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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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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증왕 . . . . 9회 일치
         |이름= 지증왕<br/>智證王
         '''지증왕'''(智證王, [[437년]]~[[514년]], <small>재위:</small> [[500년]]~[[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ref>그러나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는 지증왕의 장남 법흥왕의 때까지도 비공식적으로나마 잔존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울진 봉평신라비와 울산천전리각석에 기록되어 있다.</ref>
         [[마립간]]의 칭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임금이다.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지대로, 지도로, 혹은 지철로라고 한다. [[내물 마립간]]의 증손자이며 [[소지 마립간]]의 재종 아우이다. 부인은 [[연제부인]](延帝夫人) 박씨이며, [[소지 마립간]]이 아들이 없이 죽어 64세에 왕위를 이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奈勿王之曾孫 習寶葛文王之子 炤知王之再從弟也 母金氏鳥生夫人 訥祇王之女 妃朴氏延帝夫人 登欣伊湌女 王體鴻大 膽力過人 前王薨 無子 故繼位 時年六十四歲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ref>[[514년]] 죽은 뒤 [[시호]]를 지증이라 하였는데, 이때 이후로 신라의 시호법이 시작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五年 ... 王薨 諡曰智證 新羅諡法 始於此 (15년(514) ...왕이 죽었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쓰는 법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 지증왕은 [[사탁부]](沙啄部)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다.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체구가 커서 배우자가 없었던 지증왕에게는 알맞은 배우자가 없었는데 신하를 보내 신라 국내를 수소문하던 중 [[연제부인]](延帝夫人)을 발견하여 배우자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한다.<span style="font-size:10pt;"><sup class="noprint">[<span class="plainlinks">[[위키백과:출처 필요|출처 필요]]</span>]</sup></span>
         [[지증왕설화]]는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과 《[[삼국사기]]》 김유신조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지증왕설화|설명=지증왕설화에 대해서는}}
         [[분류:신라의 왕|지증 마립간]][[분류:437년 태어남|지증 마립간]][[분류:514년 죽음|지증 마립간]][[분류:신라의 군인|지증 마립간]][[분류:마립간]][[분류:한국의 전설]][[분류:불교도 군주|김지대로]][[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지증왕| ]]
  • 울릉군 . . . . 1회 일치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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