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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1996) . . . . 58회 일치
         어릴 적부터 가수가 되기를 꿈꿨으며, [[샤이니]]의 무대를 보고 '춤추며 노래하는 가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학창시 밴드부로 활동해 학교 축제, 지역 축제 등의 여러가지 무대에 참가했고 가창대회에 솔로로 나간 경험이 있다. 그리고 '구리시 청소년 예술제'에서 하동균의 <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부르고 대상을 탄 뒤 SM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었다.
         또한 음역대가 넓고 감정표현이 뛰어나 보컬의 활용도가 높다. [[https://youtu.be/QbesRHH9Moo|루키즈 시 도영 파트 편집 영상]] [[https://youtu.be/dn_umnXe73U|루키즈 시 솔로무대:미워요]]
         루키즈 시에는 도입부를 많이 맡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Giao5WKndk|Under the Sea]], [[https://www.youtube.com/watch?v=3BCRUewBgcs|Switch]], [[https://www.youtube.com/watch?v=Re-DiAW0grg|Show me your love]] 등 모든 루키즈들이 함께하는 무대나 [[https://www.youtube.com/watch?v=8Oy--IFD_T4|Mirotic]], [[https://www.youtube.com/watch?v=05xMerUATt4|View]] 등 큰 루키즈들끼리의 무대, [[https://www.youtube.com/watch?v=5Q4mKCyZI3k|텐데]], [[https://www.youtube.com/watch?v=pfnm8chwDfM|Who Are You]] 같은 보컬라인의 무대 등 다양한 곡에서 도입부를 많이 맡은 편. 주로 도영-재현 순서로 시작하는 곡이 많았다.
         루키즈쇼에서 태용과 부른 미공개 곡이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곡이 [[https://www.youtube.com/watch?v=5SIOGkxd_B0|Piece of mind]]. 제목이 밝혀지기 전에는 가사에 나오는 단어인 '귓속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은 J.cole의 sideline story의 트랙을 빌려와 그 위에 멜로디와 랩을 붙인 곡으로 태용이 연습생 시 힘들고 지칠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노래였다고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Piece of mind 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루키즈 쇼에서 두 사람이 부른 또다른 곡인 [[https://www.youtube.com/watch?v=HjMaLw-57qw|Switch off(가제:백열등)]] 또한 정식 발매되기를 원하는 팬들이 종종 있다.
         본인의 목소리와 노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인터뷰가 꽤 많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한소만 들어도 누군지 알아챌 수 있는 보컬이 되고 싶다'고 말한적도 있다.
         2018년 6월 9일 도영이 참여한 [[리치맨]]의 OST [[https://www.youtube.com/watch?v=PyWedT7IVkw|Hard for me]]가 공개되었다. 앞서 발표된 [[치즈|Cheeze]]의 Hard for me가 유리구슬같이 맑고 섬세한 감성으로 다가왔다면 도영버전의 Hard for me는 호소력 짙은 보이스와 제된 감정 표현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 2018년 01월 12일 || 텐데...(Timeless) || NCT U || 텐데...(Timeless)[* [[SM STATION2]]의 40번째 주자이며, SM Rookies 시 Rookies Show에서 첫 발표를 했던 곡이다.] || ||
         || 2015년 1월 21일 ~ 2015년 7월 1일 || [[MBC뮤직]] || 쇼!챔피언 || 4대 고정 MC[* 같은 팀 NCT 재현과 SM루키즈 SR15B시 더블MC] ||
          * 웃을 때나 노래할 때는 입이 커지고 눈썹도 움직인다. 루키즈 시에 작성한 백문백답에서 신체비밀을 '''입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 이후에도 방송에서 신체 비밀 질문이 있을 때마다 큰 입을 얘기하곤 한다.--너무 많이 얘기해서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마이크가 입에 들어갈 정도라고.
          * 입 주변에 상처가 하나 있다. 고화질 사진을 보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흉터인데 이는 어릴 적에 난 상처로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만한 정도였다고. 그런데 너무 어린 시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 어머니가 약을 발라주셔도 귀찮다고 닦아버려서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것.
          * 처음 회사에 들어오고 연습생 시에 이비인후과에서 성대 테스트를 받은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성대 진단서와 성대 동영상이 담긴 CD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루키즈 시 백문백답에 따르면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 운동을 전혀 안 배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린 시 육상부에서 높이뛰기를 했고 [* 물론 그다지 잘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검도도 잠깐 배웠다고 한다. 운동 하나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형과 같은 태권도는 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게 검도. 대련보다는 검법 형 수련을 중시하는 해동검도를 배웠는데 안무 외우는 속도가 멤버들 중에서도 빠른 편인 게 이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DJ--멤버--들의 추측이 있기도 했다.[* 본인은 안무를 빨리 외우는 비결에 대해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안무를 빨리 외운다'라고 대답했다.] 다만 커가면서 점점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진 듯하다. 지금은 스스로 운동이랑은 잘 안 맞는 거 같다고 얘기하는 편.[* 엔시티 안무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땡볕에서 땀 흘리는 걸 싫어하고 춤추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 집안에서 막내로 말투나 발음, 행동이 모태애교다. ㄴ받침에 ㄴ을 첨가해서 발음할 때가 많은데 "이천넌" "재현니" "미안내" 등. 팬들이 귀여운 말투에 반해 "미안내"를 미안해 대신 사용한다. --십덕 포인트다.-- 라디오 등에서 팬들이 몇번 사연을 보낸적이 있어서 도영 본인도 자신의 말투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 밝히기로는 비염 때문에 그런 발음이 나오는 거라고. 루키즈 시 ~ 데뷔 초에는 좀 더 심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MC를 볼 때는 의도적으로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거의 그런 발음을 찾아볼수 없으나 아직도 브이앱 등 편안한 방송에서는 귀여운 말투가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_dSpySAVA|ㄴ발음모음]]
          * 부모님이 굉장히 사이가 좋으시다고 한다. 지금도 잘 때 서로 껴안고 주무신다고. 참고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9월 4일인데 이는 쇼챔피언 엠씨 시 재현의 증언 때문에 알려졌다. --재현:도영이 형 생일은 모르지만 도영이 형 부모님 결혼기념일은 알고 있어요--
          * 도영의 형은 남성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공명(배우)|공명]]이다. 형인 공명과는 사이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서로 싸운 일도 별로 없고 부모님이 모두 집안에서 막내였던터라 막내인 도영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위기여서 형도 도영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어린 시 다리가 부러져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리를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차에 치이자마자 바로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3달 넘게 휠체어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형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형이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앨범이 나오거나 도영이 방송에 나오면 종종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레귤러 활동 당시 첫방 날에 공명이 직접 찾아와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였다.
          * 산타의 존재를 믿은 적이 없다고 한다. 유치원 시 산타 분장을 하고 선물을 나눠주러 온 청년이 수염을 떼는--[[동심파괴]]--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 [[https://www.youtube.com/watch?v=5Jx_Oa84c94|영상]]
          * 어린 시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모자가 있다. 2018년 어린이날 기념으로 트위터에 올려준 사진에도 어김없이 그 모자가 등장. 비슷한 버킷햇 모자를 쓰고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 어린시 포켓몬스터나 메이플 스토리, 디지몬 젤리 딱지들을 모았었다고 한다.
          * 어릴 적 장래희망은 [[검사(법조인)|검사]]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해서 7살, 8살 때 이미 큰아빠와 말싸움을 할수 있을 정도였다고.] 스스로 원한 장래희망이라기보단 어머니께서 원하셨는데 본인은 별로였다고. 스스로 원했던 꿈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어렸을 때는 장소가 중요하지는 않았고 그냥 어디서든 노래를 부르고 돈을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부터 가수를 꿈꿔왔던 만큼 6학년 때 직접 쓴 글에 나중에 유명해질테니 미리 싸인받아놓으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 고등학생 시 밴드부 보컬[* 밴드 이름은 하트트랙. 이미 만들어져 있던 밴드에 나중에 투입된거라 이름의 유래는 모른다고. 다만 밴드 멤버들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오디션 없이 그냥 들어갔다고 한다. 원래 보컬이었던 친구는 공부하느라 그만두었다고.]과 전교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분위기 메이커에 수업시간에 막무가내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도 거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교회장 선거 때 유세하러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다른 후보가 [[복근]]을 공개하는 바람에(...) 도영이 전교회장이 되지 못했고 전교부회장이 되었다. 당시의 영상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몇 개 공개되어 있는데 이를 멤버들도 본 적 있는지 종종 도영을 놀리곤 한다.--해찬:니가 있어 좋다~ 재현:여러분 기호 4번입니다. 일 한번 내봅시다!--
  • 절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 . 49회 일치
         [[대가련 칠드런]] 에피소드 목록
         [[대가련 칠드런/432화]]
         [[대가련 칠드런/433화]]
         [[대가련 칠드런/434화]]
         [[대가련 칠드런/435화]]
         [[대가련 칠드런/436화]]
         [[대가련 칠드런/437화]]
         [[대가련 칠드런/438화]]
         [[대가련 칠드런/439화]]
         [[대가련 칠드런/440화]]
         [[대가련 칠드런/441화]]
         [[대가련 칠드런/442화]]
         [[대가련 칠드런/443화]]
         [[대가련 칠드런/444화]]
         [[대가련 칠드런/445화]]
         [[대가련 칠드런/446화]]
         [[대가련 칠드런/447화]]
         [[대가련 칠드런/448화]]
         [[대가련 칠드런/449화]]
         [[대가련 칠드런/450화]]
  • 트로피코 4/건물 . . . . 49회 일치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반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온도 조기 - $1,000, 2MW 소모. 실내에 온도 조기를 설치하여 온도를 조할 수 있게 합니다. 주거 환경이 15 상승합니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반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반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온도 조기 - $1,000, 2MW 소모. 실내에 온도 조기를 설치하여 온도를 조할 수 있게 합니다. 주거 환경이 15 상승합니다.
          * 해충 방역: 건물의 유지비는 반으로 감소하지만 주거 환경의 질은 30% 저하합니다.
          * 종이 플레이스 매트: 유지비용은 30% 약되나, 서비스 질도 10% 저하됩니다.
          * 종이 플레이스 매트: 유지비용은 30% 약되나, 서비스 질도 10% 저하됩니다.
          * 양산형 책자: 책자를 저렴하게 양산한다면 유지비를 감할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빨간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로 마음이 안심되지요. 화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딸려온답니다.
          * 건물 점검: 심리학자들이 소방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데요. 이대로는 생명을 잃을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사를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능청스럽게 구사한답니다. 주변 건물의 유지비가 30% 약됩니다.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더불어 해외로부터 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 쓰일 지출을 약해줍니다. 대졸자들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를 확보하셔서 트로피코의 밝은 미래들이 청년 실업에 불만을 품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겠습니다.||
          * 잔해 친환경 처분: 생선 내장을 적히 처분하여 공해를 최소화합니다.
          * 선택적 벌목: 섬의 미관을 위해서 반의 나무는 베지 않습니다. 공해 또한 줄어들지요.
          * 온도 조기 - $6,000, 5MW 소모. 원자재 소비량 -20%
          * 객실 이용률 100%: 객실 이용율이 100%가 되도록 요금을 조합니다.
          * 객실 이용률 75%: 객실 이용율이 75%가 되도록 요금을 조합니다.
          * 객실 이용률 50%: 객실 이용율이 50%가 되도록 요금을 조합니다.
          * 요금 설정: 요금을 수동으로 조합니다.
          * 객실 이용률 100%: 객실 이용율이 100%가 되도록 요금을 조합니다.
  • 박근혜 . . . . 47회 일치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 학창 시 ====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 [[이명박 정부]] 시 ===
         === 18대 국회의원 시 ===
         === 19대 국회의원 시 ===
         2013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f name="ReferenceB">{{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제목 = 北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전면전 준비' 언급|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13-03-08|확인날짜 = 2013-04-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311025446/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보존날짜 = 2013-03-11|깨진링크 = 예}}</ref> 북한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을 선언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하여 공개적인 적대행위의 의사를 밝히며 위협하였다.<ref name="ReferenceB"/> 이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ReferenceB"/> 국방부 또한 북한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ref name="ReferenceB"/>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2014년 3월 28일 독일 통일의 상징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해결, 남북한 공동 인프라 구축, 남북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북한에 제시하는 '[[드레스덴 선언]]'을 천명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32888471 朴대통령 '드레스덴 선언'이산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核 버리면 經協 확대]</ref> 이어 제69주년 광복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준비는 시대적 소명"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하천·산림 관리 공동 협력 사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문화사업 준비 등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으로 옮기자는 작은 통일론을 제안하였다.<ref>[http://www.fnnews.com/news/201408151515276744 박 대통령 8.15 경축사 행간에 담긴 의미]</ref> 2015년에 들어와서는 박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광복·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제목=[박근혜 대통령 신년사로 본 새해 구상] 경제회복 최우선… 남북관계 개선 통해 통일기반 구축 |확인날짜=2015-02-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214093238/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보존날짜=2015-02-14 |깨진링크=예 }}</ref>
         그러나 박근혜는 첫판부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북한과의 관계가 그것이었다. 북한은 첫판부터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ref name="ReferenceB"/> 북한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을 선언했다.<ref name="ReferenceB"/> 이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ReferenceB"/> 국방부 또한 북한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ref name="ReferenceB"/>
         2014년 3.1 기념식에서 연설 중인 박근혜
         6월 4일, 세월호 사고 파동 속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예상을 깨고 선전하였다. 최종 결과는 광역단체장을 새누리당과 새정련이 각각 8 : 9로 분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박근혜의 대국민담화 및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선거유세’, 야당의 광주광역시장 후보에 대한 부적한 공천 및 그로 인한 후폭풍 등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세월호 사고 수습 방안의 하나로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쇄신이 단행되었는데, 이는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인하여 인사 파동이라는 말까지 발생하게 하였다. 5월 19일 대국민담화 이후 5월 22일 내정한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과다 수임료 논란으로 일주일 만에 사퇴하였고, 6월 10일 내정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부적한 교회 강연 발언 논란으로 2주일 만에 사퇴하였다. 박근혜는 결국 6월 28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하겠다고 대변인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잇따른 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큰 논란이 되었으며, 매스컴의 많은 문제제기 및 여론의 강한 비판을 불러왔다. 또한, 6월 13일 개각에서 내정한 7명의 장관 내정자 중 2명이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 등으로 인하여 사퇴하였다.
         여야간의 정쟁이 계속되던 9월 중순, 박근혜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은 국가의 권한으로서 민간 위원회에 주는 것은 부적하며, 여야의 2차 합의안을 넘는 유가족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여야간의 협상이 계속되었고, 9월 말 여야는 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10월 말 소위 세월호 특별법과 정부조직법, 범죄은닉재산 환수법 등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파동은 종료되었다.
         |중국 전승 참석
         |UN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통과, ‘안보·반(反)개혁 야당심판’ 3·1 기념사, 국가조찬기도회·장교합동임관식 대북 강경 발언, ‘친박 실세 유승민계 공천배제 발언’ 논란
         2018년 8월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 부문) 결과에 따르면, 노무현정부(2004~2007년·2003년은 통계 작성 시작연도로 전년과 비교 불가)에서의 1분위 가구 연평균 소득성장률은 4.0%였으며, 5분위 가구는 5.0%를 기록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보수정권으로 분류되는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오히려 1분위 가구의 소득성장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명박정부에서 1분위 가구의 가계소득은 연평균 6.6%나 오른 반면 5분위 가구 성장률은 4.6%에 그쳤다. 박근혜정부는 1분위 가구가 2.5%, 5분위 가구는 2.0%의 성장률을 보였다. 보수 정권기에는 소득 5분위 배율과 지니계수가 개선되었으나 진보 정권기에는 도리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수정권에서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란 통념과 달리 2000년대 이후로는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사회보장성 제도가 대폭 확대돼 왔다"며 "오히려 높은 경제성장을 통해 분배도 개선시키는 방식이 효율적임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소득주도성장은 이번 2분기 가계소득 통계를 통해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평가된다. 그동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취약계층의 소득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지난 1분기에 이어 이번 2분기에도 저소득층의 소득이 대적으로는 물론 상대적으로도 큰 폭으로 감소한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8/08/530847/|#]{{깨진 링크|url=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8/08/530847/%7C }}[https://www.yna.co.kr/view/AKR20180823079851002|#]{{깨진 링크|url=https://www.yna.co.kr/view/AKR20180823079851002%7C }}
         2011년 9월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열풍'과 관련해 기자들이 박근혜에게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반복된 질문에 대해 "병 걸리셨어요?"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은 사과를 요구했고 이후 박근혜는 "지나가는 식으로 농담을 했는데, 표현이 부적 했던 것 같다"라며 유감을 표명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95481.html 박근혜, 기자에 “병 걸리셨어요?” 받아친 이유는?] 한겨레 2011-09-08</ref> 박근혜는 2004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진행자가 경제 살리기에 대하여 질문하자 '지금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고 언급한 것을 비롯해 올해 1월 복지 문제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대답한 것 등이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1965년)|조국]]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는 불편한 질문과 비판을 참지 못한다. 영애 박근혜님이 '평민'들과 겸허히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새로운 별호를 지어 올리고자 한다. '발끈해'"고 말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091122131&code=910100 조국 "박근혜님의 새로운 별명…'발끈해'") 경향신문 2011년 9월</ref>
         [[한나라당]] 친[[이명박]]계는 "박근혜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폐쇄적 조직 문화가 팽배해 있다"며 "두 차례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 전 총재의 전철을 되풀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의원은 "국민들은 박 전 대표를 더 이상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있는 정치인이 아니라 독립적인 지도자로 바라보고 있다"며 "박 전 대표를 흠집내기 위한 어떤 시도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였다.<ref>(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22573&sid=E&tid=1 {{웨이백|url=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22573&sid=E&tid=1# |date=20100203205709 }} 친이, 세종시 공방속 박정희 공격)</ref> 또한 친이계는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이라며 비판하였다.<ref>(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09/11/09/43642.html 김용태 "박근혜, 지역주의에 기댄 사익 추구")</ref>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은 "자신은 유신 시 빈민 운동을 하느라 고생했는데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잘 먹고 잘 지낸 만큼 빚을 갚아야 한다"며 비판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002332421000.htm {{웨이백|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102/h2011021002332421000.htm# |date=20110216063347 }} 강명순 의원 '박근혜 호의호식' 논란)</ref>
         임기 초반부터 가장 비판을 받아온 것은 인사 실패 문제로,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용한 인사인 [[윤창중]] 전 대변인, '의혹 백화점'으로 불리며 국방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한 [[김병관 (1948년)|김병관]], 과거사 관련 교회 강연 논란으로 비판받으며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문창극]] 등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과정을 거친 '수첩인사'의 실패는 비판을 받는다.<ref>‘박근혜 수첩 인사’가 빚은 ‘데스노트 참사’, 한겨레 2013.03.22</ref><ref>새누리 2년 전엔 '극우발언' 공천 취소... 문창극은 어떻게? 2012년 총선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 역사인식 논란 국회의원 후보들 공천 취소, 오마이뉴스 2014.06.12</ref><ref>안철수,송광용 사퇴 파동 "박근혜 수첩인사에 따른 참사", 레디앙, 2014년 9월 23일</ref>
         [[이명박 정부]] 시 박근혜는 [[이명박]]과 거리를 두었으나 완전히 돌아서지는 않았다. 대통령과 면담을 하면서 대통합의 의지를 담고 활동하였다. 과거 정책상 본질적으로는 [[이명박]]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근거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가 내세웠던 '줄푸세'나 당시 경쟁 후보였던 [[이명박]]이 내세웠던 '747' 둘다 공통적으로 감세 기조를 내세운 정책이라는 점이다. 또한 박근혜가 2008년 12월 국회의 감세 법안, 2009년 3월 [[금산분리]]완화법안, 2009년 12월 예산안 ─ 4대강 예산이 포함되었고 이른바 날치기 통과로 논란이 되었음 ─ 에 찬성해 [[이명박]] 정부 정책에 협조한 것도 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404181704062] 기사 내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 발언 인용 ─ 최이락 기자, 민주 "불법사찰 가해자는 새누리·박근혜", 연합뉴스, 2012.4.4.</ref> 이를 빗대어 정치권과 인터넷 상에서 '이명박근혜'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명박]]과 다르다고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했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되게 만든 것이다. 또한 [[서울시의 무상 급식 정책 논란]] 때 바쁜 일정 속에 부재자 투표까지 참여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지원했던 [[이명박]]과는 달리 관련 사안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011년 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후 당명, 당 상징색, 강령 등을 변경하면서 [[MB]]정권과 기존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 악재 속에서도 "어느 정권에서나 민간인 사찰은 일어나며 나도 피해자"라며 논란을 피하기도 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401174821598] 임진수 기자, 역공 들어간 새누리 "어느 정권이나 불법사찰, 노컷뉴스, 2012.4.1.</ref>
  • 박명수(MC) . . . . 37회 일치
         어린 시부터 개그맨의 꿈을 품고 방송가에 데뷔하고 싶어했지만, 정작 그 방법을 몰라 한 동안 3사 방송사를 떠돌면서 무작정 부딪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방송공사|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방청객으로 참가했는데 소개를 받아 KBS FD로 일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때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mc [[손범수]]가 웃기고 재능있다며(...) 방송 데뷔를 권유했고''' 이후 [[MBC]] 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데뷔하자 마자 이름을 알리고 무명시이 거의없던 개그맨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오늘은 좋은 날>, <인생 극장> 개성적인 연기와 개그를 펼쳐보여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90년대 중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MBC]] 방송국 수위 아저씨 역할로 나와서 독특한 표정으로 "우쒸~"와 "국민 여러분, 제발 ***하지 마세요~"라는 시리즈 유행어로 신인시 인기몰이를 하였고 그 유행어 덕분에 CF도 촬영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CF에서 개그맨이 원톱으로 출연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직 신인티도 완전히 벗지 못한 개그맨은 더더욱. 대중적으로도 당시 박명수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일례로 1990년대 중반 한창 인기몰이를 했던 아이큐 점프의 연재만화 [[달숙이]]에서도 박명수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패러디 병맛만화 정도로 볼 수 있는 달숙이에서 언급된 것들은 전부 당대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것[* KOF의 캐릭터라거나 터미네이터 등.]들이었는데 그 중에 박명수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 이미 인지도가 상당하다 못해 높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연예인이라든가 대중문화는 달숙이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외의 광고에서도 활동했었는데 특히 계속 복장을 바꿔가며 연기했던 아이스크림 광고가 유명하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 덕에 소화제 까스명수의 전속모델로 [[김구]] 선생 전문배우 [[이영후]]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명수는 데뷔 초기 유재석 보다 인지도가 높았다. 무리한 도전 암산왕과의 대결(05.12.10)중 유재석이 데뷔 선배[* 의외로 많은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유재석은 1991년 KBS 공채 7기로 데뷔한 엄청난 짬밥의 쇼유자다. 당연히 1993년 데뷔한 박명수보다 개그맨 짬밥상 2년 선배. 다만, 젊은나이에 일찍 데뷔한터라 동갑 혹은 나이가 많은 방송인들중에 그보다 후배들이 많아 서로간의 호칭문제가 꼬여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냥 나이상으로 앞서는 이들에겐 존대하고 있으며, 동갑내기 후배들하곤 사적으로 말을 놓는다고 한다. 박명수를 형님으로 모시는것도 이때문. 참고로 유재석이 가끔씩 농담식으로 박명수 앞에서 개그맨 선배 드립을 치기도 한다.]였지만 워낙 인기가 없어서 '''박명수 닮았다''' 혹은 '''박명수 [[짝퉁]]''' 취급을 당해서 연예인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07.01.06)에서 출연자들의 신인시을 보여주는 코너에서 유재석도 "저(유재석 본인)보다 훨씬 인기가 좋으셨죠?"라고 인정했다.
         [[유재석]] 외에는 몇 줄 안되는 것을 봐도 알겠지만, 유재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의 tv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모습은 모두 유재석과 같이 있을때, 편안해할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한도전 대기실 몰래 카메라나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재석에겐 맛있는 음식 등을 챙겨주면서 본인들은 거들떠도 안봐 왜 재석만 챙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은 2009년 김연아 특집때다. 물론 박명수는 "얘가 살아야 우리가 다 살아!!"라며 쿨하게 무시해주신다.] 그리고 대략 2012년 장기 파업간에 [[노홍철]]과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을 보다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박명수는 항상 밥을 혼자 먹는다고 한다. 천하의 유재석에게도 밥먹자고 한 적이 없는데 그 파업기간동안 노홍철에게 같이 짬뽕 먹자는 전화를 해서 굉장히 놀라웠다고 한다. 또 노홍철 역시도 2009년 의좋은 형제들이나 2011년 짝 특집까지만 해도 유재석에게 쌀을 갖다주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제일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2014년 도둑들 특집때는 유재석을 튀통수치고 박명수와 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많이 발전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사실 방송분을 이미 2007년 부터 박명수가 노홍철만큼은 인정하고 이뻐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미존개오로 뜬 정형돈은 인정안해도 노홍철에게는 '너(노홍철)는 인정해'. and '길바닥출신이긴 해도 잘해'라며 박명수식 애정표현인 셈(...)] 또 프로그램 상에서는 티격태격하지만 정준하와도 잘 지내는 듯.[* 2011년 짝 특집때 서로 애정을 표하며 짝이 되기도 했고, 2014년 비긴어게인 특집때도 친구케미를 보여주고 2016년에 서로 국물을 떠다주는 sns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티격태격 하는건 방송컨셉이라는 건 이미 2013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때 밝혀졌다. 싸움거는 박명수에게 뻘쭘해진 정준하가 왜 방송만 들어가면 그러냐고 묻자, 할게 없어서 라고 대단한 것이 좋은 예.] 또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시에는 정형돈과도 많이 엮였고,[* 설문조사에서 정형돈이 5위, 박명수가 6위를 도맡아 해서... 다만 박명수와 정형돈은 성격상 서로 잘 맞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직설적이고 마음에 없는 좋은 소리를 못하는 쿨남 박명수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정형돈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게 방송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했고.] 하하와는 소속사가 같아서 하하를 많이 도와줬다. 당시 하하는 웃음담당이라 하하가 별로 웃기지 않아도 크게 웃어줬다고 한다.
         방송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친한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챙기는 면모도 있다. 박명수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경호 전무도 <4가지쇼>에서 방송의 모습과는 달리 친한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사실 방송의 모습과 일상생활이 똑같았다면 매니저가 상당히 자주 바뀌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한 걸 생각하면 분명 사실인 듯. 코디나 매니저와 같은 주변인에게 생일 선물로 고가의 [[맥북 에어]] 등을 사주기도 하며, 자신과 오랫동안 일한 한경호 전무에게는 고깃집을 차려주기도 했다.[* 뮤지컬 [[무한상사]]에서 정준하 과장이 퇴직하고 차린 고깃집 -> 연탄불 후라이집이 바로 한경호 전무의 가게이다.] 그래서 한경호 씨는 자신은 박명수가 아니면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유재환]]에게도 무한도전 방송에 출연할 때에나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는 호통을 치거나, '인기 많은 재환이 나가라' '뭐가 귀엽다는 거지 어이없어' 등의 말을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는 반면에 실제로는 너무나 잘 대해 줄 때가 많다고 한다. --츤츤 데레데레--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태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태프가 뽑은 외모 순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태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순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태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태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반해 스태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태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평소에 대인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닌 박명수에게도 의외로 여자들에게는 꽤나 친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아내를 끔직히 생각하는 나름 공처가 이기도 하고, 2009년 품남 특집에서 여자작가 몰카를 했을때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여자작가를 끌어내서 츤데레의 정석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 오프닝에선 빵을 한가득 사와 여자작가들에게 먹으라고 나눠주는 모습도 포착되고 같은 해 사생결단 특집에서 정형돈이 자기 코디에게 박명수와 정준하 중 누구를 구하겠냐고 묻자, 미선 코디는 고민도 없이 바로 명수오빠라고 대답했다.[* 의외로 속정,잔정이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10년에 있었던 '뜨거운 형제들' 에서도 막장 상황극을 통해 진단한 전문가가 의외로 가정적이고 자상한 면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또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 여심 어워드때에는 여성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이 사람은 나보다 한 수 위인데?' 하고 느낄 때가 유재석 씨예요 유재석 씨. 걔는 내가 웃기는 것 위에서 그걸 보고 조을 해요. 더 웃기게 만들어 주고 정리할 때 정리를 해주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친구예요. 진짜.'''
         기본적으로 방송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통치거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유독 동갑내기인 [[강호동]]을 두려워한다. 애초에 강호동과는 같은 프로그램을 아예 안 하려고 한다고 한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2009년 9~11월에 1박 2일특집으로 vs무한도전 콜라보가 나올예정이었지만 박명수가 [[이명한(PD)|이명한]], [[김태호(PD)|김태호]]에게 필사적으로 말렸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 박명수는 과거 신인 시에 강호동이 제대로 화가 나 식당 하나를 완전히 접어놓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어서라고 한다. 강호동이 저렇게 화가 난건 처음이고 그 후로 무서워서 피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2012년 MBC 연예대상에서 강호동이 박명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번 더 나왔는데 박명수 말로는 그날 이후로 트라우마가 쌓였다고 한다. 참고로 박명수의 이날 증언에 의하면 '오늘은 좋은날' 하던 시에 그랬고, [[이경규]]도 그 사건을 목격했다. 강호동은 박명수가 계속 이 이야기를 떠들고 다닌게 부담스러웠던 터라, ~~억지미소~~ 과하게 웃으면서, "역시 개그맨은 틀리다. 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만든다."라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실제로 당황한 모습을 애써서 감추려는 강호동 뒤에서 유재석이 식은 땀을 닦아주는 모습이 계속해서 비쳤다.[* 당연하지만, 강호동이 박명수의 멱살을 잡는 일은 없었다. 2012년 MBC 연예대상 중에 생방송 인터뷰였는데, 멱살을 잡거나 비속어를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이야기는 2015년 [[우리동네 예체능]] 사이클편에 박명수가 [[https://www.youtube.com/watch?v=gXeDvNcMLBs|지나가다 출연하면서]] 한번 더 언급이 되었다. 박명수의 말에 따르면 24년 전 식사를 하고 있던 우리를 괴롭히는 불량배를 보고는 "나가있어요. 나가있어요. 걱정하지마요" 그러더니 아다닥 아다닥 아다닥 하는 소리가 났고, 그 이후 강호동이 "들어와요" 해서 들어가보니 그 세명이 앞만 보고 밥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강호동은 없던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처럼 한다고 또 받아쳤으나, 박명수가 --목숨을 걸고--"'오늘은 좋은날' 하던 시에 그랬잖아!"라고 시점까지 이야기하며 반박. 그러자 강호동은 '''의자를 들었던 기억은 난다'''라고 말하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박명수는 24년 전 못했던 감사인사를 했고, 그 시에 '강박관념'이란 콩트를 했던 이야기와 자료화면이 나오며 마무리를 지었다. 여러 정황을 보면, 강호동 본인의 입장에선 공인인데 굳이 폭력을 휘두른거라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부인데 박명수가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강호동 본인이 까맣게 잊고, 기억을 못 했던가.
         이훈은 분명 방송국에서 박명수를 만나면 "네가 깡패냐?"하면서 엄청 혼날테니 바짝 긴장하고 방송국에 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박명수는 이훈이 그냥 얌전하고 헬스만 하는 애인줄 알고 막 갈궜는데, 빡치면 사람을 팬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뒤로는 안 건드렸다고 한다. 강호동 목차에도 있듯이 박명수는 강자에겐 좀 약한 편이다.[* 딱히 박명수만 그렇다고도 볼 필요는 없는 것이, 주변 사람 중에 성격 건드리면 다 뒤집어 버리고 주먹 좀 쓸 줄 아는 사람 있다면 어떻게 마음껏 덤비면서 지내겠는가... 특히 이훈, 강호동 처럼 륜한 스포츠맨들이라면 더더욱. 특히 어릴 적 친구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난 사람일 수록 더 할것이다.]
         그리고 이훈이 20대 초반에, 살면서 유일하게 [[헌팅]]을 한 여자가 "나는 연예인이랑 사귀고 있음 ㅈㅅ"라면서 거하자 그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박명수"라는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박명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어어~ 고척동에 걔~ 잠깐 만나줬던 앤데~" 하면서 자랑을 하더란다.
         [[마리텔]]에 출연할 때에 같이 나온 스튜디오 식구 dj찰스와 대적인 '''[[숙적]]''' [[유재환]]
         강호동의 [[케이스]]만 봐도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기가 센 사람과 궁합이 잘 안 맞는다. [[신인]] 시 '''[[이경실]]'''에게 군기가 제대로 잡혀버리고 그 후 지금까지 어려워할 정도이다.[* 사실 [[이경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그맨을 찾기가 더 힘들다. 심지어 연상인데다 훨씬 선배인 [[이경규]]나 [[이성미]]조차도 이경실을 어려워해 피해다녔을 정도이며, 원래부터 주먹으로 유명했고 늦게 데뷔해서 선배들이 어려워하던 [[홍기훈]]조차도 데뷔 초 이경실한테 군기를 잡혔을 정도.][* 2010년 각각 뜨거운 형제들과 런닝맨에 출연했었는데, 뜨거운 형제들에서는 아바타 소개팅 상황을 철저히 파괴하며 제멋대로 행동해 엄청난 비난의 소리를 들었고 런닝맨에선 특유의 쎈 기로 유재석 마저도 쩔쩔매게 만들었다.]
         이런 류의 예능인들 중 [[이경규]]와는 조합이 아주 좋다. 일단 박명수의 호통개그 자체가 이경규의 버럭을 벤치마킹한 것이기 때문.[* 실제로도 이경규가 박명수를 아끼며 키워줬고, 박명수도 그런 이경규를 존경하는 [[선배]]로 꼽는다.] 두 사람의 조합은 무한도전 이경규 특집이나 [[무한도전 예능총회]] 편, [[나를 돌아봐(예능)|나를 돌아봐]] 출연분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둘이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난 많은 [[시청자]] 및 [[네티즌]]들이 왜 이제서야 만난 거냐고 [[토로]]했을 정도였다.]. 이경규는 김구라와 다르게 박명수의 맥락없는 개그를 잘 받아쳐주는 편인데, 서로를 [[비난]]하는 개그의 호흡이 잘 맞고 한쪽이 자연스럽게 접어주며 강약을 잘 조한다. 버럭버럭하다가도 결국 박명수가 당신한테 배운거라고 [[가불기]]를 날리면 이경규가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고 주저앉는 것이 주요 패턴. 거기에 이경규의 수위 높은 욕설 드립을 [[유재석]]이 제지시키면 재미가 더해진다.
         가족 관계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며 남동생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에도 양친 모두 건강하시다. 참고로 어머니의 성함은 '신갑순'이시라고. 결혼 당시 나이가 19세로 굉장히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박명수를 낳았는데, 박명수는 "그 시은 원래 그랬다. 할 거 없어서 결혼 그냥 빨리 했다"라고 말했다(...). 어시장에서 넘어져 크게 다쳐 주변을 피로 물들여 '''어시장 피바다'''라는 이명을 가지고 계시다.(...)
         흔히 어린시 공병 줍고 다녔던 시, 동급생들에게 눌려지내던 쭈구리 시 등 본인의 주장에서 비롯된 가난한 가정사가 언급되는데, 사실 군산에서 살때는 엄청 잘 살았다. 방마다 화장실을 따로 썼고, 집 안에 [[유치원]] 앞에 있는 그런 [[놀이터]]가 있었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학창시 당시 기백만원 하던 컴퓨터(MSX급)를 아버지가 사주셔서 집에서 프로그램도 직접 짜며 놀고, PC용 게임도 많이 알고 있었다. PC통신도 즐겨한 듯한 언급이 있었다. 박명수의 어린 시이 1970 ~ 1980년대라는 걸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중동으로 가서 달러를 벌어오시기도 했고 귀국 후 아버지가 운수업을, 어머니가 [[만화방]], 그것도 컬러 TV[* 지금이야 훨씬 더 선명하고 깔끔한 컬러 TV가 집마다 한 대씩 있고, 이젠 컬러냐 아니냐가 아닌 HD냐 LCD냐 등을 따지는 시대이니 별로 대단하지 않지만, 70년대 초반에는 흑백TV도 부의 상징이었고 컬러방송이 늦게 시작되어서 그때쯤 되어서야 컬러TV의 보급이 시작된지라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컬러TV를 가진사람이 아직은 적었을때였다. 그래서 어쩌다 컬러 TV를 들여놓은 영업장에서는 컬러 TV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대가로 시간당 요금을 받는 식으로 굴려먹기도 했다.]가 있는 만화방까지 운영한 적도 있었다. 다만 사업이 뒤집어지면서 그 많던 재산을 죄다 날리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200만원 융자 받아서 사글세 방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연대보증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공병 줍는 시과 쭈구리 시은 아마 이 시을 기점으로 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언급만 되고 지나가기만 했던 아내 한수민이 무한도전 방송 이래 12년 만에 처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하였고 별과 함께 노래방에 와 있었다. 별이 자기가 밤늦게 놀면 보안관 드립 치며 체포하러 오는 하하에게 뿔나 있던차에 저번에 한번 무도 카메라까지 있는 상황에서 잡으러 온걸 기억하고 한수민을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나오게 한것. 덕분에 박명수는 방송인 24년, 무도 12년 역사상 가장 크게 당황했다. 아내의 얼굴이 확인되자마자 이어폰을 집어던지고 전화하러 녹화장소를 이탈한다. 피부과 의사답게 피부관리를 아주 잘해서 상당히 동안이다.[* 박명수의 아내가 엄청난 미인이라는 복선이 이날 방송하기 이전에도 조금 있긴 하였다. 2012년 하하의 결혼 축의금 관련 특집을 할 당시 시민들한테 특정 멘트를 들으면 들은 횟수만큼 정해진 축의금에 변화를 주는 미션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때 박명수가 들을 말은 '''"어려보여요"'''였고 그말을 듣기 위해 시민 한 명을 끌어들여 어때보이냐고 하자 부인 분이 아깝다는 소리를 들었다.~~해골 펑!~~] 이 때의 박명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애처가]].~~박명수랑 같이 있으면 부부가 아니라 딱 삼촌과 조카 같다 하는 네티즌도 있다 카더라~~ 한수민 본인은 방송 출연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다고 하지만 출연한다면 CF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인이라 섭외가 안되니 방송 데뷔를 해서 인지도를 쌓아 CF에 나오겠다고 한다. 찍고 싶은 CF는 마트 CF. 그리고 처음 방송 출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털털하고 거침없는 멘트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 심지어 남편보다 더 재미있다. 또한 웃는것도 매우 호탕하고 명랑하다. 직접해보니 녹화가 어렵고 힘든것임을 알았다고 하면서 그간 남편이 날로 먹는줄 알았다고 한다. 자막도 적하게 '방송인의 나쁜 예 박명수' 라고 뜬다. 방송인 박명수와 남편 박명수의 차이에 대해 묻자 집에서는 재미 있는데 TV에선 재미가 없는걸 보니 방송 울렁증이 있는거 같단 발언으로 측근인 무도 멤버들 포함 좌중을 술렁이게 하고 --경력 24년차가 방송 울렁증?-- --명수 : 대상까지 탔는데 무슨 소리야!-- 박명수가 지방 재배치 한후 어떤거 같냐고 하자 크게 달라진건 없는데 자기가 정말 잘생겨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냅두셨단다. 바로 날아오는 해골은 덤. 박명수 3행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이...
  • 김재규 . . . . 36회 일치
         고향은 경북 선산군이다. 현대의 행정구역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이문리에는 김재규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김재규의 아버지는 정미소를 운영했다. 당시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건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김재규도 꽤 유복한 어린 시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태]]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반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군단장]] 시 [[한계령]] 도로 건설을 지휘했으며, 이 때문에 한계령에 건설 중 사망한 장병 위령비에 이름이 들어가 있었으나 현재 위령비에는 그 부분이 삭제당했다 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안동댐 건축 기념탑에도 원래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지만 [[10.26 사건]] 직후 그 이름 부분이 뜯겨나가 있다. 여담이지만 인트라넷 3군단 역대 군단장과 그가 복무했던 모든 부대에도 김재규 [[장군]]은 삭제되어 있다. 한편 이때 그의 [[전속부관]]이었던 [[박흥주]] [[포병]][[대령]]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재규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 되고, [[10.26 사건]]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부장 수행비서 자리에 있었고, 결국 박정희 암살에도 가담한다. 정말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최태민]]의 조사를 지시했고, [[10.26 사태]]가 발생하기 3일 전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었다. 이 보고서엔 최태민과 [[박근혜]] 간의 부적한 관계와 최태민의 문란하고 부적한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언론에서 공개한 시점이 2012년 말, 즉 [[18대 대통령 선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직전]]이였기 때문에 당시엔 [[찌라시]] 취급을 받으며 묻혀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즉, [[10.26 사태]]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 [[박근혜]]와의 부적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겼다. 김재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기며 최후의 순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경호원들을 다 죽이고 [[확인사살]]까지 했으나 박상범은 기적적으로 총알이 치명적 부위를 피해간 데다 부상입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찧어 기해 죽은 것처럼 보였고, 식사하던 경호원들을 중정 요원들이 습격하는 과정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식사하던 중정 직원들[* 포섭해 두지 않아 내막을 몰랐던 이들]인 운전수와 [[요리사]]가 자신들의 총에 다치는 바람에 확인사살에 소극적이어서 죽음을 면했다.
          * ①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뿐 대통령 사망 후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특권을 휘두르는 군부의 협조가 실하므로 이를 얻기 위해 육군본부로 갔을 거라는 설.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김재규와 원만한 관계였으므로, 그에게 자신의 [[박정희]] 저격을 알리고도 그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으리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박정희 암살자에게 협조하여 그의 정권 획득을 도울 장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당시 군에 자기 인맥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순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다만, 소극적인 국민들의 성격과 견고한 기득권의 힘 때문인지 몰라도 근·현대사를 통틀어 당사자 개인에게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진 사례는 실제로 흔치 않다. 또한 [[박정희]] 본인은 [[이승만]]이나 [[전두환]], [[노태우]]와는 달리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해도 결코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또,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게 잡아도 수천, 많으면 수만에서 수십만의 애꿎은 목숨이 필요할 터인데 그것을 대신 이루어준 것이 과연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실제로 [[장준하]]가 긴급조치로 구속되었을 당시 감방동기였던 이해학 목사는 "당시 장준하가 '이제 민중투쟁으로는 안 된다. 양심적인 군인을 포섭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 말고는 박정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상당히 망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재규는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선 박정희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김재규가 자신의 변호인인 안동일에게 털어놓은 내용에 의하면 이승만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지만 박정희의 성격은 대로 물러설 줄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국민과 정부 사이에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박정희를 사살한 것이라 말하였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8/2017052801948.html?Dep0=twitter&d=2017052801948|#]]
         이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의 구속을 반대하는 동시에 [[김대중]]의 가택 연금을 일시적으로 해제시키고 김영삼과 만나게 승인했으며, [[차지철]]과의 갈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승진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발생한 갈등이 아니라 국정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조갑제조차도 김재규가 사욕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칼럼을 개시했을 정도였다. 김영삼의 측근이었던 김봉조의 회고에 의하면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 시 자신을 방으로 불러 격려하며 김영삼은 한국을 위해 큰 일을 할 인물이고 앞으로 김영삼이 정치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자신있게 잘 모시라며 격려하였다고 한다.[[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73|#]]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던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를 의사라 칭하며 박정희는 대로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기에 김재규의 거사가 없었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했을 거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최태민 문제 관련하여 박근혜와 최태민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김재규의 충언을 무시하고 김재규의 주장이 모함이라는 박근혜의 말만 믿고 사건을 덮어버린 박정희의 행태도 10.26의 원인이 되었다고 증언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52883|#]]
         김재규가 10.26을 일으킨 것은 결국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권력투쟁' 속에서 벌인것 이라는 해석이 있다. 2004년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김재규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92551|출처]] 김재규는 자기보다 새파랗게 젊고 군대 계급도 낮은 차지철에게 면박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에 대해서 격분했다는 증언이 주변 인물들로부터 흘러나온 바 있다.[* 대표적으로 김재규는 그가 교사 시 제자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가까웠는데, 10.26이 터지기 전 [[이만섭]]과의 식사 자리에서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차지철]]이 때문에 골치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031802395|출처1]] ] [[http://news.donga.com/3/all/20130813/56988552/1|출처]] 이런 점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김재규가 민주화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건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그가 차지철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비해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온건성향으로 비쳐질 따름일뿐, 그 역시도 '''결국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8100§ion=sectio|출처]]
         유신정권의 크게 3개의 권력 축인 대통령 경호실, 중앙정보부[* 강직한 군인 유능한 건설부장관 무능하고 유약한 중정부장을 보면 알듯이 폭주하던 중정을 제어한 것을 보면 이런 비난도 무색하다], 국군보안사령부를 대표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차지철]], [[김재규]],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서로 간에 치열하게 견제하고 있었다. [[http://www.usjournal.kr/News/6936|출처]] 바로 이러한 구도 속에서 파장이 일어난 것이 10.26이라는 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150020921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8-15&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914&publishType=00020|출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 등 공화국시리즈 등에서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특히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의 대립과 반목은 그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 시에도 이들은 사이가 몹시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무렵에 [[차지철]]계로 분류되고 있던 [[김치열]] 법무부장관이 차기 중앙정보부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박정희]]가 야당문제와 [[부마항쟁]] 등에 대한 미흡한 대처에 대해서 김재규를 책망하는 일이 잦아지자 김재규 본인도 파워게임에서 밀릴 것이라는 직감을 하게 될 공산이 컸다는 주장이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30906/57493166/1|출처]]
         김재규는 [[10.26 사태]] 직후 유신의 잔재를 5개월 내로 설거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전국으로 비상계엄령확대를 구상했는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75563|출처1]], [[http://www10.breaknews.com/sub_read.html?uid=64710|출처2]] 민주공화당은 이러한 구상안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낮다. 10.26 직후 [[김종필]]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되었는데, [[김종필|JP]]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 청구동 가택수색과 협박까지 당한터라 김재규에게 호의적이기도 어려웠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100209211001&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8-01&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900&publishType=00020|#]] 거기다 10.26 이후 [[김종필|JP]]는 [[김영삼|YS]], [[김대중|DJ]]과 함께 개헌과 민주회복 이행에 공감하고 협조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역시도 김재규의 구상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2260032920101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2-26&officeId=00032&pageNo=1&printNo=10586&publishType=00020|#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22600099201012&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80-02-26&officeId=00009&pageNo=1&printNo=4299&publishType=00020|#2]]
         그리고 이러한 재평가 흐름에 정점을 찍게 만든 것이 바로 2016년 말 벌어진 한국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1970~80년대 독재 정권에서나 일어날 법한 박근혜의 후안무치한 행각과 헌법부정으로 인해 퇴진운동이 불붙으며 자연스럽게 그 아버지인 [[박정희]]와 그의 독재정권을 종결시킨 김재규에 대한 관심도도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비록 그의 암살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은 있지만 적어도 그의 행동이 박정희의 대권력을 깨부순 것은 사실이며, 이전부터 보여온 친민주화적 행각이 대중들 사이에서 조명 받으며 재평가 움직임은 대중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단순히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박정희 독재를 종결'한 것이 재평가 받은게 아니라, '생전에도 존경받을만한 많은 언행 + 특히 독재정권에 몸을 담고는 있지만 민주세력들을 배려하는 행동 + 사형 직전까지 재판에서 보여준 평소 신념에 대한 논리정연함' 등이 조명받으면서 '''"권력 투쟁이 아닌, 진심으로 시민과 민주주의를 생각한 거사"'''로 뒤바뀐 평가가 퍼져나간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재규가 살아나는 것은 [[박정희]] 신드롬에 치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10·26의 주범일 뿐만 아니라, 중앙정보부장 시 박 전 대통령에게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의 비위사실을 알린 당사자다. 한 교수를 김재규를 ‘박정희의 충신’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며 “유신시대의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서 김재규란 사람이 자기가 잘릴 수도 있는데 박정희의 충신으로서 자기 몸을 던져서 최태민을 막으려 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최태민을 막았다면 오늘의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런 내막이 최근 들어 다시 알려지면서 집회에 김재규 얼굴이 들어간 깃발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1972년 3군단장으로 재직하던 시 유신헌법을 3번이나 읽어 본 뒤 불같이 화를 내며 "더러운 놈의 나라! 이것이 무슨 헌법이냐? 독재하자는 것이지!"라고 소리치면서 헌법책을 던져버렸다고 한다. [[https://youtu.be/mcgzsyDmppU|#]]
  • 윤종신 . . . . 36회 일치
         [[1969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2남 중 [[광주]]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대구광역시|대구]] [[중구(대구)|중구]]로 상경, 그 뒤 [[대원 외국어학교]][*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가던 그 시 맞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 후[*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본래 음악을 좋아하여 노래나 작곡을 취미로 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꿈이 가수, 작곡가는 아니어서 진지하게 노력했던 건 아닌데 우연히 교내 가요제에 참가했다가 수상 후 운이 좋아서 데뷔한 케이스라고 한다. 만약 자신이 신학과에 합격했다면 목사가 되고, 가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도 찬송가의 영향이 크다고도 하는데, 어릴 적부터 기독교 음악을 많이 접한 탓이라고 한다.[*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낸 곡이 '[[환생(윤종신)|환생]]'이다. 꽤나 가스펠 스타일인 곡이다.] 원주캠퍼스 홍보비디오에도 나왔고 라디오 생방송에서도 '원주캠퍼스에 다닐 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는 등 대학 시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하는 편이다.
         윤종신은 015B 시 정석원을 만나면서 작사 작곡에 눈이 떴다고 술회했다. 화성학을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최초로 스스로 작사/작곡/프로듀싱한 4집 타이틀곡 '부디'를 처음 들은 정원영 밴드의 정원영이 "윤종신 이 자식 뭐하는 놈이지..."라고 농담으로 디스하기도 했다고...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amonde&logNo=140120884879&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출처]]
         대개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때문에 작곡 당시에는 본인이 직접 친 통기타 반주에 본인 목소리로 가이드를 넣는 것 같다. 다분히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가이드 곡이라도 편곡이 상당부분 완성된 상태로 나가고, 가이드도 실력파 보컬들이 맡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팝송으로 들릴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상태로 가수들에게 전달된다. 디렉터스컷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윤종신이 이효리에게 곡을 주려고 기타로 반주를 치고 멜로디를 흥얼거려서 녹음한 뒤 메일로 보냈는데 거당했다고 한다. 헌데 나중에 이효리가 자기한테 굉장히 세련된 팝송을 들려주길래 "야 이거 좋다.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봤더니 이효리에게 온 가이드 곡이었다나. 자기는 통기타를 쳐서 흥얼흥얼 녹음한 뒤 "나중에 편곡이 되면 여기에 이런 비트가 들어갈거야, 상상되니?" 하는 식인데 이효리가 받는 가이드 곡들은 이미 완성품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디렉터스 컷]]에서 작사에 대해 윤종신 본인이 직접 얘기한 바로는 자기는 작사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물론 겸손의 의미로 한 말이며, 옆에서 하림이 '근데 형은 잘하잖아요'라고 바로 되받아쳤다. 가사도 굉장히 금방 쓴다고 하며, '''거리에서'''도 2 가사가 없었는데 즉석에서 만들어줬다고 한다.
         발라드 가사에 잘 등장하지 않는 의외의 상황이나 주제를 묘사하는 생활밀착형 가사를 자주 쓴다. 노래의 화자는 대개 찌질하고 볼품없는 남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 우리 모두 내면 어딘가에는 그 '찌질한' 자신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윤종신의 작사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윤종신 특유의 '한끗'이 있는 표현, 혹은 하이퍼리얼리즘적 표현으로 가슴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편. 가사를 다 쓰고 나면 가수들에게 가사를 보여주며 '여기 이 표현은 앨범 몇 장짜리, 이 표현은 몇 장짜리' 하는 식으로 포인트를 짚어준다고... [* 2008년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에 나온, 당시 예능감 없던 박정현이 한 말이니, 아주 빈말은 아닌 모양...]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백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다(국순당이 부탁해서 만든 막걸리 로고송)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백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 샌드위치'로 영계백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 계: 윤종신 - 이별의 온도, 가을옷, 늦가을 (Vocal 규현), 12월, 바캉스 매니아, 결국 봄
         윤종신의 프로듀싱 능력은 015B 시 음악적 스승이었던, 그리고 솔로 1~3집을 프로듀싱해 준 정석원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스스로 프로듀싱한 것은 4집 '공존'부터.
         이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소위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인 [[유희열]], [[하림(가수)|하림]], [[조정치]]. 셋 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정통파들로 전부 윤종신이 발굴하다시피한 인물들이다. 윤종신 본인도 방송에서 자기 자신은 천재가 아니지만 천재를 보는 안목은 있다고 자부했듯이 셋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음악인들이다. [[유희열]]은 군에서 제대한 후 정신을 못 차릴 때 낚아챘다고 하며 [[조정치]]는 세션으로 활동하던 시에 [[김C]]를 통해 세션 기타로 추천받았다가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왔으며 심지어 하림의 경우 해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종신이 군 복무 시에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윤종신 본인은 이를 예능 소재로 써먹고는 있지만 본인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뒤에 그 점을 보완하려고 재능 넘치는 원석들을 계속 발굴해서 성장시키며 가까이 두고, 서로 윈윈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창법은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담아내는 호소력있는 보컬인데, 윤종신의 목소리는 거의 정반대이다. 발음도 발성도 깔끔해서 담백하면서도 하게 감정이 묻어나는 편이다. 따라서 가사 전달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담백하면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감정표현이 뛰어난 보컬.'''
         이 보컬은 윤종신의 가사와 맞물리면 오히려 더 큰 감정 동요를 일으킨다. 이별하고 미쳐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백하게 부르니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해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이별한 남자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너의 결혼식'에서 규하듯 부르던 시의 보컬 스타일과 비교하면 감정을 조금 누르고 제시킴으로써 더 애하게 만드는 스타일.
         하지만 모든 노래를 담담하게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윤종신이 지르는 노래들은 대개 히트한다. 가깝게는 '좋니'부터, '너의 결혼식', '부디', '몬스터', '오르막길', '1월부터 6월까지' 등...역시 대중은 애함을 좋아하나 보다.
         윤종신 본인에 따르면 잦은 [[음주]]와 [[흡연]]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라고 한다. 가수들 사이에서는 말술로 유명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던 시 밤 늦게 술 마신 얘기를 자주하는 편. 또한 헤비 스모커로 유명했다가 한 번 쓰러진 이후로는 술과 담배는 줄인듯 하다. 사실 이제는 거의 끊었다. 테니스를 통해서 몸은 오히려 좋아졌다고. [* 하지만 주량은 아직도 5병 정도다...] 금연쏭이라는 제목의 싱글도 냈었다.
         2010년대 들어 윤종신은 보란듯이 성대를 갈아끼우는데... 2010년 이후 주, 금연하면서 가창력이 확연히 좋아졌다. 2009년과 2010년의 가창력이 한 해만에 확연히 달라졌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고음역대의 발성이 엄청 단단해졌다. 나이가 무색하게 짱짱한 고음을 뽑아내는 중. 2016년 6월 월간 윤종신 '''의미 없다'''에서의 최고음은 3옥타브 레. 물론 저 노래를 라이브 무대에서 부를 가능성은 낮지만 이걸로 리즈 갱신은 확정...
         미성이었던 흔적이 있다 보니 윤종신의 음역은 대 낮지 않다. 2017년 히트한 "좋니"만 해도 진성으로 최고음이 '''2옥타브 라#(A#4)'''이고, 위에서 말한 2016 월간 윤종신 6월호 의미 없다 음원에서는 샤우팅으로 '''3옥타브 레(D5)''' 까지 냈다.
         2014년, 네이버 뮤직 음악감상회에서 했던 라이브. '오래전 그날', '1월부터 6월까지'외 여러 곡을 불렀다. 젊은 시 미성은 사라졌어도, 부드러워진 저음과 한층 더 깊이 있어진 감성으로 아직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좋은 가수임을 보여주는 라이브이다.
         솔로 2집 시부터 함께 작업해 온 사진작가 '안성진'과 2017년 6월~8월 27일까지 한남동 소재 '월간 윤종신' 스튜디오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2집~10집 사이의 앨범아트워크 사진을 전시하고, 사진집 및 원본 필름도 판매했다. [[http://yoonjongshin.com/archives/3101|인터뷰 영상]] 사진전이 9월 말까지로 연장되었다. 관심 있는 위키러는 방문해 보자.
         '계은 너에게 배웠어'라는 가사 수필집을 발간했고, 동명의 전국투어를 개최한다.
         한편, 윤종신은 라디오DJ로 다수 활동했다. 리즈 시인 1991년에 [[MBC 표준FM]] <우리는 하이틴>을 시작으로 SBS 표준FM <기쁜우리 젊은 날>,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등에서 오랜기간 DJ를 했다.
  • 하현우 . . . . 34회 일치
         음악 외적으로 미술과 책에 관심이 많다. 가수로 전업하기 전에 미술을 전공했었고, 시 쓰는 걸 좋아해서 시인을 꿈 꾼 적도 있다고. 군 복무 시 기타 치기와 노래 부르기를 모두 금지당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부대의 모든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읽을 게 없어서 [[동의보감]]을 읽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독서광 인증.
         1981년 11월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7살쯤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와서 안산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을 보냈다.
         상당히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어린 시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아픈 기억이 많아서인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매우 내성적이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통해 가슴에 맺혀있는 아픈 일화를 몇 개 엿볼 수 있는데, 하현우 어머니께서 반에 떡을 돌리시고 며칠 뒤에 같은 반의 부잣집 애가 비꼬면서 [[피자]]를 반에 돌리며 한 조각을 줬다든지, 풍물동아리에서 선생이 하현우의 장구를 빼앗아서 다른 애에게 줬다든지 하는 사건들이다.] 덕분에 목소리를 낼 일이 없어서 변성기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의 카랑카랑한 고음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러니 변성기인 친구들은 우리 콘서트 오지 말라는 말도 농담 삼아 [[https://www.youtube.com/watch?v=uJ5QiNtozmo|인터뷰]]에서 했었다. 그는 자신의 사춘기를 패배감, 무력감, 눈물 투성이의 시로 기억한다. 이러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아상은 사실 사춘기를 지나서도 하현우에게 꾸준히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고 자연히 국카스텐의 음악 세계에서, 특히 정규 앨범 1집에서 중요한 테마를 이룬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 떠나가자 하현우는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본격적인 자아성찰에 들어간다. 마침 다니던 미술 학원의 선생님이 그에게 "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남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던지고, 그 말에 반한 하현우는 몰입할 대상을 찾다가 노래를 선택한다. 이 후 일주일에 4번 정도 서너 시간씩 노래방을 다니며 피를 토하면서 노래 연습을 하고,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해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youtu.be/uWuOcpy2M2g|하현우가 고등학교 시 노래방에서 부른 'She's gone']].]을 부르게 된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 떠나갔었던 여자 친구가 ''현우야~'' 하며 --뻔뻔스럽게도--찾아왔는데. 하현우는 쿨하게 무시했다고 밝혔으며, '''이것이 자기 인생의 첫 승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 여자 친구 분은 지금에는 자기 인생의 최고의 실수일거다.--] 처음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역시 사람은 미친 듯이 뭔가 하나를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느낀 그는 본격적으로 노래에 몰두하지만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음악하는 것을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하현우가 대학교 앞의 길을 걸어가는데 슈퍼 앞에서 지저분한 행색으로 [[거북알]]을 빨아먹던 한 남자[* 이 사람이 현재 [[국카스텐]]의 드럼을 맡고 있는 이정길. 첫 만남 당시 너무 너저분한 행색으로 인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하현우는 콘서트나 인터뷰에서 틈만 나면 이정길에게 거지 같다,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다닌 하현우의 차림새만 보고 던진 말이었다고. 그러나 막상 오디션에 데리고 가 마이크를 쥐어주고 실력을 확인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 그럴 만도 한 게 길 가다가 주운 돌멩이가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였던 격이니...] 그렇게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하현우의 정식 음악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국내 로커들이 보통 중고등학교 시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미술계에 입문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다.
         밴드 보컬이 된 대학 1학년 시엔 공연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의 경직된 선후배 관계와 술 문화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 위해 드러머였던 이정길과 의논 후 함께 자퇴서를 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휴학을 했어도 됐지만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에 [[수상한 가수]]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여지 없이 잘라낸 거라고 밝혔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고, 음악 활동 외에도 생계 및 음악 활동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의 일도 하였는데, 하현우는 우스갯소리로 "안산 YMCA 건물은 제가 지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건설 현장에서 작업 도중에 감전 사고로 기한 일화는 당시 서울 생활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음악을 접고 미술 공부 경험을 살려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꾼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하현우는 우연히 고등학생 시 알고 지내던 진아라는 인물을 만나 다시금 밴드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인터넷에 기타리스트 모집 공고를 내어 현재 국카스텐의 기타리스트인 전규호를 만났고, 전규호가 밴드에 합류하여[* 전규호의 말로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일 정도로 쓰여진 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합주는 커녕 오디션을 봐야할 자신이 멤버들을 코칭해줘야 할 정도로 연주며 뭐며 온통 엉망이고 말 그대로 열정만 넘치는 아이들이었다고. 반면 전규호는 다른 밴드에서도 기타를 해왔던 경력파였다. 이정길은 합주 자체가 안 되자 미안했는지 "형, 죄송해요. 밥 사드릴게요."라며 살갑게 굴었는데, 이에 전규호는 "실력은 없어도 사람은 착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았다는 모양.],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 진아 이렇게 네 사람은 뉴 언발란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하현우가 뉴발란스 신발을 좋아했는데, 그걸 뉴언발란스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에서 착안해 지은 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작곡하는 법을 몰라서, 하드코어, 랩, 발라드, [[서태지]] 등 유명 곡의 커버를 하면서 음악을 배워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배고픔은 무시 못 할 위기로 다가왔다. 결국 의지를 상실한 멤버들은 또 다시 악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이스를 치던 진아는 팀을 떠났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듀엣 무대에서 '''덤덤하게 부르는 중고음이 다른 가수의 고음역을 묻어버릴 정도'''[* 예당 엔터테인먼트 소속 시 같은 소속사 식구였던 [[알리(가수)|알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 게스트로 등장해 알리와 같이 '저 바다에 누워'와 '해야'를 듀엣으로 열창했는데, 알리의 고음역 성량을 그냥 담담하게 중음역을 부르는 성량으로 본의 아니게 강제 음소거 시켜버린 적이 있다. [[https://youtu.be/Rmsqv18Oo0Y|#]]]로 폭발적이며, 고음의 경우엔 음역대가 빈틈 없이 꽉 들어차 있다. 특히 3옥타브대의 초고음역을 1분여 가량 동안 연속적으로 파괴하는 특유의 고음 처리가 압권. 궁금한 사람은 국카스텐의 대표곡 [[https://youtu.be/Ew5LZwcHb6I|'거울']]과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http://tv.naver.com/v/26652|'모나리자']]를 들어보자. 사실 국카스텐의 곡(커버곡 포함) 대부분에서 3옥타브대를 넘나드는 극악무도한 초고음역을 들려준다.
          * 맑고 깨끗한 미성[* 나가수에서 선보인 'The Saddest Thing'이나 2집 수록곡 '변신', 'Frame' 등의 노래에서 들어볼 수 있고 복면가왕에서 부른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정점을 찍는다.]과 거칠고 둔탁한 탁성[* [[나는 가수다 2]]에서 선보인 '[[넋두리(노래)|넋두리]]'와 [[복면가왕]]에서 선보인 '[[Lazenca, Save Us]]'.]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며, 곡의 분위기에 따라 소름 끼치게, 몽환적이게, 애하게 등등 다양한 느낌의 소리를 매끄럽게 뽑아내기도 한다. 콘셉트를 끌고 가거나 곡 해석하는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덕분에 온갖 장르의 노래들을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소화해낼 수 있다. 그래서 복면가왕에서 얻은 별명이 '''장르 파괴자.''' 보편적인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한국 대중들은 발라드와 댄스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보니 록이 사양길을 걷는 장르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곡은 나가수 전까지는 많지 않은 편. 음폭이 깡패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곡에서 넓은 음역을 뽐내기보다 분위기에 맞게 적제해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자 장점.
          * 창법의 개성에 대한 비판은 어쩔 수 없는게, 위에 작성되었듯이 성대를 붙이는 발성은 가수의 창법적 개성을 줄일수 밖에 없는 발성이다. 성대를 안전하고 강하게 접촉시키기 위해서는 후두를 어느 정도 내리고, 성대가 아닌 목이 조여지지 않게 신경써야 하고, 가사를 발음 할 때 모음도 순화해야 하는 등 개성이 들어 갈 여지가 적어진다. 개성적인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도 이러한 요소들을 신경쓰긴 하지만 본인들의 개성을 위해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완벽한 발성을 요구하는 성악에 비해 실용음악은 발성적 요소들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프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성대결이 오는 경우들도 빈번한 것이다. 이에 비해 건강한 발성은 성대결의 위험에서 좀 더 벗어나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가수 본인의 필요에 의해 개성적 창법을 가질 수 는 있으나, 이런 개성적인 창법이 가수 개개인에게 강요되어질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창법 외에도 가수만의 음악 스타일이나 음색으로도 개성은 충분히 표현 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성대&구강 구조나 몸 구조가 사람마다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는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당장에 성악가들조차도 잘 들으면 서로 노래 부르는 목소리나 방식이 100% 같지는 않다.
         국카스텐 곡들의 가사를 모두 직접 쓰는데 가사가 난해하다는 대중들의 반응이 많다.[* 하현우는 이런 점에 대해 [[랭보]]나 [[보들레르]]의 난해한 시는 직접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왜 노래 가사는 쉽고 직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 음악의 경우 난해한 가사나 시적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 음악은 쉽고 간결한 가사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이런 평가를 받는 듯하다.] 자아 탐구를 중심에 두고, 어떤 대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걸 심오한 재해석으로 풀어 쓰거나 본인이 읽은 책, 꾼 꿈, 사상 같은 부류들을 통해 쓰곤 하는데, 이게 또 국카스텐 특유의 취하거나 약 빤 듯한 사운드와 묘하게 시너지를 이뤄 대체적으로 한 몫 하고 있다. 마치 중세 신비주의나 연금술에 대한 철학 이론 같다는 평.
         파괴적인 에너지, 낯설다가 익숙하다가 다시 방향을 트는 변칙적인 멜로디, 독특한 기타 리프, 풍부한 이펙터 활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국카스텐의 음악은 공식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락을 표방한다. 그러나 사실 장르를 규정한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국카스텐의 음악은 독특하고 혼종적이다.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메탈, 트로트[* 1집의 '거울'은 [[일본]] 엔카의 멜로디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국악[* '라플레시아'의 굿거리 장단, '매니큐어'의 꽹과리 간주, '작은 인질'의 장구 장단.] 등이 자유자재로 활용되며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모든 곡을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그 자체가 장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밴드 음악, 혹은 '정말 한국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굉장히 한국적인' 락. 이는 하현우가 성장 과정에서 접한 다양한 음악의[* 특히 [[신중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국카스텐이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정서와 리듬이 창작 활동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거만한 멘트는 대부분 개인 인터뷰 시간에 나왔고, 다른 선배 가수들과 있을 때는 거만한 발언을 해도 정도를 낮추거나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상당한 완급 조을 보여준다. 게다가 개인 인터뷰 시간에 나온 발언들은 공중파 치곤 상당히 날 것이고 수위가 높다고 볼 수 있었기에 국카스텐을 처음 본 일반인들에겐 다소 놀라웠을 수 있으나, 사실 하현우가 예전 타 방송에서 하던 발언에 비하면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골수팬들은 마냥 귀엽게 즐겁게 보던 편.
         '''망은 메아리쳐 붉은 피 허공 속에 맺히고'''
         '''최후의 함성 만이 하늘 높이 간하게 울린다'''
          *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본격적으로 노래에 빠지게 된 계기가 좀 웃픈데,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여자친구와 관련되어 있다. 여자친구가 인천 남자와 바람이 났을 때 자기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친구를 뺏겼을까 싶어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남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선, 매일 노래방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목에 피가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해피투게더 3 방송에서 노래 연습을 하다 목에서 피가 3번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함부로 따라하면 대 안 된다. 잘못하다간 평생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 고음을 내고 싶으면 보컬학원에 가서 보컬 트레이닝 받는 것을 추천한다.]
          * 개구리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거침 없는 태도에 비해 외모는 의외로 순하고 귀여운 편이다. 그런데 [[윤도현]]과 사진을 찍을 때 안경을 벗은 모습이 은근히 배우 [[류혜영]]을 닮았다.[* 하현우의 초등학생 때 사진과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찍었는지 원시인지는 불명. 본인 말에 의하면 집에서 안경을 벗을 때도 누가 있나 확인한 다음 벗는다고 한다.] 안경 벗은 모습이 은근히 [[박해진]]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개구리상이라 웃겨보이게 생겨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대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이목구비가 또렷해 잘생겨 보인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눈이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는 점. 갑상선 투병 설에 대해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이라고 해명까지 했다.]
          * 무명 시엔 라면 1봉지를 사서 멤버들끼리 셋이서(김기범이 합류하기 전) 나눠 먹었으며, 길거리 음식을 먹다 장염까지 걸렸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던 역류성 식도염도 어려웠던 시 식습관으로 인해 얻은 것.
          * 라디오 스타에 출연[* 2016년 06월 22일.]해서 얼굴을 세안할 때 손도 반복해서 같이 씻어준다고 한다. 예를 들면서 이야기한 것이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세수를 하다가 머리털 있는 부분을 건드리면, 머릿기름이 묻을 때마다 머릿기름이 없어지게 하기 위하여 손을 씻고 다시 세안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씻으면 세수 한 번에 손을 4번 씻는다고 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서는 손수 시범까지 보여가며 아주 친히 자세히 알려준다.
  • 은지원 . . . . 33회 일치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젝스키스 1집에만 해도 랩만 했으나 2집부터 보컬도 맡게 되면서 노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힙합으로 전향한 이후 노래를 안 한지 꽤 됐지만 기본적으로 음색이 [[비성]]이 섞인 [[미성]]이다. 1세대 아이돌의 비보컬 멤버가 대개 그렇듯 진지하게 가창력을 논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중에서는 중고음이 가능하고[* 조금 무리하면 2옥 솔 정도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음감이 있어 라이브에서도 음을 제대로 찍어부를 정도로 중간 이상은 하기때문에 상당히 괜찮은 편. 현대적인 관점에서 메인보컬을 받쳐주는 서브보컬의 역할을 당시에 상당히 충실히 해냈다.[* 이런 서브보컬 라인이 강해야 메인보컬을 적재적소에 꽂아넣는 프로듀싱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물론 1세대 아이돌 당시에는 그런 거 없고 후렴과 어려운 파트는 메인보컬이 몽땅 하고 그나마 몇 없는 쉬운 파트를 나머지 멤버들이 나눠가지는 식이었다. 은지원, [[이효리]], [[손호영]] 정도가 그나마 괜찮은 서브보컬이었다.] 그 예로 3집 활동 후속곡인 '무모한 사랑'에서는 은지원의 파트가 과장해서 노래의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 많다. 보통 젝키에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르는 강성훈이 이 노래에서는 후렴구만 부르는 반면, 은지원은 이 노래에서 서브보컬, 랩, 리드보컬까지 웬만한 파트는 거의 다 맡는다. 심지어 고음으로 지르는 부분도 있다.--느낄 수 있어써!!!!-- 또한 4집 후속곡 예감에서도 초반부 파트를 통으로 끌고 간다.
         지금이야 예능에서의 모습으로 초딩 소리를 듣지만 젝키 시에는 과묵한 이미지와 까리한(...) 외모로 '''은각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H.O.T.]]의 리더 [[문희준]]이나, [[신화(아이돌)|신화]]의 리더 [[에릭(신화)|에릭]]과는 달리 그룹에 동갑이 없었다. (이들보다 1살 위인 [[NRG(아이돌)|NRG]]의 리더 [[이성진(NRG)|이성진]]도 같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연습할 때 한정으로--다들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까다로웠다고 언급했다. --김재덕에 의하면, 은지원이 너무 독재자여서 이재진이 반항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게 받은 대접이 대접이라 그런지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3년도 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독재자 발언은 예능에서 장난스레 발언한 것이다-- 은각하 자체가 데뷔 당시 멤버들을 갈구던 상황에서 놀리듯이 붙은 별명이다. 당장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이나 예전 예능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은지원은 동생들에게 갈굼당하기 일쑤다. --마이웨이 까칠이 이재진과 은지원 전용 어그로 고지용, 프로일침러 장수원, 방관하는 강성훈과 김재덕.-- --(극한직업 젝키 리더)-- --젝키 내에서는 은지원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자신은 카리스마 있었던 적은 없었고, 말이 없었던 이유는 MC들이 질문한 내용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고...
         젝키 멤버 중 [[강성훈]]과 함께 유학파 출신으로 데뷔 당시 소속사가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배워 온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유학 다녀온 곳은 [[하와이]](...).[* 물론 하와이도 엄연히 '''미국의 한 주'''인 만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거짓말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인식에서 미국 본토라고 보기에는 좀...] 본인 말로는 하와이 가서 얻어온 건 매튜라는 영어 이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돌 현역 시에는 랩 파트를 즉석으로 영어로 개사하여 소화하는 등의 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반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어째서인지 "나의 은지원 오빠(형)는 이렇지 않아!"하고 규하는 사람들이 없다. 초딩모드가 연기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이런 말 했다가는 욕먹을 테니... 그것도 그거지만 팬들의 연령도 꽤 지긋해서 그냥 허허 웃고 말기도. 몇몇 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은초딩 캐릭터는 젝키 시부터 존재했었으며 팬들 사이에서만 아는 사실이었는데 전국민적으로 퍼진 것일 뿐'''이라 한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 이미 이재진이 폭로한 바가 있다. 홍진경이 진행했던 퍼니퍼니쇼에 출연했을 때 멤버들이 서로 불만사항을 털어놓는 코너가 있었는 데,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은 은지원에 대한 불만사항으로 "형은 우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으면서 투정도 많고 장난도 제일 많이 치고 어리광도 심하다. 어린애 같다."라고 털어놓았었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운이 좋아 얻은 것처럼 표현 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예능 혹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수많은 연예인이 거쳐가고 고정이 되었지만 은지원만큼 캐릭터를 얻고 예능적 활약으로 두드러져 주목 받아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은지원은 젝스키스 시부터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듯이 뜨기위해 야망이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예능에서 웃기기위해 예능감을 쌓고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센스를 다년간 기르며 꾸준히 노력해서 성장했다.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에서 젝스키스 멤버들과 조우, 재결합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평소 자주 보여주는 초딩스럽거나 떼쓰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예전의 '은각하'라는 별명에 걸맞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부산 친구에게 스포일러를 터뜨렸다는 이재진의 양심고백에 고개를 내젓거나 연습 중에도 각을 맞추라고 계속 지적하고 갑작스럽게 휴게소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막내인 장수원부터 다른 멤버들은 안 못하고 어쩌면 좋냐고 쩔쩔 매는데 바로 공연을 시작하자 해서 상황을 타개하거나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하는 [[고지용]]에게 먼저 다가가서 포옹을 하고 고지용을 대신해서 팬들에게 컴백소감을 말하며 도와주는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철없는 초딩 이미지로만 각인되다 보니 은각하 이미지가 다소 생소했던 시청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연예인이라고 게임 하지 말란 법은 없다만 은지원의 경우는 [[이소라(가수)|이소라]]와 함께 게임 플레이 사실이 유독 많이 알려져 있다. 본인 말로는 아이돌 시 팬들의 시선 때문에 외출을 할 수가 없어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게임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 --홍진경이 게임유통 쿠폰을 꺼내자 바로 잡는 이유가 있었다...-- 나혼자산다에선 이시언과 함께 출연했는데, 이때는 어릴적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고수였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게임자체는 어릴적부터 좋아했고 자주 했던 듯.
         특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주로 플레이 했었는데, 2005년(오리지널 시) 즈음에 했던 인터뷰에서 와우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언급을 했고,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길드원들을 사랑한다고 인증까지 했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2010년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이동국]]의 처형과 결혼하게 되어서 품남이 되었었다. --하와이에서 만나 젝키때도 문답 등에 꾸준히 언급해왔던 첫사랑과의 결혼!-- 즉 [[이동국]]과는 동서 관계. ~~그래서 [[이승기]]와 [[김종민]]이 그렇게 가까워졌나 보다~~ 결혼 이후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도 그야말로 애들이 좋아하는 구성으로 꽉 찬 반찬들이 공개될 정도인 걸 보면 집안에서도 여전히 초딩인 듯.
         그러나 2년 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이동국]]과는 남남이 되었다.[* 은지원은 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동안 [[카더라]]로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2016년 [[신서유기|신서유기 2]]에서 본인 입으로 '''"저는...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었습니다. 근데 아직도! 게임을 처자빠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삭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악행을 고백해야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다. 즉, 오답을 내려 하더라도 자신의 악행은 고백해야 한다는 것. 이에 [[나영석|나PD]]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포복도했고, [[이수근]]은 '''"그냥 사오정을 하든 손오공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며 병뚜껑을 집어던졌다.]라고 발언했으나, 장소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한 말이다. 게다가 은지원의 전부인이 뉴스킨 이라는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많이 탕진하는 이중고도 겪게 된다. 결국 은지원 본인은 가정에 소홀했고 부인 역시 다단계로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점을 보면[* 물론 좋은 뜻으로 은지원에게 잘해줄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 서로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 이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부부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원 본인은 부인의 행적보다도 자신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에 대해서 자책감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2013년 출연한 [[나 혼자 산다]]에서는 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로 "성격차이로 인해 부딪히는 점이 많았다.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라고 언급했다. ~~게임도 성격 차이라면 성격 차이다~~ 이혼 이후 가끔 방송상에서 본인의 이혼을 자폭 소재로 삼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꽤 상심이 컸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성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뭉쳐야 뜬다]]에서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를 듣고 [[정형돈]]은 "요즘에 그런 건(이혼) 대 흠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당사자가 안 돼봐서 모를 것이다"라고 답했다.]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태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반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죽이 맞거나, 남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반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2003년 당시 은지원은 신촌에 실내 포장마차 점을 개업했다. 보통 개업을 하면 여기저기 동료 연예인들을 불러 포장마차를 꽉 채워야 홍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은지원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탓에 동료 연예인들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다른 곳에서 전해 듣고 달려왔다. 그 중 [[이효리]]가 새벽에 제발로 찾아왔는데, 은지원은 이효리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으니 가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남들은 이효리 못 불러서 안달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하냐"며 은지원을 혼냈다고 한다. "자리는 여분의 탁자로 만들면 된다"며 흥분하는 종업원들의 말에 은지원은 '왜 난리지'하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고 한다.[[http://news.joins.com/article/1804295|기사]][* 2003년 당시 이효리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엄청 대접해서 가게를 홍보하려 했을 것이다. 젝키 핑클의 대성기획 시부터 친했으니 저랬을 수도 있겠다.]
          * 젝키 재결합 후, 솔로 활동 때와 달리 메이크업을 하고 나온 번듯한 모습을 보고 '내가 초,중학생 때 보던 [[1박 2일]]의 은초딩이 맞나...'하고 혼란이 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당장 유튜브에 은지원 영상 중 제법 꾸민 영상들 댓글에는 '내가 알던 지원이 형(오빠)이 이렇게 잘생겼었다니...'하고 멘붕에 빠진 댓글들이 넘쳐난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솔로 활동 때는 머리도 삭발을 주로 했고, 메이크업도 일 하지 않았어서 부각되지 못했었다.
          * 랩할 때 목소리와 달리 노래할 때는 상당한 미성이다. 젝스키스의 예감 첫 소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재결합 이후 보컬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 H.O.T.의 [[문희준]]과 1세대 아이돌그룹의 리더였던 공통점이 있어서 방송을 통해 친한 사이가 되었다. 둘이 목욕탕도 같이 가는 사이라고(...) 아이돌 현역 시 문희준은 은지원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은지원에게 괜히 멋있는 척하며 말을 걸었던 적도 있었고, 놀러와에서는 [[H.O.T.]] 시 [[문희준]]이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려다가 은지원과 마주쳐서 안했는데 은지원은 계속 화장을 고치며 나가질 않더라는 일화를 이야기한 적도 있다.[* 정작 은지원도 딱 그 ~~똥~~타임(...)이었는데 문희준이 계속 안 나가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젝키 팬들 사이에서는 은지원의 차를 문희준이 빌려갔다가 부숴놓고 청테이프를 붙여서 돌려줬다는 루머도 있었으나 [[20세기 미소년]]에서 둘다 우스갯소리로 넘기며 부정했다.
          * '''같은 1978년생인 [[최현우(마술사)|최현우]], [[나얼]]과 같이 사기급으로 [[동안]]이다.''' --사실 젝키 멤버들 전체가 동안이다.-- 실제로 은지원은 연예계에서도 알아봐주는 동안연예인이면서 하는 짓도 초딩같고 그렇지만 벌써 '''마흔'''이다. 다만 얼굴이 너무 동안인데다 은초딩의 싱크로율이 너무 적합해서 그다지 부각되지도 않고(...) 지금 얼굴과 젝키활동 시의 모습을 비교하면 얼굴선이나 눈매가 다소 부드러워진 것만 빼면 거의 차이가 없다. 어린 시 어머니가 치열 교정을 하라고 했음에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는 일화나[* 실제로 풀샷이 잡힐 때나 입을 벌리고 있을 때(뭔가에 집중하거나 오디오 겹침 때문에 멘트 대기중일 때 자주 그런다) 보면 위쪽 치열이 상당히 앞으로 나온 편이다. 그래서 일부 캡쳐에서는 앞니가 튀어나와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연예인임에도 피부 관리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의외로 외모를 꾸미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2016년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생전 처음으로 피부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은지원 본인의 말로는 젝스키스 해체 이후 솔로 가수로서 출연한 모든 방송에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고...]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은지원의 관리 받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흠많무. 현역 10, 20대 아이돌을 압살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흡연이라는 동안 유지에 치명적인 디메리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는 팬들을 위해 금연하는 중이다.] 최근 동안 얼굴이 큰화제가 되어 뜻밖의 월드투어(기사로)를 하는중이다.
  • 박주영 . . . . 31회 일치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성 높은 플레이, 뛰어난 볼 컨트롤, 기존의 한국 공격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볼처리와 정확한 슛으로 한국에서 '축구천재'로 불렸었다.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인 2001년 프로구단 포항스틸러스의 후원으로 브라질에 1년간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2003년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득점왕과 MVP 등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 이후, 떨어진 폼을 전성기 시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고 끝내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모두 승선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대표팀 은퇴나 다름 없다.
         위치선정도 뛰어난 편이다.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진출 이후 피지컬을 보강하면서 버티고 헤딩을 따내는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어린시 피지컬이 부족한 시에는 라인선상에서 왔다갔다하며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고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2지선다형 공격수였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은 몸싸움. FC서울 시 당시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골 결정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데뷔 당시의 전반기 시즌뿐으로,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면서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들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왔고 실제로 박주영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상대팀이 거친 몸싸움으로 대응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시즌 말고는 스탯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아니, 그런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준다는 것 자체가 축구선수의 중요한 실력이니만큼 박주영은 실력없는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한 위치는 대로 아니다. 이동국이 성실한 국가대표(내신에 강하고 수능에 약한 학생)였다면 박주영은 좀 많이 뺀질거리지만(?) 현대축구에 요구하는 장점을 확실하게 갖췄고 필요할 때 뻥뻥 잘 터뜨려줘서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던(내신은 바닥인데 수능은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학생) 캐릭터다. 박주영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양쪽에서 모두 멘탈이 매우 강한 편이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태도문제나 일관성 없는 행보 등으로 인한 논란이 좀 많은 것이 문제.
          * 모나코왕자 : 타 별명과 달리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잘나가던 시의 별명.
          * 박코치 : AS 모나코 시 한창 폼이 좋았을 당시 팀 공격진 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생긴 별명.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오히려 가르친다고.
          * 밥줘,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것이다.]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그냥 쓰는 팬도 많으며 사실상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로 정착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사우디박 : 사우디 시 종종 사용되던 별명.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토템박, 토템풋볼 : 아스날 시 시작된 별명이다. 신비적, 주술적 요소를 듬뿍 함유하고 있는 별명으로 박힐러, 프리스트 박 등과 그 얼개를 함께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태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지만.]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한다는 취지의 별명이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http://shootkim.khan.kr/493|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풋볼 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http://oi62.tinypic.com/2q22yid.jpg|##]]. 모나코 시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식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 보여준 워크에식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들 테베스는 2, 아드리아누와 카사노는 3.'''~~
          * 피파에서는 K리그 시 초기에는 상당히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 부진해 능력치가 유망주 급으로 변화. 모나코 이적후 70대 중반의 아시아인 치고는 상당히 쓸만한 능력치로 둔갑했다. 피크시에는 80까지도 올라가며 아시아 최강 포워드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아스날에서 셀타로 이적할시 약간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나고 결정력이 좋은 포워드임에도 셀타에서 삽질이 반영되어 아스날 재복귀시 70대 초반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월드컵에서 삽질 후 6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15년 FC서울 복귀시엔 능력치가 60대 중반까지 너무 다운돼 대표팀에서도 써먹기 힘든 레벨까지 떨어졌다. 16년에 60대 후반까지는 복귀했으나 데얀(77) 아드리아노(72)에 비하면 조커 이상으로 쓰기 힘든 능력치가 되었다. [[http://www.futhead.com/players/165889/|능력치로 보는 그의 일대기]]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837061|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박주영키우기 게임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관계자의 요청에 의해 현재는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태. 군복무 중 다른 게임으로 고소크리 맞고 그때까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덕분에 영창도 다녀왔다. 참고로 [[지만원|고소한 사람]]은 [[엔하위키]] 시에 작성금지 되었다가 이 [[나무위키]]에서는 해금이 되었다.
          *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드립|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 SNS는 일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김진규(축구인)|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풍운 . . . . 31회 일치
         두 주인공,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이 주된 줄거리. 였다가 중간에 중원 정복을 노리는 동영 무사들이 끼어들면서 동영과의 대결이 중심이 된다. 무신, 천황 등을 쓰러뜨리고 동영세력은 궤멸된다. 그러나 섭풍은 마도(魔刀)를 익혔다가 그만 마인(魔人)이 되어버려서 마도에 빠진 섭풍 때문에 천하가 멸망할 위기가 오고, 이를 막기 위해서 보경운이 나서게 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보경운은 섭풍의 마인 상태를 풀어주는데 성공하지만, 벽에 떨어져서 실종되면서 마무리 된다.
         보경운은 무쌍검을 들고, 후릉에 매장했던 공자를 만나러 가지만 무쌍검은 후릉의 석문을 깨지 못하고 부서지고 만다. 보경운은 무쌍검을 대신하여 후릉의 석문을 깰 수 있는 무기를 찾아서 배검산장으로 가고, 세호검을 손에 넣게 된다.
         '''동영 - 무신 침공 편'''
         동영 제일의 무사 무신과의 대결. 무신의 아들 심을 가짜 황제로 둔갑시켜, 무신은 중원의 제위를 얻으려고 한다. 보경운과 섭풍, 무명은 단지 사적인 원한이 아니라 우국충정으로 동영 무사 일당과 싸우게 된다.
         '''동영 - 무신 패망 편'''
         납치된 황제를 쫓아서 무신의 본거지인 동영으로 가는 보경운과 무명 일행, 동영의 지배자 '''천황'''(!)은 무명과 풍운을 이용하여 무신을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천황에게는 또 다른 꿍꿍이가 있었는데.
         천황은 무신이 쓰러지자 풍운과 무명을 배신하고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 천황도 사실 중원을 침공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천황 휘하의 무사들이 중원을 공격해오고, 중원의 용맥을 수호하는 황제(黃帝)의 등뼈를 가져오려 한다. 한편 과거에 실종되었던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단랑의 아버지 남림검수 단수는 이 비밀을 알고서 황제의 등뼈를 지키고 있었다. 섭풍은 천황에게 [[세뇌]] 당하여 황제의 등뼈를 빼앗아서 달아나게 되는데.
         천황은 패망하였지만, 섭풍은 아직 세뇌당한 상태로 떠돌고 있었다. 황제는 섭풍으로부터 황제(黃帝)의 등뼈를 되찾으려 하고, 보경운은 섭풍을 정상으로 되돌라려고 한다.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마인이 된 섭풍은 보경운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보경운과 섭풍은 함께 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보경운은 섭풍을 구출하고 자신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고 만다.
         섭풍과 공동 주인공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섭풍이 좀 밀리는 감이 나타나서(…) 이 만화의 원탑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주 무공은 배운장, 삼패검. 사용하는 무기는 [[세호검]]. 그리고 오른팔은 불기린의 피가 들어간 '기린비'(혹은 기린팔)이다.
         당초에는 흡사 '''분노조장애'''를 연상케 하는, 잔인하고 과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나, 만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침착하고 진중해진다. 다만 웬만해서는 미친듯이 날뛰지만 않게 되었을 뿐, '죽음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함이 있는 성품은 여전하다. 분노조장애가 심했을 때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장에 패죽이는(…) 과격함이 특징.
         3부에서도 살아남으며, 무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회공을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는 것에 좌감을 느껴 아무한테나 회공 아냐고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면 처죽이는 살인귀 일광(一狂)이 되었다. 그러다가 [[역풍]]이 잘 구슬려서, 역풍의 스승이 된다.
         회공의 친구. 어린 시에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에게 [[개]] 취급을 당하다가 버림 받고 [[거지]]가 되어버렸다. 동네에서도 사람들에게 인간이라기보다는 들개 취급을 받으며 살았으며, 어느날에는 개밥을 훔쳐 먹다가 부잣집 개를 물어죽이는데, 그 보상이라면서 부잣집에서는 그를 [[사냥개]] 대신으로 삼아서 붙잡아 기르게 된다. 그러다가 사냥터에서 함정에 빠져서 죽을 뻔 했는데, 지나가던 회공이 구해줘서 살아나게 된다.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다'라는 예언자 니보살의 예언 때문에 자신이 천하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심복 제자 보경운과 섭풍에게 편집적인 경계심을 품고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사용한 '마가무량'의 위력에 패배. 이후 천하회의 내분으로 도리어 이전의 부하와 협력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평범한 촌 늙은이가 되어서 딸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만 생각하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던 딸이 보경운의 검에 실수로 살해. 망에 빠져서 보경운의 세호검에 스스로 몸을 찔러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배검산장-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상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무신'''
         '''심'''
         무신의 아들. 악랄하고 비열한 성격으로서, 특기는 변장술이다. 무신 사후에도 야망을 버리지 않고 끝없이 풍운을 쓰러뜨리려 한다.
         단랑과 함께 풍운의 양대 지겨운 레귤러 악역(…). 그나마 단랑은 제대로 처리됐지만, 심은 마지막까지 죽지도 않고 계속 나오면서 고통스럽게 한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변장을 하여 음모를 꾸미는 것이 특기지만, 대체로 독자들은 갈수록 심 패턴에 익숙해져서 중반을 넘어가면 '이새끼 심이네'라고 직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천상권''' : 진상이 사용하는 무공. 권법. 서리 상(霜)자를 사용하며, 그 명칭처럼 [[얼음]] 속성을 지니고 있다. 배운장, 풍신퇴와 대응하는 웅패의 삼대 학이었으나 정작 그 위상은….
  • 임수정(탤런트) . . . . 29회 일치
         학창 시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앞에서는 아니고 뒤에서 놀았다(?)고 한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불량한 친구들과도 사귀었다고 한다.] 공부에 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데 그래서인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녀의 모교인 [[명덕여자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임수정에 대하여 "공부는 못하는데 아주 예뻤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예쁘지 않은 너희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동창생의 증언도 '''좀 놀 줄 알고 예쁘장한 애'''라는 것으로 선생님들의 말과 대동소이하다. 문제아는 아니고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보는 좀 노는 애 정도였던 듯.
         고교 시 본 연극에 감명받아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1998년 나간 잡지 '쎄씨' 표지모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잡지모델을 했던 배우들로는 [[김민희(1982)|김민희]], [[이요원]], [[배두나]] 등 화려하다. 이들이 일찍 방송계, 영화계로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녀는 광고[* KTF의 브랜드였던 Na의 인터넷 모델로 활동했다.],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특이한 건 연기 공부를 '''[[충공깽|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연예인]]이 되었고, 데뷔 후에도 연기 수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데뷔작이던 《학교4》 나[* [[박찬욱]] 감독은 이때의 연기를 칭찬했다. 박 감독이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데, 마침 보고 있던 프로그램이 학교 4였다. 이때 임수정의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 후 [[장화, 홍련]] 오디션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박찬욱은 그녀를 기억해냈고 김지운 감독에게 강력 추천하였다고 한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 에서는 [[발연기]] 소리도 들었지만, 다작도 하지 않는 배우가 현재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가 된 건 재능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오디션을 계속해서 보다가 마침내 [[학교 시리즈]]의 --당시에는-- 마지막인 《[[학교 4]]》에 출연을 하게 된다. 그것도 주연급으로 나왔다. 그러나 중간에 제작진과의 불화[[http://sports.chosun.com/news/entertainment/20011105/1be16005.htm|#]]로 그 이후로는 비중이 급격히 낮아지고 마지막회엔 거의 엑스트라급으로 나왔다. 그리고 당시에 같이 나오던 [[이유리(배우)|이유리]]가 더 잘 나갔다.[* 《학교 4》에서 둘은 극중 애증의 관계로 나온다. 중학교 시 단짝이었으나 [[어른의 사정]], 정확히 얘기하자면 학교 선생의 실드 때문에 개, 소 보듯한 관계로 변하다 결국 서로의 진심을 알게되어 화해하게 된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2004년 상반기 동안에는 잡지촬영, 광고 출연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가 하반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캐스팅된다. 이 캐스팅에 대해 그녀의 팬들이 이후 임수정이 배우, 연기자가 아닌 그저 대중적인 스타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고[* 사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전부터의 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경쟁작들이[* 대작드라마 전문 이환경 작가의 [[영웅시대]], 당시 서울대 출신의 미녀 탤런트로서 인기 정이었던 [[김태희]]의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만만치 않아 흥행도 보장을 못 했었다. 심지어는 KBS 관계자가 제작사 대표에게 임수정은 [[듣보잡]]이라며 빼라고 요청[[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ocial/2009/0202/20090202101050100000000_6541684867.html|#]]까지 했다고 한다.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한 건 '무식 인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드라마는 '미사폐인'을 만들 정도로 전국구 인기였고 [[소지섭]]과의 애한 커플 연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다만 [[동안]] 탓인지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던 탓이었는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처음 본 어르신들은 그녀를 보고 '''"[[중학생]]이 연기 참 잘하네."'''라고 하기도하고 드라마에 '''술 먹는 장면'''이 나오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연기대상 땐 '''"왜 아역상 후보에 없냐"'''고 놀리기도.(...)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동안인 것도 동안이지만 극중에서 [[소지섭]]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고 목소리도 영락없는 어린애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목소리는 실제 임수정 [[목소리]]와 전혀 다르다.) 그 때문인지 중국과 태국 더빙판의 경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어린이]] 캐릭터 스타일의 목소리로 더빙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이 임수정 '''최초의 성인 역.'''(...)
         2005년 많은 인기를 얻은 그녀는 영화 《새드무비》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최고의 주가였던 임수정을 포함 [[정우성]], [[신민아]], [[염정아]], [[차태현]], [[손태영]], [[이기우(배우)|이기우]], [[여진구]]가 나오는데 흥행하지 못한 게 신기할 뿐;; 정우성이 2000년대 중반 놈놈놈을 제외하고 '새드무비’ ‘데이지’ ‘[[중천(영화)|중천]]’ ‘호우시’ ‘검우강호’ ‘아테나: 전쟁의 여신’까지 모조리 망해가던 침체기였고 임수정도 거품이라는 말이 생기던 시점에서 차기작을 흥행필패로 여겨져서 여배우건 남배우건 기피하던 동물영화로 선택했다. 영화 《각설탕》 이 그것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는 동시기에 개봉한 《[[괴물(영화)|괴물]]》 강세 속에서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후속작은 [[김태희]]가 출연하여 16만 관객으로 폭망~~
         2011년 10월, 장화홍련 이후 늘 함께 하던 소속사[* [[iHQ|싸이더스]]→노아 엔터테인먼트로 옮겼다지만, 노아 엔터테인먼트는 싸이더스의 자회사 개념으로 보고 있었다. 싸이더스 시부터 함께하던 팀장과 매니저가 승진하면서 자기쪽 계열의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한 회사다. 바로 현재의 [[판타지오]]다.]를 떠나 [[배용준]]의 [[키이스트]]로 옮겼다. 한류스타로의 행보를 노리는 듯.[*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이나 임수정 하면 배역명인 송은채로 인식한다... 벌써 10년인데;;]
          * 클린 앤 클리어 : 데뷔 시인 1998년에 찍었던 광고.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태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백기간에 지친 남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한 일]]을 겪었다는 것.(...)
         앞서 말한 것처럼 학창시 조용한 성격에 공부에 관심이 없어 [[연예인]]이 될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 사귀었던 친구들과 지금도 시간이 있으면 만나서 개인적으로 어울린다고 한다.
          * [[공유(배우)|공유]] : [[학교 4|학교4]] 시 때 이후로 친. 오죽하면 스캔들 해프닝까지 났을까.(...)
          * [[공효진]] : 잡지모델로 데뷔할 때부터 친하게 지냈으며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한다.
          * [[문근영]] : [[장화 홍련]]에서 함께 한 이후 자매급으로 친하게 지냈다.
          * [[신민아]] : 공효진처럼 잡지모델로 데뷔할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새드무비에서 함께 한 이후 공효진과 더불어 친이 되었다.
          * [[염정아]] : 장화 홍련에서 사이 나빴던 계모와 의붓딸의 모습과는 달리, 무척 친한 사이. 심지어는 같은 국수 그릇을 쓰고, 서로의 젓가락도 공유하는 사이다.(...)
          * [[이유리(배우)|이유리]] : 과거에는 친했던 것으로 보이나, 서로의 다른 스타일의 길을 간 이후로는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유리가 학교4 시과 그 후 얼마간 임수정에 앞섰던 걸 생각하면 [[넘사벽]]으로 역전이 되고 난 다음에 자격지심이 드는게 당연하다. 묘하게도, 학교4의 에피소드 중 이유리와 임수정이 중학교 시 단짝이었다가 멀어진 내용이 나온다.
          * [[이천희]] : 공유와 친이었는데 같이 친해졌다.
         사실 위에 있는 인연들 대부분은 과거 신인 시 소속사 선후배 동료 관계였고, 본인도 어느 정도 선배의 위치에 있고 소속사 이전 후에는 그 전과 달리 이들과 활발한 교류는 없는 듯. 오히려 의외로 [[구혜선]][* 위에도 언급된 애용처럼 영화 감독을 하고 싶다는 인터뷰에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로 임수정을 꼽았고 임수정 본인도 인터뷰에서 구혜선과 알고 지낸다고 말했다.]과 [[산다라박]][* 김종욱 찾기 VIP 시사회 때 왔고 팬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가 산다라박이 [[아이스버킷 챌린지]] 때 다음 지목 대상으로 임수정을 호명했고 임수정은 그걸 그대로 이행했다.], [[서현(소녀시대)|서현]][* 시간이탈자 VIP 시사회 때 임수정의 초대로 왔다고 말했다. 그 뒤 서현의 뮤지컬에 임수정이 관람을 오면서 서로의 인스타그램에서 대기실 셀카 사진을 올리며 친분을 다시 드러내기도.] 등 배우가 아닌 아이돌 기획사 소속 연예인과의 친분이 더 드러나고 있다.
         2007년 9월 당시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인기정이었던 공유와 [[제주도]] 여행을 갔다는 특종이 실린다. 당시 [[수학여행]] 중이던 많은 고등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누리꾼들은 학교 4 시부터 인연이 있었다며 이들의 연애를 주장했지만..... 사실 단 둘이서 간것이 아니라 [[이천희]], [[공효진]], [[여욱환]] 등의 이들과 친한 이들과 함께 여행을 간것이었다. 2008년 3월 7일 방송된 [[놀러와]]에선 당시 같이 여행을 간 이천희가 출연해 내막을 밝힌바 있다. 당시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이 공항에서 임수정과 공유를 알아보고 몰려들어 일행들이 베이비룸으로 피했으나 일행과 떨어진 이천희가 뒤늦게 합류해 문을 열다가 이들이 플래시 세례를 받아 오해를 샀다는 것. 특히 여행 중 이천희는 임수정과 쇼핑도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가졌다고(...)[[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803080004|#]]
         >연기 경험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장화, 홍련>을 촬영하면서, 시작하는 자세로 많이 배우고 있다. 매컷 새로운 걸 깨달아가는 기쁨, 한계에 부딪히는 데서 오는 망감, 이 모든 게 내가 좋은 연기자가 되는 데 중요한‘밑거름’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아직 이렇다 할 반응도 없고 인정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혹여 그런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모르는 척 외면할 생각이다. 인기나 평가를 의식하고, 방심하고, 무너지는, 그런 과오는 저지르지 않겠다. 지금은 그냥, 이런 배우도 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란다. ([[씨네21]] 임수정 자기소개서 중에서)
  • 몽키 D. 루피 . . . . 27회 일치
         ||<:>좋아하는 계||<:>여름도 좋고 눈 오는 겨울도 좋다.||
         '''~~초반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반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남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취향이 원인 중 하나. "목숨보다 모험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섬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록지침을 보자마자 '''가장 위험한 섬'''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 탓에 나미와 우솝은 이런 기능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원피스의 테마를 드러내기엔 가장 적한 선택이지만, 한 집단 리더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아무래도 신세계를 [[에버랜드|에X랜드]]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
         어린 시부터 ~~[[산적]]질을 해왔으며~~[[해적]]을 동경해 왔으며, 특히 어린 시 자기 팔을 희생하여 그를 구해준 빨간머리 [[샹크스(원피스)|샹크스]]를 동경하고 있다.
         초반에는 생각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알라비스타나 [[위대한 항로]] 사건을 겪고, 다소 성장한 듯. 상황을 내던지는 듯한 일은 대로 하지 않고, 감으로 판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주저없이 그만둔다. 정상결전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도 미호크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샤본디 제도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전원에게 도망치라 명령했다. 굉장히 무모했던 [[골 D. 로저]]나 [[포트거스 D. 에이스|로저의 아들]]('''스포일러''')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요하자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볼사리노|아무리 똥줄을 타고 역량을 한계까지 뽑아내도 도무지 못 이기겠다 싶은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을 감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즉시 도망치거나 심지어는 '''동료들과 흩어져서 도망칠 줄도 안다'''[* 앞서 말한 골드 로저나, 로저의 아들의 경우. 자기만 남고 동료들을 보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뿔뿔히 흩어져서 생존률을 나눠가지자는 식의 냉정한 선택은 '''대로 불가능하다.''' 가프의 로저에 대한 평가나 그 아들의 행적에서 미루어 생각해보면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수준.]는 것이다. 신중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의외로 물러설 때를 알 정도의 상황판단능력과 융통성은 있다.
         해적사냥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단 둘뿐이었다. 루피가 계속되는 동료를 찾다가, 소규모 ~~[[어선]]~~해적단이란 소리를 들을 쪽수는 채웠다. 그런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며[* [[러시아식 유머|순록을 닮은]] [[토니토니 쵸파|너구리]](대 오타가 아니다.), [[프랑키|로봇]]도 있는데 왜 또 [[브룩(원피스)|해골]]까지 동료에 추가하려 드냐고 상디한테 한 소리 들은바 있다.] 특히 [[위대한 항로]] 진입 이후에 들어온 동료는 전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조로, 나미, 우솝, 상디는 '''일단은'''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쵸파는 순록 + 악마의 열매 능력자, 프랑키는 사이보그, 브룩도 해골 -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그나마 외모로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인 로빈도 악마의 열매 능력자. 사실 나머지 멤버도 조로, 상디는 초인급 싸움을 보여주고 나미는 위대한 항로에서 관측할 수 없는 사이클론을 감으로 예측하며 우솝은 사법의 탑 꼭대기에서 저 멀리 떨어진 다리에 있는 해군들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등 나머지 네명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남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반'''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태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상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상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상 셋이서 붙어다닌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다이아몬드급 멘탈의 소유자로, 어린 시에 해적에게 납치당해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끝까지 ~~자기를 처리하려 한~~ 사보와 에이스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스릴러 바크 편에서는 어지간한 인간은 2~3개 이상 넣으면 의식이 못 버틴다는 그림자들을 100개나 넣고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사기급 주인공보정 능력~~ 정상결전 편 임펠 다운 탈출한 뒤에 벌어진 싸움도 이미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 어린 시부터 엄청난 꼴을 당했는 데도 이런 낙천바보로 성장한 것 자체가 멘탈갑이다. 루피가 정신적 충격으로 [[멘탈붕괴]]를 일으킨 것은 에이스가 죽었을 때 뿐이며, 정확히는 에이스의 죽음을 기폭제로 그간 중첩되어 있던 막대한 정신적[* [[샤본디 제도]]에서 상황상 동료들이 [[바솔로뮤 쿠마|쿠마]]에 의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과 [[임펠 다운]]에서 탈출하기 위해 봉쿠레를 희생시킨것] , 신체적[* [[샤본디 제도]], [[임펠 다운]], [[마린 포드]]에서 받은 신체적 부담감] 부담이 터진 것이다.
         또한 도플라밍고와 루피의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리더십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패왕색 패기의 소유자로써의 카리스마는 제각자 다른 형태로써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행콕의 경우는 그것이 대적인 미모를 통한 매료로써 나타난 셈. 행콕과 같은 패왕색 패기의 소유자인 루피가 행콕의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카리스마]]에 매료되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 오마츠리 남작 - 극장판 6기 한정.[* 극장판 5기에서는 루피가 쓰러뜨린 적이 없기 때문.] 꽃~~이라 쓰고 괴물이라 읽는다~~을 폭파시키고 주먹 한 방으로 K.O.[* 이 인물이 루피를 가장 참혹하게 만들었는데, 다른 적들이 루피를 바를 때, 빈사 혹은 사망 직전까지 몰고가나 [[주인공 보정]] 및 막강해진 기술로 본인 스스로 이겨버리는게 대부분이나, 이 인물은 화살로 바위에 두 팔 두 다리를 모두 고정시켜놓고 거대 꽃~~괴물~~이 거대 뿌리를 통해 하나하나 동료를 섭취하는(!!!) 모습을 보게 했으며 루피가 목을 통해~~화살따위는 입으로 씹고~~ 마지막 남은 조로를 구하려 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하고 망에 빠져 있었고 주변의 조연이 화살 빼주고(확실한지 [[확인바람]]) 거대뿌리를 공격하나 그게다 화살로 바뀌어 등에 고슴도치처럼 박히고 다른 조연이 화살로 거대 꽃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펀치하나 날려 동료를 구해주는 그런 전개라서 제일 참혹하다.~~보는게 이해가 쉽다.~~]
          * [[각성한 동물계 능력자|미노타우로스]] - 버기, Mr.3, Mr.2 봉쿠레와 함께 상대했으며 버기가 먼저 특제 마기탄, 봉쿠레가 이어서 그 겨울날의 추억을 퍼붓고 Mr.3의 양초를 팔에 장착해 고무고무 망치창으로 기시켰다.
          * '''[[돈 칭자오]]''' - 고무고무 토르 엘리펀트 건을 머리통에 제대로 꽂아넣는다. 칭자오는 물에 쳐박혀버리면서 리타이어. 루피가 리즈시의 가프의 실력에 어느정도 근접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스피드를 포기하고 오직 파워만 극대화한 기어3 주먹과 거프의 그냥 주먹이 비슷한 것이므로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
          * [[레베카(원피스)|레베카]] - 친을 베푸는 척 암살을 시도하려 했던 레베카를 손에 도시락을 든 상태로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려 놓게 하여 그냥 간단히 제압만 했지 싸웠거나 쓰러뜨린건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루피는 레베카를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
         루피가 원체 강하기 때문에, 또 [[주인공 보정]]의 힘으로 많은 적들이 있지만 루피를 실질적인 위기에 몰아넣은 적은 별로 없다. 이들은 루피를 이겼거나,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아간 상대들이다. '''강조 표시'''된 인물은 루피를 기시킨 인물들. 등장인물을 웬만해선 죽이지 않는 원피스에서 가장 확실하게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기하는 것이다.
          * [[히그마]](!) - 루피를 피떡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나중에 바다에 빠뜨려 죽일 뻔했다. 샹크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루피는 ~~[[해신류 떡밥|후샤 D. 뉴에이지]]~~근해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루피가 어린 시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루피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첫 번째 인물'''. 이 때문에 밑의 버기와 함께 히그마 생존설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아론(원피스)|아론]](!!!) - 루피를 콘크리트 덩어리째 바다에 던져서 기시켰다. 만약 이때 [[노지코]]와 [[겐조(원피스)|겐조]]가 돕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익사]].[* 3분을 기점으로 생존율이 급격히 감소해서 6분이 지나면 보통 사망. 그래봐야 만화라서 현실의 잣대가 뭔 소용이겠냐만은...]
          * '''[[시저 클라운]]''' - 처음에 만났을 때 싸움에서 루피를 카라쿠니로 기시켰다. 하지만 실험체랍시고 죽이지는 않았다.
          * [[사보(원피스)|사보]] - 어린 시 루피가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쵸파가 동료 가입을 거하자)[* 제대로 거했다기 보다는 가고는 싶지만 드럼 왕국이나 쿠레하에 대한 걱정이나 자기가 사람들 틈에 동료로써 끼어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 탓에 우물쭈물 하는 느낌. 여기서 말을 가로막듯이 루피가 소리를 지르는 부분이 템포가 좋다]''' 시끄러워, 가자!!!'''
  • 김연경(배구선수) . . . . 26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또한 특유의 밝고 긍정적이며 승부욕 넘치는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 여전하다고.[* 특히 김연경의 개그본능은 배구팬들 사이에서 데뷔 초부터 유명했다. 그 덕에 각종 예능에 출연해 놀라운 예능감을 뽐내며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V리그에서 활동하던 시 스페셜v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MC를 자처하기도 했다. 덕분에 [[https://m.youtube.com/watch?v=pw-uQS7Ew7s|전]]보다 mc보는 실력이 [[https://m.youtube.com/watch?v=GjDlhxjaYJQ| 늘었다]]. ~~배구선수인데 왜?~~] ~~그 승부욕 때문에 피자 6조각 겹쳐 먹었다가 병원 실려간 건 안 비밀..~~ 더 궁금하다면 [[https://news.joins.com/article/3982719 |링크]]를 참고하자.
         ===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시 ===
         || 데뷔 시 ||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 [[일본]] JT 마블러스 시 ===
         || JT 마블러스 시 ~~욘굥 히메 시~~ ||
         이후 2009-10시즌에 [[일본]] JT 마블러스로 임대 이적[* 첫 해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 옵션으로 그 다음 해에도 뛸 수 있는 1+1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2010년 9월 국내 컵대회에 출전했다. 일본 리그가 오프 시즌인 때에는 9월에는 국내 컵 대회 출전이 가능했다.], 일본 여자배구계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연경이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2009-10 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사실은 2008-09 시즌에도 흥국생명은 정규 시즌을 겨우 3위를 해 플레이오프부터 봄배구를 시작했지만 김연경과 카리나 오카시오의 크레이지 모드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 어쨌든 흥국생명의 [[리즈 시]]을 이끌고, 게다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사기 캐릭터|캐사기 유닛]] 소리를 듣게되자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라는 여론과 김연경 본인의 외국 리그 진출 의지가 합쳐져 결국 2009 오프시즌에 외국 리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사실 김연경은 완전 이적을 바랐겠지만, 흥국생명이 선수 임대 방식을 이용, '''당시 V-리그 선수 이동 규정에 없던 방식'''으로 제대로 신분 정리도 안 한 채 이적을 진행했고, 이것이 3년 후에 이적 파동의 도화선이 된다.
         여담으로, 팬들이 김연경이 뛰었던 팀중 선호도가 꽤나 높은 팀이기도 하다. 다케시타 요시에라는 일본의 명세터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고, 김연경 본인또한 JT 마블러스에서 뛰며 배구 외적으로 문화, 음식, 예 등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언급했기 때문. 팬들 입장에서는 초록색, 흰색의 유니폼과 아주 잘 어울려 좋아하기도 했다. 2년간 JT 소속으로 뛰어서 그런지 전세계적으로 배구 팬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김연경이지만 유독 일본에 열렬한 팬들이 정말 많다.
         === [[터키]] 페네르바흐체 시 ===
         남은 것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표면상~~ '대승적인 차원' 에서 배려해주는 것 뿐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전에 결정짓겠다던 이적 문제가 [[2012 런던 올림픽|올림픽]]을 지나 9월 초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김연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한배구협회]]의 [[높으신 분]]의 말씀 한마디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사실 진짜 일해야 할 곳은 계약기간과 신분부터 확실히 해줘야 할 [[한국배구연맹]](KOVO)고 [[대한배구협회]]는 이적동의서 쓰는 것이 할 일. 따라서 이 일이 [[대한배구협회]]로 가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그 높으신 분은 김연경 이적 파동 발생 때 대통령 해보고 싶으시다고 나대셔서...~~[*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이명박 정권 시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으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후보로 나선 바 있다.]
         그리고 '''FIVB가 흥국생명의 편을 들어주고 말았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김연경 간의 합의서를 뒤늦게 알고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손을 들어줬다는데 문제는 그 합의서는 FIVB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로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문서이다.[* 합의서 내용은 김연경에게 불리한 조항 투성이. 단, 마지막에 양 측은 FIVB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었다. 김연경측은 그걸 노린 듯.] 이를 안 김연경 측은 선수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68707|#]] ~~농담이 아니라 제대로 선수 생활하려면 이젠 해외로 귀화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소속 팀의 문제라 귀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재 네티즌 여론도 귀화를 바랐다. 그러나 김연경 자신은 귀화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렇게 되자 김연경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시 ===
         또한, "남자부 신인의 경우는 대부분 대학을 마치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많다. 평균 나이도 여자부에 비해서 높고 대학 시의 경력을 무시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A구단 관계자는 또 남녀간 연봉 격차가 시장 가치가 오랫동안 쌓여 반영된 결과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여자부가 최근 상승세에 있고, 좋은 분위기인 것은 맞지만 한 두해만으로 남녀부가 엇비슷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대표팀을 떠나서 프로만 보면 남자부가 쌓아온 것이 더 많다. 여자부는 더 쌓아가야하는 단계로 본다."라고 대답했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부동의 에이스이자 대 빠져선 안 되는 선수.'''
         현재 사실상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김연경 혼자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국제전을 보면 한 경기에 평균 20~30점을 책임지고 늘 공격부문 Top 5에 오른다. 물론 [[한송이(배구)|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등 여자대표팀 주 공격원이 평균 10점 이상이며 크레이지 모드 때 10점대 후반 가까이 찍어주기는 하나 '''김연경은 팀 득점의 거의 반을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베로]]보다 잘하는 서브리시브'''이기도 해서 김연경이 잠깐이라도 쉬러 벤치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헬게이트]]를 걱정해야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시 맹활약했다. 조별리그-8강전 6경기 동안 평균 27.5점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보였다. 게다가 김연경이 막힐 때마다 [[한송이(배구)|한송이]],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양효진]] 등이 10점 중후반 대의 점수를 올려주면서 ''''김연경과 아이들'''' 이나 다름없는 여자배구 국대팀을 밸런스를 갖춘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갔다. 결국 2012년 8월 7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전에서 3-1로 이기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여자배구 국대팀을 4강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4강전에서 [[미국]]에게 지고 3, 4위전에서 과거 '김연경과 아이들' 시의 경기력으로 회귀해 버리는 바람에[* [[양효진]]과 [[한송이(배구)|한송이]]는 체력이 떨어져서,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은 경험이 부족해서 고전했다.] 올림픽 4위로 마감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2위와 40점차'''로 [[http://www.london2012.com/volleyball/event/women/statistics/type=player-scorers/index.html|득점 1위]].
         후에 올림픽 조별리그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의 반월성 연골판이 파열되었지만 본인의 수술 때문에 국대가 올림픽 광탈하는 게 싫어 고통을 참고 계속 경기를 치렀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다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반월성 연골판에 조금만 손상이 와도 가볍게 발을 디뎌도 통증이 심해 다리를 어야할 수준이다. 더군다나 배구는 무릎으로 하는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포츠이다. 올림픽 후에도 수술받지 않고 2013년 3월 현재까지도 계속 터키 리그에서 무릎이 나간 채로 뛰고 있다.] ~~오오 대인배...~~
         8강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선 팀의 망적인 수비와 서브리시브로 패배해가는 경기[* 서브 에이스만 12개나 내줬다...]에서 혼자서 공격을 다한다는 표현이 적할 정도로 활약했으나 3세트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후 마지막 세트인 4세트에선 좋은 찬스를 놓치고 서브범실을 범하는 등 급격히 지친모습을 보이며 안타깝게도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과장 좀 보태서 김연경 VS 네덜란드라고 할 정도의 투혼을 보이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리우 올림픽]]을 마감했다. 겨우 따낸 3세트의 1승은 거진 김연경이 혼자 해먹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 8강전 직후 김연경은 유니폼을 쥐어뜯을 정도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 당시 경기를 지켜봤던 많은 국민이 안타까워했다.
  • 김희철(1983) . . . . 25회 일치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 강위성 "一路上有你" 시즌 1 [* 중국 강위성TV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다] (2015.01.10~2015.03.28)
          * 강위성 "一路上有你" 시즌 2 (2016.03.12~2016.05.28)
          * ETN "강인하고 희철하게"[* 뮤지컬 연습하는 과정을 찍은 프로그램이었으나, 문제는 이 뮤지컬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뮤지컬이었으며 당시 희철은 교통사고후 철심 제거수술을 받은지 얼마 안되어 목발을 짚고 다니던 시이었다(!) 인지도가 높다는 죄로 뮤지컬에 투입된 희철은 연습과정에서 넘어지고 많이 아파했으며 컨디션이 무너져 감기를 달고 살기도. 팬들 사이에서는 애증의 예능 1위로 꼽힌다.~~그냥 증..이다~~ ~~본인도 인생술집에서 ‘아..그때 너무 슬펐어’라고 언급할 정도. 소속사인 SM이 희철의 팬들에게 비난 받는 많은 이유 중 하나다~~] (2008)
         기본적으로 의리 있는 성격이라 친해지면 오래 간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방송, 드라마, 라디오등에 출연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분을 쌓아 나갔고 본인의 의리 있는 성격이 겹쳐져 2018년 현재 어마무지한 인맥 라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실상 웬만한 메이저 아이돌들은 김희철과 친분이 있으며, 예능에 자주 출연하다보니 예능 MC들과, 데뷔 초 시트콤 출연 경력 등으로 배우들과도 친분이 있는 등, 연예계 다방면으로 인맥을 자랑한다. 가장 자주 만난다는 인맥그룹은 AB형 혈액형을 가진 남자연예인들의 모임인 쪼코볼[* '''쪼'''금 싸이'''코''' 같지만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들.]로 [[장근석]], [[이홍기(가수)|이홍기]], [[조성모]], [[미쓰라 진]], 낯선, [[쌈디]], 김정모 등이 멤버이다.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BoA]]와도 친분이 두텁다. 게임 전문 아프리카 BJ나 소속사 대표들도 알 정도로 연예계나 비연예계 전방으로 엄청난 친목을 자랑한다. 근데 오히려 슈주 멤버들과 덜 친하다고 친 노트에 나오기도 했다(...) 슈주에선 [[최시원]]과 [[동해]]와 가장 친하다. [[이특]]과는 성격이 정반대라 자주 싸우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관계를 '''친하지 않은데 안 친하지도 않은 사이(....)''' 라고 표현하기도. [[한경]] 과도 친한 사이여서 한경이 탈퇴한 이후 우울증에 걸려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미니홈피에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탈퇴 이후에도 만남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방신기]]에서는 [[유노윤호]]와 친분이 있으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로 활동하는 멤버 [[김재중]]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트 출연 이후 은혁과 서로 친이라고 부르며 친함을 과시했고, 심지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친그램, 사생그램 등의 태그와 함께 은혁의 사진들을 마구 업로드했다. 이 때문에 은혁은 덧글로 경찰을 찾았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시원이 유일하게 전도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한다.(...)
         [[김구라]]의 [[흑역사]]였던 인터넷방송 시 김구라의 열성팬으로 팬 정모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얼굴을 합성해 놓은 팬픽이 있지만 시각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찾아볼 사람만 찾아보자.(...) 때문에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와 스캔들(...)이 날 정도의 친근함을 과시했으며 희구라 커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비슷한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박명수]]도 추종하는 듯, [[무한도전]] 뒤끝공제 특집에 출연해 그 면모를 확실히 드러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타 연예 기획사 수뇌부들과도 친분이 많은데 주간아이돌 크리스마스 특집 때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게스트로 출연한 [[걸스데이]], [[TWICE]],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러블리즈]]의 기획사 임원들과 깊은 친분이 있음을 인증했다. [[울림 엔터테인먼트]] 실장, [[JYP 엔터테인먼트]] 정욱 사장,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와 친이라고 한다.[* 소성진 대표의 경우는 SM에서 매니저 생활을 했었는데 이때 친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김희철&김정모]]가 출연한 슈키라에서 박진영, [[MBK 엔터테인먼트]] 김광수 대표,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김시대 대표 등 유력 굴지의 기획사 대표들과 형동생으로 지낸다고 언급했다. 예전에 [[플레디스]] 한성수 대표와도 친하다고 했었다. 그 친분 덕에 [[오렌지캬라멜]]의 샹하이 로맨스 작사를 '''우주대스타'''라는 필명으로 맡기도 했다.
         인맥이 많아서 약간 신뢰 없는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김희철은 인맥 관리에도 매우 철저하고 자신이 친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챙기고 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평가가 높다.[* [[강은비]]가 한창 100만 안티에 시달리던 시인 2006년, 레인보우 로망스 시사회에서 동방신기와 김현중의 팬들의 협박 때문에 강은비가 실신하자 강은비의 안부를 직접 챙기고 촬영장에서 무개념 팬들의 접근을 막는 등 강은비를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은비는 지금도 김희철에게 고마워한다고.] 특히 여사친이 상당히 많기도 한데, 김희철은 일단 본인이 여자와 친구가 된 이상 그 여자를 대로 이성으로 보지 않으며 본인이 이성으로 느껴지거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감정을 가지고 다가올 경우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캔들 한 번 없는 것도 철저한 인맥관리 때문일지도. 또한 주위 인물이 여자 연예인을 소개 시켜달라고 하면 바로 차단을 시켜버리는 등,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초아 열애설 때 중개를 자신이 시켜줬다는 추측성 기사 때문에 엄청 불쾌했다고.
         2014년 추석에 방영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소원을 말해요'에서 이벤트로 [[겨울왕국]]의 [[안나(겨울왕국)|안나]] 코스프레를 하였다. [[엘사]] 역을 맡은 [[김재경]]과 비교해도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82808140336766&type=1&outlink=1|딱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 이후엔 아예 엘사 분장을 하고 [[http://osen.mt.co.kr/article/G1109995790|나오기도 했다.]] [* [[SUPER SHOW 6]]에서 엘사 콘테스트를 열었는데 자신은 안나를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엘사를 했다고 한다. 총 3회의 콘서트 중 마지막 콘서트에서 희철이 올라와야 하는 타이밍에 엘사 드레스와 가발만 올라왔다. 모두가 어리둥하고있는 사이 기어이 안나로 분장한 희철이 나타났다.]
         웹툰 [[아이돌 연구소]]에 단독으로 출연하는 우주대스타 특집 1편에서 밝힌 바로는, 수술 직전까지도 농담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농담을 기억 못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으며,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수술 끝에 겨우 생명을 건졌으나, 다리를 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점점 다리가 안 좋아지고 있어요. 어쩌면 다음 활동부터는 춤을 못 출지도 모르겠어요."라고 언급했다.[* '제 슬픔은 저만 알면 되는거니까.', '저 빼고 활동하라고 했어요. 팀에 피해주기 싫었거든요.', '저보다 아픈 분들도 훨씬 더 많을 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단 얘기 하면 안될 거 같았어요.' 라며 부상 와중에도 자신보다 남을 더욱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 다른 [[가수]]들의 춤을 많이 따라한다. [[원더걸스]]가 '[[Tell Me]]'로 활동하던 시에 예능에서 Tell Me 춤을 따라 추거나 샤이니 태민의 독무를 따라 추기도 했다. [[아는 형님]] 항목에도 나오지만 춤을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꿰고 있는 수준이다. 걸그룹이 나와 대표곡 춤을 추면 대부분 따라 출 수 있고, 포인트까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 2017년에는 [[TWICE]] [[모모]]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해졌다. 특히 [[CHEER UP]]에서 [[모모]] 파트인 --Zㅗ르Zl마--'''조르지마 어디 가지 않아 되어줄게 너의 베이베'''를 [[아는 형님]]에서 맨날 부르고 다니며 모모의 인기를 드높여 주었고[* 희철이 항상 부르는 파트는 2이다.][* 자기 애완견 이름을 '조르'라고 지었는데, 유래는 당연히 "조르지마".], [[주간 아이돌]] 알바 시에는 모모의 니코니코니 애교에 완전히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SM 소속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들의 애교에는 오히려 심박수가 내려갔으나, 모모의 니코니코니에 심박수가 증가했다고. 게다가 [[민경훈]]과 같이 부른 "나비잠" 마저 뮤비 주인공으로 모모를 섭외해왔으니 말 다한셈. 결국 이러한 덕질(?)끝에 마침내 2017년 6월 18일 [[TWICELAND]] 앙코르 공연까지 왔다! (종종 농담처럼 트와이스가 속한 JYP가 자신의 마음의 소속사라고 말한다.)
          * 라디오 DJ 경력이 있어서 말 빨이 좋다. 2014년 만우 날 [[려욱]] 대신 [[슈키라]] 1부를 진행하고 2부를 함께하는데 [[김영희(개그우먼)|김영희]]가 '김희철만 이기면 라디오 끝판왕인거야'와 같은 말을 했다. 순발력도 좋은 편이라 도박 크리로 하차한 신정환 대신 라디오 스타의 MC 자리를 꿰찼다. 연말 시상식 MC로도 자주 활약한다.
          * 한때 대중 앞에서 안습한 [[가창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2007년 9월 2일 [[SBS 인기가요]]에서 [[양파(가수)|양파]]와 함께 불렀던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U(슈퍼주니어)|U]]'로 활동하던 시, 플짤이 수도 없이 돌아다녔던 니킥 사건이 그 예이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지만 본인이 많이 언급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그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김희철은 'U' 삑사리 이후로 자신감을 잃어 이후 활동에서 자기 파트를 빼달라고 요구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이게 본 실력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김구라]]가 희철은 고음을 잘 한다며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슈퍼주니어]]의 '[[너라고 (It's You)]]'에서 고음을 맡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기교 없는 고음을 잘하는 것으로 통한다. 멤버 [[동해(슈퍼주니어)|동해]]가 희철에 대해 고음을 잘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문제의 2007년도 무대 이전에 라디오에서 감기 걸린 상태로 '말리꽃'을 꽤나 잘 불러 레전드 영상으로 남은 것을 보면 못 부른다고 깔 수는 없을 듯하다. [[규현]]은 그날 희철이 부른 말리꽃 음성을 MP3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슈퍼주니어]] 7집 앨범에 수록된 'Islands'와 '[[백일몽 (Evanesce)]]'에서 후반부 고음에 등장하는데 깔끔한 고음 처리에 팬들이 이거 [[예성(슈퍼주니어)|예성]]이 공익 가기 전에 부른 거 아니냐, 그런데 예성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며 헷갈려 했을 정도. (참고로 예성은 슈퍼주니어 내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고, 솔로곡과 앨범도 여러 번 발표했을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김정모와 M&D 결성 후 발표한 미니앨범에서는 가성과 고음까지 잘 소화했지만 가창력 논란이 불거질 때부터 시간이 너무 지나 팬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가창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듯하다. M&D 음악방송 출연을 늘리거나 [[불후의 명곡]]이라도 참가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진짜 참여했다. 김정모와 함께 참가했으며 캔의 '내 생에 봄날은' 을 열창했다. 김정모는 기타 연주를 맡았고, 노래는 희철이 불렀다. 무대 후반부에 캔의 배기성이 등장하며 희철의 미성과 배기성 특유의 긁는 목소리가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 뒤에 이어진 아는 형님에서도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불러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경훈과 함께 듀엣곡인 "[[나비잠]]" 을 불렀는데, 이 곡이 히트하면서 대중에게 가창력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희철의 가창력과 고음실력은 희철이 직접 작사한 'M&D'의 '달수정', '수필', '실루엣', '魂(혼)', (마마무의 휘인과 함께 부른) '나르시스', 슈퍼주니어의 멤버 동해가 작사, 작곡에 참여한 슈퍼주니어 8집 앨범 '[[PLAY(슈퍼주니어)|PLAY]]'의 수록곡 '[[비처럼 가지마요 (One More Chance)]]' 등에서 엿볼 수 있다. M&D의 멤버 트랙스의 정모는 희철의 보컬에 대해 정형화되지 않은 보컬이라고 언급했다.
          * 친누나가 [[젝스키스]]의 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젝스키스가 나오는 방송은 모두 본방사수 했었고, 어느 방송에서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다 기억하고 있다. [[능력자들]]에 출연했을 때는 젝스키스 관련 문제를 다 맞췄고, 꽃놀이패 출연했을 때는 [[은지원]]과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도 기억 못하는 데뷔 초의 일화나 수록곡 가사까지 다 읊었다. 게다가 이재진의 솔로활동 시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본인 말로는 누나가 맨날 TV 켜서 봤다지만) 시청자들이 '사실 누나가 팬이란 건 핑계고 본인이 팬인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는형님에 젝스키스가 출연하자 춤을 모두 따라추며 칼군무를 보여주었다. 자막에는 '가짜 수정'이라고 표현되었다.
          그리고 껍질을 까보자 아니나 다를까 [[클템]] 이상의 방송짬밥+나름 롤잘알+완벽한 낄끼빠빠+빵빵 터지는 드립[* 모닝콜, 텃세, [[통이유]], 롤 정치 드립 등] 등을 보여주며, 모두까기 인형인 트위치 채팅창에서도 다음팟에서도 우리 형님이라 찬양을 받았다. 롤 인벤 등에서는 거의 완벽한 객원해설이었던 [[이다윤|스피릿]]에 이어 두 번째로 좋았던 객원해설이라는 평. [[갱맘]]은 해설 자체의 수준은 아주 높았으나[* 갱맘의 미래예측과 결과가 거의 항상 일치했다. 선수 시 클템의 분석력과 비슷한 수준.] 욕심이 컸었는지 오디오가 너무 물렸고, [[샤이]]는 목소리 톤이 해설에 크게 어울리지는 못했고, [[천주]]는 0개국어 구사자(...)라는 소리를 들은 반면 김희철은 딱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캐치하고 방송 경력 10년에 걸맞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후 인벤과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5285&site=lol&page=2|인터뷰]]를 가졌는데 진정성 있는 인터뷰로 인벤뿐만 아니라 루리웹 같은데서도 저런 일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고 호감을 가지게 된 남성 유저들도 늘어난 듯.
          * 본인이 몸개그, 체면 구기는 거, 지저분 한 거, 입맛에 안 맞는거 등 슬랩스틱 전반을 부정하는 연예인 생활을 해온지라 아는 형님에서도 후반부가 되면 비중이 꽤 줄어드는 편. 타이밍에 따라 멘트를 던지지만 나서서 연기를 하는 편은 아니라는 게 시청자들의 평이다. 또한 메인MC 자리가 별도로 없는 아는 형님에서 은근히 방송 흐름에 따라 적한 멘트로 진행을 시키는 걸 맡는게 영향인지 그 후 생긴 고정 프로그램에서도 전부 메인MC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경력차이가 엄청나지만 근래의 예능스타들 중에 대세가 된 이후 고정 프로그램이 생기고, 거기에 MC까지 맡게되는 경우는 꽤나 드문 편.]
  • 슈가(방탄소년단) . . . . 25회 일치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려 준 영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반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믹스테이프의 경우 사용되는 어휘가 대체로 수위가 높은 편. 정규곡에선 자유롭지 못한 약간의 욕설, 비속어나 은어 등의 사용이 많은 편이며 일부 팬들은 이를 조각 모음하여 영상으로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적한 타이밍에서의 비속어의 사용으로 가사 전달이 훨씬 솔직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치아교정]] 중임에도 불구[* 교정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설측교정]]이기 때문. 간혹 직찍에서 아랫니 안쪽에 자리한 교정기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방탄소년단]] 콘텐츠 중 하나인 본보야지에서 같은 멤버인 [[뷔]]가 자일리톨을 권하자 교정 중이라 안 먹는다고 거하기도 하였다.][* 교정은 피 땀 눈물 활동 당시 끝났다고 한다.]하고 '''상당히 딕션이 좋다'''. 특히나 [[설측교정]]의 경우 이물감 때문에 발음을 할 때 거슬리며, 쉽게 발음이 새어나가 딕션이 뭉개질 수 있음에도 꽤나 정확한 딕션을 구사해낸다. 현재로썬 교정이 끝난 상태. [[http://m.photoviewer.naver.com/blog?listUrl=https%3A%2F%2Fm.blog.naver.com%2FPostView.nhn%3FblogId%3Dkiss006969%26logNo%3D220888204195&imgId=1&host=https%3A%2F%2Fm.blog.naver.com%2Fphotoviewer&historyBack=true&blogId=kiss006969&logNo=220888204195#main/1|2016년 10월]] 게다가 성량도 큰 편인지라 라이브 중 음향이 좋지 않다 싶으면 더욱 소리내어 랩으로 음향을 다 씹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ffCdGkGsk&feature=youtu.be|전설의 서가대 쩔어]]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9&v=UUZSgv0sqC4|171101 불타오르네]] 음향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인 [[SBS 가요대전]]에서 [[https://twitter.com/nojam__nolife__/status/945253643166433282?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씩~ 웃고, 한마디 쉬고, 라이브 인증.]]
         '''13세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 편곡을 익혔고, 그 덕분에 녹음 장비와 음향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39&contents_id=122930|링크]]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교가를 편곡하여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루하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반면에, 학창 시 음악 과목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음악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게 싫었다고. 그래서 교과서로는 음악 공부는 하지 않고 방과후에 음악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 또한 본인이 독학으로 공부한 것.
         두 번째 미니 앨범인 <[[SKOOL LUV AFFAIR]]> 때부터 본인이 프로듀싱한 곡을 꾸준히 트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본래 진로를 [[프로듀서]], [[작곡가]]로 잡은 적도 있었던 만큼 [[싱어송라이터]]가 많은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작사, 작곡에 많은 공을 들이는 멤버 중 하나이다.[* 3년 전 방시혁 프로듀서의 [[https://youtu.be/8XKDXHdj95s|'상대방의 기썬을 제압해']]라는 홍보 영상으로 알려진 오디션에 참가하여 2등 수상, 그 후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아이돌이 되는 줄 모르고 참가했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서 작곡가 등으로 활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이 말을 들은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말한다.] 연습생 시 '1DAY 1VERSE'라 하여 하루에 한 곡씩을 꼬박꼬박 쓰며 실력을 쌓는 등의 작업도 했었고, 데뷔 후인 현재에도 음악 작업을 즐기고 또 열심히 한다. 1년에 한 200곡은 만드는 것 같다고.
         데뷔 전 언더 활동 시 gloss[* 한국어로 본명인 윤기(...)]라는 예명을 쓴 적이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ADV 크루의 리플로우 곡 중 Who am I의 비트를 찍었다.[* 참고로 이때 슈가의 나이는 19세,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다만 이때는 gloss란 예명을 쓰지 않고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었다고.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음악을 하던 시이 녹록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에서 버는 수입으로는 식비와 교통비를 내기에도 벅찼다고 한다. 스튜디오 바로 앞에는 2천 원짜리 짜장면 집이 있었고, 한참을 걸어가면 천 원짜리 국수 집이 있었는데, 반대로 국수를 먹으면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고 짜장면을 먹으면 두 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했기에 매일 고민했다고.
         가는 다리 탓에 슈가의 체격 또한 왜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탄소년단]] 안에서 가장 마른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어깨는 꽤나 다부진 편.[* 방탄소년단에서 어깨가 넓은 멤버 하면 [[진(방탄소년단)|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 진이 너무나도 넓은 탓에 가려져서 그렇지 슈가도 꽤나 넓은 편이다.] 덕분에 마른 하체임에도 넓은 어깨로 인해 그닥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 [* 허나, 실물을 본 팬에 따르면 너무 말라서 걱정된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 슈가는 연습생 시 멤버 피셜로 가장 덩치가 있는 멤버였다. 때문에 슈가는 자신의 키가 180까지 클 줄 알았다고. 허나 데뷔 전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어깨를 다치면서 운동을 하지 못해 근육이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 등치가 어디 가지는 않는다고 현재 어깨는 물론이며 흉통도 꽤 도톰한 편. 또한 승모근도 거의 없어 시원시원하게 떡 벌어지는 직각 어깨이기에 옷핏도 좋다.
         나아가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시점부터 기어다닌다고 한다. 스케줄이 없는 날은 아예 침대 위의 산송장. 본인은 '오래 많이 자는 게 아니라 새벽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짧게 많이 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멤버들은 슈가가 워커홀릭인 건 다 컨셉이라고 디스 하기도 한다. 애초에 외출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작업실, 숙소, 방송국 빼고는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소한 게으르진 않으며,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DVD에서 본인피셜 하루에 한 곡씩은 쓰고 있다고. 물론 쉬는 날도 종종 있다고 한다.] 실제 BTS COMBACK SHOW에서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슈가의 모습이 공개되었으며, 작업실 내부에 샴푸를 비롯한 생필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정말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슙기력한 면모와는 달리 의외로 외향적인 모습도 보이는데, 멤버들 중 대적 친화력을 자랑하는 [[뷔|김스치면인연]] 다음으로 연예인 친분이 많은 축에 속한다. [[슈퍼주니어]]의 [[희철]][[https://www.youtube.com/watch?v=VDLOJUoZuHQ|#]], [[슈퍼주니어 M]]의 [[조미(슈퍼주니어-M)|조미]][[https://www.youtube.com/watch?v=9pp52q-TSAQ|#]], [[GOT7]]의 [[JB]][[http://www.vlive.tv/video/38334?channelCode=ECDF|27분]], [[SURAN|수란]][[https://www.youtube.com/watch?v=4kXopVVKo1A|#]], 같은 [[대구광역시]] 출신 [[김신영]][[https://youtu.be/jr43w98yPOE|#]] [[에픽하이]]의 [[타블로]] [[https://www.youtube.com/watch?v=fLjsOTe8Y6E|#]], [[워너원]]의 [[강다니엘]][[https://youtu.be/K0piUcRvIq8|#]], 등.
         1에서는 대구에서 서울로의 상경을 다짐하면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오디션을 보게 된 과정, 2에서는 그의 연습생 시 고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신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채 상경했던 그가 서울에서 첫 저녁 식사를 사 먹는 순간 현실을 마주하며 반전되는 가사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 '''세상과의 단 집을 떠난 후엔'''
         해당 가사는 믹스테이프 공개 이전 [[화양연화 pt.2]]에 수록된 INTRO : Never Mind와 대비된다.[* I don’t give a shit I don’t give a fuck 하루 수백 번 입버릇처럼 말했던 ‘내게서 신경 꺼’] Never Mind에서 '''I don’t give a shit I don’t give a fuck'''이란 구은 평소 슈가의 좌우명인 동시에 '누가 뭐래든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해당 곡에서는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함이었음을 밝혔다.
         믹스테이프 발매 이전에 라디오에서 슈가는 본래 자신이 연습생 시 덩치가 가장 컸고 농구도 잘 하였기에 본인이 180cm까지 클 줄 알았으나 어깨를 다치면서 병원에서 운동을 삼가라 하였고, 그로 인해 근육이 빠지면서 키가 크지 않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에 슈가는 어깨가 다친 이유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고 당시 분위기 또한 유머러스하게 진행되었을 뿐더러 어깨에 대해 심각하게 언급하지 않았기에 팬들은 당연스럽게 어깨가 다친 것이 어느 수준으로 다쳤는지,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해 알 겨를이 없었다. 그저 '어깨를 다친 적이 있었다'라고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 '''연습생 생활 당시 생활고 때문에 배달 알바를 하다가 사고로 어깨가 박살났다'''는 것은 이 곡으로 인해 처음 알게 된 것.
         해당 곡의 정에 들어서며 깔리는 비트는 데뷔 전 슈가가 음향장비 리뷰를 하면서 만든 비트이다.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의 OST를 샘플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_8FqyPHDUw|Maschine mk2 review]]
          * 은연중에 [[동남 방언|경상도 사투리]]를 쓰기도 하는데, 데뷔 초에 비해 갈수록 [[사투리]]가 줄어들고 있다. 본인은 이제 사투리가 어색하다고 자주 언급. 연습생 시에는 표준어를 익히기 위해 뉴스 대본을 따라 읽었다고 한다. 요즘도 멤버들과 대화할 때 흥분하면 사투리가 조금씩 나오긴 한다.
          * 고등학교 시 농구부의 부원이었다. 농구로 대회에서 우승도 여러 번 하고, 연습생 때도 매주 일요일에는 농구를 했다고 한다. 포지션은 대개 [[포인트 가드]]나 [[슈팅 가드]]. 발이 빠르고 공격보단 수비를 잘한다고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농구로 활약상을 펼치고, 농구공을 튕기는 일에 능한 모습으로 보아 아직도 농구 실력과 농구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 듯하다. 슈가의 학창 시 동창들은 슈가가 커서 농구선수가 될 줄 알았다고 한다. 무기력한 평소 모습과 농구할 때의 갭이 심해 팬들이 농구공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2015년 9월 추석 특집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서 농구선수로 나갔다. 그리고 4골[* 2점 슛 3개, 자유투 1개.]을 기록했다. 최근 [[아는 형님]]에 나가서 농구공을 한 손가락으로 돌리기도 했다.
          * 또한 어린 시 꽤나 열성적인 [[프로레슬링]] 팬이었다. 팬카페 운영까지 생각했을 정도. 좋아하는 레슬러로는 [[존 시나]], [[더 락]],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을 꼽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HiwNO0sc4|영상]]
          * 연습생 시 [[배달 알바]]를 하다가 어깨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는 듯하다. 비슷한 시기 [[우울증]], [[강박증]], [[대인기피증]]을 앓는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했으며, 당시의 고뇌와 경험을 가사에 풀어 쓰기도 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곡은 [[DARK&WILD|정규 1집]] 수록곡 "Rain"[* '비 내리는 밤 창문을 노크 하는 / 비는 때리지 마음을 / 시큰한 어깨를 잡고 확인한 문자'], 믹스테이프 "Agust D"의 "마지막 (The Last)"[* '우울증 강박 때때로 다시금 도져', '대인기피증이 생겨 버린 게 18살 쯤', '자기 혐오와 다시 놀러 와 버린 우울증 덕분에', '배달 알바 중 났던 사고 덕분에 / 박살이 났던 어깨'], 그리고 정규 2집 "[[WINGS]]"의 "First Love".[* '박살난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지 / 나 더 이상 못하겠다고'. 참고로 여기서 슈가가 언급하는 '첫사랑'이란 어릴 적 집에 있던 갈색 피아노, 즉 '음악'이다.]
          * 2016년 5월 8일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화양연화 on stage : Epilogue> 마지막 콘서트에서 부모님이 앉아 계신 좌석을 향해 큰을 하다 눈물을 터뜨려 한동안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는 팬들의 제보가 잇달아 올라왔다. 옆에서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계속 있어 주는 것도 눈에 띈다. [[https://m.youtube.com/watch?v=RD_-dYk6BWA|직캠 영상]]
          * 어린 시 좋아했던 만화가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라고 한다.
  • 권혁 . . . . 23회 일치
         |||| '''한화의 수호신, 야구인생 2막을 연 한화 이글스 시''' ||
         ||<:> '''등장곡''' || [[DVBBS]] & Dropgun - Pyramids (ft. Sanjin)[* 2015시즌엔 [[마리아노 리베라]]의 현역시 등장곡이었던 [[메탈리카]] - Enter Sandman을 사용했다.][* 삼성 시엔 [[터보(그룹)|터보]]의 검은 고양이를 썼다.] ||
         삼성의 쌍권총, 그리고 2015 시즌 한화의 불꽃남자. 몇 년간 삼성의 철벽 불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실력이 하락해 이제 잊혀가는 선수가 되는 듯 했으나, 한화로의 이적 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주목받던 시은 있었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 했던 선수에서 2015 시즌의 [[투혼|긍정적]]으로도 [[살려조|부정적]]으로도 주인공이 된 선수.
         === 아마추어 시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 ||
         수창초등학교 시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야구부]]의 [[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37776|#]]
         === [[삼성 라이온즈]] 시 ===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렸던 신인 시
         토미 존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2007년, '''불펜 100탈삼진'''을 기록했던 리즈 시.
         결국 2011년에는 평균자책점 1~2점대를 유지하는 좌완 릴리버라는 점만으로도 이래저래 팀에 유용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선동열|유일무이]]한 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평균자책점과 WHIP을 보면 알지만, 본인이 볼질하고 내려갔다가 [[안지만]], [[정현욱]] 같은 흠좀무한 불펜이 전부 막아준 경우가 꽤 많았다. 그렇지만 삼성이 권혁 없던 시즌 초중반에 심하게 헤매던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삼성에서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릴리버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실했다.
         === [[한화 이글스]] 시 ===
         7월 12일 1.2이닝 2실점으로 역전을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팬들은 작년 혹사를 기억하며 까지도 못하고 감싸지도 못하며 안하는 모습.
         최근 2년의 기록이 잘 실감이 안 나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국민노예]]라는 별명을 가지고있는 [[정현욱]]의 시즌 최다 이닝 기록은 2008년 53경기 7선발 127이닝이며 등판 간격은 불규칙했으나 연투는 2연투만 5번정도로 나름 등판 간격을 조했었다. 다음 시즌 2009년엔 62경기 79이닝으로 2년간 115경기 206이닝을 던졌다. 게다가 정현욱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현욱은 연투 시 오히려 컨디션이 살아나는 유형이었다. 일반 투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유형인 셈. 내성이 잔뜩쌓여있었다는 것이다. 즉, 권혁은 선발없이 국민노예를 뛰어넘는 등판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권혁은 앞으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염려된다. 기회를 더 얻고 싶다는 간한 마음으로 이적한 팀에서 제정신인지 의심이 드는 작자를 감독으로 두게 되었던 탓에 이런 처지에 처하게 됐었다니... 본인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지만 빠른 구속과 묵직한 구위로 찍어눌러도 타자들이 맥을 못 췄기에 초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사실 뛰어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성적을 냈다. 허나 2010년 이후부터는[*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의 보크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혹사 누적으로 이전보다 팔스윙이 느려지고 그로 인해 공의 무브먼트나 구위도 저하되며 삼성 철벽 불펜진의 일원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그나마 삼성 불펜진이 굳이 권혁이 빠지더라도 워낙 막강이라 그냥 묻어가는 모양새였다.[* 특히 2011년에 그런 모습이 확연하였다. 겉보기 성적과 실제 투구내용과의 상당한 갭이 있다.] 그리고 2013년, 불펜진에 균열이 생기면서 본격 까임의 대상으로 등극. 하지만 권혁 이외에는 쓸만한 삼성 왼손 불펜이 1, 2군 통틀어 전무한지라 삼성 불펜진의 아픈 손가락이자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차우찬]]은 원 포인트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백정현]], [[조현근]]은 1군으로 올리기도 영 애매하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삼성 시 권혁은 몸이 늦게 풀리는 편이라 마운드위에서 타자를 상대로 던지면서 감을 잡는 스타일이였다. [[선동렬]] 아래에선 구위가 엄청날때는 감을 잡는 동안 구위로 버텼지만, 혹사와 보크 사건 이후인 [[류중일]] 아래에선 구위가 떨어지며 감을 잡는 동안 팩질을 하거나 두들겨 맞았다.][* 물론 몸이 완전히 풀리면 위력적이지만 그때까지 장작을 쌓을 확률이 꽤 높아서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셋업에는 [[안지만]]이 있는지라 삼성벤치에서는 굳이 권혁을 올리는 위험한 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안지만도 불안하면 8회 2사에 [[오승환]]을 올리는 치트키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과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선동열|삼성의 본래 팀 컬러와 영 맞지 않았던 모 감독]]의 재임기와 사퇴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 팬덤에서는 [[배영수]], [[권오준]] 등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후반 삼성 투수진 혹사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하고 있다.
          * 중학교 재학 시까지만 하더라도 키가 작았으며,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이유로 야구를 잠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키가 부쩍 자라 포철공고로 전학 가며 계속 야구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프로필상 키는 187cm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입단 당시의 키. 프로 입단 후에도 키가 커 지금은 190cm 이상이다. 2014년 192cm로 공식 프로필이 수정되었다.
          * 여담으로 대구 팔공산 정상에 올라가면 '[[삼성 라이온즈]] 권혁 파이팅!'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혁이 경기에서 보이지 않던 시인 것을 보아 2012년 5월 초 쯤으로 추정된다.
          * 상당히 신실한 [[불교]]신자로 추정된다. 모자, 글러브에 불교를 상징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고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선수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라고 굉장히 심오하게 대답하는 등... 나름 열성신자인듯. 어떤 인터뷰에서는 부인이 올림픽 때 지리산 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올린 그 마음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하기도 했다.
  • 최준석 . . . . 23회 일치
         || '''포지션''' || [[포수]][* 입단 시점.] → [[1루수]], [[지명타자]], ~~[[우익수]]~~[* 두산 시 우익수를 조금 봤다고 함.] ||
         || '''응원가''' || '''두산 베어스 시''' [br] 정광태 - 힘내라 힘[* 날려라 준! 날려라 석! 날려라 최준석~ 홈런! ×4][*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이승엽]]의 [[치바 롯데 마린즈]] 시 응원가기도 했고, [[중신 브라더스]]의 팀 응원가로도 쓰인다.] [br] '''롯데 자이언츠 시'''[br]콜럼버스 1492 OST - Conquest of Paradise[* 스포츠 CF에 나오던 그 [[마성의 BGM#s-9|웅장한 마성의 BGM]] 맞다. 응원 가사는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br] 자우림 - 하하하송[* (빰빰빰빰빠밤빰) 홈! 런! 최준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밤빰) 홈! 런! 최준석!. 2015년 7월 2일 사직SK전에서 쓰이는게 확인되었다. 원래 홈런타자 돌림빵 응원가였다가 [[이대호|친구]] 응원가로 굳어졌던 노래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도 같은 멜로디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 [br] Pitbull - Celebrate[* 자~이언츠 최준석~ 자~이언츠 최준석~ 빰빠바바바빰빰 *2][* 이 응원곡의 응원동작에는 최준석의 홈런 세레머니 동작이 들어간다.] [br]'''NC 다이노스 시''' [br]구단 자체제작[* 오~ NC의 최준석 NC의 최준석 다이노스(최준석!)(x3)][* 시즌 전에 공개한 응원가는 [[장성호]]와 [[Johnny, I hardly knew ya|원곡도 같고]] 가사마저 [[표|복붙 수준으로 같았으나]] 이에 대해서 항의가 들어갔는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https://youtu.be/1ouaZDexyA8|비공개 처리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급하게 만든 응원가가 더 호평을 받고 있다(...).] ||
         === [[롯데 자이언츠]] 1기 시 ===
         이 때는 신인이라 2002년부터 2004년까지 12경기에 포수로 출장했다. 그리고 친 [[이대호]]와 그의 형 이차호와 같이 동래 모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에 [[이대호]]와 같이 누워서 잤다(…).~~ 침대가 뭔 죄래? 침대: 아니 이 녀석들이?~~
         === [[두산 베어스]] 시 ===
         === [[롯데 자이언츠]] 2기 시 ===
         한편 [[NC 다이노스]]에서 은퇴한 [[이호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두산 시 [[김경문]] 감독과의 인연도 있고 해서 영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NC 측에서 영입할 계획이 '''없다'''며 일축했다. [[모창민]]이 2017년 입단 이래 최고성적을 내며 중심타선에 안착하여 굳이 최준석을 데려올 이유가 없고, FA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공언한 터였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71207053039271|기사]] [[김태군]]의 입대로 포수 문제가 당장 시급한 상황임에도 FA [[강민호]] 영입이나 트레이드를 시도하지 않았다.
         === [[NC 다이노스]] 시 ===
         '''친 [[이대호]]의 하위호환'''
         친인 이대호와 플레이 스타일까지 정말 똑같다. 물론 클래스는 차이가 나지만. 또한 이대호는 최준석에 비해 유연성과 내구성이 월등해 주전으로 1루 수비를 소화할 수 있는 반면 최준석은 풀타임 1루 수비도 힘들다. 1루 수비가 가능한 것은 의외로 가치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최소한의 주루 플레이조차 안되니 최준석을 영입한 팀은 최준석 하나 쓰려고 대주자, 대수비까지 3명을 기용해야 한다.
          * 별명은 '''돼준석'''.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아예 돼지로 묘사된다. 두산 시 잘 나갈 때는 '''광돈신'''이란 별명도 있었다. 여기에 2014년 포수 마스크를 쓰고 [[김주찬]]의 도루를 저지하며 [[버스터 포지|버스터 돼지]]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여기에 [[야구친구]]는 한술 더 떠서 '''돼루저지'''를 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경기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석고돼죄'''하라는 글도 종종 올라온다. 그 외에 '블링돼'라는 별명도 있다.
          '''장[[돼지|돈]]건'''이란 별명도 있다. 말그대로 살찐 장동건. 얼굴로 인정받는다는 소리다. 몸무게를 30kg~~그래도 초등학생 한 명분이다~~만 줄여도 지금 먹는 욕의 80%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최준석은 실력으론 까일게 없고[* 병살타도 비대한 몸에서 기인한다.] [[나지완|나]][[비만|비]]처럼 [[인성|비]][[병역면제|호]][[팬서비스|감]]도 아니고 [[최형우|부적한 언행]]도 없었으며 [[김동주(야구선수)|불륜]], [[박기혁|음주운전]], [[최진행|약물스캔들]], [[김상수(타자)|SNS 추문]] 하나 없는 클린한 선수다. 단지 '돼지같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바로 위에 팬서비스 거지같다고 되어있는데? 무슨--
          * 그 별명에 맞게 야심한 밤에 항상 야식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롯데 1기 시에 [[이대호]]와 [[룸메이트]]였고 [[이대호]]가 살찐 이유는 최준석과 같이 야식을 먹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사실 최준석도 포철공고 때는 100M를 11초에 끊는~~실화?~~ 호타준족 포수였다. 그래서인지 두산에 간 이후 이대호에게 장갑을 빌려줄 정도이며, 실제로 롯데 락커룸에 자주 놀러가서 이대호 배트를 많이 받아온다고 한다. 롯데 출신이다보니 롯데 고참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서 라커룸에 가는 것도 거리낌없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두산 시에는 [[이대호]]와는 등번호도 10번으로 똑같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따르면, 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될 때 일부러 이대호와 같은 등번호를 택했다고 한다.
          * [[강민호]]와 포철공고 선후배 사이인데[* 3년 차이라서 같이 뛴 적은 없었지만.], [[강민호]]는 고등학교 시 최준석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100m를 11초에 끊는 호타준족의 [[포수]]였었으니깐.[* 덤으로 이 시에는 굉장한 훈남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은 '''[[http://cfile225.uf.daum.net/image/121511404DB12A142256FF|장돈건]]''']
          * 롯데 팬들은 보급형 이대호라고 부르지만 롯데 1기 시에는 최123으로 불렀는데, 이는 2005년 어느 경기에서 만루찬스에서 투수 땅볼로 1-2-3 [[병살]]을 친 덕분에 붙은 별명이다.
          * 문서 상단의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두산 시엔 MLB의 [[크레이그 비지오]]나 [[매니 라미레즈]]처럼 송진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지저분한 헬멧을 쓰고 경기를 했다. 롯데 이적 후로는 그냥 평범한 헬멧을 쓰고 있으며 최근엔 안면부 보호 헬멧을 착용하는 중.
          * 원래는 대구 출신이며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하나뿐인 남동생과 함께 소년가장이 되면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께선 2005년에 돌아가셨다고. 친인 [[이대호]]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231910|성장 과정이 상당히 유사하다.]]
  • 최홍만 . . . . 23회 일치
         || 링네임 ||<(> "테크노 골리앗"[* 씨름 선수 시에 우승 후 추던 춤에서 유래했으며 씨름 선수 시부터 가지고 있던 닉네임이다.] ||
         [[2002년]], [[부산]]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에 [[LG투자증권 황소]]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씨름에 입문함으로써 데뷔했다.[* [[나무위키]]에서는 [[격투기]]에 비해 씨름에 대한 관심이 훨씬 적으니, 씨름선수 시의 상세한 전적은 [[추가 바람]].]
         하여간 그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 시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오며 엔터테이너성을 쌓았다. 218㎝에 165㎏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인상에 남는 외모였고,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좀 더 먼저 활동한 [[김영현]]이 이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현과 비슷한 체격이면서 구분하기 위해 앞에 '테크노'를 붙인 것이다.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307310|#]]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카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 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카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 시키며 판정에서 한 라운드를 가져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 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며 까이는 게 많이 줄었다.]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주괴수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이며[* 세미 슐트는 실력이 분명 뛰어나지만 어디 가서도 안 꿀릴 무지막지한 피지컬도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데, 최홍만은 세미 슐트의 피지컬을 더욱 능가하는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 중 한 명이므로 슐트가 여지껏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유형의 상대라 파이팅이 좀 꼬인 부분이 있다.] 슐트가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박적인 경기 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가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대 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최홍만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승부가 가장 적한 판정이었을거라며 자신의 판정승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2006년에도 이렇게 상승세를 끌어 나가다가 전년도 8강 진출자 자격으로 월드 그랑프리 16강에 진출해 [[제롬 르 밴너]]와 대결, 연장까지 갔지만 내내 얻어맞으며 끝내 판정패한다. 슐트에게는 석연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본야스키와 벤너에게 패했으나 K-1 최강자들을 상대로 꽤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선전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흥행을 책임지는 선수였기에 K-1은 여전히 최홍만을 중용하였다. 이때까지가 최홍만의 리즈 시. 스펙빨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톱 파이터들을 상대로 판정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기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는 '[[마지막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효도르의 스피드에 밀리면서도 클린치 싸움에서 2번이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상위에서 파운딩을 날리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리버스 암바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하고 말았다. 패배하긴 했으나 확실히 레슬링에 있어서 강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이티 모전 패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이 경기는 K-1의 농간으로 인해 경기 5일 전에 오퍼를 받아서 거했다가 결국 3일 전에 오퍼를 수락하고 이틀 훈련해서 경기에 출전하게게 되었다고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 본인은 주장했지만 대회 18일 전인 2007년 12월 13일에 대전 확정 기사가 뜬 걸로 봐서 별로 신빙성은 없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0085857|#]]]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시합 내용'''이었다.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경기에 대한 평이 좀 갈리는게 우치다가 전성기 땐 제법 잘나가는 킥복서였다지만, 이제는 너무 나이가 많아 적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우치다전에서 보여준 안면가드가 K-1 시보다 나아져, 킥복싱으로 재 전향한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평도 있다.
         긴 리치 때문에 상대방이 거리를 잡기가 어렵고 안으로 파고들면 곧바로 니킥이 날아온다. 때리는 최홍만은 미들에 꽂는 느낌으로 쓰지만 맞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이킥 타점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빰 클린치가 허용되던 시에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전법이었다. 키가 워낙 커서 얼굴을 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마이티 모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맷집도 강화되었기 때문에 안면을 겨냥해서는 잡기 어렵다.
         격투기 선수로서는 엄청난 무기라고 볼 수 있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리치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위에 서술된 스피드의 문제도 있지만 최홍만 본인의 격투 스타일이 그다지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있다. 격투기 데뷔 시부터 최홍만은 [[아웃복서|거리를 유지하며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보다는 [[인파이터|적극적으로 들어가서 큰 스윙을 날리는 스타일]]을 썼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인의 리치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물론 격투기 선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격투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리치가 상대보다 길면 인파이팅보다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상대는 때릴 수 없는데 자신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격투기 선수로선 매우 큰 무기나 다름없다.] 전성기 시에는 맷집이라도 강해서 얼굴 몇 대 맞아도 그냥 씹고 달려드는 게 가능했지만, 안면 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중 및 시청자들이 볼 때 최홍만의 문제는 안면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저돌적인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반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엔젤스파이팅에서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으며 러쉬를 하든 등 전성기시의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줬다.]
         유일한 살 길은 빰 클린치 니킥인데 마사토를 위해[* 경량급 낙무아이들의 기량이 넘사벽으로 강했기 때문에 자국 파이터들에게 유리한 룰로 고쳐버렸다. 중량급의 세미 슐트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물론 이 룰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쁘아까오와 슐트는 복싱 스킬을 향상시킴으로써 더 강해졌다(...). 그럼 주먹질 금지?~~] 이게 금지되어버린다. K-1은 단지 펀치, 킥의 숙련도와 스피드 대결 같은 양상으로 변했는데, 그 덕에 예전 같은 KO율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힘들게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입식에서의 부진은 룰의 변경 탓도 크다. 다만 비슷한 유형의 선수인 세미 슐트가 룰 변경 이후에도 충실한 기본기로 대 강자로 군림하는 것을 보면 룰 탓만 할 일은 아닌 듯.
         [[2012년]] 11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대선]]의 열기가 정에 달할때 쯤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한 바 있다. 새누리당 당사에서 입당식을 가진 뒤 조직 특보를 맡게 되었고, 이때 연설하면서 밝히기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게 된 계기는 박근혜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의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에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K-1의 로컬라이징 전략이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떡밥과 빅매치를 적히 섞은 후 언론으로 잘 포장하여 어필한 케이스다. 데뷔 초기 한국에서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어서 K-1이 방송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등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가 메이저 컨텐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을 계기로 국내 프로 격투단체들이 창설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고교 시 씨름 유망주이자 전례없던 거인으로 주목받고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소년 최홍만이 소변기가 너무 작아서(...) 변기칸에서 볼일 보는 모습이 나갔다. 그조차 키가 너무 커서 변기칸 위로 머리가 삐죽 솟을 정도였으니 본인도 꽤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 김윤아(1974) . . . . 22회 일치
         순창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김문철[* 김홍철과 친구들의 초창기 멤버였으며 김홍철 3집 수록곡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작곡하고 듀엣을 했던 음악가이다.]의 친구였던 김홍철에게 직접 [[요들송]]을 배웠으며 이때부터 자기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gLADlQoOd8k|링크]] 5학년 때 전학 가는 친구를 위해 처음으로 작곡을 하였고, 초등학교 시 잠깐 배운 요들송과 [[피아노]] 이외에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라디오를 계속 듣지 못하다가, [[순창중학교]] 1학년 때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튼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Honesty'를 듣고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며, 비슷한 시기에 '[[퀸(밴드)|퀸]]'을 듣고 밴드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AFKN]], [[아메리칸 탑 포티]] 등의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순창고등학교]] 시에는 연극부에서 활동하였는데 직접 작곡하여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표정 연기, 무대 연출 등 이 시 연기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 영어 선생님의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로 A Lover's Concerto를 부른 것이 첫 공식 무대라고.
         2001년 9월 영화 <[[봄날은 간다(영화)|봄날은 간다]]> OST인 동명의 곡 '봄날은 간다'로 솔로 데뷔, 11월 1집 <Shadow of Your Smile>을 발매한 이후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당시 3집의 타이틀곡 '매직 카펫 라이드'가 대박을 치며 자우림의 전성기를 달리던 시인데, 이를 두고 '김윤아도 성공하더니 자우림 버리고 해체하려나 보다'는 말들이 많았다. 물론 억측이었고, 이후 자우림과 솔로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두성]]에 [[비음]]을 약간 섞어 사용한다. [[중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가는 소위 '꺾기' 창법 역시 자주 사용한다.[* 어렸을 때 [[요들송]]을 배웠던 적이 있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 꺾기를 매우 쉽게 사용한다고 한다.] 벨칸토 식 성악창법과 락 창법도 사용한다. [[비성]]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지만 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진성으로 부르는 곡도 많다. '''곡마다, 아니 곡 안에서도 창법을 계속 바꿀 수 있는[* 곡 중간에 창법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프로급 보컬들은 최소한 성대접촉은 조해 창법을 바꿔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해야 노래의 강약조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들은 김윤아와 달리 일반인들이 직감적으로 느낄 정도로 크게 변화시키지를 않는다. 창법변화를 크게주다가 잘못하면 창법을 변화하는 중간중간에 이질감때문에 곡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때문. 이렇기때문에 김윤아는 서로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창법을 조화시키며 노래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인정 받는다. 또한 김윤아는 그 창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색깔을 드러내는, 즉 온전한 자기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창법변화를 주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있고, 그러다보니 표현이 작위적이라고 말하거나 자의식과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쨋건 저런 김윤아식 보컬스타일은 유니크하며 인정받을만 한 것임이 틀림없다.] 드문 보컬리스트.''' 기본적으로는 락 보컬리스트이지만 리듬감을 강조하는 R&B나 [[블루스]] 기반의 노래도 꽤 많다. 예컨대 '나비' 같은 곡들.
         '''특히 안정적인 중저음역대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을 지녔다.''' 데뷔 초기인 1~2집 때는 3옥타브 도(C5) 이하의 곡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이 시기 자우림 노래들은 음역대가 조금 높은 남자들도 키 전환 없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다.] 3옥타브 도(C5)가 있어도 한두 번 찍고 내려오는 수준. 워낙 이 시에는 목에 힘을 빡 주고 [[벨팅]]으로 질러대는 스타일의 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애', '일탈' 등.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노래는 목을 매우 상하게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이렇게 질러대는 창법을 고수하다가 목이 완전히 가버리는 가수들이 꽤 많다. [[벨팅]]항목 참조.] 이후 3집 때부터는 전면적으로 목을 상하게 하지 않는 창법, 정확히는 [[두성]] 중심의 창법으로 전환했다. 90년대에 블루 데빌스 등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던 미운오리(자우림의 이전 이름)의 팬들은 1집때보다 훨씬 더 목을 긁어대는 김윤아를 기억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지만, 그 창법을 계속 고수했으면 지금까지 노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진성의 음역도 점차 넓어졌는데 4~5집에 이르러서는 3옥타브 레(D5)를 원활하게 내고 있다. 드디어 6집의 'Oh Mama!'에서 처음으로 __3옥타브 파(F5)__를 냈다! 여담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중 '죽기 전에~'라는 가사 끝부분에서 지르는 부분이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이다. 참고로, 가성의 음역은 3옥타브 라(A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반 애드립]~3옥타브 라#(BB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후반 애드립]은 원활하게 내며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얘기할 수 없어요' 중반 애드립에서는 __4옥타브 레(D6)__까지 냈고 자우림 8집 타이틀곡 'IDOL' 마지막 지르는 고음에서도 4옥타브 레(D6)를 냈다고 한다! 단, 원래 음역대가 넓은 편이 아니고 성량이 엄청난 수준이거나 하진 않은[* 물론 [[일반인]]에 비하면 엄청난 성량이지만. 애초에 성량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부족하면 [[록밴드]]에서 악기 소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라이브에서 의외로 삑사리가 잦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다 눌러버리지만... 성량의 경우 최근 나온 [[듀엣 가요제]]나 몇년 전 [[나는 가수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상당한 파워를 자랑한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성량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콘서트를 가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자면 김윤아가 콘서트에서 부른 4집 '타인의 고통' 수록곡 '다 지나간다'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레(D5)를 거뜬히 소화하였고, 듀엣가요제 5연승 명졸 무대를 장식한 빅뱅의 'LAST DANCE' 2 후반부 애드립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를 깔끔하게 소화하였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전보다 더 높은 음(3옥타브 미(E5)~3옥타브 파(F5))을 진성으로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 확실히 파워라든가 성량이 업그레이드되었다.
         홍대 출신의 실력파 여가수라는 이미지가 인디계에 끼친 영향력은 가히 대적으로 인디 계열 여가수 or 실력파 여가수 메이킹의 상당수는 김윤아의 창법과 음색을 따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콧소리만 잔뜩 넣어서 불러도 '김윤아 창법' 이라고 해버리는 탓에... 사실 [[보컬리스트]] 김윤아의 강점은 '''수많은 창법을 바꾸어가며 [[노래]]를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안정적인 호흡으로 부르는 것'''이지 '콧소리가 들어간 비음' 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엄한 아버지께 답답할 정도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명에 굴전을 부치다가 실수로 태워먹어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매를 굵기별로 목공소에 가서 맞추고, 대학 시에도 통금이 8시였다고.] 지금도 '''예의범을 매우 중요시하며,'''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어린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한다. 또 파격적인 가사들과는 달리, 규칙적인 바른생활을 한다고 한다. 2011년 라디오에서 '일탈'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일탈을 싫어하고, 내가 한 일탈은 기껏해야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삭발]]한 정도"라고….~~응??~~[* 출처는 [[2011년]] [[9월 16일]] [[붐(연예인)|붐]]의 영스트리트.]
         앞에서 언급한 엄한 가정교육 때문인지 어린시에 대해 그닥 좋은 기억은 없는 듯 하다. 스스로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항상 집안에 죽음이있었기 때문에 우울한 어린 시을 보냈다고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원래는 아동 심리 치료사가 되고 싶었으며 그 때문에 [[심리학과]]에 진학했다고.
         2011년에는 비슷한 (약 10년의 세대차이는 있지만) '홍대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오지은(가수)|오지은]]과 한 음악프로그램에서 듀엣곡을 부른 적이 있다. 김윤아의 'Tango Of 2'[[http://www.youtube.com/watch?v=GRLEsw3amJI|링크]][* 김윤아 1집 수록. 본래는 [[유앤미블루]]의 방준석과의 듀엣곡이다. 1은 [[한국어]], 2은 [[스페인어]]로 된 곡인데, 오지은의 전공을 살려 고른 노래인 듯.][* 노래를 부르고 김윤아가 "역시 전공자는 뭐가 다르군요"라는 멘트를 치자 오지은이 "전국에 계실 진짜 전공자 분들께 미안하다"라고 하기도.]와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따로따로 진행된 김윤아와 오지은의 무대는 각각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무대였다. 오지은은 아주 좋아하는 무대라며 트위터에 올렸을 정도. [[https://twitter.com/heaventomorrow/status/756530445878038528|링크]]
         그러나 데뷔 초 때부터 해 오던 비주류 드립, 김윤아 특유의 어둡거나 우울한 감성과는 괴리감이 큰 사생활, 성형 논란, 다소 적치 못한 발언(ex. 가요계는 몇 년 후 망할 것이다 등) 등으로 인해 '''호불호가 굉장히 극명하게 갈린다.''' 이러한 이유로 김윤아는 안 까이는 사이트가 없으며 상당수의 안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항상 악플테러에 시달린다.
         2000년대 중반에는 (특히 2006년 결혼 이후) 김윤아의 진정성, 기존의 인디적 음악과 세계관에서의 변화 (혹은 변)에 관해 많은 비판이 가해진다.
         실제로 2011년 MBC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가수 [[이하늘]]은 김윤아에게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 아닌가요?" 라고 대놓고 [[디스]]를 걸기도 했다. 실제로 김윤아는 한국식 [[힙스터]]같이 적히 쿨하며 주류를 쫓지 않는 독특한 자기 세계관과 문화취향을 갖으려는 삶의 스타일의 이미지로 본인을 설정하고 싶어하는 메인스트림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본인만의 야인성(?)을 갖고 살아온 이하늘에게는 고깝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방송인 [[김나영]]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김윤아가 한 "저도 비주류고, 제 남편도 비주류다." 라는 말에 대해 "남편 잘 만나셨잖아요. 남편은 [[치과의사]]인데 주류 아닌가요?" 라고 2번씩이나 소리를 지르며 억지를 부렸고 김윤아는 굉장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취향 얘기였는데 김나영과 이하늘이 열폭~~
         다만 애초에 당시 방송의 주제가 '자신이 비주류라 생각될 때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김윤아는 주제에 맞는 대답을 한 것 뿐이며, 대중적이라 해서 비주류이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과, 김윤아는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이 비주류의 취향에 근간을 둔다는 어필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라디오헤드의 경우 곡 안에 담긴 감성은 비주류이지만 충분히 대중적이다. 따지고 보면, [[DJ DOC]]의 이하늘도 힙합계에서는 목소리 큰 주류로 인정받는데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부적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 현재 [[일밤]]의 전신이자 그 자체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란 프로그램의 코너에서 출연한적이 있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형식의 코너였는데 상대역은 '''[[송승헌]]'''이었으며 극중 중간마다 당시 활동곡이었던 자우림의 헤이 헤이 헤이의 곡소이 개그로 사용되었다.[* 당시 이 곡은 꽤 인기가 있던 편으로 방송에서도 줄곧 나온 편이었다.]
         ||<rowbgcolor=white> 2집 2적 || 어느 날(Feat. 김윤아) || [[이적(가수)|이적]][* [[김동률]]과 함께 친한 동갑내기 친구이자 김윤아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 2003.05.13 || 6 ||
  • 배영수 . . . . 21회 일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 [[삼성 라이온즈]] 시 ===
         신인 시. ~~은지원?~~
         배영수의 최대 전성기 시.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반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상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4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성기 시보다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을 치룰수록 구속이 시속 140km대를 넘기 시작했고 구위 역시 회복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아직 나이도 만 서른이 안됐으니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08, 09 시즌과 비교해봤을 때 피홈런 개수가 준 것이 부활의 가능성을 보인 요소 중 하나이다.]
         2010 시즌을 끝으로 [[FA 제도|FA]]가 되는데, [[한신 타이거즈]]에서 배영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으나, 한창 좋았던 시의 배영수만 알고 있는 한신 스카우트 말이나 당시 배영수의 상태를 보면 그저 찌라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99%. 그리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터가 배영수의 피칭을 보기도 했다. 과거 배영수의 가능성을 보고 이런 관심을 보이는 듯.
         === [[한화 이글스]] 시 ===
         '''삼성이 버린 투수는 줍지 마라.'''[[권혁|??:어리둥]]
         사실 [[김성근|금지어]]와 연관 깊다. 학창시 은사로 포장되고 인연이 되었다지만, [[살려조]] 못지않게 특유의 혹사 패턴에 걸려들었다. [[조인성(야구선수)|칰금님]] 못지 않게 성실하게 잘 따라주었으나, [[권혁]]과 함께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를 선발과 불펜 구분 없는 하루살이 야구에 갈아 넣었던 것이 컸다. 이미 삼성의 우승에 팔을 바치고 토미존 수술을 받던 그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09&aid=0002067249|토미 존 수술을 창안한 프랭크 조브 박사가 직접]] 수술 결과를 점검했고 조브 박사의 제자가 집도했는데, 이리 엉망인 선수는 처음이라 평했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재활도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선수가 이적 후에 그 따위로 굴렀으니.. 결국 2015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시술을 받았다.
         4월 3일 선발 등판. 결국 팀 자체가 올해도 선발에서 파산 직전의 카드빚 돌려막기 수준이라는 현실을 감독이 깨닫고 있는 건지 전에 한 말을 뒤집고 활약이 좋은 배영수에게 5일 등판을 시키고 있다. -- 두산 시의 감각으로 운영할수록 파탄이 날 뿐이니... -- 그리고 3.1이닝 8자책으로 완전히 망해서 패전...투수가 되었어야 하나 이미 타선은 3회까지 [[김원중]]과 [[장시환]]을 탈탈 털어버려 11점을 뽑아놓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후 타선이 추가로 6득점을 하며 무려 17득점을 지원해준지라 ND. ~~시즌 2호 대첩~~
         4월 14일, 열흘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선발로 등판,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4사사구 4K 1실점을 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1, 2회 때 두 번 연속으로 만루를 만드는 등 볼넷과 안타를 남발하며 59구 가까이 던져 5이닝은 커녕 3이닝을 채울 수 있는가 의문인 상황이었지만, 거짓말처럼 3회부터 달라진 피칭으로 나머지 3⅔이닝을 48구만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올 시즌 [[한화 이글스]] 토종 선발 첫 승을 거두었다. 이날 하필이면 직전 시즌 벤치클리어링의 기억이 있고 통산 124승[* 배영수의 삼성 시 승수와 타이 기록]을 노리던 윤성환이 선발이었던지라 친정팀에 더 쓴 패배를 안겼다.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구속이 나오던 시까지만 해도 [[비매너]] 플레이를 한 선수들에게 [[사구]]를 자주 던질만큼 호전성이 강한 선수다.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은 더 말해야 입만 아픈 수준이고, [[http://osen.mt.co.kr/article/G1109826506|2002년 LG와의 난투극의 주범이며]], [[2015년]]에 던진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2&id=1226816&m=&query=|기아전 연속 사구]] 등 비매너라고 판단되면 보복성이 다분한 투구를 해 왔다. 배영수 본인의 말로는 '''[[보복|상대가 비매너를 하면 사구를 던져라]]''' 라고 선배들한테 배운 대로 해 오고 있다고 한다.
          * [[이대호]]처럼 어린시이 상당히 불우했던 선수 중 하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이혼해서 도망치고 할머니와 누나가 함께 돌봐줬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 4월 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완봉승을 챙기는 날 임종하셨다고 한다. 이 날 경기할 때 모자 챙 안쪽에다 '할머니 생각'이라고 써놓았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과 [[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세정(구구단) . . . . 21회 일치
         ||<#66AADD> '''{{{#white 학력}}}''' ||<#ffffff><(> 안양부흥초등학교 (졸업)[br]호계중학교 (졸업)[br][[인덕원고등학교]][* 인덕원고 재학 시에 연극부 활동을 했다. 제22회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에 '브리튼을 구출하라'란 작품으로 출전해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으며 2013년에 청소년 뮤지컬단 오디션에 합격한 경력 등이 있다. 연기학원은 이앤티트레이닝센터를 다녔다.] (졸업)[br][[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재학)[* [[I.O.I]] 앨범 자필 프로필에 따르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서옵SHOW]] 11회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닐지 자퇴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입시를 볼까 말까 고민하던 때, 당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연습생]] [[나영(구구단)|김나영]]이 세정을 상대로 대학 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학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 끝에 입시를 준비해서 합격했다고 구구단 눕방 중에 밝히기도 했다. [[민서]]와 동기다.] ||
         ||<#66AADD> '''{{{#white 가족}}}''' ||<#ffffff><(> [[아버지]], [[어머니]][* 부모가 어린시 이혼해서 홀어머니 아래에서 컸으며, 사실상 한부모 가족이다. 현재는 회계사 일을 한다고 한다. 가족에 대해서는 최고의 사랑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719305|기사]]], [[오빠]] ||
         SK텔레콤의 CF 연결의 힘 캠페인 [토닥토닥 라이브 X I.O.I] 네이버TV [[https://tv.naver.com/v/851393|영상]]에서 (16/05/29기준)조회수 200만을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imsejeong&no=232460&page=1&search_pos=-235517&s_type=search_all&s_keyword=200%EB%A7%8C|돌파]]했으며 2016년 4월 27일에 올라온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7월 11일에 다시 100위권 안쪽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팬들은 토닥 좀비라고-- 이 영상이 업로드 됐을 당시 부끄러워하며 커튼 뒤로 숨는 장면은 뭇 남성 팬들의 심장을 움켜쥐게하며 늦잠을 대 못 자게 했다고 --[[카더라]]--. 팬들이 뽑은 영상 중 손가락 안에 꼽는다. 또 생일을 맞이하여 팬들의 총공세로 [* 무한 [[스트리밍|스밍]]] 8월 27일 무한도전을 꺾고 TOP2까지 치고 올라왔고 8월 28일 생일 당일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1위를 했다.
         이렇듯 개인 활약상도 많지만 무언가를 주도해서 멤버들을 놀래키거나 계획하는 등의 활약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자면, 5년 뒤 재결성과 임나영 몰카 등이 전부 김세정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몰이 대상이 되어 자주 몰이당하기도 하는데, 하도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과 지나치게 아재스러운(?) 리액션이 주 놀림대상. 여기에 전소미와 김도연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도 잘 안하는 양갈래를 자주 하면서 어린 척 귀여운 척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 자기도 소녀스럽고 어려 보이고 싶은데 너희가 너무 잘 어울려서 버겁다고 자폭 여기에 덤으로 마지막 완전체에서 맡은 파트에서 지나친(?) 호흡 실종 현상으로 거의 숨소리마냥 야하게 들리는 탓에 야세('''야'''한'''세'''정)라는 별명까지 추가되었다. 본인은 대 야한 성격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춤추거나 할 때 뒤에서 뚫어져라 몸매 감상을 하거나, 나쁜 손을 시전(!)하는 등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넘치는지라... 여하튼 이런 식으로 멤버들에게 몰이를 많이 당하는 편이다.[* 특히 세정이 뷰티 프로그램 MC가 되자 동생들은 기념으로 그날 최고의 극딜과 디스를 선보였다. 소미는 잘할 수 있을지를 세정이 묻자 고민도 없이 아니요 라고 답하고, 소혜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에 언니에게 부족한 건 조신함이라는 팩폭을 날려준 도연과 뷰티 프로 MC를 맡았다고 하니 대놓고 놀라며 "뷰티요?" 라고 되묻는 채연까지...]
          그리고 2번째 생방 분량인 본방 3회차부터 본 방송 내에서의 분량도 매우 늘어났다.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세정을 챙겨주는 부분이나 퀴즈 등의 진행과 같이 제작진도 적극적으로 세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이 날 각 호스트별 방송 중에 참여했다가 시간 종료를 매우 적하게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등 활약이 많아졌다. 특히 이 날은 같은 [[I.O.I|아이오아이]] 멤버인 [[소미|전소미]]의 출연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여서 1~2화 대비 더욱 방송에 활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박수홍]]과 함께한 웨딩편에서는 [[어서옵SHOW]]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보였다. 11회부터는 방송 초반부터 3MC와 같이 진행하고 [[김준현]]과의 먹방 검증에서도 먹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 등 [[어서옵SHOW]]에서 아예 MC로서의 지분을 톡톡히 했다. [[어서옵SHOW]]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어서옵SHOW]]가 종영된 후에도 타 예능 출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1월 3일 [[1대100]] 466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여해 초등학교 때 [[방송부]] [[아나운서]]였고 [[성우]]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MC 조충현 아나운서와의 팔씨름에서 '''핸디캡 없이''' 완승을 거둔 뒤 애교와 성우 개인기도 보여줬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069492|#]] --[[SBS|S도장]], [[한국방송공사|K도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문화방송|M도장]]만 깨면 된다.[[한국방송공사|K도장]]의 [[송해]]도 할 수 있나-- 그녀는 5, 6단계에서 찬스를 적히 사용했으며 7단계부터는 이전 방송 모니터링한 결과 본인이 생각한 답이 틀린 경우가 많아 반대로 고르는 전략으로 '''849만원을 받는 우승자가 결정된 9단계에서 5명과 접전을 벌였다.'''
          * [[I.O.I]] 활동 종료를 앞두고 녹화가 있었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2017 설날 아육대]]에 출전하며 2017년 1월 30일 방영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은 세정과 [[하나(구구단)|하나]]가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아육대]] 육상 60m에 출전했는데 [[어서옵SHOW]] 웨딩편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눈여겨본 캐스터 [[정은지]]가 세정이 육상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고 언급했고, [[정은지]]의 예상대로 보란 듯이 예선에서 중간에 삐끗한 [[TWICE|트와이스]]의 [[채영(TWICE)|채영]]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채영(TWICE)|채영]]마저 [[펠레의 저주|윤여춘의 저주]]에 걸려들게 만들었다.[* 이 날 [[와일드카드(스포츠)|와일드카드]]를 받은 출전자는 [[베리굿]]의 [[서율(베리굿)|서율]](10.25)뿐이다. 여자부가 5개 조로 경기했기 때문.] 결승전에서 [[비니(오마이걸)|비니]]보다 단 0.03초 늦은 기록으로 4위에 그쳐 아깝게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을 놓쳤지만, 첫 출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승전 기록은 [[구구단(아이돌)|그룹명]]이 딱 연상되는 '''9.90'''.[* 예선 통과 때 기록은 10.02였다. 결선 때 기록이 더 좋았지만, [[루이(H.U.B)|상대들이]] [[유주(여자친구)|너무]] [[비니(오마이걸)|강해서]]...] 이 날 [[I.O.I]] 시 한솥밥을 먹었던 [[연정(우주소녀)|유연정]]도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세정과 달리 [[연정(우주소녀)|연정]]은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리듬체조]] 동메달 이후 울고 있는 [[성소]]를 위로해 주는 장면만 나갔다.] 뒷이야기지만, 이 날 [[유주(여자친구)|유주]]를 무너뜨리며 강한 인상을 남긴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는 세정이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루이(H.U.B)|루이]]가 혼자 팀을 대표하여 나서다 보니, 세정이 [[루이(H.U.B)|루이]]에게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이랑 이야기하고 같이 있자고 했다고 한다.[[차오루]]의 [[리듬체조]]([[클럽|곤봉]]) 때는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2017년 10월 31일 [[http://pop.heraldcorp.com/view.php?ud=201710311359242137311_1|기사]]를 통해 [[SBS]] [[판타스틱 듀오 시즌2|판타스틱 듀오]] '라스트 티켓특집'에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에일리]]의 듀엣 파트너인 '김제 양궁 낭자'로 지원했다. 연습생 시부터 에일리의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김남주(Apink)|김남주]], [[박재정(가수)|박재정]]과의 3대 1대결에서 '밸런스를 맞춰주는데 힘이 되었다, 떨림과 설렘이 감정으로 표현이 되어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평을 받았고, 이에 최종 파트너로 선택되어 에일리와 [[에일리/음반 목록|If you]] 무대를 선보였다. 방송 내내 유독 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같이 무대에 설 일이 자주 있지도 않을뿐더러,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다'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프로그램 종료 무렵에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2018년 5월 10일, 동년 7월에 방송 예정인 tvN [[갈릴레오 : 깨어난우주]] 출연이 확정되었음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세정이 게스트로 참여해서 좋은 호흡을 보였던 [[정글의 법칙]], [[주먹쥐고 뱃고동]]의 리더 [[김병만]]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며 SBS에서 tvN으로 이적한 이영준 PD가 연출을 맡게 된다. 촬영 장소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MDRS]](Mars Desert Research Station). 이영준 PD는 SBS 시 [[주먹쥐고 소림사]]와 [[주먹쥐고 뱃고동]]을 연출한 바 있다. ~~주먹쥐고 화성행~~ 이후 [[하지원]]이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고 보도되었다. 5월 22일에 2PM [[닉쿤]]이 출연함이 보도되었다.
          * [[갈릴레오 : 깨어난우주]] 출연자들이 입국을 할 때 세정 혼자 공항에 보이지 않아 팬들 사이에 작게나마 논란이 되었으나 V앱[* 이때의 V앱에서 프로듀스 48 출연자들을 위한 응원과 조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거기서 경쟁하지 마세요. 서로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면 같은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멋진 무대 여러 번 만들고 가야지 하고 임하면 최고로 잘 될 수 있을 거에요. 대 경쟁하지 마세요. 경쟁하려는 순간 너무 경쟁자가 많아져요. 그냥, 좋고 멋지고 예쁜 무대를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LA에서 볼 일[* 엠바고가 걸렸는지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을 보고 귀국했음을 설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을 맞이해서 빅스 레오 및 구구단 멤버들과 함께 응원 공연을 몇 차례 가졌다. 독일전 2:0 승리를 끝으로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일정과 그에 동반된 응원 행사가 마감된 이후인 6월 29일에는 tvN 짠내투어 촬영을 위해 승리(빅뱅), 조세호 등과 함께 중국 푸젠성 샤먼으로 출국했다.
          * 9월 26일에 방송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8년|2018 추석 아육대]] [[양궁]]에 [[하나(구구단)|하나]], [[미나(구구단)|미나]]와 함께 출전했다.[* 아파서 출전할 수 없는 [[조혜연(2000)|혜연]] 대신 [[하나(구구단)|하나]]가 나섰고, [[나영(구구단)|나영]]이 양궁에 불참해서 설날에 예비선수로 나섰던 [[미나(구구단)|미나]]가 [[나영(구구단)|나영]] 자리에 들어왔다.] 2번 사수로 나선 설날 대회와 달리, 이번에는 3단답게 마지막 3번 사수로 이동하여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준결승에서 난적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를 꺾고 2연속으로 양궁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 [[웬디(레드벨벳)|웬디]]가 치명적인 0점을 기록한 난적 [[레드벨벳]]을 꺾고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및 [[I.O.I]] 멤버 최초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금메달에 기여했다. 준결승, 결승 점수는 9, 8, 9, 10, 9, 8, 9, 9점(잘 쐈다)을 기록했으며, 카메라 렌즈를 깨며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을 맹추격한 [[아이린(레드벨벳)|대동안]]과의 맞대결에서도 이겼다. 왜냐하면 [[아이린(레드벨벳)|대동안]]이 렌즈 깬 것을 제외하면 모두 8점, 8점, 6점을 기록했기 때문.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이 결승전에서 2점 더 점수를 받았다면, [[EXID]]가 갖고 있는 역대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여자 양궁 최고 총점을 경신할 수 있었다.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이 결승전에서 기록한 총점 89점은 [[EXID]]의 90점 다음으로 여자부에서 높은 기록이다. 한편 400m 계주 예선에도 [[앵커]]로 출전했으나, 예선에서 3위로 밀려 탈락하고 통[[편집]]당했다. 스타터 [[나영(구구단)|나영]]이 예상(꼴찌할 거라 봤다)을 깨고 1위로 들어왔으나 2번주자 [[미나(구구단)|미나]]가 꼴등으로 쳐지고 3번 주자 [[하나(구구단)|하나]]가 3위로 올라서나 했지만 넘어지면서 다시 최하위. 그러나 세정이 적토마답게 무섭게 추격, 한 명을 여유있게 따돌렸으나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져 3위로 들어왔다. [[미나(구구단)|미나]] 대신 [[미미(구구단)|미미]]가 뛰었거나 [[하나(구구단)|하나]]가 넘어지지 않았으면 예선을 통과했을 수도.
          * 10월 13일 빅픽처패밀리 4회에서는 깜짝 생일파티의 주인공이 되었다. 차인표와 류수영이 세정을 검색(갓세정이니까 갓씨야? 곽씨인가,,,)하다가 녹화당일이 김세정의 생일임을 알아내고 생일상을 준비하는 에피소드가 메인테마였다. 훈훈한 생일카드 읽기와 20년전 나에게 말해보기 등의 촉촉한 얘기들이 오갔다. 김세정은 3살 세정이에게 "울어라. 그때 울지 않으면 23살 때 3살처럼 울게 된다"고 말했다. 관련 예로 입양아 봉사 시 경험을 들어 2년 전 SNS와 대형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입양 예정아 태린에게 쓴 편지[* 태린아 ~ 너의 눈은 강을 닮은 것처럼 예쁘고 코는 오똑하니 자리잡아서는 조그마한 입술로 웃어줄 때마다 누나들의 마음이 사그러든단다.너의 울음소리가 시원하게 세상에 퍼질 수 있도록누나가 늘 응원할게! 눈만큼 예쁜 꿈을 꾸는 태린이가 되면 좋겠다ㅎㅎ 웃는 모습만큼 우는 모습도 예쁜 태린아. 세상앞에 움츠려 들지마. 넌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니까. 사랑해 태린아 이 세상 모두가 널]가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1월 11일 유튜버 [[윰댕]]의 실시간 방송에 하나, 미미와 같이 출연했다. [[유튜브]]와 구구단의 콜래보레이션의 일환이라고. 이 방송에서 김세정은 자기 남편 [[대도서관(방송인)|대도서관]]을 팔씨름으로 이긴다는 윰댕의 도전을 받아 왼팔씨름으로는 근소하게 뒤지는 상황(해녀왈 "손목이 꺽였는데 지지를 않아")이었으나 이어 계속된 오른팔씨름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윰댕"괴물이야 팔에 철심을 박았나?")해서 걸그룹 팔씨름 제왕으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어 반반댄스에서는 개다리춤으로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담으로 구구단이 퇴근하고 이루어진 방송에서 윰댕의 스탭에게 "졌대요~ 졌대요~" 팔씨름 패배의 굴욕을 당했고 윰댕 본인도 이렇게 져본 적도 없는데 팔에 심각한 근육통까지 있어 심신이 굴욕적(퇴근하면서 세정이 "괜찮으세요? 팔 안아프세요? 와~ 힘 정말 세세요"했다고 한다...)이라며 나름 유쾌하게 방송종료했다. (참고로 윰댕은 학창 시 유도를 했다.)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968659|안양초등학교 재학 시 장래 희망을 가수라고 쓴 문집]]의 그림 속 무대 모습이 [[Fingertips]] 무대와 매우 흡사하여 화제가 되었다.--꿈을 이룬 갓세정 김세정이 갓세정인 이유는 [[http://gall.dcinside.com/kimsejeong/246583|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 [[카더라]]-- 그리고 [[유튜브]]에 2016년 2월에 업로드된 [[https://www.youtube.com/watch?v=BYet-wkwh-g|고등학생때 학우들과 알바천국 광고 패러디 영상]]을 보면 중간에 왕뚜껑을 닦는 모습, 흡사 런닝맨과 비슷한 환경(방에 들어가거나 나가면서 뛰어다니는 장면), 교복을 입으며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왕뚜껑 광고모델(I.O.I로서 참여), 런닝맨 게스트 출연, 알바천국 광고모델, 학교 2017 주연을 이루었다고 언급된 댓글을 볼 수 있다.
          * [[나카모리 아키나]]의 1980년대 시과 외모가 닮았다는 말이 있다.[[http://m.cafe.daum.net/WorldcupLove/Knj/2527755?svc=kakaotalkTab|특히 3번째 사진]] 공교롭게도 나카모리 아키나는 당시 자국 내 최고의 아이돌로 꼽혔다는 점에서 묘한 기시감을 들게 만든다. 외모뿐만 아니라 굉장히 허스키한 목소리와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라는 점에서도 꽤나 통하는 측면이 있다.
          * 평소 시 쓰는 게 취미라고 한다. 말을 할 때 어휘력이 남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모양으로, 본인도 자신이 쓰는 어휘가 '''노숙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262893#|고교 시에 쓴 "연꽃"이라는 시가 소개되기도 했다.]]
          * [[꽃놀이패(예능)|꽃놀이패]]에서 아직 휴대폰이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메일로 연락한다고.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소속사]]에서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이 1위를 하면 지급하겠다고 한다.[* [[스탠바이 I.O.I]] 시에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행복을 만끽하는 세정이의 모습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1집 활동이 끝나고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소속사]]로 복귀했을 때 빼앗긴 걸로 보인다. 그런데 구구단이 활동할 때마다 늘상 정면에 트와이스가 있다는 게....] 그리고 고2 때 첫 키스를 했다고 밝혔다.
          * [[아재]] 세정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평소 멤버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자주 칠 정도로[* [[전소미]]가 해피투게더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rwLZ6DNIywU|자기 몸을 자꾸 만진다고 폭로(?) 했다.]]] 성격이 활발하고 화통하지만 은근히 여린 성격이기도 하다. [[프로듀스 101/11회|프로듀스 101 최종회]]에서 [[소미]]와 최종 1위 발표를 남겨두고 울상이 된 소미와는 달리 세정은 애써 담담하게 웃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종 2위로 선정되어 소감을 발표하던 중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소속사 가족들]]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참아 온 울음이 터져 버렸다. [[I.O.I]] 초기 활동과 [[구구단(아이돌)|구구단]]에서의 활동 때는 명랑하게 웃고 화통했다면, I.O.I의 후반기 활동 때는 트레이드마크인 웃음도 사라지고 잘 우는 등 어두운 모습을 보여 팬들이 많이 당황하기도 했다. [[타임슬립 - I.O.I|마지막 콘서트]] 때도 멤버들이 소감을 담담히 얘기하던 중, 본인의 차례에 말을 거의 한 마디도 못하고 울기만 했고, 이걸 본 멤버들 역시 세정을 따라서 울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멤버들이 담담히 소감을 말하려 했으나, 세정이 우는 장면에 같이 울게 됐다고. 가정환경의 영향인지 성격상 슬프거나, 힘든 일에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obin6751&logNo=220874937279&categoryNo=57|#]] I.O.I 시 멤버들에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해 후회한 적이 있다고 하거나, 슬플 때에도 실감을 잘 못해서 남들은 다 울 때 혼자만 웃고 있기도 해 속상한 적도 있었다고. 현재는 이점을 많이 인식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려 노력 중이라고 한다.
          * 첫사랑 스토리가 굉장히 가슴 아픈데 초등학생 시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어 쪽지로 '나랑 사귈래'라고 고백을 했고 잘 만나다가 안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헤어졌다고 한다. 중학생이 된 이후 김제에 가게 되어 그 남자애를 보러 갔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다른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 때는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거기 있는 모든 연습생들 다 화이팅입니다. 진짜, 얼마나 예뻐요. 꿈을 위해서 도전하고... 그리고 이 말 너무 해주고 싶어요.''' 거기서 경쟁하지 마세요. 서로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면 이 친구도, 나도 같은 마음이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그런 같은 마음을 모아서 멋진 무대 여러 번 만들고 가야지 하고 임하면 최고로 잘 될 수 있을 거에요. 대 경쟁하지 마세요. 경쟁하려는 순간,너무 경쟁자가 많아져요.''' 그냥, 좋고 멋지고 예쁜 무대를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듀스 48 친구들, 니혼... 니혼... 죄송해요. 일본분들도 화이팅이에요, 모두 모두 화이팅!
  • 조성모(가수) . . . . 21회 일치
         원래는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O003&qid=0DyDI&q=%C8%FC%C7%D5%B4%ED%BD%BA%B1%D7%B7%EC+%BB%E7%C3%B5%BB%E7&srchid=NKS0DyDI|'''사천사''']]라는 혼성(남3, 여1) 힙합댄스그룹의 멤버였으나 공중파 방송 데뷔를 앞두고 해체돼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며[* 그런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181004 해피투게더) 그 당시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트레이너도 존재하지 않아, 댄서였던 다른 멤버에게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춤이 늘지 않자 일 년 반만에 팀에서 방출 되었다고. 팀은 조성모가 나간 이후 공중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부족한 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는 댄스의 피가 끓고 있다고 꾸준히 힘주어 말한다. 이날, 사천사라는 팀명은 본인이 지었다고 덧붙였으며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사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김광수(음반기획자)]] 대표[* 그러나 그 시의 김광수 대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성모를 만나 제작자로 정점을 찍었다. [[티아라]]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자신들 앞에서 '성모가 보고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티아라 자신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김광수 대표는 자신의 호시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에 의해 발탁되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전성기 당시에는 '''아름다운 미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그 목소리에 맞는 애한(또는 처하기까지 한) 발라드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처한 곡의 대표격으로 2집 화살기도를 들어보시라.] 대표 발라드 곡들로는 1집의 To Heaven, 불멸의 사랑, 2집의 For your soul(슬픈 영혼식), 2.5집 가시나무, 3집의 아시나요, 다음 사람에게는, 4집의 잘가요 내사랑 등이 있다.
         이 중 [[2000년]]에 발매된 2.5집 리메이크 앨범(타이틀곡: 가시나무)은 '''160만 장'''이 팔렸으며 타이틀곡 아시나요가 수록된 정규 3집 앨범은 '''출시 당일 하루 만에 40만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고 총 '''20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려 '''2000년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두 앨범들이 2000년 한 해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조성모의 두 앨범 외에 2000년 출시 앨범 중에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앨범은 god 3집과 서태지 6집 뿐으로 2000년 음반 판매 순위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2000년은 가히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로 [[넘사벽]]급의 '''[[리즈 시]]'''이었다. 특히 2000년에는 서태지의 전격 컴백을 비롯하여 인기 아이돌 그룹과 톱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여 경쟁이 치열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정규 4집 '잘 가요 내사랑'부터 한계를 보이더니 기존 소속사인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과의 불화로 인해 소속사를 바꾸어 출시한 5집 '피아노'를 기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을 타고 정규 6집 이후로 지금까지 히트곡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필래가 2010년 8월 마지막 주 [[엠 카운트다운]]에서 [[http://www.nocutnews.co.kr/news/748873|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는 했으나]] 조성모 본인은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211/sp2012111915515496010.htm|바람필래를 실패작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사실 4집 이후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지 음악방송 1위는 꾸준히 하였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백한 후에 여태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반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늘상 선곡이 비슷하다는 비평도 함께 받았었다. 특히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 덕에 독자적인 팬층을 확보했지만 그로 인해 자가복제라고 팬층 외에서 비판을 계속 받아야 했다. 이건 사실 전성기였던 전반기 시의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에서 지시한 것이지 당시 신인에서 막 벗어나며 대스타로 거듭나던 상황인 조성모로서는 돈도 그렇게는 많이 못 받고 앨범 작업에 있어서도 별 힘이 없었다. 조성모도 이 당시가 가수로서 자신의 리즈 시이긴 했지만 소속사의 굴레에 갇혀 활동하는 등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더구나 그 당시에 조성모 부모님이 빚도 많이 있어서, 빚 탕감하는데 치중하며 가수 활동을 하다보니 더더욱 그런 듯하다.]
          - [[http://youtu.be/ynlG1-OQgxg|To Heaven (1집)]] : [[이병헌]], [[김하늘]], [[허준호]], [[조민수]], ~~꼽사리~~[[정웅인]][* 이병헌의 친구 역으로 연기하였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탐문수사하는 형사 허준호한테 ~~X나게~~ 두들겨 맞고 멱살잡히는 장면이나, 이병헌의 도움요청에 이병헌과 김하늘이 악당들에게 기습당하는 곳에 쳐들어가 함께 싸워주는~~(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장면에서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최종원]][* 간주 중 회상씬에서 잠시 등장. 이병헌과 조민수의 아버지로 이들의 어린 시에 경찰로 근무중 순찰을 돌다가 동네 양아치들의 집단 폭행으로 살해당한다. 누나와 함께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어린 이병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양아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성장하여 복수하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주요 스토리다.] ~~[[오상훈]]~~[*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계에서 조연급으로 얼굴이 익숙한 배우이며, 특히 조성모의 대표 뮤직비디오들에서 악역으로 인상깊게 각인된 배우다. 'To Heaven' 뮤직비디오에서는 김하늘을 승용차에 가둬놓고 석유를 뿌려대고 불붙이는 대머리 조폭 역으로 짧지만 상당히 인상 깊게 등장한다.]
          - [[http://www.youtube.com/watch?v=NPGiZyh0yR4|잘 가요 내 사랑 (4집)]][*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창시자인 김세훈 감독의 한계가 느껴졌던 작품이다. 배용준, 이나영 이라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그에비해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지 못한데다, 마지막 부분의 이나영이 자전거 교통사고로 죽는 씬은 충격 그 자체. 더불어 신예감독 [[차은택]]의 참신한 구성과 홍콩스타 장쳰이 특별출연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인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과 같은 시기에 맞붙어서 경쟁하게 된 덕분에 더욱 타격이 컸다. 이 뮤직비디오 작품을 끝으로 김세훈은 조성모표 뮤직비디오에서 손을 떼게 되고 점차 뮤직비디오계에서의 영향력도 줄어들게 된다.] : [[배용준]], [[이나영]], ~~[[제롬]]~~[* 교포출신 VJ 및 방송인이고,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중있는 역할이어서 넣는다. 극중에서 자전거 전문 도단의 대가리격으로, 자전거로 신문 배달하며 입에 풀칠하며 사는 가난한 유학생 욘사마의 자전거를 쌔비는 것도 모자라, 애지중지하던 자전거 찾아 삼만리 다니다 도단이 자기 자전거 가지고 가는 모습을 본 욘사마를 붙잡아 협박해 도단 활동할 때 경찰 오나 안오나 짱보게끔 시켜 잠도 못자게 하며 이용해 먹다가, 욘사마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경찰 신고해서 결국 구속되었는데, 도단 밑에 애들 시켜서 욘사마를 집단 구타해 애꾸눈으로 만들어 버리기 까지 하는 비열한 악당으로 연기했다.]
         [[히든 싱어]] 2부 3회인 조성모편에서는 2라운드에서 총 100표 중 81표를 얻어 '''원조가수 최초로 바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모창가수들은 조성모 전성기 시을 토대로 모창을 했지만, 조성모는 전성기 때의 혹사로 성대 결을 겪게 되어 창법이 변하게 되어버린 것. 조성모의 앨범들을 시간순대로 들어보면 이미 4집때부터 조금씩 허스키한 톤으로 살짝 변했고 창법도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4집때 까지는 그 전까지의 여리여리한 미성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조성모 특유의 창법이 거의 그대로 구사 됐었다. 그 후 공백 후 5집때부터는 톤도 많이 허스키하게 변했고 창법도 시원하게 질러 부르는 창법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성모 전성기 시의 목소리는 1-3집까지의 특유의 미성과 실크위를 거닐듯 부드럽게 밀어부르는 창법. 그래서 패널들이 전성기 시의 조성모 목소리만 기억했기 때문에 그를 찍어줄 리가 없었다.
         학창시 [[이상은(가수)|이상은]]의 열혈팬이었다고 한다. 2017년 6월 자신의 라디오 프로에 이상은을 초대해서 어릴적 팬질하던 얘기를 하며 적극적으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https://www.instagram.com/p/BV2KQxbAV5n/?taken-by=jo_sungmo|인스타 인증샷]]
  • 김형준(배우,가수) . . . . 20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명예 [[프로게이머]].[* 명백히 케스파 공인 ''''명예'''' 프로게이머이다.] 같은 그룹 멤버 [[박정민(SS501)|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나왔으며 5인조 [[보이그룹]] [[SS501(아이돌)|SS501]], 3인조 유닛 [[Double S 301]] 멤버다. 동생으로는 [[유키스]] 전 멤버인 [[알렌기범]]이 있다. 친구이자 톰과제리의 톰인 [[박정민(SS501)|박정민]]과는 앙숙이자 친이다.
          * 여담으로 'Never again' 활동 때 몸무게가 58kg 이었다고 한다. 181에 58kg... 도 아니었다. '''54 ~ 56kg'''이었다고 본인이 직접 김천경찰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밝혔다. 이 시엔 '뼈였다'고 표현하기도. 지금(2018년 하반기)은 72kg이라고 한다. [[https://youtu.be/wcUIufXF_5c|2018년 7월 20일 방송. 1:33:18부터.]]
          * 군 입대 후 진행하게 된 김천경찰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리즈시을 묻는 질문에 데뷔 초 'Snow Prince' 활동을 할 때를 꼽았다. '저렇게 생긴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 들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과거 리즈시 모습을 보고 지금의 자신을 보면 놀란다고 한다. 너무 [[격변]]한 것 같다고… ~~옛날이여…~~ [[https://youtu.be/GDtvDYrJJJ0|2018년 8월 30일 방송. 1:18:34부터.]]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친이다.
         '경고'에서 허영생이랑 함께 파트가 많이 배정 되었는데 1, 2을 나누어서 불렀고 2이 끝나고 마지막 파트를 넘어가는 부분에서 허영생이 고음을 내지르면 이어서 김형준은 거기에 맞추듯 노래를 불렀다. 'Snow Prince'에서 파트가 상당히 적었지만 'Fighter'때 허영생이랑 함께 파트를 제일 많이 배정 받았다. 'Unlock'에서 파트가 상당히 줄었지만 이 노래에서 김형준이 가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4Chance'에서 1 첫 소과 하이라이트 중간에서 단독파트가 단 6초밖에 없었다. 하지만 '겁쟁이'에서 하이라이트에서 혼자 불렀다. 'U R Man'에서 허영생, 김형준이랑 1, 2 파트를 나누어서 불러 파트가 많이 배정 되었다. '내 머리가 나빠서'에서 허영생, 김규종이랑 배정된 파트는 비슷했다. 허영생이 1 하이라이트는 단독으로 불렀고 2 하이라이트는 김형준이 단독으로 불렀다. 그러나 . 'Deja Vu'에서 파트는 상당히 줄어 들었다. '널 부르는 노래'에서 단독으로 부르는 노래가 단 한 파트가 없고 랩만했다. 'Love Like This'에서도 적은 파트를 배정 받았고 'Love Ya'에서도 랩을 제외하고는 보컬 파트는 적었다.
         'PAIN'에서는 'U R Man'때처럼 파트는 똑같았다. 'AH-HA'에서는 허영생이 거의 다 불러서 랩만하는 김규종을 제외하고 노래파트는 김형준이 제일 적게 배정받았다. 'REMOVE'에서 허영생이 단독으로 부르는 하이라이트를 제외하고 1, 2을 김규종이랑 파트를 나누어서 바꿔 불러[* 김형준이 1 첫 소을 부르면 김규종이 뒤이어 1을 마무리 지었고 2 첫 소을 김규종이 부르면 2은 김형준이 마무리 지었다.] 'AH-HA'때보다 파트가 늘어났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노래가 끝나는 마지막 후렴구에서 가성으로 부른다는 점이었다.
          * 12월 11일 SS501, [[카라(아이돌)|카라]] 전원이 모두 친노트에 출연했다. 그동안 억울하고(?) 못했던 말들을 폭로했다. 박정민과 싸웠던 일을 이야기 했는데 목격자인 허영생의 중언에 따르며 진짜 별것도 아닌일에 싸웠다고 한다. --욕도 귀엽게 한다고한다 야 개미 똥구멍아--
  • 전효성 . . . . 20회 일치
         ||<#00CED1> '''{{{#000000 팬 페이지}}}''' ||<(> [[http://cafe.daum.net/JunHyoSung|슈퍼스타]][* 전효성이 배틀신화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만들어진 카페로 나름 유서가 깊다. 데뷔 전 학창시에 쓴 글들까지도 남아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으며 [[2015년]] 7월 9일에 10주년을 맞이했다!!] ||
         === 어린 시 ===
         어린 시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재능도 있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고 중학교 때 댄스 동아리 리더를 맡아 축제 때마다 공연을 하기도 했다.
         2차에서 탈락했으나, 그녀를 눈여겨본 회사 관계자의 권유로 [[엠넷]] <배틀신화> 서바이벌 공개 오디션에[* 여기서 배출한 가수들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승리(빅뱅)|승리]],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손가인]], [[G.NA|최지나]]가 있다. 정작 배틀은 [[모닝구 무스메]] 7기 오디션 합격자처럼 [[가든파이브|대박 망했다.]]--그리고 [[G.NA|지나]]도 불미스러운 일로 [[망했어요]]--] 참가하게 되고, 참가자 200명 중 당당히 12명 안에 들면서 우승까지 하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fSARVWG4d9Q|우승]] 후 효성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는 연습생 중 막내였다. 연습생 시 학교 성적이 좋은 편으로, 전교 3등까지 해봤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연습생들의 성적 저하를 걱정하는 보호자들에게 회사 관계자들이 해주는 고정 멘트로 "본인 [[의지]]가 있고 [[노력]]이 있으면 전교 3등도 해요"가 생겼다고 한다.[* 1대100에서 2번 1인으로 나가서 2연속 7단계까지 진출했고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는 8인의 멤버들 중 쪽지시험에서 유일하게 3연속 합격하였다.]
         연습생 시 중에 결성된 3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중간에 기획이 취소되어, 5인조 걸그룹 [[오소녀]]의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다시 1년간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된다.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213140875889|#]]
         2011년 SBS 토크쇼 [[강심장]]에 출연하여 이때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이 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효성의 부친은 딸의 꿈을 위해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계속 숨겨왔었고,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효성은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의 효성은 데뷔가 무산되고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효성이 시크릿으로 데뷔 후 <샤이보이>로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했을 때 통곡을 해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였다고 한다.
         언터쳐블의 미니앨범 수록곡 <마이 부(My Boo)> 의 피처링 작업에 [[한선화]]와 함께 참여하면서 처음 노래할 기회를 잡았으며, 오랜 좌을 딛고 마침내 2009년에 시크릿으로 데뷔하게 된다.
         2013년 1월 19일, 소속사에서 전효성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손가인]]에 이어서 속옷 브랜드인 '예스(YES)'의 모델로 활동한다고 발표했다. 1년 계약이라고 한다.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90721|기사]] 넷에서의 여론은 남녀불문하고 꽤 호의적인 편이다. 발표 소식이 기사화 되기 전부터 사진 한장이 떠돌고 있었고 합성이냐 아니냐 말이 많았지만 결국 사실로 밝혀졌고 며칠 뒤 해당 속옷이 품되어 다시 기사화 되었다. '''이로써 완판녀 등극!!!'''
         2015년 5월 19일 <반해> 활동 기간 중 엠넷 [[4가지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속마음, 개인적인 이야기 등을 털어놓았다.~~저는 '가슴'이 아니라 '가수'입니다.~~ 주변인물로는 시크릿의 멤버 송지은, 오소녀 시 같은 멤버였던 [[지나]], [[일밤]] [[승부의 신]]에 출연했을 때 프로그램 진행을 보던 김수로가 출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http://naver.me/xe2lYtzh|4가지쇼 하이라이트 클립]]을 참고하길 바란다.
         하지만 첫날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 음원 성적은 썩 좋지 못했는데 타이틀곡 자체가 너무 밋밋하고 대중들에게 무언가를 확 어필할 만한 임팩트가 없었다.[* 첫 솔로앨범 타이틀곡인 굿나잇 키스는 "잘 자요 우리애기"라는 확 꽂히는 가사와 트랩이 적하게 어우러진 비트로 인해 상당한 중독성을 유발했지만 이번 타이틀곡인 반해는 그런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팬들이나 대중들 중에서는 3번 트랙의 <Taxi Driver>를 더 선호하는 의견들도 많다.
         3번째 방송은 추석을 맞이해서 특별이 9월 26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http://www.vlive.tv/video/2071/JunHyoSeongs-TGIF3추석특집-불토|#]] 3번째 방송에서는 명 때 남은 음식들을 재활용 하는 방법과[* 전효성 본인이 남은 음식들을 재활용하여 김밥을 만들었으며 B.A.P 힘찬이 시식요원으로 특별출연.] 팬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을 선보였다.
         여자 [[아이돌]]에겐 보기 드문 '''선홍빛 [[잇몸]]'''을 선보이는데다 각종 방송 활동에서 ~~하라는 예능은 안하고~~내숭 없이 잘 웃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현재까지 남성팬들이 꽤 많다. 그래서 [[박명수]], [[신봉선]]과 함께 [[http://www.artsnews.co.kr/news/105890|연예계 3대 잇몸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한국방송공사|KBS]] [[백점만점(예능)|백점만점]]에서 본인이 매력 포인트라며 어필한 그 잇몸 때문에 CF 감독한테 까였고(...) 결국에는 꼴등으로 뽑히고 말았다. [[안습]]. 근데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고정멤버가 된 듯하다. 이제까지 팀내에서 예능을 담당한 선화 빼고는 시크릿 멤버 중 처음으로 예능프로 고정을 획득한 것이다. 오오.~~다만 예능감은 미달수준~~ ~~그래서 별명이 다큐효성(...)~~] 사실 이 잇몸으로 주목받는 것이 유명해지고 나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어릴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인지가 많이 되어 있었던 특징이었는데, 이미 [[오소녀]] 시에도 팀 내에서 별명이 '잇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2013년 MBC 파일럿 프로그램 화수분에서 [[원더걸스]] [[유빈]]을 대신해서 출연한 [[김신영]]이 전효성에게 잇몸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여담으로 [[http://www.tagstory.com/video/100646262|무대 직전에 확인하는 부위가 잇몸(...)이라고 한다.]][* 여가수들이 웃을때 립스틱이 앞니에 묻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은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다이어트로 인해 [[가슴]]이 작아져 많은 사람들이 살빨이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463310&page=1&keyfield=subject&keyword=%C8%BF%BC%BA&mn=&nk=%B3%EB%BD%C3%C6%C8&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63310&member_kind=|빈유모에]]-- 단, 여자들의 가슴이 남자들 생각과는 달리 은근히 사이즈가 유동적인 데다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옷이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꽤 나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 2012년 4월의 사진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벽은 아니다.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8848&mid=e0403&cid=350114|5월 12일 드림콘서트에서 보여준 사진으로 보면 여전히 훌륭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도 계속 사진마다 모습이 달라보이는 걸로 보아, 남자들이 잘 모르는 [[브래지어]]의 힘이 작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위키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브래지어가 가진 무기는 '''[[패드]]만이 아니다.''' 푸시업을 어느 정도 해 주느냐, 혹은 어떤 옷에 맞추느냐 등 활용 폭에 따라서 벽이 글래머로, 글래머가 슬렌더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여자 속옷이다. 특히 드림콘서트 당시 사진에서 나온 사이즈는 단순히 패드만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아닌지라, 옷발과 컨디션발이 상당히 심하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약간 여유를 두고, 즉 푸시업이 좀 덜한 브라를 착용하거나 폭에 여유가 있는 누브라, 혹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께걸이 등의 지지가 없어져서 유방이 약간 처지는데, 보형물을 넣은 게 아니라면 이때 가슴골이 퍼져서 볼륨이 줄어들어 보인다. [[박로미]]가 가슴이 작아보이게 한 방법이 바로 이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효성은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몸매가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섹시컨셉으로 활동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숱하게 겪는 [[가슴성형]]에 대한 의혹만큼은 확실하게 없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뭘 집어넣은 거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왔다갔다 할 수가 없으니...
         본인의 키는 작은데 이상하게 키 큰 여자 연예인들과 친분을 많이 쌓았다. 오소녀 시 유이라든가 자기 회사 후배 소나무라든가 죄다 체격들이 크다.
         11월 28일에 수수한 차림으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사진을 찍어도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친하게 대해줬다는 후문.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88187.htm|2011년 11월 23일에 숙소에서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하여 무릎 연골이 파열되고 발등이 골되는 사고를 당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잔여 활동은 전효성을 제외한 3인이 활동하였다.[* 2012년 9월 24일 [[비틀즈코드]]에 시크릿 멤버들과 출연한 전효성은 지난해 사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http://ent.joseilbo.com/htmls/154812.html|자신이 평발이라 잘 넘어진다고 밝혔고]] 테이블 위에 본인의 발을 올려놓으며(...) 평발 인증을 하기도 했다.]
         2013년 11월 12일에 인터넷을 통해 대학시 개인정보가 털리기도 했다.[[http://sports.donga.com/3/all/20131112/58831703/2|기사]]~~[[11월 괴담]]을 제대로 겪고 있다. 안습~~ 소속사 측에서는 학교측에서 사과 받은 상태이며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2020|추후 상황 봐서 법적 대응 하겠다고 밝혔지만]][[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388422|법적대응은 와전된 내용이며 피해 내용은 경미한 편이라고 한다.]][* 참고로 2013년 11월 12일까지의 시기는 [[에일리]] 누드 유출 사건이나 [[은혁]] 트위터 해킹 사건, [[탁재훈]], [[이수근]], [[토니 안]] 불법 도박 사건 등 연예계 관련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진 시기이기도 하다.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6389|기사]]]
         그러나 저 발언 하나만으로 전효성을 [[일베|모 커뮤니티]] 유저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전효성 같은 경우 위에 항목에 나와있는거 처럼 과거 디씨에 있는 시크릿 갤러리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글 까지 쓴 적이 있으며 모니터링을 위해 디씨를 꾸준히 눈팅하다가 접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효성이 해명하고자 했던 바는 민주화가 모 커뮤니티에서 은어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줄 몰랐다는 것을 해명하고자 했던 것이며 '''이것을 2차 사과문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면 정확히 일치한다.'''[* 이후 시크릿으로 컴백하고 난 후 [[http://m.navercast.naver.com/mobile_magazine_contents.nhn?rid=1096&contents_id=47982|모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와 같이 해명한 바 있다.] 실제로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 무렵 시크릿 갤러리 글을 보면 민주화와 같은 모 커뮤니티 은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간베스트라는 그들만의 공간을 나와 점점 다른 사이트에서 분탕질을 시작한것도 이 무렵으로 아직 일베라는 특정집단을 모르고 단순히 신종 어글러취급을 하는 곳이 많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당시에는 일베 은어를 쓰자 말자 하는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시이였다. 전효성 민주화 사건을 큰 기점으로 그 은어들의 가진 어원이나 뜻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공감대를 얻어 쓰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졌다.]
  • 강동우 . . . . 19회 일치
         || '''포지션''' || [[외야수]][* 신인 시 포지션은 중견수였으나 부상 이후 우익수로 전향했다가 한화 이적 후 다시 중견수로 뛰었으며 선수 말년에는 간간히 좌익수로 나왔었다.] ||
         || '''선수시[br]응원가''' || 입장시: [[2NE1]] - <내가 제일 잘 나가> [br] 타격시: [[정형돈]] - <이러고 있다>[*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이전 가사는 [[이대형|'불꽃 투혼' 부분이 '1번 타자'였다]]. 강동우가 부상으로 1번 타자 자리에 잘 들어서지 않게 되면서 바뀌었다. 한화 올드팬들은 '이글스의 1번 타자는 [[이영우]]지!' 하면서 전 응원가를 싫어하기도 했다.] ||
         == 선수 시 ==
         === [[삼성 라이온즈]] 시 ===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시 ===
         [[두산 베어스]] 시~~현역 선수를 2년간 하다가 나왔지만, 7년만에 결국 코치로 돌아왔다~~
         ~~한 시즌만 뛰다 만~~ [[KIA 타이거즈]] 시
         === [[한화 이글스]] 시 ===
         [[삼성 라이온즈]] 시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백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 지도자 시 ==
         은퇴를 선언한 후 [[두산 베어스/2군|두산의 2군]] 타격코치로 영입되어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63134|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14년]] 4월에 결혼하여 뒤늦게 품남이 되었다.
         선수시 등번호는 20-1-24-31-2-3번 순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1번 라인인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중 한 명. '''불사조같은 선수시을 보낸 선수.'''
         2017년 [[두산 베어스]] 주루코치시, [[양의지]]와 --[[덤 앤 더머]]-- 장면을 연출(?)했다.
  • 김국진(MC) . . . . 19회 일치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대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2016년 10월 26일 라스에서 박수홍이 밝힌 바로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비자 발급 인터뷰 문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마약 경험과 총기소지 상황에 '예'를 체크하는 바람에 실제로 미국에 몇년간 입국 금지처분을 받았다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처음엔 김수용이 미국에 오기 싫어 거짓말 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김수용은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을 할 생각으로 [[밴쿠버]]로 건너갔다고 한다. 골프장을 가로질러서 국경을 건널 생각이었으나 벽이라 못 넘었고, 멕시코 마약 밀매단에 섞여서 건너오는 방법(...)과 국경 근처에서 헤엄쳐서 건너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만 하고 돌아왔다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본인이 출연해서 직접 언급.]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국진은 김용만과 함께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고.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이 시 김국진은 딱히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시트콤 뿐만 아니라 정극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는데, 이는 김국진을 좋아하는 시청자폭이 너무나 넓었기에 대박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정극 드라마 시청률은 망했었지만...
         아무튼, 최전성기이던 [[1999년]]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휴식기를 가지기 직전, [[에디 머피]] 주연의 영화 [[닥터 두리틀]]에서 에디 머피를 연기하며 성우로도 활약을 잠깐 했는데 평은 극악이었다. 결국 나중에 MBC에서 더빙 방영할때 에디 머피 전문 성우인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재더빙을 맡았다.] 이후 김국진은 휴식 기간 중 접한 [[골프]]에 빠져서 [[프로]]골퍼에 도전했지만[* 1990년대에도 골프를 취미로 했었다는 말을 [[박수홍]]이 라스에서 언급하긴 했었다.]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막대한 돈을 잃었다.[* 그나마 골퍼로서 입지가 안정된 후에는 [[http://youtu.be/e2CLgocjSco|집중력 향상 드링크제 광고]]를 찍기는 했다.] 사실 턱걸이로 계속 프로 골퍼 시험에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이었으면 될 성적인데 올해는 합격이 어려운 성적이었다던지... 이후 [[2000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배우)|이윤성]]과 2002년 10월 17일 결혼했다.[* 여담으로 이 시트콤에 [[이선균]]이 이윤성의 동생으로 분했다.] . 이윤성과 김국진은 [[2003년]] [[7월]]부터 돌연 별거를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15일]]에 이혼했고 이윤성 측에 막대한 위자료까지 지불하게 된다.[* 이윤성의 외도설이 있지만, 사실이라면 과연 김국진이 위자료를 지불했을까? 아마 결혼 후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는 등의 사연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으나, 이혼 후 김국진은 가급적 그 당시 일을 언급하기 꺼리고 조용히 혼자 외롭게 산다는 이미지면(물론 가끔씩 개그소재로 쓰긴 한다), 이윤성은 기다렸다는듯이 재혼한데다가(더구나 남편 홍모 의사 또한 이혼 경력이 있는 돌싱이었다) 방송에서 잊을만하면 김국진과 결혼 생활고,이혼 경력을 끄집어낸 것을 보면 여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이 때 시도한 골프의류 사업과 주식투자 모두 망했다. 또한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돈을 내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결국 그는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대인기피증이 와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피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혼 이후도 아니고, 결혼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시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시도로 알려졌고, 실제로 병원에 실려가서 위세척을 했다. 김국진은 아스피린을 좀 많이 먹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본인은 이 경험에 대해 "난 빵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유행어가 될 조짐이 있었으나 너무 처해서 개그로 인식되지 않은 탓인지 금방 잊혀졌다.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한창 잘나가던 시에도, 어느정도 안정된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자본주의의 돼지|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김국진이 재기 직전 김국진의 지인들이 혼자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과 생면부지였던 배우 박정수와 가수 [[은지원]]이 찾아가 셋이 서로 친해지는 내용이였다. 당시 김국진은 전보다 더 수척해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주로 뭐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소파 구석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있는다' 고 안습한 대답을 했다.] 게다가 김국진은 전술했듯 워낙 사람이 좋고 주변인들에게 친했기 때문에 연예계 동료나 그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이나 예능인들을 많이 도와줬고, 그렇게 쌓인 인복이 후일 복귀할때 큰 도움이 되었다.
         [[김구라]]같이 영문과 출신인데도 불구, 정작 [[영어]]에는 능통하지가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 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 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 그래도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마을]]로 가는 에피소드에서 [[김성민(1973)|김성민]], [[이정진]], [[이윤석]] 등과 함께 그럭저럭 준수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부모님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 [[십일조]]를 했었는데, 김국진의 최전성기 시 1달 수익에 정확하게 10프로를 [[성당]]에 기부했다고 한다. 참고로 김국진의 최전성기에 김국진이 말한 바에 따르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1억을 벌 수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김국진, [[박수홍]] 등과 함께 감자골 4인방이면서 연예계에서 세 손가락에 들만큼 그와 가장 친한 [[연예인]]들이던 [[김용만]]은 김국진과 젊었을 때 같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김국진의 사주가 "평생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나갈 지 모를 사주"라고 했다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국진이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본인이 돈을 빌렸던 것도 잘 잊었다는 점. 더 웃긴 일화는 감자골의 또다른 멤버였던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이 신인 시 이를 알고 역이용해 김국진에게 "아 형, 저번에 빌려준 거 왜 안 갚아?"라고 하면서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3번이나 받아봤다는 것이다. 김국진은 깜빡 속은 나머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 잊어버렸구나. 미안."이라고 하면서 김수용이 말할 때마다 계속 그 돈을 줬다고 한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으니까 쉽게 속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으나 정말 돈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김국진급의 억대 수입/지출을 내는 사람이면 개인 [[대한민국 공인회계사]]가 필요하다.) 다만 이런 성향이 어차피 번 돈이 많아서 돈 쓰는데 무신경한게 아니냐고 오해 할 수도 있는데 김용만이 김국진의 모친께 들은 바에 따르면 ' 등록금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선뜻 돈을 주면서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었다'라는 일화가 있는걸로 봐선 부의 유무와 상관없는 원래의 성격인 듯하다. 어려운 시기에 [[결혼]]했던 김수용에게 ~~비록 빌려 주지도 않은 돈을 여러 번 받아가긴 했지만~~ [[하이난]]으로 [[신혼여행]] 다녀올 경비를 대줬다는 미담은 [[덤]].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인다. 김국진이 [[인창고등학교(서울)|인창고등학교]] 시에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공부를 했고, 2005년 경에 김용만과 같이 중국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 공백기 기간에도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점에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f(x)]]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 [[빅토리아(f(x))|빅토리아]]에게 중국어로 인사하거나 간간히 중국어를 하는 점, [[효연]]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중국어로 음식 주문을 할 때도 이해하던 모습, [[차오루]]와 라스에서 대화할 때도 중국어가 말끝마다 나온 점을 보면 중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실력인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청춘]]에서도 멤버들과 [[홍콩]]에 갔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중국어 실력을 보여 주었다.
         몸은 마른 편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좋고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인 듯 하다. 남격 대권력 편에서 [[윤형빈]]과 [[레슬링]]을 했는데, 윤형빈은 프로필상 181cm에 75kg, 김국진은 171cm에 58kg으로 20kg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허리힘으로 윤형빈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김국진 > 윤형빈 > 타카야.~~ --대선배라 봐줬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냐?--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반말]]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이경규]]가 사석에서 유독 어려워 하는 [[후배]]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경규가 [[회식]]을 한다고 모두 가자고 할 때 후배 중에 유일하게 거하고 집에 가도 이경규가 한 마디도 못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서 남자의 자격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김국진의 실수로 당시 공황장애 증상이 심했던 이경규가 멘탈이 나가자 '형 정말 이런 말 하기 죽도록 싫은데..... 미안해'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이처럼 선후배간의 강압적인 악습[* 알다시피 개그/코미디계는 선후배 관계가 [[군대]] 삐까치게 엄격하다.]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또 한 일화로는 [[커피]] 심부름하러 온 [[개그우먼]] 후배 [[김숙]]이 뒤에 김국진이 있던 것을 모르고 오랫동안 [[자판기]]를 혼자 사용하자 그저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자기 순서를 계속해서 기다렸다고 한다. 뒤늦게 자기 뒤에 김국진~~대선배님~~이 있자 당황한 김숙이 미리 뽑은 커피를 건네자 "음~ 나는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 안 시켜"하며 먼저 뽑아야 할만큼 뽑으라며 계속 기다렸다고... 결국 자기 커피를 직접 뽑아서 갔다고 한다. 이 외에도 김숙이 [[신인]] 시 동기들과 함께 김국진과 같은 지방 행사를 갔던 시 김국진은 김숙에게 “돈 받고 행사 오느냐”고 물었고, 김숙이 자기들은 신인이라서 무대 경험을 쌓으라해서 온거라며 행사비를 못 받았다고 말하자 “그런 게 어디 있어”라며 “개그맨의 자긍심을 가져라. 똑같이 나눠 써”라며 자신의 행사비 전부를 후배들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김국진 [[클래스]]다! --
  • 김영철(배우) . . . . 19회 일치
         상단의 학력부분을 보면 알수 있듯이 원래는 연기전공이 아니라 체육전공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학창시에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노는 아이'''였다고. 권투, 유도(공인 4단),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자나 꾀러 명동에 나갔다가, 선배연기자인 [[이정길]]이 하는 연극을 보고 연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언론통폐합]] 이후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80년대 TV 문학관에서 거의 주인공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선우휘]] 원작의 단독 강화에서는 대사 없는 시체로 나온 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이병주 원작의 변명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프랑스]] 지식인[* 원작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던 블로크 교수의 총살 에피소드이다. 김영철은 여기서 1인 2역으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탁인수와 프랑스 교수 블로크를 모두 맡았다], [[심훈]] 원작의 [[상록수(소설)|상록수]] 주인공,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공 등이다. 체육인 출신이었던 덕에 젊은 시에는 몸도 좋았던지라 KBS 특집극에서 [[손기정]]을 맡은 적도 있다.[* KBS 1TV에서 82년 1월에 5부작으로 방영했던 '맨발의 영광'이란 미니시리즈이다. 2013년에 작고한 [[강태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 손기정의 빛에 가려진 또 한 명의 [[마라톤]] 영웅인 남승룡 선수 역을 했다.] 대하드라마 [[토지(소설)|토지]]에서 김환 역을 하기도 했다.
         젊은 시의 사진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하얀미소의 한 장면. [[http://m.cine21.com/movie/photo/?movie_id=13804&img_id=100092|출처]] 의외로 젊은 시 모습을 보면 [[여진구]]를 꽤나 닮았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1990년대는 개인사업 등의 사정으로 활동이 약간 줄어들어 TV에서는 [[아침 드라마]] 전문 불륜 배우[* 이 기믹으로 MBC의 2002년작 [[월화 드라마]] [[위기의 남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도로 소비된 시이다. KBS 일일드라마 히트작인 [[정 때문에]]의 남기남 역이 대표적인 이 시 김영철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 역도 중간에 하차하는 역이라 큰 인상은 주지못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던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궁예(태조 왕건)|궁예]]''' 시.[* 궁예가 출연하던 2000년~2001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세대는 1988년생~1994년생이다.] 궁예를 보고 장래희망에 [[미륵]]을 적은 학생도 많다 카더라.[* '애꾸눈 대머리'라는 외모가 [[사가트]]를 연상케 해서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시.
         <태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반효정]])와 태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태.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옴 마니 반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태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태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야인시대]]에서도 후반기에 명연기를 보였으나, 해방 당시의 김두한은 20대 후반이었는데 김영철은 당시 50에 근접한 나이라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고[* 광복을 기점으로 김두한 배역이 김영철로 교체되는데,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28세지만 당시 김영철 배우의 나이는 만 50세, 연나이 51세였다. 김두한이 사망한 나이보다 겨우 3살 적었다. 그래서 김두한과 동년배 혹은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문영철이나 이정재 등은 훨씬 젊어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김영철 배우의 외모를 젊게 잡아 40세라고 쳤어도 김두한 역으로의 교체는 김두한이 약 40세 정도인 4대 총선 도전때 정도가 적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DTs3S_44w|이 자가 바로 20대입니다 어머니! 뭐,뭐라고?]]-- 후반기 줄거리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방영 당시에는 [[안재모]]가 맡은 청년기 시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주목은 태조 왕건만 못했다. 야인시대의 후반기 방송분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주 시청자였다. 하지만 종영후에는 청년기가 잊혀진반면 후반기는 [[심영물|명언도 더 발굴되고 넷상에서 언급도 더 많이된다.]] 방영된지 10년도 넘게 지났음에도 김영철의 인생 연기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방영한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이 두 캐릭터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김영철의 '''[[리즈 시]]'''
         한편으로는 궁예 캐릭터에 애정도 있었는지 태조 왕건 이후 현대사인 [[서울 1945]]를 제외하면 한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2008년 [[대왕 세종]]에서 [[태종(조선)|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는데 그동안 사극 섭외를 정중히 거한 이유는 바로 궁예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86918|#]]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궁예와 김두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만으로 김영철이라는 배우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 본인이 그런 배역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서인석]]도 [[견훤(태조 왕건)|견훤]]으로 인해 이후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견훤 이미지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시.
         || 2014년 || [[참 좋은 시]] || KBS2 || 강태섭 역 ||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8회 일치
         [[이스트 블루]] 고아 왕국의 후샤 마을 출신. [[해적]] [[샹크스(원피스)|샹크스]]에게 모험에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나 샹크스는 루피 부탁을 언제나 거하고 있었다. 우연히 샹크스가 가지고 있던 [[고무고무 열매]]를 먹어서 고무인간이 된다. 하지만 아직 애라서 고무 능력만 있을 뿐 매우 약했다. 샹크스를 모욕한 --산적왕-- [[히그마]]에게 덤비다가 납치되었는데, 샹크스는 루피를 돕기 위해 나타나 산적단을 몰살시킨다.
         롱 링 롱 랜드에서 폭시와 결전한 이후 해군 대장 [[쿠잔]]과 마주쳐 위험에 처하지만 간신히 도망친다. [[워터 세븐]]에서 배를 수리하려 하지만 거당한다. 그로 인해 우솝과 결투한다. 몇 가지 해프닝에 휘말리고, 로빈을 끌고 간 [[CP9]]을 [[에니에스 로비]]까지 추격한 끝에 로빈을 되찾고, 새로운 배인 사우전드 써니 호를 제작 후 프랑키를 조선공으로써 동료로 들이고 어인섬으로 향한다.
         어인섬으로 향하던 중 루피는 유령선에 탄 해골 [[브룩(원피스)|브룩]]을 만나고, 브룩은 [[스릴러 바크]]로 자기가 빼앗긴 그림자를 찾으러 떠난다. 이후 루피는 [[겟코 모리아]]를 만나 스릴러 바크의 정체를 알게 되고, 루피는 모리아와 싸우다 그림자를 빼앗기지만, 그림자를 되찾기 위한 장한 사투 끝에 승리한다. 겟코 모리아가 루피에게 패배하자 그림자를 잃었던 모두에게 그림자가 돌아온다. 이후 나타난 [[바솔로뮤 쿠마]]때문에 스릴러 바크는 완전히 박살난다. 브룩을 음악가로써 동료로 받는다.
         에이스를 구출해내고, 함께 놀라운 호흡으로 해군을 쓰러뜨리며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 도중 추격해 온 [[사카즈키]]의 도발하자, 에이스는 방향을 돌려 사카즈키와 싸우기 시작한다. 이 때 루피가 흘린 비브르 카드를 주우려 할 때 그 틈을 노린 아카이누의 공격을 에이스가 대신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red 에이스 구출실패.}}}'''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한 루피는 정신을 놔버린다.[* 여담으로 PS3으로 나온 원피스 해적무쌍에선 이 장면에서 루피가 패기를 사용, 사카즈키를 두들겨 패버린 후 기한 것으로 나왔다.왜?] 에이스가 죽자 전황은 해군전체의 타겟이 된 루피를 흰 수염 해적단과 임펠 다운의 탈주자들이 어찌해서든 지키는 형태로 바뀌었고, [[징베]]가 루피를 업고 탈출을 시작한다.
         그리고 거의 하루종일 폴쉐미에게 처참하게 가시가 달린 글러브로 개패듯이 얻어 터지게 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에이스와 사보에 대한 얘기는 대로 꺼내지 않았고, 결국 에이스와 사보가 직접 구하러 와서 폴쉐미를 관광태우고(…) 서로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상결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심지어는 뭐가 해적왕이냐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사실 에이스랑 동료들을 못 지키고, 봉쿠레를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희생시켰다. 심지어 에이스는 마린포드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친할아버지인 가프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루피가 정말 처하게 망했다. 이런 사실은 샤본디에서 동료를 모두 잃은 일이 첫 번째 좌이다. 다만 샤본디에서 동료들과 흩어지고, 잠시도 못 쉬고 정상결전까지 겪었다. 결국 좌을 곱씹을 겨를도 없지만, 이때는 모두가 살아남았으니까 본인이 겪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에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몸을 해치는 일을 말리려는 징베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실 징베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속이 상할 만한 상황이다. 흰수염 본인과 에이스 외에도 흰수염 해적단의 수많은 해적들이 루피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정작 그 본인은 상처가 벌어지는데도 날뛰어 대서 혼자 개죽음을 겪으려 하는 상황이니 징베까지 덩달아 격동해서 루피를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불안정한 상태였다. 징베가 '''"잃은 것만 보지말고 남아 있는 것도 봐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자 울며 날뛰던 루피도 '''[[밀짚모자 일당|사랑스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기 해적단'을 남아있는 것 한 가지로 세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일일히 하나씩 꼽아가며 세고는 남아 있는 것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이 참으로 루피다운 모습.
         동료들을 향해 나가던 도중 [[밀짚모자 해적단(가짜)|가짜 밀짚모자 해적단]]의 가짜 루피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림자 때문인지 얼굴이 예전과 달리 어른스러운 모습이다.가짜 루피가 쏜 총을 가볍게 피하고 가짜 루피를 비롯한 가짜 밀짚모자 해적단 일당들을 패왕색의 [[패기(원피스)|패기]]로 기시키고 유유히 지나갔다.
         크라켄의 도움으로 어인섬에 도착하게 된다. 어인섬 앞을 가로막는 신어인해적단 전투원 [[하몬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 부하가 되라는 협박을 받지만 당연하게 거했다. 그리고 어인섬에 어찌어찌 진입한 후 하몬드와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이 때 하몬드와 그 일당들을 박살냈다. 이 때 하몬드와 같이 다니는 [[효조]]라는 독문어 인어에게 공격당했으나 [[독독열매]]의 능력자 [[마젤란(원피스)|마젤란]]에게 당한 것 때문에 독에 면역이 생겨 상처가 좀 생기고 만 수준이었다.[[흠좀무]] 루피도 누가 공격한 건지 대충 알아챘지만 별 신경 안 쓰는 듯. 참고로 이걸로 루피가 모든 극독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여기는 듯한데 쵸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마젤란과 다시 만난다면 죽는다고 이반코프가 경고한 것을 보면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면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그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라는게 마젤란이 쓰는 독 기준이니 실상 마젤란이 상대인 경우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듯. 실제로 자기보다 월등히 강한 적을 상대로 생채기를 낸 것 만으로 효조가 승기를 따냈다 확신했을 정도니, 효조가 칼에 발라둔 독도 굉장히 강한 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루피는 죽기는 커녕 붓지도 않았다.(…)
         시라호시와 바다 숲을 향하던 중에 시라호시가 상어 입 속에서 나오면서 납치범으로 오해를 받고 가뜩이나 예언 때문에 오해 받던 상황이 더 심각해지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어인섬의 일반 어인과 인어들에게 힘을 쓰고 싶지는 않은지 저항 없이 그들에 의해 밧줄에 묶인 이후 [[반더 덱켄 9세]]이 나타나자 거치적 거리는 주변의 어인들을 패왕색 [[패기(원피스)|패기]]로 기시킨 뒤에 덱켄을 상대해 가볍게 바닥에 쳐박아 버린 후 떠나려고 하지만, 덱켄의 명령에 의해 부하인 [[와다츠미(원피스)|와다츠미]]가 그걸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와다츠미의 이빨을 가볍게 부러뜨려주며 [[시라호시]]공주와 함께 다시 바다 숲을 향해 나아간다.
         루피가 먼저 [[호디 존스]]를 공격하면 인간과 어인들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우려한 징베가 본인이 스스로 함정에 빠짐으로 루피를 영웅으로 만들자고 하지만 거한다. 이때의 이유는 아주 가관으로, '''난 영웅을 좋아하지만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아!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 예를 들어 눈앞에 고기가 있다고 치자. 해적이라면 당장에 고기를 먹겠지만 영웅은 고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잖아! 난 고기가 먹고 싶다고!!'''(...) 결국 징베가 '''네가 먹을 고기는 내가 마련해줄 테니까 말 좀 들어!''' 하니까 그제서야 수락한다(...)[* 조로의 영웅관 또한 걸작인데, 전투가 끝난 뒤 영웅대접 받기 싫어서 도망치자 시라호시 공주가 왜 도망쳤냐고 묻자 말하길 "그거 알고 있나! 영웅이란 건 네 술을 나눠주는 존재라고. 난 술이 마시고 싶어!" ~~이자식들이 하나같이~~]
         그리고 상황을 디테일하게 보면 비눗방울이 있어서 전투가 가능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전투가 '가능했다' 뿐이지 지상과 같은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었던 상황은 대로 아니다. 작중 묘사를 보면 비눗방울 속에서 짱박혀있으면 몰라도 밖으로 팔을 빼서 공격할 때마다 물에 빠졌을때와 같이 힘이 빠져나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호디가 비눗방울 속으로 얌전히 머리를 넣어주지 않는 한 루피는 공격할 때마다 지속적인 체력감소를 감당해야 한다. 더불어 수중이기 때문에 당연히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체는 물론이고 제대로 공격을 회피하는 동작마저 취하기 어려운데 상디같은 경우 블루 워크[* 물속에서 사용하는 월보]를 사용하기 위해 비눗방울 속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 어찌어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너무 빨리 움직이면 비눗방울이 제대로 못 따라온다.(…) 게다가 큰 공격을 할 때마다 비눗방울 내부의 공기도 감소하고, 루피 피통이 아무리 커도 비눗방울이 터지면 게임 끝이라는 간접적인 패널티까지 있어 심리적 압박도 상당하다.
         마젤란과의 전투 이후 독에 항체가 생겨 [[가스가스 열매]]의 능력자 [[시저 클라운]]의 [[독가스]]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후 압도하는 듯했으나, 가스가스 열매는 '''공기 자체를 조종하는 열매'''였기에 산소부족으로 기, 이후 트라팔가 로, 스모커와 같이 감금되었다. 그래도 로 덕분에 탈출해서 다시 시저와 맞붙게 되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잘 싸웠다. 그러나 하피 모네가 시저를 도주시키는 데 성공하고 모네의 능력도 시저처럼 순수 전투력만으로는 불리한 터라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벗어나긴 했지만 하필 쓰레기장에 떨어진 터라 그곳에 발이 묶인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작은 용과 만났다. 그런데 루피는 그 용을 장어라 불렀다.
         하이루딘을 쓰러트린 후, 떨어진 무기를 수집해 총알처럼 사용하는 참가자 "강도 쟝"[* 현상금 사냥꾼으로 현재 목표가 루피의 임펠다운 사건 당시 탈옥했던 죄수 전원을 잡아서 현상금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중 ~~쩌리들~~몇십 명은 잡아서 현상금을 받은 듯.] 이 루피의 정체를 눈치채고 투구를 빼앗은 뒤 공격하지만 루피는 견문색으로 날아오는 무기들을 여유있게 피하며 접근해 투구를 되찾는다.[* 그리고 강도 쟝은 루피를 발견하고 뒤쫒아온 돈 칭자오가, '''하필 루피가 피한 무기들을 죄다 배에 맞는 바람에''' 아프다며 날린 박치기를 맞고 그대로 리타이어.] 뒤이어 계속 루피를 노려온 돈 칭자오와 서로 무장색 주먹을 부딪히며 마침내 맞붙는다. 둘은 실로 대등한 결투를 펼치나 늙은 돈 칭자오가 조금 밀리기 시작한다. 이후 돈 칭자오에게 '''늙은 자신과 호각을 이루는 정도라면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겨우 이런 수준의 인간을 레일리가 선택했다면 레일리도 눈이 썩었다, 오히려 에이스를 죽인 해군의 판단이 옳았다 등등 여러가지로 화나게하는 말을 듣고 하늘높이 날아올라 칭자오에게 '''핵꿀밤'''(정확히는 고무고무 토르 엘리펀트 건)을 날려준다. 루피의 공격을 머리통에 직격으로 맞은 칭자오는 과거 가프에게 얻어맞아 찌그러졌던 두상이 다시 솟아오른다. [* 원피스 세계관의 골격변화는 참 경이롭다. 한데 젊은 시의 가프가 특훈까지 해서 주저앉힌 두개골이 고작 루피의 펀치 정도로(?) 복구시킨 걸 보면 칭자오도 노화로 뼈가 약해진 것이 아닐까….] 그와 동시에 칭자오는 정신을 잃은 건지 경기장으로 곤두박질 치는데 뾰족해진 두개골에 경기장 바닥이 말 그대로 '''두동강'''나고 칭자오는 물에 빠져 장외 판정을 받는다. 이로써 루피는 C블록의 우승자가 된다.
         이후 피카에 의해 조로, 로, 리쿠 드루드 3세, 퀴로스, 비올라와 함께 궁전 정원으로 떨어지고 도플라밍고가 새장을 펼치며 시작한 게임[* 도플라밍고를 먼저 죽이느냐, 그가 지목한 12인을 먼저 죽이느냐.]에서 별 3개[* 별 하나당 1억과 동급]를 배정받았다.[* 같은 입장으로 리쿠 드루드 3세와 트라팔가 로, 사보가 있다. 하지만 우솝은 입장을 떠나 도플라밍고를 제일 열받게 해서 별이 5개가 걸렸다.] 그리고 로빈에게 걸려온 전보벌레로 레베카에게 퀴로스의 정체를 알림과 동시에 도플라밍고를 작살내놓겠다 선언한다. 로는 동맹의 본래 목적을 다시 말하며 카이도와의 연전도 각오한 거냐고 물어보지만, 그에 대한 입막음으로 말한 루피의 대사가 실로 압권. 그리고 조로, 로를 끌어안고 도플라밍고의 궁전으로 직행하였고 도플라밍고를 포함한 돈키호테 패밀리앞에 등장하였다. 루피의 발을 잡고 [[마하바이스]]와 [[델린저(원피스)|델린저]]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마하바이스의 무게공격은 피했고 델린저는 조로가 뒤에서 차버려서 델린저와 마하바이스를 쌍방으로 데미지를 입히게 한다. 그리고 돈키호테 패밀리사이에 일반인이 끼여있자 그들을 패왕색으로 기시키려는 찰나에 [[후지토라]]가 나타났고 조로가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피카]]의 고음을 듣고 미친듯이 웃는바람에(...)[[어그로|그것이 피카를 도발한 꼴이 되어]]. 그래서 빡친 피카의 주먹에 의해 조로, 로와 함께 멀리 날아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770화에서는 '''베라미의 무장색 경화 공격을 피하지 못해서''' 복부를 무장색경화 시켜서 막았음에도 '''피를 토한다.''' 일부러 맞아준 것인지 피하지 못한 것인지는 다음 장면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방어를 했는데도 충격을 받는 모습은 루피의 실력을 평가하할 장면이다.[* 단 루피의 경우 무장색이 특기인 조로나 견문색이 특기인 상디와는 달리 패왕색이 특기라고 한다. 패왕색의 패기는 다른 패기들과는 달리 단련이 불가능하고 현재의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최대 위력이 정해지는만큼 패왕색의 패기가 특기라는 것은 루피의 무장색은 현재 루피의 실력에 비해서 성취가 낮은 편에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어인섬 때도 무장색 패기가 약해서 "아직 내 패기로는 이 정도 공격을 막을 수 없어."이라는 대사를 하기도 했다.]
  • 절연금 . . . . 17회 일치
         테기레(手切れ,てぎれ)란, 지금까지의 관계, 교섭을 끊는다는 뜻이다. 특히 남녀 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한다. ‘연’으로 번역한다.
         일반적으로 테기레킨은 ‘위자료(慰謝料)’로 번역된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자료라고 번역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테기레를 ‘연’으로 번역하면서 ‘연금(絶緣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위자료로 번역할 수 없게 되는 사례는, 일단 관습적이고 쌍방의 동의만 있으면 합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자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연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위자료와 연금을 지불했다.’는 식으로 위자료와 연금이 별도로 언급되어 있을 경우, 양쪽을 모두 위자료로 번역하기는 곤란해진다.
         엄밀하게 따지면 연금이라 할 수 없는 경우라도, 언론 등에서 사실상 관계청산을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경우, 비유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예시.
         >AOL이 Netscape의 역사에 사실상 막을 내리다, 200만 달러의 「연금(手切れ金)」으로 Mozilla를 해산
         ‘위자료(慰謝料)’와 유사하긴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위자료와 연금은 다르다.
         위자료는 법률적에서 정의된 손해배상의 일종으며, 민사상의 불법행위,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연금은 인간 관계의 청산에 따라서 임의로 지급하는 금전을 뜻한다. 따라서 위자료를 연금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강제적인 지불 의무의 유무이다. 위자료는 상대방이 청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불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반면, 연금은 지불의무가 없으므로 강제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임의로 손해보상 요구에 부응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연금은 지불의무가 없기 때문에 집요하게 요청할 경우, 협박죄 공갈죄 등의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법률적으로 남녀관계에서 「혼인」,「내연」,「혼약」 이외의 애정 관계에서는 위자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연금은 이외의 남녀관계(주로 불륜)에서 당사자 간의 동의 하에 인연을 끊기로 서약하고 주고 받는 돈이다. 연금 양도 자체는 자유계약에 따라서 법률적으로 보호된다.
         이 때, 합의가 서면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사안으로 연금 청구를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합의 내용을 각서나 서약서 등의 문서로 남겨놓는 것이 추천된다.
          * [[도박 묵시록 카이지]]에서 [[이토 카이지]]가 [[사카자키 코타로]] 네 집에 얹혀 살다가, 도박중독자 인간말종 카이지를 보다 못한 사카자키가 돈을 내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연금에 해당한다. 그리고 카이지는 이 돈을 가ㅈ고 또 도박하러 간다.--구제불능--
  • 한명회 . . . . 17회 일치
         불우한 어린 시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경덕궁]]직이 되었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15페이지</ref> [[1456년]] [[사육신]]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적발하여 좌시키고, 사육신과 관련자들의 처벌에 가담하였다. [[조선 세조|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세조로부터 나의 [[장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이 되고,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기여하여 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토벌과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1466년]]~[[1467년]], [[1469년]] 두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후일 [[종묘]] 세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배에는 태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영흥]]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국호를 낙점받아왔다. [[한상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성림]](李成林)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하였으므로, 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재상 [[황보인]]이 한명회를 보고는 큰 인물이 될것을 예견하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그는 거하였다.<ref name="hwan1"/> 이에 종조부인 [[참판]] [[한상덕]]이 "그([[황보인]])는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니 만약 혼례를 받아들인다면 부귀하게 될 것"이라며 수락할 것을 권고했으나 한명회는 "처가의 권세에 힘입어 부귀 영화를 바라보겠습니까. 이는 저의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라며 거하였다.<ref name="hwan1"/>
         {{인용문2|제 친구인 한생(韓生, 한명회)은 뜻이 웅대하여 간국(幹局)이 있고, 둘도 없는 [[국사]](國士)로 적합한 인물이며, 지금의 [[관중 (춘추)|관중]](管仲), [[악의]](樂毅), [[사마중달]],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께서 [[춘추 시대]] [[오나라]]의 계찰(季札)의 개와 지조를 지키시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이 세상을 평치(平治)하시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권람의 진언}}
         수양대군이 머뭇거리자 한명회는 대의명분이 있음을 꾸준히 설득하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의 안정을 구가해야 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또한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유년 시 [[조선 태종]]이 세종의 아들들을 데리고 산책을 갈 때 어느 점쟁이가 둘째 손자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 말을 반복 언급, 주지시켰다. 확신이 선 수양대군은 그를 신뢰하였고, 모든 비밀 계략과와 밀모(密謀)는 그의 지휘에 맡겨졌다.
         [[1456년]](세조 2) [[2월]] [[성삼문]]과 [[집현전]] 학사들이 [[조선 세조|세조]] 3부자를 연회장에서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조선 세종|세종대왕]]으로부터 [[집현전]] 학사들이 [[조선 단종|단종]]을 부탁한다는 유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명회는, 연회장에 별운검으로 임명된 [[성승]], [[유응부]], [[하위지]] 등을 의심하고 이들의 출입을 차단한다.
         셋째 딸을 [[조선 세조|세조]]의 차남 [[조선 예종|해양대군]]에게 출가시켰으나, 셋째 딸은 아들 인성대군을 낳고는 산욕으로 요한다. 외손자 [[인성대군]] 마저 요하면서 한명회는 [[조선 예종|해양대군]]과는 다소 껄끄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조선 예종|해양대군]]이 곧 [[조선 예종|예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조선 세조|세조]]의 장자 [[조선 덕종|의경세자]]가 요하고 그의 빈인 [[소혜왕후|수빈 한씨]]는 궁궐에 살아도 좋다는 시아버지 [[조선 세조|세조]]의 배려를 사양하고 사가로 물러나 있었다. 그는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친정과는 10촌도 더 차이가 나는 먼 친척이었으나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집에 자주 방문했는데, 그는 수빈 한씨에게 야심이 있음을 간파하였다. 한명회는 [[소혜왕후|인수대비]]에게 사돈을 맺는 조건으로, 그녀의 아들을 임금으로 만들겠다고 제의를 한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순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1467년]](세조 13년) [[함경북도]] 일대에서 [[이시애]]가 [[이시애의 난|병란]]을 일으켜 명회와 [[신숙주]]가 일찍이 성삼문과 반란을 모의하려 했다고 모함하자 투옥되었다. 그는 이시애의 계략에 말려 신숙주와 함께 투옥당한다. 또한 그들이 함길도 제사 [[강효문]]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었다.<ref name="park116">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6페이지</ref> 그는 [[신숙주]]와 함께 반역을 꾀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의금부]]에 투옥, 신문을 당했으나 뚜렷한 혐의가 없었다. 즉위 이후 줄곧 왕위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세조는 [[이시애]]의 보고문을 믿고 일단 신숙주와 한명회를 옥에 가두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시작했다.<ref name="park116"/> 한명회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나라 사람들은 모두 통쾌히 여겼다.<ref name="deok252">이덕일,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2005) 252페이지</ref> 그러나 [[이시애]]의 장계가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그는 [[신숙주]]와 함께 석방되었다.
         [[1475년]](성종 5년) [[평안남도]] [[병마도사]]를 혁파하자는 건의가 올라와 성종이 회의를 소집하자, 모두가 혁파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를 듣고 급히 돌아와 이를 강력 반대하였다.
         {{인용문2|[[평안도]]를 [[평안남도|남도]]와 [[평안북도|북도]]로 나누어 [[평안남도|남도]](南道) [[병마도사]]를 둔 것은 [[평안북도|북도]](北道)를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시애의 난]]을 당하여 남도가 있어 그래도 북도와 지원, 연결하여 안팎으로 협공(挾攻)하였다면 그 조무래기같은 놈은 주머니 속에서 물건 뒤지듯 하였을 것입니다. 어찌 이빨 사이에 끼이게 하였겠습니까마는, 이러한 기회를 놓쳐서 적의 세력이 팽창하게 하였으니 심히 통분한 일입니다. [[조선 세조|세조]]께서 남도 병영을 신설하신 본의를 신같은 천견(淺見)과 소지(小智)로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마는, 혁파하려는 논의를 신은 옳다고 여기지 못하겠습니다.}}
         야사에는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한다.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도끼로 자신의 정강이 또는 자신의 집 대들보를 내리찍었다고 한다. 그는 왕실과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했는데, 그의 큰딸은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아들 윤반과 혼인을, 그의 작은딸은 [[신숙주]]의 맏아들 신주와 혼인하였고 셋째 딸은 [[조선 예종|예종]]의 정비([[장순왕후]])가, 막내딸은 [[조선 성종|성종]]의 정비([[공혜왕후]])가 되어 영화를 누렸으나, 이 딸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요하고 만다.
         * [http://www.ilyosisa.co.kr/ILYO/176/culture/48-1.html 한명회의 묘한 '혼맥정치' 30년 권력]
  • 현주엽 . . . . 17회 일치
         그는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학사]] 및 [[고려대학교|동 대학원]] [[석사]] [[졸업]]하였다. [[1998년]]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나이츠]]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농구에 데뷔하였다. 그의 현역 [[대한민국 프로 농구|프로 농]][[농구|구 선수 시]] [[닉네임]]은 '''매직히포''', '''포인트포워드'''이며 역대 대한민국 프로 농구 선수 중에는 가장 NBA급에 근접했던 선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결승전에서 4쿼터 4초를 남기고 돌파 및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서(이른바 까마귀 작전)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으며, 연장전에서 6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을 [[1982년 아시안 게임|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데 기여하였다.
         == 유년 시 ==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 고려대 시 (1994-1998) ==
         휘문고 시부터 초고교급으로 분류되던 현주엽은 고려대와 연세대 양교 관계자들의 치열한 경쟁속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오다 고3때인 1993년 3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 진학을 발표한다.<ref>한겨레 1993년 4월1일 “휘문 현주엽 고려대 간다”</ref> 이후 현주엽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93년 3월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가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고 고려대 진학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미 대학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고대에 줄곧 승리를 거두던 연대에 들어가기보다는 연대와의 대결에서 열세에 있던 고대에 들어가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이고 싶어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 SK 나이츠 시 (1998-1999) ==
         또한 이 매체에 따르면,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전 삼성과 먼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현주엽은 SK의 지명을 받기전 삼성으로의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역시 현주엽의 영입을 간히 원해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을 딸 목적으로 전년도 시즌 막판 경기에서 고의 패배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7일 “삼성 ‘부끄러운 져주기”</ref> 그러나 실상 SK는 우승 가능권에 있던 삼성의 전력증가를 원하지 않아 삼성에 대한 현주엽 트레이드 타진은 시늉내기로만 끝났다.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장애가 되지않는 약체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된다.
         == 골드뱅크 클리커스 시 (1999-2001) ==
         == 상무 시 (2001-2003) ==
         == 코리아텐더 푸르미/KTF 매직윙스 시 (2003-2005) ==
         현주엽의 상무 입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골드뱅크는 팀명을 코리아텐더로 변경하였고,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코리아텐더는 현주엽의 복귀가 몇달 지나지 않은 2003년 11월, 농구단을 KTF에 매각하였다. KTF에서는 상무 시 인연을 맺은 [[추일승]]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두번의 무릎수술을 거치며 현주엽의 플레이 스타일은 포스트업보다 어시스트 위주의 외곽플레이로 바뀌어 갔고, 그의 전매특허인 몸을 날려 레이업슛을 쏜 후 바닥으로 쓰러지는 플레이 또한 횟수가 줄어갔다. 이 무렵부터 포인트 포워드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 LG 세이커스 시 (2005-2009) ==
         * 발은 느리지만 70cm에 달하는 서전트점프 능력으로 골밑을 장악하고, 센터출신치고는 보기 드물게 드리블 능력과 아웃렛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고교 시부터 한 경기 평균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시부터 종종 멋진 덩크슛을 성공시켜 팬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시, ABC대회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백보드를 부순 덩크슛을 작렬한 적이 있다.
         === [[텔레비전 프로그램|TV 프로그램]](현역 대학 농구 선수 시 출연작) ===
  • 상디 . . . . 16회 일치
         || 좋아하는 계 ||<:> 나미 누님 섬의 로빈 양(의미불명) ||
         >'''"제프 오너!!! 오랫동안! 빌어먹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 은혜... 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상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상 수 십,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상태는 '''늑골골에 타박상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요리사답게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식량 관리도 더불어 하고 있는데 [[고잉 메리호]] 시에는 늘 [[몽키 D. 루피|어떤 바보 식충이]] 때문에 식량이 없어져서 종종 나미에게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사자고 조르기도 했으나 [[사우전드 써니 호]]로 바뀐 이후에는 [[프랑키]]가 직접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만들어 준 덕분에 식량 도난 문제는 없어졌다. ~~그리고 2년뒤, 루피는 패기를 배워왔다.~~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 [[Mr.2 봉쿠레]] - 비비를 구할 겸, 우솝의 고글을 되찾을 겸 맞붙었다. 이 당시 둘은 초면.[* 극장판 8기에서는 메리호에서 이미 만나고 봉쿠레의 오른손을 거부하지만 극장판이니 넘어가자.] 봉쿠레가 나미 얼굴로 변신해서 치사하게 노는 바람에 고전하지만 이내 간파했고, 각종 기술들이 난무한 처한 대결 끝에 송아지고기 슈트 풀코스로 종결지었다.
          * ~~[[칼리파(원피스)|칼리파]]~~ - 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계속 얻어터지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 후 나미와 교체. 실력으로 패한 게 대 아니다. 전투력은 압도적으로 상디가 우위라, '''떄리지 못한다'''는 핸디캡을 안고도 몇 번이나 칼리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단지 실력으로 제압은 했으면서도 마지막 일격은 매번 날리지 못한 탓에 오히려 반격을 연달아 얻어맞고 결국 악마의 열매 능력에까지 당해버려 리타이어한 것 뿐.
          * [[바솔로뮤 쿠마]] - 1차전에서는 동료들 대신 희생하려는 조로 대신에 자신이 희생하려 했으나 조로에게 기당했다.~~덕분에 조로한테 멋있는 장면 뺏겼다. 안습.~~ 2차전에서는 상디를 그랜드 라인 제2의 여인섬 핑크빛 아일랜드로 날려버린다.[* 그런데 이 때의 상디는 하필 분노로 '''[[멘탈붕괴]]'''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승산이 없었던 싸움이었다. ~~근데 제정신으로 덤볐어도 발리는 건 마찬가지일 거 아냐?~~ ~~상디 안습.~~] [* "젠장, 난 대체 뭘 하는 거야! 눈 앞에서 동료를 둘이나....!!"라며 '''머리를 쥐어뜯는다거나''' 루피의 만류를 '''전혀 듣지 않는''' 모습에서 당시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결론은 상디 안습.~~]
         > ''' 제프 오너!!! 오랫동안! 빌어먹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 은혜... 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 애니판이 KBS에서 방영되었을 때에는 아이들 정서상 부적하다는 태클 때문에 '''담배가 츄파츕스로 바뀌는 굴욕'''을 겪었다. 근데 케이블 심의가 강화되어서 극장판을 제외한 TVA판 한정으로 [[투니버스]]에서도 츄파츕스로 바뀌었다.[* 항상 오렌지맛 사탕인 듯? 1기 오프닝과 초반부의 장면에서는 딸기맛 사탕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사탕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계속 오렌지맛 사탕으로 고정. 그런데 의외로 사탕이 오리지널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 많은 듯하다. 원작을 보고서야 담배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디가 무인도 표류 이후 항상 먹을 걸 가지고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탕을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도 있다(...)] KBS판에서는 주석에서도 달려있듯이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 등에서 부싯돌 튕기는 소리가 그대로 나온 반면에 이후에 방영된 투니버스판에서는 음향쪽도 완벽히 수정하여 완벽하게 사탕으로 만들었다. 북미판의 경우 [4kids] 더빙판에서는 무자비한 편집으로 악명높은 4kids답게 KBS판과 같은 츄파츕스로 만들어버렸다. 다행이게도 이후에 [퍼니메이션]에서 재발매한 DVD판의 경우 무삭제로 나왔다. 대원판은 영상 수정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냥 모자이크 처리로 때운다. 때문에 상디의 입이나 손은 항상 모자이크로 나온다. 음향쪽에서는 라이터 소리가 나는등 옥의 티가 있었지만 최소한 사탕으로 수정을 하려고 했던 KBS만큼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는 대원판 원피스의 무성의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동강동강 열매]도 변역기돌려서 뿔뿔이 열매로 만든 놈들이니까~~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토리코와의 콜라보편에서는 화면을 수정하여 '''아예 삭제됐다.''' 덕분에 손가락 모양은 담배를 쥐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지만 정작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있지 않다.
          * 밀짚모자 팀들 중 유일하게 '''어린 테마송'''이 있다.[* 어린 시 상디의 성우이자 이후 쵸파 성우로 활약하는 [[오오타니 이쿠에]]가 불렀으며 제목은 sea moon see you.]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16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4화]] |||| '''대가련 칠드런/465화''' |||| [[대가련 칠드런/466화]] ||
         [[대가련 칠드런]] 465th sense. '''카타스트로피 (3)'''
          * [[츠보미 후지코]]는 "육군초능특무부대" 시 군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영상으로 나타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됐다면서 일행을 비웃는다.
          * 길리엄은 효부를 비롯한 일행에게 '망'을 부여주겠다고 하고, 후지코가 사오토메의 권총을 자신에게 향한다.
          그것은 "육군초능특무부대" 시 군복이었다. 가장 동요할 것 같은 효부는 아직까진 태연하다. 그는 "할머니의 코스프레를 보는 취미는 없다"라며 권태기 대책이냐고 비꼰다. 후지코는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며 받아친다.
          또다른 자신의 설득에 후지코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빛을 위해 살고자 했던 이유, "그들". 육군초능특무부대의 죽어간 동료들이 떠오른다. 효부와는 다른 형태지만 그녀에게도 그 시의 기억은 마음 속의 틈이었다. 그녀가 흔들리자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백신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후지코는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그때 빔 프로젝트가 전개되면서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영상이 나타난다. 그는 이 상황이야 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며 기분 나쁜 웃음을 띈다. 그는 지금부터가 특히 재미있는 장면이고 효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망"이다.
          * 효부가 뭘 보여줄 셈이냐고 묻자 그는 망의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 후지코는 인형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총구를 자기 자신의 관자놀이로 향한다.
          * 길리엄의 목적이 단순히 '후지코의 죽음'을 통한 일행의 좌인지, 아니면 이 동작으로 상대의 평정심을 무너뜨려 다른 술책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불명.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추미애 . . . . 16회 일치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5선의 여성 국회의원은 추미애 말고도 여럿 있으나, 이는 '[[비례대표]] 의원' 시을 포함해서 선수를 계산한 경우이고, 순수히 '지역구 의원'으로만 5선에 성공한 것은 추미애가 최초이다.]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여당]] 대표[* [[이명박 정부]] 시 [[박근혜]]가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s-1|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으나, 말 그대로 '비상대책위원장'이었을 뿐 당 대표는 아니었다. 박근혜가 [[참여정부]] 시 당 대표였던 때도 있었으나, 그땐 '[[여당]]' 대표가 아니라 '[[야당]]' 대표였다.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 2004년~2006년 한나라당 대표)]
          *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TK#s-1.1|TK]] 출신 당 대표[* 앞서 [[새천년민주당]] 시,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 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 대표 위에 당 총재([[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총재였다)가 있었고, 당 대표는 선출직이 아니라 총재가 임명하는 자리였다.]
          *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임기를 다 채운 최초의 당 대표[* 보통 당 대표는 선거 패배 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선거 패배 사례가 많다 보니, 여지껏 임기를 다 채운 당 대표가 없었다. 추미애 이전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가장 오래 당 대표를 지냈던 인물은 [[정세균]]([[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시부터 약 2년 정도)인데, 그도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바람에 임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 추미애의 경우 당 대표 재임시 치른 선거([[19대 대선]], [[7회 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당 대표를 사퇴할 일도 없었고, 때문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 추미애는 ‘까칠한 여성 판사’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는 [[군사정권|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수사 당국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영장을 남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하기 일쑤였다.
         관련하여 판사 재직 시 이런 일도 있었다. 1985년 봄,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공안 통치를 위해, 오늘날에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100권이 넘는 책을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압수수색하였다. 전국 검찰에선 일제히 영장을 청구했고, 전국 법원은 예외 없이 영장을 발부했다.
          * [[잔 다르크|추다르크]], 탄핵녀[[http://m.nocutnews.co.kr/news/871295|#]][*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로 트위터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본인이 직접 언급], 추장군, 오야붕[* 정작 이 별명은 [[문희상|이분]]한테 밀려 잘 안 불린다(...).], 느와르메이커, 추임스 미애보이[* [[제임스 매커보이]] 닮은꼴], 돼지엄마, 추애미, 애미추, [[제이미 라니스터|킹슬레이어]], 추날두[* 추미애라는 글자를 키보드 영자로 치면 'cnaldo', 즉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약자처럼 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호날두가 현역이던 시, 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등에 C.Ronaldo 를 쓰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씨날두, 크날두로 부르곤 했었다. 나중에는 등에 Ronaldo 만 표기한다.], 프로탄핵러, 선거의 여왕[* 그녀가 당대표로 재임한 기간중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등의 별명이 있다.
          * 2018년 3월,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당시 한창이던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미투 운동]]에 대해 "대한민국 남성들 중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거다."고 말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3132439|#]] 이에 대해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된 남성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도,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싸잡아 엮어버린 부적한 발언이란 비판을 받았다.
          * 2018년 4월 1일, [[만우]]을 맞아 추미애 대표의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이 초선 의원이던 시로 맞춰져 변경되었다.[[https://web.archive.org/save/https://blog.naver.com/choovision|#]] 심지어 블로그 포스트의 내용도 당시 시로 깔맞춤되었다.[[https://web.archive.org/save/https://blog.naver.com/choovision/221242043007|#]][[https://web.archive.org/save/https://blog.naver.com/choovision/221242045204|#]] 만우에 쓴 블로그 글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이 배우 [[채시라]] 씨를 닮았다고 말씀하셨다며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는 자뻑글도 있는데, ~~마땅히 대중의 공분을 사야할~~ 이 글은 다른 이유로 화제를 모았다.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https://www.dispatch.co.kr/1227442|이쪽으로]]. 이후 추미애 블로그에 이 만우 드립 제작의 [[https://blog.naver.com/choovision/221245881984|후기가 올라왔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 [[새천년민주당]] || 26,973 (30.08%) || 낙선 (2위) || [*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시] ||
  • 박석민 . . . . 15회 일치
         || '''포지션''' || [[지명타자]][* 2017년부터는 잔부상과 대상포진 등으로 사실상 지명타자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3루수]], [[1루수]][* 2017 WBC에서 1루수를 잠시 맡았고, 삼성 시이였던 2008~2011 시즌에도 잠깐이나마 1루수를 본적이 있다.] ||
         || '''응원가''' || '''삼성 시''':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NC 다이노스]]의 ~~[[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다.
         '''영광의 시이었던 [[삼성 라이온즈]] 시'''
         ==== 데뷔 시 ====
         대구고등학교 시.~~날씬하다~~ ~~그리고 후에 [[삼적화]]가...~~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개그 본능은 여전했다. 5월 6일 LG 트윈스 전에서 상대 투수 [[한희]]의 공에 맞자 배트 들고 한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문제는 '''박석민이 해서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 사실 화가 난 것은 대 아니었고, 다소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오려는 작전이었다. 더불어 한희에게 전화로 직접 사과까지 했다. 해당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제구가 안되던 한희는 직후 영점이 잡혔다.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 메이커 박속닌!~~[[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06885|박석민 인터뷰]]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주원|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697613&cpage=1&mbsW=&select=&opt=&keyword |#]]~~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무명시에 [[야갤]]을 한적이 있다. ~~근데 댓글을 보면 장난치면 死한다고...~~ [[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old&no=55445|#1]][[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old&no=55446|#2]][[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old&no=55496|#3]][[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old&no=58449|#4]]
         2013년부터 [[류현진]]이 뛰는 팀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주전 3루수이자 류현진의 팀동료 겸 친 후안 유리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박리베'''로 불러달라고 했다.~~근데 그 유리베는 2015년에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되었다.~~ ~~아~그러다 몇 게임 안 뛰고 또 뉴욕 메츠로 갔다.~~ ~~그 이후에는 클리블랜드로 갔다.~~
         2017년 7월에는 '[[양산 아파트 밧줄 단 살인 사건|밧줄 추락사]]'로 40대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1억원을 기부했다. 그외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야구 후배들을 위해 2억여원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18&aid=0003881512|기부하기도 했다.]]
  • 이철희(1964) . . . . 15회 일치
         한창 [[썰전]]의 패널로 잘 나가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의 손을 잡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입당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비례대표]] 8번 후보로 출마해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김종인]] 비대위 시에는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 학창 시 ==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 시사평론가 시 ==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593920|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http://mnews.joins.com/article/7703750|공천 과정에 대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E.E. 샤트슈나이더라는 학자를 좋아해서 그의 책과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보통 샤'''츠'''슈나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 발전은 다양한 정당들의 공정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당 정치에 깊이 관심 있는 사람치고 샤트슈나이더 영향 안 받은 사람은 드물다. 이철희는 샤트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참고로 샤트슈나이더는 대의제 민주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인데, 현 새정련 주류인 친노계가 직접, 참여적 민주정 강화를 지향하는 입장임을 보면 애초에 정당 운영 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 갖고 까는 건 아니지만~~][[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28769|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또한 학부 시 [[최장집]] 교수에게 배운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 교수 역시 저서에서나 강연에서 대의제 민주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
         마지막으로 청년 비례대표 논란이 있는데, '더벤저스'라고 불리며 당내 활동에 적극적이던 영입 인사인 [[http://m.moneyweek.co.kr/view.html?no=2016031507208018613|김빈 디자이너가 예심에서 5분 면접 후에 탈락]]당한 반면, [[http://news.donga.com/ISSUE/Vote2016/News?m=view&gid=77018257&date=20160315|더민주 당직자가 첨삭지도를 해 준 것]]과 [[http://mnews.joins.com/article/19388510|과거 국민의당 발기인]]이었던 상황임에도 청년비~~리~~례대표 결선대상자로 지정되어서 논란이 된 최유진 예비 후보가 이철희 전 소장의 대학원 시 제자라고 밝혀지면서 '자기 사람 끼워넣기'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김빈 디자이너는 비례대표 심사 이전에 비례대표 예비후보로서 자신을 홍보하면서 자신의 본명인 '김현빈'이 아닌 예명 '김빈'이라는 이름을 쓴 적이 있다. 본명을 기재하지 않았다면 선거법 위반 사항이다. 이것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http://gosunggo.com/693|박영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5001.html|'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영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 유시민 작가는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을 하긴 하였으나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인지라 더민주 내부 상황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의문스럽고 또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확실한 상황 증거는 내놓은 게 없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당 발언의 사실성을 떠나서 민주당을 떠난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인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영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MB 정부 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문건을 결제한 사실을 공개하는 등 여당의 공격수로 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해 치며 정력적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KEPD 350]] 도입이나 [[중고 치누크 도입 논란]]을 지적했는데 잘못 짚으면서 이미지를 좀 까먹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같은 당 출신인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전 의원이 반박하기도 했다.
         어떤 불리한 주장들도 다 정부나 여당으로 책임을 돌리는 논법 때문에 이러한 말들을 적히 바꾼 말들이 페이스북 등지에서 유행을 하고 있다. 다만 집권여당의 전신들 같은 경우엔 이철희가 하지 않았던 말이라고 한다. --그냥 '한나라당 아닙니까' 이런 건 있다--
          *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가진 편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정확한 발음이나 발성, 톤 조 등 기초적 발언 능력이 상당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토론에서의 치고 빠지는 타이밍(?)[* 평론가 시 방송 토론에서 --노답-- 상대가 억지 논리로 나올 때도 이철희는 처음엔 참고 있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큰 헛점이 표출될 때)에 치고 나오며, 막판에 상대와 같이 깽판을 치더라도 상대 빈틈을 파고들 타이밍을 안 놓치고 맹공격하곤 했으며, 상대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받아치는 것도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왔고, 역으로 소위 막가는(?) 언쟁을 끝낼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칼같이 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봐도 상대가 먼저 깽판을 쳤고, 이철희는 그에 잘 맞섰다는 인상을 주었다. --상대는 콧김만 씩씩, 사회자는 그냥 멘붕--] 설정 능력, 짧은 시간에 상대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는 능력,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발언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탁월하여, 농담으로 '말 못하는 사람도 토론은 잘 한다'[* 말투가 어눌하거나 목소리 톤이 별로거나 하는 등 대화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조차도 상대의 뜻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내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비언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즉, 언어라는 요소만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에는 그 사람만의 [[포스]]나 [[카리스마]]도 포함된다. 한국 근대 민주화의 뿌리였던 [[김대중]]은 대통령 시 연예인들이 그 말투를 흉내내어 당대에 가장 유행한 개그 패러디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발음이나 말투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생 수많은 진보 인사들을 연설과 대화로 매료시켰던, 한국 정치사 최고의 웅변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대한민국사 최초의 [[필리버스터]]도 김대중이 했다.) 그와 대화했던 정치인들의 경험담들을 보면 짧은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우리 박동지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을 못해도 말을 잘한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물론 이런건 김대중처럼 정치인생의 험난한 경험과 그런 고난들을 수없이 극복한 뒤에만 얻어지는 대적 카리스마가 많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초선의원 이철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원래 말 잘하는 사람은 그냥 말 잘하면 된다--]는 소리도 있는 스피킹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인 집단들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 썰전 출연 당시 [[강용석]]을 확실하게 압도한 적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메르스]] 사태 관련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적히 들어가며 메르스 발병 당시 공직자들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것. 이때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말을 아주 후련하게 잘 했다 하여 '사이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10580|관련글 참조]]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5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8화]] |||| '''대가련 칠드런/469화''' |||| [[대가련 칠드런/470화]] ||
         [[대가련 칠드런]] 469th sense. '''상속 (1)'''
          * [[머슬 오오카마]]가, 로비에트 정부에도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마수가 뻗어와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했다고 알린다.
          * 한편 카오루는 작전을 망친 것 때문에 안하다가 [[산노미야 시호]]에게 바람총을 맞고 조용해진다.
          * [[머슬 오오카마]]가 효부의 부상 소식에 사색이 돼서 달려온다. 효부에게 자신의 심장을 바칠 테니 써달라는 참 갸륵한 말을 하지만 역시 머슬이 하는 소리라 그런지 효부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거한다. 머슬은 로비에트 정부가 블랙팬텀에 넘어갔는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 대사직도 없어진 자신이 조직에 헌신하는건 그런 것 정도라고 말하지만, 효부는 그 제안에 심전도가 떨어질 정도로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결국 보류된다.
          * 효부는 이렇게 된 마당에도 "결과적으론 계획대로"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하지만 모미지나 요우 조차 그런 말에는 납득하지 못한다. 효부의 말에 따르면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레어메탈 버그로 효부의 감각과 감정을 중계, 효부의 망감을 맛보려 했지만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다 오히려 효부는 그 링크를 이용해 길리엄 측을 엿보는데까지 성공했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구승빈 . . . . 14회 일치
         '''하이퍼리스크 하이퍼캐리형 원거리딜러'''[* 세체원 후보들인 프레이, 피글렛, 뱅, 데프트, 우지 등등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독보적인 킬 캐치능력이 강점인 선수다. 물론 임프의 전성기 시인 2013~14 시즌은 원딜 오브 레전드, 몰왕검 오브 레전드라 불릴 정도로 원딜이 현 메타보다 비교적 쉽게 활약할 수 있던 환경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아마시 애쉬 장인이었고, [[그레이브즈(리그 오브 레전드)|그레이브즈]]와 [[시비르]]를 잘 쓴다고 한다. 원딜은 다 다룰 수 있으나 [[드레이븐]]은 못 한다고. 대회 주력 챔프는 역시 [[베인(리그 오브 레전드)|베인]], [[트위치(리그 오브 레전드)|트위치]], [[징크스(리그 오브 레전드)|징크스]] 등 하드캐리형 원딜들. 특히 저런 픽들은 라인전 단계에서 매우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임프의 경우 피지컬 빨으로 케틀/애쉬/루시안같은 라인전 강캐들을 역으로 압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특히 베인은 한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베인 컨트롤을 자랑~~한다.~~했었으나 베인 선고패치와 시즌4에 접어들면서는 예전같지 않은 모습.
         중국의 LGD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미드정글의 부진과 상대팀의 임프 집중공략 속에 끊기는 빈도가 화이트 시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것이 문제. 결국 데프트의 EDG에 밀려 4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시즌 후반에 들어 미드가 닉변을 하고 심기일전하더니 폼이 확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폭풍 연승 행보를 보여주면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3:2로 졌으나 일단 LGD 입장에선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봐도 좋을듯
         데프트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과 비교해서 임프의 장점은 라인전 메카닉보다는 변수 생성능력이라고 보는 모양. 삼성 형제팀 시에는 마타가 시키는 대로 해서 잘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중국에 와서 서로 팀이 달라져서 맞대결을 하면서 그냥 임프가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데프트 자신도 라인전에서 대 임프에게 밀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다소 플레이스타일이 한정적인 자신과 달리 임프는 팀원을 활용해서 다양한 플레이를 할 줄 안다고. 김몬테를 위시한 해외 전문가들도 MVP, 구 삼성 시에는 임프에 대해 마타의 하수인, 가끔 돌출행동을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기며 저평가했으나 시즌 5 시점에서는 LPL에 가장 잘 어울리는 능동적인 원딜러라며 호평하고 있다.~~문제는 그 LPL이 폭망했다~~
         그리고 지금 그 폭망한 LPL에서 믿었던 마린의 현지화와 티비큐 2호기, 3호기 같은 정글러, 그리고 IEM때 부터 제정신을 못차리는 중2병 골드 5에 고통받으며 다신 안할꺼같던 MVP White 시의 소년 가장역을 또 다시 맡고있다.
          * 아마추어 시 아이디가 '[[잊혀진 계|잊혀진계]]'이었는데, 그때부터 실력은 좋지만 멘탈이 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 시 비슷한 점수대의 플레이어들 중 자신에게 패드립과 트롤링 한번 안당해 본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자랑이다.--
          *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13년, 학교를 중퇴했다. 프로게이머로서 전념하기 위해서인듯. 이것 때문에 삼성 시에 팀원들과 서로 중졸드립을 치면서 노는 모습을 보인다 ~~멘탈해탈!~~
          * 키가 작은 편이다. 온게임넷 올림푸스 스프링 롤챔스 결승전 직전에 사진촬영을 하는데 하필이면 키가 큰 [[강형우]]와 같이 사진을 찍었고 깔판까지 보이면서 확인사살. ~~[[임프|키가 작은데다가 악동에 비유되니 적한 아이디]]~~
          * 자신의 이상형이 롤갤에 박보영, 박수진임을 밝혔다. --이미 한분은 품녀 한분은 이루어질수 없는 분--[[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agueoflegends1&no=8183322&page=1&search_pos=-8067211&s_type=search_all&s_keyword=%EC%9D%B4%EC%83%81%ED%98%95|#]] 결국은 중국에서 이상형에 뒤쳐짐 없는 [[http://www.inven.co.kr/board/lol/4625/2061644?my=chu|미모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 유키히라 소마 . . . . 14회 일치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 때 단상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식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식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식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해 버렸다.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식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태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식]]의 영역이며 그걸 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상의 경치를 보는 것.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정 문구는 "御粗末! / 변변찮았습니다!" 이 말을 외치며 머리띠를 푼다. 이 외에도 요리를 만들어서 상대에게 권할때는 "잡숴봐." 라고 말한다. 사실 저 괴상한 요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억지로 먹이는 것도, 결정 문구도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경우 '건멸치 딸기잼 무침'이라는 처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를 만든 적이 있다.]
         이후, 앞으로 E점[* 최하위에서 바로 위 평가등급으로 토오츠키는 A~E의 5등급과 최하위 평가 판정인 우리가 알고 있는 F에 해당하는 '불가'가 있다.]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면 강제 퇴학이라는 위기에 놓여있던 [[타도코로 메구미]]와 콤비가 되어 조 편성 시험을 치루게 된다. 다른 조원의 방해가 있었으나 벌꿀을 사용한다는 지혜를 발휘해 A점수를 받으며 통과하게 된다. 메구미는 소마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나, 이후 '''오징어 벌꿀 임'''을 시식당한다(…).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메구미의 얼굴을 보고 격분한 소마는 시노미야에게 '''내가 식극에서 이기면 메구미의 퇴학을 없던 걸로 해달라'''며 팔에 담긴 두건을 풀어보인다. 이를 시노미야가 거하려는 찰나, 이누이와 도지마 긴이 개입한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투표에서 메구미는 3:0으로 지고 만다.[* 후에 나오지만 시노미야는 학창 시에 10걸 중에서도 1석이었다. 탑클래스 중에서도 원탑이었던 것] 시노미야는 당연한 결과라며 나가려 하지만 도지마가 메구미의 요리에 표를 던지고 시노미야에게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다.
         메구미는 소마에게 이 은혜는 대 잊지 않겠노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소마는 메구미가 간 뒤 자신이 최초로 겪은 패배에 대한 분노를 혼자 곱씹는다. 도지마는 이를 보며 '진심으로 이길 생각이었던 건가.'하고 소마의 승부욕을 꿰뚫어본다.
         무수한 미식 경험으로 엄청나게 깐깐한 심사위원[* 이들 중 대표는 센다와라 쌍둥이 자매로 각각 A,B블록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 자매는 작중 대기업인 카레를 주로 생산하는 하우비 식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언니인 나츠메는 CEO, 동생인 오리에는 COO를 맡고 있다. 둘 다 '''고금동서의 카레를 전부 다 알고 있어서''' 예선 주제인 '''카레'''로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전세계의 요리들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일류 미식가들이다.]에 좌하는 사람[* 심사위원들의 기준이 어찌나 높은지 자신들의 말로는 '''50점 이상''' 받으면 훌륭한 요리라고 하는 데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40점도 못 넘었다.(...)''' 특히 A블록 심사위원장인 나츠메는 [쿠로키바 료|료]의 프렌치 왕새우 카레를 먹기 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단 1점도 주지 않았다.''' [흠좀무].]과 그럼에도 감탄사를 끌어내는 실력자들[* 앞서 얘기한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으로 전부 이 까다로운 심사위원들한테서 '''80점 이상'''을 받았다.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A블록은 '''아키라''', '''소마''', '''료''', '''스바루''', 슌, 젠지, 니쿠미, 료코 / B블록은 '''아리스''', '''히사코''', '''타쿠미''', '''메구미''', 미요코, 이사미, 유우키, 나오이다. 강조처리한 애들은 본선 진출자들.]이 등장하는 예선에서 후반부에 드디어 요리를 완성. 직접 만든 망고 처트니를 숨김 맛으로 쓴 카레 리조또 오므라이스로 심사위원의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하야마가 날카로운 창이라면 소마는 맛의 파상공격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아키라의 홀리 바질 카레에 1점 못미치는[* 단 하야마보다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이 심사위원 5인 중 3명이었다. 즉 이게 점수 합산 방식이 아닌 식극처럼 다수결 방식이라면 오히려 소마가 이겼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93점으로 [쿠로키바 료|료]와 함께 공동 2위로 본선 진출 성공.
         그 후 결승전에서 오랜 연구 끝에 선보인 꽁치는 쌀겨임 꽁치로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으나 그 뒤에 소마가 그 꽁치로 만든 두유를 맛국물로 한 올라풍 꽁치 영양밥을 선보였을 때 겨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요리로 아키라와 료가 만든 카르파초, 카르토초와 맛에서 호각의 평가를 받게 되지만 아쉽게도 우승은 하지못하고 료와 같이 공동준우승에서 만족했다.
         == 오징어 벌꿀임 ==
         여담으로 이때 사용한 재료는 특판하던 700엔짜리 '서로인 스테이크'. 20%할인에 반액 스티거까지 붙어있었다. 상대인 니쿠미의 A5 소고기와 비교할 수 없는 고기였기에, 당연히 이 고기를 본 관중들은 분노에 물건들을 던졌다(…). 승자는 소마로, 이쿠미는 강한 와규 맛에 대항해 밥까지 강하게 만들어서 맛이 서로 싸우게 되었고, 소마는 반대로 맛끼리 조화를 이루어 승리를 얻었다. 이때 이쿠미는 소마의 덮밥을 먹고 어린 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알몸으로 덮밥에 파묻힌 듯한 리액션을 취했다(…).
  • 윤채경(가수) . . . . 14회 일치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반인으로 남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4월 25일, [[https://www.youtube.com/watch?v=mTzPnh0LmDM|프로듀스101'에 출연했던 두 소녀가 간히 외칩니다]]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연예계의 특성상 소속사에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언론이나 연습생이 자의적으로 저런 영상을 만들었을 리 없기 때문에 이는 팬들에게 데뷔를 강하게 암시하는 메시지라고 추측된다.
         5월 2일, [[http://www.nailtv.com|네일TV]] 5월호 화보에 나온다고 한다. [[https://www.instagram.com/p/BE56Is3PH58|여신 강림]] 여담으로 네일TV 화보는 원래 비매품으로, [[윤채경 갤러리]] 갤러들을 위해 100권 정도를 특별히 일반판매 했는데 반나만에 완판되었다.[* 이 문단은 2017년 3월 한 방송에서 채경이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haekyoung&no=179151|스스로 '''인증'''했다.]] ~~작가가 나무위키러? 반나만에 완판이라는 문구는 여기밖에 없는데?~~] 갤러리 내에서는 굿즈 1호라고. [* 이때 [[퓨리티]] 시 CD/DVD를 구입하려는 갤러들로 인해 일본 내 인터넷 소핑몰 재고를 단숨에 품시켰다.]
          LTE에 [[이해인(1994)|핸]], [[이수현(1996년 9월)|푼]]이 합류했다. 실제 친인 이수현을 만나자 정말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음악의 신 2]]》에 [[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6061017534610207|한혜리도 참여한다고 한다.]] 이로써 '''[[김소희(1995)|퀵]][[채경(APRIL)|빛]][[한혜리|짹]][[이수현(1996년 9월)|푼]][[이해인(1994)|핸]]'''이 다시 한 방송에 모이게 됐다.[* 유감스럽게도 다섯이 한 자리에는 모이지 못했다. 한혜리는 8회에 참여했는데 8회에 푼핸이 나오지 않았다. 7회에서 넷은 한자리에 모였다. ~~다섯은 [[I.B.I|나중에]] 모인다.~~] 이날 C.I.V.A 멤버들은 여름 화보를 촬영하였다.
          * [[퓨리티]] 시의 음반은 [[퓨리티]] 문서 참고.
          * 어린시, 어린이 드라마[[마법전사 미르가온]]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떨어졌었다고한다.
          * 위의 프로그램에서 기부 아이템으로 직접 만든 에코백과 파우치를 내놓았다. [[카라 프로젝트]] 시에 카페에서 팬들에게 만들어서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이제야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160420 온스타일 기부티크 E05)
          * 아이돌 최초로 I.B.I, C.I.V.A, APRIL 3개의 팀에 동시에 속해 있는데 세 그룹의 행사를 동시에 뛰던 시도 있었다.[* 2016년 8~9월. C.I.V.A 멤버 자격으로 예능에 출연했고, 삼성 드림樂서 공주,진주 행사에서는 I.B.I로, APRIL 데뷔 1주년 단독 콘서트에서는 ~~APRIL로~~게스트로 참여했다.] 현재는 에이프릴 활동만 하고 있다.
          * 프로듀스 101 참가 당시 빚더미였다고 한 원인이 [[퓨리티]]다. 퓨리티에서 활동하는 동안 발생한 정산에 실패해서 생긴 빚이다. 퓨리티가 지나치게 빨리 해체했기 때문이다.[* 연습생 시 빚은 대부분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예로 MBK 출신으로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정채연]], [[기희현]]이 프듀 및 이후 CF로 6,000만원의 정산금을 받아 기부했다는 [[http://mnews.joins.com/article/20225628#home|언론기사]]가 있었는데, 1인당 3,000만원 정도의 정산금이라면 실제 회사의 수익금은 더 많을것이다. 그 둘의 경연곡보다 훨씬 더 많은 매출(2016년도 걸그룹 음원매출 14위)을 안겨준 [[같은 곳에서]]의 일원에 C.I.V.A때 찍은 CF도 꽤 되는 윤채경의 2016년 수익은 저 기사가 나올 당시의 기희현보다 비슷하거나 많지 대 적을 리 없다. 그러나 채경의 경우 연습생 시의 빚이 아니라 해외에서 2장의 앨범을 내며 정식 활동하면서 생긴 빚이라 사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예전만큼 빚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 표창원 . . . . 14회 일치
         가난한 집안 형편에 망해 학창시 툭하면 주먹 싸움을 벌이고 패싸움에 휘말려 양호실에 실려가고 형이랑 싸우다가 칼을 휘두르는 등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응?~~중학생때 전국일제고사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생때는 암기식 교육이 싫어서 상습적으로 야자에서 도망갔지만 성적을 늘 상위권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만 많은 학창시을 보내던 중 화를 달래기 위해 여러 책들을 보기 시작했고 그 중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셜록홈즈는 이후 표창원이 진로를 결정할때 [[경찰대학]]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경찰관 퇴직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으로 활동[* 일선 "범죄심리분석관"은 아니고 경찰관 시에는 수사관으로, 교수 시에는 범죄심리분석 지원을 위하여 파견된 형식으로 활동한 것이다.]하면서 본격적으로 [[강호순]] 사건, [[발바리]] 사건 등 많은 유명 주요 범죄사건 해결에 기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무한도전]] [[무도탐정사무소]]에 출연하여 멤버들에게 프로파일링을 짧게 강의하였으며, [[유재석]]을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등 중년의 폭풍간지를 보여주었다. 다른 멤버들은 '드디어 유재석도 혼나는구나' 하고 좋아 죽는 중이었다고.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범죄심리학은 경찰학(Police science)의 한 분파가 아니다. 정확히는 심리학에서 출발한 심리학의 응용분과이다. 물론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가 학계의 추세이지만 경찰학과 범죄심리학은 엄연히 다른 분야다. 오히려 경찰학은 예방과 인권보호를 중심으로 하기에 형사차(Criminal procedure), 범죄학(Criminology)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법학, 사회학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편 범죄심리학은 법정공방이나 피의자 및 피해자 증언.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통한 귀납적 추리를 하는 프로파일링과 연관되며 이들은 모두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등 심리학을 기반으로 응용된 분과이다. 물론 이런 분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학이라 하여서 심리학 부분이 없는 게 아니다! 즉, 범죄를 다루는 모든 분야가 범죄학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형법의 형벌론이라든가, 사회학의 일탈 이론이라든가, 심리학의 인지, 학습 분야라든가... 다만 현재 범죄학 중심이론들이 사회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학을 사회학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 야당 측 정치인 중에서 특이하게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22197|#]][[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0104502&viewType=pc|#]][[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6566.html|#]] 정치인이 아니던 시에 중립적인 스탠스를 보이려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정희가 다 잘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은 경제성장이며 독재하고 인권을 탄압한 것은 죄라며 선을 그었다. 굳이 말하자면 공과를 모두 인정하며, 그 중에서 공이 더 크다고 보는 정도일 듯.
          * 장기간 [[그것이 알고싶다]] 출연을 통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차분하고 침착한 이미지로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화를 안 내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단, 화를 내기 힘든 공적인 자리에서는 화가 나도 참다가, 끝나고 혼자 있을 때 '''욕(?)'''을 해서 스트레스 해소를 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대신 현역 경찰 시에는 취조 중 일부러 경찰을 놀리는 듯이 행동하는 무례한 범죄자에게 대놓고 화를 낸 적도 꽤 있다고 한다. --근데 이 정도면 화 잘 안 낸다는 이미지가 실제랑 꽤 맞는 거 같은데, 준석이만 보면 화가 난다 카드라.--
          * 서울 고려고등학교(現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재학 시 학교에 흡연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245|*]]
         경찰대학 교수 시까지만 해도 날카로운 분석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많은 인지도를 얻었으나 후술하게 될 사건들로 하여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호불호]]가 극명으로 갈린다.
         >범죄수사 차상 피해자 보호문제에 대한 고찰, 2003
         >한국과 영국의 경찰수사 차상 인권보호 장치에 대한 비교 연구 = A comparative study of police investigation procedure between Korea and England, focusing on 'human rights' aspect, 2007
  • 현진건 . . . . 14회 일치
         현진건의 할아버지 학표(學杓)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내장원경(內藏院卿)직을 지냈고, 다시 경운(炅運)·철운(轍運)·영운(映運)·양운(暘運)·붕운(鵬運)의 다섯 아들을 두었다. 그 중 경운이 바로 현진건의 아버지이며, 봉호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까지 올라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화국|전보사장]]을 지냈다. 그의 집안은 계몽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였으나 후에 [[친일파]]로 변하게 되는 [[윤치호]],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내무장관,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을 지낸 [[윤치영]], 4대 대통령 [[윤보선]] 집안과 이중으로 혼반관계를 형성하였다.
         처음 「희생화」를 발표하던 때부터 현진건은 이미 '빙허'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쓰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가 혼인을 올리던 1915년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1916년 사이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다소 허무주의적 표현이 없지 않지만 '허공(虛空)에 의지한다'는 이 말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적하게 표현한 말이었고, 고대 중국 [[북송|송]](宋)의 문인 [[소식 (북송)|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의 구 가운데 "넓기도 하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서(浩浩乎! 憑虛御風而)..."란 구에서 느낀 바가 있어 그대로 '빙허'를 자신의 아호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ref>「雅號의 由來(2)」 1930년 5월 1일자 『삼천리』제6호.</ref> [[1920년]] 11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27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문단』에 중편 「해 뜨는 지평선」을 기고하였다. 같은 해 1월 2일자 「동아일보」는 현진건을 "산뜻한 표현의 미를 가진 단편작가"로, "표현에 노력을 빼앗긴 반면에 그 내용적 가치가 너무도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노력을 높이 사면서, "그의 자연주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그의 제재 방면도 분명히 향토로, 민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끝맺고 있다. [[1928년]]에는 드디어 「동아일보」 입사 3년만에 사회부장이 되었다(~1936년). 사회부장 시의 현진건에 대해 당시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명성이 나돌았다고 한다.<ref>방인근도 그의 제목 붙이는 '민활하고도 묘미있게 붙이는 재주'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빙허회고기」, 『현대문학』 1962년 11월호.) 제목을 붙이는 것뿐 아니라 휘하의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지면에 적히 배치하여,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기사는 신속하게 취하는 언론계의 명인같은 존재였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러나 이 해 1월, 상하이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형 현정건이 체포되어 본국으로 이송되어 복역하였다.<ref>"원래 불면증이 있는 까닭에 어떤 때에는 무리하게 오전 삼시까지도 독서를 한다"(현진건, 「각 방면 명사의 일일생활」, 『별건곤』 17호, 1928. 12.)는 현진건 자신의 말에서 이때의 현진건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찾아볼 수 있다.</ref>
         {{인용문|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그 창작가는 제2의 경우를 더욱 중시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주제를 작정한 다음에 그 소재를 취하는데 현재와 과거를 가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작품상에는 현재라고 더 현실적이오 과거라고 비현실적이란 관념은 도무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압니다. 더구나 제2의 경우에는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등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ref>「역사소설문제」, 『문장』 1939년 12월. p.126~129.</ref>}}
         부친 경운의 첫 부인이자 현진건의 친어머니인 완산 이씨 정효(貞孝)는 진건을 비롯한 네 명의 아들을 낳은 뒤 막내 진건의 나이 열 살 때인 [[1910년]] 6월 13일에 죽고, 경운은 정선(旌善) 전씨를 후처로 맞아들여 또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진건의 큰형 '''홍건(鴻健)'''은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으로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을 지냈다. 한때 러시아 대사관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으며, 《각사등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문헌에 따르면 광무 6년([[1902년]])에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과<ref>《각사등록》 광무 6년(1902년) 7월 28일조. 이듬해인 광무 7년(1903년) 4월 23일(양력 5월 19일)에 면관되었음이 《승정원일기》에 수록되어 있다.</ref> 칭경시(稱慶寺)의 예식사무위원(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ref>《승정원일기》 광무 6년([[1902년]]) 6월 24일조. 그러나 광무 7년(1903년) 2월 28일(양력 3월 26일)에 해임되었다(《승정원일기》 같은 날 기록).</ref> 말년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미소공동위원회|미(美)·소(蘇) 공동위원회]] 시에 납북되었다는 설도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둘째 형 '''석건(奭健)'''은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아우 정건이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변호를 맡기도 했다. 셋째 형 '''[[현정건|정건]](鼎健)'''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하다.
         * [[이광수]] - 박종화의 일기에 보면, [[1922년]]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백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시 「악부(樂府)」가 실리게 되었을 때, 상해에서 《백조》를 받아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백조》지에, '귀순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백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광수는 이미 당시 춘원은 허윤숙이라는 여인과 동거하면서 일제에 이른바 '귀순장'이라는 것을 써서 독립지사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변한 상태였던 것이다.<ref>윤병로 「박종화의 삶과 문학」1998, 신효정「문학산책」2000, 역사문제연구소 편찬「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2003.</ref>
         *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술과 관련해 하루는 『조선문단』에 함께 작품을 기고하던 염상섭이나 [[김동인]]·나도향·[[양주동]] 등과 잡지사에 모였다가 저녁에 술을 마시는데, 술에 취해 저마다 "나는 조선의 [[괴테]]가 될 테니 자네는 (조선의) [[톨스토이]]가 되게", "나는 베르렌이 될테니 너는 [[안톤 체홉|체홉]]이 되라" 등의 주정을 늘어놓으면 곧잘 "그놈의 톨스토이, 괴테 좀 집어치우시오" 하고 큰소리치곤 했으며<ref>「문단이면사」(46) '방인근과 조선문단', 『경향신문』 [[1983년]] 12월 24일자 제7면 기사.</ref>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에는 명월관에서 있었던 사원들끼리의 송년회식 자리에서 「동아일보」 사장에게 "이 놈아, 먹어, 먹으라고."하며 술을 권하다가 급기야 뺨까지 때렸다. 하지만 사장은 현진건을 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다만 이때 현진건에게 뺨을 맞았던 동아일보 사장이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였는지 [[김성수 (1891년)|김성수]]였는지는 사람마다 증언이 다르다).
         *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우승규의 술회에 따르면, [[1936년]]의 물난리(병자년 수해)에 수재의연금을 모으러 동지들과 창의문 밖에서 가진 모임에서, 술이 취하여 "일본인한테 기대지 말고 우리끼리 자족자구(自足自求)하자고."하고 기염을 토하다가 공교롭게도 옆에 있던 일본 경찰로부터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에게 일본인을 '일본인'이라 부르지 말고 '내지인內地人'이라 부를 것을 강요했고 그러지 않는 자는 소위 '불령선인'으로 몰았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내지인'이라고 쓰고 그 위에 '일본'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던 것이다)<ref>「나로 만필」(48) '大水災와 日帝監視' 『동아일보』 [[1974년]] 11월 8일 제5면 기사.</ref>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 김상조 . . . . 13회 일치
         시작부터 강렬한 취임사로 화제가 되었다. 취임하면서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갑질근'과 함께 재벌그룹의 경쟁력 집중 억제 및 편법적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재벌개혁을 핵심 추진 과제로 내세웠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543302|전문]]
         6월 20일에 있었던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지난주 검찰이 공정위 역사상 유례없는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검찰을 신뢰하지만 직원들이 느끼는 좌감과 불안감을 극복하고 새 정부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소임을 수행해 낼 수 있을지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막막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http://v.media.daum.net/v/20180625203721773?rcmd=rn|*]]
         김상조 후보자의 아들이 하나금융투자와 BNP파리바은행의 인턴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사에 등장한 금융권 종사자는 김 후보자의 아들이 같은 인턴직에 지원한 사람들보다 대학교 시 학점이 낮음에도 합격했다는 점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하였고 익명의 금융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 고위직 자제들이 방학을 이용해 유수의 금융사에 단기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 것은 금융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http://mlbpark.donga.com/mp/view.php?u=http%3A%2F%2Fnews.kmib.co.kr%2Farticle%2Fview.asp%3Farcid%3D0923757051%26code%3D11151100%26cp%3Dnv|관련기사]] 관련 의혹에 대하여 김 후보자 측은 "자녀 인턴십에는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 논문 자기 표 논란 ===
         2000년 8월, 과거 자신이 연구자로 참여하였던 정부 용역 보고서를 그대로 베껴 논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627448#homec|관련기사]] 표이라 하면 남의 것을 베끼는 것만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것을 베껴도 표이다. 그리고 상당 부분 페이지가 그대로 옮겨졌다면, 현재 내용상으로는 표로 볼 수 있는 것이 맞는다.
         다만 당시를 기억하는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네 보고서 공개하기 어렵거나 혹은 연구자 업적에라도 도움이 되게 해준다고 따로 논문 내도 된다고 하던 시이었고, 그것을 조건으로 액수를 적게 주던 시의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기사 내용에도 2000년 3월부터 8월까지 총 5개월간 3명이 공동 연구비로 받은 비용이 700만 원으로, 월당 1인 비용으로 치면 50만 원이 채 안 되는 비용이기는 하다. 자료 수집 비용조차 제대로 안 주던 시의 이야기. 게다가 학계의 관행에 비추어 봐도 2000년 당시에는 자기표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건의 경우 악의적인 표이라기 보다는 한 보고서 가지고 두 번(용역보고서+연구논문) 활용했다는 것이 문제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경우가 흔히 용인되었다. 지금도 레퍼런스만 달면 용인해 주는 경우가 많다. 연구용역 발주기관에서 이를 용인해주지 않는다면, 미리 계약서에 연구논문 출판 불허를 명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용역비를 주던가 한다.
         한성대 교수 시인 2011년, 담뱃불로 인해 쓰레기통에 불을 낸 적이 있었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학교에 사과의 뜻으로 발전기금도 낸 것을 보면 재산피해에 대한 보상까지 마무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실화죄는 특별히 걸리는 것 없이 잘 넘어갔다.
  • 문근영 . . . . 13회 일치
         [[리즈 시]]에는 외모가 '''[[동안]]'''의 표준에 가까웠기에 아역 연기자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특히 [[송충이 눈썹]]의 임팩트가 강하다. 왠지 모를 중성적인 느낌도 강렬해서 다른 연기자인 [[정태우]]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다른 의견으로는 [[고현정]]의 어릴 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리즈시]]'''
         그리고 [[엠파스]] 모델로 활동하던 시 [[바니걸]] 컨셉을 잡은 것이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문근영 자신은 그전부터 아역 이미지를 벗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런 컨셉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문근영 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문근영을 여전히 아역 이미지로 기억하던 상황인지라, 대부분 문근영과 [[싱크로]]가 너무 맞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로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여 이미지 체인지.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의 언니의 시각에서 보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이다. 송은조를 연기했다. ~~나중에 구은조로 개명한다~~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은조가 엄마를 따라 대성도가로 이사하면서, 새 아버지와 새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대성도가 알바생 기훈([[천정명]])과 그리는 로맨스가 팽팽하고 애하다. 명대사 또는 명장면으로 기훈의 '은조야!' 은조의 '은조야ㅠ은조야ㅠ'오열씬, 은조의 '아..아버..아..아빠.. 아빠ㅜ 아빠ㅠㅠㅠㅠ'오열씬 등이 있다. 어째 같은 아역 출신 연기자인 [[강혜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연극 클로저에서도 위험한 분위기의 [[팜므파탈]]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담배]]피우는 연기 모습이 엄청나게 익숙해보여''' 문근영이 진짜 흡연 이력이 있느냐를 놓고 격론을 낳기도 했다. 다만 흡연 여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설령 사실이라 한들 성인의 흡연이 뭐가 문제랴마는...[* 사실 여배우들의 흡연은 꽤 많은 편이다. 故 [[최진실]]도 소문으로 흡연자라는 설이 꽤 돌았는데 결국 [[조성민]]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임신]] 중 흡연이 확인되어 진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담배를 피우는 컨셉 화보를 찍어 의혹이 커졌었는데, 비흡연자 중에서도 흡연 묘사 자체를 모방효과로 인해 달갑잖게 취급하는 혐연자들이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을 보면, 문근영이 비록 흡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흡연행위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반감을 갖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팬들 입장에서는 흡연 연출 자체만으로도 [[충공깽]].
         [[2010년대]] 들어서 이전보다 부진한 이유가 아역 이미지도 있지만, 작품 선택의 잘못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매리는 외박중]]'에 출연한 것과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 출연을 거한 것이 대표적. 이중 [[매리는 외박중]]은 본인이 직접 파트너인 장근석만 보고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이나 시청률보다는 동료인 [[장근석]]과 주거니 받거니 토론 하면서 대본 연구하며 연기한 것이 많이 남는 모양. (이전까지는 아저씨들과 일했다) 그리고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은 본인이 직접 거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없다.
         우여곡 끝에 존재감 없이 종영하고, 종방연 당일, 그동안 종방연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성실의 아이콘 문근영이 [[불의 여신 정이]]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는 팬들의 제보와, 마지막회를 앞두고 어이없게 죽음 테크를 탄 [[김범]] 또한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제보가 잇따르자 두 배우의 팬들은 각자 자기 배우가 얼마나 작품에 서운했으면 꼬박 가던 종방연도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꽁해 있는 것이냐고 작가와 제작진을 향해 성토했으나...
         === 표 논란 ===
         2006년 KTF의 음원서비스 도시락은 문근영을 내세워 직접 부른 "앤디자인"이라는 CF송으로 광고를 했는데, 이것이 가수 [[조덕배]]의 80년대 곡을 표했다는 설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문근영이 이 곡을 상업적으로 발매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당시 [[성균관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문근영 안티들이 공격하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사실 문근영이 "앤디자인"이라는 곡을 작곡했던 건 아니니까 이 사실을 가지고 문근영을 공격한다는 건 꽤 우스운 일이기야 하다. 조덕배 또한 표 논란이 불거지자 " 문근영 양에 맞는 곡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인터뷰했었다.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 생활을 등한시하기 일쑤인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학창시부터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편이었다. 수업마다 편차가 좀 크긴 했지만 대체로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려 하는 등, 일반 학생들에 비해 참여도가 크게 뒤지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2012년 1학기(문근영의 졸업 학기)에는 여러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 문근영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06년]]도만 해도 평범한 티셔츠에 월남치마 차림으로~~[[일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터라 자주 볼 수 있었다.[* 2012년 즈음에는 한겨울 학교에 야상+츄리닝 차림으로 도서관에 출몰해 고학번 ~~[[복학생]]~~ 포스를 풍겼다. 애석하게도 사진은 나돌지 않는다.] 학교에서 사인은 해주지 않았지만(같은 학생이니까) 성균관대 근처 식당엔 문근영의 사인이 많이 있다. 한때 [[미스터피자]] 광고를 했던지라, 그녀가 그룹 스터디 등을 할 때면 성대 근처 [[미스터 피자]]에서 항상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음식값은 공짜였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바람.[* 사실 '그 피자집 제가 가도 돈 다 내고 할인도 없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참 그 광고가 나가던 시은 모르겠지만.]
          * 바람의 식객이다. 전국 맛집고수들만 안다는 지역 명물 맛집을 가면 종종 그녀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고향인 광주와 학교인 성대 근처 맛집은 물론 제주도, 강릉, 인천 등 도처에서 그녀의 사인이 목격된다. ~~ 맛이 별로인 집은 사인과 함께 ^^ 이모티콘만, 맛있는 집엔 사인 밑에 '대박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등의 친한 코멘트도 함께 남겨준다카더라~~
  • 박경림(MC) . . . . 13회 일치
         || '''출생''' ||<(> [[1979년]] [[3월 30일]][*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78년 12월 8일생이다. 라디오 DJ 하던 시 본인이 어릴 때 약하게 태어나 출생신고가 늦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고, 2002년 말띠해, 2014년 말띠해 당시에 본인을 [[https://entertain.v.daum.net/v/20140102191109515|말띠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2001년 1월 9일 뉴논스톱에서 생일로 사주를 보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때 극중 박경림 스스로가 언급한 자기 생일이 12월 8일이었다. 물론, 학교는 1979년생들과 다녔다.] ([age(1979-03-30)]세),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관평길) ||
         그 이후 90년대 말부터 MBC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시작해, 드세면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사각턱'과 '특이한 목소리'[* 목소리가 꽤 걸걸하고 허스키하다. 본인 말에 의하면 학창 시에 [[운동회]]를 했을 때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이 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라고 한다.] 기믹을 앞세워 새로운 예능캐릭터의 트렌드를 이끌면서 상승세를 타다가 결국 2000년대 초반에 정점을 찍어 수많은 광고와 방송3사 인기프로그램들에 출연하다 못해 영화나 드라마에까지 출연하는 등 연예계 블루칩이 되었고, 결국 2001년 연예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 후에도 200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예능계의 인기스타로 활약했다.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반 ~ 20대초반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순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그 뒤 [[1대 100]] 498회에서 친인 [[이수영(가수)|이수영]][* 참고로 [[이수영(가수)|이수영]]은 25회 전반전, 412회 전반전에서 1인으로 나와 모두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412회 전반전 2단계에선 실수로 답을 잘못 누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과 같이 3차 도전을 했다. 이 날 이들은 7단계를 통과하면 100인들에게 커피를 쏜다는 약속을 했으며 8단계 1:23까지 생존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 상술된대로 인맥을 늘리고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해서인지, 고교시부터 활발한 외부활동으로 데뷔전에 이미 [[장동건]]을 자기 학교 행사에 초대하여 오게했던 적[* 다만 이 때는 아직 장동건이 지금과 같은 최정상급 인기연예인은 아니었다. 원래는 당시 최고였던 신성우를 섭외하려 했지만 실패해 같은 소속사의 신인이던 장동건을 섭외했다고 한다.]이 있었으며, [[이휘재]]와도 고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 특유의 입담과 좋은 성격을 어필하여 인기가 좋았다. 특징은 그 성대결틱한 갈라지는 목소리(...)[* 쇳소리에 가까운 허스키함으로 인해 종종 박경림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박경림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안 듣는 사람들도 좀 있다 카더라...안습(...)] . 개그맨 [[박수홍]]과 콤비를 이루어 라디오 프로그램인 '박수홍-박경림의 FM 인기가요'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전성기 시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반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남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남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남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남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결혼 후 예능에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이는 상태. 애엄마가 돼서 그런 듯하다. 케이블에 간혹 드문드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코미디 얘기만 얘기하던 시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선 8대 [[신]] 다음으로 여신 라인의 수장을 차지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울궈먹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 전성기 시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슴이 없었고 과감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으나 복귀 이후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여자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학시 찍은 사진 중에 [[마이크 무시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카더라]]. 유학 당시에 [[서재응]], [[김병현]]과의 인맥을 쌓았다. 하지만 두 선수가 그녀와의 만남 이후 부진을 겪자 당시 야구 이야기만 하던 시의 [[야갤]]에서는 이를 '박경림의 저주'(...)라고 부른다.
  • 박화요비 . . . . 13회 일치
         || '''출생''' ||<(> [[1982년]] [[2월 11일]] [[전라북도]] [[군산시]][* 아버지가 [[대한민국 군무원]]이라서 3살 때 [[경상북도]] [[포항시]]로 이사 가고 어린 시은 포항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도 포항에서 다니다가 전학하여 졸업했다.][* 데뷔 초에는 창법이나 음색만 보고 [[윤미래]]처럼 [[미국]] 본토 교포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았으며 평상시 말하는 스타일도 우물쭈물 어리바리 컨셉으로 웅얼거리는 게 많아서 아직까지도 교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본명은 박미영[* [[마망|마골피]]와 본명이 같다.]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했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 ~~힙합이었으면 화요합~~ (출처: [[https://youtu.be/vvcat903c44]],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7년 11월 중순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도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이 바뀌어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리즈 시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히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친인 [[거미(가수)|거미]]의 2014년 6월 10일 자정 공개된 새 미니 앨범에 [[휘성]]과 함께 자작곡을 선물했다. 자세한 것은 [[/작사 목록, 작곡 목록]] 항목 참조.
         대학 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클래식을 접고 실용음악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1집 앨범이 나오던 시부터 집안의 반대도 어느 정도 누그러져갔다고. 그녀는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피아노를 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포항문화방송|포항MBC]] 라디오 '별밤 뽐내기'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상을 타고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박화요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일본]] 진출을 위해[* '박화요비'의 '박화'가 '[[바카|バカ]]' 로 들릴 수 있다. ~~[[몬데그린|바보요일]]~~] 예명을 화요비로 바꿨다. 1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창력과 성숙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며, [[박효신]] 등과 함께 국내 R&B 아티스트의 대표주자였다. 당시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의 이른바 '3박' 시. 당시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 환상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고, 같은 소속사였던 [[박효신]]과의 듀엣곡 라이브도 선보였다. 본인의 노래 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을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했다. 화요비의 유명한 팝송 소화 능력은 데뷔 때부터 증명된 셈.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정에 달했던 시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화요비는 흔한 성대결이 아니라 유착성 '''성대낭종'''에 가까워 혹을 제거했기 때문에 음색이 변했을 수 있으나, 수술 이후 화요비의 음색은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더 맑고 얇게 변화했다. 그 이후의 점점 소울풀해지고 굵어지는 음색의 변화는 본인의 음악적 지향성의 변화에 의한 것.
          * 성대결 이후 그 어렵다는 'run to you' 는 화요비가 행사장에서 가장 즐겨 하는 선곡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2015년 기준 과거 창법으로 부른 것 같은 노래[* '그 사람', '마주보기', '나의 우주' 등.]를 들어봐도 100% 옛날 2, 3집 시의 목소리가 나진 않는다. 앨범을 낼 때마다, 노래를 바꿀 때마다 음색이 확연히 달라지는 후술할 화요비의 특성과 지나온 세월이 긴 만큼 1~2집 때의 음색을 다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일 듯 하다.
          * 은근히 [[문신]]을 많이 했다. 팔과 다리에 새긴 문신은 성경 구이라고.
  • 유승민(정치인) . . . . 13회 일치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칠곡군]]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고 주장하며 사드 2~3포대 추가배치를 주장하였고, 후에 [[성주군]] 배치로 결정된 7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36495|유승민 "사드,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연합뉴스)]] 또한 사드 문제로 인해 방중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매우 부적한 처사이며 굴욕외교를 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태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반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식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 소장파 정치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권영진(정치인)|권영진]], [[남경필]], [[원희룡]] 등이 각각 대구시장,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로 가게 되면서 중앙정치로 멀어짐과 때를 같이하여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상징성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념적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 스스로는 공화주의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흔히 자유주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상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이 분류도 정확한 것은 대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며, 안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친이세력과도 사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딱히 그가 정계에 입문한 뒤에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사상적 노선에서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화주의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이다.
         이 원내대표 연설문은 당시 여의도에서 '다시보기'열풍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격적이였고, 당시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2016년 국회의원 출마선언을 했던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이 연설문의 일부를 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언론인 출신인데 제정신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다.
         >'''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 주장으로 말미암아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시 유승민은 박근혜 정부와 정면 충돌하게 되고 그의 정치적 험로를 예고하게 된다.]
         충격이 컸던지 이때부터 유승민은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을 얼마두지 않는, 최소한의 보좌관만 데리고 일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15년 모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의 사무실 직원들까지 합해 유승민은 총 15명가량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으로 둘 수 있지만, 그 반도 안되는 인원만 고용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하태경]] 의원이 "유승민이 원내대표였던 시에는 지금보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썰전]]에서 밝혔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새누리당|여기]]는 아직 독재물이 덜 빠졌다고 팩트폭격을 추가로 가했다~~
          * 유년 시 야구를 보기 위해 가출했던 적이 있다. [[https://www.sports-g.com/2017/05/02/%ec%95%8c%ea%b3%a0%eb%b3%b4%eb%a9%b4-%eb%8d%94-%ec%9e%ac%eb%b0%8c%eb%8a%94-%eb%8c%80%ec%84%a0-%ed%9b%84%eb%b3%b4%eb%93%a4%ec%9d%98-%eb%8d%95%ec%a7%88-%eb%9d%bc%ec%9d%b4%ed%94%84|해당 기사]]
         [include(틀:표, version=1892~1898, source=한겨례)]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3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6화]] |||| '''대가련 칠드런/457화''' |||| [[대가련 칠드런/458화]] ||
         [[대가련 칠드런]] 457th sense. '''무법자들 (12)'''
          * 바벨의 전 에스퍼를 상대로 격전을 치른 효부 쿄스케. 간신히 도망쳐 회복하고 있는데 소년시의 사카키 슈지와 만난다.
          * 사카키는 친하게 굴어 방심했지만 곧장 츠보미 후지코를 불러온다. 이후 역사대로 효부는 수감자행.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을 배푸는데, 소년시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태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이때 효부는 힙노를 발생시켜서 간단한 정신간섭도 병행하고 있지만 간한 마음과 달리 효과는 미지수. 설상가상으로 블랙팬텀의 새로운 함정이 접근한다. 잠수함 언터쳐블 엠프렌스에 탑승 중이던 쿠구츠 타카시가 잠수함에서 긴급하게 무전하는데 블랙팬텀이 발사한 미사일이 접근 중이다. 상공에는 폭격기까지 대기 중.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 마기는 효부를 공격한다. 효부가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막겠다고 한 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이라고 하하며 자신은 효부를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그를 죽일 수 있다며 살의를 드러낸다. 카노 모미지가 효부를 휘감은 탄소섬유를 끊어버리며 말리자 이번엔 모미지를 공격, 손에 관통상을 입힌다. 후지우라 요우는 모미지의 부상에 충격을 받는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정인숙 (1945년) . . . . 13회 일치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남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남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반 만에 병사하고, 살아남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정인숙은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출처|날짜=2014-3-2|자존심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 그녀에게는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 하나를 따로 두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정도환은 본래 자식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정인숙의 오빠들 중에는 자신들에게는 차비도 짜게 줄 만큼 인색하면서 딸 하나 둔 것을 버릇없이 길렀다며 불평불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터울 차이가 났던 두 오빠는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였으나, 정인숙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 학창 시 ====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밤이면 이름 있는 사람들과 접하고 낮과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필동 변두리의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고, 바로 위 오빠인 [[정종욱]]은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하였다. 이곳에 살 때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가끔씩 아버지 정도환이 방문하였으나 딸의 집에 자주 출입하던 정계 인물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도환은 주로 집을 비우거나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한다. [[정일권]] [[국무총리]]가 몇 번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담으로 전해지게 된다. 정관계 최고의 인사들과 어울리다 서너 번의 임신중 수술을 받게 된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과도 술자리를 가졌다.
         한동안 선운각의 얼굴마담으로 주가를 높이던 정인숙은 [[1968년]] [[6월]] 아들 성일을 낳았다. 그리고 이 해에 그녀는 해외로 나가기 위해 갑자기 수속을 밟았다.<ref name="hp104">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4페이지</ref> 사후 시신 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녀는 임신중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유흥업소에서는 보통 접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인숙은 아기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유력 인사였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정종욱은 사건 직후 "당시 셋째, 넷째 가라면 분해할 정도의 권력을 휘둘렀던 P씨"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4페이지</ref> 그러나 그의 요청은 거당했다. 수감과 출소 이후에도 정종욱은 억울함을 하소연하였고, 정일권과 여러 번 만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인용문|어제 이호 법무가 올라 오길래 무슨 법무 행정의 주요 문젠가 했더니 느닷없이 웬 강변3로 여자 살인 사건이란 말야(웃음소리). 대통령이 여자 살인 사건을 갖고서 모처럼 안 하던 결심을 해 갖고서 전 각료들을 국회에 내보내 자진 보고케 하라고(웃음소리). 질문이나 하면 그때 가서 거짓말을 하든지 말든지(웃음소리). 무슨 놈의 오빠가 여동생의 난륜(亂倫)을 분개해 가지고 권총을 쏘았다고.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 문제를 참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고하느냔 말야(웃음). 미인사건이라니까 여러분은 흥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친은 없어도 좋지 않느냐 이거요. 국회의원의 질문이 나올 텐데 대통령 지시로 나온 분께서 하필 그 정인숙이라는 괴미인 살인 사건을 장시간 보고하니까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이겁니다.<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9~200</ref>}}
         ** 자매 : 정옥지(요)
         비서를 지낸 또 다른 김 전 의원 역시 기자의 질문에 “어쨌거나 정확한 [[DNA 검사]]를 하지 않았으니 (친아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정 씨가 넷째외삼촌과 함께 돈을 얻을 요량으로 정 전 총리를 직접 지목하면서 친자확인소송을 하느니 소동을 벌여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ref name="ilyo01"/> 또한 그는 “정 씨(정성일)는 적치 못한 처신으로 외가는 물론 정 전 총리 측과도 완전 결별하다시피 했다. 91년 그가 한국에 와서 친자확인소송을 한다고 했을 때 정 전 총리 측에서 거액을 주고 일단 무마시켰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또 한국에 나타나서 방송 인터뷰니 뭐니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 정 전 총리 측에서 아주 고개를 흔들 정도로 불쾌해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상종해선 안 될 놈’이라는 막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정 전 총리의 측근인 신 전 의원은 외유 중이어서 통화가 안됐다.<ref name="ilyo01"/>
         [[정성일]]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정 전 총리와 만나지는 못했지만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눈물의 부자상봉을 했으며, 외삼촌 등의 만류로 친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 소 취하를 스스로 했다’고 밝혔을 뿐 금전적 요구나 지원 등에 대해서는 일 언급이 없었다.<ref name="ilyo01"/> [[정종욱]]은 소송 취하 배경에 대해“조카 정씨가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했다”며 “그를 살려야 가족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소송을 취하했다”고 말한 바 있다.<ref name="ilsa01"/> 소송 취하 배경에 대해 [[2007년]] [[4월]]의 교포사회 한 언론은 보도에서 “정 씨와 사귀던 한 여인이 ‘정 씨가 91년 친자확인소송 취하로 80만 달러를 생부에게 받았다는 것만 들었다’고 전화인터뷰에서 밝혔다”는 진술을 인용해 보도했다.<ref name="ilsa01"/>
  • 희빈 장씨 . . . . 13회 일치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은 [[사역원]] 봉사를 재직하였지만 일찍 은퇴하고 집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음률을 즐기다가 장씨가 막 11세가 된 1669년 1월 12일에 사망했다. 그녀보다 19세 연상인 이복 오빠 장희식은 18세의 나이로 1657년 식년시 역과에 장원을 하여 사역원 직장(종7품)이 되었지만 곧 사망하였다. 장희식의 아내 이씨는 충장군 이천연의 딸이다. 할아버지 장응인은 《통문관지》에 행적이 기록된 [[조선 선조|선조]] 때의 명역관으로, 생전 최고 관직이 정3품 [[첨지중추부사]](무관직)에 이르렀고, 전쟁 중에 무관으로 참전한 바 있으며 시재(詩才)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선(善)을 가훈으로 삼아 이 단어를 쓴 종이를 항상 품에 넣고 다녔다고 전한다. 할머니 남포 박씨는 산학 별제 박심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윤성립(尹誠立, 1689년 정경으로 추증)은 일본어 전공의 사역원 첨정(종4품)<ref group="주">사역원 역관의 품작은 정3품 정(正) 1명으로 시작하여 아래로는 종3품 부정(副正) 1명, 종4품 첨정(僉正) 1명으로 내려간다.</ref> 이었으며, 1653년에도 생존했던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있다.
         1680년 10월 26일, [[조선 숙종|숙종]]의 초비(初妃) [[인경왕후]] 김씨가 천연두로 요했다. 장씨가 숙종을 모시게 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숙종실록에 [[인경왕후]]가 죽고난 후에야 비로소 숙종을 모셨다는 기록이 여럿 존재하며, 11월 이후 혜성이 나타났는데 장씨가 숙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무렵이 이때라는 기록이 존재하니 그녀가 숙종의 승은을 입은 시기가 [[인경왕후]]의 죽음 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흔히 장씨가 출궁된 당시에 궁핍한 삶을 살았고, 숭선군 부인 신씨와 [[장렬왕후|자의대비]]를 자주 방문하여 다시 입궁하길 간히 소원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 해석에는 오차가 존재한다. 출궁된 궁녀는 왕궁 출입은 고사하고 엄중한 감시 아래 사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장씨가 출궁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당숙부인 [[장현 (조선)|장현]]과 장찬 형제가 유배형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이는,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숙종 15년(1689) 2월 1일에 [[인현왕후]]의 외가 친척이기도 한 [[송시열]]이 이미 종묘에 고한 원자 정호를 철회하라는 비판상소를 올리자 [[조선 숙종|숙종]]은 진노하여 [[송시열]]을 치죄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서인]]으로 이루어진 [[승정원]]에서 명을 받들지 않았다.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김만중]]의 치죄를 명할 당시와 흡사한 배경<ref group="주">[[김만중]]을 추포하여 문초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승정원에서 항명하여 전지를 봉입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은 입직한 승지에게 전지를 쓰라고 명하였지만 붓이 없다는 핑계로 거되었으며 사관 [[송상기]]는 붓을 빌려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거부했다.</ref><ref>숙종실록 13년(1687 정묘 / 청 강희(康熙) 26년) 9월 11일(병술) 3번째기사</ref> 이었기에 [[조선 숙종|숙종]]은 분개하여 삼사와 [[승정원]], [[사간원]] 등 왕의 최측근 요직에 있던 서인을 파직하고 경신환국 때 실권하여 은신 중이었던 [[남인]]을 조정으로 불러 교체해버린다. 동시에 [[조선 숙종|숙종]]은 2월 2일 장씨의 선조 3대를 정승으로 추증(追贈)했다.<ref group="주">추증은 위로 올라갈수록 한 등급씩 감하는 것이 관례여서 장씨의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張炯)에게 영의정을 증직하면, 조부에게는 종1품 찬성(贊成)을 증직해야 했다. 숙종은 “사체(事體)가 다름이 있으니, 모두 의정(議政)을 증직하라”고 명해 [[장형 (조선)|장형]]은 영의정, 장수(張壽)는 좌의정, 장응인(張應仁)은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3대가 모두 정승에 증직된 드문 경우였다.</ref> 다음 달 3월엔 그녀의 외조부인 일본어 역관 윤성립을 2품 정경으로 추증하고, 외삼촌인 윤정석에게 사포별제<ref group="주">품계로는 6품에 이르나 녹봉이 없는 무록관이다.</ref> 직을 내려 장씨가 더이상 비천한 역관에 불가한 가문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숙종실록에는 장씨 소생의 왕자가 9월 16일에 사망하였는데 태어난지 열흘이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6월에 이미 [[산실청]]이 설치되었으며 7월 19일 중궁전(장씨)이 해만(解娩: 해산)한 후 약방(藥房)과 정원(政院), 옥당(玉堂)이 대전과 중궁전의 안부를 물었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19일 (무신) 원본342책/탈초본18책 (10/14)</ref> 다음 날인 7월 20일, 중전 장씨의 해만 상태와 산후 기후가 편안하다는 보고가 있으며 2품 이상 관원들이 문안을 올렸다. 22일에는 장씨의 유즙(乳汁: 젖)이 나오지 않아 약을 의논하는 기사가 있다. 7월 26일에는 산실청 의관이 입진하여 중궁전(장씨를 말한다)이 해만(解娩: 해산)한 지 제7일이 되었으니 산실을 철파(撤罷)하겠다는 계를 올렸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26일 (을묘) 원본342책/탈초본18책 (8/13)</ref> 같은 날 [[조선 숙종|숙종]]은 산실청 전(前) [[도제조]]와 [[우의정]] 및 여러 관원과 의관들에게 각 [[말]] 한 필과 안장을 하사하였다. 다음 날 27일에는 산실청 담당 의관이었던 [[김유현]] 등에게 숭록(崇祿: 종1품 문무관 관직)을 제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대로 수령(守令)<ref group="주">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도사]],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감]], [[현령]] 따위를 이른다.</ref> 직을 제수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숙종]]이 의관에게 종1품 숭록의 위를 제수할 만큼 대군의 탄생을 각별히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ref group="주">이 기록 역시 숙종실록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반면에 [[숙빈 최씨]]가 [[조선 영조|영조]]를 출산하자 [[조선 숙종|숙종]]이 [[호산청]] 담당 내시와 [[의관]]에게 말을 하사한 것은 강조하여 기록하였다.</ref> 이러한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장씨가 출산한 왕자가 9월 10일 경에 탄생된 것으로 기록한 숙종실록의 기사가 허위임을 증명한다.
         대군 성수는 탄생한지 100일이 되지 않은 9월 16일에 돌연 급사하였다.<ref group="주">만일 성수가 정식으로 대군 책봉식을 거친 후에 사망했거나 갑술환국이 발생한 이후에 사망했다면 인현왕후가 복위하여 장씨가 후궁으로 강봉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법도에 따라 적서 상관없이 자동으로 적처(왕비)에게 입적되는 후계자(왕세자, 원자)와는 달리 그 외 자녀는 생모의 처첩 여부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장씨를 후궁으로 강봉하려면 성수도 함께 대군에서 군으로 강봉하거나 장씨와 성수를 함께 폐서인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ref> 조정에서 신생대군(新生大君)의 사망에 대한 원인이 논의되었다. 6월부터 산실청이 세워지고 산모인 장씨가 불안한 상태임이 거론되었는데 출산을 하고난 이후에도 장씨의 상태가 불안하다는 기록이 있으며 9월 16일 신생대군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상태가 미완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난산]]이었거나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숙종]]은 조정 백관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토로했을 만큼 둘째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1692년, 전 해(前年)에 조졸한 신생대군방에 수된 영토와 녹봉을 거둘 것을 주청하는 건의가 반복되어 허가되었다.
         1693년 2월, 중전 장씨의 머리 부위<ref group="주">승정원일기 본문에는 뇌후(䐉後)로 기록되어 있다.</ref> 의 환(癤患: 부스럼증)과 창증(瘡症: 종기)이 감소하였다는 기록과 의녀의 시침 기록이 승정원일기 중에 다수 존재하며, 숙환(=오랜 병, 고질병)으로 담화(痰火)<ref group="주">효종의 비(妃) [[인선왕후]]가 담화로 사망했다.</ref> 가 있어(宿患痰火之症) 1694년, 후궁으로 강봉되기 직전까지 치료법에 대한 논의와 뜸을 받은 기록이 존재한다.<ref group="주">왕후와 세자빈의 중병은 국사(國事)로 간주되어 조정에서 논의되기에 기록으로 남지만 후궁의 병은 논의되지 않는다. 따라서 장씨의 병이 후궁으로 강봉된 후에도 지속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1701년 무고의 옥으로 궁녀들이 국문을 받을 당시에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언급이 있다.</ref>
         갑술환국이 발발 후 12일 째가 된 1694년 4월 11일, [[조선 숙종|숙종]]은 돌연 [[장희재 (조선)|장희재]]를 긴급구속하고, 훗날 길일을 잡아 서궁([[덕수궁]])으로 입처할 폐비 민씨([[인현왕후]])의 서궁 입처를 길일과 상관없이 당장 다음날로 할 것을 명하며 민씨의 사가에 수직(호위)를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폐비 민씨가 서궁으로 입처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민씨가 스스로 죄를 간히 뉘우치고 있으며, 두 자전(慈殿: [[장렬왕후]]와 [[명성왕후]])의 삼년상을 함께 보낸 아내이니 쫓아냈던 것은 지나친 처사<ref group="주">삼불거를 뜻한다. 칠거지악을 범한 아내일 지라도 삼불거에 해당되면 소박할 수 없으며, 이미 소박하여 새로이 혼인을 하였더라도 전처가 국가에 소송하면 이혼이 취소되어 새로운 아내는 첩으로 강등되거나 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ref> 였다."며 민씨를 중전으로 복위하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는 것은 고금을 통하는 의리이다"며 중전 장씨의 왕후새수(王后璽綬)를 거둬 희빈(禧嬪)의 옛 작호를 돌리고 거처를 옛처소인 창경궁 취선당으로 옮기라는 비망기를 내린다. 이에 대해 환국을 위해 투합했던 [[노론]]과 [[소론]]이 강경히 대립하게 되는데, 이는 [[노론]]은 [[인현왕후]]의 복위를 목적했고, [[소론]]은 희빈 장씨를 왕비로 둔 채 [[인현왕후]]를 폐서인인 상태로 별궁에 모셔 편안한 여생을 맞기만을 목적했던 탓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공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기에 지금껏 《인현왕후전》등 민간에 널리 보급된 소설과 야사에 묘사된 장씨의 최후의 모습이 정설로 신봉되어 왔으며, 정사가 공개된 후에도 죽음의 과정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사사 역시 자진의 한 형태이니 사사된 것이다'로 충되어 해석되는 실정이다. 또한 1961년 《인현왕후전》으로 극본을 짠 정창화 감독의 방화 《장희빈》이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아류작인 영화·드라마·서적 등이 연이어 만들어지니 [[권선징악]]의 결말을 원하는 민중들은 요녀 장희빈의 비참한 죽음만을 기억하게 된다.
         장씨의 상례부터 장례까지의 모든 차는 궁에서 주관하고 치루어졌으며 종친부 1품의 예로 받들어졌다.<ref group="주">숙종의 다른 후궁인 명빈 박씨와 숙빈 최씨의 상장례는 법도대로 궁 밖 사가에서 이루어졌다.</ref> 그녀의 무덤 역시 여느 후궁들<ref group="주">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무덤은 아들인 연잉군과 환관 장세상, 풍수에 밝은 노비 목호룡이 구하였다.</ref> 과는 달리 친정 식구나 궁속 환관이 구한 것이 아니라 왕실 종친인 금천군 이지와 예조참판 이돈이 지관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니며 구하였다. 경기도 양주 인장리로 결정된 장씨의 묘는 숙종의 명으로 종친부 1품의 예<ref group="주">사방 100보의 규모로 경내에 농사와 목축을 금한다. 품계가 한 등씩 내려갈 수록 10보씩 감소된다. 문무관은 종친부와 비교해 10품씩 감하여 정1품은 90보, 6품은 40보로 한정되었으며 7품 이하는 6품과 같다. 왕실의 여인을 제외한 외명부 여성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ref> 로 단장되었다. 장씨의 장례 역시 여느 후궁의 장례처럼 3월장<ref group="주">세상을 떠날 달을 포함한 세 번째 달에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 짧게는 30일, 길게는 80여일이 장례기간이 되는데 숫자가 클 수록 상급이다. 4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이들의 장례이며 후궁, 왕자녀는 물론 왕세자 부부의 장례 또한 3월장으로 치루어진다. 1718년 3월 9일에 사망한 숙빈 최씨는 5월 12일에 장사됨으로써 정상적인 후궁의 장례인 3월장을 치렀다.</ref> 으로 치루어지지 않고 4월장으로 치루어졌는데, 왕과 왕후의 장례인 5월장보다 단지 하루가 부족한 1702년 1월 30일에 치루어졌다.<ref group="주">이 또한 후궁의 위, 왕후의 아래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왕세자의 생모인 탓에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와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도 3월장을 치렀던 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ref> 장례식 전날에 세자가 친림하였고, 수일 전부터 입관 당일까지 궁에서 식을 거행하였다.
         1717년 12월, 장씨의 묘가 용맥(龍脈)은 있으나 혈(穴)이 없고 수법(水法)도 합당하지 못하여 완전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함일해의 상소가 올라왔다. 1718년, 숙종은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장리 묘의 천장(=이장)을 명하였다. 예조참의가 지사로 이름난 자 10여 명을 대동하여 1년 간 기내(畿內) 길지(吉地)를 간심한 끝에 가장 평가가 우수한 광주 진해촌으로 와병 중인 숙종이 직접 택점하였다. 1719년에 치루어진 천장식 역시 궁에서 주관하였으며 숙종이 왕세자 부부에게 망곡례를 명함으로써 노론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ref group="주">인장리(仁章里)에서 영구(靈柩)가 발인(發靷)하여 진해촌(眞海村) 신산(新山)으로 향하였는데, 세자가 경현당(景賢堂)에서 망곡(望哭)하고, 세자빈(世子嬪)도 궐내(厥內)에서 망곡례(望哭禮)를 거행하였다.『조선왕조실록 숙종 45년 4월 5일 기사』당시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세자(경종)가 정사를 보던 경현당에서 망곡례를 하는 것을 맹비난하던 노론은 경현당은 대리청정 업무를 보는 곳으로 곧 법전(法殿)과 차이가 없는데 세자의 사친(희빈)을 위한 예이 지나치다고 비판</ref> <ref group="주">이러한 숙종의 처사는 숙종의 사후에도 논란이 되어 영조시대에도 경종이 숙종의 적자이며 희빈 장씨가 숙종의 제2계비로 기록한 서적이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경종이 즉위한 후 유학 조중우는 숙종의 처사가 아들인 경종이 희빈 장씨를 추존하라는 은밀한 뜻이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왕조실록 경종즉위년 7월 21일 기사』 이에 반해 영조가 즉위한 후 노론은 숙종의 처사를 다시 거론하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영조1년 3월 25일 기사』</ref> 천장지 또한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종친부 1품의 예장으로 단장되었으며 청룡(靑龍: 주산(主山)의 좌향(坐向)에서 본 좌측의 산맥)에 앞서 자리하고 있던 종친의 묘와 많은 민전도 모두 값을 치루어 옮기도록 하였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12회 일치
         우선은 그러므로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동맹부터 구해두는게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와 폴란드, 아라곤등이 여기에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 다만 최신패치부터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을 거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럴경우 헝가리마냥 초반에 사기장수가 없는 폴란드는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재시작하자(...)] 구호기사단에 걸어둔 독립보장은 괜히 오스만과의 1대1맞다이를 강요하게 하니 관두면서 본토와 달마티아 지방을 육로로 연결하는데 주력하자. 아, 그리고 상인공화정은 영토가 20개이상이 되면 부패도 (corruptions)가 오르기에 그거 줄인다고 수입이 줄어든다. 1.16이후로 외교력 100을 소모해서 상인공화정도 정부체제를 바꿀 수 있으니, 적당히 확장해뒀다 싶으면 바꿔두자.[* 부패도 감소비용을 없앨수도 있으나, 테크비용이 늘어나기에 최종적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통칭 역설국. 제작사가 스웨덴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하다. 국가 이념도 전투쪽에 몰려있어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뜷고 러시아화가 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편. 초반에 덴마크한테 동군연합되버린 상태로 시작하므로 적한 시기에 적하게 독립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스웨덴이 아무리 북유럽 삼국중 가장 강력해도 덴마크+노르웨이를 1대1로 이기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그러므로 덴마크가 라이벌로 지정한 국가에게 독립지원을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추천조합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혹은 잉글랜드+모스크바등.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것도 좋지만 마레 노스트럼(1.16)패치이후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가 상당히 뼈아파서 그냥 폴란드가 들고 있는 프로이센지방을 뺏어서 발틱노드나 장악하는게 더낫다.
         장미전쟁이 끝나면 정부체제가 고유 정부체제인 잉글랜드 왕정(English Monachy)으로 바뀐다. 효과는 행정 22렙이후에 뜨는 입헌 군주정이랑 비슷한 편.그외에 영토상황으론 백년전쟁도중이란걸 표현하기 위해 프랑스지방에 영토를 들고 있으며, 포르투갈이랑 시작시 동맹상태다. 근데 문제는 잉글랜드가 백날 힘을 써봐야 프랑스 육군을 대 못이긴다는거(...) 플레이방식이 둘로 나뉘는데, 우선은 대륙의 모든 영토를 프랑스에게 팔고(...) 조용히 식민지 개척이나 준비하는 것과 속전속결로 프랑스를 처리해서 유럽 최강으로 나아가는것.
         우선 전자야 어렵지 않다. 어찌됬든 전자의 경우도 브리튼 섬 통일은 무조건 하게 되있기에 스코틀랜드를 독립보장하는 프랑스와의 전쟁은 불가피한데(...) 그냥 해군으로 틀어막으면 된다. 시작시기든 어떤 시기든 프랑스 해군은 대로 잉글랜드 해군을 이길 수 없다는걸 프랑스에게 상기시키면서 도버 해협을 틀어막자. 단 한번이라도 프랑스 육군의 상륙을 막으면 스코틀랜드는 간단하게 잉글랜드의 맛집으로 변한다. 아일랜드야 뭐 9개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가 서로서로 사이도 나쁘니 각개격파시키면 되고... 그 이후에야 천천히 식민지 개척을 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식민지 개척에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빠른속도로 북아메리카부근에 식민지를 건설하자. 굳이 구대륙으로 가면서 프랑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면 스웨덴 독립전쟁에 끼어들어 북유럽쪽으로 가면 된다.
         후자의 경우가 조금 어려운데, 우선은 적히 프랑스와 사이가 안좋으면서 잉글랜드의 부족한 육군을 보충해줄수 있는 나라가 필요하다. 아라곤, 오스트리아, 카스티야정도가 물망에 오르는데 문제는 얘들이 잉글랜드를 라이벌지정하는 경우가 있다는것(...) 스코틀랜드는 얼마 안가 프랑스와 동맹하면서 귀찮게 할 가능성이 높으니 초반에 공격해서 속국화 시키고, 이베리안 웨딩이 뜨길 기대하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랑 동맹하기전에 미리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막는것도 좋다. 프랑스보다 프로빈수 수가 많고, 병력이 더많을경우에 왕위주장 미션이 뜨는데, 이것만 성공시키면 그때부터 두려울게 없다. 오스트리아고 스페인이고 다 날려버리자.
         1.19 패치 이후에 '메인 할양'이벤트가 생겼다. 헨리 6세가 앙쥬의 샤를로트와 혼인하는 대신 메인을 프랑스에 할양하는 실제 역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벤트로, 이를 거하면 프랑스에 잉글랜드가 '왕위주장'명분으로 공격하게 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건 프랑스가 방어측이기에 프랑스는 동맹들 다끌고 올 수 있지만 잉글랜드는 공격측이기에 못그런다는거(...) 1대1로도 못이기는걸 1대다로 싸우면 대로 못이기니 얌전히 주거나 아니면 프로방스에 팔아버리거나(...)하자.
         확장방향은 우선은 노보고로드 정복미션을 얻어내서 노보고로드를 치고, 그 이후에 폴-리투 동군연합이 뜨면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후에 폴란드랑 사이가 안좋은 국가랑 동맹을 해둔뒤 폴란드를 치는것. [*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경우엔 리투아니아를 패면 된다.] [* 다만 중간중간 틈틈히 골든 호드(킵차크 칸국)과 카잔등을 패면서 남진역시 해두어야 한다.] 이 경우엔 오스트리아랑 헝가리, 오스만정도가 물망에 오른다. 그이후 확장방향으론 스웨덴을 쳐서 북유럽쪽으로 확장하거나, 폴란드에게서 단치히등 프로이센지방을 뜯어내 발트해노드를 장악하는 방향, 그리고 오스만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뺏어 진짜 [[제3의 로마]]가 되는 방향(...)등이 있다.
         본격 동유럽 깡패국가. 시기상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랑 동군연합 맺고 신나게 깡패질 할때라 매우 강력하다. 거기다가 국가이념중에 기병전투력 33퍼센트 추가가 달려있어서 [* 그다음으로 강력한 헝가리기병 전투력증가가 20퍼다...다만 이쪽은 국가전통이라 처음부터 달려있다는게 차이점.] 올기병 플레이[* 보병은 버리고(사람에 따라선 포병까지) 기병만으로 플레이하는것]에 가장 추천되는 국가기도 하다. 선거군주정 특징을 잘이용해 오스트리아를 뛰어넘는 동군연합의 제왕이 될수도 있고, 이후에 대홍수이벤트까지 끝내면 다른 나라보다 몇 십년 빨리[* 다만 프랑스보단 느리다. ~~주인공 보정~~] 대군주정이 될수 있다.
         물론 두번째 선택지를 고를 사람은 없을것이므로(...) 얌전히 역사적인 선택지인 첫번째를 고르자. 마챠시 1세의 능력치로 455로 상당히 좋은편이므로 잘써먹을 수 있을것이다. [* 다만 오스트리아와의 역사적 친구보정이 사라지는게 조금 단점이긴 한데, 어차피 오스만과 폴리투를 제거하면 헝가리의 칼끝은 오스트리아쪽으로 가기때문에...] 만약 섭정이 끝나자마자 마챠시 1세를 선택했다면, 3년간의 섭정기간이 더추가된다. 알아두자. [* 섭정기간동안은 선전포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 섭정이 끝나면, 모스크바랑 폴-리투랑 싸우는 때가 있을거다. 타이밍봐서 동맹들을 이끌고 폴란드를 치자. 폴란드를 패면서 동유럽의 패왕이 된 이후부터야 크게 문제없다.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면 간단하게 처리가능하고, 오스만은 16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약해지기에 상대가 가능하다. [* 굳이 초반에 오스만땅을 먹고 싶다면 맘루크와 싸울때를 노리자. 맘루크가 육상에서야 박살나겠지만 해군은 오스만보다 우위이기에 보소포로스 해협이 막히게 되있는데, 이때 오스만 주력이 오기전에 콘스탄티노플과 에디르네를 함락시키면 적히 오스만의 발칸반도쪽 땅을 뜯어낼수 있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12회 일치
         인기 정이었던 [[2000년]]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자서전에서 가족사항을 공개해서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특별히 [[정치]]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사회를 맡는 등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덕분에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 없이 화려한 [[스타#s-2|스타]] 생활을 지속했다.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이태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남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태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다가 그 화려한 전성기 시, [[2002년]]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회창 후보와 함깨 고배를 마셨고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코미디 대상에서도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에게 대상을 넘겨줘야 했다.[* 그 자신의 주장으로는 12월 17일 이미 수상이 통보되었으나 정작 발표 때는 결과가 뒤집혔다고 한다. 이 당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와 담당자간의 오해로 밝혀져 심현섭이 사과했다.][* 그 전에도 모 프로그램에서 말실수를 심하게 하여 공영방송에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의 코미디는 빠른 말빨과 애드립, 성대모사를 위주로 한 휘발성 강한 웃음에 포인트를 두는 편인데, 개그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성대모사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었고, 아이디어 위주의 코미디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만의 경쟁력의 사라진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적한 시기에 MC로 전향하거나 트렌드에 맞춘 재치를 보여주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지만, KBS를 나간 이후로는 감을 갈고닦을 방송사 무대 자체가 줄어들면서 모두 다 실패했다.
         여담으로 성대모사와 입담으로 잘 나가던 시에 제과업체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개콘 초창기 시 정체불명의 외국어를 구사해 인기를 끌던 것이 주목받아서 그 기믹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아돌프 히틀러]]. 딱딱한 독일어로 연설하던 히틀러가 과자를 먹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항의를 받고 광고가 내려간 흑역사가 있다.
         초반에는 심지어 그저 선배일 뿐 공개코미디 시 [[인기]] 커리어로는 심현섭에게 상대가 안 되는 김경민한테 '얘네(김수용, 심현섭)들은 나한테 (개그로) 상대가 안 된다. 김수용은 말은 하는데 옹알이처럼 하고, 심현섭은 [[남보원]] 선생님 시 개그를 하고, 개인기라고 하면서 공룡 흉내내기나 하는 애다'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까지 당했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s-1|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보수 네티즌들은 심현섭의 몰락이 [[참여정부]] 시의 정치압력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 시대의 [[김미화]]·[[김제동]]·[[윤도현]]·[[김C]] 등의 방송 하차가 정치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을 역공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권이 확실히 바뀌어버린 후에도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잘 비치지 않으며 가끔 나와도 추억속 개그맨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는걸 보면 그냥 본인이 개그쪽을 더이상 중시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개콘을 떠날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더러 '오만하다', '인기 얻었다고 떠나냐?'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상태라면 '개콘'에 남아있는 게 결례다.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가느니 쉬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개콘' 생기고 나서 처음 주는 코미디대상인데…. (상을 받지 못해)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섭섭함이 맞아 떨어진 거라고 봐 달라."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후에 밝혔지만 이에는 사실 심현섭 개인의 분노보다 소속사의 결정이 더 컸다고 한다. 1주일 만에 웃찾사로 옮긴 것은 그런 [[이유]]라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815|#]]
         이렇듯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도 거침이 없고 한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잘 나갔던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 가지 사실로는 [[후배]]들의 [[군기]]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과도 친한 개그맨들 중에 1명이었다고... 슬럼프 시에는 [[김진철(코미디언)|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때는 대놓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할 개그맨들이 웃지 못할 모습을 보여줬다며 씁쓸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이 여자 후배들에게까지 범행을 저지르게 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2회 일치
          * 어쌔신 크리드 III 부터 잡은 플레이어를 위해서인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열심히 소개해준다. 아무 설명 없이 앱스테르고에서 탈출하던 어쌔신 크리드 II 시보다는 나아졌으려나?
         그린 드래곤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말다툼을 벌이던 여관 아저씨와 여관 아주머니가 친하게 맞이해 준다. 헤이덤은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력자인 윌리엄 존슨 경에게 협조를 부탁하지만 존슨 경은 자료를 도둑맞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 존슨의 경호원인 토머스 히키가 조사 중이지만 헤이덤은 직접 나서기로 한다.
         도청을 통해 처치가 물가에 갇혀 있다는걸 알아낸 헤이덤은 찰스 리를 데리고 물가로 간다. 이때 찰스 리가 상당히 약하니 조심할 것. 들키면 앗 하는 사이에 죽어버린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부둣가 창고에 들어간다. 그 순간 그들이 목격한건 보호비를 내라는 사일러스 대처의 요구를 거했다가 손 없고 혀 없는 고자가 될 위기에 처한 벤자민 처치였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사일러스 대처의 부하들을 죽이고 처치를 풀어준다.
         브래독을 죽인 헤이덤. 카니에티오는 헤이덤을 유적으로 데려간다. 헤이덤의 기대와 달리 유적과 열쇠가 빛을 발했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헤이덤은 망하지만, 카니에티오의 도움으로 해당 유적이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이라는걸 알아낸다. 이후 헤이덤은 가야 겠다고 말하고서는 카니에티오와 키스를 나눈다.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가 라둔하게둔을 집어 던진다. 윌리엄 존슨과 템플기사단원들이었다. 벤자민 처치가 총을 겨누자 라둔하게둔은 도망가지만, 찰스 리가 다리를 걸어 쓰러뜨린다. 라둔하게둔은 찰스 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저항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라둔하게둔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걸 안 찰스 리는 그의 목을 조르며 자신들의 요구사항[* 원주민을 멸시하는 말로 범벅이 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템플기사단이 찾는 것을 내놓으라는 내용.]을 부족에 전하라고 하고는 풀어준다. 풀려난 라둔하게둔은 찰스 리에게 이름을 묻는다. 찰스 리가 이름을 알려주면서 묻는 이유를 물으니 "그래야 찾을 수 있으니까"라고. 찰스 리는 "기대하겠다"며 존슨을 시켜 라둔하게둔을 기시킨다.
         코너가 강너머에 있는 존슨 홀에 도착했을 때, 존슨은 원주민 장로들을 모아놓고 지금까지 내가 대변해주지 않았나, 지금까지 내가 지켜주지 않았나 하며 장로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로들은 존슨의 거짓말 취급하며 이를 거한다. 그러자 존슨은 병사들이 장로들을 겨누게 하고는 협박하기 시작한다. 코너는 그 현장에 난입, 존슨을 암살한다.
         1775년, 대본포트 농지. 저택으로 편지가 온다. 폴 리비어에게서 온 도움 요청으로, 영국군이 보스턴에서 무언가를 하려 하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코너는 자신은 애국자들이 아니라며 거하려하지만 존 핏케언이 연관되었다는 아킬레스의 말을 듣고 보스턴에 있는 리비어를 돕기로 한다.
         코너는 영국군 전열이 사격하는 동안 바위에 엄폐하고, 영국군 전열이 장전하는 동안 전진하는 방식으로 몰튼 힐에 접근, 벽을 기어오른다. 이후 핏케언의 야영지로 가 식민지인들의 반발이 전쟁으로 번진 걸 안타까워 하던 핏케언을 살해한다.
         상점 창문을 몸으로 깨부시며 나온 코너가 본 것은 대륙군 병사들에게 멱살이 잡혀있는 히키였다. 병사들이 코너를 히키의 공범으로 생각해 잡으려 하는 사이, 히키는 병사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친다. 코너는 도망가는 히키를 붙잡아 벽에 밀어붙이지만 병사들에 의해 체포된다. 코너는 자신이 히키의 공범이 아니며, 자신을 잡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주장하다 뒷통수를 맞고 기한다.
         코너는 침대에 누워있는 히키의 목을 조르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는다. 코너가 목조르던건 교도소장의 시체였다. 이때, 코너의 뒤에서 찰스 리와 히키가 나타난다. 찰스 리는 워싱턴을 가문도 끔찍하고 군적도 끔찍하다며 디스하고, 히키는 코너를 워싱턴 살인 음모와 교도소장 살인 혐의로 법정에 넘겨 교수형을 당하게 할 것이라고한다. 코너는 찰스 리의 빈틈을 노려 공격하지만 역으로 제압당하는 상황이 된다. 찰스 리는 이제서야 코너가 몇년 전 그 꼬마였다는걸 알아보고, 시킨것만 했다면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거라고 하며 목을 졸라 기시킨다.
         감방에 기한 채로 널부러져 있던 코너는 간수들에 의해 교도소 밖으로 호송되어 마차에 태워진다. 코너가 마차에서 내려졌을 때[* 정확히는 내동댕이 쳐졌을 때], 히키가 와서 리와 헤이덤이 손을 써서 즉결 처형이 되었고, 워싱턴도 처형을 관람할 예정이라며 깐죽거린다.
         헤이덤은 코너에게 올라탄다. 그러고는 템플기사단은 깨달음에서 태어나기 때문에서 대 파괴되지 않을거라고 선언하며 코너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코너는 목졸려 죽어가면서도 암살검을 뽑는데 성공, 암살검으로 헤이덤의 목을 찔러 죽인다.
  • 원빈(배우) . . . . 12회 일치
         [[1997년]]의 [[KBS]]의 TV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자주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여주인공 [[김희선]]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며, 몽상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약간 4차원스러운 청년역할이었다. 그래서 스토커라는 단어도 안 쓰이던 시인데도 자기 주위를 자주 맴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가족과 지인에게 상담도 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짝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몽상적인 대답만 한다. 직업도 대략 시인 비스무레한 사람인 듯이 말하는데 드라마 내용 자체에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그냥 시를 좋아하는 청년인지 진짜 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여주인공은 그가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남자(주인공)가 있다고 설득한 뒤 안심하며 좋게 마무리된다. 사실상 나쁘게 보면 스토커 같은 역할이라 원빈의 외모나 현재 이미지와 그렇게 많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워낙 심하게 잘생긴 외모라 역할 자체의 부정적 측면이 안 보일만큼 미화되어 보이기도 했고 아직도 그가 프로포즈에서 멋진 역할로 나왔다고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 당시 남자주인공이자 김희선의 상대역이었던 배우는 [[류시원]].]으로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레디, 고!'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1999년]] [[광끼]], [[2000년]] [[꼭지]],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를 찍은 뒤 드디어 [[가을동화]]를 통해 슈퍼스타가 된다. 2002년에는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다. 프렌즈에는 [[일본]] 여배우 [[후카다 쿄코]]가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대신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 횟수는 적으나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비판 자체가 거세지는 않고, 안 좋게 보는 이가 존재는 하기에 복귀작을 이창동의 영화로 선택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과시한다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쿨하게 왜 그동안 영화를 안 찍었는지를 말해줄 필요정도는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이 많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 가수 분야의 신비주의의 끝판왕으로 평가받았던 [[서태지]]도 이은성과 재혼 이후 현재는 신비주의를 많이 줄인 상태이고 몇 년마다 음반은 내고 방송에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원빈이 다친 후에 육군에선 가능한 한 배려해줬다. 민간병원에서 수술 이후 [* 군 복무중 중대한 부상이나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부상당한 군장병은 사비로 민간병원에 치료할 것인지, 국비지원으로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국비지원 민간병원 위탁치료는 지방소재 국군병원 군의관의 진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빈은 국군수도병원 후송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로 민간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민간병원 수술이 이례적으로 국비지원 하에 이루어졌는지, 사비 부담인지는 당시 기사에서 정확히 다룬 것이 없어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요양은 군병원이 아니라 병가를 얻어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다만 재활치료는 춘천병원에서 받았다. 의병제대 판정도 여기서 받았고.] 군복무 중 중대한 부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더라도 요양이 필요한 군장병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택에서 장기간 요양하거나 장기 병가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다.--쉽게 말해 수술을 위해 병가 10일 정도 혹은 가지고 있는 휴가를 합쳐도 20일을 넘기기 힘들고 그 안에 수술을 마치고 복귀해야 한다.-- 게다가 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 단순히 다리를 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의 후유증이면 의병제대를 받지 못하고, 요양은 커녕 자대에서 군복무기간을 마저 채우고 만기전역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10년 이후나 되어서야 후자(걸을 수 있으나 후유증과 통증)와 같은 유형을 [[복무 부적격자]]로 판명하여, 아예 군병원에서 환자에게 한 달짜리 휴가증을 줘서 집에 보내고 전역일까지 계속해서 휴가증을 연장 발급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제대시키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식적인 의병제대와의 차이점은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라 만약 휴가 기간에 사고를 치면 헌병대에 끌려간다는 것과, 전역 전에는 여권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예비군이 면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원빈의 경우는 그러한 경우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혜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 당국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언론 등을 통해 행정의 미비점 등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서 각별히 배려를 한 것이지, 원빈 본인이 편법을 썼다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 십자인대 부상이 매우 심각하여 의병 제대 이후에 스크린 복귀작이던 마더까지 걸린 시간이 2~3년으로 꽤 길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록 의병제대일지라도 군복무 중에 부상을 당한 것이고 차에 따라 의병제대한 것이므로 병역의 의무는 다 한 것이다. 비록 조기에 의병제대하여 군복무기간 자체는 짧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군복무를 빌미로 원빈을 비난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본인이 편법을 쓸려고 굳이 군생활하면서 생활에 중요한 무릎 십자인대를 파괴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면제도 충분히 받을만한 방법도 많은데 현역으로 간 사람인데다 몸이 재산인 연예인이 무리해서 십자인대를 스스로 파괴하는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신인 시엔 90년대 청춘 스타들이 그렇듯 예능, 드라마 가릴 것 없이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2000년대로 넘어와선 주로 영화 쪽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출연 영화 편수가 적기는 하지만 출연한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 신인 시 연기자로서 미래가 어둡다고 좌했을 때 용기를 북돋아준 인물은 故 [[앙드레 김]]이라고 한다. 앙드레 김의 추천으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특별대표에 위촉되어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얼굴이 [[최재성(배우)|최재성]]의 젊은 시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현재의 최재성은 쉰이 넘는 나이로 인해 역변했다.
          * [[애연가]]이다. 하지만 [[아저씨(영화)|아저씨]] 촬영 이후로 끊었다고 한다. 재미있는것은 신인시 피웠던 담배가 시골 할아버지들이나 필법한 [[도라지]]였다고 알려져 화제가 된적도 있다. 도회적으로 생긴 원빈이 강원도 산골 출신임을 완벽히 숨길수는 없었던것 같다.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신인 시 중화권 배우 오천련과 함께 국내 가수[* 참고로 이 가수는 현재 ~~노답인~~ [[FNC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한성호]].]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 있다. [[https://youtu.be/NbDuN6MledY|유투브 링크]] [* 원빈이 오천련의 팬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12회 일치
         의림공고와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를 거쳤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시에는 친인 [[서남원]], 한 해 후배인 [[박삼용]], [[어창선]]과 함께 활약하면서 실업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는데 일조했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졸업 후에는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에 입단하여 활약하였으며, 고려증권의 황혼기를 장식했다. 현역 시엔 세터였고 생김새와 포지션만 보면 착각하기 쉽지만...
         고려증권의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느 명선수 출신 감독들이 다 그랬듯이-- 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평가를 남겼다. 그래도 GS칼텍스 시에는 2007-08 시즌에 [[우승]]도 하는 등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기도 했었지만, 인삼공사에서는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할]]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인삼공사의 고질병인 [[몰빵배구]]와 얇은 국내 선수층을 개선시키지 못하면서 부임한 시즌 대대로 최하위만 밥먹듯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4년 동안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아 '''철밥통''', '''[[돌아이|돌성희]]''' 등의 온갖 모욕적인 [[별명]]들로 인삼공사 팬들에게 상당히 까이고 있다.
         ===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시 ===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시은 비록 선수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흑역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1-2-3'''을 찍으면서 선방했다.
         === 문제의 [[대전 KGC인삼공사|KGC인삼공사]] 시 ===
         2013-2014 시즌에는 새 외국인 선수 조이스의 활약에 힘입어 14승 16패(3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진출[* 인삼의 홀수해 시작 시즌의 무조건 봄배구행 진리도 있었지만, 사실은 잘해서가 아니라 밑의 3팀이 못했던 게 [[이유]]. [[져주기 게임|옛 버릇]] 버리긴 커녕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대놓고 핵노답이었던 팀]], [[602 대첩|주장이 시구]]했더만 [[타어강]] 옮아서 [[김연견|병원 차릴 정도로]] [[김주하(배구선수)|부상 선수가]] [[정미선(배구선수)|속출해서]] [[수원 현대건설|강제 탱킹한 팀]],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이상의 [[경북 김천 하이패스|최악의 트레이드로 탱킹한 팀]]들 덕분에 거둔 3위였다. 즉, 이성희의 역량 발휘로 3위를 한 건 대로 아니라는 소리다.]하였으나,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 스윕당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반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결국 [[2016년]] [[4월 5일]] 자로 계약이 만료된 후, [[서남원]]에게 인삼공사의 감독직을 넘겼다. 팬들은 이성희에 대해 두 번 다시 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삼공사가 재계약하지 않고 이성희를 내친 것에 대해 통쾌해하는 중. --헤일리! 이제 다시 와! 너 툭하면 맨날 갈구던 감독이 드디어 나갔어!!-- --그런데 서남원은 이성희와 [[서울시립대학교]] 동기이자 [[친]]이라는 게 [[함정]].--
         친이자 후임으로 들어온 [[서남원]] 감독이 [[한수지]]를 센터로 이동시키는 극약처방 등을 한 끝에 매우 성공적으로 팀을 일으켜 세우면서, KGC 관련 기사가 뜰 때마다 심심찮게 까이고 있다. 그리고 [[서남원]]이 3년만에 인삼공사를 봄배구에 진출시키면서 더 까였다.
  • 이승엽 . . . . 12회 일치
         == 선수 시 ==
         === 아마추어 시 ===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하여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재학 시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ref>[[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132.html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ref>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ref>''[[OSEN]]'' - 2007년 1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url=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ref><ref name="homerun">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63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ref>
         === 한국 프로야구 시 ===
         ==== [[삼성 라이온즈]] 시 ====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일본 프로야구 시 ===
         ==== [[지바 롯데 마린스]] 시 ====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의 이승엽.
         ==== [[오릭스 버펄로스]] 시 ====
         오릭스 버펄로스 시의 이승엽.
  • 이정재(영화배우) . . . . 12회 일치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원래 이정재는 배우가 아니라 건축 인테리어나 미술 쪽으로 직업 방향을 잡았다. 고등학교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덕에 학업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노는 데에 정신을 팔았다고. 그러다 고교시 미술 교사가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아는 미술학원에 보내서 공짜로 입시교육을 받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대 진학을 도전했으나,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서 결국 미대는 갈 수 없었다.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친 [[정우성]]과 연예계 입문 테크가 같다.] 그리고 그 후 93년에 출연한 롯데 [[크런키]] 초콜릿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4MKFjzJ2Q|나만의음악]]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릿 광고 덕분이라고. 사실 같은 해에 롯데 초콜릿 다른 제품인 [[가나초콜릿]] 광고도 찍었지만 크런키 쪽이 더 인상에 강하게 남은편. [[https://www.youtube.com/watch?v=trE8bqdhYfA|가나 초콜릿 광고]]
         굉장히 의외이고 이런 유례는 상당히 적지만 사극연기 하나만큼은 꾸준히 평가가 좋다(...) 캐릭터 운도 한몫하지만 이미지완 다르게 시대를 초월한 인물,아님 지극히 역사적인 인물을 맡더라도 사극이라면 현대극 과는 얘기가 달라진다. 고어체를 은근히 잘 소화해내는 것도 그렇지만 분위기 자체가 잘 녹아드는걸 생각하면 그저 적성이라고 밖엔... ~~대하드라마 부활하면 출연이 시급하다... 이방원역으로 적할듯~~ 대선배이자 역대급응 논하는 송강호가 유독 사극에선 호불호가 갈리는걸 생각하면 참 묘하다(...)
         이후 영화 빅매치에 이어 2015년 7월 22일 개봉한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 두 얼굴의 독립군인 염석진 역할을 하며 [[천만영화]] 두편을 지닌 배우가 되었다.[* 이 캐릭터의 불안정하고 이중적인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두 달 간 체중을 15킬로그램 감량한 것은 물론, 촬영 전 48시간 동안 깨어있는 상태로 준비했다고 한다. 똑같이 불안정한 캐릭터인 이자성을 연기할 땐 저로 살이 빠졌다고.]
         [[암살(2015)|암살]]에서 두얼굴의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으로 나온다. 역할을 위해 무려 15kg이나 감량했다고 한다. [[조진웅]]의 증언에 의하면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끼리 같이 밥 먹을 때 김치를 물에 씻어 먹는가 하면, [[하정우]]가 촬영 후 같이 술 마시자고 계속 꼬드겨도 끝까지 술 한방울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염석진의 불안하고 날카로운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48시간 무수면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하니, 연기에 대한 이정재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고생에 보답하듯 [[암살(2015)|암살]]이 8월 15일 광복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도둑들]]에 이어 두번째 천만 영화를 갖게 되었다.
          * 2013년 9월 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정재를 위한 특별전이 열렸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은 여러번 있었지만 4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배우를 대상으로 한 특별전은 이정재가 처음. 주제는 '''"영원한 젊은 남자 이정재"'''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두 번의 팬미팅을 가진 적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팬미팅 류의 행사를 한 적이 없다.] 행사의 공식명은 GV, 즉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심도 깊은 자리였으나, 곧 400여명이 함께한 팬미팅으로 변질 되었다. 약 한시간 반 동안 팬들과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노래도 부르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즉석에서 걸어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걸어도 주는 등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정재]]가 직접 준비한 클레이 비누를 일일이 팬들에게 선물해 주면서 포옹을 해 준 것''' 준비한 선물보다 사람들 수가 더 많아서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에게 포옹을 해주었으니,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꿈 같은 1시간 반이었다. 관객 반 이상이 여성들이다 보니 400여명과 포옹이 끝난 후 이정재의 수트 상의 한쪽 부분이 온갖 화장품으로 범벅이 되어 하얗게 색이 변해 있었다. 여담으로 당시 [[신세계(영화)|신세계]]와 [[관상(영화)|관상]] 개봉으로 이정재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라 표 구하는 게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전날부터 밤샌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새벽 5시에 나온 사람들도 10등안에 들지 못했을 정도. 12시에 온 사람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 측도 이런 진풍경은 처음이라며 매우 놀라워 했다. 항간에 들리는 바로는 옆건물인 CJ E&M 사옥의 (엠카 보러 온) 줄보다 길었다고 하니... 본격 40대 아이돌 탄생.
          * [[태양은 없다]]에서 만난 [[정우성]]과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친이며, 같이 패션사업도하고 CF에도 출연하고 술도 마시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사이. 일명 청담동 부부로 불린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만나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 그야말로 친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이지아 사건으로 위로도 할겸 만났던 자리에서 술먹고 떡이된 정우성을 업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밌는건 둘은 그렇게 친한데도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우성은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삼성동에 건축되는 18세대 고급빌라 라테라스 같은 층에 함께 입주했다. (물론 세대는 다르다... ~~이젠 집 밖으로 안나오고 빌라 안에서 놀려고~~)
          * 말끔하고 잘생긴 외모로 연기력에 종종 오해를 받는 배우 중 하나다. 범죄자나 사기꾼, 사채업자, 배신자역할의 연기에서 쿨한 외모와 달리 진가를 보이는 배우로 그가 이런 역할만 맡았다 하면 최소 중박은 치거나 상을 탔다. 그가 처음으로 사채업자 연기를 했던 [[태양은 없다]]에서 그는 생애 최초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탄다. 오 브라더스에서도 사채업자를 맡아서 당시 명 특수를 타긴했지만 중박을 쳤고, 도둑들에선 도둑놈역할로 천만배우까지 되었다.
          * 방위 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로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탔는데, 대종상을 너무 가고 싶었던 나머지 군 규정을 위반하고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언론에 노출되는 시상식은 군에서 참가 허가를 해 주지만, 대종상은 참석이 불가능했다) 군의 높으신 분께서 직접 만나 축하를 해 주려고 대종상 다음날 그를 찾았지만, 실상은 수상 후 부어라 마셔라 놀다가 다음날 무단 결근을 해 버림. 이 때문에 며칠동안 연병장을 몇 바퀴씩 뛰었다고 한다.
          * 40대의 나이지만 웃을 때 소년 같은 느낌을 준다. 대표적으로 영화 신세계에서의 마지막 웃음이나 평상시 찍히는 웃음 사진을 보면 여전히 해맑은 청년의 느낌이 물씬 난다. 이 점은 힐링캠프 출현 당시 [[이경규]]가 언급하기도 했는데 당시 이경규는 "웃을 때 참 해맑다"고 이야기 했다. 참고로 영화 [[암살(2015)|암살]]에선 20대의 청년으로 잠깐 나오는데 아무 cg작업도 없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5&aid=0003406913|정말 20대로 보여]] 많은 관객들을 어리둥하게 만들었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촬영 당시 이정재의 모습이 너무 어려보여서 어떻게 된 거냐고 도리어 물어봤다고 한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50820092206173?f=m|최동훈 감독 인터뷰]]
  • 전인범 . . . . 12회 일치
         |종교 = [[개신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70851 “하나님이 곁에… 두려움 없어져”… 전인범 준장 사순 간증], 《국민일보》, 2007년 2월 20일</ref>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영 (1949년)|김태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2014년 9월 특전사 13공수여단에서 포로체험 훈련 도중 부사관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훈련의 도입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던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다. 2017년 2월 [[국민의당]] [[김영환 (1955년)|김영환]] 최고위원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그에 대해 “이분은 취임 후인 2014년 9월 공수여단에 포로처럼 고문훈련을 시켜 두 명의 군인을 사망시킨 전력이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왜 ‘특전사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52597 김영환 "文캠프 전인범, 고문훈련으로 군인 두 명 죽었는데…"], 《뉴시스》, 2017년 2월 6일</ref>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전역 직후인 2016년 9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포로체험 훈련 중 사망한) 조용준·이유성 하사. 나는 당시 부대 지휘관으로 대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새기고 가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며 지휘관으로서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ref name="a"/> 문재인 지지 선언 직후인 2017년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사고의 핵심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감독 부실이다. 그리고 당시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보도됐는데, 군 생활 당시 매뉴얼이란 표현을 쓰던가. 에프엠([[FM]], filed manual, 야전교범)이란 표현을 쓴다. 사고 직후 장교가 기자에게 ‘매뉴얼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못 봤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만약 ‘에프엠이 있었나’라고 물어봤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책 만들 때 초고가 있잖나. 그때 (엄지와 검지를 4cm 정도 떨어뜨린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두꺼운 초고가 있었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사고가 나선 대로 안 되지만, 어처구니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임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이해해줬으면 한다. 2017년 1월에 제가 특전동지회 총재로 취임했는데, 취임식 때 희생된 두 부하의 아버지가 축하해주러 오셨더라. 그러면서 ‘사령관님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일반순직이 아닌 특수직무순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잘 처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더라. 제 마음이 어땠겠나”라고 덧붙였다.<ref name="b"/> 이에 대하여 특전사 관계자는 “그들은 아들들이 비록 희생됐지만 포로체험 훈련의 취지에는 공감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전 중장의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식에 참석이 가능했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763911 [단독] “포로체험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전사 비밀리에 계속 실시], 《경향신문》, 2017년 2월 12일</ref>
         * 사관생도 시 후배들을 엄하게 교육해 그의 별명은 ‘잔인범’이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12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6화]] |||| '''대가련 칠드런/467화''' |||| [[대가련 칠드런/468화]] ||
         [[대가련 칠드런]] 467th sense. '''카타스트로피 (5)'''
          *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마기를 통해 레어메탈을 유포하는데 이것은 세뇌용이 아니라 [[효부 쿄스케]]의 통증을 길리엄에게 중계하는 장치다.
          * 탄소섬유는 일행이 있는 [[츠보미 후지코]]의 방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후지우라 요우]]는 대처할 틈도 없이 부상을 당한다. [[효부 쿄스케]]는 이것 또한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사전에 기획한 함정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함정을 치고 있는 당사자는 블랙 팬텀에 세뇌된 [[마기 시로]], 그의 오른팔이다.
          * 모습을 드러내는 마기시로. 언제나 검정 슈츠 차림이던 것과 달리 몹시 캐쥬얼해진 차림이다. 그는 누구든 0.2초 만에 단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일행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너무 자유롭고 해방감이 느껴져서 요우는 "쉬는날 같잖아. 대체 얼마나 마기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거냐"고 효부를 탓한다.
          * 마기는 쓸데없는 말은 필요없다며 오늘은 "수확의 날"이라고 말한다. 바로 소령의 "망"을 수확하는 날.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엄청난 수의 블랙 팬텀의 레어메탈 버그가 기어나온다. 모두를 세뇌하는게 길리엄의 목적이라는 걸까?
          >내가 여기서 느끼는 분노와 망을 말이야.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2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9화]] |||| '''대가련 칠드런/470화''' |||| [[대가련 칠드런/471화]] ||
         [[대가련 칠드런]] 470th sense. '''상속 (2)'''
          * 코메리카 합중국도 [[에스퍼]]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어 규제 강화 여론이 강해진다. 배후에는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과 [[블랙 팬텀]]이 있다.
          * 다른 이들이 회의중인 사이에, 미오가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만 데리고 독단으로 미나모토가 있다고 알려진 형무소로 향한다.
          * 판도라의 [[츠쿠시 미오]],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도 함께 시청 중. 미오는 이 모든 상황이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의도대로가 아니냐고 분개한다. 카오루와 시호는 [[미나모토 코이치]]와 [[효부 쿄스케]]가 애먹은 상대인 마당에 자신들이 반격하려 해봐야 상황만 악화될 거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 그때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가 Tv를 가리킨다.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가 연행되는 모습이 비춘다. 둘은 "전 바벨 직원"으로 테러 미수 용의자라고 소개된다. 이들은 ECM으로 방어 중인 에스퍼 형무소에 수용된다고 나오는데, 마치 구해주러 오라는 함정과도 같은 뉴스다. 미오가 흥분해서 빨리 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카오루와 효부가 함정이라고 진정시킨다. 그러던 중 미오는 카오루야 말로 흥분을 참고 있는 걸 발견한다.
          * 우츠미는 유리의 능력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고 칠드런 일행에게 말한다. 유리는 이미 오염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돼서 정면 승부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반대로 정신오염 네트워크를 이용한 반격이 가능하다. 정신오염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 감응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포탈을 몇 군데 점거하는 식으로 전체 정신오염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자면 포탈의 반, 적어도 3분의 1을 점거할 필요가 있다. 그 숫자는 약 10개 안팍. 문제는 아직 그 위치가 불분명해 정보를 더 모아야 한다. 카오루는 그 말을 기대 반 아쉬움 반으로 여기며 마음 속에서 미나모토에게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Drunken Sailor . . . . 11회 일치
         || 1 || What we will do with a drunken sailor?
         || 2 || Shave his belly with rusty razor
         || 3 || Put him in a long boat till his sober
         || 4 || Stick him in a barrel with a hosepipe on him
         || 5 || Put him in the bed with the captain's daughter
         || 1 || What we will do with a drunken sailor?
         || 1 || What we will do with a drunken whaler?
         || 2 || Stuff him in a sack and throw him over
         || 3 || Feed him to the hungry rats for dinner
         || 4 || Shoot to the heart with loaded pistol
         || 5 || Slice his throat with a rusty cleaver
  • 김민기(가수) . . . . 11회 일치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한민국]] 민중음악의 역사를 논할 때 대 빼놓을수 없는 뮤지션'''.
         이미 중학교 시에 미술에 뜻을 두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보다 일찍 [[서울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던 셋째 누나의 영향을 받아 [[우쿨렐레]]나 [[기타]] 등을 독학으로 익히면서 음악에서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과 음악 모두 포기하기 싫었는지, 대학에 입학한 뒤 고교/대학 동창인 [[김영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로 현 이노디자인 대표. 무한도전 디자이너 특집에도 나왔던 그분 맞다. [[MYK]]의 부친이기도 하다.]와 [[도깨비]] 두 마리의 약자인 '도비두'라는 포크 밴드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초기 시부터 음악 활동은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1972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신입생 환영회 때 자작곡을 포함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했다.[* 이때 [[허문도]]가 김민기를 회유하기 위해 [[백지수표|흰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원하는 액수를 쓰라" 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김민기는 거.]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시|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91년 이후에는 공식 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극단 학전의 연출자로만 묵묵히 일할뿐, 언론사의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이나 각종 공연 섭외도 모두 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아침 이슬의 김민기로만 나를 기억하는걸 원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즉 자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은 여전히 과거의 한순간만을 기억하면서 화석화된 김민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정치적 행보를 밝히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운동권 예술가들은 현재까지 그 성향을 이어가서 진보적 정치 성향을 드러내거나, 또는 전향하여 보수적 정치 성향을 드러내던지 해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서있는 김민기 본인은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친형 이상의 존재로 여기던 [[김지하]]의 변 논란에 관해서도 아무런 주관적 코멘트가 없다. 공식 석상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것과 더불어 김민기의 오랜 특징인듯.
         김민기와는 친한 관계. 한대수와 김민기 모두 대한민국 포크 음악을 발전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음악이 계몽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로 1971년 김민기의 앨범에 한대수의 음악 '바람과 나' 가 실리기도 했고, 한대수도 2013년에 부른 '행복의 나라' 에서 '이제 나이 들어서 (음반을) 녹음할 수 없는 사람들' 로 김민기와 [[전인권]]을 뽑았다. 이를 보면 전인권과의 커넥션도 있었을지도?
         김민기의 대학시, 김민기가 만든 2인조 밴드 '도비두' 의 멤버였던 인물. 김민기와는 친한 관계라고 한다. 현재는 산업 디자이너로 이노디자인의 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설경구는 무명시 지하철1호선에 출연하면서 연기경력을 쌓았고, 당시 연출자였던 김민기를 은인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설경구 말고도 황정민, 김윤석, 이종혁 등이 학전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고 한다. [[http://news.joins.com/article/11039768|관련기사]] [[http://news.joins.com/article/5155922|관련기사]]
  • 김재박 . . . . 11회 일치
         || '''소속팀'''[* 실업야구 시 포함.] || [[한국화장품 야구단|한국화장품]] (1977~1981) [br] '''[[MBC 청룡]]-[[LG 트윈스]] (1982~1991)''' [br] [[태평양 돌핀스]] (1992) ||
         ~~DTD 몸소 실현~~ [[LG 트윈스]] 감독 시 ~~위대한 용안~~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대만]]에게도 패함으로써 '[[삿포로 참사(야구)|삿포로 참사]]'를 겪었고[* 덕분에 아테네올림픽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에 야구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졌다.], 06년에도 대만에 이어서 주로 사회인리그 출신[* 프로에 준하는 선수들이었다고 쉴드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선수단 22명 중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8명이고, 프로에서 제몫을 한건 초노 히사요시 한 명 뿐이다. 1명 빼고 전원 프로였던 한국이 10점 주고 박살날 상대는 대 아니었다.]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도 패함으로서 '[[도하 참사]]'이란 말을 들었다.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영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 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우승 못하고 [[556]]만든 [[김성근|이 사람]]은 뭐여~~ ~~자아비판에 가장 가깝다. FA 영입만 없다 뿐이지 강탈급 현금 트레이드들로 모았던 막강한 초기전력을 생각하면...~~
          *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강귀태|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 선수 시인 1986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시상자인 여배우 [[이보희(배우)|이보희]]가 유격수 수상자인 김재박의 이름을 김재'''전'''이리고 부른 해프닝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JTP7yPasIpg|해당 동영상]]).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이 사건 이후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이던 이보희는 [[두뇌풀가동|무식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한자는 잘못 읽을 수도 있다. 문제는 김재박 선수가 너무나, 너무나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관심이 적은 스포츠 분야라고 하나, 시사 상식에 어두운 것, 게다가 자기가 나가는 행사에서 수상자 이름까지 몰랐다는 건 욕 먹을 만한 일이다. 나중에 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바뀐 뒤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 2014년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자 [[박정태]]와 함께 롯데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현대와 LG 시부터 '초기 투자'를 많이 요구하던 김재박의 스타일을 들어 박정태 단독후보로 내세우면 욕먹을까봐 낸 구색맞추기 용 후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단은 [[이종운]]이 감독으로 선임되어 1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래도 [[양상문]] 역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를 이끌었고, 김재박이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프런트가 시의 적한 지원을 하는 구단의 감독이 될 경우 호성적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 2012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박재홍은 김재박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고[* 이는 그럴만한게 박재홍이 신인 시부터 김재박 감독이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며 주전 1번타자로 키웠기 때문이다.], 2013 시즌후 은퇴한 [[박경완]]도 김재박과 함께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의외로 김재박 감독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다.[* 물론 박경완의 경우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조범현]]을 호명했다.박재홍의 경우는 김재박을 제일 처음 호명.]
         2006년 경 [[네이버 뉴스]]의 댓글이 개편된 이후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이라는 비아냥성 제목으로 뉴스 댓글란에 [[꾸준글|꾸준히 게시되면서]] 퍼지기 시작한 글이 옛 [[리그베다 위키]] 시 본 항목에 게시되었고, 이후 위키러들의 편집을 거쳐 아래와 같이 정리된 상태이다. ~~과장성 자료가 다수 첨가되어있으니 적당히 필터링 바람~~
  • 김준현(코미디언) . . . . 11회 일치
         '''[[유민상(개그맨)|유민상]], [[문세윤]] 등과 함께 먹방 대표 덩치 캐릭터 개그맨의 선두주자.'''[* 다만, 김준현의 경우 [[근육돼지|근육이 많으면서 체지방도 많은 케이스]]에 속하기 때문에 유민상 등 순수 비만인과는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강호동]], [[마동석]], [[양준혁]] 등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져 기본적으로 근육 덩어리인데 살이 붙은 경우들이 김준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김준현 역시 중학교 재학시까지 [[검도]]를 했는데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99058|검도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유민상(개그맨)|유민상]]과 함께 [[거구]]의 체형을 가진 [[개그맨]]으로, 프로필상으로는 180cm에 120kg.[* 120kg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2017년 6월16일 [[맛있는 녀석들]] 121화 특집이 김준현 특집인걸로 보아 1kg 더 쪘다.] [[아버지]] 김상근이 KBS [[아나운서]], [[PD(방송)|PD]][* [[TV는 사랑을 싣고]], [[체험 삶의 현장]] 등의 [[인기]] 교양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PD였다고 한다. KBS 교양국 국장, 위성방송국 국장까지 지낸 고위급 간부로 지내다 2006년 퇴사해 지금은 대학교수 재직중이라고 한다. 단 김준현은 2007년 [[공채]]라 부자가 같이 KBS에 있었던 적은 없다고... KBS 공채 볼 때 아버지 이름 이야기 했다가 심사위원들이 기겁해서 심사평을 지웠다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이고 [[본인]]도 대학 재학 시에는 아나운서를 지망했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정확하게 전달되는 대사톤과 연기력은 이전의 이른바 뚱캐를 넘어서 현 개콘(지금은 [[tvN]]으로 넘어간 듯) 주연급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도 아버지가 방송에서 대사전달톤에 대해 계속 모니터링한다고 한다. 유민상과 같은 [[소속사]](제이디비엔터테인먼트)이다.
         [[2012년]] [[4월 29일]] [[네가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대까지만 해도 날씬한 체형이었다고 한다.[* [[백종원의 3대 천왕]] - '전'편에서 김준현의 과거 사진들이 나왔다. 참고로 날씬했을 땐 체격좋은 훈남이였다.] [[http://dryicess.tistory.com/129|링크]]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만|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김준현은 중학교 재학시까지 검도선수 출신으로 군에서 제대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대신 활동량도 많아서 살이 찌지 않았는데 운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먹는 양은 그대로고 활동량은 없어졌기 때문에 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맛있는 녀석들 포장마차 특집에서 나온 것이며 김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이미 예정된 비만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유민상이 툭하면 먹는데 끌고 다녀서 신참이다보니 따라다니며 먹어재껴서 그꼴이 났다고 네가지에서 그러던데 그게 개그용 멘션인지 진짜인지는 미지수.
          의외로 목소리 연기가 무척 륜하다!
          * 본래 [[1박 2일]] 시즌 3의 새 멤버로 합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스케줄을 조정하지 못해 땜빵(...)으로 소속사 사장이기도 한 [[김준호(개그맨)|김준호]]가 대신 들어가게 되었고, 오히려 큰 팀 케미를 불러 일으키며 고정이 되었다. 당시 라이징 스타이기도 했지만 버라이어티 예능에서는 사실상 초보라고 할 수 있는 김준현이 들어갔었다면 어찌 되었을 지 모르지만, 김준호 합류 이후의 1박 2일을 보면 오히려 김준호가 대신 들어간 것이 다행.[* 김준호가 없었다면 프로그램 전체의 수위가 조되지 않거나 예능적 재미가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런닝맨|옆 동네]]에서 시전했다 욕을 바가지로 먹은 옷 벗기기도 김준호가 개콘에서의 경험을 살려 적한 리액션으로 콩트로 받아주기에 1박 2일에선 적한 웃음요소로 쓰일 수 있었다. 또한 [[캐릭터]]가 겹치는 [[데프콘(가수)|데프콘]]은 다년간의 예능 출연 경험을 살려 분위기가 과하면 끊거나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데, 당시 기준으로 예능 초보였던 김준현이 이같은 역할을 잘 해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예능 경력이 쌓은 지금이야 잘 하겠지만...]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백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순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남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반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고교시 [[검도]] 대회에서 검도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고[* 20대 초반까지는 날씬했다. 덧붙여 모교인 [[광명고등학교|광명고]]도 ~~그나마 내세우는 게 검도.~~ 검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광명고 학생들은 매주 1회 검도 수업을 한다. 게다가 맛있는 녀석들에서 [[본인]]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http://m.ytn.co.kr/ent_view.php?s_mcd=1406&key=201512052151017860&ref=10|초등학생 시부터]] 검도시합을 하러 [[일본]]에 갔다온 적이 있다고 한다. 상당한 엘리트 체육인이었던 셈.][* 이름이 무슨 피구왕 통키스러워서 우스워 보이지만 김준현이 참가했던 SBS 검도왕대회는 개최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내 검도대회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ter/newsview?newsid=20130205154907565|비만체형인 지금도 근육량은 운동선수급이라고 한다]].[* 사실 특정 부위 비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전반적으로 비만인 사람들은 원래 근육이 많다. 살 찌면 지방만 잔뜩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육중한 체구를 움직이기 위해 몸이 근육을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 이런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면 몸도 일종의 구조조정을 해서 근손실이 엄청나게 일어난다.]
          * [[장염]]에 걸리면 [[막걸리]]를 먹는다고 한다. 먹고 난 다음날 [[똥|황금색 변]]을 보며 깨끗하게 낫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와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 언급한 것을 보면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닌 듯. [[https://www.youtube.com/watch?v=x6fJQ_DaMbw|#]]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6698626|# 1분 15초부터]]...] --하지만, [[일반인]]들은 대로 따라하지 말자!--
  • 김태우(god) . . . . 11회 일치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백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보컬 자체는 아이돌 출신 수준이 아니며, 소울을 가미한 창법도 수준급이다. 데뷔 초에 비해 심히 허스키해진 보이스는 아마도 god 시 끊임없이 콘서트 강행군을 한 탓인 듯하다. 그런데 본인도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편이라... 한 번은 자신이 '''[[스티비 원더]]'''와 동급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라디오에서 [[노홍철]]이 '정말 스티비 원더와 동급이라고 생각하세요? ㅎㅎ'라고 집요하게 묻는 바람에 한 수 접고 '그 바로 아래 급'이라고 한 일이 있었다... [[흠좀무]]. 물론 진지하게 [[스티비 원더]]와 자신을 동급으로 평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3년 2월 20일. 미니앨범 'T-LOV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Cosmic Girl'로 활동했다. 크게 나쁜 평은 없고 그럭저럭 반응도 있는 편이나, 이번에도 역시 '사랑비' 시을 그리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는 god (출신) 멤버 중에서도 예능감이 뛰어난 편으로, god가 국민 아이돌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god의 육아일기]]'''' 당시에도 코믹한 역할을 많이 수행했고, 솔로 활동 시에도 입담을 과시한 바 있다.
         청춘불패 출연으로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추진력을 얻은 건지]] SBS 2011년 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스타맞선-유쾌한 스캔들>에서는 [[아이유]]와 러브라인을 만들었다...이와 같은 일 때문에 남자들에게 ''''해방 이래 [[연정훈]] 이후 제일 나쁜 놈''''이라며 지탄의 대상이 된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아는 듯, [[상상플러스]]에서 청춘불패 출연 이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옛날옛적 god 시 그 레드썬 교수의 전생 체험에서 밝혀졌던 전생이 '[[관우]]'. 다만 최근에 [[삼국지]]를 읽어서 최면이 잘못 들어갔다는 분위기이긴 했다.]
         1인으로 3차 도전을 한 490회 방송에선 상금을 타면 후배의 뮤직비디오 제작비에 보탠다는 이야기를 했다. 중간 인터뷰 때 중학교 시 당시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던 [[김제동]]에게 "가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더니 그가 "넌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를 받아서 독기를 품어 노력을 한 끝에 가수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데뷔 이후 김제동이 "태우야,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김제동에 "형은 안돼요!"라고 받아쳐 [[역관광|제대로 복수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G7과 참여한 상상더하기에서는 참여한 여성 멤버 모두에게 변태라는 소리를 들을 적도 있으며, 상기 언급한 바대로 구하라에게 "가슴이 없어서 목이 돌아간 줄 알았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실제 청춘불패가 편집이 유연하지 못한 것이 그의 이러한 섹드립 때문이라고 상상더하기에서 멤버들이 말할 정도. 당시 회를 거듭하면서 군대식 말투를 지나치게 쓴다든가 부적한 멘트를 쓰는 것들을 지적받은 바가 있다.
         그의 직설 화법은 여러 모로 [[호불호]]가 갈린다. 평소 화통하고 유머러스해서 좋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디스하면서 웃음을 유도하는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H.O.T.]] 시의 [[문희준]]이 하도 인사를 안 받아줘서 내기까지 했다는 말을 질질 끌어서 좌중을 싸하게 만들었다. 워낙 친한 형이라서 그럴 수 있다 치지만 한 번 웃고 끝내면 될 것을 너무 길게 끄는 바람에 무안해져버린 문희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게 방송을 탔다. 더군다나 이미 그 일 때문에 문희준이 연예사병이던 시 선임왕고였던 윤계상이 하루 종일 경례만 시켰던 일화도 있었기 때문에...게다가 이때 처음한 이야기도 아니고 김구라와 문희준이 진행하던 [[SBS]]의 [[친노트]]에 출연했을때 이미 했던 이야기였다.
  • 류중일 . . . . 11회 일치
         == 선수 시 ==
         === 아마추어 시 ===
         [[1982년]] 3학년 재학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와의 우수 고교 초청 대회 결승전에서 [[투수]] [[김종석 (1964년)|김종석]]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11188 류중일 감독, 손주인-강명구에게 특별한 선물] - 매일경제</ref> 1981년 봉황대기 미기상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상, 대붕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하고. [[한양대학교|한양대]] 체육학과(1983학번) 시 1985년 ~ 1986년에 3학년, 4학년 때 대학야구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되었다.
         === 프로 시 ===
         ==== [[삼성 라이온즈]] 시 ====
         [[한양대학교]] 체육학과(1983학번) 졸업 후 [[1987년]]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백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출장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 부문)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에는 [[2루수]] [[강기웅]]과 함께하였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에는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 [[삼성 라이온즈]] 코치 & 감독 시 ===
         === [[LG 트윈스]] 감독 시 ===
         === 선수 시 ===
         === 코치 및 감독 시 ===
  • 마블 퍼즐퀘스트/1성 . . . . 11회 일치
         대상을 2턴간 기시킨다.
         레벨 2: 3 턴간 기시킨다.
         레벨 3: 4 턴간 기시킨다.
         레벨 4: 5 턴간 기시킨다.
         레벨 5: 대상외 적들도 1턴간 기시킨다.
         적에게 125 피해를 입히고 1턴간 기시킨다.
         레벨 4: 2턴간 기시킨다.
         레벨 5: 3턴간 기시킨다.
         반이다.
         적을 1턴간 기시키고, 무작위 기본타일을 녹색 거미줄타일로 만든다.
         레벨 5: 적팀 전체를 기시킨다. 발동비용이 7로 늘어난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11회 일치
         바실레이오스는 본래 아르메니아 혈통이었는데, 여느 아르메니아인이 그렇듯이 그의 가족도 트라키아 지방으로 이주해서 거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던걸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 불가리아의 칸 크롬이 트라키아를 침략하면서 그의 가족들과 그를 납치했고, '마케도니아'라는 곳으로 끌려가 어린시을 보내게 된다.[* 아마 포로로 잡혀간 이들중 대부분이 마케도니아 출신이라 그런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의 왕조를 '마케도니아'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아무튼간에 그는 미카엘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안가서 시종장 디미아누스가 해임되고 난뒤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의 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서 그와 미카엘사이에 살짝 사이에 금이 가는 조치가 내려진다. 바실레이오스는 그의 전처인 마리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미카엘의 정부였던 에우도키아와 재혼하게 된것이다. 이는 유도키아를 다시 황궁안에 들여놓기 위해 미카엘이 취한걸로 보이며, 이걸로 인해 상당한 논란을 낳게 되나, 이는 후술하도록 한다. 이후로 황제는 에우도키아의 보상으로 자신의 누나 테클라를 바실레이오스의 정부로 주기 까지 한다.
         이후 바실레이오스가 미카엘과 친해지면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 당시 실권자였으며 사실상 후계자로 점찍혔던 황제의 외삼촌 바르다스와 바실레이오스와의 관계는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르다스는 바실레이오스를 그저 변방 촌뜨기로 보고 무시했었으나, 점차 그가 미카엘과 친해지자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실레이오스도 바르다스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밀려나리란것도 예상하고 있었고, 이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단독 황위에 오른 바실레이오스는 적극적으로 제국의 고토를 되찾으려 했는데, 그 중 하나인 남이탈리아의 장악을 위해서는 교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걸 위해서 그는 우선 서방과 사이가 좋지못했던 포티우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해임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새로운 대주교로 임명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열며, 포티우스를 해임했다는 소식을 교황에게 전하는데, 당시 교황이던 히드리아누스 2세는 황제의 해당 행위를 회개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포티우스 분열]]을 일으켜 동방과 서방교회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든 포티우스를 처벌하게 만들기 위해 사을 보낸다.
         그러나 황제는 제국의 서방 속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당 행위를 한거지 회개할 생각은 딱히 없었기에, 교황의 사이 보낸 요구[* 공의회의 교황의 사 주도]를 무시하고, 포티우스를 파문시키는데 그치게 한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나기 직전인 870년 2월에, 불가리아 왕인 보리스 1세가 사을 보낸다. 당시 그는 포티우스 분열때 자신을 무시한 포티우스에 대항해 가톨릭을 불가리아에 퍼뜨리고 있었는데, 이게 그리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총대주교구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총대주교를 누구 휘하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교황휘하인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휘하인가? 그리고 바실레이오스는 불가리아에 자기 세력을 키울 기회를 놓칠 위인이 아니었고, 즉각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안티오크와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대표를 불러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는 누구 휘하에 두어야 되는지를 물었다. 이들의 답은 뻔했고, 교황청에서 온 사들이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되어서 불가리아는 정교회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정교회국가로 남아있다. [* 어찌보면, 이때의 공의회가 한나라의 종교를 결정한셈.]
         같은해 2월, 제국은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그는 2년전에 사라센이 장악하고 있던 남이탈리아의 바리를 공격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바실레이오스는 그에게 해군함대를 보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와 딸 헤르밍가르데의 결혼도 제의한다. 루트비히는 우호적인 답신을 보냈고, 869년에 니케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한 제국의 함대가 바리를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니케타스는 프랑크군이 군기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경멸을 감추지 못했고, 루트비히에게 '프랑크 왕'이라고 한단계 낮춰부르기까지 했다. 결국 두사람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니케타스는 함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사을 보낸것이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루트비히가 베네벤토를 공격하다가 그곳 공작의 포로가 되어 베네벤토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복음서에 맹세를 한 굴욕을 당해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그의 레온에 대한 혐오는 그의 장남인 콘스탄티노스가 갑자기 요하면서 더더욱 심해지는데, 아마도 이는 자신이 암살했던 미카엘의 아들이 자신의 후사를 잇는다는 두려움과,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꼈고 자신보다 더 위대한 황제가 될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콘스탄티노스의 사망으로 인한 우울증때문이었을것이다. 특히나, 한번은 레온은 황제에 의해 구금되어 눈을 뽑힐뻔하기까지 한다.[* 직전에 황제가 왜인지는 몰라도 마음을 바꾸어 그런일은 겪지 않았지만.] 거기다가, 레온이 명예를 회복하자 거리에서 시민들에게서 받은 갈채는 그를 더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 박철우(배구) . . . . 11회 일치
         || 응원가 || 이전 : [[DJ DOC]] - 나 이런사람이야[* 나 이런사람이야~ 삼성의 철우~ 난 박철우야~ 최!강!삼!성!박!철!우!(x 2)] [br] 현재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워워워워~ 워워워~ 워워워~ 워워워~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SK 와이번스]] 소속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 선수와 현 [[SK 와이번스]] 소속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 선수의 KIA시 응원가가 동일하다.][* 원래 응원단장들이 응원가를 만들 때 여러 종목을 겸업하는 단장들은 주로 야구선수의 응원가들 중 호평을 받은 응원가들을 편곡해서 만드는 편인데 이 응원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박철우 응원가가 원조이고 이후에 이홍구, 이재원 순으로 만들어졌다.] [br] [[굿 럭!!]] OST 'Departure'[* 삼성 삼성 삼성 박철우 오오오오오 승리를 위해~*2][* 현 [[KT 위즈]] 소속 외야수 [[이대형]]의 KIA시 응원가와 같다.] ||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부천 KEB하나은행|신세계 쿨캣]]의 [[농구]] 선수 [[신혜인]][*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국내 날개공격수중에서는 탑클래스인 199cm의 장신에 높은 타점을 이용한 공격이 특기인 거포형 스파이커. 위 짤방에도 나와있고 [[https://www.google.co.kr/search?q=%EB%B0%95%EC%B2%A0%EC%9A%B0&newwindow=1&source=lnms&tbm=isch&sa=X&ei=DtQfVY3jDcHe8AXk8oCQAw&ved=0CAcQ_AUoAQ&biw=1325&bih=614#newwindow=1&tbm=isch&q=%EB%B0%95%EC%B2%A0%EC%9A%B0+%EA%B3%B5%EA%B2%A9|박철우의 경기중 스파이크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스파이크때 항시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팔이 최대한 높은쪽으로 가는 극단적으로 위로 뻗는 타법임을 알 수 있다. 거의 투수 [[김광현]]을 보는 듯한 [[오버핸드 스로|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 이런 스파이크 스타일때문에 높은볼 처리능력이 좋다. 다른 선수면 타점을 맞추지 못해서 강제로 스파이크가 밀리면서 홈런볼이 될 토스를 억지로 코트 안으로 내려꽂을 수 있다는 것. 이때문에 토스가 높은 편이었던 현캐시 송병일과 호흡이 꽤 좋았던 편으로 송병일과 호흡을 맞춘 삼성화재전에서 신들린 강타로 역전승을 일구어낸 적도 있다.
         === 현대캐피탈 시 ===
         데뷔 시 [[후인정]]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은 '''[[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즉,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다는 것.....]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이 [[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이렇게 현대캐피탈 시에는 경기당 20~30점을 올려주며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 원체 센터진이 좋았던 팀에 2000년대 들어 뭔가 아쉬웠던 날개 공격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 주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 삼성화재 시 ===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재학 시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반영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OK저축은행]]에게 속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냐?--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 안기효 . . . . 11회 일치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윽고 노래는 클라이막스에 이르어 마지막 구이 흘렀다.
         또한 [[이영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식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남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상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재미있는 기록으로 방송경기 데뷔무대였던 챌린지리그 vs [[서지훈]]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었다. 이는 [[온게임넷]]의 [[스타리그]](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포함.) 역사상 최초의 무승부이기도 하다. 또 마린에게 캐리어가 잡히는 경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 VS [[변길섭]](맵 [[개척시대(스타크래프트)|개척시대]]), 상황은 안기효가 3캐리어+적한 양의 지상병력 VS 변길섭이 골리앗 없는 메카닉에 소수 마린+SCV인 상황, 러시 거리가 매우 가깝고 변길섭이 선공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병력 구성으로 보면 안기효한테 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방심했는지 캐리어 컨트롤을 하나도 안하다가 마린의 피니시를 맞고 격추당한다.(그 전에 터렛에게 많이 맞았다.) '''더불어 그 경기 졌다.''']
         사람들이 안기효가 엄청 못했던선수로 알고있는사람이 꽤 있는데 그건 2008년 이후 실력이 급 막장화된 탓이 크지 그 전에 팬택시에는 이윤열 다음으로 믿을만한 카드에다 위메이드 창단 초창기시엔 [[에결]]에도 자주 나가서 꽤 많이 이겼다. 그리고 안기효만큼 스타리그 16강 8강 많이 찍어본 프로토스선수는 명예의전당에 들어간 프로토스 선수들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중반부 소수질럿, 드라군, 리버 올인이라는 전성기 시 자주 보여줬다고 [[강민]]과 [[박용욱]]이 얘기해주는 깜짝 전략으로 [[김성대]]를 훅가게 할 줄 알았으나... OME급 컨트롤로 커세어와 리버를 헌납. 자신이 훅 갔다. ~~'''리버 : "아 ㅅㅂ 김씨 아니고 찹씨잖아 그런데 왜?!"'''~~
         2012년 9월 4일 안준호로 개명했다. 팬 카페에서 자신의 팬들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는 등 이전 게이머 시 인연을 맺은 팬들과는 꾸준히 연을 이어갈 생각인 듯 하다. 한편 페이스북에는 '''그동안 프로게이머 안기효로 살았던 과거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나는 이제 안준호다. 가슴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열심히 살며 찾아다녀보겠다. 마음속으로 작은 응원 보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사는 안준호가 되겠다'''란 글을 남기면서 새로운 길을 갈 것임을 천명했다.
         2016년 8월자 방송에서 보면 근처 중국집 배달원이 엄청 불친하고 난폭하다는듯 하다. 문을 발로 차면서 배달온다고 하는데 안기효 왈 [[조선족]]으로 추정되며 좋게 말하니깐 정색 빨면서 아 예 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갔다고 한다.
         본선진출을 이루는 듯 했으나 이전 예선에서 발목을 잡았던 [[오메킴]] 김승현에게 결승에서 또 다시 패해서 본선진출은 아쉽게 좌됐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11회 일치
         == 어린 시 ~ 대학 시 ==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상을 수상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승현이 프로에 와서는 대학시의 파괴력 넘치던 인사이드 플레이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시 슈터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승현은 현재 오리온스에서 공격시 외곽과 인사이드의 조합을 1:1정도로 가져가며 [[파워 포워드|4번]]보다는 3.5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이 기대했던 파괴력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팀에서 궂은일을 하고 외곽에서 필요할때 3점슛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변명으로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 외에는 포지션의 엄격한 구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추일승]] 감독에 의해 그렇게 플레이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진수, 장재석과 함께 동부 공격의 중심인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의 멘탈을 뒤흔드는 압박을 선보였고, 시즌 중 매우 떨어졌던 외곽 성공률 때문에 수비를 등한시했던 동부 수비수들에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1,2차전 합계 5개나 성공시키면서 홈 2연승의 주축으로 평가받았다. 3차전에서는 2쿼터 중반 무릎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서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승부에 쐐기를 박는 4쿼터 3점슛 2방으로 동부를 스윕하고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3차전 기록은 3점슛 4개 포함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인 20점을 득점하였다. ~~이승현 3점 갯수의 반밖에 못 넣은 동부 선수들은 반성해야된다. 25개 던져서 2개가 뭐냐?~~
         2016-17 시즌에도 평소 자신의 역할대로 박스아웃, 도움수비, 몸싸움, 포스트업 등 공수의 핵심으로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비해 외곽슛이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공격이 뻑뻑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지, 추일승 감독은 매경기 30분 약간 안되는 정도로 출전시간을 조해주고 있다.
         이란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 승리에 공헌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ketball&no=4165541&page=1&exception_mode=recommend|이란의 분노조장애를 해결해줬다 카더라]]
         자신이 소속했던 초(대구 칠곡초), 중(서울 용산중), 고(서울 용산고), 대(고려대), 프로(고양 오리온)팀 모두를 우승시켰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KBL총재배 초등부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선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전국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고등학교 시엔 오랜시간 무관에 그치던 용산고를 우승시켰다.[* 이승현은 꽤 어린 나이부터 용산고 OB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용산고 출신인 양동근이 "넌 여기 와도 돼. 우승시켰으니까" 라고 이승현에게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재학 중 단 한번도 지지않았으며, 김종규/두경민/김민구가 버티던 경희대를 꺾고 MBC배와 대학농구리그를 모두 제패해버렸다. 특히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14년 가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선 종료 1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 3점슛을 작렬시키고,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2점슛을 성공시키는 원맨쇼까지 보여줬다.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유도선수 경력도 있고 힘세기로는 정평이 나있지만 그것에 비해선 온화한 성격.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천기범]]이 대학농구시 이승현에게만 3년 내내 집중적으로 거친 플레이를 하고 대놓고 시비를 트기도 했다. 천기범은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한성깔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11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7화]] |||| '''대가련 칠드런/448화''' |||| [[대가련 칠드런/449화]] ||
         [[대가련 칠드런]] 448th sense. '''무법자들 (3)'''
          * 어린 시 내전 중인 나라에서 태어난 마기. 도둑질로 연명하고 있다.
          * 소년 시 마기는 내전 중인 국가에서 살고 있었다.
          * 효부는 헐값이라며 자신을 고용하라 하는데 반문 측은 애송이한테 큰돈을 줄 수 없다고 거한다.
          * 대략 이 시부터 그를 머슬이라 부르기 시작한 듯.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11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7화]] |||| '''대가련 칠드런/468화''' |||| [[대가련 칠드런/469화]] ||
         [[대가련 칠드런]] 468th sense. '''카타스트로피 (6)'''
          * [[아카시 카오루]]와 [[후지우라 요우]]는 곧 효부를 걱정해서 안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한다. 카오루가 "너는 자기가 죽을 위기라는걸 어필하고 싶을 거지?"라고 일침하는데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도저히 그런 것 같지 않다.
          * 그때 막 정신을 차린 마기가 안 될 말이라고 끼어든다. 후지코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효부가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더이상 방법이 없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현이와 덕이 . . . . 11회 일치
         '''현이와 덕이'''는 1975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2인조 [[싱어송라이터]] [[남매]][[듀엣]]/[[배우]]이다.<ref>{{웹 인용 |url = http://music.naver.com/artist/home.nhn?artistId=9526|제목 = 네이버 뮤직|저자 = |날짜 = |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70~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솔로로도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90년 남매 모두 [[요]]하게 된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그러던 중 1990년 1월 [[장덕]]은 [[신년]][[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였으나, 어릴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 하게 되어 [[1990년]] [[2월 4일]]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동 1008호 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 8월 [[장현]] 역시 설암으로 사망했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 1961-79 : 어린 시 ===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상씨와 [[서양 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충무로]]4가에서 1961년 4월 21일 태어났다.<ref>{{웹 인용|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맏이 [[장현]]은 [[바이올린]]을, 둘째인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부터 자라났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 뭣 모르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1989년 2월 오빠 장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일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장덕의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여의도 사무실에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이 때 훈이와 슈퍼스타, [[박혜성]] 등의 가수들도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장현은 혓바닥에 혓바늘 것이 돋아 났지만 피로 때문에 생긴 것으로 여기고 넘어 갔는데, 장덕의 새 앨범《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막바지 이르고 있었을 때였다(6월 18일). 혓바늘로만 여겼던 것이 자꾸만 커져가고 통증도 심해져 장현은 다니던 작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걸 중단하고 국립의료원에 찾아 갔더니 설암 3기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앨범 작업 중 다가와 사실을 털어놓는 오빠에게 장덕은 곧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병원에서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병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장덕은 자신의 일에 신경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채찍하였다. 당시 장현은 혀의 반을 자르면 5년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1년 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하면 말을 할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고 자가요법을 택하게 된다. 얼마 후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를 비롯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니>, <슬픈 약속>, <수레>, <나의 공주님> 등의 곡들이 수록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발표된다. 그리고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게 되자 결국 장덕은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오빠의 병간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1990년 1월) 장덕은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KBS]] 신년 특집극 [[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장덕은 비중있는 역을 맡아 억척스럽고 발랄한 스무살 여성 역을 연기했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김시진 . . . . 10회 일치
         |사진 설명 =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의 김시진
         == 선수 시 ==
         === [[삼성 라이온즈]] 시 ===
         === [[롯데 자이언츠]] 시 ===
         === [[투수]] 코치 시 ===
         === 감독 시 ===
         ==== [[현대 유니콘스]] 시 ====
         ===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시 ===
         === [[롯데 자이언츠]] 시 ===
         === [[KBO (단체)|KBO]] 위원 시 ===
  • 문문 . . . . 10회 일치
         음악 활동 이전엔 본래 [[직업군인]]이었으며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하다가, 20대 중반에 음악에 대한 꿈 때문에 전역을 하고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에 '저수지의 딸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계에 진입했으나 밴드 활동이 잘 되지 않자 잠정 해체되고, 그 후 2016년 7월에 싱글 앨범 [Moon, Moon]으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 '''물감'''과, [[비행운(노래)|비행운]] 등이 있다.
         === [[가사]] [[표]] 사건 ===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된 것은 아니고 한 소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가사 표 논란 이후에는 그가 2015년 8월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임산부석 인증 사진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 앨범아트 [[표]] 논란 ===
         심지어 비행운이 수록된 LIFE IS BEAUTY FULL의 앨범아트마저 표 의혹을 받고 있다. 다만 대체로 많이 볼 수 있는 달의 모습 변화 사진이라, [[출처 필요]].
         문제는 해당 내용이 범행 당시 혹은 수사 도중이 아닌, '''적법한 차로 죗값을 다 치르고도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폭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디스패치#s-4.1]] 문서에 서술.
  • 서영춘(코미디언) . . . . 10회 일치
         1970년대 중반 [[동양방송|TBC]]로 자리를 옮기며 [[고전 유모어극장]] 등을 통해서 70년대 중후반 부터, 80년대 초반 [[이주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코미디계 부동의 1인자 자리를 유지하였다. 1960,70년대 [[구봉서]], [[배삼룡]] 등과 코미디 트로이카로서 인기를 나눠 가졌다고는 하나, 당시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 중 누가 1인자였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영춘]]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것이 분명하다. 여담으로, [[이주일]]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도 바로 서영춘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방송국 대기실에 들어온 이주일을 본 서영춘은 속으로 '저 놈 방송에 나오면 무조건 뜬다!'라고 예상했는데, 약간의 곡을 겪은 후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다만 전성기 시에 관한 부분은 더욱이 자세히 봐야 하는것이 서영춘이 구봉서, 배삼룡보다 데뷔 시기나 주목받은 시기가 확실히 눈에 띄게 늦은 편이다. TV 방송 이전 악극단, 영화 시 그리고 웃으면 복이와요 초창기 시만 보더라도 메인은 서영춘이 아닌 구봉서, 배삼룡이었다. 실제로 웃으면 복이와요 초기 오프닝을 보면 배삼룡, 구봉서의 이름이 맨 처음에 등장하고 이 두 명을 중심으로 오프닝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https://youtu.be/CxMGWjLKOYA|1969년 당시 웃으면 복이와요 오프닝 링크]]
         사실상 말이 트로이카지 사실상 구봉서, 배삼룡의 인기가 조금 식어갈 시기에 서영춘이 원톱급으로 발돋움한 시기가 맞물렸으며 사실상 당시를 보면 완전한 트로이카 체제보다는 구봉서, 배삼룡 - 서영춘으로 이어진 세대교체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악극단 시부터 70년대 초까진 구봉서, 배삼룡이 우위였고 70년대 중후반 경부터 서영춘의 우위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서영춘 역시 악극단 시부터 최고의 톱스타였으며 구봉서, 배삼룡 역시 70년대 중후반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렇듯 전성기 시 3명이 팽팽하게 인기를 가져갔으며 트로이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즉, 시대적으로 약간의 개인차가 있었을 뿐 누구 한 명이 어느 특정 시대에 완전히 압도했던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던 때에 [[이주일|다들 알다시피 어느 얼굴천재가 홀연히 나타나 모든것을 뒤바꿔 버렸으니....]]
         사실 70년대까지는 우리 나라 문화 예술에서 6.25 동란 이후 일찌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의 그림자가 짙던 시이라, [[웃으면 복이와요]]나 [[고전 유모어극장]]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까지 일본 방송의 내용을 대놓고 똑같이 베껴 쓰던 때였다. 일제 강점기 시 일본인들이 세운 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배우들이 TV시대가 되면서 TV에 등장한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영춘을 비롯한 당시 코미디언들이 독창성 면에서 부족한 개그를 하였더라도 폄하할 수만은 없다. 일단 악극도 연주와 노래 개그가 들어가는 뮤지컬 비슷한 형식이지만 분명히 순발력과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은 필수였고, 노래와 춤도 대충 해서는 안 되었던 분야였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시 크고 작은 스캔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행사에 지각했다고 지명수배(...)가 내려진 일도 있었다. 이 행사가 다른 행사도 아니고, 경찰의 날(1965년 10월) 행사의 사회자로 참석해야 했는데 그걸 지각한 것. 21세기 현대에도 이런 대형 행사에서 지각하면 방송인으로서 보통 문제가 아닌데 하물며 살벌한 독재 정권 시대에 이랬으니...... 겨우 서영춘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당시 참석했던 [[종로경찰서]] 서장이 너무 열받은 나머지 행사가 끝난 직후 서영춘을 직접 불구속 입건 조치해버렸다. 죄목(?)은 사기 혐의.
  • 아이린(레드벨벳) . . . . 10회 일치
         ||<:><#FE3E5F>'''{{{#white 별명}}}''' ||<#FFFFFF>'''배추'''[* 아이린의 본명인 배주현의 '배주'가 변형된 것. 학창시부터 쓰였다고 한다.], '''현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애칭이라고 한다.], 우리현[* 우리+배주현], 배토끼[* 외모가 [[토끼]]를 닮았다. 그러나 아이린은 이 별명을 싫어하는 듯 하다.~~변형된 것은 배추토끼.~~ [[http://i.imgur.com/TtHvNRy.jpg|배토끼]]], 배주디[* [[주토피아]]의 [[주디 홉스]]라는 캐릭터를 닮았다. [[2016년]] [[9월 25일]] 분당 서현에서 진행된 공개 팬싸인회에서 한 팬이 아이린에게 주디 모자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게 아이린의 [[레전드]]가 되면서 확실하게 별명으로 굳혀졌다.], 다리미 요정[* 다리미질을 좋아하고 잘한다. 숙소에서 예리의 교복을 직접 다려~~준다~~줬다.], 배프로디테[* 본명 '배주현'+[[아프로디테]]], 동안리더, 선녀언니[* 중국에서의 애칭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s://twitter.com/Joekim0614/status/1000671256813780995?s=19|여기로]]]--, 무통배선생--, --배들짝--,~~조장선생님~~ ||
         [[문학소녀]]. 학창시 수업과목 중 [[세계지리]]를 가장 좋아했고, [[물리]]를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취미도 [[독서]]. 그래서 [[문법]]이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예민해 항상 바르게 쓰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문자를 보낼 때 맞춤법을 틀리면 고쳐준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문과생--
         노래할 때 음색은 말할 때와 비슷하며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여성스럽다. 라이브도 안정적으로 소화하기 때문에 신인 시에 '''비보컬''' 멤버로 보였던 것에 비하면 파트의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곡의 분위기에 맞게 음색의 톤을 조하려는 게 보이는데 그때 웬디랑 목소리가 종종 겹치는 경우가 있다.
         여름 미니 앨범 The Red Summer의 타이틀곡인 빨간맛에서 1 후렴에 센터에서 독무 파트가 있다.
          * 연습생 시, 연습이 다 끝나고 혼자 보컬룸에 남아 우연히 [[이영현]]과 [[제아(브라운 아이드 걸스)|제아]]의 '하모니'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https://youtu.be/MdfN3a3lOk8|#]]
          * 2015년 [[성탄]]엔 뮤직뱅크에서 [[박보검]]과 함께 Jingle Bell Rock을 불렀다. [[https://youtu.be/Ycj7q5IKMP8|#]]
          * 2016년 4월 1일. [[만우]] 장난으로 [[뮤직뱅크]]를 진행하다 실신하는 연기를 해 시청자들을 다른 의미로 심멎시켰다(...). 이 영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15만개 이상 받았을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wyv6cWkkc|#]]
          * 승부욕이 엄청나다. --승부의 여신 아테린--예능에서 게임을 하거나 멤버들과 내기를 할때 눈빛부터 달라지며 어떻게든 이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잘한다~~ ~~심지어 평소에 대 못한다고 했던 집라인 타기와 패러세일링을 동생들인 [[슬기(레드벨벳)|슬기]]와 [[웬디(레드벨벳)|웬디]]가 하자 망설이다가 본인도 직접 했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31706015&sat_menu=A075|경향신문 칼럼]]에서는 일부 남성들이 아이린과 [[손나은]]을 공격한 이유를 걸그룹이 성적으로 객체화되고 상품화된 존재여야 한다는 경험적 질서를 이들이 위반했다고 보기 때문이라 분석하며, 문제를 일으킨 남성들을 [[대 이분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원시부족]]에 빗대며 비판했다.
  • 윤정희(1944) . . . . 10회 일치
         TV로 생중계 되었던 2006년 제 2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으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등장과 동시에 울먹거리더니 당시 수감되어 있던 친한 동료 배우 [[신성일]]을 선처해달라는 매우 적치 못한 ~~망언~~발언으로 엄청나게 비난받았다.~~이를 본 시청자들은 어리둥~~
         중학교 동창인 어느 어르신의 회고에 따르면, ~~~마의 16세~~~ 소녀 시에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뒤돌아서 다시 볼 정도로 예뻤다고 한다.
         인기 정이던 20대 시, 의외의 부업을 한 적이 있다. 다름아닌 [[통닭집]]. 워낙 바쁜 일정 탓에 경영은 어머니가 맡아서 하셨으나 엄연히 ‘사장’은 윤정희였다.가게의 주인이 톱스타 [[윤정희]]인데다 음식의 맛도 좋아서 한동안 성황리에 운영되었다고.
         국내외의 각종 영화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무려 24번이나 수상한 대배우이다.[* 최근 언론에 언급되는 원로배우 그 누구도 윤정희의 발끝에 못 미친다. 그도 그럴것이 윤정희는 젊은 시에 무명이었던 이들과 달리 젊은 시에도 연기력, 흥행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사실 원로배우들 중에서는 단순히 상 몇번 타거나 광고 몇번 출연한 것 가지고 연기의 화신처럼 대접받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원로배우들 상당수가 젊은 시에 무명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젊은 시에 정점을 찍은 배우들 상당수는 말년에 잘 활동을 하지 않거나 아예 은퇴를 해서 대중에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인기에서 정점을 찍어 더 이상 연예계에 미련이 없기 때문.]
  • 이갑성 . . . . 10회 일치
         ==== 수학 시 ====
         이와 같은 이갑성의 논란은 [[민족문제연구소]]나 한겨레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2005년 3.1 특집 SBS 뉴스추적 "누가 변자인가" 편에서는 이갑성의 친일의혹을 면밀히 검증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민문연에서 제시한 것들도 근거가 희박한 것들이 많고, 이갑성이 광복 이후 우익계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좌익단체로부터 집단적인 음해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SBS '뉴스추적' 3.1 특집 '누가 변자인가'
         |제목=SBS '뉴스추적' 3.1 특집 '누가 변자인가'
         ==== 3공화국 시 ====
         3·1 운동 당시 [[김창준 (1890년)|김창준]], [[박희도 (1889년)|박희도]]와 함께 30대 초반으로 가장 연소한 편이었으며, 93세까지 장수함으로써 33인 중 가장 늦게까지 생존했다. 광복 이후 [[독립유공자]] 대표로 매년 3·1 행사와 광복 행사에 초청되었다.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낸 정치외교학자 [[이용희 (1917년)|이용희]]가 이갑성의 아들이다.
  • 이민우(배우) . . . . 10회 일치
         유아기 시인 [[1980년]]부터 CF모델로 활동하다 6살 때 정식으로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되는데 데뷔작이 MBC의 [[조선왕조 오백년]]([[1981년]])이다. 배우 경력이 벌써 '''30년이 넘는''' 본좌 중에 본좌. [[홍경인]]([[1988년]] 데뷔), [[김정현(1976)|김정현]]([[1994년]] 데뷔) 등 경력이 나름 길다는 동년배 배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왕 전문 배우(...) '''[[최수종]]'''(1962년생, [[1987년]] 데뷔) 등 1960년대 초반 출생인 연기자들마저 이민우에게는 경력 때문에 어려워한다는 것이 [[라디오 스타]]에서 드러났다. [[http://m.news.nate.com/view/20130425n00128|#]] 이 정도 경력은 5살 때 데뷔했다는 [[안성기]]나 6살 때 데뷔했다는 [[하춘화]]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경력이다.
         [[한명회]]에서 [[연산군]]을 맡았다. 주인공 한명회가 죽은 이후를 다루는 후반 4회분에서 극을 사실상 주도하는 역할이며, 연산군 연기로 호평받으면서 이를 기점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 '''19세'''에 이런 연기를 한다(...)[* 상술하였듯, 이 연기로 아역상을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r7eVSaqU59Q|# 기생씬]] 특히 [[폐비 윤씨]]([[장서희]])가 사사된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눈물콧물 흘리고 할머니인 [[인수대비]]에게 가서 한맺힌 규를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http://flvs.daum.net/flvPlayerIn.swf?vid=bYfGnkJ3L-U$&ref=bbs.movie.daum.net|# 규신]] --배우들 다 굶어 죽으라고--
         참고로 한명회의 연산군은 맡았던 배역 중에 유일하게 '''즉위했던''' 왕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전부 세자나 세손 등 즉위 전의 아동 시을 맡았다. 즉, 모두 아역 시을 연기했다. --기억력도 엄청 정확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y7_cAnvH1P4|#]]--
          * [[단종(조선)|단종]] - [[세종대왕]]의 세손 시에 맡았다. (83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뿌리 깊은 나무]] 편)
         드라마 [[카이스트(드라마)|카이스트]]([[1999년]])에서 공대생 이민재 역은 그야말로 '''공대생 1'''이라고 할 정도의 포스를 보여 주었다. 소심한 듯 꼼꼼하고 수더분한 인상에 "저는 성실합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연기 하며... 한 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공대생 그 자체. --근데 이때 이미 연기경력이 20년-- 평생지기라고 할 만한 동료 배우 [[김정현(1976)|김정현]]과의 인연도 여기에서 쌓게 된다.[* 2009년 둘이 함께 《친노트》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3년]] 라디오스타에도 함께 출연했다.]
         이민우는 일찍이 영화판에도 진출했었는데 의외로 아는 이가 드물다. 출연작이 죄다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1994년 《삘구》[* 신인시의 [[배용준]]이 단역으로 나온다.], 1998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999년 《질주》에 모두 주연으로 나왔으나 영화 퀄리티나 흥행면이나 모두 [[안습]] 수준. TV 드라마에 최적화 되어있는 배우들은 스크린에선 제 능력을 발휘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민우도 그런 케이스. 본인도 그걸 잘 아는지 이후로 영화 출연은 하지 않고 드라마에만 충실하고 있다.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이라[* 한때 대한검도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여 키에 비해[* 실제 키도 175이상은 된다고 한다.] 체격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두|머리가 그보다 더 크다고..]] 잘 나가던 20대 시에 정장 의류브랜드 광고모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촬영 전에 이민우 측에서 105사이즈를 요구하여 브랜드 측에서 105사이즈 옷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날 그 의류회사 간부 겸 디자이너가 촬영전에 스튜디오로 이민우를 직접 찾아와서 모델을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역시 디자이너답게 약간 여성스러운 말투로 한 인사였으나 이민우는 아버지뻘 되는 어른의 예의있는 태도에 감격을 받아 잘 촬영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인사한 뒤에 갑자기 이민우와 준비된 옷을 번갈아 보더니 "어? 근데 민우씨 옷이 왜 105사이즈로 돼 있어요?"라고 했고 이민우가 "저는 원래 양복 105사이즈를 입습니다."라고 하자 "에이~ 아니죠. 이거 안 맞아요. 저희 회사 옷 작지 않아요. 모양이 안 나와요. 이렇게 찍으면 안 돼요." 라고 우기더니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어떻게 사이즈도 미리 제대로 안 맞췄냐고 크게 화를 내며 당장 95사이즈를 가져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간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당황한 이민우는 어벙벙한 상태로 95사이즈 양복을 입었고 너무 작아서 단추도 제대로 안 잠겨 옷이 상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흐엌-- 그제서야 이상하다고 느끼다가 뭔가 깨달은 간부는 "어~ 정말 미안해요. 민우씨. 근데 머리가 왜 이렇게 커?"라고 하며 원래대로 105사이즈를 입혔다고 한다. 그의 머리가 커서 어깨가 좁아보여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95사이즈로 오해했던 것.
         ||<|2> KBS2 || [[전설의 고향]] - 사후부야물 || || ||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0회 일치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젊은 시 ~~[[줄리엔 강|순재도 잘생겼어]]~~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 [[동양방송|TBC]] 시 이 후에는 큰 상을 받은적이없다.] 하이킥의 야동순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 아무래도 연예대상 시상식인 만큼 같이 수상한 [[무한도전]]팀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순재 또한 겸연쩍다는 내용의 수상소감을 했다.]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와 [[강부자]]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이순재는 젊은 시에 주연급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순재 본인이 직접 자신이 항상 첫번째는 아니고 신성일처럼 스케줄이 넘치는 스타의 대타였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활동 초창기부터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를 많이 만났다. 60년대 시점에서는 신성일, 신영균, 남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수많은 흥행작을 낼 때, 이순재는 이들 영화에서 고작해봐야 조연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70년대 시점에서도 한진희, 노주현, 박근형, 임채무처럼 당시에도 쟁쟁한 후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백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단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순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순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애니메이션)|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비성우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비성우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http://news.maxmovie.com/74030|#]]] --이것이 바로 이순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이순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순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comment_srl=2358142&listStyle=gallery&mid=movietalk&page=997&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764826|#인터뷰]]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시는 사람이 아니다.]이순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2018년 4월 20일에 공개된, 차이를 넘어 묻고 차이를 넘어 답하다(차문차답) 캠페인에서 5세, 8세, 10세 어린이들이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을 이순재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중 한 여자아이가 '미투가 뭐에요?' 라고 묻자 '그런 말을 알 필요도 없고 그런 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너희 때는 그럴 일 대 없을 테니까' 라고 답을 해 주었다.
  • 이재학 . . . . 10회 일치
         두산 시에도 순박한 얼굴과 특유의 빨간 볼[* [[http://youtu.be/8iTg4pqyDDQ|XTM 담벼락토크]]에서 투구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영상이 2013년 시즌 8월 7일 LG전에서 9실점했을 때(...)]로 신인 중 귀요미 소리를 들었다. 빨간 볼과 여드름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능금', '[[딸기]]'. NC 이적 후부터는 아예 딸기가 공식 별명이 되었고, 활약하는 날이면 Strong+Strawberry='''STRONGBERRY'''가 된다. 이 문구는 이재학의 개인 첫 완봉승 기념 티셔츠에 적혀있다. 한때 [[마산 야구장]]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아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88568|딸기주스 '''이재학''']]을 판매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그 자리엔 '더리터'로 입주 업체가 바뀌었다. 이재학을 팔지 않는 대신 [[박민우(야구선수)|민우에게 바나나]]를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2340520109998&id=241899065820824|팔고 있다.]]]
         == 고교 시 ==
         === [[두산 베어스]] 시 ===
         === [[NC 다이노스]] 시 ===
         11월 7일 승부조작 수사 발표에서 이재학의 승부조작건은 무혐의로 발표가 났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바로 2011년 [[두산 베어스]] 시에 불법스포츠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도박 처별 규정이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반 형법상 단순도박죄 혐의가 적용되었고, 이 법에 대한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일단 불법 스포츠도박은 KBO 조항상 제명까지 가능한 상황. 정확히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진야곱]]에게 160만원을 건네 대리 베팅을 한 것. 진야곱은 이미 베팅 사실을 시인한 상황이나 이재학은 단순히 돈을 빌려준 것 일뿐 도박에 쓰일 줄은 몰랐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두산 시에는 정통 사이드암 투수로 140km/h 초중반대의 빠른 공과 준수한 서클 [[체인지업]]으로 주목받았다.[* 보통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투구폼으로 구속과 분당 공 회전수를 줄여 타자의 타이밍을 망가뜨리는 방식이나 이재학은 되려 회전수가 높은 변형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좋은 컨트롤과 준수한 탈삼진 능력으로 즉시전력감으로 주목받았으나, 프로에 입단해서는 현격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23이닝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서클 체인지업을 이용한 삼진 능력은 당시에도 인정받았으나 지나친 코너웍을 의식하다가 사사구를 내주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만 개선하면 롱릴리프 및 중간 계투로 일익을 담당하리라 기대되는 준수한 유망주였다. NC에 와서는 두산 시에도 준수했던 서클 체인지업이 더 강력해졌으며, 이를 필두로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편. 통산 K/9가 8.2에 달하고, 2016년에는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규정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팀 내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 잡았다.
         서클 체인지업 그립과 투구폼이 [[권오준]]과 꽤 흡사한데, 이는 고등학교 시 권오준의 그립이 찍힌 사진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롤모델이 권오준이라고 한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 [[2013년]] [[4월 11일]] [[고창성]]과 함께 [[켠김에 왕까지]] 164회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적한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징크스 같은게 있냐고 묻자 자신은 그런건 안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대답을 하였다. 시구하는 것을 보고 싶은 연예인으로 f(x)의 설리를 지목하였다. 그런데 제작진들이 투수2명을 섭외해놓고 과자는 홈런볼을 준비하는 괴악한 센스를 보여주었다. --모조리 먹어서 홈런 맞지말란 뜻..?--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0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9화]] |||| '''대가련 칠드런/440화''' |||| [[대가련 칠드런/441화]] ||
         [[대가련 칠드런]] 440th sense. '''윈터솔져 (1)'''
          * 사카키가 망하며 소란을 피우려니 안에서 누가 나오는데
          *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는 갑자기 모든 통신회선이 두되는 고장이 일어난다.
          * 미나모토는 관리관을 구속해 검사를 강행하자고 정하고 연락이 두된 관측소의 상황을 역이용하자고 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10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8화]] |||| '''대가련 칠드런/449화''' |||| [[대가련 칠드런/450화]] ||
         [[대가련 칠드런]] 449th sense. '''무법자들 (4)'''
          * 소년 시 마기 시로는 효부의 차량을 조작해 적당히 차를 빼앗으려 하지만 효부에게 걸린다.
          * 마기의 소년 시. 지난 회에서 교섭을 망치고 돌아가던 효부와 머슬 오오카마는 차량 고장으로 도로 한 가운데 정차한다.
          * 현재 블랙팬텀은 회상편에 나오는 블랙팬텀이 전신으로 보인다. 아마도 길리엄의 부친이 세운 시의 조직으로 추정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10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8화]] |||| '''대가련 칠드런/459화''' |||| [[대가련 칠드런/460화]] ||
         [[대가련 칠드런]] 459th sense. '''반역자들 (2)'''
          뒤이어 타니자키 이치로와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도 도착. 사카키는 미나모토나 다른 일행이 나타난걸 보고 어리둥해한다.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덤으로 지박령도 있는데, 좌모드가 된 사카키였다. 붙박이장에 틀어박혀서 찌질대고 있다. 그는 아직도 블랙 팬텀의 세뇌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에 분개하며 설사 팔을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복수하겠다고 과격한 발언을 한다. 그런데 정작 미나모토는 찬장에서 차나 찾으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10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0화]] |||| '''대가련 칠드런/461화''' |||| [[대가련 칠드런/462화]] ||
         [[대가련 칠드런]] 461th sense. '''반역자들 (4)'''
          *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카키는 얼른 혈청을 제조해 러브코미디와 색드립이 넘치는 가칠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 본거지에서 친구가 뭘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카키는 얼른 사태를 수습해 시리어스 일변도로 굳어진 가칠의 분위기를 에로와 러브 코미디가 넘치는 본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미 이쪽은 찬 러브 코미디 모드. 카오루는 미나모토를 따라 밖에 나온 뒤까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허둥지둥 대고 있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10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1화]] |||| '''대가련 칠드런/462화''' |||| [[대가련 칠드런/463화]] ||
         [[대가련 칠드런]] 462th sense. '''반역자들 (5)'''
          잠잠한 것 같았지만 정신오염물질(레어메탈)이 잠복하고 있던 사카키의 팔에서 뛰쳐나온다. 분출된 레어 메탈은 마치 블랙팬텀의 망령 같은 모습으로 괴로워하다 흩어져 버린다. 혈청은 성공. 사카키는 기뻐하며 "블랙 팬텀에 의한 정신오염물질 해독 혈청"을 줄여서 STAP라 명명한다.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사실 진짜 의미는 "스팟하고 해결"에서 따온 것. 그 밖에도 "사카키"나 "사이코", "안티도핑"같은 이름도 제시했지만 모두 구리다가 거. 그냥 "혈청"으로 끝난다.
          * 미나모토는 용무를 묻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건지 묻는다. 효부는 [[마츠카제 코우이치]]를 경유에 이곳에 접근했다. 아직도 학생회장을 연기하고 있는데 마츠카제 쪽에서 먼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접촉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바벨의 감시가 이루지고 있을지 모르는 곳. 효부는 판도라도 같은 문제가 있는건 맞지만 여기서 상담은 무리라고 거한다. 그러면서 마츠카제의 등을 떠미는데, 그때 텔레파시로 그에게 승락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건은 판도라에도 손을 빌려주는 것.
         목욕탕 카운터를 보고 있는 인물은 [[시이나 타카시]]의 전작 [[엽기열탕 카나타]]의 주인곤 카나타. 머리 위에 있는건 [[성룡도]]다. 워낙 망한 작품이라 작가 본인도 흑역사 취급에 "대로 공식에선 그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물건인데 왠지 카메오로 등장.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조응천 . . . . 10회 일치
         [[대경권|TK]] 출신 엘리트 검사로, [[김대중 정부]] 시부터 요직을 맡아 성장했고 [[박근혜정부]] 시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대경권|TK]] 성골 엘리트급의 보수 인재 루트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적당히 끊고 청와대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구 새누리당에서 요직을 맡아 보수층의 중심에 올랐을테고, 계속 해서 청와대에서 자리를 맡았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축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돼 '''별주부짱'''이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며 중앙 정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외부 인사에 관한 감찰 자료가 보도되면서 이에 책임을 물어 해임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2014년 4월 15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이었다.[* 해임된 다음 날, 혼란스러운 본인의 상황 중에 우연히 TV를 보게 되었는데, [[세월호 참사|갑자기 너무나 당황스런 화면]]이 나오고 있어서 몹시 어리둥 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식당의 매니저, 셔터맨을 도맡았다고 한다. 실제 총선 후보 시 직업란에 '''별주부짱 매니저'''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 [[기독교방송|CBS]] 변상욱 기자가 김용민의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http://www.podbbang.com/ch/9954?e=21859559|조응천 씨가 횟집 이름]]을 '''[[정윤회|정윤횟집]]'''으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주위에서 '''"그러다 너 죽는다"'''라고 뜯어말렸다 전해진다--
         [[문재인]] 당시 대표가 영입한 마지막 외부 인사였다. 입당의 변과 십상스시 에피소드를 풀어놓은 이이제이 출연분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가 매일 같이 찾아와 간히 부탁했고 처음에는 그다지 정치에 입문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정치 아니겠냐."'''라는 (문 전 대표의) 말을 듣자 비로소 결심이 섰다고 한다.
         [[일베]]에선 고소각을 재느라 평소대로 막말을 내뱉지 못하는 [[정게할배]]들이 약이 올라 부들부들대고 있으며, [[친이]] 반 틀딱 성향의 일베 이용자들은 "응천게이 일베충이었노!", "틀딱들 부들부들", "[[박근혜]] 비서관 시에 분명 2자릿수 고레벨 활동 이용자가 틀림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10월 26일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던 시 [[최순실]]이 주[[이탈리아]] [[대사]]에 [[통일교]] [[유럽]] 총책이자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S씨를 밀었지만, 조응천 당시 비서관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대사 취임을 무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 시의 경험에 대해서 발설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저촉될 수 있다"며 사실여부에 대해 함구하는 중이다. ~~사실 논란거리는 아니긴 한데~~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의 보좌진들을 의원실 보좌관으로 채용했는데, 그중에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연관된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조응천 의원이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국정원]]의 [[국정원 댓글 사건|범죄]]를 수사하다 피해를 봤던 인물이라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에 수사 총책을 맡는 건 부적하다"고 했던 발언이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다스 뵈이다]]에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과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오히려 증인 보호 차원에서 이들을 채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 [[TV조선]]의 [[강적들]]이란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조응천은 본래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차관급 공직 아무 곳에나 임명되어 기사가 모는 관용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우여곡 끝에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어찌됐건 꿈은 이루었다고 인정하였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장관보다는 낮지만 차관보다는 높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10회 일치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이건 사실상 술탄의 심기를 대폭 건드는 발언이었고, 여전히 재상이었으며. 무라트 2세부터 지속된 평화주의의 대표적인 자였던 할랄 파샤는 이것때문에 사 면전앞에서 폭언을 하기에 이른다.
         사의 요구를 들은 메흐메트는 생각해보겠다며 차갑게 대꾸한 이후, 보소포로스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에 요새를 짓기 시작한다. 이소식을 들은 황제는 경악하면서 사을 보내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려하지만, 술탄은 그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황제는 그 대응으로 도시내의 튀르크인들을 투옥하는걸로 맞대응했으나, 별 소용없는 행위였고, 결국 모두 풀어주었다. 그렇게 당대에 '보코하즈 케센', 그리고 현재는 '루멜리 히사르'라고 불리는 요새가 완공되었고, 이로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함선들은 요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상업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줬는데, 단적인 예로 베네치아인 안토니오 리초가 이끄는 함선이 요새의 검문요구를 무시했다가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살아남은 선원과 선장모두 사형을 당했다. [* 선장은 특별히 말뚝형에 처해졌다.] 더더욱 급해진 황제는 교회통합을 요청하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건 겨우 200명정도의 병력뿐이었다.[* 별 수 없는게, 당시 교황령의 군사력은 제국보다 별볼일 없었다.(....) 차라리 모레아 전제국이 훨씬 더 국력이 탄탄했을거다.] 하기야 소피야 성당에선 교회통합을 선언하는 미사가 열렸지만, 해당 미사는 황제와 그 일부 측근들, 일부 통합파 사제들과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 일부만 왔을뿐이었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동서대통합과 라틴 전례의 도입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정교회 전통을 단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매우 어리석고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로 평가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서대통합이 '확실하게' 정교회 전통을 단시키는 반면 별다른 군사적 보호는 제공하지 않고, 이슬람의 정복은 아직 술탄의 관용에 호소하여 정교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가망이 더 크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교황의 삼중관보다 차라리 터키인의 터번을 택하겠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발칸의 정교회 국가인 왈라키아와 세르비아는, 당시 오스만의 봉신이었으며, 봉신으로써 오스만에게 병력을 징집해 보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헝가리의 개입없이는 대 오스만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외벽과 내벽중 어느쪽에 방어를 집중할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펼쳐졌는데,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1422년에 무라트 2세가 도시를 공격했을때 외벽방어에 집중해 막아낸것처럼 이번에도 외벽에 방어하기로 결정하려 했으나, [* 내벽에도 병력을 배치하는게 좋긴 하겠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를 '전략가'라 자칭했던 교황청의 사 레오나르도 대주교가 내벽을 방어하라고 우겨 잠깐동안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1422년 무라트 2세의 공격으로 인해 수리된 외벽이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다면서, 이게 모두 수리비를 두명의 그리스인인 자가루스와 수도사 네이피토스가 횡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부당한 주장으로, 자가루스는 마누엘 팔레올로고스가 본명인 황제의 친족으로, 수리된 성벽에 이름까지 적힌, 당시에 굉장히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또다른 횡령범으로 지목된 네오피토스는 통합반대파였다만, 황제와 친한 수도사중 한명으로 공적인 일에 일체관여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던 중이었다. 레오나르도 대주교의 주장은 가톨릭교도들의 전형적인 반통합파와 그리스인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이에 맞서 튀르크군은 자가노스 파샤[* 그리스인 배교자로, 대표적인 주전파였다.]를 지휘관으로 한 부대를 금각만 근처에 배치했고, 보소포로스 해협건너 언덕에 병력을 산개시켜 페라의 제노바인들이 도시를 돕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성벽 맞은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금각만에서 언덕위에 카리시오스 문까지는 카라쟈 파샤를 지휘관으로 한 유럽 정규군들이 배치되었다. 이들은 중포도 상당수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포들은 블라케르나에 성벽에서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이어지는 귀퉁이 공격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리쿠스 계곡 남쪽 경사면에서 마르마라 해안까지는 이샤크 파샤의 지휘하에 아나톨리아 정규군이 저라접었는데, 그는 황제의 신임을 받지못했기에 그의 친한 친구였던 그리스인 배교자 마무드 파샤가 지휘를 맡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앙겔로스가 출신이었다.] 술탄은 메소테이키온 성벽 맞은편 리쿠스 계곡에 자리잡았는데, 그의 앞에는 그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부대와 헝가리인 대포 기술자 우르반의 대포들이 있었다.[* 이 우르반이란 자는 본래 황제에게 고용된 자였는데, 황제가 그의 신작품들을 만들어줄 자금이 충분치 않다는걸 알자, 몰래 도시를 빠져나와 술탄에게 간 자였다.]
          *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이후 로마제국은 [[모레아 전제국]]과 [[트레비존드 제국]] 등으로 어떻게든 명맥을 이어갔다. 1461년에 트라페주스가 함락되고 트레비존드 제국이 멸망하면서 완전히 단된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0회 일치
         ||<#878787> '''{{{#EEE156 신체}}}''' ||<(> 184cm[* 누구나 다 아는 상당한 머리 크기 때문에 키가 작아보여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장신으로 유명한 [[강동원(배우)|강동원]], [[조인성]]하고 비슷하며 심지어 이들보다 크다는 소문도 있다.][* 하정우의 아버지인 김용건이 70대임에도 178이다. 유전자의 위대함일지도...그리고 사람이 나이를먹으면 키가준다는논리까지합하면.. 전성기시 김용건의 키는 180초중반이었을지도 모른다.], 75kg, [[A형]], 295~300mm ||
         ||<#878787> '''{{{#EEE156 데뷔}}}''' ||<(> [[2002년]] [[영화]] '[[마들렌]]'[* 데뷔시기는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서도 계속 변해왔다. 1997년 연극 《굿닥터》로 데뷔했다는 적도 있었고, 이 문서도 1998년 CF로 표기되어 있었다. 다만 대학 시 참여한 연극이나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CF를 데뷔로 보기 어렵다.] ||
         중학교([[전라북도]] [[임실군]]에 소재한 [[예원예술대학교]] 출신)때 전교 선도부장을 맡으며 학교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더욱 멋진 것은 하정우는 남자 후배들에게도 흔히들 선배가 잡는 허세나 똥군기를 하나도 안 잡고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학생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래서 동문들 사이에서는 하정우의 성공을 두고, "성훈이 형이 잘 되어서 정말 좋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시 성적이 안 나오자 담임이 '[[김용건|너희 아버지]]가 [[패드립|그러니 니가 그 모양이지 않느냐]]' [* 당시 [[김용건]]은 에로 영화에도 간간히 출였했었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며 춤을 가르치는 [[제비족]]으로 출연 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혼을 내 충격을 먹고 성적을 올려 모범생이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대학은 일반학과로 진학하고 졸업 후 탤런트 공채 시험[* 물론 연극과 진학 후 1998년에 공채시험을 보긴 했는데, 떨어졌다. 그리고 그 해 연말에 입대하여 24살 초인 2001년에 제대하였다.]을 봐서 스펙을 갖춘 엘리트 연기자가 되려 했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역사#s-2.4|그 해 모두가 그랬듯이 수능을 망쳤고]],[* 1997년 희대의 불쇼 수능 수험생이였다... 총점 300점 이상만 되어도 예원예술대학교 하위과에 지원이 가능했을 정도.] 수능이 끝난 후 뒤늦게 실기 준비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뭐?-- [[연극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출신 고교는 임실군의 임실고등학교로 고등학교 재학 시 경희신문부에서 부원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연기공부가 안 풀릴 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아무 생각없이 사온 스케치북에 끄적거리던 게 포텐폭발. 처음에는 유명인이 그림을 발표한 점에 대해 '유명세로 뭣도 아닌 게 그림 그리는 척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곧 그림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인정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술잡지나 미술평론가들의 칼럼에서 익명으로든 실명으로든 까이고 있다. [[조영남]]의 그림이 [[피카소]]의 표인 것처럼, 하정우의 그림도 외국의 [[장 미쉘 바스키아|어느 작가]]를 베낀 정도에 불과하다고....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하정우를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이라는 헛된 자신감으로 현대미술가 행세에 나선 (망신스러운) 사례"라고 깠었는데,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이다. 그리고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저 글이 개소리임을 증명하는 실존 인물]]도 있다.]국내 H·art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뉴욕, 홍콩 등지에서도 전시를 했다. 다만 직업 화가들도 꿈꾸기 힘든 개인 작품전을 하며 유명한 전시관을 대관 받은 것은 여타 전시전을 했던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창작품의 작품성보다는 본인의 연예계적 인지도가 관여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 자신의 연기 경력을 늘리려는(?) 시도를 가끔 한다. 데뷔를 대학 때 출연한 연극이나 [[아르바이트]]로 출연한 CF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정식 데뷔라 볼 수 없다. 실제 프로 배우의 길로 가지 않는 사람들도, 대학시 연극전공으로 연극을 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CF출연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연극판에서 오래 있었던 것 같은 인터뷰를 하는데 하정우는 극단 소속 출신이 아니라 20살 때부터 이미 소속사[* 하정우의 어머니가 고3 시쯤에 연예기획사에 소개해줬다고 한다.]가 있었고, 연극생활 기간 또한 대학 재학 시, 군복무 시간과 영화 데뷔 시기를 맞춰보면 가당치 않다. 제대 후에 소속사 중개를 거쳐 작은 연극공연 한두 작품을 했을 수는 있겠으나, 이미 제대 후 영화, 드라마 오디션을 많이 보고 단역으로도 종종 출연[* 물론 100번 넘게 봤다고 하니 그에 비해 캐스팅된 횟수가 적은 건 사실이다.]하던 그가 연극계에 오래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 힐링캠프에서는 세 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그냥 어린 아이가 우는 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걸 연기로 연결짓는 건 귀여운 자기허세 쯤으로 봐두자.
         먹는 연기의 달인이란 점이 식품회사들에게도 잘 알려져서 2012년 들어서는 식품 광고도 찍었다. 대표적인 게 햄 통조림 [[스팸]]과 [[맥심(커피)]].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식음료 CF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먹는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대부분 정중히 거했다고 한다.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에서도 이 먹방 연기는 여전히 탁월했다. 하녀에게 복숭아를 받아서 대충 한입 깨물고는 건성으로 '잘 익은 것 같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가 복숭아를 한 입 깨문 순간, 그 과즙이 사방으로 폭발하는데 카메라까지 튈 정도. 그리고 하정우 특유의 먹방으로 복숭아를 너무나도 맛있고 감칠나게 먹어버린다. 이 때문에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아가씨 배우들과 촬영진들을 모조리 폭소하게 만들었다. 하녀 역을 맡은 김태리는 이 때문에 웃겨서 연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스테프의 조언을 듣고 이 연기가 더럽다고 생각하며 감정을 조했다고.
  • 한확 . . . . 10회 일치
         |별명=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시호는 양(襄節)
         '''한확'''(韓確, [[1400년]]<ref>1403년생 설도 있다.</ref> ~ [[1456년]] [[음력 9월 11일]])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외척, 외교관이며 [[명나라]]의 문신이다.<ref>{{브리태니커|b24h3077a|한확}}</ref>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며 시호는 양(襄節)이다. [[조선 덕종|덕종]]의 비이자 [[월산대군]]· [[조선 성종|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와 [[조선 세종|세종]]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의 부인인 [[정선군부인]]의 친정아버지이다.
         [[1420년]] [[1월]] [[조선]]의 흉년기에 공물면제를 위한 사단의 대표로 예조참판 하연(河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의 광록시소경으로서 태종 이래 추진하였던 금과 은의 공물면제를 주청하여 황제의 허락을 받고 귀국하였다. [[1424년]] 명나라 성조가 북정(北征) 중 유목천(楡木川)에서 죽자 여비는 [[영락제]] 사후 순장당하였다.<ref>목을 매고 죽었다.</ref> 그뒤 장군 제사(掌軍節制使)가 되었다.
         [[1425년]] 전감무(前監務) 김성정(金成鼎)의 첩의 딸 고미(古未)와 간통하였다가 [[사헌부]]집의(執義) 정연(鄭淵)·헌납 윤맹겸(尹孟謙)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하였으나 [[조선 세종|세종대왕]]은 주저하다가 윤허하지 않았다.<ref name="se29">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9월 28일(갑자) 2번째기사 "장군 제사 한확이 간통했다고 갈아 임명하게 하다"</ref>
         그뒤 여비 한씨의 개를 높이 평가받아 다섯째 누이가 [[명나라]] [[선덕제|선종]](宣宗) 선덕제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공신부인]]이 되자, [[1429년]](세종 11년) [[진헌사]]가 되어 [[진헌부사]] [[조종생]](趙從生)과 함께 진헌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43년]]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그해 동지중추원사로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를 겸하였고, 그해 다시 [[판병조사]] 겸 지중추원사를 거쳐 다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었다. [[1444년]] [[경상도]], [[전라도]]의 진상품을 받을 것을 청하였으나 [[세종]]이 이를 듣지 않았다. 그 해 [[판이조사]]가 되었는데, 이때 인사에 공정을 기하여 자못 명망이 있었다. [[1445년]] 중추원지사 겸 [[판병조사]](병조판서)를 겸하다가, 다시 판이조사(이조판서)가 되었다. [[1446년]] [[판중추원사]]로 승진되었다가 [[1447년]] 이조 판서가 되고, 행[[평안도]] 관찰사로 나아갔다. 그해 행[[평안도]][[관찰사]]로 평양판윤과 [[평안도]] 병마도제사까지 겸임하였다. [[1448년]] [[평안도]]병마도사 겸하였다. [[1450년]](세종 32년) 판중추원사가 되었다. 그 후 판이조사·[[좌찬성]] 등을 거쳐 [[조선 세조|세조]] 때 서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1470년]](성종 1년)에 [[조선 세조|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양(襄節)이다.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였으며, 누나와 누이동생이 명나라 성조와 선종의 총애를 받음을 계기로 현달하여 [[명나라]] 후궁의 일족이라는 후광을 얻었으나 거만하지 않았다. 딸 [[소혜왕후]]에게는 일찍이 한학과 사서 삼경을 가르치고 부녀로서 지켜야 할 범을 가르쳤으며, 세자빈이 된 뒤에도 검소하고 자신을 낮출 것을 권고하였다.
  • 홍경인 . . . . 10회 일치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동갑으로 이름이 참 비슷한 [[홍경민]]과 친이라서, 6살 연상(CF 모델이기도 하다)의 미인 아내와 결혼할 때 [[홍경민]]이 축가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EXNxbdkG2E|#]]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 홍순언 (1530년) . . . . 10회 일치
         홍순언은 대죄하여 무릎꿇고 '작은 나라의 미관 말직 벼슬아치가 어떻게 대국의 귀한집 따님을 욕보이겠습니까' 하며 부복하여 을 올리고, 자신이 가져온 돈 2천 냥과 인삼을 그녀에게 주었다. 2천냥과 인삼을 팔아 마련한 돈 1천냥으로 그날로 류씨 소녀의 빚을 청산해주고 장례비용까지 대주었다. 류씨 소녀는 거듭 감사하다 하며 그에게 성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자신은 그냥 [[조선]]의 홍역관이다.<ref>혹은 성을 밝히지 않고 그냥 조선의 역관이라 했다.</ref>라고 했다. 류씨소녀는 은장(恩丈)이라 하며 거듭 감사를 표시했고, 그는 친히 소녀를 배웅하였다. 조선의 역관들은 조정의 허락 없이도 사적으로 인삼과 비단 무역이 가능했는데, 동료 역관들은 이것을 공짜로 류씨 소녀에게 주고 온 그를 바보라고 놀려댔다. 도리어 그가 류씨 소녀에게 준 2천냥의 돈이 공금이라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옥에 갇혔다. 하지만 얼마 뒤 석방되었다.
         [[종계변무]]란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백여 년간 명(明)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잘못 기록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하였던 사건이다. 태조때부터 시정을 위해 사신을 15회나 파견하였지만 전부 거당하였다. 지속적으로 거부당하자 조선 14대임금인 선조는 “종계변무를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목을 쳐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역관들은 겁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변무사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 예부상서 [[석성 (명나라)|석성]]이 [[요동]]의 국경까지 영접 나와 홍역관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자신임을 밝히자 석성은 장인어른 큰을 받으라며 그를 친히 모셔갔다. 이상하게 여기던 중 장안의 관사에 도착하자 귀부인이 나와 그에게 큰을 올렸는데 이는 그가 명종 때 구해준, 이제는 석성의 계비가 된 류씨 소녀였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하고 귀국했다.
         그가 [[장안]]에 도착하여 [[조선]]이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조국 정벌 음모를 접했음에도 이를 거하다가 침략을 당했다며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명나라]]의 관리들은 조선이 일본과 짜고 명나라를 토벌하려 하는 것은 아니냐며 조선 지원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당시 병부시랑으로 있던 석성의 도움으로 홍수언은 [[명나라]] 군사 5만 명의 파병을 성사시킨다. [[석성]]을 통해 그의 의기를 접하게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선뜻 가겠다고 자청했고,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고 한다.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에는 이후 [[명나라]]가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게 될 때 [[임진왜란]] 당시 5만의 병력을 파견하게 했던 [[석성]]이 투옥된 것을 기록한다. [[이익]]은 '[[1640년]]대 [[석성]]이 투옥된 후 [[이항복]]이 [[명나라]]의 [[베이징]]에 갔을 때 [[석성]]의 문하생인 양씨가 와서 "귀국에서 말 한마디라도 올려 스승을 구해주기를 청한다"고 간청하였지만 [[이항복]] 등 조선의 사단들은 이를 웃으면서 방관하였고, 한 사람도 사신을 보내 [[석성]]의 억울한 옥사를 변명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석성]]의 문인은 [[조선]]에 와서도 스승 석성을 구해줄 것을 청했으나 [[조선]] 조정은 입으로만 소중화, 재조지은을 외칠 뿐 양씨의 청을 거하였다. 성호 [[이익]]은 이를 언급하며 당시 관료들의 배은망덕함을 질타하였다.
  • 황병일(1960) . . . . 10회 일치
         == 선수 시 ==
         == 지도자 시 ==
         ===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코치 시 ===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 시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과거 아마추어 시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 중평.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 ~~[[최경환(야구)|하긴 당시 KIA 1군 타격코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
         === [[KIA 타이거즈]] 코치 시 ===
         ===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 ===
         === [[두산 베어스]] 코치 시 ===
         === [[kt wiz]] 2군 감독 및 수석 코치 시 ===
  • 권희동 . . . . 9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86번]]([[NC 다이노스|NC]])[* [[http://youtu.be/uvuodHYib-8|XTM 워너비 담벼락토크]]에서 출연했을 때, 4라운드까지 지명이 안되자 친구한테 '군대 말뚝 박을까?'하고 말했다고 한다.(...) [[임용수]]가 그때 심정이 암담했겠다고 위로하니 돌아온 대답이 ''''중계방송 끝나고 그냥 잤어요''''(...) 그런데 자는 도중에 전화로 9라운드 지명소식을 들었을 때 '''"아 진짜?"하고 다시 잤다고 한다'''(...) 인터뷰했던 임용수는 포복도.] ||
         || '''등장곡''' || [[G-DRAGON]] - 삐딱하게[* 영원한 건(권!) 대 없어(희!) 결국에 넌 (동!) 변했지(권희동!) 이유도 없어(권!) 진심이 없어(희!)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동!) 오늘밤은 삐딱하게(권희동!) ] ||
         == 아마추어 시 ==
         대학 4년 동안 타율은 0.292로 3할이 안 되었지만 출루율 0.411, 장타율 0.624에 8홈런 58타점을 기록한 슬러거 타자다. 다만,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명순번이 낮은 것은 타격에 비해 처지는 외야 수비 능력때문이다. 원래 경주고 시까지 3루수였다가 대학 진학 후에 외야로 전향한 터라 수비가 많이 미숙했다.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순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 모교인 경남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수비는 코너 외야수로서는 좋은 편. [[경남대학교|경남대]] 시 외야 수비 능력은 낮다고 평가받았었지만 프로에 와서는 집중력이 있고 실책이 적어 오히려 수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호수비가 아주 인상적이다. 코너 외야수뿐만 아니라 [[중견수]]로도 상당히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정말 급할 때는 [[포수]]도 가능하다. 주력/송구 능력은 보통.
          * 아무래도 [[희동이|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대학생 시에도 별명 없이 이름으로 불리는 등 좀 사연이 많은 듯. 롯데의 [[쉐인 유먼|둘리라고 불리는 외국인투수]]와 엮은 기사도 있었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둘리의 [[희동이]]가 [[http://sports.news.nate.com/view/20130416n04262?mid=s1004&isq=3969|방망이 들고 나오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왠지 이름 지을때 부모님이 둘리 만화를 잼있게 보셔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최훈]] [[http://naver.me/FXgrLd9H|버전(혀 내민 공용이(NC 다이노스) = 둘리)도 있다.]]
          * 타격 폼이 리틀쿠바을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본인도 롤모델이라고 하며 등번호의 63번도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시 박재홍의 등번호였던 62번에서 1을 더한 것으로 박재홍을 뛰어 넘겠다는 걸 상징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Hoh2DBRIA|영상 50초, 한쪽이 안들리는게 정상]]
          * 경남대 야구부의 김용위 감독은 권희동이 대학 시에 선수와 목회자의 길에서 방황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저 야구를 하기 싫은 마음에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http://www.ncdinos.com/ncboard/storyview?seq=2346&board_id=story|자랐다고 한다.]]
  • 김희애 . . . . 9회 일치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순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이후 "산 너머 저쪽", 비운의 연기자 [[변영훈]]과 함께한 "분노의 왕국", [[최수종]]과 남매로 나온 "[[아들과 딸]]"의 후남이 역, 최진실과 투톱을 맡아 신들린 연기를 보인 "폭풍의 계", 다시 한 번 황인뢰 PD와 함께 한 "연애의 기초" 같은 드라마로 최고의 연기력이라 인정받는 한편 [[최진실]], [[채시라]]와 함께 1990년대 TV 트로이카를 형성하는 여배우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본좌 연기자들 중 한 명으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잘하는 후배로 김희애를 언급했었고[* [[이순재]]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헐리우드 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후배 연기자로 [[남자]]는 [[김명민]], [[여자]]는 김희애를 꼽았다.] "완전한 사랑"같은 경우에는 그 한 연기로 대본 리딩 때 김수현 작가를 비롯해 중견 연기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일이 많았다고.--하지만 [[올인(드라마)|올인]] [[이병헌]]의 포스에 밀려 연기대상에는 실패했다는 것[* 이때문에 김수현 작가가 대놓고 SBS 시상식을 쓰레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많은 후배 여배우들(특히 1970-1980년대생)들이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20년 만의 영화 복귀작 "우아한 거짓말"을 촬영하고 연말에는 [[tvN]]의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는 등 데뷔 30년이 넘었어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연기자가 아닌 평소 모습은 엄청난 폭풍흡입 대식가이자 먹보여왕의 끝판왕. 먹고싶은건 대 놓치지 않는 그녀의 유행어 따라 지독한 애교 먹성까지 전파를 탔다.]
         국민 MC인 [[유재석]]과는 남사이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그 덕택에 [[무한도전 웨딩 싱어즈]] 특집도 같이하게 되었다[* 유재석이 2002년 봄 개편부터 공동 사회자로 합류한 SBS <토요일이 온다> 메인 MC였던 개그우먼 [[김미화]]는 김희애의 초등학교-중학교 선배다].
          * 폭풍의 계(1993, MBC)/이홍주
         || [[MBC 연기대상]] || '''대상''' ||<|2> 아들과 딸, 폭풍의 계 ||
  • 송창현 . . . . 9회 일치
         == 아마시 ==
         == 프로 선수 시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7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2012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야인 시 직접 점찍어 두었던 송창현을 곧바로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이 때 트레이드로 롯데로 넘어간 선수가 다름 아닌 '''[[장성호]]'''였기에, 졸지에 화제의 신인으로 급부상한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라(…).
         === 한화 이글스 시 ===
         2014 시즌 이후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지만 부상으로 도중에 낙마했다. 이후 11월 19일 요코하마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좌측 어깨 전관 와순 부분 파열로 접합 수술을 받았다. 26일에 퇴원해서 귀국한 이후 서산에서 재활훈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단계적으로 내년 2월쯤에 캐치볼을, 5월달쯤에 실전 피칭에 들어간다고 한다.
         ==== 군 복무 시 ====
         신체조건 하나는 [[김응용|코감독]]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좌완 떡대다. 키 181cm에 100kg의 건장한 체격에 아마시에도 큰 부상 이야기는 없는게 내구성도 괜찮아보인다. 특히 멘탈이 아주 좋은 편이라 맞는 걸 두려워하지않고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의외로 피안타율이 높지 않다.
          * 한화의 경기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경기를 보러 오기도 하는데, 경기 상황이 영 좋지 않게 돌아가면 안못하시는 게 심히 안습하시다(...). [[부모]]의 마음은 모두 다 저렇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 같기도.
  • 신민아 . . . . 9회 일치
         버거 소녀로 유명한 배우 [[양미라]]와 이름이 비슷해, 신민아로 활등명을 개명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 [[이병헌]]의 여동생으로 첫 연기를 시작한 이래, 영화 [[화산고]]를 찍는 등 고교시까지도 유망주로 잘 나갔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부정확한 발음과 국어책 읽는 연기로 드라마와 영화 모두 흥행에는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모델 출신 다운 늘씬한 몸매와 감각적인 패션센스, 볼륨있는 몸매와는 상반된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로 꾸준히 광고에 등장하다가 2008~2009년에는 드디어 포텐이 터져 cf퀸으로 떠올랐다. 2015~2017년의 [[AOA]] [[설현]] 정도 입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 진로의 소주 J광고부터 [[포텐]]이 만개하여 주점 앞에 광고를 위해 세워둔 등신대 입간판이 사라지는 등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귀여운 외모에 늘씬하고 굴곡있는 몸매로 베이글녀로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골반과 힙라인, 뒤태가 주목받았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식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아래 항목에서 볼 수 있는 친들인 [[공효진]]과 [[임수정]]은 패셔니스타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력 또한 선보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연기력 및 연기의 폭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듯 보인다. 더구나 두 친 못지않게 드라마나 영화 출연도 많았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건 확실히 아쉬운 부분. 물론 신민아 뿐 아니라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는 [[김태희]]나, [[엽기적인 그녀]] 이후 [[도둑들]]이 성공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연기에서 좋지 못한 평을 들었던 [[전지현]]도 CF만 찍는다고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었다.
         그러나... 연기력이 서서히 나아지고는 있으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똑같이 잡지모델로 출발하여,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역시 발연기로 까였던 김민희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김민희는(불륜으로 유명세를 치룬 것과는 별개로) 차부심한 끝에 발연기의 오명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하여 끝내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데 반해 신민아는 여전히 연기력에서는 인정을 받았다고 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표정연기의 문제이기보다는 발성과 발음의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 2015년 10월 15일 약 7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온 사실이 기사로 나왔다. 새터민들을 돕는 단체 및 사랑의 열매를 통한 매달 200만원, 연말에는 5천만원에서 1억정도의 액수를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싱글맘들을 위해 분유를 기부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 그동안 기부한 액수가 약 10억 원 정도라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78574|관련 기사]] 특히 새터민들을 돕는 행사는 몇 년전 공개 행사를 할때 참석하였는데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불교 단체를 통해 기부한 적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신민아는 개신교 신자. 이따금 에서 목격담이 있기도 하고,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가 봉은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타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 --드라마 고사장에서 을 하지는 않는 정도--
         때려 이후의 첫 작품 [[이 죽일놈의 사랑]]. [[공효진]]과 상두야 학교가자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고, [[송혜교]]와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등을 통해 최고의 반열에 오를 뻔하였던 [[비(연예인)|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명필을 휘날린 [[이경희]] 작가와 함께한 [[이 죽일놈의 사랑]]은 사상 최대의 폭망은 아니지만 시작도 하기 전 엄청났던 기대치를 단숨에 잠재우며 조용히 와서 조용히 떠나갔다. 사실 [[소지섭]]과 [[임수정]]을 톱스타 반열에 올려 놓은 미사의 위용을 이을 거라 생각했던 시작 전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망했다라는 표현이 적하다.
         여담으로 [[마왕(드라마)|마왕]]과 동시에 방영했던 MBC의 [[고맙습니다]]가 시청률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화제성을 끌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 작품의 작가가 [[이죽사]]의 작가인 이경희였고 여자 주연배우는 신민아가 [[이죽사]]에서 함께했던 [[비(연예인)|비]]를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연기자로 성공적 데뷔를 시켜주고 나중에 후술될 [[홍자매]]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후속작인 [[최고의 사랑]]을 히트쳐내서 홍자매의 명성을 다시 부활시킨 공효진. --공효진의 쩌는 선구안. 친이라는데 좀 배웠으면--
  • 안영준 . . . . 9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삼광초-용산중-경복고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저학년 시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3학년 시에는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하였으며, 4학년 시에는 주장인 [[허훈]]과 팀의 챔피언결정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허재]]감독의 아들이자 [[허웅]]의 동생인 주장 [[허훈]]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선수이다.
         === 프로 시 ===
         드래프티 동기인 허훈과 양홍석도 소속팀 kt에서 활약 중이고 안영준은 팀 성적에서, 허훈은 개인 성적에서 상대방보다 앞서 있었기에 신인왕에 어느 선수가 적합한지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 뜬금없이 3월 9일 [[유재학]] 감독이 기자들의 신인왕 관련 질문에“자질만 놓고 보면 양홍석이 안영준보다 훨씬 낫다”, “양홍석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안영준은 지금처럼 하면 국가대표에 뽑히기 힘들다. 가지고 있는 기본 자질이 다르다”라고 평가한 보도가 나왔다. [[http://www.basket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063|기사]]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 선발 주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순 있겠지만 동시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두고 경쟁하던 팀의 감독이니만큼 언론에 대고 한 본 발언이 적한지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었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원주 DB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신인답지않은 레이업을 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차전 4쿼터 막바지, 버튼의 팔꿈치에 얼굴이 접촉된 후 몸이 뒤로 넘어진 것이 플라핑이라고 지적받으며 성숙하지 못한 플레이라고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슬로우로 봤을 때 버튼의 팔꿈치가 명백하게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의 강도가 약했음 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과했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정규리그 동안 안영준이 이러한 플레이를 한 적은 없었고, 플라핑은 본래 근되어야하는 플레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키는 3번으로서 평범하지만 202cm의 윙스팬은 키에 비해 길고 웨이트와 운동 능력이 좋은 편이다.[* 신인시 무려 [[김종규(농구)|김종규]]에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시도했지만 공이 림 안쪽을 맞고 튀어나갔다.]
  • 우현(배우) . . . . 9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영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영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영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반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90년대 신촌에서 '지리산'이라는 주점을 운영하였다. 앞서 언급된 [[타임지]]의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던 술집. 당시 병맥주 전국 최저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저렴한 술값의 주점이라 학생들, 특히 동문인 [[연세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던 술집이었고, 사장인 우현을 비롯해 친인 [[안내상]]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운동가요만 틀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하자고 전략을 바꾸었고, 안주값을 천 원씩 받고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였다. 한 번은 겨울에 1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손님들과 같이 놀면서, 큰 점퍼에 받은 술값들을 쑤셔넣으며, 문닫을 때가 되면 그냥 술집에서 바로 자고 일어나 다시 장사하고 하면서 생활을 해봤다. 1주일 뒤에 주머니나 바지속(?) 등 곳곳을 뒤져서 돈을 꺼내자, 500만 원이 넘게 돈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배우 안내상도 자극을 받아 주점을 운영했다. 2003년까지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1988년 연극 제작자로 첫 데뷔 후 제작과 기획에만 참여했지만, 정작 본인이 연기를 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신학과]] 동기이자 학생운동을 함께 한 친 배우 [[안내상]]과의 인연으로, 연극 <라이어>로 데뷔했다. 이때가 34세로, 배우치곤 상당히 늦은 나이다.
         시트콤을 하면 노총각 역을 맡는다. 거기다가 특유의 노안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10살 넘는 역할을 맡는다. 40대 시에도 60살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참가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등장만으로도 많은 참가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엄청난 [[노안]]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봉주]] 등장 전까지 많은 참가자들이 못생긴 순위 1위로 찍었으며[* [[이천수]]는 우현을 '''레전드급이라고 평했다'''.] 이봉주가 등장하기만을 고대했다. 시즌1의 [[고창석]][* 배우, 노안, 참가자들의 경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과 유사한 역할일 듯. 등장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결국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의 최고의 매력남으로 뽑혔다.[* 정작 우현과 친한 사이인 우상호 의원은 그가 못친소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외였다고 한다. 그는 한번도 우현이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셀프카메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송일국]]의 차남 민국이와 상당히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민국이가 후에 우현이 되는 게 아니냐"며 드립이 성행하는 중. 또한 아들의 아기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상당히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사실 <유자식 상팔자>에서도 공개된 내용인데, 당시 우준서는 사진을 공개한 내내 상당히 좌했고, 본인은 조기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당돌하게 발언하였다. 이때 밝혀진 것인데, 아기일 적의 엄마와도 닮았다고 한다.]
          * [[유자식 상팔자]]나 [[비정상회담]]에서 밝혀진 유명한 일례로, 대학생 시 때 [[이탈리아]]로 혼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피렌체]]의 어느 골목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런데 당시 우현의 몰골이 얼마나 초췌했는지, '''소매치기범이 도리어 우현을 불쌍하게 여기고 훔친 지갑을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 유민상(개그맨) . . . . 9회 일치
         아직 120kg이 안 되던 시 개그맨 신인들의 등용문이었던 [[폭소클럽]]에서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이라는 코너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개그콘서트]]로 넘어온 후 <솔로브레이크>라는 코너에서 석호필을 패러디한 '석호피그'로 '''영리한 돼지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1대 100]]에서 우승하면서 캐릭터만이 아님을 보여줬다. <아빠와 아들>, <안생겨요>, <큰 세계> 등의 코너도 히트시키는 등 몇 안 되는 개콘 장수 개그맨으로서 그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비호감]]이라는 약점이 살짝 있었는데, [[맛있는 녀석들]]이 대히트하면서 그것조차도 다 날려버렸다.
         유명하지 않지만 신인 시 개그콘서트 최악의 흑역사 코너 [[이런 붕닭]]에 나온 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똥군기가 갈수록 젊은층들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는 마당에서 이런 건 적치 않은 행동이다. 단순히 피자박스가 발견됐다고 혼내는거면...그리고 개콘 초창기 후배들 집합시켜 갈구다가 퇴출된 선배들도 있었고, 당시 유민상도 피해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진심으로 유민상이 갈굴 리는 사실 없긴하다. 다만 개그맨들의 에피소드는 MSG가 많이 과다한 게 사실.
          * 2013년 9월 24일 311회 [[1대 100]] 때 [[1대 100/1인 우승자 #S-5.1|2,3단계에서 찬스를 소진하면서 위기를 맞은 뒤 7단계에서 최후의 2인과 접전을 벌였으며 최종 결과는 여기 참고.]][* 3단계에서는 장효인에게 2인의 답 도움을 받고 통과했다.] 이 때 후배 [[장효인]]이 유민상이 짝사랑하는 개그우먼 후배 S양이 '''[[박소영(개그우먼)|박소영]]'''이라고 폭로했지만, 실제로는 [[유장프]]에서 90년생 미녀개그우먼 '''홍예슬'''로 밝혀졌다.[* 2015년 12월 22일 홍예슬이 현장토크쇼 TAXI에서 당시를 회상하길, '영화볼래?'란 문자가 먼저 왔단다. 부담스러웠지만 대선배기 때문에 거할 수 없어 동기와 함께 나갔더니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나랑 사귈래 총맞을래'라길래 쏘라고 했단다. '선배님 저는 성시경같은 남자 좋아해요'라고 그랬더니 무려 성발라의 노래를 부르며 대시. 곧 '성시경이 싫어졌어요'라고 철벽을 치는 안타까운 결말.....숨기고 싶은 과거도 활자화되기 때문에 공인은 이래서 힘들다.]
          * 2013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남자 우수상을 수상했다.--본인은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준비해 왔다고 한 건 안 자랑--[* 소감을 읽을 때 --다분히 의도적으로-- 상 이름을 언급할 때면 매번 '최우수상'이라고 말한 뒤 바로 '아니, 우수상'이라고 정정하거나 '대상 바로 밑에'라고 했다가 '아니 대상 바로 밑에 밑에'로 정정하는 등 깨알같은 재미를 주었다. 여담으로 그토록 바라던 최우수상은 캐릭터적 라이벌(?)인 [[김준현]]이 수상했는데, 동료들이 김준현에게 꽃다발을 건네러 단상에 나올 때 같이 나와서 '''트로피를 바꾸자고''' 딜을 했다가 거당했다.]
          * 이 날 본인이 이 항목을 보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흑역사에(야구 비하 사건) 대한 항목까지 보았고, 이 항목은 사실이지만 본인에게 있어서는 이 사건보다는 그보다 과거에 있었던 개그 표 사건을 더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이 날 방송에서 흡연자임이 밝혀졌다.(이미지 관리상 흡연하는 모습은 직접 나오지 않았다.)[* 다만 후에 [[유장프]]에서 술 담배를 끊었다고 언급된 걸 보면 끊은 듯.]
          * [[GTX1080]]이 국내출시되자 바로 구매했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 이 게임의 열정은 상당히 그 역사가 긴데, 어린 시 플레이스테이션1을 사기 위해 엄마 몰래 신문배달까지 할 정도였다고. 2018년 4월 경 [[갓 오브 워 4]] 출시 때 개인방송을 했는데 몇년 전 구입한 ps4로 플레이 중임을 밝혔다. 1080ti나 ps4 pro로는 바꾸지 않고 있으며, 주로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때만 업그레이드를 하는 편이라고. 그의 스팀 라이브러리는 게임으로 꽉 차 있다. 소장 게임 수가 어마어마.
          * 98년 대학 신입생 시 [[드림캐스트]]를 구입한 것을 당당하게 여자친구에게 밝혔다가 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싯적부터 게임을 한 덕인지 게임 센스는 나이에 비해 매우 뛰어난 편. [[배틀그라운드]] 개그맨 대회 때도 항상 상위권에 들며 발군의 스나 실력을 보여주는 편.
          * 2014 경기도 동두천경찰서 4대 사회악 근 및 세이프 가디언 홍보대사
  • 전태일 . . . . 9회 일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피복 공장에 취직하였다. [[1965년]]에는 청계천내 삼일회사 재봉사로 일하다가 강제 해고된 여공을 돕다가 함께 해고되었다. 이후 [[한미사]]의 재단보조로 있다가 재단사가 사장과의 갈등으로 해고되자, 그가 재단사가 되었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어 [[1969년]] [[7월]]부터 [[노동청]]을 방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과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번번히 거당했다.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 청소년 시 ====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영래, 《전태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1969년]] [[7월]]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으나 거당하였다. 이후 [[노동청]]을 찾아가 근로 환경 개선,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번번히 거당했다. [[1969년]] [[9월]]부터 [[1970년]] [[4월]]까지 일용직 건축 노동자로 일하였다. 이때 그는 [[감리교|감리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70년]] [[4월]]부터는 평일에는 자신이 다니던 감리교회의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노동자 동지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치는 야학당 교사가 되었다. 주말 낮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1970년]] [[10월 8일]] 그는 [[삼동회]] 대표들을 이끌고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노동자 [[숙소]] 다락방 철폐, 정식 기숙사 설치, [[노동조합|노조]] 결성 지원, 위생 환경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 8개 항의 요구를 제출하였으나 거당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도 탄원서를 보냈지만 [[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간에 소거되었다. [[10월 24일]] 그는 [[서울]] 도심에서 근로 조건 개선 거리시위를 기도했으나, 오후 1시 사전에 경비원의 신고로 정보를 입수하여 출동한 [[대한민국의 경찰|경찰]]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태일의 동무들에 대해''': "나 그대들 없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어. 태일이가 죽고 병원에 찾아와서 이제부터 지들이 내 아들이라는거야. 그리고 지금 40년 가까이 지났어. 변치않고 엄마 이상으로 잘해줘. 얼마나 챙겨주는지 몰라. 난 정말로 태일이 친구들을 내 아들이라 생각해. 배곯아가며 두들겨 맞아가며 청계노조를 만들고 지켜냈지. 이들이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태일이와의 마지막 약속도 지킬 수 없었을거야. 난 그냥 미쳐 죽었을테지. 어머니라고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 순덕이 결혼할때도, 손주들 대학들어갈때도 이들이 태일이 노릇 다했어. 열서너살 먹은 여공들,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고생했냐. 이들이 없었으면 청계노조를 지탱해올 수도 없었을꺼야. 명때마다 한복 차려입고 세배하고 그랬어. 지금 다 시집가고 애낳고 살지만 그래도 떡이랑 사들고 찾아오고 그래 이 엄마 준다고."<ref>오도엽《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177,203,273,285쪽</ref>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9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0화]] |||| '''대가련 칠드런/441화''' |||| [[대가련 칠드런/442화]] ||
         [[대가련 칠드런]] 441th sense. '''윈터솔져 (2)'''
          * 길리엄은 어린시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칠드런과 효부 쿄스케에게 조롱 당하는 악몽을 꾼다.
          * 하지만 효부는 지금으로선 어쩔 방법이 없다며 거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9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3화]] |||| '''대가련 칠드런/464화''' |||| [[대가련 칠드런/465화]] ||
         [[대가련 칠드런]] 464th sense. '''카타스트로피 (2)'''
          * 이제 후지코와 대결만 남았는데 [[효부 쿄스케]]는 승부를 서두르며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대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쿠모이 유리]]가 보여준 환상. 이들은 모두 블랙 팬텀 산하의 경비업체에 소속된 용병들이다. [[효부 쿄스케]]는 신념도 뭣도 없이 상황이나 이득에만 관심있는 녀석들은 최면에 걸리기 쉽다고 비아냥 댄다. 그러자 유리는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나 [[길리엄(대가련 칠드런)|오빠]]도 세력을 키웠다."고 자조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9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70화]] |||| '''대가련 칠드런/471화''' |||| [[대가련 칠드런/472화]] ||
         [[대가련 칠드런]] 471th sense. '''상속 (3)'''
          * [[츠쿠시 미오]]는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의 만류에도 무작정 형무소 내부로 잠입하려다 뒤쫓아온 [[타마키 카즈라]] 일행에게 밟힌다.
          * [[미나모토 코이치]]가 테러리스트 혐의로 에스퍼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츠쿠시 미오]]는 격분해서 판도라의 거처에서 뛰쳐나온다. 그러나 기세 좋게 나온 것 치곤 아무런 계획도 전략도 없는 상황. 미오는 일단 형무소 담벼락은 초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걸 알고 희희낙락한다. 차라리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쪽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외벽 쯤에서는 초능력이 통해도 형무소 내부는 ECM으로 무장하고 있을 거라며 무작정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설치류도 알 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미오는 "그런건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른다"며 ECCM도 가져왔으니 어떻게든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9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71화]] |||| '''대가련 칠드런/472화''' |||| [[대가련 칠드런/473화]] ||
         [[대가련 칠드런]] 472th sense. '''상속 (4)'''
          * [[츠쿠시 미오]],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는 강화된 세 사람의 힘에 수세에 몰린다.
          둘은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이 칠드런에게 구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이 둘의 강박관념을 자극해서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 "반대로 지켜지는건 싫다", "모두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선 블랙 팬텀에 의탁하는게 최고다"라는 비약적인 사고로 돌아간다. 평소 바보로 일가견 있는 미오가 보기에도 앞뒤가 엉망진창인 전개.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블랙 팬텀이 그들의 "마음의 틈"에 세뇌를 집어넣은 거라고 본다. 미오는 떨어져 버린 카즈라 일행도 염려하는데 모모타로는 텔레파시로 그들도 교전 중임을 알린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9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72화]] |||| '''대가련 칠드런/473화''' |||| [[대가련 칠드런/474화]] ||
         [[대가련 칠드런]] 473th sense. '''상속 (5)'''
          * 일행이 코드네임을 가지고 시시덕거리는데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블랙 팬텀]],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그 코드네임이 마음에 걸린다.
          * 일행이 만담을 하는 동안 상황은 블랙 팬텀에게 착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인근의 카메라가 일행의 모습을 담는다.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카오루가 말한 "판도라의 대리"나 "파괴의 여왕"이란 이름을 듣고 뭔가 마음에 걸리는 모습이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정찬성 . . . . 9회 일치
          * '''조지 루프''' - 2라운드 '''하이킥 KO패.''' 정찬성이 이 패배 이후 선수 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했었고, 기하고 병원에서 깼는데 경기 리플레이를 보니 자신이 스스로 걸어온 것임을 알고 '잘못하면 큰일나겠구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은 정찬성은 경기 스타일을 바꾼 끝에 UFC에서 활약을 펼치게 된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2013년 8월 4일 브라질에서 열린 'UFC 163' 에서 조제 알도와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뤘다. 3라운드까지는 알도의 아웃파이팅+TD 전략에 약간 밀리는 양상을 보였지만, 그래도 점점 TD를 잘 방어하며 근거리 타격전에서 극강 챔프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 펀치를 주고 받던 중 팔끼리 엉킨 것을 빼내는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고, 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TKO를 당하고 만다. 탈골 이후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맞춰보고 다시 해보려 했으나 어깨에 이상이 있음이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났고, 이를 눈치챈 조제 알도가 킥 2방을 부상 부위에 작렬시켰고, 이후 쓰러지면서 파운딩 세례를 받고 아쉽게 패배하였다. 전체적으로 약간 밀리는 분위기 속에서 3라운드 종료 직전부터 부상 직전 상황까지는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기를 끌고 갔던 지라 아쉬움이 크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하며(백스테이지에서 어깨뼈를 맞췄다고 한다.) 정찬성 본인은 리매치를 원하고 있기에 향후 행보는 지켜봐야 알 듯. 결국 어깨 부상과 안와 골 부상 때문에 1년간 결장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굉장히 특이한 스타일.''' 단순히 정찬성을 '난타전을 잘하는 선수' 내지는 '투지가 돋보이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완성형 파이터' 라고 표현하는건 적하지 않다.
         물론 정찬성의 타격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일단 4KO 의 비중은 결코 적은 게 아니며, [[조지 루프]] 전 이후를 보면 4번의 승리 중 반을 KO가 차지하고 있다. 특유의 맷집을 바탕으로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인파이팅은 상대 선수에게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긴 리치 덕분에 원거리 전도 가능하다. 189cm에 달하는 정찬성의 윙스팬은 동양인 선수로서는 가히 축복받았다고 할 만하다. 승리 전적에서 타격은 모두 [[펀치]]로 마무리했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에는 한국의 [[반달레이 실바]]라고 불릴 정도로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합기도]]를 배웠고 18세에 [[킥복싱]]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만큼, 타격으로 격투기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 시에는 정말 미친듯한 인파이팅을 보여줬는데, [[좀비]]라는 링네임이 붙은 이유는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파고들어 접근전을 펼치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원거리에서는 펀치를 연타하며 접근, 인사이드에서는 넥클린치 니킥을 날리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뭐 타격전의 근본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 최채흥 . . . . 9회 일치
         상원고 시 동기인에 가려져 투수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한양대 진학 후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업하였고, 대학 야구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 아마추어 시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시에는 동기에 밀려 주로 1루수로 출장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 3할 4푼 5리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http://www.hsbaseball.kr/player/daesang25]]] 그러나 1루수로는 특출난 성적을 내지 못하여 지명받지 못하고 한양대로 진학한다.[* 고교야구 팬이 아니라면 의아함을 느끼겠지만, 경기수가 적어 0.345의 타율도 높은 성적은 아니다. 그 해 [[http://www.hsbaseball.kr/record/batter_unity.htm|타율 40위이고]], 파워도 있는 편이 아니다.]
         === 프로 시 ===
         퓨쳐스 호투에 힘입어 5월 19일 토요일 넥센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선발로 등판했고 3⅔이닝 8피안타 2실점(1자책) 81구를 기록했다. 수비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기록은 신인 치고는 기대 이상이였으나 최대 구속이 140으로 대학 시보다 떨어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날 선발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주전급 대부분이 빠져있었다.[* [[이정후]], [[서건창]], [[김하성]], [[박병호]] 대신에 들어와있는 상황.] 2:2 동점 상황에서 강판되어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3:6으로 패배했다. 21일 1군에서 제외됐다.
         4월 14일 역시 [[kt wiz]]를 상대로 홈경기에 출전, '''7이닝 104투구 (S:71,B:33) 6피안타 1피홈런 (1회 유한준 3점) 1볼넷 7삼진 3실점 3자책'''을 기록해 [[QS+]]를 기록했다. 타선이 간만에 터지며 3:14까지 점수를 벌렸으나 이후 올라온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 [[김대우(1988)|김대우]], 최충연을 상대로 [[kt 위즈]] 타선이 9점씩이나 뽑아내며 12:14까지 좁혀져 승을 날려 먹을 위기에 놓였었다. 역전 주자까지 내보낸 상황에서 [[장필준]]이 두 명을 삼진으로 잡으며 어찌어찌 2승에 성공. 이때 덕아웃을 비춘 카메라에 잡혔는데, 볼 카운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안못하는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빠른 년생]]이지만 중학교 시 경주중에서 포항중으로 전학하면서 1년 유급해 이점이 없다.
         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 피우진 . . . . 9회 일치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상태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대위 시, 소속 부대의 군사령관(대장)이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요구를 했다.''' 당시 피우진은 당연히 이 명령을 거했다. 처음에는 본인 보고 직접 오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한다. 즉, 휘하 [[여군]]을 술자리 여흥을 위해 부르는 행위가 군 내에 만연했던 것. 부당한 명령이 계속되자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한 가지 꾀를 내는데, 술자리에 보내지는 [[여군]]들에게 사복이 아닌 [[군복]]을 입혀 보내는 것이었다. 군복을 보면 술자리 여흥을 위한 여성이 아니라 휘하의 군인임을 떠올리게 되어, 이들을 대 함부로 대할 수 없으리라는 계산에서였던 것. 해당 여군들에게 [[완전군장]]에 총기까지 휴대시켜 실탄까지 지급 한 뒤 회식자리로 보낸다. ~~술이 확 깼겠군~~
         이를 통해 피우진이 얼마나 대쪽 같은 인물인지를 깨닫게 되었기에 더 이상 비슷한 성격의 요구가 하달되는 일은 없게 되었으나, 높으신 분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피우진은 결국 중령에서 군 생활을 접게 된다. ~~안 돼~~ 한때는 이것이 루머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실제 실탄 지급을 한 것에 대해 징계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호라, 그럼 기록에 남은 그 사람이 관련자로구나!~~이때가 1988년 무렵이고, 피우진은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1987년 6월부터 89년 4월까지가 [[정호근(군인)|정호근]](後 합참의장 역임)이 1군사령관이고 다음이 [[이진삼]]이다. 또한 88년 7월 소령으로 진급했기 때문에, 88년 대위 시 사령관은 [[정호근(군인)|정호근]]으로 추측된다.
          * 앞서 말한 대로 2006년 건강검진 때 [[유방암]] 제수술 건으로 강제 전역 당했다가 2년 뒤 소송을 통해 복귀한 경력이 있는데 [[카라 헐트그린]]의 동료였던 [[F-14]] 여성 파일럿 캐리 로런츠(Carey Lohrenz) [[미합중국 해군]] 대위의 행적과 비슷하다. 두 사람 다 [[여군]] 1세대 파일럿[* 캐리의 경우 정확히는 카라 헐트그린과 함께 여성 최초의 전투기 F-14 파일럿이다.]이며 억울하게 자리에서 쫒겨나[* 피우진의 경우 유방암 제수술의 장애 판정으로 강제 전역, 캐리 로런츠의 경우 최소한의 재심사도 없이 강제 [[그라운딩]]을 당했다.] 2년간의 법정 소송을 통해 그 보직과 자격을 회복했다. 다만 피우진의 경우 소송에서 이기고 육군항공학교에서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정년까지) 커리어를 이어갔던 반면[* 대신 앞전의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등의 일로 미운털이 박혀서 진급이 막혔다.] 캐리 로런츠의 경우는 소송에서 이겼음에도 높으신 분들 때문에 끝내 함상 근무로 복귀하지 못하고 1999년 [[미 해군]]을 떠났다.
          * 군인 시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썼다.
  • MC메타 . . . . 8회 일치
         ||<:> '''활동명''' ||<(> [[MC]] Meta a.k.a. Tronical[* BLEX 초창기 시 가리온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 닉네임을 썼다.] 每他 ||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을 나왔는데, 별로 인기 없던 친구가 소풍때 기타를 치니까 여자애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창시에는 Rock음악을 했다고 한다. 힙합은 방송 [[AFKN]]에서 처음 접했다고..
         실력은 공식 데뷔로는 14년차 블렉스시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동안 랩을 하고 있지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준급 스토리텔링과 시적인 가사, 특유의 한국어 라임 구성, [[붐뱁]] 비트, 재지(Jazzy)한 비트, [[트랩]] 비트 등에서도 랩을 할 수 있는 넓은 비트 스펙트럼. 플로우는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엇박을 잘 타는 것도 아니지만 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포스가 그 모든 걸 덮는다. 2018년 현재 48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가리온 2집의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에서 아직 본인의 랩 실력이 꺾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1세대 래퍼들이 현재 랩을 안 하거나 퇴물 취급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 마스터플랜 멤버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랩 작업물을 내는 건 메타와 나찰 정도 밖에 없다.--더럽게 안내지만--]
         프리스타일에서도 일가견이 있다. [[허클베리피]]가 티비에서 MC 메타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래퍼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도 한다. [* 여담으로 [[마이크 스웨거]]에서 한 헉피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올티]]가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 마스터플랜 클럽 시 당시, 예정공연이 전부 끝나고 MC 메타의 프리스타일 타임이 관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2014년 총 세 편의 [[싸이퍼]]를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하였다.--[[치타]] 학살-- 그리고 프리스타일을 할 때마다 '연결고리'를 많이 외치기로 유명하다. [[https://youtu.be/r4h1cHTOCJI|증거자료]] 일리네어레코즈에서 본인이 피쳐링한 '연결고리'라는 곡의 유래도 엄밀히 따지면 저 멘트이다.
         AT431 - AT431 Presents 折衝(충) Vol.1/ Thorn Your Side (표효하는 표범들처럼) Zonk Mix, M, 뭐라고?
         [[한량사]] - 折衝(충) Vol. 2 - 〈바람코지〉, 〈浮草 (CRITICKAL P MIX)〉,〈夏夢 : M2 - PART 1〉,〈ANOTHER SIDE>
         [[리쌍]] - 백아현(伯牙絶絃)/ In The Beginning (feat. Meta, Sean2Slow, 바비킴, 명호, [[DJ Wreckx]])
         [[불한당]] - 충 (折衝) 3 : 불한당들의 진입과 전투 Part 1/ <진입과 전투>, <불한당가>, <한길을 걸어가라 Remix>
  • 김수용(코미디언) . . . . 8회 일치
         주변 연예인들에 의하면 사석에서 이만큼 웃긴 개그맨이 없었다고, 그리고 꽤나 범상치 않은 독특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똥군기]]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는 사항이지만 그 살벌했던 코미디언 세계에서 선배가 내리갈굼하는데도 하는 척만하다가 얻어터졌으면 터졌지 후배에게 똥군기를 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숙]] 등의 후배들과도 친했다고 한다. 김수용의 토크 레파토리를 보면 동기들과 놀러다닌 것과 후배들과 놀러다닌 에피소드가 꽤 많다. 하술할 슬픈 사기도 인성이 너무 좋아서 당한것이나 그래도 동기나 후배를 잘 챙겨준 덕에 2010년도 부터 방송에 재기했을때 자리잡고 있던 후배들이 여러 곳에서 불러 주었고 성공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참고로 아버지가 상계[[백병원]]의 원장[* 3~4대 원장을 지낸 김관엽 내과 교수. [[http://www.paik.ac.kr/sanggye/pds/201212064269352.pdf|인터뷰 기사(3페이지)]] ]까지 지낸 분이라 부유한 유년 시을 보냈다고 한다. 여의도 고등학교 출신인데, 선천적으로 체격이 큰 것과 더불어 싸움도 잘해서 고등학교 때 '의리의 여의도 용팔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이 별명으로 학창시 여의도 전체 고교생 주먹세계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연예계 데뷔 후에 여의도 방송국 근처 락카페에서 --진짜 주먹꾼-- [[임재범]]과 시비가 붙었다가 가죽옷을 입고 다가온 임재범이 김수용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눈 깔아"라고 하면서 담배불을 자기 입으로 끄자, 김수용이 당황해서 "제가 제 친구인 줄 알고 사람을 잘못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의도 출신이라 여의도에 아는 애들이 많아서 헷갈릴 때가 있어요."라고 구구 설명해서 째려보던 임재범이 그냥 돌아가면서 겨우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개그맨 동기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가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자가용을 타고 동기들끼리 [[나이트클럽]]에 놀러다녔던 게 감자골 멤버들이나 [[유재석]]의 토크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으레 선배가 술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밥을 사줄줄 알았는데 김수용 선배는 딱 밥만 먹고 [[더치페이]]하고 각자 흩어졌다고.
         김수용이 멘붕해서 [[NC소프트]]까지 전화해서 어떻게 복구 안 되겠냐고 했지만 자의로 교환한 거라 어쩔 수 없다고. 결국 온오프로 '''사기만 2번 당했다.''' 이후 리니지는 완전히 접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리니지에 대한 애정이 있는지 관련한 방송에 종종 출연하고 있다.[[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140219141906924.daum|#]] 심지어 [[2017년]]에는 리니지 챌린저 서버 CF까지 찍었다. [[https://youtu.be/V5CbUL-h5X0|#]][* 라스에서 밝힌 후일담에 의하면 이 CF 촬영 때 관계자에게 슬쩍 마방템 하나만 달라고 이야기 해 봤다고 한다. 다만 아이템은 회사 규정상 임원에게도 제공 못 한다고 거당했다고..물약 하나도 안 줬다고 한다.]
         2016년에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했는데, 과거 [[미남]] [[개그맨]]으로까지 불렸었는데[* [[파일:감자골_리즈시.png]][br]미남으로 유명하던 시기의 외모는 지금으로서는 연상도 되지 않는 수준.] 근 몇 년새 살이 부쩍 불어서 [[유재석]]에게 자기관리 부족이라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실제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2012년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해서도 현재는 꽤나 살이 찐 상태. 몸무게가 세 자리 가까이 육박한다고.
         기독교 계열 방송국인 [[CTS]]의 한 프로그램에서 "[[동성애]]가 그냥 싫다."[* 정확히 말하면 동성애자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하지 않지만, 동성애 자체는 싫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 호모포브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후 그는 대학생 시 동성애자에게 성추행을 당해 혐오감이 생겼다고 주장했으며, 이제는 동성애에 대해 "더 말하지 않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 김윤환 . . . . 8회 일치
         === 출생 ~ 신문기자 시 ===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언론사인 [[영남일보]]와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일본특파원 및 편집국장 대리를 거쳤다. 이 시에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 중간에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8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 정치인 시 ===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윤환은 당대의 '''[[킹 메이커]]'''(King Maker)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정에 올랐다. [[김영삼]]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舊민정당(군사독재정권) 출신 민정계 인사들을 설득해서 강력한 [[김영삼]]의 지지세력, 일명 신민주계를 규합하여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당시 김윤환은 민정계 인물들에게 '국민들이 군부 출신 민정당 인물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일단 [[김영삼]]을 세워서 정권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우리(TK+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 정권을 창출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김윤환은 [[전두환]] 밑에서는 친구인 [[노태우]]를 후계자로 옹립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노태우]] 밑에선 [[김영삼]]을 후계자로 지원해서 역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영남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상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그의 친동생인 [[김태환(1943)|김태환]]은 17대, 18대, 19대(한나라당 -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구미시]] 을인데, 이 곳은 15대 국회의원 시 김윤환의 지역구였다. 16대에도 [[구미시]](단일 지역구)로 출마했으나 이 때는 김윤환이 2위로 낙선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신화용 . . . . 8회 일치
         = 유소년 시 =
         선수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보냈던, 그야말로 '''[[레전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
         우여곡 끝에 고향팀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게 됐지만 주전 자리에는 K리그의 레전드인 '''[[김병지]]'''가 버티고 있었고 포항 유스 출신으로 기대받던 송동진, 1년 전 이미 입단해서 청소년 대표에서 뛰고 있던 '''[[정성룡]]'''까지 있어서 김병지의 백업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2005 시즌이 끝나고 송동진은 군 입대, 김병지가 이적하면서 신화용은 정성룡과 주전 경쟁을 하게 된다. 2006년에는 정성룡이, 2007년에는 신화용이 더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2007년 플레이오프부터 정성룡의 독무대가 또다시 펼쳐지며 정성룡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활약상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상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상[*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상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남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영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상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영진들 보고 있나?~~ ~~경영정상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남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신화용이 포항 시과 달라졌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상대선수를 가격 하는 장면이 늘어나고 있다.
          * 2017년 7월 9일, 제주전에서 K리그 통산 100번째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였다.[* 포항 시 통산 94번 + 수원 입단 후 6번]
         키가 큰 골키퍼를 선호하는 김봉수 코치 때문에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저 소문일 뿐이다. 김봉수 코치는 오히려 김병지, 이운재, 카시야스를 거론하며 골키퍼는 키보다 경기 운영능력,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www.sportnest.kr/1564|관련 기사]] 정성룡 때문에 덩달아 미운 털이 박혀서 본인이 한 말과 정반대의 말이 퍼져 인터넷에서 공연히 욕을 먹고 있다.[* 덧붙여 굳이 김봉수의 양아들을 찾자면 정성룡이 아니라 A매치 달랑 1경기 뛰어본 이범영이다. 유소년 시부터 가르친 선수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4강 UAE전에서 한국에서 패널티킥 방어가 가장 뛰어난 김승규를 빼고 승부차기 대비용으로 넣을 정도로 신뢰를 보였다. 정성룡은 부진할 때 코치로서 변호해준 게 다인데 어쩌다 보니 양아버지란 낙인이 찍혔다.] 신화용이 뽑히지 못한 건 잘한다고 무한정 돌려 쓸 수 없는 골키퍼 포지션의 특수성 때문이지 다른게 아니다.
  • 원우(가수) . . . . 8회 일치
         중학생 시, 막연히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취미 삼아 친구와 실용음악학원을 다녔었다. 그런데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그곳에서 우연히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고, 단순히 경험 삼아 참가했다가 덜컥 합격해 [[2011년]]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공개 오디션을 보고 입사한 세 멤버 중 한 명으로 약 3년 8개월간의 오랜 연습생 기간을 보냈다. 각종 선배 그룹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거나 백댄서로 무대에 올라 데뷔 전부터 조금씩 얼굴을 비쳐왔다. 자세한 내용은 [[세븐틴TV]] 항목의 [[세븐틴TV#s-3.1.3|원우]] 문단 참조.
         이외에도 팬들에게 [[여우]] 상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데 멤버로, 이는 멤버들도 예전부터 입을 모아 자주 말해왔던 것이다. 데뷔 전 [[세븐틴TV]] 시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팬들이 그려준 캐릭터 그림을 보고 누군지 알아맞혀 보는 코너에서 [[https://youtu.be/OyDNQZnumos?t=54s|여우꼬리를 단 캐릭터]]가 나오자마자 [[원우]]임을 눈치챈 멤버들이 모두 알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우지(세븐틴)|???]] : 이~런 여우 같은 놈!-- 무표정일 때도 물론이지만 웃을 때 눈이 가늘게 접히고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그의 여우적인 생김새가 상당히 도드라지는 편이며, 이때 코를 찡긋 거리는 모습이 아기 사자를 닮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연습생 시엔 [[원우]]가 회사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스탭의 일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여러 생각이나 고민을 혼자 가지고 있는 편이 많았고 표출하는 방법도 잘 몰라서 혼자 끙끙 앓았다고.
         자신감과 자기애가 대단히 높은 타입이기도 하다. 아이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 가짐으로 자기애를 꼽으며 연습생 시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연습해 자기애를 키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팬사인회에서 당시 [[원우]]의 옆에 앉아있던 [[민규]]가 팬으로부터 "옆자리 멤버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자 "자신감"이라고 적어낸 일화도 있다.
          [[원우]]가 경기안산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 친구들과 여미르 축제에 참가해 [[비]]의 '레이니즘'을 췄던 것이 영상으로 남아 데뷔 후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영상 속 [[원우]]의 어마어마한 춤 실력(...)과 ~~[[우지(세븐틴)|우지]] : 정말 머신처럼...~~ 이를 능가하는 편집 방식[* 이 편집은 팔룡중 기술가정 선생님이 직접 하셨다고 한다.....]이 합쳐져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극강의 민망함을 자랑하는 이 영상은 [[2015년]] 10월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데뷔 한 직후 음악 방송 [[THE SHOW|더쇼]]로 인해 처음 전파를 탔으며 이후 각종 방송에서 잊혀질만하면 개그 기믹으로 다시금 등장해 뗄래야 뗄 수 없는 [[원우]]의 한 부분이 되었다....[[https://youtu.be/9W3yi0YGUEQ|#리허설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Y4NjIlZchY|#본무대]]
          * 어렸을 때 [[합기도]]와 [[육상]]을 했다. 연습생 시 체력 훈련할 때도 항상 1등을 가져가는 [[우지(세븐틴)|우지]] 다음으로 제일 오래 버티는 편이었다고.
          * 근데 이런 본인의 버릇과 달리 어릴 때 큰 개에 물린 적이 많아 개를 무서워하고, 새도 무서워한다고 한다. 연습생 시 새를 무서워하는 [[원우]]를 위해 비둘기를 쫓아주고, 결국 다른 길로 돌아갔다는 일화가 담긴 [[https://www.facebook.com/notes/seventeen/17s-diary-%EC%88%9C%EC%98%81-20130722-%EC%83%88%EA%B0%80-%EC%96%BC%EB%A7%88%EB%82%98-%EC%9D%B4%EC%81%9C%EB%8D%B0/200471620115646/|호시의 일기]]가 세븐틴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적 있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 팬사인회에서 고양이 관련 질문을 받아 답변한 바에 따르면 [[https://twitter.com/imreal717/status/1020632498580029440|오랫동안 밥을 챙겨주는 친한 길고양이가 있는 듯]].
          * 연습생 시 야채 과자를 밥 대신 먹었을 정도로 좋아했으나 지금은 끊었다고 한다. --[[승관]]은 박수까지 쳤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담긴 [[호시(세븐틴)|호시]]의 일기가 아직 [[https://www.facebook.com/notes/seventeen/17s-diary-%EC%88%9C%EC%98%81-20130715-%EC%95%BC%EC%B1%84%EA%B3%BC%EC%9E%90-%EB%8C%80%EC%8B%A0-%EC%83%88%EC%9A%B0%EA%B3%BC%EC%9E%90%EB%8A%94-%EC%96%B4%EB%95%8C/198383483657793/|세븐틴 공식 페이스북]]에 남아있다.
  • 은혼/597화 . . . . 8회 일치
          * 하세가와는 설사 나라가 망해도 사무라이는 살아있고 그녀석들(해결사)은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이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 그리고 그가 지킨 꼬마에게 "사람은 원래 망 위에서 살아가는 법"이며 자신은 그런 망의 밑바닥에서 살아왔지만 이 날을 위해서 살아온게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 쉽게 달려오는 망처럼 희망도 똑같으며, 이런 망은 그에게 있어 무수한 망 중 하나에 불과하다.
          * 동전 한 닢을 주우면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값싼 망.
          * 그리고 꼬마와 에도시민들에게 망 속일 지라도 "눈만 계속 뜨고 있으면" 희망은 그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을 거라는 말을 하는데
  • 은혼/613화 . . . . 8회 일치
          * 지금도 하타 황태자를 따라다니는 영감, 그의 이름은 네스로 젊은 시 하타 황태자를 옹립하려는 파벌의 리더였다. 이 무렵은 제법 이지적인 이미지였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책맞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네스의 파벌은 오우고쿠왕이 하루라도 더 옥좌에 있길 바란다면서도 하타 황태자가 온갖 생물을 애호하는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점이 자신들을 이끌어준다며 은근히 하타 황태자를 앞세운다. 지금은 그 모양 그 꼴이지만 놀랍게도 이 시의 하타 황태자는 꽃미남에 탈모도 없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세월--
          그러나 이 거대한 칭코가 불행이 되어 말을 타던 중 칭코가 벽 위의 나뭇가지에 휘감기는 사고가 발생, 그대로 낙마하면서 벽 아래로 떨어져 명하고 만다.
          더럽게 한심한 현실이지만. 가츠라 고타로에게 인실로 잡힌 현실의 하타 황태자. 잠시 기했던 모양이다. 가츠라는 다음엔 기로 안 끝난다고 협박하며 이쪽으로 향한 총구를 치우라고 한다. 가츠라는 이런 난세에도 지구의 동물을 지키려고 방주까지 가져온 점에 감탄한다. 하지만 지구엔 그가 감당 못할 맹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라며 그의 목숨을 담보로한 교섭을 시작한다.
          칭코가 작아 설움 당했던 신하 단은 이 방주에도 탑승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파벌을 이끌고 나타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에 사격을 가한다. 정말로 황태자까지 죽이려 들어서 가츠라와 마다오가 황태자완 네스를 놓아준다. 총격은 당연히 가츠라 측에도 향하는데 엘리자베스가 몸을 날려 가츠라는 무사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한다. 하세가와는 가까스로 총알을 피한다.
  • 은혼/628화 . . . . 8회 일치
          * 헤바는 [[헤도로]]를 개조하여 "헤도라"와 "헤도로"의 힘을 파일럿이 조할 수 있게 한 병기. 일격필살의 츳코미가 특기다.
          * [[진선조]]의 국장 [[곤도 이사오]]가 대답한다.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에 의해 우주와 지상의 통신이 두되고 지휘계통까지 무너진 해방군이 금방 재건되기는 어렵다. [[히지카타 토시로]]도 놈들은 패주하다 막부의 추격대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에 거의 와해된 상태라고 덧붙인다. [[오키타 소고]]는 오히려 지금은 공세로 전환할 찬스라며 저정도 대군이 지휘계통도 없이 흩어진 지금이라면 병량을 노려서 궤멸시킨다면 그걸로 전쟁은 끝이라고 자신한다.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고 하지만 적을 그대로 두는 것도 그렇지. 그러니까 아예 그 둘을 충시켜서
          신파치와 가구라는 유례없이 차가운 눈길로 비행장년기를 맞은 사장을 쳐다봤다. 그러나 긴토키는 싱크로율이 순조롭다는 헛소리를 하며 헤바를 출동시키고 싶어서 안달이다. 신파치가 본적도 없는 파벌이 생겼다고 빈정거리고 가구라는 헤바가 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긴토키는 헤바를 출동시킬지, 대기시킬지, 혹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해결사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주 묻는다. 신파치가 너도 해결사라고 츳코미하는데 헤바 파일럿은 귀가 먹는 직종인지 전혀 듣지 않는다.
          냉정하게 곤도를 지나쳐가는 긴토키와 헤바. 곤도는 좌감 속에 무릎을 꿇는다. 그로서는 달려나가는 헤바를 막을 수 없었다.
          히지카타는 어차피 세상이 멸망하면 쉬는건 얼마든지 할 테니 사바세계를 즐겨두라고 대꾸한다. 하지만 세상은 겐가이포의 영향으로 전등불 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 오키타는 이런데서 할 수 있는건 자는 거나 그거 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대정전이 일어난 도시는 이듬해 출생률이 오른다는 도시전설도 주거린다. 우연의 일치인지 막 잠자리에 든 긴토키는 사루토비가 이불 속에 숨어들어와 내쫓는 중이다.
          * 히지카타는 정전이란 말에 "내가 찾는게 그거"라고 말한다. 오키타는 "그거할 상대"라고 알아듣지만. 그가 말한건 정전을 넘어 에도의 모든 기계를 멈춘 남자 [[히라가 겐가이]]였다. 겐가이포 덕에 그나마 해방군을 막아낸 거지만, 이대로는 그들도 우주와 단된 상태로 아무 연락도 취할 수 없다. 우주로 나간 [[가츠라 고타로]] 일행과 교신하려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그러자면 겐가이의 협조가 필연적이다.
  • 이광수(배우) . . . . 8회 일치
         초창기 때는 해괴한 바가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이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과 런닝맨 초창기에는 외모가 눈에 띄지도 않고 런닝맨 멤버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라서, 20대 초반 화보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런닝맨 중반부 이후로는 수염도 밀고 머리도 다듬다 보니 꽤 훈남화됐다. 다만 망가지기도 많이 망가질 뿐더러, 멤버들이 친구 송중기와 자꾸 비교하다보니 못난이 캐릭터가 지속되는 현상이 나온다. [[2007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KT의 'SHOW' CF(공대 아름이 편)였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모기춤도 이때 생겼다. 당시 수염 때문인지 [[노안]]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 살 많은 [[누나]]인 [[유인나]]보다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수염]]을 제거했고 수염이 없는 현재는 [[동안]]까진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젊어 보인다. 허나 여전히 노안 캐릭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룡]]이나 [[에브라]], [[김상중]] 등 런닝맨에 출연할 당시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염을 밀 때였다.]
         또 배우로서의 친한 연예인으로는 연예계의 사조직 멤버로는 [[배성우]], [[조인성]], [[송중기]], [[임주환]],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차태현]], [[박보검]]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송중기하고는 동갑내기 친인데, 런닝맨 때부터 인연이 이뤄졌다. 주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맛집이나 영화 시사회, 팬미팅, 콘서트에 자주 간다고.
         또한 경쟁 프로인 [[1박 2일]] 일부 멤버들과도 친한데 차태현은 김종국의 친인 동시에 본인 역시 차태현 라인에 속할 정도로 친하다. [[윤시윤]]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 함께 출연하였다. 가끔 1박2일을 케이블 방송으로 모니터링 한다고 언급했다.
         여배우에선 동갑내기 배우인 [[왕지혜]], [[신다은]]하고도 친한 사이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런닝맨 출연할 당시 광수의 사생활을 폭로하였다.어떻게 보면 왕지혜의 폭로가 더 파격적인 폭로였다.신다은은 이광수가 자신한테 고백한 적이 있다가 전부였지만 왕지혜는 이광수가 이광수 동생역할이랑 사귀었다고 했고 그게 누구인지까지 파악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 [[MBC]][[놀러와]] - 게스트 출연 [* 지붕킥에서의 인연으로 줄리엔 강과 친으로 나왔다. 참고로 [[유재석]]이 당시 광수를 키 큰 [[하하(가수)|하하]]이라든지 혹은 [[노홍철]]과 비슷하다고 평을 내렸다.]
          * 런닝맨에서의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로는 예의가 바른 편. 어릴 적부터 예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게 통화예인데, 방송에서 가끔 유재석이 방송인 걸 숨기고 전화를 거면, 그렇게 친한 사이인데도 정중한 목소리로 "형 안녕하십니까"이란 말을 하고 유재석이 본론을 꺼내기 전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방송에서 이광수의 '꽃뱀' 발언을 자막으로는 '사기꾼'으로 순화한 것을 근거로 제작진 역시 방송에 부적하다 생각하고 순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새끼'나 '돌아이'같은 발언 역시 자막으로 순화하여 내보내며, '''정말로 방송에 나가면 안되겠다 싶은 수위의 욕설은 애초에 [[소음 검열]]을 해버린다'''. 즉 제작진이 해당 발언을 순화시켰다해도 결국 자막에서 순화시키는 정도면 충분할 정도의 수위[* 상기한 '새끼'나 '돌아이', '등신'같은 욕설.]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으며, 갖은 과격한 발언을 내버려두고 '꽃뱀' 발언만 핀포인트로 문제삼는 것은 모순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2화]] |||| '''대가련 칠드런/433화''' |||| [[대가련 칠드런/434화]] ||
         [[대가련 칠드런]] 433th sense. '''거기 누구냐?(4)'''
          * 미나모토는 놀랍게도 효부가 필요한 전력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과거 효부라면 학을 떼던 시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36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5화]] |||| '''대가련 칠드런/436화''' |||| [[대가련 칠드런/437화]] ||
         [[대가련 칠드런]] 436th sense. '''배틀 오브 인간사!(3)'''
          * 후지코는 자신이 저지른 사고에 대해서 어리둥해 하며 에스퍼의 미래를 지켜야하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한 건지 의문스러워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7화]] |||| '''대가련 칠드런/438화''' |||| [[대가련 칠드런/439화]] ||
         [[대가련 칠드런]] 438th sense. '''배틀 오브 인간사!(5)'''
          * 칠드런 일행은 효부가 직접 후지코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효부는 미심쩍어하긴 해도 단칼에 거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6화]] |||| '''대가련 칠드런/447화''' |||| [[대가련 칠드런/448화]] ||
         [[대가련 칠드런]] 447th sense. '''무법자들 (2)'''
          * 세뇌가 들통난 마기 시로는 효부 쿄스케를 회유하려 하지만 거 당하고 교전에 들어간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0화]] |||| '''대가련 칠드런/451화''' |||| [[대가련 칠드런/452화]] ||
         [[대가련 칠드런]] 451th sense. '''무법자들 (6)'''
          * 마기의 기억 속. 판도라의 거점이 될 배,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2세 호를 구입하던 시이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1화]] |||| '''대가련 칠드런/452화''' |||| [[대가련 칠드런/453화]] ||
         [[대가련 칠드런]] 452th sense. '''무법자들 (7)'''
          * 그 말이 전해졌는지 재채기를 하는 후지코. 옆에 젊은 시의 키리츠보 타이조가 있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2화]] |||| '''대가련 칠드런/453화''' |||| [[대가련 칠드런/454화]] ||
         [[대가련 칠드런]] 453th sense. '''무법자들 (8)'''
          * 그는 언제나 다른 에스퍼에게 손을 내밀면서 정작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에스퍼는 거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3화]] |||| '''대가련 칠드런/454화''' |||| [[대가련 칠드런/455화]] ||
         [[대가련 칠드런]] 454th sense. '''무법자들 (9)'''
          * 효부는 꽤 거추장스러운 차를 거친다며 전엔 더 직선적이지 않았냐고 말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5화]] |||| '''대가련 칠드런/456화''' |||| [[대가련 칠드런/457화]] ||
         [[대가련 칠드런]] 456th sense. '''무법자들 (11)'''
          * 일단 현장의 상황은 역전, 다수의 에스퍼에 효부가 포위되었다. 후지코는 이정도 인원이면 효부라도 대 도망칠 수 없다고 장담하며 포위망을 좁힌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9화]] |||| '''대가련 칠드런/460화''' |||| [[대가련 칠드런/461화]] ||
         [[대가련 칠드런]] 460th sense. '''반역자들 (3)'''
          * 긴 시간만에 재회한 [[미나모토 코이치]]와 더 칠드런 일행. 모두가 반갑게 인사하며 흐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와중 한 사람만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카키 슈지]]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처하게 밟히고 있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5화]] |||| '''대가련 칠드런/466화''' |||| [[대가련 칠드런/467화]] ||
         [[대가련 칠드런]] 466th sense. '''카타스트로피 (4)'''
          * [[아카시 카오루]]는 [[츠보미 후지코]]의 자살을 막으려 하지만 [[길리엄(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ECM의 주파수를 변경해 초능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8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73화]] |||| '''대가련 칠드런/474화''' |||| [[대가련 칠드런/475화]] ||
         [[대가련 칠드런]] 474th sense. '''상속 (6)'''
          * [[츠쿠시 미오]]가 [[모모타로(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를 데리고 [[미나모토 코이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단이탈, 그 미오 일행을 쫓아 [[히노 카가리]], [[타마키 카즈라]], [[파티 크루]]도 이탈.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더 칠드런 일행까지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효부 쿄스케]]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념체 형태로 겨우 운신만 하던 효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본체의 인공심폐가 일시 정지한다. 상황을 보고한 것은 [[쿠구츠 타카시]]. [[우츠미 세이시로]]는 효부의 상태에 악영향이 갈 줄 알고 전달을 반대했지만 쿠구츠는 "어떻게 그러겠냐"며 강행한다.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정칠성 . . . . 8회 일치
         유년 시에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고, 후일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하였다. 기생학교에서 수료한 후 한남권번의 기생으로 있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4년]] [[허정숙]](許貞淑),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여성들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창립하였고, [[일본]] 유학 중 1925년 도쿄에서 여자유학생단체인 삼월회를 조직했다.
         정칠성은 [[1897년]] [[대구부 (1895년)|대구부]] 출신으로 초년에는 [[기녀]]였다. 어린 시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으나, 빈한한 가정에서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f name="propp">{{뉴스 인용
         그녀의 어린시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곱 살에 기녀가 되어 각종 기예를 익혔고, [[경성부]] 한남권번(漢南券番) 소속 기녀가 되었다. 한남권번에서 '''금죽'''(錦竹)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기생학교]]에서 기예를 배운 뒤 한남권번에서 기생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부산]]에서 배편으로 [[일본]]에 다시 건너가, [[동경]]의 [[도쿄영어강습소]]에서 영어를 수강하였다. 그러나 비용 마련의 실패로 [[미국]] 유학의 꿈은 좌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편물학당을 개설하여 뜨개질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창씨 개명]]을 거하고 상점 운영에 종사하는 한편, 1931년부터 나가던 경성, 평양 등의 공회당 수자수, 편물 강사일을 계속하였다. 또한 틈틈이 조선지광, 삼천리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고료를 받기도 했다. [[1938년]] [[일본]]에 유학중인 아들 이동수의 학비 조달이 곤란하자 다시 기생이 되려 하였으나, 대동광업회사에서 아들 이동수의 학비를 지원하였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고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박헌영]]의 재건파 [[조선공산당]]에 참여하였다. [[8월 16일]]부터는 [[건국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하였다. [[미군정]]이 시작되자 [[서울]]에서 [[좌익]] 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대구]]의 [[조선공산당]] [[경상북도]]지구당 부녀부장이 되고,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도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칠성은 시중의 조롱과 멸시를 당했다. 당시 [[조선공산당]]은 "봉건유제 타파하여 여남평등 이룩하자!"고 부르짖던 진보적 정당이었고, 그는 공산당의 간부였지만 여전히 기생을 팔반천인의 하나로 여기던 시이었고, 정칠성은 기생 출신이 정치를 한다고 야유를 보냈다.
         테러와 탄압을 피해 피신생활 중에도 그는 [[1946년]] [[3월]] [[허정숙]]과 함께 [[서울]]에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녀]] 행사를 조직하였다. 그해 [[5월]] [[허정숙]]이 월북한 뒤에도 [[1948년]]까지 매년 [[3월 8일]] [[서울]]에서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녀]] 행사를 개최했다.
  • 조진호 (축구인) . . . . 8회 일치
         |포지션=감독 (선수 시 [[미드필더]])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선수 시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남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남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남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조진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무릎을 꿇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등의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격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에는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평소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친정팀인 대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도 하였다.
         * [http://ikfhs.tistory.com/entry/나의-선수시-21-조진호 나의 선수시 21 : 조진호, 피치 위에 못다 핀 꽃]
  • 진격의 거인/86화 . . . . 8회 일치
          * 그리샤의 어린시. 여동생 페이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완장"을 챙겨주며 대로 "벽"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 그리샤는 진실을 이야기 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시부터 언급해야 했다고 쓰고 있는데, 그의 어린시은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 그는 어리둥한 그리샤에게 "당신의 여동생은 마레인에게 살해됐다. 진상을 알고 싶거든 엘디아 복권파에게 협력해라."는 제안을 받는다.
          * 조직원들은 그런 대적인 힘이 있는 프리츠 왕이 왜 전쟁에 패해서 도망친 거냐고 의문시하는데, 다이나는 그 역사 자체가 날조라고 주장한다.
          * 거인대전이란 145대 왕이 시조 거인을 계승하고 가문 간의 분쟁을 조하지 않은 채 수도를 파라디섬으로 변경해 버린 것이 시작이었다.
          * 조직원들이 망에 빠지자 그리샤는 궁여지책을 동원한다.
  • 최태원 (야구인) . . . . 8회 일치
         ==선수 시==
         ===[[쌍방울 레이더스]] 시===
         [[서울미성초등학교|서울미성초]], [[성남중학교|성남중]]을 거쳐 그는 [[성남고등학교 (서울)|성남고]]-[[경희대학교|경희대]] 체육대학 시 내내 국가대표 [[2루수]]로 활동하며 연고 팀 [[OB 베어스]]의 1차 지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OB 베어스]]는 [[건국대학교|건국대]] 출신의 [[내야수]] [[추성건]]을 지명했고, 그는 당시 꼴찌 팀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로 밀렸다.
         신인 시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2루수]] [[송태일]]에 밀려서 주로 [[우익수]]로 활동했으나, [[송태일]]이 이적 2년째인 [[1995년]] 슬럼프에 빠지자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타격을 앞세워 [[1995년]] 최다 안타상을 수상하며 주전 [[2루수]]를 차지했다.
         ===[[SK 와이번스]] 시===
         우여곡 끝에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은 해체 후 [[SK그룹]]에 인계되어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단했고 [[인천광역시|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2000년]] [[SK 와이번스]]의 초대 주장을 맡았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10160242 “반갑다 인천…이겨라 광주!”최태원 코치의 특별한 가을] - 동아일보</ref> 그러나 이미 30대 초반에 접어든 그는 빈볼의 후유증으로 인해 [[2001년]]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고, 프로야구판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탓에 [[SK 와이번스|SK]] 프런트의 안 좋은 시선을 받았다.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된 [[2루수]] [[정경배]]에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끈질기게 이어오던 연속 경기 출장 기록도 당시 [[SK 와이번스]] 초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야구인)|강병철]]에 의해 [[2002년]] [[9월 10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을 결장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 후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시의 은사인 [[조범현]]의 감독 부임 이후 재기를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주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3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3년]] [[10월 5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2011년]] [[KIA 타이거즈]]가 준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 1승 3패로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되면서 [[조범현]]이 경질되었고, [[조범현]] 사단의 해체와 동시에 [[선동열]]이 새로 감독에 부임하자 옛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선배였던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감독으로 선임되어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 핫라인 마이애미 . . . . 8회 일치
         스페이스키: 기한 적 처형, 한손 총기를 들고 사용할 시 기한 적을 인간방패로 쓴다.
          특정 무기로 시작하는 가면이 아닌 이상 이걸로 시작한다. 말 그대로 주먹질을 한다. 맞은 적은 잠시 기한다. 기한 적을 처형할 때는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서있는 상대의 정면에서 처형 버튼을 누르면 목 핏줄을 잡아 뜯어 죽여버리지만 성공률이 희박하다.
          맞춰도 기만 한다.
          맞춰도 기만 한다. 빗나갔을 시 깨지므로 재사용 불가.
          프렐류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 해당 챕터에서 확보해야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적을 기시킬 뿐이라서 처형을 꼭 해야한다. 처형에 사용할 수 있다.
          칼을 착용하면 들고 나오는 근접무기.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상대를 기시킬 수 밖에 없다. 처형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
  • 황덕균 . . . . 8회 일치
         ==선수 시==
         ===한국 프로야구 시===
         ====[[두산 베어스]] 시====
         ===일본 독립야구 시===
         ====[[서울 해치]] 시====
         ====[[NC 다이노스]] 시====
         ====[[kt 위즈]] 시====
         ====[[넥센 히어로즈]] 시====
  • Crusader Kings 2/특성 . . . . 7회 일치
          * 근검 약가(Thrifty Clerk)
          ''통풍에 걸렸습니다. 고열과 피로에 시달리고 붓기와 관통이 이어집니다.''
          ''이 인물은 "제"를 미덕이라 믿습니다 - 이는 통치자와 장관 모두에게 가치 있는 특성입니다.''
          * 친(Kind)
          ''이 인물은 친하고 타인을 향한 공감으로 가득합니다. 여섯 번째 미덕 '친'은 가신에게는 지지를 얻지만 첩보관에게는 인기가 없습니다.''
          * 친(Kind) 특성에 대한 의견 +5
  • 고유민 . . . . 7회 일치
         == 프로 선수 시 ==
         프로 첫 선발 출장은 2013년 12월 29일 GS칼텍스 전이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황연주를 대신해 라이트로 출장했다. 이때 팀이 0:3으로 패했는데 마지막 3세트는 10:25으로 대패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수비가 망해버린 팀에서 그나마 리시브를 적히 받아낸 축에 속해서 욕을 먹진 않았다. 한편, 고유민은 실수했을 때 쟤 실수하고 왜 웃냐고 재밌다고 컬트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였으나 기업은행의 높은 블로킹과 까다로운 서브에 고전하며 교체되었다가 팀이 명의 위기에 처하던 5세트 6-7상황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때 블로킹득점과 묘한 앵글샷으로 연속 3공격득점을 하면서 10-7까지 벌려놓았으나[* 재밌는 점은 이때 기업은횅 이정철 감독은 9-7상황까지는 기업은행 선수들에게 화를 내다가 10-7이 되자 잠깐 벙쩌서 선수를 가리키며 '쟤 뭐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가대표도 아주 꿈은 아니다.-- --꿈 깨고 내년 U23 국가대표에는 나갈수 있을듯--] 이후 부진하던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가 폭발하고 공격이 블록당했으며[* 5세트 이정철 감독은 고유민의 담당 블로커로 박정아(188cm)를 세워두는 초강수를 뒀다.], [[이정철]] 감독의 적시 비디오 판독이 나오면서 그대로 기업은행 기세에 팀이 밀리며 패배하게 되었다. 기록은 8득점, 공격점유율 14.36%, 성공율 25%, 디그 9, 블록 1, --리시브성공률 0%을 빼면 쓰나-- --그날은 꽝--.
         컵대회 후반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컵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컵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리시브 성공률, 공격성공률 30%-30% 달성, 반의 성공'''
  • 김경준(축구선수) . . . . 7회 일치
         반야월초등학교 시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처음 진학한 학교는 백암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입학 후 1년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용인축구센터를 떠나기 싫었던 김경준은 신갈고등학교로 전학갔다. 김상진 감독 덕분에 일찍 적응했다고 한다. 신갈고 시에는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4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신갈고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라고 불리었다. 3경기 7골을 득점하는 등 엄청난 골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고교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였다. 결국 9경기 연속 골 기록을 세웠고, 14골을 넣었다. 이 때,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김경준을 보고 갔었고, 결국 김경준은 영남대로 진학하게 된다.
         영남대학교 시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남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신갈고 수아레즈라고 불릴만큼 골 결정력이 우수하다. 개인기도 좋은 편으로 대학 시에 상대 수비수를 개인기로 따돌리고 골을 기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득점에 있어서도 꾸준함을 과시한다. 신갈고 9경기 연속골 기록이 이를 증명하며, 영남대에선 U리그 권역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기록했었다.
         롤모델이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이다. 인터뷰에서 자주 수아레즈를 닮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시에도 별명이 신갈고 수아레즈였다.
         고등학교 시이나 대학 시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청소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승우(축구선수)|이승우]], [[황희찬]] 등 해외파나 전국구 유명세를 지닌 유망주들에게 밀렸다고 밖에 할 수 없을만큼 안타깝다
  • 김륵 . . . . 7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1540년]] [[경상북도]] [[영천시]] 에서 태어났다. [[조선 세종|세종]] 때의 천문학자 [[문공 김담]]의 4대손으로, 증조부 김만칭(金萬秤), 조부 김우(金佑)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김우는 사후 [[증직|증]]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생부 김사명(金士明)은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유생으로 수학한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이었다.
         ==== 임진왜란 시 ====
         [[1602년]](선조 35) 경상도 변방으로부터 왜의 재침 기미가 있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조정에서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로 보내 청병하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재역불가의 5가지 이유'를 들어 거하였다. 그는 반오조를 들어 설득하니 [[만력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벼루]]와 [[비단]] 등을 하사하며, 지금 출병은 어렵지만 왜에 대한 경계의 칙지를 내릴 것을 약속받고 되돌아왔다.
         === 광해군 시 ===
         이후 영주시내에 귀학정과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천운정을 짓고 시문으로 소일하며 이수광·한석봉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했는데, 이때 석봉 한호로부터 친필 글씨로 귀학정 현판을 선물로 받았다. 1616년(광해군 8) 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에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광해군]] 시의 행동이 참작되어 1653년에 이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정조 12년인 1788년에 '민(敏節)'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경상북도 영주시의 [[구강서원]], 향현사(鄕賢祠) 등에 배향되었다.
  • 김미경(강사) . . . . 7회 일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20대, 30대의 젊은 청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이런 얘기를 해요. "원장님 있잖아요, 지금 요즘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요, 내 가슴을 뛰게 하질 않아요. 그래서 이건 내 꿈이 아닌가봐요." (중략) 내 가슴을 뛰게 하질 않는대요, 이 일이. 그래서 이거는 꿈이 아니라서 나는 여기를 떠나서, 가슴 뛰는 일을 계속 찾아다닌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죽을 때까지 찾아 봐라, 찾아지나!" 대 여러분 가슴 뛰는 일 같은 건 세상에 못 만나십니다. 중요한 건 (저는) 강의라는 일을 만나서 내 가슴이 뛸 때까지 일한 거예요, 20년동안. 여러분, 꿈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거예요.
         == 논문 표 논란 ==
         >독창성을 인정해줬다는 점에 대해 이화여대에 고마워요. 그럼에도 사실 잘못은 잘못이고 표은 표이지. 제가 무지했어요. 잘못한 건 확실해요.
         2013년 3월 석사 논문을 표한 것으로 논란이 일었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본인도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40309/61519891/3|표 사실을 인정했다.]]
         MBC [[무릎팍도사]][* 2부는 앞에서 언급된 논문 표로 인해 통편집되었다.], 세바시(죽어가는 꿈을 구출하라 등 외),tvn 스타특강쇼 등에서 출연했고 유튜브에서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 김상중(배우) . . . . 7회 일치
         || '''출생''' ||<(> [[1965년]] [[8월 6일]] [*음력] ([age(1965-08-06)]세), (정부 직할) [[전라북도]] [[완주군]] [* 현 전라북도 완주군. 전북 태생이지만 어린 시부터 전라북도 무주군(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자랐다.] ||
         배우로서도 유명하지만 가장 유명한 쪽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로 유명하다. 이전 진행자였던 [[문성근]]의 경우도 그랬지만 김상중도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그것이 알고싶다'가 먼저 생각나게 된 경우이다. 아이콘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의 진행 스타일이 프로그램에 잘 녹여 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란 프로그램을 한정해서 보자면 이상적이겠지만, 배우로서 그의 이미지가 정형화된 것을 보자면 마이너스 요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2015년]]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밝힌 바로는, 그알싶이 욕먹을지도 모르니 악역도 적당한 수준(냉철한 면모)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코믹 연기는 아예 엄두도 못 낸다고. 다만 본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 꾸준히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보면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전문가적이고 신뢰가는 얼굴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음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전국인구주택총조사에 모델로 발탁된 것도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 그의 정돈된 몸짓, 도 있고 완급 조에 능한 진행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클로징 멘트에서 그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보여서(일례로 세월호 특집 때 클로징 멘트 중에 눈물을 보였다.) 그간 시사프로그램이 딱딱하다 무겁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시청자에게 좋은 영향으로 어필하고 있다. 덕분에 무난히 10년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으로 2012년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https://youtu.be/X8MMNItNQGc|수상 장면]] 김상중은 수상소감으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나이에 공로상을 받기엔 이른 것 아닙니까? [[아재개그|상중의 상중소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대상후보를 대상으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패러디한 그들을 알고싶다라는 코너도 생방송으로 진행하여 만만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다. 실제로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 출연섭외 요청도 있었으며 팬들도 예능출연을 원하는 분위기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을 위해 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77982|관련 기사]] ][* 그알싶을 맡기 이전에는 [[상상플러스]], [[일요일이 좋다]]-엑스맨, [[여걸 식스]] 등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영화홍보 등을 위해 게스트로 종종 출연했었다. 외모만 보면 [[엄진근]]스러울것 같은데 막상 토크나 게임에선 부드러운데 어딘가 허당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추적자 종영 후 추적자 외전으로 런닝맨에 장신영과 출연했다. 당연히 컨셉은 극 중 강동윤 캐릭터.
          * 정장과 매우 잘 어울리는 남자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회차마다 선보인 다양한 수트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2015년]] [[8월 31일]] 자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는 수트핏을 위해 식단까지 조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수트]]를 매우 좋아한다.
          * [[취미]]는 온로드 바이크 운전인데,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바이크 마니아로 통한다. 젊은 시엔 레플리카 바이크를 다수 [[소유]]했을 만큼 푹 빠졌고, [[현재]]는 방송 활동 등의 이유 덕에 자주 타지는 못하지만 꽤나 즐긴다고 한다. 실제로도 [[영화]] [[투사부일체]]에서도 [[스턴트맨]]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바이크]]를 몰며 촬영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2014년 중순부터 [[XTM]]에서 론칭한 바이크 관련 프로그램인 [[슈퍼바이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어쩌다 어른]]에서 밝힌 일화로, 바이크를 타던 도중 불량 고교생으로 보이는 무리를 만나서 헬멧도 안쓰고 위험하다며 훈계했는데, 하필 그 때 조작 실수로 바이크의 시동을 꺼트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 [[김구]](KBS1, 1995) - 김구(청년시)
  • 김혜선(배우) . . . . 7회 일치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분도 나름 풋풋했던 시이 있었다?!--
         여담으로 시라카와 쇼코(白川翔子)라는 이름으로 갓 데뷔했던 시에 [[일본]]에서 활동한 바 있다. 그런데 보통 배우활동이 아닌 '[[그라비아]] 돌'로 활동을 했다. 지금의 그라비아 돌의 노출수위에 비해 좀 약하긴 했지만, 어쨌든 20여 년 전 수영복 촬영은 꽤 노출도가 높은 편이었던지라 일본의 이런 --[[성진국]]-- 문화 때문에 맘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2011년 출연한 영화 "완벽한 파트너"에서 그 당시보다 높은 수위의 노출연기를 선보였던걸 생각하면 흠좀무(...)
         [[발연기]]라기보다 "역할을 탄다" 라는 표현이 적하다. 한마디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지 못하다는 것. 대체로 선하고 차분한 연기에 특화된 연기자라고 할 수 있다. [[왕꽃 선녀님]]에서의 부용화 역이나 [[소문난 칠공주]]에서의 덕칠 역은 무난하게 잘 소화한 편이다. 밑의 수상내역도 나와 있지만, 연기상도 여러번 수상한 경력이 많은 연기자다. 그러나 괄괄하거나 억척스러운 역할, 또는 악역은 어색한 수준을 넘어서 발연기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이다. [[리즈 시]]의 외모에 연기 스펙트럼까지 넓었다면 지금보다 더 대성했겠지만.
         2018년 3월 파산 차를 진행 중이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312120125015|#]]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7회 일치
          * 학생 시의 그는 모두가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상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엔데버는 만신창이가 된 올마이트를 보고 자신의 젊은 시을 떠올린다.
          * 언제나 올마이트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결국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언제나 그의 등을 바라봐야 하는 나날. 그 망이 그를 몰아세워 왔다.
          * [[그랜토리노]]는 젊은 시 나나가 올마이트(당시 토시노리)를 말하던 것을 회상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보고 젊은 시 자신을 닮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비슷했다.
          * 젊은 시의 엔데버는 평범한 열혈한.
          * 그랜토리노는 젊은 시엔 8등신이었다.--세월이란--
  • 마재윤 . . . . 7회 일치
         '''마재윤'''([[1987년]] [[11월 23일]] ~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전 [[CJ 엔투스]] 소속의 [[저그]] 유저였다. 초창기 'ipxzerg'이라는 아이디를 쓰다가 'sAviOr'이란 아이디로 바꾸었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전성기 시 별명은 '마본좌', '마신', '마에스트로'였다.
         3 해처리 운용을 기반으로 한 '운영형 저그'의 완성을 이끌어냈으며, 단순히 전성기 기량과 커리어를 바탕으로만 본다면 '최고의 저그'로 평가받을 수 있으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하여 이 평가는 적치 않게 되었다.
         2007년 3월 3일 [[김택용]]과의 MSL 결승전에서 0:3으로 완패한 이후 극심한 슬럼프 끝에 2008년 6월 2군으로 강등당했다가 다시 1군으로 복귀되기까지 했다. 2009년 이후 위너스리그 등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개인리그에서도 조금씩 과거 전성기 시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하였으나, 2009년말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0년에는 프로리그의 로스터에서 말소되었다. 이 가운데 불거진 승부조작 의혹을 받았는데, 5월에는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되었음이 검찰수사를 통해 발표되었고, 결국 CJ 엔투스에서 방출되었다.
         마재윤의 '정' 이였던 2006년 전적
         이후에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 이어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도 예선전에서 떨어졌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는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신예 [[임원기]]를 잡고 복귀했지만, 32강 최종전에서 이윤열에게 또다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다시 32강에 진출, 사상 유례없는 MSL 11연속 진출을 달성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90893&db=news [[포모스]], 2008년 12월 18일]</ref>(KPGA시까지 포함하면 이윤열, 조용호등이 있으나 순수 MSL만 따질 경우 마재윤이 최초이다). 2008년 10월 11일에 펼쳐진 블리즈컨 2008에서는 [[박지수]]와 [[허영무]]를 잡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12일에 치러진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만나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블리즈컨 2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2005년 4월부터 2007년 2월까지 1년 10개월에 걸쳐 스타크래프트계의 본좌로써 대권력을 누리던 마재윤은, [[2007년]] 3월 3일, [[곰TV]] MSL 시즌 1 결승에서 당시 [[MBC게임 히어로]] 소속의 신인 프로토스 게이머 [[김택용]]을 만났다. MSL 결승전 예고 동영상에선 김택용이 마재윤을 꺾을확률이 '2.69%'라고 예측되었다.
         이성은 선수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7월 곰TV MSL 시즌 2 8강이었다. 이성은은 이날 1세트에서 대 뒤집을 수 없었던 것 처럼 보이던 경기를 배틀크루져와 메딕의 리스토레이션 기술을 사용하며 역전승을 일구어냈고, 마지막 5세트에서 몰래 3배럭 이후 무난한 운영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승리 이후 이성은은 마재윤의 부스 앞에서 노홍철의 저질댄스를 구사하였다.
  • 손담비 . . . . 7회 일치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손담비는 연습생 시, 비의 어록들을 연습실에 붙여놓고 활동했다고 한다. 또한 "퍼포먼스 할 때 동작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어떤 걸 표현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과감한 몸짓,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표정 등 많은 부분에서 닮고 싶다"고 말하며 [[비욘세 놀스]]를 존경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비 어록, 연습실에 붙여놨다"|출판사=조이뉴스24|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68832|저자=박재덕|날짜=2007-06-27 |확인날짜=2011-02-01}}</ref> 또한 손담비는 "배우의 색깔과 가수의 색깔이 공존하는 분이다. 배우로서도 훌륭하고 가수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스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며 [[엄정화]]를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출판사=뉴스엔|날짜= 2009-04-17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ref> 이 외에 [[김완선]]과 [[마돈나]]에게 영향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집에서 혼자 춤춰요”(인터뷰①)
  • 승리(빅뱅) . . . . 7회 일치
         [[빅뱅(아이돌)|빅뱅]]의 서브보컬이자 '''막내'''. 본명은 '''이승현'''. 맏형 [[T.O.P]]과 동명이인이라서 작은 승현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으며 멤버들 사이에서는 그냥 [[승리]]라고 불리는 듯.[* 본인부터가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승현이라고 불리면 과거 광주 댄스팀인 <일화>에서 활동했던 시이 떠오른다고. 과거의 자신 모습이 싫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V.I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2008년 창작 뮤지컬 [[소나기#s-2|소나기]]에서 주연을 맡아 유료 객석 점유율 86.2%를 기록하며 서울시 뮤지컬 단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으며,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유희성 서울시 뮤지컬 단장은 특히 “승리는 뮤지컬에 대한 열망이 다른 이의 10배 이상이었다”, “뮤지컬 속 사춘기 소년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황순원 원작 소설 속 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놨다” 등등 폭풍칭찬을 쏟아냈다. --승리의 리즈 시?--
          * 외국 예능에도 자주 출연하는데 2012년 10월 29일. 일본 닛테레 퀴즈 프로그램인 'TORE!'에 출연. 벼랑 스테이지[* 빈칸에 알맞은 음을 집어넣어 단어를 완성하는 스테이지로, 2시간 스페셜 방송에서는 이게 최종 단계가 되는 경우가 많다.]에서 활약을 하나...싶었더니 3번째 턴에서 '''펜던트'''를 맞추지 못해서 탈락...[* 최홍만 등장 이후 한류 스타가 나오는 회에서도 난이도가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2013년 4월 28일 일본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세 번이나 멘붕당하는 모습이 그저 안습.. [[https://www.youtube.com/watch?v=fdw5ykM1OoE&feature=youtu.be|유튜브]]
          * 솔로 활동 시에는 앨범 준비기간을 단 3~4주일 줘놓고 아무 지원을 해주지 않아 승리가 직접 프로듀서와 작곡가들을 찾아다녔다.
          * 일본에서 꽤 인기가 있다.[* 일본계의 대도서관이라 불리는 [[히카킨|HIKAKIN]]의 게릴라 라이브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화를 정확히 알고 오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승리가 그런 케이스. 일본은 개그코드가 한국과 많이 달라 한류열풍으로 간 사람들이 일본 방송에서 크게 성공을 못할 때가 많다. 바닥부터 겪어봐야 일본 현지인의 말투나 문화, 개그코드를 이해하기 쉽다. 승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처하고 비참한 예능현실을 많이 맛봤다. 일본 현지 예능인들도 잘 나가고 싶지 않아하는, 한국에 비유하자만 케이블 방송보다 못한 수준의 예능프로에 나가 열심히 했고, 이를 토대로 일본 방송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승리는 그나라의 문화도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리는 일본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문화를 비하하는 것은 참지 않는다. 사실 당연하지만 분위기상 그렇게 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 외에도 한국요리만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MC로써 다양한 요리를 소개하고 잡지에 코너를 만들어 한국음식 소개함] 스태프에게 잘하고 방송을 열심히 해서 일본 방송에서는 MC나 고정게스트로 자리잡았다. 또한 첫 일본 CF를 승리가 따냈다. 승리만 보고 빅뱅에게 CF를 줄만큼 신임을 얻고 있다는 증거.
          * 탑이 밝힌 바로는 멤버끼리 회식을 할 때, 승리가 단 한번도 고기를 굽지 않았다고 한다. --15,16살때-- 그래서 [[장현승|한 멤버]][* 라고 언급한 것을 보아 리얼 다큐 빅뱅 시에 있던 일인 듯.]가 대놓고 고기 좀 구우라고 갈군 뒤(...)로는 대부분 고기 굽기를 도맡는다고.[* 당시 승리와 장현승이 막내였는데, 항상 장현승만 고기를 구웠다고. 이에 억울하게 생각한 장현승이 "너도 고기 좀 구워."라고 하자 승리가 너무 어린 탓에 뻔뻔하게 "저 고기 구울 줄 모르는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울컥한 장현승과 승리가 싸웠는데, 탑과 지드래곤이 혼을 냈고, 잠을 자던 대성은 얼떨결에 같이 혼났다고.(...)]. --사회생활이 뭔지 모르던 16살-- 소맥을 마는 역할도 승리의 몫인듯 하다.
          *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은 [[워너원]]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https://bepick.net/community/view/412|#]]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 멤버로서 겪은 부침과 구설수 등을 통해 얻은 경험 등 유머와 진심이 동시에 전달됐다. 일종의 생존 노하우이자 셀프 디스에 가까운 이야기를 방송에서 대놓고 얘기한 데다 비즈니스적인 측면까지 적히 녹아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사업가적 면모가 있는 듯.
  • 신동주(야구) . . . . 7회 일치
         == 선수 시 ==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현역 시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현역 시 당대 최고의 좌완투수였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에게 무척 강한 모습을 보였고 불꽃 남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고 찬스에 무척 강했다. 또한 타격 시에 배팅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타격을 하기로 유명했다.
         == 지도자 시 ==
         2016년부터는 신인시에 달던 70번을 23년만에 달게 되었다. 2016년 4월 동안 부진하던 [[박해민]]의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7&aid=0002757606|개인훈련에 함께 하면서]]하며 박해민이 각성하는 데 일조했다.
  • 울릉군 . . . . 7회 일치
         [[조선]] 시대 때 [[왜구]]가 많이 습격하자 조정에선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을 하기도 했지만 [[안용복]]의 활약으로 1696년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막부는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했다([[http://anyongbok.kr/ahn/ahn_01.php|안용복 재단]] 참조). 그 후 19세기 고종 시에 울릉도를 개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전남, 경남 지역 도서민을 이주시켜 다시 유인도가 되었다.
         울릉군의 전화번호는 관용이나 공공기관 등은 790국번을, 일반용은 791국번을 주로 쓴다. 이전에는 국번 없이 무국번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네자릿수 일련번호(보기:☎1234 등)를 [[1987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시외전화를 지자체 단위로 쓰던 시에는 0566으로 배정되었다가 지금은 054가 되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도동과 저동을 잇는 해안 산책길이며, 사동 방향으로도 일부 이어져 있다.(이쪽은 2011년 8월 현재 수리중) ''''산책길' 치고는 상당히 험악한 길'''인데, 바로 옆에 강한 파도가 산책길을 강습하고, 많은 다리들은 투명다리[* 길가 하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쇠살 뚜껑을 얹어놓았다! 물론 난간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만.]라서 밑에 시퍼런 바다가 보이고, 중간에 60m 가량의 나선형 계단도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동굴]]도 있고, 등대도 있고, 기기괴계한 암석 및 벽들과, 바로 옆에는 아름답고 어떨 때는 두려움도 느낄 수 있는 거친 바다도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관광코스라고 한다. 늦은 걸음으로 90분 가량 걸린다고. 참고로 위의 사진에서 마을이 살짝 보이는데 그 마을이 바로 저동. 2015년 9월 현재 행남등대~저동 구간은 태풍 고니가 박살내서 지날 수 없다. 저동까지 가고 싶은 관광객은 저동 옛길이라는 험한 산길로 가야한다.
          * 내수전-저동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있는 400m 높이의 해안벽. 그 위로 올라가는 길과 전망대가 있으며 이곳에서 저동과 죽도, 관음도가 보이고 멀리 끝없는 수평선의 바다가 보인다.
          * A 코스-울릉도 관광업계에서 보통 A 코스라고 부르는 게 있다. 관광객들이 버스나 택시 대로 울릉도를 한바퀴 도는 건데, 해안도로에서 경치를 구경하는게 메인. 가는 길마다 곰바위나 거북바위 같은 거 구경하고, 태하항에서 바다 구경하고 태하 등대까지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서 구경을 하고, 추산에서 역시 경치 구경하고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와 전통 투막집 구경하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나오는 4시간짜리 코스. 만약 해안도로가 끝나는 섬목 선착장에서 배까지 타고 오면 울릉도를 완전히 한 바퀴 돌 수 있다.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가고자 한다면 대부분 [[포항시]]로 향하는 여객선을 이용, 포항에서 대구, 부산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전세버스 등을 대하여 대구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중국]], [[몽골]], [[동남아시아]], 극동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 등지로 향하게 된다. [[미국]]이나 [[중동]], [[유럽]], [[호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공화국|인도]], [[카자흐스탄]], [[아프리카]] 등지로 나갈 경우 [[포항공항]]에서 [[김포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또는 [[에어포항]]의 국내선을 이용, 김포공항까지 내려온 다음 다시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버스,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바로 인천공항에 닿는다.
         울릉도에서 굴러다니는 차는 딱 2종류라고 봐도 좋다. [[경차]] 아니면 [[현대 싼타페|싼타페]]같은 [[SUV]]. 우선 도동이나 저동 등 대부분의 마을길 폭이 좁기 때문에 [[경차]]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경차]]로도 울릉도의 가파른 산길을 타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일본]]식 경차처럼 배기량 0.66리터 엔진을 달면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퍼지기 쉽다고 하여 [[대한민국]]에서 티코가 나올 때부터 0.8리터로 내놓았고 [[2008년]]부터는 정부에서 배기량 1.0리터로 규정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퍼질 듯... 그래도 산길이 많고 해안도로에 벽에서 떨어지는 돌들이 많기 때문에 차량 하체도 긁히기 쉬워서 경차보다 튼튼한 차를 산다면 같은 급의 중형 세단보다는 SUV를 사게 된다고. 심지어 '''이 동네의 경찰 [[순찰차]]와 [[택시]]도 전량 SUV다.''' 거기에 울릉도는 눈이 꽤 오는 곳이니 '''SUV가 아니면 [[답이 없다]].''' 거기에 군 내에 [[LPG]] 충전소가 없다는 점을 유의하자. 따라서 택시가 다니더라도 LPG 차량이 없고 100% 디젤차다. 그리고 세단을 대여해 오는 관광객들을 보다못한 택시나 관광차량이 중앙선침범을 빈번하게 하니 아예 택시를 이용하자. 요금은 기본 2,800원으로 포항 시내와 동일하다.
  • 원피스/872화 . . . . 7회 일치
          *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해적단이 아직 어인섬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 [[넵튠(원피스)|넵튠왕]]은 어인섬을 구해준 답례도 성의 갖은 재보를 하사했다. 그런데 우대신이 오더니 그 재화 중 옥갑만은 회수해야 한다고 간청한다. 넵튠은 이미 준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냐고 거한다. 그러나 대신이 좀 더 소상히 사정을 밝히자 생각이 달라진다.
          * 그렇게해서 현재. 다과회와 암금왕 루 펠드와 스튜시 등이 얽혀서 복잡한 경로로 개봉된 옥갑은 재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깨지면서 기폭장치가 작동, 홀 케이크 성 반을 날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크 아일랜드 바깥에서 관측될 정도의 대폭발. 성 안은 난데없는 폭발음과 성 일부의 소실, 이어지는 기울음으로 아비규환이다. [[타마고 남작]]이 상황을 종합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라 버렸다.
          * 방금 전까지 명의 위기였던 벳지는 그야말로 쾌재를 부른다. 자신을 달고 날아가던 [[시저 클라운]]에게 "저것 좀 봐라"고 환호하다 시피한다. 샬롯가의 형제들이 기우는 성을 따라서 이리저리 나뒹군다. 끝까지 시저를 성가시게 했던 [[샬롯 브륄레]]도 형제들이 굴러다니고 어머니 빅맘 마저 성 밑으로 떨어지자 시저에겐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 꼴을 보면서 벳지가 통쾌하게 웃었다.
          * 벳지의 의견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이 성은 성 밑 마을보다도 거대하다. 이제와서 뛰어봐야 달아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떤 주민들은 이렇게 망하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성 위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빅맘 해적단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며 무엇이든 붙들고 있었다. 카타쿠리는 이런 와중에도 형제들을 진정시키고 다니며 살 길을 모색한다. 모건즈는 이런 와중에도 특종을 잡았다고 기뻐 날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새인 주제에 날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시는 육식을 마스터한 몸이므로 당연히 "체"로 여유롭게 날아오른다. 벳지와 시저는 혼란을 틈타 탈출에 전력하고 이치디는 이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걸 확인한다.
          * 슈트로이젠의 쿡쿡 열매 능력이 무너지는 성을 통채로 케이크로 바꾼다. 거기에 슈트로이젠은 멋진 칼 솜씨로 케이크의 맨 윗 단, 다과회가 열리는 회장만을 베어서 안전하게 안착시킨다. 성 안에서도, 성 바깥에서도 모든게 끝났다고 규하는 사람들 위로, 먼지와 잔해 대신 케이크와 생크림의 산사태가 쏟아진다. 홀케이크 아일랜드를 뒤덮을 기세로 쏟아지는 산사태. 폭풍같은 소란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누구나 뭉그러진 케이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폼이야 어떻든 박한건 사실이다. 비트와 [[샬롯 시폰]]이 밀집모자 일행과 제대로 작별인사하고 싶었다고 징징거린다. 벳지는 괜히 친해지지 말라며 지금부터가 "탈출 본편"이라고 윽박질렀다.
  • 유해진(배우) . . . . 7회 일치
         ~~[[오달수]]~~, [[이경영(1960)|이경영]], [[라미란]] 등과 더불어 이른바 '''[[대한민국]] [[대표]] [[명품]] [[조연]] [[전문배우]].''' 그런데 의외로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라 다양한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가 가능한 륜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 내에서는 주로 구수한 입담과 재치를 선보임과 동시에 깐죽거리는 [[캐릭터]]로 많이 출연한다. 그 때문인지 유해진의 팬들은 유해진을 '''한국의 [[스티브 부세미]]'''라 부르곤 한다. 물론 우리들에게 익숙한 재치있고 유쾌한 조연 캐릭터보다 이따금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상당히 진지한 모습으로도 연기를 잘 해주는 부분도 있다.
         ||[[광복 특사]]||짭새||3,101,900||성공||
         6공병여단 군복무 중이던 [[이등병]] 시, [[1992년]] [[MBC]] [[우정의 무대]]에 출연해서 [[이주일]]의 성대모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나이는 22세. --22초전이 아니다.--
         코미디언 [[이세영]]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 고등학생 시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유해진을 닮은 '''여자'''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찌그러지는 얼굴이 정말 판박이다. 물론, 지금은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
         [[차승원]]과는 동갑내기 친구로 --네?-- 신인시 부터 같은 작품에 여러번 출연하면서 둘도 없는 친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함께 출연한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환상의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예전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에서 차승원이 그를 처음 봤을때 감독에게 조용히 다가가 아무리 영화의 리얼리티가 중요해도 진짜 건달을 데려오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고 한다.
         드라마 《[[토지]]》에서 악역 김두수 역으로 출연했을 때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여주면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가 서울예대 재학시 단골로 찾았던 백반집에서 주인 할머니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 할머니가 하신 말이 압권인데, "불쌍한 서희 좀 그만 괴롭혀!". 유해진이 정승혜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로는 그 말을 하신 다음 하시는 소리가 더 압권이었다. "이거 많이 먹고 그만 좀 못되게 굴어!"
  • 육성재 . . . . 7회 일치
         ||<#42B4E6> '''포지션''' ||<(> '''대막내''', 서브보컬 ||
         >'''Born to Beat! 안녕하세요! 비투비 대 막내 육성재입니다!'''
          * [[BTOB|비투비]] 멤버들은 다그렇지만 [[Apink|에이핑크]]와도 친하다. 에이핑크의 소속사가 비투비 소속사에서 파생되어서 그런지 연습생 시부터 친하게지냈고, 동갑내기인 [[김남주(Apink)|김남주]]와 가장 친하다.에이핑크 막내인 [[오하영]]과도 친하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서 노는 모습도 많이 포착되었다.~~
          * 고등학교 시 워너원의 [[옹성우]]와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추가로 [[VICTON]]의 [[허찬]]도 같은 반이었다.[* 옹성우와 허찬은 3년 동안 같은반이었다.]온앤오프의 [[와이엇]]도 같은 학교 실용무용과 출신이다.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형들(특히 리더 서은광과 이창섭) 몰이를 주도한다. 진공 드립(블박 1위 후보편 서은광)[[https://www.youtube.com/watch?v=1tBfXPCJbgk&feature=youtu.be&t=5m25s|#]], 소드립[[https://youtu.be/lan50SjDkkw|#]], 밥배달 드립, 벌레드립 등으로 형들을 괴롭힌다. 비투비에서는 막내몰이란걸 상상도 못한다는 정도.--[[혁|이 분]]과 친이라더니 역시나..--
         집에서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히트제조기에서 빅병의 리더를 뽑는 자리에서 토끼의 눈 붙이기 시합(...)이 있었는데 제일 꼼꼼하게 꿰매서 칭찬을 받자 뿌듯하게 '저희 엄마가 퀼트하시거든요'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팬이 준 잠옷 모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가자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서 직접 귀를 꿰매다가 매듭 짓기에 실패하자 "엄마 나 까먹었어 ㅠㅠ!!" 하는 모습을 보면 사춘기 시에도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듯. ~~바느질도 배우고~~ [[https://youtu.be/jvTZOTeemZg|#]]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먹는 것이 꿀리면 인생이 꿀린다', '일순간의 창피함이 영원한 이득이다', '너보다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설령 니가 바보 같이 보일지라도', '오늘 니가 흘린 땀은 먼훗날의 눈물이 나온거다' 등.
         또한 가수 김동률의 열렬한 팬으로, 초등학생 시 김동률의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될 결심을 했다고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밝힌 바 있으며 '감사'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듣는다고 한다. 방송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기면 자주 김동률의 곡을 부르는데, 지금까지 완곡으로 부른 노래는 '기억의 습작(너의 멜로디가 되어줄게 시즌 1)',' 오래된 노래(심심타파)', '감사(복면가왕)', '취중진담(우리 결혼했어요)', 'Replay(복면가왕 생방송)' 등이 있다. 대기실에서 피아노를 발견하고 친 곡 역시 '오래된 노래'.
  • 이경영(1960) . . . . 7회 일치
         90년대 후반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영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이때 이경영은 당대 최고 젠틀맨 이미지를 가진 스타답게 연륜있는 유머로 넘겼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유정현은 당황한 감정에 --시킨다고 욕을 하냐-- 살짝 화가 겹쳐 나있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소라도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김민종 본인도 자꾸 시키니까 욱하는 마음에 실제 대사를 질렀다가 "시키시니까 했는데요.. 아 [[방송사고]]다, 어떡하지.."이러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 했는데, 이경영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웃으며 "제가 앞으로 김민종 씨 언어순화 교육까지 책임지며 살겠습니다."라며 적하게 마무리시키고 넘어갔었다.
         ||SBS 드라마 '애정만세'에 출연이 결정되었으나 원조교제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 때문에 좌됐다. [[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02100701.20040508000000053|#]]||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에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는 출연금지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블 빼면 영화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송영창]]이 있다. 다만 이분은 영화 대신 주로 연극과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거의 충무로 이경영급으로 다작 중이다. 이유도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쪽에선 어느 정도 입체감이 있는 중년 역할을 맡을 배우가 그리 많지 않고, 진중한 역부터 코믹 역까지 폭이 넓기 때문.],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 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너무 가볍지 않고 개그 캐릭터가 아닌 격조가 있는 [[중간보스]]급의 위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몰라도 조연급에서는 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다. 그런데 이경영은 이미 90년대부터 격조 있는 주연으로 다작을 하면서도 연기력이 좋다는 평가를 꾸준히 유지했던, 그야말로 탁월한 실력이 있는 배우라서 그런 상황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연급은 아니어도 조연급으로는 여기저기서 캐스팅되고 있다. 또한, 이경영이 선역부터 악역을 비롯한 개그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맡을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도 이유이다. 특히 2010년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정계나 재벌의 부정부패를 다룬 느와르, 스릴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서 반드시 나오는 '부패한 높으신 분들' 연기로는 이경영이 연기력이나 이미지 면에서 매우 적합하다.
         그 외에도 이경영의 마지막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인 KBS 2TV 푸른 안개에서 연출자-조연출자로 만났던 표민수 진형욱 곽정환 PD의 연출작('고독' '풀하우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인순이는 예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커피하우스' '넌 내게 반했어'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이상 표민수) '꽃피는 봄이 오면' '착한여자 백일홍' '수상한 삼형제' '당신 뿐이야' '왕가네 식구들' '당신만이 내 사랑' '내 남자의 비밀'(이상 진형욱) '한성별곡' '추노' '도망자 플랜B'(이상 곽정환) 등등)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결국 좌됐다.
         ||tvN||[[나인룸]]||기산[* 젊은 시은 [[윤박]]이 연기한다.]|| ||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7회 일치
          * 프라우드린은 그가 과거, 마신족에서 막 배신했던 시의 마력을 회복했음을 눈치챈다.
          * 멀린은 프라우드린이 자폭하려고 한다고 말하느데, 퍼펙트 큐브는 대 부서지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는 태평한 소리나 한다.
          * 드래퓌스가 망적으로 규하고 프라우드린은 식은땀을 흘리며 안한다.
         고우서와 비슷한 모습의 십계도 재등장. [[일곱개의 대죄/176화]]에서 십계 시 멜리오다스를 묘사하며 등장했었다. 프라우드린은 사실 정식 십계가 아니라 "무욕의 십계"의 대리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자가 진짜 무욕의 십계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거의 비슷한 외향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듯한 태도 또한 유사하다.--이제 곧 진(眞) 십계 가 나올 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7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모든 전생의 힘과 기억을 되찾았으며 어린 시의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어 그녀를 당황하게 한다.
          * 그러나 엘레인은 연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금 날아오르고, 그 간한 마음이 힘으로 바뀌며 나비와 같은 날개가 생겨난다.
          멀린하고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엘리자베스의 증언에서 튀어나왔다. 동료들이 수군거리고 십계가 부활했을 때조차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멀린이 사색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거침없이 자신이 아는 멀린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자신을 진짜 언니처럼 따랐던 12살 시의 멀린이었다. 멀린이 당황해서 "언제적 얘기냐"고 하는 걸 보면 거짓 없는 사실. 할리퀸과 디안느는 저 멀린이 그런 시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에스카노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엘리자베스에게 요구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멀린은 더이상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쓸데없는 캐묻기라고 정색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 그 결의를 실행해 보일 기회는 지금 밖에 없었다. 그러한 실함을 안고 날아가는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메라스큐라는 그러한 변화를 눈치챌 수 없었다. 그녀에게 엘레인은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는 멍청이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메라스큐라가 엘레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힘으론 대로 연인을 되찾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고개를 돌린 이유는 그녀에게 망적인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1화]] |||| '''대가련 칠드런/432화''' |||| [[대가련 칠드런/433화]] ||
         [[대가련 칠드런]] 432th sense. '''거기 누구냐?(3)'''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3화]] |||| '''대가련 칠드런/434화''' |||| [[대가련 칠드런/435화]] ||
         [[대가련 칠드런]] 434th sense. '''배틀 오브 인간사!(1)'''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35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4화]] |||| '''대가련 칠드런/435화''' |||| [[대가련 칠드런/436화]] ||
         [[대가련 칠드런]] 435th sense. '''배틀 오브 인간사!(2)'''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37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6화]] |||| '''대가련 칠드런/437화''' |||| [[대가련 칠드런/438화]] ||
         [[대가련 칠드런]] 437th sense. '''배틀 오브 인간사!(4)'''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38화]] |||| '''대가련 칠드런/439화''' |||| [[대가련 칠드런/440화]] ||
         [[대가련 칠드런]] 439th sense. '''배틀 오브 인간사!(6)'''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2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1화]] |||| '''대가련 칠드런/442화''' |||| [[대가련 칠드런/443화]] ||
         [[대가련 칠드런]] 442th sense. '''윈터솔져 (3)'''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2화]] |||| '''대가련 칠드런/443화''' |||| [[대가련 칠드런/444화]] ||
         [[대가련 칠드런]] 443th sense. '''윈터솔져 (4)'''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3화]] |||| '''대가련 칠드런/444화''' |||| [[대가련 칠드런/445화]] ||
         [[대가련 칠드런]] 444th sense. '''윈터솔져 (5)'''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4화]] |||| '''대가련 칠드런/445화''' |||| [[대가련 칠드런/446화]] ||
         [[대가련 칠드런]] 445th sense. '''윈터솔져 (6)'''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5화]] |||| '''대가련 칠드런/446화''' |||| [[대가련 칠드런/447화]] ||
         [[대가련 칠드런]] 446th sense. '''무법자들 (1)'''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49화]] |||| '''대가련 칠드런/450화''' |||| [[대가련 칠드런/451화]] ||
         [[대가련 칠드런]] 450th sense. '''무법자들 (5)'''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4화]] |||| '''대가련 칠드런/455화''' |||| [[대가련 칠드런/456화]] ||
         [[대가련 칠드런]] 455th sense. '''무법자들 (10)'''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57화]] |||| '''대가련 칠드런/458화''' |||| [[대가련 칠드런/459화]] ||
         [[대가련 칠드런]] 458th sense. '''반역자들 (1)'''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7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62화]] |||| '''대가련 칠드런/463화''' |||| [[대가련 칠드런/464화]] ||
         [[대가련 칠드런]] 463th sense. '''카타스트로피 (1)'''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정승환(가수) . . . . 7회 일치
         '''발라드의 기본 4단계인 애잔→애틋→애→처 단계에 가장 최적화된 음색으로 평가된다.'''
         감정표현 역시 많은 이들이 칭찬한다. 일반적인 오디션 참가자들의 경우 노래를 완곡하는데 중점을 두고 다소 발성이나 기술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정승환의 경우 어느 정도 발성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에서 연습을 거듭해 노래에 섬세한 강약조과 표현력까지 상대적으로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에 서술한 발성적인 능력보다도 오히려 이 표현력과 감성이 정승환의 숨겨진 큰 무기. K팝 스타에서도 이런 섬세함이 다른 참가자들과 정승환을 구분짓는 크나큰 개성이자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유희열]]이 언급했듯 표정연기도 수준급이다. 발라드에서는 감정이 전부라 할 만큼 노랫말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노랫말과 항상 일치하는 표정과 특히 담담한 도입부에서의 표정과 정에서의 표정은 그의 감정선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또한 본격적으로 본인만의 감성에 들어가면 원래의 음색에 비음이 약간 섞이는데 이부분이 듣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애하게 들려 음색자체가 애한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 이런 이유로 정통 발라드와 OST에 최적화된 목소리로 평가받는다.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복면가왕]] 91회에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첫 [[MBC]] 출연을 했다. 이후 1라운드를 이긴 다음 2017년 1월 1일 새해의 첫 복면가왕 92회에 나와서 2라운드에 '이별택시'를 불러서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을 꺾고 올라갔으며 3라운드에 '가질수 없는 너'를 부른 뒤 [[신비주의 아기천사]]에게 밀리면서 준우승했다. 정체를 밝힌 뒤에 [[안테나 뮤직|자신의 소속사]] [[유희열|사장]]에게 이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고 신분을 가리고 도전해 음악을 즐기면서 노래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날 판정단인 [[김현철(가수)|김현철]]은 20대 초반의 나이라서 실력에 비해 원곡 해석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제미가 돋보여 가수로서의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극찬을 했다.
  • 진격의 거인/87화 . . . . 7회 일치
          * 그의 동료, 처음으로 그리샤와 접촉했던 복권파인 그라이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끌려온다. 그리샤가 무심코 그를 부르자 그라이스는 곧 그리샤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왜 지크가 자신들을 밀고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샤가 아무 말도 못하는게 더 화를 돋궜는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파냐고, 그리샤의 교육이 잘못됐던게 아니냐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리샤는 깐죽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는 놈이 아니었다며, 다이나와 복권파를 이런 놈에게 맡긴게 실수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가 얼 빠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망을 부채질할 뿐인지 힘없이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며 엘디아는 끝이라고 내뱉는다.
          * 일제히 거인으로 변한다. 인간의 자아는 남지 않은 이들은 본능에 따라 그라이스를 감지하고 잡아먹으려고 쫓아간다. 그리샤는 그라이스를 못 알아보는 거냐고 규하지만 그들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글로스는 그리샤가 시끄러우니 얼른 거인화시키라고 서두른다. 하지만 클루거는 심문하고 싶은게 남아있다며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새로운 처형대상이 끌려온다. 그리샤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아내인 다이나 프리츠였다. 하지만 그는 다이나가 왕가의 핏줄이란 것을 실토했다. 프리츠 왕가의 혈통은 마레 측에서도 중요한 인물일 것이므로, 그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도 보통의 죄수로 취급됐다.
          * 그리샤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다이나가 왕가의 혈통이라고 밝히려 하지만 클루거가 시끄럽다며 입을 막는다. 그리샤는 클루거가 보고받은 내용을 묵살했을 거라고 직감한다. 그 증거로 글로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고 얼버무리려 형을 집행하라고 말한다. 결국 다이나도 거인화 약물이 주사된다. 다이나는 마지막으로 자아가 있는 동안 "어떤 모습이 돼도 당신을 찾아낼게"라며 울먹인다. 글로스는 "거인끼리 사이좋게 살아라"라고 비웃으며 다이나를 걷어찬다. 규하는 그리샤. 그의 눈 앞에서 다이나는 어떤 거인의 모습으로...
          글로스는 담배를 피워물려 겨우 그때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리샤는 거인화시키지 않고 "춤추게"한다고 하는데, 거인과 싸우게 만든다는 거다. 이것이 그의 "취미생활". 마치 여동생을 개에게 던져준 것과 똑같은 짓이다. 글로스는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마지막 죄수를 3, 4미터 정도의 거인으로 조해 줄 테니 할 수 있는 한 오래 저항해 보라고 빈정거린다.
          * 말문이 막혔던 그리샤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마레의 역사는 날조이며 엘디아인이 인류에게 번영을 주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말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무관심하다. 아무래도 좋으니 "밑에 있는 친구"랑 이야기하라며 그리샤를 떨어뜨리려 한다. 그리샤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묶여있는 상태에선 어쩔 수가 없다. 글로스는 참신하게 먹히라는 둥, 여동생이 부르고 있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지만 그리샤는 규할 뿐,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런데...
          글로스는 떨어뜨리는 클루거. 모래언덕 아래로 떨어진 글로스는 자신이 만든 거인과 마주친다. 잠시 뒤, 그의 규소리가 벽 너머로 울려퍼진다. 클루거는 모자를 벗으며 그리샤에게 말을 건다. "이게 재미있다고 생각해?" 방관자인 줄 알았던 클루거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폭로한다.
         거인화 약물의 정체는 "거인의 척수액"이었다. 지크가 벽 안에서 거인을 발생시킨 방법도 규명이 됐다. 지크 측은 거인의 척수액, 거인화 약물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또 글로스의 말에 따르면 사전에 어떤 형태의 거인이 될지 조할 수 있는 듯 하다. 베르톨트가 초거대 거인이 된 것이나 라이너가 갑옷 거인이 된 것도 사전에 설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7회 일치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미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상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라이너는 본부 건물을 나와서 전사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 상황은 대규모 작전의 전초작업이었다. 사상검증. "그 시"과 달라진 게 없는 방식. 그리고 눈 앞에서, 전사후보생을 놓고 다투는 가비와 파르코. 뭔가를 지키기 위해 죽일 듯이 다투는 모습. "그 시"과 달라진 게 없는 방식.
          라이너가 거기서 시선을 돌리며, "그 시", 그보다 조금 앞으로 돌아갔다.
          라이너는 어안이 벙벙했고 당황했다. 짧은 시간 폭언과 욕설로 모든 것을 설명한 아버지는 그가 뭐라고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방을 떠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출항하는 날까지, 라이너의 의식은 지워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를 배웅하러 온 자리에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어머니는 어리둥한 상태의 아들이 그저 자랑스러워서 이렇게 말했다.
  • 창원시 . . . . 7회 일치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였기에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산이나 진해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에게 거주하는 지역을 물어볼 때 '마산 살아요', '진해 살아요'라고 대답이 많이 돌아오지만 '창원 살아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과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 [[전어]] : 전어는 대개 가을에 서해안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치지만 마산 전어는 그에 못지않은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옛 마산시 시부터 시작하여 현재도 매년 전어축제를 열고 있다.
          * [[무학(기업)|무학소주]] : 진짜 [[마산야구장]]에서 보면 지역특산물 같아 보인다.(...) [[마산아재]] 문서를 참조. 구 마산시 시에는 9경 5미라고 해서 나름 밀던 컨셉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현재의 두월동 인근에 있었던 시미즈 양조장의 명맥을 계승한다.
  • 한용덕 . . . . 7회 일치
         ==아마추어 시==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선수 시==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 시===
         [[동아대학교]] 중퇴 이후 병역을 마쳤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 가던 중 [[북일고등학교]] 시 은사이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의 주선으로 [[1987년]] 9월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553 무관의 투수왕 '한용덕'] 《오마이뉴스》, 2006년 9월 27일</ref>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는 힘겨운 [[신고선수]] 시을 보내고 2년 뒤에서야 비로소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 홍명희 . . . . 7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문제는 할아버지 홍승목으로 이 인간은 [[친일파]][* 사실 홍승목의 시에 친일파라 함은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를 의미한다기 보단 외교적 파트너로써의 친러, 친청, 친일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 홍명희도 친일의혹이 없는것은 아니다. 일제 연간에 임전협의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는 의혹이 있다. 사실 이건 당시 지도층 인사들의 인칭 도용 때문인데 이런 사례는 조만식,안재홍이나 여운형 같은 사람들도 이같은 일을 당한 바 있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한용운]]과도 사이가 돈독하여 이광수, 최린, 최남선 등의 창씨개명 소식을 듣자 한용운을 찾아가 "여보게, 만해. 이런 개같은 놈들을 봤는가?"하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한용운은 "이보게, 벽초. 그놈들은 개같은 놈들이 아닐세."라고 대답했고 무슨 소리냐고 따져묻는 홍명희에게 "개는 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니 '''저놈들은 개만도 못한 놈들이 아닌가? 개가 자네 말을 들었으면 무척이나 섭섭해했을 걸세."'''라고 했다. 이에 벽초도 수긍하고 '''개에게''' 사과를 읊조렸다고.
  • 홍학표(배우) . . . . 7회 일치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연극]]이라는걸 구경하고 내리 두번을 연속적으로 본뒤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결정한다. 의대 지망생이었던 그의 돌발적인 궤도수정을 사춘기의 방황쯤으로 돌리기엔 너무 심각했다. 그는 교과서 대신 연극대본을 밤새워 읽으며 연극에 푹 빠져버린 그는 여드레간의 가출끝에 부모의 허락을 받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 81학번으로 입학한 홍학표는 연기라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내달리기 시작한다. 때론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고, [[제1보병사단]] 문선대에서 군복무하던 시에는 '''전진 부대가 낳은 미남 사회자 홍학표'''로 군부대를 누비기도 했다. 소형영화에 심취해 연출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홍학표는 제대하고 취업이 막막해지면서 KBS 코미디 프로그램 대본도 써보기도 했고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대학교 3학년 때인 1987년 MBC TV '베스트셀러 극장' FD로 일하기도 했는데, 이 때 PD의 눈에 띄어 '''MBC 특채 탤런트가 되는 행운'''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2개의 시즌을 걸치며 방영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은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다. 당시 서른을 넘기는 나이였지만 유난히 어려보이는 얼굴에다 '''풋풋한 개성과 선량한 이미지로 어필'''하며 [[최진실]]과 함께 시즌1[* '우리들의 천국'은 공식적으로는 시즌제작품이 아니지만 편의적으로 시즌1과 시즌2로 나눌때 홍학표가 주연을 맡았던 시즌1은 단순히 대학생들의 삶과 연애를 다룬 내용이라기보다는 어머니,아버지,대학생 큰형(홍학표),쌍둥이 고교생 형제로 된 다섯 가족의 삶을 다룬 홈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다. 각각의 가족들도 비중이 있어 어떤 회에서는 홍학표 관련 내용은 별로 없이 쌍둥이의 학교 생활,아버지의 직장생활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던 경우도 있다.홍학표가 중심이 된 대학생활과 연애가 아무래도 중심이긴 했고,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생들의 연애 드라마로 완전히 변화한다. 시즌2부터 등장한 배우들이 [[박철]],[[음정희]],[[염정아]],[[김명수(배우)|김명수]]등. 홍학표가 빠지고 실질적인 시즌2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청춘연애물이자 대학생 로망스 겸 젊은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막내 아들 역할을 비롯 이전작들을 통해 청순스타로 각광받던 [[김찬우]]가 주인공이었고,어린 시부터 친구로 재수까지 하여 같은 대학에 입학한 친으로 [[장동건]]이 나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박철]]은 훗날 안좋은 이미지가 된데다 최근의 살집있고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이미지가 전혀 아닌 당시 특A급 꽃미남스타였다. 여자배우로는 장동건의 파트너로 [[이승연]]이 나왔고 이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배출한 스타가 [[전도연]]이다 .]에서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추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다. 큰 키도 아니고, 확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닌 그가 청춘스타로 등극한 것은 사실 한국 연예계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재미있는 점은 홍학표가 처음에는 주인공인 진수가 아니라 오성대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점인데, 진수로 내정된 배우 [[안정훈]]이 첫회분이 방송되기 직전 교통사고를 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출자인 이진석 PD의 설명에 따르면 첫 방송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메웠지만 교통사고로 다리골 부상을 입은 [[안정훈]]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때 홍학표가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진석 PD는 동의했지만, 그 당시 홍학표는 아직 검증되지않은 신인 탤런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작진의 윗선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결국 홍학표는 주인공 진수로 캐스팅 되었고,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들의 천국'은 인기몰이를 시작하며 홍학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청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결국 오성대 역에는 정명환이 캐스팅되는데, 그 역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아래인 배역을 맡았다.]실제 이 당시 홍학표가 누린 인기는 엄청나서 '''TV의 원작인 소설 '우리들의 천국'의 표지모델로 낙점'''받기까지 했다.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005년에 화제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연기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치드라마에 출연하며 '''군사정부의 실세인 [[장세동]]을 열연'''하였다. 실제 [[장세동]] 배역은 카리스마와 충로 대변되는 캐릭터라 캐스팅 과정에서 연기자들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홍학표는 실제 장세동 배역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극중에서 실제인물과 외모면에서 싱크로율이 높아 최종 낙점'''되었다고 한다.[* 외모뿐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비슷하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lpSgQ_nrVM|이쯤되면 도플갱어급인듯]]] 캐스팅되고나서 실존인물인 [[장세동]] 측근으로부터 만남의 요청을 받아 배우로서 자료수집이 될 것 같아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장세동과의 술자리 대화 내용이야 뭐 자기 좀 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코미디언]] [[이경규]]와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년 선후배 사이[* 이경규가 79학번, 홍학표는 81학번]로 동국대 재학시부터 형동생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당시 연극 연습이 끝나면 [[이경규]]는 대한극장 옆 모 예식장으로 후배들을 데려가 적당한 상대(?)를 물색한 뒤 능숙한 말솜씨로 신부측 부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덕분에 [[홍학표]]를 비롯한 경규의 후배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피로연에서 갈비탕을 실컷 얻어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97ffNN6SI|초창기 몰래카메라에 출연한 홍학표의 모습.]]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7회 일치
         휘성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꽤나 친한지 매번 앨범의 땡스투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일명 '저마다의 길' 이전 마지막 방송인 친노트에 휘성이 중재자로 나오기로 했다. 2009년과 2010년엔 환희와 휘성의 활동 시기가 겹쳐 예능이나 행사에 동반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2018년에 환희와 휘성은 엠넷 음악예능 더콜에서 그들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지켜 볼수있던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박효신]]과는 환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사적으로 만난 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박효신 말로는 환희는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편한 사이라고.
         6집 발매 전에는 성대결이 찾아와서 앨범 발매를 연기했다.[* 그 때 '남자답게'란 곡이 뒤늦게 들어와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성대결에서 회복된 후 '남자답게'를 녹음하여 타이틀곡으로 발표. 결과적으로 대박났다.] 7집부터는 전에 비해 창법이 좀 더 편하고 가벼워졌다. 그러나 후에 첫 미니앨범 활동중에 성대결도 아닌 성대마비 때문에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며 당시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017년 11월 15일에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로서 '너의 계'이라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내세운 미니앨범으로 컴백했지만 홍보의 부족 때문인지 차트에선 힘을 쓰지 못 했다.
         신인 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남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영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반 광탈.
         데뷔 이전부터 습관성 어깨탈골을 겪고 있다. 예능 촬영하다가는 물론이고 콘서트 중에 춤추다가도 빠진 적이 있다. 예능에서 게임 중 빠졌을 때는 공교롭게도 다른 연예인이 같은 게임을 하다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 기사가 나는 등 해당 프로그램이 조금 욕을 먹었으나 본인은 "자주 그런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창 시에 야구부를 하고 싶었으나 탈골로 실격 당했다고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멤버 물망에도 올랐었으나 같은 결과. 주변 사람들도 적응이 되어서 어깨가 빠지면 두어명이서 같이 힘 모아 끼워 넣는다고(...) 현역을 위해 재검을 받았으나 결국 공익판정을 받았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7회 일치
         1999년 개봉했던 영화 [[쉬리]] 에서는 후반부에 한석규를 추궁하는 정부 요원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미리 섭외된 것이 아닌, 그야말로 촬영 직전에 아는 선배의 전화 호출로 일감 생겼다고 달려가서 찍을 정도의 안습 시을 겪었다.
         [[송강호]]에 앞서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성기노출을 감행한 [[용자]]이며, [[아수라(영화)|아수라]]에서도 노출을 감행하면서 연기를 위해서 어떠한 장면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들을 낳으면서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극단 '학전' 시 무대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일명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나머지 4명은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 이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510929|#]]
          * 얼굴이 빨개서 팬들은 홍시같이 빨갛다는 의미로 '''황시'''라고 부른다. 팬들에게만 사용되다가 최근 여러 매체에서 황시라는 말을 쓰고 있다. 같은 이유로 홍익인간(얼굴이 빨갛게 익은 인간)이라는 별명도 팬들 사이에서나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전술한 욕 잘하는 이미지와 합쳐 빨간 욕출(빨간 욕 잘하는 연출가)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학전 5형제' 시엔 빨간놈으로 불렸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04494|#]]--
          * 《[[검사외전]]》 쇼케이스 중 레드카펫 행사에서 친한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서 사진을 찍어주고 팬 하나 일일이 싸인해주고 손을 잡아줬다고 한다.
          * 평소 아들 바보와 애처가로 유명하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후에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15년 12월 16일 개봉작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 포스터로 인증샷을 찍는 '황정민 놀이'가 있다. 포스터의 적한 사이즈에 헤어스타일, 성별 상관없이 미칠듯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정유미(1983년)|정유미]](왼쪽 위)를 시작으로 시작된 열풍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 거미(가수) . . . . 6회 일치
         [[여자 가수]]. [[본명]]은 [[박지연]]이며 [[전라남도]] [[완도군]] 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 [[서울]]로 이주했으며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정규 1집 'Like Them' 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그대 돌아오면",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등 히트곡을 내며 이름을 알렸으나 데뷔 두 달만에 성대결 진단을 받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1년간의 재활치료 후 정규 2집을 발매하며 돌아온다. 이때 "기억상실" 이라는 곡으로 SBS 인기가요에서 처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3집과 4집을 발매하는데 4집에 실린 "미안해요" 라는 곡 역시 [[Mnet]] 카운트다운 1위를 차지한다.
          * 그래서, 그녀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면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일화며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8014312|본인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공연에서 조차 [[https://www.youtube.com/watch?v=z9nAcUc-GxA|본인이 직접 드립을 쳤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수혜자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실제로 거미가 신인 시부터 이름을 알리고 점점 유명해졌던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위에서 말한 것처럼 휘성과 인연이 깊은 편인데, 공교롭게도 목소리의 주파수를 낮추면 '''휘성과 목소리가 같아진다! 역도 성립한다.''' 전성기 시의 [[스펀지(KBS)|스펀지]]를 통해 증명된 내용.
          * 어릴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려다가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집안이 어려워져서 유학을 포기했고 꿈을 잃어버린 느낌 때문에 크게 좌했을 때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으며,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레 좌했던 순간이 극복됐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66851|#]]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4화 . . . . 6회 일치
          * 타이헤이도 아는 포켓햄 시리즈의 신작. 타이헤이가 자기가 어렸을 때도 있던 게임이라고 말하자 우마루는 초등학생 시 오빠는 어떤 아이였냐고 궁금해한다.
          * 타이헤이는 그 시을 회상하며 어머니를 기다리던 신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신사는 현재 포켓햄GO의 체육관으로 등록.
          * 어린시 기억과 현재의 신사를 비교해보며 감회에 잠기는 타이헤이. 우마루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우마루는 말이 나온 김에 그 시 오빠는 어떤 아이였냐고 묻는다.
          * 꼭 게임이 아니어도, 타이헤이는 친구들이 놀러가자는 제안은 거의 거하고 있었다.
          * 돌아가는 길. 우마루는 자기도 나중에 가면 포켓햄을 하던 시을 떠올리게 될까 생각한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6회 일치
         그간의 인터뷰들이나 수상소감, 방송에서의 말들을 보면 굉장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이혼 후로 한 번도 못 봤다고 했으니...그러나 지난 해 디어마이프렌즈 종영 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최근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재벌이든 뭐든 이혼을 했더라도 자녀와 어머니를 못 만나게 하는 건 불법이다. 고현정이 굳이 제 자식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당연히 만나고 살아야 하는 게 정상. 그간 만나지 못했던건 양육권을 가진 쪽에서 만남을 막았다기 보다 자녀들의 해외 유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낸 탓이 큰듯. 인터넷에서 간간히 아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딸 정해인 씨는 고현정을 많이 닮았다. 고현정의 어린시이라고 해도 납득할정도다. [* 아들 정해찬 씨는 [[정용진|아버지]]를 닮았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66&aid=0000411603|2018년 최근 모습]] ] 폐쇄 전의 인스타그램 내용 등을 보면 모친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일본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여왕의 교실(MBC)|리메이크한 작품]]의 주연으로 캐스팅, 원작에서 본좌급 카리스마 [[아마미 유키]]가 맡았던 대권력의 여교사역을 연기했다.
         2016년에는 3년 만의 후속작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에 출연했다. 그런데 고현정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이 엄청나게 후덜덜하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주현]], [[김영옥(배우)|김영옥]], [[신구(배우)|신구]]''' 등 고현정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한 대선배들이 줄줄이 출연한다. 그래서, 특별출연을 제외하고 고현정이 막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인지라 우스갯소리로 '''고현정이 막내라서 커피심부름 하는 드라마'''(...)라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위 라인업 보면 실제로 그럴것 같다. 데뷔 28년차가 막내라니~~ 이 작품은 워낙에 고현정 본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배우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연기력 + 뛰어난 작가의 스토리 + 감각적인 연출이라는 3박자가 묘하게 떨어진 작품이라 전작의 시청률 만회는 물론이고 다시 한 번 고현정의 주가를 상승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14회 마지막 장면에서 이기적인 자신을 반성하며 자학--셀프 싸대기--하는 장면은 압권.
         이 사건의 여파로 [[네이트판]]에 고현정이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신분으로 강의를 했을때의 부적한 처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현재는 삭제되었다.] 그 글에 따르면 고현정은 교수 시 지각을 상습적으로 했으며, 밥먹듯이 학생들을 노래방으로 데려가 술을 마셔서 즐기고 여학생과 남학생간의 똑같은 성적이라도 학점을 차별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글에서 가장 고현정이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은 매 수업시간마다 그것도 환기가 안되는 지하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는 중에 매 강의마다 10회 정도 [[흡연]]을 했다는 것인데, 이에 한 학부모가 이 문제에 대해 대학에 항의전화를 했으나 오히려 과 대표가 고현정 교수의 흡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넘어가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계속된 학부모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종강 때까지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이 글을 올렸던 당사자가 몰래 찍었던 사진이다. [[파일:교수의 자격.png|width=65%]] ] 그리하여 '''교육자로서 결격사유'''인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다.
          *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할]] [[히키코모리]]다. 촬영 없을 때는 주로 집에서 모든 공중파 드라마를 섭렵한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다. MBC 쇼바이벌 시 보고 울었다는 얘기를 한 걸 보면 쇼프로도 섭렵에 포함되는 것 같다.
  • 김성민 (1994년) . . . . 6회 일치
         ==아마추어 시==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SK 와이번스]] 시==
         ==[[넥센 히어로즈]] 시==
         이후 [[5월 18일]]에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김택형]]과의 1:1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이에 관해 [[고형욱]] 단장은 이전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고 밝히면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컨디션과 실전 감각이 대학 시만큼 회복된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01214 <nowiki>[배지헌의 브러시백]</nowiki> 넥센은 왜 김택형 대신 김성민을 택했나], 《엠스플뉴스》, 2017년 5월 18일.</ref> [[2017년]] [[5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7년]] [[7월 2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고, 6회에도 올라왔으나 경기가 강우 콜드로 끝나면서 완투승으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1.kr/articles/?3036995 '김성민 데뷔 첫 승' 넥센, kt에 6회 강우콜드 승리] 《뉴스1》, 2017년 7월 2일.</ref>
  • 김승대 . . . . 6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소속의 축구 선수.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부수는 묘한 침투가 장점인 선수로 '''라인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했지만, 황진성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컵]]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이 날 김승대가 기록한 첫 번째 골은 이재성의 스루패스도 훌륭했지만 김승대 특유의 묘한 라인깨기와 득점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재성의 스루패스가 중국 수비수의 발끝에 살짝 스치면서 김승대가 예상한 위치보다 발 가까이 붙어와서 퍼스트 터치가 나빴지만 당황하지 않고 후속 동작을 가져간 침착함은 A매치 데뷔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
         영남대 시 김승대는 골잡이보다는 도움에 능한 선수였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든 수비진을 따돌린 다음에 동료들에게 연결하는 능력이 좋았는데 득점은 3학년 때부터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유럽을 노크할 만한 골 결정력과 함께 [[강수일]]에게 제발 김승대의 반만 닮으라고 할 정도다.~~
  • 김정혁 . . . . 6회 일치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상기]]와 포지션이 겹쳤다.]
         동국대 시이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에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첫 해에는 51경기에 출장해 46안타 4홈런 25타점 24득점 타율 0.317을 기록했고, 두번째 해에는 78경기에 출장해 59안타 6홈런 27타점 28득점 타율 0.278을 기록했다.
         삼성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 후 2군에서 대타나 대수비로 출장하다가 5월부터 선발로 출장하기 시작했는데… 무려 '''4할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성실해 자정까지 연습할 정도의 노력파라 다른 2군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유는 팔꿈치 부상이라고 한다. 그를 진료했던 의사는 야구는커녕 일상 생활을 어떻게 했냐고 할 만큼 팔꿈치 통증이 심했다고 한다. 재능이 부족하면 피나는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 안타까운 케이스.[* 현역 시 코칭스태프가 쉬면서 하라고 말릴 정도로 훈련을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
          * [[강민호]]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때 친구로, 김정혁이 고교 시 1년 유급하는 바람에 동기는 아니다. 고교 때의 유급으로 1살 어린 [[배영섭]]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또한 김정혁도 [[배영섭]] 못지 않게 타격폼이 특이하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6회 일치
          * 타마키가 전황을 바꾸려 할 때마다 세츠노가 "도"로 맥을 끊으며 상황은 완전히 역전, 타마키가 제압 당하는 흐름으로 간다.
          * 이들은 각자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 완전히 망했으나 [[오버홀]] 치사키가 내민 손길로 완전히 세뇌된 상태.
          * 타베의 개성은 예상 밖이었고 그가 먹어치운 문어다리도 아팠다. 이레이저 헤드가 이 녀석을 쓰러뜨린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다. 움직임을 상회하는 걸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순간 세츠노의 "도"가 방해한다. 얼굴을 감싸고 잇던 조개껍질을 뜯겼다.
          * 그대로 넋 놓고 쓰러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타베가 문어다리를 밑동만 남기고 먹어치웠다. 놀라운 속도다. 여기서 타마키는 생각을 바꾼다. 그렇게 먹고 싶다면 놔두기로. 문어의 타액엔 신경독이 있다. 신경독이 듬뿍들어간 문어다리를 먹인다면... 타마키는 문어다리에 신경독을 재현하고 물어뜯기를 기다렸다. 먹으면 그대로 끝. 하지만 이마저 실패. 또 세츠노다. 문어다리가 작아진 만큼 그가 "도"하기엔 충분한 사이즈였다. 작전은 실패하고 호죠가 거대하게 경화시킨 팔로 타마키를 벽에 처박는다.
          * 호죠의 결정화된 팔이 날아오는 동안, 타마키는 머리를 굴렸다. "쓰레기 나름의 굳건한 유대". 그게 돌파구다. 그는 재빨린 왼발에 "닭발"을 재현했다. 그 발로 바닥에 흩어져 있던 호죠의 결정을 걷어찼다. 목표는 세츠노. 그의 눈이었다. 타마키가 내린 결정은 연예의 기점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계속 방해됐던 세츠노의 "도"는 눈으로 본 것만 훔칠 수 있다. 그래서 경찰들이 총을 꺼내지 않았다. 세츠노를 틀어막으면 그 다음엔...
          깨달았을 땐 늦었다. 도가 무력화됐으니 뜯길 일도 없다. 타마키는 결정화에 더해 거대화시킨 닭발로 그를 움켜쥔다. 뒤에서 타베가 달려들고 있었지만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6회 일치
          * 자신은 히어로의 자질은 커녕 "의협심" 조차 없다고 좌한 [[키리시마 에지로]]는 웅영고 진학도 포기하려 했다.
          * 지금도 책상 한켠에는 그 시 읽던 히어로 백과가 보관되어 있었다. 키리시마는 그 책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견디기 어려운 듯 책장으로 집어 던진다. 책과 함께 진열했던 히어로 굿즈들이 떨어진다. 그 중엔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았던 히어로 위인전의 부록도 있었다. 물론 크림슨 라이오트가 나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부록이 멋대로 작동했다.
          * 라이오트가 위험을 무릎쓰게 된 계기. 그것은 사이드킥 시의 경험이었다. 구할 수 있었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히어로를 선전하려는 이런 매체에선 부적
          >이제 대 후회하지 않겠어.
          * 키리시마의 집착은 그날에서 계속 이어져왔다. 지금까지 무서운 일은 많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무서운건 한 가지 뿐이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것". 나약한 시을 뒤풀이하는 일이다.
  • 데미안(드라마) . . . . 6회 일치
         머리에 666 자국이 있는 우리의 [[적 그리스도]] [[주인공]]. 직업은 [[종군기자]]. 어린 시의 일은 --후속 시리즈가 [[흑역사]]가 되서-- [[기억상실]]이 되었다가 1편에서 각성하게 된다.
         [[적 그리스도]]라고는 하지만 본래 인격은 정의롭고 좋은 사람(…). 그래서 자신의 숙명을 알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기억이 없었을 때는 [[무신론자]]로서 기독교 교리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야 그렇겠지.-- 어린 시과 마찬가지로 본인은 별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고와 죽음이 일어나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제조기(…). 적 그리스도로서의 운명에 따라서 죽어서는 안되는 몸이기 때문인지 주변에서 어지간한 사건이 일어나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종군기자로서 온갖 전쟁터를 돌아다니는데도 상처하나 없는 것은 이 때문인듯.
         1시즌 종반에 수녀들에게 잡혀가서 죽을 뻔 하다가 각성. 완전히 조이 되지는 않지만 초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명칭은 --D&D마법에서 다와서-- 임의로 붙였다.
         1편의 베이룩 부인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데미안에게 굴된 [[모성애]]를 지니고 있는 인물. 악마 숭배자 조직에서 데미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냥 유모였던 베이룩 부인과는 달리 악마숭배자들이 운영하는 아미티지 재단의 거물 인사. 악마숭배자 조직도 여성의 지위 향상이 이루어지나보다(…).
         '''악질적인 데미안 스토커'''(…)로서 데미안이 취재한 사진들을 마구 사들이고, 어린 시에 쓰던 물건들(오멘 1의 소품)을 방 안 가득히 챙겨놓고 있으며, 데미안과 관련되면서 뭔가 느끼는 표정(…)을 짓기도 하는 등 참 못말릴 아줌마. 역시 악마숭배자 답다.
         데미안이 [[시리아]]에서 취재 중에 만난 늙은 여자. 30세가 된 데미안을 붙잡고 [[라틴어]]로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의 말을 하며, 또 이 때 누가 돌을 던져서 이 여자 머리에서 피가 튀면서 데미안에게 [[세례]]가 주어진다. 왠지 데미안의 어린 시부터 과거 사진에도 있고, 시리아에서 헤어졌다가 뉴욕에도 나타나는 신출귀몰한 인물.
  • 동군연합 . . . . 6회 일치
         당시 보헤미아지방을 차지하던 룩셈부르크가가 단되면서 생긴 연합. 다만, 보헤미아는 선거왕정이었기에 중간중간 오스트리아가 왕위를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생기면서 합병되었으며,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패배하면서 상실된다.
         당시 폴란드의 왕가였던 앙쥬왕가가 남계가 단되면서 당시 폴란드 왕의 딸이 리투아니아의 대공에게 시집가면서 생긴 연합. 쭉유지되다가 이후 폴란드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삼분할되면서 '''멸망'''~~딴애들은 전부 해체나 상실인데 얘만 멸망이다. 안습~~
         본래 튜튼기사단이란 신정국가가 지배하던 프로이센 지방은 [* 정확히는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교도때문에 통치를 못할 수준이 되자 튜튼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이후 튜튼기사단의 단장 알브레이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선언하고 세속화되어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계가 단되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던 브란덴부르크와 동군연합이 된 것이다. 이게 왜 추가될 사례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텐데, 쉽게 말해 '''독일제국의 전신이다.''' 이로써 단순 발트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삼키며 본격적으로 열강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가 단되면서, 당시 하노버 선제후였던 게오르그가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하면서 생겨난 연합. [[네덜란드]]-[[영국]] 연합이 단되고 대신 하노버-영국 연합이 생겨났다. 하노버 선제후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일시 멸망했으나, 하노버의 신하들과 군인들은 영국으로 --됭케르그 후퇴-- 피신하여 '독일인 군단'을 결성하여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했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회의]]에서 하노버 왕국으로 복귀한다.
         당시 바이에른 선제후국을 지배하고 있던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가가 단되면서 팔츠계 비텔스바흐가가 계승되면서 나타난 동군연합. 이후 남독일을 장악하려고 오스트리아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바이에른 계승전쟁이 대번 터졌다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오스트리아군이 박살나면서(...) 이 지방은 비텔스바흐가가 장악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바이에른 왕국으로 통합된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6회 일치
         3년 전, 맥스 페인은 뉴욕 미드타운 북구에 근무하는 형사였다. 그는 친구인 마약단속반 요원 [[알렉스 볼더]]에게 마약단속반으로 오라는 권유를 들었지만 아내 미셸과의 사이에서 막 아이가 생긴 참이었기에 거했다.
         맥스는 라그나록으로 향한다. 라그나록은 잭 루피노가 낡은 극장을 리모델링한 나이트클럽으로, 마약굴이 위치해 있었다. 그 안에는 발키리에 뇌가 여진 약쟁이들과 루피노의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들이 있었을 것이었다.
         기한 맥스는 가족들이 몰살당한 날의 악몽을 꾼다. 언제나 그렇듯이. 맥스는 뉴저지에 있던 집에 들어왔다. 딸의 울음과 아내의 애원이 들리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었다. 맥스가 2층으로 올라가 아기 방 문을 열었을 때, 오르골 소리와 울음 소리만 들릴 뿐 아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뻗어나간 핏줄기가 있을 뿐이었다. 맥스는 핏줄기를 타고 아기한테 갔을때, 아기는 핏투성이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아기는 사라지고, 옆에 놓인 알파벳 블록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여 D3AD(죽었음)라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맥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한다. 침실 문을 열고 권총을 쏜다.
         맥스는 펀치넬로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펀치넬로는 누군가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맥스가 총을 겨누자 펀치넬로는 어떤 여자의 말을 거할 수 없었으며, 그 여자는 정부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맥스는 펀치넬로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 중간에 피아노가 나오는데, 이 피아노한테 상호작용을 시도하면 맥스 페인 테마의 첫 소이 연주된다. 피아노가 부서진 상황에서는 안 된다.
         엘레베이터가 내려간 곳은 기계장치가 즐비한 지하 시설, 딥 식스였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 그리고 용병 한명이 있었다. 용병은 자신들이 맥스를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용병을 쏴죽이고는 장치를 조작해 자폭 차를 발동시킨다.
  • 붐(연예인) . . . . 6회 일치
         "[[무명]] 시 때, 의도적으로 전진의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고 다니며 전진의 춤을 추고 사인까지 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나이트클럽]]에서 [[전진(신화)|전진]]의 행세를 하며 여자를 꼬시고 나이트나 클럽의 VIP로 대접까지 받은 적은 물론, 밥집에서도 전진 앞으로 달아놓으라는 식으로 [[먹튀]], 여자들과의 원나잇은 물론 전진의 팬이었던 미성년자 여성과 [[원나잇]]까지 했다"라는 [[루머]]가 있었다.
         그런데, [[애초에]] 이 루머가 생긴 경위가 좀 특이하다. "전진을 나이트에서 만났다. 정말 재수 없더라" 하는 글이 온라인 상에 올라왔었는데 문제는 그 여자가 클럽에서 놀았다는 시간이 신화의 스케줄이 있어서 대로 전진이 나이트로 가서 놀 수가 없는 상황이었단 거다. 사실 그 때 당시 신화는 [[사생팬]]이 넘쳐나는지라 사실상 모든 행적이 팬들에게 감시되고 있었다. 결국, 전진이 나이트를 간 적은 없었고 거짓말인 셈이다.
         군복무 시 별명은 '개념없는 붐' 을 줄여 개붐... 당시 병장이던 [[양세형]]이 전역 후 밝힌 이야기로 [[강심장#s-2|강심장]]에서 폭로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86265|#]]
         2015년 12월 2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방영분에서 [[나를 따르라 김장군|복면가수]]의 정체를 추측하면서 [[김정민(1989)|김정민]]이 그에 대해 언급했는데, [[http://m.busan.com/m/News/view.jsp?newsId=20151220000107|사진, 영상 자료가 필터링 없이 멀쩡히 나온 것으로 보아]] [[출연금지 연예인|출연금지]]가 해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 같은 방송국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505회분(2016.12.14.)에서 [[김재원]]이 군 시 붐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고, [[CG]]까지 나온 바 있다.]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2017년 3월 4째 주부터 러브FM에서 파워FM으로 --신분상승(?)-- 옮겨왔다. 자타공인 라디오 청취율 1위 [[두시탈출 컬투쇼]] 다음이기 때문에 청취율에도 많은 영향이 있을 듯 하다.[* 다만, 10년동안 컬투쇼-올드스쿨이라는 롤(?)때문에 아직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 --쫒겨난(?) [[김창렬]]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다만,러브FM으로 옮기기 전, 즉 파워FM 시때 김창렬이 고향인 러브FM가서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몇몇 청취자의 경우 붐붐파워가 너무 열정적(?)이고 시끄러워서(?) 적응하지 못하고 러브FM으로 이사한 올드스쿨로 온 청취자들도 있다. 그래도 인기는 좋아서인지 가끔 실시간 검색어에 붐붐파워가 뜬다. --왜냐면 검색해야 맞출 수 있는 퀴즈코너가 있기 때문에..--
         7월 30일에는 [[미우새]]에 나왔는데, 토니안이 붐한테 찾아간 것. [[토니 안]]이 미스코리아 [[MC]]를 맡게 되어서 붐한테 찾아가 붐이 [[토니 안]]한테 조언을 한 거다. --그리고 내기를 하려고 하다가 [[토니 안]]이 거... 이를 보던 [[신동엽]]도 무슨 내기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알다시피 [[토니 안]]과 붐은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같은]] [[출연금지 연예인|흑역사]]가 있다.] 이후에도 토니안과의 친분으로 미운 우리 새끼에 간간히 출연 중이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6회 일치
          * 우여곡 끝에 참가자 전원 무사히 유트림 화산 정상을 정복했다. 유트림 화산은 밤이 되면 분화를 멈추고 휴면에 들어간다.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은 일행 중에 낮 동안 다 올라오지 못했던 인원은 추려내서 내일 추가 등정을 시키고 일단 전원 온천욕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도 새까만 화산바위만 있을 뿐 온천은 보이지 않는다.
          * 마론은 염원하던 [[샬롯 로즈레이]]의 나체를 보고 대감동. 메레오레오나는 일단 술부터 한 잔 꺾는데 옆에 샬롯한테까지 마시라고 강권한다. 최근 술로 [[블랙 클로버/104화|좋지 않은 추억]]이 생긴 샬롯이 거하자 "내 술을 못 마시겠다는 거냐"고 압박을 가한다.
          되먹지 않은 소리였지만 레오폴트를 포함한 홍련의 사자단원들은 "남자란 그런 것인가"는 깨달음을 얻는다. 야미는 결정타를 넣을 생각으로 유노에게도 보고싶지 않냐고 호응을 유도한다. 그런데 유노는 됐다고 거, 분노한 야미가 아이언크로로 머리를 조인다. 유노는 끝까지 "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고 캐릭터성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나 야미가 봐주지 않는다. 아스타가 "유노는 정말로 보고 싶지 않은 거다"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남자랑만 목욕해서 그렇다"는 오해를 살법한 발언으로 변호 아닌 변호를 시도한다.
          레오폴트는 형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이 목욕을 좋아하긴 했지만 엿보기 같은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거하는 쪽으로 기우는데, 역시 야미가 놔두지 않는다.
          * 젊은 애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만족해하는 야미. 왠일인지 조용히 있는 아스타에게도 "따라갔다 오라"며 껄껄 웃는다. 언제나 야미에게 선동 당했던 아스타. 그런데 이번에는 "나는 시스터를 소중한 사람으로 정했기 때문에 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는 선비스러운 일갈과 함께 거한다. 마치 찬물을 뿌린 것 같이 된 남탕. 이상한 열기를 식혀버린 탓인지 결국 파국은 없이 온천합숙이 종료된다.
  • 블랙 클로버/70화 . . . . 6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70. '''망 vs 희망'''
          * 바네사의 실 마법과 핀랄의 공간마법, 그리고 아스타의 반마법의 콤비네이션으로 망의 베토를 수세로 몰아간다.
          * 혼신의 콤비네이션으로 마침내 망의 베토의 몸을 꿰뚫는다.
          * 망의 베토는 비록 치명상을 당한건 아니지만 상처의 재생이 멈춘걸 껄끄럽게 생각한다.
          * 그러나 바네사와 핀랄은 자신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아스타를 대로 배신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 보조한다.
          * 베토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어서 망하라고 소리지르는데
  • 블리치/674화 . . . . 6회 일치
         시호인 요루이치는 아스킨의 치사량을 조하는 능력에 고전하고 있다.
          * 아스킨의 치사량을 조하는 능력 때문에 요루이치는 고전한다
          * 요루치이는 "죽지도 살지도 않게 조"하는 솜씨가 묘하다고 비꼬는데, 사실 충분히 죽일 작정으로 조하는데 요루이치가 잘도 버티는 거다.
          * 우라하라는 요루이치에게 "그걸"하자고 제안하는데, 요루이치는 "어중간하고 기분 나쁜 모습"이라며 거한다.
  • 성훈(배우) . . . . 6회 일치
         연예계 데뷔 전에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 《[[우리동네 예체능]]》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실력이 후덜덜한 편이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과 붙어서도 이기고, 은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현역 선수랑 거의 대등한 성적을 내는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 수준(...) 실제로도 현역 시 대회에서 매우 좋은 기록을 세우는 등 촉망받는 선수였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부상으로 인해 전신마취만 6번, 수술만 약 10번 가까이 했고, 결국 기록이 떨어져 은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체능에서 거의 날아다니고 있어 영 설득력이(...) 워낙 예체능에서 보여준 활약이 인상 깊었던지라, 각종 커뮤니티에선 사람 맞냐는 반응이 많다. ~~수중로보트~~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허리 통증 때문에 예체능에서 제대로 기량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기량을 못 낸 거라니 그럼 전성기땐 어땠단거냐...~~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은 듯~~] [* MBC [[나 혼자 산다]]에서 28세까지 실업팀 소속으로 수영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2018년 10월 5일 방영분).]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의 남자주인공 아다모 역으로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처음으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한 거라 본인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임수향]]이나 한혜린 등은 연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던 신인이었지만, 본인은 연기경력이 하나도 없는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마스크나 신체조건이 상당히 우월한 편이라, 붙을 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 [[민경훈]]의 리즈시과 상당히 닮았다는 말이 많다. 각도에 따라선 '''[[이병헌]]'''의 얼굴도 보인다는 평. 특이하게 쌍꺼풀이 한 쪽만 있는데, 쌍꺼풀이 있는 쪽의 얼굴은 '''[[원빈]]'''도 보인다는 의견이 있다. ~~어째 비쥬얼 되는 얼굴들은 다 모아놓은 듯~~
          * 맡는 역할마다 어째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캐릭터가 많다. 거기다 입양아 역도 좀 있는 편이다. 가족의 탄생, 오 마이 비너스 둘 다 미국으로 입양된 역할(...) 아이가 다섯은 부모님이 있기는 한데 떨어져 사는 설정이라 반 가량이 지났음에도 부모님의 아직 얼굴조차 안나오다가 드디어 40회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근데 이번에는 엄마가 [[박해미|이 분]]... 게다가 엄마는 상민과 태민을 차별하며 태민을 편애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이번에도.....?-- [[애타는 로맨스]]에서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혼 가정의 재벌 2세. ~~이 쯤 되면 그냥 팔자인 듯~~
  • 오세창 . . . . 6회 일치
         청년 시 오세창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일본]] 조정에 계속 사람을 보내 망명객들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거했다.
         [[1902년]]부터 일본에 망명해 있던 중, 천도교 교주 [[손병희]]를 만나 [[손병희]], [[양한묵]](梁漢默) 등의 거듭된 권고로 [[천도교]]에 입교했다. [[1906년]] 천도교 기관지를 겸한 일간지 《[[만세보]] (萬歲報)》 사장으로 계몽 운동을 펼치면서 [[국채보상운동]]을 벌였고, [[1907년]] [[3월]]에는 [[의친왕]]의 수행원으로 [[일본]] 도쿄에 갔다가 천장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그해 [[7월 10일]]에 귀환하였다. [[11월]] [[중추원 (대한제국)|중추원]] 부찬의(中樞院副贊議) [[주임관]]2등(奏任官二等)에 임명되었다.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남작]] 작위와 은사금이 내려졌지만 거하고 받지 않았다. [[안중식]]의 동양화 〈탑원도소회지도〉([[1912년]])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오세창의 정원 누각에 천도교 문명파 인사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9월]] 창당된 우익 계열의 보수 정당 [[한국민주당]]도 창당때 그를 공동 당수로 영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한민당 영수직을 거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에도 추대되었으나 거했다. 이어 매일신보(每日申報)의 명예사장과 서울신문 명예사장으로 추대되자 이를 수락하였다.
  • 오지호(배우) . . . . 6회 일치
         리즈시 외모
         1999년 CF 모델로 데뷔했지만 [[듣보잡]]에 가까운 처지로 있었다. 1998년 [[까(영화)|까]]의 [[단역]]으로 데뷔했고 2000년, 다채롭고 [[륜]]한 [[검열삭제]]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화 '[[미인(2000)|미인]]'에서 주연을 맡아 아마도 이름은 [[이지현(1978)|이지현]]과 함께 알렸지만 영화 내용 자체는 그닥... ~~미인은 스토리가 필요 없는 영화지 몸매만으로도 그 가치가 훌륭하다~~.[* 다만 이 부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흥행 실적에서는 대로 망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이익을 봤다. 10만 명 정도의 관객이 관람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많다고 할 관객 수는 아니었지만 작은 수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예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무릎팍에서 오지호 본인도 흥행은 성공이었다고 말했다.]
         잘생겼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중에서도 무명급인지라 활동 지속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우여곡 끝에 어렵게 캐스팅[* 작가가 완강히 반대했으나 감독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촬영 직전에서야 겨우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된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어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코믹한 역할을 상당히 많이 맡게 된다. 특징적으로는 원톱 여배우와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직장의 신]] 등 히트한 드라마 상당수가 그런 작품이 많다. ~~본격 원톱여주드라마 받침 남주역 전문~~ 얼빵하거나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코믹한 연기보단 진지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결혼 한 2014년 이후로 코믹한 역할로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 등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듯.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예능인 [[천하무적 야구단]]에도 출연하여 팀의 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유연성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정민태]] 투수코치는 오지호를 보고 "이렇게 뻣뻣한 사람이 왜 야구를 하지?" 라고 말할 정도였다. 투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친 [[김성수(배우)|김성수]]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의 주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텐프로]]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전 여자친구가 [[자살]]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지호가 무명이던 시 만나 그를 뒷바라지해주었으나 막상 오지호는 유명세를 얻고 난 뒤 그녀와 헤어졌고(다만 오지호의 말에 의하면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 뒤 그녀는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게다가 오지호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오지 않았는데, 고인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고인이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에게 알려주라'는 문자를 남겼고, 이에 따라 오지호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한다(아마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으며 이 이후 방송활동도 비교적 뜸해진 편.
  • 원피스/841화 . . . . 6회 일치
          * 상디는 철가면을 벗길 열쇠를 찾다 저지에게 발각되는데, 오히려 저지는 "수치스러우니 대로 내 자식이란걸 밝히지 마라"는 조건으로 내버려둔다.
          * 형제들이 돌아간 후 레이쥬가 상디를 치료해주지만 상디편은 대 아니라며 선을 긋는다.
          * 그 한 목소리에 레이쥬도 눈물을 보이는데.
          * "내가 네 아비라는 사실은 대 남들 앞에서 밝히지 말아다오.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오점이다."
          * 형제들은 어린 시처럼 그를 실컷 두들겨패고 돌아간다.
  • 이기택 . . . . 6회 일치
         === 초년시 ===
         [[개성고등학교|부산상업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하였다. [[4.19 혁명]]을 일으킨 여러 학생운동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때 함께 학생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부산상고 동기동창인 [[신상우]]가 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정계은퇴를 권유하였으나, 놀랍게도 통합민주당을 [[신한국당]]과 합당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김영삼의 밑에 있다가, 김대중과 손을 잡았는데, 그 뒤에는 이회창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때 조순, 이철과 제정구는 이기택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갔다. 그러나 노무현, 김정길, 김원기는 이기택과 연하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로 합류하였다.] 이기택으로서는 DJ, YS, JP 3김을 중심으로한 정치에 염증이 느끼고 있었고, [[1996년]] 김대중의 정계 복귀 뒤에 김대중과 갈등이 크게 겪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통합민주당이 와해당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3김 정치 청산을 내세운 이회창과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을 창당했으나, 결국 1997년 12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여당해보나 했더니 또 야당됐네~~
         그러나 나이에 비해 직위가 너무 빨리 올라간 탓인지 바닥 민심을 훑는 감각이나 정치적 타이밍을 포착하는 동물적 감각 등이 너무 일찍 사그러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야당 대표 시에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공천을 하면서 명분이나 당선가능성보다는 계보나 인맥 위주의 공천을 하여 생각보다 작은 그릇을 보여주었다.
         자형 이임용이 [[태광그룹]] 회장이었다. 아내 이경의 여사는 [[이화여대]] 메이퀸으로서 미모가 대단하였는데,[* 늙어서도 미모가 죽지 않았다. [[http://news.joins.com/article/19624318|사진 참조]]] 1960년대 총각 국회의원 시에 보좌관들이 이대 교문 앞에서 이경의를 '''보쌈해다가''' 이기택과 소개팅을 시켜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한다.
  • 이석훈 . . . . 6회 일치
         ||<#0D3EA3> {{{#ffffff 종교}}} ||<(><rowbgcolor=#ffffff> [[개신교]][* 6집 앨범 끝부분에서 성경구을 언급함과 동시에 감사함을 드러냈으며 실제로 2009년 10월에는 줄라이 프로젝트라는 그룹의 CCM앨범에도 참여했다.] ||
         5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6집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안티들의 말을 듣고 연습을 했는지 고음역대가 상당히 깔끔해졌다.[* 사실 5집의 이석훈 파트를 2주만에 녹음하는 바람에 성대결이 걸렸었다. 최상의 목상태로 데뷔를 한 건 아닌 셈.]
         다들 알다시피 「내 사람」같은 경우는 애초에 채동하에게 맞춰서 작곡된 노래다.[* 원래는 김진호, 채동하가 후렴을 반반 나눠서 부르기로 하고 녹음을 했는데, 김광수 사장이 듣더니 '진호가 다 부르는게 낫겠다.'라고 해서 발매 연기 후 재녹음. 이 사건으로 채동하가 '내 목소리의 힘이 이것밖에 안됐나'하고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현재 음원은 1과 2은 모두 김진호가 부르고, 3에서만 반반 나눠서 부른다. 라이브는 재녹음 전 파트 그대로...][* 이석훈이 합류한 이후에는 기존 라이브에서의 채동하 파트를 이석훈과 김용준이 반반 나눠서 부른다. 아주 맨 처음에는 이석훈이 혼자 ~~힘들게~~불렀지만 김용준이 나눠부른 이후에는 연습도 많이 해서 고음이 꽤나 깔끔해졌다.~~덕분에 김용준은 파트가 늘었다~~]
         학창시 체중 '''100kg'''이 넘어갔다고 한다. 그 때 같이 다니던 여학생이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쟤랑 같이 다니기 쪽팔려.'라고 한걸 듣고 충격을 받아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냥 운동장만 주구장창 달렸다고...안여돼의 다이어트 후 모습의 바람직한 예시.[* 물론 이석훈뿐만 아니라 [[채동하]], [[김진호(SG워너비)|김진호]]도 있다. [[채동하]]도 다이어트로 용된 케이스이며, 특히 김진호는 데뷔초에 비해 대단히 이미지 변신을 했다. 그것도 '''운동'''만으로... 오오]~~우리 모두 힘내자!~~
  • 이영 (1494년) . . . . 6회 일치
         [[조선 중종|중종]] 때인 1514년(중종 9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으며, 도사, 참판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 있으면서 염근(廉謹)하기가 무반(武班)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라는 평을 들었다. 1545년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단천 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정평 부사에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평부사 재직시 사적으로도 백성을 범하지 않아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었다. 1552년 회령부사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치를 베풀고 청백리에 뽑혔다. 또한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이듬해 함경도 병마도사가 되어 군비 확충과 군사훈련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 부사가 되었다. 1556년 평안도 도사가 되었다. 그 후 병조참판과 제주 목사·경상우도 병마도사·부호군·호군 등을 지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도민이 그의 업적을 추모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안하고 참배하였으며 그 당을 괘편당(掛鞭堂)이라 하였다. 그의 졸기에 의하면 [[대구]](大丘)의 집에 화재를 당하여 처자가 살 데가 없게 되자, 주상이 그 고(苦節)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집을 지어 내려주고 또 의복과 식량을 이어주게 하였다 한다. 그러나 성질이 편협하고 급하여 형벌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는 평도 있다. 1563년 2월 호군으로 재직 중 졸하였다.
         [[분류:1494년 태어남]][[분류:조선의 무신]][[분류:1563년 죽음]][[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육군 군인]][[분류:병마도사]][[분류:병사한 사람]][[분류:영천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장군]]
  • 이영욱 (1980년) . . . . 6회 일치
         ==선수 시==
         ===아마추어 시===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8라운드 59순위로 지명을 받은 후 [[홍익대학교]] (1999학번) 진학 후 재학 시 [[차일목]]과 배터리를 이루었다.
         ===[[SK 와이번스]] 시===
         ===[[삼성 라이온즈]] 시===
         그가 데뷔 첫 승을 거둔 경기는 [[2005년]] [[5월 29일]]의 [[두산 베어스|두산]]전인데, 첫 승을 따내기까지 우여곡이 많았다. 1회말에 선발 [[헤수스 산체스]]가 1/3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자 1회부터 그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고 3회말에 상대 타자 [[장원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에 [[장원진]]이 그를 구타하면서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4회초 공격에서 1:5로 뒤지던 [[SK 와이번스]]는 무려 6득점하면서 그에게 프로 데뷔 첫 승을 안겨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11178 SK 조범현 감독, "두산 장원진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 조이뉴스24</ref>
  • 이정호 (1982년) . . . . 6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시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 [[현대 유니콘스]] 시 ==
         == [[넥센 히어로즈]] 시 ==
         == [[고양 원더스]] 시 ==
         == [[한화 이글스]] 시 ==
  • 장태영(야구선수) . . . . 6회 일치
         ||<#eeeeee><:> '''포지션''' || [[투수]][* 고교야구 시], [[외야수]][* 실업야구 시] ||
         경남중 재학시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상업은행 감독시 장태영(좌). 우측은 기업은행 감독 [[김양중(야구)|김양중]] ||
  • 절대가련 칠드런/477화 . . . . 6회 일치
         ||||||||||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대가련 칠드런/476화]] |||| '''대가련 칠드런/477화''' |||| [[대가련 칠드런/478화]] ||
         [[분류:대가련 칠드런]] [[분류: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진격의 거인/93화 . . . . 6회 일치
          마레는 팽창적인 식민지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건 거인의 힘을 과신한데 따른 전략이다. 잘 먹혀왔지만 그만큼 다른 나라는 거인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는데 필사적이었고, 이제 그 성과가 가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육상에서 거인은 대적인 힘을 발휘하겠지만, 이대로 항공기가 계속 발달하고 상공에서 수십 kg의 폭탄이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면?
          지크는 대답없이 연기만 내뿜는다. 그러다 거인학회 놈들도 모르고 자신도 죽을 때까지 모를 거라며 화제를 회피한다. 그런데 지크는 잊고 있던게 떠올랐다. 콜트는 자신의 다음 계승자라는 사실. 기억을 계승할 그는 결국 지크의 비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안도가 된 것인지 지크는 그냥 자신의 비밀을 말해 버리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겐 대 말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서.
          간식을 다 먹은 갤리어드는 라이너의 감사를 거한다. 그가 구한건 라이너가 아닌, "네가 갑옷을 잃어 버리는 실수에서 조국 마레를 구한 것"이라면서. 라이너가 아무 대답도 없자 갤리어드는 조금 더 전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9년 전, 팔라디섬 작전에서 자신이 갑옷 거인을 계승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 그저 대답하지 않거나, 시무룩하게 맞다고 수긍하기만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갤리어드의 공격은 수위를 높여간다. 그가 유미르의 기억을 통해 바라본, 조사병단 시의 라이너 얘기다. 동기들의 리더이자, 큰형님 같았던 시.
          * 그때부터 라이너는 보통의 어른, "브라운씨"로 돌아간다. 그는 연민에 가까운 표정으로 "그렇다면 네가 가비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꺼낸다. 그런 변화가 어리둥한 파르코를, 라이너가 어깨를 붙들고 말한다.
  • 진격의 거인/94화 . . . . 6회 일치
          * 대화는 "팔라디 섬의 악마들"로 흘러가는데, 라이너는 "거기는 지옥이고 악마들이 산다"고 하면서도 그곳에서 "병사"로 살던 시을 그리워한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상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반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반에 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반대로 남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 엘디아인을 버린 섬의 악마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어머니의 말은 라이너의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켰다. 방으로 돌아와 누운 라이너는 어린 시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런 실함이 낳은 결과일까? 그는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전사 후보생" 자격을 얻었다. 후보생 완장을 어머니에게 보이는 날, 카리나는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명예 마레인까지 한 발짝이다". 어머니는 더 가혹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었지만 아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목표를 누구보다 바랬다.
          * 그 시기의 팔라디섬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또다른 "벽 안의 소년" [[엘런 예거]]는 이 시에는 그저 멍한 있길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엘런에게 [[아르민 알레르토]]가 무언가를 가져오고 있었다.
  • 차선우 . . . . 6회 일치
         [[B1A4]]가 자주 출연했던 <식신로드>에서 한동안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그 때 외모는 리즈 중의 리즈를 달성했다.[* [[B1A4]]의 깨알플레이어 촬영 시기와 겹친다. 깨플 촬영시기 또한 바로의 최대 [[리즈 시]]. ~~아기참새 머리 빼고~~]
         [[무한도전]] 브라질 월드컵 응원단에 고정 출연할 때쯤, <MBC [[아육대/2014년#s-2|아이돌 풋살 월드컵]]>에 출연해서 학창 시에 축구 선수를 꿈꾸었고, 가수가 아니었다면 축구 선수를 하였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듯, 준결승전에서 1골, 결승전에서도 시원한 중거리슛 1골을 넣었다. ~~다리 값을 하는구나~~
         ||<:> [[2016년]] ||<:> 드라마 ||<:> [[KBS 2TV]] ||<:> [[마스터 - 국수의 신]] ||<:> 김길도 역 ||<:> [[조재현]] 아역[* 김길도([[조재현]])의 청년시 역으로 특별출연 하였다.] ||
         뮤비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다지 분량이 많지는 않다(...) [[방용국]]과 [[임시완]] 또한 출연하였다. ~~대 다중인격이 아닙니다.~~
         현재 [[러블리즈]]로 활동 중인 '''그 [[유지애]] 맞다.'''[* 해당 곡은 [[유지애]]가 [[러블리즈]]로 데뷔하기 전 개인 활동을 하던 시에 발표한 곡이다.] ~~전반적으로 팬들은 산뜻한 분위기의 움짤을 얻었지만 오글거림 또한 떨쳐내지 못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FWPJtK10O4|메이킹필름 A]] [[https://www.youtube.com/watch?v=PLVwYeVNaB8|메이킹필름 B]]
          * 데뷔 1년차 될 때쯤에 [[B1A4|비포]]가 예능감 없다는 소리에도 그나마 [[산들]]과 티격태격대며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광산같은 엽사를 남기던 멤버가 바로 얘. 그런데 2014년부터 급격히 성격이 바뀐것같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탓인지. 성숙해졌달까, 옛날 리얼리티에서 ~~다람쥐공주 춤을 추는~~ 까부는 행동은 요즘 자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주먹을 부르는 애교와 외계어와 조증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별명이 나대미, 차나댐인 만큼 요즘도 주목 받을땐 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도 원래 바로는 학생 차선우 시에는 조용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였다고 했으니. ~~멤버들이 말한 A형의 B형화 B형의 A형화가 괜히 한 말은 아닌 것같다(...)~~
  • 최훈재 . . . . 6회 일치
         ==선수 시==
         ===[[MBC 청룡]] 시===
         ===[[LG 트윈스]] 시===
         ===[[해태 타이거즈]] 시===
         ===[[두산 베어스]] 시===
         ==야구선수 은퇴 후 시==
  • 카라스노 고교 . . . . 6회 일치
         [[미야기]] 현에 있는 현립 고교이다. 작중 시점에서 4년 전, 봄대회에서 미야기현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장했다. 전국에 나가서도 3회전까지 올라갔으니 선전한 셈. 이 때가 카라스노 고교의 [[리즈시]]로, '작은 거인'이 활동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다. 카라스노 고교가 가장 강했던 시이며, 그야말로 미야기 현내 최고 강호교'''였'''다.
         도쿄에 있는 [[네코마 고교]]와는 유서 있는 [[라이벌]] 관계이다. 두 학교의 [[더비 매치]]는 아예 '''쓰레기장의 결전'''이라고 불린다. 네코마와는 여러차례 연습 시합을 가졌지만 공식 무대에서는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한 [[안습]]한 역사가 있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는, 작은 거인이 있던 시(=즉 가장 강했던 시)에도 연습시합에서 네코마 고교를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전반적으로 수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지만, [[후쿠로다니 학원|후쿠로다니 학원 그룹]]과의 단체 합숙 등으로 팀원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런 느낌은 많이 사라진 분위기. 다만 수비력이 떨어지던 시에도 희대의 사기캐인 [[니시노야 유|주전 리베로]]와 윙리베로(...)급 활약으로 수비를 [[캐리]]했던 [[사와무라 다이치|주장]]이 있었다.
         애초에 중학시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 킹덤/509화 . . . . 6회 일치
          * 반나 뒤. [[환의(킹덤)|환의]]와 [[왕분(킹덤)|왕분]]의 군대가 열미성에 도착했는데 이미 성이 함락된 걸 보고 경악한다. 이 열미성을 공략하는데 개전부터 불과 반나, 그것도 최소한의 부대로 이뤄낸 성과였다.
          * [[하료초]]는 다시 바빠졌다. 중상자 치료를 지시하고 다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신, 강외, 초수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다. 곧바로 실행하라고 지시하자 미평이 막 싸움이 끝났는데 그럴 필요 있냐고 투덜댄다. 하지만 하료초는 진짜 바빠지는건 "지금부터"라면서 정색한다. 미평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어리둥해한다.
          부장 중 하나는 비신대를 알아보고 공을 치하한다. 그러면서 "다음"은 왕전군에게 맡기란 말을 하는데. 그 말은 하료초가 한 것과도 비슷해서 역시 미평이 어리둥해한다. 하료초는 다시 설명을 이어간다.
          * 열미로부터 반나 거리인 적마 언덕엔 [[공손룡]] 장군이 조군을 이끌고 행군 중이다. 진격 중에 열미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도착한다. 조군은 단 하루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술렁대지만, 곧바로 들이쳐서 탈환하면 그만이라고 사기를 끌어올린다. 이들 계산으론 그렇게 무리한 일정으로 공성을 했다는건 현재 온전한 병력이 남지 않았을 것이고, 이때를 노린다면 손쉽게 탈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그들은 "성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 그 말은 한점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아직 성안의 진군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총대장 왕전만은 감하고 있었다. 그는 성벽 위에서 성을 내려다 보며 이목이 열미성에 심은 계책을 눈치챈다. 이 사실에 왕전은 [[창평군]]이 세웠던 전략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끼고 만다.
  • 킹덤/528화 . . . . 6회 일치
          * 양단화는 "톳지"와 함께 벽 위에 나타난 기묘한 군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치 산민족처럼 가면을 쓰고 다녔으며 짐승같은 기성을 내는 흉흉한 무리였다. 톳지가 그들을 가리켰으나 양단화는 진작부터 그 위험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위험한 동질감이었다. 새로 나타난 적들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였다.
          그 말대로였다. 견융족은 어떠한 사전조율이 없었음에도 "영역"을 침범한 양단화군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임전태세에 돌입한 이들은 장수가 이민족 말로 뭐라 외치자 기마들이 일제히 벽 밑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 양단화는 이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견융족이 배치된 언덕은 그야말로 깍아지는 벽. 그러나 견융의 기마는 마치 언덕을 내려오는 것처럼 태연하게 벽을 타고 쏟아졌다. 순수수는 이들의 진로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벽 밑에 주둔한 조군에게 길을 트게했다. 벽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마대. 말을 탄 늑대와 같은 무리가 진군을 향해 돌진했다. 벽을 위시한 진군의 장수들은 이들의 존재를 그제야 파악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 하이큐/263화 . . . . 6회 일치
          다른 팀 선수들은 "빡빡머리"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같은 선수 입장이니 이제는 타나카의 괴로움이 했다. 지금은 버틸 때라고 응원하는 선수들.
          * 그런 쓰라림을 아는건 역시 선수들. 아까까지 타나카의 플레이를 비웃던 선수들이 누구보다 박하게 그를 응원했다. 물론 개인적로서도, 선수로서도 응원하는 카노카의 심함에 비할 수는 없었다. 카노카의 동료는 방금 전 플레이가 "류 쨩"에겐 아쉽지만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타나카는 계속 블록에 잡히기도 했고 잔실수도 있었다. 나쁜 흐름을 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안경"의 판단은 잘못된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류 쨩"에게 괴로운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그걸 끝없이 올라간다. 그런 전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가도, 흐름은 어디서나 바뀐다. 턱없이 높은 계단. 도저히 딛고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계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타나카도 멘탈이 한 없이 마이너스로 치닫는다. 약 반년에 한 번 꼴. 그럴 땐 좀 심하게 감한다.
          문득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카노카, 한 사람은 [[시미즈 키요코]]. 타나카 입장에선 둘 다 차인 상대. 왜 지금 떠오를까? 어쨌든 그는 평범하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감하게 된다.
  • 하이큐/264화 . . . . 6회 일치
          * 이후로 무수히 거 당했지만, 타나카의 어필은 언제나 진심이었고 그는 그런걸 꾸미거나 뭉뚱그리는 법을 모른 채 오로지 밀어붙였다. 그의 배구처럼.
          * 계속되는 부진에도 불구하고 [[히나타 쇼요]]의 칭찬에 힘을 얻은 [[타나카 류노스케]]는 자신은 평범한 선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닥을 보고 좌하고 있을 여유 조차 없다고 자신을 다잡는다.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반한 상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반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백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상을 안 먹으면 남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규했다.
          좋게 말하면 순정남이지만 엔노시타가 보기에는 그저 요령부득에 개그소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키요코 선배를 좋아하는게 맞다면 "좋아한단 오오라"를 좀 자제하는게 어떻냐고 충고한다. 타나카는 "사귀어달라", "결혼해달라"는 말을 인사 대신으로 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칼 같이 거 당하는게 언제나 패턴.
          * 타나카의 1학년 시엔 한 가지 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2학년들은 생긴 걸로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강렬한 타나카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특히 키노시타는 "눈도 마주치면 안 되겠다"고 여길 정도로 겁을 먹었다. 타나카는 입부하자마자 남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행색을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먹혀들고 있었다. 키요코와 만나기 전까진.
          훗날까지 "초면 프로포즈 사건"이라 회자되는 이 사건. 동기들은 세삼 그때를 떠올리며 "원래 저런 녀석"이라 납득하게 되었다. 타나카는 내일 시합을 앞둔 긴장감을 핑계대고 자리를 뜬다. 남은 동기들은 혹시 저러다 스토커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지만 키요코가 정말로 거하면 그렇게까진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타나카를 바보취급하는 분위기였지만 엔노시타가 좋은 얘길 해준다. 늘상 바보같아 보여도 언제나 한결 같은건 대단한 일이라면서.
  • 하이큐/266화 . . . . 6회 일치
          * [[코즈메 켄마]]가 아직 1학년이던 시. 훈련 중에 곧잘 요령을 피우는 코즈메와 언제나 전심전력으로 임하는 [[야마모토 타케토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편 막 체육관으로 돌아오다 이 촌극을 목격한 쿠로오는 어리둥해할 뿐이었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인 만큼 그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타입이었고 그런만큼 일반적으론 가장 포텐셜이 높은 선수를 쓰기 마련인 세터 자리에 "그렇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코즈메처럼. 네코마타 감독이 보는 세터의 대조건은 두뇌와 센스. 그건 팀의 수비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면승부에서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씩 깎아내리는건 가능했다. 강고한 수비라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고 흔드는 걸로 세터의 연약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입증하듯 2세트 중반에 이르러 사루카와는 최초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략은 네코마의 벤치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묘하게 꺼려지는 곳만 공략한다, 전력을 다하면 넣을 수 있는 곳에도 묘하게 제하며 시합을 이어간다, 그걸 꾸준히 시도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언뜻 듣기엔 비겁한 전술 같지만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전술을 가지고도 막상 코트에 서면 "화이트 보드에 그리는 것처럼"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네코마타 감독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다.
  • 허준 (1981년) . . . . 6회 일치
         '''허준'''(許俊, [[1981년]] [[7월 20일]] ~ )은 전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포수]]이다. 2014 시즌후 무릎관 수술대에 오르며 은퇴하였다. 현재는 2018.[휘문고] 야구부 코치이다.
         == 아마추어 시 ==
         == [[현대 유니콘스]] 시 ==
         == [[넥센 히어로즈]] 시 ==
         == [[NC 다이노스]] 시 ==
         창단 멤버로 입단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2014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31357 NC, 창단 첫 주장 허준·품남 정성기 등 6명 방출] - 경남신문</ref> 이후 [[마산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 황두성 . . . . 6회 일치
         |사진 설명 = [[현대 유니콘스]] 시의 황두성
         === [[삼성 라이온즈]] 시 ===
         ===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시 ===
         === [[현대 유니콘스]] 시 ===
         [[현대 유니콘스]] 시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하였으나, 1군 1경기에 그쳤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은 상당히 탄탄했었기에 그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못하고 그의 선수 생활은 주로 2군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들이 부진함에 따라 2군에서 선수 생활을 쭉 해오던 황두성은 비로소 1군에 올라와 기회를 잡게 되는데, 처음에는 불펜으로 자주 등판한 것을 시작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마당쇠 같은 역할을 하여 [[2005년]] 1군 60경기 11승 9패에 방어율 3점대 초반의 성적을 거두어 두각을 나타낸다. 데뷔 첫 승도 그 해에 기록했다. 그는 140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와 체인지업 위주로 구사하면서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그는 [[2006년]] 시즌 처음에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2005년]]에 지나치게 등판하여 혹사한 탓에 후유증으로 크게 부진하여 2군에서 재활하게 된다. 그 뒤 시즌 중반에 1군으로 올라와 불펜 투수로 뛰면서하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다. [[2006년]] 시즌 3.91 평균자책을 기록하였다.
         === [[넥센 히어로즈]] 시 ===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5회 일치
         K리그는 1983년 발족한 이래 늘 가지고 있던 고민이 흥행이었고, 이 흥행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각종 리그운영을 포함한 제도적인 변경을 꾸준히 시도해 왔었다. 과거 [[리그컵(K리그)]]시에 있었던 규정변경은 물론이고, K리그도 리그운영이 최초의 풀리그체제에서 스플릿제도로의 변화까지 있었던 운영변경점을 봐도 K리그의 흥행을 고려한 변경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K리그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두환 시의 3S정책과 맞닿아 있던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나, 박정희 시부터 내려온 스포츠 지원정책의 기치는 '''"(저 북괴놈들에게 대 꿇리지 않는) 국제적인 스포츠 업적을 거두어 세계만방에 걸친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국제 스포츠계에서 업적을 쌓는다는 명분이 대한축구협회 시에 세운 기치이며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설립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프로축구협회 정관: 제1조 목적, 이 법인은 한국프로축구의 수준향상과 저변확대는 물론 국제교류 등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 전한 여가 선용을 도모하고, 스포츠 활성화와 지역사회를 비롯한 '''국가 발전 및 국제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7화 . . . . 5회 일치
          * 키리에의 보물상자에서 어린시 사진이 잔뜩 나오는데 오빠(봄바)와 찍은 사진이 가장 많다.
          * 내용물은 꼬마시 가족사진. 주로 오빠(모토베 봄바)와 찍은 것들이다.
          * 차를 준비해온 타이헤이가 사진을 보고 봄바의 어린시이라고 알아본다.
          * 키리에는 어린시 다쳤을 때를 회상한다.
          * 하지만 어린시 오빠의 헌신을 떠올린 키리에는 어색하게나마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답례한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5회 일치
         학생 때부터 [[빅뱅(아이돌)|빅뱅]]의 굉장한 팬이었고, 소문에 의하면 좌우명이 낮태밤태(낮에도 [[태양(빅뱅)|태양]]으로 밤에도 [[태양(빅뱅)|태양]]으로).... 학창 시 별명은 빅뱅녀[* [[https://twitter.com/bbuselessinfo/status/907228685371023361|#]]]였다고. [[http://blog.naver.com/hongrg0427/220852917584|나인뮤지스 금조의 알찬 빅뱅 태양 덕질]]
         무슨 일인지 컴백할때마다 타이틀곡 파트가 줄어들고 있다...--안습-- [[DRAMA]] 활동 당시에는 [[경리(나인뮤지스)|경리]]와 함께 파트 독식이었지만 [[9MUSES S/S EDITION|다쳐]] 활동 때는 --파트고자-- [[박민하(1991)|민하]]에게 1 파트를 주고 2 맨 끝자락에서야 본인파트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뒷 부분 후렴구 세 파트[* 근데 가끔 마지막 후렴구 일부가 잘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금조의 파트가 있다. 즉 파트 길이로만 따지면 [[9MUSES S/S EDITION|다쳐]]에서도 멤버 중 가장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였는데 잠은 안 오고 배는 고프고에서는...
         한 소 파트까지는 아니다. ~~~그건 다행~~~
         [[2015년]] [[5월 26일]] 발표 된 [[카라(아이돌)|카라]]의 [[IN LOVE|미니 7집]] 타이틀곡 '[[CUPID]]' 에서 코러스를 맡은 듯 하다. 앨범 크레딧에 본명인 '이금조'가 명시되어 있고, 이 곡의 작곡가가 같은 [[스타제국]] 소속이었던 [[V.O.S]]의 멤버 [[최현준]]이 속한 작곡팀 [[e.one]]인 점 등 여러모로 봐도 확실한 듯. 또 [[은정(티아라)|엘시]]의 '눈물비' 와 [[구하라]]의 [[ALOHARA|미니 1집]] 중 '하라구' 와 '어때?',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SNOWFLAKE|사랑별 (Luv Star)]]', [[에이프릴(아이돌)|에이프릴]]의 '[[Spring|미니 2집]] 중 '팅커벨'과 'JELLY'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이후 여자친구 [[LOL(여자친구)|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는 e.one 작곡의 노래들인 '나의 일기장' 과 '바람에 날려' 도 마찬가지로 참여했으며, [[우주소녀]]의 미니 2집 타이틀곡인 '비밀이야'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여기서는 금조라 표기하고 있다. 현역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 노래에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CUPID]]'와 '눈물비'는 연습생 시 참여한 곡들이라 특별히 더 애착이 간다고.
  • 김동호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한국 프로야구 시==
         ===[[한화 이글스]] 시===
         ==한국 독립야구 시==
         ===[[고양 원더스]] 시===
         ===[[삼성 라이온즈]] 시===
  • 김민희(1982) . . . . 5회 일치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청룡영화상]] 이후로 항간에 김민희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김민희 측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받았으나 부상으로 딸려오는 수백만 원의 상금을 받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하여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와 단편영화제 지원 등의 방식으로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http://m.news.nate.com/view/20161215n08068|관련기사]]
         사실 여하를 떠나서 두 사람의 태도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 최초 해명 당시 국내로 돌아와서 설명하겠다 했으면서 여태까지 침묵을 지켰으며, 사건 초기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이혼]] 차를 밟는 중이다. 김민희 역시 국내로 돌아온지 꽤 된 것으로 보이나,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포함한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팬들 앞에 나타나지조차 않았고 소식 통보도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여지껏 해명은 고사하고 뒤에서 신작 촬영이나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난 셈인데, 이는 누가 봐도 좋게 봐줄 수 없는 행보이다.
         만약 영화 촬영이 연애의 일환이 아니라 단순하게 비즈니스일 뿐이라면, 더더욱 해명의 필요성이 실해진다. 이런 일이 터지고 나서 둘이 또 영화를 찍으면 간통설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 김병옥(배우) . . . . 5회 일치
         [* 공익광고협의회에 출연한 모습이다. 내용은 '스마트폰 사용 예을 지키자'는 것.]
         본래는 극단 [[목화]] 출신의 베테랑 연극배우 출신으로, [[올드보이(2003)|올드보이]]에서의 경호실장 역, [[친한 금자씨]]에서의 전도사 역 등 선 굵은 악역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군도: 민란의 시대]](2014), [[트라이앵글(드라마)|트라이앵글]](2014), [[모던파머]](2014), [[가면(드라마)|가면]](2015), [[검은사제들]](2015),[* 이 영화에서는 드물게 선역,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측 조력자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고할 것.] [[내부자들(영화)|내부자들]](2016), [[인천상륙작전(영화)|인천상륙작전]](2016)에 출연.
         [[친한 금자씨]]에서 금자(이영애)에게 그 유명한 '''너나 잘하세요''' --일침류 갑--를 들은 인물 하면 알 것이다. 위 왼쪽 짤 모습도 바로 저 대사를 들은 후의 표정 (..) [[안습]] 짤의 대표짤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홀어머니가 시장에서 청과 가게를 하시면서 하루하루 온가족이 연명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연극 배우 생활을 이어가면서 15년 동안 짜장면, 짬뽕만 먹었다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없어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장례 물품을 대고 친구들도 돈을 갹출해 도와줬다고. 44세 때 출연한 올드보이 전까지 정말 빈곤했단다. 성공한 후에도 거을 잘 못하는 성격에 보증도 많이 서줘 돈을 많이 못 모았단다.
         || [[친한 금자씨]] || 전도사 || ||
  • 김성곤 . . . . 5회 일치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전신. 김성곤은 나중에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엔 [[유도(스포츠)|유도]] 선수로 활동했고 정계에 있을 때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체육인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성곡컵 국제유도대회'가 있다.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태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상과 시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영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특히 김성곤은 학창시 박정희의 큰형인 박상희와 친이었기 떄문에, 어린 시부터 박정희를 보아왔으며 사석에서는 박정희와 자녀의 결혼 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정희는 김성곤한테 정치자금을 모으라고 시켰다.
  • 김성현 (1989년) . . . . 5회 일치
         ==아마추어 시==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 프로 야구 선수 시 ==
         2008년 드래프트에서 현대는 과감하게 그를 2차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 대구고 시 보여 준 강속구 능력과 하드웨어를 잊지 않고 있다가 빠른 지명으로 채간 것. 그리고 계약금 1억 1,000만 원에 입단시켰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 김용국 (야구인) . . . . 5회 일치
         ==선수 시==
         ===아마추어 시===
         [[한양대학교]] 재학 시 뛰어난 활약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4년 하계 올림픽|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하였다.<ref name="imaeil">[[매일신문]] - 2007년 7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528&yy=2007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영어가 뭐기에"]</ref>
         ===[[삼성 라이온즈]] 시===
         ===[[태평양 돌핀스]] 시===
  • 김일엽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 ==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고졸우선지명<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7260007 해외파들, 어떤 차로 한국 팀에 입단했나?] - OSEN</ref> 을 받았으나 [[단국대학교]] (1998학번)에 진학했고 [[투수]] [[이승학]]과 함께 [[2001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1년]] 외에는 제대로 뛰지 못했고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2003년]] 5월에 방출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89169 김일엽 메이저 리그 꿈과 좌] - 한국일보</ref>
         == 롯데 자이언츠 시 ==
         == 한화 이글스 시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5회 일치
          * 어쨌든 밀리오는 원거리 타입 개성보유자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근접전 개성 보유자들만 남겨놓고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가 뭘한건지, 어떤 개성을 가진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규한다.
          * 미도리야 다음으로 [[이이다 텐야]]가 당하고 나머지 인원들도 차례차례 다운 당한다. [[하도 네지레]]는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마키에게 "토리가타는 당해졌다"고 말을 건다. 타마키는 그는 원래 강했고 오히려 "힘조"하는 걸 배우는게 좋겠다고 대꾸한다. 마지막으로 키리시마와 [[오지로 마시라오]]까지 쓰러지면서 대련은 종료. 밀리오의 일방적인 승리다.
          "통과"의 개성은 전신으로 발동할 수 있으며 일단 발동하면 "지면이나 기체를 포함한 온갖 사물을 통과"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가 지면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혹시 통과해서 "떨어지는" 거냐고 묻는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이렇게 통과, 떨어지는 중에 개성을 해제하면 신기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겹쳐있던 부분끼리 반발하는 것처럼 "튕겨 나가"버리는 것이다. 즉 워프의 원리는 그가 지면 등을 통과하고 있다가 해제하면서 그 반발력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개성을 해제할 때의 자세나 상황에 따라 나타날 장소를 조할 수도 있다.
          아시도는 이런 반발을 "게임의 버그"같다고 표현하는데 꽤 적한 표현이다. [[아스이 츠유]]는 받는 공격은 통과하고 자신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무적"의 능력이라고 감탄하는데, 밀리오는 원래 그런 개성이 아니라 "강한 개성으로 만든 것"이라고 정정한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5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와 [[토오가타 밀리오]]의 인연은 타마키가 초등학생이던 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반친구였다.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상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식". 이상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상태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상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상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 구속이 풀린 호죠가 육탄돌격을 감행한다. 타마키는 대합조개 껍질을 생성해 막으려 한다. 그런데 어느 틈에 그것이 사라진다. 세츠노의 개성 "도". 남이 가진 물건을 자기 손으로 순간이동시키는 묘한 개성이다. 타마키가 생성한 껍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다시 생성할 틈도 없이 호죠가 엄습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세츠노는 본래 자신들이 인생을 버린 종자들이라 말한다. 오히려 히어로에게 구해졌을 땐 살아남은 것에 망했던 패배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재활용"해준 것이 오버홀, 시에핫사이카이의 차기 두목 치사키다. 호죠가 그런 사실을 밝히며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밀리오는 타마키와 정반대였다. 당시 밀리오는 벽을 통과하는 것도 무리였고 손은 겨우 빼내도 얼굴이 걸려버리는 등 엉망이었다. 그런 추태를 보일 땐 그저 놀림감으로 전락했지만 밀리오는 조금도 좌하지 않았다. 놀려대는 친구들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항변하면서 "그래도 다음번에는 성공한다!"고 꺾이지 않았다.
  • 라미란 . . . . 5회 일치
         || '''데뷔''' ||<(> [[2005년]] 영화 [[친한 금자씨]] ||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과 출신으로,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2005년 영화 [[친한 금자씨]]의 오수희 역으로 데뷔하였다. 첫 영화 출연 작품에서부터 교도소에서 강렬한 장면을 연기해 인상을 남겼다. 특색 있는 얼굴로 주로 조연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작품에 출연하였다. 연기력은 인정받았으나 인지도는 크지 않았다. 2013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2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간또라이 라과장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2014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레전드 출연자로 남고 있고, 그 계기로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편에 출연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2005년]] || [[친한 금자씨]] || 수희 || 3,650,000 ||
         ||<|3> [[2009년]] || [[거북이 달린다]] || 마사지녀 1(단역)[* 역할 설정이 웃긴데, 아가씨들이 다 빠져서 겉이를 무치다가 그냥 급히 온 여자였다. 극중에서 경찰관인 김윤석(극중 이름 조필성)이 성매매 현장을 덮치자, "저는 그냥 겉이 무치다가유"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 - ||
  • 로베르 기스카르 . . . . 5회 일치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순식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상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식,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가 돌아가고 남은 군대를 맡게 된 보에몽은 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형이자 당시 세바스토크라토르라는 관직에 있던 이사키오스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과거 교회의 금과 은을 녹여 전쟁포로들을 되찾아온 전통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재산을 모두 몰수한다고 선언해 겨우 전쟁자금을 구할 수 있었지만, 보에몽은 야니나와 아르타에서 알렉시오스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그리스일대를 장악하고 테살로니카로 진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어찌저찌 라리사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보에몽의 군대에 항복한 노르만 병사들에게 더많은 봉급을 주고 용병으로 재고용해주겠다고 보에몽의 진지에 소문을 퍼뜨리게까지 했다. 결국 연패를 거듭한 보에몽은 그리스에서 쫓겨난다.
         그는 11세기~12세기에 비잔티움을 침략한 야심가들[* 차카 베이, 그의 아들인 [[보에몽|보에몽 1세]]등]중 가장 그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던 자였다. 동시대 서방황제와 동방황제들 모두 그와 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야전에서 알렉시오스를 패퇴시키기까지 하는등, 군재로써는 당시 최고를 달렸던 자였다.
  • 마기/302화 . . . . 5회 일치
         attachment:거.jpg
         attachment:망.jpg attachment:망2.jpg
         * 황제국은 다시 망에 빠진다.
         * 신드바드에게 오해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는데, 신드바드는 "나한테 남의 나라 일에 간섭말라고 해놓고 무슨 말이냐"며 거한다.
  • 마기/337화 . . . . 5회 일치
          * 1던전 바알에선 쥬다르와 14세 시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한창 격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은 빈곤과 전쟁으로 엉망이 된 지옥같은 곳이었고 그곳을 구하기 위해서는 던전 바알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운명에 굴복할 것인가, 힘으로 부술 것인가"라는 질문을 거듭 던진다.
          * 신드바드는 어느새 [[연옥염]]을 불러다 놓았다. 진짜 옥염은 아르바의 모습으로 알라딘 일행을 안내하고 있을 테지만, 신드바드는 자신의 힘으로 황제국의 태후였던 시의 연옥염을 그대로 등장시킨다. 쥬다르는 그녀를 보고 잠시 동요하는데, 그의 뒤에서 또다른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유년시의 자신이 나타나 "저년만 없었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며 죽이라고 소리친다. 신드바드는 그녀가 쥬다르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라며 "신드바드와 다른 답을 내봐라"고 외친다.
          * 쥬다르는 신드바드에게, 혹은 유년시 증오에 차있던 자신에게 작별하듯 손을 흔들며 돌아선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유년시의 쥬다르는 "다른 인생이 살고 싶다, 다른 마기가 부럽다"고 괴로워하던 기억과 함께 서서히 부서져 사라진다. 쥬다르는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과거를 보며 "너도 네 삶을 만끽해라"고 신드바드에게 충고를 남긴다.
  • 마기/347화 . . . . 5회 일치
          * 신드바드의 마장 후루후루는 다양한 마공을 폭격처럼 퍼붓는 타입. 알리바바는 다양한 각도로 날아오는 마법을 베어내거나 사이로 피해다닌다. 그러면서도 "운명"이나 "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세상을 루프로 돌린다는 신드바드의 정책에는 대 찬성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신드바드는 그가 결국 [[알라딘(마기)|알라딘]]과 똑같은 인간이며 애초부터 그들이 이해하는게 무리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동안은 알리바바가 자격을 갖춘 인간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뭣보다 그가 현세로 돌아왔을 땐 운명이 보이지 않게 됐고 계획대로 돌아가던 일들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동료로 삼는 것도 간단했는데 왜 알리바바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 점만은 지금도 미스테리다.
          알리바바는 오히려 신드바드가 "이해 받고자 하는 노력"에서 도망치지 않았냐고 지적한다. 그와 알라딘은 끊임없이 신드바드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그걸 거한건 신드바드다. 즉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드바드 쪽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드바드는 "누군가 내 운명을 쥐고 있다"는 망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알마트란의 사례를 끌어들인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운명의 노예"라는 자괴감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운명"의 실체를 봤고 자유의지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붕괴했다. 이 허무감, 망감이 운명과 그것이 지배하는 세상 자체를 부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신드바드는 그것만은 거한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솔로몬이 만든 세상의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다. 언젠가 인류는 운명을 이해하고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뻔한 결말을 보고도 모른척해야 한단 말인가?
  • 마기/349화 . . . . 5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은 그런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솔로몬 왕은 신에게 대항하는게 아니라 단되는 걸 추구"했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다.
          * 그런데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난다. 맛이 간 눈이다. 그는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을 적은 마고이로 쓰는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더 놀랐다. 우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과 [[솔로몬(마기)|솔로몬]] 대왕이 한 계층의 차원에 간섭하기 위해 일 일라의 모든 마고이를 총동원했던 사례를 들면서 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단순히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은 자신도 예전에 고안했지만 신 하나 분량의 마고이가 필요한 무지막지한 마법이다. 그러니 차원끼리 연결시키려면 솔로몬이 만든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켜 동력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 너무 격렬한 태도의 우고 때문에 얼이 빠진 알라딘과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 솔로몬 왕이 만든 세상이 루프로 환원돼 사라지는건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우고는 어리둥한 얼굴이 되더니 "그건 슬프다"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알라딘이 그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자 신드바드가 "다윗의 마법으로 머릿속이 혼탁해져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성 자체는 알마트란 최고의 마법사인 그대로다. 결국 그가 한 말이 단순한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
          * 분명 합리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알라딘은 본래 루프를 환원시켜 세로의 벽을 다 파괴하자던 그가 너무나 다른 의견을 내놔서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다 여기지만, 그들의 논쟁을 보다보니 너무 극단적인 의견만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한다. 아르바도 "모든걸 뒤집으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시점에서 낸 미숙한 답"이었다며 순순히 실수를 인정한다. 아르바는 툴툴거리며 "이렇게 쉽게 의견을 바꿀지 몰랐다"고 빈정거리고 우고는 거기에 수긍하며 "왜 이렇게 됐었지?"하고 어리둥해한다. 확실히 신드바드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극적인 변화였다.
          알리바바는 "역시 신드바드씨다, 나 혼자서는 대 떠올릴 수 없었다"고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다. 비로소 그가 했던 말을 깨닫는 신드바드. 그의 말처럼 신을 자칭하던 신드바드도 "휘말린 인간"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알리바바라는 큰 그릇에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부가 처음부터 담겨 있었던 것이다.
  • 마니교 . . . . 5회 일치
         마니는 어린 시부터 교단에서 시리아 계 기독교 문헌을 많이 탐독한 것으로 추측된다. 마니가 신약 복음서를 인용한 발언을 보면 당시 시리아 교단에서 유행하던 통합 복음서 디아테사론(Diatessaron)[* 신약의 4대 공관복음서를 종합-요약한 서적. 아시리아 기독교인 타티아누스가 편집했다. 시리아에서 널리 읽혀졌으며 시리아의 일부 교회에서는 5세기에 금지될 때까지 정식 복음서로 쓰였다.]을 인용하고 있었다. 마니는 신비주의 문헌인 [[에녹서]]를 중시하였으며, 구약의 신은 악(惡)한 신이며, 신약의 신은 선(善)한 신이라는 마르키온 파의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된다.
         마니교 최대의 논적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였다. 19세 때 일반 신도로서 마니교에 입교했다가 9년 뒤 탈퇴, 33세에 기독교에 입신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반대하는 논설을 여럿 집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유행하던 공개 토론에서도 나서서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마니교 설교사 파우스투스를 참패시켰다고 한다. 결정타는 역시 기독교 국교화로, 마니교는 완전히 근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 뒤로도 기독교는 마니교를 최악의 이단으로서 두려워하게 된다.
         예를 들어, 4세기 마드리드 서부의 아비라 프리시리안이 시작한 프리시리안 주의는 마니교의 마지막 불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금욕주의와 이원론을 내세우던 프리시리안은 마니교와 그노시즘에 오염된 이단으로 여겨져 386년 처형되고, 프리시리안 주의는 6세기까지 근된다. 이단자가 된 프리시리안의 저작이 보존되지 않은 탓에 가르침은 확실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1886년 바이에른 왕국의 부르트부르크 대학 서고에서 우연히 프리시리안과 제자들의 논고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마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며 우연히 독자적으로 금욕과 이원론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슬람교 세계에서 마니는 사교의 교조가 아니라 "화가의 선조"로 여겨졌다. 이슬람교 전승에서 마니는 천재 화가로서 사푸르 1세에게 기용되었으나, 신관단과 박해하여 중앙아시아로 떠나게 된다. 마니는 중앙아시아에서 문하생을 모으고 중국의 에 벽화를 그리다가, 어느날 [[동굴]]에 들어가서 천국에 갔다가 1년 뒤에 돌아와 『아겐크』라는 화집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제자들을 거느리고 페르시아에 돌아가 오흐르마즈드 아르다흐시르에게 총애받아 궁전까지 얻었으나, [[바흐람 1세]] 치세에서는 소외 당하고 조로아스터 교 신관과 토론 끝에 산 채로 가죽을 벗겨진다. 제자들은 인도나 중국으로 도망치고, 머물렀던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다고 여겨졌다.
         송나라 시기, 중국 동남부 복건성, 강성에서 믿어진다. 이들은 당나라 때 마니교도들이 탄압을 피해 강남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측되며, 명말의 하교원(何喬遠)이 적은 지방사 서적에 따르면, 회창의 폐불 때 마니교 승려 호록법사(呼禄法師)가 복주(복건성)에 피하여 북산의 아래에 묻혔다고 하므로 이러한 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명교는 이전의 마니교와는 달리 지배층을 포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층농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밀결사]]의 경향이 강해졌다.
  • 박신혜 . . . . 5회 일치
         박신혜는 [[1990년]] [[2월 18일]] [[대구광역시]]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재학 시 연예계 데뷔를 하면서 [[부산광역시]]로 이주하여 줄곧 그 곳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 [[이승환 (가수)|이승환]]의 팬이었던 공부방 선생님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배우 오디션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신혜의 사진을 드림팩토리에 보내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035593|title='The Inheritors' Park Shin Hye, a very good example of growing up of child actress|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 그 후 이승환이 대표로 있는 드림팩토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연기, 노래, 댄스 트레이닝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102028|title=[STARCAST] Park Shin Hye’s Life Graph "I hope to be someone who grows 1cm every year"|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ref>{{웹 인용|author=March 9, 2014 |url=http://www.soompi.com/2014/03/09/park-shin-hye-named-as-the-new-nations-little-sister/ |title=Park Shin Hye Named as the New "Nation’s Little Sister" |publisher=Soompi |date=2014-03-09 |accessdate=2016-12-29}}</ref>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영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영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영화 《[[도마뱀 (영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영화 《[[전설의 고향 (2007년 영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6월, 첫 방영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 무기력한 반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영장 공식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상]]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우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영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영화 《[[형 (2016년 영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박신혜의 가족은 5대째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어린 시부터 교회에서 주최하는 해비타트 집 짓기 봉사에도 자주 참석해왔고,<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5대째 기독교’… 부모도 교회서 만나 결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772/20160801/%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C%99%B8%EB%AA%A8%EB%A7%8C%ED%81%BC-%ED%9B%88%ED%9B%88%ED%95%9C-%EB%B4%89%EC%82%AC%ED%99%9C%EB%8F%99-%ED%99%94%EC%A0%9C.htm|출판사 = |저자 = |날짜 = 2016-08-01 |확인날짜 =2013-09-01 }}</ref> 성인이 된 후에는 생일이 돌아오면 가족과 함께 '밥퍼'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최일도 목사 “조용한 하늘나라의 심부름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011/20160704/%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2%80%A6-%EC%B5%9C%EC%9D%BC%EB%8F%84-%EB%AA%A9%EC%82%AC-%EC%A1%B0%EC%9A%A9%ED%95%9C-%ED%95%98%EB%8A%98%EB%82%98%EB%9D%BC%EC%9D%98-%EC%8B%AC%EB%B6%80%EB%A6%84%EA%BE%BC.htm|출판사 =크리스천투데이 |저자 =김진영 |날짜 = 2016-07-04 |확인날짜 =2013-09-01 }}</ref>
  • 박진옥 . . . . 5회 일치
         '''과거 [[레전드]]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시'''
         [[상주 상무|광주 상무]] 시
         [[대전 시티즌]] 시
         [[광주 FC]] 시
         [[용인시청 축구단]] 시
  • 배지환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 신입생 시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아 활약하였다. 3학년이던 2018년에는 [[이영민 타격상]]<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0784 경북고 배지환, 2017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선정] - OSEN</ref>과 도루상을 수상하였다.
         ==미국 프로야구 시==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
  • 백정현 . . . . 5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 재학 시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풋풋하던 데뷔 초기 시.
         입단 첫해인 2007년에는 고교 시 당한 무릎 때문에 재활하다가 그해 8월 21일 [[권혁]]의 부상으로 인해 좌완계투 자리가 비자 데뷔 첫 1군에 콜업되었다. 1군 데뷔 첫 경기였던 2007년 8월 25일 KIA전에서 [[장성호]]와 [[최희섭]]을 연속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이후 11경기에 등판한 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7월 19일 기아전에서는 제구가 많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위기를 적히 막으며 5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유급자의 1차지명 불가 조항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3 시에 백정현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것으로 인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로 유급했는데 하필이면 발표 시점이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2006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때라 다른 구단에서 유망주 빼돌리기가 아니냐며 태클을 걸었다. 즉 백정현이 유급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음 해에 백정현을 1차지명하지 않겠냐는 뜻. 당시 백정현은 2차지명 1라운드 상위 지명이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5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네르슈 버밀리온]]이 기한 것도 상관치 않고 독설을 퍼부우며 그대로 생매장시켜 버린다.
          * 잭스의 독설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만큼 상대의 상태도 가리지 않았다. 아스타의 일격으로 네르슈는 기. 계속 마력을 빨리도록 그 위에 반마법의 검을 얹어 봉인조치까지 했다. 그래도 잭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원시적인 함정"에 걸렸으니 기사단이고 부단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라고 빈정거린 그는 "어쨌든 기분 나쁜 나르시스트"라는 원색적인 욕설까지 잊지 않았다. 이 상황을 합작한 아스타 조차 적당히 봐주라고 한소리했다.
          지금의 매그너는 정말 까다로운 상대. 아스타는 마땅한 공략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접근하려고 하면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아날 테고 크리스탈이 노출된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블랙" 상태가 되는 것 밖에 없는데 그걸 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스타는 급기야 미모사에게 빨리 돌아와달라고 규했다. 그때 잭스가 돌파구를 마련했다.
          * 네르슈는 어린 시 가족과 함께 산보에 나섰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하층민들의 거주구를 굽어보는 산보. 하층민들의 세계는 더럽고 추하고 빈곤했다. 애나 어른이나 할 거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빈곤한 자는 마음까지 빈곤. 뿌리부터 추한 존재라는 믿음은 그때부터 확고했다. 어린 네르슈는 어린 미모사에게 그 점을 가르치며 "추한 자는 계속 추한 것"이란 지론을 완성했다.
          네르슈가 그 시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상태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태여 남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 블랙 클로버/72화 . . . . 5회 일치
          * 천신만고 끝에 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검은 폭우단.
          * 그가 말하는 상대는 리히트. 소년시의 리히트다.
          * 소년 시 베토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은 친구인 리히트였다. 그런데 그 희망을 앗아간 것이 "인간"이라는데
          * 베토는 여전히 망을 외치며 마력을 분출 중
          * 인간말살을 획책하고 있는 리히트는 소년 시엔 오히려 인간을 믿는 쪽?
  • 블랙 클로버/73화 . . . . 5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73. '''싸움 끝에, 망의 끝'''
          * 망의 베토를 쓰러뜨리고 또 하나의 싸움이 일단락된다.
          * 야미는 베토에게 향을 피워올리고 아스타는 "이 녀석이야 말로 가장 크게 망했던게 아닐까"라며 씁쓸해한다.
          * 망의 베토를 베어버린 야미 스케히로.
          * 베토도 결국 가장 망한건 그 자신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5회 일치
          * 하지만 아스타는 강화마법이 걸린 덕인지 공격의 빈틈을 파고 든다. 어느새 잘려나간 나무 줄기를 타고 접근하더니 샐러맨더에게 일격을 먹이는데 성공한다. 가볍게 베인 정도지만 샐러맨더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힌다. 바네사는 정령은 본래 마나의 결정체인 만큼 아스타의 반마법 검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스타도 스피드나 탐지능력이라면 망의 베토 쪽이 위였다며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
          아스타는 베토 또한 그들을 증오하고 망하고 있었다며 그 원인이 뭔지, "서로 이해"할 수는 없는 건지 묻는다.
          * 그리고 얼마 후. 리히트가 살던 마을은 "인간"의 습격을 받는다. 이곳은 본래 인간들이 모르는 땅이었고 유일하게 "그 인간"만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리히트의 동족들은 그가 배신했다고 원망하며 죽어간다. 그를 친구라 불렀던 리히트도 망적인 얼굴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바라본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규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이 모습은 망의 베토가 회상하던 그 장면과 같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5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튕겨낸 샐러맨더의 마법탄이 [[라드로스]]에게 클린 히트. 너덜너덜해진 라드로스느 숲으로 추락한다. [[판젤 크루거]]는 그의 마력이 사라지는걸 느낀다. 아스타는 어리둥해하며 무슨 일이냐고 소리친다. 젤은 설명보다도 아스타가 전보다 강해졌다고 칭찬을 한다. 아스타는 잠시 우쭐하지만 곧 화제로 돌아와 옆에 있는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적인데 왜 같이 있냐고 따진다.
          한때 마르스를 망시켰고, 또 다시 인간성을 회복시켜준 장본인 "파나"의 모습이었다.
          * 증오의 파나가 진짜 "파나"인지, 그런건 알 수 없지만 마르스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는 두통을 호소하며 상태가 나빠진다. 파나는 "왜 모두 날 방해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망의 베토]]가 막판에 사용했던 자폭마법을 발동시킨다. [[핀랄 룰러케이터]]는 그걸 알아차리고 왜 저 녀석들은 죄다 저런걸 달고 있냐고 규한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침착하지만 저것이 발동할 경우 일대가 날아갈 거라고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 아스타는 망의 베토 때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실패를 거듭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르스는 반드시 파나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 손예진 . . . . 5회 일치
         === 어린 시 ===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풍무로) 출생으로 초, 중, 고등학교 시을 모두 경기 김포에서 보내고 영화배우가 될 것을 결심한 뒤 [[2001년]]에 태평양주유소에 진학했으나 조금 더 일찍 영화계에 본격 데뷔를 하기 위해서 얼마 안 지나 중퇴하였다.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손예진은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 만큼 동시에 끊이지 않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제목=무릎팍도사` 출연한 손예진 "루머, 모두 오해에요|출판사=매일 경제|날짜=2008-05-15|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 }}</ref><ref>{{뉴스 인용|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제목=무릎팍도사’ 손예진, ‘루머해명, 대학시 계획표 공개’|출판사=아이비 타임즈|날짜=2008-05-15}}{{깨진 링크|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 }}</ref> 하지만 손예진은 루머에 적극적인 대응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성실함과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안정적인 관객동원력을 증명한 손예진은 20대 중반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제목=손예진이 '충무로 최고 흥행퀸'인 이유?|출판사=아시아 경제|날짜=2008-11-03|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 }}</ref>
         2011년 9월, 손예진은 서울시 성동구 뚝섬 전망문화콤플렉스 자벌레에서 열리는 '레인보우 프로젝트'(무지개빛 꿈 & 맑은 나눔 잔치)를 위해 자신의 애장품들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배용준·손예진·비의 애장품을 아프리카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2609009|출판사 =머니투데이 |저자1 =김동하 |저자2 =이규창 |저자3 =김건우 |저자4 =김하늬 |날짜 =2011-09-14 |확인날짜 =2017-09-16 }}</ref> 2013년 5월, 드라마 《[[상어 (드라마)|상어]]》 제작발표회 때 팬들(공식 팬클럽과 DC인사이드 손예진갤러리)에게 보내 온 응원 드리미 쌀화환 160kg 쌀화환을 손예진이 지정하는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 ='상어' 손예진, 쌀화환 기부 '얼굴만큼 예쁜 마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335781|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편집팀 |날짜 = 2012-05-22 |확인날짜 = }}</ref> 2014년 8월, 손예진은 [[설경구]]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지목 받았고, “경구 선배가 아이스 버킷 첼린지에 지목하셨더라고요. 저는 얼음물 대신 기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고 말하며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 대신에 기부를 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얼음물 샤워 대신 기부 “좋은 일 기쁘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860159|출판사 =OSEN |저자 =강서정 |날짜 = 2014-08-22 |확인날짜 =2017-09-16 }}</ref>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5회 일치
         DEO기지에서 외계인 죄수[* 아무리 봐도 괴물 같은 덩치지만 여자]가 포박을 풀고 날뛰다가 카라에게 제압당한다. 추수감사이라 카라와 알렉스의 엄마가 찾아오는데, 알렉스는 엄마가 온다면서 엄마[* 배우는 1984년작 슈퍼걸의 여주인공이다.]가 카라가 슈퍼걸이 된 걸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다. 라디오 DJ 레슬리 윌리스는 방송에서 슈퍼걸을 엄청나게 욕해댄다. 윈은 [[추수감사]]에 함께 지낼 상대도 없다는걸 말하고, 카라는 윈을 추수감사에 초대한다.
         카라는 제임스를 추수감사에 초대하려 하지만, 제임스는 루시와 함께 오하이오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알렉스는 엄마가 슈퍼걸 때문에 화가 났는데 안 하는 걸 거라고 생각하며 걱정하는데, 카라는 알렉스에게 DEO에이전트라는걸 고백하라고 조언한다.
         카라와 알렉스, 엄마는 윈을 초대해서 추수감사 파티를 한다. 알렉스는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제임스가 카라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물어서 윈은 떨떠름해한다. 알렉스는 자신이 DEO에서 일하고 있다는걸 엄마에게 밝힌다. 엄마는 알렉스에게 화를 내고 두 사람은 돌아서 버린다. 자리가 불편해진 윈은 자리를 떠난다. 카라는 그랜트의 호출을 받아서 돌아온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5회 일치
          >"내가 좀 더 제대로 했었으면, 죠이치로는 좌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센자에몬은 죠이치로의 좌이 그 자신에게 손실이 될지 어떨지 정하는건 결국 죠이치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도지마가 맛보는 좌 또한 도지마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린 문제다.
          그는 도지마에게 토오츠키 학원의 간판을 짊어져달라고 부탁한다. 그 말이 망감에 빠져있던 도지마를 일깨웠다. 죠이치로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다음 세대의 요리인들에게, 도미자는 그렇게 다짐하며 지금의 길을 걷는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토오츠키 리조트에서 근무하던 비서가 뜬금없이 "웬 남자가 도지마 씨를 찾는다"며 전화를 연결한다. 영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는 도지마. 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소식이 두됐던 죠이치로였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5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는 방금 전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한 말을 쌩뚱맞게 여긴다. 연대식극 참가자를 순조롭게 모집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멤버 [[메기시마 토시케]]에게 거 당하고 말았다. 그를 꼭 동료오 넣고 싶었던 소마가 전화로 거 당하는건 납득할 수 없다며 그를 방문해서 다시금 동료권유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메구미도 같은 생각. [[잇시키 사토시]]가 전해준 정보로는 메기시마도 홋카이도에 와있다. 진급시험 때문은 아닌 듯 하지만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한다. 마침 거리도 가깝다.
          * 메기시마는 한 번 분명히 거한 이야기를 다시 끌고 온 소마 일행이 못 마땅했다. 그는 연대식극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못박았다. 메구미가 그도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도 3석 자리를 뺏기지 않았던가? 여기서 이기면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태도는 시큰둥. 그는 본래부터 자신은 승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토로했다. 토오츠키에 들어간건 그저 최고의 요리학원이라 해서 그랬던 건데, 막상 들어가니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승부 타령.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거했지만, 몇몇 끈질기게 달라붙는 녀석들과 식극을 하긴 했다. 3석이란 결과는 그래서 얻은 것.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소마는 그것도 굉장하다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번잡스러워했다. 이제 그런 건 질색인 데다, 요리사가 승패를 논한다면, 그건 손님을 얼마나 기쁘게 했냐로 쳐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지키기 위해 부디 힘을 빌려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메기시마의 의지는 확고했다. 자신도 지금의 라면 문화를 지키고 싶으며 그 일만 해도 벅차 힘이 되어 줄 수 없다고 거했다. 지켜보던 장인들도 메기시마는 한 번 정한 원칙을 번복하지 않는다며 포기를 권했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5회 일치
          카와시마가 그 기백에 밀려 주춤하나 내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거할 수도 없었다.
          * 초밥을 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 카와시마. 그리고, 거센 맛의 폭풍이 몰아친다. 편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식견이 한꺼풀 벗겨진다. 첫 번째 초밥은 감칠맛 넘치는 중뱃살. 표면에 간장을 가공한 "니키리" 양념을 발라 살의 맛을 끌어냈다. 다음은 붉은 살. 다시마 임해서 미묘한 맛들이 입안에서 얽힌다. 세 번째는 희소부위인 카마토로. 폭력적일 정도로 넘치는 기름 맛을 산뜻한 밥알이 감싼다. 단 세 점을 먹었을 뿐이지만 미마사카의 초밥은 참치의 각 부위의 특징과 맛을 십분 활용한 품.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반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5회 일치
         데뷔한 이래로 10여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으나,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친이었던 [[김관식]]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자신의 시 중 하나인 <파장>의 한 구에서 따온 제목이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상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인 [[고은]]과 친한 사이다. 고은이 만든 진보 문학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고은을 보좌하며 행동대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고은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여 판문점으로 가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여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또 '고은 문학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고은의 업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빼도박도 못 하는 신경림의 흑역사.
  • 신성우(가수) . . . . 5회 일치
         데뷔 시에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이덕진]]과 함께 '''원조 테리우스''' 논쟁을 벌일 정도로 꽃미남 가수였다. 당시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여서 지금의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데뷔 때부터 그가 하는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가 먼저 주목받았는데, 동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소비(?)되었던 이덕진과 비교해 본다면, 이덕진은 들국화 최성원의 기획하에 그냥 곡 하나로만 주목받았던[* 사실 음악 빼고 외모 덕을 본 건 이 사람이 더 하다면 더 했다.] 것에 비해 신성우의 경우 꾸준히 자신 앨범에서록 음악의 작사, 작곡을 해 왔던 사람이다. 즉, 신성우는 외모 때문에 그 음악성이 역차별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 의 솔로 시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들로 가득하다.
         [[채시라]]와의 연애와 파혼 과정도 시끄러웠다. 미남미녀 커플로 화제를 모았으며, 두 사람이 한참 연애중이던 시에는 커플 수영복 잡지 화보까지 찍을만큼 떠들썩하게 연애했다. 그러나 [[1997년]] 파혼하면서 당시 언론들이 일주일이 넘게 어지간히 저 얘기만 떠들어댄 탓에, 사람들이 지긋지긋해 제일 듣기싫어한 뉴스였을 정도로. 공개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무난하게 결혼하나 싶더니 결혼 후 분가, 연예활동 및 재산 관리를 둘러싼 집안 갈등으로 인해 파혼을 선언했다.
         비록 반키를 낮춰 부르긴 했었지만, 예전 초창기 2집시 노을에 기댄이유의 라이브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굵직하고 어두운 톤에 무겁고 탁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3옥타브를 거뜬히 넘겨서 실제로 불러보면 굉장히 어려운 그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륜하다. 서시 라이브에서 삑사리가 난 이유는 아마도 신해철처럼 엄청나게 성대를 혹사시키며 락 스타일의 고음을 질러대다보니 성대가 무리하게 되어 목소리가 저음에 가까운 쪽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 가수의 노래들을 잘 살펴보면 음역대가 매우 비슷하다.[* 가요대전에서 신해철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는 곡을 아주 깔끔하게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실제로 신성우의 앨범 초창기부터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음역대를 잘 듣고 살펴보면 가면 갈 수록 음역대가 낮아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신혜진 . . . . 5회 일치
         ||<#FF95CD> {{{#000000 '''신체'''}}} ||<(> 160cm[* 오마이걸 활동 시, 유일하게 키가 알려지지 않았었던 멤버인데, 당시 다른 일곱 멤버들의 키를 물어봤던 팬이 진이한테만 까먹고 안 물어봤다고 한다(...) [[아린(오마이걸)|아린]]보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ohmygirl&no=1722|약간 작지만]] 최단신인 [[효정]]보다 키가 클 것으로 추정되는데 159cm인 [[승희(오마이걸)|승희]]보다는 크고 160cm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슷하니 약 160cm쯤 될 것이다.], [[A형]] ||
         물론 진이 역시 활동을 거듭하며 [[데뷔]]곡 '[[OH MY GIRL#s-2.2|CUPID]]'보다 괄목할 정도의 파트를 분배받고 있으며 [[보컬]] 역량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실제로 [[데뷔]]곡 '[[OH MY GIRL#s-2.2|CUPID]]'의 [[비중]]과 [[2016년]] '[[내 얘길 들어봐]]'의 [[비중]]을 비교해보자. 확연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리드보컬]]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중]]이 비슷해졌고 중간중간 높은 음들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 ~~사실 후렴구 뒷소을 모두 부르게 된 [[지호]] 때문에 [[유아(오마이걸)|유아]]와 진이의 [[비중]]이 비슷해진 거다~~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우리 [[오마이걸]]! [[효정|효정이]], [[미미(오마이걸)|미현이]], [[유아(오마이걸)|시아]], [[승희(오마이걸)|승희]], [[지호]], [[비니(오마이걸)|유빈이]], [[아린(오마이걸)|예원이]]… [[오마이걸]]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서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오마이걸]]을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 빛나고 또, 그런 [[오마이걸]]을 [[사랑]]으로 지켜주는 [[미라클]]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져! [[무대]] 위에서 [[오마이걸]]의 [[노래]] 한 소, 한 소과 [[미라클]]의 [[응원]] [[소리]]가 [[화음]]을 이룰 때 가끔은 [[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할 만큼 [[감동]]이었어… 앞으로도 가끔 [[추억]]의 그리움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 속엔 그 누구보다 최고인 [[오마이걸]] 항상 [[마음]] 깊이 [[응원]]할게!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5회 일치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수레를 불태우고 한 남자를 묶어 강제 번지점프를 시키는 광경을 보게된다. 이후 무장한 남자들을 해치우고 매달린 남자를 구해준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그 남자를 노린 강도들이었고, 해당 남자가 빈털터리라는걸 알게 되자 그의 도구와 장비를 불태우고 그를 밧줄에 매달아 벽에서 던져버렸다는걸 알게 된다.
         병사들을 모두 쓰러뜨린 코너는 남녀에게 무슨 일인지 묻는다. 왕당파는 워렌과 프루던스에게 전재산을 내놓으라고 했고, 워렌은 이를 거했다. 그러자 왕당파는 가축들을 죽이고, 땅을 황폐화 시킨 다음 부부를 끌고 나왔다. 프루던스는 코너에게 고마워하지만, 가진 게 없기에 아무 보답도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자 코너는 대번포트 농지를 소개해주며 농장 재건을 돕겠다고 한다.
         코너는 프루던스를 찾아가 노리스가 여자의 환심을 사고싶어 하는데 선물로 뭐가 좋겠냐고 물어본다. 프루던스는 자기는 야생화 꽃다발을 좋아한다면서 북동쪽 벽의 꽃들을 추천한다.
         코너는 벽 위로 기어올라가 야생화를 꺾어온다. 노리스는 프루던스가 야생화를 추천했다는 말을 듣고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반응을 보인다.
         코너는 뉴욕에서 가져왔던 그림을 풀어본다. 그림을 본 코너는 그 그림을 벽난로 위에 걸어놓는다. 그 그림은 아킬레스가 젊었을 시 가족과 함께 그린 초상화였다.
  • 영천시 . . . . 5회 일치
         영천군 시의 역사는 [[영천군]] 항목 참조. 이후 1981년 7월 1일 영천군 내에 있던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공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은해사]], 거조암, 수도사 등의 [[(불교)|]]과 치산계곡, 임고서원, [[보현산 천문대]], 최무선 과학관, 시안미술관, 운주산 자연휴양림등이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남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시장통에 있는 말죽거리터에는 육군 공병대와 함께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미 25사단 산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수용했었지만 전쟁 중후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대립이 정에 달하자 문제를 인식한 미군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분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반공포로와 민간인 포로를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찰차 방문한 적이 있었고 훗날 반공포로 환영식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었을 만큼 규모가 큰 수용소였는데 규모가 있는 수용소였던 만큼 탈도 많았는지 1952년 5월 29일에는 포로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 후에도 포로들의 시위가 간간히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군들이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모의했다며 경북도의원을 무단 체포, 납치하는 사건도 발생해 지역민들의 빈축을 샀었다고. 그 외에도 격전지였던 영천전투에서 발생한 인민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서 현재의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부지 근처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우동균 . . . . 5회 일치
         ==한국 프로야구 시==
         ===[[삼성 라이온즈]] 시===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경찰 야구단]] 시===
         ==일본 독립야구 시==
  • 원피스/857화 . . . . 5회 일치
          상디는 어째서 거울 안에서 쵸파 일행의 목소리가 나는지 어리둥해하지만, 루피는 설명하면 길다며 아무튼 그렇게 됐다고 하고 넘어간다.
          >상디군. 네가 나를 공포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던 건 '''대 용서 안 해'''
          그런 악취미 때문에 적도 많았는데 벳지는 "철벽의 성"을 쌓아놓고 복수자들이 죽어나가는걸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러다 육지에서의 싸움에 질려서 해적으로 나섰고 이때도 마찬가지로 적의 선장의 목만 취하는 악취미적인 행보를 해서 역시 원한을 가진 자들이 늘어났다. 그런 벳지에게 "사황"이란 방패막이는 호의 은신처였다. 빅맘은 벳지의 경계심 많은 성격과 높은 방위력을 좋게 평가해 승승장구, 이번 다과회에서는 "룩"의 칭호를 받고 이번 호위의 전권을 위임받게 되었다.
          징베는 [[페콤즈]]가 벳지에게 암살 당할 번한 일도 밝힌다. 벳지는 페콤즈에게 협력을 요구했지만 거 당하자 그를 쏘고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버렸다. 그때마침 징베의 동료가 발견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벳지의 음모도 밝힐 수 있었다.
          사실 징베는 이미 자리까지 주선해 놨는데 루피는 당장 만나겠다고 나선다. 징베는 정 싫다면 거해도 좋다며 일을 진행시킨다.
  • 원피스/868화 . . . . 5회 일치
          *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지며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빅맘 [[샬롯 링링]]. 그녀가 규하는 가운데 [[카포네 갱 벳지]]가 KX런처를 조준한다.
          * 빅맘이 추억하는 카르멜의 기억. 그저 연극이고 위선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는 좋은 보호자였다. 카르멜은 항상 "종족끼리 차별이 없고 다들 같은 눈높이에서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해 말했고, 양의 집을 세운 그 섬에 그런 "꿈의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비록 어렸던 빅맘은 그 뜻을 "다들 나처럼 덩치가 커진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엘바프의 섬 시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착각이었다. 좌우간 카르멜은 이런 나라를 이야기하고, 이런 나라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 찰 거라고 가르쳤다. 그건 곧 링링의 꿈으로 이어졌다.
          *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일까? 이런 지위를 얻고도 여전히 반항하는 어리광쟁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슬펐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단 하나 뿐인 마더의 사진을 찢어버린 녀석이 있다니. 대 용서할 수 없다.
          상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상태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사색, 그 태평한 루피 조차도 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미는 물론 [[쵸파]]나 [[징베]] 조차 이 참담한 실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끝이다. 여기는 홀케이크 성 옥상. 도망칠 곳도 없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
  • 원피스/869화 . . . . 5회 일치
          * 다과회장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암금왕 [[루 펠드]]가 빅맘 [[샬롯 링링]]의 옥갑을 가로채려 하나 빅맘의 규에 떠밀리면서 옥갑은 성 밑으로 떨어진다.
          빅맘은 여전히 패기가 실린 규를 내뿜고 다과회장은 아수라장. 암금왕 [[루 펠드]]도 간신히 귀를 막은 채 버티고 있었다.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뿌린 떡 귀마개가 그의 앞까지 굴러온다. 그걸로 괴성을 막고 한숨 돌린 루 펠드. 그런데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하나 더 나타난다. 빅맘이 결혼식 후 열어보기로 했던 넵튠왕의 옥갑이었다.
          * 루 펠드는 난데없는 혼란이 횡재로 이어졌다. 그는 빅맘의 옥갑을 빼돌릴 생각이다. 물론 그냥 가져갈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는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옥갑을 열었다. 내용물을 미리 바꿔치기 한다면 의심 당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화를 불렀다. 빅맘의 패기가 실린 규가 거기까지 닥쳤던 것이다. 마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날아가는 루 펠드, 그리고 옥갑. 루 펠드가 회수할 틈도 없이 옥갑은 성 바깥으로 떨어진다.
          * 빅 파더 안, 해적동맹은 망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인물이 없다. 벳지의 부하 비트 조차도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제르마에 정신이 팔려있다. 루피와 쵸파는 빅 파더에 꽂혀서 환호, 시저는 KX런처의 유폭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하다. 벳지가 보기엔 속이 터진다. 벳지는 빅 파더에 환호하는 루피를 쏘아붙인 뒤 작전은 실패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브룩]]은 "과연 사황은 격이 다르다"고 감탄, 한가하게 차나 홀짝인다. [[징베]]가 앞으로 대책을 붙지만 솔직히 그런건 없다. 벳지는 빅 파더는 자기 자신이며 충분히 튼튼하지만 무적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벳지도 죽고 일행은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 뒤는 그저 학살.
          >이 망을 이해해라!
  • 원피스/874화 . . . . 5회 일치
          * 웨딩 케이크와 빅맘의 폭주 이야기를 들은 시폰은 미안하지만 자신은 [[샬롯 로라]]처럼 섬을 떠날 거라며 협조 요청을 거한다.
          [[몽키 D. 루피]]는 좋지 않은 낌새를 차리고 일행에게 경고하고 킹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빅맘이 자신의 모자 "나폴레옹"을 검형태로 바꿔서 쓰는 기술 "위국". "엘바프의 창"이란 명칭대로 빅맘이 팔을 휘두른 방향으로 직선의 충격파가 꿰뚫고 지나간다. 충격파는 킹밤의 좌반신을 깨끗하게 삭제하고 계속 나아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외곽의 벽에 구멍을 냈다. 터무니 없는 위력. 일행은 직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위력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루피는 그 순간에도 엘바프 거인족의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파한다.
          * 빅맘은 킹밤이 있다는건 공격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킹밤의 이름을 부르는 빅맘. 겁에 질린 킹밤이 [[원피스/843화|전에도 한 번 그런 것처럼]], 이번에도 협박을 당해 어쩔 수가 없다고 맸다. 그런다고 빅맘이 다음 공격을 주저할 것 같진 않았다. 루피가 내려서 싸우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미(원피스)|나미]]가 킹밤에게 말을 걸었다. 일행과 마주치기 전 같이 있었던 여자 나무가 누구냐는 것. 레이디 트리. 킹밤은 그녀가 피앙세(약혼자)라고 밝혔다. 나미가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 푸딩의 요구는 반만 이루어졌다. 시폰은 벳지의 몸 밖으로 나서지 않았고 푸딩은 작은 창을 통해 그녀와 대화했다. 푸딩이 빅맘의 폭주와 웨딩 케이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시폰은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의 시폰 케이크가 필요할 것이다. 전이라면 기꺼이 응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시폰이 거했다. 그녀는 [[샬롯 로라]]처럼 이 땅을 떠날 것이다. 빅맘도, 이 나라도 더는 알 바 아니다. 벳지도 그 말에 맞장구치며 "썩 꺼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푸딩은 물러나지 않았다. 시폰이 오해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빅맘을 위해서도, 토트랜드를 위해서도 아니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5회 일치
          * 소개팅 불패였다고 한다. 애프터 신청을 안 받은 적이 없다는 것. 정작 본인은 소개팅이 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간 적이 많아 부담스러웠다고.
          * 서빙알바하던 시 소개팅하던 남녀 손님이 있었는데,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남자가 계산을 하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스춘향의 위엄--
          * KBS N 입사시 권성욱 캐스터가 '넌 내 자부심이야'라는 극찬을 했다고한다.
          * 어렸을 때 SM엔터테인먼트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했다고
          * 2011년 아나운서 시부터 시작해 프리랜서까지 했던 야구잡지 더그아웃 매거진의 더그아웃 스토리 1호 ~ 87호까지를 담당하였다. 88호부터는 SBS Sports [[김세연(아나운서)|김세연]] 아나운서가 담당한다.
  • 은혼/633화 . . . . 5회 일치
          * 양이전쟁 시. [[가츠라 고타로]]는 "이기면 정부군, 지면 반란군"이라 말하며 자신들은 여전히 반란군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적이 있다.
          * 노부노부는 동료들을 대 버리지 않을 것이며 이들이야 말로 "정부군"이라 말하는데, 가츠라는 그것을 사양하며 "반란군이면 충분하다"고 만족한다.
          * 양이전쟁 시, [[가츠라 고타로]]의 말이었다. [[사카타 긴토키]]가 그의 말을 곱씹으며 "우린 적도 아니고 진 적도 없는데 언제까지 반란군 취급을 받는 거냐"고 투덜거린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그들 옆에는 [[사카모토 다츠마]]가 길게 누워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혼자 앉아 있다. 긴토키는 가츠라가 한 말을 놓고 끊임없이 투덜거린다. 대체 얼마나 더 이겨야 정부군으로 전직이 되냐는 것이다. 현자마냥 "깨달음의 서"라도 얻어야 하는게 아니냐면서.[* [[드래곤 퀘스트 3]]에서 고급 직업인 "현자"로 전직하려면 "깨달음의 서"라는 희소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 말에 긴토키는 "양이전쟁의 반은 상냥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통아"라고 디스한다. 적어도 그는 꽤 나라를 중히 여기고 있어서 인기 많아지고 싶다, 화풀이하고 싶다의 다음 정도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국 양이전쟁은 잡동사니로 이루어져 있다는 교훈이다.
          >희망도 망도, 선도 악도, 동료도 원수도
  • 의천도룡기(영화) . . . . 5회 일치
         어린 시의 스토리는 그림으로 설명되고 넘어간다. 현명이로에게 당하여 내상을 입게 되고,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 된다. 주지약, 송청서의 계략에 넘어가서 분노하여 돌을 들고 달려들다가 두드려 맞고, 소소와 함께 무당산의 계곡으로 추락. 계곡 밑에서 화공두타를 만나게 된다. 화공두타는 장무기에게 구양신공을 전수해주지만, 구양신공을 습득한 장무기에게 당해서 오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장무기는 구양신공을 전수해준 은혜가 있으니 화공두타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고 떠난다.
         원작에서도 찌질캐였지만, 영화에서는 더욱 형편없는 찌질캐로 전락. 주지약과 공모하여 장무기를 속여넘기겨 놀리고, 제자들을 시켜서 구타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장무기가 벽에 떨어졌는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조민, 현명이로와 협력하여 장삼봉을 암습했다가 실패하고, 현명이로가 장무기에게 패해서 조민이 물러간 뒤에는 무당산에 남겨진다. 장무기가 죽이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빈다. 장무기는 송원교 사숙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주는데, 송청서는 "고맙다 무기야 고맙다"하면서 비굴하게 웃으면서 거듭해서 을 해대는 비참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원작과는 달리 죽지 않지만 그 대신에 찌질도가 미친듯이 늘어났다.
          * 원작에서는 장무기가 멸사태와의 대결에서 공격을 무방비로 맞아주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장무기가 멸사태를 욕하면서 뺨을 미친듯이 때린다.
  • 이강돈 . . . . 5회 일치
         || 1985년 당시 신인 시의 이강돈.[* 왼쪽에 있는 선수는 현 [[kt wiz]] 코치인 [[이광길]], 가운데는 박상조 코치, 오른쪽이 이강돈.] ||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시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비록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 했지만, 선수 시 이강돈은 1번 [[이정훈(1963년생)|이정훈]]의 뒤를 받치는 강한 2번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1990년에는 .33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7사 차이[* 할푼리모 다음 오는 단위가 사. 1모 차이가 났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반올림하면 0.3349로 모 단위까지 똑같았다.]로 [[한대화]]에게 밀려 타격 1위를 놓쳤고,[* [[한대화]] 0.334928, 이강돈 0.334862.] 1992년에는 다시 .320의 타율을 기록했다.
         또 하나 기록할 만한 점은 바로 징크스인데, 현역시 장타력을 올리기 위해서 노팬티로 출전한 것이 유명하다.
         || 한화 이글스 코치 시. ||
  • 이문식(배우) . . . . 5회 일치
         그렇게 진학한 학교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였으며 대학 재학시에는 전설적인 [[운동권]] 학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임종석]]과 1년 후배로서, 한양대 학생 중에서는 시위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었다고.[*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이었던 배우는 [[안내상]]도 있다.] 배우 설경구는 학번으로 1년 선배이며 이문식과 졸업을 같이했다. 한양대학교 졸업앨범 1994 연극영화과에 설경구 이문식이 같은 페이지에 나온다.
          * 배우들 사이에서 원조 고무줄 체중조자로 유명할 만큼 배역을 위한 몸관리가 철저하다. 고무줄 체중으로 유명한 황정민도 이문식에게 체중감량에 대한 조언을 얻어갈 정도고, 조진웅 역시 이문식 선배님에 비하면 내가 체중조하는 건 장난수준이라고 할 정도. 그만큼 평상시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 두들겨 맞는 연기, 비굴한 연기로는 국내 원탑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배역을 위해 이까지 뽑을 정도이니 따귀나 주먹으로 맞는것 정도는 예사일로 여기며 감정몰입을 위하면 기꺼이 한몸 던진다. 대학시, 극단시에 선배들에게 엄청 맞았고, 한대라도 덜맞으려고 비굴하게 군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연기가 가능한거라고 웃으며 인터뷰 했다. 그렇다고 그런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영광의 재인]]에서는 엄청나게 포스 있는 역할로도 나온다. 특히, '''웃으면서 다음 작전을 구상하는''' 이문식의 표정은 그야말로 ㅎㄷㄷ
  • 이상호 (1989년) . . . . 5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 시==
         ==[[SK 와이번스]] 시==
         ==[[NC 다이노스]] 시==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상무 야구단]] 시==
  • 이소선 . . . . 5회 일치
         == 어린 시 ==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상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서울에서 다시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하던 가족은 시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대구의 시댁으로 내려갔다. 전태일은 부산까지 떠돌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대구에 왔다. 대구에서 다시 모인 가족은 다시 재봉일을 하며 살았고 정식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태일은 스스로 쓴 수기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러나 전상옥의 사업은 결국 망했고 다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소선은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전상옥을 보며 망을 느꼈다. 전상옥이 집을 나가 버리자 남은 가족들은 꼼짝없이 굶게 되었다. 1964년 이소선은 일을 구하기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520 몽땅 굶어죽을 판... 서울로 가자],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4), 2014.06.12</ref>
         국회의원이 된 딸 [[전순옥]]은 어머니를 10대에서 70대까지 누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던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스스로도 민주화 운동 시 경찰서에서 취조 받으며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늘 어머니라고 대답했다고 회고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 /> 《가톨릭 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견하였으며<ref>[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년
  • 이수민(야구선수) . . . . 5회 일치
         ||<:> '''학력''' || 도산초-대서중[* 단 중학교 시은 구미중에서 보냈으며, 상원고 진학 전 대서중으로 전학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고]-[[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신인 [[투수]]. 2009년 이후 5년만에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의 대상자이면서, 같은 년도에 [[kt wiz]]에 1차 지명된 [[박세웅(1995)|박세웅]]과 함께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고교 시 별명은 [[이계인|모팔모]].
         == 아마추어 시 ==
         == 프로 시 ==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이인 . . . . 5회 일치
         '''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법률가, 정치인이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號)는 애산(愛山).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김병로]], [[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 사회저명인사들을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등과 함께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하였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에 가담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반민특위를 와해, 해체시켰다.<ref>{{서적 인용
         ==== 학창 시 ====
         [[1941년]] 창씨개명 강요가 들어왔으나 거하였다. 1942년 11월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이듬해 1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뒤에 풀려났다.
         [[1946년]] 군정청 검찰청 검찰총장이 되어 [[조선정판사위폐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하는 등 좌파 세력의 근에 노력했으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이후 단독정부 수립론이 나오자 그는 단정론을 지지하였다.
         * 민족반역자 색출에 있어 악질적인 괴수에 그 처벌을 국한시키는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충안을 작성하였다.<ref>1967년 8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발췌</ref>}}
  • 이준(배우) . . . . 5회 일치
         특이하게 다른 멤버들과 달리 예명에 성과 이름이 모두 포함되는 경우. '이'라는 성씨는 본인의 성, '준'이라는 이름의 뜻은 [[비(연예인)|비]]의 본명인 정지훈을 빨리 말하다보면 지훈>지운>쥰>준으로 발음이 되는 것에서 착안하여 [[베를린]]에서 함께 영화를 촬영하던 시 비가 그를 리틀 비라고 소개하기 위해 직접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김기덕]] 감독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감독의 오랜 팬이었으며 무명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던 등의 이야기를 하였고, 김기덕 감독도 호의를 보여서 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신연식 감독의 [[배우는 배우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사실상 이준이 모두 이끌어가는 원탑 주연의 영화로 기자시사회 후에도 이준의 연기에 호평이 꽤 이어졌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듯, 아이돌계 최강 짠돌이라고 알려진 이준이 아이돌 중 최초로 세월호 기부를 해 많은 칭찬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03857|기부 기사에 댓글이 만 개 가까이 달리기도 했다. 놀랍게도 거의 다 선플.]] 그것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고 혼자 본명으로 몰래 했다가 기부처 측 확인 차 중에 알려진 거라고.. ~~왠지 기부도 이준답게 한다~~
  • 이지은(2000) . . . . 5회 일치
         === 중학생 시 ===
         충청북도 충주에서 학창시을 보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댄스 스튜디오에서 랩와 춤을 연습하며 꿈을 키워온 듯하다. 수댄스 대표의 상당한 애제자인 듯하며, 대표 인스타에는 이지은에 대한 애정어린 포스트가 상당하다. 현재 남아 있는 상당수의 자료들이 수댄스에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예지(피에스타)]]의 곡인 미친개 커버([[https://www.youtube.com/watch?v=o95OUDg2sOw|유튜브]])를 올리기도 했다.
         믹스나인 5회의 최고의 수혜자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는 분량을 몰빵받았다. 5화는 순위발표식과 포지션 배틀의 준비와 경연의 반을 보여준 에피였다. 포지션 배틀은 댄스, 보컬, 랩 곡 하나를 선택해, 남녀간 배틀을 붙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랩퍼인 이지은은 랩을 선택했고, 노래는 [[치타(가수)|치타]]의 My number.
         전체순위 83위, 여자연습생 37위로 2차 순위발표에서 생존했다! 여자 연습생 중 자그마치 40위(77위 -> 37위)가 올라버리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분량도 10초 정도 나왔다. 마지막엔 시청자들에게 9ood 9irl 멤버들이 큰을 하기도...
         글쓴이는 언제적 친구인가. 글쓴이는 자신이 이지은의 학교 친구라고 칭하고 있으나 이가 명확하지 않다. 그 글에는 "서울로 갔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쓸리가 없으니 충주북여중 시 친구라고 볼 수 있겠지만. 추가적으로 서술한 내용에는 "연습생 언니들한테 이른다"라는 표현과 같은 학교내 연습생 중 튄다라는 표현이 있다. 만일 글쓴이가 충주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이지은의 연습생 언니인 김시현과 한국예고 상황을 알리가 없으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이홍렬(코미디언) . . . . 5회 일치
         그리고 1990년대는 [[임하룡]]과 함께 했던 '[[귀곡산장]]'을 빼놓을 수 없다.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태~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 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당시 괴담물 단행본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공포특급'이 불러온 공포 마케팅 열풍을 타고, 공포 컨셉 게스트 코미디 쇼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히트를 친 것.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또 이홍렬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코너였던 '한다면 한다'. 세계나 국내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며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상격인 프로라 생각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번지점프]]'''는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당시 40대였던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고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 뉴질랜드로 가서 찍었는데 같이 간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나 PD는 높이를 보고 겁에 질려 번지점프로 뛰길 포기했다. 이홍렬도 이거 긴장되네... 이러면서 고민하던 반응이지만 결국 그 홀로 뛰어내렸다.]은 많은 중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20년 전인만큼 예능 프로도 지금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점잖고 얌전했던 시이었다. 그런데 '야 이놈들아아아아아아!' 처한 저주의 외침을 토하며 뛰어내렸으니 당시 시청자들이 받았던 쇼크는 상상을 초월했다.
          --뿌우--'''신인 시의 [[이경규]], 뺑코 '이홍렬'과 함께'''.
          * [[이경실]]이 지나치게 괄괄한 [[여걸]]이라서, [[이성미]]가 그런 [[이경실]]을 기피하자 이홍렬이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화해시켜서 둘을 [[친]]으로 만들어놓은 일화가 있다.
  • 인왕 . . . . 5회 일치
         [[금강역사]]의 별칭. [[]]로 들어가는 문의 좌우에 서있다. 그림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서 세운다. 일본어로는 '니오우'라고 부르는데, 한자를 인왕이 아니라 이왕(二王)으로 쓰기도 한다. 의 수호신격 같은 위치에 있다.
         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다. 2체의 금강역사를 묘사할 때는 한 쪽은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다. 입을 "아~!"하고 벌리고 있는 것을 아형(阿形), 입을 "훔~!" 하고 다물고 있는 것을 훔형(吽形)이라고 부른다. 아형은 나라연금강, 훔형은 밀적금강이라고도 부른다. 갑옷을 입은 형상으로 묘사되거나, 상반신 나체의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오분율에 따르면 석가모니 곁에는 항상 500명의 금강역사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에서는 선문-일주문-인왕문-사천왕문의 순서로서 배치되며, 금강역사는 사천왕보다 격이 낮은 수호신격으로 여겨진다.
         분황사지 9층 석탑 같은 경우, 금강역사 한 쌍에 사자 4쌍으로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탑'을 지키는 구조가 되어 있다. 사천왕 등이 나타나면서 금강역사는 점차 밖으로 밀려나서 의 비교적 바깥 쪽에서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5회 일치
          * 반은 멜리오다스가 풀어지는 듯싶자 "그렇지. 단장은 언제나 그 멍청한 얼굴인데 괜히 걱정했다"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고 벽에 처박힌다. 반이 피떡이 되자 에스카노르는 갑자기 자작시를 읊기 시작한다. 멜리오다스를 "긍지 높은 분노"라 칭하는 그 시는 어떤 저주가 걸리더라도 각자의 마음을 침범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에스카노르는 주제넘게 단장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건 아니라면서도 같이 저주에 걸린 입장에서 그 괴로움만은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그 시에 "8점"을 붙이는데 몇 번 만점인지는 언급을 피한다. 게다가 시를 읊고 나서 주 설명을 하고 있다고 까기도 하는데, 에스카노르는 "아름다운 장미란 나에겐 멀린씨고 단장에겐 엘리자베스"라고 쓸데없는 설명을 더 덧붙인다.
          * 하우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믿지 못한다. 스스로 평민이고 머리도 나쁜데 괜찮냐고 묻는데 바토라는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되묻는다. 바토라는 망적인 싸움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동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타인의 방패가 되길 마다하지 않았다. 바토라는 그런 점을 높이 사서 그를 임명한 것. 그러나 미숙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아직은 "성기사장 대리"라는 꼬리표를 단다.
         고서는 그냥 있을 때도 상태가 이상한데 갑자기 무욕의 고서라고 십계의 이름을 댄다. 고서가 멜리오다스의 과거 시 나오던 무욕의 십계라는건 팬덤에서도 추측하고 있던 내용인데, 이번 화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다만 고서는 멀린이 조작하는 인형이었으며 멜리오다스의 십계 시 동료인 "무욕의 고서" 그대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5회 일치
          * 반과 재회한 이후로 엘레인은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겐 "생각을 닫아도 안하는 기분은 다 전해졌다"고 핀잔하고 디안느에겐 "[[킹(일곱 개의 대죄)|오빠]] 생각 뿐이라 금방 들켰다"고 핀잔한다. 물론 그 이상으로 연인 생각만하는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지만. 인사를 마친 엘레인은 "정말 오빠로 괜찮겠냐"고 디안느를 걱정한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할리퀸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랑 남자의 대화를 한다며 술집으로 향했다 한다. 오늘밤 연회가 있는데 낮부터 술집이라니. 엘레인은 역시 오빠로 괜찮은지 고심해본다.
          할리퀸은 과거의 은원이 정리됐으니 서로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주거렸다. 하지만 막상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술집에 와본 건데, 고서는 그 말을 자르며 "술 기운을 빌리는 거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이에 낀 에스카노르가 그가 감정을 되찾아서 더 날카로워진거 아니냐고 안 못한다. 할리퀸이 다시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 "툭 까놓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고서는 어차피 1시간 후 그가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조소한다. 곧바로 할리퀸이 노멀폼으로 돌아와 하는 말은, 도저히 고서의 대답과 이어지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5회 일치
          * 한동안 조용했던 리오네스 성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하녀들이 매며 리오네스 왕가의 장녀 [[마가렛 리오네스]]를 쫓아다닌다. 하녀들이 지금 마가렛이 하려는 행동은 "[[바트라 리오네스|폐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고 설득하지만 마가렛은 "아버지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보다 일전에 내린 명령에 대해 확인한다. 납치된 성기사 [[길선더]]의 수색과 구출. 그리고 그를 범인 마녀 [[비비안]]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하녀들이 주저하며 밝힐 바로는 진전이 없다. 리오네스 왕국은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나 아직 십계 토벌이 완료되지 않았고 언제 재차 침공당할지 모르는 상황.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명령으로 현역 성기사들은 모두 성의 수비로 투입되어 도저히 차출할 병력이 없었다. 마가렛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대지의 모자정 옥상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상과 달리 식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태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상태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식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망한다.
  • 장세용 . . . . 5회 일치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 노동 관련 예산 증액 및 노동 축제 개최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 [[영남대]] 재직 시 육영재단 반대 투쟁을 했다가 외압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시의 아픔을 [[박정희]]의 성지인 [[구미시]]에서 당선되면서 위로 받았다.
  • 전혜빈 . . . . 5회 일치
         안타깝게도 그룹 LUV 자체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했고, 이후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혜빈만 솔로 앨범을 내게 되었다. 왕성한 예능 활동을 하며 다이어트 운동 비디오 출시 및 프리 싱글곡 'Love Somebody'를 동시 발표하는 등 쉴틈없이 달려오다 2005년, 섹시하고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중무장했던 정규 1집 타이틀곡 '2AM'을 선보이며 호평[* 물론 안티도 있었던 반면, 당시 솔로 여가수 중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특히 춤선이 예쁘다는 반응으로 뜨거웠다. 아직까지 이 시을 기억하는 팬들은 전혜빈의 끼와 퍼포먼스를 그리워하기도.]에 가까운 중박 정도를 거뒀다. 사실 본인도 밝혔듯이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가수로 데뷔한 케이스이니, 딱히 가창력이나 음악성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전형적인 '예능형 댄스 여가수' 정도로 소비되었다.
         명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정글의 법칙 W]]에서 [[김병만]]을 연상케 하는 뛰어난 생존 스킬을 보여줘 좋은 반응을 었었고, 이를 발판으로 오리지널인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마다가스카르]]편에 출연했다. 여기서 [[김병만]]을 보좌하는 여전사로 맹활약해 기존 2인자였던 리키김의 위치를 위협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줬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여성 게스트들은 전부 전혜빈과 비교당할 정도.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금)]] 역할을 맡아 빙썅연기의 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11화에서 박도경을 찾아가는 씬에서는 [[오해영(금)]]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와 공감능력의 결여, 애정결핍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뛰어난 장면을 만들어냈다. 오해영 연기에 전혜빈이 영혼을 갈아넣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이 늘어나는 중.[* 그런데 극중 라이벌인 전혜빈과 [[서현진(배우)|서현진]]은 실제로 꽤 친한 사이다.]
         [[아는 형님]] 30회의 게스트에 출연하였다. 춤은 여전히 잘 추는 편이었고, 그와 반대로 조곤조곤한 말투로 아재들을 감동시키는 코너도 진행했다. 특히 연애편지나 강심장 등 신인시 자신을 잘 챙겨준 [[강호동]]에게 고마운 마음에 세족까지 해 줬다. 반면 [[민경훈]]에게는 [[유준상]]의 아내 [[홍은희]]의 지인이었던 과거 썸녀 이야기 폭로로 녹화장 자진 퇴장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희철에게 '요즘 [[여장]]하고 춤춘다며!?!' + [[홍석천|석천오빠]] 말이 맞았어! 등의 독한 발언으로 그 희철마저 작살내는 활약을 보여줬다.
          * 겨드랑이 노출 사진[* 의상 자체가 소매가 없는 옷이라 팔을 들면 자연히 겨드랑이가 보일 수 밖에 없는 옷이었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6361|바로 이것]]]에 이어 묘한 표정으로 순간캡쳐된 짤방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겨드랑이에 놀란 전혜빈 등의 제목으로 널리 퍼졌었으나, 천생연분 출연 및 솔로활동으로 인지도는 있으나 별다른 인기는 없었을 때 크게 유행했고 연기자로서 생명력을 갖게된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짤. 다만 지금도 일부 기레기들이 이 사진을 가지고 전혜빈의 충격 과거, 암내 운운하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 정재학 (1856년) . . . . 5회 일치
         [[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영일) 정씨 정석은과 손남산 사이의 1남 3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출처|날짜=2015-1-12|1883년 이남숙(1864년생)과 결혼 한 뒤 1885년 장남 정응원이 태어나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다.}} 아내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근검약 해오면서 부인에게 옷 한 벌도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낡아 찢어진 아내의 속옷을 발견하곤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0</ref>
         일본제국주의 통치 시 정재학 행장의 27년 은행경영 노하우는 해방후 아들과 손자에게 이어졌다. 일제가 강요한 민족자본은행 간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계은행]] 자본의 총집결지였던 [[조흥은행]]에서 정재학 행장의 아들과 손자가 행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5대 [[정종원]] 행장과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에 오른 2대 [[정운용]] 행장이 각각 그의 3남이고 장손이다. [[정재학]]행장이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투입한 민족자본은 정씨 가문 지분으로 상속되면서 [[조흥은행]]지분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ref name="ReferenceC"/><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2003 )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부친 아들 손자 등 3대에 걸쳐 은행장을 배출한 사례는 한국근대 금융사에서 유일한 사례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근대적 은행업은 구한말인 1897년부터 시작됐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도 은행업은 유지되면서 비록 일제 금융당국에 의해 통폐합되면서 조흥은행으로 통합됐지만 민족자본은행들의 한국인 지분은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에서 반을 웃돌았다. 해방 이후 조흥은행을 제외한 주요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일본인 지본이 대 우위였으며 이 지분들은 미군정청에 귀속된 뒤 이승만 정권 당시 재계에 불하됐다. 조흥은행 100년사에 따르면 [[조흥은행]]만이 당시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한게 한국인 지분이 50% 이상이었다. 해방 직후 조흥은행의 총 주식수는 18만5000주로 이 가운데 [[경상합동은행]]은 4만5000주, [[한성은행]]( 경상합동은행 합병전 기준) 6만주, [[동일은행]] 8만주 등으로 구성됐다. 해방이후 민족자본은행의 대표격으로 부상한 조흥은행의 지분 가운데 [[정재학]] 가문이 설립한 경상합동은행의 지분율은 24%에 달했다.
  • 주현미 . . . . 5회 일치
         [[화교]] 3세[*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상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시|남원]] 에서 4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상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태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연예인 중에서는 나름 엘리트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중앙대학교]] [[약대]]를 졸업해서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한 어머니의 바람이 컸다고 한다.] 이후 약국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수줍음 타는 성격이라 사업수완이 없었던데다 원칙을 고수하는 탓에 손님이 없어 일찍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당시 [[의약분업]]이 이뤄지기 전이었는데, 증상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영양제나 항생제 등을 달라는 손님들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거하다보니 별난 약사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https://youtu.be/lw2MKM2wwZE|약국이 망해서 가수한 주현미]]
         트로트계에서는 이미 넘어설 수 없는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곡의 스타일이나 가창법도 기존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음반판매, 히트곡의 수, 실력, 자기 관리 면에서 흠 잡을 곳이 없다. 음색이 얇으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워 ~~음색계의 깡패보스~~ 애하거나 높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기억하기 쉽지만 성량이 굉장히 풍부해 라이브를 들어 본 사람은 놀랄 정도. 여기에 특유의 고음 뿐 아니라 중저음이 굉장히 탄탄하고 매력있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보컬리스트이다.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에이즈]] 루머였다. 에이즈는 지금도 치료가 무지하게 어려운 질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병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악질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던 시이라 이 때문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티가 생겨나기도 했다.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다는 허위사실인 데다가 그 병이 역대 최악의 전염병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 전성기 시에는 1년 내내 딱 1일만 빼고 휴일 없이 방송과 지역 행사를 모두 수행한 적도 있었단다. 참고로 그 하루는 [[현충일]]. 현충일에는 유흥업소들이 자체적으로 휴업하는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5회 일치
          * 크루거는 모든걸 그리샤에게 맡기려 하지만 좌에 빠진 그리샤는 자신에겐 "증오"가 아니라 "죄"만 남았다며 거한다.
          * 그리샤는 의사로서 직업정신인지 진찰을 해보겠다고 하는데 크루거는 원인은 이미 알고 있다며 거한다. 그는 시간이 없다며 그리샤에게 "마지막 임무"를 맡기겠다고 말한다. 잠시 뒤 두 사내는 벽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크루거는 그리샤의 소년 시, 비행선을 보러 왔을 때의 일을 말한다. 만약 자신이 그를 잡아놓지 않았다면 여동생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리샤는 함께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거라고 대답하고 크루거는 고마워 하면서 어쨌든 그 일이 없었으면 그리샤가 이토록 강한 증오를 품게 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샤는 그게 자신을 고른 이유냐고 하자 그것도 있다고만 말한다.
          * 하지만 크루거도 죄의식이 없는건 아니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을 구하지 못한건 자신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살아서 벽까지 도달할 수 있는건 거인화 능력을 계승할 한 사람 뿐이었다. 크루거는 자신은 역할을 다했더니 그리샤도 그렇게 하라고 독촉한다. 하지만 좌해 버린 그리샤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뭣보다 크루거가 만든 복권파를 괴멸시킨 건 그리샤 자신. 그럼에도 그리샤가 해야 한다는 크루거의 확신은 바뀌지 않는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5회 일치
          * 그리샤의 기억에 따르면 마레당국은 이미 엘디아인을 근시키던가 무지성 거인으로 만들어 군사용으로 쓰던가 양자택일할 생각이다.
          * 그러면서 "또 아르민과 미카사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을 해놓고 자신도 어리둥해하는데.
          * 리바이가 엘런 일행을 데려온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을 지켜서 고개를 숙이지만 크리스타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의전은 필요없다며 평소처럼 대한다. 크리스타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며, 그저 자신을 편히 앉아 남쪽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엘런 일행은 그녀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타는 생각한 것보다 이들이 그모습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엘런 일행은 말하지 못한다.
          >근할 것이가
          그리샤는 그렇게 되도록 벽 안의 왕이 그냥 둘 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크루거는 오히려 그들은 대로 싸우지 않을 거라고 잘라 말한다. 마레 당국이 언급하던 145대 프리츠 왕의 말은 "벽의 거인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가 아니었다. 진짜는 "우리는 시조의 거인과 부전의 조약을 맺었다."였다.
  • 최광식 . . . . 5회 일치
         ==== 논문표 및 이중게재 논란 ====
         민주당은 고려대 교수 재직 중 쓴 일부 논문의 자기표 및 중복게재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한나라당 [[심재철 (1958년)|심재철]] 의원 역시 “중복게재가 맞다”, “인정하라”고 말했다.<ref>[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667 야당, 최광식 문화부 장관 후보자는 “부적격”]《미디어스》2011년 9월 16일 권순택 기자</ref><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87849 최광식·임채민 장관 후보자 자질·도덕성 검증]《SBS뉴스》2011년 9월 15일 김지성 기자</ref>
         이에 대해 최 후보자는 “인용부호를 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지만 30여 페이지 중 한 페이지를 인용한 것은 자기표이 아니다”라고 해명하였다.<ref>[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105891 임채민·최광식 인사청문회…도덕성·'낙하산' 논란]《MBN뉴스》2011년 9월 15일 이상민 기자</ref><ref>[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781046596380448&SCD=&DCD=A01503 최광식, 논문 이중게재.."불찰이지만 이중게재는 아냐"]《이데일리》2011년 9월 15일 나원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546.html 최광식 장관후보 ‘논문 이중게재’ 의혹]《한겨레》2011년 9월 8일 최성진 기자</ref><ref>[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2926338_5786.html 임채민·최광식 인사청문회‥도덕성 집중 검증]《MBC뉴스》2011년 9월 15일 박찬정 기자</ref>
         김제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문화재청장 시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승인과 관련‘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매장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부지에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혈주거지(움집터), 유구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해군 측의 공사를 중지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일부 조사완료구역에 대해서는 공사 시행을 승인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369 최광식 '제주해군기지 책임론' 유탄 맞을 듯]《뉴스제주》2011년 9월 14일 고병택 기자</ref><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297 최광식 후보자 ‘제주해군기지 유탄’ 맞나?]《제주의소리》2011년 9월 14일 좌용철 기자</ref><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4000169 최광식 장관후보,‘제주해군기지 유탄’맞나 ?]《아주경제》2011년 9월 14일 박현주 기자</ref>
         2005년 8월 입대한 최 씨는 한 달여간의 훈련을 거쳐 서울 용산구의 한 고교에서 공익(행정보조)요원으로 근무했다. 2005년 병무청에 제출한 경위서에서 “중고교 시 친구의 장난으로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었고, 고3 때 체중이 25kg 늘면서 몸에 무리가 왔다. 중국에서 유학할 때 혼자 이사하고 청소하는 과정에서 허리에 무리가 많이 왔는데, 무거운 짐을 지다가 허리에 갑자기 경련이 오면서 쓰러져 일주일 동안 침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 최성원(가수) . . . . 5회 일치
         1990년 '어린 왕자'[* 1985년 우리노래전시회에서 강인원이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솔직할 수 있도록' 등이 수록된 2집을 발매하였다. 사실 이 음반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명곡들이 상당히 많다. 도입부의 나레이션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어린왕자'와 낙관적인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솔직할 수 있도록' 또한 자신의 어린 시과 들국화 초기 시의 추억을 담은 '생각이 나는지', ccm풍이 물씬 풍기는 '행복의 열쇠'와 최성원 특유의 음색과 곡의 멜로디가 잘 어울려져 있으며 손진태의 기타솔로가 인상적인 '네 눈 앞에만' 등 수록된 모든 곡들이 명곡이다
          * 들국화 시 전인권과 정말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최성원과 전인권은 [[비틀즈]]로 따지면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라고 할 만큼 애증의 관계. 음악 성향부터 사생활까지 극단적으로 다르며, 각자 음악적 역량도 뛰어나고 주관도 너무 뚜렷한 둘은 들국화 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들을 중재해 주던 것이 드러머 주찬권이었는데, 이것도 [[비틀즈]] 시의 [[링고 스타]]와 판박이. 이후 전인권이 약물중독 등의 방황을 벗어난 후에는 서로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들국화 재결성은 힘들 듯~~
  • 최재성(배우) . . . . 5회 일치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다. 젊은 시 잘생기면서도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외모 덕분에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으며 충무로의 대배우로 아직까지도 유명한 [[박중훈]]이 중년 이후에도 젊은 시 가장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배우로 항상 언급할 정도로 잘나가던 청춘스타였다. 당시 마치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강한 인상의 미소년 외모를 가진 반항기 가득한 고등학생' 이미지로 크게 사랑 받았으며[* 이장호의 외인구단 개봉 당시5살 연상인 [[이보희(배우)|이보희]]와 동갑내기 커플로 나온 최재성을 보고 사람들이 내린 평가가 '최재성은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같은데 이보희는 아무리 봐도 20대 중반은 되어 보여서 둘이 동갑으로 보이지 않는다'였다고 한다.]이 이미지는 80년대 초중반 그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된다.
         젊은 시 간지나는 잘생긴 외모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연을 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미모는 죽지 않아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 역으로 호평받았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야인시대에서 마루오카 역으로 다시 슬럼프를 씻어냈다. 이후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의 마오[* 드라마 자체도 큰 호평을 받았고, [[악역]]이면서도 사연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력과 카리스마도 제대로 드러나서 호평을 받았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원균]], [[SBS]] 연개소문에서는 이밀 역을 맡았다. 연개소문부터는 나잇살이 부쩍 많이 붙었다. 2010년 이후에는 재력가, 정치인, 특히 가족의 출생의 비밀을 가진 비운의 아버지 등의 역을 잘 한다.
         최재성의 아버지는 최상현(KBS 드라마 연출가)이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가 6촌 동생들이다. 혈통이 혈통인지라 최재성, [[최진실]], [[최진영]] 모두 미남미녀들이다.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같은 직업에 종사한 덕에 최재성과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사단"과 [[최진실]]의 어머니, [[최진영]] 이외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슬퍼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최재성과 [[최진실]]이 [[1994년]]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극중 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20500209121002&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2-05&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421&publishType=00010|#]] [[여담]]으로 어린 시에는 [[최진실]]과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었다. 자라면서 외모의 차이가 생긴 것.
         젊은 시 모습을 보면 [[원빈]]과 [[지창욱]]을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사실은 원빈과 지창욱이 이 쪽을 더 닮은 거지만...~~
  • 쾌락절임 . . . . 5회 일치
         --먹으면 쾌락이 느껴지는 임--
         즈케(漬け)는 일본식 임 요리를 뜻한다. 시오즈케(塩漬, 소금임), 사토즈케(砂糖漬, 설탕임), 미소즈케(みそ漬, 된장임) 같은 것이 있다. 주로 조미료 같은 것에 식재료를 담궈서 하는 요리를 뜻하는데, 뭔가에 푹 빠졌다는 의미도 된다. 카이라쿠즈케라고 하면 쾌락에 푹 빠졌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 킹덤/520화 . . . . 5회 일치
          * 기수는 진격 중 낙화대의 병력이 반으로 줄었단 첩보를 받고 주춤하는데 때마침 군의 우측에서 몽념이 이끄는 기마대의 습격을 받는다.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반 이상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순식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상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이때 새로운 첩보가 도착했다. 당연히 적이 움직였다는 보고일 줄 알았으나 엉뚱하게도 낙화대의 반이 모습을 감췄다는 내용이다. 수상하다. 마정의 말처럼 이제 사라진 반이 어디로 갔느냐가 중요해졌다.
          사라진 반의 행방은 금새 드러났다. 군의 우측에서 한 무리의 기마대가 들이친다.
  • 토리코/393화 . . . . 5회 일치
          * 하지만 그가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한 것에 블루 니트로 페어는 수긍하지 못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시. 아카시아와 동행하던 페어는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동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카시아 안에 있는 네오의 존재와 블루 니트로가 세운 봉인 계획을 설명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카시아가 자세히 묻자 페어는 실언이었다며 그런거 보다 봉인 계획에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표정이다.
          *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카시아는 엄청난 발견을 알린다. "네오가 싫어하는 맛"에 대한 것. 아카시아는 이것이야 말로 네오 안의 동포를 구할 단서라고 말한다. 페어는 또 그딴게 집착하냐고 쏘아붙이지만 아카시아는 확고한 자세로 "그럴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식욕의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만고의 법칙이고 구르메 세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에너지의 대량은 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끝없는 순환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네오에 먹힌 식혼들 또한 사라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맞다는 것.
          * 지로의 기술과 용기를 전수받은 텟페이는 지구 노킹에 성공, 지구의 붕괴를 막는다. 완전히 끝이라고 생각했던 토리코는 어찌된 일인지 어리둥해하지만 아카시아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은 한 사람 뿐이라며 지로가 돌아왔음을 짐작한다. 미도라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인 듯 하다.
          * 페어는 비록 지구의 붕괴는 막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맛의 바톤"이 두되는 것. 구르메 세포로 조리된 행성은 숙성을 거듭하다 어느 시점에 한계에 달하고 폭발한다. 초신성의 폭발도 능가하는 그 엄청난 에너지는 우주공간으로 뿌려지고 대량의 중원소가 합성되면서 "골든 메테리얼" 같은 "구르메 메테리얼"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원소들이 맛과 함께 고도로 농축되어서 새로운 식재의 탄성으로 이어진다. 다시 이것들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풀코스"로 탄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지구의 풀코스도 그런 식으로 다른 행성들로부터 이어진 것.
  • 페어리 테일/510화 . . . . 5회 일치
          * 나츠는 어린 시에 가질, 웬디, 스팅, 로그와 만난 적이 있는데, 이들 멸룡마법사들은 부모 용을 따라서 회합 자리에 동석해씩 때문이다.
          그가 나츠를 이그닐에게 맡긴 이후의 기억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혼룡 의식의 영향으로 매우 훼손된 기억. 사실 이그닐과 함께 있던 시부터 나츠와 다른 멸룡마도사들은 인연이 있었다. 어린 시의 가질 레드폭스는 항상 티격태격하던 사이. 웬디는 둘을 말리러 오곤 했는데 항상 울고 있었다. 제레프는 잠시 "그 애"도 곧 웬디랑 만나게 될 거라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하는데.
          나츠는 갑자기 제레프가 사라져서 어리둥해한다. 스팅은 이곳이 그의 마음 속이기 때문에 그 스스로 제레프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라 말한다. 나츠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고 하지만 스팅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따라오라고 말한다. 분명 "대답"에 다다를 수 있다면서.
         제레프가 어린 시의 웬디를 언급하며 "그 애"랑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그 애가 누군지는 불명.
  • 헌터X헌터/369화 . . . . 5회 일치
          * 빌이 숨긴 덕에 나머지 경호원들은 크라피카의 기을 모른다. 크라피카가 정신을 잃은 시점에서 어쩐지 [[오이토]] 왕비 또한 기해서 침대에 눕혀놨다.
          * 왕비는 자신이 오해했음을 사과하며 자신에게도 넨능력을 가르쳐달라고 청하는데, 크라피카는 뜻밖에도 "죄송하다"고 대답하는데, 거의 아니가 아니었다.
          * 13왕자 마라얌 측에선 헌터 협회 소속 "베레리인테", 세반치 왕비 소속 "바리겐"이 파견. 바리겐 측은 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 다소 무례한 일이 될지 모르지만,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곧바로 다음 수색을 부탁했다. 왕비는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크라피카 못지 않게 초췌해 보였으나 거하지 않았다. 그녀가 12왕자 모모제의 거처부터 재개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크라피카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스틸 체인은 무리를 해서는 안 되는 능력이었고 이번 실신도 분명 그것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색 순서를 바꾼다. 이번엔 제 4왕자의 거처부터 시작한다.
  • 홍기(영부인) . . . . 5회 일치
         [[성균관]] 박사인 [[최규하]]의 할아버지인 최재민씨와 한학자인 홍기여사의 할아버지간 교류가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의 중매로 19살 되던 1935년에 연하의 최규하와 결혼하였다. 이후 남편 최규하가 도쿄고등사범학교와 만주 [[대동학원]]에 유학하던 시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고 시가(媤家)인 [[강원도]] [[원주시]]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생활했다.
         실제 홍기 여사는 청와대 시 양로원과 보육원 지원에만 앞장섰을 뿐 대외활동을 삼갔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조용한 평소 이미지와 달리 남편 최규하에게 짜증을 내는 등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으며 한복 저고리로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인 서교동 집은 홍기 여사가 “살 만하면 그만”이라며 못 고치게 해 남루한 편이라고 한다. 실제 홍 여사가 사망할 당시 홍 여사가 10년 이상 사용하던 그릇장, [[외교관]] 시 사용하던 유리잔들, 생전에 사용하던 돌구와 오이지 누르는 돌, 연탄보일러, 빨래 물을 긷는 펌프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매년 가계부를 거르지 않고 썼다고 한다. 홍기 여사가 총리공관 시 쓴 가계부에는 겉장에는 친필로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06, 국무총리 공관, 국무총리 부인 洪基>라 이름표를 적고 있고, 책장을 넘기면 콩나물 등 부식을 구입한 명세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선비다운 풍모로 검소한 생활을 했던 최규하 대통령에 걸맞는 소박했던 면모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 황효진(기업인) . . . . 5회 일치
         이후 초창기 [[아프리카TV]]로 진출하는데 당시 [[고소미#s-2|고소미]]를 좋아하던 [[유신(스트리머)|유신]](BJ)과 합작으로 스타 중계방송인 '노는대학'을 개설, 인터넷방송 플랫폼에서의 스타중계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이 둘은 2011년경 관계가 단되었고 [[망치부인]] 다음으로 유신과 가장 대립각을 세운 인물중 하나였다. 유신의 여론이 예나 지금이나 워낙 나빠서 이때만해도 황효진이 차라리 낫다는게(물론 황효진도 까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적으로 까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여론의 대세였으나... 황효진이 지금처럼 추하게 몰락하리라고는 대부분이 생각치도 못했엇다.]
         BJ 소닉이 2013년 말부터 개최하기 시작한 BJ '''프로리그'''. 전 프로 출신 BJ들이 프로 시의 소속 팀에 따라 前 SKT 팀, 前 삼성 팀 등으로 나뉘어서 경기를 하게 된다.
         [[철구(BJ)|철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가 부산 신발공장에서 일하는데 스베누의 신발 발주대금 미지불로 인해 부산 거의 대부분의 신발 공장들이 줄도산 났다고 한다. 당연히 공장주들은 파산하였고 공장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더 웃기는 건 이상호, 랜딩 등의 BJ들도 이미 신발팜 때부터 비제이들 스폰비도 못 줄 정도로 소닉의 사업은 망할 위기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소닉이 위기를 맞은 신발팜을 기사회생하겠답시고 만든 기업인 스베누는 맨유에 돈을 퍼주며 --마지막 발악-- 계약을 하거나 [[아이유]]같은 비싼 연예인들로 광고를 하는 등 노이즈 마케팅만 줄창 했지만 정작 신발은 원가 감을 위해 저급한 원단으로 신발을 제조하게 했고 이 와중에도 황효진 본인은 여친에게 고액의 선물을 퍼주고 자신은 비싼 집 외제차 등으로 허세력을 과시하며 살았다는 것.
         해당 게임의 항목을 개설하고 싶다면 [[양지영]]과 [[황효진]] 2사람 다 법적으로 [[임종]]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그 정보가 나무위키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대로 해당항목을 개설하지 말것. 그 전에 개설하면 정지를 먹을수가 있다. 그리고 해당게임의 다운로드 링크도 위의 두사람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한 역시 금지된다.
  • 효령대군 . . . . 5회 일치
         그는 10세 시이던 [[1405년]] '''효령군'''에 책봉되었으며 12세 시이던 [[1407년]]에 해주 정씨 부인(정역의 딸)과를 가례를 치렀고 17세 시이던 [[1412년]]에 '''효령대군'''에 진책되었다. [[1417년]] 자신의 [[호 (이름)|아호(雅號)]]이기도 한 '''연강'''(蓮江)이라는 [[법명|법명(法名)]]으로 수계를 받았다. 그는 어릴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붓글씨에도 능해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활쏘기에 능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관악산]] 연주봉 남쪽 기슭에는 연주암(戀主庵)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벽 위에 [[연주대]](戀主帶: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남쪽 과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연주암이 있다.
         [[보성군]]의 증손 [[전성군 (1488년)|전성군 이대]]는 생전에 용강현령, 병마동첨제사에 이르렀지만 다시 후손들의 출세로 [[증직|증]](贈) [[호조]][[참판]], [[호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영의정]]으로 여러 번 증직을 받았다. [[전성군 (1488년)|전성군 이대]]의 아들이 [[이량 (조선)|이량]]이고, 딸 부부인 이씨는 청송 심씨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는데, 딸이 [[인순왕후]]로 [[조선 명종|명종]]의 비가 된다. 아들은 [[심의겸]]과 [[심충겸]]으로, [[심의겸]]은 [[서인]](西人)의 초대 당수가 된다.
  •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 . . . 4회 일치
         || 1 ||||
         || 2 ||||
         || 3 ||||
         || 4 ||||
  • Suicide is Painless . . . . 4회 일치
         || 1 ||Through early morning fog I see
         || 2 ||The game of life is hard to play
         || 3 ||The sword of time will pierce our skins
         || 4 ||A brave man once requested me
  • 건포인트 . . . . 4회 일치
          경비원들을 죽인 경우가 많을 경우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일단 경비원을 기시키기만 해도 올라간다. 적을수록 좋다.
          경비원의 눈에 띌경우 올라간다. 덮친 후에 죽빵으로 기시킨다고 해도 오르니 주의. 아예 패죽여버리면 오르지 않지만 폭력성이 오른다. 적을수록 좋다.
          $8,000. 문을 발로 차 떼어낼 수 있게된다. Vault Door는 안되니 주의. 발로 차서 떼어낸 문은 짧은 거리를 날아가는데, 여기에 맞은 경비원을 기시키거나 유리창을 깰 수 있다.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들. 콘웨이를 보는 즉시 쏴죽인다. 콘웨이가 뛰어오르고 있더라도 무조건 명중. 콘웨이를 보고 있지 않을 때 점프해 덮친 후 펀치를 먹여 기시키면 무력화 된다. 그 이후로도 계속 펀치를 먹여 죽일수도 있다.
  • 고소영 . . . . 4회 일치
          * 남편은 장동건, 친은 [[정우성]], [[이정재]] 등이다. ~~ㅎㄷㄷ~~ 대표작 '비트'를 함께 찍었던 정우성과는 [[구미호]]라는 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으며 정우성의 말에 따르면 데뷔 전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9&aid=0002345735|관련기사]]
          * 유명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와도 친이라고 한다.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60419151820960|정윤기, 고소영, 정우성, 이정재가 함께한 화보]] 기사에 따르면 이 넷은 20년지기 친구.
          * 고소영이 나온 순창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다보니 고소영이 과천여고 재학생이었던 시부터 2016년 현재까지도 현역 근무 중인 선생님들이 적지 않게 계신다. 과천여고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계시는 선생님 몇 분이 가끔씩 고소영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실 때가 있는데, 주변에 폐를 끼치거나 다른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을 괴롭히거나 했다는 말은 없지만 선생님들은 고소영을 썩 좋게 보진 않으시는 듯하다. 여고 재학 시에도 연예계 쪽 활동[* 광고 활동이나 오디션 참가 등으로 추측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일이 일반 학생보다 많았고, 그 때문에 어른인 선생님들의 눈에 좋게 보이진 않았던 듯. 그래도 앞에 적었다시피 악평을 하신 분은 없었다.
  • 구성윤 . . . . 4회 일치
         포항청림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어린 시에는 필드 플레이어로 축구에 입문했다가 골키퍼로 전향하는 것과 달리 구성윤은 축구를 배울 때부터 골키퍼로 시작했다. 이후 고향 [[포항시]]를 떠나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재현중학교]]를 거쳐 [[재현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입학 후 키가 훌쩍 크면서 신입생임에도 주전 골리로 골문을 지켰는데, 이를 우연히 지켜본 [[세레소 오사카]] 스카우터의 눈에 들면서 재학 중 [[세레소 오사카]]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2012년 세레소 오사카의 U-18팀에 입단하였다. 이후 구성윤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스카우터가 다른 선수를 보러 왔었는데, 운 좋게도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호평을 내렸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47&aid=0002166201|#]]
         2013년 성인 팀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 입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반기를 날렸고, 여름에 재활을 마친 후 다시 엔트리에 복귀했으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당일에 또 부상을 당하며 다시 [[벤치워머]]가 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부터 꾸준히 [[세레소 오사카]]의 골대를 지키고 있던 선배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에게 밀리면서 2014년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이후 삿포로로 이적한 장면을 보고, 세레소팬들은 구단한테 [[김진현]]선수의 후임이라고 했으면서 육성을 실패한다는게 말이되냐면서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신태용호/U-23|신태용호]] 시 (2015~2016) =====
         ===== [[슈틸리케호]] 시 (2014~2017) =====
  • 김광석 . . . . 4회 일치
         또한 2010년 11월 그가 태어난 [[서울특별시|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5/2014060501769.html|제목=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성관 편집위원|날짜=2014-06-05}}</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15_201405251507299539|제목='김광석'으로 되살아 난 길|출판사=YTN|날짜=2014-05-25}}</ref> 2015년 11월 2일,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광석의 매각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단독]가수 고(故) 김광석, 학창시 보낸 창신동 집 팔려 |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출판사=포커스뉴스 |저자=이유정 |날짜=2016-01-25 |확인날짜=2016-05-08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508074315/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보존날짜=2016-05-08 |깨진링크=예 }}</ref>
         1964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경기도 서울시]] 남창동 (서울) (남대문시장4길) 서울남대문시장 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현재는 [[연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를 나왔다. 중학교 시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시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 (밴드)|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밴드)|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 김규철(배우) . . . . 4회 일치
         배우자는 '빈들', '외로운 날'이라는 노래로 잠깐 활동했던 '유숙'이라는 가수이다. 국민학교 5학년 시에 [[말괄량이 삐삐]]의 주제곡을 부른 적이 있으며 [[투니버스]]에서 만화 주제곡을 부른 적도 있는데 [[캡틴 테일러]]의 주제곡을 불렀다. 당시로도 가창력과 외모가 준수한 편이었다. 결혼 후에는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내조에 주력하는 듯.
         악역 전문이지만 드라마큐브에서 [[카라(아이돌)|카라]] 출신 [[니콜(가수)|니콜]]과 자신의 불치병에 대한 유전 때문에 딸을 거부했지만 결국 딸을 아끼고 죽은 뒤에도 영혼이 되어 딸 곁에 머물며 오직 딸만을 걱정하는 한 부성애의 아버지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 [[2002년]] KBS2 [[매직키드 마수리]] - 마풍운 : [[마수리]]의 아빠. --하지만 결국 반 쯤에서 [[리타이어]]. 이후 나올수도 있었지만 무산--
  • 김미숙(1959) . . . . 4회 일치
         || '''신체''' ||<(> 165cm[* 지금도 20대 여자 평균이 160-161이니 165가 큰 편이지만 당시에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으로 중학교 시 배구 선수를 하기도 했다. 요즘 세대의 장신 여배우들과 한 화면에 잡혀도 비슷하거나 클 때도 많다. 물론 그 당시 상황에서는 상당히 큰 키에 속했다.], [[B형]] ||
         어린 시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 한때 '''[[노처녀]]의 아이콘'''이었다. 지금이야 워낙 늦게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 마흔살에 결혼하는 사람도 종종 보이지만, 그때는 여자 나이 20대 후반만 되어도 노처녀란 소리를 들었다. 물론 여배우들은 원체 직업 특성상 일반인보다는 늦게 결혼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런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꽤나 늦은 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한국나이 41살에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래 출산을 40대에 두 번이나 했으니, 그 시에는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 김보름 . . . . 4회 일치
         === 2013-2014 - 소치의 좌 ===
         김보름은 월드컵을 거르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으나 스피드와 체력 등에서의 네덜란드-캐나다등 서양 선수에 대한 역부족,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인한 페이스 조 실패, 그리고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주종목인 5000m를 포기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좌을 겪었다.<ref name=":15" />
         11 월 11 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의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맨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팀 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 2초 66으로 5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1-13}}</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는 김보름(강원도청)이 넘어져 결승 진출이 좌됐지만 다치지 않아서 2차 대회에 충분히 나설 수 있게 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1-13}}</ref>
  • 김진환(iKON) . . . . 4회 일치
         EVERYTHING, BEST FRIEND와 같이 수록곡의 도입부를 상당히 많이 맡는다. 하이라이트도 많이 맡으며 애드립이 있는 노래에서는 거의 모든 애드립을 담당한다. 노래에 따라 강약 조을 잘하면서 부른다. 간질간질하면서 때로는 힘있는 특유의 목소리가 특징이며, 저음역대부터 고음역대까지 소화 가능하다. iKON의 전곡을 프로듀싱하는 [[B.I]]는 팀 내에서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보컬이라고 평했다.
          * 아이콘 내 가장 친한 멤버는 바비인 것을 밝힌 적 있다. 그러나 연습생 시 가장 싸움이 잦았던 멤버이기도 하며 실제로 둘은 애증의 관계라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 애장품으로 대바지(엄청나게 자주 방송에 노출된 바지)를 내놓았는데, 배송 받은 팬이 후기에 바지 사이즈가 xs라는 글을 올려 충격을 주었다.
          * 외국어에 재능이 있는 듯하다. [[일본어]]를 가장 능숙하게 구사하며 [[중국어]], [[영어]]도 부담없이 한다. ~~정작 학창시 공부는 잘 못했고 학원에 친구를 만나러 다녔다고 한다~~
  • 김처선 . . . . 4회 일치
         사실 세간에 알려진 김처선의 최후는 대부분 야사에 의존한 것이다. 일단 실록에는 연산군이 죽였다 정도로 살해 당일의 기록이 간략하다. 활에 맞아 죽었다는 것도 의문인데 중종 때 베어 죽었다는(주살) 구이 나오고, 한참 시간이 흘러 200년 뒤 영조가 김처선을 복권하면서 그제서야 활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이 바뀐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반부에 반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했고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반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그래서 [[처서]] 기도 조서라 고쳤고
  • 김태희 . . . . 4회 일치
         198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 구미 으로 이사 하였다. 김태희 본인의 가족으로는 부모와 언니 김희원, 남편 [[이완 (1984년)|이완]]이 있다. 연예인 [[비 (가수)|비]]와 동료.<ref name="씨네21">{{웹 인용 |제목=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태희|url=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3569|출판사=[[씨네 21]]|저자=이혜정|날짜=2006-12-22|확인날짜=2014-02-25}}</ref> 6학년에는 언니를 대신해 교복 모델로 활동했다.<ref name="씨네21"/> 졸업하고,<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학내내 전과목 100점…공주대접도 당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3771618|출판사=뉴시스|저자=김지은|날짜=2011-03-30|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재학 시 학원 홍보 전단지 모델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경북 구미 에서 김태희 모르면 간첩? 학창시 인기-성적표 공개!|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91530327|출판사=[[한국경제]]|저자=김명신|날짜=2009-09-15|확인날짜=2014-02-25}}</ref>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백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순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 김효기 . . . . 4회 일치
         귀국하고나서 또래보다 1년 늦게 충주상고로 진학한 김효기는 고등학교 1학년 시, 약체로 평가받던 [[충주상업고등학교|충주상고]]의 미드필더로 나서 강호 [[문일고등학교]]를 격파하는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7년, 전국 1, 2학년대학축구대회에서 도움상을 수상했고, 2008년부터는 대학 선발로 발탁되어 덴소컵 등에 참가하였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울산 현대에 4순위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드래프트를 1년 미루었다.] 대학 시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 좋은 집중력으로 골을 뽑아냈던 선수라 울산에서도 활약할 것을 기대받았는데, 데뷔 시즌은 주로 2군에서 시간을 보내며 1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2011년에도 역시 2군을 벗어나지 못하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조민국]] 감독이 [[김호곤]] 당시 울산 감독을 설득해 김효기를 6개월동안 미포조선에 임대시키는데 성공한다.
         2018년 과거 화성 시 은사였던 김종부 감독의 부름을 받고 [[경남 FC]]로 이적하며 1부 리그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 1년을 미룬 2010 드래프트를 앞두고 고향에서 친구들과 족구를 하다가 피로골을 당하는 웃지못한 사정도 있다.~~당시 대학 감독님에게는 개인훈련 도중에 부상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4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는 [[올마이트]]에게 그의 사이드킥이었던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으로 추천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지만 거 당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그의 사이드킥 출신 [[서 나이트아이]]의 소개를 부탁받는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갑자기 왜 그 이름을 꺼내나 의아해하지만 인턴 제도와 [[그랜토리노]]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전해듣고 납득한다. 미도리야는 다시 한 번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자리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올마이트는 의외로 단호히 거한다.
          밀리오는 그의 대답과, 손에 새겨진 흉터를 유심히 살핀다. 미도리야의 대답은 "엉망진창인 목표"지만 "거할 이유"도 없으니 좋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도 애초부터 서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는 두 사람. 밀리오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고, 결국 결정권을 가진 것은 서. 미도리야 스스로의 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도리야는 어째서 이렇게 친하게 대해주느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딱히 잘해주는건 아니라면서도 그가 "엉망진창인 목표를 실현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 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4회 일치
          * 토가와 트와이스, 그리고 이리나카 사이의 짧은 신경전. 먼저 "돼먹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은건 트와이스 쪽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며 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강경모드로 들어가는데, 역시 그 성격답게 1초도 지나지 않아 자기 개성을 외판원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선전해대고 있다. 그의 개성 "카피". 온갖 물건을 두 개로 늘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이미지"를 확보하는게 중요하고, 그의 코스튬에는 그걸 위한 아이템이 내장돼 있다. 가령 손목 부위에 내장된 줄자라던가. 인간을 카피한다면 구체적인 신세 사이즈 등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쓰레기 같은 불완전한 카피가 생길 뿐.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해도 딱 한 가지는 원본과 다르다. 내구력이다. 뭘 카피하느냐 나름이지만 일정 이상 데미지를 받으면 형태가 무너진다. 한 번에 늘릴 수 있는 숫자는 최대 두 개. 하지만 두 번째 카피부터는 내구력이 몹시 약해진다. 덤으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일신 상의 사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
          * 트와이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그런지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고 자괴감에 떤다. 기껏 거했던 토가는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궁시렁 거렸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토가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순순히 개성을 설명하는 토가. 피를 섭취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때 섭취한 피는 곧 에너지. 섭취량이 변신을 유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대략 컵 한 잔 분량이라면 하루종일 변신하는 것도 가능. 한 번에 여러 사람의 피를 마시면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에는 옷도 포함되는데, 문제는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는 여고생 틱한 설명까지 붙여서 PR 완료. 트와이스 못지 않은 성실한 자기소개였다.
          * 그렇게 잘난 척한지 얼마지 않아, 이 꼴이다. 분노조이 고장난 이리나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자랑하던 신중함은 온데 간데 없이 날뛰고 있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 이리나카가 차라리 귀를 막아버렸더라면, 토가의 말을 무시했더라면 기회는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력은 분노조 능력과 함께 망가졌고 터져나오는 울분을 고함의 형태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고함은 비명처럼 들렸다. 토가가 찌른 핵심이 아파서 지르는 비명.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4회 일치
          * 에리는 이미 길고 긴 "실험"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면 부숴지고 수복되길 반복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 에리의 마음엔 일말의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 상황 속에서 완전히 망했다. 결국 에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버홀 앞에 나타난다.
          지난 회에 당한 채로 널부러져 있으나 의식을 잃진 않았다. 오버홀에게 자신과 미도리야가 당하고 그가 도주하는 미래를 예지했기 때문에 망하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미도리야가 꺾이지 않는 걸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
          패널티가 있다.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경계한 건지 엎드리게 해놓고 그 위에 올라타서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이자와를 VIP룸에 포획해둔건 좋은데 입이 가벼운 건지 쓸데없는 말을 주 늘어놓고 있다. 아이자와의 개성이 전부터 연구대상이었다거나 쓸모가 있어서 살려뒀다거나 하는 둥 쓸데없이 나불거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4회 일치
          * 오버홀이 변화시킨 지면이 손가락처럼 뻗어오는 순간, 미도리야는 그것들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진다. 어리둥해하는 오버홀 위로, 천장이 폭발하듯이 무너지고 미도리야는 어느새 지상으로,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있었다. 자신은 그저 오버홀의 공격을 차내려 했을 뿐인데, 힘 조이 안 돼 여기까지 날아온 것. 그런 거라면 자신의 다리가 멀쩡할리 없다고 서둘러 확인해보는데.
          * 미도리야는 멀쩡한 다리로 착지한다. 에리도 무사히 품에 안고 있다. 원 포 올의 힘을 100% 끌어냈는데도 그의 몸은 골은 커녕 기존에 입었던 상처까지 나았다. 막연히 에리의 힘, 그녀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 아닌가 추측하는 순간 몸 속에서 잡아 당기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오버홀이 지상으로 몸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오버홀은 에리의 개성이 어쩌다 발동하긴 했지만 여전히 컨트롤은 못하는 거라고 지적한다.
          >대로 싫다.
  • 남창희(연예인) . . . . 4회 일치
         데뷔초 개그계의 엄청난 유망주로 뽑혔으나 근 18년째 터지지 않고 있다... 이젠 노망주라 불러도 될 정도. 운이 더럽게 없다. [[복면가왕]] 준비하다가 [[성대결]]이 왔고, 스포츠 예능에서 섭외가 오지 않을까 싶어 배드민턴을 배웠더니 발목골이 왔고 골프채널 섭외 가능성 때문에 골프를 배웠더니 손목골이 왔다고 한다(...)
         분명 웃기는 재주는 탁월하지만 도통 뜨지를 못하는 탓에 토크에 나가면 만년 조세호 서포터 역할이다.라디오스타에서 조세호가 밝히길 이젠 본인도 그게 자신에게 맞는 옷같다며 조세호가 포지션을 한번 바꿔보자 했는데도 거했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4회 일치
          * 이벤트 보상은 랭킹보상과 대점수 보상이 있다. 랭킹보상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점수 순위로 차등 보상이 이루어지며 이벤트 종료시점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다. 상위권은 3,4성캐릭, 중위권은 2성캐릭, 하위권은 은카드 보상으로 이루어져있다. 대점수 보상은 랭킹과 무관하게 이벤트에 참가하여 획득한 포인트에 따라 주어지며, 최종점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점수를 올려 일단 획득하고 나면 차후 패배하여 점수가 차감되더라도 무관하다. 낮은점수에서는 참가상 정도의 은카드와 소량의 ISO지만 보통 300점정도만 획득해도 금카드를 한장 주고, 그 이상부터는 히어로포인트나 3,4성캐릭, 상당량의 ISO를 제공한다.
         PvE이벤트의 보상도 마찬가지로 상대랭킹과 대 랭킹으로 이루어지는데, PvE이벤트는 짧게는 3일 길게는 7일정도의 기간으로 개최되며 해당기간 동안 얻은 포인트 전체를 합산하는 보상과 이벤트내의 서브 이벤트를 개별 산정하여 주는 보상이 있다.(보통 서브이벤트는 대점수 보상이 없다)
  • 무라하치부 . . . . 4회 일치
         추방이나 재산 몰수는 일정한 연한이 지난 뒤 해제될 수도 있었지만, 도나 상해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게 집행되었으며, 심지어 사형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무라의 자체적인 치안활동을 자검단(自検断)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벼농사 지상주의로서, 밭을 빌릴 땅을 찾으면 "자신들이 먹으려고? 파는 거야?"라고 물어보고 팔기 위해서라면 "쌀 이외는 대로 인정하지 않아."라고 거했다. 지금은 하우스 제배 파벌에 들어가 있지만, 벼농사 농가에서는 여전히 따돌림 당하고 있다.
         30가구의 모둔 주민에게 인사와 선물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다. 거주자는 현역 시은 기업의 부장급이었던 사람들 뿐으로, 남을 얕잡아보는 시선이 배어 있다. 시골에서 이런 괴롭힘을 받게 되다니.
  • 박경석(1933) . . . . 4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그후 박경석 소위는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한 번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사실 박경석 소위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내에서는 박경석 소위를 비롯한 많은 한국군 장교포로들을 해방군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고, 포로 생활도 도망가든 말든 자유로웠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은 포로 시을 회고하며, 포로로 잡힌 북한군 사단의 사단장이 적이었지만, 그의 리더쉽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함께 굶는 등의 리더쉽에 영향을 받아 뒷날 한국군내 정치군인이 판을 칠때도 그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군인으로써 군인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박두을 . . . . 4회 일치
         박두을은 [[1907년]] [[11월 8일]]에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 박기동의 4녀로 태어났다. [[박팽년]]의 후손답게 선비였던 아버지 박씨와 '교동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손에서 박두을은 엄격한 어린 시을 보냈다. 얼굴이 예쁘고 인심이 좋아 평소 '두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15세 되던 무렵 어느 날 에서 시주를 나온 한 스님으로부터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갑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라는 말을 하였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스님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이후 박두을은 [[1926년]] 20세에 [[이병철]]과 결혼하였다.
         {{인용문|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용문|아버지 집안이 [[의령군|의령]] 일대에서는 부자라고 했지만 굳이 비교해보자면 당시 [[달성군|달성]]에 있었던 외가 쪽이 더 부농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 어머니로부터 "시집이라고 왔더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수가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집안 어른들에 따르면 친가 쪽도 물론 3000석 지기에 가까울 정도의 부를 지닌 집안이었고 서원을 세울 정도의 성리학자셨지만 외가 쪽 지체가 워낙 높아서 '한쪽으로 기우는 혼사'였다는 말들이 있었다. 실제 어머니는 시집 올 적에도 몸종을 비롯하여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 박정민(배우) . . . . 4회 일치
         === 학창시 ===
         학력이 대단하다. 중학교 시 전교권에서 놀았고, 공짜로 오라는 학원을 골라다니면서 알 사람은 아는 유명한 명문기숙학교인 공주 [[한일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 진학 후 연출에 뜻을 품고 자퇴를 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퍼트 중후군을 가진 진태역을 맡았다. 연기를 위해 장애 아동들을 찾아가 행동을 배우고, 건드려 본 적도 없다던 피아노를 배워 촬영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등 열정이 돋보이며, 이 덕에 [[이병헌]]에게 찬사를 받았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동작은 실제 연기가 맞지만 연주 자체는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입힌 것이다. 영화 내에서 나오는 곡들은 초보자가 몇 개월 연습한다고 칠 수 있는 곡이 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염력의 경우 흥행에 실패했을 뿐더러 맡은 배역 또한 혹평을 받았다.
          * [[한화 이글스]] 팬으로 유명하다. 박정민의 언희에서도 "내 몸엔 주황피가 흐른다."~~신화창조~~고 말할 정도로 골수팬이며, 같이 영화를 찍은 [[박보영]]에게 가을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박보영은 받으며 "오빠, 아직 이른 것 같아요..." 했다고... ~~칰레발은 금물임을 잘 아는 뽀느님~~] 한예종 재학 시에는 고정닉까지 파서 야갤과 칰갤을 오가며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30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영화)|변산]] 홍보 기념으로 시구를 하며 성공한 한화팬이 되었다. [[한화 이글스/2018년/6월|그리고 이 날 경기는...]]
  • 박종윤 (1993년)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대구고 시에 타자들을 상대로 작은 키지만, 좋은 피칭을 보였다.
         ==[[넥센 히어로즈]] 시==
         ==[[상무 야구단]] 시==
  • 베스타 . . . . 4회 일치
         화로를 수호하는 베스타의 여사제들은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으며 국가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베스타의 여사제들은 정을 지킬 것을 요구되었다.
         상위 여사제였던 그녀는 새로 들어온 여사제에게 성화를 돌보도록 맡겼으나, 새 여사제는 그만 불길을 꺼뜨리고 말았다. 사제들은 아이밀리아가 정을 잃을 행동을 했는지 조사하게 되었는데, 아이밀리아는 제단에 손을 얹고 베스타 여신에게 자신이 30년 동안 성스러운 의무를 다했으니 기적을 일으켜 자신의 정을 인정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의복의 일부를 찢어서 식은 재에 집어던지자 커다란 불길이 솟아났다.
         아이밀리아처럼 정을 잃었다고 의심을 받았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겠다고 한 다음, [[티베르 강]]까지 걸어가서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한 다음, [[체]]로 물을 떠서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고 여신의 옥좌까지 가지고 갔다. 혹은 로마 광장까지 가지고 갔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4회 일치
          * 노엘이 안 못하면서 카호노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카호노는 아스타에게도 "노엘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데, 그때 일행이 하층민의 미아를 발견한다.
          * 난데없이 더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키아토]]는 멋대로 동생 [[카호노]]가 오빠를 위해 벌이는 이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복심은 따로 있었다. 척봐도 관계 진전이 미적지겋나 [[노엘 실버]]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자극하기 위한 이벤트다. 의도대로 노엘은 카호노가 아스타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안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스타는 더블 데이트가 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4회 일치
          * 어린시 [[핀랄 룰러케이트]]는 부모님의 냉대와 매도를 당하며 불우한 시을 보냈다. 동생 [[랜길스 보드]]는 형이 경쟁상대 조차 못 된다고 여겼다.
          * [[핀랄 룰러케이트]]의 유년시은 부모님의 매도로 가득했다. 어머니에게 핀랄은 자식 조차 아니었다. 그는 동생 [[랜길스 보드]]와 비교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 정도였다. 공부든 운동이든 랜길스가 월등한 것에 만족하며 핀랄은 자기 자식 조차 아니라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자식은 오직 랜길스 뿐. 그런 말을 핀랄의 면전에서 하는 말이었다.
          얼마 뒤 랜길스는 형과 약혼자가, 피네스가 함께 있는 걸 목격한다. 정원의 벤치에서였다. 피네스가 핀랄에게 "병들고 연상인 이런 여자가 약혼자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시 핀랄은 아직 여자가 서툴렀는지 우물쭈물대며 "그렇지 않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조하는 웃음과 함께 자기 처지를 말했다. 자신은 보드가 당주가 되지 못할 거고, 동생 랜길스가 피네스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얘기였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4회 일치
          * 잭스의 본명은 "조라 이데아레"였다. 어린 시의 조라는 내성적일 뿐 평범한 하층민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 "자라 이데아레"는 아들에게 장난치는걸 좋아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봉사정신이 있어서 남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마법기사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 시엔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사례가 없었고 입단 시험에서 몇 번이나 탈락하는 고배를 마신다. 아버지는 포기를 모르는 도전 끝에 "하층민 최초의 마법기사"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소속은 자줏빛 범고래단. 아버지의 그러한 정신은 어린 조라의 자랑이었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린시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상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상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억울하게 죽었지만 사실 굉장한 사람. 작중에서 "최초의 하층민 출신 마법기사"로 명시되어 있다. 마법기사는 귀족만 되는게 당연한 시에 편견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는 말이니 상당한 실력자였을 걸로 보인다.
  • 샬롯 링링 . . . . 4회 일치
         분노한 샬롯을 달래기 위해 [[타마고 남작]] 이 제안한 거래도 거하고[* [[유스타스 키드]]가 빅 맘 해적단의 산하 해적선 2척을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막대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루피 일행이 가진 보물을 전부 넘겨주는 대신에 사탕 공급은 2주 기다리자고 한 것. 허나 '''"원하는걸 타협하는 해적이 어딨냐!"'''며 단칼에 거했다. 파파구는 빅 맘이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으나 딱히 나쁘지않은 거래를 거한 건 상대방의 뜻대로 되는 거래를 샬롯 링링이 싫어하기 때문인 듯.] 결국 수틀린 [[몽키 D 루피]]에게 어인섬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을 받았다.[* 루피 曰 '''"너는 이 섬을 지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원문은「危なっかしい」단순히 위험하다는 뜻 보다는 위태스럽다거나 아슬아슬하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로, 단순히 샬롯 링링이 위험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너같이 기분따라 섬 하나 작살낸다 만다 하는 인간한테 맡겨두자니 안심이 안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상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남아있던 사람은 상디(부상 입은 상태),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반 이상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상황인 판이다.
  • 송병구 . . . . 4회 일치
         === 전성기와 결승에서의 잇따른 좌 ===
         대한항공 스타리그 Season 2 2010에서 16강 2승 1패 8강 2:0으로 4강에 진출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송병구는 비록 이제동에게 탈락했으나 2:3으로 선전을 펼쳤다.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는 제 2의 전성기라 불릴 정도의 기량을 맞이하며 단숨에 결승까지 진출하였고 스타리그 테란전 10연승이라는 기록도 작성하였으며 10-11시즌에서는 2라운드부터 회복세를 보여 3라운드 위너스리그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다. 피디팝 MSL에서는 8강까지 진출하며 전성기 시을 연상케 하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피디팝 MSL 8강에서 김명운에게 0:3 셧아웃을 당하며 탈락하였고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에서도 정명훈에게 0:3으로 패배하며 여전히 큰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보여주며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
         비록 팀은 접전끝에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그쳤고 결승전 진출이 좌됐지만 송병구는 2012년에 들어서며 자유의 날개와 병행된 프로리그에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송병구가 ‘대형신인’으로 주목받던 시 유독 홍진호에게는 약한 모습이었다. 데뷔 당시 송병구는 CYON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차기 스타리그에 4번 시드로 직행하게 되었는데,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우승자 출신 선수를 지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EVER 2005 스타리그에서 준우승 이력만 가진 홍진호를 지명했다. 이후 펼쳐진 16강에서는 송병구는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되며, 16강 재경기에서도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된다. 또, 홍진호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 24강에서 송병구를 제압하고, 이 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직후 진행된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F조 패자전에서 홍진호를 제압하면서, 이 패배로 홍진호는 예선으로 추락했고 지금까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 송주훈 . . . . 4회 일치
         광명공고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입학해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이후 [[J리그]]로 진출하여 2014년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최초로 입단했으나, 한국 대표팀 소집 훈련 중 턱 부상을 당해 큰 수술을 했고 이후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2경기 출장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http://cafe.naver.com/jliga/24009|다리 골]]이라는 중상을 입으면서 전치 3개월 판정을 받았고,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팀의 배려로 재활과 출전 기회 획득을 위해 [[J2리그]]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되었다.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된 송주훈은 재활을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뛰게 되었으며, 시즌이 개막한 후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경기 (19경기) 풀 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넣는 등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고, 2016년 [[J2리그]] 선수들 중 공중볼 점유율 1위 선수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국을 앞두고 FC 기후와 가졌던 7월 16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의 경합 도중 새끼발가락 골상[* 발가락이 완전히 부러져서 수술이 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송주훈 본인도 올림픽 직전에 당한 부상이라 충격이 상당했다고.]을 입어 다시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 [[부상]]이 잦은 편이다. 리그에서 당했던 다리 골과 새끼발가락 골은 물론, U-23 선수권 대회에서도 코 부상으로 사진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던 적이 있고, 알려지지 않았던 손가락 부상도 있었다. 경기 도중 상대 선수에게 손가락이 밟혀 손가락에 금이 갈 정도로 부상을 입었었지만 티내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고 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4회 일치
         알렉스는 카라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윈에게 DEO 메인프레임을 해킹해서 아버지에 대한걸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윈은 위험한 일이라 거하려 하지만, 결국 승락하게 된다.
         그랜트는 카라가 바로 오지 않자 고함을 지르는데, 카라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분노를 퍼붓는다. 그랜트는 갑자기 어디로 가자고 카라를 끌고 간다. 알렉스는 레드 토네이도의 팔을 맥스웰 로드에게 가져와서, 찾는데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맥스웰은 알렉스의 요청을 거한다. 제임스는 루시, 레인 장군과 식사를 가진다. 레인 장군은 지미를 파파라치라고 비하하며 딸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대라고 깍아내린다.
         그랜트는 카라를 바에 데리고 온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분노를 조하고 풀어내는걸 알아내고, 정말로 화나는게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조언을 해준다. 제임스와 루시, 레인 장군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오는데 레드 토네이도가 나타난다. 루시는 레드 토네이도의 공격에 날려가고, 레인 장군은 중지를 명령하지만 레드 토네이도는 듣지 않고 공격을 하다가 제임스의 호출을 받고 날아온 슈퍼걸과 대결하게 된다.
         루시는 군법무관을 사임하고 제임스와 함께 하는걸 택하고, 아버지와 같이 가지 않겠다고 거한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4회 일치
          * 에리나는 어린시 요리에 아무런 정열도 없던 시 이야기를 꺼낸다.
          * 그러나 "나키리" 가문의 일원이라는 사명감 때문에 시식을 거도 못하고 묵묵해 되풀이하는 에리나.
          * 그래서 수많은 요리를 접하면서도 아무런 감흥도 보람도 없이 맛에 대한 망만 쌓여갔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4회 일치
          * 타쿠미와 타도코로는 대체 그들의 학생 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한다. 이미 그들을 말려들게 한 탓인지 도지마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사진은 3학년일 때의 자신과 죠이치로, 그리고 1학년이던 아자미가 찍혀 있다. 도지마는 이 사진을 보이며 "우리 세대의 주역은 죠이치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대의 십걸 1석은 도지마. 타쿠미는 그 점을 들어 도지마야 말로 그 세대의 정점이 아니었냐고 묻는다. 그런데 도지마가 놀라운 사실을 공개한다.
          * 그들이 아직 2학년 시. 죠이치로가 또 바깥에서 일어난 분쟁 이야기를 끌고 온다. 죠이치로는 다른 연구회에서 일어난 분쟁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식극에 참여, 최종적으론 자기들의 영역을 넓히는 괴팍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지마는 그가 그런 결과적인 것 보단 승부에 끼어드는 거 자체를 즐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승부를 즐기는 편이어서 결국 또 식극이 일어나게 된다. 후배이자 같은 기숙사였던 [[시오미 준]]도 거하는데도 얼렁뚱땅 끌어 들인다.
          * 소마와 죠이치로 사이에서도 그 시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죠이치로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라 말하면서도, 결국 고3 시기에 스스로 중퇴하고 학교를 나오게 된다. 소마는 그 이유를 묻는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4회 일치
          * 그런데 마지막 멤버로 연락했던 메기시마는 단칼에 거, 순조롭게 멤버를 모으던 소마팀에 걸림돌이 된다.
          * 메기시마는 그녀의 조리가 예상한 대로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들은 린도가 발끈한다. 메기시마는 린도가 깔끔하게 잘 차려진 고추요리를 할리가 없으니 당연히 문답무용으로 대량 투입할 걸로 예상했고 그래서 이쪽도 같은 "파워플레이"로 맞서는 거라고 말한다. 린도는 "나에 대해 다 안 다는 듯이 말한다"고 성을 내지만 곧 히죽거리며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인정하고 만다. 곧 그녀는 놀라운 박력으로 철냄비를 휘두르며 기름에 고추를 볶는다. 한편 메기시마는 준비한 고추를 구로 빻아 페이스트 상태로 준비. 모두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데 느껴진다. 소마는 이들의 싸움을 "초중량급의 싸움"이라 묘사한다.
          >거한다.
          단칼에 거하는 메기시마. 소마와 메구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썰렁해진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4회 일치
          * 메구미가 합숙 시에 호되게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특훈을 하긴 커녕 긴장해서 도저히 교육을 소화하지 못한다.
          * [[타쿠미 알디니]]가 그가 어떻게 홋카이도에 있냐고 물었다. [[도지마 긴]]의 섭외였다. 도지마는 지금까지는 팀워크 강화 훈련을 했으니 이제 개별훈련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연대식극은 팀원 간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역량이 필요한 시점도 분명 온다. 지금부터 죠이치로, 도지마, 시노미야가 각각 1학년 삼총사를 맡아 맨투맨 학습에 들어갈 것이다. 소마는 물론 죠이치로, 타쿠미는 도지마. 마지막은 당연히 [[타도코로 메구미]]와 시노미야다. 메구미가 다소 어리둥한 채로 대화에 따라가지 못하자 시노미야가 직접 선언한다.
          타쿠미도 풀스포르 훈장 수여자인 그가 도움을 준다는 자체에 경악했다. 소마는 물론 대환영. 자기 가게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 헌신해준다고 감동에 겨워한다. 시노미야는 "잠깐의 변덕"이라고 말하지만 소마가 제대로 들을 리 없다. 이렇게 잘 풀려가는 것 같은데, 도지마는 뭔가 걸리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마가 "잘 됐다"고 축하하면서 보니, 메구미는 사색이 된 채 오돌오돌 떨고 있다. 합숙 시 시노미야에게 당했던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플래시백하고 있던 것이다. 이래서는 특훈은 커녕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무리 같은데. 과연 이 난관을 메구미와 시노미야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몇 시간 뒤. 결국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시노미야는 반쯤 좌했고 메구미는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느라 특훈은 진전이 없었다. 덤으로 타쿠미와 소마는 휴식시간마다 메구미조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진전은 요원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4회 일치
          영국 장교. 상인에게서 보호비를 뜯고, 도둑질도 좀 해보고, 훔친 물건도 팔아보고, 원주민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아치우기도 하는 양반. 개인적인 조수로 "단마"[* 무언가를 자르기 좋아해서 붙은 별명. 주로 인간의 신체를 자르는걸 좋아했다.]를 데리고 있다. 보호비를 뜯어내기 위해 처치를 납치했다. 이후 모호크의 협조가 필요했던 헤이덤 일당에게 붙잡아 두었던 노예들을 모두 털리고 처치의 손에 죽는다.
          의사. 헤이덤의 네번째 조력자, 템플기사단원. 헤이덤과 찰스 리가 도움을 얻기위해 찾아갔을 때는 사일러스 대처에게 납치당한 상황이었다. 대처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다고 저항하다가 대처와 단마의 대화[* 단마 "의사일을 하지 못하게 손을 잘라버릴까요. 떠들지 못하게 혀를 잘라버릴까요. 아니면 우릴 엿먹이지 못하게 좆을 잘라버릴까요." - 대처 "고르기 어려운데. 그냥 다 해."]에 즉각 비굴해지는게 일품. 그렇게 어디 한구석이 잘리기 직전에 헤이덤과 찰스 리에게 구출된다.
          농부 부부. 왕당파의 협조를 거해 탄압받던걸 코너가 구해주며 알게되었다.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 듯.
  • 영주시 . . . . 4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영주역]]에서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철도청]] 시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2013년 현재는 코레일 경북본부)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노후되고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는 철도가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여론도 높아진 상태다.
         원래는 영천군(榮川郡)이었다. 영천군 시의 역사는 [[영천군]] 참조.
          * 삼정승고택([[정도전]] 생가 복원 건물)과 구 도립도서관 사이 강둑에 [[박정희]] 기념식수가 있다. 대통령 취임 전에 와서 심은 거라 "장군" 기념식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과거 1961년 영주에 집중[[호우]]로 인한 대[[홍수]]가 나서 피해복구를 위해 군인들이 동원되었을 때 함께 참가했기 때문. 현재의 제민루가 있는 언덕과 시립도서관이 있는 산 사이(그리고 구성공원까지)는 원래 연결되어 있었으며, 서천 물길을 돌리는 직강공사를 하면서 개 및 발파되었다. 그 때의 흔적으로 강바닥에 다른 곳에는 없는 바위가 드러나 있다. 현재의 나무는 처음 심었던 나무가 말라죽자 1979년에 다시 심은 것이다. 관련글: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931|#1]][[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226.010140730260001|#2]][[http://blog.daum.net/shgh1225/8762740|#3]]
          * [[우병우]] :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엄밀히 말하자면 출생지가 [[경상북도]] [[봉화군]]이므로 '''영주 출신은 아니고''', 초(?)중(영주중학교)고(영주고등학교) 유년기 학창 시을 영주시에서 지냈다.
  • 오정환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아 활약했다.
         ==[[KIA 타이거즈]] 시==
         * [[자양중학교]] 재학 시 사촌 형인 [[오지환]]의 경기에 시구를 한 적이 있다.
  • 오지훈 (1973년) . . . . 4회 일치
         * [[김지훈 (1973년 5월)|김지훈]] - 오지훈과는 고3시 부터 같이 밴드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투투 (음악 그룹)|투투]]"에서도 구성원으로 활동하였었고 이후 오지훈은 "[[듀크 (음악 그룹)|듀크]]" 시에 이르기까지 김지훈과의 [[음악 프로듀서|음반 프로듀싱]] 작업을 동반하였다.
         * [[유현재]] - 오지훈의 [[서운중학교 (서울)|서울 서운중학교]] 동기 동창으로 학창시부터 같이 밴드 활동을 하였다. 유현재는 "[[투투 (음악 그룹)|투투]]" 시에 같이 구성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오지훈과 "YAB"의 구성원으로도 같이 활동하였다.
  • 오태곤 . . . . 4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 시==
         ==[[경찰 야구단]] 시==
         ==[[kt 위즈]] 시==
         이 응원가는 [[롯데 자이언츠]] 시부터 이용하던 응원가였고, 선수 본인도 응원가가 맘에 들어 계속 쓰는 것을 원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장 조지훈과 [[kt 위즈]]의 응원단장인 김주일의 서로 합의하에 이적 후에도 계속 응원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4회 일치
          블라즈코윅즈의 동료. 스코틀랜드 고지대 출신으로 어린 시을 어렵게 살아와서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16세 때 부터 글래스고 조선소에서 일했으나 30년대 일어난 경제 공황으로 정리해고 당했다고. 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 기술자로써의 훈련을 받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어린시을 가난과 아동학대속에서 지났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켈러의 아버지는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그러자 켈러는 지역 친위대 사무소에 들어가 아버지가 레지스탕스와 연관되었다고 제보, 자신의 가족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고 데스헤드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켈러는 데스헤드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다.
          * 레이저 단기
          철조망이나 쇠사슬을 자를 수 있는 단기. 사용 모드에 따라 레이저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사용시 배터리가 소모되므로 충전을 열심히 해야한다.
  • 원피스/839화 . . . . 4회 일치
          * 니디는 상디를 도발하나 상디는 그런것 보단 음식을 깨작거리는 니디의 식탈 예을 신경쓴다.
          * 이들이 빅맘과 연루된 이상 세계정부도 그들을 적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 그러나 저지는 "그 대신 얻게 될 힘"은 대적이라며 "제르마는 변한다"고 말한다.
          * 니디는 그제서야 자기 식사예을 지적하는걸 깨닫고 "남길 거다"고 말한다.
          * 상디는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기할 때까지 두들겨 패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 원피스/844화 . . . . 4회 일치
          * 나미는 상디를 말려보려고 하지만 루피가 이것은 결투라고 말하며 거하고 상디는 기어이 루피를 때려눕힌다.
          * 상디는 망설임도 없이 루피를 걷어찬다. 안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루피는 멀리 날아간다. 상당한 거리를 날아가다가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앞니가 빠졌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라 타격이 적지 않다. 상디는 싸울 자세를 취하거나 돌아가라고 하지만 루피는 모두 거한다. 그러자 상디는 언제나 고집불통이었다고 다시 공격하는데 루피는 피하지도 방어하지도 않고 때리는대로 맞고만 있다.
          * 나미는 상디를 설득해서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루피는 단호하게 막으며 이것은 결투라고 선언한다. 상디는 자기 시야 밖으로 사라지라고 몇 번이나 공격을 거듭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루피의 승낙을 받을 수 없다. 얻어맞기만 하는 루피를 볼 수가 없어서 나미는 이제 돌아가겠으니 그만두라고 하지만 루피는 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하는 이상한 결투가 계속되고 처음 발라티에에서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우솝과 결별했던 에니에스로비편하곤 전혀 다른 전개가 아니냐고 까이기도 하는데 당시엔 메리호의 처우를 놓고 루피 자신도 심란했던 시기이며 2년 후인 현재에 비해서 미숙한 시이기도 했다. 게다가 사실 루피 본인은 당연히 우솝과 화해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부선장인 조로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던 부분도 크다.
  • 원피스/873화 . . . . 4회 일치
          * 빅맘이 루피를 쫓아가고 난 뒤 페로스페로는 루피가 어찌되든 자신은 확실히 죽는다고 망하는데, [[샬롯 푸딩]]이 구원의 손을 내민다.
          결과적으론 반의 성공, 혹은 반의 실패. 생각지도 못한 제약이 걸렸다. 하지만 페로스페로가 다른 걸 시도할 시간도 없이, 빅맘은 제우스를 타고 루피를 쫓기 시작했다.
          잠시 뒤, 킹 바움은 또다시 나미에게 지배 당하는 신세가 됐다. 일행을 태우고 그대로 유혹의 숲으로 직진. 그 바람에 레이디 트리와는 눈물을 삼키며 헤어졌다. [[샬롯 로라]]가 준 비브르 카드를 뺏긴 줄만 알았는데, 나미는 그걸 반으로 쪼개서 하나는 잘 보관하고 있었다. 유혹의 숲의 주인인 킹 바움만 데리고 있으면 그 숲도 무사통과, 나미의 약정신이 빛을 봤다.
  • 원피스/876화 . . . . 4회 일치
          * 상디는 그들이 잘 버텨줄 것과 루피 일행이 제때에 도착할 걸 믿으며 자신은 빨리 쇼콜라 타운에 도달해 빅맘을 기시킬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겠다 다짐한다.
          달리는 동안 자길 죽이려 한 여자라는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푸딩의 상태도 비슷비슷했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자 세 개의 눈이 하트를 띄우며 혼할 지경이었다. 그때 빅맘이 완전히 땅 위로 올아오지 않고 시폰이 옆에서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챙긴 푸딩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다. 아주 사악한 얼굴로.
          * 동요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상디가 시폰에게 작업장소를 물었다. 시폰은 쇼콜라 타운을 골랐다. 거기에 모든 재료가 있었다. 완성된 케이크는 배로 옮길 생각이었다. 루피 일행은 빅맘을 바다까지 유인해야 한다. 그녀가 바다 한 가운데서 고립될 수 있도록. 바다에는 빅맘 해적단의 해상병력도 대기하고 있어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그들이라면 버티리라고 시폰은 믿었다. 이걸로 작전 브리핑은 끝. 작전 개시다. 상디도 라비앙으로 옮겨가려. 같이 쇼콜라 타운으로 가야하니까. 그런데 푸딩이 거기서 당황해버렸다. 손사레까지 쳐가며 거하는 푸딩. 그때 후방에서 빅맘이 "위국"을 쓰기 위해 나폴레옹을 치켜들고 있었다. 일행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둘로 갈라졌다. 쇼콜라 타운으로 향하는 상디, 시폰, 푸딩 일행과 써니호로 향하는 나머지 일행. 상디와 루피는 바다 위에서 다시 만날 걸 기획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만들자고! 빅맘이 기할 정도의 케이크를!
  • 원피스/879화 . . . . 4회 일치
          * [[징베]]는 일행을 질타해 "앞으로 나아가라"던 페드로의 말을 상기시키고 토트랜드를 벗어나는 순간까지 대 방심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명의 순간이었다.
          지난 화에서 페드로가 자폭하면서 [[샬롯 페로스페로]]가 걸어놓았던 사탕 코팅이 벗겨진다. 좀 어리둥한 상태였던 듯 한데, 나중에 전말을 전해듣고 오열하며 자책한다. 자기가 더 강했더라면 페드로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브룩을 따라서 [[쵸파]], [[캐럿(원피스)|캐럿]]도 통곡하면서 써니호는 탈출하던 것도 잊다시피 했는데 [[징베]]가 호통을 쳐서 작업에 복귀 시킨다. 처음에는 징베가 너무 매정하게 군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가 페드로의 의지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줄 깨닫고 탈출작업으로 복귀한다. 쿠드 버스트로 소모된 콜라를 채우러 가는 중.
  • 원피스/881화 . . . . 4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이 소울을 부여한 거대 파도가 써니호를 덮친다. 파도 위에 파도타기하듯 올라탄 빅맘.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대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망에 빠진다. 거울 조각으로 대화 중이던 [[몽키 D. 루피]]는 당황하나 손쓸 방법이 없다. [[쵸파]]가 쿠 드 버스트를 써보자 제안하나 [[브룩]]이 콜라가 부족해서 무리라고 답한다. [[캐럿(원피스)|캐럿]]은 그대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모처럼 살려준 목숨이 쓸모없게 됐다며 [[페드로(원피스)|페드로]]에게 용서를 빈다.
          * 모두가 망하고 있을 때 [[징베]]가 방법을 찾아낸다. 징베는 돛 하나를 밧줄로 연결해 조타수 노릇을 하면서 돛까지 조종한다. 징베의 목적은 "그린룸". 나미는 그게 뭔지 아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 하고 나머지 일행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징베는 설명보단 과감하게 행동에 돌입, 파도가 들이치는 순간 그 속으로 돌진한다.
          * 그린룸이란 거대한 파도가 휘감기는 순간 생기는 파도 속 공백지대, "파도의 방"이다. 어인족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곳. 징베는 그곳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일행은 어리둥하다. 징베는 멋진 배와 멋진 항해사가 있으니 조타만 좋다면 이 배는 무적이라며 그대로 그린 룸을 타고 파도를 가른다. 나미는 이만한 배를 수족처럼 다루는 징베의 조타 솜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무사히 항해를 계속하는 써니호. 하지만 빅맘 측은 써니호가 완전히 삼켜져 침몰했다고 착각한다. 빅맘이 파도를 일으켰을 땐 당황했던 페로스페로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그는 그 소식을 전보벌레도 빅맘 해적단 전체에 전달한다.
          쓰나미가 닥쳤을 때는 망했지만 징베가 놀라운 솜씨로 파도를 헤쳐나가자 부활. 위기를 돌파한 뒤에는 "카타쿠리에 집중하고 싶다"던 루피의 말에 따라 배의 모든 거울을 깨뜨린다. 어떻게든 하겠다는 루피에게 실제론 아무 대책이 없다는걸 알고 10시간 뒤 카카오섬에 도착할 테니 거기로 연결된 거울을 찾으라고 이른다. 루피가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벌써 도착했다고 말하는데 거짓말이라는걸 눈치채지 못한다.
  • 유인촌 . . . . 4회 일치
          *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남동생은 [[성직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다. 2013년부터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근거리에 모시는 요직인 보좌주교를 담당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막 신부가 됐을 적에, 배우 유인촌의 동생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m.pbc.co.kr/paper/view.php?cid=490221&path=201312|기사]]. 형제의 정치적 성향은 다른데, 유인촌이 보수정권 하에서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보수성향이고, 동생 유경촌 주교는 카톨릭 내에서 진보적인 인사로 사회교리를 전공하였고, [[신부(종교)|신부]] 시에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 전공 교수를 역임했다. 유인촌 본인은 [[이명박 정부]] 시에 [[개신교]]([[장로회]])를 잠시 믿었다가 이후에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 후인 2015년 11월 22일에 논현2동 [[성당]]에서 동생인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로부터 [[견진성사|견진]]을 받았다. [[http://rose6217.blog.me/220557780401|같이 견진 받은 사람의 대모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박인환]]과 [[이형석]]과 더불어서 견진을 받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완전한 [[개종]]보다는 개신교 신자인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잠시 붙어다니다가,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대우전자]] - '탱크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밀던 시 배순훈 당시 대우전자 사장과 광고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 은혼/596화 . . . . 4회 일치
          * 사정을 알리 없는 시민들은 양이전쟁 시처럼 천인들에게 고통 당하며 숨죽이고 살고 있다.
          * 그 바람에 손에 닿을락 말락했던 동전이 다시 멀어지자 규하는 마다오.
          * 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며 손을 뻗는다.
          * 마다오의 망.
  • 은혼/599화 . . . . 4회 일치
          * 사이고는 과거 양이전쟁 시의 경험으로 만만찮은 싸움이 될 것임을 예견한다.
          * 간만에 개그와 시리어스가 적하게 분배된 에피소드
          * 노부노부의 선역화는 이런 상반된 평가를 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사이고가 양이전쟁 시 지로쵸를 언급. 역시 재등장 떡밥으로 보인다.
  • 은혼/600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안 못하는 노부노부의 태도를 놓고 공포에 떨고 있다고 판단, 강한 어조로 주장을 되풀이한다.
          * 그러나 의심할 겨를도 없이 노부노부가 쭈그려 앉아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빨리 여기서 도망가라는 규와 함께.
          * 다급해진 해방군은 노부노부를 구속하려 시도하지만 외부 자극으로 인해 노부노부가 가스를 분출하면서 병사들을 기시킨다.
  • 은혼/611화 . . . . 4회 일치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상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상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상 황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상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상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해방군이 무력화되며 활로가 뚫린다.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선봉으로 치고 나가며 해방군을 무찌른다. 진선조와 오니와반슈도 기세를 올리며 거침없이 돌격한다. 겐카이포 덕에 기계가 내장된 총기까지 전부 무력화되었으며 재정비가 되지 않은 해방군을 상대로 쾌진격이 가능했다. 진선조 대원들은 겐카이 영감이 정말로 세상의 반을 구했다고 칭송한다. 하지만 사루토비 아야메는 타마가 희생했다는걸 알기 때문에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핫토리 젠조는 모처럼 죽을 각오를 했는데 묘한 기대를 갖게한다고 툴툴댄다.
          * 3대 용병민족 중 하나인 다키니는 이 과정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군 본진과 단된 걸 기회삼아 얼렁뚱땅 전군 지휘를 자처한다. 다키니의 리더 오우가이는 지구인들이 재미있는 짓을 해줬다고 좋아하는데, 현재의 전장이 기계 위주가 되면서 시시해졌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덕분에 과거의 "멋진 전쟁"으로 돌아갔다며 병기라면 "훼괴전차"라 불린 자기 자신들이 건재하다고 투지를 과시한다.
          * 오우가이는 병사들을 모아서 병기는 못 쓰게 됐지만 적도 마찬가지며 병력 자체는 자신들이 압도적이라고 교시한다. 그리고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파괴하고 본대와 통신을 복구하는걸 목표로 하여 진격을 명령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부키쵸를 향해 진격하게 되는 셈. 해결사 일행은 이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구라와 신파치는 가부키쵸의 동료들을 걱정하는데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정도는 가부키쵸에서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본진과 단된 이상 해방군의 행동은 정해져 있던 셈이고 가부키쵸에서는 그걸 감안해서 미끼역을 자처한 것이다. 핫토리는 전쟁에서 중요한 점은 적의 행동을 먼저 아는 것이라 강조하고 곤도 이사오는 에도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 파괴를 하던 해방군이 뚜렷한 목표로 일정한 작전을 수행하게 됐으니 오히려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때라고 말한다.
  • 은혼/636화 . . . . 4회 일치
          * 목숨이냐 금구슬이냐, 명의 선택지에서 그가 택한 방법은 양쪽 다 살리는 것. 그는 기공을 금구슬에 집중, 거대화한 금구슬을 휘감아 대방어를 구축한다.
          * 그러나 지나치게 방어에 의존한 금구슬의 비대화 때문에 기동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다. 가구라는 그의 대방어를 가볍게 걷어차 건물 밖으로 날려보낸다. 자유낙하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금구슬. 남매는 긴 싸움 끝에 마지막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 은혼/646화 . . . . 4회 일치
         [[은혼]] 646훈. '''망보다도 비대한 녀석'''
          * 엔쇼의 패배. 분노의 규를 터뜨리는 엔쇼 앞에 다카스기가 다가간다.
          >어떤 망 속에서도 포기하는 걸 잊게 해버리는
          그 규 앞에는 어느새 다카스기가 있었다.
  • 이근택(1865) . . . . 4회 일치
         [[1905년]] 당시 군부대신(지금의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 시 [[을사조약]]에 지지를 표명했다.
         ||<름발이 떠돌이>
         남도땅 룩 떠돌다가
  • 이민호(1987) . . . . 4회 일치
         == 아역, 단역시 ==
         그 후 [[송지나]] 작가의 [[신의(드라마)|신의]]에 출연하여 깊은 눈빛과 도 있는 액션 연기로 신의있는 젊은 [[최영]]의 모습을 표현해 2012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10대 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만 남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점점 캐릭터와 밀착되는 모습을 보였고 [[송지나]] 작가도 이민호는 [[최영]] 그 자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http://view.heraldcorp.com/view.php?ud=20121021000320|기사]].]
         연기 실력이 탄탄하지 않은 채 많은 작품을 소화하는 몇몇 배우들과 달리 신중하게 자신의 작품을 고르고,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왔고 무명 시부터 다양한 배역을 경험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정일우]]와 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 이병규 (1983년) . . . . 4회 일치
         ==[[LG 트윈스]] 시==
         ==[[롯데 자이언츠]] 시==
         * [[LG 트윈스]] 시 - 원곡은 '달빛창가에서'의 후렴구이고 가사는 '오오오 [[이병규 (1983년)|이병규]] [[LG 트윈스|LG]]의 [[이병규 (1983년)|이병규]] 안타! [[LG 트윈스|LG]]의 [[이병규 (1983년)|이병규]] [[이병규 (1983년)|이병규]] 안타를 날려라 안타!'이다.
         [[LG 트윈스]] 시 [[이병규 (1974년)|이병규]]와 구별짓기 위해 '작은'이라는 뜻의 '작뱅',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LG 트윈스]] 감독이었을 때 '작뱅'이라는 별명이 위축된다고 '빅뱅'이라고 불렸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롯뱅'이라고 불린다.
  • 이보희(배우) . . . . 4회 일치
         이보희의 어린 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던 [[이장호]] 감독의 작품에 고정출연하다시피 했다. 애초에 조진원이라는 예명으로 무명 시을 보낸 중, 감독 이장호의 눈에 띄어 '일송정 푸른 솔에'(198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사회고발적인 성격으로 화제작이 된 이장호의 '[[바보선언|바보선언(1983)]]'에서 가짜 여대생 역으로 유명해졌다. 이보희라는 예명도 이장호 감독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어 준 것이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가 '''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이 것.'''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안습-- [[김재박]] 항목 참조. 1959년생인 이보희는 박정희정권의 한글전용정책의 일환으로 학교교육에서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초반까지 신문 등의 활자매체는 한자단어는 한자로 표기하고 조사나 순우리말 정도만 한글로 썼으므로 몰랐다는게 조금 무식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이보희처럼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은게 아닌, 한자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 김재박의 이름을 한자로 써주고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달려라 울엄마' 촬영 시에 촬영에 여유가 생기자 당시 신혼여행으로 현 남편과 [[파타야]]에 갔다고 한다.
  • 이상민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NC 다이노스]] 시==
         ==[[넥센 히어로즈]] 시==
         ==[[경찰 야구단]] 시==
  • 이상훈 (1987년) . . . . 4회 일치
         ==선수 시==
         ===[[한화 이글스]] 시===
         ===[[삼성 라이온즈]] 시===
         ===[[kt 위즈]] 시===
  • 이성민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NC 다이노스]] 시==
         ==[[kt 위즈]] 시==
         ==[[롯데 자이언츠]] 시==
  • 이장희 (시인) . . . . 4회 일치
         [[1924년]] 《[[금성 (잡지)|금성]]》 3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 〈새한마리〉, 〈불놀이〉, 〈무대〉,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 작품과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신민》,《생장》,《여명》,《신여성》,《조선문단》등 잡지에 〈동경〉, 〈석양구〉, 〈청천의 유방〉, 〈하일소경〉,〈봄철의 바다〉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요하였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으며, 사후 [[1951년]] 백기만이 청구출판사에서 펴낸 《상화와 고월》에 시 11편만 실려 전해지다가 제해만 편 《이장희전집》(문장사, 1982)과 김재홍 편 《이장희전집평전》(문학세계사, 1983)등 두 권의 전집에 유작이 모두 실렸다.
         정우택은 비속한 현실에 맞서 대 자유, 대 자아의 순전함을 추구했던 이장희의 삶은 곧 그의 시라면서 그의 미적 태도를 '미적 근대성의 자기 파괴적인 양상'으로 명명하였다. 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장희는 근대적 주체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대적인 지점까지 추구했던 시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ref>정우택, 〈고월 이장희 시 연구〉, 《민족문학사연구》21권, 민족문학사학회, 2002, 216쪽</ref>
  • 이진만 (1675년) . . . . 4회 일치
         [[1675년]](숙종 1)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났으며, 도촌 [[이수형 (1435년)|이수형]](李秀亨)의 8대손이고 성균관전적을 지낸 취사 [[이여빈]](李汝香+賓)의 4대손이며, 노인직으로 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이기정(李基定)의 아들이다. 동생으로는 이진화(李鎭華), 이진방(李鎭芳), 이진영(李鎭英) 등이 있었다.
         [[1699년]](숙종 25) 문과(文科)에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였으나 시험 문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합격이 취소, 파방되고, 왕명으로 다시 시험에 응시하게 하니 이것은 선비가 취할 길이 못된다고 거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문을 올린 뒤 낙향하였으며, 이때부터 벼슬길을 단념하고 [[성리학]](性理學)과 도학(道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식년시 진사 3등 53위로 합격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비판하는 상소 외에도 [[단종]] 때의 충신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충을 설명하며 [[금성대군]]의 사우(祠宇)를 나라에서 창건해 줄 것을 상소하였고, 세종 때의 천문학자인 문공(文節公) [[김담]](金淡)을 모신 단계서원(丹溪書院)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단계서원의 철폐를 막아달라는 상소문 등을 올리고 낙향하였다.<ref>김담은 그의 외선조인데, 8대조모 이수형의 처 예안김씨의 친정아버지로서 외9대조가 되며, 고조모 이여빈의 처 예안김씨를 통해서는 외10대조가 된다.</ref>
  • 이하영(강사) . . . . 4회 일치
         고향은 [[경상북도]] [[포항시]]로, 포항제철서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학창시 합창단[* 포커스 인터뷰에서 본인이 방황했던 시기 사진으로 합창단 사진이 나왔다.], 전교부회장으로도 활동했었다.
         5~6등급으로 표시된 강의를 하시는 분답게, 수포자든지 그런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표방하고 있다. 수포자가 아니더라도 어렵거나 딱딱한 개념을 원치 않고 친한 개념을 원하는 학생이면 들어서 나쁠 건 없다.
         그 이외에도 연계교재 문제나, 수능 기출문제의 문제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수능 기출도 최근 3개년만 정도를 권하는 등 학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학영역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출제되어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이 더 맞아들어가고 있다.[* 다만 현장강의나 정모 등에서 온 수강생들을 보면 1등급보다는 2, 3등급 학생이 많이 보인다. 물론 대부분 그 이전에는 4~6등급 등 수포 직전까지 갔던 학생들이 이하영 선생님 강의로 성적을 올린 경우이기에 저평가할 수는 대 없다.][* 다만, EBSi 수학 자체의 문제로, 강사 능력과 별개로 연계교재 위주의 공부로는 신유형이나 등급을 가르는 고난도 문제에 대한 대처는 부족한 건 사실이다.]
         영어영역 [[이아영]] 강사와 공통점이 많다. 두분 다 미인 강사로 유명한데다 이름부터가...[* 실제로 이름을 크게 말하지 않으면 둘이 헷갈린다고 과거 강의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출신에, 해당 영역의 중하위권 학생에 포커스를 두고 친하게 풀어가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라는 과거 강의에서의 언급도 있다.~~그런데 이'아'영 선생님 항목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하'영 선생님 항목은 2016년에야...~~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4회 일치
          * 젊은 시 자라트라스와 국왕 바트라가 있고 아기인 엘리자베스를 안고 있는 멜리오다스와 만난다.
          * 멜리오다스가 리즈와 함께 하던 시로 사방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등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 마침 그 자리에는 젊은 시의 국왕 바트라와 자라트라스가 참상을 지켜보고 있다.
          * 술버릇이 나쁘다며 술을 거한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4회 일치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그런 처사에 규하지만 놀랍게도 디안느는 죽지도 굴복하지도 않고 제 3의 선택을 해서 깨어나는데... 그건 "도망"이었다.
          * 하지만 고서가 싸울 필요는 없었다. [[디안느]]가 대지를 변화시키며 젤드리스를 위협한다. 그가 잠시 물러서자 디안느는 두 고서를 도주 시킨다. 십계 고서는 너무 위험하고 상대가 노리는건 자신이라고 거하지만 디안느는 현재 자신은 거인왕이니 위험할 것이 없고 고서는 성전을 멈춰야 하니 어서 가라고 재촉한다. 결국 고서는 그녀의 뜻에 따라 그 자리를 피한다. 인형 고서는 십계 고서를 따라가면서 "다시 만나자 디안느"란 인사를 남긴다.
          감정이 복받친 할리퀸의 규. 그런데...
          디안느는 잠시 쉬다가 일어난 것처럼 가볍게 몸을 일으킨다. 할리퀸은 눈물범벅이 된 채 어리둥해한다. 디안느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돌아왔다"며 현세로 돌아온 것을 깨닫는다.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시련을 통과했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4회 일치
          * [[멜리오다스]]의 부의 에너지로 강화된 해골병으로 일곱 개의 대죄를 처치하려던 [[메라스큐라]]의 계획은 좌됐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도 않고 새로운 음모를 고안했다. 해골병이 감당하지 못한 부의 에너지, 그렇다면 같은 일곱 개의 대죄는 어떨까? 예상대로 안성맞춤인 그릇이었다. [[디안느]]가 마수에 걸려들었다. 섬뜩한 피눈물과 불길하게 물든 눈동자. 사령에 지배당한 디안느가 일행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드롤의 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그만두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격이 쇄도해온다. 심지어 즐거워 보였다.
          헬브람이 인간에 망하고 증오했던 시의 일이었다. 그가 오래 전에 놔두고 온 과거였다. 긴 시간이 걸려 많은 일들을 거쳤지만 결국 자기가 저지른 죄 앞으로 돌아왔다. 헬브람의 태도에선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떠나는 친구를 바라보는 할리퀸.
          * 그걸로 끝이었다. 원념들이 디안느의 손아귀로 헬브람의 투구를 짓이겼다. 작은 소음과 함께 헬브람이 누리던 세 번째 삶도, 은원의 고리도 끊겼다. 고서는 그 직후 디안느를 사로잡고 있는 탁한 기운이 급속도로 흩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여전히 몇몇은 오갈데 없는 분노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 격렬하고 끈질기게 디안느를 얽어맸다. 디안느의 자아는 누구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고 규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원념의 것이었다. 바로 그때 갑작스런 강풍이 불어와 디안느가 휘청거렸다. "금풍의 역린".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원념에게 "이젠 잠들어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 임기영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한화 이글스]] 시==
         ==[[상무 야구단]] 시==
         ==[[KIA 타이거즈]] 시==
  • 임백천 . . . . 4회 일치
         [[1958년]] [[5월 30일]], [[전라남도]] [[순천시|순천]]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순천시|순천]] 소재의 [[초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서울특별시|서울]]로 상경해 학창 시을 보냈다. 이후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1978년]]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MBC 대학가요제|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고 곧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가수 활동보다 [[MC]]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말에 [[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 출신의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더블 DJ/MC로 방송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게 MC로 진출한 계기였다.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1993년도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 TV 연예]]에서의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쇼 코너를 보내주었고, MBC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 무대에서도 멘트를 맡았고, 몇몇 서태지 관련 이벤트 등에서 나와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부터 특집 방송이나 공연의 MC를 맡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도 임백천에 대해 각별히 생각한다고 한다. 서태지의 40대 이후의 외모가 놀랍게도 임백천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DJ로도 활동 중이며, [[KBS 2FM]]의 오후 2시 프로그램인 "뮤직쇼"[* 김연주와 결혼하면서 그만뒀다가 2001년 4월부터 2003년 봄 개편 전까지 DJ를 맡았다.]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KBS 제2라디오]]에서 낮 12시 10분에 시작하는 "임백천의 라디오 7080"의 DJ를 맡았다. 하지만 2016년 9월 5일부터 라디오 7080이 수도권 방송으로 전환되어 지역에서는 들을 수 없다.--[[KBS 2FM]] 지방에 허가 안 할래?--[* 왜냐하면 [[한국방송공사|KBS]] 본사가 지역국 음악FM 방송을 [[KBS 1FM]]으로 취급하고 있어서 광고방송이 안 되기 때문이다. [[KBS 2FM]]이 2002년부터 광고방송 중인데, 2001년 10월 개편 때 광고방송을 위한 사전 작업 때문인지 2FM은 굿모닝팝스를 빼고 지방에서 모두 릴레이가 중단됐다. 게다가 굿모닝팝스도 광고가 나가는지라 지방에서 [[DMB]]와 라디오로 잡아 보면 약간 차이가 났으며, 2017년 3월 6일부터 굿모닝팝스가 [[KBS 제2라디오]] 수중계로 변경되면서 KBS의 지역국 음악 FM 방송은 사실상 1FM으로 완전히 전환됐다. 이후 2008년에 지상파 [[DMB]] 채널인 U-KBS 뮤직을 통해 [[키스 더 라디오]]를 제외한 나머지 2FM 프로그램들을 송출 중이며, 2016년에 라디오쇼(일부 지역국만)와 [[가요광장]]을 광고방송이 가능한 지역 [[KBS 제2라디오]]를 통해 릴레이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KBS 본사도 지속적으로 2FM 지역 릴레이를 추진하고 있지만, 주파수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당했다.--주파수 없다면서 종교방송 허가는 왜 막 하냐고! 특히 [[극동방송]] 왜 허가했냐고!--] 2018년 가을 개편으로 [[KBS 제2라디오]]에서 아침 11시에 방송하는 "골든팝스"를 진행 중.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후보였던 [[나경원]]의 지지 연사로 나서서 "여러분 그동안 많이 속으셨습니다"는 주제로 지원 연설을 하는 등 정치에 참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한 번,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두 번 정계 입문 제의를 받았으나 거했으며, 앞으로도 정계에 입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 임현준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대구고등학교]] 시에는 [[1루수]]로 주로 활동했지만 제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당시 선수가 부족하여 깜짝 선발로 등판하였다. 경기에서 6⅓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북일고등학교]]를 상대로 승리하여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
         ==[[상무 야구단]] 시==
  • 장순왕후 . . . . 4회 일치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하였다.
         1460년 세자빈(世子嬪)으로 간택되어 당시 세자였던 [[조선 예종|예종]]과 가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었으니 이때 나이가 16살이었다. 정숙한 성품에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조선 세조|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책봉 이듬해인 [[1461년]] [[음력 11월 30일]], 왕실의 적통인 원손(예종의 장남인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같은 해 [[음력 12월 5일]]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산후병으로 향년 17세로 요했다.
         야사에서는 장순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조선 덕종|덕종]](의경세자), 남편 [[조선 예종|예종]]과 아들 [[인성대군]] 등 [[조선 세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한 것이 [[조선 단종|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 장진용 . . . . 4회 일치
         ==한국 프로야구 시==
         ===[[LG 트윈스]] 시===
         ===[[상무 야구단]] 시===
         ==호주 프로야구 시==
  • 정성룡(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선수 시 유니폼에는 '정성'''용''''으로 이름이 적혔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고교 시 그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 본다면 졸업 후 바로 프로 입단한 게 독이 됐다. 만약 [[류명선]]이나 정윤수 등의 동기들처럼 대학에 진학했었더라면 1980년대 말 삼성 외야진이 세대 교체를 할 즈음에 입단해, 입단하자 마자 많은 기회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당시 정성룡과 같이 포철공고의 타선을 이끌었던 김성범과 염창무는 아예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국가대표 골키퍼를 지낸 동명의 축구선수에 지명도가 가려지고, 간혹 언급될 때에도 고향팀이자 처음 입단한 삼성 선수보다는 유독 해태 선수로 언급되는 일이 많다. 이래저래 비운의 선수였던 셈. 그나마 해태 시에 우승을 한번 해본 건 다행.
  • 정웅인 . . . . 4회 일치
         정웅인은 1971년 1월 20일에 [[대구광역시]] [[달서구|경상북도 달서구]]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재학 시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가 연기를 접한<ref>{{뉴스 인용
         |제목= 정웅인, “대학 시 후배 안재욱 괴롭히긴 했다” 솔직 고백 |url= http://www.fnnews.com/newsview/starnews.jsp?newsid=20121129147136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11-29}}</ref><ref>{{뉴스 인용
         정웅인은 데뷔 이후 여러편의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무명 시을 거쳐 [[SBS]] 예능 《좋은 친구들》의 인기 코너인 "심리학개론 흑과 백"에 [[박수홍]]과 함께 출연했고, 극중 "감 잡았어"의 대사를 유행시켰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기정의 순간 떠나는 '세친구'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42263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01-02-07 }}</ref> 이후 영화 《반칙왕》(2000년), 《두사부일체》(2001년), 《돈 텔 파파》(2004년), 《투사부일체》, 《마법사들》(2006년), 《유감스러운 도시》(2009년) 등과 드라마 《홍국영》(2001년), 《발칙한 여자들》(2005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선덕여왕》(2009년), 《커피하우스》(2010년), 《오작교 형제들》(2011년) 등에 사극과 여러 장르의 현대극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 정종원 . . . . 4회 일치
         1918년 일본 니혼대학 법학과 전문부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식민지 시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에 잠시 몸담았다. 당시 그는 가업인 은행업을 염두에 두고 성실히 근무했다. 후일 조흥은행 임원을 거쳐 행장에 오르게 된다.
         그는 일본유학 시 지인들이었던 [[동아일보]] 핵심경영진들과의 인연으로 1920년 4월1일 창간한 동아일보 지령 1호에 창간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지면에는 그의 개명전 이름인 정충원으로 기록됐다.
         정종원 전 조흥은행장은 재임시 국내 아이스하키의 발전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제4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역임하며 국내 동계스포츠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종원은 1914~1918년 일본 유학 시 [[송진우 (정치인)|송진우]]([[동아일보]] 3대 사장), [[최두선]] (8대 국무총리), [[장덕수]] ( 보성전문 교수, 동아일보 이사), [[신익희]](독립운동가), [[김연수 (1896년)|김연수]](경성방직 삼양사 사장), [[이광수]] (소설가) 등과 교류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5</ref> 이 같은 인맥을 바탕으로 정종원은 동아일보 경상북도 지역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당시 그는 정충원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창간특집기사 '동아일보 발기인 명단'에 대구지역 발기인 정충원으로 기록됐다.<ref>동아일보 1920년 4월1일 2면 하단 발기인 명부</ref><ref>동아일보 1977년 3월 14일 "본보 창간발기인 정종원 씨 별세 "</ref>
  • 정형돈 . . . . 4회 일치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과 학창시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상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 [[SBS]] 《[[도전 1000곡 한소 노래방]]》
  • 지석진 . . . . 4회 일치
         가수 활동이 좌되자 지석진은 같은 [[해군홍보단]] 입대동기이자 친한 친구인 [[김용만]]의 권유로 1993년 KBS 개그맨 공채에 도전하여 10기로 합격, 개그맨이 되었다. KBS 공채 시험을 볼 때 [[박수홍]], [[김용만]] 등이 그의 대본 작성 및 연기 연습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재석]]보다 나이도 많고 같은 KBS 공채 개그맨이라는 출신 때문에 지석진이 [[유재석]]의 KBS 동기나 선배로 생각하지만 [[유재석]]은 공채 7기로 지석진의 선배이다. 다만 지석진은 이미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공채 전부터 유재석과 알던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희극인의 실세인 [[심형래]]는 이런 지석진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어느 날은 심형래가 [[유재석]]과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을 불러서 지석진을 혼내라고 했는데 유재석과 김수용은 자신들보다 연장자인 지석진을 구타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 큰 소리를 내며 갈구는 연기를 했고 그것을 본 심형래가 무척 화를 내며 세 명 모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드러나는 [[심형래]]의 노답성~~ .[* 이 때문인지 심형래가 후일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 지석진은 심형래의 되도 않는 억지에 멤버들 중 가장 불쾌해 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MC 공채 출신답게 재치넘치는 입담이 전매특허로 [[송은이]]와 더불어 유재석의 방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주로 [[사이다]], 여유만만, 진실게임[* 본래 유재석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석진이 이어받아 진행했다.] 등 토크쇼 프로그램의 MC를 많이 맡았으며, 설날이나 추석 등의 특집 프로그램 MC 경력도 많다. 이 중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은 '[[보야르 원정대]]', '[[스타골든벨]]'[* 스타골든벨에서는 메인보다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조하는 분위기 메이커역을 주로 맡았다. 소속사가 PD에게 로비를 한 것이 드러나서 잠시 구설에 올랐고 그 시기가 개편과도 맞물려서 잠시 프로그램을 하차한 적이 있지만 메인 MC가 여러 차례 교체됐음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시즌2에 해당하는 '스타골든벨 1학년 1반'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실은 숨겨진 실세~~],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 여걸식스의 후속작 하이파이브에서도 MC를 맡았으나 프로그램 자체가 사실상 여걸식스의 끝물빼기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던지라 오래 가지 못하고 증발했다.], '[[런닝맨]]'.
         결혼 3년 후 아들을 낳았다[* 여담으로 이 아들 돌잔치 때 애를 두고 집에 왔다는 모양. 집에 도착해서야 가족들 모두 애 어디있냐고 난리났다는 듯하다]. 현재는 고등학생이며 이름은 지현우.--[[류수정|아내와 이름이 같은 걸그룹 멤버]]가 있고 아들과 이름이 같은 밴드출신 배우도 있다. 어쩌다 보니 연예인 집안-- 아무튼 지석진은 한때 부인과 아들을 수 년간 외국으로 유학보낸 연예계 대표 기러기 아빠 중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슬프고 외롭기만 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막상 해보고 나니 방학 때 부인과 자식이 귀국할 때보다 돌려보내고 혼자일 때가 편해서 좋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대 티를 내지 않고 힘든 척하는 스킬까지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밥을 못 해먹다보니 매일 배달음식만 먹는것이 좀 고역이였다는 듯 하다. 현재는 가족들이 귀국했는데, 그 이유가 지석진이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어 "그만 돌아와라. 보고싶다." 라고 말해서라고. 아내가 그 한마디에 다음날 다 정리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4회 일치
         망적인 상황 속에서 조사병단은 최후가 될지 모를 작전을 수행한다.
         * 어떤 병사는 망한 나머지 말이 도망치도록 내버려둬서 책망당한다.
         * 하지만 "말이 있어도 말에 타고 돌아갈 사람이 없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규한다.
         * 물론 망적인 상황에서 인명피해를 각오하고 작전을 수행하는건 모든 전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엘빈은 너무 노골적으로 죽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서 일제의 옥쇄논리를 답습하는 듯한 느낌이다.
  • 진격의 거인/90화 . . . . 4회 일치
          [[장 키르슈타인]]은 비록 그 자리엔 없었지만 "마를로는 마지막까지 용감했다"며 입을 연다. 그는 최후까지 같이했던 프록에게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청한다. 프록은 주저하면서 입을 연다. 마를레는 현장이 망적인 가운데서도 전우들을 고무하며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그는 굉장한 녀석이었다고 추켜세우자, 히치는 복잡한 듯, 아무 생각도 없는 듯한 얼굴로 모든 것을 들어 넘긴다.
          * 대화가 단된 사이 리바이가 다가와서 의전이 시작될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왕 앞으로 나가 의식을 거행한다. 히스토리아는 여왕으로서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걸어준다. 처음으로 한지에게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한지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다. 다음은 리바이, 엘런의 순서다.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엘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과연 지하실에 있던 것은 무엇인가? 희망인가, 아니면 망인가? 적은 강대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 참상"은 반복된다. 엘런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에겐 히스토리아를 희생할 각오가 없다고 자조한다. 그러는 사이 히스토리아가 그에게 훈장을 걸어주고 손을 내민다. 엘런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는데.
          엘런이 바다에서 느낀 것은 행복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가 지하실에서 찾아낸 것은 한 없이 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엘런은 꿈이 꺾인 것처럼, 실망에 가득차게 말했고 예상과 다른 대답에 아르민과 미카사는 충격을 받는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4회 일치
          * 당시 에렌은 입체 기동 장치 훈련에 낙오하면서 좌하고 있었는데 라이너는 그를 진심으로 북돋아주면서 "계속 나아가라"는 조언을 한다.
          * 애니 레온하트는 어떤 남자를 추적 중이었다. 타깃은 검은 코트의 남자. [[케니 아커만]]이었다. 병단에 들어간 뒤에도 그녀의 본래 업무는 바뀌지 않았다. 평범한 소녀로 꾸민 채 숙소를 벗어난 그녀는 케니의 뒤를 미행했다. 그는 애니가 조사한 왕정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뭔가가 달랐다. 직감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캐면 진짜 "벽의 왕"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 가능성에 걸고 남자를 뒤쫓고 있었다. 어느덧 남자의 행로는 평범한 소녀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뒷골목. 하지만 애니는 멈추지 않았다. 남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았다. 애니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어리둥해 있는 동안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어깨를 붙잡을 때까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 오늘 임무는 진작부터 실패했던게 분명하다. 반성할 시간은 없다.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애니가 먼저 택한 방법은 드라마였다. 그녀는 여인숙에서 태어난 소녀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건 단 하룻밤 뿐.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해줬고 그래서 한 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그 이야기는 목 베는 케니도 감동시킬 만한 했다. 케니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허그가 필요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애니는 대로 그럴리 없다고 확신하냐고 물었다. 케니의 대답은 "할 수 있다"였다. 그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농담이었으니까. 이제 확실히 포기할 시점이다. 죽이지 않고 상황을 모면하는 걸.
          거인의 힘이 시대에 뒤처지고 팔라디섬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빌리는 그 현실을 씁쓸하게 곱씹은 뒤에 예정된 "축사"에서 모든걸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겠다고. 헤로스 상을 보러 온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에게 실한 증표였으니까.
  • 창작:좀비탈출/5-1-1-1 . . . . 4회 일치
         나는 방금 전에 되찾은 골프채를 앞으로 겨누고 뒷마당을 가로질렀다. 사실 토트넘을 단하는데 쓴 공구를 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데, 어쨋든 이건 행운의 탄피니까.
         지금 와서 말이지만, 토트넘의 집은 우리집하고 같이 지었다. 우리집이 지어지던 시만 해도 이런 단독주택이 유행이었고, 시공사에서는 '''같은 설계'''로 여러 번 지으면서 공정을 단축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아버지가 해준 건데 한 귀로 흘려보낸 줄 알았던 것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뭐 아주 모르는 집에 들어온 건 아니라는 위안거리일까?
         '''다이너스티'''. 옛날에 현대에서 내놨다는 고급형 차량이다. 토트넘이 이 차를 아끼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창밖의 풍경을 아끼는 것 만큼이나 각별했다. 내가 알기로 이건 90년대 말에 나온 골동품인데 이걸 아직까지도 좋아서 끌고 다니는 사람은 토트넘 뿐이다. 내가 아직 동네에서 살던 시엔 어쩌다 마주치면 곧 차 얘기로 넘어가고 차얘기는 곧 다이너스티에 대한 예찬으로 끝이 났는데 아직도 그 레퍼토리를 기억하고 있다.
         다시 집 얘기로 돌아와서, 앞마당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눈으로 보기엔 녀석들은 없다. 귀에 정신을 집중해도 녀석들 특유의 그르렁대는 소리도, 규하는 듯이 짖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냄새를 맡아보려고도 했는데, 어차피 바깥에는 녀석들의 냄새가 언제나 떠돌고 있다. 아무리 희미해도 말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4회 일치
         나는 아줌마를 끌어내서 그 잘린 단면을 확인하지 않고도 모든 스토리를 짜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어떻게 단되었는지는 냉장고 옆에 있던 도끼가 설명해 준다. 분명 흉기는 장롱이 아니었다.
         왜 바로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냐는 의문이 남지만…… 그거야 '''자기 마누라잖아.''' 아줌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머리를 날려야 끝난다는 걸 알리는 없었겠지. 그리고 다 끝낸 다음에…… 머리가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서 생각해낸 충안이 허리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척추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게 단되는 충격은 당연히 뇌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고,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겠지.
         아줌마가 단된 장소는 안방이다. 그럼 아저씨는 어느 시점에 도끼를 갖다 놨을까? 왜 하필 여기에? 이렇게 수상한 액체가 묻어 있는 도끼는, 설사 누가 보지 않더라도 꺼림직한 물건이다. 이런걸 주방처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은 이유가 뭘까?
  • 창작:티겔 왕국 . . . . 4회 일치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그러나 상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백작부인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끝에 어찌저찌 상티겔왕국이 남쪽에 세웠던 식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백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백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 채기영 . . . . 4회 일치
         ==한국 독립야구 시==
         ===[[고양 원더스]] 시===
         ==한국 프로야구 시==
         ===[[한화 이글스]] 시===
  • 채동선 . . . . 4회 일치
         채동선은 1901년 [[대한제국]]령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에서 출생하였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시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유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복하고 편안하였던 그의 인생은 그가 고등학생이 된 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채동선은 서울로 올라가 현재는 [[경기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경성제1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3.1운동]]이 발생함에 따라 채동선은 만세 운동을 매우 열렬하게 하였고, 이러한 그의 행적은 일본경찰의 감시라는 낙인을 주었다. 3.1 이후 일본에 회의감을 느끼며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서양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채동선은 베를린 음악대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일본의 착취와 폭력은 지속되었고, 채동선은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매우 분했고 안타까워했다.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동료 음악가들과 사이가 우호적이지 못하였는데, 이는 친일 행위와 연관성이 있다. 채동선이 일제강점기 시 다른 음악가들과 다르게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홍난파]] 등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노래 가사 및 노래 작곡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과 달리 끝까지 친일 운동을 거부하였던 채동선은 광복까지 창씨 개명과 친일 노래 작곡을 거부하였다. 해방 이후에 그는 이념적 성향으로 인해 다시 한번 동료 음악가들과 마찰이 있었다. [[한국전쟁]] 동안 피난길에 오른 그는 그의 병환이 깊어져서 1953년에 타계하며, 그의 작품은 향후 [[이은상]]에 의해 부활하게 되었다.
  • 최남선 . . . . 4회 일치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체포되어 2년 8개월형을 받아 복역한 뒤 1921년 10월 18일에 가출옥하였다. 그 뒤 변하였다는 설이 있다. 가출옥 사유는 “청년들을 규합하는 데 대단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은행]] 총재 미노베(美濃部俊吉)에게 잡지 《[[동명]]》의 발행 자금을 지원토록 주선하였으며, 그 이유를 최남선의 출판물이 “조선의 사상계의 악화를 구하고, 또 [[진학문]](秦學文)·[[이광수]] 등의 생계비 출처로 삼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 제18호에 [[일연]]의 《[[삼국유사]]》 전체를 게재하게 하였다.<ref>《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스토리텔링 삼국유사 1) (현암사, 2009) 24~25쪽. {{ISBN|978-89-323-1536-2}}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에다 일연(一然)의『삼국유사(三國遺事)』 를 실은 것이었다.” </ref> 같은 해 총독부가 집과 연구 비용을 지원한다고 회유하자 그해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거쳐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다.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총독부의 조선사 편수회에 가담한 일로 [[이광수]]와 교하고, [[한용운]]과 [[홍명희]] 등도 연이어 그와 결별 선언을 했다. [[한용운]]은 그의 나무 위패를 새기고 장례식을 거행하여 그를 조롱하려고 시도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경성부]] 우이동(牛耳洞)에 은거, 외부 출입을 삼가고 역사논문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해 9월 [[한민당]]의 영입 제의를 사양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그는 '민족개량주의로 흘러가 친일파로 변했다.'는 것 때문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비난을 받았다.
         [[장준하]]는 이어 '그뿐 아니라 선생은 상아탑의 일개 학구로 그치지 않고 실實에 즉하고 의義에 나아가 항상 민족사상의 고취에 힘썼고 3.1혁명에 가담하여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이어서 장시일의 옥고를 치른 후에도 한 길을 더듬어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육당 선생은 이 민족이 가장 암담한 망의 골짜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항상 우리와 더불어 있었고 우리의 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었다. 그러 하여 민족의 생명은 싹을 부지하고 겨레는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갖추어 광복에 이른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ref name="changs"/>'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 최문식 . . . . 4회 일치
         '''최문식'''([[1971년]] [[1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다. 선수 시 포지션은 [[미드필더#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꼽힌다.
         [[2011년]] 한 해동안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 코치를 역임한 뒤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며, [[2012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8강에 [[우즈베키스탄]]에 패해 대회 우승이 좌되었다. 대회 직후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에 부임해 이광종을 보좌하여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한국의 12번째 우승과 더불어,[[201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2013년 FIFA U-20 월드컵]] 8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대전은 홈경기에 비해서 원정 경기에서는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2016시즌동안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단 4경기였고, 그중 3경기는 최하위였던 [[충주 험멜]]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였다. 이러한 한계로 끝내 승강플레이오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권 진입이 좌되었고, [[10월 29일]] 성적부진과 승강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사임하였고,<ref>박찬준 (2016.10.29)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 최문식 감독, 자진사퇴 "성적부진 책임지겠다"]{{깨진 링크|url=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2F }} 스포츠조선</ref> 2017시즌을 앞두고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취임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335/ 최문식 전 대전 감독, 중국 옌볜 ‘박태하 사단’ 합류]</ref>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 감독 재임 시 [[황인범]]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은 많이 기용하며 발굴해냈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4회 일치
         2008년 치부심 [[유지태]]와 함께 <스타의 연인>에 출연하였으나, 이 드라마는 에어시티보다 더 실패하였고 시청률은 바닥을 쳤다. 최지우가 이 드라마를 찍다가 나오지 않는 시청률 때문에 촬영 도중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루머가 돌 정도였으니(...)
         과거 공포체험방송인 <돌아보지 마>라는 프로[* 서세원이 MC를 맡았던 인기 프로그램. 지금 예능과 비교해보면, 대놓고 짜고 하는 티가 많이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예능이다.]가 방영되던 시, 관련 예능에 한두 번씩 출연하곤 했는데, 출연할 때마다 ~~영혼을 담은~~ 리액션을 선보였다. 최지우가 톱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고 공포체험도 식상해져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으나, 토크쇼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하였을 당시 최지우를 위해(?) 공포특집을 기획하여 그 리액션을 재연하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EXO의 세훈이 초등학교 시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최지우가 MAMA 시상자로 나왔을 때, 수상자였던 EXO가 대기하는 동안 시상대에 있는 최지우를 보고 올라가는 광대뼈를 주체하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짓는 직캠까지 있다(...). 일설로는 그가 연예인 데뷔 후 처음으로 실물로 본 것이였다고. ~~최애 영접~~ 이후 EXO 90:2014에서 보아와 최지우 중 누가 더 좋냐는 질문에, 이제껏 잘 익힌 처세술을 한껏 발휘하던 그가 최지우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어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격 회사 상사와 10년차 짝사랑 상대의 대결~~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보아가 좋다고 말했지만, 보아 왈 "엎드려 받는 느낌이다?" ~~근데 질문이 너무 가혹했다~~
  • 카치구미 . . . . 4회 일치
         1940년대 무렵 [[브라질]]에는 [[일본인]]이 약 30만 명 가량 거주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브라질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여 양국은 적대관계가 되었으므로, 브라질과 일본은 외교관계가 단되었고 브라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일본어로 출판이나 언론 활동을 할 수 없고, 일본인끼리 모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일본어 학교는 폐쇄되었다. 1942년에는 브라질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 외교관들도 [[포로 교환]]으로 일본으로 귀국하여, 완전히 본국과 연결이 단되었다. 또 이 당시 [[포르투갈어]]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은 숫자가 적었으며, 지식인과 브라질 사회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오지에서 농장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본어 신문이 폐지되었고, 본국과 연락이 완전히 두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날리는 [[단파방송]]만이 일본의 소식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루트였다. 하지만 단파방송 수신기를 가진 사람은 소수였고, 입에서 입으로 [[루머]]가 전파되기 쉬웠다. 게다가 단파방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일본의 소식 역시, 군부에서 일방적으로 패전을 승전으로 바꿔서 발표하는 엉터리였기 때문에 일본은 항상 이기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쉬웠다.
         1945년 9월에는 위문사단이 일본 군함으로 온다는 소문이 퍼져서, 오지에서 일본인이 상파울로 항구에 몰려들기도 했다. 물론 일본 군함들은 그때 대부분 바다 밑바닥에 있었다.
  • 캡틴 울트라 . . . . 4회 일치
         원래 배관공으로 돈을 못낸 심리학자 노인에게 자신의 흡연습관을 최면으로 치료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심리학자는 사실 외계인이었고, 최면을 통해 잠재된 초능력을 각성해 슈퍼히어로 캡틴 울트라가 되었다. 그러나 [[불]]에 관한 공포증 탓에 불을 보면 기하게 되었다.
         슈퍼빌런 팀 프라이트풀 포(Frightful Four)에 가입할수 있었으나 멤버 하나가 담배를 피기 위해 피운 불 탓에 기하면서 거당했다.
         [[판타스틱 포]] 애니메이션에서 잠시 등장. 능력을 잃고 인간으로 돌아온 씽을 대신한 멤버로 지원한 히어로들 중 한명인데 상당한 실력을 보였으나 휴먼토치가 엄지척을 하면서 엄지에서 나온 불을 보고는 바로 기해버렸다.
  • 킹덤/502화 . . . . 4회 일치
          * 가보니 이신이 맨 마지막이었다. 왜 이리 꾸물대냐는 질타가 쏟아지는데 "본진을 찾다 길을 잃었다"고 대꾸해서 [[토문]] 장군에게 얻어맞는다. 어쨌든 이걸로 지휘관 전원이 모였다. 왕전은 이제부터 중대한 사실을 전할 것이다. 그는 서두도 없이 "곧바로 출발한다"는 말을 꺼낸다. 지휘관들은 어리둥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듣는다.
          *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마남자]]는 오르도의 진로를 확인하는데 오르도는 무슨 일인지 남쪽의 중도시 "청가"를 향해 진군 중이라 한다. 이목과 마남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부하들은 어리둥한다. 이목은 청가엔 "사마상"이 있다며 반색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사마상의 이름도 잘 모른다. 한 사람이 "청가성 성주로 병이 있어서 은둔하고 있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며 말하는데 이목은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건강하며 그저 중앙에서 오는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그런 명분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남자는 충격적인 말도 더한다.
         >"삼대천" 임명도 그 변명을 하며 거했지.
          그가 삼대천에 천거된 인물이란 것, 그럼에도 그걸 거했다는 것에서 파문이 인다. 설마 세 번때 삼대천이 될 법한 인물이, 그것도 그런 변경에 은둔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카이네는 그럼 그 사마상이 어느 정도 인물이냐고 묻는데 이목은 자기 자신이 그를 천거햇던 장본인이라 밝힌다. 그는 자신의 청가성이 연관되지 않는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성미로, 그를 삼대천으로 만들면 좀 더 큰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물론 실력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 킹덤/522화 . . . . 4회 일치
         [[킹덤]] 제 522화. '''좌익의 망'''
          * 기수는 이런 그림까지 미리 보고 있었던 왕전의 해안에 좌감을 느낀다.
          부관들은 여기서는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 때라고 진언하나 단칼에 거한다. 물러난다면 적은 그만큼 철저하게 뒤따라올 것이다. 기수는 이 자리에서 결사항전할 것을 지시하며 적이 소수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달하게 한다. 적이 부대를 나눠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천 씩 4파로 나눈 총 2만 병력. 기수군이 총 3만이니 병력면에서 압도하고 남는다는 논리였다. 계산 자체는 맞았다. 부관들 눈빛에 희망이 돌아온다.
          * 기수는 부관들을 모아놓고 이게 "미끼"에 불과했던 낙화대가 5천 병력의 "유격대"로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좌측에 들이닥친 마광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이상, 낙화대 5천은 이제 유격대가 돼서 언제든 아군의 배후에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게다가 그 지휘관인 몽념은 필시 평범한 장교가 아니다. 이 병력의 존재가 너무 크다. 이제와서 요격하려 해도 병력을 빼면 그만큼 본진이 파상공세에 밀릴 공산이 크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미끼로 끝날 거라면 5천은 많았다. 기수는 여기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도발, 양동을 위한 5천 병력이 끝내 자군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주역"의 위치까지 발돋움했다. 이건 우연도 뭣도 아니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배치. 왕전히 그린 밑그림이었다. 기수는 새삼 이것이 진군 총대장 왕전이라며 좌감을 느낀다.
  • 킹덤/529화 . . . . 4회 일치
          * 마침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 또한 기수군 후미를 공략 중. 이신은 호의 기회라 여기고 기수의 목을 취하러 달려간다.
          * 견융왕 [[로조]]는 상황을 아주 쉽게 봤다. 산민족 진영은 속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병사들은 거침없이 그들을 분쇄했다. 견융의 영역을 침범한 벌, 로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조군 지휘관 [[순수수]]를 향해 이제부터 산민족군 후미를 쳐서 반을 몰살시키겠다고 장담했다.
          * 그때 언덕의 반대편, 기수군 후미를 요격하는 희고 붉은 깃발의 무리가 보였다.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였다. 몽념은 [[육선]]을 앞세워 우측으로 돌격시켜 기수 본진의 방어를 뚫고자 했다. 낙화대의 진격은 이미 기수군 후방의 2진까지 돌파하고 있었고 기수에게 급보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부하들은 [[마정]]을 불러들여 본군을 사수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기수는 그럴 경우 전방이 무너지는 사태가 일어날 거라 여겨 한사코 거했다. 대신 기수는 자신이 직접 낙화대를 저지하러 나서는데.
  • 태종무열왕 . . . . 4회 일치
         당에도 즉위를 알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무열왕 즉위년에 [[당 고종|고종]](高宗)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신라왕의 책봉을 받았으며,<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의 33개 성을 탈취하였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은 3월, 영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우위중랑장(左右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ref name="신라-655"/> 또한 무열왕 3년([[656년]])에는 {{출처|날짜=2018-06-30|1=신라의 개국 공신인 사로 6촌장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당에서 귀국한 김인문을 [[군주]](軍主)로 삼았으며, 가을 7월에는 김문왕을 다시 당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6">《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3년(656)</ref> 귀국한 뒤 문왕은 무열왕 5년([[658년]]) 정월에 부왕으로부터 집사부의 [[중시]](中侍)로 임명되고,<ref name="신라-65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5년(658)</ref> 김인문도 무열왕 6년([[659년]]) 여름 4월에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하는 사신으로서 당에 파견되는 등,<ref name="신라-65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6년(659)</ref> 친족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즉위에 대적으로 기여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무열왕 7년([[660년]]) 정월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ref name="신라-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왕권을 보다 전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 젊은 시 제18대 [[풍월주]]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12대 풍월주 보리공(菩利公)의 딸 보룡(寶龍)과의 사이에서 아들 당원전군(幢元殿君)과 딸 여씨(呂氏)를 두었고, 문명왕후와의 사이에서도 선원전군(仙元殿君)이라는 아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열왕은 문희와 혼인하기 이전에 이미 [[보종]]과 양명공주의 딸 [[보라궁주]](寶羅宮主) 설씨와 결혼했으며, 처음 문희는 측실로 혼인하였으나 보라궁주의 요로 문희가 정실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문희의 언니인 보희와의 사이에도 지원(知元)이라는 왕자가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들 왕자의 실존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태종 무열왕에 대한 당대 신라인들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이는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라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ref group="주">그러나 고구려의 [[태조왕]]의 경우에는 묘호로 봐야 되는가, 시호로 봐야 되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그 밖에 태조의 묘호를 받은 [[태조 성한왕]]이나, 국조의 묘호를 받은 [[박혁거세]]도 존재한다.</ref> 이에 대해 [[당 고종]]<ref group="주">《삼국사기》에는 [[당 중종]]이라 표기됨</ref>이 “당 태종이 위징(魏徵)·이순풍(李淳風) 등을 얻어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을 이루었기에 태종이라 하였지만, 너희 신라는 바다 밖에 있는 조그만 나라임에도 태종의 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칭호를 참칭하니 그 뜻이 불충하므로” 이를 고칠 것을 요구하자,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당 태종처럼) 무열왕도 김유신이라는 성신(聖臣)을 얻어서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며 완곡하게 거하는 답서를 보냈다. 이 답서를 받은 고종은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이르기를 “33천(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가 유신이 되었다.”고 한 일이 있어서 이를 기록한 바가 있는데, 이 기록을 찾아 확인해보고서는 놀랍고 두려워서, 태종의 묘호를 허락했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훗날 [[조선]](朝鮮)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高麗)의 [[왕건|태조]](太祖) 이래 역대 군주들의 묘호를 시호로 대체하고자 하는 [[조선 성종|성종]](成宗)에게 태종 무열왕의 선례를 들며 굳이 기록된 묘호를 뺄 필요는 없음을 주장하였다.<ref>《성종실록》 성종 18년 정미(1487년) 2월 경진(10일)조</ref>
  • 토리코/371화 . . . . 4회 일치
          * 죠아는 "그럼 내가 미도라를 이긴 것도 알겠군"이라며 끼어드는데, 정작 토리코는 "넌 이긴게 아니다"라고 평가하한다.
          * 아카시아는 토리코나 사천왕이 자신을 앞에 두고도 위축되질 않자 "희망, 그 상판에 드리운 감정, 가장 역겨운 맛이다"라며 위협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 먹은 늙은 니트로(지지)로 그렇고 죽기 직전까지 망하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다.
          * 아카시아는 "희망을 망으로 바꿔주마"라고 소리치며 토리코에게 덤벼들 태세
          * 죠아는 미도라를 꺾은 공적을 자랑하고 싶었나 본데 토리코는 단칼에 평가하한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4회 일치
         === 친 교육 ===
         미국에게서 더 나은 설계도를 받아 발전소와 공항의 건설 비용을 50% 감시킨다.
         소련에게서 더 나은 설계도를 받아 공동 주택과 아파트의 건설 비용을 50% 감시킨다.
         충성파 반에게 고등학교 학위를 뿌린 후, 일부에게는 대학 학위도 뿌려준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4회 일치
          * 현실세계에서 웬디를 빼앗아간 아크놀로기아의 거체는 방향을 돌려 매그놀리아로 향한다. [[엘자 스칼렛]]가 분통을 터뜨리나 손쓸 수단이 없다. 그때 다시 하늘이 갈라지면서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던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떨어진다. [[제니 리아라이트]]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에게 헤엄쳐간다. 이치야는 자신도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어리둥해하지만 기뻐하는 블루 페가수스 멤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현세에서는 나츠를 비롯한 멸룡마도사들이 시간의 틈새로 납치된 것, 거기에 마룡의 정신체가 있고 여기엔 육체가 있다는 정보도 페어리 테일 전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다. 그레이는 "거기서 정신체만 처치하면 끝"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애당초 상대가 아크놀로기아인 데다 거기서 멸룡마도사들이 어떤 상태로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문제는 그 뿐만 아니다. 현세에서 날뛰는 육체가 세계멸망을 노리고 매그놀리아로 오고 있다. 이 세계의 망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시작일지도 모른다.
          * [[샤를(페어리 테일)|샤를]]은 망적이지 않다고 단언한다. 웬디도 분명 싸우고 있을 테니 자신들도 여기서 싸워야 한다고 결연하게 말한다.
          시간의 틈새. 나츠의 몸부림도 거의 끝나간다. 그도 친구들처럼 기둥에 갇힐 것이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규. 그때 거짓말처럼 오른팔의 불꽃이 부활한다. 천공마법이었다. 웬디가 수정을 깨고 나츠의 몸을 회복시킨 것이다. 나츠는 그녀가 어떻게 수정을 깨드린 건지 묻는다. 웬디는 잘 모르지만 샤를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고 대답한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가질도, 렉서스도. 스팅과 로그와 코브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사랑하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힘을 주었다. 멸룡마도사 전원 부활.
  • 페어리 테일/545화 . . . . 4회 일치
          나츠는 둘이 모여있는 걸 보고 새삼 "둘의 냄새가 같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차분해지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가질은 어린 시 기억이 돌아온 건지 "나츠는 옛날에 안나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작 나츠는 그래서 어쨋냐는 식이라 오히려 가질이 당황한다.
          그레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하다 말끝을 흐린다. 쥬비아가 간한 얼굴로 다음에 올 말을 재촉한다. 결국 그레이는 "네 몸은 내 걸지도 모르고"라고 염장지르는 소릴 한다. 이 발언은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귀 밝은 웬디에겐 다이렉트하게 전달되면서 괴롭힌다.
          * 그렇게 좌에 빠진 루시에게, 나츠가 말한다.
          너무나 긴 시간들이 한꺼번에 흘러넘치면서 눈물이 되었다. 루시는 이것저것 떠올라서 그렇다고 말하며 어리둥해하는 나츠와 해피를 끌어안았다.
  • 편의치적 . . . . 4회 일치
         편의치적의 목적은 [[세]]와 선원비용 감이다. 선박은 국적이 등록된 국가의 법률에 속박되는데, 그 내용은 국가별로 제각각이며 좀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나라에 편의적으로 선적을 옮겨놓아서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편의치적을 받는 나라들, 편의치적국에서는 편의치적선에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선원의 국적이나 요건에 대해서도 규제가 적어, 선진국 해운회사는 편의치적을 이용하여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의 선원을 많이 고용하여 선원 비용을 감할 수 있다.
         편의치적선의 실질 소유국에서는 세수 감소, 선원 고용 축소, 노동조건 압박 등이 일어나며, 국제적으로는 해난, 해양 오염 확대, 선원 고용의 불안정화 등의 문제가 있다. 개발 도상국은 해운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국제노동기구나 국제해사기구 등에서는 국제적인 규제를 발표하고 협약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는 편의치적국 근을 위한 토의를 하였으나 폐기는 좌초되었다.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4회 일치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DJ]][[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아메바 컬쳐 음악가]][[분류:빅딜 레코드 음악가]][[분류:표 논란 인물]]
  • 하이큐/230화 . . . . 4회 일치
          아니나 다를까 카게야마 토비오가 런닝을 하겠다고 숙소를 이탈하려 한다. 히나타까지 편승해서 나서는데 엔노시타는 제일 문제아 두 명을 콘크리트 정글에 풀어놓을 수 없어 반대한다. 게다가 쓸데없이 밤잠을 설치는 일이라도 생기면 진짜 곤란하다. 엔노시타는 츠키시마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말도 꺼내기 전에 거부터 당한다. 츠키시마의 짐작대로 그에게 인솔을 부탁하려는 것. 엔노시타는 어차피 츠키시마도 괜히 어슬렁거리는게 진정이 안 되는거 아니냐고 꼬집는다. 츠키시마는 부정은 못하면서도 "내가 저 바보들을 따라갈 수 있겠냐"고 대꾸하는데 거기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다.
          엔노시타는 수완도 좋게 여관 주인에게 자전거를 빌려왔다. 꼼짝없이 끌려가게 된 츠키시마. 그 짜증 탓인지 한층 무서운 태도로 "내가 간다고 하면 바로 돌아가는 거고 말 안 들으면 돌아오기 어려운 곳에 방치"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어차피 히나타나 카게야마가 길눈이 어두운 관계로 대 복종한다.
          그때까진 얌전히 있던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매니저들의 입욕시간이다. 타나카는 그런 판국에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냐며 규한다. 자칫하면 이 망상이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까지 덮어씌워버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듣고 있던 나리타 카즈히토는 "네 머리통엔 뭐가 들어있든 상관없다"고 뼈아픈 말을 날린다.
          카게야마는 "작은 거인 시은 요요기 쪽"이라며 찬물을 끼얹는데 히나타가 분위기 좀 맞추라고 극렬히 반발한다.
  • 하이큐/265화 . . . . 4회 일치
          * 야쿠 만큼은 아니지만 카이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 코즈메는 원채 그런 성격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정말로 싫었다면 진작 관뒀을 거라고 말한다. 마침 곡 끝에 음료를 쟁취한 코즈메가 이쪽으로 온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가 질색을 했다. 수면의 질을 명목으로 자기 전에 게임은 금지시켜 둔 터였다. 엄마같은 참견이었다. 코즈메는 이쪽이 나누는 대화를 전부 들은 모양이다. 쿠로오의 잔소리를 무시한 채 "진짜 그만두고 싶어지면 그만 둔다"는 말을 꺼냈다.
          >계속하는 대적인 이유도 없지만 그만 둘 이유도 딱히 없어.
          두 소년은 공을 들고 공터로 갔다. 둘이서 시작한 레벨 노가다. 코즈메가 레벨 업이라고 말하게 된 계기였다. 이 그리운 시을 회상하는 쿠로오에게, 야쿠가 가차없이 분위기를 깼다.
          * 봄고 남자 2회전 C코트 경기. 도쿄 출신 네코마 고교 대 이시카와 출신 사루카와 공업 고교. 스코어는 15 대 13으로 네코마의 무난한 리드. 하지만 사루카와의 공격이 제법 매섭다. 4번의 스파이크. 코즈메와 쿠로오가 블록을 뛰었다. 하지만 4번은 꽤 묘한 솜씨로 블록을 피해 우중간을 파고 든다.
  • 한규식 . . . . 4회 일치
         ==선수 시==
         ===[[롯데 자이언츠]] 시===
         ===[[LG 트윈스]] 시===
         ===[[KIA 타이거즈]] 시===
  • 한승택 . . . . 4회 일치
         ==아마추어 시==
         ==[[한화 이글스]] 시==
         ==[[경찰 야구단]] 시==
         ==[[KIA 타이거즈]] 시==
  • 허화평 . . . . 4회 일치
         1980년 9월 [[전두환]]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직함은 없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없던 직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허화평을 임명한 셈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청와대 핵심 기획자 역할을 했고 차관급 관료임에도 유일하게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했다. 명칭만 비서실 보좌관이었지 실질적으로 부총리급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 시부터 비서실장이었으니~~ [[허삼수]], [[허문도]] 등과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활동했다.
         좌천된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5공시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적은 데 반해 허화평은 방송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쾌도난마(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윤선]]이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자 "정무수석쯤 되면 대통령이 안 만나 주더라도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된다."고 일갈했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앞장서서 이 정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기만 하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문고리 3인방|권력의 문고리만 잡으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라며 ~~문고리 잡아본 사람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현아 . . . . 4회 일치
         === 어린 시 ===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영남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현아]]는 [[원더걸스]] 시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백'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반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현아]]의 댄스 실력은 이미 [[원더걸스]] 시부터 인정받았는데, 비걸 출신 여가수 [[김소리]]는 "[[김현아]]는 어린데도 느낌 있게 춤을 춰요.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내기 힘든 섹시한 느낌이 잘 살죠"라며 춤을 잘추는 아이돌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소리 “포미닛 김현아-2NE1 공민지 춤실력 인정”(인터뷰)|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9-16|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이준 (배우)|이준]]역시 현아를 걸 그룹 중 최고의 춤실력이라고 극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엠블랙 이준 “김현아, 걸그룹 최고 춤실력…섹시하고 뇌쇄적”|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nid=88656&cid=24|출판사=SSTV|저자=황예린|날짜=2010-07-23|확인날짜=2010-11-25}}</ref> 가수 [[이주노]]도 “솔로곡 "Change"에서 춤추는 모습을 봤는데 춤이 아무 맛깔스럽게 추더라”며 “그 노래에서 그 표정, 동작, 노래가 나오는 것은 아주 연습을 많이 했거나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이다”라고 [[현아]]를 최고의 춤꾼으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선견지명’ 이주노 “현재 최고의 춤꾼은 포미닛 김현아” 극찬|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120180131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but뉴스|저자=이정현 기자|날짜=2011-01-20|확인날짜=2011-01-22}}</ref> 하지만, 주로 섹시하고 파워풀한 춤을 추는 [[현아]]는 어린 나이에 너무 선정적인 춤을 춘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되는 등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 name="아시아경제">{{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연습생의 마음으로 준비한 첫 정규, 설레고 신기해"(인터뷰)|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41309374724881|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강경록|날짜=2011-04-15|확인날짜=2011-04-15}}</ref>
  • 현재윤 . . . . 4회 일치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 입단 대신 [[성균관대학교]](1998학번)에 입학한다.
         ==[[삼성 라이온즈]] 시==
         ==[[LG 트윈스]] 시==
         트레이드 후 1군에 복귀했으며, [[2013년]] 데뷔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7월 9일]] 잠실 NC전에서 [[찰스 쉬렉|찰리]]의 투구를 맞고 왼 손목 골상을 당해 올스타전 출전권을 [[김태군 (야구 선수)|김태군]]에게 넘겼고, 주전포수는 [[KIA 타이거즈]] 포수 [[차일목]]이 나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4&article_id=0002930096 NC 김태군, 현재윤 부상으로 올스타전 합류] - 파이낸셜뉴스</ref> 이후 고질적인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2014년]] [[12월 2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300457 LG 포수 현재윤 ‘현역 은퇴’] - 스포츠동아</ref>
  • 황석두 . . . . 4회 일치
         |매장지 = [[두산 순교성지]]<ref name=jeoldusan>[http://www.jeoldusan.or.kr/renew/introduce5.php?ptype=&page=2&code=contents09 한국 천주교 두산 순교성지 성인유해실]</ref>
         비천주교인들까지도 황석두의 헌신과 충실함 그리고 훌륭한 성품에 감복하였다. [[페레올]] [[주교]]가 [[조선]]에 입국 했을 때, 황석두는 여생을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제와 [[금욕]]을 위해 페레올 [[주교]]에게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 받고 독신으로 살았다. 주교는 황석두를 [[사제]]로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교황청]]에서는 [[조선]]에 황석두의 아내가 입회할 [[수녀회]]가 없다는 이유로 주교의 제안을 거하였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3회 일치
          >권력에 굶주린 선동가는 복수심과 증오로 불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좌하는 민중들을 매료할 수 있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는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드려는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 Support of Devaluation(화폐감 지원자) - 프랑스의 빙생 오리오
          * British Naval Mission(영국 해군 사단) - 오스만 제국의 아서 헨리 림퍼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3회 일치
          * Bankruptcy Proceedings(파산 차)
          * Annual Report Proceedings(연차보고서 차)
         === Time-saving Measures(시간 약 조치) ===
  • 가석방 . . . . 3회 일치
         == 차 ==
         * 가석방이 결정되면 매월 30일에 출소하지만, 2월 마지막 날, [[석가탄신일]] 전날, [[광복]] 전날, 교정의 날(10월 28일), 12월에는 성탄 전날에 출소하게 된다.--가석방 해주면서 훈훈하게 하긴--
  • 강기웅 . . . . 3회 일치
         ==선수 시==
         ===[[한국화장품]] 시===
         ===[[삼성 라이온즈]] 시===
  • 강영식 . . . . 3회 일치
         ===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시 ===
         === [[롯데 자이언츠]] 시 ===
         6월에 이르도록 불안불안한 투구내용을 이어갔는데, 팬들은 3억 연봉을 잘하는 다른 선수에게 나눠주라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6월 중순이 넘어가자 불안하긴 해도 꾸역꾸역 막는 쪽으로 상태가 좋아졌다.6월 SK전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한 [[용덕한]][* 박기혁, 강영식, 용덕한은 고등학교 시 동창이다. 이날 경기 전 강영식은 용덕한에게 '내 공을 받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잘 던져 용덕한이 경기 후 공이 나무랄 데 없이 좋아져 놀랐다고 대답했다.] 과 호흡을 맞추어 2이닝동안 깔끔하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이 오기는 온 모양.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3회 일치
         4살 전후까지 발현되며 확인은 새끼 발가락 관 개수 같은 신체적 특징을 통해 개성의 유무를 알 수 있다는데,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새끼 발가락 관이 없다고 한다. 쓸모 없는 기관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기에 개성같은 부분이 진화되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그리고 4살 전후라는 점에서 어려서부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의 유전이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개성혼이란 문제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 다만 미도리야는 부모 양쪽 다 개성이 있음에도[* 어머니는 염동력으로 추정되는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는 아직 등장이 없으나 불을 뿜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무개성인 것을 보면 유전 법칙이 대적이지는 않은 듯 하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중학시.jpg attachment:중학시2.jpg
         * 그걸보고 학생시 [[도마 타이헤이]]가 함께 탁구를 치자고 권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 고수희 . . . . 3회 일치
         2005년 영화 《[[친한 금자씨]]》에서 [[마녀]] [[죄수]]로 출연 [[이영애]]에게 죽임을 당하는 역할로 열연해 주목을 받았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43371 '친한 금자씨' 고수희, 전통혼례로 사업가와 결혼] 마이데일리. 2009년 10월 18일</ref> 2011년 영화 《[[써니 (영화)|써니]]》에 칠공주파 멤버 장미 역으로 출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524181 ‘써니’의 고수희 주연 영화 ‘바다’ 캐스팅 비화는?] 매일경제. 2011년 08월 20일</ref>
         * [[2005년]] : 《[[친한 금자씨]]》 - 마녀 역
  • 곽월 . . . . 3회 일치
         [[1579년]](선조 12) 수[[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겸 병마수군도사(兵馬水軍節度使)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사직하였다.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병마도사]][[분류:수군도사]][[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병사한 사람]]
  • 구자욱 . . . . 3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상무 야구단]] 시==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도루왕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 야구단]]에서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로만 나오고 중견수를 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 궁가 . . . . 3회 일치
         일본의 궁가인 미야케는, 역사적으로 다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게 된다. 본래 고대에 천황가의 방계후손은 [[신적강하]]라는 차를 거쳐서 성씨를 받고 천황가에서 이탈하여 신하의 가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후대에는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천황가의 일원으로 남으면서, 천황가의 분가를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는데 이를 미야케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천황가의 분가로서 미야케는, 천황가의 본류 혈통이 단되면 양자로 입적하는 형식으로 천황가를 계승,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의 미야케는 [[메이지 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천황가의 정통과 너무 멀어진 가문은 궁가의 자격을 잃고 정리하게 되었다. 현재는 소수의 가문만 남아 있으며, 그나마 모두 천황가와 마찬가지로 남성 적손이 부족하여 단될 위기에 있다.
  • 권해효 . . . . 3회 일치
         신인 시에는 유쾌하고 코믹한 역할을 주로 맡았으나, 연륜이 있는 최근에는 다양한 색깔의 연기들을 시도하고 있다.
         공중파 신인 시인 1994년에 촬영한 [[오뚜기]] [[스낵면]] CF의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입에 착착 감기는 애드립성 멘트 덕분에 광고 대상인 스낵면이 아닌 본인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기도 했다(...)
          * 아버지는 퇴역군인이셨고 3남매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권해효는 대학 재학시 반드시 장학금을 받아야했다고 한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한채 공부에만 전념했고 이것이 부채의식으로 남아 현재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 김다솜(배우) . . . . 3회 일치
         연예활동 이외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린 시 부모님이 시를 잘 쓴다고 칭찬했다거나 30살 전에 수필을 직접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는 등. 또한 일기도 자주 쓰는 것 같다. ~~언니들이 애써 외면해서 그렇지.~~ 일기장에는 인종차별 문제를 우유에 빗대어 썼던 것으로 보아 의외로 생각이 깊은 것 같다. 멤버들 말로는 문자도 평소 길고 장황하게 쓰는 타입이라고...
         외국의 [[양덕후]]들은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정규 1집 타이틀곡 <So Cool> MV에서도 "머리 단발인 애가 제일 이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디씨인들도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효정]]과 [[나르샤]]에 밀려 [[소유(가수)|소유]]와 함께 계속 비주류를 맴돌았지만 <Loving U> 때부터는 [[효정]]과 [[나르샤]]의 뒤를 잇는 인기 멤버가 되었다. <Loving U> 활동의 최고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막내보다 늦게 뜬 [[소유(가수)|소유]] 지못미.(...)~~ ~~다만 당시 파트가 딱 한 소이었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연습생]] 시 [[생일]]임에도 [[닭가슴살]] 두 덩이만 먹고 [[케익]]은 손도 못 댔다고 한다.
  • 김민수 (1991년) . . . . 3회 일치
         ==[[한화 이글스]] 시==
         ==[[상무 야구단]] 시==
         ==[[삼성 라이온즈]] 시==
  • 김상엽 (야구인) . . . . 3회 일치
         ==선수 시==
         ===[[삼성 라이온즈]] 시===
         ===[[LG 트윈스]] 시===
  • 김소혜(1992) . . . . 3회 일치
         김소혜는 수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표현하였다. 은빈과의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었던 시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은빈을 지긋이 바라보는 부분, 은빈이 아파서 보건실에서 쉬고 있을 때 같이 있으면서 머리를 쓰담쓰담하는 부분에서 설렘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아웃팅으로 수연과 은빈은 이별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은빈은 남들의 시선이 걱정이 되어 이별을 고하고, 수연은 우리 두 사람만 있으면 남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며 싸우게 된다. 수연은 은빈이 떠나갈까 두려운 마음에 눈물이 담긴 키스를 함으로써 수연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였다. 은빈만큼만 지켜주기 위해 수연은 학교를 떠나게 되는데, 슬프지만 애써 담담한 감정을 담아내었다.
         촬영 후 김소혜는 소감을 밝혔는데 자신의 연기가 성소수자에게 행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고 말하였다. 수연의 감정이 애하게 다가왔다고 평하였다. 수연의 사생활의 누군가에 의해 짓밟히고, 은빈에게 매달리고 울기도 했지만, 은빈을 위해 쓸쓸히 퇴장하는 장면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수연은 은빈을 정말 사랑해서 떠났지만, 김소혜 자신이 수연이라면 사랑하는데 떠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신은 딸기우유를 급우에게 맞은 장면이라고 한다. 날씨도 추웠고 그 장면을 반복 촬영하느라 몸살이 왔다고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43970|TV리포트]]
         원래 처음에는 은빈 역할로 오디션을 보았는데, PD가 김소혜를 만나보고 수연의 역할을 배정했다고 한다. 역할이 바뀌다보니 당혹스러워서 고민도 많이 하고 대본을 수백 번 읽었다고 한다. 김소혜는 입맞춤을 애하고 잔잔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키스신이 잘 나온 것은 강성아가 리액션을 잘 해준 덕분이라고 말하였다. 놀라운 점은 은빈의 역할이 촬영 전 날에 결정되었기에 '''현장에서 처음 만난 날에''' 키스했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 막간에 강성아에게 편하게 대해주고 호흡도 맞춰보고 예쁜 동생이라 생각하고 촬영했다고 한다. 촬영 중에는 은빈을 생각하는 수연의 감정에 몰입해서 임했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09629|OSEN]]
  • 김인철 . . . . 3회 일치
         == 프로 선수 시 ==
          * 현역 시에는 항상 익살스러운 행동이 주특기. 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삼성 라이온즈|삼성]] 시 '''삭발을 한 적이 있다.''' 우승경력은 없으며 [[1993년]], [[2001년]], [[2006년]] 준우승으로 [[콩라인]] 가입.
  • 김현성(가수) . . . . 3회 일치
         제물포고등학교40회 졸업생이다.[* [[김광진(가수)]]은 27회, [[지상렬]], [[김구라]], [[염경환]]은 33회다.]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 2학년 재학 중이던 1997년 제18회 [[강변가요제]]에서 '스톱'을 불러 금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그후 [[김형석]]에게 스카우트 되면서 소원, 이해할께, heaven 등의 히트곡을 남겼으나 [[성대결]]로 인해 한동안 음악활동을 하지 못했다. 블로그의 글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야기한 것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연예계를 은퇴했으며 이후 여행 및 저술 활동등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참고로 [[2015년]] 기준 미혼이라고...
          * 'Heaven' - 김현성을 스타덤에 올려준 대표곡으로 인기가요에서는 1위 후보까지 간 곡이다. 그 덕에 슈가맨에서 이 곡을 김현성의 슈가송으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곡 자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데, 그가 이 곡으로 활동하면서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해 성대에 무리가 가는 바람에 원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이 때문에 김현성에게나 팬들에게나 여러모로 애증의 곡. 작곡 단계에서부터 곡 컨셉 자체가 '--타고난 미성으로 기본 음역대가 아주 높은-- 김현성이라는 가수의 한계음역대를 다 보여주자'라는 취지였는데다 계속해서 고음역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스타일이라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한다. 아래서 언급되는 슈가맨 방송에서 '리메이크된 적도 없고 방송에서 후배들이 불러주지도 않더라'라고 말할 정도...[* 실제로 이 곡을 리메이크한 조권은 고음대를 포기했다.] 사실 이 시 명곡 발라드들은 고음역대가 많은 편인데 Heaven은 특히나 어렵다.
         그간의 사연을 밝혔으며 해당 프로그램에서 깨알 책홍보와 함께 새 앨범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날 방송에서 [[성대결]] 및 오랜 활동 중단으로 인해 [[가창력]]이 많이 퇴보한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목소리에 쇳소리가 많이 났고 특히 고음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오오우치 마리아는 [[초등학교]] 시부터 [[살인]]을 꿈꾸고 있었다. 범행에 사용된 도끼는 이미 [[중학생]] 시에 구입한 것이었다. 오오우치 마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다.", "사람을 죽였을 때는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성취감을 얻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함께 노래방에 갔던 중학생 시 동급생에게 탈륨을 투여했다. 이 때 소녀를 문병하러 방문했는데, 진술에서 병문안은 탈륨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했을 뿐이며, "의외로 건강해서 실망했다."고 밝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3회 일치
          * 이레지어 헤드, 아이자와 쇼타의 그녀 등장? 아이자와의 지인 Ms.조크 등장. 아이자와는 일방적으로 프로포즈 당하고 거하길 반복하고 있다.
          * 그런데 이 여자,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는 기인. 아이자와가 광속으로 거하는데 그게 또 웃기다고 폭소를 터뜨린다.
          * Ms.조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거듭 결혼을 권하는데 그때마다 아이자와는 칼 같이 거한다. 그리고 폭소를 터뜨리는 무한 순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3회 일치
          * 이 시험은 HUC에 의한 채점 외에도 각 히어로들이 자기 개성에 적합한 자리에서 적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철저한 모니터링이 이루어진다.
          * 채점은 감점식으로 50점 미만이 된 수험생은 바로 탈락, 빌런이 나타난 지금도 적한 판단과 활동이 중요하다.
          * 어린 시 요아라시는 엔데버의 팬이었다. 히어로는 "뜨거움"이라는 모토는 바로 엔데버의 활약에서 배운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8화 . . . . 3회 일치
          * 싸우며 유년시의 기억을 회상하는 미도리야와 바쿠고. 이 싸움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야는 최대한 피하려 한다.
          * 바쿠고는 아직도 미도리야가,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꼬마시에서 무엇이 변한 건지 알지 못한다. 그는 싸움을 피하는 미도리야에게 싸우라고 윽박지른다.
          * 반격을 맞은 바쿠고가 쓰러지자 미도리야가 손을 내민다. 그때 어린시처럼. 그리고 바쿠고도 그때처럼 뿌리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3회 일치
          * [[키리시마 에지로]]의 새로운 형태, "레드 라이오트 언리미티드". 키리시마의 경화를 가뿐히 능가하던 빌런의 칼날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키리시마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건 길어야 3, 40초. 그러나 일단 이 상태가 되면 그 자신의 말대로 '''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 빌런은 쓰러지자 다시 울보 상태로 돌아간다. 키리시마는 무심코 약의 효과가 끝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빌런은 "나는 강해지고 싶었을 뿐인 불쌍한 인간.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데 키리시마는 안된다고 거하면서도 "마음은 이해한다"고 태도가 누그러진다. 그게 빌런이 노린 바였다.
          * 그 중에는 [[아이자와 쇼타]]나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 같이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버블걸]]도 보인다. 미도리야와 친구들은 어리둥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데 네지레는 그들 사이에서 [[류큐]]를 발견하고 달려가서 질문을 세례를 퍼붓는다. 류큐는 곧 알게 될 거라면서 나이트아이에게 "그 안건"에 대해 슬슬 시작하자고 말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3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 [[서 나이트아이]]에겐 "예지 능력으로 미래를 봐달라"고 요청하나 나이트아이는 한사코 거, 일반적인 수사력만으로 착수한다.
          >그때 잡지 못한 손은 에리쨩에게 있어서, 꼭 망이진 않았을 거다.
          미도리야가 힘차게 "예!"라고 대답한다. 키리시마는 이 장면에 감동했는지 "평생 이레이저 헤드를 따라가겠다!"고 흥분한다. 이레이저는 "평생은 사양한다"고 거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3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의 오른팔 [[이리나카]]의 계략으로 동료들과 단된 [[키리시마 에지로]]와 [[패트껌]].
          패트껌이 랏파의 러쉬를 버티고 반격을 가하자 배리어로 막는다. 랏파는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배리어를 치워달라고 하지만 텐가이가 오버홀의 명령은 그런게 아니라고 거한다. 이쪽은 "창과 방패"의 조합, 저쪽은 "방패와 방패"의 조합이라 상성상 유리하니 이 콤비네이션으로 처리하자고 말한다.
          키리시마는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뜸 랏파를 향해 "나도 전에는 무투파"였다며 그쪽이 지쳐서 공격을 멈추는 것과 자신이 버티지 못하는 것, 창과 방패 중 어느 쪽이 강할지 승부하자고 도발한다. 당연히 기쁘게 응하는 랏파. "착한 돼지"라고 극찬한다. 하지만 아깐 소모전으로 나가면 반드시 진다고 하지 않았나? 패트껌의 심정은 박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3회 일치
          * 중학생 시의 키리시마. 지금처럼 의협심이 넘치고 사나이를 추구하는 성격이었으나 아직 개성도 약하고 딱히 두각을 보이지 않았다.
          * 그러나 키리시마는 엄청난 좌감을 맛봤다. 드러내진 않았으나 내심 웅영고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 사건으로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
          * 자신의 나약함에 망한 키리시마는 진로조사서에 1지망으로 웅영고를 적어놨던 것도 지워버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3회 일치
          겨우 기어다니는 처지였지만 한 발 쏘는 정도라면 충분. 네모토는 놀라운 속도로 탄환의 수령부터 장전까지 마쳤다. 의외로 시간을 허비한 것은 조준이었다. 누구를 노리나? 철포옥 핫사이슈는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었지만 네모토는 조금 달랐다. 지금 오버홀이 넘겨준 탄환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발이라도 낭비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노려야할 건 당연 밀리오로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통과"하는 개성. 일반적인 방법으론 맞출 수 없다. 몰래 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오버홀이 탄환을 넘기는 시점에서 눈치채버렸다. 쿠로노는 기한 상태.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저 투과 개성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그런 건 대로 용납 못해!
          * 밀리오는 상황을 파악하는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버홀이 넘긴 탄환, 네모토의 장전, 그리고 에리를 향한 조준. 함정이다. 분명 자신이 막으러 갈 거라는 계산.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리는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보고도 소리지르지도 달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다물었다. 살의를 마주할 때마다 언제나 그랬다. 이 아이는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걸 참고 받아들이는데 너무나 익숙했다. 아픔과 공포를 통해 깊숙히 새겨진 망. 오버홀이 말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3회 일치
          * 모두의 목표인 에리는 미도리야로부터 한 발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미도리야는 [[서 나이트아이]]의 구조를 동료들에게 부탁한 뒤 에리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오버홀이 지면을 재구성해 에리를 낚아채고, 발밑을 기둥으로 만들어서 솟구쳐 오른다. 미도리야는 류큐팀이 만든 구멍으로 도망치려는 속셈임을 눈치채고 대 놓치지 않겠다며 도약하지만 따라잡을 것 같지 않다.
          * 에리의 되감는 개성은 오버홀과 [[네모토 신]]의 융합을 "되감아" 분리시킨다. 에리는 지금껏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오버홀에게 실험실의 쥐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딱 한 번 스스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실패. 대 도망칠 수 없다는 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저주받은 것이 숙명이라 여기고 살았다. [[토오가타 밀리오]]와 나이트아이, 그리고 미도리야가 그걸 바꿨다. 오버홀이 죽어도 에리를 놓아주지 않듯 이들도 죽어도 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그녀는 전에 없던 마음을 각성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 에리는 손에 잡은 망토를 미도리야를 향해 뻗었다. 원래 닿지 않았을 미도리야의 도약은 그 망토를 잡음으로써 목표에 정확히 닿았다.
  • 남유진 . . . . 3회 일치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1997년 외환위기|IMF]]와 비견되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남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이었다.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좌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반감도 상당해진 상태였다.
         현역 시장 시 그의 어이없는 기행과 실정으로 인해 경북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구미 시민들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비록 보수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를 선택하면서 투표로써 제대로 응징했다.
  • 데드 스페이스 . . . . 3회 일치
          제일 처음 보게 될 네크로모프. 팔을 만세 자세로 치켜올리고 있고 손 대신 칼날이 나 있다. 팔, 다리, 머리를 단할 수 있다.
          기어다니는 네크로모프. 벽이나 천장을 탈 수 있다. 팔, 꼬리, 머리를 단할 수 있다.
          아기의 모양을 한 네크로모프. 벽을 탈 수 있다. 등에 난 세개의 촉수를 단할 수 있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3회 일치
         동물의 체온 조 시스템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진다.
          * 몇몇 동물은 특수한 체온조을 하기도 한다.
         = 조 방식 =
  • 둠 패트롤 . . . . 3회 일치
          본명 리타 파(Rita Farr).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할리우드]] 여배우로서 활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영화 촬영하다가 이상한 화산 가스에 노출되었고, 그 영향으로 자신의 몸 크기를 100피트까지 늘리거나 몇 인치까지 줄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나중에 능력이 발전하여 신체 일부분의 크기만을 조하기도 한다. 신체를 [[거대화]]화는 이미지도 있다.
          외모는 손상을 입지 않았지만 리타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조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위험한 괴물로 여겨졌다. 영화배우로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은둔 상태가 되었으나 치프에게 둠 패트롤로 스카우트 된다. 나중에 멘토와 결혼하고, [[비스트 보이]]를 입양한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영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 라데츠 . . . . 3회 일치
         손오공에게 [[사이어인]]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오공은 어린 시 머리를 부딪치고 기억을 잃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라데츠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라데츠는 손오공에게 동료로 들어오라고 강요하며, 손오공이 거부하자 손오반을 납치해간 다음 지구인을 죽여서 쌓아놓으라고 요구하고 떠난다. 하지만 오공은 라데츠의 사악한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껴 받아들이지 않는다.
         플롯의 개념에서 상당히 비중이 큰 캐릭터인데, Z의 도입부에서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충격 효과를 줄 뿐더라, 작품의 무대를 우주로 넓히고 손오공의 과거나 정체 같은 중요한 설정까지 공개. 그리고 엄청난 강함으로 앞으로 있을 사이어인과의 처한 사투를 예고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 지구를 접수하기 위해서 : 또한 라데츠에 의해서 손오공은 어린 시에 사이어인 전사 카카로트로서 지구에 보내졌고, 지구를 정복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오공이 카카로트로서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 시점에서 지구를 점령했을 가능성이 높다.--혹은 그 전에 [[무천도사]]나 [[피콜로 대마왕]]과 싸우다 죽었거나.-- 이 당시 베지터, 내퍼, 라데츠는 사이어인으로서 프리더 군단 밑에서 일하면서 행성(부동산)을 접수하여 판매하고 있었으므로, 라데츠 역시 "카카로트가 접수해놓았을 지구"를 인수하러 왔다고 볼 수 있다.
  • 레오(워저드) . . . . 3회 일치
         다른 캐릭터들처럼 엔딩 분기가 있느나 다른 캐릭터들이 엔딩 도중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 것과 달리 레오는 중간보스인 블레이드에 대한 단 피니시를 하냐 마냐에 따라 엔딩이 달라진다. 단 피니시를 안하는 쪽이 굿 엔딩이니 주의 바람. 특히 필살기 대부분이 참격이다보니 꽤 주의해야 한다.
         칼을 쓰는 통상기들은 밀착해서 맞출시 데미지와 스턴치가 반토막나는 페널티가 있으므로 거리 조이 관건. 엄청난 리치의 점프 약K과 앉아 중K으로 견제하며 서서 중K이나 앉아 강P로 대공을 처리하는 식의 싸움이 주가 된다.
  • 로힝야 . . . . 3회 일치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남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상 수백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2016년 12월 29일,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노벨상 수상자 22명은 유엔 안보리에 공개서한을 보내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와 반인륜 범죄를 중단시킬 것을 요청하고, 아웅산 수치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좌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미얀마 민간에서는 무슬림에 대해서 [[음모론]] 적인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미얀마 민간에서는 무슬림들이 '786 운동'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786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무슬림들이 [[코란]]의 첫 구인 ‘자비로우신 신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를 상징하는데, 미얀마 불교도들은 이 세 숫자의 합이 21이며, 이는 '무슬림이 21세기에 세계를 정복하겟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으며, 로힝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미얀마를 정복하려 한다고 믿고 있다.
  • 마기/305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너만은 마음을 열지 않았다"며 알라딘이 신드리아 왕국의 마기가 되어 달란 부탁을 거한 일을 거론한다.
          * 바로 오늘날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차였다고 한다.
         - 알라딘. 자신이 겪은 모든 괴로움은 "성공을 위한 차"에 지나지 않았다는 신드바드에게. 달편으로 일관하던 신드바드도 여기에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 마기/311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나는 당신 얼굴을 좋아한다"고 받아치며 "우고랑 우리 부모님 옆에서 웃고 있던 시의 미소 말이야"라고 한다.
          * 아르바는 솔로몬의 지혜를 달라고 하지만 알라딘은 당연히 거하고 아르바가 실력행사로 들어간다.
          * 이들은 모두 알마트란 시의 주민들로 알라딘은 이들을 "보고 싶었다"고 하면서도 "지금은 인형이 됐다"고 한탄한다.
  • 마기/323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행복을 놓지 않겠다고 규하듯이 외친다.
          * 그는 알마트란 시, 솔로몬이 그를 물리치던 시부터 이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 마기/325화 . . . . 3회 일치
          * 다윗의 풀네임은 다윗 요아즈 아브라함. 알마트란 시 일 일라가 최초로 마법을 부여한 인간 중 한 명이었다. 겉으론 평범한 소년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마법과 함께 또다른 특이한 재능을 부여받았는데, 그것은 "운명을 보는 힘". 즉 특이점이다. 그는 운명을 통찰하며 마법이란, 마법사란 무엇이며 신이 어째서 그를 선택했는지 의문을 가진다.
          * 우고의 주위를 신드바드의 일곱 진이 둘러싼다. 후르후르, 베파르, 바레포르, 바알, 포칼로르, 크로세르, 제파르. 본래 진들은 금속기의 주인이 죽으면 성궁을 거쳐 다시 던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왕을 기다린다. 그러나 일곱 진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들은 솔로몬이 택한 자유로운 운명을 "무책임한 것"으로 비난하며 신드바드의 대적인 지도자 이론에 찬동한다. 그리고 그 대적인 지도자로는 신드바드 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우고는 뒤늦게 이들의 배신을 깨닫는다. 그들이 솔로몬을 비난하고 비하할 수록 본래 왕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고 남들의 권유로 그 자리에 올랐던 솔로몬이 왜 모욕 당해야 하냐며 억울해서 눈물을 흘린다.
  • 마기/329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가 "동등한 인간"이던 시은 승부하며 즐거웠으나 지금은 "신"이 되어버린 탓에 쓸쓸해졌다고 설득한다.
          신드바드가 자신의 루프만 그냥 뒀을리 없으니, 지금 자신의 생각은 신드바드가 주입한 사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알라딘도 그 가능성은 잊고 있었는디 아차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성궁을 장악한 신드바드 조차도 알리바바의 루프만은 손을 댈 수 없었다. 인간이던 시 그토록 알리바바를 "평범한 인간"이라 여겼던 신드바드는 신이 되고 나서야 "너는 신비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알리바바는 자신이 한 번 죽어서 틀에서 벗어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드바드 노답화의 정. 새로운 루프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몰살하겠다는, 완전히 신놀음이 취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의 행보를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의 최종보스였던 푸치 신부와 유사하도 보는 시각도 있다.
  • 마기/335화 . . . . 3회 일치
          * 어리둥한 일행 앞에 소년시의 신드바드가 나타나 바알의 전신 마장을 두른다.
          알라딘은 이곳이 성궁이라고 보증하면서도 자신이 [[우고(마기)|우고]]와 함께 있던 시은 이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분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침입하던 시점에선 알라딘의 기억대로 서고와 같은 모습이었다. 원래 성궁은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그 말은 곧 지금 성궁의 모습은 신드바드가 창조한 것.
  • 마기/338화 . . . . 3회 일치
          * 제 2던전 바레포르는 '''허위와 신망의 시련'''. 안에는 [[히나호호]] 등과 함께 발레포르 던전을 공략하던 시의 신드바드가 나타난다.
          쥬다르는 예상 외의 전개에 어리둥하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여기고 과연 자신들에게 무엇을 시키고 싶은 건지 고심한다.
          * 1던전에서처럼 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번엔 [[하나호호]]를 비롯해 어린 시의 팔인장들, 신드바드과 초대 신드리아 왕국을 일궜던 당시의 팔인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한데 모여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 마기/342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 그가 세상에 망한 진짜 이유를 깨닫는데, 그건 사회적 모순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모순" 때문이었다.
          * 팔인장들은 그의 가장 친하고 가까운 동료였다.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함께 분노했고 세상을 바꾸고자 힘을 합쳤다. 나라를 만들고 동맹을 만들고 분쟁을 없애길 바랬던 그들은 분명 혁신가였다. 그리고 혁신은 성공했다. 그들이 바라던 분쟁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었을 때, 동료들은 더이상 혁신가이기를 거부했다.
          * 알라딘 또한 신드바드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에 좌한 것인지 공감한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쌓아온 것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며 인간의 본성이다. 신드바드는 거기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당연한 본성들이 부딪힐 때 전쟁이 일어난다. 그건 결국 누가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마기/343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는 그때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백룡과 싸우다 패해서 망연자실했던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기묘한 공간에 있었다. 우두커니 정좌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윽고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기록영상처럼 보게 되었다. 그건 거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몇 십, 몇 백 번이나 그 영상을 보면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좌감과, "나는 죽었다"는 자각이 자라났다. 그는 다른 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좌감을 삭히고 있었다.
          *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 자신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 있는게 아니었다.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알리바바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주위에 흩어져 자신의 삶을 곱씹으며 좌감과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 마기/348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는 알라딘도 이 자리에 불러달라 요청한다. 그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대화라면서. 신드바드가 거기에 응한다. 알라딘은 아직 제 3던전 제파르에서 싸우는 중이었다. 그를 갑자기 소환하자 어리둥한 얼굴로 불려온다. 알리바바는 "할 얘기가 있어 전송했다"며 일단 본론으로 들어간다.
          설명을 듣던 알라딘이 드디어 감을 잡는다. 신드바드의 꿈은 모두를 죽이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알리바바는 이 힘을 "루프의 구분", "가로의 벽"을 없애는 데도 적용할 것이다. 알라딘이 말하지 않았는가? 루프의 구분은 좋지 않다. 알마트란의 사람들, 검은 루프에 동화된 사람들, 알 사멘. 이들과는 죽어서 조차 만나지 못한다. 죽음 조차 각각으로 단된 세상. 이런 비극이 세상의 대적인 섭리여야 할까?
  • 마기/351화 . . . . 3회 일치
          그는 신드바드의 변에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춰선 자는 돌맹이나 다름 없고 "나아가는 자"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 말한다.
          * 망에 삼켜질 것은 우고. 그러나 좌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당초 성궁에서 결판을 짓기로 했던 네 명의 젊은이들. 알라딘, 알리바바, 백룡, 쥬다르는 다윗을 타도하고 세상을 구할 싸움을 시작한다. 어찌보면 결국 처음부터 이럴 각오로 시작한 싸움이었다.
  • 마철준 . . . . 3회 일치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발 기술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사이드 풀백으로 불렸다. 군더더기 없는 크로스 능력과 간결한 드리블로 SK 유나이티드 시 전성기를 보내왔으며, 팀의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수비력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수비를 잘 보여주며 평균 이상은 해준다는 평. 그러나 점차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수비력이 떨어지고 공격 가담 상황에서도 크게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를 탈단 후 방황하다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철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이는 당시 부천 SK 소속의 이동근 선수였다. 이동근은 포항제철초등학교 시부터 마철준과 한솥밥을 먹으며 [[경희대학교]]까지 나란히 진학했던 동기였기에, 마철준에게 자신의 소속 팀인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이에 마철준은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모리오리 족 . . . . 3회 일치
         채텀 제도는 작고 외딴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뉴질랜드와도 거리가 멀어 외부와의 교류가 어려웠다. 모리오리 족은 [[전쟁]]을 포기하고 공존을 선택했으며, 인구 조을 위하여 남자 신생아를 [[거세]]하는 방법을 썻다. 이로서 인구 과잉을 줄이고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
         채텀 제도는 폴리네시아 전통 농업에 부적합하였기 떄문에 집약적인 농업과 전쟁 문화를 가지게 된 마오리 족과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수렵과 채집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채텀 제도의 환경상 집약 농업이 어렵고 인구 조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아 전쟁이 자주 벌어졌던 마오리 족 사회와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1835년 12월, 수백년간 평화롭게 살던 모리오리 족은 갑자기 뉴질랜드에서 나타난 [[마오리 족]]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11월 19일, [[총기]]와 [[곤봉]],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 족이 채텀 제도에 나타났으며, 12월 5일에는 400명이 추가로 나타났다. 채텀 제도를 공격한 약 900명의 마오리 족은 수적으로는 당시 모리오리 족(2000명으로 추정)의 반 정도에 불과했으나,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모리오리 족은 단합된 정치 조직이 없었으며, [[무기]]를 비롯한 전쟁 기술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오리 족은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직화된 전쟁 문화, 정밀하게 만들어진 원주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서양인들과의 교류로 [[총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 무료로 책 읽는 사이트 . . . . 3회 일치
          전자도서관들은 현재 각 도서관의 정책에 따라 일정한 가입차 및 인증차에 의해서 자신의 기기에서 전자도서를 대여할 수 있다. 위키러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도 전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을 테니 학교에 문의하면 사용차를 안내받을 수 있으니 참고.
  • 문무왕 . . . . 3회 일치
         원년([[661년]]) [[6월]] 상중(喪中)이던 문무왕에게 당은 [[고구려]]를 치는 당군과 [[웅진도독부]]에 고립된 당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신라]]가 [[백제]] 부흥군(復興軍)을 진압하는데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해왔다. 평양으로 먼저 군량을 보내면 웅진으로 통하는 물자 수송로가 끊어질 것이고, 그 수송로가 끊어지면 [[웅진도독부]]의 당군들은 [[백제]]군에게 궤멸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왕은 8월에 직접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시이곡정(始飴谷停)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대전 계족산성|옹산성]](甕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백제 부흥군을 9월 25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해 27일에 함락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1"/>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웅현성(熊峴城)을 쌓아 [[웅진도독부]]로 통하는 군량수송로를 다시 개통시킨 뒤, 상주(上州) 총관(摠管) 품일(品日)과 일모산군(一牟山郡) 태수 대당(大幢)·사시산군(沙尸山郡) 태수 철천(哲川)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우술성]](雨述城)을 쳐서 또 함락시키고, [[10월 29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당의 조문 사을 맞이했다. 한편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소정방]]이 보낸 함자도(含資道) 총관(摠管) 유덕민(劉德敏)<ref group="주">《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대감(大監) 문천(文泉)이라 표기됨</ref>이 와서 문무왕에게 당군에 대한 군량 지원을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1"/> 왕은 이듬해 1월 [[김유신]]으로 하여금 수레 2천여 대에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이들 군은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고 귀환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2">《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2년(662)</ref>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7년([[667년]]) 7월에 3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고, 당에서는 신라의 장군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장군으로 발탁하고 대아찬 일원(日原)은 당의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는데, 문무왕은 지경과 개원에게 각각 파진찬과 [[대아찬]]의 관등을 주고, 일원을 운휘장군으로 명한다는 고종의 칙명은 왕궁 뜰에서 받도록 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7년(667)</ref> 또한, 같은 달 고종은 유인원과 신라의 [[태종무열왕#가계|김인태]](金仁泰)에게 명하여 비열성(卑列城)<ref group="주">지금의 [[강원도]] [[안변군]]</ref>의 길을 따라, 신라 병사를 징발해 다곡(多谷)·해곡(海谷) 두 길을 따라 평양으로 모이도록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 가을 8월에 문무왕은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 9월에는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해 이적(李勣)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렸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신라군은 당군을 배제한 단독 작전수행 대신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배를 계속 띄워 당군의 동정을 살폈고, 당군이 아직 평양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고 먼저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먼저 고구려로 갈 길을 뚫기로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하지만 칠중성을 치기 전, 겨울 10월 2일에 평양성 북쪽 2백리 지점에 도착한 이적은 신라측 이동혜(尒同兮) 촌주(村主) 대나마 강심(江深)에게 부쳐,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칠중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곧바로 평양으로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신라군은 칠중성 공격을 포기하고 수곡성(水谷城)으로 향했지만,<ref name="삼국사기-671"/>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을 때 이적은 어느새 돌아가버렸고, 신라군도 그냥 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7"/> 12월에 당은 다시 웅진도독부의 유진장군(留鎭將軍) 유인원을 보내어 고구려 정벌을 돕게 하면서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정(旌節)을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7"/>
  • 문희(배우) . . . . 3회 일치
         [[1965년]] 서라벌예대 재학시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다. 유명 여배우 [[엄앵란]]이 흑맥의 촬영 현장에서 문희를 보았다고 하는데, 같이 촬영하던 남자배우들이 문희의 눈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66년 [[초우]], 1967년 [[원점]]을 찍으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그렇지만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성공한 거랑 비교하면 문희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남정임]]은 [[유정]]으로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했지만, 문희는 이들에 비해 데뷔작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후 전성기 시에는 [[윤정희(1944)|윤정희]]와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낼 때쯤, 윤정희는 [[내시]]를 흥행시키며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줬다. 윤정희는 선역에서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고, 남정임은 발랄한 배역을 맡았다. 그러나 문희는 주로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한 선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정희가 연기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문희는 외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점 때문에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이외의 흥행작으로는 내 몫까지 살아 주, 파도, [[벽속의 여자]], 형, 결혼 교실, 춘향전 등이 있다.
         * 1971년 《[[잃어버린 계]]》
  • 바키도/125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도쿠가와는 또 차상 문제를 거론한다.
          * 모토베는 "결정하는건 당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거하면 배후에서 찌르겠다"고 경고한다.
          * 그는 모토베가 펼친 기술이 무사시가 살던 시 "합전"에서 쓰던 거라고 감탄한다.
  • 박기혁 . . . . 3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 시==
         2014년 11월 26일 FA 우선 협상 마지막날 [[롯데 자이언츠]]의 3년 10억의 제시액을 거하면서 팀을 떠났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3126422 롯데, FA 선수 모두 협상 결렬..] - 이데일리</ref>
         ==[[kt 위즈]] 시==
  • 박세웅(1996) . . . . 3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 [[SK 와이번스]] 시 ===
         === [[삼성 라이온즈]] 시 ===
  • 박진성(시인) . . . . 3회 일치
         사실 박진성 시인도 소송을 건 사람 중 한 명이나, 아래의 자살 시도 이후 부질없이 느껴져서 취하했다. 2018년 4월 11일에 박 시인이 [[탁수정]]에게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23802202488832|메인 트윗에 올린 자신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내리라고 요구]]했을 때, 이때 몇몇 트위터리안들이 대화의 전문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을 건의하자, 박진성 시인은 진실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해당 건의를 거하면서 그 대화록은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월 19일엔 메인 트윗을 내려줄 것을 다시 요청했는데, 이 때는 '오늘까지 기다린다'는 말([[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6803521419755520|#]])까지 한 걸로 보아 당시엔 탁수정과의 소송전 재개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대신, 한국일보와 황 기자와의 정정보도 요구 소송의 1심 판결문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315951638564865|해당 대화를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부분을 7월 20일에 공개했다.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74513|#]])을 보고 격분,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1266038443659264|그동안 거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http://kingshandle.tistory.com/488|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 이 글은 설전 초반의 상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상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http://naver.me/FdNCVQm4|#]]
          >'''성재기 류의 비상식적이고 몰시대적이고 희화화된 단체 말고''' '남성의 인권'을 대변해줄 기관이나 시민 연대 같은 것이 실하게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단지 남성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남성들을 지키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 박학기 . . . . 3회 일치
         박학기는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렸을 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로 이사하여 학창시을 보냈다. 1983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나오고 1988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3집에서 〈계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곡으로 정식 가수 데뷔하였다.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로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있다.
         ** 계은 이렇게 내리네
  • 박홍우 . . . . 3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식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 헌법심판차진행중 청구인 등의 사망과 관련되는 문제점 검토, 법과 인간의 존엄: 청암 정경식 박사 화갑기념논문집, 박영사 (1997)
         2007년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시 [[김명호 (1957년)|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조교수의 재임용 불복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했다가 결과에 불만을 품은 [[김명호 (1957년)|김명호]] 전 교수로부터 집 앞에서 석궁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을 소재로 [[2011년]] 영화 《[[부러진 화살 (2012년 영화)|부러진 화살]]》이 제작되었다.
  • 배천석 . . . . 3회 일치
         2011년 7월, 숭실대를 중퇴하고 일본 [[J리그]] [[비셀 고베]]에 입단하였으나, 리그 3경기, 컵대회 1경기 출장에 그친 뒤, 양 정강이 피로골로 수술을 받고 9개월간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일본에서 시련, 강한 정신력 가져”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805|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4-02}} }}</ref><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대학 후배 앞에서 체면 차렸죠"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251282|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13-05-09}} }}</ref>
         2014 시즌 첫 경기였던 [[AFC 챔피언스리그 2014]] [[세레소 오사카]]와의 홈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전반기를 넘기지 못하고 양 정강이 피로골로 수술을 받게 됨에 따라 사실상 시즌아웃 되었다.
         포철공고 재학 시 U-17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였으며, 2011년 6월에는 U-22 대표팀에 선발되어 오만과의 평가전에서 2골을 넣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올림픽 평가전)'배천석 2골' 한국, 오만에 3-1 역전승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3888050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1-06-01}} }}</ref>
  • 백상원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
         ==[[삼성 라이온즈]] 시==
         ==[[상무 야구단]] 시==
  • 백일섭 . . . . 3회 일치
         명지대학교 재학 시이던 [[1963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였고 이듬해 [[1964년]] [[뮤지컬배우]] 데뷔하였으며 1년 후 [[1965년]] [[한국방송공사|서울중앙방송]](지금의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5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1969년]] [[문화방송]] 개국과 더불어 KBS에서 MBC로 자리를 옮겨 MBC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다.
         * [[1989년]] [[KBS2]] 미니시리즈 《[[반의 실패]]》
         * [[1974년]] 《[[애정이 꽃피는 계]]》
  • 보루토/2화 . . . . 3회 일치
          * 제자로 삼아달라는 보루토를 보고 소년시 나루토를 연상하는 사스케
          * 술법에 성공한 보루토는 우치하의 비석 앞에서 사스케에게 기술을 선보이는데, 사스케는 기술이 너무 작아서 나선환이라 부를 정도도 아니라고 평가하한다.
          * 저녁에 보루토는 "아버지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달라"고 하는데, 사스케는 그의 어린 시 이야기부터 꺼낸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3회 일치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월미도에서 리대훈 해안포 중대장이 단 4문의 포, 1,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천의 함선의 함선을 이끌고 공격하는 맥아더의 5만 대군을 3일간 좌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위 내용은 1983년에 북한에서 "월미도"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홍보하였으며 북한의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보인다.
         6.25 전쟁을 '''"북한의 승리"라고 주장'''하면서, 7월 27일을 전승로 기념하고 있다. 이들은 미군과 한국군이 선제 북침을 하였으나, "김일성의 전략으로 미군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kim_chon_ae/seoulpyongyang-08042017101743.html (참조)]]
  • 블랙 클로버/130화 . . . . 3회 일치
          블랙 모드가 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잭스의 뒤에서 뛰어올랐다. 그의 반마법검이 랜길스의 마법을 모조리 베어버린다. 동시에 [[미모사 버밀리온]]이 마력을 쥐어짜내 잭스를 치료. 잭스는 왕족에게 치료받길 거하지만 미모사는 그 거을 거한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3회 일치
          * 망의 베토와 대치 중인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
          * 베토는 양보받을 생각은 없고 여기있는 자들을 모두 망시키고 유린해서 빼앗겠다고 선언한다.
          * 베토는 야미에게 "동료가 전부 죽는다는 망을 맛 본 네가 메인 디쉬"라며 도발한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3회 일치
          * 베토는 약자는 먹히고 그저 망할 뿐이라고 도발하는데, 망하면 "그 자식(아스타) 보기 쪽팔려서 선배로서 들 낯이 없다."며 다시 일어선다.
          * 아스타를 알아본 베토는 리히트에게 준 고통을 갑로 갚아주겠다고 으르렁 거린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3회 일치
         망의 베토와 맞서는 아스타
          * 베토는 둘의 실력을 평가하하면서 쓰래기와 찌끄레기라고 비하한다.
          * 너 같은 쓰레기가 "단마의 검"과 "숙마의 검"을 가진 것이 구역질이 난다며 아스타에게 울부짖고 망하라고 강요한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3회 일치
          * 합체마법 "해신 떨구기"는 이들이 평생을 연마한 합체마법. 망의 베토도 제법이라고 칭찬한다.
          * 아스타와 키아토를 쓰러뜨린 망의 베토는 도착한 노엘 실버와 카호노를 바라보며 "조금은 즐겁게 해봐라"며 도발한다.
          * 베토는 카호노의 머리채를 잡아올리며 "너희의 꿈을 부숴줬다. 확실히 맛 봤나? 망을?"이라고 빈정거린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3회 일치
          * 망의 베토는 노엘 실버의 마력을 보고 왕족임을 알고 "가장 증오스러운 일족"이라 부르며 공격해보라고 도발한다.
          * 그는 과거를 단편적으로 회상하는데, 리히트는 그에게 "망해야 할 것은 네가 아니라 클로버 왕국의 인간"이라고 말한다.
          * 베토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망"이라고 선언한다.
  • 블랙 클로버/71화 . . . . 3회 일치
          * 망의 베토를 관통한 숙마의 검.
          * 그러나 오히려 아스타의 팔을 부러뜨리며 망하라고 종용하지만 아스타는 굴하지 않는다.
          * 그리고 지금까지 무시했던 아스타가 자신과 같은 짐승, 혹은 그 이상의 "망 조차 삼키는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3회 일치
          * [[판젤 크루거]](젤)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 지휘관이자 교관.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 다이아몬드 왕국의 대군을 가로막은 [[판젤 크루거]]. 젤은 칼을 빼든 채 과거의 제자였던 [[마르스(블랙 클로버)]]와 [[라드로스]]에게 물러날 생각은 없냐고 묻는다. 마르스는 말이 없지만 라드로스는 신나서 주거린다. 오히려 그 말은 자신들이 할 말이며 그들은 마녀의 숲을 침략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젤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바람 마법이 다이아몬드 병사들의 마법을 상쇄, 자신은 놀라운 속도로 적진을 헤집어 놓는다. 사실 그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 지휘관이자 교관으로 유명한 인물.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배신했다고 해서 배신자 취급이다. 그의 목에는 현상금도 걸려있는지 막대한 포상금이 나올 거라며 죽이려 든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아스타는 단호하게 거한다. 항상 생각없어 보이는 아스타지만 라드로스가 강하며 혹시라도 뺐다가 반격 당하면 승산이 없을 테니 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물론 라드로스는 이대로는 죽을 거라며 징징대는데 아스타는 "그정도로는 안 죽는다"고 확실하게 못박는다. 라드로스는 감정에 호소하면 먹힐 거라고 여겼지만 그게 완전히 오산. 아스타는 여러 수라장을 헤쳐오면서 단련돼서 그정도 심리전은 먹히지 않았다.
          아스타는 한 방 더 먹여서 완전히 기시키려고 든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3회 일치
          악마는 자신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대답하는데 아스타는 대로 모르는 녀석이라고 대꾸한다.
          악마는 그렇게 말하며 아스타에게 손을 뻗는다. 아스타는 당연히 거부하지만 자신에게 맡겨두면 "저 인간"도 이길 수 있다며 유혹한다. 하지만 아스타는 자신의 힘으로 이기겠다며 거하고 악마의 팔목에 달라붙는다. 악마는 아스타같이 작은 놈은 이길 수 없다고 빈정거린다.
          * 라드로스는 멈추지 않는 아스타의 돌격을 보며 패닉에 빠진다. 그토록 모든 것을 걷어차며 올라왔는데 어째서 자신이 지는 거냐고 규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3회 일치
          * 바네사는 자신은 다시는 이 숲에서 나가지 않을 거라며 일행을 풀어달라고 애원하지만 여왕은 이미 그런 데는 흥미가 없다. 오히려 그녀가 이들을 죽여야 하는 대적인 이유다.
          바네사는 새장 속에 갖혀 있던, 여왕의 소유물이었던 시을 떠올린다.
          * 유년시의 바네사는 정말로 새장에 갖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왕은 그녀의 실마법이 "언젠가는 운명을 다루는 힘"을 갖게 된다는 점괘를 믿고 그녀를 감금했다. 바네사는 자신이 그런 힘을 가질리 없다고 생각하며 바깥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마녀들을 동경했지만 여왕은 그녀를 꺼내주지 않았다. 여왕은 바네사가 운명을 다루는 힘에 각성할 때까지 풀어주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가족이니 자신이 운명을 정해주는 거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 블리치/690화 . . . . 3회 일치
          * 이치고는 망을 운운하며 비꼬는 유하바하의 말에 격분한다.
          * 그는 그런 망은 언제나 극복하고 넘아왔다며 드디어 만해 천쇄참월을 해방한다.
          * 유하바하는 또 다시 "망하지 마라"고 말한다.
  • 블리치/691화 . . . . 3회 일치
          * 유하바하는 이치고가 미래를 어떻게 바꾸든 그 바꾼 미래도 산산조각을 내주겠다며 "망하지 마라 이치고"라고 도발한다.
          * 규하는 이치고.
          * 1화만에 망에 빠진 이치고--유리멘탈--
  • 성시경 . . . . 3회 일치
         성시경은 [[1979년]] [[4월 17일]]에 [[대한민국]]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1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 [[홍콩]]에서 산 적도 있었고, [[미국]]의 유명한 [[연예인]]인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대입 입시생 시이던 1999년 4월에 MBC 문화방송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엑스트라 단역급으로 첫 출연한 적이 있고 이듬해 [[2000년]] [[2000년 9월|9월]]에 열린 제1회 드림뮤직 신인가수 선발대회 "뜨악 페스티벌" 인터넷 오디션 "발악"을 통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첫 번째 싱글은 2000년 [[2000년 11월|11월]]에 발매된 "내게 오는 길"이었다. [[2001년]] [[2001년 4월|4월]]에는 데뷔 앨범인 "처음처럼"이 발매되었고,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7개의 정규 앨범, 3개의 리메이크 및 스페셜 앨범, 1개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최근 [[일본]]에서 [[정규앨범]][[DRAMA]]발매 전 일본 4개도시 투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현재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stview.php?no=2018030715133349170&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제목=성시경, NHK 한국어 강좌 프로 출연 "일본어도 능통"|출판사=스타뉴스|날짜=2018-03-07}}</ref><ref>{{뉴스 인용|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40901032939179001|제목=성시경 ‘일본 본격 진출’ 7개 도시 투어|출판사=문화일보|날짜=2018-04-09}}</ref>
         |<계이 돌아오듯이>
  • 센티멘탈 그래피티 . . . . 3회 일치
         어린 시 이사를 다니면서 전국에 [[소꿉친구]] [[플래그]]를 만들어둔 대단한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찌나 과거의 여자가 많은지 편지가 와도 누가 보냈는지 모를 정도.
         수수께끼의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 일본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어린 시에 만났던 히로인들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일본 전국을 온갖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것이 참 뭔가 대단하다.
         당시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대히트로 연애 시뮬레이션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던 시이었으며, 센티멘탈 그래피티는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서 미디어믹스 전략의 선구를 달렸다. 그 때문에 발매전에 이미 엄청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나온 게임은 거지같아서 순식간에 버블이 꺼져버렸다.
  • 소학 . . . . 3회 일치
         소학의 내용은 아이들을 기를 때의 기본적인 예의 범에서 시작하여, 개인 가정 사회의 예의범에 대해서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유교]] 예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 식극의 소마/162화 . . . . 3회 일치
         소마는 뜻밖에도 츠카사에게 센트럴행을 권유받으나 거한다.
         * 소마는 츠카사에게 센트럴행을 권유받으나 거한다.
         * 에리나는 히사코와 대화하며 "잔당 사냥에서 살아남는 연구회가 또 나올지도 모른다. 센트럴이 대적인건 아니다."라고 말해 히사코를 놀라게 한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3회 일치
          * 그 시의 죠이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승을 거머쥐고 있다. 외부의 콩쿠르인데 기자들은 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며 취재열기가 뜨겁다. 그런 기자들 틈에서 분노의 찬 목소리로 죠이치로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그 시의 도지마 긴. 태평하게 이겼다고 하는 죠이치로를 갈궈댄다.
          * 도지마는 그 시의 죠이치로를 비유하길 "태풍이 날뛰는 황야의 개척자"였다. 항상 도전하고 있는 도지마와 아자미지만, 죠이치로의 요리를 볼때마다 항상 경이와 감탄으로 충만하다. 죠이치로는 그런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어디로나 끌고 갈 거라는 얼굴이다. 도지마는 그때까지 "은"(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년 2인자라는 표식 같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죠이치로와 함께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 식극의 소마/210화 . . . . 3회 일치
          * 잇시키 가문엔 후계자가 4살이 되면 먼 곳에 수련을 보내는 전통이 있는데, 잇시키는 친한 키노쿠니 가문에 보내진다.
          * 키노쿠니는 잠시 옛일을 떠올린다. 키노쿠니 가문의 영애로 보람찬 생활을 하던 그녀. 어느날 아버지는 "잇시키 가문의 아이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됐다"고 통보한다. 잇시키 가문엔 후계자가 4살이 되면 먼 곳에 보내 훈련시키는 전통이 있다. 두 가문은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여러번 잇시키가의 후계자를 맡아줬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 아버지는 네네에게 잘 대해주라고 당부하며 동갑이니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보내진게 잇시키 사토시.
          소마는 삶기 까지 마친 소바 면을 망설임없이 펜에 던진다. 이 상식 밖의 전개에 관객들 까지도 "기다려 설마"라고 말리다시피한다. 하지만 소마는 분명히 소바를 굽고 있다. 유키와 이쿠미는 온면인지 냉면인지 했더니 아예 구워버린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네네도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이해불능 상태에 빠진다. 기껏 28소바로 안정적인 길을 선택해 놓고서 그걸 굽는다? 소바면은 저런 식으로 구우면 메밀의 향기가 날아가 버린다. "야키소바"라고 하긴 했지만 대로 해선 안 될 형태인 것이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3회 일치
          * 네네는 말도 안 되는 모험을 한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지 못하나, 이건 소마가 어린 시부터 컵라면이나 컵 야키소바를 마개조해 먹던 것에서 연장된 것이다.
          네네의 소바는 당연히 1번을 써서 만든 것으로 기적적으로 가벼운 식감과 목넘김을 자랑했다. 만약 소마가 같은 1번 가루를 썼다면 그가 선택한 조리법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3번 가루를 활용, 애초부터 향이 강하다는 이점을 살려서 강한 불에 구워도 향이 날아가지 않고 적히 남았다.
          * 소마가 내놓은 스파이스는 한 종류가 아니었고 생강이나 산초가 들어간 것도 있어서 양념을 여러가지로 바꿔가며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잇시키는 동료들과 맛을 바꿔가고 실험해보면서 먹는 걸로 "유대"가 생겨나고 이것이 어린시 축제에서 친구들과 야키소바를 나눠먹는 추억을 자극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리액션도 동료들과 여름 축제를 즐긴 추억과 비슷한, 그런 소마의 향기.
  • 식극의 소마/218화 . . . . 3회 일치
          그는 자기 혼자 정할 수 없는 문제라며 애매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다른 애들과 상담해보고 오겠다며 끝까지 승락인지 거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그저 "나중에 보자"며 떠나는데. 쿠가는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고 그가 떠나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쉬며 부채질을 한다. 그러나 그 손도 떨리고 있다. 어쩌면 츠카사를 상대하는 내내 떨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부채를 흘리기까지 하는데, 엉겁결에 소마가 그걸 받아낸다. 엿듣던 걸 들켰다. 쿠가는 아무렇지 않은 채 하지만 속으론 짜증을 부린다. 자기가 긴장한 걸 들키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뜻같지 않았다. 소마가 "손바닥에 사람 인을 써서 먹어라"며 긴장대책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키히라류 긴장풀기"라는 정체불명의 민간요법을 추천하며 합장을 시키려든다.
          * 아무튼 쿠가는 그런건 전부 거하고 등을 돌려버린다. 그러면서 확실히 말해둔다. 아무리 "귀여운" 소마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 연대식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반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상대"라고 상당히 평가 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식극의 소마/220화 . . . . 3회 일치
          * 1라운드가 센트럴의 전폐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나자 센트럴의 개가 된 [[카와시마 우라라]]가 안 못한다. 오로지 센트럴의 승리만을 바라며 2라운드 대결 카드를 소개한다. 1카드는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주제는 녹차다. 2카드는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주제는 고추. 3카드는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주제는 참치.
          * 그녀가 본 것은 찻슈. 라면의 필수요소인 그 찻슈다. 메기시마는 지금껏 찻슈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평범해 보이는데. 그 밖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착실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수는 물론 면을 삶을 준비까지. 메기시마 또한 임전태세를 갖췄다. 후배들은 린도가 희소식재료 마스터라면 메기시마는 "라면 마스터"라고 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3회 일치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호평 행진. 이제 관건은 안이 담당한 쿠가의 탕수육이었다. 시식 전에 안이 내키지 않아했던 인상이 마음에 걸리는데.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에 도달한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츠카사는 그래서는 이 요리가 완성되질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리고 직접 숟가락을 들고 그녀에게 스프를 떠먹이려고 했다. 빨리 맛 봐주지 않으면 자신이 "곤란"하다는 말과 함께. 안은 몇 번 거했으나 결국 그에게 함락되었다. 억지로 스프를 입에 흘려넣은 그녀가 두 번째 충격으로 몸을 젖혔다.
  • 신영식(만화가) . . . . 3회 일치
         2004년 6월,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식사 도중에 목에 걸린 듯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해 보니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져 [[식도]] 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에서 방사선 수술을 권했으나 환경운동가인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던 [[강화도]]로 돌아갔다.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암]]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연요법으로 버티며 환경운동 활동과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6년]] [[1월 19일]]에 그간 앓던 식도암과 말라리아 증세로 인해 그토록 어린이들이 원했던 '짱뚱이 시리즈 7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만 56세.
         이후 짱뚱이 시리즈 줄거리를 쓴 아내인 오진희 작가가 글을 쓰고 장경혜 작가가 그림을 그린 짱뚱이의 사계이라는 그림책이 2014년에 나오기도 했으나 그다지 팔리지 않아서 묻혀졌다.
         1987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홍보 만화를 그렸는데 지금 보면 꽤나 엉터리다....노태우가 연대장이던 시, 야간 보초서던 징집병에게 수고한다면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돈주려고 했더니만 지갑을 안가져오자 손목시계를 그 보초병에게 줘서 이거라도 [[전당포]]에 팔아 먹을 거 사먹으라는 게(...) 나온다. 지금 봐도 어이가 없지만 이 만화를 본 당시 어른들도 이건 너무 엉터리라고 어이없어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노태우 홍보만화에서 신영식 만화에서만 이게 나왔다는 것.
  • 신지애 . . . . 3회 일치
         2006년 ~ 2008년까지 KLPGA 주요 4부분, 즉 대상 - 다승 - 상금 - 평균 타수 부분 1위를 3년 연속 독차지 한 바 있다. 웬만한 선수는 커리어 중 한번 할까 말까한 대기록. 더우기, KLPGA를 1년이라도 속된 말로 '지배'를 하면 모두 LPGA, 하다 못해 JLPGA라도 이동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대 깨질 일이 없는 기록이다.
         '''파이널 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멘탈이 좋고 한번 리드를 잡으면 대 역전당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KLPGA 시에는 그야말로 끝판왕이었고 2011년에는 이상하리만치 역전을 당하는 모습이었지만, 2012년에 다시 부활에 성공했다.
  • 안내상 . . . . 3회 일치
         안내상의 [[아버지]]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염색 공장을 하다가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이 망해 서울로 상경하여 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학우들을 괴롭히는 등, 초등학교 3학년 부터는 [[담배]]를 피우고 [[도둑질]]을 했다. 이 때 안내상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여 [[개신교]] [[교회]]를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종교에 귀의한 후에 악행을 멈추었다고 회고했다<ref>[http://news.tf.co.kr/read/entertain/1569156.htm 안내상 "하나님 만난 후 악행 멈췄다"] 더팩트. 2015년 08월 16일</ref><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6010103591001 안내상 초딩시 주먹질에 도둑질까지.. “난 깡패였다” 자폭] 뉴스엔. 2011년 06월 01일</ref>. 안내상은 중학교 1학년 시 키가 175cm이었고 많은 학생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 2014년 [[KBS2]]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 ... 용의자 송경필 역 (특별출연)
  • 연정(우주소녀) . . . . 3회 일치
         인터넷상에서의 별명은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연기자 라미란. 부모님도 라미란을 닮은 걸 인정했고, 이젠 이름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고 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194322&page=1230&exception_mode=recommend|어린 시 사진]]. 그래서 모녀관계 의혹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TV에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 본인도 이 별명에 대해 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장의 야민정음을 합친 '라머장', '머장님'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배성재의 텐에서 이 별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쪽은 야민정음인지라 방송에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제작진이 이를 사용해 버렸다.[* [[http://oi63.tinypic.com/mljq83.jpg|#]]] 그러나, '''다이어트를 한 후에는 라미란과 닮지 않았다'''(???) 다이어트 성공후 새로운 리즈를 갱신했다. 라미란 외에는 같은 팀 멤버인 수빈과도 닮았는데, 수빈이 <비밀이야> 활동부터 스타일을 단발로 바꾼 게 둘의 캐릭터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다.
         데뷔곡 [[Dream Girls]]에선 꽤나 비중이 없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분량이 적고 그렇다. 특히 센터는 1,2 후렴구 파트에서 대놓고 유연정은 사이드로 빠지고 [[소미]]가 센터에 섰다. --왜 소미가 센터 맞잖아-- '''게다가 조금이라도 튀는 손동작까지 없었다.''' 유연정의 센터는 마지막 후렴구 파트에서야 겨우 받고 애드립으로 카메라에 겨우 띄워 줬다.
          * 같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실음과를 다닌 [[레드벨벳]] [[예리]]와 친구라고 하며, [[모모랜드]] [[주이(모모랜드)|주이]]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의 소녀]] [[츄(이달의 소녀)|츄]]와는 한림예고 시에 짝궁이었다고 한다. [[프로듀스 48]]에 출전한 [[나고은]]과도 안면이 있을 듯.
  • 영국 요리 . . . . 3회 일치
         [[영국]] 요리는 켈트족의 전통에 기반하여, 각종 [[유럽]] 요리를 섭렵하고 동시에 [[대영제국]] 시기에 세계 각국의 요리의 전통을 흡수하여 만들어낸 지고의 요리이다. 영국 요리는 인류사의 보물로 기록되어, 요리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일본에서 세계 X대 요리 등의 랭킹을 만들지만 영국 요리는 대로 포함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영국 요리의 전통은 고대 브리튼의 켈트족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브리튼의 켈트족은 매 계 마다 요리 축제를 벌이면서 요리 기량을 닦아서 겨루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요리 축제는 [[스톤헨지]]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브리튼을 침공한 고대 로마 제국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영국 요리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남겼으며, 자신이 먹어본 어떤 요리보다 맛있는 요리라고 [[갈리아 전쟁기]]에서 한껏 추켜세웠다.
         노르만 족의 침략 이후 영국 요리는 노르만 족의 교류를 통하여 프랑스에 전파되었다. 한 때 영국의 플랜태저넷 왕조가 지배하였던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은 영국 요리가 전파되어 요리 문화가 크게 번성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왕실로 흘러들어가서 오늘날 [[프랑스 요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 내내 영국 요리는 당대 유럽 최고의 요리로 명성을 떨쳤다.
  • 예천군 . . . . 3회 일치
         지형에서는 대다수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들과 같이 [[소백산맥]]이 있어서 산악지형을 띄고 있지만, 이 곳은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다. 인구로 보자면, 70년대 중반에는 한 때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 [[리즈시]]도 있었지만 성장동력 부재와 [[농업]]종사 인구 감소로 인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크게 감소했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6만 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더디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상북도|경북도청]] 이전으로 안동, 예천 접경지역에 [[경상북도청신도시]]이 조성되어 큰 성장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드디어 13년만에 인구 50,000명을 넘기게 되었다.
         예천군의 동쪽을 통과하는 [[중앙고속도로]]에 [[예천IC]]가 있다. 문경, 안동 방면으로 [[34번 국도]], 의성, 영주 방면으로 [[28번 국도]], 군 북서부를 [[59번 국도]]가 지난다. 하지만 서울 방향으로 가는 경우 [[예천IC]] 보다 점촌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IC]]를 이용하는것이 훨씬 빠르다. 연평균 이용량이 300대 정도로 매우 적은 교통량. 예천읍과도 상당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앙고속도로]]가 안동과 영주를 직결하지 않고 예천으로 우회하도록 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예천으로 우회한 것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지역 출신 정치인 [[유학성]]의 입김이었다고 한다. [[예천공항]]이 생겼던 것도 [[유학성]]이 주도했다는 말이 있다.
          * 김태우 : [[도전 골든벨]]의 예천 대창고등학교 시 82대 등극자.
  • 오현근 . . . . 3회 일치
         ==[[SK 와이번스]] 시==
         ==[[두산 베어스]] 시==
         ==[[롯데 자이언츠]] 시==
  • 왕당파 . . . . 3회 일치
          * 왕당파는 대개 [[공화제]]나 [[민주주의]], [[의회주의]]에 반대하여 전통주의,보수주의,대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영국 내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의회파와 왕당파는 수차례 복권과 혁명을 거듭하며 경쟁하였으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대주의 왕당파는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로 분리되었고, 명예혁명으로 성립된 영국 왕실은 의회를 존중하여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주의 왕당파는 더 이상 영국 정계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 울진군 . . . . 3회 일치
          온정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온천물 온도는 53℃로 충분히 뜨겁다. 데울 필요가 없을 정도. 약알칼리성을 띄는 방사능 온천인데 방사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지 울진군 측에서는 실리카 온천으로 홍보한다. 물론 해가 될 정도의 방사능을 함유한 것은 대 아니니 오해말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온천관광지로 개발이 되었고, 1970년대에 현대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꽤 큰 온천관광지이다. 온천호텔도 여러 곳이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위쪽에 있는 백암관광호텔이 원탕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거기서 끌어오는 곳인데, 어차피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다. 취향껏 선택하자.
          관람료는 성인 기준 3천원이고(만 65세 이상 무료),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기는 오후 5시까지이다.
         [[제50보병사단]] 예하 해룡연대가 울진군에 있다. 울진은 경상북도의 최북단인 탓에 [[제2작전사령부]]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강원도 울진군이었던 시에도 [[제2작전사령부]]의 모체였던 2군 관할 지역이었다.
  • 원피스/863화 . . . . 3회 일치
          * 작전 개시로부터 세 시간 반 전. 그러니까 일행이 아직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있을 때의 일이다. [[몽키 D. 루피]] 자신이 자신하던 [[원피스/859화|재미있는 등장법]]을 벳지에게 설명한다. 그는 웨딩 케이크 안에 커다란 거울을 넣어뒀다가 거울 세계를 통해 케이크 안에서 튀어나오는 연출을 구상했던 것이다. 벳지는 당장 좋다 아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지 거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엔 [[샬롯 브륄레]]도 있었는데, 빅맘 [[샬롯 링링]]이 케이크가 박살나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에 대해선 안 된다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루피는 브륄레가 하는 말 보다는 그녀의 능력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근처 숲에서 동물들을 잔뜩 잡아온 다음, 유혹의 숲에서 한 것처럼 자기 모습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브륄레는 당연히 질색하지만 결과적으론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소울 보커스". 소울소울 열매의 기술이다. 모간즈는 누구더러 들어라는 건지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시작한다. 그 기술은 생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집착"에 말을 건다. 조금이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대로 목숨을 빼앗기는 흉악한 질문. 요리사들은 말도 안 된다고 억울해하면서도 속없이 영혼을 빼앗긴다.
  • 원피스/865화 . . . . 3회 일치
          * 한편 정신을 잃은 빅맘은 어린 시, "마더"와 함께 했던 시을 회상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63년 전, 신세계의 엘바브섬.
          * 빅맘에겐 좀처럼 없었을 생명의 위기. 이 와중에도 그녀의 정신은 온통 깨어진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가있다. 그녀는 두 동강 난 "마더"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비명을 지르며 아직은 마더와 함께 했던 시을 떠올린다.
  • 원피스/867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회상 종료. 긴 비명을 지르던 빅맘은 회상에서 깨어나며 "어디로 간 거야 마더!"라고 규한다.
          카르멜은 사라졌다. 양의 집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은퇴작인 링링을 남기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링링이 먹다 남긴 탁자와, 잔해들 뿐. 카르멜의 옷자락만 잔해들 사이에 섞여 남겨져 있다. 어리둥한 링링은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건가 싶어 양의 집으로 가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링링이 모르는 사이에. 크로캉붓슈를 신나게 먹어치우던 그 순간에.
          * 그로부터 63년 후.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다과회장.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어지고 패닉에 빠진 빅맘 샬롯 링링. 패왕색 패기가 깃든 길고 긴 비명을 지른다. [[몽키 D. 루피]]는 근거리에서 몸이 날아가 버릴 것은 괴성을 견뎌내고 있었다. 점차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나는 빅맘의 목소리는 비명에서 규로 바뀌고 있었다.
  • 유병수 . . . . 3회 일치
         === 유소년 시 ===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남 FC|경남]]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상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 유지인(1956) . . . . 3회 일치
         [[1956년]]생.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윤진이 . . . . 3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br />(現 [[서울특별시]])<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영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은혼/581화 . . . . 3회 일치
         * 카무이는 벽 밑에서 가구라와 대치하고 있다
         * 카무이는 생각 외로 강했고 아부토는 난처해하는데, 이때 하루사메 시의 야왕 호우센이 끼어든다
         * 젊은 시의 야왕 호우센이 등장했다.
  • 은혼/605화 . . . . 3회 일치
          * 양면으로 적이 들이닥친 망적인 상황.
          * 긴토키는 아무리 달리고 앞으로 나아간 기분이 들지 않고 닿을 것 같지도 않다며, 망한 빛이 역력하다.
          * 보기 드문 긴토키 좌모드. 시리어스 장편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 은혼/609화 . . . . 3회 일치
          * 여전히 사카타 긴토키의 신경을 긁어대며 "세계의 반 정도는 맡아줄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는 투로 말한다.
          * 그는 세상의 반을 맡기겠다며, 반 쯤은 불완전한 은이라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 양이지사 시을 회상하는 겐가이 영감.
  • 은혼/614화 . . . . 3회 일치
          * 좌감으로 칭코마저 숨긴 채 전장에 몸을 던졌던 자작 제독.
          * 기한 엘리자베스의 치마 밑으로 터무니없는 외설물이?
          * 가츠라 고타로를 감싸느라 기한 엘리자베스에게서, '''흉측하고 거대한 외설물이.'''
  • 은혼/622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지로쵸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신라부대는 속없이 박살나기 시작한다.
          가구라는 그 꼬라지를 보고 "딸래미 엉덩이에 깔렸다"고 디스한다. 지로쵸는 잠깐 정색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피라코가 "이젠 지로총"이란 애칭이로 부르라고 하자 "그 얘긴 남들 앞에서 하지 마라"고 발끈하자 또 피라코가 울먹거린다. 이번에도 1초도 못 버티고 달래지 못해 안한다. 완전 주책없는 [[딸바보]]로 전락. 게다가 딸을 "피로링"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자빠졌다.
  • 은혼/632화 . . . . 3회 일치
          * [[요시다 쇼요]]의 죽음 이후 재기를 모색하던 신스케는 소녀시 마타코가 의탁하려 하나 자신의 삶을 살라며 거부한다.
          * 한 번 신스케가 내쳤던 소녀, 마타코는 근시일 안에 신스케와 다시 만난다. 이번엔 죽음이 예정된 "사형수"로서. 때는 양이지사를 탄압하던 시. 막부는 폐도령을 내리고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던 때였다. 마타코도 검문에 걸렸는데 아버지의 유품을 내놓을 수 없어 저항하다 양이지사로 낙인 찍혀 잡혀왔다. 마타코의 이런 사정은 백성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군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몰아 잡아들이고 있고, 백성들이 저항할 방도는 없다.
          그는 마타코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같은 시각 감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양이지사들이 스스로 옥문을 나와 신스케와 반사이를 해방시켰다. 어리둥한 반사이에게, 양이지사들이 말한다.
  • 은혼/634화 . . . . 3회 일치
          겐가이 영감이 그렇게 말했다. 발명가란 "대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만들라 하면 그걸 유일하게 부술 창도 만들어야 비로소 그 물건을 이해한 거라 보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 에도를 지키는 겐가이포, 그것이 살포한 나노머신을 부술 방법도 준비해뒀다는 말이다.
          야토 병사가 그를 "처리"하러 다가온다. 명. 그런데 겐가이는 노사가 자신의 속성을 잘못 읽었다고 지적한다.
  • 은혼/640화 . . . . 3회 일치
          그게 무슨 뜻인지, 긴 설명은 필요없었다. 마타코는 대 두고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폭발이 멈추지 않는다. 이때 신스케가 마타코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다.
          * 신스케는 이때 무전을 보낸다. 이미 자신들은 낙오됐고 본대와 합류도 바랄 수 없으니 이대로 히노카구츠치 제어 중추로 돌입하겠다는 전달이다. 그걸 위해서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헨페이타는 대답 대신에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전한다. [[사루가쿠]]와 [[바토우]]가 당했고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부대와도 통신이 두됐다. 아군 함대는 적 함대의 총공세를 막아내느라 여력이 없으며 원군도 더는 바랄 수 없다. 신스케가 돌입을 강행한다면 현재 가진 병력만으로 해야 한다. 헨페이타는 그럴 병력이 남아 있느냐고, 현재 병력이 얼마냐고 묻는다. 신스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이또한 오래된 이야기다. 그가 아직 막부에 몸 담았던 시이다. 동료들과 막부의 적을 급습했으나 단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해 모두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헨페이타. 적의 칼끝이 미간을 겨눈다. 헨페이타는 검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고, 적은 그점을 궁금해한다. 헨페이타가 원래 자신이 잡아야 했던 자, 신스케를 향해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내가 신스케를 쓰러뜨릴 수 없는걸 알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신스케는 이미 죽은 녀석들 보단 말이 통한다면서, 질 걸 알아서 그렇다면 여기엔 왜 왔냐고 물었다. 헨페이타는 그 이상도 알았다. 동료들은 사람을 심판할 권리를 잃었고 오히려 직권의 이름으로 백성을 괴롭힌 저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이용 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도 죽이라고 청했다.
  • 의성군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군.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5만 3천여명이다. 북쪽에 안동시, 동쪽에 청송군과 영천시, 남쪽에 군위군, 서쪽에 구미시와 상주시가 위치해있다. 의성군의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며, 낙동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위천이 의성 군내를 관통하며, 경작지가 넓고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다. 때문에 농업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197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제법 큰 군이었으나 이후 농촌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리즈 시]]보다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컬링 이전에는 [[씨름]] 스타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 의성이다. 의성초등학교-의성중학교-의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씨름의 계보가 탄탄하며 의성군청에서도 씨름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에 연고가 있는 유명 씨름인으로는 5대, 8대, 13대 [[씨름/체급|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1980년대 씨름스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과 32대, 38대, 40대 [[씨름/체급|천하장사]] 출신이자 1990년대 씨름스타 [[이태현]] 용인대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출생지는 모두 의성이 아니지만 의성에서 학창시을 보내면서 씨름을 배웠다.
          * [[장혜진(양궁선수)|장혜진]] : 양궁선수. 학창시은 [[대구광역시]]에서 보냈다.
  • 이경실 . . . . 3회 일치
         참고로, [[신인]] 시 [[홍기훈]]이 꽤나 유명한 [[터프가이#s-1|터프가이]]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알아주는 [[주먹]]에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아현|전 여친]]도 팼나?-- 게다가 [[나이]]도 많고 성깔도 더러워서 웬만한 선배들조차도 쉽게 터치를 못 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런 홍기훈조차도 한방에 [[군기]]를 잡아버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경실이다. 또 하나는 군기반장은 아니지만 [[이재포]]. 이재포도 [[유도(스포츠)|유도]] 전공자답게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경실 역시 개그계에서는 알아주는 군기반장이다. 방송에서 김구라의 [[턱]]을 최초로 잡은 [[연예인]]이기도 하니...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말을 끊고 진행을 몰아붙이는 김구라가 짜증이 났던지 가까이 와보라고 한 다음 턱을 잡고 흔들었다. 이후부터 김구라를 능욕할 때 김구라의 턱을 잡고 흔들거나 소원을 비는 김구라의 턱하르방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다.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분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지난 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주된 방송 스타일은, 아무래도 방송의 관록이 관록이다 보니, 일부 출연자들의 [[무리수]], [[개드립]] 등을 잘 살리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버려야 하는 몹쓸 드립들도 적하게 살려내는 편. 그냥 얼떨결에 묻힌 멘트들을 발굴해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주요 화법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면박이나 [[자폭]]류 [[개그]]. 다년 간의 방송 짬밥으로 웬만한 MC역할의 연예인들에게 태클 걸 수 있는 입장이다. 때문에 [[김구라]]나 [[박명수]] 등의 독설가나 버럭류 캐릭터의 [[개그맨]]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캐릭터도 갖고 있어 기센 아줌마 + 짬밥왕인 이경실에게는 확실히 쩔쩔맨다. 이들을 적당히 제지하거나 역으로 공격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어떻게 보면 MC들을 보조하는 보조적 MC 속성. 어느 프로그램에서 나오든 입담과 타이밍 감각으로 중박 이상은 치므로 고정 패널로 선호가 높은 듯. 특히 친정인 MBC에서는 [[박미선]]과 함께 공무원 급으로 자주 나온다.
  • 이상백 (1904년) . . . . 3회 일치
         ==== 학창 시 ====
         ==== 일본 유학 시 ====
         만년에는 그는 국학, 동양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동아문화연구소를 설립,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연구 계획을 수립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를 기획, 준비하였다. 그는 장서가로, 젊은 시부터 헌책방과 각종 서점을 돌며 평소 희귀한 한중고활자본을 비롯한 진귀한 많은 서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만년에 자신이 수집한 책들 모두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상백문고(想白文庫)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 이선미 (소설가) . . . . 3회 일치
         == 경성애사 일부 내용 표 ==
         경성스캔들의 원작소설 경성애사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성애사의 이선미는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협회 사이트 게시판에서 사과글을 게재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0712270005&md=20100404183309_AN ‘경성스캔들’ 원작자의 표, 인터넷 퍼오기 문화의 폐해] 헤럴드경제 10-04-04</ref>
  • 이시영(배우) . . . . 3회 일치
         || '''신체''' ||<(> 168cm, 48kg[* 배우로서의 프로필이 아니라 복싱선수로서의 프로필이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다. 참고로 최대 체중은 대학 시의 61kg였다고... 근데 참고로 저 키에는 61kg 정도가 표준 체중이긴 하다.], [[B형]] ||
         결혼 예물(…)을 고르기 위해 간 [[건담베이스]]에서 이시영 본인이 프라를 주문할 때의 다소 어색함 때문에 컨셉이 아니냔 의혹도 있었다. (보통 "[[아무로]]와 [[샤아]]와 [[라라아 슨|라라아]]가 타던..." 이라고 직원에게 물어보진 않는다. 특히 '자주가는 가게' 라면...) 덧붙여 첫 화에서 자랑스레 말하던 [[레고]]의 번호도 틀렸다고 한다. 게다가 [[건덕후]] 성향이 알려지기 전에 나온 잡지 [[맥심(잡지)]] 코리아 2009년 2월호의 인터뷰에선 "어린 시 재미있게 본 만화"로 피구왕 [[통키]]만을 언급했으며, 인터뷰 전체에서 [[건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네이버에 공식적으로 링크되어 있는 이시영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주소를 보면 [[시난주]]가 언급되어 있다. 이건 [[건담]]도 프라모델을 통해 상당히 좋아하게 됐다는 증거일 수도.](뭐, 어린시이란 조건이 붙었기 때문일지도.) 사실 이시영 본인의 건덕 포스보다는 자막이나 BGM의 포스가 더 강하다.(...)
  • 이연희(배우) . . . . 3회 일치
         [[http://m.hankooki.com/m_dh_view.php?WM=dh&FILE_NO=ZGgyMDE3MTAxOTAwMTAxMzEzOTAyMC5odG0=&ref=m.search.naver.com#_enliple|심지어 자타공인으로 인정받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yumeeee&logNo=220935048795&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sm%3Dmtb_hty.top%26where%3Dm%26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B%25AA%25A8%25ED%2583%259C%25EB%25AF%25B8%25EB%2585%2580%26o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C%2597%25AC%25EC%258B%25A0%26tqi%3DTCz1uspVuqVsstlVdJ0ssssssjK-150893|타고난 모태미녀로 유명해서,]] [[http://m.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40|학창시에도 그 미모가 빛을 발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티들이 여배우들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과거사진 문제나 성형수술 논란같은 문제도 그냥 종결시켜버릴 정도로 전혀 없다. 위의 링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성형수술 안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학창시과 지금의 얼굴을 비교해도 거의 똑같다. 과거 모습은 아니지만, [[http://naver.me/5cFgCe6n|화장기 없는 민낯조차도]] 전혀 문제가 없다!
         2013년 4월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특별출연해 주인공 최강치([[이승기]] 분) 생모의 젊은 시을 연기했는데, 1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인 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감정 기복은 컸어도 대사톤 자체가 낮은 편이라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고, 2화에서 목소리 볼륨이 올라가자 어눌한 대사 처리를 드러내며 다시 원상복귀해버렸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좋은 반응들도 꽤 많이 나오고 있어서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하기 힘들다. 물론 좋은 연기력은 아니었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열심히 연기하려는 것이 짠해 보였다는 사람들도 있다. 연기력을 떠나서 상대역인 [[최진혁]]과의 케미와 연출 덕에 드라마는 3회부터 꾸준히 월화극 시청률 1위를 달렸다.
  • 이영수 (야구인) . . . . 3회 일치
         ==선수 시==
         ===[[KIA 타이거즈]] 시===
         ===[[삼성 라이온즈]] 시===
  • 이유리(배우) . . . . 3회 일치
         2006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1987년 76%의 높은 시청률로 대히트했던 동명의 드라마를 19년만에 리메이크 한 작품인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막내딸 '박선희'역[* 87년 원작에서는 [[임예진]]이 맡았다.]으로 열연했다. 이유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극 중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선희역을 소화하기 위해 평소에도 다리를 직접 끈으로 묶어 다니면서 연습했으며 3회의 눈밭에서 다리를 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르짖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한 가족의 대서사시를 그린 작품이기에 극 중 이유리는 81회 동안 10대부터 60대까지 한 인물의 생을 넓게 표현했으며 몸은 불편하지만 심성은 누구보다 고운 선희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 tvN || [[또 오해영]] || 젊은시 허지야 || 특별출연 ||
  • 이지아(배우) . . . . 3회 일치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반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애꿎게 덤터기를 쓰게 된 이유는 역시 '''[[정우성]]'''. 옹호/비판이 대립하는 서태지, 이지아 측과는 달리 이쪽은 대적인 동정을 받고 있는 처지다.
         SBS [[힐링캠프]] (2014.8.11) ~~ 여기서 '''[[서태지|전 남편]]'''을 디스 했다.~~ 출연 전부터 광복 앞두고 친일파 후손을 부르다니 제정신이냐며 힐링캠프의 섭외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반대로 이지아의 팬들은 방송 전부터 문제없다고 주장하며 포털 사이트를 옹호 댓글로 도배했다. 방송 후 댓글란에선 같은 여자로서 동정한다는 등 주로 여성층이 이지아의 불운한 결혼생활을 동정한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네이트, 다음 등 댓글란만 보면 매력적이라며 감탄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대다수 남초 성향 커뮤니티들과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선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더 많았다. [*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비판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실체를 알린 글이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 이지우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
         율하초등학교를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좋은 타격성적을 보여주었다. 고교 통산 58경기 타율 0.357 출루율 0.441 장타율 0.464 74안타 1홈런 48타점 25볼넷 21삼진을 기록하였다. [[2013년]] [[8월 26일]]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3라운드 26순위로 지명되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421 왼손 거포의 계보를 이어갈 NC 이지우] - NC 다이노스</ref>
         ==[[NC 다이노스]] 시==
  • 이지현(1983) . . . . 3회 일치
         4집 시까지 [[쥬얼리]]에 소속되어 있었다.
         [[쥬얼리]] 활동 시에는 멤버 중에 가장 집안이 더럽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한 후 집의 독특한 규칙을 털어놨는데 남편과 화장실을 따로 쓴다고 한다. 본인은 깔끔 떠는 성격인데, 변기만큼은 너무나도 예민하면서 변기를 공유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 그래서 신랑과는 따로 쓴다고 1대100에서 밝혔다.
         나중에 자신이 올린 [[셀카]]가 [[리즈 시]]에 비하면 지나치게 [[노안]]이 되어 [[성형]]을 과하게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2011년에 쥬얼리 후배들과 찍은 사진에서도 여파가 남아 있는지 [[노안]]으로 보인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보형물 이식을 했다가 제거했다는데, 그 부작용+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한 주름살의 결과물인 듯.
  • 이현보 . . . . 3회 일치
         '''이현보'''(李賢輔, [[1467년]] [[8월 28일]]([[음력 7월 29일]])~ [[1555년]] [[7월 1일]]([[음력 6월 13일]]))는 조선 연산군,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賓翁), 본관은 [[영천 이씨|영천]](永川)이다. 시호는 효(孝節)이다.
         농암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때 [[조선 중종]] 임금과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였으나 소매를 뿌리쳐 거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노나라 [[래자]]에 비견되었고 1519년 안동부사 재직당시 중양에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을 열어 부모님을 포함한
  • 이현우(배우) . . . . 3회 일치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다시 한 번 [[엄태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태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남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2014년 유니온베이 광고모델이었다. 그리고 2015년에 또다시 모델로 발탁되었다! 특히 이번엔 2011년 유니온베이 모델이었던 [[아이유]]가 함께 모델로 서게 되었다. 또한 두 사람이 동갑내기 친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김수현에 이어, 중국의 검색 엔진 소고의 광고모델로 발탁되었다. 또한 유명 헤어제품브랜드인 AMOS의 전속모델로 발탁되었다.
          * 2013년 8월 9일 [[아이유]]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가 찍힌 [[파파라치]] 사진 기사가 뜨면서 열애설이 불거졌다. 그러나 같은 날 그냥 친한 사이로 영화를 같이 보았다는 해명 기사가 나왔다. 참고로 이현우가 아이유보다 2개월 먼저 태어났다.
  • 이희성 (1988년) . . . . 3회 일치
         ==[[넥센 히어로즈]] 시==
         ==[[고양 원더스]] 시==
         ==[[LG 트윈스]] 시==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3회 일치
         * 악몽 속의 멀린은 "내일이 없는 자와 함께 길을 걸을 순 없어. 왜냐면 네 저주는 대 풀 수 없으니까. 강대한 저주는 이윽고 그 몸을 전부 침식하겠지. 너는 결국 내 실험 재료일 뿐인 존재.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 없이 고독하게 죽어라 에스카노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 고서는 망을 보여줘서 에스카노르의 의식을 영원히 잠재워 버린 거였지만, 그는 잠들지 않았다.
         * 그에게 있어 멀린은 그 자체로 태양과 같은 존재. 고서가 보여준 것은 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며 밤 중인데도 정오의 강력한 힘을 회복한다.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3회 일치
          * 이 시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에스타롯사는 그를 동경했다.
          * 그는 "기척"(제로샤인)을 써서 은밀히 접근한 뒤 메라스큐라의 목을 꺾어버린다.
          * 마신족 시 당시엔 마신왕 급으로 평가되었는데, 그렇다면 다수의 십계를 상대로 선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 일곱개의 대죄/178화 . . . . 3회 일치
         멜리오다스 사후 망에 빠진 브리타니아.
          * 망에 빠진 주민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십계 자체에 현혹되어 "산제물"을 바치며 연명한다.
          * 리오네스에서 사로 온 루인과 프리지아는 변해버린 브리타니아의 분위기에 당황한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3회 일치
          * 명의 상황, 어디선가 얼음마법이 날아와 알로 변한 사람들을 얼려버린다.
          * 그런데 길프로스트가 끼어들더니 "길은 대 죽게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3회 일치
          * 쓰러진 디안느와 할리퀸. 명의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크로키시니아와 드롤이 꺼낸 얘기는 전혀 뜬금없는 것인데?
          * 어리둥해하는 두 사람에게 드롤과 그로키시니아는 그들을 수행시킬 것이고 자기들을 뛰어넘어줘야 겠다고 폭탄선언한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3회 일치
          * 뤼드셀은 드디어 성전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종족간의 평화를 원하는 엘리자베스의 바람과 달리 "마신족을 근"할 때라고 선언한다.
          * 그로키시니아도 요정왕이기 때문에 파장이 비슷해 헬브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로키시니아는 헬브람에 대해선 모르지만 "할리퀸의 지인"이라 부르며 그들이 제대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상 대로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설명한다. 이걸로 보아 두 사람은 진짜로 성전 시대로 이동한건 아닌 것 같은데.
          >'''마신 놈들을 근할 때입니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3회 일치
          * 우여곡 끝에 재집결한 일곱 개의 대죄 멤버들. 재회의 인사를 나누느라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가 나올 타이밍을 잴 수가 없었다.
          >마음에 깊숙이 새겨진 소중한 기억은 혹 잊어버리거나 안개 뒤로 숨더라도 대로 사라지지 않아.
          * 이번에도 밀리면 정말로 기회가 없다, 실함에 사무친 바트라가 "내가 말하겠다!"며 나타난다. 사실 멜리오다스는 이미 그가 와있는걸 눈치챘던 모양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자시키로우 . . . . 3회 일치
         감금된 대상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유교 윤리가 확립되어 하극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영주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도 없었다. 가신들은 간언을 하다가 안 되면 부적한 영주를 붙잡아 자시키로우에 몇달간 가둔 다음 선정을 베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도 영주의 행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강제로 은거를 시켜서 축출하게 되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무작정 감금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당시에 일단 어느 정도 제한 차는 있어서, 가구의 호주, 오인조(다섯 가구를 한데 묶어서 관리하는 조선시대의 오가작통 같은 제도), 그리고 의사의 확인서 등이 필요했으며, 도면 등을 경찰에 제출해야 하고 경찰에서 이를 관리하였다.
  • 장서희(1972) . . . . 3회 일치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 출연, [[김순옥]] 작가와 약 9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중 1화부터 《[[아내의 유혹]]》의 셀프디스가 대놓고 나온다(...). ~~그 대사를 하는게 하필 또 장서희인 게 매우 묘하다~~] [[아내의 유혹|작가와 협업했던 전작]]에서의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코믹하고 유쾌한 캐릭터지만, 그런 역할에서 나오는 사이다성 활약과[* 확실히 장서희가 분한 [[민들레(언니는 살아있다!)|민들레]]가 세 주인공 중 가장 비중이 높고 활약성 또한 대단한지라, 시청자들에게도 사실상 유일한 진주인공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강하리|이분]]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가끔 [[구은재]] 표정이 나올 때는 소름이...-- 드라마 자체도 크게 성공했으며[*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인터넷상에서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연기 경력이 길기도 하거니와, 오랜 무명기간 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스페트럼을 넓혀왔기에 연기력이 굉장히 출중하다. '''다양한 표정 변화와 강렬한 분노 연기'''가 최고 강점. 체구가 작지만[* 프로필상 키보다는 조금 작은 160~161cm로 보이는데, 그 나이에 평균이 160cm정도니 그 키가 작은 것은 아니다. 워낙 말라서 더 작아 보이는 것.] 분노할 때 나타나는 크고 부리부리한 눈매가 집요하고 독해보이는 느낌을 자아내는지라, 《[[인어 아가씨]]》 출연 이전에도 주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훼방을 놓는 등 악역 조연을 연기했다.[* 실제로도 분노하는 연기를 보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연기한다(...).] 아역 시부터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예쁜 얼굴이었고, 지금 봐도 악역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선이 고운 얼굴이라 분노 연기할 때의 모습에 캡이 커서 더 크게 다가온다.
         [[인어 아가씨]]에 출연하기 이전까지는 무려 '''13년 동안'''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아역 시까지 더하면 21년(...). 그래서 출연 작품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여 아래에는 주연, 꽤나 비중있는 조연을 맡은 작품만 기술하였다.
  • 장석조 (판사) . . . . 3회 일치
         1961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대전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는 등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소 근무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집행차에 있어서의 채무자 보호, 판결의 편취와 차적 기본권, 우리 헌법상 차적 기본권, 조세법상 실질과세원칙의 적용한계, 헌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재판과 헌법적 판단, 재판받을 권리의 헌법상 보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8년에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받았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 시==
         ==[[경찰 야구단]] 시==
         ==[[두산 베어스]] 시==
  • 장재인 . . . . 3회 일치
         심성은 착하기 이전에 여려서, 본선무대에서 친한 친구들이 탈락할 때마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과, 중학교 때 같은 남자를 친구랑 같이 좋아하게 됐는데, 친구가 좋아하니까 안 좋아하는척 했다는 등... 여러모로 여리면서도 약간은 바보같은(?) 성격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선 본인은 대로 여리고 우울한 성격이 아니라고 밝혔다. 꽤나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고. --근데 띠방한 건 부정하지 않았다.--]
         2010년 11월 28일 [[MAMA]] 무대에서 우승자 특전 무대를 갖는 [[허각]]을 응원하기 위해 [[존박]], [[강승윤]] [* [[위너(아이돌)|위너]]의 멤버인 그 강승윤이 맞다. 이때는 위너결성전 슈스케2에서 이름을 알린 시이다.]과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여기서 허각, 강승윤과 함께(당시 존박은 MC 진행 중이었음) 레드카펫에 서기도 했다. 뒤이어 수상 후보곡을 직접 소개하면서 존박, 강승윤과 작은 무대를 갖기도 했다.
         그전 앨범이던 밥을 먹어요에 비해 가사는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가사가 해석에 따라서 굉장히 야하게 느껴진다. --설마 장재인도 [[김지수(가수)|김지수]]의 차를 밟아가는 걸까...--
  • 전상렬 . . . . 3회 일치
         ==선수 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전소민(배우) . . . . 3회 일치
         ||<#FFB1BC> '''{{{#white 별명}}}''' ||<#ffffff><(> [[개구리]], [[앵무새]][*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고 해서 부모님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쏘미닝, 전소똥[* 초등학생 시 별명이라고 한다. 원래 젖소똥이었는데 순화해서 전소똥이라고 한다.] '''돌소민[* 돌아이+전소민이라는 뜻으로, 주로 [[런닝맨]]에서 많이 쓰이는 별명이다.]''', [[불나방]][* [[런닝맨]]에서 물불 안 가리고 게임에 무작정 달려들거나, 더티 플레이를 즐기는 [[유재석]], [[이광수(배우)]], [[전소민]], [[양세찬]] 등을 일컫는 별명], 전어리[* [[런닝맨]] 372회 방영분에서 최약체 [[전소민]]과 [[지석진]]이 한 팀이 되자 [[유재석]]이 붙여준 별명. 전어리와 지석바리.], 쉽사빠, 여자[[이광수(배우)|광수]], 토크지옥[* [[유재석]], [[하하(가수)]]도 감당 못하는 엄청난 수다쟁이], 자석인간[* 숟가락, 국자, 동전 등이 이마에 자석처럼 탁 붙어서 생긴 별명. 심지어 동전을 붙이고, New Face까지 췄다.], 연애검찰, 돌블리, 전소바리, 두릅소녀, 콸라여신, 명랑소녀, 뻥개구리 ||
         2014년 SBS [[런닝맨]]에 출연하여 특유의 엉뚱한 매력과 몸을 사리지 않는 몸개그로 빵빵 터트리며 부정의 아이콘으로 등극. --대 죽어도 안돼 무조건 빠질거야-- --유재석 曰"소민아, 너 때문에 광수가 웃길 틈이 없어 지금"-- --여자 이광수--
         ||<|5> 2011년 || MBC || [[로열패밀리(2011)|로열패밀리]] || 젊은시 서순애 || [[김혜옥]] 아역 ||
  • 정난정 . . . . 3회 일치
         젊은 시에는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다. 훗날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위하려 한 음모가 발각되자 김안로가 사사되고 김안로의 질녀였던 윤원형의 부인 김씨를 윤원형과 문정왕후의 묵인하에 몰아내고 실질적인 안방 주인이 되었다. 그 후 명종8년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적처로 올리라는 전교를 내려, 정난정은 윤원형의 정실이 되었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측근인 점을 이용,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서자 서녀도 능력이 되는 인물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남편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ref name="yunnaev"/> 이는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ref name="yunnaev"/>
  • 정수성 (야구인) . . . . 3회 일치
         ==[[현대 유니콘스]] 시==
         ==[[넥센 히어로즈]] 시==
         현역 시 대주자로 많이 활약한 것을 바탕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주루코치를 맡고 있으며, 외야수로도 활동하였기에 외야수비코치를 겸해서 맡고 있다.
  • 정인선(탤런트) . . . . 3회 일치
         ||<:><#B0C4DE> '''{{{#ffffff ▲ 정인선의 과거시}}}''' ||
          *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오빠 때문이다. 어린 시 오빠가 신문에 나온 연기학원 광고를 가져와서 부모님께 다니고 싶다며 떼를 쓴 적이 있는데 당시엔 오빠한테 지는 걸 싫어했고, 오빠가 하는 모든 걸 다 하고 싶었던 그녀는 오빠가 학원 등록할 때 가서 나도 다녀야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서 한 달만 다녀보라며 학원을 등록해주셨고, 그렇게 시작한 연기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빠는 현재 연극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
          * [[이은주(배우)|이은주]]와 인연이 있다. 드라마 [[카이스트(드라마)|카이스트]] 49화에 함께 출연하였고, 극중 이은주(구지원)의 어린시 모습을 똑 닮은 은하를 연기하였다.
  • 진격의 거인/85화 . . . . 3회 일치
          * 엘런과 미카사는 폐허를 헤치며 어린 시의 추억을 하나씩 되돌려간다.
          * 나일 도크는 학생 시의 일화를 말하는데, 엘빈은 "벽 밖에 인류가 없다는걸 어떻게 확인했냐"고 물은 적이 있다.
          * 사진은 예거 부부와 어린 시 엘런으로 보인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3회 일치
          * 부관이자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계승한 콜트는 적의 참호를 뚫기 위해 "턱의 거인"과 "차력의 거인"을 동원하자 제안하지만 거 당한다.
          거인의 힘은 대적이다. 지금껏 마레를 초대국으로 만들어준 것도 거인의 힘이었다. 그러니 이 이상 상실할 경우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 마가트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전사대"에 돌격준비를 지시한다. 콜트는 반발한다. 하지만 마가트는 코웃음을 친다.
          * 열차포가 부대에 가까워진다. 그 말은 방금 전까지 총알을 퍼붓던 그 기관총 진지에도 가까워진다는 말이었다. 가비는 투항하는 척, 두 손을 들고 진지로 다가간다. 수류탄 다발은 줄로 오른발이 묶어서 질질 끌고 간다. 적이 보기엔 투항자가 다리를 며 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투항자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격하지 않는다. 적도 상대가 엘디아인일 가능성을 상정하지만 소녀이고 투항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주저한다. 게다가 가비의 계산이 대충 들어맞아서 다리에 건 수류탄을 족쇄라고 잘못 관측한다.
  • 진격의 거인/98화 . . . . 3회 일치
          * 잠시 뒤 빌리 타이버가 나타나는데, 과연 타이버가의 사람답게 전세계의 요인들과 친분이 대단하다. 심지어 마레의 대사가 파티를 축하하는 말을 해도 냉담한 기류만이 흐르다가, 빌리가 나서서 축사를 하자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진다. 그는 세계인들이 엘디아인의 근을 바라는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자신이 한 가지 답을 냈고 내일 수용구에서 열릴 축제에서 그걸 공개하겠다고 선언하고 축배를 들어올린다.
          마레군의 참모들에게 팔라디섬의 공략루트에 대해 섬의 남쪽과 북쪽 모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참모들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며 평가하하고 마레의 전사들에게 의견을 물은 일 자체를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잠시 뒤 파르코가 처음으로 가비를 이기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축제 전야제에 나타났을 땐 전세계 요인들과 격의없이 안부를 주고 받는 친분을 과시한다. 마레국의 대사도 매우 냉담한 반응을 받는데, 그가 연사로 나서자 열화와 같은 성원이 쏟아진다. 그는 세계인이 가진 엘디아인의 근을 바라는 마음을 이해한다면서 내일 수용구 연설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는 말로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축배를 들면서 "위대한 극작가와 역사의 목격자에게"라고 축사하는데 의미심장한 문장.
  • 차일목 . . . . 3회 일치
         ==선수 시==
         ===[[KIA 타이거즈]] 시===
         ===[[한화 이글스]] 시===
  • 창작:좀비탈출/5-1-1 . . . . 3회 일치
         그건 농담만은 아니었다. 토트넘은 지금까지 본 녀석들 중 압도적으로 '''신선했다.''' 아직도 신체 일부는 분홍빛을 띄고 있고 단련된 하체는 근육이 뭉그러지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상체는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지방의 부패가 시작되었지만…… 의식할 수록 그게 사람이었던 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때 나는 담 너머를 슬쩍 보았다. 그 집은 벽을 따라서 안 쓰는 화분, 손수레 따위가 계단처럼 쌓여있었다. 토트넘이 담을 넘은 수수께끼가 밝혀졌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 비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집 담 아래에도 안 쓰는 커다란 장독이 뒤집혀서 벽 앞에 있었던 것이다. 거의 벽의 반까지 되는 높이였다. 아무렴 죽은 몸으로 이 담을 뛰어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체가 발달된 토트넘은 그 반 정도의 높이는 올라갈 수 있었고 다시 거기서 담을 넘는건 가능했던 것 같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3회 일치
         아무 문제 없다. '''계획은 완벽하다'''. 아니, 결점은 없다. 음…… 적한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수상한 점은 없다는 게 어떨까? 뇌내에서 보내는 많고 많은 가능성과 가정 중에 가장 그럴듯하고 수상한 구석이 없게 들린다. 응, 그렇고 말고.
         순간적으로 마비되어 있던 감각들이 깨어났다. 다리가 굳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하반신이다. 게다가 녀석들 쪽이다. 생존자가 이런 꼴이 됐더라면 필시 피가 흐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이 방이 빨간 방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체액이 튄 흔적은 없다. '''단면'''에 검은 끈끈이 같은게 엉겨 있는게 전부다.
         장롱이 무겁긴 하지만 쓰러진 것만으로 허리를 단할 정도는 아닐 테니까. 깔려서 버둥대는 녀석을 놔두고 도망치거나 머리만 깨버리고 가버렸다면 얘기는 간단하다.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고의로 잘라낸 거다. 무슨 악취미일까? 갑자기 녀석을 구하고 싶어지기라도 했을까? 최악으로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말이다.
  • 최동수 (야구인) . . . . 3회 일치
         ==선수 시==
         ===[[LG 트윈스]] 시===
         ===[[SK 와이번스]] 시===
  • 최성국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 포지션 = 제명 (선수 시 [[공격수#윙어|윙어]])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소속 시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백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상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영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영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영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 최승민 (1996년) . . . . 3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 [[NC 다이노스]] 시 ==
         ==[[상무 피닉스 (야구)|상무 피닉스]] 시==
  • 최원제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
         ==[[삼성 라이온즈]] 시==
         ==[[경찰 야구단]] 시==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3회 일치
         201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2부장을 맡았으며, 2015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인 [[우병우]] 민정수석과의 친분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물론 우병우보다 사법시험은 2년 더 늦게 합격했지만, 사석에서 말을 놓을 만큼 우병우와 친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제2차장으로 일하면서 2016년 6월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받았다. 서울지검 제3차장 시이던 2015년 2월경 [[홍만표]] 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정운호의 무혐의 처분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실제로 2016년 6월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는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홍만표 변호사에게 사건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건넸고, 홍 변호사가 당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 검사에게 청탁하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2015년 2월 당시 최윤수 차장검사가 홍만표 변호사의 청탁 알선을 받고 정운호의 뒤를 봐줬기 때문인지 정운호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국정원 제2차장 시에 '국정원 문화·예술인 배제 보고서'를 수차례 보고 받고 지시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그러한 이유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2017년 12월 2일 [[오민석(법조인)|오민석]] 부장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가담 정도'를 이유로 기각된 것에 불과하고 범죄 사실 소명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731.html#csidxe6517123a8063c9aaa12e8244fa6d69|#]]
  • 카네다 쇼타로 . . . . 3회 일치
         성우는 1기는 [[타카하시 카즈에]], 2기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는 [[야마다 에이코]]/[[최수민]](대영비디오판), 철인 28호 FX는 [[타나카 히데유키]], [[오리카사 아이]](소년시)/[[김용식]](MBC), 4기는 [[쿠마이 모토코]] 5기는 齋藤智美.
         여기에서는 자주 조종기를 뺏기는등 어수룩한 면도 보이지만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불살을 행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주인공들([[키라 야마토]]등)과 다르게 로봇에 탑승한 모든 악당들을 처하게 끔살시키는 프로페셔널로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과장이지만 싸울때를 보면 악당을 생포하든 죽이든 그런건 안중에 없는듯한 쿨한 마인드가 돋보인다.
         철인 28호 FX에서는 왕년의 영웅인 중년 탐정.[* 철인 28호 FX의 배경 세계는 초대 철인 28호 이후의 시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인 천재 과학자인 사카키 요코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네다 마사토를 얻었다. 이 마사토가 시리즈 3기인 FX의 주인공. 그런 이유로 주역의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소년 시부터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지 활약도 많다. 중반부터는 인터폴의 장관이 되며, 그에 따라 카네다 탐정 사무소 전원이 인터폴 소속이 된다.
  • 캡틴 아톰 . . . . 3회 일치
         찰턴 코믹스 시 캡틴 아톰은 과학자 앨런 애덤(Allen Adam)으로 로켓 실험 중 사고가 발생해 원폭(...)을 당하고 초능력을 얻게 된다. 괴력과 비행은 기본이고, 신체를 자유롭게 축소 혹은 거대화할 수 있거나 에너지를 방출 할 수 있다.
         <[[왓치맨]]>의 [[닥터 맨하탄]]의 모티브적인 캐릭터지만[* 닥터 맨하탄의 능력은 [파이어스톰]과 캡틴 아톰의 능력을 반씩 섞은 것. 단, 둘의 능력을 합쳐도 닥터 맨하탄보단 약하다.] 초인 한 명도 없는 왓치맨 세계에서 닥터 맨하탄이 그야말로 [[킹왕짱]]이었다면 모티브가 된 캐릭터인 캡틴 아톰은...
         패턴만 벌써 네다섯 번 반복된 캐릭터다.(...) 그래서 요녀석이 죽어봐야 "또 어디서 여행 중이겠지" 하고 다들 쿨하게 넘긴다. 그리고 장례식조차 안 치러준다! 캡틴 아톰은 대 죽지 않을거라고 다른 히어로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기때문에...이거 기뻐해야 하나?
  • 킹덤/518화 . . . . 3회 일치
          * 진군도 양단화에게 전령을 보내 요양군을 요격해 대로 업성에 오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전달한다.
          공손룡은 순수수가 언제 도착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는 1천 정예병을 데리고 반나 안에 도착할 것이다. 공손룡은 이목의 지시를 전부 따르기로 하고 공격 대형으로 전환한 채 새로운 총대장이 오는 즉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라 명령한다.
          * 양단화군에 도착한 전령도 비슷한 소식을 전했다. 업성의 상황과 왕전이 그리는 큰 그림. 그리고 [[벽(킹덤)|벽]]이 1만의 증원과 10일치 병량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 전령은 왕전이 공손룡의 9만이 더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요양군을 저지해 업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사항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들으면서도 적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양단화는 전령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상냥하게 치하의 말을 전한다. 뜻밖의 친에 전령이 감사를 표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만 달라고 고한다.
  • 킹덤/521화 . . . . 3회 일치
          * [[몽념]]은 고작 5천 병력의 낙화대로 3만을 넘는 [[기수(킹덤)|기수]]군을 감당하는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누가 봐도 망적이었으나 기마대를 이용한 유인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다.
          * 몽념은 조군이 새로운 기마대를 보냈고 그 대장이 유독 덩치가 크다는 보고를 듣자 마정임을 직감한다. 다시 반전해서 병력을 뺀다. 그걸 보고 마정은 더욱 도발 당해 추격의 고삐를 조인다. 기수는 몽념이 분명 흑양전의 정보를 가졌을 거라 보고 어떻게든 마정을 불러들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의 짐작이 맞았다. 몽념은 흑양전에서 얻은 귀중한 정보를 살려서 기수나 마정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특히나 마정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기수의 두 팔 중 하나. [[유동]]이 죽은 지금은 기수에게 남은 유일한 측근이고 그가 죽는다면 기수의 힘은 반 이하가 될게 자명하다. 따라서 이건 더할나위 없는 기회. 몽념은 여기서 마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 마음먹는다.
          * 호점의 원군이 호신호였다. 몽념은 여기서 승부를 보기로 한다. 그대로 부대를 선회시켜 마정을 포위한다. 호의 기회였지만 딱 한가지, 몽념이 오판한 것이 있다. 마정의 용력. 마정은 수세에 몰린 상황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눈 앞의 낙화대 병력을 장작처럼 두쪽낸다. 마정의 목을 따자는 몽념의 말에도 코웃음친다.
  • 킹덤/523화 . . . . 3회 일치
          마광이 움찔할 만큼 이례적인 제안이었으나, 몽념은 "웃기지도 않다는 한 마디로 거의 뜻을 밝혔다. 몹시 무례한 태도였으나, 왕전은 그가 뒤이어하는 말을 자르지 않았다.
          아광은 부대로 돌아가기 전, 누그러진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전을 전달하러 온게 뭘 뜻하는지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옥봉대의 힘이 필요할 때, 괜한 교전으로 힘이 줄어있다면 전술적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디 냉정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하며, 왕분이 안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 전투는 아광군, 옥봉대가 함께 사력을 다 해야 겨우 승기를 잡을 거라고 말했다.
  • 킹덤/524화 . . . . 3회 일치
          * [[악영]]이 이끄는 조군과 격돌하는 [[아광]]. [[왕전(킹덤)|왕전]]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만큼 전면전에선 대 밀리지 않는 무용을 펼친다.
          조아룡은 적진을 난도질하는 마남자의 무용과, 적의 배치를 이용해 묘한 병력 분산을 펼친 전술안을 한눈에 바라보며 과연 그 [[이목(킹덤)|이목]]이 부장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무력은 [[개자방]]과 [[염파]]에 비견된다 알려져 있으니, 마남자야 말로 왕전과 이목의 지략전에서 승패를 좌우할 인물일지 모른다.
          * 적을 몰아붙이는데 골몰하고 있던 아광군은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엇다. 1진은 이미 악영군과 한참 교전 중이라 측면을 강화하러 보낼 병력이 없었고 2진도 마남자가 세운 벽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싸움은 순식간에 난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때 1진과 2진 사이를 소속 불명의 기마대가 가로질러갔다. 양군 모두 전투의 도중인데도 저 기마대가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편인지 어리둥해했다.
  • 토리코/367화 . . . . 3회 일치
          * 지로는 아카시아에게 딱 하나만 대답해 달라며 "플로제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보인 눈물은, 그때 그 시 함께했던 순간들은 진짜였냐"고 묻는다.
          * 지로는 한맺힌 목소리로 아카시아를 부르며 "미도라에게만은 말하지 마라. 그 녀석은 아직도 그 시만큼은 진짜였다고 믿고 있다."고 애원한다.
         그 때 그 시 함께했던 그 순간들은 진짜였나? ||
  • 토리코/378화 . . . . 3회 일치
          * 오오타케는 홀로 외로운 조리를 계속하지만 견습생 시 코마츠의 모습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는다.
          * 그는 견습생 시 B급 식재에도 쩔쩔매던 것을 떠올린다.
          * 때마침 나카우메도 합류. 우메도 그 시부터 함께 밤을 새가며 기술을 연마하던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 토리코/388화 . . . . 3회 일치
          * 아카시아는 토리코도 "식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음을 확인하지만 빈정거리며 평가하한다.
          * "지금 음미하도록 하마. 네놈들의 망을"
          * 그는 토리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망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 토리코/391화 . . . . 3회 일치
          * 그는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외치지만, 토리코가 나타나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망하지 말라고 했다."고 상기시킨다.
          * 망적인 상황임에도 토리코는 아카시아의 몸에서 점점 더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다며 "한 고비 남았다"고 강조한다.
         다른 팔왕들은 변변한 활약도 없이 그대로 리타이어. 사천왕은 그 팔왕 만큼의 기여도 못해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뭔 일이 생겨도 대 위험하지 않던 코마츠도 하반신이 사라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대로는 사망 확정?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3회 일치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 컨디션 조: 모든 유닛의 이동 속도 +2%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백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3회 일치
          * 잉벨은 비장의 수로 얼음의 갑옷 "빙신의"를 두른다.
          * 이 갑옷은 "닿는 것을 전부 얼려버리는" 대 방어의 마법,
          * 그레이는 찰나의 시간 동안 빙신의와 똑같은 성질의 글러브를 조형.
  • 페어리 테일/515화 . . . . 3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남편이자 [[엘자 스칼렛]]의 아버지는 옆나라의 장군이었다. 아직 용왕제가 시작되기도 전, 인간끼리 전쟁하던 시에 한 정략결혼이었다. 용왕제 시에는 함께 전장에 서기도 하고 함께 현룡 베르세리온의 최후를 지켜보기도 했던 사람이다.
          나름대로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린에겐 그저 인간의 모습을 잃었다는 망감만 가득하다. 아이린은 여전히 자신은 인간이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살 수 없다며 몸부림친다. 도움을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는 아이린. 그러나 그 모습으로 수백 년이나 흐르고 만다. 엘자는 여전히 뱃속에 있는 채로.
  • 페어리 테일/541화 . . . . 3회 일치
          * 루시는 멸룡마도사 공통의 약점인 멀미를 이용해 허를 찌르고 그때 대방어마법 "페어리 스피어"를 사용해 봉인하는 작전을 세운다.
          * 매그놀리아에는 페어리 테일을 중심으로 생존한 전력들이 속속 집결한다. [[엘자 스칼렛]]에게 지금 상황이 전모를 들은 [[마카로프 드레아]]는 병력을 모아놓고 망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체가 지상에서 날뛰고 있고, 대항할 수단인 멸룡마도사들은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가 버렸다고.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없다.
          * 논의는 점점 망적인 결론으로 향한다. 그때 [[레비 맥거딘]]이 옆자리의 [[루시 하트필리아]]가 골똘이 생각에 잠겨있는 걸 보고 왜 그러냐 묻는다. 루시는 아직 확신이 생긴건 아닌 듯 하나 "딱 하나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다.
  • 하리수 . . . . 3회 일치
         비록 남자의 신체로 태어났지만 하리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였고<ref name="Eve from Adam" />, 또한 여성스럽게 성장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ref name="Eve from Adam" /><ref name="Adam to Eve">Gina Choon, [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Adam to Eve"] {{웨이백|url=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date=20071017204309 }}, ''Asiaweek.com'', September 14, 2001.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하리수의 여성스런 성격을 걱정한 어머니는 그를 [[웅변]]학원에 보낸다.<ref name="ung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01920 '화려한 시' 태조 왕건' 外] 동아일보 2001.12.07</ref> 그곳에서 하리수는 자신의 여성스러움까지도 이해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나 함께 웅변대회 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ref name="ungg"/>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832 하리수 첫사랑 고백 자살시도에 성전환 수술 결심은 고 2때… '기구한 인생'] 경인일보 2012.05.15</ref> 그는 "첫사랑 상대는 탤런트 [[이창훈 (배우)|이창훈]]을 닮은 외모로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남학생이었다"며 "첫사랑 이후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하리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교제했던 남자친구로 인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151446181110 하리수 "중학교 시, 첫사랑때문에 자살시도"] 마이데일리 2012.05.15</ref> 이후 남자로 살아보기 위해 평소 그녀를 동경하던 부근 학교 여학생을 사귀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53478 하리수, “남자로 살기위해 여학생과 사귄적 있다”] 마이데일리 2006.07.11</ref> 하리수는 또 “두번째 사랑을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미스젠더링|넌 어차피 남자잖아]]"라며 결별을 통보받고 성전환수술을 결심하게 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59418 하리수, 성전환에서 결혼까지] 스타뉴스 2007년 02월 21일자</ref>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전환 수술을 결심했다 한다.<ref name="heimagge"/>
         하리수측은 “데뷔 때 밝힌 것보다 네 살 많은 26세이고, 본명도 데뷔 때 밝힌 이 수가 아닌 이경엽”이라고 밝혔다. 하리수 측은 “필요에 따라 나이를 조하는 연예계 관례를 따른 것”이라며 “본명도 이미지 메이킹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ref name="naitge"/> 한편 그녀도 직접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 본명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나이를 실제보다 어리게 말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사과했다.<ref name="yisuu"/>
  • 하이큐!! . . . . 3회 일치
         작가는 고등학생 시 부활동으로 배구를 했으며, 배구 만화에 대한 구상은 이때부터 있었던 걸로 보인다. 세터가 주인공에, 천재 세터가 스파이커에게 맞춰 주는 만화를 그릴 생각이었다고.
         1회전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약체팀들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을 단순히 주인공 학교의 1승 제물로 등장시키지 않고, 그들 역시 배구와 함께 고교시을 보내는 청춘임을 묘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부분의 팬들이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을 때 꼭 언급되는 40화 '승자와 패자' 편(애니메이션에서는 16화). 인터하이 1차전이 끝난 후 1회전에서 탈락한 23개 팀 모두를 '''한 컷씩 다 그려냈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인지 23개교가 전부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 "우리들도 했어 배구" ''' 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대적인 악역도 없고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배구에 청춘을 걸고 있거나 혹은 걸었던 사람들인지라,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건강하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드라마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 하이큐/232화 . . . . 3회 일치
          그렇게 하면서 어쩐지 안심이 들었다. "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게 아니다"라는 안도감. 그런 불안과 초조함이 "남의 일"이라는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수들의 노력과 좌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키요코의 중학시, 고교1학년 시도 잠깐 나오는데 중학교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던것 같다. 1학년 땐 트윈테일에 안경이라는 실로 반장스러운 속성.
  • 하이큐/244화 . . . . 3회 일치
          * 고르게 활약하는 동료들. 그 와중에 미적거리는 보쿠토는 그걸로 보고 다시 네거티브해지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걸 캐치한 아카아시는 그의 안전부이 피크에 오를 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15 대 15로 동점. 에이와 고교가 첫 번째 TO를 부르자 아카아시가 움직인다.
          * 에이와의 TO 종료. 경기가 재개된다. 에이와의 서브를 코미가 리시브.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올린다. 블록이 세 명이나 따라 붙지만 보쿠토는 묘하게 라인에 걸치는 스파이크로 블록을 농락, 역전을 성공시킨다.
          * 경기는 부활한 보쿠토의 활약으로 여세를 몰아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후쿠로다니의 완승. 카라스노 경기를 보다 넘어온 바보 커플도 후쿠로다니의 활약을 지켜본다. 경기 종료후 아카아시는 [[사루쿠이 야마토]]와 "카라스노의 1학년들이 와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카아시는 설사 그들이 없었더라도 다른 계기를 만들어서 분위기를 띄웠을 거라 장담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가끔은 보쿠토를 아주 무시해버리는게 속편할 거라고 말하는데, 아카아시는 어차피 자신이 끌어내는 보쿠토의 힘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무엇보다 호조인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사루쿠이는 그걸 본인에게 말해주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코노하는 그러면 괜히 까불게 된다고 말린다.
  • 하이큐/246화 . . . . 3회 일치
          * 그날 밤 타나카는 카노카와 다시 만나는데 달달한 분위기가 될 뻔 하지만 [[시미즈 카요코]]를 생각하려 거하려고 하는데
          그때까지, 공식적으로 [[시미즈 카요코]]에게 어택하던 걸로 돼있던 타나카는 처한 퇴짜의 나날을 떠올린다. 동시에 썸이란, 자신에게 그런 장밋빛 무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달으며 멘붕으로 접어든다.
          고백타임 같은 분위기. 그러나 이런 부분으로 내성이 전무한 타나카는 머리가 폭발할 것처럼 복잡해진다. 그런 영향일까? 타나카는 무슨 근자감인지 일단 거하고 보기로 하는데... 불청객이 끼어든다.
  • 하이큐/247화 . . . . 3회 일치
          * 지난 10월. [[카라스노 고교]]가 봄고 미야기현 대표로 결정된 직후의 일이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간만에 본가에서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카이 코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쓰레기장 결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웃는다. 그 말을 들은 잇케 감독은 자신이 배구부를 맡고 얼마 되지 않던 시을 회상한다. 잇케 감독은 그때 자신을 "남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 시의 그는 선수에게 "나랑 똑같은 것" 내지는 "내가 하려다 못했던 것들"만을 시키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시버인 [[니시노야 유]]가 바로 눈치챈다. 실제로 어떻게 칠지는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타나카도 리시브 진형 짜기 힘들겠다고 투덜댄다. 여기에 카게야마는 중학생 때, 인터하이 때 모두 베스트 서버 상을 탔다고 정보를 추가한다. 아즈마네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좌한다.
  • 하이큐/248화 . . . . 3회 일치
          *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양팀이 그걸 쓰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워밍업 생각만 하며 안하는 카라스노와 달리, 이나리자키 측은 주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상당히 여유롭다. 주장 3학년 [[키타 신스케]]. 포지션은 Ws이고 키는 175cm로 배구선수 치고 크진 않다. 인터뷰하는 상대도 마치노 아나운서라는 유명한 언론인.
          * 한편 니야마 고교도 여자팀이 경기하러 오는 중이다. [[아마나이 카노카]]의 동료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넣어주고 있다. 카노카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스펙이 뛰어나고 "류"한테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밀어붙이면 넘어오게 되어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카노카는 별로 확신이 생기지 않는 모양인데, 문득 [[타나카 류노스케]]가 처음 배구를 추천해준 그 시을 떠올린다.
  • 하이큐/250화 . . . . 3회 일치
          * 호의 속공 찬스를 어이없이 놓친 [[히나타 쇼요]]. 중계석에서는 [[카라스노 고교]]의 경기 초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그런데 히나타가 답지 않게 죽을 만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물론 상대편 [[미야 아츠무]] 조차 "너무 풀죽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코트 바깥의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실수했다고 저렇게까지 좌한 적이 있던가? 의문을 표시한다.
          * 아츠무가 보여준 묘시를 그대로 갚아준 셈. 그런데 호시우미는 딱 한 번 봤을 뿐인데도 히나타의 점프를 보고 불편함을 어필한다. 히나타가 그의 점프를 표한 걸 눈치챘기 때문일까? 그 밖의 강호교들도 방금 전 플레이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보쿠토는 당연히 호들갑을 떠는데, 아카아시는 아츠무의 플레이 때와는 상반되게 단순명쾌하게 정의한다.
  • 하이큐/262화 . . . . 3회 일치
          * [[타나카 류노스케]]가 막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1학년이었을 시엔 강호의 지휘를 잃고 주변학교에선 퇴물취급을 받고 있었다.
          >대 머리는 숙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 공이 크게 떠서 다시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아츠무가 다시 세트업.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공은 린타로에게. C속공. 이번에는 카라스노의 블록도 빨랐다. 타나카가 일찌감치 달려온다. 적한 리드블록. 츠키시마도 코트 밖의 히나타도 직감할 수 있었다. 막는다. 블록 두 장이 여유롭게 뛰어오른다. 결과는 실패. 공에 스치지도 못했다. 타나카와 함께 블록을 뛴 츠키시마 케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코스를 틀어막았다. 공이 블록을 통과한 것처럼 뻗아나가 우측 후방의 [[사와무라 다이치]]를 노렸다. 사실 스나 린타로가 노린 건 정확히 그 위치는 아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렷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공은 블록을 돌파했고 카라스노 진영으로 돌아왔다. 사와무라가 엉겁결에 리시브한 바람에 공이 불안하게 떠올랐다. 아즈마네가 사이드라인 밖에서 걷어올리면서 타나카에게 잇는다.
  • 하이큐/267화 . . . . 3회 일치
          * 사루카와의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은 코즈메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현역 선수였던 시 네코마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시라미네의 조치는 재빠르긴 했지만 적하진 않았다. 코즈메는 들켰다걸 알았지만 작전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른쪽이었다. 중앙에 멈췄던 시가는 공이 카이에게 넘어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카이가 짐착하게 스파이크. 뒤늦게 시가가 블록에 참가했지만 그의 팔에 맞고 텅빈 사루카와의 좌측에 내리꽂혔다. 완전히 속았다. 중계진은 넓은 레프트를 버리고 좁혀진 라이트를 공략한 의외성에 놀랐다. 그리고 사루카와의 블록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를 감행한 코즈메는 수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번 대회에서 손꼽히는 세터일지 모른다고 호평했다. 정작 당사자는 방금 조금 짧게 올라갔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 하주석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
         ==[[한화 이글스]] 시==
         ==[[상무 야구단]] 시==
  • 하준영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
         [[성남고등학교]] 시 1학년 때부터 팀의 주축 투수를 맡아 활약했고, 2학년과 3학년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고교 좌완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다.
         ==[[KIA 타이거즈]] 시==
  • 한교원 . . . . 3회 일치
         2012 시즌에는 잠시 부상으로 주전에서 밀려나며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수렁에 빠지나 싶었지만 [[그런 거 없다|그런 거 없었다.]] 금세 폼을 끌어올리며 데뷔시즌을 능가하는 '''28경기 6골 2도움'''의 스탯을 작성. 특히 홈에서 열린 [[FC 서울|서울]]과의 [[http://www.youtube.com/watch?v=8LrdLr_WxRU|빗속 혈투]]에서 멀티골을 작렬한 경기가 정이었다.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고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구석으로 슈팅을 꽂아넣는 두번째 골 장면이 백미. [[홍명보]] 감독도 한교원을 주목해서 올림픽 대표팀 소집훈련에 호출한 바 있으나 공식경기엔 나서지 못했다.
         전북구단은 베이징 궈안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명단에서 그를 제외시켰고 자체적으로 벌금 2,0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프로축구연맹은 28일 열린 상벌위에서 6경기 출정정지와 제재금 600만을 부과했다.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한 2경기 출장정지까지 합쳐 총 8경기 출장정지에 구단 자체징계까지 합쳐 벌금이 2,6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이다. 팬들은 한방에 1,300만원하는 주먹질이라며 혀를 찼다. 연봉의 거의 반이 날아갔다.
         세계일보에서는 야구계의 민병헌 사건과 함께 들먹이며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5/28/20150528005252.html?OutUrl=naver|솜방망이 처분]]이라고 비난했다. 수아레즈의 4개월 출장 정지에 비하면 징계가 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수아레즈는 같은 반칙을 2번이나 해서 그런거고 경기 중 이단옆차기 날린 이청용에게 아무 징계도 안 주던 시에 비하면 그래도 나아지긴 했다. 전북 팬들은 옛날 [[서정진]]이 그랬듯이 대표팀 다녀와서 발전할 생각은 안하고 겉멋만 들어왔다고 걱정하고 있다.
  • 한상훈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
         [[1980년]] [[6월 3일]]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서울화곡초등학교]]와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신일고등학교]] 시 투수로도 활동하였고,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한화 이글스]]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에 진학하였다.
         ==[[한화 이글스]] 시==
  • 한진희(1949) . . . . 3회 일치
         [[김동엽(1938)|김동엽]] 감독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방송이 끝나고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김동엽 감독과 합석하게 되었는데[* 당시 김동엽 감독은 여의도 근처의 술집을 자주 들락거려 일부 연예인들과 안면이 트인 사이였다고 한다. 한진희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연예계에서 주당으로 이름 날리던 한진희는 김동엽 감독에게 술내기를 제안했고, 김동엽 감독이 레몬을 주문하자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동엽 감독이 즐겨 마시던 일명 '레몬소주'[* 레몬 하나를 '''맥주잔에''' 짜서 즙을 낸 후 소주랑 섞어 마셨다.]를 한번 마셔본 한진희는 "이게 술이냐 주스냐."라고 비아냥거리고 자신만만해했으나 결과는 한진희의 완패로 끝났다. 이 때문에 병원신세도 지고 거진 한달을 후유증에 시달린 한진희는 이후 "김동엽 그 괴물같은 인간이 주는 레몬소주는 대 마시지 말아라." 라고 했다고 한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상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반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대 선]]과 [[남일호|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남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순상]]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영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남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영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상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상]]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 허건엽 . . . . 3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 65회 [[청룡기]]에서 [[순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18/19 [[질롱 코리아]] 시 ===
  • 허준호(배우) . . . . 3회 일치
         원로 배우 [[허장강]]의 아들로도 유명하긴 하지만 스스로의 연기력으로 올라선 인물로서, 20대 무명시을 겪고난 후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중반부터 청춘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과 함께 비중있는 조연으로 얼굴을 내 비추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 드라마 "주몽"에서 맡은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 역이 유명하다. 주몽의 훌륭한 멘토이자 과거 [[세계관 최강자]]였던 인물의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청소년 시에 방황이 길었다고 한다. 처음에 서울예대 무용과로 들어갔는데 입학해서도 겉도는 허준호에게서 그래도 소질을 꿰뚫어본 교수가 "너를 괜히 붙여준줄 아느냐?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거라" 라고 말을 남겼는데 알고보니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이었다고. 무용과를 졸업하고 나서 뮤지컬을 하고 싶어 서울예대 연극과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신인 시인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정이 많고 편안한 이미지의 캐릭터도 많이 맡았다. 뮤지컬 배우인지라 노래에도 자신이 있었는지 1994년에는 동료 탤런트 김대희와 함께 가수 활동을 한 적도 있고, 그가 부른 솔로곡 중에 '어머님의 자장가'('사랑과 평화'가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가 어느 정도는 유명하다.
  • 홍은희(배우)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배우.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출신으로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MBC 베스트극장에서 [[강호순]]과 함께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려 1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였다. 결혼식을 [[3.1]]에 하여 식장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남편 강호순은 만세삼창을 하였으며, [[신혼여행]]도 [[상해임시정부]]로 갔다고 한다. 결혼 후 한동안 [[육아]]에 힘쓰며 연예계에서 물러나 있다가 복귀하여 드라마, 예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1999년 || MBC || 미찌꼬 || || [[광복|8.15]] 특집극 ||
          * 9살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24살에 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방학 때만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었는데 그 기간이 1년에 10-20일 정도였다. 어린 시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19살 때 대학 등록금을 아버지께 요구하였는데 아버지께서 이를 들어 주시지 않아 마음이 닫히게 되었고 사이도 멀어졌다. 결혼식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고,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아버지가 계신 정읍 내장산을 지나가다가 남편 [[강호순]]의 권유로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되었다.
  • 홍효의 . . . . 3회 일치
         신장 190cm인 장신의 사이드암 투수로 고교 시 [[우동균]]과 더불어 2008년 1차지명자로 꼽혔지만, 오른쪽 엄지발가락 골상으로 1차지명은 커녕 2차지명 때도 지명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2년제 대학인 강릉영동대로 진학, 대학 시에는 부상 때문에 타자(우익수/지명타자)로 나섰다.
  • 황병기 . . . . 3회 일치
         가야금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51년 부산 피난시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경기고등학교 시에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명인인 김영윤, 김윤덕, 심상건을 사사하였다. 당시 서울대 법대 학생이며 남학생으로는 특별하게 대학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9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1963년까지 서울대학교 음대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2000년 2월에는 [[단국대학교]]에서 명예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1962년]] 5년 연상의 [[소설|소설가]] [[한말숙]]과 결혼했다. 한말숙은 소설가 [[박완서]]와 [[숙명여자고등학교|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동창이며 박완서와 한말숙의 숙명여고보 시 은사는 소설가 [[박노갑]](朴魯甲, [[1905년]] ~ [[1951년]], 아호는 도촌(島村))이다.
  • 황희두 . . . . 3회 일치
         곽노현 상임공동대표,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배우 문성근씨 등이 청구인단으로 참여한 내놔라시민행동은“국정원은 이번 정보공개청구를 사찰 근 의지를 표명하는 계기로 삼아 기록을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며 시작된 시민운동으로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근하자는 취지의 운동으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8290.html|“국정원, 민간 사찰 정보 내놔라” 정보공개청구 운동 첫발</ref>
         *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무척 아쉽다. 공부 외의 게임의 길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으며, 선수 시 게임에 더 미치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쳤던 경험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고 생각하여 무척이나 행복하다." - 《Global Leaders Club 게임 관련 특강 中》<ref>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358096|프로게이머 출신 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Global Leaders Club 포럼에서 게임관련 특강 실시</ref>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2회 일치
          * 또 하나 니카이도가 기대하는 것은 키리야마와 반대 블록에 있다는 것. 즉 둘이 대결한다면 대회 결승이다. 게다가 그가 결승까지 나갔다는건 무려 "소야 명인을 쓰러뜨린 기사"라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니카이도는 엄청 흥분해서 키리야마에게 대 지지 말고 결승에게 붙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키리야마는 드라이한 톤으로 "왜 네가 소야 명인을 이겼다는걸 전제로 하냐"고 딴죽을 건다.
          하야시다는 그 부분에서 남자로서의 격이 너무 다름을 감한다.
  • Daisy Bell(Bicycle Built For Two) . . . . 2회 일치
         || 1 ||
         || 2 ||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2회 일치
          * Money Devaluation(화폐하)
          하딩 대통령 시 제정되었던 금주법을 폐지해 다시 술을 팔 수 있게 한다. 불만도가 1% 감소하며 공업 효율이 1% 상승한다.
  • Good Morning, Mr Zip-Zip-Zip! . . . . 2회 일치
         || 1 ||
         || 2 ||
  • I Didn't Raise My Boy to Be a Soldier . . . . 2회 일치
         || 1 || Ten millions of soldier war have gone
         || 2 || What victory can cheer a mother's heart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2013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승강 플레이오프가 3번 열렸지만 '''단 한번도 K리그 클래식 팀이 승자가 되어 잔류에 성공한 이력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팝콘을 뜯게 만드는 동인이 되며 챌린지 진출팀에게는 희망을, 클래식 진출팀에게는 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팬들에게 강등은 우승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실한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전은 한시적으로나마 [[슈퍼매치]]를 뛰어넘는 라이벌전이 탄생하게 된다.
  • 강상재 . . . . 2회 일치
         == 고려대학교 시 ==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시 ==
  • 강원 FC . . . . 2회 일치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허나 이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도의회와의 협조는 특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에 관해서는 다소 논란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강원도축구협회와의 협의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깜짝 쇼는 시민들에게는 이벤트였을지는 모르나 축구 및 도의회 관계자들에게는 뜬금포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강원도청측은 당초 발표한 대로 일정에 맞춰 차를 밟아 창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 강타 . . . . 2회 일치
         * [[문희준]]과는 [[H.O.T.]]로 데뷔하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며 두 사람은 평생의 친이다.
         * 한편, 강타는 당초 [[KBS 2TV]] 드라마 [[쿨 (드라마)|쿨]]의 주제곡을 부르기로 했는데 친한 동료인 [[이지훈]]을 주요배역으로 써줄 것을 조건으로 자청했으나 [[이지훈]]의 캐스팅이 불발로 그치면서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됐다.<ref>http://news.chol.com/index.php?cmd=doc&sd=20010524&ed=20010524&cat=ENT&newsid=SPOCS_P81211</ref>
  • 강흠덕 . . . . 2회 일치
         ==선수 시==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2회 일치
          * 우마루는 "방을 너무 가꾸지 않은 채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타이헤이는 혼자 쓸쓸히 지내던 시에 우마루가 살러와서 복닥거리게 된 걸 생각하며 "꼭 그렇진 않다"고 대답한다
          * 타이헤이도 혼자 살던 시엔 은근히 의기소침했던 듯.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2회 일치
          * 히카리는 "언니랑 같은 학교가 아니냐"고 묻는데, 사실 이 시 카나우는 타이헤이와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 "이젠 서른에 가깝다"는 언급이나 10년 전 학창시이었던 걸 보면 현재는 20대 후반.
  • 경관 . . . . 2회 일치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경주시 . . . . 2회 일치
         |align="center"|유년시 거주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f/Korea-Gyeongju-Seokguram-12.jpg/120px-Korea-Gyeongju-Seokguram-12.jpg|[[석굴암]]
  • 고대 그리스 . . . . 2회 일치
         고대 그리스 시기가 그리스 최초의 문명은 아니지만, 그리스 암흑시대로서 단기가 있어 이전 시대는 미케네 문명, 미케네 그리스라고 한다.
         지중해 세계의 왕국들은 차례차례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파르티아와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치면서, 박트리아 왕국과 같은 정치적 실체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리스 본토와 단된 탓에 서서히 현지인들에게 동화되어 소멸하게 된다.
  • 고독사 . . . . 2회 일치
         인간관계가 고립된 사람이 [[의사]]나 [[가족]], 이웃 등 주변 사람들에게 간호를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사망하는 경우를 뜻한다. 주로 [[독거노인]]에 많으며, 지역사회에서도 고립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적한 치료를 받았다면 사망을 면할 수 있었을 사람도 많다.
         고령화, [[핵가족]]화, 도시화로 인한 지역 커뮤니티 단 등이 고독사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한신대지진]] 이후에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 붕괴와 경제불황에 따라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 고성국 . . . . 2회 일치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 [[문민정부]] 시 ===
  • 고준희 . . . . 2회 일치
         |사진설명 = 2015년 《나의 친 악당들》 무비토크에 참석한 고준희.
         | 《[[나의 친 악당들]]》
  • 규동 . . . . 2회 일치
         고기와 양파 이외에 두부, 파 등을 넣기도 하며, 생강 임, 날달걀 등을 취향에 따라 곁들이기도 한다. 대개 생강 임이나 소스는 무료, 하지만 다른 토핑은 돈을 받는다.
  • 규성 진씨 . . . . 2회 일치
         춘추시대에 규성 진씨에서 규성 전씨가 분리된다. 진(陳) 나라의 공자 완(完)이 [[제나라]]로 망명하고, 제환공에게 중용되면서 전(田)씨가 시작되었다. 진씨가 전씨로 바뀐 까닭은 몇 가지 설이 있는데 (1) 진완이 전(田)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사기집해》, 응소] (2) 진(陳)과 정(田)이 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 《사기색은》, 사마정] (3) 진완이 본국의 이름을 쓰기를 꺼려했다.[* 《사기정의》, 장수] 등이 있다.
         전완 이후로 전씨는 제나라에 자리를 잡고 점차 제나라의 유력 씨족이 되었으며, 마침내 태공망의 후손인 강성(姜姓) 여씨(呂氏) 왕조를 단시키고 제나라의 군주가 된다. 제왕 건은 다시 진씨로 복성하며, 제나라 왕실에서 왕씨가 일부 갈라져 나온다.
  • 김대륙 . . . . 2회 일치
         == 프로 선수 시 ==
          * 수비는 상당히 잘하지만 그 반을 공격이 못 받쳐주니 문제. 수비는 왠만한 사람들이 다 인정하지만 공격 툴은 주루 빼고는 많이 안 좋은 편이다
  • 김명신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두산 베어스]] 시==
         [[2017년]]에 입단하였다.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박치국]]과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으며, 신인 투수가 캠프에 참가한 것은 5년 만이다. [[박치국]], [[함덕주]]와 5선발 경쟁을 하였으나, [[함덕주]]가 5선발로 낙점되었다. 그래서 불펜으로 나와 배짱투로 신인답지 않은 투구를 펼쳤다. [[4월 15일]]에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였다. [[4월 25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김민성 (1988년)|김민성]]이 친 타구가 그의 안면을 강타하여 안면 광대뼈가 골되면서 선발진에서 하차하였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9187 두산베어스 김명신, 넥센히어로즈 김민성 타구에 '부상'… 야구팬 "빨리 완쾌되길"] -이뉴스투데이</ref>
  • 김민수 (1992년) . . . . 2회 일치
         ==[[kt 위즈]] 시==
         ==[[상무 야구단]] 시==
  • 김상훈 (1990년) . . . . 2회 일치
         ==[[두산 베어스]] 시==
         ==[[넥센 히어로즈]] 시==
  • 김석훈(탤런트) . . . . 2회 일치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에서 명 연출가 줄리안 마쉬역을 맡았다. 서울공연에서 성황리에 높은 유료점유율을 기록하고 지방순회공연을 이어갔다. 본인이 맡은 노래2곡을 배역에 조화롭게 녹여내기 위해, 무려 2달간을 꼬박 연습에만 매달렸다. 공연에서 마쉬의 캐릭터인 카리스마의 경중 조에서, 상황별로 깊이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공연때나 리허설때나 스태프 및 출연진과 소통하며 배우는 신인의 자세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 이는 그간 인터뷰에서도 나타냈던, 데뷔당시의 변치 않는 신념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즉 본인이 말한 대로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지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임해 많은 호평을 이끌어 냈다. [* 공연관람에 평소 흥미가 없었다고 한 층까지도 신규관람층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전년과 대비해 김석훈은 공연에 참여한 이후로, 신규층의 높은 관람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호평받았다.]
         중앙대 동문인 [[김상경]]과는 재학시 학교발전위원회 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 김상경과 같이 학내 강압적이고 불합리한 문화를 없앴다.
  • 김승관 . . . . 2회 일치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대구상고 시에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상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항상 [[이승엽]]을 따라다니다가 본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비운의 천재. 당시 고교 코치들 말에 따르면, 이승엽은 부드러운 스윙을 휘두르는 반면, 김승관은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이라서 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 김영환(1955) . . . . 2회 일치
         2016년 5월 11일 국민의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인재영입위원장 시 영입한 [[김수민(정치인)|김수민]]의 리베이트 건이 터졌다.
         19대 의원 시 골프 클럽하우스나 딸이 운영하는 한 쿠키점에서 간담회 명목으로 부당한 정치자금을 집행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불건전한 관행이 비단 김 전 의원 혼자만의 일은 아니나 그럼에도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38105.html|한겨레 기사]]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624882_22663.html|MBC 보도]]
  • 김윤동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KIA 타이거즈]] 시 ==
         ==[[상무 야구단]] 시==
  • 김정난 . . . . 2회 일치
         || 2001년 || SBS || 여고시 || 영어 선생님 || ||
          * 개그우먼 [[전영미]]와 친이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이후 김준영은 우승자 징크스에 시달리며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1승 2패로 16강 탈락하였고, 두 시즌의 공백과 이적 이후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도 3패로 16강 탈락하였다. 그러나 다음 대회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는 2승 1패로 16강 그룹을 통과했으며, 8강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는 당시로서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4강에 올랐다. 4강에선 신예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SK 텔레콤 T1]])의 메카닉 전략에 무너지며 1:3으로 분패했고, 같이 결승 진출이 좌된 [[도재욱]]([[SK 텔레콤 T1]])보다 대회 승률(인크루트 스타리그 16강부터 4강까지의 승률)이 낮아 4번시드를 획득하였다.
         * 김준영은 학창 시 문학 과목에서 전교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학업 성적도 우수한 모범생이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고, 당장 돈을 벌 수 있었던 [[프로게이머]]의 길을 선택했다.
  • 김중혁 . . . . 2회 일치
         [[씨네21]]과 연이 깊다. 2009~2010년 친 [[김연수]]와 함께 '나의 친구 그의 영화'를 연재했다. 이어 2011~2012년에는 '최신가요인가요'를 연재했고, 2014~2015년에는 '김중혁의 바디 무비'를 연재했다. 세 칼럼은 <대책없이 해피엔딩>과 <모든 게 노래>,<바디무빙>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되었다. [[한겨레]]와도 연이 닿아 목요일 ESC 지면에서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을 연재했고, <메이드 인 공장>이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동진은 자신이 사라지면 중혁이 반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하여 비밀글들을 숨겨두었고 예상대로 중혁은 동진의 블로그속 마녀의 법칙을 찾아낸다. [* 이때 아이디는 중혁의 주민등록번호였으며 비밀번호는 'Shine on you'였다.]동진의 조사가 유독 오래 걸린 이유가 미정을 조사함과 동시에 대학시부터 중혁에 관해서도 눈치채고 같이 역학조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혁과 관계된 여성 리스트가 나오는데 수십명~~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부럽다'''. 게다가 다 남녀공학이야~~가까이 중혁을 좋아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글은 이 글을 볼 중혁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중혁아. 네가 사랑해야 돼.''' 라는 말, 즉 해결책을 써준 동진에 대한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
  • 김지석(배우) . . . . 2회 일치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식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태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태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반석.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반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에 태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고교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와 수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주마다 [[영국]]에서 열리는 지역 대회에서 항상 옆레인에 윌리엄 왕자가 있던터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고, [[허구연의 저녁식사|식사도 했었다]]고 한다.
  • 김진우(WINNER) . . . . 2회 일치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출생}}}''' ||<(> [[1991년]] [[9월 26일]] ([age(1991-09-26)]세), [[전라남도]] [[신안군]] [* [[OUR TWENTY FOR]] 컴백 기념 V앱에서 본인이 언급한바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출생했으며 기억도 안날 정도로 어린시에 임자도로 이사간 후 7살때 [[전라남도]] [[목포시]]로 이사갔다고 한다.] ||
          * 어린 시 심심해서 바다 앞에서 낚시를 하던중 추워서 성냥불로 불을 피웠는데 그 불이 그물에 옮겨 붙어 임자도을 태워버릴뻔한 에피소드를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다행히도 포크레인으로 바닷물을 퍼와 불을 꺼 큰 화재는 면했다고.
  • 김혜영(코미디언) . . . . 2회 일치
         원래는 코미디언으로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그녀의 개그공채 동기로는 [[이경규]]와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등이 있다. 코미디언으로서는 일요일밤의 대행진 시부터 그 후속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청춘행진곡]]등에 출연했다.
         MBC 희극인실(코미디언) 동료이자 선배인 [[강석(코미디언)|강석]]과 함께 1987년부터 MBC 표준FM [[싱글벙글쇼]]의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5공시 "서울 공화국, 6공 들어서는 "88 돌도사"라는 코너에서 시사풍자를 빵빵 터뜨려 대던 용자짓을 했다....] 현재까지 집안 경조사가 있어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을 하고 있다. 다만 주말과 공휴일은 평일보다 5분 길게 진행한다.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 결혼식 당일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이후에야 결혼식을 하러 갔다고 한다. 게다가 신혼 여행 때도 지역국(제주)과 본사를 연결해서 방송했다.
  • 김효원 . . . . 2회 일치
         '''김효원'''(金孝元, [[1542년]] ~ [[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퇴계 이황|이황]]과 [[남명 조식|조식]]의 문인이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611/wk2006111416012337070.htm 주간한국 : [종가기행 24] 善山金氏 省庵 金孝元 - 부친 여윈 뒤 家勢 기울어 "가문의 전통 범 잘 몰라요"<!-- 봇이 붙인 제목 -->] </ref> 본관은 [[선산 김씨|선산(善山, 일선)]]으로, 자는 인백(仁伯)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1574년]] 이조전랑을 지냈고 이듬해인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의 관직은 대로 척신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후 그는 [[심의겸]]과 [[심충겸]]을 외척이라며 비난하였고, [[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한 것과 같으므로 그의 주장이 공론으로 받아들여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2회 일치
          * 올마이트는 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경고하며 대화가 끝난다. 마지막으로 올 포 원은 묘한 웃음을 짓는데.
          * 대화가 한창이지만 형무소 측에선 3분 남았다고 통보한다. 올 포 원은 정말로 즐거운 듯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로 세상이 동요하고 있을 거라며 세상의 동향을 묻는다. 그는 세상과 교류가 단돼 있고 이 순간 조차 올마이트에게 바깥 일에 대해선 함구하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올 포 원은 바깥의 사정을 매우 정확하게 추정하고 있다. 올마이트의 은퇴가 야기한 혼란들. [[엔데버]]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지만 세상은 불안해지기만 하고 억지력이 사라진 그늘 속의 인생들이 할거한다. 시가라키는 잠시 동안 잠복할 것이며 대두하는 세력들을 파악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빌런들 간의 경쟁, 대립도 심화.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2회 일치
          *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불러내서 어디론가 향한다. 미도리야는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다 걸리면 혼날 거라고 말하지만 바쿠고는 말 없이 걷기만 한다. 미도리야는 어린 시 바쿠고 뒤를 따라다니던 시을 떠올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2회 일치
          * 올마이트에겐 사실 후계자를 찾던 시 또다른 후보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웅영고의 재학생.
          * 잠시 뒤 전교 학생이 운동장에 모이고 교장 [[네즈]]가 단상에 오른다. 네즈는 보통 교장들이 그렇듯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대더니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본론으로 들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는 여전히 "에리"라는 소녀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나이트아이는 "오만한 생각"이라며 평가하한다.
          나이트아이는 대답을 회피한다. 대신 그가 은퇴해도 다음 No.1이 나타날 거고 단지 잠깐 소란스러워질 뿐이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그 조차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올마이트는 거한다. 그 "잠깐"의 소란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겁을 먹은 채 살아야 하냐는 것이다. 게다가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빗나간 적이 있었던가? 나이트아이는 이제 사정조로 이야기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는 끝없이 밀려드는 벽을 계속해서 때려부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를 필요로하는 아이, 에리쨩이 있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팀, 많은 히어로와 경찰들, 패트껌 일행이 만들어준 길이 끊기게 할 수는 없었다.
          체력의 한계가 다가올 수록 미도리야는 기합을 넣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사방을 애워쌌던 벽들이 일시에 멀찍이 물러났다. 아주 잠시였다. 벽들은 곧 다시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일행을 감겨오는 듯한, 분단을 노리는 움직임이였다. 곧 본대와 록록이 떨어진다. 미도리야는 밀려드는 벽에 치일 뻔 했지만 아이자와의 구원으로 가까스로 피했다. 그 바람에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와 함께 본대와 단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2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가 도착했을 땐 [[토오가카 밀리오]]가 명인 상황. 미도리야가 [[오버홀]]을 날려보내고 나이트아이가 밀리오와 에리를 확보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2회 일치
          * 이후에도 아이와 엮이는 일은 없었으며 그랜토리노와 올마이트에게도 "대 그 아이와 엮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 탈환에 참가한 다섯은 반나 뒤에 마을에 도착해 각자 귀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2회 일치
          * 올마이트가 기숙사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싫어요"라며 일언지하에 거한다.
          * 어머니는 미도리야가 "무개성"인 시부터 올마이트를 동경해온 이야기를 시작한다.
  • 남치근 . . . . 2회 일치
         하지만 남치근은 좌하지 않고, 임꺽정의 부하 [[서림]]이 한양 남대문 근처에 숨어사는 것을 적발하여 체포한다. 남치근은 서림을 심문하여 임꺽정의 부하들이 한양을 다시 기습하여 임꺽정의 처를 구하려 했다는 계획도 밝혀낸다. 이 공적으로 남치근은 임꺽정을 토벌하기 위한 삼도토포사에 임명되었다.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상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남효온 . . . . 2회 일치
         [[조선]] 초기의 학자. 재야 [[사림]] 학자의 일원으로서, [[생육신]]의 일원이다.[* 단, 생육신은 사육신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류한 점이 있는 개념으로, 당대에 세조의 집권에 반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몇 명 더 존재했으며, 특히 남효온은 다른 생육신들에 비해 한두 세대 이후의 인물로 시대 차이가 매우 커서 논란이 있다. (당대에는 '권'과 같은 인물들의 인지도가 더 컸다.)]
         육신전은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고, [[사육신]]의 개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왕조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실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심각한 '불온 서적'이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불온 서적'은 사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필사]]되어 널리 읽혀졌고, 후대의 사림은 육신전에 근거한 '사육신 사관'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결국 육신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육신이 복권-헌창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노형욱(배우) . . . . 2회 일치
         | 기주봉 어린시
         |젊은시 나형준
  • 니세코이/222화 . . . . 2회 일치
          * 어린시 치토게는 오노데라와 이치죠가 맹세를 하는 것을 보고 쓸쓸히 저택으로 돌아온다.
          * 약속의 장소를 발견한 치토게도 그 날의 기억을 되찾고 "내가 아니었다"고 망한다.
  • 니세코이/224화 . . . . 2회 일치
          * 치토게에게 사정을 듣고 마리카는 지레짐작만으로 망하고 있는걸 알게 된다.
          * 치토게는 자기는 마리카만큼 엄격할 수 없다며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 거 당하기 위해서 만나러 가는 짓은 못하겠다고 한다.
  • 니엘(가수) . . . . 2회 일치
         어린 시 잠시 아역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데뷔 후 KBS 단막극 태권, 도를 아십니까와 [[투윅스]]에 카메오 출연했으며 최근에는 막내 창조가 주연한 [[MBC every1]] [[스웨덴세탁소]]에도 카메오 출연했다.
         워낙 혼자서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인지 라디오에 나온 모습을 보면 목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잦다. 팬덤에서는 니엘만 이렇게 굴려대는 모습에 성대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중.
  • 닥터 시바나 . . . . 2회 일치
         [[샤잠]]과 대립하는 악당이며, 과거 [[캡틴 마블]]이던 시부터의 적이다. 그에게 빨간 치즈덩이(Big Red Cheese)라는 별명도 붙였다.
         샤잠이 포셋 코믹스의 캡틴 마블이던 시의 캐릭터라 이쪽도 원래는 포셋 소속이었으나 이후 DC에 포셋이 흡수되면서 재등장했다.
  • 도게자 . . . . 2회 일치
         [[일본]]의 풍속.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하는, 극도의 경의를 나타내는 인사법으로서, 중대한 사태를 사과할 때 등에 사용한다. 보통은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무릎을 꿇고 한다고 하여 궤례(跪礼)한다.
         도게자는 계속 유지되어 [[가마쿠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의 귀족 사회 예법서인 『홍안예(弘安礼節)』에서도 공식적으로 유지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다이묘]]가 지나갈 때 [[서민]]은 도게자를 해야 했으며, [[사무라이]] 역시 신분이 높은 귀족에게는 도게자를 해야 했다.
  • 드래곤볼 . . . . 2회 일치
          프리더 군단의 몇몇 부대원들이 사용하는 광선총. 손 전체를 끼우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위력은 프리더 군단에서 활동하던 시 베지터 정도 기준으로도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듯. 전투력 1천대 정도에서나 통용되는 무기가 아닐까.
         지구의 신이 피콜로에게 신의 자리를 맡기러 오지만, 피콜로는 거한다.
  • 랑그릿사 . . . . 2회 일치
         첫 시리즈가 나왔던 시기에는 당시 [[메가드라이브]]를 이끌어가는 [[킬러 타이틀]]이었으며, 이 인기는 2에서 정을 맞게 된다. 이 시점부터 사실상 랑그릿사라는 타이틀이 메사이어를 먹여 살리는 중심 소프트가 되었으며 각종 기기로 컨버전되어 발매하게 되는 등 최고의 정을 맞게 된다.
  • 레킹 크루 . . . . 2회 일치
          레커에게 대적으로 충성하며 늘 그와 붙어 다닌다.
          [[천재]] [[과학자]]. 현역 시 당시에는 [[브루스 배너]]([[헐크]])도 만들지 못한 소형 감마 폭탄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였다. 감마방사선 분야에서의 뛰어남 덕분에 '검은 브루스 배너'라고도 불릴 정도. 그러나 리치먼드 기업에 의해 모든 발명품과 연구 자료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겼고, 기업에 항의했으나 쫓겨났다. 그 뒤에 폭탄을 훔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시기에 레커와 만나서 캠프,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으며 이후 레커의 마법의 쇠 지렛대에 의해 초인이 되었다.
  • 류현경 . . . . 2회 일치
         그녀는 [[초등학교]] 때 [[서태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되어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시작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6년 드라마 《'''곰탕'''》에서 [[김혜수]]의 아역으로 데뷔했다.<ref>[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156992 류현경, 김혜수 아역 시 "똑 닮았네"] 이투데이. 2015년 07월 0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238611 류현경 "서태지 때문에 배우 됐다" 깜짝 고백] 조이뉴스24. 2011년 06월 04일</ref>
         * 《[[나의 친 악당들]]》(2015) - 정숙 역
  • 마기/295화 . . . . 2회 일치
          * 연백영(연옥염, 아르바)은 신드바드와 연락하며 흥분한 듯한 신드바드에게 "왜 그런 녀석을 상대로 안 못하냐"고 묻는다.
  • 마기/306화 . . . . 2회 일치
          * 백룡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르바에 맞서지만 쥬다르도 연결계도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다.
          * 어쩐지 그 얼굴의 반은 웃고 있다?
  • 마기/324화 . . . . 2회 일치
          * 어딘지 일그러져 보이는 우고. 그는 다윗이 듣지 잘 듣지 않는데도 주 설명을 늘어놓는다.
  • 마기/328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그의 말은 결국 "신드바드가 유일하고 대적으로 옳은 왕"이라 생각하게 만든 거라고 지적한다. "대 인정할 수 없어." 알라딘은 그렇게 못 박는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솔로몬 왕이 한 것과 같다고 항변한다. 그고 루프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 전세계에 배분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 왕의 의지에 반하는 자는 "타전"이란 형태로 배제된다고 말하는데 알라딘도 뾰족하게 반론하지 못한다.
  • 마기/331화 . . . . 2회 일치
          * 황제국으로 돌아가면서, 알리바바는 한 가지 선택을 놓고 계속 고민한다. 싸우느냐, 싸우지 않느냐.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싸워왔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도 망하지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모두 루프로 돌아가길 원하는데 막고 싶은건 자신 뿐이다. 이건 결국 모두가 원하는 대로 싸우지 않느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싸우느냐의 선택이다.
          >'''대 그럴 순 없어!'''
  • 마기/341화 . . . . 2회 일치
          신드바드의 말대로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그것을 매그노슈타트에서 배웠다. [[마타르 모가메트]] 학장은 대적으로 옳은 인간은 있을 수 없다며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더라도 모든 걸 맡기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신드바드는 매그노슈타트 사건을 회상하며 잠시 그리움을 느끼지만 곧 안색을 바꿔 "정작 너는 남에게 내맡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알라딘은 세상을 모른 채 우고와 성궁에서 지내던 시을 떠올린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기계 같은 대답만 하는 우고를 상대로 살았다. 그 삶은 얼마 가지 못해 한계에 부딪혔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지금 알라딘은 그게 왜 그토록 괴로웠는지 분명히 안다.
  • 마기/345화 . . . . 2회 일치
          충격적인 [[모태솔로]] 선언. 무릎까지 꿇은 알리바바의 간함이 이곳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금 세상은 죽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고 루프에 따라 격리된다. 알마트란시 죽은 이들은 이 일 일라와 연결된 차원에, 현세에서 죽은 이들은 하얀 루프로 환원돼 "거대한 흐름"으로, 그리고 알 사멘처럼 타전된 자들은 검은 루프로 돌아간다. 알리바바는 이렇게 죽어서 뿔뿔히 흩어지기 보단 모든 이들을 이을 수 있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 말은 곧 이들이 자신의 그리운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재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2회 일치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소녀 시의 초상화는 상당히 미인인 편이지만, 아이를 많이 낳은 탓인지 미모가 쇠퇴하여 중년 이후에는 상당히 심술궃은 아줌마(…) 같은 외모의 초상화가 많다. 1765년 작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초상화[* http://www.ozmall.co.jp/art/list_mitsubishi.aspx]와 1800년 쯤에 그려진 카를로스 4세 가족[* http://www.salvastyle.com/menu_romantic/goya_familia.html]의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
  • 막부 . . . . 2회 일치
         중국에서 이러한 부의 개설은 반란의 평정이나 대외 원정 등. 중대한 군사 작전 사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일반적인 행정조직으로서는 대응하기 어려워, 장군이 전권을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설치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전장에서 평시 행정조직처럼 복잡한 차를 거쳐서 중앙 정부에 모든 사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
         이 가마쿠라 막부는 겐지 일족이 단되고 불과 3대만에 외척인 호죠 씨에게 실권을 빼앗긴다. 이후에 [[겐무 신정]] 시기에 [[고다이고 덴노]]에게 호죠 씨 정권 가마쿠라 막부는 무너지고 말았으나, 이러한 사례가 선례가 되어 훗날 호죠 씨 정권이 무너진 뒤 조정까지 제압하고 새로운 덴노를 옹립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도 자신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던 겐지(源氏) 일족임을 자처하며 교토 인근에 막부를 세우고 군사와 정치를 장악하였으니 이것이 '무로마치 막부'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와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막부도 전국의 무사들을 통솔한다고는 해도 그 장악력은 비교적 느슨하였다.
  • 맥닐의 법칙 . . . . 2회 일치
          * 집단 A는 특정한 질병 X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고 있다. 집단 A의 면역 체계와 질병 X는 적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어, 집단 A의 사람들은 질병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어도 병세가 치명적이지 않다. 혹은 문화적으로 질병 X에 대한 대처법(격리 수용, 증상에 맞는 처방)을 알고 있어,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
         1518년, 스페인 이주민이 퍼트린 [[천연두]]가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반을 살해한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본토에도 상륙하여 1530년대부터 팜파스에서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초토화시킨다. 16세기 멕시코에서는 천연두로만 1800만명이 사망, 의학사가들은 이 시기에 천연두 사망자를 8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무렵 1999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500년대의 인구는 약 5억명으로 추산되므로, 천연두가 세계 인구의 1/5을 죽인 것이다(…).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Frankie "The Bat" Niagara.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모나가 먹인 약탄 위스키에 기한 맥스를 의자에 묶어놓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팼다. 펀치넬로 패밀리에 손해를 입힌 맥스를 개처럼 죽이라는 명령에 따른 것.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러 바에 간 사이 탈출한 맥스에 의해 죽는다. 사용하는 무기는 듀얼 잉그램.
          Nicole Horne. 이 작품의 최종보스.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으로 미군이 진행하던 계획인 "발할라 계획"의 주요 인물이었다. 발할라 계획이 취소된 후에도 발키리를 계속해 만들었다. 펀치넬로 저택에서 탈출하던 맥스를 붙잡아 발키리를 주입해 기시키고 저택에 불을 지른게 첫 등장. 하지만 맥스는 살아남아 에이저 코퍼레이션 건물을 습격하였고, 니콜 혼은 헬기를 타고 도망치려 했지만 맥스가 무너뜨린 첨탑에 의해 헬기가 폭발, 사망한다.
  • 모레아 전제국 . . . . 2회 일치
         [[테오도시우스 2세]] 시에 구축된 [[헥사밀리온]] 성벽으로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그리스 중부를 잇는 코린토스 지협을 방어하였고, 수도는 고대 [[스파르타]] 인근에 세워진 요새도시 미스토라스였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상교통이 단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영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영토가 사실상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식으로 고작 한 줄 남짓 언급되는 등.
  • 몬스리 . . . . 2회 일치
         시기는 아직 그녀가 어렸던 시에 부모님, 애완견 무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거대한 비행체 다수가 지나가는데 이후 기해있다가 깨어나니 옆에 있었던 것은 무크 뿐이고, 눈앞에는 대지의 균열 등 참혹한 광경 뿐이었다. 이어서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바다의 장벽을 보고는 무크와 함께 피하려 하나 이미 무크는.. 결국 해일에 휩싸이고, 이후 바다에서 피난선에 발견되게 된다.
  • 문종 . . . . 2회 일치
         세종의 적장자로 어린 시부터 자질이 출중하여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대리청정 시부터 몸을 돌보지 않고 정사에 임한 탓에 결국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이 또한 후대의 왕권 불안정에 큰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암살설이 있으나, 검증되지 않았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범인 미즈우치 타카시는 신장 183센티미터, 체중 89킬로그램의 훤칠한 체격에 샤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미즈우치는 학생 시부터 [[검도]]를 단련하여 [[검도]] 5단의 유단자였으며, 고교 졸업 후 2006년 4월에 경찰에 채용되었다. 근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은 매우 불성실한 남자로서, 2014년 8월 아내와 입적하기 전후의 기간에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 이외에 센다이에서 3명, 오사카에서 3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는 야마가타 현 출신으로, 친가는 니시카와쵸(西川町内)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부]]로 활동하여,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네자와 시(米沢市)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에는 [[배구부]]로 활동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고교 졸업 이후 미야기 현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론을 배웠으며, 2014년 4월 부터 오사카 시내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평소 업무 시작 30분 전에 출근하고 무단 결근도 한 번 없었던 성실한 사원으로서,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의료 사무원이었다.
  • 바키도/105화 . . . . 2회 일치
         무사시와 피클의 대결이 정으로 향해간다.
          * 무사시는 피클의 등뒤로 무수한 찬과 금은보화의 이미지를 본다.
  • 바키도/106화 . . . . 2회 일치
          * 피클은 백악기 시 무엇이든 움켜쥐는데 익숙했지만, 지금처럼 맞잡을 수 있는 상대와 싸우는건 최초였다.
          * 피클은 자신이 그 시의 호적수들을 좋아했듯 무사시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 바키도/113화 . . . . 2회 일치
         [[바키도]] 제 113화. '''호조'''
          * 그리고 오로치돗포의 발언을 인용하며 "허기야 말로 야성에 있어선 베스트 컨디션(호조)"이란 격언을 말한다.
  • 바키도/119화 . . . . 2회 일치
          * 단되진 않았지만 깊은 상처가 들어가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 무사시는 어리둥해하지만 곧 전력을 다해 달려든다.
  • 바키도/130화 . . . . 2회 일치
          * 만약 모토베가 너클이 아니라 "맨손"으로 쳤으면 아직도 혼해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 그러나 무사시는 "칼등치기라도 명은 피하지 못하고 목검도 수많은 목숨을 빼앗는다."고 말한다.
  • 바키도/137화 . . . . 2회 일치
          * 유지로는 힐너리의 선서를 거하며 멋대로 하면 "범해버린다"고 위협한다. 힐너리는 그의 아내 미스 에미와 친분을 말하며 꼭 선서하고 싶다고 말한다.
          * 그렇게해서 유지로의 방에 들어간 힐너리. 그런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팬티만 걸친 유지로. 게다가 아침발기인지 힘차게 팬티 바깥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다. 말도 못하게 경악하는 힐너리와 달리 유지로는 태연하게 "선서는 안 받는다"고 통보한다. 그는 이미 거한 바가 있는데 힐너리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모양이다. 스트라이덤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 박남현 . . . . 2회 일치
         * 《[[슈퍼 홍길동]]》 (1988년) - 쌍곤 돌리는 중국 닌자 역
         * 《[[파랑새는 있다 (1997년 드라마)|파랑새는 있다]]》 (1997년, KBS2) - 봉 역
  • 박상면(배우) . . . . 2회 일치
         [include(틀:표,version=146번째 버전~255,source=나무위키)]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킹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코믹한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당시 [[별명]]이 '몹쓸 상면'이었다.] 이 사람도 진지한 역할을 맡을 때에는 정말 한 없이 진지해진다. 특히 [[소방관]]의 활약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베테랑 소방관을 맡아 열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정의 카리스마와 간지를 선보였다(물론 마지막 장면에 한정).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리프트 카에 태워 대피시키려는데 자리가 모자라자(그것도 불길이 코 앞에 닥쳐와서 리프트 카에 타지 않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남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조용히 건물에 남아 담배를 물고 닥쳐오는 불길을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또한 [[서울1945]]에서 박창주라는 [[악역]] 군인을 맡아 열연해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코믹이 아닌 진지한 연기를 맡아 호평 받았다.
  • 박세직 . . . . 2회 일치
         == 군인 시 ==
         == 민간인 시 ==
  • 박용우(배우) . . . . 2회 일치
         그러다가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KBS 대하드라마|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이 캐스팅은 초기 미스캐스팅이라는 여론[* 심지어 그 친하다는 정우성까지 '''형이 장군이라곸ㅋㅋ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한다.]을 불식시킬 만큼 호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의 호연으로 [[무명]] 시을 벗게 된 [[케이스]]로는 [[김명민]]이 맡았던 [[이순신]] 역,[* 박용우와 김명민은 2002년 '스턴트맨' 이란 영화의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김명민의 부상과, 치료 후에도 흥행 전망에 비관적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포기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침체기를 겪은 두 배우가 나란히 대하사극 주인공들로 인상 깊은 연기로 재기했다.] [[김남길]]이 맡았던 [[비담]] 역 등이 있겠다.
          상술했듯이 11살 연하인 연기자 [[조안]]과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여배우가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다가[*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기사가 났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이후 둘은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채널A]]의 <[[쇼킹#s-2|김수미의 쇼킹]]> 프로그램에서도 "예전에 [[신현준(배우)|신현준]]과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냐."고 언급했고 박용우는 이에 대해 언급을 꺼린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2번 연속으로….
  • 박재현 (야구인) . . . . 2회 일치
         ==선수 시==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 시===
  • 박정수(배우) . . . . 2회 일치
          * 폭풍의 계
          * MBC 공채 탤런트 5기 동기인 [[고두심]]과는 매우 친한 사이이다. 나이는 박정수가 고두심보다 두 살 어리다.
  • 배슬기(배우) . . . . 2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86년]] [[9월 27일]] ([age(1986-09-27)]세), [[경기도]] [[가평군]][* [[부산광역시]]에서 잠시 어린 시을 보냈다.] ||
         배슬기, 추소영, [[오승은(배우)|오승은]]으로 이루어진 그룹 [[더 빨강]]의 멤버로 데뷔했다.[* 엄밀히 말하면 드라마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 최종회에서 단역으로 나온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이 중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배슬기뿐이고, 나머지 두 명은 그냥 연기자.[* 오승은은 나중에 밴드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가수 연기자 겸업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둘 다 예능감이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로~~오승은은 후에 무한걸스로 예능감을 폭발시켰으나 이 당시엔 안습의 예능감~~, [[X맨을 찾아라]] 등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팀을 혼자 먹여살렸다. 이 시 선보였던 ''''복고댄스''''는 12탄까지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많이 유포되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UCC를 보고 혼자 연습해서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 보루토/4화 . . . . 2회 일치
          * 2차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안하는 나루토. 시카마루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이미 들통나 있다.
  • 보루토/6화 . . . . 2회 일치
          * 보루토는 나루토가 어린시 입던 자켓과
          * 그 모습에서 나루토의 어린 시의 모습을 보는 히나타.
  • 보루토/7화 . . . . 2회 일치
          * 나루토는 아들 보루토가 자신의 소년시 재킷을 입은 걸 보고 감동한다.
          * 구조된 나루토는 사스케와 보루토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가눈다. 나루토는 보루토가 자신의 소년시 걸치던 재킷을 입고 있는걸 발견한다. 사스케는 그걸 "닌자가 됐다는 것"이라고 심플하게 표현한 뒤 킨츠키를 상대하러 간다. 나루토는 "자신의 그림자분신을 보는 것 같다"고 묘한 기분을 표현한다. 보루토는 "전보단 조금 멋지게 보이지?"라고 말하고 나루토는 "그래, 전보다는."이라고 대답한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단장 [[야미 스케히로]]를 비롯해 글러먹은 사람들의 모임인 검은 폭우는 전원이 노는데 정신이 팔려 단상에 올라가기는 커녕 뒤쳐져서 시민들보다 먼 곳으로 밀려나있다. 아스타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보려 하지만 인파에 밀려서 발만 동동 구른다. 야미는 딴짓하다가 지각한데다 동행한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꽐라가 되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푸른 들장미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까지 이들에 휘말려 역시 꽐라가 되어 누워있고 동행한 [[솔 마론]]이 안하지만 깨어날 줄을 모른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2회 일치
          * 여론이 다시 좋지 않게 흘러가려 하자 유노는 아스타에게 고아원 시 둘이 하던 훈련을 상기시키고 강력한 정령마법을 가한다.
          * 아스타가 뭐하는 거냐고 어리둥해하는데 유노는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지 않고 "둘이 수업하던거 기억하지?"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아스타를 향해 전력을 다한 바람 마법을 발사한다. 심지어 지근거리.
  • 블랙 클로버/110화 . . . . 2회 일치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반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대로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반마법 상태말고는 수단이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멍청이한테는 대로 무리지만.
  • 블랙 클로버/118화 . . . . 2회 일치
          * X가 빛을 발하더니 가면이 부서지면서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물빛의 환록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회화마법을 구사한다는 역대 최연소 단장. X의 정체가 릴이라는데 놀라는 것도 잠시, 로열 나이츠 선발 시합에 단장이 직접 나왔다는데 도마에 오른다. 정말로 단장이 기사단도 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건가? 적어도 마법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론 "단장을 쓰러뜨리고 이름을 떨칠 찬스"를 준다는 거지만 실상 릴의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덕후기질 발동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명목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럭거 설득된다. 하긴 굳이 그를 쓰러뜨려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만한 싸움일 것 같기도 하다.
          * 발터는 그가 처음 그리모어를 얻었을 시에도 그의 집사였다. 정확히는 그의 집안의 집사였다. 부아모르티에 가문의 저택은 릴이 일으키는 마법사고로 성할 날이 없었다. 그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뭔가가 망가졌다. 자기 방이 박살나는 것도 예사였다. 언제 인명사고가 나더라도 그건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릴은 본래 조금 이상한 아이라는 평가였지만 그리모어를 얻으면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방에 틀어박힌 채 날뛰는 아이, 집안의 고용인들조차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의 아버지 도 릴을 억누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어쩌다 저런 아이가 되었을까"라고 한탄하며 정신이 병들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2회 일치
          하지만 아스타는 대로 번복하지 않았다. 그는 랸길스가 키텐에서 주민들을 스스럼없이 공격했던 걸 보았고 핀랄이 언제나 남을 위해서 마법을 써왔던 것도 알았다. 랜길스는 그게 어쨌냐고 비웃으며 핀랄은 "단지 그것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비하했다. "마지막까지 이겨낸 자는 뭘하든 올바르다"고 강변한다.
          팀원의 보조도 거하고 혼자 힘으로 아스타를 꺾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스타에게 발언을 정정하라며 찌질하게 굴고 자신이 승자니 뭘 해도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아스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한편 마법제의 보좌인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언급한 "무의식의 배신자"가 랜길스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2회 일치
          * 이들의 마도서에 있는 세 잎 클로버는 성실, 희망, 사랑에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 태만, 망, 증오다.
          * 망의 베토는 짐승마법을 구사하는데 극도의 신체강화 마법으로 보이는데 기를 읽는 기술도 구사하며 야미의 카타나를 두동강 낸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2회 일치
          * 취록의 당랑의 단장, "잭 더 리퍼". 단마법을 구사하며 야미 스케히로하고는 시답잖은 말다툼을 하다 산 하나를 단냈다고 한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2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제 3의 눈을 뜬 망의 베토를 보고 전설상의 마족을 연상한다.
          * 망의 베토가 그 이야기 속 마족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
  • 블랙 클로버/74화 . . . . 2회 일치
          * 마법제는 야미가 더욱 강해졌음을 감지하고 아직 단장이던 시 야미를 기사단원으로 발탁하고 훗날 단장으로 승진시킨 일을 회상한다.
          * 어린 시부터 야미는 더러운 눈매에 입도 험해서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 블랙 클로버/80화 . . . . 2회 일치
          * 망의 베토에게 당한 두 팔은 저주에 걸려서 도저히 치료가 안 되는 상태.
          * 야미는 망의 베토가 걸었던 저주일 거라고 짐작하며 오벤도 안 된다고 하면 틀림없는 말일 거라고 담담히 말한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2회 일치
          * 노엘과 핀랄은 물론이라며, 대 도미나를 위험하게 하지 않을 테니 안내해달라고 청한다.
          * 젤은 어리둥한 아스타를 데리고 나중에 설명하겠다며 일단 마녀의 숲으로 향한다.
  • 블랙 클로버/84화 . . . . 2회 일치
          * 아스타는 그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는데 던전에서 만난 적이 있던 마르스와 "백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스타는 파나 쪽은 망의 베토처럼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마르스는 살아있었다는 것에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판젤 크루거(젤)도 다이아 출신이라 그런지 마르스를 알아본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삼마안과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며 치를 떤다. 이런 우려들 속에서도 여왕은 침략군이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니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게 없애준다고 큰소리친다.
          * 바네사는 아무튼 여왕에게 이야기해 아스타의 팔을 고쳐주겠다고 하는데 이미 그 "거래"에 대해 알고 있는 아스타는 단호히 거한다. 아스타는 바네사가 희생하는 그런 방식이 싫은 것인데 바네사는 바네사대로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고집을 부려서 옥신각신하게 된다. 어지간해서는 결판이 안 날거 같자 아스타는 자신에게 최종 수단이 있다며 그리모어를 꺼낸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2회 일치
          파나는 광석 창성 마법 "하르페"로 검은 폭우를 견제하며 동시에 화염 회복마법 "불사조의 날개옷"을 사용한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대체 무슨 수로 두 가지 속성 마법을 쓰는 거냐고 규한다. 아스타는 그녀가 쓰는 마법이 던전에서 만났던 마르스가 쓴 것과 같다는걸 눈치채고 다시 한 번 파나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젤도 라드로스를 알아본다. 젤이 다이아몬드 왕국에 있던 시 제자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라드로스는 "선생님을 내 손으로 귀여워해줄 수 있다니 신난다"라며 다짜고짜 마법을 사용한다.
  • 블랙 클로버/90화 . . . . 2회 일치
          * [[판젤 크루거]]가 교관이던 시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나 [[라드로스]]도 평범한 소년들에 지나지 않았다.
          * [[판젤 크루거]]가 다이아몬드 왕국에서 교관을 하던 시엔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나 [[라드로스]]도 지금처럼 잔인한 성격이 아니었다. 젤은 이들의 힘이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가르쳤고 소년들은 그 말을 의심없이 믿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과거의 일이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2회 일치
          * 라드로스는 아스타를 회유해 반마법을 다이아몬드 왕국으로 데려가 이용해먹으려고 한다. 물론 아스타는 거.
         >대 용서할 수 없어!!
  • 블리치/680화 . . . . 2회 일치
          * 제라드의 몸이 파괴되면 더 크게 부활하는건 민중의 "공포"를 근간으로 하며 검인 호프눙은 "희망"을 근간으로 한 것. 때문에 호프눙이 꺾인다=희망이 꺾여 망이 된다는 의미이며, 그 망이 적의 몸에 상처로 세겨진다
  • 블리치/689화 . . . . 2회 일치
          * 그러면서 "망하는 아이를 죽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으니 희망을 버리지 마라"고 도발한다.
          * 이치고는 망 같은건 잘 알고 있고 몇 번이나 뛰어 넘어왔다며 호로화 상태에서 "만해"를 개방한다.
  • 사람의 소문도 칠십오일 . . . . 2회 일치
         왜 하필 75일인지는 분분한 제설이 있는데, 75는 과거에 '한 계'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이 하나 지나갈 정도면 소문이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75일이면 꽤 긴 것 같지만.
  • 사택 . . . . 2회 일치
         이다. 이 때문에 감가상각이 가해지지 않은 사택은 정상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진 반면에 회사는 임대보증금을 적히 조하면 아주 간편하게 조세회피를 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적정임대료를 회사가 대신 내 준다고 하면, 여기에 따른 비용은 회사가 직원을 위해 그만큼 지출을 감행한 것이 된다. 부동산 가치가 올랐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정부 입장에선 조세조달이 악화되니(...).
  • 서강준 . . . . 2회 일치
         서강준(본명 이승환)은 1993년 10월 12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누나와는 연년생이다.<ref name="tvreport" /> 그는 학창시까지 계속 에서 성장하였고, 2학년 때 [[말레이시아]]에서 1년 7개월 동안 유학하다가 1학년때 귀국했다.<ref name="10아시아"/> 이후 재학 시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쇼에 서보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때 2011 F/W 서울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를 끝으로 2~3년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0308310735776&type=1&outlink=1|제목='발견!' 서강준, 국민 연하남의 가능성(인터뷰)|저자=김현록|날짜=2014-05-05|출판사=머니투데이|확인날짜=2014-05-17}}</ref><ref name="네이버">{{뉴스 인용|제목 ='보그'가 선정한 2014년의 프레시맨-2 - INTERVIEW|url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8&contents_id=51180|출판사=[[네이버]] 매거진캐스트|저자=[[보그]]|날짜 = 2014-03-01|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또한 그 당시에 바빠도 밤마다 영화는 한 두 편은 꼭 챙겨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겨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머니투데이"/>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새로 접하는 연기의 매커니즘이 신기했고,<ref name="네이버"/> 무엇보다 새로 창조해나간다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
  • 서상일 . . . . 2회 일치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 서신애 . . . . 2회 일치
         [[1대 100]] 476회 후반전 방영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5,000만원을 타게 되면 등록금 지불하는 데 쓰고 싶고 차를 사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 적한 시기에 사용한 찬스, 그리고 모르면 3번을 찍겠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푼 결과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1, 3번을 고민하다가 3번이 너무 많이 나와서(선지분배 2:0:5) 정답 3번 대신 1번을 고르는 바람에 적립금 616만원과 우승 상금 5000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최후의 3인 결과를 먼저 공개)
         || [[2013년]] [[8월]] || [[대한민국 경찰청]] || 학교폭력 근 홍보대사 ||
  • 서정윤 . . . . 2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 성격 . . . . 2회 일치
         창작물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로 올수록 사건이 자연의 변화가 아닌 인물간의 상호작용(주로 대립과 분쟁)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캐릭터가 확고할수록 줄거리를 풀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가 부정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대 아니며, 장르에 따라 등장인물들에게 주로 권장(?)되는 성격이 달라진다.
          11. 공포 + 슬픔 =
  • 성현아 . . . . 2회 일치
         대기업 이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모델 일을 하였고 [[1994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예선대회에서 진, 본선에서 미에 당선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성현아, `사업실패` `가족의 죽음` 굴곡진 과거사| 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119403| 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류일한| 쪽= | 날짜= 2017-05-05| 확인날짜= }}</ref>
         그 이후 [[2018년]] KBS 2TV 아침 TV 소설 [[파도야 파도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는데 KBS 정극으로 치자면 1997년 월화 미니시리즈 [[열애 (1997년 드라마)|열애]]<ref>{{뉴스 인용| 제목= '제주 초원'서 그리는'사랑의 수채화' KBS 새미니시리즈 '열애'6일 첫방송 박상민·성현아·이정길·정애리등 열연| url=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300329127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3&officeId=00032&pageNo=27&printNo=16233&publishType=00010| 출판사= 경향신문| 저자= 오광수| 쪽= | 날짜= 1997-10-03| 확인날짜= 2018-09-25}}</ref> 이후 21년 만이었으며 그 이후 [[내사랑 누굴까|내 사랑 누굴까]] 등의 KBS 정극에서 섭외가 왔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했다.
  • 세조 . . . . 2회 일치
         [[세종]]의 차남. 보통 대군 시의 명칭인 '수양대군'으로도 많이 불린다. 소싯적부터 야심이 많았던 듯 부왕인 세종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고 전한다. 형 [[문종]]이 즉위한 뒤에는 야심을 숨기고 서거할 때까지 문종을 써킹해 가며 비위 맞추기에 바빴다.
         민생을 돌보았다고 하나, 한편으로는 정권 탈취에 일조한 자신의 가신들에게 무제한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훗날 훈구파의 횡포를 낳게 된다. 비록 본인이 건재하던 시에는 이러한 권신들을 제어할 수 있었으나, 세조 서거 이후 왕통상의 혼란 등으로 인해 성종 시기에 들어서면 왕이 신하들에게 쥐여사는 '군약신강' 체제가 만들어지고, 그 반동으로 [[연산군]]이라는 막장 폭군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고 만다.
  • 손지현(배우) . . . . 2회 일치
         2017년 12월 어머니의 성인 손씨를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87740|손지현이라는 예명을 쓰기로 했다.]] 법적으로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지(개명) 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성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데 차가 매우 복잡하다.) 본명은 남지현, 활동명을 손지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본인도 [[대군 - 사랑을 그리다|대군]] 종영 후 인터뷰에서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805140943490310|모친의 성씨를 갖고 와서 예명으로 쓰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성씨를 바꿔서 예명을 쓰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배우 [[조진웅]]은 아버지의 성함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다.] 걸그룹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시과 달리, 전업 배우의 길을 걷는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2014258|예전에 관련 기사가 나온 것도 있고 그런지]] 5세 아래의 동명이인인 [[남지현]]의 존재가 활동명을 바꾼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송진현 . . . . 2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상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반음식점 영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영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2회 일치
         카라는 맥스웰 로드는 구해주지만, 맥스웰 로드가 자입를 수리해줘서 강화된 리액트론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리액트론의 공격을 받고 죽어가던 카라는 슈퍼맨이 나타나 리액트론과 대적하는 것을 목격하고 기한다.
         카라는 알렉스와 제임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깨어난다. 몇 시간이나 기을 했으며 슈퍼맨은 화산폭발로 남태평양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구출된 맥스웰 로드는 슈퍼걸은 언급하지 않고 슈퍼맨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2회 일치
         카라는 넌과 싸우지만 밀린다. 행크는 카라를 돕다가 넌에게 납치당한다. 알렉스는 맥스웰 로드에게 협력을 요청하지만 맥스웰 로드는 거한다. 맥스웰 로드는 클립톤 인의 공격을 은폐하여 산업스파이의 공격으로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자신이 슈퍼걸임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랜트가 자신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주었다는걸 밝히면서 직장을 포기할 순 없다고 고백한다. 카라는 결국 그만두겠다고 밝히고 나온다. 카라는 제임스가 다친 것을 보고 윈과 제임스가 맥스웰 로드에게 접근했다가 다친걸 알게 되어 격노한다. 분노하며 나가려는 카라를 윈이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하면 아스트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설득한다. 카라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좌감을 드러낸다. 제임스의 위로를 받는다.
  • 슈퍼히어로 . . . . 2회 일치
         슈퍼히어로는 대체로 [[손오공(드래곤볼)|전투 그 자체를 목적을 삼고 있지 않으며]], [[경찰]]이나 [[소방관]]과 같은 역할을 --[[원펀맨|개인적으로 취미로]]-- 하고 있다. 물론 히어로가 다양해지면서 전투광도 있긴 하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슈퍼히어로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배경이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설사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가 아무리 사회와 단되고 고립된 존재라고 하여도 하여도, 그 활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실사영상물은 상당히 역사가 깊다.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 1944년에 최초의 영화가 나왔으며 소위 말하는 펄프 히어로들도 흑백영상 시에 영화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의 영화화는 1930년대.
  • 식극의 소마/156화 . . . . 2회 일치
         [[식극의 소마]] 156화. '''대온감'''
          * 쿠스노키의 특기는 가열. 불의 미묘한 온도차를 조해서 식재료를 최상의 상태로 조리한다
  • 식극의 소마/165화 . . . . 2회 일치
          * 밤의 맛과 숯불향이 사슴고기와 어우러져 묘한 맛이 난다.
          * 맛밤을 쓴 것도, 일반 밤보다 달게 처리됐기 때문인데 보통 밤이라면 이렇게 묘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 식극의 소마/167화 . . . . 2회 일치
          * 그는 바뀐 진급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본래 이 제도는 대상자의 반가량이 퇴학당할 정도로 가혹한 제도.
          * 그 자리에 있던 토오츠키 학원의 강사 샤펠은 요리는 뛰어나지만 무엇을 먹어도 떠오르는 것은 "아자미의 얼굴" 밖에는 없다며 규한다.
  • 식극의 소마/178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는 유년시 비지니스로 바쁘기만 했던 시을 회상한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2회 일치
          * 대머리 군단은 다시 한 번 하야마의 실력에 경악하며 과연 소마가 대적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하야마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초후각이 있어 가능한 요리라며 다른 사람이 따라해봐야 맛과 향의 밸런스가 붕괴해 자멸하는 방법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니 소마는 대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우월감에 젖어있는데.
          * 이어서 소마의 멘치까스를 재시식한다. 소마 또한 곰고기 육수를 쓴 소스를 제출했는데 자세한건 아직도 불명. 베르타와 실라는 거기서 청주에 인 오미자, 액센트로 추가된 마늘향을 간파하지만 어떤 "순한향"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가 테루노리는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데.
  • 식극의 소마/190화 . . . . 2회 일치
          * 그가 배틀로얄에 승리해 샌트럴에 들어갔을 때, 나키리 아자미는 결코 약속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는 "첫임무"로서 소마의 진급시험에서 그를 밟아버리라고 지시한다. 당연히 하야마는 거하며 약속과 틀리다고 하지만 아자미는 권력을 내세워 "센트럴에 들어온다는건 나에게 충성하는 것"이라며 반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원점. 시작은 순수하게 시오미를 위한 것이었다. 소년시부터 시오미의 조리실에 들락거렸는데 어린 그의 요리를 시오미는 진지하게 시식해주고 칭찬도 해주었다. 하야마는 자연스럽게 토오츠키 학원의 정점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식극을 위해 준비하던 요 며칠 간. 그는 요리에 쓸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시오미의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던 시오미는 없다. 그는 그것 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2회 일치
          * 일행은 에리나를 앞세워 그같은 제안을 전달하는데 예상대로 센트럴 측에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관계로 거 당한다.
          * 하지만 아자미는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걸 받아들여서 무슨 이득이 있냐며 "교섭은 걸 수 있는 조건을 준비하고 해라"고 빈정거린다. 그렇게 거한 아자미는 다시 헬기로 향하는데.
  • 식극의 소마/196화 . . . . 2회 일치
          * 이 시 젊은 요리인을 대상으로 한 THE BLUE라는 요리사 선수권 대회가 있었는데 죠이치로가 토오츠키 대표로 뽑힌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식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상대 진영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상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상가는 발상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영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망감이 팽배해있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2회 일치
          * 그는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가을선발대회 때의 대결을 회상하며 즐거웠다고 말한다. 어쩐지 여기 오고 싶었는데 요즘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The BULE를 떠올리며 "거기서도 결과를 내야 하는데"라고 마음에 걸려한다. 그는 "내일" 있을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조리대 앞에 서있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잠도 들 수 없었다. 그저 조리대 앞에 서서 "다음 도착점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만 남아 있었다. 가혹한 폭풍을 헤치고 걷는 죠이치로. 그의 마음 속에서 그 몸은 다리가 부러지고 등불도 꺼뜨린 채 홀로 망적으로 거대한 폭풍 앞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 얼마 후 죠이치로는 기숙사를 떠난다. 그는 쾌활한 얼굴로 아자미와 도지마에게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두 사람, 특히 아자미는 어더운 얼굴로 죠이치로를 배웅한다. 이때 떠나가던 모습이 그들이 학창 시에 본 죠이치로의 마지막 모습이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2회 일치
          * 관객들은 두 팀의 행보를 보고 "승부고 뭐고 두 팀 모두 완성 조차 못 시킨다"고 수군거린다. 하지만 타쿠미는 그 말을 들으며 스타지엘 시을 떠올린다. 그가 일하러 갔던 요정 "후지사메"는 전통있는 요리정이었지만 딱히 스타지엘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센자에몬이 사정해온 탓에 12대 점장 "후지이 토모나리"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허락이야 했지만 못마땅한건 마찬가지고, 이력서로 본 타쿠미의 인상도 좋지 않아서 적당히 청소나 시키다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이 시기의 타쿠미는 그 전에 없던 "간함"과 "집념"이 깃들이 시작했다. 그는 소마에게 자신만만하게 리벤지 매치를 선언했지만 가을선발에서 [[미마사카 스바루]]에게 패하면서 아끼던 식칼 "메잘루나"까지 빼앗기는 굴욕을 당했다. 타쿠미는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는 안 된다는걸 깨닫고 그동안 쌓아왔던 "알디니의 요리"를 깨부수는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2회 일치
          * 그때까지 요리란 완전히 계산되고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것이라 여겼던 에리나는 평소의 자신이라면 대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는, 옆에서 보면 정신나간 짓에 합류하는 결단을 내린다. 아쉬 파르망티에는 고기가 쓰이긴 하지만 다지거나 잘게 썬 것을 쓰지 스테이크를 통채로 쓰진 않는다.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의미를 모르겠다고 혀를 차지만 소마와 죠이치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홍백전의 대결이 드디어 종료. 센자에몬은 양측의 요리를 제출받는다. 곡이 있었지만 양측 모두 훌륭하게 아쉬 파르망티에를 완성. 이제 승패만이 남아있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소마의 걱정과는 달리 에리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다. 그녀는 잠깐동안 그녀가 중학시 처음 십걸의 자리를 따냈을 때로부터, 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세뇌교육을 받던 시을 빠르게 회상한다. 그리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는 동료들과의 추억. 에리나는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2회 일치
          * 아리스는 침울한 일행을 꾸짖으며 소마를 응원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패배한 자신들이 살아남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며 울상이다. 특히 히사코는 에리나님을 뵐 면목이 없다, 는 말을 하며 망한다. 그런 상태로도 아리스가 "비서코는 언제나 훌쩍거린다"고 까자 "비서코라고 하지 마라"고 태클건다.
          >우리들 "백의 3인조"의 유대는 대적이야!
  • 식극의 소마/208화 . . . . 2회 일치
          * [[나키리 아자미]]는 그녀의 뛰어난 손반죽 실력에 대해 찬을 늘어놓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의해 부드러운 흐름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메밀가루 입자 하나하나에 수분이 적하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반죽이 생기기 시작해 콩알만한 크기가 됐을 때 이것들을 뭉치는 치대기 작업에 들어간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2회 일치
         [[식극의 소마]] 211화. '''대적 재정자'''
          * WGO는 미식계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단체로 이들이 내리는 별점평가는 요식업에선 대적. [[시노미야 코지로]]가 달한 "별을 딴다"는 것도 이것이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2회 일치
          * 마침내 침묵을 깨고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이 입을 연다. 그녀가 지명한 건 네네. 그녀에게 "일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운을 띄우는데, 정작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는지 산더미 같은 책 뭉치를 한참 뒤적거린다. 분명 "우리 단체의 경전"이라더니 알고보니 그냥 사전도 끼어있었다. 아무튼 사전에서 "말보단 증거"란 속담을 찾아낸 안. 그녀는 아직 추가분 소바가 남아있을 테니 요리를 직접 먹어보라 권한다. 네네는 이제와서 소마의 소바따윌 먹을 필요가 없다고 거하나, 안이 말한건 소마의 소바가 아니었다.
          * 잇시키의 짐작대로 네네는 심각하게 이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요리사로서도 장인으로서도 "저녀석에겐 못 이긴다"고 감할 정도로 낙심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받아든 "컵 야키소바"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 식극의 소마/215화 . . . . 2회 일치
          * 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잇시키는 조금도 동요없이 자신의 요리를 내는데, 거기엔 "비장의 식재료"가 들어가 있다고 선언.
          어쨌든 찬이 쏟아지자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는 잇시키를 쓰러뜨리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아왔으니 당연한 결과라 자평한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2회 일치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그가 쓰는 다기도 눈여겨 본다. 우선 찻주전자는 물맛을 부드럽게 하는 남부칠기. 이걸로 끓인 물을 다기에 옮겨 적한 온도로 식히고 부드럽게 찻잎을 뜸들여 맛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낸다. 결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솜씨다.
          * [[타도코로 메구미]]를 비롯한 후배들은 단지 찻잎을 우리는 작업 만으로도 츠카사의 실력을 감했다. 이 완벽한 어떻게 대항하는게 좋을까?
  • 식극의 소마/229화 . . . . 2회 일치
          십걸 평의회 시 알아차린 거지만, 그녀가 저런 식의 별명을 붙이는 상대는 정해져 있다. "자기보다 낮은 상대" 뿐.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2회 일치
          * 이 시구레니는 알디니가 스타지엘을 수행했던 요정 "후지사메"에서 익혔다. 후지사메에선 계 회식의 마무리 요리로 밥과 된장국, 임에 더해 이것을 냈는데 특히 시구레니가 인기가 많았다. 선물로 따로 요청 받을 정도로 호평인걸 보고 타쿠미도 슬쩍 맛을 보는데, 그 맛에 깜짝 놀라서 이걸 만드는 기술을 반드시 훔쳐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후지사메의 주인이 그를 부르더니 왜 자기 식당의 시구레니에 "바늘썰기"한 생강을 넣는지 아냐고 운을 띄웠다. 바늘썰기는 보통 채치기 보다 압도적으로 가늘게 썬 것을 말하는 것. 그는 다소 두서없이 그렇게 해야 시구레니 전체에 생강의 풍미가 퍼진다고 알려주는데, 이 기술을 먼저 익히지 않고는 다른 기술을 훔치고 어쩌고도 없다고 조언했다. 주인장이 타쿠미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슬쩍 조언을 해준 셈이다.
  • 식극의 소마/236화 . . . . 2회 일치
          * 쇠고기 시구레니가 메인인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 그런데 그건 반만 맞는 표현이었다. 피자의 반은 시구레니가 듬뿍 올라가 있지만 나머지 반쪽은 치즈 온리. 즉 치즈와 쇠고기 시구레니 하프 앤 하프 피자였다. [[에이잔 에츠야]]도 이런 부분은 의외였던 모양이지만 심드렁하다. 과연 이것만으로 타쿠미가 공언한 대로 시나린 성분과 상관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걸까?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반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백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식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 아이박 . . . . 2회 일치
         등장 시기는 상상히 오래된 빌런으로 샤잠의 이름이 [[캡틴 마블]]이던 시부터 등장해왔다.
         현대의 악당이었으나 뉴52에서는 설정이 변경되어 과거 [[블랙 아담]]이 인간이던 시에 칸다크를 침공한 폭군이 되었다. 힘을 가지게 된 블랙 아담의 마법에 의해 석상이 되었다.
  • 안드로니코스 1세 . . . . 2회 일치
         == 풍운아로써의 젊은 시 ==
         그는 마누엘 1세와 사촌의 관계로, 그의 아버지는 [[알렉시오스 1세]]의 아들인 이사키오스이다. 그는 젊은 시 풍운아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으로 그는 마누엘의 조카딸인 유도키아 콤네나를 건드렸고, 마누엘의 명령으로 킬리키아를 압박할때 예루살렘 왕 보두앵 3세의 동생이자 마누엘 황제의 처제인 필리파와 또 스캔들을 내 마누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마누엘이 그를 소환하려하자, 그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인 아모리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사고를 치는데, 보두앵 3세의 미망인이자 그의 친척인 테오도르 콤네나와 또다시 스캔들을 터뜨린것이다. 이렇게 되자 안드로니코스는 마누엘의 분노를 피해 룸 술탄국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그는 아나톨리아일대에 영지를 하사받고, 인근에 그리스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짓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총대주교로부터 파문까지 받게 되어버린다.
  • 안재욱(배우,가수) . . . . 2회 일치
         예능감이 상당하다. 친인 신동엽과 함께 대학시 서울예전 개그동아리의 주축멤버였고, 데뷔 초기에는 잘생긴 얼굴에 다소 묻혔으나 시시때때로 토크쇼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포텐을 뿜어냈다. 동료 연예인들의 에피소드나 토크 시 분위기를 보면 실제 성격도 유쾌한 듯.
  • 안지만 . . . . 2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10월 15일]]에 팀의 [[스타]]급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간판투수 3명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즐겼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 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팀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통합 5연패가 좌되었다. 검찰 조사가 늦어지면서 같이 거론된 [[윤성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전지훈련에 참가하였다. [[2016년]] [[4월 3일]] 1군에 재합류했다. 경찰은 "도박 혐의로 수사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중요 참고인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들이) 외국에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수사는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수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6월 초에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510793 '원정도박 혐의' 안지만-윤성환, 수사보류 가능성↑.. 복귀?] - 스타뉴스</ref> 이후 7월 중순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에 [[삼성 라이온즈]]는 [[KBO (야구)|KBO]]에 계약 해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상 퇴출됨으로써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01 삼성라이온즈 안지만,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상 은퇴 수순’] -이뉴스투데이</ref>
  • . . . . 2회 일치
          * 암세포는 혈관 또는 림프을 통해 체내에 무작위적으로 퍼질 수 있다. 한 조직에 발생한 암세포가 다른 조직에 달라붙어 증식한 것을 “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암을 치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암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곳만 수술로 잘라내면 살 수 있지만, 암이 온 몸으로 퍼졌다면 수술로는 치료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암세포는 지속적으로 세포 분열을 하면서 대로 노화하여 죽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암환자에게서 떼어낸 샘플의 경우 계속 키워주면 암환자가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암세포 샘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 연경흠 . . . . 2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 프로 시 ===
  • 오대석 . . . . 2회 일치
         == 선수 시 ==
         == 지도자 시 ==
  • 워저드 . . . . 2회 일치
          워저드의 [[중간보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발돌의 부하. 하야 갑옷과 [[에아]]와 유사한 3단 원통검[* 원통검에 대포가 내장되어 있어서 탄환도 나간다.]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발돌의 성 앞에서 플레이어를 가로막는다. 처음에는 망토를 입고 있지만, HP가 줄어들면 망토를 벗어던지면서 제실력을 발휘한다. 원래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레오와도 안면이 있다. 그 정체는 레오가 왕이던 시의 직속 기사단장. 그러나 발돌에게 패하고 그에 의해 세뇌당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이때문에 레오가 단 피니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해 진 것.
  • 원 포 올 . . . . 2회 일치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초능력자가 대 다수인 히로아카 세계인 만큼 다양한 개성이 있고, 그중에는 정말 강력한 힘도 있는데 그런 힘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기입될만한 힘이다. 미도리야의 스승이자 이전 계승자인 올마이트부터가 평화의 상징. 물론 올마이트가 힘만 가지고 최고의 히어로가 된것은 아니나 그걸 고려해도 굉장하다. 거기다 그 특성상 계승을 거칠 수록 더 강해질수 있다.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조심해야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 강한 힘 탓에 미도리야는 그 힘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힘이 원인이 되어 부상을 입을 때가 자주 있다.
  • 원피스/825화 . . . . 2회 일치
          * 비트와 고티는 그녀를 "사모님"이라 부르며 맨다.
  • 원피스/826화 . . . . 2회 일치
          * 일행은 욘디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남을 돕는 취미는 없다"며 거당한다.
          * 상디는 어린 시 생이별한 동생으로 그들의 아버지는 상디를 늘 찾고 있었다.
  • 원피스/834화 . . . . 2회 일치
          * 성 위에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프가 돌봐주던 시을 떠올리고 번민한다.
          * 그들은 페콤즈를 벽 앞에 몰아놓고 협박하고 있다. "기회는 이미 줬다"고 말하는 벳지.
  • 원피스/837화 . . . . 2회 일치
          * 나미는 그가 간부 클래스일 것으로 판단, 대결을 피하자고 하는데 루피는 "싫다"고 단박에 거한다.
          * 브릴뤠와 킹 바움은 나미를 비웃으며 "최악의 세대"는 그저 신세계의 전반부에서 좀 추켜세워준 놈들일 뿐이라고 평가하한다.
  • 원피스/843화 . . . . 2회 일치
          * 과거 4장성이던 시, "장성 스넥"이 당했던 적이 있는데 그 복수가 어마어마한 수준.
         4장성 시 패했다던 인물은 "장성 스넥"으로 보인다. 또 고거 우르지가 장성 하나를 격파해서 크래커가 처리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번 화에서 파운드가 "스넥이 패했을 때 크래커가 복수하려고 함대를 이끌고 갔다"고 하는걸 보면 우르지에게 스넥이 패하고 크래커가 우르지의 함대를 격멸한 걸로 보인다.
  • 원피스/847화 . . . . 2회 일치
          * 때마침 빅맘의 아들이 밀집모자 일당 두 명을 연행해왔다고 보고한다. 빅맘은 오늘은 바쁘다며 빈스모크 일가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보고하러 온 아들이 안못하는 태도가 이상해서 왜그러냐고 묻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제르마66, 그 중에서도 이치디와 레이쥬의 광적인 팬이었다. 팬심으로 흥분하고 있었던 것. 빅맘은 한심하다고 핀잔하며 "필요한건 겉모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 원피스/850화 . . . . 2회 일치
          *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은 [[몽키 D. 루피]] 일행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나 미러 월드의 거울이 워낙 많이 난항 중. [[샬롯 브륄레]]는 아직도 기.
          * 미러월드를 접수한 이후 디젤을 부하처럼 부려먹고 있다. 디젤도 쵸파의 명령에 따라 무작정 달릴 뿐, 내부 구조에 대해선 아는게 없다. [[샬롯 브륄레]]는 아직도 기 중. 캐럿은 브륄레를 깨워서라도 성으로 연결된 거울을 찾으려 하지만 일어날 기미가 없다.
  • 원피스/852화 . . . . 2회 일치
          그녀는 이대로 모든 사실을 함구하면 빅맘이 그걸 저로 이뤄줄 거라고 말한다. 상디는 "너도 죽는데 무슨 소리냐"고 소리치는데 레이쥬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상디와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반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 원피스/856화 . . . . 2회 일치
          * 루피는 돌아오라고 설득하지만 상디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거한다.
          * 도시락을 완식한 루피는 미라같이 말랐던 신체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상디는 "먹었으면 돌아가라"고 말한다. 루피는 당연히 상디도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상디는 세 가지를 들어 그럴 수 없다고 거한다.
  • 원피스/858화 . . . . 2회 일치
          문제는 로라의 의향. 로라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유를 찾아 바다로 떠났다. 이후 로라와 똑닮은 시폰이 대신 약혼자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로라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 오히려 사이는 이전보다 악화됐다. 빅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진짜 거인족을 가족에 넣는건 포기, 인간을 거인화시키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로라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분노가 날로 증폭, 지금 토트랜드에선 그녀가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루피가 지적하자 쵸파가 시저가 어디있냐며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상디나 나미는 벌써부터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운 이야기나 한다고 투덜거린다. 그 말대로, 행색은 달라졌지만 그는 시저가 맞다. 시저는 토트랜드로 끌려온 이후 줄곧 빅맘의 감시 하에 있었다. 하지만 "룩"의 칭호를 받고 전권을 위임 받은 벳지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시저의 심장까지 입수해서 문자 그대로 생사를 쥐고 있다. 벳지는 빅맘에게서 도망치게 해주는 대가로 협력을 강요했다. 시저는 거하려고 해봤지만 밀집모자일당까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만큼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벳지에게 협력한다. 그렇게하고도 결국 만나게 됐지만.
  • 원피스/864화 . . . . 2회 일치
          * "거한다. 너는 조금 앞의 미래를 볼 수 있을 뿐.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미래를 바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있다."
          >거한다.
  • 원피스/866화 . . . . 2회 일치
          여기서도 링링의 괴력은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카르멜은 링링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길렀다. 링링은 항상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경솔함과 괴력 때문에 사고를 일으켰다. 거인족 아이 에일리에게 모기가 붙어서 잡아주려가 골을 시키기도 했고, 수장족 아이는 관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뽑아주려 들거나, 어인족 아이인걸 모르고 지느러미가 붙은걸 제거해주려고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카르멜은 꾸짖고 타일러 가르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는 링링이 나쁜 뜻이 없고 남을 배려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 설득했다.
  • 원피스/870화 . . . . 2회 일치
          끔찍한 학대의 나날. 가정의 정은 커녕 인간 이하의 삶이 주어졌던 어린 시. 상디는 지금도 그때의 악몽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그것들도 이제는 흘러간 일. 그때의 원한을 고집해서 핏줄의 죽음을 비웃는 속좁은 인간이 된다면, 한심하게 여길 것이다. 그의 "진짜 아버지"인 [[제프(원피스)|제프]]가 말이다.
          동료들은 상디의 연선언을 묵묵히 듣고 있다. 그리고 저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버린 아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 원피스/878화 . . . . 2회 일치
          * 페로스페로는 페드로의 이력이나 "녹스 해적단"이란 이름에 흥미를 가지는데, 그건 페드로가 어린 시 [[골 D. 로저]]에게 들은 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 페드로는 로저 해적단에 입단하고 싶어했지만 로저는 거하며 "사람은 나설 때가 있다"고 했는데, 녹스 해적단은 거기서 따서 "여명"이란 의미를 담은 것이다.
  • 원피스/885화 . . . . 2회 일치
          * 달아나던 루피는 숨어있던 [[샬롯 브륄레]]를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루피는 브륄레를 붙잡고 무작정 근처 거울로 뛰어드는데 카타쿠리가 주먹을 날려보지만 한 발 늦는다. 그렇게 미러 월드를 탈출한 루피. 하지만 재난의 연속이다. 하필 그곳은 너츠섬. 빅맘 [[샬롯 링링]]이 한창 먹부림을 부리고 있는 섬이었다. [[샬롯 페로스페로]]는 난장판 한 가운데 루피가 나타나자 빅맘의 주위를 그에게 돌린다. 루피는 빅맘이 아직도 써니호를 쫓는 줄 알고 있어서 어리둥. 빅맘은 루피를 발견하자마자 거대한 너츠 조각상을 집어던지며 공격을 가한다.
          * 카카오섬의 쇼콜라 타운에선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상디]]가 만든 참깨 휘핑 크림이 특히 대성공. 그 맛을 본 부하 요리사가 기해 버릴 만큼 맛있다. [[샬롯 푸딩]]도 그 맛을 보고 싶어하지만 상디가 직접 "너만한 전력을 잃을 순 없다"고 만류할 지경이다. 일부 요리사들은 이 맛있는 크림을 케이크에 데코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승천해버린다. 때를 맞춰 [[샬롯 시폰]]의 특제 스펀지 케이크도 완성. 푸딩도 상디의 생크림을 듬뿍 넣은 생초콜릿을 막 완성했다. 시간은 18시 5분 전. 최종 공정에 들어간다. 그런데 상디는 모든 재료를 배에 싣도록 한다. 완성은 배 위에서 한다. 써니호를 향해 나아가면서.
  • 원피스/886화 . . . . 2회 일치
          * 오븐은 진심으로 시폰을 처단하려 드는데 보다못한 "파운드"가 달려들어 오븐을 막으려 든다. 시폰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순간 어리둥하는데. 모두의 이목이 파운드에게 몰린 사이, 상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동, 마치 파운드가 후려친 것처럼 꾸며 오븐을 날려버리고 시폰을 구한다. 오븐은 잠시 어리둥해하지만 "파운드 이외 누군가가 공격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인식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2회 일치
         6월 17일 거리를 빼앗긴 미군은 모든 전력을 동원해 망적인 반격을 시도한다. 로마노프의 부대가 미군의 반격을 막는 동안 오를로프스키는 Tu-95 폭격기의 지원을 요청한다. Tu-95 의 융단폭격은 미군의 마지막 저항을 잿더미로 만든다. 오를로프스키는 무전을 통해 소련군 장병들과 이번 전투의 전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선전 방송은 미국에 상륙한 소련군이 북미의 서쪽 반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소련군은 워싱턴 주의 민병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네개 대대를 캐스케이드폴스라는 마을로 투입하였다. 그곳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련군 지휘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올로프스키 대령 마저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몰랐지만, 소련군 장병들은 그 무언가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대대들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올로프스키 대대는 시골에서 민병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 윌밍턴 . . . . 2회 일치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항구였다. 이 도시가 함락되며 아메리카 연합국은 외부와 단되게 된다.
         [[마이클 조던]]이 어린 시을 보낸 도시기도 하다.
  • 유동근(배우) . . . . 2회 일치
         대중은 '''[[왕]] 전문 배우'''로 기억한다. 군주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특유의 후덜덜한 발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탓도 있다. 비슷하게 카리스마형 배우로 유명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이 야인시대 2부의 그 유명한 '''[[내가 고자라니|공산당 할 거야 안 할거야!!!]]'''로 대표되는 귀청이 떨어질듯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유명하다면, 유동근은 마치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포효하는 듯한, 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초저주파 타입의 호통이다. [[https://youtu.be/DhGlBFPcmCg|이 영상을 보면 그 특유의 성난 음색이 드러난다!]] [[사자후]]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사극의 주요 배역에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강력한 권력자 역을 많이 맡았다. [[계백]], [[연개소문]]이나 '''[[태조(조선)|태조(이성계)]]''', '''[[태종(조선)|태종(이방원)]]''', [[세조(조선)|세조]], [[연산군]], '''[[흥선대원군]]''' 등.
         2014년에 방영될 KBS 드라마 [[정도전(드라마)|정도전]]에서 [[이성계(정도전)|이성계]] 역할을 맡았다. 담당 PD가 용의 눈물 시 연출부의 막내인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것은 [[용의 눈물]]에 이어 [[이방원(정도전)|아들]]역에는 [[안재모]]. [[이지란|의형제]]역에는 [[선동혁]]이 그대로 나온다는 것. 참고로 '''[[서북 방언]]'''을 구사한다! 공교롭게도 사극에서 [[정도전]]과 관계 깊은 사람을 세 번 연기한 셈인데, [[이성계|정도전을 발탁하고 중용한 사람]], [[이방원|정도전을 죽인 사람]], [[흥선 대원군|정도전을 복권시킨 사람]]을 모두 연기했다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유동근은 이 세 가지 배역을 통해서 세 번의 연기대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 유동근이 대상을 수상한 배역들은 모두 조선 왕조의 인물들이며 직간접적으로 정도전과 연관점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 윤상현(배우) . . . . 2회 일치
         [[갑동이]]에 출연[* 너목들 감독이 형사시 차변의 모습에 반해 윤상현을 캐스팅하기 위해 영화촬영장까지 찾아갔다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남성적인 형사 이미지로 변신에 선공하여 극전체를 이끌며 연기 호평을 받았다.
          * 내조의 여왕이 잘 되어 일본에도 방영이 됐고 결국 일본에서 음반 제작을 하기도 했다. 앨범 발표 당시 많은 기자들이 모였는데 윤상현은 일본어를 하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그 탓에 옆에 통역관에게 수다 본능을 보였고 통역관은 윤상현의 말을 통역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일본의 기자들은 그의 말 하나하나를 기사화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일본 측에서 한류스타 최초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분 처음이라고 했으며 친하고 재미있다라는 내용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윤석용 . . . . 2회 일치
         * 복지르네상스를 지향하며, 윤석용의 복지인생스토리, 2020년대 사회복지정책을 위한 제헌, 그대도 곧! 지금! 다시(시집), 내가할래요(언어치료)-판, 사계의 울음(시집), 찾아가는 개인 맞춤형 복지시대, 캐롤라이나 교육과정(장애유아교육), 한약 목욕치료
  • 윤철종 . . . . 2회 일치
         권정열과 윤철종 둘 다 [[구미시]] 출신인데, 알고 보니 구미 [[현일고등학교]] 밴드부 매드펄스 시부터 알던 사이였다.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밴드 '해령'에서도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권정열은 그대로 보컬이었지만 윤철종은 베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멤버들의 군 입대로[* 이 둘도 그때 같이 군대 갔다 왔다] 밴드가 해체되자, 둘은 '''색다른 밴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 [[대구광역시|대구]]로 [[상경]]하게 된다.
         2) "책상서랍을 치우다 네가 먹던 '''감기약'''을 보고 환기마다 아프던..."
  • 윤휘 . . . . 2회 일치
         그해 [[동부승지]]를 거쳐 [[정유재란]] 종전 후에도 [[조선]]에 주둔하던 [[명나라]][[군대]]의 철군 문제를 교섭, 타결시켰다. 이어 [[의인왕후]]의 장지 문제 선정에 참여하고 [[명나라]]의 전몰 장병 위문을 주관하였으며, [[우부승지]]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 [[윤두수]]가 [[이홍로]]의 탄핵으로 [[홍원군]]으로 유배되자, 이홍로의 친지들과 친하게 지냈던 그는 이후 이홍로와 관련된 사람들과 교하였다.
         [[1618년]](광해군 11년) [[5월]]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 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여 체차되었으나 다시 성사로 임명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 기간 중 [[누르하치]]와 [[여진족]]의 움직임을 수시로 장계를 올려 조선 조정에 보고하였고, 염초(焰硝)를 구해서 [[조선]]조정으로 보냈다. 그 뒤 [[공조]][[참판]]·[[예조]][[참판]]을 역임했다.
  • 은혼/574화 . . . . 2회 일치
         * 쇼요의 제자 삼인방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다츠마의 포지션이 히 느껴지던 에피소드.
  • 은혼/576화 . . . . 2회 일치
         * 젊은 시 우미보즈는 카무이에게 "[[가구라]]와 [["코우카"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강해져라"고 한다
         * 우미보즈 또한 그때와 같은 기분으로 카무이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마치 어린 시의 가구라가 나타난듯한 느낌에 멈춰선다.
  • 은혼/578화 . . . . 2회 일치
         * [[무츠(은혼)]]와 우미보즈는 아는 사이다. 어린시 무츠는 우미보즈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 우미보즈는 스승이 되길 거하지만 무츠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엔 너무 분에 넘친다"면서도 새장 속의 새에게 세상에서 본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청한다
  • 은혼/580화 . . . . 2회 일치
         * 벽 밑으로 떨어진 [[카무이]]는 가구라에게 코우카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
         * 또 카무이를 괴롭히려는 동네 양아치를 가구라가 막아서는데, 어렸던 가구라는 양아치들의 공격에 크게 다친다. 그때 그 지역에 볼 일이 있어 지나가던 하루사메의 일원이 남매를 구해준다. 이것이 젊은 시의 아부토.
  • 은혼/582화 . . . . 2회 일치
         attachment:단.png
         attachment:단2.png
  • 은혼/585화 . . . . 2회 일치
          * 긴토키는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호조에 달한 카무이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 어쩌면 신파치, 가구라와 합류하기 전인 1화의 긴토키도 그 시의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했던 상태일 수도 있다.
  • 은혼/587화 . . . . 2회 일치
          * 카무이는 재차 가구라를 공격하고 긴토키가 다시 달려들어 막아내지만 벽까지 날려가 처박히고 만다.
          * 사실 아부토는 과거 카무이가 가족을 버리던 시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 은혼/588화 . . . . 2회 일치
          * 가구라에게 있어 해결사라는 울타리가 어떤 의미인지 하게 묘사되었다.
  • 은혼/590화 . . . . 2회 일치
          * 소년 시 자신이 머물던 집이 누군가에게 습격 당하고 "아까까지 알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물건"이 되어 있었다.
         - 오보로. 어린시 그토록 바랬던 사제와 칼부림을 하고 있다.
  • 은혼/602화 . . . . 2회 일치
          * 자작은 지구인 사 일행을 원상에게도 소개하려 하나 자작은 그 전에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를 이끌고 간다.
          * 자작은 원상을 독대하며 지구의 사단을 소개하려 한다. 이미 사태는 지구인의 협력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은혼/604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해방군 포격이 쏟아지면서 우츠로를 놓치고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와도 단. 노부메는 그를 살리려다 포격에 휩쓸리고 만다.
          * 노부메는 생사불명. 가구라, 신파치도 긴토키와 단된다. 포격에 휘말렸는지 여부는 불명.
  • 은혼/610화 . . . . 2회 일치
          * 본래 천인의 기술을 해석해 만든 것으로 설사 해방군의 병기라도 예외는 없으며 겐카이 영감은 "전장은 죽창을 들고 다니던 시로 회귀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다. 다만 일시적으로 벌을 살포하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고 실질적으론 이 나라 전역을 커버할 정도의 규모로, 그것도 장시간 동안 유지해야 해방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히 이 에도에서 활동했던 모든 기계들까지 파괴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겐카이 영감이 작전 시작 전에 타마에게 이야기하길 "인간이 살기 위해 너희를 버리는 것"이라 표현한다.
          * 킨토키는 그들이 할 수 있겠냐고 미심쩍은 말투로 말하지만 타마는 "칙칙하던 금빛을 세계의 반을 구해낼 정도로 빛나게 만든 사람들"이라며 틀림없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킨토키는 어차피 해결사가 한 번 구해준 목숨이미 맡아주겠다고 말한다.
  • 은혼/616화 . . . . 2회 일치
          * 건물 옥상에서 투석기를 담당하던 캬바쿠라 "스마이루"의 아가씨들은 다키니의 투석에 밀려서 피신한다. 이들의 리더인 [[시무라 타에]]는 [[료우(은혼)|료우]]와 [[하나코(은혼)|하나코]]와 합류한다. 하나코와 료우 쪽도 투석기가 박살나면서 급히 피신했는데, 아직도 저항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에는 이들을 피신시키도록 한다. 료우와 하나코는 "힘을 합쳐 마을을 지키기로 했다"고 반발하지만 타에는 다키니의 힘을 체감하고 냉엄한 현실에 좌하고 있다.
          망적인 타에의 목소리.
  • 은혼/629화 . . . . 2회 일치
          * 긴토키는 숙취로 빈사, [[곤도 이사오]]는 한 번 똥쟁이는 영원한 똥쟁이임을 입증, [[핫토리 젠조]]는 치질을 극복하지 못하는 처한 처지.
          이런 박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병력의 중핵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은 핵 털린 북한 같은 몰골로 [[시무라 신파치]]에게 업혀서 이동 중이다. 일단 추적대에 합류하긴 했는데 하는 소리로 보면 정신이 1할도 복구가 안 된거 같다. 겐가이가 적에게 협조하는 것을 우려하는 히지카타에게 "그 아저씨는 적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사람이 아니니 입다물고 있다가 죽을 거다"는 헛소리를 한다. 결국 죽는거 아니냐고 까이니 "커뮤력이 높으니까 우주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잘 해나갈 거다"도 한술 더 뜬다.
  • 은혼/639화 . . . . 2회 일치
          신스케의 기묘한 신뢰는 과거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망에 삼켜졌을 때. 그때 눈에 비치는건 편히 잠들 천국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여기서 싸우는 거다. 지상이 얼마나 망에 물들 건 간에.
  • 은혼/648화 . . . . 2회 일치
          * 엔쇼는 자작 제독에게 그에게 용서를 비는데, 그것이 유언이 되었다. 종전을 납득하지 못한 병사가 총을 난사했고 엔쇼는 머리를 맞아 멸했다.
          머지 않아 형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어떤 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 형수였던 시엔 남편을 초연하게 배웅하는 법을 몰랐다. 형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러 가는게 아니며 영웅 초연의 황자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엔쇼는 형의 곁에 있었다.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형의 함선이 기습을 당하고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조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형을 내버려둔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슬픔을 가장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형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형수를 위로한 일이었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2회 일치
         ||[[https://youtu.be/wMxIvXO88VY|골때리는 BBQ 황금 올리브 치킨 ASMR 도중 기!?]]||
          * 경찰이 되어보려고 했으나 좌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 이상화(1980) . . . . 2회 일치
         == 선수 시 ==
         200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 구속은 140km 초중반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다. 2006년 무려 121이닝을 소화하며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45경기 121이닝 5승 6패에 평균자책점은 3.87을 기록.], 이 때의 혹사 여파로 인해서인지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당시 [[서정환]]감독시의 혹사로 [[한기주]], [[신용운]] 등만 거론되지만 어찌보면 이 둘보다도 더 심하게 굴려졌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제대하였다. 하지만 혹사의 여파로 인한 부상으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 이선희 . . . . 2회 일치
         그녀는 대학 시이던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출전하여 《J에게》를 불렀다. 애초에 2학년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작곡가 [[장욱조]]의 음악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이세건]])가 말하기를 "아직도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아니 불러 준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 악보 뭉치를 주우면서 차라리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지 물어 보아 결국 허락을 받았고, 그 더미 속에 있던 노래가 바로 <J에게>였다. 3년이 지난 이후 1984년, 이 노래로 참가를 하여 MBC 강변가요제 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언니 부대’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 등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그리운 나라>,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가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으로는 KBS 방송가요대상 6년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을 했다. 전성기 시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만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다.
  • 이승경 (1290년) . . . . 2회 일치
         '''이승경'''(李承慶, [[1290년]] ∼ [[1360년]])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선(仲善)이다. 원나라로 유학하여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태자첨사가 되었고, 요양성 참지성사로 승진하였으며 원나라 조정에서 및 그의 부 [[이천년]]과 조부 [[이장경]]에게 특별히 농서군공에 추봉하였다. 공민왕 때, 문하시량평장사가 되었고, 1359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도원수가 되어 적을 물리치고, 서경을 회복하여 충근경협모위원공신이 되었다. [[이조년]]은 그의 숙부였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5촌 당숙이다.
         원나라에 들어가 올과(乙科)에 급제하여 태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고, 어사(御使)를 제수받아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 요양성 참지정사(遼陽省參知政事)로 승진, 많은 공적을 쌓았으므로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그의 아버지 천년(千年)과 조부(祖父) 장경(長庚)에게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追封)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모친상을 당해 귀국, 이듬해 원(元)나라에서 요양성사(遼陽省事) 탑해첩목귀(塔海帖木鬼)를 보내어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이에 공민왕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하였으며, 1359년 홍건적(紅巾賊)이 침범하자 도원수(都元帥)로 나가 서경(西京)을 회복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홍건적을 힘껏 쳐부수지 않았음을 분하게 여겨 음식을 폐한 끝에 병을 얻고 집에 돌아와서는 만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민왕은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그의 노고를 칭찬하여 충근경협모위원공신(忠勤勁節協謀威遠功臣)에 책록하였다. 사후 경상북도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 옥천의 보덕사(報德祠)에 제향되었다.
  • 이영 (1492년) . . . . 2회 일치
         이영(李榮, [[1492년]] [[2월 10일]] ~ [[1583년]] [[10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은자|은사]]이다. 자(字)는 양수(陽臼+又), 호는 북산(北山), 본관은 [[우계 이씨|우계]](羽溪)이다. 조정의 부름을 거하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녹래리로 이주하였다. 뒤에 노인직으로 통정대부와 가선대부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출신.
         그의 초기 행적은 미상이다. 후에 유일의 후손으로 조정에서 그를 불렀지만 사양하고 두문불출하였으며, [[영천]]][[도촌]](후에 봉화로 편입되었다.)에서 [[예안]] [[녹전]] [[녹전면|녹래리]]로 들어가 외부와 단하고 은거하였다.
  • 이인영(정치인) . . . . 2회 일치
         이에 대해 박미숙 기자가 "운동권 시의 가치를 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좀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라고 하자,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나보고 이라크 파병을, 한미FTA를 찬성하라는 건가? 내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옛날에는 각목 들고 바꾸려 했던 것을 지금은 표로 바꾸려 하는 것 정도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답하였다. 이로 인해 '화석화된 진보'라느니 '민중에게 권력을 주긴커녕 고립을 안겨주는 원리주의자'라느니 '약자심리, 피해자심리, 방어심리로만 가득한 운동권 출신'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당하였다.
         이러한 우여곡 끝에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 갑에 그대로 출마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경쟁자로 불린 새누리당의 [[이범래]] 역시 20대 총선에서 타 지역구로 옮길 것을 주문 받았는데, 이범래는 실제로 지역구를 옮겼고 낙천했다(..)
  • 이재용(배우) . . . . 2회 일치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묵직한 부산 사투리로, 동수([[장동건]])를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미친 존재감]]을 알렸다.[* 실제로 이재용은 유년시을 마산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산 사투리가 능숙한 건 일도 아니다.] [[이재용|동명의 재벌 후계자]]가 있는 관계로 이재용이라는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친구의 차상곤,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제5공화국의 [[이학봉]] 등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범인을 쫓다가 벌로 얼굴이 뒤덮여 벽 밑으로 추락사하는 추형사 역할을 연기했으며, 드라마 [[대물(드라마)|대물]]에서 [[권상우]]의 상관인 공성조 지청장을 연기했다. 이 작품으로 배우 커리어 첫 상인 드라마 스페셜 조연상을 수상했다.
  • 이재황(배우) . . . . 2회 일치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 고1까지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집에선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을 접한 후 가요에 눈을 떠 2년동안 가수 준비를 했다가 불발, 우여곡 끝에 연기자로 데뷔했다고 한다.
  • 이지찬 . . . . 2회 일치
         ==[[kt 위즈]] 시==
         ==[[경찰 야구단]] 시==
  • 이한응 (1849년) . . . . 2회 일치
         [[충청북도]] [[중원군]]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복영(李復榮)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로 수군도사 구명원(具命遠)의 후손 구병희(具秉禧)의 딸이다. 계모는 성주이씨로 이선(李銑)의 딸이다. 다른 이름은 이한경이다.
         [[1870년]](고종 7년) 봄 무과(武科)에 급제, 영의정 [[김병학]](金炳學)의 건의로 특별히 가설 내승(內乘)에 임명되었다.<ref name="dager1">고종실록 7권, 1870년(고종 7년, 개국 479년) 5월 20일 을유 1번째기사, 조선 개국(開國) 479년 문희묘, 의소묘, 육상궁, 연호궁, 선희궁에 전배하다</ref> [[김병학]]은 '(故) 충장공(忠壯公) 이복남(李福男)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개와 의리에 대해서는 열성조(列聖朝)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보답하는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봉사손(奉祀孫)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마땅히 조정에서 뜻을 보여주는 거조(擧措)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종전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선전관(宣傳官)과 내승(內乘) 중에 가설(加設)하여 단부(單付)한 전례(前例)가 이미 많았다'며 그에게도 선전관이나 내승을 가설하여 임명해줄 것을 청하였다.<ref name="dager1"/>
  • 이훈(배우) . . . . 2회 일치
         헬스로 인해 탄탄하게 다져진 몸 때문에 터프가이, 마초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와 예능에서 하는 발언들을 보았을 때 실상은 '''굉장한 삐돌이 [[소인배]].''' 이 소인배 캐릭터는 2000년대 말 놀러와 게스트 출연 당시에도 이미 나왔지만 그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 2010년대 들어서 널리 알려졌다. 군 복무 시 휴가를 나왔는데 [[정준하]]와 [[유재석]]이 본인들이 환영회를 책임지고 해주겠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자기들 놀기에 바쁜걸 보고 화가 나서 "늬들은 형도 아니야" 라고 섭섭함을 표하면서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무한도전]]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 또 [[정글의 법칙]]에 캐스팅됐다가 나중에 제작진의 말이 바뀌면서 출연이 무산되자 역시 그 뒤로 정글의 법칙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어째 이해는 가는데?--
         이훈은 한 해 아래지만 탤런트 특채이지 개그 특채가 아니긴 한데, 시사코미디 패널로 출연했다가 들어온 거라 개그 기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훈이 20대 초반에, 살면서 유일하게 [[헌팅]]을 한 여자가, "나는 연예인이랑 사귀고 있음 ㅈㅅ" 라면서 거하자, 그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박명수예요."라는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인왕서기 . . . . 2회 일치
         굳건하게 우뚝 버티고 선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왕]](仁王)은 [[불교]]에서 호법신(護法神) [[금강역사]]를 뜻하며, 의 수호를 상징하여 강인한 모습으로 앞에 서있는 모습으로 조각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이러한 말이 나왔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2회 일치
          * 하우저는 "미안해 하지마. 네 방패가 되는 정도 밖에 못해"라고 한 대사를 읊는데, 멀린은 "쓸데없이 나에게 걸린 마법을 뺏어가서 그런 거다"라고 갈군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2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의 고위 인사로 보이는지만 그녀를 제외한 실권자들은 모두 마신족 근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스티그마의 본부에서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여신족 지도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뤼드셀]]이 마신족을 근할 때라고 선언한 것에 크게 반발한다.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지위가 높은지 그녀는 뤼드셀과 [[네로바스타]]를 하대하지만 그들은 경칭을 쓴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2회 일치
          데리엘은 적어도 교섭의 여지는 있다고 여겼는지 "믿기를 바란다면 동포를 해방하라"고 요구한다. 엘리자베스는 확인해서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답하는데 데리엘이 만약 뤼드셀이 거한다면 어쩔거냐고 묻자 "그가 거부해도 자신이 어떻게든 한다"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현대의 데리엘은 거의 말이 없고 대부분 몬스피드가 대신 의사를 전달하는데 이 시엔 평범하게 말을 했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2회 일치
          * 천계로 통하는 문은 스티그마가 마신족을 멸하고 지상을 손에 넣었을 때 천계의 여신족들을 부르기 위한 통로였다. 마침내 고서 앞에 모습이 드러난 천계로 통하는 문. 그때 또다른 인물이 그들의 뒤를 따라왔다.
          겨우 재생하고 있던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무섭게 변화한 두 십계의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인듀라로 변한 데리엘과 몬스피드는 인간에 가까웠던 모습이 사라지고 괴물의 형상이 된다. 이들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지만 정작 눈 앞에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뤼드셀은 "웃긴다"고 하하며 별것 아니라고 취급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2회 일치
          * [[뤼드셀]]은 그녀의 결정에 반발하며 마신족을 멸해야 한다 주장한다.
          * 그런데 이들이 가세한 것은 뤼드셀 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엘리자베스에게 보태준다. 뤼드셀이 당황하자 사리엘은 그의 말대로 가세하고 있지 않느냐고 조롱한다. 타르미엘은 자기들은 자기들 의지대로 움직이겠다며 뤼드셀과 선을 긋는다. 디안느와 킹은 이 상황에 어리둥해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2회 일치
          그러나 진상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2회 일치
          그는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시공의 틈을 연다. 그리고 진짜 고서, 무욕의 고서가 틈을 통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고서는 "나도 고서. 하지만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인형 쪽과 싱크로된 상태라 동시에 같은 포즈로 같은 말을 해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고서는 헷갈린다면서 "싱크로 오프"란 주문으로 인형 고서와 동조를 단한다. 그러다 조용히 의식을 잃는다. 무욕의 고서는 인형 쪽도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동지"라고 말하며 그 또한 고서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 할리퀸이 디안느에게 서둘러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거하며 할리퀸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자신은 고서와 좀 더 대화해 봐야겠다면서. 그녀가 보기에 고서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고서, 인형 쪽도 포함해서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도 하다. 디안느가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자 할리퀸도 더는 권하지 않는다. 그는 디안느에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향한다.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2회 일치
          * 할리퀸이 당황해서 허둥댄다. 겨우 정신을 잡은 그는 디안느에게 자신의 기원인이 된, 지난 번의 키스는 대체 뭐였냐고 묻는다. 그리고 디안느는 아주 오래된 호의에 대한 답례라고 대답한다.
          * 할리퀸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금방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곧 "200년 전"이 가리키는 것이 그녀가 기억을 잃어 버린 유년 시을 뜻한다는걸 깨닫는다. 그건 디안느가 잃었던 기억을 모두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십계 [[고서]]가 그녀에게 준 사과와 선물, 그것이 그녀의 기억이었다. 지금껏 고서를 원망하고 있던 할리퀸은 그런 사실에 생각에 잠긴다. 고서에 의해 기억을 잃고, 다시 찾게 된 디안느는 고서를 옹호한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또 할리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할리퀸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하고 오히려 지금까진 너무 못되게 굴었던 거 같다고 자책한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2회 일치
          계속해서 떠오르는 옛기억. 고서는 그걸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른다. 디안느는 걱정스럽고 당황해서 하마터면 그의 손을 놓을 뻔 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대 손을 놓아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었다.
          바트라는 그녀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고서가 바트라의 누나 나쟈와 나눈 시간들과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녀를 살려보려 했던 고서의 시도까지. 그러나 자신의 심장으로 나쟈의 심장을 대체해주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고서는 충격과 망 속에서 심장은 고성의 지하에 버리고 자신의 기억을 지웠던 것이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2회 일치
          *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가 충격을 받고 망할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기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 엘리자베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왜 자신이 멜리오다스를 괴롭게 한다는 건지? 그는 언제나 엘리자베스를 생각하고 그녀를 위해준다. 엘리자베스도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 간할 수록 그녀는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젤드리스는 질렸다는 듯이 그렇냐고 대꾸한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2회 일치
          * 멀린이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가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대답은 더 혼란스럽다. 그녀는 멀린을 알아보았지만 그녀가 알리 없는 멀린의 모습을 기억해낸다. 아주 어린 소녀 시의 멀린을. 그리고 "못 알아볼 뻔했다"며 어느새 이렇게 자랐느냐고 말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에 디안느의 눈에는 두려움이 비췄다.
          * 디안느가 그 말에 환호한다. 할리퀸이 어리둥해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준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 윤회, 기억의 상실 등. 신나게 떠들어대자 멀린이 "입조심해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디안느는 움찔하지만 진짜 너무한건 멜리오다스라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무시했던 태도를 질책한다. 그때까지 말이 없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2회 일치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남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고서는 이 마을에서 기억하는 "아만드"의 모습으로 작은 친구들과 재회했다. 페리오의 친구인 메라, 에릭, 토마스, 카츠. 고된 시간 속에서도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서에서 다가와 그의 귀환을 축하했다. 고서의 품에 안겨있던 페리오는 친구들이 그를 여전히 아만드라 부르자 진짜 이름은 고서라고 밝힌다. 그가 그렇게 불러서일까? 아만드 시에 했던 머리 모습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페리오는 전에 고서가 했던 말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2회 일치
          하루는 나자가 고서에게 새로운 선물을 줬다. 부왕이 젊은 시 입던 곳인데 이걸 차려입은 고서는 정말로 이야기 속의 멜도르처럼 보였다.
          나자는 그렇게 말했었다. 고서는 나자를 위해서라면 무엇도 바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적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망설임없이 자신의 손을 심장에 가져간다.
  • 임관빈 . . . . 2회 일치
         준장시 육군 제2군단 참모장, 육군본부 비서실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육군 기획관리참모부 정책처장을 지냈다. 소장진급 후 제6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정책홍보실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이후 중장으로 진급하여 수도군단장과 육군참모차장, 국방대학교 총장, 국방부 정책실장을 지냈다.
         육군 정책홍보실장 시, '''강한친구 대한육군'''이라는 유명한 슬로건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 임성은(가수) . . . . 2회 일치
         === [[투투]], [[영턱스클럽]] 시 ===
         팀 탈퇴 이후에는 1997년 10월에 본인이 작사한 '미련'이라는 타이틀곡으로 활동했다. 작곡가 윤일상이 참여했으며 영턱스 시의 음악과 연장선인 트로트를 차용한 곡으로 활동한 결과 가요 프로그램에서 10위 권에 안에 드는 등 제법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 임은정(법조인) . . . . 2회 일치
         >“오늘 특히 민감한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 시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가해자 측) 변호사들은 그 (피해자)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막을 수가 없다.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 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임효준 . . . . 2회 일치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199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계성초등학교]]를 졸업, [[경신중학교]]에 진학했다가 [[오륜중학교]]으로 전학한 뒤, [[동북고등학교]]를 거쳤다. 현재는 [[한국체육대학교]]에 재학 중에 있다.<ref name="대구일보">https://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242141</ref> 어린 시에는 [[수영]]을 좋아했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고막]]이 터지는 바람에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수영을 포기해야 했다.<ref name="스포츠조선">http://sports.chosun.com/news/pcnews.htm?id=201802110100090830006597&servicedate=20180210</ref> 이후 초2때 종목을 바꾸어 빙상부에 들어갔고, 4학년 때부터는 종별대회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 자본통제 . . . . 2회 일치
          *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과도한 단기자금이 유입되면, 통화가 상되어 수출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능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통제는 실패하면 자본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 장민호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시==
         ==[[NC 다이노스]] 시==
  • 장성환 . . . . 2회 일치
         1920년 10월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본 기후비행학교를 1942년에 졸업했고 건군기 시에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 항공대에서 근무하다가 공군이 독립하자 옮겼다.
         [[1950년]] 11월에 미 제5공군으로부터 수송기를 인수하자 한국 최초로 공수업무를 담당했다. 참모총장 재임 시에는 제30방공관제단, 즉 지금의 공군방공관제사령부를 창설했다. 빨간 마후라는 그의 임기 중에 제작되었다. 전역 후에 주 태국 대사, 대한항공공사 사장, 한국관광공사 총재,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1비행단장, 5비행단장 등을 거쳐 1957년에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 올랐다. 그후 1958년 공군참모차장을 거쳐
  • 장운호 . . . . 2회 일치
         ==[[한화 이글스]] 시==
         ==[[상무 피닉스 (야구)|상무 피닉스]] 시==
  • 장종덕 . . . . 2회 일치
         ==[[넥센 히어로즈]] 시==
         ==[[kt 위즈]] 시==
  • 장헌식 . . . . 2회 일치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령이 떨어지자 자수하였으며, [[반민특위]] 조사관들이 오자 담담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손자며느리에게 뒷일을 부탁한다 하고 출두하였다. 이후 조사에 순순히 응하여 구속 수사를 받았으며 [[치질]](痔疾)로 고생하였으나 병보석은 거하였다. 이후 그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1949년]] [[2월 22일]] [[치질]]로 인해 석방된 뒤 불구속 문초를 받아 반민특위에 다녀가며 방문조사를 받았다. [[3월 9일]] 반민특위로부터 보석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보석을 거했다. 같은 날 반민특위로부터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다.
  • 장혁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시==
         ==[[NC 다이노스]] 시==
  • 전명운 . . . . 2회 일치
         이에 분노한 그는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 이틀 후인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의 여객선 선착장에서 [[일본인]] 총영사와 함께 있는 스티븐스를 공격했고, 격투가 벌어지자 같은 목적에서 별도로 대기하던 [[장인환]]이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 이틀 후인 [[3월 25일]] 명하게 하는 중상을 입혔다. 그는 이때 장인환의 총격에 총상을 입고 장인환과 함께 구속되었으나, 공범 관계가 아님이 드러나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당시 교민들은 성금을 모아 [[네이던 코플란]]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이때 통역은 [[이승만]]에게 요청했으나 자신은 기독교인이라 살인범의 변호를 통역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함에 따라 유학생이던 [[신흥우]]가 맡았다.
  • 전성군 (1488년) . . . . 2회 일치
         생전 관직은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제 도위, [[돈녕부]][[주부]] 등이었지만 후손들의 거듭된 출세로 [[증직|증]]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증직|증]] [[호조]][[판서]]와 [[증직|증]] [[이조]][[판서]]를 거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는 등 거듭 증직이 [[추증]]되었다. [[대한민국]] 초기의 정치인 만송 [[이기붕]]은 그의 13대손이다.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남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영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 전인환 . . . . 2회 일치
         ==[[히어로즈]] 시==
         ==[[LG 트윈스]] 시==
  • 절대가련 칠드런 . . . . 2회 일치
         [[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분류:대가련 칠드런]]
  • 정광운 . . . . 2회 일치
         ==[[한화 이글스]] 시==
         ==[[삼성 라이온즈]] 시==
  • 정명훈 (지휘자) . . . . 2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 정병희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선수 시==
         ==프로 야구 선수 시==
  • 정성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시==
         ==[[NC 다이노스]] 시==
  • 정재용(1973) . . . . 2회 일치
         [[KBS]] [[승승장구]]에 어머니가 깜짝 출연했는데 늦둥이 외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매번 용돈도 50만원씩 준다고. 참고로 맨위에 [[사진]] 오른쪽이 정재용 [[어머니]], 밑에 사진 2개는 정재용 젊었을 때 시 사진이라고 한다. 지금과 달리 말랐었다.
          * [[친노트]] (SBS, 2009년)
  • 정재호 (1964년) . . . . 2회 일치
         정재호는 1998~2001년 [[외환은행]] 신용카드사 노조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 故 [[노무현]] 대통령후보 시 정무보좌역, 2003년 [[참여정부]] 시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2005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 2006년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과 2007년 [[국무총리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 [[정무직]] 공무원직을 수행했다.
  • 정종 . . . . 2회 일치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상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다음 순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후궁 소생이라고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 후궁 제도는 혈통 단을 막는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왕의 성욕 처리에만 동원되는 제도로 전락한다. 정종이 자기 자식에게 계승을 못한 것은 워낙 세력이 밀렸기 때문이지 서자만 있어서 계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만큼 태종의 세력 기반이 탄탄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 정좌관심 . . . . 2회 일치
         주희는 『대학』에 나오는 '고요한 뒤에야 능히 안정이 되며 안정된 뒤에야 능히 생각할 수 있고 깊이 사색한 뒤에야 능히 얻을 수 있다(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는 구에 따라서, 정좌를 통하여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했다.
         [[퇴계 이황]]은 정좌를 하는데 있어서 적한 자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연구한 바 있으며, 주희의 주장에 근거하여 정좌는 불교의 수행과 다르다는 것을 밝히려 했다.
  • 조안(배우)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중학생 시 반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고 만화를 그려 주며 만화가의 꿈을 키워 오다가, 고3 때 방송국에 놀러갔다 우연히 방송 작가의 눈에 띄어 KBS 2TV <드라마시티 - 첫사랑>에 출연하게 되면서 배우가 되었다.
         배우 [[박용우]], [[오만석]]과의 스캔들로 더 유명한 여배우이다. 예전에 11살 연상인 연기자 박용우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박용우의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게 되었다. 초반엔 열애설 이후 부인하더니 [[http://v.media.daum.net/v/20100717010704467|동반 일본여행]]이 들키자 결국 [[http://v.media.daum.net/v/20100717192305019|인정했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런데 오만석과도 결국 헤어졌다.[[http://v.media.daum.net/v/20120103110514616|기사]] --[[김건모]]가 부릅니다. [[잘못된 만남]]--
  • 조원진 . . . . 2회 일치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새누리당 시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6359|광주 망월동 묘지에 들러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이 [[https://youtu.be/uE7vfDI2jLU|있다.]] 다른 친박들은 잘 따라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재 모습을 보면 참 웃긴 부분이다.
  • 조현근 . . . . 2회 일치
         == [[두산 베어스]] 시 ==
         == [[경찰 야구단]] 시 ==
  • 주윤발 . . . . 2회 일치
         대구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구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그 후 1965년(10세 시)까지 홍콩 라마 섬 도서촌에서 성장하였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이다. 그는 [[홍콩 영화 금상장|홍콩 금상장영화제]]의 남우주연상과 [[금마장|중화민국 타이완 금마장 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주윤발이 한창 잘나가던 시 그의 영화의 [[보조 출연자]] 중 한 명이 [[주성치]]였다.
  • 지무시 . . . . 2회 일치
         초반에는 자신이 살던 섬에서, 라나를 찾으려는 코난과 어찌어찌 얽혀 그 섬을 떠나게 되어, 코난을 내켜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친 사고에 대한 징벌(나무판으로 볼기 맞기)을 술로 인사불성이 된 자신 대신, 코난이 맞아[* TV판 4화에서, 지무시는 바라쿠다 호에서 다이스 선장의 음식과 술 등을 훔쳐 먹고 주방장을 기시키는 등 사고를 쳤다. 만취한 지무시를 데리고 코난은 달아났으나, 잡혀서 이전의 로보노이드 파손 등의 죄목과 합쳐져, 교수형과 볼기 맞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게 된다. 볼기 맞기를 견디면 이 배에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두들겨 맞는데, 만취한 지무시는 단 한 대에 기해버린다. 이에 코난이 대신 맞겠다며 나선다. 지무시가 맞을 몫인 20대까지 떠맡아, 코난은 선원 한 명당 40대씩 맞았는데, 바라쿠다 호의 선원들이 대략 30명이라 쳐도 1,200대, 곤장을 건강한 성인이 맞아도 보통 10대가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이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반전, 코난과 우정을 쌓으면서 코난을 돕게 된다. 모험 이후에는 코난, 라나처럼 신대륙이 된 코난의 고향에 정착한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2회 일치
          * 유년 시. 아르민은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한다.
          * 쟝이 이 사실을 언급한 것인데 한지는 적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2회 일치
          * 이에 마레는 전력 보강의 필요성을 감, 시조 거인 탈환계획을 서두르게 된다.
          * 폭격이 비켜나간 온전한 요새 벽에서 최후의 저항이 이어진다. 지휘관이 말했던 대거인전용 야전포다. 위력이 상당해서 벽 위를 공격할 수 없는 작은 거인들은 속없이 박살난다. 라이너는 낙하하면서 이 야전포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한다. 약 29대. 상당한 숫자가 기동 중이다. 거인병력의 6할은 낙하와 동시에 전멸했으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라이너에게 치명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단 벽이란 것 자체가 싫다. 그는 "또 벽이냐"도 중얼거린다. 그건 싫은 기억을 자극한다. 4년 전의 기억을.
  • 진격의 거인/96화 . . . . 2회 일치
          라이너는 그 장면으로부터, 현실로 부터 달아났다. 영웅이 되겠다던 맹세로부터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뻥 뚫린 벌판을 향해 그저 달리던 그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베르톨트 후버]]도, [[애니 레온하트]]도 없었다. 섬의 악마들도 없고 거인들도 없었다. 라이너는 혼자였다. 마르셀은? 죽었다. 그가 두고 오려고 했던 현실은 한치의 거리도 없이 따라와 있었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라이너가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규가 터져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멤돌았다.
          이곳도 언제든 거인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애니가 걷기 시작했다.베르톨토도 일어나 애니를 따랐다. 라이너는 아직 나무 아래 있었다. 현실은 그를 따라올 뿐만 아니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쌍한 [[카리나 브라운]]. 그녀는 자신을 져버린 남자들을 너무 믿었다. 라이너가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남편은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거라고 믿었다. 대로 보답 받을리 없는 믿음.
  • 진창현(음악인) . . . . 2회 일치
         하지만 대학 재학 중에 [[제로센]] 설계자였던 이토카와 히데오가 대학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에 대해 음향학적으로 고찰하는 강연회에 참석한 뒤, 현악기 제작자로 장래 희망을 바꾸었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 찾아간 일본 현악기 장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나가노]]의 기소후쿠시마 쵸에 있던 스즈키 바이올린 공장에서도 입사를 거당해 근처 공사장에서 채석과 벌목 같은 거친 노동을 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창작:IDF . . . . 2회 일치
         IDF는 독자적으로 훈장을 비롯한 보훈 체계를 갖추고 있다. 훈장은 사령부에서 추천하여, 사무국에서 조사와 심의를 거쳐, 이사회에서 결의하여 수여된다. 훈장 수여 처가 복잡하고 심의가 까다로운 편이라서 잘 수여되지 않는다. 훈장 수여자에게는 등급에 따라서 소정의 연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IDF는 여러 나라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IDF의 가맹으로 메겨지는 분담금은 실제로 각 국이 자국의 주도로 '쓸만한 군대'를 IDF와 같은 규모로 키우는 비용과 기간을 고려하면 IDF 가맹은 싸고 간편하게 적한 군사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IDF는 비교적 저렴한 군사비로 비상시에 "훈련도가 높은 군대"에게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각 국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경제적인 '군사 보험'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 창작:좀비도시 . . . . 2회 일치
          * 망형 : 이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남아 있다. 사태의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이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연쇄살인|연쇄살인범]] : 이들은 살인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몇몇은 좀비를 대상으로 풀어내며, 생존자를 목표로 노리기도 한다. 이 도시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목표물을 찾기에 적한 곳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2회 일치
         "너네 얼라가 우리집 들쑤시고 다닌거 모를거 같덩가? 한 번만 더 그러면 '''요을 내버릴겨!'''"
         이제 얼마 안 되는 정신으로 냉정을 흉내내 보자. 아무 일도 없는데 병이 났을 리는 없다. 물론 내 몸이 약해지긴 했겠지만 추위하고는 백만년은 거리가 먼 이런 계에 감기가 걸렸을 리는 없다. 갑작스런 과로로 인한 몸살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발열까지 설명이 될까?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2회 일치
         작중 기억을 반이나 잃어버리고 눈을 뜨니 이상한 동굴에서 눈을 뜬 탓에 공허함을 느끼며, 자칭 동굴의 130대 수호용이라는 타츠카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로 맞이했다. 이후 자신의 기억을 찾기로 맹세하며 모험의 길에 오른다. 또한 여러 모험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개인 신상 : 과거의 기억의 반 정도를 잃어버렸으나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보구인 천경원양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집안에서 물려준 드레스인 홍염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원치않게 라이벌과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고군분투와 파란만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 창작:헤이즈 . . . . 2회 일치
         NTX에서 제작되는 선택지 소설. 구NTX에서 나린위키로 설정위키를 운영할 시 시도했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다 사이트 개편을 통해 ~~나린위키보다 훨씬 간편하고 유용하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기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NTX 시에 연재되었던 "담력시험"을 계속하지 않고 '''리부트'''되었다. 먼저 "담력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할 경우 초점이 어디까지나 '학생, 담력시험, 청소년물' 등으로 소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 대략적인 세계관 설정이 없이 무작정 연재되었기 때문에, 선택지마다 내용이 상충되거나 진행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담력시험"의 경우 주인공급 캐릭터만 5명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하나하나 행동과 대사를 부여하고 주인공들간의 대화를 마련해야 했다. 차라리 아래에서 언급한 "언틸 던"처럼 2명씩 다니는 걸로 설정해 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뚜렷한 핵심 없이 선택지가 양산되기도 했다. 결국 수습이 되지 못한 채 말이 방치지 사실상 중단되었다.
  • 채상병 . . . . 2회 일치
         == 아마추어 시 ==
         == 프로 시 ==
  • 천장호 . . . . 2회 일치
         비평준화시 최고 명문 고등학교이던 서울고등학교를 1968년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0회 동기로는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육군사관학교),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서울대),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연세대), 유웅석 전 SK건설 사장(서울대), 이종수 SH공사 사장(서울대)등이 있다. 당시의 서울고등학교는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육군사관학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등 최고 명문 학부에 진학하던 시이었다.
  • 천호진 . . . . 2회 일치
         | 3.1특집극
         | [[타악기의 계]]
  • 철인 28호 . . . . 2회 일치
          흑백 시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에 방영되었다.
         흑백 시에 실사화되었다.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철인의 모습이.....
  • 청송군 . . . . 2회 일치
         유명한 관광지로 [[주왕산]]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외지 사람들은 "[[청송]]"이라는 동네 이름이 나오면 맨 먼저 '''[[청송교도소]]'''와 '''청송감호소'''부터 떠올린다. 이 지역에는 [[교도소]]가 무려 네 군데나 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에 [[흉악범]]과 [[정치범]]을 [[감금]]하기 위해 이런 외진 곳에 [[교도소]]와 [[감호소]]를 왕창 지어논 것. 사실 교도소가 있는 곳은 청송읍이 아닌 [[영양군]]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진보면이다. 청송이란 고장의 이미지를 깎는다고 [[대한민국 법무부]]에 지속적으로 진정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이름이 경북북부교도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교도소가 들어서면 [[교정직 공무원]]들 및 면회객들도 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청송군민들은 '''교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5817&plink=ORI&cooper=NAVER|#]] 근데 이것을 역으로 보면 교도소 이외에는 지역경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낙후가 심각하다는 거다.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송소고택, 청송문화관광재단의 청송백자 전시관과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있으며, 청송문화관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민예촌에서 한옥숙박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인근의 청송 달기약수탕 부근에 장난끼공화국 달빛예술학교에서 각종 체험 및 플리마켓등을 체험 할 수 있다.또한 지역의 전통문화유물인 청송백자,소설가 김주영선생의 소설 객주를 모티브로 한 객주문학관, 야송이원좌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군림청송야송미술관과 위장병과 관에 좋은 약수가 나오고 있는 달기약수, 신촌약수터 등이 있다.
  • 최란(배우) . . . . 2회 일치
         [[김가연]]과 더불어 연예계 고소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의 아내이기도 하기에 이충희에 대한 악플이 달리는걸 늘 모니터링 한다고 하고 변호사 자문도 구한다고 한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는 이 명성이 워낙 높아 최란이라면 벌벌 떨 정도다. 더불어 경중 안따지고 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이 꽃피는 계
  • 최민창 . . . . 2회 일치
         '''최민창'''([[1996년]] [[4월 16일]] ~ ) 은 [[KBO 리그]] [[LG 트윈스]]의 [[외야수]]이다.고교시 청소년대표, 타율 0.385 타격재능이 뛰어난 외야수
         ==[[LG 트윈스]] 시==
  • 최민호(유도선수) . . . . 2회 일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시그니처 기술로는 속칭 말아업어치기로 불리는 변형 업어치기가 유명하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Korean Seoi-nage, 혹은 Reverse Seoi-nage로 불리고 있다. 현역시의 영상을 보면 동체급대비 압도적인 힘으로 일단 말리기만 하면 넘어가는 호쾌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술.
  • 최성관 (1925년) . . . . 2회 일치
         * 봄 가을 그리고 잃어버린 계들 (1987년) - 신부
         * 대 사랑 (1994년) - 회장
  • 최연오 . . . . 2회 일치
         ==선수 시==
         ===[[한화 이글스]] 시===
  • 최희암 . . . . 2회 일치
         그는 [[전라북도]] [[무주군|무주]] 출생이며 졸업을 거쳐 [[연세대학교]]를 학사 학위하고 실업 팀 [[전주 KCC 이지스|현대전자]]에서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대학 시에는 동기생인 [[박수교]], [[신선우]] 등에 가려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고 실업 농구에서도 빛을 보지 못해 선수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대학 농구 감독과 프로 농구 감독 시 활약담을 수필집으로 집필하여 발표하였고 기업인으로도 변신하면서 전자랜드의 계열사인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지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지사 기업을 대한민국 법인 기업으로써 인수하여 2014년 현재 접봉 부회장으로 재직중이다.
  • 추경호 . . . . 2회 일치
         * "선택과 집중으로 녹색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의 효과성을 제고해야 한다. 녹색금융의 저변이 확대됐음에도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확신 부족에 따라 민간참여가 아직까지 소극적이다. 정부와 민간의 적한 역할배분이 중요하다.“(2012/09/21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2 글로벌 그린성장 포럼’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 국제경제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2회 일치
          * 쿠마다 하루타카 : 오카야마 번 5대 번주. 대대로 검약을 기풍으로 삼던 쿠마다 가에서 유독 풍류와 호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도를 넘는 사치는 하지 않는다. 막부의 검약정책을 지나치다고 여겨 우회적으로 비꼬곤 했기 때문에[* 사치를 막기 위해 은 제품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오자 일부러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 직후 금 제품 또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도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막부의 실력자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와 사이가 나쁘다. 여러가지 일화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속이 깊고 대범해서, 이 때문에 행렬 중간중간마다 과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려고 줄을 잇곤 한다. ~~전국시대 시이었다면 천하통일은 무리라도 관서 제패는 해냈을 것 같은 포스다~~
          * 쿠라치 마사노스케 : 큐사쿠(쿠라치 큐타로)의 부친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시하이'(御休息御庭之者支配. 오니와반슈의 우두머리 직책으로 '고큐소쿠오니와노모노'는 오니와반의 정식 명칭). 큐사쿠를 하루타카의 다이묘 행렬을 염탐할 밀정으로 추천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일 배제하고 오로지 밀정의 본연 임무를 중시하는 인물.
  • 츠키시마 케이 . . . . 2회 일치
         공부를 잘 한다. 부활동이 끝나고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츠키시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에? 싫어(...).' 히나타가 재차 부탁하자, '[wiki:"히나타 쇼요" 작은 쪽]에게만 부탁하게 했다니 비겁하네, 그 쪽의 [wiki:"카게야마 토비오" 큰 쪽].'이라며 카게야마에게도 부탁을 요구했다. 결국 카게야마에게는 엎드려 받기로 부탁을 받아 냈다. --공부르으을!! 가르쳐주세요 이 자식아아아!!!-- 이후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성격부터 안 맞다보니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콘도 마코토 . . . . 2회 일치
         1988년 "유방암은 제하지 않아도 나으며, 치료율은 같으므로, 마음대로 유방을 자르는 것은 외과의의 범죄행위가 아닌가."라는 논문을 월간 『문예춘추(文藝春秋)』에 기고.
         『암 같은 것에 요하는 사람, 진짜 암으로 장수하는 사람(「がん[[모도키|もどき]]」で早死にする人、「本物のがん」で長生きする人)』출판
  • 콩고(소설) . . . . 2회 일치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태였다.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반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 크루세이더즈 . . . . 2회 일치
          Freedom Fighters #7 (April 1, 1977)에서 첫등장. 제2차 세계대전 시에 지구1의 만화책에서 등장한 팀으로 이후 진짜로 등장. 오리지널 멤버들을 보면 마블의 인베이더즈가 모티브다. 비슷한 경우로 [[맥시멈즈]], [[챔피언스 오브 앵거]]가 있다.
          The Invaders #14 (March 1, 1977)에서 첫등장. 제2차 세계대전 시의 영국에서 활동한 팀이다. 코믹스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베이더즈]]와 대면.
  • 킹덤/499화 . . . . 2회 일치
          *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창평군과 왕전은 한가로워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자리엔 [[창문군]]을 비롯한 참모진이 전부 자리하고 있었는데, 창평군은 이들을 대포하는 입장이면서도 "업 공략이 전황 상 여의치 않으면 포기해도 좋다"는 발언을 한다. 업 공략이야 말로 작전의 진짜 목표이며 이것이 좌되었을 땐 진나라의 명운도 좌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언. 창문군은 그렇기 때문에 창평군의 발언에 내심 경악한다. 하지만 개억은 진짜 버리란 것이 아니라 그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며 그만큼 업공략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전장이라 그렇다고 이해한다.
  • 킹덤/505화 . . . . 2회 일치
          * 본래 산민족은 분열되어 서로 싸우기도 했으나 지금은 양단화가 사왕(死王)이란 이름으로 대적인 신뢰 속에 통솔하고 있다.
          * 한편 공성을 맞은 지휘관 이신, [[하료초]], 양단화를 만나고 있다. 양단화는 [[바지오]]와 [[타지후]]를 대동. 하료초는 왕전의 의중이 어떻든 진짜 자기들만으로 열미를 따낼 각오를 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하료초가 이틀안에 공성을 마치자고 하자 양단화는 반나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이신과 하료초를 놀라게 한다. 이신은 좋은 책략이라도 있는 거냐고 묻는데 그녀의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 킹덤/511화 . . . . 2회 일치
          이때 [[양단화]]가 둘을 진정시키며 다른 질문을 한다. 혹시 "열미성"에 대한 지시는 없었냐는 것. 부하들은 그 말에 그저 어리둥해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몽념이 그 이야기를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왕전이 없는 지금 이야기하는건 부적하지만, 진군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예정보다 많은 병력을 열미에 남긴 채로 왕도권에 진입하는 방법이다. 약하더라도 성은 성이니 충분한 병력이 있다면 수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만큼 왕도권 진입에는 병력 수가 적어지고 그 병력만 가지고 업을 공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합종군 같은건 필요도 없었을 테니 사실상 불가능한 걸로 봐야한다.
  • 킹덤/512화 . . . . 2회 일치
          [[창평군]]이 구상한 "열미를 교두보로 업을 친다"는 책략은 열미성 자체의 취약점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 이 같은 사실은 [[벽(킹덤)|벽]] 등 하급 지휘관들은 금시초문이었으나 이신, [[몽념]], [[왕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다. 하기야 하급 지휘관들은 이 작전의 진짜 목표를 아직가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어리둥하고 황당한 얼굴로 왕전의 교시를 듣는다.
          * 그리고 이 소식은 이목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지금 그는 조의 ""성에 있다. 태행산맥 산길에 숨겨진 작은 성이다. 북서로 왕도권 입구 "알여"까지 이틀거리였다.
  • 킹덤/517화 . . . . 2회 일치
          * 실제로 업으로 오는 병력 중 진군을 저지할 전력은 "알여"성과 "요양"성에서 오는 두 군대 뿐. 이들만 미리 요격하면 업공략은 저로 이루어진다.
          * 조왕 [[도양왕]]은 먼 길을 달려온 [[이목(킹덤)|이목]]을 노골적으로 홀대한다. 그는 미소녀 시동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목을 "변명의 달인"이라 비꼰다. 조나라가 처한 작금의 사태는 전부 이목이 야기했다는 논리인데, 이목은 주군에 맞서기 보다는 "처벌은 언제든 받을 테지만 우선 진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논리로 조나라의 정예 한단군을 출격시켜 달라 요청한다. 그러나 도양왕의 대답은 [[호주(킹덥)|호주]]에게 그랬듯 단호한 거.
  • 킹덤/534화 . . . . 2회 일치
          * 몽념도 마정의 본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마정군의 위치는 진군 본진 바로 앞. 마광군의 장수들은 원군을 보내 중앙의 방비가 줄면 마정이 들이닥칠 거라 우려한다. 그러나 [[하료초]]는 몽념이 처음부터 그 점을 인지하고 있을 뿐더러 "대로 마정이 오지 않는다"고 계산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또 그녀는 낙화대 본대가 이쪽에 합류하지 않은 것도 눈치채고 좌측에 숨겨져 있으리라 짐작한다. 몽념은 거기까지 읽어낸 하료초에 감탄하지만 오히려 하료초야 말로 몽념의 역량에 감탄하고 있다. 그의 전술안도 대단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마광군을 장악한 것은 무섭기까지 하다,
          명색히 몽념과 대장군 자리를 겨루는 입장이면서 여전히 몽념의 전술안을 따라가지 못한다. 비신대를 이끌고 진군 우측을 점거한 건 좋았지만 몽념이 내린 지시를 이해 못 해 마정이 처들어왔을 땐 일기토까지 할 작정이었다. 다행히 강외가 작전을 잘 설명해준 덕에 적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후반에 힘겨루기 국면으로 넘어가자 잘 버텼다. 몽념이 기수 본대와 격돌하고 의식을 잃었을 무렵에도 잘 싸우고 있었고 조군이 물러날 때까지 제대로 전선을 지켜냈다. 몽념이 쓰러져 있는걸 발견해 데리고 왔다.
  • 토리코/359화 . . . . 2회 일치
          * 돈 슬라임은 네오를 두들겨 패면서 이치류 안에 있던 시을 회상한다
          * 하지만 이치류는 미도라에게 당하는 순간까지도 '''돈 슬라임의 힘은 일 빌리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투쟁'''을 고집했다. 그런 이치류를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며 분노하지만 '''아사루디의 신체는 조금씩 한계가 오고 있다'''
  • 토리코/372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토리코가 말한 꿈을 개소리라고 비웃고 "승리의 함성과 망의 비명은 냄새가 나는 곳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그를 백채널 하드로 끌어 들인다.
         * 마지막으로 네오의 맛과 향을 맡아두라고 하며 "몇 초 뒤에 넌 망 속에 죽는다"고 단언한다.
  • 토리코/385화 . . . . 2회 일치
          * 항상 친과 배려를 그를 대하던 플로제의 얼굴. 그 "미소"다.
          * 미도라가 유일하게 갈망하는 것은 플로제의 요리. 그녀가 죽고 그 갈망을 충족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좌했고 끝없는 공복을 느끼며 고통에 시달렸다.
  • 토리코/386화 . . . . 2회 일치
          * 머나먼 땅으로 갈 자신이 이런 하찮은 별에서 죽을 리 없다고 규하는데, 토리코는 지구는 작지만 이 별의 식욕은 죠아의 예상보다 훨씬 컸던 거라고 일침한다.
          * 규하는 토리코.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2회 일치
          * 본편에서는 한 계이 한 턴이었지만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는 한 개월이 한 턴이다. 적 성을 포위하다가 겨울이 오면 3턴 연속으로 병력 소모를 겪어야 한다. 이외에 각 계마다 이벤트와 효과가 추가되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2회 일치
          * 복어 요리사 - "용감한 자는 복어를 먹을 때 위험에 대해 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호위무사가 쓰러져도…."
          * 조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2회 일치
         >행동에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 몸이 저로 익히게 될 것이다.
         >부는 대 불명예스럽지 않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2회 일치
         >확고한 방어 없이, 공격만으론 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결정적인 공격 없이, 방어만으론 대 승리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2회 일치
          * 은밀성(Stealthy) - "기습하는 건 대 불명예스러운 것이 아니다."
          * 명나라 사 - "영주님, 공자께선 많은 말을 하셨습니다."
  • 페어리 테일/484화 . . . . 2회 일치
          * 그녀는 아이린 외엔 오거스트를 이길 마법사는 없으며 "아이린은 망, 오거스트는 재앙이라 불리는 쌍벽"이었다고 설명한다.
          * 그것은 바로 아이린의 마법. 일대의 기후를 조해 꽃이 피고 녹음이 짙은 땅으로 바꿔 버린다.
  • 페어리 테일/486화 . . . . 2회 일치
          * 한편 오거스트를 만나러 가는 나츠 일행은 브랜디쉬의 능력으로 신체부위를 조하며 놀고 있다.
          * 의외로 "귀여운 별명이 좋다"면서 "비색의 망"같은 별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02화 . . . . 2회 일치
          * 길드 앞에 생긴 깎아내지는 듯한 벽을 아슬아슬하게 내려가고 있다.
          * 하지만 벽을 내려가더라고 일행과 합류하려면 적진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 메이비스 조차 뾰족한 방법은 없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2회 일치
          * 마카로프 드레아는 "여기까지인가"라고 중얼거리는데 엘자는 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 마카로프여도 이만한 대군을 상대로 쓰면 대 무사할 수 없다고 하는데.
  • 페어리 테일/507화 . . . . 2회 일치
          * 그때 그레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쥬비아 록서가 웬디 마벨과 샤를의 부축을 받으며 그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쥬비아는 자신은 무사하다고 알리는데 샤를이 "무사하다고 할 만한 상처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작은 상처는 아니다. 어쨌든 생명엔 지장이 없이 돌아온 쥬비아. 그레이는 놀란 탓인지 안심한 탓인지 그대로 무릎이 풀리며 정신을 잃는다. 쥬비아는 급하게 달려와 스러지는 그레이를 붙드는데 역시 몸상태가 나빠서 그런지 함께 기해 버린다.
          *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시 공격을 감행한다. 코브라가 오거스트의 마음을 읽는데 오거스트도 똑같이 코브라의 마음을 읽는다. 공격은 해보지도 못하고 지팡이에 맞고 날아가는 코브라. 완전히 리타이어한 듯 했던 레이서도 다시 한 번 스피드를 살려 접근해 보는데 오거스트는 "느리다" 한 마디로 일축하며 기시킨다. 미드나잇은 "스파이럴 페인"이란 기술로 오거스트 주변의 땅으로 옭아매는데, 그는 "재미있는 마법이지만 나도 습득한 것"이라며 그들이 있는 일대를 회전시켜서 반격한다. 꼼짝도 못하고 당하는 일행. 제라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2회 일치
          * 렉터와 프로시는 동료를 생각해 공복감에 저항한다. 스팅은 그걸 계기로 식욕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 못하게 기시킨다.
          * 그 말이 계기가 돼서 스팅과 렉터가 정신을 차린다. 렉터도 식욕을 참으며 스팅에게 희생하겠다고 하자 스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제외한 동료들을 기시킨다. 이걸로 서로 해치지는 못하게 됐지만 남은 스팅은 극심한 공복감에 체력저하까지 겹쳐서 힘이 남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2회 일치
          * 비색의 망, 최강의 여마도사 [[아이린 베르세리온]]이 마침내 쓰러졌다. 악마같아 보였던 그녀도 결국 모성애를 끊어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엘자 스칼렛]]이 그녀를 보는 표정은 복잡하다. 그녀는 쓰러진 채로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넨다.
          * 갑자기 일어난 나츠. 맨몸으로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있던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가 화들짝 놀란다. 나츠는 자다 깬 사람처럼 멀쩡하다. 루시와 해피가 기뻐서 얼싸안는데 나츠는 어리둥하게 방 안을 둘러 보다 루시한테 왜 벗고 있냐고 묻는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시간의 틈새에 있는 나츠는 명의 위기다. 멸룡마도사들이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향해 무수한 공격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내지 못했다. 이미 [[가질 레드폭스]], [[렉서스 드레아]], [[웬디 마벨]],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는 의식을 잃은 상태. 나츠가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으나 심하게 피를 흘린다. 아크놀로기아는 몹시 만족해한다. 그가 바라던 광경이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2회 일치
          * 무엇이 부족했을까? 마법을 발동시킨 루시는 직감적으로 마력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길드의 힘을 모두 합친 것만으론 마룡에게 중과부적이다. 망이 엄습하려
          * 자신의 육신이 페어리 스피어에 갖혀 규할 때, 정신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폭주를 거듭했다. 끝없는 파괴의 갈망. 더 많은 힘을,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폭주였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2회 일치
         >보안 기록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기물파손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쇼핑몰에 입주해 있던 가게들은 도의 피해보다는 기물파손의 피해를 더 많이 입었다.
         >내 매형 있지, 그 쓸모없는 쓰레기놈 말이야. 그놈이 눈을 운반해주기로 했어. 알잖아. 콜롬비아산 눈, 크리스마스에 쓸 것. 그런데 뒤에 경찰이 따라붙어서 좆되었지. 놈은 미드타운 쇼핑몰로 도망쳤지만 경찰이 놈을 잡은 것 같아. 좆같은 미국 짭새들, 이 나라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는 쥐뿔도 없어! 난 친한 사람이야. 크리스마스는 용서의 날이지. 하지만 이건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다고! 친구들, 날 도와줘야겠어.
  • 프랑켄슈타인(마블 코믹스) . . . . 2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첫등장의 경우 60년대급인 상당히 오래된 캐릭터. 코믹 바인에 기재된 정보에 의하면 The X-Men #40(January 1, 1968), 위키피디아에는 아틀라스 코믹스 시이 Menace #7(Sept. 1953), 마블 코믹스 시이 The Silver Surfer #7(Aug. 1969)다.
  • 하이큐/210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는 여전히 홀로 연습하고 있는데 중학시 뒤쳐져 있던 트라우마를 회상하며 "멈춰서면 안 돼"라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 츠키시마는 속이 시원할 때까지 독설을 퍼붓고 히나타는 좌해 도망친다.
  • 하이큐/212화 . . . . 2회 일치
          * 그러던 중 노야 선배의 리시브를 보고 중학시의 경험과 합쳐 "스플릿 스탭"이란 새로운 스킬을 익히는데 성공한다.
          * 히나타는 중학시 테니스부 친구의 부활동을 도우면서 테니스의 기본 테크닉을 배운걸 상기한다.
  • 하이큐/219화 . . . . 2회 일치
          * 그제서야 히나타는 중학 시 의도적으로 스파이크를 때리지 않았던 일을 떠올린다.
          * 듣고 있던 감독은 "높이 라는 것에 대한 굶주림"을 언급하며 의식하든 안 하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하이큐/224화 . . . . 2회 일치
          * 동료 선수에게 폭언을 늘어놓다가 중학교 시을 떠올리고 의기소침해진다.
          * 그 순간 중학교 시을 떠올리고 마는 카게야마. 트라우마 스위치가 켜진다.
  • 하이큐/229화 . . . . 2회 일치
          * 한편 설날에도 런닝을 빼먹지 않는 카게야마 토비오는 히나타 쇼요에게 신사 참배 가지 않겠냐고 문자를 받지만 단호히 거한다. 부원들은 각자 집에서 설날을 보내고 있다. 히나타는 야마구치 타다시랑 참배하러 가는 길에 카게야마한테도 물어본 거지만 단호한 거에 짜증을 낸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누나가 주정을 부려서 곤란해하고 있다. 니시노야 유는 전통놀이로 여념이 없다. 츠키시마 케이는 형이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혼자 노느라 신경도 쓰지 않는다.
  • 한규복 (1881년) . . . . 2회 일치
         [[1935년]] [[2월 6일]]에는 [[경성부]]에서 [[윤치호]] 등이 조직한 [[계명구락부]][[재단]](啓明俱樂部財團) 위원의 한 사람에 위촉되었다.<ref>"啓明俱樂部財團組織 十萬圓으로 會館新築", 동아일보 1935년 02월 06일자 2면, 사회면</ref> [[1930년]]대 중반 이후 그는 각종 계몽, 강연회를 다니면서 근검 약의 필요성, 불필요한 사치품과 물건 강매, 사재기 등을 하지 말 것, 저축을 하여 가사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것, 도박과 노름, 사행성 복권 등 헛된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여 대가를 취할 것을 강조하였다.
         [[지원병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일부 친일 유지층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제기되었다. 먼저 [[박춘금]](朴春琴)이 [[대의사]](代議士)가 된 후 일본국회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 그후 친일인사들에 의해 여러 번 건의되었다. [[1936년]] [[11월 24일]] 경성부회의원 조병상(曺秉相), 중추원참의인 한규복 등이 중심이 되어 30여 명의 간담회를 열어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키 위해 위원 8명으로 기성회를 구성하고 [[1937년]] 발회식(發會式)을 가질 예정이었다.<ref name="jiji"/>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이 문제가 [[참정권]]하고도 관계가 있다 하여 일단 중지시켰다.<ref name="jiji"/> 이후에도 그는 [[조선총독부]]에 참정권 허용을 요청하였지만 거당한다.
  • 한동욱 . . . . 2회 일치
         2009년 5월 1일, [[스타리그#박카스 스타리그 2009|박카스 스타리그 2009]] 오프라인 예선에 참가한 한동욱은 박재영([[KT 롤스터]]), 공민창([[MBC게임 히어로]]) 등을 꺾고 36강에 진출, [[EVER 스타리그 2008]] 이후 3시즌만에 스타리그 본선에 복귀 하였지만,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에게 2:0으로 져서 16강 진출은 결국 좌되고 말았다.
         * [[2009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 (16강 진출 좌)
  • 한방의학 . . . . 2회 일치
         [[일본]]에는 [[금나라]], [[원나라]] 시기에 정립된 금원의학(金元医学)이 전래되었는데, 이러한 의학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부른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 국학 부흥과 복고 열풍이 불어,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락(金匱要略)』을 중시한 고방(古方)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양자를 충하겠다는 충파, 더욱 고문헌의 고증에 중점을 두겠다는 고증파가 나타난다.
  • 한승원 (만화가) . . . . 2회 일치
         '''한승원'''(1958년 6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만화가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남편은 만화가 [[김동화 (만화가)|김동화]]이다. 김동화와 함께 작업하다가 1981년 〈다섯 번째 계〉로 데뷔하였다.
         | 《다섯번째의 계》 || || 1981년 ?<br />1994년 북토피아 단권 || 데뷔작
  • 허드슨 대학교 . . . . 2회 일치
          * 왜 너는 '''대로''' 뉴욕의 허드슨 대학에 가면안되는가 http://www.scoutingny.com/why-you-should-never-ever-go-to-new-york-citys-hudson-university/
         하도 자주 등장하다보니까 허드슨 대학은 로 앤 오드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명 높은 장소로 찍혔다. 심지어 제작진도 이걸 알고 있어서, 프로듀서가 "당신이 대로 배우거나 가르치러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엄청나게 높은 범죄율(It is the one place you never want to go to school or teach at. Very high crime rate.)"라고 발언했을 정도.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2회 일치
         이는 지배계층인 [[사대부]] 계급은 '예의범'로서 스스로 윤리적 강령과 사회 질서를 지켜야 하며, 피지배계층인 서인 계급은 '형벌'로서 그 행동을 제약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가 정치에 대한 유교의 윤리적 요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불평등'이며, 지배 계층의 '[[명예]]'와 '위신', 어떤 의미에서는 [[인권]]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예기가 쓰여진 [[춘추전국시대]]의 형벌은 신체 부위를 단하거나 훼손시키는 잔인한 형벌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러한 형벌은 당연히 인간에게 커다란 치욕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홍국영 . . . . 2회 일치
         '''홍국영'''(洪國榮, [[1748년]] ~ [[1781년]] [[4월 28일]]([[음력 4월 5일]])<ref>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4월 5일 세 번째 기사</ref>)은 [[조선]] 영조,정조대의 [[세도]] 정치가.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豊山)이며, [[자 (이름)|자]]는 덕로(德老)이다. 세손궁의 궁료(宮僚) 시 때부터 [[조선 정조|정조]](正祖)의 총애를 얻고, 정조 즉위 후 부홍파(扶洪派)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세간에는 흔히 권력을 잡은 후 세도를 부리다가 축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축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 동궁 궁료 시 ==
  • 홍병주 . . . . 2회 일치
         홍병주 [[홍영주]] 형제는 9월에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형리들은 그 형제에게 동료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할 것과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형제는 결코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형조 [[판서]]가 그들의 친척이었다. 그는 그들을 직접 [[고문]]하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을 시켜 형제가 배교하도록 극심히 고문케 하였다. [[도둑|도범]]과 [[살인자|살인범]] 등의 다른 수감자들도 형리들을 따라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를 구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대 꺾이지 않았다.
  • 홍인한 . . . . 2회 일치
         아들인 동지돈령부사 [[홍낙윤]](洪樂倫)이 아버지 홍인한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거당하였다. [[1809년]] [[1월]]에는 [[조선 순조|순조]]를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들어 변호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1832년]]에는 손자 홍백영(洪百榮)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격쟁하였지만 거당하였다. 이때 홍백영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순조가 무마시켰다.
  • 홍정우 . . . . 2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경찰 야구단]] 시==
  • 홍지운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시==
         ==[[NC 다이노스]] 시==
  • 홍화리 . . . . 2회 일치
         * 2014년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 ... 강동주 역
         * 2014년 [[KBS 연기대상]] 청소년 연기상《[[참 좋은 시]]》
  • 화완옹주 . . . . 2회 일치
         정조 즉위 후 양자 정후겸이 세손시부터 정조를 제거하려 하여, 그는 정후겸과 함께 이른바 "《명의록》의 의리"에 반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몰락하였다. 양자 정후겸은 사사당하고 그는 옹주의 호를 삭탈당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정치달의 처(정처)'라고 불리게 된다.
         순조실록에는 1808년 5월 17일 삼사에서 올린 글에서 정치달의 처가 죽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구이 나온다. 즉 옹주의 사망일은 그 이전으로 사료되나 정확한 몰일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왕가의 전통상 졸기가 없고 무덤이 경기도 파주 유배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보아 죽을 당시 죄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완옹주 및 정치달 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2회 일치
          * 시마네 현 : 화장실의 하나코 씨가 놀자고 부를 때, 거하면 쫓기게 된다.
          * 효고 현 : 여자 화장실 1번째 칸에 하나코 씨의 아버지--아버지 왜--, 2번째 칸에는 어머니, 3번째 칸에는 하나코 씨, 4번째 칸에는 여동생, 5번째 칸에는 남동생이 있으며, 남자 화장실 2번째 칸에는 할아버지가 있고--할아버지만 왜--, 이 유령들에게 말을 걸면 "우리 하나코에게 무슨 용무냐?"라고 말한다.--친함--
  • 황보관 . . . . 2회 일치
         |포지션=은퇴 (선수 시 [[공격형 미드필더]])
         * [http://www.kfa.or.kr/news/news_view.asp?tb_name=interview_gisa&g_idx=895 나의 선수 시 - 황보관, 한국축구 최고의 캐논슈터]
  • 황연석 . . . . 2회 일치
         |포지션=코치 (선수 시 [[공격수]])
         '''황연석'''([[1973년]] [[8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며 현재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다. 현재 [[대전 시티즌]] 2군 코치이다. 선수 시 장신의 키를 이용한 고공 플레이에 능하였으며 후반전에 투입되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특급 조커'로 이름을 날렸다.
  • 황인숙 . . . . 2회 일치
         * 《슬픔이 나를 깨운다》<br/>얼마 전인가, 내 머리에 떠오른 문장이 산문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즈음은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전에는 무슨 문장이 떠오르면 당연히, 저로 싯귀로서였는데.<br/>좀 정나미가 떨어지고 충격적인 일이다.<br/>나의 리듬은 어디로 가버렸는가?<br/>그것을 찾는 것이 내 당면 과제다.
         * 《리스본行 야간열차》<br/>문득 궁금하다.<br/>내 속에 아직 시의 씨앗이라는 게 살아 있어,<br/>촉촉이 비 내린 뒤 햇빛 쏟아지는 날들엔 발아할까.<br/>아니면 이미 모래알처럼 굳어버린 걸까. 다른 이들도,<br/>근면해야 시를 거두는 걸까, 아니면 로 풍요로운<br/>시의 정원을 홀홀히 거니는 시인도 있는 걸까.<br/>또 궁금하다.<br/>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졸린데 꾹 참고 일어나곤 하는 걸까,<br/>아니면 늘 나만큼 졸립진 않은 걸까.
  • 황재규 . . . . 2회 일치
         ==아마추어 시==
         ==[[한화 이글스]] 시==
  • 황정립 . . . . 2회 일치
         ==[[KIA 타이거즈]] 시==
         ==[[파주 챌린저스]] 시==
  • 황치열 . . . . 2회 일치
         === 가수 "치열" 시===
         * 2013년 우여곡 끝에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8년 만에 해지하고, 2014년 '치열Ten2'라는 이름으로 싱글곡 '경상도 남자'를 발매하며 특유의 위트가 담긴 뮤직비디오를 자체 제작하여 발표.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피해자의 아버지 키타카와 요우지(洋二)는 2월 29일, 후쿠오카 현경을 통하여 "가족에게 보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매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코멘트를 했다. 딸에 대하여 "어린 시부터 너무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고 참을성 많은 딸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솔선하여 공부나 스포츠에 남다른 노력가였습니다. 고집도 부리지 않고 부모와 형제를 소중하게 하는 상냥한 딸이었습니다."라고 자필로 코멘트 하였다.
  • 휴먼 토치 . . . . 2회 일치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 흥친왕 . . . . 2회 일치
         [[1902년]] [[일본]]에 망명중인 장남 [[이준용]]으로부터 생활비 지원요청을 받자 그는 임정규를 통해 충분하지 못한 액수의 생활비를 지원하였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1p</ref> [[1907년]]까지 이재면은 별다른 관직도 직업도 없이 생계가 곤란하였다. 하지만 이준용은 망명지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아버지 이재면을 내심 원망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재면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여 왕족으로 예우함과 동시에 그를 회유하려 하였다. 1907년 그는 동생 고종으로부터 대훈이화장(大勳李花章), 서성장(瑞星章)을 받았고, [[1907년]] [[11월 27일]] [[대한제국]] [[육군]] 부장(副將)에 임명됐다. 이어 일본에 보내는 특별보빙사단에 임명되고, 아들 [[이준용]]은 육군 참장에 임명되어 수행원이 되었다. 그해 11월 보빙사단 과 수행원 [[이준용]], [[이달용]] 등을 대동하고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 히나타 쇼요 . . . . 2회 일치
         초등학교 시,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1회 일치
         다리 아래의 지하 공사현장에서 작업 직전에 튀어나온 철근을 단하는 철근 용단작업을 하던 도중에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ATM . . . . 1회 일치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상당히 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식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 Crusader Kings 2 . . . . 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제작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중세]]의 수많은 [[영주]]들중 하나를 골라 그 영주가 속한 [[가문]]의 번영을 위해 플레이하는것이 목표다.[* 반대로 말하면 영지를 가진 가문원이 없거나 단되버리면 게임오버다. 주의.]
  • DQN . . . . 1회 일치
          * 어린 시에 약한 사람을 [[집단괴롭힘]]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회 일치
         실제 역사를 따라가려고 할 경우 일본의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 디시전 발동→"난징 대학살", "파나이 사건" 이벤트→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 발동→일본의 "진주만 공습" 디시전 발동과 같은 차를 걸쳐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보통 이렇게 되면 똑같이 일본에게 선전포고 당한 연합군 세력이 동맹에 초대한다.
  • GLA . . . . 1회 일치
          탑승한 보병에 따라 무장이 변화하는 바이크. 벽을 오를내릴 수 있으며 탑승한 유닛이 정 필요하다면 바이크를 버려서 빼낼수도 있다.
  • IsbnMap . . . . 1회 일치
         알라딘 같은 경우 품이나 재발매 등으로 ISBN이 새로 배정됐을 때, 그림은 예전 껄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자파가 역전골을 넣으며 대구는 급격히 무너졌고, 수원FC는 특유의 적한 반칙으로 대구의 흐름을 끊는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날 나온 총 반칙수는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 48개였고, 이 중 31개가 수원FC가 저지른 반칙이었다. 오프사이드까지 포함하면 총 50개가 넘는 반칙수를 기록한 경기였다.
  • K리그 클래식 . . . . 1회 일치
         K리그는 [[수퍼리그]] 시부터 승강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승강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팀이 창설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것이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약간의 축구붐이 조성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업팀의 프로화를 통한 K리그 참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상황.
  • M25 최루탄 . . . . 1회 일치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2/005000000200402251314514.html|전투경찰 출신자가 전경시 훔쳤던 KM25를 나이트클럽에서 터뜨린 사건이 있다.]]
  • MoniWikiACL . . . . 1회 일치
         앞의 설명은 priority가 같은 경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었다. 그룹의 priority를 두었을 때는 어떻게 적용될까?
  • NII 스탈리 . . . . 1회 일치
         소련 시인 1942년 5월, 전차 장갑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That 70's show . . . . 1회 일치
         [[미국]]의 [[시트콤]]. 1998년에서 2006년 까지 방송했다. 미국 FOX 채널에서 방송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요복통 70쇼 등으로 케이블 TV 등에서 방송됐다. 1970년대, [[위스콘신]] 주의 포인트 플레이스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회 일치
          공화당 정치인. 전쟁 영웅. 뉴욕 주지사 시 기업을 엿먹이는 법안을 내놓는 반 독점론자였다. 이에 기업가들은 잉여로운 자리인 부통령에 앉혀 무력화시켰으나 대통령이었던 매킨리가 무정부주의자에게 총맞고 죽으며 대통령으로 승격. 반 트러스트 법안으로 기업가들을 엿먹인다.
  • The Tyger . . . . 1회 일치
         묘하게 중2력이 어서 그런지 인용되는 곳이 많다.
  • USS 피닉스 (CL-46) . . . . 1회 일치
         영국의 ~~찌라시~~황색 언론 [[더 선]]은 헤네랄 벨그라노의 피격 사실을 전할때 1면 헤드라인에 "'''잡았다!''': 우리 친구들이 포함을 격침시키고 순양함을 구멍냄"[* GOTCHA!: Our lads sink gunboat and hole cruiser]라고 쓰는 패기를 보였다. 이외에도 더 선은 포클랜드 전쟁 동안 "'''뒈져라 군사정부놈들'''"[* STICK IT UP YOUR JUNTA] 등의 부적한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 Victoria II/정당 . . . . 1회 일치
          상징색은 파랑색. 현재 상황에 만족하며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 행복할 경우 대로 개혁을 지지하지 않지만 POP의 투쟁성이 높을 경우 분열되어서 일부는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반동과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게임 내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이 이 성향으로 나온다.
  • head to head . . . . 1회 일치
         헤드 투 헤드를 통한 순위결정은 다음과 같은 차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 가상 메모리 . . . . 1회 일치
         가상 메모리 기능이 없는 OS는 메인 메모리를 그대로 물리적 어드레스에 따라서 액세스(읽고 쓰기)를 지원한다. 그래서 실제 존재하는 메모리 이상의 프로그램은 대로 돌릴 수 없다. 실제로 DOS에서 메모리가 모자라면 일단 프로그램이 안 올라간다. 게다가 이게 좀 [[복불복]]스러워서 최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는데 잠깐 실행되다가 OS자체가 다운된다.
  • 강구열 . . . . 1회 일치
         곰TV MSL 시즌2 C조 예선에서 김창희만 두 번 꺾고 16강에 오른 강구열은 '퍼펙트 테란' [[서지훈]](CJ 엔투스)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초에 김창희와의 대결로 화제를 낳긴 했으나, 기량면에선 약체에 속한다고 평가받던 강구열이었기에 그 파장은 엄청났다. 8강전 상대는 당시 대 테란전 최고 승률을 자랑하던 송병구([[삼성전자 칸]]). 팬들은 송병구의 대 우세를 예측하면서도, 16강에서 일으킨 강구열의 파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 강예빈 . . . . 1회 일치
         * 《대남자》 (2011년, XTM)
  • 강지섭 . . . . 1회 일치
         * 경기부천사계셀프주유소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2화 . . . . 1회 일치
         * 키리에는 거 당할 거 같다고 하지만 우마루는 키리에의 장점을 말해주며 꼭 같이 가줄 거라고 말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1화 . . . . 1회 일치
          * 사회초년생 시엔 골든위키를 즐거워했는데, 어느새부터 무감각하게 뒹굴거리게 됐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2화 . . . . 1회 일치
          * 바로 그때 봄바가 암흑전골을 하자며 불을 꺼버리고 키리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규한다.--노답 봄바--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4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는 게임센터에 가자고 하는데, 우마루는 오빠 취향이 아니라며 거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1회 일치
          * 봄바는 노인이 되어 있고 최종보스는 거대 인조인간, 융해로에서 싸운다던가 하는 표스러운 세계관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1회 일치
          * 이번엔 가지고 싶은 선물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되 너무 노골적으로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적한 멘트를 만들려고 고민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1회 일치
          * 봄바는 자기도 밤샘한 적이 있다며 심야 라디오를 듣던 시 이야기를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1화 . . . . 1회 일치
          * 신나하던 실핀은 곧 침울한 표정을 짓는데 사실 그 시엔 "오빠와 놀았다"기 보단 "오빠가 게임하는걸 보고 있었다" 정도로 오빠와 접점이 적었기 때문.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1회 일치
         떠그타운은 이미 좀비들의 소굴이 되어있었다. 좀비들을 해치우며 가던 카놀리는 좀비들에게 포위당한 생존자를 구하게 된다. 떠그타운에서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던 그 생존자는 카놀리에게 떠그타운의 반을 지배하던 보니노 마피아들이 프랭키를 잡아갔다고 알려준다.
  • 경순왕 . . . . 1회 일치
         [[대한제국]] 시 그려져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산 107-1 경천묘에 봉안중인 '경순왕 어진'은 [[2008년]]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로 지정되었다.<ref>[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829 경천묘 ‘경순왕 어진’- 경남도유형문화재 지정] 경남매일 2008년 12월 08일</ref>
  • 고산케 . . . . 1회 일치
         고산케의 조상은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쇼군]]의 지위를 계승한 본가와는 별도로 세개의 번에 따로따로 봉해져서 각자 [[다이묘]](대영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산케는 도쿠가와 본가의 혈통이 단되면 본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혈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8대에서 14대 까지는 키슈 도쿠가와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 고세원 . . . . 1회 일치
         * [[2018년]]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 젊은시 이회장 역 (카메오)
  • 고스트 패트롤 . . . . 1회 일치
         [[프랑스]] 외인부터 시 상관으로부터 프랑스가 통제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기술자 헨리로부터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일단은 참여했는데 주민들을 죽이길 원치 않았던 셋은 안전한 곳에 투하했다. 문제는 헨리가 주민들을 지키려고 셋의 전투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것으로 결국 셋은 사망해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3인은 [[유령]]이 되어 있었고, 이를 나치와 싸울 두번째 기회라 생각했다. 이후 고스트 패트롤이 된 삼인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했다.
  • 고원희 . . . . 1회 일치
         * 2012년 《[[미확인 동영상: 대클릭금지]]》
  • 고인범 . . . . 1회 일치
          * 2014년 KBS 2TV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 - 오치수
  • 곤조야키 . . . . 1회 일치
         1980년대 무렵부터, 지역에 따라서는 다르지만, 대체로 곤조야키는 감소하고 있다. 일설에는 불량배의 상하관계가 약화되어, 보스의 권위나 대성이 없어졌기 때문에 감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 골든 위크 . . . . 1회 일치
         이 시기에 4월 29일 쇼와의 날(昭和の日), 5월 3일 헌법기념일, 5월 4일 녹색의 날(みどりの日, 식목일과 비슷), 5월 5일 어린이 날, 여기에 더해서 5월 1일 노동이 있으며, 이 사이에 끼인 휴일이나 일요일이 겹친 대체휴일 등이 있어서 대략 1주일 정도의 연휴가 된다.
  • 공명(배우) . . . . 1회 일치
          * [[https://www.youtube.com/watch?v=rRguYFhrNEk|CF - 메디힐 # 새근새근 편]] [[https://www.youtube.com/watch?v=rImnOCIG6o0|# 푸석푸석 편]] [[https://www.youtube.com/watch?v=TpPHRiVvLPU|# 쓰담쓰담 편]] [[https://www.youtube.com/watch?v=bSTrRtVrQg4|# 우아 편]] [[https://www.youtube.com/watch?v=MpSsp77MCK0|# 내눈엔 너만보여 편]] [[https://www.youtube.com/watch?v=w6gJysNM93s|# 가을인가봐 공원 편]] [[https://www.youtube.com/watch?v=xz9QBEP4hvc|# 그 계은 길어 공방 편]] [[https://www.youtube.com/watch?v=rd6dUbxv_A4|# 찬바람 나빠요 남자집 편]] [[https://www.youtube.com/watch?v=LUxZqh7hOPU|# 세번만에 편]] [[https://www.youtube.com/watch?v=B3Me8fbnsrs|# 촉촉촉 편]] (with [[지우(배우)|지우]])
  • 광주 FC . . . . 1회 일치
         일단 종합운동장으로 활용하는 건, 사용처를 바꾸기 위해 또 추가로 목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안건은 사실상 폐기가 되고, 프로축구단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가장 유력했던 방법은 경기장을 짓기 위해 당시 금호건설을 포함한 지역기업에 축구단 창단을 종용하는 일이었으나 이 역시 1년 운영비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게 되어 전남 드래곤즈를 광주에 공동연고지로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까지도 최종적으로 좌된다.
  • 광해군 . . . . 1회 일치
         다만 세자 시에 겪었던 전쟁 때문에 PTSD가 걸렸는지 지나치게 많은 궁궐과 성을 쌓아 국고를 탕진시키기도 했으며, 이는 민생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고 현대 연구자들 역시 비판하는 요소이다. 왕권을 강화하는 방도로 한번 반역음모가 생기면 관계자들을 지나치게 국문하기도 했다.
  • 구천서 (야구인) . . . . 1회 일치
         구천서는 1981년 대통령배 실업 연맹전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쌍둥이 동생 [[구재서]]와 함께 1981년부터 상업은행에서 활약했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동생과 함께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선수 시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 국가원수 . . . . 1회 일치
         의원내각제 국가의 의례적인 국가원수는, 총리나 내각 각료에 대한 임명권[* 사실상 의회의 선출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형식적.], 외국 사에 대한 신임장 및 소환장을 발행, 접수 등의 의례를 실시한다.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권영진'''(權寧珍, [[1984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대구고등학교]] 시까지만 해도 팀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으나 [[연세대학교]] 입학 후 [[내야수]]겸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연세대학교]] 마운드가 아닌 중심타선에서 맹활약하였다.
  • 기간트 . . . . 1회 일치
         그러나 대단한 스펙과는 달리 안습한 처지에 놓인지라 반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추락한다.
  • 기동전사 건담 . . . . 1회 일치
         마징가Z가 이미 10가지 이상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콤바트라 V 같은 것은 수십종류 이상으로 무기 만으로도 도감을 차릴 수 있을 정도. 이러한 로봇물에서 후반 20여분 대의 핵심 전투씬은 매화마다 적한 무기 뱅크씬을 돌려쓰고, 무기가 적당히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사를 외치다가, 최종적으로 필살기로 마무리 하는 형식이었으며, 때때로 '신무기 추가'라는 이벤트로서 뱅크씬을 교체했다.
  • 길용우 . . . . 1회 일치
         [[삼국시대]]의 마지막 왕 역을 두 번 연기하였다. 그리하여 [[사극]]에서는 마지막 왕 이미지가 강하다. 1992년 [[KBS 2TV]] [[삼국기]]에서는 [[백제]]의 [[의자왕]]을, 2007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고구려]]의 [[보장왕]]을 연기하였다. [[해신(드라마)|해신]]에서도 [[신무왕]]을 맡았던지라 삼국시대의 왕을 전부 연기해본 경력이 있다. --[[우리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삼국 중에 중 웬 스파이가 존재하는 듯 한 기분탓을 그만 넘겨줄까 했었는데(…)]] 역시 [[통일신라|통신 시 때의]] [[신무왕|그 어떤 누구를]] 이대로 흐지부지 넘겨가줘선 결코 아니될 듯 싶다; 현재와 미래에 아이들의 역사지식을 위해서라도(…)--
  • 김가은(1989년 5월) . . . . 1회 일치
         [include(틀:표, version=1~50, source=한국어 위키백과)]
  • 김갑수(배우) . . . . 1회 일치
         이번엔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드라마)|즐거운 나의 집]]에 출연, 출연 1분 20초[* 그것도 1회 방송의 2분 54초부터], 극 시작 3분만에 죽음을 맞이하여 6번째 사망 및 최단기간 사망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ㅎㄷㄷ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김갑수씨 본인은 "죽음이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화면 상에서는 금방 사라져 버리지만 중요한 역할이어서 거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극 중 [[회상]]신을 통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나왔던 장면을 다시 트는 회상 씬에 나와도 출연료는 지급된다. 심지어 [[영정]] 사진으로 나와도 준다. 물론 직접 나오는 것에 비하면 일정 비율로 깎고 주지만. ~~안 찍고도 돈은 받으니 배우 입장에선 좋다고 해야 하나?~~]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4,5R에서 연패를 하며 부진에 빠져있다가 6R에서 김구현 자신만의 플레이로 [[차명환]]을 잡아내고 환상적인 셔틀리버 플레이로 상대전적에서 0:6으로 밀리는 [[김명운]]을 잡아내며 부진을 털어내는듯 했으나 그 후 연패는 계속되었고, 김구현은 6강 PO에서까지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며 [[STX Soul]]의 준PO 진출은 다시 좌되었다.
  • 김근 (고려) . . . . 1회 일치
         * 고려사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이성은|흑운장]]이 방송에서 말하길 프로선수 시 대단히 장비 등에 예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습 끝나고 놔두었던 마우스 위치나 헤드셋 위치가 그대로 있어야만 했고, 아닐 시에는 집합을 걸었다고... 물론 [[이성은|흑운장]]은 집합해서 별 거 안하고 좋게 말로 했다고 애써 포장했다.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영국 유학 시 [[리눅스]] [[운영 체제]]를 사용하면서 [[오픈 소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국내 독점에 대항하는 [[오픈웹]]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모든 운영 체제에서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 한다며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2007년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제1심과 항소심에서 패소하고<ref>[http://m.ddaily.co.kr/view.php?uid=48223 오픈웹, 금결원과의 민사소송 2심서 패소]{{깨진 링크|url=http://m.ddaily.co.kr/view.php?uid=48223 }}</ref>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2009년에 기각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0&oid=001&aid=0002906855 대법 "익스플로러만 공인인증 위법 아니다"]</ref> 2009년에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서적을 저술하였다. 오픈웹은 2013년에 [[사단법인]] [[오픈넷]]에 통합되었고 현재는 오픈넷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김도연(배우) . . . . 1회 일치
          * 1985년 MBC 남자의 계
  • 김동욱(배우) . . . . 1회 일치
          * 2012년 [[후궁: 제왕의 첩]] 홍보 차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 [[조여정]]의 증언으로 촬영장에서 ~~왕 옷을 입은채~~ 춤을 추는 것이 알려지고, 그 시기에 친구들의 생일 파티가 클럽에서 자주 열려 클럽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때, 본인의 말에 따르면 파라다이스라고.. 실제 복면가왕이나 해피투게더를 보면 춤을 꽤 잘추는 편. 대학시 댄스 동아리였는데 축제 동아리 공연 때 센터를 담당했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1회 일치
         2017년 1월을 끝으로 [[스타제국]]과 계약이 만료된 후 [[KBS 1TV]] 드라마 [[빛나라 은수]] 촬영에 집중하느라 소속사가 없었는데, 6월 21일 부로 [[스타제국]] 시에 함께했던 전 매니저 황정문이 설립한 기획사인 골드문엔터테인먼트[* 그 전에도 보이그룹 비트윈을 "골드문뮤직"을 통해 프로듀싱한 적이 있다.]로 이적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바로 다음 날에는 [[정희철(제국의아이들)|정희철]]이 [[스타제국]]과 재계약하지 않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윤민수]]의 기획사인 더바이브와 [[일본]] 게임회사인 아사쿠사 게임즈가 골드문엔터와 합병하여 신설한 메이저9 소속으로 변경됐다. 그래서인지 [[4MEN]]의 곡 스트리밍을 인증했다.
  • 김만수(정치인) . . . . 1회 일치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 김만제 . . . . 1회 일치
         한국개발연구원장 퇴임 후 잠시 [[한미은행]]장을 지내다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였다. 그의 경제부총리 재임 시은 소위 3저(低)[* 낮은 물가, 금리, 석유가격을 뜻한다.]로 대표되는 경제 호황기로 수출 증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국내외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후임 [[노태우]] 정부의 출범 후, 이 때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이 문제가 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 김민교 (가수) . . . . 1회 일치
         마지막 승부 OST는 寺田恵子 Terada Keiko (Show-Ya): Paradise Wind를 표하여 방송 중간에 음을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김민서(배우) . . . . 1회 일치
         [[아임 쏘리 강남구]]의 종영과 함께 [[FNC엔터테인먼트|FNC]]에서 FA로 풀리자마자 친인 [[최강희(배우)|최강희]]를 따라 [[2017년]] 6월 30일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 김민희(1972) . . . . 1회 일치
         이 인기를 모아서 [[캐럴]] 송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응답하라 1988/삽입곡|크리스마스 폴카]]가 BGM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역]] 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게 되어서 그랬는지 성인 연기자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간간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나 출연하는 편이며, [[살림 9단의 만물상]] 같은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푼수 스타일의 [[아줌마]]로도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03년~2004년 MBC 사극 [[대장금]]에 내의녀 비선역으로 출연하였다. 장금이 의녀로 입궁했을때 내의녀로 들어왔지만, 8년후에 어의녀로 승진하였다.
  • 김범룡 . . . . 1회 일치
         * [[전영록]], [[김수철 (가수)|김수철]], [[임지훈 (1959년)|임지훈]], [[최성수 (가수)|최성수]]와 친한 친구 관계이다.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kt 위즈]] 시 ==
  • 김수진(배우) . . . . 1회 일치
         * [[표]] (1999년) - 은영 역 <ref>[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221&t__nil_Biography_workList=workname 다음영화]</ref>
  • 김연수(작가) . . . . 1회 일치
         [[2013년]] 7월 기준, 최근작은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다.[* 다만 해당 책이 출간된 출판사에서 자사의 여러 책들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와 관련하여 김연수 작가는 해당 책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발매된 지 9개월 만에 본 책을 판시켜 버렸다. 그리고 [[2015년]], 자신의 단편집 <스무살> 재판과 함께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다.]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넥센 히어로즈]] 시==
  • 김지수(배우) . . . . 1회 일치
          * 맡은 역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 신도영을 꼽고 있다. 2016년 여름에는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안녕, 도영아,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지?...계만큼, 드라마 타이틀만큼 뜨겁고 치열하게 연기했던 도영이...너무 사랑하면서 미워해서 보내기 너무나 힘들었던 캐릭터"라고 촬영장에서 우연히 당시의 포스터를 보고 소회 글을 올렸다.
  • 김진(배우) . . . . 1회 일치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이제니]]와 엮이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나오다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일약 주연급으로 발탁되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투입한 지나가던 단역이었는데 우연히 인기를 얻은 것은 대 아니고 피디가 처음부터 레귤러 혹은 준레귤러로 생각해두고 투입했었다. 다만, 안녕맨으로 등장해서 반응이 좋으면 고정을 시킬려고 했던 거였다고. 초반에는 큰 반응이 없어서 레귤러까지 생각했던 배역을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PC통신 MBC게시판이 뒤집어 질 정도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무사히 레귤러로 안착했다. 당시엔 이제니와 마주치면 항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어서 별명은 안녕맨. 레귤러로 합류하고 나선, 워낙 피부가 하얘서 당시 별명은 '[[밀가루]]'.
  • 김창규 (작가) . . . . 1회 일치
         고교시, 청주 독서회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1983년]] 《분단시대》에 [[배창환]], [[김용락]], [[김종인]], [[정대호]], [[도종환]], [[정만진]], [[김희식]], [[김윤현]] 등과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 김창숙(배우) . . . . 1회 일치
         || '''경력''' ||2005.11 제2기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 환경홍보사||
  • 김충섭 . . . . 1회 일치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봉곡초등학교,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 [[영진전문대학]] 행정과를 졸업[*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김 시장은 고등학교 재학시 큰 병이 걸려 3번이나 큰 수술을 하였고 이로인해 1년 늦게 졸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천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공직에 진출하였다. 대학은 이후 공직에 있으며 [[영진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하였으며. [[청도군]] 부군수, [[김천시]] 부시장, [[구미시]]의 부시장, 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경북청소년수련원 원장직을 역임했었다.
  • 김취경전 . . . . 1회 일치
         김형국 일가에서는 선애의 시비 채향이 선애가 야반도주하자 안씨를 무서워하여, 어사 서윤택(徐潤擇)에게 집안의 흉사를 고발한다. 서윤택은 김형국과 안씨를 국문하고 취경 남매를 모함한 윤도익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윤도익은 흉계를 꾸며 서윤택은 반대당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과 유배를 당한다. 하지만 우여곡 끝에 왕이 진실을 간파하여 서윤택은 복직되었다.
  • 김태환(1943) . . . . 1회 일치
         한번도 당을 버린 적은 없으나, 당으로부터 2번이나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이다. 2008년 총선 당시에야 친박계여서 친이계 당 지도부가 공천을 안줬다지만, 친박 중진이 된 2016년에 '''친박 지도부가 공천을 안주는 사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이에 대해, 비박계를 대대적으로 공천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티 안나는 친박 몇 명'''을 미리 낙천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관측이 많았다. 김태환이 친박 중진이기는 했어도 대적인 신임을 받는 친박 핵심부는 또 아니었기에 그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케이스로는 [[서상기(정치인)|서상기]] 의원이 있는데, 서상기가 떠난 지역구는 결국 '''친 야 무소속의 [[홍의락]]'''이 당선되었다.]
  • 김형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웃찾사]] 시 ==
  • 김형일(배우) . . . . 1회 일치
         울림이 깊은 중후한 ~~목욕탕~~목소리로 유명하다. 20대 시에는 [[CBS 성우극회]] 15기 공채 성우로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 동기가 [[최덕희]]다. 세일러 문, 리나를 비롯한 여주인공 전문 성우인 그 사람이다.], 에로 영화의 후시 녹음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목소리 탓인지 정극물에서는 주로 무게감 있고 듬직한 역할을 맡았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건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태조 왕건]] 이전에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 [[신마적]] 엄동욱 역할로 얼굴을 알렸고,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과 친구들이 단골인 카페 사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 <오늘은 좋은날>의 꼭지 [[큰 형님]]에 나와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시트콤 [[세 친구]]에서는 옆집에 이사온 신혼 부부로 아내([[노현희]])를 끔찍히 생각하다 못해 의처증 증세가 있는 [[개그 캐릭터]] 연기도 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김재규]] 역을 맡았는데, 목소리와 풍채를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했다.[* 김형일은 키가 180을 넘고, 목소리도 무겁다. 그러나 김재규는 키가 170도 안됐고,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도 김재규는 말이 빨랐다. 김재규와 김형일은 [[김녕 김씨]]로 본관이 같은데, 재미있는 건 김형일이 김재규보다 항렬이 한 항렬 위다.] KBS [[무인시대]]에선 [[최충헌]] ([[김갑수]])을 도와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욕심 때문에 [[최충헌]]에게 역관광을 당하는 찌질한 동생 [[최충수]] 역을 맡기도 했다.
  • 김혜은(탤런트)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나름 [[신데렐라]] 인생을 살았다. 성악을 접고 방황하던 시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이 때부터 시가의 눈치를 보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필 이 때 [[유산]]해 버린 지라 바닥까지 갈 뻔했다. 물론 이후 연기자로서 재기하고, 딸 가은 양을 출산하며 극복해 냈다.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김효진은 중학교 시, 친구들과 동대문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그녀를 본 모델 에이전시의 권유로 잡지 모델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데뷔한 이후, 각종 잡지 모델과 광고에 출연했고,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입문했다. 그녀는 [[김민희 (1982년)|김민희]], [[공효진]], [[신민아]] 등과 대표적인 [[2000년]]대초 N세대 스타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김민희·배두나, 스크린 점령한 'N세대 아이콘'|url =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320092456112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 |날짜 = 2013-03-20|확인날짜 =2013-03-24 }}
  • 나다카 타츠오 . . . . 1회 일치
          * 대학시, 쿄토의 히가시야마에서 야경을 보면서 차 안에서 첫 키스를 했다. BGM은 형에게 빌린 무드 카세트 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 초능력자가 대다수인 사회와 초능력 없는 보통 사람의 취급이 안좋다는 점에서 마블 코믹스의 [[하우스 오브 M]]을 떠오르게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1회 일치
          * "팔을 보완하러 왔는데 몸이 두동강 날 뻔 했다"며 보기 드물게 망에 빠지는 미도리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는 "주대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선배"라고 빈정거리자 그는 "특히 네놈이다!"라고 외치며 달려든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1회 일치
          * 요아라시 이나사의 유년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1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22. '''만남의 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1회 일치
          하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아시도의 움직이는 뿔을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리면서도 "좌해서 히어로를 포기하고 문제를 일으킨 애가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었는데 상당히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그렇다. 토코야미가 "우린 프로 히어로와 싸움도 겪어 봤다"고 말하자 키리시마가 "빌런과도 싸워봤다"고 맞장구치며 자기들이 "그런 걱정이나 받을 정도로 조무레기로 보이냐"고 직설적으로 따진다. 거기에 대한 밀리오 선배의 답은 이렇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인턴 채용 부탁은 거하며 미도리야에게 채용시험을 제안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1회 일치
          나이트아이는 미도리야의 시도를 평가하하며 예지가 성립한 이상 미도리야의 움직임은 전부 그에게 보인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1회 일치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밀리오를 보고 감해라"고 했던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올마이트]]가 그의 존재에 대해 숨겼던 것도 다시 마음에 걸린다. 이런 내심을 모르는 밀리오는 편한 말투로 서로 히어로 네임을 모르고 있었다며 미도리야의 히어로 네임을 묻는다. 미도리야가 "데쿠"라고 답하자 포지티브한 밀리오 조차도 "그런 히어로명으로 괜찮은가"라고 확인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미도리야는 이미 그 이야기에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올마이트가 죽는다는,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더 신경 쓰였다. 그 예지가 언제 일이고 대로 바뀌지 않는 거냐고 묻자 올마이트는 태연한 태도로 당시 기준으로 6, 7년 후라면서 먼 미래일 수록 오차는 생기긴 하지만 예지로 본 장면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계산해 보니 예지가 실현되는 시기는 올해나 내년 정도. 미도리야는 현실을 부정하며 올마이트에게 살라고 애원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제 때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1회 일치
          * A반의 인턴은 한 명이 더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관서 지방의 "에스하"시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히어로네임은 "레드 라이오트". BMI히어로 [[패트껌]]의 사무소였다. 이곳은 빅3의 일각 [[아마자키 타마키]]가 인턴활동을 하고 있다. 히어로네임은 "선 이터". 왜소하고 음침한 모습의 타마키와 달리 패트껌은 엄청난 거구에 비만 체형. [[타코야키]]를 판 째로 들고 다니며 먹는 타입이다. 원래 키리시마는 직업체험 때 신세진 [[포스카인드]]에게 인턴 활동을 청했지만 거 당했다. 그걸 마침 무투파의 신인을 찾고 있던 패트껌이 픽업, 먼 관서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타마키의 중계가 있던 모양인데, 타마키는 [[토오가타 밀리오]]에게 떠넘기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나 보다. 키리시마가 너무 댓쉬해와서 무서웠다고 약한 소릴 한다. 패트껌은 "그 멘탈만 어떻게 하면 인재"라며 껄껄 웃는데 그 점이 더욱 타마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1회 일치
          >대로 쓰러지지 않는 벽이 돼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1회 일치
          * 관서의 히어로인 그는 여기서는 초면인 사람이 많다. 그는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둥글둥글한 몸매가 여학생들의 호평을 산다. 패트껌은 좋아라하며 사탕을 나눠주겠다며 꺼낸다. 그 사이 나이트아이는 그가 합류한 정황을 설명한다. 시에핫사이카이가 금지약물을 유통해 수입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관련 계통에 빠삭한 그의 협조를 구했던 것이다. 패트껌은 사탕을 나눠주려다 말고 며칠 전 사건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금지 약물 유통은 과거에 한 번 근시켰다. 그런데 키리시마, 레드 라이오트의 데뷔전 날 사건이 터졌다. 그때 전혀 본 적도 없는 종류의 약물이 타마키를 맞췄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회 일치
          "프리유어 시리즈"는 여아들에게 인기있는 시리즈물이다. 몇 년째 시리즈가 지속 중이고 남자가 말하는 것은 몇 년 전의 시리즈였다. 점원이 최근작 "맹렬 프리큐어 10"을 소개하자 남자는 성가셔하며 "그거라도 달라"고 말한다. 그 대화를 놓치지 않은 나이트아이는 아무 것도 모른 척하며 친을 배푼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회 일치
          * 기존에 협조하고 있던 히어로들은 대부분 참석했다. [[패트껌]] 사무소도 물론 참석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얼른 가자며 의욕을 보이는데 선배인 [[아마지키 타마키]]는 언제나 그렇듯 시들시들하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야)|류큐]]의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옆에 있었는데 이들은 잘 모르는 환경이라서 긴장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경찰과의 협력 같은 상황은 별로 알려주지 않았다. 류큐도 이런걸 배우지 못해서 신인 시엔 고생했다고 회고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1회 일치
          *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네거티브한 성격의 타마키가 단숨에 패닉에 빠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다 글러먹자 그는 "소녀를 구하긴 커녕 전부 당할 거다"고 망한다. 그런 그를 다잡는 것은 친구인 밀리오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1회 일치
          * 유감스럽지만 남자의 지적이 맞았다. 키리시마는 몸에도 상처가 컸지만 멘탈도 가루가 됐다. 경화가 깨졌다, 다 받아내지 못했다. [[바쿠고 카츠키]]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건 더럽게 강하다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히어로가 생각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오사카에서 활약했을 땐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건 과거의 기억. 좌했던 기억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1회 일치
          * 토가와 트와이스가 연 야쿠자 규탄대회는 수위를 높여갔다. 트와이스가 이 모양이니 야쿠자가 전멸 직전인 거라고 까대자 토가가 "잠들어 있다는 두목도 별거 없는 사람일게 뻔하다"고 덧붙였다. 거기까지였다. 넓디 넓은 이리나카의 이해심도 거기서 바닥이 났다. 비명같은 외마디 규와 함께 사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지금 이리나카의 정신처럼. 히어로 연합군을 분단시켰던 이리나카의 벽이 무너지고 형태를 잃었다. 일행은 위아래도 없고 좌우도 없는 파도 휩쓸린 것 같았다. 토가와 트와이스가 바란대로였다. 트와이스는 그 와중에도 입을 쉬지 않고 "역시 이리나카 형님은 쉽게 열받는 성격이었다"며 신경을 긁어댔다. 그리고 토가는, 요동치는 배경 속에서 다시 미도리야와 눈이 마주쳐서 웃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1회 일치
          * 그는 바쿠고를 "소중한 장기말"이라고 칭하며 그의 거을 유감이라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1회 일치
          * 손끝에서 정체불명의 촉수 같은 것이 나오더니 기한 쿠로기리의 몸에 연결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1회 일치
          * 그때까지 떠나지 않고 싸우려던 [[시가라키 토무라]], 기해있던 빌런연합 전원이 워프존 근처에 있던 [[토가 히미코]]에게 이끌려 워프존에 빨려들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1회 일치
          * 올 포 원은 특례로서 재판차를 생략하고 특수구치소로 이감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1회 일치
          * 어머니는 "영웅고에서 생활할 거라면, 알지?"라고 묻고 미도리야는 "대로 걱정끼치지 않을게"라고 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회 일치
          * 토코야미는 필사적으로 버티다 매우 [[중2병]]스러운 방을 공개당하고 좌한다.
  • 남경민(배우) . . . . 1회 일치
         * 2017년 《[[아리랑 TV]]와 함께하는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경》([[아리랑 TV]]) ... ([[더 이스트라이트|이스트 라이트]] & [[모모랜드|모모 랜드]] & [[엘리스 (음악 그룹)|엘리스]] with [[남경민 (배우)|남경민]] & [[안다빈]] & [[최다니엘]] & [[김소혜 (1992년)|김소혜]] & [[박종찬 (배우)|박종찬]] & [[이랑 (배우)|이랑]] & [[신세휘]] & [[이지훈 (1979년)|이지훈]] & [[신수지]] & [[박세영 (배우)|박세영]] & [[김예린 (미스코리아)|김예린]] & [[정다빈 (2000년)|정다빈]] & [[이수민 (2001년)|이수민]] & [[이상벽]] & [[이문세]] & [[박상원]] & [[박상면 (배우)|박상면]] & [[노희지]] & [[박중훈]] & [[이진우 (배우)|이진우]] & [[최현석]] & [[이원일]])
  • 남기애 . . . . 1회 일치
         |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우리가 계이라면》
  • 남명학파 . . . . 1회 일치
          '''...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이 조식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이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상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 남보라(배우) . . . . 1회 일치
         완도사랑채마지막칼국수였던 [[2005년]]에 11남매[* 2005년 당시에는 11남매였다. 방송 당시 셋째와 아홉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에 거의 비치지 않았다.]의 일상 생활을 담은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천사들의 합창"에 맏딸로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출연 직후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관계자들의 제의도 거했으나 부모님의 설득과 계속된 소속사의 러브콜 끝에 연예인이 되기로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60812000512864?f=m|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보라는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이 진행하는 "천사들의 합창"을 계기로 얼굴을 알려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0곳 이상의 기획사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8191711172510|연예인 제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미니홈피 게시글을 토대로 보면 학교(혹은 교회)에서 성극반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당시, 웬만한 눈썰미를 가진 시청자는 남보라의 집안이 [[개신교]] 집안임을 알 수 있었을 듯. 원래 초등학교를 장안동에 위치한 불교계 학교를 다니다가 저학년 무렵 전학을 갔었다.]
  • 남의 집은 남의 집 우리 집은 우리 집 . . . . 1회 일치
         일본의 가정에서 "XX네 집은 이런데~"하고 떼쓰는 아이에게 부모가 딱 단언하여 거하는 말로 쓰인다.
  • 낭만 주먹 . . . . 1회 일치
         그런데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깡패들이 흉기를 써서 사람을 위협하거나 폭력하는 사건이 완전히 근되지는 않았다. 또 몸을 사리게 된 성인 조폭과는 달리 새롭게 성장하는 청소년 불량배들은 이러한 불문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흉기를 휘두르면서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태촌, 조양은 등은 이렇게 성장한 '신세대 조폭'이었던 것이며, 소위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몸을 사리는 시기는 고작 한 세대도 가지 못한 일시적인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노경주 . . . . 1회 일치
         * [[참 좋은 시]] 이명순 역 (2014년, [[KBS2]])
  • 노루토끼 . . . . 1회 일치
         보통은 보이지 않지만, 인게임 계 이벤트인 '가을 축제'에서 굳이 맥주를 마실 필요 없이 어떤 술이든 취하도록 마시면 이벤트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매일 보고 싶다면 이벤트 중에 수행 가능한 일일 퀘스트를 통해 애완동물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얻어보도록 하자.
  • 노해 . . . . 1회 일치
          * 노인이 현재의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경험"만을 대시 하여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
  • 농가 . . . . 1회 일치
         농가(膿家)적 사고방식을 상기와 같은 행동 양식을, 대지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제하는 생각.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농가뇌(農家脳)」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가(膿家)」와 같이, 최저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농업 종사자는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관용어이다보니, 일본에서 써진 창작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자의 주석이 따로 달려있지 않은 [[라이트 노벨]]이나 설명 자체가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애니메이션]]을 접할 때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하는 경우가 많다.
  • 니세코이/220화 . . . . 1회 일치
          * 오노데라는 어린 시을 거의 완전히 기억해내며 자신과 치토게, 이치죠 외에도 츠구미, 유이, 마리카, 하루가 있던 것도 기억해낸다.
  • 니세코이/226화 . . . . 1회 일치
          * 이치죠는 어린 시 두 사람이 쓴 편지를 읽는다. 어린애다운 내용만 적혀 있는 이치죠의 편지.
  • 니세코이/227화 . . . . 1회 일치
          * 듣고 있던 이치죠는 오노데라에게 고백 받았지만 거하고 왔다고 말한다.
  • 니세코이/229화 . . . . 1회 일치
          * 결혼 소식을 듣고 자기들한테는 왜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냐고 좌한다. 가게가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투덜댄다.
  • 닌자 거북이 . . . . 1회 일치
          한 손에 하나씩 쌍곤을 쓴다. 익살꾼. 명랑한 성격이며 개그를 많이 맡는다.
  • 다이스(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무역국 직원으로 35세. 기범선인 바라쿠다 호의 선장으로 플라스칩을 수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의 이익과 보신을 위해서라면 말 바꾸기와 배신과 변도 주저하지 않는 천하의 악당.......같지만, 의외로 사람이 좋고 미워할 수 없는 구석도 있고, 배와 바다에 관해서라면 진지한 성격인지라 그의 부하 선원들은 선장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결코 그를 못 본 척 하지 않고 함께 한다.
  • 단축 도메인 . . . . 1회 일치
         http://goo.gl/ - [[구글]] 운영, 한국에서는 이쪽에서 발행된 스팸이 워낙 많아 정부와 은행에서는 이 주소로 시작하는 주소를 대 클릭하지 말라고 한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회 일치
         대략적인 평가는 늘 그래왔듯이 이변이 속출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리그 클래식 팀 중에 반에 가까운 5개팀이 탈락하였으며, 총 16경기 중에 하위리그팀이 상위리그팀을 잡아먹은 경기가 4경기가 나옴에 따라 하극상 비율이 25%나 되었기 때문. 다만, 대진운 때문에 내셔널리그팀은 본선에 진출한 5개 팀들 중 리그 1위인 용인시청만 살아남게 된 반면에 K3리그팀인 경주시민축구단은 같은 K3리그팀인 포천시민구단을 이기고 올라오는 등 선전을 보였다.
  • 데모데모닷데 . . . . 1회 일치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상담을 원해서 상담을 받아주고, 적한 어드바이스를 해줘도 「하지만」나한테는 무리. 「하지만」못할 것 같고. 「그래도」 자신 없고. 이런 식의 답변만을 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사람, 혹은 그러한 태도를 뜻한다.
  • 독친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독이 되는 부모라는 책에서는 부모와 진지하게 대화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지만, 그냥 연하고 안 보고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듯.
  • 듄 2 . . . . 1회 일치
          상징색은 푸른색. 열대 행성 칼라단을 본거지로 하는 가문으로 성실함과 친함으로 잘 알려져있다. 듄의 토착민인 프레멘과 우호적인 관계이므로 이들이 적의 기지를 공격하게 유도할 수 있다.
  • 디도(성우) . . . . 1회 일치
         [[대원방송 성우극회]] 2기 성우. 전속 성우가 되기 전에 언더 성우 시 많은 활동을 했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1회 일치
          * 아이스 아이슈리아 하인드라 : 하인드라 일족의 마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괴력을 발휘한다. 온후하고 친한 성격이지만 성희롱을 걸어오는 주인공 때문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래봤자 나중엔 역시 나가한테 푹 빠진다~~ 해리건 못지 않은 글래머.
  • 라무네 . . . . 1회 일치
         1953년에 라무네는 일본 내에서 팔리는 탄산음료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널리 팔렸으나, 여기에서 생산 피크에 도달해서 이후로는 다른 음료에 쉐어를 빼앗겨 점차 생산량이 감소하였다.
  • 라오우 . . . . 1회 일치
         세기말의 대지에서 '권왕'을 자처하며, 북두신권의 무력과 공포로서 각지를 제압하여 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한다.
  • 런던 . . . . 1회 일치
         브리튼 섬이 로마의 식민지이던 시, 로마군이 세운 요새 "론디니움"(Londinium)이 시초이다.
  • 레스터 길리스 . . . . 1회 일치
         1908년 12월 6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길리스는 비행 청소년이었다. 그때부터 어리게 생겼다고 동안(Baby Face)이라는 별명이 붙은 길리스는 타이어 도, 밀주, 무장강도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 렉스 더 원더독 . . . . 1회 일치
         푸치(Pooch)라는 형제가 있다. 푸치는 [[제2차 세계대전]] 시의 히어로들인 거너(Gunner)와 사지(Sarge)의 마스코트였다.
  • 로미오 메일 . . . . 1회 일치
         또한 시나 연애 노래를 연상케 하는 듯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면 웃음 평가는 더욱 높아지며, 그게 어디서 따온 표이라면 더욱 세다. 중2병이면 최고.
  • 로버트 켈리 . . . . 1회 일치
          * 가정적인 성격으로서, 사적인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으나, 부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하며,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시사영어연구회 동아리의 스피치 콘테스트 심사의원을 거하기도 했다.
  • 로어셰크 . . . . 1회 일치
         코미디언을 죽인걸 주도 한 사람이 오지만디아스라는걸 알게 된 후, 로어셰크는 2대 나이트 아울과 함께 오지만디아스가 있는 남극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을 막지 못한다. 이후 다른 히어로들이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으로 인해 나타난 세계 평화를 보고 이를 폭로하기를 거부하자 대 타협할 수 없다며 폭로하기 위해 남극을 떠나려고 하지만 닥터 맨해튼의 손에 죽는다.
  • 로쿠데나시 . . . . 1회 일치
         로쿠(碌)는 뭔가의 상태가 적한 것을 뜻한다. 대개 부정형으로 써서, 변변치 못한 것, 쓸모없는 것을 뜻한다. '로쿠데나시'는 아무 도움도 안되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 류명선(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류(성씨)|버들 류]](柳)자를 쓰다보니, 현역 시에는 '''유명선'''으로 등록됐고 마찬가지로 KBO에서 유명선으로 검색해야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류씨 성을 제대로 표기하기 시작한 게 2007년부터고, 류명선이 은퇴한 건 그보다 한참 이전이기 때문이다. [[유명선]]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 리그컵(K리그) . . . . 1회 일치
         프로축구선구권대회가 흥행참패를 겪고나서 1992년에 와서야 리그컵이 열리게 된다. 당시 후원사가 아디다스를 한국에 판매하고 있던 제우교역이었기 때문에 통칭 아디다스컵으로 불린다.[* 잉글랜드의 칼링컵과 마찬가지로 스폰서가 원하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형식이다.] 이 시기에도 팀 수가 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단조로운 리그의 홈 & 어웨이의 연속보다는 리그 외에 별도로 경기 수를 채울 이벤트를 기획하였고, 제우교역을 스폰서로 구해 첫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다.
  • 리전 오브 몬스터즈 . . . . 1회 일치
          프랑켄 캐슬 시에 합류.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 노예제를 없애자는 얘기는 셰헤라자드 시부터 나오던 얘기지만, 워낙에 뿌리깊은 제도나 수십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티토스의 열정적인 웅변으로 노예제도 폐지에 성공한다.
  • 마기/304화 . . . . 1회 일치
          * 알라딘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하지만 갑자기 연결이 두돼 버린다.
  • 마기/308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는 "왕을 져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계곡 아래에서 송곳니가 빠진 너는 대로 날 이길 수 없다"고 외친다.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 유난은 그것을 보고 미안하다면서 "네가 신드바드를 알마트란 시의 인과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막을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 마기/312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의 정신체는 다른 차원에 있고 그걸 반만 이 차원으로 옮겨 간섭하는 것이다. 무한 재생도 저쪽에서 제공되는 마고이를 쓴 것.
  • 마기/314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알라비바가 권하는 술을 거하며 "맨정신일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 마기/315화 . . . . 1회 일치
          * 명백히 거당하자,뻘줌해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하는 알라딘.
  • 마기/320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눈이 멀었다면 가르쳐주겠다며 신드바드는 단지 "왕의 그릇"이며 나라와 상회의 장이 가장 적하다.
  • 마기/327화 . . . . 1회 일치
          너무 일변한 태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상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상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 마기/330화 . . . . 1회 일치
         정에 달한 신드바드의 광기. 온세상이 신드바드의 광기에 편승하고 있다.
  • 마기/333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게이트를 열어서 성궁에 가는 방식은 누군가 게이트로 계속 마고이를 공급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넷 중 하나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는 것. 불편함 침묵이 찾아오고 알라딘은 얼렁뚱땅 쥬다르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성궁에서 날뛰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며 대로 남지 않겠다고 한다.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은 금속기 사용자도 가능하기 때문에 연백룡이나 알리바바에게 시키려고 해보는데, 이들 역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왕의 그릇 둘과 마기 둘이 답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만 낭비한다.
  • 마기/336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일행 앞에 나타난 신드바드는 14세 시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이다.
  • 마기/340화 . . . . 1회 일치
          소개를 받은 세렌디네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미미한 움직임도 없는, 인형같은 인물이다. 그녀에 대해서 처음 듣는 알리바바는 그녀가 어쨌다는 것인지 어리둥해한다. 신드바드는 말을 잇는다. 그녀가 원래 진 제파르의 주인이었으며 신드바드는 그녀를 희생시켜서, 알리바바가 [[카심(마기)|카심]]과 한 것처럼 루프를 동화시켜 그 힘을 흡수했다.
  • 만우절 . . . . 1회 일치
         장난이나 거짓말을 쳐도 되는 날로, 4월 1일이다. 물론 심각한 거짓말을 하면 만우이고 뭐고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주의.
  • 머신맨 . . . . 1회 일치
         [[로봇]]이라서 강력한 신체를 지니고 있으며 [[아다만티움]] 성분이 들어간 티타늄 합금 탓에 강력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자가수리에 초정밀 계산능력, 굉장한 시력, 비행, 변신에 팔과 다리는 30m까지 늘어난다. 두뇌는 인간과 같은 감정, 창의적 지능, 무한한 자기 동기부여 활동을 할수 있다. 태양열 에너지가 동력이나 필요시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외부 에너지를 이용할수 있다. 손가락은 장비가 장착되어서 총알, 전기, 냉각선, 열선을 발사할수 있으며 가스 분석기, 레이저 관측기, 마이크로 펄스 레이저, 음향 측정기, 지진계, 중력파 검출기, 펄스 코드 변조기, 컴퓨터 입출력 장치, 전파표지, 만능통신기, 레이저 단 토치 등이 있다. 대형 칼날이나 전기톱 등이 팔에 장착되어 있고 가슴에는 빔 캐논이 있다.
  • 멸문지화 . . . . 1회 일치
         다만, 중세유럽때는 위생상태와 의학의 미비로 인한 일족의 전멸, 또는 서자의 가문 계승권이 부정된 것 등으로 인해 단된 가문이 흔했다
  • 멸사봉공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메이지 15년 발표된 「군인칙유(軍人勅諭)」, 메이지 23년 발표된 「교육칙어(教育勅語)」 등에서 멸사봉공을 강조하였으며, [[대주의]] [[군국주의]] [[미카도이즘]] 사회를 상징하는 표어로 삼았다.
  • 명탐정 코난 에피소드 "ONE" 작아진 명탐정 . . . . 1회 일치
         작아진 명탐정은 신이치와 란 이외에도 후에 등장하는 검은 조직, 소년 탐정단, 모리 코고로, 아가시 히로시, 검은 조직 시의 셰리 등이 출연하게 되며 다음과 같은 전개가 추가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 모나 색스 . . . . 1회 일치
         이후 맥스가 실수로라도 리사를 죽이는걸 막기 위해 약 탄 위스키를 줘서 기시키고는 펀치넬로 저택으로 향한다. 하지만 펀치넬로를 죽이지는 못하고 붙잡혀버린다. 펀치넬로는 그녀를 천천히 처리하기 위해 자택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뒀지만, 모나는 펀치넬로의 부하들을 죽이고 뒷문으로 탈출한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1회 일치
          * 자녀의 잘못을 일 인정하지 않는다. 집단괴롭힘의 피해자 등의 항의를 무시한다.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1회 일치
         찻집의 종업원. 쿠로사와가 불량배 시에 만났으며, 그에게 심복하고 있다.
  • 무신 . . . . 1회 일치
         [[당나라]] 이후로 [[도사]] 세력의 창궐을 본보기로 삼아, [[송나라]] 이래로 문신 우대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무신은 미묘하게 소외받는 입장이 되었다.
  • 문지애 . . . . 1회 일치
         * 《[[나의 친 악당들]]》 (2015) - 카메오
  • 미스터 마인드 . . . . 1회 일치
         [[샤잠]]과 관련된 악당으로 캐릭터명이 [[캡틴 마블]]이던 시부터 싸워온 빌런이다.
  • 미스터 아톰 . . . . 1회 일치
         [[샤잠]] 계열 [[슈퍼 빌런]]. 샤잠이 [[캡틴 마블]]이던 시부터 등장했는데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다 캡틴 마블에게 패했다. 이후로도 캡틴과 싸웠으며 [[슈퍼맨]],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 등 DC 코믹스의 다른 영웅들을 상대로도 싸웠다.
  • 미스터 하이드 . . . . 1회 일치
         원래 뛰어난 의학자였으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실제 이야기라 믿으면서 일이 꼬였다. 재보는 [[인간]] 본성의 짐승 같은 면을 해방시키는 화학 공식을 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고용주들에게서 갈취했고, 이걸 안 도널드 블레이크는 그의 고용을 거했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도널드 블레이크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연구에 몰두해 몇 달 뒤, 연구에 성공했다. 특수약품을 만든 재보는 이 약품을 써서 사악함과 괴력을 지닌 미스터 하이드가 되었고 자신을 진정한 악의 의인화라 믿으며 도널드 블레이크를 자신의 첫 번재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도널드 블레이크는 [[토르]]의 인간 모습.(...)
  • 미즈코 . . . . 1회 일치
         일본 오컬트 용어. 본래는 어린 시에 죽은 아이들의 영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980년대 무렵부터 [[낙태]]로 죽은 아이들의 영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미즈코 공양'이라고 하여, 낙태로 죽은 아이들을 공양하는 종교단체(주로 불교사원)이 있다.
  • 민폐료 . . . . 1회 일치
          * 비슷한 것으로 [[연금]] 등이 있다.
  • 바캇타 . . . . 1회 일치
         예를 들어서, 위법 행위에 해당하는 미성년자음주나 무면허운전을 발언하거나, 범죄가 되는 도나 도촬 행위를 하거나,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고, 이를 자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을 다른 사이트에서 트위터 이용자를 조롱하기 위하여 "또 바캇타냐?"라고 쓴다.
  • 바키도/107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가뿐히 떨쳐내고 "결과를 두려와 말라"고 하는데, 알버트는 그 대적인 가치관 차이를 실감하고 항의할 의욕도 잃어 버린다.
  • 바키도/108화 . . . . 1회 일치
          * 아직 손도 대지 않았는데, 무사시가 나타나니 카네시게에 묶힌 끈이 저로 풀린다.
  • 바키도/118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다시 일어서지만 검을 손에 넣은 피클은 위압감이 사라졌다고 평가하한다.
  • 바키도/12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이번엔 한층 단단해진 근육 덕에 치명상을 입지 않았고 상처에서 흐르던 피도 저로 멈춘다.
  • 바키도/126화 . . . . 1회 일치
          * 뜻밖에도 담배를 권하는 모토베. 그의 시대에 있던 "연관"하고 같은 거라고 친히 설명까지 해준다.
  • 바키도/128화 . . . . 1회 일치
          * 세로로 두 동강, 가로나 대각선으로 두 동강, 혹은 앞뒤로 단 등을 운운하며 "가는 길 선물"로 해줄 테니 어떻게 베일지 고르라고 한다.
  • 바키도/131화 . . . . 1회 일치
          * 마찬가지로 무사시의 강렬한 참격은 보호구를 베어버리진 못하지만 그걸 찬 모토베 이조의 신체는 속없이 부러지고 망가진다.
  • 바키도/135화 . . . . 1회 일치
          * "그 개똥 같은 관례"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했냐는 트럼프. 시작은 80년대로 거슬러간다. 로널드 윌슨 레이건 대통령 시 시작됐는데 그 말을 들은 트럼프는 "미국의 위대함이 사라진 타이밍"이라고 납득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 바키도/136화 . . . . 1회 일치
          거기서 그만했으면 좋을 텐데, 이번엔 "보이지 않는 칼에 목이 떨궈진 모양"이라고 주댄다. 그러면서 무사시가 진검을 들고 있었다면 그 머리가 발 밑을 굴러다니고 있었을 거라고 덧붙인다.
  • 바키도/140화 . . . . 1회 일치
          *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총기를 소지한 경찰에게 다리를 노리고 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겨누기가 무섭게 무사시의 반격이 들어온다. 꼬챙이가 날아와 경찰의 눈 밑에 박힌다.
  • 바키도/141화 . . . . 1회 일치
          * 그때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가 나타난다. 무사시에게 당한 눈에 안대를 찼다. 무사시는 친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자네인가"라며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오오츠카의 표정은 차갑다.
  • 박경석 (1960년) . . . . 1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남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영,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 박근영 (야구인)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 박상돈(정치인) . . . . 1회 일치
         또 다른 천안시의 국회의원인 [[양승조]] 의원과 함께 국무총리실 관리관 출신의 [[구본영]]을 열린우리당으로 영입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현재 자신은 [[자유한국당]]에 있지만, 남은 두 사람은 각각 충남도지사 후보를 노리고 있고, [[천안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어쩌면 천안시를 민주당의 텃밭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육사2기수 친후배인 [[구본영]] 현직시장과 대결하게 되었다. --[[구본영]]의 선거책자 뒷면에는 ''[[문재인]] [[양승조]] 구본영 VS [[홍준표]] [[이인제]] 박상돈' 이라고 적혀있다(...)--
  • 박상원(배우) . . . . 1회 일치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 박성배 . . . . 1회 일치
         '''박성배'''(朴成培, [[1975년]] [[1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서 선수 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청주대성고등학교|청주상업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11 AFC 아시안컵]] 당시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 박순석 . . . . 1회 일치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전시원호대책중앙위원회에서 피난민 구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원내부총무, 경상북도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표를 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 박술희 . . . . 1회 일치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태조|태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상]](朴堤上)과 [[백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 박승욱 . . . . 1회 일치
         ==[[SK 와이번스]] 시==
  • 박승임 . . . . 1회 일치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 [[이량]] 등이 제거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간 박승임은 이후 병조 참지와 승정원 동부승지를 거쳐 진주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고을의 부로(父老)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향약을 실시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1568년(선조 1) 병으로 사직,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으나 1568년 특명으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단의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 박승호 (야구인) . . . . 1회 일치
         ===NC 다이노스 시===
  • 박영진(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박대박]], [[집중토론(개그 콘서트)|집중토론]] 등을 같이 했던 박성광과는 [[동아방송예술대학]] 시 '''중독자'''라는 개그써클을 같이 했고 무려 11년을 동거했으며 개그맨 시험도 같이 보러 다닐 정도로 매우 친한 사이다. [[변기수]]는 "신인인데 너무 잘해서 둘이 찢어놔야 선배들이 숨통이 좀 트일 것" 이라고 한 적도 있을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다.
  • 박윤경(가수) . . . . 1회 일치
         끊임없이 꾸준히 활동해오다가 지난 [[2006년]] [[7월 21일]]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당시 박윤경은 암이 많이 전이돼 4시간에 걸쳐 위의 80%를 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약 3개월 간 휴식을 갖게 되었다. [[2008년]] [[3월 3일]]에 8집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가수로 복직하였다. 8집 타이틀곡〈1,2,3,4〉는 [[추가열]]이 작곡, 작사한 곡으로 한 여성이 일생에 단 한번 만난 사랑에서 느낀 행복을 노래한 내용이다. 최근에는 5년 3개월 만에 9집 앨범《도도한 여자》로 컴백하였다.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판사 시, 그가 하는 재판마다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경찰관이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는데, 경찰관 아버지는 재판관 자리에 앉은 박은수 판사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법조계는 물론 롤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 박인태 . . . . 1회 일치
         ==연세대학교 시==
  • 박정수(정치인) . . . . 1회 일치
         국제의원연맹 집행위원에 임명된 이듬해인 1996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직을 요구했다가 신한국당 수뇌부에 의해 거당하였다. 이 상황에서 외교전문가 영입에 몰두하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전국구 의원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당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이 되고 부총재를 역임한다.[* 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박정수를 포함한 보수적 인사들을 영입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오유방]], 정희경 등 민주정의당 출신 인사들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 박주아(1942년) . . . . 1회 일치
         * [[한국방송공사|KBS]] 《[[아름다운 시]]》 ([[2007년]] ~ [[2008년]])
  • 박준규(1925) . . . . 1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KIA 타이거즈]] 시==
  • 박진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KIA 타이거즈 시 ==
  • 박화랑 . . . . 1회 일치
         == 고교 시 ==
  • 박희광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 시 만주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통의부)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되어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던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만철연선 친일파 제거등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김광추(金光秋), 김병현과 함께 3인조 암살단을 조직, 활동하였다.
  • 발달장애 . . . . 1회 일치
         발달장애를 주위에서 적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해나 잘못된 대응을 반복하는 경우. 자신감을 상실하여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이 될 수 있다.
  • 발터 PPK . . . . 1회 일치
         그립이 긴 스포츠 모델인 PPK/S가 있으며 22LR 탄을 사용하는 PPK/S .22라는 파생형도 존재한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PPK의 상징적인 모양과 .22LR 탄의 재미, 그리고 비용 감성의 혼합체라고. PPK/S .22는 10발의 .22LR 탄을 장전할 수 있으며 550g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 방실이 . . . . 1회 일치
          *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6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리더였던 방실이는 1집 트로트곡《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남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2년 뒤 발표한 3집 〈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 배성룡 . . . . 1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 배재준 . . . . 1회 일치
         ==[[LG 트윈스]] 시==
  • 배트맨 . . . . 1회 일치
         [[고담]]에서 활동하는 [[슈퍼히어로]]. 본 정체는 고담시의 갑부인 브루스 웨인. 그는 어린 시 강도의 총격으로 부모님을 잃었다. 이후 다양한 단련을 해서 배트맨이 되어 범죄와 싸운다.
  • 백결 선생 . . . . 1회 일치
         《영해 박씨 족보》등에만 나와있는 기록으로는 관직을 떠날 때 귀향곡인 〈낙천악〉(樂天樂)이 있다고 한다. 청렴하고 결백했으며 궁중으로부터의 일체의 후원을 거하고 스스로 궁색한 생활을 즐기다가 말년에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 백승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정작 현지의 표심이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 백승주가 국방차관 재직 시에 구미가 국방신뢰성센터 유치에 나섰지만, 결국 대전에 패배하면서 "고향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4702&yy=2015|대구 매일신문의 사설 참고]]
  • 백이소 . . . . 1회 일치
         [[1597년]](선조 30)에 왜적이 재차 침입해오자 적을 공격하던 중 탄환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당한 몸으로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출전하자 경주 판관이 만류했으나 '신하된 도리로 죽을 뿐'이라 말하며 [[영천]] [[창암]]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장 [[최봉천]](崔奉天) 등과 함께 순하였다.<ref name="dg">《[[동경잡기]]》</ref>
  • 버블 시대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버블 경제]]가 정에 달했던 시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초호황기를 뜻한다.
  • 벚꽃놀이 . . . . 1회 일치
         [[일본]]의 기행사. [[벚꽃]] 아래에서 [[꽃]]을 구경하는 행사를 뜻한다. 흔히 벚꽃놀이로 번역된다.
  • 보루토/1화 . . . . 1회 일치
          * 어린 시 보루토는 닌자 같은건 아무래도 좋은 소년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1회 일치
         >불륜하거나 뇌물 받거나 부채 만드는 녀석 골라서 국회의원을 반 모가지 하고 재원 만들어라.
  • 보쿠걸/103화 . . . . 1회 일치
         * 기숙사로 돌아온 미즈키는 여자였던 시 입은 옷이나 인형 따위를 정리하며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 보쿠걸/95화 . . . . 1회 일치
          * 토르는 신이 인간계에 있으려면 변신을 하는 둥 차가 복잡한데 그렇게까지 해서 인간계에 있는 걸 보면 "마음에 든 인간"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한다
  • 보쿠걸/97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용기를 내어 "타케루를 동경해왔다"고 고백하는데 마침 그때 토르가 나타나 타케루를 기시킨다
  • 보쿠걸/9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미즈키는 "대로 다시 볼 수 없다"면서 작별인사 조차 나누지 못했다고 눈물 흘린다
  • 북유럽 신화 . . . . 1회 일치
          * 궁그닐 : 오딘이 쓰는 [[창]]. "대로 빗나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오딘이 이 창을 던지면서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수수께끼의 무기. 거의 실적도 없는 주제에 창 계통이 무기가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대중문화에서 최강의 창으로 우대받는 불합리를 보여준다.
  • 분류:절대가련 칠드런/에피소드 . . . . 1회 일치
         [[대가련 칠드런]]분류에 속하는 페이지 목록 및 하위 분류 목록입니다.
  • 불단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매일 1회 불단을 청소하고, 종파에 따라서 정해진 차에 따라 의식과 염불을 올린다.
  • 브라이아크 라오 . . . . 1회 일치
         레프카와 대비되는 훌륭한 어른. 대이변 시에도 비행정을 이용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활동했고, 인더스트리아를 그냥 놔뒀으면 하이하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터이나 인더스트리아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갔고, 이후 몸이 망가진 후에도 라나의 도움을 받아가며 사람들을 도왔다.
  • 브레이니악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 [[슈퍼맨 TAS]]와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는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립톤 행성의 멸망을 알리지 않고 그들이 멸망하게 방치했다는 설정이 생겼으며 이후 렉스 루터를 부려서 자기 몸을 만들게 했다. 이후 JLU에서 재등장했는데 이때 브레이니악은 정말 치밀하기 짝이 없는 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 브레이니악은 몸이 만들어지자 렉스를 공격했는데 이때 이 공격은 렉스를 죽이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게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 이때의 공격은 브레이니악의 일부를 렉스에게 옮기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이 일부는 렉스의 안에 잠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렉스라 크립토나이트 오용으로 얻은 암을 치유하고 괴력을 줬는데 렉스가 아마조를 기반으로 한 나노머신 로봇 몸에 의식을 옮기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게 좌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저스티스 리그의 눈을 피하는 동안 렉스에게 설득되어 이전에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병기를 흡수하고 렉스 루터와 융합되었다. 그러나 플래시의 활약에 의해 패배.
  • 브와나 비스트 . . . . 1회 일치
         [[엄친아]]같은 인물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백만장자 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으란 말을 들었지만 거하고 대학 룸메이트였던 루퍼트 켄보야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잠베시 국의 새로운 동물보존구역 책임자 겸 게임 관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 브이원 . . . . 1회 일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맥스가 경찰서에서 탈출한 [[모나 색스]]를 찾아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올 때 등장. 맥스를 모나가 숨어있는 폐 놀이공원까지 태워준다. 차 뒷좌석에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비니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트로이의 목마라고. 맥스를 태워주는 동안 잘못을 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잘못한게 아니라 운명에 가까우니 해야할걸 하면 된다고 조언해준다. 이에 페인의 대답은 "그렇게 쉬운 일이 대 아냐."[* It's never that easy.]
  • 블랙 클로버/100화 . . . . 1회 일치
          * 바네사는 망한 마녀왕에게 이 마법은 자신과 인연이 맺어진 가족 편만 들어주며 "나와 당신 사이엔 인연은 없다"고 선언한다.
  • 블랙 클로버/101화 . . . . 1회 일치
          * 마녀왕은 패배를 실감했다. 그리고 바네사가 자신의 곁에 있었다면 대로 운명의 힘에 눈뜨지 못했을 거라고 인정한다. 그녀는 완벽한 마법을 추구해왔지만 그런 나머지 소중한 무언가를 잊어버렸다. 불완전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기에 깃드는 힘도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불완전한 바네사의 마법.
  • 블랙 클로버/104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가문과 영지의 주민들까지 휩쓸리게 되어 망하고 있던 차에 그녀를 구하러 온게 야미였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회 일치
          * 성공적인 공적 발표가 끝났다. 정으로 달한 분위기를 클로버 왕국의 국왕 등장으로 몰아간다. 그러고 보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왕도에 온지 꽤 됐지만 국왕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마찬가지. [[마법제]] 율리우스의 소개와 함께 마침내 국왕이 민중 앞으로 걸어나온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1회 일치
          * 일행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전진하는 동안 아스타는 멀찌감치 뒤쳐졌다. 이건 근성이나 근육으로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반마법의 검으로 열기를 베어낼 수는 없었다. 원래 마력이 없는 아스타로선 열기를 전혀 방어할 수가 없었다. 아스타는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고 감하면서도 한 발씩 옮기다 결국 쓰러진다. 그때 메레오레오나가 나타난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1회 일치
          잠시 뒤의 상황은 그야말로 이변. 여빙의 성자라 불린 잭스가 형편없이 당해버렸다. 괴한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기하고 말았는데. 괴한은 "여빙의 성자"라는 이름을 비웃고 "나따위" 한테도 지면서 부단장 소릴 듣는다며 어이없어 한다. 그리고 그의 마법기사단 로브를 빼앗아가는데. 그는 "풀죽일 보람이 있는 녀석"을 찾아 어딘가로 향하는데, 로열 나이츠 시험장 방향이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1회 일치
          * 키르슈와 같이 있는거 자체가 고통인 매그너는 일단 무조건 공격하고 돌격하고 본다.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이 끝날테니까. 하지만 적측의 견제가 거세다. 적동마법 "체인스 자칼"이란 마법으로 매그너의 돌격을 방해한다. 매그너가 성가셔하며 일단 적동으로 만들어진 자칼을 때려잡고 본다. 그때 키르슈가 반짝거리며 다가온다. 매그너에게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말투는 여전히 니글거리지만, 의외로 상식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선 매그너는 근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건 합당치 않다. 적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하고 근원거리를 적히 나눠서 공격할 필요가 있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1회 일치
          핀랄의 활약은 그간 평가하 당했던 검은 폭우에 대한 인상마저 뒤바꿔놓았다. 앞선 두 시합에서 아스타, 매그너가 연이어 활약한 이후여서 올해의 검은 폭우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가가 늘었다. 지극히 온당한 여론이었지만 금색의 여명 소속인 어떤 마법기사에겐 신경에 거슬렸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1회 일치
          * 때는 수년 전. [[알렉드라 산드라]]는 전쟁 중 부상을 입었다. 숨어있던 매복에 당한 그는 어느 동굴에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구조는 바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찰라. 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금색의 여명 단장 [[윌리엄 벤전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그를 바라보며, 알렉드라는 일종의 경의를 느꼈다. 그 표현도 부족했다. 그는 어린 시 어머니와 함께 본 그림을 떠올렸다. 그 안에 묘사된 신의 모습. 신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은 벤전스였다. 벤전스에게 구원 받고, 그를 추앙하며 지내온 나날. 알렉드라는 벤전스에게 마법 외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있고 그 따스한 힘이 단원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금색의 여명은 바로 그런 형태의, 벤전스에게 선택받은 엘리트 귀족 집단. 마치 신앙 같은 믿음. 그는 벤전스와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워왔다. 그 믿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의 입단. 볼품없는 하층민. 모든 단원을 평등하게 대해준 벤전스가 유일하게 특별취급하는 햇병아리.
  • 블랙 클로버/125화 . . . . 1회 일치
          * 잭스는 이번에도 진 팀을 상대로 독설과 의외로 적한 조언을 뒤섞어 쓴소리를 해대고 네르슈는 "네놈이 제일 추잡하다"는 욕설을 듣는다.
  • 블랙 클로버/133화 . . . . 1회 일치
          *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릴 부아모르티에]]의 승부를 끝으로 로얄 나이츠 선발 시합 종료. 최종 승자는 유노, [[노엘 실버]], [[엔 링가드]]의 I팀. [[잭스 류그너]]는 대회 종료 후 조용히 사라지려 했지만 마법제 율리우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마법제는 잭스의 재능이 필요하고 분명 선발에 합격할 것이니 부디 로얄 나이츠에서 힘써 달라 당부하는데, 잭스는 자신은 잭스 본인도 뭣도 아니라고 거하려 한다. 하지만 마법제는 "자네도 원래는 마법기사"임을 지적하며 그의 아버지의 일을 언급한다. 마법제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층민이지만 뛰어난 마법기사였고 그 같은 인물이 좀 더 평가받을 수 있도록 별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그런 사실을 언급하면서 지도자들의 불찰로 그가 다른 길을 걷게되긴 했지만, 이쯤에서 자기 단의 로브를 걸치고 복귀함이 어떻냐고 묻는다. 잭스는 마법제의 말대로 어떤 "맛이 간 단장"에게 로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그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제의 권유에 대해서도 "나는 지나가던 되다만 슈퍼 마도사일 뿐"이라며 사라진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1회 일치
          * 망의 베토는 아스타의 반마법 공격으로 "리히트에게 걸린 봉인"이 풀려 버렸다고 한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1회 일치
         * 배신자건은 이걸로 일단락되는 듯이 보였지만... 해산하던 단장 중에는 [[망의 베토]]가 변장한 가짜가 있었다. 대체 누구로 변신했던 건지는 밝혀지지 않는데...
  • 블랙 클로버/57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뒤늦게 "왜 일도 안하고 놀고 있는 거냐"고 규하지만 도찐개찐이다.
  • 블랙 클로버/60화 . . . . 1회 일치
          * 대결 시의 승패는 기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쪽. 대전 방식은 자유여서 동료를 찾아 팀을 짜도 좋고 도망만 다녀도 된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1회 일치
          * 대사제는 자는 것도 기한 걸로 친다고 해서 스코어는 8:5
  • 블랙 클로버/62화 . . . . 1회 일치
          * 그 정체는 망의 베토. 백야의 마안이 해저신전에 침입한 것이다.
  • 블랙 클로버/78화 . . . . 1회 일치
          * 망의 베토 전에서 사용한 연계 플레이의 수정판.
  • 블랙 클로버/79화 . . . . 1회 일치
          * 윌리엄 밴전스는 "보여줄만한게 못 된다"고 일단 거하는데 야미는 재차 요청한다.
  • 블랙 클로버/81화 . . . . 1회 일치
          * 문은 저로 닫혀버린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1회 일치
          * 도미나는 대로 들키지 말라고 누누히 강조하면서 피해간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탄을 베어버리며 적들에게 날아간다. 이미 아스타는 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걸로 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적들이 경계하지만 아스타는 적들을 밟고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쓸어버린다. 부관은 어떻게든 아스타를 저지해 보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단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다. 바네사는 그 실력을 칭찬하며 일단 저렇게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1회 일치
          * [[판젤 크루거]]는 마르스에게 축하 겸 "정말 훌륭한 제자"라고 칭찬한다. 파나도 젤을 알아보고 선생님이라 부른다. 두 제자의 얼굴에서 어린시의 모습을 발견한 젤은 "둘 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며 끌어안는다.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 제이콥 휘트니라는 인물이 운영하는 면 재배지가 있었는데 그곳의 노예들은 모든 노예들의 불행과 눈물에서 창조된 블러드젬을 연마하기 위해 25일 밤 넘게 자신들의 혈액을 이용한 고대의식을 치루었고, 이후 블러드젬은 휘트니를 영원히 가두었다.
  • 블루 마블 . . . . 1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대로 [[부루마불]]이 아닙니다.~~
  • 블리치/676화 . . . . 1회 일치
          * 우라하라는 아스킨이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라고 보는데 실제로 아스킨은 "유하바하 가 삼계를 부수고 만드려는 세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로 움직이고 있다. 아스킨은 "너도 같은 타입"이라며 회유하려 하는데 우라하라는 "과학자라면 직접 만들어서 본다"며 거한다
  • 블리치/682화 . . . . 1회 일치
          * 결국 켄파치는 그대로 쓰러지고 '''제라드의 칼질로 오른팔이 단된다.'''
  • 블리치/693화 . . . . 1회 일치
          * 렌지는 망에 빠진 이치고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 블리치/696화 . . . . 1회 일치
          * 우류는 시간에 맞출 수 없다고 망하는데
  • 블리치/698화 . . . . 1회 일치
          * 카린은 어머니를 닮아 거유가 됐다. 하지만 유즈는 벽(...)
  • 비국민 . . . . 1회 일치
         일제시에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말이 욕설로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뉴욕]]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 펀치넬로 패밀리의 간부로 매우 예민한 성격을 지닌 찌질이. 맥스는 그를 " 매우 흥분한 정력가 토끼같다,"[* like an overamped energizer bunny]고 평했다. 사업을 벌일만한 머리는 있으나 그걸 유지할 배짱은 없기에 빠르게 실패하며, 그로 인해 생긴 좌감을 미성년자 마약 중독자나 콜걸을 통해 해소한다.
  • 빈병 . . . . 1회 일치
         마트나 그런데 가져가면 돈을 주던 시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제도는 시행되고 있지만[*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 2017년자 생산품부터 100원, 130원.] 많은 가게에서 "우린 그런거 안 받아요,"라고 대답한다. 걸리면 과태료를 물게 되는 행동. 신고 보상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니 카운터가 꼴보기 싫었다면 찔러보자.
  • 산바람 . . . . 1회 일치
         학생 시에 조아라에서 연재한 작품도 있다.
  • 샤잠 . . . . 1회 일치
         원래 캡틴 마블이란 이름의 캐릭터였으며 만든 곳도 DC가 아닌 포셋 코믹스였다. 당시 캡틴 마블의 인기는 엄청나서 슈퍼맨을 위협할 정도였는데 이때 DC가 캡틴 마블은 슈퍼맨의 표이라며 소송을 걸었고, 부담을 견디지 못한 포셋이 캡틴 마블을 포기했다. 이후 캡틴 마블은 DC 코믹스 소속이 되었다.
  • 서귀포시 . . . . 1회 일치
         대포주상리대
  • 서동민 . . . . 1회 일치
         ==[[SK 와이번스]] 시==
  • 서든어택 2/캐릭터 . . . . 1회 일치
          * 발자국 사운드 볼륨 조
  • 서영무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 서훈 (1942년) . . . . 1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영남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에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 선조 . . . . 1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 성장이 나쁘다 . . . . 1회 일치
          1. 가정환경이 나쁘다. 훈육이 잘 되지 않아서 예의범 같은걸 잘 지키지 못한다.
  • 세이브 노가다 . . . . 1회 일치
         4. 거당한다.
  • 소격서 . . . . 1회 일치
         [[고려]] 시에 복원궁(福源宮), 소격전(昭格殿) 등의 도교 관청이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1392년 11월에 복원궁 등을 없애고 소격전만 남게 된다. 한양 천도 이후 1396년에 종로구 삼청동에 소격전이 건립된다. 1466년(세조12년)에는 소격서로 개칭된다.
  • 소냐(가수) . . . . 1회 일치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고 어머니를 8세 때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김천시|김천]]에 있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고학을 했고, 1998년 5월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을 통해 사연이 소개된 뒤 1999년 5월에 가수로 데뷔했다.
  • 소년보도 . . . . 1회 일치
         보도는 일단 행위를 중단 시킨 다음, 귀가 등의 조치를 시키고, 청소년 상담이나 다른 조치에 들어가는 차를 밟는다.
  • 소진은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다시 관계로 돌아와 총독부 군수직을 지냈다. [[평안북도]] 선천군수(1937년 8월 6일), 의주군수(1941년 3월 31일 임명)를 역임했다. 1938년 8월 1일 당시에는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으며, 그밖에 쇼와 대례 기념장(1928년 11월 16일), 훈8등 서보장(1930년 2월 12일), 훈7등 서보장(1933년 9월 4일), 훈6등 서보장(1935년 9월 9일), 훈6등 단광욱일장(1940년 4월 29일), 훈5등 서보장(1941년 8월 9일), 일본적십자사 유공장(1944년 12월) 등을 받았다. 특히 훈6등 단광욱일장은 선천군수 재직 시 [[중일 전쟁]] 당시에 군대의 숙영 및 급식, 군용물자의 조달, 군대 군인 및 파견 가족의 후원 및 위로, 국채 소화 및 저축 장려,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 국방 사상 보급 및 선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여 받은 것이었다.
  • 손전 . . . . 1회 일치
         * 《[[애정이 꽃피는 계]]》
  • 손지창 . . . . 1회 일치
         * 2004년 MBC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 ... 국철규 청년 시
  • 송언석 . . . . 1회 일치
         계파는 [[친홍]]계로 분류된다.[* 송언석 의원이 [[박근혜정부]] 시에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일하면서 친박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시다시피 송언석 의원은 [[배현진]], [[길환영]]과 같이 [[홍준표]]에 의해 자유한국당에 영입되면서 친홍 인사로 분류된다.]
  • 송원근(배우) . . . . 1회 일치
          * [[쓰릴 미]]에서는 그(리차드)가 나(네이슨)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장면이 있다. 2013년 [[쓰릴 미]] 에서 배우 [[정상윤]]과 본페어였는데, 연습을 하기 전 정상윤 배우에게 "형, 연습이지만 막 해봐도 돼요?" 라고 물었고 정상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연습할 때 그는 정상윤의 멱살을 잡아올렸는데 정상윤이 아프다고 했고 ~~그 날 아프다는 소리를 40번을 들었다고.~~ 그는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공연을 하던 [[전성우(배우)|전성우]] 배우가 전에 이렇게 아파한 배우가 있었는데, 병원에 갔더니 연골뼈가 끊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말해주었고 엑스레이로는 안나오고 초음파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정상윤 배우가 병원에 갔고 검사를 해보니 골이 되었다고(..). 그 길로 백화점에 달려가 칼슘제를 사 먹였는데, 정상윤 배우가 약을 잘 챙겨먹는 편이 아니라서 서운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멱살 잡는 동작을 조심해서 했는데, "자세히 보시면 아직도 제가 잡으려고 할 때 상윤이 형이 살짝 피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 송재호(배우) . . . . 1회 일치
         4남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남 송영춘은 대학생 시,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회 일치
         지진으로 부상당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카라는 힘이 소진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좌감을 느낀다. 모든 것을 잃고 무기함을 느끼고, 카라는 힘을 되찾지 못할지 걱정한다. 그 때 폭동이 일어나고, 카라는 슈퍼걸 의상을 입고 폭도들 앞에 나타난다. 카라는 능력을 잃은 상태임에도 폭도를 설득해서 진정시키고, 폭도에게서 총을 돌려받는다.
  • 슈퍼맨 . . . . 1회 일치
          눈에서 높은 온도의 열선을 발사한다. 위력은 조 가능.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1회 일치
          괴력에 몸 크기를 조할 수 있다. 외계인.
  • 스이츠 . . . . 1회 일치
         2002년 무렵부터 주로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하여 스위츠(웃음)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웃음)이라는 용법은 PC통신 시부터 있었다.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DC 코믹스]]에 등장하는 단체. 정식 명칭은 "The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dvanced Research Laboratories"지만 흔히 스타 연구소로 줄여 쓴다. ~~대 [[스타크래프트]] 연구소가 아니다!~~
  • 스틸오션/일본 . . . . 1회 일치
         >해대3형(海大三形, Kaidai IIIa) 잠수함은 1922년 당시 워싱턴 해군 조약 하에서 진행되던 8-8 함대 계획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번호는 S26였다. 해대2형(海大二形, Kaidai II)에 기반을 둔 이 함급은 더 깊은 잠수한계와 추가적인 그물 단기를 가지고 있었다. 해대3형은 제18전대와 제19전대 소속으로 자바해 전역에 배치되어 일곱척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모든 해대3형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그리고 스페인 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 정권은 전쟁 중에 독일에 의용군을 보내는 등 상당히 친나치 성향을 보이고 있었으나, 명목상은 [[중립국]]이었고 전쟁 말미에는 의용군을 귀국조치 시키며 망해가는 히틀러와 거리를 두었고 연합국과는 협상을 벌였다. 결국 연합국은 스페인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은 전후에도 계속 파시즘 체계를 유지될 수 있었다. 희망이 좌되자 공화파 망명자와 망명정부는 매우 낙담하였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알렉산더는 알렉스를 그를 모르는 척 하며 식사를 대접한다. 그러고는 알렉스에게 술을 계속 먹여 기시킨 후, 그를 방 안에 가두고 환희의 송가를 크게 틀어놓는다. 루드비코 요법의 영향으로 환희의 송가를 버티지 못하게 된 알렉스는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다.
  • 식극의 소마/154화 . . . . 1회 일치
          * 원래 최첨단 연구회는 따로 있었는데, 중학생 시 아리스가 "부실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식극해서 빼앗았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1회 일치
          * 유키는 망한다.
  • 식극의 소마/183화 . . . . 1회 일치
          * 쿠가는 오미자의 다섯가지 맛이 곰의 누린내를 적히 감싸서 박력 넘치는 감칠맛으로 변화시킨 거라고 평가한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회 일치
          * 하야마의 스페셜 케이준 스파이시가 묘하게 곰고기를 감싸서 복잡하고도 중후한 풍미를 자랑한다.
  • 식극의 소마/191화 . . . . 1회 일치
          * 정신을 차려 보니 놀랍게도 그의 눈 앞엔 시오미 준이 나타난다. 하야마가 어리둥해있는 사이 도지마는 그녀에겐 볼권리가 있어 초대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야마는 퉁명스럽게 뭐하러 왔냐고 투덜거리는데 시오미는 단호한 태도로 하야마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파워풀해서 하야마가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 하야마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처음으로 시오미에게 맞은 거라 정신적 충격이 더 강했다. 시오미는 자신이 하야마의 부모 역할도 하고 있으니 훈육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야마는 아직 애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반발해서 자기가 없으면 업무 진행도 안 되면서 애취급을 하냐고 대든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1회 일치
          * 망에 빠져있는데 소마는 오히려 간단한 상황이라며 "우리들이 십걸의 과반수를 이겨버리면 된다"는 무지막지한 발언을 하는데.
  • 식극의 소마/197화 . . . . 1회 일치
          그의 상태를 걱정하던 도지마도 이렇게 나올 때는 그저 기우인 것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지마 자신 조차 죠이치로는 어떤 풍파에도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는 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 식극의 소마/199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태도로 사과를 거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식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영 불안하다.
  • 식극의 소마/200화 . . . . 1회 일치
          * 학생들은 처음엔 당황하지만 타쿠미는 곧바로 적응해 도지마의 보조를 하고 타도코로 역시 소마와 노점을 했던 경험을 살려 적히 서포트한다.
  • 식극의 소마/203화 . . . . 1회 일치
          * 우여곡 끝에 완성된 양팀의 아쉬 파르망티에. 심판을 맡고 있던 [[나키리 센자에몬]]이 시식을 앞두고 있다. 팀 도지마의 경우 어느 정도 정석에 가까운 아쉬 파르망티에지만, 팀 사이바 쪽은 정말 괴상한 발상들만 때려박은 물건이라 어떤 맛을 낼지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1회 일치
          소마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예전에 그와 식극을 한 잇시키는 진짜 실력의 반도 채 발휘하지 않았었다는 걸.
  • 식극의 소마/217화 . . . . 1회 일치
          카와시마가 전승이 불가능하다고 한 이유는 신 십걸[[카부라기 쇼코]]의 존재 덕이었다. 그녀 또한 2학년이나 신 십걸을 정하는 배틀로얄에서 3학년 선배들을 연거푸 쓰러뜨리며 5석의 자리를 차지한 강자. 이렇게 카부라기에 대한 찬을 쭉 들은 쿠가는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에 감사를 표한 뒤 말한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회 일치
          * [[카와시마 우라라]]는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자 미마사카를 "스토커"라 성토하고 "1대1이면 대 십걸이 질리가 없다"고 현실도피를 해댄다. 1라운드에서 [[키노쿠니 네네]]가 소마에게 졌던걸 잊었나 보다.
  • 식극의 소마/228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소마는 "팀으로 승리"를 따내기 위해서 그 제안을 거하고 내일 참가를 결정,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의 참전도 결정된다.
  • 식극의 소마/232화 . . . . 1회 일치
          시합이 이루어지는 동안 일 관여도 관전도 하지 않고 있다. 근처 여관에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자미가 방문한다. 아자미가 떠보는 말에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어서 관전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하는데 아자미가 그걸 비웃으며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반역자들의 주축인 토오츠키 92기생들이 사실 센자에몬이 직접 모은 "옥의 세대"라는 것을.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1회 일치
         1949년 교토에 거주하는 민간인 하야시 쇼지(林正治, 당시 42세)가 "연하장이 전쟁 전처럼 부활한다면 좋겠다. 상품추첨을 더하면 연하장을 활발하게 보내서 서로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좌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연하장에 상품추첨을 더하고, 요금에는 기부금을 추가하여 사회복지에 공헌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하야시 쇼지는 스스로 견본 엽서와 선전용 포스터를 만들어서, 우정성(郵政省)에 가지고 갔으며, 우정성 내에서 회의를 거쳐 채용이 결정되었다. 우정성에서 발매한 이 연하장 엽서는 매우 크게 히트하여 수십년동안 이어지는 전통 상품이 되었다.
  • 신성왕후 . . . . 1회 일치
         신성왕태후 김씨의 소생으로는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고려 안종|왕욱]](王郁)이 있는데, 그는 제5대 국왕 [[고려 경종|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 황보씨와 정을 통해 제8대 국왕 [[고려 현종|현종]]을 낳았다.<ref>《고려사요》</ref> [[1008년]] 현종(顯宗)이 즉위하고 [[1010년]] 왕후로 추존하여 시호를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라 하고 능호는 정릉(貞陵)이라고 하였다. 원당은 [[경기도]] [[장풍군]]에 있는 현화사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1400&content_id=rp070314000001&print=Y 문화콘텐츠닷컴 〈현화사〉]</ref>.
  • 실업팀 . . . . 1회 일치
         그냥 경영진이 해당 스포츠를 좋아해서 실업팀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농담인 것 같지만 진짜다.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의 경우 원래 럭비를 좋아해서 럭비 실업팀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축구팀 성남은 아예 일화가 운영하던 시, 일화가 창단한 이유중 하나가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취미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팀도 취미로 운영할 수 있는데 실업팀 쯤이야(...)]
  • 아밀라아제 . . . . 1회 일치
         ~~확실히 아밀라아劑는 대 아니다~~
  • 아워맨 . . . . 1회 일치
          본명 리처드 "릭" 타일러(Richard "Rick" Tyler). 첫등장은 DC Sampler #2(September 1, 1984)[* 정보에 따라 Infinity Inc. #20(1985)에 등장하고, 아워맨 데뷔는 그 다음인 #21에서 이루어졌다는 정보도 있다.] 초대 아워맨의 아들이며 한시간동안 무작위로 미래를 보며 미러클로를 이용해 힘, 스피드, 민첩성, 반사신경, 내구력을 한시간동안 증가시킨다. 다만 미러클로가 건강에 불친한 약이라 하루에 한번만 사용한다. 그외 시간이 정지한 곳으로 보내주는 모래시계 타임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 아이네이아스 . . . . 1회 일치
         아이네이아스와 같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비정하는 신화는 그리스 계 식민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디오메데스]]는 다우니아의 왕 다우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땅을 이어받아 브린디시 등의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하며[* 디오메데스는 똑같이 이탈리아에 표류한 아이네이아스와 대적하던 에트루리아의 투르누스에게 동맹을 요구받지만,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 혹은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하였다고 한다.], 크레타의 지배자였던 이드메니우스 역시 크레타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남부로 도망쳤고, 살라미스 섬의 테우크로스는 키프로스로 떠나[* 테우크로스는 살라미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가족이었지만, 아이아스의 자살을 말리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아스의 아버지 테라몬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살라미스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었던 필로크테이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에페이오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시온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이탈리아 그리스 계 도시에서 있었던 유행에 로마 역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아이언맨(영화) . . . . 1회 일치
         천재이자 재수없는 부자인 토니 스타크는 텐 링즈라는 조직에 의해 큰 부상을 입은 체, 납치되었다가 의사 호 인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아직 납치된 상황인데다 자길 납치한 텐 링즈측에서 토니에게 무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이에 토니는 인센의 도움을 받아 기계 수트를 만들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구조되어 생환한 토니는 비서인 페퍼 포츠, 친구인 제임스 로즈, 아버지 시부터 친분이 있는 오베다이아 스테인과 재회하게 되며 피랍 사건을 계기로 자기 인생을 반성하고, 무기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 악당 . . . . 1회 일치
          입이 싸서 아군의 기밀을 처음이든 나중이든 술술 불어버리는 유형. 자기 입으로 비밀을 누설하는 것 자체가 멍청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에, 간지 넘치는 최종보스를 만들고 싶다면 대 권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유형은 소악당 내지 최종보스의 측근인 경우가 많다. 물론 자기 입으로 비밀을 다 알려주고도 덤벼보라는 사례도 있지만 비밀을 알아도 공격하기 힘든, 즉 신체능력 등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당당한 것이다.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비밀을 알려줘서 충격을 주는 사례도 있다.
  • 악마의 대변인 . . . . 1회 일치
         본래 가톨릭 교회에서 시복/시성 차에 있어 대상의 결점을 남김없이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Promotor Fidei 지위를 뜻했다. 정식 명칭은 아니며, 속칭이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1회 일치
         망적인 싸움 끝에 아스투리아스가 함락되자, 마지막에는 이민선 키시로코파를 마더 머신에 부딪쳐서 마더 머신과 공멸하고 만다.[* 그러나 마더 머신 본체는 "여기서 할 일은 다 했다"면서 우주 저편으로 도망쳐 버렸다.(...)]
  • 알렉스 볼더 . . . . 1회 일치
         뉴욕시 경찰청 소속 형사였던 맥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 올 것을 권유해왔다. 맥스는 아내와 딸이 있었기에 이를 거해왔지만, 마약 "발키리"에 중독된 자들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회 일치
         * 맨날 깔끔 떠는 것과는 달리 자기 아지트는 돼지우리. 식완제품이나 레어한 컵라면, 화장품, 덮밥에 딸려오는 생강임, 재사용 중인 나무젓가락 등등 온갖 지저분한 물건들이 다 쌓여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사실 암살자들은 살생님이 사신으로 일하던 시부터 주시하던 실력자들이었다.
  • 애로우 . . . . 1회 일치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에서도 어째 고난의 연속이다. 미래 세계에서 아톰 기술이 반달 새비지가 후원하는 독재자에게 접수되어 아톰형 로봇이 독재자의 경찰로봇으로 쓰이질 않나, 자신의 업적이 몽땅 자신의 형편없는 동생이 이룬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질 않나(…), 호크맨이 사망한 뒤 과거 세상에서 고립되었을 때 호크걸과 연인이 되지만 호크맨이 부활[* 엄밀히 말하면 미래에 환생한 호크맨]하면서 좌(…)하질 않나.
  • 야규 슈메 . . . . 1회 일치
         그런데, 이 결혼은 [[야규 무네노리]]가 이끄는 에도 야규 가문과 야규 토시요시가 이끄는 오와리 야규 가문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토시요시는 여동생을 가문과 출신을 알 수 없는 타국 사람에게 시집 보낸 데다가, 게다가 사전에 오빠인 자신에게 상담없이 숙부 무네노리가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토시요시는 무네노리와 [[교]]를 선언하였다고 한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1회 일치
         [[야규 무네토시]]((柳生 宗厳 石舟斎)의 아들. [[야규 무네노리]]의 형. 세키슈사이의 적남이지만, 젊은 시 전장에 나갔다가 총상을 입어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생애 불구의 몸이 된다.
  • 야차원숭이 . . . . 1회 일치
         원래 무시무시한 괴물이었지만 점점 평가 하가 이루어져서, 3부 시점에서 이미 미드카더 수준으로 전락.
  • 양예나 . . . . 1회 일치
          * 담력이 상당한 듯하다. [[APRIL이 간다]]에서 망설임없이 번지 점프를 제일 먼저 하고 날다람쥐로 진화(읭?)한다던지, 폐가도 성큼성큼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웃으며 춤까지 출 정도. ON APRIL에서도 다른 멤버들은 놀이기구가 무서워서 울려고 하는데 예나는 '스릴있는걸 못타서 아쉽다'라고 하며, [[아프리카 TV]]에서 공포 게임인 [[Five Nights at Freddy's 4]]를 플레이해 보는 방송이 있었는데, 다른 멤버인 [[이현주(배우)|이현주]], [[이나은]]은 무서워서 기하려고 하는데 예나는 아주 무덤덤. ~~정작 심박수는 제일 높다는게 함정~~ [[https://youtu.be/KOlh9SiHq-M|영상보기]] [[https://youtu.be/KuQf2_z0MWg|다른 게임영상]]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1회 일치
         조작키가 에치오 삼부작 시에 비해 겁나게 많이 바뀌었다. 후속작인 [[어쌔신 크리드 IV 블랙 플래그]]에서도 상당히 많은 조작키가 바뀌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1회 일치
          * 아퀼라의 속도는 세가지로 조할 수 있다. 정지, Half Sail, Full Sail. 정지는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다. Half Sail은 돛을 반쯤 편 상태로, 속도는 비교적 느리지만 조타에 용이하다. Full Sail은 돛을 모두 편 상태로,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조타가 어렵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회 일치
          이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주인공. 사이퍼는 TAC 네임이며, 이름은 대 나오지 않는다.
  • 엘디아 인 . . . . 1회 일치
         일단 마레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엘디아를 증오하는 이유는 엘디아 제국 시에 수많은 민족을 탄압하는 등 악행을 저질러왔기 때문이라 한다.
  • 역적 . . . . 1회 일치
         전근대 시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영양군 . . . . 1회 일치
         대표적으로 '''고추'''가 유명하고, 군 슬로건도 '''HOT(맵다)'''을 사용하고 있다. 과장 좀 보태서 영양군민들이 고추한테 엎드려 해야 할 정도다. 남미 원산인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자생한 품종인 '''수비초'''가 난 곳이 영양군이다. [[청양고추]]의 '청양'의 어원이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영양군이라는 설이 있다. [[청양고추]] 항목 참고.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영양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다. 영월, 영광, 괴산, 청양과 함께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는데, 앞의 4군은 [[고추]]도 등록되어 있다.
  • 영창대군 . . . . 1회 일치
         나중에 효종 시, 이정표가 살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 때문에, 그 후손인 이후선이 파직 당하게 된다.
  • 예종 . . . . 1회 일치
         세조가 싸지른 똥(권신들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이를 견제할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개인의 카리스마로만 억누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심신을 혹사한 끝에 요한 왕.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형의 차남인 잘산군(또는 자을산군)이 이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여성의 생리 주기를 연구하여, 배란기와 임신가능한 기간에 대한 학설을 발표, 임신수태조이 응용되는 오기노학설(荻野学説)을 제창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일본에서는 배란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을 오기노식(オギノ式)이라고 부른다.
  • 오보카타 하루코 . . . . 1회 일치
         STAP 세포의 정체는 다른 기관에서 연구하던 'ES 세포'였던 것이 드러나, 도 등의 용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 오봉 . . . . 1회 일치
         우란봉에(盂蘭盆会-백중맞이)를 줄인 말로, 일본의 중요한 명이다. 평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얻어서 시골로 귀성하므로 회사가 업무를 쉬는 회사가 많다. 오봉의 시기는 전국 대부분이 양력 8월 15일이지만, 다른 날짜에 행사를 하는 지방도 있다.
  • 오승근 (1908년) . . . . 1회 일치
         |장=3. 대권력의 조력자 되기 - 해방기 법조인들, 김용무.이인.오제도.선우종원
  • 오승근 (가수) . . . . 1회 일치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순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순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 오준영 (1955년) . . . . 1회 일치
         20세 시이던 [[1974년]]에 [[가수]]이자 [[영화 배우|영화배우]] 겸 [[사회자|방송MC]]인 [[임성훈 (방송인)|임성훈]]의 《시골길》이라는 곡을 써서 [[작사가]]와 [[작곡가]]로 데뷔하였고 [[1978년]] 《오준영 1집》을 발표하여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였으며 [[1983년]] [[영화]] 《사랑만들기》로 [[영화 음악]][[영화 감독|감독]] 데뷔했고 [[1988년]] [[김연숙]]의 《초연》([[이호섭]] 작사)을 작곡 하였고 한때는 [[템페스트 (음악 그룹)|템페스트]]의 《동그란 얼굴》, 《가을비》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 오중기 . . . . 1회 일치
         학창시에는 [[대동중학교(경북)|대동중학교]]와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반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1회 일치
          * '''[[대영역|맨다리에 미니스커트에 니삭스]]'''
  • 온주완 . . . . 1회 일치
          * 신인 시 가수 [[김종국]]과 외모가 닮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 와가마마 . . . . 1회 일치
          * 예의범이 나쁘고, 버릇이 없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회 일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상론, '''SF 창작 설정'''.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이 부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이 갖춘 과학적 지식과 따라서 상상한 것을 뜻하므로,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체제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하여 이 문서에서는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을 떄떄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로서 써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SF적으로 창작된 이상론이라고 봐도 좋다.
  • 요괴:냉장고 . . . . 1회 일치
         나는 그애의 조금 징그러운 상상을 알아차렸죠. 우린 아직 초등학생이었지만, 어른 커플들이 그런 말을 주고 받는다는 거나 그러고 나서 뭘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애도 그런 짓까지 생각했는진 모르지만, 어쨋든 조금 더 친밀한 일을 하고 싶었던 거겠죠. 나는 솔직히 그런게 내키지 않았지만 거해서 어색해지고 싶지도 않았아요. 그래서 핑곗거리를 만들어냈죠.
  • 요괴:선풍기 . . . . 1회 일치
         이 요괴는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나, 저 무서운 능력에 대해서는 주로 [[한국]]에만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이 요괴에게 봉인을 걸어, 일정 시간 이상 움직이면 저로 음직임이 멈추게 하는 주박술을 걸어놓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한국에서도 여름에 선풍기에게 살해당했다는 안타까운 설화가 자주 전해진다.
  • 요괴:조카몬 . . . . 1회 일치
         명에 쉬고 있으면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괴성을 지르고 뛰어다니거나 욕설을 퍼붓고 사람을 때린다. 사람의 광을 뒤져서 귀중한 물건이나 도서를 찾고, 찾아낸 물건을 제 것으로 삼아 가져가려 한다. 조카몬이 물건을 부수거나 훔쳐가도, 집안 어른들은 허허 웃으면서 허락한다. 물건의 주인이 화를 내면 오히려 조카몬을 소중히 섬기지 않는 불경죄를 묻는다. 그리하여 조카몬이 나타나면 모든 보물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 우라센케 . . . . 1회 일치
          * 장남 소우세츠(宗拙) : 장남인데 경력을 알 수 없다. 의당했다는 설이 있으며, 카가 번 마에다 가문(加賀藩前田家)에 임관했다는 설도 있다.
  • 우메보시 . . . . 1회 일치
         [[매실]]을 말려서 차조기의 입을 넣고, [[소금]]에 여서 만든다.
  • 우유 . . . . 1회 일치
         [[소]]에게서 갓 짜낸 원유는 살균과정과 같은 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마시지 않는게 좋다.
  • 우천석 . . . . 1회 일치
         ** 조부 - 우경(禹慶節) : 호장
  • 워터보딩 . . . . 1회 일치
         [[http://bostonkorea.com/news.php?mode=view&num=7071|보스톤코리아 - 부시 행정부 시 고문 방법 공개]]
  • 원피스/818화 . . . . 1회 일치
         * 라프텔에 가까워졌지만 나머지가 사황 손에 있다는 말에 우솝과 나미는 망한다
  • 원피스/819화 . . . . 1회 일치
         * 밍크족은 몽키 D. 루피에게 동맹이 되어 함께 싸우자고 제안하나 일단 거한다
  • 원피스/820화 . . . . 1회 일치
          * '''둘이 타고 있던 시엔 샹크스나 버기도 견습 선원으로 타고 있었다.'''
  • 원피스/821화 . . . . 1회 일치
         * 한편 누군가 전보 벌레로 통화하는데, 상대방은 "잭의 통신이 바다에서 갑자기 단됐다"며 그를 카이도라고 부른다
  • 원피스/824화 . . . . 1회 일치
         - 상디. 타마고 남작의 회유를 거하며... 근데 이렇게 멋진 대사를 해놓고 샬롯 푸딩의 사진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아한다.
  • 원피스/830화 . . . . 1회 일치
          * 함께 하겠다는 루피의 말은 "상디를 탈환한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거한다. 결국 루피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 원피스/831화 . . . . 1회 일치
          * 나미는 셋에게 대로 자기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탐색을 시작한다.
  • 원피스/833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어린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전사만을 가치로 여기는 제르마에서는 낙오자 취급을 받고 가족들 조차도 그를 학대한다.
  • 원피스/838화 . . . . 1회 일치
          * 손벽을 치면 비스킷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형태나 강도 또한 마음대로 조한다.
  • 원피스/840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어린 시 이미 죽은 걸로 나온다.
  • 원피스/842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상디의 그 "기사도"는 어디서 익힌 거냐고 묻는데, 상디는 그 말에 담배를 피워물며 제프 밑에 있던 시을 회상한다.
  • 원피스/846화 . . . . 1회 일치
          타마고 남작은 5년 전 밍크족이 이 보물전에 침입하는 불상사가 있었다고 말한다. 포네그리프를 노렸던 도둑은 당시 페콤즈의 탄원을 받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달아났다. 범인은 페드로. 그가 다시 이 곳에 나타났다. 타마고 남작은 로드 포네그리프는 해적왕이 되는 길이며 빅맘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물건이라며 이번엔 대로 같은 불상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 원피스/849화 . . . . 1회 일치
          * 소란이 벌어지자 쵸파는 브레인 포인트를 써서 몸집을 작게 줄인다. 큰 몸집에 맞춰졌던 포승이 저로 풀리자 쵸파는 럼블볼을 복용한다. 그 사이 캐럿은 가짜 캐럿, 개구리까지 구해내고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 부하들이 브륄레를 도우러 달려들자 젖은 바닥으로 전기충격인 "일렉트리컬 루나"를 사용해 전부 감전시킨다.
  • 원피스/851화 . . . . 1회 일치
          * 그의 정체는 [[징베]].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그가 루피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일단 거기서 나오겠냐고 묻는다. 루피는 기쁘게, 나미는 실하게 나가겠다고 소리친다.
  • 원피스/853화 . . . . 1회 일치
          그때 루피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낸다. 레이쥬가 먹을 걸 권하지만 루피는 거하는데 레이쥬는 그가 상디 앞에서 "네가 주는 밥이 아니면 안 먹는다"고 선언한걸 기억해낸다. 루피는 상디가 속지 않았다면 다행이라며 레이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갑자기 창문으로 달려간다. 레이쥬가 무슨 짓이냐고 묻는데 루피의 대답은 간단하다.
  • 원피스/860화 . . . . 1회 일치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동쪽 하구에서 [[페콤즈]]를 돌보던 어인 해적단은 그를 해변에 묶어둔 채 토트랜드를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페콤즈는 이들이 떠나려 하자 빅맘 [[샬롯 링링]]도 이 사실을 아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원피스)|알라딘]]은 "떠나는 자는 죽인다"는게 이 나라 칙이니 오히려 알면 안 된다고 응수한다. 페콤즈를 버리는 모양세가 됐지만 그가 굶지 않게 식량을 준비해놨고 금방 그를 발견할 사람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징베]]는 페콤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어인 해적단의 배가 출항한다.
  • 원피스/862화 . . . . 1회 일치
          * 홀케이트 성의 요리장 "미식기사" [[슈트로이젠]]이 부하 요리사들과 춤을 추며 입장한다. [[원피스/858화|케이크를 만들 때 희한한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슈트로이젠과 부하들이 한소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이 희한한 노래와 함께 초특대 웨딩케이크를 하객들 앞에 내놓는다.
  • 원피스/875화 . . . . 1회 일치
          * 제우스가 크리마텍트를 빨대처럼 빨아먹은게 그때였다. 나미가 거할 틈도 없었다. 제우스는 원액을 빨아먹은 셈인데 그 여파인지 녀석의 덩치가 삽시간에 불어났다. 숲의 상공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래진 제우스. 몸체가 검고 방전이 흘러나오는 초거대 뇌운으로 성장해 버렸다. 나미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놀랐다. 상디가 잽싸게 그녀를 붙들고 뛰었다. 적이 코 앞이라면서. 그 말대로 빅맘과 합세한 추격대의 대병력이 물딜 듯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미는 불현듯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 때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지금 제우스 안에는 크리마텍트로 뿌린 웨더 에그가 가득 차있다. 나미는 일행에게 적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라고 말하고 자신은 크리마텍트를 치켜든다.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굳이 제우스를 복종시키지 않아도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 적당한 거리가 되자 나미가 크리마텍트를 내리쳤다.
  • 원피스/877화 . . . . 1회 일치
          쵸파가 눈물 범벅인 채 캔디 인간이 되고 이젠 브룩 차례였다. 끈적거리는 사탕이 무서운 속도로 팔다리를 감아올라갔다. 브룩이 "달콤해지고 싶지 않다"고 규했지만 페로스페로의 가학심만 충족시켰다.
  • 원피스/880화 . . . . 1회 일치
          * 나미는 루피의 말을 일행에게 전달하고 보이는 거울마다 몽땅 깨뜨리려고 하지만 이변이 닥친다. 빅맘 [[샬롯 링링]]이 바다 자체에 소울을 부여해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켜 써니호를 덮친다. 그 광경을 본 나미는 망해 거울을 통해 루피에게 "이젠 틀린 것 같다"고 전하는데.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1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만남계 사이트]]를 이용하다는 척 하면서 마사토 이치로에게 접근한다. 마침 돈이 궁하던 그는 쉽게 접근했다가 약을 먹고 기한다. 깨어난 마사토는 야쿠자 사무실[* 유한회사 '이타우에 무역坂上貿易'이라고 써있다.]에 버려져 있었다.
  • 월하노인 . . . . 1회 일치
         두릉(杜陵)에 위고(韋固)가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빨리 아내를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러 갈래로 구혼을 해봤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정관(貞観, 당태종 때의 연호) 2년, 청하로 여행을 떠났을 때, 송성(宋城)의 남쪽에 있는 점(店,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먼저와 있던 손님에게 청하사마(清河司馬) 반방(潘昉)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점의 서쪽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의 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위고는 그것을 간하게 기다리며, 밤에 외출을 나갔다. 달이 밝을 때였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학을 과도하게 애호하였던 황당한 일화 때문에 암군(暗君)으로 평가받는 인물. 스스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나라도 멸망시켰으니 암군이라 불릴 만 하다. 다만 망적인 상황에 몰려도 적족과의 전투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죽은 것 때문에 그나마 마지막 용기는 있었다고 평가된다.
  • 유니콘남 . . . . 1회 일치
         || 멸해주어서 다행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
  • 유목민 . . . . 1회 일치
         유목민이라고 하면 [[말]]. 유목민들은 승마 기술을 처음으로 익혔으며, 그들의 생업인 유목의 특징상 어린 시부터 승마를 배워 뛰어난 마술(馬術)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평소부터 단련된 유목민들은 거의 모든 부족원이 순식간에 위력적인 기마병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유목민족의 높은 전투력의 근원이 되었다.
  • 유미(가수) . . . . 1회 일치
         학창 시 별명이 '고음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노래에 자신이 있었고, 당시 어린 나이에 [[충주시]]에서 열린 규모 있는 가요제에서 우승할 정도로 노래 실력도 탁월하였다. 감정 표현도 훌륭하여 특히 슬픈 발라드 노래가 인상적이다.
  • 유승옥 . . . . 1회 일치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 유재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LG 트윈스]] 시==
  • 유지연(탤런트) . . . . 1회 일치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94년 뮤지컬배우 데뷔한 그녀는 고등학교 재학 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1993)로 연극 무대와 인연을 맺고 1995년 SBS 드라마 《[[다시 만날 때까지]]》에도 단역 출연하였으며 대학 재학 중 SBS와 KBS 탤런트에 동시 합격, 1996년 [[KBS]] 슈퍼탤런트 입상과 함께 1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 유지태 . . . . 1회 일치
         * [[2005년]] 《[[친한 금자씨]]》 - 성장한 원모 역
  • 유태웅(탤런트) . . . . 1회 일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에 귀국한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성장했다. [[1993년]]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단역 출연해서 연기자 첫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94년]] [[문화방송|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이현경]], [[최지우]],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 2003년에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역으로 열연했다.
  • 윤균상(1987) . . . . 1회 일치
         2012년에 [[SBS]] [[드라마]] [[신의(드라마)|신의]]로 데뷔하였으며, 2년 뒤에 같은 방송사의 [[피노키오(드라마)|피노키오]]에서 주인공의 형 역할인 [[기재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또 같은 방송사의 [[너를 사랑한 시간]]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차서후 역으로 지지를 받기 시작하고, 그리고 같은 해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앞서 방영했던 이후의 세계관을 다룬 [[뿌리깊은 나무(드라마)|뿌리깊은 나무]]의 내금위장 [[무휼(뿌리깊은 나무)|무휼]]의 젊은 시을 연기했다. 앞서 연기했던 차서후가 귀공자적인 매력을 가진 엘리트 피아니스트였다면 무휼은 우월한 신장과 제대로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금사빠]]에 허당기가 넘쳐서 [[갭모에|귀여운]]모습까지 보이는 야생 ~~[[개그 캐릭터|개그]]~~무사의 이미지. 메이킹 영상이나 인터뷰를 보면 배우의 실제 성격은 그간 맡아온 배역들 중 무휼에 가장 가까운 듯 하다.
  • 윤덕주 (농구인) . . . . 1회 일치
         [[1935년]] [[숙명여고]] 시 선수로 농구와 인연을 맺은 뒤 대한농구협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각종 체육단체에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449350 윤덕주 농구협명예회장 별세] 매일경제 2005.07.08</ref> 1935년 숙명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일제강점기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으며 1940년대 초반 결혼 후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코트에서 뛴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했다.<ref name="dibigos"/>
  • 윤보라 . . . . 1회 일치
         ||<#B26724> {{{#ffffff '''별명'''}}} ||<(> 석순이[* 초등학생 시 별명이었다고 한다.(출처: [[아는형님]])] ||
  • 윤용현(1969) . . . . 1회 일치
         악역을 하면서도 가장 찝찝했던 연기는 "제5공화국"에서 [[정승화]]를 욕하고 고문하던 연기로 드라마가 끝난 후 소주 한병과 담배 한갑을 들고 대전 현충원에 있는 정승화의 묘소에 방문해 "죄송하다. 제가 이런 역할을 했다"라고 사과하며 을 올리고 왔다고 한다.
  • 윤인조 . . . . 1회 일치
         * [[2019년]] [[KBS2]] 일일드라마 《[[태양의 계]]》 - 진정해 역
  • 윤주희(배우) . . . . 1회 일치
         공식적인 데뷔작은 2007년 [[KBS1]] [[일일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서 서주경 역을 맡은 것이지만, 스튜어디스과 학생이던 시 [[2004년]] 영화 [[아는 여자]]에서 항공기 추락씬을 촬영하러 그녀의 학교에 왔었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객실 승무원|스튜어디스]]역을 맡은 바 있다.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 윤지숙(배우) . . . . 1회 일치
         * [[2014년]] [[KBS2]]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 ... 최미숙 역
  • 윤진식(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였다. 청주고등학교 때부터 [[이시종]] 현 충청북도지사와는 친인 동기생이었다. 단, 나이는 윤진식이 1살 더 많다.
  • 윤찬수 . . . . 1회 일치
         '''윤찬수'''는 [[KBO 리그]] 전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2009년]] 4분기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원 소속팀인 [[LG 트윈스]]로 복귀하였고 [[2011년]] 가을 방출되었다. [[2012년]] [[5월 26일]] 새벽 [[국군체육부대]] 소속 시 친분을 쌓은 승부조작의 장본인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함께 [[서울특별시|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부녀자를 납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윤찬수는 공범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2013년]] [[1월 17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같은 날 김동현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45507 `특수강도' 前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 법정구속]</ref>
  • 윤흔 . . . . 1회 일치
         [[1624년]](인조 2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李适) 등이 거병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와, [[이괄의 난]]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즉시 [[공주시|공주]]까지 달려가 [[조선 인조|인조]]를 호종하였으며, 그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그 뒤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청나라]]와의 강화, 회담을 강력히 배척하는 소를 올렸다. 그의 결사항전 주장은 묵살되었찌만 주화에 대 반대한 점으로 [[사림]]의 지지를 받았다.
  • 은혼/577화 . . . . 1회 일치
         * [[하루사메]] 함대의 포격이 현장에 떨어지면서 카무이, 가구라가 벽 아래로 떨어진다
  • 은혼/579화 . . . . 1회 일치
         * 어떻게든 작업을 걸라고 하지만 멘트가 망적이다. "이런 오로치보단 나의 가랑이의 오로치를 퇴치하러 가지 않겠습니까?"
  • 은혼/583화 . . . . 1회 일치
          * 카무이는 악에 받쳐서 달려드는데 겨우 일어선 가구라의 규도 듣지 못한다.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가구라는 앞으로 대머리(우미보즈)의 치료비도 대야하니 따뜻한 눈으로 봐달라고 하는데, 긴토키는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대머리 치료라면 먹물이라도 부워줘라"고 거한다.
  • 은혼/601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신파치는 "네가 점프에 존재하는게 제일 위험"이라고 적한 츳코미를 날린다.
  • 은혼/607화 . . . . 1회 일치
          * 그들이 지방에서 힘을 기르던 시. 곤도 이사오는 초인양성깁스를 달고 특훈에 매진하고 있었다.
  • 은혼/612화 . . . . 1회 일치
          * 실은 다츠마 일행과 헤어진 직후 어떤 사고가 생겼던 것. 생각보다 긴 시간 다츠마와 연락이 두되자 가츠라는 언제든 역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때 부하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적전함을 보고 놀라는데, 가츠라는 본함은 스텔스 함이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촌구석 사무라이. 스텔스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하들은 정말 안 보이는 거냐고 미심쩍어하는데 가츠라가 투명해지는 그런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설명하던 즈라 조차 방향이 이상해져서, 전함은 투명해져도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며, 우주공간에 둥둥 떠있는 걸로 보이는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유일하게 정상인인 엘리자베스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번엔 가츠라가 "우리도 투명해진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내용물은 완전 노출되는게 아닌가"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 빈보쿠사이가 그 말을 받아 긴토키에게 "정말 즐거운 싸움 아니었느냐"고 말하자 긴토키는 그때 빈보쿠사이에게 당해 골 당한 일을 들며 학을 뗀다.
  • 은혼/618화 . . . . 1회 일치
          * 빈보쿠사이는 정신을 잃은 니시노를 수습하는 중. 빈보쿠사이는 상처를 묶으며 이정도로 죽을 만큼 연약하게 키운 기억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다키니 병사들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벽을 무너뜨리며 빈보쿠사이를 추격해온 병사들. 빈보쿠사이는 작은 몸으로 니시노를 짊어지며 대 버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은혼/620화 . . . . 1회 일치
          * 츠쿠요는 긴토키가 빈정거린 말을 맞아치며 "네 말대로 지구 여자의 평판을 낮추러 왔다"고 쏘아붙인다. 옆에 있던 [[야규 큐베]]는 자신이나 츠쿠요처럼 "여자"를 버리고 사는 여자들이 지구 여자들의 위신을 짊어지게 됐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긴토키를 짓밟던 [[가구라]]는 자기가 있으면 그정도 하향은 커버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긴토키는 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무라 타에]]는 남자들도 도망가는 사지에 모이는건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여자를 버렸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
  • 은혼/623화 . . . . 1회 일치
          * 지로쵸의 바람대로 오토세는 타츠고로와 이어지고, 그렇게 셋의 연결은 더 강해진다. 부딪히고 싸울 때마다 강해진 인연은 부상 당해도, 쓰러져도, 끊어지지 않았다. 길을 잃고, 좌하고,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 은혼/625화 . . . . 1회 일치
          * 가부키쵸의 골목에서 눈을 뜬 오우가이는 새삼 그때의 공포와 망감, 굴욕감이 되살아난다. 뿔이 부러진 것도, 이런 씁쓸한 감상에 잠기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뿔이 또 부러진 것인가? 그리고 왜 그들 부족은 그때와 같이...
  • 은혼/626화 . . . . 1회 일치
          * 그렇게 달아나다 보니 헤도로가 꿀밤을 먹이고 있는 그 장소로 돌아와 버렸다. 긴토키는 어째서 이꼴이냐며 괴물과 괴물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겠다고 규한다. 게도마루는 됐으니까 팍팍 앞으로 가라며 긴토키를 걷어찬다. 긴토키는 떠밀리다가 누군가와 부딪히는데, 부딪힌 인물과 위치가 영 좋지 않다.
  • 은혼/630화 . . . . 1회 일치
          다츠마의 병력이 집결해 있는 공간의 벽면에서 숨겨진 총기가 일제히 드러난다. 자작이 눈치채고 일행을 피신시킨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숨겨진 총기가 나타난다. 게다가 전방으론 결국 엔죠를 따르기로 한 병력이 몰려온다. 자작은 병력도 배도 엔죠의 도구가 된 판에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며 망적인 기색을 드러낸다. 하지만 다츠마는 이번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들이 할 일은 똑같다"며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은 천장의 소화장비를 터뜨려 적들의 시야를 가린다. 다츠마, 무츠, 자작이 적들을 치고 나간다.
  • 은혼/631화 . . . . 1회 일치
          하타 황태자는 옆의 [[네스(은혼)|네스]]가 주모자인양 빠져나가려 하지만 주군에 대한 충성은 밥말아먹은 네스가 그냥 뒤집어 쓸리가 없었다. 둘은 엔죠 황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이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떠미는 추태를 부린다. 급기야 이들은 누가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해방군에게 맡기기로 한다. 하타 황태자는 눈을 감고 있을 테니 그런 말 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시킨다. 그러면 해방군은 보고 그렇게 알게 될 거라면서. 네스는 실눈 뜨지 말라면서 "대 안 볼 테니 급식비 훔친 애는 손을 들어라"고 개드립을 첨가한다.
  • 은혼/635화 . . . . 1회 일치
          * 남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상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태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 은혼/638화 . . . . 1회 일치
          * 긴토키는 발 밑을 울리는 심상치 않은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우츠로에게 외친다. 우츠로는 다소 친할 정도로 자세하게 대답했다. 우선 다행한 점은 [[히라가 겐가이]]의 나노머신이 터미널 지하 깊숙한 곳까진 미처 닿지 않았다는 것. 거기서 우츠로가 계획한 최후의 계획이 무사히 시작했다. 그는 손에 넣은 "열쇠"를 이용해 터미널 지하의 "문"을 열엇다. 문이란 "용혈"을 봉하고 있는 터미널의 중추 장치다. 아르타나의 흐름이 "용맥"이며 그 원천이 "용혈". 그걸 제어하기 위해 설치된 "문"을 잘만 다룬다면 단숨해 폭주시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만한 대폭발을 일으킬 수도, 지금처럼 혈관 각지를 부수어 폭주를 확산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우츠로는 가부키쵸 연합군 따윈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 긴토키와 그들은 단지 우츠로의 손 위에서 춤을 췄을 뿐이다.
  • 은혼/641화 . . . . 1회 일치
          * 거침없이 나아가는 신스케와 마타코. 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들의 뒤를 받치고 있는 반사이. 부상의 영향은 느낄 수 없었다. 반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건 한 가지 확신이다. 넘어설 수 있다, 빠져나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적들이 있더라도 그대, 신스케와 함께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반사이는 이 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환상을 품게되는 자신에 놀라워했다.
  • 은혼/644화 . . . . 1회 일치
          * 엔쇼가 무기를 숨기고 있다. 양이지사들의 통한의 실수였다. 엔쇼의 라이트세이버는 사정거리가 상당했고 고지를 잡고 있는 다츠마를 저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너무 방심했을까? 엔쇼의 기습이 너무 유효적했던 걸까? 그의 칼날이 다츠마를 꿰뚫는다. 가츠라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한 사람이 희생된 후였다.
  • 은혼/645화 . . . . 1회 일치
          * 초연의 황자 [[엔쇼]]는 다 끝장난 것 같았던 해방군의 전세를 회복시킨다. 뿐만 아니라 양이지사들의 두 축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에 역공을 가해 [[무츠(은혼)|무츠]]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라는 두 동료를 희생시킨다. 병력은 대부분 소실, 히노카구츠치 발사 저지,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는 침몰 중, 자신은 양이지사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그의 안에서 타들어가는 불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양이지사들이 치른 희생이야 말로 무의미하다고 평가하했다.
  • 은혼/647화 . . . . 1회 일치
          그는 시체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다른 폐품들처럼 시설물 잔해에 간신히 걸려있던 그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흘린 피만 봐도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그게 문제였다. 무전으로 화상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으로 보면 자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헨페이타가 망하지 않을 형태로. 그게 어려웠다. 그때 신스케가 손을 들어 어려움을 끝내준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가 통신으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도.
  • 이경희 (1880년) . . . . 1회 일치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좌을 당하자,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계획하였다. 그러다 [[지린 성]](吉林省)에 [[김원봉]](金元鳳), [[김시현]], 유시태(柳時泰), 이성우(李成宇), 곽경(郭敬), [[김지섭]](金祉燮) 등이 찾아오자 이들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의 조직에 참여하고, 가입하였다. 이후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자금과 무기를 마련하는데 노력했다.
  • 이금서 . . . . 1회 일치
         [[고려사]]와 [[고려사요]]에 이금서(李金書)의 증손자 [[이주좌]](李周佐)를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주좌의 증조부 이금서(李金書)는 중원태수 호부랑중을 역임하고 고려 태조의 외손녀이며 신라 경순왕의 딸인 신란궁부인 김씨와 혼인하였고, 조부 이윤홍은 병정(兵正)을 역임하였는데, 비록 부친 이승훈(李承訓)이 칠품 관직인 정조시랑(正朝侍郞)에 그쳤다고 한미한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 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보드위의 캐릭터들은 고유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능력치에 따라 적한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보드게임의 특성상 주사위 신이 보여주는 변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각 캐릭터마다 가진 특성과 시작 능력치를 생각하고 전략을 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능력치들은 오로지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보상으로만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이대근 (조선) . . . . 1회 일치
         아버지는 도촌 [[이수형]]이고 어머니는 문공 무송헌 [[김담]](金淡)의 딸 예안김씨이다. 연산 2년(1496)에 진사하고 음직으로 감찰과 홍천현감을 역임하였다. 그가 선영길에 순흥 청다리를 지날 때마다 말이 피해가기에 살펴보니 금성대군이 화를 당한 곳이었다. 그날 밤 [[금성대군]]이 그의 꿈에 현몽하여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한화 이글스]] 시==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 이민호(1969) . . . . 1회 일치
         == 선수시 ==
  • 이방원 . . . . 1회 일치
         고려 시에 과거에도 급제한 등 문재(文材)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훗날 백전노장이던 부친의 군대를 친정하여 제압할 정도로 군사적 재능도 있던 나름 먼치킨으로, 정치적으로 노회한 운영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민씨의 일족이나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진력하였으나, 숙청 대상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 지나친 옥사는 자제하였으며 또한 사관이나 대간의 역할을 긍정하여 균형추를 맞추는 부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민생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개국 초부터 피바람 불었던 조선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 이보림 . . . . 1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프로 시 ==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 이상휘 . . . . 1회 일치
         [[2018년]] 1월에 [[이명박정부]] 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을 수사 중에 [[검찰]]로부터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았다.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 [[정(드라마)]] - [[윤세주]]
  • 이시영 (1882년) . . . . 1회 일치
         [[백남채]] 외에도 [[김좌진]](金佐鎭), [[김동삼]](金東三) 등과도 많은 일을 했다. [[1918년]] 귀국했고 [[1919년]] [[2월]], [[지청천]](池靑天),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영남]][[유림]]대표 2백여 명을 [[경성부|경성]]으로 보냈다. 그때 유림측에서 그에게 민족대표로 서명해 달라고 하자 '내 목적은 오직 왜놈과 싸우는 것'이라며 과격한 활동 노선을 밝혔다. 그 후 임시정부에서 재무부장서리를 맡아 달라는 것도 거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 이열희 (1924년) . . . . 1회 일치
         === 학창 시 ===
  • 이윤열 . . . . 1회 일치
         == 학창시 ==
  • 이자연(가수) . . . . 1회 일치
          * 젊은 시부터 [[가수]] 활동을 하느라 대학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수시 1차 신입생 모집 연기자 전형에 응시, 예술문화대학 예술학부에 합격했다. 이후 언론홍보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이장경 . . . . 1회 일치
         [[이백년]]의 아들이자 손자 [[이인기]]는 평양부 부윤이었고, 고손자(아들 이백년의 증손)는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자 [[고려]] 멸망 이후 두문불출한 신 [[이숭인]]이었다.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자 이장경의 고손자인 이제(李濟)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조선 왕실과도 인척관계가 되었다.
  • 이장훈(배우) . . . . 1회 일치
         1972년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부거리길에서 태어난 이장훈은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관객을 압도하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이다. 가족 뮤지컬《피노키오》부터 미스터리 영화《물고기》, 그리고 코믹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드라마《푸른거탑》까지, 탁월한 집중력과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를만큼 훌륭한 연기력으로 어떤 배역이든 맛있게 소화해 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는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의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기 전문 대대장 이장훈 역할로 [[tvN]] 《[[푸른거탑]]》에서도 맹활약하였다.
  • 이재율 (1993년) . . . . 1회 일치
         ==[[NC 다이노스]] 시==
  • 이정우 (1950년) . . . . 1회 일치
         '''이정우'''(李廷雨, [[1950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시 [[청와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정훈 (1963년) . . . . 1회 일치
         == [[KBO 리그]] 선수 시 ==
  • 이종배(국회의원) . . . . 1회 일치
         민주당 [[우건도]] 시장의 시장직 상실 판결로 인해 치뤄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영입되어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충주시는 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이시종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후로 후임 시장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는 헬게이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시종 사퇴 이후 재보궐에서 당선된 [[한창희]]가 겨우 2년(...), 그나마 후임 김호복이 재보궐로 당선되었지만 다음 선거에서 패하여 낙선. 그리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우건도가 당선되었으나 1년여만에 또 당선무효.(...)
  • 이종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kt 위즈]] 시==
  • 이주승(영화배우) . . . . 1회 일치
         ||<#20B2AA> {{{#ffffff '''신체'''}}} ||<(> 174cm[* 무명시부터 174라고는했지만 170약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62kg, [[O형]] ||
  • 이준승 . . . . 1회 일치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이중환(법조인) . . . . 1회 일치
         광주지검 부장검사 시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의 대규모 부정행위를 수사하기도 했다.
  • 이태현(씨름) . . . . 1회 일치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 이현우 (가수) . . . . 1회 일치
         그는 중학교 시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1988년 [[미국]] [[뉴욕주]] [[뉴욕 시티]]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로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89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에 잠깐 놀러 왔다가 당시 [[가수]] [[강수지]]의 소속사 매니저의 소개를 받고 1990년 10월에 실험적인 [[테크노 팝|테크노]] [[댄스 팝]] [[대중음악|음악]] 장르 곡인 데뷔곡 《꿈》이 수록된 《12 Inch Dance Version》이라는 싱글 [[음반]]으로 첫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1집 [[음반]] 《Black Rainbow》로 정식 데뷔하였다.
  • 이혜숙(영화배우) . . . . 1회 일치
          * 잊혀진 계(1984)
  • 이홍열 (바둑기사) . . . . 1회 일치
         아마추어 시 [[1979년]] 13기 아마국수전에서 우승하여 [[1983년]]에 입단하였고, 2001년 8단을 거쳐 [[2005년]] 11월에 9단으로 승단하였다. [[2007년]]에 한국바둑리그 제일화재 감독, [[2009년]]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 감독(신안 태평천일염)을 맡았다.
  • 이효상 . . . . 1회 일치
         === 학창 시 ===
  • 이휘향 . . . . 1회 일치
         * 1988년 [[MBC]] 청소년드라마 《[[푸른 계]]》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멜리오다스는 단호하게 거하며 "인질이 다치기 전에 쓰러뜨린다"며 맹공을 퍼붓는다.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길 프로스트는 개봐야 개죽음이고 "네가 죽으면 곤란하다"며 거한다.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1회 일치
          * 현재의 멜리오다스는 "연옥"에 있는데 수상한 목소리가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말을 걸자 멜리오다스는 "싫다"고 거한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1회 일치
          * 에스카노르를 벽 밑으로 처박아 버리고, 다시 차올려서 성위로 올려놓는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1회 일치
          * "거한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어리둥해한다.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1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그것이 뭔지 단번에 알아차리는데, 프라우드린은 어리둥해하며 집어든다.
  • 일곱개의 대죄/194화 . . . . 1회 일치
          * 상황을 파악한 프라우드린은 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회 일치
         정황으로 볼때 3000년 전 전쟁 시기, 멜리오다스가 십계를 배신한 직후로 보인다. 마신족 시과 달리 현대의 멜리오다스처럼 감정이 있고 엘리자베스도 함께 있기 때문. 여신족 엘리자베스는 일단 전생으로 보인다. 여신족 엘리자베스->리즈->엘리자베스로 전생한 듯.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1회 일치
          멜리오다스는 그가 "[[십계]]"의 "배신"의 "카르마디오스"이며 계금에 당하기 싫으면 "대로 도망쳐선 안 된다"고 소리친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회 일치
          * 다시 술잔이 한 바퀴 돈다. 디안느는 문득 성전시대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을 고서에게 물었다. 대체 진짜 고서는 어떻게 성전을 종결지었냐는 것. 할리퀸도 자기도 궁금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고서는 난처한 기색이다. 그리고 성전시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인워들은 어리둥한 모습이다. 어지간히 지식이 있는 멀린이나 당시 참전했던 멜리오다스 조차 고서가 직접 성전을 끝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일단 에스카노르가 "여신족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마신족을 봉인해서 끝났다"는 전승을 읊는다. 멜리오다스는 "어둠의 관"을 혹시 고서가 만든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멀린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건 거인 명공 "다프즈"란 인물이 만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어떤 저주를 받은 건지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말하기 앞서 멜리오다스에게 맹세를 요구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설사 자신이 다시 죽더라도 언젠간 이 저주를 풀겠다는 맹세를. 멜리오다스는 영문도 모르는 채 간한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주를 풀 것을 약속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눈물 맺힌 웃음과 함께 모든 진실을 밝혔다. 그리고 3일 뒤. 엘리자베스가 죽었다. 멜리오다스의 눈 앞에서. 무너진 축대에 찔리는 사고였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회 일치
          * 그건 멜리오다스가 십계를 통솔하던 정기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말이었고, 메라스큐라는 모든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모두가 함께 하던 시. 바캉스를 떠나는 에피소드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1회 일치
         음 위치나 화자의 컨디션에 따라 한국인 귀에는 상당히 변화무쌍하게 들린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어의 청음은 숨소리(aspiration)가 우리말의 평음보다는 약간 높되, 격음보다는 낮은 음가이다. 진짜 일본인들과 같은 느낌으로 발음하는 방법은, '''카, 타를 소리내면서 힘을 살짝 빼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서 어두 청음 표기를 탁음과 구별 없이 무조건 '가, 다'로 정해버린 이유가 이것 때문인 듯 하다(...)
  • 임윤선(법조인) . . . . 1회 일치
          * 2016년 6월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이 되었다가 8월 이후로 그만 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 시 [[새누리당]]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과감한 발언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 임채무 . . . . 1회 일치
         해병대 228기로 군 복무를 했으며, 진짜사나이 해병대편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황금어장]] 출연 당시, 본인의 해병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방송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똥군기가 심하던 시이라 그런지 선임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가장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이 휴가를 가게 되자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밤 해병대 전통대로 본인이 선임 군복을 빨고 각잡는 다림질을 할때, 일부러 군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아지도록 미리 준비한 돌로 몰래 그 부분을 열심히 갈았다고 한다. 다음날, 선임이 부대에서 나가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고향가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빡''' 소리와 함께 엉덩이 부분이 완전히 터졌고 결국 민간인들 많은 곳에서 --헉 빤쓰 다 보임--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ㅇㅋ 복수 성공!! [[PROFIT]]--, 분노에 가득차 씩씩대며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부대로 돌아온 선임한테 평소보다 더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어?-- 맞는 중에도 임채무 본인은 복수에 성공한 게 좋았다고..
  • 임효성 . . . . 1회 일치
         == 선수 시 ==
  • 장대환 . . . . 1회 일치
         1988년 매일경제신문 사장 겸 발행인이 되었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시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으나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2080970403|제목=<nowiki>[張大煥서리 임명]</nowiki> 50세 總理… 평균59세 長官들|확인날짜=2015-10-10|날짜=2002-08-09|출판사=[[조선일보]]|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23224243/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2080970403|보존날짜=2015-09-23|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2/08/003000000200208281839318.html|제목= "'실정법 위반' 명쾌하게 해명못해"|확인날짜=2007-10-28|날짜=2002-08-28|출판사=[[한겨레]]}}
  • 장성집 . . . . 1회 일치
         포도대장은 그를 상급 [[재판소]]로 이송했다. 장성집은 관청의 아치들이 왜 자신을 아무런 [[심문]]이나 [[고문]]도 없이 내버려 두는지 알려달라고 외쳤다. 이미 그는 정신병자로 오해받고 있었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포장은 끊임없이 배교하라고 충고하였으나, 그는 포장의 충고를 일언지하에 거했다. 그는 곤봉으로 수차례 맞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결국 그는 [[1839년]] [[5월 26일]], 54세의 나이로 [[한양]]에 있는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 장수원 . . . . 1회 일치
         * 2015년 -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 고교시 미팅남 역
  • 장은숙 (가수) . . . . 1회 일치
         어릴 때 국악을 배웠으며, 득음을 위해 에 들어가서 2년간 목소리 훈련을 하기도 했다. 데뷔 후 스타킹모델을 했었고,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공동주연으로 《[[리빠똥사장]]》 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 장진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장진'''(張鎭, [[1971년]] [[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 제작자이다. 영화배우 [[정재영]]과 친한 사이이며, 정재영이 죽으면 자기도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남다른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 재호 (배우) . . . . 1회 일치
         |[[KBS 드라마 스페셜]] - 잊혀진 계
  • 전경협 . . . . 1회 일치
         그녀가 체포되어 [[감옥]]으로 압송되고, 더 격심한 [[고문]]을 받았는데, 그녀가 [[궁녀]]였었기 때문이었다. 포장은 그녀를 [[심문]]했다. "어째서 너는 궁녀가 이교를 믿느냐?" "저의 종교는 이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느님]]을 [[천사]]와 사람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로 믿기 때문입니다." 포장은 그녀가 [[천주교]]를 부정하도록 만들 수 없었으므로, 그녀를 [[형조]]로 이송했고 거기서 다시 심문이 이어졌다. "궁녀가 이교를 믿는 것은 대역죄이다. 너의 [[천주]]를 부정하고 천주교도들과 천주교 서적들이 숨겨져 있는 데가 어딘지 불어라." "제가 만 번을 죽는 한이 있어도 대 그렇게 못합니다." 그녀는 격심하게 매질을 당해 그녀의 살가죽이 떨어져 나갔고, 그녀의 뼈 여러 곳이 부러졌으며,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려 바닥이 흥건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 까지도 그녀에게 감복하였다.
  • 전근표 . . . . 1회 일치
         ==[[한화 이글스]] 시 응원가==
  • 전기밥솥 . . . . 1회 일치
         압력솥으로 밥 하는 것 보다 훨씬 간편하다. 불 조과 뜸들임 테크닉이 필요한 압력솥에 비해 전기밥솥은 쌀 넣고 물 넣고 버튼 누르면 알아서 다 해주기 때문.
  • 전덕기 . . . . 1회 일치
         '''전덕기'''(全德基, [[1875년]] ~ [[1914년]])는 대한제국시 독립협회, 을사늑약 반대시위, 헤이그 밀사 파견, 신민회를 이끈 인물로 2014년 3월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 전동휠 . . . . 1회 일치
         세그웨이에 비해 타기 어렵다. 세그웨이는 그래도 처음 한두시간만 타 보면 ~~부시를 빼고는~~누구라도 웬만큼 탈 수 있는데 비해 전동휠은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아도 보통 일주일은 잡고 연습해야 한다. 덕분에 발판에 붙이는 보조바퀴 옵션도 찬리에 판매중이다.
  • 전민희 . . . . 1회 일치
         휘경여고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ref>{{웹 인용|웹사이트=http://fairytale.pe.kr/profile/profile.html}}</ref> 특유의 미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세월의 돌]] 후속작인 [[태양의 탑]]을 연재하던 중, 표지를 만든 일러스터가 표했음이 밝혀져 그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어 한동안 [[태양의 탑]]은 집필을 중단하게 된다. 그 후 제우미디어 출판사와 계약한 후 소프트맥스와 함께 기획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새로이 집필했고, 2015년 현재 1부 윈터러와 2부 데모닉까지 완간된 상태. 데모닉 집필 중간인 2004년부터 첫 작품 [[세월의 돌]]을 개정해서 출간하기도 했다.
  • 전태규 . . . . 1회 일치
         프로토스로서 테란전, 저그전에 모두 강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같은 프로토스전에서는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ref>방송경기에서 테란유저 나도현의 프로토스를 상대로 패한 적도 있다.</ref>. 전성기 시에도 개인리그에서 프로토스에게 져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정경호(1972) . . . . 1회 일치
          * [[2010년]] [[tvN]]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 ... [[루저전]], 불친한 경호씨 등등
  • 정광용 . . . . 1회 일치
          놀랍게도 그는 과거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박사모 회장인데 왜 이런 책을 쓰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그동안 책을 몇 권 쓴 작가다. 박사모 회장이라는 직책과 작가라는 직업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박사모 회장으로서 이런 책을 편 것은 대 아니다. 작가는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는 진실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걸 아는 양반이~~ 물론 기독교에서는 난리가 났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3&oid=003&aid=0003583796|#]]
  • 정다흰 . . . . 1회 일치
         ==프로 야구 선수 시==
  • 정동기 . . . . 1회 일치
         2010년 12월에 [[감사원장]]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법무법인 바른]] 재직 시 7개월간 7억원을 받은 것과 관련해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져, 후보직에서 사퇴하였다.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KIA 타이거즈]] 시==
  • 정력 . . . . 1회 일치
         [[건담 시리즈]]의 세계관에서는 최종적으로 턴A 건담에 의해 지구권의 문명과 역사는 [[흑역사]]속에 묻혀버리게 된다. 그로 인해 잊혀진 시은 뒤로하고 새로운 기년법을 만들게 된 것이 이 정력이다.
  • 정링컨 . . . . 1회 일치
         * 중국 후난TV 《춘특집쇼 '일생일대'》
  • 정상교 . . . . 1회 일치
         ==[[KIA 타이거즈]] 시==
  • 정성곤 . . . . 1회 일치
         ==[[kt 위즈]] 시==
  • 정성현 (배구선수) . . . . 1회 일치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시==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단국대학교|단국대]] 시 강타자로 활약하며 에이스 [[오승환]](삼성)과 함께 수차례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끈 주인공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te.com/view/20070501n02649|제목=젊은 독수리들, 언제 날까|이름=노재현 기자|날짜=2007-05-01|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0-05-19}}</ref>
  • 정승화(육군) . . . . 1회 일치
         공식선거운동 시작 직후 김영삼이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영입하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고 선거 바로 전날 [[김현희(1961)|김현희]]가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북풍이 불었고, 3김이 서로 먼저 대통령 해보겠다고 동시출마하는 병크까지 터뜨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36%, 김영삼-27%, 김대중-26%, 김종필-7%[* 보면 알 수 있듯, 3김이 단일화만 했어도 노태우는 대 당선될 수 없었다.], 즉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 정영기(배우) . . . . 1회 일치
          *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벽 인민군 역
  • 정용화 . . . . 1회 일치
         === 어린 시과 데뷔 전 ===
  • 정운용 . . . . 1회 일치
         정운용 조흥은행장은 미 [[군정청]] 골든 재무부장(중령)과 친밀한 관계였다. 해방 후 중앙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조흥은행은 강력한 중앙은행 후보로 꼽혔다. 조흥은행은 민족자본비중이 반을 넘은데다 일본자본의 침투가 가장 적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하지만 1946년 광복1주년을 맞이하여 미 군정청 내각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진다. 골든 재무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윤호병이 신임 재무부장으로 선임됐다. 조흥은행 대신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으로 선정됐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237</ref> 정운용 행장 역시 1947년 10월 군정장관의 명령에 의거 행장에서 물러났다.<ref>경향신문, 1947년 10월 18일 2면 정운용 행장 해임</ref>
  • 정종철 . . . . 1회 일치
         * "본인은! 옥장군이야~", "뭐라고!, OO하라 그래!", "또 로 들어가야 되나~"- 개그콘서트 코너 '[[봉숭아학당]]' 중 옥장군 역
  • 정진호(1956)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 정차온 . . . . 1회 일치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로 [[병마제사]](兵馬節制使), [[상주]][[판관]](尙州判官)에 이르렀다. [[1455년]] [[조선 단종|단종]](端宗)이 강제로 [[조선 세조|세조]](世祖)에게 강제로 선위하고 상왕이 되자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세조가 평양판관(平壤判官)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 정환덕 . . . . 1회 일치
         군부협판 의채의 아들로 [[1857년]] 탄생하였다. 소년시부터 태을노인(太乙老人)에게 역학을 수학 받았으며, [[경북]] [[영천]]에서 거주하였다. 어느 날 영천 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역학(주역)을 공부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꿈에 하얀 도포를 입고 손에는 청령장을 짚은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자네가 역학을 공부한지 7년이 되었다. 그러나 너는 글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었다. 그러니 말짱 헛공부를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글의 행간을 읽으라.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서 읽도록 하라. 아무리 공부해도 너에게 큰 행운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행운은 있을 것이니 여기서 꾸물댈 것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 가보아라.”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말을 믿고 [[1897년]] 가을, 나이 40세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하였다. 상경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부승지 [[윤명구]](尹鳴九)를 만나 윤명구가 역학을 할 줄 안다고 하여 고종황제의 측근 경운궁 전화과장(電話課長) 이재찬(李在纘)을 소개 해주었다. 이재찬이 [[고종황제]]에게 소개하여 특명으로 [[1901년]](광무 5) 음12월 5일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다가 그 다음날 면직되었다.
  • 제주특별자치도 . . . . 1회 일치
         주상
  • 조대연(1888) . . . . 1회 일치
         1888년 [[충청도]] 충주목(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시 장영원 전사판임관5등에 임명되었으며, 대동법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 조동혁(배우)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학창시 [[정구]] 선수였다고 한다.
  • 존 루터 존스 . . . . 1회 일치
         John Luther Jones. 19세기 [[미국]]의 철도 기사. 어린 시을 [[켄터키]] 케이시(Cayce)에서 보내서 "케이시 존스"(Casey Jones)라는 별명이 있다.
  • 존 웨스트 . . . . 1회 일치
         19세기에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존 웨스트"가 설립했다. 초기에는 오리건 주 콜럼비아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여 통에 담은 후 영국으로 수출했다나.
  • 줄리아나 도쿄 . . . . 1회 일치
         총 공사비 15억엔, 총면적 1000제곱미터, 댄스플로어 160제곱미터, 천장 높이 8미터, 좌석수 500, 최대 수용 인원 2000명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디스크 홀로서, 첫해 입장객 수는 32만, 이듬해에는 61만으로 증가했다. 전성기에는 일반인은 최대 4시간은 대기해야 했으며, 최대 500명의 손님이 들어가지 못하고 입점을 거당한 날도 있었다고 한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1회 일치
         이 사건을 반환점으로 하여, [[중화민국/외교|중화민국의 외교]]는 그야말로 [[안습]]의 정에 달하게 된다. 그나마 이 당시는 아직 [[냉전]]과 중화민국의 경제력 덕분에 그럭저럭 많은 수교국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그마저도….
  • 진격의 거인/84화 . . . . 1회 일치
          * 리바이는 엘렌과 미카사의 요구가 "조사병단 단장을 죽게 놔둬라"라는 얘기라며 거한다.
  • 차명진 . . . . 1회 일치
         * 2011년 [[10월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 "삥" 등의 적한을 총동원해 원색적이 비난해서 논란이 됐다. "박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상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동거"라며 "시민운동이 아니라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라고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로 규다했에 대해 투명하게 재정상태를 공개해온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을 양아치로 묘사한 것에 많은 공가이 어다
  • 차수연 . . . . 1회 일치
         ||<#D7D8CA> '''{{{#584A41 가족}}}''' ||<(> [[추가 바람]][* 2012년 [[iHQ|싸이더스 HQ]] 소속 시부터 인연이 있었던 前 판타지오 대표인 나병준과 결혼했으나, 2016년에 이혼했다. 부모님 관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남동생이 한명 있다고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665|밝혔다.]]] ||
  • 차오루 . . . . 1회 일치
         | 일일 판정단, 참가자(일해라 해라 하지 마세요! 우리말 나들이!)
  • 차용학 . . . . 1회 일치
         * [[가비엔제이]] -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B는 오른쪽 얼굴에 정타를 맞고 길거리에 쓰러져, [[두개골]] 골 등의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8일 뒤 뇌출혈 및 뇌좌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안습--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1회 일치
         기본적으로는 자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예라고 생각하며, 대우는 극히 나빠서 매도, 방치, 학대 등을 당하게 된다. '용도'에 어긋나거나 단순히 돈이 아깝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개 부모가 교유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한 탓으로 친구 한 명 없는 어린 시을 보낸다.
  • 참깨를 빻다 . . . . 1회 일치
         볶은 참개를 구에 빻으면 여러 곳에 묻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아첨을 한다는 의미가 나왔다고 한다. 혹은 상인이 손을 비비는 모습이 참깨를 빻는 것과 유사하게 보여서 이러한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 창작:맹수인 . . . . 1회 일치
         늑대족은 보통 다른 종족에게 도적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크게 두개의 부류로 나뉘는데, 북극인근의 '눈늑대섬'과 아프반반도 북부, 대륙 북부일부에 서식하는 '눈늑대족', 그리고 대륙 중부 '메말사막'과 대륙 중북부를 나누는 '등퍼산맥' 인근에 사는 '늑대족'으로 나뉜다. 메말사막에 사는 이들은 메말사막 북쪽 초원에서 말을 공급받아 그 말들로 노략질을 하는것으로 유명한데, 츄프의 몇몇 대귀족들까지 연관되있어 뿌리뽑기 매우 힘들다. 츄프 왕국은 티겔 왕국과 동맹관계기에 이 부정한 동맹을 뿌리뽑으려 노력했지만 현재까지도 잘 근되지가 않는 실정이다.
  • 창작:바벨 코스트 . . . . 1회 일치
         항구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나 공업은 발달하지 않아 도시 성장은 더딘 편이다. 주요 산업은 관광으로, 대공황 시에 꽃핀 다다이즘과 유사한 성향의 문학과 미술, 연극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고 이러한 문화 수준에 맞게 교육 수준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인구 분포는 주로 동유럽계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의 비중이 많고, 서유럽·영국계 백인들과 북미 원주민들은 그에 비해 적은 편이다.
  • 창작:악마의 열매 . . . . 1회 일치
          * 사람사람 열매 모델 아재 : 사람사람 열매의 아종 중 하나. 먹은 사람을 아재로 만든다. 소위 아재아재 열매라 불리는 종류. 먹은 사람을 아재로 만들며 썰렁한 아재 개그와 발암을 유발하는 꼰대 능력을 부여한다. 아재 개그는 이 열매의 주요한 기능으로 이말년 서유기에 나오는 감요검처럼 듣는 이를 빡치게 하다 결국 죽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 아재 개그를 구사하기 위해 언행이 크게 바뀌게 되는데, 이 바뀐 언행이 발암발암 열매처럼 상대를 발암시키는 능력도 일부 지니게 된다. 다만 이 열매도 단점이 있으니, 아재들처럼 항상 드러누우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관염이라는 무시무시한 패널티가 걸린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1회 일치
         그런 호기심은 다른 일기상태에 대한 관찰욕구도 자극했다. 가령 눈이나 비같은 것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날씨가 춥거나 더워지는게 영향을 줄지. 하지만 그런걸 관찰할 수 있을 정도면 계이 바뀌도록 구조되지 못한다는 얘기니까 우울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 창작:좀비탈출/2-1-1 . . . . 1회 일치
         옆집 아줌마의 좀비가 벽에 걸린 밧줄 올가미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망해서 자살한 것일까?
  • 창작:좀비탈출/4-1 . . . . 1회 일치
         준비는 끝났다. 준비래봐야 두꺼운 겨울 옷을 꺼내서 걸치고 바지는 세 개를 겹쳐 입는 정도의 가벼운 것이다. 누구라도 좀비떼 사이로 들어가라면 최소 이 정도는 갖춰 입겠지. 대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야. 이 정도 갑옷(?)이면 어지간히 제대로 단단히 깨물리지 않는 이상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4-1-1 . . . . 1회 일치
         나는 곧 토트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많고 복잡한 생각이 보기 싫은 청구서처럼 몰려들었다가 통채로 세해 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지금 생각나는건 오로지 하나.
  • 창작:좀비탈출/4-1-2-2 . . . . 1회 일치
         나는 곧 토트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많고 복잡한 생각이 보기 싫은 청구서처럼 몰려들었다가 통채로 세해 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지금 생각나는건 오로지 하나.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회 일치
         이제 마지막 고민이 남아 있다. 애당초 집 밖에서 활동하는건 상정한 바였다. 문제는 지금이 적한 때이냐는 것. 이미 각오한 바지만 그렇다고 개죽음할 생각은 없다. 거실에서 보이는 앞마당은 고요하고 새로 만든 방치복은 그럴듯해 보인다. 지금이야 말로 적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의 한편에선 보이지 않는 뒷마당과 그 너머 토트넘의 집안 풍경이 그려진다. 담장을 막 넘는 녀석들과 토트넘의 다시 한 번 죽은 시체를 목도하는 11명의 조기 축구 회원들. 죽어서도 함께하는 그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 채동욱 . . . . 1회 일치
         [[군법무관]] 시 고등학교 동창인 양경옥과 결혼했고, 사이에 2녀를 두었으나 장녀는 어릴 때 앓은 패혈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게 된 후 [[2009년]]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녀의 간호를 위해 아내는 [[중학교]] 교사를 그만뒀고, 채동욱은 장녀에게 소홀할까봐 장녀를 얻은 지 10년 만에 차녀를 얻었다고 한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6/2013031600201.html 與대표(2003년 당시 정대철 민주당 대표) 구속 후 좌천… 작년 檢亂때 총장(한상대) '비토(veto)'] 조선일보(2013년 3월 16일), 류정 기자</ref>
  • 채상현 . . . . 1회 일치
         ==[[넥센 히어로즈]] 시==
  • 채수빈 . . . . 1회 일치
         | [[KBS 드라마 스페셜]] - 우리가 계이라면
  • 채현국 . . . . 1회 일치
         *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노인 세대를 대 봐주지 마라" <한겨레 인터뷰 中><br/>
  • 천운영 . . . . 1회 일치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은 이후 ‘원색의 고통과 규로 점철된 사실화’로 상징되는 천운영식 소설을 직조하는 중요한 글쓰기의 도구가 되었다.<ref>{{웹 인용|ur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4061610471&code=900308&fid=|제목=바늘로 우리를 자극하다|출판사=경향신문|저자=심진경|날짜=2007-04-06|확인날짜=2010-10-18}}</ref>
  • 천해성 . . . . 1회 일치
         참여정부 시인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통일부로 돌아와서는 회담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수의 남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다.
  • 청도군 . . . . 1회 일치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 체육회계 . . . . 1회 일치
          * 선배는 후배에게 밥을 사주거나 하면서 잘 대해주고, 후배는 선배에게 대복종한다.
  • 초한전쟁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백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식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최고은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제목 = 단편 '격정소나타' 감독 겸 작가 최고은 씨 32세 요
  • 최다빈 . . . . 1회 일치
         시니어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최다빈은 2차 대회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선전했으나 종합 7위에 머물렀고 6차 대회인 [[NHK 트로피]]에서는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종합 9위에 그쳤다. 이후 랭킹전에선 [[박소연]]에 이어 5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티켓을 놓쳤다. 또한 2017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도 동료 선수인 [[김나현]]에 밀려 종합 4위를 차지해 메달 획득 및 피겨 세계선수권 티켓 역시 놓치고 말았다. 시즌 초중반 잇따른 악재로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치부심하여 이어 출전한 동계체전 고등부 피겨 여자싱글 1위를 차지했다.
  • 최덕희 . . . . 1회 일치
         * [[대무적라이징오]] ([1993년VIDEO판]) [[강,백설선생그의다수]]
  • 최동 . . . . 1회 일치
         본관은 [[해주 최씨|해주]]이며 [[한성부]] 출신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전라남도)|순천군]] 군수를 지낸 아버지 [[최정익]]을 따라 [[순천]] 지역에서 어린 시을 보냈다.
  • 최동환 . . . . 1회 일치
         ==[[LG 트윈스]] 시==
  • 최성민(1995) . . . . 1회 일치
         == 유년시 ==
  • 최세창 . . . . 1회 일치
         | 제목 = 7007명 광복 사면·복권
  • 최수범 . . . . 1회 일치
         [[2005년 3월]] 자신의 원래 이름이었던 최우범으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협회에 등록된 이름이 최수범으로 돼 있고, 이름을 변경한 후에도 협회 행정차를 거쳐 프로게이머 등록 명을 최우범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명을 최수범으로 통일키로 하였다.
  • 최승욱 . . . . 1회 일치
         == [[전주 KCC 이지스]] 시 ==
  • 최승자 . . . . 1회 일치
         혼할 듯한 푸른 밤
  • 최승환 . . . . 1회 일치
         [[LG 트윈스]] 시에는 [[김정민 (1970년)|김정민]], [[조인성 (야구인)|조인성]]에게 밀려 주전이 되지 못하고 8년간 2군을 전전했다. [[2008년]] [[6월 4일]] [[이성열 (야구 선수)|이성열]]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두산 베어스]]에서 [[LG 트윈스]]로 간 선수들은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 [[김용의]] 선수이다. 두산 이적 이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상대 투수인 SK 와이번스의 [[조웅천]]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면서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 최영미 (시인) . . . . 1회 일치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투명한 언어,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정확한 비유, 대담한 발상과 세련된 유머,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이 있다.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2005년)를 출간했고, 1988년 이후 26년 간 틈틈이 써온 원고를 다듬고 보완하여 1980년대 청춘의 방황과 좌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 《청동정원》(2014년)을 펴냈다.
  • 최영이 (종교인) . . . . 1회 일치
         최영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 최영철 (기자) . . . . 1회 일치
         |2016||KBS2||[[KBS 8 아침 뉴스타임]]||출연||오늘의 결정적 세방, 친한 뉴스
  • 최우석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KBO 리그]] 시 ==
  • 최웅 . . . . 1회 일치
         | 《[[참 좋은 시]]》
  • 최원태 . . . . 1회 일치
         ==[[넥센 히어로즈]] 시==
  • 최은희 . . . . 1회 일치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시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시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시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 최정원(남자배우) . . . . 1회 일치
         1999년 고3 시 남성 5인조 그룹 브론즈의 리드보컬로 데뷔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년 후인 2000년 [[김정훈(UN)|김정훈]]과 UN이라는 그룹으로 다시 데뷔하게 된다. --결국 성공하여-- 총 6장의 앨범을 냈으며, 해체 이후 2008년에 'Sunshine On Summer Time' 싱글을 냈다.
  • 최정호 (성우) . . . . 1회 일치
         * 2012.05.24 ~ 2012.06.22 전영우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집 숲> '''(낭독)'''
  • 최종원(국회의원) . . . . 1회 일치
         [[강원도]] [[태백시]]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태백공업고등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함태탄광에서 탄 분석 기사로 일했다. 1974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정영애와 결혼했다. 서울예술대학교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졸업. 1986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1998년 고려대학교 산업정책대학원 졸업. 경운대학교 학사라고도 한다.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학창시 하위권 성적이 공개되었는데 공부 안하고 놀기 좋아했던것을 인정하며 웃어 넘겼다.
  • 최충연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 최한경 . . . . 1회 일치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시에는 투타 만능에 빠른 공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졸업 후인 1993년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12경기에 나와 2.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 최효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중앙과 측면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력 또한 최효진의 강점 중 하나이다. 또한 다수의 수비수와의 좁은 공간에서 경쟁에서도 동료 선수와 연계시켜 뚫어내는 플레이도 즐긴다.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뉴캐슬 제츠]]전에서 보여준 해트트릭은 고교 시을 공격수로 지낸 그의 득점력도 확인시켜 줬다.
  • 추봉 (배우) . . . . 1회 일치
         * 1974년 《[[애정이 꽃피는 계]]》
  • 추성건 . . . . 1회 일치
         '''추성건'''([[1970년]] [[8월 5일]] ~ )은 [[KBO 리그]] 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약 중이다. 선수 시 등번호는 40번,3번이다.
  • 카를로스 4세 . . . . 1회 일치
         황태자 시에 [[마리아 루이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와 결혼하고, 1788년 스페인 왕위에 올랐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성격으로 마리아 루이사와 그 애인으로서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20대 젊은 나이에 재상으로 임명된 [[마누엘 고도이]]에게 국정을 거의 떠맡기다시피 했다.
  • 카쿠스 . . . . 1회 일치
         그나이우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 정복자로 나온다. 티베르 강 근처에 거주했으며, 마르시아스 왕이 프리기아 인 메갈레스와 함께 에트루리아의 [[타르콘]](Tarchon) 왕에게 사로 보냈다. 타르콘 왕은 그를 감옥에 넣었으나, 카쿠스는 도망쳐서 고국으로 돌아왔고 에트루리아를 공격하여 불투르누스와 캄파니아 지역을 지배했다.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이 아르카디아 인(에반드로스 등)에게 양도한 지역도 장악하려 했는데 우연히 그곳에 있던 헤라클레스를 만나 죽게 된다. 메갈레스는 사비니 인에게 점성술을 가르쳤다.
  • 캐리 피셔 . . . . 1회 일치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와 에디 피셔(Eddie Fisher)의 딸이며, 1956년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즈에서 태어났다. 1975년 10대 시에 영화 샴푸(Shampoo)로 데뷔했다.
  • 캡틴 아메리카 . . . . 1회 일치
         [[애국]] [[슈퍼히어로]]의 대표주자.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진 영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부터 활동해왔으며 이후 세월이 지나 [[어벤저스]]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 캡틴 코만도 . . . . 1회 일치
          * 특이하게도 캐릭터들이 지닌 특수기나 무장에 의해 기괴한 사망 모션이 나온다. 캡틴 코만도의 캡틴 파이어에 맞아서 에너지를 전부 잃어버린 적은 불에 타서 재가 되고(...), 닌자도를 쓰는 쇼우의 공격은 적을 단낸다.(...) 제네티의 경우 상대를 부패(?)시켜 해골만 남긴다.(...) 이러한 모션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서도 나오며 자유로운 것은 적측 여전투원인 캐롤과 브렌다 정도.
  • 캡틴큐 . . . . 1회 일치
         제대로 된 럼이 아니라 "주정에 럼 향을 묘하게 혼합하여 만든 제품"[*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4018|코리아데일리-추억의 술 캡틴큐…80년대 가난한 청춘의 양주, 이젠 이주 노동자의 술]]. 원 출처인 롯데주류 홈페이지는 캡틴큐가 단종과 함께 설명이 사라져 확인하지 못함.]이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회 일치
          * 기상 조
  • 컬트 종교 . . . . 1회 일치
          * 교리는 기존 종교에서 [[이단]]으로 여겨지거나, 여러 종교를 충한 것이 많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1회 일치
          어포징 프론트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주인공 세력은 전차군단. 볼프헤제부터 오스테르베이크까지 독일군이 마켓 가든 작전을 좌시키기 위해 치룬 전투를 다루고 있다.
  • 켄카양성패 . . . . 1회 일치
         켄카(喧嘩)는 싸움이라는 뜻. 성패(成敗)는 처벌, 징계라는 뜻이다. 이것은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시비곡에 관계없이 양자를 모두 '싸움 그 자체'를 죄로 보고 처벌한다는 뜻이다.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발가락 힘이 인상적이나 코난의 신체능력은 발가락 힘 말고도 '''전체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1화에서 혼자 자기보다 큰 [[상어]]를 잡은데다 이후 곳곳에서 코난이 가진 놀라운 강함을 확인할수 있다. 다만 발가락 힘이 좀 더 자주 나온 트레이드 마크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굉장한 강함을 지녀서 상대가 어른이라도 공평한 상황에서 붙으면 이기며 작살 던지기는 뛰어난 정밀성을 자랑한다.[* 눈에 안보일 정도로 높이 던졌다가 발가락으로 받아냈다.] 머리도 좋으며 정신적으로도 강하고, 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 코스트코 . . . . 1회 일치
          * [[도매점]]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어, 점포 운영비와 판매비, 관리비를 감하고 대신 가격을 낮춘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1회 일치
          작중에서는 말을 데리고 탈출하려던 사일러스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쳐 기시킨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1회 일치
         마구간 앞에 있던 순간부터 다시 시작. 사일러스가 마구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렛이 튀어나와 소총으로 후려친다. 사일러스는 가렛의 "빌리가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으면서 기한다.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Christmas. 12월 25일. [[기독교]]의 주요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날. 성탄, X-Mas라고도 한다.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1회 일치
         3인 동시플레이까지 가능하며, 주인공은 전사, 마법사, 엘프, 드워프, 성직자 이렇게 5명. 하지만 성직자라고 해서 대 회복마법같은거 쓰는거 아니다. 전사는 칼질을 하고, 마법사는 지팡이에서 나오는 공격마법을 쓰며, 엘프는 활을 쏘고, 드워프는 도끼질을 하고, 성직자는 메이스질을 한다.
  • 킹덤/498화 . . . . 1회 일치
          * 창평군은 조나라와 총력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며 대 겁먹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라고 연설한다. 곧이어 군을 통솔할 장군을 발표하는데, 우선 단상에 오른 것은 환의 장군이다. 환의하곤 좋은 추억이 없는 비신대로서는 드러내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데 환의 측의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시대가 열린다고 외친다. 이미 정해진 바니 비신대도 떨떠름한 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 킹덤/503화 . . . . 1회 일치
          호주는 그들이 서부공략을 빌미로 거병해 급히 진로를 틀어 한단으로 처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수는 20만. 이목이 이 같은 사실을 알려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말을 하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곽개와 도양왕도 조금 듣는 척을 한다. 호주는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여 요지 "열미"를 막아 진군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계책을 올렸다는 것도 전한다. 그런데 도양왕이 또 뜻모를 고집을 부린다. 그는 정예 한단군이 수도를 떠나면 누가 자기를 지키냐는 논리로 그 계책을 거한다.
  • 킹덤/510화 . . . . 1회 일치
          * 창담은 막사에 홀로 있다. 열미성에서 받은 임무 직후, 형은 혼신의 사격으로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좌한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그에겐 창인이 반성하라며 따귀를 때렸다. 창담은 이후로 막사에 틀어박혀 있다. 홀로 훌쩍이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지는 전쟁은 대로 안 해.
  • 킹덤/514화 . . . . 1회 일치
          이신은 학살을 막은 왕전의 지시로 그를 좀 다시 본 것 같지만, 군사인 하료초는 이제 참는게 한계에 달했다. 병량이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이런 소도시를 털어봐야 20만 대군이 먹을 양으로는 턱도 없다. 게다가 여기를 치면서 반나 넘게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는 조군에게 그만큼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 킹덤/526화 . . . . 1회 일치
          어리둥한 이신에게 "부대에서 가장 빠른 800기로 출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작 그 숫자로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어이없어 하는 이신에게 목표를 지목했다.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진군을 요양성으로 끌어들인다, 공손룡은 후퇴 자체보다도 그 같은 결정을 더 마음에 걸려했다. 그는 행군 중에도 순수수에게 진심으로 그런 작전을 감행할 거냐고 물었다. 순수수는 말없이 행군을 속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부하 장수들은 좀 어리둥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순수수가 암시한 작전의 전모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명이 그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요양의 엄니"란게 대체 무엇이냐고. 그의미를 아는 것은 순수수 자신과 공손룡 뿐이었고 둘 중 누구도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순수수였다. 요양성이 목전에 있는 위치에서였다. 우선 설명에 앞서 "요양군"의 병력 구성을 짚고 넘어갔다. 이들은 요양 일대에서 모집된 병력이긴 하나 요양성에서 데려온 병력은 아니다. 그걸 지적한 것은 앞으로 맞이한 전장은 진군에게만큼이나, 조군에게도 당황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 킹덤/530화 . . . . 1회 일치
          이번엔 부장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결단이라 입을 모았다. 후방에서 오는 것만 삼천이 넘는 병력. 비신대를 막아도 그 병력이 닥치면 끝장이다. 그럴 수록 기수는 더 단호한 태도로 "이 형태"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 형태라니? 부장들이 어리둥한 얼굴을 들자 기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킹덤/531화 . . . . 1회 일치
          마남자는 그것을 "필살"이라 표현했다. 어느 시점부터 흉노는 이목이란 이름을 듣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더라고, 그렇게 증언했다. 이렇듯 마남자는 대적인 자신을 보였지만 카이네는 여전히 반대였다. 몇 번을 해봤든 큰 위험을 떠안는 것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 타루 . . . . 1회 일치
         * [[스위트피]] 《3집 거하지 못할 제안》- 〈떠나가지마〉
  • 타르콘 . . . . 1회 일치
         기원전 2세기의 로마의 연대기 작가 그나이우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리비아의 [[마르시아스]] 왕은 프리기아 사람 메갈레스와 함께 티베르 강에 사는 [[카쿠스]]를 타르콘 왕에게 사로 보냈으나, 타르콘은 그를 감옥에 넣었다고 한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1회 일치
         마사카도는 삼남 요시마사의 아들로서, 소년 시에는 교토에서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 [[후지와라 요시후사]]의 손자)를 가신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요시마사가 사망하자 시모우사로 귀환하였는데, 귀향한 마사카도는 쿠니카와 요시카네가 요시마사가 남긴 장원을 마음대로 분배해서 나눠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니카의 동생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正)는 마사카도를 토벌하려 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당하여 패배, 타카모치의 차남 타이라노 요시카네가 마사카도를 공격했으나 역시 마사카도에게 패배한다. 요시카네 토벌은 조정에서 허가를 얻었으며, 934년에 요시카네는 결국 병사하고 만다.
  • 타쿠마 마모루 . . . . 1회 일치
         1990년 6월에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여, 18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나, 거짓말이 들켜서 3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시 은사였던 19세 연상의 여성(오사카 교육대학 출신)과 결혼했다. 1993년에 이타미시 교통국에 노선 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동료와 싸움을 벌이거나, 버스에서 운전석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수 냄새가 나니까 뒷자리로 가달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1994년 9월 21일에 아내와 이혼한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탈북자 망명정부 설립운동 측이 '김정남'과 접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정남은 망명정부 수반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자신이 망명정부 수반이 되는 것 역시 3대 세습이라는 이유로 거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김평일'과도 접촉했다는 설[[http://ifreenk.com/87121 (참조)]]이 나오면서, 망명정부가 김씨 일가를 '구심점'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 태영호 . . . . 1회 일치
         태영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상황에 대한 좌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 태학 . . . . 1회 일치
         태학은 수도에 설치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전한에서는 장안(현재의 시안)에, 후안에서는 낙양(뤄양)에 설치되었다. 여담으로 [[광무제]] 유수는 젊은 시 태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수업료를 내려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아르바이트--
  • 텐프레 . . . . 1회 일치
          * [[편지]], [[연하장]]의 서식이나, 디자인 파일의 양식 등을 뜻한다. 어떤 양식이 정해져 있고, 몇가지 단어나 문장만 바꾸는 것. 여기에는 프로그램 오류 제보등을 했을 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같은 [[코피페]]스런 대응도 포함된다. 친하지만 별로 쓸모없고, 때로는 화까지 돋게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스런 대응까지 포함.
  • 토니 고 . . . . 1회 일치
         브랜드 출시 첫 해, 4백 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2000년대 초반 닉스는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였다. 또 2008 금융 위기 시, 저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오히려 불황은 기회가 되었다.<ref name="헤럴드"/> 또 토니는 사람들이 [[미셸 판]] 등 뷰티 유튜버에 영향 받는 모습을 보며,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SNS]]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ref name="헤럴드"/> 이후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간 후, 2014년 [[로레알]]에 닉스를 5억 달러에 매각했다.
  • 토리코/373화 . . . . 1회 일치
          * 그것은 우주에 떠도는 매우 희소한 물질로 대로 부패하지 않아 "골든 메테리얼"로도 불린다. 사실 네오의 기지는 원래 우주선인데 이 우주선도 골든 메테리얼 제질.
  • 토리코/379화 . . . . 1회 일치
          * 스타준과 죠아의 싸움은 서로 전력을 끌어내며 정으로 향한다.
  • 토리코/382화 . . . . 1회 일치
          * 센터의 효능은 극상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감각이 살아나 숨만 쉬어도 정의 쾌감이 느껴진다.
  • 토리코/387화 . . . . 1회 일치
          * 스타준이 찾고 있던 식재는 결국 "토리코의 친함".
  • 토리코/389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네오의 기호. 알다시피 선호하는 맛은 "망"이다.
  • 토리코/390화 . . . . 1회 일치
          * 미도라의 공포나 망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분노로 가득한 공격만은 네오가 질색해서 강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 토리코/395화 . . . . 1회 일치
          목석같이 딱딱하던 미도라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리넘친다. 미도라도,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젊었던 그 시로 돌아간다. 수백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가족은 다시 한 식탁에 모였다. 토리코와 코마츠, 그리고 살아남은 세츠노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 토죠 노조미 . . . . 1회 일치
         '''대 돼지가 아니다. 여신이다.'''~~돼지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회 일치
         소총을 든 민병 150명. 아이즈 번 전용 유닛으로 징집 민병대를 대체한다. 징집 민병대보다 쪼까 비싸지만 명중률과 재장전 속도가 더 높다. 그래봤자 전열보병 능력치의 반이다.
  • 트로피코 4 . . . . 1회 일치
          * 1951-1953: 한국전쟁 - 모든 군사 건물의 가격이 반으로 줄게됨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티나는 해외 팬이 많다. 그녀는 21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 접하면서 성장했었다. 2004년 한국에서 "설레임"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일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 한달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는24위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녀의 음악적으로 묘한 매력과 놀라운 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러브 콜을 여러 번 제의 받았었다. 리키마틴, 켈리클락슨의 프로듀서인 Suren과 함께 2008 C U 2nite 타이틀"Catch me” 앨범을 미국에서 제작 하였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했었다. C U 2nite 앨범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 역시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는 도중 티나는 EDM 전설이며 보컬 겸 그래미수상 경험이 있는 유명 프로듀서 Kevin Irving에게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케빈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인 Dr Dre, Beyonce, 50cent. Pink, Janet Jackson과 같은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해왔었다. 케빈 프 로듀서는 티나의 재능을 보고 영어 앨범을 제작 했고, 대표 곡” Come Mr. DJ”를 작업했다. 케빈은 티나에게 마돈나한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며 극찬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면 2014년 귀국했고 트로트 장르로 변경 2016년 7월20일 콩 앨범 발표하고 현재 활동 중이다.
  • 티타노 . . . . 1회 일치
          [[슈퍼맨]]과 싸웠으며 토토였던 시에 [[로이스 레인]]과 친해서 그녀에게 집착한다.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1회 일치
         영화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의 속편. 감독은 전작과 동일하게 팀 스토리.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배우도 전작과 동일하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실버 서퍼]]가 등장하며 배우는 더그 존스가 맡았다. 다만 목소리는 로렌스 피시번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갤럭투스]]가 등장했다. 스탠 리도 등장.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명단에 없다고 거당한다.(...) ~~내가 이 만화 그린 스탠 리라니까!~~
  • 페어리 테일/483화 . . . . 1회 일치
          * 그 이름은 "아이린 베르세리온". 일명 "비색의 망"
  • 페어리 테일/487화 . . . . 1회 일치
          * 가질은 이런 모습에도 "대단한 마력은 아니다. 다른 스프리던12가 더 굉장하다"며 평가하한다.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회 일치
          * 미라젠이 돌아오지 않자 리사나가 찾아오는데 치명상인 것 같았던 미라젠의 상처는 브랜디쉬의 힘으로 경상으로 조되어 있다.
  • 페어리 테일/495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마음을 굳게 먹으며 대 나츠를 죽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페어리 테일/499화 . . . . 1회 일치
          * 규하는 그레이.
  • 페어리 테일/508화 . . . . 1회 일치
          * 유키노 아그리아,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페어리 로로 인해서 적들이 분쇄됐다. 프로시와 렉터도 갑자기 적들이 쓰러졌다고 좋아한다. 유키노도 로그처럼 페어리 로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적들이 사라졌다고 한숨 돌린다. 소라노는 아직도 언니라 불릴 때마다 "언니가 아니다"라고 무의미한 부정을 하는 상태.--만담이냐-- 이들은 언덕 아래 쓰러진 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벽 위에서 "화려한 마법을 사용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1회 일치
          카구라의 패배로 유키노 일행이 망하자 "그것 조차 쾌락으로 물들여주겠다"며 촉수 마법을 다시 사용한다.
  • 페어리 테일/513화 . . . . 1회 일치
          * [[스팅 유클리프]] 대 [[라케이드 드래그닐]]의 싸움은 스팅의 승리로 끝났다. [[미네르바 올랜드]]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조력하러 오지만 이미 끝난 상황. 프로시와 렉터가 [[로그 체니]]와 스팅에게 달려들어 기쁨을 표현한다. 프로시는 다짐한 대로 로그와 함께 밥을 먹자고 하는데 상황을 알리 없는 로그는 어리둥.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 베르세리온은 아무리 동포를 희생시켜서라도 인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린은 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베르세리온은 지금은 죽은 "선대" 시에 "어떤 인간"이 목숨을 구해줬고 그 은혜를 갚고 있는 거라고 말한다. 아이린은 지금까지 한거면 충분히 갚았는데 그럼에도 자신을 섬기고 인간을 위해 싸울 필요가 있냐고 말한다. 하지만 베르세리온은 "내 생애를 들여서 너를 완전히 지킬 때까진 은혜를 갚았다고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 페어리 테일/518화 . . . . 1회 일치
          * 엘자는 드래곤화된 아이린의 공격으로 전신골된 상황에서도 "요정 여왕"으로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날아오른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회 일치
          아질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테니 손주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리사나는 자기도 오빠도 상대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거한다. 아질은 새삼스럽게 둘이 가족이었냐고 놀라며 "전혀 안 닮았다"고 디스한다.
  • 페어리 테일/522화 . . . . 1회 일치
          그의 스승을 앗아갔던 대봉인마법.
  • 페어리 테일/523화 . . . . 1회 일치
          * 대상을 영원히 가두는 마법 "아이스드 셸". [[그레이 풀버스터]]는 과거 "아바타르"에 잠입했던 시 익혔던 "로스트 속성"을 더해 위력을 증폭시킨다. 로스트 속성은 마법의 위력을 수십 배로 배가하지만 사용자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무서운 대가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예 사라지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차라리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1회 일치
          * 카드에 부여된 홀더 마법이 의수로 전이, 길다트는 의수로 "파사현정 천"을 시전, 오거스트에게 최초로 유효타를 꽂는데 성공한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1회 일치
          안나는 분명 이 시대로 오는 "문"을 만드는건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문은 제레프가 만든 것이다. 그 문을 여는 역할은 안나 자신의 몫. 제랄은 제레프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에 놀라지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제레프는 당시에도 "시간"을 연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원하는 "과거"로 거슬러가는건 불가능했지만 그가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이다. 안나는 "출구"에 있을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직 어린 멸룡마도사들을 키우는 역할로 선택되어 함께 미래로 오게 된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이것은 레이라의 할머니, 혹은 그 이전부터 집안에 전해지던 책에 씌여진 구이다. 안나는 그게 자신이 쓴 책이라고 밝힌다. 토마 왕은 이해가 안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안나의 시간 대에서 이클립스를 개발했을 때, 해당 시간 대에서 누군가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는게 밝혀진다. 안나는 이 문제를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자신의 자손들에게 비술과 함께 기록을 남겨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클립스의 문을 열어라"고 전승시킨 것이다. 비록 그 전승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만은 제대로 전해져서, 레이라 대에 이르러 마침내 이클립스가 열리고 두 시대가 연결됐다. 토마 왕은 "그렇다면 당신은 400년 전 사람이냐"고 경악한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초대의 난입을 거하며 비장의 수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1회 일치
          엘자가 규하는 목소리도 그를 멈추진 못했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1회 일치
          * 제레프가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안, 메이비스는 감정의 제를 놔버린다. 그녀는 제레프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를 밉다고, 동료를 상처입히고 길드를 부순 그에게 죽어버리라고 욕한다. 메이비스가 원망하고 때리며 눈물흘리면서 쓰러져간다. 역설적이지만 제레프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해피는 계속 나츠를 찾는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레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루시가 규처럼 나츠의 이름을 목놓아 부른다. 어디에서도 그의 대답은 없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1회 일치
          * 부자연스러운 지형과 끝없는 유성우가 내리는 하늘. 이질적인 공간으로 누군가가 끌려온다. 그건 END의 서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나츠였다. 나츠는 낯설고 이상한 풍경을 보고 어리둥해 한다. 분명 자신은 동료들과 길드로 가고 있었을 텐데.
  • 페어리 테일/542화 . . . . 1회 일치
          * 멸룡마도사들은 힘의 차이가 망적임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분투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투지를 잃지 않는다.
  • 페이데이 2 . . . . 1회 일치
         일단 이것 보는 것 보다는 튜토리얼 한번 도는게 좋다. 그런데 튜토리얼이 좀 불친하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 페이데이 2/적 . . . . 1회 일치
         나타나면 맵 한 구석에서 스크럼을 짜고 농성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 다른 경찰들에게 피해 저항이 들어가며, 어썰트가 대 끝나지 않는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세무서 직원과 서버를 빼내고 나면, 세무서 직원을 위협해 게임을 시작했던 방으로 되돌아가야한다. 그 다음 컴퓨터에 서버를 연결하고 전원선을 꽃은 후, 세무서 직원을 의자에 묶어 서버 암호를 말하도록 해야한다. 이때 세무서 직원이 대답을 거부하는데 한번 근접공격으로 후려패주고 물어보면 암호를 말한다. 너무 많이 패면 기해서 다시 깨어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주의. 한번만 패고 질문을 계속 시도하자.
  • 편혜영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이효석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강 편씨]][[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폐비 윤씨 . . . . 1회 일치
         **** 손자 : 원자(元子): 요<ref>성종 287권, 25년(1494 갑인 / 명 홍치(弘治) 7년) 2월 23일(임오) 5번째기사 왕세자빈이 원손을 탄생하다</ref><ref>성종 288권, 25년(1494 갑인 / 명 홍치(弘治) 7년) 3월 29일(무오) 1번째기사 원손이 졸하다</ref>
  • 풍계리 . . . . 1회 일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설사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이 지역 주변의 [[탈북자]]들 역시 방사능 피폭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북한 당국이 방사능 피해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은 탓에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야 자신이 피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 풍평피해 . . . . 1회 일치
         풍평(風評, 뜬소문)으로 일어나는 피해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재해나 사고에 관하여 부적하거나 허위 보도가 일어났을 경우, 생산물이나 서비스의 질적감퇴, 문제를 염려하여 재해나 사고에 관련된 제품의 소비가 줄어들고, 그로 인하여 본래 재해나 사고의 책임에 관련이 없느 업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 프리덤 파이터즈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시에 결성되었으며 [[나치]]를 비롯한 추축국에 대항했으며 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스에서도 등장했다.
  • 플래시(드라마) . . . . 1회 일치
         [[스타 연구소]]에서 벌어진 사건에 의해 믿어지지않는 [[속도]]를 지니게 된 배리 앨런이 히어로 플래시가 되어 도시를 지키고, 그가 어린 시에 어머니의 목숨을 빼았은데다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진범과 대립하게 된다는 내용.
  • 피서영 . . . . 1회 일치
         피서영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로 유학을 갔다. 유학 시에 [[이휘소]]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핑커톤 . . . . 1회 일치
         리즈시(?)인 19세기가 지난 후에도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되돌아가는 [[모나리자]]를 호위한다던가, [[홍콩]]에 지점을 세운다던가 하다가 1999년 스웨덴 보안회사인 세쿠리타스 AB(Securitas AB)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 하동부대부인 . . . . 1회 일치
         [[조선 명종|명종]] 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으로 즉위한 [[조선 선조|선조]]는 [[조선 예종|예종]]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하였다가 즉위 직후 스스로를 파양하고 친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한 [[조선 성종|성종]]과는 달리 강력한 배경도 없었으며 생부 [[덕흥군]]이 후궁 소생 왕자에 불과하여 부모를 왕과 왕후로 격상할 수 없었다. 이에 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작위가 공신 정1품의 작위로 왕비의 아버지의 작위로도 쓰여진 부원군(府院君)의 부(府)를 대(大)로 교체한 대원군(大院君)이다. [[조선 선조|선조]]는 생부 덕흥군을 조선 최초의 대원군인 [[덕흥대원군]]으로 추증하였고, 생모 군부인(郡夫人) 정씨는 외명부 소속 왕실 여성의 최고 품작인 부부인으로 추증하였다.
  • 하야시 선생님 . . . . 1회 일치
         아무튼 이 사이트에서는 정신과 관련의 질문을 메일로 받아들이고, 그 질문과 답변을 게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답변이 묘하게 친한가 하면, 너무 단견을 내리거나,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초 전개로 나아가거나 해서, 가끔 엄청 재미있는게 나타난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일본 고교 선수들 중 베스트 3 안에 들고, 미야기 현에선 혼자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다. 관동의 선수들도 '우시와카'의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 카라스노가 봄 배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는 중등부 시 부터 악연의 상대였다. 라이트 자리에서 각도 내기에 적합한 왼손잡이 공격수.
  • 하이큐/209화 . . . . 1회 일치
         - 와시죠 감독. 냉정하지만 지금의 히나타에겐 가장 적한 평가.
  • 하이큐/213화 . . . . 1회 일치
          * 우카이 코치에게 전화로 뭘 먹는게 좋겠냐고 묻는데, 우카이 감독은 어떤 상황인지 금방 이해하고 적한 조언을 해준다.
  • 하이큐/217화 . . . . 1회 일치
          * 팀을 짜서 하는 2대2 훈련에서는 "대로 팀을 짜고 싶지 않다"고 평해질 정도.
  • 하이큐/221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의 망적인 표현력이 웃음포인트.
  • 하이큐/226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도 그 의견이 적하다고 판단한다.
  • 하이큐/234화 . . . . 1회 일치
          * 야마구치의 두 번째 서브. 이번엔 정확하게 테라도마리를 노린다. 테라도마리가 받아내지 못하면서 서브로만 2연속 득점. 스코어는 11대 9로 좁혀진다. 적한 용병술이 된 우카이 코치는 환호. 그러면서 야마구치의 급격한 성장세에 다시 한 번 놀란다.
  • 하이큐/236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파인 플레이로 관중석의 여론은 단숨에 카라스노 쪽으로 기운다. 스코어는 16 대 15. 위태로운 한 점차 리드. 츠바키하라는 침채된 분위기를 감한다. 이때 첫 번재 TO.
  • 하이큐/238화 . . . . 1회 일치
          * 관중석에서도 히나타의 속공이 인기만점. "10번은 공중에서 멈춘 것 같다"고 말해진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TO 때 스기와라가 말한 "후방 마이너스"가 뭐냐고 묻는다. 그건 스가와라가 붙인 괴짜속공의 새로운 이름. 스기와라는 괜찮은 이름 아니냐며 으시댄다. 카게야마는 별로 신경 안 쓰지만 히나타는 엄청나게 감동. [[니시노야 유]]는 뒤에 "썬더"더 붙이자고 제안하지만 그럼 니시노야의 필살기 같아진다며 거 당한다.
  • 하이큐/239화 . . . . 1회 일치
          테라도마리도 "맞추려면 나 빼고 맞춰라"고 웃어넘긴다. 히메카와가 가장 의식했던 2학년 츠키오카도 3학년 마루야마에게 "종반부터 서브가 어설펐다"고 쓴소리를 퍼부울 뿐, 아무도 히메카와의 실책을 문제삼지 않는다. 히메카와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어리둥하다.
  • 하이큐/240화 . . . . 1회 일치
          * 아나운서는 카라스노가 천장서브를 기피하는 것 같다고 보는데 그 점은 익숙하지 못한 점이 크다. 해설자가 설명하기론 과거 리시브 룰이 엄격해서 오버 핸드[*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받는 리시브]가 허용되지 않던 시엔 매우 위협적이었으나 오버 핸드가 허용되면서는 거의 사장되었다. 그렇지만 오버를 써도 쉽게 잡는다는건 아니고, 시야가 제한되고 낙하속도가 빨라서 익숙하지 않은 선수에겐 까다롭다. 소수지만 "리시브 자세로 잡는게 편한 선수"도 있었다고 언급되는데.
  • 하이큐/245화 . . . . 1회 일치
          >다들 작은건 망적인 거라고 생각하기만 해
  • 하이큐/251화 . . . . 1회 일치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가 카게야마, 히나타, [[야치 히토카]], [[니시노야 유]]의 초등학생 시 사진을 감상하는 것. 단연 눈에 띄는건 니시노야. 초2 때 사진인데 키나 차림새가 거의 변한게 없는 느낌이다. 사와무라는 "니시노야는 초2때 완전체"라는 놀라운 표현력을 과시한다. 아즈마네는 "저렇게 나뭇가지 들고 있는게 잘 어울리는 애가 있나?"라고 감탄한다.
  • 하이큐/254화 . . . . 1회 일치
          * 속없이 막히는 속공. 선수들 사이에, 응원단에, 벤치에 낭패한 얼굴이 스쳐간다. 반면 얄미울 정도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츠무. 중계진의 멘트가 카라스노를 잔인하게 찔렀다.
  • 하이큐/258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의 두 번째 TO. 전황이 좋지 않다. 우카이 코치는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자군이 괴짜 속공에 적응해 가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 대안으로 "섞음"을 해금한다. 근데 잠깐 어리둥해하는 히나타. 알아들은 척 하지만 츠키시마의 눈썰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 하이큐/260화 . . . . 1회 일치
          그의 말이 타나카의, 벤치의 [[스가와라 코시]]의, 그리고 코트 위의 선수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준다. 스가와라가 "기회는 온다! 대로 놓치지마!"라고 외친다. 코트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도 대답만 없을 뿐 이심전심이다.
  • 하이큐/268화 . . . . 1회 일치
          여기서 사루카와의 두 번째 TO. 네코마타 감독이 보기에도 적한 타이밍이었다.
  • 하이큐/272화 . . . . 1회 일치
          * [[오오미 타로]]는 오지로에게 "천천히 가자"고 지시한다. 이나리자키의 서브. [[스나 린타로]]와 교대해 1학년 서버 리세키가 투입된다. 이나리자키에선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중학교 시엔 만년 벤치 신세에 딱 한 번 핀치 서버로 기용됐다가 서브 미스로 경기를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에선 강호 이나리자키에 들어온 건 좋으나 여전히 기회는 적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도 있다. 미스하면 본전도 없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일단 들어가는 서브"라는 안전빵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됐다. 우선 자군 벤치에서부터가 시들한 반응. 무난하게 아사히에게 떨어지는 것을 안전하게 리시브, 히나타의 스파이크로 이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리세키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면서 리시브까지 실패하고 만다. 간만에 손맛을 본 히나타가 기뻐날뛰려는데, 이나리자키 관중석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뻘쭘해진다.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자군 서버의 실수를 "볼보이는 안 불렀다"고 극언해가며 까대는 소리였다. 대부분 관중들은 딱히 실수한 것도 없는 자기편 선수를 디스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른바 "이나리자키 도깨비 응원단". 소심한 플레이를 인정사정없이 욕하는 묘한 기질이 있다. 사실 프로도 아닌 고교 선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외플레이. 적이라도 같은 서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마저 기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한 야유였다. 그리고 이 야유는 의외의 인물도 자극하는데, 바로 카게야마였다.
  • 학대의 연쇄 . . . . 1회 일치
         투영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어린 시의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으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학대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섞여서 복잡한 심리 상태가 된다.
  • 학동 . . . . 1회 일치
         방과후에 보호자가 귀가할 때까지 아동을 맡아서 돌보면서 적한 놀이와 활동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아동이 감소하여 빈 교실이 늘어난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보육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한가인 . . . . 1회 일치
         |<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10년전 신인시, "코미디 프로로 데뷔?"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8&aid=0002865660|출판사 =머니투데이 |저자 =마아라 |날짜 = 2012-06-28 |확인날짜 =2018-04-17 }}</ref>
  • 한말숙 . . . . 1회 일치
         * [[숙명여자고등학교]] 동창인 [[소설|소설가]] [[박완서]]와 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 한비야 . . . . 1회 일치
         어린시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키웠다고 한다. 세계일주 여행의 첫 여행지가 ‘산들의 고향’인 네팔이라는 것만 보아도 한비야의 산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 한상대 (검사) . . . . 1회 일치
         고려대 법대 재학시인 1980년 5월 ‘1을종 현역병 입영대상’으로 판정을 받았다가 1981년 5월에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입영기일과 징병검사를 연기했으며, 사법시험 합격 뒤인 1982년 5월 ‘수핵탈출증(디스크) 수술’을 이유로 ‘병종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 한성식 . . . . 1회 일치
         * [[2002년]] 《[[광복 특사]]》 ... 택시기사 역
  • 한성호 . . . . 1회 일치
         중문과 재학시 대학교수를 꿈꾸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명지대 음악 밴드‘화이트홀스(백마)’였다. 그는 교내 밴드동아리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 한수연(배우) . . . . 1회 일치
         2018년 8월 14일 광복 특집으로 방영된 tvN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외증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라고 밝혔다.[* [[문제적 남자]]에서 김순오라고 밝혔다.][[http://www.nocutnews.co.kr/news/4681861#csidx7e5eabd14e99dc0bb1abe81b7d22670|기사]]
  • 한승엽 (1985년) . . . . 1회 일치
         2003년 SouL(현 STX SouL)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으며 아마추어 시 강력한 프로토스 실력을 소유한 선수였으나 프로로 와서는 테란으로 전향하였다.
  • 한승조 . . . . 1회 일치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 조약|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3/h2005030411490221950.htm 한국일보 - 한승조 "일본 식민지 지배는 축복"]</ref>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친일파|신친일파]]<ref>[http://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5/03/007100002200503132126035.html 한겨레신문 - 한-일 우익 ‘역사왜곡’ 연대조짐] :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반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반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 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f>라고 부르기도 한다.
  • 한운사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남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이 영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 한준희 . . . . 1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한충 (조선) . . . . 1회 일치
         [[1519년]] 전한(典翰)이 되었으며, 이후 직제학(直提學) · 동부승지(同副承旨) ·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하지만 그 뒤 남곤에 의해 [[충청도]] [[수군도사]]로 전임되었으며, [[1520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이에 휘말려 [[거제도]]로 유배당했다. [[1521년]] [[신사무옥]] 때 남곤의 흉계도 인해 [[의금부]]에 투옥되었으며, [[조선 중종|중종]]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으나, 남곤의 자객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 한행 . . . . 1회 일치
         [[일본]]의 풍속. 소한(小寒)에서 분(節分)에 이르는 30일 동안 승려나 속인이 하는 수행을 뜻한다.
  • 한현민(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대학생 때부터 동기들과 개그팀 '''신나'''[* 같이 활동하던 동기로는 [[박규희(코미디언)|박규희]]가 있었다.]로 활동하다가 [[전유성]] 극단에 입단 후 2003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데뷔한다. [[조영빈]], [[이재형(코미디언)|이재형]]과 함께 기글스를 결성해서 삑삑클럽, 희한하네, 황당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진행하며 이름을 알렸다. 희한하네 시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흉내를 자주 하곤 했는데, 일본 방송에 출연해서 고이즈미를 따라하는 비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 한혜숙(배우) . . . . 1회 일치
         [[김영애]], [[김자옥]] 등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비교해 영화 출연이 드문 것은 물론 흥행작이 없는 것도 아쉽다. 물론 한혜숙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영화]]가 사양길에 들고 '호스티스 영화'들이 생기면서 '벗기기 경쟁'이 과열했을 때이니 직선적이고 도도한 성격인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 실제로 호스티스 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 한혜숙도 영화에 출연했는데 호스티스물은 단 1편도 없었고, '[[족보(영화)|족보]]', '[[최후의 증인]]'과 같은 작품성이 진한 작품들에 출연했었다. ~~물론 흥행은...~~ 이후 1987년, 곽지균 감독의 '두 여자의 집'에 출연했을 때 [[19금]]이긴 했지만, 노출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2세대 트로이카나 김자옥, [[김영란(배우)|김영란]] 등 당대 톱탤런트들도 호스티스 영화와 같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했지만, 한혜숙과 같이 '벗기기'에 거부감이 들어 전성기 시 전혀 영화출연을 하지 않은 스타가 있었는데, [[이경진]]이다. 이쪽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은 물론 아예 영화 자체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김자옥]]의 경우에는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2세대 트로이카]]와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흥행작을 내었고, [[김영애]]는 김자옥만큼은 아니더라도 늦게나마 '[[빙점 81]]' 등의 흥행작을 냈지만 한혜숙은 그렇지가 않다.
  • 한호문 . . . . 1회 일치
         양공 [[한확]](韓確)의 7대손으로 그의 아들 [[한치인]](韓致仁)의 6대손이며, [[소혜왕후]]의 종6대손이 된다. 또한 세종의 왕자 [[계양군]] 이증의 부인 정선군부인 청주한씨(旌善郡夫人 淸州韓氏) 역시 그의 6대 대고모가 된다.
  • 함중아 . . . . 1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지금의 대구광역시) 출생이며 한때 [[경상북도]] [[포항시|포항]]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경상북도]] [[안동시|안동]]에서 성장한 그는 1971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 첫 데뷔하였으며 이후 1977년 [[함정필]], [[정동권|최동권]] 등과 함께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도 입상을 한 바 있고 이후 1978년 1집 발표하는 등 록 음악 밴드 활동도 병행을 하였는데 그 후로도 1988년 시까지 [[윤수일]], [[조경수]], [[유현상]], [[박일준]] 등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록]] [[가수]] 활동으로 인기를 구가한 그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작품이 공전 히트를 기록하였다.
  • 함화진 . . . . 1회 일치
         함화진은 [[이왕직 아악부]]의 수장인 제2세 아악사장을 역임한 함재운의 장자로 태어나 이병문에게서 거문고를, [[명완벽]]에게서는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국악이론 부문에서도 일인자가 되었다. 10대 시인 [[1900년]]에 가전악(假典樂)이 된 뒤 [[190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 그 뒤 아악사를 차례로 지냈다. [[1932년]]에는 아버지가 맡았던 자리인 제5세 아악사장에까지 올랐고, [[1939년]]에 은퇴했다.
  • 해양군 . . . . 1회 일치
          | 자녀 = 슬하 1남 3녀(모두 요) <br /> 양자 [[이인 (종실)|이인]](李仁)
  • 해원군 . . . . 1회 일치
         20년 후 [[1657년]] '''해원군'''(海原君)에 진책되었으며 이후 청렴한 성품을 발휘하여 자신의 사저(私邸)에 조그만 서실(書室)을 짓고 그곳에서 [[한시]]와 [[시조]]를 작시와 아울러 [[서예]]와 [[서예|서화]]에 열중하여 당시 사람들이 삼(三絶)이라 칭하였다.
  • 허범욱 . . . . 1회 일치
         2009년 첫 단편 애니메이션 《평범한 식사》를 자력으로 제작하였다. 2010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교육과정에 애니메이션연출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며 2011년 12월부터 교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연구과정을 시작하였다. 2015년 《창백한 얼굴들》로 제18회 홀랜드 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민섭 (1983년)|김민섭]]과 유년시 친구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삽화를 그려주었다.<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필모그래피|url=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41358&v=i|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7%88%EB%B2%94%EC%9A%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94376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40&aid=0000028389|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창백한 얼굴들’, ‘사이비’ 이어 세계 4대 애니 영화제 대상 쾌거|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130704|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 HAFF 그랑프리 수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46193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창백한 얼굴들', 홀랜드애니페스티벌 장편 대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482651|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 허안나 . . . . 1회 일치
         :# 개그콘서트 참좋은시 (2014.07.13~2014.08.03)
  • 허협 . . . . 1회 일치
         그러나, 몇 주 후, 허협은 [[고문]]을 견디지 못해 배교하였다. 하지만, 그는 즉시 속죄하고, 포장에게 가서 자신은 오직 입으로만 배교하였고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은 여전히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하였다. 형리들은 그에게 배교를 취소하는 표시로 사람의 [[똥]][[오줌]]을 마시기를 요구하였고, 허협은 주저없이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는 [[십자고상]]에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그가 한때 배교했던 것을 뉘우치며 [[예배]]하였다.
  • 헌경왕후 . . . . 1회 일치
         바로 영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영조 20년인 [[1744년]](영조 20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과 [[조선 정조|정조]]가 있다. 영조는 첫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이 태어나자 기대가 남달랐으나 의소세손은 곧 요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둘째 아들 세손 이산이 태어났다.
  • 헤이즈 (가수) . . . . 1회 일치
         어린 시 [[첼로]]를 배웠고 [[클래식]]과 [[발라드]]를 좋아했던 그녀는 미니홈피를 통해 랩을 듣게 된 이후 직접 랩 가사를 쓰고 랩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부경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였으나 공부를 멀리하고 랩 가사를 써왔다.<ref name="s">{{뉴스 인용|제목=[인터뷰] 대구소녀 헤이즈의 파란만장 랩퍼 성공기|url=http://sports.donga.com/3/02/20160204/76324120/2|날짜=2016-02-04|뉴스=스포츠동아}}</ref>
  • 현덕 . . . . 1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현동완 . . . . 1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 현석문 . . . . 1회 일치
         {{인용문2|그는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는 고덕과 온화하고 친하며 순박한 성품을 지녔다.}}
  • 현재덕 . . . . 1회 일치
         | 기타 = 친한 친구로는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 [[주영섭 (1912년)|주영섭]]이 있었다.
  • 현제명 . . . . 1회 일치
         [[김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북대학교]] 교가, [[제일은행]] 시 행가도 이 사람이 작곡하였다.
  • 홍상수 . . . . 1회 일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캘리포니아예술공예대학]](California College of Art and Crafts)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으며, [[시카고 예술학교|시카고예술대학교]](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 연출한 단편 실험영화로 《개미 보는 여인》이 있다<ref name='kmdb' />. 에릭 로메르,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세잔|폴 세잔]]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 홍서범 . . . . 1회 일치
         * 〈나 어떡해〉는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대, 대학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곡이었다고 한다.<ref>[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불후의 명곡2 홍서범, "'나 어떡해'는 당시 사회적 편견을 깬 곡"] {{웨이백|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date=20131227041836 }}《한국일보》</ref> 홍서범은 "당시 부모님들은 공부를 안 하고 기타치고 노래하면 혼을 내서, 대학생들이 몰래 노래하던 시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거다. 그래서 놀란 부모님들이 노래를 부르라 허락했다"고 하였다.
  • 홍성유 . . . . 1회 일치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 홍영현 . . . . 1회 일치
         ==[[두산 베어스]] 시==
  • 홍정욱 . . . . 1회 일치
         홍정욱은 1970년에 태어나 1985년 압구정중학교 재학 중 도미, 1989년 [[초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93년 [[하버드 대학교]]를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마그나 쿰 라우데]]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 재학 시 교환학생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1년 간 수학했고, 대학 졸업 후 1994년 [[베이징 대학|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잠시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학했지만 곧 중퇴한 후 [[미국의 로스쿨|미국 로스쿨]] 입학을 선택했다. 1995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에 입학하였으며 1998년 법무박사 (J.D.) 학위를 취득하였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 황경태 . . . . 1회 일치
         ==[[두산 베어스]] 시==
  • 황광희 . . . . 1회 일치
         스타제국 연습생 시인 [[2009년]]에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피스 리얼리티 - 제국의 아이들》과 《제국의 아이들 리턴즈》에 출연하여 이동식 무대 차량인 윙카로 전국을 순회하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고,<ref>{{뉴스 인용|제목=연예계 뒷얘기 ‘제국의 아이들’… 100% ‘리얼’ 가능할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089654|저자=김보람|출판사=매일경제|날짜=2009-04-06|확인날짜=2012-08-25}}</ref><ref>{{뉴스 인용|제목=제국의 아이들, 거리공연으로 호된 데뷔 준비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000932|저자=이수현|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9-10-01|확인날짜=2012-08-25}}</ref> [[2010년]] [[1월 15일]]에 9인조 [[대한민국]]의 남성 그룹 [[ZE:A]]의 멤버로 데뷔하였다.
  • 황동주(배우) . . . . 1회 일치
          * 1996년 [[KBS2]] 사랑이 꽃피는 계
  • 황부인전 . . . . 1회 일치
         한나라 말기, 효령황제 시 형주의 구월산에 황승언이라는 처사[* 필사본 황처사전에서는 헌제 때 황경은]가 살았다.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자식이 없다가, 늦게 딸을 낳았는데 용모가 추하고 16세가 되었으나 배필을 정하지 못했다.
  • 황상경 . . . . 1회 일치
         * 《[[뱀파이어 탐정]]》 (2016년, OCN) - 젊은 시 주영광 역
  • 황수범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시==
  • 황연대 . . . . 1회 일치
         3세 시이던 [[1941년]]에 [[소아마비]] 증세로 인해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1957년]]에는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63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병원 인턴으로 근무했고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소아재활원 당직의사로 근무했다.<ref>{{웹 인용|url=http://whangaward.org/ko/dr-whang-youn-dai/biography|제목=연혁 - 황연대|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 황은진 . . . . 1회 일치
         방송PD 시에 [[한국방송공사|KBS]]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서울 뚝배기]]》와 《노을》과 《[[형 (드라마)|형]]》을 연출 제작하였다.
  • 황제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1982년]] [[9월 25일]]생 전라남도 순천 출신 [[대한민국]]의 [[개그맨]]이다. 고등학교 시에는 학생회장을 했고, 군복무는 [[제7보병사단]]에서 했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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