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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34회 일치
         [[제주 유나이티드]]
         || 5 || 2016.03.13 || 제주 Utd vs 인천 Utd || 3 : 1 ||
         || 8 || 2016.03.19 || 광주 FC vs 제주 Utd || 1 : 0 ||
         || 15 || 2016.04.02 || 전북 현대 vs 제주 Utd || 2 : 1 ||
         || 24 || 2016.04.10 || 제주 Utd vs 수원 삼성 || 2 : 2 ||
         || 29 || 2016.04.13 || 제주 Utd vs 상주 상무 || 4 : 2 ||
         || 36 || 2016.04.17 || 울산 현대 vs 제주 Utd || 0 : 1 ||
         || 37 || 2016.04.23 || 제주 Utd vs 성남 FC || 2 : 2 ||
         || 44 || 2016.04.30 || 포항 스틸러스 vs 제주 Utd || 1 : 0 ||
         || 52 || 2016.05.07 || 수원 FC vs 제주 Utd || 2 : 5 ||
         || 60 || 2016.05.15 || 제주 Utd vs 전남 드래곤즈 || 3 : 0 ||
         || 65 || 2016.06.06 || FC 서울 vs 제주 Utd || 3:4 ||
         || 68 || 2016.05.28 || 제주 Utd vs 울산 현대 || 1 : 2 ||
         || 75 || 2016.06.11 || 제주 Utd vs 광주 FC || 3 : 2 ||
         || 79 || 2016.06.15 || 상주 상무 vs 제주 Utd || 4 : 0 ||
         || 87 || 2016.06.18 || 제주 Utd vs 포항 스틸러스 || 0 : 0 ||
         || 91 || 2016.06.25 || 수원 삼성 vs 제주 Utd || 0 : 0 ||
         || 102 || 2016.06.29 || 제주 Utd vs 수원 FC || 0 : 0 ||
         || 106 || 2016.07.03 || 인천 Utd vs 제주 Utd || 0 : 0 ||
         || 110 || 2016.07.09 || 전남 드래곤즈 vs 제주 Utd || 0 : 0 ||
  • 박진옥 . . . . 23회 일치
          * 상위 문서: [[축구 관련 인물]], [[제주 유나이티드]]
         ||||<:><#c40233> '''{{{#ffffff 제주 유나이티드 U-15 코치}}}''' ||
         || 프로입단 || 2005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 ||
         || 소속팀 ||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5~2012)''' [br] [[상주 상무|광주 상무]] (군 복무) (2009~2010) [br] [[대전 시티즌]] (2013) [br] [[광주 FC]] (2014) [br] [[용인시청 축구단]] (2015~2016) [br] [[FC 의정부]] (2017) ||
         || 지도자 || 제주중학교[* 2018년부터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었다.] 코치 (2018~) ||
         ==== [[제주 유나이티드]] ====
         '''과거 [[레전드]]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
         [[경희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 2005 [[K리그]] 자유선발로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박진옥 선수의 킥력과 수비 센스를 눈여겨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의 수비 전술에서도 항상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2005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였다.
         2008 시즌을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서 [[상주 상무|광주 상무]]에 입대하였고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2010년 10월 26일 팀에 복귀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의 '''준우승''' 달성 영광을 함께하였다.
         2013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자유 계약(FA) 신분으로 팀 동료인 [[윤원일]], 오봉진과 함께 전격적으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3136080|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대전 시티즌 입단 후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으나 팀의 [[K리그 챌린지]]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현역 은퇴 후 2018년부터 제주중학교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같은 해에 제주중학교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 2013년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기전까지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인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한 몇 안되는 '''[[원 클럽 플레이어|원클럽맨]]'''[* 다른 선수 중에는 [[한동진]]이 있다.]이었다고 한다.
         [[분류:1982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제주 유나이티드/은퇴, 이적]] [[분류:상무 축구단/전역]] [[분류:대전 시티즌/은퇴, 이적]] [[분류:광주 FC/은퇴, 이적]] [[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은퇴, 이적]]
  • 요시다 세이지 . . . . 17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부장으로 일했다고 주장했으며, 1977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1983년 '나의 전쟁범죄'라는 책을 저술하여, 이 책에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의 마을 등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징병하여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1982년 9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하였다. 1900년대 아시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사를 작성했고, 이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널리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소위 '요시다 증언'에는 의혹도 뒤따르게 되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부터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전남, 경남, 제주 등에서 끌고간 한국인 징용자의 숫자는 종군위안부 1000명을 포함하여 6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의 저술에서는 "종군위안부 징용은 한 마디로 노예사냥이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들을 후려갈겨 트럭에 강제로 태우고, 울며 매달리는 젖먹이를 억지로 떼어냈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1989년 8월 14일, 제주도의 향토 사학자는 요시다가 진술한 지역에 가서, 해당 지역 현지 주민들에게 증언을 들었으나 이를 입증할 수 없었으며 이를 제주신문에 발표했다. 주민들은 그러한 사건은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제주일보는 이를 요시다가 "상술"로 엉터리 체험 수기를 출판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제주일보가 마이너 해서 그런지 이 조사는 묻혀버렸다(…).
         1992년 일본의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가 제주일보 기사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제주도를 직접 취재하여 이 사실을 [[산케이 신문]]을 통하여 일본에 알리게 되었다.
         1993년 6월 요시다 저서를 바탕으로 제주도를 조사한 한국정신대연구소 전 연구원 강정숙은, 요시다 증언과 합치하는 증언을 현지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아사히 신문은 2014년 4~5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70대 후반에서 90대까지 약 40여명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건어물 제조 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사라졌다"고 기록한 제주도 북서부의 마을에서는, 생선을 다루는 공장이 1개 박에 없었고 경영자의 아들은 "통조림 밖에 만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이 사라진 일은 없다."고 증언했으며, 요시다 세이지가 '초가지붕'이라고 썻던 공장의 지붕은 한국에서 당시 수산산업을 연구했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지리학 전공 가와하라 노리후마 교수에 따르면 함석판과 기와로 되어 있었다.[* 원래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고, 벼농사가 되지 않아 초가집이 적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5월에 서부군의 동원명령으로 제주도에 갔으며, 그 명령서의 내용이 아내의 일기에 남아 있다고 저술했다. 하지만 요시다의 장남은 어머니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요시다는 1943년 5월 당시 제주도에 '육군부대본부'가 '군정을 펼치고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일본근현대사를 전공한 나가이 카즈 교토대 교수는 제주도로 육군 대부대가 집결한 것은 1945년 4월 이후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기술이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저지른 위안부 강제연행 날조에 대해, 요시다 가문의 장남으로서, 일본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가능하다면, 전세계에 있는 소녀상을 크레인으로 철거해버리고 싶습니다.(중략) 나 자신도 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는 한 번도 제주도에 간 적이 없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아버지는 제주도 지도를 보면서, '나의 전쟁범죄' 원고를 썼다"고 주장했다.
  • 조진호 (축구인) . . . . 15회 일치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상무]] (군복무)<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br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
         |감독 클럽 =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대행)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코치) <br /> [[전남 드래곤즈]] (코치) <br /> [[대전 시티즌]] (수석 코치) <br /> [[대전 시티즌]] (대행) <br /> [[대전 시티즌]] <br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br>[[부산 아이파크]]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선수 시절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남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남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남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직책 =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대행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울릉군 . . . . 14회 일치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지역이 되면서 남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남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남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백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대한민국|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광역자치단체는 되지 못했다. 전 군수인 최수일 군수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울릉도 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특별자치군"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기는 했다. 물론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약한 제주도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해안, 섬 지역은 선교사의 포교가 용이한 관계로 기독교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 곳 역시 [[불교]]가 초강세인 영남권에 있음에도 유일하게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곳이기도 하다. [[포항시|포항]]이나 [[거제시|거제]] 역시 영남권에서는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편이지만, 울릉군의 개신교 강세를 따라잡을 수준이 안된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주민의 47%가 [[개신교]] 신자로, 33%인 [[불교]] 신자 비율을 상회한다. 물론 영남도 대도시는 [[천주교]] 및 [[개신교]] 교세가 꽤 큰 편이라 이상할 건 없다. 당장 [[부산광역시]]에는 초대형 교회도 여럿 있고 [[대구광역시]]를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는 무려 대교구([[천주교 대구대교구]])이며 [[부산]]에서 WCC총회도 열린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제주도처럼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흔히 제주도처럼 울릉도만의 독자적인 사투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울릉도는 조선시대 공도 정책으로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시켜 오랜 세월 무인도에 가까웠고, 오늘날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 [[고종황제]] 시대 이후 이주민들이라 조상 대대로 울릉도에서 살아온 건 아니라서 울릉도만의 사투리는 없다. 다만 이주민들 대부분이 경북출신 특히 [[경주시]], 영일([[포항시]]) 출신이 많아서 경북 사투리가 많이 남아있다.
          * 화산암 특성상 토질이 배수성이 좋아서 주로 밭농사 위주다. 이건 제주도도 마찬가지.
         그 외에도 [[LPG]]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LPG 배관망을 오는 [[2020년]]까지 구축을 완료될 예정에 있다. 저 멀리 끝자락 남쪽 섬인 [[제주도|이 섬]]은 [[LNG]] 저장 탱크를 [[대림산업]]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어, 제주도의 LNG 도입, 울릉도의 LPG 구축을 연계하려는 의도가 있다. 울릉군에 LPG 배관망이 설치될 경우, 기존에는 지금과 같이 [[석유]]와 [[LPG]] 가스 용기를 구매해서 난방 및 취사를 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번거로움도 줄어들고 도시가스 공급을 원활하게 편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차라리 돈을 더 들여와서 전기 보일러, 전기 쿡탑을 설치해서 [[난방]]과 [[취사]]를 둘 다 [[전기]]로 떼우던가..~~
         흔히 3무(無) 5다(多)라고 불린다. 여기서 3무는 [[도둑]], [[공해]], [[뱀]]이며 5다는 水([[물]]), 美([[미인]]), 石([[암석|돌]]), 風([[바람(기상)|바람]]), 香([[향나무]])이다. 제주도의 3다와 비교하면 [[여자]]가 좀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물과 향나무를 빼면 같다. 역시 바다 한복판의 섬인데도 뱀(그것도 독사)이 많은 [[오키나와]]와 대조되는 점이 흥미롭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마찬가지로 내륙지방과 고립되어 있는 탓에 특산식물이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만의 특산식물이 328종 정도 인데, 울릉도에만 존재하는 특산식물이 36종으로 전체 특산식물 종의 1/10 이상인 셈. 넓이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편으로 제주도는 2배 정도인 75종이다. 대표적으로는 섬잣나무와 고추냉이, 명이나물 등. 식용은 아니지만 피부미용에 이용하거나 말려서 차로 끓여먹기도 하는 어성초도 있다. 명이나물은 요즘 뭍에서도 유명해지고 있다. 참고로 명이나물은 깊고 기묘한 맛으로 유명한데, 수가 적어져서 현재 울릉도산은 반출이 금지되어있다.
         항공편이 없다. 다만 군인이라면 군 비행장인 [[강릉공항]]에서 격주로 1대씩 다니는 공군 수송헬기를 이용할 수는 있고, 응급환자 발생시에는 [[포항공항]]에서 UH-60 헬기가 출동한다. 때문에 뭍에서 울릉도로 민간인이 이용할수 있는 이동수단은 사실상 배가 유일하다. 때문에 외국인들이 가장 찾아가기 힘든 [[대한민국]] 땅으로 현지에서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2009년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 272,555명 중 외국인은 838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0.3%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해 [[제주특별자치도]]에는 6,523,938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이중 9.7%인 634,354명이 외국인이었다. [[미군|지구방위군]] 경계구역의 극서북단 코너에 위치한 현실상 여객선 타면 발에 채이는 게 외국인[* 미 '''해병대''', '''제7함대''' 간부, '''정치안보''' 외신 기자들 등.]인 [[백령도|국토 반대편의 섬]]과 대조된다.
  • 마철준 . . . . 12회 일치
         || 프로입단 || 2004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 ||
         || 소속팀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 (2003) [br]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4~2012.7) [br] [[상주 상무|광주 상무]] (군 복무) (2007~2008) [br] [[전북 현대 모터스]] (2012.7~2012.12) [br] [[광주 FC]] (2013~2015) ||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김포 할렐루야는 2003년 K2리그 전기 리그에만 참가하고, 후기 리그는 불참하는 등 안정적인 팀이 아니었던터라 마철준은 6개월만에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모색하다 부천 SK의 이동근 선수의 제의로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되었고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정식으로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풀백]]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백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영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를 탈단 후 방황하다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철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이는 당시 부천 SK 소속의 이동근 선수였다. 이동근은 포항제철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철준과 한솥밥을 먹으며 [[경희대학교]]까지 나란히 진학했던 동기였기에, 마철준에게 자신의 소속 팀인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이에 마철준은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분류:1980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제주 유나이티드/은퇴, 이적]] [[분류:상무 축구단/전역]]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 [[분류:광주 FC/은퇴, 이적]]
  • 최광식 . . . . 12회 일치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2007년 최 후보자가 개설한 고려대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에 이 대통령이 등록했고, 최 후보자는 이 대통령 대선캠프 자문위원이었다”며 “낙하산·보은인사”라고 비판했다.<ref>[http://www.vop.co.kr/V00000432536.html 최광식 후보자 '낙하산 인사' '제주 해군기지'에 '진땀']《민중의소리》2011년 9월 16일 김도균 기자</ref><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91662 최광식 내정자, '초고속 승진' 도마 위]《뉴데일리》2011년 9월 15일 최유경 기자</ref>
         공직에 있던 3년 6개월간 외부 강의를 통해 부수입이 총 4,486만원, 한 달 평균 106만이 넘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ref>[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68 최광식 문광부장관 강의평가 하위권 맴돌아]《제주환경일보》2011년 9월 13일 김태홍 기자</ref><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001 "최광식 후보자, 공직재직 중 외부강의로 4,500만원 벌어"]《뉴스제주》2011년 9월 13일 고병택 기자</ref>
         김제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문화재청장 시절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승인과 관련‘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매장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부지에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혈주거지(움집터), 유구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해군 측의 공사를 중지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일부 조사완료구역에 대해서는 공사 시행을 승인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369 최광식 '제주해군기지 책임론' 유탄 맞을 듯]《뉴스제주》2011년 9월 14일 고병택 기자</ref><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297 최광식 후보자 ‘제주해군기지 유탄’ 맞나?]《제주의소리》2011년 9월 14일 좌용철 기자</ref><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4000169 최광식 장관후보,‘제주해군기지 유탄’맞나 ?]《아주경제》2011년 9월 14일 박현주 기자</ref>
         매장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시공사는 매장문화재를 발견한 때에는 즉시 공사를 중지해야 하고, 전체 문화재 발굴조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공사를 시행할 수 없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194 최광식 문체부 장관 내정자, 제주해군기지 ‘유탄 맞나’]《제주투데이》2011년 9월 14일 강한성 기자</ref>
  • 김희애 . . . . 11회 일치
         ||<:><#cccccc> '''출생''' ||[[1986년]] [[4월 19일]] ([age(1986-04-19)]세), [[제주특별자치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제주시]]||
         ||<:><#cccccc> '''학력''' ||신제주초등학교[br] 제주중학교[br] 제주고등학교 (졸업)[br][[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br][[중앙대학교|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방송 전공 (석사)||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순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분류:한국계미국인 배우]][[분류:1990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데뷔]]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 제주특별자치도 . . . . 11회 일치
         |이름 = 제주특별자치도
         《대동여지도》에 기록된 제주도. (제22첩 1면)
         제주 한림공원 내의 물고기
         제주도의 유채밭
         정부제주지방합동청사
         제주도의회 청사
         [[제주시]]
         제주의 대표적인 특산물 감귤
         제주국제공항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제주특별자치 출신 인물]][[분류:2006년 설치]]
  • 김성현 (1989년) . . . . 9회 일치
         * [[대구고등학교]] → [[제주고등학교]] 졸업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김보정 . . . . 8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신대로)
         | 학력 = 제주미주호텔
         '''김보정'''([[1988년]] [[12월 1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신대로)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제주미주호텔
         * 2017년 2월 18일 ~ 2017년 2월 19일 《꽃의 비밀 - 제주》 ... 지나 역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김성주(축구선수) . . . . 8회 일치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축구 해외파 선수들]], [[제주 유나이티드]]
         [include(틀:제주 유나이티드/간략)]
         ||||<:><#e1002a> '''{{{#ffffff 제주 유나이티드 No.8 }}}''' ||
         || 소속팀 || [[알비렉스 니가타]] (2012~2013) [br] 카탈레 도야마 (임대) (2013) [br] 카탈레 도야마 (2014) [br] [[서울 이랜드 FC]] (2015~2017) [br] [[상주 상무]] (2016~2017, 군 입대) [br] [[울산 현대]] (2018.1~2018.7) [br] [[제주 유나이티드]] (2018.7~) ||
         ==== [[제주 유나이티드]] ====
         2018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울산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가 김성주 선수와 [[배재우]] 선수를 를 맞트레이드를 하게 되면서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95236|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분류:1990년 출생]]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알비렉스 니가타/은퇴, 이적]] [[분류:서울 이랜드 FC/은퇴, 이적]] [[분류:상무 축구단/전역]] [[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 [[분류:제주 유나이티드/현역]]
  • 김진환(iKON) . . . . 8회 일치
         ||<:><#FFC8C8> '''{{{#FFFFFF 출생}}}''' ||<(> [[1994년]] [[2월 7일]] ([age(1994-02-07)]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FAA8A8> '''{{{#FFFFFF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 [[제주도]] 출신이다. WIN과 믹스앤매치에서 동생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했다.
          * 눈물이 많다. 본인이 인정한 '아이콘에서 눈물이 가장 많은 멤버.' 팬들 사이에서 울리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한편 어쨌든 우는 건 맴찢이기 때문에 내적 갈등을 선사한다 아무래도 고향인 제주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니까 개인적으로 힘든듯하다. ~~"진환아 울지 마 ㅠㅠ 너무 안 울진 말고ㅠㅠ"~~ ~~엄마 생각을 하다 숙소에서 울었다고 한다~~ 일단 방송에선 눈물을 보이는 일이 적다 게다가 첫출현 데뷔무대후한 첫1위때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분류:iKON]][[분류:1994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김승대 . . . . 7회 일치
          * 2013년 9월 14일, 제주전에서 프로 선수로는 첫 FA컵 도움을 기록하였다.
         ||<#00703c> '''{{{#eee156 2014.04.12}}}'''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제주}}}''' ||<#00703c> '''{{{#eee156 1득점 1도움}}}''' ||
         ||<#00703c> '''{{{#eee156 2014.11.01}}}'''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제주}}}''' ||<#00703c> '''{{{#eee156 도움}}}''' ||
         ||<#00703c> '''{{{#eee156 2013.09.14}}}'''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제주}}}''' ||<#00703c> '''{{{#eee156 도움}}}''' [* 프로 데뷔 후 FA컵 첫 도움] ||
         옌볜 푸더가 알바니아 국대 출신인 발데트 라마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황일수]]를 영입하면서 김승대가 [[FA]]로 풀리게 되었고,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으로 포항으로 복귀했다! 게다가 [[FC 서울]]로 도망간 [[이명주|자신의 옛 파트너]]와 다르게 제주에서 황일수와 트레이드를 제안하고, 복수의 K리그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포항행을 결정지은 것이 알려지면서 근래에 숱하게 통수를 맞은(...) 포항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19326&redirect=true|#]] --특히 포항 거주 팬들 사이에서 '''쌍사드립'''[*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쌍용사거리'''라고 알려진 동네가 있다. 옛날에 쌍용차 대리점이 있던 자리인데 대리점이 옮기고 나서도 고유명사로 붙어버렸다. 술집과 노래주점이 많아서 포항 사람들이 술먹고 노는 주요 거점이다. 김승대가 포항 토박이다 보니 --친구따라-- 쌍사에 출몰했다는 썰이 많아서 흥한 드립.]이 흥했다--
         2015 아시안 컵 대비 제주 전지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동국]]과 [[김신욱]] 전부 부상으로 아시안 컵 출전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원톱 자원으로서 쓸만한 자원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 덕분에 아시안 컵을 통해 국대에 안착하는가 싶었는데...... '''부상으로 전지 훈련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어지간히도 국대 운이 없다. [[홍명보]]자선축구에 참여했는데 그 뒤에 오른쪽 엉덩이 근육 손상으로 인해 전지 훈련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대체자는 같은 아시안 게임 멤버인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가 뽑혔다. 그러나 이종호도 결국 최종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 제주시 . . . . 7회 일치
         |이름=제주
         제주시의 위치
         제주시청
         제주국제공항
         [[분류:제주시 출신|제주시 출신 인물]][[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도시]][[분류:1955년 설치]][[분류:2006년 폐지]][[분류:2006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최성원(가수) . . . . 7회 일치
         1988년 솔로 1집을 발표했는데, 불리는 [[https://youtu.be/4vQSwav-OSs|'제주도의 푸른밤']]이 1번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 '떠나요 둘이서~'로 가사가 시작하며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서 단골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그 노래이다. 아직도 [[태연]], [[성시경]] 등의 후배들이 리메이크하는 곡이다.
          * [제주도]]에 귀농하여 살고 있다. [[제주도]]에 살면서 [[KBS제주방송총국|KBS 제주2라디오]] '제주도의 푸른 밤 최성원입니다.'라는 프로를 맡아 DJ로 활약했다. 2016년 9월을 끝으로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 최원권 . . . . 7회 일치
         |클럽=[[FC 서울|안양 LG 치타스 / FC 서울]] <br />→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 (군 복무)<br /> [[제주 유나이티드]] <br />→ [[대구 FC]] (임대) <br />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수원]] <br /> [[대구 FC]]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 제주 유나이티드 FC ===
         전역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으며 2012 시즌을 앞두고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진호 (축구 선수)|이진호]]와 맞임대로 [[대구 FC]]에 임대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42738 제주, 박기동-최원권 보내고 이진호-황도연 데려온다] - 일간스포츠</ref>
         * [[2011년]] ~ [[2013년]] {{국기그림|대한민국}} [[제주 유나이티드]]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
  • 김청(1962년 6월) . . . . 6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62년]] [[6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age(1962-06-01)]세) [br] 쌍둥이자리/호랑이띠 ||
         ||<#878787> '''{{{#EEE156 학력}}}''' ||<(> 신제주초등학교[br]제주중학교[br]제주고등학교[br][[경희대학교]] [[무용]]학과 ||
         [[분류:한국 여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신화용 . . . . 6회 일치
         9월 말 기준 14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하였고 제주전에서는 PK까지 막아내는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등, 포항 공격진이 여전히 득점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혼자서 팀의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10월 현재 경기당 0.82 실점으로 실점률 1위. 무실점경기 1위, 유효슈팅 선방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36라운드 기준으로 17경기 클린 시트(무실점 경기)를 달성하며 클린시트 2위인 박준혁,권순태(13경기)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시즌 클린시트 1위를 확정지었다.
         부상복귀후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9월 20일 제주 상대로 웃긴 실수로 해 팀이 패배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정원 감독과 이운재 코치의 표정이 압권. 하지만 바로 극복해 9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인천]]과의 경기에서 [[한석종]]의 페널티킥을 막아냈지만 세컨볼 상황에서 하창래에게 골을 먹고 말았다.
         3월 31일 제주와의 K리그1 4라운드에 선발 출전 해 복귀했으나 복귀 이후에 경기력이 좋지 않다.
          * 2017년 7월 9일, 제주전에서 K리그 통산 100번째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였다.[* 포항 시절 통산 94번 + 수원 입단 후 6번]
         11월 14일 요르단, 18일 이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 예비 명단에 들어가 겨우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동해안 더비에서 부상을 당해 결국 예비 명단에 있어도 국대에 뽑힐 수 없게 되었고, 부상 여파로 인해 2015 제주 훈련 명단에서도 제외되면서 2015 아시안컵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 하지만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신[* 2015년까지 K리그 최단신 골키퍼였으며 2016년 제주의 박하람이 1cm차이(신화용-183cm/박하람-182cm)로 최단신 골키퍼 타이틀을 가져갔다.]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아직까지 국가대표로 뛰어본 적이 없는 불행한 선수이기도 하다.
  • 탐라국 여왕 . . . . 6회 일치
         [[최영]] 장군과 얽혀서 전해지는 전설상의 인물이며, 영도 아씨당에서 숭배되는 신령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기에 [[탐라국]](지금의 [[제주도]])를 지배한 [[여왕]]이다.
         탐라국 여왕 설화는 부산과 제주도의 역사, 지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탐라국 여왕과 최영의 대결은, 실제 역사에서 최영이 고려말에 제주도에서 진압한 [[목호의 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기록을 보면 실제로 제주도에는 탱자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사 조정철이 1812년 선조에게 본도의 성터에 해자를 파고 탱자나무로 둘러쌋으므로, 고려 때부터 탱자성(枳城)이라 불렸는데, 근래에 성곽이 붕괴되고 탱자나무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1749년 비변사 등록에 보면, 강화유수 원경하가 영조에게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자면서, "고려의 최영이 탐라국을 격파하지 못한 것은 그 가려진 지책(枳柵,탱자나무 목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 부산 영도에서 아씨당이 세워져 숭배된 것은, 영도와 제주도의 교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 오수미 . . . . 5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現 [[제주시]]) ||
         그러나 신상옥이 돌아오자 김중만과도 [[이혼]]하고,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을 신상옥에게 돌려주고 그 이후로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살다가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분류:1950년 출생]][[분류:1992년 사망]][[분류:한국 여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70년 데뷔]]
  • 이영아(배우) . . . . 5회 일치
         || '''출생''' ||<(> [[1984년]] [[10월 23일]] ([age(1984-10-23)]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
         || '''학력''' ||<(> [[제주아인피플호텔]] ||
         제주아인피플호텔에서 [[무용]]을 전공하다 배우가 되었다.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4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진시몬 . . . . 5회 일치
         ||<:>'''출생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학력'''||<:>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br][[제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법학과]]||
         [[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출생]][[분류:한국 남가수]][[분류:1989년 데뷔]]
  • 최홍만 . . . . 5회 일치
         || 출신 ||<(> [[대한민국]] [[제주도]] [[북제주군]][*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분류:씨름 선수]][[분류:종합격투기 선수]][[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0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2002년 데뷔]]
  • 한수연(배우) . . . . 5회 일치
         ||<#ff748c> '''출생''' || [[1983년]] [[4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월성로) [* 성우 [[남도형]]과 생일이 같다. [[남도형]] 성우는 음력 [[3월 12일]]] ||
         ||<#ff748c> '''학력''' || 우리흑돼지 (제주섬식당) ||
         [[1983년]] [[4월 24일]] 출생의 배우. 우리흑돼지 (제주섬식당)을 까지고했다.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2006년 데뷔]]
  • 희빈 장씨 . . . . 5회 일치
         희빈 장씨는 [[사역원]] 봉사(종8품)를 지냈던 [[장형 (조선)|장형]](張烱)<ref group="주">장형(張烱)의 형(烱)은 경으로도 읽을 수 있다.</ref>(1623~1669)과 그의 후처인 [[파평 윤씨]](1626~1698)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동기로는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전처였던 [[제주 고씨]](?~1645)의 소생인 이복 오빠 장희식(1640~?)과 윤씨 소생의 동복 언니<ref group="주">[[장희재 (조선)|장희재]]의 누나이다. 따라서 1650년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ref> 한 명, 동복 오빠인 [[장희재 (조선)|장희재]](1651<ref group="주">《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년) 11월 2일 기록에 장희재의 나이가 당 51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651년 생임을 알 수 있다.</ref>~1701)가 있다. 최근까지 그녀의 생년에 대해 흔히 미상이거나 [[조선 숙종|숙종]]의 2세 연하, 혹은 5살 연상 등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수록된 국청죄인 자근례의 공초 내용 중에 희빈 장씨가 기해생(1659년 생)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서인]]이 차지하고 있던 삼사(三事: 삼정승)와 승정원, 사간원의 중앙 최고 요직이 경신년에 조정에서 밀려나 은신 중이었던 [[남인]]으로 교체되자 조정으로 돌아온 [[이현기]](李玄紀)·[[남치훈]](南致薰)·[[윤빈]](尹彬) 등은 먼저 원자 윤의 탄생과 [[조선 숙종|숙종]]의 원자가 정해진 것에 대해 경하와 찬사를 올려 [[서인]]과는 극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신년에 [[남인]]에게 대역죄를 씌워 [[경신환국]]을 일으켰던 [[서인]]을 향한 정치 보복의 시작이었다. [[송시열]]에게 유배령을 내리고 [[김수항]] 및 일부 [[서인]]을 조정에서 내쳐버리긴 했지만 분노가 가시지 않았던 [[조선 숙종|숙종]]은 [[남인]]의 부추김으로 [[송시열]]을 최고 유배지인 제주로 유배할 것을 명하고 [[김수항]] 등에게도 진도 유배령을 내렸다. [[민암]]을 위시한 [[남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6판서·참판·참의 등 남인 경재(卿宰) 수십인과 사헌부·사간원이 합계(合啓)하여 과거의 환국([[경신환국]])을 위해 역모를 날조하여 무고한 남인 영수 [[허적]]과 [[윤휴]] 들을 살해하였고 과격한 처벌로 죄없는 [[남인]] 인사를 학살한 [[김석주]]와 [[김익훈]]의 죄를 묻게 하였으며 이들을 옹호하였던 [[송시열]]과 [[남인]] 옥사의 위관으로서 [[남인]] 재상 [[오시수]] 등을 죽게한 [[김수항]]의 가중처벌을 맹렬히 주장하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먼저 제주 유배 중인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처형의 명을 내리고, 그에 이어 희빈에게 자진을 명하는 비망기를 내린다. 이에 대신들이 반대하자 숙종은 [[구익부인]]<ref group="주">한무제의 후궁으로서 무제는 그가 죽기 전에 비록 구익부인에겐 죄가 없지만 태자의 어미가 살아있다면 이후에 화가 될 수 있다며 죽였다. 한무제는 즉위 초 생모와 외척에게 시달려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정사를 펼칠 수 없었고 생모가 죽고나서야 꼭두각시 황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는 숙종의 즉위 초기와 흡사하다.</ref> 의 예를 들지만 숙종의 나이가 젊으니 한무제와는 경우가 다르다며 대신들이 반대하였다.
         ** 전모(前母) : [[제주 고씨]](濟州 髙氏, ? ~ 1645년) - 고성립(高誠立)의 딸
         기록의 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조선 시대의 신분법 상 희빈 장씨를 얼녀 출신 천민으로 계산하기에는 오차가 있다. 희빈 장씨의 생모인 윤씨는 첩이 아닌 엄연한 정실 부인인 계실이었으며, 남의 집 여종을 첩도 아닌 정처로 삼기엔 [[장형 (조선)|장형]]의 사회적 위치 및 조건이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ref group="주">남의 집 여종을 아내로 삼은 자를 비부(婢夫)라 하는데, 비부는 아내의 주인 집에 종속되어 그 집안의 대소사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식은 탄생한 즉시 주인집의 사유재산이 된다. 이러한 한계때문에 자신의 남종이 남의 집 여종과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노인이 되도록 혼인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지극히 가난하여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양인 남성이 생계를 유지하고 대를 이을 목적으로 비부를 자청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실록 등에 기록된 강력 범죄 사건에 비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비부가 법적으로는 그 가문의 종이 아니기에 사례를 조건으로 주인의 범죄를 대리시켰거나 덮어씌운 결과인데 이는 비부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f> 첩을 처로 만들 수 없는 조선의 국법<ref group="주">[[윤원형]]이 첩 [[정난정]]을 처로 만든 전례가 있어 첩을 처로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인 양 오해되고 있지만 [[윤원형]]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사후에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던 공식적인 이유는 국법을 어기고 첩을 처로 만들었다는 죄목때문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첩실을 정실로 격상할 수 있는건 왕과 왕세자 뿐으로, 이 또한 1701년 이후로 금지되었다.</ref> 과 윤씨 소생 아들인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무과(武科)로 등용<ref>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ref> 되어 [[1680년]]에 내금위에 재직<ref>숙종실록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 中 동평군 이항의 공초내용</ref> 하였고 [[1683년]]에 좌포도청 부장에 재직<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하였던 점<ref group="주">선조16년 병조판서였던 [[이율곡|이이]]의 주청으로 납속을 낸 서얼을 허통하여 무과에 입시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숙종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청요직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무과에 합격한 서얼은 관직은 받지 못한채 무기 발령대기 상태로 남거나 지방 군졸로 발령, 혹은 외적의 침입이 잦은 국경으로 발령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중인 역관의 얼자가 [[내금위]]에 재직하고 경내 좌포도청에 부장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의 후궁이 된 건 1686년 12월이니 누이의 후광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ref>, [[1689년]] 11월 13일 윤씨를 당하관인 역관의 처로 언급한 윤덕준(尹德駿)의 상소내용<ref group="주">조선시대에는 처와 첩, 적서의 구분을 명확히 구분하여 언급하거나 기록하였다.</ref>, [[1698년]]에 사망한 윤씨가 남편 [[장형 (조선)|장형]]과 전처 제주 고씨의 옆에 나란히 매장된 것<ref group="주">첩은 가문의 묘산에 매장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별히 매장되더라도 남편 부부의 무덤에서 떨어진 음지나 발치 아래에 묻어 정처와 확고한 차별을 두었다. 희빈 장씨는 1694년에 강봉되었으며 오빠 장희재가 [[노론]]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데다가 왕세자인 아들 [[조선 경종|경종]]은 [[인현왕후]]에게 입적되어 [[노론]]이 이미 모자의 연이 끊겼다고 주장했던 만큼 만약 윤씨가 첩으로서 처와 동등하게 매장되었다면 당시 탄핵이 되지 않았을 리 없으며 희빈 장씨의 사후나 경종의 사후에도 반드시 탄핵이 있었어야 정상이다.</ref> 은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이 원자가 되어서나 그녀가 왕비가 되어 [[조선 숙종|숙종]]이 특별히 장씨의 생모를 첩에서 처로 승격해주었을 가능성조차 극히 희박함을 증명한다. 이는 윤씨가 설사 여종 출신이었더라도 이미 면천한 후에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이 되어 장씨 남매를 낳았음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장씨 남매에게는 노비 종모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의 신분은 아비를 따라 중인이 된다. 물론 윤씨가 애초에 종 출신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f group="주">종(奴婢)의 정의에는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조사석의 처인 권씨는 권문세가의 딸이고 윤씨는 역관의 딸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교류하였던 것을 신분의 위계 상 윤씨를 종으로 비유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민진원]]의 특기이기도 했다는 점이 유의사항이다.</ref>
  • 고주원(배우) . . . . 4회 일치
         || '''출생''' ||<(> [[1981년]] [[10월 16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삼무로) ||
         || '''학력''' ||<(> [[호텔스카이파크 제주1호점]] ||
         [[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81년 출생]][[분류:한국 남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2003년 데뷔]]
  • 송창현 . . . . 4회 일치
         ||<:> '''학력 ''' || 포항대해초 - 매송중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 - [[제주국제대학교|제주국제대]]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를 거쳐 제주국제대로 진학한다.
         대학에서의 통산성적은 31경기 나와 5승 13패 148이닝 투구 141피안타(4피홈런) 74'''[[볼넷]]''' 29'''[[몸에 맞는 볼]]''' 94K 20'''[[폭투]] ''' 3'''[[보크]]''' [[평균자책점]] '''3.34'''~~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를 기록한다. 이 시기에 제주도에서 야인생활을 보내고 있던 [[김응용]]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 임성은(가수) . . . . 4회 일치
         ||<#eee> '''출생''' || [[1971년]] [[2월 19일]] ([age(1971-02-19)]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eee> '''학력''' || 제주고등학교 (졸업) ||
         [[분류:1971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한국 가수]][[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전락원 . . . . 4회 일치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후 올림포스 관광호텔 대표이사로 관광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한 그는 [[1973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워커힐 카지노를 인수하며 국내 카지노 사업의 대표주자<ref name="카지노">[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408415 전락원회장 별세… 파라다이스그룹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로 활약하였다. 그는 워커힐 카지노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인맥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례로 부산, 제주,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파라다이스 호텔을 설립하고 부산과 제주, 인천에도 카지노를 개장하며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활동하였다.<ref name="카지노"/>
         워커힐 카지노 사업을 맡고 있는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는 지난 2002년 11월 코스닥에 등록했으며 파라다이스 호텔체인은 파라다이스호텔 제주, 케냐의 파라다이스 사파라파크호텔,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도고, 파라다이스호텔 인천 등 국내 토종 호텔 브랜드로 유명하게 되었다. 이후 계열사별로 전문 CEO체제를 구축, 그룹 경영에서 한발 물러섰으며 2004년 계원학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룹경영에서 물러난 후 같은해 11월 3일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1972년 4월 (주)파라다이스 제주 설립
  • 해원군 . . . . 4회 일치
         [[인성군 이공]]의 3남(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일찍이 [[1619년]] '''해원정'''(海原正)에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핍박 섞인 모함으로 인하여 모반역모 혐의를 받자 [[1628년]]을 기하여 형 해평군 · 해안군, 아우 [[해양군]] 등과 아울러 역신의 후손이라 하여 [[제주도|전라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뒤 [[1635년]] [[제주도|전라도 제주]]에서 [[울진군|경상도 울진]]으로 이배되었고 2년 후 [[1637년]] 석방되었다.
  • 황보관 . . . . 4회 일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1994년]] [[8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1995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여 [[1996년]]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는 등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였다. [[1998년]] 시즌 중 은퇴하였다.
         * [[1988년]] ~ [[1995년]] {{국기그림|대한민국}}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
         ==== {{국기그림|대한민국}}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 ====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권수현(배우) . . . . 3회 일치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86|8|18}}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A%B6%8C%EC%88%98%ED%98%8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476469 권수현-네이버인물정보]</ref>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남치근 . . . . 3회 일치
          * 1552년(명종 7) 제주목사가 되어 제주도를 침공한 왜구를 격퇴.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상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절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연정(우주소녀) . . . . 3회 일치
          * [[https://tv.naver.com/v/1201579|<제주도의 푸른 밤(최성원)>]] with 기현 - 엠카운트다운
         2016년 10월 27일, '엠카운트다운 - 제주도 특집'에 출연해 소속사 선배 몬스타엑스 기현과 함께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을 공연했다.
  • 이효정(남배우) . . . . 3회 일치
          *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김익렬]] 역)[* 제주도 [[4.3사건]] 당시에 좌우파의 극단적인 갈등속에서 제주도 양민들을 지키려고 한 제주도 9연대장인 김익렬 중령의 역할을 인상깊게 소화하였다.주인공인 장하림(박상원)과 더불어 갈대밭을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 임수정(탤런트) . . . . 3회 일치
         드라마 종영 후 [[안양시]]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는데 전국각지에서 온 팬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결국에는 안전 문제로 취소되기도 했다. 무튼 2004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네티즌상,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며 2004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장화, 홍련》이 연기자 임수정을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대중적 스타인 임수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2007년 9월 당시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인기절정이었던 공유와 [[제주도]] 여행을 갔다는 특종이 실린다. 당시 [[수학여행]] 중이던 많은 고등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누리꾼들은 학교 4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다며 이들의 연애를 주장했지만..... 사실 단 둘이서 간것이 아니라 [[이천희]], [[공효진]], [[여욱환]] 등의 이들과 절친한 이들과 함께 여행을 간것이었다. 2008년 3월 7일 방송된 [[놀러와]]에선 당시 같이 여행을 간 이천희가 출연해 내막을 밝힌바 있다. 당시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이 공항에서 임수정과 공유를 알아보고 몰려들어 일행들이 베이비룸으로 피했으나 일행과 떨어진 이천희가 뒤늦게 합류해 문을 열다가 이들이 플래시 세례를 받아 오해를 샀다는 것. 특히 여행 중 이천희는 임수정과 쇼핑도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가졌다고(...)[[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803080004|#]]
  • 장가용 . . . . 3회 일치
          | 기타 이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외과]] [[의사]], [[의학자]], [[교수|대학 교수]] <br/> [[종교|종교인]], 인도주의자, [[수필|수필가]] <br/>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br/>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보건행정교육특임위원(2002년)
         [[외과|외과 의사]] [[장기려]](張起呂) [[의학박사]]의 둘째아들로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안북도]] [[룡천군|용천]]에서 성장하였다. [[한국 전쟁]] 때 아버지 [[장기려]]를 따라 남하하였고 그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군의무관]] [[소령]]으로 예편하였고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장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안동 장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제주대학교 교수]][[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장강명 . . . . 3회 일치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4년 PC 통신 하이텔에 SF 소설을 연재하고, 군 복무 중에는 장편소설을 투고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으나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퇴사하였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E%A5%EA%B0%95%EB%AA%85&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4607|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신문기자 관두고 2년만에 소설 6권, 문학賞 휩쓸어… 글만 써 먹고살고 싶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112580|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조선닷컴 인물검색|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200609200038034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YES24 《한국이 싫어서》 소개|url=http://www.yes24.co.kr/24/goods/1797227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
         * 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ref>(2세대 댓글부대)/2015/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ref>
  • 정경호(1972) . . . . 3회 일치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72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출생 : 1972년 3월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채형석 . . . . 3회 일치
         1960년 서울에서 애경그룹 창업주 [[채몽인]](蔡夢印)과 [[장영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제주판관을 역임한 [[채구석]](蔡龜錫)이다.
         [[2002년]] 1월부터 [[애경그룹]] 부회장이 되었고,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구조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따내며 [[제주항공]]으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1|날짜=2016-01-12|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 최문식 . . . . 3회 일치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상무]] (군복무)<br />[[전남 드래곤즈]]<br />[[오이타 트리니타]]<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결국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였던 [[김호]]의 부름을 받고,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으며, [[2002년]]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SK]]로 이적했으며, 한해 동안 28경기에 출전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인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허범산 . . . . 3회 일치
         |클럽=[[대전 시티즌]] <br /> [[제주 유나이티드]] <br /> → [[강원 FC]] (임대)<br> → [[부산 아이파크]] (임대)<br> → [[아산 무궁화 축구단|아산 무궁화 FC]] (군복무)
         [[2014년]] [[1월 7일]]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동명초등학교 동문]][[분류:재현중학교 동문]][[분류:재현고등학교 동문]][[분류:우석대학교 동문]]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2회 일치
         지도가 세세해졌다. HOI2에서는 프로빈스 하나였던 [[이오지마]]가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 모토야마의 세가지 프로빈스로 나뉘었다던가, [[쿠바]]에 [[관타나모 해군기지]]가 추가되었다던가. 하지만 세세해지기만 한 건 아니라서 [[제주]]가 [[광주]]에 통합되었다.
          자유 시장↔중앙 계획. 자유 시장에 가까울수록 유닛 업그레이드 시간과 필요 공업력이 감소하며, 소비재 생산으로 얻게 되는 자금이 증가한다. 하지만 연구진의 임금이 증가하며, 연속 생산 보너스 역시 감소한다. 이 슬라이더의 한도는 민주주의↔전제주의 슬라이더의 영향을 받는다. 국가가 독재적이라면 자유시장으로 슬라이더를 당기는게 제한되고, 국가가 민주적이라면 중앙계획으로 슬라이더를 당기는게 제한된다.
  • K리그 . . . . 2회 일치
         역사적으로 K리그는 1983년 탄생한 [[수퍼리그]]를 전신으로 한다. 이 당시에는 아직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없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이하 KFA)의 주도로 대회가 탄생하였으며 완전한 프로리그는 아니었다. 총 5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에서 완전한 프로팀은 유공(現 제주 유나이티드), 할렐루야 두 팀 뿐이었고, 나머지 세 팀은 실업팀이었던 국민은행, 포항제철(現 포항 스틸러스), 대우(現 부산 아이파크). 물론 이 세미프로팀들도 당시에는 프로전환을 고려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업팀(=세미프로)이 더 많았던 리그임은 사실이다. 또한 참가팀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승강제는 애초에 구성하기도 불가능했다.
          * [[제주 유나이티드]]
  • 곽월 . . . . 2회 일치
         '''곽월'''(郭越, [[1518년]] ~ [[1586년]] [[8월 6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이다. [[1556년]](명종 1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제주목사에 이르렀다. 본관은 [[현풍 곽씨|현풍]](玄風)으로 자는 시정(時靜), 호는 정재(定齋) 또는 정암(定庵)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아버지이다. 사후 아들 [[곽재우]]의 훈공으로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그 뒤 청송(靑松)부사로 나갔다가 [[1581년]] [[제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고, [[1585년]] [[남원]][[부사]]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86년]]에 향년 68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정암선생유고(定庵先生逸稿)가 있다. 사후 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 구자춘 . . . . 2회 일치
         [include(틀:역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1963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경찰로 근무하여, 치안국(현 경찰청) 정보과장, 서울시경(현 서울지방경찰청) 국장, 경찰전문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뒤이어서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상북도지사를 차례로 맡았다.
  • 김재규 . . . . 2회 일치
         서명숙 현 제주 올레 이사장이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사기 혐의로 들어온 한 ‘장군의 부인’을 만난다. 이 장군의 부인은 수감 중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지만, 죽인 이가 다름 아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소식에 안면을 바꾸었다고 한다. '김재규 장군이 그랬다면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서명숙에게 김재규가 군 시절 얼마나 참된 군인이었는지 조목조목 들려주었다고 한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21781|#]]
         다만 현재 김재규의 유족은 수백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유복하게 살아가고 있다.[[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8057|기사]] 김충식이 쓴 남산의 부장들에 따르면 제주지역에서 수렵장을 건설하겠다는 청탁을 김재규가 받아들였는데, 이를 김정렴 실장이 제지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에 따르면 장충동에있는 자신의 30억짜리 집을 1억 주고 뺏어가서 10.26 이후에 전두환에게 돌려받은 일이 있다.
  • 김현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 [[제주고등학교]]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
  • 유지태 . . . . 2회 일치
         2003년 [[단편 영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영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영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영화제와 제8회 제주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태, 네 번째 작품 제주영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태, 인디판다 국제단편영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 유해진(배우) . . . . 2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문단, other1=미군정기 제주도의 2대 도지사, rd1=제주 4.3사건, paragraph=9.2)]
  • 이영 (1494년) . . . . 2회 일치
         [[조선 중종|중종]] 때인 1514년(중종 9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으며, 절도사, 참판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 있으면서 염근(廉謹)하기가 무반(武班)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라는 평을 들었다. 1545년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단천 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정평 부사에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평부사 재직시 사적으로도 백성을 범하지 않아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었다. 1552년 회령부사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치를 베풀고 청백리에 뽑혔다. 또한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이듬해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비 확충과 군사훈련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 부사가 되었다. 1556년 평안도 절도사가 되었다. 그 후 병조참판과 제주 목사·경상우도 병마절도사·부호군·호군 등을 지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도민이 그의 업적을 추모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안하고 참배하였으며 그 당을 괘편당(掛鞭堂)이라 하였다. 그의 졸기에 의하면 [[대구]](大丘)의 집에 화재를 당하여 처자가 살 데가 없게 되자, 주상이 그 고절(苦節)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집을 지어 내려주고 또 의복과 식량을 이어주게 하였다 한다. 그러나 성질이 편협하고 급하여 형벌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는 평도 있다. 1563년 2월 호군으로 재직 중 졸하였다.
  • 이철우(1955) . . . . 2회 일치
         2018년 9월 10일 두번째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에서 4위[* 1위 김영록 전남지사, 2위 원희룡 제주지사, 3위 권영진 대구시장]를 차지하며 포스트 [[김관용]] 체제의 틀을 닦아나가고 있다.[[http://news1.kr/articles/?3422005|#]]
         [[2017년]] [[6월 20일]]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타운홀미팅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발언[*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지지층 결집용으로 격한 말을 던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으로 파문이 일었다. 내년 지선과 총선에서 당이 승리를 결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의 현재 하는 행동이 박근혜처럼 탄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비난을 한 것.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막말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 흔들기를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http://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01&aid=0009348444&sid1=100&date=20170620&ntype=RANKING|연합뉴스]] 본인은 이 사태를 단순히 문재인이 경각심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해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830754|한국당 이철우 '문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논란에 "경각심 차원의 말"]]
  • 정용화 . . . . 2회 일치
         정용화는 1989년 6월 22일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ref name="mynameis">{{뉴스 인용|제목=정용화│My name is…|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873|출판사 = 텐아시아|저자 = 최지은|날짜 = 2009-12-01|확인날짜 = 2014-04-05}}</ref> 제주를 다녔으며, 자신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ref name="mynameis"/> 데뷔 전 스키장 [[얼짱]]으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하였다.
         * [[2011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인디즈 마지막 앨범인 《[[392(Thank you too(much))]]》를 발매하여 오리콘 데일리 앨범 3위와 인디즈 위클리 1위를 차지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앨범 ‘392’, 오리콘 데일리 앨범 차트 3위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93705691|출판사 = 맥스뉴스 |날짜 = [[2011년]] [[9월 2일]]}}</ref> 또한, [[2011년]][[9월 10일]]에 일본에서 열린 일본 마쿠하리 멧세(MAKUHARI MESSE)에서 열리는 [[린킨파크]](Linkin Park) 단독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CNBLUE), 린킨파크(Linkin Park)와 '오프닝 무대' 가져|url= http://www.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출판사= 톱스타뉴스|날짜= [[2011년]] [[9월 9일]]|확인날짜= 2012년 8월 19일|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0220518/http://topstarnews.net/n_news/news/view.html?no=3065|보존날짜= 2013년 1월 20일|깨진링크= 예}}</ref>[[9월 17일]]~[[9월 18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 "BLUE STORM"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고,<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아시아투어 콘서트…9월 제주에서 출발한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10801001713&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 |날짜 = [[2011년]] [[8월 1일]]}}</ref> [[9월 25일]]에는 인디즈그룹으로는 유례없이 1만 5천석의 Yokohama Arena에서 인디즈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단독 콘서트, 요코하마의 밤을 불태운 ‘열정의 무대’|url=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24&nid=119144|출판사 = SSTV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이것이 밴드다…'씨엔블루' 日콘서트,1만 5천 팬 열광 |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7290|출판사 = 노컷뉴스 |날짜 = [[2011년]] [[9월 26일]]}}</ref>
  • 최공웅 . . . . 2회 일치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남영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반공법]]위반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상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최재웅 (배우) . . . . 2회 일치
         |제주아트센터
         |제주아트센터
  • 표창원 . . . . 2회 일치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경찰대학]]을 졸업한 동시에 임용되어 [[제주도]] 전경 소대장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임용 이듬해 1990년 [[화성시|화성]]에서 근무 할 때 그 유명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맞닥뜨리게된다. 수사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당시 직책이 전경 기동소대장이었기 때문에 직접 수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2018년 6월 22일, [[조국]] 민정수석에 의해 검경 수사권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표 의원이 주장한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고, 검찰은 금융 비리, 정재계 사건 특검 등 일부만 직접 맡고 다른 것은 모두 경찰에 맡긴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 업무 중에서도 중하지 않은 사건, 즉 민생 관련 건은 자치경찰로 넘기게 되며, 이를 위해 현재 제주도에만 있는 자치경찰을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하고, 차후 확대한다고 한다.
  • 황두진 . . . . 2회 일치
         * 2014 제주 보목동 주택(제주 서귀포시 보목동)
  • 황문수 (장기 기사) . . . . 2회 일치
         * [[2003년]] 제13회 [[명인전 (장기)|명인전]] 우승, 2.3기 [[대한홍삼배 엠게임 프로리그]] 준우승, 제2회 [[제주도지사배 전국 장기왕 대회|제주도지사배 전문기사부]] 우승
  • 황수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제주산업대학교]]를 졸업하고 신고선수 신분으로 입단했다.
         * [[제주산업대학교]]
  • 경대수 . . . . 1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br][[새누리당]] 충북도당 위원장[br][[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br]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1, 2차장검사[br]법무부 보호과장[br]제21회 사법고시 합격 ||
  • 고도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제주 고씨]]
  • 고소영 . . . . 1회 일치
         ||<#896AB7> {{{#ffffff '''본관'''}}} ||<(> [[반|제주 반씨]] ||
  • 고원희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11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제주 고씨]]
  • 고유민 . . . . 1회 일치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오래달리기 3등을 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선발은 되지 못하고 [[김주하]]-[[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한유미]]-김진희에 이은 5옵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낙심했으나 간간히 전위에 정미선[* 키는 현대건설 레프트 중에 제일 크지만 키에 비해 점프력이 좋질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에 수비나 공격이 밸런스 하니까. 이런 레프트가 전체 5순위까지 밀려?--]이 올때 원포인트 블로커로 기용되거나 한유미의 리시브가 불안할때 대체요원으로 기용되었다.
  • 광해군 . . . . 1회 일치
         결국 광해군의 지나친 대북 밀어주기에 반발한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왕위에서 쫓겨난다. 광해군은 유배되었으며 각지를 전전하다가, 최후에는 제주도로 유폐되어 거기서 죽는다.
  • 김갑수(배우) . . . . 1회 일치
         || [[드라마시티]] - 제주도 푸른밤 || 노숙자 || 출연 || ||
  • 김경준(축구선수) . . . . 1회 일치
         4월 22일 토요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클래식]] 7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68&gid=&cpage=1&spage=1|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했다. 팀은 2:4로 패배했다.
  • 김대휘 . . . . 1회 일치
         1985년에 서울형사지방법원, 1987년에 [[춘천지방법원]], 1989년에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1990년 서울고등법원으로 전보되어 판사로 재직하였다.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할 때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을 겸직하다가 1994년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제주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1997년 [[인천지방법원]], 1998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1999년 서울지방법원, 2001년 부산고등법원, 2003년 서울고등법원으로 전보되어 부장판사를 하였다.
  • 김상희 (1951년) . . . . 1회 일치
         * 1982.08 ~ 1983.08 :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 김성주 (기업인) . . . . 1회 일치
         김성주는 MCM을 글로벌하게 키워냈으며 직설적이고 튀는 발언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2014년 제주 BPW(Business & Professional Women) Congress에서 '글로벌 여성 지도자 상' 수상 당시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더이상 권리가 아닌 의무"라며 "세월호 사태도 기득권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며 여성들은 더이상 이런 사태를 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장관의 1/3은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 김준현(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면종류의 [[요리]]들을 끊어먹는 걸 대단히 싫어한다. 라면, [[국수]], [[냉면]] 등 소면이나 중면급 면을 쓰는 면요리라면 어지간한 길이라도 그냥 한번에 들이키는 수준.[* [[백종원의 3대 천왕]] 21회 '갈라쇼' 편 당시에 제주도의 한 짬뽕집에서 거의 키 길이만 한 짬뽕면을 원샷(...)해서 점주와 손님들이 감탄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면발이 굵어서 대충 씹고 넘기는게 불가능한 경우(손칼국수나 수타 우동중에 아주 드물게 있다) 엔 드물지만 살짝씩 끊어먹는 경우도 있긴 있다.[* [[백종원의 3대 천왕]] '짜장면 2편'때 군산의 고추 짜장을 먹다가 면을 가위로 끊었었다. 이유는 너무 매웠기 때문. 평소처럼 들이키다 짜장에서 나오는 매운맛으로 인하여 사레가 들렸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UlpKfX_M0o|맛있는 녀석들에서 나온 김준현의 면먹는 장면 모음]]
  • 김혜영(코미디언) . . . . 1회 일치
         MBC 희극인실(코미디언) 동료이자 선배인 [[강석(코미디언)|강석]]과 함께 1987년부터 MBC 표준FM [[싱글벙글쇼]]의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5공시절 "서울 공화국, 6공 들어서는 "88 돌도사"라는 코너에서 시사풍자를 빵빵 터뜨려 대던 용자짓을 했다....] 현재까지 집안 경조사가 있어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을 하고 있다. 다만 주말과 공휴일은 평일보다 5분 길게 진행한다.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 결혼식 당일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이후에야 결혼식을 하러 갔다고 한다. 게다가 신혼 여행 때도 지역국(제주)과 본사를 연결해서 방송했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회 일치
         || 56 || 2016년 05월 11일 || [[제주 유나이티드]] || : || [[광주 FC]] || 1:1(3:5) ||
  • 도영(1996) . . . . 1회 일치
          * 좋아하는 음식은 [[https://www.youtube.com/watch?v=phLpN6Or48c|치즈가 들어간 음식]][* 치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빵집에 가도 치즈가 들어간 빵을 주로 먹고 좋아하는 케이크도 치즈 케익.]과 팝콘, 화이트 초코, 팥빙수 등 단 음식, 수박과 복숭아, 마라탕, 훠궈 등이며 카라멜 커피를 즐겨마신다고 밝혔다. 또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 제주도 스타벅스 한정메뉴], 명란 바게트[* 스케줄 차 일본에 갔을 때 먹어보고 반한 것 같다.]를 추천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음식은 오이. --재현:오이!!! 도영:나 오이 너무 좋아해-- 사실 오이가 싫은게 아니라 오이 냄새를 싫어하는 것. 피클은 잘 먹는다고 한다. --별명이 토끼임이 무색하게--당근도 싫어하는데 당근 케이크는 또 괜찮다고 한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잘 못 먹는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Dlf2rUo22gM|커피]].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서 카페에 갈 때도 가능하다면 디카페인 주문을 하는 편이라고 한다. 새벽에 잠을 깨려고 억지로 커피를 많이 먹은 날이면 자기 전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못 잘 정도.
  • 문근영 . . . . 1회 일치
          * 바람의 식객이다. 전국 맛집고수들만 안다는 지역 명물 맛집을 가면 종종 그녀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고향인 광주와 학교인 성대 근처 맛집은 물론 제주도, 강릉, 인천 등 도처에서 그녀의 사인이 목격된다. ~~ 맛이 별로인 집은 사인과 함께 ^^ 이모티콘만, 맛있는 집엔 사인 밑에 '대박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등의 친절한 코멘트도 함께 남겨준다카더라~~
  • 문문 . . . . 1회 일치
         전 여자친구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애월'만 해도 가사에 여자친구와 제주도 애월에 여행갔던 기억이 담겨있고, '아침'은 여자친구와 아침산책 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의 대표곡인 '비행운'도 전 여자친구가 해준 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고 하니 말 다했다. 심지어 'Roach' 후렴구 부분은 문문의 전 여자친구가 피쳐링도 해주었다.
  • 박근혜 . . . . 1회 일치
         |‘제주 돌고래호 사고’, 이산가족 협의 타결, 지역 현장행보
  • 분류:서귀포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인물]]
  • 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인물]]
  •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서귀포시 . . . . 1회 일치
         [[분류:서귀포시 출신|서귀포시 출신 인물]][[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도시]][[분류:1981년 설치]][[분류:2006년 폐지]][[분류:2006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서효림 . . . . 1회 일치
         |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천제연로)
  • 성현아 . . . . 1회 일치
         그 이후 [[2018년]] KBS 2TV 아침 TV 소설 [[파도야 파도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는데 KBS 정극으로 치자면 1997년 월화 미니시리즈 [[열애 (1997년 드라마)|열애]]<ref>{{뉴스 인용| 제목= '제주 초원'서 그리는'사랑의 수채화' KBS 새미니시리즈 '열애'6일 첫방송 박상민·성현아·이정길·정애리등 열연| url=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300329127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3&officeId=00032&pageNo=27&printNo=16233&publishType=00010| 출판사= 경향신문| 저자= 오광수| 쪽= | 날짜= 1997-10-03| 확인날짜= 2018-09-25}}</ref> 이후 21년 만이었으며 그 이후 [[내사랑 누굴까|내 사랑 누굴까]] 등의 KBS 정극에서 섭외가 왔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절했다.
  • 손철주 (1954년) . . . . 1회 일치
         1997년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세상에 내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ref name="다음"/> 이 책은 미술교양서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평가받는다.<ref name="중부뉴스"/><ref>{{뉴스 인용|저자=정은선|제목=손철주 평론가 조선시대 미술 특강|url=http://www.leisur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9|날짜=2017-05-17|확인날짜=2017-12-15|뉴스=제주레저신문}}</ref> 유려한 문체로 전통미술 이해를 돕는다.<ref>{{웹 인용|저자=김유리|제목=미술평론가 손철주 “누구나 취향은 태생의 문화적 DNA로 기운다”|url=http://ch.yes24.com/Article/View/23662|웹사이트=채널예스|출판사=예스이십사(주)|확인날짜=2017-12-15}}</ref>
  • 영주시 . . . . 1회 일치
         [[동남방언]] 중에서도 안동, 봉화,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 방언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나마 평야가 많은 안동, 예천 등과 달리 산악에 걸터앉은 지형인지라 영주-봉화 사투리는 안동과도 미묘하게 다르다. 때문에 경상북도에서도 사투리가 조금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 지역에서는 사투리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가장 먼 부산보다 그나마 수도권과 가까운 영주의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강원도 남부지방과 충청북도 동부([[제천시]], [[단양군]]) 이들 지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있기 때문. [[부산]]을 비롯한 경남 해안가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하면서 어설프다고 놀리기도 한다. 가끔 수도권 사람들이 사투리 별로 안 쓴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은 영주 사투리의 예문이다.
  • 오승훈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5년 3월 7일 2015 시즌 대전의 첫 경기였던 [[부산 아이파크]]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자신의 K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1골을 실점하며 1:0 패하였으며 이어진 [[광주 FC]]와의 홈 개막전에도 선발출전하였으나 2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이후에도 3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전 5:0 패, 4월 4일 [[성남 FC]]전 4:1패로 두 경기 동안 총 9골을 실점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이어진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는 [[박주원 (축구 선수)|박주원]]에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1회 일치
         이 때, 삼실이 세 바퀴 남아 있어 이 땅을 미와(三輪)라고 이름붙였다. 딸의 자손인 오오타타네코(意富多多泥古), 오오모노누시노카미를 모시는, 오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제주가 되었다.
  • 우찬양 . . . . 1회 일치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제주전에서 최순호 감독이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시즌 첫 선발출장을 했다. 팀 자체가 2군급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눈에 띌만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 원우(가수) . . . . 1회 일치
         그러나 멤버들과 지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어 예전과 비교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래퍼로서 가사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음악으로 묵은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며, 데뷔 초 <내 친구의 고향은 어디인가> 제주도 편에서는 멤버들과 속마음 토크를 진행하며 "[[세븐틴(아이돌)|세븐틴]] 안 했으면 참 재미없게 살았을 거 같아."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일동 : 맞아!! / [[호시(세븐틴)|호시]] : 아냐, 넌 충분히 웃겨!~~ 다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은 여전해 친분이 있는 연예인은 회사 식구 및 멤버들 뿐이다.
  • 유승민(정치인) . . . . 1회 일치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절 소장파 정치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권영진(정치인)|권영진]], [[남경필]], [[원희룡]] 등이 각각 대구시장,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로 가게 되면서 중앙정치로 멀어짐과 때를 같이하여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상징성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 이근택(1865) . . . . 1회 일치
         본관이 [[전주 이씨]]다. [[성종(조선)|성종]]의 아들인 경명군의 아주 먼 후손으로, 1865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 출신이며 초명은 근용(根湧)이다. 무신 집안이었지만 출사의 계기는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 민씨]]에게 싱싱한 [[생선]]을 진상함으로써 눈에 들어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성 황후가 환궁하면서 벼슬길에 들어섰다. [[1884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입문하였고 병조 참판 등을 역임 한 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당시 친위 연대 제3대대장으로 정부 전복을 꾀하려다가 발각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 이동흡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3월 22일에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03년 9월 선거구 아파트 조기축구회 창단식에 참석해 고사상에 현금 20만원을 기부하고 같은해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이장단 단합대회에 두차례 참석해 1100만여원 상당의 음식값과 술값을 후배를 통해 지급하여 기소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이장단 단합대회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여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19344]</ref>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에 대해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51]</ref> [[열린우리당]]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시스템클럽]]에 게시하여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군사평론가 [[지만원]]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74]</ref> 3월 29일에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경선 당시 인쇄물을 배부한 대상은 입당 원서가 지구당이나 중앙당에 제출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21828]</ref>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 이승엽 . . . . 1회 일치
         * 2009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명예홍보대사
  • 이연희(배우) . . . . 1회 일치
          * 2009년 음료 《한국코카콜라 "휘오제주V워터+"》
  • 이요원 . . . . 1회 일치
         * [[농심]] [[제주삼다수]]
  • 이유리(배우) . . . . 1회 일치
         같은해 2002년 [[S.E.S]] 출신 [[유진(배우)|유진]]의 본격적 연기 데뷔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KBS 드라마 《[[러빙유]]》에서 생애 첫 악역이었던 '조수경'역으로 출연했다. 그녀는 극 중 제주도 해녀인 '다래(유진)'의 중학교 동창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천사표로 동창인 다래를 몹시 위하는 듯 보이나 다래가 '혁([[박용하]])' 을 구한 증표인 프레임바를 훔쳐 마치 제 것인냥 공을 가로채려는 등의 각종 악행을 저질러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 안티가 급증하는 등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 장우석 . . . . 1회 일치
         [[2003년]] 《OST-BOX》에 <영화 《[[하얀 비요일]]》 OST 리뷰>를, [[2006년]] 《[[녹색평론]]》 87호(2006년 3~4월)에 <4.3 항쟁, 변방, 끝나지 않은 세월><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5922 김경률 감독 추모전 대구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2006.3.24.</ref>을 각각 기고한 이후 《[[오마이뉴스]]》, 《[[대구신문]]》, 《이삭》 등 여러 매체에 지역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으며,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영남일보]]》에 [[영화]]칼럼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영잡감)><ref>[http://www.yeongnam.com/ynsearch/search.jsp?searchWord=장우석의+전영잡감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영잡감)> 연재 읽기], 《영남일보》, 2014.3.14~현재.</ref>을 연재하고 있다.
  • 장재인 . . . . 1회 일치
          * [[2018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추모 공연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공개되었던 사진을 보면 미모가 물이 오르고 있다.
  • 전소민(배우) . . . . 1회 일치
          * 독특한 습관으로 면을 먹을 때 아무리 길어도 좀체 안 끊고 입 안으로 흡입해서 먹는다. 제주도 고기국수를 먹을 때는 무려 7번이나 [[면치기]](?)을 하기도. 숨도 안 쉬고 흡입하는듯한 모습이 독특해서인지 [[런닝맨]]에서 면요리를 먹을 때마다 클로즈업을 받고 있다.
  • 정난정 . . . . 1회 일치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 (조선)|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
  • 정웅인 . . . . 1회 일치
         |align="center"|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외 대구, 부산, <br >화성, 수원, 안산, 성남, 이천, 안양, 제주, 동해 공연
  • 정형돈 . . . . 1회 일치
         * 2014년 11월 - 제주 중앙로점(14일)
  • 조원진 . . . . 1회 일치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 주다영 . . . . 1회 일치
         * (중국)한위싱동타이 - 제주특집(2014.8.8)
  • 진구 . . . . 1회 일치
         * 2013년 제9회 제주영화제 홍보대사
  • 차민수 . . . . 1회 일치
         * 차민수는 [[쿵푸]] 공인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2004년에 회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올인' 실제주인공 차민수씨 미술전|저자=이홍렬 기자|출판사=조선일보|날짜=2004-07-30}}</ref>
  • 최석기 . . . . 1회 일치
         그는 [[NH농협 2008~2009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수원 KEPCO 45]]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하였다. 그러나 팀은 단 한 번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는 [[공정배]] 감독(현재[[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단장) 이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상무를 이기고 기나긴 25연패를 끊으며 첫 승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3월 5일]]에 열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블로킹을 올리는 활약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908 〈프로배구〉KEPCO 45, 현대캐피탈 제압 '대이변'] 《제주투데이》 2009년 3월 5일 23:54, 2009년 3월 19일 1:37 확인</ref>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최성준은 1957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86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1989년 3월 서울형사지방법원 1990년 9월 제주지방법원 1992년 8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법원행정처 송무국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가 1995년 3월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특허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2000년 2월 수원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계속하였으며 2005년 2월 특허법원 고등부장판사, 2006년 8월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 고등부장판사, 201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수석부 부장판사를 하였으며 2009년 3월에는 2년 임기의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최재연 . . . . 1회 일치
         * 건축2002년 제주기적의도서관
  • 추봉 (배우) . . . . 1회 일치
         * 1993년 《작은 거인》- 제주 김사장 역
  • 한상대 (검사) . . . . 1회 일치
         조선일보는 2011년 7월 21일자 6면 <권재진·한상대, 같은 시점에 제주 한동네 오피스텔 샀었다>는 기사를 통해 한상대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은 2011년 7월 21일자 1면 <한상대 후보 양도세 탈루 의혹>이라는 기사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서울시내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땅을 다운계약으로 헐값에 팔아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20일 제기됐다"고 보도했다.<ref>[http://www.injournal.net/sub_read.html?uid=22642§ion=section3 MB와 끈끈한 한상대 양파 검찰총장?]《인터넷저널》2011년 8월 5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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