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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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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 . . . 41회 일치
         ||<width=30%><:>''선거구 분리''[br][[강수림]][* [[광진구]]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width=5%><:>→||<width=30%><:>'''제15·16대[br]추미애'''||<width=5%><:>→||<width=30%><:>제17대[br][[김형주]]||
         ||<:>제17대[br][[김형주]]||<:>→||<bgcolor=#FFFFA0><:>'''제18~20대[br]추미애'''||<:>→||<:>''현직''||
         ||<#1870B9> '''{{{#FFFFFF 이름}}}''' ||<(> 추미애 (秋美愛, Choo Mi-ae) ||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5선의 여성 국회의원은 추미애 말고도 여럿 있으나, 이는 '[[비례대표]] 의원' 시절을 포함해서 선수를 계산한 경우이고, 순수히 '지역구 의원'으로만 5선에 성공한 것은 추미애가 최초이다.]
          *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임기를 다 채운 최초의 당 대표[* 보통 당 대표는 선거 패배 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선거 패배 사례가 많다 보니, 여지껏 임기를 다 채운 당 대표가 없었다. 추미애 이전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가장 오래 당 대표를 지냈던 인물은 [[정세균]]([[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시절부터 약 2년 정도)인데, 그도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바람에 임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 추미애의 경우 당 대표 재임시절 치른 선거([[19대 대선]], [[7회 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당 대표를 사퇴할 일도 없었고, 때문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1985년,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던[[http://news.tf.co.kr/read/ptoday/1418527.htm|#]] 서성환 변호사[* 서성환은 추미애보다 3살 많지만, 대학을 늦게 입학한 까닭에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였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며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한다.]와 7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457396|#]]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인데, 당시만 해도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영남의 집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에 추미애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하였지만, 추미애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33635|#]]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시|대구]]의 딸, [[전라도|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60827036600001&did=1195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3792967|#]] 슬하에는 3명[* 1남 2녀]의 자녀가 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절 추미애는 ‘까칠한 여성 판사’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는 [[군사정권|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수사 당국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영장을 남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 당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 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추미애는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08&aid=0000021230|#]]
         그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영장이 청구되었다.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상대로 불온 서적을 압수수색하고자 하니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영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 기각이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를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한다.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7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159849|#]]
         판사 생활 10년 차이던 1995년, 추미애는 법원에 사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하여 이후의 삶은 [[정치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정치인이 된 이후의 생애는 아래 '정계 활동' 문단에서 서술한다.
         [include(틀:상세 내용/문단, 문서명=추미애/정계 활동, 앵커=s-1)]
         [include(틀:상세 내용/문단, 문서명=추미애/정계 활동, 앵커=s-2)]
          * 남편인 서성환 씨는 아내와는 달리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해서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행하며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내인 추미애에 대한 기본적인 외조나 선거 캠프 등에서 실무 작업으로 참여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대한민국 불교계의 대원로였던 [[성철]] 스님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것도 2번씩이나.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뭔가 하면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000배를 했기 때문. 참고로 [[박정희]]도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성철 스님이 같은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만남을 포기했었다.
          * [[KBS]] 2TV '슈퍼맘 다이어리'라는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시청자의 반응은 "평소에 정치인으로서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장부[* 이 때문에 정치인 스타일 중에서는 탱커형으로 종종 분류된다.]의 면모와 달리, 해당 프로그램 속의 주부 추미애는 대한민국의 여느 아줌마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평.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261|#]] 그리고 2017년 7월에는 KBS 2TV의 오락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출연하여 진행자인 [[이경규]]와 대화를 나눴다.
          * 2000년 7월 5일, 동료 의원들 및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X같은 [[조선일보]]', '[[이회창]]이 이놈' 등의 발언을 했고, [[동아일보]] 기자와 싸움이 번져 '사주같은 놈', '누구의 지시를 받아 기사를 썼느냐'는 등의 불호령을 내렸다. [[정동영]] 등 동료 의원들이 말리면서 데리고 나오자 '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데 왜 이러느냐' 하고 마당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추미애의 'X같은 조선일보'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곤욕을 치렀는데, 오프 더 레코드로 사석에서 나온 말을 기사화한 것은 업계 상도의에 어긋나는데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보복성 보도였다는 평가가 주론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47095|그날 추미애 의원에게 일어난 일들]]
          *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힌 삼성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추미애 의원을 가리켜 '돈 안 받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미애는 본의 아니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돈 안 받는 정치인' 인증(?)을 받았고, 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추미애 의문의 1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http://mlbpark.donga.com/mp/b.php?id=201707200006465394|#]]
          * [[잔 다르크|추다르크]], 탄핵녀[[http://m.nocutnews.co.kr/news/871295|#]][*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로 트위터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본인이 직접 언급], 추장군, 오야붕[* 정작 이 별명은 [[문희상|이분]]한테 밀려 잘 안 불린다(...).], 느와르메이커, 추임스 미애보이[* [[제임스 매커보이]] 닮은꼴], 돼지엄마, 추애미, 애미추, [[제이미 라니스터|킹슬레이어]], 추날두[* 추미애라는 글자를 키보드 영자로 치면 'cnaldo', 즉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약자처럼 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호날두가 현역이던 시절, 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등에 C.Ronaldo 를 쓰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씨날두, 크날두로 부르곤 했었다. 나중에는 등에 Ronaldo 만 표기한다.], 프로탄핵러, 선거의 여왕[* 그녀가 당대표로 재임한 기간중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등의 별명이 있다.
  • 대구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추미애]] - 중구(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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