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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필성
         [[롯데 자이언츠|롯데]] [[프런트]]가 [[정민태]]와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등 [[김시진]] 감독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코치 4명을 2군으로 내리려고 하자 [[김시진]] 감독이 반발하며 자진 사퇴하려고 했을 때, 프런트에서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가려고 했다는 기사가 떴다.[[http://sports.donga.com/3/all/20140824/65973966/3|관련기사]]
  • 권혁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 김상진(1970)
         외국인 용병 선수제가 도입되기 전의 1990년대 [[KBO 리그|한국프로야구]]는 에이스들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삼성에는 [[김상엽]], 한화에는 [[정민철]], 현대에는 [[정민태]], LG에는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해태에는 [[이대진]], 롯데에 [[주형광]], 쌍방울에는 [[김원형]]이 있었다면 OB에는 단연 김상진이었다.
  • 김성현 (1989년)
         그러나 2군에서 [[정명원]], [[조규제]] 같은 뛰어난 코치의 지도 및 1군에서 [[정민태]]의 조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상승, 2010년에는 1군에서 어느 정도 자기 몫을 다했다. 90이닝을 던지면서 7승 8패 방어율 4.9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인 것. 당시에는 어린 축에 속하는 투수였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주무기는 시속 15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빠른 공. 여기에 스플리터를 정민태 코치로부터 전수받았다. 넥센의 젊은 투수들이 그렇듯이 제구력의 향상이 큰 숙제. 오죽하면 별명이 '볼크(볼질+보크)'였을 정도였고, 선수 본인도 당시에 이 별명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볼질로 주자를 내보낸 이후 여지없이 무너지는 새가슴도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 김세현 (야구 선수)
         [[2007년]] 시즌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됐고, 선수단을 승계하여 새로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에서 혹독한 2년차를 겪으면서 [[2008년]]과 [[2009년]]에 뚜렷한 활약이 없었다. [[2009년]] 18서울에 등판해 1승 3패,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시진]]이 [[강윤구]]와 함께 선발진에 진입할 만한 선수로 꼽았고 당시 투수 코치였던 [[정민태]]도 가능성을 인정했다. 코칭 스태프들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으나, [[2010년]] [[1월 4일]]에 개인 훈련 중 무릎 십자 인대가 파열돼 [[2010년]] 시즌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했으며,<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3031185 왼쪽 십자 인대 파열 김영민, 올 시즌 사실상 아웃] - 뉴시스</ref> 이로 인해 병역이 면제됐다. 재활 후 [[2011년]]에 복귀해 [[2011년]] [[6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데뷔 첫 선발 승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170002 무릎 부상 이겨낸 김영민의 값진 첫 선발승] - OSEN</ref> 그러나 무릎 부상이 재발해 8경기 출장에 그친 채 다시 엔트리에서 빠졌다.
  • 김시진(야구감독)
         김시진 본인과 정민태 코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파 투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떠난 이후로도 히어로즈의 투수들은 상당수가 140km/h의 볼과 그것을 뒷받침 할 슬라이더와 120Km/h의 낮은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삼고 있는데 제구 불안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걸 떠날 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2013 시즌 롯데에서의 실패는 분명 감독 본인 잘못이지만 2014 시즌에는 시즌전 이미 권영호 수석코치부터 별 이유없이 잘린 것을 시작해서 프런트의 선수를 향한 폭언과 훈련 스케줄에 대한 간섭, 또한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대표이사가 4월부터 번트 대지 말라, [[최준석]], [[장성우]]를 2군에 내려라, [[박종윤]]을 쓰지 말고 [[최준석]]과 [[히메네스]]를 쓰라, 기타 타순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등(이때 이미 사퇴의사를 한번 밝혔다.) 이미 2014년의 롯데 성적의 향방은 시즌 전부터 이미 그의 손에서 서서히 떠났다고 봐야 한다. 특히 팀이 잘 나갈 때 내려가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히메네스, 유먼 교체를 요청했지만 프런트에서는 스카우트만 파견한 후 유야무야했고, 시즌 중반에 DTD할때 [[공필성]] 코치가 투수조 이간질(투수운용 간섭)하여 [[정민태]] 코치와 싸우고, 프런트 고위관계자는 감독 욕을 프린트해서 코치들 앞에 던지고, 이후 단장이 감독 불러서 그나마 남아있는 사단 [[정민태|두]][[박흥식(야구)|명]] 포함 4명을 2군으로 내린다고 협박하며 사퇴를 종용할 때 두번째로 사퇴한다고 하는 등 2014 시즌에는 팀에 대한 통제권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였기에 동정표를 받고 있다. 게다가 그 다음 시즌에 적극적인 지원과 프런트의 불간섭을 등에 업고도 화끈하게 8위를 기록한 [[이종운]]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감독 자리에서 해임되었고, 2008년 KBO 기록관으로 근무하다 2009년 히어로즈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용병을 모두 타자로 가져가면서 [[덕 클락]], [[황재균]], [[이택근]], [[클리프 브룸바]], [[강정호]], [[송지만]] 등이 이끄는 강력한 타선을 내세워 한때 4강 싸움까지 노려봤으나 에이스 [[이현승(야구선수)|이현승]]을 4일 로테로 굴리는 등 투수들을 땡겨쓰거나 혹사로 투수진이 흔들리면서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가장 문제점은 감독이 되자마자 어려운 팀 상황에서 팀 투수진을 이끌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했던 [[정명원]] 코치를 대뜸 2군에 보내고 코치로서 1년은 커녕 단 1주일조차도 경험이 없는 생초짜 [[정민태]]를 1군 투수 코치에 기용하면서 넥센 투수들을 망가뜨렸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의 영웅방에서는 투수들이 단체로 부진하자 연일 김시진과 정민태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으나 시즌 후 역대급의 현금 트레이드가 터지면서 선발투수 세 명과 중견수를 모두 잃는 바람에 이때부터 김시진 감독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초대권까지 뿌리며 팬들이 만들어준 팀 창단 부동의 1번 타자 [[전준호]]의 은퇴식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섭섭해한 팬들이 많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게 김시진이 안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이기가 본인 입장에서 창피해서였다. 김시진은 시즌 후 방출 대기령 선수에서 동명이인이던 베태랑 투수 [[전준호(1975)|전준호]], [[이상열(야구)|이상열]] 등이 대거 방출되는 것과 팀이 돈이 없어서 FA로 LG에 떠나보낸 [[정성훈]]과 간판 투수들 및 타자 주전 멤버 4명을 대거 트레이드로 보내는 등 어수선해지기 마련이었다. 김시진이 여기서 막고 싶어하였으나 방출 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등 말을 제대로 전달을 못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결국 빡쳐버린 넥센 팬들이 넥센 히어로즈 공홈 게시판에서 [[김시진]]과 [[정민태]]를 퇴출하자는 릴레이를 펼쳐기도 했다. 그 동안 나름 점잖은 편이었던 넥센 팬들[* 이 무렵에 LG 팬들은 감독과 주장을 데려다놓고 청문회를 시켰고, SK 팬들은 감독이 경질되자 구장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 게 바로 [[문학구장 소요 사태]].]이 김시진을 자르라고 구단에 전화를 하기도 했으며 팬 커뮤니티에서 조차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결국 참다 못한 구단 측에서 경질을 하게 되었다. 사실 [[김성근]]이 특출나게 [[노리타|광적인 팬]]이 많아서 유명했던 거지, 김시진 팬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이 당시 혀갤은 무조건 김시진 편이였으니까. 당시에도 특기인 동정론을 사는 언플이 나왔고, 당연히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이장석]]을 비롯한 넥센 수뇌부를 비난했다. 심지어 앞으로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말도 있었다.
         그러던 2012년 11월 5일, 갑자기 자진사퇴한 양승호의 뒤를 이어서 롯데와 3년 감독 계약을 체결하였다. 더불어 [[정민태]] 코치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282306|세트로 딸려갔다.]][* 이 때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이장석]]이 이젠 감독하고 코치도 롯데한테 팔아먹냐는 개드립이 흥했다. 근데 돈 줘야 될 거 안 주게 됐으니 이득은 맞다.]
         롯데 입성이 확정된 후 롯데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뜨뜻미지근하다. 일단 2012 시즌의 변변찮은 경기운영 모습에 평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팀 스타일을 1년만에 바꿔 우승한다는 건 무리라는 평이 많았기 때문.[* 그러나 롯데가 퇴보하고 있다면 모를까 매 시즌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로이스터 체제에서는 멘탈을 가다듬었고, 양승호 체제에선 세밀한 플레이를 많이 향상시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8888577|비밀번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건 멘탈면에서나 기량면에서나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단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다만 한 수 아래라 평가받던 넥센이 김시진을 경질한 이유는 '우승하기 위해서'인데 롯데는 그런 감독을 역시 '우승하기 위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 자존심도 좀 상할 일이다. 무엇보다 김시진이 마음에 안든다기 보단 같이 데리고 왔던 오른팔 [[정민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크다. 정민태 때문에 썩 괜찮게 투수진을 이끌었던 [[주형광]]이 2군으로 밀려나면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차라리 정민태를 안 데려왔으면 환영 했을거란 의견도 많다.
         그리고 2012 시즌 후반기의 부진 때문에 팬들에게 비판받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투수교체 타이밍에는 제대로 된 원칙도 없다고 비판받는다. 물론 [[정명원]] 코치가 떠난 이후[* 거기다 정명원 코치가 떠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은 김시진 감독의 정민태 편애였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했다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누구 탓 할 것도 없다.]로 2012년도 넥센의 불펜이 2010, 2011년도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시진 감독의 어이없는 투수교체 타이밍으로 피를 본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누가 봐도 내려야 될 때는 그대로 가고 그냥 가만히 냅둬도 될 때는 바꾸다가 말아먹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 김재박
          * 이외에도 2000년 시즌은 특히 기록 밀어주기로 인해 시끄러웠다. [[임선동]], [[김수경]], [[정민태]]의 등판을 조정해가며 결국은 3명 공동 다승왕을 만들어냈으며, 다승왕 나눠먹기라고 크게 비판받았다.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려고 한 거야 위에 써져 있고, [[박재홍(야구)|박재홍]]의 타점왕 수성을 위해 10월에 들어서면서 득점 찬스 때마다 대타로 내보내 경쟁자였던 [[타이론 우즈]]와 [[훌리오 프랑코]]를 각각 4, 5점 차로 따돌리며 타점왕 수성에 성공시키는 등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 박흥식(야구)
         한때는 이승엽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다소 침체기에 빠져 있었으나, 미국 연수 이후 출루와 장타를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식 공격 스타일을 공 맞추기에 급급하던 한국프로야구에 전파하며 타격코치로서의 부활에 성공하였다.~~그러나 김시진 사단에서 투코 정민태와 세트메뉴로 끌려다니며 팀 순위가 안 나오는 것이 함정이다.~~
         [[박정태]] 코치의 막장행각에 질린 롯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타격은 최악으로 평가받는 작년 시즌과 비교해도 더 답이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감독인 김시진을 비롯해서 [[정민태]], [[공필성]] 코치와 더불어 엄청나게 까였다. 주전 타자들의 선구안과 수 싸움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건 고사하고 스윙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도([[강민호]]·[[전준우]]가 대표적)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장거리 타자로 키워 보겠다던 [[김대우(1984)|김대우]]는 초반에 반짝하고 완전히 버로우틀 타 버렸으니.[* 다만 타격이 답이 없는 건 FA로 [[김주찬]]과 [[홍성흔]]이 이탈한 탓이 크다. 주축 타자 중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강민호]]를 제외하면 적어도 2012 시즌보다 못하는 타자는 없다. 한마디로 아무리 못해도 [[박정태]]처럼 비난받기는 이르다는 얘기다.]
         2014 시즌 팀 OPS 3위를 기록했지만 [[김시진]] 사단을 정리하려는 프런트에 의해 10월 26일 부로 [[정민태]]와 함께 해임을 통보받았다.
         무엇보다 타격 잉여삼신기로 불리던 박종윤, 문규현, 이승화 중 둘을 터뜨린 것은 기적에 가깝다. 각각 면제와 경찰청 입대로 희비가 갈리기는 했으나 밀어치는 [[박정태|전임 타코]]의 저주로 몰락했던 황재균, 전준우 또한 어느 정도 갱생시켰고 롯데 팬들이 절실하게 터지기를 바라던 정훈도 상당히 키워 놓았다. 이런 성과가 김시진 사단의 투수라인 삽질과 롯데 프런트의 막장 행태에 휘말려 다소 묻힌 감이 있다. 롯데 팬들의 공공의 적 취급받는 정민태나 당당히 [[감동님]] 대열에 합류한 김시진과 달리 재취업이 어렵지 않을듯. 그리고 이 예상대로 기아 타이거즈로 옮겼다.
  • 손승락
         다만 이전 시즌들과 비교했을때 전체적으로 피안타율이 많이 높아진 것을 보아서 투구폼 변경으로 인한 구위 하락 내지는, 어느 정도 약점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평소에는 수정한 투구폼으로 투구하지만 위기상황이 되면 다시 뛰어오르는 투구폼이 나온다.][* 정민태가 이 투구폼을 수정했다고 해서 정민태는 2012시즌 욕을 많이 먹었는데, 정작 2012시즌 손승락이 다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김시진]]'''감독의 해임 후였다.다시 뛰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변했다.]
          * [[정민태]] 투수 코치와의 대화에서 ~~귀족 마무리~~ [[오승환]]을 디스하는 손승락.~~은 얼마 안 가 편한 상황에서 등판해서 털린 건 함정~~ ~~그리고 이 짤은 레전드짤이 된다.~~
  • 오지호(배우)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예능인 [[천하무적 야구단]]에도 출연하여 팀의 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유연성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정민태]] 투수코치는 오지호를 보고 "이렇게 뻣뻣한 사람이 왜 야구를 하지?" 라고 말할 정도였다. 투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절친 [[김성수(배우)|김성수]]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의 주전으로 활동했다.
  • 이대진
         |다음=[[정민태]]
  • 임창용
         2003 시즌 후 [[선동열]]이 수석 코치 겸 투수 코치로 새롭게 부임하며 그는 다시 마무리로 이동했다. 그는 그 해 정규 시즌 36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여전히 최강 마무리임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시즌 후반 구위가 떨어지며 [[2004년]] 포스트시즌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2004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그는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모색했다. 당시 일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2002년 활약상의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했으나 계약을 맺지 못했고, 그의 높은 몸값에 대한 부담과 그 해 포스트 시즌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점 등이 빌미가 돼 [[KBO 리그|KBO]] 타 구단에서 그의 영입을 조심스러워 했다. 결국 잔류했으며 [[심정수]], [[정민태]]에 이어 리그 전체에서 고액 연봉 3위인 2년간 18억원(계약금 8억, 연봉 5억)에 계약했다.<ref name="joynews">[[조이 뉴스 24]] - 2008년 12월 기사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78605 "임창용, 생애 마지막 태극 마크를 위해"]</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7&aid=0000003149 삼성, 올 겨울 190억원 썼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47&aid=0000056685 특급 투수 임창용, 왜 외면당했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97559 심정수 ‘연봉왕’ 등극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892509 <기자수첩> 임창용 파동과 삼성 프런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894212 <프로야구> 김동주.배영수, 삭발 결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900692 <프로야구> 심정수 연봉킹..삼성 역시 최고 부자구단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 장원삼(야구선수)
         프로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왕조 시절을 책임졌던 주축 선발투수이자 [[정민태]]에 버금가는 역대급 빅 게임 피처로 활약했다. 비록 2015년을 기점으로 노쇠화가 시작되어 선발로서의 능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롱 릴리프로 전환하여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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