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 장순왕후 . . . . 9회 일치
|이름 = 장순왕후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야사에서는 장순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조선 덕종|덕종]](의경세자), 남편 [[조선 예종|예종]]과 아들 [[인성대군]] 등 [[조선 세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조선 단종|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세조|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온순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을 장(章), 유순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순(順)이라 하여 세자빈 한씨에게 장순(章順)의 시호를 내리고 장순빈(章順嬪)으로 삼았다. 후일, 장순빈의 제부이자 시조카인 [[조선 성종|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를 장순왕후로 추존했다.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파주삼릉]] 내에 위치한 [[공릉 (장순왕후)|공릉]](恭陵)이다. 장순왕후로 추숭되면서 왕후의 예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애초에 세자빈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한 행색을 갖추었다.
== 장순왕후가 등장한 작품 ==
* [[공릉 (장순왕후)|공릉]]
- 한명회 . . . . 9회 일치
|자녀= 아들 한보, 딸 [[공혜왕후]], [[장순왕후]], 딸 [[장나라]] 한, 아들 한복(韓福), 한임(韓林), 한수(韓壽), 한목(韓睦), 한석(韓碩), 한서(韓恕), 한우(韓佑), 한온(韓瘟), 딸 한씨(韓氏), 한씨(韓氏), 한씨(韓氏)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순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야사에는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한다.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도끼로 자신의 정강이 또는 자신의 집 대들보를 내리찍었다고 한다. 그는 왕실과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했는데, 그의 큰딸은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아들 윤반과 혼인을, 그의 작은딸은 [[신숙주]]의 맏아들 신주와 혼인하였고 셋째 딸은 [[조선 예종|예종]]의 정비([[장순왕후]])가, 막내딸은 [[조선 성종|성종]]의 정비([[공혜왕후]])가 되어 영화를 누렸으나, 이 딸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 삼녀: [[장순왕후]](章順王后, 1445년 ~ 1461년) - [[조선 예종|조선 제8대 국왕 예종]]의 정비(正妃)
** 구남: [[장성원(배우)]] 장순왕후의 아들
=== 장순왕후와 공혜왕후 ===
그는 [[조선 세조|세조]]와 그의 장남이자 자신의 사위인 [[조선 예종|예종]]의 형인 [[조선 덕종|의경세자]]와도 이중 사돈관계를 형성하였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章順王后)는 그의 셋째 딸이고, [[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恭惠王后)는 넷째 딸로, 이들은 친정 자매간이면서 시가로는 시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는 관계가 된다.
- 서수민 . . . . 1회 일치
|| '''가족''' ||<(> 조카: [[장순왕후]][* 드라마 제작국의 프로듀서로 [[넝쿨째 굴러온 당신]], [[전우치]] 등에서 활동했다.], 딸 2명 ||
- 장성원 (배우) . . . . 1회 일치
{{다른사람:[[장순왕후|어머니]]}}
11531의 페이지중에 4개가 발견되었습니다 (0개의 페이지가 검색됨)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