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
당장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구조대가 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부모님이 찾으러 올 수도 있다. 어쩌면을 붙이면 누구든지 와줄 수 있을 것 같다.
식량은 아직 충분하다. 적어도 일주일은 버티겠지.
좀 더 기다려보고 신중하게 움직여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오늘은 일단 쉬기로 했다.
세상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 식량은 착실하게 사라져 갔다.
구조대는 커녕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인기척"은 그렇다. 그건 사람이 내는 거니까.
집 밖에는 사람이 아닌 것들의 기척만이 가득하다.
저 수를 뚫고 구조대가 온 다면 세상이 해방됐다는 소리겠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희망이다.
계산이 틀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처음엔 식량이 한 달은 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부족했다.
다이제스트 세 쪽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을 거라고 믿다니. 하루에 세 번 고프던 배가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걸 요구하다니.
그리고 갈증. 끓인 물을 미리 확보했어야 했다. 수도는 아직 온전하다. 하지만 어제 그놈들이 땅을 파대고 있는 걸 봤다. 손톱도 다 빠져나간 그 손으로!
분명 거기는 수도관이 지나는 길목이다. 놈들이 물에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면… 이건 마실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인생에서 제일 위험한 선택지를 받았다.
더이상 미뤄둬서는 안 되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다이제스트 아홉 쪽과 1리터 짜리 끓인 물 한 병이 남았음을 확인했다.
사실 확인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도 아니지만, 몇 번을 세어봐도 현실감이 없어서 세기를 반복한다.
단 한 쪽도 늘어나는 법 없이 그대로인 식량.
식량이 없이 석 달을 버틴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물 없이 한 달을 버틴 사람 얘기도.
이것들을 다 먹어버리면 싫어도 그들의 기록에 도전해야겠지.
그리고 내가 그들보다 빨리 해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도 몇 시간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