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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길상
         |직업 = 작곡
         '''권길상'''(權吉相, [[1927년]] [[8월 4일]]~[[2015년]] [[3월 13일]])<ref name="kw_about">[http://www.kwongilsang.com/aboutus.asp About 권길상] {{웨이백|url=http://www.kwongilsang.com/aboutus.asp# |date=20150215181412 }}, Kwon Gil Sang</ref><ref name="미주한국">[http://www.koreatimes.com/article/907001 ‘꽃밭에서’작곡가 권길상 박사 별세], 《미주한국일보》, 2015.3.14</ref>은 [[대한민국]]의 아동음악가다. 《[[스승의 은혜]]》, 《과꽃》, 《어린이 왈츠》, 《푸르다》, 《꽃밭에서》, 《둥근달》 등 약 150곡의 [[동요]]를 [[작곡]]하였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작곡 활동을 하였으며, 35세 때인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등 동요 보급에 힘썼다.<ref name="미주중앙">[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65066 "한국 동요 가르치다 아예 말을 가르치게 됐지"], 《미주중앙일보》, 2012.2.27</ref>
         * 1982년 아동음악상(아동음악연구회 주최) 수상<ref name="동아_1">「과꽃」「바다」동요작곡 在美 權吉相씨, 《동아일보》, 1987.3.11</ref>
         * 1987년 제 31회 소파상 수상<ref name="동아_2">31회 小波賞에 작곡가 權吉相씨, 《동아일보》, 1987.12.30</ref>
         [[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1927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동요 작곡가]]
  • 김영석 (음악가)
         | 직업 =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 <br />[[베이시스트]],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br />사업가
         '''김영석'''(金永錫<ref>{{웹 인용 |url=http://image.maniadb.com/images/album/121/121060_f_1.jpg |제목=넥스트 4집 부클릿에 기재되어 있음 |확인날짜=2014년 7월 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004121709/http://image.maniadb.com/images/album/121/121060_f_1.jpg |보존날짜=2012년 10월 4일 |깨진링크=예 }}</ref>, 1968년 3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베이시스트]] 겸 [[작곡가]], 프로듀서이다.
         2006년에는 넥스트에 재가입했으나 1년여간 활동한 후 탈퇴했고 2010년에는 노바소닉의 결성 10주년 앨범인 《[[Metamorphosis]]》를 발매했다. 그 외에도 90년대부터 [[에메랄드 캐슬]], [[리아 (대한민국의 가수)|리아]], [[이지훈 (1979년)|이지훈]], 김진표 등의 아티스트 앨범을 프로듀싱하거나 곡을 주는 등 작곡가로서의 활동 또한 이어가고 있으며, 2014년부터는 '넥스트 유나이티드'로 개편된 넥스트에 다시 참여했다.<ref>2014년 7월 9일 방송분 팟캐스트 참조 [http://www.cbs.co.kr/proxy/banner_click.asp?pos_code=HOMPY1981&group_num=1&num=3&url=http%3A//cbspodcast.com/podcast/yon_radio30/yon_radio30.xml 라디오 3.0 팟캐스트 RSS 피드]</ref>
         | rowspan="2"|1996 || [[이지훈 (1979년)|이지훈]] || 〈왜 하늘은〉/〈내 여자가 바람을 펴〉/〈퍼퓸〉 - [[작곡]]<br>[[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 《[[Rhythm Paradise]]》
         | [[미스미스터|miS=mR]](미스미스터) || 〈널 위한거야〉/〈널 차버리겠어〉 - 작곡<br>프로듀서 || 《mistéik=mistar》
         | rowspan="3"|1997 || [[에메랄드 캐슬]] || 〈Information〉/〈동병상련〉/〈발걸음〉/〈여자들이여 잠에서 깨어나라〉/〈하루〉/〈Summer Fantastic〉/〈형과 아우〉 - 작곡<br>프로듀서/디렉터(with [[신해철]]), [[코러스 (대중음악)|코러스]] || 《[[Invitation (에메랄드 캐슬의 음반)|Invitation]]》
         | [[리아 (대한민국의 가수)|리아]] || 〈유토피아〉/〈4가지 하고 싶은 말〉/〈욕구불만〉/〈개성〉/〈가출한 친구에게〉/〈졸업〉/〈Outroduction〉 - 작곡<br>프로듀서, [[베이스 기타]] || 《[[Diary (리아의 음반)|Diary]]》
         | [[김혜림 (가수)|김혜림]] || 〈Memory〉- 작곡 || 《[[The Beginning]]》
         | rowspan="3"|1998 || 베이비 블루 || 〈샤랄랄라〉- 작사, 작곡 <br> 〈오늘부터〉〈Bye Bye Bye〉〈종이 날개〉〈볼수만 있다면〉〈내가 간직한 여름〉〈신의 저주〉- 작곡 || 《[https://web.archive.org/web/20150928070209/http://www.maniadb.com/album/130227 Let's Kick It Festival]》
         |에메랄드 캐슬 || 〈Intro〉/〈벌의 시대〉/〈Promise〉/〈죄의 시대〉/〈Don't Cry〉/〈정말?〉- 작곡<br>〈그 언젠가는〉- 작사 with 신해철<br>프로듀서, 코러스 || 《[[Circle]]》
         | [[홍경민]] || 〈슬픈 기도〉/〈혼자만의 약속〉 - 작곡 || 《[[Free Throw II Shot]]》
         | rowspan="3"|2003 || [[김성면|K2]] || 〈스위트 스톰〉/〈Liar〉 - 작곡 || 《[[Sweet Storm]]》
         | 김진표 || 〈프롤로그〉 - 공동 작곡, 베이스<br>〈시간이 필요해〉 - 작, 편곡, 베이스<br>〈스물 다섯〉/〈여행〉 - 작, 편곡<br>〈천국을 꿈꾸며〉 - 베이스 || 《[[JP4]]》
         [[분류:넥스트의 일원]][[분류:노바소닉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하드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헤비 메탈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196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김윤아(1974)
         '''[[작곡]], [[작사]], [[편곡]], [[가창력]]등 모든 음악적인 감각을 가진 레전드급 가수.'''
         순창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김문철[* 김홍철과 친구들의 초창기 멤버였으며 김홍철 3집 수록곡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작곡하고 듀엣을 했던 음악가이다.]의 친구였던 김홍철에게 직접 [[요들송]]을 배웠으며 이때부터 자기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gLADlQoOd8k|링크]] 5학년 때 전학 가는 친구를 위해 처음으로 작곡을 하였고, 초등학교 시절 잠깐 배운 요들송과 [[피아노]] 이외에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라디오를 계속 듣지 못하다가, [[순창중학교]] 1학년 때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튼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Honesty'를 듣고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며, 비슷한 시기에 '[[퀸(밴드)|퀸]]'을 듣고 밴드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AFKN]], [[아메리칸 탑 포티]] 등의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순창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부에서 활동하였는데 직접 작곡하여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표정 연기, 무대 연출 등 이 시절 연기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 영어 선생님의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로 A Lover's Concerto를 부른 것이 첫 공식 무대라고.
         === 작사/작곡가 ===
         자우림의 작사/작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앨범의 수록곡 중 50~60% 정도를 작곡한다.[* 30%~40%는 기타리스트인 이선규의 곡. 나머지 10%~20% 정도는 베이시스트 김진만 작곡. ~~구태훈은?~~] 앨범을 준비하면 가장 성실한 김윤아가 20곡, 기타리스트 이선규가 3곡, 김진만과 구태훈이 0~1곡 정도를 써 온다고 한다.(...)
         다른 가수에게 곡을 써주는 일이 매우 드물다. [[박정현]] 앨범 중에 작사를 2곡 해주었고 [[김경호]]와 동갑내기 친구 임현정의 앨범에서 작사를 1곡씩 해주었다. --유일하게-- 작곡까지 하고 편곡까지 한 경우는 [[장나라]]의 3집 앨범 수록곡인 '키키'이다. 2015년 7월에는 슈퍼주니어의 10주년 앨범에 Rock'n Shine을 작사/작곡/편곡 해주었다.[* 원래 제목은 슈퍼 매직 파워라고 전해진다][[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310|곡을 주게 된 계기]]
         [[본인]]을 포함한 자우림 멤버들(김윤아, 이선규, 김진만, 구태훈)이 만든 것이 아닌, 즉 자우림의 자작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부른 경우도 정말 드물다. 특히 김윤아 솔로 2, 3집에는 모든 곡의 크레딧에 김윤아 작사/작곡이 붙어있다. 1집의 경우도 민요 '파랑새'와 영화 OST '봄날은 간다'를 빼면 모두 김윤아 작사/작곡. 김윤아 솔로 1집에 들어있는 [[파랑새]]는 작자미상의 민요, [[봄날은 간다]]는 [[마츠토야 유미]]의 곡이다.
         '''__2012년 이후로는 피처링이 늘어나고 있다.__''' 2013년 [[김진표]]의 7집 '서른일곱', 월간 [[윤종신]] Repair 11월 '그댄 여전히 멋있는 사람'에 참여하였다.[* 참고로 이노래는 김윤아가 '''단 한번에 불러서''' 녹음한 노래라고 한다. 들어보면 이걸 한 번에 녹음했다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2가지 버전(아코디언, 스트링)이 있는데 두 버전에서 김윤아의 노래가 묘하게 다르다. 그것이 이 노래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2014년 6월에는 JTBC의 브랜드송 '[[컬러풀 JTBC]]'를 만들고 불렀다.'''[* 작사/작곡은 김윤아, 기타 연주는 이선규가 참여하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9CXeltAkPrs|컬러풀 JTBC 브랜드송]]
         김윤아는 안정적인 중저음역대와 화려한 보컬 연기, 훌륭한 작사/작곡 실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로 명성을 높였다.
         자우림, 김윤아의 음악에 대한 개인의 견해야 다양한 것이지만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연주하는 가수가 아닌 '''자신이 직접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에게 '자의식 과잉' 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만드는 노래' 에 '자의식을 빼야' 한다는 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주장이다. 차라리 "자의식에 진정성이 없다" 라든가 "자의식을 지나치게 패셔너블하게 다룬다" 라는 식의 비판이 그나마 나을 수 있으나 이것들 역시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허세 같다, 그냥 싫다" 는 비판은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정성이 없는지 판단할 기준도 없고 패셔너블한 것도 죄는 아니다. 스타일리쉬한 영화 감독은 칭찬받는데 김윤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김준수(JYJ)
         ||<#FF0000> '''{{{#white 특기}}}''' ||<(> 노래, 춤, 축구, 게임, 작사작곡 ||
         노래와 춤, 축구 등 좋아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몰두하지만 관심 없는 것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집중력이 좋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상냥한 분위기메이커'라는 평을 들으며 호감을 사지만, 위와 같은 성격 때문인지 본인이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인맥이 좁다. 재중과 준수가 공동 작곡한 'Shelter'라는 곡에 얽힌 [[http://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WERU&articleno=295|일화]]에서 준수의 무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자유인 준쨩~~
         ||<:> [[작사]] [[작곡]] [[편곡]] || <[[XIAHTIC]]> <Intoxication> <낙엽> <Breath> ||
         ||<:> [[작곡]] [[편곡]] || <MISSION> <Tarantallegra> ||
         ||<:> [[작사]] [[작곡]] || <네 곁에 숨쉴 수 있다면(White Lie..)> <My Page> <노을...바라보다>[* 베란다에서 팬티 바람으로 작사했다 [[카더라]].] <Set Me Free>[br]<Lullaby> <이슬을 머금은 나무> <나 지금 고백한다 (Feat. 길미)> <이 노래 웃기지 (Narr. 붐)>[* 개인 앨범 'Incredible' 수록곡인데, 문화충격 그 자체다. 본인은 이 노래를 상당히 좋아해서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밀어붙여서 수록했다고 한다. 콘서트 영상들이 압권. 팬들이 중간에 나오는 대사를 죄다 [[떼창]]한다.~~[[충공깽]]~~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자. ~~뭐?! 이천이백사쉽미트어?!!~~][br]<꽃 (Feat. 타블로 of 에픽하이)> <꽃 (Acoustic ver.)> <OeO (Feat. 기리보이)>[br]<X Song (Feat. Dok2)> <X Song (Disco Funk Mix)> <Midnight Show (Feat. 치타)>[br]<비단길 (Feat. BewhY)>[* 준수: '비단길'은 '이 노래 웃기지'의 두 번째 버전 같은 곡이다. 나는 재미있게 익살스러운 가사로 팬들에게 선물 주려고 했는데 팬들은 '제목부터 눈물 난다'며 기대하더라. 감성을 자극하는 곡이 나왔다는 댓글을 보니 너무 죄송했다. [[낚시(인터넷)|여러분들은 속으셨다.]]] <FUN 드라이브 (Feat. 크루셜스타)> ||
         ||<:> [[작곡]] || <Rainy Night> <Shelter>[* [[김재중]]: 제가 집에서 이 곡의 어레인지를 하고 있을 때, 준수가 갑자기 "뭐하고 있어? 나도 노래하고 싶어~"하고 방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자기 멋대로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하고는 "이거, 좋지 않아? 꼭 써야 돼!"하고 말해와서. 제가 만든 멜로디보다 좋은 느낌이었으니까 썼지만요. 게다가 준수는 그 때 한번 노래하고 나서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버려서 그 뒤로는 전혀 참가하지 않았어요. 창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든가, 레코딩 할 때야말로 (준수의 의견이) 필요한데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I Can Soar> <돌고 돌아도> <Rainy Eyes> <Hello Hello>[br]<Tarantallegra (Acoustic ver.)> ||
  • 박재란
         [[본관]]은 [[공주 이씨|공주]](公州)이며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출생한 그녀는 아직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1941년]](4세 시절) 일가족과 함께에 이주하면서 이후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0세 시절이던 [[1947년]]에 부친상(父親喪)을 치렀으며 [[1953년]] '''이영숙'''(李英淑) 본명으로 [[제8군 (미국)|주한 미8군 무대]]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가수]] 첫 [[데뷔]]를 하였다. 이후 [[오르간|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박태준 (음악가)|박태준]](朴泰俊)에게 발탁되어 [[박태준 (음악가)|박태준]]을 사부(師父)로 모시고 [[바이올린|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김광수 (음악가)|김광수]]를 사숙(師叔)으로 모시며 [[박태준 (음악가)|박태준]]의 문하에서 [[서양 고전 음악|음악]] 수련을 하며 [[박태준 (음악가)|박태준]]에게서 '''박재란'''(朴載蘭)이라는 [[예명]]을 얻었다. [[1957년]] 정식 [[가수]] 데뷔하였고 이후 《뜰 아래 귀뚜라미》, 《러키 모닝》,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을 비롯한 노래들이 히트하였다. 1년 후 [[1958년]]에는 [[파인 김동환]]의 [[시 (문학)|시]]에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김동현 (1924년)|김동현]]이 [[작곡]]한 《산 너머 남촌에는》을 불러 연이은 히트 기록하였고, 이듬해 [[1959년]] [[대한민국 영화|영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같은 해 [[1959년]]에는 당시 [[미국]] [[가수]] 겸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및 [[작사가]] 겸 [[영화 배우|영화배우]] [[벌 아이브스]](Burl Ives)가 [[미국]] [[시 (문학)|시인]] 겸 [[라디오]] [[사회자|MC]]였던 [[:en:Webley Edwards|웨블리 에드워즈]](Webley Edwards)와 공동으로 [[영어]] [[노랫말|가사]]로 [[작사]]하고 [[작곡]] 한 《Pearly shells》라는 노래 작품을 [[작사가]] [[전우 (시인)|전우]]가 [[한국어]] [[노랫말|가사]]로써 번안 작사하고 [[박춘석]]이 편곡한 《진주 조개잡이》라는 노래를 받아 불렀다. 이 노래 작품은 국내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여름 애창 노래 가운데 인기 애창 번안곡에 손꼽히는 노래가 되었다.
  • 박진영(가수)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 [[작곡가]], [[댄서]], 사업가, 배우다.[* 여러 드라마에 나왔으며 스스로가 주연인 [[5백만불의 사나이|영화]]까지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로서 현재 JYP엔터테인먼트의 주식 16.16%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18년 8월 주식시장에서 시가 기준으로 1천5백억 원에 달한다.
         1990년대에는 가수였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음원 저작권 수입 1위를 기록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LP]], [[카세트 테이프]], [[CD]], 다운로드&스트리밍까지 음원시장의 변화를 전부 겪어본 가수이기도 하며 본인의 노래 <살아있네>에서도 언급했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1990학번이며, 보통 알려진 1994년보다 2년 전인 1992년 박진영과 신세대로 대학 재학중에 데뷔했지만 이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부터 작곡가 [[김형석]]의 밑으로 들어가 2년간 온갖 수발을 들며[* 지금이야 가상악기의 발달로 웬만한 곡 작업은 시퀀서에 내장된 악기로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90년대만 해도 음악 작업을 할려면 썼던 악기들을 다 들고 다녀야 했다. 온갖 수발을 든게 김형석의 술친구(...)와 함께 이 악기 드는 일부터 시작한 것. 본인은 김형석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악기를 쓰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매우 중요한 일과였다고 한다.] 작곡의 A부터 Z까지 모두 배워오는 등 본격적인 창작의 밑거름을 다지기 시작한다.[* 4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워서 배운 것은 바로 따라할 수 있고, 당시 김형석이 하루에 5곡을 동시에 작업하는 워커홀릭였던지라 2년만에 하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형석은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작곡해주기도 했으며, [[베이비복스]]의 [[Come Come Come Baby|Get Up]]에서 작사가와 작곡가로 다시 만나기도 한다. 사족이지만 공교롭게도 박진영은 김형석과 혈액형이 같다.]
         박진영은 1994년 9월 '날 떠나지 마' 를 타이틀곡으로 한 1집을 내놓았다. [[연세대학교|연대]] 재학 중이었던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이 소속사 저 소속사 다니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들려줬지만 번번히 독특한 체형[* [[팔]]이 상당히 길다고 한다. 실제로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언덕길을 오르는 박진영을 보면 팔이 땅에 끌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과 마스크 때문에 거절을 받았다.[* 당시엔 [[김원준]] 같은 귀공자 마스크가 아니면 연예계 데뷔가 쉽지 않았다. 오디션을 보러다니던 회사 중 한 곳이 다름아닌 '''[[SM엔터테인먼트]]'''였다.] 계속 오디션에 떨어지는걸 보다못한 [[클론(가수)|클론]]의 [[구준엽]]이 박진영을 직접 '''[[이수만]]'''과 만나서 오디션을 보게 해줬지만 결국 떨어졌다고 한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에 출연했을 때 [[윤종신]]이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지 묻자 박진영은 "처음에는"이라고 답하자, [[김구라]]가 '사장님~접니다. 그때' 대사를 쳤고 [[신정환]]은 '아~저 기억하십니까?'하며 몹쓸 재연을 시전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디션에서 떨어뜨린 이수만과 떨어진 박진영 자신이 '''현재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가수 출신 음반기획사 사장. 심지어 박진영은 [[원더걸스]]를 통해 그 이수만의 [[소녀시대]]를 앞섰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작곡가]] [[김형석]]이 소속된 기획사에 뽑혀 데뷔 준비를 했는데 원래는 피아노 발라드 곡이었던 '날 떠나지 마'를 댄스곡으로 편곡하자는 제안을 받고 댄스곡으로 변신해서 타고났던 춤을 탑재한 뒤 가요계에 혜성같이 데뷔했다.[*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날 떠나지마'는 광고음악으로 대중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는데, 이 노래가 삽입된 광고가 [[오리온(기업)|오리온]] [[센스민트]] 광고였고, 이 CF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또 다른 슈퍼스타가 바로 '''[[정우성]]'''이었다.]
         2018년에는 4윌 9일 컴백하는 [[TWICE]]의 앨범인 [[What is Love?(TWICE)|What is Love?]]의 타이틀곡 What is Love?를 작사 작곡 했다.
         2018년 9월 12일에 발배된 일본 음반 정규 앨범 [[BDZ]]의 BDZ를 작사 작곡했다.
          * 소속 가수들의 앨범에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과거와 다르게 최근에는 점차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별도의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 노력하여 현재는 자신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https://bepick.net/community/view/20920|#]]. 원더걸스 미국 진출을 비롯한 몇몇 실패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한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보다는 회사의 펀더멘탈을 다지기 위해 시스템을 중요시하는 듯 하다. 사실 JYP가 SM이나 YG에 비하면 시스템화가 늦은 편에 속하긴 한다.
         [[분류:한국 남가수]][[분류:작곡가]][[분류:태안군 출신 인물]][[분류:1971년 출생]][[분류: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분류:1992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분류:프로듀서]]
  • 성금연
         '''성금연'''(成錦鳶, [[1923년]] [[5월 9일]] ~ [[1983년]])은 [[대한민국]]의 [[음악가|국악인]]으로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다.<ref name="yonhapnews_2006-06-28">{{뉴스 인용 | 저자 = 이봉석 | 날짜 = 2006-06-28 | 제목 = 성금연 명인 20주기 추모공연 |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341898 | 뉴스 = 연합뉴스 | 위치 = 서울 | 인용 = <전략> ... 남편 지영희(1908-1980) 명인 | 확인날짜 = 2017-12-04 | 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71204011037/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341898 | 보존날짜 = 2017-12-04 | 깨진링크 = 아니오 }}</ref> 본명은 성육남(成六男)이다. [[담양]]에서 태어나, 가야금 명인 조명수와 안기욱을 사사하였다.<ref>김귀자, 성금연 가야금 창작곡집, 도서출판 어울림, 2006년</ref> 어려서부터 최옥산, 안기옥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운 후 [[방송]]과 [[공연 예술|공연]]을 통해 뛰어난 기량이 알려져 명성을 얻었다. 1938년 서울로 올라와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경기 민속음악인 [[지영희]]와 결혼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안기옥 류 가야금 산조를 경쾌하고 화려하게 재구성해 성금연 류 가야금 산조를 만들었다.<ref name="gwe" />
         이후 [[죽음|사망]]할 때까지 [[하와이 주|하와이]]에서 [[가야금]] 전수에 힘썼다. 그녀는 13현 가야금, 15현 가야금, [[철]] 가야금과 같은 개량 가야금을 만들었고 가야금 독주곡으로 춘몽 꽃의향기 흥 살푸리 새가락별곡 눈물의진주를 [[작곡]]하였다. 가야금 산조는 짧게 7분에서 20분. 40분.으로 이어져 1시간 20분까지 작곡하였다. 특히 가야금산조 휘모리부분을 만들었으며 그 중 뒤에 이어지는 휘모리는 1960년 당시 트위스트가 티비에서 나오는것을 보시고 흥미를 느끼시고 그 박자에 맞춰서 만드신것이다. 그 곡을 들으면 트위스트가 연상되는 곡이다. 그리고 눈물의진주는 자식들에게 남길것이 없어 눈물이 진주가 된다면 많은 눈물을 남기겠지만 그것을 남길수가 없으니 이곡을 너희들에게 남긴다. 하며 만드신 곡이 눈물의 진주입니다.(테입으로 유언을 남기신 말씀입니다).그리고 두분은 (지영희.성금연)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게 아니였다. 잠시 다니러 가신다고 작은가방 2개를 가지고 가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3개월만 있으면 자녀들이 영주권을 받을수 있어 자녀중 한 사람이 미국을 가길 원했는데 그사람 때문에 가게 된일이다. 이민을 가는사람이 모든 재산을 한국에 두고 나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시기질투하는 사람의 행동으로 싸움을 할줄 모르는 성금연은 미국으로 되돌아가라는 사람들(그당시 많은 사람들이)에게 당하고 미국으로 들어가셨다. 국악을 더많이 보급을 시켰을 두분을 그렇게 떠밀어 나가시게 한것이다. 그리고 성금연은 박상근에게 가야금을 배운게 아니다. 박상근은 남편 지영희의 친구로 당시에 북으로 넘어간 사람의 이름을 대면 빨갱이로 몰리기 때문에 북으로간 안기옥선생님이름을 못되고 그사람 박상근의 이름을 댄것이다. 내가(지윤자) 직접 성금연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성금연 살아생전에 박상근이라고 쓴책은 이름을 다 없애게 하였다. 그 산 증인으로 이재숙씨가 있다. 그분 책에 보면 박상근이라는 이름이 없어졌음을 알것이다. 성금연선생에게 이재숙씨가 배우러 왔을때 박상근의 이름을 넣고는 한가락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다 고친것으로 안다. 아직도 박상근에게 배워서 성금연가락이 화려하게 변했다고 하는 것은 없어야 하겠다. 아울러 박상근은 성금연과 하등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성금연류를 배우는 사람들은 성금연자신이 손가락이 피가 터지도록 거야금을 뜯어 가락을 만든것임을 알기를 바란다.<ref name="gwe" />
  • 슈가(방탄소년단)
         ||<:><#00CED1>{{{#fff '''특기'''}}} ||<(> [[Rap|랩]], [[작사]], [[작곡]] ||
         '''13세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 편곡을 익혔고, 그 덕분에 녹음 장비와 음향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39&contents_id=122930|링크]]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교가를 편곡하여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루하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반면에, 학창 시절 음악 과목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음악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게 싫었다고. 그래서 교과서로는 음악 공부는 하지 않고 방과후에 음악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 또한 본인이 독학으로 공부한 것.
         두 번째 미니 앨범인 <[[SKOOL LUV AFFAIR]]> 때부터 본인이 프로듀싱한 곡을 꾸준히 트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본래 진로를 [[프로듀서]], [[작곡가]]로 잡은 적도 있었던 만큼 [[싱어송라이터]]가 많은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작사, 작곡에 많은 공을 들이는 멤버 중 하나이다.[* 3년 전 방시혁 프로듀서의 [[https://youtu.be/8XKDXHdj95s|'상대방의 기썬을 제압해']]라는 홍보 영상으로 알려진 오디션에 참가하여 2등 수상, 그 후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아이돌이 되는 줄 모르고 참가했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서 작곡가 등으로 활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이 말을 들은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말한다.] 연습생 시절 '1DAY 1VERSE'라 하여 하루에 한 곡씩을 꼬박꼬박 쓰며 실력을 쌓는 등의 작업도 했었고, 데뷔 후인 현재에도 음악 작업을 즐기고 또 열심히 한다. 1년에 한 200곡은 만드는 것 같다고.
         본인의 믹스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인 "So Far Away"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가수 [[SURAN|수란]]의 디지털 싱글 "오늘 취하면(Feat. [[창모]])"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여 2017년 4월 27일 음원이 발매되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인 슬로우 래빗과 공동 작곡, 프로듀싱이다.] [[http://m.sportschosun.com/news.htm?id=201704220100204200014681&ServiceDate=20170421&f_url=#_adtep|기사]] [[방탄소년단]]과 본인이 아닌 타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에는 처음 참여한 곡으로, 슈가와 수란에게는 꽤나 의미가 큰 곡인데, 수란의 경우 언더 가수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슈가는 발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 순위 1-2위를 다투고 멜론 [[http://www.melon.com/chart/month/index.htm#params%5Bidx%5D=1¶ms%5BrankMonth%5D=201705¶ms%5BisFirstDate%5D=false¶ms%5BisLastDate%5D=false|5월 월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리스너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과 함께 뛰어난 곡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을 인정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15269|#]] 멜론 [[http://www.melon.com/chart/age/index.htm?chartType=YE&chartGenre=KPOP&chartDate=2017#params%5Bidx%5D=1|2017년 연간 차트 9위]]를 달성하였다.
          * 농구를 좋아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5nN8v3LJQrg|농구공 소리를 비트로 작곡한 곡]]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5liS0Ah_W8|화양연화 pt.1 앨범 리뷰(5분 35초)]]. 이 곡에서 본인의 자전적 얘기를 농구에 비유해서 썼다.[[http://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5681152|#]]
  • 신승훈
         그렇게 세월이 흘러를 졸업 한 후 성적이 좋지 못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삼수 끝에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통기타 동아리인 '팝스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훗날 1집에 실린 '두 번째의 사랑'과 '그대의 마음은'의 작사, 작곡 그리고 '그대여 안녕'이라는 곡의 작곡을 했던 백병교를 여기서 만나게 됐다. 그렇게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던 신승훈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당시 유명했던 [[광주광역시|광주]]의 PJ카페에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당시 돈 맥클린(Don McLean)의 〈{{lang|en|Vincent|빈센트}}〉와 [[앨버트 하몬드|앨버트 하몬드(Albert Hammond)]]의 〈{{lang|en|For The Peace Of All Mankind|포 더 피스 오브 올 맨카인드}}〉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즉시 합격해 신승훈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1986년 8월 23일 [[광주광역시|광주]]의 PJ카페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서서 그만의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첫 무대를 가진 후 꾸준히 인기를 얻던 신승훈은 3개월 뒤에 피크타임으로 옮기며 그의 재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신승훈은 다양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해 나가며 수많은 팬레터 등을 받기도 하는 등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경험했다. 적어도 그의 고향인 [[광주광역시|광주]]에서 신승훈은 TV에 나오는 가수에 뺨치는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데뷔하기 전, 대전에서의 유명세에 힘입어 당시 성현기가 진행하는 대전 MBC《별이빛나는밤에》의 보조 MC와 고정 게스트로도 출연하여 음악적 재능과 말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 무렵, 신승훈은 본인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욕심에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데뷔곡인《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포함한 1집에 수록된 7곡이(이는 instrumental까지 포함) 바로 이 때 작곡한 곡들이다. 이 외에도 신승훈은 꾸준히 [[이문세]] 대전 콘서트,<ref>[http://news.nate.com/view/20080802n08325]《스포츠조선》2008.08.02 〈이문세 "코러스 신승훈, 너무 열심히 해 내 무대서 퇴출"〉</ref> [[양수경]]〈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등의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ref>[http://news.nate.com/view/20081111n01238]《OSEN》2008.11.11 〈"신승훈,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코러스는 내 목소리"〉</ref>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보여주던 신승훈은 가수가 되겠다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경하게 되었다. 자기 이름이 크게 쓰여진 앨범 하나 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신승훈은 객지인 서울에서 그렇게 고생아닌 고생을 하다 [[가리봉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당시 생긴 병 때문에 결국 다시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대전 엘브즈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작사가 신재각에게 보낸 데모 테이프가 인연이 되어 당시 서울 강남 일대에서 10년동안 DJ로 활동하고 있었던 [[김창환 (작곡가)|김창환]]은 우연히 신승훈의 곡이 들어간 데모테입을 들어본뒤, 테입의 주인공인 신승훈을 스카웃하기로 했고 그결과 신승훈은 발탁됐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ref name="b" />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 본인의 자작곡인《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 준비를 하기 시작해 신승훈은 [[1990년]] [[11월 1일]]에 데뷔하게 되었다. 원래 1집은 1990년 10월에 발매가 되나 첫 방송을 앞두고 신승훈이 결막염에 걸리는 바람에 그 여파로 이튿날 스케줄까지 취소가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일어난 [[걸프 전쟁]]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방문으로 연이어 프로그램이 결방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11월 1일]] 방송 데뷔를 하게 되었다.<ref name="ㄱ">[http://media.daum.net/society/nation/others/view.html?cateid=100011&newsid=20061029114914373&p=yonhap] 《연합뉴스》2006.10.29〈신승훈 "심신부터 동방신기까지 제 동료죠"〉</ref> 이는 신승훈이 존경하는 故 [[유재하]], 故 [[김현식]]이 작고한 날이기도 하다. 신승훈은 훗날 자신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은 자신이 데뷔한 날짜에 작고한 유재하, 김현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ref>[http://news.nate.com/view/20100106n02022] 《일간스포츠》2010.1.26 박경림의 300mm 인터뷰 ②</ref>
         그의 1집인《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자작곡 7곡을 포함(이는 instrumental까지 포함)해 총 10곡이 수록되었다. 당시《날 울리지마》는 1집에 실렸으나 현재 편곡한 상태로 2집에 수록돼 발매되고 있다.
         * 1990년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당시 신인이었던 신승훈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인 그의 1집 앨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이듬해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이 앨범은 무려 14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ref name="ㄴ">[http://www.ktv.go.kr/program_home.do?method=detail&cid=330707&pcode=100985] 《KTV》2010.03.12 〈한국 대중음악의 새 역사 [음악이 흐르는 세상]〉12분 53초부터</ref> 타이틀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뿐만 아니라《[[날 울리지마]]》로 역시 골든컵을 수상하기도 했던 1집 음반은 그에게 제2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제5회 대한민국 노랫말 대상, 아름다운 노랫말상《미소 속에 비친 그대》,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ref name='신승훈 1집'>[http://www.shinseunghun.com] 2010.12.14 신승훈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히스토리 확인</ref>
         * 1994년 연말에 발표한 4집은 신승훈표 발라드의 저력을 대중들에게 확고히 각인시킨 앨범이다. 신승훈이 직접 프로듀싱 작업에도 참여를 하는 등 앨범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R&B, 하우스,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아내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지난 3집 앨범보다 더 성장한 면모를 보였다. 이전까지 음반을 3장 이상 연속으로 히트한 가수가 없었기 때문에 신승훈 역시 한물 간 가수일 것이라는 주위의 편견을 비웃듯이 그 당시 댄스 음악 붐이 불어닥치던 상황에서도 타이틀곡인《그 후로 오랫동안》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신승훈 발라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신승훈이 직접 배우 [[김지호 (배우)|김지호]]를 발굴해 낸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하며 신승훈 스스로도 자신의 자작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꼽기도 했다.<ref name=hi /> 그 후에도《오랜 이별 뒤에》,《사랑 느낌》,《어긋난 오해》등을 히트시키면서 골든컵을 연이어 차지하였으며 그 해 4번째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다.
         * 1996년 오랜 고심 끝에 발표한 5집은 이미 데뷔 앨범때부터 [[싱어송라이터]]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온 그가 처음으로 전곡을 작사, 작곡했을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의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싱]]까지 맡은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4집 앨범에서부터 여러 장르를 선보이기 시작한 그는 5집 앨범에 재즈부터 모던 락, R&B, 맘보등을 수록하여 발라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작곡,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고 음반 발매 6일만에 백만장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ref>《포토뮤직》취재 : 김태혁 기자, 사진 : 박찬성 기자 - 가요 인기순위 1위 급부상 신승훈, ‘맘보사랑’ 다음달 콘서트 무대에서 보답</ref> 특히 타이틀곡인《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은 사별을 주제로 한 곡으로, 14인조 오케스트라 선율의 웅장한 스케일에 신승훈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ref>《FAME》글 : 안은영 기자, 사진 : 조남주 기자 - 올여름 또다시 불어닥치는 신승훈의 발라드 역풍</ref> 이 타이틀곡으로 댄스곡 일색이었던 가요계 속에서 5집 앨범으로 활동한지 불과 1주만에 가요 톱텐 1위 후보로 올라 세간을 놀라게 하였으며,<ref>《TV가이드》취재 : 유진모 기자, 사진 : 이주노(프리랜서) - 컴백 7일만에 정상권 진입, 가요프로 '신승훈 쇼크!'</ref> 3주만에 《[[가요 톱텐]]》 1위를 차지했다.<ref>취재 : 류인홍 기자, 사진 : 성윤모 기자 - 신승훈, 완벽한 프로젝트로 거침없는 인기 열품을 이어간다.</ref> 또한《내 방식대로의 사랑》으로 그해 여름에 맘보 열풍을 일으켰으며,《운명》역시 잇따라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마침내 그의 단일 앨범 최다 기록인 247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Your Song"이란 곡은 미국 R&B계의 샛별이었던 '존비(Jon B)'가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기내에서 《'''[[KBS 빅쇼]]'''》에 나오는 신승훈을 보고 그의 목소리에 반해 직접 작사, 작곡하여 신승훈에게 선물하고 같이 듀엣까지 한 곡이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스타와 한국가수가 직접 듀엣을 불러 그 당시 많은 화제가 되었다.<ref>[http://shinseunghun.net/bbs/view.php?id=story&no=80]{{깨진 링크|url=http://shinseunghun.net/bbs/view.php?id=story&no=80 }}《TV Times》이경희 기자,〈존 비와 듀엣곡 '유어송' 머라이어 캐리 적극지원
         * 1998년 약 18개월만에 발표한 6집은 [[IMF]]의 광풍 속에 발표된 앨범이다. 신승훈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 디렉팅, 프로듀싱까지 도맡아하며 앨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6집 앨범은 [[IMF]]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밀리언 셀러와 스테디 셀러를 둘다 만족시키는 결과를 이뤄냈다.<ref name="c" /> 이와 함께 총 누적판매량 텐밀리언셀러(1000만장)를 기록하며 아시아 최단기간이라는 기록으로<ref name="c" /><ref name="가" /> 빌보드지 인터내셔널 라인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선배가수 조용필이 먼저 1000만장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신승훈이 아시아 최단기간, 대한민국 최초로 정규앨범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특히 타이틀곡《지킬 수 없는 약속》은 R&B 드럼 패턴에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선율이 그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절제된 감정으로 인한 애절함을 잘 표현하여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고개 숙인 너에게》는 [[마이클잭슨]], [[스티비원더]]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코러스를 맡은 흑인 여성 4인조팀의 하모니로 곡의 후반부를 장식해 주목을 끌었으며,<ref>《뮤직라이프》취재 : 박유정 기자, 사진 : 한준 기자 〈뮤직라이프 6집 인터뷰〉</ref> IMF라는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가 되었다. 이 곡은 미국에서 녹음할 당시 현지의 정평난 음악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가수에게 이 곡을 부르게 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아 화제가 되었다. 한편 신승훈은 1998년 7월 탈세혐의 관련 뉴스가 보도되면서 검찰조사를 받았으나, 그 당시 소속사였던 '라인음향(現 미디어라인)'의 엉터리 회계 처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데뷔시절부터 함께해 왔던 소속사 '라인음향'과 결별 수순을 밟았다.<ref name="d">글 : 이정아 기자, 사진 : 지재만 기자 - 〈스타초대석, 궁금합니다 탈세 혐의로 7개월간 은둔한 국민가수 신승훈 "세무조사부터 무혐의 발표까지 모든 걸 밝힙니다"〉</ref> 이 억울한 사건은 그와 그의 팬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 주었으나, 동시에 신승훈과 그의 팬들 사이를 믿음으로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당시 사건이 Feel 콘서트 전국투어의 마지막인 서울 앵콜 콘서트를 남겨둔 시점에서 터지는 바람에 콘서트 개최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으나,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승훈의 확고한 의지로 콘서트 명을 《''''98 Faith 콘서트'''》로 바꾸어 강행하였다. 3일동안 진행된 이 Faith 콘서트에서 팬들은 신승훈에 대한 믿음 하나로 취소표 하나없이 객석을 가득 채웠고, 신승훈과 그의 팬들이 서로에게 큰 감동을 받으면서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ref name="d" />
         * 2008년 10월 7일 신승훈은 음악 인생의 전환점으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젝트 앨범 '''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의 첫 번째 음반인 ''{{lang|en|'''[[3 Waves of Unexpected Twist: Radio Wave|Radio Wave]]'''}}''를 발표했다. 신승훈이 앨범 수록곡 모두를 작곡, 프로듀싱했으며, 타이틀 곡《라디오를 켜봐요》는 그의 음악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던 록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다. 신승훈만의 청아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잘 담아내었으며, 매 앨범마다 조금씩의 음악적 변화를 시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그를 저평가해 온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국내 활동과 더불어 일본 활동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해오던 그는 2009년 3월 Avex 이적 후 첫 정규앨범이며 일본에서 내는 2번째 정규앨범인 ''{{lang|en|'''[[Acoustic Wave - Japan Special Edition]]'''}}''(Album)를 발표했다.
         * 2009년 11월 12일 신승훈은 프로젝트 앨범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의 두 번째 음반인 ''{{lang|en|'''[[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을 발표했다. 역시 신승훈이 전곡을 작곡, 프로듀싱 했으며, 첫 번째 프로젝트 앨범이 록적인 리듬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Love O' Clock 에서는 R&B 리듬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한 5가지 감정(바람, 설렘, 어리석음, 버림, 외로움)을 표현하는데 좀 더 중점을 둔 앨범이다. 타이틀 곡《사랑치》는 포근한 브라스 사운드를 가미하여 사랑으로 인한 어리석음이라는 감정을 잔잔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선율을 느끼게 해준다. 2010년 3월에는 일본에서 미니앨범인 ''{{lang|en|'''[[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 (일본)|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 ((EP) - 일본 라이센스판) (CE + Extra) / ''{{lang|en|'''[[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 (일본)|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EP) for Only Shin-phony) (CD + DVD) "Place"(사랑치)을 발표했다.
         * 2013년 10월 23일 신승훈은 프로젝트 앨범 '''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의 시리즈 중에 마지막을 장식할 세 번째 음반인 '''''Great Wave'''''을 발표했다. 역시 신승훈이 전곡을 작곡, 프로듀싱 했으며, 첫 번째 프로젝트 앨범에선 모던락적인 리듬, 두 번째 미니앨범에서는 R&B 리듬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번 Great Wave 에서는 재즈와 힙합이 만난 Jazz-Hop과 [[브릿팝|브리티시 락]], 발라드, 디스코풍의 신곡이 실렸으며 6번트랙부터 9번트랙까지는 앞서 발매했던 '''[[3 Waves of Unexpected Twist: Radio Wave|Radio Wave]]'''와 ''[[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Love O'Clock]]''의 수록곡을 재해석해 담았다. 타이틀곡 "Sorry"는 4번의 믹싱과 가사를 5번이나 고쳐가며 심혈을 기울였고, 6년간의 음악적인 실험을 통해 얻은 곡이다.
         * 지난 10년간 국내 가요조사순위에서 가장 많은 1위를 한 가수로 선정되었으며 1위를 가장 많이 한 노래를 작곡작곡자로 선정되어 수상함 - 364주간(7년)
         * 10년 동안 (1990 ~2000) 1위를 가장 많이 한 작곡가(총 364주간 - 7년)
         [[분류:신승훈|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골든디스크 대상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90년 데뷔]][[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통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충남대학교 동문]][[분류:광주광역시 출신]][[분류:에이벡스 그룹 음악가]][[분류:보이스 코리아]][[분류:평산 신씨]]
  • 신형원
         | 직업 = [[가수]],작곡가,작사가,음악감독,교수
         '''신형원'''(辛炯琬<ref>{{뉴스 인용 | 제목=「레코드가수」辛炯琬 새앨범 또다시 히트 | url=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01700099209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7-10-17&officeId=00009&pageNo=9&printNo=6653&publishType=00020 | 출판사=매일경제| 저자= | 쪽= | 날짜=1987-10-17 | 확인날짜=2018-09-21}}</ref>, [[1958년]] [[2월 15일]]<ref>{{웹 인용|url=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18625|제목= 다음 인물백과|출판사=다음|확인날짜=2018-09-21}}</ref> ~ )은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작사가,교수이다.
         1982년 '불씨'와 '유리벽'으로 데뷔했으며, [[1987년]] 2집 '[[개똥벌레]]'로 [[MBC]] 아름다운 노래 대상 금상을 수상했다. 방송사프로듀서들이 뽑은 한국방송프로듀서상 가수상, 가장 문학적인 가수상(한국문인협회 주최)을 수상하였으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공식 추모곡인 '[[당신은 우리입니다]]'의 [[작곡]]과 노래를 맡았다. 박원순시장과 함께 세계환경올림픽 람사르총회 홍보대사를 맡았으며 제1회 민족통일 음악회(MBC주최) 평양공연에서 남측대표 가수로 공연했다. 사회성이 짙은 노래를 따뜻한 인간애에 담아 노래하는 가요계에 독보적인 가수이다.
  • 윤극영
         |직업 = [[테너]] [[성악가]] <br /> [[바이올리니스트]] <br /> [[동요]] [[작사가]] <br /> [[동요]] [[작곡가]] <br /> [[동요]] [[편곡가]] <br /> [[지휘자]] <br /> [[아동문학]] <br /> 아동문화운동가 <br /> [[극작가]]
         '''윤극영'''(尹克榮, [[1903년]] [[9월 6일]]~[[1988년]] [[11월 15일]])은 [[동요]] 〈반달〉을 [[작사]]·[[작곡]]한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이자 [[동화]] [[작가]]이다. [[별명]]이 '''반달 할아버지'''일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다.<ref>「반달 할아버지」尹克榮 선생 "모두들 童心으로 살면 社會 밝아져요", 《경향신문》, 1984.4.12.</ref> 본관은 [[해평 윤씨|해평]](海平)이다.
         [[한성부]] 출생으로, [[1922년]] [[도쿄도|도쿄]]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다음해에 〈반달〉, 〈고드름〉, 〈[[설날]]〉을 비롯하여 30여 편의 [[동요]]를 [[작곡]]했다. [[1926년]]엔 [[한국]] 최초의 동요작곡집 《반달》을 출판하기도 했다. [[8.15광복]] 후 [[둥베이|만주]] [[지린 성]] [[룽징]]과 [[중화민국]] [[허베이 성 (중화민국)|허베이 성]] [[톈진]]에 있다가 [[1947년]] [[월남]]하여 ‘노래동무회’를 [[조직 (사회과학)|조직]]했으며, [[동요]] 100여 곡도 [[작곡]]했다.<ref name="글로벌_1">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의 서양음악가/작곡가/윤극영,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1988년]] [[11월 15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그는 [[홍난파]]·[[박태준 (작곡가)|박태준]]과 함께 [[동요]] 작곡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ref name="글로벌_1"/> 대표작으로 《반달》, 《설날》, 《고기잡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 등이 있다.
         [[분류:일제 강점기의 아동문학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아동문학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2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1903년 태어남]][[분류:1988년 죽음]][[분류:해평 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교동초등학교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
  • 전영록
         |직업 = [[가수]], [[배우]], [[작곡가]]
         1971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프로그램 《영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데뷔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 배우]]로 데뷔했으며 후에 [[작곡]]과 [[작사]] 등 여러 분야에 능통하여 [[가수]] 활동도 병행했는데 개그맨 [[이홍렬]]과 중학교 동창이고<ref>{{뉴스 인용
  • 정사인
         '''정사인'''(鄭士仁, [[1881년]] ~ [[1958년]])은 [[대한민국]]의 [[플루트]] 연주가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다. 구 한국 군악대원이었으며, [[송도고등보통학교]]에서 악대를 지휘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행진곡 《추풍》, 《돌진》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민요]] 《닐리리야》, 《태평연(태평가)》와 자신이 작사, [[작곡]]한 가곡 《타향》이 있다.
  • 정용화
         * [[2010년]] [[6월 23일]] 일본에서 발매한 《The Way》앨범 타이틀 One Time 을[[작사]], [[작곡]] 하였고 이 곡으로 씨엔블루로는 오리콘 싱글차트 11위에 진입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日 싱글 'The Way' 오리콘 데일리 11위|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500570|출판사 = 조이뉴스24 |날짜 = [[2010년]] [[6월 24일]]}}</ref>
         * [[2010년]] [[9월 15일]]에는 [[일본]]에서 두 번째 싱글 ''[[I don't know why]]''를 발매하였는데, 정용화의 자작곡 "I don't know why"는 [[오리콘]] 싱글차트 데일리 8위,<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싱글 日 오리콘 8위 진입 ‘쾌거’|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917094222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0년]] [[9월 17일]]}}</ref> [[오리콘]] 인디즈 차트 주간 1위를 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새 싱글 'I don't know why'로 오리콘 차트 1위|url=http://autotimes.hankyung.com/apps/news.sub_view?popup=0&nid=81&nkey=90590|출판사 = 오토타임즈 |날짜 = [[2010년]] [[9월 30일]]}}</ref>
         * [[2011년]] [[1월 9일]], 일본에서 세 번째 싱글 ''[[RE-MAINTENANCE]]''를 발매하였다. 타이틀 "Try again, Smile again"을 작곡 및 작사하였고 오리콘 싱글차트 데일리 2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 = '씨엔블루' 日 투어 전석 매진 신기록…오리콘 챠트 2위 겹경사 |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26803 |출판사 = 마이스타뉴스 |날짜 = [[2011년]] [[1월 10일]] |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 |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30111191550/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26803 |보존날짜 = 2013년 1월 11일 |깨진링크 = 예 }}</ref>
         * [[2011년]] [[10월 19일]]에 2년여 시간의 인디즈 생활을 마감하고 《[[In My Head]]》로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워너 뮤직 재팬과 계약 체결…日 메이저 사냥 나선다|url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출판사 = 티브이데일리|날짜 = [[2011년]] [[9월 1일]]|확인날짜 = 2012년 8월 19일|보존url = https://archive.today/20120720005549/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14836363197901011|보존날짜 = 2012년 7월 20일|깨진링크 = 예}}</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10월19일 'In my head' 발매 日정식데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9060939407172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 |날짜 = [[2011년]] [[9월 6일]]}}</ref>《[[In My Head]]》의 타이틀 "In My Head" 를 작곡 하였고 "Mr.K.I.A(Know It All)" 작사 및 작곡, "In My Head(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첫 날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3위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메이저 데뷔곡 '인 마이 헤드' 오리콘 3위 '쾌거'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1020094523113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1년]] [[10월 20일]]}}</ref> 메이저 음반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4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이벤트 1만4000명 동원 ‘日 메이저 데뷔 성공적’|url= 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출판사= 스포츠동아|날짜= [[2011년]] [[10월 25일]]}}{{깨진 링크|url=http://news.donga.com/Culture/Music/3/0710/20111025/41382723/1 }}</ref>
         * [[2012년]] [[2월 1일]]에 일본에서 두 번째 싱글앨범인 ''[[Where you are]]''를 발매하였고 타이틀인 "Where you are"를 작사 및 작곡하고 "feeling" 작사 및 작곡, "Where you are(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하루에 3만 2천여장이 나갔고 ''[[Where you are]]''는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日오리콘 차트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2020838542237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2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아시아 대세 씨엔블루, 두 번째 싱글 ‘웨어 유 아’로 오리콘 차트 1위|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202020838404&sec_id=540101&pt=nv|출판사 = 스포츠경향|날짜 = [[2012년]] [[2월 2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록 한류' 통했다..인디서 日오리콘까지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20715142874966&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7일]]}}</ref>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상 반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반응 폭발…컴백 기상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같은 소속사 가수 [[주니엘]]의 데뷔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고 듀엣곡과 뮤직비디오 출연소식이 연이어 들리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으며, 직접 출연한 선공개곡 ‘바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티저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팔에 키운 완두콩, 주니엘 뮤비서 공개 |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275926599530232|출판사 = 이데일리|날짜 = [[2012년]] [[5월 18일]]}}</ref> [[2012년]] [[5월 22일]]에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와 주니엘의 듀엣곡 ‘바보’ 22일 선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521022078&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5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주니엘-정용화 듀엣곡 '바보', 실시간 차트 2위로 기분좋은 출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5월 22일]]}}</ref>
         * [[2012년]] [[7월 30일]]에 본인이 모델로 있는 T.G.I프라이데이스 브랜드송을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T.G.I프라이데이스 브랜드송 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731021547&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7월 31일]]}}</ref>
         * [[2012년]] [[7월 30일]]에 같은 소속사 가수 AOA의 데뷔앨범에 자작곡 'Love is only you'를 선물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AOA (음악 그룹)|AOA]]에 자작곡 'Love is only you' 선물…'종횡무진 활약'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45461 |출판사= 엑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7월 27일]] |확인날짜= 2012-11-2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9230835/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45461 |보존날짜= 2013-01-29 |깨진링크= 예 }}</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걸그룹 AOA 지원사격..자작곡 선물로 '실력 입증'|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48643|출판사 = TV리포트|날짜 = [[2012년]] [[7월 28일]]}}</ref>
         * [[2012년]] [[8월 1일]]에 일본에서 세 번째 싱글앨범인 ''[[Come On]]''를 발매하였고 타이틀인 "Come On"를 작사하고 "Wake up"를 작사 및 작곡하고 "My miracle"을 작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싱글 ′Come on′ 8월 1일 발매|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67993|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7월 12일]]}}</ref> 또한, [[2012년]]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일본 전국에 걸쳐 팬사인회를 진행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세 번째 日 싱글 'Come on' 발매 기념 팬사인회 '성료'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2/2012080201321.html |출판사= 조선일보 |날짜= [[2012년]] [[8월 2일]] |확인날짜= 2012-11-2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125165532/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2/2012080201321.html |보존날짜= 2016-01-25 |깨진링크= 예 }}</ref>
         * [[2012년]] [[8월 29일]] 일본에서 첫 번째 정규앨범인 《[[CODE NAME BLUE]]》를 발매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정규 1집 ‘CODE NAME BLUE’ 29일 발매|url=http://artsnews.mk.co.kr/news/214267|출판사 = 아츠뉴스|날짜 = [[2012년]] [[8월 2일]]}}</ref> 타이틀인 "Time is over"를 작사 및 작곡하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영화 '어벤져스' 영감 얻어 日 정규앨범 타이틀곡 제작 |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20807095344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bnt뉴스|날짜 = [[2012년]] [[8월 7일]]}}</ref> "Intro 02" "Have a good night" "No more" "Where you are(English Ver.)"를 작사 및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하루에 2만 2천여장이 나갔고 ''[[CODE NAME BLUE]]''는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첫 정규앨범으로 日오리콘 주간 1위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90416303911913&type=1&outlink=1|출판사 = 파인낸셜뉴스|날짜 = [[2012년]] [[9월 4일]]}}</ref>
         * [[2013년]] [[1월 14일]]에 본인 자작곡을 타이틀로 하여 씨엔블루 4번째 미니앨범을 발매하였다. 수록곡 6곡 중에 한곡을 제외한 나머지 5곡이 본인 자작곡이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틀-오해-선입견 벗고 우리 길을 간다 |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310166|출판사 = tvreport|날짜 = [[2013년]] [[2월 14일]]}}</ref> 음원이 발표되자 마자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ref>
         * [[2014년]] 2월24일 한국 EP 5집 Can't stop 발매.EP 6곡중 5곡을 작사,작곡하였다.
         * [[2014년]] 4월23일 일본 싱글 앨범 Truth 발매. Truth , Still 작사, 작곡
         === 작사 및 작곡 ===
         |"Just Please" 작사 및 작곡
         |"Y, Why…" 작사 및 작곡
         |"Y, Why…" 작사 및 작곡
         |"Intro" 작곡
         |"사랑빛" 작사 및 작곡 및 편곡
  • 최성수 (가수)
         * [[미국]] [[버클리 음악 대학|버클리 음악대학교]] [[뮤지컬|뮤지컬학과]](부전공: [[작곡]]) [[학사]]
  • 현이와 덕이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장현 (1955년)|장현]](1956~1990)과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들은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마음 나도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였다.(이들 남매는 10여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장덕은 1977년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을 직접 [[작사]], [[작곡]] 하여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작곡가로 입상하였다.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에 입상하게 된다.)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 1994년 10월 [[신수경]] 정규 2집 《변신》 발표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1995년 혼성그룹 [[투투 (가수)|투투]] 정규 2집 《바람난 여자》 발표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2004년 1월 5일 [[테이]] 정규 1집 《The First Journey》 발표 :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수록
         * 2004년 5월 10일 [[JK 김동욱]] 정규 2.5집 《Memories In Heaven》 발표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2004년 12월 29일 [[란 (가수)|란]] 정규 1집 《사랑해서 더 슬픈 일》 발표 : 장덕 작사/작곡 · 장덕 노래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리메이크]] 수록
         * 2006년 10월 26일 [[MBC]]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제12회 : 장덕 작사/작곡 · 장덕 노래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삽입 (철수가 두고 간 워크맨을 병희가 틀자 흘러나오는 곡)
         * 2010년 8월 27일 혼성 그룹 퍼스트(F1RST) 싱글 1집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발표 : 장현 작사 · 장덕 작곡 · 현이와 덕이 노래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리메이크]] 수록(타이틀곡)
         * 2012년 5월 27일 <[[MBC]] [[TV]] [[나는 가수다]]> : [[김연우]]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 2014년 1월 4일 <[[KBS]] [[TV]]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라이벌편 : [[바다 (가수)|바다]]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 2014년 3월 3일 <음악여행 예스터데이 3회> : [[홍진영]]-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 2014년 7월 7일 신인가수 [[김나영 (가수)|김나영]], [[이은하]]와 KBS 2TV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OST 참여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2015년 1월 27일 <[[KBS]] [[TV]]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은 즐겁다 편 : [[EXID]] - 장현 작사 · 장덕 작곡 · 현이와 덕이 노래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리메이크]]
         * 2015.02~2015.05 [[KBS]][[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OST]] : [[어쿠스틱 콜라보]] -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 2018년 4월1일 <북한 평양공연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 2018년 4월3일 <남북합동공연(평양)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 직업 = [[가수]], [[싱어송라이터]], [[작사가]],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 [[배우]]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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