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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예
         진성여왕 5년([[891년]])부터 신라의 각지에서는 거듭되는 흉년과 가혹한 세금 징수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 도적이 된 자들의 봉기가 잇따랐는데, 궁예도 절을 떠나서 죽주(竹州)의 적수(賊帥) [[기훤]](箕萱)을 찾아가 그의 휘하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기훤이 궁예에게 오만하고 무례한 자세로 대하자 이에 반발해, 다시 죽주를 떠나 [[북원경|북원]](北原)의 적수 [[양길]](梁吉)의 휘하에 들어갔다. 《삼국사기》는 이때 기훤의 휘하에 있던 원회(元會), 신훤(申煊)이 궁예를 따라 함께 북원으로 왔다고 적고 있다. 기훤과는 달리 양길은 궁예를 신임해 그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며 북원 동쪽 땅의 경략을 맡겼고, 궁예 자신은 [[치악산]]의 석남사(石南寺)에 머무르며 [[진성여왕]] 6년([[892년]])까지 [[주천]](酒泉) · [[영월|내성]](奈城) · [[울진|어진]] 등 명주 관내의 10여 군현(《삼국사기》 신라본기. 같은 책 궁예전에는 주천과 내성, 울오, 어진의 4개 군만이 기술되어 있으며 시점도 본기와 열전에 차이가 있다)을 공략하여 모두 항복시켰으며, 진성여왕 8년([[894년]])에는 드디어 명주를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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