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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름 . . . . 127회 일치
         <!-- ISU 월드 -->
         == 월드 ==
         |월드 종합
         |월드 종합
         |히렌빈 월드
         |나가노 월드
         |캘거리 월드
         |인젤 월드
         |콜롬나 월드
         |스타방에르 월드
         |히렌빈 월드
         |아스타나 월드
         |베를린 월드
         |아스타나 월드
         |하얼빈 월드
         |하얼빈 월드
         |베를린 월드
         |히렌빈 월드 파이널
         |하마르 월드
         |히렌빈 월드
  • 리그컵(K리그) . . . . 80회 일치
         [[K리그]]의 리그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프로축구구단을 위한 대회다. 1992년에 처음 시작되어 2011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폐지라고는 했지만 2016년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아직 리그을 공식경기로 보고 있다. 이는 다시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리그의 전신은 1986년에 열린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본다. 이 당시는 [[수퍼리그]]가 발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점으로, K리그 구단의 수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10개월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어 추가로 신설된 대회였다.[* 85년도 기준, 당시 8개 팀이 [[홈 & 어웨이]]로 3번씩 만나는 구조였기 때문에 21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흥행은 엄청난 대참패라서 2016년에 리뉴얼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혁에서도 이 대회는 전혀 이야기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도 '''"1992년, 정규리그 이외 최초로 별도 대회인 아디다스 “” 신설"'''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당시 대회는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대회였다.] 연맹에서 K리그의 역사를 논할 때 프로-세미프로로 합동 운영했던 수퍼리그를 K리그의 일부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http://www.kleague.com/kr/sub.asp?avan=1001124800|리뉴얼 이전 자료]에는 남아있다.]
         == 첫 리그 ==
         프로축구선구권대회가 흥행참패를 겪고나서 1992년에 와서야 리그이 열리게 된다. 당시 후원사가 아디다스를 한국에 판매하고 있던 제우교역이었기 때문에 통칭 아디다스으로 불린다.[* 잉글랜드의 칼링과 마찬가지로 스폰서가 원하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형식이다.] 이 시기에도 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단조로운 리그의 홈 & 어웨이의 연속보다는 리그 외에 별도로 경기 수를 채울 이벤트를 기획하였고, 제우교역을 스폰서로 구해 첫 리그으로 볼 수 있는 "아디다스"이 열리게 된다.
         후원사의 의향에 따라 타이틀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리그의 명칭은 대략 다음과 같이 변화되었다.
         || 1 || 1992 || || 아디다스 ||
         || 2 || 1993 || || 아디다스 ||
         || 3 || 1994 || || 아디다스 ||
         || 4 || 1995 || || 아디다스 ||
         || 5 || 1996 || || 아디다스 ||
         || 6 || 1997 || 전반 || 아디다스 ||
         || 7 || 1997 || 후반 || 프로스펙스 ||
         || 8 || 1998 || 전반 || 아디다스코리아 ||
         || 9 || 1998 || 후반 || 필립모리스코리아 ||
         || 10 || 1999 || 전반 || 대한화재 ||
         || 11 || 1999 || 후반 || 아디다스 ||
         || 12 || 2000 || 전반 || 대한화재 ||
         || 13 || 2000 || 후반 || 아디다스 ||
         || 14 || 2001 || || 아디다스 ||
  • 박주영 . . . . 39회 일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카디프 대첩|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주영/국가대표 경력#s-3.2|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에서 부진 이후, 떨어진 폼을 전성기 시절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고 끝내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모두 승선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대표팀 은퇴나 다름 없다.
          * 리그 우승 : 2006
          * FA 우승 : 2015, 준우승 : 2016
         ||<|2><#e60026> {{{#ffff00 시즌 }}} ||<|2><#e60026> {{{#ffff00 팀 }}} ||<|2><#e60026> {{{#ffff00 소속 리그 }}} ||<-3><#e60026> {{{#ffff00 리그 }}} ||<-3><#e60026> {{{#ffff00 FA }}} ||<-3><#e60026> {{{#ffff00 리그 }}} ||<-3><#e60026> {{{#ffff00 대륙 축구 클럽 대항전 }}} ||<-3><#e60026> {{{#ffff00 기타 대회 }}} ||<-3><#e60026> {{{#ffff00 총계 }}} ||
         ||<:> 2005년 6월 3일||<:> [[타슈켄트]]||[[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png|width=30]] [[우즈베키스탄]]||<:> 1-1 ||<:> 2006 FIFA 월드 독일예선||
         ||<:> 2005년 6월 8일||<:> [[쿠웨이트]]||[[파일:쿠웨이트 국기.png|width=30]] [[쿠웨이트]]||<:> 4-0 ||<:> 2006 FIFA 월드 독일예선||
         ||<:> 2008년 2월 17일||<:> [[충칭]]||[[파일:중국 국기.png|width=30]] [[중국]]||<:> 3-2 (2득점) ||<:> 2008 동아시안 ||
         ||<:> 2008년 5월 31일||<:> [[서울]]||[[파일:요르단 국기.png|width=30]] [[요르단]]||<:> 2–2||<:> 2010 FIFA 월드 예선||
         ||<:> 2008년 6월 7일||<:> [[암만]]||[[파일:요르단 국기.png|width=30]] [[요르단]]||<:> 1–0||<:> 2010 FIFA 월드 예선||
         ||<:> 2008년 11월 19일||<:> [[리야드]]||[[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width=30]] [[사우디 아라비아]]||<:> 2-0||<:> 2010 FIFA 월드 남아공 예선||
         ||<:> 2009년 6월 6일||<:> [[두바이]]||[[파일:아랍 에미리트 국기.png|width=30]] [[UAE]]||<:> 2–0||<:> 2010 FIFA 월드 남아공 예선||
         ||<:> 2010년 6월 23일||<:> [[더반]]||[[파일:나이지리아 국기.png|width=30]] [[나이지리아]]||<:> 2–2||<:> 2010 FIFA 월드 남아공||
         ||<:> 2011년 9월 2일||<:> [[고양시]]||[[파일:레바논 국기.png|width=30]] [[레바논]]||<:> 6–0 (3득점)||<:> 2014 FIFA 월드 브라질 예선||
         ||<:> 2011년 9월 7일||<:> [[쿠웨이트]]||[[파일:쿠웨이트 국기.png|width=30]] [[쿠웨이트]]||<:> 1–1||<:> 2014 FIFA 월드 브라질 예선||
         ||<:> 2011년 10월 11일||<:> [[수원시]]||[[파일:아랍 에미리트 국기.png|width=30]] [[UAE]]||<:> 2–1||<:> 2014 FIFA 월드 브라질 예선||
         ||<:> 2011년 11월 11일||<:> [[두바이]]||[[파일:아랍 에미리트 국기.png|width=30]] [[UAE]]||<:> 2–0||<:> 2014 FIFA 월드 브라질 예선||
          * 자황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 2005
         어쨌든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비교적 현대적이고, 또 축구적으로 멘탈, 피지컬, 스킬을 통틀어 대단히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동국]]과 달리 [[FIFA 월드]]이나 [[올림픽/축구|올림픽 축구]]처럼 큰 경기에서 결정적 한 방을 잘 터뜨려 주었기에''' 박주영이 비난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쉴드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논거도 충분히 합리적이긴 하다. 더군다나 박주영은 월드,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3대[* [[AFC 아시안]]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그렇게 높은 비중을 두는 대회가 아니다.] 메이저 축구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어본 단 3명[* 나머지 2명은 [[구자철]]과 [[손흥민]]으로 이 2명의 경우는 아시안 골도 있다.]뿐인 대한민국 축구선수.
  • 대한민국 FA컵 . . . . 29회 일치
         대한민국 FA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 대회]]이다. 프로, 아마추어 구분없이 KFA에 등록되어 있고 규정을 충족한 모든 팀이 겨루는 대회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경기는 단판승부가 원칙이나 흥행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대회진행방식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어 NTX위키에 일일이 적기가 어려울 정도.
         정식 명칭은 FA CUP이며, 이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정한 공식 명칭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FA이라는 명칭이 곳곳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보통 각 국가의 이름을 앞에 붙이는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거나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각 국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을 부여하고 있기에 언론에서는 스폰서의 이름을 붙이거나 대한민국 FA으로 보통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FA의 전신은 1921년에 개최한 '전조선축구대회'와 해방 이후 1946년에 열린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본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K리그가 시작된 1983년을 기점으로 관심이 시들해지고 또 출전 자격이 KFA가 자격을 심사한 뒤에 초청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과는 거리가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96년도부터 FA이 탄생하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협회 차원의 통합 챔피언을 가리는 개념이 정립하게 되며, FA의 우승팀은 모두 이 1996년의 우승팀부터 기록된다.
         물론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는 프로팀도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으로 규정할 수도 있으나 실제 운영에서 프로팀이 별로 신경도 안 쓸 뿐더러 구단의 역사에 특별히 기록하지도 않을 정도로 권위가 없는 대회이기도 했다. 또한 FA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별도로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었다는 점은 사실 전신이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한 부분이 있다.
         FA은 KFA에 등록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자격을 갖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명백하기에 토너먼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라운드를 차별 배정받는다.
         원스타 시스템이란, 7라운드 대진을 만들면서 적용하는 일종의 특수한 룰이다. 이는 결승전을 중립지역에서 단판승부를 하던 기존의 FA이 흥행을 끌어오지 못하자 적용한 결승전 홈구장 결정방식으로 사용된다.
         단, 이건 2015시즌까지의 이야기이며 2016시즌 FA부터는 8라운드에 한해 홈 & 어웨이로 경기를 치루기로 하였기 때문에 원스타 시스템은 결승 1차전이 어디에서 열리는지 결정하는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가령 1번과 ★번이 결승에 진출하면 ★번팀의 홈에서 1차전을 치루고, 3번과 ★번이 결승에 진출하면 3번팀 홈에서 결승 1차전이 열린다는 이야기.
         FA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모든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FA은 상금규모와 대회 진행에 따른 보상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관계로 초창기에는 리그 내지는 그보다 못한 대회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대회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AFC에서 차기 ACL티켓을 부여하고부터는 K리그 클래식 다음가는 권위있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 올라가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 팀의 이름을 알려서 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별히 보상을 줄 수 없었던 리그 대회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다가 폐지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FA과 명암이 교차하였다.
         단, 이 규정은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된 완전한 프로팀'''이라지만 FA 우승팀 자격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즉, 아직까지 K리그 이외 팀이 우승한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실업팀과 같은 세미프로나 대학팀 같은 아마추어가 우승하게 되면 우승팀일지라도 ACL 참가는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화를 했다고는 하나 팀이 사업자등록 및 법인화까지는 AFC의 규정에 적합해도 '''"팀의 선수 전부가 본질적으로 군인 내지는 경찰"'''인 상주 상무와 안산 경찰청은 세미프로팀과 마찬가지로 ACL진출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는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의 신분문제로 완전한 프로팀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
         == 리그에서 티켓을 얻은 팀이 FA을 우승하면 ==
          2. FA 우승팀은 F조(1장)
         과거 포항이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3.5장이 아니라 4장을 부여하였기에 '''어차피 똑같은 1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FA 우승팀이 들어가야 할 F조의 자리를 당시 리그 4위였던 서울에게 바로 넘겨줬기 때문에 서울이 F조 자리로 갔었다. 그리고 0.5장이란 개념이 없던 미비했던 동아시아 조추첨의 경우는 각 국가별로 조별단계에서 겹치지 않도록 국가별 조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이루어졌기에 한때는 리그 2위였던 성남이 E조에 들어가고 우승팀인 전북이 F조 들어가는 등의 상황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동아시아 조편성에 0.5장이라는 특수성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편성이 난감해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K리그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3.5장을 부여받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도 비슷한 논리로 조편성을 위한 티켓부여가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 3위팀이 FA을 우승 ===
         동 시즌 클래식 3위팀이 동 시즌 FA을 우승하면 3위팀은 F조에 편성되고, ACL 플레이오프 티켓을 4위팀에게 양도하게 된다. 가장 간단한 경우.
         === 2위팀이 FA을 우승 ===
         === 클래식-FA 더블인 경우 ===
         이 경우에는 클래식 우승팀 자격이 더 격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F조에 편성될 자격을 양도하게 되며, 양도받는 팀은 FA 준우승팀이 아니라 클래식 2위팀이 된다. 따라서 2위팀이 FA을 우승할 때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FA/2016시즌]]
  • 김승대 . . . . 27회 일치
          * 2011년 3월 12일, 영남대학교 소속으로 남양주시민축구단전에서 FA 데뷔전을 치뤘고, FA 첫 도움도 기록하였다.
          * 2013년 7월 10일, 성남전에서 프로 선수로는 첫 FA 경기를 치뤘다.
          * 2013년 9월 14일, 제주전에서 프로 선수로는 첫 FA 도움을 기록하였다.
          * 2013년 10월 19일, 전북전에서 FA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 시즌 || 클럽 || 리그 출전 || 리그 골 || 리그 도움 || FA 출전 || FA 골 || FA 도움 || ACL 출전 || ACL 골 ||
         || FA || 10경기 || 1골 || 5도움 ||
         === FA ===
         ||<#00703c> '''{{{#eee156 2011.03.12}}}''' ||<#00703c> '''{{{#eee156 영남대}}}''' ||<#00703c> '''{{{#eee156 남양주시민축구단}}}''' ||<#00703c> '''{{{#eee156 도움}}}''' [* FA 첫 도움] ||
         ||<#00703c> '''{{{#eee156 2013.09.14}}}'''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제주}}}''' ||<#00703c> '''{{{#eee156 도움}}}''' [* 프로 데뷔 후 FA 첫 도움] ||
         ||<#00703c> '''{{{#eee156 2013.10.19}}}'''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북}}}''' ||<#00703c> '''{{{#eee156 득점}}}''' [* K리그 클래식, FA, ACL 통틀어 프로 데뷔골] ||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절했지만, 황진성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2014년 전반기 [[이명주]]와 더불어 포항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리고 이명주는 월드 휴지기를 지나고 후반기가 시작하면서 중동으로 50억에 팔려갔다.~~ ~~그리고 다음 시즌 본인도 포항의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20억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하지만''' 이명주가 월드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아시안 게임 승선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월드 브레이크 동안 중동의 [[알 아인]]으로 이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명주의 킬패스를 받으며 라인 브레이킹을 일삼던 김승대는 이명주 대신 중원을 지키게 된 김재성과 호흡이 맞지 않으며 득점력이 폭망했고, 결국 [[황선홍]] 감독은 이런 저런 수를 모두 써보다 결국 이명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중앙 미드필더 복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김승대를 중미로 내리고 만다. 이명주가 나간 자리에 카타르에 임대로 보냈던 신진호가 복귀했으면 이명주의 역할을 그대로 맡기면서 김승대의 득점력을 보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악의 근원~~ 포항 프런트답게 미적지근하게 신진호와 협상하다 결국 신진호는 카타르의 다른 클럽으로 임대 연장보내 버렸다.
         이후 계속 겉돌면서 제로톱의 파괴력이 약해졌고 포처로써도 약점이 드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그와 동시에 포항의 공격진은 단체로 침체에 빠지면서 팀 성적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동아시안 출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했고 경기력도 완벽하게 살아나서 다시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00703c> '''{{{#eee156 FA}}}''' ||<#00703c> '''{{{#eee156 1회}}}''' ||<#00703c> '''{{{#eee156 2013}}}''' ||
         ||<#00703c> '''{{{#eee156 동아시안}}}''' ||<#00703c> '''{{{#eee156 1회}}}''' ||<#00703c> '''{{{#eee156 2015}}}''' ||
         2014년 전반기 리그에서 이명주와 함께 발군의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일각에서 월드 엔트리 승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했다.
         2015 아시안 대비 제주 전지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동국]]과 [[김신욱]] 전부 부상으로 아시안 출전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원톱 자원으로서 쓸만한 자원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 덕분에 아시안 을 통해 국대에 안착하는가 싶었는데...... '''부상으로 전지 훈련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어지간히도 국대 운이 없다. [[홍명보]]자선축구에 참여했는데 그 뒤에 오른쪽 엉덩이 근육 손상으로 인해 전지 훈련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대체자는 같은 아시안 게임 멤버인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가 뽑혔다. 그러나 이종호도 결국 최종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2015년 8월 동아시아 엔트리에 들었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은 [[이정협]], [[이용재(축구선수)|이용재]]에 이어서 대표팀에서 한동안 멀어졌던 김신욱까지 다시 뽑힌지라 공격수로는 뽑히지 못했고 미드필더로 선발되었다.
         ||<#00703c> '''{{{#eee156 2015.08.02}}}''' ||<#00703c> '''{{{#eee156 2015 EAFF 동아시안}}}''' ||<#00703c> '''{{{#eee156 중국 0 : 2 대한민국}}}''' ||<#00703c> '''{{{#eee156 A대표 데뷔전 [br] A대표 데뷔골}}}''' ||
  • 우찬양 . . . . 25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에서는 센터백은 [[정태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U-20 월드에서 대한민국이 치른 4경기 중 아르헨티나전을 제외하고 3경기에 출전하였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이상헌]]의 득점을 돕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팬들에게나 선수 본인에게나 만족스러울 대회는 아니었지 싶다.
         || 시즌 || 클럽 || 리그 출전 || 리그 골 || 리그 도움 || FA 출전 || FA 골 || FA 도움 || ACL 출전 || ACL 골 ||
         || FA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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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승빈 . . . . 22회 일치
         시즌 3 롤드 이후로 다데와 댄디가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롤챔스 윈터 2013-2014에서는 각성한 마타와 함께 다시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 주목받았다. SKT T1 K를 상대하게 된 결승전을 앞두고 거의 모든 이가 "모든 면에서 SKT T1 K가 우세하나, 바텀이 유일한 변수"라고 평가할 정도. 임프 본인도 경기 전 피글렛과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며 보는 이들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임프가 1인분을 간신히 해낼 동안 다른 팀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한타에서도 말려 팀의 3대0 압도적 패배. 사실 임프도 '그나마' 잘했을 뿐, 라인스왑이 걸린 상황에서 마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상대 라이너를 압박하려다 크게 손해를 보는 플레이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다(1세트에서 임팩트에게 솔킬을 따일 뻔했으며, 3세트에서는 페이커에게 역관광당해 플래시를 낭비했다). 각 세트 중반에는 본인이 밀리는 상황을 ~~청년가장으로서~~ 타개해야한다 생각했는지 무리한 포지셔닝,킬욕심을 내다가 먼저 끊기거나 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롤드 선발전 직행티켓을 두고 다시 SKK를 만나 맞라인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채광진]]과 [[이정현]] 듀오를 박살내버렸다. 특히, 임프는 3연 [[트위치(리그 오브 레전드)|트위치]]로 무시무시한 광역딜과 암살, 이니시를 담당하면서 현재 최고의 원딜 중 한명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섬머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다시한번 EDG를 만나서 3:0으로 완파하고 결승행을 확정지으며, 중국 1등시드로 롤드진출을 확정지었다. 대부분의 평가는 임프가 데프트 상대로 원딜 클라스 격차를 보여줬다는 것이 중론.~~임프센세의 데프트 참교육 현장~~결승에서도 임프는 정규시즌 원딜 MVP 포인트를 쓸어담던 QG의 원딜러 TnT를 압도했다. 결과는 3대2의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사실상 중체미라던 Godv의 똥. 임프가 상대원딜과 cs 100개 벌릴때 Godv도 상대 미드한테 cs 100개나 뒤졌으니..~~[* 오히려 정글러인 TBQ의 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qG의 미드인 ~~간신~~도인비는 다데 스타일의 미드라 스위프트가 미쳐 날뛰지 않으면 혼자 라인전 압살하는 경우는 적다.] 이로써 임프는 SKT의 페이커 벵기 와 더불어 2회 롤드 우승을 노릴수있는 선수중 한명이 되었다.
         그러나 2015 롤드서 오리진, KT, TSM에게 내리 털리면서 고통받는중... 해탈했는지 마타가 "한국인 최초 롤드 2회 광탈 ㅅㅅ." 이라는 페북글의 댓글과 롤갤에 "그냥 내가 ㅂㅅ이여서 그럼ㅋㅋㅋ"의 뉘앙스의 글을 남기면서 성장멘탈룬 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마타의 Goondae Gaming의 새로운 봇듀오가 될거라는 드립은 덤.~~--한 시즌마다 멘탈 + 1--
         약한 팀의 전력과 본인의 과도한 공격성향으로 인한 미친 듯한 데스누적은 임프의 후반 한타 실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게 만든다. 시즌 4에 미스틱은 NLB 전용 왕자님이었고 우지는 중국 미친개였지만, 우지와 미스틱이 한국식 운영을 모방하는 팀에서 공격적인 라인전 능력에 뒷받침되는 엄청난 한타 안정감을 보여주며 시즌 7 롤드 4강을 찍는 시점에서 LPL 바닥을 떠도는 임프와 사실상 신세가 역전되어버렸다. 시즌 5만 해도 임프가 연봉과 커리어를 다 가진 상황이었지만, LPL의 수준이 올라가고 몬테에 의하면 LPL에서 VG보다도 더 부패했다는 LGD(...)에 사로잡힌 임프는 자신이 메타와 트렌드의 발전에 맞게 진화했음을 검증받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연봉과 커리어를 교환한 셈이 되어버렸다.~~루키는 2년을 참으니 재키러브가 떡상하는데 임프는......~~
          * 시즌 3 롤드에서 공개된 롤드 애니버전 Road to the cup(롤갤 8대 관문)에 등장했는데, 실제와 애니속 작화를 비교해보면 딴사람이다. 머리색도 다르고 심지어 미친고딩은 커녕 판타지 만화 주인공 마냥 진지하다. MVP 마크와 (심지어 이 영상이 올라온 시점은 삼성에 팀이 인수되어 MVP Ozone에서 Samsung Galaxy Ozone이 된 시점이였다) 등 뒤에 달고 있는 베인의 석궁을 확인하고도 임프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유저들도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PX_IQkeXq9g&feature=youtube_gdata_player|오글거림 주의]]
          * 2013~2014 판도라 tv 롤챔스 윈터 16강 팀다크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MVP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인섹 사건에 버금가는 엄청난 방송사고였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275300.htm|관련기사]] 원딜이 cs 38개 먹고 MVP를 받은 상황.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로 팀 다크가 맹비난을 받는 동안, MVP 인터뷰에서 임프는 어떻게 이 경기에 임했냐는 조은나래의 질문에 "프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로 임프가 철 좀 들었다, 얌전해졌다 라는 반응이 꽤 나왔다.[* 롤드 이후로 뭔가 깨달은게 있긴 한 듯. 임프 한명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실제로 롤드 가서 푸짐하게 똥싸고 오셨던 마타와 다데가 부활했으며 성적도 좋게 나왔다. 그리고 팀 다크와의 2경기에서 같이 던지는게 아니라 일말의 자비도 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 어쨌거나 정신적으로 성장한 면은 분명히 있는 듯.]
          * 위의 롤챔스 서머 2013 4강전 당시 피글렛의 공개적 디스 이후 엄청난 멘붕을 겪었는지, 롤챔스 윈터 2013-2014 8강전 승자인터뷰에서 저번과 다른 많이 조용한 모습과 SKT T1 K를 결승에서 만나 꺾고싶다는 승부욕이 갑자기 솟아난다는 인터뷰를 했다. ~~확실히 롤드 이후로 애가 철 좀 든거같기는 하다~~ 특히 피글렛에게는 쌓인 것이 많은지 'SKT T1 K는 무섭지만 피글렛과 푸만두는 좆밥ㅋ'이라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3:0^^ 멘탈린치 사건(…) 당시도 팀이 전체적으로 밀리는 가운데 바텀만은 우세한 모습을 보였던지라. ~~결과는 푸만두에게 짓밟힌 마타~~
          2014 롤드을 앞두고 라이엇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Road to Worlds에서 세상 모든 것을 얻은 표정으로(…)으로 '우시는거 보셨잖아요 피글렛 선수, 그거 제가 이긴거에요ㅋ'라고 멘트한 것이 해외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밈]]화 되어~~You saw *** cry right?~~ 쓰이고 있다.
          * 롤드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 인터뷰를 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ECJ236u2ln8|경기가 치러질 서울월드경기장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냐는 질문을 듣고, '''"솔직한 마음으로 저 잔디 위에 누워서 뒹굴고 싶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 후 나오는 장면은 정말로 잔디 위에서 뒹구는 임프~~
          * 2014 롤드에서의 인터뷰~~대본을 읽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본격 초등학생 국어책 읽는 인터뷰+이분 최소 국문과--[[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e_sports&ctg=news&mod=read&office_id=236&article_id=0000109810|#]] 참으로 국어책스러운 인터뷰로 [[클템|간나새끼]], [[장건웅|땅땅땅빵]]에 이은 새로운 made in 롤드 [[관문]]을 만들어냈다.
          * 2014 시즌 월드 챔피언십 16강 2일차 터키팀 Dark Passage와의 경기에서 펜타킬을 기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게 '''롤드 최초 펜타킬'''이라고 한다. 그 뒤 인터뷰에서 깨알같이 피글렛을 언급하였다.
          * 2014 시즌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도 TSM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펜타킬을 올렸다. 이로써 롤드 최초 펜타킬에 이어 최초 '''2회 펜타킬'''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 사실 펜타킬과 연관이 많은 선수다. 롤드 최초로 두번의 펜타킬을 기록한 선수고, 처음 기록했던 펜타킬은 롤챔스 최초로 패배한 경기에서 나온 펜타킬이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롤갤러이다. 롤챔스 스프링 2013 4강 승자 인터뷰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갤러리|롤갤]]을 언급하며 환상의 동물 드립을 쳤고 롤갤에서 고정닉으로 활동을 했었다. ~~하도 갤질을 한 모양인지 교장선생님이 롤갤을 막았다며 불평했다~~ SKT LTE LOL 마스터즈 2014 결승전 [[http://youtu.be/84BctoXktQY|캐치마인드 영상]]에선 상어드립을 치기도.. ~~야! 캐치마인드에는 이런 코미디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삼성과의 계약이 끝난 11월 1일 새벽 [[http://gall.dcinside.com/list.php?id=leagueoflegends1&no=7280594|롤갤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삼성으로 롤갤문학을 써달라고 했다~~ 롤갤에 대한 애정이 있는듯 만약 2015 롤드에서 잘 됐으면 롤갤 얘기를 했을거라고 이야기했다.
          *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CJ Entus/리그 오브 레전드|CJ 엔투스]]에 입단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롤드에 데려가줄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팀은 이제 2부로 가서 갈래야 갈 수가 없다. 이제 해체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22회 일치
         [[식극의 소마]] 213화. '''가능성의 '''
          * 네네는 말도 안 되는 모험을 한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지 못하나, 이건 소마가 어린 시절부터 라면이나 야키소바를 마개조해 먹던 것에서 연장된 것이다.
          * 소마는 기존 야키소바를 분석하고 고안을 더하곤 했는데 그때 지식을 "철냄비"라는 ""으로 마무리한게 이른바 "유키히라류 코가시 소바"다.
          >" 야키소바"라고요!
          야키소바라면 안도 들어본 적이 있다. 소마는 그게 맞다고 답하며 심사의원들에 작은 종지를 나눠준다. 이스트와르가 보니 양념 같은데 소마는 이게 양념보다는 "고명"이라고 설명한다. 시즈닝 스파이스에 간 깨를 첨가한 것으로 취향에 따라 넣어먹는 것이다. 이것도 야키소바, 라면류에서 따온 발상이다.
          소마는 어려서부터 라면 종류를 좋아했다. 그 자체로 기능성을 가진데다 여러가지 맛과 소재의 바리에이션도 탁월한 요리였다. 소마는 이걸 다른 요리에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으로 기성 라면이나 야키소바를 다양하게 어레인지하는 시도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야키소바의 구성은 면, 기름, 조미료 혹은 양념이다. 소마에게 인상을 남겼던 야키소바 중에는 면 자체에 소스를 가미해서 맛을 강하게 한 것도 있었고, 기름을 별첨해서 구운 풍미를 내는 종류도 있었다. 또 소마는 나름대로 조리법을 바꾼다고 야키소바를 진짜로 구워보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그냥 야키소바"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참고가 됐다.
          이번에 만든 소바도 기본적인 원리는 야키소바와 같다. 우선은 그 자체로 풍미가 강한 면이다. 소스는 진한 간장 10, 미림 4, 굵은 설탕 3을 섞고 진한 가스오부시를 넣어 희석한 특제 츠유. 마지막으로 자신이 조합한 조미료. 이것들을 ""="철냄비"에 넣어서 구우면서 섞는다. 모두 야키소바의 요소이다. 물론 뜨거운 철냄비가 야키소바의 에 해당하는 것은 소마만의 취미지만.
          * 이스트와르는 일본의 야키소바 또한 급속도로 진화를 계속해왔고 그것 역시 하나의 역사와 전통이라고 발언한다. 안은 거기에 더해서 "에도 소바에 들인 시간과 노고는 네네를 이길 사람이 없지만 소마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고 평한다. 소마는 야키소바라는 것으로 새로운 발상을 더해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걸 만들어냈다. 이는 "소바라는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까지 극찬한다.
  • 최효진 (축구선수) . . . . 22회 일치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K리그 2007|2007 K리그]] 우승과 [[FA 2007|2007 FA]] 준우승, [[FA 2008|2008 FA]]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08년 FA 우승 당시 대회 MVP를 받았고,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 2008년, 2009년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전 경기 출장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특히 16강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FC|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39&aid=0001950957 |제목=(ACL 리뷰) '최효진 해트트릭' 포항, 뉴캐슬 6-0대파하고 8강행 |날짜=2009-06-24 |출판사=스포탈코리아 }}</ref>
         [[2008년]] [[6월 14일]], [[2010년 FIFA 월드]]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2010년]] [[8월 10일]]에 열린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 [[2008년]] [[FA (대한민국)|FA]] MVP 수상
         * [[FA (대한민국)|FA]] 우승 1회 ([[FA 2008|2008년]])
         * [[FA (대한민국)|FA]] 준우승 1회 ([[FA 2007|2007년]])
         * [[리그 (대한민국)|리그]] 우승 1회 ([[리그 2009|2009년]])
         * [[리그 (대한민국)|리그]] 우승 1회 ([[리그 2010|2010년]])
         {{2011년 AFC 아시안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 참가 선수]][[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중동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
  • 황보관 . . . . 22회 일치
         [[1988년]] [[12월 11일]], [[1988년 AFC 아시안]]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0년 FIFA 월드]], [[1988년 AFC 아시안]] 등의 많은 대회에서 뛰었고, [[A매치]] 36경기에서 10골을 넣었다.
         3전 전패로 탈락했던 [[1990년 FIFA 월드|이탈리아 월드]]에서 예선 2차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에서 [[안도니 수비사레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시속 114 km 캐넌슛을 넣어 화제가 된 바 있다.<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120523022576&subctg1=&subctg2= 축구 슈팅속도 얼마나 되나]</ref> 이 득점은 [[1990년 FIFA 월드|이탈리아 월드]]에서 [[대한민국]]이 기록했던 유일한 득점이었다.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영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린 [[통영]]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영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에서 우승하자, 우승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영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브라질 월드 이후에는 [[이용수 (축구인)|이용수]]에게 기술위원장을 넘기고 현재는 기술교육실장으로 있다.
         * [[1988년 AFC 아시안]] 대표
         * [[1990년 FIFA 월드]] 대표
         * [[리그 (대한민국)|리그]] 우승 1회 (1994년)
         * [[1988년 AFC 아시안]] 준우승
         {{1988년 AFC 아시안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0년 FIFA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이명주 (축구선수) . . . . 21회 일치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2013년에는 시즌 내내 에이스로 활약하며 [[포항 스틸러스|포항]]이 국내 최초로 [[더블 (축구)|더블]], 즉,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 클래식]] 우승과 [[FA 2013|FA]] 우승을 이루어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 받아 프로 데뷔 2년차에 연말 시상식에서 MVP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을 놓쳤고, 그 해 [[K리그 베스트 11|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아시안]]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16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또한 [[UAE 프레지던트]]에서는 4강전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알아인은 결승까지 연이어 연장 혈투를 거친 데다가 [[AFC 챔피언스리그 2016|ACL]] 참가로 인한 선수들의 피로 누적이 겹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2013년]] [[6월 11일]] [[서울월드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과의 [[2014년 FIFA 월드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데뷔전을 가졌다. 데뷔전에서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겁없는 데뷔전' 이명주, 대담한 활약 눈부셨다|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336377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13-06-11}} }}</ref>
         [[홍명보]] 감독 하의 대표팀에서도 초반 꾸준히 승선했으나 [[2014년 FIFA 월드]]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33분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감아차기를 시도하여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후반 17분 상대 진영에서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 이동국의 쐐기골에 기여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우리가 바라던 공격형 MF 모습 보였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1020 |출판사=베스트일레븐 |date={{날짜한글화|2014-09-05}} }}</ref>
         2014년 12월 22일 발표된 [[2015년 AFC 아시안|2015 AFC 아시안]]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정협 깜짝 발탁…슈틸리케호 아시안 명단 확정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2/0200000000AKR20141222048300007.HTML?input=1195m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동찬, 장재은 |날짜 = 2014-12-22 }}</ref>이후 인연이 없다가 2017년 5월 22일 재승선 되었다
         * [[FA (대한민국)|FA]] : 우승 ([[FA 2012|2012]], [[FA 2013|2013]])
         * [[UAE 프레지던트]] : 준우승 (2015-16)
         * [[AFC 아시안]] : 준우승 ([[2015년 AFC 아시안|2015]])
         {{2015년 AFC 아시안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고유민 . . . . 19회 일치
         === 2014 안산 우리카드 대회 ===
         GS 칼텍스 와의 결승전에는 선발출장을 하여 --물론 후위에 [[한유미]]와 같이 있으면 안믿던 예수님 찾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버텼고 3세트 듀스상태에서 마지막 끝내기 오픈을 성공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13득점 공격점유율 35.17%, 경기 최다블로킹 (3개),디그 14번 시도 중 1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37%를 기록하며 정미선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내 팀의 8년만에 대회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년 기업은행에게 학살당한 결승전엔 최다득점자가 8점인가 그랬지...--
         === 2015 청주 대회 ===
         '''대회 현대건설의 가장 큰 수확- 새로운 공격형 레프트의 발견'''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영]]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상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백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백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대회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상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대회 후반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절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주전선수가 목표라고 시즌 전 인터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451&article_id=0000000573|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대로 기회를 얻는 데 성공하여 개막 이후 3경기 선발 출장을 하였으나 고질적인 문제인 리시브 불안으로 1, 2세트만 채우고 교체되었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현대건설이 풀세트 경기를 자주하는 주요원인으로 꼽힐 정도.[* 대회부터 고유민의 리시브가 그런대로 되는 경기는 현대건설이 별 문제없이 이기는 패턴이지만, 되지 않을 경우 대회 결승전 때나 시즌 경기처럼 풀세트로 가서 패하거나 간신히 이기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다만 3차전 도로공사전에서 1세트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주면서 백어택을 성공시키는 등 코보 때 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준 건 위안거리. -결국 정미선과 자리를 바꾸어 닭장을 달구다 2015년 12월 12일 인삼공사전은 2세트 37:37까지 간 상황에서 연속 2득점으로 2세트를 끝냈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한 경기 시즌 최다득점인 9점 기록.[* 이 기록은 2016년 2월 1일 인삼공사 전에서 11점으로 갱신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부상으로 코보 및 16-17시즌 1라운드까지 오른팔 부상으로 결장한다. 그런데 대회에서 박경현, 이예림이 터진다면 경쟁이 불가피하다.
  • 조진호 (축구인) . . . . 19회 일치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미국 월드]]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월드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2000년]] 대한화제 포항과의 A조 2차전서 멀티골, 연장전 골든골을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으며,5월 5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전남 드래곤즈]]와의 대회 결승전서 연장 전반 4분 [[전경준]]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골을 기록하며 부천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11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정협]]을 비롯한 공격 자원을 앞세워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FA 2016|FA]]에서는 [[FC 서울]]과 [[전남 드래곤즈]] 등의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진출하였지만,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전에서 패하면서 사실상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 [[FA (대한민국)|FA]] : 우승 ([[FA 1996|1996]])
         * [[FA (대한민국)|FA]] ([[FA 1996|1996]]) MVP
         {{1994년 FIFA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최문식 . . . . 19회 일치
         동대부고를 졸업한뒤 대학진학 대신 [[1989년]] [[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 고졸신인 최문식은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골을 기록하였고, [[1989년]] [[성남 FC|일화]]와의 경기서 경기 종료 10초전 극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기록한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군대를 갔다온 2년을 제외하고 [[1998년]]까지 포항에서 뛰었음은 물론이고 기술력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위주의 축구와 정확한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포항의 공격진을 책임졌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 FIFA 월드|1994년 미국 월드]]과 [[1994년 아시안 게임|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월드 출전 직후 합류한 첫경시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항의 [[아디다스]]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99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4위팀 부산에게 졌고, 2000시즌 대한화재에서는 결승에서 부천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결국 [[1994년 FIFA 월드|1994년 미국 월드]] 출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였던 [[김호]]의 부름을 받고,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으며, [[2002년]]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SK]]로 이적했으며, 한해 동안 28경기에 출전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인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1년]] 한 해동안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 코치를 역임한 뒤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며, [[2012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8강에 [[우즈베키스탄]]에 패해 대회 우승이 좌절되었다. 대회 직후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에 부임해 이광종을 보좌하여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한국의 12번째 우승과 더불어,[[2013년 FIFA U-20 월드]] 본선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2013년 FIFA U-20 월드]] 8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다.
         그 뒤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새로 선임된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선임되였으며<ref>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5/1003000000AKR20131115070900007.HTML/ 최문식, AG 축구대표팀 코치로 합류] </ref>, [[2013년 AFC U-22 축구 선수권 대회]]는 4위에 그쳤지만,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28년만의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하였다. 이후 [[2016년 하계 올림픽]]까지 이광종과 코칭스테프를 맡을 예정이였으나 [[2015년 킹스]] 출전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으로 대표팀을 지휘하였다. 대행으로서 2승 1무로 대회의 우승을 이끈 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316559/ 9일 킹스 우승 ‘감독 교체-우즈벡 폭력-편파 판정, 악재 딛고 쾌거’] </ref> [[신태용]]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다시 수석 코치로 신태용을 보좌하였다.
         * [[FA (대한민국)|FA]] : 우승 ([[FA 1996|1996]])
         * 대한화제 : 준우승 (2000)
         * [[킹스]] : 우승 ([[2015년 킹스|2015]])
         {{1994년 FIFA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신화용 . . . . 17회 일치
         ||<-5><bgcolor=#0c1534><table bordercolor=#edbe26><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 [[대한축구협회 FA|{{{#edbe26 '''KEB 하나은행 FA'''}}}]] [[대한축구협회 FA#s-9|{{{#edbe26 '''MVP'''}}}]] ||
         '''K리그, FA, ACL 모두 우승 경험을 해본 선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이 리그 최소 실점을 달리게 만들었다. [[전북 현대]]와의 2013 FA 결승전에서는 레오나르도의 결정적인 슛팅을 '''한 손'''으로 막아내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1,2번 키커의 슛을 연달아 막는 활약 속에 포항의 FA 2연패 및 최다 우승에 일조하면서 FA 결승전 MVP로 뽑혔다.
         이후에도 불안하다 싶은 경기는 죄다 신화용이 선방쇼를 벌이며 포항은 연승을 이어나가게 됐고 FA 32강 [[FC 안양]]과의 경기에서는 포항 선수들이 '''[[삼연뻥]]'''을 시전했음에도 혼자서 '''안양 키커 7명중 3명을 막아내며''' 포항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A ]]에서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리그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와중 11월, 울산전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김다솔]], [[김진영]] 등 백업 키퍼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나 그 누구도 신화용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지 못 했다. 이에 팀은 리그 4위까지 떨어져 아챔 출전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포항 팬들은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신화용의 거취에 촉각을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 시즌 || 클럽 || 리그 출전 || 리그 실점 || FA 출전 || FA 실점 || ACL 출전 || ACL 실점 ||
         || FA || 27경기 || 27실점 ||
         11월 14일 요르단, 18일 이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 예비 명단에 들어가 겨우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동해안 더비에서 부상을 당해 결국 예비 명단에 있어도 국대에 뽑힐 수 없게 되었고, 부상 여파로 인해 2015 제주 훈련 명단에서도 제외되면서 2015 아시안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김진현이 2015 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순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순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순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 때 백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 2번의 K리그 우승, 3번의 FA 우승, 1번의 ACL 우승을 함께하여 포항에서 이룰 수 있는 우승은 모두 이루어본 행복한 선수.
          * 2013년, FA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 최성국 (축구선수) . . . . 17회 일치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2006|K-리그 ]]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남 '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남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03년]] [[3월 29일]]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2007년 AFC 아시안]] 등에 참가하였다.
         [[2007년 AFC 아시안]]에서 예선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의 4강에 공헌하였다.
         * [[2007년 AFC 아시안]] 3위
         * [[대한민국 슈퍼|슈퍼]] : 2006
         * [[A3 챔피언스]] : 2006
         * [[FA (대한민국)|FA]] 득점왕 : [[FA 2001|2001]]
         * [[K리그 ]] 득점왕 : [[리그 2006|2006]]
         * 조모 2008 MVP : [[K리그 올스타전|2008]]
         {{2007년 AFC 아시안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송정현 . . . . 16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대구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독 [[FA (대한민국)|FA]]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FA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이 '송'씨인 것에 착안하여 '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 (대한민국)|FA]]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 [[FA (대한민국)|FA]] 우승 2회 ([[FA 2006|2006년]], [[FA 2007|2007년]])
         * [[대한화재 ]] 준우승 1회 (2000년)
         * [[하우젠 ]] 준우승 1회 ([[리그 2008|2008년]])
         * [[아시안 위너스]] 준우승 1회 (1999년)
  • 한국영 . . . . 13회 일치
         [[2007년 FIFA U-17 월드]]에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U-17 대표팀]] 멤버로 출전했었으나 이후 두각을 보이지 못하며 꾸준히 발탁되지 못했다.
         [[2014년 FIFA 월드|2014년 브라질 월드]] 최종 명단에 포함되어 조별 예선 3경기에 모두 출전하였다. 벨기에전에서 양팀 최하점인 평점 4점을 받았다.{{출처|날짜=2014-12-22}}
         2014년 12월 22일 발표된 [[2015년 AFC 아시안|2015 AFC 아시안]]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정협 깜짝 발탁…슈틸리케호 아시안 명단 확정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2/0200000000AKR20141222048300007.HTML?input=1195m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동찬, 장재은 |날짜 = 2014-12-22 }}</ref>
         * [[AFC 아시안]] : 준우승 ([[2015년 AFC 아시안|2015]])
         {{2007년 FIFA U-17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4년 FIFA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5년 AFC 아시안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2014년 FIFA 월드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 참가 선수]][[분류:알가라파 S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김연경(배구선수) . . . . 12회 일치
         ||<-5><table align=center> '''2010 KOVO 프로배구 MVP''' ||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이후 2009-10시즌에 [[일본]] JT 마블러스로 임대 이적[* 첫 해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 옵션으로 그 다음 해에도 뛸 수 있는 1+1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2010년 9월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일본 리그가 오프 시즌인 때에는 9월에는 국내 대회 출전이 가능했다.], 일본 여자배구계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연경이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2009-10 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사실은 2008-09 시즌에도 흥국생명은 정규 시즌을 겨우 3위를 해 플레이오프부터 봄배구를 시작했지만 김연경과 카리나 오카시오의 크레이지 모드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 어쨌든 흥국생명의 [[리즈 시절]]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사기 캐릭터|캐사기 유닛]] 소리를 듣게되자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라는 여론과 김연경 본인의 외국 리그 진출 의지가 합쳐져 결국 2009 오프시즌에 외국 리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사실 김연경은 완전 이적을 바랐겠지만, 흥국생명이 선수 임대 방식을 이용, '''당시 V-리그 선수 이동 규정에 없던 방식'''으로 제대로 신분 정리도 안 한 채 이적을 진행했고, 이것이 3년 후에 이적 파동의 도화선이 된다.
         임대 이적이라는 신분 때문에 2009-10시즌 종료 후 비시즌인 9월 KOVO 때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고 2010-11 일본 V리그 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 시즌이 조기 종료되어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다. 마침 그 시기가 국내 V-리그 포스트시즌과 맞물리는 바람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으로서는 ''''김연경 룰''''[* 김연경이 JT 마블러스로 (임대)이적할 때 생긴 규정. 시즌 전(全) 경기의 25%를 뛰면 한 시즌 뛴 것으로 간주.]을 적용해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반짝 출장시키고 싶었으나 여론의 뭇매로 김연경은 한 달여 간의 휴식을 취하고 대회인 흑취기에 참가하기 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2012-13 시즌에는 김연경 본인이 이적 파동 때문에 힘든 시즌을 보내기도 했고,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역시 주전 세터였던 나즈 아이데미르가 페네르바흐체의 라이벌 팀인 바키프방크로 이적하면서 팀은 2011-12 시즌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쉽게도 페네르바흐체는 시즌 3위에 CEV [* 유럽 배구판 UEFA 유로파 리그 급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사기캐 팀이 이 정도 성적을 거둔거라면(...)~~
         2013-14 시즌에 김연경은 소속팀 페네르바흐체의 CEV 우승의 선봉장으로 서며 또다시 MVP가 되는 위엄을 보여줬다. 오오. 갓연경. 게다가 [[엠스플]]에서 김연경 출전 경기를 중계해 줄 정도로 김연경의 위상을 다시 한번 올려주는 시즌이 되었다. 그런데 아로마 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페네르바흐체는 바키프방크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은 득점 1위, 공격종합 1위를 기록했다. 역시 갓연경. 한편, 챔피언 결정전 1차전 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김연경은 실종자·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태극기 문양을 넣은 검은색 팔꿈치 보호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고, 팀 동료들도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같이 달고 뛰었다. 김연경의 본가가 안산에 있고, 또한 초·중학교를 안산에서 나온 만큼 귀국 후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할 일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4 FIVB 월드그랑프리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뽑혔다. 물론 김연경보다 나이가 더 있는 언니들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중고참의 위치라는 점과 김연경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2010 FIFA 월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때 [[박지성]]이 주장이 된 것과 같은 비슷한 맥락. 그만큼 김연경은 국가대표팀의 무게감있는 에이스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후 AVC-[[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팀 리더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며 결국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2015년에는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서 준우승, FIVB 월드에 참가해서 [[조송화|신진]] [[이다영|세터진]]을 데리고도 [[하드캐리]]하며 6위를 기록했다. 월드에서는 득점 1위, 리시브 4위로 공수 양면에서 출중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입증했다. ~~아직 더 입증할게 남았나?~~
  • 유병수 . . . . 12회 일치
         [[2011년]] [[7월 23일]], [[알힐랄 (리야드)|알힐랄]]이 유병수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알 힐랄, 유병수와 3년 계약 공식 확인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7250100208830017535&servicedate=20110724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박상경 |날짜=2011년 7월 24일}}</ref> 입단 초반 부상으로 고전하였으나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2011-12 시즌 크라운 프린스 에서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라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2|2012 ACL]] 16강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2013년]] [[6월 22일]] 알힐랄은 유병수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FC 로스토프]]로 이적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200347.htm |제목=유병수, 사우디에서 러시아 FC 로스토프로 이적 |출판사=스포츠서울 |저자=신원엽 |날짜=2013-06-23}}</ref> 러시아로 이적한 유병수는 리그 득점왕 출신 팀 동료 [[아르템 주바]]에게 밀려 데뷔 시즌 선발 출전 2경기에 그쳤으나 주로 조커로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였다. 한편 [[러시아 ]]서도 3경기에 출전하며 팀이 클럽 최초 대회에 우승하여 [[유로파리그]] 티켓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였다.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병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의 승선이 거론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도 그에 대해 관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3연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806415&code=980201 |제목=신인 유병수, 허정무호에 ‘깜짝 승선’|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향뉴스}}</ref> 그리고 [[2009년]] [[6월 3일]]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평가전에 후반 교체 출전하여 A매치에 데뷔하였지만<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90604122105§ion_code=10&key=%C0%AF%BA%B4%BC%F6&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A매치 데뷔 유병수, UAE전 승리 위한 '비밀병기'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오만전이 A매치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삭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2009/0804/20090804101020201000000_7288524317.html |제목=6월 허정무호 오만전, FIFA A매치서 제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서울}}</ref>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10월 4일]],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열릴 한일전을 앞두고 유병수를 발탁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고<ref>{{웹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0041004362234&ext=na |제목=한일전 명단 발표…유병수-신형민 대표팀 복귀 |확인날짜=2010-10-04 |출판사=마이데일리}}</ref> 경기가 끝나기 9분 전에 교체 투입되며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11년 AFC 아시안]]을 앞두고 예비 명단에 소집되었고, 연습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1969448 |제목='유병수 해트트릭' 조광래호, 단국대와 연습경기서 8-0 대승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0-12-19}}</ref><ref>{{뉴스 인용|url=http://www.ibest11.com/Country/news_01_view.asp?iBoard=5&iIDX=32713 |제목=유병수, 아쉬움 떨치고 ‘조광래호 병기’로 거듭나나 |출판사=베스트 일레븐 닷컴 |날짜=2010-12-24}}</ref> 또한,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지동원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해주는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2302056282239&ext=na |제목=지동원 골-유병수 AS, 박주영 공백은 없다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2-30}}</ref>
         [[2011년 AFC 아시안]] 최종 명단에도 포함되었고, 몇몇 경기에 조커로 출전하면서 대표팀이 3위 성적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colspan="2" width=10%|국내
         !colspan="2" width=10%|리그
         * [[크라운 프린스 득점왕]]: [[크라운 프린스 2011-12|2011-12]]
         {{2011년 AFC 아시안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전지수 . . . . 11회 일치
         <!-- ISU 월드 -->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 1차 여자 3000m 계주 1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 2차 여자 1000m(1) 3위, 3000m 계주 2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 3차 여자 500m(2) 3위, 3000m 계주 2위
         * [[2006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 4차 여자 1000m 4위, 3000m 계주 3위
         * [[2007년]] 06-07 ISU 쇼트트랙 월드 6차 여자 500m(1),500m(2) 3위, 3000m 계주 2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 1차 여자 500m 4위, 1000m(1) 4위, 3000m 계주 1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 2차 여자 500m(1) 3위, 500m(2) 2위, 3000m 계주 1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 3차 여자 3000m 계주 1위
         * [[2014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 4차 여자 500m 2위, 3000m 계주 2위
         * [[2015년]] 14-15 ISU 쇼트트랙 월드 6차 여자 3000m 계주 2위
  • K리그 클래식 . . . . 9회 일치
         K리그는 [[수퍼리그]] 시절부터 승강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승강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팀이 창설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것이 월드 유치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약간의 축구붐이 조성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업팀의 프로화를 통한 K리그 참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상황.
         이 와중에 아시아 축구를 총괄하는 AFC는 [[모하메드 빈 함맘]](이하 함맘) 회장이 집권하던 시기부터 아시아 클럽 대항전을 손보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함맘이 회장에 당선된 시기는 2002년, ACL이 개편되어 시행된 건 2003시즌부터다.] 그리고 개편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참가팀 수를 [[UEFA 챔피언스 리그]]와 마찬가지로 32개 팀까지 확대하는 한편, [[AFC]]의 정립까지 상당 부분을 손보게 된다.
         허나 기존에 비해 월등히 경기수가 많아진 44경기이기 때문에 [[K리그 리그]]대회는 폐지가 불가피해지게 되었다. 이는 리그에 대해 AFC가 아시아 클럽 대항전에 배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발표함으로써 K리그는 리그이 폐지되는 원인이 된다.
         나머지 1개 티켓은 K리그의 결과에 따라 부여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FA]]의 결과에 따라 진출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는 대한민국 FA 문서에서 다룬다.
         [[대한민국 FA]]
         [[FIFA 클럽 월드]]
  • 이광훈 (축구선수) . . . . 9회 일치
         !colspan="2" width=10%|국내 FA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년 만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4:1 승리에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FC U-19챔피언십)한국, 이란 꺾고 4강 진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48220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2-11-12}} }}</ref> [[2013년 FIFA U-20 월드]]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는 후반 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왔으나 실축해 한국의 4강 진출이 실패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U-20 월드) 빛나는 용병술, 이광훈 천금 동점골...현재 2-2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01848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3-07-08}} }}</ref>
         * [[FA (대한민국)|FA]]
         ** 우승 2회 : [[FA 2012|2012]], [[FA 2013|2013]]
         {{2013년 FIFA U-20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강릉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FIFA U-20 월드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광주 FC . . . . 8회 일치
         광주 FC의 창단은 1996년 월드경기장 유치과정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2 월드 개최지로 한국과 일본이 선정되면서 각 지방에서는 월드경기장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고, 광주광역시가 개최도시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다.
          1. 월드 종료 후에 축구전용구장을 종합운동장으로 개조하여 활용하는 방안
         이에 당시 [[상무 축구단]]이 프로화를 고려하고, 이걸 감지한 각 지역은 상무 축구단을 유치하고자 하였는데 여기에 광주광역시도 유치흐름에 참가하여 광주 상무 불사조가 탄생하게 된다. 단, 여기에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시적 연고협약으로 맺어졌고, 광주광역시는 위 대안중에서 2번과 4번을 혼합하는 방안으로 월드경기장을 활용하게 된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리그은 기록의 편의를 위해 딱히 기재하지 않는다.
         ||<|2> 시즌 ||<:-3>리그 ||<|2> [[대한민국 FA]] ||<|2> [[AFC 챔피언스 리그]] ||<|2> 비고 ||
  • 김대호(축구선수) . . . . 8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철공고를 졸업하였으며, 2007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지명된 뒤 숭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06년 3월 5일에 숭실대 소속으로 굿 부앤부 FC전에서 FA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2010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고 2010년 3월 20일에 강원전에서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뤘다.
         ( )는 리그 기록이며 리그 기록과 별도로 표기하였다.
         || 시즌 || 클럽 || 리그 출전 || 리그 골 || 리그 도움 || FA 출전 || FA 골 || FA 도움 || ACL 출전 || ACL 골 || ACL 도움 ||
         || 리그 || 1경기 || - || - ||
         || FA || 17경기 || 1골 || 1도움 ||
         || FA || 2회 || 2012, 2013 ||
  • 신지애 . . . . 8회 일치
         2015년 11월 말에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투어 챔피언십 리코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장정 - [[전인지]]에 이어 커리어 한/미/일 메이저 타이틀 석권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로써 2014년 4승에 이어 3승을 거두며 클래스를 재확인시켜 주었고 마지막 대회 우승으로 총 상금이 1억엔을 돌파하며 시즌 상금 3위 - 메르세데스 랭킹(대상) 5위 - 평균 타수 4위 등의 뛰어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18년 5월에 열리는 JLPGA 첫 메이저 대회인 ''살롱파스 -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JLPGA 시즌 첫 승 및 JLPGA 통산 2번째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2007 KLPGA 투어 MBC투어 엠씨스퀘어 크라운CC 여자오픈
         2008 KLPGA 투어 '''하이트 여자프로골프 챔피언십'''
         2014 JLPGA 투어 메이지
         2015 JLPGA 투어 '''LPGA투어 챔피언십 리코'''
         2018 JLPGA 투어 '''살롱파스 -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2018 JLPGA 투어 '''일본여자프로골프선수권대회 코니카미놀타'''
  • 이선희 . . . . 8회 일치
         아직 정규 앨범 한 장 없이 오직 <J에게>란 곡 하나만으로도 11월 25일부터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을 차지하였고, 19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19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6년 3집 앨범 《[[알고 싶어요]]》가 발매되었다. 1987년, 대표곡 <알고 싶어요>가 KBS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을 두 번째로 차지하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1위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 외 <영>, <어둠은 걷히고>, <청아한 사랑> 등이 히트했다. 또한 학생가장돕기를 위한 전국 투어를 계속 진행했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자리|사랑이 지는 이 자리]]》에서 <나 항상 그대를>로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해 3번째 골든을 수상했다. 또한 70년대 신중현과 뮤직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해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도 히트하였다.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부르기도 하였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나의 거리>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4번째 골든을 수상하였고, <한바탕 웃음으로>는 1990년에 3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 <겨울애상>,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 [[1월 6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
         ** [[4월 29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
         ** [[6월 8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
         ** [[9월 17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
  • 장남석 . . . . 8회 일치
         [[2006년]] [[대구 FC]]에서 데뷔하여, 그 해 [[FA 2006|FA]] 득점왕에 올랐다. [[대구 FC]]의 주장을 맡았다.
         !colspan="2"|[[FA (대한민국)|FA]]
         !colspan="2"|[[K-리그 대회|리그]]
         * [[2006년]] [[FA (대한민국)|FA]] 득점왕
  • 최재우 . . . . 8회 일치
         <!-- FIS 월드 -->
         7세 때 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 모굴 스키에 입문하였다. [[서울유현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에 캐나다 블랙콤에서 열린 스피릿 시리즈 하프파이프 경기와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 1위를 했고, 같은 해에 실버스타 스키장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모굴 1위, 듀얼 모굴 2위를 기록했다. [[2007년]]에 캐나다 사이프러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청소년 모굴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으며, 2009년 1월 31일에 대한민국 대표로 발탁되어 [[일본]]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6위를 기록하였다. 2월에도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부문 20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2009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부문에서 26위, 듀얼 모굴 부문에서 22위를 기록하였다. 그 해 8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에 참가하여 21일에 진행된 모굴 경기에서는 35위, 다음 날에 열린 경기에서는 13위에 올랐다.
         이듬 해인 2010년 1월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생애 첫 [[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월드]]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38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2월에 캐나다 퀘벡 주의 발생콤 리조트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캐나다의 [[마르크앙투안 가뇽]]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모굴 부문과 듀얼 모굴 부문에 출전했다. 모굴 부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레이헤르트]]와 일본의 [[우에노 오사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르마쇼프]]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듀얼 모굴 종목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바르마쇼프와 일본의 우에노, [[쓰키타 유고]]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2년에 [[캘거리]], [[나에바]] 등지에서 열린 월드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손드리오 현|손드리오]]의 마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2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의 [[브래들리 윌슨 (스키 선수)|브래들리 윌슨]], 스웨덴의 [[루드비그 피엘스트룀]]의 뒤를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의 듀얼 모굴 종목은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 8월 16일에는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3년에는 [[노르웨이]] [[보스 (노르웨이)|보스]]에서 열린 [[2013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50.00점을 획득하여 캐나다의 [[미카엘 킹즈버리]], [[알렉상드르 빌로도]], 미국의 [[패트릭 데닌]], 오스트레일리아의 [[맷 그레이엄 (스키 선수)|맷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듀얼 모굴 종목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모굴 부문 29위, 듀얼 모굴 부문 5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에서 8위에 올랐으며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2월 10일에는 소치 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부문에 출전하여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결승에 올랐다. 이후 결승 2차전에서 첫 번째 공중 회전을 하고 착지한 뒤 내려오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고 코스에서 이탈하여 실격 처리되었다.
         2018년 3월 12일 [[일본]] [[아키타현]] [[센보쿠시]]의 [[다자와호]]에서 열린 FIS 월드 참가 도중 동료 선수 [[김지헌 (스키 선수)|김지헌]]과 함께 음주를 하고 동료 여자 선수들에게 음주 강요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추행 및 폭행을 한 것이 발각되어 [[대한스키협회]]로부터 영구제명 되었다.<ref>{{뉴스 인용 | 제목=모굴 스키 국가대표 최재우·김지헌, 동료 여선수들 성추행 ‘영구제명’ |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57671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윤승민 | 쪽= | 날짜=12018-03-14 | 확인날짜=2018-09-17}}</ref>
  • AFC 회원 랭킹 . . . . 7회 일치
          1.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대회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으로 한정한다.
         === AFC ===
         산정방식은 ACL과 동일하나 '''AFC 에서 얻은 1포인트는 ACL에서 얻는 1/3 포인트로 환산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즉, AFC 에서 승리해 3점을 얻어도 마지막에는 1/3점으로 깎이기 때문에 ACL에서 무승부를 거둬 얻는 1점과 동일하다는 것.
         FIFA 랭킹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도 특이한 부분이다. UEFA는 월드 진출이나 유럽 국가대항전과 관련한 시드배정에 UEFA 계수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의 대회진행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점 때문으로 해당 대회들은 이 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맞붙을 일은 전혀 없다. 동아시아든 서아시아든 획득하는 클럽점수의 상당부분은 같은 지역끼리의 대결을 통해 얻으므로 아시아 지역 전체를 총평하는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여기에서 나오는 점수를 통해 ACL 티켓을 부여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건 좋으나,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ACL 티켓 부여는 서아시아와 동아시아가 따로 돌아가는 상황을 막을 수 없으며, AFC 에 참가하는, 일명 축구 개발도상국은 만약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이 좋아 포인트를 상당히 축적해도 ACL 참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이민아 (축구선수) . . . . 7회 일치
         * [[2008년 FIFA U-17 여자 월드]] 국가대표
         *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 국가대표
         * [[2012년 키프로스]] 국가대표
         * [[2013년 EAFF 여자 동아시안]] 국가대표
         * [[2015년 EAFF 여자 동아시안]] 국가대표
         {{2008년 FIFA U-17 여자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 한준희 . . . . 7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 (축구)|인터콘티넨탈]]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독일 월드]]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KBS 2TV]] : [[따봉 월드]]
  • 정몽규 . . . . 6회 일치
         2011년 제9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선출돼 당시 선수들의 승부조작 사건 등을 단호하게 처리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2016년 제53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FIFA 클럽월드조직위원회 위원(2013-2016), AFC 집행위원회 위원(2015-2017), AFC 아시안 조직위원회 부위원장(2015~현재), 발전위원회 위원(2015~현재), FIFA 20세월드 조직위원회 위원장(2016~현재), [[2016리우올림픽]] 선수단 단장(2016), [[AFC심판위원회]] 위원장(2016~현재), [[AFC]] 부회장(2016~현재), [[대한체육회]] 부회장(2017~현재), [[FIFA 평의회]] 위원(2017~현재),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2018~현재)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FIFA평의회]] 위원으로 선출된 후 중국, 일본, 북한과의 ‘2030 월드 공동개최’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 2016.03 ~ 2017.09 : [[2017년 FIFA U-20 월드]] 조직위원회 위원장
         * 2013.08 ~ 2016.12 :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 조직위원회 위원
  • 천제훈 . . . . 6회 일치
         '''천제훈'''(千制訓, [[1985년]] [[7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현재 [[내셔널리그 (대한민국)|내셔널리그]]의 [[목포시청 축구단|목포시청]] 소속으로 뛰고 있다. 정규리그에서는 골을 기록하지 못했으나 2006년 [[FC 서울]] [[리그 2006|대회]] 우승을 확정짓는 동점골을 기록하였다.
         * [[K리그]] 우승 1회 : [[리그 2006|2006]]
         * [[K리그]] 준우승 1회 : [[리그 2007|2007]]
  • 구성윤 . . . . 5회 일치
         ====== [[EAFF 동아시안/2015년|2015년 EAFF 중국 동아시안]] ======
         2015년 [[동아시안]]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7월 20일 [[슈틸리케호/2015년 EAFF 동아시안|슈틸리케호]]의 최종 엔트리에 처음 포함되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일본에서는 꽤 인정을 받는 골키퍼기 때문에 2018 러시아 월드 한국 대표팀에 구성윤이 뽑히지 않자 한국의 두터운 골키퍼 층을 부럽다는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도 있었다.[[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sports&wr_id=281364]]
  • 배천석 . . . . 5회 일치
         2011년 7월, 숭실대를 중퇴하고 일본 [[J리그]] [[비셀 고베]]에 입단하였으나, 리그 3경기, 대회 1경기 출장에 그친 뒤,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고 9개월간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일본에서 시련, 강한 정신력 가져”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805|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4-02}} }}</ref><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대학 후배 앞에서 체면 차렸죠"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251282|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13-05-09}} }}</ref>
         * [[FA (대한민국)|FA]]
         ** [[FA 2013]] 우승
         {{2007년 FIFA U-17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이성희(배구감독) . . . . 5회 일치
         ||'''지도자'''||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 코치 (2002~2003) [br]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수석코치 (2003~2008) [br]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 (2008~2010) [br]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09) [br] [[대전 KGC인삼공사|KGC인삼공사]] 수석코치 (2011~2012) [br] [[대전 KGC인삼공사|KGC인삼공사]] 감독 (2012~2016) [br] [[원곡고등학교]] 코치 (2016~2017) [br] 고창흥덕초등학교 감독 (2018~) [br] AVC(아시아배구연맹) 여자배구대표팀 코치 (2018) ||
         2018년 9월에는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이 이끄는 AVC(아시아배구연맹) 여자배구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다.
         저렇게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이성희에게도 유일한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디오 판독]]을 의외로 잘 활용한다는 것.[* 실제로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챌린지]]로 두 차례나 오심을 이끌어냈다.][* 이와 180도 대조되는 사람으로는 [[박미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심판]]의 오심을 잘 캐치해 낸다는 것이다. 오심을 이끌어서 오심의 달인으로 등극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영입되기 전에 실제 2010년 KOVO 대회부터 2010-2011 V리그 대회까지 재직한 경기감독관 경력에도 한 몫 하는 듯.
         이 때문에 배구 팬들 사이에선 감독보다 경기감독관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돌고 있으며, 2017년 KOVO 대회부터 경기감독관을 맡는다고 하였다. 다만, 정작 경기장에 안 나오는 걸로 봐선 사후판독관으로 있는 걸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이는 2017년 KOVO 대회때 잠깐 경기감독관으로 나온 심순옥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사후판독관으로 있던 [[강성형]]이 현 배구 국가대표 후보 선수 팀 감독으로 가면서, 심순옥이 사후판독관으로 바뀐 듯 하다.][* 다만, 기존 경기감독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생길 경우, 일정기간 사후판독관이 대타로 경기장에 오기는 한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5회 일치
         ||<width=125><:>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 2013년 MVP. 2014년 대회는 [[2014 FIBA 농구 월드 스페인|FIBA 농구 월드]]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인천 아시안 게임]] 때문에 개최되지 않았다.][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스]])''' ||<:> → ||<width=125><:> [[김시래]][br]([[국군체육부대|상 무]]) ||
         2017 윌리엄 존스에 같이 군에 입대한 [[허웅(농구선수)|허웅]], [[임동섭]]과 함께 발탁되었다. 1차전 대만 B전에 18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경기 중 좋은 슛감을 뽐냈고, 대만의 귀화 용병 선수를 잘 막아 대만 B전의 승리를 이끌었다.
         레바논에서도 열린 2017 FIBA 아시아에서도 대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오세근과 함께 내외곽을 넘나드는 스트레치 포워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 디시 [[농구 갤러리]] 한정 '이용수'라고 불린다. 바로 '''용'''병 '''수'''비를 줄인 말인데, 이승현의 용병 수비에 대한 몇몇 팬들의 과도한 쉴드로 생겨난 별명이다.[* 다만 페인트 존에서 웨이트 싸움으로 용병 수비가 어느정도 가능한 국내 빅맨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5-16 시즌 6강 플레이오프 동부와의 경기에서는 '''수'''비의 '''왕'''이라는 기사[[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64&aid=0000004705|#]]가 나오면서 '이수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2017 아시아 이란전에서도 하다디를 틀어막으며 고군분투하자 '''외'''인'''수'''비 전담이라 해서 '''이외수(...)'''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 최원권 . . . . 5회 일치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 [[슈퍼 (대한민국)|슈퍼]] 우승 1회 (2001년)
         * [[리그 (대한민국)|리그]] 우승 1회 (2001년)
  • 퓨어킴 . . . . 5회 일치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슴사이즈를 언급했는데, "어려서는 글래머 몸매가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타고난 것을 어쩌겠느냐", "노래보다 몸매만 회자되면 당연히 속상하겠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 사이즈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미국 속옷 가게에서도 찾기 힘든 사이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는 "가슴이 좀 많이 큰데, 예쁘게 큰 게 아니라 좀 특별하게 커요.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거 보면 ‘아유, 웃기네’, ‘음, 별 거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발언들로 미뤄 보아 최소 J 이상은 확정이고[* 화성인 바이러스 기준으로 가장 큰 사이즈가 I녀였다. 다만 해당 인물은 이후 축소수술을 통해 풀B 정도로 확 줄였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사이즈 최대치를 한국 기준으로 환산한 [[초유|K~L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 한교원 . . . . 5회 일치
         3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림같은 시저스 킥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및 전북 소속으로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그냥 시저스 킥도 아니고, 등 뒤에서 넘어오는 공을 등진 자세임에도 다리에 정확히 맞춰 넣은 초고난이도의 골. 다만 이러한 활약을 보인 것과 다르게 시즌 전반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 휴식기를 보낸 이후 폭발적인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팀 전술에 녹아들었고, 활약도도 급상승하였다.
         2018 시즌에 개막전인 [[울산 현대]]전에서 [[이동국]]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작렬했다. 연이어 펼쳐진 [[AFC 챔피언스리그]] [[톈진 취안젠]]전에서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AFC선정 베스트일레븐에 올랐다. 이후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했는데, 부상 복귀 후에는 한결 좋아진 폼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력과 별개로 스탯을 쌓는 스탯 사기꾼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전북 측면의 핵심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고 공격 포인트도 꽤나 기록하고 있다. 울산의 [[김인성]]과 더불어 국가대표로 실험받아도 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 자리의 경쟁자로는 월드도 경험했고 올 시즌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인천의 [[문선민]]이 있는지라 국가대표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공교롭게도 세 선수 모두 빠른 주력을 무기로 삼으며, 김인성과 한교원은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의 선수이고 문선민은 현 인천의 선수.
         11월 14일 [[요르단]] 원정 평가전에서 [[차두리]]의 크로스를 깔끔한 헤딩슛으로 연결해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고, 이 경기가 1-0 승리로 끝나면서 이 골이 결승골이 되었다. 이날 원톱으로 출전한 [[박주영|어느 부두술사]]가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공격측면에서 지리한 경기가 될 뻔했는데 한교원의 득점 덕분에 의미있는 평가전이 될 수 있었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 대표에 선발되었다.
         2015 아시안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그러나 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14시즌만 못하던 차에 박대한을 폭행하고 퇴장당한 경기를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10&aid=0000243677&|슈틸리케가 관전했기에]]''' 여름 평가전 차출에 적신호가 커졌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역시 사고를 친 [[이범영]]과 함께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재성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이청용이 부상에서 회복한데다 이종호, 김승대 등이 동아시안에서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잡은지라 대표팀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슈틸리케호에서도 갑자기 흥분해서 옐로 카드를 받은 전적이 있었는데, 물론 커리어를 통틀어 보면 이런 일이 거의 없는 선수이긴 하나 슈틸리케 감독 눈 앞에서 두 번이나 저질러 버린 터라 천천히 그런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사실 국가대표에까지 오르내리는 스타가 된 이후 받는 압박감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새롭게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없다면 국대에 재승선은 어려울 것이다. ~~전북 현대에서 빨리 심리상담 시켜라~~
  • 그랜드슬램 . . . . 4회 일치
          * 축구 : 축구에 한정하여 쓰이는 그랜드슬램이라는 용어는 특정 팀이 거둔 업적을 평가하는게 아니라 특이하게 [[FIFA]] 주관대회를 얼마나 많이 개최하였느냐에 따라 다르다. 여기에 해당하는 대회는 월드, 컨페더레이션스, U-20 월드, U-17 월드이 여기에 해당된다.
  • 김성주(축구선수) . . . . 4회 일치
         4월 11일 [[선문대학교]]와의 [[대한축구협회 FA/2015년|FA]]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전반 30분 오창현의 드로인을 머리로 받은후 오른발로 접어 상대 수비와 골키퍼를 속인 뒤 왼발슛으로 첫골을 기록했다. 팀은 2:0으로 승리하여 32강전에 진출했다.
         4월 29일 [[울산 현대]]와의 [[대한축구협회 FA/2015년|FA]] 32강전 원정경기에서 83분 김창욱선수와 교체되며 투입되지만 타라바이가 퇴장을 당하며
  • 박철우(배구) . . . . 4회 일치
         ||||||||||||<table align=center> '''2006 KOVO 프로배구 MVP''' ||
         ||||||||||||<table align=center> '''2008 KOVO 프로배구 MVP''' ||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 진선유 . . . . 4회 일치
         <!-- ISU 월드 -->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2007/2008 6차 월드에서 중국 선수의 몸 싸움에 밀려 오른쪽 발목 바깥쪽과 안쪽 인대에 모두 손상을 입었다.<ref>{{뉴스 인용
         {{ISU 쇼트트랙 월드 여자 종합 우승자}}
  • 최수범 . . . . 4회 일치
         * 9월3일 현재 감독을하고있는 삼성이 롤드예선을 kt에 19대0 의 상대전적에도 불구 3:2로 승리함으로써 롤드행 확정
         * [[2003년]] [[4월 19일]] KTF EVER 프로리그에서 [[성학승]]을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는 방송경기 사상 최초 무승부이다.
         * [[2008년]] 경남-STX 마스터즈 2008 4위
  • 최흥철 . . . . 4회 일치
         1996년에 대한민국 스키 점프 국가대표가 되어 FIS 과 콘티넨털 등의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이듬 해인 1997년 12월 20일에 스위스 엥겔베르크에서 열린 FIS 월드에 참가하여 월드 데뷔를 했으며 라지힐 개인전 경기에서 25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노멀힐 개인전에서 46위, 라지힐 개인전에서 40위를 기록했다. 그 후 당시 코치였던 최돈국 코치가 물러나면서 팀이 공황에 빠지었지만[* 이 때문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였다.],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계속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 김희철(1983) . . . . 3회 일치
         애니메이션의 장르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이것저것 챙겨보는 듯 하다. 클템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사무라이 참프루]] 졸라 재밌던데 봤어?"라고 하거나 게임중에 [[쥐라기 월드]]의 여는 노래를 부르면서 같이 게임하는 팀원들의 어그로를 끌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레전드 방송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게임도 즐긴다. [[리그 오브 레전드]] 랭크 게임에서 다이아 티어에 서식하고 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와 친해서 방송에 시시때때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박정석]]과는 서로 욕설(...)까지 주고받는 동갑내기 친구 관계다. 2016년 롤드 당시에는 게임방송국 [[OGN]]에서 객원해설로도 출연하며 적당히 게임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OGN 측이 나름 챙겨준다고 출연료를 챙겨줬지만 원래 희철의 몸값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나가겠다고''' 적극 주장해 출연했으며, 원만한 진행 능력&게임 지식을 발휘해 일반적인 객원 해설보다 훨씬 더 퀄리티 높은 해설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wEu2bY5KI|해설영상]]. 이 해설을 기반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견해도 알 수 있다([[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5285&iskin=esports|인터뷰]]). 그 밖에 트위터에 이특과 [[킹 오브 파이터즈]]를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것을 보면 롤 이외의 게임도 즐기는 모양. 이특이 [[야가미 이오리|이오리]] 안 시켜주고 시원이 닮은 [[로버트 가르시아]]로 얍삽이만 쓴다고 폭로했다. 또한 2017년 2월에 있었던 SBS [[게임쇼 유희낙락]] 녹화중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스트리머)|케인]]의 킹오브 방송을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고 언급하였고, 실제로 케인을 해당 방송에 섭외해서 녹화도 했다.[* 이때 섭외 과정에서 5개월 구독을 끊었다가 희철을 사칭으로 오해한 케인에게 생방으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는데, 이를 계기로 케인과 친구를 먹고 이후로는 케인의 방송에서 시청자들과 채팅도 종종 주고받고 있다.]2018년 1월18일 케인의 방송에 출현했다[* 출연 계기는 다른 연예인들과 술마시던 중에 갑자기 케인이 보고싶어서 전화했더니 왔다고 한다. 그에 고마움을 느껴 합방제의를 했고, 뒤늦게 정신차렸지만 이미 뱉은 거 책임진다는 마인드로 합방을 하게 됐다고]~~케조씨도 희님덕분에 만명찍었다 그와중에 만명이면 적게보네라고한 희님 흠좀무 인스타라이브만 3~4만명보는데~~ 이 방송에서 단 1초도 오디오가 비지 않게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줘..." "야 누가 00게임 얘기 꺼냈냐" "뇌 용량이 얼마인거냐" "박찬호를 능가하는 투머치토커다" "귀에서 피 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단하기도 대단한 것이 게임 캐릭터의 인상착의, 배경음악, 스킬, 줄거리와 엔딩, 감상평까지 자세히 말을 하여 정작 방송의 주인인 케인은 아주 가끔 한 마디씩 끼워넣는 것 말고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음성 도네로 에미넴 비트를 깔며 랩 드립을 쳤다.
          * [[2016 롤드]]의 [[리그 오브 레전드 2016 시즌 월드 챔피언십/16강/D조|D조 2주차]] 객원 해설을 맡았다. 처음 섭외 소식이 나왔을 때 [[롤 인벤]]에서는 웬 연예인이냐고 까는 [[급식충]]들이 많았지만, 김희철이 워낙 롤쪽으로 쌓아온 이미지가 두텁고, 예전 나캐리에서 출연해서 보여줬던 뛰어난 롤 지식과 티어도 다이아로 나름 높다[* 다이아면 롤 유저 상위 1.7%이다.]는 건 유명하기도 해서, 알던 사람들 중에선 "객원의 의미나 사전에서 찾고 와라 아그야.", "신의 섭외." 라는 등 되려 급식충들을 까는 여론이 더 많아졌다. 여담으로 김희철의 객원 해설 출연 계기는 아프리카 특집 방송인 '승부의 신'에서 깜짝 전화통화 후 객원해설 섭외가 들어왔는데, 스케줄이 빡빡했지만 객원 해설이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쿨하게 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소속사 결정 없이 자의로 한 거라, 소속사에서 엄청 멘붕했다고 한다. 출연료는 때마침 출시 예정인 '별 수호자 스킨'[* 컨셉이 마법소녀다. 프로모션 영상도 딱 일본 애니처럼 나왔다.]때문인지는 몰라도 RP(롤 게임머니)로 달라고(...). 정작 출연해서는 아프리카 갠방으로 하는 편안한 객원해설인 줄 알고 수락했는데 알고 보니 OGN에서 본격적으로 하는 객원 해설이라 당황했다고 한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3회 일치
          * 상위항목: [[대한민국 FA]]
         || 대회일정 || 2016년 3월 12일(토) ~ 2016년 12월 3일(토)[* 단, FA 결승전 진출팀 중에 ACL 결승전에 진출팀이 없다면 11월 26일로 변경] ||
         21번째 [[대한민국 FA]] 대회로 정식 명칭은 '''2016 KEB 하나은행 FA CUP'''이다. 후원사는 명칭을 보면 알겠지만 KEB 하나은행.
  • 도영(1996) . . . . 3회 일치
          * [[태용]]은 도영을 종종 유리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루키즈 시절 인터뷰에서는 '도영이는 깨지기 쉬운 유리같은 사람, 외모처럼 마음도 여려서 상처도 잘 받고 삐지기도 잘하는데 엄청 착해서 다른 사람한테 엄청 상냥하고 다정하거든요. 그래서 맑고 투명하고 예쁜데 깨지기 쉬운 유리'라고 이야기하였고 데뷔 이후에도 '팀내에서 가장 똑똑해서 가끔씩은 가장 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유리 같은 친구'라고 말한 적이 있다. 태용은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타는 멤버로 도영을 꼽기도 하였다. 아이돌룸에서 밝히기로는 아예 핸드폰 연락처에도 '도영글라스'라고 저장해두었다고.
          * 2018 평창 SM 워크샵에서 직원과 함께하는 듀엣가요제 코너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탔다. 곡명은 [[이지훈(가수)|이지훈]]&[[신혜성]]의 인형.[* 후에 듀엣이 가능한 버전으로 에브리싱에 영상이 올라왔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NCT 전 멤버가 일어나서 환호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보고는 월드인 줄 알았다고 한다. 상금은 직원분의 몫과 합쳐서 1000만원이었는데 NCT 18인이 지금까지 전원 모여서 회식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상금으로 회식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국 2018년 7월 NCT가 [[엘리트(교복 브랜드)|엘리트]] 교복 모델이 되어 촬영을 위해 18명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그 날 저녁 회식을 쐈다고. --윈윈:멋있어요 도영형 역시 본부장ㅎㅎ-- [* 엔나나에서 밝혀진 바로는 테이블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3~4인분 정도는 먹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루카스로 지성의 증언에 의하면 약 10인분 정도 먹은 것 같다고.] 또 동 워크샵에서 EDM 파티도 즐기고 온 것 같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하는 사람인데 조명이 반짝반짝하고 음악이 울려서 그 순간 음악에 취해 처음으로 신남을 느꼈다고 밝혔다.
          * 여행을 가면 숙소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만약 경비가 100만원이면 그 중 80만원은 호텔에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음식은 꼭 좋은 걸 먹지 않아도 현지에서 파는 라면이면 괜찮다고 한다.
  • 박성배 . . . . 3회 일치
         '''박성배'''(朴成培, [[1975년]] [[1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청주대성고등학교|청주상업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11 AFC 아시안]] 당시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다이노스]]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고 2005년 [[FC 서울]]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바로 [[부산 아이파크]]로 임대를 갔고 그 후 2006년에는 정규 리그와 리그에는 전혀 출전하지 못하고 2군 리그인 [[R리그]]에서만 뛰다가 2007년 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ref>[http://soccerlove.co.kr/news/news_detail.asp?idx=59399&cat=223&pg=141 재기 노리는 박성배-정광민 '팀공격력 내게 맡겨!]</ref>
         {{2000년 CONCACAF 골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세정(구구단) . . . . 3회 일치
          *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양희은]] 씨와의 듀엣곡 <엄마가 딸에게>가 공개되었다. 박세현 모녀와 함께했으며 수화 장면이 함께 실렸다. 이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 축구 국가대표 출정식 행사 축하무대에 빅스 레오와 함께 올랐다. 공식 응원가인 <우리는 하나 We the Reds>를 함께 불렀으며 큰 환호를 받았다. 이날 저녁에는 이태원 롭스에서 아크웰 팬사인회가 진행되었으며 5월 21일과 28일 밤 9시 30분부터는 구구단 세정과 나영, 워너원 강다니엘, 옹성우가 출연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방송되었다. 해당 방송을 통해 프로듀스 101 시즌2 촬영 당시 [[강다니엘]]의 롤모델이 세정이었음이 다시 한 번 알려졌다. 요리를 못 하기로 유명한 세정인데, 어머니가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게끔 만들어주신 요리가 냉동실에 가득 들어차있는 장면을 보면 왜 세정이 요리를 못하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요리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리 정돈을 안 하는 세정의 성격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요리 잘하는 주부들도 냉장고 특히 냉동실 정리정돈을 안하면 이런 경우가 생긴다. 참고로 세정은 구구단 멤버들 중 정리정돈을 안하는 쪽으로 독보적인 No.1이다.]
          * [[갈릴레오 : 깨어난우주]] 출연자들이 입국을 할 때 세정 혼자 공항에 보이지 않아 팬들 사이에 작게나마 논란이 되었으나 V앱[* 이때의 V앱에서 프로듀스 48 출연자들을 위한 응원과 조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거기서 경쟁하지 마세요. 서로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면 같은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멋진 무대 여러 번 만들고 가야지 하고 임하면 최고로 잘 될 수 있을 거에요. 절대 경쟁하지 마세요. 경쟁하려는 순간 너무 경쟁자가 많아져요. 그냥, 좋고 멋지고 예쁜 무대를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LA에서 볼 일[* 엠바고가 걸렸는지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을 보고 귀국했음을 설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 출전을 맞이해서 빅스 레오 및 구구단 멤버들과 함께 응원 공연을 몇 차례 가졌다. 독일전 2:0 승리를 끝으로 한국 대표팀의 월드 일정과 그에 동반된 응원 행사가 마감된 이후인 6월 29일에는 tvN 짠내투어 촬영을 위해 승리(빅뱅), 조세호 등과 함께 중국 푸젠성 샤먼으로 출국했다.
  • 송병구 . . . . 3회 일치
         * 2008년 8월 12일 경남 STX 마스터즈 2008 준플레이오프 SKT vs 삼성전자 1세트 김택용 승
         * 2010년 8월 2일 경남 STX 마스터즈 2010 8-9위전 3세트 손찬웅 승
         * 2014년 배달넷 ESTV 시즌2 우승 (3:1 [[이정훈 (프로게이머)|이정훈]])
  • 식극의 소마/208화 . . . . 3회 일치
          * 이에 대항하는 소마는 태평하게 " 야키소바"같은 아이디어나 내고 있는데 한술 더 떠서 제면기로 반죽을 시작해 웃음거리가 된다.
          * 소마는 조리는 제대로 시작했지만 컨셉이 글러먹었다. 반역자 동료들은 최악의 카드인 소바를 뽑은 데다 요리는 " 야키소바"로 하겠다는 소마의 결정에 아연해한다. 일단은 메밀가루를 체에 치면서 그럴듯하게 조리를 시작하고 있지만, 역시 속을 알 수 없다.
          * 그저 반죽만 했을 뿐인데 벌써 그녀의 승리는 확고해 보인다. 아자미는 박수 갈채를 유도하며 그녀를 응원한다. 소마에게 승산은 없어 보인다. 키노쿠니는 반죽하면서 소마가 " 야키소바"를 고른 것도 지적한다.
  • 안영준 . . . . 3회 일치
         ||<:><#0A6EFF> {{{#ffffff '''국제대회 경력''' }}} ||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8)[* 3X3 농구] [br] 2019 농구 월드 중국 아시아 예선 2라운드 1윈도우 (2018) ||
         아시안게임 본선에서도 숙소는 구리고 선수들은 다 배탈나서 밥만 먹는 열악한 환경에서 최고의 폼으로 팀내 에이스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다시피 했으나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중국에게 연장 접전 끝에 분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농구 월드 아시아 예선 2라운드 1차전에서 15분 출장하며
  • 정형돈 . . . . 3회 일치
         * [[MTV]] 《Live Wow Special with IUFC - 남아공 월드 승리 기원 콘서트 (6월 17일) : MC》
         * [[MBC]] 《MBC 뉴스데스크 (7월 31일) : 제53회 STX 전국 조정선수권대회 현장》
         * [[MBC]] 《MBC 스포츠 제53회 STX 전국 조정선수권대회 (8월 18일) : 대회참가자》
  • 최다빈 . . . . 3회 일치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 align=left | {{small|GP}} [[ 오브 차이나]] || || || || || || || 9 ||
         | 2017 [[ 오브 차이나]] (중국, 베이징)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2회 일치
         K리그는 1983년 발족한 이래 늘 가지고 있던 고민이 흥행이었고, 이 흥행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각종 리그운영을 포함한 제도적인 변경을 꾸준히 시도해 왔었다. 과거 [[리그(K리그)]]시절에 있었던 규정변경은 물론이고, K리그도 리그운영이 최초의 풀리그체제에서 스플릿제도로의 변화까지 있었던 운영변경점을 봐도 K리그의 흥행을 고려한 변경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K리그 . . . . 2회 일치
         시작은 5개 팀이었지만 어쨌거나 참가팀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1994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조직되고나서부터 KFA가 운영하던 때보다 좀 더 세심하게 "프로"리그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상당한 잡음이 생기긴 했으나 본격적인 지역연고정착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월드 유치와 관련하여 축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우 로얄스와 성남 일화,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이 ACL의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ACC)를 돌아가며 제패하는 등, 아시아 최상위 리그임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2002 월드 개최 이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개편에 영향을 받아 승강제가 정착하고, 이에 따라 현 스플릿 시스템까지 이르게 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K리그 우승자가 누군지. FA 우승자가 누군지 궁금하기보다 승강여부가 더욱 흥행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한 대회'''
         팀에서 임하는 자세가 라이벌전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해당 팀의 팬들은 물론이고 여타 팀들에게 있어서 팝콘뜯기 아주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셈. 덕택에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나누기나 FA 결승전을 뛰어넘는 흥행 카드가 되는 마술이 펼쳐진다. 팬들에게 있어선 우승에 대한 열망보다 승강이 더욱 중요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 강원 FC . . . . 2회 일치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민들은 2002 월드을 계기로 창단한 [[대구 FC]]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전부터 몇번 창단 준비를 했었는데[* 2005년도에 잠깐 논의는 있었으나 실제 참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01&aid=0001156686|참고기사]] 딱히 성과가 나지 않았으나 대구에 이어서 인천, 경남이 차례대로 창단과정을 거듭함은 물론이고, 컨소시엄의 붕괴로 팀이 해체할 뻔한 대전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장면까지 본 강원도는 '''"오려는 축구단이 없으면 시민구단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 시즌 ||<:-3>리그 ||<|2> [[대한민국 FA]] ||<|2> [[AFC 챔피언스 리그]] ||<|2> 비고 ||
  • 구자욱 . . . . 2회 일치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3할대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에 [[상무 야구단|상무]]-[[경찰 야구단|경찰]]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U-21 야구 월드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도루왕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 야구단]]에서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로만 나오고 중견수를 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 김국진(MC) . . . . 2회 일치
         [[김구라]]같이 영문과 출신인데도 불구, 정작 [[영어]]에는 능통하지가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 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 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 그래도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마을]]로 가는 에피소드에서 [[김성민(1973)|김성민]], [[이정진]], [[이윤석]] 등과 함께 그럭저럭 준수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 FIFA 월드 미국]]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반말]]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 김성현 (1989년) . . . . 2회 일치
         |대륙간 (야구) = 2010 대만
         {{2010년 인터콘티넨털 대한민국 선수 명단}}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2회 일치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 김시진 . . . . 2회 일치
         |야구 월드 = [[1982년]] 서울
         {{1982년 야구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 박세직 . . . . 2회 일치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1998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부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002 FIFA 월드 한국/일본|월드]]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 박용우(배우) . . . . 2회 일치
          *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설이 있다. 여친이었던 조안이 박용우의 배바지와 엄청 큰 메이커 버클벨트(...)를 하고 나온 모습에 반했었다는 발언(자기 딴에는 멋부린다고 부린거였다. [[유재석]]이 그 이야기를 듣고 동조했다.)과 [[2002 FIFA 월드 한국/일본|2002 월드]]이 지나도 한참 지난 어느 해, 고깃집에서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는 [[안선영]]의 목격담 때문에. 그런데 [[정장]]을 입은 모습은 제대로 [[간지폭풍]]이다.
  • 박정수(정치인) . . . . 2회 일치
         국제의원연맹 집행위원에 임명된 이듬해인 1996년, [[2002 FIFA 월드 한국/일본|월드]]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직을 요구했다가 신한국당 수뇌부에 의해 거절당하였다. 이 상황에서 외교전문가 영입에 몰두하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전국구 의원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당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이 되고 부총재를 역임한다.[* 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박정수를 포함한 보수적 인사들을 영입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오유방]], 정희경 등 민주정의당 출신 인사들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 백상원 . . . . 2회 일치
         |야구 월드 = [[2011년]] 파나마
         {{2011년 야구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손지창 . . . . 2회 일치
         * 1992년~1993년 [[빙그레]] 스 아이스볼 오렌지아이스 빵또아
  • 송주훈 . . . . 2회 일치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2회 일치
          * 네네가 기량을 유감없이 뽐내는 와중에 소마는 고심 끝에 " 야키소바"로 승부한다는 황당무계한 소릴한다.
          * 이렇게 동료들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줄까지 쥐고 승부에 임하는 소마. 그런데 그 소마가 소바의 달인을 상대로 선택한 메뉴는 ''' 야키소바'''였다. 그 황당한 선택에 화낼 기력도 없어진 동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 소리야"는 태클을 날린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2회 일치
         2006년 [[KBS 2TV]] 미스터 굿바이에 출연한 안재욱은 매니아층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FIFA 월드|월드]] 기간과 겹쳐 크게 빛을 보진 못했다.(최고 시청률 16.7%)
  • 우동균 . . . . 2회 일치
         |대륙간 (야구) = 2010 대만
         {{2010년 인터콘티넨털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이동찬(기업인) . . . . 2회 일치
         1995년 12월 아들 [[이웅열]]에게 코오롱그룹 회장직을 물려주고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002 FIFA 월드 한국/일본|2002년 월드축구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임채무 . . . . 2회 일치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대표작(?)은 2006년 초 [[돼지바]] 광고. 싱크로 높은 [[비론 모레노|모레노 심판]][* [[2002 FIFA 월드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의 그 심판 맞다] 코스프레로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그해 중순부터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며 예능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사실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이전인 90년대에도 종종 심야 예능[* 물론 그때는 예능이라고 안 부르고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불렀지만..] 프로그램에 나와서 꽁트연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 KBS 꽁트에서 카바레 사장님 역할로 나와, 당시 쓰던 닉네임 '채무림'[* 임채무를 미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임을 림이라고 한 것]으로 불리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 같은 코미디언들과 함께 연기했던 것.
         || 2006 || 롯데푸드 || 돼지바 || 2002년 한일 월드 모레노 심판 역 ||
  • 임현준 . . . . 2회 일치
         |야구 월드 = [[2011년]] 파나마
         {{2011년 야구 월드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전소민(배우) . . . . 2회 일치
         데뷔 약 10년만에 임성한 극본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의 (오디션을 통해) 여주로 캐스팅되었다. 이 때까지 원 없이 연기해 보고 싶은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원대로 일일드라마의 비중 높은 여주 역을 맡아 고난의 행군과 같은 촬영 분량과 기간을 감내해야 했다. 깡마른 체격임에도 툭하면 날밤을 꼬박새우는 등 한여름 무더위와 살을 에는 추운 겨울까지 밤잠없는 촬영 강행군, 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시간, 종종 끼니마저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좋은 연기를 해내었다. 이 드라마 초반의 풋풋한 모습이 드라마 종반으로 갈수록 제법 성숙한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3년 12월 29일 [[개그 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코너에 출연하여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를 패러디--라고 쓰고 폭풍디스--했다(...) [[http://tvpot.daum.net/mypot/View.do?ownerid=NFCuTYsUzgw0&clipid=55449486|#]] 들고 부들부들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뺨을 때리고 발로 차며 "나, [[오로라(오로라 공주)|오로라]]에요"라질 않나, 스토리랑 아무 상관 없다고 태클받자 "막장 이렇게 하는거 아니에요?"라며 천연덕스럽게 굴고, --[[브라우니(개그 콘서트)|브라우니]]의 탈을 쓴-- 떡대가 ~~암세포~~감기세포=생명이라 말하자 ~~개가 말을 해~~ "[[개소리]]"라며 때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죽자 "왜 나랑 있으면 다 죽는 거야?"라며 디스의 정점을 보여주며 떡대가 죽을 차례가 되자 자기 발로(...) 차고는 "떡대야~ 으흑흑"하며 돌변하는 태도가 압권.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임성한]] 작가한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실제로 [[인어 아가씨]] 주연이였던 [[장서희]]의 경우 "[[임성한]]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방송에서 수 차례 말한 바 있고, 심지어 [[인어 아가씨]]가 막장이 아니라고도 하였다.~~말은 바로 해야지...~~] 이에 소속사를 통해 "드라마는 드라마, 예능은 예능으로 봐달라"며 수습(?)에 나섰다. ~~왠지 진심이 느껴졌었던 것은 논외로 치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422927|#]]
  • 정찬성 . . . . 2회 일치
         그 후 랭킹 4위였던 [[ 스완슨]]이 6위 [[브라이언 오르테가]]에게 패배하며 오르테가가 4위, 스완슨이 5위가 되면서 정찬성이 6위가 되었고, 3위이던 리카르도 라마스가 라이트급에서 랭킹 밖에 있던 [[조쉬 에밋]]이라는 선수에게 1라운드 KO패를 당하면서 에밋이 '''무려 4위'''로 랭킹 진입하면서 정찬성의 랭킹은 한 계단 더 떨어져 7위가 되었다. 2018년 1월, [[최두호]]가 [[제레미 스티븐스|스티븐스]]에게 TKO패를 당하면서 스티븐스가 8위, 즉 정찬성 바로 아래가 되었고 스티븐스가 계속 정찬성과 싸우고 싶다고 했으나 [[조쉬 에밋]]과의 대결이 확정되었다. 정찬성 본인은 랭킹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모두 자신 아래에 있어야 할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2018년 8월 6일에 [[헤나토 모이카노]]가 [[ 스완슨]]을 이기면서 모이카노가 정찬성보다 상위 랭커가 되어 정찬성의 페더급 랭킹이 9위에서 10위로 한 단계 더 떨어졌다.
  • 차선우 . . . . 2회 일치
         [[무한도전]] 브라질 월드 응원단에 고정 출연할 때쯤, <MBC [[아육대/2014년#s-2|아이돌 풋살 월드]]>에 출연해서 학창 시절에 축구 선수를 꿈꾸었고, 가수가 아니었다면 축구 선수를 하였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듯, 준결승전에서 1골, 결승전에서도 시원한 중거리슛 1골을 넣었다. ~~다리 값을 하는구나~~
  • 청송군 . . . . 2회 일치
         [[2011년]] 1월 7일~9일 3일간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얼음골 빙벽장에서 [[2011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으로, 앞으로도 [[2020년]]까지 청송에서 매년 개최될 예정이다.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2회 일치
         <!-- ISU 월드 -->
         {{ISU 쇼트트랙 월드 여자 종합 우승자}}
  • 함가연 . . . . 2회 일치
         {{금|[[2007년]] 제10회 슈퍼코리아 댄스스포츠 선수권대회 라틴부문 6위|단체}}
         ==== [[2007년]] 제10회 슈퍼코리아 댄스스포츠 선수권대회 라틴부문 6위 ====
  • 현민 . . . . 2회 일치
          * 친동생이 [[2017년 FIFA U-20 월드|U-20 월드]]대표팀에서 주전풀백으로도 활약했던 [[포항 스틸러스]] 소속 축구선수 [[우찬양]]이다.
  • 현이와 덕이 . . . . 2회 일치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1986년 5월 장덕은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또 그녀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을 작곡, 동료가수인 [[이은하]]에게 주어 빅히트를 안겨준다. 그리고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장덕은 솔로로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해줘요>,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가 [[KBS]] [[가요톱10]]에서 5주(1987년 2월 18일 ~ 1987년 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뮤직박스(도서출판),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1986~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다.
  • 황교충 . . . . 2회 일치
         황교충은 2006년 [[한양대학교]]에 다닐 당시 춘계대학연맹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우수 골키퍼 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양대, 숭실대 꺾고 2006 춘계연맹전 정상 등극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39&aid=0000003295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6-4-17}} }}</ref> 이러한 활약으로 2007년에는 덴소 한일 대학축구 정기전에 뛸 대표 골키퍼로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제4회 덴소 한일 대학축구, 25일 안양 개최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578214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7-3-19}} }}</ref>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1회 일치
         || 경기장 ||<-3><:>광주월드경기장||
  • K리그 챌린지 . . . . 1회 일치
         [[대한민국 FA]]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1회 일치
         || 55 || 2016.06.04 || 광주 FC vs 전북 현대[* 전북과 맨체스터 시티와의 친선전 때문에 본래 전북 홈에서 열기로 한 경기를 광주월드 경기장으로 바꿔서 치루게 되었다.] || 1:1 ||
  • Victoria II/POP . . . . 1회 일치
          * Life Needs(생명 욕구):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물으로 표현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하려 하는 욕구로, 만약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POP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반대로 생명 욕구를 충족하고 거주 프로빈스의 생활등급이 30 이상이라면 어떻게든 애를 낳고 기르면서 산다. 그러니까 인구가 증가한다.
  • head to head . . . . 1회 일치
         이 방식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리그의 순위결정방식이 월드과 같이 "승점 - 골득실 - 골득"순으로 정했던 것이 "승점 - 승자승 - 골득실 - 골득"이라는 기준으로 개편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또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도 리그의 최종순위 결정방식에 승자승을 도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승자승 방식에 대한 정보가 축구팬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 강영식 . . . . 1회 일치
         삼성 소속이던 2005년 제1회 코나미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를 상대로 구원등판 3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 "국제용 투수 강영식" 이라는 칭호를 들은바 있다. 하지만 2006년 제2회 대회에서는 좋지 못했다.
  • 고준희 . . . . 1회 일치
         ||이엔에스||프로월드 (운동화)||
  • 김민교 (가수) . . . . 1회 일치
         ** [[4월 20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
  • 김성곤 . . . . 1회 일치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전신. 김성곤은 나중에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엔 [[유도(스포츠)|유도]] 선수로 활동했고 정계에 있을 때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체육인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성곡 국제유도대회'가 있다.
  • 김숭실 . . . . 1회 일치
         * 2008 KRA SBS 탁구 챔피언전 개인단식 3위
  • 김준현(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오뚜기]] [[밥]]
  • 김형준(배우,가수) . . . . 1회 일치
          * 6월 20일 월드 특집으로 SS501 전원과 함께 Red’s go together 출연했다.
  • 김효기 . . . . 1회 일치
         귀국하고나서 또래보다 1년 늦게 충주상고로 진학한 김효기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약체로 평가받던 [[충주상업고등학교|충주상고]]의 미드필더로 나서 강호 [[문일고등학교]]를 격파하는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7년, 전국 1, 2학년대학축구대회에서 도움상을 수상했고, 2008년부터는 대학 선발로 발탁되어 덴소 등에 참가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1회 일치
          * 트와이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그런지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고 자괴감에 떤다. 기껏 거절했던 토가는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궁시렁 거렸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토가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순순히 개성을 설명하는 토가. 피를 섭취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때 섭취한 피는 곧 에너지. 섭취량이 변신을 유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대략 한 잔 분량이라면 하루종일 변신하는 것도 가능. 한 번에 여러 사람의 피를 마시면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에는 옷도 포함되는데, 문제는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는 여고생 틱한 설명까지 붙여서 PR 완료. 트와이스 못지 않은 성실한 자기소개였다.
  • 대전광역시 . . . . 1회 일치
         대전월드경기장
  • 디도(성우) . . . . 1회 일치
          * [[유희왕 5D's]] - [[팀 태양|하야시 요시조]], 라면맨(...)[* 115화의 퍼즐 듀얼에서 문제를 출제하던 NPC. [[크로우 호건]]이 [[예거]]를 잡기 위해 이것 분장을 한 적이 있다.], 시로코
  • 모닝구 무스메 . . . . 1회 일치
         * [[오승희]] 메인보
  • 민도 . . . . 1회 일치
         한국에서 이렇게 잘 안 쓰이는 단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원인으론 2004년에 당시 도쿄도지사였던 이시하라 신타로의 망언 때문으로, 중국과 일본이 [[AFC 아시안 ]]축구경기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양국간 신경전이 벌어졌는데 이시하라 당시 지사는 "중국 관중이 일본에게 야유를 보내는 건 중국의 '민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망언을 했던게 한국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바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민효린 . . . . 1회 일치
         * 2011년 평창 FIS 스키점프 대륙 대회 홍보대사
  • 박석민 . . . . 1회 일치
          * 박속닌: 2005년 코나미에서 이름자인 석민을 속닌이라고 듣고(그렇게 불렀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홈런왕 박속닌입니다'라고 올려놓은 것이 시초. 재일동포 [[고지행]]이 박석민을 이렇게 불렀다.
  • 박진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대륙간 (야구) = 2006 대만
  • 박치기 . . . . 1회 일치
         2006년 독일 월드 결승전 중 프랑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축구선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가해 쓰러트린 사건이 유명하다. 이 일로 지단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되었다. 이 장면은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785144|카타르에서 동상으로 만들어졌다고.]]
  • 배슬기(배우) . . . . 1회 일치
         뜻밖에도 월드 당시를 배경으로 한 한국, 독일 합작영화 Finale에 킬러 역으로 캐스팅, 영화를 찍어버렸다. 과연 그녀에게도 도약의 기회가 올 것 인가....영화는 개봉연기 끝에 2011년에 나올 예정이긴 하다. 참고로 그 영화 참가진 중 음악은 조영욱[* [[올드보이]]의 음악가로 유명하다.](...), 무술감독은 [[정두홍]](...).
  • 백일섭 . . . . 1회 일치
         * [[1993년]] ~ [[1994년]] [[농심]] (신라면, 포테토칩, 너구리, 안성탕면, 뚝배기 면)
  • 서영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그러나 사적으로 [[주당|음주를 자주 하는]] 영향으로 [[간]](肝) 건강이 나빠져 [[간암]] 발병으로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심형래]][* 그런데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최병서]]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형래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 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심형래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라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게다가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후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역시 뼈그맨~~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회 일치
          * 잇시키의 짐작대로 네네는 심각하게 이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요리사로서도 장인으로서도 "저녀석에겐 못 이긴다"고 절감할 정도로 낙심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받아든 " 야키소바"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 신동주(야구) . . . . 1회 일치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 실업팀 . . . . 1회 일치
         실업팀의 운영 실태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1회 일치
         지금도 광주 [[여행]]하다 보면, "원래 저 땅은 심상우 의원 땅이었는데…." 하는 말을 의외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심 씨의 가세가 한 때 얼마나 흥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공무원 = 도둑놈" 하는 등식을 지역 사회의 어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례이기도 하다. [[2002 한일월드]] 때 히딩크 호텔로 [[개명]]한 모 호텔 및 근처 아파트 단지 부지도 원래는 심상우 의원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을 심 의원 사후에 공무원들이 가로챈 것. 허나 현재 호텔은 온데간데 없고, [[교회]]가 들어서 있다.] 예를 들어 박치기왕 [[김일(프로레슬러)|김일]]을 실제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테러 소식을 들었던 심현섭 본인은 1분이 1년 같았다며 회고했다고 한다.
  • 안숙선 . . . . 1회 일치
         *2002 FIFA 한.일월드 개막식 피날레 공연.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회 일치
         * 맨날 깔끔 떠는 것과는 달리 자기 아지트는 돼지우리. 식완제품이나 레어한 라면, 화장품, 덮밥에 딸려오는 생강절임, 재사용 중인 나무젓가락 등등 온갖 지저분한 물건들이 다 쌓여있다.
  • 야마토 나데시코 . . . . 1회 일치
          *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을 '나데시코 재팬'이라고 하며, 축구 리그를 나데시코 리그, 나데시코 슈퍼이라고 하여 여기에서 따온 이름을 쓰고 있다.
  • 염재욱 . . . . 1회 일치
         * 월드홍보물메인촬영-jsa패러디 신하균역
  • 요괴:냉장고 . . . . 1회 일치
         경찰이 다녀간 뒤에 딱 한 번 엄마한테 그 얘길 했어요. 엄마는 한참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내 말이 끝나니까 "다시는, 누구한테도 그 얘길 하지마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꺼내주더군요. 그건 내가 쪽지시험을 잘 쳐야 한 씩 덜어먹는 거였어요.
  • 유키히라 소마 . . . . 1회 일치
          * A - 계란…1개, 빵가루…1.5, 소금, 후추…적당량
  • 유해진(배우) . . . . 1회 일치
         [[닮은꼴 유명인|축구선수 박지성과 닮았다.]] '''외국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다.''' 심지어 [[평발]]이라는 것도 똑같다. 물론, 나이를 생각해보면 박지성이 유해진을 닮은 것이지만...[* 오죽하면 [[못친소|못생긴 사람을 초대하는 축제]]에서도 더 못생긴 사람을 이상형 월드 형식으로 뽑을 때 이 두 사람이 함께 나올 정도다.] '이장과 군수' 예고편에서는 이걸 셀프개그로 삼아서 "넌 뭐 잘났냐? '''[[박지성]] 짝퉁''' 같이 생겨가지고"란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1박 2일에서도 별명이 '유지성'이다. 축구도 썩 잘 하는 편이라고. 그리고 [[배철수의 음악캠프]] [[2015년]] [[6월 17일]]자 방송에 유해진 본인이 출연해 박지성으로부터 인정받았음을 고백했다. 다만 박지성은 자신의 작은 아버지가 유해진과 더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50617192016819|##]]
  • 육성재 . . . . 1회 일치
          * 열애설 기사가 난 직후 있었던 단체 스케줄에서 열애설에 대해 언급했다. 오디오가 물리는 것에 단련된 팬들은 그 정신없었던 7명의 멘트 중에서 육성재의 '오늘 실검 많이 오르네' 라는 말을 캐치해 냈고, 종이 바닥에 적혀 있던 [[병먹금|'먹금']] 이라는 단어를 보고 '역시 육잘또', '여러분 먹금합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화요일 고정으로 출연중인 SBS [[배성재의 TEN]] 대타 DJ로 확정되었다. (2018년 6월 25일 ~ 7월 1일) [[배성재]] 아나운서는 2018 러시아월드 생중계로 출장..
  • 은혼/654화 . . . . 1회 일치
          * 아네의 눈높이 수준으로 줄어든 사다하루. 아네는 검력을 너무 쓴 나머지 L사이즈가 M으로 보인다고 눈을 부비는데, 모네는 그게 기분 탓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언니가 너무 늠름해져서 그렇다는 것. 그동안 캬바레나 들락거리던 언니가 일족의 사명을 완수하러 동분서주하는 지금의 아네는 오오바야시 모모코 만큼 커보인다고 드립을 쳤다. 그리고 코마코도 동의하듯이 짖는데, 어째 이쪽도 심하게 작아졌다. 고작 모네의 손바닥 위에 올라오는 초미니 사이즈. 이누카미 티 강아지 에디션.
  • 이경석 (배구인) . . . . 1회 일치
         '''이경석'''(李京錫, [[1961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의 세터 출신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모교 [[경기대학교]]에서 감독을 했으며, 2011-12시즌 [[김상우 (배구인)|김상우]] 감독이 경질된 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의 감독에 부임했다. [[2012년]]에는 KOVO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LIG의 KOVO 주관 대회 첫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2-13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 경질당했다. <ref>{{뉴스 인용
  • 이승엽 . . . . 1회 일치
         * 자황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2003년)
  • 이지아(배우) . . . . 1회 일치
         케익과 외계인 (Digital Single) 2009.08.14 - 영화 <내 눈에 콩깍지>의 OST에 수록되었다.
  • 이현우 (가수) . . . . 1회 일치
         ** 2월 11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1회 일치
          * 장막을 벗어던진 새로운 돼지의 모자정. 거대한 맥주 형상으로 변했다. 작은 정원시설로 부설.
  • 임수정(탤런트) . . . . 1회 일치
         2010년 5월 4일 [[SBS]] [[강심장]] 27회에서 [[비(연예인)|비]]가 미니 이상형 월드에서 최종선택했다. 그런데 [[정주리]]가 "임수정 씨랑 내가 뭐가 달라?"라는 애드리브를 날렸다. [[지못미]](...)
  • 임효준 . . . . 1회 일치
         <!-- ISU 월드 -->
  • 장원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야구 월드 = [[2007년]] 대만
  • 전태규 . . . . 1회 일치
         *[[2009년]] [[8월]] 경남-STX 마스터즈 2009 3위
  • 조성모(가수) . . . . 1회 일치
          * 2000년 9월 26일 - 10월 13일 (3주 연속) KBS 뮤직뱅크 <아시나요>[* 여담이지만 [[뮤직뱅크]] 첫 골든이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1회 일치
         다음으로 '''농사'''를 짓는 문제인데, 이건 어려운 문제는 아닐 거 같다. 어제 독에서 감자를 봤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감자 때문에 마션이 떠올랐다. 나는 식물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화성보다는 좀비에 점령 당한 지구 쪽이 농사엔 적합할 거라 본다. 초등학생 때 에다 감자 싹을 키워본 경험도 있고. 이쪽은 마션에 의지하지 않아도 이럭저럭 해결될 거라 본다.
  • 최두호 . . . . 1회 일치
         | {{국기그림|미국}} [[ 스완슨]]
  • 최영미 (시인) . . . . 1회 일치
         최영미는 2011년 [[국회도서관]] 홍보 대사로 위촉되었고,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로 활동했다. 열렬한 축구팬인 그녀는 2006년 ''Die Tageszeitung''에서 발행한 독일월드 특집호 ''Taz journal Mai 2006''에 한국 축구에 대한 글을 기고했고, 2011년 축구 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 프로 스포츠 . . . . 1회 일치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 하지호 . . . . 1회 일치
         |대륙간 (야구) = 2006 대만
  • 한동욱 . . . . 1회 일치
         바로 다음 시즌,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1]] 결승에 오른 한동욱은 전시즌 [[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자 [[조용호]](당시 [[KTF 매직엔스]])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온게임넷 스파키즈로 재창단된 소속팀에 안긴 첫 개인리그 우승이었다.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야구 월드 = 2003 쿠바
  • 현재윤 . . . . 1회 일치
         |야구 월드 = [[2007년]] 대만
  • 현주엽 . . . . 1회 일치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 황두성 . . . . 1회 일치
         |야구 월드 = [[2007년]]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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