](李容祥)에게 주어, 그중 200매는 대구의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보내고 나머지 200매를 [[마산]]의 독립운동 동조자 임학찬(任學瓚)에게 보내도록 한다. 또한 학생 [[김병수]](金屏沫)에게는 [[전라북도]] [[옥구군]]에 있는 [[박연세]](朴淵世) 등에게 보내기 위해 200매를 주었으며, [[충청남도]] [[천안]]에서 올라온 [[임영신]]에게도 일부 배포하고, [[경성부]] 강기덕(姜基德)에게 천500매를 주어 배포케 한다. [[2월 28일]] 밤 [[경성부]] 재동(齋洞)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 등의 민족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仁寺洞)의 [[화관]](泰華館)으로 정하였다.
         [[3월 1일]] 경성부 인사동 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때 그는 시위전단 살포와 학생들 독려를 위해 시내에서 활동하였다.
         [[3월 1일]]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학생시위운동 및 전단살포 등 중책을 맡아 수행하던 중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33인들은 화관(泰華館)에 모였고 이갑성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미리 의견서를 제출한 뒤, 회합 장소를 떠나지 않고 조용히 포박당하기로 약속한다. [[3월 1일]] 오후 이갑성은 조선총독부에 [[민족대표 33인]]의 의견서를 제출하러 갔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 회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ref> 하지만 밀정 혐의의 특성상 세월이 흐른 뒤 근거를 찾기 힘들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상가 되어 버린데다,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의혹만 남았을 뿐 명확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조선에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생겼다. 이갑성은 [[1971년]] [[12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니까 왜 그리 많은 정당이 생기는지 한심한 상였다. 그때가 언젠지 모르나하지 중장을 만나 등록된 정당이 몇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74개라고 대답합디다"라는 것이다. [[한민당]]의 창립 발기인이었던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가 선후에라야 정당이 있는 법이지 독립도 정부도 아직 안섰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1945년]] [[10월]]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목적으로 정당통일기성회를 조직했고, 수십개의 단체들 중 뜻이 맞거나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은 통합되었다.
         [[분류:1889년 어남]][[분류:1981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국의 약학자]][[분류:한국의 약사]][[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종교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의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약사]][[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민족대표 33인]][[분류:대한민국 임시 정부]][[분류:한국의 군정기]]
  • 이민우(배우) . . . . 13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어머니[* 아버지는 그가 어나기 전에 사망했다.] ||
         이어서 [[용의 눈물]]에서 [[양녕대군]] 등을 맡으며 사극계 젊은 배우의 본좌가 되었다. [[용의 눈물]]에서는 충녕대군(세종) 역할의 [[안재모]]에게 왕세자 자리를 양도하는 양녕대군 역할을 맡았는데 포스가 [[유동근]]이나 [[김무생]]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32375DA1DBC3235580A2361EC990C0808682&outKey=V128eeaa1a20d4f34b842233fd7b695a4bc457eb47fcbc7e1f315233fd7b695a4bc45&width=500&height=408|# 유동근(종)과 맞서는 패기]] 실제 역사의 냉혹하며 세자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 했던 개망나니 양녕대군은 아직까지도 이민우의 본좌 연기 덕분에 쉴드를 받고 있다(…). [[http://blutom.com/375|# 세자를 물러나는 편지 씬]] 이 당시 이민우에게 최초로 제의가 갔던 역할은 충녕대군이었고 양녕대군 역은 [[안정훈]]이었다고 한다. 충녕대군 역을 준비하기위해 사십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촬영 2주 전에 양녕대군 역으로 바뀐거라고.[[http://sky.bestiz.net/zboard/view.php?id=dramab&no=102825|# 폐위 후 닭고기 씬]]
         한 마디로 [[사극]]으로는 만렙을 찍은 [[정우]], [[안재모]]보다 먼저 만렙을 찍어놓은 30대 배우이며 [[2011년]] 8월에 방송한 [[공주의 남자]]~~극중 주인공이 바뀐 듯한 포스~~에서 그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 [[유복자|어나기 직전에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한다.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이라[* 한때 대한검도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여 키에 비해[* 실제 키도 175이상은 된다고 한다.] 체격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두|머리가 그보다 더 크다고..]] 잘 나가던 20대 시절에 정장 의류브랜드 광고모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촬영 전에 이민우 측에서 105사이즈를 요구하여 브랜드 측에서 105사이즈 옷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날 그 의류회사 간부 겸 디자이너가 촬영전에 스튜디오로 이민우를 직접 찾아와서 모델을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역시 디자이너답게 약간 여성스러운 말투로 한 인사였으나 이민우는 아버지뻘 되는 어른의 예의있는 도에 감격을 받아 잘 촬영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인사한 뒤에 갑자기 이민우와 준비된 옷을 번갈아 보더니 "어? 근데 민우씨 옷이 왜 105사이즈로 돼 있어요?"라고 했고 이민우가 "저는 원래 양복 105사이즈를 입습니다."라고 하자 "에이~ 아니죠. 이거 안 맞아요. 저희 회사 옷 작지 않아요. 모양이 안 나와요. 이렇게 찍으면 안 돼요." 라고 우기더니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어떻게 사이즈도 미리 제대로 안 맞췄냐고 크게 화를 내며 당장 95사이즈를 가져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간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당황한 이민우는 어벙벙한 상로 95사이즈 양복을 입었고 너무 작아서 단추도 제대로 안 잠겨 옷이 상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흐엌-- 그제서야 이상하다고 느끼다가 뭔가 깨달은 간부는 "어~ 정말 미안해요. 민우씨. 근데 머리가 왜 이렇게 커?"라고 하며 원래대로 105사이즈를 입혔다고 한다. 그의 머리가 커서 어깨가 좁아보여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95사이즈로 오해했던 것.
         어떻게 보면 같은 아역-[[사극]] 배우 루트를 탄 [[정우]]의 선배격인 케이스. ~~은근히 머리가 크고 키가 큰 편이 아닌 것도 판박이다.~~
         || 1993년~1994년 || KBS1 || 당신이 그리워질 때 || 현 || ||
         ||<|3> 1999년 || KBS2 || 초대 || 김현 || ||
         || 2012년~2013년 || MBC || [[아들 녀석들]] || 김주 || ||
         || 2016년~2017년 || KBS2 || [[저 하늘에 양이]] || [[남정호]] || ||
          * 1986년 해제과 써니텐
          * 1986년 ~ 1987년 해상사 썬키스트 레몬
  • 전인범 . . . . 13회 일치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2009년 11월 [[2성 장군|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재임하면서 그는 전역하는 병사들을 위해 전역식을 열어주고 직접 참석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밖에 없다”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해주었고,<ref>[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08 [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시사위크》, 2017년 8월 14일</ref>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슬리퍼의 열악함을 토로하며 보급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사령관 앞에서 슬리퍼를 물고 있기도 하는 등 장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9641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끝없는 미담 “능력과 인품 두루 갖춘 진짜 장군”], 《서울신문》, 2017년 2월 7일</ref>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en:Legion of Merit|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72160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상],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ref>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영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영 (1949년)|김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반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 지상군회의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국회의원들을 초대해 특공무술 시범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식사시간에 전 사령관이 의원들에게 전투식량을 건네 보이며 ‘우리 애들이 이런 대우 받을 애들 아니다, 더 잘 먹여야 훈련도 더 잘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후 정말 전투식량이 좋아졌다. 군에 그런 분이 많으면 나도 (드라마 《양의 후예》의 주인공인) 유시진 대위 같은 군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부사관 출신 A씨)<ref>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262&aid=0000009287 “진짜 특전사는 이렇지 말입니다.”] 『新東亞』 통권 680호, 216-225.</ref>|이혜민. 2016. “진짜 특전사는 이렇지 말입니다.” 『新東亞』 2016년 5월호, 216-225.}}
         [[분류:1958년 어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리라초등학교 동문]][[분류:대경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합동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경남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
  • 킹덤/517화 . . . . 13회 일치
          * 이목은 나라의 앞날이 끔찍하게 어두우나 자 "가"는 총명하고 이목의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인물이라 어떻게든 버티고자 한다.
          * 조왕 [[도양왕]]은 먼 길을 달려온 [[이목(킹덤)|이목]]을 노골적으로 홀대한다. 그는 미소녀 시동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목을 "변명의 달인"이라 비꼰다. 조나라가 처한 작금의 사는 전부 이목이 야기했다는 논리인데, 이목은 주군에 맞서기 보다는 "처벌은 언제든 받을 테지만 우선 진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논리로 조나라의 정예 한단군을 출격시켜 달라 요청한다. 그러나 도양왕의 대답은 [[호주(킹덥)|호주]]에게 그랬듯 단호한 거절.
          * 이목은 업성이 떨어지면 곧 수도 한단에도 적의 칼끝이 닿을 거라고 진언한다. 그러나 도양왕의 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설사 그래도 한단성이 함락될 일은 없고 원래는 업도 그 정도 수준의 난공불락의 성이나 자신의 백부 [[조계백]]이 어리석게도 난민을 수용하다 그리된 거라고 빈정거린다.
          그런 조나라에도 한줄기 희망은 있었다. 이목의 앞에 나타난 조나라 자 "가". 그는 이목의 발빠른 행보가 이미 수 천의 조나라 백성을 구했다고 치하한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되도록 한단군을 움직이지 않는 자기 아버지 도양왕의 실책도 알고 있어 그를 대신에 이목에게 사과한다.
          자는 도양왕에 비하면 정치적 식견도 대국을 보는 눈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곧 진나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침공이 실패하면 국운이 흔들릴 거라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진왕 [[진시황(킹덤)|정]]이 "최"성에서 그랬듯 직접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사기를 북돋으면 어떻겠냐고 이목의 의견을 묻는다. 이목은 명심해두겠다면서도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하지만 자 가는 "지금이 그 필요한 시기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목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한다.
          자는 다시 한 번 이목에게 업성을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이목에겐 자야말로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는 도양왕 앞에서 삭힌 것과 정반대의 말을 속에 새긴다.
          >가 자마마의 시대가 왔을 때 조에 진정한 빛이 비춘다.
          * 드디어 업을 포위한 진군. 총사령관 [[왕전(킹덤)|왕전]]은 마지막 작전을 실행하기 앞서 장교들을 불러놓고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이신(킹덤)|이신]]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귀를 기울인다. 우선 왕전이 가장 처음 정의한 전황은 진군이 포위한 업을 중심으로 왕도권의 모든 조군이 진군을 요격하러 온다는 것이다. 듣기에도 진땀이 나는 설명이지만, 왕전은 그 중에서 진정으로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병력은 단 둘 뿐이라 일축한다. 바로 북서의 대도시 "알여"와 향산맥 일대의 세력을 규합한 "요양"이다. 오직 이 두 군만이 업에 당도해 진군을 격멸할 힘이 있다.
          그래서 그가 짠 작전은 이랬다. [[환의(킹덤)|환의]]군 6만은 이대로 업성을 포위한 채 대기한다. 이 6만이 알여, 요양군을 제외한 모든 조나라 병력을 상대한다.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 당사자인 환의는 연했다.
         여기서 등장한 도양왕의 자인 '가'는 훗날 자 자리에서 폐립되고, 후궁 소생인 '천'이 보위를 잇게 된다.
  • 황희두 . . . . 13회 일치
         '''황희두'''(黃熙斗, [[1992년]] [[1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이자 현재는 소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다. 비영리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 초대 회장, [[주권자 전국회의]] 상임 공동대표이며, 호는 청도(靑道)다.<ref>{{웹 인용|url=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65208|제목=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열암 송정희 선생으로부터 ‘靑道’ 호 선사 받아|언어=ko|확인날짜=2017-07-04}}</ref>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금융인 [[황영]]의 아들이다.
         2010년 MBC게임 히어로에서 은퇴한 후 [[TSL]]팀에 합류하여 [[스타크래프트 II]] 게이머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2010년 10월 18일에 열린 Sony Ericsson STARCRAFT II OPEN Season 2 64강 경기에서는 테란유저 임요환을 만나 0:2로 패배하였다. 이 경기는 생중계 도중 곰TV 서버를 다운시키는 사를 일으켰으며 이후 곰TV가 공식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2010-11-05 이전) 조회수 약 240만을 기록하였다. <ref>http://www.gamemeca.com/news/view.php?gid=89370 게임메카 발췌</ref>
         역대《컬쳐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가수 [[김장훈]], [[표창원]] 의원, [[곽노현]] 전 교육감, [[김동 (1947년)]] 전 경제수석,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래퍼 [[정상수]] 등이 참가하였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100657§ion=sc243|제목=청년문화포럼 제9회 ‘컬쳐쇼’ 성황리 종료|뉴스=문화저널21|확인날짜=2016-11-26}}</ref>
         청년문화포럼의 고문에는 [[노소영]], [[박영립]], [[채현국]], [[홍사덕]], [[김동]], [[송정희]], [[곽노현]] 등이 있다. (2017.11 기준)
         수필가 [[황영]],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을 필두로 문화운동가 [[황희두]], 서양화가 [[송미영]], 캘리그라퍼 [[진성영]], 기업인 [[국도형]] 등을 모아 단체 [[대한북레터협회]]를 만들어 '북레터 365 운동'을 활성화 시키는 중이다. 책에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하여 독서 장려, 따뜻한 사회 만들기 등을 목적으로 다양한 활동중이다. 2015년 11월 [[대한북레터협회]] 상임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ref>[http://www.weeklypeople.co.kr/detail.php?number=1954 황희두 대한북레터협회 상임부회장 겸 H&P GLOBAL COMPANY 마케팅이사 2015.12.10 | 주간인물]</ref> <ref>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061951018&code=910100 황희두 부회장, “시민문화운동 ‘북레터 365 운동’으로 대한민국 소통문화를 혁신하겠다.” 2016.01.06 | 경향신문 </ref>
         ====용산생공원 추진 프로젝트====
         [[환경재단]] [[최열]] 대표를 중심으로 만든 [[용산생공원시민클럽]]의 대의원으로 활동중이다. 역사, 생, 문화 이야기로 소통하며 대책 없는 개발이 아닌 재생 복원 가능한 자연친화적 공원 조성으로 참여자 모두 역사 지킴이, 생 가꿈이, 문화유산 보존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 서울의 허파인 용산공원을 세계적 자연생공원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활동중이다. <ref>http://www.acrofan.com/ko-kr/detail.php?number=24342&thread=AC07|용산생공원시민클럽 발대식 개최</ref>
         * [[2016년]] 용산생공원시민클럽 대의원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창원 황씨]][[분류:MBC게임 히어로의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H&P Global Company]][[분류:희여골]][[분류:대한북레터협회 상임부회장]][[분류:청년문화포럼 회장]][[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Team SCV Life의 선수]]
  • 김윤환 . . . . 12회 일치
          * [[강오]]의 본명.
         1932년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상장동(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서 어났다.
         고등학교 동창인 노우의 권유로[* 사석에선 [[전두환]], [[노우]]와 서로 반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갔다.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전두환]]-[[노우]]-[[김영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윤환은 당대의 '''[[킹 메이커]]'''(King Maker)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절정에 올랐다. [[김영삼]]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舊민정당(군사독재정권) 출신 민정계 인사들을 설득해서 강력한 [[김영삼]]의 지지세력, 일명 신민주계를 규합하여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당시 김윤환은 민정계 인물들에게 '국민들이 군부 출신 민정당 인물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일단 [[김영삼]]을 세워서 정권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우리(TK+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 정권을 창출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김윤환은 [[전두환]] 밑에서는 친구인 [[노우]]를 후계자로 옹립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노우]] 밑에선 [[김영삼]]을 후계자로 지원해서 역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 이후 김윤환은 정치권에 몰아친 사정의 풍을 피해 해외에서 체류하다시피 했다. TK민정계의 동료였던 [[박준규(1925)|박준규]]와 [[박철언]] 등이 대거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상황에서 김윤환은 대통령을 만들어낸 2인자임에도 오히려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1995년 2월 [[김종필]]이 민자당을 떠나고 6월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자 김영삼은 김윤환을 통해 당과 범여권을 안정시킬 필요를 느낀다. 이에 김윤환은 다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복귀했고 얼마 뒤에는 민자당 대표위원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하게 여당의 2인자가 되었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뒤에도 김윤환은 대표위원으로 유임되었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신한국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139명 중 그의 계보로 꼽힌 당선자는 무려 26명으로 전체의 5분의 1에 육박했다.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그의 친동생인 [[김환(1943)|김환]]은 17대, 18대, 19대(한나라당 -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구미시]] 을인데, 이 곳은 15대 국회의원 시절 김윤환의 지역구였다. 16대에도 [[구미시]](단일 지역구)로 출마했으나 이 때는 김윤환이 2위로 낙선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김충공 . . . . 12회 일치
         '''김충공'''(金忠恭, ? - [[835년]])은 [[통일 신라]] 하대의 왕손 출신 문신, 정치인, 왕자로, [[원성왕]]의 손자이자, [[김인겸|혜충자 인겸]]의 아들이다. [[집사부]] 시중(執事部侍中)과 [[상대등]] 등을 역임하였으며, [[823년]](헌덕왕 15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였다.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의 동생이며, [[애장왕]]의 숙부였다.<ref>단, 경주김씨 족보에 의하면 그는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이 설을 채택한다면 그는 원성왕의 증손이고 인겸의 손자이며, 헌덕왕과 흥덕왕의 조카가 된다.</ref> 시호는 선강(宣康).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였고, [[823년]] [[김헌창의 난]] 진압에 참여하였다. [[흥덕왕]]의 아들이 [[당나라]]를 다녀오다가 사고로 죽자 그가 [[자]]로 임명되었지만 그도 [[흥덕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 아들 [[김명]]은 [[838년]](희강왕 3) [[1월]] 정변을 일으켜 [[희강왕]]을 죽이고 자립하여 민애왕이 되었다. 딸 정교(貞矯)는 희강왕비 문목부인(文穆夫人)이 되었다. 아들인 민애왕이 즉위하면서 선강대왕(宣康大王) 또는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원성왕]]의 손자이며, [[민애왕]]의 아버지이고, [[김인겸|혜충자(惠忠太子) 인겸(仁謙)]]의 넷째아들이다. 아버지 인겸은 형 [[소성왕]]이 즉위하면서 왕으로 추봉되어 [[혜충대왕]]이 되었다. [[헌덕왕]], 김숭빈(金崇斌), [[흥덕왕]], 김제옹(金悌邕)의 동생이 된다. 보통 그는 인겸의 넷째 아들로 보나, 신라 김씨 선원세보에 의하면 인겸의 아들 [[소성왕]]의 셋째 아들이며 [[애장왕]], [[김체명]]의 동생이라 한다.
         [[831년]] [[흥덕왕]]의 왕자 김능유(金能儒)가 흥덕왕의 명을 받들어 9명의 승려와 함께 [[당나라]]에 진봉사로 갔다가, 이 해 7월 돌아오던 도중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흥덕왕은 후사가 없었고 그가 자로 책봉되었다. [[835년]] 여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생년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사망 원인도 역시 미상이다.
         사후 선강(宣康)의 시호를 받아 선강자(宣康太子)였다가 후에 [[민애왕]] 즉위 후 대왕으로 추존되어 선강대왕이 되었다.
         그의 딸은 [[희강왕]]의 비인 [[문목왕후]](文穆王后)이고, 아들인 [[김명]](金明)은 [[희강왕]]을 추대했다가 나중에 희강왕을 자살하도록 위협하고 스스로 민애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민애왕]]이 즉위한 뒤 아버지인 김충공은 선강대왕(宣康大王)으로 [[추봉]]하고, 어머니인 [[귀보부인]](貴寶夫人)을 선의후(宣懿太后)로 [[추봉]]하였다. 일설에는 [[갈문왕]]으로 추봉했다는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선강[[갈문왕]](宣康葛文王)이라는 칭호도 나타난다.
         또한 가계도 불분명한데, 정사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그가 혜충자 인겸의 넷째 아들이라 하지만 경주김씨 족보에는 그가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이설이 같이 실려있다.
         * 아버지 : [[혜충자]](惠忠太子, 760(?)~791/792)
         * 어머니 : 성목후 김씨(聖穆太后)
         ** 부인 : [[귀보부인]](貴寶夫人, 선의후(宣懿太后)에 [[추증]]), 일설에는 혜충자 김인겸의 딸이라 한다.
  • 송금식 . . . . 12회 일치
         [[1982년]] [[경기도|경기도 시흥군]]에서 [[권도]] 사범으로 첫 입문하였고 [[1984년]] 영화 《피리 부는 열한 사나이》의 조연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으며 이후 영화 작품들에서는 주로 단역 출연을 하다가 [[1991년]] 영화 《[[검은 휘파람]]》을 통하여 첫 영화 주연을 하였다.
         신장은 180cm이고 체중은 85kg이며 [[낚시]]에 취미가 있고 [[권도]]와 [[쿵푸]]와 [[극권]]에 특기가 있다.
         * 1991년 《[[검은 휘파람]]》 ... 천수 역
         * 1991년 《[[흑설]]》 ... 봉 부하 1 역
         * 2009년 KBS2 《[[천추후 (드라마)|천추후]]》 ... 왕승 역 (특별출연)
         * 2000년 KBS1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
         * 1999년 KBS1 《[[왕과 비]]》 ... [[강순|신천부원군 초 강순]](1390년 ~ 1468년) 역
         * 양어패럴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안산시 출신]][[분류:198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
  • 안석환 . . . . 12회 일치
         * 1999년 [[SBS]] 주말극장 《[[젊은 양]]》 ... 한재수 역
         * 2009년 [[SBS]] 대하드라마 《[[자명고 (드라마)|자명고]]》 ... 사령 자묵 역(특별출연)
         * 2011년 [[SBS]] 월화미니시리즈 《[[파라다이스 목장]]》 ... 한만 역
         * 2013년 [[SBS]] 일일드라마 《[[못난이 주의보]]》 ... 이경의 아버지 역
         * 2013년 [[MBC]] 아침드라마 《[[내 손을 잡아]]》 ... 오진
         * 2013년 [[tvN]] 월화드라마 《[[빠스껫 볼]]》 ... 민식 역
         * 2015년 [[JTBC]] 금토드라마 《[[순정에 반하다]]》 ... 마석 역
         * 1994년 《[[백산맥 (영화)|백산맥]]》
         * 2003년 《[[선택 (2003년 영화)|선택]]》 ... 오식 역
         * 2015년 《[[양을 쏴라]]》 ... 보스 역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원피스/873화 . . . . 12회 일치
          * [[타마고 남작]]은 [[카포네 갱 벳지]]의 배신에 분개하고 [[페콤즈]]는 어떻게든 성으로 복귀, 양 해적단의 이탈을 전했다.
          * 그런데 빅맘의 식탐이 폭주하는 사가 발생, 웨딩 케이크를 못 먹는 바람에 눈이 뒤집혀서 날뛰기 시작한다.
          * [[샬롯 스무디]]가 케이크를 다시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슈트로이젠]]을 찾으나, 그는 능력을 발휘한 이후 착지에 실패하면서 부상을 당해 빈사상다.
          * 하지만 추격대가 지척까지 와있고, 게다가 빅맘이 광란 상로 머리 위를 덮쳐오게 되는데.
          * 하지만 풀린 수수깨끼도 있다. 왜 다과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성 안의 간부들은 까맣게 몰랐을까? 그건 벳지의 공작이었다. 성내로 연결되는 연락라인이 전부 불통 상였던 것. 마침 짚이는 것도 하나 더 있다. 다과회 개시 직전 동쪽 해안을 점거 중이던 양 해적단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 소식은 [[페콤즈]]가 직접 전했다. 용캐 성으로 돌아온 페콤즈가 그들이 자기만 해안에 남겨놓고 짐까지 빼앗아 가버렸다고 성을 냈다. 이야기를 맞춰보니 그건 [[징베]]가 안전하게 빅맘 산하를 떠나 밀집모자 일행과 합류하기 위한 조치였다. 빅맘의 분노가 어인섬과 양 해적단에 미칠 걸 우려한 징베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 짓이다. 그래서 한 번은 탈퇴를 취소했다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다시 탈퇴를 확정한 것이다.
          * 스무디는 이럴 때 어찌하는지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빅맘이 찾는 음식을 대령하는게 최선. 문제는 웨딩 케이크를 담당했던 슈트로이젠의 상였다. 쿡쿡 열매의 능력으로 성을 케이크로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 것까진 좋았지만, 하필이면 착지할 때 와장창 실패. 전신에 붕대를 감고 드러누웠다. 의사가 적어도 며칠은 있어야 회복이 된다고 진단. 답이 없는 상황이다.
          카타쿠리도 동감이었다. 그는 이 상황의 위험성을 진단한다. 우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 섬은 확실히 사라진다. 그 이후의 사는 "미지수"의 영역. 예지를 자랑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듣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문다.
          * [[나미(원피스)|나미]]는 밀집모자 해적단의 퇴각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사실 징베 등에 타고 있으니 "진두"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도였다. 루피는 나미가 지시를 내리는게 불만이었다. 다들 뛰고 있는데 나미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징베에 올라탔을 뿐인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뛰던 상디는 평소상로 돌아와 "나미씨는 귀여우니 그래도 된다"고 우겼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캐럿(원피스)|캐럿]], [[쵸파]], 징베는 묵묵히 뛰는 중.
          잠시 뒤, 킹 바움은 또다시 나미에게 지배 당하는 신세가 됐다. 일행을 우고 그대로 유혹의 숲으로 직진. 그 바람에 레이디 트리와는 눈물을 삼키며 헤어졌다. [[샬롯 로라]]가 준 비브르 카드를 뺏긴 줄만 알았는데, 나미는 그걸 반으로 쪼개서 하나는 잘 보관하고 있었다. 유혹의 숲의 주인인 킹 바움만 데리고 있으면 그 숲도 무사통과, 나미의 절약정신이 빛을 봤다.
          * 하지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빅맘 해적단의 추격대가 어느 새 다가와 있었다. 서로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거리. 나미가 "따라잡히면 그 재봉선을 다 뽑아 버리겠다"고 협박해 킹 바움을 더 달리게 한다. 페드로가 듣기에도 너무한 처사지만 비상사니.
  • 의성군 . . . . 12회 일치
         컬링 이전에는 [[씨름]] 스타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 의성이다. 의성초등학교-의성중학교-의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씨름의 계보가 탄탄하며 의성군청에서도 씨름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에 연고가 있는 유명 씨름인으로는 5대, 8대, 13대 [[씨름/체급|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1980년대 씨름스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과 32대, 38대, 40대 [[씨름/체급|천하장사]] 출신이자 1990년대 씨름스타 [[이현]] 용인대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출생지는 모두 의성이 아니지만 의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씨름을 배웠다.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 {{{#C9151E '''상주·군위[br]·의성·청송'''[* 지역구 국회의원 : [[김종(1949)|김종]]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 → [[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 3선)]}}} ||<:>14.69%||<:><bgcolor=#C9151E>{{{#FFFFFF 63.35%}}}||<:>12.72%||<:>5.25%||<:>2.79%||<:>{{{#808080 ▼48.66}}}||<:> 75.10 ||
         ||<|2> [[정창화(정치인)|정창화]]/3선[br][[민주정의당]] ||<|2> 김동권/초선[br][[민주자유당]] || --[[김화남]]/초선--[* 97.12.26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자유민주연합-- ||<|2> 정창화/5선 [br] 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 [br] 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 [br] 무소속 ||<|2> 김재원/재선 [br] 새누리당 || --[[김종(1949)|김종]]/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br]--새누리당-- ||
          * [[김중(1940)|김중]] : 정치인
          * [[류성룡]] : [[하회마을]]에 종가가 있어서 안동 출신으로 알려진 편인데, 사실 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의성이다. 점곡면 사촌마을 출생.
          * [[이훈(정치인)|이훈]] : 현 대구 달서구청장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2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메라스큐라]]의 "암담의 고치"를 뚫기 위해 마신왕의 힘을 무작정 끌어냈지만, 감정을 잃은 상인 탓에 "섬멸상"로 돌입하고 말았다.
          * 그건 멜리오다스가 십계를 통솔하던 절정기의 상로 돌아갔다는 말이었고, 메라스큐라는 모든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부활과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각성으로 기뻐했던 것도 잠시. [[메라스큐라]]가 암담의 고치로 감금했던 [[멜리오다스]]가 심상치 않은 상로 풀려난다. 그의 등 뒤로 드리운 검은 날개.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조차 위험시 해 "너 조차 어쩔 수 없다"고 경고하나 오만의 죄 [[에스카노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아이 돌보기"를 하러 다가선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난건 코란도의 중심부였으나, 그 힘이 내뿜는 여파는 외곽에 있는 일행에게까지 날아왔다. 멀린은 일찌감치 퍼팩트 큐브로 엘리자베스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를 보호했다. 엘리자베스가 멜리오다스의 상를 보고 폭주했다고 생각하나 멀린의 말에 따르면 통상적인 폭주와는 전혀 다르다. 그를 감싼 검은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용솟음쳐서 걸치고 있던 갑옷 조차 하나씩 터져나간다. 엘레인과 상공에 있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적인 메라스큐라 조차도 일곱 개의 대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그녀는 저 상의 멜리오다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십계" 통솔자 시대, "십계" 조차 두려워한 "섬멸상"!
          멜리오다스에게 접근한 에스카노르가 멀린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녀가 큰 규모의 퍼펙트 큐브를 그들 주위에 생성한다. 암담의 고치에서 나와 퍼펙트 큐브에 갇힌 멜리오다스. 그리고 그 앞의 에스카노르. 멀린은 멜리오다스가 일단 암담의 고치를 부수려고 내면의 마신왕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결과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위험한 도박의 대가가 크다. 자신이 마신왕의 저주로 감정을 상실한 상였던 걸 간과한 것이다. 멀린은 새삼 그를 "바보 녀석"이라며 탓한다.
          하지만 섣부른 행동이었다. 지금 상의 메라스큐라는 길고 긴 몸 어디로든 심장을 옮길 수 있었다.
          * 심상치 않은 땅울림과 함께 대지가 뾰족하게 치솟았다. 메라스큐라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잇따르는 대지의 융기. 메라스큐라가 급하게 몸을 피하며 보니 그것은 대지의 마력이었다. [[디안느]]였다. 농락 당한 원한을 갚으러 왔다. 힘의 정체가 그녀라는 걸 알자 메라스큐라가 코웃음을 쳤다. 거인족은 그저 힘만 셀 뿐인데 지금 상의 자신은 거인족 조차 힘으로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메라스큐라가 디안느의 대지의 마법을 유유히 피하며 빠르게 쇄도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멀린을 앞세운 일곱 개의 대죄가 마지막 처분을 내리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멀린은 그녀를 "어리석은 메라스큐라"라고 지칭했다. 대죄를 얕보고 뱀의 형를 드러낸게 메라스큐라의 패착. 차라리 통상의 모습으로 마력을 발휘했다면 골치 아픈 상황으로 전개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멀린은 혹평을 내렸다. 반박할 말은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라스큐라는 분함을 억누르고 달아날 방법을 모색했다.
          * 뽑혀나간 검은 독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거대한 뱀의 형성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힘도 지성도 없는 작디 작은 뱀.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그 지렁이 같은 크기를 보고 어이없어 했다. 호크의 콧김에 겁을 먹은 작은 뱀이 꽁무니를 뺐다. 하지만 뱀이 기어 간 곳은 멀린의 플라스크 안. 멀린은 뱀을 그 안에 가두는 것으로 처분을 마쳤다. 마계의 강한 장기에 노출되며 살아온 독뱀이 마력을 얻은 것이 메라스큐라의 정체.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그렇게 알려줬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를 죽이지 않고, 엘레인을 죽이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린은 짐짓 쿨한 도로 감탄했지만 결국 본성을 숨기지 못했다.
  • 전민희 . . . . 12회 일치
         | 주요 작품 = [[세월의 돌]],[[양의 탑]][[룬의 아이들: 윈터러]][[룬의 아이들: 데모닉]]
         휘경여고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ref>{{웹 인용|웹사이트=http://fairytale.pe.kr/profile/profile.html}}</ref> 특유의 미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세월의 돌]] 후속작인 [[양의 탑]]을 연재하던 중, 표지를 만든 일러스터가 표절했음이 밝혀져 그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어 한동안 [[양의 탑]]은 집필을 중단하게 된다. 그 후 제우미디어 출판사와 계약한 후 소프트맥스와 함께 기획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새로이 집필했고, 2015년 현재 1부 윈터러와 2부 데모닉까지 완간된 상. 데모닉 집필 중간인 2004년부터 첫 작품 [[세월의 돌]]을 개정해서 출간하기도 했다.
         * 1부《[[양의 탑]]》2000-2001년 출간 [자음과모음 미완], 2009년- 개정판 출간 [제우미디어, 출간중]
         [[세월의 돌]]과 [[양의 탑]]은 [[아룬드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같은 세계의 이야기에 속한다. 이는 5부작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한다. [[세월의 돌]] 집필 이후 [[양의 탑]]을 집필하다가 출판사의 계약 위반으로 인해 5권에서 멈추고, 룬의 아이들 집필과 세월의 돌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2009년 4월]] 개정작업이 완료되면서 2009년부터 양의 탑이 재집필 되고 있다.
         또한 '점술'과 '별자리'와 '타로'의 부분이 각각 세월의 돌, 룬의 아이들-데모닉, 양의 탑에 순서대로 나타난다. 세월의 돌에서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던 점술에 대한 막연한 부분이 양의 탑과 데모닉을 거치며 점점 구체화된다. 이것이 소설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의 탑의 각 장의 제목은 타로 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 중 몇 장의 카드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각 카드의 의미와 소설 내용의 연관성을 보인다.(메이저 아르카나는 원래 운의 내용이 '강한' 사람의 점을 칠 때에 나타나게 되는 카드다.)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판타지 작가]][[분류:휘경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9년 데뷔]][[분류:인터넷 작가]]
  • 조진호 (축구인) . . . . 12회 일치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한편 이번 조진호 감독의 사망을 통해 감독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재조명받으며 감독이라는 자리가 선수들보다 더 힘든 직업인지를 깨우쳐 주고 선수들과는 달리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개선과, 건강검진 의무화 및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리그는 2018년부터 감독 및 코칭스프들의 건강검진을 의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후임자 = [[김완 (축구인)|김완]]
         [[분류:1973년 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프]]
  • 폐비 윤씨 . . . . 12회 일치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달|윤]] [[6월 1일]])<ref name="tae">폐비 윤씨 실의 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현재 폐비 윤씨]] 실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관련 내용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자료 [http://www.museum.go.kr/NMK_DATA/redfish/cutator/2011/cu-253/book.html] 에서 일부 확인 가능하다.</ref><ref name="ja">{{서적 인용
          |제목= 제253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폐비 윤씨의 실·항아리·지〉
         흔히 생년이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폐비 윤씨 실의 지에는 그녀가 [[1455년]] [[음력 6월 1일]]에 어난 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ref name="tae"/><ref name="ja"/>.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를 지낸 [[윤기견]]과 고령 신씨의 딸로 어났으며, 3명의 이복 오빠와 1명의 친오빠가 있었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a_A1445_2_0019315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ref>.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조선 성종|성종]]이 자신의 처소인 [[교전]]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는데, 남편과 말싸움 중 남편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이 있고, 다른 설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왕실의 사후 예우를 본다면 왕실의 눈밖에 나 폐위된 것이 유력하다.
         [[분류:1455년 어남]][[분류:148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비]][[분류:폐위된 왕·황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도 출신]][[분류:사사된 사람]][[분류:무오사화 관련자]][[분류:함안 윤씨]][[분류:조선 성종]][[분류:조선 덕종]][[분류:15세기 한국 사람]]
  • 현진건 . . . . 12회 일치
         '''현진건'''(玄鎭健, [[1900년]] [[8월 9일]] ~ [[1943년]] [[4월 25일]])<ref>{{웹 인용|url=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25h0979b|제목=현진건|출판사=한국 브리니커 온라인|확인날짜=2007-11-25}}</ref> 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조선(朝鮮)의 작가, [[소설|소설가]] 겸 [[언론|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현진건은 [[광무 (연호)|광무]](光武) 4년([[1900년]]) 8월 9일(양력 [[9월 2일]]) [[대구광역시|대구부]](大邱府)에서 현경운과 어머니 완산 이씨(完山 李氏) 정효(貞孝)의 넷째 아들로 어났다. 그가 어난 곳은 당시 대구군 2정목(町目),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속칭 '뽕나무골'이라 불리던 마을이었다. 어머니는 [[융희]](隆熙) 4년([[1910년]]) 6월 13일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위로는 홍건(鴻健), 석건(奭健), [[현정건|정건]](鼎健)의 세 형이 있었는데, 맏형 홍건은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과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을 지냈고 칭경시예식사무위원(稱慶時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 석건은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정건은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현진건의 집안인 연주 현씨는 [[역관]](譯官) 등의 [[잡과]](雜科) 출신을 많이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에 해당한다. 현진건의 6대조로 왜역(倭譯) 즉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형(泰衡)부터 한역(漢譯) 즉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5대조 상복(商福), 몽역(蒙譯) 즉 [[몽골어]] 통역관이었던 시석(時錫)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관으로서 활약하였으며(각자의 처가도 또한 역관 집안이었다) 증조부 경민(敬敏)도 왜역으로 [[동래]](東萊)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현진건의 숙부인 현양운이 조민회의 후임으로 주왜공사(住倭公使)가 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영운의 가계를 그의 할아버지(즉 현진건의 증조할아버지)가 왜역으로 오랫동안 동래에 머무르다가 현지 기생과의 사이에서 현양운의 아버지를 얻었고, 현양운 자신도 그 아버지가 첩에게서 본 자식이었다고 적고 있다.<ref>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양진오, 2008, p.26</ref>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1922년]] 9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ref>1년에 걸치는 「조선일보」 근무에 대해서 현진건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초기 「조선일보」가 보여준 노골적인 친일신문 표방 도, 친일 색채가 농후한 발행 주체들이나 수시로 뒤바뀌는 발행인으로 인해 현진건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곤란했던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친일 분위기에 대해 현진건의 문우였던 박종화는 "월남 이상재 선생 사장과 신석우 부사장, 민세 안재홍 편집국장 등이 취임하기 전의 초기 「조선일보」에는 양심있는 사람으로는 오래 거접(居接)할 것이 아니었다"(박종화, 「빙허 현진건 군(君)」, 『신천지』 1954.10. p.139~140)고 하였으며,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아예 "썩은내, 더러운내, 곰팡내, 음탕한내가 감도는 분위기", "도야지(돼지) 우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35~13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최남선]](崔南善)이 만든 동명사(東明社)에 들어간다. 그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부터 민족적 색채가 농후했고, 역사지향적 성격을 추구하며 「조선통속역사강화」(최남선 저) · 「조선과거의 혁명운동」(문일평 저) 등 유독 국학(國學) 관련 논문이 자주 연재되었던 「동명」에서의 경험은 훗날 「고도순례 경주」, 「단군성적 순례」 등의 민족의식이 농후한 작품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리고 11월 13일에 그의 첫 창작집 『타락자』가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간된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숙부 '''[[현영운|영운]](映運)'''은 아내 [[배정자|분남]](粉男)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것을 계기로 크게 출세하여, 장관급인 대한 제국 군령부 참장, 주일특명전권공사, 원수부 검사총장, 참모부 제1국장, 농상공부 협판 등의 고위직을 거친 구한말의 전형적인 친일관료였다. 이러한 그의 벼락출세가 영운의 형제들의 관직 진출에 음으로 양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친 '''경운'''은 지위가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고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보사장을 거쳐 [[1895년]] 대구부 전보사의 주사로 취임하기도 했다.<ref>당시 전보사는 농상공부대신의 관리를 받으며 전보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였으며, 1등사와 2등사로 구분되었다. 한성(서울)과 인천, 원산, 부산, 의주, 경성, 함흥, 회령이 1등사에 속했고 대구는 2등사였다. 통신원 국장이란 직책은 수준은 미비할 망정 국가의 전신, 전화, 전기는 물론 우편과 운송 분야와 관련한 시설과 제도를 관리하는 자리였기에 아무나 역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3~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숙부 '''철운'''은 안동관찰부 주사 겸 용궁군수를 지냈다. 숙부 '''양운'''은 관립영어학교 출신으로 궁내부 예식원주사에 복시 기사 등을 지내고 [[원산]]과 [[동래]]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으며 [[대한체육회]] 창설 멤버로 알려져 있다. 숙부 '''붕운'''은 복시 주사를 지냈다.
         * [[이광수]] - 박종화의 일기에 보면, [[1922년]]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백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시 「악부(樂府)」가 실리게 되었을 때, 상해에서 《백조》를 받아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백조》지에, '귀순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백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광수는 이미 당시 춘원은 허윤숙이라는 여인과 동거하면서 일제에 이른바 '귀순장'이라는 것을 써서 독립지사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변절한 상였던 것이다.<ref>윤병로 「박종화의 삶과 문학」1998, 신효정「문학산책」2000, 역사문제연구소 편찬「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2003.</ref>
         * [[1932년]] 7월 1일자 『삼천리』기사에서, '만일 금주법이 실시된다면'이라는 질문에 현진건은 "돈이 없어서 못 먹으니 차라리 끊어 버리는 것도 나을 듯 싶어서 벌써부터 끊으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날 보고 애주가로 인증하니 참 딱한 일입니다. 우선 귀사에서도 많은 인사를 제쳐 놓고 나에게 물어 보시는 것은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구여 물어보시는 줄 암니다. 혹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배운 재주라 그렇케 쉽게 버릴까 하는 것도 의문은 됩니다. 정, 먹고 싶으면 [[카포네]] 노릇이나 해야 먹게 될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분류:1900년 어남]][[분류:1943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고유민 . . . . 11회 일치
         GS 칼텍스 와의 결승전에는 선발출장을 하여 --물론 후위에 [[한유미]]와 같이 있으면 안믿던 예수님 찾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버텼고 3세트 듀스상에서 마지막 끝내기 오픈을 성공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13득점 공격점유율 35.17%, 경기 최다블로킹 (3개),디그 14번 시도 중 1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37%를 기록하며 정미선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내 팀의 8년만에 컵대회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년 기업은행에게 학살당한 결승전엔 최다득점자가 8점인가 그랬지...--
         이렇게 시즌이 허무하게 끝나나 했는데 플레이오프 1차전 1세트 0득점을 기록하며 극도에 부진에 빠진 황연주[* 사실 황연주 팬들 사이에서도 마지막 몇경기는 빼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올정도로 점프력이나 스윙스피드가 완연히 떨어졌었다. 코칭스프는 그녀의 경험을 믿었으나...]를 대신해 2세트 부터 선발출장해 --리시브는 역시나 였지만--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었다. 7득점을 하며 감독이 "예상치도 못하게 아주 훌륭한 활약을 했다. 몸상를 봐서 2차전에 출전시킬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인상적이었지만 무너져가는 팀을 구할수는 없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나름대로 큰 경기에 강하고 --그렇지만 시즌에 약해서-- 신체조건 상 활용도가 높은 선수[* 비슷한 역할의 정미선이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전 퍼포먼스를 유지할지 미지수이다.]이니 만큼 서브나 리시브에서 개선이 이루어 진다면 코칭스프 입장에서는 선수활용의 숨통을 틔울만한 선수라고 평가받았다.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해서 시즌 후반엔 내내 닭장에 있었고,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과의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 [[한유미]]와 [[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이 수비라인이 동시에 붕괴되는 초유의 사에 양철호 감독이 2세트부터 선발 출장을 시키는 강수를 뒀고 4세트엔 여지없이 붕괴되어 한유미와 교체되었지만, 그런대로 근근히 3세트까지 버텨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특]][[대전 KGC인삼공사|정]]팀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정시영의 공격을 블로킹하여 포스트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멤버로 분류되었으나 2차전에 교체출장으로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무리없이 출장했고, 3차전 마지막 세트에 출장하면서 팀의 우승에 한몫 거들었다.
         이듬해 동일한 방송에서 보고 싶은 사람으로 남자 친구를 보고 싶다고 깜짝 발언을 했지만, 진행자가 '어는 났는지 살아는 있는지 궁금한 거죠?'라고 쿠사리를 먹였다.
  • 김민희(1982) . . . . 11회 일치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이런 영향으로 온갖 욕을 다 먹는 연예인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김민희는 한국 연예계의 역사에서 몇 가지 이정표가 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진행되던 과도기였다. 시기([[세기말]]), 세대([[N세대]]), 문화 형([[아이돌]], [[인터넷]]의 등장) 등이 교체되어 가던 시기에 70년대생들이 주로 활약하던 [[90년대]] 문화가 지나가고 현재와 같은 아이돌 생산/소비 시스템 하에서 등장한 거의 최초의 아이돌 스타라는 점이 그것이다.[* 위에 언급된 많은 모델 및 배우들도 크게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세기말과 [[N세대]](1980년대생)를 상징하는 인물[* 또 다른 한명을 더 뽑자면, 그 유명한 TTL 소녀 [[임은경]]이 있다.]이자 현재 개념의 아이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요계를 포함한 대중문화계 전체에서는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가수들에 의해 이미 96년에 아이돌 문화가 시작된 상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아이돌 문화를 주도한 것은 가요계였지만, 당시 이들은 70년대생과 80년대생이 혼재된 형였으며 시기적으로도 엄연한 1990년대라 이후 등장한 (비가요계의) 아이돌과 세부적으로는 개념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팬층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배우나 모델들처럼 10~20대를 상대로 어필을 하던 아이돌로 봐도 부족하지 않았다.
          *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의 대히트로 인해 여성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서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김민희가 팬들에게 아이돌 못지 않는 팬서비스를 했을 뿐더러, 한창 얼굴도 빛나 [[여초]] 사이트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원래부터 여성들의 워너비나 다름없었지만, 주가가 폭발적으로 오른 셈이다. 보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약 600만원 가까이 조공 금액이 모이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2016년 6월 21일, [[홍상수]] 감독과의 간통 보도가 터지고 난 후 역대급으로 모였던 조공금액을 다시 환불해주는 사가 발생하였다.
         일단 아직 사실 관계가 확인된 내용은 없다. 사를 종합해보자면 [[홍상수]]와 그의 부인은 모종의 이유로 별거하게 되어 2016년 11월 이혼 신청을 넣을 만큼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김민희와 홍상수 측의 해명에 따르면) 집을 나와 있는 홍상수 감독을 김민희가 보살펴 주다가 친해지게 되었고, 현재 홍상수 감독의 부인이 모종의 이유로 김민희를 그의 간통 상대로 의심하고 있다는 게[* 위에서 언급한 [[리얼스토리 눈]]에서 홍상수 감독의 소재를 묻자 "김민희 씨랑 어디 있겠죠 뭐." 라고 발언했다.] 요약이라 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은 결별설이 보도될 당시 귀국 후 직접 해명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으며 11월 중순 경 [[이혼]] 신청을 넣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김민희의 경우 이 사의 여파로 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청룡영화상 시상식도 불참했다.
         사실 여하를 떠나서 두 사람의 도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최초 해명 당시 국내로 돌아와서 설명하겠다 했으면서 여까지 침묵을 지켰으며, 사건 초기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다. 김민희 역시 국내로 돌아온지 꽤 된 것으로 보이나,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포함한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팬들 앞에 나타나지조차 않았고 소식 통보도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여지껏 해명은 고사하고 뒤에서 신작 촬영이나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난 셈인데, 이는 누가 봐도 좋게 봐줄 수 없는 행보이다.
         이런 두 사람의 도 때문에 '''현재 상황은 누가 보아도 정말 간통설이 사실로 보일 수밖에 없게 되어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혼]] 사유가 김민희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홍상수]]의 부인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홍상수 본인이 부인은 물론 대중에게도 불륜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여론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고수하기에 간통 의심을 받고 있는 유책 배우자가 소송을 걸어봐야 받아주지도 않는다.[* 최근 파탄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건 한쪽 배우자가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이혼을 안 받아주거나 관계 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정도로 자녀나 가정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졌을 때나 인정한다. 현재 홍상수 감독은 몇 년째 집을 떠나 있어 가정을 착실하게 보살피고 있다고 보기는 힘드므로 성립하기도 어렵다.]
         사실 국내는 당연지사고 간통을 개인의 사생활이라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본다고 하는 서구권의 간통 사례와 비교해도 홍상수와 김민희의 현재 도는 대담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뻔뻔하다.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까지 그렁이면서 명백히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대상이 되는 간통을 아름다운 사랑이라며 미화를 하거나 아예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서 출품까지 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덕분에 대중들은 "이 둘에 비하면 [[이병헌]]은 차라리 양반이다." 수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민희의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이후에 똑같은 간통 논란을 의식한 기자가 이병헌에게 누가 봐도 대놓고 노린(...) 인터뷰까지 한 적도 있다.
  • 김용국 (야구인) . . . . 11회 일치
         * [[평양 돌핀스]] (1994년 ~ 1995년)
         '''김용국'''(金用國, [[1962년]] [[6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평양 돌핀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kt 위즈]]의 2군 야수총괄코치이다.
         그러나, [[류중일]]이 다음 해인 [[1988년 한국프로야구]] 때 팔꿈치 수술로 출장 입지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류중일]]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1988년 한국프로야구]]부터 [[1993년 한국프로야구]]까지 줄곧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또한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다.<ref name="imaeil" />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그로 이어지는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는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도 매번 [[해 타이거즈]] [[3루수]] [[한대화]]에게 밀려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3루수)|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1993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3 시즌]]이 끝나고 [[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의 3루수 자리를 후배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물려 주었다.
         ===[[평양 돌핀스]] 시절===
         1994~1995 시즌 [[평양 돌핀스]] 선수로 뛴 후, 돌핀스를 새로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가 기존의 선수단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1996년]]에 세대 교체의 명분 아래 현역 은퇴를 하면서 [[199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6 시즌]]을 맞이했다.<ref name="imaeil" />
         * '8' - [[평양 돌핀스]]
         |1994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평양 돌핀스|평양]]||0.189 ||121 ||280 ||26 ||53 ||12 ||0 ||4 ||77 ||34 ||3 ||2 ||47 ||1 ||60 ||6 ||14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김정태(영화배우) . . . . 11회 일치
         ||<#66CDAA> '''{{{#ffffff 이름}}}''' ||<(> 김정 ||
         ||<#66CDAA> '''{{{#ffffff 본명}}}''' ||<(> 김욱 ||
         ||<#66CDAA> '''{{{#ffffff 소속}}}''' ||<(> 원아트미디어 ||
         [[대한민국]]의 [[배우]]로 [[1973년]] [[1월 17일]]생. 본명은 [[김욱]]으로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을 통해 [[충무로(은어)|충무로]]에 데뷔하여 [[2001년]]작 영화 [[친구]]까지 본명으로 활동했다가, 영화 [[친구]]로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선배 연예인인 가수 [[김욱]][* 최근에는 연예인보다 사업가로 유명하며 배우 [[채시라]]의 남편이다.]을 의식했는지, [[2003년]] [[정우성]]과 출연한 "[[똥개]]"부터 지금의 예명인 김정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연기배역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 터라 과거의 이미지를 많이 벗은 듯하다. [[tvN]]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에서 '홍대 정'라는 코너를 맡아 코믹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영향인지 오히려 지금은 약간 코믹한 인상으로 여겨지는 듯.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서의 고기와 같은 [[개그 캐릭터]]도 자주 연기하고 있다.
         2018년 10월 [[간암]] 투병으로 인해 출연 중이던 SBS 새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을 하차했다.[[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841860|#]] 드라마 촬영 도중 건강 이상을 느껴 검사를 받았고 [[간경화]]에 작은 종양이 발견된 것. 다행히 간암은 초기인 상라 간 수치를 낮춘 후에 수술할 예정이라고 한다.
         || 2009 || [[SBS]] || [[양을 삼켜라]] || 한석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11회 일치
          * 타마키는 밀리오를 "양 같은 히어로"가 될거라 말하곤 했는데, 그는 겸손해하며 오히려 타마키야 말로 "양 조차 먹어버릴 히어로"가 될 거라 격려한다.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상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절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식". 이상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상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상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상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로도 웅영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패트껌의 판단대로 타마키는 망설임이 사라졌고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리나카의 의능력이 별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윗층에 남은 경찰을 우선한다고 추정, 동시에 여러 무리를 상대할 수 없다는건 미궁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낸다. 그렇다면 이녀석들만 손쓰면 된다. 타마키는 문어다리로 적들을 꽁꽁 묶어놓은 채로 잠재워버리려 한다. 하지만 적들도 필사적인 이상 그렇게 쉽게 풀릴 수는 없다. 세츠노가 문어다리로 변형시킨 타마키의 주먹을 안면으로 들이받는다. 무슨 짓일까?
          밀리오는 타마키와 정반대였다. 당시 밀리오는 벽을 통과하는 것도 무리였고 손은 겨우 빼내도 얼굴이 걸려버리는 등 엉망이었다. 그런 추를 보일 땐 그저 놀림감으로 전락했지만 밀리오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놀려대는 친구들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항변하면서 "그래도 다음번에는 성공한다!"고 꺾이지 않았다.
          >너는 굉장한 히어로가 될 거야. 양 같은 히어로가.
          밀리오가 나에게 진다? 타마키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밀리오는 타마키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밀리오를 너무 과대평가해 양이니 뭐니하는 소리를 하는 거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식대로 말하면, 너는 양보다 굉장하단게 되거든.
          >양 따위는 존재감이 옅어질 거야.
          >양조차 먹는 자(선 이터)다!
  • 로힝야 . . . . 11회 일치
         유엔난민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범은 로힝야나 방글라데시인을 상대로 1인당 90~370달러의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선에 워준 다음, 배가 타이에 상륙하면 본색을 드러내서 타이-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타이 남부의 밀림 캠프에 가둬버리고, 가족에게 연락하여 몸값을 1인당 200달러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난민들은 몸값을 낼 때까지 밀림 캠프에 감금당하는데, 병사하거나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타이 정부가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하자, 인신매매범들은 이번에는 로힝야를 운 난민선을 그냥 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정부는 서로 난민선을 쫓아내다가 일단 구조하기로 하고 3천명 가량의 난민이 구조되었으나, 많은 로힝야 난민들이 사망하거나 바다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측된다.
         1982년에는 시민권법이 개정되어, 로힝야는 미얀마 국적도 박탈되었다. 1982년 시민권법은 미얀마 국민을 ‘생시민’(Citizen), ‘제휴시민’(Associate Citizen), ‘귀화시민’(Naturalized Citizen)으로 분류하는데, 생시민은 미얀마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종족과, 미얀마-영국 1차 전쟁이 있었던 1824년 이전부터 현재의 미얀마 영토에 거주했던 조상을 둔 주민에게 부여된다. 미얀마 정부는 130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인정하고 있으나, 공식 종족으로 포함되지 않아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상가 되었다.
         2011년 미얀마가 [[민주화]]되기 시작하였으나, 로힝야에 대한 박해는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미얀마의 다수 종교인 불교 승려들이 로힝야에 대해서 극단주의 주장을 펼치며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인 라카인족과 로힝야족 사이에 유혈 사가 벌어졌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2013년 3월 20일, 미얀마 중부 메이크틸라 지역에서 무슬림 금은방 주인과 불교도 손님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져서, 폭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승려]]들이 선도하여 무기를 든 불교도들이 무슬림을 공격하였고, 무슬림을 산 채로 불길에 밀어넣기도 했다. 2007년에는 평화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한 바 있는 군경은 이번에는 사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이 반 무슬림 폭동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어나서 어린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남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상 수백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이에 응하여 2016년 12월 19일, 아웅산 수치는 [[아세안]] 회원국 외무장관을 미얀마 양곤으로 초청하여, 미얀마군 무장세력 토벌작전과 로힝야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 해결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어서 수치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국 외무장관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돈 쁘라뭇위나이 국 외무장관 : 모두가 만족할만했다.
  • 마재윤 . . . . 11회 일치
         당시 저그는 2해처리 빌드로 테란,프로토스와 경쟁을 했었다. 당시 공격형 저그 [[박성준]] 과 운영형 저그 [[박민]] 두 부류가 있었다.
         마재윤의 기량 난조는 2008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양대 리그 조기 탈락에 이어 오프라인 예선까지 추락하는 것은 물론, 프로리그 08시즌에서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면서 가끔씩 팀플에서만 활약하는데 그쳤다. 결국 2008년 6월, CJ 엔투스는 특단의 조치로 마재윤에게 2군 강등을 통보했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292&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7일]</ref> 이후 3주간 2군 숙소에서 훈련을 소화한 마재윤은 그 성과와 도가 인정되어 2008년 7월 21일부로 1군에 전격 복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545&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21일]</ref>
         그러나 위너스리그가 시작되면서 마재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재윤은 스파키즈전 1:1 상에서 차봉으로 나와 [[문성진]], [[신상문]],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를 연달아 물리치고 3킬을 기록하였고, 이스트로전에서는 1:2 상황에서 중견으로 출전해 [[박상우]], [[신상호]], [[신대근]]을 잡아내며 또다시 3킬을 기록, 마삼킬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 윤용 ====
         [[윤용]]와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한빛전 2세트였는데, 여기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한빛전 5세트에서 또다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WCG 2007]] 최종 대표선발전 3, 4위전에서 2:0 셧아웃시키며 본선에 진출했고, [[곰TV MSL 시즌3]] 8강 B조 경기에서 3:1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2라운드 한빛전 1세트에선 패배하였다. 다시 비공식전인 [[WCG 2008]] 대표선발전 24강에서 1:2 패배 탈락,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 32강에서 1:2 탈락,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5:2,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9:6으로 우세.
         ==== 변형 ====
         이전 팀 동료였던 [[변형]]와는 8차례나 만났었는데, 모두 팽팽했다.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에서만 만난 기록들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4강 B조 경기에서 마재윤이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 A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서 2: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2007년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2:1 승리.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4:4로 무승부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5로 앞선다.
         ==== 박민 ====
         [[박민 (프로게이머)|박민]]과는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SKT전 3세트에서 패했으며,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SKT전 4세트에서도 패했으며, [[곰TV MSL 시즌2]] 32강 B조 1경기에서도 패했다. 상대전적은 0:3 , 무승으로 초약세.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아프리카TV BJ]][[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CJ 엔투스의 선수]]
  • 블리치/675화 . . . . 11회 일치
         우라하라에게 뭔가 "주입" 당한 요루이치는 완전히 새로운 형로 변하는데...
          * 시호인 요루이치의 변신은 "순홍 뇌수전형 순륭흑묘전희". 고양이와 같은 형로 변한다
          * 이건 사실상 폭주 상로 정신 상도 고양이처럼 변한다
          * 이 상가 되면 요루이치의 기분에 따라 영압이 1초에 48번까지 변한다
          * 이 상를 제어할 수 있는건 우라하라 키스케 뿐. 요루이치가 마구 달라붙는다
          * 우라하라가 주입한 "면역제"는 약 5분 정도 지속. 시간이 흐르자 고양이 상의 요루이치도 괴로워한다.
          * 우라하라는 충분히 이겼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스킨은 "하스하인"(신의 독견) 상로 부활한다
          * 순홍으로 전신을 감싼 상기 때문에 '''올누드'''
          * 이 상에서는 뭔가 고삐가 풀리는 건지 '''우라하라에게 만은 메가데레''' 상가 된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11회 일치
         ||<:><#00CED1>{{{#fff '''출생'''}}} ||<(> [[1993년]] [[3월 9일]] ([age(1993-03-09)]세)[br][[대구광역시]] [[북구(대구)|북구]] [[전동(대구)|전동]] ||
         ||<:><#00CED1>{{{#fff '''학력'''}}} ||<(> 전초등학교 (졸업)[br]관음중학교 (졸업)[br][[강북고등학교]] (전학) → [[압구정고등학교]] (졸업)[br][[글로벌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재학) ||
         [[치아교정]] 중임에도 불구[* 교정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설측교정]]이기 때문. 간혹 직찍에서 아랫니 안쪽에 자리한 교정기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방탄소년단]] 콘텐츠 중 하나인 본보야지에서 같은 멤버인 [[뷔]]가 자일리톨을 권하자 교정 중이라 안 먹는다고 거절하기도 하였다.][* 교정은 피 땀 눈물 활동 당시 끝났다고 한다.]하고 '''상당히 딕션이 좋다'''. 특히나 [[설측교정]]의 경우 이물감 때문에 발음을 할 때 거슬리며, 쉽게 발음이 새어나가 딕션이 뭉개질 수 있음에도 꽤나 정확한 딕션을 구사해낸다. 현재로썬 교정이 끝난 상. [[http://m.photoviewer.naver.com/blog?listUrl=https%3A%2F%2Fm.blog.naver.com%2FPostView.nhn%3FblogId%3Dkiss006969%26logNo%3D220888204195&imgId=1&host=https%3A%2F%2Fm.blog.naver.com%2Fphotoviewer&historyBack=true&blogId=kiss006969&logNo=220888204195#main/1|2016년 10월]] 게다가 성량도 큰 편인지라 라이브 중 음향이 좋지 않다 싶으면 더욱 소리내어 랩으로 음향을 다 씹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ffCdGkGsk&feature=youtu.be|전설의 서가대 쩔어]]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9&v=UUZSgv0sqC4|171101 불타오르네]] 음향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인 [[SBS 가요대전]]에서 [[https://twitter.com/nojam__nolife__/status/945253643166433282?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씩~ 웃고, 한마디 쉬고, 라이브 인증.]]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도 볼 수 있지만, 평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한다. [[진(방탄소년단)|진]]이 '슈가보다 일찍 어나서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팀 내에서 누군가를 놀리거나 부리는 편에 가깝다. 이런저런 영상에서 헤드락 걸려 있는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만약 무인도에서 3년간 살아야 한다면 데려가고 싶은 멤버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노예-- 지민을 데려가고 싶다'라고 답한 적도 있다. 자신은 말수도 적고 그닥 재미있지 않지만 지민은 싹싹하고 의젓하기 때문--은 무슨 부려먹으려는 거죠-- 나아가 승부욕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막상 게임을 하면 대부분 이긴다. 게임에서 지는 경우에도 어떻게 해서든 벌칙을 피해간다. 슈가가 벌칙을 받는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 ~~뱁새~~ ~~신인왕~~
         그러나 챙겨야 할 멤버가 있을 경우 놀라울 정도로 열의가 생기는데 이를테면 Run BTS! ep.22에서 게임에서 지고 있는 탓에 시무룩한 [[뷔]]에게 형이 버스 워주겠다며 두 팔 걷어붙이고 본인 몸뚱아리 만한 윷을 던진다던가... 놀랍게도 그때부터 무섭게 득점해나간다.
         말빨이 좋아 달려라 방탄, 방탄가요 등 멤버들끼리의 콘텐츠에서 주로 MC를 담당한다. 진행 능력이 꽤나 좋은 편임을 본인도 아는지, MC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에서 MC를 즉석에서 정할 경우 멤버들이 "슈가 형이 해야겠네~" 하면 마지못해 하는 척하며 스무스하게 진행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 정말 하기 싫어하는 적이 없지만, 대부분 슈가를 시키는 편이다. 딱 한 번, 정말 게임을 하고 싶어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조차도 MC를 맡았다.
         > '''범으로 어나 개처럼 살 수는 없지.'''
         또한 [[비프리]]의 코리안드림의 앨범의 타이틀인 It Ain`t Easy (Korean Dream) (Feat. jinbo)에서 '''do you what you gotta mo money mo problems 돈 있어도 문제 많아'''란 가사의 부분을 인용하고 있단 점에서 비프리를 향한 디스곡으로도 볼 수 있다. --니 상 그로기야 별일 없이 늙어만 가는 힙합에 좀이야--
          * 몽은 어머니께서 호박이 창문으로 넘어오는 꿈을 꾸셨다고 한다.
          * [[화양연화 pt.2]] 콘서트(첫콘) 중 상남자 무대에서 가사 실수를 했다. 내용은 "나같은 남잘 '''만나면''' 후회하게 될 걸".[* 원래 가사는 '놓치면'.] --철벽-- 상당히 연하게 뱉은 후 본인의 실수임을 눈치채고 웃는 모습이 포착됐다. [[https://m.youtube.com/watch?list=RD-1Wrp0Pcn74¶ms=OALAAQE%253D&v=-1Wrp0Pcn74|사실 이날 이 무대는 총체적 난국이었다고 한다.]]
  • 신성우(가수) . . . . 11회 일치
         || '''가족''' ||<(> 아내, 아들 신오 ||
         데뷔는 1992년 1집 앨범 내일을 향해.[* 원래 [[부활(밴드)|부활]]의 리더 [[김원(음악인)|김원]]에게 발탁되어 김원이 당시 결성했던 밴드 GAME의 보컬이 될 뻔했으나 김원에게 이유 없이 쫓겨났고, 그 후 밴드 작은하늘의 기타리스트였던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 의기투합해서 솔로로 데뷔하게 되었다.]
         AR을 틀든 ,MR을 틀든,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 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의 음반이다. 형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실제 밴드 로 데뷔 하려고 했으나, 제작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생 이근상은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의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굉장히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
         신성우 3집은 [[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2015년 드라마 [[엄마(드라마)|엄마]]에서 민헌 역을 맡아 연기자로 복귀했다. OST도 불렀다. 그리고 [[무림학교]]에도 출현한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11회 일치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마오) ||
         2007년~2008년 [[차현]]과 함께 진행하던 [[KBS 2FM]]의 [[라디오]] 프로그램 '안재욱 차현의 미스터라디오'의 DJ로 진행을 맡았다. 맡을 당시 KBS 라디오 청취율 1위는 물론 방송 3사 청취율 1위도 기록하였다.
         2008년 사랑해 이후 슬럼프를 겪고 있던 도중 안재욱은 2009년 [[뮤지컬]] '살인마 잭'에 출연한다. 이 이후 안재욱은 꾸준히 뮤지컬에 출연한다. 2010 [[잭 더 리퍼(뮤지컬)|잭 더 리퍼]], 2011 [[락 오브 에이지]], 2012 [[황자 루돌프]], 2014 [[양왕]], 2017 [[영웅(뮤지컬)|영웅]].
         || 2011~12년 || MBC || [[빛과 그림자]] || [[강기(빛과 그림자)|강기]] || ||
         || 2016년 || KBS || [[아이가 다섯]] || 이상 || ||
          * [[황자 루돌프]]
          * [[양왕]]
          * 2016년 제5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아이가 다섯》
  • 예천군 . . . . 11회 일치
          * [[조(고려)|조]] 18년 : 보주로 개칭.
          * [[현종(고려)|현종]] 9년 : 안동부에 편입되며 [[명종(고려)|명종]] 2년 자의 [[]]를 이 고을에 묻었다고 하여 기양현으로 승격.
          * [[종(조선)|종]] 13년 : 보천으로 개칭.
         ||<|2> [[유학성]]/재선[br][[민주정의당]] || 유학성/3선[* 93.3.31 의원직 사퇴][br][[민주자유당]] || [[황병]]/재선[* 97.12.26 의원직 상실(뇌물수수)] [br] 신한국당 ||<|2> 신영국/3선 [br] 한나라당 ||<|2> [[신국환]]/초선 [br] 무소속 ||<|2> [[이한성]]/초선 [br] 무소속 ||<|2> 이한성/재선 [br] 새누리당 ||<|2> [[최교일]]/초선 [br] 새누리당 ||
          * 김우 : [[도전 골든벨]]의 예천 대창고등학교 시절 82대 등극자.
          * [[황병]] : 전 [[주중대사]], 전 신한국당 국회의원, 전 [[대구한의대학교]] 총장
          * [[유학성]] : 전 군인(예비역 육군 대장), 전 공무원(중앙정보부장, 안전기획부장), 전 국회의원. 신군부 출신으로 [[전두환]], [[노우]] 전 대통령이 있던 [[하나회]]를 후원, [[12.12 사]]에 가담하기도 했다.
  • 원피스/872화 . . . . 11회 일치
          * 옥갑은 개봉하면 대폭발을 일으키는 장치가 있었는데, 그걸 모르는 상로 루피에게 주어졌던 것. 그게 빅맘에게까지 간 것이다.
          * 이런 사실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옥갑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형로 개봉, 폭발을 일으켜 홀케이크 성을 붕괴시킨다.
          * 그러나 총요리장 [[슈트로이젠]]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 전체를 거대한 케이크로 바꿔 생크림과 스폰지 케이크의 산사가 되게 했다.
          * 토트랜드 수도이자 성 밑에 형성된 마을 "스위트 시티"의 주민들도 폭음을 듣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들은 기우는 성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한 발 먼저 피난하기 시작했다. 피난하는 와중에도 대체 무엇이 이런 사를 촉발했는가 의견이 분분했는데 적의 공격은 아무래도 아닐 거 같다. 토트랜드 최심부의 이 섬만을 타격할 수 있는 적이 어딨겠는가? 누군가가 막연하지만 성 옥상에서 진행 중인 다과회와 관계된게 아닌지 추측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 벳지의 의견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이 성은 성 밑 마을보다도 거대하다. 이제와서 뛰어봐야 달아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떤 주민들은 이렇게 절망하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성 위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빅맘 해적단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며 무엇이든 붙들고 있었다. 카타쿠리는 이런 와중에도 형제들을 진정시키고 다니며 살 길을 모색한다. 모건즈는 이런 와중에도 특종을 잡았다고 기뻐 날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도 위롭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새인 주제에 날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시는 육식을 마스터한 몸이므로 당연히 "체"로 여유롭게 날아오른다. 벳지와 시저는 혼란을 틈타 탈출에 전력하고 이치디는 이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걸 확인한다.
          * 슈트로이젠의 쿡쿡 열매 능력이 무너지는 성을 통채로 케이크로 바꾼다. 거기에 슈트로이젠은 멋진 칼 솜씨로 케이크의 맨 윗 단, 다과회가 열리는 회장만을 베어서 안전하게 안착시킨다. 성 안에서도, 성 바깥에서도 모든게 끝났다고 절규하는 사람들 위로, 먼지와 잔해 대신 케이크와 생크림의 산사가 쏟아진다. 홀케이크 아일랜드를 뒤덮을 기세로 쏟아지는 산사. 폭풍같은 소란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구나 뭉그러진 케이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 놀랍게도 사망자는 전혀 없었다. [[샬롯 다이후쿠]] 등 샬롯가 형제들 전원 무사. 주민들도 생크림 범벅이 되는 걸로 끝났다. 빅맘은 애초에 제우스가 워줘서 추락을 면했다. 그녀는 사방에 널린 케이크 잔해를 먹어치우고 있었지만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우선 슈트로이젠이 능력으로 만드는 식재는 별로 맛이 없는데다, 그녀의 성도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세삼스럽게 기대해 마지 않던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되었단 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 벳지의 우려대로 빅맘 해적단은 빠르게 재정비를 마쳤다. 카타쿠리의 지시로 다이후쿠 등이 추격대를 둘 편성했다. 한쪽은 파이어탱크 해적단, 다른 한쪽은 밀집모자 해적단을 쫓는다. [[샬롯 스무디]]는 어머니 옆에서 한 놈도 놓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어머니의 상가 이상하다. 빅맘의 눈이 뱅글뱅글 돌고 있다.
  • 원피스/874화 . . . . 11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는 칼 형로 변한 "나폴레옹"을 휘둘러 엘바프의 창 "위국"이란 위력적인 기술을 구사한다. 사정거리를 직선으로 관통하는 기술.
          * 킹밤은 살아서 레이디 트리와 재회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로막는 부하들까지 내치며 달리는데, 양 "프로메테우스"가 이를 배신으로 간주하고 보복한다.
          [[몽키 D. 루피]]는 좋지 않은 낌새를 차리고 일행에게 경고하고 킹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빅맘이 자신의 모자 "나폴레옹"을 검형로 바꿔서 쓰는 기술 "위국". "엘바프의 창"이란 명칭대로 빅맘이 팔을 휘두른 방향으로 직선의 충격파가 꿰뚫고 지나간다. 충격파는 킹밤의 좌반신을 깨끗하게 삭제하고 계속 나아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외곽의 절벽에 구멍을 냈다. 터무니 없는 위력. 일행은 직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위력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루피는 그 순간에도 엘바프 거인족의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파한다.
          * 빅맘은 킹밤이 있다는건 공격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킹밤의 이름을 부르는 빅맘. 겁에 질린 킹밤이 [[원피스/843화|전에도 한 번 그런 것처럼]], 이번에도 협박을 당해 어쩔 수가 없다고 절절맸다. 그런다고 빅맘이 다음 공격을 주저할 것 같진 않았다. 루피가 내려서 싸우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미(원피스)|나미]]가 킹밤에게 말을 걸었다. 일행과 마주치기 전 같이 있었던 여자 나무가 누구냐는 것. 레이디 트리. 킹밤은 그녀가 피앙세(약혼자)라고 밝혔다. 나미가 결연한 도로 말했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상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식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반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상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상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순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인다.
          이 황당한 요구에 응답한 것은 상디. 징베가 폭주 상의 그를 점잖게 말린다. 하지만 제우스의 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나미가 "매일 블랙 볼을 먹여주겠다"고 꼬시자 진지하게 "어쩌지 어쩌지"하며 고민에 빠진다. 충성심이고 뭐고 찾아볼 수 없는 모습. 나미가 "하늘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먹구름이 되게 멋있다"고 칭찬해주자 그런 칭찬 받아본게 처음이라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러다 정말 이적 시장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빅맘의 진노가 담긴 외침. 방금까지 킹밤을 향해 경례를 올리던 나무들이 도를 바꿨다. 보스보다는 보스의 보스가 훨씬 무서우니까. 제우스도 그 노성을 듣고 나서야 "마마가 진짜 화났다"며 얌전히 꽁무니를 뺀다. 이제 유혹의 숲은 적의 소굴이다. 곧 닿을 거만 같았던 써니호로 향하는 길이 사라지고 유혹의 숲의 살아있는 지형지물들이 막아선다. 상디는 유혹의 숲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적당히 걷어차주고 뚫고 가자"고 했다. 숲의 무서움을 아는 루피는 머리를 감싸며 골치아파했다. 싸우더라도 나무들이 방해하면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처지였다. 제일 큰 문제는 킹밤. 그 역시 빅맘의 피조물인 만큼 그녀가 진지하게 호령하면 견디기 어렵다.
          * 킹밤의 눈물겨운 돌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공으로부터 프로메테우스가 내려왔다. 킹밤을 진지하게 "배신자"로 간주한 프로메테우스에게 종전같은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진짜 양만큼 팽창하며 킹밤의 머리 위를 덮쳤다. 밀집모자 일당은 그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뛰쳐나온다. 하지만 킹밤은 그럴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비대해짐 몸집으로 킹밤을 찍어눌렀다. 일행은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킹밤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잘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갔다. 루피는 도망치면서도 킹밤을 걱정해 돌아보는데, 그의 타버린 잿더미 사이로 눈이 돌아간 빅맘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웨딩 케이크를 찾으며.
  • 은혼/631화 . . . . 11회 일치
          * [[하타 황자]]는 고국의 함대로 해방군을 위협하는 방송 중 [[네스(은혼)|네스]], [[하세가와 다이조]]와 진흙탕 싸움을 벌여 개전의 방아쇠를 당긴다.
          * 그때 레이더에 이상한 정보가 잡힌다. 상당한 수의 함대가 해방군 모함의 후방을 잡고 있다. 부하는 고장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건 [[하타 황자]]가 고국 오우고쿠성에서 소집한 병력이었다. 하타 황자는 무전을 통해 해방군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들의 행위가 해방이란 이름의 침략 행위에 지나지 않고 이 이상의 만행은 우주가 용서해도 자신들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실로 그럴 듯한 선전포고를 하는 사람은
          하타 황자는 옆의 [[네스(은혼)|네스]]가 주모자인양 빠져나가려 하지만 주군에 대한 충성은 밥말아먹은 네스가 그냥 뒤집어 쓸리가 없었다. 둘은 엔죠 황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이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떠미는 추를 부린다. 급기야 이들은 누가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해방군에게 맡기기로 한다. 하타 황자는 눈을 감고 있을 테니 그런 말 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시킨다. 그러면 해방군은 보고 그렇게 알게 될 거라면서. 네스는 실눈 뜨지 말라면서 "절대 안 볼 테니 급식비 훔친 애는 손을 들어라"고 개드립을 첨가한다.
          * 거기에 또 낚이는게 [[하세가와 다이조]]. 역시나 마다오 답다. 하타 황자의 말만 믿고 당당하게 거수하는데 딱 걸렸다. 하지만 그는 급식비를 훔친게 아니었다. 하타 황자의 간식인 고급 푸딩을 훔쳐먹었을 뿐. 그는 그 원인을 개밥이나 주는 열악한 처우로 돌린다. 결국 푸딩에서 비롯된 결투로 치닫는데, 알고 보니 네스도 항상 하타 황자의 푸딩을 훔치고 있었다. 그도 먹잇감을 가로챈 원한을 하세가와에게 풀기 시작하고, 셋은 뒤엉켜서 추접한 전쟁을 시작한다.
          >모든 것을 집어 삼켜 불을 워라.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어린 빛인가
          * 히지카타는 무슨 수가 없겠냐고 묻는데 마츠다이라는 연하게 "아직 캬바레 하는데 없을까"같은 실없는 소리나 던진다. 히지카타가 포기한 거냐고 츳코미하자 자기는 포기하지 않았고 분명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캬바레 아가씨가 있을 거란 덧없는 희망을 불사르고 있다. 그는 작은 튜브에 연연하다간 옆에 있는 큰 튜브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며 "포기하는게 꼭 나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지구는 대충 냅두고 겐가이 영감부터 찾으라고 조언하는데, 제일 냅두면 안 되는걸 왜 냅두라는 거야 이 아저씨.
  • 이기택 . . . . 11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장기면)에서 어났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자형 이임용이 경영하는 광산업(현 [[광그룹]] 산하)에 입사하여 근무하였다.
         그러나 1978년 신도환 계보에서 이탈하였고, 1979년 5월 [[전당대회]] 때에는 따르는 의원 1명도 없이 원외인사들로만 독자 계보를 형성하여 1차 대회에서 신도환을 뛰어넘는 92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하여 자신의 표들을 김영삼에게 몰아 주어서 김영삼이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신민당 내에서는 중도통합론을 내걸고 사실상 독재정권과 야합하던 이철승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래서 2차 투표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내걸고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공언하고 있던 김영삼으로 반이철승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다. 이기택의 후보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도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철승을 떨어뜨리고, 김영삼을 총재로 당선시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영삼은 이들의 표를 모두 모아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 속에서도 총재경선에서 승리하였다.]이 때 박정희 정권은 이기택이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을 지지하려 하자 자형 이임용이 운영하는 광그룹의 장부를 압수하기까지 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1997년에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재보궐선거]]에서 죽어가는 당의 명운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출마하였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준]]에 밀려 낙선. 사실 어나기는 포항에서 어났지만 대부분의 정치적 기반을 부산에서 잡은 이상 당선되기는 어려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포항의 경제를 쥐고 있는 [[포항제철]]의 창립자이니 이건 처음부터 안되는 싸움이었다.]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독선에 반발하여 [[김윤환]], [[이수성(정치인)|이수성]], [[신상우]], [[조순(1928)|조순]] 등과 함께 탈당하여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부산광역시 [[연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기택뿐만 아니라 김윤환, 신상우, 조순, [[김상현(1935)|김상현]], [[김동주(정치인)|김동주]] 등이 모두 낙선하였으며, 지역구에서 홀로 당선된 [[한승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민국당 인사들이 결국 낙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계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안습]]인 인물이 재야에 있다가 뜬금없이 김윤환 등과 손을 잡은 장기표. 어쨌든 이때 이기택은 [[망했어요]].-- ~~아무 실익도 없이 통합민주당만 갖다바친 꼴~~ ~~통합민주당을 그냥 지키고만 있었어도 이런 꼴은 보지 않았을 것을~~
         이미 1970년대부터 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형 이임용이 [[광그룹]] 회장이었다. 아내 이경의 여사는 [[이화여대]] 메이퀸으로서 미모가 대단하였는데,[* 늙어서도 미모가 죽지 않았다. [[http://news.joins.com/article/19624318|사진 참조]]] 1960년대 총각 국회의원 시절에 보좌관들이 이대 교문 앞에서 이경의를 '''보쌈해다가''' 이기택과 소개팅을 시켜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한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1회 일치
          * 연화(1973, TBC)/민호 대감
          * [[허준|집념]](1976, MBC)/[[유의]]
          * [[허준|동의보감]](1991, MBC)/유의
          *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1993, SBS)/천
          * [[허준(드라마)|허준]](1999, MBC)/유의[* 위에 소개된 작품인 "동의보감"과 같은 역할로 출연했다. 최근 시청자들은 드라마 "동의보감"보다는 "허준"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어서 어차피 같은 역할이긴 하지만, 동의보감에서의 유의보다는 이 역할로 더 기억하는 것 같다.]
          * [[12월의 열대야]](2004, MBC)/민
          * [[욕망의 불꽃]](2010, MBC)/김
          * [[더킹 투하츠]](2012, MBC)/은규
          * [[여자를 울려]](2015, MBC)/강
          * [[아티스트: 다시 어나다]](2016)/박중식
  • 이현우(배우) . . . . 11회 일치
         [[왕사신기]]에서 어린 처로 역으로 몇 분 나오지는 않았으나 엄청난 눈빛연기로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 박힐만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대왕 세종]]에서 아역 [[세종대왕|세종]]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어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청소년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러다가 [[문화방송|MBC]]에서 제작한 [[돌아온 일지매]]에서 '차돌이' 라는 당돌한 소년 캐릭터를 맡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때 머리를 기르고 살짝 여성적인 모습으로 나온 것이 원인인 듯.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역 등장을 기점으로 [[유승호]]를 잇는 국민 남동생의 자리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김유신을 맡으면서 귀여움과 훈훈함을 동시에 안겨주어 2~30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나이에 비해 똑부러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성인 역인 [[엄웅]]으로 교체되면서 유신랑의 인기는 급강하하고 만다. 물론 엄웅의 어색한 사극 연기도 한 몫 했다. 그를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누나팬들이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하차한 후에는 [[막장 드라마]] [[밥줘]]에서 차화진의 아들 토미 역을 맡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시작한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에서 [[홍찬두]] 역을 맡아 유승호와 함께 국민 남동생 투톱이 나란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주인공 계백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브레인(드라마)|브레인]]에서 소년가장 박동화 역으로 나왔다.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다시 한 번 [[엄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절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남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 2013년 8월 9일 [[아이유]]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가 찍힌 [[파파라치]] 사진 기사가 뜨면서 열애설이 불거졌다. 그러나 같은 날 그냥 절친한 사이로 영화를 같이 보았다는 해명 기사가 나왔다. 참고로 이현우가 아이유보다 2개월 먼저 어났다.
         || 2007년 || [[황진이(영화)|황진이]] || 놈이 || [[유지]] 아역 ||
         ||<|2> 2011년 || 환상극장 - 소고기를 좋아하세요? || 식 || 단편영화 ||
         ||<|2> 2007년 || MBC || [[왕사신기]] || 처로 || 이필립 아역 ||
         ||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 [[엄웅]] 아역 ||
         ||<|2> 2012년 || [[적도의 남자]] || [[김선우(적도의 남자)|김선우]] || [[엄웅]] 아역 ||
  • 전효성 . . . . 11회 일치
         다음 방송은 10월 17일에 진행되었으며 솔로 활동 때 추첨했던 골든티켓 이벤트[* 전효성의 솔로앨범 한정판에 들어있다.]를 팬들과 함께 진행했다.[[http://www.vlive.tv/video/2513/JunHyoSeongs-TGIF6골든티켓-특집-불토|#]] 이원에서 바베큐도 구워먹었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2603|#]]
         11월 13일 금요일은~~[[13일의 금요일]][* 참고로 전효성이 어난 날이 13일의 금요일이라고 [[흠좀무]]...]~~ 전효성의 V앱 막방으로 그 동안 본인이 했던 방송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며 재충전을 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http://www.vlive.tv/video/3217/JunHyoSeongs-TGIF8아듀스페셜|#]][[http://www.vlive.tv/video/3297/JunHyoSeong-TGIF-8-아듀|#]]~~그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이어트로 인해 [[가슴]]이 작아져 많은 사람들이 살빨이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463310&page=1&keyfield=subject&keyword=%C8%BF%BC%BA&mn=&nk=%B3%EB%BD%C3%C6%C8&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63310&member_kind=|빈유모에]]-- 단, 여자들의 가슴이 남자들 생각과는 달리 은근히 사이즈가 유동적인 데다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옷이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꽤 나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 2012년 4월의 사진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절벽은 아니다.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8848&mid=e0403&cid=350114|5월 12일 드림콘서트에서 보여준 사진으로 보면 여전히 훌륭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도 계속 사진마다 모습이 달라보이는 걸로 보아, 남자들이 잘 모르는 [[브래지어]]의 힘이 작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위키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브래지어가 가진 무기는 '''[[패드]]만이 아니다.''' 푸시업을 어느 정도 해 주느냐, 혹은 어떤 옷에 맞추느냐 등 활용 폭에 따라서 절벽이 글래머로, 글래머가 슬렌더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여자 속옷이다. 특히 드림콘서트 당시 사진에서 나온 사이즈는 단순히 패드만으로 나올 수 있는 형가 아닌지라, 옷발과 컨디션발이 상당히 심하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약간 여유를 두고, 즉 푸시업이 좀 덜한 브라를 착용하거나 폭에 여유가 있는 누브라, 혹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께걸이 등의 지지가 없어져서 유방이 약간 처지는데, 보형물을 넣은 게 아니라면 이때 가슴골이 퍼져서 볼륨이 줄어들어 보인다. [[박로미]]가 가슴이 작아보이게 한 방법이 바로 이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효성은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몸매가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섹시컨셉으로 활동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숱하게 겪는 [[가슴성형]]에 대한 의혹만큼은 확실하게 없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뭘 집어넣은 거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왔다갔다 할 수가 없으니...
         2013년 1월 22일 방송된 [[강심장]]에 출연한 송지은이 2012년 말에 발생한 시크릿 차량 전복사고에 대해 입을 열었는데, 사고 당시 몸이 거꾸로 뒤집히고 상체는 아예 유리파편이 가득한 차체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던[*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송지은 자신도 안전벨트 미착용이 잘못이었음을 방송에서 인정했다.] 자신을 지탱해준 것이 전효성의 다리였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전복과정에서 전효성의 다리가 송지은의 상체를 받치게 되어 송지은이 유리파편에 얼굴을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정작 1년 전에도 크게 부상을 입었던 전효성의 다리는 또 다시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또한 눈앞의 유리조각을 보고 송지은이 울음을 터뜨리자, 전효성은 침착하게 사를 수습하자면서 송지은을 다독였다고 한다.
         2016년 3월 2일 [[우석대학교]] 진천캠에 입학 예정이라고 한다.[[https://www.facebook.com/woosukU/photos/pb.131050636961089.-2207520000.1456819638./1073726916026785/?type=3&theater|#]] 본인은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던 일이고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결심했다고 한다. 3월 2일에 정식으로 우석대학교 공연예술뮤지컬학과에 입학하였다.[[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02_0013931269&cID=10601&pID=10600|#]] 사실 전효성은 연예인 신분이면서 대학생 신분이라 학업과 활동을 병행하는 상이다. 그런데 집, 학교, 소속사를 왔다갔다해야 하는 입장이라 인하대학교 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가 더 적합할 수 있다. 게다가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에게 [[학벌]]이란 별 의미가 없고 되려 해당 연예인이 입학하는 학교의 명성을 높이는 홍보효과가 있으므로 학교 간판은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서지]], [[Dok2]][* 이 사람은 아예 '''초졸'''이다!] 등 [[학벌]]따위 [[휴지통]]에 내다 버린 최고 스타급 연예인들은 세고 널렸다. 일례로 만에 하나, [[전소미]]가 [[청담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안해버리고 최종학력을 중졸로 끝낸다 하더라도 전소미는 이미 '''[[프로듀스 101]] 우승자'''라는 호칭이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 및 대학교 진학 여부는 인지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만약 학벌이 좌우하는 연예계였다면 [[유재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서경석]]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서경석의 인지도는 유재석은커녕 [[이휘재]]에게도 밀리는 게 현실이다. 그런 즉 전효성은 '''간판 따위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배우고 싶은걸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대학교의 본래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는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11월 12일에 인터넷을 통해 대학시절 개인정보가 털리기도 했다.[[http://sports.donga.com/3/all/20131112/58831703/2|기사]]~~[[11월 괴담]]을 제대로 겪고 있다. 안습~~ 소속사 측에서는 학교측에서 사과 받은 상이며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2020|추후 상황 봐서 법적 대응 하겠다고 밝혔지만]][[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388422|법적대응은 와전된 내용이며 피해 내용은 경미한 편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3년 11월 12일까지의 시기는 [[에일리]] 누드 유출 사건이나 [[은혁]] 트위터 해킹 사건, [[탁재훈]], [[이수근]], [[토니 안]] 불법 도박 사건 등 연예계 관련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진 시기이기도 하다.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6389|기사]]]
         전효성 본인도 역사 무지에 대한 반성의 차원인지, 한국사 검정 3급을 땄다.[* 물론 3급은 중고등학생들도 많이 보는 수준의 쉬운 급수지만, 최소한의 역사 인식은 인정되는 자격증이다. 애초에 본인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자격증은 2013년에 땄는데 4년 후인 '''2017년'''에 밝혀진 것이다. 그러니까 논란 직전에 땄다면 언플이니 뭐니 했겠지만, 지금까지 숨겨왔다는 말이 된다. 또한 매년 세월호 추모를 한다든지 하는 지속적인 사회적 활동으로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는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좋은 모습"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 2017년 아직도 욕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커뮤니티 전반적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오히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선한 개념찬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더 흔해졌다.[* 특히 한국사 자격증을 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늘의유머]]에서는 언급 금지가 해금되었지만, [[일베저장소]]에서는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배신당했다면서 욕을 하고 있다(...). --한국사 자격증을 땄는데 배신당했다고 전효성을 까는 일베는 [[종북주의자]] 집단이 맞나 보다.--] 한 때 일베돌이라는 단어의 대명사 수준이었을 정도였으나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를 반전시킨 전화위복의 케이스.[* 실제로 전효성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택시운전사 포스터를 인스타에 올리자 일베에서는 한물 갔다는 둥 온갖 욕설을 시전하기도 했다. ~~지들이 좋다고 실컷 빨아댈 땐 언제고~~ ~~그래봤자 전효성은 일베 따위 신경쓸 여유도 없을 것이다.~~]
         2014년 8월 21일 [[포미닛]] [[권소현]]의 지목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도전하였는데 복장이 흰색 옷에 검은 속옷 차림이여서 이게 좀 논란이 되는 중. 선정성 논란으로 인해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있고 뭐 어떠냐 하는 의견이 반반인데 판단은 각자의 몫. 오히려 다음 타자로 [[남현]]을 지목한거 때문에 [[위너]] 팬들에게 까였다...[* 전효성이 남현을 지목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남현의 일진론이 대두되었던 상황이라 불난 집에 부채질 하냐고 위너 팬들에게 까였다.][* 이쪽 문제를 걸고 넘어지려고 의상을 부각시켜 논란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 조원진 . . . . 11회 일치
         [[1959년]] [[1월 7일]] [[대구광역시|대구]] 원대동에서 어났다. 대구종로초등학교, [[협성중학교]], [[인창고등학교(서울)]][* [[청구고등학교]]에서 전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한국외대]] 총장을 지낸 [[황병]]가 제15대 국회에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출마하면서 조원진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이에 응한 조원진은 그를 따라 보좌관으로 1996년 정계에 입문하였다.
         [[박사모|박근혜 즉각 석방]], [[박근혜 탄핵]] 주동자 심판, [[언론통제|언론에 대한 강력한 제재]], [[5.18 민주화운동/왜곡|5.18유공자 전수조사]], [[호모포비아|동성애 금지]], [[박근혜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국정교과서]] 의무화[*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 국정교과서는 사형선고를 받게됐다.], 20억 이하 재산 상속세 증여세 완전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박근혜의 석방만 외쳤을 뿐 대통령직 복권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1% 안팎이다.
         선거 1주 전가량 [[바른정당]]에서 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며 15명의 국회의원[* 김성, 김학용, 김영우, 여상규, 장제원, 이진복, 이은재, 이종구, 박성중, 홍문표, 홍일표, 권성동, 이군현, 황영철, 김재경을 의미한다. 대대수가 친김무성계에 속한다.]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려 하자 '[[자유한국당]]도 탄핵 주역에 배신자이다'라 비난하며 [[홍준표]]와의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홍준표]] 후보 측의 [[여론조작|댓글부대]] 운용 의혹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http://m.shinmoongo.net/a.html?uid=102498|기사]]
         '''[[김진(정치인)|김진]]와 함께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한 국회의원. 국민보다 박근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으로는 박근혜에게 인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친박이라는 것 외에 딱히 정치적 자산이 없고 본인에게 특출난 능력, 우러러 볼 업적도 없기 때문에 박근혜를 놓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조원진은 극기 집회 연설이나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극단적인 언행을 전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현재 그가 박근혜 석방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뭔지 떠올려 보면 딱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 34세에 [[대우자동차]]를 거쳐 [[포스코대우|대우]] 중국기획조사부 부장까지 했었다. 그 후 [[황병]]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선거공보물에는 명동판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김진(정치인)|김진]]와 [[김흠]]이 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81608|#]]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신당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 진구 . . . . 11회 일치
         | [[양을 삼켜라]]
         | [[광고천재 이백]]
         | 이
         | [[양의 후예]]
         | 고
         | 미키(호)
         | 진
         * [[2003년]] [[해제과]] 자유시간
         | rowspan="6" |[[양의 후예]]
         | rowspan="2" |제 5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03년 데뷔]][[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평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삼육의명대학 동문]][[분류:남원 진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수상자]]
  • 하정우(영화감독) . . . . 11회 일치
         2016년 영화 《아가씨》 제작보고회. 왼쪽부터 조진웅, 김리, 김민희, 하정우, 박찬욱 감독.
         2017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신과함께(영화)]]》에서는 저승사자 강림 역을 맡았다. 주호민 만화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함께(영화)]]》는 그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되었다. 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1987(영화)|1987]]》에서 검사 역할도 맡았다. 황해 이후 오랜만에 [[김윤석]]과 호흡을 맞추고, [[유해진]], [[강동원]], [[김리]]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와 개봉 시기가 비슷하여, 그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영화관에 걸리게 되었다. --하정우 대 하정우-- 이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너만큼은 좀 프레쉬한 상에서 시작하고 싶어."
         연기공부가 안 풀릴 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아무 생각없이 사온 스케치북에 끄적거리던 게 포텐폭발. 처음에는 유명인이 그림을 발표한 점에 대해 '유명세로 뭣도 아닌 게 그림 그리는 척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곧 그림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인정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술잡지나 미술평론가들의 칼럼에서 익명으로든 실명으로든 까이고 있다. [[조영남]]의 그림이 [[피카소]]의 표절인 것처럼, 하정우의 그림도 외국의 [[장 미쉘 바스키아|어느 작가]]를 베낀 정도에 불과하다고....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하정우를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이라는 헛된 자신감으로 현대미술가 행세에 나선 (망신스러운) 사례"라고 깠었는데,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이다. 그리고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저 글이 개소리임을 증명하는 실존 인물]]도 있다.]국내 H·art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뉴욕, 홍콩 등지에서도 전시를 했다. 다만 직업 화가들도 꿈꾸기 힘든 개인 작품전을 하며 유명한 전시관을 대관 받은 것은 여타 전시전을 했던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창작품의 작품성보다는 본인의 연예계적 인지도가 관여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 2012년 오후 10시 30분쯤 가로수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 뺑소니를 '''당했는데 200m 가량을 직접 추격한 끝에 직접 맨손으로 피의자를 검거'''하여 ~~[[추격자|영화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경찰에 신고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21&aid=0000056261|관련기사]] 이 때 당시 영화 베를린을 찍으면서 몸을 만든 상라 '''체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였고 ~~잘못 걸린 거다. 하필이면...~~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가로수길 근처에 살아''' 그 골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추격해서 잡았다고 한다.
          * 걷는 걸 광적으로 좋아해서 바쁜 일이 없으면 서울 시내를 걸어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거리가 엄청나서 화제. 최근 신과함께 인터뷰에서 밝히길 차현과 만나기 위해 집에서 '''홍대까지 걸어 갔는데 하정우의 집은 서초구 [[잠원동]]이다'''(...) [[http://news.nate.com/view/20171224n13285|#]] 잠원동에서 홍대까지는 대충 속보로 걸어가도 3시간이 넘는 거리다 ㅎㄷㄷ 걷기 좋아하기 때문인지 공효진과 국토대장정을 하는 577프로젝트라는 영화도 출연했다.
         심지어 v앱에서 본인의 별명이 하대갈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여 옆에 있던 차현을 빵 터지게 했다.
         [[황해(영화)|황해]]에서는 라면, 어묵, 국밥, 휠터치(핫바) 등등 온갖 먹거리를 먹는데 이게 공복 상에서 영화보는 관객들은 심하게 괴로운 장면일 정도. 그리고 라면 + 핫바는 하정우 세트 또는 황해 세트로 인기를 끌었다.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에서도 이 먹방 연기는 여전히 탁월했다. 하녀에게 복숭아를 받아서 대충 한입 깨물고는 건성으로 '잘 익은 것 같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가 복숭아를 한 입 깨문 순간, 그 과즙이 사방으로 폭발하는데 카메라까지 튈 정도. 그리고 하정우 특유의 먹방으로 복숭아를 너무나도 맛있고 감칠나게 먹어버린다. 이 때문에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아가씨 배우들과 촬영진들을 모조리 폭소하게 만들었다. 하녀 역을 맡은 김리는 이 때문에 웃겨서 연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스테프의 조언을 듣고 이 연기가 더럽다고 생각하며 감정을 조절했다고.
         ||<|4> 2009 || [[국가대표(영화)|국가대표]] || 주연 || 밥/차헌 || 8,487,894 || 성공 ||
         ||<|2> 2005 ||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 || 주연 || 유정 || 10,790 || 성공[* 제작비 2,000만원에 순수익 7,000만원을 올렸다. [[독립영화]]라서 가능한 수치.] ||
  • 기간트 . . . . 10회 일치
         [[미래소년 코난]]에 등장하는 거대 비행체. 말 그대로 공중요새에 가까운 물건이다. 과거 세계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원흉으로, 당시에는 소형 양산기들이 셀 수조차 없을 만큼 하늘을 뒤덮었다고....... 본 작품의 시기에는 인더스트리아의 [[삼각탑]] 옆에 숨겨진 격납고에 대형기 1기가 잔존한 상였다. 국내 방영판에선 우주 비행기라고 부른다.
         원래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에서 플라잉 머신이 추락하면서 죽은 줄 알았던 레프카는 살아남은 상였다. 이들은 기간트의 격납고에 숨어있었다가 [[삼각탑]]의 주조종실을 기습해서 기간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지하 격납고의 문을 열고 기간트를 출격시킨다. 이때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 비행능력도 탁월하다. 우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선]]도 아닌 주제에 '''단독으로 대기권 돌파 및 우주공간 진입도 가능하다.''' 물론 우주공간에서 다시 지구로 재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공간으로 올라가면 양 에너지를 직접 받으므로 동력원 문제가 해결되면서 반영구적으로 지속비행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항속거리는 이론상 무한대에 가깝다. 덤으로 양 에너지로 초자력 병기를 충전해 사용할 수도 있다.
          * 신뢰성 및 내구성도 뛰어나다. 격납고에서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한채 수십년간 처박힌 신세였지만, 양 에너지를 주입받자마자 이륙이 가능했다. 여기에 숙련도가 떨어지고 정원에 한참 모자라는 인원이 운용했지만 정상적인 비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최종전쟁 이후의 지구는 [[대공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였으므로 이 상황에서는 단 1기만 동작이 가능하더라도 [[세계정복]]이 가능해진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걸 충족할 에너지는 양 에너지뿐이다. 레프카가 기간트를 굴리기 위해 양 에너지를 손에 넣으려고 광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운용계획의 붕괴 : 원래 레프카가 생각한 운용계획은 삼각탑을 기지로 해서 원로위원회등 기술력과 과학력을 가진 요원들이 직접 정비하고, 충성심과 전투력이 높은 1급 시민과 측근들로 기체의 승무원을 조달하며, 일단 한번 비행해서 양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 후에는 목표를 공격하고 삼각탑으로 귀환하는 식으로 장기적인 운용을 하려고 했다.
          * 모든 기능에 승무원이 필요 : 첨단기기답지 않게 총탑의 사격부터 비행의 유지등 여러 분야에 다수의 승무원이 필요하다. 즉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사격장치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총탑은 [[B-29]]처럼 총탑을 담당한 승무원이 별도의 감시탑에서 총탑들을 조종해서 사격하는 형를 취한다.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렇게 승무원이 많이 필요해지니 엔진실같은 중요 지역에 승무원을 1명도 배치하지 못한 것이다.
  • 김부식 . . . . 10회 일치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인 김위영을 [[고려 조]]가 경주(慶州)의 주장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ref>《[[고려사]]》 권97, 열전10, 김부일전.</ref> 부친 김근이 좌간의대부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지위가 높은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부식과 그의 형제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상, 김안(金安), 백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식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식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반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보수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식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이후 [[고려 인종|인종]]의 명을 받들어 [[정습명]], [[김효충]](金孝忠) 등 10인과 함께 [[삼국사기]]의 편찬을 지휘하였으며, 최산보(崔山甫)·이온문(李溫文)·허홍재(許洪材)·서안정(徐安貞)·박동계(朴東桂)·이황중(李黃中)·최우보(崔祐甫)·김영온(金永溫) 등이 편수에 참여하였다. 그 후 집현전 학사·사(太子太師)의 벼슬과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의 칭호를 더하였다.
         *** 형 : [[김부일]](金副佾, [[1071년]] ~ [[1132년]]), 문과 급제, 위(太尉), 문간공(文簡公)
         [[분류:김부식| ]][[분류:1075년 어남]][[분류:1151년 죽음]][[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고려의 불교 신자]][[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작가]]
  • 김형준(배우,가수) . . . . 10회 일치
          * 싸움을 잘 못하는 듯 하다. 박정민이랑 티격격 할때 말하는 게 좀 유치하다. 욕도 귀엽게 한다고 한다. --야 이 개미 똥꾸멍아 말미잘--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절친이다.
          * 9월 6일, 15일 [[백인백곡 - 끝까지 간다]]에 출연했다. 6일에는 [[양(빅뱅)|양]]의 '나만 바라봐'를 열창해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여 선호단과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5일에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불러 또 한번 감탄을 자아냈다. [[https://vimeo.com/138451045|영상1]][[https://vimeo.com/139138333|영상2]]
          * 1월 10일 [[구준엽]], [[김대희]], [[강오]], [[B.A.P]] [[대현]]과 함께 [[비디오스타]]에 출연했다. 글로버 프린스 특집답게 스페인어로 인사후 해외에서 인기와 다녀온 해외[* 볼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아부다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국]도 밝혔다. 자신이 찍은 드라마가 일본쪽으로 드라마 판권이 잘 팔려서 2013년 당시 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에 출연했던 [[박서준]], [[백진희]]랑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서 [[씨스타]]의 [[다솜(배우)|다솜]]이가 한류스타를 이끈건 자신 덕분이라고 자랑을 했다.
         || 2013년~2014년 || KBS1 || [[사랑은 노래를 타고]] || [[한경]] || 지상파 첫 주연 ||
          * 2015년 [[허영생]]과 함께 뮤지컬 하루에 동반 캐스팅 되었고 정의감에 불우며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는 형사 강영원 역을 연기했다.
          * 2009년 3월 9일 [[강인]]을 대신해서 [[연]]과 함께 [[친한친구]] 일일 DJ를 진행했다.
          * 2009년 2월 9일 허영생과 함께 [[강인]], [[연]]의 [[친한친구]] 출연
  • 마이클 페이 . . . . 10회 일치
         [[싱가포르]]에서 [[형]]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인]] [[남성]].
         오하이오 주 데이튼에 거주했다. 1994년 3월, 18세에 싱가포르에서 형을 당했다.
         === 싱가포르에서 형 ===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6대에서 4대로 [[감형]] 했을 뿐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의 고척동(吳作東) 총리는 "누구든지 싱가포르 땅에서 법을 어기면 싱가포르 법에 따라야 한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친서까지 보낸 점을 감안해 형을 6대에서 4대로 줄여준다"고 말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22944 (참조)]]
         형 직후 마이클 페이의 엉덩이 사진
         여담으로 미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달리, 정작 미국 일반인들은 마이클 페이가 형에 당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환영(…)하는 여론도 있었다. 1994년 봄에 USA투데이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형의 도입을 찬성했다. [[엄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의 경향 때문인듯.[[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0998.html (참조)]]
          * [[마이클 베이]]와 헷갈리면 곤란하다. 물론 마이클 베이에게 형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 부산광역시/인물 . . . . 10회 일치
         * [[김길]] - 사상구
         * [[김한(배우)|김한]] - 중구(부산) 남포동1가 (종로) [[부산 롯데마트 광복점]]
         * [[박준]] - 기장군
         * [[박정]] - 남구(부산)
         * [[전미선(배우)|전미선]] - 영도구 청학동 (종로) [[불로만숯불바베큐 청학점]]
         * [[채인]] - 서구(부산)
         * [[인호]] - 해운대구
         * [[하경]] - 동구(부산)
  • 블랙 클로버/110화 . . . . 10회 일치
          * "올라가주겠다"고 외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지만 사실 마땅히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한 상.
          * 아스타는 궁리를 거듭하다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상를 다시금 끌어내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법이 없다.
          * 반마법의 검에서 나오는 기를 자신의 몸에 수용해 다시 한 번 반마법 상가 된 아스타는 유트림 화산에 퍼져있는 천연의 마나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반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반마법 상말고는 수단이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 혼자 남은 아스타는 어떻게든 반마법 상를 끌어내려고 궁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단지 "죽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힘을 끌어낸 거였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럼 마그마에 무작정 뛰어들어보면 어떨까?"같은 말도 안 되는 발상도 나왔다. 하긴 그는 샐러맨더의 폭탄 속에도 뛰어든 적이 있으니 마그마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 결과 대성공. 기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록 반마법의 기는 뚜렷한 형상이 되어갔다. 마침내 라드로스전에서 나타났던 반마법을 두른 상가 되었다. 그런데... 이 상가 된 것은 좋은데, 마법의 흐름을 타고 날아가는 특성 때문인지 아스타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유트림 화산의 마나의 흐름을 따라서 무작정 날아가기 시작했다.
          * 바로 그 순간 그저 날아가던 아스타가 마법생물을 뺑소니치고 지나간다. 아스타가 다시금 그 상를 하자 노엘이 경악한다. 레오폴드는 아스타가 익힌 신필살기라고 생각하고 "블랙 아스타"라는 센스없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아스타는 폭주자동차 같은 상가 돼서 날아가는 중이라 듣지도 못한다.
          이미 정상에 도착해서 그들의 행를 목격한 야미는 "저 바이올런스 암컷 라이온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라며 공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냐고 질색한다. 그 옆의 [[샬롯 로즈레이]]는 오히려 그녀의 모습이야 말로 자신의 이상형인 듯 하다.
  • 서태화 . . . . 10회 일치
         | 이름 = 서화(徐泰華)
         '''서화'''([[1967년]] [[3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2007년 《[[싸움 (영화)|싸움]]》 ... 축산학과 교수 화 역
         * 2012년 [[TV조선]] 미니시리즈 《[[한반도 (드라마)|한반도]]》 ... 김성 역
         * 2012년 [[KBS2]]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 - 서화의 에스토니아 편
         * 2013년 [[올'리브]] 요리토크쇼 《서화의 누들샵》 ... MC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ppn&query=%EC%84%9C%ED%83%9C%ED%99%94&os=96333&ie=utf8&key=PeopleService 서화] - 네이버 인물검색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18716 서화] - 다음 인물백과
         *[https://www.youtube.com/channel/UCD2e8jIu5j5PWZ___JHAjYw] 요리보고 화보고
         [[분류:196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포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맨해튼 음악학교 동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성시경 . . . . 10회 일치
         성시경은 [[1979년]] [[4월 17일]]에 [[대한민국]]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1남 2녀 중 셋째로 어났다. 어린 시절, [[홍콩]]에서 산 적도 있었고, [[미국]]의 유명한 [[연예인]]인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MBC]] 《[[황자의 첫사랑]]》 O.S.T
         * 원곡 : [[서지와 아이들]]
         * 작곡 : 박근
         * 편곡 : 박근
         *원곡 : [[서지와 아이들]]
         * 작사 : [[서지]]
         * 작곡 : [[서지]]
         |[https://tv.naver.com/v/1359556 성시경 <양계>]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일본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순창군 출신]][[분류:토이]][[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1박 2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음악가]]
  • 신민아 . . . . 10회 일치
         ||<:><#000000> '''{{{#white 가족}}}''' ||<(><#ffffff> 부모님, 언니, [[유지]] ||
         버거 소녀로 유명한 배우 [[양미라]]와 이름이 비슷해, 신민아로 활등명을 개명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 [[이병헌]]의 여동생으로 첫 연기를 시작한 이래, 영화 [[화산고]]를 찍는 등 고교시절까지도 유망주로 잘 나갔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부정확한 발음과 국어책 읽는 연기로 드라마와 영화 모두 흥행에는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모델 출신 다운 늘씬한 몸매와 감각적인 패션센스, 볼륨있는 몸매와는 상반된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로 꾸준히 광고에 등장하다가 2008~2009년에는 드디어 포텐이 터져 cf퀸으로 떠올랐다. 2015~2017년의 [[AOA]] [[설현]] 정도 입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 진로의 소주 J광고부터 [[포텐]]이 만개하여 주점 앞에 광고를 위해 세워둔 등신대 입간판이 사라지는 등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귀여운 외모에 늘씬하고 굴곡있는 몸매로 베이글녀로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골반과 힙라인, 뒤가 주목받았다.
         한 때 CF쪽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유독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지,--드라마라고 아닌건 아닌데..-- 아니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낮은건지 출연한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말아먹었다'''. 그 덕분에 ''''한국 영화사 최고의 [[핵잠수함]]'''', ''''[[충무로]]의 흥행 [[부도]] [[수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의외로 이름난 드라마작가나 유명 [[영화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CF나 영화에 캐스팅되고 있어서 '[[스폰서]]가 빵빵하다',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라는 의견도 다수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공히 '히트작이 없음'에도, 'CF에 있어서는 가히 도배'를 하고 있는건 미스테리다. 흥행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이 [[봉규]] 항목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남배우로 봉규보다 ~~새로 떠오르는 국밥배우~~ ~~흥행전선 먹구름~~[[김강우]]와 더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다만 김강우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살아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아래 항목에서 볼 수 있는 절친들인 [[공효진]]과 [[임수정]]은 패셔니스타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력 또한 선보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연기력 및 연기의 폭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듯 보인다. 더구나 두 절친 못지않게 드라마나 영화 출연도 많았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건 확실히 아쉬운 부분. 물론 신민아 뿐 아니라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는 [[김희]]나, [[엽기적인 그녀]] 이후 [[도둑들]]이 성공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연기에서 좋지 못한 평을 들었던 [[전지현]]도 CF만 찍는다고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었다.
         지금까지 영화를 말아먹은 개수를 생각하면 [[김희]], [[고소영]] 라인을 그대로 따라갈 듯. 다만 둘에게는 그나마 영화, 드라마에서 대표작이 하나 씩은 있으니.... 더구나 이쪽은 내세울 흥행작조차 없다. 거기에 연기력까지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으니.. 그나마 그 CF 시장 마저 [[이민정]], [[수지(miss A)|수지]] 등 다른 여성 스타들이 야금야금 갉아들어오기 시작했다.
          * 13년 조선족 감독인 [[장률]]의 신작 [[경주(영화)|경주]]에 캐스팅 되었다. 이미 [[엄웅]]과 [[윤진서]] 뿐만이 아니라 비전문배우에게도 명연기를 끌어낸 감독인지라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2014년 인디 영화급으로 소규모 개봉을 해서 흥행에는 재미를 못 봤지만 연기는 호평을 들었다.
         ||2001||[[화산고]]||주연||유채이 役||김균||170만 명[* 공식기록 58만 명은 서울관객수이다. ] ||실패[* 사실 실패라고 보기 묘한게 국내에서 10억 정도 적자가 발생한건 맞지만, 수출로 메꾸고 오히려 더 남아서 2005년 속편 기획에 돌입했다가 회사 합병 등의 사정으로 엎어졌다. ] ||
         [[마왕(드라마)|마왕]]의 경우도 [[엄웅]]을 엄포스로 만들었던 부활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작품. [[부활(드라마)|부활]]이 나름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드라마 막판에는 어느 정도 시청률이 올라기에 이 작품 또한 이죽사처럼 엄청난 기대를 가졌던 작품이다. 부활의 엄웅마저 다시 합치고 또 궁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주지훈]]까지 합류한 이 작품. 역시 망했다. 완전 폭망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드라마 크게 뜨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신민아의 연기력이다. 사실 연기력이 남다른 남주 두 명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연기력은 드라마의 몰입도 자체를 떨어뜨렸고 이상하게도 부활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성이 더해져 역시 조용히 종영했다.
  • 월하노인 . . . . 10회 일치
         중국의 고전 『평광기(太平広記)』 159권, 『속유괴록(続幽怪録)』에서 인용된 「정혼점(定婚店)」에서 등장하는 신령. 인간이 어나면 한 쌍의 발에다가 붉은 끈을 묶어서 정혼을 시킨다고 한다. 이 효과는 엄청나서 서로 원수지간이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건 결국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 평광기 정혼점 =
         두릉(杜陵)에 위고(韋固)가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빨리 아내를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러 갈래로 구혼을 해봤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정관(貞観, 당종 때의 연호) 2년, 청하로 여행을 떠났을 때, 송성(宋城)의 남쪽에 있는 점(店,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먼저와 있던 손님에게 청하사마(清河司馬) 반방(潘昉)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점의 서쪽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의 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위고는 그것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밤에 외출을 나갔다. 달이 밝을 때였다.
         위고가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붉은 끈(赤縄)뿐이다. 이걸로 부부의 발을 묶어서, 어났을 때 몰래 서로를 이어주도록 되어있다. 비록 원수의 집안이건, 귀천(貴賎)의 격이 다르건, 하늘 끝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건, 오나라와 초나라의 다른 시골에 있건, 한 번 맺어지면 달아날 수 없다. 너의 발에도 이미 맺어져 있는 상대가 있으리라. 다른 곳에서 찾아도 이롭지 않다"
         또다시 십사년, 위고는 아버지의 음덕으로 상주의 군인(相州軍)이 되었다. 자사(刺史) 왕(王泰)는 위고를 사호연(司戸掾)에 앉혀 자신을 보좌하게 하였는데, 위고는 송사일에 유능하였다. 그리하여 왕는 자신의 딸을 위고의 아내로 삼도록 했다. 나이는 열 여섯, 일곱이고, 용모는 아름다웠다. 위고는 아주 행복하였다.
         훗날 아들 곤(鯤)을 낳았는데 안문수(雁門太守)가 되었고, 원군 부인(太原郡太夫人)으로 봉해졌다. 저 세상에서 몰래 정해진 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송성의 관리가 이를 듣고, 그 점을 「정혼점(定婚店)」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 유민상(개그맨) . . . . 10회 일치
         || '''신체''' ||<(> 187.9cm, 138kg[* JTBC 최고의 사랑에서 몸무게를 재봤는데 134.5kg이 나왔다. 그리고 최근 맛녀석에서 측정한 바 2킬로그램이 더 쪘다... 그리고 8월 13일에 방송한 [[개그 콘서트]] [[퀴즈카페]]에서도 [[서훈]]이 "1, 3, 6 너 몸무게라고" 언급했다. 최근까지도 136kg라고 언급했으나 최근 아는 형님에서 ‘나이도 체중도 불혹’이란 식으로 140을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공복자들에서 유민상의 체중을 재 본 결과 최고몸무게인 145.2kg이 떴다..그 후 공복으로 인하여 142kg이 되었다. 공복후 방송에서 체중이 더 빠졌다고 언급했는데 138kg이다.] ||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20기 [[개그맨]]이자 [[유튜버]].[* 주로 게임 영상을 올린다. 특히 그가 즐겨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녹화하여 업로드한다.--그런데 게임 녹화할 때 본인 얼굴이 아니라 [[개]]([[시바견]])의 얼굴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은 캠없이 방송했다가 [[돼지]]얼굴이 나온다--] [[1979년]] [[10월 9일]] [[한글날]]에 어났다. 187.9cm,[* 프로필상 키는 185cm이나, 실제로는 187.9cm이다.비타민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을때 187.9cm가 나왔었다. 본인이 방송에서 자기 키 얘기를 할때 어떤 때는 188이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187이라고 했다가 하면서 약간 왔다갔다 하지만 그 외의 키를 말한 적은 없으므로 187~188 사이인 것은 확실하다. [[라디오 스타]]에서 185~6cm인 김구라와 대놓고 키로 비교했을때 더 컸으며, 개콘에서 대표 장신 개그맨 [[양상국]]과 서있을 때도 보면 약간 더 컸고, 이들보다 약간 더 큰 류근지와 있을때는 비슷해보이지만 몸매상 팔다리가 가는 류근지가 실제보다 더 커보이는 영향이 있어서 그런거지 유민상이 좀 더 크다. 이미 2010년에 달인에서 김병만이 유민상의 정수리 너머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하자, 류담이 "참고로 저 분 187cm입니다"~~[[김병만]] : 뭐? 몸무게가?~~ 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뚱뚱한 개그맨으로 유명한 [[김준현]], [[류담]], [[문세윤]] 같은 개그맨들이 옆에 있어도 작아보이게 만들 만큼~~ 거대하다. 귀여운 의미의 뚱뚱함이라기보다 씨름선수, 그것도 백두급 선수들과 동급 체격이다.] 140kg에 육박하는 거구.
         어쨌든 덕분에 공식적으로 러브라인을 이어주려는 어떤 시도도 아예 없어진 상이며, 맛있는 녀석들에서 일반인 시청자와 썸을 타게 해주려는 기획을 한 두 번 보여주고는 끝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연시]]를 하며 흐뭇하게 만족하는 중...
         2014년에 들어서는 요즘 세를 풍자한 정치 풍자 코너를 맡고 있다. 정치풍자 개그를 했던 개그맨들이 개콘에서 퇴출된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치 풍자 코너를 계속하고 있으며 [[민상토론]], [[대통형]] 등 다양한 코너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민상토론|한 때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카더라]].~~
         대표적으로 [[대통형]]이나 [[민상토론]]에서는 [[서훈]] 같은 인물들에게 늘 당하는 설정으로 나오고, 심지어는 [[힘을 내요! 슈퍼 뚱맨|영웅이 되어도 늘 악인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모든 고통을 다 당한다든가 억울한 사람으로 몰리게 되는 설정도 있다. [[퀴즈카페]]에서도 서훈과 [[박소라(코미디언)|박소라]]한테 [[비만]]이나 [[모솔로]] 같은 약점으로 놀림받았다.
         현재 유민상의 트게더와 트위치 채널은 폐쇄된 상며 새로운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X2Wxlb7OE0|방송]]을 열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업적 점수 9200점으로 라이트 유저 수준은 확실히 넘는데, 하이잘 서버는 얼라이언스 진영에, 아즈샤라 서버는 호드 진영에 주캐가 있다. 연예계 대표 [[와저씨]]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블리자드]]에서도 홍보 겸 감사 겸 소장판을 [[군단(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군단 확장팩]] 때까지는 보내줬다고. 그런데 2018년 8월 [[격전의 아제로스]] 때는 안 보낸 모양. 게임 유튜버 [[김기열]]에게 '블리자드가 나를 버렸다'고 농반진반 언급한 바 있다. 그렇긴 해도 격아 소장판 한국 버전에 문제가 많은 모양. 스토리 소설도 한국어 번역이 안돼있고 OST도 원래 그 전 확장팩까진 DVD였던 것이 다운로드 키만 제공된다. 아울러 북미판에는 들어있는 110레벨 부스트가 빠져있다. 특전 영상, 마우스 패드, 원화집 어느 것도 없다. 소장판 유저들에게 제공되는 '동맹 종족 영입 퀘스트'도 문제가 생겨 진행이 안되는 상. 유민상에게 특별히 신경을 안쓴 게 아니라 그냥 소장판 자체에 신경을 안 쓴 모양.
          * 2016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최우수상[* [[http://anitown.net/humor/1360369|#]] 당시 여기서 주차비 문제를 제기했고 현재는 해결된 상]
  • 은혼/625화 . . . . 10회 일치
          그는 신의 뿔 따윈 얼마든지 내어주겠다며 그들이 황야로 만들어온 별과 꺾어온 생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키니가 싸우기 위해 어나 살아가듯, 그들이 꺾어버린 생명들 또한 무언가를 위해 피었을 생명일 거라며 그런 사실을 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고 말한다.
          * 다키니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전쟁만을 위해 살아가던 그들이 "전설도 아무 것도 없는 생물"들에게 당할 수 있는지 이치를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신의 뿔이 남기고 간 말, "우리들이 꺾어버린 생명 또한 무언가를 위해서 꽃 핀 생명"이란 말이 떠오른다. 싸우기 위해 어나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이 공포를 자아내고 승리를 취하는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싸우기 위해 어난 것이 아닌 그들은, 어째서 자신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가?
          >우리는 싸우기 위해 어나서 싸우기 위해 살아왔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무엇을 위해 어나서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싸우기위해 어나지 않은 지구인들이
          * [[사카타 긴토키]]를 중심으로 반격을 펼쳐온 가부키쵸 주민들은 전황이 차츰 바뀌어감을 체감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적들이 지휘계통을 잃고 사기가 꺾여 도주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당장 전투에서는 이기고 포위를 풀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체에 의해 포위된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 가부키쵸 하나만 놓고 봐도 마을 내부로 진입한 적들이 후퇴하는 것일 뿐, 이들이 다시 마을 밖의 본대와 합류한다면 원상로 돌아갈 뿐이다. 여전히 마을은 포위되어 있고 코끼리한테 바늘을 찔러넣은 정도의 반격을 한 것 밖에 안 된다.
          * 오우가이에겐 고집이 있다. 그는 다키니이며 싸우기 위해 어나 싸우기 위해 살아간다. 두려운 건 없고 그런게 있다면 꺾으면 그만이다. 또 하나의 별이 피운 생명을 꺾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녀석이 연하게 그의 앞을 지나쳐 간다. 오우가이는 듣지 못했냐는 말과 함께 가차없이 철괴를 머리위로 떨어뜨린다. 도망치는 놈은 자신이 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지 익숙하다. 오우가이는 분명 그를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짓밟인 꽃에 가슴아파하는 덩치 큰 사내의 머리 위에는, 수상한 꽃이 피어있다. 그것은 분명 수 년전, 그의 뿔이 꺾였을 당시의... 기생종의 식물이 뇌에 박혀 상가 바뀌었던...
  • 이경영(1960) . . . . 10회 일치
         대한민국 국적의 배우. [[196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중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데뷔 이후 줄곧 '충남대 의대 중퇴'의 학력으로 알려져 있어서 나름 고학력 엘리트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신정아]]의 [[학력위조]] 사건 후에 의대가 아닌 상대 중퇴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본인은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꿈이 의사였다'고 한 것이 '의대 출신'으로 기사화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으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 2002년 7월 30일: 보석금 700만 원을 내고 석방되어 불구속상에서 재판 받게 됨
         그리고 2004년으로부터 10년 넘게 이경영은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에서 [[출연금지 연예인|출연금지]] 처분을 받았다. MBC에서는 2014년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112602|출연정지가 해제]]되었으나 KBS에서는 아직도 출연정지 상이다. 이 역시 이경영이 2004년에 무죄판결받았다는 것이 오보라는 것을 방증해준다.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여자문제로 출연금지당했으나 영화로 재기한 선배 [[송영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셈.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남영동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영화)|26년]]》, 《[[베를린(영화)|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일본 영화인 《외사경찰》(外事警察 その男に騙されるな)에서 까메오이면서 악역인 북한군 장교로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에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는 출연금지 상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블 빼면 영화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송영창]]이 있다. 다만 이분은 영화 대신 주로 연극과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거의 충무로 이경영급으로 다작 중이다. 이유도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쪽에선 어느 정도 입체감이 있는 중년 역할을 맡을 배우가 그리 많지 않고, 진중한 역부터 코믹 역까지 폭이 넓기 때문.],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 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2012||[[부러진 화살]]||이우 판사|| 3,460,212 ||
         ||당신은 누구시길래||동호|| ||
  • 이경희 (1880년) . . . . 10회 일치
         지오 이경희는 [[1880년]](고종 17년) [[6월 11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무리(현,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서변동)에서 아버지 이병두(李柄斗) 어머니 경주 최씨의 아들로 어났다. 동생 [[이강희 (독립운동가)|이강희]]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증직|증]][[영의정]](贈領議政)에 [[추증]]된 공도공(恭度公) [[이문화|오천 이문화]](烏川 李文和)의 19대손이며,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이주 (임란 의병장)|암 이주]](苔巖 李李輈)의 11대손이다.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로 운반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영]](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좌절을 당하자,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계획하였다. 그러다 [[지린 성]](吉林省)에 [[김원봉]](金元鳳), [[김시현]], 유시(柳時泰), 이성우(李成宇), 곽경(郭敬), [[김지섭]](金祉燮) 등이 찾아오자 이들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의 조직에 참여하고, 가입하였다. 이후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자금과 무기를 마련하는데 노력했다.
         [[1923년]] [[의열단]] 단원으로 비밀거사를 준비하여 5월의거를 계획, 국내에 잠입하였다. [[1923년]] [[김원봉]] 의 지령아래 [[김지섭]], [[김시현]](金時顯), 유시(柳時泰), 홍종우(洪鍾佑), 황옥(黃鈺) 등과 모의하여 [[중국]]과 [[만주]]로부터 무역 목적으로 [[안둥현]]에서 [[쌀가마]]에 숨겨서 국내로 반입해온 폭탄 36개, 권총 13정, 폭탄장치용시계 6개와 뇌관 여러정, 수류탄 10발,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서]](革命宣言書)의 인쇄 사본 및 [[조선총독부]] 관공리에 대한 투항권고 격문 사본 2,000매 등을 반입, [[1923년]] [[3월 15일]] 이를 국내에 반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평양 전쟁 전후 ====
         시신은 [[대구시]] 무 동변동(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가람봉에 안장되었다.
         * [[유시]]
         [[분류:1880년 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교육인]] <!-- 교육자 -->[[분류: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분류:신민회]]
  • 이광수(배우) . . . . 10회 일치
         '''아시아 프린스, [[런닝맨]]의 최대 수혜자[* 런닝맨 고정 7인 중 프로그램 시작 당시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현재는 런닝맨의 실세가 되었다. 특히 해외 팬들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 그에 걸맞게 중국 최대의 SNS인 [[웨이보]] 팔로워 수만 봐도 약 830만 명인데, 웨이보 한류 스타 순위 TOP 100명 중에 12등이다. 런닝맨 내에서도 팔로워가 두 번째로 많은 송지효와 200만 이상 차이가 난다.][* 런닝맨이 시작하던 2010년 7월 기준, [[유재석]]-[[지석진]]은 이미 십수년간 대중에게 인정받은 톱 개그맨이자 MC였고, [[김종국]]은 가수로서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X맨을 찾아라]]과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에서도 맹활약한 스타였다. [[하하(가수)|하하]] 역시 X맨,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고, [[송지효]]는 배우 경력이 꽤 길고 패밀리가 떴다 등의 예능 출연 경험 등이 있었다. 이들에 비해 [[개리(리쌍)|개리]]와 이광수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개리의 경우 그룹 [[리쌍]]은 많은 히트곡과 힙합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올린 명성, [[길(리쌍)|길]]의 무한도전 출연 등으로 그룹 자체는 유명했지만 개리 개인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이광수는 시청률 20%를 넘겼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요 조연으로 나와 갓 이름을 알렸던 때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화제성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이광수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상였던 것.]'''
         그렇다고 코믹 연기를 아예 버린 건 아니고 특유의 예능 캐릭터를 업그레이드한 연기로 [[탐정: 리턴즈]]에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면서 이광수 덕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여까지의 이광수 주연 영화 중 가장 성공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양의 후예]]로 한류스타가 된 송중기나 [[또 오해영]]으로 신흥 한류스타가 된 [[서현진(배우)|서현진]]도 해외 팬미팅에서 자주 언급하곤 한다.
         또 배우로서의 친한 연예인으로는 연예계의 사조직 멤버로는 [[배성우]], [[조인성]], [[송중기]], [[임주환]],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차현]], [[박보검]]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송중기하고는 동갑내기 절친인데, 런닝맨 때부터 인연이 이뤄졌다. 주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맛집이나 영화 시사회, 팬미팅, 콘서트에 자주 간다고.
         또한 경쟁 프로인 [[1박 2일]] 일부 멤버들과도 친한데 차현은 김종국의 절친인 동시에 본인 역시 차현 라인에 속할 정도로 친하다. [[윤시윤]]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 함께 출연하였다. 가끔 1박2일을 케이블 방송으로 모니터링 한다고 언급했다.
         ||<|2> 2014년 || [[DRAMAcube]] || [[시크릿 러브]] || 이양 || 주연 ||
         ||<|5> 2016년 ||<|2> [[KBS]] || [[양의 후예]] || 사격게임장 주인 || 특별출연 ||
          한편 방송에서 이광수의 '꽃뱀' 발언을 자막으로는 '사기꾼'으로 순화한 것을 근거로 제작진 역시 방송에 부적절하다 생각하고 순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새끼'나 '돌아이'같은 발언 역시 자막으로 순화하여 내보내며, '''정말로 방송에 나가면 안되겠다 싶은 수위의 욕설은 애초에 [[소음 검열]]을 해버린다'''. 즉 제작진이 해당 발언을 순화시켰다해도 결국 자막에서 순화시키는 정도면 충분할 정도의 수위[* 상기한 '새끼'나 '돌아이', '등신'같은 욕설.]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으며, 갖은 과격한 발언을 내버려두고 '꽃뱀' 발언만 핀포인트로 문제삼는 것은 모순적인 도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광수나 런닝맨 제작진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6월 8일에 촬영된 [[런닝맨 패밀리 패키지]]에서 이광수가 몸상가 안좋은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낯빛도 안좋았고, 식욕도 크게 없었는지 다들 점심 먹을 때 혼자 과일만 먹고 말았다] "촬영 직전에 '''갑작스런 마음고생으로''' 5kg이 빠졌다"면서 전날 링거도 맞았다는 말이 나왔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광수에게 갑작스레 날아온 고생거리는 해당 논란 밖에 없다. 뜬금없는 사형 논란에 꽤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근데 이광수가 대단한것은 그런 마음고생을 했으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실제로 그런 논란이 있었을때 많은 사람들이 이광수가 혹시 기가 죽어가지고 예능감이 죽는 것이 아닌가 많이 걱정을 했지만 여전히 죽지않은 예능감을 보여주었다.방송보면 밥도 잘 안먹고 마음고생을 한게 보이긴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이광수의 예능에 대한 프로의식을 보여준다.
  • 이재용(배우) . . . . 10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강원도]] [[춘천시]] 생이지만 성장한 곳은 [[철학과]]에 다녔다. 그래서 평소 말투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극중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배역을 맡을 때가 종종 있다.
          * 또 재미난 사실 하나는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나 양의 후예, 영화 강철비 등 여러 작품에서 악질 북한 정치가로 여러번 출연했으며 작중 모두 남한에서 사살되거나 체포되는 등의 최후를 정말 많이 맞는다.
         || 2016~17년 || KBS || [[저 하늘에 양이]] || 남준 || ||
         ||<|5> 2016년 || KBS || [[양의 후예]] || 최지호 || 특별출연 ||
         || SBS || [[주군의 양]] || 이용재 || ||
         || KBS || [[로맨스 타운]] || 강원 || ||
         || SBS || [[양을 삼켜라]] || 현기상 || ||
         ||<|3> 2007년 ||<|2> SBS || [[로비스트(2007)|로비스트]] || 장성 || ||
         || 2007~08년 || MBC || [[이산(드라마)|이산]] || 장우 || ||
  • 이재황(배우) . . . . 10회 일치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 [[2003년]] || [[문화방송|MBC]] || [[아르곤(MBC)|아르곤]] || 최곤 || 국방홍보원 공동제작 드라마 ||
         ||<|2> 2005년 || [[SBS]] || [[그 여름의 풍]] || 한지하[* 군 제대작, 극 중에서 이름이 세 개인 인물이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은 한지민, 부모님 이혼 후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한지하, 본인이 외국에서 지은 이름은 제임스 한] || 군 제대작 ||
         || [[2013년]]~[[2014년]] || [[문화방송|MBC]] || [[내 손을 잡아(드라마)|내 손을 잡아]] || 민주원[* 레알커플인 박시은-진현 커플의 함께 출연이 더 화제. 커플장면 찍다가 눈치보는 장면이 해피타임을 통해 방송됐다. 시청률이 좋아 10회 연장했다] || ||
         || 2005년 || [[SBS 연기대상]] || 뉴스타상 || 그 여름의 풍, 다이아몬드의 눈물 ||
          * 고1까지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집에선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서지와 아이들을 접한 후 가요에 눈을 떠 2년동안 가수 준비를 했다가 불발, 우여곡절 끝에 연기자로 데뷔했다고 한다.
          * 두 명의 [[정다빈]]과 모두 작품을 했다. 2005년에 《그 여름의 풍》에서 故 [[정다빈(1980)|정다빈]]과 작품 한 후 바로 차기작인 《다이아몬드의 눈물》에서 동명이인이자 그 당시엔 아역이었던 [[정다빈(2000)|정다빈]]과 함께 연기했다.
          * [[노주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오남매》,《그 여름의 풍》],[[박정수(배우)|박정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다이아몬드의 눈물》,《내 손을 잡아》],[[양금석]][* 《오남매》,《다이아몬드의 눈물》,《이브의 사랑》],[[금보라]][* 《아내의 유혹》,《내 손을 잡아》,《이브의 사랑》] 배우들과는 각각 세 작품씩 호흡을 맞췄고, [[채림]][* 《카이스트》, 《지금은 연애중》],[[김민정(1982)|김민정]][* 《카이스트 시즌2》,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홍수현]][* 《카이스트 시즌2》,《천사의 유혹》], [[권오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녹번동 삼형제》],[[최윤영(1975)|최윤영]][*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연애중》],[[정찬]][* 《그 여름의 풍》,《웃어요 엄마》],[[윤해영]][* 《다이아몬드의 눈물》,《너라서 좋아》],이선진[*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김형범(배우)|김형범]][*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 [[정애리(배우)|정애리]][* 《아내의 유혹》,《역류》], [[오영실]][* 《아내의 유혹》,《공주가 돌아왔다》], [[김용건]][* 《아내의 유혹》,《웃어요 엄마》], [[진현]][* 《천사의 유혹》,《내 손을 잡아》], [[배그린]][* 《웃어요 엄마》,《내 손을 잡아》],[[안석환]][* 《너라서 좋아》,《내 손을 잡아》], 임도윤[* 《이브의 사랑》,《역류》]등 배우들과는 각각 두 작품씩 호흡을 맞췄다.
  • 이준(배우) . . . . 10회 일치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호(PD)|김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snl]]에도 출연했다. 무용과 출신답게 콩트 블랙스완에서 그만의 변스럽고 똘끼있는 예능감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tvN [[갑동이]]라는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류오 역을 맡아 여기서도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소름끼치는 장면을 양산해냈다.
         ||<|2> 2014년 || tvN || [[갑동이]] || 류오 || 아역 [[윤찬영]] ||
         || 국 || [[The legal wife]] || 화보모델 || 특별출연 ||
  • 정인숙 (1945년) . . . . 10회 일치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남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남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반 만에 병사하고, 살아남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영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을 만난 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데, 유독 정인숙을 좋아했던 정일권은 그녀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다가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 뒤 그녀가 임신사실을 알리자 정일권은 낙를 권유하려다가 대신 애를 낳으라고 하였다. 정인숙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산하였다.
         시신은 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진 뒤 공개 부검하였다. 부검 과정에서 낙 경험이 몇번 있었던 것이 알려졌고 기타 사항은 불문에 붙여졌다. 그의 오빠 정종욱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퇴원과 동시에 구속되었다. 정인숙은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후일 그의 부모 역시 그의 묘소 근처에 안장되었다.
         당시 정치 주요인사 수십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지도층의 부도덕성은 여론과 시민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세간에는 '육박전' 이란 화두가 나돌았다. 정인숙 문제 때문에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실여부를 추궁했고, 이것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박정희는 육영수에게 재떨이를 던졌는데 이것이 얼굴에 맞았고, 얼마 뒤 육영수의 눈에 푸른 멍이 든 것을 각료들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목격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진 것을 회화화되어 육박전이라는 풍자용어가 확산되었다. 사건 확산과 자신이 동침한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어났다는 점 등 여러가지 문제로 박정희의 호출에 무릎을 꿇은 정일권은 자신은 정인숙과 사귀긴 했으나 죽이지는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1971년]]과 같은 해에 정일권을 만난 재미언론인 문명자는 정일권에게 "문 기자, 나는 정인숙과 딱 한번 같이 잤는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일 니가 없소. 나는 이미 불임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ref name="kum110"/> 그러나 정일권이 불임 수술을 한 상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77년]] 재혼한 부인 사이에 2남매가 출생했기 때문이다. [[문명자]]는 이 글에서 정일권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정일권이 먼저 불임수술을 풀었다고 말해 그만두었다고 밝히고 있다.<ref>문명자, 문명자 회고록: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2), 대한매일 1999년 10월 6일자</ref>
         [[분류:1945년 어남]][[분류:1970년 죽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화기에 죽은 사람]][[분류:테러 피해자]][[분류:범죄 피해자]][[분류:대한민국 사람]]
  • 정재학 (1856년) . . . . 10회 일치
         '''정재학''' (鄭在學, 1858~1940)은 [[대한민국]] [[금융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은행산업의 대부다 .<ref name="ReferenceA">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에서는 [[은행]] 경영진들이 [[관료]]나 [[왕실]] 지방 토호 가운데에서 배출됐지만 가난한 집에서 어나 맨주먹으로 일군 자금으로 55세 무렵 [[은행장]]에 오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ref name="ReferenceB">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667~670</ref>
         [[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영일) 정씨 정석은과 손남산 사이의 1남 3녀 중 외동아들로 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출처|날짜=2015-1-12|1883년 이남숙(1864년생)과 결혼 한 뒤 1885년 장남 정응원이 어나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다.}} 아내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근검절약 해오면서 부인에게 옷 한 벌도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낡아 찢어진 아내의 속옷을 발견하곤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0</ref>
         큰돈을 벌 결심을 한 뒤 명 장사를 택했다. 옛 주인을 찾아가 1년간 천 냥을 빌려 달라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원산으로 달려간 그는 3년 만에 갚을 돈은 물론 장사 밑천도 두둑이 마련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ref name="ReferenceB"/><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1</ref>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 정재학 행장은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먼 친척의 아들을 위해 기꺼이 진학추천서를 써줬다.
         이 같은 일본인 임원의 침투전략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한국인은행은 일본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정헌 [[고려대]] 교수는 "어미새(국가)가 둥지를 틀고 품어줘야 새끼(자본주의)가 알을 깨고 나와 먹을 공급(은행)받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의 둥지를 독점한 뻐꾸기(총독부 산하 특수은행과 일본인은행)는 둥지의 원주인(조선인은행)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죽인다. 식민지자본주의 조선인은행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ref>정헌, <<한성은행의 경영권 대주주 구성추이와 일본인은행화과정>> 한국사연구 P148~149 2010년</ref>
         최대주주 자리를 잃은 [[정재학]]은 1940년 4월2일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f>동아일보 1940년 4월 9일 4면 합은두취사거</ref> [[정재학]]의 장례식은 1940년 4월8일 거행됐다. 당시 20대의 자동차가 영구차를 뒸따랐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부호들이 대거 영면을 빌기 위해 찾아들었다고 전해진다. [[고승제]] 박사는 " 당시 그의 영구차 행렬 가운데 '고통정대부연일정씨재학공지구 ( 故通政大夫 延日鄭氏在學公之柩 )란 [[영건]](靈巾)이 내걸렸고 이는 상민으로 어난 정재학이 양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0</ref>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독립 요구는 불온사상이며 만세시위는 폭도들의 소요 사라는 일제의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폭동 진압을 목적으로 한 대구자제단을 창립하는 데 참여했다. [[박중양]]이 단장을 맡은 이 단체는 민간의 수상한 활동을 정탐하여 경찰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고, 정재학은 발기인 및 평의원으로 참가하였으며 개인 재산으로 경비도 지원했다.
         [[분류:1856년 어남]][[분류:1940년 죽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차선우 . . . . 10회 일치
         ||<:> 드라마 ||<:> [[MBC]] ||<:> [[앵그리맘]] ||<:> 홍상 역 ||<:> [* [[2015년]]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의 차기작, '[[앵그리맘]]'에 캐스팅 확정되었다. 배역 이름은 '홍상'. 명성재단 사학재벌 홍회장의 아들로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학교 내에서 일진짱도 움직이는 교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한다. ~~인소세요?~~ 한마디로 흔히 말하는 [[흑막]] 또는 [[최종보스]]. ~~근데 생김새가 위엄이 없다~~ [[김희선]], [[김유정(배우)|김유정]], [[지현우]], [[박수아|리지]] 등과 호흡을 맞춘다고 한다. ~~돈많고 재수없고 위엄있는 캐릭터~~ 그 중에서도 문제아와 입바른 소리하는 아이로 [[김유정(배우)|김유정]]과 많이 부딪힌다고 하지만 작중에서 계속 부딪히는 건 [[김희선]]이다. ] ||
         ||<:> 드라마 ||<:> [[KBS2]] || [[맨홀 - 이상한 나라의 필]] ||<:> 조석 역 ||<:> 첫 지상파 주연 ||
         == 방송 도 논란 ==
         2016년 7월,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는데 [[셰프]]들을 향한 과도한 지적 및 탁재훈에게 음식으로 어그로를 끄는 등 도 논란이 일었다.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문을 통해서 사과까지 하였고 바로의 사과문과 동시에 냉부해 제작진들이 당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해명까지 하였다.
          * [[소녀시대]], 그중에서도 [[연]] 짱팬이다. 나오는 예능마다 하도 언급하고 소시 춤을 춰서 팬들의 쿠크가 깨진다... 안습. 팬미팅에서도 "전 연 선배님이 좋아요."라 발언. 산들 曰 "제가 혼내줄게요 여러분" 숙소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모시고 있다고(...) ~~너도 현직 아이돌이야..~~ 결국 팬싸인회에서 팬들에게 선물로 소녀시대 CD를 받았다. ~~그리고 2014년 6월 19일 연이 열애를 인정했다! 본격_바로_멘탈_깨지는_소리~~ 언제부터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후(2017년 기준)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탈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이상 차소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는 아니게 된 듯.)
          * 데뷔 1년차 될 때쯤에 [[B1A4|비포]]가 예능감 없다는 소리에도 그나마 [[산들]]과 티격격대며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광산같은 엽사를 남기던 멤버가 바로 얘. 그런데 2014년부터 급격히 성격이 바뀐것같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탓인지. 성숙해졌달까, 옛날 리얼리티에서 ~~다람쥐공주 춤을 추는~~ 까부는 행동은 요즘 자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주먹을 부르는 애교와 외계어와 조증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별명이 나대미, 차나댐인 만큼 요즘도 주목 받을땐 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도 원래 바로는 학생 차선우 시절에는 조용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였다고 했으니. ~~멤버들이 말한 A형의 B형화 B형의 A형화가 괜히 한 말은 아닌 것같다(...)~~
          * 생일 인터뷰에서 언급한 몽이 2가지 이다. 하얀 강아지가 바로의 어머니를 계속 쫒아왔다는 것,[* 2012년 당시의 생일 인터뷰 참조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244782&ctg=|#]] ] 그리고 바로의 어머니께서 엄청 크고 하얀 무를 뽑으셨다는 것[* 2016년 당시의 생일 인터뷰 참조 [[http://www.focus.kr/view.php?key=2016090500215226146|#]]]이다.
  • 천호진 . . . . 10회 일치
         | 서수 역
         | 장수 역
         | 서광
         | 최기
         | 조식 역
         | 민준
         | 성 아빠
         * 1992년 [[해제과]] 내고을 강호박
         |현재 요약 아래= [[황금빛 내 인생]] 서수 역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영양 천씨]][[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KBS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분류:KBS 연기대상 남자 우수연기상 수상자]]
  • 청도군 . . . . 10회 일치
         [[고려]] 시대였던 940년(조 23) 오악현, 형산현, 소산현을 통폐합하여 청도군이라 하였다가 밀성군에 속하게 하였다. 1366년(공민왕 15)에 청도군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1405년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종 때 좌우도로 분할할 때 경상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였고 1433년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하였다가 1458년 대구진에 속하였다. 1896년(건양 1) 13도제(道制) 실시로 청도군이 되었다.
         --[[경상도]]답게-- [[경상도 사투리]]. 단, 지리상으로는 [[경상북도]]에 속해 있으나 경북의 최남단에 위치한데다 [[경상남도]]와 접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경북 방언에 비교해 볼 때 억양과 강세가 그것보다 좀 더 뒤에 있는 편이다. 경남 방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북 방언을 구사한다. 쉽게 비유해서 [[안동시]]에 사는 사람이 이 곳 청도군에 놀러왔을 때 꼭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카더라]] 식. 그렇다고 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사람들이 듣고 경남권 억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양만 들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경북/경남권인 거 [[악센트]]를 들어보면 딱 알 수가 있다. 2의 E승, 2의 2승, E의 E승, E의 2승의 위엄.(...) 엄밀히는 [[대구광역시]]와 더 가까운 형의 방언이지만, 저런 [[이유]]로 딱히 다른 경북 지역만큼 경남 방언과의 차이를 느껴 어색해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물론 방언 특징상 사람마다 편차는 큰 편.
         사실 이 사건의 경우, 사회의 민주적 의식기반이 없는 상에서 민주주의적 제도를 시행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사례로써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해당 사건들의 배경으로 금권, 관권, 부정선거가 판치는 시기를 겪었던 노인층의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실제로 금품을 살포한 후보자 및 선거본부가 제일 나쁜 놈들인 건 분명하지만, 선거라고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런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에게 '''뭔가 없냐'''고 채근하고, 금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선거에 왜 나왔느냐'''고 힐문하기까지 했다는 지역주민들의 책임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평소에는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범죄자로 전락하여 경찰 수사를 받게 된 심리적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렀다는 것. 또한, 이들이 자살에 이르게 된 심리적 압박감의 주요한 원인 중 '''자신을 통해 금품을 전달받은 주변 사람들이 물게 된 과료'''가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으레 선거때면 나눠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별 죄책감 없이 십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고받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나면서 50배의 과료를 물게 된 것. 10만원의 50배인 500만원은 도시에서도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데, 농가 입장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돈이 된다,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원만하게 유지되던 지역의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금품을 받은 주변 주민들 중에는 돈을 전달한 자살자를 상대로 '''"네가 준 걸 받았다가 과료를 내게 되었으니 네 책임이다. 그러니 과료는 네가 물어내라"'''고 따지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잘못을 따진다면 당연히 돈 주고 받은 사람 모두가 잘못한 것이다) 어리석음과 도덕적 해이가 범죄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귀한 생명마저 잃게 된 슬픈 상황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김준(정치인)|김준]]
  • 최종원(국회의원) . . . . 10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70000B><#FFFFFF><-5><:>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상징.png|width=40]]]] {{{#70000B ''' [[대한민국|{{{#70000B ''' 대한민국 ''' }}}]] [[대한민국 국회|{{{#70000B ''' 국회'''}}}]][[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의원 ''' }}}]] ([[강원도|{{{#70000B ''' 강원도 '''}}}]] [[백시|{{{#70000B ''' 백시 ''' }}}]] {{{#70000B ''' · ''' }}} [[영월군|{{{#70000B ''' 영월군 ''' }}}]] {{{#70000B ''' · ''' }}} [[평창군|{{{#70000B ''' 평창군 ''' }}}]] {{{#70000B ''' · ''' }}} [[정선군|{{{#70000B ''' 정선군 ''' }}}]]) ''' }}} ||
         ||<#878787> '''{{{#EEE156 출생}}}''' ||<(> 1950년 1월 27일([[강원도]] [[백시]]) ||
         [[강원도]] [[백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어나 백공업고등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함탄광에서 탄 분석 기사로 일했다. 1974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정영애와 결혼했다. 서울예술대학교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졸업. 1986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1998년 고려대학교 산업정책대학원 졸업. 경운대학교 학사라고도 한다.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학창시절 하위권 성적이 공개되었는데 공부 안하고 놀기 좋아했던것을 인정하며 웃어 넘겼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과 가까운데 국회의원 경력도 있다.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7.28 재보궐선거]] 강원도 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 민주당 후보로 나서 55.01%(35271표)의 득표율을 기록, 44.98%(28841표)의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2008년)|민주당]], [[민주통합당]])을 역임하였다.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을 맡았던 [[유인촌]]과 마찰을 빚고 대립을 세우곤 했다.[* [[애초에]] 국회 입성을 앞두고 유인촌 장관과 마주치는걸 엄청나게 별렀는데 '''"유인촌 장관은 나랑 만나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라는 막말을 남겼을 정도(...) 실제로 당선 후 두 달 남짓 지난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예상대로 거하게 몰아붙였다.] 다만 [[19대 총선]]엔 출마하지 않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상반기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강원 백·영월·평창·정선) || '''[[민주당(2008년)|민주당]]''' || '''32,661 (55.3%)''' || '''당선 (1위)''' || [* 전임자 [[이광재]] 강원도지사 출마]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50년 출생]][[분류:백시 출신 인물]]
  • 한확 . . . . 10회 일치
         '''한확'''(韓確, [[1400년]]<ref>1403년생 설도 있다.</ref> ~ [[1456년]] [[음력 9월 11일]])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외척, 외교관이며 [[명나라]]의 문신이다.<ref>{{브리니커|b24h3077a|한확}}</ref>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며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조선 덕종|덕종]]의 비이자 [[월산대군]]· [[조선 성종|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와 [[조선 세종|세종]]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의 부인인 [[정선군부인]]의 친정아버지이다.
         [[음서 제도|음서]]로 관직에 올라 [[명나라]]의 [[영락제]]의 후궁으로 간택된 누이 여비를 호송하였다. [[1417년]](종 17년) [[명나라]]의 초청을 받고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나라]]에 건너가서 광록시 소경의 벼슬을 지냈으며, 귀국후 판한성부사, 판병조사, 판이조사를 거쳐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다. [[계유정난]]을 도운 공로로 정난공신 1등과 [[세조 찬위]]를 도운 공로로 좌익공신 1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성부원군에 봉작되었다가 서원부원군으로 개봉되었다.
         간이재 한확은 [[1400년]](정종 2년) 녹사를 지내고 [[증직|증]]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녕]](韓寧)의 손자이며,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를 지내고 [[증직|증]] [[의정부]][[영의정]] 서성부원군에 추증된 [[한영정]](韓永矴)의 아들로 어났다. 어머니 증 정경부인 의성 김씨는 의성군 양소공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음서 제도|음보]]로 출사하여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다. [[1417년]](종 17년) 가을 넷째누이 [[여비 한씨]]가 영락제의 후궁으로 낙점되자 [[명나라]]에 파견되는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녹사(錄事) 김덕장(金德章)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는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여 [[연경]]에 갔다가 그해 말 귀국하였다. 그뒤 누나가 여비로 책봉되자, [[명나라]]의 초청을 받고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에 가서 [[명나라]]의 [[봉의대부]]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되었다.
         [[1418년]] 종의 양위로 [[조선 세종|세종]]이 즉위하자 책봉 고명을 위한 승습사(承襲使)로 명나라에 들어갔고, [[1419년]](세종 1년) [[1월]] [[명나라]] 황제의 책봉 고명서를 받들고 [[명나라]]의 책봉정사(冊封正使)가 되어 부사인 홍려시승 유천(劉泉)과 함께 귀국하여 판한성 부사가 되었다.
         [[1420년]] [[1월]] [[조선]]의 흉년기에 공물면제를 위한 사절단의 대표로 예조참판 하연(河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의 광록시소경으로서 종 이래 추진하였던 금과 은의 공물면제를 주청하여 황제의 허락을 받고 귀국하였다. [[1424년]] 명나라 성조가 북정(北征) 중 유목천(楡木川)에서 죽자 여비는 [[영락제]] 사후 순장당하였다.<ref>목을 매고 죽었다.</ref> 그뒤 장군 절제사(掌軍節制使)가 되었다.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분배할 때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 등을 노비로 하사받았다.<ref>세조 실록 5권, 세조 2년(1456 병자 / 명 경(景泰) 7년) 9월 7일(갑술) 4번째기사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ref>
         그러나 종·세종 때 차례로 두 누이 동생을 공녀로 보낸 한확은 우의정과 좌의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간통을 저질렀을 때도 세종은 "내가 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며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19/2011041902632.html 나라가 힘이 없어 중국에 바쳐진 인간 진상품… 貢女(공녀) 잔혹사] 조선일보 2011년 04월 20일자</ref>
         * 종실록
         [[분류:1400년 어남]][[분류:145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왕족]]
  • 허화평 . . . . 10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7기 출신이다.
         좌천된 상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1988년 [[노우]] 정권이 출범하자 국책연구소인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에 부임하였다.
         === [[최민]] 의혹 은폐 ===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요동치는 판에 허화평은 TV조선의 단독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허화평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민의 정신적 포로라고 증언하면서, 이 같은 사건으로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0&cid=1051768&iid=1139394&oid=448&aid=0000186191|#]]
         '''그렇다면 왜 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 헌경왕후 . . . . 10회 일치
         조선 선조때의 문신 [[홍이상]]의 7대손이다. 모계로는 [[조선 선조|선조]]의 외6대손으로, 선조의 부마 영안위 [[홍주원]]과, 선조와 인목대비 소생 [[정명공주]]가 5대조부와 5대조모가 된다. 그가 어날 때 할아버지 [[홍현보]]는 몽을 꾸고, 그가 어나자 아들 내외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예상하였다. [[1735년]](영조 11년) 한성부 반송반에서 [[홍봉한]](洪鳳漢)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 딸로 어나, [[1743년]](영조 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했지만 [[한중록]]에 의하면 아버지 [[홍봉한]]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고, 그의 가계는 빈한하여 언니를 시집보낼 때와 그가 출가할 때 혼수품이 넉넉하지 않았다 한다. 그가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릴 때,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친척들이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로 영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영조 20년인 [[1744년]](영조 20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과 [[조선 정조|정조]]가 있다. 영조는 첫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이 어나자 기대가 남달랐으나 의소세손은 곧 요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둘째 아들 세손 이산이 어났다.
         {{출처|날짜=2010-10-31|임오화변의 원인으로 영조가 노론을 견제키 위해 키운 외척계 탕평당인 홍봉한 계열과 영조의 탕평에 반발하던 노론계의 대립으로 기행을 일삼던 사도세자 문제가 정치적으로 떠올랐는데 반 탕평파에서 홍봉한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약점이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치 문제화 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홍봉한은 이를 덮기 위해 뇌물까지 제공하며 은폐하려 했지만 나경언의 고변까지 들어가고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까지 오자 영조가 종사를 위해 아들을 포기했고 손자를 지키기 위해 홍봉한에게 자신의 명을 따르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당시 상당한 상소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을 은폐하는 홍봉한에 대한 공격이 나온다.
         《[[한중록|한중록》]]은 청상과부가 된 그녀를 동정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편집증적인 영조의 사도세자 핍박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탓에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을 영조의 탓으로 사도세자를 미화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권력의 최상부에서 70년이상을 직접 보고 겪은 정사에서는 볼수없는 정치사의 이면을 폭로한 정보가 하나둘이 아니며 피상적으로 적혀있는 사건들의 사건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조선후기 명문가의 딸로 어나 칠십년을 궁에서 살아온 경험들을 상세히 기술해 그 어떤 사료보다 당대 풍속을 상세히 그려볼수있게한다.
         ****** 장남 : [[의소세자|의소자]](懿昭太子, 의소세손, 1750~1752)
         [[분류:1735년 어남]][[분류:1816년 죽음]][[분류:조선의 추존왕후]][[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 정조]][[분류:운현궁]][[분류:풍산 홍씨]][[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국의 자서전 작가]][[분류:18세기 한국 사람]][[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조선 장조]]
  • 황두성 . . . . 10회 일치
         * [[KIA 타이거즈|해 타이거즈]] (1999년 ~ 2000년)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97년]] [[포수]]로 [[삼성 라이온즈|삼성]]에 입단했다가 시력이 좋지 않아 당시 [[장호연]] 코치의 제안으로 [[투수]]로 전향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712347 황두성, "장례식장에서 받은 방출 통보 서러웠다"] - 아시아경제</ref> 그러나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1999년]] [[KIA 타이거즈|해 타이거즈]]에 3:1 현금 트레이드([[양준혁]]·[[곽채진]]·황두성↔[[임창용]])되었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300034 황두성-이재우, '늦깎이의 성공시대' 열 것인가] 《Osen》 2008년 12월 30일</ref>
         === [[KIA 타이거즈|해 타이거즈]] 시절 ===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해 타이거즈]]로 이적한 황두성은 트레이드된 첫 해 처음 1군에 올라왔으나 뚜렷한 활약 없이 2군에서 전전하였으며 2군에서 성적 부진으로 [[2000년]]말에 방출당했다.
         [[2008년]]에는 선발로 활약하다가 시즌 중반에 소속 팀이 마무리 부재로 불펜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진해서 잠시 마무리로 전향했다. 그러다 [[일본]]인 마무리 [[투수]] [[다카쓰 신고|다카쓰]]의 입단으로 선발 보직으로 다시 옮겼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으로 뽑혔지만 컨디션 난조로 중도 하차하여 [[임훈 (야구 선수)|임훈]]과 교체되었다.
         |1999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해 타이거즈|해]] ||3.24 ||4 ||0 ||0 ||0 ||0 ||0 ||0 ||8.1 ||7 ||0 ||6 ||3 ||4 ||3 ||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해 타이거즈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Crusader Kings 2/특성 . . . . 9회 일치
         막 어난 갓난아기 외의 모든 캐릭터들은 특성을 가지고있다. 이 특성들은 능력치 경감과 같은 효과를 준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벤트에 따라 새로운 특성이 생기기도, 원래 있던 특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 상 특성 ==
          ''이 아이는 병약하게 어나 유아기 동안 생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렸을 때 초기 증상으로 붙는 특성들. 이후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알게 되면 상 특성으로 대체된다.
          * 권감(Malaise)
          ''악마 같은 가학성 변 성욕자입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서 흥분을 느낍니다.''
          * 만(Slothful)
          * 만(Slothful) 특성과 상극
          * 만(Slothful) 특성에 대한 의견 +5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9회 일치
         ||<:> [[김혜리(배우)|김혜리]] ||<:> '''[[고현정]]''' ||<:> [[김화]] ||
         ||<:> [[강주현]], [[김성령]], [[김정애]], [[김혜리(배우)|김혜리]], [[박수현]], [[양현정]] ||<:> '''[[고현정]], [[남궁옥]], [[박은경]], [[오현경(여배우)|오현경]], [[이재경]], [[장경숙]], [[채경진]]''' ||<:> [[김화]], [[김현숙]], [[서정민]], [[양정아]], [[윤제선]], [[이승은]], [[이종희]] ||
         ||<:> [[김혜리(배우)|김혜리]] ||<:> '''[[고현정]]''' ||<:> [[김화]] ||
         특히나 위자료에 대한 루머가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썰은 인사동 '''[[스타벅스]]'''의 소유주가 고현정이라는 것. 왜 하필 많은 지점중에 인사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널리 퍼졌다. 다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신세계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50:50으로 투자한 합작회사[* 하지만 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설명일 뿐이고 대부분의 자본 및 실질적인 투자는 신세계에서 거의 몰빵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이 저렇더라도 이익배분 자체도 다를 것이고 사실상 합작회사라기보다는 좀 더 두둑한 로열티를 주는 형에 가깝다.]인지라 고현정 본인에게 지점 하나를 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님으로 근거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밝혀진 위자료가 15억원에 불과한데 고현정과 결혼 이후로 [[정용진]] 부회장의 재산이 급증한 점.[* 신세계의 지분과 관계없이 그 시기의 신세계의 주식은 IMF를 지나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자녀도 둘이나 있는 점[* 아랫쪽에 나와있지만 두 자녀 모두 부모의 좋은 점만 따왔는지 외모가 매우 훤칠하다. 특히, 아들은 정용진, 딸은 고현정을 닮았다. 특히 딸의 경우 사려깊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엄마와의 사이도 좋은 것 같다. 한 SNS에서 고현정의 딸과 지인이 나눈 대화록이 공개된일이 있는데 친엄마가 보고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고싶은 것은 아니며 그건 양엄마에게(그분이라고 호칭) 예의가 아니라고 답했다. 더구나 양엄마보다 친엄마가 예쁘시지 않냐는 질문에는 양엄마도 예쁘신 분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할 정도.], 사촌인 이건희 회장의 맏딸 [[이부진]]씨와 [[임우재]]씨의 이혼소송에서 이부진 씨가 대단한 변호인단을 이끌고 2심에서 완승을 거두었음에도 86억이라는 돈을 지급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15억의 위자료는 적어도 너무 적고 특히나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하는 재벌가에서 고현정이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15억이 위자료의 전부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고현정이 이혼한 직후, 삼성가의 내부에 대해서 책을 쓰자는 제의도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물론 고현정 본인이 싫어서 안했을수도 있지만 했다하면 15억은 애들 장난수준으로 벌었을 것이다.] 원래는 신세계 백화점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스타벅스로 떼웠다는 얘기들도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루머가 많은 부분.
         고현정 또한 무릎팍도사에서 정용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진정성이 있는 도로 말한 걸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정용진에 대한 세간의 평판[* 정용진 부회장은 일반인들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다르게 싹싹하고 정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신비주의에서 탈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사실이라면 당사자들은 죽고 못 살 정도로 금슬이 좋았지만 전형적인 시집살이[* 고부갈등+시누이 간의 갈등]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제작진 전원에게 천만원 상당의 [[닌텐도 DS]][* 고현정은 [[닌텐도 DS]]의 리듬게임 타이틀 '리듬세상'([[리듬천국골드]]의 한국어판)의 광고에 출연하였다.]를 쏘거나,[* 사실 연예인이 스탭들에게 자기가 모델인 제품을 쏘는 것은 기사화로 인한 일종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라서 본인 부담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악조건하에서도 8회 분량(출연료 총 2억 상당)에 대해 개런티 없는 연장에 동의하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야외촬영으로 극도로 열악했던 선덕여왕 배우 스프의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등, [[대인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의 비효율적 촬영시스템은 유명해서, 박홍균 감독은 28회 일식신 촬영 중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이 탈진할 정도로 다시 찍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무술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촬영 중 무술감독 중 한명이 [[보조출연자]]들을 마구 굴려대자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감행) 이걸 목격한 고현정이 조목조목 따졌다고. 이 무술감독은 공동연출 김근홍 감독으로부터도 '''"무술감독님, 필름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거 영화 촬영용 필름이라서 한장 한장이 비싼 겁니다."'''라고 디스를 당했다.] 50회의 마지막 촬영장면에서는 스프 전원이 ~~어째 어감은 묘하다만~~ '고미실 사망 축하연'을 벌여 주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06889|#]]
         2013년 [[일본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여왕의 교실(MBC)|리메이크한 작품]]의 제작발표회에서 '애들한테 배울 건 없다'고 발언하여[* 정확하게는 동료배우 최윤영에게 한 말로, '애들이 어른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지 평하게 애들을 보고 배우고 있다는 말이 어른다운 자세냐'라는 타박이었다. ~~맞는 말이긴 하나 굳이 정색해가며 할 필요는 없었던 발언~~ 그러나 아이들을 통해서 배울 수도 있는 것이고 무조건 어른이 옳은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에게서 배워라. 그들에게는 꿈이 있다. -[[헤르만 헤세]]-."] 논란이 되었다. 원작 배우 [[아마미 유키]]의 아성을 깨지는 못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름 선방했다.
          * 장난으로 결혼하자는 말을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녀의 프로포즈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위의 3인 이외에도 의외로 [[김제동]]이 포함되어 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071090|바로 이런 식으로 던진다]] ~~[[엄웅]]도 배웠다고 한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9회 일치
         ||<#732788> {{{#FFFFFF '''별명'''}}} ||<(> 아기금조, 귀요미, 금됴, 데일리금조, 골드버드[br]--19금조--, --[[https://www.youtube.com/watch?v=BvZ6hNC7378|변금조]]--, --일진금조--, --데지--, --됴야지--[br]--할머니--, --금지어--, --금존디--, --이금코--, --이금즙-- ||
         학생 때부터 [[빅뱅(아이돌)|빅뱅]]의 굉장한 팬이었고, 소문에 의하면 좌우명이 낮(낮에도 [[양(빅뱅)|양]]으로 밤에도 [[양(빅뱅)|양]]으로).... 학창 시절 별명은 빅뱅녀[* [[https://twitter.com/bbuselessinfo/status/907228685371023361|#]]]였다고. [[http://blog.naver.com/hongrg0427/220852917584|나인뮤지스 금조의 알찬 빅뱅 양 덕질]]
          *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함께 영입되며 2013년 [[Wild|WILD]] 당시만 해도 개성이 강하던 [[나인뮤지스]]가 주류 [[걸그룹]]과 컨셉이 같아져서 아쉽다는 평이 있다.--영원히 고통받는 소금라인-- 그러나, 이 둘의 영입 후 친근함과는 벽이 있었던 모델돌[* 너무 키가 커서 기가 쌔보인다거나, 섹시하기만 한 아이돌 등.]이라는 이미지에 환기를 준 건 사실이다. 일반적인 걸그룹 색을 더하여 [[나인뮤지스]]의 [[마인(나인뮤지스)|팬덤]]이 상승세를 겪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제로 LOST의 초동 판매량이 [[나인뮤지스]] 커리어 상 최대치를 찍기도 하였다. 또한 이 둘이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공룡 로봇과 능청 변 막내-- 등의 모습이 팬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금조의 영입 후 곡과 컨셉 스타일도 변화했다. 둘의 영입 전에는 [[PRIMA DONNA|GUN]]과 [[Wild|WILD]]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돌의 곡들을 들고 나왔으나 새 멤버 영입 후에 발표한 [[DRAMA]]나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자신이 먼저 이별은 선언했지만 후회하는 여성의 모습 등 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곡은 아니다.
  • 김병기(배우) . . . . 9회 일치
         * [[1985년]] [[KBS2]] 대하드라마 《[[평무 (드라마)|평무]]》
         * [[2002년]] [[MBC]] 일일연속극 《[[인어 아가씨]]》 ... 양일보 이성수 사장 역
         * [[2003년]] [[MBC]] 미니시리즈 《[[남자의 향기 (드라마)|남자의 향기]]》 ... 정환 역
         * [[2009년]] [[KBS2]] 대하드라마 《[[천추후 (드라마)|천추후]]》 ... [[김원숭]] 역
         * [[2009년]] [[SBS]] 일일연속극 《[[아내가 돌아왔다]]》 ... 민성 회장 역
         * [[2014년]] [[MBC]] 월화드라마 《[[트라이앵글 (드라마)|트라이앵글]]》... 윤준 역
         * [[2016년]] [[KBS2]] 수목드라마 《[[마스터 - 국수의 신]]》 ... 소섭 역
  • 김상중(배우) . . . . 9회 일치
         || '''출생''' ||<(> [[1965년]] [[8월 6일]] [*음력] ([age(1965-08-06)]세), (정부 직할) [[전라북도]] [[완주군]] [* 현 전라북도 완주군. 전북 생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전라북도 무주군(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자랐다.] ||
         그리고 김상중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는 [[정신지체]] 연기도 잘 어울리기도 했다. 1997년 [[신현준(배우)|신현준]], [[심혜진]]과 출연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서 여인숙을 소유한 정신지체 형 '기'역할을 소화하여 그 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아쉽게도 [[넘버 3]]에 출연한 [[송강호]]가 수상하긴 했지만 만약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수상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 2015년 힐링캠프에서 [[EXID]]의 [[하니(EXID)|하니]]와 [[위아래(노래)|위아래]] 댄스를 추었고 [[애교]]까지 선보였다. 중후한 목소리 버전과 애교 버전의 두 개를 선보였는데 여까지 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쁜 녀석들에서 김상중의 모습은 약간 삐딱한 자세를 갖고 있는데 당시 촬영중 목 디스크가 왔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중지할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일단 드라마 종영까지 마친 뒤에 수술을 했다. 통증 때문에 어쩔수 없이 취한 삐딱한 자세인데 그 특유의 삐딱한 자세가 오히려 극중 배역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 [[SNL 코리아]]에 추석특집의 호스트로 출연했다. 바로 위에 기재된 힐링캠프에서도 여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에도 그 모습은 건재했다. 오프닝에서 등장할 때 노래를 부르고 더 소름끼치는 노래를 준비했다는 말에 유세윤이 오구탁으로 등장해서 흉내를 냈지만 김상중에게 리얼 오구탁 연기를 듣고 긴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쁜 녀석들에서는 신동엽과 동성연기를 했으며, 디지털 쇼트 '시간암살자'에서는 미래에서 온 김상중([[정성호]])때문에 [[SK-ll|S'''J'''-ll]] CF에서는 "놓치지 않을거에요"가 아닌 "놓치지 않을겁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을거라 생각했겠지만 정성호가 CF에서 쓸데없이 무게를 잡아서 하던 CF도 다 끊겨서 굶어죽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도전한 [[주간 아이돌|월간 아이돌]]에서는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의 막내인 상'''쭝'''으로 나와선 아이돌 분장까지 하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망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글로벌 위캔드에서는 심층취재의 특파원으로 출연해서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등 다국어를 보이는 등 여러 장면을 연출했다.
          * 마리아와 여인숙(1997) - 기
          * 아버지와 마리와 나(2008) - 아버지
          * 산(MBC, 1997) - 우 삼촌
          * [[궁(드라마)|궁]](MBC, 2006) - 효열자 이수[* 정식출연은 아니고, 사진상의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 [[주군의 양]](SBS, 2013) 미스터리Z MC 역 (특별출연)
  • 김숙자 (1389년) . . . . 9회 일치
         [[1414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고,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본처와의 이혼 경력으로 요직에 임명될 때마다 거듭 [[사헌부]]에서 논계하였다. 사예(司藝), 중훈대부에 이르러 관직을 사직하고 [[1456년]] 처가인 [[밀양]]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아들이자 문하생인 [[김종직]]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전수하였다.
         [[1389년]](고려 창왕 1)에 [[경상도]] [[선산군|선산]] 영봉리(迎鳳里)에서 어났다. 광위(光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은유(金恩宥)이고, 아버지는 김관(金琯)이며, 어머니는 유인귀(兪仁貴)의 딸, 유씨이다.<ref name="김숙자"/>
         김숙자는 12세 때부터 [[길재]](吉再)로부터 『소학』과 경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역학에 밝은 당시 [[조선]] 유학자 별동 윤상(別洞 尹祥)이 황간현감으로 임명되어 내려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걸어가서 배움을 청하자 윤상은 그 열의를 보고 『[[주역]]』의 깊은 뜻을 힘써 가르쳐주었다. 윤상은 다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인 조용(趙庸)이 [[1392년]](조 1) [[역성혁명]]을 반대하다가 [[예천]]에 유배되어 오자, 조말생(趙末生)·배강(裵杠) 등과 함께 조용을 찾아가 그를 사사하여 문인이 되었다. 김숙자는 [[길재]] 외에도 윤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의 학통을 이었다. 그밖에 그는 조용, 김말 등과도 교류하였다.
         [[1402년]](종 2) 향교(鄕校)에 가서 글을 배웠다.<ref name="ginyon">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07년]](종 7) [[개성]]으로 가서 개경사마시(開京司馬試)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ref name="ginyon"/> 그는 곡한한씨 한변(韓變)의 딸과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다시 밀양 박홍신(朴弘信)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러나 이는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되었다.
         [[1414년]](종 14) 봄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17년]](종 17) 봄 중성균시(中成均試)에 일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해의 회시(會試)에는 낙방하였다.<ref>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19년]](세종 1) [[안동]][[향시]](安東鄕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여 [[한양]]으로 상경,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사랑]] 권지[[성균관]]학유에 임명되거 고향으로 돌아왔다. [[1421년]] 봄 학유에 다시 임명되고 이듬해 [[1월]] [[한양]]으로 올라가 관직을 시작하였고,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처인 한씨와 이혼하였다.<ref name="ginyon"/> 전처 한씨의 자매의 남편 김주(金宙)는 의술 재주가 있었는데, 김주는 성주목사 이상선(李相善)에게 그가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후 아내를 출처했다고 고하였고, 이는 그대로 [[예문관]]에 보고되었다.<ref name="ginyon"/>
         효성이 지극해 『소학』의 법도를 따라서 어버이를 모셨다. 그리고 남을 가르치기를 권롭게 여기지 않아, 친상(親喪) 중에 여막 곁에 서재를 만들어 조석을 올린 뒤에 가르치기까지 해, 학업을 받는 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분류:1389년 어남]][[분류:1456년 죽음]][[분류:고려 사람]][[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
  • 김운용 . . . . 9회 일치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남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 1971년 ~ 1991년 : [[대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함.
         * 1973년 ~ 2004년 : [[세계 권도 연맹]] 총재를 역임함.
         * 1990년 6월 : 대한민국의 [[노우]]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함.
         [[분류:1931년 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김준현(코미디언) . . . . 9회 일치
         || '''출생''' ||<(> [[1980년]] [[11월 16일]] ([age(1980-11-16)]세)[br][[대한민국]] [[강원도]] [[춘천시]][* [[한끼줍쇼]] 83회 춘천편에서 전화연결을 통해 춘천에서 어나 세살 때까지 살다가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
         || '''가족''' ||<(> 아버지: 김상근, 아내: 오정주, 슬하 2녀[* 큰 딸은 김은으로, [[맛있는 녀석들]] 사이판특집에서 선공개로 잠시 나왔다. [[https://youtu.be/zhBu-1PQKZc|참조]]] ||
         [[2012년]] [[4월 29일]] [[네가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대까지만 해도 날씬한 체형이었다고 한다.[* [[백종원의 3대 천왕]] - '전'편에서 김준현의 과거 사진들이 나왔다. 참고로 날씬했을 땐 체격좋은 훈남이였다.] [[http://dryicess.tistory.com/129|링크]]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만|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김준현은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선수 출신으로 군에서 제대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대신 활동량도 많아서 살이 찌지 않았는데 운동을 그만둔 상에서 먹는 양은 그대로고 활동량은 없어졌기 때문에 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맛있는 녀석들 포장마차 특집에서 나온 것이며 김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이미 예정된 비만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유민상이 툭하면 먹는데 끌고 다녀서 신참이다보니 따라다니며 먹어재껴서 그꼴이 났다고 네가지에서 그러던데 그게 개그용 멘션인지 진짜인지는 미지수.
         tvN의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당뇨병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사실 정확히는 방송이라 그런지 당뇨병이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 및 당뇨병 환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김준현 정도의 수치가 나와도 정상인줄 알고 있는 케이스도 있었다. 당뇨를 한참 넘어선 김준현의 수치에 비해 자기가 낮으니 당뇨임에도 혹은 당뇨전단계임에도 자기 수치가 지극히 정상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참고로 방송에 공개된 수치는 당화혈색소 8.2에 공복혈당 196이었는데.. 당화혈색소 6.5, 공복혈당 126이 당뇨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아득히 높다.] 직계가족에 당뇨병 가족력이 있고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어났다고 하는데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냥 가족력과 식습관 때문일뿐. 거기에 초고도 비만[* 다만 BMI 상으로만 초고도 비만이지 [[야구선수]]나 무제한급 [[역도]] 선수, 백두급 [[씨름]]선수 등처럼 체지방도 많으면서 근육량이 상당히 많은 [[케이스]]이기 때문에 같은 체중의 일반 비만인보다 관리가 좀 쉬울수는 있으나 이미 당뇨가 나이대 대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음으로 크게 의미 있는 사실은 아니다.]까지 있으니..... 김준현 본인도 그러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듯 검사결과 내용을 듣는 내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편하게 있어가 종영된 후 시작한 [[존경합니다]]에선 역으로 송병철한테 무지하게 깨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역할을 맡고 있는 김준현의 발랑 까진 [[보좌관]] 역들인 송병철과 [[서훈]]이 김준현을 열심히 괴롭히던 중. [[드라마]]광 사모님 [[박지선]]은 [[덤]].
          * 그러다가 [[2013년]] [[4월 20일]]에 [[결혼]]했다. 상대는 6년간 열애해 온 [[여자친구]]라고... 주례없는 퓨전스타일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32638|관련기사]] 본인 스스로 어느정도 신혼 시기를 가지고 싶었다고 얘기했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휘재 가족편 게스트에 출현하여 밝힌 바에 따르면 결혼 후 아내는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다고 했으나 김준현 스스로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생각해 자녀를 가지지 않고 있었던 듯하나, [[2016년]] [[8월 9일]] 결혼 3년 만에 아내의 [[임신]]을 발표했다. 아이의 명은 '보고 싶고 보고 싶다.'라는 뜻의 '보보'라고...
          * 하지만 이 검사에서 근육량이 높다고 나오기도 했지만 혈액검사 상에서는 확연한 당뇨[* 당화혈색소 8.2로 나왔는데 6.5이상이면 의학적으로 당뇨이고 7이상이면 어느정도 증상도 있는 당뇨이고 8이면 약을 먹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나 김준현이 1980년생임을 생각해본다면 꽤나 관리가 필요하다.]로 나왔다. 방송이라 그런지 의사가 관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만 했지만 사실 김준현의 상는 약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수준이었다. 방송에서 오히려 의사가 적나라하게 진단하기 그래서 그런지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저정도는 정상이구나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 다만 근육량에 있어서 이전에도 뒷가 유민상 등 다른 비만 개그맨들과는 달리 역삼각형 체형에 승모근 등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복부보다 가슴쪽이 더 튀어나온듯한 모습들이 인간의 조건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상의 탈의에서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체형은 백두급 씨름선수, [[스트롱맨]] 등에서 흔히 볼수 있으며, 실제로 김준현의 경우 [[강호동]] 등과 더불어 연예계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으니 관리를 잘한다면 괜찮아 질수 있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확실하며, [[보디빌딩]]식의 트레이닝보다는 [[파워 리프팅]]식의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의 자격]] 철인 3종 특집에서 [[송일국]]과의 무릎씨름 대결에서 평소 연예계에서 스포츠 매니아로 유명한 [[송일국]]을 가볍게 발라버리기도 했다. 애초에 엘리트 체육인 출신인 사람과 스포츠 애호가인 일반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체급이 다르잖아 체급이..----물론 김두한하고 싸우면 승부는 알 수 없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9회 일치
          * [[키리시마 에지로]]는 신형 "레드 라이오트 언리미티드"의 힘으로 빌런을 제압, 피해를 최소화한다.
          * [[키리시마 에지로]]의 새로운 형, "레드 라이오트 언리미티드". 키리시마의 경화를 가뿐히 능가하던 빌런의 칼날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키리시마가 이 상를 유지할 수 있는건 길어야 3, 40초. 그러나 일단 이 상가 되면 그 자신의 말대로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 빌런은 쓰러지자 다시 울보 상로 돌아간다. 키리시마는 무심코 약의 효과가 끝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빌런은 "나는 강해지고 싶었을 뿐인 불쌍한 인간.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데 키리시마는 안된다고 거절하면서도 "마음은 이해한다"고 도가 누그러진다. 그게 빌런이 노린 바였다.
          키리시마는 타마키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타마키는 개성을 발동할 수 없어서 히어로로서 괴롭다고 네거티브 상다. 코스튬에 달린 후드를 푹 뒤집어 써서 아예 얼굴을 가려버렸다. 타마키는 자신을 감싸준 키리시마가 [[토오가타 밀리오]]와 같은 "양 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키리시마는 "선배도 날 사무소에 소개시켜줬으니 양같은 인물"이라고 답례하는데 그런 점이 타마키를 더 곤란하게 한다.
  • 노재헌 . . . . 9회 일치
         |부모 = [[노우]](부), [[김옥숙]](모)
         |친척 = 노영수(증조부)<br />노병수(조부)<br />김향(조모)<br />[[노소영]](누나)<br />[[최원 (기업인)|최원]](매형)<br />최윤정(조카딸)<br />최민정(조카딸)<br />최인근(조카아들)<br />[[노재우]](숙부)<br />노호준(사촌형)<br />노성준(사촌형)<br />김정숙(이모)<br />[[금진호]](이모부)<br />금한(이종사촌형)
         '''노재헌'''(盧載憲, [[1965년]] [[11월 3일]] ~ )은 [[노우]] 前 대통령의 아들로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미국법자문사이다.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노우 가계도}}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남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우 가]][[분류:교하 노씨]]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9회 일치
         청소부들은 B동 302호에서 맥스의 행를 감시하고, 그의 전화[* 저격수를 보고나서 윈터슨에게 건 전화와 폰섹스 통화에서 모나를 찾는 전화. 폰섹스 회사의 직원인 모나를 모나 색스와 착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전부 죽이니 뭐니 말한 결과 돌아온건 미친놈 취급.]를 감청하고, 그의 집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맥스가 그 방에 설치된 카메라로 자신의 방을 봤을 때는, 청소부들이 현관문을 열면 터지도록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이후 상황파악 못한 청소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맥스는 30층으로 올라가 코커런의 집에 도착했지만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맥스는 모나의 지시에 따라 그 옆집 발코니를 통해 코커런의 집으로 가기로 한다. 코크런의 옆집은 청소부들의 습격을 받아 집주인이 사망한 상였다. 모나의 말에 따르면 이 곳은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도 살고 있다고.
         블라드는 맥스에게 코니 아일랜드까지 차를 워다준다. 블라드의 차 뒷자석에는 머리가 큰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인형탈이 놓여있었다. 고그니티와의 전쟁에서 쓸 트로이 목마라나 뭐라나. 맥스는 블라드에게 이너 서클과 모나 색스에 대해 들어본 적 없냐고 한다. 블라드는 둘 다 알고있었다. 그는 이너 서클에 대해서는 범죄조직에 가깝다고 말하며 이들이 고그니티와 계약을 맺은 것 같다고 하고, 모나에 대해서는 유명한 살인청부업자라고 말하며 여우 같으면서도 굳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헤어지기 전, 블라드는 맥스에게 선택지가 잘못된 방법밖에 없으면 그건 진짜로 잘못된게 아니라 운명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 취조실에서 나와 윈터슨과 대화한 후 경찰 테이블을 살펴보면 발키리에 중독된 상에서 자신의 아내와 불륜관계의 우편배달부를 총으로 쏘고 그 중 하나는 전기톱으로 토막내 욕조에 담아둔 혐의로 구속된 남자가 있다. 자기가 너무 알았기에 그들이 날 제거하려고 모함한거다, 그들이 날 죽이려고 했기에 정당방위였다, 이 일 뒤에는 뭔가 커다란게 있다라고 횡설수설.
         >아니면 기어나와서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 사가 커지지 않게 하고 되돌리려고 노력할 것인가?
         >여까지 우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맥스는 [[블라드미르 렘]]을 잡기 위해 또다시 보드카로 향한다. 정문을 지키던 러시아 갱들은 영장 없이는 못 들어가니까 꺼지라며 맥스를 위협하지만 결국 맥스에게 몰살당한다. 이후 총성을 들은 라디오 오퍼레이터(?)[* 파트 1에서 마이크가 살았다면 마이크가 나오고 죽었다면 그냥 잡졸 A.]나머지 러시아 갱들이 방어 세에 돌입한다.
          * 해당 챕터는 맥스의 추측이다. 화자는 맥스고, 그 때 맥스는 의식을 잃은 상였기 때문.
         맥스가 정신을 차리자 모나는 맥스를 부축해 불타는 놀이공원에서 빠져나간다. 맥스는 블라드를 쫓아 우든의 저택으로 가려고 했다. 모나가 그 상로 가면 죽을거라고 말하자 맥스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모나는 맥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니 손 떼 라고 하지만 맥스는 자신이 이 일에서 손 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모나를 데리고 우든의 저택으로 향한다.
  • 미즈코 . . . . 9회 일치
         일본 오컬트 용어. 본래는 어린 시절에 죽은 아이들의 영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980년대 무렵부터 [[낙]]로 죽은 아이들의 영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미즈코 공양'이라고 하여, 낙로 죽은 아이들을 공양하는 종교단체(주로 불교사원)이 있다.
         '미즈코'란 말은 내에서 양수 속에 들어앉아 있는 '아'를 은유하는 말이다.
         낙된 아이들에 대한 공양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존재하였는데,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 석상이 바로 이러한 낙된 아이나 또는 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 아이들을 공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석상이다.
         이처럼 지장보살 석상을 만들어 공양하는 이유는, 일본에선 어나기 전에 유산됐거나 또는 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어 '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 유아들은 죽어서도 삼도천을 건너지 못해 강가에서 발만 구르다가 지옥의 나졸들에게 괴롭힘당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으로, 이러한 아이들을 지장보살이 보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 박경림(MC) . . . . 9회 일치
         || '''출생''' ||<(> [[1979년]] [[3월 30일]][*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78년 12월 8일생이다. 라디오 DJ 하던 시절 본인이 어릴 때 약하게 어나 출생신고가 늦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고, 2002년 말띠해, 2014년 말띠해 당시에 본인을 [[https://entertain.v.daum.net/v/20140102191109515|말띠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2001년 1월 9일 뉴논스톱에서 생일로 사주를 보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때 극중 박경림 스스로가 언급한 자기 생일이 12월 8일이었다. 물론, 학교는 1979년생들과 다녔다.] ([age(1979-03-30)]세),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관평길) ||
         [[대한민국]]의 방송인. 개그맨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으로 시작해 그 인연으로 [[고등학생]] 때 MBC의 심야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돌발소녀라는 기믹으로 라디오 출연을 시작했고, 차츰 인지도를 높여가다가 좀 다른 의미지만 연예계의 정상에 올랐다. 당시 여고생답지 않은 걸걸한 입담과 특유의 당당함으로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등장은 장기자랑 코너였는데 청취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결국 고정을 꿰찼다. 물론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상.
         그녀의 등장과 스타로 가던 과정은 사실상 한국 예능계를 넘어 연예계 전체의 흐름을 바꾼 파격적인 일이었고, 그녀는 그야말로 21세기 연예오락 프로그램계의 혁명같은 존재였다. 당시까지 개그우먼이 아니면서 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여자연예인이 연예오락 방송계의 스타로 부상한 경우는 사실상 없었는데, 박경림을 통해 그런 트렌드가 생성되었으며, 사실 극형식이 아닌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별명을 통한 캐릭터를 만든다는 개념도 박경림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MBC에서 가장 잘나가던 주말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서 당시 가수 뿐만 아니라 예능으로서도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스티브 유]]와 진행자 [[유재석]] 등이 박경림에게 '복'라는 남자아이 기믹을 만들어[* 유재석이 '내가 알던 우리동네 남자아이 복 닮았다'로 시작한 뒤, 스티브 유가 매회 자꾸 '복야'라고 부르면서 다른 출연자들도 그렇게 부르는 등 유행이 되었다.] 그걸로 웃음을 주던 것이 시초다.
          * 대표적인 연예계 마당발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결혼식 당시 참석한 하객들이 ㅎㄷㄷ하다…[* [[강경준]], [[강수정]], [[강타]], [[강혜정#toc|강혜정]], [[강호동]], '''[[거스 히딩크]]''', [[김규리(1979년 6월)|김규리]], [[김기수(코미디언)|김기수]], [[김동완(신화)|김동완]], [[김민종]], [[김수미]], [[김아중]], [[김용만]], [[김을동]], [[김장훈]], [[김현철(가수)|김현철]], [[노홍철]], [[주종혁|라이언]], [[바다(가수)|바다]], [[박명수]], [[박상민]], [[박수홍]], [[박신혜]], [[별(가수)|별]], [[서경석]], [[솔비]], [[스윗소로우]], [[신혜성]], [[안재모]], [[양파(가수)|양파]], [[우승민]], [[유재석]], [[유진(배우)|유진]], [[윤다훈]], [[윤종신]] & [[전미라]] 부부, [[윤해영]], [[이루(가수)|이루]], [[이수영(가수)|이수영]], [[이지연(1975)|이지연]], [[이지훈(1979)|이지훈]], [[이혁재]], [[이효리]], [[임창정]], [[자두(가수)|자두]], [[장근석]], [[장나라]], '''[[정몽준]]''', [[정선희]], [[조인성]], [[조정린]], [[주영훈]] & [[이윤미]] 부부, [[지상렬]], [[차예련]], [[차현]], [[채연]], [[하하(가수)|하하]], [[한효주]], [[현영]],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 [[황보라]]가 찾아왔다. 더불어 대표적인 하객들이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사람들이다(...)''' 결혼식에 총 5000여명의 하객들이 왔다갔다.]
          * 결혼 후 예능에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이는 상. 애엄마가 돼서 그런 듯하다. 케이블에 간혹 드문드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코미디 얘기만 얘기하던 시절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선 8대 [[신]] 다음으로 여신 라인의 수장을 차지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울궈먹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 전성기 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슴이 없었고 과감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으나 복귀 이후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여자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안티들은 그녀가 '툭하면 인맥드립'이고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질질 짠다며 욕을 퍼붓기도 했는데 2009년 가수 [[아이비(가수)|아이비]]가 복귀할 때 [[엠넷]]에서 방송한 Ivy Back이라는 아이비 런칭 프로그램에서 박경림의 고전적 인맥후리기 기법을 볼 수 있었다. '''지나간 일 들추어 감정적으로 후비기 → 사회적 시선으로 이런저런 평가 쥴쥴쥴 → "사실 나도 그래" 같이 울기 → 어?!''' [[기타 프로그램 갤러리|기프갤]]에서도 개드립[* 마니아들의 수요는 있는 편] 과 목소리 덕택에 MC로써의 평가는 낮은 상.
          * 잉스 화장품이라는 화장품 회사 광고 모델로 나온 적이 있다. 못생겨도 화장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시초가 된 케이스. 예능에서도 이걸로 꽤 우려먹었는데 김희선이 출연한 토크쇼에서 "나도 화장품 모델 했는데, 언니는 잘 됐지만 내가 한 회사는 망했잖아."라고 자기비하 개그를 쳤다가, 바로 그 다음날부터 잉스 화장품회사에 정말 망했냐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뒤따르고 대리점에서는 "회사가 위기라던데 정말이냐"면서 계약해지를 요구당하는 사가..덕분에 해당 회사로부터 30억 소송이 걸리네마네 한 적이 있다. 회사 가서 싹싹 빌고 사과의 뜻을 여러 번 전했고 후에 보은의 의미로 노개런티로 그 회사의 모델을 다시 하기도 하면서 잘 넘어갔지만...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건.
  • 박승호 (야구인) . . . . 9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3년]] [[4월 4일]] <br />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해 타이거즈|해]]전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식> KIA, 코칭스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영입 등 코칭 스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
  • 백일섭 . . . . 9회 일치
         * [[1969년]] [[MBC]] 개국드라마 《[[양의 연인]]》
         * [[2001년]] ~ [[2007년]] [[KBS1]]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박민 역
         * [[2004년]] [[MBC]] 추석특집극 《[[아버지의 바다]]》 ... 박종 역
         * [[2006년]] [[MBC]] 일일연속극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 ... 희 부 역
         * [[1970년]] 《[[조 왕건 (영화)|조 왕건]]》
         * [[1979년]] 《[[병와 영자]]》
         == 논란 관련 사 ==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창극 배우]][[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백정현 . . . . 9회 일치
         별명으로는 '백작가'[* [[작가(야구)|마운드 위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의 퀄리티가 사진작가급이라는 것에서 유래. --[[랜디 존슨]]?-- '이야깃거리' 항목 참조. ],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만 잘하는 것에서 따온 '오키나와 에이스', '오키나와 커쇼', 이름에서 따온 '백정', 그리고 못할 때는 '[[백린탄]]'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팀내 별명은 '말순이'인데, 과거 드라마 [[육남매]]에서 말순이 역할을 맡은 송은혜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다. 2017년 지금은 삼성 선발진에서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하며 '백쇼'(백정현+커쇼)라는 별명이 거의 정착된 상.
         이 이후에는 불펜에서 롱 릴리프와 추격조 역할을 맡아 하고 있는데 2014년 불펜에서의 활약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시즌이 지나가면서 롱 릴리프 역할도 김기에게 넘기고 추격조의 핵심으로 성장 중. 이 상를 유지하면서 한 시즌을 보낸다면 2016 시즌에는 승리조로 승격할 수 있을 듯.
         5월 1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인 김기의 책임주자를 아무렇지 않게 잔루로 남기는 결정적인 활약을 보이며 '''2승'''을 거둔다.
         7월 14일 롯데전 3번째 투수로 등판해 무려 '''11경기 연속 출전을 달성했다!''' ~~대전 모 팀 감독님도 이런 짓은 안 하시는데...~~ 박근홍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닝 쪼개기와 좌우놀이를 즐겨 하는 코칭스프의 성향상 팀 내 유일한 좌완 계투인 백정현이 휴식일 외에는 계속하며 등판하고 있으며 선수는 선수대로 연투에 지쳐서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윤성환|윤자]]와 함께 명실상부 2017 라이온즈 원투펀치'''
         후술할 몇 가지 일화 때문에 개그캐릭터 이미지가 강하지만 훈련이나 연습할 때는 성실한 자세로 임해 코칭스프로부터 평가가 좋다.
         여담으로 유급자의 1차지명 불가 조항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3 시절에 백정현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것으로 인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로 유급했는데 하필이면 발표 시점이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2006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때라 다른 구단에서 유망주 빼돌리기가 아니냐며 클을 걸었다. 즉 백정현이 유급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음 해에 백정현을 1차지명하지 않겠냐는 뜻. 당시 백정현은 2차지명 1라운드 상위 지명이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결국 회의 끝에 이후로 유급자의 1차지명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백정현은 그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고~~ 십자 인대 파열이라 선수로서 재기가 힘들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에서 백정현을 지명했다. 이러한 사가 벌어진 것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진 것으로 평가된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9회 일치
         안드로메다 성운의 혹성 아스투리아스(惑星アストゥリアス)에 위치하는 코스모라리아 왕가(コスモラリア王家)의 황자 이타카(イタカ)는 왕으로 즉위하여 아스토라르타 3세(アストラルタ3世)를 칭한다. 그리고 아오도야 왕가(アヨドーヤ王家)의 리리아(リリア) 공주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런데 몇일 뒤, 유성이 아스투리아스에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박쥐가 왕궁에 들어와 사람들이 바뀌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기계들의 침략이었다. 이타카 역시 잔인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며, 왕궁은 기계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모하고, 기계 거미가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서 심신을 지배하게 된다. 리리아 왕비는 임신하여 출산을 하지만,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쌍둥이]]가 어나게 된다. 리리아 왕비는 1명을 검투사 바르가(バルガ)에게 맡기고, 바르가는 그 아기를 창녀에게 맡기게 된다.
         이타카 왕은 도시를 기계 도시로 바꾼다. 아요도야의 왕자 밀란이 여동생 리리아를 걱정하여 데리러 오자, 기계들은 밀란을 공격한다. 리리아의 아들 황자 지무사는 이 때 신비한 초능력을 발휘하어 대항하고, 여검사 이루(イル)의 도움을 받아서 도망친다. 이루는 기계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행성 로도리안 출신의 사이보그 전사였다.
         주인공. 붉은 머리. 신비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동생 아푸루와 공명하고 있어 아푸루가 고통을 겪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붉은 모래 폭풍의 날에 어난 아이가 양왕이 되어 사람들의 구세주가 된다'는 전설의 인물로서, 저항군들에게 양왕으로 불린다.
         과거 양계에 존재했던 제5혹성 그로브에서 제작된 W형 안드로이드. 마더머신이 제작한 기계화군단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 주인을 잃고 아스투리아스에서 방황하다가, 지무사를 주인으로 모시게 된다. 노사 쿠푸가 나머지 인류와 마더 머신과 함께 멸망을 택하자, 자신들이 탓던 우주선에 지무사와 아푸루를 데리고 아스투리아스를 탈출하여 2천년의 시간을 거쳐서 고향 양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지무사와 아푸루는 우주선 내에서 사망, 캡슐에서 눈을 뜨지 못한다. 아크와 베스도 기능을 정지하여 바다 깊이 가라앉아 썩어간다. 하지만 지무사와 아푸루의 몸을 통하여 지구에서 생명은 다시 어나게 된다.
  • 영천시 . . . . 9회 일치
         위치로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그리고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에 접하고 있다. 또 영천시는 백산맥 줄기의 보현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둥근 형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보현산(1,124m), 서쪽에는 팔공산(1,192m), 동쪽에는 운주산(806m), 남쪽에는 사룡산(685m)이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단은 화북면 하송리 산56으로 동경 128도 55분 08초, 북위 36도 10분 54초. 남단은 대창면 용호리 산13으로 동경 128도 56분 57초, 북위 35도 50분 03초로 남북간 38.64km이며, 동단은 임고면 수성리 산96-1로 동경 129도 08분 42초, 북위 36도 03분 08초. 서단은 신녕면 치산리 산141-5로 동경 128도 41분, 북위 41초 36도 00분 48초로 동서간 40.75km이다.
         '''비와 눈이 이상할 정도로 적다.'''[* 2012년 풍 볼라벤이 와서 다른 지역을 휩쓸고 가서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영천은 피해가 미미했으니.....][* 강수량이 적은만큼 맑은 날이 많기 때문에 보현산에 천문대가 있다.] 그래서 저수지가 약 1000여개 정도 된다. 2010년 여름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오랫동안 내려 농사를 망친 지역이 많아 배추값이 2만원을 찍는 등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이 일대만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오히려 예년보다도 작황이 좋아 평소 적자를 보던 농가들마저 대박을 쳤다. 소문에 한철 농사로 1억 이상의 수입을 거둔 농가도 심심치 않다고 한다.
         지역특성으로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철도]]([[대구선]], [[중앙선]]),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라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구미 - 대구 - 포항 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이용할 때 반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위로는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라는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탈바꿈...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나서 국도 주변의 기사식당과 휴게소들 반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주영천고속도로]]도 열렸다.
         위에서 서술햇듯이 [[렛츠런파크 영천]]의 건설지로 승인되어 금호읍 성천리•대미리, 청통면 대평리 일원 148만㎡ 부지에 [[2015년]] 8월 착공에 들어가 2018년초에 개장할 예정이다. 이때문에 요즘 금호읍에서 이쪽으로가는 가는 도로를 '''2차선에서 6차선까지 확장한 상다!!!!'''
         망정동에 있는 아이존빌스타 서쪽에는 커다란 폐교[* 건물이 보통 대학교보다 수가 적지만 그래도 지하1층, 지상4층으로 옆으로 쫙 뻗은 형로 이루어져 있는탓에 창신아파트나 아이존빌스타가 보이는 곳에서는 서쪽에 폐교가 보인다.]가 보이는데 옛 제원예술대학건물로 자세한 내용은 [[폐건물/목록]]항목 참조.
          * [[권오]] : 군인, 정치인
          * [[윤영]] : 배우
          * [[윤종용]] : 전 삼성전자 부회장. 배우 윤영의 아버지이다.
  • 오정태 (희극배우) . . . . 9회 일치
         | 이름 = 오정
         | 웹사이트 = {{싸이월드|25576459|오정}}
         '''오정'''(吳貞泰, [[1976년]] [[10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다.
         [[동신대학교|동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였으며, 연극 《택시 택시》로 데뷔하였고 [[2006년]] [[MBC]] 15기 공채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했다. [[소녀시대]] 멤버 [[연]]이 열성 팬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구출을 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ref>김은주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303122527&cp=nv ‘연’ 구한 오정, “국민 영웅이요? 진행자로서 할 일 했을 뿐”], 《쿠키뉴스》, 2011년 4월 18일 작성</ref>
         * 오정의 캐롤 - 울면 안 돼 (with [[김경진 (희극인)|김경진]]) (feat. 권성은, Beyond Black) (2016년)
         * {{싸이월드|25576459|오정}}
         [[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1976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개그야]][[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하땅사]]
  • 원피스/866화 . . . . 9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은 평범한 인간 부모에게서 어났음에도 5살 때 신장이 5m를 훌쩍 넘길 정도로 몸집이 크고 식탐이 강했다.
          이제 링링은 양의 집 아이로 녹아들어 있었고 거인족 소녀 게르즈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링링에게 거인족 아저씨가 "너네 준비는 잘 돼가냐"고 묻는데, 거인족 마을에서 지내는 "동지제"라는 축제 얘기였다. 아이들의 어남과 성장을 양에 감사하는 축제인데 축제 당일까지 12일 간 금식을 하는게 특징이었다. 그 해에는 거인족의 왕자 "로키"가 어났고, 마을에서도 로드와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어났다. 동지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한 셈.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식탐이 강한 링링이 질색을 하지만 게르즈는 "끝나면 즐거운 축제"라며 달랜다.
          * 그렇게 셈라를 먹고 시작된 단식. 링링은 삼일 째부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카르멜은 양제를 "죽음과 부활의 축제"라며 괴로움만큼 양에 대한 감사가 깊어지는 거라고 타이른다. 그렇게 카르멜이 달래고 타일러가며 6일째까지 버틴 링링. 링링은 정말로 카르멜을 좋아했기 때문에 배고픔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셈라가 자꾸 생각났다. 그 환상적인 맛.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7일 째를 맞이하던 링링. 그리고 그날 사건이 생겼다.
          게르즈가 양의 집에 있던 카르멜을 급히 찾는다. 마을에서 링링이 난동을 부린다는 소식이었다. 카르멜이 갔을 땐 이미 마을이 괴멸 상. 거병 해적단 출신 전사들이 단 한 사람의 소녀에게 패했다. 그 파국의 한 가운데에는 세무라를 목놓아 부르는 링링이 있었다. 식탐이 폭주해서 셈라를 내놓으라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아연해하는 카르멜.
          폭포수염 요를의 분노가 한계에 달했다. 그는 "양에 감사할 자격도 없다"며 칼을 들어올린다. 그는 카르멜의 만류도 뿌리치고 링링을 단죄하려 든다.
  • 육성재 . . . . 9회 일치
         ||<#42B4E6> '''출생''' ||<(> [[1995년]] [[5월 2일]][* 선배가수 [[박상민]], [[정진운]]과 생일이 같다. 선배가수도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age(1995-05-02)]세), [[경기도]] [[구리시]][* [[http://m.ize.co.kr/view.html?no=2013100623107265729|기사]]를 보면 구리에서 어나서 자랐다고 언급했으며, 구리시에서 어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수정바람. 최근 집사부일체에서 [[구리시]] 에서 성장했다고 언급했다.] ||
         ||<#42B4E6> '''별명''' ||<(> '''육잘또'''[* '''육'''성재 '''잘'''생긴 '''또'''라이.], 육덕, 육성숙, 성뎨, 뎨뎨, 김홍진[* 비투비 멤버 서은광, 이창섭의 라디오 스케줄 도중 청취자와 전화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육성재. 처음 전화를 받고서 본인을 '김홍진'이라고 소개했다. 서은광과 이창섭 둘 중 좋아하는 멤버는 이창섭이라고 밝혔으며 ~~이창섭 덕후 육성재~~ 이창섭은 기뻤던 나머지 급기야 "감사합니다, 형님!"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화 연결 도중 한 청취자의 지적으로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창섭 : "내가 육성재에게 형님이라 그래써...!" 서은광 : "성재야 나도 좀 좋아해 주라."~~ [[https://youtu.be/N4qMyDvabDE|김홍진 대란(47:57부터)]]] , 육둘기, 뎨깅이, 육광[* 후아유 - 학교 2015의 "공광"역을 해서 육광이라 불린다.], 감성재, --메인 막내--[* 2018년 8월 13일 민혁이가 리더로 뽑인 후에 멤버끼리 막내를 새로 정하자고 해서 돌림판을 성재가 직접 돌렸는데 자기 자신이 나왔다.... --어차피 막내는 육성재--] ||
         2015년 복면가왕에서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로 나와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후아유 - 학교 2015]]에 ~~서브남주~~ 공광 역할로 나와 대중에게 확실하게 육성재와 BTOB를 각인시켰다. 실제로 후아유가 종영하고 연말에 발매된 BTOB의 <집으로 가는 길>과 이듬해 연초에 발매된 <봄날의 기억>이 케이블과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며 BTOB가 뒤늦게나마 빛을 보았다.
         ||<|2> 2015년 || KBS2 || '''[[후아유 - 학교 2015]]''' || '''공광''' || ||
         실제로 육잘또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한다. 머리로 수박을 깬다던가, 가글 CF가 뭐가 어렵냐며 가글을 '캬~'하고 삼켜 [[서은광|리더형]]을 당황하게 만드는가 하면 --사실 [[서은광|리더형]]이 더 한다--, 코로 비눗방울 불기, 형들이 불은 비눗방울 삼키기 등 각종 똘끼 넘치는 행동을 많이 한다. 잉어킹 영상이 매우 유명하다. [[https://youtu.be/qv4h1lWQ6x4|#]] 매니저가 데뷔 초에는 아이돌의 본분을 잊지 말라고 타이르다가 현재는 포기 상라고 한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는 [[레골라스]]를 패러디한 육골라스(…) 분장을 하고 나왔으나, 개그만 일삼다가 [[몬스타엑스]]에게 18점 차로 KO패를 당해 광탈했다. 첫번째 사수로 나온 [[서은광|광피트]]가 부진한 상에서 3번째 사수로 나오자마자 3점과 5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했고, 마지막 슈팅 후 오버하는 포즈를 취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쏜 [[I.M|아이엠]]이 카메라 엑스텐을 기록한 후 육성재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는 것. [[서은광]]이 마지막 사수로 나왔을 때 [[레골라스]] 가발을 벗어던지고 말았다. 결국 [[서은광]]과 육성재의 어이없는 실수로 [[BTOB|비투비]]는 양궁 예선에서 [[광속 탈락|광탈]]했다.
  • 은혼/628화 . . . . 9회 일치
          * 한편 겐가이 영감은 야토족 용병부대에 잡혀 포박 당한 상인데.
          * [[진선조]]의 국장 [[곤도 이사오]]가 대답한다.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에 의해 우주와 지상의 통신이 두절되고 지휘계통까지 무너진 해방군이 금방 재건되기는 어렵다. [[히지카타 토시로]]도 놈들은 패주하다 막부의 추격대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에 거의 와해된 상라고 덧붙인다. [[오키타 소고]]는 오히려 지금은 공세로 전환할 찬스라며 저정도 대군이 지휘계통도 없이 흩어진 지금이라면 병량을 노려서 궤멸시킨다면 그걸로 전쟁은 끝이라고 자신한다.
          * 그러나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가 이끄는 오니와반슈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애초 그들의 목적은 정전 협정이 채결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구여 치고나가서 적들을 몰살시킬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적들은 어찌됐든 대군이며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미지수다. 젠조는 거기에 확인되지 않은 용병 부대가 하나 더 있는 것도 신경 쓰인다며 신중론을 펼친다.
          * 음양사 집단인 게츠노슈와 시리노슈는 입장이 또 다르다.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기회가 올 때 잡지 않으면 다음은 없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것이 마지막 "승부처"라면 놓치면 끝장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들 안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게츠노 크리스텔]]은 꼭 싸워야 한다는 말이냐며 주저하는 도를 취한다. 세이메이는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일어난 희생이 물거품이 된다는 의미라고 첨언하지만, 결국 진지하게 공세를 취하는걸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에도에서, 지구에서 어나서 다행이라고...
          신파치가 그저 말도 안 되는 몬스터 아니냐고 신랄하게 까자 긴토키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헤도로와 헤도라의 힘을 나누는데 성공했다고 밝힌다. 헤바의 머리에 있는 한 쌍의 꽃이 그것이다. 이 꽃 형의 레버로 헤바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데 이미 능숙하게 츳코미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신파치에게 시험 삼아 보케질을 해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츳코미역이라며 캐릭터성을 따지고 있다.
          정말로 듣기 힘든 긴토키의 칭찬이었지만, 아쉽게도 신파치도 그 말은 듣지 못한다. 어느새 신파치도 앉은 채로 졸기 시작했다. 결국 긴토키는 자기 이부자리까지 신파치에게 넘겨준다. 타에는 조금만 버텼으면 쉽게 못 들을 말을 들었을 거라고 아쉬워하는데, 긴토키는 평하게 대답한다.
          * 밤 하늘에 달이 완연히 떠올랐지만 진선조는 아직도 잠들지 못했다. 히지카타를 따라나선 오키타는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언제나 돼야 쉴 수 있냐"고 투덜거렸다. 회의는 결국 오늘은 푹쉬고 해방군에 대해선 내일 얘기하자는 어정쩡한 형로 종결. 대부분은 쉬러갔다.
          * 히지카타는 정전이란 말에 "내가 찾는게 그거"라고 말한다. 오키타는 "그거할 상대"라고 알아듣지만. 그가 말한건 정전을 넘어 에도의 모든 기계를 멈춘 남자 [[히라가 겐가이]]였다. 겐가이포 덕에 그나마 해방군을 막아낸 거지만, 이대로는 그들도 우주와 단절된 상로 아무 연락도 취할 수 없다. 우주로 나간 [[가츠라 고타로]] 일행과 교신하려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그러자면 겐가이의 협조가 필연적이다.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9회 일치
          * 에스카노르는 에스타롯사를 근처의 호수로 처박고 거기에 양을 던져 호수 자체를 증발시켜 버린다.
          * 몸을 회복한 에스타롯사가 에스카노르의 양을 어둠으로 삼키고 풀카운터로 반격, 에스카노르를 죽인 듯 했다.
          * 그러나 정오에 달한 에스카노르는 에스타롯사의 흉부를 찢고 어둠 속에서 더 큰 양을 끌어낸다.
          * 에스카노르는 날아가는 에스타롯사 위에서 "크루얼 선"(무자비한 양)을 발사, 에스타롯사를 호수 밑바닥까지 처박는다.
          * 그리고 "프라이드 플래어"(작열하는 오만)을 사용해 양을 폭발시켜 버린다.
          * 에스타롯사는 죽지는 않았지만 상반신이 반쯤 불에 탄 상로 나타난다.
          * 그런데 이번엔 에스타롯사가 빨랐다. "블랙 아웃"(암흑회귀)를 사용, 그의 양을 삼켜 버린다.
          * 그의 어둠이 양을 삼킨 걸 보면 마력 면에선 자신이 앞서며 물리력도 풀카운터로 반격할 수 있다.
          * 에스카노르는 "이몸의 공격이 통하지 않아? 누가 정했지?", "이몸의 양을 삼켰다고? 누가 정했지?" 라고 매우 오만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한다.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9회 일치
          * 두 명의 십계를 맞아 열세에 놓인 할리퀸과 디안느. 처음부터 죽기살기로 덤벼보기로 한다. 할리퀸은 진 영창 샤스티폴을 개방하여 2형 "가디안"으로 변환시킨다. 그로키시니아는 정답이라며 죽을 각오로 덤비지 않는 한 3초도 즐길 수 없을 거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영창 바스키어스를 던진다. 가디안은 가까스로 이 공격을 막는데 추진력이 너무 강해 그대로 벽까지 처박힐 기세다. 할리퀸은 이대로 벽을 뚫게 되면 탈출구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다행이라 여기는데.
          * 할리퀸이 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로키시니아의 두 번째 공격이 다가온다. 그도 영창을 2형 가디안으로 변화시키는데 거대한 말벌 같은 형다.
          * 가까스로 피한 할리퀸은 급격한 체력저하를 보인다. 그 상에서도 진 영창 샤스티폴을 제 5형 인크리즈로 변환해 반격하지만 전혀 맞추지 못한다. 게다가 체력도 한계라 그로키시니아가 접근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 벽이 휠 정도로 날아간다. 할리퀸은 이미 당한 상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급격한 아군화. 완전히 아군이 된다는 건지 다른 목적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행을 돕는다는 건지 불분명. 할리퀸과 디안느의 파워업 에피소드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이런 형가 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스포일러에서는 할리퀸이 디안느가 쓰러지는 걸 보고 날개가 뻗어나온다는 등의 내용도 있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둘이 정말로 십계를 배신한게 맞다면 현재 남은 십계는 리타이어가 확인되지 않은 몬스피드, 데리엘, 에스타롯사, 젤드리스 4인이다. 문제는 죄다 심각하게 관광탄 상라 제대로 전투가 가능한 상일지 미지수. 이렇게 되면 십계 중 유효한 전력이 한 명도 남지 않는 웃기는 상황이 된다.
  • 임백천 . . . . 9회 일치
         [[1958년]] [[5월 30일]], [[전라남도]] [[순천시|순천]]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어났다. [[순천시|순천]] 소재의 [[초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서울특별시|서울]]로 상경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1978년]]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MBC 대학가요제|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고 곧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가수 활동보다 [[MC]]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말에 [[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 출신의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더블 DJ/MC로 방송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게 MC로 진출한 계기였다.
         [[1992년]] 모 프로그램에서 [[서지와 아이들]] 데뷔 무대 당시 MC를 맡았다.--앨범에 [[영어]]로 되어 있어서 뭐라 설명도 못했던(...)--
         멘트가 인상적이다. 당시 [[양현석]]과 [[이주노]]의 나이를 가늠해서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는지 계속해서 "서지씨와 친구들"(...)이라고 했다.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1993년도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 TV 연예]]에서의 서지와 아이들 컴백쇼 코너를 보내주었고, MBC의 서지와 아이들 4집 컴백 무대에서도 멘트를 맡았고, 몇몇 서지 관련 이벤트 등에서 나와서 "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특집 방송이나 공연의 MC를 맡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실제 [[서지와 아이들]] 멤버들도 임백천에 대해 각별히 생각한다고 한다. 서지의 40대 이후의 외모가 놀랍게도 임백천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 정진(1941) . . . . 9회 일치
         그는 [[2000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사극 드라마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의 [[능환]](能奐) [[장군]] 역과 [[2009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사극 드라마 《[[천추후 (드라마)|천추후]]》의 고현(高峴) [[내시|내관]] 역으로도 친숙한 연기자이다.
         * [[2000년]] [[KBS]]《[[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 ... [[능환]] 역
         * [[2009년]] [[KBS]]《[[천추후 (드라마)|천추후]]》 ... 고현 내관 역
         [[분류:1941년 어남]][[분류:201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창작:치킨교 . . . . 9회 일치
         한국인들은 KFC 교단의 선교를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의 신앙전통에 맞는 형로 탈바꿈시켰고 이것이 오늘날의 치느님과 치킨교이다.
         모두 근본이 되는 닭의 튀긴 형상을 숭배하고 먹는 것을 종교활동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앙구조를 갖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각종 양념을 통한 이념화가 진행되면서 치킨의 "특정형"를 주로 신앙생활의 근본으로 삼는 종파로 분열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똑같이 "치킨"을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으나, 어떤 형의 치느님이 신앙적으로 우월한지 끝없이 논쟁을 일삼으며 오늘도 주문하기 전에 서로를 비방하며 "이걸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싸운다. 이는 마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가 똑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종교전쟁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략적인 종파는 아래에 소개하지만, 이 이외의 종교가 얼마든지 어날 수도 있다는 걸 먼저 알려두는 바이다.
         어쨌든 이들은 소스라 불리는, 찍먹에 불과했던 것을 넘어 아예 스스로를 치킨교를 대표할 수 있는 총대주교라 선포하며 하나의 종파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의 이들은 치킨의 가장 우월한 형는 양념을 두른 치느님이라 강하게 주장하는 한편, 이 강한 호전성을 바탕으로 이교도와의 외식전쟁에서 어느 정도 치킨교도들을 끌어모으는 데 아주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장 우월한 형의 치느님"이란 구호가 기존 후라이드 교도들과의 분쟁을 낳게 만들었다는 점은 이 종파의 가장 큰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어쨌든 이런 분쟁이 있었음에도 후라이드 치킨교황은 양념 치킨교 역시 하나의 "치킨교"임을 천명하였고, 이 발표에 양념 치킨교도 후라이드 치킨교를 "역사상의 원점"임을 인정하면서 가장 큰 분란은 종점을 찍게 된다.
         반면에 이 순살 치킨교는 기존의 교리를 거의 완전히 뒤엎으며 "치느님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보다 순수하도록 노력하시며 뼈 없는 형상이야말로 극진한 모습으로 화하신 것이다"는 아예 새로운 교리를 들고 온 종파였다. 이들은 무기를 거의 들지 않는 후라이드든, 양념이란 무기를 든 양념 치느님이든 상관없이 치느님의 가장 순수한 형는 "뼈 없는 형상"으로 규정지었으며, 이는 치킨교도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게 되었다.
          1. 치느님은 스스로 양식이 되시기 위해 처음으로 식탁위에 오르사, 그 형는 뼈가 있었다는 점을 보면 순살교도들의 주장과는 달리 결코 순수한 형가 아니라는 것.
  • 채동욱 . . . . 9회 일치
         [[2013년 4월]]부터 [[2013년 9월|9월]] 초 39대 검찰총장 재임기간 중 제1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노우]]의 미납추징금을 완납받고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는 완납 계획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2013년]] [[9월 6일]]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조선일보]]가 제기하자 법무부 장관 [[황교안]]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9월 30일]]에 사표를 수리하였다.
         * 1995년 : 전두환·노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참여. 12·12 사건과 5·18 사건의 검찰논고를 작성.
         * 2006년 :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고발사건과 관련해 당시 사장이던 허학씨 등을 기소했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 등도 지휘.)
         * 9월 4일 : 노우 전 대통령 미납추징금 완납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상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상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후임자 = [[김진 (1952년)|김진]]<br/>(직무대리)
         |후임자 = [[길기]]<br/>(직무대리)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찰총장]][[분류:서울세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평강 채씨]]
  • 풍운 . . . . 9회 일치
         두 주인공,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이 주된 줄거리. 였다가 중간에 중원 정복을 노리는 동영 무사들이 끼어들면서 동영과의 대결이 중심이 된다. 절무신, 천황 등을 쓰러뜨리고 동영세력은 궤멸된다. 그러나 섭풍은 마도(魔刀)를 익혔다가 그만 마인(魔人)이 되어버려서 마도에 빠진 섭풍 때문에 천하가 멸망할 위기가 오고, 이를 막기 위해서 보경운이 나서게 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보경운은 섭풍의 마인 상를 풀어주는데 성공하지만, 절벽에 떨어져서 실종되면서 마무리 된다.
         천황은 패망하였지만, 섭풍은 아직 세뇌당한 상로 떠돌고 있었다. 황제는 섭풍으로부터 황제(黃帝)의 등뼈를 되찾으려 하고, 보경운은 섭풍을 정상으로 되돌라려고 한다.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마인이 된 섭풍은 보경운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보경운과 섭풍은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보경운은 섭풍을 구출하고 자신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고 만다.
         보경운을 찾는 회공, 회멸 형제의 등장으로 시작. 보경운은 기억상실에 빠져 있다가 복귀하며, 불사신 제석천과 천문과의 싸움이 주된 줄거리다가, 제석천이 살해당하고 단랑이 최종보스로 등극. 풍운은 단랑과의 대결 끝에 단랑을 쓰러뜨리지만, 보경운은 섭풍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얼음 속에 파묻어 버리고 냉동인간 상로 10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다.
         10년의 시간이 흘러 풍운의 자손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정의한이었다가 정파의 위선에 실망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는 보경운의 아들 보천, 섭풍의 아들로 어났지만 사도에 빠진 역풍 등.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다소 스토리가 어지러운 것이 문제.
         회공의 친구. 어린 시절에는 불우한 가정에서 어나서, 어머니에게 [[개]] 취급을 당하다가 버림 받고 [[거지]]가 되어버렸다. 동네에서도 사람들에게 인간이라기보다는 들개 취급을 받으며 살았으며, 어느날에는 개밥을 훔쳐 먹다가 부잣집 개를 물어죽이는데, 그 보상이라면서 부잣집에서는 그를 [[사냥개]] 대신으로 삼아서 붙잡아 기르게 된다. 그러다가 사냥터에서 함정에 빠져서 죽을 뻔 했는데, 지나가던 회공이 구해줘서 살아나게 된다.
         사실 강호에 나오던 시점에서 이미 수명이 거의 남지 않은 상였다. 천하회에 나타나서 무쌍검을 꽂아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떠나는데, 이후에 자신이 평생동안 검술에만 몰두했으나 사실 이룬 것이 거의 없다고 자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웅패를 쓰러뜨리고자 하지만, 수명이 3일 밖에 남지 않은 몸이었기 때문.
         검성이 죽은 직후, 소검성 용아가 어난다. 이마에 똑같은 무늬가 붙어있는 것이 웬지 환생스럽다(…).
         '''성령검법 검입삼''' : 웅패와의 대결에 나서던 검성이 노령으로 기력이 다하여 미처 대련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에 완성한 성령검법의 궁극형. 검성이 죽음을 맞는 순간의 의지로서 구현된 검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양기와 생명의 표상인 무명의 '천검'에 대응하는 죽음의 검법. 무림의 신화, 검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닌 영웅 무명 조차도 검입삼은 천하무적의 무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 그 설명에 걸맞게 위압감은 엄청나다.
         그 실체는 검법인지 무공인지도 불확실한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멈추고''' 자기 혼자만이 움직이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적에게 일격을 날리는 검법이다.--[[더 월드]]-- 단순히 혈도를 찌르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지를 검기로 억압'해서 시간이 멈춘 상로 다가가면서 걸리는건 전부다 죽음을 맞게 하는 무차별 살상기술이다. 시간을 멈추는 공격이므로 당연히 검입삼은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듯. 엄청난 사기성에 웅패도 죽음을 각오했으나, 검성이 웅패도 같이 하늘로 데려가기 직전에 보경운이 검성의 시체에 발길질을 날려서 계단에서 날려버린 탓에(…) 검입삼이 깨지고 검성의 영혼이 그대로 승천하면서 웅패는 살아남는다.(다만 검성의 영혼이 찌른 손가락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
  • 한필수 . . . . 9회 일치
         '''한필수'''(韓弼洙, [[음력|음력]] [[1900년]] [[11월 6일]] ~ [[음력|양력]] [[1986년]] [[4월 10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며 국회의원이었다.
         본관은 청주. 호는 동석(東石)이다. 서울 장교동에서 육군 정위 용호(龍鎬)의 둘째 아들로 [[음력|음력]] [[1900년]] [[11월 6일]] 어났다. 출생일과 출생지가 상이한 기록도 있으나 유가족을 통해 확인한 결과 1900년이며 장교동이 정확하다.
         |후임자 = [[이용]]
         [[분류:1900년 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허근욱 . . . . 9회 일치
         [[1930년]] [[3월 28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변호사 겸 독립운동가 [[허헌]]과 문화 유씨 유덕희(柳德禱, 또는 유문식(柳文植))의 딸로 어났다. 위로는 이복 언니 2명이 있었고, 둘째 언니가 독립운동가 겸 여성운동가 허정자([[허정숙]]으로 개명)였다. 유덕희에게서는 첫 딸이었다. 그 아래로 음악가인 여동생 [[허선욱]]과 허기욱, 허영욱, 허선욱 그리고 [[북조선]]에서 외교관을 역임한 [[허종욱]] 등이 어났다.
         어머니 유덕희는 [[신천군]] 월정리의 개화인사 유정(柳泰正)의 딸이었다. 유정은 지주가문 출신으로, 대지주인 유동승(柳束昇)의 아들이었으며 한성에 유학하여 동양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개화사상을 가진 부모의 후원으로 [[한성부]]로 상경하여 신문물을 배웠으며, [[이화학당]] 재학 중에는 이화학당의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내가 설 땅은 어디냐》 (신양사, 1961)
         * 《다홍빛 양》 (집현사, 1975)
         * 허근욱, 《내가 설 땅은 어디냐》 (신양사, 1961)
         * 허근욱, 《다홍빛 양》 (집현사, 1975)
         [[분류:1930년 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양천 허씨]][[분류:일제 강점기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허정숙]][[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흥친왕 . . . . 9회 일치
         흥친왕 이재면은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한성부]] 사동(寺洞) 사저에서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장남으로 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이었다가 뒤에 재면으로 고쳤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이희공실록]]에 의하면 그가 어나자마자 지어진 이름은 재록이었다 한다. [[조선]] [[조선 헌종|헌종]]과 [[조선 철종|철종]]이 연이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이재면 역시 유력 왕위계승권자로 지목되었으나, [[조선 철종|철종]]이 사망할 무렵 그는 성인이었기에 왕위계승권 서열에서 밀리게 되었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다시 섭정으로 재추대되자 일시적으로 무위대장(武衛大將)으로 사수습에 힘썼다. [[호조]][[판서]]·[[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훈련원|훈련]]대장을 겸하였다.
         {{인용문|여기서부터 내일 아침에 떠나 출발하면 이틀만에 천진에 도착할 수 있다. 왕복에 7~8일이 허비하리라 한다. 이 배에서 다 말하기를 오늘날 공(흥선대원군을 지칭)이 천조에 들어가는 것이 크게 다행이라 한다. 총총이 겨우 써서 숨겨두고, 전편(傳便)을 기다려 부칠 생각이다. 동하지(충동당하지) 말고 안정하라<br /><br />1884년 음력 7월 15일 청나라로 끌려가는 배 안에서 몰래 쓴 편지<ref name="문사1"/>}}
         {{인용문|다시 뵈옵도 못하고 세상이 올이지 않이하리신이 지필을 다해야 한심하오니다. 평히지니시옵기 니니 발아옵니다. - 보정부 안치죄 이상서<br />(다시 뵙도 못하고 이승에서 내 목숨이 오래지 못하겠으니 종이와 붓을 마주 대하기 한심하옵니다. 내내 평히 지내시기를 바라옵니다. - 보정부 안치죄 이상서<br /><br />1884년 음력 10월 12일 보정부에서 몰래 쓴 편지<ref name="문사1"/>}}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하였다. 황현은 운현궁의 폭탄 테러 사건을 [[명성황후]]가 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인 짓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p316">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2007.4, 경인문화사) 315~316쪽.</ref> 이때 [[흥선대원군]]의 사랑채와 이재면, [[이준용]] 부자의 거처에도 폭약이 장치되어 있었으나 다행히 점화되지 않은 상에서 발각되었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에게 폭약을 보내 일가를 폭사시켰던 전례에 대한 정치적 보복극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ref name="p316"/>
         운현궁의 이로당에서 거주하다가 [[1912년]] [[9월]] 병세가 위독해졌고 순종은 전의(典醫)를 그의 집에 보내 왕진(往診)을 시켰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이왕 고종은 자신의 어의(御醫)를 보내 흥친왕을 진료하게 했다. 그러나 병세는 심해져 [[1912년]] 양력 [[9월 9일]]에 67세를 일기로 [[운현궁]] 정침에서 병으로 병사하였다. 어느 병환으로 사망했는가 여부는 알려져있지 않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공작 (작위)|공작]]의 지위는 아들 [[이준용]]이 상속하였다. 소생으로 영선군 [[이준용]], [[이문용 (왕족)|이문용]]과 딸 1명을 두었다. 흥친왕이 죽자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친히 그의 빈소에 가서 상복을 입고 곡을 하였다.
         [[분류:1845년 어남]][[분류:191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외교관|이희]]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8회 일치
         비잔티움으로 변환하는 방법도 있다. 시작지점에서 비잔티움영토에 클레임조작을 하고 영토를 먹은뒤 [* 아니면 속국으로 만든뒤 ~~라틴제국의 재림?~~], 주문화권을 그리스 문화권으로 바꾸고 정교회로 개종한뒤에 행정레벨 10이상인 상에서 비잔티움 코어가 있는 지방과 아나톨리아 서부를 먹으면 된다.[* 비슷한 방법으로 그리스 형성도 가능하다. 다만, 이경우엔 개종도 필요없고 그리스지방만 먹으면 되서 훨씬 쉽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통칭 역설국. 제작사가 스웨덴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하다. 국가 이념도 전투쪽에 몰려있어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뜷고 러시아화가 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편. 초반에 덴마크한테 동군연합되버린 상로 시작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독립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스웨덴이 아무리 북유럽 삼국중 가장 강력해도 덴마크+노르웨이를 1대1로 이기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그러므로 덴마크가 라이벌로 지정한 국가에게 독립지원을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추천조합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혹은 잉글랜드+모스크바등.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것도 좋지만 마레 노스트럼(1.16)패치이후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가 상당히 뼈아파서 그냥 폴란드가 들고 있는 프로이센지방을 뺏어서 발틱노드나 장악하는게 더낫다.
         장미전쟁이 끝나면 정부체제가 고유 정부체제인 잉글랜드 왕정(English Monachy)으로 바뀐다. 효과는 행정 22렙이후에 뜨는 입헌 군주정이랑 비슷한 편.그외에 영토상황으론 백년전쟁도중이란걸 표현하기 위해 프랑스지방에 영토를 들고 있으며, 포르투갈이랑 시작시 동맹상다. 근데 문제는 잉글랜드가 백날 힘을 써봐야 프랑스 육군을 절대 못이긴다는거(...) 플레이방식이 둘로 나뉘는데, 우선은 대륙의 모든 영토를 프랑스에게 팔고(...) 조용히 식민지 개척이나 준비하는 것과 속전속결로 프랑스를 처리해서 유럽 최강으로 나아가는것.
         리투아니아와 동군연합상이고 행정레벨 10이상이면 연방왕국(커먼웰스)를 성립할 수 있다.
         우선 시작지점에서 공위상인데, 헝가리의 왕이 오스만과의 바르나전투에서 패배해서 그렇다.[* 같은 이유로 폴란드와 보헤미아도 공위상다.] 오스트리아와 시작하자마자 동맹을 해두고 약간만 기다리면[* 앞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해두고를 적었지만 꼭 오스트리아와 동맹안해둬도 일어난다. 어차피 역사적 친구보정덕에 냅둬도 동맹을 걸고] 000섭정의회로 갈지, 야노슈 후냐디를 섭정으로 세우는지[* 능력치 455]가 갈릴텐데 능력치도 후자가 더좋고 역사적이기까지 하므로 얌전히 야노슈를 섭정으로 올리자.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가 깎이겠지만 역사적친구보너스 덕에 이거 가지고 동맹이 풀리거나 동맹을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 보헤미아와 튜튼기사단중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지않은 국가와 동맹하고 폴란드가 튜튼기사단을 치길 기대하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전엔 폴란드가 거의 프랑스급으로 쎘지만 너프이후론 야노슈가 이끄는 헝가리군정도에 기사단 둘정도면 해볼만해질정도다.[* 다만 한타한번 밀리면 끝장이긴하다(...)] [* 만약 튜튼이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았다면, 독립보장을 걸어두자. 방어전 한정으로 따라서 싸울수 있다.] 그리고 이걸 하기전에 가장 중요한건 일단 미리 외교탭으로 가서 폴란드가 들고 있는 지방중 일부를 관심지역으로 지정해두는것. 전쟁기여도가 높으면 관심지역중 일부를 주는(아니면 전부!) 경우가 있으므로 굉장히 유용하다. 이상로 10년이 지나고 헝가리왕의 후계자가 없으면 [* 만약에 생겨버렸으면 1470년까지 어떻게든 후계자를 없애야 한다. 후계자가 좋을경우엔 그대로 합스부르크가로 유지하면 되지만.] 두가지 선택지가 생기는데, 첫번째는 야노슈의 아들인 마챠시 1세를 왕으로 세우는것이고, 두번째는 랜덤한 합스부르크국가에게 동군연합되는것이다.
  • 강동우 . . . . 8회 일치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2009시즌 한화 투수진엔 [[류현진]], 중심타선엔 [[김완]], 그리고 테이블 세터엔 [[강동우]]로 정리된다.'''
         한편 2009 시즌 말인 9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고영민]]을 축하해 주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면서 빈축을 샀다. 게다가 끝내기 안타 직전에는 2루심의 오심이 터진 탓에 다른 한화 선수들은 분을 억누르고 있던 상였다.
         '''투혼, 마지막 불꽃을 운 시즌'''
         5월 17일 두산전에서 [[3루수]]가 공을 잡자 오른팔을 빼고 왼팔을 뻗어 그하는 ~~헬멧 블로킹~~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로 3루타를 만들어냈다.
         '''[[한화 이글스|팬]], [[김응용|감독]], 그리고 [[이대수|선]][[김완(1984)|수]]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그 분.'''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절)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백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15년 전까지 무려 '''17년간''' 마지막 신인 정규타석 3할 타자였으나, 15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 [[구자욱]]이 .349를 기록하면서 갱신되었다. 다만 구자욱의 경우 '''2012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데뷔'''시즌 마지막 3할타자 기록은 아직도 강동우가 가지고 있는 셈. 하지만 2017년 고졸 신인 '''[[이정후]]'''가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하면서 최후의 데뷔시즌 3할타자 타이틀도 물려주게 됐다.[* 여담으로 강동우의 데뷔 시즌인 1998년은 이정후가 어난 해이다.]
  • 구자욱 . . . . 8회 일치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요청이 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고 3루수 연습도 했다. 포지션은 주로 1루수, 3루수, 좌익수이다. 0.357의 타율로 남부리그 타율 1위를 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그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채인]]을 [[넥센 히어로즈]]에 보내고 [[김대우 (1988년)|김대우]]를 받아오는 1:1 트레이드를 하였다. 팀에서 3번 타자 겸 1루수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전경기 출장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3할대 타율과 14홈런으로 데뷔 시즌에 비해 기록이 상승하였다.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길용우 . . . . 8회 일치
         민영과 많이 닮았다. 민영은 유작이 된 [[조 왕건]]에서는 초반에 신강 역으로 나왔다.[* 오래 갈 만한 캐릭터였는데,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는지라...][* 또한 용의 눈물에서는 정종 이방과를 연기하기도 했다.] 길용우는 [[복지겸]]으로 나왔다. 15회에는 둘이 같이 출연한다.
         그런데 바로 길용우가 매입한 이원동 건물에서 2016년 10월, 아들 길성진 이름으로 된 수제 맥줏집을 건물 옥상에서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용산구청 조사로 적발되었다.당시 '영업장 면적 변경과 변경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음에도 2017년 5월 2차 점검에서도 여전히 옥상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을 적발했다. 구청은 식품위생법에 의해 7일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려 했지만 그 대신 616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 [[내 사위의 여자]] - 박호 역
          * [[조 왕건]] - [[복지겸]] 역
          * [[양인 이제마]] - 좌명 역
          * [[술의 나라]] - 서관 역
  • 김동욱(배우) . . . . 8회 일치
         사실 신과함께 이전까진 작품이 들어오질 않아 집에서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887|전전긍긍했고]]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76074|배우의 길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김용화 감독에게 제의를 받았다. 물론 제작자들, 투자자들의 반대가 있는 듯 했으나 김용화 감독은 이미 일찌감치 수홍 역으로 낙점한 상라서 김동욱을 투입시키기 위해 오로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본인도 마지막 기회하고 생각하고 승낙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대성공했다. --[[말년병장]] 포스 뿜뿜-- 김동욱에게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006805|새로운 전성기가 왔고]] 김용화 감독도 재기에 성공한 동시에 본인의 [[덱스터 스튜디오|회사]]의 기술력을 더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서로 윈윈하게 된 셈.
         2015년 8월에 [[복면가왕]]에서 [[광대승천 어릿광대]]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정우]], [[장나라]]가 부른 'Be happy'를 [[금은방 나비부인]]과 불렀으며 2라운드 준비곡으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을 열창했다.[* 여담으로 군대에서 위문 공연 당시에도 이 노래를 불렀었다.] [[김형석]]에게 [[김광석]]이랑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나온 계기가 본인은 예능에 안 나간다는 것과 본인이 예능 출연을 안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발레교습소 || 김기 || ||
          * 아들과 친구처럼 영화를 보러 다니는 차현이 부럽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의 바람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 [[안성기]]를 존경했다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 과정이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이 때 출연했던 배우들과 함께 다시 한번 작품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그 바람을 이뤘다~~ [* [[손 the guest]] [[김재욱(배우)]] ]
          * 일상을 공개한다는 것이 어색한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SNS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핸드폰에 셀카 기능이 없어 셀카 사진 한 장도 없다고 한다.[*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동욱의 핸드폰은 아이폰6로, 당연히 셀카 기능이 있다. 아마도 셀카 기능이 있어도 어딨는지 모른다는 뜻으로 보인다.] 당연히 셀카 찍는 법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차현은 셀카를 자연스럽게 찍는 반면 김동욱과 하정우는 셀카를 매우 어색하게 찍었다.] 그래도 미니홈피는 존재한다.
          * [[신과함께-죄와 벌]] 언론 시사회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ZGwijzUpJo|환생한다면 되고 싶은 인물이 있냐는 질문]]에 [[하정우]]·[[정우성]]·[[주지훈]]·[[이정재]]로 어나고 싶다는 말을 해 웃음을 주었다. 이유는 '''키크고''' 잘생긴 배우로 어나고 싶다고 ~~여기서 차현의 말이 진정한 웃음포인트. "너나 나는 별 의미가 없어..."~~
  • 김시진 . . . . 8회 일치
         * [[평양 돌핀스]] 투수코치 (1993년 ~ 1995년)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 [[평양 돌핀스]]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시즌 후 [[김재박]]의 후임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9년]]부터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감독직을 맡아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았으나 2014년 10월 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ref name="ohmynews">[[오마이뉴스]] - 2008년 4월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2861 "최동원 · 선동렬에 가려진 위대한 투수"]</ref>
         | 제목 = 프로야구 MBC·해 스타트 快調(쾌조)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10년 한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에는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 [[이택근]], [[황재균]] 등의 이적 공백으로 인해 팀 전력에 큰 손상을 입으면서 하위권으로 쳐졌지만 어려운 팀 상황 속에서도 [[손승락]], [[고원준]], [[김성현 (1989년)|김성현]], [[김성 (1982년)|김성]], [[금민철]] 등 뛰어난 새 투수들을 키워 내 "투수 조련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때 갓 제대하고 마무리로 전향한 [[손승락]]이 [[이용찬 (야구 선수)|이용찬]]을 제치고 세이브왕을 차지하였다. 한편, 경북 포항 운영 면에 대해서 일부 팬들에게 "작전 능력이 미숙하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 좋지 못하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키움 히어로즈 감독]][[분류:현대 유니콘스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감독]][[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정혁 . . . . 8회 일치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식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우고 있다. ~~감독님 한번 좀 써 봅시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남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다만 팬들의 의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김정혁의 1군 중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상황이다. 우선 [[류중일]] 감독은 수비가 되는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고, 거기다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은 김정혁과 동갑이다. 거기다 지명타자로 가자니 삼성의 [[지명타자]] 포지션에 오를 선수들은 '''[[이승엽]]'''. '''[[최형우]]''', [[채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출장 경기인 4월 28일 LG전에서는 [[임지섭]]을 상대로 안타를 기록했다. 만 서른살에 나온 프로 첫 안타. 이후로는 [[구자욱]]이 다시 주전 1루수로 복귀하면서 대타나 대수비로 나오다가 [[채인]]과 [[김완(1981)|김완]]의 복귀가 다가온 5월 11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김재현(1991)|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유는 팔꿈치 부상이라고 한다. 그를 진료했던 의사는 야구는커녕 일상 생활을 어떻게 했냐고 할 만큼 팔꿈치 통증이 심했다고 한다. 재능이 부족하면 피나는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 안타까운 케이스.[* 현역 시절 코칭스프가 쉬면서 하라고 말릴 정도로 훈련을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
          * [[사자사랑방|모 카페]]에서는 [[장성우|아이돌]] [[갈매기 마당|취급을 받고 있다]]. ~~사사돌~~ 이 카페의 운영자는 단지 김정혁을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류중일]] 감독을 상대로 입에 차마 담기 힘든 수위의 욕설을 수 차례 올렸을 정도. 자세한 건 항목 참고. 이후 2016년과 2017년에 출장 기회를 받아 활약할 때만 난리치고 이후 좋지 않은 선구안으로 붕붕거리며 부진하면 입을 닫는 행를 보이고 있다.
  • 남성진 . . . . 8회 일치
         |친척 = [[김한 (뮤지컬 배우)|김한]](처남)
         * 2002년 [[SBS]] 일일드라마 《[[해 뜨는 집]]》 ... 욱 역
         * 2003년 [[MBC]] 가정의 달 특집극 《제비꽃》 ... 진 역
         * 2011년 [[KBS1]] 대하드라마 《[[광개토왕 (드라마)|광개토왕]]》 ... 고창 역
         * 2018년 [[JTBC]] 월화드라마 《[[뷰티 인사이드 (드라마)|뷰티 인사이드]]》 ... 김진 역 (특별출연)
         [[분류:영양 남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남양주시 출신]][[분류:1930년 어남]]
  • 박진성(시인) . . . . 8회 일치
         [[1978년]] [[충청남도]] 연기군 에서 어나 [[한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
          *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보였던 [[이자혜]] 작가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있었다. 하단에 서술된 성폭행 무고사건에 휩쓸린 후, 2017년 12월부터 [[웃긴대학]] 커뮤니티를 시작하였는데, 이 때 한 유저의 이자혜 작가 옹호발언에 대한 해명글을 요구하였고, 이에 답하였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28608|해명글]]을 요약하자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이자혜 작가는 명실상부 '''촉망받고 있는 작가'''였으며, 본인이 알고 있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이자혜 작가가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는 입장. (덧붙여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수도 없을 뿐더러, 메갈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과거 쓴 트위터에 대한 답변으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을 때는 침묵하거나 사과드리는 게 맞겠지요. 죄송합니다.' 였다. 성폭행 무혐의 사건 이후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관점이 바뀐 듯 하다. 다만, 본인도 메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혜 작가가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됨을 인지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9082|해당 기사 출처]][*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2018년 3월 21일에 [[https://blog.naver.com/poetone/221233628914|문제의 출판사와는 결국 계약을 해지]]했으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7월에 박 시인이 밝히기를,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상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힐 때 박 시인이 여러 시집의 계약을 이행하라는 언급도 한 것과 2016년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산문집의 글은 2018년 3월 계약해지를 알린 후에 산문집 '이후의 삶'에 포함되어 출간된 걸 보면, 기존의 시집과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시집과 관련된 계약을 해지하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15546|#]]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그리고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5282180711837697|ㅁㅊ]]([[https://archive.is/GZrdp|@]])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947768753299457|글]][[https://archive.is/uk1hs|@]]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과 [[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고 있다.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5280720691437568|#]][[https://archive.is/nKyFQ|@]][*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436470416334849|#]] [[https://archive.is/9IZbK|@]] 여담으로 [[http://www.hankookilbo.com/v/59c63886250945728a1b52d81920104c|이 기사]][[https://archive.is/eNOrA|@]]에 나온 비공식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https://tumblbug.com/baumealame4|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2017년 12월 7일, 오전 00시 47분에 의식을 회복하고 블로그에 첫 글을 남긴다. 그 이후에는 언론들에게서 받은 심적 피해가 심대했는 듯,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를 고발하는 글 등 언론들의 무고 관련 보도 도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들을 남기기 시작한다. 또한 블로그의 내용을 보면 박시인의 아버지 분도 거기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듯하다. [[https://blog.naver.com/poetone/221157223698|해당 게시글 링크]]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대놓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저 여성들은 뭐냐, 자리에서 나가겠다. K교수는 저의 항의를 묵살했습니다. 고En 시인에게 추행을 당했던 여성이 못 참겠는지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 울때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그 여성을 택시를 워 보냈습니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8회 일치
          * [[잭스 류그너]]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네르슈 버밀리온]]을 처리하는 동안 양팀 여성진의 격돌이 있었다. [[미모사 버밀리온]] 대 [[솔 마론]]. 마론이 골렘을 앞세워 그녀를 덮쳐왔으나 미모사는 식물마법 "마포의 꽃"으로 골렘을 분쇄한다. 마론은 그녀가 예상이상으로 강적이란걸 인정했지만 그녀를 오래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마포의 꽃의 레이저를 맞고 날아간 골렘의 오른팔이 공중에서 형를 바꿨다. 흙마법 "흙덩이 봉인". 하늘에서 거대한 토사가 미모사를 덮쳤다. 거기에 파묻힌 미모사는 당분간 움직임을 봉쇄 당했다.
          * 잭스의 독설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만큼 상대의 상도 가리지 않았다. 아스타의 일격으로 네르슈는 기절. 계속 마력을 빨리도록 그 위에 반마법의 검을 얹어 봉인조치까지 했다. 그래도 잭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원시적인 함정"에 걸렸으니 기사단이고 부단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라고 빈정거린 그는 "어쨌든 기분 나쁜 나르시스트"라는 원색적인 욕설까지 잊지 않았다. 이 상황을 합작한 아스타 조차 적당히 봐주라고 한소리했다.
          * 이때 일으킨 굉음이 말썽이었다. [[매그너 스윙]]에게 위치가 발각됐다. 그는 새로운 마법 불꽃 강화마법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려왔다. 아스타와 잭스, B팀의 크리스탈까지 발견. 아스타는 예상 외로 빠른 그의 접근에 놀랐지만 매그너는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버린 상에서 정지. 그게 매그너의 "필승존"이었다. 매그너는 그 상에서 특기인 원거리 공격으로 나왔다. 그는 아스타를 노리고 "입단식 때의 리벤지"를 선언했다. 아스타도 선뜻 "덤벼보십쇼 선배!"라며 그때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 다음 매그너의 전력투구. 아스타는 입단식 때와 같은 방법으로 받아치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이라면 더 정확하게 받아칠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불꽃의 마구가 눈 앞에서 사라져 크리스탈을 강타하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매그너는 정말 까다로운 상대. 아스타는 마땅한 공략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접근하려고 하면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아날 테고 크리스탈이 노출된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블랙" 상가 되는 것 밖에 없는데 그걸 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스타는 급기야 미모사에게 빨리 돌아와달라고 절규했다. 그때 잭스가 돌파구를 마련했다.
          네르슈가 그 시절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상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여 남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 동문대결은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아스타가 사라지는 마구에 속수무책. 크리스탈에 계속 타격이 갔다. 기를 읽는 방법도 어렵고 표적 자체가 작아서 더욱 어려웠다. 그 크기 또한 매그너의 섬세한 계산이었다. 마력용량이 적은 그로선 고위력으로 대량의 마법을 쓸 방법이 없었다. 에너지 효율과 공격빈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것이 이 형. 매그너의 표현대로 "하층민의 싸움방식"이었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8회 일치
          * 쥬리오는 그런 도가 못마땅해 "명가의 낙오자"를 비롯해 온갖 모욕을 퍼붓지만 잇시키는 부처같은 미소만 짓고 있다.
          * [[키노쿠니 네네]] 정통파 소바에 맞서는 [[유키히라 소마]]의 "나만의 소바". 키노쿠니는 당당한 도로 도전해 보란 도고 소마는 이 자리에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키노쿠니를 이길 수 있는 소바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불사른다.
          *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똑같이 1회전 멤버인 [[잇시키 사토시]]가 아예 이쪽 조리대에 와서 관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마가 자기 요리는 어쨌냐고 묻자 어차피 숯불을 달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평하다. 그는 소마의 요리를 흥미롭고 기특하게 바라본다. 그는 아군을 고무시키는 것도 팀워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 고무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십걸인 [[메기시마 토스케]]는 반대로 아주 성실하고 묵묵히 조리를 하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따지고 보면 상대측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도. 당연히 잇시키의 대결 상대가 반발한다. 그는 더이상 한눈팔지 말라며 타당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쪽도 상당히 상가 좋지 않은지 요리에 대한 예술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요리란 식탁 위에 놓여진 것만이 아니라 요리 중 요리사의 행동, 즉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술인 것이다. 이같은 예술론은 잇시키와 자신이라면 서로 마주해 하나의 예술을 만들 수가 있다며 꽤 오글거리는 소리로 이어진다.
          쥬리오는 그 설렁설렁한 도에 폭발한다. "너는 언제나 그렇다"며 그의 의욕없음을 질타한다. 그는 적이면서도 잇시키의 재능을 "존경"한다고까지 표현하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활약할 날만을 기다려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나키리 아자미]] 총수에게 따르지 않고 그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일 뿐이라고 매도한다. 물론 잇시키의 도가 이정도 매도로 흔들릴 수는 없다. 옆에서 소마가 황당해할 정도로 동요가 없는 잇시키.
  • 심현섭(코미디언) . . . . 8회 일치
         [[1990년대]] 후반 IMF 사로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자 [[한국방송공사|KBS]]로 이적, '서세원쇼의' 내부 코너 '시사 투나잇' 등 심야 쇼프로에서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이다도시]], [[앙드레 김]]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이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남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절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김준호(개그맨)|김준호]][*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김대희]],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로 [[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1&aid=0000175748|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병진]], 이식, 김미진, [[김숙]], [[강성범]] [*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등의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을 개콘에서 이탈하게 한 것을 주동한 계기로 해서, 정치적인 면과 연예적인 면 양쪽에서 [[어그로]]를 끌어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종영하기 전 [[김구라]] 채널에 패널로 등장. 자신의 개인기들을 선보이며 [[팟수]]들을 웃기려고 시도했으나... 결과는 지못미. 자세한 사항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참조. 이 날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김경민(개그맨)|김경민]]과 함께 김구라 방 '비운의 천재 특집' 편에 출연했다. 사실 개그 커리어만 봐도 셋 중에서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에 모두 가까웠던 사람은 20세기말 한국 개그의 레전드 심현섭 뿐이다. 단, 그날은 심현섭이 준비한 개그들도 기본적으로 타율 2할 미만이었던데다가,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김경민의 알수없는 [[드립]]에 전체 방송 분위기가 다 말려버리면서, [[김구라]]의 진행도 종잡을 수 없는 형가 되었고 김경민과 김수용 모두 심현섭보다 [[선배]]이다 보니(심지어 김경민은 [[군대]]도 선배다) 그가 컨트롤도 할 수 없게 되어, 원래 항상 틀을 점잖게 잡고 시작하는 스타일의 정석 개인기형 개그인 심현섭의 희극 연기도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s-1|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개콘을 떠날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절더러 '오만하다', '인기 얻었다고 떠나냐?'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상라면 '개콘'에 남아있는 게 결례다.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가느니 쉬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개콘' 생기고 나서 처음 주는 코미디대상인데…. (상을 받지 못해)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섭섭함이 맞아 떨어진 거라고 봐 달라."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후에 밝혔지만 이에는 사실 심현섭 개인의 분노보다 소속사의 결정이 더 컸다고 한다. 1주일 만에 웃찾사로 옮긴 것은 그런 [[이유]]라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815|#]]
         [[2018년]] 3월, 그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디시인사이드]]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L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가을, 심현섭과 소개팅을 했고, 첫 만남에 간 영화관에서 계속 허벅지를 주무르는 심현섭에게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그는 L씨를 차에 운 후 CCTV가 없는 장소를 찾아갔고, L씨가 차에서 내리려 하자 문을 잠그고, 자신을 애무할 것을 요구했고 "만지기 싫으면 이것만 봐달라"며 바지를 벗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99831|JTBC]]
  • 안내상 . . . . 8회 일치
         * 2006년 [[KBS2]] 2부작특집극 《[[연어의 꿈]]》 ... 구준 역
         * 2009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대기획 《[[양을 삼켜라]]》 ... 수창 역
         * 2010년 [[문화방송|MBC]] 단막극 《[[MBC 일요 드라마 극장]] - 조은지 패밀리》 ... 평 역
         * 2012년 [[OCN]] 메디컬범죄수사극 《[[신의 퀴즈 3]]》 ... 배식 역
         * 2012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추석특집극 《[[가족사진]]》 ... 한상
         * 2014년 [[JTBC]] 금토드라마 《[[하녀들]]》 ... [[종 이방원]] 역
         * 2015년 [[온 스타일]] 수요드라마 《[[처음이라서]]》 ... 윤오의 아버지 역
         [[분류:1964년 어남]][[분류:순흥 안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199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 원피스/858화 . . . . 8회 일치
          * [[페콤즈]]는 양 해적단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사실 [[징베]]의 지시를 받고 그가 빅맘 [[샬롯 링링]]에게 전말을 보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 [[쵸파]] 일행은 모두 목욕을 한 상. 벳지는 결벽증이 있어서 지저분한 인물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동쪽 하구에선 양 해적단이 주둔하고 있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페콤즈]]를 돌보고 있는데, 사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징베]]는 그를 구하긴 했지만 그가 [[카포네 갱 벳지]]의 배신을 빅맘 [[샬롯 링링]]에게 보고하게 두지 않았다. 양 해적단은 그를 치료한다는 구실로 성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부선장 [[알라딘(원피스)|알라딘]]과 그의 아내 [[샬롯 플라리네]]는 징베가 대신 보고를 하러 갔도 벳지는 응징 당하고 있을 거란 감언이설로 그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페콤즈는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거짓말로는 설득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난 밤 섬에서 소란이 일어난 걸 이미 알고 있는데다 양 해적단의 행동도 수상하다는 걸 간파한다. 그는 구해준 건 고맙지만 가야겠다며 억지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한다. 양 해적단은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기 위해 식은땀을 흘린다.
          * 누군가 정문에 나타나자 루피는 그가 벳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건 부하인 "괴총" 비트였다. 그는 상디와도 구면. 제르마의 팬인 만큼 상디를 "빈스모크 상디"라고 부르며 반가워한다. 비트는 다른 일행도 이미 도착해 있다며 일행을 안내한다. 비트 뒤에서 쵸파도 나타나는데 목욕을 해서 뽀송뽀송해졌다. 평하게 루피한테도 목욕을 하라고 해서 루피가 "시간도 없는데 뭔 짓이냐"고 한 마디 한다. 하지만 비트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파더(벳지)는 결벽증이 있는 건지 "지저분한 인간"과는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벳지는 시작부터 위협적으로 나온다. 부하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더 위협적이고 딱딱한 도다. 상디는 거기에 딴죽을 건다. 자신이 죽었다간 식 자체가 없어지니 찬스가 제로라는 것. 게다가 그는 개시 2시간 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것이다. 벳지는 유감이라며 그 말에 동의한다. 징베는 그렇게 밀당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끼어든다. 그는 루피에게 직감적으로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떻지 의향을 묻는다.
  • 유지인(1956) . . . . 8회 일치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1985년]] [[KBS2]] 화요드라마 《[[평무]]》
         * [[2009년]] [[MBC]] 월화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 준 모 역(특별출연)
         * [[1975년]] 《[[백산맥 (1975년 영화)|백산맥]]》
         * [[1993년]] [[CJ제일제당]] 양초 고추장
  • 윤용현(1969) . . . . 8회 일치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예회 연극에서 인디언 추장 역을 맡았는데 그 때 보러왔던 외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어나서 처음 본 후 연기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87년부터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94년 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안재욱]], [[이현경]], [[유웅]], [[최지우]], [[이민영]]과 동기다.]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34003|#]] 데뷔 당시 1년 선배가 [[차인표]], 동기가 [[안재욱]], 1년 후배가 [[정준호]]여서 그런지 방송국 내에서 강한 인상으로 주목을 받았고 특히 [[조형기]]는 "방송 생활 10년만에 강간범 할 수 있는 놈이 드디어 후배로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주로 파워풀한 배역을 자주 맡는 편이다. 야인시대의 신영균이라든지, 대조영에서 계필사문이라든지, 천추후에서의 야율적로라든지, 자이언트에서 고재춘이라든지, 제5공화국에서 고문을 잔인하게 하는 준사관이라든지.
          * KBS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2000) - 안상
          * KBS 양인 이제마(2002) - 장봉수
          * KBS [[천추후(드라마)]](2009) - 야율적노
          * MBC [[파스타(드라마)|파스타]](2010) - 광
          * SBS [[미세스 캅]](2015)/[[미세스 캅 2]](2016) - 마
  • 은혼/602화 . . . . 8회 일치
          * 자작은 책임을 추중 당하면서도 이 사는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의 자멸을 획책하는 자의 함정이라고 역설한다.
          * 자작은 과연 초연의 황자의 아내라며 자신도 그 숙적에 걸맞는 싸움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설마 어날 아이의 아버지를 뺏더라고 말이다.
          * 자작들은 그들의 도가 괴뢰정부라고는 볼 수 없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약속을 했다.
          * 이 사는 지구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해방군의 알력을 이용해 전쟁을 확대하고자 획책하는 자의 함정이다.
          * 자작은 원상을 독대하며 지구의 사절단을 소개하려 한다. 이미 사는 지구인의 협력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우츠로는 천도중의 몸을 소재로 불사신 부대를 만드는데 성공. 하지만 상로 보아하니 오보로처럼 자아가 유지되는 것 같진 않고, 그저 우츠로의 명령에 따르는 좀비 같은 상다.
          *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자작의 고향도 비슷한 괴멸사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있다.
  • 은혼/639화 . . . . 8회 일치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합류. 하지만 모퉁이 바로 뒤에 적의 대병력이 진치고 있다. 적의 화력과 무장 상가 좋아 진격이 막힌 상. 뚫자면 골치 아프게 생겼다. 마타코는 이 고생을 해가며 히노카구츠치를 막아도 거기서 끝나는게 아닌 거냐고 반문했다. 반사이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르타나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결국 지구는 끝. 하지만 이미 폭주 상에 들어간 지구를 돌이킬 수 있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시작된 귀병대의 진격. 신스케가 선두로 나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끝없이 베어넘기는, 문자 그대로 지옥. 하지만 신스케는 지옥이야 말로 귀병대에게 어울리는 무대라고 단언한다. 반사이는 참모인 헨페이타가 "희망"이란 불확실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마타코는 맨날 로리만 입에 달고 사는 변 보단 방금 전 그게 훨씬 정상이라고 대꾸한다. "평소답지 않다". 그런 거라면 헨페이타가 문제가 아니다. 헨페이타는 사실 자기도 그들과 함께 진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답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 잡무를 떠받은 바토우가 투덜대면서도 일처리를 시작한다. 그의 부하가 해방군 모선의 네트워크에 컴퓨터를 연결한다. 그 컴퓨터에 있는 것은 데이터만 남은 상의 [[한카이]]. 증원군의 임무란 한카이의 능력으로 히노카구츠치를 해킹하는 것이다. 한카이는 부팅되자 마자 자신의 육신을 빼앗은 지구인을 위해 일하라는 거냐며 기막혀한다. 통신으로 연결된 헨페이타는 바로 그런 이야기라며 기공도사라 불린 그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말한다. 게다가 이미 별을 부술 만한 에너지가 모인 상니, 외부에서 두들기는건 너무 위험한 일. 한카이라면 최적의 인물이다.
          한카이는 승락도 거부도 하지 않은 상로 시큐리티에 접근하다 실패한 흔적을 찾아낸다. 이게 "지구인의 한계"라며 비웃는데, 사실 그는 그럴 처지가 못됐다.
  • 이기열(배우) . . . . 8회 일치
         * 1993년 《[[사랑의 종합병원]]》 - 서일 역
         * 1999년 《[[양은 없다]]》 - 문 사장 역
         * 2002년 [[KBS]] 《[[양인 이제마]]》 - 박수 역
         * 2009년 [[KBS]] 《[[천추후 (드라마)|천추후]]》 - 최섬 역
         * 2011년 [[KBS]] 《[[광개토왕 (드라마)|광개토왕]]》 - 을사록 역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1955년 어남]][[분류:198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목포시 출신 인물]]
  • 이연희(배우) . . . . 8회 일치
         [[http://m.hankooki.com/m_dh_view.php?WM=dh&FILE_NO=ZGgyMDE3MTAxOTAwMTAxMzEzOTAyMC5odG0=&ref=m.search.naver.com#_enliple|심지어 자타공인으로 인정받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yumeeee&logNo=220935048795&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sm%3Dmtb_hty.top%26where%3Dm%26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B%25AA%25A8%25ED%2583%259C%25EB%25AF%25B8%25EB%2585%2580%26o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C%2597%25AC%25EC%258B%25A0%26tqi%3DTCz1uspVuqVsstlVdJ0ssssssjK-150893|타고난 모미녀로 유명해서,]] [[http://m.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40|학창시절에도 그 미모가 빛을 발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티들이 여배우들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과거사진 문제나 성형수술 논란같은 문제도 그냥 종결시켜버릴 정도로 전혀 없다. 위의 링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성형수술 안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학창시절과 지금의 얼굴을 비교해도 거의 똑같다. 과거 모습은 아니지만, [[http://naver.me/5cFgCe6n|화장기 없는 민낯조차도]] 전혀 문제가 없다!
         무게감이 필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아직도 불안한 발음, 발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 에덴의 동쪽에서나 유령에서나 발성과 발음에서 전혀 나아진 게 없어서 본인도 연기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언급되었던 '악플은 무시한다'는 도가, 악플뿐 아닌 비판조차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여지가 많은데다가, 줄곧 발연기로 혹평을 듣던 다른 배우들인 [[황정음]], [[박재정]] 등이 점점 연기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지어 노력조차 안 한다는 이미지가 박혀버리게 되었다. 아예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는데 이연희보다 어리고 연기도 더 잘하는 후배들[* 심지어 연기에 도전하는 아이돌 멤버들까지.]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김희]]로 대표되는 '''미모만 되고 연기력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던 선배들마저도 연기력 향상에 투자하게 되면서 배우로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여담으로 이 당시에 [[구가의 서]]에서 보여준 이연희의 연기가 같은 시간대에 SBS에서 방송되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김희보단 낫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팬들은 MBC가 자사 드라마 홍보를 위해 언플을 하는 것뿐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연희는 연기보다 오히려 가창력이 괜찮은 편이라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를 했다면 [[임윤아|윤아]]나 [[연]] 정도는 그냥 씹어먹을 정도로 높은 명성을 얻었을 것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센터이자 에이스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정말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윤아 급의 외모와 노래 실력을 더 갈고 닦는다면 연 급의 능력을 갖춘 인재로 전후후무한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지도 모르고, 명반도 여러 장을 남겼을지도 모를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2005년 초콜릿 《해제과식품 "화이트엔젤 초콜릿"》
          * 화장품 브랜드 [[SK-ll]]의 모델이 되어 찍은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paranzui/50140489926|#]] 실제로 이연희는 이 CF에서 발음이 상당히 안 좋다. 특히 맑고 '투명'한 피부가 '투영'으로 들린다며 발음을 까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http://www.purepitera.co.kr/PiteraStory.aspx|그러나 놀랍게도 공식 사이트에서 '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TV CF만 본 사람들은 '투영'을 '투명'의 발음 오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애매한 단어는 상술된 외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SK-ll]] 공식 사이트에도 명기되어 있으며, 이미 2010년 부터[[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LeisureLife/Article.asp?aid=20100625002223&subctg1=20&subctg2=00|신문사에 배포한 공식 보도자료]]와 [[http://postfiles10.naver.net/data33/2008/6/21/233/image-3_abzero.jpg?type=w3|지면 인쇄 자료]]에도 '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맑고 투영한'은 한국어 문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형인데, 이것은 회사 측에서 본사인 일본식의 한자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연희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단어가 그런 것이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8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이 리뉴얼되고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방 배정 때문에 티격격한다.
          디안느는 엘레인의 몸을 걱정한다. 그녀는 금술로 혼을 묶어놓은 상이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엘리자베스의 마력 지원으로 한결 편안한 상다. 이번엔 엘레인이 요정왕의 숲 근황을 묻는데 디안느는 이럭저럭 잘들 있다고 대답한다.
          격분한 기색으로 외치는 할리퀸. 빈정거리는 도였던 고서도 고개를 숙이며 "알아"라고 대답한다. 에스카노르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진정은 커녕 말하던 도중 정신을 잃고 곯아 떨어진다.
          둘은 이제 일어서지도 못하는 킹을 부축해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킹이 잠결에 손을 휘두르는 바람에 에스카노르의 마법의 안경이 벗겨진다. 그리고 정오의 양의 받아 오만한 상가 된 에스카노르. "건방지다!"는 일갈과 함께 주위를 파괴한다.
          할리퀸이 그대로 엎어져 코피를 쏟게 되는 동안 고서는 깔끔한 동작으로 안경을 캐치, 원래 자리로 되돌린다. 이 마법의 안경은 멀린에게 받은 특제품. 정오에도 겸손한 상의 에스카노르를 유지시켜준다.
          * 원래 상로 돌아온 에스카노르는 고서와 협력해 뻗어버린 킹을 데리고 돌아간다. 고서는 재미있는 사건이라 여겼는지 "좋은게 하나 늘었다"고 중얼거린다. 킹은 인사불성. 에스카노르는 할리퀸이 이걸 기억하지 말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8회 일치
          * 현장의 상황을 보고 열받은 키리츠보 타이조. 나라에 "레벨7"이 없는걸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언제쯤이나 레벨7이 어나겠냐며 어나기만 하면 보물처럼 예뻐해주겠다고 사무치는 말투로 외친다. 이때부터 국장의 레벨7 사랑이 시작된 듯.[* 사실 그 당시 레벨7이 존재하긴 했다. 갓 어난 신생아이거나 아 상였을 뿐. 아카시 카오루가 생후 2일,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는 아직 모친 뱃속에 있던(각각 5개월과 3개월 째) 아 상였다.]
          * 한발 늦게 후지코가 도착한다. 현장의 추에 짜증내며 일단 ECM부터 정지시킨다.
  • 정웅인 . . . . 8회 일치
         |align="center"| 한규 역
         |align="center"| 금웅 역
         |align="center"| 문광 역
         |align="center"| 박영
         |align="center"| 황식 역
         | 제2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에이판 스타 어워즈]]
         | 제6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문식 . . . . 8회 일치
         그 뒤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새로 선임된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선임되였으며<ref>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5/1003000000AKR20131115070900007.HTML/ 최문식, AG 축구대표팀 코치로 합류] </ref>, [[2013년 AFC U-22 축구 선수권 대회]]는 4위에 그쳤지만,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28년만의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하였다. 이후 [[2016년 하계 올림픽]]까지 이광종과 코칭스테프를 맡을 예정이였으나 [[2015년 킹스컵]] 출전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으로 대표팀을 지휘하였다. 대행으로서 2승 1무로 대회의 우승을 이끈 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316559/ 9일 킹스컵 우승 ‘감독 교체-우즈벡 폭력-편파 판정, 악재 딛고 쾌거’] </ref> [[신용]]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다시 수석 코치로 신용을 보좌하였다.
         하지만 대전은 홈경기에 비해서 원정 경기에서는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2016시즌동안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단 4경기였고, 그중 3경기는 최하위였던 [[충주 험멜]]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였다. 이러한 한계로 끝내 승강플레이오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권 진입이 좌절되었고, [[10월 29일]] 성적부진과 승강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사임하였고,<ref>박찬준 (2016.10.29)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 최문식 감독, 자진사퇴 "성적부진 책임지겠다"]{{깨진 링크|url=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2F }} 스포츠조선</ref> 2017시즌을 앞두고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취임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335/ 최문식 전 대전 감독, 중국 옌볜 ‘박하 사단’ 합류]</ref>
         |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용]]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추봉 (배우) . . . . 8회 일치
         [[1922년]] [[경성부]]에서 3남매 중 차남으로 어났다(편집위원회). 이승학(李升學)의 문하에서 5년간 음악을 배웠으며, 1940년부터 극단 성군(星群)에서 활동했다. 영화데뷔는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에 배우 양일민의 추천으로 출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조,단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한겨레신문).
         * 1975년 《양의 분노》
         * 1980년 《병와 영자(속)》
         * 1986년 《》 - 이장꾼
         * 1990년 《불타는 양》
         * 1994년 《[[백산맥 (영화)|백산맥]]》
         [[분류:192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1952년 데뷔]]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8회 일치
         2010년에는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버전이 나왔지만 현재는 서비스가 종료된 상.
         보병 유닛들이 기관총 사격이나 박격포 공격같은 걸 당하면 제압 상가 된다. 제압된 보병 유닛들은 그대로 포복하기 때문에 생존성은 올라가지만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이 상에서 추가적인 공격을 당하면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기 저하 상가 된다. 이 경우에는 총을 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다른 유닛의 도움을 받거나 후퇴를 통해 본부로 돌려보내야 한다.
         차량 유닛들은 뒤에서 공격하면 "후방 피격!"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추가 피해를 받는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여러가지 상이상이 생길 수 있다.
          엔진룸 부분이 노랗게 표시된다. 이동 속도가 느려지는 상이상으로 제일 흔하다.
          주포 부분이 붉게 표시된다. 공격을 할 수가 없게 되는 상이상으로 보통 죽기 직전에 걸린다.
          차량 유닛들이 죽을 때 일정 확률로 일어나는 현상. 그대로 돌진해 어딘가에 꼴아박고 폭발한다. 이 상의 차량 유닛은 공격할 수 없다. 만약 꼴아박힌게 보병 분대였다면 걔네들한테도 피해가 간다.
  • 태의경 . . . . 8회 일치
         |사진설명 = [살며 사랑하며―의경] 불을 끄고 별을 켜다
         |웹사이트 = [http://minihp.cyworld.nate.com/pims/main/pims_main.asp?tid=22152542 의경 싸이월드 미니홈피]
         '''의경'''(太義卿, [[1966년]] [[7월 20일]] ~ )은 [[한국방송공사]] 아나운서실에 속해 있는 [[아나운서]]이다.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을 수료하였다.
         * [[3시와 5시 사이|의경의 3시와 5시 사이]] ([[KBS 제2FM|KBS 2FM]])
         * [[하일성 의경의 스포츠 쇼]] ([[KBS 제2라디오|KBS 2라디오]])
         * 의경의 우주콘서트
         * 의경의 우주콘서트
         [[분류:196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진선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서울여의도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토리코/396화 . . . . 8회 일치
          * 구르메 일식의 정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르메 위성"이 뚜껑처럼 양을 가려서 생기는 것.
          * 식운은 이들 미식의 신들이 흩어져 에너지로 전환된 형.
          *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토리코. 1화에서 처럼 메뚜기를 미끼로 삼고 있다. 코마츠가 도착하며 오오타케의 고아원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다 사과한다. 코마츠는 날씨가 매우 좋다며 양도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하는데, 토리코가 그 말을 듣고 구르메 일식의 진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 구르메 일식은 "구르메 위성"이란 것이 양을 가리면서 생기는 것. 고대에 니트로들이 만든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성이 냄비뚜껑처럼 양을 가려서 일어난다. 구르메 매터로 만들어진 것으로 니트로들이 별을 조리하는 방식을 바꾼 것도 이 위성 덕.
          * 토리코는 괴물이 양을 집어삼킨다는 동화의 내용을 언급하며 그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구루메 천문연구팀이 연구해본 결과 구르메 빅뱅 직후의 에너지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분석해 보니 놀라운 영상이 드러난다. 직경 10광년짜리 "은하"를 밥상처럼 놓고 둘러앉아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한 마리가 양처럼 거대한 미미의 코끼리, 코스모스 매머드가 무리지은 성운이 있다고.
         식욕만이 들어갈 수 있는 우주의 식납고 "스페이스 팬트리"에는 아직까지도 미지의 식재가 잠자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식재가 어나 자라고 있다고.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8회 일치
         아머량에 관여하는 장비들. 중장갑일수록 아머량이 늘어나지만 은닉도, 이동속도, 회피율, 스미나가 떨어진다.
         || 스미나 || 51.3 ||
         || 스미나 || 47.5 ||
         || 스미나 || 50 ||
         || 스미나 || 45 ||
         || 스미나 || 42.5 ||
         || 스미나 || 40 ||
         || 스미나 || 35 ||
  • 황치열 . . . . 8회 일치
         * 2016년 4월 8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13회 가왕전. 듀엣곡(WITH 거미) '''2위''', 솔로곡 리커친 상대로 승. 가왕전 최종 ''' 3위''' 《[http://www.mgtv.com/v/1/290525/c/3107721.html 양의 후예OST You are my everything 무대영상]》[http://www.weibo.com/p/10151501_60371208 weibo 음원]
         * 2015년 11월 28일 [[김우 (1981년)|김우]] T-Road 콘서트 게스트
         * 2016년 6월 25일 중국 호 2016 호 뮤직 페스티벌 게스트
         |아시아 평양 스타 어워즈
         |아시아평양 라이징스타상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6년 데뷔]][[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너의 목소리가 보여 참가자]]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7회 일치
         대부분의 인류가 선천적으로 타고나게 된 초능력. 비록 스케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 그대로 거의 누구나 다 갖고 있어서 개개인만의 특성이란 의미에서 '개성'이라 불리게 된 듯 하다. 다만 부모에게서 유전되는 면이 있고, 중복되거나 비슷한 개성도 존재하며 개성없이 어난 무개성도 존재한다.
         그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경우는 중국 케이케시에서 어난 빛이 나는 아기인 모양이며 뉴스로도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각지에서 개성이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이때를 초상여명기라 부른다. 이 시대에는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대립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극심해서 문명까지 정지해버렸으나 미도리야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히어로는 개성이 없으면 안된다고 못이 박힌 듯한 인상마저 있을 정도로 현 인류 사회에서 존재감이 크다. 다만 극중에서 개성이 어째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현재로선 묘사가 없다.
         4살 전후까지 발현되며 확인은 새끼 발가락 관절 개수 같은 신체적 특징을 통해 개성의 유무를 알 수 있다는데,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새끼 발가락 관절이 없다고 한다. 쓸모 없는 기관이 없이 어난 사람이기에 개성같은 부분이 진화되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그리고 4살 전후라는 점에서 어려서부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의 유전이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개성혼이란 문제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 다만 미도리야는 부모 양쪽 다 개성이 있음에도[* 어머니는 염동력으로 추정되는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는 아직 등장이 없으나 불을 뿜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무개성인 것을 보면 유전 법칙이 절대적이지는 않은 듯 하다.
         개성과 관련된 법률도 당연히 이미 제정되어 있는 상인데 상세한 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일단 자격이 없는 상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한도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모양.[* 극중에서 뭐가 됐건 억눌린 시대라는 말이 이것과 관련이 잇을 듯하다.]
         개성 발현 2~3세대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구시대의 악습.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끼리 결혼시켜 더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가 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결혼이다. 사실상 인간 품종 개량이라 봐도 무방한 것. 개성 사회의 씁쓸한 부분이며 현 시대에서는 상술한 대로 구시대의 악습이라 인식되는 듯 하다. 그런데 극중에서 한 히어로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실행했다.
         문자 그래도 개성 없이 어난 초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 주인공인 [[미도리야 이즈쿠]]가 무개성이었으며 세대가 지나면서 적어지는 듯하나 미도리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현 세대에도 존재한다. 다만 극중에서는 100화 넘게 진행되었는데도 등장이나 언급이 매우 적다.
  • 갸루 . . . . 7회 일치
          * 야만바(ヤマンバ) : 200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 어원은 [[야마우바]], 야만바 등으로 불리는 일본의 요괴 마귀할멈(山姥). 머리카락은 탈색한 백발, 흐트러진 헤어스타일, 닝하여 아주 검게 된 피부(간구로ガングロ 라고 한다) 등이 특징. 닝한 검은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립스틱이나 아이라인은 하얀색을 사용한다.
          * 만바(マンバ) : 야만바의 진화형. 2003년 부터 2012년 쯤 까지 유행. 야만바보다 더욱 진하게 닝을 하고, 이를 곤구로(ゴングロ)나 바치구로(バチグロ)라고 부른다. 메이크업은 아이라인 등이 더욱 하얗고 넓게 되어 거의 페이스 페인팅에 가깝다. 바비인형 같은 패션을 한 스타일은 반바(バンバ) 세레브(セレブ)계 패션을 도입한 것을 세렌바(セレンバ)라고 부른다.
          * 시로갸루(白ギャル) : 2000년대에 나타난 스타일. 서퍼 패션과 LA패션에 영향을 받아 닝을 좋아하던 이때까지의 갸루 패션과는 반대로, 하얀 피부와 금발에 가까운 염색 등으로 미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 오갸루(汚ギャル) : 야만바와 함께 유행한 단어. 더러운 갸루라는 뜻이다. 갸루 패션을 하였으면서 [[가출]], [[부등교]] 상에 있어 [[위생]]을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사례. [[목욕]]이나 [[세탁]]은 제대로 안 하는 상에서 [[화장]]만 덕지덕지 하다보니 위생이 처참한 상에 이른다.
  • 고인범 . . . . 7회 일치
          * 2009년 KBS 2TV 대하드라마 [[천추후(드라마)|천추후]]
          * 2010년 SBS 월화드라마 [[닥터 챔프]] - 왕
          * 2011년 KBS 1TV 대하드라마 [[광개토왕(드라마)|광개토왕]] - 마수
          * 2014년 KBS 2TV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 - 장수 (특별출연)
          * 2016년 KBS2 주말연속극 [[아이가 다섯]] - 상민과 민의 아버지
  • 김광석 . . . . 7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나 [[부산광역시|부산]]로 상경하여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 (1951년)|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 (밴드)|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2010년 11월 그가 어난 [[서울특별시|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5/2014060501769.html|제목=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성관 편집위원|날짜=2014-06-05}}</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15_201405251507299539|제목='김광석'으로 되살아 난 길|출판사=YTN|날짜=2014-05-25}}</ref> 2015년 11월 2일,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광석의 매각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단독]가수 고(故) 김광석, 학창시절 보낸 창신동 집 팔려 |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출판사=포커스뉴스 |저자=이유정 |날짜=2016-01-25 |확인날짜=2016-05-08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508074315/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보존날짜=2016-05-08 |깨진링크=예 }}</ref>
         1964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경기도 서울시]] 남창동 (서울) (남대문시장4길) 서울남대문시장 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현재는 [[연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김광석 타살의혹 제기 이유 3가지 들어보니..|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6191535352210|출판사=뉴스엔|저자=허설희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 일어나 /엄환+이정열+서우영
         [[분류:김광석]][[분류:1964년 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음악가]]
  • 김병옥(배우) . . . . 7회 일치
         >[[올드보이(2003)|올드보이]]에선? - [[유지]] 경호하는 '''나쁜 놈.'''
         영화 [[신세계(영화)|신세계]](2013)에 [[옌볜 조선족 자치주|연변]]의 살인청부업자인 연변거지1 역으로 출연하여 강 과장([[최민식]])을 죽인다. 참고로 김병옥은 10년 전 [[올드보이(2003)|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에게 가위지르기로(가위가 귓구멍으로 들락날락) 뇌손상을 입은 채 [[최민식]]의 목을 조르다가 이우진([[유지]])에게 헤드샷을 당해 죽는 경호실장 역으로 나왔다. 이른바 10년 만의 복수. 드라마 [[미세스 캅]]에서 살인청부업자 황박사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무서워-- [[미녀 공심이]]에서도 악역.
         || 개: dog eat dog || 민식 목소리 || 특별출연 ||
         || OCN || 사랑은 맛있다 || 진수 || ||
         || [[제왕의 딸 수백향]] || 연불 || ||
         ||<|2> MBC || [[트라이앵글(드라마)|트라이앵글]] || 고복 || ||
         || [[미녀 공심이]] || 염철 || ||
  • 김종훈 (1952년) . . . . 7회 일치
         * 2010년 5월 : 제66차 UN [[아시아 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 총회 의장
         * 2008년 4월 : 제64차 UN [[아시아 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 총회 의장
         * 2005년 : [[아시아평양경제협력체|APEC]] 대사
         * 2004년 8월 ~ 2007년 8월 : [[아시아평양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회의 대표
         |후임자 = [[박호 (1952년)|박호]]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통상교섭본부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7회 일치
          * 하지만 리키야는 [[이리나카]]에게 밭은 개성 부스트 약물을 복용한 상. 제압된 상임에도 공기를 흡입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있던 경찰과 류큐팀의 활기를 흡수하게 된다. 기운을 되찾은 데다 구속까지 풀리자 다시 날뛰는 리키야. 반대로 활력을 빼앗긴 류큐팀과 경찰들은 기운이 없어서 대피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어나기 전 상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원래 두목에게서 에리의 보호와 개성규명을 부탁 받았는데 배신하고 그 능력을 악용해 지금의 사업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무자비한 학대와 인권유린은 덤. 자신을 믿고 에리를 부탁한 두목을 배신하기도 했다. 조직을 두목의 뜻과 다르게 이끌기도 했으니 두 번 통수를 친 셈. 미도리야에게서 선수쳐서 에리를 다시 빼앗지만 에리가 루밀리온의 망토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뜨면서 개성이 발동, 네모토 신을 흡수했던 상를 되감아 다시 분리시켜 버린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7회 일치
         실제로 그는 당시 소렌토의 공작으로써 살레르노 공작과 대립중이던 그의 동생인 기욤[* 앞에서 설명된 '강철팔' 기욤과는 다른 인물이다.]을 격파하는데 힘을 보주는 대신, 살레르노 공작의 땅을 잠식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기스카르와 비잔티움은 이미 그가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기전에 군사동맹의 체결이 논의 된적이 있었다. 1073년에 미하일 7세는 기스카르에게 군사동맹과 함께 로베르의 딸중 가장 아름다운 딸과 황실에서 어난 황제의 동생[* '제국의 조각상'이라 불릴정도로 아름다운 자였다고 한다.]을 제안한다. 기스카르가 별다른 답을 보이지 않자 미하일은 거기서 더 강화한 제안을 하는데, 미하일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기스카르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비잔티움의 훈장 44개를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매년 금 2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식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남이탈리아에 반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상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상황이 없었다.
         그러나 그정도로 기스카르의 열정을 꺾을수는 없었다. 해전전 미리 육군을 상륙시켜뒀기에 육군은 건재했는데다가 그병력은 이미 디라키온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렉시오스는 그의 신뢰하는 부하이자 매제인 게오르기오스 팔라이올로고스를 소규모 병력과 함께 디라키온으로 보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병력을 모집해 지원할때까지 병력을 묶어놓으라고 지시했고, 디라키온 수비군은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더욱 격렬히 저항했다. 여름 내내 진행된 포위전은 상당히 격렬했는데, 하루는 게오르기오스가 투구에 화살촉이 박힌 상로 하루종일 방어전을 진행했을 정도이다. 이윽고 그해 10월 15일에 알렉시오스가 직접 지원군을 몰고 왔고, 4일뒤 역공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회전이 시작되었고,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바랑기안 근위대로 구성된 비잔티움군의 우익이 시켈가이타가 지휘하는 노르만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랑기안들은 평소보다 유난히 광폭한 상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 복무한 바랑기안중 대다수가 노르만 군주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했을때 잉글랜드편에서 복무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 지나치게 앞으로 가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버렸고, 시켈가이타가 직접 말을 몰고 도망자들을 쫒아 이들의 사기를 회복하고, 한편으론 보에몽의 좌익이 이들을 구원하러오자 차단되어버린다. 결국 화살세례를 버티지못한 근위대는 인근의 예배당으로 피신했지만, 노르만 병사들이 불을 질러 대다수가 타죽고 말았다.
         한편 황제는 중앙에서 용감히 싸우고 있었지만, 정예병들 대다수가 만지케르트에서 궤멸되어버렸고, 중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야만인 용병들은 오합지졸인데다가 비잔티움에 대한 애국심도 없었다. 게오르기오스가 이끄는 디라키온 돌격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두클라의 왕인 콘스탄틴 보딘과 룸술탄 슐레이만이 보낸 병력이 배신하고 멋대로 돌아가버리는 사까지 일어나 버렸다.
         한편 기스카르는 즉각 이탈리아로 돌아와 1083년 한여름 안에 아벨라르와 그의 형제인 에르망의 난을 진압하고, 산탄젤로성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교황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군대를 모집했고, 이듬해 초여름에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기스카르와 직접 싸움을 걸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로마성문으로 들이닥치기 사흘전에 군대의 대부분을 거느리고 롬바르디아로 숨어버린것이다. 한편, 기스카르는 5월 27일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조용히 도시의 북쪽으로 돌아가,섀벽에 공격을 개시했고, 순식간에 돌격대의 선봉이 플라미니우스 성문을 뜷고 도시로 진입했다. 로마 시민들은 노르만군에게게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마르티우스 광장 전역이 불타는 지역으로 변했다. 이후 노르만 병사들은 로마를 약탈하고, 말그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 군중들이 기스카르를 포위해 그대로 끔살시킬뻔하기까지 했다(...) ~~아깝게도~~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차남인 로제르 보르사가 병력 1천명을 이끌고 그를 구원해 겨우 목숨을 건진 기스카르는 노르만군들에게 도시를 모조리 불우라고 명령한뒤, 교황을 데리고 남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잔티움에 대한 후속 원정을 준비한다.[* 참고로 이때 기스카르의 나이는 예순 여덟이었다!! 그것도 서양식이니 한국식이면 칠순(....) 대단한 집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 박경석(1933) . . . . 7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이후, 전장에서 더 많은 위관장교 자원을 필요로 하자 정부는 이들을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12.12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던 [[장완]] 수도경비사령관, 동 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고 갑종 전우회 대부였던 [[하소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두환]]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오자복]] 예비역 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예비역 대장, [[박정희]] 정부에서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 예비역 중령 등이 육군 종합학교 출신이다.]에 입교시켜 단기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켰다. 박경석 소위도 이 때 임관된 초임장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생도 2기 출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새로 신설된 제9사단[* 사단장 [[장도영]],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얼굴마담, 핫바지 노릇했던 그 때 그 사람-- 사단 참모장은 [[박정희]] --5.16 군사정변에서 대통령에 오른 그 분--]의 소대장으로 갔다. 그 1명은 당시 권력자였던,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였다. 원창희 소위는 임관과 동시 후방의 육군본부로 배속받았다.[* [[원용덕]] 장군도 최종 보직이 헌병 총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아들 [[원창희]] 장군도 헌병의 꽃 헌병감 보직을 마지막으로 육군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1951년쯤, 전쟁이 교착 상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초기 육사 생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려, 미 8군의 도움으로 육사를 재건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중위 신분이던 [[육사 생도 2기생]]들은 육사 생도 복귀를 놓고 논쟁하다가 결국은 새로운 모집 공고에 의한 [[육군사관학교]] 재건으로 [[전두환]], [[노우]]등이 판을 치던 그 육사 11기생들이 첫 정규 4년제 육사 생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박세직 . . . . 7회 일치
         ||<#000080><-7><:> [[노우 정부|{{{#FFFFFF ''' 노우 정부 (1988 ~ 1993) ''' }}}]] ||
         1933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종교]]는 [[개신교]]([[침례회]])이다.
         1980년 보병 제3사단 사단장을 역임하다가 그 해 8월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에서 예편하여 대통령이 되고 제8대 수도경비사령관이던 [[노우]]가 국군보안사령관이 되자 노우의 뒤를 이어 제9대 수도경비사령관(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냈다. 이 때까지는 잘 나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본의 아니게 2017년 10월 10일, 다시 큰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박세직의 손녀와 수영선수 [[박환]]의 교제 사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 축하한다는 반응도 많지만 교제 상대의 조부가 [[하나회]] 출신 주요인사라는 것이 주목받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 박정민(배우) . . . . 7회 일치
         충주에서 어났지만 성남시 분당구로 이사가 성장하였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퍼트 중후군을 가진 진역을 맡았다. 연기를 위해 장애 아동들을 찾아가 행동을 배우고, 건드려 본 적도 없다던 피아노를 배워 촬영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등 열정이 돋보이며, 이 덕에 [[이병헌]]에게 찬사를 받았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동작은 실제 연기가 맞지만 연주 자체는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입힌 것이다. 영화 내에서 나오는 곡들은 초보자가 몇 개월 연습한다고 칠 수 있는 곡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염력의 경우 흥행에 실패했을 뿐더러 맡은 배역 또한 혹평을 받았다.
         ||<|3> 2018년 || [[그것만이 내 세상(영화)|그것만이 내 세상]] || 주연 || 오진 || 341만 명 || 성공 ||
         ||<|3> 2017년 || [[아티스트: 다시 어나다]] || 주연 || 재범 || || 독립영화 ||
         || 양을 쏴라 || 조연 || 첸 || 1만 명 || 실패 ||
         ||<|2> 2015년 ||<|2> [[tvN]] || [[일리있는 사랑]] || 조연 || 장기 ||
         ||<|2> 2011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휴먼 카지노 || 조연 || 차오 ||
  • 박정철(배우) . . . . 7회 일치
          * 2001년 SBS 신화 - 최
          * 2003년 SBS 스크린 - 박
          * 2008년 MBC [[내 여자]] - 장
          * 2011년 KBS1 [[광개토왕(드라마)|광개토왕]] - [[아신왕]]
          * 2012년 [[JTBC]] [[해피엔딩(JTBC)|해피엔딩]] - 이
          * 2014년 KBS2 [[천상여자]] - 장
  • 백성현 . . . . 7회 일치
         | [[양은 가득히 (2000년 드라마)|양은 가득히]]
         | 장호
         | [[양인 이제마]]
         | 어린 천
         | 박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블랙 클로버/129화 . . . . 7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두 번에 걸친 블랙 상 발동과 부상 덕에 [[미모사 버밀리온]]의 백업을 감안해도 오래 싸울 수 없는 상였다. [[랜길스 보드]]의 맹공이 끝날 줄을 모르고 크리스탈도 점점 파괴되면서 패색이 짙어진다. 항상 아스타를 신뢰하던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아스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 번째 블랙 모드를 쓰려했다. 원래 하루에 발동할 수 있는 한계는 두 번. 세 번째는 유노와 결승전에서 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한숨 돌릴 타이밍이 필요해 지금처럼 숨도 쉴 수없는 상황에선 도저히 기회가 없다. 그때 아스타는 다름 아닌 [[잭스 류그너]]에게 도움을 청하며 발동 자세로 들어간다. 아스타의 요청이라면 들은 척도 안 하던 잭스였으나 "저 자식(랜길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해준다"며 아스타의 앞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는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아스타의 도를 보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나는 단순한, 하층민 마을의 더러운 꼬맹이한테서 어난
          멀쩡해 보였지만 원래 블랙 상는 하루에 두 번이 한계인데다 부상도 입어서 정상 상가 아니었다. 세 번째 블랙 모드는 유노를 위해서 아껴놨다고 하는데 원래도 두 번밖에 못 쓰는 거였으니 엄청 무모한 생각이었다. 랜길스의 맹공을 막을 수 없어 결국 세 번재 블랙 모드를 쓰려고 하는데 타이밍이 나지 않아 잭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린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상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상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상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 서강준 . . . . 7회 일치
         서강준(본명 이승환)은 1993년 10월 12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어났으며 누나와는 연년생이다.<ref name="tvreport" /> 그는 학창시절까지 계속 에서 성장하였고, 2학년 때 [[말레이시아]]에서 1년 7개월 동안 유학하다가 1학년때 귀국했다.<ref name="10아시아"/> 이후 재학 시절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쇼에 서보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때 2011 F/W 서울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를 끝으로 2~3년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0308310735776&type=1&outlink=1|제목='발견!' 서강준, 국민 연하남의 가능성(인터뷰)|저자=김현록|날짜=2014-05-05|출판사=머니투데이|확인날짜=2014-05-17}}</ref><ref name="네이버">{{뉴스 인용|제목 ='보그'가 선정한 2014년의 프레시맨-2 - INTERVIEW|url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8&contents_id=51180|출판사=[[네이버]] 매거진캐스트|저자=[[보그]]|날짜 = 2014-03-01|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또한 그 당시에 바빠도 밤마다 영화는 한 두 편은 꼭 챙겨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겨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머니투데이"/>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새로 접하는 연기의 매커니즘이 신기했고,<ref name="네이버"/> 무엇보다 새로 창조해나간다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
         서강준은 몇 편의 드라마 단역을 거친 이후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ref name="네이버"/> 오디션 기회를 얻어 현재의 소속사인 [[판타지오]]의 신인 배우 개발 프로젝트인 '액터스리그'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ref name="tvreport" /> 합격하게 되면서 [[유일 (배우)|유일]], [[공명 (배우)|공명]], [[강오]], [[이환]]과 함께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 (그룹)|서프라이즈]]의 일원이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에는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함께 숙소에서 합숙을 하면서 연기를 비롯한 춤, 노래 트레이닝을 받았다.<ref name="머니투데이"/> 현재는 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독립해서 살고 있다. 현재 예명으로 쓰고 있는 '''서강준'''이라는 이름은 가수 [[이승환 (가수)|이승환]]과 이름이 같아 소속사 [[판타지오]]의 부대표가 직접 지어줬는데, 당시 같은 소속사의 선배였던 배우 [[하정우]]의 매니저 이름으로 '매니저의 이름을 연예인이 빌려쓰면 성공한다'는 속설에 의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뉴스 인용|제목 =My Name is, 서프라이즈 (1)|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74209|출판사=10 아시아|저자=배선영|날짜 = 2013-10-10|확인날짜=2014-05-17}}</ref>
         *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패션코드 2015 F/W' 홍보대사 (with [[소녀시대 티서]])
         | 해제과
         | [[MBC 연기대상]]<ref>{{뉴스 인용|제목=임시완·최준·고성희·한선화, MBC 연기대상 男女신인상|url=http://stylem.mt.co.kr/styview.php?no=2014123021311121799&type=1|저자=이규정|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4-12-30|확인날짜=2014-12-31}}</ref>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말레이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군포시 출신]][[분류:1993년 어남]][[분류:201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판타지오 소속]]
  • 손예진 . . . . 7회 일치
         | 학력 = 평양주유소
         * 평양주유소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풍무로) 출생으로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모두 경기 김포에서 보내고 영화배우가 될 것을 결심한 뒤 [[2001년]]에 평양주유소에 진학했으나 조금 더 일찍 영화계에 본격 데뷔를 하기 위해서 얼마 안 지나 중퇴하였다.
         손예진의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외출 (영화)|외출]]》(2005)로 두 편의 영화 모두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ref>{{웹 인용|title=The Best Selling Films of 2004|url=http://www.koreanfilm.org/kfilm04.html|work=Koreanfilm.org|accessdate=2013-08-08}}</ref><ref>{{웹 인용|title=A Moment to Remember breaks Japanese record|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326|work=Korean Film Council|date=14 December 2005}}</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to Star Alongside Bae Yong-joon in New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163|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4 December 2004}}</ref>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국내에서도 25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각각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에서 개봉 된 역대 [[대한민국]] 영화중에서 흥행 기록 1, 2위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예진, ‘日 2005 외국영화 흥행 톱10’서 2관왕|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32332|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5-12-16}}</ref><ref>{{웹 인용|title=Films Starring Sohn Ye-jin Attract 10 Mil. Viewers in Korea, Japan|url=http://english.kbs.co.kr/hallyu/entertainment_news_view.html?No=147|work=KBS Global|date=28 December 2005}}</ref> 특히 《외출》에서 손예진은 20대 중반 주부이면서 남편과 불륜 관계였던 여자의 남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자 서영의 감정을 잔잔하면서 깊이 있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알고, 이 영화로 제50회 [[아시아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최고의 선수, 작업계의 고수 한지원 역을 맡아 이 작품에서 과감한 섹시 댄스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고, 23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오싹한 연애> 손예진, <작업의 정석> 뛰어넘을까?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9139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하성 |날짜 = 2011-12-17 |확인날짜 =2017-09-16 }}</ref>
         2010년, 손예진은 이새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개인의 취향]]》로 1년 9개월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고, 개인 날 어났다고 개인이란 이름을 얻은, 이름처럼 밝고 털털하고 유쾌한 캐릭터이자 무늬만 여자인 덜렁이 아가씨 박개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개인의 취향' 손예진 "나이에 맞는 역 하고싶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023820|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김현록 |날짜 = 2010-03-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듬 해, 2011년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 (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최종회에서 톱스타 역할으로 특별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시크릿가든' 카메오…'숨길 수 없는 폭풍 미모'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11619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강선애 기자|날짜 = 2011-01-17}}</ref> 같은 해 손예진은 호러 로맨스 코미디 영화 《[[오싹한 연애]]》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고,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귀신 때문에 연애는 커녕 가족과 친구로부터 버림받은 여자 강여리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오싹한 연애’로 컴백…그녀, 인생을 말하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245920|출판사 =서울신문 |저자 =임일영 |날짜 = 2011-11-29 |확인날짜 =2017-09-16 }}</ref> 영화는 300만 관객수를 기록해 자신이 출연한 모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흥행시키며 '로맨틱 코미디의 퀸'임을 입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역시 손예진, '오싹한 연애' 300만 개인 최고 흥행기록 달성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005946|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김용호 |날짜 = 2012-01-17 |확인날짜 =2017-09-16 }}</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4703987|제목=<오싹한 연애> 최근 6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중 최고 성적 |출판사=맥스무비|날짜=2012-01-03|확인날짜 =2017-09-16}}</ref> 2012년에는 재난 영화 《[[타워 (영화)|타워]]》에 출연하였고, 영화는 518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ref>{{웹 인용|title=Queen of romance returns in disaster flick|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21217000947|work=The Korea Herald|date=17 December 2012}}</ref>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김포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올해의 영화상 수상자]][[분류: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부일영화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신인여우상 수상자]][[분류: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
  • 식극의 소마/205화 . . . . 7회 일치
          * 그렇게 센트럴 측과 헤어지고, 에리나는 처음 해본 반항의 영향으로 대흥분 상. 다른 학생들을 종자취급하며 "내가 진정한 여왕이 되는데 협조해라"고 말한다.
          * [[유키히라 소마]]는 정점에 서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격한다.
          * 십걸의 10석 자리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한 [[나키리 에리나]]. [[나키리 아자미]]는 연한 듯이 웃어보이지만 얼굴이 어두워보이는걸 숨길 수가 없다. 아자미는 그녀의 의견은 존중한다고 하지만 패배시에는 다른 조건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에리나가 센트럴로 돌아와 아자미의 야망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것. 결국 다시는 자신에게 반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에리나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 센트럴 측의 기차가 떠난 뒤 소마는 에리나에게 "드디어 말했구나"라고 말을 붙이는데, 에리나의 상가 이상하다. 생애 첫 반항이 지나치게 자극이 됐는지 뭔가 폭주하고 있다. 에리나는 아드레날린 과잉 상가 돼서 "내가 현 십걸을 쓰러뜨리고 1석에 앉아 진정한 여왕이 되는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소마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신의 종자인 셈이니 영광인줄 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해댄다.
          * 하지만 소마는 불만이 많은데 정상을 차지하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격한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를 동원해 뭔가 한 마디 해주라고 하는데 의외로 죠이치로는 평범하게 "에리나가 벽창호 아버지에게 대들 줄은 몰랐다"며 칭찬하는 투로 말한다. 에리나는 그제서야 진짜로 이 부자에게 감화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마음 속으로 인정한다.
          >유키히라 소마. 죠이치로의 아들로 어나 준 걸
  • 식극의 소마/217화 . . . . 7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반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남이 만든 식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식재료를 쓰는 이상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 십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상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남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반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어쨌든 1라운드는 반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반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식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상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반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언뜻 보기엔 벗겨지지 않고 양호한 패배 같지만 [[아헤가오|얼굴이 심의상 보여주기 어려운 형]]다. 어쨌든 불쌍해서 공개하는 프로필.
          *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 소마는 아직도 꽁한 상. 그런데 막 모퉁이를 돌려는데 복도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쿠가였다. 그가 대화하는 상대는 적의 대장 츠카사 에이시. 쿠가가 츠카사에게 "다음 라운드에 나올 생각 아니냐"고 떠보는 중이다. 츠카사는 애매하게 "그렇다면?"이라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쿠가가 그런 도가 심술궂다며 자기는 쭉 이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찌된 일인지 츠카사는 푼수같은 평소 모습이 간데 없이 진지하고 말이 적다. 쿠가의 드립에도 "확실히 그랬지"라고 짧게 대꾸하는데. 쿠가는 여전히 까불거리는 도로 "귀여운 후배의 부탁"이라며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쿠가는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소마는 얼핏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걸 발견하는데.
  • 실업팀 . . . . 7회 일치
         [[스포츠]] 팀의 구성 구조. 영어로는 Works team 혹은 factory team이라 불리는 형. 일본어로는 실업단(実業団)이라고 부른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한 형[* 대한민국의 경우, [[세미프로]]까지는 아마추어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아마추어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종목을 불문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여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실업팀의 운영 실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상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상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이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시기에 올림픽의 상업화가 추진되면서, 프로 선수의 출전을 용인하는 흐름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라는 세계 무대가 프로 선수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되면서, 많은 스포츠 단체가 굳이 실업팀 같은 형로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프로 스포츠로서 활성화된 종목에서는 실업팀이 대부분 고사 상에 놓이게 되었다.
  • 연정훈 . . . . 7회 일치
         * 2003년 [[KBS1]] 《[[노란 손수건]]》 ... 윤영 역
         * 2003년 [[SBS]] 《[[흥부네 박터졌네]]》 ... 장현
         * 2011년 [[OCN]] 《[[뱀파이어 검사]]》 ... 민연 역
         * 2012년 [[OCN]] 《[[뱀파이어 검사|뱀파이어 검사 2]]》 ... 민연 역
         * 2005년 [[해음료]] 야채과일100
         | 아시아평양지역 4라운드 우승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동차 경주 선수]][[분류:광명시 출신]][[분류:곡산 연씨]][[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그리메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동문]]
  • 오대석 . . . . 7회 일치
         || '''지도자''' || [[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2~1995)[br][[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1996)[br][[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1997~199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00~2001)[br][[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작전코치(2002)[br][[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감독 (2004~200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11)[br][[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육성군 수비코치 (2014) ||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등번호는 삼성에서 16번.[* 많은 사람들이 16번하면 김원형, 김종국, 박정를 떠올리게 하지만 원조 16번이었던 오대석도 무시할 수 없다.], 롯데에서는 6번을 달았다.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수(1957)|장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선수 은퇴 이후로는 [[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에서 코치를 했고 2000년부터 2년간 포철공고에서, 2004년부터 4년간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2011년에 다시 포철공고 야구부의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11년 말 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 마이스터 고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운영을 할 수 없다.]으로 야구부 해체가 불가피해지며 계약이 해지되었다.[* 그러나 포철공고 야구부는 다행히 해체되지 않고,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인계되어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다. 참고로 경주고, 구미전자공고의 야구부의 잇따른 해체로 2011년 부로 대구 소재의 고교야구팀을 제외하고 [[경상북도]] 소재의 고교야구팀은 포철공고가 유일하며, [[경주고등학교 야구부]]도 2013년 12월에 재창단했다. 구미전자공고 야구부도 포철공고처럼 마이스터고 전환 때문에 해체된 것.]
  • 원피스/875화 . . . . 7회 일치
          * [[브룩]]은 [[몽키 D. 루피]] 일행과 다른 루트로 써니 호에 접근 중이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타고온 잠수정. 이번엔 [[쵸파]]가 페드로와 자리를 바꿨다. 이쪽도 루피 일행 못지 않게 힘겨운 여정이었다. 스위트 시티를 덮친 산사, 아니 케이크 사가 잠수정을 정박한 "쥬스 강"까지 파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크림 더미에서 잠수정을 파내고 보니 브룩과 쵸파도, 잠수정 내부도 끈적거리는 생크림 투성이. 심지어 키를 미끄럽게 만들어서 브룩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쵸파는 달콤한 생크림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대만족.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루피는 "양" 녀석이 다가오자 킹 밤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무장색을 두른 "JET 개틀링"으로 프로메테우스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언뜻 프로메테우스의 몸이 흩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잠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루피는 당황해하며 패기 조차 통하지 않으면 "자연계"보다 성가신 적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데리고 가는게 우선이어서 그런지 일행에게 반격할 기미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거듭 마마에게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헤롱거리던 제우스도 조금 정신을 차렸다.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단, 마지막으로 맛있는 구름을 원껏 먹고 나서. 부모를 똑닮은 자식.
          * 페드로를 공격한 호박 머리. 뭔가 수상한 녀석이었다. 녀석은 페드로를 "페드로군"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를 상대한 페드로의 도도 이상했다. 녀석이 그 호칭을 쓰는 걸 듣고 무슨 생각이 든 건지 도망치는 것도 잊고 적극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징베는 그것을 제지하며 아예 직접 그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루피에게도 캐럿을 멈추게 하라고 했다. 루피가 팔을 뻗어서 캐럿을 회수했다. 징베가 본 적들의 목적은 일행의 분산. 각개격파하려는 속셈이다. 징베가 최대한 모여서 방어진을 굳히라고 지시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면서. 일행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는 빅맘 해적단만 있는게 아니었다. 잠수정으로 일행을 앞질러온 브룩과 쵸파도 그 광경을 보았다. 잠수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써니호 앞에서 부상했다가 매복한 페로스페로 일당과 딱 마주쳤던 참이었다. 그런 순간에 유혹의 숲에서 일어난 이변. 둘은 숲에 있을 일행을 걱정했다. 빅맘이 한 짓이기 아니긴 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범위의 벼락이라 과연 일행이 무사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페로스페로는 아예 그들이 들으란 듯이 "일행이 죽은 모야이다"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둘에게 이제 어쩔 테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배를 탈취하게 되더라도, 그 배에 울 일행은 이제 없다. 페로스페로는 큰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지금 그 잠수정으로 달아난다면 둘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휘하의 체스병사들은 활로 브룩과 쵸파를 겨누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전세를 취하는 두 사람.
  • 윤상현(배우) . . . . 7회 일치
         한국나이로 33살 무렵인 2005년 TV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PD 역으로 처음부터 주연으로 데뷔했다. 연기에 연자도 몰랐던 윤상현의 눈빛이 마음에 든 강신효 감독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 캐스팅 후 강신효 감독에게 3개월간 연기지도를 받았으나 연기가 심각하게 늘지 않았고, 최후의 조치로 [[박근형]]에게 연기수업을 보냈는데 너는 드라마 하지 말라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자신도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고, 본인의 실력을 잘알기에 강신효 감독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며 못하겠다고 했으나 감독님의 만류로 결국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기초짜인 윤상현의 --[[발연기]]--때문에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분이 방영을 못할 정도로 너무 심각해서 재촬영을 위해 국내에 프랑스를 재현하기 위한 성(城)세트를 짓느라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었다고 한다.]이후 불꽃놀이, 독신천하에서 고만고만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에서 주경우 역을 맡아 주목받게 되었다. 원래 이 드라마는 [[이곤]], [[박선영(1976)|박선영]]이 주연이었으며 윤상현은 오히려 주연들보다 더 돋보이는 싸이코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찌질이 연기를 선보인 끝에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제목을 쪼다새, 찌질새 등으로 바꿔 부르게 할 정도였다.[* 원래 이 역할은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윤상현이 감독과의 회의 끝에 어수룩한 마마보이 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또 그전까지 가수와 자영업을 꿈꾸며 연기에 별로 관심없이 연기하던 그에게 진심으로 연기에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였다고 한다. 결국 이때의 호연으로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수목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에서 중요한 역을 맡게 되었다.
         [[내조의 여왕]]에서 부하 직원의 부인을 사랑하게 된 사장 허준 역으로 봉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주가가 대폭 상승했다. 일명 중년 구준표.[* 머리스타일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민호(1987)|이민호]]랑 어딘지 비슷하게 생겼다.]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2> 2009년 || MBC || '''[[내조의 여왕]]''' || '''허준'''[* 사실 '봉'씨가 더 익숙하다.] || ||
         || 2018년 || MBC FM4U ||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 게스트[*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의 주연진인 [[한혜진(배우)|한혜진]], [[김훈(배우)|김훈]], [[유인영]]과 동반출연.] ||
  • 은혼/607화 . . . . 7회 일치
          * 정작 야마자키는 "저건 오공이 벗어던진 무거운 티 같은 것"이라며 자신은 어 날 때부터 야마자키라는 무거운 티를 입고 있었다고 말한다.
          * 어날 때부터 고릴라의 티셔츠를 입은 고릴라였고 이젠 벗어던졌으니 고릴라에서 해방됐다고 말하는 곤도.
          * 순도 높은 고릴라로 다시 어난 곤도. 그때 새로운 적이 나타나 포격을 가한다.
          * 긴토키는 이들을 세금도둑이라 까고 히지카타는 어차피 그동안 급료도 못 받았다고 티격격한다.
          * 각자의 기술을 양 아래 마음껏 선보이라며 이 나라에 닌자가 있다는 것을 해방군에게 각인시켜 주라고 한다.
          * "그림자 속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양 아래서 마음껏 살고 죽어라."
          * 그는 소요 공주도 이 나라도, 죽어간 동료들의 마음도 살아있는 동료들의 마음도 모두 자신의 양이라 말한다.
  • 은혼/611화 . . . . 7회 일치
          * 히라가 겐카이 일행의 희생으로 활로는 뚫렸지만 해방군은 병력이 많고 여전히 압도적인 우세. 3대 용병민족을 중심으로 백병전 세를 갖춘다.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절되고 패닉 상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상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상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상 황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상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상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해방군은 기계장비가 고장나자 빠르게 백병전 대비세를 갖춘다. 파일럿들이 쓸 수 있는 거라면 아무거나 잡아들고 보병으로 전환해 편제를 재구성하고 일사분란하게 도열한다.
          * 같은 용병민족이지만 신라 측은 드라이하게 관망하고 있다. 리더인 소타츠는 다키니는 이끼 낀 고대 유물들이라고 비하하며 어차피 현시점에선 통솔도 어려울 병력 따윈 다키니에게 던져주자고 한다. 저들이 지구측과 교전해서 교착상가 되면 그때야 말로 자신들이 목표를 달성할 때라는 것.
          * 야토 측도 아직은 관망 상. 야토의 두목은 해가 저무는걸 보고 곧 자신들의 시간이 될 거라고 말한다.
          * 한편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오토세 여사의 지휘를 받아 마을을 요세화시키고 있다. 가부키쵸는 "지구방위도시"라는 이름으로 해방군을 맞이해 버틸 준비를 마친다. 타에 조차도 완전 무장을 하고 임전세로 나선 상. 이들이 표적이 되어 있는 동안 외부의 저항 세력이 적의 배후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외부의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캐서린은 외부와 연락할 수도 없는 마당에 과연 와줄 사람이 있을지 우려하지만 타에는 분명 올거라 장담한다.
  • 은혼/630화 . . . . 7회 일치
          가츠라는 오오고쿠의 우주선에서 바보 황자... 아니 [[하타 황자]]와 그들의 큰형님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와 함께 모함 "아메노토리후네"를 공략할 지원 병력을 기다리고 있다. 오오고쿠성 황자들의 협조로 그들 모성에서 지원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하타 황자와 네스 영감이야 자기네 배니까 함께 있다고 치지만, 왠지 마다오 [[하세가와 다이조]]까지 그럴 듯한 폼으로 타고 있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 오고쿠성의 함대가 지원부대로 도착했다. 하타 황자의 모함은 가츠라와 엘리자베... 아니 드라고니아가 공동으로 지휘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타 황자는 위궤양 걸린 것 같은 꼴이지만 도망치지 않고 함에 탑승 중. 그리도 마다오도 왠지 그대로 가츠라 옆에 타고 있다. 이 놈은 뭔 역할이지?
  • 은혼/645화 . . . . 7회 일치
          * 중추시스템 폭발에 휘말렸던 [[키지마 마타코]]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으나 [[다카스기 신스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위롭다.
          * [[다카스기 신스케]]의 투지가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했다. 그때문에 시스템 룸 전체가 역류한 에너지에 휩쓸린다. [[키지마 마타코]]는 간신히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의 생존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해도 부러진 철근에 매달린 위로운 목숨이었다. 시스템 룸을 가득채웠던 해방군 방위병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끝까지 쫓아왔던 신스케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귀병대]]의 역할은 끝난 걸까?
          * 그의 말은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자작 제독과 [[도쿠가와 노부노부]]에게도 들렸다. 자작은 호적수이자 동지였던 엔쇼의 타락을 더는 참지 못한다. 그는 엔쇼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일갈한다. 그의 고집대로 싸움을 계속하고 모든 것을 불우고 나면 대체 무엇이 남느냐고. 엔쇼는 땅에 떨어져 있던 팬던트, 아내의 유품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어쩌면 엔쇼는 양이지사들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적이 있지 않은가? 해방군과 엔쇼라는 적이. 그에겐 적 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미워하기로 했다. 불로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있는 자라면 자기 자신을 워가며 꺼뜨러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마타코도 자기 자신을 워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매달린 철근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꺾이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철근이 끊기면서 추락하는 마타코.
          다츠마는 부상, 가츠라는 무기가 없다. 엔쇼는 라이트세이버를 오른손에 바꿔들고 광탄의 형로 전환했다. 그는 무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쓰러져 있는 가츠라와 다츠마는 더이상 저항의지가 없는 듯 했다. 하긴 그럴 수단도 없었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라이트 세이버의 출력이 떨어지더니 이윽고 고장을 일으킨다. 엔쇼는 그제서야 온전한 상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츠마가 쏜 총알. 그건 라이트 세이버를 노리던 거였고 정확하게 명중했다. 거기에 생각이 닿은 순간, 가츠라가 마침내 마무리를 지었다. 떨어뜨렸던 라이트 세이버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빛의 끝은 엔쇼의 복부를 지르고 있었다.
  • 이미연 (배우) . . . . 7회 일치
         이미연은 1971년 9월 23일 [[대구광역시]]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어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다. 그녀의 대학 동기로는 배우 [[고현정]], [[김정난]] 등이 있다.
         || [[풍 (영화)|풍]]
         || [[창밖에는 양이 빛났다]]
         * 2006년 제20회 [[황금촬영상]] 심사위원 특별상 《[[풍 (영화)|풍]]》
         [[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 이씨]]
  • 이주승(영화배우) . . . . 7회 일치
          * 권도 선수출신이다. 겨루기 선수였던듯. 9살때부터 9년동안 권도를 했다고. 권도 관장이 꿈이였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때리고 맞는 게 싫어서 그만 두게 되었다. --나중에 권도 관장도 생각하고 있다고-- 심심할때 혼자 발차기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메이킹필름에 발차기하는 모습이 종종 잡히곤 한다.
         || || 독고 || || 표진 ||
         || EBS || 슴슴한 그대[* 통일 기획 드라마.] || 성 || 주연 ||
         ||<|3> 2013년 || MBC || [[남자가 사랑할 때(드라마)|남자가 사랑할 때]] || [[한상]] || [[송승헌]] 아역 ||
  • 이홍렬(코미디언) . . . . 7회 일치
         그리고 1990년대는 [[임하룡]]과 함께 했던 '[[귀곡산장]]'을 빼놓을 수 없다.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망망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 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절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당시 괴담물 단행본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공포특급'이 불러온 공포 마케팅 열풍을 타고, 공포 컨셉 게스트 코미디 쇼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히트를 친 것.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 1993년 <[[해제과]] 우리또래> (홍진경과 함께 출연)
          * [[2007년]]부터 [[크라제버거]]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방문하면 가끔 볼 수도 있으며, 3번 망하고 4번째로 낸 가게라고 한다.지금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영 중단을 천명해 놓은 상다. 어째 사업과는 연관이 없어보인다.
          *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냥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날짜를 정확히 쓰고 중요한 사건을 간단히 소회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뒀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 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7회 일치
          * 다른 일행이 인근에 있는데도 멜리오다스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성기사들은 멜리오다스의 도에 의문을 품는다.
          * 멀린은 프라우드린이 자폭하려고 한다고 말하느데, 퍼펙트 큐브는 절대 부서지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는 평한 소리나 한다.
          * 성기사들은 멜리오다스의 도가 악당같다고 야유하고 핸드릭슨은 큐브 바깥에 있는 드레퓌스와 그리아몰을 걱정한다.
          * 프라우드린의 몸이 원래 상로 돌아오고 "이 벽을 지우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라"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리아몰이 방벽을 푼다.
          *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의연한 도로 멜리오다스에게 죽음을 청한다.
         프라우드린은 불쌍한 형로 죽었지만 십계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인물이고 전과도 대단하다. 우선 핸드릭슨과 드래퓌스를 철저히 농락했고 지상에 마신족과 십계를 부활시킨 일등공신. 인류로서는 최흉의 십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리오다스 사후에 인간들에게 제물로 쓰일 인간을 잡아 바치게 한 것도 드래퓌스가 낸 아이디어로 보이는데 확실히 인간과 오래 살아서 인간의 특성을 이용하는데도 도가 튼 것 같다.
         고우서와 비슷한 모습의 십계도 재등장. [[일곱개의 대죄/176화]]에서 십계 시절 멜리오다스를 묘사하며 등장했었다. 프라우드린은 사실 정식 십계가 아니라 "무욕의 십계"의 대리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자가 진짜 무욕의 십계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거의 비슷한 외향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듯한 도 또한 유사하다.--이제 곧 진(眞) 십계 가 나올 듯 하다.--
  • 장성환 . . . . 7회 일치
         '''장성환'''(張盛煥, [[1920년]] [[10월 27일]] ~ [[2015년]] [[1월 4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관료]]이다. [[공군참모총장]], 주(駐)국 대사, [[대한민국 교통부|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20년 10월에 서울에서 어났다. 일본 기후비행학교를 1942년에 졸업했고 건군기 시절에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 항공대에서 근무하다가 공군이 독립하자 옮겼다.
         [[1950년]] 11월에 미 제5공군으로부터 수송기를 인수하자 한국 최초로 공수업무를 담당했다. 참모총장 재임 시절에는 제30방공관제단, 즉 지금의 공군방공관제사령부를 창설했다. 빨간 마후라는 그의 임기 중에 제작되었다. 전역 후에 주 국 대사, 대한항공공사 사장, 한국관광공사 총재,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1비행단장, 5비행단장 등을 거쳐 1957년에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 올랐다. 그후 1958년 공군참모차장을 거쳐
         *1964년 주국 대사
         |직책 = [[주 국 대한민국 대사관|주 타이 대한민국 대사]]
         [[분류:1920년 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교통부 장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조선경비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기후 대학 동문]][[분류:도야마 대학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국방연구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장]][[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공군무관]]
  • 장평도정 . . . . 7회 일치
         '''장평도정'''(長平都正, ? - ?)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조선 종|종]]의 손자이자 [[양녕대군]]의 다섯 번째 서자이며, 이름은 이흔(李訢)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15대조로, 이승만은 그의 장남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의 1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이순신 (1554년)|무의공 이순신]]은 그의 6대손이다.
         아버지는 [[조선 종|종 이방원]]의 아들 [[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이고, 어머니는 이름 미상의 첩이다. 그의 출생년도와 생일에 대한 기록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선원보략에는 그가 1438년생으로 나타나나 [[세종실록]]에는 1437년 정윤에 봉해진 기록이 나타난다.
         그의 초기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1437년]](세종 19년) [[2월 21일]] 정윤(正尹)에 제수되고<ref>세종실록 76권, 1437년(세종 19년, 명 정통 2년) 2월 21일 신사 2번째기사, "권전·윤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나중에 작위 개정으로 장평부정(長平副正)에 봉해졌다. [[1454년]](단종 2) 승작하여 장평정(長平正)에 봉해졌다가<ref>단종실록 11권, 1454년(단종 2년, 명 경 5년) 5월 21일 신미 1번째기사, "세조가 경회루에서 풍정을 올리다"</ref> 뒤에 도정으로 승진했고, 품계는 [[명선대부]]에 이르렀다.
         * [[조선 종|종]]
  • 전형필 . . . . 7회 일치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어났다. [[훈민정음]] 원본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와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 한국의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과 지인들에 의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으로 개편되었고, 간송미술관에서는 [[1971년]] 봄부터 '겸재전'(謙齋展)주제를 시작으로 2014년 가을까지 일년에 2차례씩 무료 일반공개를 하였다. 현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컬렉션을 선보이고자 동대문디자인프라자&파크에서 간송문화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 14일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1906년]] [[서울특별시|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어났다. [[1926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2년]] [[서울특별시|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고서, 고서화를 취급하던 서점)을 인수하고, 우리민족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문화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과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 집안의 사위였던 이용준이 매월당집 등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몰래 빼돌려 안동의 자택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김준]]을 통해 전형필 선생에게 훈민정음 해례본만 만원에 판매하였다.
         최초 판매가로 천원을 제시하였으나 원래 문화재의 가치를 정확히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전형필은 금액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여 거간 노릇을 한 김준에게 천원을,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으로 만원을 치렀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학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한글 창제]] 원리가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해 밝혀졌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7년]] 10월에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기도 하였다. 거간 노릇은 한 김준과 이용준은 사회주의자로, 판매한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김준은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이용준은 월북하였다고 한다.
         [[분류:1906년 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문화유산]][[분류:박물관학]][[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간송미술관]]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7회 일치
          * [[사카키 슈지]]는 [[츠보미 후지코]]의 처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다. 그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대신 효부를 진찰하라고 하는데 시호는 사카키에게 지시 받는 것이 불만이지만 위급 순간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확인해본 효부의 상는 '''심장이 망가져서 정상기능을 하지 않는 상황'''. 효부는 시로를 동요시키기 위한 좋은 구실일 뿐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시호가 바보멍청이 취급한다.
          * 미나모토는 그 지경이면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고 경악한다. 효부는 심장은 혈액순환용 펌프일 뿐이고 자신은 천재 에스퍼라 염동력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연하게 말하는데, 그의 몸 상도만큼 연하지 못하다. 그 자신은 혈류를 확보하고 출혈도 최소한으로 막았다고 여기지만 곧 빈혈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효부를 조치할 수 없겠냐고 묻지만 여전히 후지코의 상가 좋지 않아 무리다. 대신 카오루에게 효부가 하던 염동 펌프 역할을 대신 하라고 지시한다. 효부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래 초능력은 뇌 작용의 섬세한 밸런스가 영향을 주는데 혈액순환이 끊어져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초능력의 출력도 유지를 못한다. 그걸 효부가 모를리도 없는데 굳이 그런 길을 택했다는건,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카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카오루에게 조치를 맡긴다.
          * 그때 막 정신을 차린 마기가 안 될 말이라고 끼어든다. 후지코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효부가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사가 일어난다면 더이상 방법이 없다.
  • 정도복 (고려) . . . . 7회 일치
         고려 충정왕 3년(1351년) 영주 삼판서 고택에서 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선생의 나이 16세에 양친 부모님을 모두 잃고, 큰형인 삼봉 [[정도전]]이 묘막에서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우연히 처음으로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20세 때까지 4년여간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진사시(進士試)에 올랐으며, 우왕 11년에 지공거 염국보(廉國寶)와 동지공거 포은 [[정몽주]]가 주관한 과거에 제11위로 입격하였다.<ref>당시 우현보의 아들 우홍명(禹洪命)이 장원급제하고 함부림(咸傅霖), 변계량(卞季良), 한상덕(韓尙德), 박석명(朴錫命), 권원(權遠), 김자지(金自知), 이맹균(李孟畇) 등 기라성 같은 인물 33인이 급제한 과거에서 그는 제11위였다.</ref>
         조선 조 3년(1394년)에 가정대부(嘉靖大夫)로 승진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이 되고, 이듬해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겸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올랐다.
         얼마 아니 되어 밀직제학을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올라 성균관대사성을 겸임 했으며, 묘공신의 봉호를 받았다. [[1398년]] 왕자 난 때 큰형 삼봉선생이 화를 입은 뒤 문하찬성사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이후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 종 3년(1403)에 성주 유학교수(星州儒學敎授)에 부임하여 7년여 동안을 교육에 힘쓰다가 동왕 9년(1409) 8월에 인녕부사윤(仁寧府司尹)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다시 유배되는데 종실록 종 13년(1413) 7월 12일조에, “사헌부에서 2품 이상으로서 외방(外方)에 있는 자의 죄를 청하는 계청(啓請)에, “2품은 외방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법이 있습니다. 검교(檢校) 한성 윤(漢城尹) 손가흥(孫可興)·박상경(朴尙絅)·박후식(朴厚植)·고도관(高都琯)·윤사혁(尹思奕)·최함(崔咸)·여극해(呂克諧)·정도복(鄭道復)·전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 정과(鄭過) 등은 항상 외방에 거주하니 심히 미편합니다. 청컨대, 고신(告身)을 거두고 다른 도(道)에 이치(移置)하소서.”라고 비난하였다.
         * 충정왕 3년(1351) 영천(榮川)에서 어나다.
  • 최남선 . . . . 7회 일치
         육당 최남선은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면서 [[한약방]]을 경영했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 강씨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어났다. 대대로 명문이었고 아버지 최헌규는 하급 관리였으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1년 3살 연상의 부인 연주 현씨(玄氏)와 결혼했다. 스스로 독학으로 한글을 깨쳐 1901년(광무 5)부터 《황성신문》에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1938년 《[[만몽일보]]사 (滿蒙日報社)》 고문과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建國大學)의 한국사, 한국학 교수직에 임명되어 교수로 부임해 1943년 2월까지 역임했다. 1940년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무장 세력을 상대로 귀순 및 투항공작을 전개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 고문으로 활동했다. [[평양전쟁]] 시기에는 매일신보를 비롯해 경성일보등에 학도병 권유 유세문을 기고했고, 각종 시국강연에 나서면서 활동했다.
         [[장준하]]는 '그를 경애하는 스승이며 민족 사상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였다.<ref name="changs"/> 장준하는 '선생은 약관 18세에 이미 궤란을 기도에서 구하려는 큰 뜻을 품고 우선 민족의 명영을 영원히 부지하려는 원대한 의도 밑에 문화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이래 종시일관하여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민족의 재흥을 위하여 발분망식하였다. 선생이 우리 역사학에 전심하여 마침내 사학의 두로 일세의 숭앙을 받기까지에 이른 근본 연유도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가 한국 역사학 연구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 [[박호]] - 《[[야인시대]]》(2003년), [[SBS]] 드라마
         * [http://tiny.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0b1841a&ref=2 「불함문화론」, 에듀넷-브리니커 학습백과]
         *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B&i=189207&v=43 「최남선」], 《브리니커 백과》
         [[분류:1890년 어남]][[분류:195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역사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출판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번역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공작원]][[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만주국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출판인]][[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한문학자]][[분류:민족대표 48인]][[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원태 . . . . 7회 일치
         |선수명 = 최원
         '''최원'''(崔原態, [[1997년]] [[1월 7일]] ~ )은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다.
         [[2016년]] [[5월 27일]] 선발 투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이 다실점을 한 뒤 두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3.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6년]] [[6월 14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의 공백을 메꾸는데 [[금민철]]이 실패하여 빈 자리를 메꿀 두 번째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분수|4|2|3}}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하였다. [[2016년]] [[7월 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타선의 지원에 힙입어 {{분수|5|2|3}}이닝 2실점으로 데뷔 이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607012208003&sec_id=510201&pt=nv ‘첫승’ 넥센 최원 “초심 잃지 않겠다] - 스포츠경향 </ref> 2017 시즌부터는 선발진에 합류하였는데, 지난 시즌에 비해 등판하는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2017년]] [[4월 9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1군 경기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9/0200000000AKR20170409045000007.HTML?input=1195m '7이닝 2실점' 넥센 최원 "데뷔 후 가장 만족한 투구"] -연합뉴스</ref> [[2017년]] [[4월 27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개인 최다 이닝인 8이닝을 소화하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7&no=287720 ‘시즌 3승’ 최원, 값졌던 최다 이닝-투구수 경신] -MK스포츠</ref> [[2017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09388 ‘7이닝 1실점’ 최원, 생애 첫 10승 요건] -OSEN</ref>
         [[분류:199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인헌초등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최재성(배우) . . . . 7회 일치
          * [[1994년]] SBS 월화드라마 《여 뭘했수》 ... 김석환 역
          * [[1996년]] MBC 대하드라마 《[[미망#s-3|미망]]》 ... 남 역
          * [[2009년]] KBS 대하드라마 《[[천추후(드라마)|천추후]]》 ... [[강조]] 역
          * [[2015년]] MBC 《[[맨도롱 또똣]]》... 진용 역
          * [[2016년]] KBS 일일 드라마 《[[우리집 꿀단지]]》 ... [[강준(우리집 꿀단지)|강준]] 역
  • 최지우(영화배우) . . . . 7회 일치
         1994년 MBC 공채 탤런트 23기[*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유웅]], [[이현경]],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1995년 말 영화 <귀천도>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으나 부족한 연기실력탓에 도중하차한다. 1996년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비로소 얼굴을 알리게 된다.[* 이자벨 아자니와 샤론스톤이 주연을 맡은 영화 <디아볼릭> 국내 상영기념 이벤트였다.]
         2003년 출연한 <[[천국의 계단(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도 여주인공 한정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때부터 혀 짧은 발음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계모와 의붓 여동생[* 이 역을 바로 [[김희]]가 맡았다. 김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남자 주인공들([[권상우]], [[신현준(배우)|신현준]] 役)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 참고로 상대역인 권상우도 [[혀]]짧은 발음이 문제였는지라, '''권땅우&퇴디우'''로 불리기도 했다.(...)
         2008년 절치부심 [[유지]]와 함께 <스타의 연인>에 출연하였으나, 이 드라마는 에어시티보다 더 실패하였고 시청률은 바닥을 쳤다. 최지우가 이 드라마를 찍다가 나오지 않는 시청률 때문에 촬영 도중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루머가 돌 정도였으니(...)
         [[황금의 제국]] 후속작인 [[수상한 가정부]]에서 여주인공 [[박복녀]]로 출연하기로 확정되어 초반 분량은 촬영을 마친 상. 이성재와 짝을 맞추어 극을 이끌어 나간다. 다만 연기력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작인 [[가정부 미타]]의 팬들은 최지우가 여주인 것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 하는 중.
         그 외에도 [[안성기]], [[류시원]], [[권상우]], [[유지]], [[안재욱]] 등과 투탑으로 출연하였고, 에어시티에서 같이 출연했던 [[이진욱]]과는 연인관계로도 발전하였으나 결별하였다. <지고는 못살아>에서는 [[윤상현(배우)|윤상현]]과 호흡을 맞추었다. 역시 히로인 of 히로인.
          * 별을 사랑한 왕자의 꿈 - [[차현]]
  • 최훈재 . . . . 7회 일치
         * [[해 타이거즈]] (1997년 ~ 1998년)
         ===[[해 타이거즈]] 시절===
         |1997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해 타이거즈|해]]||0.292 ||112 ||343 ||56 ||100 ||23 ||1 ||12 ||161 ||70 ||3 ||7 ||34 ||5 ||40 ||10 ||2
         {{1997년 해 타이거즈}}
         [[분류:196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해 타이거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영일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중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강릉 최씨]][[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페어리 테일/515화 . . . . 7회 일치
          * 어느날 장군이 그녀가 있는 감옥에 나타난다. 그는 아이린의 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뿐 어떤 동정의 빛도 띄지 않는다. 아이린은 뱃속의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장군은 "3년이나 어나지 않는 아이가 어디있냐"며 헛소리 취급한다. 그건 아이린이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마법으로 지연시키고 있는 거지만 그런 해명도 장군에겐 용납할 수가 없다.
          *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레프가 경고한 것은 빠르게, 치명적으로 체감됐다. 아이린은 무엇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고 잠도 오지 않았으며 무엇을 해도 인간으로 느끼던 감각과 달랐다. 아이린은 자신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던 것이고, 이런 형가 아니었다는걸 깨닫게 된다. 제레프는 그것을 예측했기에 "넌 이미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린은 그걸 부정하며 자신은 인간이라고 고집을 부린다.
          >어날 아이에게 나 자신을 인챈트하면 인간의 몸을 손에 넣을 수 있는거 아니야?
          * 패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실험. 엘자와 [[웬디 마벨]]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아이린은 아주 연한 도로 실패했고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 엘자는 어쨌거나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아이린은 쓰레기의 감사는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듣고 있던 웬디가 화를 내는데 정작 엘자는 담담한 도로 말을 잇는다.
         제목이 나는 너, 너는 나이기 때문에 인챈트가 실패한게 아니라 각각 아이린의 사악한 면과 선한 면이 나뉘어지는 형가 된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 페어리 테일/518화 . . . . 7회 일치
          >어나면서부터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계집!
          아이린은 그런 말을 입에 발린 말이라 부정하며 엘자에게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낸다. 엘자에게 안 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저주를 퍼붓고 나서는 아예 이성을 잃어 버린다.
          * 아이린이 멸룡마법사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곧 그녀의 육체는 심상치 않은 힘을 뿜어내고 육신이 용인 형로 바뀌어간다. 단 일격으로 엘자를 멀리 떨쳐내더니 더욱더 강한 형로 변모한다.
          * 완전히 용으로 바뀐 아이린. 현룡 베르세리온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용인의 형로 한 공격은 엘자가 그럭저럭 막아낼 수 있었지만, 드래곤 형에서는 앞발을 휘두른 것만으로 전신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힘이 강해진다. 이것만으로 엘자는 빈사의 상에 처하지만 아이린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 하리수 . . . . 7회 일치
         하리수는 [[1975년]] [[2월 17일]]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어났으며 다섯 남매들 가운데 한 명이다.<ref name="Eve from Adam">Li Ee Kee, "Eve from Adam", ''The Star Online'', September 19, 2005. A copy of this article can be read at [http://groups.yahoo.com/group/TNUKdigest/message/17335 TNUKdigest].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본명은 이경엽으로 후에 [[2002년]] [[12월]] [[성별정정]] 후에 경은으로 개명하였다.
         비록 남자의 신체로 어났지만 하리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였고<ref name="Eve from Adam" />, 또한 여성스럽게 성장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ref name="Eve from Adam" /><ref name="Adam to Eve">Gina Choon, [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Adam to Eve"] {{웨이백|url=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date=20071017204309 }}, ''Asiaweek.com'', September 14, 2001.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하리수의 여성스런 성격을 걱정한 어머니는 그를 [[웅변]]학원에 보낸다.<ref name="ung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01920 '화려한 시절' 조 왕건' 外] 동아일보 2001.12.07</ref> 그곳에서 하리수는 자신의 여성스러움까지도 이해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나 함께 웅변대회 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ref name="ungg"/>
         [[2011년]] [[4월]] 《파주 Fantastic Show》<ref name="fanfan1">[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4011540171001 최한빛 ‘이것이 슈퍼모델 각선미’(하리수 판타스틱쇼)] 뉴스엔 2011.04.01</ref> 를 기획하였다. 판타스틱쇼(Fantastic Show)는 하리수와 [[2009년]] 슈퍼모델출신의 [[최한빛]] 그리고 전국에서 끼와 재능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최고의 트렌스젠더들이 모여 다년간 하루 10시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낸 공연이었다.<ref name="fanfan1"/> 당시 하리수는 “국의 대표적인 알카자쇼와 같은 공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지원 속에 문화 관광 상품을 넘어서 세계적인 쇼로 자리잡았다. 트렌스젠더들이 꿈의 무대를 이루어낸 것처럼 한국의 후배 동료들에게도 공연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ref name="fanfan1"/> [[2012년]] [[12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열린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VIP데이 포토타임 행사에 참여했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하리수 달라진 얼굴…또 성형 의혹?] {{웨이백|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date=20160305005647 }} 뉴스핌 2012.12.12</ref> [[2013년]] [[10월]]에는 제8회 [[서울국제문화축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2013년]] [[8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 [[저장 성]] [[항저우 시|항저우]]에 방문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속사에 의하면 "행사차 중국을 방문한 하리수가 [[상하이]](上海)로 입국해 [[항저우]](杭州)로 이동하던 중 타고 있던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고 한다.<ref name="ssss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564823 하리수, 중국서 교통사고 당해…상는?] 세계일보 2013.08.18</ref> 소속사는 이어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추정된다"며 "차량 일부가 파손됐지만 다행히 하리수 일행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아 스케줄을 마치고 오늘 오후 항저우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설명했다.<ref name="sssss"/> 사고가 수습된 뒤 바로 귀국하였다.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06/07/13/20060713000430.html 하리수 "다시 어나면 꼭 여자로…"] 세계일보 2006.07.13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육우당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성전환자 배우]][[분류:성소수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장안대학교 동문]][[분류:성남시 출신]][[분류:트랜스젠더 음악가]]
  • 하수빈 . . . . 7회 일치
         애틋한 그리움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 헌정음악으로, 물리적 거리, 시간과 공간, 삶의 방식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음악적 환경 속에서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한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내면적 깊은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그 감성과 자연 생에 근접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의 결을 찾고 추구했으며 회화적인 사운드로 채색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위대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The Persistence of Memory'''와 동명 타이틀을 취한 이번 앨범은 그의 회화, 전위적 예술이 그녀의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원대한 바다... 마치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바다, 별, 양, 바람, 비, 구름, 중력, 꽃, 숲, 호수, 파도, 피아노... 이 모든 것을 추억이라는 모로 형상화 했으며, 자연 그 생와 환경에 근접한 감상들을 아름다운 영상미학적 음향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발견의 선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지나온 90년대를 돌아보자면, 마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비너스처럼 청순가련형의 아름다움이 대중문화의 한 시기를 풍미, 많은 여성들의 하나의 상징적 이데올로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중예술 분야에서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성상을 그 어느 때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했던 시기였다. 노스텔지어... 원대한 바다...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별, 양, 바람, 구름, 비, 중력... 우주의 경외감을 표현함으로 자연 생에 근접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추구했다.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진양 하씨]]
  • 한용덕 . . . . 7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8년]] [[7월 1일]]<br />[[숭의야구장|인천]] 대 [[평양 돌핀스|평양]]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2005년]] [[4월 5일]] 개막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거행했으며 이후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26426 “훌륭한 지도자로 돌아올 것”]《대전일보》, 2005년 4월 5일 작성</ref> [[2005년]] 시즌 종료 후 단행된 [[한화 이글스]] 코칭 스프 정비에서 2군 [[투수]] 코치로 임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131374& 한화, 1군 투수코치 최동원 임명] 《연합뉴스》, 2005년 10월 25일 작성</ref>
         [[2014년]] [[12월 4일]] [[두산 베어스]]에 2군 총괄 코치로 영입되었다. [[2015년]] [[김형 (야구인)|김형]]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1군 투수코치로 승격하였다. 2018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활동한다.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대전천동초등학교 동문]][[분류:충남중학교 동문]][[분류:북일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현이와 덕이 . . . . 7회 일치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상씨와 [[서양 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충무로]]4가에서 1961년 4월 21일 어났다.<ref>{{웹 인용|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맏이 [[장현]]은 [[바이올린]]을, 둘째인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절부터 자라났다.
         1977년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임원식 [[감독]]의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한다. 장덕은 몇몇 영화에서 단역을 맡아 본 적은 있었지만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한달 뒤(5월) 장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로 인해 집들이에 참석한 가수 [[송창식 (가수)|송창식]]은 장덕이 중학교 2학년(만 14세) 때 작사 ·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 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한다. 결국 [[송창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장덕은 <[[소녀와 가로등]]>을 곧 데뷔하게 되는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 [[작곡가]]로서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제 2회 대회부터는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에서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로 이름이 바뀐다.)에 출전한다. 당시 가요제 규정상 작곡가도 가수가 함께 무대를 꾸며야 했기 때문에 장덕은 빵모자를 눌러 쓴 깜찍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입상). 같은 해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박원 [[감독]]의 [[영화]] <[[선생님 안녕]]>에서 [[장현]]은 [[임예진]]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삼각관계가 얽힌 영화로 비록 단역이지만 장덕 또한 [[장현]]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현이와 덕이는 이 영화에서 [[사운드트랙]] <정말>도 싣게 된다.
         1987년 7월 장덕은 타이틀곡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비롯 <이별인줄 알았어요>, <이 노래를 들을때면>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4집《[[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두봉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재킷에 <골든앨범1집>이란 타이틀이 표기되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이별인줄 알았어요>가 가요톱10 등 가요 순위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시기 장덕의 오빠 장현도 타이틀곡 <마지막 진실>을 비롯 <연민>, <어느날>, <만날 수 없는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솔로 데뷔 음반 《마지막 진실》을 발표하게 된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장덕 작사/작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어 장덕이 오빠 장현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도 여겨진다.) 9월 장덕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 3회 [[ABU]](아시아 평양 방송연합) 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당시 불렀던 노래 <너를 기다릴거야>는 1989년 발매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에 재편곡되어 수록되게 된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6회 일치
         수송기에 워 공수 강하를 벌일 수 있는 보병 사단. 특수 보병 아니랄까봐 생산이 겁나 오래걸린다.
         1936년 연구인 "초기 전차"와 1934년 교리 연구인 "기갑 사단 편제"를 연구해야 생산할 수 있는 사단. 1939년 연구인 "진보한 경전차"에서 테크가 끝난다. 이후 1939년 연구인 "기본 중형전차"를 연구하면 중형전차로 업그레이드 된다. 하지만 도되지는 않으므로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쓸모는 좆도 없을테지만.
         기상 상에 따라 작전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아무런 전투 능력도 없지만 공수부대를 워 공수강하를 시전할 수 있다. 또한 포위된 육군 부대에게 항공 보급으로 약간의 보급을 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방어력이 개판이지만 대공 방어력은 엄청나게 개판이니 적 공군유닛을 조심하자.
         >해군 수송선은 세계의 보급품과 자원을 운송하는데 사용됩니다. 이들은 바다 건너로 지상군 부대를 수송할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비무장 상입니다. 보호가 없다면 다른 함선과 항공기에 취약합니다.
         육군 사단을 워 바다 건너로 수송하거나 상륙전을 벌이는데 쓴다. 수송선 자체는 아무런 전투 능력도 없으므로 주의. 만약 수송전대가 전멸하면 탑승하고 있던 육군 사단도 같이 전멸한다.
  • That 70's show . . . . 6회 일치
         레드는 이 기회에 제럴드 포드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려고 결심하지만, 마을 유지들 협의회에서는 레드에게 미리 할 질문을 정해주었다. 자동차 공장이 묻을 닫아가면서 거의 실직한 상에 놓여있던 레드는 경제가 이 모양인데 이제는 자기 할 말도 못하게 하는거냐고 크게 상심한다.
         아버지가 곤혹해하는 표정을 본 순간 에릭은 [[닉슨]] 가면을 뒤집어 쓰고 벌거벗고 뛰쳐나와서 유세장에서 날려나간다. 에릭이 시위하는걸 보고 배짱을 되찾은 레드는 당당한 도로 "어떻게 닉슨을 사면할 수 있냐?"고 포드에게 [[돌직구]]를 던진다.
         중간 시즌 쯤에서 재키와 사귀게 됐으나, 재키가 시카고로 떠나고 켈소와 얽히는 일이 생기면서 깨지고 만다. 하이드는 한동안 라스베가스에서 방황하다가 돌아오는데, 라스베가스의 스트리퍼 사만다가 하이드와 결혼했다면서 쫓아오면서 재키와 완전히 깨진다(…). 게다가 사만다는 나중 시즌에서 다른 남자하고 이미 결혼한 상였다는 것이 드러나서 또 헤어지게 되고, 8시즌에는 특별히 커플 라인이 없다.
          * 평양 전쟁 : 이전에 일본 기계가 제일 가까이 있었을 때는 그게 나를 쏘고 있었다고 발언.(시즌 1 에피소드 1 파일럿)
         에릭과 서로 과거 폭로전을 벌이다가, 사실 어났을 때는 [[꼬리]]가 있었다(…)는 비밀이 밝혀지기도 했다. 카드놀이를 하다가 666을 연속으로 뽑는 등 악마(…) 기믹이 들어가기도.
         도나의 어머니.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게 살던 아줌마로 밥과 딱 맹렬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인생에 공허함을 느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게 되는데 [[페미니즘]]이나 [[요가]]나, 뭔가 수상한 정신치료나 [[극권]] 등등. 그러다가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밥과 헤어지게 된다.
  • 검은방 시리즈 . . . . 6회 일치
          주인공이 류현 한명이던 전작과 달리 두명이 되었다.
          * 류
          류현의 애인. 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의 일로 인해 검은방 1편에서 감금당한다. 검은방 1편 이후 실어증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게된다.
          검은방 1편의 범인. 스포일러 틀까지 쓰면서 스포일러 경고했다. 두명의 동생을 두고 있었으나 한명은 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다른 한명은 그 충격에 빠진 상로 입대했다가 중대장의 갈굼으로 자살. 두 동생의 죽음에 연관된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검은방 1편에서의 사건을 일으켰지만 류현과 하무열에게 저지당한다.
          검은방 1편 이후 범죄 코디네이터로 전직,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을 위해서 죄인들(과 류현, 하무열)을 납치해 감금한다.
  • 구성윤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 [[강현무]], [[김동준(축구선수)|김동준]], [[이창근]], [[이희(1995)|이희]] 등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미래를 책임질 골키퍼들 중에 1명이다.
         ===== [[신용호/U-23|신용호]] 시절 (2015~2016) =====
         ===== [[신용호]] (2017~ ) =====
         그리고 한동안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다가 2017년 [[신용호]]의 유럽 평가전 명단에도 뽑히며 다시 성인 대표팀 무대를 밟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출전은 없었다.
  • 김도균 . . . . 6회 일치
         흔히 대중들에게 [[부활(밴드)|부활]]의 [[김원(음악인)|김원]], [[시나위(밴드)|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한국 3대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과거에는 속주로 [[신대철]]과 자웅을 겨루던 인물. --물론 알고보면 은둔고수도 많지만--
         15년 11월 21일 방송된 [[채널A]] '잘 살아보세'에서 898,411포인트였던것을 22,260포인트를 사용한 후 876,151포인트에서 다시 모았다가, 2016년 5월 10일 방송된 [[불타는 청춘]]에서 출연자와 스프들을 위해 자그마치 20만 포인트를 사용한 뒤 다시 모은 것이다. 2+1,1+1 상품을 사서 하나만 받아가고 나만의 냉장고 어플리케이션에 적립해뒀던 것까지 끌어다 썼는데 이것도 20만원 상당이었다고 한다. 적립률을 1%로만 잡아도 편의점에서 약 1억원 이상을 쓴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 포인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편의점을 털어라]] 파일럿 1화에서 100만점 돌파를 인증한 후, 정규편성 1화에도 등장했는데 이 때 한 말이 "원래는 100만포인트 모이면 블릿PC를 사려고 했는데, 100만까지 모으고 나니 그냥 별 생각이 없더라. '''기왕 이렇게 된 거200만도 한번 노려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인증하며 출연진들을 경악시켰다.
         [[JTBC]] 예능 프로 [[헌집줄게 새집다오]] 3월 3일 방영분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10년 넘게 살아 온 집을 공개 했는데 가히 충격영상급 주먹만한 먼지+머리카락이 온갖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으며 침대를 포함 먼지와 잡동사니들이 무진장 쌓여있다. 방이 있고 침대가 있는데도 거실에 이불 깔고 잘 정도. ~~그냥 청소를 하면 될 텐데~~ 유통기한이 2년 넘은 햇반들이 그대로 식탁에 올라가 있으며 서랍장은 열어놓은 상로 그냥 사용하고, 세탁한 빨랫감은 벽 옆에 산을 이루고 있다.
         [[나혼자산다]] 출연 조건으로 집 청소해주기를 걸었었는데 그 이후 약 3년간 청소를 안한 게 이정도의 상라고 하니 예전엔 완전 폐가급이었을 듯....... MC들이 먼지 소굴에 경악을 하자 김도균은 먼지가 눈처럼 아름답게 쌓여있지 않냐며 몰래 왕 먼지를 가구 밑으로 밀어넣었다. --청소를 하세요!!--
  • 김석훈(탤런트) . . . . 6회 일치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에서 명 연출가 줄리안 마쉬역을 맡았다. 서울공연에서 성황리에 높은 유료점유율을 기록하고 지방순회공연을 이어갔다. 본인이 맡은 노래2곡을 배역에 조화롭게 녹여내기 위해, 무려 2달간을 꼬박 연습에만 매달렸다. 공연에서 마쉬의 캐릭터인 카리스마의 경중 조절에서, 상황별로 깊이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공연때나 리허설때나 스프 및 출연진과 소통하며 배우는 신인의 자세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 이는 그간 인터뷰에서도 나타냈던, 데뷔당시의 변치 않는 신념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즉 본인이 말한 대로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지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임해 많은 호평을 이끌어 냈다. [* 공연관람에 평소 흥미가 없었다고 한 층까지도 신규관람층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전년과 대비해 김석훈은 공연에 참여한 이후로, 신규층의 높은 관람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호평받았다.]
         [[이상엽]]은 [[국수의 신]]에서 맡았던 캐릭터인 '박하' 역 때문에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당시 김석훈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에 이상엽은 인터뷰에서 김석훈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표시했다.
         || 2007년 || KBS2 || [[행복한 여자]] || 김섭 ||
         || 2009년 || KBS1 || [[천추후(드라마)|천추후]] || [[김치양]] ||
          * [[2009년]]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천추후》
  • 김성현 (1989년) . . . . 6회 일치
         대구에서 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상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2군에서 [[정명원]], [[조규제]] 같은 뛰어난 코치의 지도 및 1군에서 [[정민]]의 조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상승, 2010년에는 1군에서 어느 정도 자기 몫을 다했다. 90이닝을 던지면서 7승 8패 방어율 4.9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인 것. 당시에는 어린 축에 속하는 투수였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주무기는 시속 15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빠른 공. 여기에 스플리터를 정민 코치로부터 전수받았다. 넥센의 젊은 투수들이 그렇듯이 제구력의 향상이 큰 숙제. 오죽하면 별명이 '볼크(볼질+보크)'였을 정도였고, 선수 본인도 당시에 이 별명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볼질로 주자를 내보낸 이후 여지없이 무너지는 새가슴도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2011년 8월 6일 [[한화 이글스]] 전에 드디어 LG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였다. 한화 전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서 기대되는 대목이었지만 5⅓이닝 동안 4실점하면서 그날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김성현보다 [[박경수 (야구 선수)|박경수]], [[김완 (1981년)|김완]] [[키스톤 콤비]]의 생각은 수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실책을 줘도 할 말 없는 게 두 개나 있었지만 웬일인지 실책으로 기록이 안 되고 고스란히 그의 자책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김승대 . . . . 6회 일치
         그러나 별 기대하지 않았던 김승대의 포처 원톱화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간 '''이명주와 원투펀치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이고 슛팅당 70%라는 높은 확률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이명주와 호흡이 환상적이고 김승대 자신도 [[필리포 인자기|인자기]]가 떠오를 만큼 수비 라인을 타는 솜씨며 골 결정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김승대가 라인을 정말 잘 타는 것도 있지만 포항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공간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탁월하고 그 와중에 이명주, 손준호, 김수 등이 패스를 뿌려대니 상대 수비 라인을 학살하며 1:1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
         시즌 종료 후 [[박하]] 감독이 이끄는 중국 2부 리그 우승팀이자 2016년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하는 [[옌볜 푸더]]로 이적설이 나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468&article_id=0000086796|관련 기사]]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명주도 없고, 승대도 없고]]~~ 그리고 결국 이적료 20억+@를 포항에 안겨주고 연변으로 이적했다. 포항으로서는 아쉽지만 포스코의 지원금이 또다시 삭감되어 70억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김승대가 안겨준 이적료 덕분에 나머지 FA인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현대판 [[심청전|심청이]]~~
         이렇게 6월까지는 옌볜에서 선발에서 제외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보였고, 서포터즈와 지역 언론은 김승대를 교체하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박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용병교체는 없다"며, 김승대는 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종호]]에 발탁된 이래 '''4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미친 존재감]]을 뽑내고 있다. 일부 ~~[[설레발]]~~언론은 벌써부터 이광종호의 황자라며 추켜세우는 분위기.
         2015년 8월 2일 중국전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유럽파를 차출하지 못해 [[기성용]]이 빠진 상에서 미드필러 라인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우려가 많았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뜻밖에도 원톱 이정협 밑에 김승대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 [[권창훈]] [[이재성(1992)|이재성]] 등 드리블러가 아닌 공간 침투와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며 4-5-1과 4-3-3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형을 선보였다. 경기 초반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였으나 차츰 이들의 연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 글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다.
         ||<#00703c> '''{{{#eee156 2014.09.30}}}''' ||<#00703c> '''{{{#eee156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본선}}}''' ||<#00703c> '''{{{#eee156 대한민국 2 : 0 국}}}''' ||<#00703c> '''{{{#eee156 -}}}''' ||
  • 김종호(1935) . . . . 6회 일치
         1935년 [[충청북도]] [[괴산군]] 에서 어났다. [[청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정치인)|김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범죄)|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반대하였고[*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반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순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반대할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 [[민주정의당]] || '''95,781표(67.0%)''' || '''당선''' || [*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정치인)|김완]] 후보와 동반 당선] ||
  • 김지훈(배우) . . . . 6회 일치
         || '''팬 페이지''' ||<(> [[http://cafe.daum.net/jihunforever|[[파일:다음 카페.png|width=24]]]] [[http://gall.dcinside.com/m/jihoonlove|[[파일:디시인사이드_로고.png|width=24]]]][* 개설은 2016년에 했으나 약 1년간 인스타그램 업뎃 위주로 글이 올라오다가 ~~인별갤~~ 몇몇 고닉들이 꾸준히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인별갤에서 벗어난 상이다. 현재는 유동닉들도 글을 많이 올리고 있고 최근 케이크 조공도 계획했었지만, 총대가 나타나지 않은 관계로 무산되었다.] ||
         주로 주말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이상우]]와 더불어 주말드라마계의 황자로 불린다.
         || [[2009년]] || KBS || [[천추후(드라마)|천추후]] || [[현종(고려)|현종]] || ||
         || SBS || [[결혼의 여신]] || [[강욱]] || ||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상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남주역을 맡았다. 인조반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반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를 합친다면 반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 김진(배우) . . . . 6회 일치
         양신이양신이부른다~ 라는 CM송이 인상적인, 오리온 썬헌터 CF를 찍은 적이 있는데 ~~[[무언극]]인지 아닌지 모를~~ 기묘한 춤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포카칩]] 광고에서 불량감자의 안티테제로 나오기도.
         당시 한국에선 보기 드문 형의 [[미남]]으로 상당히 큰키에 엄청 호리호리한데다 하얗고 중성적인 미소년 타입(동인녀들의 손에 걸리면 '수'가 될듯한)으로 순정만화에나 어울릴 듯한 외모로 90년대 후반에 인기를 끌었다.
         * [[1999년]] [[SBS]] 미니시리즈 《[[토마토 (드라마)|토마토]]》 … 윤호(세라 오빠) 역
         * [[2001년]] [[MBC]] 일일드라마 《[[결혼의 법칙]]》 … 송주 역
         [[분류:한국 남배우]][[분류:안산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어남]][[분류:199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개신교도 이탈자]]
  • 김진선(군인) . . . . 6회 일치
         ||<#000080><-4><:> [[노우 정부|{{{#FFFFFF ''' 노우 정부 (1988 ~ 1993) ''' }}}]] ||<#003990><-1><:> [[문민정부|{{{#FFFFFF ''' 문민정부 (1993 ~ 1998) ''' }}}]] ||
         1939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어났다. [[괴산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9기 출신이었다. [[1993년]] [[제2작전사령관]]([[대장(계급)|대장]])에서 예편하였다. 하나회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안병호, 이현부(이상 20기)처럼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노우]]계 군인을 지칭하는 9.9 인맥의 (노우가 사령관이었던 9공수여단, 9사단에서 노우의 참모나 휘하 부대장을 한 인사들) 핵심이었다. [[제7보병사단]] [[사단장]] 등을 지냈다. 준장 때, [[국군체육부대]] 초대 부대장을 역임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6회 일치
          * 세간에서는 지난 밤의 격전과 올마이트의 용에 대해서 떠들썩하다.
          * 도망친 빌런연합의 개인정보도 확보되지 않은 상. 때문에 원흉인 올 포 원을 잡았다 한들 실행범을 전부 놓쳐서 잘쳐줘 봐야 무승부인거 같다고 얘기한다.
          * 시가라키 토무라는 프로파일링에 따르면 "아이의 발작"같은 상. 그의 범죄는 갈 수록 정교하고 복잡해졌으며 "세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목표로 발전했다.
          * 귀가한 토도로키는 누나로부터 아버지가 "계속 저런" 상라고 듣는다.
          * 올마이트의 은퇴로 인데버는 자동적으로 No.1 히어로가 되지만, 그는 "이런 형는 인정 못한다"고 화내고 있다.
          * 바쿠고는 묘하게 침울한 상로 경찰에 넘겨졌는데 어쩌면 크게 심경이 변화할지도?
  • 돌비 . . . . 6회 일치
         조용하게 가열되어 비등점 이상으로 과열상가 된 액체가, 돌발적으로 비등하는(끓어오르는) 현상. 비등석(沸騰石) 같은 물건을 미리 넣어두면 돌비를 방지할 수 있다.
         과열상지만 안정되어 있던 액체가 외부에서 이물질이 혼입되거나, 충격을 받아서 액체 내부에 기포가 생기면서 급속도로 끓어오르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액체를 데우면 온도가 끓는 점에 도달했을 때, 거품이 나오며서 점차 부글부글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액체가 끓는 점에 도달했음에도 드물게 거품이 일지 않고 끓지 않는 과열 상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과열된 액체는 진동이나 이물질을 혼입하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게 된다.
         돌비는 매우 위험한 현상인데, 끓지 않는 상의 국물 등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접근하여 조미료 등을 넣다가 갑자기 끓어오르는 액체에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나 두유 등의 음료는 기포발생의 핵이 될 수 있는, 그릇 안쪽의 요철이나 액체 내부의 고형물이 없을 경우 과열 상가 될 수 있으며, 된장국 같은 걸죽한 식품 역시 대류가 일어나기 어려워 부분적으로 과열상가 되고 돌비가 발생할 수 있다.
  • 디도(성우) . . . . 6회 일치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성우)|박성]]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2014년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정재헌이 처음 시작했던 릴레이 라인과는 별개의 릴레이 라인을 시작했으며, 다음 타자로는 [[이동훈(성우)|이동훈]]과 [[백경훈]], 그리고 자신와 이름이 비슷한(...) 영국 팝 가수 [[다이도]]를 지목했는데 백경훈은 몸 상가 좋지 않아 불참의 뜻을 밝혔다.
          * [[유희왕 5D's]] - [[팀 양|하야시 요시조]], 컵라면맨(...)[* 115화의 퍼즐 듀얼에서 문제를 출제하던 NPC. [[크로우 호건]]이 [[예거]]를 잡기 위해 이것 분장을 한 적이 있다.], 시로코
          *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정현
          * [[해적전대 고카이저|파워레인저 캡틴포스]] - 유괴범, [[제라싯트|젤라시트]], [[도몬]](타임 옐로), [[아키라(광전대 마스크맨)|박환(블루 마스크)]][* 비디오판은 [[최수민]]. 선배 성우인 최수민이 똑같이 소화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어 이 인물을 맡았다.], [[구성주의 브라지라]](극장판)[* TV판 [[천장전대 고세이저|파워레인저 미라클포스]]는 선배 [[임하진]]. 성우의 자격 정지 전부터 이 인물을 맡고 있다.]
  • 메탈멘 . . . . 6회 일치
          * 코퍼 (구리)[* New 52 시점에서는 멤버가 아닌 상.]
         매그너스 박사는 아파트로 돌아가나, 메탈멘은 사실 갈 곳이 없어 그 곳에 숨어있었다. 그 순간 케모가 매그너스의 집에 들이 닥치지만, 메탈멘이 자신들의 육체를 희생해 케모를 박살낸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인 리스폰스미터는 무사한 상.
         이후 [[저스티스 리그]]가 신입 멤버를 뽑을 때 매그너스 박사는 플래티넘을 부활시키고 저스티스 리그에게 보내나, 오작동으로 난동을 부려서 결국 다시 액화 상로 돌려버렸다.
          * 킹덤 컴에선 'Alloy'라는 형가 등장했으며 이후 리붓 전의 본편에서도 이 형가 한번 등장한 적이 있다. 이외에도 거대로봇으로 합체한 형가 등장하기도 했다.
  • 무라하치부 . . . . 6회 일치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영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이 긴 문단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라하치부의 배경이 되는 향촌자치는 언듯 생각하듯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것만은 아니며, 농촌 사회 지배층이 주도하는 ‘작은 사회’ 지배에 수반되는 무라의 폭력적인 처벌이 함께 뒤따랐다는 것이다. 무라하치부는 이러한 ‘처벌’의 형 가운데 하나로서, 이 처벌 방식이 다른 것들과는 달리 비교적 오래 남게 된 것은 추방, 신체형, 재산몰수, 사형 등의 다른 처벌과는 달리 근대 형법 제도에 크게 배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해자인 남성은 본래 이 지역 출신으로 농림업을 하던 부모에게 어났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상경하여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귀향하고 부모님을 개호하였으나, 가나가와 현에서는 미장이로 일하면서 귀향한 뒤에도 기술을 살려 집을 건축하고 현지 TV쇼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별한 뒤에 지역 주민들과 문제가 잇따르게 되었다.
         도쿄에서 모현에 이주한 T씨(34세) : 이주자는 1주일에 1번 마을 부흥의 선두 주자인 노부부의 집에 모여서 회식을 한다. 나와 아내는 이주 전까지 했던 디자인업을 계속하면서 자급자족용으로만 농업을 하겠다고 말하자, 갑자기 도가 돌변하여 "농업을 하지 않을 거라면 도쿄에 돌아가."라고 주민들이 둘러싸고 협박하였다.
         가을에 정원에서 낙엽으로 모닥불을 우고 있으면 몰려와서 뭐하는 거냐고 항의를 하고 소방차까지 불러왔다.
  • 문희옥 . . . . 6회 일치
         ||출생지||現 [[강원도]] [[백시]]||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백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백시]]에서 위치한 [[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분류:한국 여가수]][[분류:1969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백시 출신 인물]]
  • 민효린 . . . . 6회 일치
         '''김효린'''({{본명|정은란}}, [[1986년]] [[2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이다. 배우자는 [[빅뱅 (음악 그룹)|빅뱅]]의 [[양 (가수)|양]]이다.
         | [[양 (가수)|양]]
         2007년 5월 가수로 데뷔하여 싱글 앨범을 발매했으며, '''Rinz''' 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대표곡으로는 Stars와 기다려 늑대가 있으며 특히 Stars는 [[나카시마 미카]]의 원곡으로도 유명하다. 2가지의 앨범 형로 발매됐으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Stars 버전'과 '기다려 늑대 버전'이 있어 사용자들의 취향에 따라 구입할 수 있다.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6년 데뷔]][[분류:대구동부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수영(연극배우) . . . . 6회 일치
         2011년 SBS 드라마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에서 인기를 모았고, 2011년 영화 《[[완득이 (영화)|완득이]]》에서 완득이([[유아인]] 분) 아빠 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2016년 영화 《[[덕혜옹주 (영화)|덕혜옹주]]》에서 [[의민자|영친왕]]으로 존재감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 `7호실` 박수영 "옆집 아저씨 같은 배우로 기억됐으면"|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53239|출판사 = 매일경제 |저자 = |날짜 = 2017년 11월 22일|확인날짜 =}}</ref>
         * 《[[변호인 (영화)|변호인]]》 (2013년) - 엄남 역
         * 《[[이원 살인사건 (영화)|이원 살인사건]]》 (2009년) - 최 계장 역
         * 《[[붉은 달 푸른 해]]》 (MBC, 2018년) - 홍기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장성군 출신 인물]]
  • 박철우(배구) . . . . 6회 일치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배구)|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2010 오프 시즌 때 FA를 선언하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로 이적했다.--아버님!!!--''' 현대캐피탈은 세터 [[최웅]]을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지명했고, [[최웅]]은 5년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이 [[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백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 ~~여기에 [[신영수(배구선수)|신영수]], [[김학민]], [[한선수]]도 이 리스트에~~ 다행히 [[신영수(배구선수)|신영수]]는 공익으로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후 예전 감각을 잃지 않았다. 덤으로 팀의 주축으로 2013-14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선수]]는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2015년 전역 확정.]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어났으니 [[한선수]]처럼 상근예비역으로 빠질 확률이 높긴 하다.--
         또한 소속 팀에서의 안습한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배구)|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다. --다만 [[V-리그]]의 대표적인 [[노안]] 선수라 얼굴이 폭삭 늙고 있어서 팬들이 안타까워한다 카더라.--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상나 다름없다. --아니 사위가 어찌 그렇게 됐는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 봉준호 . . . . 6회 일치
         | 친척 = [[박원 (1909년)|박원]](외조부), [[박문원 (1920년)|박문원]](외종조부)
         * 봉준호의 외조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원 (1909년)|박원]]으로서, [[한국전쟁]] 당시 장녀를 데리고 [[월북]]했고, 봉준호의 어머니를 포함한 그 외 2남 2녀는 서울에서 자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1951696 '천변풍경'의 구보 박원, 청계천변서 다시 만나다] 프레시안. 2009년 06월 15일</ref> 2006년 6월 제14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이들 모녀가 재회화여 화제가 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1988703 호랑이가 고양이 낳으랴..3대 이은 예술명문가] 스타뉴스. 2009년 06월 30일</ref>
         [[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잠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음 봉씨]]
  • 붐(연예인) . . . . 6회 일치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남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안양예고 출신으로 가수 [[비(연예인)|비]]와 고교 동창이며, [[SE7EN|세븐]]은 그의 2년 후배다.[* 특히 비는 어머니가 임종하시고 장례를 치를 때 붐이 곁에 있어 주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미 연예인으로 데뷔한 상였던 붐은 그들을 우습게 봤었다고...
         "[[무명]] 시절 때, 의도적으로 전진의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고 다니며 전진의 춤을 추고 사인까지 하는 등의 행를 보이고, [[나이트클럽]]에서 [[전진(신화)|전진]]의 행세를 하며 여자를 꼬시고 나이트나 클럽의 VIP로 대접까지 받은 적은 물론, 밥집에서도 전진 앞으로 달아놓으라는 식으로 [[먹튀]], 여자들과의 원나잇은 물론 전진의 팬이었던 미성년자 여성과 [[원나잇]]까지 했다"라는 [[루머]]가 있었다.
         안 그래도 당시 전진은 여러가지 악재들로 인하여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상당히 피폐해진 상였는데 여기에 말도 안 되는 [[루머]]까지 더해지면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은 상였다. 붐의 사칭 사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전진이 "나는 나이트에 가지도 않았는데 지금 나이트에 있냐고 여기저기서 문자가 왔다" 등 사칭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신화창조들은 더더욱 붐이라면 치를 떨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해 사실상 신화팬들 사이에서 이 일로 인하여 그는 [[평생까임권]] 획득+[[금지어]] 취급을 당한다.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2017년 3월 4째 주부터 러브FM에서 파워FM으로 --신분상승(?)-- 옮겨왔다. 자타공인 라디오 청취율 1위 [[두시탈출 컬투쇼]] 다음이기 때문에 청취율에도 많은 영향이 있을 듯 하다.[* 다만, 10년동안 컬투쇼-올드스쿨이라는 롤(?)때문에 아직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 --쫒겨난(?) [[김창렬]]은 어났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다만,러브FM으로 옮기기 전, 즉 파워FM 시절때 김창렬이 고향인 러브FM가서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몇몇 청취자의 경우 붐붐파워가 너무 열정적(?)이고 시끄러워서(?) 적응하지 못하고 러브FM으로 이사한 올드스쿨로 온 청취자들도 있다. 그래도 인기는 좋아서인지 가끔 실시간 검색어에 붐붐파워가 뜬다. --왜냐면 검색해야 맞출 수 있는 퀴즈코너가 있기 때문에..--
  • 블랙 클로버/128화 . . . . 6회 일치
          * 열이 오를 데로 오른 아스타와 랜길스였지만 그대로 맞부딪히지는 않았다. 둘은 동료들이 소환된 깨닫고 바로 각자 동료들에게 접근해 상황을 전달한다. 아스타는 먼저 잭스와 미모사에게 이런 일을 벌여 미안하지만 랜길스를 이기고 싶으니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둘은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으나 곧바로 승락. 미모사는 랜길스의 상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일단 임전세에 돌입한다. 잭스는 명색이 마법기사들이 사적인 감정으로 다투냐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단연코 랜길스가 글러먹었으니 협력해준다"고 역시 임전세를 취한다.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백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식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식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식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랜길스와 격돌. 마법제에 의해 잠시 정지돼 있었지만 풀리자 마자 동료를 파악하고 힘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1회전에서 선보인 대로 미모사가 크리스탈을 지키고 자신이 전열을 맡으며 돌진, 잭스가 후방 원호를 맡는 형로 나온다. 랜길스의 공격을 잘 쳐냈지만 랜길스가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중과부적에 몰린다. 랜길스가 "핀랄이야 말로 진짜 마법기사가 랜길스는 아무리 강해봐야 진짜 마법기사가 아니다"는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하지만 조금도 타협없이 "이긴 자가 무엇이든 옳은 거라면 핀랄에게 인정받은 내가 이기겠다"고 선언한다.
          랜길스의 행에 매우 분노한 듯 보이지만 당장 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요청은 선선히 수락한다.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랜길스를 "무의식의 배신자"로 의심하고 진상을 확인하려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랜길스가 개인적으로 띠껍고 아스타가 충분히 랜길스를 참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합을 시킨 걸로도 보인다.
  • 송주훈 . . . . 6회 일치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 선수가 발탁되었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6회 일치
          * 그 시절의 죠이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승을 거머쥐고 있다. 외부의 콩쿠르인데 기자들은 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며 취재열기가 뜨겁다. 그런 기자들 틈에서 분노의 찬 목소리로 죠이치로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그 시절의 도지마 긴. 평하게 이겼다고 하는 죠이치로를 갈궈댄다.
          사실 그날은 죠이치로의 십걸평의회 가입 최종심사와 임명식이 있는 날. 그렇게 자리 비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 모양이냐고 멱살을 잡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연한 도로 "네가 내 몫까지 듣고 나중에 알려줘"라고 대충대충 넘어간다.
          * 도지마는 그 시절의 죠이치로를 비유하길 "풍이 날뛰는 황야의 개척자"였다. 항상 도전하고 있는 도지마와 아자미지만, 죠이치로의 요리를 볼때마다 항상 경이와 감탄으로 충만하다. 죠이치로는 그런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어디로나 끌고 갈 거라는 얼굴이다. 도지마는 그때까지 "은"(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년 2인자라는 표식 같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죠이치로와 함께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 우렁찬 구토소리 때문인지 도지마와 아자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끼고 조리실로 달려온다. 그 사이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내놓은 황당무계한 요리를 놓고 당혹한 표정이다. 마치 도마뱀 말린 것을 워서 플레이팅한 듯한 비쥬얼. 하지만 당황하던 학생들 사이에 웃음이 번져간다.
         도지마는 죠이치로의 기행을 언급하며 마치 자기는 정상인인양 굴지만 이 인간은 시식 리액션으로 세라복 차림으로 유원지에 놀러가는 기분을 만끽하거나 대중탕에서 당당히 나체요가를 하거나 하는 등 숨은 변임을 잊지 말자.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6회 일치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수레를 불우고 한 남자를 묶어 강제 번지점프를 시키는 광경을 보게된다. 이후 무장한 남자들을 해치우고 매달린 남자를 구해준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그 남자를 노린 강도들이었고, 해당 남자가 빈털터리라는걸 알게 되자 그의 도구와 장비를 불우고 그를 밧줄에 매달아 절벽에서 던져버렸다는걸 알게 된다.
         프루던스를 본 라일은 그 곳에서 애를 낳아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아이는 무사히 어나고, 워렌과 프루던스는 새로 어난 아들에게 헌터라고 이름을 붙인다.
         빅 데이브는 마을에 폭력사를 불러온 것에 대해 사과하지만 코너는 자기들은 자신을 지킨 것 뿐이라며, 영국군이 더이상 추격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니 빅 데이브는 이제 자유의 몸이라고 말한다.
         영국군 징집관이 끌려온 사람들을 세워놓고 "정규군에 온걸 환영한다"로 시작하는 환영인사를 하고있다. 클리퍼 윌킨슨은 징집관이 젊은이들을 잡아와 배에 워보내는 모든 일의 책임자라며 그를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너는 윌킨슨에게 지붕 위에서 라이플로 엄호할 것을 요청한다.
  • 영덕군 . . . . 6회 일치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동해선]]([[동해중부선]]) 계획이 있었고 노반까지 남아있을 정도였으나 해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70년이 넘는 세월을 걸려서 [[동해선]]이 개통되어 영덕군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KTX]]가 정차하는 [[포항역]]을 출발해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에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영해역]]을 지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역]]까지의 공사가 진행중인데 영덕역 북쪽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부터 영덕을 지나 [[강릉시]]까지 동해선 철도가 쭉 이어질 예정이다. 남쪽으로도 [[모량역]]부터 [[신경주역]]을 지나 [[화강역]]까지 이어져서 최종적으로는 동해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부전역(동해선)|부전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량중이다. 2018년 2월 기준으로는 중간 일부 구간들이 미완성이다. 동해선 외에 김천에서 의성을 거쳐 영덕을 이어주는 [[경북내륙선]]이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 이다.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문준]] : 정치인. 의사.
          * [[박하]] : 축구선수
          * [[신용]]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전(前) 축구선수. 영해면 출신.
          * [[이용(기업인)]]
  • 영창대군 . . . . 6회 일치
         [[선조]]와 [[김희정 (1992년)]] 사이에서 어난 [[선조]]의 적장자. '''왕실에 어난 것이 죄였던 아이'''.
         선조가 죽기 2년 전에 어났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정항은 그가 빨리 죽지 않을까 걱정하여 그 온돌에 불을 때서 아주 뜨겁게 해서 워 죽였다. 대군이 종일 문지방을 붙잡고 서 있다가 힘이 다하여 떨어지니 옆구리의 뼈가 다 탔다.”고 하였다. 지금도 강화도 사람들은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율에는 경중이 있습니다. 지금 이이첨의 심복들을 모두 죄주지 않은 상에서 먼저 정항(鄭沆)과 이정표(李廷彪)를 죄주도록 청한 것은, 진실로 왕자 두 분의 죽음이야말로 천하에 다시 없이 원통하고 동시에 당시 핍살(逼殺)했던 흔적이 사람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당사자가 이미 죽었다고 해서 그냥 덮어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살아 있는 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죽은 자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는 하교가 있으셨습니다. 신들이 일을 논하면서 잘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요즈음 대간이 논하는 것을 보면 당을 비호하는 흔적이 뚜렷하니, 내가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해괴하게 여긴다. 정항 등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윤허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처리한다.’는 분부가 어찌 유독 이이첨의 당만을 말한 것이겠는가. 오늘날의 행로 보건대 조정에 당파가 없는 날은 오지 않을 듯싶다. 다시 이와 같은 기상을 볼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 오태곤 . . . . 6회 일치
         |선수명 = 오
         '''오곤'''([[1991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kt 위즈]]의 [[내야수]], [[외야수]], [[지명타자]]이다. 개명 전 이름은 '오승택'이다. 그의 사촌 형은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인 [[오현택]]이다.
         [[kt 위즈|kt]] [[오곤]] 안타(짝짝짝) [[오곤]] 안타 워어어x4(마지막 4번째에서는 오!!곤!)<br>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서울쌍문초등학교 동문]][[분류:신월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원우(가수) . . . . 6회 일치
         ||<#f5f5f5> '''별명''' ||워누, 저너누[* 본명 "전원우"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 데뷔 전 17'S 다이어리에서 [[우지(세븐틴)|우지]]가 "저너누!"라고 표기한 적 있다.], 늘보[* 하단 [[원우#s-2.2|성격]]문단 참조. 성씨와 붙여 전늘보라고 부른다.], 여우[* 닮았다.], 전소녀, 전발라드[*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소속 래퍼라는 본인의 포지션과는 다르게 평소 추천하고,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곡들은 모두 [[발라드]]라 붙은 별명. 줄여서 "전발라"라고도 한다.], 전원우 복덩어리[* 하단 [[원우#s-2.3|말장난]] 문단 참조.], 서가대 환청남[* 데뷔 초 [[서울가요대상]]에서 [[장재인]]의 <환청>무대에 랩 피쳐링으로 올라간 적이 있는데,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저 잘생긴 사람을 호칭하고 싶은데 이름을 몰라 대신 붙여진 별명.], 불이나남[* 데뷔곡 '아낀다' 중 원우의 파트 "나 지금 너 땜에 불이 나"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계기는 바로 앞의 환청남과 같다.], 권원우[* 평소 티격격하는 사이인 [[호시(세븐틴)|호시]]와 서로의 흉내를 자주 낸다.] ||
         팀 이름도 17에 생일도 17일이라 데뷔 초 "생부터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라며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때문에 방송에서 주로 비쳐지는 차분한 모습에 비해 실제로 멤버들과 있을 때에는 장난도 많고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멤버이다. 일례로 [[2017년]] 2월에 개최된 첫번째 팬미팅에서 [[원우]]의 롤링페이퍼에 익명의 멤버가 "야, 장난 좀 그만 쳐! 맨날 간지럼 우고 죽겠어!"라고 적었으며, 또 다른 익명의 멤버는 [[2016년]]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동안 휴식에 들어갔던 [[원우]]에게 아프지 말라는 감동적인 당부로 메시지를 시작했다가 [[https://youtu.be/hSl4uYzLYUg?t=1m24s|"옆구리 그만 찔러라 진짜."]]라는 경고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 해산물을 못 먹는다. --[[호시(세븐틴)|호시]]: 걔는 해물을 못 먹어요. 그래서 새우깡도 안 먹는 애예요.-- 알레르기는 아닌데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심하게 느껴져 꺼려하는듯. [[세븐틴TV]]에서 이와 관련해 [[호시(세븐틴)|호시]]가 에피소드를 밝힌 적 있는데, 함께 식사를 하려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숯불구이집을 보고 "[[원우]]야, 저기 숯불구이집 있다."라고 제안했더니 [[원우]]가 [[https://youtu.be/oKyl9VbIPYY?t=7m32s|"저기 앞에 글씨 안 보이냐? 생 숯불구이 집이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생선초밥을 먹어야 하는 게임에서는 [[에스쿱스]]가 대신 [[원우]] 몫까지 먹어주기도 했으며 [[2016년]] [[12월 29일]] [[양남자쇼]]에선 연어회를 먹어야 했을 때는 연어를 빼고 밥만 먹기도 했다.멤버들과 타꼬야끼를 먹었을때도 문어를 빼고 먹었다고한다.
          * [[2016년]] [[6월 3일]] [[원우]]가 급성 위염에 걸려 다음 날 있을 [[드림콘서트]]와 팬미팅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약 2주후 진행된 [[호시(세븐틴)|호시]] 생일 [[V LIVE]]에서 [[원우]]의 몸이 나아졌다고 언급했으나, 이윽고 소속사 측에서 [[원우]]의 몸 상를 고려해 7월에 있을 리패키지 앨범에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에는 참여하되 방송 활동은 안 할 것이라는 공지가 나왔다. 아티스트가 몸이 좋지 않을 때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행동은 칭찬할 만하지만 이 외에 팬들에게 주어진 정보가 너무 없어 걱정만 늘어갔던 터라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처리가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 원피스/840화 . . . . 6회 일치
          * 상디와 형제들은 혈통인자로 조작되어 어난 초인들.--어쩐지 눈썹이 이상하더라.-- 그러나 상디만은 뭔가 잘못돼서 평범한 사람으로 어났다.
          * 빈스모크 저지는 상디 형제들이 어나기 전엔 뛰어난 과학자였다.
          * 상디를 "어나지 않았던 걸로"하겠다는 의사표명이었다.
          * 상디는 버림 받았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약하게 어나서 죄송해요"라며 애원한다.
          * 그러나 그런 시점에서도 "제르마 부활"이 저지의 목표라면, 원래 제르마는 지금과 전혀 다른 형의 대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원피스/843화 . . . . 6회 일치
          * 파운드는 빅맘이 "기후를 조종하는 여자"라 칭한다. 왼손이 "뇌운, 제우스", 오른손이 "양, 프로메테우스"에 해당한다고.
          * 루피 일행은 킹 바움을 이용해 이동하는데 이동 중에 루피는 소화가 끝나서 평소 상로 돌아온다.
          * 성에는 "귀가명령"이 내려진 상였지만 긴급경보와 함께 크래커의 패배가 빠르게 전파된다.
          * 파운드가 밝힌 빅맘의 능력은 "기후를 다스리는 것". 왼손에 뇌운 "제우스", 오른손에 양 "프로메테우스"가 있다고 한다.
          * 나미가 통화하던 사이 잠들어 있는 루피는 살이 쭉쭉 빠져서 원래 상로 돌아간다. 게다가 잠꼬대로 고기를 찾는데.
          * 하지만 루피는 상디가 인질이 잡혀 있다는걸 모르는 상고 그래서 상디는 심하게 갈등하게 된다.
  • 원피스/853화 . . . . 6회 일치
          * 브룩의 능력은 빅맘의 카운터지만 빅맘 자신과 자신의 혼을 직접 주입한 이각모 "나폴레옹", 뇌운 "제우스", 양 "프로메테우스"에겐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혼"의 "격"이 다른 빅맘 자신과, 자신의 혼을 직접 주입한 이각모 "나폴레옹", 뇌운 "제우스", 양 "프로메테우스"에겐 통하지 않는다. 빅맘은 이 세 가지 무기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달걀달걀 열매"(타마타마 열매) 능력자. 문자 그대로 달걀이 되는 열매. 달걀->병아리->닭 순으로 강해지는 능력으로 달걀 상에서 페드로에게 당하다 곧 "병아리 자작"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작위도 오르고 전투력도 오른 상라 페드로를 애먹인다. 그러나 결국 페드로에게 또 한 번 베이고 만다.
          * 쓰러진 병아리 자작은 잘려진 몸통 속에서 달걀 같은 내용물이 흘러나오더니 그게 닭의 형로 변해간다. 이것이 바로 "닭 백작". 이 상가 "진정한 기사"라 불릴 정도로 전투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마지막 변신이라 그런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데 페드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다. 변신이 끝나기 전에 타마고 남작의 숨통을 끊으려 하자 부하들이 저지하려 한다.
  • 원피스/864화 . . . . 6회 일치
          * 혼란에 빠진 다과회장. 빅맘 해적단이 세를 정비하지 못한 사이, 벳지는 루피를 생포한 척 연기한다. 일단은 자신이 경비 책임자이기 때문에 손놓고 있으면 수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가 루피를 사로잡았다고 외치자 누군가 "죽여버려!"라고 받아친다. 루피는 벳지의 처사에 반발하지만 그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손발을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
          방금 페드로를 공격한 자는 샬롯가의 4남 "노릇노릇 대신" [[샬롯 오븐]]. "열열 열매"를 먹은 "고열 인간"이다. 자기 몸에 닿는 것을 가열하는 능력. 접근전을 벌이는 페드로와 상성이 좋지 않다. 페드로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지만, 저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드로가 [[페콤즈]]의 형이며 과거 빅맘에게 눈과 수명을 잃었던 남자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 페드로가 얼마 남지 않은 수명으로 여기에 왔다는건, 각오를 했다는 얘길 거라며 그를 불워 죽여주겠다 엄포를 놓는다.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상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식들의 냉담한 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노스 블루의 나라들에 복수하기 위해 바쳐왔다고 하소연한다. 하객들은 대놓고 그를 빈정거리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는 암살 주모자 빅맘에게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가 호소하는 빅맘은 웨딩케이크의 붕괴, 망쳐진 결혼식, 밀집모자 일당, 그리고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진 것 등등.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뇌가 정지하다시피했다. 페르스페로가 이런 빅맘의 상를 전하며 대신 대답한다.
          * 벳지가 말한 "좋지 않은 상황"이란게 바로 이것이었다. 빅맘은 쇼크가 너무 겹치고 겹친 나머지 대혼란상황. 패닉을 일으킬 정신 조차 없는 것이다. 브룩은 빅맘의 상가 저러니 "깨어진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벳지는 이제와서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어하다가,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접근하는걸 발견하더니 대번에 도를 바꿔서 "작전은 성공할 거다"고 확신한다. 지금 카타쿠리는 새파랗게 질린 낯짝이다. 벳지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을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윤주상 . . . . 6회 일치
         * [[1994년]] 《[[백산맥 (영화)|백산맥]]》 ... 최익승 의원 역
         * [[2000년]] 《[[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 ... 성섭 역
         * [[2008년]] [[KBS2]] 미니시리즈 《[[양의 여자]]》 ... 장 회장 역
         * [[2018년]] [[MBC]] 주말특별기획 《[[숨바꼭질 (드라마)|숨바꼭질]]》 ... 문산 역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1970년 데뷔]][[분류:양평군 출신]][[분류:파평 윤씨]][[분류:서라벌예술대학 동문]]
  • 은혼/627화 . . . . 6회 일치
          * 마왕의 봉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헤도로는 선한 인격의 "헤도로"와 사악하고 파괴를 꿰하는 "헤도라"의 인격이 공존하는 위험한 상가 된다.
          * 그들이 찾아낸 긴토키는 [[헤도로]]에게 고목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붙어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소년처럼 재앙을 홀로 막고 있지만 애초에 재앙을 불러온 것도 자신이라 도움도 청할 수 없다. 그래서 긴토키는 자신이 꺾어버린 헤도로 머리 위의 꽃, "파라파헤븐"을 필사적으로 붙여놓고 있다.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헤도로는 연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미 해방군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면서.
          * 보름달이 떠올랐다. 가부키쵸는 네온사인이 아닌 모닥불로 밝혀진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오토세]] 여사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아 담배를 운다. 그가 이런 밤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 오토세 여사도 "그래도 밤을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거냐고 대답한다. 지로쵸는 그렇다며 이 다음으로 아침 햇살로 빛나는 마을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라고 말한다. 오토세여사는 내일을 맞이하는게 큰일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토록 애를 썼는데 내일을 맞이하기엔 부족한 거냐고 묻는다.
          * 누나 [[시무라 타에]]는 클과 인외연애에 여념없는 신파치를 염려해서 쉬라고 권한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사실 게도마루는 신파치를 심란하게 하는 것 말고도 부상자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물론 아까도 부상자들을 도우며 클 말고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신파치보단 훨씬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도마루와 음양사들은 늦게 온 만큼 조금 더 컷에 나와서 분량을 뽑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가부키쵸 주민군에 늘러앉았다.
          오토세는 부상자들에게 지금은 푹 쉬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부상자들은 지금이라도 적들이 처들어올게 두려워서 편히 쉬지도 못한다. 오토세는 자신들이 있으니 잘 먹고 잘 쉬라며 특제 다크마타를 처먹여 영원히 쉴 수 밖에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게도마루는 재기불능이 된 병력에게 판데모니엄을 데코레이션하는 흉악한 짓을 하는데 신파치는 제대로된 식량을 배급하라며 클을 건다. 그때 또다시 나타나는 판데모니엄씨. 이제 신파치의 본심을 알았다며 떠나려고 하는 그녀. 신파치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판데모니엄을 먹어치우려고 한다. 가구라는 머리가 맛이 가버린 신파치에게 좀 쉬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 은혼/644화 . . . . 6회 일치
         [[은혼]] 644훈. '''불로 불은 울 수 없다'''
          이미 양이지사 일행의 습격으로 괴멸 지경에 이른 모선의 통제실에서는 뜻밖의 대폭발마저 감지되면서 공황상에 빠졌다. 히노카구츠치에 있던 에너지가 폭주, 역류를 거듭하면서 함 전체의 구석구석을 파괴했다. 이미 함내는 파악할 수도 없이 많은 유폭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게 뜻하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피차 같은 불이 질러진 사내들. 하지만 불이란 불로 끌 수 없는 법이 아니던가? 모든 걸 불로 워버리기 전까진.
          >마지막 병사 한 명까지 다 워 없애라고.
          * 엔쇼는 여유로운 도로 양이지사들을 처리하는건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입을 열었다. 잔당들이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해방군을 파멸시키는 것 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엔쇼는 지금 시점이야 말로 진정한 성전이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불이란 불로 끌 수 없는 법이 아니던가? 모든 걸 불로 워버리기 전까진.
  • 이시영(배우) . . . . 6회 일치
         2010년 3월 1일 부터 5월 4일까지 방여된 KBS드라마 [[부자의 탄생]]에서, 리얼 무개념 푼수 '부희' 역을 맡아서 보여주는 연기가 인기를 끌었다.
         2013년 2월에 출연한 [[런닝맨]]에서 과도한 민폐로 게시판 지분을 다수 습득했다. 원래부터 이런 캐릭터이긴 했지만 한동안 예능 출연이 뜸했고 복싱 등으로 호감도가 올라간 상에서 보여준 모습이었던 탓인지 반작용으로 비난여론이 좀 있었다.
         2013년 4월 23일부터 시작된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출전했다. 대전 상대는 2차전 48kg급에서 1위를 한 김다솜 선수.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당당하게 극 마크를 획득하게 된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101633|관련기사]] 당초 이시영의 무릎 부상으로 인한 훈련량 부족으로 고전이 예상됐다.
         이시영의 스승인 임 모 관장에 의하면 현재 복싱에서 은퇴를 한 상라고 한다. 다만 선수로선 은퇴하지만, 생활체육인으로서 복싱을 즐기겠다고 한걸 보면 아마 생활체육복싱대회 정도는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시영 소속사는 "습관성 어깨 탈구로 지난 (2015년) 6월부터 훈련을 중단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 모 경제전문지 기자인 신OO(34)씨 : 이시영 관련 루머를 '''찌라시로 작성'''하여 지인(아래 4명)에게 전파함 - 구속 기소 되었으나 구속적부심에 의해 불구속 상
         ||<|2> 2010년 || KBS || '''[[부자의 탄생]]''' || '''부희''' ||
  • 이인 . . . . 6회 일치
         ==== 평양 전쟁 이후 ====
         약간의 [[소아마비]] 증세를 앓고 있었으나 생활이나 대화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소아마비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한다. [[1896년]] 같은 해에 어난 김두종, 윤일선, 이병도, 이인, 이희승 등은 만년에 동갑 모임을 만들어 돈독한 우정을 나누곤 했다. 어난 해가 병신(丙申)년이어서 모임명칭은 '병신회'로 하였다. '병신회'의 회장 선출을 놓고 설왕설래하던 중 애산 이인이 “병신회 회장이야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라고 해서 만장일치로 애산을 회장으로 옹립했다고 한다.<ref>[http://car.khan.co.kr/kh_car/khan_art_view.html?artid=200204191810171&code=990201&s_code=990201&fid= <nowiki>[</nowiki>여적<nowiki>]</nowiki>당당한 장애인] 경향신문 2002년 04월 19일자</ref>
         * [[정진]]
         * [[함영]]
         [[분류:1896년 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유학자]][[분류:유교 신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대학 교수]][[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국민당 (1948년) 당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이승만| ]][[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장경 . . . . 6회 일치
         성주의 호족으로 [[신라]] 말의 재상 이순유(李純由)의 12대손이며<ref>순유(純由)→광연(光演)→정신(正身)→견수(堅壽)→범(凡)→정거(廷居)→중경(仲京)→영(瑩)→효삼(孝參)→돈문(敦文)→득희(得禧)→이장경(李長庚)</ref>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경상북도]] [[경산]]에서 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경은 문창, 백성의 다른 칭호였다. 그 뒤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반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상,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인 합천이씨에게서 아들 5명이 어났다.
         사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선석산(禪石山)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선석산에 [[조선 세조]]의 를 묻게 되자 [[세종대왕]]이 특명을 내려 길지를 택해 하사하여 성주의 서쪽 서오치(西梧峙)의 남쪽으로 이장되었다.
         [[이백년]]의 아들이자 손자 [[이인기]]는 평양부 부윤이었고, 고손자(아들 이백년의 증손)는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자 [[고려]] 멸망 이후 두문불출한 절신 [[이숭인]]이었다.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자 이장경의 고손자인 이제(李濟)는 [[조선 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조선 왕실과도 인척관계가 되었다.
  • 이종혁 (배우) . . . . 6회 일치
         * [[2005년]] [[SBS]] 미니시리즈 《[[그린 로즈]]》 - 신현
         * [[2010년]] [[KBS2]] 주말연속극 《[[결혼해주세요]]》 - 김호 역
         * [[2013년]] [[SBS]] 미니시리즈 《[[주군의 양]]》 - 이재석 역 (특별출연)
         * [[2016년]] [[KBS2]] 수목드라마 《[[양의 후예]]》 ... 김진석 대위 역 (특별출연)
         * [[2018년]] [[MBN]] 수요드라마 《[[연남동 539]]》 ... 상봉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분류: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동문]][[분류:동도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1974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6회 일치
          * 한편 왕궁에서는 국왕 바토라가 성기사들을 소집한 상. 바토라는 일곱개의 대죄의 활약으로 십계의 위협은 벗어났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기사들을 통솔할 성기사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새로히 임명한다고 선언한다.
          * 목욕을 마친 멀린은 이 다음 수를 구상하겠다고 우선은 일곱개의 대죄가 전부 모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인지 데스피어스는 멀린과 바토라의 명의로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고서를 석방한다. 그런데 고서는 상가 다소 이상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일곱개의 대죄 색욕의 죄 고서."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데스피어스는 미심쩍어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 고서를 풀어주며 그가 십계의 일원이라는 혐의가 완전히 풀린건 아니라고 경고하는데. 그렇게 구속이 풀린 고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말하자 어쩐지 고서의 기색이 달라진다.
          * 그때 숲속에서 누군가 나타나는데 "왜 춤을 잘 추지 못하지"라고 투덜거리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디안느. 디안느도 목욕을 하러 왔는지 알몸 상다. 할리퀸과 디안느가 엉뚱한 곳에서 어난 모습 그대로 만난 두 사람.
         고서는 그냥 있을 때도 상가 이상한데 갑자기 무욕의 고서라고 십계의 이름을 댄다. 고서가 멜리오다스의 과거 시절 나오던 무욕의 십계라는건 팬덤에서도 추측하고 있던 내용인데, 이번 화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다만 고서는 멀린이 조작하는 인형이었으며 멜리오다스의 십계 시절 동료인 "무욕의 고서" 그대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6회 일치
          * 정신을 지배 당한 디안느가 동료들을 향해 공격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응전해야 했는데 [[헬브람]]은 무슨 이유인지 이 사가 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행이 뒤로 넓게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발빠르게 분석에 들어갔다. 디안느의 상는 통상의 세뇌나 최면과 달랐다. 할리퀸이 보기에 디안느를 조종하는 것은 단순히 메라스큐라의 마력이 아니라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학살 당한 사람들의 원혼이었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그런걸 어떻게 쓰러뜨리내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헬브람]]이 이상했다. 이 모든 상황은 자기 책임이라며 할리퀸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걷어차인 킹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헬브람의 투구가 지켜준 덕에 직격만은 면했지만 의식을 잃었다. 고서가 상를 보려고 다가갔는데, 그는 할리퀸 곁에 찌그러져 있는 투구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곧 멀린이 다가과 상를 물어서 깊게 신경쓰지 못했다.
          * 디안느는 재미있는 장난이 성공해서 흡족했다. 깔깔거리는 여유를 보였지만 [[에스카노르]]의 접근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디안느의 상를 보고 "다소 난폭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작렬하는 "다소 난폭한" 치료. 거인족의 허리가 꺾이는 강렬한 보디 블로우. 그렇지만 "여성인 점을 고려해 얼굴만은 피하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위력 자체는 디안느의 갑옷이 터져나갈 정도였지만, 지금의 디안느에겐 정말로 "다정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주먹으로 되갚아주는 디안느. 에스카노르 또한 아무 상처도 입진 않았지만 자신의 다정함이 무시 당한게 아쉬운 모양이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주먹으로 대화를 하려고 드는 에스카노르.
          헬브람이 인간에 절망하고 증오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가 오래 전에 놔두고 온 과거였다. 긴 시간이 걸려 많은 일들을 거쳤지만 결국 자기가 저지른 죄 앞으로 돌아왔다. 헬브람의 도에선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떠나는 친구를 바라보는 할리퀸.
  • 전순옥 . . . . 6회 일치
         '''전순옥'''([[1953년]] [[6월 15일]]([[음력 5월 5일]]) ~ )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제19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전일]]의 여동생이다.
         * 큰오빠: [[전일]]
         * 여동생: 전리 (본명: 전순덕)
         * 둘째 오빠: [[전삼]]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의 정치인]][[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여자 정치인]][[분류:전일]][[분류:워릭 대학교 동문]]
  • 정겨운 . . . . 6회 일치
         * [[2008년]] [[SBS]] 드라마 스페셜 《[[불한당]]》 ... 장오 역
         * [[2008년]] [[KBS2]] 수목드라마 《[[양의 여자]]》 ... 권도 사범, 차동우 역
         | 조
         | [[양의 여자]]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정승환(가수) . . . . 6회 일치
         [[SBS]]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 시즌4]]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어나 2000년 [[인천광역시]] [[연수구]]로 이사했다.
         다만 때로는 흉성에 기반을 둔 파워에만 의존해 무리하게 고음을 올리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이건 [[박진영]]이 지적한 부분. 중간평가 도중에는 목에 힘을 주고 고음을 올리는 습관에 안 좋은 컨디션이 겹쳐져 음이탈과 음정 불안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는 어느 정도 고쳐진 상. 고등학생 재학중 부른 '말리꽃'을 보면 '''2옥타브 라♯(A♯4)'''[* 키를 하나 내렸기 때문에 라♯이 맞다.]까지 음이 올라간다.
         감정표현 역시 많은 이들이 칭찬한다. 일반적인 오디션 참가자들의 경우 노래를 완곡하는데 중점을 두고 다소 발성이나 기술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정승환의 경우 어느 정도 발성 기반을 닦아놓은 상에서 연습을 거듭해 노래에 섬세한 강약조절과 표현력까지 상대적으로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에 서술한 발성적인 능력보다도 오히려 이 표현력과 감성이 정승환의 숨겨진 큰 무기. K팝 스타에서도 이런 섬세함이 다른 참가자들과 정승환을 구분짓는 크나큰 개성이자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첫회(1라운드) 출연 당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시크한 매력을 뿜었던 그는 틀에 박힌 교육이 싫어서 노래 배우기를 거부했다는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는 모습과 심사위원들이 수능 준비 상를 묻자 "아니요"라고 덤덤하게 대답하고 이어 "노래만 하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발언을 하는 등의 모습은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범수의 [[http://tv.naver.com/v/239492|'지나간다']]를 선곡하여 감정을 잡아 진지하게 노래의 느낌을 표현하며 부른 것이 청중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되었고, 무대가 끝난 후에는 심사위원과 청중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희열로부터 '한 끗이 다르다' 는 평을 받으며 가볍게 2라운드에 진출했고, 무대에서 내려오며 그는 믿기지 않는 듯 볼을 꼬집는 모습을 보였다.
         드라마 SBS의 20부작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조윤영 극본,김규 연출)의 OST에 참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IXquzRxi8|#]]
         2016년 11월 29일 0시 "이 바보야" 라는 곡으로 데뷔, 약 세시간만에 멜론 차트 실시간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앨범 초고가 하루만에 매진되었고 8개 음원사 1위를 모두 석권하였다. 멜론차트 12월 첫째주 주간 1위를 기록했다. 정승환의 실제 만취 연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소주 4병을 마신 상에서 뮤비를 촬영했다고 한다. 참고로 주량은 1병이라고..](...) 때문인지 뮤비가 [[19금]]이 되었다.
  • 정용화 . . . . 6회 일치
         정용화는 1989년 6월 22일 2남 중 막내로 어났다.<ref name="mynameis">{{뉴스 인용|제목=정용화│My name is…|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873|출판사 = 텐아시아|저자 = 최지은|날짜 = 2009-12-01|확인날짜 = 2014-04-05}}</ref> 제주를 다녔으며, 자신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ref name="mynameis"/> 데뷔 전 스키장 [[얼짱]]으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하였다.
         * [[2011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인디즈 마지막 앨범인 《[[392(Thank you too(much))]]》를 발매하여 오리콘 데일리 앨범 3위와 인디즈 위클리 1위를 차지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앨범 ‘392’, 오리콘 데일리 앨범 차트 3위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93705691|출판사 = 맥스뉴스 |날짜 = [[2011년]] [[9월 2일]]}}</ref> 또한, [[2011년]][[9월 10일]]에 일본에서 열린 일본 마쿠하리 멧세(MAKUHARI MESSE)에서 열리는 [[린킨파크]](Linkin Park) 단독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CNBLUE), 린킨파크(Linkin Park)와 '오프닝 무대' 가져|url= http://www.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출판사= 톱스타뉴스|날짜= [[2011년]] [[9월 9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0220518/http://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보존날짜= 2013년 1월 20일|깨진링크= 예}}</ref>[[9월 17일]]~[[9월 18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 "BLUE STORM"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고,<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아시아투어 콘서트…9월 제주에서 출발한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10801001713&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 |날짜 = [[2011년]] [[8월 1일]]}}</ref> [[9월 25일]]에는 인디즈그룹으로는 유례없이 1만 5천석의 Yokohama Arena에서 인디즈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단독 콘서트, 요코하마의 밤을 불운 ‘열정의 무대’|url=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24&nid=119144|출판사 = SSTV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이것이 밴드다…'씨엔블루' 日콘서트,1만 5천 팬 열광 |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290|출판사 = 노컷뉴스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
          |제목 = 민호 윤두준 정용화 연 티파니, '골든 디스크' MC 확정
         * [[2012년]] 블릿PC - 삼성 갤럭시노트 10.1
         {{씨엔블루|상=collapsed}}
         [[분류:씨엔블루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2009년 데뷔]][[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사이버대학교 동문]][[분류: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진(1976) . . . . 6회 일치
         * 《[[극기 휘날리며]]》 (2004년) - 임 일병 역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년) - 선 역
         * 《[[백야행 (영화)|백야행]]》 (2009년) - 박호 역
         * 《[[신입사원 (드라마)|신입사원]]》 (MBC, 2005년) - 주성
         * 《[[스파이 (드라마)|스파이]]》 (KBS2, 2015년) - 식 역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정칠성 . . . . 6회 일치
         }}</ref> [[민족 대표 33인]]은 요리점 '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였고 일부 기생들도 동참했다. 한편 이씨 성을 가진 남성과의 사이에서 일찍이 아들 이동수(李東樹)를 낳았지만 결별하고, [[고려공청회]] 책임비서인 [[신철]](辛鐵)과도 동거하기도 했다.
         그는 작문에도 능하여 글과 논설을 지어 발표하였는데, 여성의 계몽, 교육의 장려, 사회 부조리의 개선, 위생 청결론 등을 주장하여 이른바 '사상 기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화관을 출입하던 소설가 장혁주는 그의 존재를 인상깊게 기억했다가 회상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 (1896년)|김명순]] 등과 함께 잡지 [[신여자]]지의 필진으로 참여하였으나 [[신여자]]지는 재정난으로 곧 폐간되었다. 이후 그는 [[조선]]의 역사 관련 서적, [[사회주의]] 사상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을 구해서 독서하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편물학당을 개설하여 뜨개질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뒤 [[평양 전쟁]] 중에는 [[창씨 개명]]을 거절하고 상점 운영에 종사하는 한편, 1931년부터 나가던 경성, 평양 등의 공회당 수자수, 편물 강사일을 계속하였다. 또한 틈틈이 조선지광, 삼천리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고료를 받기도 했다. [[1938년]] [[일본]]에 유학중인 아들 이동수의 학비 조달이 곤란하자 다시 기생이 되려 하였으나, 대동광업회사에서 아들 이동수의 학비를 지원하였다.
         [[1945년]] [[8월]] [[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박헌영]]의 재건파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였다. [[8월 16일]]부터는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하였다. [[미군정]]이 시작되자 [[서울]]에서 [[좌익]] 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대구]]의 [[조선공산당]] [[경상북도]]지구당 부녀부장이 되고,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도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칠성은 시중의 조롱과 멸시를 당했다. 당시 [[조선공산당]]은 "봉건유제 타파하여 여남평등 이룩하자!"고 부르짖던 진보적 정당이었고, 그는 공산당의 간부였지만 여전히 기생을 팔반천인의 하나로 여기던 시절이었고, 정칠성은 기생 출신이 정치를 한다고 야유를 보냈다.
         정칠성은 일제라는 식민지 억압구조와 조선의 봉건적 구습의 테두리 속에서 얽매여 있던 여성들의 의식부터 깨우고자 노력하였다. 그녀는 '가정과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열등한 인간취급을 받던 여성들에게 잠에서 깨어나라고 강하게 호소하였다. 그리고 평생을 여성해방운동을 위해서 투신하였다. 정칠성이 화류계에서 벗어나서 사회주의여성으로 거듭 어날 수 있었던 힘도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서의 해방을 갈망했던 몸부림에서 나왔으리라<ref name="dispose"/> '는 시각도 있다.
         [[분류:1897년 어남]][[분류:1958년 죽음]][[분류:기녀]][[분류:여성 해방 운동가]][[분류:노예제 폐지론자]][[분류:한국의 자유주의자]][[분류:한국의 사회주의자]][[분류:한국의 혁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무용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여성주의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음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철학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산주의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성주의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철학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용가]][[분류:알렉산드라 콜론타이]][[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여성 해방 운동]][[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남조선로동당]][[분류:월북자]][[분류:조선여성동우회의 인물]][[분류:근우회의 인물]][[분류:신간회의 인물]][[분류:허정숙]][[분류:박헌영]][[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조재윤 . . . . 6회 일치
         * 2009년 [[SBS]] 《[[양을 삼켜라]]》 - 장돌 역
         * 2013년 [[SBS]] 《[[주군의 양]]》 - 죽은 여자친구 귀신을 떼어내달라고 부탁하는 의뢰인 역
         * 2016년 [[KBS2]] 《[[양의 후예]]》 - 진영수 역
         * 2017년 [[OCN (방송)|OCN]] 《[[구해줘]]》 - 조완
         | rowspan=2| [[양의 후예]]
         [[분류:1974년 어남]][[분류:군포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주다영 . . . . 6회 일치
         * 《[[극기 휘날리며]]》 (2004년) - 영자 역
         * 1997년 잡지 모델로 시작해 베비라 모델 ,비유와상징, 농협 아름찬 김치, 데이콤 08217, 우리은행, 해제과 베스트 원 아이스크림, 페브리즈, 한국통신, 맥도날드, LG 휘센에어컨, 대교, 하나은행, 삼환 아파트, 마몽드, 장인가구, 풍성건설, 아디다스, 톰키드, 원아동복, 블루독, 정상어학원, 소니 핸디캠, LG CNS, 메이크업 포에버, 간지(GanGee) 2013년 12월호 표지모델, CAMPUS JOB&JOY 제52호 표지모델, 간지(GanGee) 2014년 11월호, 센트리얼 휘트니스
         * 하 - 돌아와줘 (2011년)
         * 제10차 아시아 평양 에이즈 대회(CAAP10) - 뮤지컬 퍼포머스 '블랙수트 뉴 걸'(2011.8.26)
         * [http://tae-pung.com/ 풍엔터테인먼트]
         [[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지석진 . . . . 6회 일치
         생각보다 경력이 다양하다. 원래 85년부터 연극배우/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었고, 메인스트림 연예인 데뷔는 1992년에 [[가수]]로 하였다. 장르는 [[발라드]]이고 앨범 제목은 '''우울한 오후엔 미소를'''. 애초에 다른 개그맨들처럼 개그 소스로 만들기 위해 음반을 낸 것이 아니라 당시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정말, 진지하게 가수로 활동하려고 낸 음반이었기에 생각보다 노래가 괜찮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을 두고 기획사 3곳이 경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제는 활동 후속 곡의 제목이 하필이면 '''[[난 알아요]]'''였다는 것. 심지어 1집 데뷔 시기와 데뷔 프로그램도 서지와 같았다.[* 유튜브 등에서 서지와 아이들의 데뷔 프로인 MBC의 "특종TV연예"를 검색해 보면 음반 소개로 잠깐 나온다.] 결국, 그의 가수 활동은 '''[[서지와 아이들]]'''이 일으킨 폭풍으로 철저하게 묻혔고 훗날 그의 개그 소재로 쓰이게 되었다. 나중에는 지석진 본인도 '''"여기서 서지랑 대결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농담삼아 여러 번 써먹는다.
         이후에도 예능에서 가끔씩 결혼생활을 소재로 써먹곤 했는데, 런닝맨에서 본의 아니게 결혼생활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는[* 런닝맨 멤버스 위크 송지효편 [[거짓말 탐지기]]미션에서 '다시 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답에 진실 판정이 떴다. 이후 멤버스 위크 왕코편에서는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날짜가 줄줄이 나오고, 아예 본인의 특집때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며 제작진에게 요청하기도.] '사실은 사랑꾼' 기믹도 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주변에 대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식의 드립을 자주 치는 모양인지, 멤버스 위크 이후에 합류한 전소민도 증거자료까지 있다면서 사랑꾼 기믹을 위협했다. 한번은 '''녹화 쉬는 시간'''에 '''싱글 중년'''들이 출연하는 [[불타는 청춘]]에 나가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스타일리스트까지 충격을 받았다고(...)[* 어쩔 수 없이 해당 비밀을 자기 입으로 밝힐 처지에 처했을 때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간신히 입을 떼는 모습이 압권이다.].
         [[KBS]] [[일일 드라마]] [[고양이는 있다]] OST를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6&sid2=224&oid=108&aid=0002349300|불렀다]].[* 첫 앨범때와 마찬가지로 [[서지]]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6회 일치
          * 피크는 사족보행 형로 너무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인간체로도 사족보행으로 돌아다니는게 생활화.
          * 모두가 "거짓말쟁이"였다. 멍한 상로 돌아다니던 라이너는 당시 무지성 거인이었던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의 습격을 받는다.
          * 잠이 덜 깬 [[포르코 갤리어드]]가 하품을 하며 계단을 오르다 못 볼 꼴을 마주한다. 방심이 문제였다. 피크가 사족보행으로 어슬렁거리는 꼴을 목격하고 소름이 돋아버렸다. 연하게 인사하는 피크. 뭐하는 거냐고 묻자 이 쪽이 걷는 것 보다 편하다고 한다. 거인 생활에 너무 적응해버린 부작용이었다. 포르코가 "두 발로 걸어라"고 시킨 덕에 전사장의 방에 기어서 들어가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어나기 전 군의 시설에서 일했다. 거기서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순간, 처음보는 얼굴임에도 직감했다. 자신과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라이너는 더욱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달랐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그래도 그는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완장을 보였다. 마레의 전사, 명예마레인의 완장을. 그와 어머니가 성취한 신분이다. 이제 신고만 하면 수용구 바깥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사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가 바라기만 한다면...
          그는 "그년"이 하필이면 "애새끼"를 전사로 만들 줄은 몰랐다고 토로한다. 그는 "애새끼"의 출신성분을 당국이 조사하기라도 하면 자신과 "가족"은 끝장이라고 노발대발했다. 그는 눈 앞에 나타난 작은 우환덩어리가 자신을 교수형시키려 드는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결코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웠다.
          라이너는 어안이 벙벙했고 당황했다. 짧은 시간 폭언과 욕설로 모든 것을 설명한 아버지는 그가 뭐라고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방을 떠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출항하는 날까지, 라이너의 의식은 지워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를 배웅하러 온 자리에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상의 아들이 그저 자랑스러워서 이렇게 말했다.
  • 청송군 . . . . 6회 일치
         한때 [[호랑이]]가 21세기에도 사는 동네라 알려져 유명했다. 그 이유는 2001년 [[대구 MBC]]에서 취재한 보도기사였는데, 무인 카메라에 의문의 대형 [[고양이]]과 동물[* 몸길이 120cm에 꼬리가 [[호랑이]], [[표범]]과처럼 긴꼬리의 짐승이었다고 한다.]이 찍힌뒤로, 주변에서도 인근주민들의 호랑이 목격담을 취재하며, 호랑이가 맞다고 연일 보도를 해댔었다. 그 당시 MBC는 사활을 걸고 특별 취재팀까지 동원해서 이 사건을 계속 수사했고, 진짜 호랑이가 맞다 vs 아니다의 결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도 이후 6개월만에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이건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송에서 취재된 사진이 [[호랑이]]가 아니다 뿐이지 뭔가 고양이과 야생동물이란것은 확실했고[* [[담비]]라는 설도 있으나 담비치고는 꽤 큰 덩치라 의견이 분분한 상.], 아직까지도 이게 무슨 동물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중 가장 작은 [[삵]]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인 한국에선 지금의 청송이 희귀 야생동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일듯. 참고로 이 야산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C9151E '''상주·군위[br]·의성·청송'''[* 지역구 국회의원 : [[김종(1949)|김종]]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 → [[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 3선)]}}} ||<:>14.69%||<:><bgcolor=#C9151E>{{{#FFFFFF 63.35%}}}||<:>12.72%||<:>5.25%||<:>2.79%||<:>{{{#808080 ▼48.66}}}||<:> 75.10 ||
         ||<|2> [[황병우]]/3선[br][[민주정의당]] ||<|2> [[김찬우(1933)|김찬우]]/재선[br][[통일국민당]] ||<|2> 김찬우/3선[br][[신한국당]] ||<|2> 김찬우/4선[br][[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br]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br]무소속 ||<|2> 김재원/재선[br][[새누리당]] || --[[김종(1949)|김종]]/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br]--새누리당-- ||
          * [[김옥숙]](1935~) : [[노우]] 전 대통령 영부인
  • 총기 . . . . 6회 일치
         [[화약]]이 발명되고 나서 얼마 뒤에 초창기의 총기가 나타나게 된다. 중세 서양에서는 핸드 캐논 형로 나타났다. 본래는 화약과 탄환을 따로따로 장전하고, 불도 따로 붙이는 매우 불편한 구조였으며 크고 무거웠으나 점차 사용하기 쉽게 개량되어 간다.
         총기의 개량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는데, 따로 불을 붙이는 대신에 불씨를 미리 줄에 달아놓는 [[화승총]]이 나타났으며, [[부싯돌]]을 사용해서 불을 붙이는 타입이 나타났다. [[화약]]의 경우도 [[흑색화약]]을 사용하다가 [[무연화약]]을 사용하여 보다 안정적인 형로 바뀌었으며 [[화학]]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화약 조합이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화약과 탄환을 별도로 휴대하여 장전하는 초창기 형에서 편리성을 추구하여 한꺼번에 묶어서 패키지로 장전하는 [[탄피]]가 발명되어 널리 쓰이게 된다. 총신의 경우도 단순한 파이프 형에서 [[강선]]을 파서 탄환에 회전을 줘서 명중률을 높이는 형로 발전. 탄환의 경우에도 단순한 [[납]] [[구슬]]에서 다양한 금속과 형를 고안하게 된다.
  • 최길성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6년]] 2차 7순위 ([[해 타이거즈]])
         * [[해 타이거즈]] (2000년)
         [[2000년]] [[해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시즌 후 방출당하였다. [[2001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였으나 별 다른 행보가 없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06년]]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였던 83경기에 출장하여 0.25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7년]] 팀 동료인 [[최만호]]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박석진]]과 [[손인호 (야구인)|손인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되었다. 그 해 [[SK 와이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였으나,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해 타이거즈}}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해 타이거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재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최성관 (1925년) . . . . 6회 일치
         [[1925년]] [[9월 5일]] [[서울]]에서 어났으며,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선화 공주》를 감독하였다. 감독활동은 1959년 《남의 속도 모르고》, 1962년 <양(太陽)을 등진 사람들>로 이어졌다. 김근자, 박귀희 주연의 <선화공주>는 흑백영화로 일관되다시피한 당시에 16미리이기는 했으나 모처럼 천연색 필름으로 촬영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홍성기 감독이 <여성의 일기>(1949)로 색채 화면을 선보인 이후 두 번째의 시도였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9년]] [[7월 19일]] 별세하였다.
         * [[백산맥 (영화)|백산맥]] (1994년)
         * 양을 등진 사람들 (1962년)
         [[분류:1925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편집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1999년 죽음]][[분류:국학대학 동문]]
  • 최승자 . . . . 6회 일치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어났다.
         한바탕 난장이 훓고 지나간 후의 권와 상념에 대한 뒤돌아봄,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를 담은 시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인기 작가가 됐다. 작품세계가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자기 과거에 대한 노출이 적나라하다. 비극적 사랑에 의한 슬픔 혹은 인생의 덧없음에 의한 공허감, 자기연민 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이를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찢어발기며 냉소한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게 반전이다.
         나는 양에서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또 한 대륙이 어나는 소리.
         소리 이전, 빛깔 이전, 형 이전의
         모든 것들이 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 킹덤/528화 . . . . 6회 일치
          * 눈 앞에 나타난 이들은 그 견융족의 정통후예이며 행산맥을 끼고 명맥을 잇고 있다가 조나라가 성립하면서 요양에 터를 주어 화평을 도모한 것.
          * 우습지만 그들의 존재가 뜨악한 것은 조군도 마찬가지였다. 일선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었고 장수들 또한 "견융족"이란 이름만 알 뿐, 왜 그들이 이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견융족은 500년 전 주나라를 멸망시킨 대기마민족으로 역사서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중화대륙에선 사라진 종족. 그들이 어째서 조나라에, 그것도 왕도권인 요양에 있단 말인가? 술렁거리는 장교들을 향해 순수수가 입을 열었다. 견융족은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라진게 아니었다. 처음엔 그들도 대륙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대부분의 무리는 북쪽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에 "흉노"라는 형로 변해 조나라와 지겹게 싸워왔다. 하지만 모든 견융족이 흉노가 된 것은 아니다. 일부는 행산맥을 근거지로 잔류했으며 훗날 조나라가 행산맥을 끼고 생겨나면서 그들과 충돌했다. 조나라는 이들과 다투기보다는 회유하는 정책을 펴 요양성을 내주고 왕도권에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편입시켰다는 건 조나라의 입장일 뿐.
          그 말대로였다. 견융족은 어떠한 사전조율이 없었음에도 "영역"을 침범한 양단화군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임전세에 돌입한 이들은 장수가 이민족 말로 뭐라 외치자 기마들이 일제히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 양단화는 이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견융족이 배치된 언덕은 그야말로 깍아지는 절벽. 그러나 견융의 기마는 마치 언덕을 내려오는 것처럼 연하게 절벽을 타고 쏟아졌다. 순수수는 이들의 진로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절벽 밑에 주둔한 조군에게 길을 트게했다. 절벽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마대. 말을 탄 늑대와 같은 무리가 진군을 향해 돌진했다. 벽을 위시한 진군의 장수들은 이들의 존재를 그제야 파악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 태종학 . . . . 6회 일치
         |이름 = 종학 <br/> 太鍾鶴
         |본관 = [[영순 씨|영순]]
         '''종학'''(太鍾鶴, 1922년 ~ 1997년)은 제11대 [[대구광역시장|대구시장]]과 제16대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한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12_30007|종학}}
         [[분류:1922년 어남]][[분류:1997년 죽음]][[분류:영순 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구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토리코/382화 . . . . 6회 일치
          * 아카시아가 오히려 네오를 먹고 전혀 새로운 형로 변신, "머나먼 땅"으로 갈 준비를 마친다.
          * 아카시아는 드디어 풀코스 센터를 먹으며 풀코스를 완성한다. 젤리같은 상의 센터.
          * 블루 니트로 페어는 네오는 지금까지 없던 최고 상지만 "완전한 생명"을 갖춘 형는 아니라고 말한다.
          * 그리고 "숙주를 먹어서" 완전한 상로 부활할 수 있다고 하는데.
          * 센터를 먹은 직후의 상로 볼때 500년 전 아카시아는 풀코스를 다 먹는데 실패했던 걸로 보인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6회 일치
          * 창벽진(Yari Wall) - 벽처럼 빽빽히 밀집해서 방어 세를 갖춘다. 적 기병의 돌격에 저항력이 높아지지만 궁병의 공격에는 취약해진다.
          * 은신술(Stealth): 짧은 시간 동안 상시 매복 상가 된다.
          * 은신술(Stealth): 짧은 시간 동안 상시 매복 상가 된다.
          * 고수(Stand and Fight): 보병 지휘관(Infantry Leader) 스킬 필요. 토글 기능. 장군 호위대 전부가 말에서 내려 부대를 지휘한다. 고수 상로 있는 동안 장군 호위대 주변 아군 부대의 근접 공격력, 장전 실력, 사기가 크게 상승한다. 고수 상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산탄총의 초기 형인 나팔총으로 무장한 기병. 나팔총의 사거리는 닌자가 손으로 던지는 폭탄 수준이지만 사격 범위 내에 휩쓸린 병사들은 피아 구분없이 죽어 나자빠진다. 총기병 주제에 야리 기병보다 근접전 능력이 좋다는 사소한 특징이 있다.
  • 페어리 테일/508화 . . . . 6회 일치
          * 상처투성이가 된 로그 체니와 미네르바 올랜드. 블러드맨과 윌이 쓰러져 있다. 미네르바는 해치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들이 쓰러뜨린 건지 술자(나인하르트)가 쓰러져서 사라지는 건지는 불분명. 상로 봐선 후자에 가까운 듯 하다.
          * 유키노 아그리아,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페어리 로로 인해서 적들이 분쇄됐다. 프로시와 렉터도 갑자기 적들이 쓰러졌다고 좋아한다. 유키노도 로그처럼 페어리 로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적들이 사라졌다고 한숨 돌린다. 소라노는 아직도 언니라 불릴 때마다 "언니가 아니다"라고 무의미한 부정을 하는 상.--만담이냐-- 이들은 언덕 아래 쓰러진 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절벽 위에서 "화려한 마법을 사용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 어떤 남자가 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는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고개를 못 들겠다"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바로 라케이드 드래그닐. 유키노는 그가 스프리건 12의 일원임을 알아보지만 어딘지 다른 12와 다른 신성함이 느껴진다. 그는 전장에 있는 적 전원을 상대로 어떤 마법을 발동하는데,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고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 아이린이 엘자 스칼렛 일행과 대치하고 있는 현장. "나는 너, 너는 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바로 그 직후에 라케이드의 마법이 덮치면서 아이린의 상가 안 좋아진다. 홍조를 띄우며 빈틈을 보이자 엘자는 바로 나츠 일행을 대피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아이린과 싸우려 한다. 아이린은 당황하며 마법을 사용하는데 웬디 마벨이 막으며 엘자를 돕겠다고 한다. 아이린은 웬디의 마법이 부가술이라는걸 간파하는데, 그보다는 엘자 측에서 단 한 사람도 라케이드의 마법에 걸리질 않았다고 다들 "꼬맹이"라고 짜증낸다.
          * 라케이드가 밝히는 자신의 마법은 바로 "쾌락". 쾌락을 깨우친 자는 그의 마법을 거역할 수 없다. 쾌락을 계속 부여해서 결국 승천시켜 죽이는 어찌보면 행복한 마법. 영향을 받지 않았던 유키노는 성령마법을 발동하며 라케이드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가 한 발 빨랐다. 라케이드의 손짓에 따라 촉수 같은 것이 나타나 유키노를 휘감는데, 강제로 쾌락을 주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을 받지 않던 유키노도 쾌락에 빠져 상가 안 좋아진다. 함께 묶인 프록시, 렉터도 마찬가지. 라케이드는 지와 무지는 "백과 흑"이라며 "쾌락과 고통"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라케이드의 마법의 발동 조건은 누가 봐도 "그거"지만 소년지의 한계상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독자들은 음란마귀가 잔뜩 껴서 그거 말고 다른 예측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 아무튼 이번 화 때문에 메이비스까지 비처녀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보기에만 저렇지 사실 마카로프보다 할머니--
  • 페어리 테일/510화 . . . . 6회 일치
          그가 나츠를 이그닐에게 맡긴 이후의 기억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혼룡 의식의 영향으로 매우 훼손된 기억. 사실 이그닐과 함께 있던 시절부터 나츠와 다른 멸룡마도사들은 인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질 레드폭스는 항상 티격격하던 사이. 웬디는 둘을 말리러 오곤 했는데 항상 울고 있었다. 제레프는 잠시 "그 애"도 곧 웬디랑 만나게 될 거라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하는데.
          *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유키노 아그리아와 카구라 미카즈치를 완전히 제압했다. 그의 쾌락 마법에 당한 유키노는 특히 상가 좋지 않은데 완전히 탈진해서 정신이 혼미한 상다. 렉터와 프로시도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데, 렉터는 스팅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친다.
         라케이드가 빛 속성 마법을 구사하고 스팅이 뜬금없이 행방불명 상여서 스팅이 라케이드의 카운터로 등장하지 않냐는 설이 있었는데 성사됐다.
         디마리아는 일단은 얌전히 잡혀 있는데, 포박된 상에서 시간 정지를 걸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서 그런 듯 하다. 하지만 매우 도발적인 쩍벌 포즈를 고수하고 있는데 정신이 온전한 상는 아닌 듯.
  • 페어리 테일/536화 . . . . 6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과 [[제레프 드래그닐]]의 힘이 격돌하고 나츠의 불꽃이 제레프의 마법을 운다.
          * 한편 나츠와 제레프의 격돌은 나츠의 승리. 나츠가 뿜어낸 "거센 감정의 불꽃"이 제레프를 웠다.
          * 하지만 이미 엉망인 배는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추락한다. 히비키는 다시 무리라며 그 배는 자신들만 몰 수 있다고 소리친다. 안나는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고 다시 키를 잡기 위해 힘을 내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키를 붙잡는다.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다. 자신에게 조종을 맡기라고 말한다. [[제니 리아라이트]]과 [[이브 티름]]은 그가 보이지 않는걸 눈치챈다. 그가 이런 형로 희생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뜻밖이라는 얼굴의 안나에게 이치야가 말했다.
          * 바로 그때, 나츠와 제레프의 형제 싸움이 끝나고 있었다. 나츠가 뒷심을 발휘해 밀어붙이자 제레프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제레프는 쓰러지면서 자신을 우는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성스러운 불꽃... 아니, 나츠의 "거센 감정의 불꽃"이었다. 불꽃은 제레프의 몸을 우고 백마도사로 각성하며 얻은 모든 힘도 워버렸다.
  • 하이큐/268화 . . . . 6회 일치
          * 마침내 네코마의 매치 포인트. 코즈메는 지칠대로 지친 상였지만 기회가 주어지자 "자신에겐 있을리 없는 필살기", "근성"을 발휘해 최고의 세트업을 올린다.
          * 코즈메의 작전은 바보같은 리에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위험했다. 일부러 리시브를 흔든다. 전례가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구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코즈메는 유효한 국면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쿠는 코즈메의 의향이 그렇다면 따를 테지만, 이미 휘청거리는 상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물론 코즈메는 매번 엔드라인까지 뛰어가기는 싫었다. 하지만 못 움직일 상인 것도 아니고, 진짜 부담이 많아가는건 후위라고 했다.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져야 하는 데다 자신이 지정한 위치로 넘기기까지 해야 하니까.
          * 시합재개. 돌아온 사루카와 선수들은 "시합이 길어질 수록 힘든 건 네코마 쪽"이란 대전제를 확실히 되새긴 상였다. 코즈메가 굳이 이 시점에 "흔들었"던 건 모두가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지는 시점, 그리고 사루카와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성급해지는 시점을 동시에 노린 것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연속 득점하는 걸로 게임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시시오 감독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양측 벤치에서는 해볼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시시오 감독은 사를 관망하며 끝까지 자신의 책략과 선수들을 믿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단지 타마유키에게 워밍업을 시키며 교체할 시기를 고르고 있을 뿐이다.
  • 하태웅(가수) . . . . 6회 일치
         | 이름 = 하
         '''하웅'''({{본명|김종웅}}, [[1978년]] [[6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2006년]] [[9월 29일]]||하웅 single 1st||싱글
         |[[2009년]] [[4월 22일]]||하웅 Digital Mix Single||싱글
         |[[2016년]] [[1월 12일]]||하웅 Collection||정규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안고등학교 동문]][[분류:원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부안군 출신 인물]]
  • 한규복 (1881년) . . . . 6회 일치
         [[1875년|1881년]](고종 17년) [[7월 7일]] [[한성부]] 평동(平洞) 19번지에서 주사 한만홍(韓晩洪)과 평산 백씨(平山白氏)의 아들로 어났다. 그의 형 한규호는 구한 말 군인으로 활동, [[보병]][[참위]]와 [[보병]][[부장]]을 지냈고 통정대부에 이르렀으며, 퇴역 후 [[1908년]](융희 2년) [[기호흥학회]]의 창립에 참여, 회보인 기호흥학회월보의 후원자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기업인으로도 활동하여 1908년 6월 4일 [[한성]]의 연강목선운륜(沿江木船運輸) 주식회사의 중역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8월]]에 다시 도지사로 승진, [[8월 14일]] [[충청북도]]도지사가 되고 [[1929년]] [[4월]] [[고등관]]1등(高等官1等)으로 승급되었다. [[1929년]] [[11월 28일]] [[황해도]][[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30년]] [[1월 24일]] [[황해도농민회]] 회장에 임명되었다.<ref>조선총독부 관보 1930년 01월 24일자</ref> [[1930년]] [[2월]] [[황해도]] 도지사에 재임명된 뒤 [[1933년]] [[4월 7일]]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했으나 그해 [[6월 4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칙임관]]대우 [[참의]](中樞院勅任官待遇參議)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수당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4년]]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특히 [[평양 전쟁]] 기간 중 [[흥아보국단]],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여러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 걸쳐 수상하였다.
         [[1938년]] [[조선간이생명보험사업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1938년]] [[3월 3일]] [[성남고등보통학교]] 재단인 [[원석학원]] 재단 이사가 되었다. [[5월]] 재무간담회(財務懇談會) 회장에 선임되었다. [[5월 17일]] 체포된 법학자 [[정광현]]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여 석방시켰다.<ref name="yunchi381">윤치호, 《윤치호 일기 1916-1943》 (김상 역, 역사비평사, 2001) 381페이지</ref> [[서대문경찰서]] 서장을 만나 '나를 봐서라도 [[정광현]]에게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5월 17일]] 오전 9시 30분, 서장은 한규복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ref name="yunchi381"/>
         ==== 평양 전쟁 전후 ====
         한규복은 자신은 오로지 민중의 계발 보도를 위해 일했음을 강조하였다.<ref name="parksgi86"/> 또한 자신은 "민족 지도자"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ref name="parksgi87">박지향, 《윤치호의 협력일기》 (도서출판 이숲, 2012) 87페이지</ref> 심문 과정에서 그는 잘못된 점이 있다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저항하되, [[조선총독부]]의 정책이나 일본의 정책을 맹신, 맹종하지는 않았다며 그는 시종일관 담담한 도로 심문에 응하였다.
         [[분류:1881년 어남]][[분류:1967년 죽음]][[분류:조선의 화가]][[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조선의 번역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정치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철학자]][[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사상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청주 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
  • 한동욱 . . . . 6회 일치
         2007년 중반, 한동욱은 재차 슬럼프에 빠지며 개인리그 및 프로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소속팀과의 원만치 못한 관계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e스포츠 팬들의 거센 논쟁과 관심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한동욱, 온게임넷 스파키즈, 이명근 감독을 둘러싼 이른바「한동욱 사」는 2007년 9월 7일, 한동욱이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하면서 일단락되었다.
         * [[2007년]] [[4월 18일]] vs [[윤용]] (팔진도)
         * [[2010년]] [[4월 20일]] vs [[김균 (프로게이머)|김균]] (심판의날)
         * [[2010년]] [[5월 30일]] vs [[윤용]] (그랜드라인)
         [[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헌터X헌터/369화 . . . . 6회 일치
          * 빌의 추정으로는 스틸 체인을 공유하는 대상은 크라피카와 연결돼 있어 상가 영향을 받는 것. 크라피카가 눈을 뜨자 곧 왕비도 정신을 차린다.
          * 즉 오이토 왕비는 이미 넨능력의 소양이 개화된 상인 것. 그런 사실이 밝혀진 채 아침이 다가오고, 약속한 오전 9시의 넨 습득 교습이 시작된다.
          * 왕비도 같은 상였다. 크라피카가 정신을 잃고 얼마지 않아 그녀도 쓰러졌다. 지금 그녀는 시마노의 간호를 받으며 침대 위에 있었다. 크라피카가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엔 왕비와, 그 곁을 떠다니는 "스틸 체인"의 아바타 "돌핀"이 보였다. 왕비가 막 눈을 뜨고 있었으나 크라피카는 거기에 신경쓸 정신이 아니었다. 돌핀이 아직도 왕비 곁에 있다는 것, 엠퍼러 타임이 12시간 째를 발동 중이란 말이었다.
          왕비는 잠에서 깬 것처럼 일어났다. 그녀가 시마노에게 와블 왕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 빌이 크라피카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같은 시간에 쓰러지고, 다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크라피카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능력을 공유하는 인물도 같이, 그런 패턴이었다. 크라피카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혹시 엠퍼러 타임의 한계 시간이 3시간이란 의미인가? 그 한계를 넘으면 3배인 9시간의 블랙아웃 상에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빼앗은 능력에 따라 시간에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엠퍼러 타임은 여전히 발동 중이고 다음 번에도 3시간 만에 쓰러진다고 장담 할 수 없다. 정신을 잃기 직전 들었던 끔찍한 파열음. 그 폭음 같은 맥동이 신호일지 몰랐다.
          4왕자 사설병 "뮤한"은 인상만큼이나 정신상도 이상한 녀석이었다. 왕자의 지시를 떠올리며 신이난 듯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그 옆의 같은 소속 "단진"은 그보다는 멀쩡해 보이는 사내로 뮤한에게 "그렇다고 일부러 습득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당부 중이다.
          그런 얼굴들을 감추고 있겠지. 오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휴리코프는 그들의 바람에 응해줄 생각이었다. 그때 그의 배후에서 어떤 형가 나타난다. 여자 인혀의 모습. 그 능력의 이름은 "사일런트 마조리티". 하지만 이게 누구의 능력일까?
  • 현아 . . . . 6회 일치
         '''현아'''({{본명|김현아}}, 金泫雅<ref>[http://tw.weibo.com/5729740541 현아 웨이보]</ref>, [[1992년]] [[6월 6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92년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초등학교 재학 중 [[JYP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 되었고 약 4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2007년 [[원더걸스]]의 싱글 〈[[The Wonder Begins]]〉로 데뷔했다. 그러나 같은 해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탈퇴를 했다.<ref name="as"/>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영남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절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 《[[극기 휘날리며 (텔레비전 프로그램)|극기 휘날리며]]》
         |rowspan="1"|여자 가수상<ref>{{뉴스 인용|url=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4120319035311723|제목='2014 MAMA' 양-아이유, 남·녀 솔로상|출판사=스포츠투데이|저자=서현진|날짜=2014-12-03|확인날짜=2014-12-05}}</ref>
         [[분류:현아]][[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원더걸스의 일원]][[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인왕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중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황두진 . . . . 6회 일치
         평양 출신의 아버지와 원산 출신의 어머니 사이 서울에서 어났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_EHEAwAAQBAJ&printsec=frontcover&dq=%EB%8B%B9%EC%8B%A0%EC%9D%98+%EC%84%9C%EC%9A%B8%EC%9D%8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hl=ko&sa=X&ved=0ahUKEwjwoLqgxa_bAhWDVLwKHeIxBacQuwUIKDAA#v=onepage&q=%EB%8B%B9%EC%8B%A0%EC%9D%98%20%EC%84%9C%EC%9A%B8%EC%9D%80%2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f=false |인용=그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고무공장을 하는 사업가였으며 해방 전에 사업을 서울로 옮겨 성북동 청암장(현재의 길상사)에 살면서 일종의 사설도서관을 운영했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북의 사업기반을 잃고 난 후에는 당시 창경원의 장서각 사서로 일했다.|제목=황두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p20|성=|이름=|날짜=|출판사=해냄|확인날짜=}}</ref>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ref>{{웹 인용|url=https://gwangjinlib.seoul.kr/gjinfo/recommendBookDetail.do?bookIdx=2149&recommendTypeCd=general|제목=가장 도시적인 삶|저자=황두진|날짜=|웹사이트=광진정보도서관|출판사=반비}}</ref>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모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을 설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마당과 툇마루, 방을 오밀조밀하게 누비는 한옥의 동선을 전시실에 적용했다"며 "한옥의 형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은은하게 살렸다"고 했다. <ref name=":0">{{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3/2012021300208.html|제목=[오늘의 세상] 스웨덴 왕가의 代이은 한국사랑|저자=채민기 기자|날짜=2012년 2월 13일|뉴스=|출판사=}}</ref>
         2016 환평양 지역 4개 대학 순회강연(외교부 ‘국민 모두가 공공 외교관’ 프로그램): 싱가포르 국립대학(싱가포르), 말라야대학(쿠알라룸푸르), 출랄롱콘대학(방콕), 뉴사우스웨일즈대학(시드니)
         2009 유네스코 아시아-평양 문화유산상 공동수상 (북촌 한옥)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
  • 황종률 (정치인) . . . . 6회 일치
         [[평양 전쟁]] 종전으로 만주국이 소멸하자 [[미군정]]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희대학교]] 교수를 잠시 지내다가, 다시 경제 관료로 복귀했다. 제3공화국에서 [[대한민국 재무부]]와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71년]]에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비례대표로 제8대 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나, 국회의원 임기 중 사망하였다.
         |후임자 = [[김원 (정치인)|김원]]
         |후임자 = [[김동 (1918년)|김동]]
         [[분류:1909년 어남]][[분류:1972년 죽음]][[분류:만주국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재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충청북도지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규슈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평해 황씨]]
  • 황효진(기업인) . . . . 6회 일치
         그런데 [[2011년]] 6월에는 [[마재윤|마모씨]]를 초청해 게임을 하게 만들고 "'''실제로 만나봐야 한다. 그런 일이 생긴 이유가 따로 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다. '''이유 없이 죄를 저지른 사람은 없으니까.''' ~~그 이유가 돈이라는 게 문제지~~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행동 때문에 누가 피해를 입었다면 어떤 이유가 있었든 그 행동은 정당화되지 못한다는걸 알아두자.] '''[[마재윤|마모씨]]의 조작 행동을 옹호해서''' 까였다. 아프리카의 특성상, 방송국 메인에 스폰서 링크를 달고 돈을 받는데 랭킹이 떨어져 스폰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무리수를 두었다는 게 지배적이다. 그런데 원래는 마재윤을 이용해 자신의 방송을 홍보하려는 계획이었는데, 마재윤이 스스로 아프리카 방송을 열어버리고 [[철구(BJ)|철구]]와 손을 잡았다. --뒤통수 돋네-- --이때부터 기질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후에 같이 [[소닉 스타리그]]를 중계하던 [[김형(1973)|김형]]~~[[유흥업소|이 사람도 결국 흑역사가 되었지만]]~~이 이 사실을 묻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반응은 좋은 편. 스꼴들의 호응도도 높고, 더구나 '''참여 선수들의 이름값이 장난 아니다.''' 거기에 경기의 흥행도에 따라 경기를 하던 전 프로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몽군, 전규, 박세정 등이 랭크되어 본 적이 있다. 특히 몽군의 그 경기는...] 단, '''과거 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
         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 이후 [[던전 앤 파이터]], [[클로저스]] 등의 여러 게임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스베누 스타리그]] 개최, [[롤챔스]], [[GSL]], [[SSL Series|Starcraft 2 StarLeague]] 등의 스폰을 맡을 때만 해도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e스포츠를 후원해 주는 것에 대다수 팬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스베누 사로 인해 실체가 밝혀지면서 이 또한 결국은 게임/e스포츠에 진심으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지 세탁을 위해 e스포츠를 이용해 구원자 행세를 했다, e스포츠를 후원해 준 건 스베누가 아니라 부산의 신발공장이었다는 여론이 대다수이다. 하다 못해 훗날 갑질과 폭언으로 물의를 빚은 구원자 중 하나인 [[에밀리 리 조]]도 e스포츠만큼은 황효진보다도 더 애정을 쏟았다.
         [[박지호]]는 소닉이 오프라인 스타리그를 주최할 때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수들 출연료는 커녕 기본적인 차비조차 주지 않자 개인방송에서 대놓고 소닉을 디스한 적이 있는데 이후에 소닉한테 그런 말은 방송에서 하지 말아 달라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소닉이 다른 선수들이나 방송 스프들이 있는 그 중간에 대놓고 자신에게 차비 금액을 세며(...) 주는 걸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차비를 계좌로 입금해도 되고 나중에 따로 봉투에 넣어서 주면 되는데 자신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너무 대놓고 보여주기식 생색이라...
         [[2017년]]에 일어난 스베누 사건은 유명해서 작년에는 한때 인터넷에서 [[조왕건]]의 [[궁예]]가 추궁하는 패러디 영상이 돌기도 했다. 확실한건 그에게는 정말로 궁예의 법봉이 필요하다는것이다.
  • Crusader Kings 2/궁정 . . . . 5회 일치
         외교를 담당하는 직책. 자신의 외교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준다.
         군사를 담당하는 직책. 자신의 무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준다.
         세금을 걷고 영지를 관리하는 직책. 자신의 관리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준다.
         음모와 책략을 담당하는 비공식 직책. 자신의 음모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준다.
         주군의 종교적 조언자. 자신의 학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준다.
  • Victoria II . . . . 5회 일치
          1836년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멕시코는 독립을 선언한 텍사스를 상대로 전쟁 중이며,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독립 국가였던 트리폴리를 다시 복속시키기 위해 전쟁 중이다. 아직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분할"이라고 불릴 유럽 국가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으며 동아시아 역시 아편 전쟁으로 시작될 서양과의 불쾌한 접촉을 아직 겪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현재의 오리건 주, 워싱턴 주가 될 자리와 사할린,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 평양의 많은 섬들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가 자리잡지 못한 상이다.
          1861년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수하여 열강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한때 열강이었던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탈락해버렸다.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강탈당한 중화제국은 천왕이 이끄는 평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게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강탈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거의 완성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아메리카 연합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이집트에게서 중동 지방을 빼앗았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를 완전히 먹어치웠고. 한편 일본은 미국의 영향권 내에서 근대화를 끝마쳐가는 중이다. 중앙아메리카 합중국은 분열되어 여러개의 나라가 되었으며, 페루는 에콰도르가 지배하고 있는 파스타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POP들의 투쟁성이 높아지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반란의 원인은 다양하다. 특정 민족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 전쟁을 벌인 걸수도 있고, 특정 사상의 지지자들이 정권 정복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걸수도 있다. [[평천국 운동]]이나 [[붉은 셔츠단]] 처럼 이벤트로 발생하는 반란도 있다. 이념 반란의 경우에는 수도를 점령하면 정부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이 경우 모든 외교관계가 초기화되니 주의. 당신 땅을 탐내고 있었지만 동맹국 때문에 침략하지 못하던 적국이 전쟁을 벌일 수 있다.
          * 중립적(Neutral) - 처음에는 이 상
  • 강구열 . . . . 5회 일치
         정작 이슈를 불러일으킨 이후엔 1년 가까이 부진한 모습으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최근 [[BATOO 스타리그 08-09]] 오프라인 예선에서 [[변형]](CJ 엔투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36강 본선에 진출했으나 조기탈락했다. 여담으로, 그무렵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을 벼르고 있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나, 정작 그렇게는 못 됐다. 그 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크게 내지 못한 채로 [[2009년]] [[9월 10일]] 소위 '날일' 에 날카롭게 은퇴를 선언했다.
         * [[손찬웅]] (현 [[화승 OZ]]) : 2011년 7월 은퇴. 손찬웅의 행보는 강라인이 되는 데 정말 완벽했다. 2007 스타챌린지 S2에서 손찬웅은 [[변길섭]]과의 최종전에서 변길섭을 꺾고 박카스 [[스타리그]]에 올라가 김동건, 박명수, 박영민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그 다음 시즌 [[에버 스타리그 2008]] R1에서 [[이제동]]과 [[한동욱]]을 떨어트리는 충격적인 대진으로 2R에 진출했다. 그 후 R2에서 [[김택용]], [[박성균]], [[박영민 (1984년)|박영민]]과 같은 조가 되어 김택용과 박영민을 이기고 박영민과 8강에 진출하며 김택용과 박성균의 진출을 기대하였던 관계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 8강에서는 강력했던 로얄로더 후보 [[허영무]]를 2:1로 역전시키며 4강에 진출하여 시드를 얻었다. 하지만 4강에서 [[프로토스]]전을 제일 잘 하기로 유명한 [[박성준 (1986년)|박성준]]에게 3:1로 패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하였으며, 끝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도 [[송병구]], [[염보성]],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전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강라인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인크루트 스타리그 3패 탈락의 영향으로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김택용, 박영민에게 2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이 후에도 서바이버 시즌 3에서도 [[박민]]과 STX의 저그 신예 [[조일장]]에게 연패하며 탈락, 강라인의 일원임을 입증했다.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박민]]과 [[서기수]]를 이기고 16강에 진출은 하나 [[문성진]], [[송병구]],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무난한 3패로 광탈하며 강라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차기 시즌에서는 36강에서 탈락하며 본선 진출 실패. 그 뒤로는 스타리그에도 MSL에도 복귀하질 못하였고, 계속 탈락만 하다가 2011년 7월 은퇴.
         * [[정종현]] ([[웅진 스타즈]]) : 2010년 10월 스타2 전향. [[하나대투증권 MSL 2010]] 16강에서 전양을 2: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였다. 첫경기에서 이영호에게 승리하며 좋은 분위기를 탔지만 결국 3:1로 패배하였다. 그 후 [[빅파일 MSL 2010]] 32강에서 1승 2패로 탈락하며 강라인에 가입하게 되었다.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MBC게임 히어로의 선수]]
  • 경주시 . . . . 5회 일치
         경주는 백산맥 또는 백두대간의 인근 도시로 경상북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다
         |align="center"|[[김석 (서예가)|김석]]
         |align="center"|[[이식]]
         |align="center"|[[차인]]
  • 고경표(배우) . . . . 5회 일치
         연기도 평가가 좋은 편이다. 명량에 출연했던 배우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고경표가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제몫을 다했다며, "고경표가 눈물을 글썽이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칭찬하기도 했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72510325039379|배우 최민식 인터뷰]]) 또한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를 본 배우 [[김우(배우)|김우]]가 "쟤는 어떻게 노팬티 상에서 바지 지퍼 올리는 것도 저렇게 실감나게 연기해?"고 했다는 깨알같은 칭찬은 덤. 차이나타운을 함께했던 배우 [[김혜수]]는 "숨기려해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한 친구다"라는 평가를 하였다.
         || 2010년 || [[한국방송공사|KBS2]] || [[정글피쉬 2]] || 봉일 || 데뷔작 ||
         || 2010년 || [[정글피쉬 2|정글피쉬 2 - 극장판]] || 봉일 || 조연 ||
  • 김경태 (배우) . . . . 5회 일치
         | 이름 = 김경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73|1|12}}<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A%B9%80%EA%B2%BD%ED%83%9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074172 김경-네이버인물정보]</ref>
         '''김경'''([[1973년]] [[1월 12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movie.daum.net/movieperson/Biography.do?personId=394862&anchor=filmography 김경-다음인물정보]</ref>
         [[분류:197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대륙 . . . . 5회 일치
         그런데 요즘 문규현이 2군 내려간 다음에 유격수로 나오고있는 [[오곤|오승택]]이 수비에서 미친존재감을 보여주면서 점점 7회쯤 오승택과 교체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수비에서는 10년차 베테랑 유격수에 맞먹는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타격은 부진하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김준(야구선수)|김준]]와 함께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한 김준와 달리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 이름 때문에 [[김균]]의 별명으로 오해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안습.~~
  • 김민기(가수) . . . . 5회 일치
         [[전라남도]] [[신안군|신안]] 생으로, 10남매 중 막내로 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6.25 전쟁]] 중 북으로 퇴각하던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해 산파였던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고 한다. 휴전 후 가족들과 [[대구광역시|대구]]로 이주했고, 흑산초등학교와 자은중학교, 도초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1989년]]에는 농촌 운동 경험을 살려 장일순, 박재일, 김지하, 최해성 등과 함께 생운동 단체인 '한살림 모임'이라는 [[NGO]]를 만들어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한살림은 2014년 현재 원주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조합원만 '''41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협동조합]]이다. 조합원들이 친환경-유기농산물를 생산해서 전국에 있는 직영매장에서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반이나, 해외 언론과 NGO에선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에선 최고의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듬해에는 [[한겨레]]에서 발족시킨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서 그 동안 군사정권의 탄압 등으로 가창이 금지되어 있던 [[대한민국]]과 해외 동포들의 노래를 엮은 음반 '겨레의 노래'를 제작했고, 음반 발매 기념으로 순회 공연을 하면서 오랜만에 [[아침 이슬]]을 공개적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다.
         김민기의 스승 같은 존재. 김민기의 인터뷰에서, 김민기가 김지하로 하여금 '우리말의 생동성을 일깨워준 '''형'''' 이라고 언급했다. 스스로 자신을 김지하의 친동생 그 이상의 존재였다고 말할 정도. 애초에 김민기는 그가 가수가 되는 과정에서 김지하의 [[주여, 이제는 여기에|'금관의 예수' 에 쓰일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김지하가 자신의 인생의 갈림길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지하가 '오적' 을 쓰고 도피하는 과정에서, 혜화동 다방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별로였다고.[* 당시 김지하는 '오적' 을 만든 죄로 수배 중이었는데, 평하게도 럭셔리한 바바리 코트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 김지하가 정치적 행보를 바꾼 일에 대해서는, '그것은 그의 일' 이라며 말을 아꼈다.
  • 김민좌 . . . . 5회 일치
         | 출생지 = [[강원도]] [[백시]] 문곡소도동
         | 학력 = [[백산골식당]]
         * [[백산골식당]]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
  • 김성민 (1991년) . . . . 5회 일치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짝 (드라마)|짝]]》의 단역으로 아역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다. 이후 [[1996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슈팅 (드라마)|슈팅]]》에서 유년기 김영웅 역으로 출연하였고 [[1998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김성은 (1991년)|김성은]]이 출연한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김의찬 역을 맡았으며, [[2001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전성초]]가 출연한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요정 컴미]]》에 출연하였고, [[2002년]] 《[[양인 이제마]]》에 아역 출연하였다. 1994년 데뷔한 이후 최근까지 간간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오명
         | [[양인 이제마]]
         * 2002년 《장보고 장군과 해상 제국》 ... [[김안 (신라)|왕자 김안]] 역(조연)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
  • 김수용(코미디언) . . . . 5회 일치
         제1회 [[한국방송공사|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7기 취급.[* 감자골 이적 사로 공식적인 기수명단에서 제외된 상지만 선배들의 [[괘씸죄]] 때문이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라 최근엔 사실상 그런 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방송사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도 잘 받고 있고...][* 김수용은 감자골 사가 일단락되고 난 후 1994년부터 각종 [[한국방송공사|KBS]] 코미디프로에서 활동했으므로 사실 기수명단에서 제외랄 것도 없다. 1996년 코미디 일번지에서 신세대 동작그만이라는 코너에 주연급으로 나오기도 했고, 특히 1998년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유재석과 함께 귀농일기라는 코너에 공연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11기로 들어온 [[김숙]]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KBS]]에 복귀한 이후로는 코미디언실에서 엄연히 선배로 대접 받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등과 비슷한 세대의 [[개그맨]]이며 갈갈이 패밀리([[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 [[정종철|옥동자]], [[김시덕]])나 옹달샘([[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처럼 김수용을 포함한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까지 넷이서 "감자골"[* 팀명은 4명 다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감자에서 따왔다고...그러나 2008년 12월 20일 방송 된 명랑히어로에서 김국진을 제외한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은 강원도와 상관 없는 강원생이라고 말했다. ]이라는 팀으로 활동했었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비교적 콩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흔히 소재는 좋은데 잘 살리지 못하는 류) [*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비중이 거의 없다든지 단역으로만 나오던 급은 아니었다. 1996년 토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마법의 디스켓이라는 코너에 단독으로 주연을 맡을 정도로 나름 비중이 있었다. 확인큐 베일을 벗겨라나, 비디오 챔피언 같은 예능 프로그랭의 서브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동시기 신동엽, 김용만은 진행, 박수홍이나 김국진은 예능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며, MBC와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에 묻혔을 뿐이다. 1995-1997년 사이 SBS에서는 코미디 전망대와 웃으며 삽시다, MBC에서는 오늘은 좋은 날과 테마게임이 있었지만 [[한국방송공사|KBS]]는 한바탕 웃음으로 폐지 후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중에 MBC로 이적하면서 예능 MC로 갈아타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각종 예능에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세대의 예능 MC들이 으레 그렇듯 배려형 MC 스타일이였다. 특유의 진한 [[다크서클]]도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 별명이 팬더다.
         2016년에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했는데, 과거 [[미남]] [[개그맨]]으로까지 불렸었는데[* [[파일:감자골_리즈시절.png]][br]미남으로 유명하던 시기의 외모는 지금으로서는 연상도 되지 않는 수준.] 근 몇 년새 살이 부쩍 불어서 [[유재석]]에게 자기관리 부족이라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실제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2012년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해서도 현재는 꽤나 살이 찐 상. 몸무게가 세 자리 가까이 육박한다고.
  • 김지석(배우) . . . . 5회 일치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식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반석.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반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절]]에 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 [[발칙하게 고고]] || 양범 || ||
  • 김진우(WINNER) . . . . 5회 일치
         [[남현]]이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미 팀 내 준수한 보컬이 두 명이나 존재하기에 사실 보컬의 비중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현이 팀을 탈퇴한 이후 강승윤을 보좌할 보컬로서 김진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고, 따라서 [[FATE NUMBER FOR]] 활동을 위해 보컬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한다.
          * 멤버들 공인 심각한 길치--였--다. 호텔 로비에서 출구를 찾느라 30분을 헤메다가 --결국 스프에게 물어봤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걸리는 가게에 1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10분 거리인 도쿄타워를 3시간 넘게 헤메고 도착했다. 심각한 길치인 듯.[* 시즌그리팅 디비디에서 본인은 길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번 외운 길은 잊어먹지 않는다고. (그러나 멤버들 반응은 흠)] 위너 티비 상속자들 패러디에서도 길치 속성이 그대로 김라헬 캐릭터에 반영되어 "여기 출구가 어딨어!"라는 대사를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꽃보다 청춘 위너편에서는 조금 만회한듯하다. 지도를 보며 멤버들을 길안내 하기도 했다. 실제로 강승윤이 진우형 이제 길치 아니다!!라고 인스타(?)에서 말하기도 했다.
          * 어린 시절 심심해서 바다 앞에서 낚시를 하던중 추워서 성냥불로 불을 피웠는데 그 불이 그물에 옮겨 붙어 임자도을 워버릴뻔한 에피소드를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다행히도 포크레인으로 바닷물을 퍼와 불을 꺼 큰 화재는 면했다고.
         ||<|2> [[2016년]] || 중국 SOHU TV || 마법의 핸드폰 || '''오지''' || 주연 ||
  • 김청(1962년 6월) . . . . 5회 일치
         김청의 어머니 김도이는 17살 고등학생 때 어느 아저씨(김청의 생부)를 만나 [[임신]]을 해 미혼모인 상에서 [[사생아]]인 김청을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가 100일도 채 안 되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 뒤 어머니는 홀몸이 되어 김청을 기르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31204/59322090/1|#]]
         혼인신고가 안 된 상에서 어나서 그런지 출생신고도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한참 뒤인 12년 후에야 [[큰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해주셨고, 아버지의 성인 '[[안(성씨)|안씨]]'를 찾기까지도 22년이란 시간이 더 걸렸다. 1996년이 되어서야 '안청희'가 되었다"고 한다.[[http://news.tvchosun.com/mobile/svc/content.html?contid=2017031590146|#]]
          * [[당신은 선물]] - 천
          * [[양의 신부]] - 정인숙
  • 김태룡(정치인) . . . . 5회 일치
         1934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어났다. [[대전고등학교]],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 법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1963년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 등의 야당에 몸담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김용(1926)|김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용 후보와 [[민주통일당]] [[박병배]][* 재검표로 당선 확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되었다. 1977년 [[이철승]] 대표최고위원의 온건노선에 반발하여 신민당야당성회복투쟁위원회 공동의장 겸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룡, version=62)]
  • 김태한 . . . . 5회 일치
         |선수명 = 김
         '''김한''' (金泰漢, [[1969년]] [[10월 2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SK와이번스]]의 선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이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1691 야구의 추억, 여든 네 번째] 93년 각별한 울림을 줬던 이름, 김
         *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itcherDetail1.aspx?pcode=92401 김한] - [[KBO (야구)|KBO]]
         [[분류:1969년 어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김혜은(탤런트) . . . . 5회 일치
         [[기상캐스터]] 출신의 배우. [[전라남도|전남]]에서 어나 여수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1997년 [[MBC]]에 지원했다가 2명만 뽑는 [[아나운서]] 시험에서 [[김주하]], [[방현주]]에 이어 3등을 하는 바람에 [[청주문화방송|청주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와 기상캐스터와 [[뉴스데스크]] 메인 기상 캐스터로 활약했으며, 2004년 8년 간의 기상캐스터 생활을 정리하고 퇴사했다.
         드라마에서는 [[김인영(각본가)|김인영]] 작가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ex. 결혼하고 싶은 여자, 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 착하지 않은 여자들) --본격 여자 시리즈 전문배우--
         || [[뉴하트]] || 김준 교수의 처 || ||
         || 2008년 || [[KBS 2TV|KBS2]] || [[양의 여자]] || 장시은 || ||
         || 2014년 || 제3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 || 여자 조연상 || 밀회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5회 일치
          * 1학년의 히어로 인턴제도 참여는 많은 진통 끝에 "한정적 허용"이라는 애매한 형로 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정이 있어서 어색하다". 올마이트 개인적으로 그와 트러블이 있는 모양이다. [[프레젠트 마이크]]는 사적 감정이냐고 통렬한 클을 건다.
          * 그리고 주말. 미도리야는 아침부터 바쁘게 출발한다. 이날이 서 나이트아이와 만나기로 한 날이기 때문. 다른 학생들은 한가하게 쉬고 있다. 하지만 바쿠고와 [[토도로키 쇼토]]는 임시면허 추가시험을 치러가야 하기 때문에 역시 일찍 기숙사를 나선다. 토도로키는 묘하게 설교꾼이 되어서 두 번째 기회를 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둥 잔소리를 해댄다. 바쿠고는 시끄럽다고 버럭하며 티격격하는 중.
          * 한편 사무실에서는 나이트아이가 사이드킥 [[버블걸]]에게 사건을 보고받고 있다. 그 보고는 [[빌런연합]]과 [[오버홀]]의 접촉에 대한 것. 버블걸은 전모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교섭의 결렬과 유혈사 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지만, 문득 이런 말을 꺼낸다.
          그리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나이트아이는 매우 거창한 형틀에 버블걸을 묶어 놓고 자비없는 간지럼 우기 형벌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5회 일치
          [[오버홀]]은 이들의 신고를 받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마그네]]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죽음에 대해서]]. 오버홀도 "그"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고 이젠 지나간 일이니 한 식구가 된 이상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트와이스의 신경을 긁었다. 우선 마그네의 아이덴티티는 "그녀". 트와이스가 그걸 가차없이 지적하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포장만 잘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 오락가락하는 성격대로 곧바로 도를 바꿔 "그래서 뭘하면 되냐"고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다. 어지간히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은 철포옥 핫사이슈들 조차도 그 성격에는 어이가 없다고 평한다.
          * 토가와 트와이스, 그리고 이리나카 사이의 짧은 신경전. 먼저 "돼먹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은건 트와이스 쪽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며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강경모드로 들어가는데, 역시 그 성격답게 1초도 지나지 않아 자기 개성을 외판원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선전해대고 있다. 그의 개성 "카피". 온갖 물건을 두 개로 늘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이미지"를 확보하는게 중요하고, 그의 코스튬에는 그걸 위한 아이템이 내장돼 있다. 가령 손목 부위에 내장된 줄자라던가. 인간을 카피한다면 구체적인 신세 사이즈 등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쓰레기 같은 불완전한 카피가 생길 뿐.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해도 딱 한 가지는 원본과 다르다. 내구력이다. 뭘 카피하느냐 나름이지만 일정 이상 데미지를 받으면 형가 무너진다. 한 번에 늘릴 수 있는 숫자는 최대 두 개. 하지만 두 번째 카피부터는 내구력이 몹시 약해진다. 덤으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일신 상의 사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
          대답은 당연히 No. 토가와 트와이스 모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대답일지? 적어도 오버홀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들을 시에핫사이카이의 새 식구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 뿐. 수배범인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없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지하의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둘이 연금이 아니냐고 반발하지만 오버홀은 "신용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공수표 같은 말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리나카가 우쭐거린다. "언제까지 그런 도면 안 된다는 말"이라며 으스댄다.
          토가의 시선은 점점 위로. 어느 한 지점을 지목하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이 공간에서 풍의 눈처럼 고요한 어느 지점. 거기에 이리나카가 있었다.
          * 이리나카가 차라리 귀를 막아버렸더라면, 토가의 말을 무시했더라면 기회는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력은 분노조절 능력과 함께 망가졌고 터져나오는 울분을 고함의 형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고함은 비명처럼 들렸다. 토가가 찌른 핵심이 아파서 지르는 비명.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5회 일치
          * 병원으로 후송된 히어로들은 중상자가 많지만 대부분 생명에 지장은 없다. 미도리야는 오른팔에 설명하기 어려운 흉터가 남았지만 기능에 이상은 없다. 에리는 고열이 내리지 않은 채로 격리된 상. [[아이자와 쇼타]]는 "되돌리는" 개성의 특성상 이렇게 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이 개성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동하며 훈련도 제어도 어려운 특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에리의 개성에는 의존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데, 그건 [[서 나이트아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 노형욱(배우) . . . . 5회 일치
         | [[양의 신부]]
         | 막내 스
         | 진
         * [[2005년]] [[해음료]] 써니텐 ([[오윤아]]와 함께 출연)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양시 출신 인물]][[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5회 일치
         스탠드 얼론 확장팩으로 [[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라이징 스톰]]이 있다.
         피격당하면 출혈 상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강제 리스폰. 죽은 상의 아군 병사들을 즉시 리스폰시킨다.
         대다수 총기의 경우 조준 상에서 마우스 휠을 돌려 영점을 조준할 수 있다.
          Marksman의 주무장. 소총과 반자동 소총에 조준경을 달아놓은거다. 조준 상에서 6을 눌러 기계식 조준기로 전환할 수 있다. 볼트액션 방식의 경우 클립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한발씩 장전하므로 장전 속도가 느리다.
  • 류명선(야구선수) . . . . 5회 일치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야구선수)|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김상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가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끝에 1991년 이후에는 위력이 크게 저하된 것을, 생각하면 내구성도 좋았던 편.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 류현경 . . . . 5회 일치
         그녀는 [[초등학교]] 때 [[서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되어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시작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6년 드라마 《'''곰탕'''》에서 [[김혜수]]의 아역으로 데뷔했다.<ref>[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156992 류현경, 김혜수 아역 시절 "똑 닮았네"] 이투데이. 2015년 07월 0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238611 류현경 "서지 때문에 배우 됐다" 깜짝 고백] 조이뉴스24. 2011년 06월 04일</ref>
         * 《[[양은 없다]]》(1999) - 홍기모 딸 역
         * 《[[아티스트: 다시 어나다]]》(2017) - 지젤 / 오인숙 역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안성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
  • 리그컵(K리그) . . . . 5회 일치
         K리그외에도 별도로 운영되는 대회가 어났기 때문에 팀에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스쿼드를 꾸릴 필요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는 각 구단들이 선수층을 보다 두껍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협회 입장에선 FA컵을 대체하는 대회로 여길 수 있었으며, 좋게 표현하면 구단들은 프로무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신인들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리그컵이 생부터 이러다보니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포항 감독이었던 파리아스는 [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090709095009910|격에 맞지 않는 지나친 경기일정]을 꼬집으며 제법 강도높은 비판을 했을 정도. 리그컵의 규정변천을 살펴보면 과유불급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상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상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상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상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상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백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K리그가 스폰을 받기 시작한 94시즌에는 1년동안 정규리그를 마치고 우승팀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 이때는 우승상금만 보면 아디다스컵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리그컵간에는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하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직후인 95년도에는 최대 획득가능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981096|우승상금이 1억 5천만원으로 책정]되며 리그컵과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1억5천만원을 셋으로 나눠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우승팀(통합챔피언 우승)에게 주었다. 한 팀이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둘 다 차지하면 1억5천을 그 팀 혼자서 갖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다른 팀이라면 5천만원은 준우승자에게 주는 상금이 되는 셈.] 전기나 후기 중 하나만 우승해도 리그컵보다 더 큰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그컵은 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과 함께 FA컵의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어서게 됨은 물론이고, 이 두 대회의 흥행과 함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리그컵을 구여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초에 리그컵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한국프로축구의 발족과 함께 늘 대두되었던 부족한 경기수를 채우고 흥행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리그컵이 탄생하고 10여년이 지나니 팀 수가 3배가량 늘어나 경기 수가 부족하지도 않고, 상금은 그다지 오르지도 않아 팀이 리그컵에 참가할 때마다 주전선수를 대폭 기용하지도 않아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오히려 비주전 선수들은 R리그에서 뛰면 되기 때문에 리그컵이 초창기에 갖고 있던 이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리그컵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외면받고 있었던 것도 사라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 마기/327화 . . . . 5회 일치
          *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녀는 알리바바도 알리바바라면서 "왜 신드바드를 도발하는 일만 하느냐"고 비난한다. 알리바바에게도 홍옥에게도 찬성할 수 없다고 단호한 도를 취하자 알리바바도 "귀엽지 않은 여자"라며 같이 못해먹겠다고 등을 돌린다. 모르지아나도 그 말대로라며 지지않고 응수. 이게 이 커플이 다툰 전모였다.
          * 시시껄렁한 논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알라딘은 "가치관의 골을 메꿔가는게 남녀의 사귐"이라고 최대한 진지하게 조언한다. 그 조차도 지금의 알리바바에겐 잘난척하는 얼굴로 보인다. 알라딘은 모르지아나를 좋아하지 않느냐,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는데 알리바바는 별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좋다고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는다. 알라딘은 어른스러운 도로 그쯤하면 됐으니 가서 모르지아나에게 사과하라고 권하는데 알리바바는 자기는 잘못한거 없고 사과는 여자가 해야 한다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결국 글러먹은 도에 폭발하는 알라딘.
          너무 일변한 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절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상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상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 마기/343화 . . . . 5회 일치
          * 알리바바는 정오가 지나면서 다급해졌지만 아르바는 매우 평한 도다. 알리바바는 세상이 멸망한 위기인데 왜 평하게 누구냐고 말하는데 그녀는 자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그 분"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좋다는 도이고 지금 임하는 시련도 "빨리 안 끝나나 이거"라고 투덜거릴 뿐, 아무런 의욕도 없다. 알리바바는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색한 채로 던전 내부로 걷고 있는 두 사람.
          아르바는 정색하며 "그분"을 만났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아르바는 다시 냉정한 도로 돌아오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허튼소리 취급한다. 그러나 알리바바가 차분히 설명을 하자 점점 귀를 기울인다.
  • 막부 . . . . 5회 일치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이 중국에서 들여온 [[율령제]] 체계에서 [[조정]]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막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상설 통치 조직으로 바꿔서 운용하였던 것이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정부가 있기는 한데 계엄령이 내려져 있고, 계엄령은 무기한이고 범위는 전국(…)이라서 계엄사령관이 사실상 국가의 실권자인 상가 된 것과 같다.
         이후로 조정은 거의 귀족들이 놀고 먹는 상가 되었는데, 원래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조정에는 별다른 실질적인 업무는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마쿠라 막부에 귀찮은 실무를 맡기면서 조정은 거의 완전히 실무능력을 상실하며, 이후 조정이 실권을 되찾는 [[겐무 신정]] 시기가 되었을 때 무능함을 드러내며 정권을 도로 무로마치 막부에 빼앗기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일본 귀족이란 어날 때부터의 혈통으로만 앞으로의 출세가 모두 결정되며, 귀족 이하는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폐기물 급 인성(^^)에다가, 실무는 천하게 보고 시나 서예 같은 예술 활동만을 고상하게 보는 좋게 말해서 문화적, 나쁘게 말해서 놀자판인 놈들이었으므로 이런 놈들에게 실권을 맡겨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백]]'과 '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 문근영 . . . . 5회 일치
         [[리즈 시절]]에는 외모가 '''[[동안]]'''의 표준에 가까웠기에 아역 연기자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특히 [[송충이 눈썹]]의 임팩트가 강하다. 왠지 모를 중성적인 느낌도 강렬해서 다른 연기자인 [[정우]]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다른 의견으로는 [[고현정]]의 어릴 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SBS 연기대상]]에서 [[신윤복]] 역으로 정향 역을 맡았던 [[문채원]]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했다. 통상 연기대상은 관례상 시청률이 높은 자사 드라마의 주연 내지는 자사 드라마에 출연해 주길 바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수상이었다. [[박신양]]의 [[김홍도]]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에서 드라마를 혼자 이끈 문근영의 공을 감안해도 10%대의 드라마 주연에게 연기 대상을 수여하는 일은 파격적이었다. 이로써 문근영은 만 21세에 연기대상을 수상, 방송 3사 통틀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대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는 1998년 [[미스터Q(드라마)|미스터Q]]의 [[김희선]](당시 만 21세). SBS 연기대상은 그 해 12월 31일에 진행되고, 생일이 12월과 가까울수록 어린 나이가 되므로, 만 21세 때 대상을 수상한 두 사람 중 생일이 6월인 김희선이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문근영은 수상소감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정도로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며 대상 수상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상(방송)을 수상하기도 했다.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며 생방송처럼 돌아가는 현장은 매우 열악했다. 최악의 더위도 겹쳤다. ~~ 참고로 세트장은 에어컨 이런 거 없는 야외 민속촌이다..~~ 붐마이크를 들고 있던 스탭이 졸아 붐마이크를 떨어뜨리면서 문근영의 눈에 정통으로(:확실히는 모르나 정황상 제대로 맞은 듯) 맞아 드라마 히로인의 눈에 시퍼런 멍이 드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본인은 끝까지 남아 촬영을 끝내고자 했으나 이튿날 상황이 심각한 걸 뒤늦게 깨닫고 병원치료를 받고 촬영은 중단, 방송은 결방...[* 종영 후 [[전광렬]] 씨가 모 인터뷰에서, "이 사고로 결방 사가 날 때 즈음 문근영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까지는 학업에 전념했으나, 이후 연기 활동으로 인해 휴학하고 09년에 복학,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최종적으로는 2012년에 현대소설론을 마지막으로 수료했다.[* 모든 대학들이 그렇듯, 수업만 전부 다 듣는다고 해서 [[졸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졸업 [[논문]] 미통과.) 수업을 다 들어도 졸업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졸업이 되지 않고 수료만 된 것으로 처리된다. [[성균관대학교]]는 학점 이수 외에도 영어 공인 점수, [[자격증]] 등의 3품을 따야 졸업 요건이 충족된다. 문근영은 학점도 이수하고 졸업 논문도 제출했으나 3품을 따지 못해 졸업은 하지 못했고, 국어국문학 학부를 수료만 한 상이다. 그래도 3품 제출 기한이 무기한이기 때문에 문근영의 경우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 점수와 자격증을 취득하는 순간 바로 당해 학기에 졸업 처리가 된다.] 수료상를 끝내고 2015학년도 전기학위수여식(2016년 2월)에 학사학위를 수여받았다.
  • 문숙(배우) . . . . 5회 일치
         || '''데뷔''' ||[[1974년]] 영화 '양 닮은 소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시험에 교복 차림으로 참가하여 최종 선발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은 너무 어려서 특채라면 몰라도 공채는 뽑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곧바로 엑스트라부터 시작하여 1년 뒤 영화 '양 닮은 소녀'로 정식 데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외모로 각종 방송과 CF를 섭렵하며 충무로의 샛별이 되었다. 그리고 양 닮은 소녀의 캐스팅 자리에서 만난 故 [[이만희(영화 감독)|이만희]]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시작하게 된다.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 여배우가 23살 연상의 애딸린 이혼남과 연애한다는 사실은 당시 매우 화제가 되었다. 이만희의 딸인 [[이혜영(1962)|이혜영]]과도 당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 1975년 || 양 닮은 소녀 || 주연 || ||
         || 2016년 || [[tvN]] || [[기억(드라마)|기억]] || 황선 ||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5회 일치
          작품상에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며, 최종적으로는 기간트와 싸우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기간트 위에 추락한 끝에 간신히 활강비행으로 삼각탑에 귀환한다. 이후 수리되지 않은 상로 방치되다가 삼각탑과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인더스트리아의 작업용 [[로봇]]. 로봇이지만 조작원 1명이 탑승해서 조작해야 하는 물건이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며, 3개의 레버와 4개의 스위치로 조작이 가능하다. 형는 상자 모양의 본체에 양팔과 양다리가 붙은 모양이며, 머리가 있어야 할 지점에는 조작원이 탑승하는 좌석이 오픈형으로 설치된다.
          대참사 당시 지구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우주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곳으로 여기서 코난이 어났으며 코난의 부모를 비롯한 코난의 할아버지 동료들이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1화 시점에서는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 두 사람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는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코난의 할아버지가 라나를 잡으러 온 몬스리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군인 2명에게 저항하다가 죽은 뒤, 코난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남겨진 섬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대륙이 되면서 코난이 살던 집은 산 정상에 위치하게 되었는 데 대륙이 된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에 다이스, 몬스리, 류케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피난민과 테라를 비롯한 하이하버의 일부 주민이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은 작 중에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지역이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라나의 고향으로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참사 이전에는 주민들이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대참사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국가의 형를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오로와 같이 전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는 반항적인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무리를 이룬 경우도 있다. 17화에서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나를 잡아가려는 데 혈안이 된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20화에서는 점령군으로 왔었던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이 하이하버의 주민이 되어 일을 하며 정착한다. 라오박사의 반중력 비행정이 하이하버에 있었는 데 인더스트리아에서 파르코 비행정에 의해 격추된다.
  • 박상면(배우) . . . . 5회 일치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킹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코믹한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당시 [[별명]]이 '몹쓸 상면'이었다.] 이 사람도 진지한 역할을 맡을 때에는 정말 한 없이 진지해진다. 특히 [[소방관]]의 활약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베테랑 소방관을 맡아 열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의 카리스마와 간지를 선보였다(물론 마지막 장면에 한정).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리프트 카에 워 대피시키려는데 자리가 모자라자(그것도 불길이 코 앞에 닥쳐와서 리프트 카에 타지 않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남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조용히 건물에 남아 담배를 물고 닥쳐오는 불길을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또한 [[서울1945]]에서 박창주라는 [[악역]] 군인을 맡아 열연해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코믹이 아닌 진지한 연기를 맡아 호평 받았다.
         || 도둑맞곤 못 살아 || 고상 || ||
         || [[반칙왕]] || 백산 || ||
         || [[신데렐라 언니]] || 구규 || ||
          * 2008년 KBS 제2라디오 안재욱 차현의 미스터라디오 - 게스트
  • 박신혜 . . . . 5회 일치
         박신혜는 [[1990년]] [[2월 18일]] [[대구광역시]]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어났다. 중학교 재학 시절 연예계 데뷔를 하면서 [[부산광역시]]로 이주하여 줄곧 그 곳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승환 (가수)|이승환]]의 팬이었던 공부방 선생님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배우 오디션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신혜의 사진을 드림팩토리에 보내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035593|title='The Inheritors' Park Shin Hye, a very good example of growing up of child actress|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 그 후 이승환이 대표로 있는 드림팩토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연기, 노래, 댄스 트레이닝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102028|title=[STARCAST] Park Shin Hye’s Life Graph "I hope to be someone who grows 1cm every year"|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ref>{{웹 인용|author=March 9, 2014 |url=http://www.soompi.com/2014/03/09/park-shin-hye-named-as-the-new-nations-little-sister/ |title=Park Shin Hye Named as the New "Nation’s Little Sister" |publisher=Soompi |date=2014-03-09 |accessdate=2016-12-29}}</ref>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로 이후 1년 반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남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영 역을 맡아 [[엄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영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영되었다.
         박신혜는 2017년, [[정지우 (영화 감독)|정지우]] 감독의 영화 《[[침묵 (2017년 영화)|침묵]]》에서 변호사 최희정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ref>{{뉴스 인용 |제목 =최민식x박신혜x류준열 '침묵' 11월 개봉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88848|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7-09-20 |확인날짜 =2017-09-20 }}</ref> 2017년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신혜는 2017년 6월부터는 지난 2013년 첫 투어 이후 4년만에 2017 아시아투어의 첫 스타트 무대를 홍콩에서 성황리에 마쳤으며, 이번 아시아투어는 올 해로 네 번째로 투어 수익금 전액은 기아대책에 기부되었다. 이외에도 대만,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국에서도 열릴 예정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아시아투어 첫 무대 성료…"MC 없이 단독진행"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05412|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정유나 |날짜 = 2017-06-12 |확인날짜 =2017-09-12 }}</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한류여제’ 파워 과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76478|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이정연 |날짜 = 2017-07-04 |확인날짜 =2017-09-12 }}</ref>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밀양 박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박지일(배우) . . . . 5회 일치
         [[경기도]] [[양평군|양평]]에서 어났으며, [[동아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였다.
         * [[2009년]] [[KBS 대하드라마]] 《[[천추후 (드라마)|천추후]]》 - [[김심언]] 역
         * 2002년 《[[남자 어나다]]》, 《[[취화선]]》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양평군 출신 인물]][[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블랙 클로버/113화 . . . . 5회 일치
          * 자신이 "잭스 류그너"라 주장하는 괴한은 [[마법제]] 율리우스에게 불경한 도를 보여서 대회장에 있는 전원의 공분을 산다.
          * 자신이 자줏빛 범고래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라 주장하는 사내. 하지만 진짜 잭스는 그에게 당해 어느 골목에 버려져 있다. 사내는 뻔뻔하게 잭스를 사칭한데다 뒤늦게 대회장에 도착해 [[마법제]] 율리우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모욕적인 도를 취한다. 그는 늦은 것에 대해서도 "곤란해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마법기사단답게 도와줬다"는 뻔한 거짓말로 둘러대는데 마법제는 그런 도나 거짓말에도 특별히 개의치 않는다. 물론 그게 측근 마르크스가 넘어가준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잭스라는 사내를 무례하다 꾸짖으며 머리를 향해 마법을 날린다. 근거리에서 날린 마법이나 잭스는 훌쩍 뛰어넘어 피해 대회장으로 내려선다.
          * [[솔 마론]]을 비롯한 마법기사들이 그의 불손한 도를 비난했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도 마법제에게 무슨 짓이냐고 언성을 높였는데, 공분을 산 잭스는 적반하장으로 "너네나 마법제를 존경하지 나는 아니다. 너네 가치관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라!"고 꾸짖는다. 그로인해 대회장의 분노지수는 최고조.
          * 마침내 도착한 결전의 무대. 다양한 형의 지형이 뒤섞여 있다.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택할 수도, 역으로 상대가 불리한 지형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곧이어 추첨으로 결정된 대진표도 공개. 아스타 팀이 1회전 제 1경기. 유노팀은 대진표의 맨 끝에 있어서 둘이 대결하려면 모두 결승까지 갈 수밖에 없다. 아스타는 꼭 둘의 대결을 성사시킬 거라고, 나아가서 우승하겠다고 다짐한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5회 일치
          * A팀은 불성실한 잭스의 도를 보고 더더욱 응징할 것을 결의, 보다 거세게 공격한다.
          * 적이라고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A팀은 B팀 이상으로 분노했다. "산호의 공작"단 삼등 중급 마법기사 [[릭 코넬]]. 그는 수정마법으로 조형한 "크리스탈 스코프"로 B진영을 염탐 중이다. 잭스의 행는 그의 입을 통해 A팀 전원에게 전달됐다. A팀은 처음에는 무슨 작전으로 저러는게 아닐까 했지만 릭의 스코프는 신체 상도 파악할 수 있다. 거기엔 완전한 "수면 상"로 표시됐다.
          * 한편 A팀은 의외의 파훼법이 발견되자 당황한다. 릭이 상대편도 감지타입 마법 구사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적의 접근을 경고한다. 이제 두 팀은 서로의 크리스탈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카타스는 팀원들을 진정시킨다. 이미 B팀의 크리스탈은 너덜너덜한 상. 반면 자신들은 노 데미지. 적이 원거리 공격을 쓰지 못하는 한 우위가 바뀌진 않는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5회 일치
          * 비장의 기술을 꺼낸 [[랜길스 보드]]. 공교롭게도 형 [[핀랄 룰러케이트]]이 구사하는 구체형의 공간마법과 유사한 형였다. 하지만 한 번에 만들어내는 구체의 숫자가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 흉흉한 기운을 드러내며 공격을 세를 취한다. 그런데 핀랄 또한 그 기술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랄도 사실 구체의 공간마법을 다수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핀랄은 "어머니는 다르지만 역시 우리는 형제"라며 이대로 두면 랜길스가 랜길스가 아닌 무언가가 될지 모른다며 승부에 나선다.
          *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랜길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핀랄이 사라져야 한다며 의식도 차리지 못하는 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가 저지하고 나선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어느 새 날아와 랜길스의 목을 겨눴다. 비록 대회장에 난입하진 않았지만 [[챠미 퍼밋슨]]도 그리모어를 펼쳐들고 요격할 세였으며 [[노엘 실버]]는 제일 먼저 핀랄의 상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5회 일치
          *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를 관망하던 핀랄 룰러케이트는 이번에도 지레겁을 먹고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다.
          * 일어선 아스타는 몸상를 염려하는 노엘을 안심시킨다.
          * 카호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그의 상를 회복시켜 준 것.
          * 베토는 아스타의 몸상를 비웃으며 뭘할 수 있겠냐고 한다.
          * 베토가 세를 다잡기 전 다시 핀랄이 공간전이, 아스타가 베토에게 일격을 가한다.
  • 서신애 . . . . 5회 일치
         ||<#E2A6B4> {{{#ffffff '''출생'''}}} ||<(> [[1998년]] [[10월 20일]] ([age(1998-10-20)]세), [[강원도]] [[백시]] ||
         [[1998년]] [[10월 20일]] [[강원도]] [[백시]]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어났고, 백중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에 [[서울우유]] 광고에 출연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98년 출생]][[분류:백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2004년 데뷔]][[분류:아역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서윤아(배우) . . . . 5회 일치
         | 출생지 = [[강원도]] [[백시]] 장성동
         | 학력 = 근로복지공단 백병원
         * 근로복지공단 백병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6년 어남]][[분류:2001년 데뷔]][[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백시 출신 인물]]
  • 서태식 . . . . 5회 일치
         '''서식'''(徐泰植, [[1938년]] [[11월 22일]] ~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을 창립하고 30년간 회장직을 맡아온 기업인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47257 |제목= 서식 회장, '회계업계 살아있는 역사' |출판사= [[머니투데이]] |날짜=2005-06-09 |확인날짜=2013-04-03}}</ref>
         * 1989년~ 1991년: 아시아평양지역 회계사 연맹(CAPA) 회장
         * [http://search.nate.com/search/all.html?q=%BC%AD%C5%C2%BD%C4&hi=PR277650&ht=h_pf&ssn=012&dsn=4 서식 네이트 인물검색]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8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소지섭 . . . . 5회 일치
         | [[주군의 양]]
         | [[해음료]]
         | rowspan="3"| [[주군의 양]]
         |현재 요약 아래= [[주군의 양]] 주중원 역
         [[분류:1977년 어남]][[분류:진주 소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청운대학교 동문]][[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부일영화상 수상자]][[분류: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KBS 연기대상 남자 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군포시 출신]]
  • 손지창 . . . . 5회 일치
         * 1999년 SBS 《[[젊은 양]]》 ... 박민 역
         * 1992년 [[해음료]] 매실맛사이다 쎄시봉 써니텐
         * 1993년 [[해음료]] 썬키스트후레쉬100훼미리쥬스
         * 1994년 [[해제과]] 후레쉬메론바 (with [[장동건]], [[이종원 (1969년)|이종원]], [[심은하]])
         [[분류:손지창]][[분류:1970년 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송병구 . . . . 5회 일치
         온게임넷의 엄재경 해설위원과 김형 해설위원은, 스타 뒷담화 방송에서 과거 [[박정석]]과 [[강민 (프로게이머)|강민]]의 라이벌 관계와 비교하여 [[박정석]]-송병구의 정파 [[프로토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김택용]]의 사파 [[프로토스]]라는 프로토스 계보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리그에서 13연패까지 하는 등 송병구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였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송병구는 2014 GSL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조 배치에는 이신형, 김준호, 주성욱 등 강력한 상대들이 다소 포진되어 있었으나, 김준호를 2:1로 제압한 뒤 승자전에 진출하였고, 승자전에서는 주성욱의 한 수위 실력에 2:0으로 패하여 최종전으로 떨어졌다. 최종전에서 이신형을 이기고 올라온 김준호와 다시 맞붙었으나, 아쉽게 2:1로 패배하여 GSL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맹활약을 보여준 송병구에게는 아직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2014년의 시작이었다.
         방송에서 14년도 삼성 화이트 선수들을 공항까지 워다 주며 '안녕 운전기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송병구가 ‘대형신인’으로 주목받던 시절 유독 홍진호에게는 약한 모습이었다. 데뷔 당시 송병구는 CYON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차기 스타리그에 4번 시드로 직행하게 되었는데,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우승자 출신 선수를 지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EVER 2005 스타리그에서 준우승 이력만 가진 홍진호를 지명했다. 이후 펼쳐진 16강에서는 송병구는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되며, 16강 재경기에서도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된다. 또, 홍진호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 24강에서 송병구를 제압하고, 이 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직후 진행된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F조 패자전에서 홍진호를 제압하면서, 이 패배로 홍진호는 예선으로 추락했고 지금까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이다.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식극의 소마/219화 . . . . 5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스스로 "모든 걸 다 갖췄다"고 말하는 재수없는 부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집은 부자고 요리도 잘하고 생긴 것도 이럭저럭. 키는 못 받았지만 당사자가 애써 상관없다고 부정하는 부분이니 재쳐놓고. 어쨌든 부모의 애정도 듬뿍 받고 그만큼 여자애들의 애정도 듬뿍 받으며 무탈하게 성공가도를 걸어온 쿠가. 식극에 있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는 말의 주인공은 자신이라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도 키는 별도 문제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신감을 전부 워먹을 정도로 역사적은 대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 쿠가가 츠카사에 가진 반감은 1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패배". 그 패배가 있은 뒤 쿠가는 넋 나간 상로 뒹굴거렸다. 10일이 넘도록 그 상가 이어지자 동급생인 [[에이잔 에츠야]]가 빈정거렸다. 애초에 1석한테 식극을 거는 거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 "건방떨지 마라 꼬맹이"라고 까지 도발했는데 쿠가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에이잔도, 옆에 있던 네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쿠가가 묵은 원한을 원료삼아 타오르고 있을 때, 츠카사는 매우 차분하고 정돈된 상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있던게 아니었는지 "슬슬 집중하자"고 중얼 거린다. 그 손에는 찻잎이 들려있다. 그는 그것을 흩뿌리며 마치 말을 거는 듯 한데.
          * 츠카사가 조용히 준비를 마쳤을 때, 옆 조리대는 다소 시끌벅적하게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린도가 이상한 의욕을 보인다. 거의 위협적인 도로 칼을 뽑는다.
  • 안기효 . . . . 5회 일치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16강 (VS[[변형]] 0:2)
         2003년 데뷔한 올드 프로게이머로 판짜기 능력과 전략성이 탁월해 2005년경에는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와 함께 '신 4대 프로토스'의 물망에 오르내릴 정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단점도 뚜렷했는데 매크로/마이크로 콘트롤과 멀티스킹 능력, APM 등 게이머로서의 기본기가 전반적으로 모두 부족했다. 그와 함께 투나 - 팬택의 주축 멤버였던 [[심소명]]과도 비슷한 특성. 어쨌든 이것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게 되어 결론적으로는 그를 제외한 프로토스 신예 3인이 신 3대 토스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그의 전략마저 뒤떨어지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는 프로리그 16연패 등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경험했다.
         중반까지 위기를 잘 넘기는 듯 했으나, 역시나 부족한 멀티스킹 능력과 판단미스, 발전투 등 미숙한 점을 드러내면서 순식간에 게임이 말리고 결국 패배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 9월쯤부터 아프리카 방송을 시작했다. 토스계의 지영훈의 포지션이 되었다. 초창기 실력은 처참한 수준이였으며 [[하늘(1994)|하늘]]의 저그에게도 지는 모습을 보인다. [[전규]]와 [[김봉준]]의 라이벌 포지션이며 회사도 그만두고 방송에 전념하고있다.
         ||<:>[[강민]]||||<:>[[전규]]||||<:>'''안기효'''||||<:>[[김봉준]]||
  • 에릭 (가수) . . . . 5회 일치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영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 2007년 [[MBC]] 《[[케 세라 세라]]》 ... 강주 역 (주연)
         * 2014년 [[KBS2]] 《[[연애의 발견]]》 ... 강하 역 (주연)
         * 2005년 《[[달콤한 인생 (2005년 영화)|달콤한 인생]]》 ... 구 역 (특별출연)
         [[분류:신화의 일원]][[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영양군 . . . . 5회 일치
         [[스펀지(KBS)|스펀지]]에 의하면([[2004년]] 방영) 영양군에 신호등은 단 '''1개'''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이는 3색 신호등 이야기고, 노란색 불만 번쩍거리는 [[점멸등]]은 꽤 있다. 도시에 사는 [[위키러]]들은 이해가 잘 안 될지도 모르지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너무 어두워서 7 ~ 8미터 앞(헤드라이트 켠 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점멸 신호등은 대체로 "여기 교차로가 있으니 조심해라."라는 의미가 되겠다. 2014년에 입암면 우회도로 개통으로 신호등이 몇 개 더 설치되어 있다. 스펀지 방영 당시 한 개 있던 신호등은 점멸등으로 바뀐 지 오래이며, 입암면 우회도로 개통으로 신호등이 두 개가 생겼다!--1개 늘었다.--
         대표적으로 '''고추'''가 유명하고, 군 슬로건도 '''HOT(맵다)'''을 사용하고 있다. 과장 좀 보서 영양군민들이 고추한테 엎드려 절해야 할 정도다. 남미 원산인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자생한 품종인 '''수비초'''가 난 곳이 영양군이다. [[청양고추]]의 '청양'의 어원이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영양군이라는 설이 있다. [[청양고추]] 항목 참고.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영양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다. 영월, 영광, 괴산, 청양과 함께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는데, 앞의 4군은 [[고추]]도 등록되어 있다.
          * [[공무원]] 경쟁률은 3:1밖에 되지 않는다. [[경상북도|같은 도]]인 [[포항]]의 23:1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수준. 그만큼 공무원들도 가장 기피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공무원에 합격해서 영양군에 배치가 됐는데 영양군의 실를 보고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이재오]] - 프로필에는 [[강원도]] [[동해시]]라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어난 것뿐이고 실제 어려서부터 영양에서 살았고, 심지어 영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프로필 바꾼것도 TK이미지 벗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매일신문]]이 이재오가 네이버 프로필 출생지를 영양에서 동해로 바꾼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2인자였으니 영양 출신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간 사람이다.
          * [[장계향]] - [[음식디미방]]의 저자. [[안동시|안동]]에서 어나 영양의 재령 이씨 집안에 시집 온 여인. [[이문열]]의 조상이다.
  • 영주시 . . . . 5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영주역]]에서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철도청]] 시절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2013년 현재는 코레일 경북본부)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노후되고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는 철도가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여론도 높아진 상다.
         철도 초강세 지역이었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경북선과 영동선이 만나다 보니 철도만으로도 지금의 도시 규모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철도와 도로가 엎치락덮치락하고 있는 상인데, 중앙선 복선화가 완료되면 다시 철도가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 시내에 분식, 간식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정도너츠의 생강도너츠, 시내 아디다스 앞 농협위치에 저녁에만 열리는 꼬치집(참고지만 김밥도 상당히 맛있다), 그리고 밑으로 조금 내려가 랜드로바 가게 ~~지금은 금강제화~~ 앞에 있는 랜드로바 떡볶이, 거기서 더 내려오면 롯데리아 옆 극당(빵집), 그리고 나드리 분식, 중앙분식의 쫄면이 영주시내에서 시민들이 대표적으로 즐겨찾는 분식/간식집이다. ~~다만 맛을 너무 기대하진 말자.~~ ~~영주 출신인 부모님은 서울에 사셔도 1년에 3~4번씩은 쫄면 먹으러 꼭 내려가던데~~
          * [[흑역사]]로 남은 [[폐건물]]이 있는데 2008년에 부분개장한 판타시온 리조트이다. 나머지 시설을 다 건설하기도 전에 부도가 났으며, 2011년 다시 개방됐을 찰나에 얼마 못가 또 다시 문 닫히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도 방치된 상다.
          * [[봉규]] : 탤런트
  • 오세창 . . . . 5회 일치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독립촉성중앙회]], [[민주의원]] 등에 참여하였다. [[서예]]가로도 전서, 예서, 초서에 능하고 조각도 하였으며, 둥그스름한 형의 독특한 서체를 창안하여 위창체, 오세창체라 부른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 자는 중명(仲銘), 아호는 위창(葦滄), [[천도교]] 도호는 한암(閒菴)이다.
         위창 오세창은 [[1864년]](고종 1년) [[8월 6일]] [[한성부]] 출생으로, 중국어 [[역관]](譯官)이자 구한말의 선각자로 잘 알려진 [[오경석]]의 차남으로 어났다. 본관은 해주. 아버지 역매(亦梅) [[오경석]]은 역관으로 [[숭록대부]](崇祿大夫, 종일품)까지 올랐으며, 구한 말의 개화당의 이론적 지주이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역관]] 가문으로, 대대로 외국어를 익혀 개화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중인 집안에서 자란 데다 개화파의 거두인 스승 [[유홍기]]의 영향까지 받아 자연스럽게 개화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오세창은 [[경성부]] 인사동의 [[화관]](泰華館) 요리집에 [[손병희]], [[최남선]] 등 민족대표자들과 함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데 함께 서고, 대한독립 만세삼창을 외쳤다. 바로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경성]]경시청 총감부에 구금되었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46년 2월 [[남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일명 민주의원) 의원, [[서울신문]] 명예사장 등을 지냈다. [[1946년]] [[6월 15일]] 오후 5시 40분 [[서울역]]에 마중나가 [[서울역]]에 도착한 삼의사 유골을 영접하였다. 이어 고사(太古寺)에 마련된 빈소에 참석하였다. 이후 남북협상과 단정수립론이 갈렸을 때는 입장표명을 하지 않다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에 참석하였다.
         [[분류:1864년 어남]][[분류:1953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역관]][[분류:급진개화파]][[분류:한국의 기자]] <!-- 조선의 기자-->[[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분류:대한제국의 작가]][[분류:대한제국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
  • 오원 (조선) . . . . 5회 일치
         |친척= 양부 [[오주]](吳泰周)<br>양모 [[명안공주]](明安公主)
         '''오원'''(吳瑗, 1700년 ~ 174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海州). 자는 백옥(伯玉), 호는 월곡(月谷)이다.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백부인 [[오주]](吳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1728년(영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고 벼슬은 [[대제학]]에 이르렀다.<ref name="대제학">[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ua_11610010_001 《영조실록》 52권, 16년(1740 경신 / 청 건륭(乾隆) 5년) 10월 10일(정미) 1번째기사]</ref>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va_11712017_002 《정조실록》 38권, 17년(1793 계축 / 청 건륭(乾隆) 58년) 12월 17일(병자) 2번째기사]</ref>
         오원은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백부인 [[오주]](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 양부(백부) : [[오주]](吳泰周, 1668년 ∼ 1716년)
         [[분류:1700년 어남]][[분류:17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해주 오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장원 급제자]]
  • 오태훈 (아나운서) . . . . 5회 일치
         {{다른 사람|오훈 (게임 개발자)}}
         |이름 = 오훈 <br /> 吳泰勳
         '''오훈'''(吳泰勳, [[1969년]] ~ )은 [[한국방송공사|KBS]]의 [[아나운서]]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며, [[1997년]] [[한국방송공사|KBS]] 24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 [[KBS 제1라디오]] 《[[오훈의 시사본부]]》
         [[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오프라인 . . . . 5회 일치
         컴퓨터, 혹은 주변 장치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상를 뜻한다.
         흔히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상를 '오프라인'이라고 말한다.
         본래 20세기만 해도 오프라인 환경이 당연한 것이었으나, 21세기에는 오히려 인터넷에 연결된 온라인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오프라인 환경은 매우 불편한 상로 여겨진다.
         본래 온라인 상가 당연한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하여, 온라인 상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매체를 만들 때 제목에 '오프라인'이라는 말을 달기도 한다.
  • 온주완 . . . . 5회 일치
         || [[SBS]] || [[그 여름의 풍]] || 한지훈 || ||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정양 || ||
         || 양 || 바람둥이 쨍 || ||
         || [[짝패(영화)|짝패]] || 10대 수 || [[정두홍]] 아역 ||
  • 욕창 . . . . 5회 일치
         압박 때문에 피부에 혈액이 흐르지 않게 되어, 그 부분에 [[궤양]]이 일어나서 손상되는 상. 스스로 몸의 방향이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자주 생기며, 특히 [[노인]]에게 많이 일어난다. 뼈가 돌출되어 피부에 압박이 가기 쉬운, 허리, 엉덩이, 발 뒷꿈치, 발목, 팔꿈치 등이 욕창이 생기기 쉬우며, 침대, 휠체어, 깁스, 부목 등이 피부에 압박을 가하는 지점에도 발생하기 쉽다.
         정상인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중에 몸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욕창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비]] 상, [[혼수]] 상에 있거나, 매우 쇠약한 사람, 구속된 상에 있는 사람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욕창이 생기기 쉽다. 피부가 당겨지거나, 마찰을 일으키거나, 습기에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도 나타나기 쉽다.
         매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몸의 위치나 방향을 바꿔주고, 피부가 압박되어 변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에는 체위를 1,2시간에 한 번 정도 바꿔줘야 한다. 습기가 있으면 욕창이 생기기 쉬우므로 깨끗하고 건조한 상를 유지해줘야 한다. 특정한 도구나 쿠션으로 압박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 우현(배우) . . . . 5회 일치
         사진 왼쪽에 [[극기]]를 들고있는 사람이 우현이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여담으로 가운데에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청년이 정치인 [[우상호]]이다. 우상호 의원 회고에 따르면 저 당시 [[4.13 호헌조치]]로 투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행부가 단식이냐 삭발이냐 선택하기로 했는데, 우현은 머리를 밀고, 본인은 단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상호 의원이 우현의 머리칼을 직접 밀어줬다고. 참고로 우측에 안경을 쓴 채로 고개를 숙인 사람이 [[안내상]]으로 오인받고 있는데, 안내상이 아니다.[* 우상호의원의 말에 의하면 안내상은 당시 집행부가 아니라 지하에서 암약하던 실행부였다고 한다.]
          * [[왕사신기]](2007,MBC) - 엿장수 역
          * [[양은 가득히(2014)|양은 가득히]](2014, KBS2) -하마 역
          * [[싸우자 귀신아(드라마)|싸우자 귀신아]](2016, tvN) - 고주망 귀신역(특별출연)[* 전작인 또 오해영에 이어 특별출연]
  • 원피스/824화 . . . . 5회 일치
          * 정신없이 기사를 보다가 '''써니호를 홀라당 워먹는다.''' 루피가 요리한답시고 불을 피워놓고 잊어버린 것.
          * 불이 채 꺼지지도 않은 상에서 풍에 휘말린다.
          * 빅맘 해적단 따위에게 만들어줄 밥은 없다며 강경한 도를 보이는데, 빅맘 해적단의 "비트"라는 자가 약혼녀 사진을 가져온다.
          * 카이도는 일종의 조울증 상인 걸로 보인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5회 일치
          * 방어
         파인밸리 전투로 큰 피해를 입은 소련군은 방어 세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직전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으로 진군하며 짧은 소강 상는 끝나게 된다.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에 있는 미군 기지 포트텔러를 노리고 있었다. 포트텔러는 소련군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 일명 "스타워즈"를 지휘하는 사령부였다. 하지만 전략방위구상은 단지 허세에 불과했다. 미군은 소련군이 포트텔러를 점령해 전략방위구상의 실체를 보게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윌킨스 대대가 포트텔러에서 방어전을 준비하는 동안, 소여 대대는 소련군을 지연하는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소여 대대는 포트 텔러 근처 마을인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윌킨스 대대와 합류한다. 캐스케이드폴스의 주민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상였기에 소여 대대는 그곳에서 소련군을 상대하기로 한다. 윌킨스 대대는 캐스케이드폴스 남쪽 진입로에서 소련군을 막도록 한다. 소여 대대가 상대해야 할 소련군은 압도적인 수였지만 후퇴할 수는 없었다. 캐스케이드폴스가 뚫리면 포트 텔러까지 잃게 되고, 그러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여 대령과 휘하 중대장들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브리핑을 벌인다. 소여는 소련군이 캐스케이드폴스를 뚫기 위해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공군의 근접항공지원이 있을거지만 그걸로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말을 했지만 모두가 진지한 도였다. 심지어 배넌 대위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소련군이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소여와 중대장들은 방어전을 지휘하기 위해 각자의 부대로 돌아간다.
  • 유키히라 소마 . . . . 5회 일치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식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식]]의 영역이며 그걸 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절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상의 경치를 보는 것.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도지마는 메구미가 메인으로 요리할 것을 요구한다.[* 원래 식극은 1대1이지만 이번은 소마와 메구미 페어 vs 시노미야의 형였다.] 소마는 반발하지만 도지마는 '유키히라.. 네 요리로 이겨서 타도코로가 살아남았다고 치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남의 뒤나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결국 다른 과제에서 떨어져 버리겠지. 그때도 네녀석이나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건가? 토오츠키에선 자신의 가치는 그 팔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타도로코가 토오츠키에 남아야 하는 인재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1회전에서는 상대는 예선 당시 통합 1등을 차지했던 니카리 아리스. 주제는 바로 도시락. 분자요리학, 첨단기술을 이용한 장비를 쓴 기상천외한 요리를 만드는 아리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히려 일본 도시락의 왕도라 할 수 있는 김도시락으로 승부한다. 평범하지만 왕도적인 어묵튀김/생선까스/된장국 이후 파격의 김의 풍미만을 추출, 캡슐형로 가공한다는 파격적인 구성의 김도시락으로[* 일종의 분자요리 기술인데 소마는 어렸을 때 체험용 교육과자로 이 방법을 접한 다음 된장국 구슬 등을 독자적으로 만드는 등 써먹어보고 있었다.] 도시락만이 느낄 수 있는 맛과 풍미를 강조하면서 단지 자신의 기술을 도시락통에 담았을 뿐인 아리스에게서 승리. 2회전에 진출한다.
         > "더군다나 맛을 정돈해주고 있는 건 운 간장! '탄 기'까지 조미료로 이용해 깊은 맛을…!"
  • 유해진(배우) . . . . 5회 일치
         ||<|3>2017년||[[공조(영화)|공조]]||강진||7,817,593||성공||
         ||[[택시운전사]]||황술||12,185,989||성공||
         ||[[완벽한 타인]]||수|| || ||
          * 해HTB 영진 구론산바몬드
         매니아들은 옷만봐도 알듯이 등산매니아이다.[* 삼시세끼 고창편을 할때도 폭염에 불구하고 산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삼시세끼에서 자주 입고 나오는 바람개비 이리 메이커 (몬츄라) 입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2010년대 초반 유행했고 지금까지 많이입는 메이커이다.
  • 은혼/629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위기의 순간 우리의 주인공 [[사카타 긴토키]] 및 주요병력은 전시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자판을 벌이며 곤드레 만드레 상.
          * 진선조는 겐가이를 탈환하기 위해 추적을 개시하지만 책임자급의 글러먹은 상로 인해 진전이 없다.
          히지카타는 전시에 토할 정도로 퍼마시는 놈이 어딨냐고 깐다. 사실 긴토키도 라스트 보스 직전의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푹 쉬고 풀회복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독늪에서 뒹굴거리다 상창이 녹색으로 물들어버린 판이었다.
          * 대변은 길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다. 오키타는 대변의 양으로 보아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쌀 수는 없다며 위험한 상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릴하지만 긴장감이 생길리가 있나. 오키타를 앞세우고 추적한 추악한 헨젤과 그레텔의 표식 끝에는...
          * 우주공간에 고요히 떠있던 해방군의 우주요새가 형를 바꾼다. 그와함께 원상은 악의에 찬 미소를 짓는다.
  • 의천도룡기(영화) . . . . 5회 일치
         주요 무공은 구양신공, 건곤대나이. 그리고 극권. 원작에서 마냥 착하기만 한 장무기와는 달리 다소 뻔뻔스럽고 악랄한 느낌이 있다. 사실상 '''성격이 거의 정 반대'''라고 봐도 좋다.
         무당산을 공격했을 때 장무기와 대결, 일단 형식상으로는 이 영화의 최종보스 격. 조민은 장무기에게 3가지 조건으로서 구양신공과 건곤대나이를 쓰지 못하게 하여, 장무기는 장삼봉에게 즉석에서 극권을 전수받으면서 싸우게 된다. 싸우면서 장삼봉의 시범을 보면서 즉석에서 극권을 마스터하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장삼봉) "네 이름이 뭐냐?" (장무기) "모르겠습니다!" (장삼봉) "됐다" 이러는 대사가 나온다.
          * 원작에서는 장무기가 멸절사와의 대결에서 공격을 무방비로 맞아주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장무기가 멸절사를 욕하면서 뺨을 미친듯이 때린다.
  • 이동흡 . . . . 5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의 [[고성 이씨|고성]](固城) 집안에서 [[1951년]] [[1월 27일]] 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여 5기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마친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종교는 [[불교]]이다.<ref>허신열,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701495&sid=E&tid=1 박근혜 인사에 불교계 민감반응], 내일신문</ref>
         * [[낙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아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임신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면서 위헌으로 판단했으나 위헌 정족수인 6명이 미치지 못하는 4명만이 동의하여 합헌 결정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6522]</ref>
         [[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고성 이씨]]
  • 이석훈 . . . . 5회 일치
         5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6집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안티들의 말을 듣고 연습을 했는지 고음역대가 상당히 깔끔해졌다.[* 사실 5집의 이석훈 파트를 2주만에 녹음하는 바람에 성대결절이 걸렸었다. 최상의 목상로 데뷔를 한 건 아닌 셈.]
         || [[2011년]] [[12월 17일]] || 정훈희·김화 편 || 바보처럼 살았군요 (원곡자: 김화) || 7번 || 1승, '''우승''' ||
         || [[2016년]] [[9월 9일]] || 6번 || 나와 같다면 (원곡자: ~~[[김장훈]]~~박상[*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은 98년도에 불려진 리메이크판이다. 1995년에 가수 박상가 이미 앨범에 넣었는데 히트하지 못했고 이후 김장훈이 불러 히트한 것.]) || 1승, 432점[br]'''우승''' ||
  • 이성계 . . . . 5회 일치
          '''조 이성계'''→[[정종]] 이방과
         --[[왕건]]과 함께 한국에서 조라고 말하면 보통 떠올려지는 사람.--
         그러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전처 소생의 아들들을 외면하고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고 하여 그들의 불만을 사서, 결국 그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이방원(후의 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방번, 정도전 등을 참살하고 이성계를 상왕으로 만들어 실권을 탈취한다.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옛 근거지인 함경도 지역에서 조사의 등과 결탁해 군대를 거병하고 종을 공격하였으나(조사의의 난) 종의 친정군에 패배한다. 그 후에는 완전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사냥 등으로 소일하다 서거.
  • 이윤열 . . . . 5회 일치
         * 2004년 당신은 골프왕 MSL 2004 준우승 (2:4 [[박민 (프로게이머)|박민]])
         * 2006년 신한은행 마스터즈 우승 (4강전 3:1 [[변형]], 결승전 3:1 [[마재윤]])
         * 2008년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 8강 (0:3 [[윤용]])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KT 롤스터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Old Generations의 선수]][[분류:SK 게이밍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골든마우스 수상자]][[분류:MSL 우승자]][[분류:MSL 금배지 수상자]][[분류:로열로더]][[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구미시 출신]][[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이중환(법조인) . . . . 5회 일치
         탄핵 심판 중반 이후 상황이 박근혜에게 많이 불리해지자 대리인단의 몇몇 변호사들이 변론의 기본을 무시한 채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헌재를 모욕하고 협박하는 등, 대리인단 간에 의견 통일이 전혀 안되고 변호사들끼리 각자 변론을 하는 수준으로 팀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대리인단을 추스려야 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90067|"벼룩 10마리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만큼 힘들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법조인들은 대리인단의 팀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 대리인단이 무료로 변론을 한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돈을 받고 변론을 했다면 일단 의뢰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자신의 신념이나 기분을 앞세워서 마구잡이로 변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고 심지어 구속까지 당한 후에도 제대로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고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의 몰락은 결국 제대로 댓가를 제공하지 않고 누군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도와줄거라고 믿는 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박근혜의 성격에 대해서는 박근혜 저격수 [[전여옥]]이 지적한 바가 있다.]
         ||<#5c6bc0><-2> [[최순실|{{{#white __최순실__}}}]] {{{#white 측근 / 변호인}}} ||<-3> ^^故^^[[최민]] · ^^故^^[[임선이]] · [[최순득]] · __[[정윤회]]__ · __[[정유라]]__ · __[[장시호]]__ [br] ''[[최재석]]'' · ^^故^^''[[조순제]]'' · __''[[고영]]''__ · __[[차은택]]__ · [[윤영식]] / [[이경재(법조인)|이경재]] ||
         ||<#ddd><-2> 정치인 || __[[이완영]]__ · [[이정현(정치인)|이정현]] · [[김진(정치인)|김진]] · [[이만희(정치인)|이만희]] ||<#ddd> 기타 || ^^故^^[[이상달]] · ''[[김해호]]'' · ''[[조한규]]'' · [[정규재]] [br] [[최순천]] · [[정우식(배우)|정우식]] · [[신주평]][br][[조의연]] · [[정원(승려)|정원]] · [[이영복]] · [[린다김]] ||
  • 이창동 . . . . 5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아름다운 청년 전일]]》(1995년) 각본
         ;《아름다운 전일》
         * 2010년 제4회 아시아평양 스크린어워즈 감독상
         [[분류:195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 이호재(연극배우) . . . . 5회 일치
         [[한국]]의 [[배우]]로, [[1941년]] [[5월 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63년]]에 [[연극]]으로 데뷔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예술원 연극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 1994년 《[[백산맥(영화)|백산맥]]》... 전 원장 역
          * 2008년 《어린왕자》 ... 한정
          * 2018년 KBS2 《[[인형의 집(드라마)|인형의 집]]》 ... 은기
  • 인교진 . . . . 5회 일치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인 인치완<ref>[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152260&year=2013 인교진 아버지, 연 매출 200억 원대 CEO…‘반전 집안’ 눈길↑], 매일경제 2013년 2월 28일자</ref>의 2남 중 첫째로 어났다.
         2000년 [[문화방송|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재동 역을 맡아 연기생활을 시작한 인교진은 2012년 4월 22일 종영된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극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을 통해 인연을 맺고 연인으로 발전, [[서우]]와 함께 공개 연애를 선언했으나, 2013년 5월 결별하였다. 이후 2014년 4월, 인교진은 12년 간 같은 기획사에서 만나 동료 연기자로 친분을 맺어 온 [[박수진 (1987년)]]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동년 10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008217748&cp=nv 인교진-박수진 결혼 공식입장 “지난달 초 결혼 프로포즈… 10월 결혼”], [[국민일보]] 2014년 4월 9일자</ref> 그리고 임신 소식이 전해져 명을 기쁨이로 지었다. 2015년 12월 4일에는 딸이 어나 그의 딸을 박하은으로 지어 가족으로 발전되기 시작되었다.
         * 2005년 [[서울방송|SBS]] 주말극장 《[[그 여름의 풍]]》
         [[분류:1980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교동 인씨]][[분류:키이스트 소속]]
  • 인천광역시/인물 . . . . 5회 일치
         * [[김윤(농구선수)|김윤]] - 부평구
         * [[이환]] - 연수구
         * [[최욱]] - 남동구
         * [[최웅]] - 미추홀구
  • 임혁주 . . . . 5회 일치
         * 1983년 [[한국방송공사|KBS]] - 《[[개국 (드라마)|개국]]》 - [[조선 종|조선 종 이방원]] 역
         * 2000년 [[한국방송공사|KBS]] -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 - [[박영규 (후백제)|박영규]] 역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5년 데뷔]]
  • 장호 (1920년) . . . . 5회 일치
         당시 [[경성부]]였던 현재 [[서울 마포구]]에서 어났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장남으로 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공산주의|공산주의사상]]을 공부하면서 [[1935년]]에 집을 나왔다. 이때부터 토목 노동자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제 강점기]]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
         10년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5년]]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직후에 [[평양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군정기]]가 시작되자 미군정을 반대하여 곧바로 [[삼팔선]] 이북으로 월북했다. 특수 교육받고 [[강원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남조선로동당]]이 불법화하자 입산하여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평양]]에 정착하고 《[[로동신문]]》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장=양이 있어 신념의 별은 빛난다 (장호)}}
         [[분류:192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언론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일수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1차 지명 ([[평양 돌핀스]])
         * [[평양 돌핀스]] (1991년 ~ 1992년)
         '''전일수'''(全日洙, [[1968년]] [[7월 2일]] ~ )은 전 [[KBO 리그]] [[평양 돌핀스]], [[LG 트윈스]]의 투수였다. 현재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심판이다.
         [[분류:196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평양 돌핀스 선수]][[분류:경성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전태규 . . . . 5회 일치
         | 이름 = 전
         | 설명 = 질레트 스타리그 8강 투어에서의 전
         '''전규'''([[1984년]] [[2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프로게임단 코치이다. ZeuS라는 아이디를 사용하였으며, 종족은 [[프로토스]]이다. 별명은 '''세리머니 토스''', '''[[안문숙]] 토스'''로 알려져있다.
         * [http://www.progamer.or.kr/teams/player1.kea?m_code=team_24&pCode=162&pGame=1 전규 KeSPA 프로필]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5회 일치
          * 효부 쿄스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기 시로는 여전히 세뇌된 상.
          * 효부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공격을 받아내는데 그런 도가 마기의 마음 속의 허점이었다.
          * 마기는 여전히 세뇌된 상. 모미지와 요우를 공격한다.
          * 효부는 도와주러 온 두 사람을 꾸짖으며 어서 돌아가라고 하는데, 마기는 바로 그런 도가 잘못된 거라고 지적한다.
          * 그 날은 바로 아카시 카오루가 어난 날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5회 일치
          그는 카오루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이 지금 형가 된 것까지 포함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카오루는 그가 소년 "쿄스케"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현재 효부는 여전히 혼수상지만 파티의 도움으로 입자를 조종해 작은 분신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입자는 소맥분. 파티가 상당히 특훈을 시켜줘서 선내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돌아다닐 수 있다. 소년의 모습인 건 체형이 작은 쪽이 컨트롤이 편해서. 나름대로 잘 터득했다는 자부심인지 자신을 다빈치 같은 천재라도 창피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티는 어쨌든 효부의 쇼타 모드를 볼 수 있어서 대만족 상.
          * 카가리는 어쨌든 일본에서도 에스퍼에 대한 차별과 이지메가 시작되었다며 뭔가 손을 써야 한다고 건의한다. 효부는 친구가 걱정되는 거냐고 묻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나이 치사토]]와 [[토오노 마사루]]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텔레파시스트인 하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토오노는 그런 그녀를 지키겠다고 무모한 짓을 할 수도 있다. 꽤 진지한 걱정이지만 파티는 둘이 모에로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흥분해서 카즈라의 클을 당한다.
          효부는 현재 길리엄이 득의양양해서 아무런 불만도 없는 상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음 효부와 충돌할 때까지 [[츠보미 후지코]]나 [[마기 시로]]를 온존해놓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쪽이 헛점을 드러낸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장을 내려 할 것이다. 효부는 이미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하려다, 미나모토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을 바꾼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5회 일치
          * [[츠쿠시 미오]]가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를 데리고 [[미나모토 코이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단이탈, 그 미오 일행을 쫓아 [[히노 카가리]], [[타마키 카즈라]], [[파티 크루]]도 이탈.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더 칠드런 일행까지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효부 쿄스케]]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념체 형로 겨우 운신만 하던 효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본체의 인공심폐가 일시 정지한다. 상황을 보고한 것은 [[쿠구츠 타카시]]. [[우츠미 세이시로]]는 효부의 상에 악영향이 갈 줄 알고 전달을 반대했지만 쿠구츠는 "어떻게 그러겠냐"며 강행한다.
          효부의 상가 나빠진 것도 잠시, 그는 곧 일행의 상황을 점검한다. 현장에 도착한 더 칠드런이 구조활동을 시작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인근에 [[카노 모미지]] 일행도 대기하고 있다.
          * 파티는 겉 보기엔 멀쩡하지만 카가리의 발화 능력으로 인해 능력을 엄청나게 소모한 상. 카즈라는 모든 면에서 양호했지만 카가리는 아직도 가랑이의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리타이어 상다. 일행 중에선 [[마츠카제 코우이치]]만 그 심정을 이해한다. 마츠카제는 원래 목적이었던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에 대해서도 확인하면서 이 시설의 모든 전말을 전달받는다.
  • 정종 . . . . 5회 일치
         조 [[이성계]]→'''정종 이방과'''→종 [[이방원]]
         정종은 조선의 2대 왕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쥔 정안군 이방원(후의 종)의 의도에 의해 '[[징검다리]]'처럼 추대된 왕이어서 대중적으로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이미지가 희박한 편이다. 부친 이성계에게도 신임을 얻은 등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괜찮은 구석도 있지만, 정치 역학적인 이유로 존재 자체가 묻혀버렸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정종이라는 시호를 얻게 된다.
         그나마 왕후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기에(후궁에게는 많은 자식을 보았다) 종도 정치적인 이유로 견제해야 할 직계 혈통이 없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후궁 소생이라고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 후궁 제도는 혈통 단절을 막는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왕의 성욕 처리에만 동원되는 제도로 전락한다. 정종이 자기 자식에게 계승을 못한 것은 워낙 세력이 밀렸기 때문이지 서자만 있어서 계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만큼 종의 세력 기반이 탄탄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 정종원 . . . . 5회 일치
         정종원은 이병철마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정계 관계에 인맥이 두터웠다. 게다가 지역 갑부의 자식으로 어나 자수성가한 이병철과 달리 정종원은 일제 강점기 내내 최고층 재벌2세로 성장한 초상류층이었다. 정종원행장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총 79명)으로 참여, 언론계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ref>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전민족세력의 집결 동아일보 발기인</ref>
         정종원 행장이 5.16쿠데타 직전 은행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박정희 정부는 은행을 정부 경제성장전략의 들러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심사권을 통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 은행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은 철저히 통제됐고, 사실상 제대로 된 경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ref>경향신문 1965년 3월 11일 시은경영세 대전환 필요</ref><ref>매일경제 1970년 11월 3일 3면 금융은 정상화될까</ref><ref>매일경제 1979년 5월 1일 1면 관치에 밀리는 자율화</ref>
         한편 [[박정희]] 정권은 새롭게 지방은행들을 설립하면서 [[이수그룹]] 창업주인 [[김준성]]에게 [[대구은행]]을 맡겼다.<ref>동아일보 1969년 12월 19일 3면 김준성 지방은행 붐을 선도</ref> 현 대구은행은 조흥은행의 모를 이룬 [[정재학]]의 대구은행과는 무관하다. 이름만 되풀이 썼을 뿐이다.
         법시사는 1960년 10월 정종원 전 조흥은행장에 의해 발족됐다. 법시사는 '법시(法施)'를 사보형식으로 1967년 8월까지 29호까지 계간지 형로 펴냈다. 1967년 법시는 잡지윤리강령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보처에 등록한 뒤 사보에서 잡지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정식 등록한 잡지 '법시' 1호는 1967년 9월 발간됐다.
         [[분류:1896년 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니혼 대학 동문]]
  • 정진호(1956) . . . . 5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83~1986) [br] [[청보 핀토스]]-[[평양 돌핀스]](1987~1990) ||
         || '''지도자''' || [[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1~1995) [br] [[현대 유니콘스]] 1군 수석코치 (1996~2006)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7~2009) [br] [[연세대학교]] 감독 (2011~2012) ||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 평양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현대 유니콘스]] 수석코치를 맡았다. [[김재박]] 현대 감독이 LG로 부임하면서 오랜 기간 현대의 수석코치를 맡았던 정진호도 현대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김재박을 따라 [[LG 트윈스]]로 갔다. LG에서도 수석코치로 있다가 2009년 말 김재박을 이어 [[박종훈(1959)|박종훈]]이 신임 감독이 되면서 정진호도 LG에서 나왔다. 2010년 7월, [[이광은]]을 이어 연세대 야구부 감독이 되었다.
         || 1988 ||<|3> [[평양 돌핀스]] || 57 || 145 || .255 || 37 || 7 || 0 || 0 || 9 || 14 || 4 ||
  • 진격의 거인/97화 . . . . 5회 일치
          * 오늘 임무는 진작부터 실패했던게 분명하다. 반성할 시간은 없다.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애니가 먼저 택한 방법은 드라마였다. 그녀는 여인숙에서 어난 소녀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건 단 하룻밤 뿐.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해줬고 그래서 한 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그 이야기는 목 베는 케니도 감동시킬 만한 했다. 케니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허그가 필요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애니는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확신하냐고 물었다. 케니의 대답은 "할 수 있다"였다. 그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농담이었으니까. 이제 확실히 포기할 시점이다. 죽이지 않고 상황을 모면하는 걸.
          하지만 신뢰를 얻는건 손해가 아니다, 그것도 몇 번이나 말한 변명. 라이너는 오히려 화살을 애니에게 돌렸다. 너무 고립된 도를 보이는 애니야 말로 문제가 있다고. 애니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파르코에겐, 수용구 안의 엘디아인은 해본 적이 없는 발상이었다. 파르코는 뭔가 깨달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가비를 구해야 하니까. 그래도 그 녀석이 전사가 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파르코는 어쩐지 그런 생각을 병사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놨다. 병사는 그 까닭을 물었지만 파르코의 도를 보고 금방 정답을 알 수 있었다. 그 우수한 아이는 여자애라는 것. 그리고 파르코는 아마도...
          마가트는 곧바로 응접실로 호출됐다. 응접실 바깥 복도는 병사들이 진치고 있었다. 낯선 군복. 마레의 병사가 아니다. 타이버 가의 근위병들. 부관이 그 사실을 귀띔해줬다. 응접실 안에서 맞이하는 것도 타이버의 근위병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병사가 문을 열어줬다. 마치 남의 집에 온 기분이다. 그 다음 마가트를 호출한 사람이 나타났다. 타이버가의 현당주 [[빌리 타이버]]였다. 장발을 뒤로 쓸어넘긴 젊은 남자였다. 그는 갑작스런 방문에 양해를 구하며 악수를 청했다. 마카트는 공손한 도로 관등성명을 댔다. 빌리의 도는 격의가 없는데다 이 방문만큼이나 난데없었다.
  • 창작:좀비도시 . . . . 5회 일치
          * 시정부 : 현재 다른 도시로 대피한 상. 이재민 대표 격이 되었다.
          * 절망형 : 이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남아 있다. 사의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이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광신자 : 이들은 어떤 종교적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공통적으로 좀비 사가 이 세계에 주어진 어떤 '계기'라고 믿고 있으며, 좀비도시에 들어감으로서 어떤 계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어떤 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한 자들이다.
          * 좀비가 발생했지만, 특정 도시나 지역에 머물고 외부에는 파급되지 않은 상.
  • 창작:좀비탈출/0 . . . . 5회 일치
         아마도 마지막이 될,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남긴다. 여기는 우리집이다. 우리집은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단독주택이다. '''그 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마침 방학이라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출장을 떠난 상였으며,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그게 어떤 부분을 자극한 건지, 어머니는 결연한 도로 혼자 사는 외할머니를 데려오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났다.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을 무렵 두 사람이 있는, 그렇게 추정하는 지역이 '''위험구역'''으로 선포되는 뉴스를 봤다. 정부는 이 일대를 통제할 것이고 더이상의 '''사 확산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은 착실하게 진군해서 그날 저녁 때쯤부터 우리 동네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커튼도 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주로 체리필터였고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끄지 않았다. 나는 조명도 끈 상에서 혼자 지냈다. 공복과 수면의 사이클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가 열어줘야 했을 사람들이 아니었기만을 빈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5회 일치
         그 소음은 노크처럼 이어졌다. 현관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비몽사몽한 상에서도 집중했다. '''쿵 쿵……'''
         이런 관찰의 결과 나름 생란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양빛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놈들은 '''낮보단 밤'''에 수가 더 많고 움직임도 활발했다.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저놈들이 저 썩어가는 살갗으로 햇볕의 따가움을 느끼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흐물흐물해진 눈알로 양빛을 인식할 수 있는 걸까?
         그런 호기심은 다른 일기상에 대한 관찰욕구도 자극했다. 가령 눈이나 비같은 것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날씨가 춥거나 더워지는게 영향을 줄지. 하지만 그런걸 관찰할 수 있을 정도면 계절이 바뀌도록 구조되지 못한다는 얘기니까 우울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 최덕희 . . . . 5회 일치
         * [[권왕 강풍]] ([[KBS]]) - '''사녀'''
         * [[양의 기사 피코]] ([[KBS]]) - '''피코'''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데뷔]]
  • 최성원(가수) . . . . 5회 일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73학번으로 입학했을 때부터 이상훈, 이승희, [[김현식]][* 최성원보다 나이가 네살 정도 어렸지만 일찍부터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정광]] 등과 몰려다니며 음주가무를 즐기고 날라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다닌 곳은 명동의 르 시랑스, 내시빌, 오비스 캐빈이었다. 대학교 1학년때 양병집의 음반작업에 통기타 반주로 참여했고 이때부터 프로 세션맨으로 활약했다. 뚝섬스튜디오에서 [[조동진]]의 후임으로 월급 세션맨을 했고, [[이장희(가수)|이장희]]가 DJ를 맡고 있던 '0시의 다이얼'에 반년 정도 고정출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86년 [[너랑 나랑|들국화 2집]]을 발매하였으나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래도 최성원이 만든 노래인 '[[제발]]'은 히트했으며 '[[내가 찾는 아이]]'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등은 2집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1집의 카리스마에 비하면 2집은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최구희와 손진의 영입으로 들국화가 완전한 록밴드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많은 팬들과는 달리 오히려 더욱 말랑말랑해진, 포크와 팝 정도의 사운드 후하게 쳐줘도 포크록에 그치는 사운드가 나와 실망한 팬들이 꽤 많았다.] 결국 밴드내 불화[* 전인권과 최성원이 하루도 싸우지 않을 날이 없었다고 한다.] 등으로 들국화는 1987년 해체하고 만다.
         이후 들국화는 [[전인권]]의 주도로 1995년 재결성되었지만, 당시 최성원은 합류하지 않았고 밴드의 평가도 좋지 않았다. 이후 2012년 최성원도 합류하여 다시 한번 재결성하였으나, 2013년 드러머 주찬권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다시 해체상에 이르렀다. 이후 2013년 12월에 신보+리메이크 형식의 4집 '들국화'를 발매했다.
         1988년 솔로 1집을 발표했는데, 불리는 [[https://youtu.be/4vQSwav-OSs|'제주도의 푸른밤']]이 1번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 '떠나요 둘이서~'로 가사가 시작하며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서 단골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그 노래이다. 아직도 [[연]], [[성시경]] 등의 후배들이 리메이크하는 곡이다.
         1990년 '어린 왕자'[* 1985년 우리노래전시회에서 강인원이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솔직할 수 있도록' 등이 수록된 2집을 발매하였다. 사실 이 음반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명곡들이 상당히 많다. 도입부의 나레이션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어린왕자'와 낙관적인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솔직할 수 있도록'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들국화 초기 시절의 추억을 담은 '생각이 나는지', ccm풍이 물씬 풍기는 '행복의 열쇠'와 최성원 특유의 음색과 곡의 멜로디가 잘 어울려져 있으며 손진의 기타솔로가 인상적인 '네 눈 앞에만' 등 수록된 모든 곡들이 명곡이다
  • 최재환(배우) . . . . 5회 일치
         || [[2005년]] || [[MBC]] || [[베스트극장]] - 릉선수촌 || || ||
         || [[아이 엠 샘(드라마)|아이 엠 샘]] || 한상 || ||
         || [[2012년]] || [[TV조선]] || [[한반도(드라마)|한반도]] || 박광 || ||
         ||<|3> [[2015년]] || [[tvN]] || [[호구의 사랑]] || 김희 || ||
         || [[KBS2]] || [[다 잘될 거야]] || 오영 || ||
  • 츠츠모타세 . . . . 5회 일치
         과거에는 [[간통]]이 범죄였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합의]]를 요구하는 형였으나, 간통이 비범죄화 된 이후로는 [[위자료]]를 요구하거나 [[협박]]에 가까운 형가 되었다. 범죄 행위가 드러나는 경우는 [[공갈]], [[사기]]로서 처벌받게 된다. 하지만 공모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피임]]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지고, [[임신]]이나 [[낙]]를 명분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 [[호텔]]을 지정하거나, 약속장소에서 자신의 차에 우는 경우
          [[성병]]이나 [[임신]]의 위험을 생각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과 피임 없이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임 없는 성행위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는, [[임신]]과 [[낙]]를 명분으로 위자료를 청구해오는 유형일 가능성이 있다.
  • 콩고(소설) . . . . 5회 일치
         배경은 1970년대, 장래 레이저 산업 분야나 반도체 분야에서 유망한 용도가 전망되는 블루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서, 미국의 지구자원개발연구소는 콩고의 정글로 탐사대의 파견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달한 상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기습당해 전멸된다. 단서라곤 연결되어 있던 영상 통신에 잠깐 잡힌 이상한 고릴라의 모습 뿐.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였다.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반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정체는 상당히 충격적인데, 작중에서 고대에 살았던 진즈 주민들과 기존 고릴라와의 '성관계'로 어난 '인간과 고릴라의 [[혼종]]'으로 추측된다. 원주민 여성과 고릴라가 성관계를 하는 부조물 등에서 추측되는 결과.
  • 태보 . . . . 5회 일치
         1980년대에 [[빌리 블랭크스]]가 창안한 무술 겸 트레이닝 프로그램. 이름은 권도('''tae''' kwon do)와 복싱('''bo'''xing)에서 따온 것이다.
         [[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활용하여, [[춤]]과 [[에어로빅]]으로서 활동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다.
         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사용하여, 에어로빅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듯이 움직이고 동작을 반복하여 트레이닝을 한다. 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쓰기 때문에 운동만이 아니라 [[호신술]]로도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동작만 연습하는 것이고 실제 대련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무술로서의 성격은 희박하다.--대신 빌딩은 파괴할 수 있다.--
         2011년 5월에 있었던 [[테크노마트]] 진동사건의 원인(…). 공교롭게도 12층 체육관에서 하던 보 레슨의 [[고유진동수]]가 빌딩과 일치하여 건물을 뒤흔들고 수백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일으켰다.[[http://www.afpbb.com/articles/-/2814345?pid=7523220 (참조)]]
  • 토리코/384화 . . . . 5회 일치
          * 아카시아는 풀로제가 GOD를 조리할 당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상였다고 폭로한다. 죠아는 그 아이가 요수의 힘으로 성장한 것
          * 그 말을 들은 아카시아는 "내 아이는 결국 어나지 않았던 건가"라며 실망하는 듯한 말을 하는데
          * 바로 도를 바꿔서 "그런건 알바 아니다"라고 인간말종스런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 미도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풀코스를 거의 완식한 상라 그런지 진화한 아카시아와 거의 대등한 상. 엠페러 링이 증거다.
  • 토리코/387화 . . . . 5회 일치
          * 그들은 500년 전 어난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식이었다.
          * 플로제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 반째로 적출해 백채널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 그동안 토리코는 거의 아무런 양분도 취하지 않고 스타준에게 양보했고 스타준이 먼저 어날 수 있었다.
          * 아카시아의 예처럼 GOD를 먹고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분리되고 그 상에서 센터를 먹고 거듭나는 과정을 거친다.
          * 센터는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내면에 있는 상에서는 먹을 수 없는 식재로 보이는데, 문제는 토리코 내면엔 청귀와 제 3의 악마가 아직 있다는 것.
  • 토리코/390화 . . . . 5회 일치
          * 마침내 지구의 붕괴가 시작되고 아카시아는 최종형가 되어 토리코와 싸운다.
          * 분명 페어가 분노의 힘을 일깨웠을 텐데, 그는 아주 고요하고 연한 모습이다.
          * 그 말을 들은 아카시아는 완전한 최종형로 변하며 "그건 신에 가까운 쪽"이라고 답한다.
          * 마치 불완전한 상의 네오를 연상시키는 덩어리. 거대할 뿐만 아니라 내부가 미궁과 같은 구조다.
         미도라는 이번 화에서 남은 오른손까지 먹히면서 양손이 모두 먹힌 상.
  • 토탈워: 쇼군 2 . . . . 5회 일치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사기이다. 사기는 공격을 받거나, 아군이 패주하거나, 장군이 전사하면 감소한다. 사기가 0이 된 부대는 통제 불능 상가 되어 전장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그걸 본 아군 부대는 또 사기가 떨어진다.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다보면 더이상 싸울 부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 성문: 나무로 된 성문. 말 그대로 문이다. 성벽과 같이 보병 부대를 배치할 수 있다. 본래 방어측 부대에게만 문을 열어주지만 파괴되거나 공격측이 점령하면 상시 개방 상가 된다. 만약 파괴되면 배치되었던 병사들 모두가 튕겨져나가 죽는다.
         성을 성공적으로 점령한다면 평화롭게 점령할 것인지, 약탈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약탈할 경우 그냥 점령하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해당 지방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고 민심이 악화되며 다이묘의 명예가 추락한다. 본래 그 지방을 본거지로 했던 가문이 멸망한 상라면 다시 재건시켜 봉신으로 삼을 수도 있다.
          전투에 약간의 고어 효과를 추가해 타격감을 늘린다. 고어라고 해봤자 피 철철 나오거나 목이 날아가거나 카메라에 피가 튀는 정도. 이 DLC는 사무라이의 동과 사무라이의 몰락에도 적용된다.
          [[겐페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캠페인 "사무라이의 동"을 플레이 할 수 있게 해준다. 가문이고 유닛이고 죄다 다르고 같은건 지도 뿐이니 준 확장팩 아닐까 싶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5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와 [[엘자 스칼렛]] 일행을 운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유인한다.
          * 크리스티나의 조종을 담당하는 [[히비키 레이티스]], [[이브 티름]], [[렌 아카츠키]], [[제니 리아라이트]]. 이브는 아크놀로기아를 계속 유인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렌은 츤데레 성향이 이상하게 발현해서 "딱히 따라오길 바라는건 아니다"라고 작전으 근본부터 뒤흔드는 헛소릴 한다. 제니도 상가 이상해서 아크놀로기아를 상대로 미인계를 감행하려 하다 히비키의 제지를 받는다.
          * 그러나 아크놀로기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간의 틈새를 지나쳐 크리스티나호를 덮친다. 회피기동 때문에 속도가 떨어진 크리스티나호는 간단하게 아크놀로기아에게 잡힌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안나다. 그녀는 이럴리가 없다며 시간의 틈새를 조작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상로 되돌린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 나츠는 제레프의 마법에 휘감겨서 옴짝달삭도 못하는 상. 제레프는 "너로는 날 못 막는다"고 자신있게 단언한다. 그때 누군가가 길드로 들어서며 반박한다.
          * 하지만 여기서 초대에게 맡길 나츠가 아니었다. 그는 혼신을 다한 불꽃으로 제레프의 마법을 워버린다.
  • 피수영 . . . . 5회 일치
         피수영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영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아버지 [[피천득]](皮千得)과 어머니 임진호(林珍鎬) 사이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어났다.
         [[분류:1943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순천향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울산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하이큐/231화 . . . . 5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대회 직전 마지막으로 상를 체크하는데...
          * 개막식을 앞두고 선수들이 대기실에 모여든다. 카라스노 고교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네코마 고교의 쿠로오 테츠로는 서로 긴장했냐고 디스하며 압박감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쿠로오가 "너네 10번(히나타 쇼요) 미아같은 상인데 괜찮냐"고 하는데 정말로 상가 좋지 않다. 완전 길잃은 고양이 모드. 위축돼서 서성거리다 다른 선수에게 부딪혀서 비틀거린다.
          * 한편 체육관까지 전철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전철이 멈춘다. 카라스노는 잠깐이지만 패닉 상에 빠질 뻔하지만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사전이 대체 이동수단을 확인해 놨고 재반시설을 달달 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드디어 전철에 타는데, 히나타는 왠지 전철에 타서 우쭐대고 있다. 츠키시마는 고작 전철 탄 정도로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클 건다.
  • 헤소린 가스 . . . . 5회 일치
         여러가지 재난에 시달리는 진구를 위해서 도라에몽이 헤소린 스탠드를 꺼내서 헤소린 가스를 주입해준다. 진구는 기분 좋은 상가 되어 혼나거나 넘어져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맞거나, 개에게 물리거나 차에 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 효과가 떨어지자 진구는 다시 헤소린 스탠드를 사용한다.
         그 결과, 동네 아이들 전체가 헤소린 가스에 중독되어 상황이 상당히 심각해지는데, 서로 방망이로 때리면서 놀거나, 지갑을 훔쳐서 가스를 살 돈을 조달하려 하거나, 가스의 효력으로 아픔이 마비된 탓에 "신칸센 히카리 호에 치여도 괜찮아!" "도쿄 타워에서 점프해도 괜찮아!"라고 호언장담하거나, 여자아이가 가스를 주입받느라 [[팬티]]를 다 보여도 연하게 구는 등(…) 도덕심까지 완전히 마비된 모습을 보인다.
         진구와 도라에몽은 어른들을 불러와서 사를 해결하려 한다.[* 퉁퉁이 어머니, 비실이 어머니, 선생님. 보통 어른들이 나서면 대체로 해결 구도로 흘러가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무서움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에 매달려서 의존을 버리지 못한다. 가스가 다 떨어진 뒤 도라에몽이 일부러 역효과(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상)를 내는 가스를 주입해줘서 겨우 헤소린 가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남용되어, 제2차 각성제 남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남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남은 히로뽕이 남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홍순언 (1530년) . . . . 5회 일치
         [[종계변무]]란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백여 년간 명(明)나라의 《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잘못 기록된 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하였던 사건이다. 조때부터 시정을 위해 사신을 15회나 파견하였지만 전부 거절당하였다. 지속적으로 거부당하자 조선 14대임금인 선조는 “종계변무를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목을 쳐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역관들은 겁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홍순언의 일화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장백전]]》의 모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정재숭]]과 [[박지원]], [[이익]]의 저서를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일화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였다.
  • 황병일(1960) . . . . 5회 일치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허용타자~~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균(1982)|김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kt wiz/2군|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가, 4월 15일 자 코칭스프 개편으로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황병일이 타격도 겸임하면서 [[이숭용]]이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5회 일치
         ||<:> [[장동건]] [br] ([[극기 휘날리며]]) ||<:> {{{+1 → }}} ||<:> '''황정민[br]([[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 {{{+1 → }}} ||<:> [[안성기]], [[박중훈]][* 둘 다 2회차.][br]([[라디오 스타(영화)|라디오 스타]]) ||
         >'''솔직히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나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 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저한테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2005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소감 中. 흔히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문은 저게 맞다. 그 때 후보가 '''[[박해일]](연애의 목적)''', '''[[류승범]](주먹이 운다)''', '''[[이병헌]](달콤한 인생)''', '''[[조승우]](말아톤)''']
          *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 촬영 당시에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이 천만을 넘겨서 축하파티로 《히말라야》 스프들과 배우들에게 회식을 쐈다고 한다.[* 현장토크쇼 TAXI 인터뷰와 해피투게더에서 언급이 되었다.] 영월에 있는 제일 비싼 고기집에서 파티를 했다는데 무려 12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고 한다.[* 여담으로, 회식 초대할 때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믿은-- [[김원해]] 는 가족들 모두 데리고 참석했지만 정작 가족들까지 참석한 건 자기뿐이었다고...]
         ||<:>2014||<:>[[남자가 사랑할 때(영화)|남자가 사랑할 때]]||한일||주연||197만명||성공||
         ||<:>2002||<:>[[YMCA 야구단]]||류광||조연|| || ||
  • 후카다 쿄코 . . . . 5회 일치
         {{다른사람:[[정리|일본배우]]}}
         배우자를모르는상에서 아기를출산했다 딸 [[김남주]]가어났다
         *[[정리|리정]] : 후카다 쿄코 의여자형제자매
  • K리그 클래식 . . . . 4회 일치
         2012시즌은 클래식 시즌은 아니지만 승강제를 도입할 준비를 위해 스플릿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16개 팀 중에서 하위 2개팀이 강등되는 형로 구성되었다. 즉, 2부리그 구성을 위해 승격은 없고 강등만 있던 시즌.
         2013시즌은 2012시즌의 결과로 상주와 광주가 강등된 상에서 14개 팀으로 운영하였다.
         "(클래식12개팀 - 자기자신) * 3"이라는 형로 홈 앤 어웨이를 치루며, 정규라운드동안 상대팀을 세번씩 만나게 되는 구조다.
         정규 라운드에서 획득한 점수는 그대로 이양되고 "자신의 팀이 속한 스플릿의 경쟁자와 한번씩 대결"을 통해 상위 스플릿에선 우승과 차기 ACL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며, 하위 스플릿에서는 강등팀(꼴찌)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팀(꼴찌에서 [[홍진호|2등]])을 정하게 된다.[* 처음 도입되었던 2012시즌에서 [[신용]] 감독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면 정규시즌의 기록이 다 사라지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얻은 기록만을 비교하여 우승팀을 가린다고 착각했던 것. 덕택에 [[샤다라빠]]가 신명나게 까댔다.]
  • 고아성 . . . . 4회 일치
         * 곽훈 부반장의 Limited Edition '홍대입구' (참여)
         | 제4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에이판 스타 어워즈]]
         | 제6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공명(배우) . . . . 4회 일치
         || 2015년 ||<|2> MBC || [[화정]] || 조연 || 자경[* 같은 그룹 멤버인 [[서강준]], [[이환]]도 함께 출연했다.] ||
         || 2015년~2016년 || [[아름다운 당신(MBC)|아름다운 당신]] || 조연 || 차우 ||
         || 2013년 || [[KBS2]] || [[출발 드림팀]]2 (같은 그룹 배우 [[이환]], [[강오]]와 함께 출연.) || 215회 ||
  • 권희동 . . . . 4회 일치
         || '''응원가''' || ~~[[미션 임파서블]] 주제곡~~ [* 본인이 타격에 집중이 안된다고 응원가 변경을 요청했었으나 팬덤의 반응이 워낙 좋았던지(...) 다시 부활했다.][* 동~동 동동 N~C 희동 동~동 동동 N~C 희동 권희동~권희동~안타!x2][*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저작권 문제]] 때문에 2017년 들어서 쓰지 않는다.] [br] ~~[[체리필터]]-Show Time~~[* 응원가 변경을 요청했을 때 당시의 바뀐 응원가. 가사는 이봐 친구 날 위해 싸워주리~ 권희동 안타~권희동 안타~화끈하게 다 날려버려~x2. 이 응원가는 만들고 조금 후에 바로 사라진 탓에 이 응원가를 모르고 응원가가 없어진 줄 알았다는 사람도 많다.] [br] [[Colonel Bogey March]][* NC! 권희동 날려라! NC 권희동 날려라! NC! 권희동 안타! 오오오오오오오오오][* 2017년 6월부터 사용, 잘 알다시피 [[에릭 테임즈|테임즈]] 응원가 재탕이다...] ||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2차전에서 신재웅을 상대로 시즌 4호 홈런을 때려냈다. 그런데 스코어는 9:3으로 한참 뒤쳐져 있었고 엔씨 팬들도 쫄깃했던 다른 구장 경기들을 보러 간 상라 언급이 잘 없었다(...)
          * 본인의 응원가를 매우 싫어했다. [[http://youtu.be/ofid9L1pI6k|이게 충격과 공포의 권희동 응원가]].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장했지만 2경기 동안 안타 하나 치지 못했다. 그런데 본인 부탁으로 응원가를 끄고 나서는 2루타 폭발!! 참고로 이 안타는 NC의 순수 신인이 친 첫 안타다. 이후 다른 응원가로 바꿨으나 인기가 워낙 좋아서 결국 원래 응원가를 쓰게 되었다. 급기야 해설자들도 따라할 정도.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그러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2017년 들어서 쓰지 않는다]]. 현재는 미국으로 떠난 [[에릭 테임즈]]의 응원가를 받아 쓰고 있다.
          * --[[뽀롱뽀롱 뽀로로/등장인물#s-2|크롱]]이 FA로 다이노스에 입단했을 때 [[http://youtu.be/_O2w20mCipM|멘붕했다 카더라.]]-- ~~[[희동이]]를 생각해서라도 [[둘리|얘]]도 하루빨리 입단시키는 게... ~~~~[[김군]]: 너는 크롱 나는 희동~~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4회 일치
          상대방 등 뒤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 상로 왼쪽 버튼을 눌러주면 상대를 한방에 보낼 수 있다.
          그냥 쓰면 휘두르고 달리다가 쓰면 가아앙한다. 일반 상는 물론이고 이 상로도 어그로를 안 끌지 않는다. 차 문을 떼어내기 좋다.
          로스 산토스 각지에 있는 경쟁 갱단의 그를 덧칠하는 용도. 사용하는걸 경찰에게 걸리면 수배레벨이 붙는다.
  • 김륵 . . . . 4회 일치
         [[1540년]] [[경상북도]] [[영천시]] 에서 어났다. [[조선 세종|세종]] 때의 천문학자 [[문절공 김담]]의 4대손으로, 증조부 김만칭(金萬秤), 조부 김우(金佑)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김우는 사후 [[증직|증]]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생부 김사명(金士明)은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유생으로 수학한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이었다.
         * [[김일 (1637년)|김일]]
         [[분류:1540년 어남]][[분류:161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임진왜란 관련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예안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영천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화가]]
  • 김성겸(탤런트) . . . . 4회 일치
         키 183cm인 거구이며, [[조 왕건]]의 [[아자개]]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규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전문배우]]이다. 실제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외모, 체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4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 [[대한민국 정치비사]] 등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을 연기하였다. 키 183cm면 2018년 기준으로도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큰 수준이다.
          * [[언제나 봄날]] - 주
          * [[달자의 봄(KBS 2TV)]] - 강봉의 할아버지
          * [[조 왕건]] - [[아자개]]
  • 김성곤 (1913년) . . . . 4회 일치
         |손녀 = [[추자현|김자현]] [[김희|김석희]]
         김해김씨 김성곤은 [[1913년]] [[7월 14일]]에 현재의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에서 어났다.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분류:1913년 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김해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7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8대 국회의원]]
  • 김성주 (기업인) . . . . 4회 일치
         현재 한국 및 이리 공방에서 제작한 명품을 전 세계 35개국에 수출하며 한국 패션 산업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다.
         김성주는 MCM을 글로벌하게 키워냈으며 직설적이고 튀는 발언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2014년 제주 BPW(Business & Professional Women) Congress에서 '글로벌 여성 지도자 상' 수상 당시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더이상 권리가 아닌 의무"라며 "세월호 사도 기득권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며 여성들은 더이상 이런 사를 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장관의 1/3은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 김영한 (1900년) . . . . 4회 일치
         '''김영한'''(金永漢, [[1900년]] ~ [[1980년]]<ref>《한국일보》 (1987.12.18) [http://www.kinds.or.kr/imgdata8/1987/12/18/19871218HKM07.pdf 알뜰살림 속에 숨은 內助... "보통 부인"]</ref>)은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우]]의 장인이다.
         * 《여성신문》 (2007.3.9)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32835 이야기 여성사 - 제13대 노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1900년 어남]][[분류:1980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안동 김씨 (신)]][[분류:노우 가]]
  • 김용준 (1904년) . . . . 4회 일치
         [[경상북도|경북]] [[구미시|선산]]에서 어나 [[경성부]]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화가 [[이종우 (1899년)|이종우]]에게 수학한 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건설이냐? 파괴냐?〉로 입선하면서 화단에 데뷔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공부했다. 이때 같은 도쿄 유학생이던 동갑의 [[이준]]을 만나 평생 동안 교유했다.
         전통적인 모더니즘 계열에서 [[정지용]], [[이준]]과 궤를 같이 하면서 광복 전·후로 좌익 예술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김용준의 월북 동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으로 [[국대안 파동]] 때 [[한국의 군정기|미 군정]]과 충돌해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김진항]]의 추대로 [[한국 전쟁]] 중 얼떨결에 학장이 되었다가 월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설과, [[공산주의자]]였던 부인의 권유로 함께 북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분류:1904년 어남]][[분류:196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술 평론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우중 . . . . 4회 일치
         광산김씨 김우중은 [[1936년]] [[12월 1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김용하와 전인항 사이의 6남매 중 4남으로 어났다.
         [[1989년]]에 펴낸 자서전인《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2년]]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마하려 했으나 [[김영삼]]의 압박으로 불발되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선포하였고 또한 김우중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1990년]] 장남 선재를 잃고, [[1996년]] [[전두환]], [[노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위기를 잘 넘기며 [[대우그룹]]을 [[1998년]]에 재계 2위로 이끌며 성장시켰다.
         5년 8개월 간의 해외로 도피 생활을 지속하다가, [[2005년]] [[6월 14일]] 입국하여 [[대한민국 검찰|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며,<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61640 관련기사]</ref>[[2006년]] [[11월 3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천 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고,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2007년]] [[12월 31일]] [[사면|대통령 특사]]로 사면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추징금의 0.5%정도인 약 887억원을 납부하였다. [[2013년]] 김우중법에 대해 논란이 일었고, 여전히 17조 8000여억에 달하는 추징금을 미납한 상이다. [[2014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일에 추징금 문제가 불거져 참석하지 못했다. 그해 [[8월 26일]]에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분류:193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우그룹]][[분류: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훈자]]
  • 김준 (배우) . . . . 4회 일치
         | 김
         | [[양의 도시]]
         | 강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김태환(1943) . . . . 4회 일치
         1943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경복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에서 임원으로 근무하였다.
         한번도 당을 버린 적은 없으나, 당으로부터 2번이나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이다. 2008년 총선 당시에야 친박계여서 친이계 당 지도부가 공천을 안줬다지만, 친박 중진이 된 2016년에 '''친박 지도부가 공천을 안주는 사'''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이에 대해, 비박계를 대대적으로 공천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티 안나는 친박 몇 명'''을 미리 낙천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관측이 많았다. 김환이 친박 중진이기는 했어도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친박 핵심부는 또 아니었기에 그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케이스로는 [[서상기(정치인)|서상기]] 의원이 있는데, 서상기가 떠난 지역구는 결국 '''친 야 무소속의 [[홍의락]]'''이 당선되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환, version=45)]
  • 김필곤 . . . . 4회 일치
         1963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4년 12월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6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육군 법무관을 전역한 이후 1988년 10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대구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판사를 했다.
         *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7월 29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을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98906]</ref>11월 28일에 [[한총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계명대]] 총학생회장에 대해 "11기 [[한총련]]은 10기 한총련의 기본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집행부를 장악해 [[범청학련]]의 기본 대오로 활동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1기 한총련이 범청학련을 통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상 지휘·조정을 받아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을 수용하고 있고, 북한 쪽과 빈번하게 불법 접촉 및 서신교환을 하면서 하달받은 투쟁지침에 따라 11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했다"며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2년6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6082]</ref> 2004년 2월 6일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당선되면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원, 아들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박진규]] 영천시장에 대해 "시장에 당선된 후에 받은 1천만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서도 2000만원에 대해서는 "범죄 입증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뢰액이 1천만원이상 5천만원 미만 일 때는 5년이상 징역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추징금10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26584]</ref>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형일(배우) . . . . 4회 일치
         울림이 깊은 중후한 ~~목욕탕~~목소리로 유명하다. 20대 시절에는 [[CBS 성우극회]] 15기 공채 성우로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 동기가 [[최덕희]]다. 세일러 문, 리나를 비롯한 여주인공 전문 성우인 그 사람이다.], 에로 영화의 후시 녹음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목소리 탓인지 정극물에서는 주로 무게감 있고 듬직한 역할을 맡았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건 KBS 사극 [[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조 왕건]] 이전에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 [[신마적]] 엄동욱 역할로 얼굴을 알렸고,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과 친구들이 단골인 카페 사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 <오늘은 좋은날>의 꼭지 [[큰 형님]]에 나와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시트콤 [[세 친구]]에서는 옆집에 이사온 신혼 부부로 아내([[노현희]])를 끔찍히 생각하다 못해 의처증 증세가 있는 [[개그 캐릭터]] 연기도 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김재규]] 역을 맡았는데, 목소리와 풍채를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했다.[* 김형일은 키가 180을 넘고, 목소리도 무겁다. 그러나 김재규는 키가 170도 안됐고,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도 김재규는 말이 빨랐다. 김재규와 김형일은 [[김녕 김씨]]로 본관이 같은데, 재미있는 건 김형일이 김재규보다 항렬이 한 항렬 위다.] KBS [[무인시대]]에선 [[최충헌]] ([[김갑수]])을 도와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욕심 때문에 [[최충헌]]에게 역관광을 당하는 찌질한 동생 [[최충수]] 역을 맡기도 했다.
          * [[조 왕건]]- [[신숭겸]]
          * [[2015년]]에는 [[징비록(드라마)|징비록]]에서 [[신립]] 장군 역으로 출연하였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신립]] 장군은 조 왕건에서 김형일이 맡았던 [[신숭겸]]의 후손이란 거다. 즉, [[본관]]이 평산이다.
  • 김효기 . . . . 4회 일치
         ||<width=30%><:> [[김호(1989)|김호]][br][[정재용(축구선수)|정재용]][BR] (2016) ||<:> {{{+1 →}}} ||<width=30%><#cda55f><:> [[김호(1989)|{{{#1f0419 김호}}}]][br] '''{{{#1f0419 김효기}}}'''[br]'''{{{#1f0149 (2016)}}}''' ||<:> {{{+1 →}}} ||<width=30%><:> [[구대영(축구선수)|구대영]][br](2017) ||
  • 김효진 (배우) . . . . 4회 일치
         2011년 12월에는 8살 연상의 배우 [[유지]]와 5년여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4년 7월 5일, 첫 아이인 아들 유수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 유지 부부 5일 득남 "가슴 벅차다"|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906672|출판사 =뉴스1 |저자 =권수빈 |날짜 = 2014-07-05 |확인날짜 =2017-09-29 }}</ref>
         * [[2001년]] [[MBC]] 금요 드라마 《[[우리집 (드라마)|우리집]]》 ... 강실 역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4회 일치
          * 그는 반장으로서 시간과 다리가 허락되는 한 반에 공헌하고 싶다며 자신의 형도 그랬을 거라 말한다. 그의 행위는 바로 그 꿈의 형이기도 한 것.
          * 아오야마는 이이다가 말한 "꿈의 형"라는 단어를 되새기다가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왜 나는 남들과 달라"라고 물었던 일을 떠올린다.
          * 원래 아오야마는 눈에 잘 띄어서 벌써 포인트를 두 개나 빼앗긴 상.
          * 이 폭파된 상가 2차 시험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4회 일치
          *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분석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도를 자신을 염탐하고 뭔가 꾸며댄다고 보고 좋아하지 않았다.
          * 미도리야가 원 포 올 풀카울 상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같은 변칙적인 움직임엔 따라갈 수가 없다. 뒤에서 내리꽂히는 깨끗한 보디 블로우. 미도리야가 가드레일 쪽으로 몰린다. 충분히 충격을 줬을 텐데 바쿠고는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추격한다. 미도리야는 문자 그대로 숨 쉴 틈도 없다. 코앞까지 따라온 바쿠고. 미도리야는 난간을 붙잡고 뒤로 넘어가려고 하지만 바쿠고가 짐승같은 반응속도로 잡아채서 내동댕이친다. 그러다가 본인도 난간에 몸을 부딪히며 잠깐이나마 공격에 틈이 생긴다.
          그는 공격을 퍼부으며 아무리 때리고 떨쳐내고 따라다니던 미도리야가 기분 나빴다고 외친다. 아무 것도 없는 주제에 면밀한 눈으로 그를 관찰하고 정말로 추월해 보이겠다는 듯한 그 도도.
          * 미도리야는 감정이 고조되고 있음을 느낀다. 평소보다 더욱 빠르고, 컨트롤이 틀어진다. 하지만 좋은 감각이다. 지금까지 그는 풀 카울 상를 5%로 제한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그 자신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전신 상시 신체 허용 상한 8%. 그 순간 미도리야가 한계를 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4회 일치
          올 포 원의 진정한 모습은 "뒷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제왕"이었다. 야쿠자 세력이 괴멸 이후 뒷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의 몫이었다. 다만 오버홀 세대에서는 그를 직접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고 노인네들이 맹신하는 도시전설 쯤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지난 번 결전으로 올 포 원이 건재하다는 것,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결국 패하고 타르타로스에 갇혔다는 것이 알려지고 만다. 즉 지금은 양지도 음지도 모두 지배자를 잃어 버린 상.
          * 하지만 오버홀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며 "계획은 있냐"고 반문한다. 생각보다 비협조적인 도에 시가라키는 "동료가 될 맘은 있냐"고 묻는다.
          그런데 오버홀의 상가 조금 이상하다. 몸에 묻은 피를 못 견디겠다는 듯이 문질러 닦아내면서 "더럽다"고 질색을 한다.
          오버홀은 상가 매우 이상해서 결벽증 같은 증세를 보일 뿐만 아니라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있다. 컴프레스가 무력화된 채로 부딪히자 짜증스럽게 "만지지 마라"고 말하며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컴프레스의 왼팔이 날아가 버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미도리야는 이미 그 이야기에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올마이트가 죽는다는,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더 신경 쓰였다. 그 예지가 언제 일이고 절대로 바뀌지 않는 거냐고 묻자 올마이트는 연한 도로 당시 기준으로 6, 7년 후라면서 먼 미래일 수록 오차는 생기긴 하지만 예지로 본 장면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계산해 보니 예지가 실현되는 시기는 올해나 내년 정도. 미도리야는 현실을 부정하며 올마이트에게 살라고 애원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제 때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운명따위 이 팔로 마음에 드는 형로 바꿔주겠어!
          하지만 한편으론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는 힘을 잃었고 히어로로서의 삶은 끝났다. 그러니 이제와서 그를 볼 면목이 없다는게 올마이트의 생각이다. 지금은 점점 강해질 미도리야에게 족쇄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다. 어쩌면 이미 그들의 관계는 형가 달라진 후일지도 모르겠다고 그가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4회 일치
          오버홀은 시라가키가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은 쪽에 더 신경 쓴다. 직접적으로 발을 내리라고 경고하지만 시라가키는 "내려주지 않겠나"라고 말하라며 본래라면 오버홀 측이 고개를 숙일 입장이라고 거만한 도를 유지한다.
          시라가키가 제안하는 조건은 두 가지. 우선 그들은 산하로 들어가는게 아니다. 빌런연합은 여전히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단지 오버홀측과는 "제휴"라는 형로 협력하는 걸로 해두겠다는 것이다. 오버홀이 조건은 그것 뿐이냐고 묻자 당연히 하나를 더 제시한다.
          타마키는 한도 끝도없이 네거티브해져서 이 스카우트도 자길 괴롭히려고 결정된 거라고 믿고 있다. 키리시마는 패트껌이 나름대로 격려해주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는 어떻게 해도 키리시마나 밀리오처럼 포지티브해질 수가 없다고 한다. 키리시마는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 실력도 경험치도 차이가 생겨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있더라"고 나름대로 공감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메꾸고자 인턴 생활에 뛰어든건 엄청나게 포지티브한 도이기 때문에 결국 타마키는 도저히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 패트껌은 자신의 미스를 잘 처리해준 타마키를 대중들 앞에 소개한다. 모여든 시민들을 향해 "기량이라면 프로 이상"이라고 추켜세운다. 그 뒤에 "멘탈은 성장하지 않았다"고 꼬리를 달지만. 시민들의 환호를 받은 타마키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런데 그 군중 사이엔 선량한 시민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진작에 흩어져 있던 빌런조직의 쫄따구가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잡힌 형님들을 구해야 된다며 총을 겨눈다. 패트껌이 수상한 기척을 눈치챘지만 한 발 늦었다. 벌써 총알이 발사되었는데, 그 총알이 아주 수상하다. 이 수상한 총알이 무방비한 상의 타마키를 맞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4회 일치
          * 항상 치사키 곁에 있던 작은 부하 [[이리나카]]는 개성 "의"로 일행이 돌입한 복도 자체를 장악해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꾼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음모에 이용되는 소녀 "에리쨩"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경찰 연합군. 조직원들이 몰려나와 방해하지만 현지 히어로들의 적극적인 마크로 어떻게든 건물 내부까지 진입한다. 조직원 전체가 나서서 시간 끌기를 하는 이러한 행가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든다. [[패트껌]]은 "수상한 정도가 아니다"고 날을 세운다.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진행되는 상황이 영 불안하다며 투덜거린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정보가 샜음을 짐작하고 적들이 한덩이가 된 것처럼 군다고 소감을 밝힌다. [[아이자와 쇼타]]는 이들이 떳떳하지 못한 만큼 결속을 중요시하는 거라고 혹평하고 간부나 [[오버홀]] 치사키가 보이지 않는 걸 들어 수뇌부는 이미 지하에서 은폐 중이거나 도주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직함 심성의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딴건 충의도 뭣도 아니다"고 버럭하며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건 사나이답지 않다고 말한다.
          * 일행이 추적을 속행하려 하자 비밀통로 전체가 파도치듯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조직원들을 구속하던 버블걸과 센티피더도 괴이하게 변모하는 통로를 보고 당황한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일행. 변하는 형로 보아 치사키의 개성은 아니다. 형사는 아마도 본부장 [[이리나카]]의 개성일 걸로 추측한다. 항상 오버홀 옆에 따라다니는 작은 부하가 그다. 그의 개성은 "의". 특정한 물건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지금은 건물의 콘크리트에 들어가 지하통로를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보에 따르면 그에겐 이정도 규모를 조종할 힘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하나 정도가 한계. 패트껌은 부스트 약물을 쓴 거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추측한다. 허를 찌르는 함정이지만 분명 몸에 무리가 갈 텐데. 패트껌은 아이자와에게 무효화를 요청하나 본체를 정확하게 잡는게 아니라면 그에게도 무리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4회 일치
          말도 안 되는 터프한. 방패는 텐가이였지 않나? 배리어를 완충제로 썼다고 해도 상정을 한참 넘어선 강인함이다. 이제 손 쓸 방법이 없다. 지방은 다 워버렸고 체력도 바닥. 패트껌은 정말로 어찌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는 다음에 이어지는 랏파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랏파에게도 있느냐는 별개 문제. 랏파는 그를 가볍게 즈려밟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텐가이가 회복한 여력은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가벼운 한 발로 의식이 다시 날아갔다. 랏파가 배리어를 칠 여력도 없는 주제라고 빈정댔다. 하지만 그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여기저기 뼈가 부러져 도저히 싸울 상가 아니다. 패트껌은 그 묘한 대화를 보고 있다가 대체 뭘하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정말로 함정이 아닌 건가? 랏파의 답은 이번에도 단순했다.
          * 패트껌에겐 소름이 돋는 얘기였다. 랏파의 승부욕 쪽이 아니었다. 오버홀의 실력. 이 랏파의 위력과 스피드를 간단히 요리할 만한 힘이 오버홀에게 있다는 것.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일선에 나서지 않고 부하를 내세운다.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왜 자신이 사를 처리하지 않고 도망치는가? 그런 의문들은 보다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아까 일의 교훈인지 조용히 있던 랏파가 다시 입을 나불거렸다. 묶여있는 상였다. 적에게 그런 걸 알려주겠냐고 떠들어댔지만, 랏파는 이번에도 그의 기대를 져버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4회 일치
          * [[오버홀]]은 에리의 "인자"를 사용해서 마침내 영구적으로 개성을 제거하는 "개성파괴탄"을 완성한 상였다.
          * 밀리오가 자기가 지키려던 아이의 개성으로 모든 걸 잃게 됐다며 오버홀이 비웃지만,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고 무개성인 상로도 오버홀을 압도한다.
          겨우 기어다니는 처지였지만 한 발 쏘는 정도라면 충분. 네모토는 놀라운 속도로 탄환의 수령부터 장전까지 마쳤다. 의외로 시간을 허비한 것은 조준이었다. 누구를 노리나? 철포옥 핫사이슈는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었지만 네모토는 조금 달랐다. 지금 오버홀이 넘겨준 탄환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발이라도 낭비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노려야할 건 당연 밀리오로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통과"하는 개성. 일반적인 방법으론 맞출 수 없다. 몰래 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오버홀이 탄환을 넘기는 시점에서 눈치채버렸다. 쿠로노는 기절한 상.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저 투과 개성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 밀리오가 오버홀을 따라잡은지 15분. 그중 개성파괴탄을 맞은 5분. 2 대 1의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는 싸웠다. 그 중 3분의 1은 개성 조차 없어진 상였지만, 전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4회 일치
          * 이리나카를 제압한 히어로 연합군은 미궁을 수복하고 적의 정보를 얻으려 하나 개성 부스트 약물의 부작용으로 그럴 만한 상가 아니다.
          * 이리나카는 경찰의 입에서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이름이 나오자 격분, 상가 급속이 나빠진다.
          * [[아이자와 쇼타]]는 오버홀을 무력화시키며 미도리야와 함께 그를 정리하려 했으나, 그때까지 빈사상인줄 알았던 크로노가 공격하는 바람에 무산된다.
          * 오버홀은 [[네모토 신]]을 희생시켜 그의 육체를 파괴, 자신의 육체와 뒤섞는 "융합" 형가 되어 히어로 일행을 공격한다.
  • 남명렬 . . . . 4회 일치
         * [[2013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드라마 스페셜 《[[주군의 양]]》 - 집을 안팔겠다는 남자 역
         * [[2016년]] [[네이버]] TV케스트 《[[질풍기획]]》 - 질풍 사장 역
         * 녹색양 (2011년)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양평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경기대학교 동문]]
  • 남보라(배우) . . . . 4회 일치
         [[2008년]] [[인간극장]]에서도 12남매의 장녀로 출연한 바 있다. [5부작 - 열두 번째 아이가 어났어요.] 그리고 그 이후 남자애 1명이 더 어났다. (남보라는 종종 우리집 13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소 부모님의 식당 일을 밝은 모습으로 도우면서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돕는게 부끄럽지 않다"는 발언을 했고, 연예인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개념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지하철 이용건에 대해선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배려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배려석에 앉다니 무개념이다"라고 까는 의견과 "저 좌석은 일반인도 앉아있다가 주변에 임산부나 영유아 동반자가 있을 때 양보해주면 괜찮은 거다"라며 옹호하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통약자 배려를 위해 설치된 좌석들은 좌석이 부족한 경우 노약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즉시 양보해 주면 된다.] 써니 이후 친해진 배우 [[박진주]]를 우고 가는 장면이 나간 [[나 혼자 산다]]에서는 [[현대 아반떼|AD]] 1.6 디젤을 몰고 다니는 듯. 탑기어 코리아7 8화에서 본인의 첫 차가 [[폭스바겐 CC]]이며 10년 탈 생각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 [[2018년]] || [[백종원의 골목식당]]('이원 해방촌 신흥시장' 편)[* [[황치열]]과 함께 식당 영업에 도전하였다.] || SBS ||
  • 동군연합 . . . . 4회 일치
         부부가 각자의 계승권에 따라서 군주로서 즉위하고 있는 상에서, 서로 혼인함으로서 '동군연합'이 형성된다. 이 경우 왕은 X국의 왕, 그 아내는 Y국의 여왕이므로, X국과 Y국이 부부 아래 동군연합이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동군연합'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개 부부 한 쪽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군연합과 거의 다를바 없는 상가 된다.(내실을 보면 약간 복잡해진다.)
         남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상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영토'라는 식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목돌]] 선우가 여후에게 성희롱성 국서를 보내서 부부동군연합을 제안(…)했다. 한나라에서는 분노한 끝에 묵살했으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 류중일 . . . . 4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7년]] [[4월 6일]] <br /> [[해 타이거즈|해]]전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 류씨]][[분류:영덕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LG 트윈스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마기/304화 . . . . 4회 일치
          * 쟈파르는 신드바드에게 구여 알리바바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고 묻는다.
          * 암흑대륙엔 짐승형의 파나리스들이 모여살고 있다.
          * 암흑대륙의 파나리스들은 짐승형 그대로 살고 있는 듯.
          * 모르지아나도 한 번은 짐승형로 돌아갔었던 모양이지만 귀왜국에서 살기 위해서 인간형으로 고정하고 있다.
  • 마기/323화 . . . . 4회 일치
          * 재차 공격 세를 취하는 신드바드에게 "소용없다"고 단언하는 우고.
          * 하지만 우고는 양처럼 밝게 빛나면서 "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버린다"고 경고한다.
          * 이 재는 "검은 루프"의 찌꺼기 같은 것. 우고는 하얀 루프를 갈무리해 거대한 흐름으로 돌려보낸다. 그가 다시 어나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 마기/329화 . . . . 4회 일치
          * 신드바드는 그런 알리바바에게 세상의 구조를 아냐며 선문답같은 말을 시작한다. 그는 세상은 단 한 명의 신이 관리하고 있다며 성궁에서 만났던 우고를 언급한다. 알라딘이 동요하며 우고를 만났냐며 묻는데 신드바드는 그가 완전히 미쳤다고 대답한다. 우고의 사정을 몰랐던 알라딘은 그 말에 충격을 받는다. 알리바바가 알라딘 대신 무슨 뜻이냐고 묻는데 어쩐지 신드바드의 상가 이상하다. 그의 주변이 요동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쓸데없고 핵심과 상관없는 것까지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한다. 마치... 우고처럼.
          * 어째서 그렇게하냐는 두 사람의 질문에 신드바드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단지 "내가 그러고 싶기 때문에". 그는 연한 얼굴로 그 욕망을 위해서 이 세상의 루프를 완전히 새롭게 환원하겠다고 선언한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를 연한 얼굴로 한 탓에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알라딘은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의 이해한 의미를 말한다. 부정해주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신드바드는 여전히 연할 뿐, 그걸 넘어 상쾌한 표정이다.
  • 마기/346화 . . . . 4회 일치
          * 아르바는 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라는 고독감을 느낀다.
          * 그가 생각에 빠진 한 편 아르바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일 일라, "그 분"의 힘을 되찾기는 커녕 자신의 힘 조차 잃고 말았고 이제는 그 분의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그녀는 문득 "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깨달은 그녀는 지금껏 실감하지 못했던 적막감에 빠져든다.
          마치 암흑천지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고독. 알리바바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한다. 그는 아르바 또한 신드바드의 동료가 됐으니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일에 동의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르바의 도는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는 듯 심드렁하다. 알리바바는 그녀가 딱히 신드바드에 찬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 신드바드가 마장 후르후르를 두르며 싸울 세를 갖췄다. 대치하는 알리바바와 신드바드. 둘의 승부가 시작된다.
  • 마기/348화 . . . . 4회 일치
          * [[아르바(마기)|아르바]]의 무시하는 도는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점차 귀를 기울인다. 알리바바는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있는가? 분명 자기 한 사람 뿐이다. 아르바가 끼어들어서 자신도 해당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녀는 정신체로 잔류하는 것이니 알리바바와 경우가 다르다.
          지금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과시적인 도.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굳은 표정이었던 신드바드가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알리바바의 말을 인정하며 그의 "새로운 작전"을 경청해 보겠다고 약속한다.
          그답지 않게 잘난척하는 발언. 그는 자신만만한 도로 "가로와 세로의 벽을 전부 박살내자"고 제안한다. 그건 알라딘도 금방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다.
          * 그런데 그들의 곁에는 [[우고(마기)|우고]]도 함께 있었다. 그 또한 신드바드에 포섭된 이후 행동을 같이했고 이 대화도 모두 들었다. 우고의 상가 이상해진 것도 이 대화 탓이었다. 그는 두려워하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르지만 심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 모나 색스 . . . . 4회 일치
         맥스가 잭 루피노를 죽인 이후 등장, 이미 죽은 루피노에게 총을 난사하던 맥스를 제지한다. 그러고는 [[알렉스 볼더]]를 죽이고 맥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은 루피노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맥스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상가 되지만 범인이 안젤로 펀치넬로 라는 말을 하고는 그나마 긴장 상를 푼다. 자신도 펀치넬로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는 펀치넬로가 그의 아내이자 모나의 쌍둥이 자매인 리사 펀치넬로를 학대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상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백한다.
         살인 사건 용의자인 상에서 형사인 맥스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와 자신과 맥스에게 청부업자가 붙었다는걸 알린다. 이후 스쿼키 청소회사가 아파트를 습격하자 도망친다.
  • 바키도/121화 . . . . 4회 일치
          * 최종형로 변한 피클을 눈 앞에 두고 과거 히다국에서 야차원숭이를 베었던 것을 회상하는 무사시
          * 피클은 최종형에서도 무사시의 참격을 막진 못하지만 근육이 단단해져서 칼이 먹히질 않는다.
          * 마침내 최종형를 드러낸 피클
          * 최종형의 피클 마저도 무사시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 보인다.
  • 바키도/135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실제 유지로를 만나자 단 몇 초만에 세전환해서 매우 성실한 도로 조약을 채결한다.
          * 트럼프는 세전환이 빠른 남자다. 바지에 지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만약"의 경우를 위해 달달 외운 선언문을 열정적으로 낭독해간다.
         원래 바키 시리즈에는 정치인들이 본인에 가까운 형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트럼프는 그냥 본명으로 거명하고 있다는게 차이점.
  • 박노식(1930)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본관 [[밀양시|밀양]](密陽).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이냐시오이다. 1930년, [[전라남도]] [[여수시]] 에서 어났으며[* 그런데 정작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시]] 출신인 [[해(응답하라 1994)|해]]가 여수 아줌마와 고향 대결을 할 때 박노식을 순천 사람이라고 내세운다. --해 [[의문의 1패]].--],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학교[* 1946년 11월에 설립되었다가 1962년 2월에 폐교되었는데, 뒤이어 순천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67년에 지금의 순천공업고등학교로 재개편되었다.] 체육과를 졸업했다. 1950년에 지금의 여수 소라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종군했다.
  • 박승임 . . . . 4회 일치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 때 [[조선 종|종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된 [[박은 (1370년)|박은]]의 5대손이다. 아버지 박형은 원래 안동 출신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뒤에 안동을 떠나 처가가 있던 영천(榮川)으로 이주해서 살게 됐다. 어머니는 영천 지역의 명문가인 예안김씨 출신으로, 김만일(金萬鎰)의 딸이다. 박승임은 7형제 중 여섯째 아들로 어났다.
         [[분류:1517년 어남]][[분류:158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사상가]][[분류:조선의 유학자]]
  • 박태준 (작곡가) . . . . 4회 일치
         '''박준'''(朴泰俊, 영어 이름은 '''Travis Jones Park'''(트래비스 존스 파크), [[1900년]] [[11월 22일]] ~ [[1986년]] [[10월 20일]])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남(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준 가곡집〉 등이 있다.
         [[분류:1900년 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배성룡 . . . . 4회 일치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9b0550a 브리니커 - 배성룡]
         [[분류:1896년 어남]][[분류:1964년 죽음]][[분류:청도군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배슬기(배우) . . . . 4회 일치
         그러나 2010년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겨 영화는 하차. 영화사가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오랜 기간동안 제대로 촬영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새 소속사는 티엔터테인먼트로 [[박정현]], [[차승원]], [[유지]] 등이 소속 중.
         2013년, 9월 27일 [[신성일]]과 출연하는 '야관문'이라는 영화 개봉 소식이 올라왔는데 '''배슬기 노출'''이라는 [[언플]] 속에 검색어에도 올라왔다. 문제는 하필 이날이 본인의 생일이라는 게... 야관문은 [[11월 7일]] 개봉했으나, 역시나 떠들석한 언플치고는 노출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았고 시나리오 수준도 엉망이며 평가가 좋지 않다. 거기다 중간에 한 번 나오는 뒤 나체 장면은 '''대역으로 밝혀졌다.'''
         사실 작은 사과 덕에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으나, 2007년부터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는 등 중국 활동을 이미 오래 한 상라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로 중국어 실력도 좋다고 한다. 작은 사과 히트 이후 다시 중국에 진출해서 신곡 발표로 차트 7위에 올랐다고 하며, 각종 예능이나 라디오 등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런닝맨]]의 히트 이후 [[X맨을 찾아라]], 연애편지 등 배슬기가 과거 출연했던 예능들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고 한다. tvN '명단공개2016'에서 공개한 신 한류스타에서 [[김수현(배우)|김수현]], [[조세호]], [[이준기]] 등과 함께 꼽히기도 했다.
         2017년 5월 30일 엑소(EXO) 콘서트에서 [[채연]]을 포함한 볼링 팀과 함께 관람했다. 이 가운데 현장에 있던 팬들은 일행들이 공연 중 음식물을 먹거나[* 그 중에는 공연장에서는 반입이 안 되는 맥주도 마셨다.], 공연 도중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고, 공연이 끝나기 전 단체로 자리를 뜨는 등 매너 없는 관람 도를 보였다고 지적해 도마에 올랐다. [* 게다가 채연과 배슬기도 가수인데도 후배 가수의 공연에서 비도덕적 행동을 한 것이다. 같은 가수로써 공연 비매너가 얼마나 불쾌하는지 그 누구보다 아실 분들이 비매너를 저질렸다.] 그 사건 이후 [[채연]]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607|해당기사]]
  • 변질자 . . . . 4회 일치
         성격이나 성질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 그 때문에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 특히 성적으로 이상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흔히 [[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는데 변는 특별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폐를 끼치지 않아도 이상한 사람, 변질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한다. 즉, 변가 범죄나 민폐를 저지르면 변질자로 클래스 체인지 한다.
          * 일본어에서는 길가에서 뭔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변질자가 나타났다(変質者が現れた)」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변가 나타났다(変態が現れた)」고는 하지 않는다.
  • 보루토/5화 . . . . 4회 일치
          * 이들은 미수를 "단"이란 형의 알약으로 만들어 자신의 차크라를 끌어 올리는데 그걸 위해 미수들을 사냥한 것.
          * 사를 지켜보고 있던 카타스케는 혀를 차며 "나설 수밖에 없겠다"고 한다.
          * 나루토는 그대로 보루토를 보호해서 퇴각하려 하는데, 괴한은 공격을 할 세다.
          * 나루토와 보루토는 사스케와 사라다와 합류, 세를 재정비한다.
  • 블랙 클로버/104화 . . . . 4회 일치
          * 바네사의 제안으로 술 많이 마시기 경쟁이 되는데 바네사는 애초부터 취한 상라 금방 다운, 샬롯은 초월적으로 술에 약해 한 잔만에 비틀거린다.
          솔은 자기네 단장의 실에 대해선 잘 모르므로 야미를 "누추하고 쉰내나는 남자 중 No.1"이라 질시하며 샬롯 근처에도 못가게 한다.
          * 그때 야미를 찾아다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나타난다. 역시 평소 습관대로 진탕 마시고 헤롱거리는 상다. 그녀는 야미를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오다가, 그 옆에 있는 샬롯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육감 탓일까? 두 여자는 무의식 중에 상대를 연적으로 간주한다. 바네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져선 안 된다"고 막연히 직감하고 샬롯은 "묘하게 야미한테 친하게 구는 여자"라며 질투한다.
          이후 그 말대로 샬롯은 끊임없이 강해져서 푸른 들장미단에 들어갔을 땐 이미 명성을 얻은 상였다. 그 강함과 미모 때문에 구혼자가 줄을 이었지만 샬롯은 자기를 이길 수도 없는 구혼자 따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기도 이길 수 없는데 앞으로 발동할 저주를 이겨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해 빠진 구혼자들에게 실망한 샬롯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결심한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4회 일치
          * [[릴 부아모르티에]]는 어리숙한 첫인상과 달리 분명 단장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팀의 총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대측의 두 마법기사를 간단히 제압, 손쉽게 I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동료들도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이 없어졌지만, 정작 그는 방금 전 "한 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회화 마법은 시합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으나 그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며 반성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시합에 집중해주질 바랐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집사 "발터"는 이런 도 조차도 "도련님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거다"고 이 또한 그의 재능이라고 포장한다. 어리숙한 걸론 안 빠지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었다.
          * 이어지는 6시합은 [[락 볼티어]]의 차례였다. K팀은 검은 폭우의 5등 하급 마법기사 락과 금색의 여명의 3등 중급 마법기사 [[클라우스 류넷]]이 한 팀이었다. 락은 이런 전투광 답게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고지식하게 "진지하게 임해라"고 한 소리 늘어놓아서 티격격한다.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백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클라우스의 새로운 강철마법 "선관의 열창". 적을 분쇄하는 거대한 드릴형의 창이었다. 상대의 마법을 분쇄하고 쾌진격하는 클라우스. 락도 그의 강함을 인정하고 "시합이 끝나면 따로 붙자"고 깐죽거렸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4회 일치
          * 때는 수년 전. [[알렉드라 산드라]]는 전쟁 중 부상을 입었다. 숨어있던 매복에 당한 그는 어느 동굴에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구조는 바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찰라. 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금색의 여명 단장 [[윌리엄 벤전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그를 바라보며, 알렉드라는 일종의 경의를 느꼈다. 그 표현도 부족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본 그림을 떠올렸다. 그 안에 묘사된 신의 모습. 신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은 벤전스였다. 벤전스에게 구원 받고, 그를 추앙하며 지내온 나날. 알렉드라는 벤전스에게 마법 외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있고 그 따스한 힘이 단원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금색의 여명은 바로 그런 형의, 벤전스에게 선택받은 엘리트 귀족 집단. 마치 신앙 같은 믿음. 그는 벤전스와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워왔다. 그 믿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의 입단. 볼품없는 하층민. 모든 단원을 평등하게 대해준 벤전스가 유일하게 특별취급하는 햇병아리.
          알렉드라가 일갈했다. 바람의 정령 "벨"은 그 말에 반발했다. 자신에게 선택받은 것도 유노의 힘. 벨이 그렇게 말하며 저 열받는 녀석을 해치우라고 부추겼지만 유노는 지극히 냉정한 상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벨더러 물러나라고 하는데. 그 도 또한 알렉드라를 자극하고 있었다.
          * 링가드 덕분에 노엘은 무사히 적 크리스탈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할 무렵엔 솔리드가 그녀를 추월해 방어세에 들어갔다. 자신이 온 이상 노엘은 크리스탈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다 자신하는 솔리드. 거기에 반박한 것은 노엘이 아니라, 그녀 어깨에서 돋아난 싸나이다운 면상의 버섯이었다. 버섯은 적보다는 아군인 노엘을 놀래켰다. 버섯은 그 뻔뻔한 면상으로 나불거리며 노엘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말하는 버섯군"이란 링가드의 마법이었다. 링가드의 목소리를 전하는 통신기 같은 것이었다. 편리한 마법이지만 기괴한 형상 탓에 노엘은 왜 이딴걸 붙여놨냐고 기겁했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4회 일치
          * 그런데 아스타는 반마법의 마력을 몸에 흡수한 상로 변신, 그 마력으로 스테이지를 휘젓으면서 네르슈의 벚꽃마법과 잭스의 함정마법 모두를 분쇄한다.
          * 아스타는 노엘의 설욕도 축하했다. 그가 보기에도 어지간히 열받는 오빠였다. 노엘은 특유의 세침한 도로 제대로 했으면 상반신이 날아갔을 거라고 잘난 척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나 스킨 특훈 이후 그녀의 마력 컨트롤은 상당히 향상됐다. 마력 용량도 늘어서 "해룡의 포효"도 앞으로 두 번 정도는 너끈히 쓸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활약해서 로얄 나이츠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왕족이 상대, 거기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결코 표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건들거리는 도로 돌아가 1회전처럼 "이번에도 팀플레이로 힘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스타는 1회전과 달리 전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잭스에게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반마법 모드였다. 미모사와 잭스가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아스타의 힘. 그는 전보다 이 상의 힘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4회 일치
          * 노래도 대단하지만 사실 마법 실력도 뛰어나서 한 눈에 아스타의 몸상를 간파하고 노래 회복 마법 "치유의 자장가"를 써서 회복시킨다. 매우 정교한 마력 컨트롤을 사용하는 고급 회복마법.
          * 카호노는 노엘의 마력 컨트롤에 대해 조언해주는데, 너무 억제하려고 의식하는 것은 마이너스. 편안한 상에서 자연스럽게 집중할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노엘은 모든 마력을 개방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또 폭주상가 되고 만다.
          * 신마법 해룡의 요람은 형상 해룡의 둥지에서 확장된 것 같다.--근데 둥비보단 요람이 작은거 아니냐?--
  • 블랙 클로버/80화 . . . . 4회 일치
          * 절망의 베토에게 당한 두 팔은 저주에 걸려서 도저히 치료가 안 되는 상.
          * 동료들은 아스타가 침울해있을 걸로 생각하지만 아스타는 금방 털어버리고 어떻게든 팔을 고치겠다고 의지를 불운다.
          * 일단 뼈 자체도 산산조각 상라 일반적인 상처였어도 회복은 어려운 상.
  • 블랙 클로버/84화 . . . . 4회 일치
          * 오랜만에 100%의 상로 싸우게 된 아스타.
          * 증오의 파나는 리히트를 위해서 마석을 빼앗아간 녀석을 쫓아왔다고 중얼거린다. 세뇌되거나 신분을 숨기고 있는 듯 하진 않고 다이아몬드 측 병력들도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 오히려 그 녀석들의 숲의 중심부에 있으나 싹 워서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추긴다.
          * 화염정령마법 "샐러맨더의 숨결". 그녀가 타고 있는 비룡이 입에서 거대한 화염구를 쏜다. 단 한 방으로 마녀의 숲을 가려주던 안개가 날아가고 숲이 불타오른다. 불길 속에서 당황한 마녀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여왕은 이 위력을 체감하고 나서야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그녀도 파나가 불의 정령 샐러맨더를 다룬다는걸 눈치채는데 그 상는 비록 불완전한데도 이만한 위력을 내는 것에 놀란다. 이런 내용은 점쳤던 결과를 뛰어넘는 것인데, 여왕은 운명이 어긋나고 있다고 직감한다.
         바네사는 원래 여왕을 속여먹이고 아스타의 반마법의 검으로 어떻게든 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마녀의 숲의 여왕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며, 애초에 바네사가 숲에 억류된 상에서 아스타와 재접촉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바네사를 숨겨두고 아스타의 저주만 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 블랙 클로버/97화 . . . . 4회 일치
          * 지금 아스타는 반마법의 힘 자체가 빙의한 상로 마력이 없는 "단순한 결함품"으로 어난 아스타만이 가능하다.
          * [[라드로스]]는 기이한 형로 다시 일어난 아스타를 보고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노엘 실버]]는 지금 아스타가 휘감고 있는게 "마력이 아닌" 무언가라고 느낀다. 마녀의 여왕은 여전히 수정구슬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의 각성을 매우 흥미롭게 여긴다.
          * 경악하는 라드로스. 여왕은 이미 이 상의 아스타에겐 어떠한 마법도 소용없다고 단언한다. 라드로스는 무적이 된 자신의 마법이 질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힘을 퍼부울 수록 아스타는 그 힘을 가르며 다가온다.
  • 샬롯 링링 . . . . 4회 일치
         흰 수염 [[에드워드 뉴게이트]] 사후에 [[어인섬]]에 자기 이름을 내걸고 그곳을 다른 해적들로부터 지켜주고 있으며 그 대가로 매달마다 10톤의 과자를 조공받고 있다. 어인섬처럼 특정한 곳을 보호해주는 대신 과자를 매달 조공받는 거래를 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자를 주기로 해놓고서 주지 않는다면 나라마저도 박살내버리는 듯하다. '''[wiki:"샤를로테(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과자에 무지막지하게] [wiki:"쿠키 몬스터"집착한다.]''' --[wiki:"간디(문명 시리즈)"순순히 과자를 내놓지 않으면 유혈사는 없을것 입니다]--
         분노한 샬롯을 달래기 위해 [[타마고 남작]] 이 제안한 거래도 거절하고[* [[유스타스 키드]]가 빅 맘 해적단의 산하 해적선 2척을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막대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루피 일행이 가진 보물을 전부 넘겨주는 대신에 사탕 공급은 2주 기다리자고 한 것. 허나 '''"원하는걸 타협하는 해적이 어딨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파파구는 빅 맘이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으나 딱히 나쁘지않은 거래를 거절한 건 상대방의 뜻대로 되는 거래를 샬롯 링링이 싫어하기 때문인 듯.] 결국 수틀린 [[몽키 D 루피]]에게 어인섬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을 받았다.[* 루피 曰 '''"너는 이 섬을 지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원문은「危なっかしい」단순히 위험하다는 뜻 보다는 위스럽다거나 아슬아슬하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로, 단순히 샬롯 링링이 위험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너같이 기분따라 섬 하나 작살낸다 만다 하는 인간한테 맡겨두자니 안심이 안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루피의 호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어인섬을 박살내기로 한 분노는 루피에게 돌린다고 한다. 이름을 알았으니 [[신세계]]로 빨리 오라고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상. 참고로 루피가 이름을 댔을 때 초신성이 아닌 "가프의 손자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로져나 흰수염과 같은 세대의 해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상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남아있던 사람은 상디(부상 입은 상),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절반 이상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상황인 판이다.
  • 서상일 . . . . 4회 일치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이때 서상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상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상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상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상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상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하자 서상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분류:1885년 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조선의 사회 운동가]]
  • 송재호(배우) . . . . 4회 일치
          *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 - 송경만[* 실제 이름은 "기형철"이며, 남파간첩의 총책으로 나온다. [[드보크]] 정리작업을 하다 발각되어 안기부에 끌려가 취조당했고, 극중에서 이중간첩이던 한석규가 무자비하게 고문하기도 한다. 극중 결국 벽에 박힌 대못을 들이받고 혼수상에 빠진 후, 숨을 거운다.]
          * [[양은 가득히]]
          * [[추적자 더 체이서]] - 유
          * [[왕과 비]] - [[세종대왕]][* [[용의 눈물|전작]]에서는 종의 외척경계로 인해서 가문이 거덜났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숙청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4회 일치
         카라는 힘의 근원이 되는 지구의 노란 양 에너지 방사능을 레드 토네이도와의 싸움에서 크게 소진하여, 힘을 잃어버린 상가 되었다. 알렉스는 행크를 불신하고 조사해보려고 한다. 힘을 잃어버린 카라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도 걸려버린다. 그랜트는 세균이 퍼진다고 호들갑을 떨며 카라를 휴직시킨다. 행크는 사이킥을 사용하는 외계인 젬을 심문하는데, 젬은 행크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네가 사랑하는 자들을 죽이겠다는 말도 한다. 행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젠 없다는 말을 내뱉는다.
         카라와 제임스는 맥스웰을 찾아가는데, 맥스는 슈퍼맨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면서 레드 토네이도와의 전투로 소모가 된 상일 거라고 정확하게 추정한다. 그리고 능력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진으로 부상당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카라는 힘이 소진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모든 것을 잃고 무기함을 느끼고, 카라는 힘을 되찾지 못할지 걱정한다. 그 때 폭동이 일어나고, 카라는 슈퍼걸 의상을 입고 폭도들 앞에 나타난다. 카라는 능력을 잃은 상임에도 폭도를 설득해서 진정시키고, 폭도에게서 총을 돌려받는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4회 일치
         루드비코 요법을 마친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하지만 알렉스의 방은 다른 누군가가 차지한 상였고, 알렉스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부모님이 팔아치운 상였다. 알렉스는 집에서 나와 떠돌다가 한 주정뱅이를 만난다. 알렉스와 동료들이 린치했던 주정뱅이였다. 알렉스는 주정뱅이와 그 동료들에게 구타당하고 소지품을 빼앗겼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관들은 과거 그의 부하이던 딤과 조지였다. 결국 알렉스는 그들에게 물고문을 당하게 된다.
         알렉스는 기진맥진한 상로 어떤 집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에 구타하고 윤간했던 작가 부부의 집이었다. 반정부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작가, 알렉산더는 알렉스에게 루드비코 요법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 이를 받아 적는다. 하지만 알렉스가 목욕하면서 부르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듣고 그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해 죽이고 자신을 반신불수로 만든 자인걸 깨닫는다. 알렉스가 그의 아내를 강간할 때 "사랑은 비를 타고"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 일은 크나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부는 혼수상에 빠진 알렉스의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깨어난 알렉스에게 정부의 편을 들 것을 권하며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오디오를 선물한다. 기자들이 병실로 몰려들어와 정부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알렉스의 사진을 찍는 와중, 알렉스는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독백한다.
  • 식극의 소마/197화 . . . . 4회 일치
          * 죠이치로는 콩쿠르에서 토마토 육수와 발효 버터를 사용한 스키야키풍 소고기 요리를 선보인다. 심사를 맡은 요정 "쿠라키"의 후계자 쿠라키 시게노는 어떤 요리든 의연한 도로 먹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시식에 들어간다. 그러나 여지없이 탈의되면서 굴복. 이번 콘테스트도 죠이치로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죠이치로 본인은 딱히 기쁘지도 어떻지도 않은 것 같은데.
          * 그때 문제의 죠이치로는 너무나 활달한 모습으로 나타나 식극이나 한 판 하자고 제안한다. 도지마는 며칠 후면 오사카에서 심사회가 있고 다음 달엔 THE BLUE에도 참석해야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죠이치로는 연하게 승부감을 유지하려면 그게 좋다며 서류 작업 같은건 때려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서류작업은 모두 죠이치로가 팽개친걸 나눠하는 거니 원흉은 결국 그다.
          그의 상를 걱정하던 도지마도 이렇게 나올 때는 그저 기우인 것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지마 자신 조차 죠이치로는 어떤 풍파에도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망의 THE BLUE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기대와 기대가 모여서 터무니없는 높이가 되어 있다. 모두가 그를 격려하고 내일의 선전을 기대하는 말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죠이치로의 상를 정확하게 보는 것은 후미오 여사 뿐이다. 그녀는 긴말 없이 일단 푹 쉬고 THE BLUE 이후엔 쉬는 걸 고려하라고 말한다. 평소 그를 걱정했던 도지마 조차도 석연치 않은 부분을 감지한 것 같지만 결국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간다. 그를 우러러 보기만 하는 아자미는 "당신의 진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기쁘다"라는, 가혹할 정도의 기대를 떠넘기고 간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4회 일치
          * 아리스는 침울한 일행을 꾸짖으며 소마를 응원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패배한 자신들이 살아남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며 울상이다. 특히 히사코는 에리나님을 뵐 면목이 없다, 는 말을 하며 절망한다. 그런 상로도 아리스가 "비서코는 언제나 훌쩍거린다"고 까자 "비서코라고 하지 마라"고 클건다.
          아리스가 [[쿠로키바 료]]까지 엮어서 그렇게 주장하자 하야마도 더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쿠로키바는 딱히 침울해 보이지는 않지만 멍한 상. 그러다 하야마를 보고 "소마가 너한테 이겼다는건 나도 선발 때랑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라 말을 꺼낸다. 그러니 다음엔 자신과도 재대결하자고 하는데 하야마는 언제든 상대해주겠다며 간단하게 승락한다.
          * 카와시마의 소개와 함께 센트럴 측 선수인 십걸들이 등장한다. 지금가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두 명의 신입 십걸도 등장. [[코바야시 린도]]는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임전세.
  • 식극의 소마/212화 . . . . 4회 일치
          * 안은 당황하는 두 부하들과 달리 연하게 해설. 소바의 부드러운 목넘김과 벚꽃 새우 카키아게의 풍미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완식하게 되는 것.
          * 숨은 비결은 백 참기름에 있는데 가열을 거의 하지 않고 순수하게 참깨를 으깨서 만드는 무미, 무취에 가까운 매우 깔끔하고 점잖은 맛의 참기름이다.
          * 비밀은 그것만이 아니다. 샤름은 뭔가 다른게 더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그게 뭔지는 감을 잡지 못하는데. 이것도 안은 단서가 있다. 그것은 기름. 네네는 그녀의 추론이 맞다며 자신의 마지막 비결을 공개한다. 벚꽃 새우를 튀길 때 "백 참기름"이란 특수한 참기름을 쓴 것이다.
          "백 참기름"은 저온에서 만든 참기름. 일반적인 참기름은 고온에서 만들어 강한 향과 맛을 가지지만 이쪽은 저온에서 만들어 참깨 특유의 향보다는 무미무취에 가까운 담백한 맛이다. 그러나 기품이 있고 점잖은 맛을 내는데, 이 기름을 고온으로 가열해 튀기면 원재료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 부드러운 튀김옷이 완성된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4회 일치
          * 그 시각 쿠가는 십걸 1석 [[츠카사 에이시]]에게 2라운드에서 자신과 붙자 제안하나 츠카사는 애매한 도를 보이자 대답없이 돌아간다.
          * 쿠가는 의연한 도를 취하고 있었으나 위장이었고 손이 떨려서 부채를 떨어뜨릴 정도로 긴장한 상. 그걸 소마가 주워주다 엉겁결게 듣고 있던걸 들킨다.
          * 린도가 대결 상대를 정하자고 한다. 먼저 응하는 것은 미마사카. 처음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트레이스하고 있는 상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는 사이토 소메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입버릇을 따라하는데. 사이토는 그런 부분을 재미있다고 평하며 승부에 응한다. 메기시마는 린도 쪽으로 도전. 남은 것은 자연히 쿠가와 츠카사. 쿠가가 바라마지 않던 매치가 성립했다. 관중들은 8석 대 1석이라며 무모한 대결이라고 혹평하지만 어쨌든 소마는 쿠가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공이 울리는 2라운드.
  • 식극의 소마/220화 . . . . 4회 일치
          * 린도는 유독 의욕을 불 우며 승부에 임한다. 그런데 재료로 정한 악어를 놓치는 바람에 작은 소란을 일으킨다.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식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식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 그녀가 본 것은 찻슈. 라면의 필수요소인 그 찻슈다. 메기시마는 지금껏 찻슈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평범해 보이는데. 그 밖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착실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수는 물론 면을 삶을 준비까지. 메기시마 또한 임전세를 갖췄다. 후배들은 린도가 희소식재료 마스터라면 메기시마는 "라면 마스터"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4회 일치
          * 시노미야는 "근성론"을 펼쳐서 메구미의 소극적인 도를 질타하는데, 우연히 메구미가 좋아하는 순정만화 속 캐릭터인 "코치"의 가르침과 맞아떨어진다.
          * 그걸 계기로 각성한 메구미는 그림체가 변할 정도로 적극적인 도로 특훈에 매진, 십걸을 상대로도 지지않고 승부에 임하게 됐다.
          모모는 주제가 결정된 순간부터 임전세였다. 자신의 인영 "붓치"를 상대로 말을 걸며 무엇을 만들지 구상에 들어갔다.
          그래서 제일 먼저 특훈에 돌입한 것은 메구미조. 시노미야는 일단 뭔가 만들어서 현재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메구미는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상 조리를 시작하자 실수연발. 소금과 설탕을 헛갈리고 재료를 워먹는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원래 풍부하지도 않은 시노미야의 인내심이 삽시간에 바닥났다.
  • 신귀식 . . . . 4회 일치
         * [[2001년]] [[KBS 1TV|KBS1]]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 [[신라 경순왕|신라 경순왕 김부]] 역
         * [[2010년]] [[KBS 2TV|KBS2]] 《[[국가가 부른다]]》 ... 한식 역
         [[분류:1941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196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고령 신씨]][[분류:구리시 출신]]
  • 신영식(만화가) . . . . 4회 일치
         [[1949년]] [[2월 11일]]에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어나 서라벌예술고등학교[* 현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다 중퇴한 뒤 1971년 소년한국일보에 <승리의 그날>을 시작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뒤 주로 반공,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극화만화를 그려오다 1980년에 소년동아일보(현 어린이동아)를 통해 4쪽짜리 만화 <돌배군>을 장기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1987 대통령 선거 당시 [[노우]] 홍보 만화를 그렸는데 지금 보면 꽤나 엉터리다....노우가 연대장이던 시절, 야간 보초서던 징집병에게 수고한다면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돈주려고 했더니만 지갑을 안가져오자 손목시계를 그 보초병에게 줘서 이거라도 [[전당포]]에 팔아 먹을 거 사먹으라는 게(...) 나온다. 지금 봐도 어이가 없지만 이 만화를 본 당시 어른들도 이건 너무 엉터리라고 어이없어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노우 홍보만화에서 신영식 만화에서만 이게 나왔다는 것.
  • 신종령 . . . . 4회 일치
         [[2017년]] [[9월]], 두 차례에 걸친 취중 상에서의 묻지마 폭행을 벌이고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도를 보여 물의를 빚었으며,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상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457793</ref>
         [[분류:개그콘서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1982년 어남]]
  • 신혜성 . . . . 4회 일치
         Lyrics by 김훈 Composed by 김영욱 Arranged by 이준엽<br /><br />
         |
         * [[해제과]] 닙스(신화)
         [[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천안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신혜진 . . . . 4회 일치
         [[1995년]] [[1월 22일]], 1남 1녀 중 첫째로 어났으며, 어렸을 적부터 연예인을 꿈꾸고 있었다. 빠른 1995년생으로 1994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인 [[오마이걸]] 멤버 진이 양은 건강상의 문제로 지난 1년 여 간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였습니다.
          * 어나서 한 번도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어서, 기회가 된다면 [[미라클|팬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서로를 [[응원]]할 수 있고, 그렇게 [[마라톤]]을 완주하게 되면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될 것 같다고. 또 [[마라톤]]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건강]]해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기승전 [[다이어트]]~~
  • 쌍둥이 . . . . 4회 일치
         한 어머니의 탯속에서 두 명 이상의 아이가 한꺼번에 어나면 그 아이들을 쌍둥이라고 부른다. 세 명 이상이 어나면 '세 쌍둥이' 하는 식으로 따로 숫자를 덧붙인다. 수정란이 분화 과정에서 각각의 개체로 분열하여 아가 된 것을 일란성 쌍둥이, 두 개의 난자가 각각 수정하여 아가 된 것을 이란성 쌍둥이라고 한다.
  • 아카짱가에리 . . . . 4회 일치
         아카쨩=아기, 가에리=어떤 상로 되돌아감. 아기 같은 행동을 보이는걸 뜻한다. 번역은 '유아퇴행'이나, '아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정도로 쓸 수 있다.
          * 여동생, 남동생이 어나서 언니오빠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된다.
          * 아기가 어났을 때, 아기와 경쟁하여 젖을 마시고 싶어한다.
          * 아기를 유모차에 울 때, 걷지 못하게 되거나 유모차에 타려고 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4회 일치
         플레이어를 보면 도망치는 전령. 지도에서 느낌표가 그려진 붉은 주머니로 표시된다. 쫓아가서 클하거나 죽이면 십단위의 돈과 아이템 몇개를 준다.
          * 아퀼라의 속도는 세가지로 조절할 수 있다. 정지, Half Sail, Full Sail. 정지는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다. Half Sail은 돛을 반쯤 편 상로, 속도는 비교적 느리지만 조타에 용이하다. Full Sail은 돛을 모두 편 상로,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조타가 어렵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 연경흠 . . . . 4회 일치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2순위(전체 90번)에 지명되었으나 [[송광민]], [[김완(1984)|김완]]과 마찬가지로 대학행을 선택했고[* 당시 신인드래프트는 지금처럼 지명권 2년 유효 제도가 아니어서 하위픽은 지명만 해놓고 대학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입학에 필요한 전국대회 8강 경력이 없어 진학이 어려울 뻔 했으나 봉황대기 우승으로 극적으로 인하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하대에서 4번타자를 맡았다. 위의 둘과는 달리 외야수를 봤기 때문에 미래의 외야자원감으로 꼽혔으며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했다. 장타력이야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차세대 거포 외야자원으로 촉망받았다.
         2008년에는 동기이자 친구인 [[김완(1984)|김완]]은 빛을 보고 [[송광민]]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 해에 '''[[윤재국]]''', [[추승우]], [[클락]], [[송광민]]에 밀려 별 빛을 보지 못했다. 추승우, 클락, 송광민은 그렇다쳐도 윤재국의 기록은….
  • 연정(우주소녀) . . . . 4회 일치
         노래를 부를 때 특별한 기교나 습관을 넣는, 이른바 '자기화' 시키지 않는다는 것 역시 특징으로 꼽힌다. 어떤 노래라도 원곡의 분위기에 맞게 부르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는 면에서는 정말 뛰어나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을 때는 특정 장르의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간혹 나왔지만 생방송 무대에서 보여준 <Crush> 무대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가 사라진 상. 어떤 류의 노래를 불러도 거부감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걸그룹에서 메인보컬을하기에 최적화된 보컬'''이란 평. 감성 전달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평은 적지 않지만 전달력이 마냥 약한 건 아닌지라 자기만의 특색과 전달력은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가면 해결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어린 나이라는 걸 감안하면 오래지나지 않아 자기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뒤로부터 "연정의 특색이 이거였구나."라는 반응이 많아져서, 이전까지는 되려 저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방송에서 직접 언급했듯이 '''그 전까지는 방송에서 솔로곡을 완창한 적이 없었다.''' 평가할 만한 솔로 무대가 유튜브 영상 외에 없었으니 솔로로서의 평가가 박했던 것이다.
         또한 스타쉽에서 관리를 혹독하게 시켰는지 비주얼이 엄청나게 상승했다.[[http://dcimg2.dcinside.com/viewimage.php?id=34b2df3fe0dd36ac7bb1d1&no=29bcc427b38b77a16fb3dab004c86b6f113d37b1bcb96f75556c19c26e5db7632c4092fc08cf1ba17954fbb230ddbbbfd58f21588be8d5b584a26b1400|#]] 팬들은 '''연정이가 각성했다'''라며 환호 중. 스타쉽이 이전까지의 홀대[* 일단 프로듀스 101에서 스타쉽이 밀었던 멤버가 하였는데, 문제는 스타쉽의 기대와 달리 하가 8회만에 방출당했다는 것..... 결국 하는 스타쉽에서 더블킥으로 이적해 모모랜드에 합류했다.]를 멈추고 본격적으로 연정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 하니, 앞길은 창창할 것으로 보인다.
  • 오석락 . . . . 4회 일치
         193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난 오석락은 [[김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김덕주]] 전 대법원장, [[최재호 (법조인)|최재호]] 대법관, [[이재성 (법조인)|이재성]] 대법관, [[김진우 (법조인)|김진우]] 헌법재판관, [[김경 (법조인)|김경]] 경기도지사, 김동환 변호사 등과 함께 30명을 선발한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었다.
         [[분류:1934년 어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독교인]][[분류:김천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2014년 죽음]]
  • 오중기 . . . . 4회 일치
         || '''약력''' || 김근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br]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br]영남대학교 총동문회 이사[br][[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br][[청와대]] 선임행정관 ||
         [[경상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어났다. 형제자매는 2남4녀의 육남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상인들이 반겨준다고 한다.
         [[참여정부]]가 무차별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를 계기로 역사적 사명감을 느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주의 타파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여겼다. [[김근]] 전 의장의 권유로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정치에 투신한다.
  • 오태근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선수명 = 오
         '''오근'''(吳泰根, [[1978년]] [[4월 5일]] ~ )은 [[KBO 리그]]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오근은 원래 [[LG 트윈스]]의 1번타자로 기대를 받았지만 [[이대형]]이 입단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도곡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외척 . . . . 4회 일치
         원칙적으로 군주의 권위는 막강하지만, 전통적으로 높이 여겨지는 [[어머니]]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군주의 어머니인 [[후]]는 높은 권위를 가졌고, 후의 친족인 외척들 역시 권세를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군주의 나이가 어리다면 [[수렴청정]] 등으로 실권까지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황후를 배출할 정도면 외척 집안 자체가 원래 권세가 강력한 경우가 많았다.
         고려 조 왕건은 각지의 호족과 결혼동맹을 맺어 수십 명의 아내를 두었다. 이 때문에 엄청난 수의 호족들이 외척이 되면서 외척 세력 간의 항쟁이 심각하게 벌어졌다.
         조선 전기에는 [[종]]이 자기의 처가와 아들의 처가를 도륙내는 등(…) 외척을 억제하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외척의 권위가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윤원형 등의 외척 권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외척의 권세가 아주 강해져서, [[세도정치]] 시기에는 한 가문이 국정을 장악하는 상황까지 갈 만큼 외척의 권세가 강했던 시기로 꼽힌다.
  • 우찬양 . . . . 4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은 [[정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00703c> '''{{{#eee156 2015.10.06}}}''' ||<#00703c> '''{{{#eee156 2016 AFC U-19 챔피언십 예선}}}''' ||<#00703c> '''{{{#eee156 국 1 : 2 대한민국}}}''' ||<#00703c> '''{{{#eee156 -}}}''' ||
         ||<#00703c> '''{{{#eee156 2016.10.13}}}''' ||<#00703c> '''{{{#eee156 2016 AFC U-19 챔피언십 본선}}}''' ||<#00703c> '''{{{#eee156 국 1 : 3 대한민국}}}''' ||<#00703c> '''{{{#eee156 -}}}''' ||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4회 일치
          블라즈코윅즈를 보살피던 정신병원의 수간호사. 블라즈코윅즈와 함께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폴란드 출신으로, 의사와 지식인 사이에서 어났다. 고고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전쟁 때문에 고고학을 배우는걸 그만두고 가업인 정신병원 운영을 돕게 되었다.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단원. 독일인. 어깨에 하켄크로이츠 문신이 있어 블라즈코윅즈와 만나는 즉시 공격당했다. 한때는 골수 나치로, 독일 육군 장교였지만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어나는 바람에 가족이 비밀 경찰에게 몰살당했다.
          과충전 상에서 적 5명을 은밀하게 처형하면 해금. 처형시 체력이 회복된다.
          병사 50명과 캄프훈트 5마리를 은밀하게 사살하면 해금. 뛰어다닐때 나는 소음이 감소하며 수그린 상에서의 이동 속도가 증가한다.
  • 원피스/830화 . . . . 4회 일치
          * 징베는 양해적단 선원들에게 빅맘을 떠나 루피의 힘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다. 선원들은 당연히 징베가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고 지지한다.
          * 몇 시간 전. 징베는 전 양해적단 전원을 모아놓고 "루피는 세계를 바꿀 남자"라고 웅변한다.
          * 나미는 이런 중요한 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냐고 하는데, 브룩은 "루피는 '이런 별' 아래서 어난 것"이라며 웃어넘긴다.
          * 그때 쵸파가 개미떼가 또 달라붙는걸 감지하고 다시 임전세에 들어간다.
  • 원피스/845화 . . . . 4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를 운 고양이 마차가 스위트 시티를 지나고 있다. 시민들은 크래커의 복수전을 벌일 "분노의 군단"이 편성됐다고 소리치며 그들의 진군로를 피해주고 있다. 니디, 욘디는 그 군단이 밀집모자 일당을 처리하기 위해서 가는 거라며 시시덕거린다.
          * 루피 쪽에서도 분노의 군단이 다가오는게 확인된다. 나미는 물론 킹 바움 조차 조금만이라도 피해있자고 간청하지만 루피는 결심을 굳힌 상다. 드디어 군단 쪽에서 루피를 발견, 임전세에 들어가지만 루피는 상디가 오기 전엔 한 발짝도 움직일 마음이 없다.
         상디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상대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성격 상 진담으로 보인다. 푸딩은 결과적으론 상디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일을 하게 됐는데 일각에선 푸딩이 처음부터 빅맘의 편이었고 상디를 회유하려고 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푸딩은 타마고 남작의 눈을 피해 정말로 상디를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구여 그런 복잡한 연극을 할 이유도 없었다.
  • 원피스/847화 . . . . 4회 일치
          * 쵸파는 일부러 거대화된 상로 잡혀서 묶여 있다. 기회를 봐서 원래 사이즈로 돌아가 쇠사슬을 빠져나가고 "몬스터 포인트"로 브륄레를 때려잡을 작정이다.
          * 사실 이들이 잡힌건 작전의 일환이다. 쵸파는 일부러 "해비 포인트"로 거대화된 상로 잡혔는데 변신만 풀으면 바로 쇠사슬을 풀 수 있다. 게다가 어제로부터 시간도 많이 지나서 "몬스터 포인트"를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잘만되면 브륄레를 때려잡을 수도 있는 것. 쵸파는 침착한 도로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
          * 때마침 빅맘의 아들이 밀집모자 일당 두 명을 연행해왔다고 보고한다. 빅맘은 오늘은 바쁘다며 빈스모크 일가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보고하러 온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도가 이상해서 왜그러냐고 묻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제르마66, 그 중에서도 이치디와 레이쥬의 광적인 팬이었다. 팬심으로 흥분하고 있었던 것. 빅맘은 한심하다고 핀잔하며 "필요한건 겉모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 원피스/859화 . . . . 4회 일치
          벳지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선 암살에 필요한 "물건"이 두 가지. 우선은 시저가 개발한 KX런처다. 독가스를 적의 체내에 주입시키는 흉악한 병기로 한 발만 맞춰도 충분히 치사량이지만 만약을 위해 총 세 정을 준비했다. 그런데 팔팔한 상의 빅맘에겐 이것도 통하지 않는다. 피부가 너무 두껍고 강인해서 이런 걸로는 체내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
          중요한 건 이때 쇼크로 쓰러진 빅맘. 그녀는 이때 무릎을 꿇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렸다. 벳지는 빅맘도 과연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고 놀랐다고 한다. 이 상의 빅맘이 평소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잃는건 자명하다.
          하지만 당사자인 루피는 아주 가벼운 도로 승락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보다 "재미있는 등장방법"을 떠올렸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정신연령이 비슷한 쵸파도 그게 뭐냐고 물어보는데 루피는 "지금 말하면 재미없다"는 이유로 입을 다문다.
          좌우간 본인이 승락한 이상 벳지로선 나쁠게 없다. 그는 타이밍은 아냐고 묻는데 루피는 [[샬롯 푸딩]]이 상디에게 맹세의 키스를 하는 순간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상디가 "못한다고!"라고 클건다. 푸딩은 키스하는게 아니라 총을 쏠 거다. 상디는 그 점을 강조하며 총은 어떻게든 피할 테니 총성을 신호 삼아서 등장하라고 못박는다.
  • 원피스/861화 . . . . 4회 일치
          * 빅맘의 맞은 편, 다과회 테이블 위에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놓인다. 벳지의 정보대로다. 잔뜩 들떠 있던 빅맘이 이 순간 만큼은 경건한 도로 맞이한다.
          * 예식까지 30분이 남았지만 벳지가 확인해 보니 "미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시저처럼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의 몸 속에 숨어 있다. 벳지가 들여다 보니 [[징베]]를 제외하곤 곯아 떨어진 상. 벳지가 준비는 어쨌냐고 호통을 친다. 징베는 상륙 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냅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10분 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고 장담한다. 벳지는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지 "걸림돌이 되면 바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징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이른다.
          * [[상디]]와 푸딩은 9층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쳤다. 상디는 아직까지는 "좋은 신랑"을 연기해야 한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결혼하지 않을 셈으로 이 섬에 왔는데 이렇게 둘만 있게 돼서 꿈만 같다고 말한다. 진상이 밝혀진 줄 모르는 푸딩은 "좋은 신부" 연기에 한층 박차를 가한다. 그녀는 귀여운 척하며 그 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냐고 애교를 떤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답이 없는 변신사인 상디는 뻔히 알면서도 홀라당 넘어가서 심장이 멈출 뻔 한다.
          * 이윽고 빵빠레가 울리며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된다. 사회자의 선언에 따라 프로메테우스가 신랑신부를 운 거대한 찻잔을 이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사회자는 이걸로 제르마와 빅맘 해적단이라는 악의 양가가 이어져 "세계에 악의 꽃이 미친듯이 피어나게 하리라"고 선언한다.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갈채와 환호가 어지럽게 폭발한다. 저지는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며 웃고, 빅맘은 남몰래 그런 저지를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본다.
  • 원피스/862화 . . . . 4회 일치
          빅맘 [[샬롯 링링]]은 케이크가 훌륭하다고 슈트로이젠과 부하들을 몸소 칭찬한다. 하객들도 칭찬일색이다. 신혼부부를 운 찻잔은 초거대 웨딩케이크의 정상으로 향한다. 마치 장식처럼 보였던 꼭대기의 지붕이 두 사람이 맹세를 주고 받을 단상이었다. 스튜시는 신부화장한 푸딩이 "옛날의 나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하는데 옆에 있던 루 펠드가 "몇 십 년 전 일이냐"고 츳코미를 넣다가 얻어맞는다.
          * 결혼식을 지켜보던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는 해석되지 않는 미래를 예지하고 흠짓한다. 그가 본 미래에선 상디가 아니라 여동생 푸딩이 쓰러지기 때문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이 왜 떠오른 건지, 카타쿠리는 당황하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굴린다. 삼장성 [[샬롯 스무디]] 오빠의 도가 심상치 않은걸 느끼고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리고 눈치 빠른 벳지도 그가 미래를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파악한다.
          >웃기지 말라고! 어나서 단 한 번도!
          일을 크게 키워버린 카타쿠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빅맘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묻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예측 못했던 사"가 전부다. 그도 손을 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샬롯가문의 형제들은 작전은 실패했고 상디가 쓰러지지 않은 걸 보고 이대로 작전을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한다. 카타쿠리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며 낭패한 기색이다.
  • 원피스/867화 . . . . 4회 일치
          * 셈라를 먹은 링링이 제정신을 되찾아 파괴행위를 멈췄지만 거인족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
          * 잠시 뒤. 무서운 기세로 번지던 불꽃은 온데 간데 없었다. 대신 작은 양과 같은 무언가가 카르멜의 손 안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성모가 기적을 일으켰다"고 목소리를 높이나 카르멜은 겸손하게 그 말을 정정한다.
          >... 아니. 양의 신이... 모든 것을 고친 거야.
          * 그러나 진짜 끝은 아직 나지 않았다. 요를은 빈사상에 이르러서도 링링을 죽이란 말을 반복한다. 그 말에 따른 것은 엘바프의 또다른 웃어른, 산수염 [[야를]]이었다. 그는 직접 칼을 들어올려 링링을 찌르려한다. 카르멜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야를에게 있어 요를은 300년이나 함께 한 전우. 그도 링링을 죽이는게 기꺼운 일은 아닌 듯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요를의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지만, 저 나이를 생각하면 구해낼 수 없을 거다. 아무리 전사에게 오래 사는건 중요하지 않다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중대한 문제다.
  • 육미당기 . . . . 4회 일치
         <김자전(金太子傳)>, <옥소기(玉簫記)>, <보타전기(普陀傳奇)>등의 다른 판본이 있다. 이 가운데 김자전은 경술국치 이후에 활자본으로 간행된 탓인지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 부분이 삭제되었다.
         신라 자 김소선(金簫仙)이 당나라로 갔다가 고난과 모험을 겪지만, 결국 고난을 헤치고 3처3첩을 얻어 행복하게 살다가 승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신라국 자 김소선(金簫仙)은 부왕의 병을 고치려고 남해의 [[보타산]](普陀山)으로 가서 [[죽순]]을 구해 오다가, 이복형 세징(世徵)에게 습격당해 죽순을 빼앗기고 [[실명]]하여 섬에 떠내려간다.
  • 윤진이 . . . . 4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br />(現 [[서울특별시]])<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영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제1회 [[아시아평양 스타 어워즈|K-드라마 스타 어워즈]]
         [[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윤흔 . . . . 4회 일치
         도재 윤흔은 [[1564년]] [[조선 선조|선조]] 때 [[의정부]][[영의정]]을 지낸 오음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어났다. [[증직|증]] [[의정부]][[좌찬성]] 윤희림의 증손으로, [[조선 인조|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의 동생이다.
         첫 부인은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의 손자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일찍 상처하고, 뒤에 스승 [[이이]], [[성혼]]과 동문수학한 [[신응시]]의 딸 영산신씨(靈山申氏)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재취 부인 영산신씨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처 전주이씨에게서 1남 1녀를 두니 아들 윤취지(尹就之)와 유시경(柳時慶)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또한 첩실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니, 서자 윤지(尹泰之)는 관상감 직장(觀象監直長)을 지냈고, 서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유지만(柳之蔓)과 결혼하였다.
         **** 서자 : 윤지(尹泰之)
         [[분류:1564년 어남]][[분류:1638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시인]][[분류:조선의 수필가]][[분류:조선의 작가]]
  • 은혼/596화 . . . . 4회 일치
          * 9.11 사처럼 시민들이 혼란에 빠지고 아비규환이 되는 현장 속에서 다이조가 집어든 것은
          * 하지만 에도가 멸망하거나 말거나 자기는 언제나 멸망 직전 상라며 "이제야 겨우 나랑 같은 차원에 온 것"이라며 썩은 미소를 짓는다.
          *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천도중은 오리무중 상. 막부도 와해되어 무정부 상가 다름없다.
  • 은혼/647화 . . . . 4회 일치
          * 지구의 [[우츠로(은혼)|우츠로]]는 해방군이 결국 실패했음을 직감하나 그들이 운 불꽃을 빨아들여 자신의 불꽃을 우겠다고 자신한다.
          그는 시체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다른 폐품들처럼 시설물 잔해에 간신히 걸려있던 그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흘린 피만 봐도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그게 문제였다. 무전으로 화상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으로 보면 자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헨페이타가 절망하지 않을 형로. 그게 어려웠다. 그때 신스케가 손을 들어 어려움을 끝내준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가 통신으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도.
          신스케는 몸상를 걱정하는 헨페이타에게 너스레로 대답했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보면 자신도 참 망가졌다면서. 그는 다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키지마 마타코]]의 구조와 보호를 부탁했다. 그녀는 자신이나 헨페이타 같은 악당이 아니라 악운만으론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귀병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죽으면 [[카와카미 반사이]]가 반드시 화를 낼 테니까. 그 외의 지시는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할 뿐이었다.
  • 이경실 . . . . 4회 일치
         풍만한 글래머에 색기 있는 중년여성 컨셉도 있다. 젊었을때는 [[박미선]]이나 [[팽현숙]]과 함께 미인 코미디언으로 나름 인기 있었다. 현재도 자기관리가 굉장히 철저한 편으로, 방송에서 동료들이 그녀의 맵시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예능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목욕탕에서 만난 이경실'인데, 뒤가 엄청 예쁜 여자가 있어서 가봤더니 이경실이더라, 그런데 그 예쁜 몸으로 아줌마들이 즐겨하는 '''배 두들기는 기체조'''를 하고 있어서 경악했다는 내용. 주로 [[박미선]]이나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자주 언급했다. 얼굴은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몸매는 웬만한 젊은 여성 수준이다.
         동시에 이경실의 이런 도다 옳은가 그른가를 두고 네티즌들이 (부탁하면 다 들어줘야 되나 vs 아무리 그래도 도가 싸가지 없다) 두패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어쨌든 [[뒷담화]]의 성향이 강한 터라 이경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컸었다.
         주된 방송 스타일은, 아무래도 방송의 관록이 관록이다 보니, 일부 출연자들의 [[무리수]], [[개드립]] 등을 잘 살리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버려야 하는 몹쓸 드립들도 적절하게 살려내는 편. 그냥 얼떨결에 묻힌 멘트들을 발굴해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주요 화법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면박이나 [[자폭]]류 [[개그]]. 다년 간의 방송 짬밥으로 웬만한 MC역할의 연예인들에게 클 걸 수 있는 입장이다. 때문에 [[김구라]]나 [[박명수]] 등의 독설가나 버럭류 캐릭터의 [[개그맨]]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캐릭터도 갖고 있어 기센 아줌마 + 짬밥왕인 이경실에게는 확실히 쩔쩔맨다. 이들을 적당히 제지하거나 역으로 공격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어떻게 보면 MC들을 보조하는 보조적 MC 속성. 어느 프로그램에서 나오든 입담과 타이밍 감각으로 중박 이상은 치므로 고정 패널로 선호가 높은 듯. 특히 친정인 MBC에서는 [[박미선]]과 함께 공무원 급으로 자주 나온다.
  • 이만섭 . . . . 4회 일치
         이만섭은 [[1932년]] [[2월 25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다. [[1951년]]에 [[연세대학교|연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주일 특파원과 주미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뒤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직후 발탁되어 [[1963년]] 10월에 공화당에 입당, 대선 후보 [[박정희]]의 지지 유세와 찬조연설을 다녔다.<ref name="경향_6310">民主共和黨에入黨 東亞日報李萬燮씨, 《경향신문》, 1963.10.3</ref>
         |후임자 = (중구·서구)이만섭·[[한병채]]<br />(동구·북구)[[김용 (1936년)|김용]]·[[목요상]]
         [[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최규하 정부]][[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분류:김영삼 정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대중 정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한국국민당 (1981년) 당원]][[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국민신당]][[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윤치영]][[분류:김종필]][[분류:동아일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1932년 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합천 이씨]]
  • 이상백 (1904년) . . . . 4회 일치
         이상백은 [[1904년]](광무 7년) [[8월 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서문로]] 12번지의 양옥집에서 어났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며, 어머니는 김신자(金愼子)로 [[김해 김씨]]이다. 4형제 중 셋째이다. 형 [[이상정]]은 독립 운동가이며, [[이상화 (시인)|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시인, 작가이며 넷째 아우 이상오는 정통 수렵가이자 [[바둑]] 유단자이다. 그의 집안은 [[대구광역시|대구]]의 명문가로 대 부잣집이었으나 아버지 이시우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상백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영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상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인 '서얼차대(庶孽差待)의 연원에 대한 일문제'를 [[진단학회]]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와 건국 초기 분야에 대한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 이조 조의 사전개혁운동(私田改革運動)과 건국 후의 실적, 위화도회군고(威化島回軍考),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 '[[고려]]말 이조초에 있어서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운동(田制改革運動)과 그 실적' 등 고려 말, 조선 건국, 조선 전기 분야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였다.
         [[분류:1904년 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역사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농구 선수]][[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수필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건국동맹]][[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
  • 이열희 (1924년) . . . . 4회 일치
         [[1924년]] [[12월 18일]] [[대구부]] 성내3동(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가)에서 이상무의 아들로 어났다.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사업가였고, 독립운동가 [[이상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은 그의 아버지 이상무의 사촌 형제들이었다.
         [[1963년]] 치과의학회 경상북도지회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8월 1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 논문 "인아(人胎兒) [[소화기]]계의 [[점액]]선에 대한 발생학적 급조직 화확적연구"를 제출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3월 3일]] [[경북대]] 의대 부교수로 승진하였다. [[1967년]] [[10월]] [[대한구강악안면외과협회]] 제9차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부회장에 선출되어 [[1969년]] [[10월 17일]]까지 재임했다. [[치과]]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한 그는 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 재설치를 꾸준히 청원하게 됐다.
         * 인아소하기계의 점액선에 대한 발생학적 및 조직화학적 연구(1963년 8월)
         [[분류:1924년 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 <!--[[구강 성형외과]] 의사-->[[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요원 . . . . 4회 일치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 《[[광식이 동생 광]]》
         * [[군]] - 속았다 (내레이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98년 데뷔]][[분류:성남시 출신]][[분류:전주 이씨]][[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그리메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자]][[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디렉터스 컷 시상식 수상자]]
  • 이지은(2000) . . . . 4회 일치
         ||<:><#fcb4bd>'''{{{#white 별명}}}'''||<#ffffff>여장부[* 고등래퍼 출연 당시, 남자출연진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모로 당차게 리딩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듀서들이 감탄하곤했다.], 안소희 닮은꼴[* 고등래퍼 선공개 영상에서 안소희 닮은 꼴로 소개가 되었으며, 좌우로 긴눈과 전체적인 얼굴형가 닮았다는 평가], 코지은[* 코가 꽤 오똑하고 이쁜편이라 힙갤에서 불리는 편], 찐[* 학교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한다], 햄[*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나온 별명], 자영업자[* 믹스나인 방송내에서 콩알만한 분량으로 알아서 여자 직캠조회수 3,4위를 먹은 김시현, 이지은을 통칭하는 별명. ]||
         자신이 이지은의 질투로 친구 관계를 맺기 힘들었고 이지은의 전 남친과 친구, 그리고 이지은이 자신의 집에 술을 들고와 진창 취하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성폭행을 당한 상였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원글은 삭제된 상. 이후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스샷을 올려, 논란을 부추겼다,
          * 모든 SNS 계정은 삭제된 상이다.
  • 이효상 . . . . 4회 일치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ref name="김충식">[[김충식 (1954년)|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1 (1992, 동아일보사)</ref>{{Rp|305}}<ref name="이상우">[[이상우]], 박 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1986, 동아일보사)</ref>{{Rp|343}}<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제목=[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확인날짜=2010년 1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824010951/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보존날짜=2009년 8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후임자 = (동구·북구)[[김용 (1936년)|김용]]·[[목요상]]<br />(남구·수성구)[[이치호]]·[[신진수 (1938년)|신진수]]
         [[분류:1906년 어남]][[분류:1989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경북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영남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성산 이씨]]
  • 이휘향 . . . . 4회 일치
         * 2003년 [[SBS]] 드라마 스페셜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 ... 미라 역
         * 2014년 《[[좋은 친구들 (2014년 영화)|좋은 친구들]]》 ... 현 엄마 역
         * 1996년 [[CJ제일제당]] 해찬들 양초고추장 까나리액젓
         [[분류:198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이희근 (1929년) . . . . 4회 일치
         |후임자 = [[김상 (1930년)|김상]]
         [[분류:192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4회 일치
          뤼드셀의 공손했던 도가 한순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종족이 바라던 평화"를 주창해왔지만 그 안에 마신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스티그마인 멜리오다스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눈을 떠야 한다며 멜리오다스와 갈라지라고 강요한다. 그에게 있어선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의 후계자일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하면 엘리자베스에게 더 어울리는 사내도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데.
          * 엘리자베스는 뤼드셀이 얼굴에 손을 대자 뿌리치고 날아간다. 네로바스타는 그녀를 쫓을지 묻는데 뤼드셀은 다시 불손한 도로 바뀌어 "저 계집은 아무 것도 못한다"며 내버려 두게 한다. 그런 것보다는 "계획의 수행"이 우선이라고 말하는데.
          거인족 남녀는 패배를 인정하고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 싸우는 중엔 드롤 본인처럼 진중한 도였는데 싸움이 끝나자 디안느 본래의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거인족들도 그런 모습에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모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킹의 표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게라이드는 오빠의 상가 평소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킹은 얼버무리기 바쁘다. 킹은 생각해 보니 그녀가 초대 요정왕 때부터 섬겨왔단 얘기를 해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설마 자신과 [[엘레인]]처럼 남매 관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모습과 분위기는 그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현대의 게라이드는 속이 검고 요정왕의 안위만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4회 일치
          이 시대의 젤드리스는 [[고서]]의 감시자이자 "처형인"이다. 그는 십계 고서에게 마신왕의 노여움을 전하며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배반자로 간주해 처리하겠다고 엄포한다. 고서도 그렇게 협조적인 도는 아니다. 그는 다소 날선 도를 내보이는데 최대한 마력을 온존하고 싶었지만 젤드리스 상대로는 그럴 수 없겠다고 말한다. 분명 싸울 세다.
          춤을 마친 디안느는 당당한 도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라고 외친다. 젤드리스는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4회 일치
          * 대지의 모자정 옥상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상과 달리 식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절부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상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상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식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절망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남자. 엘리자베스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십계의 [[젤드리스]]. 분명 멜리오다스를 죽이는데 일조했던 남자. 자신의 마력에 개입하는 존재를 느끼고 나타난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손님이라 부르더니 정말로 반갑다는 양 "오랜만이다"라고 인사한다. 엘리자베스는 십계가 나타난 것도 그랬지만 그가 구면인 것처럼 구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반응을 보더니 젤드리스가 "소문은 사실이었다"며 불쌍한 여자라고 빈정거린다. 무엇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스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달라 소리치자 젤드리스의 도가 험상궂게 바뀐다. 그리고 그의 발설하는 엘리자베스의 비밀.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4회 일치
          *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가 날이 갈 수록 악화되고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치료하는 것으로 간신히 버텨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상.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디안느가 그 말에 환호한다. 할리퀸이 어리둥절해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준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 윤회, 기억의 상실 등. 신나게 떠들어대자 멀린이 "입조심해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디안느는 움찔하지만 진짜 너무한건 멜리오다스라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무시했던 도를 질책한다. 그때까지 말이 없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4회 일치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이제 달아나는 신세였고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정면승부를 피하며 조금씩 물러났다. 그대로 해골병들을 유인하며 특기인 신경조작을 걸었다. 하지만 마신족 마저 조종하는 그 기술이 해골병에겐 통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후방지원이 빛을 발했다. 강력한 마법의 힘이 해골병들을 새까맣게 워버린다.
          * 마을 한 복판에 거대한 꽃이 피어났다. 꽃은 덩쿨을 뻗어 땅위를 활보하는 해골들을 하늘로 내던졌다. 잔 영창 샤스티폴의 제 4형 "선 플라워". 할리퀸의 성장에 따라 그 힘과 규모도 무지막지해졌다. 그 크기는 이전과 비교를 거부했고 하늘로 쏘아대는 화력은 강화된 해골병이 잔해 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였다.
          * 해골병들을 정리한 일행은 여유가 생겼다. 호크는 녀석들의 잔해에 화풀이를 하며 혼자 싸운 것 같은 생색을 냈다. 그때 멀린은 주위에 감도는 수상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정신지배의 징조였다. 일행에게 정신을 최대한 유지하라고 경고했다. 할리퀸도 느낄 수 있었다. 해골에서 빠져나온 원념들이 이제 산 사람에게 달라붙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곧 디안느의 상를 걱정한다. 그러나.
          *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돼지의 모자 정은 아직 코란도로 향하는 다리 앞에 있었다. 안정을 취하고 있던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반과 그 일행에게 일어난 일을 느꼈다. 디안느의 의식이 공포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잠식되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과 반이 겪었던 일이 디안느와 오빠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일념으로 엘레인은 불편한 몸을 침대에서 끌어냈다. 동료들에게 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걷지도 못하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위롭게 기어다가 쓰러지는 그녀에게, 누군가 손길을 뻗었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4회 일치
          * 한편 혼자 남겨진 멜리오다스는 쌓이고 쌓인 분노가 마신왕의 힘을 끌어내 암담의 고치를 찢고 바깥으로 나오니, 보통 상가 아니게 된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엘리자베스를 따라온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을 질책했다. 그녀가 좋지 않은 몸상로 무리를 한 게 가슴 아팠다. 엘레인은 반과 모두가 걱정돼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반은 이제 그 문제를 묻어두고 지금이라도 빨리 돼지의 모자 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엘레인이 대답을 피했다.
          * 형가 무너지던 그녀의 몸은 팽창을 거듭해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 쌍의 뿔이 달린 사악한 뱀. 그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메라스큐라는 이 형를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반은 지금까지 모습보단 이쪽이 낫다고 빈정거렸다.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메라스큐라가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반이었다. 메라스큐라의 주둥이가 반을 덮쳤다. 멀린은 고서와 엘레인을 퍼펙트 큐브로 보호하며 상공으로 날아올랐고 에스카노르가 호크가 휘날려가지 않게 붙들었다.
  • 장발 (화가) . . . . 4회 일치
         우석 장발은 [[1901년]] [[4월 3일]] [[한성부]] [[종로구|종로]] 친척 집에서 인천세관의 관리 [[장기빈]]과 그의 부인이었던 황루시아의 아들로 어났고 이후 [[인천광역시|인천]]에서 성장하였는데 그의 형은 후일 [[대한민국의 부통령]]을 역임하는 [[장면]](張勉)이다. [[인천광역시|인천]]의 개화한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초명은 지완(志完)이라 했다가 뒤에 발(勃)로 개명하였다. [[1920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에서 유학한 뒤, [[1922년]]부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수학했다.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 [[최종]]
         [[분류:1901년 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
  • 장세현 (배우) . . . . 4회 일치
         |본명 = 장현
         '''장세현'''(<small>본명:</small> '''장현''', [[1987년]] [[6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라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백석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7년 데뷔]]
  • 장윤성 . . . . 4회 일치
         '''장윤성'''(張允聖, [[1963년]] [[12월 9일]] ~ , [[서울특별시]] 출생)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창악회와 동아콩쿨, 중앙콩쿨 작곡 부문에서 입상하기도 했고, 아르스 실내 관현악단 연주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이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로 유학해 빈 국립 음악원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다.
         후임자=[[박영 (지휘자)|박영]]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
  • 전장운 . . . . 4회 일치
         전장운은 [[1811년]]에 [[한양]]에서 어났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인도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가 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정장운은 어릴 때부터 [[농사]]와 [[가죽]] [[가방]]을 만들며 가족을 부양했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811년 어남]][[분류:1866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블랙팬텀은 치밀한 함정을 설치해 판도라를 노리고 마기도 블랙팬텀에 완전히 사로잡힌 상.
          * 효부 쿄스케는 바벨의 전 에스퍼를 상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도심지의 격전 끝에 어떻게든 몸을 피하지만 상당한 피해를 받았다.
          * 효부는 카오루가 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4회 일치
          그것은 "육군초능특무부대" 시절 군복이었다. 가장 동요할 것 같은 효부는 아직까진 연하다. 그는 "할머니의 코스프레를 보는 취미는 없다"라며 권기 대책이냐고 비꼰다. 후지코는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며 받아친다.
          효부는 반사적으로 이마의 흉터를 누르며 당혹해한다. 그의 동요에 미나모토는 냉정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도 효부의 상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효부는 평정을 되찾는다.
          또다른 자신의 설득에 후지코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빛을 위해 살고자 했던 이유, "그들". 육군초능특무부대의 죽어간 동료들이 떠오른다. 효부와는 다른 형지만 그녀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마음 속의 틈이었다. 그녀가 흔들리자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백신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후지코는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4회 일치
          * 가까스로 주파수를 재조정해 총알이 관통하는건 막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 [[사카키 슈지]]가 필사적으로 응급조치를 한다.
          * [[사카키 슈지]]가 효부를 대신해 조치를 취한다. 그의 진단으론 중상이긴 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진 않다. 효부가 총알을 막았기 때문에 피질의 손상은 아주 작고 이대로 응급처치를 하면 충분히 살 수 있다. 여전히 텔레포트는 쓸 수 없지만 마츠카제가 최단거리로 도달할 수 있는 의무실을 확보한다. 하지만 응급처치가 끝나지 않은 상라 옮길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 [[쿠모이 유리]]는 "이게 오빠의 목적인가"라며 당혹해 한다. 효부는 바닥에 떨어진 [[사오토메 에이지]]의 권총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눈 앞에서 후지코를 자살시킨다, 그것도 사오토메의 권총으로. 그게 "목적"인가? 효부는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 그는 곧 카오루와 유리, [[노가미 아오이]]에게 퇴로의 확보를 맡고 자신은 [[산노미야 시호]], 미나모토와 함께 경비 시스템이 침투하겠다고 한다. 칠드런은 과연 그래도 괜찮을지 주저하는데 효부는 냉정한 도로 "바보녀"의 처치는 "돌팔이"에게 맡기라고 잘라말한다. 그 말을 들은 "돌팔이" 사카키는 그 표현엔 반발하지만 맞는 말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치료에 전념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요우의 진지한 표정 때문인지 효부의 도가 누그러진다. 하지만 잠깐도 못가서 요우가 효부의 볼을 찌그러뜨리며 장난을 쳐대서때려서 제재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4회 일치
          * 문제는 블랙 팬텀 측도 분진폭발에 휘말렸다는 것. [[우메가에 나오미]]는 중파지만 [[팀 토이]]와 [[바렛 실버]]는 대파 상. 나오미는 이런 상로도 "벌써 승부가 났다"며 자신하지만 그리 좋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 카즈라는 "비열한 능력, 처음부터 블랙 팬텀이 되기 위해 어난게 아니냐"고 매도하면서 틈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아키라가 쉽게 넘어가지 않고 투항을 제촉하는데, 잠깐 동안 낌새가 이상하더니 카가리의 정신으로 돌아온다.
          * 더 하운드와 엇갈리듯 도착한 칠드런팀. 뒤이어 [[쿠모이 유리]]와 [[마츠카제 코우이치]]도 도착한다. 마츠카제는 레이더로 근처에 블랙 팬텀의 전투 헬기가 접근하고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시호는 곧바로 근처의 정보를 읽어서 더 하운드 팀이 방금 전 도주한 것, 그리고 와일드 캣과 섀도우 오브 더 칠드런 팀이 정신 오염 상로 교전 중이라는 것까지 파악한다.
  • 정광조 (1883년) . . . . 4회 일치
         그러나 손병희 사후 [[최린]] 주도의 신파가 교권 및 사회운동의 방향을 놓고 분파되면서 천도교단은 오랜 내분 사에 돌입했다. 손병희의 사위로서 교단 내 상당한 실력자이던 정광조는 이론가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광조가 천도교 대령에 선임되었다가 구파에 의해 출교 처분되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천도교 신파가 대세론이라는 타협적인 노선을 내세워 설립한 [[시중회]]에 가입하면서 [[평양 전쟁]] 시기까지 일제에 적극 협조한 행적이 있다. [[1939년]]에는 [[이용구]]의 장남 [[이석규]]가 '일한합병 공로자 감사 위령제'라는 행사를 열었을 때 참석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
         정광조는 [[1942년]]에 천도교 교령으로 뽑히는 등 교단 원로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시체제 하에서 천도교를 대표해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1941년]] 발족한 [[조선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 국민총력천도교연맹 등 어용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평양 전쟁 전몰 장병을 위한 위령제를 개최하기도 했고, [[1943년]]에는 [[이종린 (1883년)|이종린]]과 함께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에 천도교 대표로 참가해 학병제를 선전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분류:1883년 어남]][[분류:195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분류:대한민국의 천도교 교역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명환 . . . . 4회 일치
         * 2000년 SBS 《[[경찰특공대]]》 ... [[특전사]] 출신 테러리스트 홍섭 역
         * 2003년 SBS 《[[양속으로|양 속으로]]》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0년 데뷔]][[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정무식(정치인) . . . . 4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어났다.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며 [[육군정보학교]] [[교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중앙정보부]]에서 대구[[대공분실]]장, 제3국장, 정보부장 특별보좌역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영천시|영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권오]]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초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224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2-24&officeId=00032&pageNo=1&printNo=9921&publishType=00020|뇌물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지종걸]]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에 임명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권오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조규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9년 6월 권오가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자 해당 지구당위원장직에서 사임하였다. 그리고 원양어업협회 [[회장]]이 되었다.
  • 정성왕후 . . . . 4회 일치
         정식시호는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貞聖王后)이다. 본관은 [[대구 서씨|달성]](達城).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와 잠성부부인(岑城府夫人) 이씨(李氏) 사이에서 어났다.
         1692년 음력 12월 7일 술시에 가회방 사제에서 어났다. [[1704년]](숙종 30년), 연잉군(延仍君, 훗날의 영조)과 길례를 행하고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으로 봉해졌다.
         ***** 손자 : [[의소세자|의소자]] 정(懿昭太琔, 의소세손, 1750~1752)
         [[분류:1692년 어남]][[분류:1757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조선의 왕비]][[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 영조]][[분류:조선 정조]][[분류:서재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구 서씨]][[분류:조선 진종]]
  • 정운용 . . . . 4회 일치
         정운용은 대구 부호이자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인 [[정재학]]의 장손으로 어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ref> 그의 모친 김인아는 정운용이 중학생이었던 1918년 타계했고 부친인 정응원마저 1933년 서거한 뒤 정재학 조부 밑에서 자랐다. 정재학은 3남인 [[정종원]]과 장손인 정운용을 각별히 여겨 니혼대학 법학과, 메이지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보낸 뒤 3남에게는 관료로 활동하도록 했고 맏손자에게는 은행경영 노하우를 전수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11</ref>
         정운용 조흥은행장은 미 [[군정청]] 골든 재무부장(중령)과 친밀한 관계였다. 해방 후 중앙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상여서 조흥은행은 강력한 중앙은행 후보로 꼽혔다. 조흥은행은 민족자본비중이 절반을 넘은데다 일본자본의 침투가 가장 적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하지만 1946년 광복1주년을 맞이하여 미 군정청 내각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진다. 골든 재무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윤호병이 신임 재무부장으로 선임됐다. 조흥은행 대신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으로 선정됐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237</ref> 정운용 행장 역시 1947년 10월 군정장관의 명령에 의거 행장에서 물러났다.<ref>경향신문, 1947년 10월 18일 2면 정운용 행장 해임</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상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상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분류:1904년 어남]][[분류:196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
  • 정인선(탤런트) . . . . 4회 일치
         ||<|2> [[2004년]] || [[MBC]] || [[영웅시대]] || 천숙 || ||
         ||<|3> [[2002년]] ||<|2> [[KBS2]] || [[양인 이제마]] || 구운영 || [[유호정]] 아역 ||
          * [[백종원의 골목식당]] 인천 신포국제시장 청년몰 에피소드에서 [[김민교]]와 연예인 식당 지원군으로 나왔다. 요리 자체는 맛있지만 상업성과 회전률, 김치 국물이 줄줄 흐르는 단점 때문에 김민교가 선보인 '팟 파카오 무 쌉'[* 정확히는 '팟 파카오 무 쌉 __랏 카우__'로, 다진 돼지고기와 [[바질]]을 주재료로 하는 국식 [[제육덮밥]].]에 밀려 접대와 보조를 맡았으나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김민교와 좋은 호흡을 맞춰 호평을 받았다. [[백종원]]이 찾아와 김민교와 국 요리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를 나누자 살짝 굳어지면서 경탄하는 귀여운 모습도 보인다.
  • 정정용 . . . . 4회 일치
         |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용]]
         |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용]]
         [[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주중학교 동문]][[분류:청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일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 FC의 코칭스프]][[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정흥채(배우) . . . . 4회 일치
          1998년 KBS2 [[야망의 전설]] 강수 역
          2002년 KBS2 [[양인 이제마]] 덕용 역
          2009년 KBS2 [[천추후(드라마)]] [[소배압]] 역
          2013년 KBS1 [[사랑은 노래를 타고]] [[한경]]의 사무실 의뢰인 역(특별 출연)
  • 주상욱 . . . . 4회 일치
         주상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14년 [[SBS TV|SBS]] 《[[미녀의 탄생]]》 - 한희 역
         * 2018년 [[SBS TV|SBS]] 《[[운명과 분노 (2018년 드라마)|운명과 분노]]》 - 인준 역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1998년 데뷔]][[분류:해피선데이]][[분류:KBS 연기대상 남자 우수연기상 수상자]]
  • 주현미 . . . . 4회 일치
         [[화교]] 3세[*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상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시|남원]] 에서 4남매 중 첫째 딸로 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상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 1986년 7집 <첫 정/ 평무>
  • 진격의 거인/85화 . . . . 4회 일치
          * 희미한 기억을 뒤로 하고 불분명한 형와 "아파"라고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사샤의 부상을 알리 없었던 아르민은 놀라서 사샤의 상를 살핀다.
          * 한지는 한결 풀어진 도로 "나도 엘빈의 후임으로서 너와 같은 입장"이라며 아르민을 격려한다.
          * 거인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은 추론이 가능해지는데, 레이스 왕가의 거인화 활용이나 일반 거인 조종이 어설픈 수준인데 비해 짐승거인은 거인화 상에서도 언어를 구사하며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도 훨씬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4회 일치
          * 어머니는 말 없이 슬픔에 빠졌고 아버지는 비굴할 정도로 빌빌대는 도로 이들을 상대한다.
          * 하지만 그리샤는 딸을 잃고도 연히 이런 설명이나 하고 있고 자기 선조들의 역하를 비하하는 모습을 개에 비유한다.
         유미르는 원래 마레에서 사는 엘다이인이었으나 "낙원"으로 보내져서 식인거인이 되는 형벌을 받았던 것. 그 상로 파라디 섬을 배회하다가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을 위해 침투했던 라이너 일행과 조우, 마르쉘을 잡아먹고 자아를 되찾은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제 2의 인생"의 의미였다.
         그런데 마르쉘도 작전에 투입된 인물이니 여덟 거인 중 하나의 능력을 가졌을 걸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 마르쉘을 먹은 유미르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게다가 먹기 전부터 현재의 형로 거인화를 했기 때문에 특별히 능력을 계승하는건 아닌 수도 있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4회 일치
          승전 이후의 회의라기엔 너무나 삭막한 분위기. 원수는 최후의 작전이나 실가 드러난 스라가 요새 공략 전의 책임자 "마가트"에게 직접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해명을 요구한다. 호명된 마가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무겁고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다.
          우선 시조의 거인과 [[엘런 예거]]가 가진 "진격의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으면서 넘어간 "초대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가 포로가 되며 넘어간 "여성형 거인". 이 중 시조의 거인과 진격의 거인은 엘런이 한 몸에 지닌 걸로 유력하며 초대형과 여성형은 정확한 최후는 불명이나 적어도 하나 이상이 적에게 넘어갔다. 우선 둘이 죽었다면 이쪽에서 새롭게 해당 거인의 힘을 가진 아이가 어났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들이 거인의 힘을 빼앗아 쓰고 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 그저 대답하지 않거나, 시무룩하게 맞다고 수긍하기만 하는 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갤리어드의 공격은 수위를 높여간다. 그가 유미르의 기억을 통해 바라본, 조사병단 시절의 라이너 얘기다. 동기들의 리더이자, 큰형님 같았던 시절.
          * 가비와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부둣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수평선에는 침몰한 전함이 버려져 있다. 우도는 바다를 향해 돌맹이를 던지다 "거인이 전쟁에 도움이 안 되게 되면 전사대와 엘디아인은 어떻게 될까?"하고 묻는다. 그 이슈는 소년들 사이에서도 꽤 퍼져있다. 조피아는 무거운 주제 대신이 옆집 아저씨한테 들은 말을 전한다. "바닷물이 짠 건 내가 바다에 쉬를 해서다.". 말같지도 않은 말인데 파르코는 "브라운 씨라면 괜찮다. 머리가 날아가도 살아있는 사람"이라 대답하는 걸 보니, 다름 아닌 라이너의 말인가 보다. 그러면서 파르코는 "이번엔 머리가 엉망이 됐지만 이제 괜찮다"고 덧붙인다. 아마 전후의 라이너는 꽤 상가 나빴나 보다.
  • 진격의 거인/94화 . . . . 4회 일치
          상황을 모면한 파르코는 라이너가 무심한 듯한, 혹은 신뢰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걸 본다. 파르코는 아직도 반신반의한 상다.
          * 상봉을 마친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파르코도 그 행렬에 끼어있었지만 길 가장자리에 또다른 행렬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엘디아인 부상병들이었다. 코스로라는 병사가 인솔 중이었다. 이들은 전방에서 오랫동안 참호를 파온 병사들이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 심적외상까지 발생했다. 이들은 가족도 돌아갈 곳도 없는 부류여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들의 상는 한 눈에 봐도 폐인이다. 코스로가 "콰앙!"하고 폭발음을 모사하자 곧바로 패닉상에 빠진다. 코스로는 그걸 보고 껄껄 웃는다. 파르코는 가족들이 형을 부축해서 먼저 가도록 하고 자신은 남아서 부상병들을 부축한다. 그는 다리 잃은 부상병의 완장을 바르게 채워주면서 꼭 괜찮아질 거라고, 당신은 이제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한다.
          가족사로 흐르기 시작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마레인과 엘디아인의 혼혈은 법으로 금하고 있다. 카리나는 이런 비밀을 왜 아들에게 말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걸 비밀이라고 가르치는 걸까? 그녀에게 엘디아인이 왕가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마레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것은 모두 한 가지였다. 마레인으로 어났더라면, 그 말이 어머니의 눈물을 타고 떨어질 때 아들은 독한 결심을 했다. 라이너는 마레의 전사가 되기로 했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4회 일치
          * 마레의 전사들은 작전실에서 쫓겨나 연병장을 바라보며 조국과 엘디아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데, 마침 연병장에선 전사 후보생들이 훈련 중이었다. [[가비 브라운]],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완전군장 상로 구보를 하던 중인데 잘 보니 뒤쳐져 있던 파르코가 기어이 가비를 추월해 1등으로 골인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긴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훈련생들은 엄청나게 환호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형인 [[콜트 그라이스]]는 문득 "한 번 정도 이긴 걸로 가비의 우위가 흔들리진 않는다"며 미심쩍은 발언을 한다. 자신이 짐승 거인의 계승자인 이상 동생까지 굳이 갑옷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는데, 듣고 있던 [[지크 예거]]가 "명예를 업신 여기는 거냐"고 꾸중한 뒤 "하긴 그게 형의 마음이다"고 다독이며 콜트를 데리고 캐치볼을 하러 간다. 포르코는 "그런게 형"이라는 지크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상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상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그리샤 예거의 부친이자 지크 예거의 할아버지인 그 예거 박사. 병원을 방문했다가 크루거에게 동석하기를 청한다. 사실 그가 파르코에게 수상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실제론 병이 없는걸 눈치채고 경고하러 왔던 것. 그라이스가의 속사정이나 콜트가 짐승거인을 계승하게 된 이후 예거가 사람을 불편하게 대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다. 자신이 대화하는 크루거가 실제론 손자라는걸 눈치채진 못한 듯 하다. 처음에는 자신을 군의이며 가끔 이 병원을 방문한다고 밝혔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크루거에게 "슬슬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경고하는데, 크루거가 "당신은 가족에게 후회할 만한 일을 했는가"라고 반문하자 상가 안 좋아진다. 그리샤가 여동생과 벽을 넘어간 날, 딸이 죽은 날로부터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토로하고 그리샤 가족의 운명도 다 자신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기어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무너지는데, 직후에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병실로 데려가는걸 보면 오래 전부터 입원 상였던 듯 하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걸 아는 크루거는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 진동한 . . . . 4회 일치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언더핸드 투수로 [[양일환]] - '''[[이일]] - [[박충식]]'''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잠수함 투수 중 하나.
         전성기는 짧아 통산 성적은 그저그런 수준. 그러나 아직까지 이 선수가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 유명한 '''[[해 버스방화 사건]]'''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버스 방화사건은 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 창작:IDF . . . . 4회 일치
         IDF 회원국은 자국에 "비상사"가 발생할 경우, IDF에 군사 파병을 요청할 수 있다. 파병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사는 외국의 침략, 국내의 내전, 대규모 폭동, 대규모 재난 등이다. 회원국의 요청에 따라서 IDF 이사국의 승인 결의와 함께 파병이 이루어진다.
         IDF 항공대는 IDF 군 부대의 수송 임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수송기와 수송헬기를 주로 운용한다. 이는 가맹된 각 국에서 IDF가 굳이 공격성이 높은 항공전력을 보유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 대신 수송기나 수송헬기가 다소 과도한 수준으로 보이는 '방어용' 무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IDF 사령부 측은 이러한 상황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투기 구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IDF 사무국 측은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군축으로 몇몇 선진국에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위롭게 돌아가면서, IDF에 전투기 구매가 타진되는 경우도 있다.
         전차의 경우 특성상 높은 기동력으로 적 기갑전력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평화유지 부대가 이러한 전차부대를 운용하는데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로 정규군에 준하는 군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2개 정도의 여단만 보유하고 있는 상이다. 그중 1개 여단은 현재 [[IS]](이슬람 무장 단체)로 인해 바그다드에 주둔중. 1개 여단은 중앙아프리카에 있다고는 하나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일어났을때 즉각적으로 조치하기 위해 숨겨놓는것 이라고 추정된다.
  • 창작:좀비탈출/4-1-1 . . . . 4회 일치
         또 저 상는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변수에 의해서도 금방 원래 상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나는 무기를 옆에 던져놓고 장독 뚜껑에 올려져 있던 돌을 치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젠장, 너무 무거운걸 올려놨어. 아마도 이것 덕에 좀비들이 들춰보는 사는 막았겠지만 나까지 힘들어서야. 그래도 나는 웃고 있었다. 망가진 시계의 톱니 바퀴를 맞춘 것 같았다. 이제 째각거리며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좀비 투성이 생활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는 웃다가 이를 악물다가 하면서 돌을 들어냈다.
         녀석이 나를 덮친다. 무거운 걸 들고 있는 참이라 엉거주춤한 상로 녀석의 썩은내나는 손아귀가 덮치는 걸 피했다. 그 순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뚝하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이변을 알렸다. 젠장, 허리가…….
  • 창작:좀비탈출/4-1-2-2 . . . . 4회 일치
         또 저 상는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변수에 의해서도 금방 원래 상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나는 무기를 옆에 던져놓고 장독 뚜껑에 올려져 있던 돌을 치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젠장, 너무 무거운걸 올려놨어. 아마도 이것 덕에 좀비들이 들춰보는 사는 막았겠지만 나까지 힘들어서야. 그래도 나는 웃고 있었다. 망가진 시계의 톱니 바퀴를 맞춘 것 같았다. 이제 째각거리며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좀비 투성이 생활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는 웃다가 이를 악물다가 하면서 돌을 들어냈다.
         녀석이 나를 덮친다. 무거운 걸 들고 있는 참이라 엉거주춤한 상로 녀석의 썩은내나는 손아귀가 덮치는 걸 피했다. 그 순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뚝하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이변을 알렸다. 젠장, 허리가…….
  • 최계훈 . . . . 4회 일치
         * [[평양 돌핀스]] (1989년 ~ 1990년)
         '''최계훈'''(崔桂勳, [[1961년]] [[6월 6일]] ~ )은 前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평양 돌핀스]]의 [[투수]]이자, 현재는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현역으로 복무하여 제대한 이후 [[평양 돌핀스]]로 복귀했으나 2군에 머무르다 은퇴하였다.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분류:청보 핀토스 선수]][[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인천남중학교 동문]][[분류:인천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광식 . . . . 4회 일치
         공직에 있던 3년 6개월간 외부 강의를 통해 부수입이 총 4,486만원, 한 달 평균 106만이 넘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ref>[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68 최광식 문광부장관 강의평가 하위권 맴돌아]《제주환경일보》2011년 9월 13일 김홍 기자</ref><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001 "최광식 후보자, 공직재직 중 외부강의로 4,500만원 벌어"]《뉴스제주》2011년 9월 13일 고병택 기자</ref>
         한편, 2011년 9월 5일 [[강운]] 광주광역시장이 5ㆍ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전달식에서 "최광식 문화재청장이 등재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김진표 (정치인)|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최 내정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무조건 통과되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밝혔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90506438&menu=0&sid=0001&nid=900&type=1 강운 "최광식 내정자 청문회 통과시켜야"]《연합뉴스》2011년 9월 5일 전승현 기자</ref>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문화재청장]][[분류: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최동수 (야구인) . . . . 4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4년]] [[5월 29일]] <br /> [[숭의야구장|인천]] 대 [[평양 돌핀스|평양]]전
         은퇴 후 베이스볼아카데미 마스터 코스 시험에 합격하여 지도자 자격을 얻었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75285 LG 최동수, 공인 지도자 됐다…마스터 코스 최종 합격] - 일간스포츠</ref>, [[LG 트윈스]]의 잔류군 담당 타격 겸 배터리코치로 배정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119108 LG 트윈스, 2014년 코칭스프 인선 확정] - MK스포츠</ref>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최성국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최성국''' (崔成國, [[1983년]] [[2월 8일]] ~ )은 [[대한민국]]에서 어난 전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공격수#윙어|윙어]]였다.
         [[2005년 1월]] 피자나라 치킨공주 TV CF를 찍어 축구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피자나라 치킨공주'로 CF모델 데뷔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37455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1-24}} }}</ref> [[2005년]] 12월 곽선혜와 결혼하여 [[2006년]] 12월 첫 아들이 어났다.<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아빠 됐다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61211121926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6-12-11}} }}</ref>
         영구 제명을 당한 이 후, [[2012년]] [[6월 26일]] [[성남시]] [[분당구]]의 한 [[병원]]에 사무직으로 취직하였고 지금은 그만둔 상이다.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세창 . . . . 4회 일치
         |기타 이력 = [[대한권도협회]] 회장 <br/> [[신민주공화당]] 국방안보특임행정위원(1990년)
         * [[노우]]
         [[분류:193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최영이 (종교인) . . . . 4회 일치
         최영이는 [[한양]]에서 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포장은 그녀가 배교하고 동료 [[천주교]]인들과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종교]] 물품들의 주인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최영이는 배교치 않았고, 교우들과 알고 지내기에 자신은 너무 젊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는 2 차례의 [[주뢰형]]을 260 여대의 [[형]]을 받았다. 그녀는 [[형조]]에서도 3 차례의 [[형벌]]과 [[고문]]을 견뎌내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818년 어남]][[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최정호 (성우) . . . . 4회 일치
         * 2001.04.08 송혜근 <이리 요리를 먹는 여자>
         * 2002.06.23 문순 <정읍사, 그 천년의 기다림> (해장)
         * 2000.07.30 왕규씨의 용궁탈출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2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0년 데뷔]]
  • 최창흡 . . . . 4회 일치
         최창흡은 [[1786년]] 경에 [[한양]]에 있는 한 [[중인]] 신분의 관리 집안에서 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3살일 때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주교]]의 [[교리]] 수업을 시작했지만, [[세례]]는 받지 않았다. [[박해]]로 인해, 그는 교우들과 멀어진 이래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815년]]에 그는 한 천주교 공동체에 입회하여 교리를 다시 배웠다. 그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신유년의 박해]] 동안에, 그의 집안은 파산하였다. 그러한 곤궁한 상황 속에서, 그는 [[손소벽]]과 결혼하였고,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 중 아홉 명은 어릴때 운명을 달리했다. [[1821년]]에, [[조선]]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최창흡은 그 무렵에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지켰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을 때, 최창흡은 가장 독실한 신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젊어서 저지른 [[죄]]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속죄하고 제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을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그는 [[1839년]] [[6월]]에 체포되었는데, 그때 그의 사위 [[조신철]]이 [[베이징]]에서 가져온 [[성물]]들이 발견되어, 극심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일곱 차례의 극심한 [[주뢰형]]과 주장질을 받고 [[형]] 150대를 맞으면서도 결코 배교하지도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조]]에서도 세 차례를 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신심으로써 견뎌냈다. 그는 사형장으로 압송되기 직전에, 한 형졸을 불러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울지 말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순교]]로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청했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86년 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최태영 . . . . 4회 일치
         '''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서울]]에서 어나 [[1919년]] [[메이지 대학교|메이지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법학부에서 수학하여 법철학 및 상법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 및 강사로 일하면서 경신학교의 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 [http://www.nas.go.kr/member/member_detail_basis.asp?num=40 대한민국학술원 최영]
         [[분류:1900년 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법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백세인]][[분류:상법학자]][[분류:부산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최호중 . . . . 4회 일치
         '''최호중'''(崔浩中<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4250009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4-25&officeId=00009&pageNo=2&printNo=5582&publishType=00020 經濟에 밝은 직업外交官 崔浩中] - 매일경제, 1984년 4월 25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0500329204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2-05&officeId=00032&pageNo=4&printNo=13292&publishType=00020 崔浩中 외무장관 外務部서 잔뼈굵은 正統派] - 경향신문, 1988년 12월 5일</ref>, [[1930년]] [[9월 22일]] ~ [[2015년]] [[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전 외무공무원이다. [[노우]] 정부 당시 [[북방 정책|북방외교]]의 한 주역이자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시에도 역할을 했다.
         * 노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북방(北方) 장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분류:1930년 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벨기에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노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말레이시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최씨]]
  • 추미애 . . . . 4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문재인 1번가]]를 홍보하는 [[https://youtu.be/8mKZ9xM1Hvs|홍보 영상]]에 [[금섭]] 의원과 함께 직접 출연했다. 물론 추미애가 전문 배우는 아닌 관계로 발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금섭의 발연기가 더 심해서 묻힌 감이 없잖아 있다. 금섭 의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금씨 성을 가진 더민주 인사는 무기한 출연 금지 요청합니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4회 일치
         1942년 9월 12일, [[독일]] 잠수함 U-156이 [[영국]] 병력수송선 라코니아(Laconia)를 격침시킨다. 징발된 민간 여객선이었던 이 선박에는 영국 군인, [[자유 폴란드군]] 군인, 이탈리아군 포로들이 타고있었다. U-156은 구조 지원을 요청한다.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구조를 위해 이동한다. 카펠리니는 15일에 현장에 도착, U-156, U-506, U-507과 함께 생존자들을 주렁주렁 우고, 구명보트를 끌며 구조작업을 돕는다. 그와중에 [[미육군항공대]] 소속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에게 공격당했고, 이에 잠수함들은 견인하던 구명보트 줄을 끊고 잠항해버린다.
         이탈리아 항복 다음날, [[일본군]]은 아퀼라 III의 승무원들을 포로수용소에 던져넣고 아퀼라 III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아퀼라 III를 UIT-24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협조적인 이탈리아 승무원을 운 UIT-24는 보르도로 돌아오기 위한 항해를 떠났으나 중간에 연료 보급을 해줄 [[유조선]]이 영국군 구축함에 잡혀 자침당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후 동남아와 일본 본토를 왕복하며 보급 임무를 수행한다.
         일본군으로 활동할 시 코만단테 카펠리니의 승무원 구성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떠돌고 있다. 이탈리아인, 독일인,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의견과 독일인+이탈리아인 승무원만 웠지 일본인은 우지 않았다는 의견. 판단은 알아서 하자.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4회 일치
         거기다가 제위과정도 순탄치 않아서, 제위를 노리고 동생 데미트리오스가 반통합파의 지지를 얻고[* 정작 그는 피렌체 공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위를 차지하려하기도 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 문제는 후인 엘레나 드라가시가 직접 콘스탄티노스를 황제로 지명해서 끝이 났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그들 사이에 있던 [[백년전쟁]]의 참화를 회복하느라 바빠 도저히 도와줄 상가 되지 못했고, 이베리아의 강자인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레콩키스타 운동을 아직도 완료하지 못한 상였다.
  • 킹덤/500화 . . . . 4회 일치
          * 이 소식은 이목이 있는 무백성까지 전해진다. 게다가 그 수가 20만에 이른다는 보고에 [[카이네]]와 [[부저]]가 경악한다. 이목은 침착한 도로 보고를 접수한다.
          이목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조치라고 평한다. 부저는 그 남의 일 말하는 듯한 도에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냐"고 지적한다. 특히 부저는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이 개입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 [[순수수]]는 이목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도로 "반대로 이긴다면 큰 타격을 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방에 앞서가던 환의군의 후미가 보인다. 하료초는 기겁을 하며 "속도가 생명인 승부가 될 텐데 왜 이리 꾸물거리냐"고 성화를 부린다. 양단화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환의군은 전혀 느린게 아니고 오히려 비신대 쪽이 너무 빠르며 하료초가 지나치게 긴장한 상라고 지적한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긴장은 병사에게, 나아가선 적에게 노출된다.
  • 킹덤/511화 . . . . 4회 일치
          * 열미로 행군하던 [[이목(킹덤)|이목]]은 열미성이 함락됐다는 급보를 받고도 연하다. 부하들은 [[공손룡]]장군이 한 발 늦었다고 탄식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시대로라며 "열미엔 내가 뿌려둔 비밀이 있다"고 한다. 이는 부하들도 몰랐던 보험이었다. 이목은 비록 열미를 뺏겼다 해도 진군이 이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확신한다. 단지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진 않다고 추측한다. [[왕전(킹덤)|왕전]]의 존재 때문이다. 왕전이 그 비밀을 알아챘다면 진군은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만일 함곡관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면, 반대로 조나라로서는 업의 코 앞에 적의 전진기지가 생긴 꼴이다. 하지만 쉽게 빼앗겨도 쉽게 되찾을 수 있게 만든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적이 열미를 뚫고 왕도에 진입했을 때 조는 그 병력에 대응하는 한편 미리 행산맥에 잠복시킨 병력을 운용해 열미성을 급습, 열미를 탈환함과 동시에 적이 후퇴할 "출구"를 차단해 버린다. 이것만으로도 적 병력은 포위섬멸되는 형가 되고 마는 것이다.
          환의는 아예 열미를 버린 채로 왕도권에 진입, 업을 따내버리는 전략도 있다고 주장한다. 언뜻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몽념이 무모하다고 하자 "그러니까 송사리"라며 환의의 깔보는 도는 더해진다. 그러면서 왕전이 사라진걸 보고도 아직 모르겠냐고 말한다. 왕전은 바로 그게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성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 킹덤/525화 . . . . 4회 일치
          후위에 있는 병사들은 마남자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왕분이 펼치는 창술 앞에 부질없이 목숨을 잃었다. 옥봉대의 공격이 쐐기처럼 박히고 상황이 난전으로 전환됐다. 왕분은 현장을 [[관상]]에게 맡겼다. 이대로 적의 후위가 올라오는걸 막고 적장의 고립 상를 유지한다. 그동안 자신은 직접 적장의 목을 취할 것이다. 관상은 이 같은 지시에 별 반대 없이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영강]]에게 부탁에 왕분의 호위를 맡겼다. 늘 한 마디씩 토를 달던 관상이었다. 아무 반대도 없어 미심쩍기도 했으나 왕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 [[반양]]과 함께 출발했다.
          * 그의 고분고분한 도가 이상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상은 자기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상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상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남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반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상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그리고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불길한 예감은 구체적인 형를 드러냈다. 왕분이 노리고 있던 적장 마남자, 그가 코 앞에 나타났다. 마치 옥봉대를 통채로 썰어버릴 기세로 칼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주나라의 천하가 펼쳐진지 500여 년. 한때 백에 이르렀던 나라들이 도와 규합을 거듭해 지금은 고작 일곱이 남았다. "일대국". 분명 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왕이 품은 꿈은 곧 역사가 바라는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조군이 반발했다. 왕분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 그런 말뿐인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킹덤/530화 . . . . 4회 일치
          * 결국 방어진이 뚫리고 기수는 퇴각시점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처하나 "이 형"를 유지하기로 결정하며 "필살의 기동대"는 왕전만 쓰는게 아니라 강변하는데.
          이번엔 부장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결단이라 입을 모았다. 후방에서 오는 것만 삼천이 넘는 병력. 비신대를 막아도 그 병력이 닥치면 끝장이다. 그럴 수록 기수는 더 단호한 도로 "이 형"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 형라니? 부장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들자 기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토리코/379화 . . . . 4회 일치
          * 치치는 빈사 상의 사천왕에게 어떤 처치를 하려고 한다.
          * 아톰은 식물 따위에 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매우 위험해서 휴면 상에 들어가려고 한다.
          * 하지만 센터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이들을 "약해빠진 무리", "오합지졸" 따위로 비하하며 전투세를 취한다.
          * 완전한 형를 이룬 아카시아.
  • 토리코/383화 . . . . 4회 일치
          * 치치는 빈사 상의 사천왕에게 자신의 몸을 요리해 먹이고 산화, 사천왕들은 다시금 눈을 뜬다.
          * 페어는 스스로의 식욕을 먹어치운 육체는 결국 붕괴할 것이라며, 죽을 거라고 말하는데 아카시아는 연하다.
          * 치치는 자신의 몸을 조리해서 토리코에게 먹인다. 이미 다른 사천왕들에게도 자신의 몸을 먹인 상.
          * 치치는 휘청거리는 상에서도 존게가 네오에게 측정빔을 맞추려고 무리한 걸 들며 오히려 그를 걱정한다.
  • 토리코/388화 . . . . 4회 일치
          * 다른 팔왕들의 상는 아직까진 미지수.
          * 그때 토리코가 말을 끊으며 "나와 스타준은 플로제와 사랑에서 어났나 단지 식욕이었나"라고 묻는다.
          * 지구의 맛은 이미 한계에 달해있고 곧 사라질 테지만 새로운 맛은 다시 어난다.그게 인간의 감정과 다른 점이다.
          * 그는 모두 부활해서 만반의 세라고 생각할 테지만, 오히려 준비가 끝난건 자신이라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4회 일치
          * 디마리아는 그 상로 "괴물"이란 말을 중얼거리는데, 루시가 나츠의 행방을 묻자 "그 녀석은 괴물"이라고 말한다.
          * 폴류시카는 그 말을 듣고 나츠의 종양을 오진했던 것을 알려주며 그 종양을 원래 상로 돌린 바람에 "각성"해 버렸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 지상으로 나간 나츠는 시커먼 불길을 내뿜고 있다. 완전히 폭주해서 자기 몸까지 우는 것처럼 보인다.
          * 그 상로 제레프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마침내 제레프가 있는 페어리 테일 길드를 발견한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4회 일치
          [[메이비스 버밀리온]]을 중심으로 길드원들은 곧 대항세를 정비한다. [[렉서스 드레아]]는 죽은 할아버지 [[마카로프 드레아]]의 시신을 수습해 곧 길드로 돌려보내주겠다고 말한다.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였다. 둘도 별다른 이상없이 무사했지만, 디마리아는 여전히 상가 좋지 않아. 브랜디쉬가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데 아주 유아 퇴행을 했는지 여전히 오들오들 떠는 것이 엄청 위축된 상. 그 상로 나츠를 만나자 경기를 일으킨다. 나츠는 그녀를 공격했던 기억 자체는 있기 때문에 사과를 하는데 듣지 않고 브랜디쉬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4회 일치
         아머가 다 줄어들고 난 후에는 초상화 뒷배경으로 표시되는 체력이 줄어든다. 이 체력은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으며 이것마저 다 줄어들면 해당 플레이어는 다운되어 권총으로 겨우 저항하는 상가 된다. 이 상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플레이어가 구속되지만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른 플레이어가 구하면 플레이어는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상가 된다.
         일정 주기로 시작되는 경찰의 공세. 시작되기 일정 시간 전에 페이데이 갱의 오퍼레이터인 베인이 알려준다. 어썰트 기간 중에는 경찰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며 항복하지 않는다. 이 상로 무리하게 이동하려 했다가는 벌집이 되어서 드러눕기 좋으니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 하이큐/247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봄고 1일차가 끝난 밤. 2회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카이 코치는 잠시 집에 연락해서 할아버지의 상를 확인한다. 사실 그는 할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레기장 결전을 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진 잇케 감독은 도저히 도쿄까지 올 상가 아니었다. 우카이 코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가올 2회전 대책에 골몰한다.
          평소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히나타. 하지만 요점이 다르다. "1위랑 2위 전부"랑 싸운다는건, 결국 2위 이나리자키를 이기겠다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해한다. 딱 한 사람만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치는데 그것이 카게야마. 한술 더 떠서 1위 "이타치야마 고교"랑 싸우려면 반대블록이니 결승까지 그쪽이 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히나타는 설령 이타치야마가 못 와도 "이타치야마한테 이긴 팀이 결국 1위"라는 논리로 아무튼 1위랑 싸우는건 변함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스가와라는 월간 배구에서 "미야 아츠무를 무너뜨려도 쌍둥이 오사무가 보완한다"는 문구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들은 고교 배구계 최강 트윈즈 "미야 형제". 미야 아츠무와 라이트 [[미야 오사무]]다. 아츠무는 자신만만하게 "도쿄 놈들이 거들먹거리는 건 이제 끝"이라며 벼르고 있다. 눈 앞의 카라스노는 안중에도 없는 도.
  • 하쿠다 켄 . . . . 4회 일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백남준]]의 큰형이자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섬유 기업 창방직(방림방적의 전신)의 회장이었던 백남일의 장남으로 '''백건'''(白健)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어난 그는 [[1960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일가족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창방직이 [[대한민국]] 정부에 몰수당하게 되자 부모와 일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 귀화하여 이 때 이름을 일본식으로 하쿠다 켄(白田健)으로 개명하고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
  • 한보배 . . . . 4회 일치
         * [[2009년]] [[KBS1]] 대하드라마 《[[천추후 (드라마)|천추후]]》 ... 어린 [[선정왕후 (목종)|선정왕후]] 유씨 역 ([[이인혜]] 아역)
         * [[2009년]] [[MBC]] 일일시트콤 《[[희 혜교 지현이]]》 ... 한보배 역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한진희(1949) . . . . 4회 일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청춘의 덫]]이, 70년대 후반의 보수적인 국민정서로 인해 미완성인 상로 종영되자 직후 만들어진 극장판 청춘의 덫(1979년)에서 출세를 위해 연인 윤희(유지인)를 배신하는 동우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90년대 리메이크된 TV판에서 [[이종원]]이 맡았던 바로 그 캐릭터. 참고로 여주인공 윤희 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는 [[이효춘]](TV판), [[유지인]](극장판), [[심은하]](TV 리메이크판)로 이어진다.
          * [[전생에 웬수들]](MBC, 2017~2018) - 최평 역
          * [[보고싶다(드라마)|보고싶다]](MBC, 2012~2013) - 한준 역
          * [[양의 신부]](SBS, 2011~2012) - 이강로 역
  • 한태균 . . . . 4회 일치
         |선수명 = 한
         '''한균'''(韓太均, [[1971년]] [[3월 22일]] ~ )는 [[KBO 리그]] 전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1994년]] [[4월 16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한화]]를 상로 첫 무대의 경기에서 등판하여 당시 [[KBS 1TV]]에서 중계방송(캐스터 정도영,해설 故 [[하일성]])되며, [[2003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현덕 . . . . 4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원 (1909년)|박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분류:1909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
  • 현재윤 . . . . 4회 일치
         트레이드 후 1군에 복귀했으며, [[2013년]] 데뷔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7월 9일]] 잠실 NC전에서 [[찰스 쉬렉|찰리]]의 투구를 맞고 왼 손목 골절상을 당해 올스타전 출전권을 [[김군 (야구 선수)|김군]]에게 넘겼고, 주전포수는 [[KIA 타이거즈]] 포수 [[차일목]]이 나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4&article_id=0002930096 NC 김군, 현재윤 부상으로 올스타전 합류] - 파이낸셜뉴스</ref> 이후 고질적인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2014년]] [[12월 2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300457 LG 포수 현재윤 ‘현역 은퇴’] - 스포츠동아</ref>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수유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연주 현씨]]
  • 현재현 . . . . 4회 일치
         * 1949년 서울에서 어나 196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 2005년 APEC CEO Summit 의장. 현재현 회장은 2005년 개최된 아시아평양 경제협의체(APEC)회의의 CEO Summit 의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홍금주 . . . . 4회 일치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남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804년 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홍상수 . . . . 4회 일치
         * 1997년 제42회 [[아시아평양영화제]] 신인감독상《[[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2000년 제45회 [[아시아평양영화제]] 각본상《[[오!수정]]》
         * 2002년 제47회 [[아시아평양영화제]] 감독상《[[생활의 발견 (영화)|생활의 발견]]》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인영 . . . . 4회 일치
         [[2009년]] [[KBS2]] 대하드라마 [[천추후(드라마)|천추후]]에 출연하였다.
         || 2009년 || KBS2 || 대하드라마 - [[천추후(드라마)|천추후]] || 천향비 || ||
  • 홍정욱 . . . . 4회 일치
         홍정욱은 1970년에 어나 1985년 압구정중학교 재학 중 도미, 1989년 [[초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93년 [[하버드 대학교]]를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마그나 쿰 라우데]]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1년 간 수학했고, 대학 졸업 후 1994년 [[베이징 대학|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잠시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학했지만 곧 중퇴한 후 [[미국의 로스쿨|미국 로스쿨]] 입학을 선택했다. 1995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에 입학하였으며 1998년 법무박사 (J.D.) 학위를 취득하였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손정희는 미국에서 어나 학교와 직장을 다닌 미국인으로 2008년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며, 홍정욱의 세 자녀는 미국에서 어나거나 미국 시민권자인 손정희를 따라 [[국적법]]에 의해 미국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성공회대학교 교수]][[분류:서울압구정초등학교 동문]][[분류:압구정중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홍준표]][[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황병기 . . . . 4회 일치
         |가족 = 황문(부)<br>황혜경(장녀) <br /> [[황준묵]](장남) <br /> 황수경(차녀) <br /> 황원묵(차남) <br /> [[한석명]](장인) <br /> 장숙명(장모) <br /> [[한복 (1914년)|한복]](손윗처남) <br /> [[한무숙]](처형) <br /> 김진흥(윗동서)
         * 아버지 황문의 고향은 [[전라북도]] [[옥구군]](現 [[군산시]])이며, 선대 시묘(侍墓)가 [[전라북도]]에 있다. 아버지 황문은 [[우주 황씨]] 전국중앙종친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분류:1936년 어남]][[분류:우주 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재동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단국대학교 명예박사학위 동문]][[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18년 죽음]]
  • 히키코모리 . . . . 4회 일치
         스스로 일이나 공부, 인간 관계 등 일상 생활을 피하면서, 장기간에 걸쳐서 집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서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상, 혹은 그런 상에 있는 사람. 거의 히키코모리 상에 있지만 드물게 외출을 하는 사례는 준 히키코모리(準ひきこもり)라 한다. 줄여서 히키.
         집이나 자신의 방이라는 ‘안심할 수 있는 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안심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만, 히키코모리는 매우 극단적으로 이것을 추구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있다.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3회 일치
          * 요코미조도 같은 수법에 당하면서 고배를 마셨고 거의 트라우마 상.
         - 미스미 타츠유키. 나메리카와의 압박에도 뜻밖에 너무 연한 키리야마에게
          * 나메리카와는 사신을 넘어선 무언가로 변한 듯 하다.
  • Crusader Kings 2 . . . . 3회 일치
         === 고의 신들 (876.1.1.) ===
         일단 시작지점에서 라그나르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게만든 잉글랜드 7왕국을 조지겠다고 할프단과 이바르를 중심으로 침략전쟁을 건 상이다.
         == 정부 형 ==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3회 일치
          * "이탈리아가 강철의 조약에 서명하다" 이벤트 발생. 이후 오스트리아와 관계도 200이거나 오스트리아와 동맹 상
          * 발동 조건: "패배한 독일의 미래" 이벤트에서 120일이 지나야 함. 영국, 미국, 프랑스 중 최소 한 국가가 평화 상여야 함.
          * 발동 조건: "패배한 독일의 미래" 이벤트에서 120일이 지나야 함. 영국, 미국, 프랑스 중 최소 한 국가가 평화 상여야 함.
  • K리그 챌린지 . . . . 3회 일치
         K리그 챌린지의 발족은 승강제 도입과 관련한 이슈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 허나 K리그는 선수들의 수준만 보면 아시아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을지언정 리그 자체가 가진 상업성은 아시아 최하위 수준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라서 새로 프로축구구단을 창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상였다.
         허나 ACL참가조건에 대해 승강제 여부를 보겠다는 AFC의 발언에서 승강제 도입문제가 이슈화되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부리그에 참가할 팀을 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K리그 가입금에 대한 조건을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간 미적했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K리그 신규구단 창설을 위한 상로 전환된다.
         기본 운영방식은 변경이 없었으나, [[서울 이랜드 FC]]가 새로이 창단 및 합류함으로써 경기수가 40경기로 늘어난 상로 운영하게 되었다. 이 밖에 리그를 구성하는 팀이 짝수가 아니라 홀수로 변경되었기에 각 라운드마다 1개팀은 휴식기를 갖는 기회가 생겼으나, 일정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챌린지 팀들 사이에서 불거지게 된다.
  • USS 피닉스 (CL-46) . . . . 3회 일치
         1941년 12월 7월 아침, 진주만에 기항해 있던 중 [[진주만 공습|일본군 전투기들의 공습을 받는다.]] 피닉스는 그 아비규환에서 비무장 상로 탈출, 오후에는 해당 공습을 벌인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수색하는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렇게 [[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영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1943년 7월,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을 [[카사블랑카]]까지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피닉스는 다시 평양 전역으로 돌아온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스터 곶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으며, 1944년 1월에는 [[뉴기니]] 섬의 해안시설을 포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에는 [[로스니그로스]] 섬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3월에는 다른 연합군 순양함과 함께 일본군의 해안 포대를 깨부쉈다. 4월 22일에는 홀란디아[* 現 [[자야푸라]].]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는 근처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을 포격, 연합군을 위협할 수 없게 하였다. 5월에는 또다른 상륙작전들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초소를 초토화시켰다. 6월에는 해당 지역에 증원군을 수송하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 쫓아내었다. 7월에는 Numfoor[* Neumfoor라고 읽기도 하는 듯. 갓-구글님께서 한국어 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신다.]의 해안을 포격했다. 9월에는 말루쿠 제도의 [[모로타이]] 섬 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 가상 메모리 . . . . 3회 일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서 가상 메모리 운용의 필요성은, [[GUI]] OS로 전환하고 [[멀티 스킹]]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났다. 멀티 스킹 기능은 다수의 어플리케이션을 하나의 OS에서 돌릴 수 있게 했으나, 프로그램을 마구 올리다가는 [[램]]이 [[으앙 죽음]] 수준으로 심각하게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OS차원에서 고도의 메모리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제시되었다.
         가상 메모리 기능이 있으면 실제 메모리 공간이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해도, OS는 당장 실행중이긴 하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가상 메모리 영역으로 내려보내고 지금 실행중인 프로그램은 실제 메모리 공간으로 올려보낸다. 이렇게 유연하게 사용자의 멀티 스킹에 맞춰서 대응해주는 것이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김모씨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정도로 불안정한 정신상였다. 그의 병력은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이었으며 평소 여성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대체로 수사관과 범죄심리학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묻지마 범죄의 전례와 완전히 일치하며 특정한 편견에 의한 범죄가 아니므로 묻지마 범죄로 봐야한다는 여론이 강세이나 반대로 사회학자,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이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며 강력 범죄에 취약함을 주지시키는 사건이라는 여론이 강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극명하여 때아닌 성대결 양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반대로 혐오범죄는 일종의 정치성을 띈다고 할 수 있는데 특정 대상에 대한 편견이나 비하에서 비롯된다는 차이가 있다. 김모씨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형가 "여성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나 "여성의 음해로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다 같이 편견보다는 전형적인 망상의 형이므로 혐오범죄의 유형과 다르다는 것이다.
  • 강중인 . . . . 3회 일치
         [[1939년]]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대리가 되었고, [[1940년]]에 예비검사를 거쳐 그해부터 [[1943년]]까지 [[조선총독부]] 검사로 근무했다. 강중인은 경제담당 검사로 일하면서 [[평양 전쟁]] 중 시국 연설과 기고로 사회 활동을 병행했다.
         [[1943년]]에 대전지방법원 검사로 자리를 옮겨 [[일본 제국]]이 평양 전쟁에서 패망할 때까지 근무했다.
         [[분류:1908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남조선로동당]][[분류:월북자]]
  • 거푸집 . . . . 3회 일치
         거푸집은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 대로 속이 비어 있는 틀이다. 주조를 할 때는 거푸집에 녹은 [[금속]]을 쏟아넣으면 녹은 금속은 거푸집의 형 대로 고정되며, 금속이 충분히 굳은 다음 거푸집을 제거해주면 거푸집의 형대로 만들어진 금속 제품을 얻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건축물을 만들 때 외벽의 형를 만드는 나무틀도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며, 똑같이 거푸집이라고 부른다.
  • 경대수 . . . . 3회 일치
         [[1958년]]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에서 어났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한민국 육군]]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검사로 근무했다. 검사장까지 승진 해 대검찰청 강력부장 당시 [[바다이야기]] 수사를 한창 지휘 했다. 그러나 윗선에서 수사를 중단 시키고 대검찰청 중수부로 수사를 넘길 것을 지시했다. 이에 반발 해 사표를 제출하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새누리당에서는 비박으로 분류되었다. [[2016년]]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새누리당/비상시국위원회|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다만 [[바른정당]] 창당에는 합류하지 않은 상.
         [[이낙연]]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낙연 아들 군면제 관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장남이 미공개 질병으로 군을 면제 받았음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이후 본인의 아들이 [[간질]]로 군면제를 받고 간질에 대한 사회적 편견때문에 병명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네티즌들은 알리기 힘든 질병임은 이해하지만 정작 비슷한 처지의 이낙연의 아들에 대해선 왜 그런 도를 보였냐며 질책했다.
  • 계력 . . . . 3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남.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어나자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남 백(太伯)과 차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남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융족(戎族)과 7년간 싸워서 격파하고 융족의 장수들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상나라 왕 문정(文丁)[* 혹은 정(太丁)이라고도 한다]은 주나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시샘하여, 겉으로는 보물을 하사하고 후대하면서 새고(塞庫)로 보내서 가둬버렸다. 문정에게 유폐된 계력은 [[아사]]하고 말았다.
  • 고성국 . . . . 3회 일치
         '''고성국'''(高成國, [[1958년]]<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A%B3%A0%EC%84%B1%EA%B5%AD&os=517736</ref> ~ )은 [[대한민국]]의 정치평론가이다.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어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학위 후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추적 60분]] 진행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여러 권의 정치서적을 펴냈다.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고세원 . . . . 3회 일치
         * [[2010년]] [[SBS]] 일일드라마 《[[세 자매 (2010년 드라마)|세 자매]]》 ... 박상
         * [[2003년]] 《[[강아지 죽는다]]》 ... 병
         [[분류:1977년 어남]][[분류:1997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
  • 고소영 . . . . 3회 일치
         [[김희]]와 함께 CF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는 배우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결혼 이후에 이미지가 바뀌어서 [[김남주]], [[이영애]] 등 다른 여배우들이 독점하고 있던 주부 대상 광고 모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다시금 왕성한 활동 중이다.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도 때문에 드라마 초반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곽희성 . . . . 3회 일치
         * [[2013년]] [[KBS2]]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백]]》 ... 마이찬 역
         * 1집 '광고천재 이백 OST part3' (2013년 3월 5일)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12년 데뷔]][[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구승빈 . . . . 3회 일치
         그러나 롤 마스터즈 플레이오프 CJ와의 1차전에서 2세트 블레이즈와의 경기 탑과 정글이 상당히 말려버린 상에서 마타와 함께 봇듀오가 종횡무진 맵을 휘저으며 게임을 뒤집어버렸다. 러보와 앰비션의 부진 탓도 있었지만 임프 마타 듀오의 클래스를 보여준 경기였다는 평.
          * 2013년 10월 30일 프로게이머 정기소양교육에서, 격투기 해설자인 김남훈에게 "다시 어나면 잘생길 것이다"라는 발언을 해[[http://esports.dailygame.co.kr/view.php?ud=2013103017235703189|김남훈을 강단아래로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소환 성공하고 좋아 죽는 임프~~ [[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36491&db=issue|들어올 때는 맘대로 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응징 당하면서 좋아 죽는 임프~~
          * 2018년 3월 18일 팀을 탈퇴했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떴다...가 비활성화 상로만 끝났지만, 5월 22일 정말로 공식적으로 팀을 탈퇴했다.
  • 권민경 . . . . 3회 일치
         그에 아울러 그녀는 프리 랜서 아나운서 출신 수필가 겸 연기자 [[김경화]]와 영화배우 겸 연기자 [[손예진]]의 [[정화여자고등학교|정화여고]] 선배이기도 하고 그녀의 막내아들 조상우 君은 가수 [[송유빈]] 君, 가수 [[하 (1998년)|김하]] 羊, 연기자 [[신동우 (배우)|신동우]] 君, 연기자 [[박종혁]] 君 등과 한림예고 동기이기도 하다.
         [[분류:196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86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명여자중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처음으로 진출한 개인리그인 곰TV MSL 시즌4에서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가며 선보인 아찔한 셔틀리버 플레이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구현의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셔틀곡예 플레이는 그에게 '붉은 셔틀의 곡예사'라는 별명을 얻어주었다. 붉은 셔틀이란 체력이 빨간색으로 매우 낮은 상인, 곧 터져버릴 것 같아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셔틀을 의미한다. 김구현은 세 종족전에서 고른 승률을 보이는 만능 플레이어이나 뛰어난 셔틀리버 플레이로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특히 저그전에 특화된 선수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프로토스 유저들 중 전략적인 플레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2008년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여섯 명의 프로토스 선수들을 가리키는 '육룡'의 일원이다 (김구현, [[송병구]], [[김택용]], [[도재욱]], [[허영무]], [[윤용]]). 2009년 후반기에 저그의 강세로 인한 육룡의 총체적인 부진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MSL에서는 김구현, 도재욱 스타리그에서는 송병구 등이 활약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리쌍에게는 매우 약하나 택뱅을 상대로는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분류:프라임 (e스포츠)의 선수]][[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김규철(배우) . . . . 3회 일치
          * 2011년 [[광개토왕(드라마)|광개토대왕]] - 설도안(KBS 대하드라마 7회 출연)
          * 2016년 KBS2 TV소설 [[저 하늘에 양이]] - 변근
  • 김근석 . . . . 3회 일치
         * [[평양 돌핀스]] (1988년)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청보 핀토스 선수]][[분류:평양 돌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김대환 (법조인) . . . . 3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육군 대위를 전역한 이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석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9년 10월 11일에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된 직후인 11월 20일에 수원지역 주민들의 등기민원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2000년까지 수원시내 택지개발지구에 2개 등기소 를 설립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559307]</ref> 2000년 6월에 [[최종영]]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8261]</ref> 2000년 7월21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되면서 대법원장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지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송무 Group<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6&aid=0000189786]</ref> 변호사를 하다가 2004년 3월 2일에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법원장 추천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에 임명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관할하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과 센터장을 맡았다.<ref>[http://news1.kr/articles/?1087614]</ref>
          1993년 2월 27일자</ref> 4월 2일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치안본부장 강민창(60세)에 대해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하면서 직권남용에 대해 "부검의가 직책상 피고인의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판결했다.<ref>한겨레 1993년 4월 3일자</ref> 8월 23일에 [[김근]]에 대한 고문한 혐의로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하여 공판에 회부된 치안본부 대공수사국 소속 김수현 경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불법체포,감금, 형법 독직 폭행죄를 적용해 징역3년 자격정지2년, 그외 백남은 경정과 김영두, 최상남 경위에 대해 징역2년~1년6월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82400289101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8-24&officeId=00028&pageNo=1&printNo=1655&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8월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194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동석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매암(梅巖)이다. 허주 [[김윤환]]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과 [[김환(1943)|김환]] 전 국회의원의 아버지이다.
         1903년 [[경상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 선산면 동부리(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서 어났다. 안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협성학교에 재학하다 중퇴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 외국어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3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92년]] [[2월 11일]] ([age(1992-02-11)]세), [[강원도]] [[백시]] ||
          * 하늘벽에 오르다([[KBS]], 2014) - 호 역
         [[분류:제국의아이들]][[분류:1992년 출생]][[분류:백시 출신 인물]][[분류:아이돌 막내]][[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대 100 역대 1인]]
  • 김만제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34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역시 서강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던 전임 [[남덕우]], 후임 [[이승윤(정치인)|이승윤]] 경제 부총리와 노우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종인]] 등과 더불어 서강 학파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82년까지 재임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장 퇴임 후 잠시 [[한미은행]]장을 지내다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였다. 그의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은 소위 3저(低)[* 낮은 물가, 금리, 석유가격을 뜻한다.]로 대표되는 경제 호황기로 수출 증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국내외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후임 [[노우]] 정부의 출범 후, 이 때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이 문제가 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 김미숙(1959) . . . . 3회 일치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 [[1987년]] [[해제과]] 쏠티크레커
          * [[1993년]] [[해음료]] 썬키스트 훼미리쥬스
  • 김민수 (1983년) . . . . 3회 일치
         |2015||KBS1||[[우리집 꿀단지]]||안호||
         |2018||OCN||[[미스트리스 (2018년 드라마)|미스트리스]]||강오||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선영(1976) . . . . 3회 일치
         || '''출생''' ||<(> [[1976년]] [[4월 10일]] ([age(1976-04-10)]세), [[강원도]] [[백시]] 문곡소도동 ||
         || '''학력''' ||<(> [[백석탄박물관]] ||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백시 출신 인물]][[분류:1995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 김성곤 . . . . 3회 일치
         1913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어났다.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상과 시절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영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8.15 광복]]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46년]], 미군정의 친일경찰의 횡포에 의해 일어난 [[대구 10.1 사건]]에서 친구 [[박상희]],황성과 같이 주요 역할로 활동하였다. 이후 사업가로 활동하다 1958년 달성군에서 [[자유당]]소속으로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 김연수(작가)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1970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본인 스스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다'고 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수상 경력도 화려하며,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김훈(소설가)|김훈]], [[박민규]]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 중 한 명이며 중학교 동창인 [[문준]], [[김중혁]]과 함께 김천 3인방이라고도 불리며, 21세기의 블루칩이라는 말 또한 들어왔다.
         [[2013년]] 7월 기준, 최근작은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다.[* 다만 해당 책이 출간된 출판사에서 자사의 여러 책들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사가 일어나면서, 이와 관련하여 김연수 작가는 해당 책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발매된 지 9개월 만에 본 책을 절판시켜 버렸다. 그리고 [[2015년]], 자신의 단편집 <스무살> 재판과 함께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다.]
  • 김영환(1955) . . . . 3회 일치
         1955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총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198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이후 바른미래당 당 대표에 출마했으나 [[손학규]]가 당대표에 당선되고 [[하경]], [[권은희]], [[이준석(정치인)|이준석]]이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결국은 전당대회마저도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낙선 후 당분간은 정치 대신 본업(치과의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 김유미(1979)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강원도 양양군에서 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대표작으로는 살맛납니다의 홍민수 역이 있다.
         || [[양인 이제마]] || 설이 ||
         || 2002 || [[KBS 연기대상]] || 여자 신인상 || 양인 이제마 ||
  • 김재엽 . . . . 3회 일치
         1964년 [[대구]]에서 어났다. 1974년 대구 [[남산초등학교]] 4학년때 유도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대구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대회를 20여차례 석권하였다. 특히 계성고 3학년이던 1982년에는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릉선수촌]]에 입촌하였으며,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 김처선 . . . . 3회 일치
         이 말을 듣고 격분한 [[연산군]]이 김처선의 [[혀]]를 잘라버렸다.[*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은 김처선이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시점을 김처선의 혀가 걸레짝이 된 상라고 설명 했는데, 사람은 혀가 잘린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지만 혀가 잘리면 자음을 제외한 공명음만 낼 수 있으므로 이런 상에서 말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설민석이 자신의 여타 강의에서도 그러하듯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러한 표현을 대동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 김처선의 발언이 은근히 [[연산군]]을 비꼬는 듯이 들리지만, '다리'를 임금의 신하라고 해석하면서, '''"충직한 신하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데, 어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본다면 뼈대가 있는 일침이라는 해석도 있다.
         [[네이버 웹소설]] [[전하와 나]]의 주인공 이의윤의 충신의 모티브다. 본명은 서현우로, 할머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별궁을 털려다 체포되었으나 황자였던 의윤의 도움으로 석방. 이일로 의윤이 황제의 눈밖에 나서 죽음을 당할뻔하자 그에게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로 충신의 대명사 김처선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의윤의 동생 선혜 공주와 이어져 처남 - 매부가 되었고, 의윤이 황제가 된 후에는 [[부마]] 겸 의윤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 김태연(배우) . . . . 3회 일치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김연,version=33)]
         || '''이름''' ||김연(金兌姸) ||
          * 신 현모양처 - 임
  • 김태훈 (1987년) . . . . 3회 일치
         |선수명 = 김
         '''김훈'''(金太勳<ref> 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 </ref>, [[1987년]] [[9월 28일]] ~ )은 [[KBO 리그]] 전 [[KIA 타이거즈]]의 [[포수]]이다.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하은(1984) . . . . 3회 일치
         | 학력 = 무안성가든
         * 무안성가든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4년 어남]][[분류:199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무안군 출신 인물]]
  • 김혜옥 . . . . 3회 일치
         * [[1996년]] [[KBS2]] 납량특집드라마 《[[전설의 고향]] - 쌍바위》
         *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병 어머니 역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김희애 . . . . 3회 일치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어나 어린 시절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순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KBS에서 데뷔했으나, [[1990년 KBS 사]][* KBS 사 후 김희애뿐만 아니라 전인화, [[김미숙]], [[김영철(배우)|김영철]], [[조민수(배우)|조민수]], [[최재성(배우)|최재성]] 등의 인기 배우들이 MBC 등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으며 [[김혜수]], [[이미연(배우)|이미연]], [[손창민]], [[하희라]] 등 대학-대학원 학생 연기자는 학점 만회에 전념해 왔다.]가 터지면서 [[MBC]]로 이적해 1990년대 MBC의 간판 배우로 활동했는데, 1990년 황인뢰 PD의 드라마인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주연을 맡고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도 올해는 임시면허 정원 조차 대폭 줄어들었다. 이것은 "도"의 시대가 왔다는 의미이며, 무분별하게 히어로를 양산하기 보단 우수한 인원을 선별하는 것.
          * 카미나리는 바쿠고가 구여 범위가 좁은 신기술을 사용한 이유가 "바닥에 있는 키리시마와 자신을 휩쓸리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걸 알고 있었다.
          * 동시에 고깃덩어리가 됐던 타학교 학생들도 일제히 원상로 돌아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3회 일치
          * 그와 통화하는 아저씨의 상가 이상하다. 기란의 말에 동의하는가 싶더니 곧 부정하고 바쁘다고 하다가 갑자기 한가하다고 대답한다. 기란은 아랑곳 없이 "다비"의 행적을 묻는다. 곧 "시가라키 토무라"가 모이고 싶어한다며 조만간 호출이 있을 거라 알려준다. 아저씨의 상는 점점 나빠져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기란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저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나"라고 힘겹게 중얼거린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중인격 성향이 드러나는데 상당히 중증. 평소에도 또다른 자아가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는 걸로 자아를 확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간학교편 당시에도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등, 본인이 괜찮다고 여길 뿐 전혀 상가 나아지지 않는다. 원래 캐릭터 모델이 데드풀로 추정되는데 실제 데드풀도 다중인격 성향이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3회 일치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럼 웅영제 때 고생한건 의미가 없는거 아니냐고 아우성친다. 너무 격한 반응이라 [[사토 리키도]]가 진정시킨다. [[이이다 텐야]]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웅영제 때 스카웃을 받기 위해 아득바득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자와의 설명으론 바로 그 웅영제에게 쌓은 인맥에 기반한게 인턴제도다. 게다가 이건 수업도 직업 체험도 아니라 "진짜 히어로 활동"이기 때문에 미리 지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인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본래 사무실 별로 인턴을 모집하는 제도였지만 웅영고 학생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소 편법적인 형가 된 것이다. 아이자와의 설명을 들은 우라라카는 흥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앉는다.
          저녁이 돼서 학생들이 돌아오자 근신 상의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미도리야는 쓰레기 처리를 자청하는데 [[키리시마 에지로]]가 마이크의 수업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투덜대거나 [[지로 쿄카]]와 [[오지로 마시라오]]와 인턴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걸 보고 뒤쳐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벽에 나타난 얼굴은 연하게 분리 수거에 대해 조언한다. 웅영에 들어와서 별별 희안한 건 다 본 미도리야지만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얼굴은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3회 일치
          * 아마지키가 이 모양이라 "하도 씨"라 불렸던 여학생이 대신 나선다. 그녀는 아마지키에게 "너 같은 도를 벼룩심장이라 불러."라고 하더니 급기에는 그를 "벼룩인 [[아마지키 타마키]]"라고 처참한 소개를 한다. 그녀 자신은 [[하도 네지레]]. 인턴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다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보통 사람같은 도였지만...
          그가 A반 반을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5초 남짓. 여유롭게 벗겨진 바지를 입는 시간까지 포함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3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24. '''동!! EP:인턴'''
          * 밀리오의 개성은 그 자체로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부단한 노력과 연구로 지금의 형를 만들었다.
          * [[토도로키 쇼토]]는 "No.1에 가장 가까운 남자" [[토오가타 밀리오]]의 위력에 경악한다. 그런데 경쟁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놀라워하는 모습이라 옆에 있던 [[아이자와 쇼타]]가 이상하게 여긴다. 아이자와가 "너도 No.1에 관심있는거 아니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는 "전 아직 임시면허가 없습니다"라고 평한 대답을 한다. 아이자와는 토도로키가 둥글어졌다고 생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3회 일치
          * 서둘로 시내로 복귀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 [[미도리야 이즈쿠]]와 합류한다. 밀리오는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며 사과하는데 나이트는 아이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보지 못한게" 문제였다며 자신의 실였다고 말한다. 그가 적어도 모든걸 예지할 수 있는건 아닌가 보다. 어쨌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의심을 샀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올마이트는 사람들이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이상 가야한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나이트아이는 냉정하게 충고한다. 폐를 당한 그는 전처럼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상로 계속 히어로를 해도 보는 사람들이 괴로울 뿐이며, 전설인 채로 은퇴하는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네즈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원 포 올의 후계자는 웅영고에서 찾으면 된다고 설득에 함께한다. 나이트아이는 반드시 그를 닮은, 밝고 강하며 친근감 있는 인물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 나이트아이의 강경한 도에, 올마이트는 그의 속내를 파악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3회 일치
          * 키리시마가 한 발 늦게 약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대는 늦었다. 빌런의 상가 이상했다. 눈이 뒤집히고 몸을 비튼다. 키리시마가 무슨 약을 놓은 거냐고 묻지만 대답이 없다. 비명이 이어지더니 한순간 반응이 멈춘다. 정상으로 돌아온 걸까?
          인계가 끝나자 타마키는 곧 네거티브 상에 빠진다. 벽에 머리를 기댄 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며 패트와 키리시마를 걱정한다.
          임시면허시험 직전의 특훈 기간 동안 키리시마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뾰족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상였다. 그는 올마이트에게 들은 조언을 친구 [[바쿠고 카츠키]]와 [[카미나리 덴키]]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조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도 너희와 맞설만한 방법이 없었다"라는 푸념이 뒤따른다. 옆에는 [[토코야미 후미카게]]와 [[세로 한타]]도 있다. 키리시마가 분석하기로 이들은 모두 중,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고 기동력도 괜찮다. 단 키리시마만 빼고. 키리시마는 자신에겐 그들이 가진 무기가 전혀 없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카미나리는 친구들에 대한 고평가에서 자식만 쏙 빠지자 핸드폰 공짜 충전 안 해준다고 협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3회 일치
          * 레게풍의 프로 히어로는 이 자리에 프로 이외의 인물이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맹이가 있으면 회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자 패트껌이 반발하며 "이들은 '''슈퍼''' 중요 참고인"이라며 키리시마와 타마키를 소개한다. 정작 둘은 영문을 모르는 상. 특이 타마키는 이 장소 자체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이자와의 개성은 "개성의 말소". 그래서 개성을 파괴하는 이 약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인체에 +알파 요소인 "개성인자"를 가지고 어난다. 아이자와의 경우는 개성을 일시정지 시키는 형식이고 개성인자 자체에 데미지를 주진 않는다. 패트껌이 조사한 바로는 이 약물은 개성인자 자체를 "파괴"한다. 물론 타마키의 경우는 자연치유될 정도로 미미한 타격이었지만.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올마이트의 의향으로 어린이들에게 줄 잉어깃발 만들기. 미도리야는 올마이트 풍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듬직하게, 오챠코는 가볍고 건강하고 화창하게 만들어서 여자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리고 [[바쿠고 카츠키]]는 "빌런을 이렇게 만들어라"라며 깃발을 아예 워버린다. 아이들 통곡. 이거 디자인도 뭣도 아니잖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3회 일치
          * 미도리야는 회의 이후에도 침울한 상인데 아이자와가 직접 찾아와 "막아도 뛰쳐나가긴 마찬가지니 내가 보는 데서 정규활약 해라"고 격려한다.
          * 에리는 여전히 [[오버홀]]에 의해 감금 상. 하지만 잠시 접촉했던 미도리야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서 계속 떠올리고 있다.
          그는 올마이트의 죽음을 봤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것이다.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자신의 예지는 그 자체로 쓰기 보단 작전의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거라고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나름대로 대답이 됐겠지만, 레게풍 히어로는 납득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도 정보이며 그걸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나이트아이의 예지는 점이 아니다. 100% 실현되는 예지. 계획으로 회피할 수 있는게 아니다. 레게풍 히어로는 그럼에도 "얼마든지 회피해줄 테니 날 봐봐라"고 허세를 부린다. 나이트아이는 단호한 도로 고개를 숙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3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한 수사에서 "에리쨩 구출작전"으로 변경된 [[서 나이트아이]]의 수사. [[미도리야 이즈쿠]]를 비롯한 웅영고 1학년 A반의 인턴 히어로들 또한 참가가 결정, 구체적인 작전이 실행되기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대외적으론 극비. 작전에 참가하는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는 겉으로는 평범하게 수업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도가 달랐다. 이는 학업 성적에도 영향을 줘서 다른 학생들이 "인턴조는 뭔가 다르다"고 감탄할 정도였고 질투가 심한 [[바쿠고 카츠키]]는 "인턴에서 뭘 알아낸거 아니냐"고 그 비결을 알려달라 닥달하지만, 이미 "극비"처리된지라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다.
          미도리야는 일단은 "에리쨩 보호에 전력으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로 여러가지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아슬아슬한 상인 거라고 자평했다. 그도 그럴게 고민하는 기색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남에게 보여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지금도 학생 식당에서 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토도로키 쇼토]]가 "안 먹냐"고 지적했다.
          * 지난 회의에서 불평만 늘어놓다 끝난 레게풍 히어로는 일단 임무는 충실히 이행했다. 미도리야가 학교에 있는 동안 어느 도심지. 그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연루된 시설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거점이 될만한 포인트"를 염두하며 원탑 형의 어떤 건물을 조사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3회 일치
          * 사무소 책임자인 패트껌 역시 이들의 걱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확실히 타마키는 네거티브를 입에 달고사는 지라 후배들의 걱정을 사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런 거야 어쨌든 "동료를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패트껌이 "등을 맡겼으면 믿고 맡겨두는게 남자!"라고 일갈하자 키리시마가 바로 세전환한다. "선배라면 괜찮아!"라고. 미도리야는 참 잘 휩쓸리는 사람이라 평한다.
          마침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의혹을 표시한다. 이 지하시설과 융합된 자, [[이리나카]]가 왜 잠자코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벽이 꿈틀거리지 않는 걸 보면 융합된 상도 아니다. 아이자와는 이 점을 들어서 "지하 전체와 융합하거나 컨트롤이 가능한건 아니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에 남은 타마키나 경찰의 동향을 보러갔을 지도 모른다. 녀석은 지하에 "들어가서" 조작하는 타입이고 완전히 동화하는게 아닐 것이다. 벽면 내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자기 눈과 귀로 "보거나 듣거나"해야 한다는 얘기. 따라서 이쪽을 방해하러 온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본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벽에 귀나 눈이 있는게 보일 것이다.
          아이자와의 가설이 들어맞았다. 이리나카는 타마키에게 제압된 철포옥의 상를 보러갔던 참이다. 물론 그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셋이서 고작 한 사람 막는게 끝이라니. 이리나카는 뭔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그녀석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3회 일치
          * 히어로 측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전략 수정이었다. 한참 몰아세우고 있던 중에 압박을 풀고 일행을 흩뜨려 놓는다? 그리 두꺼운 벽도 아니었다. 반대편에서 록록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혹시 압살이 불가능했던 건가? 그런것 치곤 지금 벽 형는 일행이 움직이기에 아주 편리하다. 나이트아이는 그 답으로 "그렇게하더라도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뭘까? 오래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나이트아이의 짐작대로 답이 직접 찾아왔다.
          나이트아이의 경고가 벽을 타고 록록에게까지 들렸다. 그는 여전히 불평불만만 늘어놓을 뿐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떠올리진 못했다. 우두커니 서있는 그의 뒤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는 이내 분명한 형를 드러낸다. [[토가 히미코]]. 그녀가 두 손으로 나이프를 내리찍었다.
          * 수시간 전. 빌런 연합의 수장 [[시라가키 토무라]]는 오버홀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위로운 협상 끝에 성립된 동맹. 여전히 딱딱하고 날선 분위기 속에서 오버홀, 치사키는 뜬금없이 장기판을 펼쳤다. 장기를 둬본 적이 있냐고 묻는 치사키. 시라가키는 그런건 두지도 않고 룰도 모른다고 치우라고 말했다. 치사키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즐겨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국면을 내다볼 수 있게"된다면서. 그러자 시라가키도 조금은 흥미를 보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3회 일치
          * 이이다는 왜 자신이 폭주할 때 말려준 두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하려는 거냐며 힐난하는데 미도리야가 반박하려 하자 그를 때리며 "네가 쓰러져 있는 모습에서 형이 떠올랐다"며 돌이킬 수 없는 사가 어떻게 되겠냐며, 자신의 걱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냐고 묻는다
         || 너희가 폭주한 끝에 형처럼 되돌릴 수 없는 사가 되어 버리면...!!
          * 미도리야의 몸상가 한계에 달했다.
  • 남유진 . . . . 3회 일치
         1953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어났다. 선산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이상 현 [[행정자치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상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 15 ~ 17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반감도 상당해진 상였다.
  • 남일해 . . . . 3회 일치
         | 본명 = 정
         '''남일해'''({{본명|'''정호'''}}, [[1938년]] [[11월]]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분류:1938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 노재우 . . . . 3회 일치
         * 어머니 : 김향 (金泰香, 1907년 ~ 1999년 4월 5일)
         ** 형님 : [[노우]](盧泰愚, 1932년 12월 4일 ~)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노우 가]]
  • 니엘(가수) . . . . 3회 일치
         어린 시절 잠시 아역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데뷔 후 KBS 단막극 권, 도를 아십니까와 [[투윅스]]에 카메오 출연했으며 최근에는 막내 창조가 주연한 [[MBC every1]] [[스웨덴세탁소]]에도 카메오 출연했다.
         2012년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2년|제4회 아이돌 스타 육상·수영 선수권대회]] 높이뛰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해설위원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여 줬다. 2012년 설특집 알까기 대회에서 손쉽게 다른 참여자들을 격파해 준우승까지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걸스데이]]에 패했다. 그 밖에 [[정글의 법칙]] 시즌 11, [[주먹쥐고 소림사]] , 정의본색 등의 예능에도 출연하였었다. 현재는 E채널 [[어나서 처음으로]]에 공작단원으로 출연중이다.
         워낙 혼자서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인지 라디오에 나온 모습을 보면 목상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잦다. 팬덤에서는 니엘만 이렇게 굴려대는 모습에 성대결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중.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3회 일치
         온혈동물은 열을 발생하는 능력 덕분에 거의 언제나 활성 상에 있으며, 야간에도 활동이 가능하다. 체온이 낮은 시간이라는 약점을 가지지 않는다.
         냉혈동물은 주변의 온도에 따라서 활성 상가 달라진다. 체온이 낮아진 시간대(주로 밤)에는 활동이 크게 둔해지며, 사냥을 하거나 포식자를 피하기 전에는 체온을 먼저 올려야 한다. 체온이 낮은 상에서는 활동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냉혈동물은 아주 위험해진다.--저 녀석을 잡아. 체온을 낮췄으니 오래가지 못할 거야-- --체온이 없어서.... 힘이 빠진다.--
  • 둠 패트롤 . . . . 3회 일치
          외모는 손상을 입지 않았지만 리타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위험한 괴물로 여겨졌다. 영화배우로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은둔 상가 되었으나 치프에게 둠 패트롤로 스카우트 된다. 나중에 멘토와 결혼하고, [[비스트 보이]]를 입양한다.
          본명 래리 트레이너(Larry Trainor). 비행기 테스트를 하다가 대기중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초능력을 얻었다. 자신의 몸에서 음전하로 충전된 빛에 둘러쌓인 그림자 같은 [[분신]]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분신을 분리한 상에서는 매우 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분신을 꺼내는 것은 60초 동안만 가능하다. 또한 사고의 영향으로 [[투명인간]]이 되버려서 평소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능력 때문에 이런 이름인 것 같지만 사실 이름 그대로 네거티브한 성격이기도 하다.
          리타 파. 별명은 리타 스타. 전 할리우드 영화배우. 이상한 가스에 노출되어 세포 구조가 변경되었다. 감정이 항상 기분 좋음에 고정되어 있어야 신체 형가 유지 된다. 그래서 웃는 표정으로 지낸다. 하지만 집중이 풀리고 감정이 안 좋아지면 몸이 순식간에 젤라틴으로 바뀌면서 녹아 내린다. 신체 크기를 변경해서 거인이 될수 있다.
  • 라이징 스톰 . . . . 3회 일치
         Rising Storm. [[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FPS 게임. [[킬링 플로어]]를 제작했던 게임 제작사 [[트립와이어 인터랙티브]]가 제작 및 유통했다.
         피격당하면 출혈 상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M2-2 화염방사기. 연합군 Flamethrower의 주무기로 시뻘건 불길을 쏟아내 적들을 워 죽인다.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3회 일치
         [[잉글랜드]]의 군인, 탐험가, 지질학자. 1896년에 어나 1990년 사망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배그놀드는 다시 현역이 된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LRDG|장거리 사막 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LRDG는 기존의 자석을 이용한 [[나침반]]이 대원들이 타고다니는 트럭 등에 교란될 것을 우려해 양을 이용한 나침반을 사용했는데, 이 나침반 또한 배그놀드가 설계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 도중이었던 1941년에도 또다른 책을 펴내었다. 모래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담은 《바람에 부는 모래와 사막 사구의 물리학》[* The Physics of Blown Sand and Desert Dunes.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이 그것이었다.
         [[https://www.iwm.org.uk/collections/item/object/30028094|(영문)제국전쟁박물관의 배그놀드 양 나침반 설명]]
  • 레오(워저드) . . . . 3회 일치
         풀 업 상의 패스워드는 4146644463로 커맨드 입력은 Lk Lp Lk Sk Sk Lk Lk Lk Sk Sp 순이다.
          크르노스 러시의 강화판적인 초필(미스틱 브레이크)으로, 다단히트의 클후 베어버린다.
         그나마 헤라클레스 러시는 발동이 빨라서 연속기로 잘 들어가니 다행. 기가스 드라이버는 레벨 2 이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가끔 허를 찌를 때 쓴다면 몰라도 앉아 강P - 헤라클레스 러시로 이미 기가스급 데미지가 나오니 굳이 무방비 상의 적에게 이 쪽을 쓸 필요는 없다.
  • 레프카 . . . . 3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행정국 국장. 나이는 33세. 양 에너지를 손에 넣기 위해 라오 박사를 쫓고 있다.
         인더스트리아의 부흥을 위해서 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라오 박사를 찾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며 사실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야심가. 삼각탑 지하에 잠든 초자력 병기를 탑재한 거대한 우주 비행기 [[기간트]]를 부활시키려 하며, 이에 필요한 양 에너지를 얻기 위해 라오 박사를 추적하는 것이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3회 일치
          * 스테라스테라 : 사이파카르의 교육담당관. 황제를 대신해 사이파카르를 제어하고 그 동를 보고하는 역할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이파카르를 흠모하여 자신의 처지 때문에 갈등한다. 무투파가 대부분인 가신단 내에서 몇 안되는 '지모' 담당.
          * 캘거리 : 제국의 재상. 딸이 황자의 정비이다. 사이파카르를 비롯하여 권세에 방해가 될 정적들을 제거하려고 획책한다.
          * 록시느 : 4황자. 동방 변경주로 가는 길목인 앰브로우 주의 영주로 황자와 사이가 나빠 숙청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 류효영 . . . . 3회 일치
         | 어린 주다해 ([[이임]] 아역)
         * 2013년 3월 나이스 학생서비스 학교폭력 실조사 홍보대사
         [[분류:201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문화 류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유밴드 출신]][[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란성 쌍둥이 배우]]
  • 마기/312화 . . . . 3회 일치
          * 백룡은 이 상의 알라딘은 누구도 건드릴 수 조차 없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알 사멘의 모든 공격이 닿지도 않는다.
          * 아르바는 믿기지 않지만 일단 이 상의 알라딘은 누구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한다.
          * 현재 백영은 겉보기엔 변화가 없지만 실제론 완전히 다른 인체로 치환된 상. 루프는 그 안에 잠들어 있다.
  • 마기/328화 . . . . 3회 일치
          * 그들은 담판을 지으러 가지만 신드바드는 아주 뻔뻔한 도로 자신은 솔로몬 왕이 한 것과 같은 일을 했다고 주장한다.
          알리바바는 석연치 않은 표정인데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토록 오래 고민해서 결정한 사안을 너무나 쉽게 바꿔서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지키려 했던 "일국의 독자성"이 소중하지 않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무 알렉키우스는 "솔직히 그런 사소한 거에 집착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폭탄발언한다. 너무 급격한 도 변화라 알리바바가 따라가지 못한다. 무는 "사고가 번뜩였다"는 애매한 표현만 사용하는데 알리바바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 알라딘은 그의 말은 결국 "신드바드가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왕"이라 생각하게 만든 거라고 지적한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알라딘은 그렇게 못 박는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솔로몬 왕이 한 것과 같다고 항변한다. 그고 루프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 전세계에 배분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 왕의 의지에 반하는 자는 "타전"이란 형로 배제된다고 말하는데 알라딘도 뾰족하게 반론하지 못한다.
  • 마기/332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단호한 도로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를 설득하고 모르지아나의 동요를 끌어낸다. 그러나 루프에 속박을 벗어날 순 없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에게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타도할 것을 맹세한다. 모르지아나는 모든 사람들이 루프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반박하지만 알리바바는 단호한 도로 "내가 아는 모르지아나는 그딴 소린 죽어도 안 할 여자"였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 알리바바는 공감하면서도 성궁이 무너지면 세상의 순환체계가 망가져 새로운 생명도 어나지 않는거 아니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알라딘은 그럴 우려가 없다며, 전세계가 "암흑대륙"처럼되는 거라고 말한다.
  • 마기/337화 . . . . 3회 일치
          * 쥬다르 앞에 나타난 영상은 그가 바르다르에서 난동을 부리다 알라딘의 "솔로몬의 지혜"에 의해 쫓겨난 직후의 자신이었다. 쥬다르는 이때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자신의 출생과 고향의 일, 그리고 알 사멘에 의해 납치됐던 일 등을 떠올리고 충격에 빠진 상였다.
          * 신드바드는 어느새 [[연옥염]]을 불러다 놓았다. 진짜 옥염은 아르바의 모습으로 알라딘 일행을 안내하고 있을 테지만, 신드바드는 자신의 힘으로 황제국의 후였던 시절의 연옥염을 그대로 등장시킨다. 쥬다르는 그녀를 보고 잠시 동요하는데, 그의 뒤에서 또다른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자 동네에 어났더라면, 왕족이었더라면 등등
  • 마기/345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는 이 돌을 모으면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판단, 자신으 [[모솔로]]로 죽은 걸 고백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충격적인 [[모솔로]] 선언. 무릎까지 꿇은 알리바바의 간절함이 이곳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 마법식 연구도 특훈도, 그리고 수인족들의 또 다른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수인들이 작업하던 것은 돌을 사용한 인공신체다. 거대한 석상 형.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가려면 몸이 필요한데 이게 그걸 대신해줄 것이다.
  • 마기/350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들뜬 목소리로 알리바바에게 어서 "차원을 연결하는 대마법"을 사용해 보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멋쩍은 도로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털어놓는다. 우선 그는 마법사가 아니고, 그 대마법은 살아있는 몸으로 쓸만한게 아니라고 [[셋타]]가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우고는 "그럼 글렀잖아!"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각기 미궁을 돌파하고 바깥으로 나온 [[연백룡]]과 [[쥬다르]]. 그들은 갑자기 성궁 전체가 흔들리고 정오의 양이 빠르게 저무는걸 목격한다. 모든게 루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경악해서 그만두라고 외치는데 사실 이건 세상이 루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양은 먼 산 위에 걸린 채로 멈춘다. 신드바드가 알리바바의 제안을 타당하다 여기고 작동시키고 있던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정지시킨 것이다.
  • 마누엘 고도이 . . . . 3회 일치
         1807년에 고도이는 [[포르투갈]] 정복을 노리는 나폴레옹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점령한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의 영유를 인정받았는데, 고도이는 황자 페르난도(후의 [[페르난도 7세]])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황자가 즉위하면 파면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파면 이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알가르브를 영유하는 대신 스페인에 프랑스 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상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영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 모테모테 . . . . 3회 일치
         이성에게 인기를 모으는 상를 뜻하는 『[[모테루]](モテる)』의 「모테(モテ)」에서 따와서, 이를 복합어로 만들어서 쓰는 일종의 [[의어]].
         [[모테루]]를 [[복합어]]로 하여 [[의어]]처럼 변형시킨 것에서 나왔다.
  • 목소리가 뒤집히다 . . . . 3회 일치
         우라가에테루(裏返ってる)란 사물이 뒤집혀서 뒷면이 드러난 상를 뜻한다. '겉면'에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상, '뒷면(우라,裏)'에는 비정상적인 상라는 의미가 있어, 목소리에서 뒷면이 드러났다는 것은 곧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3회 일치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paradox interactive사의 시뮬레이션 게임인 [[crusader kings 2]]에서도 등장한다. 그의 힘을 나타내기위해서인지 '강인함'특성이 붙어있으며, 그외에 야망, 기만적, 용감함 등 그의 생애를 잘요약한 특성들이 붙어있다. 처음 능력치는 크게 좋지는 못하나, [* 오죽하면 숙련자들은 발칸반도밖에 영토가 없지만 사기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있는 알렉시아드 시나리오가 더 좋다고 할까(...)] 전쟁터에서 굴려주면서 성장시키먼 상당히 높은 능력치가 되준다. 다만, 시스템상 비잔티움은 황제가 되고 난뒤에 어난 아이인 '자주색 혈통'특성을 가진 후계자가 우선 상속하기에, 십중팔구 콘스탄티노스가 살아있어도 레온이 황위에 오른다(...)
  • 바키도/105화 . . . . 3회 일치
          * 피클은 무사시를 상대로 사족보행 형에 돌입한다.
          * 무사시는 한 눈에 이 형의 위험성을 알아보고 "이걸 나더러 받아보라는 거냐"고 말한다.
          * 무사시는 이 기술을 피할지 막을지 고민하다 결국 피클의 돌격을 그대로 맞잡는 형가 된다.
  • 바키도/132화 . . . . 3회 일치
          *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모토베 이조가 혼신의 클로 무사시에게 마운트 포지션을 잡는다.
          * 생각지도 않은 형로 승리는 모토베에게?
          * 한마 바키는 승부는 났다고 외치며 시합 중지를 외친다. 그러나 모토베 이조는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멈추면 지킬 수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다. 무사시도 승리를 확신한 것인지 모토베보다는 관중석에서 일어난 바키에게 시선을 돌린다. 모토베가 파고든 것은 그 틈. 두 다리가 부러졌을 텐데, 혼신의 클이 깔끔하게 들어간다.
  • 바키도/134화 . . . . 3회 일치
          * 바키는 현대의 투사들을 대표해 그간의 저평가가 완전히 오판이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역량까지 잘못봤다고 뼈아픈 반성을 한다. 바키는 자신의 식격이 모자랐다고 인정하며 정중한 도로 고개숙여 사과한다.
          * 그는 이어서 "오우거", 한마 유지로는 이 시대의 신이자 질서이며 놓칠 수 없는 존재라 말한다. 시부카와 고키는 "국보"이자 "무형문화", 오로치 돗포는 "근대 가라데의 아버지"이며 "양"같은 존재, 하나야마 카오루가 가진 자신만의 "긍지"나 오로치 카즈미의 "가라데의 2대 양"이란 위치, 두말할 필요없는 인류의 재산이자 동료인 피클. 그 외에도 가이아나 시노기 형제 등 수많은 격투가들을 일일히 거명하며 이들이 모두 빠질 것 없는 "시대의 보물"이라고 칭한다.
  • 바키도/136화 . . . . 3회 일치
          * 아나운서는 촐랑대는 도로 무사시를 인터뷰한다.
          * 아나운서는 긴장감 때문인지 천성인지 촐랑대는 도를 보인다. 어딘지 허둥대고 안정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무사시씨가 맞으시냐"는 실없는 질문이나 던진다. 보고 있던 바키는 그런건 당연히 심기를 거스를거라고 생각한다.
          화면 너머지만 바키가 분명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사시의 화가 뻗쳐나온다. 그는 위협적인 도로 답한다.
  • 바키도/137화 . . . . 3회 일치
          * 호텔에서 그녀를 맞이한 유지로는 놀랍게도 아침발기 상. 그런 상인데도 거리낌없이 힐너리를 맞이한다.
          * 그렇게해서 유지로의 방에 들어간 힐너리. 그런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팬티만 걸친 유지로. 게다가 아침발기인지 힘차게 팬티 바깥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다. 말도 못하게 경악하는 힐너리와 달리 유지로는 연하게 "선서는 안 받는다"고 통보한다. 그는 이미 거절한 바가 있는데 힐너리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모양이다. 스트라이덤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 바키도/139화 . . . . 3회 일치
          * 오오츠카는 굳은 표정으로 "칼에 의존하는건 좋지만 국가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무사시는 연한, 오히려 비웃는 도로 "나라가 내게 베여도 괜찮겠냐"고 응수한다. 이때 무사시는 마치 오거 [[한마 유지로]]처럼 주변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강한 기운을 내뿜는다. 오오츠카 경보부는 대단한 기운이라며 더이상의 대화는 무리라고 판단한다.
          무사시는 완전히 임전세에 들어간다.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오오츠카는 "뽑는게 아니라 움직인 순간에 쏴라"고 명령을 수정한다.
  • 박근영 (야구인) . . . . 3회 일치
         [[2012년]] [[10월 6일]] [[롯데 자이언츠]] 대 [[SK 와이번스]] 경기에선 [[박정권]]이 2루로 [[도루]]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2루심 박근영은 공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웃'을 선언하였다. 박근영은 다시 정정하여 '세이프'를 선언했지만, [[박정권]]은 그 아웃 처리가 되면서 오심 논란이 재개되었다.
         [[2015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9회초 2사 3루 한화 이글스의 공격 상황에서 타자 [[김회성]]이 친 3루 땅볼을 3루수 [[박석민]]이 잡아 홈으로 송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자 [[강경학]]의 발이 홈을 먼저 그했음에도 아웃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박두을 . . . . 3회 일치
         박두을은 [[1907년]] [[11월 8일]]에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 박기동의 4녀로 어났다. [[박팽년]]의 후손답게 선비였던 아버지 박씨와 '교동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손에서 박두을은 엄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굴이 예쁘고 인심이 좋아 평소 '두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15세 되던 무렵 어느 날 절에서 시주를 나온 한 스님으로부터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갑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라는 말을 하였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스님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이후 박두을은 [[1926년]] 20세에 [[이병철]]과 결혼하였다.
         박두을에 대한 기록은 장남 [[이맹희]]가 쓴 책이 비교적 자세하다. [[삼성그룹]] 후계 자리를 동생 [[이건희]]에게 내준 비운의 황자로 알려진 그는 [[1993년]] '묻어둔 이야기'라는 회고록에 어머니 박두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분류:1907년 어남]][[분류:2000년 죽음]][[분류:이병철]][[분류:삼성가]][[분류:순천 박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상원(배우) . . . . 3회 일치
         00년대 이후에도 [[토지(소설)|토지]], [[왕사신기]] 등 꾸준히 유명 작품들에 출연해 존재감을 잃지 않고 있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신의(드라마)|신의]] 등 故 [[김종학]] PD의 작품에 많이 출연해 인연이 깊으며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백야 3.98, 왕사신기 등 [[최민수]]와 많은 작품을 찍었다. 또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 여자의 방 등을 통해 [[고현정]]과도 여러번 호흡을 맞추었다.[* 셋 모두 故 김종학 PD가 아끼던 배우들이라 그의 장례식 때 찾아와 빈소를 지켰다.]
          * 2007년 [[왕사신기]] (MBC) - 연가려 역
  • 박승호(정치인) . . . . 3회 일치
         1957년 (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어났다. 달전초등학교, 동지중학교, [[포항고등학교]],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행정학 석사,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이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용인대학교 졸업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기 공채로 입사하여 [[노우]] 조직위원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노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관선 [[봉화군]]수를 지냈다. 이후 내무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경상북도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 박영진(코미디언) . . . . 3회 일치
         허경환이 봉숭아 학당에서 '있는데가이' 역할에서 퇴출당하자 조금씩 주춤했다. 게다가 PD는 재미도 없는 [[박휘순]]과 박영진을 연결시켜 재미를 보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최근은 그나마 좀 나아진 상인 듯.][* 박휘순과 박영진의 개그코드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허경환이 [[두캅스]]의 기믹으로 화려하게(?) 귀환해서 이때까지 허경환을 괴롭힌 업보를 톡톡히 받고 있는 상이며 2010년 2월 18일 자 해피 투게더에서는 박성광과는 달리 크게까지는 활약하지 못했다.
         2010년 한때 봉숭아 학당에서 엑스파일 요원이라는 캐릭터로 활동했는데 그 '엉뚱한 내용 트집 잡는' 기믹은 여전했다. 할 말 다 하고 "정말(정마알) 미스테리합니다" 를 말하는 게 포인트. 겨울에 들어서는 졸업생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왔다. "후배들아, ~같은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못 ~한다! 나는 ~해서 ~했다(어이없는 예시, 클 걸리면) 이렇게 세상을 모른다!" 라는 레파토리.
  • 박인태 . . . . 3회 일치
         | 이름 = 박인
         '''박인'''(1995년 1월 4일~ )는 [[창원 LG 세이커스]]의 센터이다.
         [[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박주아(1942년) . . . . 3회 일치
         * [[한국방송공사|KBS]]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2000년]])
         [[분류:194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11년 죽음]][[분류:1962년 데뷔]][[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박태호 (야구인) . . . . 3회 일치
         |선수명 = 박
         '''박호''' (朴泰浩, [[1963년]] [[5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였다.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박화요비 . . . . 3회 일치
         본명은 박미영[* [[마망|마골피]]와 본명이 같다.]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했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요일에 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 ~~힙합이었으면 화요합~~ (출처: [[https://youtu.be/vvcat903c44]],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7년 11월 중순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도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이 바뀌어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히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 2014년 연말 전날 실신해서 목이 다 쉬어 화요비의 강점인 간드러지는 음색이 없는 상에서 가성과 진성만으로 20곡을 소화.
  • 백춘희 . . . . 3회 일치
         * 2012년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 합당 후 새누리당으로 이동<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71709223235101 백춘희 대전시 정무부시장 내정자, ‘이중행’ 논란]</ref>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251521001&code=620106 백춘희 대전시 정무부시장 취임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힘 보겠다”] 경향신문 2014.07.15.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덕대학 동문]]
  • 변요한 . . . . 3회 일치
         ~~지금은 인스타를 접은 상~~인줄 알았으나, 지난 5월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다시 개설했다. (다만, 소속사가 운영하고 있다.) 다음 공식 팬카페에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해당 카페 글이 유출 금지라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다.)
         || LIVE★☆ || 주연 || 기 ||
         || 열일곱, 그리고 여름★ || 조연 || 구 ||
  • 보루토/7화 . . . . 3회 일치
          * 킨츠키는 자세가 무너져 한참 날아가는데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는 한 발 늦었다. 사스케가 치도리를 감은 검으로 찌른다. 사스케의 치도리가 결정타가 되어 킨츠키의 방어세가 완전히 무너진다. 무사히 착지하긴 했지만 무방비한 상에서 쵸쥬로의 혈무도법 "뼈베기"를 정통으로 맞고 비틀거린다.
          * 이윽고 새로운 형로 변한 모모츠키의 모습이 나타난다.
  • 브로포스/브로 . . . . 3회 일치
          섬광탄 폭발 범위 내부의 적들은 패닉 상가 되어 서로 싸우게 된다.
          짧은 거리에 빛을 반짝한다. 빛에 맞은 적은 혼란상가 되어 아군을 공격한다. 효과음은 맨인블랙 영화에서 그냥 뜯어왔으니 컬럼비아 픽처스에 이르지 말아달라고. 아마 농담일거다.
          일정 시간동안 전기톱을 들이댄다. 이 상에선 이동속도가 빨라지며, 애쉬를 본 적들이 도망친다. 전기톱으로 두 명 이상의 적을 갈아 죽이면 왼쪽 하단에 그려진 얼굴에 피가 묻는다.
  • 블라디미르 렘 . . . . 3회 일치
         이후에도 안젤로 펀치넬로의 함정에서 벗어난 맥스를 펀치넬로 저택까지 워주기도 했다.
         맥스가 경찰서에서 탈출한 [[모나 색스]]를 찾아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올 때 등장. 맥스를 모나가 숨어있는 폐 놀이공원까지 워준다. 차 뒷좌석에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비니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트로이의 목마라고. 맥스를 워주는 동안 잘못을 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잘못한게 아니라 운명에 가까우니 해야할걸 하면 된다고 조언해준다. 이에 페인의 대답은 "그렇게 쉬운 일이 절대 아냐."[* It's never that easy.]
  • 블랙 클로버/109화 . . . . 3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가 자신있게 권하는 온천합숙 장소 유르팀 화산 등산로. 지중의 강대한 마나가 화산 형로 분출되는 강마지대다.
          * 세 번째 선보이는 강마지대는 유트림 화산. 거기에 난 등산로다. 유르팀 화산은 지중에 있는 강대한 마나가 화산의 형로 분출되는 매우 살벌하고 지옥같은 지역이다. 일행의 눈 앞에는 쉴새 없이 용암을 분출하는 거대한 산이 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사람이 다가가면 안 되는 위험지대지만, 홍련의 사자단의 새 단장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은 바로 이곳 정상에 자양강장에 특효인 온천이 있다고 소개한다.
          * 원래 사자단 외에 끌려온 사람은 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 [[노엘 실버]], [[샬롯 로즈레이]], [[야미 스케히로]] 등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운 없는 사람들 뿐이지만, 왠지 [[솔 마론]]도 얼굴을 비춘다. 샬롯이 간다길래 그냥 따라왔는데 도착해 보니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최종적으로 샬롯과 온천을 할 수 있으면 다 좋다고 나름대로 의욕을 불운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3회 일치
          * 샬롯은 남탕 쪽에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 상로 어슬렁거리는걸 상상하고 모에사 당한다.
          * 남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상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순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식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남자로 어났으면 해야지. 목숨을 걸고서라도.
  • 블랙 클로버/116화 . . . . 3회 일치
          * 이렇게 변변찮은 인물같지만, 실제론 단장이 부재 상나 다름 없는 산호의 공작의 부단장을 맡아 실질적으로 마법기사단을 운용 중인 재원이었다.
          * [[미모사 버밀리온]]이 부끄러워 마지 않는 오라버니 [[키르슈 버밀리온]] 등장. 산호의 공작 소속 일등 상급 마법기사다.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만연한 세상에 아름답게 어나고 말아서 괴롭다는 인물이다. 미모사는 가족에 대한 변호를 포기했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경악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순간 가장 미치고 팔짝 뛰는 사람들은 이 인물과 한 팀을 이룬 [[매그너 스윙]]과 [[솔 마론]]이었다.
          * 1회전을 치르기도 전부터 팀은 붕괴 상. 그 원흉은 전혀 자각이 없을 뿐더러 상황에 박차를 가한다. 자기들도 만만찮은 막장 팀이건만, 아스타는 이 팀이 정말 괜찮은 건지 진심으로 우려했다. 그러는 동안 키르슈는 여동생에게 아는 채 한다. 그는 여동생이 자기 아름다움을 보러 왔고 그 아름다움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여동생 건강까지 챙겨준다. 미모사가 화답한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3회 일치
          키르슈가 다음에는 아스타 차례라며 지목한다. 그를 "금이 간 그릇"에 비유하며 산산조각 내주겠다고 하는데, 아스타는 그 말을 듣고도 연히 웃는다. "그릇은 금이 가고 나서야 오래 쓴다"는 관용구를 인용했지만, 그건 그냥 빈곤을 뜻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예전에 시스터가 아스타를 키우면서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인데, 그냥 비유삼아 했던 말을 아스타가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오폴드는 홍련의 사자와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 하몬은 금색의 여명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다. 하몬은 유리마법을 구사하며 이름처럼 하몽 이베리코 돼지를 닮은 통통한 녀석이다. 성격은 쌈빡한 걸 선호하는 레오폴드하곤 정반대로, 키르슈를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믿는 별종 중 하나다. 나서기 좋아하는 점만큼은 둘이 똑같아서 하몬이 "나의 유리마법을 주축으로 키르슈씨 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싸울 것을 주장하고 레오는 자기 불꽃 마법을 주력으로 아무튼 다 박살내면서 호쾌하게 가자고 티격격한다.
          * H팀은 제법 건실한 작전으로 나왔다. 방어계가 뛰어난 마법기사가 크리스탈을 철통같이 감싸고 함정 마법 전문가가 근처에 함정을 깔아놓는다. 정석적인 작전. 그에 비해 G팀은 셋케가 셋케 슈팅스타로 란길스를 우고 무작정 달려오는게 전부다. 주행도 방향을 바꾸거나 페이크를 넣는 것도 없이 그저 일직선.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 블랙 클로버/132화 . . . . 3회 일치
          * 유노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함께 했던 마나스킨 특훈으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했다. 정령마법의 막대한 마력을 자신의 몸 안에 가두는 일종의 변신. 아스타의 블랙 모드와 비슷한 성질이다. 유노는 본래 아스타와 결승에서 만났을 때 쓰고 싶었지만 기사단 단장을 상대라면 부족함이 없는 상대라며 이 상를 해방한다. 마치 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유노.
          * "스피릿 다이브"라 이름 붙인 이 상는 좌중을 압도한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자가 이끌어낸 힘이라며 격찬한다. 그러나 가장 놀랍고 기뻐하는 것은 적인 릴. 감탄을 연발하며 "지금이라면 뭐든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최고의 그림을 그려낸다. 유노의 정령마법 "스피릿스톰"과 릴의 그림마법 "환룡 비브르의 외침"이 격돌. 완전한 호각세를 이룬다. 둘은 이토록 전력을 끌어낼 상대가 존재한다는데 기뻐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유노와 겨루고 싶었던 아스타는 부상으로 누워있는 상. 둘의 싸움을 바라보며 "왜 유노의 상대가 내가 아닌 거냐"며 비통해한다.
  • 블랙 클로버/133화 . . . . 3회 일치
          * 한편 불완전연소로 대회를 마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멍한 상로 검은 폭우단 아지트에 방치돼 있다. 유노가 새로운 힘에 각성한 것이나 잭스가 실제론 사칭이었던 것, [[핀랄 룰러케이트]]의 용 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챠미 퍼밋슨]]도 유노에 대한 상사병이 도져서 멍하지만 밥은 잘 먹고 있다. 노엘이나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는 서로 자기야 말로 로얄 나이츠로 선발될 거라며 티격격한다. 핀랄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중환자.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랜길드 보드]]는 연행. 노엘은 그가 막판에 발휘했던 수상한 마력을 찜찜해한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3회 일치
          * 다이아몬드의 간부급 중엔 변스러운 놈도 있어서 마녀들을 포획해 놀이개로 삼으려 하는데 아스타 일행이 대활약해서 구해낸다.
          * 완전한 상로 부활한 아스타. 두 팔로 두 개의 검을 휘두르며 결전에 나서자고 외친다. 하지만 그동안 걱정했던 동료들은 너무 뻔뻔하게 외치는 꼬라지를 보고 제재를 가한다. 그런데 부활한 영향인지 너무 튼튼해져서 동료들의 공격이 먹히지도 않는다. 이것은 여왕이 저주를 풀어주면서 걸어준 강화마법인데 온몸이 쇳덩이처럼 단단해졌다.
          * 부관격으로 보이는 변 같은 마도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파마의 힘과 미모를 칭송하며 "한 번 상대하고 싶다"고 섹드립이나 날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녀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쓰겠다며 부하들을 출동시킨다. 부하들은 포박 계통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잡아간다. 어린 마녀 하나가 적에게 잡히는데 아스타가 바네사 에노테이커, 핀랄 룰러케이트, 노엘 실버와 함께 현장에 도착, 마녀를 포박한 마법을 베어버리며 구출한다. 하지만 마녀의 숲의 마녀들을 남자를 싫어해서 구해준 아스타를 할퀴고 달아나 버린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원래 그런 나라라며 대신 사과한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3회 일치
          * 숲의 반대편, 검은 폭우 일행은 [[증오의 파나]]를 거의 제압한 상다. 파나는 한 눈에 보기에도 상가 좋지 않은데 주변을 불사르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아스타는 이미 포위됐으니 그만 좀 하라고 마지막 항복권고를 날린다. 그러면서 "자꾸 그러면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도 슬퍼할 거야"라고 하는데 그것이 파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파나는 남아있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직도 저만한 힘이 있다며 경악하고 아스타는 마지막 설득까지 실패하자 실망한다. 바로 그 모습을 젤 일행이 발견한다. 이들은 아스타만이 아니라 정령마법 구사자가 있는걸 보고 곧바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린다. 마침 라드로스도 그들을 턱 밑까지 추격한 상.
  • 블랙 클로버/92화 . . . . 3회 일치
          * 증오의 파나가 진짜 "파나"인지, 그런건 알 수 없지만 마르스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는 두통을 호소하며 상가 나빠진다. 파나는 "왜 모두 날 방해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절망의 베토]]가 막판에 사용했던 자폭마법을 발동시킨다. [[핀랄 룰러케이터]]는 그걸 알아차리고 왜 저 녀석들은 죄다 저런걸 달고 있냐고 절규한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침착하지만 저것이 발동할 경우 일대가 날아갈 거라고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 자폭 마법이 작동하는 중에도 샐러맨더의 화염덩어리가 사방에 뿌려진다. 아스타는 반마법 검으로 베어내지만 마르스는 반격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 공격을 그대로 맞는다. 젤은 마법으로 방어하라고 소리치지만 마르스는 한 번 파나를 죽였던 자신은 방어할 자격도 없다며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아스타가 후련하게 클을 넣는다.
          아스타는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 증오의 파나는 "백야의 마안"이란 테러리스트 집단의 간부라고, 잘못 본게 아니냐고 따진다. 마르스는 발끈해서 "소중한 친구를 잘못 봤을리가 있냐"고 멱살을 잡는다. 그 단호한 도를 보고 아스타는 자신의 고향 친구들, [[유노(블랙 클로버)]]를 떠올린다.
  • 블랙기업 . . . . 3회 일치
         용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는 [[야쿠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세탁기업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일본에서 폭력단 대책법이 1992년 제정된 이후 경찰들이 야쿠자를 잡아들이기가 쉬워지자 야쿠자들이 명목상으로는 "나 야쿠자 아니요"라고 하기 위해 야쿠자들이 차린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존의 야쿠자 조직은 '기업' 형가 아니라 일종의 '결사' 형를 취하고 있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지은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업 '케이텐 흥업'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케이스. 이를 '프런트 기업'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야쿠자 기업을 돌려서 표현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명백하게 노동기준법을 위반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거나 불법은 아닐지라도 보편적인 윤리 및 도덕적 시각으로 볼 때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들이 연히 일어나고 있는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 블리치/681화 . . . . 3회 일치
         * 만해 상의 켄파치는 몸이 붉어지고 야쇄의 형는 부러진 칼처럼 변한다.
         * 거의 폭주 상나 다름이 없는데, 이것 자체가 만해인지 다른 영향인지는 불명.
  • 빌리 블랭크스 . . . . 3회 일치
         [[텔레비전]]으로 [[이소룡]]을 보고 무술에 동경을 느껴, 14살 때부터 무술을 시작했으며 [[가라테]]와 [[권도]]를 배웠다.
         1980년대에 권도('''tae''' kwon do)와 복싱('''bo'''xing)을 결합한 무술 겸 트레이닝 프로그램 '[[보]]'를 창안하여,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일대에 널리 보급했다.
  • 살바도르 달리 . . . . 3회 일치
         [[스페인]] 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바르셀로나]]에서 두 시간 떨어져 있는 피게레스에서 어났다. 죽고 난 뒤에 피게레스에 묻혔고, 피게레스에는 달리 미술관이 있다.[http://www.dailian.co.kr/news/view/485121 참조]
         1988년 스페인의 화가이자 미술사학자 토메우 라모는 1988년 스페인 북부 지로나의 골동품점에서, 2만5천페세타(150유로)에 달리의 작품을 구입했다. 골동품점 주인은 써진 연대가 달리가 어나기 전엔 1896년이므로 이 작품은 [[위작]]이라고 판단했으나 토메우 라모는 이를 진품이라고 생각해서 구입했고, 결국 2004년에서 2013년에 걸쳐서 감정을 한 결과 결국 달리가 17살 때인 1921년에 그려진 진품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살바도르 달리 재단은 아직 달리의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http://www.huffingtonpost.kr/2014/05/23/story_n_5377257.html 참조]
  • 서지훈 (1997년) . . . . 3회 일치
         | 장
         | 조
         [[분류:199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
  • 소격서 . . . . 3회 일치
         * 일전(太一殿) : [[칠성]](七星)을 제사지냈다. 화상이 모두 모두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 삼청전(三淸殿) : 옥황상제(玉皇上帝), 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동제군(梓潼帝君) 등 10여 위를 제사하였다. 남자의 화상으로 모셨다.
         도사를 뽑을 때는 《영보경(靈寶經)》ㆍ《과의(科義)》ㆍ《연생경(延生經)》ㆍ《일경(太一經)》ㆍ《옥추경(玉樞經)》ㆍ《진무경(眞武經)》ㆍ《용왕경(龍王經)》 등을 교제로 사용하였다.
  • 소냐(가수)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주한미군]]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어난 [[혼혈]]이다.
         [[김천시|김천]]에서 어났으나 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고 어머니를 8세 때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김천시|김천]]에 있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고학을 했고, 1998년 5월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을 통해 사연이 소개된 뒤 1999년 5월에 가수로 데뷔했다.
  • 손광업 . . . . 3회 일치
         * 《[[좋지 아니한가]]》 (2007년) - 용 담임 역
         * 《두 번째 양》 (2010년) - 이든 역
         [[분류:1970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손전 . . . . 3회 일치
         * 《[[백산맥 (영화)|백산맥]]》
         [[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 배우]][[분류:1932년 데뷔]][[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10년 어남]][[분류:1999년 죽음]][[분류:밀양 손씨]][[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
  • 솔비 . . . . 3회 일치
         2010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에 흠뻑 빠지며 화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Trace'의 '공상'을 시작으로 셀프 콜라보레이션(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인 권지안과 솔비가 협업해 새로운 형의 예술)을 선보였다. 셀프 콜라보레이션은 2016년 '블랙스완',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초청작가,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까지 총 다섯 작품이다. 특히 솔비는 '하이퍼리즘'(정보와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높아진 기대치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반대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의 부작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솔비가 정의한 용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현대인의 우울과 상처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이퍼리즘-레드'<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9|제목='다양성 가요계' 솔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성=정진영 기자|이름=|날짜=2017년 6월 1일|뉴스=|출판사=한국스포츠경제|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는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https://tv.naver.com/v/1717804 '레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년 3월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 음원을 본인 유튜브채널에만 공개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 [[2013년]] : [[KBS2]] 월화드라마 《[[광고천재 이백]]》 ... 황예리 역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군포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타이푼의 일원]][[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안동 권씨]][[분류:X맨]]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3회 일치
         아스트라는 크립토나이트 나이프로 카라를 위협한다. 아스트라 일당은 크립토나인트 방사능 방어 장치를 만들어서 크립토나이트 나이프에도 문제가 없었다. 아스트라는 카라에게 힘을 합치라고 권유하지만 카라는 거부하고 달아난다. DEO에서 카라는 당장 아스트라와 싸우려고 하지만, 행크와 알렉스는 싸울 수 있는 상가 아니라며 카라를 말린다. 알렉스는 행크는 아버지의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카라에게 말한다.
         카라는 DEO에서 알렉스와 훈련을 거듭한다. 알렉스는 아스트라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며, 주저없이 아스트라를 죽이라고 카라의 정신상를 채찍질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매우 감사한다. 그리고 카라와 여까지 있었던 슈퍼걸과의 기묘한 우연을 회상하며, 카라가 슈퍼걸이란 정체를 스스로 알아내서 확인한다.
  • 스카이 김 . . . . 3회 일치
         '''스카이 김'''([[1982년]] [[11월 24일]] ~ )은 [[호주]]의 [[양궁]] 선수이다. 한국에서 어나 국적을 호주로 바꿨다. 한국명은 김하늘. 호주에서 사용하는 정식 이름은 '하늘 스카이 김'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남. 2004년까지 대구중구청 양궁팀에서 활약. 2년여에 걸친 호주양궁협회의 설득 끝에 2005년 1월 호주로 건너갔고, 2006년 6월 호주 국적을 취득함. 그는 국적을 바꾼 이유에 대해 "올림픽 출전이 소원이지만 국내에선 전망이 없었다"고 설명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2220964 연합뉴스, <올림픽> 호주양궁 김하늘, "2012년엔 내가 금메달"]</ref> 2007년 8월 프레올림픽에서 양궁 개인전 금메달.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오스트레일리아의 남자 양궁 선수]][[분류:한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분류:오스트레일리아의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
  • 스틸오션/일본 . . . . 3회 일치
         > 병형구축함(丙形驅逐艦, Type-C destroyer)로도 알려져 있는 시마카제는 2차대전 중 건조된 일본 구축함중 가장 강하고, 가장 진보된 함선이었다. 일본의 수뢰전 중심 전략에 의한 산물이었지만 과도한 가격과 평양 전쟁의 중심이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바뀌는 바람에 후속함은 건조되지 못했다. 1944년 11월, 오르목 만 전투에서 미국 항공기에게 공격받아 격침되었다.
         >영국 순양함의 영향을 받은 쿠마급 순양함은 일본제국해군이 처음으로 운용한 5,500톤급 경순양함이었다. 텐류급에 기반하여 무장과 속도를 향상시켰으며 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평양전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키타카미와 오오이는 추가적인 어뢰발사관을 장비하고 고속 수송선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이세급, 후소급과 다를 바 없는 주포탑 네개짜리 전함이었지만, A-110은 나가토급 전함의 토대였다. 뱃머리는 8-8 함대 계획의 "숟가락형" 뱃머리와 같은 형였다. 배수량은 32,500 롱톤이었고, 60,000 마력으로 25 노트의 속도를 냈다. 유틀란트 해전 이후 A-102로 변경되었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3회 일치
          * 에리나 조차도 생소한 음식인데다 내용물이 흰지가 살짝 굳고 노른자가 반숙 상인 이상적인 상라 놀라워한다.
          * 반숙란에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고 생각해 보지만, 그러면 이런 반숙 상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
  • 식극의 소마/171화 . . . . 3회 일치
          * 히사코도 에리나의 의중을 모르는 상.
          * 이 상라면 어차피 진급시험 결과도 뻔할 테니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게 어떻냐고 극언을 한다.
          * 하지만 지금처럼 풀이 죽은 상에선 그 장점도 살리지 못한 채 목이 달아날 거라고 선언한다.
  • 식극의 소마/185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정신연령은 낮은지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격하며 추를 보인다.
          * 한 눈에 보기에도 상가 좋은 최상급 고기.
  • 식극의 소마/186화 . . . . 3회 일치
          * 소마의 요리는 곰고리 멘치까스.[* 다진 고기를 경단처럼 뭉쳐서 돈가스 형로 튀긴 요리]
          * 베르타와 실라는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격하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금방 친해져서 노닥거리는데, 막상 대결이 시작되자 대결의 긴장감에 끌려가 조용히 관전 중.
          * 에리나는 소마에게 진지함이 부족하다며, 그런 상로는 진급시험에서 낙방할 거라고 경고한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3회 일치
          * 죠이치로는 정신적으로 극히 피폐해져 The BULE 대회가 끝난 것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가 되고 만다.
          * 도지마는 이렇게 그를 찾는 시점이 돼서야 죠이치로의 행동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죠이치로가 괴식요리에 푹 빠졌던 것은 일종의 휴식.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올라도 만족이란 것을 몰랐으며 더 높고, 더 완벽한 요리를 요구했다. 거기에 응하야 한다는 부담감, 그걸 요리로 이어가는 피나는 노력은 "천재"라는 한 마디로 일축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괴식은 그렇게 평가받는 요리에서 도피처로 이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 조차 하지 않게 됐을 땐 "도망치는 것 조차 할 수 없이 궁지에 몰린" 상였던 것이다.
          * 죠이치로는 먼 곳으로 떠난게 아니었다. 그는 가을선발 대회가 열리는 식극회장에 있었다. 회장 한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죠이치로. 도지마는 안도와 함께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연하게 모두 걱정한다고 전하며 "이제 BULE에는 못 가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을 꺼내는데.
  • 식극의 소마/199화 . . . . 3회 일치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도로 사과를 거절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식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영 불안하다.
          *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몰려온다. 죠이치로는 훈련에 대한 공지사항이 있다며 가볍게 말하는데 도지마는 "그렇게 가볍게 할 말이 아니다"라며 버럭한다. 학생 때랑 달라진게 없는 모습이다. 에리나는 이들이 왜 티격격하는지, 자신이 혼자 있는 사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실 같이 있던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애들처럼 구는 어른들 모습에 기가 질려하고 있다. 소마만 낄낄거리며 즐기고 있다.
  • 식극의 소마/210화 . . . . 3회 일치
          * 쿄쿠세이 기숙사 멤버들도 경악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아라토 히사코]] 같은 경우 그저 알몸 에이프런의 변라고 생각했던 그가 놀라운 솜씨를 선 보이자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잇시키가 배가르기를 저런 정밀도와 속도로 처리하는데 경악한다. 배가르기는 장어의 배를 따고 내장을 제거하는, 보통 생선 손질과 기본적으로 같은 작업이다. 그러나 장어는 갈비뼈가 없어서 정확히 배를 따기 어렵고 싱싱한 장어일 수록 힘이 좋아서 도마 위에서 요동치기 마련. 보통 생선처럼 손쉽게 손질하는게 불가능한 생선이다.
          소마는 삶기 까지 마친 소바 면을 망설임없이 펜에 던진다. 이 상식 밖의 전개에 관객들 까지도 "기다려 설마"라고 말리다시피한다. 하지만 소마는 분명히 소바를 굽고 있다. 유키와 이쿠미는 온면인지 냉면인지 했더니 아예 구워버린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네네도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이해불능 상에 빠진다. 기껏 28소바로 안정적인 길을 선택해 놓고서 그걸 굽는다? 소바면은 저런 식으로 구우면 메밀의 향기가 날아가 버린다. "야키소바"라고 하긴 했지만 절대로 해선 안 될 형인 것이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3회 일치
          * 반면 츠카사는 엽차, 옥로, 현미차, 찐 엽차, 총 네 가지 찻잎을 최상의 현로 블랜딩하며 맛을 이끌어 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 츠카사는 쿠가가 철냄비에만 골몰하는 도를 지적해 "자기 스타일도 좋지만 거기에 급급해 소재를 살리지 못하면 나에게 이길 수 없다"고 충고한다.
          쿠가는 그가 이 병을 넘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자기 조리 말고도 쿠가의 밑준비도 거들고 있었던 것이다. 적인 사이토만이 아니라, 아군인 "쿠가"를 트라이스한 상에서 말이다.
  • 신은정 . . . . 3회 일치
         * [[2007년]] [[MBC]] 미니시리즈 《[[왕사신기]]》 ... 달비 역
         * [[2009년]] 《[[불신지옥]]》 ... 환 처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신지애 . . . . 3회 일치
         2006 KLPGA 투어 '''영배 한국 여자 오픈'''[* 현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2008 KLPGA 투어 '''영배 한국 여자 오픈'''
          * 개인사는 평탄하지 못한 편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한빛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원자력발전소 진입로에 신지애의 출생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던 목사의 딸로 어났으나, 청소년기에 어머니가 뺑소니 차에 치여 숨지는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때 받은 어머니의 보험금을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가족이 아닌 그녀만을 위해 썼고, 그녀는 아버지의 뒷바라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신지애의 아버지는 후에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15층짜리 아파트를 1층부터 1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훈련을 시켰는데, 이 때 훈련을 너무 혹독하게 시켜서 키가 크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프다" 라고 밝힐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동생들을 끔찍히 아끼고 잘 챙긴다. 신지애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지애도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을 위해 쓰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라고 밝힐 정도. 신지애의 동생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 때 신지애는 서울대 앞에 카페를 차려서 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 신형철 . . . . 3회 일치
         [[1976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2007~)으로 활동하면서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4~)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등장했다. [[2007년]]부터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14년]]부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으로 제5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으나, 현대문학의 소설 거부 사로 인해 상을 반려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22015575&code=960100 문학평론가 신형철] 경향신문, 2014-05-02</ref>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조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안동준 . . . . 3회 일치
         1919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어났다. 청주공립농업학교(현 [[청주농업고등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무소속]] [[연병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 [[김원]]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용운]] 후보와 신민당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안효민 . . . . 3회 일치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풍을 부르는 나와 우주의 프린세스]] - 목얼큰
         * [[가면라이더 포제]] - 스콜피온 조디아츠 / 갈기 ([[레온 조디아츠]])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3회 일치
         과거부터 존재했던 비밀조직. 템플기사단과는 천년 전 부터 치고박는 사이였으나 지금은 템플기사단에게 확연히 밀리는 상황. 그 상황에서도 애니머스를 빼내거나 앱스테르고에 잡힌 피실험자를 구출하기는 했다. 세계를 멸망시킬 대규모 양열 폭풍을 막기 위해 먼저 온 자들의 유적에 도착.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데스몬드 조상의 기억을 탐색한다.
          마서스비니어드에 위치한 여관의 주인. 대가족의 장녀로 어났다.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도중 로버트 폴크너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까지 갔으나 폴크너가 암살단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망.
          이후 영국인들이 카니엔케하카 마을을 불웠을 때 무너지는 건물에 갇혀 죽는다.
  • 오경태 . . . . 3회 일치
         {{다른 뜻|오경 (학교괴담)||학교괴담의 등장인물}}
         '''오경'''(吳京泰, [[1959년]] ~ )는 [[대한민국]]의 공무원, 경제학자, 공기업인이다.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심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 오마모리 . . . . 3회 일치
         불교 사찰, 신도 신사에서 주로 판매한다. 일본의 오마모리는 한손으로 쥘 수 있을 법한 작은 주머니 형를 하고 있으며, 끈이 달려 있어서 상시 휴대하고 다니기 편리하다. 광의적으로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물건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대개 1년 정도 사용하며, 그 기한이 지나면 다른 오마모리로 교체한다. 사용이 끝난 오마모리는 이를 구입한 사찰, 신사에 반환하며, 사찰이나 신사에서는 불에 워 소각하여 처분한다. 개인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불에 워서 처분하는 경우도 있다.
  • 오재희 . . . . 3회 일치
         1991년 2월 19일, [[노우 정부]]에 의해 주일 대사에 임명되었다. 오재희 대사의 기용은 그의 직업외교관 경력으로 미루어 자연스런 인사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노우]]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노재봉]] 총리의 매형, [[이상옥]]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외무부 장관]]과는 대학 동기 사이라는 학연, 혈연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성격이 꼼꼼하고 일처리가 치밀하며 빈틈없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오검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첫 주일 대사이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2190032920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2-19&officeId=00032&pageNo=1&printNo=13971&publishType=00020 | 제목 =大使7명 이동 | 날짜 = 1991-02-19 | 출판사 = 경향신문}}</ref>
         [[분류:193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공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파키스탄 주재 대한민국 대사]]
  • 오지호(배우) . . . . 3회 일치
         || '''가족''' ||<(> 2남 1녀 중 [[장남|둘째]][* 누나 1명과 남동생 1명으로 장남이다.][br]배우자 은보아, 슬하 1남 1녀(딸 오서흔[* 2015년 12월 30일 출생], 아들[* 명 지동, 2018년 8월 18일 출생]) ||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예능인 [[천하무적 야구단]]에도 출연하여 팀의 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유연성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정민]] 투수코치는 오지호를 보고 "이렇게 뻣뻣한 사람이 왜 야구를 하지?" 라고 말할 정도였다. 투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절친 [[김성수(배우)|김성수]]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의 주전으로 활동했다.
          * 2010년 수목 드라마 [[추노(드라마)]] - [[송하]] 役
  • 오지훈 (1973년) . . . . 3회 일치
         [[1999년]]에는 [[핑클]] 2집 음반에 작곡가로, [[사자 (음악 그룹)|사자]] 3집 음반에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듀크 (음악 그룹)|듀크]](Duke)" 2집 [[음반]]의 수록곡인 '승수야 미안해'를 작사, 작곡했다. [[가수]] [[춘자|뉴 리안]]의 앨범 작업과 프로듀싱, 혼성 그룹 퍼니의 제작자 겸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9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서운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오타쿠 혐오 . . . . 3회 일치
         오타쿠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에게 볼 수 없는) '과도한' 취미 탐닉은, 그들의 수익[* 어떤 형로든 수익이 있다면]을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 같은 건전한 분야에 사용하지 않고, 취미에 탐닉하여 '낭비'하게 되며, 그에 따라서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에서 정체를 가져온다고 여겨진다. 취미 탐닉은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소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대개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소비 행'로 보이게 된다.
          * [[멸치]] : 비만과는 반대로 과도하게 마르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섭식장애의 한가지 형로, 건강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 우의형 . . . . 3회 일치
         1948년 어난 우의형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서울가정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서울고등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조사심의관으로 지냈으며 2003년에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장, [[청주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2005년에 변호사 우의형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2009년 7월 22일에 제17대 영남대 재단 이사장,<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7375.html]</ref> 2011년 11월 10일에 주식회사 화진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1111101708138167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1월 4일에 연세대 한총련 사로 1심에서 징역1년6월을 선고받은 전 단국대 총학생회장에게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하면서 30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했다.<ref>한겨레 1997년 11월 5일자</ref>
         [[분류:1948년 어남]][[분류:단양 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울산광역시/인물 . . . . 3회 일치
         * [[서지]] - 중구(울산)
         * [[정희(배우)|정희]] - 남구(울산)
  • 원피스/836화 . . . . 3회 일치
          * 게다가 로라는 "신세계에서 어났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나미는 그걸 바탕으로 로라의 어머니가 빅맘 "샬롯 링링"이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내가 로라의 친부라고 추리한다.
          * 크래커는 랜돌프에게 "내 앞에서 기습 따위를 하다니"라며 야단을 치고 랜돌프와 그가 타는 학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티격격한다.
          * 크래커는 동정이냐고 묻고 루피는 "몇 십번이나 얼굴을 마주치다 보면 정이 든다"며 임전세를 갖춘다.
  • 원피스/851화 . . . . 3회 일치
          *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은 [[샬롯 브륄레]]를 간지럼 우며 성으로 연결된 거울을 대라고 심문한다.
          * 미러 월드에선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아직도 탈출방법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 그들은 포박한 [[샐롯 브륄레]]를 간지럼우며 성으로 연결된 거울의 소재를 캐묻는다. 견디다 못한 브륄레가 결국엔 실토하는데, 사실 그런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워낙에 거울이 많으니 일일히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울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하는데. 거울들은 모두 자신이 비추고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푸딩은 [[메모리메모리 열매]] 능력자. 사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필름 형로 끄집어 낼 수 있으며 마음대로 편집할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레이쥬를 저격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잘라내고 대신 "유탄"에 맞은 병사의 기억을 덧붙인다. 이것으로 레이쥬는 지금 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을 잃게 된다. 푸딩은 의식을 잃은 레이쥬를 의료실로 옮기게 한다.
  • 원피스/854화 . . . . 3회 일치
          * 성안의 탈주자들 문제를 의논하는 간부들. [[샬롯 오페라]]는 [[몽키 D. 루피]]와 나미를 고문하다 실수로 워죽였다고 거짓 보고한다.
          * 홀 케이크 성은 침입자와 탈주자들로 어수선하다. [[징베]]는 [[나미(원피스)|나미]]를 우고 경비들을 피해 이동하는 중이다. 이미 성내에는 징베의 모반에 대한 소식이 퍼지고 있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남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식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반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 원피스/863화 . . . . 3회 일치
          * 빅맘의 자식들은 죽은 줄 알았던 루피가 최악의 형로 재등장하자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샬롯 스무디]]는 죄수 도서관에서 죽은게 아니었냐고 경악하고 [[샬롯 몬도르]]도 역시 [[샬롯 오페라]]가 거짓말을 했던 거라고 이를 간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빅맘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루피의 등장도 열 뻗힐 일이지만 웨딩 케이크가 무너진 것은 최악의 사다. 거의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이변이 생겼을 때처럼 평정을 잃는다. [[슈트로이젠]]은 빅맘이 정신을 잃을까 우려해서 진정시키려 하지만 부하 요리사들은 오히려 그가 피해야 할 때라고 간청한다. 아니나 다를까, 빅맘은 성미를 참지 못하고 근처 요리사들에게 "당장 새 웨딩 케이크를 가져와라"고 억지를 쓴다. 그런게 될리가 없다. 그러자 그녀는 "라이프 오어 웨딩 케이크?"라는 질문을 내뱉는다. 그러자 하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모간즈가 특종이라며 환호한다.
          * 루피는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용케 진짜 목적인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를 발견하고 노린다. 작전이 잘 굴러가자 벳지는 부하 괴총 비트와 고티에게 KX런처의 준비를 지시한다. 이미 둘은 준비를 마치고 언제든 뛰어나갈 세다. 나미, 쵸파, 캐럿은 아직 케이크 내부에 남아서 루피가 목표를 달성하면 3초 안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 원피스/869화 . . . . 3회 일치
          * 벳지는 빅 파더 상에서도 대포를 쏘며 빅맘을 노리나 [[샬롯 페로스페로]]가 만든 사탕 배리어에 막혀 실패.
          * 이제 해적동맹은 빅맘 해적단에 둘러싸인 채 괴로운 "농성전" 상로 돌입했다. 빅맘 측은 느긋해졌다. 어차피 퇴로의 퇴로까지 차단해버린 마당이니 서두를게 없다. 한숨 돌리며 상황을 정비한다 페로스페로는 나오는 순서대로 처리할 생각으로 즐거워한다. 카타쿠리는 브륄레를 풀어주며 이제껏 이용당한 부분을 질책한다. 브륄레는 억울하다고 항변. 스무디는 레이쥬에게 당한 독을 짜낸다. 잠깐 교전했지만 성가신 상대라 생각한다.
          겁많은 나미와 쵸파가 당장 울먹거린다. 상디는 말없이 담배를 우는데 전념한다.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시저가 또 자기 탓이 아니라 지루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벳지가 피를 토한다.
  • 원피스/876화 . . . . 3회 일치
          * 사악한 푸딩은 [[상디]]를 증오해 저주하고 매도하지만 선한 푸딩은 상디에게 [[메가 데레]]하는 상.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자길 죽이려 한 여자라는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푸딩의 상도 비슷비슷했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자 세 개의 눈이 하트를 띄우며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때 빅맘이 완전히 땅 위로 올아오지 않고 시폰이 옆에서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챙긴 푸딩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다. 아주 사악한 얼굴로.
          * 상가 회복된 "프로메테우스"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우스"를 닥달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기들까지 말려들게 했냐고 꾸짖자 제우스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시무룩해했다. 조금은 반성하는 것 같더니만 금방 "그 구름 알 맛있었다"고 군침을 흘리는 걸 보니 전혀 정신을 못차렸다. 하긴 그 주인도 웨딩 케이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판이었다.
  • 원피스/877화 . . . . 3회 일치
          * 카타쿠리가 루피를 상대하는 동안, 페로스페로는 구여 배에 오르는 일행을 요격하지 않았다. 대신 전보벌레를 들었다. 반대편에선 [[샬롯 몬도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군함으로 해안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루피 일행이 아직도 살아남았다는걸 안 몬도르는 지체없이 지시를 이행했다. 곧 그의 명령만 기다리던 빅맘의 해상병력들이 움직일 것이다. 밀집모자 일당은 이 배와 함께 해안에서 수장될 것이고.
          * 징베는 브룩과 쵸파의 상를 확인하며 닻을 끌어올렸다. 배가 무사히 빠져나가도 그 둘이 죽는다면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징베가 아무리 불러봐도 이미 사탕에 묶인 둘이 소리를 내는건 불가능했다. 그때 징베는 수평선에 빅맘의 군함이 몰려드는 걸 발견하고 첩첩산중이라고 탄식했다. 쿠 드 버스트는 아직도 준비가 안 끝났다. 나미 말고는 아무도 작동법을 모르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사용법은 알아도 콜라 세 통을 장비시키는 데도 애를 먹고 있었다.
          * 카타쿠리와 격전을 펼치는 루피. 루피가 맞고 쓰러지면서 바닥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배의 상가 이상했다. 사탕이 배를 잠식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캔디 웨이브". 나미가 확인했을 땐 이미 코팅이 상당히 진행돼서 쿠 드 버스트를 쓸 수도 없을 정도였다. 페로스페로는 어느새 배에서 내려 해안가에 있었다. 그는 발이 묶인 채 빅맘이 코 앞까지 닥쳐온 써니호의 상황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캐럿이 해안가의 그를 발견하고 아우성쳤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퇴양난. 빅맘에게 뭉개지는게 먼저인가 군함의 포격에 삼켜지는게 먼저인가? 그리고 일행에겐 페로스페로가 몰랐던 제 3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 원피스/879화 . . . . 3회 일치
          * 푸딩은 여전히 사악한 얼굴과 뿅간 얼굴을 오가면서 과격한 츤데레기질을 발휘 중.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상 그대로 쇼콜라 타운에 도착한다.
          지난 화에서 페드로가 자폭하면서 [[샬롯 페로스페로]]가 걸어놓았던 사탕 코팅이 벗겨진다. 좀 어리둥절한 상였던 듯 한데, 나중에 전말을 전해듣고 오열하며 자책한다. 자기가 더 강했더라면 페드로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브룩을 따라서 [[쵸파]], [[캐럿(원피스)|캐럿]]도 통곡하면서 써니호는 탈출하던 것도 잊다시피 했는데 [[징베]]가 호통을 쳐서 작업에 복귀 시킨다. 처음에는 징베가 너무 매정하게 군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가 페드로의 의지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줄 깨닫고 탈출작업으로 복귀한다. 쿠드 버스트로 소모된 콜라를 채우러 가는 중.
          무슨 일인지 바다로 나와있다. 배로 이동 중. 그런데 상공으로 시폰을 운 양탄자가 날아가는 걸 보고 딸을 알아본다. 파운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시폰 일행은 바쁜 탓에 모르고 지나쳐간다.
  • 유열 (가수) . . . . 3회 일치
         [[1961년]] [[1월 12일]] [[대구광역시]] 에서 외아들로 어났다.
         [[2012년 6월]]에는 15살 연하의 아내 배서윤씨와 결혼을 하였고, 이듬해 [[2월]] 아들 유정윤이 어났다.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뮤지컬 감독]][[분류:1986년 데뷔]][[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음악가]]
  • 유인촌 . . . . 3회 일치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어났다.[* 그 이전까지 자신이 어난 곳은 서울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고향이 바뀐 이유는 가카 내각에서 호남 인사 홀대 소리가 나와서.... 유인촌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전주로 피란을 가 유인촌을 낳았다고 한다...]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까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의 교수 역임[*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예술대학에 교수연구실이 있었다. TV에서의 인자하고 덕이 풍부한 [[이미지]]와는 달리 강의 때는 여러모로 과격(?)했다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고 2012년 2월 20일부터 잠깐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2014년 배우로 복귀했다. 자신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발탁했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이 퇴임한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이명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윤덕주 (농구인) . . . . 3회 일치
         [[1935년]]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농구 선수가 되어 해방 후, [[1950년대]]까지 농구 선수로 활동했다. 자녀를 임신한 상에서도 현역 농구선수로 코트에서 활약하여 화제가 되었다.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윤홍열 (1893년)|윤홍열]]의 딸이자 민족운동가 겸 사학자 [[윤필오]]의 손녀로 어났다. 어머니 이숙경은 민족운동가 이일우의 딸로,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의 사촌 누나가 된다.
         [[분류:1921년 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FIBA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윤선우 . . . . 3회 일치
         | rowspan=2 | 신
         | 김형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나주시 출신]][[분류:2003년 데뷔]]
  • 윤진식(국회의원)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1946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 에서 어났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투자유치TF팀 팀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노선을 변경하였다. --[[우디르|윤진식급 세전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래도 이때 일방적으로 패할 것이란 여론조사 예측을 깨고 이시종과 2% 차의 격전을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이시종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충주시장을 맡았으나, 2003년 돌연 시장직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며, 2004년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상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는 설도 있으나, [[http://m.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7053|#]]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http://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486308|#]]
  • 윤태동 . . . . 3회 일치
         [[1900년]] 5월 13일 [[충청북도]] [[충주시|충주]]에서 출생하였다. [[경기고등학교|경성제일고보]]를 거쳐 [[1925년]] [[일본]] [[도쿄대학|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학부/농업생명과학대학|수원고등농림학교]], [[보성전문학교]], [[중동고등학교|중동학교]] 등에서 강사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수로 근무하였다. [[1934년]] 7월에는 [[경성제대]] 예과 [[교수]]로 임명되어 그해 11월까지 근무하였다. 조선인이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임명된 것은 윤동이 3번째이며, 전 기간을 통틀어 4명에 불과하다.
         [[충주시]]가 윤동의 생가를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의 생가에 정부가 돈을 쓴다는 논란이 일었다.[[https://archive.is/VRcc0|#]].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에 위치한 이 [[한옥]]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윤양계(윤동의 조부)가 1873년 지은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돼 지금까지 3억원 이상의 관리 비용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 담당자는 인물과는 무관하게 건축양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지정됐을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 은혼/585화 . . . . 3회 일치
          * 간접적이지만 양이전쟁 직후의 긴토키의 심리상가 묘사되었다.
          * 역시 쇼요 사후의 긴토키는 꽤 망가진 상였던 것 같다.
          * 어쩌면 신파치, 가구라와 합류하기 전인 1화의 긴토키도 그 시절의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했던 상일 수도 있다.
  • 은혼/600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노부노부의 도를 놓고 공포에 떨고 있다고 판단, 강한 어조로 주장을 되풀이한다.
          * 하지만 지구는 이미 점령 상. 그런 무기는 없으며 노부노부 일행이 타고 온 배도 감시하고 있는데 그런 병기는 찾지 못했다.
          * 그는 결연한 도로 할복 되돌리기를 시전한다.
  • 은혼/610화 . . . . 3회 일치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위력으로 해방군은 물론 전장 일대의 기계 장치가 봉인되는 초유의 사가 발생한다.
          *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가부키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해방군 함선이 추락하는걸 발견한다. 긴토키는 무전으로 모든 기계를 다 파괴할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겐카이 영감은 무전을 꺼버린다. 이 포격으로 촉발된 사를 누구보다 이해하는건 그 자신이다. 그는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유지하기 위해 버티다 하나씩 쓰러지는 기계들을 바라본다. 그는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보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들은 묵묵히 할 일을 다할 뿐이다.
          * 중추회로 안의 킨토키는 벌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기계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죽음보다 괴로운 선택을 하게 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꽁무니는 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히라가 겐카이가 만든 기계들이니까'''. 그는 타마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냐고 말을 건다. 타마 또한 벌의 영향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들이 사력을 다하는 사이 해결사 일행도 가부키쵸의 동료들도 반격의 세를 갖추고 있다.
  • 은혼/620화 . . . . 3회 일치
          하지만 큐베는 "누군가 옆에 있고 싶다, 그런 이유로 우린 여기에 모인 것"이라고 문제될게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싸우는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있으며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세계를 구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들은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대한 적과 맞서는 여자들과 그리고 츠쿠요를 보고 큐베는 처음으로 "여자로 어난 것도 나쁘지 않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도.
          * [[시무라 신파치]]는 터무니없는 괴물이라며 경악하는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옥상에서 통나무를 떨어뜨리던 스마일의 아가씨들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시무라 타에]]를 포함해 옥상에서 항전하던 여자들은 신라의 [[소타츠]]가 인질로 잡았다. 신라 부대는 다키니가 적과 교전하는 사이 가부키쵸에 잠입, 이미 네오암스트롱제트사이클론암스트롱 겐가이포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주요 기능은 정지된 상였으며 통신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이걸 만든 기술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소타츠는 여자들을 인질로 내세워 전쟁은 끝났고 겐가이포를 만든 개발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 소타츠의 뒤에서 [[오토세]]여사가 나타난다. 게다가 옆에는 이 모든 사를 만든 장본인 [[히라가 겐가이]] 본인이 따라와 있는데.
  • 은혼/624화 . . . . 3회 일치
          * 지휘관이 쓰러지자 신라 부대는 원통해하면서도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승리의 일각을 담당한 카츠오는 "우주제일의 야쿠자" 지로쵸의 힘을 잘 보았냐고 과시하며 자신도 은근슬쩍 "우주 제일의 7 대 3 가르마"라고 포장하지만 가구라가 가차없이 클을 건다. 가구라는 이상한 대항심을 발휘해 소타츠를 쓰러뜨린게 자기네 대장이니 해결사는 곧 "우주제일 야쿠자 해결사"라고 주장한다. 신파치는 언제 야쿠자가 됐냐고 클에 클을 거는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 은혼/635화 . . . . 3회 일치
          * 야토족 용병부대의 대장 "노사"는 일족 내에선 "장로"라 불리며 기공으로 가사상를 반복해 200년 이상 살고 있는 괴물.
          * 남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상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 그런 변신은 평범한 야토에게는 없는 기술이다. 단원들이 당황하자 아부토는 오래 전 들었던 정보를 언급하는데, 그 또한 야토의 전설적인 용병으로 일명 "장로"라 불리는 자다. 기공의 달인으로 육체를 자유자재로 가사상로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긴 수명을 손에 넣은 그는 무려 200년 이상 전장에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토의 산신령 같은 존재. 아부토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노사가 달려든다. 그의 공격에 여러 야토가 단 번에 날아간다. 그는 젊고 강한 육체를 가지고도 거기엔 썩은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탄한다.
  • 은혼/646화 . . . . 3회 일치
          *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부상을 무릎쓰고 엔쇼와 대결을 이어가고 중상을 입으나 엔쇼를 전투불능 상까지 몰고간다.
          * 녀석들은 정작 자기 등 뒤는 챙기지 못했다. 다츠마와 가츠라가 다카스기의 후방을 청소했다. 마침내 나란히 선 세 사람. 피투성이의 세 남자. 엔쇼와 격전을 치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다카스기의 상도 심각했다. 그는 멀쩡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발아래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는 막 회복됐다. 일시적인 출력 저하가 반복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걸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의 형로 바꾸자 부하들이 후방에 늘어서 원호사격 진형을 취했다. 엔쇼가 광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해방군이 일제 사격을 취한다.
  • 이기광 (법조인) . . . . 3회 일치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대구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식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분류:1955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이민호(1987) . . . . 3회 일치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 '''1''' || '''Extreme (Feat. 제시카 에이치오)''' || 차은택[br]정병기 || 박근 || Tommy Park ||
         || '''2''' || Extreme (Feat. 제시카 에이치오) (Inst.) || || 박근 || Tommy Park ||
  • 이병규 (1983년) . . . . 3회 일치
         [[LG 트윈스]] 시절 [[이병규 (1974년)|이병규]]와 구별짓기 위해 '작은'이라는 뜻의 '작뱅', [[김기 (1969년)|김기]]가 [[LG 트윈스]] 감독이었을 때 '작뱅'이라는 별명이 위축된다고 '빅뱅'이라고 불렸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롯뱅'이라고 불린다.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이상호 (1989년) . . . . 3회 일치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이선미 (소설가) . . . . 3회 일치
         * <하록과 배랑>
         경성스캔들의 원작소설 경성애사가 [[조정래]]의 소설 [[백산맥]]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성애사의 이선미는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협회 사이트 게시판에서 사과글을 게재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0712270005&md=20100404183309_AN ‘경성스캔들’ 원작자의 표절, 인터넷 퍼오기 문화의 폐해] 헤럴드경제 10-04-04</ref>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수민(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상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15일 2일 휴식 후 삼성전에 갑자기 선발로 나서 7이닝 135구를 소화한 뒤부터 부진에 빠졌다. 14년 말에 팔 스윙을 수정한 뒤로 제구력이 안정화되지 않았는지 볼넷이 급증한 상였는데, 이 갑작스런 선발 등판 이후 삼진이 급감하고 볼넷이 늘면서 실점 또한 많이 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피홈런까지 늘어난 상황인데, 들리는 바로는 투구폼의 교정을 진행중이라고 하니 이로 인한 과도기라고 참작할 수는 있다.
         상무에서의 생활과 전역 후 부진에 관련된 글. [[http://gall.dcinside.com/samsunglions_new/562430|주소 현재 원글은 지워진 상다.]][* 다만 이 블로그 주인의 다른 글들이 [[사자 사랑방]]과의 논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순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식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식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상.]
  • 이승경 (1290년) . . . . 3회 일치
         '''이승경'''(李承慶, [[1290년]] ∼ [[1360년]])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선(仲善)이다. 원나라로 유학하여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자첨사가 되었고, 요양성 참지성사로 승진하였으며 원나라 조정에서 및 그의 부 [[이천년]]과 조부 [[이장경]]에게 특별히 농서군공에 추봉하였다. 공민왕 때, 문하시량평장사가 되었고, 1359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도원수가 되어 적을 물리치고, 서경을 회복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이 되었다. [[이조년]]은 그의 숙부였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5촌 당숙이다.
         원나라에 들어가 올과(乙科)에 급제하여 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고, 어사(御使)를 제수받아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 요양성 참지정사(遼陽省參知政事)로 승진, 많은 공적을 쌓았으므로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그의 아버지 천년(千年)과 조부(祖父) 장경(長庚)에게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追封)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모친상을 당해 귀국, 이듬해 원(元)나라에서 요양성사(遼陽省事) 탑해첩목귀(塔海帖木鬼)를 보내어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이에 공민왕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하였으며, 1359년 홍건적(紅巾賊)이 침범하자 도원수(都元帥)로 나가 서경(西京)을 회복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홍건적을 힘껏 쳐부수지 않았음을 분하게 여겨 음식을 폐한 끝에 병을 얻고 집에 돌아와서는 만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민왕은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그의 노고를 칭찬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忠勤勁節協謀威遠功臣)에 책록하였다. 사후 경상북도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 옥천의 보덕사(報德祠)에 제향되었다.
         [[분류:1290년 어남]][[분류:1360년 죽음]][[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무신]][[분류:원나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이인임]][[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성주 이씨]]
  • 이승엽 . . . . 3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2006년]] [[해제과]] 홈런볼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오릭스 버펄로스 선수]][[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분류: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400홈런 클럽]][[분류:한국시리즈 MVP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장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출루율상 수상자]][[분류:KBO 득점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타점상 수상자]][[분류:KBO 홈런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광주 이씨]][[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시영 (1882년) . . . . 3회 일치
         이시영은 [[1882년]] [[1월 10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성리학자 만당(晩堂) [[이관준]](李寬俊)의 둘째아들로 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이관준]]으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몸이 건장하여 무인(武人)의 기상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詩)과 글씨(書), 그림(畵)에 모두 능하였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런 성격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과 과단성 있는 추진력 때문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는 그를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칭찬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koreastory.co.kr/daegustory/human/leesiyoung.htm 대구의 인물<!-- 봇이 붙인 제목 -->]</ref>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남의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을 무찌르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중국]]으로 망명,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베이징]], [[만주]]일대 그리고 국내의 각지를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처럼 다녔다. 괄괄한 성격의 그는 실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윤상]](尹相泰), [[서상호]](徐相鎬), [[정운일]](鄭雲馹) 등과 [[애국단]]이란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애국단을 조직한 그들은 우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모라는 당시 대구부호의 지원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서부자는 이름난 구두쇠인데다 민족의식이 없어 말로 해서는 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더욱 서는 우재의 사돈(族兄의 妻家)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분류:1882년 어남]][[분류:1919년 죽음]][[분류:옥사한 사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유리(배우) . . . . 3회 일치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또 한번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의 대가족 막내딸로 출연한다. 극 중 이유리는 '한자([[김혜자]])와 '일석([[백일섭]])'의 막내딸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야무지고 심성 착한 막내딸로 부모님 속 한번 크게 썩인적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나 가난한 대학원생인줄 알았던 '정현([[기영]])'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정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제력 차이가 큰 집안간의 결혼과정에서 한 번, 결혼 후 우아한체 하나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시어머니 '은아([[장미희]])'때문에 또 한번 속앓이 하는 '나영미'역으로 열연했다.
         2011년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란'으로 본격적으로 독보적인 악녀연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사실 깍쟁이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는 종종 맡은 적이 있어도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2002년 《러빙유》이후 9년만이었다. 극 중 부잣집 막내딸로 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뒤바뀌는 바람에 가난하기 그지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살아가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정원([[김현주]])'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정원을 향해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로 열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생의 밝혀지기 전 초라한 모습과 정반대로 부잣집에 입성하면서 매 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유리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다.
         || [[2002년]] || [[농심그룹]] || [[신라면|신라면 큰사발]](with.장성) || [[https://youtu.be/5vhJfPxhXnk|영상]] ||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3회 일치
         |자녀 = 명: 토랭이 <br/> (11~12월 낙할 예정)
         [[분류:198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이장희 (시인) . . . . 3회 일치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정우택은 비속한 현실에 맞서 절대 자유, 절대 자아의 순전함을 추구했던 이장희의 삶은 곧 그의 시라면서 그의 미적 도를 '미적 근대성의 자기 파괴적인 양상'으로 명명하였다. 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장희는 근대적 주체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절대적인 지점까지 추구했던 시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ref>정우택, 〈고월 이장희 시 연구〉, 《민족문학사연구》21권, 민족문학사학회, 2002, 216쪽</ref>
         [[분류:1900년 어남]][[분류:192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자살한 작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음독 자살한 사람]][[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
  • 이종원 (1953년) . . . . 3회 일치
         [[서울대학교]] 공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퇴후 [[1982년]] 도일했다.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졸업. [[도쿄대학교]] 법학정치학연구과 정치학 전공 석사 과정 수료. 법학 박사 학위 취득. 도쿄대 법학부 조교, [[도호쿠 대학]] 법학부 조교수, [[릿쿄대학교]] 법학부 교수, 2012년 4월부터 [[와세다 대학 아시아 평양 연구과]] 교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 [[와세다 대학 아시아 평양 연구과]]
         [[분류:일본의 정치학자]][[분류:일본의 역사가]][[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대학 교수]][[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국제 기독교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교수]][[분류:도호쿠 대학 교수]][[분류:릿쿄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준승 . . . . 3회 일치
         1934년에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어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이듬해 졸업한 이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61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처음으로 검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1963년 [[청주지방검찰청]]과 1966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1969년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파견되었다가 1971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검찰에 복귀하였다. 이후 1973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1977년 [[서울지방검찰청]]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였으며 1978년에 차장검사로 승진하여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되어 1979년에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어 차장검사로 재직하였다.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4년 1월 27일에 불온 유인물 소지로 신고된 사람에 대해 영장없이 압수수색하고 연행하여 6일동안 불법 구금한 진주경찰서 정보계장 김진(64) 등 3명을 상대로 낸 불법구금 등 불기소처분 기각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 항고심(주심 [[이회창]])에서 인용되어 환송된 사건의 재항고심 주심을 맡아 "경찰의 불법구금 사실은 인정되나 경찰관들이 수사업무에 과잉의욕을 보이다 위법행위를 저질렀고 오랜 정보업무에 종사하며 국가에 공헌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타당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2800209210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28&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099&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7년 1월 28일자]</ref>
         [[분류:1934년 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안동시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철희(1964) . . . . 3회 일치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한편으로는 썰전에서 강용석이 이철희의 예상보다 토론주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온 티가 날 때 했던 적이 많아서("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왔어?" 하는 식) 사적으로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거나 하는 의미라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고, 방송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의있는 도에 대해 인정하는 부분이었던 걸로 해석하는 게 유력하다.
          * 썰전 출연 당시 [[강용석]]을 확실하게 압도한 적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메르스]] 사 관련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적절히 들어가며 메르스 발병 당시 공직자들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것. 이때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말을 아주 후련하게 잘 했다 하여 '사이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10580|관련글 참조]]
  • 이현우 (가수) . . . . 3회 일치
         2007년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는데 당시 이현우가 가지고 있던 국제 면허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상였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114%의 만취상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6&aid=0000053562 이현우, 무면허 음주 운전 적발]</ref> 그 뒤 자숙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자동차 광고 출연, [[대부업]] 광고 출연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분류:196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이혜숙(영화배우) . . . . 3회 일치
         ||<#87CEFA> '''{{{#ffffff 데뷔}}}''' ||<(> 1978년 미스 해 우수상 ||
         1978년 '미스 해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연예계에 주목을 받아, 1979년 MBC 10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하였다.
          * [[영웅시대]] - 천
  • 이황근 . . . . 3회 일치
         [[전라남도]] [[신안군]] 에서 어났으며, 7남매중 장으로 어났다. [[1980년]]대에 《'''돌아온 용쟁호투'''》, 1987년에 《'''우뢰매'''》 등으로 배우로 활약을 펼쳤다.
         [[분류:1980년 데뷔]][[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신안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이훈(배우) . . . . 3회 일치
          * [[사랑과 야망]] - 박
          * [[종합병원(드라마)]] - 구인
          * 1번가의 기적 -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3회 일치
         * 어느 왕국의 둘째 왕자로 어난 그는 형의 시기를 받으며 자라다 어느날부터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된다.
         * 그에게 있어 멀린은 그 자체로 양과 같은 존재. 고서가 보여준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며 밤 중인데도 정오의 강력한 힘을 회복한다.
         * 에스카노르는 양 없이도 멀린만 생각해도 풀파워를 끌어낼 수 있음이 밝혀졌다.
  • 일곱개의 대죄/170화 . . . . 3회 일치
          * 이 상의 '''에스카노르의 전투력은 22800'''. 이 자체로 '''십계의 갈란을 능가하는 전투력'''이라고 그로키니시아가 인증한다.
          * 고우서는 그 상가 그리 오래 가진 못할 거라고 하는데, 에스카노르는 "그거면 충분하다"면서 고우서의 안경을 빼앗아 호크에게 줘버린다.
          * 에스카노르는 '''"마음을 가지고 논 죄를 그 몸으로 속죄해라"'''면서 힘을 방출하고, 고우서는 해볼면 해보라며 쌍궁 헬릿으로 "블랙 아웃트로"를 발사한다.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3회 일치
          * 십계는 반의 등장을 경계하지만 에스타롯사는 메라스큐라의 시체를 보며 "이 녀석은 감히 내 형제의 혼을 먹으려 했던 녀석"이라며 당해도 싸다는 도를 보인다.
          *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멜리오다스는 "내 손에 죽어야 한다"며 연히 심장에 칼을 꽂는다.
          * 반은 헌터 페스를 써서 목을 조르는데 여전히 통하지 않고, 에스타롯사는 연히 멜리오다스의 심장을 찌른다.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3회 일치
          * 고르기우스는 이런데서 뭘하고 있냐고 묻는데, 이들은 연하게 장사를 한다고 대답한다.
          * 멜리오다스의 시체는 리벨리온이 뽑혀진 상이고 의외로 때뜻하게 회복된 상. 죽었다면 상처가 아물리가 없다.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3회 일치
          * 호수반대편 어딘가에서 폭발하는 양.
          * 그러나 열기를 너무 방출하는 상라 바로 돌아가지 못한다.
          * 마을에 있던 이들은 모두 젤드리스의 "경신"의 계금에 걸려있는 상. 마신왕을 칭송하며 성기사들을 죽이려 든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3회 일치
          * 단 1격만으로 빈사 상가 된 자라트라스.
          * 호크는 갑자기 마신족화. 그런데 보통 트랜스 포크 상에선 호크의 자아가 유지되는데, 마신족을 먹어서 그런지 정신줄을 놔버렸다.
          * 연옥에서 나눈 대화 때문에 기억이나 자아를 잃어버린 상로 부활하는거 아니냐는 설이 있었는데, 일단은 아닌 걸로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3회 일치
          * 성전 시대의 킹은 그로키시니아의 영창 바스키어스를 능란하게 다룬다. 제 2형 가디안으로 "네크로시스"란 기술을 사용, 십계 배신의 [[카르마디오스]]의 팔에 바람 구멍을 낸다. 팔 여기저기를 꿰뚫린 카르마디오스는 무기를 놓치며 틈을 보인다.
          * 그것을 가로 막으며 나타난 [[멜리오다스]]. 카르마디오스는 그의 등장에 동요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과 함게 풀카운터로 이블 브레스를 날려보낸다. 때를 맞춰 킹이 영창 10형 "에메랄드 옥토"로, 디안느가 "기가 크래쉬"로 협공을 펼쳐 카르마디오스를 쓰러뜨린다. 카르마디오스는 쓰러지면서도 어째서 멜리오다스가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그를 공격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쓰러지지만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반드시 동포들을..."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데.
          * 네로바스타는 여신족의 지도자이자 스티그마의 수장 사대천사 [[뤼드셀]]을 소개한다. 그녀는 여전히 고압적인 도로 인간들은 그의 앞에 무릎 꿇으라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3회 일치
          *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치뤄진 격전이 막을 내린다.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의 인간형상으로 돌아와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혼신을 다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너무 지쳐서 두 십계의 상도 확인하지 못한다. [[멜리오다스]]가 대신 그 둘이 원상로 돌아왔다 전하며 감사를 표한다.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실신, 멜리오다스가 보호한다.
          * 할리퀸은 멜리오다스에게 한 번 구해줬다고 해도 십계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들이고 언젠가는 멜리오다스를 죽이러 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때는 그때"라며 밝게 웃는다. 슬슬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자코 누워있다. 디안느는 멜리오다스의 평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할리퀸은 "예전부터 변함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3회 일치
          * 스티그마의 병력은 방금 전까지 흘러넘치던 분노의 마력이 사라진 것을 감지한다. 막연히 사대천사나 요정왕, 혹은 거인왕이 십계를 쓰러뜨렸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특별히 경계세를 취하지 않는다. 이걸로 한 발 더 성전의 승리에 가까워졌으며 수많은 마신이 죽었을 거라는데 기뻐하기도 한다.
          >긴급사입니다!
          * 할리퀸은 돌아오는 길에, 미래에 저 십계들이 큰 장애물이 될 걸 알면서도 지켜주라고 한 것을 자조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그게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들 뭔가 원인이 있었어 싸우지만 어난 것 자체로 악한 자는 없다. 동료가 눈 앞에서 살해 당한다면 누구든지 용서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해준다. 할리퀸은 디안느가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주자 감격한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고서는 그들을 보내주지 않는다. 할리퀸이 급히 밀쳐내는 덕에 피했지만 그대로 있엇으면 디안느, [[드롤]]의 뒤통수가 날아갈 뻔 했다. 할리퀸은 고서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성전 시대의 십계였던 고서. 문이 완성될 때까지 둘이 접근하게 둘 수 없다며 사과하지만 사과하는 사람치곤 매우 공격적인 도다.
          * 은총의 빛 내부에선 메라스큐라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네로바스타]]는 그녀를 저지할 방법도 없고 스티그마의 지원도 오지 않자 전전긍긍한다. 그러는 사이에 마계로 가는 문은 완성되어 버리고... 그런데 정작 메라스큐라의 상가 이상하다.
          * 메라스큐라는 구속된 상로 간신히 입을 놀린다. 성전이 한창일 때 무단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면 마신왕에게 결코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3회 일치
          * 게라이드는 로우에게 살인을 멈추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말할 뿐이다. 로우가 칼을 줍는 다시 어디선가 나무 마법이 날아와 다리를 찌른다. 어린 요정족의 전사였다. 이미 겁을 먹은 상지만 로우는 가차없이 칼을 들어올린다. 게라이드는 이 어린 전사라도 보호하려고 로우의 앞을 막아선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라고 말하지만 뒤에 올 말을 잇지 못한다. 로우는 자신을 죽일 거라면 해보라며 다가오는걸 멈추지 않는다.
          * 묘한 대치 상황은 뜻밖의 형로 끝났다. 또다른 인간 전사가 게라이드의 뒤에서 칼을 휘둘렀다. 어린 요정은 목이 잘리고 게라이드는 오른족 눈을 잃고 쓰러졌다. 인간 전사는 멍하니 서있는 로우를 돌아보며 가만있지 말고 빨리 죽이라고 닥달하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 게라이드가 아직 살아있는 걸 발견하자 잔인한 심성을 드러낸다. 로우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게라이드의 날개를, 다음은 다리를 잘라버리며 잔인하게 웃는다. 게라이드는 이 모든 것을, 원한하기 보다는 천벌이라고 생각한다.
         성격과 도로 보아 로우가 반의 전생일 것 같다는 여론이 많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3회 일치
          * [[에스카노르]]와 [[핸드릭슨(일곱 개의 대죄)|핸드릭슨]]의 놀라운 시선을 받으며 엘리자베스의 정화의식이 끝난다. 그녀가 젤드리스와 접촉한 일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저주에서 풀려난 멀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건강해진 모습에 에스카노르가 감격. 그때 멜리오다스 일행도 들어온다. 깨어난 멀린은 자신은 젤드리스의 마력에 사로잡혀 잠드는 저주에 걸렸었다고 말한다. 이런 추를 보인 것에 사과하고 저주를 풀어준 엘리자베스에게 감사한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젤드리스의 마력을 풀어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 멀린은 간호해준 에스카노르에게도 감사를 전하는데, 그는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못 됐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실 그는 멀린이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팬드래곤]]을 "그는 내 희망 자체"라고 했던 일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상를 걱정하지만 그녀 쪽에서 멜리오다스를 피한다. 그녀가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며 방을 나서자 할리퀸은 대체 멜리오다스가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러느냐고 은근히 타박하는데, 산에서와 달리 이번엔 멜리오다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백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반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남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남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임현준 . . . . 3회 일치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2011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KIA]]와의 개막전에서 데뷔 첫 구원 등판하여 첫 구원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20266 '채인 역전 만루포' 삼성 첫 승…KIA, 개막전 7연패] 《OSEN》</ref>
         [[2011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8회 초 타석에 들어선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시도하고 그가 1루 베이스를 커버하려고 가는 순간 갑자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에 정전이 발생하며 순식간에 모든 조명들이 꺼지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었고,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 다음 날([[4월 17일]]) [[정수빈]] 타석부터 경기가 재개됐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4180307382224&ext=na 대구구장 정전 사는 민폐의 결정판] 《마이데일리》 2011년 4월 1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099786 '정전 등판' 임현준, "선발 등판하는 느낌"]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7일</ref>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임효준 . . . . 3회 일치
         | 코치 = 김선
         [[1996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났다. 이후 [[계성초등학교]]를 졸업, [[경신중학교]]에 진학했다가 [[오륜중학교]]으로 전학한 뒤, [[동북고등학교]]를 거쳤다. 현재는 [[한국체육대학교]]에 재학 중에 있다.<ref name="대구일보">https://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242141</ref> 어린 시절에는 [[수영]]을 좋아했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고막]]이 터지는 바람에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수영을 포기해야 했다.<ref name="스포츠조선">http://sports.chosun.com/news/pcnews.htm?id=201802110100090830006597&servicedate=20180210</ref> 이후 초2때 종목을 바꾸어 빙상부에 들어갔고, 4학년 때부터는 종별대회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오륜중학교 동문]][[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장서희(1972) . . . . 3회 일치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직후에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뽀뽀뽀]]'의 뽀미언니(7대)를 맡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 인기를 얻지 못해 조연이나 단역 생활에 머물러야 했다. 《[[허준(드라마)|허준]]》이나 《[[조 왕건]]》,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등의 인기 드라마에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고, 특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에서는 '''[[폐비 윤씨]]'''역을 맡으며 열연을 펼쳤으나, 이후 작품 출연에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지금이야 조연 배우도 연기를 잘하면 ‘명품 조연’, ‘신 스틸러’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 통보 없이 배역에서 잘리거나 감독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등 무명 배우의 설움도 끊임없이 겪어야 했다. 그래서 [[문화방송|MBC]] 지하에 화장실 하나를 정해두고 서러울 때마다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2014년 6월 3일, [[KBS2]]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로 4년 만에 컴백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079&aid=0002584796|#]]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음으로 몬 여자의 대리모가 되어 애를 낳아줬다가 다시 빼앗아온다는 내용(...). 다만 여기서 맡은 역할은 복수와는 거리가 멀고 [[혈연 때문에 개고생]]하는 쪽에 가깝다. ~~이걸로 대상 타면 막드 지상파 3사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막장 드라마]]의 여신~~ 그러나 [[유동근|경쟁]][[조재현|자들]]이 워낙 강력한데다가, 작품 자체도 그닥이었던 탓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시청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후반에 동시간대 1위, 시청률 자체도 20%를 넘기며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드라마가 초반에 워낙 질질 끄는 전개를 보여줬는지라(...) 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며 다소 위스로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장서희의 덕이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니... --혼자 멱살 끌고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02 || '''[[인어 아가씨]]''' || '''은아리영'''[* '''실질적인 데뷔 첫 주연작.''' '실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1990년대 초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송했던 시대극 <비가비>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방영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애초에 단독 주인공도 아니었던 터라... 참고로 공동 주인공을 맡은 이들은 <[[전원일기]]>의 응삼이 역을 맡았던 [[박윤배]]와 <[[조 왕건]]>의 [[유금필]] 역을 맡았던 [[강인덕]]이다. ] || 47.9% ||
  • 장석조 (판사) . . . . 3회 일치
         1961년 [[서울시]]에서 어나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대전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는 등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소 근무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집행절차에 있어서의 채무자 보호, 판결의 편취와 절차적 기본권, 우리 헌법상 절차적 기본권, 조세법상 실질과세원칙의 적용한계, 헌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재판과 헌법적 판단, 재판받을 권리의 헌법상 보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8년에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받았다.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9월 28일에 이호진 광그룹 회장이 제기한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강남세무서장 등 15개 관서장이 고지한 각 증여세 139억원의 부과를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판결했다.<ref>[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4/09/20140926234304.html]</ref> 12월에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6곳이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낸 영업시간제한 등 처분 취소소송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고 하면서 원고 승소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1심 판결을 인정하여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ref>[http://www.ajunews.com/view/20151119130813012]</ref>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장세용 . . . . 3회 일치
         1953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인동초등학교, 인동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사학과]]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9월 20일,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테마파크를 경상북도에서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220851&part_idx=274#09HT|“경북, 새마을테마파크 직접 운영”]]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425991|879억 애물단지 ‘새마을공원’ 운영비, 결국 경북도가 부담]] 이로써 연간 20~30억원의 운영비 부담은 덜었지만 역사자료관 명칭 변경에서 보수측은 박정희 지우기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남유진|지난 시장]]이 저러다가 이번 지선에서 뒤집혔는데, 국회의원도 [[더불어민주당|파랗게]] 뒤집고 싶을 듯, 이 동네에서 [[정의당|노란색]]이나 [[바른미래당|민트색]]은 안 뽑힐 듯 하니~~[* 구미 갑은 원도심(원평, 도량, 형곡)vs공단+신시가지(공단/비산+선주원남/오 등) 싸움이고, 구미을은 읍면vs동지역+공단(인동/진미/양포/산동)의 싸움인데(갑을 모두 앞쪽이 보수 우세 뒤쪽이 진보 우세), 구미 갑은 양쪽 인구 수는 비슷하지만, 자유한국당vs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범보수vs범진보로 본다면, 선주원남동, 비산동, 상모사곡동이 경합으로 넘어간다. 구미을은 동지역+산동면이 읍면 지역 인구의 1.5배 정도 되지만, 범진보가 8~22%p 우세를 보이는 동지역+공단과 달리 읍면지역은 범보수가 19~'''66'''%p 우세를 보여 읍면지역이 투표율이 더 높은 것과 함께 구미을 선거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장우석 . . . . 3회 일치
         [[1977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음력 [[1976년]] 11월 20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경북산업정보전문학교 웹멀티미디어과정 3기를 수료했다.
         [[2005년]] 7월 25일부터 8월 7일까지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동북아평화를 위한 한일공동 일본열도 도보행진단'<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522 "일본열도 걸으며 동북아 평화 외칠 것"], 《오마이뉴스》, 2005.7.21.</ref>과 함께 일본 오사카, 교토, 우토로, 후코야마, 히로시마 등 8개 도시를 걸으면서 동북아 평화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일련의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영진고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효신초등학교 동문]]
  • 장우혁 . . . . 3회 일치
         '''장우혁'''(張祐赫,[[1978년]] [[5월 8일]] ~ )은 [[대한민국]] [[보이 그룹]] [[H.O.T.]]의 멤버이다.[[H.O.T.]]의 멤버로써 활동하다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솔로 활동 중이며, WH CREATIVE 대표, 댄스스쿨 뉴웨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 9월에 솔로 1집 《No More Drama》를 발표했으며, 대표 곡으로 '지지 않는 양', 'Flip Reverse', '폭풍 속으로' 등이 있다.
         장우혁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그룹 [[H.O.T.]]의 맴버로써 활동하다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2005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댄스계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춤꾼으로 각광받던 그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탈피, 강한 남자로의 변신을 꾀한 솔로 1집 《No More Drama》은 '''''지지 않는 양''''', '''''Flip Reverse''''', '''''Red Sun'''''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홀로서기라는 평가를 얻어냈다.2018년 2월 15일 hot완전체가 재결합을 했다.
         [[분류:H.O.T.의 일원]][[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어남]][[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
  • 장재인 . . . . 3회 일치
         그룹미션에서는 '''원더걸스의 2 different tears'''를 불렀다. 장재인과 홍남화가 합격했는데, 전체적으로 다들 아쉬운 모습을 보인 상에서의 합격이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합격한 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합격 후 나와서 서글프게 울었다.
         두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2위 [[존박]]과도 많은 표차로 2주 연속 사전투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두번째 생방미션은 ''' '[[이문세]] 미션' '''. 여기선 이문세의 명곡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을 장재인 특유의 감수성과 양반다리 스킬까지 발동하며 89(승), 88(엄), 98(윤), 95(문)의 첫 방송보다는 약간 저조하였으나(이 방송 다음주에 방영된 백스테이지 프로에서 이날 장재인의 몸상가 저조했다는 게 밝혀졌다.), 고루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탑6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날 윤종신은 '장재인을 누가 잡죠?'라는 약간의 폭탄 발언을 했고, 이문세는 '기타로 서술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라는 평을 했다.
          * '''여름밤''' : 여름밤만의 느낌을 생각하면서 만든 자작곡. 지은 시기도 여름이라고.. 여 공개된 자작곡 중 분위기가 제일 밝고 신나는 노래.[[http://www.youtube.com/watch?v=O9ZZpzXWCHU|#]]
  • 장현수 (영화감독) . . . . 3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났으며,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85년]] 조감독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2년]]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로맨스 영화로 감독 데뷔를 시작하였다. [[1994년]] 《[[게임의 법칙]]》으로 그 액션 영화로 성공을 이어갔다. 이후 영화 《[[엑스트라 (1998년 영화)|엑스트라]]》로 카메오 출연으로 그 화제작을 선보였다.
         * 1993년 아시아 평양 스크린 어워드 신인감독상
         [[분류:1959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
  • 장후영 . . . . 3회 일치
         경성제국대학에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경성지방법원과 광주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로 일했다. 일본이 [[평양 전쟁]]에서 패하고 물러간 뒤 [[미군정]] 법사국 법제부장을 역임했다.
         |전임자=[[신악]]
         [[분류:1909년 어남]][[분류:198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장희진 (1944년) . . . . 3회 일치
         * [[2011년]] 《[[광개토왕 (드라마)|광개토왕]]》 ([[KBS]])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동문]]
  • 재신 (배우) . . . . 3회 일치
         * 2013년 [[KBS2]] 《[[광고천재 이백]]》
         * 2013년 [[MBC]] 《[[황금 무지개]]》 - 서영 역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경협 . . . . 3회 일치
         전경협은 [[한양]]의 한 이교도 부모 밑에서 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래로, 그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안형광]]이라는 이름의 [[궁녀]]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서 전경협의 친오빠가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궁녀 안형광은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녀도 이미 궁녀 명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희순 루치아]]를 비롯한 [[천주교]]인 궁녀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박희순이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출궁한 후에, 전경협도 꽤병을 부려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궁궐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전경협은 박희순과 함께 살며 [[기도]]와 종교서적의 독서 그리고 선행에 전념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복했고, 그녀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극도의 가난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번 없었다. 그녀는 그저 [[체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90년 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전재용 . . . . 3회 일치
         포항제철 명예회장 [[박준 (1927년)|박준]]의 넷째 막내딸 [[박경아]]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1992년]]에 공무원 출신의 최성대씨 딸 최정애와 재혼하였으나, [[2007년]] 2월 부인 최씨와 이혼하였다. 연기자 [[박상아]]와 결혼했으며,<ref>{{뉴스 인용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의 장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분류:완산 전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조세 범죄 기결수]]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3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는 후지코의 상가 이상하다고 전하며 쿄스케에게 조언을 구하려 하지만 효부는 '''원래 이상한 여자'''라며 신경쓰지 않는다.
          * 칠드런 일행은 효부가 직접 후지코의 상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효부는 미심쩍어하긴 해도 단칼에 거절한다.
          *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운 로켓이 우주기지로 발사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3회 일치
          * 효부는 탄룡을 써서 일대의 탄소를 워버린다.
          * 지금까지 블랙 팬텀에 당한 에스퍼는 변로 각성했기 때문에 시로도 변성을 드러내는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그럼 후지코는?-- --원래 [[치녀]]잖아?--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3회 일치
          * 모미지는 효부의 상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보니 우려한 대로 교전의 흔적이 발견된다.
          * 하지만 마기는 그다지 믿지 않는지 아직 어나지도 않았다고 빈정거린다.
          * 마기는 자신들이 있는데 아직 어나지도 않은 여왕을 중요시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3회 일치
          * [[쿠모이 유리]]는 사카키의 상를 검사하기 위해 힙노 능력으로 사카키, [[우메가에 나오미]]를 변장시켜 바벨의 시설에 잠입한다.
          *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쿠모이 유리]]와 나오미에게 사카키를 바벨의 시설에서 정밀검진하도록 맡긴다. 미나모토는 바벨의 시설에서는 [[츠보미 후지코]]의 눈에 띌 거라고 우려하지만 마츠카제는 이미 바벨을 드나들 수 있는 보안코드를 확보해둔 상였다. 여기에 유리의 힙노로 위장을 더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하지만 은둔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황국경찰에게 추적 당한다. 능력까지 봉인된 상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3회 일치
          * 한편 아파트에 있는 [[미나모토 코이치]]는 전략적 대기 상에 들어가지만 까놓고 말하면 그냥 빈둥대고 있다. 미나모토는 가만히 기다리는 쪽이 오히려 진정이 안 된다고 투덜댄다.
          * 카오루는 "애인이라기엔 좀. 이런 이불도 가구도 없는 방에"라고 말했다가 "이불"에서 에로한 상상을 하며 폭주한다. 이런 사를 예견한 아오이와 시호가 경고를 해놨지만 카오루는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의식된다며 몸부림 친다.
          * 본거지에서 친구가 뭘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카키는 얼른 사를 수습해 시리어스 일변도로 굳어진 절가칠의 분위기를 에로와 러브 코미디가 넘치는 본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미 이쪽은 절찬 러브 코미디 모드. 카오루는 미나모토를 따라 밖에 나온 뒤까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허둥지둥 대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3회 일치
          * 이에 [[미나모토 코이치]]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두지 않는다고 한 뒤 후지코가 이렇게 쉽게 침입을 허용한 것을 두고 미심쩍어 한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 상황을 이미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데. [[아카시 카오루]]가 [[노가미 아오이]]에게 공간파악 능력으로 문 너머를 살펴볼 수 없냐고 하지만, [[마츠카제 코우이치]]가 ECCM 장치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텔레포트 능력이나 공간파악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 효부도 재확인한 뒤, 의도적으로 일행의 퇴로를 막으려는 의도임을 짐작한다. [[후지우라 요우]]는 상황이 어떻든 꼭 이기겠다고 다짐하면 퇴로 따윈 필요없다고 강경하게 말한다.
          * 일행은 두 사람을 방 안으로 옮기고 [[산노미야 시호]]가 혈청이 정상적으로 레어 메탈을 정화시키는걸 확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여기에 방치할 수는 없다. 후지코가 오면 다시 감염될 것이기 때문. 하지만 텔레포트도 봉인된 상라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건 무리다. 효부는 여기서 이대로 후지코와 대결하자고 재촉한다.
          * 미나모토는 수긍하지 못하지만 효부는 자신이 리더라며 다그치는 도로 나온다. 그는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후지코와 처음 싸우는건 자신이라고 결정한다. 카오루는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다 잘 될 거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 정난정 . . . . 3회 일치
         본관은 [[초계 정씨|초계]](草溪)로 아버지는 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이고, 정난정은 그와 그의 첩 사이에서 어난 서녀였다. [[한성부]] 출신.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 정명훈 (지휘자) . . . . 3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산타 체칠리아 음악원]][[분류:줄리아드 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분류: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수훈자]]
  • 정몽헌 . . . . 3회 일치
         정몽헌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의 다섯 번째 아들로 어났다. 정주영이 명예 회장이 되면서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아버지 [[정주영]] 사후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을 주관하였다.
         |날짜=2003-08-04}}</ref><ref>[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1&cid=389123&iid=157543&oid=001&aid=0002957649&ptype=011 재벌총수만 두 번째…유력인사 왜 자살할까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재계 인사들은 '부친의 숙원 사업이었던 대북 사업 등 가업을 제대로 잇지 못한 것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추측했다.<ref>[http://www.ilyoseoul.co.kr/show.php?idx=88364&table=news_economy&table_name=news_economy&news_sec=003 삼성家 아픈 역사… ‘비운의 황자’ 만들었나?]</ref> 정몽헌의 사망 후 부인 [[현정은 (1955년)|현정은]]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분류:1948년 어남]][[분류:2003년 죽음]][[분류:하동 정씨]][[분류:현대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살한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투신자살한 사람]]
  • 정문성 . . . . 3회 일치
         * [[2013년]] [[SBS]] 《[[당신의 여자]]》 - 김성 역
         * [[2013년]] [[SBS]] 《[[수상한 가정부]]》 - 이식 역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순천향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성주 . . . . 3회 일치
         '''정성주'''([[1956년]] [[7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드라마 작가이다.<ref>박현택. [http://media.daum.net/entertain/drama/newsview?newsid=20161027131630724 (직격인터뷰)'밀회' 정성주 작가 "정유라, 최민..정말 우연입니다"]. 스포츠조선. 2016년 10월 27일.</ref>
         * 2001 자랑스러운 이화언론인상<ref>민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52103 자랑스런 이화언론인상 임영숙·손지애·정성주씨]. 국민일보. 2001년 4월 24일.</ref>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수성 (야구인)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8년]] [[4월 20일]]<br/> [[숭의야구장|인천]] 대 [[해 타이거즈|해]]전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성동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초당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히어로즈 선수]]
  • 정승우 (1973년) . . . . 3회 일치
         * 《[[천추후 (드라마)|천추후]]》 (KBS2, 2009년) - [[고려 광종|광종]] 역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
  • 정욱(1973) . . . . 3회 일치
         * 2007년 《[[아들찾아 삼만리]]》 (SBS) - 조성
         * 2008년 《[[가문의 영광 (드라마)|가문의 영광]]》 (SBS) - 김선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가평군 출신 인물]]
  • 정은표 . . . . 3회 일치
          * [[싸인(드라마)|싸인]] - [[김완(싸인)|김완]] 역
          * [[강남엄마 따라잡기]] - 이구 역
  • 정재호 (1964년) . . . . 3회 일치
         |전임자 = (고양시 덕양구 갑)[[심상정]]<br />(고양시 덕양구 을)[[김원 (1951년)|김원]]<br />(고양시 일산동구)[[유은혜]]<br />(고양시 일산서구)[[김현미 (정치인)|김현미]]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달성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
  • 정형돈 . . . . 3회 일치
         [[2012년]] [[12월 11일]] 오전 6시11분, 13분에 어난 두 딸(유주, 유하)의 아버지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단독] 정형돈, 쌍둥이 아빠 되다.. 딸부자 등극|url=http://cast.wowtv.co.kr/20121211/A201212110127.html|출판사=|저자=한국경제TV 기자|날짜=2011-12-11|확인날짜=2012-12-1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214052956/http://cast.wowtv.co.kr/20121211/A201212110127.html|보존날짜=2012-12-14|깨진링크=예}}</ref> [[2016년]] [[10월 5일]], [[주간 아이돌]]로 전격 복귀하였으며, [[신현준 (1968년)|신현준]]과 한중 합작 영화 시나리오 공동 집필을 시작으로 작가로서의 데뷔를 알렸다.
         | (주) [[해음료]]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4년 데뷔]][[분류: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학력 위조 의혹 피해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래 정씨]][[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
  • 조동혁(배우) . . . . 3회 일치
          *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2014, OCN)''' - '''[[정수(나쁜 녀석들)|정수]]'''
          * [[내 딸 서영이]](2013, KBS2) - 김성
  • 조응천 . . . . 3회 일치
         1962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어났다. 대구 성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2018년 1월 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달 22일 조 의원에 대해 일부 공소권 없음, 일부 무혐의 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로 피소된 조 의원의 당시 비서관은 벌금 1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http://v.media.daum.net/v/20180108190034848|*]] 그러나 [[김장겸|지목된 당사자]]는 별도로 조응천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였고 ~~MBC 사장직에서 쫓겨난 뒤에 치러진~~ 1심 재판에서 조응천 의원이 그 당사자에게 500만 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31426001&code=940301|*]]
          * 많은 사람들이 검사,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맡은 경력으로 인해 법조인으로 인식하고 있어 묻히는 느낌이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첫 현직 [[자영업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중에는 [[자영업자]] 출신 의원이 몇몇 있다.] [[자영업]]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자영업자들을 위한 법안에도 적극 매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친 바 있다. ~~법조계에서 좀 날리다가, 먹는 장사로 업종을 바꿔 보니 녹록치가 않더라고~~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00655&CMPT_CD=MSUB1_2015#cb|##]]
  • 진격의 거인/82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베르톨트는 다시 한 번 열기를 내뿜어서 아르민을 워버리려 한다.
          * 엘렌의 거인은 쓰러져 있는게 아니라 경질화된 상였다.
          * 아르민은 거의 타죽은 시체같은 상.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 한다.
  • 진격의 거인/87화 . . . . 3회 일치
          *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는 엘런 예거. 여기는 징벌방이다. 엘런은 창살 안에 있고 옆방엔 미카사 아커만이 자고 있었다. 아르민 알레르토는 그 앞의 의자에서 함께 밤을 지내고 있었는데 엘런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가 깨어난다. 엘런은 꿈 때문인지 기억이 혼선된 상인데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아르민은 여기가 징벌방이고 미카사랑 같이 병기위반으로 벌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엘런은 천천히 기억을 되찾아가는데 아르민은 방금 전 "나는 왜"라고 중얼거린걸 지적하며 일인칭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기억이 애매하다.
          * 말문이 막혔던 그리샤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마레의 역사는 날조이며 엘디아인이 인류에게 번영을 주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말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무관심하다. 아무래도 좋으니 "밑에 있는 친구"랑 이야기하라며 그리샤를 떨어뜨리려 한다. 그리샤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묶여있는 상에선 어쩔 수가 없다. 글로스는 참신하게 먹히라는 둥, 여동생이 부르고 있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지만 그리샤는 절규할 뿐,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런데...
         거인화 약물의 정체는 "거인의 척수액"이었다. 지크가 벽 안에서 거인을 발생시킨 방법도 규명이 됐다. 지크 측은 거인의 척수액, 거인화 약물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또 글로스의 말에 따르면 사전에 어떤 형의 거인이 될지 조절할 수 있는 듯 하다. 베르톨트가 초거대 거인이 된 것이나 라이너가 갑옷 거인이 된 것도 사전에 설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3회 일치
          * 작업을 마친 크루거는 몹시 지키고 몸에서 증기가 오르는 상로 벽 위로 돌아온다. 그의 눈 주위에는 거인화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코피를 흘린다. 그는 코피를 막으며 그리샤의 포박을 풀어준다.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샤는 불안과 초조함,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적국, 아버지, 자신. 네 눈에 비치는 증오는 세상을 불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아홉 거인의 힘은 계승자가 힘을 넘기지 못하고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혈연과 시간과 거리를 초월해서, 사용자가 죽은 이후 시점에 어난 유미르의 백성에게 갑자히 발현된다. 이것으로 볼때 유미르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어떤 계승자는 "길"을 봤다고 증언했는데 엘런도 같은 것을 본 듯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로 거인의 신체가 오는 것이다. 전해진 기억이나 의자도 그 길을 통해서 온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 하나의 "좌표"에서 교차한다.
  • 진격의 거인/90화 . . . . 3회 일치
          * 조사병단이 찾아낸 진실을 대중에 공표하는 일에 이르러 병단의 수뇌부는 이견을 보인다. 이 일이 공표될 경우 대중은 혼란에 빠질 것이며 어떤 사가 야기될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도트 픽시스]]는 단호히 공표할 것을 주장한다.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동안 월 마리아 내의 거인은 모두 소탕되었다. 곧 복구공사가 시작되었고 시간시나구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입주가 재개되었을 때는 트로스트구의 습격으로부터 1년이 지나있었다. 그날 조사병단은 6년 만에 월 마리아 밖의 벽외조사를 개시했다. 한지는 그동안의 전쟁으로 섬 안의 거인 대부분이 사멸했을 것으로 추측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조사병단은 매우 평화로운 상로 벽 바깥을 달려나갔다.
          한참을 달려나갔을 때 최초로 거인 발견 신호가 뜬다. 발견된 거인은 기형으로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짧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상로도 조금씩 팔다리를 움직여 벽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엘런은 그를 보고 "낙원행을 당한 우리 동포"라며, 여기서 부터는 아주 가까울 거라고 말한다. 마레인들이 엘디아인을 거인으로 만들던 "벽"에.
  • 차수연 . . . . 3회 일치
         || 2010년 || MBC || [[폭풍의 연인]] || 이희 || ||
         || 2006년 || [[김우(god)|김우]] || 하고 싶은 말 ||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3회 일치
         상황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다. 문이 슬로우모션으로 열리면서 지옥의 아가리가 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한 여름에 하드나 꺼내 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열렸다. 그리고 내가 보려고 했던 내용물은 너무 일상사물처럼 연히 놓여져 있었다.
         냉기는 없었다. 식재료를 담은 봉지가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문이 열리면서 몇 가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철퍽하는 소리가 듣기에도 부패의 느낌이 났다. 다만 아줌마의 상는 상체만 남은 걸 빼면 양호했다. 그야 부패의 기미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지만 매일 햇볕에 노출되었던 토트넘에 비하면야. 잘 됐군요 아줌마. 처음으로 아저씨보다 동안이란 말을 듣게 됐어요. 냉동실에서 들은 거긴 하지만.
         이건 좋지 않다. 지금 나의 상에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벼운 울렁증에서 이윽고 '''죄책감'''이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으로 발전할 거라고, 그런 예감이 든다. 수수깨끼. 수수깨끼로 눈을 돌리자.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3회 일치
         간신히 거실로 나와서 햇볕을 받으니 약간은 증세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눈도 뜰 수 없는 상에서 눈은 떠지는 상로 호전이다. 눈물 나게 좋은 징조군.
         그리고 이건 방금 전에 깨달은 것이고, 제일 최악의 사다.
  • 창작:좀비탈출/5-2 . . . . 3회 일치
         문은 끄떡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집합신호처럼 놈들을 끌어들였다. 처음엔 담장에 막혀 있던 녀석들이 앞사람을 밟고 넘오오기 시작했다. 물론 토트넘처럼 운동신경 좋은 녀석은 거의 없었다. 처음엔 어설프게 담장에 걸쳐 있다 떨어지거나 창살에 걸려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떨어진 녀석이 쌓이니 발판 구실을 했다. 얼마 안 가 제법 상가 깨끗한 녀석들이 넘어오게 되면서 이젠 만원 상다.
         그리고 녀석들이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냈다. 정답은 '''팽창'''이었다. 마당에 있는 녀석들은 장시간 햇볕에 노출된 끝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상가 나쁜 녀석부터. 과학지식이 짧아 정확한 설명은 무리지만, 아마도 체내에 축적된 부패가스가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펑, 폭발해 버리는 거겠지.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3회 일치
         그리고 어디에 써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콘크리트 못 한 세트도 찾았다. 못이라…… 살고자 하는 이상엔 어딘가엔 쓰게 될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챙겨두자. 그런데 못은 있으면서 망치는 없다는게 황당하다. 못이 들어있던 서랍에서 전동드릴도 찾긴 했지만, 정작 날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 결정적으로 지금은 전기가 끊긴 상다. 이거야 말로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군. 대신이랄까, 전에 찾았던 아령의 사용처가 생겼다. 실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못을 박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뭐에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생각할 수 있는건 많다. 당구대, 야구방망이, 삽, 곡괭이, 죽창 등등.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토록 쉽게 줍는 물건이 내게는 하나도 없다. 나는 배란다 문을 닫아놓고 거실에 주저 앉았다. 어느덧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당은 풍의 한 가운데처럼 한산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놓고 여전히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조금 시끄러운 행인들이라고 생각하면 5분 정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머리를 식혔다.
         비닐 시트는 일반적으로 하우스에 치는 것만큼 얇고 약한 소재가 아니었다. 다루면서 보니 그보다는 방수포에 가까운 두꺼운 물건이었다. 실험 삼아서 손으로 당겨서 찢어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다듬는 역할은 방금 찾은 전지가위에 맡겼다. 하지만 재활용도 염두해야 하고 나는 재단 일에도 문외한이다. 최대한 길고 네모낳게 잘라냈다. 잘라낸 비닐을 팔다리에 둘둘 감고 그 위에 철사를 감아서 고정시켰다. 몸통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고 그 외에 비닐로 감을 수 있는 곳은 전부 감았다. 제일 얼려운건 머리였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적당한 크기의 패트병이 있었고 주인공은 디자이너였다. 어떻게 해도 방도면같은 형는 되지 못했고 그냥 머리에 둘둘 감은 후 눈구멍과 숨구멍만 뚫었다. 숨쉬는게 다소 불편했지만 어쨌든 호흡이 가능하고 앞도 보였다.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3회 일치
         우리 학교는 사가 이 지경에 이르러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을 중지하기는 커녕 야간자율학습도 그만두지 않았다. 이유는 교감이 "'''이럴 때일수록 더욱 면학에 전념해야 합니다! 6.25 때도 학교는 닫지 않았습니다!"'''라고 열광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가 심상치 않은걸 눈치챈 가족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등교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교감은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들 까지도 학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교감은 "감독을 쉽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때는 딱 1개 교실에 등교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이 직접 감독을 했다.
         그러다가 저녁 10시 쯤, 학교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막 들려왔다. 아마 사가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좀비에게 습격당하는 것이 빈발하게 되었을 상황일 것이다. 교감은 얼굴이 새하얗게 되더니, 벌떡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채형석 . . . . 3회 일치
         1960년 서울에서 애경그룹 창업주 [[채몽인]](蔡夢印)과 [[장영신]]의 장남으로 어났다.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제주판관을 역임한 [[채구석]](蔡龜錫)이다.
         **** 장녀 : 채문선 - 미국 맨해튼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애경산업에서 근무했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2013년 결혼했다.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평강 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보스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철인 28호 . . . . 3회 일치
          * 양의 사자 철인 28호
          양의 사자 부분은 원래 없었으나 이후에 구별하기 쉽게 추가되었다.
          * [[프라모델]]도 여럿 나왔다. 초대 철인, 양의 사자의 철인, FX의 철인 모두 나왔으며 초대 철인의 경우에는 자석을 넣은 프라모델도 나왔다. 한편 초대 철인이 총화기나 검과 방패 등의 무기를 장비했거나 전차, 용, 자동차같은 탈것이 추가된 제품도 있었다.
  • 최다빈 . . . . 3회 일치
         | 2018 [[피겨 스케이팅 4대륙 선수권 대회]] (국, 타이페이시티)
         | 2013 [[아시안 피겨 스케이팅 트로피]] (국, 방콕)
         [[분류:200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방배초등학교 동문]][[분류:강일중학교 동문]][[분류:수리고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 메달리스트]]
  • 최만린 . . . . 3회 일치
         [[1935년]] 아버지 최춘빈(崔春彬)과 지석모(池錫模)의 외동딸인 어머니 지명순(池明淳) 사이에 2대독자로 어났다.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 부친은 [[동아일보]] 만주 지국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친 모두 [[본적]]이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이며 모두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골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외가에서 외조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분류:193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우]][[분류:김영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서일 . . . . 3회 일치
         |전임자 = [[김선 (1911년)|김선]]
         [[분류: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분류:1906년 어남]][[분류:1970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통천 최씨]]
  • 최웅 . . . . 3회 일치
         | 이준
         | 《[[양의 후예]]》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분류:대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최원홍 . . . . 3회 일치
         * 2008년 [[MBC]] 《[[에덴의 동쪽]]》 - 어린 신환 ([[조민기]] 아역)
         * 2010년 [[KBS2]] 《[[부자의 탄생]]》 - 부경 역
         [[분류:200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최태수(가수) . . . . 3회 일치
         | 이름 = 최
         '''최수'''({{본명|김홍원}}, [[1983년]] [[11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광명시 출신 인물]]
  • 최현진 (드러머) . . . . 3회 일치
         | 관련활동 = [[바닐라 유니티]], [[바세린 (밴드)|바세린]], [[서지 밴드]]
         '''최현진'''은 [[서지 밴드]] 소속의 [[드럼셋|드러머]]이다. [[2002년]]에 [[바세린 (밴드)|바세린]]의 1집 앨범 《The Portrait Of Your Funeral》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서지 밴드와 [[바세린 (밴드)|바세린]]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 최호중 (배우) . . . . 3회 일치
         * 《[[아이 러브 이리]]》 (2012년, tvN)
         * 《[[드라마시티]] - 멋진녀석들》 (1997년, KBS2) - 우 역
         [[분류:1981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추경호 . . . . 3회 일치
         추경호는 [[1960년]] [[7월 2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다.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계성고]]를 졸업했고 [[1986년]]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리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2016년 8월: 새누리당 전기요금 당정 스크포스 위원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카네다 쇼타로 . . . . 3회 일치
         성우는 1기는 [[타카하시 카즈에]], 2기 양의 사자 철인 28호는 [[야마다 에이코]]/[[최수민]](대영비디오판), 철인 28호 FX는 [[타나카 히데유키]], [[오리카사 아이]](소년시절)/[[김용식]](MBC), 4기는 [[쿠마이 모토코]] 5기는 齋藤智美.
         양의 사자 버전에선 소년탐정이 아닌 평범한 소년 이었다가 철인의 조종사가 되면서 ICPO(인터폴)의 대원이 되었다. 이후 돈 블란치 등 다양한 범죄자들과 싸우며, 최후에는 우주에서 나타난 우주마왕과 싸우게 된다.
         양의 사자의 더빙판인 'The New Adventures of Gigantor'에서의 이름은 'Jimmy Sparks'.[* 다른 캐릭터들도 더빙판에서는 다른 이름이다. 시키시마 박사는 'Bob Brilliant', 오오츠카는 'Inspector Blooper'.]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3회 일치
         그런데 문제는 지구의 환경이 말 그대로 중생대 수준으로 돌아온지라 공룡,익룡,수장룡등 중생대 시대의 생명체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 결국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상가 되었다.
         잭은 이제 생계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고~~[[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가 "이제 집으로 가자!(Let's go Home!)"라고 말하면서 속력을 높이자 무스타파와 메스가 ~~워달라고~~ 함께 뛰면서 캡콤 로고가 나오며 게임이 끝난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3회 일치
         플레이어가 적을 죽일수록 화면 왼쪽 위에 위치한 리볼버 모양 게이지가 차오른다. 이 게이지를 소모해 집중 상에 들어갈 수 있다.
         집중 상에 들어가면 시간이 느려지며, 적이 붉게 빛난다.
         마주본 상에서 서로 총을 뽑아 쏘는 그거. 보통 1 Vs. 1 결투지만 1 Vs. 2 결투나 [[1 Vs. 1 Vs. 1 결투]]도 있다.
  • 크립토나이트 . . . . 3회 일치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크립토나이트에 의해 슈퍼맨이 인간처럼 변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있는 것. 일단 약해지는 건 맞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상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으며 맞을 경우 피해를 배 이상 입기는 하지만 몸의 피부, 근육의 단단함이라던가는 그대로이다. 쉽게 말해서 크립토 나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개기며 슈퍼맨을 때릴 경우에는 슈퍼맨도 피해를 입지만 자기 손도 '''박살'''난다는 것. 실제로 배트맨도 슈퍼맨과 싸울때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고 약화시켜서 일방적으로 때린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이유는 더이상 때리면 오히려 자기 손이 박살날것 같아서...
          * 지구-3의 슈퍼맨의 반전 버전인 수퍼빌런 [[울트라맨(DC 코믹스)|울트라맨]]은 크립토나이트를 섭취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약점은 양계의 양 광선.
  • 킹덤/523화 . . . . 3회 일치
          마광이 움찔할 만큼 이례적인 제안이었으나, 몽념은 "웃기지도 않다는 한 마디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몹시 무례한 도였으나, 왕전은 그가 뒤이어하는 말을 자르지 않았다.
          * 조군의 좌익은 총 3만 병력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맹장 셋이 배치되었다. 우측부터 [[조아룡]], [[마남자]], [[악영]]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셋을 한 군으로 편성한 [[이목(킹덤)|이목]]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역시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봉을 누가 맡는지 문제를 놓고 악영이 먼저 나서며 다른 두 장수를 무시했다. 마남자는 자기가 말을 꺼냈는데 냉큼 악영이 받아먹으려 들자 그를 "창쟁이"라 부르며 뭐하는 짓이냐 따졌다. 악영이 차가운 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둘에게 이 전장의 첫 칼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아룡이 중재했다. 우선 악영이 마남자를 잘 모른다고 했으나 그럴 리는 없다. 마남자는 대단한 체격의 거한이면서 그 이목의 부관을 맡을 만큼 검증된 인물. 악영이 그 개인과 친분이 없을 지라도 그를 "보통내기"로 여기고 있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악영도 그 지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조아룡을 두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험한 소릴 입에 올린다. 조아룡은 쓴웃음을 짓고 말이 심하다고 할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선전하지 않았다.
          * 왕분은 지금 작전의 전술적 착오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다. 지금 옥봉대는 적이 1만이라 해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만큼 상가 좋다. 총 전력이 적에 비해 적인 진군이 옥봉대를 쓰지 않고 빼두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따라서 옥봉대가 횡진의 좌측을 맡아 전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여기까지도 왕분은 흥분을 내비치지 않았으나 아광이 대답하는 말에 격분하고 만다.
  • 킹덤/529화 . . . . 3회 일치
          * 양단화가 고지를 취하는 모습은 조군 진영에서도 보였다. 그녀가 고지를 쟁취한 것도 그랬지만 퇴각 중인 군대가 구여 그 위치를 따내는 것도 상식이 어긋났다. 그래봐야 작은 산. 저런 데로 가봐야 퇴로가 막혀 전멸당하기 십상이다. 조군 장교들이 그렇게 수군대자 견융왕은 조금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 그때 언덕의 반대편, 기수군 후미를 요격하는 희고 붉은 깃발의 무리가 보였다.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였다. 몽념은 [[육선]]을 앞세워 우측으로 돌격시켜 기수 본진의 방어를 뚫고자 했다. 낙화대의 진격은 이미 기수군 후방의 2진까지 돌파하고 있었고 기수에게 급보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부하들은 [[마정]]을 불러들여 본군을 사수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기수는 그럴 경우 전방이 무너지는 사가 일어날 거라 여겨 한사코 거절했다. 대신 기수는 자신이 직접 낙화대를 저지하러 나서는데.
          * 이신과 비신대의 위치에서 보면 이미 기수군은 몰릴데까지 몰린 상. 어쩌면 비신대가 개입하지 않아도 기수군은 끝일지도 몰랐다. 이신은 흑양에서는 그토록 고전했던 기수를, 압도하는 몽념을 보고 거듭 감탄했다. 하지만 하료초는 저것이 결정타가 될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분명 왕전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비신대를 파견한 것이다. 강외는 지금 같은 호기는 다시 없을 거라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신은 중간에 끼어드는 모양세가 찜찜했지만 그것도 왕전의 작전이라 여겼다.
  • 토리코/365화 . . . . 3회 일치
          * 아마도 어나면서도 '''레드 니트로나 순도 100%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포식'''해왔을 거라 추측한다. '''지로는 "많이 먹었다고 했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 지금 상에서 사용하는 기네스 펀치는 블루 니트로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작정이냐"'''고 물을 정도의 파괴력
          * 블루 니트로는 팔왕이나 네오에는 못 미쳐도 이 세계 정점에 달한 실력자들이란게 통설이었는데, 100% 상도 아닌 지로에게 완전히 박살나면서 완전히 체면을 구겼다.
  • 토리코/375화 . . . . 3회 일치
          * 두 악마를 꺼낸 토리코는 탈진한 상. 머리 색이 검게 변해있다.
          * GOD에 지구의 모든 식재의 맛이 누적되어 있는지 설명은 되지 않지만 GOD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포식->다시 동면에 들어가고 지상에 새로운 생계가 번창->또 깨어난 GOD가 싹쓸이 하는 식으로 식재의 맛이 누적되어온 듯하다.
          * 청귀는 지금까지 적귀와는 달리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탐내거나 먹고 강해지는 묘사가 없었는데, 어쩌면 청귀는 이미 블루 유니버스에서 그 우주의 풀코스를 먹고 강해진 상일지 모른다. 실제로 블루 니트로를 상대로 훨씬 선전하고 있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3회 일치
         시민의 마음을 선동하는 반정부적 서적을 모두 워버린다. 지식인의 수가 50% 줄어들며 지식인이 될 확률도 50% 감소한다. 불워버릴 책에는 교과서도 들어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숙련도가 50% 감소한다.
         미국의 유명 자연 다큐 채널을 불러 트로피코를 주제로 다큐를 찍도록 한다. 3년간 모든 시민, 특히 환경주의자와 지식인의 존경심이 상승하며 관광 평가와 생 관광객의 수도 증가한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3회 일치
          * 로그는 이미 파김치가 된 상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스팅에게 먹여서 "모드 백영룡"으로 만들어주고 리타이어.
          * 라케이드가 공복을 참아봐야 어쩔 거냐고 빈정거리자 스팅은 라케이드를 먹어서 해결하겠다며 달려들지만 이미 힘이 떨어진 상라 농락만 당한다. "그래도 나는 세이버투스의 마스터니까"라고 외치며 덤비만 라케이드의 십자가가 가차없이 어깨에 박힌다.
          * 그때 유키노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그 체니가 나타난다. 미네르바의 테리터리. 드디어 세이버투스의 쌍룡이 모였지만 로그도 싸우느라 힘을 소진한 상. 그는 미네르바의 배달이라며 "나를 먹어라"라고 말한다. 로그는 남은 마력을 그림자로 바꿔서 방출한다. 스팅은 처음엔 어떻게 다른 속성을 먹냐고 거부하지만 이런 상황이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무작정 그림자를 흡입한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3회 일치
          * 서쪽의 드래곤은 수가 많았고 이슈갈에서도 인간과 공존을 원치 않는 드래곤 무리가 배반하면서 전황은 날로 위로워진다.
          나츠는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상가 나빠져만 간다.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폴류시카]]의 지시대로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살을 맞대고 있다. 그들은 나츠가 어서 눈을 뜨길 바라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베르세리온의 힘을 부가한 아이린에게도 곧 징후는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그때 그녀의 내엔 딸이 자라고 있었다. 바로 엘자 스칼렛.
  • 페어리 테일/519화 . . . . 3회 일치
          * 사실 아이린은 갓 어난 딸이 귀여워 인챈트를 포기하기로 했으나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워 엘자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 드래곤 형인 아이린은 설사 운석을 베었더라도 드래곤의 비늘을 벨 수는 없다고 방심한다. 그때 [[웬디 마벨]]이 최후의 힘을 쥐어짜내 엘자의 검에 멸룡속성을 인챈트한다.
          * 멸룡속성이 부여된 엘자의 검은 드래곤 형의 아이린을 베어버린다. 아이린은 목부터 가슴까지 세로로 베이는 큰 상처를 입으며 인간형상으로 돌아간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3회 일치
          * 오거스트가 바로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어난 친자. 제레프는 그가 친자인줄 모르는 채로 만나 "오거스트"란 이름을 붙여주고 거두게 된다.
          길다트의 설명을 들은 카나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카나는 방금 전에 길다트가 "길동무" 운운했던 걸로 성을 내며 카드를 날린다. 잠시 무방비 상였던 오거스트를 맞추는데 성공하지만 큰 타격은 주지 못한다. 그런데 카드 중 하나가 길다트의 왼쪽 어깨에 꽂힌다. "LOVE"라고 적혀진 카드. 이 카드는 공격용이 아니다.
          바로 그가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어난 아들이었다.
  • 페어리 테일/528화 . . . . 3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가 다짜고짜 두 사람에게 공격을 가한다. 엘자와 웬디는 기력이 떨어진 상라 대처하지 못한다.
          * 제랄의 주력 마법을 연이어 맞으면서도 아크놀로기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을 뿐더러 웃음까지 터뜨린다. 그는 [[나츠 드래그닐]]이 불을 먹는 것처럼 마법 그 자체를 먹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멸룡마도사에겐 있을 수 없는 일. 웬디가 무슨 속성인 거냐고 경악하자 아크놀로기아는 연하게 속성 따윈 자신에겐 없다고 말한다.
          * 크리스티나호를 몰고온 건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였다. 이치야는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며 곧 엘자 일행을 우고 부상한다. 그런데 이치야는 그저 엘자일행을 구하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크놀로기아를 특정 지점으로 유인할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크리스티나호로 주위를 끌어 마그놀리아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3회 일치
          *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제레프의 고통을 끝낼 방법을 찾았다며 그를 설득하려 하나 제레프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다.
          * 비장의 수,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 [[나츠 드래그닐]]. 그것으로 [[제레프 드래그닐]]의 마법은 끊어버릴 수 있었으나 제레프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 지는 미지수다. 제레프 본인은 "그럴로는 역부족"이라며 차라리 나츠도 [[아크놀로기아]]처럼 용화할 수 있엇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나츠는 자신은 인간이고 아크놀로기아처럼 되지 않겠다며 그것이야 말로 아버지 [[이그닐]]의 의지라고 일갈한다. 제레프의 빈정거리는 도는 변하지 않는다.
          * 아크놀로기아는 크리스티나 호 안의 [[웬디 마벨]]을 추격하고 있는게 명백하다. 웬디는 배의 멸룡마도사용 리크리마가 파괴돼서 멀미에 시달리며 리타이어. 하긴 멀쩡한 상여도 상황이 이래서는 해볼 일이 없다. [[안나 하트필리아]]는 일행들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도 성령마도사. "문을 억지로 여는 건 특기"라며 시간의 틈새를 다시 열겠다고 장담한다.
  • 페어리 테일/535화 . . . . 3회 일치
          * 루시는 엄청나게 열이 나면서 상가 나빠지는데, 나츠를 구하기 위해 그걸 감수하기로 한다.
          * END의 서를 복구해 [[나츠 드래그닐]]을 구해낸 [[루시 하트필리아]]의 상가 급격히 나빠진다. 그녀가 책을 수정한 펜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얼룩이 퍼져나와 마치 몸이 침식당하는 것 같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갑자기 악화된 그녀의 상에 당황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윽고 루시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수구린다. 그레이가 부축하려 손을 뻗는데 루시의 몸이 엄청나게 뜨겁다. 루시가 겨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츠의 불꽃. END로서 가지고 있는 불꽃의 힘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3회 일치
          * 조화란 어떤 마도사들의 마력을 시간의 틈새에 순환시켜 자신의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쓰일 마력은 바로 멸룡마도사들의 마력. 웬디를 데려간 것도 그 목적이다. 분명 지상에 남은 멸룡마도사는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갔을 것이다. 안나의 예측이 맞아서 이미 나츠를 제외한 말룡마도사들은 모두 구속된 상. 나츠도 시간 문제였다.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그 정신나간 상황에 경악하고 엘자는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안나에게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안나도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 현세에서는 나츠를 비롯한 멸룡마도사들이 시간의 틈새로 납치된 것, 거기에 마룡의 정신체가 있고 여기엔 육체가 있다는 정보도 페어리 테일 전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다. 그레이는 "거기서 정신체만 처치하면 끝"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애당초 상대가 아크놀로기아인 데다 거기서 멸룡마도사들이 어떤 상로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문제는 그 뿐만 아니다. 현세에서 날뛰는 육체가 세계멸망을 노리고 매그놀리아로 오고 있다. 이 세계의 절망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시작일지도 모른다.
          * 자신의 예정이 크게 벗어났건만 아크놀로기아는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일곱 명의 멸룡마도사가 있음에도 그의 오만한 도는 변하지 않았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3회 일치
          * 여기에 그 자리의 모든 멸룡마도사의 힘을 보면서 나츠가 모든 멸룡마도사의 힘을 사용하는 "칠염룡"으로 각성한다.
          * 그러나 시간의 틈새에 있는 나츠는 절채절명의 위기다. 멸룡마도사들이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향해 무수한 공격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내지 못했다. 이미 [[가질 레드폭스]], [[렉서스 드레아]], [[웬디 마벨]],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는 의식을 잃은 상. 나츠가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으나 심하게 피를 흘린다. 아크놀로기아는 몹시 만족해한다. 그가 바라던 광경이다.
          * 힘을 합쳐 마룡을 묶어놨던 엘자와 미라젠은 페어리 스피어의 준비 상를 확인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짜여진 거대한 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손과 손을 맞잡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루시가 준비 완료 신호를 보내고 드디어 작전 시작이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3회 일치
          * 현세를 파괴하고 있는 마룡의 육신. 그 육신을 봉하기 위한 작전이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리온 바스티아]]가 합작하고 [[쥬비아 록서]]가 조종하는 얼음의 배에 [[엘자 스칼렛]]과 [[미라젠 스트라우스]]가 아크놀로기아를 유인, 기습을 걸어 우는데 성공시킨다. 때를 노려 [[루시 하트필리아]]가 하루지온에 모인 모든 마도사의 힘을 합친 페어리 스피어로 마룡을 잡는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걸까?
          * 짧은 시간 만에 그녀는 전 대륙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링크마법은 전대륙, 전국민에게 빠짐없이 부여됐다. 페어리 테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링크 마법을 통해 힘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세계 전체의 힘. 거기에는 이 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동료들도 있었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안나 하트필리아]],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블루 페가수스]], [[바커스]]와 [[콰트로 케르베로스]], [[머메이드 힐]], [[코로나 플레어]]와 양의 마을 주민들, [[피오레 왕국]] 일동까지.
          * 계속해서 모여드는 힘. [[마카로프 드레아]], [[폴류시카]], [[카구라 미카즈치]], [[셰리아 브렌디]], [[샤를(페어리 테일)|샤를]], [[브랜디쉬]], 저주받은 섬 주민들과 엑시드까지. 여까지 페어리 테일과 만났던,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힘이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던 그런건 관계없었다. 인연과 유대로 묶인 사람들의
  • 페이데이 2 . . . . 3회 일치
          * 체력이 전부 소진된 플레이어는 다운된다. 이 상에서 일정 시간 방치되면 플레이어는 구속당해 게임해 참가 할 수 없는 상가 된다.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 소콜과 경장갑 상에서 자힐할 수 있게 해주는 Grinder 퍽 덱, 돌격소총(Valkyria), 하키스틱이 들어있는 DLC.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3회 일치
          베인은 페이데이 갱을 우기 위해 또다른 운전수인 브루스를 호출한다. 브루스를 만나기 위해 스칼렛 거리로 가자. 길을 막아서는 경찰관을 쏘며 길까지 가면 된다.
          * 맷을 헬리콥터에 운 후 집결한다
          경찰이 주변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이 상로는 알렉스가 C4를 던져줄 수 없다. 저격수를 제거하자. 은엄폐에 철저할 것.
  • 푼스카 . . . . 3회 일치
         [[일본어]] [[의어]]의 하나.
         화를 버럭내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어]]이다.
         [[분류:일본어]] [[분류:의어]]
  • 피우진 . . . . 3회 일치
         1956년 8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직업군인의 딸로 어났다. 형제로는 위로 언니 2명, 아래로 여동생 1명과 남동생 1명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도 [[체육교육과]]로 진학했다. [[청주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야간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당시는 돈이나 뒷배경으로 교직을 얻는 교사들이 많았으나, 피우진의 아버지는 그런 일을 단호하게 반대하여, 피우진은 일반 중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군]] [[사관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직업군인]]을 결심했다고 한다.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절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절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상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 하이큐/230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소심하 멤버들은 툭하면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긴장한 상.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특별 동영상을 준비한다.
          * 그들을 운 버스는 으리으리한 호텔 앞을 지나친다. 이때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곧 도착"한다고 말한다. 타나카는 이런 호텔이 묵는 거냐고 환호하는데, 진짜 숙소는 그 옆에 있는 허름한 보통 여관이었다. 어쨋거나 도쿄는 도쿄. 타나카는 "유령이 나올 거 같다"고 흥분하고 탐험하자고 제안한다. 히나타, 니시노야가 따라나서려는 찰나, 사와무라의 매서운 눈초리가 소리없는 경고를 날린다.. 또 조용히 대답하는 삼인조.
          엔노시타는 수완도 좋게 여관 주인에게 자전거를 빌려왔다. 꼼짝없이 끌려가게 된 츠키시마. 그 짜증 탓인지 한층 무서운 도로 "내가 간다고 하면 바로 돌아가는 거고 말 안 들으면 돌아오기 어려운 곳에 방치"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어차피 히나타나 카게야마가 길눈이 어두운 관계로 절대 복종한다.
  • 하이큐/246화 . . . . 3회 일치
          * 카노카는 묘한 도를 모여서 눈치 빠른 [[엔노시타 치카라]]가 "썸"이라고 지적해서 타나카를 동요시킨다.
          * 엔노시타의 추측대로 카노카는 전부터 타나카를 좋아하던 상. 조만간 고백하려는 참이었다.
          * 여러 선수들이 각자의 사정과 각오로 보낸 그날 밤. 사와무라처럼 서성거리는 선수도 있고 보쿠토처럼 속편히 자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타나카처럼 이불킥을 거듭한 뜻에 해탈에 이른 이도 있다. 아무튼 다양한 형로 지나간 하룻밤.
  • 하이큐/254화 . . . . 3회 일치
          * 카라스노는 전열을 수습하며 [[아즈마네 아사히]]의 향상된 서브를 내세워 추격세를 이어가지만 조금씩 밀려나는 분위기.
          *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츠무. 반면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는 더 격렬하게 대항심을 불운다.
          * [[마지로 알렝]]은 "쌍둥이라 나올 수 있는 신뢰감"이라며 둘을 부러워하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오사무는 시큰둥하다. 애초에 그는 오사무를 딱히 신뢰하지도 어떻지도 않았다. 아츠무는 옛날부터 오사무의 말이라면 지지리도 안 들었다. 깨워달라고 하면 "니가 안 일어났다"며 먼저 가버리기 일수였고 빌려간 옷은 돌려주는 법이 없으며 남의 간식을 처먹으면서 연하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치는, 아주 좋지 않은 형제였다.
  • 하이큐/255화 . . . . 3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벤치에서 나와서 선수들에게,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직접 "침착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우카이 코치도 그렇지만 쓴맛을 본 괴짜 콤비도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연히 "괜찮다"고 말하는 카게야마. 응원단에서는 우카이 코치가 뜻밖에 침착핸 도를 보여서 "혹시 속으로는 진땀을 흘리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의아해할 정도다.
          * [[야치 히토카]]도 히나타의 상를 걱정한다. 지금껏 그는 자기보다 큰 상대와 싸웠지만 필살기 괴짜 속공을 앞세워 자신감있게 플레이해왔다. 그런데 그걸 상대가 똑같이 따라하는데다 자신들 쪽은 봉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까?
  • 하이큐/257화 . . . . 3회 일치
          키노시타가 왜 구여 풀네임에 나이까지 들먹인 건지 의문스러워하기도 전에 코치의 발언이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블록에서 빠져야 하는 츠키시마는 "어찌어찌 해볼만"이라고 애매하게 평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텐션이 높은 히나타가 "나를 질투하는 거냐"고 으스댄다. 츠키시마는 귀찮아서 클도 안 걸자 보다못한 타나카가 "클을 제대로 걸라"고 갈군다.
  • 하이큐/266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팀으로써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서로의 장단점이 눈에 들어왔고 피차 큰 실적을 내게 되자 더는 티격격할 필요도 없어졌다.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 체육관 사건 이후, 둘은 여전히 한 팀에서 티격격하며 훈련을 받았다. 여전히 연습에서는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시합에서는 달랐다. 홍백전을 하면 코즈메의 교묘한 플레이에 야마모토가 속아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이전처럼 "기합이 빠졌다"고 느끼지 않게 됐다. 그가 코즈메를 잘 관찰해본 결과,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 하이큐/272화 . . . . 3회 일치
          * 모두가 깜짝 놀란 가운데, 히나타만은 조금 다르게 놀랬다. 서브 보다는 지금 카게야마의 상. "카게야마 온화 모드" 발동이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히나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카게야마는 문자 그대로 온화한 상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눈을 안 감는 속공에 성공했을 때, 츠키시마가 타점을 올렸을 때가 지금과 같은 온화 모드였다. 설명할게 많지만 히나타의 열등한 어휘력 때문인지 매우 애매한 설명이 되고 말았다.
          >뭔가 여러모로 빠릿빠릿한 상를 말합니다.
  • 하이큐/273화 . . . . 3회 일치
          블록에 빠릿빠릿하게 참가하고 카게야마가 4회차 서브 직후 직결 세트업을 올릴 때 쏜살같이 달려나와 스파이크를 날렸다. 이쪽도 카게야마 온화모드 못지 않게 팔팔한 상지만 아쉽게도 득점은 하지 못했다.
          비록 2세트에서 크게 뒤쳐진 상지만 상대편 에이스 오지로 아란에게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경기 흐름을 뒤집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오지로를 교체하자 조금 더 흔들어 놔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대역"으로 들어온 키타 신스케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카라스노가 경기 데이터를 취득하지 못했던 선수. 이나리자키의 주장이지만 왠지 자신은 "대역"일 뿐이고 그저 "버티는 역할"일 뿐이라고 겸손한 도다. 하지만 정작 바로 전화에선 리세키가 안전빵일 뿐 아무 위협도 안 되는 서브를 넣고 들어오자 "우리 팀에 들어갈 뿐인 서브는 필요없다"고 독설을 날렸고, 그가 들어서자 마자 그 까불거리던 미야 형제가 군바리처럼 뻣뻣하게 굳은 걸 보면 뭔가 있는건 분명.
  • 하일권 . . . . 3회 일치
         2009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3단합체 김창남>을 연재하기 전에 기획하였던 수영만화를 조금 수정, 각색하여 준비하였다. 중학교 때 1등과 반장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배수구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수영복을 달라고 하여 변로 오인받게 된다. 결국 배수구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배수구는 수영복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수구부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눈 감아주는 대신 여장을 하고 수구부에 들어오라고 배수구에게 제안한다. 결국 배수구는 김소녀라는 가상의 이름을 가진 소녀로 수구부에 들게 되고, 수구부에 들어오면서 자기와 같은 갈등과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면서 그 갈등을 견디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WATERCUB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2011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때밀이인 주인공 허세는 우연히 목욕탕 금자탕에 피신하게 되고, 그 곳에서 회장에게 목욕의 신 미러스의 손을 가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허세는 결국 금자탕의 목욕관리사가 되고, 때밀이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꿈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일권 역대 만화 중 가장 높은 누적수를 기록하였다. 또한, 만화에서 나온 목욕투의 폭발적인 인기의 힘입어 목욕투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었고, 2012년 4월 영화화가 결정되어 2013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웹툰 작가]][[분류:동성고등학교 동문]][[분류:세종대학교 동문]]
  • 한교원 . . . . 3회 일치
         ||<:><-12> GK [br] [[권순]] ||
         인천 입단 후 한교원은 성실한 훈련 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뷔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는다. 당시 동포지션의 경쟁선수들이 동반 부진, 부상 등에 빠졌던 이유도 있어서 행운이라 한 것.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더니 인천 공격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부상한다.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고 [[김봉길]]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신임은 여전했다. 한교원의 2011 시즌 스탯은 '''29경기 3골 2도움'''. 공격포인트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체출전 또는 교체아웃된 경기가 많았고 센터백으로 뛰는 등 포지션 변경이 많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인천구단 자체가 이해에 빈공에 시달려 한교원이 공격포인트 1위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교원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겉멋보다는 선수 본인의 압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성향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교원은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실제 성격은 착하지만 굉장히 여리고, 은근히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도 초기에 비판을 받을 때는 적응까지 좀 시간이 걸렸었고, 2015 시즌같은 경우 국가대표 승선으로 인해 과거와는 확실히 위상과 주목도가 달라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소 아쉬운 활약이 이어지자 큰 부담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친정팀을 만났고,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해보려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인천 팬들도 한교원을 바로 비난하는 케이스도 있기는 했지만, 다수는 '어쩌다가 한교원이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간 한교원이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도 상극인 행위를 했기 때문.[* 지금도 한교원을 한퀴아오라면서 욕으로 도배를 하는 것을 보면, 정작 사건 당사자인 인천팬은 아연실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오랜 시간 뛰면서 보여준 도와는 상반된 행동이었기 때문. 실제로 인천팬들은 한교원 선수를 성실하고 착실한 선수로 인식해왔고, 평소 행동도 거칠지 않았고, 경기장에서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 한선교 . . . . 3회 일치
         |전임자 = [[김용 (1968년)|김용]]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동성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청주 한씨]][[분류:친박]][[분류:농구 행정가]]
  • 한성식 . . . . 3회 일치
         * [[2000년]]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 ([[한국방송공사|KBS]])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한승주 (공무원) . . . . 3회 일치
         청와대는 2003년 4월 한승주를 주미대사로 서둘러 내정하였다. 여기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용을 가급적 빨리 구축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북핵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대두됐으나 양성철 당시 주미대사는 3년의 임기를 거의 마쳐가고 있는 상였고 가능한 한 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런 상에서 한승주가 국내 인사로는 드물게 미국내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으며,1993년 북핵 위기 때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평화적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점도 고려돼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북핵해결 위한 美지명도·인맥 고려…한승주 주미대사 내정 배경 |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18951804&code=11121200 |뉴스 = 국민일보 |날짜 = 2003-03-27 }}</ref> 이리하여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제19대 주미대사를 지냈다.
         [[분류:194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욱일대수장 수훈자]]
  • 함신영 . . . . 3회 일치
         * 《[[청춘 (영화)|청춘]]》 (2000년) - 하정
         * 《[[사랑할수록]]》 (MBC, 2000년) - 이병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함영준 . . . . 3회 일치
         |부모 = [[함호]]
         '''함영준'''(咸泳俊, [[1959년]] ~ )은 [[오뚜기]]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오뚜기]] 창업자인 [[함호]] 명예회장의 장남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함영준 오뚜기 회장, 2세 경영체계 시동 |url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188603|출판사 = 한국경제 |저자 = |날짜 = 2010-04-14}}</ref>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함씨]][[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함화진 . . . . 3회 일치
         [[대한제국 고종|고종]] 21년인 1884년에 대대로 왕실의 악사를 지낸 [[양근 함씨]] 집안에서 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함화진(咸華鎭)이었다. 함화진의 집안은 세습적인 악사 가문으로 증조부 함윤옥은 [[조선 순조|순조]]와 [[조선 헌종|헌종]] 때 악사였고, 할아버지 함제홍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로 불렸다. 큰아버지 함재홍은 젓대, 아버지 [[함재운]]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함화진은 [[이왕직 아악부]]의 수장인 제2세 아악사장을 역임한 함재운의 장자로 어나 이병문에게서 거문고를, [[명완벽]]에게서는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국악이론 부문에서도 일인자가 되었다. 10대 시절인 [[1900년]]에 가전악(假典樂)이 된 뒤 [[190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 그 뒤 아악사를 차례로 지냈다. [[1932년]]에는 아버지가 맡았던 자리인 제5세 아악사장에까지 올랐고, [[1939년]]에 은퇴했다.
         [[분류:1884년 어남]][[분류:1948년 죽음]][[분류:양근 함씨]][[분류:일제 강점기의 국악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
  • 허규옥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2년]] [[4월 6일]] <br /> [[광주무등경기장|광주]] 대 [[해 타이거즈|해]]전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김해 허씨]]
  • 허준호(배우) . . . . 3회 일치
          * 1992년 《하얀 전쟁》... 조삼 역
          * 1996년 《투맨》... 식 역
          * 2000년 KBS2 《[[양은 가득히#s-2]]》 ... 박헌도 역
  • 현경련 . . . . 3회 일치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94년 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분류:연주 현씨]]
  • 현석문 . . . . 3회 일치
         현석문은 [[1797년]]에 [[한양]]에서 [[중인]] [[신분]]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되던 [[1801년]]에 [[신유박해]]로 [[순교]]하였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1839년]]에 [[기해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누나 [[현경련]] 또한 기해박해로 순교하였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97년 어남]][[분류:1846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조선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현재덕 . . . . 3회 일치
         [[경성부]] 생으로, ‘노마’ 시리즈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현덕]](본명 현경윤)의 친동생이다. 현덕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문학, 미술에 관심을 가져, 건강이 좋지 않은 형을 대신하여 《[[소년조선일보]]》의 동화 연재를 이어 받는 등 [[일제 강점기]]부터 활발한 활동을 했다.
         |저자=이
         [[분류:1912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삽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삽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아동미술가]][[분류:박헌영]][[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혜은이 . . . . 3회 일치
         [[1956년]] [[9월 23일]] ([[음력 8월 19일]])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에서 《낙랑쇼》의 단장이자 유명 변사였던 김성택의 딸로 어나 7살 때(1962년) [[부산광역시]]으로 이주하여 자랐다.
         [[1978년]] 평양가요제 입상 후 배우 [[김자옥]]과 함께 동남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이다. [[1970년대]] 젊음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얻었고, <제3한강교>(동명 영화 OST(1986)|[[길옥윤]])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최초의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녔으며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창조한 스타이다.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홍명희 . . . . 3회 일치
         남한에서는 [[김일성]]과 친했던 점,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잘 대우받은 점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1990년대 중순부터에서야 서서히 알려졌는데, 그의 이름을 재발굴하려던 국내 학자들도 홍명희와 더불어 [[이준(소설가)|이준]]이라든지 여러 월북 작가와 더불어 꽤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겪은 바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 홍병주 . . . . 3회 일치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98년 어남]][[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홍서범 . . . . 3회 일치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영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영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 화 고무장갑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홍은희(배우)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배우.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출신으로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MBC 베스트극장에서 [[강호순]]과 함께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려 1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였다. 결혼식을 [[3.1절]]에 하여 식장에 대형 [[극기]]가 걸려 있었고, 남편 강호순은 만세삼창을 하였으며, [[신혼여행]]도 [[상해임시정부]]로 갔다고 한다. 결혼 후 한동안 [[육아]]에 힘쓰며 연예계에서 물러나 있다가 복귀하여 드라마, 예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과거에 [[수영장]]을 [[나체]]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그 때 수영장 안에 수경을 놓고 와서 급히 가지러 간다는 게 순간 발가벗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그 상 그대로 수영장 안에 들어가버렸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제야 나체 상인 걸 알아차린 홍은희는 몸을 가리자니 손이 3개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얼굴만 가리고 급히 뛰어 나갔다고 한다.
  • 홍진경 . . . . 3회 일치
         [[경기도]] [[남양주시]] 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어난 홍진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3년 제2회 [[서울방송|SBS]] 슈퍼 모델 선발 대회에서 《베스트 포즈상》을 받고 연예계에 데뷔하였다.<ref>최지윤.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692771&year=2011 이소라·홍진경·송선미…잘 나가는 슈퍼모델 출신 ★들]. 매일경제. 2011년 10월 26일.</ref>
         * [[해제과]] 우리또래
         [[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3년 데뷔]][[분류:남양주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식품업자]][[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화석연료 . . . . 3회 일치
         화석연료는 고대의 생물들이 [[지층]]에 파묻힌 다음, 고온고압의 특수한 환경에서 [[탄화수소]]의 덩어리로 변질되면서 생성된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 생물들은 궁극적으로 [[양 에너지]]로 살았던 존재이므로, 화석연료 역시 궁극적으로는 양 에너지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 탄소균형 문제 :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자연적으로 축적하는 탄소화합물의 양보다 배출하는 탄소화합물의 양이 훨씬 많아져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쉽게 말해 '지구온난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 황경태 . . . . 3회 일치
         |선수명 = 황경
         '''황경'''([[1996년]] [[8월 17일]] ~ )는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황보관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대구침산초등학교]],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계성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축구부가 해체되어 [[서울체육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347934 "죽기 살기로 뛰기보다 상황대처 능력 키워라" 황보관 축구협 기술위원장] - 매일신문</ref> [[서울체육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A매치]]에서 종종 캐넌슛으로 골로 기록하여 '캐넌 슈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황석두 . . . . 3회 일치
         황석두는 [[1813년]]에 [[충청도]] [[연풍면|연풍]]에서 부유한 [[양반]] 집안의 외아들로 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그가 [[과거 제도|과거 시험]]에 합격토록 그를 공부시켰다.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813년 어남]][[분류:1866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황인숙 . . . . 3회 일치
         '''황인숙'''([[1958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나는 고양이로 어나리라〉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황정오 . . . . 3회 일치
         [[경북 선산군 무을면 무이동]]에서 어나 대구 [[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1979년]]에 유도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고 [[1980년]] [[폴란드]] 클라블라프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유도 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획득해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85년]]에 은퇴한 황정오는 [[1987년]]에 미국의 마린 대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테네시 대학교에서는 대학교수로 발탁되었으며 2010년에는 미국권도고단자회 관장을 맡고 있다.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황태연 . . . . 3회 일치
         |이름 = 황연<br>[[Taeyeon Hwang]]<br>黃泰淵
         |필명 = 황연<br>황연
         필명 황연과 황연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외국인 번역가나 대리인 없이 영문 소설을 처녀작으로 직접 집필, 퇴고, 편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현재 [[Lotus]](ISBN-10: 1980979170, ISBN-13: 978-1980979173)라는 소설 작품으로 해외 [[아마존닷컴]]에 등단하여 종이책,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판매 중이며 왕성한 활동 중인 작가는 연이어 한국 수영 이론서인 [[수영 바이블]]을 BOOKK란 출판사와 교보문고 퍼플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 컬러본과 흑백본,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하였다.
  • 후지와라 섭관가 . . . . 3회 일치
         제63대 레이제이 덴노(冷泉天皇) 시기의 분쟁이다. 967년 즉위한 레징이제이 덴노에게는 아들이 없어, 동생들 가운데 [[황제]]를 정하게 되었다.
         레이제이 덴노의 5명의 동생들 가운데 가장 평판이 높았던 것은 2남 타메히라 친왕(為平親王)이다. 하지만 타메히라 친왕의 어머니는 후지와라 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지와라 씨의 영향으로 3남 모리히라 친왕(守平親王)이 황자로 선택된다. 모리히라 친왕은 제64대 엔유 덴노(円融天皇)로 즉위한다.
         이 황자 분쟁을 계기로 하여 후지와라 씨는 아예 후지와라 씨의 딸 이외의 입궁 자체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 휴먼 토치 . . . . 3회 일치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어서 온도를 거의 초신성([[슈퍼노바]])수준까지 올릴 수 있고, 자신은 화염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다. 불타는 인간 형로 변하여 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화염인간을 조종할수도 있어서 매애애애애우 초창기에 정체 숨기고 다닐 적엔 불을 조작해서 연기 피운뒤 휴먼토치로 변해서 나간다거나 연기속으로 돌아와 화염 인간을 보내놓고 내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물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하기도...(...) 실제로 한창 날뛰다가 물 한번 맞고 뻗기도 했다.
         [[스파이더맨]]과는 초창기부터 티격격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그만둘까 고민하던 피터가 쟈니 스톰의 영웅에 대한 연설을 듣고 다시 기운 차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자니 스톰도 스파이더맨하곤 스스로가 "친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그래도 가끔씩이 둘이 싸우면 아주 난장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쟈니가 파티장에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질투한 스파이더맨이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협력해서 샌드맨과 싸우기도 하는 등 티격격하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한번은 쟈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여친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 아닌 평상시의 모습)에게 관심이 있자 질투심에 피터를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샌드맨등의 적을 힘을 합쳐 쓰러뜨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 쟈니가 자신이 죽을 경우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의 관계가 된다.
  • Crusader Kings 2/DLC . . . . 2회 일치
         876년 시작하는 시나리오인 "고의 신들"이 해금된다. 또한 반란 시스템이 개편되어 농노 반란, 종교 반란, 해방 반란, 이단 반란 중 하나의 형로 일어나게 되었다. 가끔씩 어디서 굴러들어온 모험가가 영지를 요구하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이벤트도 추가되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2회 일치
          >근엄한 제국주의자는 흔들림 없는 제국주의자다. 그에게는 매력도 천재적인 관리 능력도 없지만 단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 자신의 국가를 좀 더 나은 상로 만드려는 광신적 열정 만은. 정치적 방법이건 군사적 방법이건, 그는 그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과묵한 일꾼은 부족한 매력을 노력과 능력으로 보완한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국가원수를 양과 같이 돋보이게 만든다. 그가 눈에 띄는 일은 드물다.
  • GLA . . . . 2회 일치
          적의 차량을 탈취할 수 있는 보병. 공격을 할 수 없는 대신 정지시 스텔스 상가 된다. 탈취한 차량이 파괴되면 탈출한다.
          보병을 수송할 수 있는 버스. 탑승한 보병은 밖의 유닛을 공격할 수 있다. 보병이 들어있는 상에서 파괴되면 벙커가 된다. 잔해를 먹어 방어력을 강화할 수 있다.
  • HelpOnEditing . . . . 2회 일치
         색깔효과는 인라인(한줄)일 경우에만 적용되며, {{{#red 그 속에서 강제개행([[br]])은 적용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꼭 개행이 필요하다면 색깔그를 끝낸 후에 강제개행 효과를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 줄마다 효과를 적용하는 법도 있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하십시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2회 일치
         || 득점선수 || 조용(20)[[BR]] 디에고(48)[[BR]] 스레텐(85) || || 스토야노비치(32) ||
         || MOM ||<-3><:>조용||
  • USS 뷰캐넌 . . . . 2회 일치
         취역한지 1년도 안 된 뷰캐넌은 대서양을 떠나 평양에서 활동한다. 이후 뷰캐넌은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했다. 1922년 7월 7일 퇴역했지만 1930년 4월 10일 USS 소머즈(USS Somers)가 퇴역하며 재취역했다. 이렇게 평양에서 활동하던 뷰캐넌은 1937년 4월 9일 다시 퇴역한다. 1939년 9월 1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미 해군은 해군력을 불리기 시작한다. 1939년 9월 9일, 뷰캐넌은 3번째 취역을 맞는다. 이후 뷰캐넌은 대서양에서 활동하다 1940년 9월 9일, 미국과 영국이 맺은 조약[* Destroyer for Bases Deal. 영국이 미국에게 기지를 대여해주는 대신 미국은 영국에게 구축함을 지원하는 조약.]에 의해 영국 해군에게 넘겨진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2회 일치
          * '''Offensive Attitude(공격적 도)'''
          * '''Defensive Attitude(방어적 도)'''
  • Victoria II/디시전 . . . . 2회 일치
         >우리 학계의 대다수는 현재 학계가 지나치게 편향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좀 더 전통적인 상로 되돌아가야한다.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에 대한 제안은 파나마 지협을 발견했을 시 부터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제일 좁은 이 곳과 근대 공학의 힘을 빌려서 대서양-평양 항해 기간을 며칠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강대식 . . . . 2회 일치
         1959년 [[경상북도]] [[경산시|경산군]] 안심면(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어났다. 대구송정초등학교, [[안심중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런데 2012년 11월 20일 [[음주운전]] 상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4837775|경찰에 적발되었다]].
  • 강지섭 . . . . 2회 일치
         * [[2008년]] [[KBS2]] 수목드라마 《[[양의 여자]]》 ... 홍은섭 역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부천시 출신]]
  • 강타 . . . . 2회 일치
         |활동시기 = [[1996년]] [[9월 7일]] ~ [[2019년]] [[8월]]<ref>현재, 자숙한 상.</ref>
         [[분류:강타]][[분류:H.O.T.의 일원]][[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순흥 안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거미(가수) . . . . 2회 일치
         [[여자 가수]]. [[본명]]은 [[박지연]]이며 [[전라남도]] [[완도군]] 에서 어났다.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으며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했다.
          * You Are My Everything - [[양의 후예]] OST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2회 일치
         [[도마 우마루]]는 UMR상로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타케시"봄바]]를 만나 논다
         * UMR 상로 실핀과 봄바를 만난 우마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2회 일치
          * 이 만화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터부를 건드린 편집장. 정작 키리에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미팅 후 도마가에서 우마루(코마루모드)와 노는데, 미팅의 일 때문인지 넋이 나간 상. 편집장은 그림책 상에서 설명할 필욘 없지만 "작가 본인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정론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키리에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 키리에의 상가 이상한걸 눈치챈 우마루. 키리에는 얼버무리려고 허둥댄다. 그러다 문득 "스승님은 잘하는게 뭔가요"라고 묻는다. 우마루는 FPS에서 헤드샷을 잘 쏘고 맛만 봐서 콜라 브랜드를 구분하고 자려고 하면 언제든 잠드는 것 등을 얘기한다. 키리에는 굉장하다면서 특기를 전수해달라고 한다.
  • 경산시 . . . . 2회 일치
         * [[손진]] - 권도 선수
  • 고종(조선) . . . . 2회 일치
         [[철종]]이 사망한 뒤 조대비에게 옹립되었고, 생부인 [[흥선대원군]]가 [[섭정]]을 보았다. 그러나 대원군은 고종이 20살을 넘어 22살이 될때까지도 친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고종의 왕권에 대한 집착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그러나 고종이 성인이 된지 한참된 상에서 대원군이 계속 섭정을 할 수는 없었고 결국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친정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운요호 사건이 터지는데 사실 이 과정에서 신미양요 때 멀쩡했던 영종도가 맥없이 당했다고 고종을 까는 건 조금 부당하다. 이미 대원군이 당백전이나 청전으로 재정상가 개판이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던 것(...). 아무튼 박규수같은 개화파들은 개방을 할 좋은 기회라 여겼고 이에 고종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 공주님 안기 . . . . 2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상 이 자세로 상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남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상가 되지 않는다.
  • 공후백자남 . . . . 2회 일치
         춘추시대에는 위(衛), 진(晋), 제(齊) 역시 공을 칭하게 되었다. 제나라는 공망의 후손으로, 공망이 [[삼감의 난]]을 진압한 공적으로 공에 필적하는 권한을 얻었으며, 위나라는 [[주유왕]](周幽王)이 살해되었을 때, 이 복수를 하였기 때문에 공작의 지위를 얻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공'을 칭하는 것은 당대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공을 칭하는 것은 일종의 참칭이었으나 주 왕실의 권위가 저하한 춘추시대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 구자춘 . . . . 2회 일치
         1932년 5월 11일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어났다.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영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영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남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 권수현(배우) . . . . 2회 일치
         * 《[[상류사회 (드라마)|상류사회]]》(2015년, SBS) - 이건 역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권영해 (1888년) . . . . 2회 일치
         1919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상백(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식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백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분류:1888년 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안동 권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한국독립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권오현(배우) . . . . 2회 일치
         * 《[[KBS 드라마시티|드라마시티]] - 돈꽃》 (KBS2, 2008년) - 호 역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1976년 데뷔]][[분류:안동 권씨]][[분류:평창군 출신 인물]]
  • 권은희 (1959년) . . . . 2회 일치
         |후임자 = (대구 북구 갑)[[정옥]]<br />(대구 북구 을)[[홍의락]]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원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구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정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분류:안동 권씨]]
  • 그레이터 데몬 양식 . . . . 2회 일치
         [[위저드리 1]]의 비법. 마법이 봉쇄된 그레이터 데몬이 동료를 부를 경우, 불려온 그레이터 데몬 역시 마법이 봉쇄된 상라는 것을 이용하는 비법이다. 그레이터 데몬은 전체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무서운 적이지만, 마법이 봉쇄된 상에서는 크게 무섭지 않기 때문. 의도적으로 그레이터 데몬의 마법을 봉쇄한 다음 계속 동료를 부르게 하고 계속 죽여나가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천문학적인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 기동전사 건담 . . . . 2회 일치
         당시 만연했던 '로봇 프로레슬링'[* 매 화마다 특정 메카와 1대 1, 혹은 1대 다수로 일회성 대결을 펼치는 방식. '마징가 Z'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플룻에서 벗어나 전쟁 서사적인 면을 다룬 스토리로 막 동하기 시작하던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여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로봇물에서 이른바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구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 21세기 시각에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옛날 로봇애니의 요소들도 많이 담고 있기도 한 '과도기적 작품'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21세기 작품들이 '옛날 로봇애니 요소'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
         전반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동된 우주개발 붐 문화('아폴로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 아폴로 붐 당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현대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이다. 또한 당시 인기를 끌었던 SF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다. 소년병들이 다수인 집단이 지구와 우주 각지를 떠도는 부분은 '15소년 표류기'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 김남조 . . . . 2회 일치
         그는 1927년 대구에서 어나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하였다.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ref>이은영,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9 예술가 위한 공간 ‘예술의 기쁨’ 개관하는 원로시인 김남조], 서울문화투데이</ref>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2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시인]]
  • 김대진 (야구인) . . . . 2회 일치
         * [[평양 돌핀스]] 코치 (1989년 ~ 1992년)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대호(축구선수) . . . . 2회 일치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게, 수비적인 능력이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센터백으로 실패한 게 이 때문. --공격도 그리 매끄럽진 않잖아-- 풀백으로 뛰면서 공격적인 재능이 꽃핀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수비 쪽에서 단점은 여전. 피지컬로 비벼서 뺏어내는 스타일이라 카드수집이 엄청나다. 사실 2013년도 이런 단점 때문에 박희철과 번갈아가며 나오다가 그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주전이 된 경우. 이전에는 [[황지수]]가 이 부분을 잘 메꾸어줬지만 2014년 초 황지수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 [[김수(축구선수)|김수]],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 [[손준호]] 등이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그의 단점이 극대화, 수비가 좋은 [[박희철]]과 5월부터 급성장한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에게 밀렸고 2015년에도 초반에 주전으로 출전하다가 7월 이후에는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한 [[최재수]]가 대신하면서 사실상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 김대휘 . . . . 2회 일치
         1956년 대구에서 어났다. 1974년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0기 [[사법연수원]]과 해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3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예안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덕현 (변호사) . . . . 2회 일치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했을 때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ref>백기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28&aid=0000051186 노무현 - 변호인단 첫 상견례]. 한겨레. 2004년 3월 22일.</ref> 배우 [[최진실]]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을 때 그 변호인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ref>김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69022 최진실씨 변호인단 매머드급]. 세계일보. 2004년 12월 14일.</ref>
         [[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도연(배우) . . . . 2회 일치
         출생 [[1966년]] [[1월 19일]] [[강원도]] [[백시]]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66년 출생]][[분류:1984년 데뷔]][[분류:백시 출신 인물]]
  • 김동한 (1919년) . . . . 2회 일치
         [[1978년]]부터는 결핵환자 요양시설을 설립, 경영하였다. 그의 세례명은 '''가롤로'''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 생으로 [[추기경]] [[김수환]]의 넷째 형이었다.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光山)]]이며 [[대구광역시]] 출신.
         [[분류:1919년 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령]][[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함세웅]][[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구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
  • 김봉근(배우) . . . . 2회 일치
         * 《[[조 왕건 (드라마)|조 왕건]]》([[KBS]])
  • 김상조 . . . . 2회 일치
         그리고 첫 시작으로 공정위에서 BBQ 가격 인상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된다. 이에 치킨 업계는 줄줄이 인상안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기존 치킨 가격을 인하하는 행를 보이고 있다. [[2017년 BBQ 치킨값 파동]] 참조.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위는 가격 조정 기관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임명 후 빨리 알기 쉬운 효과가 나타나자 국민들에게 일 잘하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다음 타겟은 피자 헛[[http://news1.kr/articles/?3022211|#]]--
         김 후보자 측은 “당시 중학교 교사였던 김 후보자 부인이 지방 전근 발령 난 상에서 건너편 친척집에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주소지를 옮겼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 친척집에 살지는 않고 2주 만에 서울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사 갔다. 김 후보자 측은 “그런 식으로는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부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했다”고 설명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260204001&code=210100|관련기사]]
  • 김상희 (가수) . . . . 2회 일치
         1999년에는 아들의 병역비리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42800209123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4-28&officeId=00020&pageNo=23&printNo=24181&publishType=00010 돈으로 때운 국방의무] "1999년 4월 28일 동아일보 참조"</ref> <ref>[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90427023100525 <초점> `有錢免除' 병역면제 비리 실] "1999년 4월 27일 연합뉴스 참조"</ref>
         [[분류:194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주 최씨]]
  • 김석형 (역사학자) . . . . 2회 일치
         '''김석형'''(金錫亨 [[1915년]] ~ [[1996년]] [[11월 26일]])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어나 [[1946년]] 월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다. [[1963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맞서 [[삼한]]의 주민들이 일본에 이주하여 분국을 세웠다는 학설을 주장한 역사학자이다.
         [[분류:1915년 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수]][[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
  • 김선길(국회의원) . . . . 2회 일치
         1934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 에서 어났다. 음성중학교,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3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가서 스슨 대학교 정치학과, [[아메리칸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김성민 (1994년) . . . . 2회 일치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2회 일치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해설자]][[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
  • 김수자 . . . . 2회 일치
         김수자는 1957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김수자의 화가로서의 근본은 그녀의 예술 발전에서 중요한 시작점이다.<ref>Arum Sok, Christina,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paper Abstract, in Kimsooja’s official website: http://www.kimsooja.com/texts/sok_2014.html</ref> 김수자의 "꿰매기" 시리즈는 세계의 뒤엉퀸 모습을 수평면과 수직면의 체계에 합성하여 십자형의 구조를 형성하는 천의 아상블라주를 만든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루초 폰타나]]가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를 날이 선 단도로 꽤뚫었던 것과 같이 김수자 또한 작품의 표면을 꿰매어 더 이상 환상의 화면이 이닌 3차원 구조의 예술을 창조하였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행위 예술가]][[분류:설치미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김수학 (법조인) . . . . 2회 일치
         1954년 3월 17일에 [[대구광역시]]에서 어난 김수학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치러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9기를 수료했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숭실 . . . . 2회 일치
         [[1981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난 김숭실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대구봉덕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부에 들어가 탁구를 시작했다. [[2000년]] 실업 무대에 데뷔한 이래 6년만인 [[2002년]] 12월 [[SBS 챔피언전]] 여자 단식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182724.html 김창금, <만나봅시다 여자 탁구 샛별 김숭실>, 《[[한겨레신문]]》2007.1.8]</ref>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탁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
  • 김승환(배우) . . . . 2회 일치
         || MBC 월화드라마 [[나는 천사가 아니다]] || 호 ||
         || [[토끼를 운 잠수함]] || 챠리정 ||
  • 김우식 (1886년) . . . . 2회 일치
         *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다.
         [[분류:1886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흥 김씨]]
  • 김정난 . . . . 2회 일치
         1971년 7월 16일에 어났으며, 본명은 '''김현아'''다.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A%B9%80%EC%A0%95%EB%82%9C&os=159885|네이버 인물]].
         || 2013년 || SBS || [[세 번 결혼하는 여자]] || [[정희]] || ||
  • 김주승 . . . . 2회 일치
          * [[1987년]] [[해음료]] [[써니텐]]
          * [[1990년]] [[해HTB]] [[썬키스트]] 파인애플주스
  • 김중혁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1971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슈퍼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소설가]] [[김연수]]--역전 앞 뉴욕제과 아들--, [[시인(문학)|시인]] [[문준]]과는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이다.
  • 김지혜(1980) . . . . 2회 일치
         * [[해음료]] 썬키스트 쥬디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아이돌 가수]][[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양평군 출신 인물]][[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양수초등학교 동문]][[분류:양수중학교 동문]][[분류:양서고등학교 동문]]
  • 김진향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노무현 정부]][[분류:북한학자]]
  • 김찬돈 . . . . 2회 일치
         1959년에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능인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0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0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2월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대구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장을 하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어남]][[분류:능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초향 . . . . 2회 일치
         '''김초향'''(金楚香, [[1900년]] ~ [[1983년]])은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다. 광무대 극장에 들어가 가무를 배웠고 [[김창환 (국악인)|김창환]], [[송만갑]]의 가르침을 받아 대성하였으며, [[이화중선]]과 더불어 당대 여성 명창의 쌍벽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 [[흥보가]]를 잘 불렀다.
         [[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1900년 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판소리 명창]][[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취경전 . . . . 2회 일치
         방황하던 취경은 어느 수수께끼의 백발노인의 인도를 받아, [[흉가]]에 갔는데 그곳에서 괴물을 물리치고 미인 목소저를 구해준다. 목소저는 백제국 부상서의 딸이었다. 취경은 목소저에게 의지하여 병서와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한편 집을 나온 선애와 설애는 [[남장]]을 하고 다니다가 함흥부의 소년 양화춘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오빠 취경을 찾아다니다 취경과 재회한다.
         그런데 이 때, 백제국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구려왕은 백제군에 패배하고 위기에 바진다. 취경과 양공자는 함께 병법과 무술을 고웁하다가, 양공자가 천문을 보고 왕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고, 취경이 전장에 나가서 왕을 구하기로 한다. 취경은 장인의 영혼[* 백제국 부상서인데 어지간히 백제왕이 싫었나보다(…).]으로부터 삼척보검을 얻고, 도적 천철웅에게 군량미를 지원받으며, 단군에게 갑주와 용마를 받는다.
  • 김현철(교수) . . . . 2회 일치
         1962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대구 [[심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무작정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으면서 기업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자멸의 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김형기 (법조인) . . . . 2회 일치
         1927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난 김형기는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문학과 고서화에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던 김형기는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1981년에 임명된 서울형사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김중서]]의 정년 퇴임으로 공적이 된 대법원 판사에 1984년 7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ref>매일경제 1984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1984년 7월 18일자</ref>
         [[분류:1937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형종(배우) . . . . 2회 일치
         * 《[[여제 (드라마)|여제]]》 (ETN, 2011년) - 장수 역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 인물]]
  • 김형태(정치인) . . . . 2회 일치
         1952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어났다. 포항[[동지중학교]], 대구[[성광고등학교]],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외교안보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형, version=240)]
  • 김효원 . . . . 2회 일치
         김효원은 [[1542년]]에 어났다. 증조부는 상원서 직장 수현(秀賢)이며, 할아버지는 전생서 직장 덕유(德裕)이다. 아버지는 영유 [[현령]](永柔 縣令) 홍우(弘遇)이며,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 [[해평 윤씨]]이다. 아래로는 동생 [[김이원]] 등이 있었다. 일찍이 [[한성]]에 올라와 한성부 남부 건천동(乾川洞)에서 살았는데 이때 [[류성룡]] 등을 만나 알게 되었다.
         [[분류:1542년 어남]][[분류:1590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철학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2회 일치
          * 굳이 공격 형의 기술일 필요는 없으며, 예를 들어 이이다의 "레시프로 버스트"같은 일시적인 초가속도 가 자체로 강력하므로 필살기라 할 만하다.
          * 필살기는 아직도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전력으로 싸울 때 팔이 움직이지 않는 사는 피해야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2회 일치
          * 사걸 고교의 여학생은 변장을 위해 알몸 상. 본인의 개성인지 장비인지 불분명.
          * 상대는 변장을 위해 옷까지 벗은 상이므로 패널을 터치할 수도 없고 시간 상으로도 무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2회 일치
          * 임시면허 소지자는 우선 피해자의 상를 확인하는 거라며 일침을 가한다.
          * 요구조자는 무섭고 아프고 불안한 상에 처해있다. 그런데 히어로가 와서 제일 먼저하는 말이 "큰일났다!"면 안 된다는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2회 일치
          미도리야는 임시면허는 꼭 실력 순으로 딴게 아니라고 위로하려 하지만 바쿠고는 닥치고 들으라며 폭언한다. 아무튼 그는 계속 기분이 나쁜 상였고 짜증스러웠는데 얼마 전 "대사건"을 통해서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 미도리야는 들어서 어쩔 거냐고 반문한다. 바쿠고는 이미 확신에 찬 상다. 그는 자신도 올마이트를 동경했는데 계속 돌맹이라고 생각했던 미도리야가 모르는 사이에 올마이트에게 인정받았음을 한탄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2회 일치
          * 이들은 각자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 완전히 절망했으나 [[오버홀]] 치사키가 내민 손길로 완전히 세뇌된 상.
          * "양 조차 먹는 자".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먹은 것을 재현하는 개성"을 최대로 활용한다. 호죠의 "결정"은 조개 껍질로도 막기 어려운 강력한 공격. 그러나 문어 다리의 강한 근육으로 팔을 강화, 그 끝을 조개껍질로 감싸서 호죠의 주먹을 틀어막는다. 호죠가 대단한 활용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며 뿌리친다. 타마키도 그저 저지할 생각만은 아니다. 그가 웅영에서 2년 반 동안 쌓은 건 그정도가 아니다. 사이즈 변화, 복수동시 재현, 특징 자유선택. 그가 익힌 모든 기능.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필살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패트껌은 그 사이 랏파가 준 충격을 흡착해 응축, 지방을 운 에너지까지 더해 하나의 "창"으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 패트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지만 의식을 놓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그렇게 자신을 격려했다. 랏파는 그가 완전히 그로기라고 생각해서 "거짓말이지? 더 할 수 있지?"라고 도발한다. 맞는 말이다. 패트껌은 휘청일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 랏파는 패트껌이 완전히 "방패"라고 오해하고 있다. 패트껌은 그게 랏파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 장담한다. 그에게도 "창"이 있다. 단지 그걸 구현하기 위해선 자신의 방패를 포기해야 할 뿐이다. 랏파가 패트껌 몸에 쌓은 충격은 고스란히 "흡착"해서 오른팔에 "담았다". 이 축적엔 막대한 열량이 필요해 방패인 지방을 활활 우고 있다. 그래서 방패를 포기하는 것. 그러나 이 과정이 끝났을 때 어떤 방패도 쳐부수는 "창"이 생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2회 일치
          * 이리나카의 책략으로 분단된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뜻하지 않았던 [[빌런 연합]]의 개입. [[토가 히미코]]의 습격으로 이미 희생자가 나왔다. 자물쇠 히어로 [[록록]]이 당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도 그럴 뻔 했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눈치 챈 덕에 제지했다. 대신 그가 부상을 입고 피를 빼앗기는 사가 생겼지만.
          * 토가와 트와이스가 연 야쿠자 규탄대회는 수위를 높여갔다. 트와이스가 이 모양이니 야쿠자가 전멸 직전인 거라고 까대자 토가가 "잠들어 있다는 두목도 별거 없는 사람일게 뻔하다"고 덧붙였다. 거기까지였다. 넓디 넓은 이리나카의 이해심도 거기서 바닥이 났다. 비명같은 외마디 절규와 함께 사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지금 이리나카의 정신처럼. 히어로 연합군을 분단시켰던 이리나카의 벽이 무너지고 형를 잃었다. 일행은 위아래도 없고 좌우도 없는 파도 휩쓸린 것 같았다. 토가와 트와이스가 바란대로였다. 트와이스는 그 와중에도 입을 쉬지 않고 "역시 이리나카 형님은 쉽게 열받는 성격이었다"며 신경을 긁어댔다. 그리고 토가는, 요동치는 배경 속에서 다시 미도리야와 눈이 마주쳐서 웃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2회 일치
          * 류큐 팀은 오버홀을 저지해보려고 하지만 온전한 상가 아니다. 그때 [[서 나이트아이]]는 류큐팀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고 이 다음 오버홀은 다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미도리야를 쫓아가 그를 죽일 거라고, 그런 미래를 "봤다"고 고백한다. 류큐팀은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나 나이트아이는 어차피 그녀들 몸으로는 무리라고 잠자코 있으라 말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크게 반발하며 "미래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갈하고 나이트아이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래를 비틀겠어"라던 [[올마이트]]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아스이 츠유]]에겐 근처에 있을 밀리오의 구조를 요청하고 류큐, 우라라카에겐 자신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 달라 부탁한다.
          오버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원 포 올 100%의 여파가 몸에 미치는 순간, 에리가 개성으로 "되돌려"준게 분명하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에리의 개성은 "매우 상냥한 개성"이라며 반대로 "돌아가는 이상의 속도로 몸이 상처입는 상를 유지"하기로 한다. 원 포 올 풀 카울 100%. 미도리야는 힘을 개방하며 에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2회 일치
          * 빌런연합의 구성원은 그 신원 또한 경찰에 의해 밝혀진 상.
          * 래그돌은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의 동료인 토라에게 구출되지만 어쩐지 폐인같은 상.--쩡같은 일을 당했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2회 일치
          * 약해진 상에서 정면으로 공격 받은 올마이트는 히어로폼이 완전히 풀려 버리고 이 모습이 전국의 시청자에게 공개돼 버린다.
          * 사의 심각성을 깨닫고 올마이트를 응원하는 시민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2회 일치
          * 간수는 이런 상에서도 올마이트와 그렇게 싸웠다는 것에 치를 떤다.
          * 단지 아직도 "배신자"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단호한 도로 반대한다.
          *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단호한 도로 웅영고의 정책에 반대한다.
  • 남기애 . . . . 2회 일치
         | 수목드라마 《[[양의 후예]]》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양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남상태 . . . . 2회 일치
         '''남상'''([[1950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남창희(연예인) . . . . 2회 일치
          * [[색즉시공]] - 변2 役
          * [[남자 어나다]] - 양아치3 役
  • 내추럴 하이 . . . . 2회 일치
         일본식 영어. [[내추럴]]과 [[하이]]를 결합한 말. 여기서 하이는 아마 마약의 고양 상를 뜻하는 듯.
         [[마약]]이나 [[각성제]]를 쓰지 않고, 합법적이며 자연적으로 [[환각상]]를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 담철곤 . . . . 2회 일치
         담철곤의 할아버지가 [[중화민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했고, 담철곤은 195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화교]] 집안에서 어났다.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켄트외국인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오리온그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중국계 한국인]]
  • 데드맨 . . . . 2회 일치
         본명은 보스턴 브랜드(Boston Brand). 본래 [[서커스]]의 곡예사였으나 [[공중그네]] 공연 도중 저격당해 죽었다. 하지만 [[유령]]으로 남은 상.
         능력은 빙의.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상에서 데드맨이 들어온 사람은 잠이 든 것처럼 된다.
  • 데모데모닷데 . . . . 2회 일치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상담을 원해서 상담을 받아주고,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줘도 「하지만」나한테는 무리. 「하지만」못할 것 같고. 「그래도」 자신 없고. 이런 식의 답변만을 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사람, 혹은 그러한 도를 뜻한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인기 없는 「그치만그치만그래도(でもでもだって)」쨩의 생
  • 도게자 . . . . 2회 일치
         [[일본]]의 풍속.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절하는, 극도의 경의를 나타내는 인사법으로서, 중대한 사를 사과할 때 등에 사용한다. 보통은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무릎을 꿇고 한다고 하여 궤례(跪礼)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나온 '달군 철판 위의 사죄'가 도게자로 유명하다. 일명 철판 도게자. 작중에서 효우도 회장이 카이지와의 승부에서 패배한 [[토네가와 유키오]]에게 '사죄'로서 강요한 것이다. "진정 사죄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살을 녹이고 뼈를 우는 달군 철판 위에서도 사죄를 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이론에서 나온 벌칙으로, 자신에게 도게자를 하면서 돈 갚는 것을 미뤄주거나 떼어먹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대처하는 회장의 취미로서 언급된다. 벌칙은 이 철판 위에서 30초 이상 도게자를 하고 손바닥과 이마가 타는데도 버텨야 하며, 대체로 저항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게자 강요기' 같은 굴욕적인 기계까지 있다.
  • 도균 . . . . 2회 일치
         * 《[[왕사신기]]》 (2007년, MBC)
         [[분류:1976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도지한 . . . . 2회 일치
         |2017||KBS1||[[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드라마)|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차진||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평군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드래곤볼 . . . . 2회 일치
          프리더 군단의 몇몇 부대원들이 사용하는 광선총. 손 전체를 끼우는 형로 만들어져 있다. 위력은 프리더 군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베지터 정도 기준으로도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듯. 전투력 1천대 정도에서나 통용되는 무기가 아닐까.
         본래는 나메크별이 폭발할 떄까지 시간을 끌어서 프리더에게 타격을 주려다가, 프리더가 오공과 같은 무덤에 묻어주겠다고 도발을 하자 분노하여 잠깐 공세를 퍼붓는다. 오반이 잠깐 분노했다고는 하지만 최종형 풀파워 프리더를 후드려 팬다.--밸붕--
  • 떠있는 섬 . . . . 2회 일치
          * 남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섬]]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생계의 보고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2회 일치
          * 마녀 : 이능력을 가진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과거엔 인간들과 공존했으나 마녀들을 배척하는 유일신 신앙의 확대와 마녀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질투한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제각각 인간들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간들에게 숫자로 밀려서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또한 아이를 낳게 되면 마력이 약해지는데다 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마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능력을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다들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 또한 편견에 일조하고 있다.
         마이사카 코우 작품답게(...) 서비스신이 엄청나게 많다. 강철의 흰토끼 기사단 때와 마찬가지로, 삽화를 보면 여캐들이 전체적으로 헐벗은데다 성희롱성 장면이 넘쳐난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소설 내용은 또 진지한 게 함정. 여러모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한 형를 띠고 있다.
  • 런너즈 하이 . . . . 2회 일치
         뇌내에서 엔돌핀이 분비되어 괴로움을 잊게 하는 작용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본래 느껴야 할 괴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는 상이므로, 이 상에 빠져서 신체 능력 이상으로 달리게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 레킹 크루 . . . . 2회 일치
         애니메이션 [[The Avengers Earth's Mightiest Heroes]]에 등장. [[토르]]에게 패해 수감되었다가 브레이크 아웃 사로 탈옥했다.
          레킹 크루의 중심 인물. 원래 폭파 작업원이었으나 문제있는 도 탓에 해고되면서 범죄자 레커가 되었다. 약탈한 곳을 폭파시키고, 현장에 쇠 지렛대를 놔두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레커가 초인이 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바로 로키. 오딘에 의해 힘을 잃었던 로키는 레커의 호텔방에 들어가 퀸 카르닐라(Queen Karnilla)와 접촉해서 그녀의 힘으로 자신의 힘을 회복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레커가 돌아왔고, 힘이 없는 로키를 두들겨 패놨는데 이때 카르닐라가 레커를 로키로 오인하여 마법을 걸어 초인이 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법의 쇠 지렛대도 획득했다. 마법의 힘을 힘을 얻게 된 레커는 마구 날뛰며 토르를 이기기까지 했으나 시프가 가져온 디스트로이어에 의해 패했다. 그 뒤에 다시 토르와 싸우려고 [[탈옥]]했지만 힘을 회복한 토르에게 패배. 결국 다시 [[교도소]] 행. 교도소로 돌아온 레커에게 같이 감옥에 갇혀 있던 엘리엇 프랭클린 박사가 접근했다. 박사는 자신이 만든 감마 폭탄을 되찾아 [[뉴욕]]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거금을 벌길 원했다. 먼저 쇠 지렛대를 확보한 레커는 프랭클린과 마찬가지로 수감자인 헨리 캠프, 브라이언 칼루스키에게 폭풍우가 치는 동안 동시에 쇠 지렛대를 꽉 쥐도록 했고, 번개가 지렛대를 내리쳤는데 그 결과 다른 셋에게도 힘이 생겼다. 그리고 레킹 크루 결성.
  • 류영수 . . . . 2회 일치
         * [[평양 돌핀스]] 수석코치 (1992년 ~ 1995년)
         [[분류:194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고흥 류씨]]
  • 류원기 . . . . 2회 일치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된 윤길자의 남편으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검사와 의사에게 뇌물을 수수하는 등 담합 및 횡령 등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유호윤|제목=‘여대생 청부살해범’ 남편에 징역 4년 6개월 구형|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783485|날짜=2014-01-04|확인날짜=2016-02-11|뉴스=KBS}}</ref> 1심 재판부에서 횡령 형의만 적용받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서재근|제목=法, '여대생 청부살해' 영남제분 회장 징역 2년 실형 선고(1보)|url=http://news.tf.co.kr/read/economy/1312481.htm|날짜=2014-02-07|확인날짜=2016-02-11|뉴스=더팩트}}</ref> 2014년 2월 바로 상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여대생 청부살인’ 주치의·남편 모두 항소 네티즌 “뻔뻔의 극치.. 무기징역도 아까워”|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2|날짜=2014-02-11|확인날짜=2016-02-11|뉴스=go발뉴스}}</ref> 구치소에 수감된 채 2심 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로 선고 공판에 출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여대생 청부살해’ 남편 영남제분 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주치의는 벌금형|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0/2014103002297.html|날짜=2014-10-30|확인날짜=2016-02-11|뉴스=조선일보}}</ref>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류원정 . . . . 2회 일치
         | 가족 = [[김희]] (언니)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릴가민 . . . . 2회 일치
          * 수호성물로 정령신 니르다의 지팡이가 있어, 릴가민 왕국을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안전하게 지켜준다. 다만 이 지팡이는 릴가민 내부에서 어난 것에는 효과가 없다는 [[헤타레]]스러운 약점이 있다.
         1편과 4편의 배경도 릴가민 왕국으로 보는 리뷰가 많지만, 사실 1편과 4편은 명확하게 '릴가민'이라고 언급된 바가 없다. 오히려 1편과 4편의 배경 스토리는 릴가민 왕국의 역사와는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 하지만 릴가민이라고 언급하는 자료도 가끔 있어서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상. 어느 쪽이던 명확한 것은 없어서, 한데 묶는 '1도설'과 별도의 나라라는 '2도설'로 나누어지고 있다.
  • 마기/297화 . . . . 2회 일치
          * 야무라이하는 다음 행선지로는 "그 나라"가 좋겠다며 추천해준다. "그 나라"의 왕과 전화하면서 티격격하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
          * 3년 후 야무라이하의 요염한 자와 '''겁나 큰 뱀'''이 씬스틸러.
  • 마기/310화 . . . . 2회 일치
          * 구출은 했지만 유난은 타전의 저주에 걸린 상.
          * 알라딘은 그의 상가 알리바바가 이스난의 저주에 걸렸을 때와 같다며 치료에 들어간다.
  • 마기/324화 . . . . 2회 일치
          * 이제 그는 인간의 형 조차 유지하지 못하는데 거대한 부정형의 형상이다.
         우고의 말로는 성궁엔 시간이란 개념이 없고 인간의 체감으로는 이루 셀 수도 없는 권와 고독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알라딘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알라딘과 떨어진 이후로 급속히 망가진 걸로 보이고 자신이 전능한 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정도로 본래 목적을 잃었다. 쓸데없이 설명이 많았던 것도 이런 광기의 표출이었고 이번 화에서 유독 설명이 많은 것도 이런 요소를 두드러지게 한다.
  • 마기/325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는 너무 연하게 나타난 쥬다르를 빤히 쳐다보는데 이제 전쟁하겠다고 설치지 않냐고 묻는다. 쥬다르는 그런건 벌써 하고 왔다고 하는데. 모르지아나는 쥬다르가 영 협조성없이 굴자 그냥 백룡에게 어디서 찾아왔냐고 물어본다. 백룡은 그를 그의 고향 산골마을에서 찾아냈다고 하는데. 알리바바는 쥬다르도 고향이 있었다는데 놀라면서도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귀향이었다고 으스대는데 그꼴이 보기 싫었는지 백룡이 고향 마을에서 알아낸 일을 마구 폭로하기 시작한다. 쥬다르의 이름은 알 사멘이 붙인 예명이고 고향에서 불리는 본명은 따로 있는데 그게 "얼굴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것. 쥬다르는 백룡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더니 알라딘을 찾으며 화제를 필사적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알라딘은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지상 세계에선 거의 무적이나 다름 없는 상가 되었지만 성궁을 장악한 신드바드가 최종보스로 급부상한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 마기/330화 . . . . 2회 일치
          >더욱 좋은 차원에서 다 함께 다시 어나자!
          * 팔인장들은 이 계획을 "다시 어난다"거나 "신을 타도한다"같이 표현하며 기대에 차있다. 신드바드의 맹점을 알고 있었던 마스루르 조차 신드바드의 의견에 찬동하며 마지막 희망이었던 쟈파르도 "미리 알았다면 더 빨리 도왔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 마기/335화 . . . . 2회 일치
          * 신드바드는 정신체 형로 나타나 "유일한 미련"을 지우기 위해 일행과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그건 정신체 형로 나타난 신드바드 본인이었다. 그는 일부러 일행이 도전할 시간을 보장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네 사람은 신드바드가 루프를 뒤집어 씌우는데서 벗어난 자들. 그렇다면 이들이 신드바드와 싸우는 것도 "운명"이라는 것이다.
  • 마기/349화 . . . . 2회 일치
          * 너무 격렬한 도의 우고 때문에 얼이 빠진 알라딘과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 솔로몬 왕이 만든 세상이 루프로 환원돼 사라지는건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우고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더니 "그건 슬프다"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알라딘이 그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자 신드바드가 "다윗의 마법으로 머릿속이 혼탁해져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성 자체는 알마트란 최고의 마법사인 그대로다. 결국 그가 한 말이 단순한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
          * 알라딘은 우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다가간다. 그는 우고에게 "우고군은 망가진게 아니고 여전히 우고군"이라며 위로한다. 우고는 알라딘을 보고 조금 진정되는 듯 하다. 그는 곧 차분해진 도로 설명을 이어간다.
  • 마기/351화 . . . . 2회 일치
          * 방금 전까지 세상의 앞날을 놓고 열띈 토론을 하고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생각마저 돌려놓았던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갑자기 던전이 사라지고 성궁에 밤이 찾아온다. 성궁의 관리자 [[우고(마기)|우고]]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사. 우고는 혹시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 발동된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지만 알라딘은 방금 전 신드바드가 그 마법을 막지 않았냐고 반박하는데, 그 신드바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 [[연백룡]]과 [[쥬다르]]가 알라딘 일행을 따라잡았다. 백룡은 방금 전 목격한 부자연스러운 하늘의 변화를 말한다. 이들도 신드바드가 사라지고 갑자기 밤이 찾아온 사에 대해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보는데 딱히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때 우고가 "누군가 성궁의 시스템을 장악했다"는 답을 내놓는다.
  • 마루코메 . . . . 2회 일치
         1854년에 창업한 전형적인 일본 노포이나, 정식 회사로의 발족은 2차대전 후인 1948년(...)에 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로는 미소뿐 아니라 누룩[* 코우지, 밀을 이용하여 덩어리 형로 만드는 한국식 누룩과 달리 낱알 형이므로 입국(粒麴)이라고도 한다.]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2회 일치
         파르마 공작 필리프의 딸로서, 1765년 [[황자]]였던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였다. 아둔하고 무기력하다는 야유를 들은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스페인의 국정을 담당했다.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마철준 . . . . 2회 일치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2회 일치
         조사 결과 맥스의 가족을 죽인 자들은 제작자를 알수 없는 마약 "발키리"를 투약한 상였다. 가족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맥스는 알렉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하겠다고 말한다.
         하수구 밖으로 나온 맥스는 블라드의 메르세데스 벤츠와 만나게 된다. 불타는 카사 디 안젤로를 본 블라드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블라드는 맥스를 펀치넬로 저택까지 워다준다.
  • 먼슬리 맨션 . . . . 2회 일치
         [[일본]]의 주거형. '단기계약형 아파트'로서, 매 월 계약하는 형를 뜻한다. 비슷한 것으로 매 주 계약을 하는 '위클리 맨션'이 있다.
  • 멀티플맨 . . . . 2회 일치
         최초로 복제 능력을 발휘한 것은 그가 어난 시기였다. 어났을 때 [[엉덩이]]를 의사가 때렸을 떄 두명이 되었다. 그 뒤에 매드록스 집안의 친구인 [[X 교수]]의 제안에 따라 [[캔자스]]에서 조용히 성장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대니얼 매드록스 박사가 만들어준 운동 에너지 흡수 기능을 지닌 특수복을 착용했다.
  • 메타보 . . . . 2회 일치
         메타볼릭 신드롬이란, 대사 증후군을 뜻한다. 내장 지방형 비만 상이며, 혈압, 콜레스트롤, 혈당치 가운데 2개 이상의 수치에 이상이 있는 상를 뜻한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2회 일치
         === 상변화 ===
         메탈슬러그 2 부터 나온 시스템.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플레이어의 상가 변하게 된다. 보통은 이동속도나 공격속도가 변하게 된다.
  • 무직 . . . . 2회 일치
         [[직업]]이 없는 상.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슬픈 상. 멀쩡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무직이면 본인도 슬퍼지고 주변 사람들도 슬퍼진다.
  • 무치무치 . . . . 2회 일치
         살찌고 통통한 모습, 안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있는 상를 뜻하는 [[의어]].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2회 일치
         {{구별:[[이란|헤이안시대]]
          * [[이란]]
  • 미생체 . . . . 2회 일치
         [[미생]]의 작가 만화가 윤호가 공개한 무료 폰트. 윤호 자신의 손글씨를 모델로 했으며, 창작과 상용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범인 미즈우치 타카시는 신장 183센티미터, 체중 89킬로그램의 훤칠한 체격에 샤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미즈우치는 학생 시절부터 [[검도]]를 단련하여 [[검도]] 5단의 유단자였으며, 고교 졸업 후 2006년 4월에 경찰에 채용되었다. 근무 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은 매우 불성실한 남자로서, 2014년 8월 아내와 입적하기 전후의 기간에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 이외에 센다이에서 3명, 오사카에서 3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방의 텔레비전과 헤어 드라이어가 켜져 있는 상였으며,
  • 바키도/120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가 다시 피클을 도발하고 피클은 최종형로 승부에 임한다.
          * 분노한 피클이 완전히 최종형로 돌입한다.
  • 바키도/126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의 면전에서 연히 담배를 피우는 모토베 이조.
          * 무사시는 모토베가 우던 담배를 넘겨받아 피우며 그 연기를 2차전의 봉화로 삼자고 제안한다.
  • 바키도/141화 . . . . 2회 일치
          모토베는 병석에서 "우리는 모두와 이어져 있다"는 말을 했다. 현대인은 모두 누군가와 어떤 형로든 인연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사시는 어떨까? 바키는 이제가 돼서의 그의 지적이 얼마나 타당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사시의 고독".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쥔다.
          현대를 어난 인물들도 현대라는 삶의 틀 때문에 고독해 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가족이 있고 친구와 연인이 있다. 그러나 400년 전 전국시대에서 현대로 던져진 무사시에겐 그런 것 조차 없다. 그는 지금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 박경석 (1960년)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남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영,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지체 장애인]][[분류:밀양 박씨]]
  • 박경석(1937) . . . . 2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정치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차장, 논설위원, 주일본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 [[노우]]의 [[전두환]] 색깔 지우기로 인하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국정교과서(기업)|국정교과서]] [[사장]]에 임명되었다.
  • 박상철(가수) . . . . 2회 일치
          * 자옥아(2001) : 잘 들어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1박 2일]] 시즌 1에서 연기자vs스프의 노래대결을 할 때 잠시 [[노래]]가 나온다. 스프측에서 부르며, 부르는 사람은 막내작가 김대주. 굉장히 맛깔나게 잘 부르고 연기자측의 가수인 --[[MC몽]]--과 [[김C]]가 감탄하며 놀랄 정도, [[강호동]]도 멍때릴 정도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j3Yl_ilv4&t=3737s|한 번 들어보자]]. [[오마이걸]]의 [[승희(오마이걸)|현승희]]는 [[전국노래자랑]] [[인제군]] 편에 참가, 이 곡을 불러서 우수상을 받았다.
  • 박성원 (소설가) . . . . 2회 일치
         '''박성원'''은 1969년 대구에서 어난 소설가이다.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박윤경(가수) . . . . 2회 일치
         박윤경은 [[1970년]] [[8월 28일]] [[군산]]에서 어나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모친 [[심영진]]과 친분이 두터웠던 작곡가 [[임종수]]와의 만남으로 4년간 연습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고 그 다음해 [[1990년]]에 제4회 M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하여 가창상과 대상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1991년]]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분류:군산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대학교 동문]][[분류: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동문]]
  • 박재홍(1941) . . . . 2회 일치
         1941년 2월 28일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큰형 [[박동희]]의 아들로 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백수]]로 있다가 [[박준]]의 도움으로 [[포스코|포항종합제철]]의 중간간부를 역임하다가, 동양철관(주)의 사장, 회장을 역임하였다.
  • 박정근 (법조인) . . . . 2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어나 1950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59년에 임용된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1979년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1980년 전주지방법원 1980년 대구지방법원 1981년 광주고등법원 1982년 9월 1일대구고등법원, 198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7210009921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7-21&officeId=00009&pageNo=11&printNo=5656&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분류:1942년 어남]]
  • 박정수(배우) . . . . 2회 일치
          * [[역전의 여왕]] - 황희 모친
          * [[허준(드라마)|허준]] - 유의의 부인 오씨
  • 박정수(정치인) . . . . 2회 일치
         1932년 2월 9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어났다.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던 195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58년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5년에는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968년 무임소장관 보좌관을, 1973년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백남억]] 후보를 누르는 한편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참고로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은 1973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되어 남편 박정수보다 일찍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영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 박준홍 . . . . 2회 일치
         1947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상희]]의 아들로 어났다. 박상희는 딸만 다섯을 두고 아이를 아내 뱃속에 남겨두고 대구 10.1 사건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었다가 아들이 어나면서 대를 잇게되었다.
  • 박학기 . . . . 2회 일치
         박학기는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2남 중 막내로 어나 어렸을 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로 이사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3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나오고 1988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3집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곡으로 정식 가수 데뷔하였다.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로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있다.
         [[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밀양 박씨]]
  • 박홍 (신부) . . . . 2회 일치
         박홍 총장의 발언 이후 공안정국이 조성되며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는 소강상에 접어들고 그해 12월 국회에서 [[WTO]]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분류:194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반공주의자]][[분류:서강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예수회]]
  • 박홍우 . . . . 2회 일치
         * 국의 사법제도, 세계헌법연구 제12집 2권, 세계헌법학회 한국학회 (2006)
         [[분류:1952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박휘순 . . . . 2회 일치
         [[경기도]] [[수원시|수원]] [[영통구|영통]] 에서 어나 [[동남보건대학]] 컴퓨터응용학과 전문학사 졸업 이후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편입학하여 학사 졸업하였고 [[2001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2002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이어 같은 해 [[2002년]] [[코미디TV]]에서 방송된 [[김용만 (1967년)|김용만]]이 진행한 '공포의 타이틀 매치'라는 프로그램에 질러맨으로 방송에 데뷔 이후, [[2005년]] [[KBS]] 20기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동남보건대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수원시 출신]][[분류:1977년 어남]][[분류:200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상주 박씨]]
  • 배상면 . . . . 2회 일치
         대구에서 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순당 창업자 배상면씨 별세]</ref>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분류:1924년 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달성 배씨]]
  • 백결 선생 . . . . 2회 일치
         《[[삼국사기]]》에는 가문의 이력을 알수가 없다고 나와 있으나 《[[부도지]]》,《영해 박씨 족보》 등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박문량'''(朴文良)이며, 414년(실성마립간 13)에 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제상]]의 아들이며, [[자비왕]] 때 [[경주시|금성]]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고 한다.
         [[분류:414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5세기 한국 사람]][[분류:신라의 작가]][[분류:신라의 음악가]][[분류:신라의 시인]][[분류:신라의 문신]]
  • 백낙청 . . . . 2회 일치
         친가는 [[평안남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어나서 성장하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백붕제|'''백붕제''']]는 친일관료로 6.25 때 납북되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분류:193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브라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수원 백씨]]
  • 백남순 (1929년) . . . . 2회 일치
         [[2004년]] [[2월 2일]] [[외무성]] 부상 [[김영일]]과 함께 [[평양시|평양]]을 방문한 [[오스트레일리아]] [[알리스어 머레이 맥클린]] 외무상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성 대표단을 만나 면담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kcna.co.jp/calendar/2004/02/02-03/2004-02-03-001.html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09-10-2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60107061721/http://www.kcna.co.jp/calendar/2004/02/02-03/2004-02-03-001.html |보존날짜=2006-01-07 |깨진링크=예 }}</ref>
         [[분류:1929년 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청도 백씨]][[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장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사회주의자]][[분류:공산주의자]][[분류:수원시 출신]][[분류:김일성종합대학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폴란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분류:월북자]][[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백남억 . . . . 2회 일치
         1914년 11월 11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를 1936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9년 [[큐슈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71년 6월 김종필이 [[국무총리]]가 된 후에 [[실미도 사건]], [[광주대단지사건]] 등이 일어나자, 야당인 신민당과 협조하여 친김종필계였던 오치성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장관의 해임안 가결을 주도하였다. 야당과 손잡고 박정희가 직접 임명한 장관 해임에 찬성하는 항명 사를 일으킨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10.2 항명 파동]] 참조.
  • 백승주(정치인) . . . . 2회 일치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최순실 청문회]]의 새로운 X맨으로 등극 중이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우병우 증인 등 변호하는 듯한 답변 유도와 블릿PC에 집중하고 야당 의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백미는 왜 최순실의 PC를 조사했냐는 것. 그리고 [[노승일]]이 멋대로 문서를 복사해 갔다고 범죄행위로 몰았다. --노승일은 쿨하게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일에게 무슨 의도로 문서를 복사했냐는 등 어떻게든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의도와 정 반대로 답변이 나와서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와 친족관계임이 밝혀지면서 '친박 이완용을 넘어서는 친족 백승주가 왔다' 는 평이 나왔다.
  • 백진희 . . . . 2회 일치
         1990년 2월 8일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김천시) (봉산로) 에서 어났다. 2008년 독립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반두비]]》로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1=윤희성|제목=백진희│My name is…|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538|날짜=2013-06-18|확인날짜=2016-01-27|뉴스=텐아시아}}</ref><ref>{{뉴스 인용|저자1=최은화|제목=[쿠키人터뷰]‘어쿠스틱’ 백진희, “한국판 아만다 사이프리드? 좋죠~”|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88698003&cp=nv|날짜=2010-11-02|확인날짜=2016-01-27|뉴스=쿠키뉴스}}</ref>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2회 일치
         어찌된 영문인지 브리니커 백과사전에는,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알려지게 된 화염병의 생산을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4256a 참조]]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소련의 KS방화수류탄의 별명이 '몰로토프 수류탄'이라서 혼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인용 문헌이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http://ja.wikipedia.org/wiki/%E3%83%A2%E3%83%AD%E3%83%88%E3%83%95%E7%81%AB%E7%82%8E%E6%89%8B%E6%A6%B4%E5%BC%BE 참조]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4256a 브리니커]
  • 보루토/1화 . . . . 2회 일치
          * 카와키와 같은 형의 문신이 오른손에 나타난다.
          * 작은 두루마기 형의 인술을 장전해서 발사하면 해당하는 인술이 발동.
  • 보에몽 1세 . . . . 2회 일치
         그는 로베르의 장남으로, 그의 전처 알베리다에게서 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는 1081년에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면서 그를 데려가고, 그의 영지인 아풀리아를 동생인 루지에로에게 상속하는 대신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하면 그곳의 영지를 상속해주겠다고 한다. 이후 보에몽은 아버지가 남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러간사이 분열된 군대를 이끌고 계속 제국과 맞서지만, 테살로니카에 라리사란 곳에서 알렉시오스 1세에게 격퇴당하고 쫓겨난다.
         이후 보에몽은 아버지의 동쪽 영지를 상속받지만 역병의 여파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였고, 얼마안되어 알렉시오스에게 격퇴당한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2회 일치
         단군을 “기원전 3018년 산 좋고 물 많은 평양에서 이름 높은 종족 추장의 아들로 어났다”고 정의한다.
         삼국이 애초에 자주 전쟁을 벌이는 상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왜곡에 가깝다.
  • 불단 . . . . 2회 일치
         === 외부 형 ===
         네모난 직육면체 상자 같은 형로 제작되며,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문이 달려 있다. 크기는 장롱 만한 커다란 것에서,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상자 만한 비교적 컴팩트한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주로 나무로 제작된다. 소박한 모양도 있지만, 비싼 불단은 금박으로 장식하거나 옻칠을 하기도 한다.
  • 브라이아크 라오 . . . . 2회 일치
         [[라나(미래소년 코난)]]의 할아보지. 양 에너지의 권위자이며 양 에너지를 전송해주는 발전용 [[인공위성]]의 [[궤도]]를 달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에너지를 원하는 인더스트리아에 의해 쫓기고 있다. 라나가 쫓기는 이유도 이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 브이원 . . . . 2회 일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00화 . . . . 2회 일치
          * [[바네사 에노테이커]]로부터 뿜어져 나온 "운명의 붉은 실"은 한데 뭉쳐 고양이의 형상으로 변한다. 바네사는 이런 형로 이미지하지 않았는데 고양이가 나타나자 의아해한다.
          자신이 그 말을 했었다는걸 알고 있다. 그 순간 아스타는 아까와는 달리 십자가의 밑둥을 잘라서 노엘을 해방시킨다. 마녀왕은 뭔가 잘못됐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스타는 여전히 조종당하는 상.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노엘을 다시금 공격한다. 그때 또 한 번 고양이가 달려와 아스타에게 닿는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스타의 검은 노엘의 가슴을 관통하고, 마녀왕은 이번에야 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미모사 버밀리온]]과 "잭스 류그너"와 한 팀이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괴한에게 당해 빈사 상.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잭스는 괴한에게 당해서 초죽음 상. 당연히 이 자리에 오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콜로세움 벽 위에서 뛰어내려왔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2회 일치
          * 유노는 남아서 크리스탈을 수비하는데 가운데 알렉드라 또한 상대하려 한다. 이런 도가 알렉드라의 심기를 거스르고 마는데.
          * 진작부터 유노가 주목 받는데 불만을 품고 있던 알렉드라는 전력을 다한 모래 마법으로 공격해오고, 유노도 "진심으로 덤벼보라"며 도발하는 도를 취한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2회 일치
          * 이들의 마도서에 있는 세 잎 클로버는 성실, 희망, 사랑에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 만, 절망, 증오다.
          * 만의 라이어는 모방마법으로 리히트의 빛 마법과 야미의 어둠 마법을 동시에 구사한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야미는 연하게 "헤엄칠 필요는 없다"면서 아스타를 소용돌이를 향해 집어던져 버린다.
          * 지상인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흥분상다. 거의 10년 만에 방문자라고.
  • 블랙 클로버/63화 . . . . 2회 일치
          * 락과 매그너가 심기일전한 상로 일어선다.
          * 핀랄을 여전히 의욕이 없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듯 하며 바네사는 그 사이에 술을 더 마셨는지 상가 좋지 않다. 챠미는 여전히 자는 중. 그레이는 마법의 속성 상 전투에 유리하지 않을 거 같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2회 일치
          * 매그너는 그걸 보며 락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티격격했던 일을 떠올린다.
          * 키아토는 춤을 추며 무의식의 트랜스 상가 되는 요령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아스타는 또 즉석에서 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2회 일치
          * 그 상에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베토는 못 알아듣는다.
          * 아스타의 두자루의 검에 대해 알고있는 듯한 베토의 도로 미루어볼때, 아스타의 힘이 역시 보통의 마력이나 마법과는 다른 힘인듯 보인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노엘은 응전세를 풀지 않는다.
          * 노엘은 해룡의 포효를 쓴 반동으로 마력이 고갈된 상. 무방비한 상황에서 그대로 공격을 받는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2회 일치
          *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아직도 사를 관망하고 있다. 전세가 상당히 기울었는데도 둘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쾌활한 말투로 밑에 덫이 있으니 함부로 날아가면 안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보이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자서 돌격한다.
          * 붙잡힌 신세가 되어서도 라드로스의 도는 전혀 변함이 없다. 젤은 마지막으로 묻겠다며 물러날 생각은 없냐고 하는데, 라드로스는 참으로 유쾌하게 소리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2회 일치
          * 패배를 예감한 [[라드로스]]는 도를 일변해서 "다시는 사람들을 상처입히지 않겠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제발 검을 빼달라고 애원한다.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치료에 전력하고 있던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는 무방비한 상에서 라드로스에게 사로잡힌다. 그는 파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파나의 샐러맨더의 힘을 빼앗을 작정이었다. 파나를 위협해서 아까와 같은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 보라고 강요한다.
  • 블랙 클로버/98화 . . . . 2회 일치
          * 전투가 끝난 후 반마법에 빙의했던 상는 풀리고 몸은 상처투성이에 엉망. 동료들도 죄다 널부러져 있다.
          * 아스타를 휘감고 있던 반마법 빙의는 곧 풀린다. 아스타는 그 상가 무엇인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고 방금 전 싸움도 "꿈 속에서 싸운 듯" 뭔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신기한 힘을 얻었다는 감각은 있으며 언젠가는 그 힘을 완벽하게 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2회 일치
          * 바네사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인 것과 그리고 여왕과 싸우고도 무사하다는 것 모두에 놀란다. 그녀가 허둥대는 것과 달리 야미는 연하게 이런데서 뭘하는 거냐고 물어온다. 바네사는 그저 여왕에게 갇혀있는 신세고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야미는 자신이 뚫고 들어온 구멍을 가리키며 이제 나갈 수 있다고 다행이라고 말해댄다. 하지만 바네사는 자신은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침울하게 대답한다.
          * 바깥으로 나간 그녀에겐 온갖 엉망진창인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검은 폭우 단원들이었다. 초면인 바네사에게 작업거는 [[핀랄 룰러케이트]], 무심해 보이는 [[고든 아그리파]], 음식을 나눠주었던 [[챠미 퍼밋슨]]과 [[그레이(블랙 클로버)|그레이]], 언제나 티격격하는 [[락 볼티어]], [[매그너 스윙]], [[고슈 아들레이]]. 그리고 아스타와 노엘.
  • 블루 마블 . . . . 2회 일치
         한국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해병 출신에 뛰어난 과학자다. 연구하다가 실수로 반물질을 만들어서 네거티브 존에 빠지게 되었고, 그 안의 네거티브 존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슈퍼맨]]과 비슷한 능력에 [[반물질|반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조작할 수 있고, 일반적인 상의 센트리에게 어느정도 대항하는 초음속의 스피드와 93,000톤 가량의 물체를 감당해내는 힘, [[센트리]]를 지구 밖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초인. 같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하이페리온(마블 코믹스)|히페리온]], 센트리처럼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반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반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상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 블리치/673화 . . . . 2회 일치
          * 하쉬발트가 다가오자 이시다는 자신이 하쉬발트를 막을 테니 서둘러 양의 문으로 향하라고 말한다.
          * 그러자 하쉬발트는 "양의 문은 이미 파괴했다"며, 유하바하가 눈 뜨기 전에 처리해주겠다고 한다.
  • 블리치/674화 . . . . 2회 일치
          * 유시로는 상가 대단히 나빠서 조치가 필요하나 뾰족한 방법이 없다.
          * 그래서 그냥 순홍 뇌신전형으로 아스킨과 싸우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저하된 상라 움직이게 된 것만으론 상대가 되지 않았다.
  • 빅터 차 . . . . 2회 일치
         1959년 출생. 미국 이민자의 자녀로 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부인은 군인,정치인 김식의 딸이다. 김식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며 [[전두환]], [[노우]]와 육사 동기이다. 군에서 소장으로 전역했으며, 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됐다. 13대에서는 낙선했고, 14대에서는 [[민주자유당]], 15대에서는 [[신한국당]]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http://ko.pokr.kr/person/1933151 (참조)]] 13대에서 낙선한 이후로 농림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악용하는 존재. 히어로 포화 상라는 말이 나옴에도 다수의 빌런들이 있는 듯하며 그중에는 슈퍼 빌런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거물도 존재한다. 물론 뛰어난 히어로들, 특히 [[올마이트]]라는 저지선에 눌리고 있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달라지고 있다.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삼감의 난 . . . . 2회 일치
         [[상나라]]의 왕족으로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은 [[주나라]]에 항복하여 옛 상나라 영토에 봉해지고, 이를 [[주문왕]]의 아들들([[주무왕]]의 동생들)이 감시하게 되었다.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을 삼감(三監)이라고 한다. 무경은 덕(德)이 있어 옛 상나라 영토를 부흥시켰고, 본래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은 오히려 무경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반면 주나라는 주무왕이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어린 [[주성왕]]이 즉위하며 [[주공단]]이 섭정을 맡아 보좌하는 상가 되었다.
         제나라 제후로 봉해진 공망 여상이 토벌에 나섯으나 3년에 걸쳐 싸워도 승리를 얻지 못했다. 이에 주공단은 제후들을 모아 친정에 나서게 된다. 본래 '친정'이라면 천자인 주성왕이 전장에 나서야 하지만, 어린 나이였던 주성왕은 나서지 않고 섭정인 주공단이 사령관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공단이 왕위에 올랐다는 설도 있다.
  • 서상기 (1946년) . . . . 2회 일치
         |후임자 = (대구 북구 갑)[[정옥]]<br />(대구 북구 을)[[홍의락]]
         [[분류:194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호서대학교 교수]][[분류:웨인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드렉셀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달성 서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이]][[분류:친박]]
  • 서정제 . . . . 2회 일치
         1940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난 서정제는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어 마산지방법원장, 대구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분류:194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서지석(배우) . . . . 2회 일치
         런닝맨에서 놀랍게도 유재석 닮은꼴로 출전. 실제로 은근히 자세히보면 닮은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유재석의 말로는 신이 유재석 베이스에 눈과 입을 톡톡 넣은 버전이라고(...). 또 하하 말로는 컨디션 좋은 재석이형이라고 할 정도로 뿔안경을 쓴 서지석은 정말 유재석을 닮았다.
          * 무 '눈이 내리네'
  • 서효림 . . . . 2회 일치
         | [[주군의 양]]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07년 데뷔]][[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서귀포시 출신]]
  • 석경 . . . . 2회 일치
         당초 유교 경전을 새기던 석경은 [[학]]에서 학습용 [[교과서]]로서 쓰였으며, 석경에 새겨진 문장은 국가에서 편찬한 올바른 "원본"으로 여겨졌다.
         유교는 한나라 시기에 국교화 되었다. 경전의 문장을 공식화-통일화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국가교육기관인 학에서 이를 배우게 할 목적으로서 석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모방하여 불교, 도교에서 석경을 건설하게 된다.
  • 선조 . . . . 2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상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요약하자면, 능력도 있고 사람보는 눈은 있으나, 왜란같은 거대사를 대응해내는 능력은 부족했고, 말년에는 자기 아들에게 허수아비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모든 능력을 정치질에 돌린 양반이라 할 수 있겠다.
  • 소명(가수) . . . . 2회 일치
         * 2005년 [[KBS]] 라디오 진아쇼, 원음방송 홍서범의 가요톱텐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전실업전문대학 동문]]
  • 손담비 . . . . 2회 일치
         2008년 2월 29일 게임 [[프리스톤테일2]]의 주제가 "Change the World"를 불렀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36656 네이버 뮤직 - Change The World (프리스톤테일 2) O.S.T] 《[[네이버]]》</ref> 같은 해 4월 29일 손담비는 첫 미니 앨범 ''[[Mini Album Vol.1]]''을 발매하며 컴백 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Bad Boy"로, 전 에스블러쉬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가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 손담비는 주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활동했다. "Bad Boy"는 발표한지 2주만에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검색어 순위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배드 보이', 29일 미니앨범 공개 후 '대박 조짐'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27079|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08년 4월 20일|확인날짜=2011-02-06}}</ref>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는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었고, 무대에서 입고나온 코르셋 스타일의 파격적인 의상도 많은 관심을 받아 홈페이지가 폭주하기까지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코르셋패션 "열기"...홈페이지 또 "혼수상" |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3|출판사= 깜뉴스|저자=신명희 기자|날짜=2008년 5월 25일|확인날짜=}}</ref>
         [[분류:손담비]][[분류:1983년 어남]][[분류:밀양 손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손병조 . . . . 2회 일치
         * 법무법인 평양 고문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손석우(작곡가) . . . . 2회 일치
         손석우는 1920년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어났다. [[목상고등학교|전라남도 목포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목포 호남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41년에 작곡가 [[김해송]](金海松)의 소개로 조선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해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다. 이후 1957년에는 영화 《청실홍실》로 [[영화 음악]]감독 데뷔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2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흥군 출신 인물]][[분류:194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음악 작곡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목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송남헌 . . . . 2회 일치
         * [[권양]]
         [[분류:1914년 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송정현 . . . . 2회 일치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경북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송지효 . . . . 2회 일치
         | [[심윤|스테이]]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01년 데뷔]][[분류:영양 천씨]]
  • 송진현 . . . . 2회 일치
         1952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 합격해 제8기 [[사법연수원]]을 수료, 공군 법무관을 전역했다.
         [[분류:1952년 어남]][[분류:은진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수애 . . . . 2회 일치
         영화에서는 2004년 영화 《[[가족 (2004년 영화)|가족]]》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였고, 2008년 영화 《[[님은 먼 곳에 (영화)|님은 먼 곳에]]》에서 [[베트남 전쟁]]에 파병 간 남편([[엄웅]] 분)을 찾으러 간 순이 역을 연기하여 대종상, 영평상, 부일영화상, 황금촬영상 여우주연상을, 2010년 작품 [[심야의 FM]]으로 청룡영화상, 대한민국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자]]
  • 쉬르스트레밍 . . . . 2회 일치
         세계 최악의 냄새를 가진 식품으로 악명이 높다. 또 통조림이 밀폐된 상로 발효가 되기 때문에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해서 통조림 깡통이 볼록해진 상가 되기 쉽다. 그래서 '''터지기도 쉽다.''' 냄새나는데 터지기까지 하면 정말로 최악(…).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2회 일치
         레슬리는 중에 빠져서 병원에 입원. 번개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하게 된다. 카라와 그랜트는 레슬리를 병문안 오지만 그녀는 꺠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라지자 레슬리의 주변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내셔널 시티는 정전 상에 빠진다. 행크는 번개가 클립톤인 DNA를 통해서 레슬리가 변화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하며, DEO에서 체포하고 있는 자로넛을 이용해서 라이브와이어를 잡자고 한다.
  • 슈퍼맨 . . . . 2회 일치
         [[슈퍼히어로]]의 대명사. 원래는 [[크립톤]]이라는 외계 행성에서 어났지만 아기일 때 크립톤이 멸망하면서 [[지구]]로 보내졌다. 크립톤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가질 수 없는 초인적인 능력(괴력, 비행능력, 투시능력, 히트비전-눈에서 쏘는 열광선 등등)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크립톤인의 약점인 [[크립토나이트]]에는 약하다.
          * 붉은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 . . 2회 일치
         현재 스타크래프트 2가 발매된 상이며, 2017년 여름 첫번째 작품인 스타크래프트의 [[https://starcraft.com/ko-kr/|리마스터 버전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 [[스타크래프트 고스트]][* 현재 무기한 연기 상.]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2회 일치
         캡콤의 상가 상인지라 많은 프랜차이즈가 뭐한 판에서 유지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 스틸오션/영국 . . . . 2회 일치
         >왕립해군은 1916년 부터 1917년 까지 55척의 R-클래스 구축함을 건조했다. 이 숫자에는 이중 굴뚝을 장비한 개량형도 포함되어있었다. R-클래스 구축함은 초기 M-클래스 구축함의 개량형이었다. 두척을 제외한 대다수의 R-클래스 구축함이 1930년대 퇴역하였다. 레이디언트(Radiant)는 왕립국해군에 넘겨져 1957년까지 현역이었으며, 스케이트(Skate)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기뢰부설함으로 개장되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살아남았다. 스케이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호위선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HMS 유니콘은 정비실이 설치된 항공기 수리함 겸 경항공모함이었다. 1943년 3월에 건조된 후, 대잠임무와 훈련임무에 주력해왔다. 1943년 12월, HMS 유니콘과 다른 호위항모 4척으로 구성된 V기동함대는 아발란체 작전(Operation Avalanche)에 투입되었다. 1944년, 평양으로 보내져 MONAB(Mobile Naval Air Bases)의 창설을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예비역으로 있다 싱가포르에 배치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기 수송과 영연방 항모 보급 임무를 맡았다. 1953년에는 북한 해안에서 포격 당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2회 일치
         기체가 전체 체력의 50% 이상의 피해를 입게 되면 치명타(Critical Hit)가 발생된다. 이 경우에는 다음 네가지 상이상 중 하나가 생긴다.
          급증한 적의 동를 파악하기 위해 띄운 관측 기구를 보호하는 임무.
  • 식극의 소마/174화 . . . . 2회 일치
          * 이들은 브라인 냉각법으로 상가 좋은 여름 연어를 구해온 것.
          * 비결은 브라인 냉동법. 아리스가 설명하길 "브라인 용액"이라는 0도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용액으로 순간 급랭하여 최상의 상로 보존하는 "시간을 멈추는 냉동법"
  • 식극의 소마/188화 . . . . 2회 일치
          * 프라이드 베어는 한 눈에 보기에도 최상의 상로 튀겨져 있다.
          * 소마는 다시 임전세를 갖춘다.
  • 식극의 소마/190화 . . . . 2회 일치
          * 거기까지 들은 소우에는 그거야말로 "맛에 대한 탐구심과 집념"이라 말하며 "요리사의 얼굴을 보았다"는 극찬을 남긴다. 하지만 하야마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고 멘치까스가 자신의 프라이드 베어에 필적한다는 평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지마 긴은 그런 도에 일침을 가한다. 분명 하야마는 완벽한 맛을 추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요리인지도 모르는 채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 소마는 오로지 하야마에게서 "맛있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한 방 먹여주기 위해 이 요리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그러니 승부에서 한눈을 파는 하야마의 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하야마는 그제서야 눈이 떠진 듯한 표정이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2회 일치
          * 이 단순무식한 제안에 에리나는 말을 잊는다. 타도고로 메구미는 자기들이 어떻게 십걸을 쓰러뜨리냐며 우는 소릴하지만 소마는 타도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불언허는다. 타쿠미 알디니는 그러자면 식극을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소마도 "어떻게든 될 거다" 정도로 대충 구상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타쿠미도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 저쪽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다.
          * 에리나는 애초부터 소마의 구상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디스하며 이렇게 된 이상 자존심 같은건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혹시 자신이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애원하면 퇴학이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려하는데 정작 어디있는지 모른다. 린도는 무슨 생각인지 사실 아자미 총수가 여기 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진급시험장을 돌면서 상황을 시찰하고 다니는데, 때마침 이 회장에 들른 상이며 꾸물거리면 다음 장소로 갈 테니 빨리 헬기 착륙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는 점점 더 의미불명이라 혼란해하지만 쿄쿠세이 기숙사 첫날 "엄청난 발상끼리 부딪혀 생각하지 못한 해답이 어난다"는 말을 떠올린다.
          * 에리나는 이 모양이면 제대로된 요리가 나올리가 없다며 번뇌한다. 이젠 소마의 생각도 전혀 읽을 수가 없어서 에리나는 반쯤 포기 상에 이른다. 그 순간 에리나는 발상을 전환한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2회 일치
          너무 어처구니 없는 메뉴 선정. 마치 조작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뽑혔다. 정적에 휩쌓이는 대회장. 반역자 측은 물론 센트럴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네네 조차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카와시마와 관객들은 벌써 네네의 승리가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한편인 잇시키와 메기시마는 연하게 카드를 뽑을 뿐. 잇시키는 "변함없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모를 소릴하고 메기시마는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헤프닝처럼 시작돼버린 연대식극.
          * 이렇게 동료들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줄까지 쥐고 승부에 임하는 소마. 그런데 그 소마가 소바의 달인을 상대로 선택한 메뉴는 '''컵 야키소바'''였다. 그 황당한 선택에 화낼 기력도 없어진 동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 소리야"는 클을 날린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2회 일치
          * 당사자인 잇시키는 연하다. 그는 [[유키히라 소마]]에게 "리조또는 네 특기인데 가로채서 미안하다"는 말이나 한다. 소마는 전매특허는 아니라며 쑥스러워하는데, 그보다 할 말이 많은 쪽은 우리에 갖힌 후배들이다.
          쥬리오는 뒤늦게 "이런 남자였다"고 통탄한다. 주방에서 놀이를 하는 것 같은 도의 남자. 그런데 지켜보고 있는 [[나키리 에리나]]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녀는 언젠가 그가 참가한 식극에서 심사의원이 내린 평을 인용한다.
  • 식극의 소마/228화 . . . . 2회 일치
          * [[메기시마 토스케]]를 격파한 [[코바야시 린도]]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이대로 여세를 몰아 3rd Bout까지 참전할 세였다. 그녀는 츠카사에게도 함께 나가자고 제안하는데 의외로 츠카사는 약한 소릴했다.
          츠카사의 한 마디는 승전보로 뜨거워진 센트럴 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쿠가와 승부가 예상보다 힘겨웠고 그만큼 "소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3rd Bout를 쉴 것이다. 린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린도는 한심한 소리나 한다고 갈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키노쿠니 네네]]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구급반이 들것을 가져오고 있었다. 츠카사의 말이 맞았다. 린도도 메기시마의 라면은 정말 굉장했고 기진맥진해졌다고 인정했다. 츠카사는 아무 내색이 없는 사이토에겐 역시 터프하다고 감탄했지만 그도 허세는 부리지 않았다. 메기시마와 일전은 마치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았으며 자신도 예상이상으로 소모를 한 상라고 밝혔다. 이제 센트럴 측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시점이었다. 소마는 이제 에리나가 말했던 상황이라고 깨달았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2회 일치
          숙소에서 쉬고 있다가 카페가 가려고 로비로 나왔더니 쿠가 테루노리랑 마주쳤다. 본래 친분이 있었지만 적이 된 사이고, 전날 사이좋게 패배한 판이라 꽤 어색해한다. 쿠가하고는 서로 멘탈이 약하다고 디스를 퍼붓는데 쿠가가 문득 유키히라의 강함에 대해 입에 올리자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강함에는 위화감이 있다며 그가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도의 네네와 달리 쿠가는 되게 성가시게 여긴다.
          평하게 목욕하고 마사지 기계 위에서 뒹굴다 네네와 마주쳤다. 서로 대회장에 못 간걸 멘탈이 무너져서 그렇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쿠가가 먼저 "소마가 상대였던걸 후회해라"며 소마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한다. 의외로 네네가 거기에 수긍하면서 소마의 강함에 대한 걸로 화제가 넘어가는데, 그녀가 정말로 보통 1학년일 뿐이냐고 묻자 "이 땋은 머리가 뭐래는 거냐" 정도로 가볍게 반응한다.
  • 식극의 소마/238화 . . . . 2회 일치
          * 샤름은 향기의 정체가 "다마스크 로즈"라는 특수한 장미의 향임을 알아챈다. 이것은 모모가 가장 좋아하는 꽃. "장미의 여왕"으로도 불리며 가장 우아한 향을 가졌다고 한다. 일설엔 클레오파트라가 목욕물에 띄웠다고 하는 장미가 바로 이것. 모모의 사과타르트는 이 다마스크 로즈의 향을 사과에 베게 해서 만든 것. 하지만 [[하야마 아키라]] 등은 의문을 표한다. 일반적인 조리법으로 장미향을 사과에 베게하려면 사과가 푹 무를 때까지 함께 삶아 형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모모는 "삶지 않고 베게했다"고 설명한다. 우선 꽃잎을 정성들여 씻고 대량의 꽃잎을 한 번에 졸여서 장미시럽으로 만든다. 이 장미 시럽을 얇게 썬 사과와 함께 물에 담가두는 것으로 장미의 향과 색이 그윽하게 베이도록 만든 것이다.
          * 모모의 타르트가 압도적이지만 소마는 그녀를 상대하는 [[타도코로 메구미]]를 걱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것들,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배운걸 전부 쏟아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데. 메구미는 이미 그런 상에 들어가 있었다. 시노미야의 코치를 받은 그녀는 마치 투사와 같은 자세.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되뇌이고 있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2회 일치
         1936년 4월 6일, [[충청북도]] 중원군(現 [[충주시]])에서 어났으며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에 문단에 데뷔하여 '낮달', '갈대', '석상'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지라 과거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여러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그 중에서는 [[천상병]]이나 [[김관식]], [[조일]], [[민병산]], [[황석영]] 등이 있다. 특히 천상병이나 김관식 등은 서로 ~~육두문자~~구수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으며 세 사람이 하나같이 알아주는 주당들이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하였다.
  • 신고은(가수) . . . . 2회 일치
         [[1986년]] [[4월 7일]]에 어나 [[2011년]]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가수. 소속사는 인사이드 엔터테인먼트, [[경기도]] 출신. [[http://instagram.com/shinggoni|인스타그램]]
         음란마귀 섹스쟁이 야해 성변 성범죄
  • 신동미 . . . . 2회 일치
         * 2014년 [[tvN]] 일일드라마 《[[가족의 비밀]]》 ... 고란 역
         [[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
  • 신동일 (언어학자) . . . . 2회 일치
         교육과 연구분야는 영어평가(시험개발과 시행), 언어(평가)정책, 언어권리, 언어생계, 언어정체성, 말하기교육과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적정교육, 사회적기업, 기독세계관 등이다. 해당 분야로 80여편의 논문을 학술등재지에 게재했으며 10여권의 단행본과 번역본 중 몇 권은 문화관광부나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신현탁(영화배우) . . . . 2회 일치
         * 2015년 《[[개: dog eat dog]]》- 최수 역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평산 신씨]][[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2회 일치
          * 아기발도는 조선의 조 [[이성계]]의 대적자이다.
         아기발도 자체는 조선시대 초기에 사대부 계층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조선의 개창자인 조 이성계의 대적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기발도 이야기는 "왜군 장수 아기발도는 강했다. 하지만 장군 이성계가 물리쳤다. 따라서 이성계의 권력에 정당성이 있다."는 줄거리로서, 전형적인 '외부의 위협'(아기발도)에 대항하는 '내부의 영웅'(이성계)을 강조하여 국가의 수호자로서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바탕이 되었다.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2회 일치
         이 그림을 그린 야마다 우에몬사쿠는 기독교 신자였으나 당시에는 배교한 상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이 일으킨 봉기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시마바라의 난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시바마라 성에서 농성하던 중에 내부에서 [[화살 편지]]를 날려 막부의 토벌군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들통나 체포되어 처형당할 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십자군]]은 수 세기에 걸쳐서 여러 차례, 여러 형식으로 이루어진 만큼, '십자군 군기'로 분류할 수 있는 깃발은 그 종류도, 형도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 애초에 '특정한 깃발'이라고 볼 수 없다.
  • 아키즈키 리츠코 . . . . 2회 일치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상식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남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다. 디어리 스타즈가 상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
  • 안숙선 . . . . 2회 일치
         이 외에도 친이모 강순영 명인에게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와 약간의 가야금 병창을 배웠고, 함동정월(최옥삼류), 원옥화(강홍류), 김죽파(김죽파류)에게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으며, 20대에 상경한 이후에는 향사 [[박귀희]](박귀희류 가야금병창)에게 가야금 병창을 사사하여, [[판소리]], [[가야금 병창]], [[가야금 산조]]에서 모두 일가를 이룬 명인이 되었다.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시 출신 인물]][[분류:판소리 명창]][[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안종범 . . . . 2회 일치
         박근혜 대통령 등과 공모해 삼성 등 15개 전경련 회원사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에 조력한 혐의로 2018년 2월 13일 1심에서 징역 6년, 벌금 1억원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국정농단 연루' 안종범, 1심에서 징역 6년·벌금 1억원|url=http://news.joins.com/article/22369620|날짜=2018-02-13|출판사=중앙일보}}</ref> 이후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는 징역 5년, 벌금 6000만원을 선고받아, 징역 1년, 벌금 4000만원이 줄어들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4/2018082401286.html|제목=[속보] 국정농단 2심 최순실 징역 20년, 안종범 5년…崔 벌금 늘고, 安은 감형|성=|이름=|날짜=2018-08-24|뉴스=|출판사=}}</ref>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압박면접 . . . . 2회 일치
         [[면접]]에서 면접관이 일부러 면접을 받는 지원자에게 불쾌한 발언을 던지거나, 부정적, 비판적인 질문이나 발언을 하여 지원자의 성격과 자질을 확인하는 면접 기법이다. 압박면접의 예를 들자면 일부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짜증이 나는 질문을 하는 것, 노골적으로 위압적인 도를 지원자에게 가하는 것 등이 있다.
         따라서 정신력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면접에서 스트레스를 줘서 대응능력을 확인한다는 것이 압박면접의 명분이다. 감정을 컨트롤 하면서 재치있는 도로 대응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 앙주 제국 . . . . 2회 일치
         플랜저넷 왕조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 자식들은 [[리처드 1세]], [[존 왕]]이 다스린 영토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영토는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노르망디]], 그리고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을 거쳐서, [[피레네 산맥]]에 도달하는 방대한 영토였다. 앙주 제국이라는 표현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으며, 근대에 이 시기 플랜저넷 왕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 야설록 . . . . 2회 일치
         * [[2004년]] 《황기》<br />《낭만수라》<br />《월인몽 월인색》<br />《무림판관》<br />《역천행》<br />《무적》<br />《사대세가》<br />《아미타불》<br />《표향》 {{ISBN|978-89-91036-49-9}}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만화 스토리 작가]][[분류:무협 작가]][[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양예나 . . . . 2회 일치
         ||<bgcolor=#FF69B4><:>'''{{{#ffffff 별명}}}''' ||<(>'''[[다람쥐]]''', [[양(동물)|양]], --언니바보--[* 스킨십을 워낙 좋아해서 APRIL이 간다 1화에서 멤버들이 변라고 놀린 적이 있다. --특히 [[이나은]]이 격하게 대답했다--], 예람쥐, 옌, 옌코리타, 씽이 ||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다. 2000년에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다. 15세라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이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아이유]]와 [[샤이니]]의 [[민]], [[f(x)]]의 [[설리(배우)|설리]]와 [[크리스탈(f(x))|크리스탈]], [[포미닛]]의 [[권소현]], [[현아(가수)|김현아]][* [[포미닛]]으로 데뷔 전 [[언더걸스]] 멤버였다.], [[유용근밴드리즈15]]의 [[오하영]], [[언더걸스]] [[선미]], 배우 [[안소희]][* [[언더걸스]] 멤버였다.]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막내가 아닌데, 팀에 데뷔 당시 기준으로 [[이진솔|前 대한민국 공식 최연소 여자 아이돌]]이 있기 때문.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2회 일치
         이 상에서 한번 더 공격하면 짓밟아서 축 늘어지게 한다. 아무리 봐도 죽은 것 같지만 살해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Hidden Blade. 무방비 상의 적을 죽이는 속도가 빨라 암살에 애용되는 무기. 플레이어의 양 손목에 설치되어있다. 두명이 나란히 서 있을 경우에는 동시에 암살할 수 있다.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2회 일치
         초등학교-중학교, 혹은 중학교-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일관적으로 진학하는 형의 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일체화 되어 있는 중고일관교(中高一貫校)가 흔히 있는 형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도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다닐 수 있는 경우도 있다.
  • 오경훈 . . . . 2회 일치
         * [[2010년]] ~ : 포럼 국민안 공동대표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
  • 오국영 . . . . 2회 일치
         [[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상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남선전기주식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남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분류:1889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오기노 쿄우사쿠 . . . . 2회 일치
         1882년 3월 25일, [[아이치현]] 출생. 본래 성씨는 나카무라(中村). 아버지는 나카무라 히코사쿠(中村彦作)이며 차남으로 어났다.
         여성의 생리 주기를 연구하여, 배란기와 임신가능한 기간에 대한 학설을 발표, 임신수조절이 응용되는 오기노학설(荻野学説)을 제창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일본에서는 배란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을 오기노식(オギノ式)이라고 부른다.
  • 오병희 . . . . 2회 일치
         1953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다. 1977년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순환기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해주 오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
  • 오승근 (1908년) . . . . 2회 일치
         [[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미군정]] 지역에서 그대로 판사로 근무했다.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던 중 [[1946년]]에 대법원장 [[김용무]]에 의해 민사로 전임되는 일이 있었다.<ref>{{뉴스 인용
         [[분류:1908년 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오시만 . . . . 2회 일치
         1647년(인조 25)에 어났으며 이조참판 만취 오백령(吳百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증오단(吳端)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 오정일(吳挺一)이다. 어머니는 나주 정씨로 사인(舍人) 정호선(丁好善)의 딸이며, 삼촌인 예조판서 오정위(吳挺緯)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양어머니는 박씨로 박유경(朴由慶)의 딸이다.
         [[분류:1647년 어남]][[분류:1700년 죽음]][[분류:음서]][[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동복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병사한 사람]]
  • 오정근 (1929년) . . . . 2회 일치
         |어난 곳=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분류:1929년 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수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장]][[분류:국민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
  • 오정희 (소설가) . . . . 2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ref name="gwe" />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새》,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저녁의 게임》, 《동경》, 《직녀》, 《미명》, 《중국인 거리》,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술꾼의 아내》, 《불꽃놀이》, 《돼지꿈》, 《가을 여자》, 《그리움의 발견》 등이 있다.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라벌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오영수문학상 수상자]]
  • 오창경 . . . . 2회 일치
         * 《로맨틱 무브먼트, 서울》 (2010년) - 민
         [[분류:1975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오태영 (1948년) . . . . 2회 일치
         '''오영''' ([[1948년]] [[4월 6일]] ~ , [[서울특별시|서울]])은 대한민국의 작가이다.
         [[분류:194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오현근 . . . . 2회 일치
         6월 1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서울를 앞두고 [[오곤|오승택]]이 등록되면서 1군에서 말소되었다.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서울언북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우건도 . . . . 2회 일치
         1949년 충청북도 [[괴산군]] 상모면(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어났다. 수안보초등학교, 충일중학교, [[충주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교통대학교]] 일반대학원 행정학과의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3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게시글에 ‘2005년 6월 우 후보가 총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라고 했으나 실제 총무과장 근무기간은 2005년 7월 25일부터 그 해 9월 4일까지였다"며 “폭로 글은 악의적으로 날조된 허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게시자가 성추행을 당한 날 모 식당에서 마셨다는 주류도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류 납품 업체가 확인해줬다”고 부연 설명했다. 현재 우 예비후보 관련 미투 폭로 글은 작성자에 의해 민주당 도당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된 상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283022|*]]
  • 울진군 . . . . 2회 일치
         의외로 거리는 서울-영주-봉화-울진이 서울-동해-삼척-울진보다 짧다. 전자는 300km, 후자는 340km. 하지만 [[36번 국도]]의 상는 굉장히 나쁘다. 반면 [[7번 국도]]는 거의 준 고속도로급이기 때문에 [[강릉시]]에서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예전에 3시간 가까이 걸리던 [[포항시]]도 역시 버스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정차에 한해서지만....완행노선은 여전히 3시간 정도 걸린다
          울진군 북부를 흐르는 하천인데, 풍광이 좋아 트래킹 코스로 개발되어 트래킹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중간에 생탐방로도 개설되어 있다.
  • 원피스/841화 . . . . 2회 일치
          * 손가락을 베여가며 열심히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풍이 몰아쳐서 어머니의 거처까지 가기 힘들어진다.
          * "개조"되었다고 표현하는 것, 레이쥬가 상디형제의 "누나"인걸 보면 평범하게 어났다가 초인으로 개조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 원피스/842화 . . . . 2회 일치
          * 루피는 그 상에서 기어4를 감행, "탱크맨 만복버전"이란 어처구니 없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 신기술 캐논볼로 날아간 크래커는 단단한 상의 비스킷 병사를 몇 개나 뚫고 한없이 날아간다.
  • 원피스/844화 . . . . 2회 일치
          * 오랜만의 재회에도 뜻밖의 폭언과 폭행으로 나오는 상디. 몽키 D. 루피는 동료의 돌변에 영문을 몰라한다. 하지만 상디는 연한 도로 "날 정말로 생각한다면 왜 맞이하러 왔냐"고 폭언을 내뱉는다. 그는 영세한 밀집모자 해적단 보다 빅맘 해적단이 훨씬 믿을만하고 루피가 해적왕이 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미는 무슨 장난이냐고 말하다가 진지한 상디의 표정에 말문이 막힌다. 루피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날 속여온 거냐"고 묻는데 상디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 "체감"시켜 준다며 디아블잠브의 자세를 취한다.
  • 원피스/846화 . . . . 2회 일치
          * 루피가 생크림을 뿌리치며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기이한 공간으로 바뀐다. 물리법칙을 무시한 듯 위도 아래도 없는 이상한 공간이다. 여기는 몬도르가 사용하는 "책의 세계" 나미가 조심하라고 소리치자 루피를 둘러싸고 있던 환영은 사라진다. 하지만 오페라의 생크림에 발이 묶인 상였고 부하들이 "크림 펀치"로 양쪽에서 공격하자 그대로 맞고 쓰러진다.
          * 이상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 영혼이 된 브룩. 보물전 옆에 있는 주류저장소에 페드로와 브룩의 본체가 있다. 브룩은 영혼상로 돌아와 들었던 얘기를 전부 전달한다. 페드로는 하필 이런 시점에 경비가 강화되었다며 밤에도 틈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의 존재가 타마고 남작에게 알려진 시점에서 이미 희망은 사라졌던 것이다. 그는 루피 쪽이 난항을 겪고 있으니 그들만이라도 임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하는데.
  • 원피스/850화 . . . . 2회 일치
          그 결연한 도에 빅맘도 "멋진 사내"라 칭찬하며 다시 한 번 벌을 깎아 50년치만으로 그쳤다.
          그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데, 그 상대는 상디의 누나 [[빈스모크 레이쥬]]였다. 레이쥬는 분명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상였는데.
  • 원피스/857화 . . . . 2회 일치
          * 벳지는 홀케이크 아일랜드 북서 쪽 "파이어 탱크 해적단" 아지트에 있다. 징베를 신용해 동맹을 진행하지만 루피의 도에 따라 결과가 바뀔 거라고 하는데.
          나미는 독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일단은 잊겠다"며 한 발 물러나며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죽어가는 것 같았던 상디가 "그건 프로포즈냐"며 거의 원상로돌아온다. 루피는 마침 자신도 [[빈스모크 레이쥬]]에게 해독을 받은 일을 언급하고 일행은 빈스모크 일가를 꼭 구하기로 결정한다.
  • 원피스/868화 . . . . 2회 일치
          상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절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상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사색, 그 평한 루피 조차도 절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미는 물론 [[쵸파]]나 [[징베]] 조차 이 참담한 실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끝이다. 여기는 홀케이크 성 옥상. 도망칠 곳도 없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
  • 원피스/885화 . . . . 2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가 평정을 되찾자 [[몽키 D. 루피]]는 기어4 상에서도 수세에 몰린다. 그럼에도 루피는 같은 찬스는 반드시 다시 오고 그땐 기어4의 공격이 먹힐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확신과는 달리 루피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기어4의 제한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카타쿠리가 그걸 비꼬자 루피가 그걸 자각한다. 루피는 곧바로 퇴각하며 패기를 재충전할 10분을 벌려고 한다. 카타쿠리는 곧바로 추격에 나서는데 지친데다 기어4까지 풀린 루피로선 떨쳐낼 수가 없다.
          * 써니호는 토트랜드 해상에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다 위는 특별한 이상도 위협도 없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결국 관건은 [[상디]] 일행이 만드는 케이크. 그게 없으면 모든게 허사다. 그 우려대로 빅맘해적단의 선단이 총출동해 다시금 추격을 시작했다. 밀집모자 일당과 파이어탱크 해적단, 양해적단이 그 목표다.
  • 원피스/886화 . . . . 2회 일치
          * [[상디]]와 [[샬롯 시폰]], [[샬롯 푸딩]]은 완성된 재료들을 배로 옮기려 하는데 [[샬롯 오븐]]이 훼방한다. 푸딩은 가도 좋지만 시폰은 배신자이니 처단해야 한다는 것. 상디는 숨어있는 상라 구해주지 못한다. 시폰은 오픈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 마차도 마침 항구 근처에 있어서 벳지의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벳지가 해안으로 들어오자 빅맘의 선단이 해안을 봉쇄해 벳지는 독 안에 든 쥐신세. 벳지는 그렇게 순순히 잡히는가 싶었지만, 배 위에서 마차의 오븐을 저격해 버리고 아들과 아내 앞에서 "이게 내가 살아가는 법"이라며 당당한 도를 보인다. 이 저격 덕에 오븐이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시폰은 놓여나지만, 결국 항구는 봉쇄되고 일행이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데.
  • 유곽 . . . . 2회 일치
         전근대시기에 있었던 매춘업소의 형. 유곽의 곽(郭)은 성곽이라는 의미로서, 그 말에서 보여주듯이 외부와는 벽이나 도랑으로 차단하여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 ㅊ출입구를 한 곳으로 하여 철저하게 관리되는 형로 만들어진 매춘업소이다.
  • 유미(가수) . . . . 2회 일치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2013년 주군의 양 OST Part 8 (Lst One)
  • 유승옥 . . . . 2회 일치
         [[1990년]] [[6월 21일]]에 어났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이다. [[공주대학교]] 생물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교생으로 수업을 가르친 적이 있다.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 유지연(탤런트) . . . . 2회 일치
         * [[2016년]] [[KBS2]] TV소설 《[[저 하늘에 양이]]》 - 홍수지 역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정읍시 출신 인물]]
  • 유태웅(탤런트) . . . . 2회 일치
         ||<#88b04b> {{{#ffffff '''이름'''}}} ||<(> 유웅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어나서 어린 시절에 귀국한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성장했다. [[1993년]]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단역 출연해서 연기자 첫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94년]] [[문화방송|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이현경]], [[최지우]],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 2003년에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역으로 열연했다.
  • 유하나(1986) . . . . 2회 일치
         이 당시 소속팀이던 KIA팬들의 여론은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1.유하나 본인이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 2.연기 활동을 재개할 경우 지방보다는 수도권이 유리함, 3.어날 2세의 교육여건 등등의 이유를 들어 2013년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는 이용규의 수도권 팀이적을 추측하는 일부 팬들이 있기도 했는데...[* 참고로 이 당시 [[이정민(KBS)|KBS 이정민 아나운서]]의 트위터를 보면, 유하나와 이정민 아나운서의 예정일이 9월 18일로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대한-유하나의 아들인 김도헌 딸인 김선정은 9월 6일에, 이정민 아나운서대신출산 딸인 박온유는 9월 16일에 어났다.]
  • 윤균상(1987) . . . . 2회 일치
         다음 카페에 리시안셔스라는 팬카페가 있는데, 리시안셔스가 어떤 꽃들과도 잘 어울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윤균상을 닮아 팬들이 붙여 준 이름이다. ~~케미균~~ 윤균상은 꽃 이름인 것에 착안해 카페는 꽃밭이라고, 팬들은 꽃님이라고 부른다. 팬 사랑이 남다른것으로 알려진 그의 SNS를 보면 팬들과 소통을 활발히 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동료 연예인들이나 스프들과 남다른 친화력을 자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꽤나 애교가 많은 성격인 것 같다.
         || 제5회 아시아 평양 스타 어워즈 || 신인상 || 닥터스 ||
  • 윤덕홍 . . . . 2회 일치
         민주진보진영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윤덕홍은 단일화 불참 이유에 대해 "경선을 몰랐고,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갑자기 출마하게 됐기 때문에 그때는 경선에 관심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서울 교육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상에서 출마를 했다'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부총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대학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동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윤인조 . . . . 2회 일치
         * [[2019년]] [[KBS2]] 일일드라마 《[[양의 계절]]》 - 진정해 역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광양시 출신]]
  • 윤휘 . . . . 2회 일치
         윤휘는 [[1577년]](선조 11년) [[의정부]][[영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어났다. [[사용]]으로 [[증직|증]] [[좌찬성]]에 추증된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증직|증]] [[의정부]][[영의정]] [[윤변]](尹忭)이다. [[윤근수]]는 그의 숙부였고, [[윤방]], [[윤흔]]은 그의 형이며, [[윤훤]]은 그의 동생이었다. 일찍이 우계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분류:1571년 어남]][[분류:15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서예가]][[분류:조선 광해군]][[분류:조선 인조]][[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해평 윤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
  • 은혼/578화 . . . . 2회 일치
         * 우츠로와 싸우는 우미보즈. 우츠로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생물이란 아무리 진화해도 피식자와 포식자를 정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며 "생계의 정점에 선 우리가 이렇게 되는건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말한다.
         * 황안은 과거 대전쟁에서 행성연합의 집중공격을 당해 [[용맥]](아르타나)이 폭주되는 사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야토는 모성을 버려야했고, 용맥의 영향으로 황안은 돌연변이 생물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 은혼/580화 . . . . 2회 일치
         * 용맥에서 어난 돌연변이라는 점 때문에 [[우츠로]]와의 관계도 조명되고 있다. 용맥에서 어난 존재인 코우카가 죽었다면 우츠로 또한 불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 은혼/582화 . . . . 2회 일치
         * 결국 우미보즈는 카무이를 쓰러뜨리고 만다. 멀리서 지켜보던 코우카는 각혈하고 상는 더 나빠진다.
         * 용맥의 불사신들은 별과 함께 어나 그 별의 아르타나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체내의 아르타나가 다하면 사라지고 만다. 비록 황안은 이미 죽음의 별이라 아주 적은 결정석만을 구할 수 있었고, 이것 조차 잠시 생명을 연장하는 정도 밖엔 되지 않았다.
  • 은혼/593화 . . . . 2회 일치
          * 약 500년의 세월 동안 살인을 계속해온 끝에 그들을 멈추고자 하는 인격이 어났는데, 그것이 요시다 쇼요.
          * 그는 언제 어디서 어났는지, 본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저 박해를 받은 기억 뿐이다.
  • 은혼/597화 . . . . 2회 일치
          * 하타 황자 재등장
          * 수년만에 하타황자 원작에 복귀!--진짜 완결각--
  • 은혼/603화 . . . . 2회 일치
          * 그는 분명 이 사 와중에 가장 위험하고 무너뜨리기 어려운 곳에 있을 거라는 것.
          * 젠조는 조정의 추를 알리고 이 나라엔 가망이 없으니 부디 도망치라고 권한다. 자신이 지구를 탈출하는 배를 준비하겠다는데.
  • 은혼/609화 . . . . 2회 일치
          * 해방군 2진은 거대 대포 타케미카즈치를 중심으로 공중폭격을 가해 "검은 안개"를 워버린다.
          * 에도에 있던 모든 "기계"들이 쇼크를 일으켜 불능 상에 처한다.
  • 은혼/642화 . . . . 2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 발사까지 앞으로 3분. 엔죠 황자는 단신으로 일대의 병력을 묶어두고 있는 반사이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을 세라는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서툰 넘겨짚기였다. 반사이의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중추 시스템을 향해 한걸음 씩 옮기고 있었고 그때마다 그를 막으려는 병력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이제 벽 하나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적은 셋. 그의 의지가 이겼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 남은 셋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고지에 도달했다.
          * 난데없는 폭발과 함께 반사이의 몸은 저 멀리까지 튕겨나갔다. 한 걸음씩 걸어온 고지가 다시 멀어졌다. 그는 중추시스템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그 문 뒤엔 쓰러뜨린 것 만큼이나 많은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고 신스케가 얌전히 문을 열개 두지 않았다. 그들은 문 째로 포격을 가했고 반사이는 그대로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전과를, 쓰러지는 동료들의 보고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던 최후의 적들은 경계세를 풀지 않고 철저하게 옭아 매었다.
  • 은혼/643화 . . . . 2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파괴됐다.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이 정지되고 선내의 에너지 회로도 하나둘 정지. 긴급 복구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선내가 휴면에 들어갔다. [[엔죠]] 황다는 별다른 당황없이 선내에서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려던 자들의 현황을 확인한다. 허나 에너지 상가 저렇게 된데다 대부분의 구역이 일시정전 상가 되면서 파악이 불가능했다. 복구까지 최대 15분. 그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 은혼/648화 . . . . 2회 일치
          >거기에, 그 죄에서 어난 자가
          자작의 호통과 함께 그 병사는 금밭 붙잡혔지만 사의 파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작은 엔쇼의 시체를 추스르면서 맞은 편에, 또 한 사람이 쓰러지는 걸 보았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 노부노부였다. 노부노부가 총에 맞았다. 피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입가에서 한줄이 선혈이 비져나왔다. 그 상황이 전파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고 병사들이 다시 총을 집기까지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황은 다시 일촉즉발. 언제라도 총성이 울릴 것만 같았다. 그때 노부노부의 입에서 그만두라는 호통이 튀어나왔다.
  • 의상 (신라) . . . . 2회 일치
         의상은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관음굴]](觀音窟: [[낙산사]])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교학]]을 강술하여 [[화엄종]]([[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분류:625년 어남]][[분류:702년 죽음]][[분류:7세기 철학자]][[분류:입당승]][[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작가]][[분류:불교 철학자]][[분류:무속의 신]][[분류:경주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강덕 . . . . 2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경상북도 영일군[*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의 장기면 산서리에서 어났다고 한다. ]||
         1962년 [[경상북도]] 영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장기면)에서 어났다. 포항산서초등학교, 포항장기중학교, 대구[[달성고등학교]], [[경찰대학]] 1기,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공안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계순 (1927년) . . . . 2회 일치
         [[분류:192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여성주의자]][[분류: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노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정무제2장관]][[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광호 . . . . 2회 일치
         '''이광호'''([[1963년]] ~ )는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교수이다. [[1963년]]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이국철 . . . . 2회 일치
         1981년부터 10여 년간 공무원으로서 생활하였다. [[해중공업]] 창원 공장 인수, 2005년 [[신아조선]] 인수에 성공하였고 [[SLS중공업]]과 [[SLS조선]]을 운영하였다.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이규환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1944년]]부터 강제징용으로 노역을 하던 중 [[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 라디오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을 영화화하는 등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 후 연출한 《춘향전》(1955)은 전후 대한민국 영화 부흥의 기폭제로 평가받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영화의 경향은 민족주의, 서정적 리얼리즘, 향토색으로 주로 설명된다.
         [[분류:1904년 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감독]][[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이근직 . . . . 2회 일치
         1903년 [[경상북도]] 김산군(현 [[김천시]])에서 어났다. 이후 관상가의 조언으로 이근직으로 개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가서 도쿄고료척식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도 1949년까지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서울특별시청]]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 제2국장, 1952년 [[함영]]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부터 1957년 9월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경상북도지사 재임 중이던 1957년 8월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났다. 1957년 9월부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장관|장관]]을 지내다가 1958년 6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자유당]] 당무위원으로 있다가 1959년 3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임 중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구속 기소되었다.
  • 이기백(군인) . . . . 2회 일치
         [[1931년]] [[충청남도]] 연기군(現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어났다. [[전두환]], [[노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
  • 이동춘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어났다. [[1980년]] [[11월 18일]] [[대한민국]]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81년]] [[11월 18일]] [[OPBF]] 밴텀급 경기에서 [[오장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1983년]] [[7월 26일]] 대한민국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으며, [[1992년]] [[6월 6일]] [[일본]]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다.
         [[분류:1963년 어남]][[분류:199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 중 사망한 권투 선수]]
  • 이방원 . . . . 2회 일치
          2대 [[정종]] 이방과→3대 종 이방원→4대 [[세종]] 이도
         말년에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으나 그 후에도 중요한 분야는 여전히 직접 챙겼고[* 대마도 정벌 등을 진두 지휘하였고, 위에서 말한 심씨 일족을 멸문시킨 것도 상왕 시기의 일이었다. (여담으로, 이 때 ~~써킹한답시고~~ 소헌왕후도 폐출하자는 논의가 올라왔으나 종은 이를 일축하여 이것이 사감이 전혀 없는 정치적 숙청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4년 후 서거한다.
  • 이병석(정치인) . . . . 2회 일치
         1952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어났다.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강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옥중 출마한 [[무소속]] [[허화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허화평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박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이보희(배우) . . . . 2회 일치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종(조선)|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배우)|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조선)|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 이상무(만화가) . . . . 2회 일치
          * 양을 향해 던져라[* 위의 “울지 않는 소년”의 에니메이션 버전, 그러나 “울지 않는 소년”이 축구를 소재로 한 반면 “양을 향해 던져라”는 야구로 설정되었다]
  • 이상훈 (1987년) . . . . 2회 일치
         2010년에 입단하였다. [[2013년]] [[3월 1일]] [[투수]] [[길곤]]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다.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 이선아 . . . . 2회 일치
         '''이선아'''는 [[1985년]] [[7월 22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에서 어났고 [[1998년]]를 거쳐 [[2001년]]에를 거쳐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전의 이씨]]
  • 이선희 . . . . 2회 일치
         * [[1985년]] [[해제과]] 노노껌 (Feat. [[이용식 (희극인)|이용식]])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이시형 (1934년) . . . . 2회 일치
         * 1999 환평양정신의학회(Pacific Rim College of Psychiatrists) 학술논문상
         [[분류:193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이안 (시인) . . . . 2회 일치
         196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어나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5월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동시 전문 팟캐스트, 이안의 동시 이야기,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ref>http://www.podbbang.com/ch/8204</ref>를 진행하고 있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7년 어남]][[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시인]]
  • 이영수 (야구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4라운드([[해 타이거즈]])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광산 이씨]]
  • 이영아(배우) . . . . 2회 일치
         || 2009년 || KBS2 || [[천추후(드라마)|천추후]] || 대목왕후 || 특별출연 ||
  • 이인민 . . . . 2회 일치
         [[1392년]] 7월 조선 건국 후 아들 이직(李稷)이 개국공신(開國功臣)ㆍ좌명공신이 되어 조(太祖) 때에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증 추충익대보조공신(推忠翊戴補助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경연판이조사 감춘추관사(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經筵判吏曹事監春秋館事)에 [[추증]]되었다.
         [[분류:고려 사람]][[분류:고려의 문신]][[분류:조선의 문신]][[분류:이인임]][[분류:성주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 조]]
  • 이인영(정치인) . . . . 2회 일치
         1964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충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정보통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였다.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통령선거 직선제 쟁취를 위한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 [[노우]]의 항복선언을 받아내자,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 중심으로 [[전대협]]을 결성하여, 1987년 7월 대전 충남대에서 출범식을 거행하였다.
  • 이장영 . . . . 2회 일치
         * 국제통화기금 통화환율정책국 스프 이코노미스트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장훈(배우) . . . . 2회 일치
         1972년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부거리길에서 어난 이장훈은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관객을 압도하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이다. 가족 뮤지컬《피노키오》부터 미스터리 영화《물고기》, 그리고 코믹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드라마《푸른거탑》까지, 탁월한 집중력과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를만큼 훌륭한 연기력으로 어떤 배역이든 맛있게 소화해 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는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의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기절 전문 대대장 이장훈 역할로 [[tvN]] 《[[푸른거탑]]》에서도 맹활약하였다.
         [[분류:197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이재율 (1993년) . . . . 2회 일치
         [[2016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손시헌]]의 안타 후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 도루는 2016년의 팀 내 첫 도루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권영|제목= NC 구창모·박준영·이재율 성공적인 데뷔전|url=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76362 |뉴스= 경남신문|출판사= |위치= |날짜= 2016-04-02|확인날짜= 2016-04-09}}</ref>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이정호 (1982년) . . . . 2회 일치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영]]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반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상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상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상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
  • 이종배(국회의원) . . . . 2회 일치
         1957년 충청북도 중원군 주덕면(현 충주시 [[주덕읍]])에서 어났다. 주덕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학사장교]]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주로 충북도나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공직 사퇴 직전에는 행정안전부 2차관을 역임하였다. [[이시종]], [[윤진식]]처럼 충주 출신으로 고위관료 테크를 탄 사람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충주에서 낼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인 [[윤진식]]은 [[2010년 재보궐선거#s-2|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상였고, 김호복은 2010년 선거의 패배로 경쟁력이 의심되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충주 출신 고위관료 테크를 탄 이종배를 적극적으로 영입한 것. 이후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민주당(2008년)|민주당]] [[박상규(정치인)|박상규]] 후보, 그리고 이종배 영입에 반발하여 미래연합 후보로 출마한 김호복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당선, 민선 5기 충주시장이 되었다.
  • 이주현(배우) . . . . 2회 일치
          * 학력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전]][* 탤런트 [[차현]]과 동기(방송연예과)이다]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편입)
          *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 - [[당종]]
  • 이진만 (1675년) . . . . 2회 일치
         [[1675년]](숙종 1)에 경상북도 에서 어났으며, 도촌 [[이수형 (1435년)|이수형]](李秀亨)의 8대손이고 성균관전적을 지낸 취사 [[이여빈]](李汝香+賓)의 4대손이며, 노인직으로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이기정(李基定)의 아들이다. 동생으로는 이진화(李鎭華), 이진방(李鎭芳), 이진영(李鎭英) 등이 있었다.
         [[분류:1675년 어남]][[분류:1752년 죽음]][[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진주 (1678년) . . . . 2회 일치
         [[1678년]] [[경상북도]] 에서 어났으며 도촌 [[이수형]](李秀亨)의 8대손으로, 고조부는 여암(汝香+唵)이고, 증조부는 생원 이성간(李成幹)이며, 조부는 이최(李火+崔)이며, 아버지는 사후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이기효(李基孝)이며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통덕랑 김종해(金宗海)의 딸이다. 그는 청렴한 문사였다. 취사 [[이여빈]]의 종4대손이 된다.
         [[분류:1678년 어남]][[분류:1737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우계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채영(fromis_9) . . . . 2회 일치
         팀내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가지고 있는 멤버로 많이 거론된다. 브이앱이나 [[fromis_의 방]], 약속회 토크쇼 등에서도 소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등 프로미스의 예능 에이스라고 불릴 정도. [[아이돌학교]]에서도 방송 내내 예능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줬다. 주로 멤버들이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거기에 대해 성대모사를 하거나 과장을 보어 상황을 설명하는 등 멤버 각자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재능이 있다. 이때문에 거의 모든 멤버와 케미가 잘 맞는 편.
         ~~[[https://youtu.be/f3BY5yxCtHE|잘 정리된 반박영상]]~~(현재는 볼 수 없는 상인 영상) 하지만 이채영을 학교폭력 가해자라 생각하고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이 많은 만큼 초기에는 이채영 본인이나 소속사의 해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활동에 큰 장애가 올 만큼 커지진 않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 이철우(1955) . . . . 2회 일치
         1955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김천 곡송국민학교, 대구 [[영남중학교(대구)|영남중학교]], [[김천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상주 화령중학교, 의성 신평중학교와 단밀중학교 수학 [[교사]]를 역임하였다가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공채에 합격하여 정보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5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이의근]] 도지사와 [[김관용]] 도지사 밑에서 경상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17년]] [[6월 20일]]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타운홀미팅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발언[*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지지층 결집용으로 격한 말을 던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으로 파문이 일었다. 내년 지선과 총선에서 당이 승리를 결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의 현재 하는 행동이 박근혜처럼 탄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비난을 한 것.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막말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 흔들기를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http://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01&aid=0009348444&sid1=100&date=20170620&ntype=RANKING|연합뉴스]] 본인은 이 사를 단순히 문재인이 경각심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해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830754|한국당 이철우 '문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논란에 "경각심 차원의 말"]]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2회 일치
         범인은 [[부엌칼]]을 가지고 2학년 남쪽반(2年南組)에 들어가서, 여자아이 5명을 말 없이 찔러죽이고, 테라스를 통하여 서쪽반(西組)에서 어린이들을 습격, 다음에는 복도로 동쪽반(東組)에 들어가서 4명을 습격했다. 동쪽반에서 밖으로 나와서 클을 걸어온 교사(1학년 남쪽반 담임)의 가슴을 찔러서 중상을 입혔다. 교사는 "도망쳐라!"고 소리쳤으며,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뜰 쪽으로 달아났다. 남자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발길을 돌려서 1학년 남쪽반 칠판 옆에 있는 4명의 아이들을 찔렀다. 그리고 겨우 부교장, 그리고 밖에서 엇갈렸던 2학년 남쪽반 담임이 달려와서 붙잡혔다.
         사형수는 대부분의 경우 구치소에서 [[다비]]를 하고 유골이 전달되지만, 타쿠마의 시신은 유족의 희망에 따라서 시신 상로 넘겨졌다. 교도관은 시신과 대면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내가 말했다고 전해주세요."라는 유언을 아내에게 남겼다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를 하지 않았다.
  • 이하율 . . . . 2회 일치
         |2015||SBS||[[마녀의 성]]||진원||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2011년 데뷔]][[분류:화순군 출신 인물]]
  • 이현보 . . . . 2회 일치
         [[이흠]](李欽)의 아들로 안동 도산 분천리에서 어났다.
         [[분류:1467년 어남]][[분류:155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시인]][[분류:영천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
  • 이홍열 (바둑기사)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시절 [[1979년]] 13기 아마국수전에서 우승하여 [[1983년]]에 입단하였고, 2001년 8단을 거쳐 [[2005년]] 11월에 9단으로 승단하였다. [[2007년]]에 한국바둑리그 제일화재 감독, [[2009년]]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 감독(신안 평천일염)을 맡았다.
         [[분류:1954년 어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 이효정(남배우) . . . . 2회 일치
          * 2004년 KBS 용서 (박경 역)
          * 2009년 SBS [[양을 삼켜라]] (윤제명 역 - 특별출연)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2회 일치
          * 데리엘은 의식은 돌아오지만 복부에 치명상을 입었다. "어둠"으로 치료하지만 체력은 많이 떨어진 상.
          * 멜리오다스는 이전과 같은 상로 보였지만 팬덤의 예상대로 전과는 조금 다른 인격으로 부활했다. 어느 정도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살의를 담은 공격을 가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2회 일치
          * 알 속의 사람들은 원래 형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알이 깨짐과 동시에 완전한 마신족의 모습으로 변한다.
          * 반은 폭스 헌트로 구근을 제거하려 하지만, 갓 어난 마신족의 구근은 깨알처럼 작아서 실패.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2회 일치
          * 영창 바스키어스 제 7형 "달의 꽃"(문 로즈). 그로부터 "생명의 물방울"이 흘러나온다. 물방울은 죽어가던 할리퀸과 디안느를 순식간에 소생시키고 기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마지막 생명의 물방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십계인 그로키시니아가 두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한다.
          주변을 살피던 그들은 오싹한 기운을 감지한다. 하늘로부터 정체불명의 꺼림직한 마력이 날아오고 있다. 분명 마신족, 그것도 십계 레벨의 강대한 존재다. 할리퀸과 디안느는 급한 대로 임전세를 갖춘 채 그 존재를 맞닥뜨린다. 그런데 그 모습은 분명 그들이 알 아는 사람인데.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네로바스타는 이미 십계의 [[고서]]에게 지배당하는 상였다.
          * 몬스피드는 설마 사대천사가 다른 전장을 방치해가며 십계를 사냥하러 올 줄은 몰랐지만, 역으로 사대천사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라서 기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옥염에 휩쌓여 타들어가는 줄 알았던 사리엘이 연하게 "어떻게 오메가 아크에서 탈출했냐"고 묻더니 곧 옥염을 흩어버린다. 처음부터 옥염이 닿지도 않았던 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2회 일치
          * 그때 갈란의 몸을 빛줄기가 관통한다. 갈란이 저항하기도 전에 빛줄기는 두 번 세 번 공격을 거듭해 갈란을 쓰러뜨린다. 마침내 사대천사 최강자 뤼드셀이 전장에 도착. 어느새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린 상다. 그는 갈란을 비웃듯 만남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한다.
          * 데리엘과 몬스피드가 함꺼번에 덤비지만 공격이 닿기는 커녕 반격에 당한다. 사리엘과 타르미엘에겐 승부욕을 불사르며 덤볐던 십계들도 그의 등장에는 경계세를 취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2회 일치
          * [[디안느]]와 [[킹(일곱개의 대죄)|할리퀸]]은 상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치하고 있는 괴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멜리오다스]]가 십계가 계약을 통해 변신한 모습, "인듀라"라고 가르쳐준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파괴를 되풀이하는 존재. 디안느는 이대로는 브라타니아가 멸망할 거라고 걱정한다. 멜리오다스는 저들을 막기 위해선 저들의 남은 심장을 워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그런데 이들이 가세한 것은 뤼드셀 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엘리자베스에게 보준다. 뤼드셀이 당황하자 사리엘은 그의 말대로 가세하고 있지 않느냐고 조롱한다. 타르미엘은 자기들은 자기들 의지대로 움직이겠다며 뤼드셀과 선을 긋는다. 디안느와 킹은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2회 일치
          그는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시공의 틈을 연다. 그리고 진짜 고서, 무욕의 고서가 틈을 통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고서는 "나도 고서. 하지만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인형 쪽과 싱크로된 상라 동시에 같은 포즈로 같은 말을 해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고서는 헷갈린다면서 "싱크로 오프"란 주문으로 인형 고서와 동조를 단절한다. 그러다 조용히 의식을 잃는다. 무욕의 고서는 인형 쪽도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동지"라고 말하며 그 또한 고서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마치 자식을 어루만지는 부모같다. 인형 고서의 지능은 자신과 다를 바 없지만, 감정은 막 어난 아기나 다름 없다. 사실 고서는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것만은 이루지 못하는 꿈이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2회 일치
          할리퀸이 위로하려는 건지 어쩌려는 건지 "최악의 오빠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고 이상한 경쟁심을 내세운다. 그로키시니아는 그런 게 경쟁할 부분이냐고 클을 걸면서도, 자신과 같은 입장인 그가 왜 로우를 죽이지 않았냐고 묻는다.
          드롤과 그로키시니아는 말 없이 그를 바라본다. 그로키시니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너무 물러터져서 앞으로 싸움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고 빈정거린다. 그리고 확고한 도로 "진짜 악이란 실존한다"고 강조한다. 할리퀸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 디안느에게 시선을 옮기며 답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2회 일치
          지금의 고서는 자신이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상. 그래서 디안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멀린은 디안느가 무심코 말한 "3천 년 전"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반은 "꿈이라도 꾼 거겠지"라고 별거 아니라 여기지만 멀린은 진지하게 가능성을 점쳐 본다. 그녀도 여신족의 시간회귀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디안느가 정말 3천 년 전으로 갔었을 거라 추정한다.
          *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갔던 에스카노르는 정말로 고서를 불러가면서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필 시간대도 안 맞아서 약골 상. 금방 목이 쉬어서 기침을 해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근처에 고서가 있기는 했다. 그는 금발의 여인으로 변신한 채 일행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에스카노르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서가 자리를 옮긴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2회 일치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식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엘레인은 에스카노르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었다. 아까 멀린에게서 느낀 위화감.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에스카노르에게 가서 멀린의 상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직접 가보고 싶지만 아직 멀린과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망설여진다는 것.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2회 일치
          * 덩치가 큰 마신이 포효했다. 영혼을 먹고 싶다는 아우성이었다. 작은 지 친구보다도 훨씬 멍청했던 그 마신은 상황파악 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그에게 그런 능력은 필요가 없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파워업한 진 영창 샤스티폴이 "인 크리스"의 형로 마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날개가 돋기 전보다 한층 정교하고 강력해진 위력. [[헬브람]]이 그 성장을 축하하지만 할리퀸은 아직 온전하게 역량을 시험하기엔 상대가 너무 약했다고 투덜거렸다.
          * 멜리오다스가 단원 전원을 정렬시키고 빨리 차원의 비틀림을 처리하기로 한다. 그런데 에스카노르가 성문 앞에 누군가 서있는걸 발견한다. 그 그림자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게다가 일행이 여기에 왜 왔는지, 엘리자베스가 어떤 상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림자는 여기엔 엘리자베스 때문에 온 거냐며, 아직 살아있다면 참 끈질긴 여자라고 빈정거렸다. 그를 알아본게 멜리오다스 만은 아니었다. 멀린이 이것이 함정임을 간파하고 멜리오다스에게 경고했다.
  • 임관빈 . . . . 2회 일치
         1953년 충북 충주에서 어나 충주고등학교를 28기로 졸업했다. 이후 1976년 육군사관학교 32기로 졸업하여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軍 사이버사령부의 대통령선거 불법개입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구속되었으나 석연치 않은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불구속 상로 재판을 진행중이다.
  • 임기영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나 [[대구수창초등학교]], [[경운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로 [[한화 이글스|한화]]에 지명됐다.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임은정(법조인) . . . . 2회 일치
         [[1974년]] 7월 14일 생으로,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어났다. 이후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2001년]] 제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제 조용히 대세에 묻어가기만 하면 검찰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몸이었으나, 2012년 9월 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여 검찰은 물론이고 법조계 전체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켰다. 당시 검찰 상부에서는 백지구형[* 백지구형이란, 검찰의 할 일을 포기하고 판사에게 형량을 일임하는 것이다. 즉 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한다. 관행이라는 말로 합리화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검찰권의 포기이자 검찰 고유 권한의 불이행이다.]을 지시해 놓은 상였으나,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정권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부장 검사는 "무죄 구형을 하는 것은 검찰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되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허나 임 검사는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무죄 구형도 그렇지만, 그때의 논고(최종진술) 또한 화제가 되었다:
  • 자시키로우 . . . . 2회 일치
         감금된 대상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어난 자식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메이지 시대]] 부터는 화족(華族, 귀족)이나 대상인 등 자산을 가진 집안에서, 가족 내에 소행이 불량한 자, 정신 상에 이상이 있는 자를 감금하기 위하여 이러한 시설을 만들었다.
  • 잘츠부르크 . . . . 2회 일치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랄까 모차르트 말고 유명한 사람도 없다.(…) --우리 동네에서 모차르트가 어났다는게 자랑--
         하지만 정작 모차르트 자신은 잘츠부르크에서 어나기만 했지 별로 오래 머물지 않았고, 주로 [[빈]]에서 활동했다.--모차르트가 우리 동네 별로 온 적 없는건 안 자랑--
  • 장강명 . . . . 2회 일치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밑에서 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4년 PC 통신 하이텔에 SF 소설을 연재하고, 군 복무 중에는 장편소설을 투고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으나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퇴사하였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E%A5%EA%B0%95%EB%AA%85&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4607|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신문기자 관두고 2년만에 소설 6권, 문학賞 휩쓸어… 글만 써 먹고살고 싶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112580|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조선닷컴 인물검색|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200609200038034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YES24 《한국이 싫어서》 소개|url=http://www.yes24.co.kr/24/goods/1797227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SF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SF 팬]]
  • 장대환 . . . . 2회 일치
         * 2008년 10월 ~ : 한국평양경제협력위원회 자문위원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흥덕 장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매경 미디어 그룹]][[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로체스터 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김대중 정부]][[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장도 (1876년) . . . . 2회 일치
         [[한성부]]에서 무관의 아들로 어났다.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1895년]]에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 [[1896년]] [[도쿄]]의 [[게이오의숙]] 보통과를 졸업하고, [[주오 대학]]의 전신인 도쿄법학원에서 3년 동안 법학을 공부했다.
         [[분류:1876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교육인]][[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법조인]] <!-- 1908년 변호사 -->[[분류:대한제국의 학자]]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분류:대한제국의 저술가]]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
  • 장범준 . . . . 2회 일치
         # 애우는 여자
         [[분류:버스커 버스커]][[분류:1989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장씨]]
  • 장성원 (배우) . . . . 2회 일치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권소녀]]》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경상북도 출신]][[분류:1995년 데뷔]]
  • 장성집 . . . . 2회 일치
         장성집은 [[한양]]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어났다. 그는 [[한약]]상에서 일했고, 두 번 결혼했지만 부인들이 일찍 죽어 홀아비가 되었다.
         [[분류:1786년 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장솜이 . . . . 2회 일치
         * 《[[저 하늘에 양이]]》 (2016년, KBS2) - 채비서 역
         [[분류:1991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신애 (연극배우) . . . . 2회 일치
         [[1984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어나 [[1998년]] 아역으로 데뷔를 하였고 주로 연극이나 뮤지컬 쪽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각종 재연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한다.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아프리카TV BJ]]
  • 장원준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장원준'''(張元準, [[1985년]] [[7월 31일]] ~ )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났으나 7세 때 [[부산광역시|부산]]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07335 장원준, 미인들만 만나는 비결? “모성애 자극 ㅋㅋ”] - 스포츠동아</ref>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수영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대동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부산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사이버대학교 동문]]
  • 장익 (1933년) . . . . 2회 일치
         [[1933년]] [[11월 20일]] [[경성부]]에서 어난 그는 [[195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주교]][[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장면]][[분류:함세웅]][[분류:천주교 춘천교구장]][[분류:인동 장씨]]
  • 장헌식 . . . . 2회 일치
         [[1869년]] [[음력 9월 21일]] [[용인군]] [[현내면]](縣內面)에서 성급(成汲)의 아들로 어났다. 어려서는 한문(漢文)을 수학하다가 18세 되던 해 경성으로 올라와 한성부 중서(中署) 수진방 전동(壽進坊 磚洞) 13통 11호로 주소를 옮겼다. 1935년 무렵 [[평안남도]] [[평양부]]로 이사했다가 다시 [[경성부]] 가회동(嘉會洞) 4번지로 주소를 옮기고, 정착하였다.
         [[분류:1869년 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조선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동 장씨]]
  • 장혁주 . . . . 2회 일치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들어 [[평양 전쟁]]에 용감히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화랑도 정신의 재현 - 젊은 학도의 갈길은 하나〉 (1943) 등 8편이고<ref>{{저널 인용
         [[분류:1905년 어남]][[분류:199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재일 한국인]]
  • 재생불능공격 . . . . 2회 일치
         [[신화]]에서는 [[불]]로 우거나, 특수한 방법으로 죽일 수 있는 [[괴물]]이 나오는데 이러한 것이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 [[헤라클레스]] : [[히드라]]의 머리를 불로 워 재생을 막았다.
  • 재호 (배우) . . . . 2회 일치
         《매일개서모도흔우상》에서는 다큐멘터리 촬영 차 중국에 왔다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의 인기 배우 역할을 맡았고, 직접 중국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현지 스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인간대포》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을 매력적인 남자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군’ 재호, 대륙이 먼저 알아본 라이징★|url=http://sports.donga.com/3/all/20180329/89357445/1|날짜=2018-03-29|뉴스=스포츠동아}}</ref>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
  • 저스디스 . . . . 2회 일치
         |변
         |변
  • 전관 . . . . 2회 일치
         |어난 곳 =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선 전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장]][[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전라북도/인물 . . . . 2회 일치
         부안군 - [[강금원]] [[김형인(코미디언)|김형인]] [[방실이(가수)|방실이]] [[임현성]] [[지수원]] [[하웅(가수)|하웅]]
  • 전명운 . . . . 2회 일치
         [[한성부]](현 [[서울특별시]]) 생이다. [[한성학교]]를 졸업하고 [[1903년]] [[하와이 주|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1904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분류:1884년 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사람]][[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담양 전씨]][[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한국의 암살자]][[분류:국민주의 암살자]][[분류:미국에 거주한 한국인]]
  • 전민제 . . . . 2회 일치
         * 1983년 동남아평양지역공학단체연합(FEISEAP) 부총재(1985년 퇴임)
         [[분류:192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구 전씨]][[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 전상우 (1953년) . . . . 2회 일치
         |전임자 = [[정신]]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특허청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
  • 전성군 (1488년) . . . . 2회 일치
         [[1488년]](성종 19) [[7월 21일]] 사후 [[여양군]]에 추증된 여양정 이자겸(呂陽正 李子謙)과 훈도(訓導) 김기(金耆)의 딸 광산김씨<ref>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의 아들로 어났다. [[효령대군]] 보의 차남 [[보성군]] 이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율원군]] 이종(栗元君 李終)이다. 그의 생일은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정사룡]](鄭士龍)이 쓴 그의 묘비문에 그의 생일이 [[7월 21일]]이라고 언급되면서 알려졌다.<ref name="heomyong">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조부 [[율원군]]은 적개공신이었다.
         [[분류:1488년 어남]][[분류:1543년 죽음]][[분류:음서]][[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문신]][[분류:전주 이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중종]][[분류:조선 명종]]
  • 전소민(배우) . . . . 2회 일치
         2013년 12월 29일 [[개그 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코너에 출연하여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를 패러디--라고 쓰고 폭풍디스--했다(...) [[http://tvpot.daum.net/mypot/View.do?ownerid=NFCuTYsUzgw0&clipid=55449486|#]] 컵 들고 부들부들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뺨을 때리고 발로 차며 "나, [[오로라(오로라 공주)|오로라]]에요"라질 않나, 스토리랑 아무 상관 없다고 클받자 "막장 이렇게 하는거 아니에요?"라며 천연덕스럽게 굴고, --[[브라우니(개그 콘서트)|브라우니]]의 탈을 쓴-- 떡대가 ~~암세포~~감기세포=생명이라 말하자 ~~개가 말을 해~~ "[[개소리]]"라며 때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죽자 "왜 나랑 있으면 다 죽는 거야?"라며 디스의 정점을 보여주며 떡대가 죽을 차례가 되자 자기 발로(...) 차고는 "떡대야~ 으흑흑"하며 돌변하는 도가 압권.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임성한]] 작가한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실제로 [[인어 아가씨]] 주연이였던 [[장서희]]의 경우 "[[임성한]]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방송에서 수 차례 말한 바 있고, 심지어 [[인어 아가씨]]가 막장이 아니라고도 하였다.~~말은 바로 해야지...~~] 이에 소속사를 통해 "드라마는 드라마, 예능은 예능으로 봐달라"며 수습(?)에 나섰다. ~~왠지 진심이 느껴졌었던 것은 논외로 치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422927|#]]
  • 전예용 . . . . 2회 일치
         |후임자 = [[김선]]
         [[분류:1910년 어남]][[분류:199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부흥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건설부 장관]][[분류:서울특별시 부시장]][[분류:한국은행 총재]][[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규슈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이승만]][[분류:박정희]][[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정선 전씨]]
  • 전용덕 . . . . 2회 일치
         1971년 서울특별시에서 어났다. 대학교를 졸업 후, [[금강기획]]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199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 입학하였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를 졸업후, 2001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빅아이디어 프로덕션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근무하였다. 2003년 8월 [[드림웍스]]에 입사하였다. 현재 드림웍스의 레이아웃 팀장을 역임하고 있다.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촬영 감독]][[분류: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사람]][[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혜진(1970) . . . . 2회 일치
         ||<:> [[김화]], 김현숙, [[서정민]], [[양정아]], [[윤제선]], [[이승은]], [[이종희]] ||<:> '''[[서연정]], [[신경애]], 이미영, [[이영현]], [[염정아]], [[전혜진(1970)|전혜진]], [[조정희]]''' ||<:> [[구교현]], 이미나, [[유하영]], [[이승연]], [[장은영]], [[장혜숙]], [[황은숙]] ||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식 예배로 4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2회 일치
          * 미나모토의 행방을 찾지 못한 칠드런은 극도의 사기저하 상.
          * 마츠카제는 그런 상라면 "오염을 더 전염시키는" 상황이 올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감각에 따라 그것들을 느끼고 조작할 수 있는 형로 만들어 보라고 조언하는데.
          * 마기는 탄소를 미리 모아서 머리카락 형로 보존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2회 일치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상황이 정리된 이후 나오미는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리고 도쿄로 향한다. 떠나기 전 타니자키를 때려눕히고 남아있는 더 하운드에게 "주기적으로 두들겨패서 혼수상로 만들어라"는 지시를 남긴다.
  • 정근모 . . . . 2회 일치
         [[분류:193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분류:대한민국의 과학기술처 장관]][[분류:한국과학기술원]][[분류:노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래희망연대]][[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명지대학교]][[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기선 . . . . 2회 일치
         [[1982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의 장남으로 어났다. [[대일외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에는 언론사([[동아일보]])에서 근무하다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 대학교]]대학원에서 MBA수업을 받았으며 잠시 컨설팅그룹에서 일한 뒤 다시 귀국하였다. [[2013년]]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으로 재입사 후 [[2014년]] 상무 및 [[2016년]] 전무,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분류:1982년 어남]][[분류:하동 정씨]][[분류:정주영]][[분류:현대가]][[분류:현대 그룹]][[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
  • 정기성 . . . . 2회 일치
         * 《[[계백 (드라마)|계백]]》 (2011년, MBC) - 연견 역
         [[분류:197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대석 . . . . 2회 일치
         정대석은 전통적 기반위에 현재의 감성을 입혀 새로이 재구성하여 거문고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연주자다. 출중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고하게 기품을 유지해 온 거문고를 일반 계층에게 전파시키는데 기여해온 바 크다. 그는 거문고와 더불어 연주자 및 창작자로서의 삶을 일관하여 온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국악인이다. 정대석은 일찍이 거문고의 창작음악에 몰두하여 많은 거문고 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곡들은 거문고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거문고연주자 정대석은 이런 관점에서 면면히 자기완성을 의지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악인으로서의 자를 유지해온 예술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서울악회 동인, 거문고연구회 동보악회 대표이다. 2003년 KBS국악대상 대상 및 현악상과 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3/11/20070311000979.html 거문고 명인 정대석씨 ''非음대'' 첫 서울음대] 교수세계일보(2007.03.12)</ref>
         [[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정득만 . . . . 2회 일치
         '''정득만'''([[1907년]] ~ [[1994년]])은 [[대한민국]]의 [[음악가|국악인]]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났다.
         [[분류:1907년 어남]][[분류:1994년 죽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 정링컨 . . . . 2회 일치
         '''정링컨'''({{본명|링컨 폴 램버트}} - <small>(Lincoln Paul Lambert)</small>, [[2007년]] [[10월 1일]] ~ )은 [[미국 시민권]]의 아버지와 [[대한민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어난 [[미국]]계와 한국계 [[혼혈|혼혈인]] 아역 [[연기자]]이다.
         [[분류:2007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램버트, 링컨]][[분류:21세기 터키 사람|람베르트, 파울]][[분류:미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한양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침례교도]][[분류:미국계 터키인]][[분류:한국계 터키인]][[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터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브루나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정만조 . . . . 2회 일치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과 가까운 친척으로 [[한성부]]의 명문가에서 어났으며, 개화파 학자였던 [[강위]]의 제자로 수학하여 글과 글씨에 뛰어난 재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884년]] [[교섭통상아문]]에서 주사 벼슬로 관직을 시작하였고, [[1889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뒤 예조참의, 승지, 내부참의 등을 역임했다.
         [[분류:1858년 어남]][[분류:1939년 죽음]][[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개화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몽규 . . . . 2회 일치
         * 2000.03 : 제33차 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측 대표연사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현대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옥스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HDC그룹]][[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
  • 정병오 . . . . 2회 일치
         '''정병오'''(鄭炳五, [[1950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에서 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제학과 졸업, 한국순수문학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필(筆)동인]][[분류:영랑문학상 수상자]]
  • 정선 (화가) . . . . 2회 일치
         {{인용문2|정(鄭)은 그가 평소에 익숙한 필법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돌 모양이나 봉우리 형를 일률적으로 '열마준법(裂麻皴法)'으로 함부로 그려서 그가 진경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ref name="강세황평"/>}}
         [[분류:정선| ]][[분류:1676년 어남]][[분류:1759년 죽음]][[분류:조선의 화가]][[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서예가]][[분류:조선의 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광주 정씨]][[분류:18세기 화가]]
  • 정재용(1973) . . . . 2회 일치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어났다. 그가 어날 당시 [[아버지]] 나이가 47세, [[어머니]] 나이가 38세로 [[늦둥이]]였다.[* 당시로선 굉장히 늦은 나이다.] 한동안 [[나이트클럽]]에서 [[DJ]]로 활동하다가 [[1995년]], [[DJ DOC]]의 새 멤버로 합류했다.
  • 정종철 . . . . 2회 일치
         * "헤헤헤헤헤헤헤헤헤! 얼굴도 못 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 "너라뇨? 제 이름은 옥동자에요!"([[박미선]](봉숭아학당 선생님 역)이 정종철(옥동자 역)에게 왜 끼어드냐고 물을 때에 나오는 정종철의 대답), "선생님! 제가요, 어저께요~ 디자이너 앙드레 김 / 탤런트 이덕화 샘을 만났는데요~ 아, 그 분이 글쎄~", "선생님 제가 뭐라고 그랬는 줄 아세요?", "헤헤헤헤헤헤헤헤헤! OOO한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내 얼굴처럼 OOO해지려면 OOO하지 말고 (얼굴에다가) OOO했어야지! / 어날 때부터 OOO을 마셨어야지!" - 개그콘서트 코너 '[[봉숭아학당]]' 중 옥동자 역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동양미래대학교 동문]][[분류:개그야]][[분류:하땅사]]
  • 정좌관심 . . . . 2회 일치
         송나라 이후 [[유교]]에서 주장하는 수행법이다. 정좌는 조용히 앉아서(정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관심)으로서, 줄여서 정좌(靜坐)라고 하였다. [[주희]]는 특히 이를 강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안정 상로 두는 거경(居敬)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독서]]와 함께 수행법으로서 중시되었다.
         [[유교]]에서 정좌가 도입된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송]] 시기에 주염계는 자신의 저서 『극도설』에서 ‘주정입인극(主靜立人極)’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뒤 명도와 이천이 정좌를 가르쳤고, 정좌 수행은 유교의 주류가 되었다.
  • 정혜선(배우) . . . . 2회 일치
          * [[명]](2부작)
          *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 11회에서 만호후 역으로 특별출연하였다.
  • 정환덕 . . . . 2회 일치
         군부협판 의채의 아들로 [[1857년]] 탄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을노인(太乙老人)에게 역학을 수학 받았으며, [[경북]] [[영천]]에서 거주하였다. 어느 날 영천 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역학(주역)을 공부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꿈에 하얀 도포를 입고 손에는 청령장을 짚은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자네가 역학을 공부한지 7년이 되었다. 그러나 너는 글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었다. 그러니 말짱 헛공부를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글의 행간을 읽으라.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서 읽도록 하라. 아무리 공부해도 너에게 큰 행운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행운은 있을 것이니 여기서 꾸물댈 것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 가보아라.”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말을 믿고 [[1897년]] 가을, 나이 40세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하였다. 상경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부승지 [[윤명구]](尹鳴九)를 만나 윤명구가 역학을 할 줄 안다고 하여 고종황제의 측근 경운궁 전화과장(電話課長) 이재찬(李在纘)을 소개 해주었다. 이재찬이 [[고종황제]]에게 소개하여 특명으로 [[1901년]](광무 5) 음12월 5일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다가 그 다음날 면직되었다.
         [[분류:1857년 어남]][[분류:19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학자]][[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
  • 조소혜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나를 졸업한 후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84년]] [[KBS]] [[드라마게임]] 《선택》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1996년 드라마)|첫사랑]]》 등의 작품을 집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어남]][[분류:2006년 죽음]][[분류:간암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조안(배우) . . . . 2회 일치
         || [[KBS1]] || [[광개토왕(드라마)|광개토왕]] || 담주 || ||
  • 주나라 . . . . 2회 일치
         유왕의 자가 정(鄭)의 후원을 얻어 낙읍(洛邑)에 재건되었다. 낙읍은 후대의 뤄양(洛陽,낙양)이다. 그러나 동주는 재건 당초부터 취약한 정권으로서, 정(鄭)나라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사실상 실권을 상실, 각국의 제후들이 패자(覇者)로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고 주왕조는 천자(天子)로서 명분상의 권위만을 가진 정권이 된다.
         지방 통치에서 주나라는 [[봉건제]]를 실시했다. 무왕은 자신의 형제들을 노(魯), 위(衛), 채(蔡), 조(曹), 등(滕)의 16개국에 봉하였고, 무왕의 아들은 진(晉) 등 4개국에 봉해졌다. 주공 단의 자식들은 형(邢) 등 6개국에 봉해졌다. 강공의 후손이 봉해진 제(齊) 등, 그 외 약 140개의 제후국이 존재했다.
  • 주윤발 . . . . 2회 일치
         10세 때였던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홍콩 도심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였고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끝내 중퇴하였다. 이렇게 초, 중, 고, 대학 등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던 중, 친구의 권유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7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73년]] [[영화]] 《투인(投胎人)》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4년]]부터는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으며 2년 후 [[1976년]]에는 [[영화]] 《지녀》(池女)의 주연을 맡았다. 그 후로도 홍콩 영화와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1980년]]에 출연한 《상해탄》(上海灘) 등으로 입지를 다졌다. [[1988년]] [[가수]] 데뷔하였으며 [[1989년]] [[영화]] 《아랑적고사》(阿郎的故事)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각색도 처음 맡아 각색가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콩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가수]][[분류:홍콩의 작사가]][[분류:홍콩의 불교 신자]][[분류:중국의 반공주의자]][[분류:싱가포르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계 영국인]][[분류:하카계 홍콩인]][[분류:1972년 데뷔]][[분류:홍콩의 억만장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진격의 거인/78화 . . . . 2회 일치
          * 베르톨트는 병단이 있는 위치에서 거인화 해 일대를 날려 버리려 하다가 근처에 라이너가 빈사 상임을 알고 중단한다
          * 아르민은 라이너가 가까이 있어 변신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라이너는 의식을 조금씩 되찾아 방어세를 취하고 있었고 베르톨트는 거인화한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2회 일치
          * 한지 일행이 와서 사를 진정시키면서 결국 엘빈에게 주사하는 걸로 결정되는 듯 했지만
          * 프록은 그 사명을 방해하지 말라며 미카사에게 달려든다. 미카사는 베어버릴 세를 취한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2회 일치
          한지는 비록 초대형 거인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벽안의 상황은 위롭다고 말한다. 한지는 적은 단지 거인 뿐만 아니라 인간이자 문명, 즉 "세계"라는 점을 밝힌다.
          엘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회의장의 모든 이목이 그에게 쏠린다. 하지만 엘런은 방금 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 그 무서운 사실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자리에 앉는다. 한지는 그의 도를 의심스럽게 생각하지만 엘런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그런가"라며 의미심장하게 화제를 전환한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2회 일치
          * 중동연합의 저항도 거세다. 다가오는 마레의 병사들은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 사격에 몰두하던 적 병사들은 곧 그들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기관총 포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차력의 거인"이다. 매우 특이한 거인으로 엎드려 걸어다니며 등에는 한 쌍의 기관총 포탑이 올라가 있다. 얼굴은 말이나 개처럼 길쭉한데 묘한 형의 철가면을 썼다. 각 포탑에는 병사가 타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적의 기관총 진지 코 앞까지 돌진한 차력의 거인. 포탑의 기관총이 진지 앞의 병력을 섬멸한다. 차력의 거인은 길쭉한 얼굴을 진지로 들이밀어서 지붕을 들어내 버린다. 그 사이 보병들이 진격, 적의 최종 방어선은 이렇게 무력화된다.
          파르코는 동료 우도에게 포로의 지혈을 부탁한다. 가비는 그런 모습을 보며 빈정거린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어필한다고 자신에게 돌아올 갑옷 거인의 후계자 자리를 뺏을 수는 없다면서. 파르코는 알 바 아니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가비에겐 그런 도도 이상해 보인다.
  • 진선유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여양 진씨]][[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진종채 . . . . 2회 일치
         1925년 [[경상북도|경북]] [[포항시|포항]]에서 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한 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8기로 졸업했다.[* 진종채를 군내 요직에 중용했던 [[박정희]]도 대구사범과 육사를 함께 졸업했다.] [[김종필]], [[김형욱]] 등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동기다. [[서종철]], [[노재현]], [[윤필용]] 등과 함께 [[전두환]] 등 [[하나회]]의 주요 후원자로 꼽힌다.[* 윤필용 사건으로 중간에 숙청된 윤필용과 달리 진종채, 서종철, 노재현은 [[10.26 사건]] 때까지 군에 영향력을 행사, 영남 군벌 3인방으로 불렸다.]
         대대장 월북 거짓 보고 사건의 여파로 [[1979년]] [[제2작전사령관|제2군사령관]]으로 보직 이동했다. 보안사령관 후임자로 전두환을 적극 추천하였고, 갓 소장에 진급한 전두환이 핵심 요직인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면서, 이 결정은 나비효과처럼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10.26 사 후 규정에 의거하여 보안사령관이 대통령 시해 합동수사본부장이 됨으로써 전두환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진창현(음악인) . . . . 2회 일치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어났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깎아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등 손재주를 발휘했고, 이후 고향에서 약장수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현악기의 매력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소학교]] 4학년 때 [[중일전쟁]]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와 교사로 부임한 아이카와 키쿠에(相川喜久衛)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기초적인 바이올린 연주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봤고, [[경찰|순사]]가 될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교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학교]] 과정을 끝마치기 위해 [[후쿠오카]]로 건너가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고학을 했다.
  • 차명진 . . . . 2회 일치
         * 2011년 [[10월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 "삥" 등의 적절한을 총동원해 원색적이 비난해서 논란이 됐다. "박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상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동거"라며 "시민운동이 아니라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라고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로 규다했에 대해 투명하게 재정상를 공개해온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을 양아치로 묘사한 것에 많은 공가이 어다
         [[분류:민중당의 정치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연안 차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친이]][[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
  • 차성훈 . . . . 2회 일치
         * 《[[광식이 동생 광]]》 (2005년) - 까페 남종업원 역
         [[분류:197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차일목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2차 5라운드([[해 타이거즈]])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연안 차씨]]
  • 차희식 . . . . 2회 일치
         차희식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어나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에서 성장하였다. [[장안면 (화성시)|장안면]]은 동리마다 서당이 있어 책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또한 일찍이 [[동학]]과 [[기독교]]가 전파되어 민족독립의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을 함양하며 성장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술이 좋고 힘이 장사여서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자질이 뛰어났고, 3·1운동 당시에는 장년층으로서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통솔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분류:1870년 어남]][[분류:1939년 죽음]][[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안 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2회 일치
         [[독친]]의 행 가운데 하나로, 아이를 「애완용(愛玩用)」과 「착취용(搾取用)」으로 「사용목적」에 따라서 편애하면서 나누어서 기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애완용 아이가 일하지 않고, 부모가 노화하게 되어 곤란한 상가 되면, 급해진 부모는 착취용 아이에게 부담을 넘기려는 경우도 있다.
  • 창작:맹수인 . . . . 2회 일치
         ''' "같은 신에서 나왔다는 맹수인들마저 서로 증오하고 죽이고 싸운다. 하물며, 생부터가 원수지간인 우리와 저 북쪽의 조인들은 또 어떻겠는가?"- 아발론제국의 '변방왕' 아서, 안덴 원정을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 창작:좀비위키 . . . . 2회 일치
          * 좀비기관차 : 좀비력 5년 전후에 모 생존자 조직에서 제작. 좀비를 수거하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 식 [[증기기관]] 차량. 작동방식은 단순하여, 기관차 위에 있는 화부들이 기관차에 다가오는 좀비를 갈고리로 낚아서 끌어올린 다음, 토막을 내고 말려서 연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한 연료를 보일러에 투입하여 좀비 시체를 보일러에서 불워서 그 화력으로 증기기관을 돌려서 작동하는 차량이다.
          건조 기후에서는 마른 좀비가 잘 타서 이동이 쉽게 되지만, 우기나 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좀비가 물기가 많아서 연료로 쓰기 부적합하여 이동이 어려운 것이 단점. 이 때문에 미리 토막을 내서 좀비를 말려서 연료 보관고에 보관하는 방식을 택한다. 제작자에 따르면 원래는 차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나무로 가는 증기기관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좀비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할 수 없이 좀비를 잡아다가 우게 되었고 생각보다 효율이 좋아서 여러 생존자 캠프에 보급되었다고(…).
  • 창작:좀비탈출/2 . . . . 2회 일치
         마당에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 옆집 아저씨가 자랑스럽게 타고 다니던 자전거였다. 상는 좋은 것 같지만, 체인으로 앞바퀴가 잠겨있어 움직일 수 없는 상다.
  • 창작:좀비탈출/3-2 . . . . 2회 일치
         생각해보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괴소문들은 대부분 좀비들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 역시, 집에 돌아갔다가 얼마 뒤에 '습격'을 시작하면서 동네 곳곳에서 피해가 점점 확대되어 갔던 것이겠지. 경찰들이 이런 사에 쫓기면서 동네 치안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점점 높아지던 댐에서 물꼬가 터지듯이, 늘어나는 좀비들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 역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고, 도시가 불안하다며 아예 시골로 피난간 가족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등교하길 그만뒀을 때는 이미 반수 이상이 등교를 멈춘 상였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2회 일치
         그 옆에는 장롱이 넘어져 있다. 이건 앞으로 넘어져 있다. 매우 부자연스럽다. 녀석들이 창궐한 거지 지진이 난게 아니다. 녀석들에겐 장롱 정도로 무거운 걸 넘어뜨릴 힘은 없을 것이다. 이건 장롱 앞에서 당겨서 넘어진 형다. 이런건 사람이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존자가 다녀갔을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주장이 너무 깨끗하다. 여기까지 들어온 생존자라면 뭔가 찾으러 왔을 것이다. 나처럼 다이너스티를 노렸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일부러 어질러놨을까? 차키가 장롱 밑에 있을 것 같아서?
         이런 정신상에서도 다이너스티 키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상반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작은 방도 살펴봤고 화장실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 때려치고 돌아가 버릴까? 몸에 엉겨붙은 토트넘의 체액이 너무 역겹다. 돌아가서 샤워와 함께 오늘의 기억도 말끔히 흘려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물론 식량도 챙기고.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2회 일치
         녀석이 뒷문을 닫을 때 쫓아오지 않았던건 못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근거는 없는 단정이다. 하지만 녀석이 듣었고 안 들었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정오고 녀석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거면 된거 아닌가? 구여 접근하지 말자. 처리할 거면 등뒤를 방비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기껏 녀석의 통수를 찍어버렸는데 내 통수도 어떤 녀석이 물어 뜯게 되는건 사양이니까.
         녀석이 깨어났다. 처음 보는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부 잘하게 생긴 안경잽이였다. 정오의 햇볕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다. 아마 정오의 녀석들은 마비된다기 보다는 잠에 빠진 상에 가까울 것이다. 꿀맛같은 시에스타겠군! 당연히 이정도 거리에서 시끄럽게 굴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햇볕이 싫기도 하겠지만 눈 앞의 먹이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던 거야.
  • 챠라남 . . . . 2회 일치
         챠라챠라(チャラチャラ)란, 의어로서 본래는 금속 조각이 짤랑짤랑 거리는 소리를 뜻한 말이다. 여기서 아첨을 부리거나 수다스러운 모습, 혹은 여자가 값싸고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 등을 뜻한다. '찰랑찰랑', '촐랑촐랑' 정도에 대응할 듯.
         흔히 챠라남이라 불리는 외모는, 선탠을 하거나 닝을 해서 햇볕에 그을린 피부, 갈색이나 금발로 염색한 머리, 헌팅이나 소개팅 같은 곳에 자주 나간다는 이미지가 있다. 귀걸이나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많이 쓰고 다니고, 이 점 때문에 '챠라챠라 하다'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 천상천하유아독존 . . . . 2회 일치
         [[석가모니]]가 어날 때 했다고 하는 말.
         『장아함경(長阿含経)』에서 석가모니는 어나서 사방으로 일곱걸음 씩 걷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천운영 . . . . 2회 일치
         [[서울]]에서 어나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영양 천씨]][[분류:신동엽문학상 수상자]]
  • 최공웅 . . . . 2회 일치
         [[1940년]] [[1월 4일]]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난 최공웅은 [[1958년]] [[경동고등학교]], 1962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면서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수석합격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공군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분류:194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최광수 (공무원) . . . . 2회 일치
         [[분류:193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노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창신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주 최씨]]
  • 최두선 . . . . 2회 일치
         [[1955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사망하자 [[신익희]], [[함영]] 등과 함께 그의 국민장 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성수의 사망 직후 [[인촌 김성수 기념사업회]]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60년]] [[김포공항|인천비행장]]으로 환국하는 [[조병옥]]의 시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분류:1894년 어남]][[분류:1974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최두호 . . . . 2회 일치
         이제 두번다시 아니 세번다시 지지않겠다는 명언을 만들었다 경기출전수가 적어 스폰서인 사랑모아통증의학과 물리치료사로 직업을 전향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상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분류:라이트급 종합격투기 선수]][[분류:페더급 종합격투기 선수]]
  • 최란(배우) . . . . 2회 일치
          *밥을 우는 여자
          *양을 삼켜라 (최인숙 역)
  • 최상열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94년 부산고등법원 판사, 199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하다가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2005년에 부장판사가 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쳤다. 2014년 2월에는 제17대 울산지방법원장과 제19대 울산광역시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2년간 역임한 이후 2016년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맡았으나 2018년 2월에 제36대 광주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분류:1958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최선 (정치인) . . . . 2회 일치
         '''최선'''(崔善, [[1974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에서 어났으며 [[서경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시 강북구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2005년 어린이집 [[꿀꿀이죽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2006년 5월 31일 기초의회선거의 강북구 구의원에 출마하여 당선하였으며 이후 '보육조례개정안'제정 활동등을 하였다. 최근 강북구 의회의 의정비 인상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에는 강북구청장이 공공근로 인력을 동원하여 부인 땅을 경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MBC 뉴스데스크 등 언론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박근혜]][[분류:이명박]][[분류:문재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인]][[분류:노회찬]][[분류:심상정]][[분류:김규항]][[분류:진중권]][[분류:통합민주당 (2016년)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성재(배우) . . . . 2회 일치
         || 2015년 || KBS || [[복면검사]] || 김기 || 조연 ||
         ||<|2> 2016년 || SBS || [[닥터스(드라마)|닥터스]] || 황보양 || 조연 ||
  • 최성준 (법조인) . . . . 2회 일치
         최성준은 1957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86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1989년 3월 서울형사지방법원 1990년 9월 제주지방법원 1992년 8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법원행정처 송무국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가 1995년 3월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특허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2000년 2월 수원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계속하였으며 2005년 2월 특허법원 고등부장판사, 2006년 8월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 고등부장판사, 201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수석부 부장판사를 하였으며 2009년 3월에는 2년 임기의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57년 어남]][[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최수범 . . . . 2회 일치
         * [[1월 3일]] 어남. (이는 그레고리력으로 평년, 윤년 상관없이 3번째 날이다.)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감독]][[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
  • 최아라 (모델) . . . . 2회 일치
         *서울컬렉션 미스 지 컬렉션, 칼이석, 더 스튜디오 케이 모델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최영미 (시인) . . . . 2회 일치
         미국의 계관 시인이자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2009년 버클리에서 열린 시 낭송회 런치 포임(lunch poem)에서 " 최영미의 시는 추상표현주의 회화같다."라고 평했다. 2005년 일본의 청수사(靑樹社)에서 출간된 최영미의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문화면 머릿기사로 다루며 《아사히신문》은 "다의성(多意性)이 풍부한 명석한 언어"라며 "시에 의해서 잉된 언어를 이만큼 신중하게, 고독하게 기르고 있는 시인이 가장 이웃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라는 사사키 미키로 시인의 평을 실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최우제 . . . . 2회 일치
         * 《[[발칙한 여자들]]》 (MBC, 2006년) - 조준 역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원권 . . . . 2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
         [[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 FC의 코칭스프]]
  • 최윤 (소설가) . . . . 2회 일치
         본명은 최현무(崔賢茂)이며, 1953년 7월 3일 서울에서 어났다. 경기여고 졸업 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1978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프로방스대학교에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서강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은석 (배우) . . . . 2회 일치
         * 《[[양의 신부]]》 (2011년, SBS) - 조폭 역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최재원(배우) . . . . 2회 일치
         [[1990년]] [[광고]] [[모델]]로 출발해, [[TV]], [[연극]], [[영화]] 등에 얼굴을 비추다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의 슈퍼탤런트 1기[* 당시 수상자는 대상 [[박상아]], 금상은 [[송윤아]]/임세미/김광필, 은상은 [[차현]]/정혜정, 동상은 [[이형철]]/이효진이었다.]로 선발되었다. [[SBS]]의 국민 [[시트콤]] [[LA 아리랑]]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 꾸준히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의 '양심추적'이란 코너 진행자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최재원이라는 이름보다 양심맨이라는 별명을 더 잘 떠올릴 것이다.
          * [[양은 가득히]]
  • 최정원(남자배우) . . . . 2회 일치
         || '''출생''' ||[[1981년]] [[5월 1일]] ([age(1981-05-01)]세) [[강원도]] [[백시]] ||
         [[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1년 출생]][[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백시 출신 인물]]
  • 최제훈 . . . . 2회 일치
         '''최제훈'''([[1973년]]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73년]]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 최진순 . . . . 2회 일치
         [[1969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교수신문]]을 거쳐 [[2000년]] [[서울신문]]에서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한국온라인신문협회 기획분과위원, 뉴스분과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4년]]에는 [[한국언론재단]] [[KINDS]] 스크포스(TF) 팀장,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또 한국언론재단 [[뉴스ML]] 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미국언론연구원(API) [[온라인저널리즘]]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
  • 최휘영 . . . . 2회 일치
         '''최휘영'''(崔輝永, [[1964년]] [[4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전직 [[언론인]]이다. [[서울특별시|서울]] 생으로 [[2012년]] 현재 NHN Business Platform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경성고등학교 동문]]
  • 최희준 (가수) . . . . 2회 일치
         1936년 [[경성부]]에서 어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때였던 1957년에 [[황병기]]와 함께 참가한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샹송]] 《고엽》을 불러 입상한 뒤, 1959년 졸업과 함께 파피 김(본명 김안영)을 통해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분류:1936년 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삭녕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
  • 츤데레 . . . . 2회 일치
         겉으로는 상대에게 퉁명스럽거나 또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호의를 보이는 도. 서브컬쳐나 문학 작품에서 먼 옛날부터 쓰여온 설정 중 하나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 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종류의 세부적인 유형이 새로이 분류되어 만들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중적인 도를 취하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등의 이유로 '새침떼기' 등의 대체어를 권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부적인 개념 차이 등으로 인해 별로 선호되지 않고 있다.
  • 카를로스 4세 . . . . 2회 일치
         황자 시절에 [[마리아 루이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와 결혼하고, 1788년 스페인 왕위에 올랐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성격으로 마리아 루이사와 그 애인으로서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20대 젊은 나이에 재상으로 임명된 [[마누엘 고도이]]에게 국정을 거의 떠맡기다시피 했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은 모든 함대를 잃었고, 1807년에는 [[퐁텐블로 조약]]으로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군이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결국 국민들이 분노하여 1808년 3월 황자 페르난도([[페르난도 7세]])가 이끄는 아란후에스 폭동이 일어나, 페르난도에게 양위하고 퇴위, 망명하였다.
  • 캐리 피셔 . . . . 2회 일치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와 에디 피셔(Eddie Fisher)의 딸이며, 1956년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즈에서 어났다. 1975년 10대 시절에 영화 샴푸(Shampoo)로 데뷔했다.
         2016년 12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2월 23일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비행하던 도중에 발작을 일으켰으며, UCLA 메디컬 센터에 입원했다. 안정된 상를 유지했으나 27일 사망했다.
  • 캡틴 아톰 . . . . 2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 애니메이션에서 슈퍼맨과 붙어서 슈퍼맨의 약점인 붉은 양광선을 손에 두르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며 '''[[나름]]대로''' 잘 싸우나 상대가...강강캐인 것은 분명한데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일이 적다.
         [[그랜트 모리슨]]의 <멀티버시티> 이야기중 하나인 <팍스 아메리카나> 편에서 등장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캐릭터만 DC 코믹스 캐릭터이고 실제로는 왓치맨이나 다름없는 작품인지라 캡틴 아톰은 문자 그대로 닥터 맨하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캡틴 아톰은 유일한 초능력자이자 거의 신급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개를 살리는 것이 가능하며 과거에 있는 상에서 미래의 인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2회 일치
          연합군의 기본 보병 유닛. 배치시키면 모래주머니를 쌓고 기관총을 거치한다. 이 상에서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전투력이 향상된다.
          정지시 나무로 위장하는 전차. 무슨 탄을 쏘는지는 몰라도 한두방에 보병을 워죽인다.
  • 코미디언(왓치맨) . . . . 2회 일치
         만화 [[왓치맨]]의 등장인물. 코미디언은 히어로로써의 이름이고 본명은 에드워드 모건 블레이크(Edward Morgan Blake). 작중에선 이미 살해된 상이다. 왓치맨의 도입부는 코미디언 살해범을 찾으려는 [[로어셰크]]의 독백과 블레이크 살해현장을 조사하는 두 [[형사]]의 대화로 시작된다.
         16세였던 1939년부터 뛴 고참 히어로. 초능력은 없지만 뛰어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평양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1977년 비정부 히어로의 활동을 금지하는 킨 법령이 발효된 이후에도 미국 정부를 위해 히어로 활동을 하였다.
  • 코스트코 . . . . 2회 일치
          * [[도매점]] 같은 형를 취하고 있어, 점포 운영비와 판매비, 관리비를 절감하고 대신 가격을 낮춘다.
          * 점포가 매장과 창고를 겸하고 있다. 매장이 넓으며, 상품은 마치 창고에 그대로 쌓아놓은 듯한 형가 많다. 또 판매하는 상품이 여러 묶음 단위로 되어 있다.
  • 크리스마스 . . . . 2회 일치
         Christmas. 12월 25일. [[기독교]]의 주요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어났다고 알려진 날. 성탄절, X-Mas라고도 한다.
         실제로 예수가 어난 날은 아니라고 한다.
  • 크리스토퍼 라킨 . . . . 2회 일치
         크리스토퍼 라킨은 1987년 10월 2일 대한민국 대구직할시 (現 대구광역시)에서 '''윤하정'''이라는 이름으로 어났다. 4개월이 되었을때, 미국의 일레인과 피터 라킨 부부에 의해 입양되어 [[코네티컷주]] [[히브런 (코네티컷주)|히브런]]에서 성장하였다.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코네티컷주 출신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 킹덤/497화 . . . . 2회 일치
          * 이번엔 창평군이 직접 나서 발언한다. 이들 셋을 부른 이유는 작전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차 전략상 이들 셋의 부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업은 한단의 수비망에 속하고 아무리 미리 대비해도 이목이 존재하는 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전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상정하지 못한 사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점이 현장의 적확한 판단.
          * 일찍히 세 사람들의 부대가 "독립유군"이란 특수한 권한을 받은 것은 이런 역할을 수행할 부대를 기르기 위함이다. 창평군은 그 점을 강조하면서 오늘 전체 전략을 알려주는 것도 큰 그림을 아는 상에서 독립유군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 킹덤/503화 . . . . 2회 일치
          * 행산맥의 조군 봉화대에서 산맥을 넘는 전서구의 무리가 관찰된다. 봉화를 관리하던 병사는 무슨 일이 있길래 이 높은 산맥을 넘어, 저 정도 숫자의 전서구가 날아가는 건지 불길해한다. 그 전서구는 진군이 업을 노리고 있다는 급보를 담은 [[이목(킹덤)|이목]]의 전서구다.
          >참수 수준의 실를 벌인 이목 본인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느냐?
  • 킹덤/515화 . . . . 2회 일치
          * 그때 열미로부터 급보가 날아온다. 열미는 진군의 깃발만 올려뒀을 뿐 병력은 남기지 않은 상였다. 향산맥을 타고 내려온 조군 5만은 열미로 무혈입성, 진군의 퇴로를 틀어막았다.
  • 킹덤/520화 . . . . 2회 일치
          *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려는 몽념에게 할아범이 무운을 빈다. 역시 몽념은 "평소랑 똑같다"고 대답하며 나중에 보자고 답례한다. 당사자가 평할 지경인데 역시 할아범은 걱정을 떨칠 수 없다. 그가 몽념을 따라나서는 [[육주]]를 불러세운다. 어찌나 다급한지 창까지 들이대서 육주가 기겁한다. 할아범의 당부는 늙은 자신이 주력기마대를 따라갈 도리가 없으니, 힘쎄고 소심하지만 욕심은 없고 화낼 땐 화낼 줄도 아는 육주가 자신을 대신해 달라는 것이다. 마침 육주는 창술이 그 [[왕분]]에 버금갈 정도니 부디 도련님, 몽념의 안위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육주는 자신의 창술이 왕분에 비할 정도는 아니나 할아범의 마음을 익히 이해해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할아범이 몽념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걱정하는건 이제 과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총대장 왕전의 지시를 동요없이 수용한 걸 보면, 이미 그는 대장군과 같은 안목으로 전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언제까지 어린애 대하듯 해선 안 될 일. 할아범도 그 의도는 맞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몽념은 위험한 나무에 올라가 장난이나 치던 "도련님"의 모습 그대로다.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절반 이상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순식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상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킹덤/522화 . . . . 2회 일치
          * 솔직히 말하면 마광은 몽념을 우습게 봤다. 그가 가문의 위광을 등에 엎은 애송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왕전이 작전에 앞서 몽념을 따로 불러냈을 때도 그런 도였다. 그는 왕전을 대신해 이 "양동작전"의 개요를 상세히 설명했다. 몽념의 낙화대는 미끼로서 중대한 역할이라 추켜세웠지만, 실은 그들이 실패해도 마광군이 지는 일은 없을 거라며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 말뜻 때문이었는지 몽념은 유독 독기가 서린 눈으로 마광과 눈을 마주쳤다. 마광은 그런 눈빛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본인 면전임에도 "집안 명성 밖에 내세울게 없는 애송"이라 부르며 왕전에게 달리 미끼가 될 책략이나 내려주는게 어떻겠내고 건의하려 했다.
          * 그의 입에서 "파상공세"란 말이 나올 줄은 왕전도 마광도 몰랐다. 그런 언질을 내린 적이 없고 달리 암시한 사실도 없었다. 그렇다면 몽념은 자군의 배치만을 가지고 왕전의 전략을 간파했다는 말이 됐다. 마광이 위협하듯이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지만 몽념은 그저 미소 지을 뿐. 그리곤 "최고의 형"를 만들고 기다릴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만 남긴다. 그리고 꾸물대면 자기들이 "주역" 자리를 뺏어갈지 모른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러나 두 장군 중 그걸 농담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 킹덤/526화 . . . . 2회 일치
          * 여전히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을 관망하던 [[조아룡]]은 그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남자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아광과 왕분에게 "지나치게 뭉쳤다"고 훈수하며 조군에 장수가 자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조군이 다시 힘을 받고 있었다. 마남자를 잡자고 아광과 왕분이라는 두 지휘관이 모두 집중된 게 틈이 됐다. 시간을 번 [[악영]]이 성공적으로 자군을 수습, 다시 대형을 갖춰 아광군에 들이쳤다. 그런데 정작 아광은 일선에 있지 않았으니 힘의 균형이 맞을 리 없었다. 전열이 위로운 와중에 뒤에서는 마남자 2진까지 몰려오는 상황. 위기는 진군 쪽이었다.
          * 진의 중앙.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은 이 같은 사를 아는 것일까? 잠자코 있던 그가 후방에 배치한 [[비신대]]를 불러들였다. 그 지휘관 [[이신(킹덤)|이신]]이 왕전과 독대했다. 이신은 왕전의 부하가 "허가가 있을 때까지 장군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제지했지만 그 말을 무시했다. 왕전은 거기에 개의치 않았고 자기 생각에 잠겨 그가 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뻘쭘해진 이신이 "드디어 우리가 나갈 차례냐"고 막 떠들어대려 할 쯤, 왕전이 입을 열었다.
  • 탁석산 . . . . 2회 일치
         탁석산은 1956년 서울 생이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자연계열에 입학했으나 1년 후 자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 부전공으로 택한 철학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철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흄의 인과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KAIST]] 등에서 강의를 했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사상연구소 박사 후 연수과정을 마쳤다. 주로 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왔는데, <흄의 두 원인 정의의 완전성과 양립가능성> <흄의 초기 단편과 《대화》에서의 악의 문제> <툴리의 인과실재론 비판> <흄의 합리론 비판과 그 역사적 원천>등의 논문을 썼으며, 최근에 『열린지성』에 『언어분석철학의 종언과 한국철학』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등이 있다.<ref>[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laf?authorid=1000033701 교보문서 저자 정보]</ref>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탁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
  • 태극문 . . . . 2회 일치
         주인공이 정작 극문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기무술(불괴연혼강기 등)로 떡칠을 해서 최강자가 되어놓고 극문 무술로 최강이 되었다고 구라를 쳐서 제자들을 받아들여 키우는 사기극을 묘사한 소설.
  • 토리코/366화 . . . . 2회 일치
          * 원래 '''구르메 세포의 악마에겐 "데빌, 오거, 사탄" 등의 형'''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번성한 것이 자신들 '''"트롤"'''형.
          * '''놀랍게도 지로는 머리가 날아간 상인데도 여유롭게 "아카시아 선생님"이라며 대답한다.'''
  • 토리코/370화 . . . . 2회 일치
          * GOD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양의 백열과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주변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 내일은 온다, 양이 뜬다 같은 말은 거짓이 될 것이며 모든 것은 네오에게 먹혀 버릴 거라고 말한다.
  • 토리코/371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최종형로 진화한 GOD를 보고 환호하다가 그 곁에 불쾌한 파리들이 꼬여있다고 투덜댄다.
          * 아카시아는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주마"라고 소리치며 토리코에게 덤벼들
  • 토리코/372화 . . . . 2회 일치
         * GOD의 상를 보고 있던 죠아는 "설마 요리되고 있는 건가"라고 우려한다.
          * 왠지 토리코가 싱겁게 이겨있는 상이다 싶었더니 토리코를 백채널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 토리코/381화 . . . . 2회 일치
          * "엠페러 쉐도우". 일대를 워버릴 작정이다.
          * 그는 센터를 먹고 다시 네오와 합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네오가 한층 완벽한 상로 부활하는 것이다.
  • 토리코/393화 . . . . 2회 일치
          * 그때 누군가가 망설이는 텟페이의 손을 붙잡는다. 바로 노킹 마스터 지로의 식혼이다. 홀연히 나타난 지로는 지구를 노킹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는데. 텟페이와 아이마루는 깜짝 놀라는데 지로는 연하게 영혼세계에서 이치류가 보냈다고 말한다. 지로는 죽었던 할아버지와 재회한 것에 감동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지로는 "지구 노킹 정도야 별 것도 아니다"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칭호 "노킹 마스터"를 텟페이가 계승하라고 말한다.
          * 지구가 붕괴하지 않는다는건 새로운 식재도 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주적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풀코스도 생성되지 않는다. 토리코는 그렇다고 지구를 붕괴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하는데, 듣고 있던 아카시아가 지구의 맛은 여기까지지만 지구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의 맛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바로 네오 안에. 네오 안에는 그동안 먹어온 음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페어는 그거야 말로 해결책이라고 하고 토리코 안의 청귀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환호한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2회 일치
          * 고수(Stand and Fight): 토글 기능. 장군 호위대 전부가 말에서 내려 부대를 지휘한다. 고수 상로 있는 동안 장군 호위대 주변 아군 부대의 근접 공격력, 장전 실력, 사기가 크게 상승한다. 고수 상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2회 일치
         [[시코쿠]] 남쪽에 있는 토사를 본거지로 한 가문. 난이도 쉬움. 튜토리얼은 초소카베 가문으로 진행된다. 토사의 원래 주인이던 이치조 가문을 반쯤 쫓아낸 상이기에 이치조 가문의 반란군이 존재한 상로 시작된다. 동쪽에 있는 미요시 가문과 무역 중이며 북쪽에 있는 코노 가문과 전쟁 중.
  • 트로피코 4 . . . . 2회 일치
          * 1980-1982: 소련의 아프간 전쟁 교착상 - 소련이 수입을 중단함
          * 최후의 부두술사의 죽음과 그 이후 발생한 이상현상을 조사하는 "부두교 사" 미션 추가
  • 페어리 테일/484화 . . . . 2회 일치
          * 디마리아는 포로로 잡혀있는데다 마력이 봉인된 상.
          * 아이린의 부하 줄리엣 선(하얀쪽)과 아이네 루나시(검은쪽)은 티격격한다.
  • 페어리 테일/487화 . . . . 2회 일치
          * 마장입자를 흡수한 가질은 새로운 형로 변하고 드디어 블러드맨에게 공격이 먹히게 된다.
          * 오거스트가 갓세레나를 언급하며 하는 말로 봐서는 갓세레나를 흡수한 상로 추정
  • 페어리 테일/496화 . . . . 2회 일치
          * 살아있었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마도사였을 거라고 평하지만, 지금 상론 피라미라고 얕본다.
          * 갓세레나의 마법은 길다트에게 줄줄이 깨지고 무방비 상가 된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2회 일치
          * 나인하르트는 브랜디쉬의 마법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화된 상.
          * 미라젠은 의외로 제이콥을 상대로 고전 중. 만전의 상가 아니라곤 하나 제이콥도 미라젠의 노출도 때문에 핸디가 있던 상황이라 변호가 안 된다.
  • 페어리 테일/504화 . . . . 2회 일치
          * 나츠에게 END인게 맞냐고 묻는데 반쯤 폭주상인 나츠는 제레프를 쓰러뜨리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디마리아는 나츠에게 당한게 충격이었는지 넋이 나간 상.
  • 페어리 테일/507화 . . . . 2회 일치
          * 그때 그레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쥬비아 록서가 웬디 마벨과 샤를의 부축을 받으며 그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쥬비아는 자신은 무사하다고 알리는데 샤를이 "무사하다고 할 만한 상처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작은 상처는 아니다. 어쨌든 생명엔 지장이 없이 돌아온 쥬비아. 그레이는 놀란 탓인지 안심한 탓인지 그대로 무릎이 풀리며 정신을 잃는다. 쥬비아는 급하게 달려와 스러지는 그레이를 붙드는데 역시 몸상가 나빠서 그런지 함께 기절해 버린다.
          * 그 시각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어떻게 된 일인지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이 널부러져 있다. 핫아이, 레이서가 쓰러져 있고 코브라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다. 미드나잇은 멀쩡히 서있지만 상당히 타격을 받은 상다. 그리고 이들을 통솔하는 제라르 페르난데스 조차 고전을 금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스프리건 12 최강의 마도사 오거스트를 상대하고 있었다. 제라르 조차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차.
  • 페어리 테일/509화 . . . . 2회 일치
          * 오거스트는 제랄이 한 때 제레프 드래그닐을 신봉했던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를 져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지 묻는데 제랄은 "내 마음을 비추는 빛을 손에 넣었다"고 말하며 엘자 스칼렛을 떠올린다. 그런데 대답을 들은 오거스트는 빛은 정의고 어둠은 악이라는 사고방식은 어리석다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제레프 드래그닐에겐 "아들"이 한 명 있다고 말을 꺼낸다. 제랄에겐 놀랄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 아이는 강대한 빛의 힘을 가지고 어났으나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어느 쪽도 아닌 무의 경지에 도달했다. 오거스트는 빛과 어둠에 선악은 무관하다며, 굳이 정의가 있다면 그건 "사랑" 뿐이라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는 사이 제랄은 엘자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다짐하며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라고 시도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졸지에 최종보스 후보가 페도필리아가 되게 생겼는데, 잘 생각해 보면 메이비스가 정말로 친모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시열대 상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애가 어날 법한 타이밍이 없고 어쨌든 본인이 낳은게 맞다면 메이비스 본인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 때문에 에도라스 때처럼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인물이거나 제레프가 마법적으로 두 사람의 유전자를 합쳐 만든 인물이 아닌가 하는 설이 나오고 있다.--그냥 제레프가 사고치고 마법으로 기억을 지운게 아닐까?--
  • 페어리 테일/523화 . . . . 2회 일치
         >그런 거 내가 불워 주겠어!
          * 제레프는 운명을 불운다는 나츠의 말이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자신은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들인 인간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으며 나츠와 최종결전을 준비한다.
  • 페어리 테일/533화 . . . . 2회 일치
          * 나츠가 전력을 다한 "염룡왕의 붕권"으로 공격하나 시간을 되돌려 원상로 회복해 나츠의 숨통을 끊는다.
          * 나츠는 파괴된 잔해들이 다시 모여드는 것을 목격한다. 잔해들은 되감기되는 영상같이 모여들어 원래 상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복구된 자리에, 빛의 조각들이 모여서 제레프의 형상을 이룬다. 이제 제레프는 부숴지고 어떻고 하는게 아무 의미도 없는 몸이 되었다.
  • 페어리 테일/542화 . . . . 2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2회 일치
         수송기 제일 뒷부분 구석에 숨어들어간 상로 시작한다. 빠르게 가면을 쓰고 뛰쳐나와 용병들을 해치우자. 패널을 조작해 수송기 뒷문을 열면 머키 용병들이 막혀있던 곳을 열고 나타난다. 용병들을 쏴죽이며 그대로 직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용병들이 빼곡한 객실이 나온다. 이 객실을 돌파하면 처음 시작했던 곳의 2층이 나오는데 2층에 있는 조작 장치를 건드려서 돈을 사출시키자. 이후 플레이어들도 낙하산 상자에서 낙하산을 하나씩 집은 다음 수송기 뒷문으로 뛰어내린다. 낙하산 없이 뛰어내렸다가는 바로 철장행이니 주의. 착지하고 나면 낙하산은 필요 없으니 내다버리자.
         모든 돈을 회수하면 로크가 하수구를 통해 빠져나오라고 지시한다. 표시된 맨홀로 내려간다음 해당 지역에 스폰되는 경찰들과 특수경찰들을 때려잡으며 전진하자. 서마이트 챙기는거 잊지 말고. 중간 중간 철장으로 막힌 곳이 나오는데, 이곳은 서마이트를 불워서 녹여야 한다. 하수구의 끝에는 보트가 대기하고 있는데, 이 보트에 플레이어 모두가 탑승해서 탈출하면 된다. 누구 한명은 보트를 운전해야하니 주의. 이렇게 경찰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나면 로크의 헬리콥터가 날아오며 종료.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2회 일치
         >우리가 부패한 세무서 직원 에이드리언 스터를 체포하려고 했을 때, 페이데이 갱이 나타나 요원들에게 발포하였다. 요원들은 스터가 숨은 리무진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져 길 건너 폐건물에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SWAT을 호출해 빌딩을 습격하게 했지만, 페이데이 갱은 목표를 이룰 때 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 요원들이 빌딩을 겨우 확보했을 때, 스터는 숨만 붙어있는 상로 발견되었다. 서버는 사라졌으며, 방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에는 2천 5백만에 달하는 거금이 추적할 수 없는 계좌로 보내졌다는 내용이 남겨져있었다.
          팀원 모두가 옥상에 있는 상에서 탈출 개시 20초 내에 지하실 문 개방
  • 편혜영 . . . . 2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이슬털기〉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2007년 단편소설 〈사육장 쪽으로〉로 제4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9년 단편소설 〈토끼의 묘〉로 제10회 [[이효석문학상]]을, [[2012년]] 소설집 〈저녁의 구애〉로 제42회 [[동인문학상]]을, 2014년 단편소설 〈몬순〉으로 제3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3~)로 재직 중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이효석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절강 편씨]][[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포챠포챠 . . . . 2회 일치
         [[일본어]] [[의어]]와 [[의성어]], 2가지 의미가 있다.
          * 얼굴과 몸매가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을 나타내는 의어. 보동보동, 포동포동.
  • 폴리스 . . . . 2회 일치
         마케도니아는 에트노스(Ethnos)라는 상의 국가 체계를 유지했다. 이는 지역마다 자치를 하는 체계로서, 폴리스보다 후진적인 형라고 여겨졌다.
  • 표창원 . . . . 2회 일치
         1966년 [[경상북도]] [[포항시]] 동빈동에서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 아버지를 둔 실향민 2세로 어났다.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 핑커톤 . . . . 2회 일치
         1872년, [[제시 영거 갱]]의 핵심인물이었던 [[제시 제임스]]와 프랭크 제임스를 잡는답시고 그들의 가족이 사는 집에 폭탄을 던져버렸다. 이로 인해 제임스의 9살 먹은 이부동생 아치 사무엘(Archie Samuel)이 사망했으며 제임스의 모친인 제렐다 새뮤얼(Zerelda Samuel)[* 재혼해서 성이 바뀌었다.]은 한쪽 팔을 잃게되었다. 핑커톤측은 집을 불워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앨런 핑커톤이 "집을 불워버려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 있다.
  • 하동부대부인 . . . . 2회 일치
         하동부대부인은 영의정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증손녀이며, 판중추부사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정세호]]의 딸로 1522년(중종 17) [[9월 23일(음력 9월 4일)]]에 어났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ref>창빈 안씨 소생으로 중종의 서9남</ref> [[덕흥대원군|덕흥군]]과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로는 3남 1녀를 두었고, [[1567년]](명종 22) [[6월 24일(음력 5월 18일)]]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하니 [[왕비]] 부모를 장사지내는 예로 장사지냈으며, 같은 해 [[8월 9일]] 신주를 대원군 옆 이실(異室)에 모셨다.
         [[분류:1522년 어남]][[분류:1567년 죽음]][[분류:부대부인]][[분류:도정궁 주인]][[분류:운현궁]][[분류:덕흥대원군파]][[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 선조]]
  • 하석 . . . . 2회 일치
         * 《[[대역전]]》 (2016년) - 정현 역
         [[분류:1984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하시다 스가코 . . . . 2회 일치
         '''하시다 스가코'''({{lang|ja|橋田 壽賀子}}, 1925년 5월 10일 -)는 일본의 [[각본가]]이자 [[극작가]]이다.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오사카부]] [[사카이 시 (오사카 부)|사카이 시]] [[니시 구 (사카이 시)|니시 구]]에서 자랐다. 본명은 이와사키 스가코({{lang|ja|岩崎 壽賀子}})로, 하시다는 결혼 전 성이다.
         [[분류:192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영화 각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의 텔레비전 각본가]][[분류:기쿠치 간상 수상자]][[분류:일본여자대학 동문]][[분류:사카이시 (오사카부) 출신]]
  • 하이큐/220화 . . . . 2회 일치
          * 카라스노로 돌아온 괴짜콤비. 돌아오자 마자 티격격한다.
          * 그런데 "너보다 100배는 잘한다"고 토를 탈아서 티격격하게 된다.
  • 하이큐/228화 . . . . 2회 일치
          * 그날 저녁. 자율연습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는 주장지시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는 니시노야 유에게 언제나처럼 서브 연습을 청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연습을 청한거 치곤 수십분 만에 페이스를 따라가기 버거워서 헉헉 거린다. 니시노야는 서브 연습은 심박수가 높은 상에서 하는게 이상적이라며 페이스를 늦추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에선 심박수가 높아진 상에서 때리기 마련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 하이큐/229화 . . . . 2회 일치
          * 사와무라는 꿈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괜히 찜찜한 기분인데 아즈마네 아사히와 스가와라 코시도 비슷한 상다.
          * 3학년들은 새해인사를 나누고 스가가 "다같이 첫참배 온 건 처음"이라면서 "진정한 첫참배"라고 말장난을 친다. 하지만 긴장 때문인지 농담을 받아주는 사람도 없고 특히 아즈마네는 숨쉬는게 고작일 정도로 얼어붙은 상다. 시미즈는 봄고 대회가 코앞으로 닥쳤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 하이큐/233화 . . . . 2회 일치
          [[스가와라 코시]]는 긴장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손이 자꾸 식는다며 불평한다. 하지만 [[카게야마 토비오]]는 자신은 긴장이 안 되며 "여기는 통과점에 불과할 뿐"이라며 의연한 도를 보인다. 스가와라는 얄밉다고 걷어찬다.
          츠바키하라 측에선 이들이 시라토리자와를 꺾고 올라왔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주장인 [[에치고 사키에]]는 "시라토리자와랑 붙는게 나았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에치고는 경기 내용상 저들이 시라토리자와를 압도한 것도 아니며 세상엔 "우연"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바꾼다. 마루야마는 좀 팔랑귀인지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우시와카랑 안 붙게 돼서 럭키"라고 세전환한다. 사실 주장인 에치고는 "이긴건 이긴 것"이니 만큼 카라스노의 실력을 얕보지 않는다. 단지 "작년의 반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격려한 것이다.
  • 하이큐/235화 . . . . 2회 일치
          * 중계진은 "비수"가 박혔다며 괴짜 콤비의 속공을 소개한다. 그런데 득점한 [[히나타 쇼요]]에 대해선 그 도약력이나 경기력보다는 "키가 164cm 밖에 안 되고 이번 대회 어커 중 제일 작음"이란 부분만 강조한다. 중계를 들은 히나타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투덜댄다.
          * 카라스노의 어커들이 일제히 네트 앞으로 뛰어간다. 츠바키하라는 히나타가 움직이는걸 봤지만 "10번에만 신경쓰면 안 된다"고 의식한다. 하지만 이미 그걸 의식해 버린 시점에서 반은 휘말려든 것. 카게야마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 하이큐/236화 . . . . 2회 일치
          * 츠바키하라의 고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작년 봄고를 떠올리며 세를 정비한다.
          * [[카게야마 토비오]]의 파인 플레이로 관중석의 여론은 단숨에 카라스노 쪽으로 기운다. 스코어는 16 대 15. 위로운 한 점차 리드. 츠바키하라는 침채된 분위기를 절감한다. 이때 첫 번재 TO.
  • 하이큐/244화 . . . . 2회 일치
          * 보쿠토는 쇼맨십이 강한 성격으로 관중의 상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가령 지난 전국대회에선 8회전에 비슷하게 난조를 보였는데, 이때도 저녁 시간에 시합이 잡혀 관객이 적었고 보쿠토는 보는 사람이 적다고 풀죽어버렸다. 올해는 낮시간이라서 방심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경기장이 메인 아레나가 아니라 서브 아레나라는 걸로 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방금 전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러 메인 아레나에 갔던게 결정적. 관객 수가 너무 차이가 나는 걸 자각해 버린 것이다.
          매점에 갔던 히나타와 야마구치가 후쿠로다니의 경기를 보러 온 것이다. 히나타는 막 구입한 티셔츠를 흔들며 보쿠토를 응원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게 보쿠토에겐 큰 감동을 주는 듯 하다. 아카아시는 아직도 보쿠토의 생에 관해선 이해가 안 가지만, 이렇게 별거 아니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의미라고 이해한다.
  • 하이큐/261화 . . . . 2회 일치
          * [[타키노우에 유스케]]는 [[시마다 마코토]]가 자리를 비웠다 좋은 장면이 다 지나가고 돌아오자 대차게 깐다. 아까 [[야마구치 타다시]]가 대활약했는데, 그 선생님인 시마다가 왜 자리를 비웠냐는 이유다. 물론 그는 시마다가 경기장 반대편까지 열심히 뛰다 온 걸 모른다. 그리고 그가 자기 블릿을 무단으로 빌려갔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마다는 그 짧은 순간에 "봉투 안에 타블릿을 끼워서 켜면 더 잘 보일 거다"는 계산까지 염두했던 것이다.
          * 24 대 24. [[야치 히토카]]가 스코어 보드 옆에서 결국 이런 상황이 왔다고 부르르 떤다. 우카이 코치도 바라지 않던 상황이다. 여기서 끊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과연 어떨지? 서브 위치에 아츠무가 들어서고 만다. 관중석의 바보 커플은 또 티격격한다. 여자 쪽이 "아츠무군"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나타내자 남자 쪽이 "아츠무랑 친하냐"고 빈정거려서 치고받는다. 이러다 헤어지는거 아닌가?
  • 하이큐/263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의 응원 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 플레이에서 [[미야 오사무]]의 스파이크를 블록하던 히나타에 힘을 보며 실점을 막는 타나카.
          *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벤치는 타나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멘탈을 믿었다. [[키노시타 히사시]]가 맨 처음 "타나카니까 괜찮다"고 입을 열었다. [[엔노시타 치카라]]도 같은 의견이었다. 시합에서 언제나 튼튼한 타나카. 팀이 어떤 상이든 팀에 남아주었던 건 타나카 뿐이다. 적어도 2학년 중에선.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 조차 한 번은 팀을 등진 적이 있고, [[니시노야 유]]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팀을 떠나있었다. 도중에 열정이 식었던 엔노시타나 키노시타, [[나리타 카즈히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도 어찌보면 타나카였다.
  • 하이큐/267화 . . . . 2회 일치
          * 이어지는 경기. 랠리와 랠리가 이어지며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2점의 점수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스코어는 22 대 20. 사루카와의 작전은 순조롭게 계속됐다. 그건 코즈메가 쏟아내는 땀을 봐도 명백했다. 아직까지는 위로운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지만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그때 리에프의 득점. 스코어 22 대 21로 한 점 따라잡는다. 서브는 네코마 측. 동점을 노릴 기회였다.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하지영 . . . . 2회 일치
         * 《[[광식이 동생 광]]》 (2005년) - 여후배 1 역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하카마 . . . . 2회 일치
          * 안돈하카마(行灯袴) : [[치마]]처럼 사이가 터있는 형.
          * 우마노리하카마(馬乗袴) : [[바지]]처럼 2개로 나누어져 있는 형.
  • 한가인 . . . . 2회 일치
         |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ref>{{뉴스 인용 |제목 =‘획기적인 쇼’ 한가인 “어날 때부터 예뻤다”…노래실력도 우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57174|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예나 |날짜 = 2012-10-27 |확인날짜 =2018-04-17 }}</ref>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
  • 한국영 . . . . 2회 일치
         * [[숭실대학교]] 중퇴<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ctg=news&mod=read&office_id=452&article_id=0000000305 혼신의 클엔 한국영의 인생이 담겨 있다]</ref>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201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알가라파 S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한덕수 (1907년) . . . . 2회 일치
         [[경상북도]]에서 어나 [[1927년]] 성악가가 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니혼 대학]] 중퇴후 노동운동에 참가했다. [[1934년]] 조선인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었다가 체포됐다. [[1945년]] [[10월 15일]]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참가해 총무부 담당 위원에 선출됐다. [[1955년]] [[5월 25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결성후 의장단 6명에 포함됐다. [[1958년]] 5월 제4회 전체대회에서 의장단이 해체되고 단일 의장, 부의장제가 도입되자 의장에 선출됐다.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있었다. [[196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됐다. [[1972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 기준으로 서열 4위였다.
         [[분류:1907년 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분류:재일 한국인]][[분류:최고인민회의 의장]][[분류:조선로동당]][[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 한동근 . . . . 2회 일치
         [[1993년]] [[5월 9일]] 경북 구미에서 어났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ref>{{뉴스 인용 |저자=손수영 |제목=한동근, 데뷔 전 무슨 일 했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url=http://news.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609092113433115096_1 |뉴스=헤럴드경제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9 |확인날짜= }}</ref> 한동근은 미국 유학 도중 성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합창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고 피아노로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민서 |제목=‘가요광장’ 한동근 “美 유학 중 성가대 활동, 가수 된 계기” |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545114&cloc=rss%7Cisplus%7Centertainment |뉴스=일간스포츠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3 |확인날짜= }}</ref> [[2014년]] [[8월]] 데뷔 앨범을 준비하며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를 부르게 되었다. 데뷔 곡을 정하기 위해서 시험 삼아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던 만큼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를 "자연스럽다"며 마음에 들어한 소속사 사장의 권유에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는 그 다음 달 발표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양승준 |제목=카메라 없어도 노래 자처…열정이 만든 ‘역주행 신화’ |url=http://www.hankookilbo.com/v/31eb3a7aa65e4987a1b22f33592d79a6 |뉴스=한국일보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1 |확인날짜= }}</ref>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참가자]][[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
  • 한병주 . . . . 2회 일치
         [[한성부]] 출생이며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충청도]] [[청원군|청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886년에서 1892년까지 [[청주시|충청도 청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1892년 [[한성부]]로 귀향하였고 줄곧 [[한성부]]에서 성장한 한병주는 1898년에서 1911년까지 경기도 시흥 양천향교에서 유교 성리학 훈도를 지냈으며 1919년 [[경성부]]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하였고 1920년 2월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성지부 교통국 국장 대리(大韓民國 臨時政府 京城支部 交通局 局長 代理)으로 활동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20년 2월 25일 자택에서 김규(金泰奎)로부터 김창의(金昌義)가 보내온 인쇄물 100여 장을 받았다. 김창의는 당시 임시정부 산하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내무참사(內務參事)로 국내 [[연통제]] 조직 예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쇄물은 군무부 포고 제1호라는 제목 아래에 '서로 함께 분기하여 일본 제국의 기반을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한병주는 이것을 받고서 1920년 2월 29일, 김순원(金純元), 오정주(吳政柱) 등에게 각 5매씩을 교부하고, 독립 시위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로 인하여 체포된 한병주는 1920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 만기출감하였다. 이후 1922년 3월, 한국독립당 입당하여 이후 조선 광복(1945년)이 지난지가 3년 후인 1948년 3월까지 한국독립당에 당원 직위하였고 1948년 3월, 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낙향을 하였다.
         [[분류:1879년 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청주 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김구]][[분류:의친왕]][[분류:유교 신자]][[분류:한용운]][[분류:김좌진]][[분류:이범석 (1900년)]][[분류:한국독립당]][[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한비야 . . . . 2회 일치
         * 2004년 [[한국YWCA]] 선정 젊은 지도자 상<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41101072239742&p=kukminilbo|제목=소비자운동 정광모씨 ‘여성지도자상’…YWCA,한비야씨 ‘젊은 지도자상’|저자=민원|날짜=2004-11-01|출판사=국민일보|언어=ko|확인날짜=2009-08-15}}</ref>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터프츠 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숭의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여행가]][[분류:유타 대학교 동문]]
  • 한상원 . . . . 2회 일치
         | 관련활동 = 쉼, <br /> 석기시대, <br /> [[김화]]밴드, <br /> 코리아 슈퍼세션, <br /> [[긱스 (6인조 음악 그룹)|긱스]]
         [[분류:한상원|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7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펑크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펑크 록 음악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승택 . . . . 2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상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상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반 이후에는 [[엄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잠전초등학교 동문]][[분류:잠신중학교 동문]][[분류:덕수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 한영이 . . . . 2회 일치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84년 어남]][[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한용덕 (시인) . . . . 2회 일치
         '''한용덕'''(韓龍德, [[1987년]] [[12월 18일]] ~) 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어난 [[대한민국]]의 현대[[시인]]이다. [[한성대학교]] 학사를 거쳐 [[세종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한성대학교 동문]][[분류:성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유주 . . . . 2회 일치
         '''한유주'''([[1982년]] ~ )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82년]]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5%9C%EC%9C%A0%EC%A3%B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75794 네이버 인물정보]</ref>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대전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한이서 . . . . 2회 일치
         |《[[왕사신기]]》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
  • 한재석(1973) . . . . 2회 일치
         2007년 SBS 미니시리즈 《[[로비스트(2007)|로비스트]]》 ... 강
         2008년 KBS2 미니시리즈 《[[양의 여자]]》 ... 김준세
  • 한주완 . . . . 2회 일치
         '''한주완'''(韓周完, [[1984년]] [[1월 10일]] ~ )은 [[대구광역시]]에서 어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누나는 [[한희정]]이다.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 한씨]]
  • 한준희 . . . . 2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분류:1970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현대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한지우(배우) . . . . 2회 일치
         2011년, MBC 월화극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의자왕의 정비인 백제 황후 연연 역을 맡았으나 [[국어책 읽기|국어책을 읽는 것만 같은]] [[발연기]]로 폭풍처럼 까였다.
         || [[계백(드라마)|계백]] || 연연 || 조연 ||
  • 한창수 . . . . 2회 일치
         [[한성부]] 출신이다. [[대제학]]을 지낸 [[한장석]]의 아들로 어나 [[한윤석]]에게 입적되었다.
         [[분류:1862년 어남]][[분류:1933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남작]]
  • 함신익 . . . . 2회 일치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라이스 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교수]]
  • 함중아 . . . . 2회 일치
         == 논란 관련 사 ==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식]][[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허용석 . . . . 2회 일치
         '''허용석'''(許龍錫, [[1956년]] [[7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제22대 [[대한민국의 관세청장|관세청장]]을 역임한 공무원이다. 본관은 [[하양 허씨|하양]]이며,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어났다.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관세청장]][[분류:덕수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양 허씨]]
  • 허종 (1939년) . . . . 2회 일치
         [[1939년]] [[4월 29일]] [[경성부]]에서 [[허헌]]과 그의 계비 [[유덕희]]의 아들로 어났다. [[1948년]] [[4월]] 아버지 [[허헌]]이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차 온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갈 때, 허헌, 유덕희내외, [[허정숙]], [[허근욱]] 등과 함께 월북하였다.
         [[분류:193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허정숙]][[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허준 (1981년) . . . . 2회 일치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하다가 [[2009년]]부터 [[강귀]]의 백업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는다. 그 이후로 많은 기회를 받지만 부상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2011년]] [[허도환]]의 등장으로 1군 경기 출전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11월 22일]]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팀 동료 [[조평호]]와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45598 NC, 전체 1순위로 넥센 조평호 지명 '총 7명 영입' ] - 스타N뉴스</ref>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미양초등학교 동문]][[분류:청량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허협 . . . . 2회 일치
         |백과사전 = 한국 브리니커 온라인
         [[분류:1796년 어남]][[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헤이안 시대 . . . . 2회 일치
         [2] [[이란 (헤이안 시대)|이란]]
  • 현동완 . . . . 2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분류:1899년 어남]][[분류:1963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현정건 . . . . 2회 일치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高宗)]] 24년([[1887년]])에 [[대구광역시|대구(大邱)]]에서 현경운(玄炅運)의 셋째 아들로 어났다. 일찍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0년]]에 중국으로 유학, [[상하이 시|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임시의정원|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이규홍(李奎洪) 등과 함께 1919년 9월 17일 경상도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20년]]에 상하이 주재 [[고려공산당|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입당하였고 [[1922년]] 10월 20일에 열린 베르프네우딘스크(Verkhneudinsk) 회의<ref group="설명">이동휘의 상하이 고려공산당과 김철훈ㆍ안병찬의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경쟁을 완화하고 두 세력을 합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그들에게 베르프네우딘스크에서 연합대회를 갖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한인 공산주의 운동 계열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정재달, [[조봉암]] 등도 여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대표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탄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철수, 코민테른 당국이 각파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조정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코민테른은 양파 모두 해산하고 단일당을 조선 안에 세울 것을 지시함으로써 상하이파도 이르쿠츠크파도 없어지게 된다. 김학준 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2005, 민음사.</ref>에 윤자영(尹滋英)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에 상하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는 윤해(尹海)ㆍ신숙(申肅) 등과 더불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왕삼덕(王三德) 등과 참여하였고 2월 5일에 [[여운형|여운형(呂運亨)]]과 더불어 외교분과위원으로 지명되었으나, 창조파가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과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결정인데 출석원(員)의 2/3나 되는 개조안을 무시하고 사신 5인이 퇴석 통고를 하고 불착한 대로 국호를 조선공화국로 정하여 새 국가를 만든 것을 성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ref>「創造派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東亞日報)』 1923년 6월 25일자.</ref> 7월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한국독립촉진회에도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 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 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였다. 8월에 조선의 관서([[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상하이교민단(上海僑民團)이 내지동포수재구제회(內地同胞水災求濟會)를 조직해 9월 26일에 수재의연금 110원을 동아일보사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ref>「同胞의 ㅁ愛! 해외각디동포의열렬한동정 가련한수재당한형뎨들에게」 『동아일보』1923년 10월 4일자 기사.</ref> 여기에 현정건의 이름이 실려 있다.
         [[분류:1887년 어남]][[분류:1932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고문 피해자]][[분류:유교 이탈자]][[분류:자유 연애]][[분류:사회주의자]]
  • 홍병선 . . . . 2회 일치
         [[한성부]]의 양반가에서 어나 어릴 때는 한학을 수학했다. 일본 기독교계에서 설립한 신교육기관인 경성학당에 입학하면서 신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08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시샤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11년]] 귀국했다.
         [[분류:1888년 어남]][[분류:196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도시샤 대학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홍석형 . . . . 2회 일치
         1936년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금속공학 학위를 받았다. 성진제강소 기술부기사장, 금속공업부 제1부부장,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기사장, 함북도당 제2비서 겸 김책제철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국가계획위원장([[1993년]]~[[1998년]]<ref name="ab" />), 함북도당 책임비서([[2001년]]~[[2010년]]<ref name="ab" />),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지냈다.<ref name="tongilnews">{{웹 인용|제목= 당대표자회, 40년대 해방전후 차세대 기수 전면 등장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72 |저자=정명진 |출판사=통일뉴스 |날짜=2010년 9월 29일 |확인날짜=2011년 10월 4일}}</ref> 그리고 2010년 9월부터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계획재정부장으로 있다.
         [[분류:193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분류:홍명희]]
  • 홍성유 . . . . 2회 일치
         [[1928년]] [[10월 4일]] [[경성부]]에서 어나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학사 학위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51년 9월 [[갑종장교|육군 갑종사관]] 제10기로 육군 소위 임관하여 [[1951년]] [[대한민국 육군본부|육군본부 헌병사령부]] [[기관지]] 《[[사정보]]》(司正報) 기자·편집장을 지낸 이후, 1952년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1953년]] 국방부 군사잡지 《[[명랑]]》(明朗) [[편집장]]을 거쳐 [[1955년]] [[2월]]에 대한민국 육군 중위 예편하였으며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분류:1928년 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
  • 홍세화 . . . . 2회 일치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現 [[서울특별시]])에서 어나,<ref>1948년 이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뀐다.</ref>[[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서울창경초등학교|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
  • 홍유경 . . . . 2회 일치
         한편 에이핑크 데뷔 이전인 2006년에는 동요 음반 《119소방동요집(III)》에 수록된 해 이야기를 불렀다.
         [[분류:1994년 어남]][[분류:201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가수]][[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에이핑크]][[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진기 . . . . 2회 일치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분류:혁명재판 기결수]][[분류:1917년 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한국의 일제 부역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무학초등학교 동문]][[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이승만]][[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홍해성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어났다. [[계성고등학교]] 전신인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도쿄]]에서 극예술협회를 결성하고 연극 운동에 뛰어들었다. [[마해송]], [[홍난파]], [[최승일 (1901년)|최승일]] 등이 회원이었다.
         [[분류:1894년 어남]][[분류:195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홍혜경 . . . . 2회 일치
         1959년에 [[서울특별시]]에서 어났다. 1984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의 [[세르빌리아]]로 데뷔하여 2004년 메트로폴리탄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성악가]][[분류:대한민국의 오페라 가수]][[분류:소프라노]][[분류:줄리아드 학교 동문]]
  • 화식 화장실 . . . . 2회 일치
         [[의자]] 형로 걸터앉을 수 있는 좌식(양식)과는 달리, 바닥에 설치된 변기 위에 쪼그려 앉게 되어 있는 형.
  • 화완옹주 . . . . 2회 일치
         **** 조카 : [[의소세자|의소자]] 정(懿昭太子 琔, 의소세손, 1750년~1752년)
         [[분류:1737년 어남]][[분류:1808년 죽음]][[분류:조선의 옹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가족 살해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영조]][[분류:조선 정조]]
  • 화표 . . . . 2회 일치
         천안문 화표는 수미좌 형의 대좌에 세워져 있으며, 대좌 주변에는 네 모퉁이에 각각 작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돌난간으로 보호되고 있다.
         화표 기둥은 육각 기둥 형이며, [[구름]]을 바탕으로 하여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를 반룡주(蟠龍柱)라고 부른다.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2회 일치
         ''' 소몰이 창법의 R&B 황자.'''
         [[바이크]]매니아였다. 오죽했으면 우결 신혼여행 중 들린 곳이 백 서킷. 집에 바이크 피겨나 본인이 바이크를 타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전시해놓기도 했다. 지인들로부터 위험하다는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근래에는 멀리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개설한 트위터 아이디에 듀카티가 들어가는걸 보면 여전히 바이크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은 듯.
  • 황가히 . . . . 2회 일치
         * [[해제과]] 자유시간 CF 촬영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황광희 . . . . 2회 일치
         [[1988년]] [[8월 25일]]에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에서 어났다.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 황대봉 . . . . 2회 일치
         1930년 [[경상북도]] 영일군 창주면 대보리(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에서 어났다.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이상은]](다스 회장), [[이상득]](前 13~18대 국회의원), [[이명박]](前 대통령) 삼 형제의 모교로 유명하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을 졸업하였다.
         1967년 [[포항버스]][* 이후 1990년대에 성원여객으로 통합되었고, 신안여객을 거쳐 現 코리아와이드 포항이다.]를 설립하여 현재의 대아그룹을 창업하였다. 이후 해운([[대아고속해운]]), 금융(대아상호신용금고), 건설, 관광레저(대아여행사), 문화사업, 지역언론사업([[경북일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1983년 포항에 [[세명고등학교]](학교법인 영암학원)를 설립하였다. [* 여담으로 세명고등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가끔씩 이사장이 오셨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황대봉 이사장과 악수를 하면 수능을 대박 친다는 일종의 카더라가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사장이 등장하시면 3학년들이 악수한다고 난리였다고 한다.]해당 과정을 통하여 포항시에서는 고 [[박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지역 경제계에서 큰 인물로 인식되었다.
  • 황병승 . . . . 2회 일치
         '''황병승'''([[1970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제11회 「[[박인환문학상]]」, 2013년 제13회「[[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박인환문학상 수상자]][[분류:미당문학상 수상자]][[분류:21세기 시인]]
  • 황병하 . . . . 2회 일치
         1962년 [[서울시]]에서 어나 [[우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였다. 대법원 재판연구원,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지원장을 거쳐 2004년 2월 정기인사에서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2016년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나 [[대구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평생 법관제에 따라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하고 있다.<ref>[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30901&part_idx=335]</ref>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수 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우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황부인전 . . . . 2회 일치
         황소저는 꿈에서 계시를 얻는데, 그녀는 전생에 월궁항아였으나 용모가 빼어나고 교만하여 인간세계에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편 은거 선비 [[제갈량]]도 꿈에서 계시를 얻는데, 그는 천계 공명성이 전생한 몸으로서 300년 전에 인간 세상에 어났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명성을 떨치지 못했으며 하늘의 뜻으로 다시 어나 성주(聖主)를 모심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운명이었다.
  • 황상경 . . . . 2회 일치
         * [[2008년]] 《[[초감각 커플]]》 - 공연 티격격 커플남 역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황선필(1939년) . . . . 2회 일치
         * [[아시아 평양 방송 연합]] 이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110500329202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11-05&officeId=00032&pageNo=2&printNo=12650&publishType=00020 黃善必 문화방송사장 亞太放送聯이사에 再選] - 경향신문, 1986년 11월 5일</ref>
         [[분류:193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 황선희 . . . . 2회 일치
         | [[주군의 양]]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황연석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프]]
  • 황옥 (1885년) . . . . 2회 일치
         의열단은 황옥, 김시현 등이 밀반입시킨 무기류를 통해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 등을 동시에 테러하는 제2차 국내 거사를 준비했지만 김재진이 밀고하여 실패했다. 김재진은 재판 이후 흔적이 증발하는데, [[유석현 (1900년)|유석현]]은 1983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김재진은 가명이고 [[권일]]이 본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원봉, [[김지섭]] 등 소수만 탈출했고 황옥, 김시현, [[김진기]], [[조동근]], [[홍종우]], [[홍종무]], 유석현 등은 1923년 3월 15일에 체포당한다.
         [[분류:1885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의열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납북자]][[분류:이중간첩]]
  • 황의종 . . . . 2회 일치
         1952년에 [[충청북도|충북]]에서 어나 [[1971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를 졸업했으며, [[1975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1980년]]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이며 [[2008년]]에 예술대학 학장이 되었다.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국악사양성소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
  • 황재규 . . . . 2회 일치
         [[청원고등학교 (서울)|서울청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동기인 [[허유강]] 선수와 함께 팀의 주축 선발 [[투수]]로 활약하였다. 제 4회 세계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 대표팀으로 참가하여,<ref>[http://isplus.joins.com/sports/kbo/200806/12/200806122017013276010700000107020001070201.html 세계 대학야구 선수권 대표팀 명단 발표] 《일간스포츠》, 2008년 6월 12일 작성</ref> [[일본]]전에서 좋은 투구를 보여 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067& 세계 대학야구 결산 - 협회의 외면 속에서도 유망주는 큰다] 《박동희칼럼》, 2008년 7월 29일 작성</ref> 제 1회 KBO 총재기 대학 야구 결승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정승]]에 이어 팀의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8.1 이닝 3안타 6탈삼진 1실점의 호투로 [[성균관대학교]]의 우승에 기여하였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48816 성균관대, 연세대 꺾고 제 1회 KBO 총재기 우승] 《조이뉴스》, 2008년 8월 8일 작성</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075& 대학야구 취재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박동희칼럼》, 2008년 8월 9일 작성</ref>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정미 . . . . 2회 일치
         * [[1999년]] [[SBS]] 주말극장 《[[젊은 양]]》
         [[분류:1977년 어남]][[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경상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
  • 히치하이킹 . . . . 2회 일치
         여행하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아무 자동차에게 워달라고 부탁하여 목적지, 혹은 중간 지점까지 여행을 하는 것을 뜻한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히치하이킹이 보편적이며 아무나 다 워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소련]]에서는 [[택시]]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아서,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나 밤늦게 집에 갈 때는 히치하이킹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히치하이킹이 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고(…)[http://news.tf.co.kr/read/entertain/1476694.htm 참조]--훈훈한 소련 인심--
  • 155밀리 롱 톰 . . . . 1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디자인 된 M1917, M1917A1, M1918 GPF (Grande Puissance, Filloux)의 후속작으로 [[미국]]에서 도입했다. GPF를 기반으로 하여 개량하면서 M1 155mm 야포가 개발되었다. 1940년에 디자인이 개선되어 M2 155mm 야포가 만들어졌으며, 이 야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사용하여 유럽 전선과 [[평양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M2를 개량한 모델이 M59 155mm 견인포가 된다.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1회 일치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2세대주택 . . . . 1회 일치
         2세대 주택이라고 해도 여러가지 형가 있다.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1회 일치
          * 한편 [[하야시다 타카시]] 추를 부린 일로 진로상담하러 온 [[노구치 에이사쿠]]에게 한탄을 해댄다.
  • Crusader Kings 2/종교 . . . . 1회 일치
         게임 Crusader Kings 2의 종교를 설명하는 페이지. 중세 배경인 게임인 만큼 종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몇몇 종교의 경우에는 정부 형를 강제하기도 하니 더더욱 중요하다.
  • DC 확장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유명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DC 히어로들이 그 동안처럼 따로 등장해온 것이 아니라 각 작품이 연동되는 시리즈에서 등장하게 되기에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으나..... 그 상가 '''많이''' 안좋다. 그래도 원더우먼 영화가 준수한 완성도를 지니면서 그 입지를 어느정도나마 회복시켜줬고, 이후 아쿠아맨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 EM 드라이브 . . . . 1회 일치
         원불 형의 밀폐형 챔버에 빛 입자와 극초단파(마이크로웨이브)를 쏘면, 원뿔의 넓은 쪽으로 튕겨 흐르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당초는 [[상온핵융합]] 같은 여러 황당한 가짜 발명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겨졌으나, NASA의 연구 결과, EM 드라이브는 [[진공]]에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FrontPage . . . . 1회 일치
         5) 1) 2) 3) 4) 의 규칙에 위반되는 항목은 최대한 빨리 규칙에 일치하는 형로 수정되어야 한다.
  • JOY축제 . . . . 1회 일치
         그리고 JOY가 자신의 일기에 [[자전거]]를 탄 소년과 [[교통사고]]를 냈으나 오히려 자신보다 소년이 나쁘다고 주장하거나, 남편의 회사에 이름만으로 임원으로 올라가서 [[전업주부]]이지만 월급을 받는 상이거나,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보육원]]에 아이를 집어넣는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K리그의 승강제가 아직 과도기였던 2013시즌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과도기였던 2013시즌만 한시적인 형의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구조를 갖고 있었으며, 2014시즌부터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규정이 안착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반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백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상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 MC메타 . . . . 1회 일치
         2013년 6월 MC 메타는 [[SHOW ME THE MONEY 2]]에 메타크루의 수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서 시즌 1에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 1에 나왔던 래퍼들이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일단 ~~이현도와 비교되면서~~ 출연자를 대하는 도나 심사평에 대한 반응은 좋다.
  • MoniWikiProcessor . . . . 1회 일치
         1.1.2 function 형만 지원. 예) PhpProcessor, VimProcessor
  • NEC 코퍼레이션 . . . . 1회 일치
         주로 각종 에로게 등을 콘솔로 전연령화하여 이식하면서 연명하였고, [[센티멘탈 그래피티]]를 엄청난 비용을 쏟아 만들었다가 폭망하면서 2004년에 인도될 떄 쯤에는 거의 그로기 상. 그 이후에도 변변히 벌어들인게없다.
  • NTX . . . . 1회 일치
          * 포인트 베팅(베타): 포인트를 가지고 스포츠 도박을 하는 곳. 아직 베타라서 포인트가 빠지거나 들어오지는 않는다. 8월 이후로 정전 상.
  • NTX위키 . . . . 1회 일치
         구 NTX와 신 NTX 두군데에 있다. 두 곳의 데이터가 연동되는게 아니라 구 NTX 위키내의 데이터를 신 NTX로 옮겨온 것이기 때문에 구 NTX 위키는 현재 버려진 상이다.
  • OK 본 . . . . 1회 일치
         [[1983년]] 대구에서 어나 서울에서 유년 교육 과정을 밟으며, 1996년부터 랩 메이킹을 시작하며 [[힙합]]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NOMZ 프로젝트, 개놈 프로젝트 등 비정규 음반에 참여했다. 1집 발매 이전에는 [[힙합플레이야]]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곡을 올리며 활동하였으며, 2005년 라디오 프로그램 Open Mic의 선발자로 출연했고, 이어서 구단지 독서실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여러 언더 힙합 앨범에 참여하며, 2008년 구단지 독서실 2집 '라임왕'을 발매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를 졸업하였다.
  • Project:Union . . . . 1회 일치
         서기 2269년경, 인류는 너무 많아진 인구에 의해 과포화 상가되어있었다. 이제 방주 계획이라는 신은하 개척 및 대규모 이주 계획이 창안되었고, 곧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인류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그러나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예기치못한 사고로 궤도를 벗어나 원래 계획과는 다른 항로로 향하게되었고 결국 불샃ㄱ하게 된곳이 [[레시마스 은하]]이다.
  • Q.E.D. 증명종료 . . . . 1회 일치
         [[일본]]의 작가 [[카토 모토히로]]가 [[코단샤]]의 [[계간]]지 '월간 소년 매거진 플러스'[* 원래는 매거진 GREAT라는 이름이었으나, 2009년 매거진 Z라는 잡지가 폐간, GREAT에 흡수되면서 '매거진 이노'라는 잡지가 되었다가 이마저도 2011년에 폐간. 이노에서의 연재작들을 모아 새로 창간한 잡지가 매거진 플러스.]에 연재 중인 [[추리]]만화. 작가는 전에 일하던 출판사([[에닉스]])에서 정리해고당하고 이 만화까지 망하면 만화가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왕창 팔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판매 부수는 권당 4만부 정도. 잡지가 워낙 마이너하다 보니... ] 97년부터 2015년까지 장장 18년 동안 장수하며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격월간지 장기연재 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돼있는 상로, 실시간 갱신중이다.] [[date]] 기준으로 48권까지 정발되었다.
  • T.O. 모로우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 [[영 저스티스]]에 등장. 이쪽에서도 레드 토네이도를 만들었으나 결국 그에게 패한다. 한편 극중에 먼저 등장했던 모로우는 진짜가 아니었고 진짜 모로우는 몸 상가 정상이 아닌 판.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회 일치
          석유 사업가. 파산 직전에 상에서 뭔가 가치있는 운송 대상[* 당시 개나소나 철도를 지어서 철도의 가치는 별로 없었다. 그로인해 가치있는 운송 대상을 찾던 것.]을 찾던 밴더빌트와 계약하며 성장한다.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 . . . 1회 일치
         장군이나 제독의 성능은 랜덤이다. 말 그대로 가챠. 아무리 병신같은 똥별이 나오더라도 왠만하면 장군 없는 상에서 처맞는 디버프보다 낫다. 가능한 모든 군대/함대마다 지휘관을 붙이자.
  • Victoria II/상품 . . . . 1회 일치
         차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풍년으로 발생한 차들을 처리하는 "우리 나라의 모든 차"[* 해당 이벤트 이름은 영어 표현인 All the Tea in China에서 따왔다. 매우 값진것을 의미하는 표현. 보통 "중국의 모든 차를 다 준다고 해도 거부하겠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차를 비축할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빈민들에게 나눠줘 투쟁성과 의식도를 감소시킬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자본가들에게 나눠줘 소지 자금에 보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 Victoria II/정당 . . . . 1회 일치
         모든 정당은 사상마다 최소 하나씩 존재하며, 여러 특성을 조합한 형를 취하고 있다. 이 특성들은 해당 정당이 집권당이 되었을 경우 적용된다. 집권당은 국가의 정치 체제에 따라 플레이어가 직접 임명하거나 총선을 통해 임명하게 된다.
  • ∀건담 . . . . 1회 일치
         달은 과거의 기술과 역사를 잃어버린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구귀환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정력]] 2343년, 운하인으로 어난 문레이스 [[로랑 세아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인 [[프란 돌]], [[키스 레제]]와 함께 모빌슈츠 [[플랫]] 2호에 탑승하여 [[잉그렛샤]]에 내려가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갔다. 그렇게 지낸지 2년이 지난 정력 2345년, 로랑은 정착하기로 한 비시니티에서 성인식을 치루던 도중 달의 지구귀환작전이 발동되면서 지구는 전쟁속에 휩싸이게 되고,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때맞춰 깨어난 기계인형 화이트돌에 탑승하게 된다.
  • 가면부부 . . . . 1회 일치
         부부관계는 차가워졌고, 이미 애정은 없지만 이혼하지 않는 상. 약 30%의 부부가 가면부부에 가까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 가열 . . . . 1회 일치
         '매울 가(苛)와 '세찰 렬(烈)'을 써서 가혹하고 격렬한 상를 이르는 말. 보통 '가열차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표준어로는 '가열하다'라고 쓰는 게 맞다. ~~그런데 표준어가 더 헷갈리기 딱 좋은데...~~
  • 강기웅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
  • 강상재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곡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강세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강연재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신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안철수]][[분류:홍준표]][[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
  • 강예빈 . . . . 1회 일치
         [[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주시 출신]][[분류:강씨]]
  • 강우영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어남]][[분류:2011년 죽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강원 FC . . . . 1회 일치
         실제 창단의 시발점은 2008년 4월 28일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2064010|"강원도민프로축구단 창단추진"]을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몽준 前 축협회장이 참가하여 "창단을 축하한다"는 발언을 생각하면 이 시기를 구단 역사의 첫 페이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33646|참고기사]]] 당시 도지사였던 김진선 이외에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이광재(백, 영월, 평창, 정선), 최욱철(강릉)도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여야를 막론한 창단의 동의는 사실상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강재형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2년 어남]][[분류:1987년 데뷔]][[분류:영동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강정길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강흠덕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괴산명덕초등학교 동문]][[분류:괴산중학교 동문]][[분류:괴산고등학교 동문]]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1회 일치
          * 봄바는 UMR 상의 우마루를 남자애인줄 안다--가지가지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2화 . . . . 1회 일치
          * 티격격하는 사이 어느새 완성된 전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그러면 우리도 좀비가 된다고 실핀이 지적하자 금방 취소한다.--우디르급 세전환--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1회 일치
          * 변 같은걸 마주치는게 걱정이라고 하는데, 사실 키리에가 봄바 보다 강해서 하나마나한 걱정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1화 . . . . 1회 일치
          * 어머니는 실핀에겐 엄격한 도로 조금 더 향상시키라고 조언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타이헤이 앞에서 추를 부리고 싶진 않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1회 일치
          * 오늘의 메뉴는 카레. 카나우는 목에 탄산이 걸려 있으면서 연하게 대화를 나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키리에는 그림책 작가를 희망하고 있고 벌써 출판사에 들어간 상. 키리에는 아직도 그 얘길 하지 못했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1회 일치
         카놀리가 벨루치오 빌딩 옥상에 도착했을 때는 독가스가 건물 높이까지 퍼진 상였다. 비행선에 벨루치오의 돈을 전부 싣고 떠날 준비를 하는 프랭키를 목격한 카놀리는 벨루치오의 행방을 묻는다. 프랭키가 벨루치오를 죽였다는걸 깨달은 카놀리는 프랭키를 욕한다. 프랭키는 목격자를 남기지 않겠다며 카놀리에게 덤벼들지만 오히려 자신이 밀리자 비행선에 올라 타 카놀리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카놀리 역시 비행선에 올라 타서 프랭키를 두들겨 패고는 비행선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한다. 프랭키는 자기만이 비행선을 조종할 수 있다며 목숨을 구걸하지만 카놀리는 설명서를 읽어봤다며 프랭키를 비행선에서 내던져버린다. 이후 카놀리는 비행선을 몰고 떠그타운을 빠져나간다. 프랭키가 빼돌릴려고 했던 벨루치오의 돈과 함께.
  • 건포인트 . . . . 1회 일치
          $1,000. 왼쪽 시프트키나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꾹 눌러서 권총을 꺼내든다. 대다수의 경비원들은 권총으로 겨누고 있으면 총을 못 쏘며, 천천히 다가가면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쏴버리니 주의. 권총을 꺼낸 상에서 마우스 왼쪽 클릭으로 권총을 쏠 수 있지만, 소음을 발생시키는 데다가 총이 발사되고 나서 15초 내에 못 빠져나가면 경찰이 지하철 입구에 저격수를 배치해 콘웨이를 쏴죽여버린다. 그런데 저격수도 쏴죽여버리면 된다는건 안비밀. 장탄수 여섯발.
  • 고도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제주 고씨]]
  • 고독사 . . . . 1회 일치
         고독사가 일어나고 일주일 이상 지나면 [[시체]]가 부패하여 방 내부의 상가 상당히 심각하게 되므로 부동산 회사에서도 문제시 하고 있다.
  • 고수희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진대학교 동문]]
  • 고스트 패트롤 . . . . 1회 일치
         능력은 하늘을 날수 있고, 투명화가 가능하다. 몸의 일부, 혹은 전체를 물질화시킬 수 있으나 물리적인 형가 되면 상처입기 쉽다. 벽을 걸을 수도 있다. 즉, 유령.
  • 고원희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11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제주 고씨]]
  • 고주원(배우) . . . . 1회 일치
          * [[달려라 장미]] - 황자 역
  • 고준희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1년 데뷔]][[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곤조야키 . . . . 1회 일치
          * 사채꾼 우시지마에서 브래지어 형로 곤조야키를 하는 영구브래지어 형이라는게 나왔다.
  • 공기교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주변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파악해서 행동하는 것을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고 표현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같이 '공기를 읽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마치 [[종교]]나 신념 같이 이야기하고 [[동조압력]]을 격렬하게 발산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공기교라는 말이 어나게 되었다.
  • 곽결호 . . . . 1회 일치
         [[분류:194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곽성문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선진통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곽승준 . . . . 1회 일치
         1960년 [[경상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어났다. 서울[[한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광주 FC . . . . 1회 일치
         2010년 12월 16일에 창단한 구단[* 창단식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인은 10월에 이미 나 있던 상였다.]으로 2011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K리그의 16번째 구단이며, 순서상 6번째 [[시민구단]]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두고 활동한다. 정식명칭은 "광주시민프로축구단".
  • 광해군 . . . . 1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 구광본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구명환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분류:구씨]][[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구본욱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구본홍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194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
  • 구성재 . . . . 1회 일치
         1960년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구천서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이리하여 국부펀드의 영향력이 증가하였으나, 이들의 총자산 등 정보가 비공개 상라는 점을 염려하여 [[IMF]]에서는 산티아고 원칙 (Santiago Principles)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The International Forum of Sovereign Wealth Funds (IFSWF)가 International Working Group of Sovereign Wealth Funds(IWG)에 의하여 출범했다. 2009년 4월에 쿠웨이트에 설립된 IFSWF는 2009년 10월에 멤버들간 정기회의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하였다. 한국투자공사를 비롯하여 24개 국부펀드가 가입하고 있다.
  • 권성욱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0년 어남]][[분류:KNN의 아나운서]][[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
  • 권영준 (1952년)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안동 권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권재진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안동 권씨]][[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LS그룹]]
  • 권해효 . . . . 1회 일치
         [[2005년]] [[10월 23일]] 혈중알코올농도 0.119%의 만취상에서 자신의 [[랜드로버|랜드로버 지프]]를 운전하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05102607482318436&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음주단속에 적발]]되어 불구속 입건되었고, 운전면허는 취소됐다.
  • 권혁 (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
  • 규동 . . . . 1회 일치
         밥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규동을 비빔밥처럼 비벼서 먹으면 뭔가 답이 없는 상가 되며(…) 밥과 고기를 조금씩 섞어가며 같이 먹는 것이 일반적인 요령이다.
  • 규성 진씨 . . . . 1회 일치
         전완 이후로 전씨는 제나라에 자리를 잡고 점차 제나라의 유력 씨족이 되었으며, 마침내 공망의 후손인 강성(姜姓) 여씨(呂氏) 왕조를 단절시키고 제나라의 군주가 된다. 제왕 건은 다시 진씨로 복성하며, 제나라 왕실에서 왕씨가 일부 갈라져 나온다.
  • 금춘수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3년 어남]][[분류:안동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안동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기은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석대학교 동문]]
  • 길은혜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해평 길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김가은(1989년 5월) . . . . 1회 일치
          * 2018년 1월 26일 프로필을 공개하며 실수로 전화번호도 같이 공개했다. 1시간 가량 혼란 상이상에 빠졌으나 그 다음날까지 시청자의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응원문자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 김가을 (수영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수영 선수]][[분류:자유형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
  • 김강근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주성중학교 동문]]
  • 김건우 (1990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김경식 (1960년)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경식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
  • 김기섭 (1939년) . . . . 1회 일치
         [[분류:193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영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영삼]][[분류:김영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본명 ||[[김우]] ||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시카고 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표현의 자유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
  • 김기철 . . . . 1회 일치
         1917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 김다솜(배우) . . . . 1회 일치
         최근의 음악방송 무대에서는 다른 멤버의 파트임에도 다솜을 담당하는 카메라의 영상이 송출되는 경우가 잦다. 과연 방송국 스프들이 인정한 비주얼 담당이라 할 수 있다.
  • 김동재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동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
  • 김만수(정치인) . . . . 1회 일치
         1964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상경하였다. [[충암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김명신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
  • 김문순 (언론인)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김문오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김문집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일본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일본인]]
  • 김민교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1967년 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민수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 김민수 (1992년)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청원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청원중학교 동문]][[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민아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아나운서]]
  • 김민제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화승 OZ의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
  • 김범룡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데뷔]][[분류:과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김병윤 . . . . 1회 일치
         1922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어났다. [[일본]] 오사카전문학교(현 [[긴키]]대학교) 법과를 중퇴하고 포항수산대학(현 [[포항대학교]]) 증식학과를 졸업하였다.
  • 김병준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2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보미(1958)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1977년 데뷔]][[분류:남원시 출신 인물]]
  • 김보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김봉수(1953) . . . . 1회 일치
         [[1953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어났다. 본관은 [[광산 김씨]]이며, 1970년 2월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학과]]에 입학하였다.
  • 김봉환(1921) . . . . 1회 일치
         192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 김상엽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김상훈 (1963년)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상훈 (1990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김상희 (1951년)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새해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2009년 데뷔]]
  • 김석원 (금융인)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 김선재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2015년 데뷔]]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T 위즈 선수]]
  • 김성조 . . . . 1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대구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동양전자화학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 김성훈(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세윤 (1999년) . . . . 1회 일치
         [[분류:199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무산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소희 (2000년) . . . . 1회 일치
         [[분류:200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수진(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1994년 데뷔]][[분류:2013년 죽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사생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자살한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목 매달아 자살한 사람]][[분류:독일계 한국인]][[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목포시 출신 인물]]
  • 김승목 . . . . 1회 일치
         1929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부산상업고등학교(현 부산[[개성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 김양 (1953년)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동 김씨 (구)]][[분류:김구 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장]][[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문국현]][[분류:창조한국당]][[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국방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김영준(1941) . . . . 1회 일치
         1941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 에서 어났다. [[국립체신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 김옥이 . . . . 1회 일치
         [[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일중학교 동문]][[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군 장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대한민국 육군 대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친이]][[분류:친박]]
  • 김우동 . . . . 1회 일치
         1897년 [[경상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일본]] 니혼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 김유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
  • 김윤동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안동 김씨 (신)]][[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인철 . . . . 1회 일치
          *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인 [[김성근]] 감독과는 1991~92년 삼성 1군에서, 2000년 삼성 2군에서 함께한 바 있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복귀하면서 15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는데,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일은 많아졌지만 팀 성적 향상에 확신을 갖고 본인 포함 전 스프들이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31220|해당 기사]]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김장섭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관료, [[정치인]]이다. 1909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어났다.
  • 김재권 (철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재홍 (1958년)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정수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
  • 김정재 . . . . 1회 일치
         1966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어났다. 포항중앙초등학교, 동지여자중학교, [[포항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김정행 . . . . 1회 일치
         1943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어났다. 대구 [[대건고등학교(대구)|대건고등학교]],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2년까지 유도선수로 활동하였다.
  • 김정호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제남 . . . . 1회 일치
         [[김희정 (1992년)|김희정 (1602년)]]왕후의 아버지, 선조의 장인,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딸을 선조에게 보내고 영창대군이 어난 다음 연흥 부원군(延興府院君)에 봉해졌다.
  • 김제철 . . . . 1회 일치
         '''김제철'''(金齊喆)은 [[조선시대]]의 [[판소리]] 명창으로 8명창의 한 [[사람]]이다. [[충청도]]에서 어났다. 그의 더늠은 [[심청가]] 중에서 〈갑자 사월 초파일〉이다. 그의 [[소리|소리제]]는 [[가야금]]과의 병창제인 석화제라고 한다.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
  • 김준희 (1960년)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지훈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김지훈 감독 영화|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창규 (작가)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어남]][[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분단시대 동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김창숙(배우) . . . . 1회 일치
          * [[양은 가득히]](2000, KBS 2TV)
  • 김충섭 . . . . 1회 일치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김천봉곡초등학교,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 [[영진전문대학]] 행정과를 졸업[*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김 시장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큰 병이 걸려 3번이나 큰 수술을 하였고 이로인해 1년 늦게 졸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천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공직에 진출하였다. 대학은 이후 공직에 있으며 [[영진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하였으며. [[청도군]] 부군수, [[김천시]] 부시장, [[구미시]]의 부시장, 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경북청소년수련원 원장직을 역임했었다.
  • 김현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
  • 김현정 (1979년)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배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김천시 출신]]
  • 김형렬 (1959년)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형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노예계약 사 ==
  • 김형철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식]][[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혜영(코미디언) . . . . 1회 일치
         MBC 희극인실(코미디언) 동료이자 선배인 [[강석(코미디언)|강석]]과 함께 1987년부터 MBC 표준FM [[싱글벙글쇼]]의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5공시절 "서울 공화국, 6공 들어서는 "88 돌도사"라는 코너에서 시사풍자를 빵빵 터뜨려 대던 용자짓을 했다....] 현재까지 집안 경조사가 있어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을 하고 있다. 다만 주말과 공휴일은 평일보다 5분 길게 진행한다.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 결혼식 당일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에서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이후에야 결혼식을 하러 갔다고 한다. 게다가 신혼 여행 때도 지역국(제주)과 본사를 연결해서 방송했다.
  • 김호근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홍미 . . . . 1회 일치
         [[1557년]](명종 12년) [[경상도]] [[상주]]에서 어났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낸 김상직(金尙直)의 6대손으로, 증조부는 김예강(金禮康)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윤검(金允儉)이며, 아버지는 옥과현감(玉果縣監) 김범(金範)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자는 창원(昌遠), 호는 성극당(省克堂), 성극(省克)이다.
  • 김희정 (펜싱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혜여자중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목원대학교 동문]]
  • 나가 . . . . 1회 일치
         이들은 22세가 되는해에 '심장적출'이란 의식을 가지는데, 일종의 성인식으로, 심장을 말그대로 '빼서' 심장탑에 보관하는 식이다. 이상의 나가는 사실상 불사로, 목이 잘려도 어느정도의 시간과 영양공급만 있으면 목이 다시 붙는듯. 심장을 뽑지 않은 나가는 '비에나가'라 부르는데, 이들은 말그대로 '가짜 나가'취급을 받는다. 만약 어쩌다 사정이 생겨 심장을 뽑지 못했을경우엔, 여성은 그 다음해에 심장적출이 벌어지는때까지 가문에서 보호해주지만, 남성은 무조건 끔살이라는듯(....)
  • 나용찬 . . . . 1회 일치
         1953년 [[충청북도]] [[괴산군]] 에서 어났다. 괴산칠성초등학교, 괴산중학교, [[괴산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경기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1회 일치
          * 두 사람은 서로 공적을 날로 먹네 마네 티격격하기 시작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1회 일치
          * 토도로키는 쓸데없이 다툰데다 개성의 상성도 나쁘도 연계도 최악, 이런 상로 톱 히어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1회 일치
         사걸고교 케미의 정체는 토가 히미코. 진짜 케미의 행방은 미지수다. 하지만 토가의 성미로 봤을 땐 성하게 있지는 못할 것으로 추정. 일단 토가의 행동은 단독행동으로 빌런연합의 계획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개성이 변신이고 단지 피를 얻으면 변신할 수 있다는 패널티가 매우 적은 능력. 처음엔 스테인을 추종하는 도나 우라라카, 아스이 츠유와 교전했을 때의 정황 때문에 스테인과 비슷한 계통이 아닌가 추정되었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회 일치
          모든 것은 자신의 손바닥 안, 그런 도다. 하지만 그의 예측이야 어떻든 결국 모든 원인은 올마이트다. 그의 거짓된 모습과 은퇴가 "아무도 구할 수 없는 올마이트"를 만들고 무력함에 치를 떨게 만드는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잠시 뒤. 담인 [[아이자와 쇼타]]의 호된 훈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자와는 둘을 꽁꽁 포박해서 압박한다. 사실 둘의 싸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호출받았을 때 나타난건 올마이트였기 때문. 이번에도 올마이트는 아이자와를 진정시키며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쿠고의 심리 상를 언급하며 자신이 교사들이 멘탈 케어를 맡아줘야 했던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그 말을 듣고 아이자와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1회 일치
          미도리야는 마지막 동작에서 그대로 벽을 박차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올마이트]]의 피스트리를 발견하기 전까진 그러려고 했다. 미도리야는 거기에 상처를 입히느니 차라리 벽에 부딪히는걸 선택한 것이다. 나이트아이는 그가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지금보니 올마이트 굿즈를 최대한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집기를 집어던질 때도 이것들만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은 이들이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들이란건 모르나 에리의 존재가 노출된 탓인지 그들의 신상에 대해 파악하려고 탐색적인 도를 취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은 이런 사에 대처하기 위해 키운 부하 "철포옥(텟포다마) 핫사이슈"를 배치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회 일치
          발언이었다. 아나운서가 그 부분을 적당히 얼버무리려 든다. 범죄율이 치솟은 작금의 세에 책임을 돌리려 한 것이다. 라이오트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소리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1화 . . . . 1회 일치
          * 한편 [[네모토 신]]은 빈사 상에서도 오버홀을 돕겠다는 일념 하나로 기어오는데, 오버홀이 그를 눈치채고 개성 약화의 탄환을 그에게 넘기며 쏘라고 명령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1회 일치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상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상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은 의식이 거의 날아간 상에서도 조직의 부흥과 위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야쿠자가, 두목이 바보나 빌런취급 당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 상황을 끊고 싶다는 일념이 평생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도 그의 팔은 미도리야에게, 에리에게 뻗쳤다. 그러나 에리의 능력은 한도를 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닿은 것만으로 오버홀의 융합이 "되돌려"져서 무방비하게 내쳐진다. 그때 류큐 등과 함께 히어로 연합군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우라라카 오챠코]]가 재빠르게 오버홀을 제압. 하지만 에리의 폭주와 거기에 휘말린 미도리야에겐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도리야가 되감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가 최후의 추격대로 뽑혀가지만, 거의 리타이어 직전 상인 관계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1회 일치
          *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에선 심각한 사로 보고 회의를 소집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1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시가라키]]는 떨어진 손을 쳐다보며 폭주할 조짐을 보이는데, 의외로 한순간에 진정하고 이성적인 도로 돌아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1회 일치
          * 프로히어로 일동이 전원 빈사 상.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이 혼신의 정권에도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연하게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원 포 올 선대 계승자 시무라 나나에게서"라고 말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회 일치
          * 수풀 뒤에서 카미나리를 방전시키더니 바보상로 던져놔서 웃음을 유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1회 일치
          * 본인은 물욕이 없어서 그렇다는데 그 미네타 조차 "이건 변"라고 평한다.
  • 나폴레옹: 토탈워/유닛의 종류 . . . . 1회 일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 전투에 참가한 형. 검을 사용하는 검기병으로 근처 부대에게 사기 보너스를 준다. 부대원 중 장군이 죽으면 주변 부대에게 사기 피해를 입히며 전투가 끝나고 해체된다. 막 굴리지말고 아끼자. 대포알 조심하고.
  • 낚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 . . 1회 일치
         교제 전에는 상대에게 진지하게 접근해왔는데, 정작 교제를 시작한 뒤에는 차가운 도를 취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왠지 남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 남경민(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사생아]][[분류:목동중학교 동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비디오 자키]][[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남동훈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근대5종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근대5종 참가 선수]]
  • 남봉진 . . . . 1회 일치
         [[분류:1921년 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영양 남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
  • 남윤정(탤런트)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자살한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고양시 출신 인물]]
  • 남치근 . . . . 1회 일치
         포도대장으로서 남치근은 한 차례 임꺽정에게 크게 얻어맞았는데, 명종 15년 좌포도대장으로 있던 남치근은, 서울에 기습공격해온 임꺽정 패거리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서울 내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며, 포도부장이 활을 맞고 사망하는 참패를 겪었다. 임꺽정은 유유히 달아났으며, 남치근은 임꺽정의 처 3명을 체포하였으며 임꺽정 일당을 계속 추적하려 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는다. 이에 명종은 남치근을 파면하지는 않고 체직(벼슬을 깍는 것)하는 처분을 내렸다.(우포도대장 이몽린은 이 때 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였다.)[* 참조 : 조선의 포도대장]
  • 낭만 주먹 . . . . 1회 일치
         그런데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깡패들이 흉기를 써서 사람을 위협하거나 폭력하는 사건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또 몸을 사리게 된 성인 조폭과는 달리 새롭게 성장하는 청소년 불량배들은 이러한 불문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흉기를 휘두르면서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촌, 조양은 등은 이렇게 성장한 '신세대 조폭'이었던 것이며, 소위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몸을 사리는 시기는 고작 한 세대도 가지 못한 일시적인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네드 켈리 . . . . 1회 일치
         1855년, 빅토리아 주 베버리지에서 [[아일랜드]] 출신 부부의 장남으로 어났다. 10대 중후반 때부터 중국인을 습격하거나 산적의 공범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지만, 두 경우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 노경주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1984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부천시 출신]]
  • 노영하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1951년 어남]][[분류:교하 노씨]][[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대동세무고등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한국방송공사]]
  • 노예 . . . . 1회 일치
         현재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라서 노예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상 노예 상에 있거나, 관습적으로 여겨지는 노예는 세계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암암리에 [[섬노예]]라는게 있다.
  • 노해 . . . . 1회 일치
          * 본래 의미는 조직(정당이나 기업 등)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 [[고령화]]하고, 조직이 구화, 조직 혁신이 저해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었다.
  • 노행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 노현정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농가 . . . . 1회 일치
         [[시골]]에 있는 오래된 농가(農家)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시대적・봉건적・인권을 무시하는 사고 양식・행동 양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에게도 강제하는 인간, 또는 그 가정이나, 마을 등의 공동체. 농업 종사자로서의 「농가(農家)」, 또는 현대적으로 상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농가(農家)」와는 구별하기 위해서 어난 말이다. 고름 농(膿)을 사용한다.
  • 뇌가 끓고 있다 . . . . 1회 일치
         뇌에 과도한 열을 받으면 신경 세포에 타격이 가서 정신적으로 이상해지는데,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이러한 상를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1회 일치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사안의 실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본래는, 잘못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1. [[포리(이노센트 투어)|포리]] - 관계는 최악. 처음부터 고압적인 도를 유지함은 물론이고 게임 내에서도 서로 방해 마법을 쓸 때 미안한 기색이 없다.
  • 니라오치 . . . . 1회 일치
         [[아이돌]]의 [[블로그]], [[트위터]]나 [[SNS]]에서 이상한 발언을 하는 유저에 대해서 끼어들지 않고 관찰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관찰하는 것을 뜻한다. 직접적으로 코멘트나 비판은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상이다.
  • 니세코이/214화 . . . . 1회 일치
          * 오노데라는 치토게의 그 대답에서 치토게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풍이 왔던 날 밤의 일을 치토게가 알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 니세코이/226화 . . . . 1회 일치
          * 오노데라는 고백하지만 이미 이치죠는 마음을 정한 상.
  • 니세코이/229화 . . . . 1회 일치
          * 유이는 따로 결혼해서 임신한 상. 남편은 나오지 않는다.
  • 다이스(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코난과 지무시를 배에 운 이후로 인생이 크게 변해, 결국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의 동료가 되어, [[지무시]]와 함께 [[레프카]]를 몰락시키는 데 일조한다. 엔딩에서는 [[몬스리]]와 결혼. 처음에는 자유가 끝난다며 도망치려 했으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몬스리를 보고는 진지하게 결혼에 임한다.
  • 단신부임 . . . . 1회 일치
         가족이 있는 노동자(주로 유부남)가 기업의 전근 명령을 받고, 본인 혼자만 임지에 부임하는 취업, 생활 형이다. 가족이 모두 이동하지 않는 이유로는 아이의 생활(주로 교육)과 주택 보유 등 경제적 문제, 가족의 질병, 출산 같은 이유가 있다.
  • 단종 . . . . 1회 일치
         문종의 적장자로, 조선 왕조 최초로 원손-세손-세자-왕이 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타고난 왕'''이다. 그러나 문종이 너무 일찍 서거한데다 문종이 일찌기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수렴청정과 같은 왕권 수호책을 펼치기 힘든 등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을 위시한 장성한 숙부들의 정치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종도 일찌기 이러한 우려를 하고는 있었으나, 형제들과 다투며 보위에 오른 종과 자신의 선례를 의식했는지 과감하게 이들의 힘을 거세하지 못하고 다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원로 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다.
  • 단카이 쥬니어 . . . . 1회 일치
         1971-74년 쯤에 어난 세대를 뜻한다.
  • 대군 . . . . 1회 일치
         [[조선왕조]]의 [[작위]]. [[종]] [[이방원]] 시기에 만들어졌다. [[왕자]], 적손에게 주어진다. 적손이 아닐 경우에는 그냥 군(君).[* 이 '군'이라는 칭호는 그 외에 반정으로 폐출된 왕에게도 붙여진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왕좌를 빼앗긴 뒤 '노산군'으로 격하당한 [[단종]] 등이 그 예.]
  • 대한민국 FA컵 . . . . 1회 일치
         이 경우에는 클래식 우승팀 자격이 더 격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F조에 편성될 자격을 양도하게 되며, 양도받는 팀은 FA컵 준우승팀이 아니라 클래식 2위팀이 된다. 따라서 2위팀이 FA컵을 우승할 때와 같은 형로 이루어진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6.25 전쟁]] 때,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남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서사모아]]에 설치한다는 계획. 당시 사모아는 [[뉴질랜드]]의 신탁통치 하에 있었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아주 감정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일본으로 망명한다는 계획이 나올 정도로, 이승만 정부가 극도의 패닉 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데드 스페이스 . . . . 1회 일치
          새로운 무기나 장비를 해금시켜주는 아이템. 얻는 즉시 해금되는게 아니라 이걸 소지한 상로 상점에 가야 해금된다.
  • 데키콘 . . . . 1회 일치
         결혼 전에 성행위를 하고 임신하여, 그 [[임신]]이 계기가 되서 결혼을 결의하게 되고, (대개 임신 상로) 결혼을 하게 된 걸 뜻하는 말이다.
  • 도광록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도모세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어남]]
  • 도예종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인혁당 사건]][[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
  • 동일본대지진 . . . . 1회 일치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경 발생한 지진. 매그니튜트 9.0의 대지진으로서, 일본의 [[도호쿠]] 지방 앞바다의 [[평양]] 해저에서 발생했다. [[쓰나미]]가 일어나서 도호쿠 지방의 해안을 강타하여 엄청난 대재해를 일으켰다.
  • 드라콘 . . . . 1회 일치
         나하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이나 채소나 과일을 훔친 사람도,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나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처벌하였다. 즉, 경범죄도 사형이고 중범죄도 사형이었다. 사람들이 드라콘에게 경범죄와 중범죄의 처벌이 왜 같냐고 묻자, 드라콘은 중범죄는 더 무거운 벌을 주어야 하는데 사형 이상의 벌이 없어서 같은 벌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드립위키 . . . . 1회 일치
         웃대인들은 2016년이 되어서 위키를 만들고 싶어 만들었다. 그러면서 어난게 드립위키다.
  • 디아스포라 . . . . 1회 일치
         전체적으로 기존의 SNS들과 유사하고 호환성이 어느 정도 있다. 인터페이스는 페이스북과 유사하며, @,#그를 사용할 수 있어 트위터와 흡사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Diaspora*의 게시물을 공유할 수 있으며, 페이스북의 친구 정보를 불러와서 Diaspora*로 초대할 수 있다.
  • 딩크 . . . . 1회 일치
         아이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가족 형보다, 수익을 늘려서 개인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선택을 하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건전하게 양육하는데 많은 돈과 노력이 소모된다는 어려움도 반영되어 있다.
  • 라나(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남겨진 섬'에 떠밀려온 12살 소녀.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그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바닷새인 티키(제비갈매기로 추정)와 교감하는 등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고 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의 손녀여서 박사를 이용하려는 인더스트리아 때문에 여러번 힘은 일을 겪지만 ~~초인~~미래소년 코난의 도움과 본인의 강인함으로 이겨낸다.
  • 라늬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1회 일치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백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상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 라미란 . . . . 1회 일치
          * 은근 [[노안]]인데,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엄정화]]를 보고 '''언니'''라고 불러서 출연진들이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충공깽]]에 빠진 적이 있다. 외모로는 [[엄정화]]가 어려 보이지만, 사실 [[엄정화]]가 라미란보다 무려 5년 7개월이나 연상이어서 일어난 해프닝. 이목구비는 노안 속성이지만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을 보면 피부상는 엄청 좋다.
  • 랑그릿사(검) . . . . 1회 일치
         성검이라 알려져 있지만 랑그릿사의 모가 되는 파사의 검부터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4~5의 시대에서 알려진 사실로는 파사의 검은 알하자드 원본의 예비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며 랑그릿사가 가진 성스러움은 따지고보면 순수하고도 정의로운 용사라 불린 지크하르트의 혼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 레드맨 . . . . 1회 일치
         [[https://www.youtube.com/channel/UC5PBnSG7C0WXp5gjd4bzKtw|유튜브의 츠부라야 공식 채널]]에서 일주일에 몇개씩 시한부로 풀어줬었다. 지금은 다 풀어줘서 [[오프닝]]과 1화만 볼 수 있는 상.
  • 레스터 길리스 . . . . 1회 일치
         1908년 12월 6일 시카고에서 어났다. 어렸을 때의 길리스는 비행 청소년이었다. 그때부터 어리게 생겼다고 동안(Baby Face)이라는 별명이 붙은 길리스는 타이어 절도, 밀주, 무장강도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 레이나 검랑전설 . . . . 1회 일치
         [[켄류]]는 왠지 로봇이라기보다는 파워드 슈츠에 가까운 디자인이 되었다. [[바이캄프]]는 디자인 자체는 거대하고 위압적이라서 괜찮은 편이지만, 3편에서 어둠의 바이캄프로 소환되었다가 켄류도 아닌 그냥 검랑만 든 레이나에게 졌다.[* 사실 이 때 레이나가 검랑을 들면서 일단 '변신 비스무리한 연출'이 있긴 있고, 이 작품의 켄류는 로봇이 아니라 파워드슈츠 같은 것이므로 일단 켄류 비슷한 상라고 볼 수 있을듯.]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레이프 . . . . 1회 일치
         14세기에는 뭔가를 약탈, 강탈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15세기에는 주로 여성을 성적인 목적으로 유괴한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지금과 비슷하게 강간이라는 의미가 나타나게 되었다. 다만 이때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것만 '레이프'라고 불렸다. 현대는 모든 형의 강제적 성행위가 레이프로 정의되었다.
  • 로리타 패션 . . . . 1회 일치
         소녀스러움을 강조하는 패션 양식. [[레이스]], [[리본]], [[프릴]] 같은 것을 다용하며, 헤드 드레스 같은 것을 도입하는 등, 중근세 유럽의 패션 디자인을 모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형이다.
  • 로미오 메일 . . . . 1회 일치
         주로 이전까지 갑자기 오만하게 굴고 상대를 얕보고 있던 반려자가 이별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갑자기 도를 바꿔서 상냥하게 대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웃음 평가가 높다. 스스로 곤란에 처해있는데도 허세를 부리면서 강한 척 하면 더욱 웃음 평가가 높다.
  • 로어셰크 . . . . 1회 일치
         1975년, 블레어 로셰라는 이름의 6살 된 여자아이가 납치당한다. 코백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15명의 사람들을 심문해 한 양장점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곳에 간 코백스는 로셰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후 그 양장점에서 길러지는 셰퍼드 두마리의 먹이가 되었다는걸 알아낸다. 그는 셰퍼드 두마리를 죽인 후, 밤 늦게 양장점으로 돌아온 양장점 주인을 묶은 다음에 양장점째로 불워버린다. 그는 이 일 이후 자신이 "로어셰크 인 척 하는 코백스"가 아니라 "로어셰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 로켓레드 . . . . 1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제네레이션 로스트에서 등장한 새로운 로켓레드. [[부스터 골드]] 일행에 합류한 상이며 사용하는 갑옷은 다른 로켓레드 갑옷과 다르게 각지지 않은편에 흰색이 베이스가 아닌 이름대로 붉은색이 베이스다. 어째 개그 캐릭터다(...)
  • 로쿠데나시 . . . . 1회 일치
         로쿠(碌)는 뭔가의 상가 적절한 것을 뜻한다. 대개 부정형으로 써서, 변변치 못한 것, 쓸모없는 것을 뜻한다. '로쿠데나시'는 아무 도움도 안되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 록맨 시리즈 . . . . 1회 일치
         아쉽게도 현재 상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래도 다른 게임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그 캐릭터 명맥은 유지하고 있는 상황.
  • 류종원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리라컴퓨터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류한수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리듬게임 . . . . 1회 일치
          * 고의 달인 시리즈
  • 리전 오브 몬스터즈 . . . . 1회 일치
         흡혈귀, 늑대인간, 미이라 등 마블의 괴물 캐릭터들로 구성된 팀이다. 두버전이 존재하는데 1976년 버전은 고스트 라이더가 리더이며 Starseed라는 존재와 관련해서 만들어졌으며 이후 해체되었다. 그리고 2010년 버전이 나왔는데 리더는 웨어울프 바이 나이트이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같은 형로 되살아난 퍼니셔도 이들과 협력했다.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 홍명은 머리를 깎아버려서 그런지 멀끔해진데다 도가 성실해졌다.
  • 마기/295화 . . . . 1회 일치
          * 심지어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마법까지 연구하고 있는데 알리바바의 비난에도 홍명은 연하다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 그 우두머리는 "네르바 율리우스 칼루데아스". 전 황제의 아들로 자신을 황자라 내세우며 국제연맹을 타도하고 왕정을 복고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 마기/305화 . . . . 1회 일치
          * 능력을 지니고 어난 자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며 알라딘도 "마기"로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냐고 말한다.
  • 마기/316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의외로 평하게 그들을 맞이한다.
  • 마기/318화 . . . . 1회 일치
          * 전례가 없는 사에 회장은 고요하게 얼어붙는다.
  • 마기/32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신드바드는 연하다.
  • 마기/333화 . . . . 1회 일치
          * 알라딘은 방어마법 보르그를 시전한다. 쥬다르는 그게 [[연옥염]]의 기술이라고 악취미라고 디스한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그 기술은 원래 아르바가 아닌 여왕 [[시바]]의 것이라고 정정해준다. 알라딘은 그의 어머니의 기술 "보르그 알사므"를 펼친다. 알라딘은 분명한 도로 "아르바도, 신드바드도, 솔로몬 왕도 못 뚫는다"고 자신한다.
  • 마기/334화 . . . . 1회 일치
          * 어쨌든 동료가 추가되는건 반가운 일이라 알리바바가 악수를 청하는데, 네르바는 무례한 도로 거부한다. 자기는 장차 위대한 황제가 될 텐데 소시민인 알리바바가 격의 없이 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쥬다르를 "나의 검은 마기"라 부르며 친한척한다, 정작 쥬다르는 무시로 일관한다. 자기는 네르바의 마기가 아니라는데.
  • 마기/338화 . . . . 1회 일치
          상황을 보던 아르바는 난데없이 "백룡도 친구 같은데 생겼다"고 말하는데, 백룡은 유독 정색한다. 알라딘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르바는 말 그대로의 의미라며 뭐가 이상하다는 도다. 백룡은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수상하게 여기며 아르바의 꿍꿍이를 추측한다.
  • 마기/339화 . . . . 1회 일치
          * 두 번째 전신마장 "베리알"을 사용한 백룡. 바레포르의 꼬리를 파괴한 것도 베리알의 힘이었다. 신드바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여유로운 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꼬리의 썩은 부분을 잘라버리더니 순식간에 재생해 버린다. 베리알이 썩힌 꼬리를 간단하게 재생하는걸 보자 백룡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 마기/341화 . . . . 1회 일치
          * 두 명의 마장이 나타난 던전 제파르. [[세렌디네 파르테비아]]와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동시에 마장 제파르를 사용해서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앞에 나타난다. 두 사람은 처음엔 당황하지만 곧 전투세를 갖춘다.
  • 마더콘 . . . . 1회 일치
         여기서는 미와와 오오이와 사이에서 어난 여자아이 카나코(加奈子)와 후유히코가 재혼 후에 낳은 소년 마리오(麻里夫)이 성장하여 사랑을 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참고로 사노 시로우는 마리오 역도 맡았으며 이 작품에서는 진성 스토커다.(...)
  • 마운팅 . . . . 1회 일치
         괴롭힘 처럼 명백하게 드러나는 형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척, 상대를 걱정하는 척, 혹은 자학하는 척 하면서 연애, 외모, 인간관계 등에서 자신을 어필하고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행동을 뜻한다.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 집단 A는 특정한 질병 X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고 있다. 집단 A의 면역 체계와 질병 X는 적절한 균형 상를 이루고 있어, 집단 A의 사람들은 질병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어도 병세가 치명적이지 않다. 혹은 문화적으로 질병 X에 대한 대처법(격리 수용, 증상에 맞는 처방)을 알고 있어,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
  • 맥스 페인 . . . . 1회 일치
          Jack Lupino. 펀치넬로 패밀리의 언더보스. 매춘, 마약매매, 청부살인을 밥줄로 삼고있다. "발키리"를 밀거래하고 있었기에 맥스가 펀치넬로 패밀리에 잠입수사를 벌이는 이유가 되었다. 뇌가 벽에 튀긴 모습을 보려고 사람을 쏠 정도로 미쳐버린 상로 펀치넬로 또한 이를 알고 있어서 개선하지 않으면 트리오를 보내겠다고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루피노는 인신공양을 할 정도로 미쳐버렸기에 효과가 없었다. 라그나록에 쳐들어 온 맥스를 죽이려고 했지만 맥스에게 죽는다. 맥스는 루피노가 죽은 후에도 그에게 총을 쏜다. 더블배럴 샷건과 화염병으로 무장했기에 짜증난다. 화염병 작작 던져라.
  • 맨씽 . . . . 1회 일치
         신체는 식물적인 것으로 보이며 거구에 괴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재생도 가능. 거기다 접촉한 자를 울 수 있다.
  • 머신맨 . . . . 1회 일치
         [[로봇]]이라서 강력한 신체를 지니고 있으며 [[아다만티움]] 성분이 들어간 티타늄 합금 탓에 강력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자가수리에 초정밀 계산능력, 굉장한 시력, 비행, 변신에 팔과 다리는 30m까지 늘어난다. 두뇌는 인간과 같은 감정, 창의적 지능, 무한한 자기 동기부여 활동을 할수 있다. 양열 에너지가 동력이나 필요시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외부 에너지를 이용할수 있다. 손가락은 장비가 장착되어서 총알, 전기, 냉각선, 열선을 발사할수 있으며 가스 분석기, 레이저 관측기, 마이크로 펄스 레이저, 음향 측정기, 지진계, 중력파 검출기, 펄스 코드 변조기, 컴퓨터 입출력 장치, 전파표지, 만능통신기, 레이저 절단 토치 등이 있다. 대형 칼날이나 전기톱 등이 팔에 장착되어 있고 가슴에는 빔 캐논이 있다.
  • 메두사 헤드 . . . . 1회 일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전 악마성에서는 매우 짜증나는 적이다. 왜냐하면 시계탑 스테이지처럼 점프를 해서 올라가야 하는 위로운 곳에서 꼭 등장하기 때문. 메두사 헤드와 접촉하면, 재수없을 경우 그대로 뒤로 밀리면서 석화+추락사 콤보를 당할 수 있기 때문. 오묘하게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궤도 때문에 [[채찍]]으로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다수의 메두사 헤드가 출몰하는 곳에서는 신중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 메시마즈 . . . . 1회 일치
         메시우마와는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보고 밥이 맛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상를 보고 질투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은 아주 슬픈 소식이 들어왔을 때도 사용한다.
  • 메시우마 . . . . 1회 일치
         2008년 부터는 프로 야구 이외의 다른 장르의 판에서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자신이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을 "메시우마 상"라고 표현하게 된다.
  • 멘헬러 . . . . 1회 일치
         「멘탈 헬스(メンタルヘルス)」(마음의 건강)라는 말이 2 채널에서 「멘헬(メンヘル)」로 생략. 그리고 —er형이 붙어 「멘헬러(メンヘラ)」라고 하는 말이 어났다.
  • 멸문지화 . . . . 1회 일치
         다만, 중세유럽때는 위생상와 의학의 미비로 인한 일족의 전멸, 또는 서자의 가문 계승권이 부정된 것 등으로 인해 단절된 가문이 흔했다
  • 모랄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폭력]]을 사용하지 않지만, 언어나 도를 사용하여 기분나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정신적인 폭력이나 정신적인 학대를 모랄 해리스먼트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모라루하리스멘토(モラルハラスメント)를 줄여서 '모라하라(モラハラ)'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 모레아 전제국 . . . . 1회 일치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모레아는 유일한 비잔티움 제국의 잔존 영토로 남게 된다. 그러나 두 전제공의 대립, 영토 내 토착민과 알바니아 인 등의 대립, [[베제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간섭으로 위롭게 된다. 1453년 가을에는 알바니아 인이 반란을 일으키고, 1458년에는 오스만 군이 침공을 벌였다. 심지어 토마스가 부하 유력자들에게 떠밀려서 드미트리를 공격하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두 전제공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참사가 발생한다.
  • 모레츠 사원 . . . . 1회 일치
         1969년 마루젠 석유丸善石油(현재의 코스모 속유)의 CM에서, 미니 스커트 차림의 오가와 로자(小川ローザ)가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오는 차가 일으킨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면서 동시에 「Oh!맹렬(モーレツ,모레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장면이 있어 여기서 모레츠가 일시적으로 유행어가 됐다. 여기에서 모레츠 사원이라는 단어가 어나게 됐다.
  • 모테루 . . . . 1회 일치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상를 뜻하는 말.
  • 몬스터 페어런트 . . . . 1회 일치
         대학생이 되어도 비슷한 행를 보이는 것을 몬스터 대학생(モンスター大学生)이라고 부른다.
  • 문문 . . . . 1회 일치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width=50%><#9370DB><-2> {{{#FFF '''곡 제목'''}}} ||<width=25%><#FF7F00> '''[[TJ미디어|{{{#ffffff 진}}}]]''' ||<width=25%><#DC143C> '''[[금영노래방|{{{#ffffff 금영}}}]]''' ||
  • 문서사유화 . . . . 1회 일치
         옛날 [[엔하위키]]에서 특정 문서를 자기 마음에 드는 형로만 수정되어야 한다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람을 제제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졌던 용어. 생각해보면 위키위키인 이상 당연한 것이다.
  • 문석희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문연주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문옥주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일본군 위안부]]
  • 문지애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평 문씨]][[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상명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임실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유튜버]]
  • 문태준(시인, PD) . . . . 1회 일치
         1970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 문호근 . . . . 1회 일치
         [[분류:1946년 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1967년 데뷔]][[분류:오페라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
  • 문호월 . . . . 1회 일치
         [[분류:1905년 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192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문희(배우) . . . . 1회 일치
         [[서울특별시]]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어났다. 6남매 중에서 형제들은 모두 남자형제여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1965년 [[영화]] <흑맥>에 출연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 물고문 . . . . 1회 일치
         이런것에 매력을 느끼는 변들도 있다.
  • 미스터 판타스틱 . . . . 1회 일치
         능력은 [[고무]]같은 유연성을 가진 육체. 몸과 팔다리를 길게 늘릴 수 있으며, 밧줄 같이 되어 상대를 포박하거나 몸을 얇고 넓게 펼쳐 [[날다람쥐]]처럼 하늘을 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형로 위장하는 것도 가능. 종이처럼 얇게 녹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물리적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 민룡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
  • 바키도/106화 . . . . 1회 일치
         무사시와 피클은 손에 손을 맞잡은 상에서 대치한다.
  • 바키도/108화 . . . . 1회 일치
          * 바키는 그런 되묻는 도가 "무사시랑 똑같다"고 말하는데, 오로치는 오히려 기쁘다고 생각한다.
  • 바키도/109화 . . . . 1회 일치
          * 다양한 형의 현대의복과 방어구를 베어버리는 훈련.
  • 바키도/111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현대의 전사, 현대의 병사를 얕보지 말라며 공격 세를 취하는데
  • 바키도/113화 . . . . 1회 일치
          * 도쿠가와는 그런게 가능하겠느냐며, 지금 피클은 먹지 않아 약해진 상라고 강조한다.
  • 바키도/117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아직도 일어서지 못한 상. 그리고 피클은 무사시의 칼을 집어든다.
  • 바키도/122화 . . . . 1회 일치
          * 최종형가 풀리는 피클.
  • 바키도/125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바로 일어나 세를 정비한다.
  • 바키도/128화 . . . . 1회 일치
          * 그 상로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은 채 모토베의 괴력을 이겨내고 있는 것.
  • 바키도/131화 . . . . 1회 일치
          * 투구가 갈라졌다. 무사시의 말대로 양단은 되지 않고 힘에 깨어진 것이다. 무사는 정수리에서 피분수가 솟고 목이 내려앉아 거북이처럼 몸통으로 파고들어갔다. 무사시는 연하게 칼을 칼집으로 돌리면서 "칼등으로 쳤어도 충분했으려나?"하고 중얼거린다. 성주는 크게 당황하면서도 그 솜씨를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 바키도/138화 . . . . 1회 일치
          * 그때 무사시가 나타난다. 동향을 알았는지 칼까지 찬 상다.
  • 바키도/140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의 기습에 당황하던 경찰들은 사방에서 애워싸며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무사시는 임전세를 맞췄다. 전광석화같은 솜씨로 한번 휘두르더니 다서여섯 명의 경찰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진다.
  • 박경호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고은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순창군 출신]]
  • 박기혁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기환(정치인) . . . . 1회 일치
         1948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어났다.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박노식(1971) . . . . 1회 일치
         어쨌거나 살인의 추억은 명실상부하게 그의 출세작이었고 소속사에도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소속사에 들어간 것도 완전 독이 되었다. 소속사의 권유로 [[그놈은 멋있었다]]와 '''[[여고생 시집가기]]'''에 출연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가지 더 눈물 나는 것은 이런 영화에 나오겠다고 '''[[올드보이(2003)|올드보이]]'''와 '''[[극기 휘날리며]]'''의 출연을 고사한 것이다! 하지만 배우 본인이 후에 인터뷰 한 바에 따르면 당시 소속사의 추천 등으로 [[여고생 시집가기]]에 출연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감독님이 무조건 흡족한 얼굴로 좋은 연기였다며 OK를 외치는 통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ari2332&logNo=140009226878|당황했다고 한다.]]
  • 박동진 (1922년) . . . . 1회 일치
         [[분류:1922년 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박보생 . . . . 1회 일치
         1951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김천농공(농림/공업)고등학교(현 [[김천생명과학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박부남 (1931년) . . . . 1회 일치
         [[분류:1931년 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내과 의사]][[분류:소아청소년과 의사‎]][[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중양]]
  • 박상규(정치인) . . . . 1회 일치
         1936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충주교현초등학교,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에서 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다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 동국대학교 졸업 후 공무원 전환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공무원으로서 정보 업무를 담당하였다. 1970년대부터는 한국비철금속 사장을 거쳐 한보금속공업을 경영하였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겸임하였다.
  • 박상돈(정치인) . . . . 1회 일치
         1949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서 어났다. 연기소정초등학교, 천안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송영무]] 국방부장관과는 동창생이다. 송영무는 해군사관학교를 재수로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 제28기[* 동기생으로 [[김관진(군인)|김관진]], [[김병관(군인)|김병관]], [[박흥렬]]이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박성배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뉴질랜드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박성우 (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1914년 어남]][[분류:1954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박성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월배초등학교 동문]] [[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박소희 (만화가)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공주대학교 동문]]
  • 박수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대학교 동문]][[분류:김해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순석 . . . . 1회 일치
         1904년 [[경상북도]] 흥해군(현 [[포항시]])에서 어났다. [[대구광역시|대구]] [[계성고등학교|계성중학교]], [[경성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박승욱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박연우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박용우(배우)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탤런트이자 영화 [[배우]]로 해남에서 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면천 박씨]][[분류:지체 장애인]]
  • 박재현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박정호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제균 (1887년) . . . . 1회 일치
         [[분류:1887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종윤 (1993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박종준 . . . . 1회 일치
         1964년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서 어났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봉황중학교,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다.
  • 박종호 (1964년)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고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준규(1925) . . . . 1회 일치
         ||<:> 제7대 [br] [[윤길중]] ||<:> → ||<:> 제8대 [br] ''' 박준규 ''' ||<:> → ||<:> 제9대 [br] [[박준]] ||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진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박진주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칠용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9년 데뷔]][[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조치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성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동문]]
  • 박하나(배우) . . . . 1회 일치
         || 2008년 || 사비애 || 일초라도 || 피쳐링 ||
  • 박현정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현진 (음악가) . . . . 1회 일치
         [[분류:200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래퍼]][[분류:K팝 스타 참가자]][[분류: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현철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0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화랑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박희광 . . . . 1회 일치
         뤼순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로써는 최장기 복역중 일본천황 즉위와 황자 출생 등 두 차례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 박희부 . . . . 1회 일치
         1938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서 어났다. [[천안중학교]], [[경기공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4.19 혁명]], [[6.3 항쟁]]에 참여하며 구속되기도 하였다.
  • 발터 PPK . . . . 1회 일치
         [[10.26 사]] 당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사용했던 총기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인터넷에서는 드립 소재로 쓰이기도.
  • 방우정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방이설화 . . . . 1회 일치
         신라시대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 방이는 가난하여 구걸을 했지만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종자를 구걸했는데, 동생은 성격이 심술궃어서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방이는 그걸 모르고 누에와 씨앗을 열심히 가꿨는데, 누에알 가운데 하나에서 어난 누에 한 마리가 소처럼 커졌으며, 질투가 난 동생은 누에를 죽였는데 사방에서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만들어줘서 방이은 큰 부자가 됐다.
  • 배기철(정치인) . . . . 1회 일치
         1957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김천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계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배대윤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진보중학교 동문]][[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배영호 . . . . 1회 일치
         [[분류:1915년 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성주 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법원행정처장]][[분류:대한민국의 국회사무총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 배장원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배재준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배씨]]
  • 배지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피츠버그 파이리츠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
  • 배천석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포항제철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백기만 . . . . 1회 일치
         [[분류:1902년 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
  • 백대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백상원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백승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백이소 . . . . 1회 일치
         [[분류:1557년 어남]][[분류:1597년 죽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의병]][[분류:의병장]][[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 의병장]][[분류:정유재란 참전 중 사망자]][[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정유재란 관련자]][[분류:16세기 한국 사람]].[[분류:백씨]][[분류:청도 백씨]][[분류:문천회맹]][[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 베이식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이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힙합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지기 펠라즈 음악가]][[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
  • 벼랑개 링링 . . . . 1회 일치
         11월 17일 발견된 이 개는 약 1주일 간 조난 상에 있었다. 20일 TV중계가 되는 가운데 구출되었고, 22일 도쿠시마 현 동물애호관리센터에 맡겨졌다. 구출된 이 개를 많은 사람들이 기르고 싶다고 연락했다. 2007년 1월 28일, 동물애호관리센터는 센터에 찾아온 11명의 신청자에게 추첨을 거쳤으며, 66세 여성 마키 카즈코(馬木カズ子)가 인수하게 되었다. 마키 카즈코는 개에게 링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르게 되었다.
  • 변정수(배우) . . . . 1회 일치
         같은 대학의 복학생이었던 현재의 남편과 연애결혼했으며, 꽤 일찍 결혼한 편이다.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결혼 후 결혼 사실을 업계에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촬영날에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을 스프에게 들켜서 결혼 사실을 그냥 공개해 버렸다. 결혼 후에는 [[경기도]] [[광명시]] 오포읍 신현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변현제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보루토/2화 . . . . 1회 일치
          * 체구가 작은 쪽은 미수화한 8미를 보고 "차크라의 열매가 짐승의 형로 바뀌어있다"고 말한다.
  • 보루토/4화 . . . . 1회 일치
          * 보루토는 그림자 분신을 쓰며 회피, 접근에 성공하지만 시카다이는 그림자를 방원 형로 늘려 분신까지 전부 포착하는데 성공한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1회 일치
         [[2016년]] [[2월 15일]], [[하테나 익명 다이어리]]에 해당 익명 게시물이 올라왔으며, 인터넷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고, [[트위터]]에서는 '#보육원 떨어진 것은 나다(#保育園落ちたの私だ)'라는 [[해시그]]가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대기아동 문제에 걸린 사람이 많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가족이 많아 [[공감]]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있다.
  • 보쿠걸/107화 . . . . 1회 일치
          * 이마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즈키를 잊으려 했는데, 때마침 꽃꽃이부 일동이 커밍아웃&고백을 해봐 할렘상. 가끔 선배 자격으로 학교에 들른다.
  • 보쿠걸/98화 . . . . 1회 일치
          * 로키는 이제 신력이 많이 떨어져 약해진 상고, 인간계에서는 미즈키를 원래대로 돌려줄 힘도 없다
  • 부산광역시 . . . . 1회 일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b/Korea-Busan-Taejongdae-05.jpg/120px-Korea-Busan-Taejongdae-05.jpg|[[종대]]
  •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백시 출신 인물]]
  • 분류:충청남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안군 출신 인물]]
  • 불임님 . . . . 1회 일치
         일본 인터넷에서 불임 여성이 감정적으로 민감한 도를 보이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 브라우닝 시토리 . . . . 1회 일치
         Browning Citori. [[미국]]의 총기회사 [[브라우닝]]에서 판매하는 [[더블 배럴 샷건]]. [[총열]]이 상하로 배열된 형다. 사용 구경은 모델마다 다름.
  • 브라우닝 하이파워 . . . . 1회 일치
          * 영국군에서 브라우닝 L9A1라는 이름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제 자동권총인 글록17이 채용된 상.
  • 블랙 클로버/102화 . . . . 1회 일치
          인간의 형상을 포기한 [[챠미 퍼밋슨]]. 마법버섯에게 기생 당해 자기 몸에서 자라난 버섯을 자기가 먹는 기이한 마법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챠미의 먹성으로 먹어도 하나 먹으면 세 개가 자라는 미친 번식 속도 때문에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레이는 차마 이 꼴로는 변하지 못했는데 변신을 똑바로 못했다며 자학하고 있다. 역시 아스타의 치료법은 찾지 못한 채 이상한 버섯이나 산열매 따위나 잔뜩 가져왔다. 야미는 챠미만큼은 자리 비운 만큼 급료에서 제한다. 버섯은 매그너가 워서 없애준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1회 일치
          * 마법기사단의 실적을 발표하는 현장. 올해 1위 금색의 여명단과 2위 검은 폭우단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단상에 올라와 있다. 큰 무대지만 둘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서로 자신이야 말로 마법제가 될 자라고 티격격한다. 유노의 경우는 그러는 동안에도 성장폭자체는 검은 폭우 쪽이 높다고 의식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회 일치
          * 약이 오를 데로 오른 국왕은 성미대로 두 사람을 당장 처형히라고 길길이 날뛴다. 따지고 보면 이럴게 될게 뻔했지만 아스타는 막상 닥치자 뜨악한 표정으로 당황한다. 민중들은 동요하고 그 사이의 청동마법의 [[셋케]]는 아스타를 비웃는다. 상황은 마법제가 나서면서 정리된다. 그는 정중한 도로 국왕을 달래고 자신을 봐서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은근히 "이런 걸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국왕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말투만 정중하지 위압감 마저 느껴지는 일침을 곁들인다. 열폭이나 해대는 국왕으로서는 거스를 도리가 없다.
  • 블랙 클로버/108화 . . . . 1회 일치
          여성은 언제나 1위, 2위만 달리던 홍련의 사자단이 5위까지 추락했다고 길길이 날뛴다. 마력이 불꽃 형로 아우라가 생기는 모습이 문자 그대로 "불같이 화내는" 모습이다. 그녀는 전임 단장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을 "우제愚弟", 어리석은 동생이라 칭하며 그가 자리를 비운 정돌 이꼴이냐며 단원들을 갓난아기냐고 까댄다. 그 말을 들은 아스타는 그녀가 푸에고레온과 레오폴트의 누님이라는 걸 알게 된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1회 일치
          * 이런 사를 릴이 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건 좀 더... 아름다운 것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 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느냐고, 이젠 그림 자체를 그리지 말라고 강요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림을 끊을 수는 없었고 강요를 받을 수록 반발심은 커졌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1회 일치
          * [[레오폴드 버밀리온]]과 [[하몬 카세우스]]는 E팀의 크리스탈을 지키는 [[프라길 토르멘타]]를 급습하나 함정 마법에 걸려 대치하는 상가 된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1회 일치
         * 마법제는 심문으로 얻은 정보를 둘에게 추가로 알려준다. 백야의 마안 아지트에 있던 석비에는 "마석"이 박혀있는데, 백야의 마안은 이것을 모두 모으면 "진정한 모습으로 다시 어나" 강대한 힘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1회 일치
          * 그레이는 고슈의 모습으로 호들갑을 떨다 진짜 고슈한테 클 당한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1회 일치
          * 베토도 "변경의 마법은 재미있다"며 칭찬하는데 키아토가 그걸 듣고 "이 땅이기에 어난 마법"이라 강조한다.
  • 블랙 클로버/71화 . . . . 1회 일치
          * 그녀는 비록 아스타가 마력이 없이 어났지만 "위로 올라갈 인재"라고 직감한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1회 일치
          * 유노와 아스타는 헤어지면서도 디스를 주고 받는다. 챠미 퍼밋슨도 실프와 티격격하느라 수선스럽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1회 일치
          * 검은 폭우의 마녀 바네사 에노테이커였다. 여왕에게 당해 의식을 잃은 상.
  • 블랙 클로버/86화 . . . . 1회 일치
          * 맹목적인 적의를 불우는 증오의 파나.
  • 블랙 클로버/87화 . . . . 1회 일치
          * 필살기를 쓰겠다고 벼르던 아스타지만 증오의 파나가 퍼붓는 맹공에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명중한 것도 아니지만 열기에서 오는 압력만으로 몸이 밀려날 정도다. 혼자서는 접근이 불가능한데 너무 강한 마력 탓에 마나 역장이 형성되어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 마법이 제대로 형성되질 않는다.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실마법도 실을 내놓는 족족 열기에 타들어가서 무용지물이 된 상.
  • 블랙 클로버/88화 . . . . 1회 일치
          * 노엘 실버가 혼신의 힘을 담은 해룡의 포효가 샐러맨더를 산산조각낸다. 증오의 파나가 빈틈을 보이자 아스타는 지금이야 말로 필살기를 써주겠다고 투지를 불운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1회 일치
          혼신을 다한 마르스의 설득. 모든 것을 울 것 같았던 열기가 사라진다. 그리고 파나의 이마에 나타난 마안도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는데.
  • 블랙 클로버/94화 . . . . 1회 일치
          * 일행은 공격에 휘말려 쓰러진다. 그 뒤에 느물거리는 도로 나타난 [[라드로스]]. 젤의 우려대로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게다가 샐러맨더의 마력을 흡수해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다. 젤은 마력이 전혀 감지되지 않아 그가 전투불능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력감지 능력의 헛점을 이용한 페이크. 샐러맨더의 마력이 너무 거대해 흡수에 시간이 걸렸을 뿐더러 마력을 전부 방출했다 한꺼번에 되돌린 것이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1회 일치
          * 나는 클로버 왕국에서 마법제가 된다는 자신의 꿈을 밝힌다. 라드로스는 다시 물러서는 척하더니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공격 세를 취한다.
  • 블리치/677화 . . . . 1회 일치
          * 우라하라 키스케의 만해는 "고쳐 만드는 능력". 일정한 영역 안에서 무엇이든 고치거나 갈라진 상로 만들어 버린다. 아스킨의 몸을 순식간에 갈라버렸고 자신의 상처는 순식간에 고쳤다. 마치 실로 봉합한 듯한 모양.
  • 블리치/680화 . . . . 1회 일치
          * 제라드의 능력 더 미라클은 "민중의 마음"을 형로 만든 것
  • 블리치/682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켄파치가 갑자기 뛰어올라 경계세를 취한다.
  • 블리치/684화 . . . . 1회 일치
          * 토시로는 빙륜환의 진정한 힘을 끌어낸 상에선 오래 활동하지 못한다.
  • 블리치/686화 . . . . 1회 일치
          * 본격적인 임전세를 취하는 유하바하
  • 블리치/687화 . . . . 1회 일치
          * 과거 아란칼이나 바이저드에 가까운 형상에서 가면이 처음부터 없고 뿔이 한쪽만 난 형.
  • 블리치/688화 . . . . 1회 일치
          * 이 상의 이치고는 오리히메의 육화의 힘 조차 무시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 블리치/689화 . . . . 1회 일치
          * 이치고는 절망 같은건 잘 알고 있고 몇 번이나 뛰어 넘어왔다며 호로화 상에서 "만해"를 개방한다.
  • 블리치/692화 . . . . 1회 일치
          * 제라드는 초거대화된 상에서 갑자기 힘을 잃고 뼈만 남긴채 쓰러진다.
  • 블리치/693화 . . . . 1회 일치
          * 오리히메는 만해를 수복하려 하나 "모든 미래에서 부러진" 상라 수복하지 못한다.
  • 블리치/696화 . . . . 1회 일치
          * 아이젠은 "너에게 경화수월을 걸어두지 않은게 이런 형로 도움이 됐다"고 자조한다.
  • 빈병 . . . . 1회 일치
         마트나 그런데 가져가면 돈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제도는 시행되고 있지만[*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 2017년자 생산품부터 100원, 130원.] 많은 가게에서 "우린 그런거 안 받아요,"라고 대답한다. 걸리면 과료를 물게 되는 행동. 신고 보상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니 카운터가 꼴보기 싫었다면 찔러보자.
  • 사이마 . . . . 1회 일치
         「채무(債務,사이무)」와 「er」을 합쳐서, 「사이마(サイマー)」라는 말이 어났다.
  • 사택 . . . . 1회 일치
         하지만 2005년에 회계기준이 바뀌어서, 자산가치가 하락한 부동산은 장부에 시가를 공개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사택의 노후화로 인한 자산이 손실이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보유하던 사택을 매각하고 임대형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었다.
  • 산킨고타이 . . . . 1회 일치
         이러한 인질 정책 때문에 오히려 다이묘의 가족(본처와 적자)들은 지방 영지에 내려가지는 것이 금기시 됐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지방에 [[첩]]과 [[서자]]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막부 말기에는 이 금제가 해제되었는데, 그 때문에 인질 걱정없이 반란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본래 영지가 지방에 있는 다이묘가 '상경'하는 현대의 관점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본래 수도 출신이었던 다이묘가 지방으로 '하향'하는 이미지에 가깝게 된다. 다이묘들은 대부분 에도에서 어나서, 유년기를 에도에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적자가 대를 이을 수 없는 경우가 되서 지방에 있던 서자가 대를 이어받게 된 경우라면 '상경'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 서거정 . . . . 1회 일치
         [[분류:1420년 어남]][[분류:1488년 죽음]][[분류:대구 서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장원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학자]][[분류:김시습]]
  • 서도영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서동민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달성 서씨]]
  • 서명선 . . . . 1회 일치
         [[분류:1728년 어남]][[분류:179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대구 서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영의정]][[분류:조선의 시인]]
  • 서비스 잔업 . . . . 1회 일치
         노동기준법에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과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서비스로 잔업을 하고 있는 상"라고 하여 '서비스 잔업'이라고 호칭한다. 서비스업의 잔업이 아니다.
  • 서수민 . . . . 1회 일치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미디어 노출이 너무 잦다는 점. 용감한 녀석들에서 매주 박성광이 그녀를 디스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게 딱히 재미있는 드립들도 아니었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 대개 개콘 연출자의 이름은 연말 시상식에서 개그맨들이 수상소감으로 OOO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정도로 듣게 되는데 매주 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나온 비판. 무한도전의 김호, 1박 2일부터 지금까지의 나영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얼굴이나 목소리가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수민은 그 과정조차 부자연스러웠다.
  • 서영무 . . . . 1회 일치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서영종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서유정(배우) . . . . 1회 일치
          2017년 11월 13일,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사자상 위에 올라탄 채로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본인의 SNS에 올리는 기행을 펼쳐 논란이 되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문화유산을 훼손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행위는 불법이며 심한 경우 처벌받을 수도 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이다.
  • 서정돈 . . . . 1회 일치
         [[분류:194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총장]][[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
  • 서정윤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성범죄자]][[분류:대한민국의 교사]]
  • 서진 . . . . 1회 일치
         [[율령]]이 정비되어 시율령(泰始律令)이 되었다. 이는 이후 수나라, 당나라의 율령에 영향을 미친다.
  • 서현진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미스 월드 참가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서호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신목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서훈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영남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선원 . . . . 1회 일치
         과거 영국은 군함의 선원을 강제 징집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극초반에는 미국 선박을 습격, 선원들을 끌고가 자국 군함에 우기도 했다고 한다.
  • 성세현 . . . . 1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87CEEB><table width=350><-3><#87CEEB> {{{#white 평양-아시아선수권}}} ||
  • 성재(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구리시 출신 인물]]
  • 세속주의 . . . . 1회 일치
         세속주의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특정 종교의 규범이 국가기관을 통하여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세속주의는 국가기관이 어떤 형로든 종교 단체와 관련되는 것을 비판한다.
  • 세종 . . . . 1회 일치
         3대 종 [[이방원]]→ '''4대 세종 이도'''→ 5대 [[문종]] 이향
  • 소벌도리 . . . . 1회 일치
         한편 [[진주 소씨]] 족보는 소벌도리의 생애에 대해 다른 기록을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진한의 왕족으로 자(字)는 당운(當雲)이다. 진한의 초대 군주 소백손의 4대손이며 돌산고허촌의 촌장을 지냈다고 한다. 사후 [[신라]]의 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사량부대인(沙梁部大人)이 되었다. [[516년]](법흥왕 3년) 충선(忠宣)의 [[시호]]가 추서되었는데, 뒷날 [[종무열왕]]에 의해 왕으로 추존되어 문열왕(文烈王)이라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최씨와 소씨는 그를 시조로 하고, 각각 [[최치원]], [[최언위]], [[최준옹]], [[알천]](소경) 등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대 수를 기세(起世)하고 있다.
  • 소진은 . . . . 1회 일치
         [[분류:1892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소씨]]
  • 손지현(배우) . . . . 1회 일치
          * 포미닛의 트래블 메이커에서 씨스타 멤버들과 포미닛 멤버들이 합세해 지현을 화나게 해보자는 몰래카메라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응이 너무 착했다. 다솜과 소유가 지현이 만든 피자밥이 맛이 없다고 클을 걸자 "아무래도 다시 만들어야 될 것 같다." 라면서 다시 만들러 갔다(...). 이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멤버들이 몰래카메라를 그만두기도 했을 정도. 다만 이 에피소드에서 [[현아(가수)|실세]]는 출연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 손철주 (1954년) . . . . 1회 일치
         1997년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세상에 내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ref name="다음"/> 이 책은 미술교양서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평가받는다.<ref name="중부뉴스"/><ref>{{뉴스 인용|저자=정은선|제목=손철주 평론가 조선시대 미술 특강|url=http://www.leisur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9|날짜=2017-05-17|확인날짜=2017-12-15|뉴스=제주레저신문}}</ref> 유려한 문체로 전통미술 이해를 돕는다.<ref>{{웹 인용|저자=김유리|제목=미술평론가 손철주 “누구나 취향은 생의 문화적 DNA로 기운다”|url=http://ch.yes24.com/Article/View/23662|웹사이트=채널예스|출판사=예스이십사(주)|확인날짜=2017-12-15}}</ref>
  • 손치은 . . . . 1회 일치
         [[분류:1892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손형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솔 인빅투스 . . . . 1회 일치
         [[로마 제국]]에서 숭배되었던 [[양신]].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왕국]]으로 3분 되었던 로마 제국--로마 삼국지--을 재통일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시기에 공식적으로 숭배가 강화되었다.
  • 송가인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상남도출신 인물]][[분류:2012년 데뷔]][[분류:광주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송상진 . . . . 1회 일치
         [[분류:1930년 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송아영 . . . . 1회 일치
         1963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에서 어났다. 세종교동초등학교, 세종[[조치원여자중학교]], 대전[[충남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 송언석 . . . . 1회 일치
         1963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대구[[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시스템|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송원근(배우) . . . . 1회 일치
         이후 2008년 9월 10일 [[이불]]이라는 이름을 걸고 '01(영원..)' 이라는 발라드곡으로 솔로로 다시 데뷔했다. 뮤직비디오에 [[선예]], [[박정아]], [[연]], [[김동완(신화)|김동완]], [[손가인|가인]], [[신동(슈퍼주니어)|신동]] 등 유명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여 화제를 불렀지만, 그게 끝이었다..
  • 송종익 . . . . 1회 일치
         [[분류:1887년 어남]][[분류:195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야로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종호 (1956년)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중소기업청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
  • 송하윤 . . . . 1회 일치
         || [[2005년]] || [[MBC]] || [[베스트극장]] - 릉선수촌 || 정마루 || ||
  • 송호창 (1967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7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친문]][[분류:문재인]][[분류:박원순]][[분류:안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196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산 송씨]]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알렉스와 제임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깨어난다. 몇 시간이나 기절을 했으며 슈퍼맨은 화산폭발로 남평양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구출된 맥스웰 로드는 슈퍼걸은 언급하지 않고 슈퍼맨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DEO에 회수된 카라를 행크는 노란 양빛을 압축시켜서 쬐어주는 침대에 집어넣어서 회복시킨다. 그런데 카라가 깨어나기 전에 행크의 눈이 붉게 빛나느걸 목격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와 대결을 벌인다.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화가 난 상였기 때문인지 과도하게 타격을 입힌다. 레드 토네이도는 긴급 생존 모드가 발동하여 통제에서 벗어나고 만다. 레인 장군는 슈퍼걸이 과도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 스쿼키 청소회사 . . . . 1회 일치
         맥스가 발레리 윈터슨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자 병원을 습격한다. 이들은 비무장 상의 맥스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데까지 성공했지만, 맥스가 병원 경비가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탈출해버려 실패한다.
  • 스트리트 파이터 . . . . 1회 일치
          *
  • 시간이 약 . . . . 1회 일치
         병이나 나쁜 상가 시간에 따라서 나아진다는 의미.
  • 시치고산 . . . . 1회 일치
         과거부터 일본에서는 15일이 길일로 여겨졌다. 시치고산과 유사한 풍속은 일본 역사에서 있었으나. 현재와 같은 형가 된 것은 근대의 일이라고 한다.
  • 식극의 소마/156화 . . . . 1회 일치
          * 쿠스노키의 특기는 가열. 불의 미묘한 온도차를 조절해서 식재료를 최상의 상로 조리한다
  • 식극의 소마/160화 . . . . 1회 일치
          * 아자미는 "내 딸을 데리고 나간 걸로 모자라 이런 언동을 하는건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데, 아리나는 연하게 "알바 아니다"라고 쏘아붙인다
  • 식극의 소마/167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이런 방송을 보고도 덤덤하고 평하지만 기숙사 인원들은 그렇지 않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사이바의 요리를 먹기 전까지 "맛있다"고 느낀 요리가 없었다고 하는데 1화에서 어나자마자 모유가 "맛없다"고 한 여자답다.
  • 식극의 소마/175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이들의 동를 주시한다.
  • 식극의 소마/177화 . . . . 1회 일치
          * 엔도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낌새에 경악하고 소마는 연히 "우릴 떨어뜨리고 싶으면 회장에 이런걸 놔두면 안 됐다"고 하는데.
  • 식극의 소마/180화 . . . . 1회 일치
          * 당일 사용할 고기는 도지마 측에서 최상의 상로 준비하며 그외에 필요한 것은 각자 조달하는 것으로 한다.
  • 식극의 소마/182화 . . . . 1회 일치
          * 리액션으로 폭발하는 건 평범한 축이었지만, 왠지 진짜로 쓰러진데다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가 발생했다.--정말로 음식을 먹인 건가--
  • 식극의 소마/183화 . . . . 1회 일치
          * 곰이 구여 짐승들이 다니는 길 외에 발자국을 내고 다녔는데, 이건 추격자를 교란하기 위한 수법이다.
  • 식극의 소마/184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아자미는 어떻게 했는지 시오미 세미나의 연구 자료를 이미 확보해둔 상.
  • 식극의 소마/191화 . . . . 1회 일치
          * 정신을 차려 보니 놀랍게도 그의 눈 앞엔 시오미 준이 나타난다. 하야마가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도지마는 그녀에겐 볼권리가 있어 초대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야마는 퉁명스럽게 뭐하러 왔냐고 투덜거리는데 시오미는 단호한 도로 하야마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파워풀해서 하야마가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 하야마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처음으로 시오미에게 맞은 거라 정신적 충격이 더 강했다. 시오미는 자신이 하야마의 부모 역할도 하고 있으니 훈육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야마는 아직 애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반발해서 자기가 없으면 업무 진행도 안 되면서 애취급을 하냐고 대든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소마는 뭔가 어정쩡하게 분노하고 있다. 타쿠미가 왜 그리 평하냐고 갈구니 "어쨌든 요리승부로 진 것"이라며 적을 욕할 일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타쿠미도 그 점에는 반박을 못하지만 이 판국에 누구 편이냐며 까댄다. 그러자 소마는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십걸은 학교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않냐는 것.
  • 식극의 소마/196화 . . . . 1회 일치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한 죠이치로. 상대였던 요리사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그쪽은 아주 불손한 도로 "어차피 못 이길 줄 알았다. 천재를 상대로 화낼 수도 없지"라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 식극의 소마/200화 . . . . 1회 일치
          * 도지마와 죠이치로가 티격격해서 결국 [[나키리 센자에몬]]이 중재. 겨우 특훈이 시작된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1회 일치
          * [[타쿠미 알디니]]는 사뭇 진지한 도로 승부에 임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3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겸연쩍어 하며 좀 더 치리멘자코의 맛을 살리는 소스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멋진 요리였다고 추켜세운다. 셋은 에리나가 그렇게 즐겁게 요리하는건 처음이었다고 수군대는데 에리나는 자기를 놀린다고 발끈한다. 넷은 서로 싸우는 듯한 말투로 서로의 발상을 칭찬하며 티격격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승부는 무승부지만 자기들이 의도한 바는 달성했다고 흡족해한다. 게다가 왠지 애초에 다퉜던 주제에 대해선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센자에몬은 이 승부의 진정한 의도는 각자의 역량과 기술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며 홍백전의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1회 일치
          소마는 그 사이에 에이잔의 얼굴을 발견하고 속도 없이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만 지쩍은 완전히 임전세다. 아자미는 키노쿠니에게 센트럴 측에서 검토한 상세사항을 발표하도록 한다.
  • 식극의 소마/208화 . . . . 1회 일치
          * 이에 대항하는 소마는 평하게 "컵 야키소바"같은 아이디어나 내고 있는데 한술 더 떠서 제면기로 반죽을 시작해 웃음거리가 된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1회 일치
          * WGO는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단체인지 미식과 자기네 평가서를 "교전"라 지칭하고 [[나키리 아자미]]와 비슷한 광신적인 행를 보인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회 일치
          [[타도코로 메구미]]를 비롯한 반역자들도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 물론 네네 본인도 그랬다. 그녀는 "뭐가 어쨌다는 거야"란 도로 젓가락을 집어든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1회 일치
          * 메기시마는 그녀의 조리가 예상한 대로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들은 린도가 발끈한다. 메기시마는 린도가 깔끔하게 잘 차려진 고추요리를 할리가 없으니 당연히 문답무용으로 대량 투입할 걸로 예상했고 그래서 이쪽도 같은 "파워플레이"로 맞서는 거라고 말한다. 린도는 "나에 대해 다 안 다는 듯이 말한다"고 성을 내지만 곧 히죽거리며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인정하고 만다. 곧 그녀는 놀라운 박력으로 철냄비를 휘두르며 기름에 고추를 볶는다. 한편 메기시마는 준비한 고추를 절구로 빻아 페이스트 상로 준비. 모두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데 느껴진다. 소마는 이들의 싸움을 "초중량급의 싸움"이라 묘사한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1회 일치
          * 메기시마는 한 번 분명히 거절한 이야기를 다시 끌고 온 소마 일행이 못 마땅했다. 그는 연대식극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못박았다. 메구미가 그도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도 3석 자리를 뺏기지 않았던가? 여기서 이기면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도는 시큰둥. 그는 본래부터 자신은 승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토로했다. 토오츠키에 들어간건 그저 최고의 요리학원이라 해서 그랬던 건데, 막상 들어가니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승부 타령.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거절했지만, 몇몇 끈질기게 달라붙는 녀석들과 식극을 하긴 했다. 3석이란 결과는 그래서 얻은 것.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소마는 그것도 굉장하다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번잡스러워했다. 이제 그런 건 질색인 데다, 요리사가 승패를 논한다면, 그건 손님을 얼마나 기쁘게 했냐로 쳐야한다는 이야기였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회 일치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남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반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순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식극의 소마/227화 . . . . 1회 일치
          * 이번엔 메기시마의 아프리칸 라면. 겉 보기엔 면에도 스프에도 주제인 고추의 요소는 커녕, 이름은 아프리카의 요소가 어디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짐작하자면 가운데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붉은 조미료. 과연 저것이 주제를 살리는 키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메기시마는 그렇다고 자신했다. 그 조미료는 "하리사"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조미료였다. 그가 직접 나서서 설명하길, 그 재료는 파프리카 파우더, 캐러웨이씨, 레몬 즙과 마늘 등 자극적이고 강렬한 소재들. 그리고 여기에 중심이 되는 것이 "대량의 고추"를 휘저어 페이스트 상로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나자 소마도 짚이는 데가 있었다. 분명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가 쿄쿠세이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조리묘"라고 짤막하게 설명했을 뿐이지만.
  • 식물인간 . . . . 1회 일치
         의식이 없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경 기능만 움직이는 상의 환자.
  • 신기준 . . . . 1회 일치
         [[분류:200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신동호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평산 신씨]]
  • 신선미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신수항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신웅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칠곡군 출신]][[분류:1985년 데뷔]]
  • 신지훈(배우) . . . . 1회 일치
         ||2015년||네이버TV 웹드라마 달콤청춘(준)||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1회 일치
         데무라 부부는 머리부터 추락.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트에 뿌려둔 모래 만이 아니라 구멍 주위도 무너져서 대량의 모래에 묻혀버렸다. 부부가 떨어질 때 비명을 듣고 유우키가 함정에 빠지는걸 기다리고 있었던 리사의 친구들이 달려왔으나, 역시 해안이 어두워서 발견에 시간이 걸렸고 발견했을 때 이 부부는 구멍 바닥에서 모래에 묻혀 발만 모래 밖으로 나와있는 상였다. 부부는 모래에 묻혀 질식사 하고 말았다.
  • 심학봉 . . . . 1회 일치
         196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어났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싸움 . . . . 1회 일치
         크게는 둘 이상의 개체가 물리적으로 대립하는 현상 전반을 이를 수 있으나 보통은 둘 이상의 인간이 물리적, 사상적인 형로 대립하여 충돌하는 것을 이른다. 이것의 스케일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고 격화되면 '[[전쟁]]'이라고 하게 된다.
  • 씽(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 의외로 [[말장난]]을 자주 하는 편. 자기 자신을 말할 때에는 '그림 여사의 푸른 눈 소년'이라든지, '피튜니아 고모의 사랑스런 조카' 같이 빙 둘러서 이야기 하는 말이 많고, 주로 하는 'It's clobberin time'을[* 여담으로 WWE소속 프로레슬러 [[CM 펑크]]가 등장 시 외치는 대사도 여기서 따왔다.] 가지고도 말장난을 하며, [[휴먼 토치]] II는 그 말장난에 자주 맞장구를 쳐주고 [[스파이더맨]]과는 서로 자기 유머가 더 잘났다고 싸우고 있다. 《[[월드 워 헐크]]》에서는 [[센트리]]의 힘에 대해 '폭발하는 100만 개의 양'이라 말장난을 했는데, 여기에 낚여 센트리 최강론을 미는 사람들도 있다(...).
  • 아기발도 . . . . 1회 일치
         조선왕조실록 조실록에는 "보기에는 나이가 겨우 15, 6세 되었는데, 골격과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며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 아돌프 히틀러 . . . . 1회 일치
         오스트리아에서 어났다. 젊었을 적에는 미술학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약간 망가진 상가 거의 디폴트(…)가 되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리나보다 어린 나이로 설정되면서, 정신적으로도 어리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묘사가 많아졌다. 제르가디스와 마찬가지로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본래 어느 정도 개그를 하던 캐릭터니까 그렇게까지 위화감은 없지만.
  • 아웃워드 작전 . . . . 1회 일치
         1940년, 대규모 돌풍이 불어서 많은 양의 방공기구가 해방(?)되었다. 이 방공기구들은 동쪽으로 날아가버렸는데, [[북해]]를 건너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날아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전선과 라디오 방송국 안테나를 덮쳤다. 스웨덴 정부는 영국 정부에게 이 사에 대해 항의했다.
  • 안병근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1회 일치
         1956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상경하여 서울수도중학교, [[배명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안영준 . . . . 1회 일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3X3 농구]] 종목에 출전하기 위해 [[김낙현]], [[박인]], [[양홍석]]과 'KBL 윈즈'팀을 결성하여 3X3 코리아 투어 선발전에 참가했다. 2018 KBA 3x3 코리아투어 최강전에서 'KBL 윈즈'가 우승했고 안영준은 MVP를 받았다.
  • 안지만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알 카에다 . . . . 1회 일치
         알 카에다는 [[시아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으며, 수뇌부는 시아파 역시 같은 무슬림이므로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고 있다. 이는 알 카에다가 [[이슬람 국가]]와 결별하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인데, 2003년에 이라크 알 카에다(AQI)[* 후일 이슬람 국가의 모가 된다.]의 수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2006년 사망]가 시아파를 노리고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렀을 때, 빈 라덴은 '불량한 두목'이라고 부르며 자르카위를 비판한 사례가 있으며 결국 알 카에다와 이슬람 국가가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04/0200000000AKR20160704184600111.HTML (참조)]]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1회 일치
         * 그거 조차도 마시자 마자 흐물흐물 녹는 수준인데, 그 상에서도 잘만 공격을 피해서 암살자들의 열을 돋군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그때까지 코나 파고 있던 후토시는 갑자기 대부업법을 줄줄 읊어대며 사채업자를 관광워 버린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사실 허그했을 때 이미 아즈사씨의 몸상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애니멀-베지터블-미네랄맨 . . . . 1회 일치
         상단의 서술대로 그 외관이 상당히 괴랄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모습이다. 몸의 반은 인간이나 반은 공룡같은 모습이고, 팔다리는 한쪽은 나무인데 한쪽은 광물인 형.
  • 야마우바 . . . . 1회 일치
         '야만바'는 [[갸루]] 패션의 일종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무렵에 유행했으며, 새까맣게 운 피부에 하얀 아이새도우와 아이라인을 그리고, 머리를 탈색하여 마치 야마우바처럼 보인다고 하여 야만바라고 했다. 보다 발전하여 메이크업이라기보다는 페이스페인팅 수준이 된 것을 '맘바(マンバ)'라고 불렀다.
  • 양시영 (1944년)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양윤재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부시장]][[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양일환 . . . . 1회 일치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 양씨 (梁)]]
  • 양희승 (작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1회 일치
          * 1단계: 경비병들이 플레이어를 의심하게 된다. 변경 지역에서는 이 상로 고정된다.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1회 일치
         오시아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있는 국가. 오시아와는 15년 전 전쟁 때 동맹이었다. 갑자기 오시아에 선전포고를 해 환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회 일치
          우스티오의 수도. 스토리 시작 당시에는 벨카군에게 점령된 상다.
  • 엘디아 인 . . . . 1회 일치
         마레 제국에서 엘디아 인이 박해받는 모습은 [[게토]]에 강제로 가두거나, 함부로 살해하는 등,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에서 [[유인]]을 박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 여정남 . . . . 1회 일치
         [[분류:1945년 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여태조 . . . . 1회 일치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고 산악지대에서 유격전으로 일관한 결과 명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대월을 다시 건국하고 여왕조를 열어 초대 황제 조로 등극하게 된다.
  • 역행 . . . . 1회 일치
         게임 산업의 발전과 함께, '게임을 보고 다시 플레이'하는 이미지가 창작물에서 나타난 형이다. [[2차 창작]]에서 흔히 쓰이며, 판타지나 SF장르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 연분홍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연초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염재욱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영국 요리 . . . . 1회 일치
         노르만 족의 침략 이후 영국 요리는 노르만 족의 교류를 통하여 프랑스에 전파되었다. 한 때 영국의 플랜저넷 왕조가 지배하였던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은 영국 요리가 전파되어 요리 문화가 크게 번성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왕실로 흘러들어가서 오늘날 [[프랑스 요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절 내내 영국 요리는 당대 유럽 최고의 요리로 명성을 떨쳤다.
  • 영생 . . . . 1회 일치
         영생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그에 걸맞게 영생의 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 예재형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6년 데뷔]][[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의흥 예씨]][[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분류:코미디에 빠지다]]
  • 오다 노부나가 . . . . 1회 일치
         오와리(지금의 [[나고야]] 인근 지역)의 [[다이묘]]였던 '오다 노부히데'의 적자로 어나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다른 언행을 보여 '얼간이'라고 취급받았으나 친인척과 가신들의 도전을 모두 물리치고 오와리의 지배권을 확립한다.
  • 오세정 (교수)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문재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바른미래당 당원]][[분류:안철수]][[분류:박지원 (1942년)]][[분류:이회창]]
  • 오소영 (조각가)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타씨]][[분류:살인 조각가]][[분류:1982년 데뷔]][[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오승근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오승원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0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오승훈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도쿠시마 보르티스의 축구 선수]][[분류:교토 상가 FC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호남대학교 동문]][[분류:축구 골키퍼]][[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오승희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도쿄도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여자 가수]][[분류:일본의 가수]][[분류:일본의 아이돌]][[분류:1997년 데뷔]][[분류: 충쿠 소속]][[분류:모닝구 무스메의 일원]]
  • 오싱 . . . . 1회 일치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상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상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남편과 만나고 상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남편과 장남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반발하거나 등등.
  • 오영식 (1967년) . . . . 1회 일치
         [[분류:196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울전곡초등학교 동문]][[분류:휘경중학교 동문]][[분류:양정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나주 오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
  • 오영실 . . . . 1회 일치
         어났으며,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오영실이 7살 때 [[베트남 전쟁/한국군|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하셨다.
  • 오예설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1회 일치
         이렇게 하여 어난 것이 카무야마토이와레히코(神倭伊波礼毘古命, 진무덴노神武天皇)의 황후, 히메타타라이스키요리히메(比売多多良伊須気余理比売(ひめたたらいすきよりひめ)라고 기록하고 있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1회 일치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로 바뀌었다.
  • 오유나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오은석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오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오정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
  • 오준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런던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싱가포르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CJ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오준영 (1955년)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명지대학교 동문]]
  • 오지철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함양 오씨]]
  • 오철환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오충훈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SK텔레콤 T1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1회 일치
         주로 [[오타쿠]] 성향의 사람이 많고 성비가 [[남초]] 상인 문화계 서클에 희소하게 끼어든 [[여성]]을 뜻한다.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여성이 적고, 이런 써클의 남성 회원은 여성에게 면역이 없어서 "공주님 취급"을 받는다고 이렇게 불린다.
  • 온죠우지 . . . . 1회 일치
         불타고 재건하길 반복하여 일본에서는 [[피닉스]] 염상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주로 불운건 대립하는 [[엔라쿠지]].
  • 올마이트 . . . . 1회 일치
         이렇듯 완벽한 히어로 그 자체이나 사실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몸 상가 정상이 아니었다. 과거 강적과의 싸움에서 극심한 부상을 입은 나머지 거구의 근육질 체격은 몇시간만 유지할 수 있고, 대부분은 삐쩍 마른 몸집이 되는 것. 은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빌런에 대한 억제력이 되는 입장이기에 미루고 있다. 그의 특유의 표정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도 있지만 마음 속에서 들끓는 중압감과 공포심에서 달아나기 위함이다. 이러한 판에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소년과 만나게 되고, 그를 후계자 삼아 자기가 가진 힘인 [[원 포 올]]을 물려주게 된다. 동시에 그의 스승이 되어 그를 단련시키게 된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회 일치
         [[소련]]은 사회주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소련에 비판적이던 일부 좌파 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외면하며 소련과 같은 형가 아닌 '완벽한 공산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이 당시는 비주류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 왝더독/줄거리 . . . . 1회 일치
         어찌어찌 귀환식장에 도착한 일행. 슈만의 영결식을 진행하는 동안 브린과 모스는 TV를 본다. TV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라갔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며 그 공을 홍보 영상에게 돌린다. 모스는 자신의 업적을 병신같은 홍보 영상 따위에 빼앗긴 것에 분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브린과 말싸움을 하다 자리를 떠난다. 이후 요원들이 모스를 차에 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 요괴:냉장고 . . . . 1회 일치
         과거에는 위에 작은 입이 달리고 아래에 큰 입이 달린 형가 많았지만 요즘은 좌우로 나란히 입이 붙어 있는 타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양문 타입이라 부른다.
  • 요시다 세이지 . . . . 1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부터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전남, 경남, 제주 등에서 끌고간 한국인 징용자의 숫자는 종군위안부 1000명을 포함하여 6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의 저술에서는 "종군위안부 징용은 한 마디로 노예사냥이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들을 후려갈겨 트럭에 강제로 우고, 울며 매달리는 젖먹이를 억지로 떼어냈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 우동균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
  • 우라가에시 . . . . 1회 일치
          * 물건을 뒤집거나 그런 상. 셔츠나 양말 같은 것에 사용한다.
  • 우츠미 사토루 . . . . 1회 일치
         >장애아가 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낳기 전과 임신 전에 부모의 음식과 생활이 흐트러져 있었는가 하는 증거, 그것은 평생에 걸쳐서 반성해야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 아이를 평생 지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부모에게 주어진 시련입니다♪
  • 운명의 붉은 실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중국 고전인 『평광기(太平広記)』 159권, 『속유괴록(続幽怪録)』에서 인용된 「정혼점(定婚店)」이라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붉은 끈으로 남녀를 묶어서 맺어주는 신비한 신령인 월하노인(月下老人)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 울산광역시 . . . . 1회 일치
         화강의 모습
  • 워저드 . . . . 1회 일치
          나문 일족의 장이자 오나와반의 두령. 주군의 명에 따라 지팡그에 나타난 4척의 흑선을 파괴하러 나가지만, 주군의 명에 의심을 품고 독자적으로 사를 조사하러 떠난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 워터보딩 . . . . 1회 일치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10/story_n_6298652.html|헌팅턴포스트 - (CIA 고문 보고서) 마침내 드러난 잔혹한 고문실]]
  • 원 포 올 . . . . 1회 일치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 원피스/817화 . . . . 1회 일치
          * 사실 네코마무시와 이누아라시는 사이가 좋았는데 티격격하는 것 같다.
  • 원피스/826화 . . . . 1회 일치
          *위사진의 어인은 양해적단의 알라딘이다.
  • 원피스/831화 . . . . 1회 일치
          * 거울을 놓은 것처럼 행동거지마저 똑같은 두 명의 루피가 티격격한다.
  • 원피스/832화 . . . . 1회 일치
          * 저지는 그가 꽤 강한 녀석이라고 하는데 상디는 연히 "내가 그 이상이었을 뿐"이라 대꾸한다.
  • 원피스/833화 . . . . 1회 일치
          * 제르마1은 "같은 날 어난 형제 중 너만 돼먹지 못했다"고 독설한다.
  • 원피스/837화 . . . . 1회 일치
          * 나미는 그의 팔이 늘어난 것에 놀라는데 그 와중에도 "둘도 없는 명검이라면서 늘어났다" 고 클을 건다.
  • 원피스/838화 . . . . 1회 일치
          * 손벽을 치면 비스킷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형나 강도 또한 마음대로 조절한다.
  • 원피스/848화 . . . . 1회 일치
          * 보물 전 안의 [[브룩]]은 빅맘의 자식들과 체스병들에게 포위 당해있다. 그래도 아까보단 줄은 숫자. 페드로가 이목을 끌어준 덕이다. 빅맘의 자식들은 브룩을 "별난 생물" 취급하며 꼭 잡아서 빅맘에게 바치고자 한다. 체스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브룩은 연하게 기타를 꺼낸다. 페드로가 사전에 체스병에 대한 정보를 준 건데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물건에 들어가 있는 병사. 즉 "소울"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 원피스/849화 . . . . 1회 일치
          * 미러월드의 [[샬롯 브륄레]]의 집. 아직도 [[캐럿(원피스)|캐럿]]을 요리하고 있다. 캐럿은 부글부글 끓는 솥 위에 매달려 있는 상. 브륄레가 솥을 젓고 있고 학기사 랜돌프를 비롯한 부하들이 솥 주위에 모여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잡힌 척하고 있는 [[쵸파]는 캐럿을 죽이지 말라고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잡혀있는 캐럿은 진짜가 아니다. 그건 브륄레가 만든 가짜. 자신의 능력으로 개구리를 캐럿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아마 쵸파를 혼란시키려고 한 짓같지만 이번엔 자기 무덤을 판 짓이 됐다.
  • 원피스/855화 . . . . 1회 일치
          * 비바람을 맞으며 약속의 장소로 향하던 상디. 어렸을 적 풍을 뚫고 어머니에게 향하다 들개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이번에도 어디선가 들개가 나타나 도시락을 노린다. 상디는 당황하며 개를 쫓아낸다.
  • 원피스/856화 . . . . 1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는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대로 술집 여자들과 놀면서 완전히 방심한 상.
  • 원피스/860화 . . . . 1회 일치
          * 다과회 시간에 맞춰서 귀빈들을 운 돼지마차가 스위트 시티로 들어온다. 내린 사람들은 빅맘의 지인들 중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 뿐이다.
  • 원피스/871화 . . . . 1회 일치
          루피가 기어4로 주먹을 날리자 빅맘도 팔에 무장색 패기를 둘러 맞부딪힌다. 패기와 패기의 격돌. 그 여파로 주위를 번잡스럽게 하던 샬롯가의 조무라기들이 쓸려간다. 루피는 약속대로 딱 한 방만 주먹을 날린 뒤 상디에게 회수된다. 어차피 저 한 방에 기어4의 힘을 다 써버려 늘어진 상다. 레이쥬가 이들의 호위로 따라붙는다.
  • 원피스/884화 . . . . 1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의 무장색 패기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무적의 회피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몽키 D. 루피]]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리가 없었다. 그 실체는 "견문색 패기". 패기로 미래를 예지하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신체를 변형해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루피는 그 원리를 간파함과 동시에 "카타쿠리가 냉정을 잃으면 유효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공시킨다. 자신의 본색을 들켜 당황하던 카타쿠리는 루피가 기어4를 앞세워 퍼붓는 공격에 얻어맞으며 밀리는 듯 보였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고 반격, 루피는 기어4 상에서도 나가떨어진다. 다만 카타쿠리 또한 체력소모가 상당한 듯 보이는데.
  • 원피스/888화 . . . . 1회 일치
          * 밍크족은 만원을 바라보면 "수론"이라 불리는 상로 변신하는데, 수론으로 변한 캐럿은 접근한 [[샬롯 다이후쿠]]의 배로 뛰어들어 적들을 쓸어버리고 배의 키까지 부숴버린다.
  • 유니콘남 . . . . 1회 일치
         유니콘계 남자란, 고학력, 고수익, 높은 사회적 신분, 잘생긴 얼굴, 좋은 성격과 신사적인 도를 모두 갖춘 '''완벽한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 반면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남자이기 때문에, 오직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만이 만날 수 있다.
  • 유로달러 . . . . 1회 일치
         1950년대,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무역적자의 형로 전 세계로 '수출'했다. 그 결과 막대한 달러화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 누적되었다. 1971년 [[닉슨 쇼크]]로 전 세계가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되자, 이러한 막대한 역외달러를 이용한 금융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역외달러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은 당시 경제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였으며,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파리]], [[암스테르담]] 등이 역외달러 금융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독일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프랑스의 BNP 파리바, 네덜란드의 ABN AMRO 등이 주요한 은행으로 성장하였다.
  • 유병수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하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하키 감독]][[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유언/게임 . . . . 1회 일치
         || 존 "소프" 맥비시 ||프라이스...알아야 할게 있습니다.... 마카로프가...유리를...알고 있습니다.... ||
  • 유재한 (1955년)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유재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강릉 유씨]]
  • 육홍균 . . . . 1회 일치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 대학 문과를 수료하였다.
  • 윤문영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윤석용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한의사]][[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구종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지체 장애인]]
  • 윤식 . . . . 1회 일치
         [[분류:1939년 어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파평 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하와이 대학교 동문]][[분류:베일러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
  • 윤정희(1944)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성 배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부인이며, 1976년에 결혼했다. [[본명]]은 손미자.[* 배우 [[금보라]]와 본명이 같다.] 1944년 7월 30일에 출생하였고, 서울에서 어나 강원에서 성장 [[홍천군]]과 우석대(고려대학교로 통합)를 졸업하였다.
  • 윤주희(배우) . . . . 1회 일치
         || [[KBS2]] || [[수상한 삼형제]] || [[수상한 삼형제/등장인물|이백]] || ||
  • 윤지숙(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73년 어남]][[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
  • 윤진솔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윤진영(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박승대 사건 이후 예전 같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3일 입대했다.[* 같은 날, 오랜 단짝인 김필수도 입대했다. 하지만 동반 입대는 아니었다. 김필수는 강원도에, 윤진영은 경기도에 입대했기 때문.]8사단 수색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야 무릎 상가 심각해서 공익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현역 복무를 선택했다는 게 알려진다. 연예병사로서 군 복무를 끝마쳤는데, 선임으로는 [[강타]]가 있었다고 한다. 전역하니 웃찾사가 사라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다가 TVN [[코미디빅리그]]가 신설되자 김필수, [[조우용]], [[박충수]]와 함께 '''따지남'''으로 방송계에 복귀한다.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다가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윤진영(푸른거탑)|고정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배우 활동 중이다.
  • 윤찬수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윤천주 . . . . 1회 일치
         192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가나자와]]의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815해방으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윤철종 . . . . 1회 일치
         그러다가 [[여성가족부]]의 클로 1집 메인곡인 <그게 아니고>가 유해매체로 판정되었으며 여가부가 제시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윤철형 . . . . 1회 일치
          * 2003년 : [[양의 남쪽]] ... 차승욱 역(SBS)
  • 율리우스 네포스 . . . . 1회 일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 은혼/574화 . . . . 1회 일치
         * 가츠라, 긴토키와 신스케는 "지금은 하루사메를 치지만 다음은 너다"라면서 티격격한다
  • 은혼/575화 . . . . 1회 일치
         * [[오보로]]는 각혈을 하는 등 위험한 상지만 우츠로에게 "나도 당신의 제자. 제자들의 일은 제자 선에서 처리하겠다"며 최후의 "충성"을 다하게 해달라 한다.
  • 은혼/576화 . . . . 1회 일치
         * 우미보즈는 연히 받아내며 "남에게 물건을 던지면 못 쓴다"고 타이르는 투로 대꾸한다. 이번엔 카무이가 시시의 칼로 내리치는데 이것도 "남에게 뾰족한 것을 가리키는게 아니다"면서 어린애 타이르는 투로 받아친다.
  • 은혼/581화 . . . . 1회 일치
         * [[용맥]]에서 어나 아르타나 없이 살 수 없는 코우카를 [[황안]]에서 데리고 나온건 우미보즈이며 "죽음의 별에 핀 한 송이 꽃을 뿌리부터 잡아 뜯어 시들게 했다"고 단언한다.
  • 은혼/583화 . . . . 1회 일치
          * 그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결정을 손에 넣고 돌아왔을 때 이미 코우카는 가망이 없는 상였다.
  • 은혼/584화 . . . . 1회 일치
          * 오랜만에 신파치의 찰진 클.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긴토키는 "대체 어디서 어나서 너같이 막돼먹은 꼬맹이가 되는지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렸다"면서, "네가 자란 고향과 가족을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휴가였다"고 말한다.
  • 은혼/594화 . . . . 1회 일치
          * 천도중은 전우주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할 거냐고 묻는데, 우츠로는 연히 답한다.
  • 은혼/605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원상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적은 아직 남아 있다. 모든 것을 불워라"는 지시를 내린다.
  • 은혼/606화 . . . . 1회 일치
          * 곤도는 이길 순 없어도 전쟁을 막는 계기 쯤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에도를 지키기 위해 새롭게 어난 신 진선조의 힘을 잘 보라고 말한다.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 이 같은 와중에 주인공인 [[사카타 긴토키]]는 알을 잃어버리는 참사 끝에 해방군과 함께 누워버리는 추를 보인다.
  • 은혼/616화 . . . . 1회 일치
          적들은 수만이 아니라 다키니라는 무서운 전력을 앞세우고 있는 상. 가부키쵸에서 적의 1파와 맞딱드린 진선조의 특동대는 다키니의 위력 앞에 여지없이 쓸려나간다. [[오토세]] 여사 또한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벽이든 그들 앞에선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며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 은혼/618화 . . . . 1회 일치
          * 사천왕의 필두 [[토죠 아유무]]가 과감하게 돌격, 오우가이의 머리를 꿰뚫는 듯 했으나 그는 진검을 이쑤시개 씹듯이 씹어 먹으며 흉흉하게 웃는다. 오우가이는 토죠를 붙잡아 키타오오지, 미나모토와 함께 패대기 친다. 오우가이는 구여 추격하지 않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이 둘러싼다. 토죠는 상처는 없지만 검을 잃었고 미나모토는 치명상. 키타오오지도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채로 적들에게 노출된다.
  • 은혼/619화 . . . . 1회 일치
          * 난간 바깥으로 날아간 줄 알았던 가구라와 신파치가 힘을 합쳐 오우가이의 뒤통수를 후린다. 그것 자체로는 큰 타격이 되지 않지만 그가 쓰러지는 바람에 위롭게 버티고 있던 계단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오우가이.
  • 은혼/622화 . . . . 1회 일치
          * 피라코는 공중에서 나타나 긴토키를 깔아뭉게며 착지한다. [[시무라 신파치]], [[가구라]]도 피라코와 재회. 지로쵸는 피라코가 사정해서 돌아오게 됐다고 하는데 피라코는 오히려 지로쵸가 서둘렀다고 말한다. 부녀는 잠시 서로 누가 더 안달나서 빨리 움직였는지를 놓고 티격격하다 피라코가 "아버지가 더 서둘렀다"고 울먹거린다. 그런데 그 지로쵸가 "내가 더 빨랐다"고 말을 바꾸며 사탕으로 달래려 든다.
  • 은혼/632화 . . . . 1회 일치
          * 신스케와 반사이는 협력해서 마타코를 도주시켰지만 자신들은 구속, 처형을 앞둔다. 이런 와중에도 신스케는 평하게 반사이에게 가담해줄 것을 권유한다.
  • 은혼/633화 . . . . 1회 일치
          >[[지구(은혼)|저 별]]에서 어난 모든 것을
  • 은혼/636화 . . . . 1회 일치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남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상황. 이 한심한 작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 은혼/637화 . . . . 1회 일치
          우츠로가 감사를 표한 해방군의 아둔함, 아무 것도 끝장내지 못하는 무능함이야 말로 우츠로에겐 필요했다. 그것이 마지막 방아쇠이며 이로써 주사위가 던져졌다. 그러니 이젠 필요가 없다. 우츠로는 더이상 그걸 보고 있기 힘들어서 나타났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끝끝내 두려워하는 도, 삶에 연연하는 집착. 그것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이 추악하다. 이 되다만 불사인들 처럼. 우츠로의 미학에 따르면 끝이란 아름답고 정밀해야 한다.
  • 은혼/640화 . . . . 1회 일치
          신스케는 과거에 했던 맹세를 떠올린다. [[은혼/632화|반사이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반사이를 포섭한다. 어차피 나라의 심판으로 사라질 목숨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지 않겠냐고. 반사이가 "그럼 당신은 뭘 위해 죽을 거냐"고 묻자 그는 뻔뻔한 도로 대답했다.
  • 은혼/641화 . . . . 1회 일치
          마타코가 그의 몸상를 우려하나 그는 사양한다.
  • 이강철 (1947년)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경석 (배구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 감독]][[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배구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
  • 이관섭 (1961년)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광훈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강릉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이규한(배우) . . . . 1회 일치
          * [[부잣집 아들]] - 남
  • 이근택(1865) . . . . 1회 일치
         >'''"네가 대신까지 되었으니 나라의 은혜가 얼마나 큰데, 나라가 위로운 판국에 죽지도 못하고 도리어 내가 다행히 살아났다고 하느냐? 너는 참으로 개 돼지보다도 못하다. 내 비록 천한 종이지만 어찌 개, 돼지의 종이 되고 싶겠느냐? 내가 힘이 약해서 너를 만 토막으로 참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 이동찬(기업인) . . . . 1회 일치
         1922년 4월 1일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어났으며, 아버지는 [[코오롱그룹]] 창업주이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원만(1904)|이원만]](1904년~1994년)이다. [[와세다대학]] 전문부에 입학하고 1944년 1월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였다.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 이득윤 . . . . 1회 일치
         [[분류:1553년 어남]][[분류:1630년 죽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음악가]][[분류:조선의 학자]][[분류:경주 이씨]]
  • 이명규(국회의원) . . . . 1회 일치
         1956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이후 어릴 때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자랐다.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문식(배우) . . . . 1회 일치
          *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박소]] 역
  • 이미라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분류: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의 축구 선수]][[분류:WK리그의 축구 선수]]
  • 이민호(1969) . . . . 1회 일치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2위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 멤버 중 한명이 [[박정]].
  • 이사강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이상오 . . . . 1회 일치
         [[분류:1905년 어남]][[분류:196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
  • 이상정 (1897년) . . . . 1회 일치
         [[분류:1897년 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상휘 . . . . 1회 일치
         [[197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어났다. 포항해양과학고등학교, [[용인대학교]]를 졸업 및 학위를 취득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이후, [[데일리안]]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위덕대학교]] 부총장까지 지냈다.
  • 이선민 (1988년)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구미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숭실대학교 동문]]
  • 이설주 . . . . 1회 일치
         [[분류:1908년 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성구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공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민주자유당의 정치인]][[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영천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이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이성희(배구감독) . . . . 1회 일치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 이센고린 . . . . 1회 일치
         당시 [[일본군]]이 징집 통지서를 보낼 때 가격이 2센 5린이었기 때문에 붙은 속어다. [[평양 전쟁]] 관련 서적들[* 제임스 브래들리의 "플라이보이스", "아버지의 깃발", 이에나가 사부로의 "Pacific War, 1931-1945" 등등]에서는 이 금액에 "1페니 보다 적다,"라는 프레스기로 찍어낸 듯한 설명을 붙여준다.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반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이승현(농구선수) . . . . 1회 일치
         추일승 감독이 이번 시즌이 끝나고 군입대를 시키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발목의 상가 좋지 않아 다음 시즌에도 혹사시키느니 선수생명의 장기화하여 리빌딩 후 다시 대권을 노리겠다는 입장인듯하다. 4월 19일 상무에 최종 합격했다.
  • 이시종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의 이씨]][[분류:충주시 출신]][[분류:충주중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친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
  • 이신학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영 (1492년) . . . . 1회 일치
         [[분류:1492년 어남]][[분류:1593년 죽음]][[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은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영 (1494년) . . . . 1회 일치
         [[분류:1494년 어남]][[분류:조선의 무신]][[분류:1563년 죽음]][[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육군 군인]][[분류:병마절도사]][[분류:병사한 사람]][[분류:영천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장군]]
  • 이영세 (1947년)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영욱 (1980년)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이영훈 (경제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
  • 이영희 (1936년) . . . . 1회 일치
         [[분류:1936년 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신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이예린 (1974년)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1994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원석(1981년)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동구(인천) 출신 인물]]
  • 이원형(1951) . . . . 1회 일치
         195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영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계명문화대학교]] 관광영어통역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 이은수(육군) . . . . 1회 일치
         1965년에 [[구미시]]에서 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 이인성 (화가) . . . . 1회 일치
         [[분류:1912년 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사고사한 사람]]
  • 이장섭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문재인]][[분류:노무현]][[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제천고등학교 동문]][[분류:충북대학교 동문]][[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
  • 이재룡(1964) . . . . 1회 일치
         ||<:><#4C4C4C>'''{{{#FFFFFF 가족}}}'''||<(> [[배우자]] '''[[유호정]]''', [[아들]] 이연, [[딸]] 이예빈, [[처제]] 유호선 ||
  • 이재성(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0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삼척시 출신 인물]]
  • 이전환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 차장]][[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정무 . . . . 1회 일치
         194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선산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1978년부터 [[대구백화점]]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경상북도 군위군-선산군-칠곡군-성주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다가 [[신현확]]에 밀려 탈락하였다.
  • 이정우 (1950년)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정훈 (1963년)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이정훈(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광주 이씨]][[분류:김포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교수]][[분류: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수]]
  • 이제석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어남]][[분류:광고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협성중학교 동문]]
  • 이종근(1923) . . . . 1회 일치
         1923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충주농업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였다. 1963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 이종남(배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데뷔]][[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제군 출신 인물]]
  • 이종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종화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내성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오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이종희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주호 (1961년)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1회 일치
         1933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어났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이지우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이지찬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이차영 . . . . 1회 일치
         [[1961년]]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에서 어났다. 괴산감물초등학교, 청주[[대성중학교]], [[청주고등학교]],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판석 . . . . 1회 일치
         1934년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석우동(現 칠곡군 가산면 석우리)에서 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대구대학교 상학과(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이하윤(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가평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이헌일 . . . . 1회 일치
         [[분류:1917년 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현 (1983년) . . . . 1회 일치
         [[분류: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83년 어남]][[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현욱(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201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영광군 출신 인물]]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이스트로의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CJ 엔투스의 선수]][[분류:Team SCV Life의 선수]][[분류:이블 지니어스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이홍우(1959) . . . . 1회 일치
         [[1959년]] [[10월 21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어났다. 대구동인초등학교, 대구영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대구)|대구경신고등학교]], 계명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이효린 . . . . 1회 일치
         [[분류:1540년 어남]][[분류:1622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분류:우계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희성 (1988년)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이희승(1913) . . . . 1회 일치
         1913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일본]] [[주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 인비저블 우먼 . . . . 1회 일치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1회 일치
          * 고우서는 "한 명을 먼저 쓰러뜨려놓고 나머지 한 명을 상대해서 1:1 상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단장의 기량 덕이라고 분석한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그 상로는 풀 카운트는 쓰지 못할 거라며 멜리오다스에게 "연염조"라는 공격을 가한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1회 일치
          * 에스카노르의 반격. 마치 양같이 거대한 이미지.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1회 일치
          * 이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연하게 늘어놓는 멀린.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1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반쯤은 언데드 같은 상이기 때문에 데스 퍼지를 써도 괜찮은 건지 애매하다.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1회 일치
          * 즐거운 것도 잠시. 게라이드를 비롯한 모든 이가 위화감을 눈치챈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즐겁게 춤을 춰놓고 기억이 왜곡된 듯 방금 전까지 뭘하고 있었는지, 왜 춤을 췄던 건지도 잊고 있다. 그저 아주 즐겁게 춤을 췄다는 느낌만이 있다. 그러다 오슬로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할리퀸과 디안느가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 당황하며 이들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트로나는 게라이드에게 뭔가 눈치챈게 없다고 묻는데 게라이드의 상도 이상하다. 마트로나의 물음에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답이 없다.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1회 일치
          *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의 몸에 들어간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킹]]. 그들은 자신들의 상 보다도 "[[여신족]]"인 [[엘리자베스 바토라|엘리자베스]]의 등장에 더욱 놀라워한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본래 마계에서만 존재하며 마신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전설 상의 존재다. 그 실체는 일곱 개 이상의 심장을 가진 마신이 자신의 여섯 심장을 바치고 계약을 맺어 본성을 드러낸 형다. 전투력이 최소 5만이 되지 않으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자폭과도 같은 기술이다. 갈란은 십계 두 명이 인듀라화를 결심하게 만들 만큼 뤼드셀이 강한 거라며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1회 일치
          * 멀린은 짧은 시간 만에 모든 해답을 도출했다. 그녀는 고서의 정신이 불안정한 이유를 해명했다고 선언한다. 기억이 되살아나려고 할 때마다 폭주하는 형로 억눌러왔기 때문이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1회 일치
          그저 많이 닮은 타인이 아니었다. 멜리오다스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다시 어난 엘리자베스라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의 모습이었고 멜리오다스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무수히 걷어차이고 거부 당하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곁을 따랐다. 결국 그의 열성에 엘리자베스가 항복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1회 일치
          * 나자는 낮부터 기력이 없어서 방에 누워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고서는 걱정말고 푹 쉬라면서 다음에는 페네스의 호반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나자는 화제를 돌려 고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그때 고서는 갓 어난 산양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도 그를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며 몸도 마음도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 백년이든 몇 천년이든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데.
  • 일본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 대화재 . . . . 1회 일치
         22일 오전, 한 라면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강풍을 타고 인근 주택과 상점가로 번졌다. 10시간 넘게 지속되면서 약 4만㎡ 범위를 불웠고, 화재범위 내에서 총 150여개의 주택과 점포가 전소됐다. 소방차 10여대가 출동하였으나, 너무 화재가 심하여 불길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 . . 1회 일치
          효과음, 의어, 의성어를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 임각수 . . . . 1회 일치
         1953년 [[충청북도]] [[괴산군]] 에서 어났다. 괴산외사초등학교(폐교), 괴산중학교, [[괴산고등학교]],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 임대윤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임동규(정치인) . . . . 1회 일치
         1944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임인배 . . . . 1회 일치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어났다. [[김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95년 현직 검찰 수사관 신분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12800329116014&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5-01-28&officeId=00032&pageNo=16&printNo=15325&publishType=00010|"조국을 남기고 님은 가셨습니다"라는 소설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따서 덕천장학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 임진숙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
  • 임채무 . . . . 1회 일치
          * [[삼김시대(드라마)]] - [[노우]] 역
  • 임페라토르 . . . . 1회 일치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성립하면서 군단편성권과 같은 군권을 자신에게 독점시켜 황제는 유일한 '임페라토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구멍이 있었는데, 내전기의 로마 전통에 따라서 병사들은 자신의 지휘관을 [[투표]]로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단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지휘관은 언제든지 '임페라토르'로 승격될 수 있었다.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얻게 된 사령관은 사실상 '잠정 황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 [[원로원]]의 동의를 얻으면 진짜 황제가 될 수 있다. 평시에 황제(현임 임페라토르)의 권위가 높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는 정치적 혼란기에는 언제든지 제국 각지에서 임페라토르가 난립하는 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는 로마 제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내전과 군인 황제들의 지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자본통제 . . . . 1회 일치
         1974년, 미국은 자본자유화가 국제무역을 증가시킨다는 견해로 자본통제 정책을 폐지했다. 선진국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대세로 삼았으며, 우리나라는 1995년 OECD 가입을 계기로 하여 자본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 IMF 사를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채권, 금리, 외환, 주식 등의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크게 성장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 자의식과잉 . . . . 1회 일치
         자의식과잉이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하여 자의식이 과도하게 심한 상를 뜻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보이는가 하는걸, 지나치게 과도하게 생각한다.
  • 잠버릇 . . . . 1회 일치
          * TV 보면서 자기 : 스트레스가 끊어지지 않는 상일 때 일어날 수 있다.
  • 장가용 . . . . 1회 일치
         [[분류:1935년 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안동 장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제주대학교 교수]][[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장계현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장기오 (공무원) . . . . 1회 일치
         [[분류:193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분류:인동 장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나회]][[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
  • 장남석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장다경 (영화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장덕균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작가]]
  • 장동국 (1972년 9월)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2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장두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1953년 어남]][[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문규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장미화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1993년 데뷔]][[분류:관동대학교 동문]][[분류:숭덕여자고등학교 동문]]
  • 장민호 (1962년)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간첩 사건]][[분류:대한민국의 학생 운동]][[분류:반전 운동]][[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장민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장씨]]
  • 장선이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2005년 데뷔]]
  • 장소팔 . . . . 1회 일치
         [[분류:1923년 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4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장수영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경인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
  • 장수원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천시 출신]][[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젝스키스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장순왕후 . . . . 1회 일치
         [[분류:1445년 어남]][[분류:1461년 죽음]][[분류:조선의 추존왕후]][[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한명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조선 예종]]
  • 장슬기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극동정보대학 동문]][[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투나잇]]
  • 장연주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여자대학 동문]][[분류:서문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분류:1978년 어남]]
  • 장영 (조선) . . . . 1회 일치
         [[분류:1622년 어남]][[분류:170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장용석 . . . . 1회 일치
         [[분류:196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행정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
  • 장우람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우수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장운호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장유환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2013년 데뷔]][[분류:장씨]][[분류:개그투나잇]][[분류:개그콘서트]]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7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진]][[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
  • 장윤진 . . . . 1회 일치
         [[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5년 어남]][[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
  • 장은숙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197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엔카 가수]]
  • 장은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전자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보이스 코리아 참가자]][[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장의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재훈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신흥중학교 (인천) 동문]][[분류:인천서흥초등학교 동문]][[분류:유신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장종덕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장준영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대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축구 수비수]]
  • 장준휘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지영 . . . . 1회 일치
         [[분류:1889년 어남]][[분류:197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한글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동 장씨]][[분류:조선어학회 사건]]
  • 장진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프로듀서]][[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이스트로의 선수]]
  • 장진용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질롱 코리아 선수]][[분류:서울가동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장철 (1967년) . . . . 1회 일치
         [[분류:196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장항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
  • 전광우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인디애나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전근표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화곡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전기안전관리법 . . . . 1회 일치
         이전까지는 전기제품만 받던 KC인증(국가통합인증)을 의류나 잡화 등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었는데, KC인증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고 위반시 과료가 500만원이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은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서 영세상인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 전덕기 . . . . 1회 일치
         [[분류:1875년 어남]][[분류:1914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고문 피해자]][[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동문]][[분류:범죄 피해자]][[분류:한국의 기독교운동가]][[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이회영]][[분류:신민회]]
  • 전락원 . . . . 1회 일치
         [[분류:1927년 어남]][[분류:200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 사람]][[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학 설립자]][[분류:담양 전씨]]
  • 전병조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전상렬 . . . . 1회 일치
         [[분류:197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전성우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성인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동문]]
  • 전수지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수희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우석대학교 동문]][[분류:2011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
  • 전숙희 . . . . 1회 일치
         [[분류:1919년 어남]][[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한국의 군정기]]
  • 전인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히어로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
  • 전재국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삼육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완산 전씨]]
  • 전정희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어남]]
  • 전종화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 전종환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지수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덕화중학교 동문]][[분류:대구파동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전진영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YTN의 아나운서]]
  • 전형도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전호영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정선 전씨]]
  • 전희숙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1회 일치
          * 길리엄은 이미 새로운 클론 부대를 확보했고 테오도르가 준비한 부하들도 처리된 상.
  • 절대가련 칠드런/435화 . . . . 1회 일치
          * 바벨의 수뇌부는 서둘러 사를 파악하는데, 무인기를 투입해 현장을 탐사해 보니 후지코는 시설을 부수려다 배가 고파서 쓰러져 버린다
  • 절대가련 칠드런/437화 . . . . 1회 일치
          * 시호는 지상에서 츠보미의 진의를 파헤친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최악의 형로 밝혀질 것이다"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회 일치
          * 타니자키의 설명에 의하면 모호츠쿠 관측소는 "자연상에서 무기물에서 발생하는 ESP나 유사전파를 연구하기 위한 기관"으로 외딴 곳에 있는 이유는 에스퍼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1회 일치
          * 원래 블랙 팬텀의 자객들은 오타쿠 컨셉이었는데 그냥 변 컨셉으로 바뀐 듯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1회 일치
          * 어린 시절 내전 중인 나라에서 어난 마기. 도둑질로 연명하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회 일치
          산노미야 시호는 어떤 조사를 위해 타니자키를 두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려오라고 말하며 현장에 있는 더 하운드와 나오미도 따라달라고 말한다. 협력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카키는 블랙 팬텀에게 "백도어"로 이용당해 왔고 그쪽에선 다시 사카키를 지배하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 그 말을 들은 미나모토는 사카키를 혼자 두고 온 걸 후회한다. 본래는 ESP 감지기에 사카키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관측소에 두고 온 건데 이런 식으로 악수가 됐다. 나오미는 자신이 먼저 관측소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미나모토는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할 거라 판단해서 전원이 돌아가기로 한다. 미나모토는 이 작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후회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회 일치
          리더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옆에선 [[후지우라 요우]]가 왠일로 어른스럽게 "리더 따윈 누구든 상관없고 싸움은 리듬을 타고 타닷하고 접근해 파밧하고 이기면 된다"고 말한다. 진지한 말투와는 달리 내용은 대충. [[사카키 슈지]]는 거기에 클을 걸며 어차피 용병으로 쓸 거면 [[마기 시로]]가 제일 쓸만할 것 같으니 데려 오라고 한다. 요우는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1회 일치
          >길리엄은 확고한 변거든.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1회 일치
          [[타니자키 이치로]]가 입힌 심각한 트라우마는 그녀가 아저씨라는 인종 자체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녀는 아재개그도, 성희롱도, 아재냄새도 없는 크린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진지하고 격렬한 반응으로 보아 정말로 블랙 팬텀에 세뇌된 건지, 평소 상랑 어떻게 다른 건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만 의상이 바뀌지 않은건 본질이 드러났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 정건용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경호(1972) . . . . 1회 일치
          * [[2012년]] [[R2B: 리턴 투 베이스]]... 조봉 대위 역
  • 정광용 . . . . 1회 일치
         '''더 나아가 [[친박집회]]와중에 일어난 여러 폭력사를 일으키게한 총책임자'''[* '''이 사람이 구속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책임들 때문이다.''']
  • 정광운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 정구양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강정보대학 동문]][[분류:2010년 데뷔]][[분류:개그공화국]]
  • 정규수(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197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무안군 출신 인물]]
  • 정기고 . . . . 1회 일치
         [[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BC 쇼! 음악중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음악가]][[분류:영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스타쉽 엑스 소속]]
  • 정다정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웹툰 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다혜(1985) . . . . 1회 일치
          * 샤이니 민의 팬이라고 한다.
  • 정다혜(1987)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속초시 출신 인물]]
  • 정다흰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양천중학교 동문]][[분류:서울등원초등학교 동문]]
  • 정대선 (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주영]][[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정대선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안양의 축구 선수]][[분류:화성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정동기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위]][[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전주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원광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동 정씨]]
  • 정동현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2013년 데뷔]]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백운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
  • 정명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1979년 데뷔]][[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동고등학교 동문]]
  • 정몽근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현대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정주영]][[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현대백화점그룹]]
  • 정몽원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동 정씨]][[분류:현대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동문]]
  • 정미남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
  • 정민아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정범균 . . . . 1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정병희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
  • 정복수 . . . . 1회 일치
         [[분류:1920년 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권투 선수]]
  • 정봉수(역사) . . . . 1회 일치
         정봉수(鄭奉守)는 1935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에서 부유한 농가의 삼형제 중 막내로 어났다. 증산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해 경상북도 내 크고 작은 육상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고 시온중학교에 진학한 후 16세에 경상북도 단거리 육상 대표로 선발되었다. 1950년 육군에 입대해 육군 육상 대표가 되었고 3군 대항 체육 대회에서 우승하고 육군 육상부 감독, 3군 대항 체육 대회 총감독, 88올림픽 꿈나무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 정상교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정상헌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살인자]][[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1907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경성부]]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 자오퉁 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년을 수료하고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74년 메이지 대학 [[대학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 정서임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성곤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
  • 정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서울효제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
  • 정성현 (배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성지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성지고등학교 (부산)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정세진 . . . . 1회 일치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정세협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정소담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칼럼니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소희(1969)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군포시 출신 인물]]
  • 정수아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정승빈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201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개그콘서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정승우 (골프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골프 선수]][[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7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충암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청구초등학교 동문]]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KBS2 《[[KBS 드라마 스페셜]] - 습지생보고서》 ...정군 역
  • 정영삼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대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정의동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정재민(2001) . . . . 1회 일치
         [[분류:200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정재안 . . . . 1회 일치
         [[분류:196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성공회대학교 동문]]
  • 정재호 (1930년) . . . . 1회 일치
         [[분류:193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정정아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세종대학교 대학원 동문]]
  • 정창영 (공무원)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감사원 사무총장]][[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정채진 . . . . 1회 일치
         [[분류:1932년 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산림청장]][[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충원 . . . . 1회 일치
         [[분류:1896년 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정씨]]
  • 정태성(정치인) . . . . 1회 일치
         1926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충주중학교, 연희대학교 상경대학 상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교사, 교수를 역임하였다.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1937년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였다.
  • 정홍준 . . . . 1회 일치
         [[분류:KT 위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미군 헬기 조종사인 짐 베이커 중위를 구하려는 캡틴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일단 캡틴은 교섭을 위해 왔으나 공격해오니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약점을 발견할수 없어서 고전한 캡틴은 베이커를 풀어준 뒤, 탈출했다. 몇년 후, AIM의 보카 칼리엔테(Boca Caliente) 섬기지에서 그들의 무기전시회가 열렸는데 바트록(Batfoc)에게 매드독(Mad Dog), 램로드II(Ramrod II), 레이저 피스트III(Razor-Fist III)를 포함한 백병전 전문가로 선정되었고, 이후 캡틴과 재전투를 하게 되었다. 이때 캡틴은 잠입을 위해 세르시의 도움으로 모습을 크로스본즈로 바꾼 상였고, 의심을 피하려고 바트록의 결투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때 우는 램로드에 의해 위기에 처한 캡틴을 공격했는데 캡틴에 의해 기관지가 압박되어 그를 내던졌다. 그러나 그에게 패배.
  • 조긍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1942년 데뷔]][[분류:투자가]][[분류:자유 연애]][[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구니타치 음악대학 동문]][[분류:1919년 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풍양 조씨]]
  • 조길형(1962) . . . . 1회 일치
         1962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충주예성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청주신흥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한양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 지방경찰행정학 [[석사]], [[숭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조대연(1888) . . . . 1회 일치
         1888년 [[충청도]] 충주목(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어났다. [[대한제국]] 시절 장영원 전사판임관5등에 임명되었으며, 대동법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 조재윤 (체조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체조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1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조청희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조씨]]
  • 조현근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
  • 조훈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존 딜린저 . . . . 1회 일치
         1903년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식료품점 아들로 어났다.
  • 존 왕 . . . . 1회 일치
         [[영국]] [[플랜저넷 왕조]]의 [[왕]].
  • 주서은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주장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7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주주장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언론인]][[분류:미국의 기자]][[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에미상 수상자]][[분류:유대계 미국인]]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1회 일치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줌 밖에 안 되는 대만 밖에 영토가 없는 중화민국과 중국 전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애초에 압도적인 존재감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든 나라들이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상였다.
  • 지무시 . . . . 1회 일치
         초반에는 자신이 살던 섬에서, 라나를 찾으려는 코난과 어찌어찌 얽혀 그 섬을 떠나게 되어, 코난을 내켜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친 사고에 대한 징벌(나무판으로 볼기 맞기)을 술로 인사불성이 된 자신 대신, 코난이 맞아[* TV판 4화에서, 지무시는 바라쿠다 호에서 다이스 선장의 음식과 술 등을 훔쳐 먹고 주방장을 기절시키는 등 사고를 쳤다. 만취한 지무시를 데리고 코난은 달아났으나, 잡혀서 이전의 로보노이드 파손 등의 죄목과 합쳐져, 교수형과 볼기 맞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게 된다. 볼기 맞기를 견디면 이 배에 워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두들겨 맞는데, 만취한 지무시는 단 한 대에 기절해버린다. 이에 코난이 대신 맞겠다며 나선다. 지무시가 맞을 몫인 20대까지 떠맡아, 코난은 선원 한 명당 40대씩 맞았는데, 바라쿠다 호의 선원들이 대략 30명이라 쳐도 1,200대, 곤장을 건강한 성인이 맞아도 보통 10대가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이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반전, 코난과 우정을 쌓으면서 코난을 돕게 된다. 모험 이후에는 코난, 라나처럼 신대륙이 된 코난의 고향에 정착한다.
  • 지증왕 . . . . 1회 일치
         [[분류:신라의 왕|지증 마립간]][[분류:437년 어남|지증 마립간]][[분류:514년 죽음|지증 마립간]][[분류:신라의 군인|지증 마립간]][[분류:마립간]][[분류:한국의 전설]][[분류:불교도 군주|김지대로]][[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지증왕| ]]
  • 진격의 거인/79화 . . . . 1회 일치
          * 장 키르슈타인이 대신해서 판단을 내리는데 아르민은 지금 상의 자신은 도움이 못 됨을 알고 장에게 지휘를 부탁한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1회 일치
         * "그렇다면 인생에 의미란 없는 것인가? 애초에 어난 의미란 없는 것인가? 죽은 동료들도 그런가? 그 병사들도 무의미했던 것인가? 아니다! 죽은 자들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우리들이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1회 일치
          * 인간상지만 눈 주위의 거인화 흔적을 보고 그가 바로 짐승거인의 인간체임을 간파한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1회 일치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진격의 거인/96화 . . . . 1회 일치
          * 애니가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덕에 예상보다 많은 무지성 거인이 몰려왔다. 라이너는 갑옷의 거인으로 변해 거인화를 푼 애니를 보호했다. 그리고 베르톨트를 벽 앞에 내려주었다. 이제 베르톨트의 차례다. 벽을 부수고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벽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기가 약한 베르톨트는 금방 "내가 이런걸 파괴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건 윌 마리아의 본체가 아니라 미끼 구역의 장벽, 방어선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그에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행은 두 개의 벽을 전부 돌파할 수 잇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무지성 거인들이 산사처럼 쏟아져오고 있었다. 여기서 벽을 파괴하지 못하면 작전은 시작도 못한다. 일행은 벽과 무지성 거인 사이에 끼어 죽을 것이다.
  • 진유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
  • 진헌식 . . . . 1회 일치
         1902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어났다.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 차광렬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연안 차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차금봉 . . . . 1회 일치
         [[분류:1898년 어남]][[분류:1929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고문 피해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자]][[분류:일제 강점기의 공산주의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
  • 차동엽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위]][[분류: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유한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빈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
  • 차르 . . . . 1회 일치
         그리하여 후기의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칭호화 되어, 공동 황제나 차기 황제(사실상 [[황자]])가 사용하는 제2위 칭호가 되었다. '카이사르' 칭호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가부장제'의 부자상속에 따라서 계승하는 상속자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황제권'을 세습하게 될 차기 황제의 칭호로서 적합한 것이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로마 황제들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카이사르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 차민수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미국의 포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미국의 미술가]][[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미국의 불교 신자]][[분류:더 지니어스 참가자]]
  • 차선화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차승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차영철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사격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아시안 게임 사격 메달리스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차오루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pop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중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먀오족 사람]][[분류:카카오엠 소속]][[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의 아이돌]]
  • 차용학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차재욱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연안 차씨]][[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차정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명지전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창작:6피트 계획 . . . . 1회 일치
         마법은 위험요소가 너무 큰지라 쇠퇴 직전인 상.
  • 창작:말퓨스 스토리 . . . . 1회 일치
         츠키노 타카노부 : 현 츠키노 가문 당주 대행이자, 츠키노 아스카의 남동생, 강직한 성격과 올곧은 언행으로 불안한 가문을 위롭지 않게 하는 대들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1회 일치
         살고있는 종족들마저 '''마계'''라 표현할정도로 생계가 그리 좋지는 못한곳. 그나마 농사짓기좋은곳이 남부에 몰려있긴 한데, 여기도 내륙쪽은 '판'이라 불리는 유목민족들이 여행자들을 약탈하러 돌아다니는 곳이라 여러모로 흉흉하다. 농사지으면 작물에선 왠지 모르지만 매운맛이 미친듯이 나며, 길가다가 목이 말라 근처 오아시스에 물을 마셨더만 송곳니가 자라나고 흉포해지는(...) 요상한 대륙이다. 그것때문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거의다 전투민족or매드 사이언티스트(...)
  • 창작:좀비탈출/4-1-2 . . . . 1회 일치
         사거리는 길 수록 좋으니까. 만약의 사가 발생해도 최대한 거리를 벌릴 수 있는 편이 좋을 테니까.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회 일치
         하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 "소리"가 감지되는지는 알 수 없다. 관찰에 따르면 놈들은 개인차가 상당하다. 그야 부패 정도나 생전의 몸 상가 영향을 줄 거란건 명백하다. 하지만 고막은 어떨까? 안구나 피부는 썩어 버린다. 고막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야 호되게 싸다귀라도 맞으면 터지겠지만 놈들이 그럴 일이 있을까? 설사 고막이 있더라도 자극을 느낄 뇌가 녹아 버린 놈들이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까?
  • 창작:좀비탈출/5-1-1 . . . . 1회 일치
         잠시 뒤 나는 필요할 법한 공구는 전부 챙겨서 뒷마당으로 돌아왔다. 혹시 그 사이에 뭔가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경계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것 같지만 아직도 양은 정점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토트넘은 이렇게 햇볕이 쨍쨍한데 왜 움직이고 있었던 걸까? 혹시 녀석이 숨기 위해 뒷마당으로 오다 마주친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면 안전한 타이밍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 창작:좀비탈출/5-1-1-1 . . . . 1회 일치
         주인의 애정이 가호가 된 것일까? 다이너스티의 외견은 깨끗했다. 어쩌면 토트넘이 죽어서도 이 근처를 배회하던 것은 이 차를 떠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가까이 가서 보니 그저 깨끗한게 아니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였다. 혹시 탈출을 준비하다가 녀석들에게 당해버린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토트넘의 행운의 아이템은 소용이 없었던 셈이겠지.
  • 창작:좀비탈출/5-1-1-1-2 . . . . 1회 일치
         하지만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느덧 양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목적대로 식량을 챙겨야 한다. 이제 공복과 피로를 버티는 것도 지겹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좀비버스터 노릇을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과로로군.
  • 창작:좀비탈출/5-1-1-2 . . . . 1회 일치
         하지만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느덧 양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목적대로 식량을 챙겨야 한다. 이제 공복과 피로를 버티는 것도 지겹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좀비버스터 노릇을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과로로군.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1회 일치
         볼건 다 봤으니 슬슬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겠다. 이대로 탐색을 계속 하려면 이 앞마당에서 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안전을 확보하려면 우선 저 차고문을 닫아야 하고 멍때리고 있는 저 녀석도 처리할 필요가 있겠다. 아니면 번거로운 일이지만 일단 돌아가서 세를 정비한다거나. 어느 쪽이든 리스크는 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 채기영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
  • 채동선 . . . . 1회 일치
         채동선은 1901년 [[대한제국]]령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에서 출생하였다. 만석꾼 집안에서 어난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시절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유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복하고 편안하였던 그의 인생은 그가 고등학생이 된 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채동선은 서울로 올라가 현재는 [[경기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경성제1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3.1운동]]이 발생함에 따라 채동선은 만세 운동을 매우 열렬하게 하였고, 이러한 그의 행적은 일본경찰의 감시라는 낙인을 주었다. 3.1절 이후 일본에 회의감을 느끼며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서양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채동선은 베를린 음악대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계속하였다.
  • 채상병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효제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평강 채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채상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채수빈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
  • 채우성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채윤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채이식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 채씨]][[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런던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
  • 채현국 . . . . 1회 일치
         [[분류:193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학교법인인]][[분류: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채호기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시작품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전대학교 동문]][[분류:인천 채씨]][[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책표지 . . . . 1회 일치
         [[책]]의 겉부분을 덮는 표지. 코덱스 형의 책이 나타나면서 생겨났다. 표지는 책이 헤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다른 페이지보다 두껍고 튼튼한 재질을 쓰는 경우가 많다.
  • 챈슬러 (음악가)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브랜뉴 뮤직 음악가]][[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 천보영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천세라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천안함 침몰사건 . . . . 1회 일치
         천안함 사건 당시 생존한 정주현 중사[* 천안함 사건 이후 소말리아 청해 부대로 파병을 자원했다.]는 2015년 6월 전역하여, 청해부대소속 부대 부사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내부 교육 자료에서 "승조원들의 안이한 도 떄문에 피격을 당했다."고 되어 있었다며 분개하였다.
  • 천장호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광운대학교 총장]][[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광운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티븐스 공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영양 천씨]]
  • 천제훈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목포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천해성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양 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
  • 청년 튀르크 당 . . . . 1회 일치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20c2459a 브리니커]
  • 최경훈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서울내발산초등학교 동문]]
  • 최고은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201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최규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최기영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3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소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개그투나잇]][[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최단비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은광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바른미래당 당원]]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1956년 3월 10일, [[경상북도]] [[김천시]] 에서 어났다. 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영남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고려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경력이 있다.
  • 최동 . . . . 1회 일치
         [[분류:1896년 어남]][[분류:197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동석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동익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의 정치인]][[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시각 장애 정치인]][[분류:경주 최씨]][[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
  • 최동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인헌초등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
  • 최동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1890년 어남]][[분류:1927년 죽음]][[분류:고려혁명당]][[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민창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
  • 최민환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은일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7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FT아일랜드의 일원]]
  • 최별이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최병일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8년 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
  • 최병철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 최석기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선수]][[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전중앙중학교 동문]][[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대전중앙고등학교 동문]]
  • 최석민 . . . . 1회 일치
         [[분류:1858년 어남]][[분류:191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조선남작]][[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최씨]]
  • 최선영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코미디빅리그]]
  • 최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
  • 최성민(1995) . . . . 1회 일치
         [[강원도]] [[양구군]]에서 어났으나 바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에서 쭉 자랐다. 그 후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가 2년 정도 살던 와중에 서울에 있는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을 하면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 당시 합격한 회사는 현재의 [[MBK엔터테인먼트]]이다.
  • 최성원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최성조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성환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전주대학교 동문]][[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
  • 최수진 (무용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최수환 . . . . 1회 일치
         1933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및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 최승민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
  • 최승민 (1996년)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최승욱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
  • 최승환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배재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최연오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연제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영철 (기자)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
  • 최우석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
  • 최우석 (화가) . . . . 1회 일치
         [[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1899년 어남]][[분류:1965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운정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LPGA 투어 골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골프 선수]][[분류:세화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원제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유정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최윤동 . . . . 1회 일치
         [[분류:1897년 어남]][[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1967년]]에 [[경상북도]] 금릉에서 어났다. 1984년 부산 [[내성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9년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학과]]를 졸업하였다(서울법대 84학번). 1996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
  • 최윤철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군산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송원대학교 동문]]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용지초등학교 동문]][[분류:목일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최인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강릉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석촌초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재만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
  • 최재연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예일여자중학교 동문]][[분류: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재우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2014년 동계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유현초등학교 동문]][[분류:청담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재웅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재혁 (음악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인디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
  • 최재호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최재희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
  • 최지해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2002년 데뷔]][[분류:OBS경인TV의 아나운서]][[분류:대원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
  • 최창홍 . . . . 1회 일치
         [[분류:1903년 어남]][[분류:1951년 죽음]][[분류:대한제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채흥 . . . . 1회 일치
         하지만 18시즌 중반 오치아이 코치의 도움으로 투구폼을 수정하며 팀 선배 [[장원삼]]의 폼과 비슷한 형가 되었다.
  • 최충연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최학봉 . . . . 1회 일치
         [[분류:조선의 음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국악인]][[분류:1856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항석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최혁 (1992년 3월)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효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
  • 최희령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3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
  • 최희서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
  • 최희암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최씨]][[분류:무주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연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동문]][[분류:아메리칸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가]][[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추성건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추일승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추계 추씨]]
  • 추자현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인지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1996년 데뷔]][[분류:추계 추씨]]
  • 충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백석예술대학 동문]]
  • 츠키시마 케이 . . . . 1회 일치
         독설가에 냉소적이며 남을 비꼬는 데에 꽤나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다. 또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경기에는 매우 냉정하게 임하고 블로킹 실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약하다.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wiki:"히나타 쇼요" 히나타]]의 입부 경기 때 상대팀이었다. 저 둘이 입부 경기를 위해 한창 연습하고 있을 때 나타나, 히나타를 '초등학생', 카게야마를 '제왕'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후 [wiki:"야마구치 타다시" 야마구치]와의 대화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쓸데없이 열 내는 녀석들'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종 카게야마를 '제왕' 혹은 '엘리트'로, 본인을 포함한 평범한 배구부 부원들을 '서민'으로 칭하곤 한다. 이런 도 때문에 연습이나 시합 중 카게야마와 자주 부딪치지만 그때마다 [[wiki:"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말린다.
  • 카라스노 고교 . . . . 1회 일치
         두 학교의 감독들 모두 은퇴하면서 네코마 고교와의 인연도 끊어졌으나, 작중에서 5년 만에 연습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두 학교는 공식전에서 쓰레기장의 결전을 성사시키기로 결의한 상.
  • 카치구미 . . . . 1회 일치
         >[[소련]], [[중국]]이 무조건 항복. [[맥아더]]는 포로가 되고, 영미평양함대는 무장해제.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이전에도 소수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2016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움직임이 폭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링턴은 61.5%의 지지를 얻었으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인종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모욕 발언 으로 구설수가 많은 후보였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불만이 터져나오게 된 것이다. [[트위터]]에서 ‘칼렉시트’(#Calexit), ‘칼리브포니아’(#Caleavefornia) 등의 [[해시그]]를 사용하며 급격히 퍼져나가게 되었다.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1회 일치
          * 초반에 아이언맨은 소코비아 사의 생존자들에게 욕을 먹는다.
  • 캡틴 울트라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 코스튬은 망토가 포함되어 있으며 초능력 형로 보아 [[슈퍼맨]] 패러디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캐릭터인데 불 공포증을 보면 [[마샨 맨헌터]]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마샨 맨헌터도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 캬바쿠라 . . . . 1회 일치
         [[일본]]의 [[유흥업소]] 형 가운데 하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캬바레(キャバレー,cabaret) 」와 [[영어]]에서 유래한 「쿠라브(クラブ,club=클럽)」을 합성한 단어.--어느 한쪽만 하라고.-- 줄여서 캬바(キャバ).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1회 일치
         그러던 어느날, 북미방공사령부가 소련군의 대부대를 감지한다. 소련군 함대가 평양과 대서양에서 오고 있었으며 소련의 지상군은 멕시코를 통해 북상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에대한 보복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유리가 미사일 사일로 장교를 세뇌시키며 실패한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와 같은 미국 땅에 소련군이 상륙하기 시작한다.
  • 커피 젤리 . . . . 1회 일치
         커피 젤리는 일본 생의 빙과 간주합니다. 커피 젤리에 관한 최초의 자료는 1914 년 (양 3 년 대) 4 월 3 일 요미우리 신문에 등장합니다. 가사 나 생활을 취급하는 "가정면"커피 젤리 레시피가 게재되었습니다.
  • 코나시 . . . . 1회 일치
          * 선택 코나시(選択小梨) : 부부 간에 합의로 아이를 만들지 않는 상.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대변동 후, 남겨진 섬(残され島)[* 한국판에서는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12살 소년. 문명이 멸망할 때에 추락한 로켓의 탑승자들 사이에서 어났다. 전쟁과 대변동 끝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지구를 보아온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또한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지혜와 놀라운 강함,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 코타츠 . . . . 1회 일치
         본래는 열원을 바닥에 놓고 다리를 아래로 내릴 수 있도록 탁자 아래쪽에 구멍을 파는 형였다. 1950년대에 적외선을 이용한 전기 코타츠가 나타나고, 열원을 탁자 쪽에 설치하는 디자인이 나타나면서 현재와 같은 코타츠가 생겨났으며 폭발적으로 보급하였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여성이 결혼을 계기로 하여 일을 그만두는 일이 일반적이었던 시대 배경과, 여성의 행복=결혼이라는 관념에서 어난 말이다.
  • 콜 오브 듀티 . . . . 1회 일치
          >브렌은 분대지원용으로 뛰어난 기관총입니다. 큰 크기가 운용성을 깎아먹지만, 포복한 상에서 정확한 자동사격을 먹여줄 수 있습니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 . 1회 일치
          트레이아크 제작.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최후의 2차대전 배경작. [[평양 전쟁]]과 [[독소전쟁]]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스킬 . . . . 1회 일치
         집중 상에서 이동 속도가 50% 빨라진다.
  • 쿄로충 . . . . 1회 일치
         [[리얼충]]의 파생어로서 어난 2채널 대학생활판 용어이다.
  • 쿠챠러 . . . . 1회 일치
         음식을 먹을 때 쿠챠쿠챠(クチャクチャ,밥 먹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어. 쩝쩝 같은 것.)하는 소리를 내면서 먹는 사람(-er). 매너가 나쁘다고 여겨지며, 놀림을 받거나 비난, 혐오의 대상으로서 미움을 받는다.
  • 쿼터뷰 . . . . 1회 일치
         [[게임]]의 [[시점]] 표현 가운데 하나. [[맵 타일]]을 일반적인 정사각형이나 육각형(헥스)이 아닌 120도 각도의 [[마름모]]로 표현하며, 캐릭터를 그에 맞춰서 그린다. 각 맵 타일은 정육면체를 모서리 쪽에서 바라보는 형를 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높이' 개념을 가지고 있다.
  • 크림 전쟁 . . . . 1회 일치
         "크림 전쟁"이라는 이름은 전장 중 하나였던 [[크림 반도]]에서 따왔다. 하지만 크림 반도 뿐만 아니라 [[평양]]과 [[발트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었다.
  • 킹덤/499화 . . . . 1회 일치
          * 출병 행렬에 끼어 있는 비신데. 그런데 그들의 대장 [[이신]]은 행렬에서 빠져나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진시황(킹덤)|정]]. 그의 얼굴을 모르는 신병들은 왠 귀족나부랭이가 치근덕댄다고 투덜대는데 고참들이 쥐어박으며 그가 바로 진나라의 왕, 대왕 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왕이 출병 행렬 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란이 일어나는데 신은 연하게 진정시키며 얼른 갈 길이나 가라고 재촉한다. 정은 신이 큰 작전을 앞두고도 별로 긴장한 기색이 없다고 놀란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 양단화의 연설은 단순하고 단호하지만 모든 산민족을 끝없이 고조시켰다. 그녀의 등장 전까진 헤이한 상로 사다리나 만들고 있던 그들이 갑자기 용맹하고 무자비한 전사로 각성한 것이다. 이들이 사왕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적들은 물론 아군들 조차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 킹덤/506화 . . . . 1회 일치
          * 산민족의 돌격. 그러나 무작정 돌격일 뿐 다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하료초]]는 그대로 가면 적의 화살밥이 된다고 우려한다. 보다못해 [[바지오]]에게 말하는데 그는 전장을 보라며 연하다.
  • 킹덤/509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공손룡은 뜻밖의 지시를 내린다. 바로 행군을 멈추고 양토까지 후퇴한다는 것이다. 부장들은 열미를 버리는 거냐며 반발한다. 거기에 대해 공손룡은 연하게 대답한다.
  • 킹덤/512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이 소식은 이목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지금 그는 조의 "절"성에 있다. 행산맥 산길에 숨겨진 작은 성이다. 북서로 왕도권 입구 "알여"까지 이틀거리였다.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요양의 엄니", 언덕 위의 병력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조군과 다른 인종" 그것도 알만했다. 마치 개나 늑대를 본뜬 그들의 무장 상는 한 눈에 봐도 중원과 달랐다. 하지만 아직도 조군 장수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양군의 포진이 끝나자 순수수가 직접, 이들을 소개했다.
  • 킹덤/531화 . . . . 1회 일치
          기어이 칼은 뽑혔고 날이 번뜩였다. 마광의 단말마처럼 한맺힌 칼질이었다. 카이네가 외목에게 경고했지만 한 발 늦었고 이목의 칼은 거두어진 상였다.
  • 킹덤/532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좌익은 마광의 죽음으로 인해 지휘체계가 무너져 붕괴 직전이라 비신대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어 보이는 상.
  • 킹덤/534화 . . . . 1회 일치
          * 비신대는 마정군의 접근을 인지하고 응전할 세를 취한다. [[이신(킹덤)|이신]]은 자신이 마정을 상대하겠다고 벼르나 [[강외(킹덤)|강외]]가 제지한다. 마정과 정면승부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몽념이 "마정과 맞생다하지 마라"고 지시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비신대의 진짜 역할은 진군의 사기진작이며 지금 전력으로 마정군 본대를 당해낼 수도 없다. 강외는 원군으로 기마대가 온 걸 들어서 이동하면서 마정을 더욱 끌어들이는게 합당하다고 한다. 이신은 그 말에 따른다.
  • 타루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전자 음악가]][[분류:한양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타코나구리 . . . . 1회 일치
         직역하면 문어(タコ, 타코)를 때린다(殴り,나구리)는 뜻이 되는데, 물건이 형가 남지 않을 정도로 마구 때린다는 의미이다.
  • 타쿠마 마모루 . . . . 1회 일치
         타쿠마 마모루는 중학교에서 공업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야구부]]에 소속되었지만, 연습 도가 나빠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고등학교 2학년에 [[중퇴]]했다. 중퇴 이후에는 이타미 시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 탁민제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과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탁씨]][[분류:항공우주공학자]]
  • 탁준석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한성대학교 동문]][[분류:풍생고등학교 동문]][[분류:광명중학교 동문]][[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코레일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탐라국 여왕 . . . . 1회 일치
         최영은 신령이 일러준 대로 하여, 가을에 탱자나무 숲을 모두 불우고 공격에 나섯다. 최영은 탐라국 여왕과 대결을 벌였는데, 여왕은 괴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최영이 목까지 구리갑옷으로 둘둘 말고 있어 여왕도 최영을 죽일 수 없었고, 마침내 여왕이 지쳤을 때 최영은 목을 쳐서 이겼다.
  • 테헤페로 . . . . 1회 일치
         과자체인점 후지야의 마스코트 페코쨩(ペコちゃん)이 비슷하며, 「테헷(てへっ)」이나 「페롯(ペロッ)」같은 의어는 오래된 만화나 애니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이걸 성우 히카사 요우코가 2000년대 부터 조합하여 개인기로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히카사 요우코 본인이 사용하면 기분나쁘다고 [[츳코미]]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귀엽다고 해주는 것이 예의(?!).
  • 템포라 . . . . 1회 일치
         [[광케이블]]을 해킹해 전화 통화, 인터넷 접속 내역, 이메일 등을 수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빼낸 정보는 30일 이상을 저장된 상로 분류되고 분석되었으며, 미국 정보기관인 [[NSA]]에 공유되기도 했다.
  • 토니 고 . . . . 1회 일치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에서 어났다. 13살이였던 1986년, 부모님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ref name="헤럴드"/> 방과 후에는 부모님이 하시던 미용용품 사업일을 도왔다. 어릴 적부터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의 화장품을 살 형편은 되지 않았고, 저렴한 화장품의 질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스스로 합리적인 가격의 질 좋은 화장품을 만들자 마음 먹고, 25세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를 설립했다. 인기 판매 제품인 립 펜슬은 3.5 달러 정도였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 토리코/357화 . . . . 1회 일치
          * 구루메 일식의 정체는 양 에너지를 차단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
  • 토리코/364화 . . . . 1회 일치
          * 이치류는 영혼세계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치 네오와 닮아있다.''' 그는 "무언가가 어나려 한다"면서 엄청난 식욕의 에너지를 감지한다.
  • 토리코/367화 . . . . 1회 일치
          * 지로는 그런 도에 분노한다.
  • 토리코/368화 . . . . 1회 일치
          * 비록 승리한 죠아지만, 미도라가 봉인된 직후 다리가 풀릴 정도로 지친 상.
  • 토리코/369화 . . . . 1회 일치
          * "모든 생물은 센터에서 어나 GOD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건 이 때문.
  • 토리코/373화 . . . . 1회 일치
          * 최초의 대륙은 수십억년의 분화를 통해 지금의 형가 되었고 각 풀코스도 각기 대륙으로 흩어졌다.
  • 토리코/374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아는 어떻게든 기어올라오는데 상가 매우 좋지 않다.
  • 토리코/376화 . . . . 1회 일치
          * 토리코는 텟페이가 세뇌된 상가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 토리코/377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아는 신체를 휴면상로 만들고 스카이디어의 백채널에 대항하는 백채널을 쳐서 도주하려고 한다.
  • 토리코/378화 . . . . 1회 일치
          * 그들은 누군가를 우고 돌아왔는데...
  • 토리코/380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아는 GOD의 상를 보며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살핀다.
  • 토리코/389화 . . . . 1회 일치
          * 식운이 소진되고 무방비 상로 공격에 노출된 미도라는 큰 타격을 입는다.
  • 토리코/391화 . . . . 1회 일치
          * 사천왕과 코마츠 일행은 공격이 당해 빈사의 상에 처한다.
  • 토리코/392화 . . . . 1회 일치
          * 현재 토리코는 "진짜 풀코스"를 모아 식욕의 속박을 벗어난 상이기 때문에 아카시아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있다.
  • 토리코/394화 . . . . 1회 일치
          * GOD는 완전히 조리가 완성되 먹기 좋은 상이고 모두 함께 먹기로 정한다.
  • 토시코 막스 . . . . 1회 일치
         1936년 생, 1971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 1976년 영국 귀족 블로톤 남작 마이클 막스(Baron Marks of Broughton)와 결혼하여 블로톤 백작 부인 마크스 토시코(Honourable Toshiko Marks, Baroness Marks of Broughton)가 되었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1회 일치
         1585년에 [[관백]], 그 다음해 [[정대신]]이 되며, 이때부터 토요토미(豊臣)라는 성씨를 쓰게 된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1회 일치
          박격포. 넓은 범위의 적에게 광역딜을 먹이는 포탑. 공격한 적에게 상이상도 준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시에는 장탄수가 3발이 된다.
  • 토탈워 시리즈 . . . . 1회 일치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1회 일치
         >무역 관계는 수립되었지만, 화친조약은 서구열강들에게 유리한 협정이었습니다. 경제는 흔들거렸고, 백성들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863년, 덴노는 쇼군의 결정을 뒤엎었습니다. 모든 서구 세력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10년간의 굴욕적인 외교, 그들은 이것을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서구 세력들은 이러한 행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 덴노는 백성에게 죽음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1회 일치
          * 병참술 - "배도 고프고 맨발 상라면 어떤 남자도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1회 일치
         >완벽한 순간은 사람의 의연한 평온 상에서 나타난다.
  • 톰 최 . . . . 1회 일치
         '''톰 최'''({{llang|en|Tom Choi}})는 미국의 배우이다. [[대구광역시]]에서 어나 4살 때 미국 [[일리노이주]] [[디모인]]으로 이민가 그 곳에서 자랐다.<ref>{{뉴스 인용|url=http://asiansonfilm.com/tom-choi-interview/|title=Tom Choi Interview – Asians on Film|date=4 January 2016|work=Asians on Film|access-date=2017-06-28|language=en-US}}</ref>
  • 트로피코 4/인물 . . . . 1회 일치
         모던 타임즈 캠페인에서는 대통령 각하가 휴가가면서 맡긴 트로피코를 말아먹는다. 반란군을 없앤다고 농장을 죄다 불웠고, 그 결과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난 것.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원조 방식의 벨트스크롤 액션 시리즈들은 [[게임 오버]]시에 [[컨티뉴]] 화면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묶인 채로 여러 가지 장치로 인해 생명이 위로운 상황이 연출되며, 시간이 지날 때까지 발버둥치다 컨티뉴를 안 하면 결국 사망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조금 잔인한 연출이 들어있는 전통의(...) 특징이 있다.
  • 파치카스 . . . . 1회 일치
         파칭코를 하면 인생이 망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하지 않는 사람은 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파칭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파칭코를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욕하는 말로서 파치카스라는 말이 어난다.
  • 판타스틱 포 . . . . 1회 일치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상술한 대로 그리 좋은 소리 못듣는 판이나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2015년에 나온 판타스틱 포 영화]]가 매우 심각한 상라서 재평가(?) 받았다.
  • 페어리 테일/480화 . . . . 1회 일치
         * 세이버투스와 페가수스 연합군은 이미 전멸해서 포로로 잡혀 있는 상.
  • 페어리 테일/492화 . . . . 1회 일치
          * 미라젠은 그것이 인첸터 능력으로 "인격"을 부여해 인간형로 바꿨던 것임을 눈치챈다.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회 일치
          * 이번엔 하얀 칼에서 나온 끈적끈적한 점액이 미라젠을 서서히 운다.
  • 페어리 테일/494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스프리건 최강의 오거스트와 아이린으로 공언된 상인데, 그들도 아크놀로기아에는 미치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502화 . . . . 1회 일치
          * 메스트와 피신한 메이비스는 잠시 세를 정비 중이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1회 일치
          * 마카로프는 서있는 채로 하얗게 워버렸다.
  • 페어리 테일/506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END로서 각성도가 더욱 높아졌는지 팔의 형가 이형으로 변했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회 일치
          * 현실에선 폴류시카가 돌보고 있으나 나츠의 상는 계속 나빠진다.
  • 페어리 테일/513화 . . . . 1회 일치
          * 미네르바는 대마투연무 이후 처음으로 [[카구라 미카즈치]]와 대면. 과거의 악행에 대해서 사과한다. 카구라는 이제 사람을 원망하는건 그만 뒀고 "앞을 보며 살고 싶다"고 용서한다. 유키노의 언니 [[엔젤(페어리테일)|소라노 아그리아]]는 평하게 널부러져 있다. 스팅과 로그는 기력이 다해 넉다운. 뒤를 맡긴다.
  • 페어리 테일/516화 . . . . 1회 일치
          * 그녀가 아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에게 인챈트하는건 불가능했던 것인지. 그녀는 줄곧 그걸 생각해왔다. 하지만 전부 정답이 아니었다. 정답은 "상성". 같은 멸룡마도사이며 인챈터, 게다가 용화를 극복한 젊은 육체. 아이린은 오로지 이때만을 기다렸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1회 일치
          나츠가 일어난 건 안 [[폴류시카]]가 나타나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던 거라고 칭찬 좀 해주라고 말한다. 나츠는 그말대로 루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신은 이제 "개운하다"며 상가 완전히 나았다고 말한다. 루시는 해피에게 들은 대로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죽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나츠는 "왠지 괜찮을 거 같다"며 웃는다. 그는 심상세계에서 "인간으로 있기로 한 일"을 말해준다. 루시는 그정도 말로는 납득하지 못하지만 나츠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기억이 없는 동안 엘자와 [[그레이 풀버스터]]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며 둘의 안부를 묻는다. 해피는 엘자는 싸우고 있고 그레이는 옆 방에 있다고 알려준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1회 일치
          * 제레프는 자신의 생각대로 염룡왕 [[이그닐]]의 힘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 힘이 없으면 자신에게 이길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해피는 그때 나츠를 말렸던 것을 떠올리며 자책한다. 하지만 나츠의 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1회 일치
          * 공간을 워버릴 것 같았던 마력이 갑자기 사라진다. 아르스 마기아가 멈춘 것이다. 방금 그것이 자신의 아이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메이비스. 마력이 부족했거나 길다트 덕분에 실패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녀는 다시 길드를 향해,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과 합류하러 달려간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양과 달이 교차할 때, 열두 열쇠를 이용하여 그 문을 열어라.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그녀의 충고가 제랄이 놓치고 있던 사실을 환기시켰다. 엘자는 그녀의 말에 보서 당부했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1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하고 크리스티나호의 생존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상륙해 상를 추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의 틈새가 닫힌 있을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한다. [[웬디 마벨]]이 이것을 발견. 웬디가 하늘의 균열이 있다고 말하자 일행이 술렁인다. 저것은 아무리 봐도...
  • 페어리 테일/54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마법은 물론 물리적 공격 조차 듣지 않고 멸룡마도사라는 대항수단도 없어 논의는 답소 상. 그때 [[루시 하트필리아]]가 딱 한 가지가 있다고 제안한다.
  • 페이데이 2/적 . . . . 1회 일치
         할로윈 이벤트 맵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불도저. 아랫턱 위로는 다 잘려나간 상의 흰색 불도저다.
  • 포스탈 리덕스 . . . . 1회 일치
         매 스테이지가 시작되기 전 로딩마다 주인공의 일기가 나오는데, 정신 상에 심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 표민수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신창 표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표양문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이승만]][[분류:자유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신창 표씨]]
  • 표현명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신창 표씨]]
  • 표희선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7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신창 표씨]]
  • 풍진 . . . . 1회 일치
         발열, 발진, 림프선 종양 등이 발생하는 바이러스 성 질환. 임신 20주 이내에 풍진에 감염되면 신생아가 아 풍진 증후군에 걸릴 우려가 있다. 백신이 존재하며, 치료에는 해열제 등으로 대증요법을 쓴다.
  • 퓨어킴 . . . . 1회 일치
         || Mom & Sex || [[EP]][* '''E'''xtended '''P'''lay의 약자로, 싱글과 정규앨범의 중간 정도에 자리한 앨범형. 그냥 미니앨범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 싶다.] || Puer Tea || 2012.02.02 |||| 퓨어킴 ||||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DJ]][[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아메바 컬쳐 음악가]][[분류:빅딜 레코드 음악가]][[분류:표절 논란 인물]]
  • 프레퍼 . . . . 1회 일치
         비상사에 대배하여 [[식량]], [[무기]], [[탄약]]을 과도하게 비축하는 사람. [[폭동]], 경제 붕괴, 핵전쟁, 세계 종말 등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을 믿고 활동한다.
  • 프로그램 규정설 . . . . 1회 일치
         프로그램 규정설의 탄생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마르 헌법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이상적인 조항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경제적인 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헌법의 이념과 현실의 격차를 처리하기 위하여 프로그램 규정이라는 이론이 도입되었다.
  • 피서영 . . . . 1회 일치
         [[분류:194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규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2012년 데뷔]][[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성란 . . . . 1회 일치
         [[분류:196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오영수문학상 수상자]]
  • 하시영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하이큐/209화 . . . . 1회 일치
          * 이 사가 카라스노에 전해지자 일동 폭소.
  • 하이큐/210화 . . . . 1회 일치
          * 우카이 감독도 잠깐 온다는 말이 있었지만 몸상가 또 나빠져서 다시 입원해 무산.
  • 하이큐/214화 . . . . 1회 일치
          * 지금은 부족한 수준이지만 경험을 계속 쌓아가면 그것이 본능과는 또다른 "직감"이란 형로 완성될 거라고 본다.
  • 하이큐/215화 . . . . 1회 일치
          * 코모리는 "어깨 상가 나쁜 듯하지?"하면서 놀리고 기분이 상한 사쿠사는 목욕하겠다며 먼저 돌아간다. 코모리도 뒤따라 퇴장.
  • 하이큐/216화 . . . . 1회 일치
          * 주변에선 그의 상가 좋지 않아보이자 뒷말이 나온다.
  • 하이큐/221화 . . . . 1회 일치
          * 또다시 티격격하는 두 사람.
  • 하이큐/222화 . . . . 1회 일치
          * 반대로 블로커가 산개한 상에서 네트 전반을 지키는 것이 "스플렛 시프트".
  • 하이큐/224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는 그 뒤에도 츠키시마 케이나 다른 어커가 공격할 때도 일일히 불만을 표한다.
  • 하이큐/225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시합의 "상황"과 선수의 "상"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 하이큐/226화 . . . . 1회 일치
          * 다테는 초속공을 먹더라도 동요하지 않으며 구여 히나타를 봉쇄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 하이큐/227화 . . . . 1회 일치
          * 츠키시마는 자기는 히나타같은 괴물도 기계도 아니라고 짜증을 부리는데 카게야마는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선수 상를 파악해라"는 조언을 떠올린다.
  • 하이큐/234화 . . . . 1회 일치
          * 츠바키하라는 테라도마리를 앞세워 다시 득점, 다시 점수를 벌린다. 츠바키하라의 아테마는 카라스노의 센터가 상가 좋지 않다고 판단, 도발하려고 일부러 카게야마 근처에서 지시하는 척 "속공은 없다!"고 외친다. 그런데 옆에 있던 히나타가 대꾸한다.
  • 하이큐/238화 . . . . 1회 일치
          * 츠바키하라의 마루야마의 서브로 플레이가 다시 개시. 니시노야가 받아서 타나카가 스파이크를 꽂아넣는다. 점수는 2점차. 24 대 22로 카라스노 고교가 세트 포인트를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카게야마의 서브. 츠바키하라 측에선 하필 이 타이밍이냐고 혀를 찬다. 카게야마는 점프 서브로 과감하게 공격하지만 네트에 걸리면서 민망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히나타는 괜히 잘난척하는 도로 "신경쓰지 마"라고 말했다가 카게야마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린다.
  • 하이큐/240화 . . . . 1회 일치
          니시노야는 카라스노를 애먹이던 천장서브를 보란 듯이 "리시브 자세"로 받아낸다. 공은 카게야마가 주문한 대로 높이 올라간다. 곧바로 [[히나타 쇼요]]가 달려들며 속공 세. 그러나 페이크였다. 진짜는 아즈마네. 아즈마네의 스파이크가 블록을 재치고 히메카와의 옆으로 쐐기처럼 박힌다.
  • 하이큐/245화 . . . . 1회 일치
          방금 전 인터뷰 직후 히나타의 흐뭇해 보이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카게야마도 전일본 유스에서도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전혀 쪼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묘하게 자신만만하고 충만한 도가 싫다.
  • 하이큐/248화 . . . . 1회 일치
          * 후배들이 러브코미디 모드인 동안 3학년들은 후배들이 어찌 저리 평한지 감탄 아닌 감탄을 한다. [[아즈마네 아사히]]는 손바닥에 사람 인자를 거듭 써갈기며 긴장을 풀려고 몸부림 친다.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긴장하지 않는걸 보고 "흥분이 앞서서 긴장하는걸 잊어버렸나 보다"라고 추정한다. 아즈마네는 그걸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 하이큐/251화 . . . . 1회 일치
          관중석에 와있는 노헤비 학원 배구부의 전주장 [[다이쇼 스구루]]는 나이브한 도로 "이나리자키가 가차없다"고 평한다.
  • 하이큐/253화 . . . . 1회 일치
          * 본의 아니게 카게야마의 연기에 어울려준 히나타는 속으로 "완전히 나한테 오는 줄 알았다"고 그를 원망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외부에서 보기는 호흡이 척척 맞은 페이크였다. 응원단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가 이렇게 강했구나"하고 감탄한다. 벤치의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이나리자키가 인터하이 2위에 으리으리한 응원단까지 갖춘 강호이긴 해도 필요이상으로 강대하게 보지 않았나 되짚어 본다. 옅에 앉은 [[시미즈 키요코]]는 열기를 더해가는 [[타나카 사요코]]의 고팀의 응원을 들으며 담담히 대답한다.
  • 하이큐/260화 . . . . 1회 일치
          * 지금 플레이가 봄고 참가 이래 최고의 서브다. 야마구치의 폼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이 깨끗한 반원을 그리며 [[마지로 알렝]]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리시브 실패. 바로 옆을 스쳐가는 공에 손을 뻗어보지만 닿는게 어설펐다. 빗맞은 공이 그대로 코트에 닿는다. 야마구치의 서브 에이스. 카라스노 득점 성공. 22 대 23. 경기 시작 후 최초의 역전. 더불어 끈질기게 이어졌던 추격전이 뒤집혔다. 동료들의 환호. 지금은 카라스노냐 이나리자키냐를 놓고 티격격했던 바보 커플도 대동단결해서 환호한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투토 코타로]]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서브의 일등공신이었던 시마다는 적진 한가운데인 것도 잊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쏟아지는 눈총에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 하이큐/262화 . . . . 1회 일치
          * 아츠무가 역전을 면한 대가로, 타나카가 독박을 쓴다. 그의 심정이 누구보다 공감되는지 [[보쿠토 코타로]]가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도 모르지 않았다. 방금 플레이는 딱히 무리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늘 타나카는 실수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나리자키의 집요한 블록과 점수를 벌어야 한다는 부담은 어커에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는 서브를 계속 받아왔으니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것. 아카아시가 짐작하는 바를, 보쿠토가 한 줄로 요약했다.
  • 하이큐/265화 . . . . 1회 일치
          * 봄고 1일째. [[네코마 고교]]도 2회전을 앞두고 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는 새삼 [[코즈메 켄마]]의 성장과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
  • 하재숙 . . . . 1회 일치
          * [[KBS]] [[양의 여자]](2008) - 박용자
  • 하주석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하준영 . . . . 1회 일치
         [[분류:199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이수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
  • 하지호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잠원초등학교 동문]]
  • 하현정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학대의 연쇄 . . . . 1회 일치
         투영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어린 시절의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으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학대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섞여서 복잡한 심리 상가 된다.
  • 한가빈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1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유한대학교 동문]]
  • 한국진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
  • 한규식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장안초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한기웅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201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일란성 쌍둥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
  • 한길로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한다민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한만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한말숙 . . . . 1회 일치
         [[분류:1931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청주 한씨]][[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한명진 (1426년) . . . . 1회 일치
         [[분류:1426년 어남]][[분류:145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한명회]][[분류:정난공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청주 한씨]]
  • 한무숙 . . . . 1회 일치
         [[분류:1918년 어남]][[분류:199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극작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삽화가]][[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경남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한병준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한복 (1914년) . . . . 1회 일치
         [[분류:1914년 어남]][[분류:199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한상권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5년 데뷔]][[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청주 한씨]]
  • 한상대 (검사)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검찰총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
  • 한서진 (1989년)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한석명 . . . . 1회 일치
         [[분류:1890년 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20세기 한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신자]][[분류:청주 한씨]]
  • 한성우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발레 무용수]][[분류:선화예술중학교 동문]][[분류:선화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한성호 . . . . 1회 일치
         [[분류:197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한송이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한송이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그리피스 대학교 동문]]
  • 한수진 (1969년) . . . . 1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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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승엽 (1985년) . . . . 1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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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승원 (만화가) . . . . 1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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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승조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0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친일파]][[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학자]][[분류:청주 한씨]]
  • 한승혁 (1993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덕수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한요한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14년 데뷔]][[분류:남자 래퍼]][[분류:호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한용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1931년 어남]][[분류:2014년 죽음]][[분류:동요 작곡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한윤성 . . . . 1회 일치
         [[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199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천군 출신]]
  • 한인수(탤런트) . . . . 1회 일치
          * [[영웅시대]] - 천
  • 한재권 (응원단장)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두산 베어스]][[분류:양정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재석(1991) . . . . 1회 일치
         || MBC || [[언제나 봄날]] || 주인 || ||
  • 한지유 (모델) . . . . 1회 일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한지은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한지호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징 . . . . 1회 일치
         [[분류:1886년 어남]][[분류:1944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언어학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1회 일치
         1954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 신니면에서 어났다. 충주용원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 한채이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한충 (조선) . . . . 1회 일치
         [[분류:1486년 어남]][[분류:152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암살된 사람]]
  • 한혁수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한현규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기도 부지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시러큐스 대학교 동문]]
  • 한현준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한혜령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하키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
  • 한호문 . . . . 1회 일치
         [[1623년]](인조 1년) [[9월 19일]]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부임하였다가 '경원부사(慶源府使)에 제수되었을 때는 부모의 나이가 70세임을 들어 상소하여 사직하더니, 본직에 제수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히 부임하였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19일(병오)자 4번째기사, "사천 현감 이장형을 사판에서 삭제할 것 등을 청하는 사간원의 계"</ref> 그러나 그해 [[9월 20일]] 죄인 명단에서 특별히 정계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20일(정미)자 6번째기사, "사간원이 아뢴 한호문 등의 일은 정계하였다"</ref> 명단에서 정계된 사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626년]] [[4월 13일]] 겸[[내금위]]장(兼內禁衛將)<ref>승정원일기 인조 4년 병인(1626) 4월 13일(을유)자 29번째기사, "병조가 남이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ref> [[1627년]] [[1월]] [[정묘호란]] 당시 [[소현세자]]를 배종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1월 24일(임진)자 7번째기사, "세자 배종인의 명단"</ref> 그해 [[4월 5일]] 상현궁(上弦弓) 1장(張)을 사급(賜給)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4월 5일(신축)자 2번째기사, "영부사 이원익 등에게 시상하라는 전교"</ref>
  • 함가연 . . . . 1회 일치
         [[분류:댄스스포츠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함기호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함두영 . . . . 1회 일치
         [[분류:1904년 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함석원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 함씨]]
  • 함준호 (교수)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상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
  • 핫라인 마이애미 . . . . 1회 일치
          이회용 근접무기. 적 하나를 후려치면 부러지며, 이 상로 다른 적을 공격하면 당구대를 박아버린다.
  • 해쉬스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일리네어 레코즈]][[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김포제일고등학교 동문]]
  • 해양군 . . . . 1회 일치
         [[분류:1620년 어남]][[분류:168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족]][[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전주 이씨]][[분류:운현궁]][[분류:조선 광해군]][[분류:조선 인조]][[분류:조선 효종]][[분류:조선 현종]][[분류:조선 숙종]]
  • 해원군 . . . . 1회 일치
         [[분류:1614년 어남]][[분류:1662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왕족]][[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의 시인]][[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화가]][[분류:조선의 서예가]][[분류:운현궁]][[분류:전주 이씨]][[분류:조선의 저술가]]
  • 허가윤 . . . . 1회 일치
         [[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2009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K-pop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허건엽 . . . . 1회 일치
         11월 20일 [[질롱 코리아]]에 [[우동균]], [[최준석]]과 같이 추가 멤버로 합류했다. 현재 질롱 선발진 중 [[김진우(1983)|김진우]]는 컨디션 폭망, [[이재곤]]은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고 그나마 [[장진용]]과 선발겸업인 [[길나온]]만 나름 선방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포수 중에는 같은 [[SK 와이번스|SK]] 소속이었던 [[임준]]이 있기에 아마 선발로 기용될 듯.
  • 허남성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 허만하 . . . . 1회 일치
         [[분류:193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195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용래 문학상 수상자]]
  • 허미영 . . . . 1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허민행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0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수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허민호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트라이애슬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
  • 허범산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동명초등학교 동문]][[분류:재현중학교 동문]][[분류:재현고등학교 동문]][[분류:우석대학교 동문]]
  • 허범욱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애니메이션 감독]]
  • 허안나 . . . . 1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84년 어남]][[분류:200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
  • 허용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허위 . . . . 1회 일치
         호는 왕산(旺山)이다. 1855년 [[경상도]] [[구미시|선산군]] 하고면 임은동(현 구미시 임은동)에서 어났다. 본관은 [[김해 허씨|김해]].
  • 허윤희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허일상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허씨]]
  • 허준영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허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경찰대학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경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홍준표]][[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허지애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허진(법조인) . . . . 1회 일치
         [[분류:1894년 어남]][[분류:김해 허씨]][[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헤이즈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CJ ENM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무학초등학교 (경남) 동문]][[분류:마산제일여자중학교 동문]]
  • 현소환 . . . . 1회 일치
         [[분류:1937년 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현재원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주 현씨]][[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연극 감독]][[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뮤지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
  • 현제명 . . . . 1회 일치
         역대 [[음악가]]들 중 친일 행적이 드러나거나 논란이 된 유사 인물로는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와 [[홍난파]] 등이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당장 [[국가(노래)|국가]]를 쓴 놈부터 친일파라니...--
  • 현주엽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 SK 나이츠 선수]][[분류:부산 KT 소닉붐 선수]][[분류:창원 LG 세이커스 선수]][[분류: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농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농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자]][[분류:연주 현씨]][[분류:서울도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호시즈나 . . . . 1회 일치
         남평양 지역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별]] 모양의 [[모래]]. 사실 모래가 아니라, 유공충(有孔虫)이라는 원생동물의 골격이 [[파도]]에 밀려와서 [[퇴적]]된 것이다. 크기는 1밀리미터 미만으로 아주 작지만 자세히 보면 별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호준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6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가람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개그야]][[분류:하땅사]][[분류:개그공화국]][[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홍광호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계원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국영 . . . . 1회 일치
         [[분류:1748년 어남]][[분류:178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왕족]][[분류:한국의 섭정]][[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유교 신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풍산 홍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정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노론]]
  • 홍나영 . . . . 1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명찬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한서고등학교 동문]]
  • 홍소희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안성시 출신]]
  • 홍승규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홍승목 . . . . 1회 일치
         [[분류:1847년 어남]][[분류:192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
  • 홍아름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홍양호 (1955년)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연아 . . . . 1회 일치
         [[분류:197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통합진보당 당원]][[분류:민중연합당]][[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홍영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홍예서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예슬 . . . . 1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0년 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덕대학 동문]][[분류:연서중학교 동문]][[분류: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홍예은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화정고등학교 동문]][[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2004년 데뷔]]
  • 홍은철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1985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동문]]
  • 홍이주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홍인한 . . . . 1회 일치
         [[분류:1722년 어남]][[분류:177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가족 살해자]][[분류:사형된 사람]][[분류:독살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분류:노론]]
  • 홍정우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홍정호 (핸드볼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인천구월초등학교 동문]][[분류:상인천여자중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홍종호 (1963년)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
  • 홍주찬 . . . . 1회 일치
         [[분류:1999년 어남]][[분류:201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골든차일드의 일원]][[분류:서울증산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중학교 동문]][[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동문]][[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백석예술대학교 동문]][[분류: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준표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도호쿠 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
  • 홍준표 (마술사)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마술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명석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홍준표(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8년에는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시즌 중에는 2군에 꾸준히 출전하는 등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써 코칭스프의 기대를 받고 있다.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만한 선수이다.
  • 홍준호 (1971년)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천고등학교 동문]][[분류:총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정의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홍지운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남대학교 동문]]
  • 홍지호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자유 연애]][[분류:남양 홍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홍창선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홍학표(배우) . . . . 1회 일치
         * 1996년 : KBS 일일연속극 《[[며느리 삼국지]]》- 김상
  • 홍헌표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홍현희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1년 데뷔]][[분류: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홍화리 . . . . 1회 일치
         [[분류:200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
  • 황교충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김해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문일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덕균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 해치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
  • 황리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황문수 (장기 기사)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어남]][[분류:장기 기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보예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황석하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성관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황세하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코레일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문일고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축구 골키퍼]]
  • 황수범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황씨]][[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황수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승민 . . . . 1회 일치
         1937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어났다. [[경기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영자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황연대 . . . . 1회 일치
         [[분류:1938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진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
  • 황용식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타이베이 주재 대한민국 대표]][[분류:튀니지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터프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창원 황씨]]
  • 황은진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어남]][[분류:199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195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
  • 황정립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파주 챌린저스 선수]]
  • 황준국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황지웅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황진하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2011년 데뷔]][[분류:1986년 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찬호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회맹 . . . . 1회 일치
         춘추시대의 회맹은 제나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682년 가을, 송나라의 권신 남궁장만南宮長萬이 송 민공緡公을 시해, 대부 구목仇牧과 자 화독華督을 살해했다. 기원전 681년 3월, 제 환공은 주 왕실의 허가를 얻어 북행北杏(지금의 산동성 동아현)에서 제후들을 모았으며, 송나라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 모인 제후들 가운데서는 송 환공이 '공작'으로 가장 작위가 높았으나, 제 환공이 '후작'이었음에도 가장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제 환공이 맹주가 되었다.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사용해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하는 직업. 개성이라 불리게 되는 초능력이 탄생하고, 이에 비례해 악의 창궐도 활성화되면서 이에 대항해 나타났다. 극 내에서 최고의 인기 직업이라 히어로 포화상라 불릴 만큼 다양한 다수의 히어로가 활동한다.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도 히어로를 꿈꾼다.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인간으로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존재, 혹은 창작물에 나오는 인간으로 의하는 [[요괴]] 종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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