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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 . . . 532회 일치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자택)</br>[[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수감지)
|학력 = [[서강대학교]] 전자공학 학사
|배우자 = (미혼)
|현황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구속영장에 따라 2019년 4월까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감 후 상고심이 완료되지 않아 공천개입 실형 2년 집행 중<ref>http://www.nocutnews.co.kr/news/5073073</ref>
'''박근혜'''(朴槿惠<ref>{{헌정회|2530}}</ref>, [[1952년]] [[2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다.<ref group="주">192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탄핵된 [[이승만]] 대통령까지 포함할 경우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된 대통령이다.</ref>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영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2011년 12월부터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지휘하였고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 득표율 51.6%로 48.0%를 득표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ref>[18대 대통령 박근혜] 박근혜 득표율 51.6%, 조선일보 2012.12.21</ref>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 독신 대통령, 최초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4347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신기록들] 아시아투데이 (2012년 12월 20일)</ref>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영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영재·허남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반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재판 보이콧’ 박근혜 “나라 바로 세우는 게 중요” 판흔들기?]</ref> 한편 2017년 11월 3일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명했으며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강제출당된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1=안정원|제목=한국당, '1호 당원' 박근혜 출당조치…'20년 관계' 청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9&oid=001&aid=0009659037|날짜=2017-11-03|확인날짜=2017-11-03|뉴스=[[연합뉴스]]}}</ref>
박근혜는 대기업 관련 범죄·[[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 18개 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 특활비 · 공천개입 등 혐의 3개에 대해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전자는 2심, 후자는 1심 판결이 나온 상태이다. 2018년 4월 6일 18개 혐의에 대한 1심에서는 혐의 16개에서 일부유죄 및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으며,<ref name=":0" />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 원으로 형량이 늘어났다.<ref name=":2" /> 2018년 7월 20일 혐의 3개에 대한 1심에서는 2개가 인정되어 징역 8년 및 추징금 33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이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20/0200000000AKR20180720096900004.HTML|제목=박근혜 '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1심 징역 8년…33억 추징(2보)|성=송진원|이름=|날짜=2018-07-20|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2개 재판을 합치면 혐의가 총 21개, 형벌은 총 33년형과 벌금 200억 원과 추징금 33억 원이다.
어머니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영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영, 장남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태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서울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4년]] 2월 졸업하였으며, [[정몽준]] 전 국회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다.<ref>[http://news.mt.co.kr/view/mtview.php?no=2011091114473659729&type=1&outlink=2&EVEC 초등 동창 박근혜-정몽준, 대선 앞둔 지금은?]</ref><ref>[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9416&code=113 정몽준-박근혜 ‘외나무다리’ 만날까 - 위클리경향 814호]</ref> 그 뒤, 카톨릭계 미션스쿨인를 거쳐로 진학하였으며, [[1970년]]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1974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박근혜는 의전상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권한대행으로서 아버지 [[박정희]]의 공식 행사와 해외 순방 등을 수행하였고 [[육영수 저격 사건]] 이듬해에 만들어진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박정희]] 피격 당시 슬퍼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때 [[전두환]]에게서 아버지 박정희가 남긴 통치 자금 6억 원을 수령하였는데 이 사실은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0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1년 뒤인 [[1990년]] [[9월]] 근화보는 1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고,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근영]]과의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영수 숭모회는 다툼의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 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332회 일치
만약 시민들을 수용할 주거 건물이 없거나, 임대료를 내지 못하게 된다면 시민들이 판잣집을 만들어서 거기에 살기 시작한다. 판잣집은 임대료도 못 뜯어내고 단점만 있는 건물들이니 제대로 된 집을 지어주는게 좋다. 공산주의자들 투덜거리는 것도 짜증나고.
||음침하고 누추하며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건물입니다. 청소년 범죄자 양성의 완벽한 온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공동주택에 거주한다고 딱히 행복해하는 시민들도 없고 관광객들의 항의도 빗발치지만, 그래도 판잣집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월등한 수용량 덕분에 자주 짓게 되는 건물. 지을 때 마다 높이와 색상이 바뀐다. 양산형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동주택을 몇번씩 클릭하게 될거다.
||외양으로 보나 주거 환경으로 보나 완전 헛간이나 다름 없습니다. 싼 값에 빠른 속도로 건설할 수 있으며 판자집보다는 나으나, 결코 엄연한 주거지라고 하기엔 부족하지요.||
||가엾은 백만장자들은 돈이 너무나도 넘쳐나는 나머지 그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킬만한 주거지를 못 찾는군요. 콘도를 건설하신다면 그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다시금 밝은 얼굴로 되돌려주실 수 있습니다.||
||부자들은 집 자랑을 좋아하지요. 그들이 자랑할만한 집을 지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통상 유지: 주거 환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하겠지만, 기술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건물 그 자체는 멀쩡할 거라고 합니다.
* 고졸 남성 4명을 성직자로 고용 가능
* 방문자: 총 12명 수용 가능
* 방문자: 총 8명 수용 가능
* 예방 접종: 환자가 방문 후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가 20% 만큼 줄어듭니다.
||이 장엄한 성당은 특별히 트로피코의 신부들과 주교들에겐 결혼을 허락하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부유한 자든 가난한 자든 동등하게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방문자: 총 16명 수용 가능
* 방문자: 총 12명 수용 가능
* 예방 접종: 환자가 방문 후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가 20% 만큼 줄어듭니다.
* 방문자: 트로피코인, 모든 관광객 - 총 12명 수용 가능
* 아울렛: 쇼핑몰의 온 천지가 구두입니다. 말그대로 여자들의 낙원이죠. 그러나 남성들에게는 지옥과도 다름 없을 겁니다. 서비스 질은 20 상승하겠지만, 운영 비용은 배가 됩니다.
* 방문자: 성인 관광객 - 16명("외환 은행" 운영 계획 선택시)
* 비자금: 국고의 돈을 스위스 은행의 계좌로 횡령합니다. 효율성은 은행원들의 숙련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국가가 부채에 시달리는 상황에선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 수출 활성화: 물건들을 더 크고 멋있어 보이는 상자에 넣어 수출합니다. 수출로 인한 수입은 최대 20% 까지 상승합니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296회 일치
머나먼 과거부터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은 서로 싸워왔다. 이 싸움의 뒤에는 엄청난 힘을 가진 고대의 유물, 에덴의 조각이 있었다. 암살단은 인류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싸웠지만, 앱스테르고라는 대기업을 내세운 현대의 템플기사단은 암살단보다 너무나도 강했다.
조상들에게 전해진 예언에 따라 데스몬드 마일즈와 그의 암살단 동료들은 한 유적을 찾아간다. 에덴의 조각을 만들어낸 초고대 문명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이었다.
암살단이 전에 얻었던 에덴의 조각으로 유적 문을 열고 들어간 데스몬드 일행. 유적 중간은 정체모를 무언가에 의해 막혀있었다. 데스몬드는 열쇠를 찾으라는 유노[* 먼저 온 자들 중 하나]의 환청과 혼입 효과[* 애니머스의 부작용으로 조상의 기억이 사용자의 기억에 섞이는 현상.]를 겪고 쓰러진다.
* 그냥 간단한 [[튜토리얼]]. 비동기화(임무 실패)가 불가능하니 여유롭게 하자. 실수로 떨어져도 근처 위치에서 재시작한다.
1754년,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상인 헤이덤 켄웨이는 코벤트 가든 왕립 극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상관인 레지널드 버치의 명령을 받은 헤이덤은 오페라를 보고있던 남자를 암살하고 그의 목에 걸려있던 유물을 가지고 극장에서 빠져나간다.
유물을 살펴본 버치는 유물이 먼저 온 자들의 창고를 열 열쇠라고 말하고는 창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로 헤이덤을 보낸다.
항해 33일 째 날. 의문의 선박이 프로비던스를 쫓아온다. 프로비던스가 맞서 싸우는 동안, 프로비던스의 선장은 헤이덤이 아무 도움도 못될 것이라 판단해 헤이덤을 선실 밑으로 내려보낸다. 선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건 루이스 밀즈. 밀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은 명예는 지켜주겠다는 밀즈의 말에 차라리 검을 달라고 대꾸, 밀즈에게서 검을 넘겨받고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이후 헤이덤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와 의문의 선박이 노리는건 자신임을 밝힌 후, 선장을 암살검으로 협박해 폭풍 속으로 프로비던스를 몰게 한다. 폭풍 속에서 헤이덤은 돛를 고정시키고, 돛을 펴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중 제임스가 돛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도 한다. 제임스를 돕고 난 후, 헤이덤은 쫓아오던 선박의 돛대가 폭풍에 부러져 더이상 쫓아오지 못하는걸 확인한다.
* 계속되는 튜토리얼격 임무. 인내심을 가지자.
1754년, 보스턴 항구에 발을 디딘 헤이덤을 "찰스 리"라는 남자가 맞이한다. 이들은 잡화점에서 검(일반 검)과 권총(플린트락 권총)을 사고 그린 드래곤 여관으로 향한다.
* 잡화점에 가는 도중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난다. 도감의 페이지를 잃어버린 프랭클린은 헤이덤에게 잃어버린 도감 페이지를 찾아 줄것을 부탁한다. 이 이벤트 이후로 편지 배달과 도감 페이지 수집을 할 수 있다.
그린 드래곤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말다툼을 벌이던 여관 아저씨와 여관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헤이덤은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력자인 윌리엄 존슨 경에게 협조를 부탁하지만 존슨 경은 자료를 도둑맞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 존슨의 경호원인 토머스 히키가 조사 중이지만 헤이덤은 직접 나서기로 한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존슨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용병단 소굴앞에서 히키와 조우한다. 히키는 용병단이 자료를 훔쳐갔다는건 확인했지만 도적단 소굴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 이에 헤이덤은 자신이 후방에서 습격하는 동시에 찰스 리와 히키가 정면에서 공격하는 작전을 짠다. 이 작전에 큰 피해를 입은 용병단은 성채 안으로 도망쳐 문을 걸어잠그지만 헤이덤의 화약통 쏘기에 몰살. 헤이덤은 자료가 든 상자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다시 용병단이 쳐들어온다. 용병단을 막아내며 목적지까지 전진하자. 집 위에서 머스킷을 쏘는 녀석은 총기로만 잡을 수 있으니 주의. 용병단을 모두 처리하고 나면 히키가 임금을 두배로 받아야겠다면서 투덜거린다.
전투 중간 중간 쉴틈이 날때마다 권총을 재장전하고 머스킷을 바꿔잡자. 맨손으로 막은 후 무기 빼앗기-사격-맨손으로 무기 변경을 반복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
존슨의 계산과 지도가 잘 안 맞아떨어진다. 모호크의 도움을 받을까도 했는데 걔네들에게 해준것도 없는데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이때 히키가 방법을 생각해낸다. 노예상으로부터 원주민을 구출하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 벤자민 처치라는 사람이 노예상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찰스 리의 주장에 따라 헤이덤과 찰스 리는 처치의 집을 찾아간다.
처치의 집을 찾아간 두 사람. 처치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장판이 된 집과 핏자국만이 있었을 뿐. 헤이덤은 집 구석에 걸려있던 처치의 초상화를 잘라내 몽타주를 만들고는 처치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찰스 리가 초상화 쪼가리를 가지고 삽질하고 있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야 뭔가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헤이덤. 헤이덤은 뉴 사우스 웨일스 예배당(New South Wales Meeting House)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예배당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도청한다.
도청을 통해 처치가 물가에 갇혀 있다는걸 알아낸 헤이덤은 찰스 리를 데리고 물가로 간다. 이때 찰스 리가 상당히 약하니 조심할 것. 들키면 앗 하는 사이에 죽어버린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부둣가 창고에 들어간다. 그 순간 그들이 목격한건 보호비를 내라는 사일러스 대처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손 없고 혀 없는 고자가 될 위기에 처한 벤자민 처치였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사일러스 대처의 부하들을 죽이고 처치를 풀어준다.
다시 그린 드래곤 여관으로 온 일행. 존슨에게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처치는 자신을 감금했던 사일러스 대처가 노예상이라는걸 밝힌다. 하지만 대처는 사우스게이트 요새를 관리하는 영국군 지휘관이며, 최소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헤이덤은 사우스게이트 요새로 진입할 방법을 찾는 동시에 자신의 조력자가 될지도 모르는 존 핏케언을 찾으려고 한다.
핏케언이 있는 군사 기지에 도착한 헤이덤과 찰스 리. 핏케언의 상관인 에드워드 브래독 장군은 핏케언을 넘기기를 거부한다. 헤이덤은 한때 자신의 동료였던 브래독을 안타까워 한다.
이후 헤이덤 일행은 마차를 뒤집어 수송대를 가로막은 후에 기습, 수송대의 옷과 마차를 빼앗는다. 헤이덤은 자신을 풀어달라는 원주민 여인에게 사우스게이트 요새에 도착하면 풀어주겠다고 말하고는 수송대인 척 사우스게이트 요새로 마차를 몬다. 헤이덤의 일행이 길을 수송대를 검문하려는 영국군을 암살하는 동안, 헤이덤은 수송대 마차를 몰며 옆에 묶여있는 여인에게 말을 건다. 여인은 대답하지 않는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25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름이 비슷한 배구선수 김연'견', rd1=김연견, other2=프로듀스 101 출연자, rd2=김연경(1996))]
||<-2><#f97a39> {{{#000000 '''엑자시바시 비트라 No.18''' }}} ||
|| '''학력''' || 안산서초등학교[BR]원곡중학교[BR][[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 옛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2013년]]에 개명했다.] ||
||<:> '''성좌 / 지지''' || [[물고기자리]] / [[용띠]] ||
|| '''소속팀''' ||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대한민국) (2005~2009) [br] [[JT 마블러스]] (일본) (2009~2011) [br] [[페네르바흐체 SK]] (터키) (2011~2017)[* 2007년 이후 스폰서명을 팀명으로 붙인다. (아즈바뎀 보건 그룹(2007년~2011년)-유니버셜(2011년)-그룬디히(2014년~2015년))] [br]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중국) (2017~2018) [br] 엑자시바시 비트라 (터키) (2018~) ||
||<-5><table align=center> '''2005-06 KOVO [[V-리그]] 여자부 신인상''' ||
||<-5><table align=center> '''2005-06, 2006-07, 2007-08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MVP''' ||
>ㅡ 런던 올림픽 배구 조별예선 경기가 끝난 이후 외신 기자의 질문
>ㅡ 지오바니 귀데티. 네덜란드 배구 대표팀 감독.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예선에서 맞붙은 후.[[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1&aid=0002054854|기사]]
>ㅡ [[중국]] 배구 대표팀 감독 랑핑[* 19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MVP. 감독직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중국을 최정상 금메달로 이끈 감독]
'''[[대한민국]] 배구계 사상 최고의 거포이자 [[사기 캐릭터|캐사기 유닛]]. 아시안 가모바.'''[* 해외 팬들이 지은 별명. [[러시아]]의 배구 여제로 불리는 200cm의 거한 예카테리나 가모바를 빗댔다.]
192cm의 큰 키를 가진 [[대한민국]] 대표 여자 배구선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인천 흥국생명]]과 [[JT 마블러스]]를 거쳐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흐체]], 그후 2017년,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2018년, 현재 터키 '엑자시바시 비트라.--미녀구단--'로 이적했다.
불 같은 성격[* 의사와 상관없이 곧바로 화를 표출하는 불같은 성격은 신경계 연결 시스템이 유전된 것인데, 이것도 자식에게 유전된다고 한다.]과 승부욕이 있으며, 욕을 잘하는 편이고, 솔직한 걸 넘어서 직설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 배구선수 한유미와 밥 먹는 자리에서 한유미에게 "언니는 성격이 드세고,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기 때문에 결혼하긴 힘들꺼다." 라고 해서 [[한유미]], [[양효진]]을 당황시켰다. 물론 한유미와 매우 친밀한 사이라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이렇듯 내면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는 편.]
여자 [[김세진]]이라고도 불린다. (김세진과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월드클래스였다는 점, 외모가 비슷하다는 점이 있다.)
이상형은 조인성으로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26/0200000000AKR20160826115500033.HTML|좋아한다.]] --싫어할 여자가 있을까?--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였던 큰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이후 원곡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170c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사실 16살이 160 후반대면 꽤 큰 키에 속하지만 배구선수에게는 작아도 정말 작은 키이다.] 벤치 멤버를 전전했다. 출전할 때도 센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했다. 본인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로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독하게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11시가 되어서야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였고, 잘 때조차 공을 안고 잘 정도였다고 한다. [* 이때 익힌 기본기들이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와 토스가 안정적인 이유가 이때 익힌 기본기의 산실이다.] 이후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적적으로 키가 20cm나 자라면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키가 갑자기 자란 이유에 대해서 김연경은 방송에서 [[콩나물]]을 비롯해서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147257|기사]].], 초고교급 선수로 각광을 받게 된다. 처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5년이었다.
또한 특유의 밝고 긍정적이며 승부욕 넘치는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 여전하다고.[* 특히 김연경의 개그본능은 배구팬들 사이에서 데뷔 초부터 유명했다. 그 덕에 각종 예능에 출연해 놀라운 예능감을 뽐내며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V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 스페셜v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MC를 자처하기도 했다. 덕분에 [[https://m.youtube.com/watch?v=pw-uQS7Ew7s|전]]보다 mc보는 실력이 [[https://m.youtube.com/watch?v=GjDlhxjaYJQ| 늘었다]]. ~~배구선수인데 왜?~~] ~~그 승부욕 때문에 피자 6조각 겹쳐 먹었다가 병원 실려간 건 안 비밀..~~ 더 궁금하다면 [[https://news.joins.com/article/3982719 |링크]]를 참고하자.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남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2005-06시즌 신인왕 수상. 그것도 모자라 정규 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모두 싹쓸이하는 괴력을 보였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신인왕-정규시즌 MVP 동시 수상은 김연경 포함, KBL 2001-02 시즌의 [[김승현(농구선수)|김승현]]과 프로야구 2006 시즌의 [[류현진]]이 있다. 그런데 둘 다 KBL 파이널/한국시리즈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김승현은 2001-02 시즌 파이널에서 맹활약했긴 했지만 MVP는 [[마르커스 힉스]]가 탔다. 류현진은 [[2006년 한국시리즈|팀이 삼성에게 패퇴]]하며 코시 MVP는 커녕 우승도 하지 못했다. 신인왕-한국시리즈 MVP는 프로야구 2005 시즌의 [[오승환]]이 있으나 이 해 정규시즌 MVP는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이 수상했다. 따라서 신인왕-정규시즌 MVP-파이널 MVP를 데뷔 시즌에 모두 쓸어간 사례는 김연경이 유일하다.] 덤으로 서브상, 득점상, 공격상, 보너스로 트리플 크라운 1회 달성하였다. [* 데뷔시즌 6관왕]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249회 일치
각 국가의 장관진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각자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당 특성은 여러가지 요소에 보너스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패널티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내각진 중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제외한 8명을 자기 입맛대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민간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2%, 군사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1% 올라간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같이 역사적으로 네임밸류가 높은 장관의 경우 유니크한 특성이 달려있기도 하다. 또한 몇몇 장관의 경우에는 해당 자리의 특성이 아닌 다른 자리의 특성을 달고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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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ocratic Charmer(매력적인 독재자)
>매력적인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과 무자비함을 권력 유지에 쏟아붓는다. 이 인물은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매력적인 협상가다. 하지만 하루하루 통치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며, 그의 권력 이면에는 부패가 들끓고 있다.
주요 인물: 영국의 [[에드워드 8세]], 페르시아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 부정적인 효과: 공업력 -10%, 에너지 생산량 -10%, 금속 생산량 -10%, 희귀 자원 생산량 -10%
>울부짖는 어릿광대는 훌륭한 연극 배우다. 민중은 그를 나라를 구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강력하고 능력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장과 수사의 가면 뒤에는 나약하고 허영심 많은 얼간이가 숨어있을 뿐이다. 진정한 그를 아는 사람은 그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Benevolent Gentleman(자애로운 신사)
>자애로운 신사는 매력적이며, 선거에서 이기는데 도가 텄지만,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끄기에는 조금 부족한 인물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미소를 지으며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릴 뿐이다.
>완고한 개혁가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체제를 퍼뜨리고 싶어한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정치적, 군사적 간섭을 할 의지가 있다.
* 부정적인 효과: 자금 생산량 -25%
* 긍정적인 효과: 자금 생산량 +5%
>지방 폭군은 자신의 나라를 자비없는 공포로 다스린다. 국력 부족으로 인해 그는 팽창주의자들을 잘 지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가 권력을 잡고 있는것도 이웃나라 독재자 덕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국가의 모든 권력은 그의 손 안에 있기에 그를 피할 방법은 없다.
작은 약소국을 억압적으로 지배하는 독재자. 쉽게 설명하자면 방구석 여포다.
* 긍정적인 효과: 공업력 +5%, 에너지 생산량 +5%, 금속 생산량 +5%, 희귀 자원 생산량 +5%, 보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10%, 민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10%, 주둔병 사단 생산 비용 및 시간 -10%, 불만율 증가량 -5%
* 부정적인 효과: 자금 생산량 -50%, 인력 증가량 -5%, 외교 비용 +50%
* Pig-Headed Isolationist(고집 센 고립주의자)
>고집 센 고립주의자는 자신의 국가를 전쟁과 국제정치의 난장판으로부터 지키려고 한다. 이 인물이 외국과의 협조를 어떻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조국의 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긍정적인 효과: 자금 생산량 +25%
- 박명수(MC) . . . . 234회 일치
*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연루자 - [[박명수(1987)]]
* 전 농구인이자 범죄자 - [[박명수(농구)]]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예능상'''}}} ||
'''대한민국 최고의 패널중 한명이자 웃음 사~~망~~냥꾼'''
'''[[유재석]]의 평생 동반자'''
국내에서 가장 [[별명]] 많은 [[연예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칭 쩜오 연예인'''. [[애초에]] 그 쩜오라는 말을 쓴 것도 방송에서 [[본인]]이 애드립으로 썼던 것이다. [[무한도전]] 죄와 길 특집에서 유재석 심문을 하다가 박명수가 유재석의 1인자 위치를 얘기하다가 자기 자리로 들어가는데 [[유재석]]이 즉석에서 "박명수씨 정말 본인이 2인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들어가던 박명수가 순간 "쩜오" 라고 대답했고, 그게 방송에 나가고 시청자들에게 웃겼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사실 쩜오라고 불리는 것은 예능계에서 메인MC가 아닌 서포터이자 2인자 포지션인 본인을 재밌게 하기위한 말일 뿐이고 박명수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장수하고 있는 베테랑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는 능력있는 연예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의 꿈을 품고 방송가에 데뷔하고 싶어했지만, 정작 그 방법을 몰라 한 동안 3사 방송사를 떠돌면서 무작정 부딪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방송공사|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방청객으로 참가했는데 소개를 받아 KBS FD로 일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때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mc [[손범수]]가 웃기고 재능있다며(...) 방송 데뷔를 권유했고''' 이후 [[MBC]] 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데뷔하자 마자 이름을 알리고 무명시절이 거의없던 개그맨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오늘은 좋은 날>, <인생 극장> 개성적인 연기와 개그를 펼쳐보여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대표적인 개그는 바로 정치풍자개그. 신인때 박명수가 기획한 정치풍자 개그 삼자토론은 지금도 회자되는 정치풍자개그이다.
개그맨이면서도 가수, 작곡가 활동을 겸임하였는데, 이전까지는 본인은 "상업적으로 실패하는 것도 개그 레퍼토리로 삼기 위해서다"라고 주장했지만 <바다의 왕자>라는 히트 곡을 내놓기도 하고 이후 진지하게 뮤지션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의 꿈이기도 했던 듯. 최근에는 [[유재환]]의 곡을 작곡해준다. 데뷔 곡인 '커피', 최근에 나온 싱글 '꽃같아'가 박명수의 작품.
2012년 MBC 파업 기간 동안 동분서주한 박명수의 노력과 [[코미디에 빠지다]] 등을 이끌며 침체기에 빠진 MBC 코미디를 부흥시키려 한 것이 인정받은 셈이다. 다만 그 이면에는 논란도 상당히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박명수/특징]] 문서 첫 문단 참고.
데뷔 초부터 방송계에서 활약하며 어느 정도의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유명한 개인기인 이승철 흉내내기부터 배경 음악을 히트시킨 월매 댄스, 이회창 연기를 시도했던 3자토론 등 잘 알려진 개그들이 많다. 그러나 '''특유의 막개그 때문에 워낙 비호감 캐릭터였다.''' 무한도전 이후 "막나가지만 정이 많은" 츤데레 캐릭터로 정립되며 호감을 많이 얻었지만, 저 당시는 "겉으로는 지랄맞아도 속은 따듯한"같은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때 였으며 박명수 또한 편집자들이 이미지관리를 해줄 정도로 대형스타는 아니라 완전한 비호감 캐릭터였다.
2000년대 방송계에 익숙한 사람들도 알 수 있게 예를 들자면 [[단비(일밤)|단비]], [[오늘을 즐겨라]], [[천하무적 야구단]]에 출연하는 [[김현철(코미디언)|김현철]]의 포지션 정도. 김현철처럼 모르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인기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하게 되는 인지도였다. 즉, 인기 프로그램에 고정 내지 준고정으로 활동할 정도의 인지도를 갖추고, 프로그램 초기 방향성을 잡는 단계에서 활기를 불어넣을 정도로 캐릭터도 있지만, 그렇다고 프로그램의 메인 MC나 주요 출연진을 맡길 정도는 안된다는 것.
90년대 중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MBC]] 방송국 수위 아저씨 역할로 나와서 독특한 표정으로 "우쒸~"와 "국민 여러분, 제발 ***하지 마세요~"라는 시리즈 유행어로 신인시절 인기몰이를 하였고 그 유행어 덕분에 CF도 촬영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CF에서 개그맨이 원톱으로 출연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직 신인티도 완전히 벗지 못한 개그맨은 더더욱. 대중적으로도 당시 박명수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일례로 1990년대 중반 한창 인기몰이를 했던 아이큐 점프의 연재만화 [[달숙이]]에서도 박명수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패러디 병맛만화 정도로 볼 수 있는 달숙이에서 언급된 것들은 전부 당대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것[* KOF의 캐릭터라거나 터미네이터 등.]들이었는데 그 중에 박명수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 이미 인지도가 상당하다 못해 높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연예인이라든가 대중문화는 달숙이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외의 광고에서도 활동했었는데 특히 계속 복장을 바꿔가며 연기했던 아이스크림 광고가 유명하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 덕에 소화제 까스명수의 전속모델로 [[김구]] 선생 전문배우 [[이영후]]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하여튼 조연으로서의 입지는 확실히 다져놓아 당시 가장 잘 나가던 꽁트 코미디 프로였던 <오늘은 좋은 날>의 '풍운의 별' 코너에도 등장하였다. '''프로메토 칸투라스 히드라 리바이탄 블리자드 자스카리투스 해저드 디아블로 레피쿠리우스 마젠드 하인리히 4세'''라는 이름의 악마 기믹 역할[* 여담으로, 이 악마 기믹이 [[성검전설 3]]에 등장하는 호크아이의 숙적 사안의 백작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성검전설 3을 하는 사람들은 사안의 백작을 그냥 박명수라고 부르기도 했다.]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소환자인 이경실이 그의 이름을 쉽게 외우는 것과 달리 정작 본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해 갈굼 당하는 역할이었다.
이를 역이용해 박명수가 드디어 이름을 다 외웠지만 이름이 '프로메토 칸두라스 히드라 리바이탄 블리자드 자스카리투스 해저드 디아블로 레피쿠리우스 네메시스'처럼 더 긴 것으로 바뀌어 버려 다시 당하는 패턴도 있었다. <풍운의 별>에서 박명수의 역할은 선배 개그맨들이 짜놓은 틀에 맞춰서 개그를 적극적으로 살리는 역할로 이는 온전히 박명수의 캐릭터와 역량에 기대는 것이었다. 물론, 풍운의 별에 등장하는 홍기훈과 김효진, 이경실이 진 주인공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박명수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그래서, 당시 신문에서 '앞으로 코미디계를 이끌 유망주' 비슷한 제목으로 박명수의 인터뷰가 크게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박명수는 데뷔 초기 유재석 보다 인지도가 높았다. 무리한 도전 암산왕과의 대결(05.12.10)중 유재석이 데뷔 선배[* 의외로 많은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유재석은 1991년 KBS 공채 7기로 데뷔한 엄청난 짬밥의 쇼유자다. 당연히 1993년 데뷔한 박명수보다 개그맨 짬밥상 2년 선배. 다만, 젊은나이에 일찍 데뷔한터라 동갑 혹은 나이가 많은 방송인들중에 그보다 후배들이 많아 서로간의 호칭문제가 꼬여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냥 나이상으로 앞서는 이들에겐 존대하고 있으며, 동갑내기 후배들하곤 사적으로 말을 놓는다고 한다. 박명수를 형님으로 모시는것도 이때문. 참고로 유재석이 가끔씩 농담식으로 박명수 앞에서 개그맨 선배 드립을 치기도 한다.]였지만 워낙 인기가 없어서 '''박명수 닮았다''' 혹은 '''박명수 [[짝퉁]]''' 취급을 당해서 연예인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07.01.06)에서 출연자들의 신인시절을 보여주는 코너에서 유재석도 "저(유재석 본인)보다 훨씬 인기가 좋으셨죠?"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90년대에의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현재의 버라이어티 예능쇼처럼 무작정 한 장면이나 단락적으로 웃기고 그걸 유재석과 같은 중재자가 받아서 잘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의 틀이나 흐름 속에서 희노애락 등을 나름대로 표현해 가면서 김국진이나 홍기훈, 김진수처럼 기본적인 연기력+반전으로 웃기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대본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박명수는 자연스레 그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순발력이 중요해진 이후 시점의 코미디 하우스 등에서의 무대에서조차 '약방에 감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박명수는 콩트에서는 특이한 얼굴이나 말투를 바탕으로 극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었다. 종종 회자되는 박명수의 대표코너격인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대표적인데, 이회창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조차 박명수는 약방의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코미디 하우스의 대표코너는 [[정준하]]의 출세작 노브레인 서바이버, 조혜련의 골룸 개그, 김현철의 1분 논평 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 박명수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자토론은 코미디 하우스 내에서 반응이 그렇게까지 좋진 못했던 코너여서 자주 편집되기까지 했으니...
개그콘서트의 부흥과 함께 콩트 프로그램의 몰락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MBC소속 개그맨들은 MBC라는 둥지를 떠나 다방면에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놀러와 등에 출연하며 MBC와 연을 잇는 한 편, KBS와 SBS에도 게스트 출연을 이어갔지만 후술할 리얼버라이어티 붐 이전까지 상당한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 패널 역할로 많이 뛰긴 했지만 비슷하게 패널 역할로 많이 뛰었고 이따금씩 케이블 MC나 공중파 꼽사리를 끼는 김태현을 보고 인기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역시 박명수의 이 당시 인기란 것은 미묘한 부분이 있다. 흔히 박명수가 방송에서 이야기하던 사업의 집중기가 바로 이 때다.
그러다가 방송의 시류가 리얼버라이어티 및 예능으로 바뀌게 되었고, 강렬하면서도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박명수는 유재석과의 인연을 통해서 [[놀러와]] [[X맨을 찾아라]]와 무한도전을 통해 비로소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리얼버라이어티 초창기 박명수가 제창했던 '제8의 전성기'라는 표현은 평소 꾸준히 잘 나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어떻게든 개그계에서 끈질기게 버텨왔다는 자괴감을 개그 소재로 승화시킨 기믹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꾸준히 잘 나갔으면 전성기가 8번 오는게 아니라 1번의 전성기가 쭉 계속 되는거니까...
박명수 본인이 음반활동에 집중했던 것도 당대 행사진행에서 개그맨이었던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요소였다. 나이트 행사를 진행하면서 본인은 한시간이나 붙어있어야 비로소 출연료를 지급받는 것과 달리 가수는 잠깐 방문해 한 두곡 부르고 가 버림에도 불구하고 페이가 더 세다는 사실을 알곤 아예 내가 진행하고 내가 노래하겠다는 식으로 나왔던 것.[* 그래서 앨범이 자꾸 망하는데 왜 계속 내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차피 다른 데서 써먹기 때문에 망해도 망한 게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히트곡이 되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본인 행사에서의 레퍼토리는 늘어나기 때문.] 실제로 박명수의 앨범의 구성을 살펴보면 행사음악용 구성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클럽음악에 진출하게된 현재 시점에서도 마찬가지. 2000년대 중후반이나 되어서야 개가수가 비로소 자리를 잡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인상적이다.
- 몽키 D. 루피 . . . . 231회 일치
||||||||||||||||||<table align=center><#E066FF> '''[[밀짚모자 일당]]''' ||
||<#DCDCDC> '''전투원''' ||<#DCDCDC> '''항해사''' ||<#DCDCDC> '''저격수''' ||<#DCDCDC> '''요리사''' ||<#DCDCDC> '''선의''' ||<#DCDCDC> '''고고학자''' ||<#DCDCDC> '''조선공''' ||<#DCDCDC> '''음악가''' ||
||<#DCDCDC> '''캡틴''' ||<#DCDCDC> '''밀짚모자''' ||<#DCDCDC> '''마술사''' ||<#DCDCDC> '''붉은 깃발''' ||<#DCDCDC> '''죽음의 외과의''' ||<#DCDCDC> '''바다천둥''' ||<#DCDCDC> '''살육무인''' ||<#DCDCDC> '''대식가''' ||<#DCDCDC> '''갱''' ||<#DCDCDC> '''해적 사냥꾼''' ||<#DCDCDC> '''괴승''' ||
||<:>생일||<:>[[5월 5일]]([[황소자리]])||
||<:>동물에 비유하자면||<:>[[원숭이]]||
||<:>싫어하는 음식||<:>어느 가게의 체리 파이(그냥 싫어함)[* 자야의 술집에서 [[마샬 D. 티치]]가 먹던 체리 파이다]||
||<:>현상금||<:>3000만 베리[* 아론 전 이후] → 1억 베리[* 알라바스타 이후] → 3억 베리[* 에니에스 로비 이후] → 4억 베리[* 정상결전 이후] → 5억 베리[* 드레스로자 이후]||
[[원피스(만화)|원피스]]의 주인공. [[밀짚모자 일당]]의 선장~~겸 개그맨~~~~겸 고x~~. 별명은 밀짚모자 루피.
|| 한국판 || [[정미숙]](KBS), [이보희](대원) || [[강수진(남자 성우)|강수진]] ||
'''~~초반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반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남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절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때때로 굉장히 무모하게 보일 때가 많고, 동료들의 조언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키자루]]는 "무모함밖에 없는 쓰레기"라고 매도하기도 했고, [[주인공 보정]]이 없었으면 해적단 전원이 저세상으로 갔을 일도 수두룩하다.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취향이 원인 중 하나. "목숨보다 모험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섬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록지침을 보자마자 '''가장 위험한 섬'''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 탓에 나미와 우솝은 이런 기능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원피스의 테마를 드러내기엔 가장 적절한 선택이지만, 한 집단 리더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아무래도 신세계를 [[에버랜드|에X랜드]]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
기본적으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활기가 심하게 넘치는 편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나 역동적으로 행동하는 편. 우솝이 말하기를 "루피는 한 자리에 5분 이상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라고.(...) 그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기보단 우선 행동부터 벌이고 보는 편이기에 만일 세세한 작전이 필요할 때는 일단 동료들이 그걸 붙들어 막아세우고 그 사이에 작전을 설명하곤 한다. '''그래봤자 루피는 대부분 말 안 듣고 그냥 돌진해 버리지만.'''
리더로서는 솔직히 부족한 점이 보인다. 일류 인재 스카우터 수준으로 동료들은 잘 모았고, 위급할 때는 전투력도 높지만 이성적인 리더로 보기가 조금 그렇다. 감성적인 리더로 봐야 하나. 물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분명 있다. 때문에 루피가 일행의 구심점은 충분히 되지만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벌이는 일에 자기 옆에 모인 동료들을 한 방에 친구따라 강남 가게 한다던가(...). 뭐 애초에 루피가 자신은 검술도 항해술도 요리도 거짓말도 못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에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동료들을 자기 목숨 만큼이나 소중히 여기고 또 그만큼 믿고 있다. 동료들도 그런 루피의 기대치에 맞춰 죽어라고 자신을 강화해 가며 루피를 쫓아가고 있다.[* 1부에서 '--3d--2y'의 암호를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모습이나(특히 '''자신의 최대의 적수인 미호크에게 가르침을 구하던 조로.''') 2부 펑크 해저드에서의 우솝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자가 위에 군림 하는 타입이 아닌 옆에서 같이 부대끼면서 서로의 단점을 서로의 장점으로 보완해 나가는 타입의 리더쉽이라고 이해해 주면 될듯.--물론 동료들이 그덕에 피X 싸는 고생을 수시로 하는 것이지만--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상결전|없는 상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상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상식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상식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더불어 적이라고 해도 나중에 만나서 그 적이었던 이가 자신을 돕거나 이러면 군말없이 친구라고 여기고 소중히 여긴다. Mr.3나 버기나 베라미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이러다보니 이용당하기 딱이다. 오죽하면 Mr.3가 마젤란의 공격에서 엄호하면서 하던 말을 봐도 이럴 정도다.
그리고 [[남자의 로망]]에 약하다. 합체, 광선빔, 브레스, 7단 변신 등등을 보면 눈을 빛내며 심하면 울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소년들의 로망으로 통하는 장수풍뎅이도 굉장히 좋아해서, 자야에서는 사우스 버드를 잡느라 한창 바쁜 와중에 쵸파와 같이 곤충을 잡고 있었다(...)[* 사족으로 이 장면에서는 '''그 루피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희귀한 장면이 나온다(!!!)'''--그 설명도 엉망인건 넘어가자.--]
어린 시절부터 ~~[[산적]]질을 해왔으며~~[[해적]]을 동경해 왔으며, 특히 어린 시절 자기 팔을 희생하여 그를 구해준 빨간머리 [[샹크스(원피스)|샹크스]]를 동경하고 있다.
신나게 즐기며 노래하고, 동료를 아끼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해적이라 생각한다. 제일 처음 본 해적이 [[빨간 머리 해적단]]이었기 때문인 듯. 영웅이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해적은 고기를 가지고 잔치를 벌이지만, 영웅은 고기를 나눠줘야 하니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징베: 네가 먹을 고기는 내가 줄테니 일단 말을 들어!-- 이런 면모 탓에 해적기만 내리고 다녀도 인생이 편해지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세계관 상 [[위대한 항로]]의 끝까지 가보려는 것 자체가 중죄다. 더군더러 해적기를 내리든 말든 몇몇 행동은 알아서 했을테니[* 특히 로빈을 구출하기 위해 에니에스 로비를 박살낸거나 천룡인을 패 버린것.] 별 상관은 없을듯.~~지금까지 해먹은 게 몇 년인데~~
앞서 말한 그 특유의 무모함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루피의 감은 그만큼 잘 맞는다'''. 분명히 루피가 무모해서 온갖 사선을 넘으면서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모두 살아남은 것은 루피의 감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패기 설정이 두드러진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연결된 떡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mr.3 전때 같은 것만 봐도 작가가 구상정도는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독자들도 있다.]
- 희빈 장씨 . . . . 229회 일치
|전임자2 = [[인현왕후]]
|후임자2 = [[인현왕후]]
|배우자 = [[조선 숙종|숙종]]
|자녀 = 2남<br />[[조선 경종|경종]], 성수
|어머니 = 윤씨<!--[[부부인]] 작위는 취소되었음. 그러나 [[원자 정호]]로 추증된 장형의 작위는 취소되지 않고 고수됨.-->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ref>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 기사</ref> [[11월 3일]] ([[음력 9월 19일]])<ref>승정원일기 숙종 15년~19년</ref> ~ [[1701년]] [[11월 7일]] ([[음력 10월 8일]])), '''장희빈'''(張禧嬪) 또는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는 조선의 제19대 왕 [[조선 숙종|숙종]]의 [[빈 (지위)|빈(嬪)]]으로,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의 어머니이다. [[조선 숙종|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상이다. 본명은 '''장옥정'''(張玉貞)<ref>[http://yoksa.aks.ac.kr/jsp/aa/ImageView.jsp?aa10up=kh2_je_a_vsu_30613_000&aa10no=kh2_je_a_vsu_30613_001&aa15no=&aa20no=&pageno=&imgnum=JE_A_30613_001_000042&imgsize= 《단암만록》]/[[민진원]] 著</ref>,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 (조선)|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인 윤씨이다. 역관(驛官) [[장현 (조선)|장현]](張炫)의 [[종질녀]]이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의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조선 숙종|숙종]]에게 자진을 명받았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메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조선 영조|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 [[인현왕후|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
희빈 장씨는 [[사역원]] 봉사(종8품)를 지냈던 [[장형 (조선)|장형]](張烱)<ref group="주">장형(張烱)의 형(烱)은 경으로도 읽을 수 있다.</ref>(1623~1669)과 그의 후처인 [[파평 윤씨]](1626~1698)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동기로는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전처였던 [[제주 고씨]](?~1645)의 소생인 이복 오빠 장희식(1640~?)과 윤씨 소생의 동복 언니<ref group="주">[[장희재 (조선)|장희재]]의 누나이다. 따라서 1650년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ref> 한 명, 동복 오빠인 [[장희재 (조선)|장희재]](1651<ref group="주">《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년) 11월 2일 기록에 장희재의 나이가 당 51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651년 생임을 알 수 있다.</ref>~1701)가 있다. 최근까지 그녀의 생년에 대해 흔히 미상이거나 [[조선 숙종|숙종]]의 2세 연하, 혹은 5살 연상 등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수록된 국청죄인 자근례의 공초 내용 중에 희빈 장씨가 기해생(1659년 생)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인용문|오례가 신사를 행할 때에 숙정 등 여러 사람들이 또 같이 참석하여 축원하기를, ‘기해생(己亥生)【장씨(張氏)가 기해년에 났다.】을 몰래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지난해 6월에 오례가 숙정에게 ‘10월에 마땅히 뇌동(雷動)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원컨대 상사(賞賜)를 받게 해 주소서.’라고 하니, 숙정이 ‘만약 그와 같이 된다면 마땅히 중한 상을 받을 것이니, 반드시 세자와 기해생을 몰래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기사}}
외할머니 변씨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으로 유명했던 [[변승업]]의 당고모로, [[변승업]]의 아버지이자 소설 《허생전》에 변부자로 등장했던 변응성의 사촌누이(백부의 딸)이다. 외삼촌 윤정석은 조선의 부를 장악했던 [[육의전]]의 면포 상인이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1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9일(갑진) 4번째기사</ref><ref group="주">윤정석의 본래 출신이 기록된 《숙종실록》에는 "시인(市人)으로 면포(綿布)를 파는 자"로 기록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한성에서 면포를 팔 수 있는 건 오직 [[육의전]] 상인 뿐이다.</ref>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공초되었을 때의 기록에 따르면 1680년 장씨가 출궁되어 은평구 친정에서 머물 당시에 담 하나를 두고 이웃에 살았던 만큼 누이인 윤씨와 관계가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언니는 관상감 관원인 김지중에게 출가하여 1691년 당시 관직이 종7품 직장이었다. 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희빈 장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후궁이 되기 7년 전인 경신년(1680년)에 키가 크고 외모와 무술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만으로 구성된 [[내금위]]에 재직<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ref> 하였으며 1683년에는 좌포청 부장으로 있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인 [[장현 (조선)|장현]]은 [[조선 효종|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고 숙종 1년에는 이미 종1품 숭록대부에 올라 공을 세워도 더이상 품계가 올라갈 수 없어<ref group="주">생전에 정1품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문관]]에게 한정된다. 《동의보감》의 저자이기도 한 명의관 [[허준]]은 [[광해군]]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다가 문관의 반발에 의해 취소되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추증됐다.</ref> 자식과 조카가 대신 승봉되어야 했던 거물 역관으로 재산은 국중거부의 명성을 얻을 정도였으며, [[장현 (조선)|장현]] 형제의 자식들은 무관 및 역관, 혹은 의관으로 고위직에 있었다. 그녀의 일족이 비록 문신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손 꼽히는 대부호였으며 사회적 위치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조사석의 도움으로 대왕대비전의 궁녀였던 장씨는 [[조선 인조|인조]]의 [[계비]]이자 [[조선 숙종|숙종]]의 증조모 뻘인 [[장렬왕후|자의대비]] 조씨를 웃전으로 모셨다. 장씨가 출궁되었을 때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친필로 서신을 써서 법적 며느리이자 친정 외질녀인 [[숭선군]]의 부인 신씨에게 장씨를 돌보게 한 것이나 장씨의 재입궁을 주선했던 것, 조씨가 내전([[인현왕후]])과 소원하고 장씨를 치우치게 사랑했다는 기록<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ref> 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장씨가 [[장렬왕후|자의대비]]의 각별한 애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1680년 겨울, 장씨가 출궁되자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숭선군저에 친필서찰을 넣어 [[장렬왕후|자의대비]]의 친정 질녀이자 숭선군의 부인인 신씨의 보호를 받도록 하였다. 출궁된 장씨는 가장이 된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 부부의 집에서 어머니 윤씨와 함께 지냈다. 1701년 공초 당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처 작은아기는 출궁된 당시에도 장씨가 무속에 기대었다는 사실을 발고한 바 있다.
흔히 장씨가 출궁된 당시에 궁핍한 삶을 살았고, 숭선군 부인 신씨와 [[장렬왕후|자의대비]]를 자주 방문하여 다시 입궁하길 간절히 소원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 해석에는 오차가 존재한다. 출궁된 궁녀는 왕궁 출입은 고사하고 엄중한 감시 아래 사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장씨가 출궁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당숙부인 [[장현 (조선)|장현]]과 장찬 형제가 유배형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이는,
: 숙종 11년 3월 "([[장현 (조선)|장현]]·장찬 형제는) 유찬된지 오래지 않아 옛직임에 서복되어서는 재물을 끌어다 판매하여 방자함이 더욱 심합니다."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1685년]] 대비 김씨의 3년상이 마쳐지자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는 [[조선 숙종|숙종]] 부부에게 과거 대비 김씨가 출궁시켰던 그녀의 궁녀 장씨를 재입궐시킬 것을 권고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조선 숙종|숙종]]을 안타깝게 여긴 [[인현왕후]]가 숙종에게 간해 그녀의 재입궁을 주선했다고도 한다. 어쨌던 대비 김씨의 3년상이 [[1685년]] 12월 5일에 마쳐졌고, [[1686년]] 2월 27일에 후궁 간택령이 있었던만큼 장씨의 재입궁이 이 기간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궁으로 돌아온 장씨를 향한 숙종의 총애가 지극하자 [[서인]]과 [[인현왕후]] 민씨의 반발이 격렬했다. [[인현왕후]]는 장씨를 견제하기 위해 서인과 합세해 1686년 3월, 서인 영수 [[김수항]]의 종손녀인 [[영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입궐시켰다. 숙종 12년인 1686년 2월 27일 기사에 [[인현왕후]]가 여러차례 간택후궁을 들일 것을 종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장씨가 재입궁 한 것을 [[인현왕후]]가 후회하였거나 애초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1683년에는 [[인현왕후]]의 큰아버지인 좌의정 [[민정중]]이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정명공주]]의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첩 안숙정<ref group="주">안숙정은 숭선군저의 가비(歌婢)로서 노래 실력이 장안 최고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 김재규 . . . . 220회 일치
||<:> '''생몰년도''' ||<:> [[1926년]][* 최후진술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김재규 자신은 1926년생이 아닌 1924년 생이라고 밝혔다.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아는분은 추가바람] [[3월 6일]] ~ [[5.18 민주화운동|1980년 5월 24일]] (54세 총 19804일) ||
||<:> '''수상''' || ~~[[대한민국 훈장|충무무공훈장]]~~[* 삭선이 그어진 것은 서훈이 취소되었기 때문. [[2006년]] [[3월 21일]] 정부는 서훈을 취소할 수 있게 개정된 상훈법 규정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 및 기업인 174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으며, 10·26사태의 주범인 김재규 또한 그 대상에 포함되어 8개 훈·포장을 박탈당하였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38076|기사]] ] [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천수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삼일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국선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광복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통일장~~[br]~~[[대한민국 훈장|청조근정훈장]]~~[br][[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 아지즈 훈장[* 당시 건설부장관으로서 몸소 중동에 방문해 (한국 기업을 통한) 중동 개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획득했다.] ||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반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태]]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절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반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군단장]] 시절 [[한계령]] 도로 건설을 지휘했으며, 이 때문에 한계령에 건설 중 사망한 장병 위령비에 이름이 들어가 있었으나 현재 위령비에는 그 부분이 삭제당했다 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안동댐 건축 기념탑에도 원래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지만 [[10.26 사건]] 직후 그 이름 부분이 뜯겨나가 있다. 여담이지만 인트라넷 3군단 역대 군단장과 그가 복무했던 모든 부대에도 김재규 [[장군]]은 삭제되어 있다. 한편 이때 그의 [[전속부관]]이었던 [[박흥주]] [[포병]][[대령]]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재규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 되고, [[10.26 사건]]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부장 수행비서 자리에 있었고, 결국 박정희 암살에도 가담한다. 정말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1973년 초 3군단장으로 전역 후 제9대 국회에서 [[유신정우회]] 1기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12월 [[이후락]]의 뒤를 이어 [[신직수]]가 중앙정보부장이 될 때 중앙정보부 차장이 되었다. 이 때 김재규는 신직수를 매우 껄끄러워했는데 자신이 제5보병사단 참모장일 때 육군 [[군법무관|법무]][[소령]] 신직수가 그 밑에서 법무참모를 지냈기 때문이다. 1974년 9월 개각 때 건설부 장관이 되었다. 건설부 장관 부임 당시 8000만 달러 밖에 안되던 해외건설 계약고를 3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공을 세워 근정훈장을 받았다. 1976년 12월 신직수의 뒤를 이어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최태민|최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거기다가 김재규의 말이 아예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 최태민을 대질시켜놓고 친국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당시 김재규는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으로 의전상 부총리였다. 대통령의 왼팔이 '''일개 사이비 종교인을 고자질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체면을 구긴 일이다. 2017년 기준으로 보자면 [[검찰총장]]이 사이비 교주 하나 기소했다고 대통령에게 친국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이다. 거기다가 김재규가 최태민이 저지른 온갖 부정의 입증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오히려 최태민(정확히는 박근혜)을 신뢰하는 꼴을 보였다. 이는 김재규 입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모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인 자신보다 어디서 굴러와 영애를 홀린 사이비 종교인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있던 충성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5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5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BSqOsrVdY3Y?t=12m31s|당시 실제 육성]]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당시 최후진술의 녹음본이 있다. 들어보자. 무려 40년 가까이 된 녹음본임에도 의외로 들을 만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tjlJ-kt_Dw|유튜브]] 이 녹음본은 월간지 신동아 1996년 10월호에서 첫 공개가 되었는데, 이 녹음본을 듣고 감동한 독자들로부터 "김재규를 재평가해야한다."는 의견이 신동아 편집부에 쇄도하였다고 한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경호원들을 다 죽이고 [[확인사살]]까지 했으나 박상범은 기적적으로 총알이 치명적 부위를 피해간 데다 부상입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찧어 기절해 죽은 것처럼 보였고, 식사하던 경호원들을 중정 요원들이 습격하는 과정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식사하던 중정 직원들[* 포섭해 두지 않아 내막을 몰랐던 이들]인 운전수와 [[요리사]]가 자신들의 총에 다치는 바람에 확인사살에 소극적이어서 죽음을 면했다.
어쨌든 거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김재규가 이동한 곳은, 엉뚱하게도 중정이 아닌 [[육군본부]]였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암살장소인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부장인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박정희를 죽인 사실을 은폐하고 불순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 국무위원과 장성들을 깨끗하게 속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사태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순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육군본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체포되면서 사태를 장악하지 못했다. 김재규가 육군본부로 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 ①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뿐 대통령 사망 후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특권을 휘두르는 군부의 협조가 절실하므로 이를 얻기 위해 육군본부로 갔을 거라는 설.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김재규와 원만한 관계였으므로, 그에게 자신의 [[박정희]] 저격을 알리고도 그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으리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박정희 암살자에게 협조하여 그의 정권 획득을 도울 장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당시 군에 자기 인맥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순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태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210회 일치
계속 히그마에게 끌려서 근해로 간 다음 히그마가 바다에 던진 탓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했으나, 샹크스가 나타나 건져준다. 하지만 이 때 갑자기 나타난 후샤마을 근해의 주인--[[해신류 떡밥|해신류 후샤 D. 뉴에이지]]--에게 샹크스가 팔을 잃자, 크게 상심한다. 샹크스가 떠나기 전에 그의 [[밀짚모자]]를 받아서 자기 보물로 삼는다.
위대한 항로에 진입하자마자 리버스 마운틴 등대지기 [[크로커스(원피스)|크로커스]]와 거대한 고래 [[라분(원피스)|라분]]과 마주친다. 돌아오지 않는 동료를 만나기 위해 레드라인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하는 라분의 이마에 루피 표 졸리로저를 그려넣고 그것을 징표로 재회를 약속한다. 라분의 뱃속에서 만난 Mr.9와 미스 웬스데이를 데리고 위스키 피크에 간다.
알라바스타 왕국에서는 [[자연계]] 능력자 [[크로커다일]]과 싸우면서 극심하게 고전한다. 몇 번이나 죽을 뻔한 위기를 겪지만 마침내 크로커다일을 쓰러뜨리고 알라바스타 왕국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한 때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 [[니코 로빈]]을 별다른 의심 없이 동료로 받아들이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야에서 [[하늘섬]]에 흥미를 느끼고 [몽블랑 크리켓]의 도움을 받아 [[스카이피아]]로 간다. 스카이피아 신으로 군림하는 [[갓 에넬]]과 대결하게 되며, [[번개번개 열매]]의 능력을 고무고무 열매의 특성으로 씹어버린다. 그리고 4백년 전 카르가라와 [[몽블랑 노랜드]]의 약속의 징표인 황금종을 울린다. 마지막에 스카이피아의 거대한 뱀 노라의 뱃속에서 보물을 들고 튄다.
어인섬으로 향하던 중 루피는 유령선에 탄 해골 [[브룩(원피스)|브룩]]을 만나고, 브룩은 [[스릴러 바크]]로 자기가 빼앗긴 그림자를 찾으러 떠난다. 이후 루피는 [[겟코 모리아]]를 만나 스릴러 바크의 정체를 알게 되고, 루피는 모리아와 싸우다 그림자를 빼앗기지만, 그림자를 되찾기 위한 장절한 사투 끝에 승리한다. 겟코 모리아가 루피에게 패배하자 그림자를 잃었던 모두에게 그림자가 돌아온다. 이후 나타난 [[바솔로뮤 쿠마]]때문에 스릴러 바크는 완전히 박살난다. 브룩을 음악가로써 동료로 받는다.
이후 레드라인에 도착하지만 어인섬에 가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던 중, 우연히 만난 인어 [[케이미]]와 아론 파크에서 싸웠던 문어 어인 [[하찌(원피스)|하찌]]의 도움으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에 코팅을 한 후 잠수해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케이미가 납치당해 경매장에서 팔릴 위기에 처하고, 하찌가 도와주려다 [[천룡인]]의 총에 맞자 루피는 가차없이 천룡인을 두들겨 팬다.[* 천룡인을 때린다는 것은 작중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평가된다. 행콕도 처음 루피가 천룡인을 때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런 엄청난 바보가 또 있을줄은 몰랐다'고 평할 정도. ] 그 때문에 [[볼사리노]], [[센토마루]], [[파시피스타]]가 출동하고, 쿠마때문에 루피는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진다.
--머리카락치워--[[바솔로뮤 쿠마]]때문에 [[샤본디 제도]]에서 [[아마존 릴리|여인섬]]에 떨어진다. 남자를 배척하는 섬에서 쫓기다가, 심지어 칠무해인 [[보아 행콕]]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아 그야말로 죽을 위기. 보통 남자였다면 이 시점에서 돌이 되었겠지만 루피에게는 애초부터 사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돌이 되지 않았다.[http://web2.ruliweb.daum.net/ruliboard/read.htm?main=hb&table=cmu_yu03&left=j&db=2&num=53797 #] 결국 콜로세움에서 결투를 벌였다. 무장색 패기를 전혀 쓰지도 않고, 본인 특유의 뛰어난 완력만으로 엄청난 공격을 가한다. 게다가 패왕색 패기의 자질까지 보여 줘 모두가 놀랐다. 거기다 비록 싸우는 중이면서도 고르곤 자매가 숨기고 싶은 부분을 감싸주는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본 행콕은 루피를 용서한다.
루피는 이에 특례로서 후한 대접과 함께 샤본디 제도까지 갈 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파티에서 섬의 여자들 사이에 "남자는 피부를 잡아 당기면 늘어난다."라는 이상한 상식이 자리잡게 된다.(...)--특정 부위는 늘어날 지도...?--[* SBS에 의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잔치 직후 신문에서 자기 형인 [[포트거스 D. 에이스]]를 처형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도우려고 행콕에게 [[임펠 다운]]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괜찮았는데...정말 허리케인 같은 사랑의 열병으로 [[보아 행콕]]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친구를 감싸는 모습에 감동한 오카마 왕 [[엠폴리오 이반코프]]는 빠른 치료를 원하는 루피에게 '10년 분의 수명을 깎아' 자기치유력을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시술한다. 본래 사형 시간을 넘겨서야 회복될 몸이었지만, 봉쿠레의 응원과 근성으로 20시간만에 회복에 성공하고 LEVEL 6로 향하지만 에이스는 이미 사형장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여기서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위해 크로커다일과 [[징베]]를 파티에 합류시킨다.
크로커다일, 징베, 루피, 이반코프, [[이나즈마(원피스)|이나즈마]]라는 전 칠무해 2명과 혁명군 간부 2명이 포함된 무지막지한 팀이 결성되자 임펠 다운의 수감자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광대 버기가 이 혼란을 이용, 각 층의 죄수들을 풀어 대혼란을 야기시킨다.
LEVEL 3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한냐발]]을 때려 눕히지만 끝까지 버티고 계속 일어나는 한냐발에게 발이 묶인다. 그러다 [[마샬 D. 티치|검은 수염]]의 뒷치기에 한냐발이 당해 쓰러지게 되고, 루피는 자신이 [[자야]]에서 만난 남자가 바로 검은 수염이란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루피는 검은 수염에게 싸움을 걸지만 [[징베]]의 설득으로 일시 휴전 상태에 들어간다.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직전, 마젤란에게 쫓겨 수세에 몰리고 Mr.2 봉쿠레의 희생으로 정의의 문을 넘어 임펠 다운을 탈출한다.
이런 무모함이 흰 수염의 마음에는 제법 들었고 또한 에이스를 구출하려는 공동의 목적이 있기에 에이스 처형을 앞당기려는 해군의 계획을 흰 수염에게 말해주기도 한다. 어쨌든 흰 수염 해적단의 엄호와 함께 적진으로 돌진해 나간다. 루피가 전장에 나서자 [[센고쿠(원피스)|센고쿠]]는 루피가 혁명가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그도 위험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이어서 전세계에 생중계된다.
[[스모커(원피스)|스모커]] [[준장]]과 조우해 [[해루석]]이 달린 [[짓테]]에 고전하나, 보아 행콕이 등장해 루피를 구하고, 자신이 빼돌린 에이스의 수갑 열쇠를 준다. 열쇠를 받은 루피는 에이스의 처형대로 가지만 매의 눈, [[쥬라큘 미호크]]가 그의 앞길을 막는다. 압도적인 공격에 몸만 간신히 피하던 중[* 이 때 견문색 패기의 자질을 보였다.], 흰 수염 해적단 5번대 대장 화검 [[비스타(원피스)|비스타]]가 난입해서 미호크를 막아줘서 간신히 따돌린다. 이 때 매의 눈은 루피의 진정한 무서움은 전장에 있는 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힘임을 깨닫는다.
다시 행콕에게 구원받은 뒤, 앞을 막아서려던 [[코비(원피스)|코비]]를 한 방에 제압하고 전진하는데, 에이스의 처형이 시작되었다. 이 때 루피는 다급하게 "그만 둬!"라고 소리쳤고, 이 때 ''''패왕색의 패기'를 사용'''했다. 이걸 본 많은 해군과 해적들이 경악했고, 패왕색의 패기를 가진 자, 즉 언젠가 세계를 위협할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으로 인해 해군은 루피를 최우선 제거대상으로 지목한다.
모두의 도움 속에, 처형대로 향한 루피를 [[몽키 D. 가프|할아버지]]가 가로막고, 루피는 잠시 망설이다 호쾌하게 할아버지를 때린다.[* 가프는 이 때 망설이다가 주먹을 늦추었다. 덕분에 루피는 ''''패륜 손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할아버질 쓰러뜨린 뒤 사형대에 올라 Mr.3를 만나고, [[센고쿠(원피스)|센고쿠]]의 공격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에이스 구출 성공'''
에이스를 구출해내고, 함께 놀라운 호흡으로 해군을 쓰러뜨리며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 도중 추격해 온 [[사카즈키]]의 도발하자, 에이스는 방향을 돌려 사카즈키와 싸우기 시작한다. 이 때 루피가 흘린 비브르 카드를 주우려 할 때 그 틈을 노린 아카이누의 공격을 에이스가 대신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red 에이스 구출실패.}}}'''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한 루피는 정신을 놔버린다.[* 여담으로 PS3으로 나온 원피스 해적무쌍에선 이 장면에서 루피가 패기를 사용, 사카즈키를 두들겨 패버린 후 기절한 것으로 나왔다.왜?] 에이스가 죽자 전황은 해군전체의 타겟이 된 루피를 흰 수염 해적단과 임펠 다운의 탈주자들이 어찌해서든 지키는 형태로 바뀌었고, [[징베]]가 루피를 업고 탈출을 시작한다.
집요하게 추적하는 아카이누의 공격에 징베도 루피도 부상을 입었을 때, 전장에 [[트라팔가 로]]가 등장해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고 [[버기(원피스)|버기]]가 둘을 공중에서 로의 잠수함 방향으로 던져 준다. 이 때 밀짚모자를 전장에 떨어트리고 가는데, [[샹크스(원피스)|샹크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등장한다. 샹크스는 바닥에 떨어진 밀짚모자를 주웠으나, "지금 만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버기를 통해 [[트라팔가 로]]에게 넘겨주었다.
탈출 직전에 아오키지에게 바다가 얼려 잡힐뻔하고 [[볼사리노]]에게 무차별 레이저 난사를 당했으나 천운으로 잠수함은 무사했고, [[보아 행콕]]도 자신의 뱀 살로메를 이용해 추적에 성공해서 뒤따라온다. 루피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숨을 곳이 필요함을 안 행콕은 쿠쟈 해적단을 불러 로 일행과 루피를 여인섬으로 데려간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상태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상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순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206회 일치
이야기는 한 저택에서 시작된다. [[모나 색스]]는 "맙소사! 내가 위기에 빠진 공주님이 되었네."[* God! I turned out to be such a damsel in distress. 맥스와 모나가 [[맥스 페인]]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맥스가 모나의 쌍둥이 자매인 리사와 헷갈려했다. 이에 모나는 리사는 위기에 빠진 공주님이고 자신은 눈 깜빡 안하고 사람을 죽이는 전문가라고 대답했다.]라고 읊조린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맥스는 자신이 모나를 사랑했던건지, 사랑하기를 선택한것인지 생각한다.
조금 더 과거로 가서 그날 아침. 맥스는 다수의 총상과 뇌진탕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온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그는 살아난다. 맥스는 손목에 꽃힌 링거를 빼내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는 "그녀는 죽었다"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맥스는 자신의 옷을 차려 입고 병원에서 도망가기로 한다.
맥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과 자신이 모나와 사랑을 나누는 환각에 시달리며 수술실에 도착한다. 수술실에는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이를 본 맥스는 베레타를 뽑아들고 남자를 조사하지만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때, 무장한 남성 하나가 맥스는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말을 하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온다. 맥스는 그와 싸움을 벌여 쏴 죽인다.
수술실 밖으로 나간 맥스는 모나가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는 환청을 듣는다. 이때, 윈터슨이라는 여성이 맥스를 제지하며 나타나 총을 겨눈다. 맥스도 윈터슨에게 총을 겨누지만 그건 환각이었다.
맥스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곳에는 [[짐 브라부라]]가 있었다. 브라부라는 맥스가 한 여성을 죽였다며 따지기 시작하지만, 무장한 자들의 공격에 쓰러지고 만다. 무장한 남자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도망치려고 하는 맥스에게 기관단총을 퍼붓지만, 근처에 있던 가스통 하나에 불을 붙이는 결과만을 낳게 된다.
>난 도망치려고 했다. 기억에서 지웠다. 윈터슨은 죽었다. 난 살인자다.
>과거는 퍼즐이다. 깨진 거울과도 같다. 조각을 모으려고 하면 손을 베인다. 이미지가 바뀐다. 그로인해 당신은 바뀐다. 그것은 당신을 박살낼 수도, 미치게 할수도 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할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면서 선택한다. 가족에게 돌아가려 하지않고 [[알렉스 볼더|친구]]와 수다를 떨던 것 처럼 말이다. 그녀에게 키스, 나는 냉혹한 법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했다. 난 두려웠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시작했다. 범죄현장으로의 내 발걸음을 따라갔다.
* 수술실 밖으로 나가서 아동실 창문에 붙어있는 그림을 보면 왠지 이야기가 된다. [[맥스 페인|아빠가 경찰인데, 어떤 자들이 아이와 엄마를 죽여서 아빠가 슬퍼하는 이야기]]…. 음?
* 수술실 밖을 나가서 보이는 대기실 TV에서 드라마인 "주소지 불명"을 방영 중이다. 애인을 죽인연쇄살인범인 '존 미라"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방영되는 분량에서는 정신병원에 끌려간 주인공이 의사들에게 애인을 살해한 정신병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맥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알프레드 우든]]은 약속대로 모든 책임을 지워주고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를 버티지 못한 맥스는 마약단속국을 떠나 뉴욕 경찰청 강력반으로 돌아온다.
맥스가 창고에 도착했을 때, 창고 안에서는 총소리와 여자가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 나고 있었다. 맥스는 베레타를 뽑아들고 지원을 요청한 후, 창고의 뒷문으로 진입한다.
청소부는 맥스를 데리고 가 셔터를 올려 주지만, 맥스가 셔터 너머로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있던 동료와 함께 공격해온다. 맥스는 이들을 처리하고 청소부들을 죽이면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는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라는 자가 차를 대기해놓고 있으니 모든 증거를 처리해야한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총기 작업장 입구에 있는 총기 보관소는 텅텅 비어있었다.
2층으로 올라간 맥스는 한 여자가 의자에 묶인 채 청소부들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인 걸 목격한다. 맥스는 그녀를 구하려고 하지만, 청소부의 공격을 피한 사이 여자는 살해당한다.
>내 인생의 모든 나쁜 일들과 같이, 그 일은 한 여자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난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짐 브라부라]]는 맥스가 여자를 구하지 못한 것을 꾸짖는다. 여자의 이름은 애니 핀. 총기 기술자이며 총기 상인이었다. 브라부라는 해당 사건에 대해 감을 못 잡겠다며 맥스가 사건을 처리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윈터슨 형사에게 세바스찬 게이트 상원의원 살인사건을 맡긴다. 해당 사건은 목격자가 있었고, 몽타주도 있었다. 맥스는 용의자의 몽타주를 보고 놀란다. 몽타주에는 모나 색스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맥스는 창고에서 모나를 보았다는걸 말하지 않는다.
맥스와 윈터슨은 각자의 일에 착수한다. 윈터슨은 경찰이 받은 "윈터슨 애인"의 전화를 넘겨받는다. 맥스는 컴퓨터에 스쿼키 청소회사와 카우프만을 검색해봤지만 나오는건 없었다.
* 창고 1층의 TV에서는 드라마 "딕 저스티스"가 방영되고 있다. [[맥스 페인|범죄자들에게 애인을 잃고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형사가 범죄 세계에 맞서 싸우는 내용…….]] 음?
보드카에 도착한 맥스. 하지만 보드카는 중무장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고 블라드는 입구에서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블라드가 도움을 요청하자 맥스는 지원을 요청할 새도 없이 보드카 뒷문으로 뛰어들어간다.
이 와중 블라드의 방에 있는 자동응답기에는 애니 핀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 맥스는 그 메시지를 듣고 블라드가 "애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안심시키는 진짜 신사"라며 조롱한다. 한편, 블라드 방에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주인공 모습을 한 인형탈이 그러져있다.
- 송병구 . . . . 204회 일치
'''송병구'''(宋炳具, [[1988년]] [[8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이자 [[프로게임단]] 코치로, 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삼성 갤럭시]] 소속의 [[프로토스]] 유저이다. 아이디는 '''Stork''' 이다.
2004년 삼성전자 칸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고, 첫 진출한 CYON 2004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리그#EVER 2005 스타리그|EVER 스타리그 2005]] 4번 시드를 따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주목받았던 신예 프로토스 [[오영종]](당시 [[화승 OZ]]),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가 각각 우승, 4강 진출로 이름을 알리는 동안, 송병구는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1승 2패, [[스타리그#2005 So1 스타리그|So1 스타리그]]에선 전패로 탈락하는 등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또한 삼성전자 칸 소속의 많은 선수들이 개인리그에 진출했던 2006 시즌 중후반에도 유독 송병구는 하부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송병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었다. 첫 시즌부터 양대리그 4강에 동시에 올라 [[스타리그#2007 다음 스타리그|Daum 스타리그]] 3위, [[MBC게임 스타리그#곰TV MSL 시즌2|곰TV MSL 시즌2]] 준우승이란 호성적을 냈으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에서도 높은 승률로 삼성전자 칸의 광안리 우승을 이끌었다. 송병구는 2007년에 올해의 프로토스상에 최다승상까지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7년 당시 송병구는 대테란전 승률 70%에 달할 정도였으며 Daum 스타리그 2007 3,4위전에서 이영호를 3:0으로 셧아웃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리그 2연속 준우승이라는 흔치 않은 기록과 MSL에서도 1회 준우승을 기록하여 콩라인에 소속되었다. 2007년 10월엔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은퇴)을 제치고 [[KeSPA]] 랭킹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후 [[스타리그#EVER 스타리그 2007|EVER 스타리그 2007]], [[스타리그#박카스 스타리그 2008|박카스 스타리그 2008]]까지 연이어 결승에 올랐으나 [[이제동]] , [[이영호 (1992년)|이영호]]에게 각각 1:3, 0:3으로 패퇴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더구나 이벤트전이었던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결승에서도 이영호에게 석패하는 등 해묵은 '준우승 징크스'를 깨지 못하면서 번번이 결승전의 패자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여전히 테란전에서만큼은 최강의 모습을 보여주어 당시 송병구를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앞서는 테란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영호에게 결승전에서 패배까지 전까지도 상대전적은 송병구가 앞서 있었다.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16강에서 3승으로 가볍게 8강 티켓을 따낸 송병구는 8강에서 김택용, 4강에서 도재욱을 꺾으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이는 프로토스 최초 스타리그 4회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이다. 송병구는 도재욱, 김택용을 꺾으면서 최고조에 달한 기량을 선보였고 당시 결승상대는 김준영을 3: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로열 로더를 노리는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 (당시 [[SK텔레콤 T1]], 현 데드픽셀즈)이었다. 2008년 11월 1일, [[스타리그#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에서 정명훈을 3:2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2년 가까이 따라붙었던 만년 준우승의 꼬리표를 떼어냈다. 이는 스타리그 최다 진출만에 우승이자, (9회 진출만의 우승이며, 종전까지의 기록은 7회 진출만에 Daum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김준영 (프로게이머)|김준영]]) [[삼성전자 칸]] 선수 최초의 개인리그 우승이었다. 한편 이 경기들에서 송병구는 2경기, 5경기서 물량의 힘을 선보이며 승리를 성취했다. 이때 당시 송병구는 8강부터 결승까지 skt에 소속된 선수들을 꺾으며 skt 킬러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차기 스타리그인 바투 스타리그 8강에서 이제동에게 2:1 역전패를 당하며 우승자 징크스만은 깨지 못했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는 박찬수를 꺾고 팀의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7]] 그랜드 파이널 8강에선 진영수를 꺾고 결승에선 마재윤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중국의 [[샤쥔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WCG 2008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2회 연속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도 건재를 알리며 삼성전자 칸의 2연속 광안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WCG 2009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부분 WCG를 최초로 3회연속 진출에 성공한 후 이제동과의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IEF2008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IEF2009에서는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대회에서 '송순신'등으로 불리며 대활약을 벌였다.
둘의 첫 만남은 2007년 5월 14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이지만, 실질적인 라이벌 관계는 두 번째로 만난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까지 동일한 종족 간의 결승은 왠만해선 흥행이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두 선수는 5경기까지 가는 모든 경기를 명승부로 만들며 우승자 [[김택용]]도, 준우승자 송병구도 박수를 받는다. 이후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이루면서 역대 [[스타크래프트]] 리그 판도에 전혀 없던 [[프로토스]]의 전성기를 만들고, [[김택용]]과 송병구의 '택뱅시대'를 만들게 된다.
=== 우승자 징크스와 부진 ===
[[MBC 게임]]의 프로그램인 [[유저의 취향]]에 2011년 8월부터 추석특집까지 출연하였다. MBC 게임의 중계진인 [[박상현 (1981년)|박상현]], [[유대현]]과 함께 진행을 맡았으며, 멋진 스타 실력과,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예능왕 송병구답다.' 라고 평가 받고 있다.
비록 팀은 접전끝에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그쳤고 결승전 진출이 좌절됐지만 송병구는 2012년에 들어서며 자유의 날개와 병행된 프로리그에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하지만 자유의 날개로 전환한 옥션 스타리그에서는 14연속 연속 진출 대기록 달성에 실패함으로써 그 기록을 이영호에게 넘겨줘야 했다.
송병구는 자유의 날개와 병행한 첫 프로리그에서는 좋은 출발을 보여줬지만 스타리그에서는 14연속 진출 대기록에 실패를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오래 끌고가지는 못했다.
자유의 날개로 완전 전환된 12 ~ 13시즌 프로리그 전반기에서도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했고 승보다 패가 많아지게 되면서 그동안 송병구에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한 정윤종, 김유진, 김준호등의 프로토스 선수들에게 점점 밀리게 됐다.
프로리그 후반기 리그에서 송병구는 군단의 심장으로 바뀐 자신의 첫 경기에 승리를 하면서 동시에 프로리그 200승과 스타리그 100승을 최초로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군단의 심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스타1에서의 보여준 자신의 면모는 없어져갔으며 스타2에서는 점점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끝없는 추락을 하였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리그에서 13연패까지 하는 등 송병구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송병구는 2014 GSL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조 배치에는 이신형, 김준호, 주성욱 등 강력한 상대들이 다소 포진되어 있었으나, 김준호를 2:1로 제압한 뒤 승자전에 진출하였고, 승자전에서는 주성욱의 한 수위 실력에 2:0으로 패하여 최종전으로 떨어졌다. 최종전에서 이신형을 이기고 올라온 김준호와 다시 맞붙었으나, 아쉽게 2:1로 패배하여 GSL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맹활약을 보여준 송병구에게는 아직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2014년의 시작이었다.
* 2011년 12월 17일 SK플래닛 프로리그 11~12 시즌1 1R 삼성전자 vs SK텔레콤 1세트 송병구 승
* 2011년 2월 28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4R 삼성전자 vs SK텔레콤 5세트 송병구 승
* 2011년 1월 30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3R 삼성전자 vs SK텔레콤 6세트 송병구 승
* 2009년 12월 14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2R 삼성전자 vs SKT 5세트 송병구 승
- 세정(구구단) . . . . 200회 일치
[[분류:유용근밴드리즈15]][[분류:유용근밴드리즈]][[분류:1996년 출생]][[분류:유용근밴드리즈출신]][[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오디션 프로그램 준우승자]]
||<#66AADD> '''{{{#white 학력}}}''' ||<#ffffff><(> 안양부흥초등학교 (졸업)[br]호계중학교 (졸업)[br][[인덕원고등학교]][* 인덕원고 재학 시절에 연극부 활동을 했다. 제22회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에 '브리튼을 구출하라'란 작품으로 출전해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으며 2013년에 청소년 뮤지컬단 오디션에 합격한 경력 등이 있다. 연기학원은 이앤티트레이닝센터를 다녔다.] (졸업)[br][[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재학)[* [[I.O.I]] 앨범 자필 프로필에 따르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서옵SHOW]] 11회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닐지 자퇴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입시를 볼까 말까 고민하던 때, 당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연습생]] [[나영(구구단)|김나영]]이 세정을 상대로 대학 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학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 끝에 입시를 준비해서 합격했다고 구구단 눕방 중에 밝히기도 했다. [[민서]]와 동기다.] ||
||<#66AADD> '''{{{#white 소속사}}}''' ||<#ffffff><(>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1대 100 방송에서 자신의 데뷔 과정을 설명하며, 오디션 장소를 잘못 찾아가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
||<#66AADD> '''{{{#white 특기}}}''' ||<#ffffff><(> 팔씨름, 허벅지 씨름[* 무려 [[씨스타]]를 팔씨름, 허벅지 씨름으로 전부 승리했다. 심지어 씨스타 멤버들이 원하는대로 오른손 왼손 바꿔가며 보라(우), 다솜(좌), 효린(우), 소유(우)을 상대해서 연승을 거뒀으며 이후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서 걸스데이 유라, 혜리, EXID 하니를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나영(구구단)|나영]]은 한 손가락으로도 (!) 이긴다. 주먹쥐고 뱃고동에선 고정 출연자였던 배우 [[경수진]]을 상대로 팔씨름 및 허벅지 씨름을 해서 가뿐히 승리를 거뒀다. [[주먹쥐고 뱃고동]] 촬영 당시 회사에서 팔 근육 그만 키우라고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sHnSayAxQ|영상]]], 요리[* [[주간 아이돌]] 365회 본인이 작성한 프로필 특기란], 그림그리기 ||
||<#66AADD> '''{{{#white 별명}}}''' ||<#ffffff><(> 갓세정, 퀸세정, 킹세정, 원더세정, 빛세정, 세동[*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이 자주 사용하는 별명이다.], 비데세정[* 비데에 '세정'이라고 써있어서 어릴 때부터 별명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비데를 보며 [[청하(가수)|청하]]에게 여기 자기 이름 있다고 말을 했고 그후로 청하는 비데를 볼 때마다 세정 생각이 난다고], [[치코리타|세코리타]][* [[파일:세코리타1.jpg|width=370]]][* 이 밖에도 센세, 천의얼굴, 슬픔이, 복숭아소녀, 홈쇼핑요정, 재능 치트키, 최종병기, 김크린, 생방요정, 우래기, 야세, 청정소녀, 적토마, [[세종]] 등이 있다. 센세의 경우는 [[김소혜(1999)|김소혜]]와의 관계에 한정된 별명이다.] ||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 8인조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이다. [[2016년]] [[프로듀스 101]]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최종 순위 2위를 기록한 출전자로, 남녀노소 다양한 팬층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I.O.I]]로 정식 데뷔하기도 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출연자 중 상위권에 속하는 비주얼에 [[아이돌]] 가수로서의 춤과 노래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또 털털하고 밝은 성격에 강한 멘탈과 무대 장악력까지 갖추어 [[프로듀스 101]] 방송 초반부터 국민 프로듀서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 명의 뛰어난 연습생들 사이에서 실력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훌륭한 인성으로도 주목을 받았고, [[프로듀스 101]] 방영 내내 각종 투표 및 평가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갓세정, 퀸세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후추닷컴의 [[최동원]]-[[선동열]] 평가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 [[프로듀스 101]] 사상 단 한 명의 여자 연습생을 뽑는다면 아마도 그 1등은 [[SIXTEEN|식스틴]] 팬덤을 안고 출연한 [[JYP엔터테인먼트|JYP]] 연습생 [[소미|전소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소미([[선동열]])를 출연시키고도 승패의 결과가 가장 불확실할 것 같은 연습생 한 명을 꼽는다면 그건 바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연습생 김세정([[최동원]])일 것이다.] [[프로듀스 101/11회|마지막 방송]]에서는 [[소미|전소미]]에 이어 최종 순위 2위를 차지하여 프로젝트 걸그룹 [[I.O.I|아이오아이]]에 합류했고, [[2016년]] [[5월 4일]]에 [[데뷔]]하여 [[I.O.I|아이오아이]]의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2017년]] 1월 [[I.O.I|]]로써의 마지막 활동인 [[타임슬립 - I.O.I]]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현재는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명실공히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에이스[* [[어서옵SHOW]], 붐샤카라카, 걸그룹대첩 - 가문의 영광,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해피투게더 예능행, 1 대 100, [[배틀 트립]](옹동투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말하는대로, 한끼줍쇼, 겟잇뷰티, SNL, 런닝맨, 꽃놀이패,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뱃고동, [[학교 2017]]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방송활동과 각종 CF 출연을 보면, 그냥 에이스가 아니라 '[[강병철|세정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 [[최동원|네 알았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급의 특급 에이스임을 알 수 있다. [[프로듀스 101]] 당시 춤과 노래가 부족했던 [[김소혜(1999)|김소혜]]를 가르쳐주고 처음으로 나선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촬영에서는 [[H.U.B]]에서 혼자 참석한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를 챙겨 주는가 하면 [[한끼줍쇼]] 첫 게스트로 출연해서 [[강호동]]과 [[이경규]]로부터 고정을 하자는 극찬까지 들었으며, 건장한 남자 연예인들도 힘들어 하는 [[주먹쥐고 뱃고동]] 촬영을 임자도 편에 이어 여수편까지, 그것도 상상 이상의 갖은 노역을 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훈훈한 멘트까지 덧붙이며 [[김병만]]에게 인정받는 모습에서 인성과 근성, 체력과 실력이 동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히 걸그룹 에이스계의 [[최동원]]. 게다가 후술하는 근육 덕분인지 첫 출전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육상에서 메달권까지 근접했다!]로 각종 방송에 출연 중이다.
당시 [[K팝 스타 시즌2]]에 심사위원으로 나섰던 [[BoA|보아]]는 김세정에 대해, 어떻게 트레이닝해야 할지 애매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캐스팅을 포기했다. ~~그 몇 년 후 [[프로듀스 101]] 자기 소개 영상에서부터 시작된 김세정의 활약을 보면 그야말로 [[오하아몽]](吳下阿蒙) [[괄목상대]](刮目相對)~~
오후 3시 진행 예정이었던 행사가 비로 인해 40분이 지연되고 난 뒤 총 선착순 200명의 팬에게 커피를 나눠 주었는데 상암 팀은 3명씩 조를 이루어 나눠 주었다. 3명은 커피 차 안에서 커피를 만들고, 3명은 커피를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세정은 101번부터 밖으로 나와 커피를 나눠줬다.[* 앞 번호에서는 안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른 이벤트와는 달리, 같이 사진 찍을 시간, 싸인 받을 시간[* 앞 번호 때만.]을 주어 엄청난 혜자 이벤트가 되었다! ~~ I.O.I는 게릴라를 꼭 가야 한다~~ 당연히 실시간 중계만 보던 팬들은 배아파하며 통곡했다는 후문이...
이벤트는 총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행사장을 떠나고 10분 후 다시 돌아와 남아 있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되게 열일했다고 한다. 말 걸기 미안할 정도로 ~~[* 실제 현장 실황을 찍은 영상을 보면 커피 만드는 멤버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고 있고, 나눠주는 멤버는 밖에서 번호표 받고 커피 주고 악수하고 사진 찍어 주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에 리액션해 주는 등 정신없이 각자 할 일들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SK텔레콤의 CF 연결의 힘 캠페인 [토닥토닥 라이브 X I.O.I] 네이버TV [[https://tv.naver.com/v/851393|영상]]에서 (16/05/29기준)조회수 200만을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imsejeong&no=232460&page=1&search_pos=-235517&s_type=search_all&s_keyword=200%EB%A7%8C|돌파]]했으며 2016년 4월 27일에 올라온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7월 11일에 다시 100위권 안쪽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팬들은 토닥 좀비라고-- 이 영상이 업로드 됐을 당시 부끄러워하며 커튼 뒤로 숨는 장면은 뭇 남성 팬들의 심장을 움켜쥐게하며 늦잠을 절대 못 자게 했다고 --[[카더라]]--. 팬들이 뽑은 영상 중 손가락 안에 꼽는다. 또 생일을 맞이하여 팬들의 총공세로 [* 무한 [[스트리밍|스밍]]] 8월 27일 무한도전을 꺾고 TOP2까지 치고 올라왔고 8월 28일 생일 당일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1위를 했다.
노래 실력이 매우 좋은 편으로 팀에서 포지션은 유연정과 더불어 메인보컬.[* [[타임슬립 - I.O.I|마지막 콘서트]]에서는 유연정과 함께 이승철의 서쪽 하늘을 불렀다. 유연정과의 호흡이 상당히 좋으니 들어보자.[[https://youtu.be/6Mw9qvnZ2EI|#]]--그런데 5단고음 덕분에 유연정에게만 관심이--] 두 번의 완전체 활동에서 모두 적지 않은 비중을 할당받으며 팀 보컬의 중심이 되었다. 말도 조리있게 잘 하는 편이라 언니인 김청하가 있지만 팀의 리더 임나영이 멤버 통제에 실패하거나 멘트를 못 하는 상황이 오면 김세정에게 대신 시킨다. 실제로도 임나영 다음의 리더 후보 중 하나였다. [* 물론 리더로 뽑았으면 큰일날 뻔 했다. 리더가 개별 활동으로 빠지는 최악의 상황이...]
또 자기와 같은 언니 라인에게는 존중의 모습을 보인다. 맏언니인 나영, 청하와의 나이차가 겨우 몇 개월 정도임에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나영 언니 힘내요! 언니는 훌륭한 리더에요!"라는 등의 존중의 표현을 한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인 듯하다. 이를 자주 방송에서 언급했고, 꽃길이라는 노래도 본인의 어머니를 위한 노래다.
I.O.I의 예능 치트키. 고정 프로인 어서옵쇼에서 아재들을 들었다 놨다 하거나, 예능에서 I.O.I를 홍보하거나 직접 자기가 고정인 프로에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멤버를 직접 데리고 나온다. 김청하, 김소혜 등을 데리고 나온 뒤 본인이 팍팍 밀어준다. 실제로 김소혜는 어서옵쇼 출연이 첫 예능이다. 주로 미는 소재는 괴력소녀와 노래방 성우 목소리. ~~그리고 임나영에게 받은 병든 닭~~ 팔씨름과 허벅지 씨름에서 씨스타를 관광태우거나 다른 예능에서 멤버들과 게임을 하면 멤버들을 관광태우기도 한다. 최유정은 배게 싸움에서 김세정에게 카운터를 맞고 다운됐고, 김청하는 언니이지만 어서옵쇼에서 굴욕적으로 세정에게 끌려다녔으며 방송인 홍석천, 박지윤 등도 김세정에게 관광당했다. 멤버들도 평소에는 김세정을 놀리지만 힘쓰는 게임을 들어가면 긴장한다. 하지만 전소미와의 베개 싸움에서는 도발당하고 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뿐만 아니라 FPS 게임 대결에서 전소미와 대결했으나 전소미에게 진 적도 있다.
이렇듯 개인 활약상도 많지만 무언가를 주도해서 멤버들을 놀래키거나 계획하는 등의 활약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자면, 5년 뒤 재결성과 임나영 몰카 등이 전부 김세정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몰이 대상이 되어 자주 몰이당하기도 하는데, 하도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과 지나치게 아재스러운(?) 리액션이 주 놀림대상. 여기에 전소미와 김도연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도 잘 안하는 양갈래를 자주 하면서 어린 척 귀여운 척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 자기도 소녀스럽고 어려 보이고 싶은데 너희가 너무 잘 어울려서 버겁다고 자폭 여기에 덤으로 마지막 완전체에서 맡은 파트에서 지나친(?) 호흡 실종 현상으로 거의 숨소리마냥 야하게 들리는 탓에 야세('''야'''한'''세'''정)라는 별명까지 추가되었다. 본인은 절대 야한 성격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춤추거나 할 때 뒤에서 뚫어져라 몸매 감상을 하거나, 나쁜 손을 시전(!)하는 등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넘치는지라... 여하튼 이런 식으로 멤버들에게 몰이를 많이 당하는 편이다.[* 특히 세정이 뷰티 프로그램 MC가 되자 동생들은 기념으로 그날 최고의 극딜과 디스를 선보였다. 소미는 잘할 수 있을지를 세정이 묻자 고민도 없이 아니요 라고 답하고, 소혜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에 언니에게 부족한 건 조신함이라는 팩폭을 날려준 도연과 뷰티 프로 MC를 맡았다고 하니 대놓고 놀라며 "뷰티요?" 라고 되묻는 채연까지...]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I.O.I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질문을 받았을 당시 끝이 정해진 그룹이라 적당한 선의 애정만 주었다고 하지만 내면을 보고 자신이 멤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고 해체에 대한 아쉬움과 더 애정을 쏟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연습실에서 혼자 운 적도 있다고.[* 실제로 노래를 부르던 중 멤버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울거나 우린 좀 더 남았다고 떼를 쓰는 등, 초창기 때보다 멤버들에게 무한애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인다.][* 참고로 김세정은 돌아갈 그룹이 있었다. 그런데도 5년 뒤 재결성 무대 및 재결성에 대한 의지가 엄청나다.] 이는 한창 I.O.I로 활동할 시간에 소속사 때문에 구구단 활동을 병행해야 했기에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악플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결론적으로, 김세정은 개별 활동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이게 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때문이다'''--. --'''뻘짓'''이 '''[[김광수(음반기획자)|광수]]급'''--
생방송 3시간 동안 초반에는 가끔씩 출연하다가, 나중에는 분량이 메인 출연자급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팬들이 노잼 포맷에 불안해했으나 늘어나는 생방요정의 분량과 MC들의 점점 생방송에 적응해 가며 세정이 감초 역할을 독톡히 해주었다며 만족하는 듯. 어서옵쇼를 보려는 게 아니라 세정을 보기 위해 봤다는 평이 대부분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방송 V앱 하트가 무려 2,200만 개를 찍었다.
- 박진성(시인) . . . . 199회 일치
'''[[성폭력 무고죄]]의 무서움을 [[피해자|몸소 겪은 인물]].'''
[[대한민국]]의 [[시인(문학)|시인]]. [[1978년]] [[3월 7일]] [[충청남도]] 연기군 [* 現 [[세종특별자치시]].] 출생.[* 자신이 [[웃긴대학]]에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wait&number=5251606|올린]]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wait&number=5208768|올린 글들]]에 따르면 현재 거주지는 [[대전광역시]]로 추정된다.]
[[2017년]]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성폭력 피해자라고 허위 폭로한 여성에 대해선 무고 및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되었으나, 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의식을 회복
[[2018년]] 자신이 받은 성폭력, 성희롱 혐의를 키운 언론인 [[한국일보]]와 기사를 쓴 황수현 기자와의 재판에서 1심 승리.
* 2016년 9월 18일에,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하여 "나의 여혐일기를 작성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https://www.facebook.com/poetone78/posts/1051318471583355?pnref=story|해당 내용 링크]] 링크된 해당 페이스북의 내용은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당시 한국 문단 내 암암리에 퍼진 성폭력에 대해 성토하는 분위기 속에 작성된 내용이다.]] 이 내용은 박진성 시인이 본인 스스로에게 [[여혐]]성향이 있음을 자책하며, 스스로의 자성을 추구하는 참회록의 성격을 띈 내용이다.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태]]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보였던 [[이자혜]] 작가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있었다. 하단에 서술된 성폭행 무고사건에 휩쓸린 후, 2017년 12월부터 [[웃긴대학]] 커뮤니티를 시작하였는데, 이 때 한 유저의 이자혜 작가 옹호발언에 대한 해명글을 요구하였고, 이에 답하였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28608|해명글]]을 요약하자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이자혜 작가는 명실상부 '''촉망받고 있는 작가'''였으며, 본인이 알고 있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이자혜 작가가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는 입장. (덧붙여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수도 없을 뿐더러, 메갈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과거 쓴 트위터에 대한 답변으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을 때는 침묵하거나 사과드리는 게 맞겠지요. 죄송합니다.' 였다. 성폭행 무혐의 사건 이후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관점이 바뀐 듯 하다. 다만, 본인도 메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혜 작가가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됨을 인지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트페미]]들이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수사 진행 속도가 빠르다며 여혐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웃긴대학에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769815|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까지 조작으로 세뇌시킨 페미니스트들의 횡포가 무섭다]]는 글을 올렸다.
=== 성폭력 무고 사건의 피해자 ===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트위터 내에서 성범죄자로 지목당함 ====
2016년 10월 19일, 한 트위터리안이 박진성 시인이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여러 트위터리안들이 박 시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인 2016년 10월 21일에는 여러 언론사에서 [[트위터]]에서 나온 주장들을 바탕으로 박진성 시인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자 습작생들에게 수년 간 상습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가했다는 기사를 내 파문이 일었다.
박진성 시인이 이후에 공개한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익명으로 폭로한 최초 폭로자는 박진성 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그럼 본명 말해도 돼요?"라고 실명 폭로할 것임을 협박하며, "주실려면 저는 돈이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37|#]] 전형적인 [[꽃뱀]]의 수법으로 보인다.[* 이후 사건 전개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본인이 그 트윗 내용을 스스로 삭제했다. 이는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폭로자가 한 말과 [[탁수정]]이 한 말이 비슷한 내용이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박진성 시인은 2018년 2월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7662925585432576|최초 폭로자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계정을 폭파했다]]고 했고 7월 22일엔 이 사람이 김○○이라고 밝혔다(이름을 밝히게 된 것은 7월 19일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사과를 했는데 이 트위터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의혹에 대한 자세한 건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을 참조.).]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http://www.hankookilbo.com/v/0564032fc2164032b7c5c3af3f668c50|이 기사]]([[https://archive.is/uTwCo|@]])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상의 규모 정도만이 남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895731627474944|#]]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6&aid=0000092780|#]]
2016년 10월 22일, 해당 이슈가 불거지자, 박진성 시인은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서 사죄하는 글을 올린다. [[https://blog.naver.com/poetone/220842819223|해당 블로그 글 링크]] 박진성 시인의 이 사과문에는 성폭력 가해를 시인하는 내용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의혹을 초래했던 것 자체에 대한 "도의적 사과"로 보인다. 이 사과문의 작성 경위를 박진성 시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2017년 11월 22일 밝힌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3300631741243392|해당 트위터 링크]]
2016년 11월 11일, 박진성 시인은 해당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있음을 밝힌다.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37|해당 기사 링크]]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로 결론이 난 내용을 주장한 2명을 각각 무고 및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두 명 다 그 죄가 인정되었으나 초범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기소유예, 벌금 30만원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83930&plink=ORI&cooper=|해당 기사 링크]] [[https://imgur.com/pmqT0ao|뒤늦게 거짓임을 고백하는 고발자의 카톡 내용]]
이후 박진성 시인은 2016년에 나온 기사들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는데 한국일보만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의 [[https://blog.naver.com/poetone/221149485970|블로그]]와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378037782216704|트위터]]를 통해 황수현 기자를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9082|해당 기사 출처]][*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2018년 3월 21일에 [[https://blog.naver.com/poetone/221233628914|문제의 출판사와는 결국 계약을 해지]]했으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7월에 박 시인이 밝히기를,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상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힐 때 박 시인이 여러 시집의 계약을 이행하라는 언급도 한 것과 2016년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산문집의 글은 2018년 3월 계약해지를 알린 후에 산문집 '이후의 삶'에 포함되어 출간된 걸 보면, 기존의 시집과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시집과 관련된 계약을 해지하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15546|#]]
- 김희철(1983) . . . . 198회 일치
'''[[슈퍼주니어]]의 돌+I, 자칭 [[희철 #s-4.2|우주대스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예능인. 공식 이름은 희철이 맞지만 보통 그의 본명인 김희철로 잘 알려져있다. '''아이돌계 돌아이의 대표주자'''[* 아이돌계에서 비글미와 사건사고로는 어느 그룹보다 뒤지지 않는, 덜 미친 자는 있어도 안 미친 자는 없다는 [[슈퍼주니어|그 그룹]]에서도 멤버들과 팬들이 공인하는 가장 미친 놈...--[[유리(소녀시대)|이 분]] 왈 : 싹바가지--]이자 '''아이돌계 미모 종결자.''' 뚜렷한 이목구비와 미소년 이미지로 데뷔 초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 줄로 설명 가능한데, 천하의 '''[[SM엔터테인먼트]]에 얼굴로 입사한 인물'''이다. 친구들과 서울에 처음 왔다가 오디션 시간에 30분 지각했는데 관계자가 얼굴을 보더니 어라? 하고 기회를 줬다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다른 이유 없이, 2002년 어느 날 횡성 집에서 빈둥빈둥 TV를 보다가 마침 [[싸이]]가 3집 챔피언을 들고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른 걸 보게 되었고, 그걸 보며 '어? 나도 연예인이나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가서 지원했다고 한다. 참고로 노래는 [[애국가]]를 불렀다. 그렇게 3년을 연습하다가 [[반올림]]2 에 출연하며 먼저 배우로 데뷔를 하고 8개월 후 [[슈퍼주니어]]에 합류하며 가요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팀 내에선 이특과 함께 맏형을 맡고 있다. 이 정도로 서로간의 캐릭터가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들 두명이서 맏형을 맡은 그룹도 참 드물지 않을까(...) 아이돌 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예쁘장한 미모를 가진 대표 [[미소년]] 비주얼의 아이돌. [[여장]] 사진이 진짜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쁜 남자 연예인으로 정말 유명하다. [* 이 분야의 후임으론 같은 소속사 후배 출신의 [[태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느낌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태민은 희철과 닮은 꼴이다. 덕분에 10년마다 나오는 얼굴이란 짤방도 있다.]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튀어 보이는 예쁜 얼굴과, 그와 정 반대로 솔직하고 할 말 다하는 성격과 자유분방하고 아이돌계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성있는 ~~돌+I~~ 캐릭터 덕에 대중에게나 팬덤에게나 더 쉽게 각인이 되었다. 특히 이런 캐릭터가 소속 연예인 관리에 엄격하다고 알려졌던 [[SM엔터테인먼트|SM]] 출신에서 나왔다는 것에 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활동 초기부터 인지도로 최상을 찍은 멤버 가운데 하나였으며 예능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멤버들 중 하나가 되었다.
4season이라는 그룹으로 [[유노윤호]], [[김재중]], [[강인]]과 함께 데뷔하려다가 기획이 취소되고 이후 [[슈퍼주니어]]로 데뷔. [[이특(슈퍼주니어)|이특]]과 함께 [[슈퍼주니어]] 내 최고령. 하지만 희철 쪽이 실질적 팀 내 [[실세]] 이미지가 강하다. 슈퍼주니어 데뷔 당시 [[강인]]과 함께 팀의 인지도 상승에 많은 공헌을 한 멤버이기도 하다. 팀에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성격 때문에 멤버들 내에서도 '''무서운 형''' 이미지로 통하는 듯하다. 워낙 솔직하고 거칠 것이 없어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좋아해 '희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명 예의바른 4가지라 [[카더라]].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안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룹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쉬워보이는 성격과 캐릭터덕에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의외로 희철은 사생활 관리도 매우 철저하고 '''사건 사고가 전무하다.''' 음주운전이라던가 팬들을 속상하게 할만한 열애설이 거의 없었단 게 그 증거. 최근 [[강인]], [[성민]] 등의 멤버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지만 희철은 슈주 멤버들 중에선 의외로 모범적인 태도를 가진 멤버 축에 속한다. 그외에,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멤버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고, 멤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많이 올려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탈퇴한 중국 멤버 한경과 친하게 지내서 미니홈피에도 글을 자주 올리곤 했는데 한경이 탈퇴하자 충격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최근 한경이 매니저없이 한국 여행을 와서 희철과 찍었단 사진을 게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교류는 이어가고 있는 듯.] 또한 스스로 '''꽃은 꽃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팬들을 자신의 꽃잎이라고 부르는등 자기 사람, 자기 팬은 확실히 챙기고 아이돌로서의 태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교통사고로 부상 당했을 당시 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자기 빼고 활동하라며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다리 부상때문에 팀에 차질을 주고 짐이되는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방송에서 이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자신은 다리가 아파 활동을 덜 하는 만큼 예능에서 슈퍼주니어를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중성 있는 꽃미남 비주얼에,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적인 캐릭터라는 특이한 조합 외에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와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기에 인기를 끄는 것.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세계 단위 개인 팬덤[* '꽃잎'이라고 한다. 영어권 팬덤은 'Petal', 중화권 팬덤은 '花瓣', 일본 팬덤은 '花びら'라고 한다. 모두 꽃잎이라는 뜻이다.]을 거느리는 이유가 있다. 팬들을 내새끼들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기도. 활동도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아서 사실상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한 슈퍼주니어를 알리며 잊히지 않게 하는 멤버.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멤버들과의 잦은 갈등과 2006년 교통사고과 인한 건강 악화로 3집 활동 전체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멤버 [[은혁]]이 '형, 형자리 만들어 놨으니 들어만 와요.'라는 말에 3집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뒤 발표된 8집 [[Black Suit]] 활동에서도 [[은혁]]은 희철을 활동에 참여 할 수있게 붙잡아 줬다.] 이로서 3집을 끝으로 탈퇴를 결심하였으나 이후 [[이수만]] 대표의 만류와 [[한경(배우)|한경]]의 소송을 계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팀 활동에 임하게 된다. '[[Sorry, Sorry]]'와 '[[너라고 (It's You)]]'에서 극후반부에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퇴를 생각했을 당시에는 잦은 개인 활동으로 인한 멤버들 간의 갈등과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가수보다는 연기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2017년 10월 17일, 11년 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발목 통증이 심해지는 일이 잦아져 8집 앨범 활동에 정상적으로 임하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968126|기사]] [[https://www.instagram.com/p/BaWd2xznX0B/|인스타]] 그러나 곧바로 슈퍼주니어 측 관계자가 “컴백을 앞두고 고질적인 다리 통증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쓴 글이 확대해석 된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활동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2995714|#]]
자신이 2018년 7월 18일 웨이보 라이브에서 9집 컴백 활동에서 녹음도 무대활동도 참여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본인피셜로 '이번은' 이라고 언급하였으니 다음 10집 활동이나 리패키지 활동에는 참여 가능성이 있다.
슈퍼주니어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폐막식 클로징을 맡았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당분간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면 안 된다."라며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 했음을 밝혔다.
* 성장드라마 [[반올림]]2 - 백진우 역 (2005.03.06~2006.02.26)[* 슈퍼주니어가 아닌 연기자로 먼저 데뷔했다 ]
* [[상속자들]] - 카메오 역 (2013.10.09~2013.12.12)
* KBS "자유선언 토요일 시크릿" (2011.06.04~2011.11.05)
* KBS "자랑방손님"[* 파일럿] (2017.03.16~)
* E채널 "내 딸의 남자들2" (2017.10.14~2018.01.06)
* JTBC "이론상 완벽한 남자" (2017.11.10~)
* E채널 "내 딸의 남자들3" (2018.04.15~)
* 레몬&자몽에이드
* 2011년 MBC 방송연예대상 : 쇼 버라이어티 부분 남자 신인상 [[http://www.imbc.com/broad/tv/ent/event/2011entertain/awards/index.html|#]]
싸이월드에서 서버를 따로 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인도 자주 사용했지만 투데이수도 엄청나다. 근데 트위터가 생긴 이후로는 거의 버려두고 있는 중. 트위터 팔로워 수 역시 국내에서 TOP10안에 들 정도. 2011년 11월 기준으로 국내 팔로워 순위 TOP10에서 슈주 멤버만 6명이다. 슈주 내에서 순위는 계속 바뀌는 편. 페이스북도 있었으나 삭제되었는 데, 후에 해킹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 한명회 . . . . 189회 일치
{{구별:[[장나라|자녀]]
|필명=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狎鷗)·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별명은 장량, 칠삭동이, 작위는 상당군, 상당부원군, 시호는 충성(忠成)
|배우자= [[신애라]] (정종화의 딸), 첩 전주 이씨(선천공조의 딸), 첩 연일 정씨(정종성의 서녀), 첩 이름 미상
|자녀= 아들 한보, 딸 [[공혜왕후]], [[장순왕후]], 딸 [[장나라]] 한, 아들 한복(韓福), 한임(韓林), 한수(韓壽), 한목(韓睦), 한석(韓碩), 한서(韓恕), 한우(韓佑), 한온(韓瘟), 딸 한씨(韓氏), 한씨(韓氏), 한씨(韓氏)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경덕궁]]직이 되었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15페이지</ref> [[1456년]] [[사육신]]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적발하여 좌절시키고, 사육신과 관련자들의 처벌에 가담하였다. [[조선 세조|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세조로부터 나의 [[장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이 되고,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기여하여 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토벌과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1466년]]~[[1467년]], [[1469년]] 두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후일 [[종묘]] 세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오가작통법]]과 [[면리제]](面里制)를 창시한 인물이며, 그가 만든 행정제도인 [[면리제]]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한말의 [[불교]][[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은 그의 친아우인 [[한명진 (1426년)|한명진]]의 후손이었다.
압구정 한명회는 [[1415년]](태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와 이초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척]](李逖)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태된 지 7개월만에 태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10개월도 안되어 태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태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hwan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2700&cloc=rss%7Cnews%7Csociety 한명회, 황보인 사위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ref>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상덕 (조선)|한상덕]](韓尙德)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그는 종조 할아버지들인 [[한상경]](韓尙敬)과 [[한상덕 (조선)|한상덕]]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종조 할아버지 한상환(韓尙桓)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자망산]]을 찾아가 [[류태재]](柳泰齋)의 문하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친구 [[권람]] 등을 만나 사귀었는데, [[강원도]] 자망산의 유학자 [[류태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 등을 만나 사귀게 된다. 이후 그는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웅지를 품게 된다.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떨어지자 주변에서는 그를 위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궁달(窮達)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사군자(士君子)가 되어서 어찌 부유(腐儒), 속사(俗士)들의 말 한마디에 실망하고 비통하기를 즐겨 하겠는가?'라며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데다가 집안에 가산이 없었으므로 [[개국공신]]의 후손이라는 신분이 무색하게 청년기 역시 불우하게 지냈다. 자를 자준(子濬)이라 했는데, 어려서부터 사귄 친구 [[권람]] 등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다가 교리(校理) [[권람]]의 소개로 [[신숙주]]를 알게 되었고,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소개받았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게 된 그는 수양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사람됨됨이를 알아보았다.
글을 읽어서 학업을 쌓았으나 오래 과거를 보지 않다가, 뒤늦게 여러번 [[과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하고 가세도 빈한해져 그는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다. [[1452년]](문종 2년)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처음으로 출사하여 [[송도]](松都-[[개성]])에서 경덕궁직(敬德宮直)이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조선 세조|수양대군]]과 자주 교류하였고 뒤에 그의 모사로 활약하였다.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케 했고, 다시 [[권람]]에 의해 천거되어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5페이지</ref>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金宗瑞), [[황보 인]] 등 대신이 집권하자, 친구인 교리(校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자주 만나며 집권 계획을 역설, 무사 [[홍달손]](洪達孫) 등 추천하여 그의 심복을 삼게 하였다.
{{인용문2|시국이 이 지경에 이르니 [[안평대군|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왕위를 넘보고 은밀히 대신과 결탁하여 후원자를 삼고, 많은 불령한 무리들이 그들의 그림자처럼 따라 붙고 나무뿌리 얽히듯 얽히니 [[쿠데타|화란]](禍亂) 발생의 조짐이 조석간에 있는데, 그대는 이런 데에 추호도 생각이 미치지 않는가?}}
{{인용문2|[[쿠데타|화란]]을 평정함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난(亂)을 다스리는 것은 강력한 [[군주]](君主)가 아니면 할 수 없네. [[수양대군]](首陽大君)께서는 활달하기가 [[한 고조]](漢高祖)와 같고 영무(英武)하기가 [[당 태종]](唐太宗)과 같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천명(天命)이 그 분에게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 자네는 그 분의 필연(筆硯)을 모시고 있으면서 어찌 조용히 건의하여 일찍 결단하게 하지 않는가?}}
그는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강력한 지도자와 엄격한 법 집행만이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느슨한 법집행과 온정주의는 도적과 부패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명회의 계책을 들은 [[권람]]은 [[수양대군]]을 찾아가 이를 고하였다.
[[권람]]의 진언을 받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 대군]] 이용(李瑢)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의 충자(冲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쿠데타|반정]](反正)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수양대군]]은 세력과 사람이 없어서 실패할 것을 염려하였다. '형세(形勢)가 고단(孤單)하고, 세력은 미약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하며 묻자 한명회는 당위성을 역설하며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독려하였다.
- 정인숙 (1945년) . . . . 183회 일치
'''정인숙'''(鄭仁淑, [[1945년]] [[2월 13일]] ~ [[1970년]] [[3월 17일]])은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이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 화제 인물로, 서울 시내 고급 요정에서 활동하던 접대부였다.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내연녀로 [[정인숙 살해 사건]]의 피해자였다. 살해 당시 그의 친정 오빠이자 운전수인 [[정종욱]]을 유력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유력 용의자는 다른 인물로 밝혀졌으나 배후는 미궁이다. 본명은 '''정금지'''(鄭金枝)이고, 다른 별명은 '''정혜미'''이며,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신이다.
모델,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상대했던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이것이 불문에 붙여졌다. 이는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조되어 확산되었다.<ref>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ref> 아들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느니, 정 전 총리라느니,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느니 하는 소문들도 무성<ref name="ilyo01">[http://www.i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889 <nowiki>[</nowiki>미스터리 추적<nowiki>]</nowiki> 정인숙과 그아들, 진실은 이것] 일요신문 2007년 04월 08일자</ref> 하기도 했다.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남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남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반 만에 병사하고, 살아남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정인숙은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출처|날짜=2014-3-2|자존심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에게는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 하나를 따로 두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정도환은 본래 자식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정인숙의 오빠들 중에는 자신들에게는 차비도 짜게 줄 만큼 인색하면서 딸 하나 둔 것을 버릇없이 길렀다며 불평불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터울 차이가 났던 두 오빠는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였으나, 정인숙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가정 환경이 넉넉했던 정인숙은 개인교사를 둘만큼 유복하게 자랐다. 예쁘고 천성이 명랑했던 그녀는 붙임성이 좋아 남녀 친구가 많았고, 학업은 중간 정도였지만 [[영어]] 실력은 빼어났다고 한다.<ref name="hp103">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3페이지</ref>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영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태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뒤 그는 다른 요정에도 출입하는 등 여러 요정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주 무대는 처음 들어갔던 곳이고, 마담 김씨가 경영해 오던 한남동의 고급 요정이다. 정인숙은 2류급 여배우와 가수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마담 집 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접대부로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인기를 끌면서 그는 반드시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 회고에 의하면 당시 불려가는 여배우와 가수를 포함한 접대부 중 그의 미모가 1위였다 한다.
미스 코리아나 영화배우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요정에서 그녀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선운각, 옥류장 등 서울의 일류 요정들은 정인숙을 데려가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고 한다.<ref name="han01"/>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이때부터 정인숙은 저명인사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인숙은 비밀요정을 주 무대로 정부의 A급 고관대작들만 상대했다고 한다. 평소 그는 주위에 “내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 없다”며 자신이 정치권 고위인사와 ‘깊은 관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ref name="ilsa01"/> 이같은 그의 명성 때문에 ‘정인숙 피살 사건’은 제3공화국 최대 ‘섹스 스캔들’로 비화됐다.<ref name="ilsa01"/>
이렇게 밤이면 이름 있는 사람들과 접하고 낮과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필동 변두리의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고, 바로 위 오빠인 [[정종욱]]은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하였다. 이곳에 살 때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가끔씩 아버지 정도환이 방문하였으나 딸의 집에 자주 출입하던 정계 인물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도환은 주로 집을 비우거나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한다. [[정일권]] [[국무총리]]가 몇 번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담으로 전해지게 된다. 정관계 최고의 인사들과 어울리다 서너 번의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된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과도 술자리를 가졌다.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을 만난 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데, 유독 정인숙을 좋아했던 정일권은 그녀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다가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 뒤 그녀가 임신사실을 알리자 정일권은 낙태를 권유하려다가 대신 애를 낳으라고 하였다. 정인숙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산하였다.
한동안 선운각의 얼굴마담으로 주가를 높이던 정인숙은 [[1968년]] [[6월]] 아들 성일을 낳았다. 그리고 이 해에 그녀는 해외로 나가기 위해 갑자기 수속을 밟았다.<ref name="hp104">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4페이지</ref> 사후 시신 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녀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유흥업소에서는 보통 접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인숙은 아기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유력 인사였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소문이 확산되었다. 당시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는 정일권 혹은 박정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ref name="kyung0101">[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1003191712273&sec_id=560101 정인숙 미스테리···최대 권력 섹스스캔들] 스포츠경향 2010년 03월 19일자</ref> 정인숙은 정일권이 자신을 서운하게 할 때마다 자신이 정일권 총리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녀 정일권을 난처하게 한다. 이 사실이 야당 인사들과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게 될까봐 정일권은 불안해했고, 서둘러 불법 여권 두 개를 만들어 정인숙을 해외로 내보내고 생활비를 풍족하게 줄테니 아이를 키우며 해외에서 조용하게 살라고 당부한다.
[[1968년]] 12월 30일자로 발급된 출입국 회수여권을 받았다. 아기를 낳은 이후 고급 요정과 비밀요정을 그만두었고, 출입하는 곳에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타워호텔, 사보이호텔, 반도조선 아케이드 등에는 자주 나타났다. [[1969년]] 봄 [[일본]]에 다녀온 뒤 그해 5월에 [[서울특별시|서울]]시내의 고급 코로나를 매입하였다.
그녀의 출국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인숙이 자신의 아들을 자꾸 박정희의 소생인 것처럼 행세하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f>이정식, <정인숙 사건> 《권력과 여인》 (돋움, 2000) 273-274페이지</ref> 3대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춘]]에 의하면 정인숙의 아이는 박정희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ref name="hp104"/>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소문은 이미 [[대한민국 국회|국회]]와 [[청와대]]에도 확산되었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이라는 풍자곡이 시중에 유행하였다. 난감한 처지에 빠진 정일권은 오빠 정종욱에게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고, 동생 정인숙의 사생활을 잘 감시해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그를 목격한 연예기자 정홍택의 회고에 의하면 '그 날도 나는 남산 중턱에 있는 타워호텔 18층 나이트클럽에 갔다. 밤 8시 반쯤 되었을까? 나는 만나기로 한 일행보다 먼저 도착했고 클럽 안에서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젊은 여자 한 분이 카운터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술집에서 카운터 앉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여인과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가까이 보니 아주 미인이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 전태일 . . . . 169회 일치
|사망원인= [[분신|분신 자살]]
|직업= 재봉사, [[노동자]], [[노동 운동]]가, 인권 운동가
|자녀= [[윤손하]]
'''전태일'''(全泰壹, [[1948년]] [[9월 28일]] ~ [[1970년]] [[11월 13일]])은 [[대한민국]]의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이다. [[1960년대]]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피복 공장에 취직하였다. [[1965년]]에는 청계천내 삼일회사 재봉사로 일하다가 강제 해고된 여공을 돕다가 함께 해고되었다. 이후 [[한미사]]의 재단보조로 있다가 재단사가 사장과의 갈등으로 해고되자, 그가 재단사가 되었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어 [[1969년]] [[7월]]부터 [[노동청]]을 방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과 위생 환경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
[[1969년]] [[6월]]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하고, 다니던 교회와 [[엠마누엘 수도원]] 등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중 다시 [[왕성사]]의 재단사로 [[청계천]]으로 돌아와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동대문구]]청과 [[서울특별시]]의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을 찾아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박정희]]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되지 못했다. [[1970년]] [[10월]]에는 본격적으로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였다. [[11월]]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 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되었다.
사건 당시 그는 친구 김개남(가명)에게 자기 몸에 성냥 불을 그어 달라고 했고<ref>김정환, 《역사의 희망과 희망의 역사: 근・현대편》 (푸른숲, 1998) 272페이지</ref>, 익명의 친구는 그의 몸에 불을 붙였다. 온 몸에 불이 붙은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을 뛰었지만 그는 방치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주사]] 비용이 필요하여 근로감독관의 보증이 필요하다 했지만, 근로감독관은 보증을 거부했고, 다시 옮겨진 성모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3~4시간 방치하였다.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상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남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절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인용문|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원으론 어림도 없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노동운동과 노동자 인권 운동 ===
==== 노동자 생활 ====
[[1965년]] [[평화시장]] 내 [[삼일사]]의 미싱사로 옮겨 재봉사로 일하며 어린 여공들이 적은 월급과 열악한 근무환경과 위생 환경,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특히 함께 일하던 한 여공이 가혹한 노동 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 되는 옳지 못한 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도 여공을 도왔다는 이유로 회사에 밉보여서 [[1966년]] 여름 해고된다.
[[1966년]] [[8월 17일]] 평화시장 2층 244호에 있는 점퍼, 의류 공장인 [[한미사]] 재단보조로 취직하였다가, 그해 말 [[한미사]]의 재단사가 사장과의 갈등으로 해고당한 뒤 새로 재단사 자리에 올랐다. [[1967년]] [[2월]] 초 무렵 하숙하고 있던 집의 딸과 연애하였으나, 돈 문제 등으로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낀 그는 연애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 중에도 고등학교 복학을 꿈꿨고, [[1967년]] [[2월 20일]] 자신의 바지와 하숙방에 있던 곤로를 팔아 연합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권을 1백50원에 산다. 수중에 남은 15원으로 10원짜리 노트를 산 뒤 전화비 5원을 주머니에 남겨두고 3일간 금식하였다. 당시 한 쪽지에 그는 "내일부터 23일까지 금식이다. 설마 3일 금식에야 죽지 않겠지. 정신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오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년 3월에는 꼭 대학입시를 보자. 앞으로 3백76일 남았구나.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하면 내년에는 대학입시를 볼 수 있겠지."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태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태일의 노동자로서의 반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순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태를 조사하였다.
==== 삼동회 조직과 노동자 권리 청원 활동 ====
그는 재단회사 시다들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듣고 집에 와서 말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나중에는 노동 운동에 본격 투신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소선은 처음에는 그를 말렸지만, [[1969년]] [[6월]] 아버지 전상수가 [[고혈압]]으로 사망하면서 아들이 하는 일을 막지 말라고 하여 이때부터는 말리지 않게 되었다.
[[1969년]] [[6월]]부터 재단사 친구들, 근처 공장의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바보회]]의 회원을 모집하였다. 그는 바보회의 취지에 대해 지금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당하고 살지만 우리도 깨우쳐서 바보로 남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그의 권고를 기피하였지만, 그가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을 변호하여 해고를 막거나 재입사 시키면서 그의 [[바보회]]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영래, 《전태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 하현우 . . . . 167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성좌/지지}}}'''||<(>[[사수자리]]/[[닭띠]]||
||<:><bgcolor=#353535>'''{{{#white 학력}}}''' ||<(>[[안산고등학교]][br][[배재대학교]](중퇴)[* 미대를 다니다가 음악을 하기 위해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25|중퇴]]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설이 있다. 2016년 전국투어 콘서트 대전공연에서 배재대학교를 다녔다고 밝혔다. 참고로 하현우는 다른 록커들과 비교할 때 음악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미술 역시 매우 늦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이후에 미술에 흥미가 생겨 미술학원을 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카스텐 심야식당에서 나온 바로는 CC클럽 회장이었는데, 고3 때 정신 차리고 학교에서는 자고 남은 시간에 새벽까지 학원에서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bgcolor=#353535>'''{{{#white 별명}}}'''||<(>'''개구리'''[* 약간 돌출되어보이는 큰 눈이 개구리를 닮아 생긴 별명.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이라 [[http://cafe.daum.net/ok1221/9Zdf/338477?q=%C7%CF%C7%F6%BF%EC&re=1|갑상선 질환자]]가 아니냐는 오해도 종종 받는 듯. 거주지인 [[안산시|안산]]을 붙여 '안산개구리'라 부르는 팬들도 있다.], 그리부이[* 팬클럽(국카스텐은 팬클럽을 '공식'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공식' 팬클럽은 만들 예정이 없다고 매니저가 트위터에서 밝힘)에서 쓰는 별명으로 어원은 불어인 그리부이(Gribouille). 뜻은 원래 휘갈겨 쓴 글씨, 서투른 그림 솜씨 등을 뜻하는 단어지만 뉘앙스나 방식에 따라서 바보 내지는 멍청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팬덤 쪽에서는 주로 그리부이 선생, 줄여서 그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외 팬들이 많이 집결한 국카스텐 갤러리 같은 곳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별칭이다.], '''음악대장'''[*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출연 이후 붙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음역대장, 음색대장, 약어인 음대, [[야민정음|머튽]] 등이 있다.], 하도사[*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3]]에 출연해서 손금을 봐주면서 생겼다.] ||
||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 → || '''[[우리 동네 음악대장]]''' || → || [[노래9단 흥부자댁]] ||
국카스텐 라이브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하현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노래 뿐만 아니라 모션도 열정적이어서[* 하현우가 정신 놓고 기타 치는 모션을 팬들은 '기타지랄'이라 부른다.], 관객들 혼을 빼는 데 도가 텄다. 자기 말로는 [[담배]]를 피울 뿐[* 구정모 매니저에 의하면 간헐적으로 금연과 흡연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19일 HELLO 콘서트 기준으로 금연 2주차라고 밝혔으며, 계속 금연 중이라고. 그래서 작업 도중 담배를 피우는 대신 초콜릿과 스카치 캔디를 먹는다고 한다.] 등산이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도 잘 챙겨 먹는다고 하지만, 인터뷰에서 반쯤 농담 섞인 얘기로 '인이어 때문에 공연할 때마다 몸이 망가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한 이후로 많은 이들의 걱정이 커졌다.[* 다만, 이는 모든 가수들의 피할 수 없는 직업병이기도 하다. 한쪽 귀만 인이어를 삽입해서 노래를 불어야 하는 보컬의 특성상, 고막에 문제가 생기는 느낌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 아래 내용은 하현우가 2015년 4월 28일 조선대학교 강연에서 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얘기[*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pl0523&no=15049&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YMCA|강의 내용 전문 보기]], [[http://blog.naver.com/sonkhj1116/220729059480|강의 내용 육성으로 듣기]].]와 몇몇 기사의 내용을[* [[http://www.sangsangmadang.com/webzine/pickupView.asp?seq=3272|2009년도 인터뷰]],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653783701123625010|관련 기사]].] 참고하여 간추린 것이다. ||
상당히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아픈 기억이 많아서인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매우 내성적이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통해 가슴에 맺혀있는 아픈 일화를 몇 개 엿볼 수 있는데, 하현우 어머니께서 반에 떡을 돌리시고 며칠 뒤에 같은 반의 부잣집 애가 비꼬면서 [[피자]]를 반에 돌리며 한 조각을 줬다든지, 풍물동아리에서 선생이 하현우의 장구를 빼앗아서 다른 애에게 줬다든지 하는 사건들이다.] 덕분에 목소리를 낼 일이 없어서 변성기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의 카랑카랑한 고음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러니 변성기인 친구들은 우리 콘서트 오지 말라는 말도 농담 삼아 [[https://www.youtube.com/watch?v=uJ5QiNtozmo|인터뷰]]에서 했었다. 그는 자신의 사춘기를 패배감, 무력감, 눈물 투성이의 시절로 기억한다. 이러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아상은 사실 사춘기를 지나서도 하현우에게 꾸준히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고 자연히 국카스텐의 음악 세계에서, 특히 정규 앨범 1집에서 중요한 테마를 이룬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 떠나가자 하현우는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본격적인 자아성찰에 들어간다. 마침 다니던 미술 학원의 선생님이 그에게 "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남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던지고, 그 말에 반한 하현우는 몰입할 대상을 찾다가 노래를 선택한다. 이 후 일주일에 4번 정도 서너 시간씩 노래방을 다니며 피를 토하면서 노래 연습을 하고,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해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youtu.be/uWuOcpy2M2g|하현우가 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서 부른 'She's gone']].]을 부르게 된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 떠나갔었던 여자 친구가 ''현우야~'' 하며 --뻔뻔스럽게도--찾아왔는데. 하현우는 쿨하게 무시했다고 밝혔으며, '''이것이 자기 인생의 첫 승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 여자 친구 분은 지금에는 자기 인생의 최고의 실수일거다.--] 처음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역시 사람은 미친 듯이 뭔가 하나를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느낀 그는 본격적으로 노래에 몰두하지만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음악하는 것을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하현우가 대학교 앞의 길을 걸어가는데 슈퍼 앞에서 지저분한 행색으로 [[거북알]]을 빨아먹던 한 남자[* 이 사람이 현재 [[국카스텐]]의 드럼을 맡고 있는 이정길. 첫 만남 당시 너무 너저분한 행색으로 인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하현우는 콘서트나 인터뷰에서 틈만 나면 이정길에게 거지 같다,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다닌 하현우의 차림새만 보고 던진 말이었다고. 그러나 막상 오디션에 데리고 가 마이크를 쥐어주고 실력을 확인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 그럴 만도 한 게 길 가다가 주운 돌멩이가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였던 격이니...] 그렇게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하현우의 정식 음악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국내 로커들이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미술계에 입문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다.
밴드 보컬이 된 대학 1학년 시절엔 공연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의 경직된 선후배 관계와 술 문화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 위해 드러머였던 이정길과 의논 후 함께 자퇴서를 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휴학을 했어도 됐지만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에 [[수상한 가수]]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여지 없이 잘라낸 거라고 밝혔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고, 음악 활동 외에도 생계 및 음악 활동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의 일도 하였는데, 하현우는 우스갯소리로 "안산 YMCA 건물은 제가 지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건설 현장에서 작업 도중에 감전 사고로 기절한 일화는 당시 서울 생활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음악을 접고 미술 공부 경험을 살려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꾼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갔고, 하현우는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진아라는 인물을 만나 다시금 밴드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인터넷에 기타리스트 모집 공고를 내어 현재 국카스텐의 기타리스트인 전규호를 만났고, 전규호가 밴드에 합류하여[* 전규호의 말로는 자신감 넘치다 못해 건방져 보일 정도로 쓰여진 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합주는 커녕 오디션을 봐야할 자신이 멤버들을 코칭해줘야 할 정도로 연주며 뭐며 온통 엉망이고 말 그대로 열정만 넘치는 아이들이었다고. 반면 전규호는 다른 밴드에서도 기타를 해왔던 경력파였다. 이정길은 합주 자체가 안 되자 미안했는지 "형, 죄송해요. 밥 사드릴게요."라며 살갑게 굴었는데, 이에 전규호는 "실력은 없어도 사람은 착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았다는 모양.],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 진아 이렇게 네 사람은 뉴 언발란스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당시 하현우가 뉴발란스 신발을 좋아했는데, 그걸 뉴언발란스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에서 착안해 지은 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작곡하는 법을 몰라서, 하드코어, 랩, 발라드, [[서태지]] 등 유명 곡의 커버를 하면서 음악을 배워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배고픔은 무시 못 할 위기로 다가왔다. 결국 의지를 상실한 멤버들은 또 다시 악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이스를 치던 진아는 팀을 떠났다.
허나 남은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는 밴드의 꿈을 놓지 못 했고 세 사람은 밴드명을 'the c.o.m(the compass of music)'으로 바꾸고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여성 멤버를 더해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음악 학원에서 합주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현장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 무렵 '나침반'을 비롯한 자작곡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가사를 쓰게 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다고 한다. 허나 이후로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2004년 쌈지 락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뽑혀 참가했던 것을 끝으로 the c.o.m마저 해산. 하현우는 군대[* 군대에서도 하현우는 부모님께 "제대 후에도 정신 안 차리고 계속 음악할 거니까 마음 다잡고 계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로, 이정길은 산업체로, 전규호는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가게 된다.
2006년 제대 후 하현우는 도자기를 배우려 했지만, 한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다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는데, 때마침 기타리스트 전규호가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며 하현우에게 연락해와 전규호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강원도 펜션으로 내려가 방 하나에서 7개월여 간 곡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정길 역시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2007년에 팀에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1년 반 동안 합숙하며,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실내 포차 '천둥벌거숭이'에서 일하고 낮에는 미친 듯이 곡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강원도와 서울을 오갔다고 한다. 강원도에선 곡 작업과 실내 포차를, 서울에선 라이브를 했던 모양.] [[https://www.youtube.com/watch?v=utNXeburWTM|그 시절 영상]]. 여기에서 밴드 [[국카스텐]]과 그들의 1집 앨범이 탄생한다.
* 보컬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하드웨어'''. 동년배의 보컬리스트 중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록 보컬리스트들 중에서도 이만한 폭발력과 하드웨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인물들은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보컬 당시의 [[임재범]], [[김경호]], [[김종서(가수)|김종서]], [[윤도현]], [[김바다]], [[부활(밴드)|부활]] 보컬 당시의 [[박완규]] 정도로 손꼽힌다.][* 현재로써는 동년배 보컬 중 [[이수(가수)|이수]]나 [[김범수]] 정도. 다만 이수는 주 장르가 팝 발라드인 이상 3옥타브 후반대의 초고음보다는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의 중고음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범수의 경우 아직까지 보여준 음역대가 하현우보다 낮다. 즉, 현재 최고의 하드웨어는 하현우가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김범수는 락 가수가 아닌데다, 가창의 정석과 같은 가수라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다.] 타고난 성량을 바탕으로 [[흉성(발성)|흉성]], [[두성]], [[샤우팅]]을 이용해 [[파사지오]]를 넘나드는 광활한 음역대가 가장 큰 강점이자 특징이다. 현 대한민국 가요계의 보컬들 가운데 최정상급의 발성을 사용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라이브에서 무대를 온통 휘젓고 뛰어다니고 거기에 격한 기타 연주까지 하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하현우의 발성이 아주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듀엣 무대에서 '''덤덤하게 부르는 중고음이 다른 가수의 고음역을 묻어버릴 정도'''[* 예당 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같은 소속사 식구였던 [[알리(가수)|알리]]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 게스트로 등장해 알리와 같이 '저 바다에 누워'와 '해야'를 듀엣으로 열창했는데, 알리의 고음역 성량을 그냥 담담하게 중음역을 부르는 성량으로 본의 아니게 강제 음소거 시켜버린 적이 있다. [[https://youtu.be/Rmsqv18Oo0Y|#]]]로 폭발적이며, 고음의 경우엔 음역대가 빈틈 없이 꽉 들어차 있다. 특히 3옥타브대의 초고음역을 1분여 가량 동안 연속적으로 파괴하는 특유의 고음 처리가 압권. 궁금한 사람은 국카스텐의 대표곡 [[https://youtu.be/Ew5LZwcHb6I|'거울']]과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http://tv.naver.com/v/26652|'모나리자']]를 들어보자. 사실 국카스텐의 곡(커버곡 포함) 대부분에서 3옥타브대를 넘나드는 극악무도한 초고음역을 들려준다.
* 현재 방송 중에 나온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 2018 인생술집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 콘서트 중에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에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를 보여준 적 있다. 가성으로는 '''3옥타브 라♯(A♯5)''' [[https://www.youtube.com/watch?v=f2JhDE6__6E|#]], '''3옥타브 시(B5)''' [[https://www.youtube.com/watch?v=ffl9JCKSPDs|#]], '''4옥타브 라(A6)''' [[https://www.youtube.com/watch?v=tDby__0o4Sg|푸에고(2012 Live.ver)]] 를 보여준 적이 있다.[* 다만 샤우팅을 하다 삑사리처럼 찢어지는 비명으로 터져나온 것이라 가창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긴 하다..] 또한 [[두성]]으로 '''3옥타브 라♯(A♯5)'''[* 2013년 안산 여르미오 공연 '꼬리'[[https://youtu.be/ehRZu6QXa7o|#]], 그리고 [[2015년]] [[5월 1일]], [[2018년]] [[7월 12일]] [[인생술집]] 방송때 부른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www.youtube.com/watch?v=x7S9Q3bUm6o|#]][[http://tv.naver.com/v/3599929?openType=nmp|#]]]까지 발성할 정도로 음역대가 무지막지하다. [[http://www.10years.co.jp/guckkasten/|국카스텐 일본 사이트]]에서는 '''3옥타브 시(B5)'''까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한 곡 안에서 최저음과 최고음이 3옥타브 이상 차이가 나면 저음이나 고음 둘 중 한 쪽은 흔들리는 것이 보통인데, 하현우는 초저음역대와 초고음역대를 짧은 순간 안으로도 자유자재로 오간다. 일반적인 고음, 저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의 음역대가 비교적 하이톤의 고음 특화거나, 로우 톤의 비교적 저음 특화로 생성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양쪽이 모두 가능한 하현우의 음역대는 숙고할 만하다. 오죽하면 음역대로 광고를 찍었을까.
* 같이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했던 가수이자 실용음악 분야에서 본좌로 손꼽히는 보컬인 [[김연우(가수)|김연우]]는 [[두시탈출 컬투쇼]] 2014년 6월 5일자 방송에서 '우리나라 남자 가수 중에 고음을 가장 잘 부르는 가수'로 망설임 없이 하현우를 꼽기도 했으며[* 2014년 6월 5일자분 39분 15초 쯤에 [[정찬우]]가 [[김연우(가수)|김연우]]에게 "[[김연우(가수)|김연우]]씨도 옥타브 상당히 높잖아요. 우리나라 남자 가수 중에 최고 아니세요?"라고 묻자, "아니에요. 국카스텐 하현우씨가... '''그 분은 이상한 성대를 갖고 계시더라구요.'''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을 그냥 편하게 불러요. 'Lady~' 거기가 G거든요? 한 (3옥타브) 솔 정도는 너무 편하게 부르세요"라고 대답했다.], [[박명수의 라디오쇼]] 2016년 8월 7일 방송에서는 음역대로서는 국내 가수 중 최고이고 진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인 [[가온다|하이 C]]까지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 2016 DMC 페스티벌에서 부른 [[http://tvcast.naver.com/v/1169980/list/96005|'Lazenca, Save Us']] 라이브를 보면 마지막 'Save Us'를 연달아 부르는 부분에서 소리가 관객들의 엄청난 함성과 락 밴드 특유의 크고 거친 사운드는 물론이고, 심지어 거기에 더해진 '''폭죽 소리까지 뚫고 나온다.''' 이런 행사에 참여할 때면 자신이 사는 곳에 다른 가수들의 노래는 들리지 않았는데 하현우의 노래는 들렸다는 인근 주민의 후기가 올라오곤 한다.
* 상술했듯이 [[록 음악|본진]]에서 하현우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 수준의 보컬이다. 그러나 그 역량이 꼭 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복면가왕]]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러가지 장르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일반적인 록 보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샤우팅]] 창법 말고도 성대가 정상적으로 접촉시키는 진성 [* [[흉성(발성)|흉성]], [[중성]], [[두성]]을 모두 포함한다.]의 스탠다드한 창법 역시 사용함으로서 표현의 폭이 굉장히 넓은 편.[* 여성 가수들과 듀엣할 때 이러한 테크닉이 많이 두드러진다. [[나는 가수다 2]]에서 [[이은미]]와의 듀엣이나 [[주현미]]와의 듀엣이 대표적인데 각각 재즈, 트로트라는 판이한 장르의 편곡과 무대였음에도 대단히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 무엇보다도 파사지오 구간에서 이만큼 자유로운 보컬은 찾아보기 힘들다. 파사지오의 티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두성]]과 [[흉성(발성)|흉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초고음에서도 성대접촉의 질감을 그만큼 유지할 수 있는 보컬은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다. 특히 스크래치의 경우 성대가 벌어지면서 호흡이 성대를 긁고 지나가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현우는 이와는 정반대로, 성대의 접촉을 최대압력으로 유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스크래치'''[* 하현우와 비슷한 목을 긁는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들 중에는 김신의([[몽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등이 있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머라이어 캐리/창법#s-2.6|그로울링(?)]]을 참고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를 사용한다. 이런 방식의 '''스크래치'''를 전 음역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하현우가 거의 유일하며, 대중음악 역사를 통틀어서 봐도 하현우 외의 다른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높은 성대 접촉률으로 전음역에서 진성의 발성이 나오는데, 이런 성대 접촉률은 전문가들이 하현우의 보컬에서 가장 감탄해하고 높이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이며,[* 이게 뭐 별거인가 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의 가수들이 [[두성]] 음역으로 접어들 때 성대 접촉이 줄어들거나 후두가 올라간다.] 이런 성대 접촉률 때문에 초고음역대의 노래들을 그렇게 많이 부름에도 불구하고 성대가 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배에 무거운 사람이나 물건들을 올려놓고 대화를 하는 등 복부 단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 위에 100kg의 사람까지 올려놓고 연습했다고.]. 서양 록/메탈 가수 중에서도 단순히 상연만 살짝 붙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로 강한 수준의 성대접촉을 통해서 고음을 내는 가수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따지면 [[로스트 호라이즌]] 보컬이었던 다니엘 헤이먼 같은 스타일 정도?[* 특히 [[메이플스토리]] OST 중 DARKNESS(다크니스)를 능숙히 부른 것을 보아도 이 점이 두드러진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162회 일치
||<:><#00CED1>{{{#fff '''본명'''}}} ||<(> 민윤기(閔玧其)[* 윤택하고 잘 굴러가는 삶을 살자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한다. [[여흥 민씨]] 31대손이다.] ||
||<:><#00CED1>{{{#fff '''별명'''}}} ||<(> 설탕, 민슈가[* 본명인 민윤기와 예명인 슈가를 합친 것. 자매품으로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이 있다. ~~feat.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아 울지마라~~], 민피디[* 슈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슙기력[* 슈가 + 무기력], 민가마니, 슙슙이, 고유슈가, 민빠답, 윤기선배, 양꼬치 듀오[*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 함께. 둘이 양꼬치를 자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옥수수 국수도.], 사탕[* 중국 팬 한정. [[중국어]]로 "탕탕" 이라고 발음된다. 설탕(슈가) 또는 사탕을 뜻하는 '탕(糖, táng)' 자를 두 번 연이어 쓴 것. 한글로 독음할 경우 '당당(糖糖)'], [[Agust D]][* 솔로 활동명. 2016년 8월 동명의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Agust D]] 항목 참고.],[br]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V앱 스타캐스트 참고.], 민윤지[* V앱 달려라 방탄 11화에서 여장을 했다.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같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826697453105606656|셀카]]를 찍고 SNS에 민윤지(하트)라고 올렸다.], 슙디[* 꿀FM에서 슈가슈가슙디... 라고 DJ를 맡았었다.], 송월[* 트리비아 항목 참고.], [[메타몽]], 미늉기, 민다가오지마[* [[LOVE YOURSELF 承 'Her']]의 컨셉포토 사진 때문에 생긴 별명.], 슈왜노잘[*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후 김영대 음악평론가가 올린 트윗에서 유래된 말이다. [[https://twitter.com/toojazzy25/status/909994408468029440|슈가 왜 노래 잘하지?]]], 민덩방아[* [[RM]]이 준 의자를 받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아픔을 호소했는데, 이를 [[RM]]이 민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A.R.M.Y|아미들]]은 슈가 놀리려고 실시간 트렌딩에 올려놨다.--] , 민형[* 민윤기 형을 줄인 말. 데뷔 전부터 민형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슈가[* 각설탕(...)], 민설탕,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흔하게 민 씨들은 민달팽이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지은 별명이라 한다.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한 별명 맞히기에서 밝혀진 사실인데, 예명인 슈가와 관련된 별명을 내면 빠르게 들킬까 봐 민달팽이를 적어서 낸 것 같다.] ||
>'''팔아먹었다고 생각했던 자존심이 이젠 나의 자긍심 돼'''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절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려 준 영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반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믹스테이프나 정규 곡에서 랩할 때마다 huh 소리가 많이 들어갔으나 요즘 들어 많이 사라진 추세. huh거림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https://youtu.be/2NOgDpAUilU|이 곡을 들어보자]]. 슈가만이 낼 수 있는 소리이다.
믹스테이프의 경우 사용되는 어휘가 대체로 수위가 높은 편. 정규곡에선 자유롭지 못한 약간의 욕설, 비속어나 은어 등의 사용이 많은 편이며 일부 팬들은 이를 조각 모음하여 영상으로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적절한 타이밍에서의 비속어의 사용으로 가사 전달이 훨씬 솔직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학교를 가면 다 돈 많은 집 자식들'''
>'''뒤에서 키보드 자위질하며 평생 그렇게 살어'''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심의에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프로 불통러'''. 특히 [[WINGS]] 앨범에 수록된 슈가의 솔로곡 First Love의 경우 [[방탄소년단]] 멤버의 솔로곡 중 유일하게 심의에 통과하지 못했다. 매 앨범마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하는 곡들이 나오는데 팬들의 반응은 '''윤기가 또?''', '''역시...'''가 다반수이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걱정하기보단 이젠 즐기는 수준. 본인도 딱히 심의에 관해 별 상관을 안 하고 자유롭게 가사를 쓰는 것 같다. 필요할 때는 서정적이고 섬세한 가사도 잘 쓰는데, 이 역시도 독특한 어투와 어휘 사용, 특유의 날카로운 래핑 등으로 인해 슈가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내린 소나기처럼'''
>'''어쩌면 나는 너의 진실이자 거짓일지 몰라'''
>'''어쩌면 당신의 사랑이자 증오'''
>'''어쩌면 나는 너의 원수이자 벗'''
>'''당신의 천국이자 지옥 때론 자랑이자 수모'''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넌 안 돼", "넌 랩을 하면 안 될 친구야" 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고 한다. 욕을 먹었을 때 본인의 반응은 '그래? 그럼 안 해' 혹은 '그래, 네가 욕한 만큼 다 보여 줄게' 둘로 나뉘는데, 음악의 경우 후자에 더 가까웠다고. 이후 수많은 노력 끝에 랩을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치아교정]] 중임에도 불구[* 교정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설측교정]]이기 때문. 간혹 직찍에서 아랫니 안쪽에 자리한 교정기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방탄소년단]] 콘텐츠 중 하나인 본보야지에서 같은 멤버인 [[뷔]]가 자일리톨을 권하자 교정 중이라 안 먹는다고 거절하기도 하였다.][* 교정은 피 땀 눈물 활동 당시 끝났다고 한다.]하고 '''상당히 딕션이 좋다'''. 특히나 [[설측교정]]의 경우 이물감 때문에 발음을 할 때 거슬리며, 쉽게 발음이 새어나가 딕션이 뭉개질 수 있음에도 꽤나 정확한 딕션을 구사해낸다. 현재로썬 교정이 끝난 상태. [[http://m.photoviewer.naver.com/blog?listUrl=https%3A%2F%2Fm.blog.naver.com%2FPostView.nhn%3FblogId%3Dkiss006969%26logNo%3D220888204195&imgId=1&host=https%3A%2F%2Fm.blog.naver.com%2Fphotoviewer&historyBack=true&blogId=kiss006969&logNo=220888204195#main/1|2016년 10월]] 게다가 성량도 큰 편인지라 라이브 중 음향이 좋지 않다 싶으면 더욱 소리내어 랩으로 음향을 다 씹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ffCdGkGsk&feature=youtu.be|전설의 서가대 쩔어]]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9&v=UUZSgv0sqC4|171101 불타오르네]] 음향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인 [[SBS 가요대전]]에서 [[https://twitter.com/nojam__nolife__/status/945253643166433282?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씩~ 웃고, 한마디 쉬고, 라이브 인증.]]
>'''2천원짜리 [[짜장면|자장면]]을 먹으면 버스를 못 타.'''
[[LOVE YOURSELF 承 'Her']] 컴백 기념 [[엠넷]]의 특집 방송 BTS COMBACK SHOW에서 본인이 천재인 걸 인정하냐는 말에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며 부끄러워했지만, Agust D 믹스테이프로 공개된 슈가의 개인 작업실 이름은 '''Genius Lab'''으로 천재 연구소라는 뜻이다. [[https://youtu.be/7uSf-b9x7N8|4:25~ 작업실 작명 일화]] 솔직히 본인도 천재임을 아는 듯하다. --민슈가, 천재. 뭐 이 두 마디면 될 것 같아요--
두 번째 미니 앨범인 <[[SKOOL LUV AFFAIR]]> 때부터 본인이 프로듀싱한 곡을 꾸준히 트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본래 진로를 [[프로듀서]], [[작곡가]]로 잡은 적도 있었던 만큼 [[싱어송라이터]]가 많은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작사, 작곡에 많은 공을 들이는 멤버 중 하나이다.[* 3년 전 방시혁 프로듀서의 [[https://youtu.be/8XKDXHdj95s|'상대방의 기썬을 제압해']]라는 홍보 영상으로 알려진 오디션에 참가하여 2등 수상, 그 후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아이돌이 되는 줄 모르고 참가했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서 작곡가 등으로 활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이 말을 들은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말한다.] 연습생 시절 '1DAY 1VERSE'라 하여 하루에 한 곡씩을 꼬박꼬박 쓰며 실력을 쌓는 등의 작업도 했었고, 데뷔 후인 현재에도 음악 작업을 즐기고 또 열심히 한다. 1년에 한 200곡은 만드는 것 같다고.
2016년 10월, 정규 2집 "[[WINGS]]" 전반에 걸쳐 크래딧을 올렸으며[* 다만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에 대해선 '너무 더럽지 않나요' 라며 은근 반대를 했었던 모양. --분비물로 이루어진 제목이라니--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피 땀 눈물"이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이에 대해 [[RM]]은 슈가를 "[[방탄소년단]]의 [[펠레의 저주|펠레]]"라고 평가했다(...)] 솔로곡 "First Love" 또한 수록했다. 믹스테이프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향해 달려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으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 해외, 그 중에서도 북미를 비롯한 서구 팬들은 '노래에 가수의 영혼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0830100|#]] 때문에 다소 어둡고 진지하더라도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아낸 슈가와 [[RM]]의 가사가 서구팬들에게 공감을 얻는다.]
- 정칠성 . . . . 155회 일치
유년 시절에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고, 후일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하였다. 기생학교에서 수료한 후 한남권번의 기생으로 있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4년]] [[허정숙]](許貞淑),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여성들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창립하였고, [[일본]] 유학 중 1925년 도쿄에서 여자유학생단체인 삼월회를 조직했다.
귀국 후 [[1927년]]에는 [[신간회]]와 [[근우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여성 계몽 강연 활동과 칼럼, 논설 발표, 편물과 수자수 강사 등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 선전조직부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 1930년 제2차 경성학생시위사건(일명 근우회사건) 주동 혐의로 투옥당하였다.
해방 후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해 부위원장이 되고, [[조선공산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 [[1948년]] [[4월]]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남북협상]]에 참가한 뒤, 그해 [[8월]] 미군정의 좌익 탄압을 피해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차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 1955년 민주여맹 부위원장,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58년]] 국내파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제거할 때 숙청되었다.
|제목=<nowiki>[역사속의 영남사람들 .37]</nowiki> 민족을 지켜낸 여성들(김락·남자현·정칠성)
|저자=이미원
그녀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곱 살에 기녀가 되어 각종 기예를 익혔고, [[경성부]] 한남권번(漢南券番) 소속 기녀가 되었다. 한남권번에서 '''금죽'''(錦竹)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기생학교]]에서 기예를 배운 뒤 한남권번에서 기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기량이 뛰어나 [[기녀]]로서는 특별히 [[일본]]으로 유학, [[일본]]의 [[동경여자기예학교]](東京女子技藝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춤과 무용 수업을 빠지다가 선생에게 혼나기가 일수였다 한다. 시를 잘 지었고,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그림도 잘 그렸으며, [[바둑]]과 [[장기]]를 잘 두었다고 한다. 기예로는 남중잡가, 가야금산조, 병창, 입창, 좌창, 정재 12종무 등의 실력에도 탁월하였다.
19세 때에는 말 타고 나라를 구하는 외국여걸들의 전기를 읽고 자신도 그와같은 유명한 여장부가 되려고 승마를 배우기까지 하였다.<ref name="dispose">[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19971223.00000014.000010&newsType=old < 대구.경북 근.현대인물사 . 38 > 정칠성]</ref> 여자가 집 밖으로 다니는 것을 꺼려하고, 말을 탄다는 것은 금기시되기조차한 사회에서 그녀의 행동은 도발적인 것이었다. 정칠성은 이때의 경험을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했던 일로 회고하는 글을 잡지 '별건곤(別乾坤)' 에 싣기도 하였다.<ref name="dispose"/>
[[3.1 운동]]에 참여한 [[기생]]의 한사람이었으며, [[조선총독부|총독부]]의 눈을 피해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여자기예학교]]를 수학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동조하게 되었다.
[[1919년]]에 [[3·1 운동]]을 겪으면서 인생에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때의 변화를 `기름에 젖은 머리를 탁 비어 던지고 일약 민족주의자가 되었다'고 표현했다.<ref>{{뉴스 인용
|저자=박정애
곧 그는 [[3.1 운동]] 가담 혐의로 연행되었다가 특별한 혐의가 없어 석방되었다. 후일 그는 '기미년 만세운동을 계기로 "기름에 젖은 머리를 탁 비어 던지고" [[기생]]에서 주의자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회상하였다.
그는 작문에도 능하여 글과 논설을 지어 발표하였는데, 여성의 계몽, 교육의 장려, 사회 부조리의 개선, 위생 청결론 등을 주장하여 이른바 '사상 기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태화관을 출입하던 소설가 장혁주는 그의 존재를 인상깊게 기억했다가 회상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 (1896년)|김명순]] 등과 함께 잡지 [[신여자]]지의 필진으로 참여하였으나 [[신여자]]지는 재정난으로 곧 폐간되었다. 이후 그는 [[조선]]의 역사 관련 서적, [[사회주의]] 사상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을 구해서 독서하였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에 한때 참여하였다.<ref name="dispose"/> [[1923년]] [[10월 17일]] 조영수, 이춘수(李春壽) 등과 함께 [[대구]] [[명신여학교]] 강당에서 [[기독교]] 등 종교모임의 부녀단체와 여성단체를 본따 [[대구여자청년회]](大邱女子靑年會)를 창립발기하였다. 바로 [[대구여자청년회]] 통과위원에 선출되었다.
10월 이춘수와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대구여자청년회의 창립은 당시 종교단체외에 여성운동을 조직적으로 하는 단체가 없던 상황에서 여성대중을 대상으로 조직을 결성한 첫 시도였다.<ref name="dispose"/>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의 부녀단체를 탐방, 연구한 정칠성은 전국적인 여성 단체, 여성 청년 단체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大邱女子靑年會執行委員)이 되어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청에서 활동하였다.
[[파일:Heo Jong-suk.png|썸네일|오른쪽|150px|[[허정숙]]<br />(사상적 동지이자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냈다.)]]
[[1923년]]말부터 [[허정숙]],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여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가부장제]]의 억압과 남성들의 억압,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여성사회운동단체를 조직하려고 여학생과 부인 중에서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 신분과 배경을 보지 않고 사람을 사귀던 [[허정숙]]과는 특별히 친하게 지냈으며, 이후 정칠성은 [[허정숙]]과 함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사상을 조선에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1924년]] [[5월 15일]] 그는 [[경성]] [[천도교당]]에서 [[허정숙]], [[주세죽]], [[김조이]], [[정종명]], 박원희, 김필애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여성 사회운동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여성동우회 창립발기식의 사회자로 활동했다. 바로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이어 신사회 건설과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할 여성의 단결 등을 목표로 설정하였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사회운동을 벌였다.
정칠성은 정종명, 오수덕 등과 함께 종래의 소극적 여성운동을 극복하고자 여성해방단체조직에 착수하였다.<ref name="dispose"/>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란 생소한 것이었기에, 정칠성은 일반 부인을 대상으로 직접 회원모집에 나섰다.<ref name="dispose"/> 이후 그는 각지의 순회강연과 칼럼, 기고를 통해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고, 경성에서 다른 여성단체의 일을 보면서도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을 겸직하였다. [[1924년]] [[7월 20일]]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인천노동총동맹회 상무위원(仁川勞働總同盟會常務委員)에 선출, 겸임하였다. 또한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 일도 겸하였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 김윤아(1974) . . . . 146회 일치
[[분류:싱어송라이터]][[분류:밴드 보컬]][[분류:순창군 출신 인물]][[분류:1974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CF89D7> {{{#ffffff '''학력'''}}} ||<#FFFFFF><(> 순창초등학교[br]순창중학교[br]순창고등학교[br][[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93학번)[* 4학년 2학기까지 수료하고 자우림 활동으로 인해 중퇴하였으나 20년만인 [[2017년]] [[2월 23일]] [[성신여대]]로부터 명예학사 학위를 수여받아 ~~명예~~졸업하였다.] ||
||<#CF89D7> {{{#ffffff '''데뷔'''}}} ||<#FFFFFF><(> [[그룹]] [[1997년]] 영화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br][[솔로]]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 OST <[[봄날은 간다(영화)|봄날은 간다]]> ||
'''이소라와 함께 90년대와 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 보컬이자, 홍대 인디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수.'''[* 김윤아의 보컬이 워낙 매력적이고 장르 폭이 넓으면서, 카랑카랑한 매력적인 보컬을 가졌기에 많은 후대 여성 보컬을 가진 밴드들이 김윤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응당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록밴드]] '''[[자우림]]'''의 [[보컬리스트]].[* 공연이나 앨범에서 키보드와 기타를 맡는 경우도 있다.] 솔로 [[여자 가수]]. 별명 중 하나로 '우림 언니'가 있다. [[자우림]]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름이 '자우림'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다. [[SNL 코리아]] 시즌4 32회 자우림 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ETtn2ZgUV58&feature=youtu.be&t=2m27s|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순창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김문철[* 김홍철과 친구들의 초창기 멤버였으며 김홍철 3집 수록곡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작곡하고 듀엣을 했던 음악가이다.]의 친구였던 김홍철에게 직접 [[요들송]]을 배웠으며 이때부터 자기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gLADlQoOd8k|링크]] 5학년 때 전학 가는 친구를 위해 처음으로 작곡을 하였고, 초등학교 시절 잠깐 배운 요들송과 [[피아노]] 이외에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라디오를 계속 듣지 못하다가, [[순창중학교]] 1학년 때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튼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Honesty'를 듣고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며, 비슷한 시기에 '[[퀸(밴드)|퀸]]'을 듣고 밴드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배철수의 음악캠프]],[[AFKN]], [[아메리칸 탑 포티]] 등의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순창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부에서 활동하였는데 직접 작곡하여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표정 연기, 무대 연출 등 이 시절 연기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 영어 선생님의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로 A Lover's Concerto를 부른 것이 첫 공식 무대라고.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본래는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에 입학한 93년 '풀카운트'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데, 당시 풀카운트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구태훈과 처음 알게 된다. 이후 여러 밴드들을 거치다가 96년 김진만을 알게되고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 인근에서 활동한다. 이후 무대 디자인 일을 하고 있던 구태훈이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면서 최종 4인의 '미운오리'가 결성된다. 97년 4월 홍대클럽 "블루데빌"에서 공연하던 중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꽃을 든 남자> OST 'Hey Hey Hey'로 데뷔했다. 자우림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은 것. 별 생각 없이 지은 '미운오리'라는 이름이 막상 CD 자켓에 넣으려니 부끄러워서 하룻밤을 새서 지었다고.
>내 안에서는 '야상곡'이 나온다. 이걸 자우림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2001년 9월 영화 <[[봄날은 간다(영화)|봄날은 간다]]> OST인 동명의 곡 '봄날은 간다'로 솔로 데뷔, 11월 1집 <Shadow of Your Smile>을 발매한 이후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당시 3집의 타이틀곡 '매직 카펫 라이드'가 대박을 치며 자우림의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인데, 이를 두고 '김윤아도 성공하더니 자우림 버리고 해체하려나 보다'는 말들이 많았다. 물론 억측이었고, 이후 자우림과 솔로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솔로곡은 왠지 모르게 자우림 이상으로 어둡거나 무시무시한 곡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말하길 자우림 보컬로서의 김윤아는 자신보다 어리고 더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자 성별도 중성에 가깝다고 한다. 반면 솔로 앨범에서의 김윤아는 실제와 가까우며 여성스럽고 어두운 편이다. 창법도 조금 다르다. 자우림에서의 김윤아가 음정이 나가거나 삑사리가 나는 것에 개의치 않고 화끈하게 불러버리는 락커라면 솔로가수 김윤아는 목소리 자체를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기본적으로는 [[두성]]에 [[비음]]을 약간 섞어 사용한다. [[중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가는 소위 '꺾기' 창법 역시 자주 사용한다.[* 어렸을 때 [[요들송]]을 배웠던 적이 있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 꺾기를 매우 쉽게 사용한다고 한다.] 벨칸토 식 성악창법과 락 창법도 사용한다. [[비성]]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지만 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진성으로 부르는 곡도 많다. '''곡마다, 아니 곡 안에서도 창법을 계속 바꿀 수 있는[* 곡 중간에 창법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프로급 보컬들은 최소한 성대접촉은 조절해 창법을 바꿔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해야 노래의 강약조절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들은 김윤아와 달리 일반인들이 직감적으로 느낄 정도로 크게 변화시키지를 않는다. 창법변화를 크게주다가 잘못하면 창법을 변화하는 중간중간에 이질감때문에 곡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때문. 이렇기때문에 김윤아는 서로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창법을 조화시키며 노래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인정 받는다. 또한 김윤아는 그 창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색깔을 드러내는, 즉 온전한 자기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창법변화를 주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있고, 그러다보니 표현이 작위적이라고 말하거나 자의식과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쨋건 저런 김윤아식 보컬스타일은 유니크하며 인정받을만 한 것임이 틀림없다.] 드문 보컬리스트.''' 기본적으로는 락 보컬리스트이지만 리듬감을 강조하는 R&B나 [[블루스]] 기반의 노래도 꽤 많다. 예컨대 '나비' 같은 곡들.
'''특히 안정적인 중저음역대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을 지녔다.''' 데뷔 초기인 1~2집 때는 3옥타브 도(C5) 이하의 곡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이 시기 자우림 노래들은 음역대가 조금 높은 남자들도 키 전환 없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다.] 3옥타브 도(C5)가 있어도 한두 번 찍고 내려오는 수준. 워낙 이 시절에는 목에 힘을 빡 주고 [[벨팅]]으로 질러대는 스타일의 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애', '일탈' 등.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노래는 목을 매우 상하게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이렇게 질러대는 창법을 고수하다가 목이 완전히 가버리는 가수들이 꽤 많다. [[벨팅]]항목 참조.] 이후 3집 때부터는 전면적으로 목을 상하게 하지 않는 창법, 정확히는 [[두성]] 중심의 창법으로 전환했다. 90년대에 블루 데빌스 등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던 미운오리(자우림의 이전 이름)의 팬들은 1집때보다 훨씬 더 목을 긁어대는 김윤아를 기억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지만, 그 창법을 계속 고수했으면 지금까지 노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진성의 음역도 점차 넓어졌는데 4~5집에 이르러서는 3옥타브 레(D5)를 원활하게 내고 있다. 드디어 6집의 'Oh Mama!'에서 처음으로 __3옥타브 파(F5)__를 냈다! 여담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중 '죽기 전에~'라는 가사 끝부분에서 지르는 부분이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이다. 참고로, 가성의 음역은 3옥타브 라(A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반 애드립]~3옥타브 라#(BB5)[*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라구요' 후반 애드립]은 원활하게 내며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얘기할 수 없어요' 중반 애드립에서는 __4옥타브 레(D6)__까지 냈고 자우림 8집 타이틀곡 'IDOL' 마지막 지르는 고음에서도 4옥타브 레(D6)를 냈다고 한다! 단, 원래 음역대가 넓은 편이 아니고 성량이 엄청난 수준이거나 하진 않은[* 물론 [[일반인]]에 비하면 엄청난 성량이지만. 애초에 성량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부족하면 [[록밴드]]에서 악기 소리에 묻히기 십상이다.]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라이브에서 의외로 삑사리가 잦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다 눌러버리지만... 성량의 경우 최근 나온 [[듀엣 가요제]]나 몇년 전 [[나는 가수다]]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상당한 파워를 자랑한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성량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다. 콘서트를 가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자면 김윤아가 콘서트에서 부른 4집 '타인의 고통' 수록곡 '다 지나간다'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레(D5)를 거뜬히 소화하였고, 듀엣가요제 5연승 명졸 무대를 장식한 빅뱅의 'LAST DANCE' 2절 후반부 애드립에서는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를 깔끔하게 소화하였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전보다 더 높은 음(3옥타브 미(E5)~3옥타브 파(F5))을 진성으로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 확실히 파워라든가 성량이 업그레이드되었다.
홍대 출신의 실력파 여가수라는 이미지가 인디계에 끼친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으로 인디 계열 여가수 or 실력파 여가수 메이킹의 상당수는 김윤아의 창법과 음색을 따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콧소리만 잔뜩 넣어서 불러도 '김윤아 창법' 이라고 해버리는 탓에... 사실 [[보컬리스트]] 김윤아의 강점은 '''수많은 창법을 바꾸어가며 [[노래]]를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안정적인 호흡으로 부르는 것'''이지 '콧소리가 들어간 비음' 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자우림의 작사/작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앨범의 수록곡 중 50~60% 정도를 작곡한다.[* 30%~40%는 기타리스트인 이선규의 곡. 나머지 10%~20% 정도는 베이시스트 김진만 작곡. ~~구태훈은?~~] 앨범을 준비하면 가장 성실한 김윤아가 20곡, 기타리스트 이선규가 3곡, 김진만과 구태훈이 0~1곡 정도를 써 온다고 한다.(...)
[[본인]]을 포함한 자우림 멤버들(김윤아, 이선규, 김진만, 구태훈)이 만든 것이 아닌, 즉 자우림의 자작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부른 경우도 정말 드물다. 특히 김윤아 솔로 2, 3집에는 모든 곡의 크레딧에 김윤아 작사/작곡이 붙어있다. 1집의 경우도 민요 '파랑새'와 영화 OST '봄날은 간다'를 빼면 모두 김윤아 작사/작곡. 김윤아 솔로 1집에 들어있는 [[파랑새]]는 작자미상의 민요, [[봄날은 간다]]는 [[마츠토야 유미]]의 곡이다.
편곡의 경우 자우림에서는 전체적인 편곡방향 및 보컬/키보드의 편곡을 담당한다. 솔로앨범의 경우 1,2집은 50%는 단독 편곡 50%는 공동 편곡이며 3집의 경우 스트링이 들어간 두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독 편곡이다. 김윤아의 앨범에 참여했던 유명한 편곡자로는 2집에서 [[탱고]]곡들을 맡았던 [[요요마]]의 프로듀서 호르헤 칼란드렐리(Jorge Calandrelli), 방준석, 자우림 제5의 멤버로 알려진 키보디스트 황준익 등이 있다.
영화와 인연이 많은 편이다. 일단 자우림과 솔로 모두 영화 OST로 데뷔했다.
2000년 <인터뷰>라는 영화에 본인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DVD가 활성화 되기 전이라 찾기 힘들어진 영화인데 2013년 9집 활동으로 출연한 SNL에서 어떻게 구해서 자료화면으로 틀어주었다. 관심있으면 찾아보자.
- 은지원 . . . . 139회 일치
||<#000000> '''{{{#FFFFFF 가족}}}''' ||<(> 아버지 은희만([[1929년|1929년생]])[* 2018년 9월 5일 별세][br]어머니 김성아([[1954년|1954년생]])[* 본명은 '김금자'며 과거 은지원 팬들의 현수막에도 '은지원 나랑 결혼하자! 김금자 씨 허락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다.][br]3남 2녀 중 [[3남|다섯째]][* 부모님이 재혼. 아버지 쪽으로 그렇다. 어머니 쪽으로는 [[무녀독남]]이다.][br]진외당고모 '''[[박근혜]]'''[* 이 글을 보고 있는 본인이 생각하는 그 박근혜가 맞다. 은지원의 진외종조부가 [[박정희]]이고 박근혜가 그 딸이니 고모가 된다.] ||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젝스키스]]의 영원한 카리스마 리더이자 아이돌계 카리스마 이미지의 표본'''
'''[[동안]]으로 유명한 연예인이자, 가수(힙합), 예능 두가지 영역에서 활약을 돋보인 연예인'''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한국 1세대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자, 1세대 래퍼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한 인물'''[* 정확히 말하자면 [[젝스키스]] 해체이후에 힙합뮤지션으로써 활동했기 때문에 동시에 획득한건 아니다. 다만 2001년부터 힙합래퍼로 활동했으므로 1세대래퍼가 맞다.]
지금이야 예능에서의 모습으로 초딩 소리를 듣지만 젝키 시절에는 과묵한 이미지와 까리한(...) 외모로 '''은각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H.O.T.]]의 리더 [[문희준]]이나, [[신화(아이돌)|신화]]의 리더 [[에릭(신화)|에릭]]과는 달리 그룹에 동갑이 없었다. (이들보다 1살 위인 [[NRG(아이돌)|NRG]]의 리더 [[이성진(NRG)|이성진]]도 같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연습할 때 한정으로--다들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까다로웠다고 언급했다. --김재덕에 의하면, 은지원이 너무 독재자여서 이재진이 반항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게 받은 대접이 대접이라 그런지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3년도 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독재자 발언은 예능에서 장난스레 발언한 것이다-- 은각하 자체가 데뷔 당시 멤버들을 갈구던 상황에서 놀리듯이 붙은 별명이다. 당장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이나 예전 예능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은지원은 동생들에게 갈굼당하기 일쑤다. --마이웨이 까칠이 이재진과 은지원 전용 어그로 고지용, 프로일침러 장수원, 방관하는 강성훈과 김재덕.-- --(극한직업 젝키 리더)-- --젝키 내에서는 은지원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자신은 카리스마 있었던 적은 없었고, 말이 없었던 이유는 MC들이 질문한 내용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고...
실제로 보면 무표정한 얼굴에 눈매가 정말 매섭고 ~~다크서클도 진해서~~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다. --죽여달라거나 덮쳐보자는 식의--센 문구 투성이였던 당시 팬들의 응원 현수막에는 정말 이례적으로 매우 공손하게 '은지원! 쳐다봐도 되나요?'라는 문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젝키 멤버들이 밴에서 내릴 때 은지원만은 팬들이 알아서 길을 터줄(...) 정도로 포스 있었다. 현장을 따라다니던 팬들이 은지원의 말은 알아서 꼬박꼬박 잘 들을 정도였다. --날이 어두워지니 집에 가라고 하면 순순히 갔다고 한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서 팬들에게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장난 섞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고민이었는지, 자신이 재밌는 사람이 아니지만 웃음을 주어 친근해지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필 같은 것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능에서 은초딩이 되었다--
등장 이후 H.O.T.의 라이벌다운 화려한 흥행을 기록하였으나, 2000년 5월에 젝스키스가 해체되면서 모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 와중에 은지원은 홀로 꾸준히 준비하여 2000년 10월에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이 후에 이재진과 강성훈도 솔로로 활동했고, 김재덕과 장수원은 [[제이워크]]로 그룹 활동을 하게 된다.] 솔로로 전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힙합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강해 힙합 리스너들에게 많이 공격받았다. 그 영향인지 당시의 노래 중에도 자학 가사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문희준|넘사벽급의 광역 도발러]]'''가 있었으니 저 분에 비하면야 악플로 입은 피해는 미미한 수준. 게다가 은지원은 [[무브먼트(크루)|무브먼트]] 크루 소속이다 보니 무브먼트 빠들에게 옹호를 받은 편이다.[* 무브먼트 크루가 가지고 있는 한국 힙합계의 입지와 인기를 생각해보면, 무시할 수 없는 옹호를 받았다.] 또 음악성에 있어서도 드렁큰타이거의 마이너 카피 정도라는 평을 받긴 했지만, 심한 비판을 받은 것은 없다. --애초에 은지원은 타이거JK에게 랩을 배웠다.-- 아군 하나 없이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문희준과는 비교도 안 된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반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아이돌을 그만두고 힙합으로 전향했을 때 [[타이거 JK]]한테 배움을 받아서인지, 2003년 9월에 발매된 3집을 들어보면 [[드렁큰 타이거]]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3집 이후로는 점차 자기 색깔 찾아가는 듯. 이후 '힙합'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데 2005년 2월 4집에 들어서 자기 색깔이 두드러졌고 4집에서 국보급 플로우를 만들어낸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 힙합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8톤 트럭'의 원조이다. 흔히들 다듀의 고백이 원조라고 알고 있는데, 은지원의 8톤 트럭이 고백보다 8개월 더 먼저 나왔다!]2009년 5집에서는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를 반영하여 2002년 2집처럼 댄스에 가까운 힙합으로 선보였지만 이질적인 느낌이라 호불호로 갈라졌다. 대신에 당시 개그 유행어를 소재로 수록된 '''160'''이 힙합 장르를 떠나서 흥겨운 음악 덕분에 반응이 좋은 편. 2013년 11월, [[20세기 미소년]]에 타이거 JK가 "은지원의 부탁으로 출연했다"며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아 친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2013년까진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에 출연했었다. 그것도 참가자나 프로듀서가 아닌 MC로 지금이야 쇼미MC하면 [[김진표]]가 제일 유명하지만 이 사람이전에는 쇼미MC라는 소리를 들었었고, 아이돌 출신으로서 최초로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였다. 그것도 진행자로.[* 쇼미[[SHOW ME THE MONEY(TV프로그램)|시즌1]], [[쇼미더머니2|2]]와 [[쇼미더머니3|3]], [[쇼미더머니4|4]], [[쇼미더머니5|5]], [[쇼미더머니6|6]]의 MC맨트가 다른걸 알수 있다.] 쇼미더머니 MC를 하차한 이유는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져서라고 한다.
'''[[김종민]]과 더불어 성공한 가수 출신 예능인이자 자타공인 예능의 귀공자'''
젝스키스가 해체한 뒤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예능은 [[전파견문록]]과 [[강호동의 천생연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젝스키스의 카리스마 리더 이미지가 강했으나 그 이후 수년간 예능에 자주 출연하면서 지금의 은초딩과 비슷한 4차원+철없는 이미지를 얻었다.~~ 젝스키스를 모르는 요즘얘들은 은지원이 아이돌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한다. 오죽하면 [[작렬! 정신통일]] 프로그램을 진행했을때 신정환이 '요즘 초등학생들은 개그맨인줄 알아'라고 말했을정도다.~~심지어 당시 강호동이 [[신정환]]과 [[윤정수]]보다 은지원이 더 무섭다고 밝혔을 정도.
이후 2007년 [[준비됐어요]]의 고정으로 활약. 그리고 준비됐어요의 후신인 [[1박 2일]]에서도 자리를 지키면서 드디어 오늘날 그 유명한 '은초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미션의 맹점을 정확히 파악해 [[https://youtu.be/6YqNUlMP_1M|게임의 결과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적도 있었고]][* 소원권 레이스에서 동맹 이승기를 우승 시킨 다음 자신이 소원권을 쟁취하기도 했다.], 각종 꼼수로 미션에서 낙승을 거둔 적도 있으며[* 아침 기상미션에서 상대팀 핸드폰 알람을 모두 조작한 뒤 낙승을 거뒀다. 알람이 오전 6시인데 오후로 바꾼다던지.] [[https://youtu.be/bsD1X-OP5bQ|완벽한 심리전으로 상대팀 전원을 혼란에 빠트린 적도 있었다.]][* 무섭당 vs 바보당 레이스에서 이수근에게 거짓전화를 걸어 강호동이 이수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속였다. 때문에 30분 넘게 [[이수근]]이 강호동을 의심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예능계에서 두뇌 플레이만으로 미션의 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캐릭터.[* 이에 견줄만한 인물로는 추격전만 하면 빛을 발하는 [[무한도전]]의 [[노홍철/무한도전|노갈량]] 정도. 그리고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 천재 해커라 불리는 이두희가 "노홍철은 말이 많지만 게임을 잘할지 모르겠고, 은지원은 방송에서 포장된줄 알았는데 진짜 천재인거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준영|얘]]는?~~[*스포일러? 정준영은 머리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반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남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순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게다가 어릴 적에 외국에 가 있었기 때문인지 기초지식이나 어휘력 등이 상당히 빈약하다. 토토가 이전에 '뇌가 순수한 사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도 있고, 젝스키스 멤버들이 단체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은지원 혼자만 '친탁', '총망라'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며 한글 맞춤법도 자주 틀리는 편. 즉, 타고난 눈치나 잔머리는 뛰어나지만 후천적인 지식이 부족한 타입.
아무튼 예능프로 최고의 수혜자 가운데 하나이다. 본업이 개그맨이 아니였음에도 좋은 예능감을 얻어 방송계에서의 입지가 훨씬 더 탄탄해졌고, 범국민적 좋은 이미지를 많이 얻었으니 이만한 혜택도 없다.
그랬기에 '천하장사'나 '공조7' 혹은 '인간의 조건', '옆집의 ceo'등 수많은 리얼예능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고, 장수하는 예능인으로 방송계에서 꾸준히 살아남았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들은 장수하지 못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안에서의 분량을 찾아보면 감초역할로 순간적인 리얼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센스가 다른 출연진에 비해 돋보인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이 단지 출연진 한, 두명이 웃긴다고 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연출 방향, 편집 스타일, 프로그램 의도, 미션이나 주어진 상황과 게임, 출연진간의 케미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하장사'나 '공조7'은 출연진들이 센스가 넘쳤고, 케미도 좋았으나 다수의 시청자들이 제작진들의 프로그램 방향이나, 의도 또는 연출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1박 2일 이후 신서유기를 제외하고 특히 히트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 또한 복불복 운과 같이 운이 없는 축에 속하는 편.
- 권혁 . . . . 138회 일치
'''불꽃 남자'''
삼성의 쌍권총, 그리고 2015 시즌 한화의 불꽃남자. 몇 년간 삼성의 철벽 불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실력이 하락해 이제 잊혀가는 선수가 되는 듯 했으나, 한화로의 이적 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주목받던 시절은 있었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 했던 선수에서 2015 시즌의 [[투혼|긍정적]]으로도 [[살려조|부정적]]으로도 주인공이 된 선수.
불펜 투수가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경우는 최근 한국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의 엄청난 혹사를 꿋꿋히 버텨내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내는 모습이, 꼴지를 전전하던 한화가 2015시즌 가을야구 싸움을 하면서 얻은 투혼의 팀컬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언급이 많은 선수중 한 명이 되었다. 기존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1982)|김태균]]과 더불어 2015년 한화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야구부]]의 [[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37776|#]]
그러나 그만큼 큰 키에 힘이 좋고 투구 동작도 내리찍는 파워풀한 스타일이라 포텐셜을 뒤늦게 폭발시키고, 2002년에 누구나 1차 지명을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구고등학교의 [[윤길현]][* 현 [[롯데 자이언츠]]]을 제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09년의 심각한 혹사의 여파로 2010 시즌에는 속구 구속이 140km/h대를 못 찍을때가 많아졌다. 반면 구속이 줄면서 2009년까지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컨트롤이 상당히 개선되어, 예전만큼 끔찍한 강속구를 뿌려대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를 통한 코너웍을 이용해 타자를 처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게 되었다. 오히려 안정감만큼은 지난 시즌 이상이라는 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결국 ERA 2.09에 7승 1패 4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며[* 특히 삼진 개수는 유지하면서, 사사구 개수가 예전보다 월등히 줄어들었다.] 파이어볼러에서 완성형 투수로 변신. [[안지만]], [[정현욱]]과 함께 삼성의 무적 불펜의 한 축을 이끌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삼성의 필승 불펜조를 선수들의 앞글자만 따서 '[[안정권]]'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위의 2명과 권혁.] 문자 그대로 그들이 올라서면 안정권에 접어들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 : 4타자 상대하여 0.1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희비 1실점(1자책) '''ERA 27.00'''.
플레이오프 3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 볼넷 1실점(1자책) [[한기주|'''ERA 99.99''']].
플레이오프 4, 5차전 : 등판 못함.[* 등판을 하지 못한 거 자체가 치명적이었다. 팀이 3, 4차전 모두 7명의 투수를 쏟아부었기에 4, 5차전에서 투수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혁은 중심 불펜 역할을 예정중이었으므로 더욱 타격이 컸다.]
권혁은 2010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⅔이닝 1홀드 2피안타 4볼넷 2실점(2자책) '''ERA 27.0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오승환]]이 [[김재현]]에게 [[분식회계(야구)|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46015=|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상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상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2010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0.2이닝 1패 1피안타(1피홈런) 2볼넷 1K 2실점(2자책) '''ERA 27.0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종합''', 2010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1.1이닝 1홀드 1패 3피안타 (1피홈런) 6볼넷 1K 4실점 4자책점 '''ERA 27.00''',[*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을 모두 '''27.00'''을 찍는 위엄을 달성.] 1패를 기록했다.
스포츠 기사나 선동렬 감독등의 인터뷰를 볼 때 '권혁을 비롯한 불펜의 부진'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좋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이 높게 평가받고 있었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은 이번 포스트시즌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그 이후로 자신감을 급격히 상실, 2011년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2010년 포스트시즌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떨쳐버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오죽했으면 충격으로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체중이 6kg나 빠졌을 정도였다.
- 상디 . . . . 127회 일치
||||||||||||||||||<table align=center><#E066FF> '''[[밀짚모자 일당]]''' ||
||<#DCDCDC> '''전투원''' ||<#DCDCDC> '''항해사''' ||<#DCDCDC> '''저격수''' ||<#DCDCDC> '''요리사''' ||<#DCDCDC> '''선의''' ||<#DCDCDC> '''고고학자''' ||<#DCDCDC> '''조선공''' ||<#DCDCDC> '''음악가''' ||
|| 생일 ||<:> [[3월 2일]]([[물고기자리]]) ||
|| 동물에 비유하자면 ||<:> 집오리 → 산양 ||
~~[웅(포켓몬스터)/애니메이션|웅]~~ [* 밥셔틀(...)이라는 것도 똑같지만,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라는 것도 똑같다(...)''', 주연이란 것도 똑같지만.]
|| 한국판[* 한국판에서는 무려 세 명의 성우가 맡았는데, 각 성우의 해석이 조금씩 달라 어느 쪽이 낫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김일의 해석이 더 디테일하고 맛깔난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쓰레기 퀄리티로 욕먹는 ~~대~~원피스 Original에서 유일하게 건질 만한 게 김일의 상디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11기에서 [[브룩(원피스)|브룩]]에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캐스팅되면서 건질 게 더 늘었다~~ 다만 투니판을 맡은 박성태 버전도 꽤 괜찮은 연기로 호평이 많다. 양석정 버전은 특유의 음색 탓인지 셋 중 가장 평이 좋지 않다.] || [[이유리(성우)|이유리]](대원방송), [[김영은]](투니버스), [이현주(성우)|이현주](KBS) || [김일(성우)|김일](KBS, 대원방송), [[양석정]](KBS)[* 성우 교체에 얽힌 이야기가 참 복잡한데 2006년경 터진 [[흑역사가 된 것들/성우#s-1.1|KBS 성우 스캔들]]로 인해 김일을 포함한 3명의 성우가 6개월에서 1년의 자격 정지를 당해 양석정으로 교체되었고 투니버스에서 방영될 때쯤에는 김일의 자격 정지는 풀렸지만 성우 본인이 투니버스 출연을 거부하고 있어서 결국 박성태에게 넘어갔다.], [[박성태]](투니버스) ||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 겸 전투원. ~~그리고 일당 내 변태1~~ ~~[듀발|성형외과 의사].~~ 일명 '''검은 다리 상디'''. 여자들한테~~만~~ 굉장히 매너가 좋고 여자를 굉장히 밝히는 색골이면서 실력 좋은 요리사. 상디가 오기 전까지의 밀짚모자 일당의 식생활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루피는 출항하자마자 식량과 식수를 동내고 버섯을 뜯어먹으며 살았고 조로는 루피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계획성 없는 것은 똑같기에 식량이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바다 괴수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괴수 없으면 아사~~. 우솝은 자그마한 낚시는 곧잘 하곤 했으며 나미는 그럭저럭 요리를 잘 했지만 '''유료''' 였다(…).]전투력이 상위권이기 때문에 [[몽키 D. 루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일당 3대 주력 전투원. 그의 애칭은 검은 다리로 명성이 나 있다.
요리 실력이 매우 뛰어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맛, 영양, 시각 모두 만족시키는 멋진 음식을 만들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재료도 금방 파악해 뛰어난 요리로 승화시키며, 이 와중에도 쓸데없이 재료를 낭비하거나 그냥 버리는 일이 없다. 칼질 솜씨 또한 수준급. 상디의 요리를 먹고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작중에선 한 명도 없으며, 상디 또한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상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상 수 십,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상태는 '''늑골골절에 타박상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요리사답게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식량 관리도 더불어 하고 있는데 [[고잉 메리호]] 시절에는 늘 [[몽키 D. 루피|어떤 바보 식충이]] 때문에 식량이 없어져서 종종 나미에게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사자고 조르기도 했으나 [[사우전드 써니 호]]로 바뀐 이후에는 [[프랑키]]가 직접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만들어 준 덕분에 식량 도난 문제는 없어졌다. ~~그리고 2년뒤, 루피는 패기를 배워왔다.~~
늘 검은 수트를 입고 있고 전투에서는 오로지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이는 전투에서 요리사의 도구인 손이나 식칼을 쓰지 않으려는 신념의 발로로, 은인이자 스승인 붉은 발 [[wiki:"제프(원피스)" 제프]]에게 배운 것이다. 다만 '[[매드매드 완제|라면 면발을 갑옷으로 입은 상대]]'처럼 상대방이 식재료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드물게 식칼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완제가 입었던 라면 면발 갑옷 한정으로, 갑옷을 해체한 뒤에는 식칼을 집어넣고 완제 본인은 원래대로 발차기만으로 상대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게 보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담배를 피우다 결국 골초가 됐는데도 미각이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면 손에 담배 냄새가 흥건히 묻어서 요리에도 냄새가 베일 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의 프로필에서 쵸파가 상디에게 느껴진느 향기는 담배와 해산물 냄새라고 되어있는데, 수트에는 담배 냄새가 베어있어도 요리전 손의 위생 관리에는 철저한 모양] 또한 담배는 해상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항상 항해생활을 해야되사 시중에서 구입하기 보단 직접 제작하는듯 하다.[* 클리크와의 전투후 루피를 간호하느라 상디의 방이 나왔는데 담배를 직접 제작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샤키]처럼 담배를 피는 또 다른 캐릭터들의 담배와 비교해봐도 형태가 좀 다르다. 일반 담배와 달리 만드는 담배 특유의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묘하게 리얼하다.] 더불어 수영의 달인으로서 [[어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폐활량까지 갖추고 있으니 필시 원피스의 담배 자체가 현실의 담배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상디의 과거회상에서 담배를 처음 피우는 상디를 보고 제프가 "관둬. 담배 같을걸 피우면 혀가 돌아버린다."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거참. ~~아니면 상디의 미각과 폐활량이 패기를 쓸 줄 알거나~~]
사내놈들은 돌 보듯 하지만 여자에게는 태도가 180도로 돌변한다. 1부 당시에도 미녀 앞에선 그야말로 [[뿅가죽네]] 모드로 돌변해서 헤롱헤롱거리고, 2부에서는 이게 더욱 심해져서 접촉이나 포옹이라도 했다가는 코피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거주 주민들은 둘쨰치고 '''토착 생물들까지 전부 [[오카마]]인 섬'''에서 '''[[wiki:"국방부 퀘스트" 2년 동안]] 지냈으니''' 그럴 만도...--불쌍한 상디를 애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의없게 변태짓이나 추파를 부리는 건 아니고, 오버액션은 심하게 들어가지만 기본적으로 예의는 지키면서 외모/연령 불문하고 극진하게 '모신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제프에게 받은 세뇌급 교육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호칭에서도 여성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게, 연하인 나미에겐 나미누님[* 애니메이션에서는 나미씨(상).], 연상인 로빈에겐 로빈양[* 원판에선 로빈쨩. 친숙한 사이에 부르는 호칭], 이라고 부른다.[* 연하인 [[네펠타리 비비]](16세)에게는 '~누님'이나 '~씨'가 아니라 '~양(쨩)' 이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면 뭔가 미묘할 수도 있으나, 이는 잠시 밀짚모자 일당의 배에 체류중이라 낮설 수 있는 비비를 배려함과 동시에 왕족 신분이라 공주님이라는 존칭에 익숙해져 있을 비비를 배려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OH 젠틀맨 OH~~] 그래서인지 상디를 부담스러워하긴 해도 직접적으로 싫다고 한 여성은 아직까지는 거의 없다.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오죽하면 [[wiki:"모네(원피스)" 모네]]를 보고도 공격하지 못하는 걸 G-5 해군들이 "이보쇼? 형님, 여자는 못 건드린다고고 했는데 그러다가 적인 여자가 공격하여 목숨이 위험하면 어쩔 거요?" 라고 묻자 단번에 '''그냥 죽을 거야''' 라고 즉답하여 해군들이 기겁했다. 물론 모네와 싸우던 [[롤로노아 조로]]를 막지 않고 자신은 건드리지 않지만 동료가 적인 여자와 싸워 베던지 날리던 그건 막을 생각이 없다는 걸 이야기했지만.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상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상태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노스 블루]][* 노스 블루 출신이라면 알고 있는 [[몽블랑 노랜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출신이지만 어릴 무렵 여객선 오빗 호의 견습 요리사로 이스트 블루에 넘어와 있었던 듯하다. 한가지 의문인 건 어떻게 노스블루에서 이스트 블루로 넘어왔냐는 점. 본인의 말로는 이사왔다는데 자세한 건 아직 나오진 않았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이후 제프를 따라가 함께 해상 레스토랑 [[발라티에]]를 열고 요리사가 되어 부주방장까지 되었다. 그러다 [wiki:"몽키 D. 루피" 루피]와 만나고, 클리크 해적단을 상대로 공투해서 승리한다. 그 뒤 루피의 동료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올 블루를 찾고 싶은 마음에 따라가고 싶긴 한데 제프 때문에 미적거리다가 제프 본인과 여타 동료 요리사들의 배려로[* 상디의 요리를 모욕해서 어그로를 끌어서 빡친 상디가 스스로 나가도록 하는 것. 물론 상디는 처음엔 낚였지만 곧 알아채버렸다. 만화판에서는 수프를 바닥에 뿌려버렸는데 애니에서는 맛 없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변경.] 루피를 따라나서서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제프와 레스토랑 동료들과 헤어지는 씬이 정말 명장면이다.]
- 윤종신 . . . . 127회 일치
||<bgcolor=#201e1f> {{{#FFFFFF '''예명/가명'''}}} ||<(> 신경필[* 소속사 문제로 1996년 015B 6집 앨범에서 쓴 가명. 비슷한 경우로 3집과 5집엔 [[이승환|이철민이라는 가명의 가수가 있었다]].], 탁영[* 하림 1집 작사 당시 사용한 가명. 박진영의 파티피플 출연 당시 '탁한 영혼'이라는 뜻이라고 말했으나, 탁한 그림자(影)일 수도 있다. [[http://yoonjongshin.org/xe/index.php?mid=shinsmind&page=12&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37771|한자 출처]]], 풍운아[* 디지털 싱글로 트로트곡 <사랑의 뒷북> 발매 당시] ||
||<bgcolor=#201e1f> {{{#FFFFFF '''성좌/띠'''}}} ||<(> [[전갈자리]]/[[닭띠]] ||
||<bgcolor=#201e1f> {{{#FFFFFF '''본관'''}}} ||<(> [[윤(성씨)|칠원 윤씨]][* 칠원 윤씨 39세손 '鍾'자 항렬이다.] ||
||<bgcolor=#201e1f> {{{#FFFFFF '''배우자'''}}} ||<(> [* 2015년 현재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해서 좀 유명해졌지만, 예전에 [[윔블던]] 주니어 부분 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었던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테니스 선수였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결승전 상대 선수는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였던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2005년에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결혼했다. 2015년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종신보다 키가 크다.] ||
||<bgcolor=#201e1f> {{{#FFFFFF '''자녀'''}}} ||<(>||
||<bgcolor=#201e1f> {{{#FFFFFF '''별명'''}}} ||<(> 종신옹, 윤자기[* 방송에서 애드립을 잘 받아먹어서 [[인자기]]에서 유래했다.], 음악왕, 깐족종신, 종신보험, 보급형 [[정우성]], [br] 게임계 복덩이[* 1박2일 복불복 게임에서 김승우에게 말하길, 자칭 게임계 복덩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입수, 야외취침, 아침결식 등 다 걸렸다.] 만년대리[* 유희열이 그의 음악 작업 방식을 음도에서 평하기를],예능계 늦둥이, [br] [[정두홍]], 윰, 다산(多産) 윤종신, 종심씨 ||
>그에 대해서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음유시인]]" 그 자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진중권]]
[[1969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2남 중 [[광주]]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대구광역시|대구]] [[중구(대구)|중구]]로 상경, 그 뒤 [[대원 외국어학교]][*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 후[*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본래 음악을 좋아하여 노래나 작곡을 취미로 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꿈이 가수, 작곡가는 아니어서 진지하게 노력했던 건 아닌데 우연히 교내 가요제에 참가했다가 수상 후 운이 좋아서 데뷔한 케이스라고 한다. 만약 자신이 신학과에 합격했다면 목사가 되고, 가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도 찬송가의 영향이 크다고도 하는데, 어릴 적부터 기독교 음악을 많이 접한 탓이라고 한다.[*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낸 곡이 '[[환생(윤종신)|환생]]'이다. 꽤나 가스펠 스타일인 곡이다.] 원주캠퍼스 홍보비디오에도 나왔고 라디오 생방송에서도 '원주캠퍼스에 다닐 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는 등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하는 편이다.
015B를 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솔로 발라드 가수로 커리어를 쌓았고, 작사, 작곡을 배워 군 제대 후에는 작품주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나름]]대로 발라드계에서 입지전적인 케이스다. 객원보컬이 프로 작곡가, 작사가로 인정받은 것은 [[대한민국]] 음악 역사상 윤종신이 유일하다.
2000년대 초, 영화 OST를 프로듀싱하며 [[카메오]]로 출연, 이후 논스톱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도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라디오 스타]], [[패밀리가 떴다]], [[나는 가수다]] 등 굴지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예능 늦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실 윤종신은 90년대 당시부터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입담과 예능감을 길러왔기에 올드팬에게는 윤종신의 활약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2006년,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와 결혼했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 전미라는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MBC SPORTS+|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반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 힐을 안 신어도 가 더 크다[*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름은 의 이름 끝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발군의 시간관리능력을 보여주며''' 음악가, 예능인, 연예기획자의 세 직업 분야에서 두루 성과를 내고 있다.
* 마지막으로, 윤종신은 2010년대 초 자신이 속했던 1인기획사 신스타운을 확장하여 미스틱89라는 기획사를 세워 자신의 옛 동료인 조정치, 김연우, 하림 등은 물론 투개월, 에디킴, 박재정, 박지윤, 퓨어킴 등 특색 있는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다. 미스틱89는 김영철, 아나운서 박지윤 등의 방송인도 매니징함은 물론 가족액터스와 인수합병하며 명실상부한 종합 연예기획사로 거듭났고, 회사명도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로 바뀌었다. 무려 SM의 자회사로 인수. 현재 윤종신은 회사 경영에서는 물러나, 대표 프로듀서 직을 맡고 있다. 소속사의 음악적 활동에 대해서는 전권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윤종신은 [[싱어송라이터]]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015B]] 객원 보컬 출신으로 솔로앨범을 내면서 작사/작곡까지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발전했다. [[유영석]]은 싱어송라이터를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김연우(가수)|보컬에서]] [[성시경|작편곡을]] [[윤하|시작하면서]] [[박효신|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 [[윤상(가수)|전문 작곡가가 보컬에 참여하면서]] [[유희열|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이다. 윤종신은 바로 전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윤종신이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문적으로 편곡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곡이 전문 작곡가와의 공동 작곡이고 편곡을 맡긴 경우가 많다. 디렉터스컷 방송을 보면 음표도 잘 못 그린다. 이 때문에 편곡 및 채보를 위한 서포터가 필요한데, 이들이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이다.
윤종신은 015B 시절 정석원을 만나면서 작사 작곡에 눈이 떴다고 술회했다. 화성학을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최초로 스스로 작사/작곡/프로듀싱한 4집 타이틀곡 '부디'를 처음 들은 정원영 밴드의 정원영이 "윤종신 이 자식 뭐하는 놈이지..."라고 농담으로 디스하기도 했다고...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amonde&logNo=140120884879&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출처]]
대개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때문에 작곡 당시에는 본인이 직접 친 통기타 반주에 본인 목소리로 가이드를 넣는 것 같다. 다분히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가이드 곡이라도 편곡이 상당부분 완성된 상태로 나가고, 가이드도 실력파 보컬들이 맡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팝송으로 들릴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상태로 가수들에게 전달된다. 디렉터스컷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윤종신이 이효리에게 곡을 주려고 기타로 반주를 치고 멜로디를 흥얼거려서 녹음한 뒤 메일로 보냈는데 거절당했다고 한다. 헌데 나중에 이효리가 자기한테 굉장히 세련된 팝송을 들려주길래 "야 이거 좋다.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봤더니 이효리에게 온 가이드 곡이었다나. 자기는 통기타를 쳐서 흥얼흥얼 녹음한 뒤 "나중에 편곡이 되면 여기에 이런 비트가 들어갈거야, 상상되니?" 하는 식인데 이효리가 받는 가이드 곡들은 이미 완성품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타공인 국내 탑클래스 작사가'''
작곡에서 윤종신을 그저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작사만큼은 이견없이 그 수준을 인정하는 편. 역시 국문과 전공자답다. 윤종신의 작사에서는 인간 본성의 여러 모습을 대하는 그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평.
[[디렉터스 컷]]에서 작사에 대해 윤종신 본인이 직접 얘기한 바로는 자기는 작사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물론 겸손의 의미로 한 말이며, 옆에서 하림이 '근데 형은 잘하잖아요'라고 바로 되받아쳤다. 가사도 굉장히 금방 쓴다고 하며, '''거리에서'''도 2절 가사가 없었는데 즉석에서 만들어줬다고 한다.
- 전효성 . . . . 127회 일치
||<#00CED1> '''{{{#000000 이름}}}''' ||<(> 전효성(全烋星[* 혹은 全孝盛. 중국, 홍콩, 타이완에서 앞의 한자보다 더 자주 쓰인다. 全孝成이란 한자도 부분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공식적으로 全烋星이라고 소속사에서 운영중인 시크릿 팬카페에서 밝혔다. 烋에는 '아름다울/경사스러울 휴' 외에도 '거들먹거릴/뽐낼 효'라는 훈음이 있다.], Jun Hyo-seong) ||
[[대한민국]]의 [[걸그룹]] [[시크릿(아이돌)|시크릿]]의 전 리더이자 최연장자.[* 본인과 [[정하나(시크릿)|하나]] 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인 [[한선화|선화]], [[송지은|지은]]이 1살 아래이고, 4명의 멤버 중 생일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2차에서 탈락했으나, 그녀를 눈여겨본 회사 관계자의 권유로 [[엠넷]] <배틀신화> 서바이벌 공개 오디션에[* 여기서 배출한 가수들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승리(빅뱅)|승리]],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손가인]], [[G.NA|최지나]]가 있다. 정작 배틀은 [[모닝구 무스메]] 7기 오디션 합격자처럼 [[가든파이브|대박 망했다.]]--그리고 [[G.NA|지나]]도 불미스러운 일로 [[망했어요]]--] 참가하게 되고, 참가자 200명 중 당당히 12명 안에 들면서 우승까지 하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fSARVWG4d9Q|우승]] 후 효성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는 연습생 중 막내였다. 연습생 시절 학교 성적이 좋은 편으로, 전교 3등까지 해봤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연습생들의 성적 저하를 걱정하는 보호자들에게 회사 관계자들이 해주는 고정 멘트로 "본인 [[의지]]가 있고 [[노력]]이 있으면 전교 3등도 해요"가 생겼다고 한다.[* 1대100에서 2번 1인으로 나가서 2연속 7단계까지 진출했고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는 8인의 멤버들 중 쪽지시험에서 유일하게 3연속 합격하였다.]
2011년 SBS 토크쇼 [[강심장]]에 출연하여 이때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이 시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효성의 부친은 딸의 꿈을 위해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계속 숨겨왔었고,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효성은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의 효성은 데뷔가 무산되고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효성이 시크릿으로 데뷔 후 <샤이보이>로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했을 때 통곡을 해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였다고 한다.
데뷔 초에는 [[유키스]]의 신동호와 함께 [[소년소녀가요백서]] MC를 맡았지만 얼마 못 가서 프로그램 자체가 종영했다.
박경림이 휴가로 약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박경림의 추천으로 일주일간 임시 별밤지기로 활동하며 별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전효성은 [[방용국]]과 [[젤로]]가 [[B.A.P]]로 데뷔하기 전 유닛활동 겸인 Bang&Zelo의 <Never Give Up> [[http://www.youtube.com/watch?v=Sd4s1aVXKpU&list=UULLlKJZVbeUTzwjVM7Lx9kg&index=130|뮤직비디오]]와 [[http://www.youtube.com/watch?v=b4AMbmqn05Q&list=UULLlKJZVbeUTzwjVM7Lx9kg|티져 영상]]에서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원래 Bang&Zelo 컴백무대에 특별 게스트로도 무대에 설 예정이었지만 [[http://junglegalaxy.wo.tc/3523|아래에 언급할 부상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안습...
2014년 5월 30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2276417|퍼펙트 월드의 신작 게임이자 무협게임인 <영웅의 별 : 신조협려>의 단독 모델로 발탁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baJAFR681r4|티저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3LmQ4-P5UUQ|광고]] 전효성은 이 광고에서 [[소용녀]] 역할로 나오며 [[http://blog.naver.com/unwiredk/220029120118|게임 로딩 화면 중간중간에 소용녀의 모습을 한 전효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070984|2015년 3월 10일부터 MBC Every1에서 방영되는 <천생연분 리턴즈>에 출연 확정되었다.]] 프로그램 특성 상 팬들은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팬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생연분 리턴즈 프로그램 자체가 연애 프로그램이다보니...
2015년 3월 5일 Mnet 개국 20주년으로 꾸려진 [[엠카운트다운]] 스페셜 스테이지에 초청되어 [[이효리]]의 노래인 <텐미닛>과 <유고걸> 무대를 펼쳐 상큼하게 잘 소화해냈다고 호평을 받았다. 물론 이효리 위상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효리를 재현하는 무대에 전효성이 초청받았다는 것 만으로도 현재 아이돌 섹시가수의 대표주자라는 의미부여가 가능할듯... 다만 사전녹화를 새벽 1시에 해서 못가는 팬들이 많아서 아쉬웠다고... 의상은 이효리가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5030614191298299&type=1&outlink=1|활동 당시 직접 입었던 의상을 선물받았다고 한다.]]
2015년 3월 12일 제 27회 <한국 PD대상>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참여하였다.
2015년 3월 27일 KBS W의 <뷰티바이블 2015>에 [[제국의아이들]]의 [[황광희]]와 [[모델]] [[강승현(모델)|강승현]]과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200&g_serial=889987&rrf=nv|공동 MC로 낙점되었다.]] 뷰티바이블 MC 발탁 후 시크릿 멤버들이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9583547890170019|개천에서 용났다고(...) 축하해줬다고 한다.]] 뷰티바이블 2015가 S/S 시즌(봄/여름)과 F/W 시즌(가을/겨울)으로 나누어지는데 F/W 시즌에 진행자가 변동되지 않음에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47452| F/W 시즌에도 MC로 출연하게 되었다.]]
5월 15일 뮤직뱅크에서 [[지누션]]의 <한번 더 말해줘> 무대의 피쳐링 가수로 참여하였다. 무대 막바지에 지누션과 함께 자신의 솔로곡 <반해>의 하이라이트 안무 두가지를 선보이며 깨알같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19일 <반해> 활동 기간 중 엠넷 [[4가지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속마음, 개인적인 이야기 등을 털어놓았다.~~저는 '가슴'이 아니라 '가수'입니다.~~ 주변인물로는 시크릿의 멤버 송지은, 오소녀 시절 같은 멤버였던 [[지나]], [[일밤]] [[승부의 신]]에 출연했을 때 프로그램 진행을 보던 김수로가 출연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http://naver.me/xe2lYtzh|4가지쇼 하이라이트 클립]]을 참고하길 바란다.
[[넥슨]]의 모바일 게임인 <영웅의 군단>에 자신을 닮은 캐릭터가 출시되었다. 외모가 제법 비슷하고 [[https://twitter.com/Secretimehs/status/621195446719897600|본인도 마음에 들어하는 모양. ~~문제는 할줄을 모른단 거다(...).~~]]
12월 26일 2015 [[KBS 연예대상]]에 최우수 아이디어상의 시상자로 나섰다.
2016년 2월 12일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 시즌 4에 합류한다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888639&cid=1012951&gid=999339|#]] 자세한 내용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출연 멤버/여군 특집]]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여담으로 [[차오루]]는 2세 아래의 "전효성 선배님은 몸매가 좋다"고 말했다.
5월 22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였다. 남성 출연자들이 많았던 탓에 좋은 성적이 예상되었고 전후반 통합 2위를 거두었다.
2018년 10월 29일 토미상회 엔터테인먼트와 새로 계약했음을 알렸으나, [[TS엔터테인먼트]]가 전속계약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이후 11월 14일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TS와의 관계를 일단락했다. 승소로 TS 측에서 전효성에게 1억 3000여만원과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경축 탈 TS!!-- 소송이 끝난 뒤 자신의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후련한 마음을 표출하기도...[[https://www.instagram.com/p/BqJLhWKgkdx/?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0ae4h7tbvsnj|#]][[https://www.instagram.com/p/BqJ-IUlAaVT/?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my9qr2d0tmde|#]]
앨범 이름은 <Top Secret>, 트랙은 3개로, <여자를 몰라>, '''<Good-night Kiss>''', <밤이 싫어요>. ~~그 [[탑시]]가 아니다~~
- 정재학 (1856년) . . . . 124회 일치
|배우자 = 이남숙
|자녀 = [[정응원]], [[정지원]], [[정종원]], [[정필원]], [[정응원]], [[정사원]], [[정혜원]]
'''정재학''' (鄭在學, 1858~1940)은 [[대한민국]] [[금융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은행산업의 대부다 .<ref name="ReferenceA">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에서는 [[은행]] 경영진들이 [[관료]]나 [[왕실]] 지방 토호 가운데에서 배출됐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주먹으로 일군 자금으로 55세 무렵 [[은행장]]에 오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ref name="ReferenceB">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667~670</ref>
그는 일제 치하에서 갖은 방해와 공작을 딛고 1913년 [[대구은행]](1928년 이후 경상합동은행)을 설립하여 1940년 타계할 때까지 최대주주로서 [[은행장]] 자리를 지켰다.<ref name="ReferenceB"/><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일제하 금융인</ref>
27년 간 이어진 그의 은행경영 노하우는 아들과 손자에게 넘겨졌다. 숱한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계은행]] 자본의 총집결지였던 [[조흥은행]]에서 같은 가문의 한국인 행장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5대 [[정종원]] 행장과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에 오른 2대 [[정운용]] 행장이 각각 그의 3남이고 장손이다. [[정재학]]이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투입한 민족자본은 정씨 가문 지분으로 상속되면서 고스란히 [[조흥은행]]에 남겨졌다.<ref name="ReferenceC"><<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83~87</ref><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ref>서광운, <<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였던 [[고승제]]박사<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03779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명사전 고승제(高承濟)]</ref> 는 1991년 펴낸 저서에서 "정재학의 그림자는 조흥은행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3남 정종원은 1974년 11월 [[조흥은행]] 상무 [[취체역]](상무이사), 1952년에는 전무 취체역 (전무이사)을 거쳐 1956년부터 1961년 4월30일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재학]]의 그림자가 [[조흥은행]]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지표로 볼 수 있다" " 정재학의 후손 20여명이 아직 조흥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방은행 창설했던 정재학의 후손답게 그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큰 잘못이 없겠다" 고 적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69</ref>
===자수성가===
[[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영일) 정씨 정석은과 손남산 사이의 1남 3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출처|날짜=2015-1-12|1883년 이남숙(1864년생)과 결혼 한 뒤 1885년 장남 정응원이 태어나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다.}} 아내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근검절약 해오면서 부인에게 옷 한 벌도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낡아 찢어진 아내의 속옷을 발견하곤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0</ref>
[[정재학]]은 1905년 [[군수]]자리에 오른다. 고급관료와 친분을 맺어 순흥군수에 이어 개령군수를 맡게 됐다. 전임 군수와 달리 세금도 낮춰주고 밥 굶는 이들이 없게했다. 장사꾼들에게는 밑천도 대줬다. 그는 군수 직책에 있으면서 은행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06 년 8월 [[대구상공은행]]이 설립 될 당시 이병학, 이종면 등의 부호들과 힘을 합쳐 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감사역도 맡았다.<ref name="ReferenceA"/><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0일 7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 -12</ref>
1907년 일본인들이 장악한 구한말 중앙은행은 신 통화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민간은행에 제시한다. 일반서민들은 신 통화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에 파격적인 특혜를 줬다. [[대구상공은행]]에 대해 20만원(현 240억 원)을 2년 거치 무이자 무담보로 빌려주겠다고 제시했다. 2년 동안 요즘 돈 240억 원을 이자 없이 쓸 수 있었다.
[[정재학]]과 은행 주요 주주들은 이 돈을 투자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아울러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해외 상품들이 일본인들의 손을 거쳐 대량으로 유입되고 대구에도 연초 공장 등이 들어섰다. 아울러 미곡 무역, 운수업 등이 번창하면서 대출 수요도 늘어났다. 정재학도 이 무렵 자신의 자본으로 독자적인 은행을 만들 준비에 나섰다 .
정재학은 26살 연하인 사카모토 순지(板本俊資 1884~?) 란 일본인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사카모토는 20살이던 1904년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 대구에서 잡화상을 차렸다. 사업이 번창해 대구역 앞에서 창고사업도 병행했다 . 이 때 [[경상농공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정재학과 안면을 트게 됐다. 정재학은 일본 젊은이로부터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아가 사카모토는 후일 [[대구은행]]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1910년 조국이 일본 치하에 들어가자 [[정재학]]은 은행 감사 경험을 바탕으로 민족은행 설립을 결정한다. 일본인들이 규합해 설립한 일본계은행에 대한 견제에 공감한 경북지역에 민족 자본가들도 적극 참여했다.
경상합동은행에서도 정재학의 경영권 장악력이 다시금 발휘되면서 [[경남은행]] 출신 인사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다. 1939년 그는 맏손자 [[정운용]]을 이사 겸 부장으로 발탁하여 경영 수업을 받게 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5</ref><ref name="ReferenceB"/>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로 꼽히는 [[고승제]] 박사는 "한일합방 이후 수많은 민족자본은행이 설립됐지만 정재학처럼 30년 가까이 시종 은행경영의 실권을 장악한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는 [[대구은행]]의 자본금을 7년 만에 4배나 증액하는 등 경영자로서의 총력을 다 바쳤다"고 밝혔다. 아울러 "다른 부호들이 한 우물을 파지 않고 다방면으로 사업을 넓혀가는 데 비해 정재학은 오로지 [[대구은행]]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4~215</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 name="ReferenceB"/>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1921년 결혼, 여아를 뒀지만 1930년 아내가 사망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대구 남산동 거주 김분조와 재혼했다. 그런데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정인택 수기 겨자씨한알 =2</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ref>경향신문 1966년 9월 28일 3면</ref><ref>경향신문 1967년 8월 17일 8면</ref>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10일 7면</ref>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 정재학 행장은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먼 친척의 아들을 위해 기꺼이 진학추천서를 써줬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23회 일치
디시전이 왜 발동 안되는지 모르겠다면 해당 디시전에 표시된 붉은 X자에 마우스를 올리고 기다려보자.
대부분의 디시전은 돈을 요구한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디시전은 국가의 공업력 수준에 비례해 소모되는 자금이 늘어난다.
* 발동 조건: 자금 100 미만
* 공업력이 15 미만인 경우 자금 500
* 공업력이 50 미만인 경우 자금 1,500
* 공업력이 80 미만일 경우 자금 2,000
* 공업력이 80 이상일 경우 자금 3,000
* 발동 조건: 중앙계획, 필요 자금은 국가의 공업 수준에 따라 다름
* Invest in National Infrastructures(국가주도 기반시설 투자)
* 발동 조건: 중앙계획, 필요 자금은 국가의 공업 수준과 투자의 정도에 따라 다름
중앙계획 중심의 경제 전용. 30일 후 랜덤한 프로빈스 1-5 곳의 기반시설이 10% 오른다. 몇개의 프로빈스에 적용되는지는 발동 당시 돈을 얼마나 붓냐에 따라 다르다. 최대치로 투자할 경우 경제 슬라이드가 중앙 계획으로 돌아가니 주의.
* Invest in National Research(국가주도 연구 투자)
* 발동 조건: 중앙계획, 필요 자금은 국가의 공업 수준과 투자의 정도에 따라 다름
중앙계획 중심의 경제 전용. 30일 후 랜덤한 미습득 기술 2개의 청사진을 획득하며 연구력 보정도 달린다. 얼마나 달리는지는 돈을 얼마나 붓냐에 따라 다르다. 최대치로 투자할 경우 경제 슬라이드가 중앙 계획으로 돌아가니 주의.
* 발동 조건: 자금 800, 보급품 200
자금과 보급품을 소모해 워게임을 벌인다. 랜덤한 장군 몇몇의 레벨이 상승한다.
* 발동 조건: 자금 500.
1933년 시나리오의 강대국들이 할 수 있는 정책.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하지 못하는 대공황의 여파를 정부가 해결한다. 자금을 500 쏟아부어 산업효율을 10% 올리고 불만도를 2% 떨어뜨린다. 정치 슬라이더가 중앙 계획으로 한 칸 이동한다.
* 발동 조건: "뱅크 런" 이벤트 발생. 필요 자금은 국가의 공업 수준에 따라 다름.
* 공업력이 15 미만인 경우 자금 100
- 맥스 페인/줄거리 . . . . 122회 일치
현재의 [[뉴욕]]. 경찰 병력이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건물로 몰려드는 가운데, 에이저 코퍼레이션 건물 꼭대기에 한 남자가 저격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맥스가 뉴저지 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 왔을때, 집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방에는 V자와 주사기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집 안에 쳐들어온 것이었다. 맥스는 마침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아 911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전화 건너편의 여자는 도와줄 수 없어 유감이라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맥스는 권총을 뽑아들고 2층으로 향한다. 2층에서는 미셸의 비명소리와 아기가 우는 소리,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맥스는 아기방에서 튀어나온 남자들을 쏴죽이고는 아기방으로 들어갔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맥스는 미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침실로 달려갔지만 모든게 늦은 후였다. 맥스는 미셸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한다.
조사 결과 맥스의 가족을 죽인 자들은 제작자를 알수 없는 마약 "발키리"를 투약한 상태였다. 가족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맥스는 알렉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하겠다고 말한다.
로스코 거리 역에서 내린 맥스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진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곳에는 교통경찰 하나가 죽어 널부러져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맥스는 권총을 뽑아 든 후 수색을 계속한다. 역 안에는 정체모를 일당들이 들이닥쳐 교통경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맥스는 교통경찰관 한명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교통경찰관은 자신을 지하철 통제실로 데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맥스가 교통경찰관을 지하철 통제실 앞까지 데려다 주자 교통경찰관은 통제실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문을 연다. 하지만 통제실은 이미 괴한들에게 점령당해 있었고, 교통경찰관은 괴한의 산탄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맥스는 통제실 안에 있는 괴한들을 모두 처리하고는 전력이 끊겨있던 2호선에 전력을 공급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1940년대 초반에 폐쇄된 오래된 구역이었다. 맥스는 이곳에서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알렉스가 자신을 부른 이유였다고 생각했다.
맥스는 다시 폭탄이 설치된 문으로 돌아가 문을 폭파시킨다. 그 문은 현재 사용되는 구간의 개찰구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맥스는 그곳에 있는 알렉스를 만난다. 둘은 은행 강도가 루피노의 부하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던 와중, 괴한 하나가 몰래 다가와서 볼더를 쏴 죽이고는 도망간다. 맥스는 자신을 습격해오는 루피노의 부하들을 해치우며 지하철역에서 탈출한다.
맥스는 경찰이 몰려드는 로스코 지하철 역을 떠나 잭 루피노의 호텔로 갔다. 루피노는 슬럼가에 위치한 그 호텔에서 성매매, 마약 판매, 청부살인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맥스는 그가 알렉스를 죽이고 자신을 범인으로 몰면 될줄 알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피니토 형제를 죽인 맥스는 그들의 책상 위에서 [[비니 고그니티]]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는 루피노의 오른팔로 일하는 찌질이었다. 편지에는 피니토 형제의 호텔에서 발키리의 판매가 이루어 질 것이며, 리코 무에르테가 이를 도와줄 것이니 그를 정말 잘 대해주라고 써져있었다. 호텔에서 발키리 판매가 이루어 진다는 뜻은, 호텔을 지키는 마피아들의 머릿수가 늘어나고, 많은 문이 잠겨 있으며, 발키리에 찌든 마약 중독자들이 호텔을 매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맥스는 덤벼오는 마피아와 마약 중독자들을 해치우며 호텔 이곳 저곳을 뒤진다. 그러던 중 라디오와 TV 뉴스를 통해 자신이 알렉스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맥스는 3층에 있는 무에르테의 방에서 펀치넬로 패밀리의 수장인 안젤로 펀치넬로가 쓴 편지를 찾아낸다. 안젤로가 발키리에 연루되었다는 발견되지 않은 증거였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페인은 편지를 구겨서 버려버린다.
* 리코 무에르테의 방에서 왼쪽으로 가면 나무로 막힌 문이 있다. 나무를 부수고 보면 창문이라는걸 알게되는데, 해당 창문으로 나가 핏자국을 따라서 가면 비밀 방이 등장한다. 해당 지역에서 화염병을 얻을 수 있다.
맥스는 보일러실에서 의자에 묶인채로 죽은 남자와 그 옆에 버려진 피묻은 야구방망이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가 실린 신문지가 놓여져 있었다.
호텔 밖으로 나간 맥스는 잭 루피노를 잡기 위해 그의 본거지로 향한다. 그러던 중 본거지 앞 자동차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메르세데스 벤츠 한대가 그 자리를 벗어나는걸 목격한다. 그 벤츠의 조수석에는 펀치넬로 마피아의 눈엣가시였던 러시아계 범죄조직의 두목, [[블라디미르 렘]]이 타고있었다. 블라드가 탄 벤츠는 루피노의 본거지에서 달아나던 중 유조차 한대를 엎어지게 해 큰 화재를 일으킨다. 이후 블라드가 루피노의 본거지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한다.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정문은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루피노의 사무실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앙 홀에 있는 공중전화서 [[알프레드 우든]]이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들이 오고 있고, 맥스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몇분 뒤, [[짐 브라부라]] 반장이 이끄는 경찰들이 루피노의 본거지를 포위하고 SWAT을 진입시킨다. 맥스는 SWAT과 벽 하나를 놓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가지만 결국 경찰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맥스는 4층까지 올라가지만, 폭발로 인해 계단이 무너지며 더이상 올라갈 수 없게 된다. 그러자 맥스는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가기 위해 발코니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 옆 건물 역시 마피아들이 있는 건물이었다. 마피아들은 두꺼운 강철문을 잠그고 암호를 말하는 사람만 들여보내주고 있었다. 맥스는 강철문을 통과할 방법을 찾기 위해 또다른 건물을 수색한다. 그리고 그 건물에서 마피아 하나를 붙잡아와 암호를 말하게 한다. 마피아는 문이 열리자 동료들과 합세해 맥스를 공격하지만 결국 몰살당한다.
맥스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나온 것은 [[비니 고그니티]]였다. 비니는 자길 잡을 수 있을 거냐는 투의 말을 하며 맥스에게 총을 쏘지만 오히려 맥스의 총에 배를 맞게 된다. 비니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맥스를 처리하도록 한 후 배를 움켜쥐고 도망간다.
결국 막다른 곳에 몰린 비니는 부하들과 함께 맥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맥스는 부하들을 모두 해치우고 비니를 쓰러뜨린다. 맥스는 비니의 멱살을 잡고 루피노의 위치를 불게 시킨다. 하지만 비니가 엿먹으라느니, 과잉 진압이라느니 하며 말하기를 거부하자, 맥스는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총은 비어있었지만 겁에 질린 비니는 루피노가 라그나록에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감옥에 넣어달라고 애원한다. 맥스는 "네 권리는 네 장례식에서나 읽히게 될거다,"라며 빈 총을 던져버리고 비니를 떠난다.
정문이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매표소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살인과 폭풍의 세대"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다. 바이킹 세계의 종말과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인 끔찍한 겨울, 비도적적인 범죄가 만연하며 모든 인간성이 사라진 순간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맥스는 책 표지의 설명을 보고나서 라그나록이 어떤 곳이며, 그 소유자들이 어떤 작자들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 김영철(배우) . . . . 121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 아내 이문희[* 미스롯데 출신이자 TBC 공채 20기 연기자이다. 김영철은 공채 18기. 3년간의 연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2남 ||
>'''[[내가 고자라니|개소리 집어쳐!! 무슨 님을 만난다는 거야![br]그리고, 무슨 늬우스? 공산당을 선전하는 늬우스 말인가? 거짓으로 학생과 시민들을 우롱하고 속여 온 너희들을, 오늘 단죄하러 왔다. 나 김두한이다.[br]공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br][[4달러|오케이, 땡큐! 오케이! 4딸라!]][br][[국회 오물 투척 사건|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우리들 마음 속의 영원한 [[궁예(태조 왕건)|궁예]]이자 [[김두한(야인시대)|의송 김두한]].'''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태종(조선)|이방원]],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태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남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태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남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남자]], [[공주의 남자]],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출연. 그 중 [[위기의 남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반기, 2012년 상반기, 2012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상단의 학력부분을 보면 알수 있듯이 원래는 연기전공이 아니라 체육전공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학창시절에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노는 아이'''였다고. 권투, 유도(공인 4단),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자나 꾀러 명동에 나갔다가, 선배연기자인 [[이정길]]이 하는 연극을 보고 연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야인시대]] 2부에서 중장년 김두한을 맡았는데, 당시에는 그저 1부의 히트에 힘입은 2부라는것 말고는 특별한 점은 없었으나 수 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는 바람에 희한한 방향으로 주가가 상승한 배우이다. 또 예능에서 개그맨 장동민이 달콤한 인생의 대사를 재밌게 살려서 김영철까지 인지도가 더 많이 올라갔다.
[[주현]]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양동근]]의 출세작인 1992년작 KBS 드라마 [[형]]에서 고생 끝에 출세한후 냉혹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동생 역할을 맡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아출신인데 막노동꾼으로 동생을 공부시키는데 전력한 형의 밑에서 현실을 비관해서 운동권에 투신해서 감옥에 갔다온 후, 냉혹한 사업가로 변신해서 가족도 떠나가는 역할이었다.[* 자신의 형을 거둬 먹여준 은인에게 부동산 사기를 치기 까지 했다.]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서 형을 생각하면서 [[하모니카]]를 부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1990년대는 개인사업 등의 사정으로 활동이 약간 줄어들어 TV에서는 [[아침 드라마]] 전문 불륜 배우[* 이 기믹으로 MBC의 2002년작 [[월화 드라마]] [[위기의 남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도로 소비된 시절이다. KBS 일일드라마 히트작인 [[정 때문에]]의 남기남 역이 대표적인 이 시절 김영철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 역도 중간에 하차하는 역이라 큰 인상은 주지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태조 왕건]]의 [[궁예(태조 왕건)|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이 두 역할은 김영철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기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물론 최고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했던 궁예와는 다르게 김두한 역을 맡았을때는 기존의 인기요소였던 격투, 활극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는 바람에 1부보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였는데 몇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어 현재는 이쪽 김두한이 안재모 김두한보다 더 인기가 좋다.]
그야말로 1980년대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를 집대성한 명연기를 보여주었고, 종영 이후에도 회자되는 김영철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전까지 장편 사극 출연 경력은 1991년 KBS에서 방송한 '왕도'의 [[홍국영]] 역과 드라마 '토지'에서 김환 역으로 출연한 것과 외에 KBS 특별극 땅울림에서 고산자 [[김정호]] 역을 맡은 정도에 불과했으나, 이 역할을 맡은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출연하는 배우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는 [[최수종]]과 꽤나 비슷하다.
<태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반효정]])와 태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태.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절,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절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남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옴 마니 반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태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태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당시 1999년~2000년대 초반에 [[개그콘서트]]로 큰 인기를 얻은 동명이인 [[김영철(개그맨)|개그맨 "김영철"]]의 활약으로 중견 배우 "김영철"로서의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였는데, [[태조 왕건]]으로 대부분 중년배우에게 큰 관심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김영철이 누구냐?"고 물으면 "궁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태조 왕건' 이후 어떤 새로운 사극이 나와서 다른 배우가 궁예 역할을 한다해도 김영철만큼 할 수 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궁예 = 김영철"이라는 확고한 공식을 만든 그야말로 사극계의 [[레전설]].
[[야인시대]]에서도 후반기에 명연기를 보였으나, 해방 당시의 김두한은 20대 후반이었는데 김영철은 당시 50에 근접한 나이라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고[* 광복을 기점으로 김두한 배역이 김영철로 교체되는데,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28세지만 당시 김영철 배우의 나이는 만 50세, 연나이 51세였다. 김두한이 사망한 나이보다 겨우 3살 적었다. 그래서 김두한과 동년배 혹은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문영철이나 이정재 등은 훨씬 젊어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김영철 배우의 외모를 젊게 잡아 40세라고 쳤어도 김두한 역으로의 교체는 김두한이 약 40세 정도인 4대 총선 도전때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DTs3S_44w|이 자가 바로 20대입니다 어머니! 뭐,뭐라고?]]-- 후반기 줄거리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방영 당시에는 [[안재모]]가 맡은 청년기 시절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주목은 태조 왕건만 못했다. 야인시대의 후반기 방송분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주 시청자였다. 하지만 종영후에는 청년기가 잊혀진반면 후반기는 [[심영물|명언도 더 발굴되고 넷상에서 언급도 더 많이된다.]] 방영된지 10년도 넘게 지났음에도 김영철의 인생 연기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김영철이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인터넷에서는 [[태조 왕건]], [[야인시대]],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세 작품으로 개그용 패러디 제조기 배우가 되고 말았다.''' 상당한 내공의 배우였기때문에 연기력은 극찬을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김영철 주역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면서 임팩트가 컸던 세 인물[* [[궁예(태조 왕건)]], [[김두한(야인시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로 유명한 강사장.]은 비정상인 성격에 행적도 심할 정도로 황당했기 때문에 현재 합성물 필수요소로 쓰이는 수준. 물론 김영철 입장에서는 연기에 충실한 것이지만 배역 자체가 문제.
다만 배우 본인은 이렇게 강렬했던 궁예와 김두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태조 왕건의 후반부때 휴식을 취하다가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위기의 남자]]에 출연한적도 있고... 연기자는 어찌되었든 평생 연기를 해야하니까 이미지가 한쪽으로 고착되는 것은 사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SdOXX3gMU|뉴스 인터뷰 영상 링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궁예 이미지로 굳어지는게 다소 안타깝다는 뉘앙스로 직접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궁예 캐릭터에 애정도 있었는지 태조 왕건 이후 현대사인 [[서울 1945]]를 제외하면 한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2008년 [[대왕 세종]]에서 [[태종(조선)|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는데 그동안 사극 섭외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바로 궁예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86918|#]]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궁예와 김두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만으로 김영철이라는 배우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 본인이 그런 배역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서인석]]도 [[견훤(태조 왕건)|견훤]]으로 인해 이후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견훤 이미지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도영(1996) . . . . 121회 일치
||<width=20%><#FF0133><:>'''{{{#white 본명}}}'''||<(> 김동영(金東營)[* 동녘 '동', 경영할 '영'. "동쪽을 경영하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고.] / Kim Dong-Yeong [* 예명인 도영의 영문표기는 Do-Young 으로 쓰고있으나 본명인 동영의 영문표기는 로마자 표기법에 의해 Dong-Yeong이 맞다. (실제로 캐리어 네임택에서 yeong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
||<#FF0133><:>'''{{{#white 학력}}}'''||<(> 토평초등학교[br]구리중학교[br][[토평고등학교]](중퇴)[* 청소년 가요제에 나갔다가 [[SM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이 된 후 바로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http://www.instiz.net/pt/3737893|#]]] ||
||<#FF0133><:>'''{{{#white 별명}}}'''||<(> 도코몽[* 도영+코코몽.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도영이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닮았다는 말이 있어서], 토끼왕자, 도깽, 당근총각[* [[토끼]]를 닮아서 지어진 별명. 당근가게 망한 애라는 별명도 있다.], 또잉[* ‘도영’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따오윈’인 것을 모른 채 자신을 ‘또잉’이라고 소개해서 지어진 별명.], 우동[* “우리 동영이”의 줄임말. 비슷한 경우로, [[재현(NCT)|재현]]은 “우리 재현이” 즉 ‘우재’라는 별명이 있다.], 토평고 6대천왕[* 아이비클럽 일일카페에서 본인피셜 학교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멤버들피셜 멤버들앞에선 1대천왕이라고 한다고..형은 잘생긴 외모덕에 토평고4대천왕 출신.--], 미코[* 미성의 코러스. 뮤비뱅크에서 자신의 키워드로 써서], 도룡[* 도영+공룡. 언뜻 공룡도 닮아서], 왕증이[* 왕 큰데 앙증 맞아서(...) 그런데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하는 별명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왕증이라고 대답했다.], 팩폭남[* 팬들과 밀당하는 밀당남. ~~요정이라는 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 삼청이[* 청순 청아 청초(...)], 직진남[* 형인 공명과 똑같이 직진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 TV프로그램에서 형의 가상 와이프에게 직진질문을 한 것을 보여주었다.], 도영글래스[* 유리잔같이 소중히 다뤄야하는 존재로 가장 잘 삐지는 멤버이다. 태용의 전화에 그렇게 저장 되어있다.], 도영왕댜님[* 도영 자신이 정한 별명이다.], 도영임굼님[* SM 할로윈때 임금님 코스프레를 했는데 NCT 나잇나잇에서 임금님보단 유니크하게 임굼님이라고 도영이 바꾸었다.] ||
[[NCT]]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 부드럽고 편안하며 섹시한 느낌이 드는 [[미성]]이다. 감미롭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허스키한 미성의 소유자. 음색이 시원하고 청량하며 깨끗해서 이 아름다운 음색이 도영의 보컬 스타일의 최대 강점.
노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 그의 무대를 보면, 자신의 파트가 아님에도 가사를 곱씹는 장면이 종종 포착된다. 특히 [[위닷츄|WITHOUT YOU]] 무대를 보면 흥에 넘쳐하는 그의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https://youtu.be/L53QGmAUjsM|160606 엠카운트다운 스페셜 NCT U - WITHOUT YOU + 일곱 번째 감각 by플로라]] 발매된지 약 2년이 지난 2018년 5월 팬파티에서 또 이 노래를 불렀는데 언제나처럼 너무나 행복하게 부르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후에 라디오에서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웠고 2018년 들어 최고로 흥이 올랐던 순간이라고 밝히기도.
2016년 4월 29일 뮤직뱅크에서 [[TWICE]] [[지효]]와 듀엣으로 <All for you>를 불렀다. ~~듀엣 상대와 상당히 어색한지 차렷자세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의 깨끗한 음색을 엿볼 수 있다.[[https://youtu.be/N6oIUsqNfNg|160429 All For You - NCT U Doyoung (도영) X TWICE Jihyo (지효)]]
2017년 10월 13일에 SM STATION 2에서 [[구구단]] [[세정(구구단)]]과 부른 <별빛이 피면(Star Blossom)> 음원이 공개되었다. 여자키에 맞춰진 혼성 듀엣곡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러운 가성처리와 애드립, 진성으로 부른 코러스까지 거의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모든 음역대를 한 곡에서 완벽하게 보여준다. [[https://youtu.be/lpv-mkmddms|STAION 도영 X 세정 '별빛이 피면 (Star Blossom)'MV]]
2017년 2월 5일부터 [[SBS 인기가요]] MC를 맡아 약 1년 간 매주 일요일 생방송을 진행했다. 공동 엠씨는 갓세븐 [[진영(GOT7)|진영]], 블랙핑크 [[지수(블랙핑크)|지수]]로 셋의 이름 첫 글자를 따 진지도라고 불렸다.[* 출생년도는 진영 94 지수 95 도영 96으로 셋 중 막내 포지션.] 엔딩 멘트는 '''우리랑 함께 가요~'''[* 손목이나 모자, 선글라스, 마이크 등에 '인기가요'라는 글자를 붙이고 숨겨줬다 보여준 후 '인기가요~ 우리랑 함께 가요~'를 외치는 방식.] 진영의 증언에 따르면 3MC 중 제일 대본을 틀리지 않는 멤버라고 한다.[* 딱 한 번 틀린적이 있는데 928회에서 엔딩 멘트인 '우리랑 함께가요~' 타이밍을 놓친 것. 실수를 눈치채고는 그 회차 1위였던 선미의 '가시나'를 패러디해 '인기가요 함께 가시나~' 로 마무리했다. 앵콜 무대에서 웃으며 팔을 툭 치는 진영과 아쉬워하는 도영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덤.] 2018년 2월 [[마크(NCT)|마크]]가 [[쇼! 음악중심]]의 새 MC가 되자 마크에게 음악프로 진행을 알려주는 V live를 기획하려고도 했다는데 그즈음 갑자기 인기가요 MC를 그만두게 되며 무산. 마지막 방송에서 인사를 하며 눈물이 살짝 맺히기도 했는데 방송 후 열린 막방 기념 V live에서는 울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47M3qOhp8|또잉가요 모음1]] [[https://www.youtube.com/watch?v=PZi7_MLGYn8|또잉가요 모음2]]
그 외에도 쇼케이스나 V live 등에서 크고 작은 MC 역할을 종종 맡고 있으며 인기가요 하차 이후로도 다른 음악방송의 스페셜 MC로 몇 번 출연하였다. 자세한 것은 하단의 개인활동 참조.
* 2016년 02월 15일 디자인유나이티드 브랜드 모델로 태용, 유타 와 함께 발탁되었다.
||<#BBE309><:>'''{{{#white 발매일자}}}''' ||<#BBE309><:>'''{{{#white 앨범 명}}}''' ||<#BBE309><:>'''{{{#white 그룹}}}''' ||<#BBE309><:>'''{{{#white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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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1월 12일 || 텐데...(Timeless) || NCT U || 텐데...(Timeless)[* [[SM STATION2]]의 40번째 주자이며, SM Rookies 시절 Rookies Show에서 첫 발표를 했던 곡이다.] || ||
|| KBS COOL FM 라디오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 스페셜 DJ[* 스케쥴 상 자리 비운 력디(려욱 디제이) 대타. 신인임에도 슈키라에 한 번 출연한 뒤 작가분들이 마음에 드셨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일 DJ를 맡았다.] || 2016년 7월 6일 || (수) 오후 10:00~ 자정 주파수 89.1MHz ||
|| SBS 파워 FM 라디오 '''NCT의 night night!''' 스페셜 DJ[* 예능으로 자리를 비운 재현을 대신하여 쟈니와 함께했다. 디제이 애칭은 ‘도디' 태용과 하루씩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 2017년 8월 15, 17, 19일 || 오후 11:00~12:00 주파수 107.7MHz ||
* 오른쪽 얼굴에 더 자신있어하는 것 같다. 화보나 단체 사진 등에서 보통 오른쪽 얼굴을 보이는 편. 하지만 한쪽 얼굴만 쓰면 그쪽만 발달한다는 속설을 듣고 요즘은 정면으로 합의보고 있다고(...)
* 집안에서 막내로 말투나 발음, 행동이 모태애교다. ㄴ받침에 ㄴ을 첨가해서 발음할 때가 많은데 "이천넌" "재현니" "미안내" 등. 팬들이 귀여운 말투에 반해 "미안내"를 미안해 대신 사용한다. --십덕 포인트다.-- 라디오 등에서 팬들이 몇번 사연을 보낸적이 있어서 도영 본인도 자신의 말투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 밝히기로는 비염 때문에 그런 발음이 나오는 거라고. 루키즈 시절 ~ 데뷔 초에는 좀 더 심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MC를 볼 때는 의도적으로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거의 그런 발음을 찾아볼수 없으나 아직도 브이앱 등 편안한 방송에서는 귀여운 말투가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nF_dSpySAVA|ㄴ발음모음]]
* 도영의 형은 남성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공명(배우)|공명]]이다. 형인 공명과는 사이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서로 싸운 일도 별로 없고 부모님이 모두 집안에서 막내였던터라 막내인 도영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위기여서 형도 도영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리를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차에 치이자마자 바로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3달 넘게 휠체어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형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형이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앨범이 나오거나 도영이 방송에 나오면 종종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레귤러 활동 당시 첫방 날에 공명이 직접 찾아와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였다.
* 스무 살 전까지는 외박금지라는 룰이 있어서 형이 20살 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놀러나가는 것을 부러워하고 본인도 20살이 되면 저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20살이 되던 새해에는 이미 SM 입사 이후인지라 숙소에 있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FTTTf6kd8|영상]]
* 어린 시절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모자가 있다. 2018년 어린이날 기념으로 트위터에 올려준 사진에도 어김없이 그 모자가 등장. 비슷한 버킷햇 모자를 쓰고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 정형돈 . . . . 121회 일치
| 활동영역 = [[사회자|MC]], [[희극 배우|희극인]]
| 가족 = 정운봉(부), 박경순(모), 슬하 2녀 <br/> 정유주, 정유하 (쌍둥이 자매)
| 배우자 = [[한유라]]
'''정형돈'''([[1978년]] [[2월 7일]]<ref>[https://entertain.v.daum.net/v/20160730070104091 정형돈,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시기"]</ref><ref>[https://www.fncent.com/JHD/b/introduce/10713 음력 1978년 2월 7일, 양력 1978년 3월 15일]</ref> ~ )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희극인]], [[사회자]]이다. 본관은 [[동래 정씨|동래]].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상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절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2001년까지 생산직으로 근무하였으며, 퇴사 후 곧바로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개그맨 [[박준형 (희극인)|박준형]]과 [[정종철]]로 대변되는 '갈갈이 패밀리' 극단에 입단하여 예비 개그맨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키워나가던 중, 2002년 실시한 제17회 [[KBS]] '신인 개그맨 선발대회'에 응시하여 동상으로 입상, KBS 1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동기는 [[김병만]], [[김다래 (희극인)|김다래]], [[권진영]], [[이정수 (희극인)|이정수]], [[김민정 (희극인)|김민정]], [[이경우]] 등이 있다.
[[2009년]] [[9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SBS TV|SBS]] 미스터리 특공대에서 만난 [[작가|방송작가]] [[한유라]]와 결혼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정형돈-한유라, 동료 연예인 축복 속 웨딩마치(종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42470|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이미영 기자|날짜=2009-09-13}}</ref>
[[2012년]] [[12월 11일]] 오전 6시11분, 13분에 태어난 두 딸(유주, 유하)의 아버지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단독] 정형돈, 쌍둥이 아빠 되다.. 딸부자 등극|url=http://cast.wowtv.co.kr/20121211/A201212110127.html|출판사=|저자=한국경제TV 기자|날짜=2011-12-11|확인날짜=2012-12-1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214052956/http://cast.wowtv.co.kr/20121211/A201212110127.html|보존날짜=2012-12-14|깨진링크=예}}</ref> [[2016년]] [[10월 5일]], [[주간 아이돌]]로 전격 복귀하였으며, [[신현준 (1968년)|신현준]]과 한중 합작 영화 시나리오 공동 집필을 시작으로 작가로서의 데뷔를 알렸다.
* [[KBS]] 《[[폭소클럽]] - 디카클럽, 댄서의 전설, 개그 리플을 달아주세요 & 객석공감, 사랑을 위하여, 100자 동화, 여걸 난타》
* [[KBS]] 《[[자유선언 토요대작전]] - 박장대소》
* [[MBC]] 《[[능력자들]]》
* [[tvN]] 《[[시간을 달리는 남자]]》
* [[KBS]] 《연예대상 (12월 27일) : 수상자》
* [[KBS]] 《연예대상 (12월 25일) : 수상자》
* [[MBC]] 《방송연예대상 (12월 29일) : 시상자 및 수상자》
* [[MBC]] 《말달리자 13회 (7월 24일) : 게스트》
* [[MBC]] 《방송연예대상 (12월 29일) : 후보자》
* [[MBC]] 《말달리자 37회 (2월 4일) : 인터뷰》
* [[MBC]] 《말달리자 40회 (2월 25일) : 게스트》
* [[SBS]] 《진실게임 372, 373회 (6월 5일, 12일) : 문제 출제자》
- 김국진(MC) . . . . 119회 일치
[include(틀:감자골 4인방)]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
|| '''가족''' ||<(> 3형제 중 [[막내]][br]배우자 [[강수지]][br]의붓딸 황비비아나[* 강수지가 전 남편과 결혼했을 때 얻은 딸이다. 김국진 본인에게는 친자녀가 없었다.] ||
|| '''종교''' ||<(> [[가톨릭|천주교]]([[세례명]]: 가브리엘)[* 전처 이윤성과 같은 가톨릭 교우였다. 현 아내 강수지는 개신교 신자이다.] ||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강원도]] [[인제군]] 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개그맨 7기.[* 물론 이쪽은 제명당하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명이인 성우 [[김국진(성우)|김국진]]과 같은 기수며 거기에 그 동명이인의 성우도 동향 출신이다.] 1990년대 초반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태'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태.[* 이 항목 2번 문단에 자세하게 설명되있지만 결국엔 코미디계 선배들과 윗분들의 괘씸죄라는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항이기 때문에 근래에는 그런거 없이 코미디계 후배들도 꼬박꼬박 선배 대접을 잘 해준다. 당시 동참하진 않았지만 감자골을 제외한 [[유재석]], [[남희석]]을 비롯한 동기들이 평소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살벌한 그 코미디계에서도 똥군기 없이 성격좋기로 유명한 감자골 멤버들이였기 때문에 그런걸지도. ]
[[2007년]] [[황금어장#s-2|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남자의 자격]]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 [[감자골]] 사태 ==
이 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당시 SBS의 코미디언 영입전략 덕분에 기회를 빨리 잡았다.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김국진이 [[김용만]],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이른바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통해 완전히 메워버렸다.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연예대상|KBS 코미디대상]]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문제는 감자골의 인기로 인한 혹사. 이들은 스케줄이 너무 빡세서 방송사에다 조정을 요구했으나 KBS는 전속 계약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김용만이 무리한 스케줄에 탈이 나서 드러눕고 만다. 그러자 열받은 김국진이 [[1993년]] [[1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하고 박수홍, 김수용이 동참, 나머지 둘도 결국 하차를 하게 된다. 사실 이 때 화가 나서 가장 먼저 도피성 유학을 제안하고 계획을 짠 사람은 박수홍이었다는 모양
평소 신인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이들을 아니꼽게 보던 코미디계 선배들은 ~~무리한 스케쥴은 니들 사정~~ 프로그램을 갑자기 그만 둔 것은 프로에게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며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KBS 희극인실의 최고참인 [[임하룡]]이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송사 측에 항변한 것일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면서 그들을 옹호해 준 이경규와 함께 '''유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1993년]] [[2월]]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였다!]]" 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혔다. 19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감자골은 ~~[[이경규]]가 선처를 호소해서 선배들에게 줄빳다만 맞고~~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 ~~니들 밥줄 끊을 염려 없으니 놔줘라~~ 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방송에서 감자골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태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대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 2016년 10월 26일 라스에서 박수홍이 밝힌 바로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비자 발급 인터뷰 문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마약 경험과 총기소지 상황에 '예'를 체크하는 바람에 실제로 미국에 몇년간 입국 금지처분을 받았다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처음엔 김수용이 미국에 오기 싫어 거짓말 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김수용은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을 할 생각으로 [[밴쿠버]]로 건너갔다고 한다. 골프장을 가로질러서 국경을 건널 생각이었으나 절벽이라 못 넘었고, 멕시코 마약 밀매단에 섞여서 건너오는 방법(...)과 국경 근처에서 헤엄쳐서 건너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만 하고 돌아왔다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본인이 출연해서 직접 언급.]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국진은 김용만과 함께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고.
[[1995년]], 미국에서 1년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반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개그계에서 은퇴한 [[박세민]] [[이원승]], '청춘행진곡'이 폐지되어 SBS로 이적했던 [[김창준]] [[김은태]] [[이웅호]] 등의 대안으로 김국진과 김용만을 영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전성기에는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그 당시 김국진의 영향력은 숨 쉬는것도 김국진이 쉬면 유행어가 될 정도라고 회자될정도로 컸으며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 김국진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여서 [[이병헌]]과 [[H.O.T.]] 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미니시리즈(MBC '반달곰 내사랑')를 찍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거기다 그당시 김국진은 좀 어색하긴해도 테마게임을 통해 정극 연기가 되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드라마등에도 자주 얼굴을 비출수 있었던 것이 플러스요인.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 히트를 기록해서 도산위기였던 기업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수업시간에도 언급될 정도.[* 물론 이전에 [[배삼룡]]의 '삼룡사와'도 있긴 한데, 삼룡사와는 배삼룡 소유의 음료회사에서 출시한 제품이다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삼룡사와는 '파는 곳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본인 회사가 아니었으면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증이 될 듯.] 사측에서 IMF 당시의 기업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드린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김국진이 개런티 없이 캐릭터 사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품은 대박났지만 그가 받은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의 [[대인배]] 인증은 여기서부터--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은근히 양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창렬]]의 반대사례~~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절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가수)|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개그맨 부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를 보라~~ ~~다른 항목의 1위와 그 아래 순위와의 격차가 많이 안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1위를 한것만 보더라도....~~ ~~솔직히 은퇴 후에, 그것도 H.O.T를 내려앉히고 1위를 찍고 있는 서태지가 더 대단한데?~~ ~~근데 배우랑 탤런트 차이가 뭐지...[*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배우는 충무로에서 주로 활동하는 영화 출연 연기자, 탤런트는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로 구분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현재는 배우와 탤런트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이 시절 김국진은 딱히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시트콤 뿐만 아니라 정극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는데, 이는 김국진을 좋아하는 시청자폭이 너무나 넓었기에 대박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정극 드라마 시청률은 망했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김국진은 MBC의 미니시리즈 "반달곰 내 사랑"에서 주인공인 체육교사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당시 전성기였던 [[송윤아]]가 상대역이자 여주인공인 한정은 역을 맡았다.] 코미디 활동보다는 연기자로 활동했다. 실제로 김국진은 정극과 희극의 경계에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테마게임에 출연했을 때도 당시 출연하던 개그맨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출연했던 콩트의 대다수도 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김국진은 자신의 '혀짧은 국진이' 캐릭터에 별로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 헌터X헌터/369화 . . . . 118회 일치
* 빌의 추정으로는 스틸 체인을 공유하는 대상은 크라피카와 연결돼 있어 상태가 영향을 받는 것. 크라피카가 눈을 뜨자 곧 왕비도 정신을 차린다.
* 깨어난 왕비와 크라피카는 바로 수색을 재개하는데, 크라피카가 시간 한계 상 제 4왕자 체리드니히의 수색을 우선하자 하자 오이토 왕비가 정색한다.
* 왕비는 그가 개인적인 득실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렸다 보지만, 크라피카는 와블 왕자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항변하며 신뢰해줄 것을 부탁한다.
* 제 1왕자 벤자민과 2왕자 카밀라는 이미 넨능력자가 충분히 있을 걸로 추측되며 제 3왕자 장레이는 이미 커넥션을 만들어 논외, 자연 체리드니히가 남는다.
* 정보가 없는데다 위험도가 높은 4왕자를 우선해야 한다 설득하고 시녀 시마노도 그에 맞장구를 쳐주나 왕비는 쉽게 의심을 풀지 않다.
* 그때 와블 왕자가 언제나처럼 크라피카를 친근해하며 손을 뻗는 모습을 보고 왕비의 생각이 움직여 그의 뜻대로 체리드니히의 거처를 수색하기로 한다.
* 구로너 바퀴벌레는 4왕자 처소에 도달해보지도 못한 채, 통풍구 안에서 체리드니히의 넨수에게 잡아먹히고 리틀 아이는 강제로 해제된다.
* 크라피카는 낭비한 시간에 비하면 큰 소득이 없게 되자 난처해 하나 어쨌든 엠퍼러 타임을 종료할 수 있엇다. 그러나 제약에도 불구하고 몸에 무리가 크다.
* 왕비는 자신이 오해했음을 사과하며 자신에게도 넨능력을 가르쳐달라고 청하는데, 크라피카는 뜻밖에도 "죄송하다"고 대답하는데, 거절의 아니가 아니었다.
* 13왕자 마라얌 측에선 헌터 협회 소속 "베레리인테", 세반치 왕비 소속 "바리겐"이 파견. 바리겐 측은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 제 9왕자 할켄부르그 측에선 "세쥬르"와 "유히라이"를 보내는데, 그들을 포함해 경호원 전원이 할켄부르그의 손에 생긴 것과 같은 깃털 문양이 있다.
* 제 10왕자 카쵸와 11왕자 후게츠는 왠지 시녀를 보냈다. 후게츠의 시녀들은 보내진 것에 당황하나 카쵸 측 시녀들은 그 방을 떠난 것 자체를 기뻐한다.
* 8왕자 사레사레 측은 경비대장 "무샤호"를, 7왕자 루즈루스는 두아즐 왕비 소속병 "사토비"를 보낸다. 그는 크라피카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 5왕자 츠베파는 경비대장 마올과 경호원 "롱기"를 보내며 "무슨 수를 써서든, 와블 왕자를 포함하는 한이 있어도 크라피카를 동료로 해라"고 지시.
* 장레이는 자신의 사설병 "텐프토리"를 보내며 "크라피카와 접촉하는 인물 마크해라."라고 지시. 텐프토리는 1왕자, 4왕자, 5왕자를 경계한다.
*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도착해 보니 의외로 헌터 협회 출신이나 넨능력이 있으면서 숨기고 있는 자들이 있는 걸 간파하고 언제든 싸울 수 있게 준비한다.
* 그때 넨능력으로 보이는 여자 인형이 나타나는데. 그 능력은 "사일런트 마조리티". 대체 누가 발동한 능력일까?
* 왕위계승전의 무대가 되어버린 BW호. 그러나 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바다 위에 떠있었다. 목적지는 암흑대륙. 출항 2일 째. 항구를 떠난지 18시간이 되는 시점이었다. [[크라피카]]가 눈을 뜬 시각이었다. 끔직한 파열음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던 크라피카. 그는 여전히 [[오이토]] 왕비의 주침실에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빌"이었다. 그는 크라피카가 의식을 되찾은 걸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리스크를 감수해더라도 의사를 불러야 되나 망설이던 참이었다. 크라피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몇 시냐고 물었다. 빌은 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크라피카가 실신했던 사실을 함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호원들은 그가 임무 수행 중인줄 알고 있다. 크라피카가 안달하지 않아도 빌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가 쓰러진지는 약 9시간. 크라피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나 지났을 줄이야. 크라피카는 왕비의 안위도 확인했다. 그리고 빌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왕비는 잠에서 깬 것처럼 일어났다. 그녀가 시마노에게 와블 왕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 빌이 크라피카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같은 시간에 쓰러지고, 다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크라피카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능력을 공유하는 인물도 같이, 그런 패턴이었다. 크라피카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혹시 엠퍼러 타임의 한계 시간이 3시간이란 의미인가? 그 한계를 넘으면 3배인 9시간의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빼앗은 능력에 따라 시간에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엠퍼러 타임은 여전히 발동 중이고 다음 번에도 3시간 만에 쓰러진다고 장담 할 수 없다. 정신을 잃기 직전 들었던 끔찍한 파열음. 그 폭음 같은 맥동이 신호일지 몰랐다.
* 다소 무례한 일이 될지 모르지만,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곧바로 다음 수색을 부탁했다. 왕비는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크라피카 못지 않게 초췌해 보였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가 12왕자 모모제의 거처부터 재개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크라피카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스틸 체인은 무리를 해서는 안 되는 능력이었고 이번 실신도 분명 그것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색 순서를 바꾼다. 이번엔 제 4왕자의 거처부터 시작한다.
- 유민상(개그맨) . . . . 116회 일치
||<tablebordercolor=#191970><rowbgcolor=#191970><tablealign=center><-5> {{{#FFD700 역대 1인 우승자}}}''' ||
|| '''신체''' ||<(> 187.9cm, 138kg[* JTBC 최고의 사랑에서 몸무게를 재봤는데 134.5kg이 나왔다. 그리고 최근 맛녀석에서 측정한 바 2킬로그램이 더 쪘다... 그리고 8월 13일에 방송한 [[개그 콘서트]] [[퀴즈카페]]에서도 [[서태훈]]이 "1, 3, 6 너 몸무게라고" 언급했다. 최근까지도 136kg라고 언급했으나 최근 아는 형님에서 ‘나이도 체중도 불혹’이란 식으로 140을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공복자들에서 유민상의 체중을 재 본 결과 최고몸무게인 145.2kg이 떴다..그 후 공복으로 인하여 142kg이 되었다. 공복후 방송에서 체중이 더 빠졌다고 언급했는데 138kg이다.] ||
|| '''성좌/십이지''' ||<(> [[천칭자리]]/[[양띠|노란양띠 (기미년)]] ||
'''현재 개콘을 대표하는 개그맨 중 하나이자 게임 유튜버'''.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20기 [[개그맨]]이자 [[유튜버]].[* 주로 게임 영상을 올린다. 특히 그가 즐겨하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녹화하여 업로드한다.--그런데 게임 녹화할 때 본인 얼굴이 아니라 [[개]]([[시바견]])의 얼굴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은 캠없이 방송했다가 [[돼지]]얼굴이 나온다--] [[1979년]] [[10월 9일]] [[한글날]]에 태어났다. 187.9cm,[* 프로필상 키는 185cm이나, 실제로는 187.9cm이다.비타민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을때 187.9cm가 나왔었다. 본인이 방송에서 자기 키 얘기를 할때 어떤 때는 188이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187이라고 했다가 하면서 약간 왔다갔다 하지만 그 외의 키를 말한 적은 없으므로 187~188 사이인 것은 확실하다. [[라디오 스타]]에서 185~6cm인 김구라와 대놓고 키로 비교했을때 더 컸으며, 개콘에서 대표 장신 개그맨 [[양상국]]과 서있을 때도 보면 약간 더 컸고, 이들보다 약간 더 큰 류근지와 있을때는 비슷해보이지만 몸매상 팔다리가 가는 류근지가 실제보다 더 커보이는 영향이 있어서 그런거지 유민상이 좀 더 크다. 이미 2010년에 달인에서 김병만이 유민상의 정수리 너머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하자, 류담이 "참고로 저 분 187cm입니다"~~[[김병만]] : 뭐? 몸무게가?~~ 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뚱뚱한 개그맨으로 유명한 [[김준현]], [[류담]], [[문세윤]] 같은 개그맨들이 옆에 있어도 작아보이게 만들 만큼~~ 거대하다. 귀여운 의미의 뚱뚱함이라기보다 씨름선수, 그것도 백두급 선수들과 동급 체격이다.] 140kg에 육박하는 거구.
[[개그 콘서트]]에서는 최초에는 비중이 별로 없었다가 [[뮤지컬(개그 콘서트)|뮤지컬]] 코너에 출연을 해서 좋은 반응을 보였고,[* 팀 - 사랑합니다 편을 보면 쓸쓸한 노년의 아버지 역을 맡아 관객을 울린 적이 있었다. 정극 연기도 꽤 잘하는 편이라 류담처럼 개탤맨 기질이 보였다.] 한 때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황현희]]한테 당하는 업자로 나왔고 [[초고속 카메라]]에서 열연했다가, [[파라킹 홈쇼핑]]에 출연했다.
그런데 소비자 고발 당시 맛을(?) 좀 봤는지 은근히 평범하고 건실한 사람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몰아가는''' 캐릭터를 하고 있는게 종종 보인다. 거기다 최근엔 여장에도 맛이 들리기 시작했는지 몇 몇 코너에서 보여준 [[OME]]스러운 여장 모습으로 [[선생 김봉투]]에서 고정 등장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개콘에서 자꾸 뚱뚱한 애들한테 여장을 시키는 이유는 [[신봉선]]이 사라진 뒤 대체할 만한 캐릭터가 없어서라고 한다.
한번은 개그콘서트 특집 때 뚱뚱한 것으로 [[정형돈]]과 [[김준현]]을 버로우시킨 적이 있다. 그때의 영상을 보면 정형돈과 김준현이 그냥 애기로 보인다. 본인도 뚱뚱하다는 컨셉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김준현]]과 세뇨리따 [[김지호(코미디언)|김지호]]가 들어왔을 때는 캐릭터 뺏길까봐 '''"7시 이후에 뭘 먹으면 집합"'''시켰다고 한다. ~~큰 세계는 실화 바탕이었다~~[[김준현]]도 [[네가지]]에서 어느 식당 주인이 자신을 유민상이라고 오해했다고 하자, '''"나는 비만이면 유민상은 초특급 울트라 비만이야!"'''라고 일갈했다. 그걸로도 모자란지 김준현은 네가지에서 개콘 돼지등급도를 공개했는데 자신은 스탠다드 돼지, [[김수영(코미디언)|김수영]]은 더이상 찔 데가 없는 프리미엄 돼지, [[김민경(개그우먼)|김민경]]은 여자로서는 드문 한정판이므로 리미티드 돼지인데, 유민상은 '''슈퍼 펜티엄 울트라 그랜드 스페셜 프리미엄 풀옵션 골드 클래스 돼지'''라고 밝혔다.[* 돼지등급도를 밝히기 직전에도 김준현은 유민상을 향해 "당신과 함께 한 7년이란 세월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면서 "아이디어 회의 전 '밥부터 먹자'고 하고 회의가 잘 안되면 '밥이나 먹자' 이런다. 또 [[짜장면]] 시키면 '밥이랑 먹자'고 한다"며 "내가 그 때부터 먹기 시작해 지금 밥을 끊지도 못한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팬클럽은 전비모(전국 비만인 모임). 가입조건은 남자 100kg 이상, 여자 80kg 이상이다.
게다가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김준현]], [[류담]]과 닮아서(사실 뚱뚱한 것일 뿐),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트위터 메인에는 "저 달인에 안나옵니다."라고 써있고 --근데 특별출연은 꽤 했다 달인 자체가 워낙 롱런 코너라 개콘 멤버들 모두 한두번씩은 엑스트라로라도 다 나와봤는데 유민상은 그 중에서도 좀 더 나온 편--, 한 번은 김준현으로 오해한 팬들의 지속적인 사인 요청에 귀찮아서 김준현이라고 사인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래서 살 빼라고 강요하는 건지도 모른다.
개그콘서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잘한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은 개그맨'''. 그래서 그런지 그가 맡은 코너들은 대부분 그런 아이디어가 필요한 코너들이 많다.
[[개그콘서트]] [[사랑이 라지]] 코너에서 [[김민경]]과 연인역할로 호흡을 맞췄으며, [[1대1]] 코너에서 출연자들이 [[김민경]]과의 러브라인을 강제로 엮었는데[* 예를 들면 작중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패러디한 이병원으로 출연 중인 [[이세진]]이 유민상이 내준 문제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글자배열을 뒤죽박죽 엉망으로 못 맞히고(정답은 프리마돈나, 이병원이 제시한 오답은 1차 시도때 마, 돈프--뿌--리나? 2차시도때 프--푸--~니돈마나?) "장난 나랑 지금하냐? 풀어야지 궁금증 풀어야지. 진짜 [[김민경]]이랑 사겨?"라는 등] [[맛있는 녀석들]]에서도 김민경과 러브라인까지.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이수지|그녀]]와 [[님과 함께(JTBC)]] 시즌2를 찍으면서 김민경과 러브라인은 날아갔다.
신혼 인테리어도 같이 꾸리고 먹방도 하고, 서로 고향에도 가보는 등 재밌는 장면을 많이 만들었는데, 갑자기 5월 30일 막방을 하고 코너를 내렸다. 후임은 김영철- 송은이 커플. 시청률 때문인가 의아해하는 시청자들에게 그 이유가 이듬해 1월에 밝혀지는데....
6월에는 이수지가 자신의 라디오 프로 가요광장에서 '진짜 오빠가 고백한다면 사귀어줄 수도..'라며 여운을 만들긴 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하다가, 2018년 1월 이수지가 일반인과 열애설이 터진다. 교제 기간은 1년으로 이미 첫 녹화 언저리부터 일반인과 교제 중이었던 것. 어차피 예능은 예능일 뿐인데 별로 욕하는 사람도 없고 유민상 역시 쿨한 반응이었다. 2018년 4월 14일 [[아는 형님]]에서 '이수지 열애설 터지고 심경 인터뷰가 밀려올 줄 알았는데 기자들에게 전화 한 통조차 없었다'며 씁쓸해 했다.
어쨌든 덕분에 공식적으로 러브라인을 이어주려는 어떤 시도도 아예 없어진 상태이며, 맛있는 녀석들에서 일반인 시청자와 썸을 타게 해주려는 기획을 한 두 번 보여주고는 끝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연시]]를 하며 흐뭇하게 만족하는 중...
[[폭소클럽]]에서 자신의 먹방 컨셉으로 데뷔한 이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먹방의 경지가 어느 정도냐면 예전에 유민상식 [[짬짜면]]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는데 정작 실상은 '''그냥 [[짜장면]] 1그릇과 [[짬뽕]] 1그릇을 동시에 시켜서 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두 그릇만 시키면 (2명이서) 금방 먹을줄 알고 그릇을 일찍 찾으러 오기 때문에 [[식신|상당히 속식]]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는 약과고,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안녕하세요가 아니라고 말해줘(약칭 안아줘)'에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안녕하세요 본편에서 아무도 이기지 못했던 '음료 빨리 마시는 여자'를 '''처음으로 이겼다.''' 그 여자가 다 마시는 데 약 6초가 걸린 반면 그는 '''2초나 앞당겨''' 다 마셔버린 것. 결국 이를 계기로 그 음료 빨리 마시는 여자는 음료 마시기 내기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먹방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언제는 후배들을 집합시켰을 때 누구도 왜 혼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다들 왜 그러냐고 하자, [[피자]] 박스를 발로 차면서 "이거 안보여? 엉!?". 자기 없을 때 맛있는 거 먹었다고 삐진 것. 후배들이 그때 빵 터졌는데, 문제는 그가 진심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애들이 박살났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똥군기가 갈수록 젊은층들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는 마당에서 이런 건 적절치 않은 행동이다. 단순히 피자박스가 발견됐다고 혼내는거면...그리고 개콘 초창기 후배들 집합시켜 갈구다가 퇴출된 선배들도 있었고, 당시 유민상도 피해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진심으로 유민상이 갈굴 리는 사실 없긴하다. 다만 개그맨들의 에피소드는 MSG가 많이 과다한 게 사실.
- 배영수 . . . . 114회 일치
||<:> '''등장곡''' || [[Queen]] 'We Will Rock You'[*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손승락]] 응원가의 원곡과 같다.] ||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배영수가 토미존 서저리를 받기 전까지의 플레이 스타일은 140km/h 중 후반 최고 155km/h 를 기록하는 강력한 속구,[* 특히 속구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테일링이 걸렸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진통제를 맞고 등판했던 06년도 한국시리즈에서도 패스트볼 테일링이 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균속도 130km/h 중후반의 슬라이더130km/h 후반에서 140km/h 정도의 평속이 나오는 스플리터 [* 잡는걸 보면 스플리터가 맞다. 배영수 본인도 스플리터를 던진다고 한다.] 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스타일로 [[존 스몰츠]] 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상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터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투수로 kbo 최정상급의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67949|#]]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1997488|#]]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0001114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LG 트윈스|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상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배영수의 최대 전성기 시절.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반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상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했던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기도 했다. 2006년 시즌엔 8승 9패로 비록 10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팔꿈치 부상을 가진 상태로 평균자책점 2.92(...).[* 2007년 [[윤석민(투수)|윤석민]], 2008~2009년 [[봉중근]], 2012년 [[류현진]], 2015~2016년 [[메릴 켈리]]의 [[윤석민상|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06년 득점지원율 0.97) 무려 1점도 되지 않는다!][* 뻥뻥 터지던 삼성의 타선은 이상하게도 배영수가 등판하던 날엔 버로우탔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그런다는 거. 그러나 2013년 드디어 타선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평균자책점이...] 심지어 후술한 것 처럼 2006년에는 정규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달고 뛴 선수의 기록이 저 정도라니... 아니, 이게 사람인가?
2004년 35경기 동안 4완투(2완봉) 하면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990년 [[선동열]] 이후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전체 투수로는 선동열 이후 배영수가 받기 전까지 1996년 [[구대성]]이 구원 투수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적 있다.][*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투수가 MVP를 수상하게 된다. 순서대로 [[손민한]](롯데)-[[류현진]](한화)-[[다니엘 리오스]](두산)-[[김광현]](SK)]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s-3.4|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으나, 팀 타선 또한 한점도 못내는 바람에 0대0 상황에서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며 해당 경기의 개인 노히트 노런 기록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 2004년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고 바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병맛같은~~ 규정이 있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무려 '''9차전'''까지 가는 등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경기 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규정은 2004년 한 해에만 시행되고 사라졌다.]에 걸려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경기 중 권오준이 안타를 맞아 팀 노히트 노런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안습]].
2005년에는 정규시즌 동안 11승을 올리면서 147개의 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오른적이 있다. 이 활약으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제1회 WBC]]의 국가대표 A팀에 승선하여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며, 특히 1라운드 A조 3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6회말 1사 후 봉중근을 구원하여 올라와 ⅔이닝을 잘 소화한 다음 7회말 일본의 공격 때 선두타자였던 [[스즈키 이치로|이치로]]를 초구부터 141km/h짜리 속구를 엉덩이 쪽으로 던져 맞춘 것이 유명해져 [[https://youtu.be/Gw8MEjLD3iM|배열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수술 후 2007 시즌은 재활로 보냈는데, 회복이 빠른데다 팔꿈치 통증이 없어 당초 예상보다 빠른 2008 시즌 전에 복귀했다. 평균구속은 130대 후반으로 떨어지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하게 되었지만 9승 8패 평균자책 4.55로 부상당했던 선수의 복귀 시즌 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시즌 막판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연이어 시속 140km 초반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기 때문에 내년 시즌을 더욱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10km'''로 표현하는 그의 구속을 2009 시즌 들어서도 되찾지 않자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성적마저 나빠지자 결국 5월, 1승 7패의 상태에서 계투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6월 11일에는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초 다시 1군에 합류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자, 결국 8월 18일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1&oid=018&aid=0002144793|#]]
2009년 최종성적은 23경기 75⅔이닝 1승 '''12패''' 평균자책 '''7.26'''.
그리고 4월 7일 대구에서 펼쳐진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구를 보이며 344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2009시즌의 악몽을 떨쳐내는 정말 눈물의 감격투 그 자체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4월 13일 잠실에서 펼쳐진 LG와의 원정경기에서도 7이닝 무실점 또 한번의 완벽투구를 보이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 때 당시 평균자책점은 무려 '''0.47'''! 하지만 이 후 문학 SK전과 대구 두산전에서 각각 5이닝 6실점(4자책), 5이닝 3실점의 내용을 보이며 다소 아쉽게 4월을 마무리 했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계투진에서도 다소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또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지는게 아닌가 했던 배영수였지만, 여름이 되면서 구속이 오르자 반등하기 시작했다. 6월 11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장원삼이 3이닝만에 5실점하며 조기강판되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8회까지 이닝을 책임지며 5이닝 동안 3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당시 등판에서 비록 8피안타(1피홈런)를 허용하기는 했으나, 사사구가 하나도 없으며 어느정도 살아난 구위와 날카로운 변화구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 효율적인 투구수로 5이닝을 책임져 준 것이 위안 삼을만한 부분이었다. 이어 6월 16일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이우선]]이 3이닝만에 6실점으로 무너지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3⅓이닝 동안 3탈삼진 무실점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이 후 삼성으로 경기를 가져오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역시 [[로나쌩 클럽]] 회원-- 이 경기로 인해 배영수는 3일 뒤인 6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등판했는데 5이닝 2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이며 괜찮은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3일만의 등판이었기 때문에 4회, 5회에 피안타가 늘어난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선발진 복귀 이 후 4선발 정도의 역할로써 다소 퐁당퐁당하는 피칭을 보여주다가, 7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타자)|김상수]]가 5회에만 악송구와 쉬운 땅볼타구를 잡지 못하는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yujwfjfTcX4|'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3실점(1자책)의 투구를 보이며 시즌 5승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두산전 투구보다 훨씬 양호한 내용을 보여주었기에 남은 시즌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이어 8월 26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경기에서는 무려 1852일만에 [[https://www.youtube.com/watch?v=K0UOM5FfD7U|'''세이브''']]까지 기록하게 되었는데, 9회 2사 후에 피안타를 허용한 [[권혁]]을 구원하러 등판한 배영수는 첫 타자 김동주에게는 안타를 허용했으나, 다음타자인 최준석을 상대로 바깥쪽에 시속 141km 속구를 정확하게 꽂아넣으며 루킹삼진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세이브를 올리게 되었다. 이 후 시즌 나머지 5번의 선발 및 구원 등판에서는 크게 무너지는 일 없이 무난하게 투구하며, 정규시즌을 마무리 했다.
- 손담비 . . . . 114회 일치
'''손담비'''(孫淡妃<ref>이해리 기자,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553460 손담비, '올해 목표? 무릎팍 도사 출연!']", 《노컷뉴스》, 2007년 6월 30일 작성</ref>, [[1983년]] [[9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백 환영.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2008년 2월 29일 게임 [[프리스톤테일2]]의 주제가 "Change the World"를 불렀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36656 네이버 뮤직 - Change The World (프리스톤테일 2) O.S.T] 《[[네이버]]》</ref> 같은 해 4월 29일 손담비는 첫 미니 앨범 ''[[Mini Album Vol.1]]''을 발매하며 컴백 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Bad Boy"로, 전 에스블러쉬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가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 손담비는 주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활동했다. "Bad Boy"는 발표한지 2주만에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검색어 순위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배드 보이', 29일 미니앨범 공개 후 '대박 조짐'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27079|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08년 4월 20일|확인날짜=2011-02-06}}</ref>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는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었고, 무대에서 입고나온 코르셋 스타일의 파격적인 의상도 많은 관심을 받아 홈페이지가 폭주하기까지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코르셋패션 "열기"...홈페이지 또 "혼수상태" |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3|출판사= 깜뉴스|저자=신명희 기자|날짜=2008년 5월 25일|확인날짜=}}</ref>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영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상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상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영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손담비는 싱글 "[[Cry Eye]]"로 데뷔했을 당시 안무중 [[크럼핑]]이라는 고난도 댄스를 이용해 아시아의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 받았고, 이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seg1"/> 마돈나의 안무를 담당했던 미스 프리시는 손담비의 춤을 보고 "흑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느낌과 동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실력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돈나 안무가 손담비 춤 '극찬'|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10204|출판사=노컷뉴스|저자=이지현|날짜=2008-04-24|확인날짜=2012-05-12}}</ref> 그러나, 손담비는 데뷔 때부터 가창력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2010년 "queen"의 MR 제거 영상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ref name="아츠"/> 《[[티브이데일리]]》의 유진모는 "손담비의 가창력은 형편 없다. 온통 이펙터로 치장한 보컬은 도대체 사람이 부르는지 기계로 만든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토요일밤에〉에는 가창력 때문에 키를 내려 노래의 맛이 더 떨어졌다. 아이비의 폭발력마저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 "아이비와 손담비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손담비 아이비 서인영 '섹시 여가수' 성적표|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유진모|날짜=2010-06-28|확인날짜=2012-05-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52125/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또한 데뷔 초부터 [[문지은]], [[선하]], 제이제이와 함께 "포스트 이효리"라는 호칭을 얻으며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선하·제이제이..'제2의 효리' 경쟁 뜨겁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80129090514652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8-01-29|확인날짜=2010-11-05}}</ref> 하지만 2008년 말 〈미쳤어〉로 히트를 치며 앞에 세 여가수중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가수가 되었다. 특히 〈미쳤어〉의 안무인 의자 춤은 손담비를 스타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탄생' 손담비의 전략은 바로 이것!|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10523482489834&nvr=y|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환횽희 연애패트롤|날짜=2009-01-21|확인날짜=2010-11-05}}</ref> 연이어 2008년 정규 1집 타이틀곡 〈토요일 밤에〉 역시 크게 히트하며 국내 최고의 여자 가수로 자리매김했다.<ref name="Mini 2"/> 이때부터 본격적인 포스트 이효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효리]] 역시 "손담비, 서인영, 아이비 까지는 기사에서 자신과 붙여 놔도 괜찮다"며 인터뷰중 손담비의 존재감을 인정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대항마` 손담비-서인영은 언제컴백?|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0&no=190546|출판사=스타투데이|저자=이현우 기자|날짜=2010-04-14|확인날짜=2010-11-07}}</ref> 하지만 손담비는 이효리와 라이벌 구도에 대해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이효리의 내공을 따라갈 수 없다"라며 말하기도 했다.<ref name=Bi2>{{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와 라이벌? 내공 따라갈 수 없어”|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출판사=리뷰스타|저자=홍샘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0-10-12}}{{깨진 링크|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 }}</ref>
손담비는 연습생 시절, 비의 어록들을 연습실에 붙여놓고 활동했다고 한다. 또한 "퍼포먼스 할 때 동작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어떤 걸 표현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과감한 몸짓,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표정 등 많은 부분에서 닮고 싶다"고 말하며 [[비욘세 놀스]]를 존경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비 어록, 연습실에 붙여놨다"|출판사=조이뉴스24|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68832|저자=박재덕|날짜=2007-06-27 |확인날짜=2011-02-01}}</ref> 또한 손담비는 "배우의 색깔과 가수의 색깔이 공존하는 분이다. 배우로서도 훌륭하고 가수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스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며 [[엄정화]]를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출판사=뉴스엔|날짜= 2009-04-17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ref> 이 외에 [[김완선]]과 [[마돈나]]에게 영향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집에서 혼자 춤춰요”(인터뷰①)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63628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윤현진|날짜=2009-04-17|확인날짜=2011-08-13}}</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새 앨범 컨셉트는 '김완선+마돈나'|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676958.htm?imgPath=entertain/broad/2009/0325/|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저자=김상호|날짜=2009-03-25|확인날짜=2011-08-13}}{{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676958.htm?imgPath=entertain%2Fbroad%2F2009%2F0325%2F }}</ref>
손담비는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면서 많은 상을 받았다. [[서울가요대상]]에서는 2009년,<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미쳤어’ 열풍 과시|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2121717531002|출판사=뉴스엔|저자=지형준|날짜=2009-02-12|확인날짜=2014-05-15}}</ref> 2010년,<ref>{{뉴스 인용|제목=아이돌, 그들을 위한 잔치! 서울가요대상 이변은 없었다(종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03202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날짜=2010-02-03|확인날짜=2014-05-15}}</ref> 2011년에 이은 3년 연속으로 본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3년 연속 본상 수상… “내겐 너무 특별한 상”|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98214|출판사=뉴스엔|저자=양나래|날짜=2011-01-20|확인날짜=2014-05-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30014/http://sstv.hankyung.com/?c=news&m=v&nid=98214#|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2009년에는 제24회 [[골든디스크상]]에서 디지털음원부문 본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골든디스크 본상’ 손담비 “이렇게 큰 무대에서 큰 상을 받다니…”|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091210205154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 bnt뉴스|저자=박영주|날짜=2009-12-10|확인날짜=2014-05-15}}</ref> 2009 [[SBS 연기대상]]에서는 《[[드림 (드라마)|드림]]》으로 뉴스타상을 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김범-이민정 등 12명,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url=http://osen.mt.co.kr/article/G0912310257|출판사=OSEN|저자=봉준영|날짜=2009-12-31|확인날짜=2014-05-15}}</ref> 2012년에는 《빛과 그림자》로 [[MBC 연기대상]] 특별기획 우수상,<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MBC 연기대상 ‘우수상’ 수상, “숟가락 얹은 것 뿐”|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6379|출판사=뉴데일리|저자=신성아|날짜=2012-12-31|확인날짜=2014-05-15}}</ref>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신인상 수상...인증샷 공개|url=http://osen.mt.co.kr/article/G1109511163|출판사=OSEN|저자=정유진|날짜=2012-12-06|확인날짜=2014-05-15}}</ref> 배우, 가수 이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200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특별상 베스트 브랜드상을 받았다.<ref name="2008MBC">{{웹 인용|url=http://www.imbc.com/broad/tv/ent/event/2008entertain/awards/|제목=2008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자 목록|출판사=[[MBC]]|웹사이트=[[MBC 방송연예대상]]|확인날짜=2011-02-16}}</ref>
2009년 데뷔한 [[NS윤지]]는 비슷한 장르와 외모때문에 제2의 손담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NS윤지는 직접 "더 많이 노력해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나 연기력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ref>{{뉴스 인용|제목=NS윤지 "제2의 손담비?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게요"(인터뷰)|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9579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10-06-02|확인날짜=2011-08-13}}</ref> 프로듀싱을 맡은 [[용감한 형제]]는 "프로듀서로서 제2의 손담비, 차세대 섹시디바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가수이다"라고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용감한형제, ‘제2의 손담비’로 NS윤지 찜!|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심재걸|날짜=2010-10-20|확인날짜=2011-08-1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08194946/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보존날짜=2014-08-08|깨진링크=예}}</ref> 같은 플레디스 소속이었던 [[헬로비너스]]는 "저희 롤 모델은 손담비 선배님이에요. 일본 등 해외 활동도 하고 계시고,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와 퍼포먼스가 정말 멋지세요. 선배님들의 장점만을 모아 저희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헬로비너스 “머리가 불에 타도 족발이 먼저!”…신개념 ‘털털 아이돌’ 등장|url=http://news.donga.com/3/all/20120615/47030992/2|출판사=[[동아닷컴]]|저자=박영욱, 오세훈|날짜=2012-06-15|확인날짜=2012-06-15}}</ref>
|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분류:손담비]][[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밀양 손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유승민(정치인) . . . . 112회 일치
|| '''별명''' ||<white><(> [[장인어른]], 기자들의 아이돌 ||
|| '''본관''' ||<white><(> [[유(성씨)|강릉 유씨]][* 강릉 유씨 32세손 '承'자 항렬이며 아버지인 유수호는 31세손 '鎬'자 항렬이다. 참고로 같은 항렬에 가수 [[스티브 유]](한국 활동명 유'승'준)가 있다. 유명 연예인인 [[유재석]](30세손 '재(載)'자 항렬)은 그의 할아버지 뻘이 된다.] ||
|| '''종교''' ||<white><(> [[불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031536001&code=910110|#]].][* 유승민 의원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12/0200000000AKR20170312026700001.HTML|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으나, 이는 [[개신교]] 신자라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기불릭|대선 과정에서 표 확장과 홍보를 위해]] [[교회]]를 찾았다.]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이념, 철학을 얘기하잖아요. 나는 보수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보수가 있어야 됩니다. 또 저처럼 진보개혁적인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렇게 해서 서로 상호경쟁하면서 발전해야죠. 그런데 유승민 대표는 그러한 면에서 저는 보수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차차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종교적인]] [[영세교|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80346&news_area=020&news_divide=&news_local=20&effect=4|반대했던 일]]이 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s-4|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친박계]]와 [[비박#s-4|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범[[여권]] 진영의 [[열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현재는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탈당 러쉬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다. [[민주평화당|분열 사태]]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친유|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 기자들의 아이돌 유승민 ==
> '''세상 모든 일은 정치가 다뤄야 할 일이고, 정치인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현안이고 아니고 그런 거 없다. 편안하게 물어봐 달라.''' 정치부 3년 하는 동안, 이런 말을 한 정치인은 유승민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 [[프레시안]] 소속 최하얀 기자 -
유승민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주제이건 질문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전달한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의 피드백은 물론이고, 어떤 주제이건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음과 동시에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끝까지 기자들을 응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기자들에게 내용을 되물으며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심지어 대선출마 간담회 이후 참석한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정치부에 오기 전 다른 부서에서 작성했던 특집 기사를 언급해 동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고도 한다. 또한 대개 언론에서 국회의원 인터뷰를 할 때는 보좌진에게 질문 내용이 전달되고, 그걸 의원 본인이 추려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유승민은 그런 과정이 없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한다.
'''19대 대선 유승민 후보 마크맨(전담취재기자)의 취재후기'''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파업 중인 노조대표들과 면담하는 유승민. 심지어 당시는 2012년 총선 직전이였다. 당시 여당이였던 [[한나라당]]의 심장과도 같은 [[대구광역시]]에서 출마하는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시 정부에 반대되는 소신을 지킨 것.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식]]을 잘 챙겨주세요.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출신의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당시 경선 상대였던 황진하 의원(육군 중장출신)과 맞붙을 당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국방위원회]]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회 같지만, 19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활동을 했던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첫 번째로 지역구 예산을 챙겨주기 어려우며, 두 번째로 완전하지 못한 민군통제원칙에 인한 제약, 마지막으로 피감기관이 적고 언론 노출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비인기 위원회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후반기에는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였고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2013년에는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특히나 한나라당의 토론 에이스이자 저격수였던 유승민이 국방위로 자리를 옮기자, 그야말로 국방부와 군 장성들을 압도하는(...) 논리와 날카로운 질의로 화제를 모았다. 예를들어 2009년 1월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관련하여 공군참모총장 본인의 주장을 본인의 발언으로 반박하게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 이승엽 . . . . 109회 일치
|수비 위치 = [[1루수]], [[지명타자]], [[투수]] (입단 당시)
* [[2012년]], [[2014년]] ~ [[2015년]] [[KBO 리그|KBO]] 골든 글러브(지명타자)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년 ~ 2010년)
'''해설자 경력'''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이승엽'''(李承燁, [[1976년]] [[10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야구]] 선수로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이다.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하여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재학 시절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ref>[[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132.html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ref>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ref>''[[OSEN]]'' - 2007년 1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url=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ref><ref name="homerun">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63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ref>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1995년]]에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해 장거리 타자로서 자질을 보였고,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백인천]]에게‘인천 부두 타법’을 전수받은 뒤 본격적인 홈런 타자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ref name="sword">스포츠 춘추 - 2010년 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65 "외다리 타법의 창시자, ‘야구는 도(道)이고, 타격은 검(劍)’"]</ref>
* [[1998년]]에 38개 홈런과 102타점을 기록하여 당시 [[타이론 우즈]]와 시즌 최다 홈런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2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팀의 주축 타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 [[2003년]] [[6월 22일]] [[SK 와이번스|SK]] 투수 [[김원형]]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여 일본의 [[오 사다하루]](27세 3개월 11일)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알렉스 로드리게스]](27세 8개월 6일)를 제치고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 고지(26세 10개월 4일)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투수 [[이정민 (1979년)|이정민]]을 상대로 56번째 홈런을 쳐내며 대한민국 프로야구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FA 자격을 취득한 후 [[2003년]] 12월에 계약했다. 연봉은 2억엔이었는데, 당시 팀 멤버 중 그를 제외하고 2억엔이 넘는 선수는 마무리 투수인 [[고바야시 마사히데]]밖에 없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런 파격 대우 때문에 팀 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팀이 타 선수들의 대우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진정됐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27일]] 개막전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의 에이스 투수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마쓰자카]]로부터 2루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좋았던 첫 시작과 달리 시즌 후 14홈런, 2할대 타율, 50타점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2005년]] 시즌 후 열린 [[2005년 아시아 시리즈|아시아 시리즈]]에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에 각각 3번과 6번 타자로 출전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이승엽.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는 그를 개막전 4번 타자로 파격 기용했는데, 이에 부응해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그의 맹활약과는 반대로 팀은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진과 부상자가 속출해 2005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전년도 시즌을 아주 저조한 성적으로 마친 그는 스스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불참을 선언하며 시범 대구에서만 8홈런을 기록하는 등 [[2009년]] 시즌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다. 기대에 부응하듯 시즌 초 3할 타율, 장타율 1위 등에도 오르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였으나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졌고, 7월에는 시즌 처음으로 2군에 내려갈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팀이 정규 시즌 우승 헹가래를 칠 때도 자리에 없었고, 결국엔 2군에서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2009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는 2대구에 선발 출장을 했으며, 그 외의 경기엔 대타로 주로 출전했다.
- 박석민 . . . . 107회 일치
|| '''포지션''' || [[지명타자]][* 2017년부터는 잔부상과 대상포진 등으로 사실상 지명타자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3루수]], [[1루수]][* 2017 WBC에서 1루수를 잠시 맡았고, 삼성 시절이였던 2008~2011 시즌에도 잠깐이나마 1루수를 본적이 있다.] ||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5> '''2014, 2015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3루수]]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수상자''' ||
> (동료들에게) '''이기려 하지 말고 즐기자고 했습니다.'''[* 2016년 KBO 플레이오프 2차전 인터뷰에서.]
삼성 팬들에게 평생 삼성에서 함께할 프랜차이즈로서 사랑받았지만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며 원소속팀과의 협상 결렬 후, 2015년 말 총액 최대 96억에 NC로 이적했으나... '''현재는 먹튀 그 자체.''' ~~이젠 3루수 [[노진혁]]한테 줘야할듯~~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프로 첫 홈런은 2004년 5월 20일 대 KIA전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간간히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뜬금타를 터트리면서 타격 면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덕분에 [[200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기도 했다. 2005년 4월 29일에는 1군에 복귀하자마자 선발 출장하여 당시 기아의 마무리였던 [[신용운]]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 참고로 신용운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30일에도 심정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음으로써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신용운]] 항목 참조.]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여담으로 7월 4일 대구 홈경기에서 [[이범석(야구선수)|이범석]]이 9회 2사까지 안타를 한 개도 허용하지 않은 가운데 인생주루를 선보이며 3루쪽 내야안타를 때려서 노히트노런을 저지한 경험이 있다. 당시 3루수는 [[김주형]].[* [[2017년 한국시리즈|그리고 9년 후]], 김주형은 생애 첫 출전한 한국시리즈에서 또다시 답이 없는 뇌수비로 KIA 팬들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다행히 [[양현종]]의 투혼으로 후속 타자들을 범타로 돌려세워 [[903 대첩|한국시리즈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사]]는 면했다.]
2009 시즌 목표치[* 한 영상인터뷰에서 2009시즌 목표를 0.315 홈런 32개라고 말해 한대화 코치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박한이에 이어 공식 정신병자 2호.]에 부상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 게다가 2008년 경기 도중 2루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다 다친 왼손 중지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해서 자주 2군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6월부터 살아나면서 박석민이 홈런을 치는 경기는 이긴다는 공식 성립. 그리고 마침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20홈런을 넘겼다. 이 해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 중 [[김상현(1980)|김상현]]을 제외하면 타석당 홈런 비율이 가장 높은 타자로 잔부상만 조심한다면 내년부턴 40홈런도 노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석당 사사구 비율이 급등하여 리그에서 가장 선구안이 좋은 타자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유난히 1루 악송구를 많이 범해 [[채태인]]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했으며,(…) [[양준혁]]의 은퇴 선언 및 손가락 부상의 악화로 인해 7월 말부터는 [[지명타자]]로서만 출장하여 시즌 끝까지 수비보다는 타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생긴 [[3루수]]의 공백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면제로이드]]로 인해 각성한 [[조동찬]]이 잘 메워 주었다.
2010년 8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 2사 상황에서 [[강봉규]]가 안타를 기록할 때 2루 주자로 나가 있었는데,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오면서 막판에 [[포수]] [[신경현]]의 태그를 피하다가 신경현과 홈 대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심판은 결국 박석민을 바로 아웃시켜 버린다.(...)[[http://yoonseokmin.tistory.com/650|관련 포스트]]
끝내기 안타 치고 세리머니(…)~~꽃돼지 스트립쇼~~ 박석민은 이 날 대타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했다.
개그 본능은 여전했다. 5월 6일 LG 트윈스 전에서 상대 투수 [[한희]]의 공에 맞자 배트 들고 한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문제는 '''박석민이 해서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 사실 화가 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다소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오려는 작전이었다. 더불어 한희에게 전화로 직접 사과까지 했다. 해당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제구가 안되던 한희는 직후 영점이 잡혔다.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 메이커 박속닌!~~[[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06885|박석민 인터뷰]]
이 날 수비에서도 개그를 선보였는데 멋진 다이빙캐치 후에 공이 글러브에 들어갔는지 모르고(...) 두리번거리다 1루에 악송구를 하는 바람에 주자를 불러들였다.
~~돼지 두루치기~~ 이젠 기자도 깐다(…)
6월 22일 자신의 생일에 '''5타수 5안타 6타점 4득점 2홈런(투런 쓰리런)'''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5:19 승리를 견인했다. ~~혼자 다해먹는 브콜돼~~ 두 홈런이 1, 2회에 터트려 승기를 확 기울여놓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석민의 역할이 매우 컸고 덕분에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인터뷰에서 비가 와서 우천중단이 됐을 때는~~박첨지~~ 긴장했다고 말하기도. [* 이날 타 구장 경기는 '''모두 취소'''되고 대구에서도 두 번 중단되었다.]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순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순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107회 일치
* 인형 [[고서]]는 요정왕의 숲에 잠들어 있다 "나자"라는 소녀에게 발견된다. 그녀는 바로 리오네스 왕국의 공주.
* 나자 공주는 동생 [[바트라 리오네스]]의 예지몽을 듣고 여기에 왔더니 정말로 고서가 있었다.
* 십계 무욕의 고서는 자살을 선택하기 전 인형 고서에게 "마음의 마법"을 담은 심장을 선물해줬고 그 덕에 본체가 없이도 인형 고서는 살아있었다.
* 고서는 나자와 친해져 리오네스 성의 '''메이드'''로 잠입해서 생활하게 된다.
* 둘은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살아가지만 나자는 시한부 환자였고 얼마 가지 않아 목숨을 잃게 된다.
* 나자는 죽기 전 작별인사처럼 고서와 사랑을 잠들 듯이 세상을 뜬다.
* 고서는 자신의 심장을 줘서라도 그녀를 살리려고 했지만 결코 그녀의 생명을 되돌릴 순 없었다.
* 십계 [[프라우드린]]은 무욕의 [[고서]]가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독백한다. 그것은 무욕의 계금 탓으로 저주가 그의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 성전시대로부터 까마득히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인형 고서는 어두운 곳에서 눈을 뜬다. 이곳은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가볍게 혼란을 느낀다. 그때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 보니 이런 장소엔 어울리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고서가 비명을 지르자 소녀도 놀라서 같이 비명을 지른다. 먼저 정신을 수습한건 소녀 쪽이었다. 그녀는 등잔불을 비추며 "놀라게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하지만 고서는 그녀를 정말로 무서워하는 건지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소녀가 자신은 아무 것도 안 할 것이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나서야 고서는 고개를 내민다.
소녀는 "나자"라는 이름을 밝힌다. 고서는 아직 주저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 "고서"를 밝힌다. 나자는 귀여운 얼굴이면서 이름은 늠름하다고 칭찬한 뒤 여자인지 남자인지 묻는다. 처음엔 달아나려고만 했던 고서도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 동안 도망치지 않게 됐다. 나자가 다가오자 자신은 남자라고 밝히는 고서. 나자는 "그 애"의 말과 똑같다고 역시나라고 한다. 그런데 고서는 [[멜리오다스]]처럼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찔러보더니 "가슴이 부드러운건 여자"라고 드립을 치다 뺨을 얻어맞는다.
* 나자는 고서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고서는 옛날부터 여기 있었을 뿐 다른 기억이 없다. 그건 설명이 되지 않는 얘기다. "여기"는 "리오네스 성"의 지하였다. 그러니 고서가 "처음부터 여기에" 있다는 걸 나자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반대로 고서는 리오네스라는 나라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다. 나자는 리오네스는 다나폴 왕국과 맞먹는 대국인데 모를리가 없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데 나자는 여기 너무 오래있었다며 돌아가려고 한다. 고서는 "두고가지 마"라며 그녀를 붙잡는데 나자는 그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금방 다시 오겠다고 하자 이번엔 고서가 환하게 웃는데 나자는 "커다란 아기 같다"고 표현한다.
고서를 달래고 그 자리를 떠난 나자. 그녀의 말대로 그곳은 리오네스 성의 지하공간이었다. 그녀는 비밀 통로를 지나 성의 바닥을 열면서 바깥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녀의 귀환을 기다리던 이가 있었다. 바로 리오네스 왕국의 왕자 [[바트라 리오네스]]였다. 나자는 그의 누나 [[나자 리오네스]] 공주였다.
바트라는 진작부터 이 지하 공간에 대해 누나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은 누나가 약속을 깨고 혼자 지하공간을 탐색하러 간 날이다. 나자는 거기에 대해선 간단히 사과한 뒤 "네 꿈 대로 지하에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기한 남자애"와 만났다고 하는데 바트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나자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얼른 자러가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힘차게 뛰어가지만 바트라는 어딘지 슬픈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혼자 남겨진 고서는 자신이 있는 "공동"을 살펴본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그에겐 리오네스도 다나폴도 모르는 이름이다. 그가 있는 곳은 거목과 바위가 뒤섞여 만들어진 이상한 공간이었다. 고서가 쓰러진 거목을 조사해 보니 적어도 3000년 전에 무너진 것이었다. 탐색을 마친 그가 결론에 다다른다.
>잘 들어. 이건 나에게서 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선물"이야.
* 나자가 약속대로 돌아왔다. 이번엔 고서에게 줄 "선물"도 함께다. 고서는 진짜 고서의 무덤을 만들던 중이었다. 그의 휠체어가 비석처럼 돌무더기 위에 얹혀졌다. 고서는 나자가 선물 이야기를 꺼내다 필요없다고 말한다. "선물"을 하면 나자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자는 그럴리 있겠냐고 말하다가 고서의 얼굴에서 운 흔적을 발견한다. 고서는 우는게 뭔지 몰랐다. 그저 눈에서 물이 계속 나왔다고만 말한다. 나자는 그가 외로워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며 다독인다.
화제는 다시 선물로 돌아간다. 나자는 그녀가 즐겨 읽는 "멜도르" 이야기 시리즈를 가져왔다. 나자는 자기가 몸이 약해서 이런 모험이야기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멜도르는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주인공 멜도르가 그녀의 이상형인 모양이다. 고서는 책은 커녕 "이야기"라는 것도 잘 몰라서 나자가 "글을 모르면 대신 읽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녀가 잠시 말하는 동안 고서는 엄청난 속도로 독서를 마친다. 나자는 당연히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짜였다. 고서는 멜도르가 공주를 데리고 사신의 추격을 피하는 4장의 내용이 재밌었다고 정확한 소감을 밝히기까지 한다. 나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남아있었다.
나자는 눈 앞에서 벌어진 장면에 너무 놀라서 주저 앉는다. 그녀는 고서가 마법사냐고 묻는데 고서는 마법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인형"이라 답한다. 고서는 그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빠른 길을 선택한다. 스스로 가슴을 갈라서 그 안의 "마법의 심장"을 보여준 것이다. 스스로 가른 그의 가슴에선 피도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 시커멍 공간 곳에 진짜 고서가 "선물"한 마법의 심장이 작동하고 있다.
- 임수정(탤런트) . . . . 106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한국의 여자 씨름선수, rd1=임수정(씨름))]
||<:> [[김하늘]][br]([[블라인드(영화)|블라인드]]) ||<:> {{{+1 → }}} ||<:> '''임수정[br]([[내 아내의 모든 것]])'''||<:> {{{+1 → }}} ||<:> [[한효주]][br]([[감시자들]]) ||
|| '''학력''' ||<(> 임실초등학교[br]관촌중학교[br]임실고등학교[* 몇몇 프로필에서 [[수원대학교]] 영화연극학과로 나오지만 잘못된 사항이다. 하단 부분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 ||
학창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앞에서는 아니고 뒤에서 놀았다(?)고 한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불량한 친구들과도 사귀었다고 한다.] 공부에 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데 그래서인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녀의 모교인 [[명덕여자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임수정에 대하여 "공부는 못하는데 아주 예뻤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예쁘지 않은 너희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동창생의 증언도 '''좀 놀 줄 알고 예쁘장한 애'''라는 것으로 선생님들의 말과 대동소이하다. 문제아는 아니고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보는 좀 노는 애 정도였던 듯.
고교 시절 본 연극에 감명받아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1998년 나간 잡지 '쎄씨' 표지모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잡지모델을 했던 배우들로는 [[김민희(1982)|김민희]], [[이요원]], [[배두나]] 등 화려하다. 이들이 일찍 방송계, 영화계로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녀는 광고[* KTF의 브랜드였던 Na의 인터넷 모델로 활동했다.],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특이한 건 연기 공부를 '''[[충공깽|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연예인]]이 되었고, 데뷔 후에도 연기 수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데뷔작이던 《학교4》 나[* [[박찬욱]] 감독은 이때의 연기를 칭찬했다. 박 감독이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데, 마침 보고 있던 프로그램이 학교 4였다. 이때 임수정의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고, 그 후 [[장화, 홍련]] 오디션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박찬욱은 그녀를 기억해냈고 김지운 감독에게 강력 추천하였다고 한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 에서는 [[발연기]] 소리도 들었지만, 다작도 하지 않는 배우가 현재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가 된 건 재능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오디션을 계속해서 보다가 마침내 [[학교 시리즈]]의 --당시에는-- 마지막인 《[[학교 4]]》에 출연을 하게 된다. 그것도 주연급으로 나왔다. 그러나 중간에 제작진과의 불화[[http://sports.chosun.com/news/entertainment/20011105/1be16005.htm|#]]로 그 이후로는 비중이 급격히 낮아지고 마지막회엔 거의 엑스트라급으로 나왔다. 그리고 당시에 같이 나오던 [[이유리(배우)|이유리]]가 더 잘 나갔다.[* 《학교 4》에서 둘은 극중 애증의 관계로 나온다. 중학교 시절 단짝이었으나 [[어른의 사정]], 정확히 얘기하자면 학교 선생의 실드 때문에 개, 소 보듯한 관계로 변하다 결국 서로의 진심을 알게되어 화해하게 된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역시 오디션을 통해서[* 이 [[영화]]의 감독이 [[DVD]]에서 당시 오디션이 경쟁이 치열했고 로비까지 있었지만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고 말한다.] [[2002년]] 《피아노 치는 대통령》 으로 영화에 대통령([[안성기]] 분)의 딸 역으로 첫 데뷔를 하였으나 영화 자체가 평가가 안좋았다. 대통령으로 나온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로 당시 잘 나가던 [[최지우]]의 연기 문제와 비현실적인 내용이 문제였다. 임수정의 역할은 반항아인데, 얼굴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얼굴과 코디가 《학교4》의 범생역할 그대로...] 연기력도 부족해서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지우]]의 연기가 워낙 가관이라 연기 못 한다는 말은 안 들었다는 건 자랑~~ 여담으로 여기서 첫 흡연 장면이 나온다.[* 임수정은 작품의 대부분에서 흡연을 하고, 본인이 죽거나 상대배우가 죽는다. 이건 동물도 예외없다.;;]
《[[장화, 홍련]]》 에 캐스팅이 된 것은 그녀의 연기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가 된 일이었다.(사실상 마지막 오디션이기도 했다.) 여동생 역으로 나온 [[문근영]]과 자매연기를 한 그녀는, 여동생에 대한 집착으로 정신적으로 혼란한 언니의 연기를 보여 주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여름에 개봉되어 국내 공포영화 중 최다관객 기록.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선 심사위원 만장일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간 콩라인에 떠돌다가 청룡영화상에서 결국 상을 받는다.~~
2004년 상반기 동안에는 잡지촬영, 광고 출연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가 하반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캐스팅된다. 이 캐스팅에 대해 그녀의 팬들이 이후 임수정이 배우, 연기자가 아닌 그저 대중적인 스타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고[* 사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전부터의 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경쟁작들이[* 대작드라마 전문 이환경 작가의 [[영웅시대]], 당시 서울대 출신의 미녀 탤런트로서 인기 절정이었던 [[김태희]]의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만만치 않아 흥행도 보장을 못 했었다. 심지어는 KBS 관계자가 제작사 대표에게 임수정은 [[듣보잡]]이라며 빼라고 요청[[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ocial/2009/0202/20090202101050100000000_6541684867.html|#]]까지 했다고 한다.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한 건 '무식 인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드라마는 '미사폐인'을 만들 정도로 전국구 인기였고 [[소지섭]]과의 애절한 커플 연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다만 [[동안]] 탓인지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던 탓이었는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처음 본 어르신들은 그녀를 보고 '''"[[중학생]]이 연기 참 잘하네."'''라고 하기도하고 드라마에 '''술 먹는 장면'''이 나오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연기대상 땐 '''"왜 아역상 후보에 없냐"'''고 놀리기도.(...)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동안인 것도 동안이지만 극중에서 [[소지섭]]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고 목소리도 영락없는 어린애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목소리는 실제 임수정 [[목소리]]와 전혀 다르다.) 그 때문인지 중국과 태국 더빙판의 경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어린이]] 캐릭터 스타일의 목소리로 더빙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이 임수정 '''최초의 성인 역.'''(...)
드라마 종영 후 [[안양시]]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는데 전국각지에서 온 팬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결국에는 안전 문제로 취소되기도 했다. 무튼 2004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네티즌상,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며 2004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장화, 홍련》이 연기자 임수정을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대중적 스타인 임수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2007년 잠시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이걸 한 기자가 과대해석하여 '임수정 연예계 은퇴선언'으로 기사를 올렸다.] 2007년 12월경부터 [[미국]] [[뉴욕]]에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2008년]] 1월 중순에서야 뉴욕대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게 보도가 되었다. 유학생들의 목격담으로는 스타의식을 티내지 않고 ~~옷을 불쌍하게 입었다는 말도 있었다.(...)~~ 평범하게 [[도서관]] 같은 곳에서 돌아다녔다고. 심지어 중국인 유학생의 목격담도 있었다. 그런데 찍힌 [[사진]]이 없다.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반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태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남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태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남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2011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공식 기자회견과 포토콜 때 참석한 그녀를 촬영한 사진이 베스트포토에 선정되었다. [[http://news.nate.com/view/20110220n02385?mid=e0102|#]]
2011년 10월, 장화홍련 이후 늘 함께 하던 소속사[* [[iHQ|싸이더스]]→노아 엔터테인먼트로 옮겼다지만, 노아 엔터테인먼트는 싸이더스의 자회사 개념으로 보고 있었다. 싸이더스 시절부터 함께하던 팀장과 매니저가 승진하면서 자기쪽 계열의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한 회사다. 바로 현재의 [[판타지오]]다.]를 떠나 [[배용준]]의 [[키이스트]]로 옮겼다. 한류스타로의 행보를 노리는 듯.[*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이나 임수정 하면 배역명인 송은채로 인식한다... 벌써 10년인데;;]
데뷔 후 예능 출연을 한 게 위에 기술한 '좋은 친구들'과 [[김제동의 톡투유]] 딱 두번이다. 그 중 '좋은 친구들'도 시트콤 형식으로 된 스토리를 촬영하고 나머지는 스튜디오에서 자기 소개하고 끝날 때 [[MC]]들과 인사말 하는 걸로 끝나서 엄밀히 말해 예능으로 보기 어렵다.
후술되어 있지만,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 입으로 자기가 나오면 워낙 재미없어서 예능이 다큐가 되기에 폐끼치기 싫어서 안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입담도 늘고 라디오에 출연도 하고 소속사를 변경하는 등 안하던 활동을 하고 있다. 팬들은 최초의 예능 출연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아갈 문제가 뜨고나서 예능을 전혀 출연 안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능출연은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자신의 노래나 출연작의 홍보 수단은 예능 프로그램 외에도 다른 루트가 많다. 시사회 전국투어나, 인터뷰, 팬들과의 활동 등 영화홍보에 있어서 충무로에서 가장 앞선 배우가 예능 출연 안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건 말도 안된다.
|| 2016년 || [[시간이탈자]] || 윤정, 소은 || 1,202,023명 || ||
|| 2017년 || tvN || [[시카고 타자기(드라마)|시카고 타자기]] || [[전설(시카고 타자기)|전설]] || ||
- 최준석 . . . . 103회 일치
|| '''포지션''' || [[포수]][* 입단 시점.] → [[1루수]], [[지명타자]], ~~[[우익수]]~~[* 두산 시절 우익수를 조금 봤다고 함.] ||
|| '''체격''' || 187cm, 130kg[* 일각에서는 160kg이 넘는다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 그건 말이 안되는게 최준석보다 키가 더 크고(198cm) 덩치가 더 큰 [[CC 사바시아]]도 135kg이기 때문이다~~ CC 사바시아도 체중을 속였을 확률이 더 높다. 당장 203cm, 120kg의 [[델린 베탄시스]]나 201cm, 130kg의 [[애런 저지]]와 CC 사바시아를 비교해 보자.]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1년/신인드래프트|2001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전체 49번]] ([[롯데 자이언츠|롯데]])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 (2001~2006)[br] [[두산 베어스]] (2006~2013)[br] [[롯데 자이언츠]] (2014~2017)[br] [[NC 다이노스]] (2018) ||
|| '''응원가''' || '''두산 베어스 시절''' [br] 정광태 - 힘내라 힘[* 날려라 준! 날려라 석! 날려라 최준석~ 홈런! ×4][*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이승엽]]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응원가기도 했고, [[중신 브라더스]]의 팀 응원가로도 쓰인다.] [br] '''롯데 자이언츠 시절'''[br]콜럼버스 1492 OST - Conquest of Paradise[* 스포츠 CF에 나오던 그 [[마성의 BGM#s-9|웅장한 마성의 BGM]] 맞다. 응원 가사는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br] 자우림 - 하하하송[* (빰빰빰빰빠밤빰) 홈! 런! 최준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밤빰) 홈! 런! 최준석!. 2015년 7월 2일 사직SK전에서 쓰이는게 확인되었다. 원래 홈런타자 돌림빵 응원가였다가 [[이대호|친구]] 응원가로 굳어졌던 노래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도 같은 멜로디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 [br] Pitbull - Celebrate[* 자~이언츠 최준석~ 자~이언츠 최준석~ 빰빠바바바빰빰 *2][* 이 응원곡의 응원동작에는 최준석의 홈런 세레머니 동작이 들어간다.] [br]'''NC 다이노스 시절''' [br]구단 자체제작[* 오~ NC의 최준석 NC의 최준석 다이노스(최준석!)(x3)][* 시즌 전에 공개한 응원가는 [[장성호]]와 [[Johnny, I hardly knew ya|원곡도 같고]] 가사마저 [[표절|복붙 수준으로 같았으나]] 이에 대해서 항의가 들어갔는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https://youtu.be/1ouaZDexyA8|비공개 처리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급하게 만든 응원가가 더 호평을 받고 있다(...).] ||
||<-5><#151B54><:>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width=150]] [br] '''[[한국프로야구/2010년|{{{#ffffff 2010년}}}]] [[KBO 리그|{{{#ffffff 한국프로야구}}}]] [[1루수|{{{#ffffff 1루수}}}]] [[KBO 골든글러브|{{{#B8860B 골든글러브}}}]] [[KBO 리그 골든글러브 역대 수상자|{{{#ffffff 수상자}}}]]'''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000000><:> [[롯데 자이언츠|[[파일:external/oi63.tinypic.com/15n4uvk.png|width=80]]]] '''{{{#ffffff 롯데 자이언츠 역대 주장}}}''' ||
전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선수.
=== [[롯데 자이언츠]] 1기 시절 ===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6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입단시 포지션은 [[포수]]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입단 당시엔 100m를 12초에 끊는 호타준족형의 포수였다고 한다. 2017년 지금은 50m 12초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위에서 언급한 [[이대호]]와 같이 살던 시기에 거의 매일 [[야식]]을 같이 먹으며 살이 쪄서 주루 능력은 많이 줄게 되었다. 2005년엔 그 당시 주전 [[최기문]]의 병풍사건 연루와 부상 등으로 출전 기회가 늘었지만,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 해 [[526 대첩]]의 영웅으로, 9회초 11:11 동점 상황에서 [[신윤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낸 적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8홈런 42타점으로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06년 5월 [[트레이드]]를 통해 [[김진수(야구)|김진수]]와 함께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대신 [[최경환(야구)|최경환]], 이승준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기존 1루수 [[장원진]]의 노쇠화가 보이는 상황에서 1루수 및 지명타자로 본격적으로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고영민]]에 밀려 1루에서 자주 출전하던 [[안경현]]과 나누어 출전했으며[* 다만 이때까지는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더 많이 출전했다.], 2006년에는 이적 이후 .264 .343 .404의 슬래시 라인과 10개의 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2007년에는 .244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121경기에서 1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장타툴 하나는 확실함을 보녀줬다.
그러나 2008년에는 주전 1루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225 .318. 361의 슬래시라인에 홈런도 67경기 6홈런에 그치며 대타요원으로 밀려났다. 이 해 두산 1루자리는 팀 타선의 최대 구멍이나 다름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장원진]]은 노쇠화로 이미 지난시즌부터 밀려나 2008년에는 1군 출전 자체가 없었고, [[안경현]] 역시 나이를 감안했을때 노쇠화는 필연적이었다. 결국 최준석이 활약해주고 백업을 [[정원석]]이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최준석이 삽을 들어버렸다...], 최준석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봐도 될 상황.
2009 시즌, 살을 빼고 포텐셜이 폭발하여, 정규 타석을 채우면서도 컨택도 3할을 훌쩍 넘겨버리는 매우 우수한 타자가 되어버렸다. 롯데로 이적한 [[홍성흔]]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꾸어주었다. 물론 팀메이트인 [[김현수(1988)|김현수]]나 [[김동주(타자)|김동주]]가 워낙 괴물이라서 빛이 바래보이기는 한다.
'''리그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강타자'''
상당히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고정 1루수와 클린업 트리오로 자리잡았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4타수 4안타 1볼넷 2타점 1득점, 타율 .286, 장타율 .357,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12년 4월 8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결승 3루타를 기록, 김진욱 감독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의 신임을 받았는데도 삽을 계속 푸면서 두산팬들의 욕을 들어 먹었고, 결국 2012년에는 기대와는 달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김동주(타자)|김동주]]가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중심 타선이 빈약해졌고 [[김현수(1988)|김현수]]가 어떻게든 분투했지만 3할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며 역시 부진했던 탓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으나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1회초 2사 1루 첫 타석에서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선발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내며 팀의 스코어 7:2 승리에 공헌했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03회 일치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5>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878787> '''{{{#EEE156 신체}}}''' ||<(> 184cm[* 누구나 다 아는 상당한 머리 크기 때문에 키가 작아보여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장신으로 유명한 [[강동원(배우)|강동원]], [[조인성]]하고 비슷하며 심지어 이들보다 크다는 소문도 있다.][* 하정우의 아버지인 김용건이 70대임에도 178이다. 유전자의 위대함일지도...그리고 사람이 나이를먹으면 키가준다는논리까지합하면.. 전성기시절 김용건의 키는 180초중반이었을지도 모른다.], 75kg, [[A형]], 295~300mm ||
||<#878787> '''{{{#EEE156 학력}}}''' ||<(> 임실초등학교[br]관촌중학교[br]임실고등학교[br][[중앙대학교]][* 중앙대학교 연극, 영화학과는 2007년에 안성캠퍼스에서 서울캠퍼스로 이전하였다. 즉 97학번인 하정우가 재학 중이었던 시기에는 학과 자체가 안성캠퍼스 소속이었다.] 연극학과 ||
중학교([[전라북도]] [[임실군]]에 소재한 [[예원예술대학교]] 출신)때 전교 선도부장을 맡으며 학교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더욱 멋진 것은 하정우는 남자 후배들에게도 흔히들 선배가 잡는 허세나 똥군기를 하나도 안 잡고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학생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래서 동문들 사이에서는 하정우의 성공을 두고, "성훈이 형이 잘 되어서 정말 좋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시절 성적이 안 나오자 담임이 '[[김용건|너희 아버지]]가 [[패드립|그러니 니가 그 모양이지 않느냐]]' [* 당시 [[김용건]]은 에로 영화에도 간간히 출였했었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며 춤을 가르치는 [[제비족]]으로 출연 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혼을 내 충격을 먹고 성적을 올려 모범생이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대학은 일반학과로 진학하고 졸업 후 탤런트 공채 시험[* 물론 연극과 진학 후 1998년에 공채시험을 보긴 했는데, 떨어졌다. 그리고 그 해 연말에 입대하여 24살 초인 2001년에 제대하였다.]을 봐서 스펙을 갖춘 엘리트 연기자가 되려 했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역사#s-2.4|그 해 모두가 그랬듯이 수능을 망쳤고]],[* 1997년 희대의 불쇼 수능 수험생이였다... 총점 300점 이상만 되어도 예원예술대학교 하위과에 지원이 가능했을 정도.] 수능이 끝난 후 뒤늦게 실기 준비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뭐?-- [[연극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출신 고교는 임실군의 임실고등학교로 고등학교 재학 시절 경희신문부에서 부원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기초군사훈련이 끝나고, 연극 전공자여서 그랬는지 국군 홍보 관리소에 [[자대배치]]를 받게 되는데 군대 동기가 개그맨 [[강성범]]이고, 군대 선임이 [[무한도전]]에도 종종 출연했던 [[최대웅]] 방송작가였다. 복무가 1년 정도 지나 상병이 된 2000년 초에 호주에서 하는 국군공연으로 파병가자고 속인 강성범 때문에[* 원래는 육각수 멤버 [[조성환]]이 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안 가게 되어 아무것도 몰랐던 하정우가 가게 된 거라고..--안습--] 내전 중인 [[동티모르]] 원주민 위문 국군공연단으로 배를 타고 해군들과 함께 3개월 간 파병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가는 데만 17일이 걸렸고 멀미 때문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대신 원래 긍정적인 성격 탓인지 본인 말로는 가서 [[바나나]]도 많이 먹고, 강성범과 만담 공연도 하면서 평소에 강성범의 [[수다맨]][* 당시 강성범은 제대 후 개그콘서트에서 이 수다맨 코너 + 봉숭아 학당 코너의 연변총각 개그로 개그계 스타로 떠올랐다.] 연습을 돕기도 하는 등 나름 재미있게 적응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하정우라는 예명을 썼다고 한다.[* 배우를 비롯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다. 하정우만 하더라도 부친과 같이 전원일기에 출연하여 형제로 설정되고 동시에 모교 교수인 [[유인촌]]의 아들 유대식도 같은 이유로 남윤호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가정 배경을 숨겼고, [[스티븐 킹]]의 아들 조지프 킹도 조 힐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정우라는 예명은 원래 배우 [[김성수(배우)|김성수]]가 가수인 쿨의 김성수와 동명이인인 것 때문에 쓰려고 준비하다가[* 이 부분은 김성수가 해피투게더에서 직접 얘기한 적도 있고, 하정우가 무릎팍도사와 힐링캠프에서도 직접 얘기한 적 있다.] 예명을 쓰지 않게 되어 얻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아버지 김용건과 함께 여러 예명을 연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정우라는 예명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하여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처음에 김용건이 추천해 줬던 예명은 성만 바꾼 '금성훈'. --[[금성무|이 분?]]-- [[2005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조연으로 출연할 당시에도 중견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지만, 아주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2008년]] 《[[추격자]]》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널리 부각된다.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건 [[2002년]]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이고, 드라마 데뷔는 [[2003년]]의 [[사극]]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아들이자 3류 악역인 이지광 역이었다. 이 역할이 스타로 거듭난 지금의 하정우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시청자들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충공깽]]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여기서도 닭백숙 먹는 연기가 일품이다. [[무인시대]] 항목 참조. 그리고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과 배우를 연결하면 아주 재미있어진다.] [[영화]]에 처음 출연한 건 [[조인성]]이 주연했던 [[2002년]] 영화 《[[마들렌]]》이다.
이처럼 연기력은 좋은데 이상하게 조명받기 힘든 배역만 도맡다가 [[2005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동시 출연하면서 서서히 인지도를 올리게 된다. 특히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말년병장]] 연기는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플짤]]로 돌아다닐 정도다. 하지만 인지도가 올랐어도 그렇게까지 주목받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정우가 비로소 이슈몰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MBC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이 드라마의 성공 덕에 하정우는 드디어 메이저 연기자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라하의 연인》에서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여성 팬층을 확보했다.
다음 해인 [[2008년]]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드라마 《히트》와 영화 《추격자》는 둘 다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하정우는 《히트》에서는 검사 역을, 《추격자》에선 반대로 살인마 역을 맡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제 사건에 대한 분위기가 흡사하게 조성된 《추격자》와 달리 《히트》는 경찰, 검찰과 범죄자의 심리 싸움 등이 주된 서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냥 유영철 사건에서의 모티브만 따온 것이고 내용이나 분위기나 인물들 자체가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많이 있어 그렇게 유영철 사건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은 아니다.] 《추격자》는 하정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엄중호 역할이었던 [[김윤석]]도 살벌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기인지 실제인지도 모를 무아지경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지영민이 중호에게 쫓기며 한밤중 골목길 추격전을 벌이다 코너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장면은 원래는 NG였는데 너무 리얼했던 나머지 [[나홍진]] 감독이 그 장면을 버리지 않고 그냥 썼다는 일화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렇게 영화는 성공했지만, 그 덕(?)에 험악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실제 살인마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사실 브라운관의 악역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 시장에서 험한(?) 꼴 당한다더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세계 어디서나 다반사다.] 주변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는 것을 말렸으나 전작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이 싫어서 이 역할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개봉한 영화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에서 주연을 맡아 찌질한 [[호스트]]를 연기한 것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추격자》의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3주 정도 《비스티 보이즈》와 촬영기간이 겹쳤다고 한다). 그 후 개봉한 영화 《[[멋진 하루]]》에서는 넉살 좋고 낙천적인 백수 조병운 역을 맡아 발랄함과 능글맞은 특유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하정우의 영화 《멋진 하루》를 가장 좋아한다며 이윤기 감독과 하정우가 만든 조병운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남성 캐릭터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 이듬해인 [[2009년]] 개봉 영화 《[[국가대표]]》에 주연으로 출연해 대박이 났으며 하정우의 주가 역시 급등했다. [[2010년]]에는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황해(영화)|황해]]》가 비록 흥행은 못했지만 호평을 받는 등, 이제는 완전히 흥행 배우 중 하나로 인정받는 중이다. [[2011년]]에는 《[[의뢰인]]》에서 범죄자가 아닌 변호사로 출연하여, 능글능글하고 매력적인 변호사의 모습으로 연기자로서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주연 연기자 셋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2014년]] 다시 한 번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백정 돌무치로 변신해 머리까지 밀고 열연하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2015년]] 1월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인 《[[허삼관]]》이 개봉했지만 여러가지 평가 속에서 흥행하지 못하였고, 7월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으며 데뷔 후 첫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되었다.
[[소재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터널(영화)|터널]]》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터널 속에 갇힌 38세 자동차 딜러 [[이정수(터널)|이정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2016년 8월 10일 개봉되어, 개봉 12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여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최종관객은 712만 명으로 흥행 대성공.
2017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신과함께(영화)]]》에서는 저승사자 강림 역을 맡았다. 주호민 만화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함께(영화)]]》는 그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되었다. 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1987(영화)|1987]]》에서 검사 역할도 맡았다. 황해 이후 오랜만에 [[김윤석]]과 호흡을 맞추고, [[유해진]], [[강동원]], [[김태리]]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와 개봉 시기가 비슷하여, 그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영화관에 걸리게 되었다. --하정우 대 하정우-- 이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오랫동안 [[판타지오]] 소속으로 활동해 왔으나 2016년 10월에 계약 만료 후 2017년 1월에 아티스트 컴퍼니와 새로 계약했으며, 아티스트 컴퍼니의 지분을 일부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10월에 결별 소식이 떴으며, 독자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활동한다고 한다.
연기력 부분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견배우의 아들이면서 배우로서 하정우만큼 아버지를 뛰어넘어 크게 성공한 다른 연기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제는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가 아니라, 하정우의 아버지 김용건으로 그 인지도가 바뀐지도 오래다. [[영화는 수다다]] 의뢰인편에서 [[이동진(평론가)|이동진]] 평론가가 "하정우 씨는 동세대 최강인 것같다"라고 칭찬했을 정도.
하정우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연기력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의 에이스 병장에서부터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의 양아치 [[호스트바|호스트]], 《[[추격자]]》의 냉혹무비한 [[연쇄살인마]], 《[[국가대표]]》의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스키점프 선수, 《[[황해]]》의 조선족, 《[[의뢰인]]》의 변호사,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폭과 《러브픽션》의 찌질한 소설가, 《[[베를린(영화)|베를린]]》의 비밀요원, 《[[더 테러 라이브]]》의 오만하고 가식적인 앵커, 《[[허삼관]]》속 아버지와 《[[암살(2015)|암살]]》의 낭만자객 하와이 피스톨, 《[[터널(영화)|터널]]》의 자동차 딜러까지 전혀 다른 배역을 위화감없이 소화해낸다. 연기력만으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다.
특히 하정우의 배우로서의 진가는 '용서 받지 못한 자' , '멋진 하루', '비스티 보이즈'와 같이 맡은 캐릭터가 능청스럽고 능글맞을 때 빛을 발한다. 하정우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여유로운 화술과 함께 캐릭터 역시 상당히 입체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작가 혹은 연출자의 디렉팅인지, 아니면 하정우만의 개성인지는 모르나, 가끔 출연하는 예능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보이는 평소 하정우의 모습을 보았을 때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김상조 . . . . 102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4012D><-5><bgcolor=#FFFFFF><:>{{{+1 [[대한민국 정부|[[파일:대한민국 정부기 (글자없음).png|width=30]]]] [[대한민국|{{{#043762 '''대한민국'''}}}]] [[공정거래위원회|{{{#043762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043762 '''위원장'''}}}]]}}}||
한국의 경제학자이자 [[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이다. 한국내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로 꼽으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비판해 "삼성 저격수", "삼성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있다.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1학번으로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부, 석사 및 박사과정을 거쳤다. [[1993년]] '설비자금의 동원 및 배분체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당시 지도교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었다.
== 주요 활동: 재벌들의 저승사자 ==
오랫동안 [[삼성그룹]]의 [[순환출자]]식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저서도 여러 편 출간했다. 또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 정책자문단'의 총무국장으로 있던 적이 있고, 2004년 2월에는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삼성의 주주총회에 참여연대 소속으로 소액주주로 참석했는데 삼성 경호원들에게 멱살을 잡혀 퇴장당하던 영상이 발굴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VH4_myrbBXg|#]]
훗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영수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는 특검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조언을 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 등에 대해 특검에 '''족집게 강의'''를 함으로써, 제2차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2090.html|#]] 2016년 12월에 열린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http://v.media.daum.net/v/20170315111345502|#]]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언론에서 흔히 이력이나 일부 발언들을 인용하여 '재벌 저격수' 등의 별명을 붙여 강경한 반(反)재벌주의자 내지는 좌파(?)로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김 교수의 학문적 베이스부터가 주류경제학이고 그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운동을 하며 내놓은 주장이나 연구자료를 봐도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도입을 주장하는 정책도 해외 [[선진국]]의 선례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 편.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스탠스의 경제학자인 것은 맞으나 그 바탕이 주류경제학이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 내지는 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상조 후보자의 청문회에 참여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당에서 시킨 일이라면서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432.html?_ns=t0|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사과를 표했다.]][* 그러나 이 기사 내용은 다분히 정치 공세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한다. 원래 상임위장에서는 막말과 고성이 오가더라도 마칠 때에는 의례적으로 서로 악수하며 덕담을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을, 자극적인 기사로 내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6월 4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가 언론과 야당의 의혹공세를 반박하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97|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지지글을 발표했다. 이후 전 교수의 주도로 선, 후배, 동료 경제학자 및 사회 각계 각층의 498명이 김상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7664.html|#]] [[주진형]]의 말에 의하면 하루 남짓한 기간 동안 500명 가까이 함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전 교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못해 지지 선언까지 내는 것 자체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6월 6일 기준, 7일로 예정되어 있는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진통을 겪는 중이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반대, 국민의당은 의원총회 후 당론 결정 이라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93128&ref=A|관련기사]] 결국 [[http://www.fnnews.com/news/201706121657206165|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면서]]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6월 12일 결국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청와대에서 임명을 진행하여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피링에서 길어진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며,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국민의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발언을 하며, 공정거래의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원래부터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7/06/20170613327266.html|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투쟁해나가겠다"며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바른정당은 "오만한 문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당은 당초 김상조 후보자의 임명 자체에는 반대가 없었던 터라, "국회 청문회 보고서 통과없이 임명되는 것에는 유감스럽지만, 이는 여당의 고집과 야당의 아집이 빗어낸 것이다"며 공동책임론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334195&date=20170613&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9|대체적으로 야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741|문 대통령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이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3847763&date=2017061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24|원내대표 회담에 불참]]하는 등 애초에 협치를 바라지 않는 듯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애초에 협치를 바란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첫 시작으로 공정위에서 BBQ 가격 인상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된다. 이에 치킨 업계는 줄줄이 인상안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기존 치킨 가격을 인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2017년 BBQ 치킨값 파동]] 참조.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위는 가격 조정 기관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임명 후 빨리 알기 쉬운 효과가 나타나자 국민들에게 일 잘하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다음 타겟은 피자 헛[[http://news1.kr/articles/?3022211|#]]--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상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공정위에 따르면 17년 5월 기준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이 보유한 9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확인 결과 10개로 줄어들었다.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10조 원 미만인 공시대상기업집단도 17년 9월 1일 지정 당시 26개 집단이 보유한 189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31개로 축소됐다. 이를 종합하면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57개 대기집집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282개에서 41개로, 약 85%가 해소된 셈이다.
해당 기간 동안 [[롯데]]가 67개, [[농협]]이 2개, [[현대백화점]]이 3개, [[대림]]이 1개 고리를 해소해 기업집단 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버렸으며 [[영풍그룹|영풍]]도 6개 고리를 없앴다. [[삼성]](3개)과 [[현대중공업]](1개)도 합병, 분할 등의 사유로 신규 형성·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공정거래법상 유예기간 내에 해소했다.
공정위가 ‘칼’을 내 빼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집단이 자발적으로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재벌들의 불합리한 소유·지배구조를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이른바 ‘김상조 효과’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칼집만 들썩거렸을 뿐인데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바짝 엎드리고 있는 모양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4086135|*]]
그리고 김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4년 동안 두 자릿수에 머물던 공정위 소송 패소율이 작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공정위가 직접 수행한 소송에서는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았고, 외부에 맡긴 소송 패소율도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중 법원이 공정위가 제재한 행위를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패소는 작년 15건(9.2%)이었다. 패소율은 4.2%를 기록한 2013년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0039529|*]]
국무총리 청문회에 이은, 사실상 2번째로 청문회를 겪은 인물이기 때문에 야당의 집중공세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마치 김상조가 '논란이 무척 많은'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상조 임명을 강행하고 이뤄진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83%를 기록했을 정도로 국민여론은 오히려 김상조 임명을 환영하는 편이었다.
가족과 함께 2차례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주민등록초본을 보면 김 후보자 가족은 1994년 3월부터 경기 구리시 교문동의 동현아파트(현 구리두산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3년 뒤인 1997년 1월 김 후보자를 제외한 부인 조모 씨와 아들은 길 건너편인 교문동 한가람아파트로 서류상 분가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2개월 앞둔 때였기에 이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것.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01회 일치
집이 털리는 줄도 몰랐던 고프리와 테리는 코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다. 이후 두 사람은 네놈이 집에 남아있어야 했네, 네놈 혼자 있는건 무사할 줄 아냐하며 다투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테리와 고프리가 함께 볼스 게임을 하고있다. 테리는 자기와 고프리가 여러 일로 다투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같이 일하게 된다고 한다. "테리가 나를 싸움에서 못 이겨서 볼스 경기장을 만들었는데 볼스도 못 이긴다"라는 고프리의 깝죽거림은 덤.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수레를 불태우고 한 남자를 묶어 강제 번지점프를 시키는 광경을 보게된다. 이후 무장한 남자들을 해치우고 매달린 남자를 구해준 코너는 무장한 남자들이 그 남자를 노린 강도들이었고, 해당 남자가 빈털터리라는걸 알게 되자 그의 도구와 장비를 불태우고 그를 밧줄에 매달아 절벽에서 던져버렸다는걸 알게 된다.
그는 국왕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공소를 잃고 보스턴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코너는 숙련된 장인이 필요했다며 그 남자를 대번포트 농지에 정착시킨다.
강도들에게 습격 당했을 때 모든 도구를 잃어버린 랜스는 보스턴에 있는 자신의 목공소로 가 여분의 재료를 가져오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쫓겨났던 랜스는 코너에게 호위을 부탁한다.
코너와 랜스는 보스턴에서 만나 랜스가 운영하던 목공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목공소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3주 전에 도제인 패트릭이 목공소를 팔아치워버린 것. 랜스는 패트릭을 찾아가 따지지만 패트릭은 안 돌아올줄 알아서 도구도 가게도 다 팔아치웠는데 어쩌겠느냐, 라는 반응. 랜스는 목공이 생명선인 도구를 팔리가 없다며 패트릭이 어디다가 꿍쳐뒀을 거라고 추측한다.
코너는 그 세명에게서 도면을 빼앗아 대번포트 농지에 있는 랜스에게 돌려준다. 랜스는 그 도면이 '''접을 수 있는''' 의자의 도면이라며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코너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킬레스가 미리엄의 응급 처치를 끝낸 직후였다. 미리엄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코너. 미리엄은 사냥감이 넘쳐나는 대본포트 영지에 사냥 허가를 받으러 왔다가 밀렵꾼들을 만난 것이었다. 코너는 자연의 풍요는 주고 받을 수 없는거지만 다른 사람과 거래할 수 있다면 환영한다고 대답한다.
코너는 미리암의 캠프 근처에서 어슬러거리던 노리스를 발견한다. 노리스는 미리암에게 칼을 선물하려 하는데, 자기가 여자에게 칼을 선물하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초조함을 느끼던 것. 노리스는 코너에게 같이 가달라고 한다.
코너는 늑대 떼 하나를 사냥한 후 미리암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코너가 본 것은 전에 살려보냈던 밀렵꾼이 돌아와 미리암과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코너가 달려오자 밀렵꾼은 도망치지만, 코너는 그를 쫓아가서 끝장내버린다.
몬머스를 지나가던 코너는 한 남녀가 왕당파 병사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병사들은 코너에게 신경 끄라고 하다가, 코너가 무시하지 않자 공격한다.
병사들을 모두 쓰러뜨린 코너는 남녀에게 무슨 일인지 묻는다. 왕당파는 워렌과 프루던스에게 전재산을 내놓으라고 했고, 워렌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왕당파는 가축들을 죽이고, 땅을 황폐화 시킨 다음 부부를 끌고 나왔다. 프루던스는 코너에게 고마워하지만, 가진 게 없기에 아무 보답도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자 코너는 대번포트 농지를 소개해주며 농장 재건을 돕겠다고 한다.
워렌이 코너를 보자 달려와서 도움을 청해온다. 프루던스가 뭔가를 모으러 나가서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 코너는 워렌, 그리고 개 한마리와 함께 프루던스를 찾아나선다. 프루던스를 찾으러 숲으로 가는 길에 워렌은 요즘 프루던스가 달맞이꽃에서 나는 기름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코너는 보스턴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남자가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는걸 본다. 코너는 남자를 도와 병사들을 쓰러뜨린다.
프랑스어를 쓰는 남자, 노리스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병사들이 자기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퀘벡에서 온 프랑스계 사람이었던 것. 광부일을 하기 위해 보스턴에 왔지만 억양 때문에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노리스. 코너는 대본포트 농지에 있는 광산을 소개해준다.
코너는 프루던스를 찾아가 노리스가 여자의 환심을 사고싶어 하는데 선물로 뭐가 좋겠냐고 물어본다. 프루던스는 자기는 야생화 꽃다발을 좋아한다면서 북동쪽 절벽의 꽃들을 추천한다.
코너가 노리스와 만났을 때, 노리스는 짐을 싸고 있었다. 노리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합금으로 된 칼을 미리암에게 선물하고 싶어했고, 합금의 재료인 철을 얻으러 가려는 것. 노리스가 철을 얻으려는 광산은 영국 소유의 광산이었기에 노리스는 코너에게 망보기를 부탁한다.
노리스가 철을 얻기 위해 광산 안에 폭약을 설치하고 터뜨리자 영국군들이 노리스와 코너를 잡아 족치기 위해 몰려온다. 둘은 영국군들을 막아내며 세번의 폭파 끝에 필요한 철을 모은다.
보스턴에 도착한 코너는 라일 화이트 박사를 찾지만 화이트 박사는 모두에게 "사신 의사", "살인자"라며 비난받는 사람이었다. 코너는 라일을 린치하려던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화이트 박사에게 말을 건다. 화이트 박사는 자신이 영국군에게 "백색 사신"이라고 모략하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프루던스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녀를 돕기로 한다.
라일은 자신이 대번포트 농지 밖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이유를 알아냈다. 영국군이 치료하지 말라고 요구했음에도 애국자들 단원을 치료했다가 영국군의 모략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코너는 라일이 떠나지 않도록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 울릉군 . . . . 101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01A9DB> {{{#FFFFFF '''군수'''}}} ||<bgcolor=#CEECF5> [[김병수(1954)|김병수]]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bgcolor=#01A9DB> {{{#FFFFFF '''군의회'''}}} ||<:><bgcolor=#C7242B>[[파일:libertykorealogo.jpg|width=20]] '''[[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5석}}} ||
||<bgcolor=#01A9DB> {{{#FFFFFF '''도의원'''}}} ||<bgcolor=#CEECF5> 남진복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bgcolor=#01A9DB> {{{#FFFFFF '''국회의원'''}}} [br] [[포항시 남구·울릉군|{{{#FFFFFF {{{-1 (남구·'''울릉군''')}}}}}}]] ||<bgcolor=#CEECF5> [[박명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bgcolor=#F0F8FF> ▲ 주변지역과의 최단거리[* 후포(울진군)가 가장 가까운데, 울진 자체가 1963년 전엔 강원도였다.] ||
[[경상북도]]의 군.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이자 경북 유일의 섬으로만 이뤄진 지자체다. 심지어 멀리 [[동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오히려 강원도에 가까워 보이지만,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곳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이다(130.3km). 다만 울진은 1962년에 [[경상북도]]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고 울릉도 자체도 1906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06년 13도 분도 후에 뜬금없이 '''[[경상남도]]'''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에서야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남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상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상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2016년, 국내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인구 네자리로 떨어지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7/2010090701865.html?rsMobile=false|2005년엔 9,538명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1만 명 넘어섰다고 마냥 좋아하기도 그런 게 지역주민들에게 배값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걸 노리고, 유령주민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을 옮겨놓으면 10분의 1가격에 배를 타니 꽤나 혹하는 듯 하다.] 그러나 2017년 7월 기준으로 다시 1만 명을 넘어갔다...는 2017년 11월 기준 9,996명으로 떨어지며 네 자릿수가 되었다..가 2018년 6월 기준 10,010으로 다시 1만 명 선을 회복했다.~~다이나믹 인구~~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조선]] 시대 때 [[왜구]]가 많이 습격하자 조정에선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을 하기도 했지만 [[안용복]]의 활약으로 1696년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막부는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했다([[http://anyongbok.kr/ahn/ahn_01.php|안용복 재단]] 참조). 그 후 19세기 고종 시절에 울릉도를 개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전남, 경남 지역 도서민을 이주시켜 다시 유인도가 되었다.
[[러일전쟁]] 때는 울릉도 역사 상 드물게 주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함대는 울릉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여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물론 대한제국 정부의 승인 따윈 없고, 일본이 자의적으로 울릉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인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은 군자금으로 실린 막대한 금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765525|관련기사]]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지역이 되면서 남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남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남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백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역사적으로 줄곧 그래왔듯이 한국 본토에서 어떤 급변상황이 터지더라도 일단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다만 러시아나 일본과 시비가 붙는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위치이다. 실제로 과거 일본이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도 자국땅으로 삼으려 하기도 했고...자세한 것은 [[울릉군/역사]]를 참조.
[[대한민국|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광역자치단체는 되지 못했다. 전 군수인 최수일 군수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울릉도 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특별자치군"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기는 했다. 물론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울릉군]] 울릉읍에서 제일 큰 마을은 인구 약 5천명의 저동리이며 도동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도동의 인구는 약 2천 명으로서 [[포항시]]와 묵호항에서 오는 [[선박|배]]가 정박하는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숙박업이나 음식점은 대부분 도동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저동리는 도동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로서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강릉과 후포에서 출항하는 배는 이쪽에 정박하며, 포항에서 출항하는 배의 일부도 저동항에 정박한다. 이쪽은 보통 울릉도민들이 사는 마을로서 옆에 항구가 있으며 주민을 상대로 한 상점과 편의시설들이 있다.
그밖에 사동이나 남양, 현포, 태하, 천부 등의 조그만 마을들이 있다. 사동은 신항만이 들어선다고. 사동 옆에 울릉도민들의 숙원이라고 하는 [[울릉공항]] 건설이 계획되어 있다. 대부분이 가파른 산인 울릉도에는 1,500m 이상의 활주로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지만 바다에 두꺼운 [[방파제]]를 만들어 이 곳을 활주로로 쓰자는 안이다. 울릉도에 공항이 생기면 [[서울특별시]]나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같이 먼 거리에 사는 관광객들이 1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긴 하다. 현재는 버스+배로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7시간 가량 걸린다. 허나, 깊은 동해 위에 활주로를 세운다는 건 돈이 많이 들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울릉도에서 기항이 가능한 일수가 적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울릉군의 전화번호는 관용이나 공공기관 등은 790국번을, 일반용은 791국번을 주로 쓴다. 이전에는 국번 없이 무국번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네자릿수 일련번호(보기:☎1234 등)를 [[1987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시외전화를 지자체 단위로 쓰던 시절에는 0566으로 배정되었다가 지금은 054가 되었다.
- 유키히라 소마 . . . . 100회 일치
[식극의 소마]의 주인공. VOMIC판 성우는 [오노 유우키]. TVA 성우는 [마츠오카 요시츠구].[* PV에서의 하이톤 때문에 방영 전부터 소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인기 성우를 주역으로 기용하려는 경향의 폐해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마츠오카를 비롯한 젊은 성우들이 주역으로 자주 기용되는 이유는 낮은 랭크 때문. --한마디로 저비용 고효율.--]
붉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으로 작은 대중식당인 '유키히라'을 경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1화에서 얼굴이 햇빛에 가려진 사진에 나왔었던 것 외에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 나이는 15살으로 요리 경력은 12년. 3살 때부터 부엌칼을 잡았다고 한다.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이 일생의 목표로[* 1권 시점에서 0승 489패] 그런 소마의 꿈을 눈치챈 조이치로에 의해서[* '유키히라'를 몇년간 휴업시키고 본인은 소마와 통화했을 때 '''뉴옥 맨해튼 로열 호텔 VIP 전용 리셉션 홀'''에 가서 요리하는 중이었다. 조이치로는 예전에도 세계를 돌며 요리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럴 셈이었던 것.] 상위 3%만이 들어간다는 초일류 요리학원 토오츠키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소마 본인은 고등학교에 가지않고 가게에서 요리 수련을 할 생각이였다.] 이후 고등부 편입생으로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방은 303호실. 우연히도 아버지 조이치로가 썼던 방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할 때는 늘 왼쪽 팔목에 감고 다니는 두건을 풀어서 머리에 묶는다. 기본적으로 열혈스럽고 시원한 성격이지만, 일단 진지해지면 평소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눈매가 --간지--날카로워지고 검은자위의 하이라이트도 없어져서 거의 다른 사람 같다. 그리고 왼쪽 눈썹 부근에 흉터가 하나 있다. 요즘 만화 주인공 답지않게 [[간지]]를 제대로 살릴 줄 알아서 좋아하는 팬이 많다. 작 중 인물들에게도 매력적인지 쿠라세 마유미와 미토 이쿠미가 그를 좋아한다. 나중에는 [타도코로 메구미]도 포함. --과연 소년만화의 주인공.--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 때 단상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식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식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식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식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태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식]]의 영역이며 그걸 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절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상의 경치를 보는 것.
주로 요리하는 건 정식집 요리이며, 다른 캐릭터들이 양식으로 승부할 때도 혼자만 정식집 요리로 승부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정식집 요리만 배워서 그렇다.[* 이는 아버지인 사이바가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소마는 작업의 속도와 정확성 등은 졸업생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 수준은 매우 얕다. 조식 뷔페 메뉴 대결에서 뷔페 메뉴에서 중요한 맛의 지속성과 겉보기에서 최악인 수플레 오믈렛을 선택한다거나, 113화에서 아벨이 프렌치의 기초도 모른다고 하는건 다 이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식집 요리 특성상 누구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정 문구는 "御粗末! / 변변찮았습니다!" 이 말을 외치며 머리띠를 푼다. 이 외에도 요리를 만들어서 상대에게 권할때는 "잡숴봐." 라고 말한다. 사실 저 괴상한 요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억지로 먹이는 것도, 결정 문구도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경우 '건멸치 딸기잼 무침'이라는 처절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를 만든 적이 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때다 싶을때는 과감하게 질러주기도 하는 점,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결하면서 강인해진 멘탈 덕분에 요즘 소년만화 주인공답지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남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다른 만화 주인공들이 속터지는 행보 때문에 암유발 주인공이라 불린다면 유키히라 소마는 항암제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
특히 최근 연재분을 보면 나오지만,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즐기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모습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저 정도 인재가 현실에 있다면 정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할 수준.
편입시험 중에서 심사관이자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10위인 [[나키리 에리나]]와 만나게 되며, 유키히라의 비밀 메뉴 8번인 둔갑하는 [[후리카케]] 밥을 선보인다. 에리나 본인도 맛있다고 생각했지만 소마옆에서 심사받던 소마가 "안가고 먹길 잘했지~?" 라던가 "늬들같은 높으신 분들은 못만드는 요리도 있지" 라던가 "자 어때? 맛있지! 맛있지!" 라는식으로 좀 심하게 깐죽댄다가(...) 본인의 자존심 문제도 있고 해서 에리나는 홧김에 "맛없다"라고 발언. 불합격처리 당한다.
그렇게 토오츠키 학원에 떨어질... 뻔 하지만, 심사장을 들른 '''토오츠키 학원 총수인 나키리 센자에몬'''이 그의 후리카케 덮밥의 맛을 보았고 불합격 서류를 와작 구긴 후 그를 토오츠키 학원에 편입시킨다.
시업식 날, 편입생으로서 단상에 올라오게 된다. 소마는 고등부 1학년들을 상대로 대형 어그로를 끌고 다시 한 번 나키리 에리나와 대면. 중등부에서 올라온 내부 진학자에 대해 자신은 12년간 주방에 살았다면서, 자신의 가게 이름을 먹칠할 수는 없으니 에리나를 상대로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때 [[잇시키 사토시]]와 (식극이 아닌 평범한)요리대결을 펼치게 되며 그가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7위'''의 실력자임을 알게 된다. 이때 선보인 요리는 유키히라 비밀 메뉴 20번인 연어 주먹밥 차밥을 개조해서 만든 삼치 주먹밥 차밥. 승부는 무승부로 판정된다. 다만 이때 잇시키는 제대로 실력을 내지 않은 듯 하다.[* 이부사키 슌이 그의 요리를 보고 '''본 실력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소마는 그 말에 발끈하지만 메구미는 자신때문에 소마가 퇴학당하는 것을 막으려고 소마를 말리면서 자신은 괜찮다며 억지로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험장에서 나온 소마는 메구미에게 어떻게든 목숨이 조금 더 늘어났다며 위로하지만 메구미는 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냐며 자신같은 건 놔둬도 됐었다며 울며 자책한다. 소마는 왜 그런 도전을 하냐는 메구미의 말에 '타도코로는 이런 곳에서 떨어져도 좋은 녀석이 아니니까.'라고 대답한다.
식극 시간이 되어 토오츠키 이궁의 별관 지하 1층 식당으로 간 소마와 메구미는 도지마와 시노미야를 위시한 강사들이 심사위원 자격으로 모여있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이누이는 의자에 묶여있다--
그러나 도지마는 메구미가 메인으로 요리할 것을 요구한다.[* 원래 식극은 1대1이지만 이번은 소마와 메구미 페어 vs 시노미야의 형태였다.] 소마는 반발하지만 도지마는 '유키히라.. 네 요리로 이겨서 타도코로가 살아남았다고 치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남의 뒤나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결국 다른 과제에서 떨어져 버리겠지. 그때도 네녀석이나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건가? 토오츠키에선 자신의 가치는 그 팔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타도로코가 토오츠키에 남아야 하는 인재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긴장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메구미에게 소마는 집에서 배운 긴장을 푸는 방법이라며 손을 때리고 자신이 지면 소마가 퇴학당할 것을 걱정하는 메구미에게 '아버지가 말했다고.. '''요리라는 건 접시 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린다는 것이다''' 라고-', '쓸데없는 건 신경쓰지 마. 타도코로다운 요리를 만들면 돼.'라고 용기를 준다.
- 표창원 . . . . 100회 일치
||<:>'''가족'''||<(>2남 중 [[차남]][* 그의 친형은 표창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표창원이 그의 부인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계기도 친형과 관계가 있는데, 형수가 자신의 지인이었던 현재의 부인을 소개해 줘서 연애를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
||<:>'''종교'''||<(>[[천주교]]([[세례명]]: 이보)[* 다만 [[현재]]는 [[성당]]을 [[냉담자|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
[[대한민국]]의 [[형사]] 출신[* 1989년 임용.] 경찰학자[*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자로 흔히 알려져있으나 일선에서 범죄심리분석관으로 근무한 적은 없다. 주 전공은 사회학이고 그걸로 학위를 받은 [[경찰학]] [[박사]]이다. 실제 일선에서 근무했던 범죄심리분석관들의 여러 인터뷰에서도 범죄학자이지 프로파일러는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의 주 전공은 경찰학이다. "Doctor of Philosophy in Police Studies in the Faculty of Social Studies" [[RISS]]에서 검색하는 내용을 봐도 경찰학 전문가가 맞으며 표창원이 낸 교양책을 봐도 경찰학 중심이다.], 정치인.
정계입문 이전에 국내에서 가장 지명도 있는 프로파일러, 범죄학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오랫동안 [[경찰대학]] 교수로서 교편을 잡았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그 동안 갈고 닦은 지명도로 [[20대 총선]]에서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51.6%의 비교적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선된 이후에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방송에도[* 국회의원이 되서 그런지 예전처럼 크라임씬같은 일반 예능에는 자주 나오지 못하고 시사가 섞인 시사 예능(썰전,강적들등)이나 뉴스 위주로 출연하는 중이다.] 얼굴을 자주 비추며 범죄 사건이나 경찰 검찰에 관련된 사건에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있다. 아무래도 현재 경찰 출신 국회의원중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있어서 그런지 그쪽 관련 내용이 있을때 자주 부르는 편이다. 검사나 변호사, 판사등 법조인 출신은 많은데 형사나 경찰 출신은 그보다 훨씬 적어서...
가난한 집안 형편에 절망해 학창시절 툭하면 주먹 싸움을 벌이고 패싸움에 휘말려 양호실에 실려가고 형이랑 싸우다가 칼을 휘두르는 등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응?~~중학생때 전국일제고사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생때는 암기식 교육이 싫어서 상습적으로 야자에서 도망갔지만 성적을 늘 상위권이었다.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에 대한 오해를 하는데, 사실 영국에서는 박사 과정은 특정 주제를 공부한다고 학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연구방법론에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학교를 찾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몇 단계의 심사를 거쳐 학위를 최종 승인받는다. 수년간의 연구(보통 5년 가량) 끝에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면 소속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위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현재까지 성취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 기록한 뒤 평가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는 것이다.]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절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경찰관 퇴직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으로 활동[* 일선 "범죄심리분석관"은 아니고 경찰관 시절에는 수사관으로, 교수 시절에는 범죄심리분석 지원을 위하여 파견된 형식으로 활동한 것이다.]하면서 본격적으로 [[강호순]] 사건, [[발바리]] 사건 등 많은 유명 주요 범죄사건 해결에 기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무한도전]] [[무도탐정사무소]]에 출연하여 멤버들에게 프로파일링을 짧게 강의하였으며, [[유재석]]을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등 중년의 폭풍간지를 보여주었다. 다른 멤버들은 '드디어 유재석도 혼나는구나' 하고 좋아 죽는 중이었다고.
JTBC의 [[크라임씬2]]와 [[크라임씬3]]에서는 탐정역으로 출연했다. 프로파일러 답게 용의자들을 들었다 놨다하며 수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2의 크라임씬 PD 살인사건 1만 범인을 맞췄을뿐 PD 살인사건 2와 3 호텔 살인사건은 헛다리만 짚었다. 전문가답게 깊이 있게 생각했지만 맡은 사건이 그렇게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니여서 그런지 영 시원치 않았다.
이 당시 나온 대중성 있는 저서로는 [[http://www.yes24.com/24/Goods/1506195?Acode=101|한국의 연쇄살인(2005年)]]이 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무척 흥미진진하다. 초심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독성 좋고 간결하면서 유려한 문체[* 이는 글 쓰기, 잘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 현장 용어나 한자말을 피하고 중학생 정도 학력이면 이해할수 있을만큼 정말 쉼게 썼다.] 로 한국 근 현대사에서 유명한 여러 연쇄살인 사례들을 다루었다. 단 유혈이 낭자한 당시 현장 사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고 (다행히 컬러 사진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되어 있어 19세 미만 구입 불가 딱지를 붙여놓은 곳이 많다. 경찰 출신이다 보니 비슷하게 여러 사건 사례를 자세히 다루는 법의학 책과는 다른 시각으로 글을 써서, 보기에도 신선한 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유제설 교수와 공저한 [[http://www.yes24.com/24/goods/6103472?scode=032&OzSrank=1|한국의 CSI(2011年)]] 또한 과학 수사에 대한 교양 서적으로 읽기 매우 좋은 책이다. 그의 책은 어디까지나 교양 서적이다 전문 서적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를 추구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실제 살인 사례이다 보니...
방송 쪽으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여 유명해졌고, 케이블 채널의 <살인자는 말한다>등의 자기 이름을 걸고 나오는 프로를 진행한 적도 있다. 2012년 경찰대학 정교수 퇴직 이후에는[* 개인 [[블로그]] 및 [[트위터]]를 통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돌연 "경찰대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퇴했다.] [[JTBC]]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라는 프로그램에 MC로 발탁돼 방송인을 겸했으며,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로서의 행보는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본 문서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던것 처럼, "저명성에 걸맞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냐."는 지적들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에 프로파일 기법이나 범죄자에 대한 복합적 연구를 처음으로 대중화한 점에서 공로가 있다는 것은 인정 받고 있다.
일부에선 '흉악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게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전부터 논쟁의 중점에 있던 인물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데, 모든 형법이론들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형법학자들은 전부 저것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범죄론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행위론, 구성요건론에서 위법성론, 책임론까지 모두 구이론인 객관주의와 신이론인 주관주의를 따라 견해가 나뉘며, 현대 형법은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있는 형법 저서 하나 없는 사람이 저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관점에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러한 논쟁을 '''일반 대중에게 던져준 사람'''으로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러한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실은 국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그 범죄자 개인의 인성보다 자라온 환경, 못 가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냉혹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튀는 것이다.
원래 자신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수 차례 밝혔다. 2015년 10월 26일에 [[트위터]]를 통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0867351|'정치 안 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인 2015년 12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다.[[https://www.facebook.com/cwpyo/posts/1133948603312544|본인 입당 sns 인사글]]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예전의 입장을 거두어들인 것에 대해 사과의 표시를 했다.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남성이 문 대표의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반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영상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중적인 범죄학자 표창원을 1호 인재로 영입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영입 초반에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오세훈 전 시장'''과 대결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 본인은 이에 대해 '''"[[오세훈]] 전 시장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붙으라고 해도 하겠다"'''며 당락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으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 [[국민의당|안철수 신당]]과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 [[종로구]]로, 표 교수는 밑에 서술되어 있듯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게 되면서 둘의 대결은 없던 일이 됐다.
2016년 2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용인시]]에 신설된 [[용인시 정]] 선거구[* 구성동, 청덕동, 마북동, 동백동, 보정동, 죽전1동, 죽전2동]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경찰대학]]이 있던 지역이었고,[* 그가 공천을 받기 직전인 2016년 2월에 경찰대가 충남 아산시로 이전해갔다.] 그가 원래 거주하던 지역이다.[* 선거 기간 중 지역구 내에서 [[어린이집]] 차량사고가 났는데, 이때 자기 딸들도 그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전부터 살던 곳이 맞는 듯 하다.] 그리고 [[2016년]] [[3월 7일]] 당에서 표 전 교수를 [[전략공천]]하기로 확정 발표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080865|#]]
[[TV조선]]의 인기 시사 예능 프로그램인 [[강적들]]의 5월 5일자 방송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이날 출연한 다음에는 아예 고정 게스트로 계속 출연을 이어오고 있다가 의정 활동에 집중하기 위하여 하차하였다.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96회 일치
||<width=30%> (첫 시상식) || →||<width=30%><#FFFFA1> '''이순재'''[br]김성원[br][[여운계]][br]김희준[br][[사미자]][br]'''(1970)''' || → ||<width=30%> 김순철[* 1971년에는 대상이 없이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br](1971) ||
||<-5><#00a495> '''{{{#FFFF00 {{{+1 [[동양방송|{{{#FFFF00 TBC}}}]] [[연기대상|{{{#FFFF00 연기대상}}}]] 남자주연상}}}}}}'''[*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남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 ||
||<-5><#c0c000><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878787> '''{{{#EEE156 출생}}}''' ||<(> [[1935년]] [[10월 10일]][* 주민등록상으로는 1935년 10월 10일생인데 실제로는 저 생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던 당시나 현재 [[http://rokps.or.kr/profile/profile_view.asp?idx=169&page=1|대한민국헌정회에서는 1935년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2018년자 뭅뭅 인터뷰에서는 (세는나이) 84세로 본인을 소개하였다.]([age(1934-11-16)]세)[* 1934년생일 때 기준.][br][[일본령 조선]] [[전라북도]] [[전주시|덕진구]] ||
||<#878787> '''{{{#EEE156 본관}}}''' ||<(> [[광주 이씨]][* 광주 이씨 21세손 '載'자 항렬이다.] ||
||<#878787> '''{{{#EEE156 신체}}}''' ||<(> 165cm[* 작지 않냐 싶은데 저 당시 한국남자의 평균키는 160대 중후반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68kg, A형 ||
||<#878787> '''{{{#EEE156 가족}}}''' ||<(> 배우자 최희정, 슬하 2남 1녀 ||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해 온 배우이자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 2인중 1인.'''[* 나머지 한 명은 다름아닌 '''[[송해]]'''. [[신구(배우)|신구]]는 이순재 다음 서열이지만 그는 원래 연극을 주로 하다가 방송가에 데뷔한 것은 1970년도이기에, '방송사'의 산 증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56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인 [[HLKZ-TV]]에서부터 출연했으므로, 그의 연기 인생은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처음부터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에는 녹화기술이 없어서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방영했으므로 영상자료가 없다. 드라마에서 NG 한 번 나면 바로 아웃이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1927년 생)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상도(드라마)|상도]], [[야인시대]], [[거침없이 하이킥]], [[이산(드라마)|이산]],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 보통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켜봐도 10에 9는 제대로 발음 못한다. 아나운서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ㅙ, ㅚ 는 커녕 장모음 단모음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우연히 본 [[야한 동영상|야동]]에 빠져 [[이순재(거침없이 하이킥)|가족 몰래 보던 것이 들켜 빈축을 사게 된 일명 '야동 순재' 캐릭터로 인해 젊은 층에 친숙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지껏 그가 맡았던 역할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역할이었으나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다. 하이킥은 젊은 출연자들도 고충을 토로한 일일 시트콤이었던 것을 당시 70이 넘은 배우임을 감안하모습에 감탄할만하다.
게다가 이순재는 타고난 천재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올라운드 그 자체'''다. '풍운'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가장,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나이값 못하는 돌팔이 의사, '야인시대'에서는 자상한 할아버지 등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100% 소화해내는 모습은 시청자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방송국 원로대접 받는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악역도 많이 했다.[* 수미옥 13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때 술회한 바에 의하면 TBC 범죄수사극 검은수첩에 범인 역으로 고정 출연해 미성년자 강간치사범이라는 지금 이미지로는 상상도 안되는 역을 했었다고 한다. 강간치사범 포함해서 33번이나 범인으로 출연해서 이미지 회복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렸다고 한다.]
하이킥 이후 원로 연기자로서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그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가 잦다. 특히 못마땅해 하는게 젊은 배우들이 대본은 안보고 딴짓한다든가 합 안맞춰보고 혼자 밴에 틀어박혀 있는 것. 남에게 훈련을 강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매일 발성연습을 몇시간씩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일단 이게 기초작업이고 연기로 가면 시간이 더 왕창 들어간다. 본인은 오랜 연기 인생의 비결로 암기력, 금주, 연구를 꼽았다. 특히 술에 대해서는 당시 깡소주(강소주)를 마시던 배우들은 지금 대부분 연기에서 은퇴했다고 금주를 강조했다.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 [[동양방송|TBC]] 시절 이 후에는 큰 상을 받은적이없다.] 하이킥의 야동순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 아무래도 연예대상 시상식인 만큼 같이 수상한 [[무한도전]]팀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순재 또한 겸연쩍다는 내용의 수상소감을 했다.]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와 [[강부자]]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이순재는 젊은 시절에 주연급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순재 본인이 직접 자신이 항상 첫번째는 아니고 신성일처럼 스케줄이 넘치는 스타의 대타였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활동 초창기부터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를 많이 만났다. 60년대 시점에서는 신성일, 신영균, 남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수많은 흥행작을 낼 때, 이순재는 이들 영화에서 고작해봐야 조연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70년대 시점에서도 한진희, 노주현, 박근형, 임채무처럼 당시에도 쟁쟁한 후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남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백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절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단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순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순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순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 ]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애니메이션)|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비성우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비성우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http://news.maxmovie.com/74030|#]]] --이것이 바로 이순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이순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절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순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comment_srl=2358142&listStyle=gallery&mid=movietalk&page=997&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764826|#인터뷰]]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시는 사람이 아니다.]이순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자신의 긴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으로 [[1982년]] KBS[[사극]] <풍운>에서 맡았던 [[흥선 대원군]]역을 꼽았다. 또한 다시 한번 더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윤보선]] 대통령 역을 자주 맡았다.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 4번.
- 흥친왕 . . . . 96회 일치
|전임자 =
|후임자 =
|전임자2 =
|후임자2 =
|전임자3 =
|후임자3 = [[이준용 (1870년)|이준용]]
|전임자4 =
|후임자4 =
|별칭 = 재면(載冕), 이희, 초명은 재록(載錄),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 다른 작위는 완흥군
|배우자 = 풍산 홍씨, 여주 이씨, 첩 1명
|자녀 = [[이준용 (1870년)|이준용]], [[이문용 (왕족)|이문용]]
'''흥친왕 이재면'''(興親王 李載冕, 완흥군(完興君),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 [[1912년]] [[9월 9일]])은 조선 말기의 왕족·군인·정치인이자 [[대한제국]]의 황족·군인으로, [[흥선대원군]]의 적장자(嫡長子)이자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친형이며 [[영선군 이준]]의 아버지이다. 대한제국 성립 후 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되었다가 [[1910년]] 흥친왕(興親王)으로 진봉되었다.
[[1874년]] [[11월]] 이후 [[흥선대원군]]은 그의 아들 [[이준용 (1870년)|이준용]]을 [[조선 고종|고종]]과 [[민비]]를 몰아내고 추대하려 했고, 4회의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그는 고종의 냉대를 받았고 [[1899년]](광무 2) [[조선 장조|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된 뒤에도, 당시 황제의 친형이었음에도 4대 승습에 따른 작위를 받지 못했다. [[1907년]](융희 1) 완흥군에 책봉되었고, [[1910년]](융희 4) [[8월]] 흥친왕으로 진봉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공작]]으로 강등되어 이희 공이 되었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고,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이고 나중에 개명하여 이희(李熹)로도 알려져 있다. 첫 작위가 완흥군이었으므로 '''완흥군 이재면'''으로도 부른다.
흥친왕 이재면은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한성부]] 사동(寺洞) 사저에서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이었다가 뒤에 재면으로 고쳤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이희공실록]]에 의하면 그가 태어나자마자 지어진 이름은 재록이었다 한다. [[조선]] [[조선 헌종|헌종]]과 [[조선 철종|철종]]이 연이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이재면 역시 유력 왕위계승권자로 지목되었으나, [[조선 철종|철종]]이 사망할 무렵 그는 성인이었기에 왕위계승권 서열에서 밀리게 되었다.
이는 [[조선 철종|철종]] 사망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였던 [[대한제국 고종|이명복]]([[흥선대원군]]의 차남)이 성인인 흥친왕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계략과 [[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묵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일부를 포섭할 때, [[김병학]](金炳鶴)의 딸, 혹은 [[김병문 (조선후기)|김병문]]의 딸 중에서 둘째 아들인 [[대한제국 고종|명복]]의 배필로 맞이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것 역시 재면 보다는 명복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한때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큰아버지 [[흥완군]] 이정응의 양자로 보내지는 것이 고려되기도 했다. 그의 흥완군 양자 지정 논란은 [[1864년]] 고종에 의해 취소되어 최종 종결되었다.
친동생 [[조선 고종명복]]이 있었고, 그 외에도 서출 출신 이복형 [[이재선]]과 [[이윤용]]의 처가 된 이씨가 있었다. 한때 [[이재선]]은 그의 동생으로 알려졌다가 [[이재선 모역 사건]] 당시의 심문, 추궁, 재판기록이 나타나면서 이재선이 그보다 연장자인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풍산 홍씨 홍병주(洪秉周)의 딸과 결혼하여 [[이준용]], [[이문용]] 형제와 2녀를 얻었으나 일찍 죽고 뒤에 38년 연하인 참봉 이인구(李麟九)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밖에 1명의 첩에게서 서녀 1명을 보았다. 남달리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뜻을 거슬리지 않았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그런 그보다 영특하고 야심만만한 손자 [[영선군]] [[이준용]]을 더욱 총애한다. 그는 여러번 [[과거 시험]]을 준비하였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낙방하였다.
[[1863년]] 관직에 올랐고, 그 해 사용(司勇)이 되었다.<ref name="daum1">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8a0288a</ref> [[11월]] 인정전(仁政殿)에서 [[조선 철종|철종]]이 감제(柑製<ref>매년 감과 귤이 처음 열리는 날 직후에, 조선의 임금이 감귤 열리는 것을 기념하여 직접 주관하는 과거 시험이다.</ref>)를 친히 주관할 때 1등하여, 바로 [[과거 제도|과거]]에 직부전시(直赴殿試)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되었다.
[[1863년]] [[12월]] 동생 [[대한제국 고종|재황]]이 후사없이 죽은 [[조선 철종|철종]]의 뒤를 이어 [[조선]]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바로 승후관부사용(承候官付司勇)에 제수되었다. [[1864년]](고종 1년) [[5월]] [[문과]]에 급제하여 그날로 규장각 대교(待敎)에 임명되었고, 여러 고위 관직을 거쳤다. 그해 [[8월]]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다시 그를 아들 없이 죽은 형 [[흥완군]]의 양자로 보냈다. 그러나 대왕대비 조씨의 특명으로 다른 종친의 자제를 [[흥완군]]의 양자로 하도록 하고, 이재면의 양자 입양은 취소되었다.
1866년 도승지, [[1867년]]에는 직제학이 됐다가 그해 3월 가선대부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로 승진하였고, 바로 [[이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동지경연사, 종정경에 제수되었고, 의정부 당상을 역임하였다. 그 뒤 [[병조]][[판서]], 금위대장,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1873년]] 종정경(宗正卿)이 되었으나 [[1874년]] [[11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에 의해 섭정직에서 강제 축출당한 뒤에도 그는 유유하고 고분고분한 성격 덕에 계속 관직에 남아 있을수 있었다. 동생이 국왕이었고 아버지는 섭정인데도 자신에게는 낮은 직위가 부여되었던 것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이때문에 그는 한때 [[명성황후]] 측에 가담하기도 했다. 외가인 민씨 척족에게 아부한 것 역시 관직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95회 일치
||<:><#4C4C4C>'''{{{#FFFFFF 출생}}}'''||[[1973년]] [[3월 15일]]([age(1973-03-15)]세)[* [[1973년]] [[3월 15일]]은 주민등록상의 생일이고 실제로는 1972년 12월 15일이라는데 공신력있는 증거가있으면 추가바람.] / [[전라북도]] [[군산시]] [br] 물고기자리/검은소띠 (계축년) ||
||<:><#4C4C4C>'''{{{#FFFFFF 본관}}}'''||[[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 [[효령대군]] 20세손, 시조 43세손 宰자 항렬이다. 동일 항렬 유명인으로는 [[이휘재|이영재]], [[이혁재]], [[이학재]] 등이 있으며, [[이경규]]와 [[써니(소녀시대)|이순규]]는 손자, 손녀 뻘이 된다.] ||
1999년 제1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2006년 제29회 황금촬영상 연기대상, 2013년 제34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2014년 제5회 올해의 영화상 남우조연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으며,[* 자세한 것은 수상 경력 항목 참고.] 2007년 3월 [[국가정보원]] 명예요원,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장동건]]과 더불어 유이하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 전에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청춘스타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백재희'역을 맡아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폭풍 스타가 되었다. 사실 당시의 이정재는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시망]]인지라 그냥 말을 안 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 뒤에서 묵묵히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모습이 더 멋졌던 것. 주인공인 [[최민수]]나 [[박상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힐링캠프]]에서 언급하길 당시 극성 팬들은 집까지 찾아오고 사인회를 하면 그 일대가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한다.] 전국 검도장이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보고 온 남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 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의 이상형 1위가 되었고 방영이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각종 매체에서의 보디가드 역은 백재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후1994년 12월 23일에 [[입대]]하여 52사단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6년 6월에 제대했으며, 개그맨 [[유재석]]과 군대 동기다. 유재석이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으며 힐링캠프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했다.[[https://youtu.be/W31NK0EW17s|#]] 입대 이후에는 군대에서도 여러 국방홍보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외에도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거의 [[대한민국]] 최초로 남자의 '[[몸짱]]'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상반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난 영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게 젊은 여성 팬들에 의해 감상/보관용으로 뜯겨나가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녀]]》에서도 재현되는 그 근육.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하지만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2008년에 아레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끄집어내 말하면서 동정표를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이제까지 친형에 대해서 함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아무튼, 고생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소년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데뷔 초에는 하용수의 친척으로 알려져 [[금수저]] 논란이 있었다. 디자이너 출신인 하용수는 톱 모델을 거느린 모델 기획사를 운영해 연예계 마당발로 통했는데, 이정재도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9611/leejung.htm|그가 발굴한 스타]]이다. 이 기사에선 친척뻘이라 했지만 당시 청소년들은 하용수의 조카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정재가 방위 판정을 받았을 때 [[평발]]이란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촌 빽을 썼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선 이정재의 어려운 가정사가 전혀 나오지 않았기에 빚어진 오해인 듯.
원래 이정재는 배우가 아니라 건축 인테리어나 미술 쪽으로 직업 방향을 잡았다. 고등학교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덕에 학업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노는 데에 정신을 팔았다고. 그러다 고교시절 미술 교사가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아는 미술학원에 보내서 공짜로 입시교육을 받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대 진학을 도전했으나,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서 결국 미대는 갈 수 없었다.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상).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다. 같은 날 방위병으로 입대한 다른 동기로 좌회전의 리더였던 [[김진(배우)|김진]](복무를 마친 후 연기자로 전향), [[투투(가수)|투투]]의 멤버였던 유현재 등이 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배우이길 떠나 자신이 영화를 찍어보려고도 해보고 나름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상당히 진지하다고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다소 평이 엇갈린다. 몇몇 영화에선 굉장한 열연을 해보이긴 하지만 일상적인 연기를 맡기면 어색한 티가 많이 난다는 편.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데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래의 다른 연기자들([[장동건]], [[정우성]])에 비해 다양한 역을 소화하기에 보다 적합한 비주얼이고 그래서 하나의 색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색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에도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되지 않고 야망을 가진 청춘, 고뇌하는 형사, 야비한 도둑, 성적 판타지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 언더커버 경찰, 속물 주인집 남자, 두 얼굴의 독립군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그 자신도 '캐릭터 수집'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이 메리트라면 메리트. 사실 《[[하녀]]》 이전에는 조금 주춤한 것 아니냐는 평이 대세였으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더 다양해진 영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분출하는 연기보다는 안으로 흡수하는 연기를 더 잘 한다.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태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반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백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굉장히 의외이고 이런 유례는 상당히 적지만 사극연기 하나만큼은 꾸준히 평가가 좋다(...) 캐릭터 운도 한몫하지만 이미지완 다르게 시대를 초월한 인물,아님 지극히 역사적인 인물을 맡더라도 사극이라면 현대극 과는 얘기가 달라진다. 고어체를 은근히 잘 소화해내는 것도 그렇지만 분위기 자체가 잘 녹아드는걸 생각하면 그저 적성이라고 밖엔... ~~대하드라마 부활하면 출연이 시급하다... 이방원역으로 적절할듯~~ 대선배이자 역대급응 논하는 송강호가 유독 사극에선 호불호가 갈리는걸 생각하면 참 묘하다(...)
제대 후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가 맞는 옷인지도 모르겠고 갑작스레 얻은 인기와 돈 때문에 이 직업이 자신의 길인지도 잘 모르던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당시 소속사 부도로 인해 그 빚을 모두 떠안게 되어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실 모래시계나 느낌같은 경우 2010년대에도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볼수 있는데 발연기가 무엇인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하다. 다만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저 당시에 드라마에서는 뭔가 대단한 연기를 요구한 일이 별로 없었고 그 당시는 그정도했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진짜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90년대 말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를 찍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여태까지 맡았던 캐릭터들과 많이 다른 쌈마이 역할이었고 영화 자체도 다소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이후 정우성과는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사이가 된다. 이 영화로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 [[한석규]], [[박중훈]], [[최민수]]와 함께 쟁쟁한 배우들. 이 때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청룡영화상 한정이고, 전체 영화상을 따지만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홍경인]]이 최연소 수상자이며, 이 기록은 안깨지는 중.]
우습게도 청룡영화상의 저주인양 거의 10년간 암흑기가 지속된다. 물론 이영애랑 작품했던 선물도 잘되고[* 무려 [[김태희]]가 이영애의 아역으로 나온 영화다] 태양은 없다의 홍기역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 브라더스]]는 [[이범수]]와 함께하면서 잘된작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둘다 아주 크게 대박난 작품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동안에도 활동을 활발히 했다. 물론 90년대 중후반에 비해서 줄어들긴 했지만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 청룡영화상을 받은 해에 개봉했던 [[이재수의 난]]은 배우들 모두가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흥행 참패. 당대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의 은퇴작 인터뷰도 망했다. 장진영과 함께한 오버더레인보우, 이미연과 함께한 [[흑수선]], 곽경택 감독이 천만을 노리고 [[장동건]], 이정재를 캐스팅해 만들었던 [[태풍]]은 대대적인 홍보 및 밀어주기까지 했으나 500만에 그쳤다. 문제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 500만도 적자였다는 것. 이 후 [[에어시티]]로 복귀하면서 드라마에서라도 재기를 꿈꿨으나 [[최지우]]-[[이진욱]]만 연결해주고 끝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감독이 각잡고 만든 [[트리플]]에 출연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망했다.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사의 이정재는 흥행부도수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는 거의 퇴물급의 배우가 되어갔다.
이후 본인 인생에 [[모래시계]]와 더불어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 될 《[[도둑들]]》, 《[[신세계(영화)|신세계]]》로 연기, 인기, 흥행 면에서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퇴물급으로 전락하며 CF나 근근히 찍어가던 한물간 청춘 스타에서 압도적인 분위기와 중후한 매력을 지닌 폭발력있는 중년 연기자로 정착했다.
총 관객 약 913만을 기록하며 역대 사극영화 중 네 번째 흥행작에 오른 관상은 평이 엇갈리고 지루하다는 평도 있으나,[* 2시간 20분이나 되는 긴 영화가 수양대군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정도로 극중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에 대해선 거의 만장일치로 호평 일색. 많은 기자들은 관상이 이정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일반 관객들의 평도 매우 좋다. 관상보러 갔다가 [[수양대군|수양]] 보고 나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첫 등장 장면을 런웨이로 만들어 버리며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나오는 첫 등장 장면을 포스로 잠식해 버렸다. 누리꾼들은 이정재의 등장씬을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배우)|강동원]]의 우산씬, [[아저씨]]에서 [[원빈]]의 삭발씬과 함께 한국영화 3대 등장씬이라고 부른다. [[이병우]] 음악감독은 그 장면에 쓰인 음악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고 했고, [[한재림]] 감독은 슬로모션 촬영 및 큰 개 두마리를 동원하여 시각적, 청각적으로 위협감을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배우 본인은 이 역할을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등을 시청하면서 극중 '[[이리]]'의 상이라 표현되는 [[수양대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정재에게 [[관상(영화)|관상]] 시나리오가 온 것은 2012년 여름에 부산에서 [[신세계(영화)|신세계]]를 촬영할 때였는데, 그 때 감독이 직접 찾아와 대본을 전했다고. 처음에는 더 센 이미지의 남자 배우가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하녀]]의 고훈 캐릭터에서 배어나온 기품과 카리스마를 원한다는 감독의 설득에 결국 역을 맡게 된다. 결과는 대박. 배우 본인의 아버지까지 네가 무슨 [[수양대군]] 이미지를 갖고 있냐면서 말렸다는데, 결국엔 역사상 최고로 섹시한 [[수양대군]]이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연기력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94회 일치
신성로마제국 소속 국가들은 황제국 전용 디시전을 8단계까지 마치면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 다만 황제자리는 군주국만 차지할 수 있다. [* 굳이 제국 소속 국가가 아니더라도 일단 황제국만 되면 자기나라를 제국령에 포함시키는 형식으로 제국에 가입할 수 있다. 편입시킬때마다 쌓이는 제국권위 1퍼는 덤.]
그리고 독일계 문화권국가[* 그러니깐 신롬안에서 보헤미아,실레지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들은 특정한 프로빈스들 [* 뮌헨, 프랑크푸르트, 아우구스부르크, 헤센, 브라운슈바이크, 함부르크, 록스톡, 베를린, 작센, 쾰른, 팔츠, 알자스혹은 쾨니히스베르그]에 코어가 박혀있으면 독일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 [* 다만, 이경우엔 신롬에서 탈퇴된다. 주의.]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상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상속방식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식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반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주문화권이 프러시아 문화권이거나, [* 시작지점에서 이걸 만족하는 국가는 튜튼 기사단과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 그리고 리가 정도다.] 아니면 자신의 국가가 브란덴부르크일경우에, 쾨니히스베르그를 가지고 있고, 국교가 개신교(protestant)나 개혁교회(reformed)일경우, 프로이센을 형성할 수 있다. [* 브란덴부르크는 어차피 국가이념이 프로이센이랑 같기 때문에 취향따라 그냥 브란덴부르크로 가도 상관없다 ~~대신에 프뽕을 못느낀다.~~]
엄밀히 말하자면 튜튼기사단은 당시 신롬소속이 아니었지만, 프로이센을 형성할 수 있고 신롬내부영역(노이마르크)가 있으므로 여기 기재.
간단히 말하자면 조금 쉬운 비잔티움.
시작지점에서 폴란드와 역사적 라이벌이고, 리보니아 기사단과 역사적 친구관계이다. 이에 따라 폴란드는 거의 무조건 라이벌을 띄우고, 리보니아 기사단은 무조건 동맹을 해온다. 그런데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할경우에 튜튼이랑 리보니아 연합군이 뭔짓을 하든 이것들의 물량을 따라올 수가 없다(...)~~고증 제대로네~~ 그러므로 폴-리투연합을 견제해줄 국가가 필요한데, 추천되는 국가는 헝가리,보헤미아,모스크바,오스트리아정도이다. 그리고 중요한건, 신롬 가입을 위해 오스트리아랑은 무조건 친해져서 신롬가입을 하자. 안그러면 북독일지방 확장이 봉인된다(....)
시작지점부터 선제후기에 오스트리아와의 외교가 용이하며, 폴란드와도 가~끔씩 폴란드가 브란덴부르크에 라이벌을 거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폴란드가 친밀한 의사를 드러내기에 동맹이 어렵지 않다. 일단 추천되는 스타팅은 포메른 정복미션을 얻어낸 다음 폴란드-오스트리아 동맹을 한후에 튜튼기사단을 폴란드에게 땅을 빌미로 끌여들여 공격하거나, 폴란드가 공격할때 따라나서는 방향으로 가자.
폴란드-튜튼 전쟁에 참여할때 주의해야 할 점은 땅 점령을 폴란드가 아닌 브란덴부르크가 하는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하면 폴란드가 프로이센 지방을 전부 먹어버려서 오히려 프로이센 성립도 못하고 프로이센지방을 다먹어버린 폴란드가 러시아와 보헤미아를 패면서 우주승천해버릴 수 있기 때문(...)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황제국의 땅내놔 시전을 봉인시킨뒤에, 포메른(포메라니아)를 쳐서 힌터포메른 일대를 빼앗은 뒤 메클렌부르크를 먹고 뤄벡에 공세를 취하자. '마레 노스트럼'DLC이후로 뤄벡이 근처 자유도시와 OPM[* one province major, 프로빈스 하나짜리 국가]국가들과 방어연합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격을 나가기전에 폴란드가 참전하는지는 꼭 확인하도록 하고, 싸우도록 하자. 1대1로는 어지간해선 못이기니(...)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플레이어의 국가의 주문화권이 이탈리아 지방 문화권에 속해있을경우, 필요 프로빈스를 다먹었을때 이탈리아를 형성할 수 있다.[* 단, 교황령은 불가능. 실제 역사에서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이 교황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독립을 추진한 적이 있었으나, 교황청은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거부하여 무산되고 사보이 왕국을 중심으로 독립을 추진한 것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을듯.] 추천되는 국가는 사보이,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나폴리 정도. 본래 나폴리나 교황령등의 비 신롬소속 이탈리아 국가들은 확장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1.12패치이후 그림자 왕국(shadow kingdom)이벤트로 1490년이 지나면 이탈리아지방 국가들은 신롬에서 탈퇴하니 조금 나아졌다.
은근히 확장하기 어려운 국가. 이탈리아지방은 신롬소속이 대부분이라 그림자왕국 이벤트 뜨기전까지는 어렵고, 그외에 발칸반도에 있는 식민지들은 플레이하다보면 알겠지만 짐짝인 경우가 상당하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랑 헝가리가 시작지점이든 플레이하다가든간에 적어도 1550년안엔 무조건 공화국을 라이벌지정하게 되있으므로, 충돌은 필연적이다. 아, 그리스지방쪽이랑 로도스노리고 전쟁질해대는 오스만은 덤이다(...)
우선은 그러므로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동맹부터 구해두는게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와 폴란드, 아라곤등이 여기에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 다만 최신패치부터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럴경우 헝가리마냥 초반에 사기장수가 없는 폴란드는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재시작하자(...)] 구호기사단에 걸어둔 독립보장은 괜히 오스만과의 1대1맞다이를 강요하게 하니 관두면서 본토와 달마티아 지방을 육로로 연결하는데 주력하자. 아, 그리고 상인공화정은 영토가 20개이상이 되면 부패도 (corruptions)가 오르기에 그거 줄인다고 수입이 줄어든다. 1.16이후로 외교력 100을 소모해서 상인공화정도 정부체제를 바꿀 수 있으니, 적당히 확장해뒀다 싶으면 바꿔두자.[* 부패도 감소비용을 없앨수도 있으나, 테크비용이 늘어나기에 최종적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시작지점에서 아라곤에게 동군연합을 주도당하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다행히 독립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카스티야와 프랑스,또는 오스트리아에게 독립지원을 요청하자. 전투는 카스티야나 프랑스군에게 맡겨두고 우선은 점령점수만 쌓아둬도 충분히 이길수 있을것이다. 독립 전쟁이 끝나면 몰타와 메시나를 먹고[* 시칠리아섬에 나폴리의 코어가 있기에 중요하다.] 샤르데냐를 부활시키자. 한편으론 제노바가 좋다고 샤르데냐를 먹을지도 모르기에 제노바에 경고를 걸거나 샤르데냐에 독립보장을 걸자.[* 아라곤과의 휴전기간이 샤르데나에 합산되어 나오기에 샤르데냐를 치려면 적어도 10년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다만, 독립보장을 풀면 5년의 휴전기간이 나오는건 알아두자.] 그이후엔 아라곤과의 휴전이 끝나면 아라곤에 공세를 가해서 시칠리아섬 전체를 먹어두자.[* 카스티야를 땅을 준다는 보장으로 끌어들여도 좋다.] 이후 샤르데냐를 정복한뒤에 이탈리아 소국들을 정리해두면서 개신교 개종을 해두도록 하자. 가톨릭을 유지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럴경우 확장하면 할수록 교황령이 파문을 날려대면서 방해할 가능성이 매매우 크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남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상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영역을 먹든, 신롬 영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다만 위치상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반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시작지점에서 네덜란드를 형성하기 가장쉬운 국가기도 하다. 헬러랑 위트레흐트, 프리슬란드지방만 먹으면 된다.~~셋다 신롬 땅이라서 황제국이 오는건 넘어가자~~ 다만 이경우엔 프랑스에 속한 지방은 싹다 프랑스한테 넘어간다. 주의.
통칭 역설국. 제작사가 스웨덴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하다. 국가 이념도 전투쪽에 몰려있어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뜷고 러시아화가 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편. 초반에 덴마크한테 동군연합되버린 상태로 시작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독립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스웨덴이 아무리 북유럽 삼국중 가장 강력해도 덴마크+노르웨이를 1대1로 이기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그러므로 덴마크가 라이벌로 지정한 국가에게 독립지원을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추천조합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혹은 잉글랜드+모스크바등.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것도 좋지만 마레 노스트럼(1.16)패치이후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가 상당히 뼈아파서 그냥 폴란드가 들고 있는 프로이센지방을 뺏어서 발틱노드나 장악하는게 더낫다.
시작하자마자 왕 헨리 6세가 000이라는 아름다운 능력치를 들고 나오신다(...)그러므로 장군으로 굴리든 어떻게든 후계자없이 죽여서 장미전쟁 이벤트를 만드는게 가장 중요하다. 장미전쟁이 끝나면 추가 인력과 위신도 주므로 더더욱.
우선 전자야 어렵지 않다. 어찌됬든 전자의 경우도 브리튼 섬 통일은 무조건 하게 되있기에 스코틀랜드를 독립보장하는 프랑스와의 전쟁은 불가피한데(...) 그냥 해군으로 틀어막으면 된다. 시작시기든 어떤 시기든 프랑스 해군은 절대로 잉글랜드 해군을 이길 수 없다는걸 프랑스에게 상기시키면서 도버 해협을 틀어막자. 단 한번이라도 프랑스 육군의 상륙을 막으면 스코틀랜드는 간단하게 잉글랜드의 맛집으로 변한다. 아일랜드야 뭐 9개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가 서로서로 사이도 나쁘니 각개격파시키면 되고... 그 이후에야 천천히 식민지 개척을 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식민지 개척에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빠른속도로 북아메리카부근에 식민지를 건설하자. 굳이 구대륙으로 가면서 프랑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면 스웨덴 독립전쟁에 끼어들어 북유럽쪽으로 가면 된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93회 일치
|| [[김혜자]][br](2009) || → ||<#FFFFA1> '''고현정[br](2010)''' || → || [[현빈]][br](2011) ||
||<#9A7CA7> {{{#FFFFFF '''가족'''}}} ||<(> 배우자 [[성혼]] (1995.5 - 2003.11)[br]남동생 고병철, 아들 성해찬, 아들[[성문준]] 딸 성해인 ||
[[미스코리아]] 출신인 만큼 출중한 미모에 연기력도 좋고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성공해서 배우로서는 손색이 없다[* 미스코리아 입상 후 연예계로 진출한 인물들은 많다. 그러나 연기자로 입문해서 연기력 하나로 대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드물었다는 점을 보면 고현정의 케이스는 그야말로 눈여겨 볼만하다.]. 탑여배우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예능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느님'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혹평을 받기도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 사생활이나 성격, 인성 뭐로 까이든 간에 작품에서 연기로는 까는 사람이 없는 배우[* 과거 잡지에서 한 인터뷰만 보더라도 연예인이라면 거기에 맞는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연기 경력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 모두 통틀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배우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연기라는 자신의 최고의 재능으로 정상으로 향하던 와중에 재벌 2세와의 혼인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연기자로 복귀해 재기에 성공, 성공의 환희와 어둠을 다 겪은 인물의 표본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0&aid=0000063442|1989년]] [[미스코리아]] 선[* 당시 진은 [[오현경(여배우)|오현경]]이었다.] 출신. 그런데 연기자로 데뷔는 [[한국방송공사|KBS]]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주인공 집안의 딸인 말숙 역으로 했다. 미인대회 출신이면서도 촌스럽다 생각할 수 있는 역부터 시작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 촬영장에 대기하는 시간 동안, '선생님들'이랑 어울릴 순 없으니까 같이 나왔던 아역 탤런트들 군기(..라고는 해도 자기가 제일 크니까 키순서 나이순서로 줄세우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 인터뷰가 있다. 무려 그때부터;]
이후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출연하는 등 차츰 차츰 연기력과 경력을 쌓아 가다가,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작별"[* 여담으로, 이 드라마에서도 김수현 작가는 '연출자를 1주일 만에 갈아치운' 무서운 작가였고, 배우의 발음과 연기 지도가 혹독하기로도 유명했다. 고현정의 정확하고 약간 빠른 대사전달력도 그냥 된 게 아니다.]이나 [[최재성(배우)|최재성]]과 함께 출연한 [[SBS]]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 그리고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 등 연기력으로도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했고,(이 당시 라디오 디제이나 토요일 예능 mc도 뛰었다) 1995년 1월,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출연하여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다.[* 앞에 작별이나 엄마의 바다 등으로 고현정은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모래시계 한 번으로 스타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케이스에 들어맞는 사람은 오히려 이정재인데, 고현정이나 이정재 모두 모래시계 이후 톱 스타 중의 톱 스타로 군림하게 된다. ]
1남 1녀를 두고 잘 사는 듯 했으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4222|2003년 11월 19일 이혼]]하였다. [[이혼]]시 엄청난 루머가 쏟아졌다. 주로 "따돌린다"는 루머.[* 가족들끼리 고현정을 [[왕따]]시키기 위해 영어로만 대화했다가 고현정이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어를 배우자 프랑스어로만 대화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무릎팍도사]]에서 그런 유치한 짓 하실 분들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는데 뉘앙스가 묘하다. 단, 재벌일가 중에서 [[조현아|이런]] [[김동선|사례]]가 쏟아지는만큼 '''루머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다른 것은 고현정과 [[정용진]]이 여행 중 만나게 되어 연애 결혼을 했지만 정용진의 어머니인 [[신세계(기업)|신세계그룹]] [[이명희(기업인)|이명희]] 회장이 결사 반대를 했고[* 참고로 한국의 재벌가는 거의 유럽의 왕족과 같은 분위기를 지녔고([[현대그룹]] 집안 분위기는 명문 양반가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한다)학벌이나 집안은 거의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곳이다(어느 정도냐고? [[아이비 리그]] 대학 졸업이면 일단 합격선으로 들어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캠브리지 대학교]]나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라면 더더욱 환영, 참고로 [[정용진]]이 [[브라운 대학교]] 출신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적인 이목을 한몸에 받는 인기 연예인과 자신의 자녀를 혼인시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다. 결혼은 현실이란 것을 강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이 재벌가의 혼인이다.] 훗날 온갖 스캔들을[* 1억 5천만원짜리 다이아 반지, [[포르쉐 카이엔]] 도난 신고사건 등.] 유발하여 불리한 조건(친자 포기)으로 이혼을 유도하려고 했다는 루머 등.
특히나 위자료에 대한 루머가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썰은 인사동 '''[[스타벅스]]'''의 소유주가 고현정이라는 것. 왜 하필 많은 지점중에 인사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널리 퍼졌다. 다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신세계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50:50으로 투자한 합작회사[* 하지만 이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설명일 뿐이고 대부분의 자본 및 실질적인 투자는 신세계에서 거의 몰빵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이 저렇더라도 이익배분 자체도 다를 것이고 사실상 합작회사라기보다는 좀 더 두둑한 로열티를 주는 형태에 가깝다.]인지라 고현정 본인에게 지점 하나를 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님으로 근거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밝혀진 위자료가 15억원에 불과한데 고현정과 결혼 이후로 [[정용진]] 부회장의 재산이 급증한 점.[* 신세계의 지분과 관계없이 그 시기의 신세계의 주식은 IMF를 지나고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자녀도 둘이나 있는 점[* 아랫쪽에 나와있지만 두 자녀 모두 부모의 좋은 점만 따왔는지 외모가 매우 훤칠하다. 특히, 아들은 정용진, 딸은 고현정을 닮았다. 특히 딸의 경우 사려깊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엄마와의 사이도 좋은 것 같다. 한 SNS에서 고현정의 딸과 지인이 나눈 대화록이 공개된일이 있는데 친엄마가 보고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고싶은 것은 아니며 그건 양엄마에게(그분이라고 호칭) 예의가 아니라고 답했다. 더구나 양엄마보다 친엄마가 예쁘시지 않냐는 질문에는 양엄마도 예쁘신 분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할 정도.], 사촌인 이건희 회장의 맏딸 [[이부진]]씨와 [[임우재]]씨의 이혼소송에서 이부진 씨가 대단한 변호인단을 이끌고 2심에서 완승을 거두었음에도 86억이라는 돈을 지급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15억의 위자료는 적어도 너무 적고 특히나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어하는 재벌가에서 고현정이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고작 15억이 위자료의 전부일 가능성은 매우 적다.[* 고현정이 이혼한 직후, 삼성가의 내부에 대해서 책을 쓰자는 제의도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물론 고현정 본인이 싫어서 안했을수도 있지만 했다하면 15억은 애들 장난수준으로 벌었을 것이다.] 원래는 신세계 백화점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스타벅스로 떼웠다는 얘기들도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루머가 많은 부분.
고현정 또한 무릎팍도사에서 정용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진정성이 있는 태도로 말한 걸 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정용진에 대한 세간의 평판[* 정용진 부회장은 일반인들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다르게 싹싹하고 정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신비주의에서 탈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사실이라면 당사자들은 죽고 못 살 정도로 금슬이 좋았지만 전형적인 시집살이[* 고부갈등+시누이 간의 갈등]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릎팍도사에서 고현정은 이혼에 대해 딱히 대놓고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고 루머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재벌 현모양처)에 대해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간의 인터뷰들이나 수상소감, 방송에서의 말들을 보면 굉장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이혼 후로 한 번도 못 봤다고 했으니...그러나 지난 해 디어마이프렌즈 종영 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최근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재벌이든 뭐든 이혼을 했더라도 자녀와 어머니를 못 만나게 하는 건 불법이다. 고현정이 굳이 제 자식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당연히 만나고 살아야 하는 게 정상. 그간 만나지 못했던건 양육권을 가진 쪽에서 만남을 막았다기 보다 자녀들의 해외 유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낸 탓이 큰듯. 인터넷에서 간간히 아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딸 정해인 씨는 고현정을 많이 닮았다. 고현정의 어린시절이라고 해도 납득할정도다. [* 아들 정해찬 씨는 [[정용진|아버지]]를 닮았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66&aid=0000411603|2018년 최근 모습]] ] 폐쇄 전의 인스타그램 내용 등을 보면 모친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은퇴한 지 딱 10년 후, 일드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역할을 소화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조인성]]과 호연하여, 원래 [[지진희]]와 이어져야 했는데 시청자 반응으로 [[NTR]] 발생. 공교롭게도 모래시계를 찍고 떠난 [[SBS]] 드라마를 통해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충격의 후속작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쓴 김도우 작가의 후속작으로, 여주인공 고병희는 3류 에로잡지 기자 겸 편집부 겸 영업부 겸...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출연한 김은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본뜬 [[고준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도 둘은 친하다고.~~립서비스 같지만 넘어가자~~], [[홍상수]] 감독 최초의 15금 영화(...나머지는 물론 19금) "해변의 여인",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 콤비의 [[히트(2007)|히트]]를 찍으면서 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봄날" 빼고는 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고현정의 시대는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 단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을 캐스팅한 것이 예산의 대부분일 정도로 저예산일뿐 아니라 원래 대충 찍어도 졸라 좋은데 대중성은 엿바꿔 먹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제외해도 좋다.] 히트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의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아 카리스마로 신드롬을 터뜨리며 [*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에 [[소녀시대]]와 같이 실려버림.~~본진을 털었다!~~] "역시 고현정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제작진 전원에게 천만원 상당의 [[닌텐도 DS]][* 고현정은 [[닌텐도 DS]]의 리듬게임 타이틀 '리듬세상'([[리듬천국골드]]의 한국어판)의 광고에 출연하였다.]를 쏘거나,[* 사실 연예인이 스탭들에게 자기가 모델인 제품을 쏘는 것은 기사화로 인한 일종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라서 본인 부담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악조건하에서도 8회 분량(출연료 총 2억 상당)에 대해 개런티 없는 연장에 동의하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야외촬영으로 극도로 열악했던 선덕여왕 배우 스태프의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등, [[대인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의 비효율적 촬영시스템은 유명해서, 박홍균 감독은 28회 일식신 촬영 중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이 탈진할 정도로 다시 찍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무술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촬영 중 무술감독 중 한명이 [[보조출연자]]들을 마구 굴려대자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감행) 이걸 목격한 고현정이 조목조목 따졌다고. 이 무술감독은 공동연출 김근홍 감독으로부터도 '''"무술감독님, 필름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거 영화 촬영용 필름이라서 한장 한장이 비싼 겁니다."'''라고 디스를 당했다.] 50회의 마지막 촬영장면에서는 스태프 전원이 ~~어째 어감은 묘하다만~~ '고미실 사망 축하연'을 벌여 주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06889|#]]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으로 2009년 MBC 연기대상을 수상하였고, 드라마가 끝난 다음 해에도 2010년 [[백상예술대상]], 2010년 [[한국방송공사]] 탤런트상, 2010년 서울드라마어워즈 한류스타상 등을 석권하여, 완벽한 일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다른 드라마에서 주인공 또는 조연이 '미실'을 흉내내는 장면이 나오거나 성격을 묘사하면서 언급된 작품이 공중파만 무려 3개로[* '[[역전의 여왕]]' '[[최고의 사랑]]' '[[마이 프린세스]]'.],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어지간히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육룡이 나르샤]]는 작가가 같으니까 제외;; ~~
[[SBS]] 드라마 [[대물(드라마)|대물]]이 첫방송에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함으로써 여자 배우 중 유일하게 5작품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권상우|누군가]]의 다크 오라를 상쇄하고 있다-- '고현정은 못해도 중박'이라는 말을 입증하듯 평균시청률에서 15% 이하를 찍어본 적이 없으며,[* 봄날 tns 평균 28.4 / 닐슨 평균 27.3 여우야뭐하니 tns 평균 17.4 / 닐슨 평균 16.7 히트 tns 평균 15.5 / 닐슨 평균 15.7 선덕여왕 tns 평균 35.4 / 닐슨 평균 33.9 ] 배우의 스타성에 따른다는 높은 첫방시청률을 뽑아주는 배우다. 선덕여왕 직후 찍은 대물에서는 광고 100억 완판.[* 못해도 중박배우에 해당되는 배우는 고현정 외에도 [[장혁]], [[소지섭]], [[최진실]] 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다만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에서 희대의 악역 [[조필연]]을 연기한 [[정보석]]을 제치고 받아서 논란이 많았다.]
2016년에는 3년 만의 후속작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에 출연했다. 그런데 고현정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이 엄청나게 후덜덜하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주현]], [[김영옥(배우)|김영옥]], [[신구(배우)|신구]]''' 등 고현정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한 대선배들이 줄줄이 출연한다. 그래서, 특별출연을 제외하고 고현정이 막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인지라 우스갯소리로 '''고현정이 막내라서 커피심부름 하는 드라마'''(...)라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 ~~위 라인업 보면 실제로 그럴것 같다. 데뷔 28년차가 막내라니~~ 이 작품은 워낙에 고현정 본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배우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연기력 + 뛰어난 작가의 스토리 + 감각적인 연출이라는 3박자가 절묘하게 떨어진 작품이라 전작의 시청률 만회는 물론이고 다시 한 번 고현정의 주가를 상승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특히 14회 마지막 장면에서 이기적인 자신을 반성하며 자학--셀프 싸대기--하는 장면은 압권.
2018년 SBS 수목드라마 '[[리턴(드라마)|리턴]]' 으로 2년만에 복귀했다. 맡은 역은 변호사 최자혜 역. 하지만... 후술 논란 참고.
2010년 [[SBS 연기대상]] 당시 수상소감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혹자는 소신 있는 소감이었다고 평하며 반대로 시청자를 훈계하는 투였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수상 직후 대상후보였던 [[이범수|모 배우]]의 소속사에서 대상 다음날 아침 루머들을 언급하며 공정하지 못한 대상 수상이었다고 비난성명을 썼다가 막내매니저가 실수로 올린 글이며, 그를 해고조치했다고 사과한 해프닝이 있었다.[* 정작 이 배우 트위터에서 배우 본인이 '[[빅딜]]설'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 애초에 운전하는 막내매니저가 성명서를 배포했다는게 말도 안되는 얘기고. ] 사실 논란의 뿌리는, [[정보석|누가봐도 명백한 대상후보]]에게 ~~공동대상 주면 될 것을~~ '우수상'의 굴욕을 안긴 SBS에게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당시 돌았던 말 중에 고현정은 본인이 상을 수상하지 않으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다는 말이 돌고 있었던 터라, 수상소감에 대한 논란과 고현정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졌던 감이 있다.]
2013년 [[일본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여왕의 교실(MBC)|리메이크한 작품]]의 제작발표회에서 '애들한테 배울 건 없다'고 발언하여[* 정확하게는 동료배우 최윤영에게 한 말로, '애들이 어른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지 태평하게 애들을 보고 배우고 있다는 말이 어른다운 자세냐'라는 타박이었다. ~~맞는 말이긴 하나 굳이 정색해가며 할 필요는 없었던 발언~~ 그러나 아이들을 통해서 배울 수도 있는 것이고 무조건 어른이 옳은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에게서 배워라. 그들에게는 꿈이 있다. -[[헤르만 헤세]]-."] 논란이 되었다. 원작 배우 [[아마미 유키]]의 아성을 깨지는 못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름 선방했다.
2018년 SBS 수목드라마 '[[리턴(드라마)|리턴]]'이 최고 시청률 16.0%까지 찍으며 승승장구 하던 중, 제작진과의 분쟁으로 촬영을 거부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촬영중 담당PD를 폭행하고 욕설을 했다는 폭행설까지 불거졌다.[[https://entertain.v.daum.net/v/20180207205715764?f=m|*]] SBS 측에서는 주연배우 교체를 검토했고, 2월 8일 자정 경에 결국 확정되었다. 고현정 측에서는 "제작진 과의 의견 차이를 더 이상 극복할 수 없어서 하차하게 되었다"고만 밝히고 욕설, 폭행설 등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특별히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820766|공식입장 전문.]] 그리고 8일 오전 11시쯤 고현정 소속사 측에서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753456| "밀치며 언쟁" 폭행 간접 인정]]이라는 추가적인 입장을 밝혔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고현정 측은 기존 언론 보도에서 멱살잡이와 발길질 같은 행동은 하지 않고 서로 간의 언쟁이 오가던 중 밀쳤다고 입장을 밝혔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80208133712383?rcmd=rn|하차와 폭행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이가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네이트판]]에 고현정이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신분으로 강의를 했을때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현재는 삭제되었다.] 그 글에 따르면 고현정은 교수 시절 지각을 상습적으로 했으며, 밥먹듯이 학생들을 노래방으로 데려가 술을 마셔서 즐기고 여학생과 남학생간의 똑같은 성적이라도 학점을 차별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글에서 가장 고현정이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은 매 수업시간마다 그것도 환기가 안되는 지하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는 중에 매 강의마다 10회 정도 [[흡연]]을 했다는 것인데, 이에 한 학부모가 이 문제에 대해 대학에 항의전화를 했으나 오히려 과 대표가 고현정 교수의 흡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넘어가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계속된 학부모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종강 때까지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이 글을 올렸던 당사자가 몰래 찍었던 사진이다. [[파일:교수의 자격.png|width=65%]] ] 그리하여 '''교육자로서 결격사유'''인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다.
- 은혼/602화 . . . . 93회 일치
[[은혼]] 602훈. '''양아치의 자식은 뒷머리가 길다'''
* 주민으로 위장한 나락이 해방군을 습격하려면 화평을 주장한 자작제독은 입장이 곤란해진다.
* 자작은 책임을 추중 당하면서도 이 사태는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의 자멸을 획책하는 자의 함정이라고 역설한다.
* 한때 자작의 라이벌이자 현 해방군 창설자인 원상황자는 자작의 편을 들며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 자작은 지구인 사절 일행을 원상에게도 소개하려 하나 자작은 그 전에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를 이끌고 간다.
* 그것은 실험물로 전락한 천도중들. 원상은 자작보다 이 전쟁의 실체를 먼저 파악했으며 그럼에도 자신들의 갈 곳 없어진 증오에 눈이 멀어 전쟁을 확대하고자 한다.
* 자작 제독의 과거.
* 아르타나 해방전쟁이 시작되기 전, 자작은 어떤 별의 지휘관으로 이웃나라와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 상대는 그의 라이벌이자 이웃나라 "부레이"의 지배자인 원상. 옥좌보다 전장의 초연을 사랑한다 하여 "초연의 황자"라 불리는 맹장이었다.
* 이미 전장에서 여러번 겨뤘던 자작은 친구에게 연락하듯 원상황자에게 연락한다.
* 마침 원상의 아내가 출산이 임박해 있었는데, 이런 데서 입자포나 쏴댈 바엔 부인 곁에서 라마즈 호흡법이나 도와주는게 어떠냐고 드립을 친다.
* 원상은 그런 건 약해 빠진 너네 나라의 얘기라며, 자신의 나라에선 전장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남자 따윈 아내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돌려보내진다고 말한다.
* 아내는 강한 여성으로 "어느 쪽이 공을 세우는게 먼저일지 경쟁하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자작은 과연 초연의 황자의 아내라며 자신도 그 숙적에 걸맞는 싸움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설마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를 뺏더라고 말이다.
* 그때 급한 보고가 들어오는데, 자작은 출산 소식일 거라고 생각하고 "승자는 그대의 아내였다"고 축하한다.
* 아르타나의 폭주. 부레이의 수도는 괴멸해 생존자를 찾을 수 없다.
* 아내의 무덤 앞에서 그를 뒤따라온 자작과 이야기하는 원상.
* 그는 어째서 자신을 퇴각하게 두고, 부레이를 공격하지 않고 두느냐고 묻는다.
* 자작은 "초연 황자의 숙적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싸움"을 하는것 뿐이라고 답한다.
* 원상은 나라도 잃어버린 자신을 "초연 황자"라 불러주는 거냐고 말하는데, 자작은 훌륭한 공적을 세워서 돌아오지 않았냐고 말한다.
- 현아 . . . . 93회 일치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영남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절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영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영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영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백'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반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현아]]의 댄스 실력은 이미 [[원더걸스]] 시절부터 인정받았는데, 비걸 출신 여가수 [[김소리]]는 "[[김현아]]는 어린데도 느낌 있게 춤을 춰요.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내기 힘든 섹시한 느낌이 잘 살죠"라며 춤을 잘추는 아이돌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소리 “포미닛 김현아-2NE1 공민지 춤실력 인정”(인터뷰)|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9-16|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이준 (배우)|이준]]역시 현아를 걸 그룹 중 최고의 춤실력이라고 극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엠블랙 이준 “김현아, 걸그룹 최고 춤실력…섹시하고 뇌쇄적”|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nid=88656&cid=24|출판사=SSTV|저자=황예린|날짜=2010-07-23|확인날짜=2010-11-25}}</ref> 가수 [[이주노]]도 “솔로곡 "Change"에서 춤추는 모습을 봤는데 춤이 아무 맛깔스럽게 추더라”며 “그 노래에서 그 표정, 동작, 노래가 나오는 것은 아주 연습을 많이 했거나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이다”라고 [[현아]]를 최고의 춤꾼으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선견지명’ 이주노 “현재 최고의 춤꾼은 포미닛 김현아” 극찬|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120180131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but뉴스|저자=이정현 기자|날짜=2011-01-20|확인날짜=2011-01-22}}</ref> 하지만, 주로 섹시하고 파워풀한 춤을 추는 [[현아]]는 어린 나이에 너무 선정적인 춤을 춘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되는 등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 name="아시아경제">{{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연습생의 마음으로 준비한 첫 정규, 설레고 신기해"(인터뷰)|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41309374724881|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강경록|날짜=2011-04-15|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현아]]는 주로 다리 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핫팬츠와 미니 스커트, 그리고 스타킹을 자주 입는데, 의상이 선정적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 속바지 다 보이는 미니스커트 '논란'에 "더욱 노력하겠다"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8937|출판사=굿데이스포츠|저자=신섬미|날짜=2009-09-27|확인날짜=2011-04-15}}</ref>
| 김윤겸 여자친구 역할
|rowspan="2"|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솔로<ref>{{웹 인용|url=http://mama.mnet.com/kr/winner.asp?broady=2010|제목= 2010 MAMA 수상자 및 후보자|웹사이트=[[Mnet]]|확인날짜=2011-12-09}}</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2191151|제목=슈퍼주니어 ‘MAMA’ 3관왕, “우리는 미운오리…팬들 감사하다”(종합)|출판사=[[네이버]]|날짜=2011-11-29|확인날짜=2011-11-30}}</ref>
|rowspan="1"|여자 가수상<ref>{{뉴스 인용|url=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4120319035311723|제목='2014 MAMA' 태양-아이유, 남·녀 솔로상|출판사=스포츠투데이|저자=서현진|날짜=2014-12-03|확인날짜=2014-12-0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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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언 토요일}}
[[분류:현아]][[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원더걸스의 일원]][[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인왕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중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마니교 . . . . 92회 일치
마니교는 지배적 지위를 획득한 적은 드물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하여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스페인, 이탈리아, 남 프랑스로 지중해 연안 일대, 동쪽으로는 이란 고원에서 이를 넘어 중국까지 퍼진 광범위한 범위를 자랑했다.
교리는 살생, 폭력을 금지하고, 육체와 함께 '빛'을 손상시키는 자살도 금지하였다.
가장 나쁜 것은 번식으로서, 번식 행위는 영혼의 감옥인 육체를 재생산 하기 위하여 악마가 만든 최악의 함정으로 여겨졌다. 성욕을 끊어서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인류의 의무라고 보았다.
교리는 엄격하였지만 성직자에 주로 부가되었다. 일반 신도는 전부 지킬 필요는 없었고, 일부일처제, 살생을 하지 않는 육식은 허용되었다. 찬가 낭송도 하루 4회로 줄였다. 대신 일반 신도들은 성직자가 생활할 수 있도록 시주를 바치는 것이 요구되었다. 시주를 바치면 내세에 공덕이 된다고 여겼다.
내세에 성직자는 [[천국]]에 올라가게 되며, 일반 신도는 영혼은 해방되지 않지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행실이 좋으면 선행을 쌓기 쉬운 성직자로 태어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다만 행실이 나쁘면 동식물로 태어나서, 선행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이교도는 [[지옥]]에 떨어진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전도지에서 권력자의 딸이 병에 걸리고 이교도는 고치지 못하는데 마니교 성직자가 의료나 기적으로 치료하며, 그로 인하여 부친이 개종하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이는 마니교의 포교 전략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마니교라고 하면 비밀결사나 밀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탄압을 받아 숨어들어가게 된 중국 명교의 특수한 사례로서 오히려 중동의 마니교는 권력자와 지식인과 같은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포교[* 나쁘게 말하면 권력에 아첨]하는 경향이 강했다.
종교적으로 서방에서는 마니교는 기독교의 이단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동방에서는 조로아스터교 신들의 이름을 끌어들여 조로아스터 교의 이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심지어 마니교 교단 조직 역시 "데인 마즈데이슨"이라고 칭하여 조로아스터 교의 신관 조직과 같은 이름을 썻던 것이다. 반대로 마니교 측에서는 기존 종교를 이단시 하였는데 기독교에 대해서는 "세미 크리스찬"(반 기독교인)이라고 칭하고 자신들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칭했다.
마니는 216년 4월 14일,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마르딘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티크는 파르티아의 귀족이며, 어머니 마르얌은 파르티아의 왕족 캄사라간 가문의 출신이었다. 파티크는 마니가 태어나기 직전에 에르사카이 교단에 입신하는데, 이 교단은 [[유대교]] 계통의 신흥 종교로서, 신약 성서나 정통 기독교 사상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율법]]에 집중하는 금욕적인 교단이었다. 에르사카이 교단은 여성은 입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티크는 임신한 마르얌을 버려두고 떠났다가 마니가 3,4세가 되자 아들만 데리고 교단으로 다시 돌아갔다.--뭐냐--
서기 240년, 24세의 마니는 독자적인 사상에 따라서 유태교 율법을 중시하는 교단에 반발하게 된다. 이 때 마니는 타움[* 천계 동반자, 쌍생아. 지상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마니라는 인격과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또 한명의 자신으로서, 일종의 천계판 도플갱어 같은 것이다.]으로부터 계시를 얻었다고 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려 하지만 당연히 구타(…)를 당하게 되었고, 아버지 파티크가 보호하여 살아났지만 교단에서는 추방당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알게 된 친구 아브자크야, 시메온, 아버지 파티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마니 일행은 아마도 왕족인 친척들의 지원을 얻으려 했던 모양으로, 파르티아의 수도(였던) 크테시폰으로 갔다. 하지만 이 때는 [[페르시아]]가 일어나서 파르티아는 멸망했다(…). 마니의 친척 와라가슈 왕 역시 전사했다. 지원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마니는 포교를 계속하며, 간자크에서는 어느 유력자의 딸을 치료해주고 대신 그 딸들 가운데 가장 신중한 딸을 일행으로 받아들였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마니는 인도에서 2년 정도 포교를 했다. 인도에서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지만, 파르티아어 단편으로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투란 왕 앞에서 공중부양의 기적을 보여주자 왕과 귀족이 [[붓다]]라고 보고 귀의했다고 하며, 고비데이샤 라는 현자와 철학 문답을 하여 또 다시 붓다라는 선언을 얻었다고 한다. 인도 여행으로 마니는 자신을 붓다의 후계자라고 여기게 되었다.
242년, 페르시아로 귀환했다. 마니 교단은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였는데, 여기서 아브자크야는 [[시리아]]로, 아버지 파티크는 인도로 떠나서 지부를 담당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사푸르 1세가 즉위하였으며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 이외의 교단에도 관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니는 사산 가문으로 마이선 총독 미프르 샤에게 접근하여, 빛의 천국을 환영으로 보여주고 개종시켰다. 마니는 자크, --어느새 인도에서 돌아온-- 파티크, 시메온과 함께 사푸르 1세를 알현한다. 마니는 자신의 교리를 정리한 사프라간(Shabuhragan)이라는 서적을 사푸르 1세에게 바쳤는데 우주론・종말론・예언자론의 3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요한 신격을 주르반, 아흐리만, 아후라 마즈다, 미트라 같은 이란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차용하였다. 마니는 이 책을 [[페르시아어]]로 저술하고, [[아람 문자]]를 변형한 [[마니 문자]]를 사용하였다. 마니 문자의 발명으로 이란어는 모음의 표기가 가능해지고, 이전까지 쓰였던 불편함이 혁신되어 중세 이란어 표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마니는 사푸르 1세로부터 제국 내에서 포교 허가를 얻게 된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사푸르 1세로부터 3번에 걸친 초빙을 받고, 황제는 마니의 [[후광]]에 압도되어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병든 딸이 있고 마니가 의술로 완쾌시켰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다만 시대배경으로 보면 사푸르 1세는 이 무렵 여러 종교가 번창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종교 관용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이며, 니시비스의 유대교 공동체의 지도자 사무엘을 불러들여 알현을 허락했다는 일화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마니는 단순히 포교 허가를 얻었을 뿐. 특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고.
미프르 샤 덕분에 마니는 신하의 지위를 얻지만, 예언자로서가 아닌 '바빌로니아의 의사'로서 였다. 전해지는 에피소드에 따르면, 사푸르 1세의 가희에게 '배'를 바쳤는데 가희는 이를 증류하여 사푸르 1세에게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30년 가량 궁정의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식적으로 페르시아 내에서 포교를 하게 되었다.
파티크, 앗다, 아브자카야는 로마 영토였던 시리아 지역으로 선교하게 된다. 이 무렵 제노비아 여왕의 지도 아래 [[팔미라 왕국]]이 독립하고 있었는데, 앗다는 마니가 전해준 "거대한 복음"이라는 저작을 바탕으로 하여 제노비아 여왕의 여동생에게 포교하는데 성공하였다. 아브자카야는 시리아 에데사 지역에서 포교에 성공하고, 마니는 시리아에서 기독교 사도를 이어받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앗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포교를 하며, 마니의 저작을 정리하여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모디우스"라는 저서를 출판한다. 그리고 이집트에도 마니교가 퍼지게 된다. 마니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로마 병사들에게 선교를 하였고, 이들이 귀환하면서 마니교는 로마 제국 동부로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또한 [[아라비아]]에도 마니교 선교가 행해졌다고 한다.
마니 역시 의사로서 공무를 수행하면서도, 각지의 제자들을 찾아가서 포교에 도움을 주었다. 제자들은 마니가 2명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한다.
좌천되었지만 마니는 선교를 멈추지 않고 바트 왕을 개종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바흐람 1세와 킬데르의 노여움을 불러, 바트 왕은 출두명령을 받게 되고 마니는 미프르 샤에게 도망쳐서 보호를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실각한 상태였다. 마니는 마니교의 세력이 강한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려 하지만, 이미 출국이 금지되어 있어 감시당하는 몸이 된다. 마니는 제자 아브자크야와 함께 바흐람 1세를 찾아가서 탄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흐람 1세는 듣지 않고, 마니에게 무허가로 궁정에 찾아온 죄,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에 실패한 죄, 신흥 종교를 포교한 죄를 물어 쇠사슬로 묶어서 감금한다.
마니는 옥중에서도 포교를 멈추지 않았는데, 중앙아시아에서 찾아온 제자 마르 앙모에게 봉서를 맡기고 떠나도록 했다. 그리고 감금된 지 26일째의 277년 2월, 사망하게 된다. 옥중에서 사망했다고도 하고, 처형당했다고도 한다. 사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참수되어 성문에 노출되었다거나, 야수에게 먹이로 줬다거나, 두동강이로 잘려서 두 개의 문에 못박혔다거나 --고어-- 가죽을 벗겨서 지을 채운 뒤 책형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웃즈라는 제자가 남긴 중세 페르시아어 단편 자료에서는, 주 마니는 육체라는 옷을 벗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다고 한다.
또한 마니는 사산 왕조의 이전 왕조인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의 왕족 출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이 종교를 퍼트려 방대한 조직을 만들고, 각지의 유력자를 포교하여 끌어들이는 한편, 잔존해있는 파르티아계 귀족이나 중앙아시아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을 소지가 매우 크다.
- 풍운 . . . . 92회 일치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을 중심으로 천하회의 내분을 주로 그린다. 무쌍성의 잔당이 처음에는 적수로, 나중에는 보경운과 섭풍의 한팀으로 등장. 천지12살이 웅패의 아군으로 등장했다가, 웅패가 패배하자 배신을 때린다.
보경운은 무쌍검을 들고, 후릉에 매장했던 공자를 만나러 가지만 무쌍검은 후릉의 석문을 깨지 못하고 부서지고 만다. 보경운은 무쌍검을 대신하여 후릉의 석문을 깰 수 있는 무기를 찾아서 배검산장으로 가고, 절세호검을 손에 넣게 된다.
납치된 황제를 쫓아서 절무신의 본거지인 동영으로 가는 보경운과 무명 일행, 동영의 지배자 '''천황'''(!)은 무명과 풍운을 이용하여 절무신을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천황에게는 또 다른 꿍꿍이가 있었는데.
천황은 절무신이 쓰러지자 풍운과 무명을 배신하고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 천황도 사실 중원을 침공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천황 휘하의 무사들이 중원을 공격해오고, 중원의 용맥을 수호하는 황제(黃帝)의 등뼈를 가져오려 한다. 한편 과거에 실종되었던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단랑의 아버지 남림검수 단수는 이 비밀을 알고서 황제의 등뼈를 지키고 있었다. 섭풍은 천황에게 [[세뇌]] 당하여 황제의 등뼈를 빼앗아서 달아나게 되는데.
천황은 패망하였지만, 섭풍은 아직 세뇌당한 상태로 떠돌고 있었다. 황제는 섭풍으로부터 황제(黃帝)의 등뼈를 되찾으려 하고, 보경운은 섭풍을 정상으로 되돌라려고 한다.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마인이 된 섭풍은 보경운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보경운과 섭풍은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보경운은 섭풍을 구출하고 자신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고 만다.
보경운을 찾는 회공, 회멸 형제의 등장으로 시작. 보경운은 기억상실에 빠져 있다가 복귀하며, 불사신 제석천과 천문과의 싸움이 주된 줄거리다가, 제석천이 살해당하고 단랑이 최종보스로 등극. 풍운은 단랑과의 대결 끝에 단랑을 쓰러뜨리지만, 보경운은 섭풍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얼음 속에 파묻어 버리고 냉동인간 상태로 10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다.
10년의 시간이 흘러 풍운의 자손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정의한이었다가 정파의 위선에 실망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는 보경운의 아들 보천, 섭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도에 빠진 역풍 등.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다소 스토리가 어지러운 것이 문제.
2부 도입부 주인공. 무기를 제조하는 '철문'의 제자로서 금속으로 된 흉수를 무기화 한 괴이한 검 '천죄'를 가지고 다니고, 보경운을 찾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회공이 나중에 사부의 복수를 위해서 연철수를 연마하기 위해 제석천을 찾아가 천문과 엮이게 되면서, 천문 스토리가 시작된다. 제석천의 정체를 알게 되자 상대가 안됨에도 제석천과 필사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고, 제석천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연철수의 위력을 보여주지만, 결국 제석천에게 죽음을 맞고 만다. 회공의 죽음을 보고 보경운이 '회형제'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명을 받을 정도로 감동적. 정말 이 만화에서 보기 드물게 순수하고 올곧은 청년이라 회공의 죽음은 감명이 깊다.
회공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은 개가 아닌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자각하게 되고, 회공에게 자질이 있다고 전수받은 검법을 기초로 하여 무공을 익혔으며, 어떤 방파를 습격하여 장문인을 쓰러뜨리고 지배하는데 성공하여 '독일문'의 장문인이 된다.--그렇게 간단히 장문인이 될 수 있냐-- 하지만 무공은 익혔지만 인성은 오히려 나빠져서 사람을 마구 죽이는 잔혹한 성품이 되었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이마에 개 구(狗)자를 새겨서 괴롭힌다.
결국 악행을 하지 말라고 회공에게 제지를 당하며, 그에게 패배하고 다시 대결하여 이길 때가지 독일문을 시켜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지킨다. 만화 시점에서는 회공과의 재대결에서 다시 패배, 회공을 꺽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독일문을 버리고 회공을 따라서 떠난다. 회공에게 일단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성품 자체는 매우 포악하지만, 자신을 '개'가 아닌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대우해준 회공에게 깊은 은혜를 느끼고 있어 의리를 지키는 의리남.
제석천에게 낚여서(…) 천문에 들어가지만, 천문의 문도로서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과 회공과의 우정에 갈등을 느낀다. 결국 회공을 돕기로 하고 천문을 배신한다. 최후의 순간에는 제석천의 공격에 받아 얼음에 갇힌 회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부딪쳐서 얼음을 부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장렬하게 사망. 그러나 그의 피가 얼음의 틈새로 뚫고 들어가 회공의 몸에 닿는 순간, 무이의 죽음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 회공은 연철수의 공력이 극한을 넘어서 얼음을 뚫고 나와 제석천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활약을 하게 된다.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다'라는 예언자 니보살의 예언 때문에 자신이 천하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심복 제자 보경운과 섭풍에게 편집적인 경계심을 품고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사용한 '마가무량'의 위력에 패배. 이후 천하회의 내분으로 도리어 이전의 부하와 협력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평범한 촌 늙은이가 되어서 딸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만 생각하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던 딸이 보경운의 검에 실수로 살해. 절망에 빠져서 보경운의 절세호검에 스스로 몸을 찔러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보경운이 무쌍검을 훔치려고 천하제일루에 잠입했을 때 갑자기 천지12살과 함께 등장. 이들은 사실 웅패와 협력하는 관계였다. 천하제일루에 숨어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이들의 악행을 보다못한 검성에 의해서 천지가 박살나버렸고 간부였던 천지12살과 도주했는데 도중에 웅패를 만나서 그와 협력하는 대신에 검성으로부터 숨겨주기로 했기 때문.
웅패가 풍운에게 패배하자 웅패를 배신, 천하회를 장악하고 도리어 웅패를 추적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동영 고수들에게 패배하고 천하회는 멸망한다.
배검산장-절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상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무명에 필적할 정도의 고수. 현재 배검산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손가락에서 그냥 빔을 쏘는 거지만 검기를 쏘는 거니까 검술이라고 주장하는(…) 단맥검기를 무공으로 사용한다. 배검산장 편의 최종보스로 엄청난 무공을 자랑했으나, 동영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사형제인 검빈과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변장을 하여 음모를 꾸미는 것이 특기지만, 대체로 독자들은 갈수록 절심 패턴에 익숙해져서 중반을 넘어가면 '이새끼 절심이네'라고 직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좋은 싸움 친구(…)였던 남림검수 단수의 아들. 나이는 섭풍보다 조금 어리다. 섭풍과 함께 섭인왕,단수가 실종된 뒤에 천하회에 거두어졌지만, 이름이 풍운이 아니라서 그런지 웅패는 단랑을 자신의 직전 제자로 들이지 않고 그냥 일반 제자로 만들었으며, 단랑은 열등감에 점점 삐뚤어지게 된다. 결국 천하회를 배신하고 무쌍성 일당과 협력하게 되며, 본래 친구였던 섭풍과 길이 갈려서 대립하는 입장이 된다.
섭풍은 일단 몇 안되는 친구라고 계속 단랑을 살려주지만, 그것이 단랑의 열등감을 계속 자극하여 점점 더 악역화를 거듭한다. 처음에는 화린검의 악함에 홀린 것으로 설명되지만, 화린검이 부러진 뒤에도 개심한 척 하면서 섭풍의 가족을 잡아가고 아버지를 살해하는 등 완벽한 개쓰레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천문에 가담했으나 제석천을 배신하고 용정을 꿀꺽한다. 그리고 좀 착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설득도 외면하고, 자신이 천하회를 재건한 다음 무림제패를 선언한다.
- 한규복 (1881년) . . . . 92회 일치
'''한규복'''(韓圭復, <small>일본식 이름:</small> 井垣圭復, [[1885년|1881년]] [[7월 7일]] ~ [[1967년]] [[9월 13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통역관, 화가, 서예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화가, 서예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일제 강점기]]의 신념형 친일파의 한 사람이었다.
해방 후에는 정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곡자]]의 대표이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한 뒤, 조사받고 풀려났다. 이후 기업 활동과 언론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인 도지사 경력자 42명 가운데 배경이 되는 엘리트 출신 고위관료 8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서예]]에 능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나 수상하였다.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고 자(字)는 덕중(德仲), 호는 온재(溫齋)이다.
[[1875년|1881년]](고종 17년) [[7월 7일]] [[한성부]] 평동(平洞) 19번지에서 주사 한만홍(韓晩洪)과 평산 백씨(平山白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한규호는 구한 말 군인으로 활동, [[보병]][[참위]]와 [[보병]][[부장]]을 지냈고 통정대부에 이르렀으며, 퇴역 후 [[1908년]](융희 2년) [[기호흥학회]]의 창립에 참여, 회보인 기호흥학회월보의 후원자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기업인으로도 활동하여 1908년 6월 4일 [[한성]]의 연강목선운륜(沿江木船運輸) 주식회사의 중역으로 활동하였다.
[[1902년]]에는 [[와세다 대학]]에 다니면서 [[일본]]의 [[유도]]도장인 [[강도관]](講道館)에 다녔다. 공승화전개(일본 工勝花雷介)의 《비록일본유도(秘錄日本柔道)》의 기사와 일본강도관에 조회한 바에 의하면 [[1902년]] 한규복 등이 [[강도관]]에 입문하여 [[유도]]를 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f>김정행, 《무도론》 (대한미디어, 1997) 129페이지</ref> 그는 [[1902년]] [[8월]]부터 [[유도]]를 배웠다고 한다.<ref>이학래, 《한국유도발달사》 (보경문화사, 1989) 37페이지</ref> 일본의 유도 전승에 자극받은 그는 귀국 후 [[조선]]의 [[유도]] 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상소를 올려 [[택견]] 관련 인물과 유파를 찾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상주하기도 했다.
[[1903년]] [[대한제국]]의 [[탁지부]] 주사가 되었다. [[1904년]](광무 7년) [[9월 27일]] [[대한제국 국군]] [[참모부]] [[번역관]]보(參謀部飜譯官補)가 되고 [[판임관]] 6등(判任官六等)에 임용되었다. [[1905년]](광무 8년) [[3월 21일]] [[군부]] [[번역관]](飜譯官)으로 승진,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이 되었다. 이후 [[군부 (대한제국)|군부]], [[탁지부]] 등 여러 부처에서 번역관 벼슬 등을 지내고 [[탁지부]] 서기관과 주임관을 역임하였다. [[1905년]] [[11월 5일]] [[경기전]]을 건축하는데 참여한 공로로 6품으로 승진하였다. [[1906년]] 탁지부 번역관으로 옮겼다. 그해 [[1월 19일]] [[순릉]]비각영건과 표석 수립에 감독관으로 참여한 공로로 다시 6품에서 정3품으로 [[가자]], 일약 승진하였다.
[[1926년]] [[8월]]에 다시 도지사로 승진, [[8월 14일]] [[충청북도]]도지사가 되고 [[1929년]] [[4월]] [[고등관]]1등(高等官1等)으로 승급되었다. [[1929년]] [[11월 28일]] [[황해도]][[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30년]] [[1월 24일]] [[황해도농민회]] 회장에 임명되었다.<ref>조선총독부 관보 1930년 01월 24일자</ref> [[1930년]] [[2월]] [[황해도]] 도지사에 재임명된 뒤 [[1933년]] [[4월 7일]]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했으나 그해 [[6월 4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칙임관]]대우 [[참의]](中樞院勅任官待遇參議)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수당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4년]]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 기간 중 [[흥아보국단]],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여러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 걸쳐 수상하였다.
[[1933년]] [[7월 21일]]에는 중추원 시정조사위원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0월 21일]]에는 소작농심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4년]]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지구위원장(京城府敎化團體聯合會 西部敎化地區委員長)이 되었다. [[1934년]] [[7월 14일]] [[금융]]단체의 연합회인 [[금융조합연합회]] 창립에 참여, 자문상담역<ref>"금조연합회, 자문기관 설치", 조선중앙일보 1934년 07월 22일자 4면</ref>에 위촉되었다. [[7월 21일]] [[금융조합연합회]] [[경기도]]지역 참여에 임명되었다. [[1934년]] 여름 홍수로 [[조선]] 삼남 지방에 수해가 심해지자, 그해 [[8월 30일]] [[조선총독부]]에서 [[치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때 그는 민간측 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1935년]] [[2월 6일]]에는 [[경성부]]에서 [[윤치호]] 등이 조직한 [[계명구락부]][[재단]](啓明俱樂部財團) 위원의 한 사람에 위촉되었다.<ref>"啓明俱樂部財團組織 十萬圓으로 會館新築", 동아일보 1935년 02월 06일자 2면, 사회면</ref> [[1930년]]대 중반 이후 그는 각종 계몽, 강연회를 다니면서 근검 절약의 필요성, 불필요한 사치품과 물건 강매, 사재기 등을 하지 말 것, 저축을 하여 가사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것, 도박과 노름, 사행성 복권 등 헛된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여 대가를 취할 것을 강조하였다.
일본 정부는 한규복에게 여러차례 훈장을 수여해 공적을 인정했다. [[1929년]] 훈3등 서보장을 받는 등 퇴관할 때에는 정4위 훈3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된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
|저자=성강현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저자=성강현
[[1936년]]에는 그는 [[참정권]]을 얻어낼 계획을 세웠으나, 일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jiji">송건호, 《송건호전집 4: 한국현대사 2》(한길사, 2002) 100페이지</ref> [[이규완]]의 [[조선인]][[참정권]]론, [[자치]]권 획득론에 공감하게 된 그는 [[박중양]]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조선인 참정권을 허용해줄 것을 여러 번 건의하였으나 번번히 묵살되었다.
[[지원병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일부 친일 유지층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제기되었다. 먼저 [[박춘금]](朴春琴)이 [[대의사]](代議士)가 된 후 일본국회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 그후 친일인사들에 의해 여러 번 건의되었다. [[1936년]] [[11월 24일]] 경성부회의원 조병상(曺秉相), 중추원참의인 한규복 등이 중심이 되어 30여 명의 간담회를 열어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키 위해 위원 8명으로 기성회를 구성하고 [[1937년]] 발회식(發會式)을 가질 예정이었다.<ref name="jiji"/>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이 문제가 [[참정권]]하고도 관계가 있다 하여 일단 중지시켰다.<ref name="jiji"/> 이후에도 그는 [[조선총독부]]에 참정권 허용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한다.
[[1937년]] [[1월]] [[방송선전협의회]](放送宣傳協議會) 위원으로 위촉되어 수양강좌·부인강좌·상식강좌의 강사로 출연하였고, [[7월]] [[중추원]] 주최 행사에 참여하였다. 동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의 소득을 조사할 목적으로 국민소득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 한규복은 국민소득조사위원회 경성지역 관내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8월 3일]]부터는 [[10월]]까지 총독부 학무국에서 지나사변 이후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자 순회시국강연위원회를 조직할 때 연사가 되어 [[서울]]과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8월 16일]]에는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시국강연을 하였다. [[9월 10일]]에는 용인공보교 대강당에서 [[용인군]] 지역 시국강연회를 주최하였다.
[[1938년]] [[조선간이생명보험사업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1938년]] [[3월 3일]] [[성남고등보통학교]] 재단인 [[원석학원]] 재단 이사가 되었다. [[5월]] 재무간담회(財務懇談會) 회장에 선임되었다. [[5월 17일]] 체포된 법학자 [[정광현]]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여 석방시켰다.<ref name="yunchi381">윤치호, 《윤치호 일기 1916-1943》 (김상태 역, 역사비평사, 2001) 381페이지</ref> [[서대문경찰서]] 서장을 만나 '나를 봐서라도 [[정광현]]에게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5월 17일]] 오전 9시 30분, 서장은 한규복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ref name="yunchi381"/>
[[1938년]] [[8월]] 설치된 총독부내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 97명 가운데 한규복은 [[김연수 (1896년)|김연수]](金秊洙), 박영철(朴榮喆), [[박중양]], [[박흥식 (1903년)|박흥식]], [[윤덕영]], 이기린(李基燐), [[이승우]](李升雨), [[최린]](崔麟), [[한상룡]](韓相龍), [[현준호]](玄俊鎬) 등과 함께 조선인 위원 11명 가운데 1명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해 [[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 시행되자 한규복은 윤치호, 이승우, 조병상, 조성근 등과 함께 지원병제 축하회 구성을 위한 타협발기인회를 열고 실행위원진을 구성하였다. [[7월 8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0월 7일]]에는 [[중일전쟁]] 등 부상병을 위문하기 위해 [[용산육군병원]]을 방문하고 [[금일봉]]을 지급하였다.<ref>"中樞院參議 傷病兵慰問", 동아일보 1938년 10월 07일자 2면, 사회면</ref>
[[1939년]] [[2월 2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각 정(동)지역 연맹 애국반 창설에 참여하였으나 [[윤치호]] 등의 불참으로 [[김명준]], [[이승우]], 조병상 등 참여자들 일부와 함께 조직 착수에 나섰다.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순회강연을 할 때, 순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백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백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영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1939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참여에 선임되었다. [[1940년]] [[5월 30일]]에는 [[동아일보]]에 "저축과 국민생활"이라는 주제의 칼럼을 발표하였다.<ref>"貯蓄과 國民生活", 동아일보 1940년 05월 30일자 5면, 생활/문화면</ref> [[5월 30일]]과 [[5월 31일]], [[6월 1일]]에는 경성중앙방송국에 출연하여 저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5월 31일]] 오후 7시 30분에는 경성제2방송국에 출연하여 저축의 필요성에 대하여 강연하였다.
- 현진건 . . . . 92회 일치
| 배우자 = 이순득(李順得)
| 자녀 = 슬하 3녀 <br/> 장녀 현경숙(玄卿淑) <br/> 차녀 현애경(玄愛卿) <br/> 3녀 현화수(玄和壽)
| 친척 = 재종조부 현학표(玄學杓)<ref>현학표는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할아버지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현학표의 조카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재종조부가 된다.</ref> <br /> 6촌 형 현홍건(玄鴻健) <br /> 6촌 형 현석건(玄奭健) <br /> 6촌 형 [[현정건]](玄鼎健)<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형제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형이 된다.</ref> <br /> 6촌 누나 [[현송자]](玄松子)<ref>[[현영운]](현진건의 5촌 숙부)과 그의 2번째 아내 [[배정자]] 사이에서 출생한 딸이다.</ref> <br />6촌 자형 [[이철 (1903년)|이철]](李哲)<ref>[[현송자]]의 2번째 남편이다.</ref> <br /> 6촌 아우 현성건(玄盛健) <ref>현성건 또한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이복 동생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아우가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운(玄轍運) <br /> 5촌 숙부 [[현영운]](玄暎運)<br /> 5촌 숙부 현양운(玄暘運) <br /> 5촌 숙부 현붕운(玄鵬運)<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숙부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조카 현진건이 이들의 사촌 형제인 5촌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5촌 당숙이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 (1891년)|현철]](玄哲)<ref>본명은 현희운(玄僖運).</ref> <br /> 5촌 숙모 [[배정자]](裵貞子)<ref>[[현영운]]의 2번째 아내이다.</ref> <br /> 장인 이길우(李吉雨) <br /> 사돈 [[박종화]](朴鍾和)<br />사돈 [[윤치호]](尹致昊)<ref>친형이자 호적상 6촌 형인 현정건의 처당숙</ref><br />사돈 [[윤치영]](尹致瑛)<ref>삼촌이자 호적상 5촌 숙부인 현영운의 사위 윤치오의 동생</ref><br />사돈 [[윤보선]](尹潽善)
일제 지배하의 민족의 수난적 운명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 묘사를 지향한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현진건의 집안인 연주 현씨는 [[역관]](譯官) 등의 [[잡과]](雜科) 출신을 많이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에 해당한다. 현진건의 6대조로 왜역(倭譯) 즉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태형(泰衡)부터 한역(漢譯) 즉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5대조 상복(商福), 몽역(蒙譯) 즉 [[몽골어]] 통역관이었던 시석(時錫)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관으로서 활약하였으며(각자의 처가도 또한 역관 집안이었다) 증조부 경민(敬敏)도 왜역으로 [[동래]](東萊)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현진건의 숙부인 현양운이 조민회의 후임으로 주왜공사(住倭公使)가 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영운의 가계를 그의 할아버지(즉 현진건의 증조할아버지)가 왜역으로 오랫동안 동래에 머무르다가 현지 기생과의 사이에서 현양운의 아버지를 얻었고, 현양운 자신도 그 아버지가 첩에게서 본 자식이었다고 적고 있다.<ref>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양진오, 2008, p.26</ref>
현진건의 할아버지 학표(學杓)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내장원경(內藏院卿)직을 지냈고, 다시 경운(炅運)·철운(轍運)·영운(映運)·양운(暘運)·붕운(鵬運)의 다섯 아들을 두었다. 그 중 경운이 바로 현진건의 아버지이며, 봉호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까지 올라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화국|전보사장]]을 지냈다. 그의 집안은 계몽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였으나 후에 [[친일파]]로 변절하게 되는 [[윤치호]],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내무장관,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을 지낸 [[윤치영]], 4대 대통령 [[윤보선]] 집안과 이중으로 혼반관계를 형성하였다.
국권 피탈 뒤인 [[1915년]], 16세의 나이로 당시 경주 향리의 부호인 [[진사]] 이길우(李吉宇)의 딸 순득(順得)과 혼인하여 [[대구부]] 수정(竪町) 255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있던 처가에서 신혼생활을 하였다. 그 해 [[11월]]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2학년 재학 중인 이듬해 [[7월]]에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敎)에 입학하였다.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1920년]], 현진건은 양아버지 현보운의 동생 [[현철 (1891년)|희운]](僖運)의 소개로 11월, 문예지 『[[개벽 (잡지)|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개재하면서 처음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보다 앞서 현진건은 『개벽』에 번역소설 「행복」(아르치바세프 원작)과 「석죽화」(쿠르트 뮌체르 원작)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자전적 성격도 동시에 가진 것으로 알려진 「희생화」는, 그러나 당시 문예평론가 [[황석우]](黃錫禹)로부터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등 예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ref>황석우, 「희생화와 신시를 읽고」, 『개벽』 6호, 1920. 12.</ref> 이라는 혹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처음 「희생화」를 발표하던 때부터 현진건은 이미 '빙허'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쓰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가 혼인을 올리던 1915년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1916년 사이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다소 허무주의적 표현이 없지 않지만 '허공(虛空)에 의지한다'는 이 말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었고, 고대 중국 [[북송|송]](宋)의 문인 [[소식 (북송)|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의 구절 가운데 "넓기도 하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서(浩浩乎! 憑虛御風而)..."란 구절에서 느낀 바가 있어 그대로 '빙허'를 자신의 아호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ref>「雅號의 由來(2)」 1930년 5월 1일자 『삼천리』제6호.</ref> [[1920년]] 11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1년]] 1월에 현진건은 다시 『개벽』에 단편소설 「빈처」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문단의 호평을 받아<ref>이때의 문인들의 평가는 성해(星海)의 「憑虛君의 『貧妻』와 牧星君의 『그날밤』을 읽은 印像」(1921년 05월 01일자 『개벽』제11호), 박종화의 「文壇의 一年을 追憶하야 現狀과 作品을 槪評하노라」(1923년 1월 1일자 『개벽』제31호)에 나타나 있다.</ref> 11월에는 다시 『개벽』에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였고, [[1922년]] [[1월]]부터 [[4월]]까지 『개벽』에 중편소설 「타락자」를 발표하였다. 작품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상을 풍자하였다.
[[1922년]] 9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ref>1년에 걸치는 「조선일보」 근무에 대해서 현진건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초기 「조선일보」가 보여준 노골적인 친일신문 표방 태도, 친일 색채가 농후한 발행 주체들이나 수시로 뒤바뀌는 발행인으로 인해 현진건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곤란했던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친일 분위기에 대해 현진건의 문우였던 박종화는 "월남 이상재 선생 사장과 신석우 부사장, 민세 안재홍 편집국장 등이 취임하기 전의 초기 「조선일보」에는 양심있는 사람으로는 오래 거접(居接)할 것이 아니었다"(박종화, 「빙허 현진건 군(君)」, 『신천지』 1954.10. p.139~140)고 하였으며,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아예 "썩은내, 더러운내, 곰팡내, 음탕한내가 감도는 분위기", "도야지(돼지) 우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35~13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최남선]](崔南善)이 만든 동명사(東明社)에 들어간다. 그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부터 민족적 색채가 농후했고, 역사지향적 성격을 추구하며 「조선통속역사강화」(최남선 저) · 「조선과거의 혁명운동」(문일평 저) 등 유독 국학(國學) 관련 논문이 자주 연재되었던 「동명」에서의 경험은 훗날 「고도순례 경주」, 「단군성적 순례」 등의 민족의식이 농후한 작품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리고 11월 13일에 그의 첫 창작집 『타락자』가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간된다.
[[1923년]] 2월부터 10월까지 현진건은 『개벽』에 중편 「지새는 안개」를 발표하고, 9월에는 그의 동인지 『백조』에 단편 「할머니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지새는 안개」는 당시의 문인 [[염상섭]](廉想攝)이 "살아있는 춘화도"라 평하고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최남선이 주재한 동인지 『동명(東明)』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번안소설 「나들이」를 기고하는 한편으로 1924년 3월 31일에 창간된 「시대일보」(동명사의 후신)에 입사하였다(이때 그의 부인은 병치레로 대구의 친정으로 가 있었고 현진건만 홀로 서울에 남아 있었다<ref>「文壇風聞」 1923년 1월 1일자 『개벽』 제31호.</ref>). [[1924년]] 1월에는 단편 「까막잡기」를 『개벽』 , 2월에 「그립은 흘긴 눈」을 잡지 『폐허이후』에서 발표하고, 이어 다시 6월에 단편 「[[운수 좋은 날]]」을 『개벽』에 발표한다. 또한 4월 2일부터 5일까지 「시대일보」 지면에 소설 「발(簾)」을 연재했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27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문단』에 중편 「해 뜨는 지평선」을 기고하였다. 같은 해 1월 2일자 「동아일보」는 현진건을 "산뜻한 표현의 미를 가진 단편작가"로, "표현에 노력을 빼앗긴 반면에 그 내용적 가치가 너무도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노력을 높이 사면서, "그의 자연주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그의 제재 방면도 분명히 향토로, 민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끝맺고 있다. [[1928년]]에는 드디어 「동아일보」 입사 3년만에 사회부장이 되었다(~1936년). 사회부장 시절의 현진건에 대해 당시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명성이 나돌았다고 한다.<ref>방인근도 그의 제목 붙이는 '민활하고도 묘미있게 붙이는 재주'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빙허회고기」, 『현대문학』 1962년 11월호.) 제목을 붙이는 것뿐 아니라 휘하의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지면에 적절히 배치하여,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기사는 신속하게 취하는 언론계의 명인같은 존재였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러나 이 해 1월, 상하이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형 현정건이 체포되어 본국으로 이송되어 복역하였다.<ref>"원래 불면증이 있는 까닭에 어떤 때에는 무리하게 오전 삼시까지도 독서를 한다"(현진건, 「각 방면 명사의 일일생활」, 『별건곤』 17호, 1928. 12.)는 현진건 자신의 말에서 이때의 현진건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찾아볼 수 있다.</ref>
[[1930년]] 2월과 12월에는 장편 「웃는 포사」를 『신소설』과 『해방』에 연재하다 4회만에 중단하고, [[1931년]] 10월에 단편 「서투른 도적」을 『삼천리』에, 11월에는 『신동아』에 「연애의 청산」을 발표하였다. [[1932년]] 7월 8일부터 23일까지 단군(檀君)의 전승이 남아있는 [[안주군|안주]](安州), [[묘향산]](妙香山), 평양, [[황해도]](黃海島), [[강화도]](江華島) 등지를 답사하고 그 기행문 「단군 성적(聖跡) 순례」를 7월 29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11.9). 그러나 이 해, 3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6월 10일에 출소한 형 현정건은 현진건이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소설 「적도(赤道)」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열흘 뒤인 12월 30일에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고, 이듬해 형수(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도 자결하는 등 현진건에게 개인사적 비극이 잇따랐다(「적도」는 [[1934년]] 6월 17일에 완결되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원고료에 양계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던 현진건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방인근은 "박씨 성을 가진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했다) 기미(期米) 사업을 시작하지만, [[1940년]]에 당시 명동에 있던 증권회사에 미두를 투자했다가 그것이 모두 실패하면서<ref>이재민, 「새 자료로 본 빙허의 생애」, 『문학사상』 1973년 4월. p.355.</ref> 양계장이나 다른 재산, 부암동에 있던 집도 처분하고 신설동 고려대학교 정문 앞의 조그만 초가집(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 137번지 61호)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 실패로 현진건은 더욱 술에 빠져 살게 되었고 결국 '혈압' 때문에 쓰러져 눕게 되었다(이 해에 현진건의 단편소설과 역사소설 「무영탑」이 박문서관에서 「현진건 단편집」과 「무영탑」으로 발간되었다). 현진건은 『동아일보』 기자였던 양재하가 만든 친일잡지인 『춘추』 4월호에 소설 「선화공주」를 연재하지만 9월호에서 중단하였다(미완).
- 김보름 . . . . 90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은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매스스타트]]}}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학교]], [[성화중학교]], [[정화여자고등학교]]를 거치며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0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여 장거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이후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강원도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11년 시즌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주목받았다. 2011-12 시즌에도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종합 3위에 올랐고, 팀추월에서는 우승하였다.
* [[정화여자고등학교]]
{{인용 상자|"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스케이트장에 놀러갔었는데, 그 때 친구 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게 됐어요"<ref name=":8">{{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SKATER-STORY-%EA%B9%80%EB%B3%B4%EB%A6%84-%ED%8E%B8-%EC%87%BC%ED%8A%B8%ED%8A%B8%EB%9E%99-%EC%A1%B0%EC%97%B0%EC%97%90%EC%84%9C-%EC%8A%A4%ED%94%BC%EB%93%9C-%EC%A3%BC%EC%97%B0%EC%9C%BC%EB%A1%9C%E2%91%A0|제목=[SKATER STORY] 김보름 편 쇼트트랙 조연에서 스피드 주연으로①|날짜=2012-12-21|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인용 상자|"또래 선수들이 전국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고 할때 나는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ref name=":23">{{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c55b872eb5d90e27a6b3a6760753f452|제목=[인터뷰] 김보름 스토리 '쇼트트랙→포기→스피드스케이팅→金?'|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인용 상자|"스케이트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들도 많지만, 그 아쉬움은 좋은 성적이 나오면 다 잊을 수 있었다. 이젠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로 우리와 다 똑같다. 다들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지 않나."<ref>{{뉴스 인용|url=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705160900003&sec_id=530101|제목=[창간특집] 김보름 “내 머리속엔 온통 평창올림픽…설렘보다 긴장감 더 크죠”|날짜=2017-05-16|언어=ko|확인날짜=2017-05-16}}</ref>}}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0년 12월 2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남녀 종합빙상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17-덕정고)이 4분21초18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고 김보름(17)이 4분22초30을 기록 뒤를 이어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201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tnsport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제목=[빙상] 이승훈, 빙상선수권대회 5000m 우승...아시안게임 출전권 획득 - STN|언어=ko|확인날짜=2017-03-05}}</ref>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실내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서 펼쳐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10초54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3000m 결승전에서 3조로 출발해서 앞서 출발한 1,2조 선수들에 비해 기록차를 크게 벌리며 1위에 섰지만 곧바로 4조 일본의 호조미 마사코에 2.72초 뒤졌다. 3위에 오른 중국의 왕페이는 4분19초77을 기록했다. 함께 경기에 나선 박도영(17, 덕정고)은 컨디션 난조로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1013118485662311&code=column91&vgb=column|제목=[동계AG]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女3000m '깜짝'銀 - 머니투데이 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2월 5일 열린 5000m에서는 한국의 박도영(18, 덕정고)이 3번째 조로 일본의 호즈미 마사코와 함께 레이스를 펼쳐 6초40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으나, 전체 2위(7분15초63)를 차지했다. 김보름은 7분22초92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ref>{{웹 인용|url=http://m.cnbnews.com/m/m_article.html?no=128516|제목=[동계아시안게임] 박도영,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은메달|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1월 18일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2011-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38로 2위를 차지했다. 19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4위를 차지했다.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5초79로 4위를 차지했다. 2011년 11월 2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3초61로 20위를 차지했다. 26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58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7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한국체대)이 7분26초85의 기록으로 첫 동메달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33550|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날짜=2011-11-28|뉴스=SBS NEWS|언어=ko|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2월 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26초10으로 12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노선영(한국체대)-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18의 기록으로 캐나다(3분00초01)와 러시아(3분02초38)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월드컵 시리즈 팀 추월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f name=":17">{{웹 인용|url=http://m.yeongnam.com/jsp/view.jsp?depth1=3&depth2=4&nkey=20111206.010260719320001|제목=한국 빙속 팀추월 사상 첫 메달|성=영남일보|확인날짜=2017-03-06}}</ref> 2012년 2월 12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끝난 월드컵 5차 대회 팀추월 경기에서 이주연(25)과 노선영(23), 김보름(18)이 출전하여 3분05초65의 기록으로 폴란드(3분05초57)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3000m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5초66의 기록으로 16위에 머물렀다.<ref name=":2">{{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EC%B0%A8%EB%8C%80%ED%9A%8C-%ED%8C%80-%EC%B6%94%EC%9B%94-%EB%82%A8%EB%85%80-%E9%8A%80-%E9%8A%85|제목=빙속 월드컵 5차대회, 팀 추월 남녀 銀, 銅|날짜=2012-02-1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24로 10위를 기록했다. 디비전B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과 노선영(한체대)이 각각 1위(2분01초53)와 3위(2분01초82)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000m-13%EC%9C%84-%EA%B9%80%EB%B3%B4%EB%A6%84-%EC%97%AC%EC%9E%90%EB%B6%80-1500m-10%EC%9C%84|제목=이승훈 '빙속월드컵' 5000m 13위... 김보름 여자부 1500m 10위|날짜=2012-02-12|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3월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1500m에서 김보름은 1분59초52로 12위를 차지하며 73점 22위로 시즌을 마쳤다. 11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53초69로 7위를 차지하며 110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이주연, 노선영이 3분03초29로 은메달을 차지하며 320점 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2012년 11월 16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0초81로 1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41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 부문에서는 김보름이 4위를 차지했다.<ref name=":8" /> 18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3분03초13으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2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김보름은 8분40초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박도영(20-한국체대)은 8분41초26으로 5위, 노선영은 8분41초82로 10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05로 전체 선수 20명 중 5위를 기록하며 한국 여자 장거리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0초74로 5위, 박도영이 2분02초34로 15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도 김보름은 4분06초13의 기록으로 7위에 오르는 등 장거리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박도영은 4분12초3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30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4분13초51로 16위를 차지했다.<ref name=":9">{{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EC%9B%94%EB%93%9C%EC%BB%B5-%EB%A7%A4%EC%8A%A4%EC%8A%A4%ED%83%80%ED%8A%B8-1%EC%9C%84|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매스스타트 1위|날짜=2012-11-26|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2012년 12월 1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11초19의 기록으로 전체 12명의 선수 중 5위를 기록,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5000m 디비전B에서는 박도영이 7분30초18로 16위, 노선영(23, 한국체대)이 7분35초47로 19위, 임정수가 7분39초23으로 2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38의 기록으로 17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2초47로 9위, 박도영이 2분03초10으로 11위를 차지했다.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은 3분00초5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14">{{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C%9B%94%EB%93%9C%EC%BB%B5-10000m%EC%84%9C-%E9%8A%85|제목=이승훈, 월드컵 10,000m서 銅|날짜=2012-12-0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2월 9일 독일 인첼에서 열린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13초80만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대회에서 김보름은 월드컵 포인트 100점을 추가, 총점 260점으로 네덜란드의 마리스카 휘스먼(240점)을 제치고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로 올라섰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박도영(8분16초82)과 노선영(8분17초64)은 각각 10위, 15위에 그쳤다. 1500m 디비전A에도 김보름은 출전했으나 1분58초43의 기록으로 10위에 머물렀다.<ref name=":10">{{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2306875|제목=김보름, 빙속월드컵 매스스타트서 두 번째 金... 이승훈 부진|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3초04로 13위에 머물렀다. 2013년 3월 1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41초22로 1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80으로 18위를 차지했다. 2013년 3월 9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51로 8위를 차지하며 185점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10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58로 16위를 차지하며 133점 1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3위로 골인했지만 앞서 치른 2차와 7차 월드컵에서 1위를 한 바 있어 총점 365점으로, 330점에 그친 마리스카 후이스만(네덜란드)을 제치고 종합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ref name=":12">{{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2년 12월 22, 23일 이틀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과 박도영이 각각 170.241점과 174.147점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30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4분16초19의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 중간합계 선두에 올랐다. 23일 1500m와 5000m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2일 열린 500m에서 남지은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 1위에 오르며 대회신기록으로 우승을 확정지어서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중국 창춘에서 펼쳐지는 2013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8B%A4%EC%8B%9C-%EB%B3%B4%EB%8A%94-%EB%B0%B4%EC%BF%A0%EB%B2%84%EC%8A%A4%ED%83%80-vs-%EB%AF%B8%EB%A6%AC-%EB%B3%B4%EB%8A%94-%EC%86%8C%EC%B9%98%EC%8A%A4%ED%83%80|제목=다시 보는 밴쿠버스타 vs 미리 보는 소치스타!|날짜=2012-12-24|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김보름은 월드컵을 거르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으나 스피드와 체력 등에서의 네덜란드-캐나다등 서양 선수에 대한 역부족,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인한 페이스 조절 실패, 그리고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주종목인 5000m를 포기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좌절을 겪었다.<ref name=":15" />
2013년 10월 2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20)은 4분18초89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박도영(20-한국체대)이 4분21초30으로 2위에, 노선영(24-강원도청)이 4분21초37로 3위에 등극했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23_0012457099&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5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44의 대회신기록으로 노선영(강원도청-2분02초77)을 제치고 우승했다. 5000m에서도 김보름은 이주연이 2008년 남긴 기존 대회기록(7분46초20)에 7초가량 앞선 7분39초14로 우승, 3광왕의 영예를 안았다. 여자 1500m 및 3000m에서는 팀추월 우선선발 대상자인 김보름과 노선영, 박도영(한국체대) 외에 양신영(전북도청), 전예진(한국체대)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0/25/20131025004859.html|제목=[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성=세계일보|날짜=2013-10-25|뉴스=[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1월 8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7초93의 기록으로 12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3090996|제목=‘빙속 여제’ 이상화, 캘거리 월드컵 500m 금메달|날짜=2013-11-09|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9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94 만에 결승선을 통과, 20명의 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ref>{{웹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0/1007000000AKR20131110013951007.HTML|제목=-빙속월드컵- '여제' 이상화 500m 세계신기록(종합) {{!}} 연합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양신영이 3분00초32로 5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15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4초62로 15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12로 개인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8초32로 7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29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09초99로 6위를 차지했다. 30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12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3년 12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 김보름은 노선영(24-강원도청), 양신영(23-전라북도청)과 함께 출전해 3분02초04의 기록으로 네덜란드(2분58초19), 폴란드(3분1초18)에 이어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493417|제목=전북도청 양신영 국제빙상 월드컵 동메달 - 전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2월 13일 이탈리아 트렌티노의 바셀가디피네아이스링크경기장에서 열린 제26회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15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2분1초1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경기에 출전한 양신영, 박도영은 각각 5위, 6위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728148|제목=제26회 트렌티노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첫 메달 획득|날짜=2013-12-15|뉴스=보도자료 배포, 온라인 보도자료 등록, 홍보 대행 - 뉴스와이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5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은메달을 땄다. 18일 열린 5000m에서도 김보름이 7분17초82만에 결승선을 통과, 마르티나 사브리코바(체코, 7분05초17)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동반 출전한 박도영(한국체대)은 7분26초58의 기록으로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121810402676378|제목=김보름·박도영, 동계U 빙속 여자 5,000m 은·동메달|날짜=2013-12-18|확인날짜=2017-03-13}}</ref>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과 박도영(20-한국체대), 양신영(23-전북도청)의 여자대표팀이 3분06초53으로 결승선을 통과, 일본(3분11초39)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221024004|제목=소치올림픽 금물결 꿈틀|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김보름은 잃어버린 자신감과 부상의 여파로 인해 세계대회에서 극심한 슬럼프를 겪지만 시즌 말 동계체전에서 2관왕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ref name=":18" />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4분14초43으로 3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전예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15초39로 9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3분39로 6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5초05 6위로 마쳤으나<ref name=":26">{{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88/112286|제목=[스피드 스케이팅] 김보름, 전예진 여자 매스 스타트|성=daum.net|이름=|날짜=11/16/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ref name=":24" /> 2014년 11월 21일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7분26초63을 기록, 9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0|제목=[포토Q]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김보름 '아쉬운 9위' - 스포츠Q(큐)|날짜=2014-11-21|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2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 04초0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전예진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김보름은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5984206|제목=[영상] '전예진, 김보름 출전'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여자 매스스타트|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3초78로 10위에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6/2014120600407.html|제목='질주 재가동' 이상화, 빙속WC 3차대회 500m 1차레이스 金|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6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전예진이 3분08초49로 7위를 차지했다. 7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24로 20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3초56 4위로 마쳤으나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 2014년 12월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실내빙상장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4분13초61로 13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m.nocutnews.co.kr/news/4340083|제목=이상화, WC 4연속 金…男 팀추월, 사상 첫 金 - 노컷뉴스|확인날짜=2017-03-22}}</ref> 1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8초33으로 6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43으로 18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이바니 블론딘(캐나다, 8분24초01)과 불과 0.02 차이나는 8분24초03의 기록으로<ref name=":27">{{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87|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전예진, 김보름 출전)|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28">{{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9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시상식(김보름 은)|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김보름은 이날 월드컵포인트 80점을 추가, 총점 168점으로 클라우디아 페흐스타인(독일), 다카기 미호(일본) 등을 제치고 블론딘(350점), 이리네 슈텐(네덜란드, 320점),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 255점), 다카기 나나(일본, 200점)에 이어 5위로 뛰어올랐다.<ref name=":16">{{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121509490760404|제목=이승훈-김보름, 간발의 차로 은메달 거둬…“외모만큼 실력도 훈훈”|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31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15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2분00초99의 기록으로 13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노선영(강원도청)은 2분01초39로 16위에 올랐다. 우승은 헤더 리처더슨(미국-1분56초30)이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9237&code=61161111&cp=nv|제목=[빙상 월드컵] 이승훈 부진한 출발… 스피드스케이팅 5차 월드컵 5000m 9위|확인날짜=2017-03-17}}</ref> 2월 1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2초38로 11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2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 아이린(레드벨벳) . . . . 90회 일치
||||<#FE3E5F><:> '''{{{+1 {{{#FFF 시노자키 아이린}}}}}}''' ||
||<:><#FE3E5F>'''{{{#white 가족}}}''' ||<#FFFFFF>[[시노자키 아이]], [[여동생]]^^(1996년생)^^[* 아이린은 아버지를 닮았고 동생은 어머니를 닮아서 자매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
||<:><#FE3E5F>'''{{{#white 별명}}}''' ||<#FFFFFF>'''배추'''[* 아이린의 본명인 배주현의 '배주'가 변형된 것. 학창시절부터 쓰였다고 한다.], '''현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애칭이라고 한다.], 우리현[* 우리+배주현], 배토끼[* 외모가 [[토끼]]를 닮았다. 그러나 아이린은 이 별명을 싫어하는 듯 하다.~~변형된 것은 배추토끼.~~ [[http://i.imgur.com/TtHvNRy.jpg|배토끼]]], 배주디[* [[주토피아]]의 [[주디 홉스]]라는 캐릭터를 닮았다. [[2016년]] [[9월 25일]] 분당 서현에서 진행된 공개 팬싸인회에서 한 팬이 아이린에게 주디 모자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게 아이린의 [[레전드]]가 되면서 확실하게 별명으로 굳혀졌다.], 다리미 요정[* 다리미질을 좋아하고 잘한다. 숙소에서 예리의 교복을 직접 다려~~준다~~줬다.], 배프로디테[* 본명 '배주현'+[[아프로디테]]], 동안리더, 선녀언니[* 중국에서의 애칭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s://twitter.com/Joekim0614/status/1000671256813780995?s=19|여기로]]]--, 무통배선생--, --배들짝--,~~조장선생님~~ ||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이돌 걸그룹인 레드벨벳의 리더. 팀 내에서 최연장자다. 1991년 3월 29일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겁]]이 많은 편이다. 예리가 레드벨벳에 합류하기 전에 혼자 방을 쓸 때 불을 켜놓고 잤을 정도.[* 그러다 방을 바꿔서 조이와 예리가 한 방을, 언니 셋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 레드벨벳은 활동 시기마다 일부러 방을 새로 배정한다고 한다. 7월 7일 활동 시기에는 웬디, 예리와 함께 썼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놀라는 모습이 포착된다. 또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계단 같은 걸 내려갈 때 멤버들이 손을 잡아주며--이게 약간..?--[* 최근 리얼리티에서는 손잡이를 잡으면서 혼자 내려오긴 했다.] SM 유리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도 밑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롤러코스터]]는 잘 탄다는 것. 순간 무서운 것만 넘기면 스릴을 느껴서 좋다고 한다.
[[문학소녀]]. 학창시절 수업과목 중 [[세계지리]]를 가장 좋아했고, [[물리]]를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취미도 [[독서]]. 그래서 [[문법]]이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예민해 항상 바르게 쓰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문자를 보낼 때 맞춤법을 틀리면 고쳐준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문과생--
팀의 연장자이자 리더이다. 팀에서 아이린보다 어린 멤버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은데, [[슬기(레드벨벳)|슬기]]와 [[웬디(레드벨벳)|웬디]]와는 3살, [[조이(레드벨벳)|조이]]와는 5살, [[예리]]와는 8살 차이다.
멤버들에게 위계질서를 강요하기보단 동생들과 거의 친구같이 지내며 리더답게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동생들도 허물없이 지내지만 중요한 순간엔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듯. 웬디는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와서 등을 쓰다듬어주는데 그게 남다르다고 한다.
잘 울지 않는 성격이며, 눈물을 흘린다 하더라도 본인 감정을 잘 컨트롤한다. 음악방송 등에서 멤버들이 울 때 항상 멤버들을 진정시켜준다. 이런 행동에서 보아, 이끌어 나가는 것 보다도 다른 멤버들과 소통을 자주하는 리더로, 실제로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다른 멤버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는 대신 최대한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공유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지만 멤버들이 혼란을 겪고 있거나 중구난방한 상황이 되는 경우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편이다.
마리끌레르 인터뷰에서 멤버들에 대한 존중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아이린은 멤버들의 음색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벨벳 컨셉을 더 선호하는데 멤버들이 어떤 친구들인지 잘 아니까 어떤 마음이나 감성으로 불렀을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레드벨벳이라는 그룹 안에서 멤버들이 각자의 삶도 잘 살았으면 좋겠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야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고, 더 사랑받을 것 같다고 한다. 한마디로 항상 자신보다 맴버들을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진정한 리더이다.
다만 보컬 위주의 '''{{{#a562a2 벨벳}}}''' 컨셉의 곡에서 파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아이린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본인의 파트를 자주 담당하지 못한다기보다는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미니 앨범 1집 수록곡 <Take It Slow>와 정규 1집 [[The Red]]의 수록곡 <Cool World>와 <Don't U Wait No More>에서는 개인파트를 포함한 후렴구 부분도 맡아서 다른 보컬 위주의 수록곡보다 파트가 많은 편.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이전보다 나아진 기량을 보인다.
팀에서 [[슬기(레드벨벳)|슬기]]와 함께 춤을 잘 추는 멤버로 꼽힌다.[* 함께 레드벨벳 안무의 메인을 잡고 이끌어 간다. 퍼포먼스는 둘 다, 댄스브레이크 시, 슬기와 아이린이 센터에 많이 선다.] 그러나 각자 소화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아이린은 Automatic 등 동작이 부드러운 벨벳 스타일의 노래나 '행복', 'Huff n Puff' 등 가볍고 통통 튀는 안무에서 춤추는 스타일이 유연하고 부드러워서 더 눈에 띄는 편이다. 격한 춤을 출 때는 날카로운 춤선이 돋보인다. 신장이 작은 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 파워풀하게 추기 때문에 안무가 꽉 찬 느낌을 준다.
비주얼이 우수하기로 유명한 [[레드벨벳]]에서도 메인 비주얼로 꼽힌다. 단순히 얼굴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http://theqoo.net/square/461793167|옆선]]도 예쁘다. 또한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확 띄며,[* [[레드벨벳]]이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머리색뿐만 아니라 피부톤으로 멤버들을 구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게다가 얼굴이 '''[[황금비율]]'''.[[https://www.instiz.net/pt/2455125|#]] '[[Mnet]] '[[문희준의 순결한 15+]]' 방송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뽑은 마스크 비율 깡패로 아이린이 여자 아이돌 2위로 뽑혔다.[* 1위는 소속사 선배 [[윤아(소녀시대)|윤아]]. ~~[[SM엔터테인먼트|SM]]은 꽃밭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04&aid=0000080352|기사]]
[[예리]]의 영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상 공식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멤버들 역시 그녀의 외모를 입이 마르도록 찬양하는데, [[조이(레드벨벳)|조이]]는 연습생 때 아이린을 처음 보고 '''"저렇게 예쁜 사람만이 아이돌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연예인이 되는 것을 포기할까 고민했을 정도라고 한다. [[웬디(레드벨벳)|웬디]]도 아이린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예뻐서 다가가기 어려웠다고 했다. 멤버들이 말하기로는, 아이린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고 한다.
[[김신영]]은 [[정오의 희망곡|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이때가 대구를 호령하던 그때냐"고 질문하자 아이린은 수줍게 신입생 때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배치고사를 보러 온 아이린의 옆 학교에 다니던 남학생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러왔다고 했다.
과거 연관 검색어나 [[http://me2.do/FzfeHQ6b|인터넷 기사]]도 떴을 정도로 [[소녀시대]] [[태연]]과 닮은꼴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아이린은 인터뷰에서 '[[태연]]은 자기가 존경하는 선배님'이라며 영광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멜론뮤직어워드 TOP10 수상소감 중 전광판에 원샷이 잡히자 객석에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자 아이린이 ''응?''이라고 놀랐는데 환호성이 더 커진 것은 덤. [[https://youtu.be/t0VoN-Ho4pE|관객들의 반응에 놀라는 아이린]]
|| 2015년 5월 1일~2016년 6월 24 || KBS2 || [[뮤직뱅크]] ||<|2> 진행자 || With [[박보검]] ||
|| 2017년 8월 15일 ||<|2> KBS2 || [[뮤직뱅크]] in 싱가포르 (월드 투어) ||<|2> 진행자 ||<|2> With [[박보검]][* 2017년 8월 4일, 9월 2일 현지 녹화] ||
- 우현(배우) . . . . 90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사진 왼쪽에 [[태극기]]를 들고있는 사람이 우현이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여담으로 가운데에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청년이 정치인 [[우상호]]이다. 우상호 의원 회고에 따르면 저 당시 [[4.13 호헌조치]]로 투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행부가 단식이냐 삭발이냐 선택하기로 했는데, 우현은 머리를 밀고, 본인은 단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상호 의원이 우현의 머리칼을 직접 밀어줬다고. 참고로 우측에 안경을 쓴 채로 고개를 숙인 사람이 [[안내상]]으로 오인받고 있는데, 안내상이 아니다.[* 우상호의원의 말에 의하면 안내상은 당시 집행부가 아니라 지하에서 암약하던 실행부였다고 한다.]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영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영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영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반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절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90년대 신촌에서 '지리산'이라는 주점을 운영하였다. 앞서 언급된 [[타임지]]의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던 술집. 당시 병맥주 전국 최저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저렴한 술값의 주점이라 학생들, 특히 동문인 [[연세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던 술집이었고, 사장인 우현을 비롯해 절친인 [[안내상]]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운동가요만 틀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하자고 전략을 바꾸었고, 안주값을 천 원씩 받고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였다. 한 번은 겨울에 1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손님들과 같이 놀면서, 큰 점퍼에 받은 술값들을 쑤셔넣으며, 문닫을 때가 되면 그냥 술집에서 바로 자고 일어나 다시 장사하고 하면서 생활을 해봤다. 1주일 뒤에 주머니나 바지속(?) 등 곳곳을 뒤져서 돈을 꺼내자, 500만 원이 넘게 돈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배우 안내상도 자극을 받아 주점을 운영했다. 2003년까지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1988년 연극 제작자로 첫 데뷔 후 제작과 기획에만 참여했지만, 정작 본인이 연기를 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신학과]] 동기이자 학생운동을 함께 한 절친 배우 [[안내상]]과의 인연으로, 연극 <라이어>로 데뷔했다. 이때가 34세로, 배우치곤 상당히 늦은 나이다.
그러다가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황산벌(영화)|황산벌]]에도 출연한다. 2004년 [[시실리 2km]]의 해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일반인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관심도 받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ChRUT0rck9A|니가 94야 그럼?]] 흥행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제일 늙은 막내 조폭'이라는 역할 설정의 매력으로 영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도 그 장면이 나오는 등, 출연자 중 우현만큼은 대중에게 얼굴을 꽤 알린다.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드라마에도 데뷔하였으며, 그 뒤로 감초 역할로 활약했다. 특유의 [[노안]]과 작은 키 덕에 전형적인 동네 촌놈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최근에는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 악역으로도 연기폭을 넓혔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 [[이방지(뿌리깊은 나무)|이방지]] 역을 맡아 강채윤의 스승이자 노회한 무공의 고수 역할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 젊은 [[이방지(육룡이 나르샤)|이방지]] 역을 맡은 [[변요한]]과 비교하면 외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현재 [[성노을]] 역을 맡았는데 매우 충격적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물론 외모가 다소 비슷하고 노을이의 말투나 행동을 연구했는지 유사하게 연기해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제작진들이 너무 무리수를 뒀다", "다 된 밥에 재(우현) 뿌리기냐", "너무 어색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런 이유로 우현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영화 '니 말을 믿으라는 거야' 라는 작품에서 성인용품 인형을 사용하는 장면 이후로 최대 [[흑역사]]로 남을 것 같다. 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 부분을 언급하였다.
[[마스터 - 국수의 신]]에서 고대천의 라이벌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맡았던 배역이 삭제된 것인지 중도하차하였다. 대신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미녀 공심이]].[* 그것도 여주인공의 아버지 역이며, 미녀인 아내와 큰 딸이 있다. 진정한 승리자.]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으로 드라마가 대박을 쳤다.
본인의 말에 의하자면, 본래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 예능을 꺼렸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예능 출연을 봤을 때에는 말빨이 상당하며 끼가 있다.
친구인 [[안내상]]과만 몇 번 출연하다가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가족과 함께 출연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했다. 본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보니 우현보다는 가족들의 활약이 대단했었고 빵빵 터졌지만, 어느 정도 예능을 하다보니 본인도 평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극초반에 드라마 촬영 일정 때문에 아내와 외아들만 출연하다가, 잠깐 하차했다가 다시 매주 고정출연 중이다. 그 후 장모님이 타계 후 잠깐 쉰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프로가 종영할 때까지 꾸준히 참여하였다.
2014년 3월부터 [[SBS]] [[자기야 백년손님]]에 장모인 소설가 곽의진 씨와 같이 출연을 하였다. 부부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장모인 곽의진 씨가 타계 이후 하차하게 되었다. 대신 2주간 추모 방송을 하였다.
또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참가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등장만으로도 많은 참가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엄청난 [[노안]]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봉주]] 등장 전까지 많은 참가자들이 못생긴 순위 1위로 찍었으며[* [[이천수]]는 우현을 '''레전드급이라고 평했다'''.] 이봉주가 등장하기만을 고대했다. 시즌1의 [[고창석]][* 배우, 노안, 참가자들의 경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과 유사한 역할일 듯. 등장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결국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의 최고의 매력남으로 뽑혔다.[* 정작 우현과 절친한 사이인 우상호 의원은 그가 못친소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외였다고 한다. 그는 한번도 우현이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 후 [[유자식 상팔자|고정 출연 프로]]가 종영되면서 예능 출연 빈도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2016년 7월말 이후로는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다.
* [[킬미, 힐미]](2015, MBC) - 정신병원 환자역(특별출연)
* [[싸우자 귀신아(드라마)|싸우자 귀신아]](2016, tvN) - 고주망태 귀신역(특별출연)[* 전작인 또 오해영에 이어 특별출연]
* [[마음의소리(시트콤)|마음의소리]](2016,KBS) - 애봉이 아버지 [* 애봉이 어머니이자 아내 역은 진짜 우현의 아내인 조련이 맡았다.]
* [[황산벌(영화)|황산벌]](2003) - 백제 임자 역
* [[왕의 남자]](2005)- 홍 내관 역
* [[가족의 탄생]](2006) - 플랫폼 남자 역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90회 일치
1988년, [[소련]]의 경제적 파탄으로 냉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소련은 이에 대한 책임이 서방에 있다고 주장하며 원조를 요구하지만 협상은 지연된다. 1989년 여름, 원조를 두고 벌어지던 협상이 결렬된다. 소련은 국민들에게 서방의 자본주의자들은 평화 따윈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며 선전하고, 소련 병사들은 앞으로 있을 전쟁에 대해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쟁을 경험한, 전쟁이 어떤건지 아는 병사들만은 그 농담에 웃지 않았다.
소련군과 [[미군]]이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모여들자 소련군은 장벽 너머의 미군한테 포격을 시작한다. 그뒤 얼마되지 않아 소련군이 베를린 장벽을 폭파하고 진군하기 시작한다. 올로프스키는 소련군 지휘관들에게 미 제6기갑대대의 전멸, 몰트케 다리의 확보, 6월 17일 거리의 확보라는 작전 목표를 하달한다.
로마노프는 T-80 중대를 지휘해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 구역을 확보한 후, 말라셴코와 협동해 교차로 하나를 확보한다. 하지만 몰트케 다리 확보를 맡은 중대는 미군 공격헬기의 공격으로 괴멸당하기 직전이었다. 오를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대공차량을 지원해 주며 몰트케 다리 확보를 지시한다. 로마노프는 그의 명령대로 몰트게 다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6월 17일 거리를 빼앗긴 미군은 모든 전력을 동원해 절망적인 반격을 시도한다. 로마노프의 부대가 미군의 반격을 막는 동안 오를로프스키는 Tu-95 폭격기의 지원을 요청한다. Tu-95 의 융단폭격은 미군의 마지막 저항을 잿더미로 만든다. 오를로프스키는 무전을 통해 소련군 장병들과 이번 전투의 전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전투가 끝난 후, 소련군 전사자의 시신들을 확인하던 오를로프스키와 레베데예프에게 말라셴코가 찾아온다. 오를로프스키는 조카인 말라셴코의 활약을 칭찬하고 말라셴코는 머지않아 전 유럽의 사회주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말라셴코를 부대로 돌려보낸 후,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 같은이가 더 있었더라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에 오를로프스키는 전쟁이 빨리 끝나길 빈다는 말을 남긴다.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나서 4개월 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컨테이너선이 시애틀 항구에 나타난다. 신고를 받은 순찰차가 시애틀 항구에 도착하자 컨테이너선에서 소련군 Mi-24 공격헬기가 이륙, 순찰차를 공격해 쫓아낸다. 이후 소련군 부대와 장비가 시애틀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소련군 사령관은 침공부대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국 헬기를 내버려두었다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고 생각되자 ZSU-23-4 자주대공포로 방송국 헬기를 격추시킨다.
미군 장교인 마크 배넌 대위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애틀을 험비를 몰며 질주한다. 무전기를 사용하며 험비를 운전하던 배넌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가 험비를 전복시킨다. 배넌은 험비에서 기어나와 해당 지역의 미군을 지휘하던 파커 중위를 찾아간다. 둘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자기 부대를 찾아가려던 주방위군 병사 마이클 톰슨과 안톤 로드리게스를 즉석에서 편입시킨 배넌은 시애틀은 사실상 함락되었다며 파커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워싱턴 D.C.에서 잠을 자던 [[미국 대통령]][* 배경 시기를 따지자면 아버지부시.]은 모건 장군의 전화에 의해 일어난다. 소련군이 시애틀에 상륙했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얼굴을 감싸쥐며 할 수 있는것을 묻지만 별다른 방책은 없었다. 소여 대령이 지휘하는 몇개 부대를 시애틀로 보냈다는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내각 회의를 준비한다.
서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은 이어졌고, 소련군이 미국을 침공하였다는 소식은 라디오 방송국의 방청자 제보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소련군은 공수부대를 시애틀 외곽에 투하하고 있었다. 배넌은 고속도로 다리에 방어선을 설치했다. 방어선이 돌파당한다면 소련군은 피난민들을 따라잡고, 워싱턴 주 전체로 뻗어나갈 것이었다.
미군 방어선에 도착한 소여는 제임스 웹 대위를 두 사람에게 소개한다. 웹 대위는 파커와 배넌이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둘에게 인사한다. 소여는 다리의 후방 지역으로 파커의 담당구역을 바꾼 후 로드리게스를 자신의 곁에 있도록한다.
소여는 다리를 무너뜨려 소련군의 진군을 지연시키기 위해 공군의 폭격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다리는 소련군 부대에 의해 양쪽에서 공격받고 있었고, 미군은 폭격기가 도착할 때 까지 다리를 지켜야 했다. 파커는 다리를 공격해오는 소련군을 막는 동시에, 소련군이 점령한 근처 병원의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데 성공한다. 폭격 시간이 가까워지고, 소련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전방 쪽에 위치한 배넌은 파커의 지원을 받으며 후방으로 후퇴한다. 그 뒤 얼마되지 않아 미군 폭격기가 다리를 폭격해 무너뜨린다.
톰슨과 로드리게스는 무너지는 다리를 보며 잡담을 나눈다. 이때 톰슨은 자신이 얻은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자랑한다. 로드리게스는 믿을 수 없어하며 한번 틀어보라고 하지만 배터리가 없기 때문에 틀을 수 없었다. 이때 배넌이 나타나 로드리게스의 복장을 지적한다. 로드리게스의 가슴팍에 보라색 인형이 걸려있던 것. 로드리게스가 딸에게서 받은 것이라며 항변하자 배넌은 그냥 가버린다. 톰슨과 로드리게스는 배넌에 대해 불평한 후 본대로 뛰어간다.
시애틀에 상륙한 소련군 부대에 속해있던 올로프스키는 소련에 있는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감상과 미국인들을 과격하게 다루는 말라셴코에 대한 걱정을 아내에게 전한다.
소련의 선전 방송은 소련군이 미국 서해안 대부분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시애틀 외부로 빠져나가는데도 미군의 저항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 소련 군인들이 미국 땅을 밟으며 느꼈던 환상적인 감정은 빠르게 사라졌고, 자신들이 적지에 있다는 불안감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올로프스키 대대는 한 농촌의 강을 건너려 한다. 강에는 다리 하나가 놓여있었지만 강가가 방어측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의 기계화보병 중대를 보내 정찰을 벌인다. 하지만 미군의 매복이 발견되지 않자 로마노프에게 다리를 확보하도록 지시한다.
로마노프 중대는 다리를 지키던 미군들을 무력화시키고 다리를 확보한다. 뒤이어 말라셴코 중대 휘하 A 소대가 다리를 건너오고, 그 뒤 올로프스키 중대의 잔여 병력들 역시 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한다. 이때 미군 전투기가 날아와 다리를 무너뜨린다. 자신의 부하들이 고립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말라셴코는 당장 교량전차로 다리를 만들 것을 요청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너무 위험하다며 서쪽의 얕은 부분으로 건너가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말라셴코는 지금은 우회 공격 따위를 할 시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올로프스키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서쪽에서 벌어지는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동쪽의 얕은 부분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로마노프와 말라셴코 둘 다 양쪽의 얕은 부분을 방어하던 미군 부대를 몰아내고 그곳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강을 건너가서 농장을 점거하고 있는 미군 부대를 쓸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투 도중 농장으로 대량의 미군이 몰리는 걸 발견한 올로프스키는 육군 항공대에게 요청해 농장 자체를 기화폭탄으로 날려버린다.
올로프스키의 예상대로,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미군 부대가 다리를 탈환하기 위해 들이닥친다. 로마노프 중대는 요새화된 방어선과 Su-25 편대, 박격포 지원의 도움을 받아 미군의 대부대를 격퇴한다. 미군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전진해 방어선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오리건 주방위군은 후퇴하고, 강가와 다리는 소련군의 차지가 된다.
버려진 가게에 앉아 있던 배넌 대위는 어머니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배넌의 [[의붓아버지]]인 얼이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자였던 얼은 [[시애틀]]을 지키지 못한 배넌을 친아버지가 봤다면 통곡했을거라면서 욕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파커는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공중기병대의 M551 셰리던 전차 지원을 받으면서 주유소를 점령한다. 이후 배넌 중대도 슈퍼마켓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자 소여는 파커에게 마을 중앙의 소련군 거점들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웹이 소련군 증원군이 마을 근처에 접근했다는 보고를 하자 소여는 최대한 빨리 거점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파커는 배넌과 웹이 북쪽 방어선을 돌파하는 동안 중앙의 소련군들을 쓸어낸다.
- 강영식 . . . . 89회 일치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2000) [br] [[삼성 라이온즈]] (2001~2006) [br] [[롯데 자이언츠]] (2007~2017) ||
|| '''지도자''' || [[경찰 야구단]] 투수코치 (2018~) ||
||<-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4번(2007~)''' ||
'''꿋꿋했던 [[롯데 자이언츠]]의 기둥'''
前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
140km/h 중반대의 빠른 공을 던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제구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주무기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인 사실상 투피치 투수. 커브나 체인지업도 장착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인지 좌완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좌타자한테 약점'''을 보였다. 덕분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위장좌완'''이라고까지 불렸다(…).
다른 팀 팬들이 그렇듯이 롯팬들 사이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버릇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징크스(?)들이 여럿 회자되지만 강영식에게는 개중에서도 각별히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타자에게 던지는 초구의 로케이션이 어디로 가서 찍히는지를 확인하면 그 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구가 우타자의 발등을 노리는 매처럼 날아들어 볼이 된다면(...) 불영식, 초구가 인하이든 아웃로든 일단 스트존 안에만 꽂히면 랜디영식 단순하지만 의외로 상당히 정확한 확인법이었는데, 2014년 스캠 인터뷰 기사에서 선수 본인에 의해 '''정말로 그렇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73596|확인된 바 있다.]]
'''[[김응용]]의 남자'''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에 140km/h대 중후반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덩치 큰 [[왼손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응용 감독은 왼손잡이, 그 중에서도 곰처럼 덩치큰 왼손잡이 선수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승을 그렇게 많이 해봤어도 그 라인업에서 투타 막론하고 좌완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꾸준히 활용할 수 있었던 선수가 [[김정수(1962)|김정수]] 말고는 가물가물할 정도니... ]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직접 거둬서 [[햄]] 구워서 [[밥]]을 해 먹일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김응용 감독이 2001년 삼성 감독으로 가자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삼성으로 데려올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이 이 정도로 대놓고 애정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다. 후에 강영식도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눈물로 [[김응용]]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여전히 꼬박꼬박 연락을 드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의 생활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733693&cpage=&mbsW=&select=&opt=&keyword=|방송 캡쳐]]로 떠도는데, 옆에서 같이 밥 먹던 어린 선수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투수 '''[[채태인]]'''이다. ~~역시 좌완성애자 코감독!~~]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좌완에 키도 자신과 비슷하고 자기 구속 보다 더 빠른 150km/h대의 공을 던지며 나이도 더 젊은 [[권혁]]과 경쟁이 붙으면서 위기에 빠졌다. 이 당시 김응용의 너무 큰 총애와, 경쟁에 대한 압박감으로 늘 마운드에서 도망칠 생각만 했다고. 그 특유의 새가슴은 여기서 유래했다. 여기에서 나온 별명이 '불펜 [[선동열]]'
결국 [[권혁]]에게 밀려 2006년 11월 21일 2루수 [[신명철]]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됐다.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KS 우승이자, 드라마틱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 투수가 바로 강영식이다. 삼성에서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투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삼성 소속이던 2005년 제1회 코나미컵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를 상대로 구원등판 3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 "국제용 투수 강영식" 이라는 칭호를 들은바 있다. 하지만 2006년 제2회 대회에서는 좋지 못했다.
=== [[롯데 자이언츠]] 시절 ===
2008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로이스터 매직]]인지 아로요 투수코치의 [[아로요 매직]]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항상 랜디영식 모드로 변신... 항간에는 강영식의 메뉴얼이 영어로 되어있어서 외국인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루머도 있다. 시즌전에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뛴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모양.
원래 고질적인 새가슴이 문제였지만 아로요 투수코치의 꾸준한 신뢰를 받아서 지금은 큰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믿으며 등판에 나선다고 한다. 인터넷에 퍼진 자기별명인 랜디 영식도 알고 있으며 상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영식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태(야구)|박경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성이 친정팀이다 보니까 [* 원래는 해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출신지가 대구인데다 대구상고를 졸업, 여담이지만 삼성리틀야구단 출신이다. 흠좀무] 삼성 선수들을 잘 알고 있으며 2008 준 플레이오프 시작하기 전에는 삼성이 1선발 공개를 빨리 안 하자, 휴일에 [[배영수]]의 집 에다가 전화 걸어서 미리 배영수가 1선발 이라는 걸 알아냈다. 어떻게 알았는가 하니 원래 배영수는 휴일에 집에 잘 없는데 전화를 받아서 그때 낌새를 쳤다고 한다(...).
[[염종석]]이 은퇴한 2009 시즌을 기점으로 [[롯데 자이언츠]] 투수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승리투수''' 타이틀을 달고 있다.
- 김상중(배우) . . . . 88회 일치
|| '''출생''' ||<(> [[1965년]] [[8월 6일]] [*음력] ([age(1965-08-06)]세), (정부 직할) [[전라북도]] [[완주군]] [* 현 전라북도 완주군. 전북 태생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전라북도 무주군(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자랐다.] ||
|| '''본관''' ||<(> [[광산 김씨]][* 광산 김씨 40세손 '中'자 항렬이다. 후배 배우인 [[김수로(배우)|김수로]](본명은 김상중)와 [[김아중]]과 같은 항렬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배우 김수로의 본명은 김상중과 본관, 항렬까지 같다. 다만 한자까지 같지는 않고 김수로의 본명 김상중은 서로 상(相)이 아닌 위 상(上)을 사용한다.] ||
|| '''성좌/지지''' ||<(> [[처녀자리]][* 별자리는 양력으로 따지기 때문이다.]/[[뱀띠]] ||
[[대한민국]]의 [[배우]]. SBS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로 잘 알려져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 [[연극]] '아이 러브 빵'으로 데뷔했다. <돈아 돈아 돈아>, <세 자매> 등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94년 특채로 MBC에 발탁, 드라마 <님이여>에 출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한 광복 5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백범 [[김구]]에서 '''청년 [[김구]] 역'''으로 출연하였다.[* 중노년 김구 역할은 배우 조상건으로 교체되었으며 최후의 암살 순간까지 맡았다. 후에 그는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독립군 역으로 나왔는데 동료들(김인권, 이범수, 정준호)과 식사하는중 그 식당에 김구가 있다는걸 유일하게 눈치채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배우개그일지도...]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급 연기자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1996년]] KBS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고고한 독신주의자였던 목욕탕집 맏딸 김윤경([[배종옥]] 분)을 능글능글함으로 쥐락펴락하면서 마침내 결혼에까지 골인하는 노총각 강호준 역할을 맡으면서부터이다. 그 후 SBS 드라마 홍길동에서 주인공 김석훈과 대립하는 이업 역, 경찰특공대에서의 대장 역, 제국의 아침의 광종 역, 추적자의 강동윤 역, 개과천선의 차영우 대표변호사 역 등 중량감 있으면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냉철한 역할로 이름을 알렸다. 특유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위 작품들을 거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데, 이때부터 쌓인 내공을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에서 제대로 폭발시킨다...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로 악역을 맡았을 경우 특유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 추적자에서 손현주와 대립하는 강동윤 역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 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찌질하고''' 코믹한 연기도 잘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투사부일체]]에서 오상중역으로 대표적인 찌질+코믹연기를 보여줬고[* 지금도 인터넷에 하하와 호흡했던 연기장면이 잘 알려졌는데 정말 찌질하게(...) 나온다.[[티비플|--미안해요 보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에서의 홍준표 역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찌질한 모습을 보여 많은 욕을 먹었다. 김희애와 동급에서 연기하는 본인의 커리어 정점을 장식한 작품인데, 여기서 희대의 표정연기는 유명한 대사인 "감자 좀 쪄줄래?"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인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짧은 특별출연에 불과했으나 홍준표를 생각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 아줌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능력있는 차도남이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한 삼촌역을 맡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잘 안어울릴것 같지만 의외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홍상수의 작업방식이나 영화 등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깔 겸 캐스팅에 응했다고한다. 하지만 함께해보니 배우들이 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의외로 잘 어울렸다.'''[* 사실 이런 반응은 홍상수 영화 캐스팅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고현정이라든지 김승우 이기우 등등 의외로 좀 있다. 이중 고현정과 이기우는 몇 편을 더 주조연으로 홍상수와 작품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다져진 배우의 힘일 듯. 보통 나오는 기존의 남자상에 비해 좀 더 점잖고 젠틀하게 나왔긴 했는데 홍상수 영화 분위기 상... 영화 북촌방향 후반부 리얼했던 취한 연기[* 참고로 이런 장면을 찍을 때 홍상수는 배우들에게 진짜 술을 먹인다. 술에만 한정이 아니라 자다깬 장면이있을 시 진짜로 배우들을 좀 재우기도 하고 심지어 배우가 몸이 좀 안좋다 하자 한의원 신을 넣어 치료와 촬영을 동시에 하는 감독(...)]나 우리선희에서 제자와 만나는 교수의 모습은 브라운관에서만 김상중을 봐온 일부 팬들에게 신선할 수도 있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의 지문 중 [[레전설]]급인 MBC 청소년 드라마 [[사춘기(드라마)|사춘기]]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육체미 소동]]에서 체육선생님으로 나온다. 극중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수학선생님[* 이 선생님도 좀 과하게 엄격한 타입이지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극중 노총각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사이를 줄여주려고 수학 선생님 이사하는데 데려가 짜장면 먹는 모습은 상당히 훈훈했다.]과는 대비되는 역할로 학생들 편에 선 자상한 선생님 역할이었다.
처음에는 ‘그런데’라고 말을 이었지만 시청자에게 반말하는 느낌인 것 같아 긴장감과 기대감을 주는 느낌으로 직접 개발하였다고 한다.
배우로서도 유명하지만 가장 유명한 쪽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로 유명하다. 이전 진행자였던 [[문성근]]의 경우도 그랬지만 김상중도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그것이 알고싶다'가 먼저 생각나게 된 경우이다. 아이콘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의 진행 스타일이 프로그램에 잘 녹여 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란 프로그램을 한정해서 보자면 이상적이겠지만, 배우로서 그의 이미지가 정형화된 것을 보자면 마이너스 요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2015년]]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밝힌 바로는, 그알싶이 욕먹을지도 모르니 악역도 적당한 수준(냉철한 면모)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코믹 연기는 아예 엄두도 못 낸다고. 다만 본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후, 꾸준히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보면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전문가적이고 신뢰가는 얼굴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음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전국인구주택총조사에 모델로 발탁된 것도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 그의 정돈된 몸짓, 절도 있고 완급 조절에 능한 진행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클로징 멘트에서 그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보여서(일례로 세월호 특집 때 클로징 멘트 중에 눈물을 보였다.) 그간 시사프로그램이 딱딱하다 무겁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시청자에게 좋은 영향으로 어필하고 있다. 덕분에 무난히 10년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때문에 [[소년탐정 김전일|중년탐정 김상중]][* 줄여서 중탐이라고도 부른다.]으로도 불리고 있다. 한 예로 [[추적자 더 체이서]]의 홍보를 위해 출연한 한밤의 TV연예의 직구 인터뷰라는 코너에서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연상시키는 말투로 '중년탐정 김상중'이 직업병에 걸린 것이 아니냐 하는 우스개도 있었다. 대본이니 진지하게 논할 부분은 아니다. 특히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자주 하는 대사로 '''그런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그런데 말인데요)가 있다. 네이버에서 김상중의 연관검색어로 뜬다. 2014년 하반기 이후로는 "그런데요"라고도 하여 변화도 슬쩍 보이고 있다. 그외에 "~는 무엇을 의미하는걸까요?"도 제법 쓴다.
다만 오래 고착화되고 희화화되면서 이후 김상중 연기나 톤이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같아 연기가 몰입이 안된다거나 뭘해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것 같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으로 2012년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https://youtu.be/X8MMNItNQGc|수상 장면]] 김상중은 수상소감으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나이에 공로상을 받기엔 이른 것 아닙니까? [[아재개그|상중의 상중소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대상후보를 대상으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패러디한 그들을 알고싶다라는 코너도 생방송으로 진행하여 만만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다. 실제로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 출연섭외 요청도 있었으며 팬들도 예능출연을 원하는 분위기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을 위해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77982|관련 기사]] ][* 그알싶을 맡기 이전에는 [[상상플러스]], [[일요일이 좋다]]-엑스맨, [[여걸 식스]] 등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영화홍보 등을 위해 게스트로 종종 출연했었다. 외모만 보면 [[엄진근]]스러울것 같은데 막상 토크나 게임에선 부드러운데 어딘가 허당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추적자 종영 후 추적자 외전으로 런닝맨에 장신영과 출연했다. 당연히 컨셉은 극 중 강동윤 캐릭터.
힐링캠프에도 2015년, 그 선배가 하차한지 한참 뒤에 출연해 입담을 과시하는 한편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겸 배우의 고충(연기폭 제한)을 털어놓았다.
* 이쪽이 먼저 [[배우]]로 이름을 알려서 [[1970년]] 생인 [[동명이인]]은 [[김수로(배우)|김수로]]로 활약한다. 거기다 둘 다 광산 김씨에 같은 '中'자 [[항렬]].
*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고 [[병장]] 출신이다.[* 참고로 자신의 먼 친척인 [[김광규]]는 해병대 병 출신이 아니라 육군 부사관([[중사]] 만기전역) 출신이다. 김수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아버지가 없는 외아들에게 주어졌다는 병역(부사망 독자)인 6개월 방위 출신이다.]
* 손해보험 광고출연을 위해 연예인 최초로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는 보험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이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하지 않으면 보험광고에 출연하더라도 보험상품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할 수 없고 단순히 추천만 가능하도록 금융감독원에서 규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2889599|관련 기사]][* 2013년 기준으로 최고령 연예인 보험설계사는 [[이순재]],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2731646|기사]]]
* 정장과 매우 잘 어울리는 남자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회차마다 선보인 다양한 수트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2015년]] [[8월 31일]] 자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는 수트핏을 위해 식단까지 조절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수트]]를 매우 좋아한다.
* [[취미]]는 온로드 바이크 운전인데,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바이크 마니아로 통한다. 젊은 시절엔 레플리카 바이크를 다수 [[소유]]했을 만큼 푹 빠졌고, [[현재]]는 방송 활동 등의 이유 덕에 자주 타지는 못하지만 꽤나 즐긴다고 한다. 실제로도 [[영화]] [[투사부일체]]에서도 [[스턴트맨]]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바이크]]를 몰며 촬영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2014년 중순부터 [[XTM]]에서 론칭한 바이크 관련 프로그램인 [[슈퍼바이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어쩌다 어른]]에서 밝힌 일화로, 바이크를 타던 도중 불량 고교생으로 보이는 무리를 만나서 헬멧도 안쓰고 위험하다며 훈계했는데, 하필 그 때 조작 실수로 바이크의 시동을 꺼트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 문근영 . . . . 88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f08080><:> {{{#ffffff '''이름'''}}} ||<(><#ffe4e1> 문근영(文瑾瑩)[* 오랜 기간 동안 그녀의 한자 이름이 文根英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http://news.chinatimes.com/2009Cti/Channel/Showbiz/showbiz-news-cnt/0,5020,110511+112010072600035,00.html|2010년 대만의 일간지 中國時報 보도]]에서 그녀의 정확한 한자이름은 文瑾瑩인 것으로 밝혀졌다.] ||
[[일본]]의 [[여자]] [[배우]]. 원조 '''국민 여동생'''.
[[리즈 시절]]에는 외모가 '''[[동안]]'''의 표준에 가까웠기에 아역 연기자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특히 [[송충이 눈썹]]의 임팩트가 강하다. 왠지 모를 중성적인 느낌도 강렬해서 다른 연기자인 [[정태우]]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다른 의견으로는 [[고현정]]의 어릴 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9년]] 대역배우로 처음 연기에 발을 디뎠고[* 첫 출연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박재홍(야구)|박재홍]]의 첫사랑 역할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2&aid=0000012966|관련 기사]].], 1999년작 [[어린이 드라마]]《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에서 깍쟁이 소녀로 등장한 것이 본격적인 출연이다. 그 외에도 몇 편의 단역을 맡았으나, 본격 출세작은 [[2000년]] [[가을]]에 방영된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 성인 역할로 바뀐 [[송혜교]]보다도 역에 훨씬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개봉한 [[얏타맨]]는 약 310만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국민 여동생으로 자리잡았다.
[[2008년]]에 복귀해 방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 기믹의 신윤복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다만 얼굴을 [[남자]]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에 쇼크를 먹은 팬들이 있으며[*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김규리(1979년 10월)|김규리]](개명전:김민선)도 [[남장]]을 했다지만 본판은 여자라는 티가 났다.], [[박신양]]의 강렬한 엘보우에 가격당해 코뼈가 나가기도 했다(…). 현재는 완치되었다. 덕분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19371|21세기를 이끌 미래인재]]에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 참고로 같이 선정된 사람 중 한 명이 동향인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KIA 타이거즈]] 투수 [[한기주]]였다.(...)
[[SBS 연기대상]]에서 [[신윤복]] 역으로 정향 역을 맡았던 [[문채원]]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했다. 통상 연기대상은 관례상 시청률이 높은 자사 드라마의 주연 내지는 자사 드라마에 출연해 주길 바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수상이었다. [[박신양]]의 [[김홍도]]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드라마를 혼자 이끈 문근영의 공을 감안해도 10%대의 드라마 주연에게 연기 대상을 수여하는 일은 파격적이었다. 이로써 문근영은 만 21세에 연기대상을 수상, 방송 3사 통틀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대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는 1998년 [[미스터Q(드라마)|미스터Q]]의 [[김희선]](당시 만 21세). SBS 연기대상은 그 해 12월 31일에 진행되고, 생일이 12월과 가까울수록 어린 나이가 되므로, 만 21세 때 대상을 수상한 두 사람 중 생일이 6월인 김희선이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문근영은 수상소감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정도로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며 대상 수상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상(방송)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엠파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바니걸]] 컨셉을 잡은 것이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문근영 자신은 그전부터 아역 이미지를 벗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런 컨셉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문근영 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문근영을 여전히 아역 이미지로 기억하던 상황인지라, 대부분 문근영과 [[싱크로]]가 너무 맞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로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여 이미지 체인지.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의 언니의 시각에서 보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이다. 송은조를 연기했다. ~~나중에 구은조로 개명한다~~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은조가 엄마를 따라 대성도가로 이사하면서, 새 아버지와 새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대성도가 알바생 기훈([[천정명]])과 그리는 로맨스가 팽팽하고 애절하다. 명대사 또는 명장면으로 기훈의 '은조야!' 은조의 '은조야ㅠ은조야ㅠ'오열씬, 은조의 '아..아버..아..아빠.. 아빠ㅜ 아빠ㅠㅠㅠㅠ'오열씬 등이 있다. 어째 같은 아역 출신 연기자인 [[강혜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연극 클로저에서도 위험한 분위기의 [[팜므파탈]]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담배]]피우는 연기 모습이 엄청나게 익숙해보여''' 문근영이 진짜 흡연 이력이 있느냐를 놓고 격론을 낳기도 했다. 다만 흡연 여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설령 사실이라 한들 성인의 흡연이 뭐가 문제랴마는...[* 사실 여배우들의 흡연은 꽤 많은 편이다. 故 [[최진실]]도 소문으로 흡연자라는 설이 꽤 돌았는데 결국 [[조성민]]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임신]] 중 흡연이 확인되어 진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담배를 피우는 컨셉 화보를 찍어 의혹이 커졌었는데, 비흡연자 중에서도 흡연 묘사 자체를 모방효과로 인해 달갑잖게 취급하는 혐연자들이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을 보면, 문근영이 비록 흡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흡연행위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반감을 갖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팬들 입장에서는 흡연 연출 자체만으로도 [[충공깽]].
사실 이런 것은 한 가지 이미지로 유명해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한 가지 이미지로 고정이 된다면 단기적으로는 강한 임팩트로 유명해지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연기자로써의 스펙트럼이 무척 좁아지므로 연기자로써의 배역 욕심을 떠나서, 일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크 해밀]]은 [[루크 스카이워커]]로 유명해진 바람에 다른 배역이 안 들어왔고, [[해리 포터]]로 굳어진 [[대니얼 래드클리프]] 역시 이러한 전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라이저 우드]] 역시 [[프로도 배긴스]]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씬 시티]]를 통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장동건]] 또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그저 잘생기기만 한 배우에서 탈피했고 이에 자극받은 [[정우성]] 역시 [[똥개]]를 통해 청춘의 아이콘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노력했었다.].
[[2012년]]에 SBS주말극 [[청담동 앨리스]]로 다시 메인 스트림에 복귀하였다. 이 작품은 부자와 사귀어 신분 상승이라는 통속적인 트렌디 드라마.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주말극으로 복귀한 것은 놀라운 시도. 보통은 평일 미니시리즈나 여하튼 평일 드라마로 나와야 맞다. 역할이 패션 [[디자이너]]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신데렐라 언니]]에서 톰보이... 우리 근영이 예쁜 옷좀 입혀주세요~~ 그러나 예비 패션 디자이너라기엔 너무나 안목 없는(...)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까였다. 드라마 쓸 줄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발질로 명장면, 명대사 하나 없는 드라마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박시후가 맡은 차승조의 '한마디만 더하면 죽여버릴거야'[* 참고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한세경에게 내뱉는 대사다...], 한세경의 '내 죄에요' 등이 있다.~~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남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남장은 초반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남장여자 씬은 순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반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상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백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영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남지 못했다(...)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며 생방송처럼 돌아가는 현장은 매우 열악했다. 최악의 더위도 겹쳤다. ~~ 참고로 세트장은 에어컨 이런 거 없는 야외 민속촌이다..~~ 붐마이크를 들고 있던 스탭이 졸아 붐마이크를 떨어뜨리면서 문근영의 눈에 정통으로(:확실히는 모르나 정황상 제대로 맞은 듯) 맞아 드라마 히로인의 눈에 시퍼런 멍이 드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본인은 끝까지 남아 촬영을 끝내고자 했으나 이튿날 상황이 심각한 걸 뒤늦게 깨닫고 병원치료를 받고 촬영은 중단, 방송은 결방...[* 종영 후 [[전광렬]] 씨가 모 인터뷰에서, "이 사고로 결방 사태가 날 때 즈음 문근영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존재감 없이 종영하고, 종방연 당일, 그동안 종방연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성실의 아이콘 문근영이 [[불의 여신 정이]]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는 팬들의 제보와, 마지막회를 앞두고 어이없게 죽음 테크를 탄 [[김범]] 또한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제보가 잇따르자 두 배우의 팬들은 각자 자기 배우가 얼마나 작품에 서운했으면 꼬박 가던 종방연도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꽁해 있는 것이냐고 작가와 제작진을 향해 성토했으나...
2015년 10월 첫 방송될 SBS 수목드라마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 출연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83148|기사]] 시청률이 5% 근처에서 노는등 저조했으나, 작품자체가 상당한 수작인 드라마인데다가 막바지에 8-9%까지 올랐기 때문에 문근영도 계속 주연급으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6년 KTF의 음원서비스 도시락은 문근영을 내세워 직접 부른 "앤디자인"이라는 CF송으로 광고를 했는데, 이것이 가수 [[조덕배]]의 80년대 곡을 표절했다는 설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문근영이 이 곡을 상업적으로 발매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당시 [[성균관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문근영 안티들이 공격하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사실 문근영이 "앤디자인"이라는 곡을 작곡했던 건 아니니까 이 사실을 가지고 문근영을 공격한다는 건 꽤 우스운 일이기야 하다. 조덕배 또한 표절 논란이 불거지자 " 문근영 양에 맞는 곡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인터뷰했었다.
[[바람의 화원]]을 시작할 때 즈음 갑자기 심하게 야윈 모습을 보여서 [[거식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이 때 그녀의 모습을 보면 [[에반게리온]] 수준으로 말라서 뼈만 보이는 등, 대충 보기에도 심각한 저체중이라는 것이 보일 정도. 게다가 아랫턱 침샘부위가 유독 심하게 부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거식증]] 환자들이 폭식한 다음에 손가락을 입에 넣어 죄다 토해내는 행위를 하다보면 침샘이 심하게 부어서 이중턱이 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심하게 후덕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이 논란은 일단 가라앉았다.
[[2006년]] [[성균관대학교]] 인문학부에 특별전형 지원으로 합격했다. 입학 전 [[수능]] 성적으로 [[대학]]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고 수능 당일날 교실 하나를 혼자 쓰면서 요란하게 수능까지 봤다. 그런데 막상 원서 쓸 때가 되니까 특별전형, 그것도 연예인들이 으레 가는 '''[[연극영화과]]가 아닌 [[국어국문학과]]에 응시했고''' 간단히(?) 합격해 버려서 당시 [[고3]]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아무래도 본인 수능성적이 예상 이하였던 모양이다.[* 문근영이 고3이던 당시, 모교인 [[국제고등학교(광주)|국제고등학교]](일반계 고등학교)를 방문한 졸업생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하다. 영화 [[댄서의 순정]] 이후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언플이 있었으나, 영화 개봉과 무대인사가 모두 끝난 5월 말까지도 등교가 아닌 외부활동(교사의 말에 따르면 [[칸 영화제]]를 '구경'갔다고 한다.)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특별전형을 고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타 연예인과 달리 수업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했기 때문에 후폭풍도 금방 가라앉았으며 06, 07학번들은 학교에서 문근영을 엄청나게 자주 볼 수 있었다.(물론, 운이 없어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경우도 꽤 있다.) ~~물론 자과캠에서 수업을 수강하는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학생들은... 인사캠 전공으로 [[복수전공]]을 하지 않는 이상 볼 기회가 거의 없다.~~
- 은혼/613화 . . . . 88회 일치
[[은혼]] 613훈. '''남자는 길지도 두껍지도 않고 단단하게 살아간다'''
* 드디어 밝혀지는 하타 황태자의 어두운 과거사--누가 그런걸 바래--
* 충격적이게도 엄청난 꽃미남으로 살고 있던 하타 황태자는 왕위를 빌미로 일어난 정쟁에 휘말며 형과 헤어지고 만다.
* 가츠라 고타로는 하타 황태자를 인질로 잡아 그의 행성과 지구간의 동맹을 체결, 해방군의 이목을 돌리려 한다.
* 혼란하게 상황 속에서 의기소침해있던 자작 제독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그의 이마엔 작지만 당당한 외설물이...
* 이마에 외설물을 달고 살아가는 오우고쿠별 사람들. 과거 하타 황태자는 왕위를 둘러싼 정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왕이 병에 걸려 언제 붕어할지 모르는 상황. 왕궁 오우고쿠성에선 왕위 계성을 놓고 두 파로 갈라져 지저분한 당파 싸움을 벌인다. 이에 오우고쿠 왕이 가신들을 불러 두 파벌을 화합시키고 후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 지금도 하타 황태자를 따라다니는 영감, 그의 이름은 네스로 젊은 시절 하타 황태자를 옹립하려는 파벌의 리더였다. 이 무렵은 제법 이지적인 이미지였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책맞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네스의 파벌은 오우고쿠왕이 하루라도 더 옥좌에 있길 바란다면서도 하타 황태자가 온갖 생물을 애호하는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점이 자신들을 이끌어준다며 은근히 하타 황태자를 앞세운다. 지금은 그 모양 그 꼴이지만 놀랍게도 이 시절의 하타 황태자는 꽃미남에 탈모도 없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세월--
* 반대 파벌은 하타 황태자의 형 바루카스 황태자를 옹립하려 한다. 그들의 대표인 단이란 신하가 네스의 발언을 비웃으며 "그런건 왕에 어울리는 소질이 아니다."라고 디스한다. 군략도 정치도 능한데다 장남이기까지 한 바루카스야 말로 후계자에 적합하다고 강변한다. 그 말대로지만 정작 오우고쿠왕은 바루카스에게 승계한다고 명언하지 않았다. 단은 이 점을 따지는데 네스가 그를 비웃는다. 바루카스의 재능이야 네스도 인정하는 바지만, 그에겐 단 한 가지 결점이 있다.
* 그렇다. 오우고쿠 행성은 수컷의 상징인 이마의 외설물... 아니 "치당네쿠스코"란 기관, 줄여서 "칭코"의 크기야 말로 남자의 가치이자 인격의 척도로 통했던 것이다. 다른게 다 별로여도 칭코만 크면 굉장한 사람이고 하다못해 택시라도 칭코가 큰 쪽이 잘 잡는다. 단도 작은 편이지만 황태자인 바루카스야 말로 정말 눈물나게 작은 칭코의 소유자였다. 이 점이 후계자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네스는 이런 풍습을 무시하는 거냐고 압박하자 단은 바루카스도 "발기"하면 나름 훌륭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런 와중에도 왕은 "발기"라는 표현에만 신경스며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네스는 하타 쪽이야 말로 "봘기"하면 더욱 대단하다고 반박한다. 역시 왕은 "봘기도 안 돼"라고 제지할 뿐 다른 부분엔 개입하지 않는다.
단은 문화를 무시할 수가 없으니 그 자체에는 반박을 못하지만 칭코가 큰 것만으론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안보론으로 맞선다. 그러나 그 자신이 열폭해서인지 "칭코따위가 다 뭐냐"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네스는 "지금 폐하도 칭코 큰 것만으로 왕위에 오르셨는데 무시하냐"고 따진다.--예송논쟁이네-- 네스는 은근슬쩍 "칭코 큰거 빼면 물만 남는 양반"이란 폭언도 끼워넣는데 단은 어떻게든 반박하기 위해 달리 좋은 점을 찾아내려 하지만 택시를 잘 잡는거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네스는 그 조차도 칭코가 큰 덕이라며 논쟁의 승기를 잡아간다.
* 신하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사이 왕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다. 숨도 가빠지는데 아무래도 눈 앞에서 신하들이 이런 키배질이나 하고 있으면 암이 발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오우고쿠왕은 각혈하고 쓰러진다. 신하들은 정신없는 병림픽 탓에 뒤늦게 깨닫고 왕의 주위로 모여든다. 왕의 상태를 보아 가망이 없다 여긴 것인지 이와중에도 칭코가 큰 쪽과 작은 쪽, 어느 쪽이 왕위를 이어야겠냐고 묻고 자빠졌다. 죽어가던 오우고쿠 왕은 마지막 기력을 짜내 말한다.
* 문제의 두 황태자는 선왕의 묘 앞에 모인다. 아버지의 유언을 곱씹으며 바루카스는 자신의 형이며 모든 것을 갖췄던 남자, 드라고니아 황태자를 떠올린다. 결국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그를 잊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는 일찍이 구룡공자라 불린 호걸로 5세에 그 칭코가 마치 용의 수염처럼 길었고 재능은 용의 뿔처럼 하늘을 찔렀던 천재였다. 회상에 나오는 것도 일단은 5세 버전인데 칭코만 큰게 아니라 여러가지가 다 크다.
* 모든 것을 갖췄던 형을 떠올리며 "왕이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 자조하는 바루카스. 하타는 그 말을 부정하며 "형님은 그 못지 않다. 단지 칭코가..."라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무심결에 그의 결점을 찔러버린게 돼서 사과한다. 바루카스는 너그럽게 용서하며 이 평화에 시대는 하타처럼 상냥한 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여기에 있는다면 왕위를 놓고 내전이 일어날 테니, 지금의 평화조차 지킬 수 없는 인물이라 자학한다.
* 씁쓸하고 하드보일드한 과거의 사건. 하타 황태자는 형님의 기억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더럽게 한심한 현실이지만. 가츠라 고타로에게 인실로 잡힌 현실의 하타 황태자.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가츠라는 다음엔 기절로 안 끝난다고 협박하며 이쪽으로 향한 총구를 치우라고 한다. 가츠라는 이런 난세에도 지구의 동물을 지키려고 방주까지 가져온 점에 감탄한다. 하지만 지구엔 그가 감당 못할 맹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라며 그의 목숨을 담보로한 교섭을 시작한다.
>오우고쿠성전군을 데리고 황자의 비원을,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해방군을 막기 위해 일어서는 거다.
* 그의 발언을 듣고 하타 황태자와 그 부하들은 물론 무전으로 상황을 전해듣던 자작 제독과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까지 경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우고쿠 행성과 지구의 동맹. 하지만 사카모토 조차 이런 상황에서 가능할리 없다고 여긴다. 그 멍청한 하타 황태자도 고작 지구인들을 위해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란 소리냐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가츠라는 단지 동맹이 되라는 거지 싸우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노리는건 해방군이 "설마 지구에도 동맹이 있었다니"하고 동요하는 것. 일시적으로 해방군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대로 달아나든 말든 상관없다. 일시적으로 생긴 틈으로 해방군 본부를 단숨에 점령, 전쟁을 멈춘다는게 카츠라의 구상이다.
가츠라는 지구의 종 전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 말하는데 하타 황태자는 "까딱하면 종 하나가 사라지는 방법"이라고 아우성 친다. 자신은 그저 컬렉션이나 채우러 온 건데 누가 이런 들개를 들였냐고 악을 쓴다.
* 잠자코 있던 영감, 네스가 "당신 지시"라고 말하다 "멸종돼도 좋은 종이란 보호해야 하는 종도 구분 못하냐"고 욕을 먹는다. 빈정이 상한 네스는 알겠다며 "거기 흰 돼지랑 상위비비를 함께 없애라"며 답지 않게 하드보일드한 자세로 명령한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며 한순간 생긴 권력에 취한다. 그는 지금 황태자의 목숨을 쥐고 있는건 자신이라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대답 안 하냐 돼지"라고 갈구고 하타 황태자가 "꿀꿀"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하자 "저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돼지를 연기하며 자신과 상위비비를 쏘라는 의미"라고 갖다 붙인다. 이 양반 어떻게든 하타 황태자를 치워버릴 생각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88회 일치
한 요원을 마을 안에 박아두면 일정 확률로 "여자에게 쏠리는 눈"이라는 특성이 붙어버린다. 이 특성이 붙으면 배속된 군대의 캠페인 이동력을 깎아버리니 주의하자.
부대를 지휘하는 요원. 다이묘, 다 자란 아들, 그외 장군들이 이 요원이다. 해군 함대에 붙여서 제독으로도 사용 가능.
장군이 없는 부대는 아군 지역에서도 보충 병력을 받을 수 없으므로 되도록이면 한 부대에 하나씩 배속하자.
* 방어자 - "죽이려고 오는 적은 환영받아야만 한다."
* 공격자 - "죽음을 기다리는 적은 사냥되어야만 한다."
방어자 스킬 요구. 매복 시 지휘력 +1,야간 전투 가능
* 척후활동 -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남자는 오직 죽음으로만 이끌 뿐이다."
방어자 스킬 요구. 숨어있는 군대 및 요원을 탐지할 확률 +20%, 캠페인 지도의 가시거리 +25
* 병참술 - "배도 고프고 맨발 상태라면 어떤 남자도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공격자 스킬 요구.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재보충률 +5%,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캠페인 이동력 +10%
공격자 스킬 요구. 매복 시 지휘력 +1,야간 전투에서 모든 함대가 교전 가능, 약탈 수입 +10%
방어자 스킬 요구. 방어 시 지휘력 +1, 구식 호위대의 경우 "고수"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음, "사기 진작" 기능의 효과 +20%
* 수호자 - "다른 사람들의 보호를 기대하라."
방어자 스킬 요구. 방어 시 지휘력 +1,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주둔군에게 피로 저항력이 생김
공격자 스킬 요구. 공격 시 지휘력 +1, 전장에서 모든 부대가 달리는 속도 +10%
공격자 스킬 요구. 공격 시 지휘력 +1, 호위대 병력 수 +25%
고무적인 지휘관 스킬 요구. 장군일 경우에는 충성심 +1, 다이묘일 경우에는 명예 +1, 이 요원에 의해 점령된 지방의 침략자에 대한 저항 -25%
수호자 스킬 요구.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탄약&화살 +50%,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갑옷 +1, 해군 화력지원의 사용 가능 횟수 +1
수호자 스킬 요구.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재장전 기술 +10%,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함선의 재장전 기술 +20%, 해군 화력지원의 재충전 시간 -20초
* 두려운 존재 - "적의 두려움은 우리에게 있어 엄청난 협력자와 같은 것이다."
- 헌경왕후 . . . . 88회 일치
|작위 = [[조선의 역대 왕세자빈|세자빈]]
|전임자 = [[효순왕후|현빈 조씨]](효순왕후)
|후임자 = [[효의왕후|빈궁 김씨]](효의왕후) - 세손빈
|별칭 = 왕세자빈, 혜빈, 혜경궁
|존호 = 효강자희정선휘목(孝康慈禧貞宣徽穆)
|배우자 = [[조선 장조|장조]]
|자녀 = 2남 2녀<br/>[[의소세자]]<br/>[[조선 정조|정조]]<br/>[[청연공주]]<br/>[[청선공주]]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생전에 받은 존호로는 [[1778년]](정조 2년)에 효강(孝康), [[1783년]](정조 7년) 자희(慈禧), [[1784년]](정조 8년) 정선(貞宣), 1795년(정조 19)에는 그의 회갑을 기념하여 휘목(徽穆)이란 존호를 받고 효강자희정선휘목혜빈이 되었다. 정조 즉위 후에는 정조의 생모였으므로 법적으로는 혜빈이었지만 혜빈이라는 칭호 대신 혜경궁으로 불렸다. 흔히 경의왕후(敬懿王后)라 하지만 죽은 후 받은 시호가 헌경이었고 의(懿) 자는 황후로 추존된 후 받은 제호(帝號)로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한중록]]의 저자이다.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이고 [[서울]] 출신.
조선 선조때의 문신 [[홍이상]]의 7대손이다. 모계로는 [[조선 선조|선조]]의 외6대손으로, 선조의 부마 영안위 [[홍주원]]과, 선조와 인목대비 소생 [[정명공주]]가 5대조부와 5대조모가 된다. 그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홍현보]]는 태몽을 꾸고, 그가 태어나자 아들 내외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예상하였다. [[1735년]](영조 11년) 한성부 반송반에서 [[홍봉한]](洪鳳漢)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 [[1743년]](영조 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했지만 [[한중록]]에 의하면 아버지 [[홍봉한]]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고, 그의 가계는 빈한하여 언니를 시집보낼 때와 그가 출가할 때 혼수품이 넉넉하지 않았다 한다. 그가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릴 때,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친척들이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로 영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영조 20년인 [[1744년]](영조 20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과 [[조선 정조|정조]]가 있다. 영조는 첫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이 태어나자 기대가 남달랐으나 의소세손은 곧 요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둘째 아들 세손 이산이 태어났다.
[[1762년]](영조 38년) [[5월 22일]] [[나경언]]이란 자가 사도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변하자, 영조는 친히 국문을 하였다. 나경언은 액정별감 나상언의 형으로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속였다. 가산이 탕진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022_002&grp=&aid=&sid=247168&pos=0|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5월 22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22|인용=}}</ref>
[[1762년]](영조 38년) [[7월 4일]](윤[[5월 13일]]) 부왕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가두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113_002&grp=&aid=&sid=247168&pos=5|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13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13|인용=}}</ref>
[[1762년]](영조 38년) [[7월 12일]](윤[[5월 21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자는 뒤주에서 나오지 못하고 폭염 속에서 사경을 헤매었고 결국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아사(餓死)하였다. 영조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씨에게는 '혜빈(惠嬪)'의 호를 내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121_002&grp=&aid=&sid=0&pos=0|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21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1762-5-21|인용=}}</ref>
{{출처|날짜=2010-10-31|임오화변의 원인으로 영조가 노론을 견제키 위해 키운 외척계 탕평당인 홍봉한 계열과 영조의 탕평에 반발하던 노론계의 대립으로 기행을 일삼던 사도세자 문제가 정치적으로 떠올랐는데 반 탕평파에서 홍봉한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약점이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치 문제화 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홍봉한은 이를 덮기 위해 뇌물까지 제공하며 은폐하려 했지만 나경언의 고변까지 들어가고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태까지 오자 영조가 종사를 위해 아들을 포기했고 손자를 지키기 위해 홍봉한에게 자신의 명을 따르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당시 상당한 상소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을 은폐하는 홍봉한에 대한 공격이 나온다.
[[1775년]](영조 51년)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홍인한은 극력 반대하였고, 이 문제로 정조의 미움을 사서 정조 즉위 후 사사된다.
홍봉한은 [[1770년]](영조 46년)경 반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순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영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가 83세에 서거하고, 대리청정하던 세손 이산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등극하니, 곧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 홍씨 역시 '혜경궁(惠慶宮)'으로 궁호가 높아졌다. 당시 왕실에서 혜경궁 홍씨가 제일 연장자였으나, 서열상 10살 아래인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가 대비의 위치를 차지하여 왕실 서열상 제2위의 위치에 있었다.
[[1795년]](정조 19년) 그녀가 회갑을 맞는 해에, 혜경궁 홍씨는 회고록인 《[[한중록]]》을 저술하였다. 한중록은 한번에 쓰인 게 아니라 십수년에 걸쳐 여러 번 쓰였으며 목적도, 내려준 사람도 각기 다른데 후대에 누군가가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집안의 명예회복이란 아들 정조가 죽은 후 벽파계의 공격에 의해 친동생이 사사당하고 아버지가 역적으로 다시 몰리자 그에 대해 변호한 것으로 가문의 원수였던 김귀주 계열, 벽파 계열에 대한 원한이 드러나 있으며 친동생의 죄목이나 아버지에 대한 공격등에 대해 정조 생전의 말이나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상세하게 거론하며 조목조목 변론하고 있다.
[[1800년]] 정조가 죽고, 정조의 아들이자 혜경궁 홍씨의 손자인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정조 치세기간 부터 집필하던 회고록 한중록(閑中錄)의 제목을 순조 즉위 후 한중록(恨中錄)으로 고쳤다. 이를 두고 [[1910년]]부터 [[한국]]의 일부 사학자들은 그가 한중록을 쓴 이유가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의 친정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였다.
- 이경영(1960) . . . . 87회 일치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남배우]][[분류:KBS 출연금지 연예인]][[분류:1960년 출생]][[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성매매]]
||<table width=100%><-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 5촌 조카 [[이현우(가수)|이현우]][* 이름의 "榮"자를 보고 [[경주 이씨]] 35세손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38세손이다.] ||
'''한국 영화계 최고의 조연 중 한명이자 [[성범죄자|미성년자 성매매 범죄자]]'''.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경영은 선한 쪽, 악한 쪽, 19금(?) 쪽, 소프트한 쪽 등 모든 종류의 애정 연기를 다 잘 소화한 배우라 그가 다작을 했다고 폄하될 이유는 없다. 게다가 개그 캐릭터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코믹한 영화에도 간간히 출연했다. 다만, 멜로나 로맨스, 즉 애정 연기 쪽을 잘했던 만큼 다른 장르는 저 셋에 비하면 약했던 면이 있었다. 그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들도 흥행이 그저 그랬었다. 아무튼 21세기에도 젊은 주연을 원하는 다른 장르에 비해, 나이 있는 배우가 주연을 하는 멜로는 수요가 나름 많이 있었던 만큼 후술될 사건만 없었다면, 오히려 저 셋보다 주연으로 더 오래갔을지도 모르는 탁월한 연기력의 소유자였다. 그야말로 인기나 대중호감도도 갖추고 있던 연기파 배우.
사실 이 시기에는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다. 이경영 본인도 "그나마 [[안성기]]나 [[박중훈]]은 충무로나 언론에서 보호해주는 패턴이 강했다면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안성기나 박중훈이 어느 정도 자기 이미지와 고유의 연기색을 바탕으로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코믹연기나 진지한 연기를 구축했다면, 이경영은 (최소한 영화작품 기준으로는) 자기만의 연기톤을 고집하려 들지 않고 당시 기준에서 극도로 19금적인 코믹연기도 하고 완벽하게 정석적으로 진지한 연기도 소화하는 등 팔색조처럼 넓은 연기폭을 시도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사례가 많아서 흥행은 거의 망하곤 했다 [[안습]]-- 1994년에 [[문성근]]과 같이 출연했던 '세상 밖으로'라는 영화는 주인공들이 탈옥수라는 설정답게 쌍욕이 들어간 대사가 영화 내내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 영화였다. (그전까지는 불량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 할 지라도 욕설의 정도가 심한 대사들이 주연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부 중요한 폭력적인 장면 한둘에서 나오는 정도) 그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연기변신에 대해 그렇게 힘든 요구를 항상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부분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고 합격점을 항상 받아왔다는 데서 이경영의 그 뛰어난 연기력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장르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1996년에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하여[* 원래는 심승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 했으나 사정으로 이경영에게 넘어갔다. 여주인공 교체 등 다사다난에 시달렸고 흥행성적도 안습이었다.] 제작한 《귀천도》가 실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는 40대의 나이에도 주요시간대 드라마의 멜로 주인공을 잘 소화하며 멜로 전문 = 이경영이라는 공식을 어느 정도 유지할 만큼 잘 나갔었고, 당시 드라마 좋아하던 세대인 30~40대 여성시청자 팬들도 굉장히 많았다.
90년대 후반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절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영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이때 이경영은 당대 최고 젠틀맨 이미지를 가진 스타답게 연륜있는 유머로 넘겼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유정현은 당황한 감정에 --시킨다고 욕을 하냐-- 살짝 화가 겹쳐 나있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소라도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김민종 본인도 자꾸 시키니까 욱하는 마음에 실제 대사를 질렀다가 "시키시니까 했는데요.. 아 [[방송사고]]다, 어떡하지.."이러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 했는데, 이경영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웃으며 "제가 앞으로 김민종 씨 언어순화 교육까지 책임지며 살겠습니다."라며 적절하게 마무리시키고 넘어갔었다.
두 번째 사건 때는 소개하는 말을 했던 유정현은 당황했고, 이소라는 웃느라 아예 정신을 못 차렸으며, 이영애는 조금 웃기만 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이경영도 당황은 했으나 더 이상 멘트가 안 나오면 더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여 미소와 함께 차분하게 "아 예,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로맨스》에 출연하고 있는 이경영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유머로 받아쳐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소라의 웃음터진 게 이미 너무 심해서, 이경영의 자연스러운 --아재-- 유머에 계속 터져 버려 한동안 방송사고가 지속되었다. 이 두 개가 1997 ~ 98년, 1년 사이에 터진 일인데, 홍보를 해야 하는 이경영 본인의 입장에서는 단기간 연속으로 발생된 방송사고로 출연작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위험하기에 당혹스럽고 누가 봐도 화가 날 만한 상황[* 드라마, 영화 외의 방송출연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 상황까지 온다면 어떤 주연급 배우도 심하게 빡칠 만한 상황이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혼자 의연하게 대처했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져서 "역시 젠틀맨 이경영"이라는 식으로 평판이 더 좋아졌었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으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 3차례의 성관계를 가질 동안 이경영은 L양이 미성년자임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1심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정확하게 표현하면,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이었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화배우겸 감독인 이경영(41)피고인에게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 합의11부(재판장 이원규 부장판사)는 12일 이 사건 선고 공판에서 "이 피고인이 이모(18)양과의 첫 번째 성관계 시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는 점은 인정되나 두 번째는 성관계 전 이 양이 '나이를 말했다'는 진술이 신빙성이 높아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제작한 영화에 이 양을 출연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을 준 점도 인정된다"며 성 관계의 대가성 부분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220298|#]]
||1심 판결에 대해 이경영은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하지 않은 사실은 2심 판결문 상에 검찰의 항소에 대한 판단만이 담겨있을 뿐, 이경영의 항소에 대한 판단은 없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만약 이경영도 항소하였다면, 판결문에 이경영의 항소에 대한 판단도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하였다. 검찰의 항소 이유는 '이경영은 첫 번째 성관계 때도 L양이 미성년자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첫 번째 성관계도 유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법원과 똑같은 판결을 하였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성룡ㆍ李性龍 부장판사)는 25일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화배우겸 감독 이경영(41)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대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모(18)양과의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를 맺을 때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보여 검사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57848|#]]
||형사재판이 끝난 뒤, L양과 L양의 부모는 이경영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배우가 되려는 청소년에게 영화출연을 내세워 자신들의 성적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성년자인 L양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L양의 정신적 손해를 인정했다. 즉, L양 측이 승소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645239|#]]||
- 김형준(배우,가수) . . . . 86회 일치
||<#00BFFF> '''별명''' ||자라, 거북[* 목이 길어서 붙었다.], 김오피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성씨를 합친 별명, 데뷔 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여 붙여졌다.], [br]인형준[* 인형+형준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뻐서 붙여졌다. 비슷한 별명으로 프랑스 인형이 있다.] ,아카짱[* 아카(애기)+짱(친애를 뜻하는 일본의 경칭) 일본 활동 때 일본 현지 스텝이 붙여준 게 시초로 멤버들과 팬들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별명. 행동이나 얼굴, 성격이 애기같아서 붙였다고 한다.], 김자라[* 성+자라. 목이 길어서 자라 같다고 붙여졌다.], [br]기명준, 막내온바닥[* 막내온탑의 반대말, 동시대 아이돌들이 다 막내온탑, 실세를 맡고 있을 때 --심지어 그룹 내 동갑 멤버는 서열 1위-- 거의 혼자 막내둥이 취급을 받았다. 서열순위 꼴지. 형준에게 하극상은 없다. 그저 막내일 뿐...], 깐준[* 앞머리를 깐 형준], [br]쪼꼬쭌[* 럽라디 때 베이비펌을 하고 나오자 팬들이 본인이 키우는 푸들인 쪼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쭌디제이[* 쭌+DJ. SBS 라디오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 디제이를 맡으면서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 [br]쭌[* 멤버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스에꼬[* 일본어로 막내라는 의미. 이름이 비슷한 김현중과 구분하기위해 쓰였다. 반대로 김현중은 리다], --인왕--[* 인자한왕자 줄임말로 본인은 시키면 무조건 다한다고 그래서 인왕]||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명예 [[프로게이머]].[* 명백히 케스파 공인 ''''명예'''' 프로게이머이다.] 같은 그룹 멤버 [[박정민(SS501)|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나왔으며 5인조 [[보이그룹]] [[SS501(아이돌)|SS501]], 3인조 유닛 [[Double S 301]] 멤버다. 동생으로는 [[유키스]] 전 멤버인 [[알렌기범]]이 있다. 친구이자 톰과제리의 톰인 [[박정민(SS501)|박정민]]과는 앙숙이자 절친이다.
* 2007년 1월 7일 [[인기가요]]에서 지상파 첫 1위를 발표 하자마자 혼자 울음을 터트렸다.
* 요즘에는 [[걸그룹]]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에게 푹빠졌다고 한다. 여자친구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싶다고....
* 귀신이나 무서운걸 싫어한다. 다른 멤버들은 무서운 이야기나 예능에서 공포체험을 하면 '오! 깜짝이야'... 그냥 이정도 반응인데 뭔가 튀어 나왔다하면 혼자 으악악악!!!!!! 소리부터 지른다. --더 하면 울것같다.--
* 자신있는 신체 부위는 목이랑 어깨라고 한다.
* 연예인 중 이상형을 뽑자면 [[BoA|보아]]이며 데뷔 초부터 보아를 좋아했다.
* 요리는 할줄 모른다고 한다. 요리를 왜 못하냐고 물으면 자기는 요리를 못하는게 아니라 하면 맛없어서 안 먹으니까 안한다고...
* 작은 얼굴에 오똑한 코, 큰 눈 때문에 인형준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동양인 답지 않게 높은 코는 어머님과 할머니, 사촌누나인 [[http://i.imgur.com/mS7AYGr.jpg | 장엘리]], 친동생인 [[알렌기범]]을 보면 빼박 유전이다. --사촌누나도 연예인 뺨치게 이쁘시다-- --오오 우월한 유전자-- 또 [[http://i.imgur.com/CfGoYyP.jpg | 16세에 찍은 여권사진]]과 18세에 찍은 옥주현의 뮤비 Catch를 보면 지금이랑 똑같다. --sm에서 길거리 캐스팅 받은 것만 봐도...-- [[http://i.imgur.com/H770qjj.jpg | 외모가 오해할 만하다.]] [[http://i.imgur.com/mM0Y8Zz.jpg | 김형준이라 쓰고 인형준이라 읽는다.]] 얼굴이 너무 하얘서 한국 화장품 중에는 피부톤이 맞는 게 없어 코디네이터들이 외국 제품으로 화장을 해줬다고 한다.
* 군 입대 후 진행하게 된 김천경찰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리즈시절을 묻는 질문에 데뷔 초 'Snow Prince' 활동을 할 때를 꼽았다. '저렇게 생긴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 들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과거 리즈시절 모습을 보고 지금의 자신을 보면 놀란다고 한다. 너무 [[격변]]한 것 같다고… ~~옛날이여…~~ [[https://youtu.be/GDtvDYrJJJ0|2018년 8월 30일 방송. 1:18:34부터.]]
* 세계적인 구두 디자이너 지미추의 초청으로 디너 파티까지 참석해 시간을 보냈고 지미추는 김형준의 솔로 앨범을 받았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4&aid=0002778212|#]]
* 그 외에도 [[엠블랙]] [[지오(엠블랙)|지오]], [[간미연]], [[K.WILL|케이윌]]까지 폭풍 인맥을 자랑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228363|#]]
허영생이 음역대가 높고 넓은 메인보컬 이라면, 김형준은 음역대는 좁지만 안정적인 보컬로 노래 전체를 받혀주는 미들톤의 리드보컬이다. 그래서 보통 아카펠라를 할때, 김형준이 먼저 음을 찾고 멤버들이 그 음에 맞춰서 자기 음을 찾는다. 비음이 꽤 있는 편이다. 톤이 중음이라 그런지 발라드랑 댄스곡 둘 다 어울린다. 다만 댄스곡은 강렬하고 시끄러운 것보단 소프트, 세미 정도가 어울린다.
'4Chance'에서 1절 첫 소절과 하이라이트 중간에서 단독파트가 단 6초밖에 없었다. 하지만 '겁쟁이'에서 하이라이트에서 혼자 불렀다. 'U R Man'에서 허영생, 김형준이랑 1, 2절 파트를 나누어서 불러 파트가 많이 배정 되었다. '내 머리가 나빠서'에서 허영생, 김규종이랑 배정된 파트는 비슷했다. 허영생이 1절 하이라이트는 단독으로 불렀고 2절 하이라이트는 김형준이 단독으로 불렀다. 그러나 . 'Deja Vu'에서 파트는 상당히 줄어 들었다. '널 부르는 노래'에서 단독으로 부르는 노래가 단 한 파트가 없고 랩만했다. 'Love Like This'에서도 적은 파트를 배정 받았고 'Love Ya'에서도 랩을 제외하고는 보컬 파트는 적었다.
* 7월 10일 SS501 전원과 함께 자유선언 주먹이 운다에 출연했다.
* 2월 3일 허영생과 함께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다. 귀여운 고양이 머리띠를 쓰고 허영생과 함께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를 반주도 없이 생라이브를 불렀다.
* 2월 4일 뮤직뱅크 400일날 [[하하(가수)|하하]], [[이루(가수)|이루]],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과 함께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를 불렀다. [[https://vimeo.com/27080184|#]]
* 8월 8일부터 9월 12일까지 SS501의 일본 생활기를 담은 아이돌 월드에 출연했다. 몰래 카메라 편[* 촬영날에는 8월 3일 김형준 생일이었다.]에서 멤버들과 매니저 제직진 작전에 속아 멤버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감정이 격해줘 곧 울것 같았다. 멤버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떠나고 잠시후 케이크를 들고 생일 축하를 부르자 이제서야 몰래 카메라를 눈치채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 3월 22일 SS501 전원과 함께 화려한 외출에 출연했는데 야동(...)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횡성수설하며 당혹함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막내 이제 성인이예요--
* 3월 22일 SS501 전원과 함께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다. 멤버 네명 모두한테 거울을 달고사는 남자 돈 안 쓰는 남자 1위에 뽑혔다.
- 조성모(가수) . . . . 86회 일치
||<width=24%> [[H.O.T.]], [[김종환(가수)|김종환]][br]빛[br]사랑을 위하여[br](1998) || → ||<width=24%><#FFFFA1> '''조성모''', [[송대관]][br]'''For Your Soul'''[br]네 박자[br]'''(1999)''' || → ||<#FFFFA1><width=24%> '''조성모''', [[태진아]][br]'''아시나요'''[br]사랑은 아무나 하나[br]'''(2000)''' || → ||<width=24%><:>[[god]], 태진아[br]길[br]잘났어 정말[br](2001) ||
'''대한민국 최후의 음반 황제이자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압도적 인기를 누린 솔로 가수.'''[* 당시 괴물 같던 1세대 아이돌들의 팬덤과 인기를 단독으로 상대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솔로 가수이자 심지어 음반 판매량, 수상 경력 등 커리어로는 그 당시 가요계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발라드 가수로서 아이돌을 제치고 대상을 탄 원톱 가수이다. (아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휩쓴 것뿐만 아니라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전신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도 대상 부문인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도 수상했으니 MAMA에서도 사실상 대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받지 못한 건 [[멜론 뮤직 어워드]] 뿐이다. 근데 멜론 뮤직 어워드는 조성모의 전성기가 지난 2005년에 온라인 형태로 시작해서 2009년이 되어서야 오프라인 시상식이 되었다.--][* 조성모가 최전성기 때 대상을 받은 1999년과 2000년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1999년 같은 경우 그 전 해인 1998년에는 [[H.O.T.]]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서울가요대상]]도 같은 아이돌 그룹인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고, KMTV 가요대전도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 다음해인 1999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골든디스크 시상식]]은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고, [[SBS 가요대전]] 대상은 [[핑클]]이 조성모를 제치고 수상할 정도였다. 이후 2000년 같은 경우 조성모는 [[MBC 가요대제전|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KBS 가요대상]]은 [[god]]가 조성모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god]]가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에서 모두 대상을 석권하였고, 그 외에 [[골든디스크 시상식]], [[MKMF|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는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할 정도였다. 그만큼 1세대 아이돌의 팬덤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원래는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O003&qid=0DyDI&q=%C8%FC%C7%D5%B4%ED%BD%BA%B1%D7%B7%EC+%BB%E7%C3%B5%BB%E7&srchid=NKS0DyDI|'''사천사''']]라는 혼성(남3, 여1) 힙합댄스그룹의 멤버였으나 공중파 방송 데뷔를 앞두고 해체돼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며[* 그런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181004 해피투게더) 그 당시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트레이너도 존재하지 않아, 댄서였던 다른 멤버에게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춤이 늘지 않자 일 년 반만에 팀에서 방출 되었다고. 팀은 조성모가 나간 이후 공중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부족한 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는 댄스의 피가 끓고 있다고 꾸준히 힘주어 말한다. 이날, 사천사라는 팀명은 본인이 지었다고 덧붙였으며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사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김광수(음반기획자)]] 대표[* 그러나 그 시절의 김광수 대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성모를 만나 제작자로 정점을 찍었다. [[티아라]]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자신들 앞에서 '성모가 보고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티아라 자신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김광수 대표는 자신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에 의해 발탁되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1998년 9월 4일 첫 앨범 《To Heaven》[* 그런데 본래 조성모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를 예정이었던 노래|다른 가수에게 가려고 했던 곡]]이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공은 현 [[FNC엔터테인먼트]] 사장인 한성호 대표이다.]으로 데뷔 후 줄곧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했는데 [[이병헌]]과 [[김하늘]]이 주연한 뮤직 비디오만 공개[* 조성모의 말에 따르면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미리 돌린 것이 의도치 않게 송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반응을 끌면서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가수가 된 것이지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한 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98년 10월 17일 [[이소라(가수)|이소라]]의 프로포즈(99회)로 [[https://www.youtube.com/watch?v=doW-NQXoWgY|방송에 첫 출연하면서 얼굴을 공개했다.]] [* 이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나온다. 방성재와 도학찬은 조성모의 외모를 가지고 내기를 걸었고 예상 외로 조성모의 얼굴이 매우 멀쩡하자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수영(가수)|이수영]]과 함께 유명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둘을 동시대 가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데뷔 초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성모와는 달리 이수영은 2집의 실패 이후 3집 그리고 사랑해로 슬슬 뜨다가 2003~2006년을 전성기로 보낸 탓이다. 대신 조성모의 전성기를 2005년 6집 Mr.Flower까지로 보면, 이수영이 7집 Grace와 8집 단발머리까지 히트시키며 그만큼 더 롱런하기는 했다.]
그 뒤 조성모의 활동 시기[* 김광수 사장의 픽업으로 데뷔했지만 아이돌식 프로모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솔로 가수의 필연적 롱런 방식 중 하나인 싱어송라이터 전업에 실패하면서 솔로 가수로서 입지를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그게 아니면 이문세나 이승철 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가수 역량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되는데 그것도 실패한 케이스이다.] 이후로 음반 시장이 아이돌 위주로 재편되었고 본격적인 CD 시장 붕괴로 인해 MP3 음원 판매가 주를 이루고 가수들의 색깔이 비슷해지면서 '황제', '황태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가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음반 판매량에 있어서 조성모는 조용필, 신승훈, 김건모의 뒤를 이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을 갖고 있다.]
▲ 2009년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자신의 대표 발라드들로만 구성된 '''10분짜리 메들리를 라이브로 완창'''하는 영상이다. 본인의 콘서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청객들이 '''자연스레 [[제창]]하도록 만드는 위엄'''을 선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히트곡만으로 방송 무대에서 10분간 메들리를 완창하고 방청객들도 자연스레 제창할 수 있게 만드는 남자 발라드 가수가 한국에서 손꼽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맨 위의 소개글에서 조성모에게 '발라드 황태자의 마지막 계보'라는 수식어를 괜히 붙인게 아니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백한 후에 여태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반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절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늘상 선곡이 비슷하다는 비평도 함께 받았었다. 특히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 덕에 독자적인 팬층을 확보했지만 그로 인해 자가복제라고 팬층 외에서 비판을 계속 받아야 했다. 이건 사실 전성기였던 전반기 시절의 [[MBK엔터테인먼트|GM기획]]에서 지시한 것이지 당시 신인에서 막 벗어나며 대스타로 거듭나던 상황인 조성모로서는 돈도 그렇게는 많이 못 받고 앨범 작업에 있어서도 별 힘이 없었다. 조성모도 이 당시가 가수로서 자신의 리즈 시절이긴 했지만 소속사의 굴레에 갇혀 활동하는 등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더구나 그 당시에 조성모 부모님이 빚도 많이 있어서, 빚 탕감하는데 치중하며 가수 활동을 하다보니 더더욱 그런 듯하다.]
'''[[X맨을 찾아라]]에서 [[김종국]]이 최대 수혜자였다면, [[출발 드림팀]]에서는 조성모가 최대 수혜자였다.''' 조성모는 출발 드림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뜀틀청년이라는 이명이 생길정도로 [[뜀틀]] 분야에서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맹활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건강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였으나, 정작 병역의무를 공익으로 이행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유는 선천성 어깨탈골. [* [[김종국]]과 같은 날에 훈련소에 입소를 했는데, 김종국이 별다른 행사없이 바로 입소한데 비해, 훈련소 입구 앞에서 팬클럽과 함께 환송회를 열었으며, 특히 공익으로 군 복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군생활에 공백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 하는 등 지나친 반응을 보인 탓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가수라는 이유로 논산훈련소 천주교 성가대에서 성가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걸 목격당하기도 했다. 출발 드림팀은 프로그램 출연자 대부분이 공익으로 빠진 것을 빗대어 '출발 공익팀'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하였다. 참고로 소집해제때 비니를 쓰고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공익으로 복무한 연예인들은 거의 전부가 소집해제 기자회견시 비니를 착용한다. 현역복무자의 짧은 머리와 비교되어 비난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또 5집 <가인> 활동 때 무리하게 창법을 바꾸려 했던 노력도 그의 목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만들게 되는데 이유는 잉골라로 노래하는 상태에서 파워풀한 소리를 내려고 했기 때문.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 후두가 올라가면서 파워풀한 소리를 내려고 목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고, 그 말은 '''생목으로 노래한다는''' 소리가 된다. 또한 타이틀 곡 <피아노> 역시 쉬운 곡이 아니었기에 결국 목은 더 쉽게 상할 수 밖에 없으며 이 앨범으로 활동하며 목이 정말 심각할 정도로 상해버렸다.
이들 역대 인기곡 뮤직비디오들의 캐스팅을 지금 분석해 보면 초호화 캐스팅인데, 이게 신승훈이나 이승환과 같이 가수 자체의 역량 덕분에 신인배우들이 전격적으로 캐스팅되어 뮤직비디오를 통해 주목받은 케이스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보다 초창기에는 조성모가 처음 몸 담았던 대형 기획사인 [[코어 콘텐츠미디어|GM기획]]이 영화/드라마계의 스타급 배우들을 소속 연예인으로 많이 거느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캐스팅이거나, 중/후반기에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명성이 이미 높아진 상태였기에 스타급 배우들도 조성모 뮤직비디오 정도면 격에 맞다고 생각해서 캐스팅을 승낙했던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 [[http://youtu.be/ynlG1-OQgxg|To Heaven (1집)]] : [[이병헌]], [[김하늘]], [[허준호]], [[조민수]], ~~꼽사리~~[[정웅인]][* 이병헌의 친구 역으로 연기하였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탐문수사하는 형사 허준호한테 ~~X나게~~ 두들겨 맞고 멱살잡히는 장면이나, 이병헌의 도움요청에 이병헌과 김하늘이 악당들에게 기습당하는 곳에 쳐들어가 함께 싸워주는~~(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장면에서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최종원]][* 간주 중 회상씬에서 잠시 등장. 이병헌과 조민수의 아버지로 이들의 어린 시절에 경찰로 근무중 순찰을 돌다가 동네 양아치들의 집단 폭행으로 살해당한다. 누나와 함께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어린 이병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양아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성장하여 복수하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주요 스토리다.] ~~[[오상훈]]~~[*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계에서 조연급으로 얼굴이 익숙한 배우이며, 특히 조성모의 대표 뮤직비디오들에서 악역으로 인상깊게 각인된 배우다. 'To Heaven' 뮤직비디오에서는 김하늘을 승용차에 가둬놓고 석유를 뿌려대고 불붙이는 대머리 조폭 역으로 짧지만 상당히 인상 깊게 등장한다.]
- [[http://youtu.be/C9CMZ35vTYs|아시나요 (3집)]][* 영화 '플래툰'의 촬영지인 [[필리핀]] [[마닐라]] 올로케로 촬영되었으며 2000년 당시 총 제작비로 15억원이 들어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사상 전무후무한 대작 스케일을 내뿜는다. 스토리 내용은 주인공 조성모가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베트남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함께 죽는 슬픈 결말로 구성된다. 극중 파병 부대로 마크까지 등장하는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베트콩에게 전멸당하는 전투장면 및 얼차려 등의 병영생활 등이 나오는 장면들과 관련하여 거센 항의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한편 [[천국의 눈물|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oB4oCDXFXhE|수정판]][*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항의로 인해 부대마크를 모자이크 처리 및 전반부 국군이 베트콩에 전멸하는 전투장면을 삭제하고 후반부 전투에서도 주인공 조성모가 베트콩 수장을 죽이는 장면을 추가 삽입하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 [[신민아]][* 1999년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였고, '아시나요'는 그녀가 출연한 두 번째 뮤직비디오 작품이자 실질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조성모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베트남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전투를 떠나는 부대원의 지리정보를 주기위해 겁도 없이 총도 안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결국 베트공의 총에 맞아 죽는다.], [[허준호]][* 주인공 조성모가 소속된 월남파병 부대의 [[말년병장]] 쯤으로 추정된다. 방탄모도 안쓰고 지멋대로 두건을 하고 다니는 등 군기가 제대로 빠져있는데, 중간에 민간인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베트공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되고, 베트공 대장의 살해 협박에 아군의 부대 위치를 알려주는 병크를 저지르고 결국 살해 당한다.], [[정준호]][* 조성모가 있는 파병부대의 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구해낸 현지 월남 주민인 신민아가 현지 지리에 밝은 것을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전투에서 숲속에 [[네이팜탄]]을 뿌리며 불을 지르다가 베트공의 습격에 폭사당한다.], [[신지수]][* 극중에서 신민아의 여동생으로 연기한다.], ~~[[오상훈]]~~[* To Heaven에 출연했던 악역 전문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국군과 대치하는 베트콩의 대머리 수장 역할로 거의 주연급 악역으로 출연한다.], ~~[[김대진]]~~[* '여름아 부탁해'를 부른 그룹 인디고의 멤버 맞다. 그 이전에는 지오에서 활동했다. 조연급 배우로 활동중이며,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동료 병사로 출연하는데, 극중에서 전투중에 아역배우였던 신지수를 비롯한 월남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다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한나나]]~~[*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약혼자로 나왔던 그 배우 맞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장교로 간간히 등장한다.]
- [[http://youtu.be/6xEsEArWAa0|다짐 (3집)]] : [[강동원(배우)|강동원]][* 홍수현이 바람피며 만나는 새 남자친구 역할로 잠깐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무명이어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강동원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재조명 받게 된 케이스다.], [[홍수현]], ~~[[김대진]]~~[*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다짐' 뮤직비디오에서는 홍수현의 남자친구로 홍수현이 바람피는 것에 충격을 받고 싸우다 홍수현한테 차이는 역할로 나름 열심히 연기했다.]
- [[http://www.youtube.com/watch?v=NPGiZyh0yR4|잘 가요 내 사랑 (4집)]][*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창시자인 김세훈 감독의 한계가 느껴졌던 작품이다. 배용준, 이나영 이라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그에비해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지 못한데다, 마지막 부분의 이나영이 자전거 교통사고로 죽는 씬은 충격 그 자체. 더불어 신예감독 [[차은택]]의 참신한 구성과 홍콩스타 장쳰이 특별출연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인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과 같은 시기에 맞붙어서 경쟁하게 된 덕분에 더욱 타격이 컸다. 이 뮤직비디오 작품을 끝으로 김세훈은 조성모표 뮤직비디오에서 손을 떼게 되고 점차 뮤직비디오계에서의 영향력도 줄어들게 된다.] : [[배용준]], [[이나영]], ~~[[제롬]]~~[* 교포출신 VJ 및 방송인이고, 명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중있는 역할이어서 넣는다. 극중에서 자전거 전문 절도단의 대가리격으로, 자전거로 신문 배달하며 입에 풀칠하며 사는 가난한 유학생 욘사마의 자전거를 쌔비는 것도 모자라, 애지중지하던 자전거 찾아 삼만리 다니다 절도단이 자기 자전거 가지고 가는 모습을 본 욘사마를 붙잡아 협박해 절도단 활동할 때 경찰 오나 안오나 짱보게끔 시켜 잠도 못자게 하며 이용해 먹다가, 욘사마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경찰 신고해서 결국 구속되었는데, 절도단 밑에 애들 시켜서 욘사마를 집단 구타해 애꾸눈으로 만들어 버리기 까지 하는 비열한 악당으로 연기했다.]
- [[http://www.youtube.com/watch?v=wsvC0aQiaCE|Ace of Sorrow (베스트)]][* 조성모와 GM을 떠나 소속사를 옮기면서 잡음이 많아지던 2002년 가을에, GM이 조성모와 체결한 계약기간 막바지에 당사자와 협의 없이 발매한 조성모 디스코그래피의 [[흑역사]]로 일컽는 베스트 앨범 'Best Of Best: Don't Forget To Remember'에 수록된 신곡이다. 이런 형태의 베스트 앨범은 조성모 뿐만 아니라 소속사를 바꾸는 가수들에게 비일비재했던 전 소속사의 횡포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조성모의 경우 새소속사를 통해 발매할 5집 활동을 방해할 목적과 더불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조성모의 단물을 마지막까지 빨아먹어 보겠다는 속셈으로 발매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 구입하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조성모의 역대 히트곡들이 모두 담기고 라이브 실황 음원까지 담은 4CD 구성으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명가수의 베스트 앨범으로서는 괜찮은 것 같다.] : [[권상우]], [[신은경(배우)|신은경]], [[정준호]][* 이로써 정준호는 허준호를 한 표차로 따돌리고 역대 조성모 뮤직비디오들에서 최다 출연한 배우가 된다.]
- [[http://youtu.be/YkNF991y9RM|내것이라면 (5집)]][* 영화 '친구'의 감독인 [[곽경택]] 감독이 기획한 뮤직비디오로 꽤 화제가 되었다. 원래 이 곡이 5집 타이틀곡으로 내정되고 곽경택 감독도 그리 알고서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는 것으로 홍보도 되고 그랬었는데, 앨범 출시 막바지에 타이틀 곡이 '피아노'로 변경이 되어 '내것이라면'은 자연스레 후속곡으로 밀려났고, 게다가 기획사에서 뮤직비디오의 일부 장면을 곽경택 감독과의 상의 없이 임의로 편집한 사실 때문에 곽경택 감독이 빡돌아 기획사를 상대로 법원 소송까지 걸었다. 다행히 기획사 측에서 정식으로 곽감독에게 사과를 하는 것으로 곽감독도 소송을 취하하여 사태는 일단락 되긴 했는데, 어쨌든 흥행면에서는 이미 '피아노'에 타이틀곡 자리도 밀린데다 별다른 임팩트도 없는 뮤직비디오였던지라 그렇게 묻혀져 갔다.] - [[임은경]][* TTL의 소녀 임은경 맞다. 하지만 CF 이후 연기자 활동영역에선 별다른 임팩트를 선보이지 못하고 현재는 거의 잊혀져간 추억의 스타가 되었다.]
GM 기획측은 픽션이 가미된 예술작품으로 봐줄 것을 요구했고, 이들의 항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의견을 수용하여 뮤직비디오를 재편집 할 때 조성모가 베트콩의 수장을 사살하는 장면을 집어넣고 문제가 됐던 백마부대 표지를 CG처리로 깔끔하게 삭제한 다음,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에 참전 전우회의 명예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 뮤직 비디오를 평화의 전사들에게 헌정한다"는 자막을 추가를 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조성모가 탈락하자 MC인 전현무부터 시작해 연예인 패널들, 관중석, 그리고 조성모 본인도 큰 충격에 휩싸였는지 잠시 스튜디오에 적막이 흘렀으며, 이후 전현무와 연예인 패널들이 각종 분석을 하면서 그를 위로하느라 정말 애썼다. 허나 원래 히든 싱어의 슬로건이 '숨은 가수 찾기'이기 때문에 이후 라운드에서 조성모에게 가는 표는 무효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1등을 하였다. 비록 조기 탈락이라는 커다란 업적(?)을 세우긴 하였지만, 덕분에 조성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중왕전 및 TOP3 생방송에 걸쳐 임 군의 조성모 모창이 너무 뛰어났기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하는 등 히든 싱어 출연의 결과가 마냥 안습이라고는 볼 수 없을 듯. 그리고 시즌 3종료후의 왕중왕중왕전(시즌1~3 통합전)에는 콘서트 종료 직후 달려와 약간의 농담을 던지며 호탕한 웃음을 보이는 등 아무렇지 않게 참석했기에 쎄한 느낌을 말끔히 지웠다.
- 전인범 . . . . 85회 일치
|부모 = 아버지 전주화, 어머니 [[홍숙자]]
|배우자 = [[심화진]]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81년 초임지인 30사단 90연대 15중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 1군단장 [[이기백 (1931년)|이기백]] 중장에게 발탁되어 대한민국 육군 최초로 [[중위]] 계급을 달고 3성 장군인 군단장 전속부관을 맡게 되었다.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당시 이기백 [[4성 장군|대장]]은 [[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을 수행했으며, 전인범 중위 또한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으로서 아웅 산 묘소 참배에 동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2/2012101200231.html "아, 가슴 아픈 이 사진... 거기에 내가 있었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 12일</ref> 당시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묘역에서 추가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상을 입은 이기백 장군을 구출해내어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하였다. 그때 폭발로 온몸에 박힌 파편 제거수술을 받은 이기백 대장이 의식이 돌아오자 마자 “각하께선 괜찮으시냐, 지금 몇 시냐, 밥은 먹었냐”라고 묻는 모습에 상관과 부하를 저렇게 챙기고 위하는 게 진짜 군인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ref name="a"/>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4년 12월에는 [[:en:Multi-National Force – Iraq|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영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이라크전]] 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국군이 그 외에는 없어 처음에는 직속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그였다. 그래서 바쁘다는 외국군 장군들 대신 브리핑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자 노력해 점차 조직을 장악하였다고 밝혔다.<ref name="a"/> 그는 [[:en:United States Armed Forces|미군]]과 [[:en:British Armed Forces|영국군]], [[:en:Australian Defence Force|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30323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ref>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대한민국 국군|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en:Bronze Star Medal|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46950 노 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50706&parent_no=7&bbs_id=BBSMSTR_000000000004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 대령 美 동성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ref>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09년 11월 [[2성 장군|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재임하면서 그는 전역하는 병사들을 위해 전역식을 열어주고 직접 참석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밖에 없다”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해주었고,<ref>[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08 [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태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시사위크》, 2017년 8월 14일</ref>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슬리퍼의 열악함을 토로하며 보급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사령관 앞에서 슬리퍼를 물고 있기도 하는 등 장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9641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끝없는 미담 “능력과 인품 두루 갖춘 진짜 장군”], 《서울신문》, 2017년 2월 7일</ref>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태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en:Legion of Merit|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72160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상],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ref>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영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2013년 10월 [[3성 장군|중장]] 진급과 함께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동년 11월에는 한미연합방위체계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상호 유대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다시 한 번 수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05771 전인범 특전사령관, 美 최고 공로훈장 받아], 《연합뉴스》, 2013년 11월 19일</ref> 2013년 현재 그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총 8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현역 장성 중 최다 훈장 수상자로 알려져 있다.<ref>[http://www.gunsa.kr/bbs/board.php?bo_table=B01&wr_id=151 대한민국 특전사 사령관 전인범], 《군사저널》, 2013년 12월 31일</ref>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5년 4월 14일 특수전사령관 임기를 마치고 제1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영전하였다. 특전사령관 이임사에서 그는 “우리는 야수의 본능을 잃어가는 동물원의 사자가 아닌 초원을 질주하며 천하를 호령하는 용맹함을 간직한 대한민국 육군의 대표부대 특전사 검은 베레 용사들”이라며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정신이 바로 특전 정신이다. 우리들 특전용사에게 결코 불가능은 없다”고 강조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H7RevwSahLk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취임식 - 전인범 25대 특전사령관 이임사], 2015년 4월 14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646756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천하 호령하는 특전사 명예 지켜달라"], 《뉴시스》, 2015년 4월 16일</ref><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9010011577 특전사는 '적 도발은 곧 파멸 인식' 세계 최강 부대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9일</ref>
2015년 6월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New Westminster College)의 특별연구원(Distinguished Fellow)으로 선정되었다.<ref>[http://newwestminstercollege.ca/lieutenant-general-in-bum-chun-phd-distinguished-fellow-of-new-westminster-college Lieutenant General In-Bum Chun, BA, MS, MA, PhD, MSM, BSM, LM, NSM], 《New Westminster College》, 2015년 6월 16일</ref>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 총장 로버트 굿윈 3세는 “그는 윤리적 리더십에서 괄목한 성과를 내었고 교육훈련에 평생 동안 헌신해왔다”며 “현 세계의 국가적 안보 위협에 대한 이해는 그가 정부의 국제적, 국가적, 지역 단위 이해관계자들의 민군 상호운용성과 방위협약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리더십, 외교와 사이버 보안에 관한 연구의 설계와 전달에 있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위원회와 나는 그가 우리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새로운 특별연구원이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인범 중장은 특별연구원으로서 학문적 수월성의 최고위 기준에 대한 지원에 공헌해왔고,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과 연구원들의 세계적인 조직망 발전에 헌신해왔다고 알려졌다. 이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는 필리핀 대통령 [[피델 라모스]],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 캐나다 국방참모총장 대장 [[:en:Ray Henault|레이 헤노]] 등이 있으며, 특별연구원으로 선정된 인물 125명 가운데 한국인은 그가 최초이다.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영 (1949년)|김태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2017년 2월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 [[문재인]]의 대선 경선 캠프인 ‘더문캠’의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음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인용문2 | 저는 오늘부로 더민주당의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이 결정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더민주당의 안보강화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지켜 나가는데 의미있는 역할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있어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 태종무열왕 . . . . 85회 일치
|배우자 = [[문명왕후|문명왕후 문희]], [[영창부인|영창부인 보희]]
|자녀 = [[문무왕|문무왕 김법민]], [[김인문]]
[[선덕여왕|선덕]](善德) · [[진덕여왕|진덕]](眞德)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반,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진덕여왕]] 때는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飡)에 이르게 되고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으로써 국인의 추대를 받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그렇게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된 [[김춘추]]는 아들 [[김문왕|문왕]](文王),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각각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湌)으로 관등을 올려줌으로써 자기의 권력기반을 강화시켰다. 이후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아버지는 [[진지왕]](眞智王)의 아들 [[김용춘]]<ref group="주">김용수(金龍樹)라고도 한다.</ref>,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이었던 [[천명부인]]이다. 그가 사료에 '진골'로 기재된 것에 대해서는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재위 4년 만에 국인에 의해 폐위당한 점이나 [[김춘추]] 자신이 진골이자 옛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인 [[김유신]](金庾信)의 누이인 문희를 아내로 삼은 점 등이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ref>주보돈(2009), [http://www.riss.kr/link?id=A77046838 〈신라 骨品制 연구의 새로운 傾向과 課題〉] 《한국고대사연구》 54권 5-41쪽. 한국고대사학회</ref>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태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순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ref>
김유신의 주도와 김춘추의 동조로 이루어진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 혼인을 통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간에 정치 · 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 · 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 · 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의 중고(中古) 왕실의 진골 귀족 내에서 하나의 신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聖骨)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반발을 받았다. 무열왕은 부계가 진지왕의 자손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자손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를 상징적인 진골 최초의 임금으로 평가한다.{{출처|날짜=2018-06-29}}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백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상남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남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반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상">《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ref>
이듬해인 [[648년]] 12월에 김춘추는 드디어 아들 [[김문왕|문왕]](文王)과 함께 직접 [[당나라|당]](唐)에 입조하였고<ref>《자치통감》 권199 唐紀十五太宗文武 貞觀 22년(648)</ref> [[당 태종|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자감 (중국)|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대제|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으며, 신라의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했다. 당 태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에 태종의 호출로 사적으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김춘추는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조(天朝)를 섬긴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사온데, 백제가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해 왔습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폐하께서 천병(天兵)을 빌려주시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주시지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요,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태종에게 원병 파병을 호소해, 태종의 허락을 받아냈다.<ref>《삼국사기》 [[:s:삼국사기/권05/진덕왕|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 “二年...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強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 除凶惡 則敝邑人民 盡爲所虜 則梯航述職 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詔授春秋爲特進 文王爲左武衛將軍 (2년... 이찬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보내 당나라에 조공하였다. ...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臣)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인민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니, 이에 내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 춘추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으로 춘추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으로 삼고, 문왕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태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태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남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상에서 고구려 순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남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즉위 직후 무열왕은 아버지 [[김용춘]]을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어머니 [[천명공주]]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추봉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였으며, 5월에는 이방부령(理方府令) 양수(良首) 등에게 이방부격(理方府格) 60여 조를 제정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는 문희 소생의 맏아들 법민(法敏)을 태자로 삼고, 나머지 문희 소생의 왕자들에게도 관등을 수여하였다. [[대각간|대각찬]](大角湌) 김유신에게는 딸 [[지소부인|지소공주]]를 시집보내 중첩된 혼인관계를 이루었다.<ref name="신라-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2년(655)</ref>
무열왕이 즉위하기 전의 상대등은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 회의]]의 대표자로서 왕권을 견제하는 존재이거나 왕위계승 경쟁자로서의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무열왕 이후 상대등을 왕이 임명함으로써 화백 회의는 혜공왕 이전까지 왕권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출처|날짜=2018-06-30}} 이러한 왕권을 바탕으로 무열왕은 고구려 및 백제와 본격적인 전쟁에 참여하였다.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영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태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백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백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7월 9일]]에 김유신 등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황산벌]]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도 백제군의 저지를 뚫고 [[기벌포 해전|기벌포]]로 상륙하여, [[7월 13일]]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7월 18일]]에는 웅진성으로 도망쳤던 [[의자왕]]도 항복하여 백제는 멸망하였다.<ref name="신라-660"/> 사비성을 함락했을 때 [[김법민]]은 백제의 왕자 [[부여융]](扶餘隆)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예전에 네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었고 그 일 때문에 내가 20년 동안 마음 아프고 골치를 앓았었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라고 꾸짖었다.<ref name="신라-660"/> 의자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29일에 금돌성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온 무열왕은 제감(弟監) 천복(天福)을 당에 보내 승리한 사실을 고하였다. 8월 2일에는 앞서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될 때 신라측에서 내응했던 모척(毛尺)과 검일(黔日)을 잡아 처형하고, 주연(酒宴)을 베풀어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을 마룻바닥에 앉혀 놓고 때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여러 신하들 중 목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ref name="신라-660"/>
백제를 무너뜨린 뒤, 당군 사령관 소정방은 9월 3일에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이끄는 1만 군사만을 사비성에 남아서 지키게 하고, 포로로 잡은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왕족과 고위 신료, 1만 2천 명의 백제 백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신라측 인사로 소정방과 동행한 것은 김인문과 사찬 김유돈(金儒敦), [[대나마]](大奈麻) 중지(中知) 등이었으며, 왕자 김인태(金仁泰)가 [[사찬]](沙湌) 일원(日原) · [[급찬]](級湌) 길나(吉那) 등이 신라군 7천 명을 데리고 유인원을 도와 사비성을 수비했다.<ref name="신라-660"/> 당에서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비롯한 5도독부를 설치하고, 웅진도독으로 왕문도(王文度)를 파견하여 9월 28일에 [[삼년산성]](三年山城)에서 무열왕을 만나 고종의 조서(詔書)를 전달하였는데, 예물을 주는 과정에서 왕문도는 급사(急死)하여 다른 사람이 대신 일을 마쳤다고 한다.<ref name="신라-660"/>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백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태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백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남쪽 산마루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백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상(忠常) · 상영(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백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백제를 멸망시킨 뒤 무열왕은 변경의 수자리 군사를 폐지하였다.{{출처|날짜=2018-06-30}} 또한 압독주(押督州)를 옮겨 설치하고 도독을 임명하였다.<ref name="신라-66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8년(661)</ref>
《삼국사기》는 태종 무열왕의 무덤이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지금의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소재한 서악리 고분군의 다섯 고분 가운데 가장 아래에 위치한 원형봉토분이 태종 무열왕의 능으로 비정되고 있다. 봉분의 면적은 14,169m<sup>2</sup>로, 신라의 왕릉 가운데 피장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덤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었고, [[1972년]]부터 [[1973년]]에 걸쳐 주변 정비가 이루어졌다.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다른 왕릉에 비해 봉분 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 동북쪽에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비석의 몸돌 부분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 부분만 남아있었으며,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묘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는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에 건립되었고, 비문의 글씨는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ref>이은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C%B4%EC%97%B4%EC%99%95%EB%A6%89&ridx=1&tot=16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삼국사기》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료의 기록 및 해석에서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다른 이름이 용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용춘과 용수는 서로 다른 인물이자 진지왕을 아버지로 둔 형제이며, 동생인 용춘이 천명공주와 혼인하여 춘추를 낳았으나 용춘이 먼저 사망하자 다시 용수와 재혼하여 춘추는 용수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나온다.<ref name="multiple">{{서적 인용 | 제목 = 화랑세기 | 저자 = 김대문 |역주 = 이종욱 | 출판사 = 소나무 | 발행년도 = 2005 | 관련쪽 = 225 | id = {{ISBN|89-7139-546-X}} 93910 }}</ref> 다만 『황룡사중수기』에는 용춘이 《화랑세기》의 기록과 달리 후대에도 생존해 있는 상태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화랑세기》 위서론의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화랑세기#용수 문제]] 참조).
*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12대 풍월주 보리공(菩利公)의 딸 보룡(寶龍)과의 사이에서 아들 당원전군(幢元殿君)과 딸 여씨(呂氏)를 두었고, 문명왕후와의 사이에서도 선원전군(仙元殿君)이라는 아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열왕은 문희와 혼인하기 이전에 이미 [[보종]]과 양명공주의 딸 [[보라궁주]](寶羅宮主) 설씨와 결혼했으며, 처음 문희는 측실로 혼인하였으나 보라궁주의 요절로 문희가 정실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문희의 언니인 보희와의 사이에도 지원(知元)이라는 왕자가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들 왕자의 실존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김재박 . . . . 84회 일치
~~[include(틀:관련 문서2, top1=물리학자, top2=임하룡)]~~
||<-2><table align=center><#000080> {{{#FFFFFF 연천 미라클 자문위원}}}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석코치 (1993~1995) [br] '''[[현대 유니콘스]] 감독 (1996~2006)'''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4, 2006)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6) [br] [[LG 트윈스]] 감독 (2007~2009) ||
|| '''프런트''' || [[연천 미라클]] 자문위원 (2015~) ||
'''[[MBC 청룡]]-[[LG 트윈스]]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김재박]] - [[이종범]] - [[박진만]] - [[강정호]]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야구 간판 유격수 계보의 원조'''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및 前 감독이자 前 [[KBO]]의 경기감독관. 2015년부터 새로운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의 코치도 겸임하고 있다.
== [[김재박/지도자 경력|지도자 경력]]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재박/지도자 경력)]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본인이 꼴리면~~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까.
이후 동년 4월 16일 전국에 비가 내리자 광주구장에서 열리기로 한 ~~비오는 날 돔구장 놔두고 원정경기하는 팔자인~~넥센-기아 경기를 제외하고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30분-1시간정도 후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김재박 경기감독관도 이날 삼성-두산전에 배정되었다가 45분 기다려 보고 우천취소를 선언했다.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둘째치고,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지게 된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하도 여론이 안좋아서 김재박이 술을 즐겨 술자리에 참석하기 위헤 우천취소를 시켰다거나, 강제우취시키고 관계자들과 회식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야알못이 간다에서 자신은 술을 못하고 술자리 회식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상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http://news.donga.com/Sports/3/05/20150707/72336135/1|규정상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LG가 이기고 있고 삼성이 오심으로 져도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양반아.~~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영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 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우승 못하고 [[556]]만든 [[김성근|이 사람]]은 뭐여~~ ~~자아비판에 가장 가깝다. FA 영입만 없다 뿐이지 강탈급 현금 트레이드들로 모았던 막강한 초기전력을 생각하면...~~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박도 존재한다. [[김인식]]감독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25078|“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반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영]], [[이택근]], [[박재홍(야구)|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식]]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못한 반박으로서, 당시 추신수는 AAA에서 OPS .893 메이저리그에서 OPS .812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으로 온 어떤 용병타자보다 좋은 기록이었으며, 리그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OPS만 비교한다 해도 이택근을 제외한 다른 국가대표 외야수들보다 OPS가 더 높았다. 명백히 급이 다른 선수를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뽑지 않은것이 맞다.
*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강귀태|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절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말이 많긴 했지만 [[홈런]]도 그럭저럭 나오고 일부 팬들은 만족한 모양이긴 한데, 여튼 2009년 시즌 결과를 놓고 보자면 재박산성이 설치된 경기에서의 LG 트윈스의 각종 공격 수치가 2배 가량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상대팀들의 공격력은 3배 정도 상승했다는 게 문제...''' 원정팀에 유리한 홈 어드밴티지였다는 비참한 결과를 낳은 희대의 쓰레기 전략으로 남고 말았다. 뭐, 거기엔 상대적으로 빈약한 LG투수진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이 [[FA 제도|FA]]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김재박의 재임기간 중 삼성도 [[선동렬]]감독이 이른바 멍게강점기라 불리는 삼성 역사상 두 번째 암흑기를 열어 4,4,5[*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수근|야만없]](...)]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는 바람에 양 팀이 나란히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 따라서 따지고보면 라이벌은 라이벌인데 '''삽질 라이벌'''(...)
* 2008년 시즌 종료후 LG구단 자체 행사로 펼쳐진 역대 올스타 경기에서 현역 선수가 무색해질 만큼의 유격수 수비와 송구를 보여주어, '''차기 시즌 LG 주전 유격수는 김재박'''이라는 LG팬들의 자조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 최홍만 . . . . 83회 일치
|| 별자리 ||<(> [[전갈자리]] ||
|| 출신 ||<(> [[대한민국]] [[제주도]] [[북제주군]][*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 [[씨름]] ||[[LG투자증권 황소]] (2002~2004) ||
[[한국]]의 前 [[씨름]] 선수이자 [[킥복싱|킥복서]],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2002년]], [[부산]]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에 [[LG투자증권 황소]]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씨름에 입문함으로써 데뷔했다.[* [[나무위키]]에서는 [[격투기]]에 비해 씨름에 대한 관심이 훨씬 적으니, 씨름선수 시절의 상세한 전적은 [[추가 바람]].]
씨름 선수였을 때도 최상위권의 강자로 [[천하장사]] 1회, 백두장사 3회를 기록하는 등 우승경력이 좀 되는 프로씨름의 [[레전드]] 중 한 선수였다. 하지만 [[강호동]] 이후부터 시작된 기술을 배제한 '''힘씨름'''빨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굉장히 루즈한 진행으로 특히 같은 [[거인]]인 [[선배]] [[김영현]]하고 붙으면 경기 시간이 씨름인지 [[축구]]인지 구별이 안 갔을 정도.
[[인간극장]]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인]]의 꿈은 자신에게 맞는 집을 지을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였다.[* 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보통 집 높이로는 모든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며 높이가 정말 높은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 차츰 씨름판이 [[막장]]이 되자[*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단 해체 등으로 씨름판 자체가 존속 자체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씨름판은 막장 그 자체였다.]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않고 K-1으로 전향.
최홍만이 K-1 진출을 선언하자 씨름연맹은 최홍만을 영구제명을 때림과 동시에 그간의 타이틀 획득 경력도 모두 [[삭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이만기]] 건 때도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많은 [[만악의 근원|병신 협회]] 중 하나.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307310|#]]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카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 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카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 시키며 판정에서 한 라운드를 가져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 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며 까이는 게 많이 줄었다.]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주괴수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이며[* 세미 슐트는 실력이 분명 뛰어나지만 어디 가서도 안 꿀릴 무지막지한 피지컬도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데, 최홍만은 세미 슐트의 피지컬을 더욱 능가하는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 중 한 명이므로 슐트가 여지껏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유형의 상대라 파이팅이 좀 꼬인 부분이 있다.] 슐트가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박적인 경기 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가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절대 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최홍만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승부가 가장 적절한 판정이었을거라며 자신의 판정승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2006년에도 이렇게 상승세를 끌어 나가다가 전년도 8강 진출자 자격으로 월드 그랑프리 16강에 진출해 [[제롬 르 밴너]]와 대결, 연장까지 갔지만 내내 얻어맞으며 끝내 판정패한다. 슐트에게는 석연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본야스키와 벤너에게 패했으나 K-1 최강자들을 상대로 꽤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선전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흥행을 책임지는 선수였기에 K-1은 여전히 최홍만을 중용하였다. 이때까지가 최홍만의 리즈 시절. 스펙빨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톱 파이터들을 상대로 판정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기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때 한국 킥복싱 최강자 [[유양래]]가 [[최홍만]]에게 선배대접 받을 생각도 말라며 쳐부숴버리겠다고 디스하며 K-1에 진출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권아솔|뭔가 익숙한 장면이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http://www.mfight.co.kr/serial/viewbody.php?code=mfight_board_serial2&number=203|당시 인터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나이지리아]]의 개그맨 겸 무술가인 바비 올로건이었다.[* 일본에선 꽤 유명한 방송인으로 [[시릴 아비디]]에게 이기기도 했다. 유명세 덕에 비디오게임 호혈사에서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일본인들에게 일반인 중 최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고 전직 씨름선수로서 차라리 MMA에서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겹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2008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PRIDE]]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 [[미르코 크로캅]]이라는 또 하나의 빅네임과 대결했다. 최홍만은 6분 내내 바디 킥과 레그 킥에 난타 당하다 결국 왼쪽 무릎에 인사이드 레그 킥을 맞고 TKO로 패했다. 첨예했던 사전 대립 각본과는 달리 거의 일방적인 경기였고 게다가 2007년 입식에서 밴너에게, MMA에서 효도르전을 시작으로 5연패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호의적인 여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시합 내용'''이었다.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패배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50726081655108|최홍만, 눈물의 소감 "예민해진 탓에 성급했다..경기 기억 안 나"]] [[http://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50726075814894|최홍만 "원거리 타격전이 원래 전술..난타전 후회"]]
그러나 12월 26일 벌어진 로드 FC 27 중국대회에서 루오췐차오를 펀치 TKO로 화끈한(?) ~~떠먹여준~~ 승리를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물음표가 많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일단 TKO이긴 한데... 상대가 쓰러지지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다고 한다.~~이때 최홍만이 '아 뭐야~'하는 것도 들린다.~~] 이 경기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상대가 신장 193㎝에 체중 110㎏에 육박하는 나름대로 거구였다곤 하나, 그 거구란 것도 최홍만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정도고 MMA 전적도 아예 없는 걸 감안하면 최홍만이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력에서도, 체격 조건에서도 월등히 앞서는데도 수세에 몰린 모습만 보여주다가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https://m.youtube.com/watch?v=HiNa8nVTFQs|영상]].
- 김민희(1982) . . . . 82회 일치
||<:> 트린 디어홈[br](사랑의 시대) ||<:> {{{+1 → }}} ||<:> '''김민희[br]([[밤의 해변에서 혼자]])'''||<:> {{{+1 → }}} ||<:> 아나 브룬[br](라스 에레데라스) ||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남숙희|타마코]], 나의 [[남숙희|숙희]].”'''
1998년, 무주고등학교 1학년 때 하굣길에 [[모델]]로 캐스팅되었다. 데뷔작은 10대를 타겟으로 했던 화장품 '지에닉' 광고[* [[강혜정]]도 출연했다.]. 무주중학교 때부터 [[농구]]선수로 추천받았지만, 본인도 [[모델]]을 꿈꿨고 키가 170cm에서 더 자라지 않아 불만이었다고 한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70032913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09-17&officeId=00032&pageNo=33&printNo=16856&publishType=00010|#]]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그리고, 다수의 잡지와 CF 등을 통해 활동하다 1999년 드라마 <[[학교 2]]>의 반항아 신혜원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도 자리잡게 된다. 여러모로 [[배두나]]와 닮은 경로다. [[1998년]] 길거리 캐스팅 → 1년간 [[모델]]로 성공 → [[학교 시리즈]]에 반항아 포지션으로 성공 → 이후 승승장구 테크를 탔다.[* 한 가지 차이라면 [[배두나]]의 이미지가 개성 있는 외모, 이단아 등이었던 것에 비해 김민희는 CF스타로서 어필이 가능한 비주얼적인 면 역시 가지고 있었다. 포지션에 있어 배두나와 좀 더 유사한 쪽은 [[공효진]], 양미라 등.]
이런 영향으로 온갖 욕을 다 먹는 연예인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김민희는 한국 연예계의 역사에서 몇 가지 이정표가 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진행되던 과도기였다. 시기([[세기말]]), 세대([[N세대]]), 문화 형태([[아이돌]], [[인터넷]]의 등장) 등이 교체되어 가던 시기에 70년대생들이 주로 활약하던 [[90년대]] 문화가 지나가고 현재와 같은 아이돌 생산/소비 시스템 하에서 등장한 거의 최초의 아이돌 스타라는 점이 그것이다.[* 위에 언급된 많은 모델 및 배우들도 크게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세기말과 [[N세대]](1980년대생)를 상징하는 인물[* 또 다른 한명을 더 뽑자면, 그 유명한 TTL 소녀 [[임은경]]이 있다.]이자 현재 개념의 아이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이 2년 동안 자신을 거부하던 [[노희경]]을 끝까지 설득하여 캐스팅되었던 [[2006년]] 드라마 '''《굿바이 솔로》'''를 통해 한층 성숙해졌을뿐 아니라, 비약적으로 성장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대중이 김민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노희경]] 작가는 빠른 탈고로 인해 배우들이 대본을 숙지할 시간도 많고 자신이 대본을 집필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특히 여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신랄한 지적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노희경의 작품을 거쳤던--혹독하게 조련을 당했던-- 여배우들은 다음 작품에서 연기력 자체가 느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노희경의 페르소나인 [[배종옥]], [[한고은]], 김민희 이 3명의 연기는 정말 많이 늘었다. 많은 여배우들이 자기 캐릭터에 고착화된 작품만 하다가 연기력 부족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 반대.]
그 뒤로 [[2012년]] 《[[화차(영화)|화차]]》, [[2013년]] 《연애의 온도》, [[2014년]] 《[[우는 남자]]》,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6년]] 《[[아가씨(영화)|아가씨]]》 등을 통해 좋은 연기[* 데뷔 때와 비교하면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자연스러워지고 섬세한 표현력이 증가하였다.][* 《서프라이즈》와 《[[아가씨(영화)|아가씨]]》의 편집 감독이 같은 사람인데, "그 때의 김민희와 지금의 김민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극찬했다.]를 선보이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흥행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
2016년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를 통해 영화감독들이 선정하는 제16회 디렉터스컷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여 감독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6년 11월 25일 모든 한국 영화인들의 로망인 제3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같은회차 청룡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은 배우 [[이병헌]]이 수상했다. 비록 남녀주연상을 받은 두 배우가 사생활 논란이 있었지만 연기력으로는 충분히 받을만 했다는 평가다.
그리고, 2017년 2월 18일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서 한국인 배우 최초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이 덕분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3개 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는 [[강수연]]이, [[칸 영화제]]에서는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최근엔 [[조진웅]]이 인터뷰에서 《[[아가씨(영화)|아가씨]]》에서 같이 호흡한 김민희를 보고 연기를 너무 잘해서 놀랬다고 같이 공연한 여배우중 최고의 연기력을 지녔다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확실히 연기력은 평단, 영화계, 연예관계자들에게 확실히 인정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 [[SBS]] || 줄리엣의 남자 || 소찬비 ||
|| 2014년 || [[우는 남자]] || 주연 || 모경 ||
||<|3> 2017년 || [[밤의 해변에서 혼자]] || 주연 || 영희 ||
* 김민희는 과거 배우 [[이정재]], 모델 출신 배우 [[이수혁(배우)|이수혁]]과 공개연애를 했다. 그런 뒤 2013년 4월, 한 [[디스패치|인터넷 매체]]에서 [[조인성]]과의 [[파파라치]] 사진을 공개하면서 열애를 인정했다. 2014년 9월 24일 조인성과의 결별을 공식 발표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6&oid=109&aid=0002886201|관련기사]] 그리고 [[2016년]] [[6월]], [[홍상수]] 감독과의 스캔들이 터지고 말았다. 문제는, 홍상수 감독은 기혼자라서 명백한 [[간통]]이라는 점이다.
* 연예계 대표적인 패셔니스타다. 큰 키와 마른 몸매의 대명사 격으로, 어떤 스타일과 메이크업도 소화하는 편이라 여성들의 패션 롤모델로 자주 거론된다.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결혼식 참석 당시 입었던 패션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재치를 잃지 않는 센스로 당시 하객패션 가운데 가장 큰 화제가 되었는데, 후에 당시 착용한 [[블라우스]]가 명품이 아니라 2만원대 보세 제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시 옷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입느냐가 문제다.-- 또 다른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윤여정]]도 김민희에게 "이전에 입었던 옷이 뭐냐? 나도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 흡연자다. 프랑스 칸에서 홍상수와 함께 맛있게 담배를 피는 모습이 포착됐다.[[http://news.joins.com/article/21591816|#]]
과거 김민희는 한 인터뷰에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072347|'''“자기들이 부자와 결혼하면 사랑해서 한 거고, 연예인이 그러면 이상한 관계로 말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 평민들도 그런 것처럼, 통장에 든 적금보다 지갑 속의 돈이 더 좋다.”''']]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질문자가 “‘평민’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봉건 사회가 아닌데.”라며 제지하자, 김민희는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고,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김민희는 한동안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았으며, 이를 비꼬아서 ‘'''평민'''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김태희 . . . . 8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성군]] <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295599 '이기적인 유전자' 김태희-이완, 훈훈한 부부의 매력분석], 머니투데이, 2016년 4월 9일 확인</ref>
| 배우자 = [[이완 (1984)|이완]]
| 자녀 = 슬하 2녀
'''김태희'''(金泰希<ref>{{뉴스 인용|저자1=장주영|제목=[인터뷰①] ‘그랑프리’ 김태희, “서른은 나를 당당해지게 했다”|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315791|날짜=2010-09-03|확인날짜=2018-07-05|뉴스=매일경제}}</ref>, [[1980년]] [[3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00년 "화이트"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 [[이영애]]의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2002년 독립 영화 《[[신도시인]]》에 출연했다. 이후 시트콤 《[[해변으로가요]]》(2004), 《[[스크린 (드라마)|스크린]]》, 《[[천국의나무]]》(2006)와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3년에는 《[[천국의 계단]]》에서 악역 한유리 역할로 얼굴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로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드라마 《[[작은아씨들]]》과 《[[목련꽃아래서]]》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중천 (영화)|중천]]》(2006), 《[[싸움 (영화)|싸움]]》(2007)에 출연했으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최승희 역할을 연기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드라마 《[[마이프린세스]]》(2011), 《[[나와 스타의 99일]]》(2012),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에서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5년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198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 구미 으로 이사 하였다. 김태희 본인의 가족으로는 부모와 언니 김희원, 남편 [[이완 (1984년)|이완]]이 있다. 연예인 [[비 (가수)|비]]와 동료.<ref name="씨네21">{{웹 인용 |제목=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태희|url=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3569|출판사=[[씨네 21]]|저자=이혜정|날짜=2006-12-22|확인날짜=2014-02-25}}</ref> 6학년에는 언니를 대신해 교복 모델로 활동했다.<ref name="씨네21"/> 졸업하고,<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학내내 전과목 100점…공주대접도 당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3771618|출판사=뉴시스|저자=김지은|날짜=2011-03-30|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재학 시절 학원 홍보 전단지 모델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경북 구미 에서 김태희 모르면 간첩? 학창시절 인기-성적표 공개!|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91530327|출판사=[[한국경제]]|저자=김명신|날짜=2009-09-15|확인날짜=2014-02-25}}</ref>
1999년 의류학과에 입학하여 2005년 졸업했다.<ref name="일요시사"/><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단체 졸업사진, 2005년 서울대 졸업당시 김태희 모습 ‘똑같아’|url=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16050025|출판사=[[서울신문]]|저자=김채현|날짜=2012-05-16|확인날짜=2014-02-25}}</ref>
김태희는 이후 [[대구 도시철도|도시철도]]에서 광고대행사 [[디자이너]]를 우연히 만나 2000년 "화이트" 광고를 찍으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웹 인용|url=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31893|제목=네이버 영화 김태희|웹사이트=[[네이버]]| 확인날짜=2011-01-20}}</ref><ref name="일요시사">{{웹 인용|url=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제목=<이색설문> 연예인 별별랭킹 베스트|웹사이트=일요시사|저자=최현경|날짜=2013-11-12|확인날짜=2014-02-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8224215/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보존날짜=2014-02-28|깨진링크=예}}</ref> 광고 촬영 이후 여러 곳에서 모델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ref name="MBC">{{에피소드 인용|제목=[MBC 스페셜] 태희의 재발견|url=http://www.imbc.com/broad/tv/culture/mbcspecial/commingsoon/1792451_27375.html|네트워크=[[MBC]]|날짜=2011년 4월 1일|회=516}}</ref>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서 중등 정연 역을 맡으며 스크린에 첫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 당시 [[영화 감독]] [[오기환]]은 잡지 표지모델로 섰던 김태희를 보고 테스트도 안 해도되니 그냥 데려 오라고 말했다.<ref name="MBC"/> 이후 대학생활의 숙원이었던 어학연수를 가기 전 홍두현 감독의 독립영화 《[[신도시인]]》 출연을 제안받아 출연했고 2002년 개봉했다.<ref name="씨네21"/> 같은 해 경험삼아 [[SBS 시트콤]] 《[[레츠고 (시트콤)|레츠고]]》에 출연했으나, 2개월만에 종영되고 배우의 길에 대한 고민을 했다.<ref name="MBC"/>
그러던 중 2003년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SBS 드라마]] 《[[스크린 (드라마)|스크린]]》에 출연했는데, 연기력으로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ref name="MBC"/> 같은 해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에 수진 역할로 출연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4&aid=0000092055|제목=권선징악 주제 현대판 흥부놀부전, SBS새 일일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웹사이트=[[파이낸셜뉴스]]|저자=정명진|날짜=2003-10-23 |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출연한 [[SBS 수목미니시리즈|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처음으로 악역인 한유리 역할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8.4%, 최고 시청률 43.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1031246131001|제목=‘천국의계단’ 권상우 “아베마리아 음악 나오면 달려야 할 것 같다”|뉴스=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0-11-03 |확인날짜=2014-02-25}}</ref>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ref name="MBC"/>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ref name="SBS연기대상">{{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1|제목=이병헌, SBS '연기대상 수상'|출판사=뉴시스|저자=민성진|날짜=2004-01-01 |확인날짜=2014-02-25}}</ref> 하지만 일부는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연기력 비판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드디어 연기인생 한판승 거두나?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1141557551110&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배국남|날짜=2011-01-14 |확인날짜=2012-03-08}}</ref>
김태희는 2004년, [[KBS 2TV|KBS2]] 《[[구미호 외전]]》에 이어 [[SBS 월화드라마|SBS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 하버드 의대생 이수인 역할로 출연했다.<ref name="김태은">{{뉴스 인용 |제목=작품속 김태희, 이렇게 바뀌었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61711531396823&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태은|날짜=2007-06-19|확인날짜=2014-03-05}}</ref> 그녀는 이 두 작품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연기상,<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04931 |제목=김태희-이완 남매, 최초로 신인연기상 동시수상 |날짜= 2004-12-31 |출판사= 스타뉴스 |확인날짜= 2010-10-02 }}</ref>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과 네티즌최고인기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1978489 |제목=김태희의 하루’ 네티즌들 관심 가득 “뭘해도 예뻐요” |날짜= 2008-06-20 |출판사= 한국경제 |확인날짜= 2010-10-02 }}</ref>
이 드라마를 통해 자리를 확고히 한 김태희는, 2006년 제작비 130억,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중천 (영화)|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공연하며 소화 역할로 첫 장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ref name="김태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ref>최지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1410 '국내' '이 상을 <하얀거탑> 폐인 분들께 바칩니다'] 매거진t 2007년 10월 4일</ref> [[대종상영화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0063392 ‘가족의 탄생’최우수작품·시나리오상…대종상 이변] 국민일보 2007년 6월 9일</ref> 그녀는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ref>{{웹 인용|url=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sca=28|제목=제28회 청룡영화상|출판사=청룡영화상|확인날짜=2014-02-27}}</ref> 하지만 연기력에서 “대사 소화가 부족하고 표정연기가 풍부하지 못했다”, “평면적 연기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ref name="김태은"/> 《[[중천]]》은 관객수 15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중천' 참패, CJ 주가 폭락|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319790|출판사=뉴시스|저자=김용호|날짜=2007-02-19|확인날짜=2014-03-05}}</ref> 2007년에는 영화 《[[싸움 (영화)|싸움]]》의 윤진아 역할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공연하며 연기력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보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으나,<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기력과의 싸움에서 '웃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99002|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정명화|날짜=2007-12-05|확인날짜=2014-03-05}}</ref> 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톱스타 마케팅, 더 이상 안 통한다!|url=http://osen.mt.co.kr/article/G1010070161|출판사=OSEN|저자=이명주|날짜=2010-10-07|확인날짜=2014-03-05}}</ref>
김태희는 2008년 3월 19일 방영된 [[KBS 1TV|KBS]] 《[[수요기획]]》의 이라크전 5주년 특집으로 만들어진 돌아갈수 없는 땅, 바그다드 편 내레이션을 맡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목소리만으로' 안방극장 찾는다|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3/h200803172051179197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이현아|날짜=2008-03-17|확인날짜=2014-03-0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404032016/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3/h2008031720511791970.htm#|보존날짜=2008-04-04|깨진링크=예}}</ref>
김태희는 2009년 4년 만에 첩보액션 드라마 《[[아이리스 (드라마)|아이리스]]》의 여주인공 최승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아이리스`, 가장 진지하게 준비한 작품"|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273866|출판사=MK 뉴스|저자=진향희|날짜=2009-05-12|확인날짜=2014-03-05}}</ref>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9.9%,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아이리스’ 실체 추적하는 감성적 액션 주목하세요…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27557&cp=nv|출판사=국민일보|저자=진정희|날짜=2012-11-14|확인날짜=2014-03-05}}</ref> 연기력에 있어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에서는 첩보원 역할에 걸맞지 않다는 평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멍때리는' 김태희? 연기논란 재점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02914300874627&type=1&outlink=1 |출판사=머니투데이 |날짜=2009-10-29 |확인날짜=2010-01-02}}</ref>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처음으로 연기력으로 우수연기상을 받았는데,<ref>[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김태희, '아이리스'로 연기력 논란 극복하고 상도 받고 눈물 '펑펑']{{깨진 링크|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 리뷰스타 2010년 1월 1일</ref> 이에 대해 “우수연기상은 인기로 받은 인기상이 아닌 연기자로 인정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연기로 인정 못 받고 있다고 그간 생각했다.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저자1=김지연|제목=김태희 "연기력 논란,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91500362265489&type=1&outlink=1|날짜=2010-09-15|확인날짜=2015-12-14|뉴스=머니투데이}}</ref> 2010년 1월 김태희는 소속사를 [[나무엑터스]]에서 자신의 형부가 설립한 루아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1인 기획사 대열 합류… 전 소속사와 협업관계 유지 |url=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05720 |출판사=[[일간스포츠]] |날짜=2010-01-11 |확인날짜=2010-01-11}}</ref> 9월 16일에는 영화 《[[그랑프리 (영화)|그랑프리]]》에서 서주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추석영화열전⑥]'그랑프리' 김태희, 연기논란 잠재우고 흥행퀸 '찜'|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1608154987413|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조범자 |날짜=2010-09-16|확인날짜=2015-07-17}}</ref> 김태희의 연기력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으나, 16만 명의 관객수를 끝으로 상업적 실패를 거뒀다.<ref>{{뉴스 인용|제목=[울림과스밈] ‘그랑프리 실패’ 김태희에게는 ‘약'|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42216.html|출판사=한겨레|저자=김진철|날짜=2010-10-05|확인날짜=2015-07-17}}</ref> 11월 22일에는 몇몇 내용을 편집해 만든 《[[아이리스: 더 무비]]》가 개봉했다.<ref>{{웹 인용|제목=씨네21 - 아이리스 더 무비|url=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출판사=[[씨네21]]|날짜=2010|확인날짜=2012-02-2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525/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예}}</ref> 12월 13일에는 《[[아이리스]]》의 스핀오프작 《[[아테나: 전쟁의 여신]]》 1회에 회상신으로 특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짧아서 아쉬워"..이병헌·김태희 `아테나` 깜짝 등장|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138166593198520&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 |날짜=2010-12-14|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방영된 SBS 퓨전사극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태희는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옥정]] 역할을 연기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진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과 함께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 [[한국사|역사]] 왜곡 등으로 문제를 지적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장옥정' 독기만 품은 김태희, '착한' 장희빈은 어디갔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39334|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최두선 |날짜 = 2013-05-28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김태희 "연기력 혹평에 자존심 상처··독하게 해보겠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007259|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최준용 |날짜 = 2017-05-24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종영 '장옥정',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었나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7910 |출판사 =오마이뉴스 |자지 =김성규 |날짜=2013-06-26 |확인날짜 =2017-09-09 }}</ref>
2014년 5월 29일, 김태희는 중국 사극 드라마 《[[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며 중국 데뷔를 알렸다. 그녀는 극중 왕희지의 아내 씨루이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국 드라마 출연..'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 참석|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453046606094168&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4-05-30|확인날짜=2015-08-05}}</ref> 김태희는 자신의 역할 씨루이에 대해 "뻔한 여성상이 아닌, 순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中드라마 '서성 왕희지', 유학 동경해 선택한 작품"[TD포토]|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6553404869440017|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5-03-17|확인날짜=2015-08-05}}</ref> 이듬해 2015년에는 한국 브라운관으로 복귀해, [[SBS TV|SBS]]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에 한여진 역할로 출연했다. 김태희에게는 2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복귀작으로 최고 시청률 20.4%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최우수연기상,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SAF 연기대상] 김태희, 최우수연기상 수상 "'용팔이' 덕에 행복한 한 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16&aid=0000174514|출판사 =SBS funE |저자 =김재윤|날짜 = 2016-01-01|확인날짜 =2017-09-09}}</ref>
김태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연미인으로도 꼽힌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 최고미녀 왜 김태희인가|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101131845363&sec_id=540101&pt=nv|저자=윤대헌|출판사=스포츠 칸 |날짜=2011-01-13 |확인날짜=2011-01-20}}</ref> [[중국]]에서 뽑은 [[한국]] [[여배우]] 순위 1위에도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중국인, 김태희가 최고…송혜교 이다해 순|url=http://morningnews.co.kr/article.php?aid=129319437931191006|출판사=모닝뉴스 |날짜=2010-12-24 |확인날짜=2011-01-20}}</ref> 또, [[전지현]]·[[송혜교]]·[[손예진]]·[[한가인]]·[[이나영]]·[[한지민]]·[[한예슬]] 등과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미인]]으로 불린다.
김태희는 작품 출연보다는 CF에서 주로 활동하는 [[연기자]]이다.<ref name="dd">{{뉴스 인용 |제목=CF톱스타들 왜 연기력 논란 거세나?|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2111723061110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08-02-11 |확인날짜=2008-03-31}}</ref> 김태희는 광고 1년 전속 계약을 할 경우 평균 10억대를 받아 업계에서 특A급 연예인으로 분류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기록으로 돌아보다...최장수 모델, 최고 몸값 CF스타는?|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220166586345288&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저자=양승준 |날짜=2008-03-20 |확인날짜=2012-03-08}}</ref>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연기력 논란이 항상 따라다니는 편이였지만, 현재는 어느정도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ref name="dd"/>
== 자선 활동 ==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백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절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순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 박신혜 . . . . 79회 일치
| 형제자매 = 박신원(오빠)
| 배우자 =
| 자녀 =
2003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를 통해 데뷔하였고, 같은 해 방영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을 연기했다. 드라마 《[[천국의 나무]]》, 《[[미남이시네요]]》, 《[[이웃집 꽃미남]]》, 《[[상속자들]]》,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와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7번방의 선물]]》, 《[[상의원]]》 , 《[[침묵]]》, 《[[형]]》 등에 출연하였다.
[[중앙대학교]] 수시 2학년 1학기 모집에서 미디어공연영상대학 연극영화학부 연극(연기) 전공에 응시하여 합격해 2008년 입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아라·박신혜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수시합격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0198659|출판사=노컷뉴스 |저자=이지현|날짜= 2007-10-31|확인날짜=2016-02-15}}</ref> 2016년 2월 15일, 8년만에 예술대학 학위를 수여 받고 졸업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8년만에 대학 졸업, 졸업장 들고 '함박 웃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630219|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문지영|날짜 =2016-02-15|확인날짜=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330231788&type=1&outlink=1|title=박신혜·유리·수영, 중앙대 연극과 졸업..캠퍼스와 작별(종합)|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524686335&type=1&outlink=1|title=박신혜, 8년 만에 중앙대 졸업..캠퍼스 밝히는 미소|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
박신혜는 2001년, [[이승환]]의 7집 앨범 타이틀곡 〈사랑하나요〉 뮤직 비디오로 출연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2003년에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박신혜는 당초 배우지망생이 아닌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을 본 2003년 12월 첫 방영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인 한정서 역을 맡아 브라운관에 데뷔하였다.<ref>{{웹 인용|url=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title=Tree of Heaven Korean Drama|publisher=GlobalRove|accessdate=2014-09-0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15531/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보존날짜=2014-09-08|깨진링크=예}}</ref><ref name="hancinema1">{{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tree-of-heaven--a-new-tryout-for-a-resurgence-of-korean-wave-5387.html|title='Tree of Heaven': a new tryout for a resurgence of Korean Wave|publisher=The Korea Herald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ref name="hancinema2">{{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park-sin-hye-invited-to-photo-exhibition-for-korean-top-stars-6302.html|title=Park Shin-hye Invited to Photo Exhibition for Korean Top Stars|publisher=KBS Global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 이 작품에서 그녀는 14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소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싱그럽고 풋풋한 첫사랑 감정을 첫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한 연기를 선보이며, 안방극장의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받았고 그 당시 이례적으로 아역들의 분량이 1회 늘어나기도 했다. [[SBS 연기대상]] 아역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연출을 맡은 이장수 감독은 박신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인용문2|“(박신혜씨 연기를) 정말 잘해요. 연기한 걸 직접 한 번 봐야하는데…우리나라 배우들이 자질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신혜를 보면 느낄 수 있어요. 비록 신인이지만 잘 할 것으로 봐요”|MBN스타 2016년 7월 8일자 기사<ref name="mbn">{{뉴스 인용 |제목 =[M+TV피플] 박신혜, 꾸미지 않아 더 아름다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989093|출판사 =MBN스타 |저자 =금빛나 |날짜 = 2016-07-08 |확인날짜 =2016-07-10 }}</ref> 중}}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영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영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영화 《[[도마뱀 (영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영화 《[[전설의 고향 (2007년 영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절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 2009-2015: ''미남이시네요''와 ''상속자들'', 한류 스타로 발돋음 ===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로 이후 1년 반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남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영 역을 맡아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영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영되었다.
박신혜는 2011년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상큼한 여대생 이규원 역을 연기해, [[정용화]]와 다시 공연했다. 예술대학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겠다는 취지로 시작 됐지만 연이은 시청률 부진으로 15회로 조기 종영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시청률 부진 속 <넌 내게 반했어>, 15회로 종영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8457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미나 |날짜 = 201-08-09 |확인날짜 =2013-09-01 }}</ref><ref>https://www.soompi.com/2010/09/01/george-hu-is-park-shin-hyes-combat-butler/</ref> 이듬 해, 2012년에는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에서 본인이 귀신이란 걸 자주 망각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생기 넘치는 귀신 연화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아 [[KBS 연기대상]] 단막극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3년 초 개봉 되어 역대 여덟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 성인 예승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english.yonhapnews.co.kr/culturesports/2013/03/15/27/0701000000AEN20130315007900315F.HTML|work=[[연합뉴스]]|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315000902|work=The Korea Herald|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last=Ji|first=Yong-jin|title=MIRACLE IN CELL NO. 7 Passes MASQUERADE to Become 3rd Most Successful Korean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2324|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013-03-20|date=19 March 2013}}</ref> 같은 해 1월 첫방영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서 사람 만나길 두려워 하는 히키코모리 고독미 역을 연기했고, 제 나이와 성격에 어울리는 밝고 씩씩한 여대생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f name="mbn" /><ref>{{웹 인용|url=http://www.soompi.com/2012/10/31/park-shin-hye-and-yoon-shi-yoon-to-star-in-new-drama-flower-boy-next-door/|title=Park Shin Hye and Yoon Shi Yoon to Star in New Drama "Flower Boy Next Door"|date=June 26, 2012|accessdate=February 7, 2012|publisher=soompi}}</ref> 박신혜는 코오롱스포츠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된 '웨이 투 네이처 필름 프로젝트 단편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가위바위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356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이후, 2013년 10월부터 방영 된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가난하지만 당당한 여고생 차은상 역을 맡아 성인 연기자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13557/20131228/2013-kdramas-that-got-the-best-ratings.htm |title=2013 Kdramas That Got The Best Ratings : Drama Stories |publisher=KDramaStars |date= |accessdate=2016-12-29}}</ref> 이 작품을 통해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배우 최초로 ‘Dream of Angel’라는 타이틀의 아시아투어를 하는 등 부동의 인기를 누리는 한류스타로서 입지를 다졌다.<ref>{{뉴스 인용|title=Park Shin Hye First Female Actress to Tour Asia|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8567/20130315/park-shin-hye-first-female-actress-tour-asia.htm|accessdate=31 January 2014|newspaper=kdramastars|date=15 March 2013}}</ref>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우수연기상,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4년 11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에 캐스팅 되어 《[[천국의 나무]]》 PD였던 조수원 감독과 9년만에 재회하게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피노키오' 박신혜 "작품 기다리는 배우, 취준생의 심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04814|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승현 |날짜 = 2014-11-06 |확인날짜 =2014-11-10 }}</ref> 이 작품은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의 삶과 24시간을 함께 하며 전쟁같이 보내는 이들이 설레는 관계로 발전해가는 풋풋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로 박신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최인하 역을 연기하였고,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실상이나 문화를 현실적으로 잘 반영해 호평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904000373|title=Park Shin-hye confirmed to star in ‘Pinocchio’|publisher=The Korea Herald|accessdate=2014-09-08}}</ref><ref>{{웹 인용|title=Cultural Exports to Surpass 1 Trillion Won This Year|url=http://www.businesskorea.co.kr/english/news/lifestyle/8231-culture-trade-balance-cultural-exports-surpass-1-trillion-won-year|work=Business Korea|accessdate=2015-10-24|date=2014-12-26}}</ref><ref>{{웹 인용|title=‘Pinocchio’ sells distribution rights to China for record price|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411241750324868840_2|work=Kpop Herald|accessdate=2015-10-24|date=2014-11-24}}</ref> 박신혜는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또한 제5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5년 연속 인기상 수상…대세 여배우 입증 [51th 백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208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이은지 |날짜 = 2015-05-26 |확인날짜 =2017-09-20 }}</ref> 같은 해 12월, 개봉 된 사극 영화 《[[상의원]]》에 왕비 역을 연기하였다.
2016년 6월, 첫 방영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절 무기력한 반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영장 공식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상]]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우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영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영화 《[[형 (2016년 영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박신혜는 2017년, [[정지우 (영화 감독)|정지우]] 감독의 영화 《[[침묵 (2017년 영화)|침묵]]》에서 변호사 최희정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ref>{{뉴스 인용 |제목 =최민식x박신혜x류준열 '침묵' 11월 개봉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88848|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7-09-20 |확인날짜 =2017-09-20 }}</ref> 2017년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신혜는 2017년 6월부터는 지난 2013년 첫 투어 이후 4년만에 2017 아시아투어의 첫 스타트 무대를 홍콩에서 성황리에 마쳤으며, 이번 아시아투어는 올 해로 네 번째로 투어 수익금 전액은 기아대책에 기부되었다. 이외에도 대만,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태국에서도 열릴 예정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아시아투어 첫 무대 성료…"MC 없이 단독진행"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05412|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정유나 |날짜 = 2017-06-12 |확인날짜 =2017-09-12 }}</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한류여제’ 파워 과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76478|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이정연 |날짜 = 2017-07-04 |확인날짜 =2017-09-12 }}</ref>
== 자선 활동 ==
박신혜의 가족은 5대째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주최하는 해비타트 집 짓기 봉사에도 자주 참석해왔고,<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5대째 기독교’… 부모도 교회서 만나 결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772/20160801/%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C%99%B8%EB%AA%A8%EB%A7%8C%ED%81%BC-%ED%9B%88%ED%9B%88%ED%95%9C-%EB%B4%89%EC%82%AC%ED%99%9C%EB%8F%99-%ED%99%94%EC%A0%9C.htm|출판사 = |저자 = |날짜 = 2016-08-01 |확인날짜 =2013-09-01 }}</ref> 성인이 된 후에는 생일이 돌아오면 가족과 함께 '밥퍼'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최일도 목사 “조용한 하늘나라의 심부름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011/20160704/%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2%80%A6-%EC%B5%9C%EC%9D%BC%EB%8F%84-%EB%AA%A9%EC%82%AC-%EC%A1%B0%EC%9A%A9%ED%95%9C-%ED%95%98%EB%8A%98%EB%82%98%EB%9D%BC%EC%9D%98-%EC%8B%AC%EB%B6%80%EB%A6%84%EA%BE%BC.htm|출판사 =크리스천투데이 |저자 =김진영 |날짜 = 2016-07-04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2016년 12월, 박신혜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대구 서문시장 화재피해 이웃돕기를 위해 5천만 원을 기부한데 이어<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aid=0000931937&oid=213&lightVersion=off|제목=박신혜 측 "서문시장 5천만 원 기부, 소속사도 몰랐다" [공식입장]|출판사 =TV리포트|저자=박설이|날짜 = 2016-12-29|확인날짜=2016-12-09}}</ref> 밥상공동체복지재단를 통해서도 5,000만 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26953|제목=박신혜 또다시 선행…연탄은행에 5000만 원 기부 [공식]|출판사 =스포츠동아|저자=홍세영|날짜 = 2016-12-14|확인날짜=2017-01-01}}</ref>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
- 이지아(배우) . . . . 77회 일치
|| '''학력''' ||<(> 대구초등학교[br]대구중학교[br][[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 그래픽디자인과 ||
|| '''가족''' ||<(> 조부: [[김순흥]][br]형제자매: 1남 3녀 중 [[3녀|셋째]][* 남동생은 본인과 성이 같으며, 위로 두 언니는 성이 다르다고 한다. 즉 [[이부형제]].][br]前 배우자: [[서태지]](1997년 ~ 2006년)[[http://www.youtube.com/watch?v=opEBfpCcdtM|#]] ||
[[2008년]]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이자 시청 공무원인 두루미 역을 맡았다. 그런데 "수지니"는 "길들인 매"라는 뜻이 있고 두루미 역시 새 이름이다.
[[2009년]]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 잡지기자 이서정 역을 연기했다. 원래는 주인공 역이었지만 김혜수의 연기에 밀려 조연에 그쳤다고 한다. [[출처 필요]]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순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상 수상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남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상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영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소속사였던 키이스트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2012년 3월 14일 새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 [[소리바다]]의 자회사.]와 새 계약을 맺었다.
[[2013년]]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전직 쇼호스트 오은수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에서 최초로 타이틀 롤을 맡았지만 어째 주목은... 드라마가 끝난 후 윌엔터테인먼트를 떠나 HB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면서 지진희, 김래원, 신성록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소속사에서 이름있는 배우 중에서는 유일한 여자였다.
일단 [[태왕사신기]]라는 대작의 주조연급으로 데뷔했는데, 대다수의 연예인이 단역을 전전하면서 겨우겨우 조연을 잡아 올라가는 것에 비해 단 한 번에 주조연 역을 따냈으면서도 단역 경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지아의 배경에 대한 구설수가 있었으며, 특히 배용준[* 당시 이지아가 소속 되었던 엔터테인먼트사는 키이스트. 배용준 역시 키이스트 소속이면서 동시에 최대주주이다.]의 패키지 출연[* 인기있는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를 묶어서 출연계약을 맺는 것. 제작사 측에서는 흥행력이나 지명도 있는 배우를 기용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기력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비판적인 의견이 상당수. ~~앞뒤가 안 맞잖아~~ 특히 2009년 김혜수와 함께 출연했던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는 원조 민폐녀 논란과 함께 혹독한 연기력 비판을 받았다. [* 다만 이 드라마 자체가 구닥다리 구성에 평면적 캐릭터로 이루어졌다는 한계 자체를 지목하여 이지아의 연기만을 까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전작인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함께 출연했던 [[김명민]]이 워낙 열연했고, [[장근석]]의 연기력 역시 일정 수준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이 [[넘사벽]]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어색한 제스쳐, 대사 처리 미흡 등으로 많이 까였다. 하지만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는 연기력이 쓸 만한 편, 아무래도 신인이고 경력이 적다 보니 맡는 캐릭터가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가에 따라서 연기 싱크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양.
'''이지아에게 있어 평생 짊어가야 할 짐이자, 그녀의 활동에 있어 발목을 잡는 굴레[* [[서태지]]와의 결혼 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이거 하나 때문에 국내에서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비호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19일 이지아의 집안이 육영사업을 하던 재력가이며 '''덕망 있는 명문가'''라는 [[언플]] 기사가 떴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은 이지아의 조부가 재력은 물론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였고 자손인 이지아 부친에 이어 이지아 역시 유복하고 뼈대 있는 가정환경 속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덕망 있는 가문이니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이지아도 해외에 유학가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자랑 언플질을 한 것은 쉴드 불가능이라 그야말로 가루가 되듯이 까였다. ~~[[서태지|전 남편]]은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파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자기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사진 자작극에 이어 또다시 병크 적립~~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태이긴 하다.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반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2011년 3월 20일 마침내 열애설이 공식 인정되면서 [[정우성]]을 남자친구로 둔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결혼까지 가면 레알 승리 입증. [[장동건]]을 잃은 데 이어 여성들은 뒷목잡고 쓰러졌다.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5025394|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식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97년 결혼. 당시 혼인신고에서는 서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상은으로 나와 있었다. [[서태지]]와 부부로 산지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니라 위자료 청구소송.
2011년에 했던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으로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남으로 서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어쨌든 그녀와 연관성이 짙은 남자만 해도 [[서태지|한국 굴지의 대중 뮤지션]], [[배용준|전설적인 한류 탤런트이자 사업가]], [[정우성|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남 배우]]이다.
소송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 모 재벌의 황혼이혼사건에서는 1000억 청구해서 50억, 즉 5% 받았다.] 설령 다 받아낼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을 숨겨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상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신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고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태지가 빠른 속도로 재혼을 하면서 서태지가 재혼을 위해 먼저 이지아에게 정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설이 신빙성있게 돌고있는 상태. 이지아에게도 한국에서의 연기생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털어내야할 문제이기도 했고...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남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77회 일치
* 여자에게 쏠리는 눈
* 자기중심적
부대를 지휘하는 요원. 다이묘, 다 자란 아들, 그외 장군들이 이 요원이 된다. 해군 함대에 붙여서 제독으로도 사용 가능. 장군이 없는 부대는 아군 지역에서도 보충 병력을 받을 수 없으므로 되도록이면 한 부대에 하나씩 배속하자.
다이묘를 제외한 장군들은 충성심이라는 수치가 있다. 충성심이 낮은 장군의 경우 상대 가문에 붙거나 반란을 일으켜 독자적으로 세력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 무사(Warrior) - "다른 자를 이끌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
* 완고한 무사(Die-hard Fighter) - "주저하지 않는 남자가 자신의 영혼까지 이기는 법이다."
* 야전 공격자(Field Attacker) - "전투는 흘러가는 양상을 파악해 신중한 계획으로 싸우는 것이다."
* 야전 방어자(Field Defender) - "어떠한 강한 타격이라도 옆으로 흘리거나 피할 수 있다."
* 고무(Inspirational) - "내 격려를 따르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야전 방어자, 보병 지휘관 스킬 요구.
* 일류 기마무사(Master Horseman) - "무사는 자신의 말과 하나다."
명예, 야전 공격자 스킬 요구.
이 요원에 의해 점령된 지방의 침략자에 대한 저항 -5%
이 요원에 의해 점령된 지방의 침략자에 대한 저항 -10%
* 공성 전문가(Siege Expert) - "어떠한 성벽도 이 남자의 분노 앞에선 견뎌낼 수 없다."
* 마부 - "바보는 자신의 검을 그저 보관용으로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 관리도 소홀히 한다."
* 메이진 - "도자기 찻잔과 다도의 명인은 하나다."
* 명나라 사절 - "영주님, 공자께선 많은 말을 하셨습니다."
* 사무라이 영웅 - "자신의 장군을 구해낸 사무라이는 그의 용맹함을 되풀이할 기회로 포상받아 마땅하다."
* 수금 담당자 - "돈이 문제로군"
- 이시영(배우) . . . . 76회 일치
|| '''가족''' ||<(> 1남 1녀 중 [[외동딸|둘째]][br]배우자 [[타카하타 유우타]], 슬하 1남 ||
|| '''학력''' ||<(> 봉서초등학교[br]완주중학교[br]완주고등학교[br][[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
|| '''데뷔''' ||<(> [[2008년]] SUPER ACTION '도시괴담 데자뷰 시즌 3' ||
일본의 배우이자 前 권투 선수다.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에서 오민지 (산죠 사쿠라코)역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사실 그전에 [[송일국]] 주연의 [[바람의 나라(드라마)|바람의 나라]]에서 왕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 시녀 역으로 등장한다.[* 그 왕자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자, 한동안 실의에 빠지다가 무휼의 죽마고우이자 최측근인 마리와 연인이 되었지만, 마리마저 부여에 붙잡혀 화형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결국 물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쌍한 인물.] 그전의 배역은 [[추가 바람]]
극중 상당한 [[건덕후]]로 나오며 기르는 강아지에게 [[라라아 슨]]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결혼예물도 SD건담 G제네레이션 No.58 NT타입 모빌아머 '[[엘메스]]', SD건담 BB전사-200 RX-78-2 '[[건담]]' SD건담 BB전사-231 '[[자쿠]]II S형'을 받았다.... 이쯤되면 이게 설정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특히 [[혹성로보 단가드A]]의 대형 소프비피겨[* 우리 결혼했어요 방송에서 나온 바로는 제일 아끼는 제품이라고 한다.]를 소장하고 있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커졌다. 만약 이게 모두 컨셉이라면 외려 우리 결혼했어요 제작진 측에 상당한 수준의 [[건덕후]]가 존재하는 듯.[*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307121209063&mode=sub_view|인터뷰에선 감독도 자기도 프라모델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것도 우주세기 초기 지향적 근본주의 건덕후~~
결혼 예물(…)을 고르기 위해 간 [[건담베이스]]에서 이시영 본인이 프라를 주문할 때의 다소 어색함 때문에 컨셉이 아니냔 의혹도 있었다. (보통 "[[아무로]]와 [[샤아]]와 [[라라아 슨|라라아]]가 타던..." 이라고 직원에게 물어보진 않는다. 특히 '자주가는 가게' 라면...) 덧붙여 첫 화에서 자랑스레 말하던 [[레고]]의 번호도 틀렸다고 한다. 게다가 [[건덕후]] 성향이 알려지기 전에 나온 잡지 [[맥심(잡지)]] 코리아 2009년 2월호의 인터뷰에선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본 만화"로 피구왕 [[통키]]만을 언급했으며, 인터뷰 전체에서 [[건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네이버에 공식적으로 링크되어 있는 이시영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주소를 보면 [[시난주]]가 언급되어 있다. 이건 [[건담]]도 프라모델을 통해 상당히 좋아하게 됐다는 증거일 수도.](뭐, 어린시절이란 조건이 붙었기 때문일지도.) 사실 이시영 본인의 건덕 포스보다는 자막이나 BGM의 포스가 더 강하다.(...)
[[네이버]] 뉴스 댓글 등의 포탈 댓글란에서는 전진 [[빠]]순 파워가 더해져 자신의 취미를 강요하는 안 좋은 아내의 표본이라며 대차게 까이고 있지만 [[루리웹]] [[프라모델]] 게시판이나 [[이글루스]] 등에서는 상대인 전진이 아내 취미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자기 소원을 강요하며 주도권이나 잡으려하는 못된 남편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
그러나 2010년 맨즈헬스 인터뷰에 따르면 프라모델 수집은 상당히 오래된 취미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프라모델 모두 본인 소장품인 듯 하며[* 30여 개 이상 모았단다.], 배우 데뷔 초에 일거리가 없어 취미 삼아 시작했다고 한다.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베어브릭이 장식된 걸 보고는 반가웠다고. 일반적인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프라모델을 접한 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먼저 접한 케이스. 때문에 우결의 경우 이시영의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제작진측의 캐릭터 만들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거지 서브컬쳐를 즐기는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프라모델을 다루는게 오타쿠가 아니냐고 하면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 일반 밀리터리물이나 자동차 프라모델러에서 건프라로 넘어온 사람들이 특히 자신은 '''건프라는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는 거나 남이 만든 완성품을 모으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도 즐기는 쪽이다. 일본에서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좋아하면 훌륭한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브컬쳐 -> 피규어' 순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라고 하면 이쪽인 경우도 적지만 있다.[* YG의 [[양현석]]이나 MBK의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 드림팩토리의 [[이승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아톰인형 매니아로 알려진 [[조민기]]도 아톰의 스토리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아톰 인형(피규어)'에 꽂혀사는 경우이다. 베어브릭 같은 류의 캐쥬얼한 피규어쪽으로 빠지자면 그 수는 더 많다. [[이승연]]도 남편의 취미를 따라 베어브릭을 모으고 빅뱅의 [[탑]] 역시 베어브릭 수집매니아. [[원피스(만화)]]같은 경우에도 피규어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만화책은 제대로 안 읽고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건담과 일반 인형 매니아를 동일시 하면 곤란하다. 여자아이들의 인형 취미와 건프라가 똑같겠는가? 어찌 부정해도 건프라를 좋아하는 이상 일단 오타쿠라 봐야 할 점은 사실이겠다.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31977670|여기서도 그렇지만]] 건프라를 좋아하면 충분히 오타쿠로 여겨진다.]
2010년 3월 1일 부터 5월 4일까지 방여된 KBS드라마 [[부자의 탄생]]에서, 리얼 무개념 푼수 '부태희' 역을 맡아서 보여주는 연기가 인기를 끌었다.
2013년에 출연한 남자사용설명서나 더 웹툰: 예고살인이 생각보다 평이 호조여서 작품 선택 안목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단, 남자사용설명서의 흥행은 지못미...
2013년 7월 중순경에는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이시영편에 출연해 여러 토크를 풀어놓았다. 그중 우결 촬영당시 프라모델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데 전부 본인 소장품에 본인 집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프라모델을 다른 집으로 옮겨 촬영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자기네 집에서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덕분에 출연료 외에 장소사용료도 쏠쏠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때 성형과 복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주변에서는 성형한 얼굴인데 복싱을 해도 괜찮냐고 많이 물어보지만 정작 본인은 성형한 얼굴로 10년을 살아서 자기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도 까먹고 살고 있었단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딸이라서인지 복싱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패배했을 때 '이제는 그만 두겠지'하는 마음에 부모님이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2016년 8월,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고 있는 중, 권투했던 기초체력으로 같이 입소한 남자동료들을 제치고 지구력 1위를 과시하는 중이다. ~~[[박찬호]]를 제쳐버리는 체력.~~ [[http://tvcast.naver.com/v/1079529|영상1]], [[http://tvcast.naver.com/v/1079521|영상2]]
2018년 3월 9일 [[나 혼자 산다]]에서 [[승리(빅뱅)|승리]]의 옆집누나로 등장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 취득 이력에 대해 참 화려했으니 남들은 1종보통 또는 2종 보통만 취득하는데, 본인은 2종 소형에 1종 대형과 특수 트레일러까지 취득했다.--이러다 특수 래커까지 따면 유명인중에 차량운전 마스터할 수 있으니까 능력자로 등극되는거다.--
2010년 11월 28일 2010 KBI(한국권투인협회)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 '여자부 -50kg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기사가 났다. 예선전에서는 KO승, 결승에서는 판정승을 거뒀다는 듯.
2011년 3월 16일 전북 완주에서 열린 제7회 전국 여자신인 아마추어 복싱대회 -48kg급 준결승에서 양주 백석고의 신소영 선수를 상대로 승리했다.[[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962867|관련기사]] 생활체육을 넘어서서 아마복싱까지 점령중. 이러다 프로 전향할 기세. 그리고, 결국 해당 대회에서 '''우승'''했다.[[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10317111622287|관련기사]] ~~정말로 배우에서 복싱 선수로 전업할 기세.~~ 경기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상대가 가드가 약하다 싶으면 왼쪽 스트레이트, 가드를 단단히 하고 있으면 오른쪽 훅을 사용했다. 판정은 17:0 ~~시작의 일보?~~아닌게 아니라, 이시영의 소속 체육관 관장인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씨는 잘 키워서 런던 올림픽에 낼 생각이라고 한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317n11999|관련기사]] 여기에, 이시영의 소속사인 GnG프로덕션 관계자는 배우에 집중했음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cateid=1076&newsid=20110317150916632&p=newsen|관련기사]] ~~복싱계와 연예계가 이시영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 다만, 실제 저 경기에 출전했던 아마추어 복싱 선수의 말에 의하면 이시영에게 너무 좋게 판정한, 즉 편파적 전북가 진행됐다고 하는 말도 있기 때문에 복싱 실력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다.
2012년 7월 7일 제42회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 겸 제93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여자부 48kg 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해당 체급에 출전 선수는 3명뿐이었다는 점에서, 빈약한 여자 복싱의 상황을 엿볼수 있다. 어쨌든, 두명의 선수를 각각 준결승에서 20-0, 결승에서 21-7 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이름 그대로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우승시 전국체전에 나갈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어야 하는데, 출전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국체전에 여자부 48kg 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회의 51kg 급 우승자와 평가전을 추진하여 전국체전 출전권을 노릴 예정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618|관련기사]] 전국체전에는 출전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한국체대 소속의 국가대표 선수와 대전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53399|관련기사]]
2012년 7월 26일 제33회 회장배전국복싱대회 에서 여자부 48Kg 급에서 '''우승'''했다. 참고로 이 체급의 출전 선수는 6명 --이시영 외 나머지 5명이 여고생이라는 것은 넘어가자.-- 대진 뽑기운은 없는지 3전을 치뤄야 했고, 모두 승리하며 우승했다.
2012년 12월 7~11일 제66회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겸 2013 국가대표 1차선발대회 에 여자부 48kg 급에 출전했다. 같은 체급의 출전 선수는 5명인데, 대진 뽑기운은 정말 없는지 부전승 없이 3전을 치룬다. [* 출전 선수가 5명이므로 3명은 부전승으로 바로 준결승행이지만, 나머지 2명은 한 경기 더 치뤄야 하는데 그 2명중 1명에 걸렸다.] 12월 7일 1차전에서 18-16으로 승리했고, 12월 10일 준결승에서는 7-1로 승리했다. 12월 11일 결승전에서는 박초롱 선수에게 4-10으로 판정패 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공식전 첫패배이며 현재까지 공식전적은 9전 8승 1패. 국가 대표 선발은 1차전 1,2위, 2차전 1,2위가 크로스토너먼트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시영은 2위 자격으로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진출하게 됐다.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2/12/11/1007000000AKR20121211108251007.HTML|관련기사]]
- 손예진 . . . . 74회 일치
| 형제자매 = [[니시노 카나]]
| 배우자 =
| 자녀 =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손예진의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외출 (영화)|외출]]》(2005)로 두 편의 영화 모두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ref>{{웹 인용|title=The Best Selling Films of 2004|url=http://www.koreanfilm.org/kfilm04.html|work=Koreanfilm.org|accessdate=2013-08-08}}</ref><ref>{{웹 인용|title=A Moment to Remember breaks Japanese record|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326|work=Korean Film Council|date=14 December 2005}}</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to Star Alongside Bae Yong-joon in New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163|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4 December 2004}}</ref>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국내에서도 25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각각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에서 개봉 된 역대 [[대한민국]] 영화중에서 흥행 기록 1, 2위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예진, ‘日 2005 외국영화 흥행 톱10’서 2관왕|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32332|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5-12-16}}</ref><ref>{{웹 인용|title=Films Starring Sohn Ye-jin Attract 10 Mil. Viewers in Korea, Japan|url=http://english.kbs.co.kr/hallyu/entertainment_news_view.html?No=147|work=KBS Global|date=28 December 2005}}</ref> 특히 《외출》에서 손예진은 20대 중반 주부이면서 남편과 불륜 관계였던 여자의 남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자 서영의 감정을 잔잔하면서 깊이 있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알고, 이 영화로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최고의 선수, 작업계의 고수 한지원 역을 맡아 이 작품에서 과감한 섹시 댄스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고, 23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오싹한 연애> 손예진, <작업의 정석> 뛰어넘을까?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9139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하성태 |날짜 = 2011-12-17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6년 노자와 히사시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수영강사 유은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대본 보고 이런 게 사랑이라 생각했죠"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40659|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백나리 |날짜 = 2006-03-09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드라마는 ‘이혼후 다시 시작하는 연애’라는 참신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으며, 20대 여배우가 선뜻 마음먹기 힘든 이혼녀를 연기, 더 이상 예쁜 얼굴만 무기가 되는 여배우가 아님을 인정 받았고, 이혼 했지만 묘하게 남아있는 미련, 헤어진 뒤 비로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고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4241121121116|제목=손예진, "'연애시대'통해 현실적사랑 생각하게됐다" |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4-24|확인날짜 =2017-09-09}}</ref> [[SBS 연기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7042514301218841&type=1&outlink=1|제목='연애시대' 손예진, 백상 TV부문 최우수여자연기상 |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7-04-25|확인날짜 =2017-09-09}}</ref> 2007년 손예진은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주인공 여우비의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성인 목소리 나올까봐 걱정했죠"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10455|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홍성록|날짜 = 2006-12-22|확인날짜 =2017-09-09}}</ref>
이 시기 손예진은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 만큼 동시에 끊이지 않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제목=무릎팍도사` 출연한 손예진 "루머, 모두 오해에요|출판사=매일 경제|날짜=2008-05-15|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 }}</ref><ref>{{뉴스 인용|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제목=무릎팍도사’ 손예진, ‘루머해명, 대학시절 계획표 공개’|출판사=아이비 타임즈|날짜=2008-05-15}}{{깨진 링크|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 }}</ref> 하지만 손예진은 루머에 적극적인 대응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성실함과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안정적인 관객동원력을 증명한 손예진은 20대 중반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제목=손예진이 '충무로 최고 흥행퀸'인 이유?|출판사=아시아 경제|날짜=2008-11-03|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 }}</ref>
2009년 11월 10일 영화 《백야행》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손예진
2008년, 손예진은 TV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드라마)|스포트라이트]]》로 2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8/05/201_24097.html "Spotlight Shows Lives of Reporters"]. ''The Korea Times''. 13 May 2008.</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as a Criminal Kingpin|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741|work=Korean Film Council|date=26 July 2007}}</ref> 같은 해 영화 《[[무방비도시 (2008년 영화)|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 백장미 역을 연기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섹시함 유지, 가장 힘들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88606|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김경민 |날짜 = 2008-01-04 |확인날짜 =2017-09-16 }}</ref><ref>{{웹 인용|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02223903/http://twitchfilm.com/2006/09/alone-in-love-review.html|title=Alone in Love Review|성=|이름=|date=1 September 2006|work=Twitch Film|출판사=|확인날짜=2018-04-12}}</ref><ref>{{웹 인용|title=Actress Son Ye-jin's Movie Picks|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317340286147|work=10Asia|date=23 December 2011}}</ref> 박현욱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조건으로 달고 결혼한 후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주인아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SON Ye-jin puts a new spin on marriage|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914|work=Korean Film Council|date=11 February 2008}}</ref> 그녀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2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1210837541003|제목=눈물의 손예진 유일무이 3관왕 석권 기염, 청룡 여우주연상-인기스타상-베스트커플상 |출판사=뉴스엔|날짜=2008-11-21}}</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제목=손예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12-11|확인날짜=2014-0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24030924/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보존날짜=2008-12-24|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411169|제목=김윤석.손예진, 영화학도가 뽑은 최고 배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8-12-15}}</ref><ref>{{뉴스 인용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22720042800689&type=1&outlink=1|제목=손예진, '아내가 결혼했다'로 여우주연상 3연패 |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09-02-27}}</ref> 2009년,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백야행 (영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유미호 역을 연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차기작 ‘백야행’서 고수와 멜로호흡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6689|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남안우 |날짜 = 2008-12-15 |확인날짜 =2017-09-16 }}</ref><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9/11/141_53971.html "Son Ye-jin, Ko Soo to Bring Mystery Romance"]. ''The Korea Times''. 21 October 21 2009.</ref>
2010년, 손예진은 이새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개인의 취향]]》로 1년 9개월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고, 개인 날 태어났다고 개인이란 이름을 얻은, 이름처럼 밝고 털털하고 유쾌한 캐릭터이자 무늬만 여자인 덜렁이 아가씨 박개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개인의 취향' 손예진 "나이에 맞는 역 하고싶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023820|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김현록 |날짜 = 2010-03-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듬 해, 2011년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 (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최종회에서 톱스타 역할으로 특별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시크릿가든' 카메오…'숨길 수 없는 폭풍 미모'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11619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강선애 기자|날짜 = 2011-01-17}}</ref> 같은 해 손예진은 호러 로맨스 코미디 영화 《[[오싹한 연애]]》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고,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귀신 때문에 연애는 커녕 가족과 친구로부터 버림받은 여자 강여리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오싹한 연애’로 컴백…그녀, 인생을 말하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245920|출판사 =서울신문 |저자 =임일영 |날짜 = 2011-11-29 |확인날짜 =2017-09-16 }}</ref> 영화는 300만 관객수를 기록해 자신이 출연한 모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흥행시키며 '로맨틱 코미디의 퀸'임을 입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역시 손예진, '오싹한 연애' 300만 개인 최고 흥행기록 달성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005946|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김용호 |날짜 = 2012-01-17 |확인날짜 =2017-09-16 }}</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4703987|제목=<오싹한 연애> 최근 6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중 최고 성적 |출판사=맥스무비|날짜=2012-01-03|확인날짜 =2017-09-16}}</ref> 2012년에는 재난 영화 《[[타워 (영화)|타워]]》에 출연하였고, 영화는 518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ref>{{웹 인용|title=Queen of romance returns in disaster flick|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21217000947|work=The Korea Herald|date=17 December 2012}}</ref>
2013년, 손예진은 5월부터 7월까지 방영한 TV 드라마 《[[상어 (드라마)|상어]]》로 3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또한 10월 개봉한 스릴러 영화 《[[공범 (영화)|공범]]》에서 정다은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유괴살인사건 공소시효 15일 전,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아빠를 떠올리게 되면서 잔인한 의심을 갖게 되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본 영화에서 공동 주연을 맡게 된 [[김갑수 (배우)|김갑수]]와는 ‘연애시대’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며, 김갑수의 부녀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투매거진] 공범, 손예진 당신을 스릴러의 여왕으로 임명합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140577|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장영준 |날짜 = 2013-11-28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작품으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20088|제목=손예진, '해적'·'공범' 2관왕 후보가 의미하는 것|출판사=OSEN|날짜=2014-11-29}}</ref> 그리고 손예진은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해적단 대단주 여월 억을 연기했다. 영화는 조선의 옥새를 삼켜버린 귀신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산적 장사정이 여자 해적 여월과 함께 바다를 누비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女해적 여월, '으리으리'한 캐릭터"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84846|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4-07-02 |확인날짜 =2017-09-16 }}</ref> 86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으며, 역대 출연작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알고보면 변신의 여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42336|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보란 |날짜 = 2014-08-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작품의 성공으로 3000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3000만 배우' 손예진이 충무로서 갖는 의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532716|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4-08-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이 작품으로 제5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14441|제목='대종상' 손예진, 연기·흥행 갖춘 유일무이 女우 탄생|출판사=OSEN|날짜=2014-11-22}}</ref> 2015년에는 한중합작 코미디 액션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나쁜 놈은 죽는다' 손예진, 카리스마+살벌한 분위기 풍기는 액션배우로 변신 |url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70216.99002115403|출판사 =국제신문 |저자 =디지털뉴스부 |날짜 = 2017-02-16 |확인날짜 =2017-09-16 }}</ref>
2016년에는 손예진이 주연을 맡은 두 편의 영화 《[[비밀은 없다]]》, 《[[덕혜옹주 (영화)|덕혜옹주]]》가 개봉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비밀'덕혜'가 2016년의 나..말그대로 다사다난"(직격인터뷰①)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578621|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김현록 |날짜 = 2016-12-21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는 비록 2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손예진은 평론가의 호평을 받으며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22회 [[춘사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비밀은 없다' 손예진 연기, 촬영·미술이 살렸다? |url =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111|출판사 =문화뉴스 |저자 =양미르 |날짜 = 2017-09-02 |확인날짜 =2017-09-16 }}</ref>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허진호]] 감독의 영화 《덕혜옹주》는 5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여성 원톱 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도 일궈냈으며, 손예진의 인생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핫 아이콘★②] 손예진 "'덕혜옹주'·'비밀은 없다', 두려움 많았던 작품"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7&aid=0000026414|출판사 =OBS 독특한 연예뉴스 |저자 =조연수 |날짜 = 2017-01-02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작품으로 제3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2017년 5월, 손예진은 스릴러 영화 《[[협상 (영화)|협상]]》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서울지방 경찰청 위기협상팀의 유능한 협상가가 상사를 납치한 인질범과 대치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위기협상팀 경위 하채윤 역을 연기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타와치]덕혜옹주→경찰, 제복 입은 손예진에 거는 기대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6231109536710|출판사 =뉴스엔 |저자 =배효주 |날짜 = 2017-06-23 |확인날짜 =2017-09-16 }}</ref>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동명의 영화]]를 기반으로 한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년 영화)|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1년 후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가 기억을 잃은 채 남편과 아들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2018년 개봉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취중토크③] 손예진 "치열했던 20대 보다 30대가 더 좋아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출판사 =일간스포츠 |저자 =김연지 |날짜 =2017-06-16 |확인날짜 =2017-09-1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70917033455/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보존날짜 =2017-09-17 |깨진링크 =예 }}</ref>
=== 자선 활동 ===
2011년 9월, 손예진은 서울시 성동구 뚝섬 전망문화콤플렉스 자벌레에서 열리는 '레인보우 프로젝트'(무지개빛 꿈 & 맑은 나눔 잔치)를 위해 자신의 애장품들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배용준·손예진·비의 애장품을 아프리카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2609009|출판사 =머니투데이 |저자1 =김동하 |저자2 =이규창 |저자3 =김건우 |저자4 =김하늬 |날짜 =2011-09-14 |확인날짜 =2017-09-16 }}</ref> 2013년 5월, 드라마 《[[상어 (드라마)|상어]]》 제작발표회 때 팬들(공식 팬클럽과 DC인사이드 손예진갤러리)에게 보내 온 응원 드리미 쌀화환 160kg 쌀화환을 손예진이 지정하는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 ='상어' 손예진, 쌀화환 기부 '얼굴만큼 예쁜 마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335781|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편집팀 |날짜 = 2012-05-22 |확인날짜 = }}</ref> 2014년 8월, 손예진은 [[설경구]]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지목 받았고, “경구 선배가 아이스 버킷 첼린지에 절 지목하셨더라고요. 저는 얼음물 대신 기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고 말하며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 대신에 기부를 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얼음물 샤워 대신 기부 “좋은 일 기쁘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860159|출판사 =OSEN |저자 =강서정 |날짜 = 2014-08-22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많은 후배 여자 배우들의 롤모델로도 자주 언급 되고 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12/13/20121213022652.html|제목=손예진 “후배 여배우들의 롤모델, 격세지감 느껴요”|출판사=세계일보|날짜=2012-12-13}}</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1029000964&md=20131101004453_BL|제목=손예진 "후배 여배우들의 롤모델, 뿌듯하다"|출판사=헤럴드경제|날짜=2013-10-29|확인날짜 =2017-09-16 }}</ref>
{{둘러보기 상자 묶음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
- 이소선 . . . . 74회 일치
|배우자 = 전상수
|자녀 = [[전태일]]<br/>[[전태삼]]<br/>[[전순옥]]<br/>[[전순덕]] [[윤손하]]
'''이소선'''(李小仙, [[1929년]] [[12월 30일]] ~ [[2011년]] [[9월 3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인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활동하다 분신하자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노동운동가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대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4717.html 노동자의 대모 이소선씨 별세], 한겨레, 2011년 9월 3일</ref> 민주화 운동 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 모임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상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이소선은 매일 매를 맞고 죽을 위험을 겪으며 공장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도망을 쳤다. 공장 감시자가 쫓아왔지만 숨겨 주는 사람이 있어 도망칠 수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5182343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2) - ‘정신대 탈출], 경향신문, 2009년 2월 25일</ref> 도망쳐 고향에 돌아온 이소선은 잠시 동안 산 속에 숨어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1 "에라 모르겠다" 소선은 눈 딱 감고 뛰어 내렸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2), 2014.06.12</ref>
전상수는 여러 사업을 크게 벌리다 일이 어렵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갔다. [[한국 전쟁]] 직전이었다. 이소선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자갈치시장]]에서 지냈다. 1950년 6월 15일 둘째 [[전태삼]]을 낳았다. 집도 없이 시장에서 지내다 전상수가 포목점에 취직하여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3137 자갈치시장서 둘째 낳은 소선, 고생은 계속됐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5), 2014.06.12</ref>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장사가 잘 되어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산 적도 있지만 공장을 크게 늘린 일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었다.<ref name="경향30">[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42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0) - 아득한 행복했던 순간], 경향신문, 2009년 3월 15일</ref> 장마철 큰 비에 창고 지붕이 무너져 재료를 모두 못쓰게 된 것이다.<ref name="오마이뉴스1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490 "말짱한 젊은 년이 뭐가 아쉬워 구걸을 다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8), 2014.06.12</ref> 전상수는 점점 술에 취해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일이 풀리지 않아 빚을 지면 가재를 모두 팔아 정리하고 가족을 길바닥에 둔채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017511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7) - 지우고 싶은 남편의 기억], 경향신문, 2009년 3월 10일</ref> 1953년 셋째 [[전순옥]]이 태어났다.<ref name="경향30" />
전쟁이 끝나고 남편 전상수는 사업 기회를 보려 서울로 상경하였고 그 사이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2183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3) - ‘버팀목’ 시아버지 별세], 경향신문, 2009년 3월 23일</ref> 아이들을 끌고 무작정 상경한 이소선은 [[염천교]] 근처에서 가족과 노숙하였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이소선은 고등어의 배를 따는 일을 하고 얻은 품삯으로 시래기를 사서 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먹였다. 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잤고, 일을 구하지 못할 때에는 걸식을 했다.<ref name="오마이뉴스18" />
전상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남편이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태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순덕]]이 태어났고 전태일은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상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태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가 병약해지자 집안의 살림은 전태일이 꾸려야했다. 전태일은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신문팔이며 삼발이 장사를 했지만 시원치 않았다. 받아온 삼발이 값을 치뤄야 하는 월말이 되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 전태일은 무작정 가출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9174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6) - 전태일의 가출],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서울에서 다시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하던 가족은 시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대구의 시댁으로 내려갔다. 전태일은 부산까지 떠돌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대구에 왔다. 대구에서 다시 모인 가족은 다시 재봉일을 하며 살았고 정식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태일은 스스로 쓴 수기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러나 전상옥의 사업은 결국 망했고 다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소선은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전상옥을 보며 절망을 느꼈다. 전상옥이 집을 나가 버리자 남은 가족들은 꼼짝없이 굶게 되었다. 1964년 이소선은 일을 구하기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520 몽땅 굶어죽을 판... 서울로 가자],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4), 2014.06.12</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태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식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태일은 남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태삼을 발견하였다. 전태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태일은 남대문에서 돈을 벌고 태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태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순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전상수는 서울 [[서울중부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과 사는 것이 싫었지만 전상수가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남산동 50번지 무허가 판잣집을 셋방으로 얻고 다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동보호소에서 대려온 순덕이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 지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고 새벽에 홀로 깨서 머리를 빗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ref name="오마이뉴스30" /> 그러나 전상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산동 살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6년 판자촌에 불이나 이재민이 된 것이다. 이소선은 그 때의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멀었던 눈은 차츰 돌아왔고 모든 식구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7 이소선, 화재 충격으로 눈이 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1), 2014.7.18</ref>
당국은 이재민에게 천막 하나를 주고 [[도봉동]] 개울가로 내몰았다. 이소선의 가족은 [[쌍문동]] 공동묘지 근처 208번지로 이사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2175815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5) - 판자촌에 다시 모인 가족], 경향신문, 2009년 4월 22일</ref> 이소선이 살던 쌍문동 집은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간혹 단속반이 와서 헐고 갔기 때문에 시멘트 블럭만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들었다가 헐리면 다시 세웠다. 전태일은 단속반이 집을 헐며 블럭을 부수면 다시 사야하기 때문에 단속반이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미리 집을 헐어 두었다고 한다.<ref name="경향46">[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317454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6) - 쌍문동 208번지], 경향신문, 2009년 4월 23일</ref> 이 무렵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미싱사가 되었으며 동생 순옥이 만한 어린 소녀들이 퀴퀴한 다락방에서 쉴 새 없이 일하다 폐병을 앓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전태일은 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자세히 말하곤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6185902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7) - 춥고 배고픈 어린 시다들], 경향신문, 2009년 4월 27일</ref>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 사람이 앉아야 해서 전태일은 단속반 때문에 집을 헐었다 지을 때 마다 방을 조금씩 넓혀 지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 /> 쌍문동 판잣집은 1980년 재개발 때 철거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9184720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8)], 2009년 4월 29일</ref> 1969년 6월 남편 전상수는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f name="연표">[http://www.chuntaeil.org/?r=home&c=1/12/18 이소선 어머니 걸어오신 길], 전태일재단</ref>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순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은 노동운동을 시작한 후 노동교실을 열고 노동자를 교육하고 동시에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도 함께 하였다.
이소선은 또한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고 관련자들을 서둘러 사형시킨 뒤 화장시키려 하자 그 앞을 막아선 사람도 이소선이었다. 이소선은 헌옷을 팔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노동운동가나 민주화 운동가가 수배를 당하면 그를 숨겨주고 먹이고 재웠다. 수 많은 민주화 운동 활동가들이 이소선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로인해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에서 부터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까지 이소선을 어머니라 불렀다.<ref>[http://www.redian.org/archive/40703 이소선 기억하기‘어머니’의 길이 일군 여성의 역사], 레디앙, 2012년 9월 4일</ref> 전태일의 장례를 도왔던 [[장기표]]가 수배 받아 장독대에 숨겼고 [[조영래]]를 숨겨줄 때에는 주변으로부터 다 늙어 서방질을 한다는 오해까지 받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5932 수배범 장기표 구해낸 이소선의 임기응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54), 2014년 11월 4일</ref> 이소선의 판잣집을 거쳐간 사람들은 훗날 대통령이며 장관이 되기도 했지만 이소선은 늘 현재의 노동자 편에 서고자 했다.<ref name="경향46" /> 또한 1986년에는 민주화유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ref name="연표" />
이소선은 노동운동가들이 《전태일평전》을 읽고 그 길에 뛰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다. 이후로도 계속 되는 노동자의 분신과 자살이 있을 때 마다 마치 자신이 죄가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ref name="오픈아카이브">[http://db.kdemocracy.or.kr/contents/view/165 어머니 이소선], 오픈아카이브</ref> 그래서 어디를 가서 이야기를 하던 제발 살아서 싸워라 살아서 싸우고 살아서 바꾸라고 이야기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0468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씨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라"], 오마이뉴스, 2009년 6월 5일</ref> 1986년 신흥정밀 노종자 [[박영진]]이 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소선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을 막고선 형사들에게 내 아들이라고 소리치며 들어가 손을 잡고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야지 왜 그랬냐"고 하여 주위의 사람들을 숙연케 하였다.<ref name="오픈아카이브" />
- 진격의 거인/97화 . . . . 74회 일치
* 그러나 케니는 아니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였고 미행은 발각,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아니의 정신적 부담은 한계에 달한다.
* 그리고 지금. 라이너는 자신의 괴리를 어쩌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내몰렸지만 [[가비 브라운]]과 [[팔코 그라이스]]를 보며 희망을 얻는다.
* 병사는 팔코의 고민은 눈치채고 "남이 내몬 지옥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지옥의 모습은 다르다"며 그건 "계속 나아가야지만 알 수 있다"고 조언하는데.
* 하지만 마가트는 그가 다른 속셈이 있어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빌리가 떠보는 듯한 말을 하자 숨김없이 마레의 현체제를 비판한다.
* 놀랍게도 빌리는 타이버가가 "흑막"이라 인정하며 그들이 실제 마레를 지배하고 있지만 "속죄"를 위해 권력과 자유를 나눠준 것이라 고백한다.
* 선대 전추의 거인이 마레인에게 힘을 주고 방치한 결과 마레인과 엘디아인이 모두 멸망할 처지가 되자 빌리는 그걸 막아보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하는데.
* 빌리는 예정된 "축사"에서 이 같은 진실을 공개하고 마레를 회생시키려 한다. 그가 마가트를 방문한건 그를 협력자로 얻기 위해서.
* 단지 가족에게 "자신이 무사히 여기에 있다"고 알리고 싶다는 크루거. 파르코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분명 에렌 예거였다.
* 애니 레온하트는 어떤 남자를 추적 중이었다. 타깃은 검은 코트의 남자. [[케니 아커만]]이었다. 병단에 들어간 뒤에도 그녀의 본래 업무는 바뀌지 않았다. 평범한 소녀로 꾸민 채 숙소를 벗어난 그녀는 케니의 뒤를 미행했다. 그는 애니가 조사한 왕정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뭔가가 달랐다. 직감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캐면 진짜 "벽의 왕"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 가능성에 걸고 남자를 뒤쫓고 있었다. 어느덧 남자의 행로는 평범한 소녀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뒷골목. 하지만 애니는 멈추지 않았다. 남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았다. 애니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어깨를 붙잡을 때까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남자 보는 눈 좀 있네.
회심의 돌려차기는 남자의 관자노리를 정확히 노렸다. 애니가 아는 한 그런 일격이 빗아갈 일은 드물었다. 그게 하필 미행이 실패하고 뒤를 잡힌 순간에 일어날 가능성은 더더욱. 케니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고 발차기는 벽에 박히며 벽돌을 박살냈다. 케니로선 그녀가 늘어놓은 드라마보다 이 발차기 쪽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케니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진 순간 애니는 몸을 날렸다. 지나온 골목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케니가 뒤쫓아오며 "벌써 아빠가 싫어지는 시기냐고"고 도발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애니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케니는 뚜껑이 열린 배수구를 발견했지만 그의 몸집으로는 통과할 수 없었다. 그가 혀를 찼다.
* [[베르톨트 후버]]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동료들의 평화로운 아침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공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들은 그의 특이한 잠버릇을 다소 신성하게 여겼다. 그의 하반신과 상반신이 놓인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가령 오늘처럼 거꾸로 매달린 사형수의 모습은 두 가지 해석이 대립했다. 벽에 기댄 하반신으로는 "눈", 뒷짐을 진채 등을 바닥에 댄 상반신은 "밝은 하늘"이었다. 그 분야에 가장 정평난 [[라이너 브라운]]은 그것을 "우박"으로 해두자고 한 뒤 동료들을 챙겨 아침 점호를 준비했다. 익숙해진 일과였다. 그의 인솔에 따라 [[코니 스프링거]], [[마르코 보트]]가 베르톨트 앞을 떠났다. 라이너는 마지막으로 베르톨트를 깨웠다.
* 식당에선 또다른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너의 옆 테이블에서 [[엘런 예거]]와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 아커만]]이 식사 중이었다. 엘런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라이너가 유독 살기등등하다고 말을 걸자 맞은 편에 앉은 [[장 키르슈타인]]이 어제 훈련 탓이라고 참견했다. 입체기동장치 실습. 자기 와이어에 얽혀 죽을 뻔한 엘런. 장이 꼴사납다고 빈정거리자 엘런은 "거인한테서 도망치는 훈련을 하는게 더 꼴사납다"며 말상자식이라고 받아쳤다. 장은 다시 엘런은 용감하게 돌격하자 와이어가 엉켜 죽을 거고 거인이 그걸 보고 미친 듯이 웃을 거라고 빈정거렸다. 슬슬 때가 됐다. 어김없이 멱살잡이가 이어진다. 그걸 막는 것도 라이너의 일과. 병단에 들어온 뒤 항상 하는 일이다. 달라진건 없다. 저쪽,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애니가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것 외에는. 애니는 [[미나 캐롤라이나]]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식사에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식당의 전원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는데 애니는 촛점 없는 시선을 정면에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베르톨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 그날 밤은 셋이서 숙소를 빠져나왔다. 훈련병단 인근의 벌목지였다. 모이자마자 애니가 심경을 토로했다.
>너희들이 친구랑 신나게 놀고 푹 자고 있을 때 나는 왕도의 하수구 속을 기어다녔어.
그 검은 코트 남자는 실력자였다. 잡힐 뻔 한데다 이미 얼굴이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앙헌병에 들어가는 것도 죽으러 들어가는 셈이다. 애니는 한계를 선언했다. 이제 여기서 모은 정보를 가지고 마레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때로부터 약 5년. 이정도 정보라면 당국도 납득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라이너의 생각은 달랐다.
잠시 침묵. 애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고. 5년 동안 라이너는 꽤 용의주도해져 있었다. 이미 대안을 마련해놓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훈련병이 토르스트구에 체재 중인 시기에 조사병단이 벽 밖으로 나가는 때가 있다. 그날 결행한다면 벽 안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훈련병들도 현장에 배치될 테니 자연스럽게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대로 모습을 감추고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도 그저 먹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후에 왕도로 들어가는 난민 무리에 낄 수도 있고 다시 병사를 계속할 수도 있다. 요점은 벽의 왕을 자극하고 그의 움직임에 맞출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베르톨트는 둘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라이너는 즉각 거리를 두고 피곤할 텐데 매번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라이너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뜨자 애니가 뒤따랐고 마지막은 베르톨트였다. 회의시간 내내 말이 없었던 베르톨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꿈 얘기. 그의 기하학적인 잠버릇을 유발하는 꿈에 대한 얘기였다.
* 라이너의 당연한 걸 수도 있었다. 그는 장전된 라이플의 총구가 입천장에 붙였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턱 위에 있는 것들이 한순간에 흩어지면서 편해질 것이다. 독방에서 자세를 잡은 라이너에겐 망설이는 기색도 별로 없었다. 편해지고 싶었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둔탁한 굉음이 들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파르코 그라이스]]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 안에서 누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겠지. 파르코는 분통이 터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 벽이나 후려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이대로는 안 돼,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라이너는 라이플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봤다. 우울하게 돌아서는 파르코의 뒷모습이 보였다. 새삼 깨달았다. 아직 기회가 있었다.
- 이갑성 . . . . 73회 일치
그의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고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아호는 연당(硏堂).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1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 시|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 야인으로 생활하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이 되었다. [[1965년]] [[광복회]] 회장을 지냈다.
연당 이갑성은 [[1889년]] [[10월 23일]] [[대구시|대구]]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다. 11세 때 한문 서당을 수학하고 돌아오던 길에 샤록스(A. M. Sharocks) [[기독교]][[선교사]]를 만나 개종,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1915년]] 세브란스의전 부속병원 사무원이 되고, 그뒤 의전 부속병원 제약부 주임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감격, 이를 계기로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이 진행되자, [[1918년]] 말부터 [[박희도 (1889년)|박희도]](朴熙道) 등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한다.
이후 독립운동을 실행함에 있어 학생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경성부]]의 학생들이 시국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학생들과 자주 만나 [[손병희]] 등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한다며 독립운동 계획을 알려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비밀리에 [[경성부]]내 각 고등학교, 전문학교 학생들의 동정을 주시하였다. 이에 [[고종 황제]]가 갑자기 죽자 그해 [[2월]]을 만세 거사 기일로 정하였다.
[[2월 28일]]에는 목사 [[김창준 (1890년)|김창준]]에게 [[함태영]]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900매 중 약 600매를 받은 뒤 이를 다시 인쇄하고, 그날 5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설(李容卨)에게 교부하여 인쇄하게 한 뒤 학생들에게 돌리게 하였다. [[3월 1일]] 아침 일찍 이갑성은 독립선언서를 수천 장 인쇄하여 400여매를 병원 사무실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상]](李容祥)에게 주어, 그중 200매는 대구의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보내고 나머지 200매를 [[마산]]의 독립운동 동조자 임학찬(任學瓚)에게 보내도록 한다. 또한 학생 [[김병수]](金屏沫)에게는 [[전라북도]] [[옥구군]]에 있는 [[박연세]](朴淵世) 등에게 보내기 위해 200매를 주었으며, [[충청남도]] [[천안]]에서 올라온 [[임영신]]에게도 일부 배포하고, [[경성부]] 강기덕(姜基德)에게 천500매를 주어 배포케 한다. [[2월 28일]] 밤 [[경성부]] 재동(齋洞)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 등의 민족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으로 정하였다.
[[3월 1일]]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학생시위운동 및 전단살포 등 중책을 맡아 수행하던 중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33인들은 태화관(泰華館)에 모였고 이갑성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미리 의견서를 제출한 뒤, 회합 장소를 떠나지 않고 조용히 포박당하기로 약속한다. [[3월 1일]] 오후 이갑성은 조선총독부에 [[민족대표 33인]]의 의견서를 제출하러 갔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 회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석방 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에 가입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재단 이사, 세브란스의약(醫藥) 지배인이 되었다. [[1925년]] [[2월]] 이창제(李昶齊), 현신덕(玄信德), 조철호(趙喆鎬), 배집(裵執), 변성옥(邊成玉) 외 5인과 함께 [[공산주의]] 계열의 [[반기독교 운동]]에 저항하기 위해 [[시사구락부]](時事俱樂部)를 조직하여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 주장에 저항하였다.<ref>김준엽, 김창순 공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ref>
|저자=박도
이 때문에 [[1993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 훈장 서훈자 중 친일 혐의가 있는 자의 명단을 발표할 때, 과거 독립유공자 심사위원까지 맡았던 이갑성의 이름이 포함되었다.<ref>{{저널 인용
|저자=길윤형
}}</ref> 하지만 밀정 혐의의 특성상 세월이 흐른 뒤 근거를 찾기 힘들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가 되어 버린데다,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의혹만 남았을 뿐 명확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갑성의 논란은 [[민족문제연구소]]나 한겨레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2005년 3.1절 특집 SBS 뉴스추적 "누가 변절자인가" 편에서는 이갑성의 친일의혹을 면밀히 검증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민문연에서 제시한 것들도 근거가 희박한 것들이 많고, 이갑성이 광복 이후 우익계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좌익단체로부터 집단적인 음해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SBS '뉴스추적' 3.1절 특집 '누가 변절자인가'
|저자=김영현
|제목=SBS '뉴스추적' 3.1절 특집 '누가 변절자인가'
|저자=박흥로
당시 조선에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생겼다. 이갑성은 [[1971년]] [[12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니까 왜 그리 많은 정당이 생기는지 한심한 상태였다. 그때가 언젠지 모르나하지 중장을 만나 등록된 정당이 몇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74개라고 대답합디다"라는 것이다. [[한민당]]의 창립 발기인이었던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가 선후에라야 정당이 있는 법이지 독립도 정부도 아직 안섰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1945년]] [[10월]]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목적으로 정당통일기성회를 조직했고, 수십개의 단체들 중 뜻이 맞거나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은 통합되었다.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를 영접하는데 참석하였다. 그뒤 [[1946년]] [[4월 18일]] [[한독당]]. [[국민당]](國民黨)과 신한민족당의 3당 통합에 참여하였으나 곧 [[한국독립당]]에서 [[안재홍]] 등이 제명되자 그도 탈당하였다. [[1946년]] [[정당통일기성회]] 위원장에 선출되었으나 갈등이 계속되면서 결국 1947년 해산하게 된다.
이때 [[김규식]](金奎植) 등의 좌우합작에 협력하던 중 그뒤 단정 수립론과 남북협상론이 나오자 [[이승만]]의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48년]] [[3월]] [[미 군정]]청 군정장관 딘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임명되었다. [[1948년]] [[5월]]에는 [[이승만]]의 친위조직화된 [[대한인국민회]] 소속으로 대구에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를 지도, 운영하였다.
[[이승만]]의 단정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1950년]] [[5월]]에는 국민회 소속으로 대구에서 제2대 [[민의원]](民議院) 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다. [[6.25 전쟁]] 직후 [[6월 28일]] [[서울]]이 점령당하자 자가용편으로 [[대전]]으로 피신, 무임소 장관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하였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73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반도] 내륙을 영구상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상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반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오스만은 몇번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여 제국의 숨통을 완전히 끊으려고 시도해봤지만, 바예지드 1세가 티무르에게 패배하여 후계자 분쟁으로 오스만이 여러 세력으로 분열하면서 실패하였다. 오스만의 혼란을 앞에 두고 비잔티움은 오스만의 후계자 분쟁에 개입하여 오스만 술탄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만족했다. 이후 무라트 2세 시기 시행된 공세도 실패했다.
이에 대항해서 비잔티움은 외부로부터의 원조를 얻으려고 몇번 시도를 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동서대분열의 종결을 선언한 피렌체 공의회다. 그러나 이는 황제와 일부 정치인들, 학자들만 따랐을 뿐 대부분의 비잔틴 사람들에겐 인기가 없었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고 있던 모스크바 대공의 지원만 받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오스만에 대한 반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남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이후 1448년 섭정 야노슈 후냐디 위주로 헝가리가 왈라키아, 보헤미아, 그외 용병대와 함께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의 지도자 스칸데르베그와 협업해 오스만과 싸우려하나, 스칸데르베그는 오지못하고, 후냐디의 군대는 궤멸된다.
한편으론, 비잔티움은 황제 요안네스 8세가 죽고, 그의 동생 콘스탄티노스가 콘스탄티노스 11세로 즉위한다. 그는 모레아의 친왕으로써 모레아를 비잔티움의 봉신인 모레아 전제국으로 일통하고, 바르나 십자군에서 그리스 지방 거의 전체를 일시적으로나마 탈환할 정도로 능력있는 자였으나... 바르나 십자군에 협력한거 때문에 초강대국이었던 오스만의 지도자였던 무라트 2세에게 찍혀서 재혼[* 당시 그는 두 번의 결혼을 치뤘으나 두 번 모두 자식이 없었다]도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관식도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모레아에서 치뤘고 콘스탄티노플에 올때도 카탈루나 배를 빌려타고 온 안습한 처지가 되었다.
1451년 무라트 2세가 죽고 새로이 술탄으로 오른 이는 메흐메트 2세였다. 사실, 그는 1444년에 이미 즉위한바가 있으나 동쪽에서 카라만이 반란을 일으키고, 발칸에선 비잔티움의 사주를 받은 무라트의 동생 오르한이 폭동을 일으키고, 헝가리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자 재상 할랄 파샤의 주도로 무라트 2세가 복위돼 퇴위되버린(..) 굴욕을 간직한 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럽군주들은 그를 애송이취급하면서 무시해버렸고, 이때문에 오스만이 실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때도 느릿느릿 관망만 하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실제론 자기들 이권다툼이나 나라 내실다지기가 더중요했던게 크다. 바로옆에서 초거대세력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하던 제국을 무시한 이탈리아 중견국들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로저 크롤리의 표현대로 '동방의 알렉산드로스'를 노린 이였고, 이는 말년의 나폴리 침공에서도 잘 드러나는 일면이다. 아무튼, 그의 두번째 즉위당시 아무도 그의 야망을 모르거나 무시했고, 이는 유럽군주들의 가장 큰 실수로 남는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이건 사실상 술탄의 심기를 대폭 건드는 발언이었고, 여전히 재상이었으며. 무라트 2세부터 지속된 평화주의의 대표적인 자였던 할랄 파샤는 이것때문에 사절 면전앞에서 폭언을 하기에 이른다.
사실 당시 비잔티움의 궁정에는 오스만의 내부사정을 잘알고 있었던 자들이 많았고, 이들이 이러한 요구가 술탄의 화만 돋울거란걸 모르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요구를 한걸까? 아마 재정상의 이유일 가능성이 클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건 알 수 없다.
오히려 국가적인 지원보단 개인적인 지원이 더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스티야의 귀족인 톨레도의 돈 프란시스코[* 자신을 콤네소스 황가의 자손이라 칭하며 황제를 사촌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콤네노스가 아닌 팔레올로고스 왕조였고, 오히려 [[트레비존드 제국]]이 콤네노스 왕조의 후손이다. 팔레올로고스 왕조도 콤네노스 왕조와 인척관계이긴 하지만.]와 제노바의 군인 주스티니아니 롱고였는데, 특히 주스티니아니는 공성전전문가로 상당히 이름난 군인이었기에 황제가 직접 방어를 성공해낸다면 림노스 섬의 통치권을 나눠준다고 하기도 했다.
우선 서유럽 국가와 비잔티움 사이에 묵혀뒀던 감정이 4차 십자군때 콘스탄티노플 약탈과 라틴 제국 성립으로 폭발한게 컸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는 제국민들은 서유럽의 가톨릭 교회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내세우는 동서대통합은 종교계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제국에서도 종교적 보수성이 매우 강한 지역[* [[모레아 전제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이라 반발이 더욱 컸을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동서대통합과 라틴 전례의 도입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정교회 전통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매우 어리석고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로 평가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국가 이상으로 높았으며, 통제력이 미약한 세속 국가보다는 종교에 대하여 애착을 강하게 가졌다. 특히 말기의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모든 면에서 오스만 제국의 간섭을 받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며, 오스만 투르크 영토 한 가운데 고립된 '콘스탄티노플'은 모든 면에서 비잔티움 황제보다 오스만 술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세속국가로서 비잔티움은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약화되었고, 제국은 과거와는 달리 '교회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교적 문제 이외에도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자기들의 이권다툼으로 바빠서 지원을 제대로 해주기 어려웠던 측면도 크다.
예를 들자면 헝가리는 주전파인 섭정 야노슈 후냐디의 영향력이 전술한 코소보에서의 패배로 약해졌고, 왕인 라슬로 5세가 성년이 되어 후냐디의 섭정을 탐탁치 않아 했다는게 문제였다. 거기다가 당시 라슬로 5세는 신성로마제국[* 정확히는 오스트리아]에게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위를 위협받고 있었다.
또다른 발칸 근처 정교회 국가인 몰도비아는 분열되어있었으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빴다.
앙쥬 백작으로 부터 나폴리 왕국을 정복해[* 당시 아라곤 왕 알폰소 6세가 시칠리아 왕을 겸했으므로, 탈환으로 볼 수도 있다.]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아라곤 왕국은 역시 비잔티움으로부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들도 초강대국 오스만을 상대로 혼자 나서려 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그들 사이에 있던 [[백년전쟁]]의 참화를 회복하느라 바빠 도저히 도와줄 상태가 되지 못했고, 이베리아의 강자인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레콩키스타 운동을 아직도 완료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강성한 정교회국가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은 자신들의 라이벌이었던 노보고로드 공화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과 싸우느라 바빴고, 타타르의 멍에를 벗은지 얼마안되서 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대공국과 비잔티움 사이에는 아직 몽골계 칸국이 가로막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요안네스 8세때 잠시 진행된 동서교회 통합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동유럽에서 정교회와 가톨릭의 감정적 대립은 매우 심각했다. 예를 들어, 이 무렵 노보고로드는 [[한자동맹]]의 독일계 상인들과 교역을 했으나, 이들이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도시 내에 게토를 설치하고 독일계 상인들을 거의 격리수용(…) 하다시피 할 정도로 일반 시민들과 철저하게 분리했다.]는게 문제였다.
- 문무왕 . . . . 72회 일치
|왕후=[[자의왕후]]
[[태종 무열왕|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 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나당 전쟁]]에서 격퇴함으로써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왕후는 파진찬 [[선품공|김선품]]의 딸 [[자의왕후]]이다.
{{출처|[[661년]]부터 [[68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61년부터 [[678년]]까지 친정하였고 [[676년]] 아우 [[김인문]](金仁問)이 잠시 [[권력|실권]] 탈취 기도를 한 바 있으며 678년부터 681년 붕어할 때까지 아들 [[신라 신문왕|김정명]](훗날 [[신라 신문왕|신문왕]])이 [[왕태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날짜=2018-06-28}}
{{Cquote|어느 날 김유신의 맏누이인 [[영창부인|보희]](寶姬)가 서형산(西兄山)<ref group="주">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의 [[선도산 (경북)|선도산]](仙桃山)</ref> 꼭대기에 올라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온 나라 안에 흘러 펼쳐지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잠에서 깬 뒤에 동생인 문명왕후에세 꿈 이야기를 했다. 문명왕후는 자신이 언니의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며 비단치마를 주었다. 며칠 뒤에 김유신이 뒷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金春秋)와 축국(蹴鞠)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김유신은 자신의 집으로 김춘추를 데리고 와서는 주연을 베풀며 맏누이인 보희에게 옷고름을 달게 했다. 하지만 보희는 마침 일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고 동생인 문명왕후가 대신 나와서 바느질을 하였다. 김춘추는 그녀의 어여쁜 모습에 반하여 곧 청혼을 하여 결혼하였고, 그녀는 곧바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뒷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金法敏)이다.|《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
[[진덕여왕]] 4년([[650년]])<ref group="주">[[진덕여왕]] 4년부터 [[신라]]의 독자 연호가 아닌 [[당나라|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ref>에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당 고종|고종]]에게 〈[[한국의 삼국시대 시가#치당태평송|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법민에게 태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1">《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661)</ref>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ref name="삼국사기-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2년(655)</ref> [[태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멸망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이어 [[태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원년([[661년]]) [[6월]] 상중(喪中)이던 문무왕에게 당은 [[고구려]]를 치는 당군과 [[웅진도독부]]에 고립된 당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신라]]가 [[백제]] 부흥군(復興軍)을 진압하는데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해왔다. 평양으로 먼저 군량을 보내면 웅진으로 통하는 물자 수송로가 끊어질 것이고, 그 수송로가 끊어지면 [[웅진도독부]]의 당군들은 [[백제]]군에게 궤멸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왕은 8월에 직접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시이곡정(始飴谷停)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대전 계족산성|옹산성]](甕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백제 부흥군을 9월 25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해 27일에 함락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1"/>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웅현성(熊峴城)을 쌓아 [[웅진도독부]]로 통하는 군량수송로를 다시 개통시킨 뒤, 상주(上州) 총관(摠管) 품일(品日)과 일모산군(一牟山郡) 태수 대당(大幢)·사시산군(沙尸山郡) 태수 철천(哲川)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우술성]](雨述城)을 쳐서 또 함락시키고, [[10월 29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당의 조문 사절을 맞이했다. 한편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소정방]]이 보낸 함자도(含資道) 총관(摠管) 유덕민(劉德敏)<ref group="주">《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대감(大監) 문천(文泉)이라 표기됨</ref>이 와서 문무왕에게 당군에 대한 군량 지원을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1"/> 왕은 이듬해 1월 [[김유신]]으로 하여금 수레 2천여 대에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이들 군은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고 귀환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2">《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2년(662)</ref>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남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백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반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남생]]이 아우 [[연남건|남건]]과 [[연남산|남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식,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8년([[668년]]) 2월 [[이세적|이적]] 등이 이끄는 당군이 고구려의 [[부여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연남건|남건]]이 5만의 군사로 그 땅을 수복하려 애썼지만 설하수(薛賀水)에서 3만 명이 죽는 대패를 당하고 퇴각했다.<ref name="고구려-668">《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668)</ref> 3월에 신라는 북방의 요충지였던 비열홀(比列忽, 비열성)에 주를 설치하고 파진찬 용문(龍文)을 총관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8">《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668)</ref> [[6월 12일]]에{{refn|group=주|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인궤가 신라군과 함께 평양으로 간 것이 5월이라고 기록돼 있다.<ref name="삼국사기-671"/>}} 당의 우상(右相)<ref group="주">정확한 관직명은 요동도안무부대사(遼東道安撫副大使)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 겸 웅진도안무대사(熊津道安撫大使) 행군총관(行軍摠管) 우상(右相) 검교태자좌중호(檢校太子左中護) 상주국(上柱國) 낙성현개국남(樂城縣開國男)이다.</ref> 유인궤가 당 고종의 칙명을 받들고 신라의 숙위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자 왕은 [[각간]] 인문을 보내 성대한 예식으로 맞이하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에 유인궤는 약속을 마치고 신라의 선발군을 이끌고 고구려 땅인 천강(泉岡)으로 향하고, 문무왕 역시 [[6월 21일]]에 한성주에서 후발부대를 사열했다. 이때 신라군의 주요 장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때 대당대총관으로 임명된 대각간 김유신은 풍병(風病) 때문에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고 수도 서라벌에 남았고,<ref name="김유신-하">《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ref> 일찍이 백제를 치는데 선두로 나섰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지도부의 요직을 맡아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임명된 관직으로 추정한 진격루트는 한성주(한산주)와 비열주(비열홀주) 그리고 하서주(하슬라주) 세 곳으로, 수도 서라벌에서 조직된 군사들은 닷새 후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출처|날짜=2018-06-28}} [[6월 22일]]에 유인원이 신라의 귀간(貴干) 미힐(未肹)을 보내어 고구려의 대곡성(大谷城)과 한성(漢城) 등 2군 12성이 항복해왔음을 알렸고, 신라군 장수인 인문·천존·도유 등은 일선주 등 일곱 군과 한성주의 병마를 이끌고 당의 군영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6월 27일]]에는 드디어 문무왕 자신이 서라벌을 출발했고, 이틀 뒤에는 여러 도의 총관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당군 총사령관 이적을 만난 신라의 김인문은 고구려의 평양 북쪽 20리 되는 지점인 영류산(嬰留山) 아래까지 진군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8"/>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태·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상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고, 이적의 태도가 신라 군영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상 신라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온 문무왕은 [[10월 22일]]에 논공행상을 벌여 서라벌에 남아있던 김유신에게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와 식읍 500호, 궤장을 하사하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에게도 각각 위계 한 등급씩을 올려 주었다.<ref name="김유신-하"/> 또한 인문을 대각간, 다른 이찬과 장군들을 모두 각간으로 삼고 소판 이하에게는 모두 관위 1등급씩 더해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10월 25일]]에 왕은 욕돌역(褥突驛)에 이르러 국원사신(國原仕臣) 용장(龍長) 대아찬에게 사적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천 명을 포로로 거느리고 [[11월 5일]]에 서라벌로 들어온 왕은 다음날 문무 관료들과 함께 선조묘에 전쟁이 끝났음을 고하고, [[11월 18일]]에는 전사자들의 신분에 맞춰 부의(賻儀)를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68"/>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문무왕은 말을 기르는 목장 174곳을 소내(所內)에 22곳, 관청에 10곳을 속하게 하고 김유신을 비롯한 고위 진골 대신들과 여러 관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또한 백제의 여자를 아내로 삼은 한성도독 박도유가 웅진도독부와 내통해 신라의 병기를 훔쳐다 한 주(州)의 땅을 습격하는 난을 일으키려다 계획이 발각되어, 도유는 처형당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1년([[671년]])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침공하였다. 당의 지휘를 받던 말갈병이 설구성(舌口城)을 포위했다가 물러가는 것을 후방에서 쳐서 3백 명을 죽이고, 당군이 백제를 구원하러 올 것에 대비해 대아찬 진공(眞功) 등을 시켜 수군으로 옹포(甕浦)를 지키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또한 6월에 장군인 화랑 죽지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했으며, 당병과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죽이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의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거두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7월에 당은 행군총관 설인귀를 신라에 파견했는데, 왕은 사신을 맞아 위로하는 대신 강가의 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에 군사를 숨기고 강 어귀에는 무기를 감춰둔 채, 수풀 사이를 오가며 틈을 노려 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인귀는 26일에 당이 신라를 도와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해주었는데 신라가 그 은혜를 잊고, 고구려를 도와 당을 치고 있다며 항의하는 내용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당이 신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은근히 협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법사 임윤(琳潤)을 시켜 왕에게 보냈다.<ref name="삼국사기-671"/> 문무왕은 설인귀에게 신라가 선왕 때로부터 당에 협조하고 여러 번 신라의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지경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고를 내어 번번이 당군을 지원했던 사실과 당이 처음 신라와 했던 약속들을 어기고 신라가 점령하여 지배하던 땅을 무단으로 거둬들인 일을 비난하며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날, 백제 수도였던 사비성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고 아찬 진왕(眞王)을 도독으로 삼았다. [[10월 6일]] 당의 조운선(漕運船)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郞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1"/>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상이었던 태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백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15년([[675년]]) 봄 정월에 구리로 각 관청 및 주·군의 인장(印章)을 만들어 지급했다.<ref name="삼국사기-675">《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5년(675)</ref> 2월에 당의 장수 유인궤가 칠중성(七重城)에서 우리 군사를 깨뜨린 뒤 돌아가고, 이근행이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임명되었다. 문무왕은 다시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유감을 표명했고, 당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서 깎아 없앴던 문무왕의 관작을 회복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75"/> 이때에는 대부분의 백제령이 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고구려 남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주와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에 문무왕은 당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아홉 부대의 병사를 내보내 막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5"/> 과연 가을 9월, 당은 설인귀를 대장으로 하는 군사를 신라에 보내 천성(泉城)을 치게 했는데, 이때 당에 숙위하고 있던 풍훈(風訓)<ref group="주">앞서 문무왕에 의해 처형당한 김진주(金眞珠)의 아들이다.</ref>이 향도(鄕導)로서 당을 도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그러나 신라의 장군 문훈(文訓) 등의 선전으로 당병 1,400명을 죽이고 그 병선 40척을 빼앗았으며,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치면서 내버리고 간 전마 1천 필까지 신라의 손에 들어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9월 29일]]에는 이근행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매초성(買肖城)에 진을 쳤다. 신라군이 이를 공격하자 당군은 말 30,380필과 무수한 병기를 남겨 놓고 도망갔다.<ref name="삼국사기-675"/>{{refn|group=주|다만 이러한 전쟁 와중에도 신라는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있었다.<ref name="삼국사기-675"/>}} 나아가 안북하(安北河)를 따라 관(關)과 성을 설치하고 또 철관성(鐵關城)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해에 신라와 당이 벌인 크고 작은 싸움이 18번인데, 모두 신라가 이겨서 당병 6,047명을 죽이고 말 200필을 얻었다고 한다.<ref group="주">하지만 아달성(阿達城)이나 적목성(赤木城)에서는 성을 침공한 말갈병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약탈당했으며, 아달성주 소나(素那)나 적목현령 탈기(脫起)가 이때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석현성(石峴城)이 당병에게 함락되었을 때는 현령 선백(仙伯)과 실모(悉毛) 등이 전사했고, 칠중성은 당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간신히 함락은 면했지만 소수(小守) 유동(儒冬)이 전사하는 등, 신라측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에도 당은 다시 도림성(道臨城)을 함락시켰다.</ref>
- 연정(우주소녀) . . . . 72회 일치
[[분류:I.O.I]][[분류:우주소녀]][[분류:1999년 출생]][[분류:장성군 출신 인물]][[분류:아이돌 막내]][[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상위 문서: [[우주소녀]], [[I.O.I]], [[프로듀스 101/참가자]]
||<#FFA38B><:> '''{{{#white 이름}}}''' ||<(> 유연정(兪璉靜)[* 한자 훈음은 호련 연, 고요할 정.] / Yoo Yeonjung ||
||<#FFA38B><:> '''{{{#white 별명}}}''' ||<(> 에너자이저, 사이다, 사이다 보컬, '''뎡''', '''연뎡''', 백곰, 머장, 뎡리오, 금붕어, 장성독사, 꼬밍이, 예삐 ||
'''[[IOI]]의 메인보컬이자 [[우주소녀]]의 메인보컬.'''
인터넷상에서의 별명은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연기자 라미란. 부모님도 라미란을 닮은 걸 인정했고, 이젠 이름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고 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194322&page=1230&exception_mode=recommend|어린 시절 사진]]. 그래서 모녀관계 의혹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TV에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 본인도 이 별명에 대해 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장의 야민정음을 합친 '라머장', '머장님'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배성재의 텐에서 이 별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쪽은 야민정음인지라 방송에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제작진이 이를 사용해 버렸다.[* [[http://oi63.tinypic.com/mljq83.jpg|#]]] 그러나, '''다이어트를 한 후에는 라미란과 닮지 않았다'''(???) 다이어트 성공후 새로운 리즈를 갱신했다. 라미란 외에는 같은 팀 멤버인 수빈과도 닮았는데, 수빈이 <비밀이야> 활동부터 스타일을 단발로 바꾼 게 둘의 캐릭터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다.
중2때 제21회 전라남도 청소년 종합 예술제에서 대중가요 개인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참가곡은 나비의 <길에서>. 22회에도 참가했다. 참가곡은 JOO의 <나쁜남자>.
이후, 중3때 JYP 연습생 공채 11기 오디션에 지원했다. 지원 곡은 JOO의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60337687&rtes=y|나쁜남자]].
'''메인보컬'''이라는 포지션에 걸맞게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발성이 특징. 타고난 하드웨어가 좋아 성량과 음역대 모두 월등해서[*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Jj7fwJfteiQ|다만세 고음 애드립]] 당시 즉석에서 '''4옥타브 도'''를 뽑아낼 만큼 폭넓은 음역대를 자랑한다. [[https://youtu.be/OoO2vnElsKk|유연정 옥타브 측정]]] 장점인 고음뿐만 아니라, [[https://tv.naver.com/v/851407|SK텔레콤 토닥토닥 라이브]]에서 볼 수 있듯 저음역대의 노래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또한 [[벤(한국 가수)|벤]]의 <꿈처럼>을 부르며 [[발라드]]와 같은 장르도 완벽하게 부를 수 있다는게 이미 입증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Nnb1hghZDQw|#]] [[https://youtu.be/LcPN92043ds|원곡]]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노래를 부를 때 특별한 기교나 습관을 넣는, 이른바 '자기화' 시키지 않는다는 것 역시 특징으로 꼽힌다. 어떤 노래라도 원곡의 분위기에 맞게 부르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는 면에서는 정말 뛰어나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했을 때는 특정 장르의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간혹 나왔지만 생방송 무대에서 보여준 <Crush> 무대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가 사라진 상태. 어떤 류의 노래를 불러도 거부감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걸그룹에서 메인보컬을하기에 최적화된 보컬'''이란 평. 감성 전달력이 약하지 않느냐는 평은 적지 않지만 전달력이 마냥 약한 건 아닌지라 자기만의 특색과 전달력은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가면 해결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어린 나이라는 걸 감안하면 오래지나지 않아 자기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뒤로부터 "연정의 특색이 이거였구나."라는 반응이 많아져서, 이전까지는 되려 저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데, 방송에서 직접 언급했듯이 '''그 전까지는 방송에서 솔로곡을 완창한 적이 없었다.''' 평가할 만한 솔로 무대가 유튜브 영상 외에 없었으니 솔로로서의 평가가 박했던 것이다.
가창력이 워낙 빼어나서 많이 가려져 있지만 춤 실력 또한 의외로 출중하다. 프로듀스 101의 지원서에도 댄스가 특기라 적어뒀으며 <다시 만난 세계>나 <같은 곳에서>의 직캠을 보면 '춤선이 은근히 곱다'는 반응이 제법 나온다. 애초에 [[SM엔터테인먼트]]에 보컬이 아닌 '''댄스 특기자'''로 지원했는데, SM엔터테인먼트에 노래를 잘하는 인재가 많은 걸 알고는 보컬 연습에 집중해 지금의 실력을 얻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방송에서 보여주는 활발한 모습과 입담 덕에 의외의 예능 특화 포지션이라는 평도 듣고 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70449|#1]],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1220202|#2]] 이쯤 되면 '''진정한 인간승리자'''라 봐야 할 듯.
* [[https://www.youtube.com/watch?v=OPDOCW1iytc|<나쁜남자(JOO)>]] - JYP 11기 공채 오디션 지원[* 참고로 이 기수에서 최종 입상한 이 중 한명이 에이프릴의 나은이다.]
'''개별 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 세정과 미나, 채연은 아이오아이의 첫 완전체 활동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원 소속사들의 무리한 욕심으로 개별활동을 시작했기에 I.O.I 팬들의 불안감과 배신감이 상당히 컸고, 그렇게 좋지 않은 여론을 뒤로 하고 무리하게 개별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못했기에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반면 연정은 유닛 활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팬들이 어느 정도는 개별 활동을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무엇보다 스타쉽에서 작정하고 연정을 메인으로 팍팍 밀어주면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YMC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속사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발표를 빌려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유연정은 다양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을 봤고 노래 외에도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스타쉽은 "소속사로 돌아가 I.O.I를 통해 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연습을 할 예정이며 향후 발전된 모습으로 완전체 활동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주소녀에 합류--
10월 17일 《miss me?》를 통해 I.O.I 완전체로 컴백했다.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주어진 파트가 메인보컬치고 상당히 적다는 것.''' 이는 박진영이 프로듀서를 맡아 생긴 변화이다. JYP는 난이도 있는 박자와 중음역대 위주의 곡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유연정은 깔끔하고 파워풀한 발성과 고음역대의 애드리브로 곡을 이끌어가다보니 '''JYP 스타일과는 상극'''과도 같기 때문이다.[* 또다른 메인보컬인 김세정은 반대로 중저음대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후렴부와 애드리브 파트가 많이 늘었다. 김세정이 녹음할 때 [[박진영]]이 감탄하는 장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I.O.I 활동 최초로 메인 파트를 맡지 못하고 소미와 세정에게 그 역할을 넘기게 되었다.
나중에 라디오에서 시험 잘 봤느냐는 청취자의 질문에 "잘 풀고 잘 찍었다"(....)라고 답했다.
5월 11일 박지윤의 가요광장에 출연해서 씨스타의 <I Swear>를 혼자서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u8lfv4W3Ng4&feature=youtu.be|#]] 같은 날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에서는 정채연의 별명이 왜 댕채냐는 질문에 '''멍청해서'''라고 돌직구를 날리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 김소혜의 볼을 모아 붕어를 만드는가 하면[* 링크의 중간에 소혜의 볼을 잡은 손이 유연정의 손이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imsohye&no=169117&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EA%BF%88%EA%BE%B8%EB%9D%BC|#]] 김청하의 앞머리를 매만져주며 멤버들과 활발하게 꽁냥거렸다. 또한 발라드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김도연과 함께 오마이걸의 '한 발짝 두 발짝'의 후렴구를 부르며 청아한 화음을 들려주었다.
I.O.I의 첫 앨범 <Crush> 뮤비에서 세정을 중앙에서 팔로 밀어내거나 아예 중앙을 뚫고 오는 등 지나치게 센터 자리를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992762&page=1&exception_mode=recommend| <Crush> 뮤비 센터 분석글(프로듀스 101 갤러리)]]. 간간히 나오거나 아예 제대로 비춰주지도 않는 다른 멤버에 비해 '''유연정이 압도적으로 분량이 많다.''' 다만 세정을 밀쳤다며 악플이 많은 것에는 반론이 있다.~~무슨 반론?~~ 이후 새로 편집된 뮤직비디오가 을라왔으며, 다른 멤버들의 원샷이 추가되어 연정의 센터 분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네티즌들도 대부분 "뮤비를 처음부터 이렇게 제대로 만들지 그랬냐"는 반응이다.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완전체 활동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개별활동 및 여타 방송 출연 등으로 아쉬움을 달랜 경우. 특히 스타쉽에서 연정에게 많은 지원과 푸쉬를 해주었고, 같은 시기 I.O.I 유닛 활동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팬들이 연정의 개별 활동을 어느 정도는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도 개별활동이 성공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본인의 장기인 가창력을 수록곡 및 방송 활동을 통해 선보임으로서 기존의 호불호가 갈리던 시선들을 좋은 쪽으로 잘 바꿔놓았다. 그 후 우주소녀에 완전히 합류한 이후에도 I.O.I 활동을 바탕으로 높은 인지도와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우주소녀에서 가장 주목받는 멤버 중 한 명이다.[* 우주소녀 합류후를 보면 연정을 데뷔조에서 탈락시켰던 스타쉽이 맞나 할정도로 연정에게 매우 푸쉬를 해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우주소녀 합류 후 첫 엘범 타이틀곡인 '비밀이야' 멤버별 파트를 보면 기존 보컬라인인 다영, 설아, 수빈은 물론 기존 메인보컬인 다원의 파트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파트를 맡게 되었으며, 연정의 합류 후 우주소녀의 보컬라인이 더욱더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각종 예능에서도 성소, 다영 다음으로 가장 분량을 많이 챙기는 멤버 중 한명이다.]
- 윤채경(가수) . . . . 72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5, top1=APRIL, top2=I.B.I, top3=C.I.V.A, top4=퓨리티, top5=프로듀스 101/참가자)]
||<bgcolor=#FF69B4><:>'''{{{#ffffff 학력}}}''' ||<(>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영상연기학과 (재학) ||
||<bgcolor=#FF69B4><:>'''{{{#white 별명}}}''' ||<(> '''빛채경'''[* 프로듀스 101 5화 몰래카메라 선공개 영상 중 자신이 이미 빚더미에 앉아 있다고 언급하여 '빚채경'이라 불린 적이 있다. 이후 팬들은 앞으로 빛나는 채경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빚->빛으로 바꾸어 '빛채경'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프로듀스 101이 끝나고 윤채경은 빛채경이란 별명을 지어준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하며 빛채경이라는 이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왕언니''', 인성갑, 공주(공듀), 울면서 달리는 소녀, [[개복치|채복치]][*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ibi&no=1895&page=1|#]] 생긴것도 그렇지만 개복치가 알 3억개 낳아서 많이 죽고 단 2마리 정도만 어른이 되는 것마저 윤채경의 일생을 닮았다.], 앨리슈[* 이해인과 이수현의 V앱에서 윤채경 본인이 저닉으로 채팅을 하며 --어그로--이목을 끈덕에.. [[http://m.dcinside.com/view.php?id=chaekyoung&no=134480|마지막에서 두번째 사진을 잘보자]]. 참고로 에이프릴 공식 카페 채팅방에서 본인이 앨리슈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프로데뷔러[* APRIL 컴백 직후 이 문장은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인증했다.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5076663&keyword=%C3%A4%B0%E6|##]]], 프로빈말러[*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출연 당시 [[김소희(1995)|빈말을 주옥같이 쏟아내며]] 붙은 별명이다.], 빨래돌[* [[SBS]] [[정글의 법칙]] 출연 당시 병만족의 옷을 걷어 방망이로 야무지게 손빨래 하는 모습이 마치 옛날 동네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를 연상시키며 '빨래돌(빨래하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망국의공주 ||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절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반인으로 남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돌계의 [[명불허전]] 프로데뷔러'''[*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자국도 아닌 [[일본|외국]]에서 첫 데뷔해서 ~~일본어까지 배워 가며~~ 현지 [[https://www.youtube.com/watch?v=FcNIk35AVfc|예능]]에 '''출연'''하는 등 활약했으나 팀은 해체되었고, 같이 [[안소진|한솥밥을 먹던 동료]]가 [[자살|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것을 겪어야 했으며, 자신보다 더 어리고 연습 기간이 짧은 후배 연습생이 먼저 데뷔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성인이라도 멘탈이 몇 번은 나갔을 상황인데, 채경은 이 모든 것을 '''20세가 되기 전에 겪었다.''' 20세가 된 후에도 [[프로듀스 101|101명이나 참가하는 걸그룹 서바이벌]]에 참가해 [[윤채경/프로듀스 101#s-2.1|실력에 대한 혹평]]과 ~~결국에는 득이 된 몰래카메라와~~ [[프로듀스 101/6회#s-5.3|왕따 논란]]까지 견뎌낸 인물이다. 프로듀스 101에 참가한 많은 연습생들이 증언했다시피 프로듀스 101은 엄청난 멘탈과 실력으로 정신적, 신체적 노고를 이겨내야 하는 방송인데,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드디어 데뷔하여 인지도를 얻고 그룹에 안착했으니 진정한 인간 승리자~~또는 아이돌계의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데뷔러~~라 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rk83tDl7U|매 순간이 힘들었어요]]]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이자 리더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 새로 합류한 멤버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친화력과 노련함으로 어색함 없이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이후 [[이현주(배우)|현주]]가 2016년 10월 [[APRIL]]에서 연기자 전향을 위해 탈퇴하자, [[레이첼(APRIL)|레이첼]]과 함께 2016년 11월 11일 APRIL에 합류했다. 덕분에 [[전소민(KARD)|전소민]]의 탈퇴 후 1년 만에 [[퓨리티]] 출신이자 1996년생 멤버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채경은 [[C.I.V.A]], [[I.B.I]], [[APRIL]] 총 3개의 걸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물론 [[C.I.V.A]]와 [[I.B.I]]는 프로젝트 그룹이며, 정식 그룹은 [[APRIL]]뿐이다. 그리고 채경의 APRIL 합류를 기점으로 C.I.V.A와 I.B.I의 활동은 사실상 멈춰버린 상태. 아직까지 이들 활동에 대해서 [[DSP미디어]]나 본인이 부정적인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애매한 상태였으며 관련된 언급 중 Prelude 쇼케이스에서 한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은 이들 활동이 결정된 것은 없다'는 듯. 그러나 2017년이 저물고 2018년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을 봐서는 C.I.V.A와 I.B.I의 활동 재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보인다.]
각 그룹은 각자의 컨셉트에 따라 멤버를 선정하고 적으면 수 주, 많으면 수 년 간 트레이닝을 시켜 데뷔시킨다. 실력이 뛰어나도 해당그룹의 컨셉트에 맞지 않으면 멤버가 될 수 없다. [[퓨리티]]의 ~~애기애기한~~ 아직 미성숙한 일본풍 성장형 컨셉트와, 이미 정상급 걸그룹인 카라의 멤버가 되기 위한 컨셉트는 정말 극과 극이며, 나름 전연령 가능 ~~청정돌~~ 컨셉트인 [[APRIL]]과 이름부터가 방통위의 제제를 받았고 ~~[[https://youtu.be/h8El2kWazIU|뮤비]]도 그렇지만~~ [[https://youtu.be/tsz-C8coKJg|난리부르스 풀파티]]에 초대받을 정도의 성인취향 [[C.I.V.A]]의 컨셉트. 서로 상이한 이 모든 컨셉트의 걸그룹에 모두 멤버로 발탁될 정도로 어떤 상황에도 적응 가능한, 그것이 타고난 재능이든 뼈를 깎는 노력이든 간에 '''그만한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번 데뷔한 멤버가 다른 그룹에 재데뷔하는것은 무척 어렵다.
[[퓨리티]]가 해체되고 [[카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탈락하고 [[APRIL]]에서는 멤버 최종 후보였지만 아쉽게 합류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과 [[C.I.V.A]], [[I.B.I]]등의 프로젝트 그룹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으며 많은 팬들을 얻었고, [[DSP미디어]]의 걸그룹이 되고 싶었던 본인의 꿈을 이루게되었다. [[APRIL]]의 새 멤버 2인 중 첫 번째로 언론에 공개되었다.[* 2016년 11월 11일 부로 [[이현주(배우)|이현주]]의 탈퇴 및 연기자 전향으로 인한 탈퇴 후에, 충원되는 첫번째 새 멤버로 [[APRIL]]에 합류하게 되었다.]
2016년 4월 4일 저녁, DSP에서 4월 5일에 [[허영지]], [[조시윤]]과 함께 네이버 [[V LIVE]]을 진행한다는 [[https://twitter.com/official_DSP/status/716923020594380801|트윗 공지가 올라왔다]]. 윤채경의 얼굴이 밝은 것으로 보아 [[프로듀스 101]]에서 탈락한 이후 마음을 많이 다스린 모양. 일단 아무런 소식이 없던 중에 [[DSP미디어]]가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어 윤채경의 팬들은 신나서 [[DSP미디어]]를 찬양하였다. [[http://vlive.tv/video/7091|♥영지가 생생하게 전하는 ★시윤x채경★의 모든 것]] ~~어서와. [[에이젝스|남자들]]이 [[PICK ME]] 춤 추는것은 처음보지?~~[* 에이젝스 멤버들이 [[PICK ME]] 댄스 도중 난입하여 같이했다. ~~[[DSP미디어]]가 갑자기 신경 쓰네?~~] [[V LIVE]] 방송 중 즉흥적으로 하트 150만개 공약 '''홍대에서 [[PICK ME]] 댄스'''가 성사되었다. --영지의 빅픽처, 설계갑, 찬양해 갓영지-- 하트 수는 방송 종료 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4월 7일자로 누적 200만을 돌파했다.
4월 17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kt wiz]]의 [[2016년 KBO 리그]] 경기에 [[조시윤]]과 함께 시구, 시타자로 참여하였다.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186458&redirect=true|채경이 시구, 시윤이 시타를 맡았다.]]
4월 22일, 오후 7시에 홍대 방송 200만 하트 돌파 공약을 실천하였다. [[http://vlive.tv/video/7606|♥조시윤채경♥ 하루하루♪ 행복하자♬]] 연습하여 준비한 <하루하루>, <양화대교> 두 곡 외에도 실시간 댓글로 신청곡을 받아 여러 곡을 짧게 불러주었다.
4월 25일, [[https://www.youtube.com/watch?v=mTzPnh0LmDM|프로듀스101'에 출연했던 두 소녀가 간절히 외칩니다]]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연예계의 특성상 소속사에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언론이나 연습생이 자의적으로 저런 영상을 만들었을 리 없기 때문에 이는 팬들에게 데뷔를 강하게 암시하는 메시지라고 추측된다.
랩 트레이닝 시간에 가사가 굉장히 잘 들리는 랩을 구사해서 트레이너인 [[전지윤]]을 --그리고 빛갤러들을-- 초토화시켰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fIet9908z5A&list=PLJWNkFAq75wDYVdbjsh68vSg-e6kPTPld|언제나 어디서나 날 따라다니는 이 스포뚜라이뚜 어딜 가나 죵숑시 식당 길거리까페 나이뚜]][* 42초부터 나온다.]-- --civa가 미쳤어요!!--
C.I.V.A 첫 번째 행사곡 녹음을 진행하다 김소희와 함께 귀신몰카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펑펑 울었던 김소희와 달리 윤채경은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현우와 이지혜가 LTE에 방문하여 이상민과 C.I.V.A 멤버들을 만난다. 가수는 예능을 나가면 안된다는 이상민 대표의 말에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백미. 이상민과 진영이 연기 트레이닝을 하면서 드라마 《차칸남자》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행사를 앞두고 C.I.V.A 멤버들은 LTE 월말평가를 받게 된다. 이때 학춤을 추면서 심사를 맡은 진영의 평을 듣는다. 이후 시청률 부진 문제로 인해 LTE 사람들은 방송국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게 된다.
LTE에 [[이해인(1994)|핸]], [[이수현(1996년 9월)|푼]]이 합류했다. 실제 절친인 이수현을 만나자 정말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음악의 신 2]]》에 [[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6061017534610207|한혜리도 참여한다고 한다.]] 이로써 '''[[김소희(1995)|퀵]][[채경(APRIL)|빛]][[한혜리|짹]][[이수현(1996년 9월)|푼]][[이해인(1994)|핸]]'''이 다시 한 방송에 모이게 됐다.[* 유감스럽게도 다섯이 한 자리에는 모이지 못했다. 한혜리는 8회에 참여했는데 8회에 푼핸이 나오지 않았다. 7회에서 넷은 한자리에 모였다. ~~다섯은 [[I.B.I|나중에]] 모인다.~~] 이날 C.I.V.A 멤버들은 여름 화보를 촬영하였다.
김태우가 나와 듀엣 부를 여가수를 찾는데 ‘하고 싶은 말’을 지금까지 배운 트레이닝을 응용하여 부른다. 진영이 드라마 촬영을 위해 빠지면서 프로듀서가 필요하자 이상민 대표는 용감한형제의 형이라는 사람을 데려온다. 이상민 대표가 알고 있는 용감한형제의 곡이 있냐고 묻자 ‘보름달’을 부른다. 결국 프로듀서는 이상민이 맡기로 한다.
탁재훈이 가게를 오픈하자 C.I.V.A는 데뷔를 앞둔 상황에서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앞에서 춤을 추게 된다. 그리고 음반 녹음 함께 그동안의 출연진이 총출동한 C.I.V.A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다. 그리고 윤채경의 생일이기도 한 7월 7일 디바의 노래 '왜 불러'를 리메이크한 음원이 발표되었다. [[C.I.V.A]] 문서 참고.
[[APRIL]]에는 빨리 녹아든 듯하다. 티저 공개 이후 공개된 영상에서 [[APRIL]]의 멤버들이 인사를 하는데 [[http://m.dcinside.com/view.php?id=produce101&no=2865205|하트를 굉장히 완벽한 모양으로 짓는다]]. 나이 때문에 그룹 색깔과 어울릴지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합류 후 매 앨범 컨셉을 그룹에 잘 묻어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나은]]과 함께 보컬라인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포지션에 있고, 경력 덕에 댄스실력도 준수한 편이라 실력 면에서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멤버라고 볼 수 있다. 비주얼에 있어서는 짙은 쌍꺼풀, 평소에는 오목조목해보이지만 미소가 환하게 드러나는 입술과 고운 옆태 등등 러블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맏언니지만 동생들한테 당해주기도 하고 같이 망가지기도 하고 전혀 꿀리지 않는 비글미를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지내는 타입이다. 물론 회사에 들어온지 가장 오래된 멤버이자 연장자로 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팀을 앞에서 잘 이끌어주는 맏언니로서 리더쉽 있는 모습도 있으며 소속사와 그룹 구성원 간의 창구 노릇을 하는 사실상 리더 역할도 하고 있다.
- 창원시 . . . . 72회 일치
[include(틀:경상남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C7242B> [[파일:libertykorealogo.jpg|width=20]] '''[[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21석}}}||
||<:>[[자유한국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C9151E; font-size: .8em"
||<:>[[자유한국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C9151E; font-size: .8em"
|| [[창원시 의창구|의창]]: [[박완수]]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합포]]: [[이주영(1951)|이주영]]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5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 [[창원시 마산회원구|마산회원]]: [[윤한홍]]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 [[창원시 진해구|진해]]: [[김성찬(군인)|김성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는 바둑판 모양의 주택가 '''설경'''.[* 창원지역은 '''정말로 눈이 안 오는 지역이다.''' 창원뿐만 아니라 [[부울경]] 쪽에는 거의 눈이 안 온다. 몇 년에 한 번씩 눈이 나풀거리기라도 하면 SNS에 마구 올라오며, 적설량이 3cm를 넘어가면 마산합포구 일대의 산복도로는 교통지옥이 되어버린다. 제설차 따위는 당연히 본 적도 없고, 사람들이 눈길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모른다. 체인이라는 것도 자동차 처음 살 때 끼워주지 않으면 구비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리고 눈이 1cm라도 쌓이면 무조건 휴교이다. 학교가 산이면 산일수록 휴교 확률이 높아지고 시험날이라도 선생님부터 등교가 불가능 수준이라 시험을 뒤로 미뤄버리거나 12시 등교해 시험을 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눈이 많이 내려 하루 이상 쌓여있던 날은 2015년 2월 이후로 없다(...)]
[[마스코트]] '피우미'. 통합 전 창원시의 캐릭터인 '창이와 원이'도 자전거 보관함 등에 간간히 쓰이고 있다. 심지어 마산, 진해 지역 자전거 보관함에는 현 창원시 로고에 창이와 원이가 쓰이고 있다! 통합 전 로고나 마스코트의 색상을 통해 유추해보자면 파란색이 구 마산, 녹색이 구 창원, 주황색이 구 진해를 뜻한다.
[[경상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상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한 지역이었으며, 개화기에 들어 행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하였다가 2010년 다시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역사]] 문서 참조.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하였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시/통합 이전|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되겠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되었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함안+마산+창원 이였고 창원이 밀었던 모델이 마산 + 창원+ 진해 였다. 마산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동력을 얻을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의 개발등 개발지역이 남아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 메리트를 찾을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되었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미루고 있어 결정이 안 나고 있다. 한때 창원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355831|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 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물론 통합 창원시청은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을 원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모순|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순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구 마산, 진해 측과 구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다.
다만 위에서 나왔듯 타 시군에서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명확히 나타내기 위해 시군명이 아닌 하위 지명을 말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산, 진해는 여타 시군의 하위지명보다 인지도가 높은 편인 까닭에 외지인들도 웬만하면 거의 알아듣는다는 점.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여튼 현재 창원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광역시 승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창원시가 경상남도에서 빠져나간다면 경제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경남은 창원이 독립하고자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상 수원과 더불어 광역시 승격은 매우 힘들다. 다만 통합으로 인한 혜택을 몇 가지 받기는 했지만 역시나 시 규모에 걸맞는 권한을 못 가졌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비슷한 처지인 [[수원시|수원]], [[성남시|성남]], [[고양시|고양]] 등과 더불어 새로운 자치단체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 듯. 최근 여러번의 선거를 거치며 광역시로 승격하자는 슬로건과 플래카드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긴 한데, 이미 언급했듯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광역시]] 참고.
- 최광식 . . . . 72회 일치
{{공직자 정보
| 배우자 =
| 자녀 =
2011년 [[대한민국의 문화재청장|문화재청장]]을 역임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30/2011083002044.html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조선일보》2011년 8월 30일</ref><ref>[http://media.paran.com/news/view.kth?dirnews=3065334&year=2011 최광식 후보자, "영남·소망교회 출신 아니다"]《머니투데이》2011년 9월 15일</ref>
2011년 9월 20일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20/0200000000AKR20110920113800005.HTML 최광식 "전통문화의 현대화·세계화에 역점"]《연합뉴스》2011년 9월 20일 정천기 기자</ref>
*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민주당은 고려대 교수 재직 중 쓴 일부 논문의 자기표절 및 중복게재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한나라당 [[심재철 (1958년)|심재철]] 의원 역시 “중복게재가 맞다”, “인정하라”고 말했다.<ref>[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667 야당, 최광식 문화부 장관 후보자는 “부적격”]《미디어스》2011년 9월 16일 권순택 기자</ref><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87849 최광식·임채민 장관 후보자 자질·도덕성 검증]《SBS뉴스》2011년 9월 15일 김지성 기자</ref>
이에 대해 최 후보자는 “인용부호를 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지만 30여 페이지 중 한 페이지를 인용한 것은 자기표절이 아니다”라고 해명하였다.<ref>[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105891 임채민·최광식 인사청문회…도덕성·'낙하산' 논란]《MBN뉴스》2011년 9월 15일 이상민 기자</ref><ref>[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781046596380448&SCD=&DCD=A01503 최광식, 논문 이중게재.."불찰이지만 이중게재는 아냐"]《이데일리》2011년 9월 15일 나원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546.html 최광식 장관후보 ‘논문 이중게재’ 의혹]《한겨레》2011년 9월 8일 최성진 기자</ref><ref>[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2926338_5786.html 임채민·최광식 인사청문회‥도덕성 집중 검증]《MBC뉴스》2011년 9월 15일 박찬정 기자</ref>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2007년 최 후보자가 개설한 고려대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에 이 대통령이 등록했고, 최 후보자는 이 대통령 대선캠프 자문위원이었다”며 “낙하산·보은인사”라고 비판했다.<ref>[http://www.vop.co.kr/V00000432536.html 최광식 후보자 '낙하산 인사' '제주 해군기지'에 '진땀']《민중의소리》2011년 9월 16일 김도균 기자</ref><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91662 최광식 내정자, '초고속 승진' 도마 위]《뉴데일리》2011년 9월 15일 최유경 기자</ref>
[[허원제]] 한나라당 의원은 “교수에서 장관 내정까지 걸린 시간은 3년 반에 불과하다”며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이라 발탁됐다는 말도 있다”고 지적했다.<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5000197 최광식 '초고속 승진', 임채민 '전문성 결여' 도마위]《아주경제》2011년 9월 15일 정경진 기자</ref>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야당에선 낙하산 인사라고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장에서 문화재청, 문화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말 그대로 승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f>[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2598 “최광식, ‘묻지마 청장’ 이어 ‘낙하산 장관’”]《PD저널》2011년 9월 15일 김세옥 기자</ref>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은 "특정 대학교를 운운하면서 거기다 화살을 쏟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공직사회에 K대보다 S대가 더 많은데 그럼 S대는 다 낙하산이냐"며 반대 의원들을 꼬집었다.<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267560&thread=11r04 최광식 내정자=낙하산 인사 '종결자']《아시아뉴스통신》2011년 9월 15일 노호근 기자</ref>
최 후보자는 “고려대 (출신) 30만명 중 한 명이고, 고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장관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152206025&code=910402 최광식 후보 ‘초고속 승진·해군기지 허가’ 도마에]《경향신문》2011년 9월 15일 임지선 기자</ref>
공직에 있던 3년 6개월간 외부 강의를 통해 부수입이 총 4,486만원, 한 달 평균 106만이 넘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ref>[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68 최광식 문광부장관 강의평가 하위권 맴돌아]《제주환경일보》2011년 9월 13일 김태홍 기자</ref><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001 "최광식 후보자, 공직재직 중 외부강의로 4,500만원 벌어"]《뉴스제주》2011년 9월 13일 고병택 기자</ref>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외부강의를 너무 많이 하는 등 경력관리에 너무 집착한다는 평이 있다"고 말했다.<ref>[http://www.idaegu.co.kr/new_gisa.html?uid=235241&part=%C1%A4%C4%A1http://www.idaegu.co.kr/new_gisa.html?uid=235241&part=%C1%A4%C4%A1 임채민 복지, 최광식 문체 청문회]《대구신문》2011년 9월 15일 장원규 기자</ref>
이에 대해 최 후보자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과 시간을 피해 특강했다”고 설명했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60581 최광식 ´초고속 엘리베이터 승진´ 논란]《스팟뉴스》2011년 9월 16일</ref>
김제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문화재청장 시절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 승인과 관련‘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하 ’매장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부지에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혈주거지(움집터), 유구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해군 측의 공사를 중지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일부 조사완료구역에 대해서는 공사 시행을 승인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ref>[http://www.newsjeju.net/news/articleView.html?idxno=69369 최광식 '제주해군기지 책임론' 유탄 맞을 듯]《뉴스제주》2011년 9월 14일 고병택 기자</ref><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297 최광식 후보자 ‘제주해군기지 유탄’ 맞나?]《제주의소리》2011년 9월 14일 좌용철 기자</ref><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4000169 최광식 장관후보,‘제주해군기지 유탄’맞나 ?]《아주경제》2011년 9월 14일 박현주 기자</ref>
매장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시공사는 매장문화재를 발견한 때에는 즉시 공사를 중지해야 하고, 전체 문화재 발굴조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공사를 시행할 수 없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194 최광식 문체부 장관 내정자, 제주해군기지 ‘유탄 맞나’]《제주투데이》2011년 9월 14일 강한성 기자</ref>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구려재단 상임이사로 재직시 입길에 올랐던 부실 강의를 지적했다. 후보자는 2005년 1학기부터 2007년 2학기까지의 당시 학생들이 매기는 강의평가에서도 낙제점(F)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 후보자는 “강의평가는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며 “점수가 안 좋으면 강의평가가 안 좋을 때도 있다”고 해명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97370 "최광식 후보 MB캠프출신 쑥스럽지 않나"]《미디어오늘》2011년 9월 15일 조수경 기자</ref>
- 킹덤/526화 . . . . 72회 일치
* [[왕분]]은 [[마남자]]를 상대로도 놀라운 기량을 펼치며 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그의 창술은 이미 위화룡 [[자백(킹덤)|자백]]에 필적, 그 이상의 경지.
* 마남자는 퇴각할 시점이 다가오는 데다 왕분의 창술까지 놀라운 수준이라 내심 당황하나 아직 제대로 철추를 먹여주지 못했다며 굴하지 않고 맞선다.
* 마남자가 불시에 창을 내던져 왕분의 헛점을 유도고 맨손으로 그를 낚아채 말에서 떨어뜨리며 육박전으로 유도한다. 이 변칙적인 공격으로 마남자가 우세해진다.
* 그러나 곧바로 나타난 [[아광]]에 의해 왕분과의 승부는 중단, 마남자는 그의 기습을 받았으면서도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친다.
* 아광은 마남자가 도망도 치지 못할 거라 하나 전황이 급변, 마남자군의 2진이 합류하고 [[악영]]군이 전열을 정비하며 상황이 크게 변한다.
* [[왕분]]의 창이 뱀의 혀처럼 유연하게 날아들었다. [[마남자]]는 변화무쌍하게 닥쳐오는 왕분의 창을 가까스로 막았다. 한 번 공격을 허용하자 왕분의 공세는 파도처럼 밀려들어서 마남자가 공격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화려한 창솜씨에 적과 아군 구분 없이 시선을 빼앗긴다.
* 마침내 왕분이 크게 지르자 마남자의 거구가 휘청이며 크게 물러난다. 진군 진영을 무인지경으로 휘저어왔던 마남자의 무예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 옥봉대의 장교들은 눈 앞의 적도 잊어버리고 왕분의 눈부신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왕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위화룡 [[자백(킹덤)|자백]]. 왕분은 본래 자신의 기교와 속도에 더해 이제 파괴력은 그 자백을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파괴력까지 습득한 지금의 왕분은 분명 자백 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장교들이 입을 모은다. 함께 있던 왕분의 부장 [[반양]] 또한 의견을 같이 했다. 자백을 꺾고 더욱 성장한 왕분의 창술은 분명 중화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지다.
* 설마했던 마남자의 고전. 그의 부하들이 호들갑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남자는 곧 자세를 고쳐잡으며 부하들의 수선을 물리쳤다. 여전한 자신이 엿보였다. 아직 자신은 한 방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로써도 한 가지는 인정했다. 이 창잡이, 왕분 같은 자는 처음이다. 보고로 들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 무예는 더욱 놀랄만했다. 마남자가 그저 창을 들어오기만 해도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든 속사가 날아들었다. 왕분은 마남자가 간격을 잡지 못하게 철통같이 견제하고 있었다. 이것도 조금 더 겨루다 보면 눈에 익을 것이고, 그럼 어떻게든 해볼 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시간. 부하가 시간이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있는 곳은 적진 한 복판. 오래 시간을 끌 수록 불리해지는게 당연하다. 부하들이 잇따라 철수를 진언했다. 그렇다면 마남자가 여기서 승부를 접고 돌아갈 것인가?
>이놈에게는 아직 이 마남자의
마남자가 노성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왕분이 한 수 빠른 견제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우가 달랐다. 마남자는 자신의 창을 왕분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 왕분이 그정도로 당황할 장수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창을 쳐내는 순간, 마남자가 그때를 노렸다. 그의 손이 왕분의 팔을 낚아챘다. 예상 밖의 실책. 반양이 경악하고 왕분 또한 당황한 기색이다.
* 마남자는 왕분을 붙잡은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 육중한 무게에 왕분이 말에서 끌어내려졌다. 마남자는 왕분의 몸 위로 덮치며 떨어지는 힘을 실어 머리를 내리쳤다. 간발의 차. 왕분이 고개를 뺐다. 그러나 창을 놓친 데다 마남자의 밑에 깔렸다.
* 왕분도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땅바닥을 때린 마남자의 팔을 휘감아 부러뜨리려 했지만 마남자가 금새 뿌리쳤다. 멀찍이 밀쳐진 왕분. 마남자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도 대응한데다 자신의 주먹까지 피한 것에 감탄한다.
>흉노의 인간같지 않은 강자들의 머리를 이걸로 몇 명이나 때려부쉈는데 말이다.
왕분이 자세를 고쳐 일어났다. 하지만 마남자에겐 다시 창이 주어졌다. 그의 부하가 눈치 빠르게 창을 던져준 것이다. 그러나 마남자의 창이 향한 곳은 왕분 쪽이 아니다. 자신의 배후, 육박해 오는 [[아광]]을 향해서였다.
* 소수 기마를 이끌고 마남자를 요격하러 왔던 아광이었다. 짧은 순간 두 장군의 눈빛이 부딪힌다. 창도 부딪힌다. 힘과 힘의 격돌. 말에 탄 아광의 창에도 마남자는 밀려나지 않았다. 마남자를 스쳐가는 아광. 짧은 교전이었지만 마남자의 창에, 그 손에 짜릿한 손맛이 남아있다.
마남자의 그 말을 듣는 아광의 손아귀 또한 쩌릿한 감각이 남아있었다.
* 마남자의 부하들이 서둘러 그를 둘러쌌다. 이젠 정말 물러나야 할 시간이다. 마남자 또한 강자 둘을 상대로 데려온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퇴각할 기색을 보이자 아광은 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거 같냐고 쏘아붙였다. 그 동안 왕분은 반양의 도움으로 다시 말에 올랐다.
아광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마남자는 이 상황을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데서 자신의 목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받아쳤다.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왕분은 곧 아군의 후방을 들이치는 조군의 대병력을 발견했다. 마남자는 사전에 군을 두 갈래로 나눴다. 자신과 함께 아광군의 측면을 요격한 1진과 아광군 2진을 견제하러 보낸 2진. 그 2진이 지금 돌아오고 있었다.
- Victoria II/개혁 . . . . 71회 일치
개혁을 계속 하다보면 서구화에 반대하는 반동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만약 이 반동주의자들이 수도를 점령해 반란을 성공시킨다면 몇몇 개혁이 취소된다.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성 +1
* 반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성 +1
* 반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성 +1
* 반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성 +1
* 반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성 +1
* 반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성 +1
* 반동주의자들의 투쟁성 +3
*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성 +2
- 성훈(배우) . . . . 70회 일치
연예계 데뷔 전에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 《[[우리동네 예체능]]》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실력이 후덜덜한 편이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과 붙어서도 이기고, 은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현역 선수랑 거의 대등한 성적을 내는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 수준(...) 실제로도 현역 시절 대회에서 매우 좋은 기록을 세우는 등 촉망받는 선수였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부상으로 인해 전신마취만 6번, 수술만 약 10번 가까이 했고, 결국 기록이 떨어져 은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체능에서 거의 날아다니고 있어 영 설득력이(...) 워낙 예체능에서 보여준 활약이 인상 깊었던지라, 각종 커뮤니티에선 사람 맞냐는 반응이 많다. ~~수중로보트~~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허리 통증 때문에 예체능에서 제대로 기량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기량을 못 낸 거라니 그럼 전성기땐 어땠단거냐...~~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은 듯~~] [* MBC [[나 혼자 산다]]에서 28세까지 실업팀 소속으로 수영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2018년 10월 5일 방영분).]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의 남자주인공 아다모 역으로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처음으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한 거라 본인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임수향]]이나 한혜린 등은 연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던 신인이었지만, 본인은 연기경력이 하나도 없는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마스크나 신체조건이 상당히 우월한 편이라, 붙을 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첫 작품을 끝낸 뒤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작품인 《[[신의(드라마)|신의]]》에서는 주인공 일행의 적인 천음자로 출연했다. 다음 작품인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에서는 드라마 중반부에 투입이 됐는데, 여주인공을 두고 남주인공과 대립하는 서브남주의 위치였지만, 마지막엔 주인공을 밀어내고 진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배우 본인이 연기한 작품들에서 거의 다 주연을 맡았다. [*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연기력과는 별개로 성훈은 하는 작품마다 배역 운이 좋은 편이다. 대체로 주연이거나 주연이 아닌 작품도 최소 비중 높은 조연을 많이 맡았다. 참고로 촬영 예정이자 데뷔 후 첫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캐스팅. 거기다 맡은 캐릭터 운도 좋은 편인데 드라마 내의 등장인물들 전원이 산으로 간 케이스라도 성훈이 맡은 캐릭터만 정상적인 경우가 제법 있다. 심지어 [[가족의 탄생(드라마)|주인공이 아니었는데도 나중에 주인공이 되어버린 작품]]까지 있다. 출연작품의 폭도 상당히 넓은 편으로 장르 안가리고 이곳저곳 많이 나온다. 임성한 드라마 출신의 배우들 대부분이 막장 드라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걸 감안하면 상당히 돋보이는 행보이다.]
참고로 예체능에서의 돌고래로 빙의한 듯한 활약 덕분에, 수영 레슨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연예인은 부업으로~~ 참고로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본인은 운동을 싫어하는 듯. 수영선수 & 강사 경력 덕분인지, 예체능이나 각종 인터뷰에서 말을 상당히 조리 있게 잘하는 편이다. 예체능에서도 수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때나, 멤버들의 훈련을 도와줄 때의 모습을 보면, 긴 설명도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술술 하는 등 말재주가 좋은 듯.
[[2017년]] [[7월 7일]] 방영분 [[나 혼자 산다]] 무지개 라이브에 출연했다. 자취 생활은 말 그대로...[[건어물녀|건어물남]]. 하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오덕 기질이 보이는데, 인터뷰 영상을 보면 [[토니토니 쵸파]] 일러스트와 퍼즐, 케로로봇 프라모델, [[진격의 거인]] 일러스트, [[로이 머스탱]] 피규어 등이 내비쳤다. 나 혼자 산다 인터뷰에서 본인은 관심도 없었는데 팬미팅때 원피스라는 애니가 좋다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후 팬들이 퍼즐, 장난감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즉 본인이 산게 아니라 팬의 선물인 것. ~~방송 보신 분들은 앞으로 [[콘푸로스트|호랑이 기운 씨리얼]]을 보내줄듯~~ 이후로도 해당 방송에 수 차례 출연하였으며 그 때마다 그의 굉장한 먹성이 화제가 된다. 선수 출신답게 압도적인 기세로 엄청난 양을 단 시간 내 먹어치우기 때문. 다른 고정 멤버들에 비하여 출연 빈도가 높지 않음에도 화제성이 높은 것은 모두 이 때문. 덕분에 함께 출연한 양치승 트레이너까지 세간의 관심을 사고있다.
||<|3> 2012 || 《[[신의(드라마)|신의]]》 || 천음자 || 조연 ||
* [[신의(드라마)|신의]] : 천음자 역.
*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 : [[한지훈(가족의 탄생)|한지훈]] 역. 작품에서 남주가 뒤바뀐 보기 드문 사례이자, 《[[신들의 만찬]]》 시즌 2(…)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네티즌 반응은 원래 남주인 [[이규한]]보단 캐릭터에 있어서나 배우에 있어서나 서브남주인 한지훈 역을 맡은 성훈 쪽이 압승이었다는 평. 연기력이야 남주인 이규한이 훨씬 호평을 받았지만 비쥬얼이나 옷걸이나 외적인 조건에 있어선 성훈이 더 대중의 반응이 좋았다.~~결국 연기력보단 얼굴이란 얘기~~ 성훈이 수영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입고 나오는 의상마다 웬만한 모델급으로 소화해 성훈이 극 중 입은 수트들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가 성훈의 팬이었는지~~ 캐릭터로 봐도 강윤재보단 한지훈 쪽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결국 한지훈이 히로인과 연결되며 《가족의 탄생》 최대 수혜자 겸 진 주인공은 성훈이 되었다(...)
* 고결한 그대 : 이강훈 역. [[네이버 웹소설]]의 인기작들 중 하나인 《고결한 그대》가 원작이다. 일명 패왕색기 이강훈 역할과 무시무시한 싱크로를 보였는데, 정말 이강훈이 웹소설 밖으로 걸어 나온 수준(…) [[http://m.blog.naver.com/godinmedia/220391621546|직접 보자]] 어지간해서 좋은 소리 못 듣는 만화&소설 원작 드라마 캐스팅 평에서 성훈의 캐스팅은 호불호가 나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이강훈 실사판을 보는 것 같다고. 덕분에 '''웹찢남'''('''웹'''소설 '''찢'''고 나온 '''남'''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인터뷰에서 원작 팬들께 죄송하다고 하는데... ~~너무 겸손한 듯. 외모는 싱크로 100%이지만, 본인의 성격은 이강훈과 괴리가~~
* [[오 마이 비너스]] : 장준성 역. 극 중 [[UFC]] 챔피언이자 [[소지섭]]의 의형제 역할로 출연. 공교롭게도 소지섭도 수영선수 출신이다(...) 예체능의 영향이 컸는지 수영 챔피언으로 나오는 게 더 낫겠다는 네티즌의 말이 많다. 드라마 주제가 헬스라서 그런지 ~~리얼리티를 살리는 차원에서~~ 실제 운동선수 출신들을 데려다 썼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참고로 성훈의 첫 KBS 드라마 출연작이자 처음으로 SBS가 아닌 타 방송사 출연작이다.
|| 《[[강심장]]》[* 92~93회 2011년 08월 23일 30일 방송. 데뷔전 수영선수 였다가 잦은 부상과 잇몸에 종양이 생겨 잇몸 드러낸 이야기.. 허리디스크 수술로 인해 선수생활을 접고 배우를 하려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하자 스튜디오가 빵 터졌다..군 제대 후 오디션 경험을 쌓으러 다니다가 소속사 동생이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오디션 가는걸 따라갔다가 [[아다모]]역에 뽑혔고 그 동생은 어찌되었냐는 [[강호동]]의 질문에 "군대갔어요"에 또 빵 터졌다. ~~2017년 [[나 혼자 산다]]에서 모습들이 이때부터~~] ||
|| 2012 ||<|4> [[KBS2]] ||《 [[출발 드림팀]] 시즌 2》[* 124회 드림프로젝트12탄-수영최강자전편. 2012년 03월18일 방송. MVP성훈] ||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 [[JTBC]] || 《[[아는 형님]]》[* 39회 2016년 08월 27일 방송. 성훈이 과거 수영선수였음을 밝히자 멤버들은 '수영하는 좀비' 연기를 부탁했고 성훈은 접영 포즈로 좀비 흉내를 냈지만, 곧 부끄러워하며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또 성훈의 상대역을 맡은 김진경은 "성훈 씨 주사 맞으셔야해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바지 내려주세요"라고 19금 애드리브를 하자 당황한 성훈은 "스무살인데 왜이래"라고 말했고, [[민경훈]]은 "바지 내리고 주사맞는 역 대역 되나요?"라고 말했다. 성훈은 바닥에서 수영하기 게임을 제안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실격패 했다.~~좀비연기도 게임도 디제잉도 노래도 몸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짱👍~~] ||
|| [[SBS]] || 《[[런닝맨]]》[* 317회 런닝맨 VS 예능 어벤져스 편 2016년 09월 18일 방송. [[이경규]], [[한혜진(배우)|한혜진]], [[김동현(종합격투기)|김동현]], [[성훈(배우)|성훈]], [[문희준]], [[윤형빈]], [[Key(샤이니)|Key]]동반 출연. 1R 링위에서 이름표 뜯기 : 어벤져스팀 승리~~지석진은 나오자마자 성훈의 공격으로 순간삭제~~. 2R 육감대결 : 보지 못한상태에서 돼지껍질을 맛본 성훈이 기권~~돼지껍질 탭아웃~~으로런닝맨팀 승리. 최종미션 복불복레이스 : 성훈이 능력자 [[김종국/런닝맨|김종국]]의 이름표를 뜯어 최종승리했다.] ||
|| [[tvN]] || 《[[내 귀에 캔디]]》[* 시즌 1. 9회 10회. 2016년 10월 20일, 27일 방송. 태평양급 어깨를 자랑하며 수영을 하는 남성미를 한껏 뽐내다가도 캔디와의 통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 같은 모습들은 성훈의 재발견이었다는 반응. 특히 그는 캔디 ‘분홍’을 위해 연을 날려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세심한 사랑꾼의 면모도 보였다. 캔디 '분홍'([[허영지]])이 과거 일반인 첫사랑이 '분홍'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고 하자 성훈은 바로 분노하기도 했다(...) ~~역쉬 사랑꾼, 금사빠(헉)~~] ||
|| [[Mnet]] || 《Sing스트리트》 || 출연[* 2016년 10월 26일~12월 14일 방송. EDM의 선구자~~(?)~~인 박명수에게 디제잉을 배웠다..막방공연 전에 박명수에게 청국장파스타를 해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우월한 기럭지에 조각같은 외모, 노래도 수준급, 요리도 잘해, 거기다 성격도 좋고 겸손함까지.. 도대체 못하는게 뭐임?~~ 막방 공연때 허리통증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고 대중은 환호했다.. 결국 3표 차이로 봉태규에게 1위를 내 주었다.] ||
|| [[MBC]] ||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5회 2017년 03월 26일 방송. 성훈의 옆에서 깐죽거리는 [[헨리(가수)|헨리]]의 유혹에도 성훈은 화내지 않고 웃었고 촬영 내내 물 한 모금 안 마시는 성훈..~~뭐든 열심~~ 수중 촬영에서 제작진이 [[헨리(가수)|헨리]]에게 무리한 의상을 입히려고 하자 화를 냈고 이를 지켜본 성훈은 적극적으로 "어떤 그림을 생각하는지 안다"라며 자신이 [[헨리(가수)|헨리]] 대신 인어 의상을 입었다. 성훈은 다시 돌아온 [[헨리(가수)|헨리]]에게 "스태프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라"라고 했다. 수중 촬영 중 [[헨리(가수)|헨리]]가 장난을 치다가 감전 사고로 정신을 잃은척 연기했고 성훈은 "[[헨리(가수)|헨리]]가 물 밖으로 나가야한다"라며 [[헨리(가수)|헨리]]를 부둥켜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화보 찍는다고 2주나 굶었는데~~ 창백해진 얼굴의 성훈은 [[윤종신]]과 [[이국주]]가 나타나도 몰카임을 눈치채지 못했다.~~성훈이 화를 안내서 몰카인거 알고 찍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듯 하다. 성훈이 인터뷰에서 알았으면 2주간 5kg이나 걈량했겠냐고 울컥했다. 진짜로 인격이 훌륭한거 같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성훈은 배신감에 [[헨리(가수)|헨리]]를 물에 빠트리며 "이거 [[트루먼 쇼]]냐"라고 소리쳤다. "몰카 한 번 당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앞으로 입조심 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 목숨을 갖고 몰카를 찍었다고 논란이 있었고 결국 6개월 만에 폐지되었다.~~ ] ||
|| [[SBS]] ||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편. 2017년 05월 19일~2017년 06월 09일방송. 섭씨 11도 정도 차가운 물 속을 병만 족장을 업고 건너고 집을 짓기 위해 톱질을 하는 등 촬영 내내 상남자다운 면모를 보였다는 후문. ] ||
|| [[tvN]] || 《[[현장토크쇼 TAXI]]》[* 483회. 2017년 06월 21일(실제로는 00시 30분부터 방송이므로 22일 방송) 방송. 끌리는 대로 특집. [[헨리(가수)|헨리]]동반 출연. 성훈은 [[오만석]] 대신 직접 운전했다~~예능에선 진짜 뭐든 열심이다~~ "애타는 로맨스가 국내에서 보다 해외 반응이 뜨거워서 7월부터 한달반 내내 해외~~13개국투어~~에서 팬미팅을 갖는다"고 했다. 핸드볼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 초5때 수영으로 전향해서 군대가기 전, 27살 쯤까지 수영선수를 했다고, 그만두면 공부시킬까봐 계속 했고~~헉, 이때부터 열심이었던거?~~전국대회 대회신기록까지 세워봤다고 "[[박태환]]이 결정적인 은퇴 결심의 계기가 됐다. 고등학생인데도 너무 급이 다른 기록을 세워서"라고.~~하긴 1등만 금메달이니 쩝~~ 이날 성훈은 자신의 집~~이사간지 얼마안되어서 거실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디제잉 기계만 덜렁 있었는데..약 보름후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 공개된 그의 집은 박나래가 돼지우리를 연상 시킨다고 했다.헉~~을 깜짝 공개하는가 하면, 화려한 DJ 실력을 선보였다. 성훈은 '연애고수일 것 같다'는 말에 "사실 전 연애 고X"라며 "4년간 만난 여친이 있었는데, 2년간 눈도 못 쳐다봤다"고.] ||
|| [[MBC]] || 《[[나 혼자 산다]]》 || 무지개 라이브[* 212회 2017년07월07일방송. 신한류스타의 이중생활, 똥밍아웃, 시리얼먹방, [[건어물녀|건어물남]], 백수삼촌 등극, 인어왕자, [[올드보이(2003)|올드보이]]->만찢남, 조각몸매 등.. 성훈의 재발견.~~다이어트 위해 수영장에서 50m를 잠영으로(엄청난 폐활량)~~시청률 두자리수 ~~2부 수도권기준10.1%~~달성... 214회 여름 나래 학교1편~~정모~~ 2017년07월21일방송. 남성미~~어깨 깡패, 비율 깡패~~ 풀장착하고 웨이크 보드를 탔다.~~멋짐 풀풀~~ 다른 출연자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이시언]]웨이크 보드 타기 성공..~~을 했고 장비 셋팅도 도와줬다.~~웨이크 보드 강사를 해도 될듯.~~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3%...215회 여름 나래 학교2편 2017년07월28일방송. 1시간씩 전복을 꼼꼼히 씻는가 하면 산낙지를 ~~성난~~팔근육으로 다져 낙지 탕탕이를 만들었다. 식사후 [[박나래]]팀과 [[한혜진(모델)|한혜진]]팀으로 나누어 퀴즈를 푸는데 성훈이 '나 학교 안 다녔어'라고해 미취학 성훈이 됐다.~~헉~~ 벌칙으로 폐교 화장실에서 인증샷을 찍는데 그와중에 얼짱각도 맞춰 꽃미모 셀카를 찍고 나와 등뒤에서 느껴진 인기척때문에 주저앉아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5얼 등극. 헉~~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0.2%... 217회 2017년08월11일방송. 실내서핑장을 찾은 성훈은 두번째 시도만에 중심잡는데 성공..이후 만화방에가서 짜장라면, 김치볶음밥, 라면, 스*마요볶음밥, 핫도그, 미숫가루를 먹다가 관장님께 들켜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9% 전국기준11.0%] ||
- 은혼/630화 . . . . 70회 일치
[[은혼]] 630훈. '''무사도란 1초 후에 죽고자 하는 것이다'''
* [[사카모토 다츠마]]는 [[가츠라 고타로]]가 [[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의 협조를 얻어 해방군 본대와 대결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한다.
* 그러나 희소식이 채 전파 되기도 전에 자작제독은 [[엔죠 황자]]가 최악의 결단을 내렸다는 비보를 전한다.
* 엔죠 황자는 파괴병기 "히노카구츠나"로 지구를 날려버릴 작정이며 발사엔 6시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 다츠마는 노부노부가 소요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가신들과 연락하려던가 아니었나"라고 재촉한다. 노부노부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무전기를 다츠마에게 넘긴다. 다츠마는 노부노부를 대신해 소요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그들이 협상 실패로 [[엔죠 황자]]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나 상황이 급변해 풀려나게 되었다는 것, 해방군 간부 자작 제독과 제독의 모국 오오고쿠성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사실도 전한다.
가츠라는 오오고쿠의 우주선에서 바보 황태자... 아니 [[하타 황태자]]와 그들의 큰형님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와 함께 모함 "아메노토리후네"를 공략할 지원 병력을 기다리고 있다. 오오고쿠성 황태자들의 협조로 그들 모성에서 지원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하타 황태자와 네스 영감이야 자기네 배니까 함께 있다고 치지만, 왠지 마다오 [[하세가와 다이조]]까지 그럴 듯한 폼으로 타고 있다.
자작 제독은 구속이 풀린 직후 자신을 따르던 병사들을 포섭한다. 자작 제독은 그들에게 반란에 휘말리게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부하들은 자신들은 처음부터 자작 제독을 따르던 자들이니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그것보다 현재의 해방군이, 엔죠 제독이 큰 문제라고 하는데.
* 다츠마는 병력차는 있을 지언정 자신들은 이미 모함 내부에 있고 현재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모함을 제압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황과 자신들의 메시지를 지구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서 지구에서 만나자고.
다츠마는 이 말을 끝으로 통신을 종료한다. 다츠마는 이걸로 됐냐고 노부노부에게 말을 붙이는데, 그는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런데 부하들에게서 상황 보고를 받은 자작 제독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작 제독은 방금 전 다츠마가 전했던 희소식이 무색하게 최악의 소식을 알린다.
* 스크린 너머로 [[히라가 겐가이]] 영감을 바라보는 [[엔죠 황자]].
같은 시각 자작 제독 또한 다츠마 일행에게 정확히 같은 사실을 전달한다. 겐가이 영감은 엔죠의 말이 "협박치곤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허세를 부려본다. 이미 전쟁으로 치른 희생이 크다. 지구엔 해방군의 동지도 있다. 그 전부를 이제와서 다 지워버린다?
* 엔죠는 지구의 해방군 생존자들도 이 대의 앞에 기쁘게 디딤돌 노릇을 해줄 거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주위에 있는 부하들은 그 역할을 사양했다. 부하들은 거기까지 듣고나자 엔죠를 향해 일제히 총구를 들이댄다.
>황자... 우리들은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 겁니까?
[[천도중]]으로부터 사람과 별을 해방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그들의 대외와 전혀 달랐다. 병사들 조차 그걸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싸우는 대상은 천도중이 아니다. 그런 싸움을 위해서 동료들을 희생한다니? 그것은 천도중이 한 짓과 같은 짓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총구를 겨눈 자든, 그저 당황한 자들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황자 이제 그만해 주십쇼.
* 끝내 부하들 조차 등을 돌린 엔죠 황자. 그는 의외로 간단히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전쟁에 대의란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대의란 것 자체가 이유가 없으면 싸우지 못하는 약자를 위해 준비된 궤변에 불과하다. 설사 천도중이 쓰러져도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목에 걸고 있던 팬던트를 연다. 그가 잃어버린 사랑했던 사람. 엔죠 황자가 사진 속의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엔죠는 지구인들에게 주어진건 이대로 날이 밝기 전에 먼지가 되거나, 아니면 그 전에 나노 바이러스를 거두고 해방군을 맞이해서 도륙이 나거나. 두 가지 멸망 뿐이라고 말한다. 그때 그에게 새롭게 나타난 반란자들이 보고된다. 이번엔 숨겨진 총으로 진압할 수 없는 규모다.
* 다츠마와 [[무츠(은혼)|무츠]], 자작 제독이 선두가 되어서 반란 부대를 이끈다. 다츠마는 아직 소요와 연결된 무전기를 가지고 있다. 그녀도 무전을 통해 자작 제독이 전한 비보를 들었다. 소요가 그게 무슨 의미냐고 거듭 묻자, 싸움을 준비하던 다츠마는 넉살 좋게도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한다.
- 페어리 테일/545화 . . . . 70회 일치
* [[레비 맥거딘]]은 임신, 아버지는 [[가질 레드폭스]]. [[웬디 마벨]]은 라미아 스케일에 자주 들르고 [[셰리아 브렌디]]가 조금씩 마력이 돌아오고 있다 한다.
* 여왕으로 취임한 [[히스이 E. 피오레]]가 크림 소르시엘을 사면하고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자유의 몸이 된다.
* [[엘자 스칼렛]]은 내색하진 않고 있으니 그 소식 이후 몸단장을 빠짐없이 하는 등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중.
* 그 밖에도 길드원들은 각자 행복과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고 그날 밤은 매우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루시가 정신을 잃는다.
* 눈을 떠 보니 자기 집. 너무 퍼마셔서 심한 주사 끝에 옮겨진 것이었다. 옮긴 사람은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 루시는 새삼 지난 여정들이 떠오르고 감격, 나츠와 해피가 있어서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고백한다.
* 나츠는 "됐으니까 일하러 가자"고 데려가는데, 사실 그 날은 엘자, 웬디, 그레이, [[샤를(페어리 테일)|샤를]]과 함께 "100년 퀘스트"를 떠나는 첫날이다.
* 전쟁으로부터 1년이 지난 X793년의 어느 밤. 많은 일들이 있던 끝에 [[루시 하트필리아]]가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다. 언젠가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던 꿈. 오늘은 그녀가 "이리스의 모험"이란 소설로 캠 자레온 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날이었다. 루시는 신인상 트로피를 안은 채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리스의 모험"은 그녀가 자신을 모델로 만든 주인공 "이리스"의 모험을 다룬 소설이었다. 출판관계자들과 작가들이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몰려온다. 그들은 인기 소설의 원작자가 이런 미인일 줄은 몰랐다고 공치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녀는 사실 페어리 테일 길드 소속"이란 말을 꺼낸다. 그 말이 퍼져나가자 이 경사스런 자리에 왜 저런 이색적인 집단이 참석했는지 이해가 갔다.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 루시는 전쟁 이후 틈틈히 글을 계속 썼다. 그렇게 해서 적은 "이리스의 모험"은 썩 많이 팔린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꿈 중에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안나 하트필리아]]도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녀는 아직 현대에 남아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중. 지금도 종종 루시는 만나러 가곤 하며 오늘도 선조이자 선배 작가로서 조언을 해주었다.
* 다른 길드들은 대체로 전쟁 전과 다를 게 없다. 세이버투스는 매년 하는 푸드 파이터 대회를 또 개최했고 또 [[미네르바 올랜드]]가 석권했다. 최종 경쟁자였던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를 압도적으로 앞지르는 스코어. 블루 페가수스는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IOY 자리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 중. 변동이 심한건 머메이드 힐. 주간 소서러의 전속 모델팀으로 발탁되면서 [[카구라 미카즈치]]가 관심도 없던 모델 일을 시작했다. 어쨌든 다들 잘 지내고 있다.
* 좋은 자리니만큼 술에 약한 루시도 일단 축하주를 마신다. [[카나 알베로나]]가 모처럼 경사스런 자리니 더 마시라며 병나발을 강요하다 아버지 [[길다트 클라이브]]에게 "여자에게 너무 먹이지 마라"고 쓴소릴 듣는다. 길다트는 제법 아버지티가 나게 됐지만 쥬비아가 취해서 벗어재끼는 걸 보고 "역시 더 먹이는게 좋겠다"고 말을 바꾸는걸 보면 갈 길이 한참 멀었다. 결국 카나에게 두들겨맞는다.
그레이는 자기가 원조 노출광인 주제에 쥬비아가 벗어대자 질색하며 바깥으로 끌고 나간다. "무슨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사실 모든 길드원이 그레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문득 그레이의 시선이 쥬비아의 허리 쯤에 남은 흉터에 닿는다. 그 전쟁의 흉터가. 서로 자신을 찌러서 생겼던 상처. 그레이가 웬디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레이도 자기가 찌른 자국이 그대로다. 쥬비아가 그걸 말하자 어쩐지 당황하며 "남자와 여자의 몸은 다르다"고 허둥댄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저런 식으로 결론이 난 셈이지만 그 말고도 신경쓰이는 관계는 더 있다.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한 때는 그런 관계였지만 지금은 공인된 관계가 돼서 논외. 의외로 [[렉서스 드레아]]도 혐의가 짙다. [[미라젠 스트라우스]]와는 전부터 그런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요즘은 또 잠잠한 모양. 그래도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여동생 [[리사나 스트라우스]]와도 제법 친한 관계. [[카나 알베로나]]도 의외로 같이 마시는 사이로 소문을 뿌린 적이 있다. 이렇듯 염문설은 잔뜩 뿌리고 다녔으나 정작 어디까지 진실이고 루머인지 알 수 없는, 렉서스의 여자관계.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스테리의 영역인 데다가 신경쓰이는 방향이 다르다.
* 엘자는 루시의 수상을 축하하는 한편 자신의 글재주 없음을 한탄한다. 사실 재능 여부를 떠나서, 한 번은 신세를 진 길드에 감사장을 보냈더니 중무장한 녀석들이 결투하러 왔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세상이 소화하기엔 너무 이른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루시가 신경쓰이는 관계는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다. 그녀가 아는 것만 봐도 참 많이 엇갈렸던 인연이다. 그 엇갈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맞물리게 되었다. 전쟁 후 피오레 왕국의 국왕 [[토마 E. 피오레]]가 [[히스이 E. 피오레]] 공주에게 왕위를 넘겼다. 선대왕이 된 토마는 은거, 여왕이 된 피오레는 알바레스 제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제라르와 그의 길드 크림 소르시엘에 한 가지 선물을 했다. 그들의 죄상을 사면하는 은사를 내린 것이다. 이 조치는 매우 뜻밖의 일로, 은사를 받은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가 말도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엔젤(페어리테일)|소라노 아그리아]]는 자신들은 어둠의 길드 출신이라 자격지심을 느낀다.
히스이 여왕은 그들의 과거도 죄도 있지만 그들 자신은 누구보다 미래를 추구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사람들을 위해 살아달라고 말한다.
* 제라르는 "산다"는 말을 되새긴다. 전쟁 때부터, 유독 그 말을 자주 들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제라르와 크림 소르시엘이지만, 여전히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루시가 모르겠는 부분은 여기서부터. 제랄도 한숨 돌리게 됐고 분명 엘자도 기뻐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내색도 없다. 루시가 쓴 소설이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는 걸 보면 전쟁 후유증으로 머리가 나빠진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루시는 그녀가 감추는 부분을 알고 있었다. 은사 소식이 전해지고 나자 전혀 관심도 없었던 머리 손질을 하기 시작해 지금은 매일 머리를 빗고 있다는 걸. 그게 루시가 원하는 답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 김진우(WINNER) . . . . 67회 일치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출생}}}''' ||<(> [[1991년]] [[9월 26일]] ([age(1991-09-26)]세), [[전라남도]] [[신안군]] [* [[OUR TWENTY FOR]] 컴백 기념 V앱에서 본인이 언급한바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출생했으며 기억도 안날 정도로 어린시절에 임자도로 이사간 후 7살때 [[전라남도]] [[목포시]]로 이사갔다고 한다.] ||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성좌, 지지}}}''' ||<(> [[천칭자리]],[[양띠]] ||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별명}}}''' ||<(> 소슴이,[* 소와 사슴의 합성어. 소처럼 큰 눈에 사슴처럼 초롱초롱한 눈이 매력이어서.] 낫닝겐, 임자도 왕자님, 맏내[* 막내같은 맏형의 줄임말이다.]
김구워더,[* 위너티비에서 고기를 굽는 이승훈에게 단호하게 구워더라는 말을 사용하므로 성씨인 김과 합쳐져 김구워더라는 별명이 나왔다. --진짜로 김을 굽는다는 뜻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는 막내 같지만 가끔 맏형 같은 단호함이 보일 경우에 사용된다.] 수박상[* 예쁘장한 외모에 감탄한 타 팬이 지어준 [[이수만|수만]]이가 박수칠 상의 줄임말. ], 곱단이[* [[외모]]가 [[기생오라비]]다.]~~, 청자켓~~[* 마리텔 출연 당시 본명보다 청자켓이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김모지리 ||
리드보컬을 맡고 있으며 팀 내 최연장자.--와 동시에 귀요미를 맡고 있음--
* 최연장자이며 리드보컬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본인피셜 귀요미를 맡고 있다고 한다.실제로도 여러 방송에서 자신이 귀요미를 맡고 있다고 --떳떳이-- 소개했다. ~~[[승리(빅뱅)|그런 거 하지마!! 나처럼 돼!!]]~~ --사실 [[산다라박]]이 인정한 와쥐의 귀요미라인--
'수박상(이수만-sm수장-이 박수칠 얼굴상)'이라는 별명의 장본인 답게 매우 잘생겼다. 특히 '소슴이'라는 별명답게 눈이 굉장히 크고 예쁘다. 데뷔 전인 WIN때도 비주얼로 주목을 받았지만 데뷔 후 관리를 받으니 비주얼이 더 빛나게 되었다. 자신도 자신이 잘생긴 걸 알고 있는지 데뷔 후 첫 주간아이돌에 출연 당시 도니코니가 다른 멤버들 중에서 가장 눈이 예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말에 당당하게 "저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도니가 "멤버들 얼굴 부위 중 가지고 싶은 멤버의 부위는?"라고 물어보니 얼굴 부위는 말하지 않고 승훈이 다리라고 말하며 자신의 특기가 얼굴이라고 답하는 등 자신의 비주얼에 대해서 ~~엄청난~~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데뷔초에는 계속 겸손한 자세를 취하다가 연배가 쌓이고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 잘생겼다고 말할때 재미있게 받아치면 좋을거 같아서 얼굴 잘생긴거 안다고 대답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만히 있다가 입술이 너무 크다고 디스당한 강승윤은 덤...~~ 최근엔 특기가 얼굴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반달친구에서 김동현 선수가 팀에서 보컬을 맡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당당히 얼굴이라고 대답했다. ~~당황하던 김동현 선수의 표정이 킬링포인트~~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미남이다. 오빠생각에서 팔굽혀펴기를 할 때 코 (실리콘) 를 조심하라는 말에 몇번 웃어 넘기다 결국 "자연산이에요!"라고 화를 냈다. 사실 졸업사진 등 과거사진만 봐도 자연미남임을 쉽게 알아 챌 수 있다.
활동곡인 <[[REALLY REALLY(WINNER)|REALLY REALLY]]>에서 "널 좋아해" 라는 킬링파트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대중들에게 "김진우 음색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며 음색에 대해 호평을 받았다. 이에 더하여, 검색창에 김진우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김진우 널 좋아해'가 뜰 정도이니...(또 하나의 여담을 추가하자면 무대를 본 김진우를 몰랐던 머글들이 '널 좋아해 걔'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실상 REALLY REALLY를 유명하게 만든 일등공신인 셈.
* 특기가 얼굴답게 마리텔 출연 당시 코로 타자치기에서 본인의 코가 보이는 듯 여유롭게 글을 완성하고 애드리브까지 첨가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얼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 맘이 여린 탓에 맏형답지 않게 눈물을 자주 흘리는 가녀린 성격.[* 눈물은 잘 흘리지만 의외로 강단 있는 성격이다. 2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연습생을 시작한 것과 가끔 보이는 마이페이스 적인 모습들로 보아 외유내강형인듯.] [[JYP]] 연습생[* 당시 데뷔를 앞둔 [[GOT7]]의 멤버 몇 명과 [[DAY6]] 멤버들]과의 대결 때 가사 실수를 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상당히 노력파이기도 한데, 위너 티비에서 [[강승윤]]은 김진우에 대해 "잠이 없는 노력의 천재"라고 평했다. 남들 잘 시간에 연습을 한다는 의도. 많이 자면 4시간이라고. 연습생 기간에는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밥 대신 커피를 텀블러에 들고 다니며 마셨다 여담이지만 [[iKON|형제그룹]]의 [[김진환(iKON)|맏형]]도 눈물이 많다 그나마 TV방송에선 이런 모습은 적은편이다.
* 위너티비에서는 부잣집 도련님같은 얼굴과 다르게 모지리스러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 갭모에 속성으로 인기를 얻었다.
* [[여장]]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일본]] ZEPP콘서트에서 박봄 역할로 [[여장]]을 했는데 매우 예쁘다 ] 상속자들 패러디에서 [[유라헬]] 역할로 분장했는데 닮은 모습 덕에 김라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진우+유라헬 합성어. 그 이후에도 일본 콘서트에서 여장을 하며 진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기서 미담은 위너 멤버들끼리 여장을 할 멤버를 정할때 모든 멤버들이 꺼려하고 있는데 그걸 본 진우가 자기가 하겠다고 먼저 나섰다고 한다.(꽃보다 청춘 위너편 참고)
* [[전라남도]] [[신안군]] 천사의 섬 임자도 출신이다.[* 시골 출신답게 좋은 구름 나쁜 구름을 구분할 줄 알며, 어르신 용어를 쓸 때가 있다. 장롱을 농장으로 발음한다던가..] 왕자님처럼 자랐을 것 같다는 얼굴과 다르게, 섬소년으로 순박하게 자란 탓인지 [[천연]] 속성을 가지고 있다.[* 김구워더도 이런 성격에서 나온 것. 송민호의 진우형은 그냥 말하는데 빵빵 터져요도 같은 맥락][*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할 줄 안다. 잘생긴 얼굴에 사투리는 일종의 갭모에?] 말할 때 자세히 들어보면 [[전라도 사투리]]가 들린다! 상당히 귀엽다.
* 평소에는 완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지만 흥분하거나 당황하면 사투리고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아는형님]]에서 자신의 별명인 '예쁜이'를 설명하다 옆에서 [[송민호]]가 깐족거리자 "'''뭣을'''" 이라며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 멤버들 공인 심각한 길치--였--다. 호텔 로비에서 출구를 찾느라 30분을 헤메다가 --결국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걸리는 가게에 1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10분 거리인 도쿄타워를 3시간 넘게 헤메고 도착했다. 심각한 길치인 듯.[* 시즌그리팅 디비디에서 본인은 길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번 외운 길은 잊어먹지 않는다고. (그러나 멤버들 반응은 흠)] 위너 티비 상속자들 패러디에서도 길치 속성이 그대로 김라헬 캐릭터에 반영되어 "여기 출구가 어딨어!"라는 대사를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꽃보다 청춘 위너편에서는 조금 만회한듯하다. 지도를 보며 멤버들을 길안내 하기도 했다. 실제로 강승윤이 진우형 이제 길치 아니다!!라고 인스타(?)에서 말하기도 했다.
* 후드티를 즐겨입는다. ~~즐겨입는 수준이 아니라 유니폼~~ 특히 회색 후드를 매우 자주입는다. 모자 끈을 끝까지 당긴다음 묶어서 입는다. 연습때나 숙소에서는 항상 후드를 입고있다. 심지어 녹음할때도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다....
* 잠시 외출하는 듯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승윤|다른]] [[이승훈(WINNER)|멤버]]들 숙소로 가는거였다.(...) 다른 멤버 숙소들에 가서도 가자마자 TV 위치를 안마의자에서 잘 보이는 각도로 세팅부터 시작했다.
* 굉장히 드라마를 좋아한다. 스케쥴 없는 날에는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서 드라마만 시청한다. 얼마나 많이 보는지 [[아는 형님]]에서는 [[또 오해영]]의 장면 대사까지 다 외우고 있어서 드라마 대사 맞추기 게임 참가자에서 제외되었다.
- 김태우(god) . . . . 67회 일치
||<tablebordercolor=#191970><rowbgcolor=#191970><tablealign=center><-5>'''{{{#FFD700 역대 1인 우승자}}}''' ||
||<#878787> '''{{{#EEE156 종교}}}''' ||<(> [[개신교]][* 원래 무신론자의 삶을 살다가 2017년 초에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VU_yDmHsI|#]]] ||
한국의 [[가수]] 5인조 보이 그룹 [[god]]의 멤버 '''메인보컬'''을 말고 있으며 아이돌 메인보컬 출신들 중에서 최장신이자 가장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가수이자 탈아이돌을 넘어 한국 가수계에서도 인정받는 성공한 사람이자 가장 모범적인 첫 사례다.
'''국민 아이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god]]의 막내'''이자 '''메인보컬.'''[* 그런데 생각보다 춤을 잘 췄다. 신장 190의 거구이지만 애수, Friday Night 활동할 당시 안무를 보면 꽤나 그루브가 있고 파워풀하다. 예능에서 H.O.T의 전사의 후예도 맛깔나게 춘 적이 있다.]
라기보다 아이돌답지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 특히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의 메인보컬들이었던 [[강타]], [[강성훈]], [[신혜성]]은 미소년들이었는데 반해 god의 메인보컬인 이쪽만 유독 튀는(...)외모를 지녔다. 또다른 유명한 [[NRG]]를 봐도 이쪽은 메인보컬이 리더이자 맏형인 [[이성진]]인데 이 쪽도 나이가 당시 아이돌 멤버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충분히 잘 생긴 외모다.] 여러 가지로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보통 아이돌은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보컬 멤버라고 해도 키가 190이 넘어버리면 주변 멤버랑 밸런스가 안 맞아서 뽑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박진영은 김태우를 메인보컬로 선택했다. 심지어 김태우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네 멤버와 같이 연습하던 두 명의 연습생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중의 한 명이 배우 [[김선아]]다. 초창기에는 김선아의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god 멤버인 데니 안부터 부인했었으나 박준형이 1박2일에 출연해 사실임을 인증했다.]
데뷔한 후 방송 모니터링을 했는데 본인 모습을 보자 멤버 전원 물론 본인도 충격받았다고 한다.[* 데뷔 첫 무대인 [[한밤의 TV연예]]에서의 '어머님께' 무대로 엔딩 크레딧 올라갈 시점에 나왔다.] 우는 건 물론 그 때 당시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당시 god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의 인상은 정말 노래를 잘 하나보다 싶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김태우가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때 충격이 컸는지 5집부터는 지금처럼 수염을 기르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그나마 나아지긴 했는데 [[노안]] 이미지가 추가되고 곰 이미지는 더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04년 윤계상이 연기자로 전업(정확히는 그만두려 했다)해서 탈퇴하고 6집, 7집을 4인 구도로 활동하다가 2005년을 마지막으로 god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솔로로 나섰다. 베이스가 탄탄하다보니 솔로 활동도 잘 했고, 여러 가수의 피처링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피처링해준 곡이 본인 곡보다 잘 나간 느낌이 좀 있다. 심지어 [[MC몽]]의 'I love U, Oh Thank U' 같은 곡은 많은 사람이 김태우의 노래로 알고 있다.[* 다만, MC몽보다 수록이 늦긴 해도 김태우의 개인 앨범 1집 '하고 싶은 말'에도 이 곡이 실려 있으니...]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태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영과 계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박진영이 싸이더스에 김태우를 '임대'해 주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상]]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태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남느냐 박진영과 계약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상]]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현역 입대를 선언하고 [[2007년]] [[3월 20일]] 102보충대에 입소했다. 보통 몸 좋은 연예인들이 이상할 정도로(?) 보충역으로 빠지는 것과는 달리 현역을 지원했고, 심지어 그마저도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가 아닌 [[제27보병사단|27사단]](이기자부대)에서 기초훈련을 받은 후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 배치, 복무했다.
[[컬투]]의 [[정찬우]]가 수색대 부사관 출신인데, 어느날 복무했던 부대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찾아가보니 그가 복무했을 당시 [[대대장]]이였던 분이 김태우가 소속된 부대의 [[참모장]]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셋이 같이 술을 마셨는데, 그 분이 하는 말이 "자네가 수색대 나온 덕에 연예계에서 잘 됐잖아. 그래서 내가 김태우를 수색대로 보냈다. 하하하."(?!)[* 이 이야기는 2016년에 컬투쇼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어찌되었건 현역 복무(그것도 '''이기자부대''') + 연예병과 고사(固辭)를 한 덕에 [[까임방지권]]을 제대로 득템한 연예인. 사실 원래는 복무 중 연예병사에 지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포기했다. 당시 연예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일종의 면접으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갔는데, 먼저 근무하던 나이 어린 연예인 후배 선임이 군대식으로 서열을 잡는답시고 한 깐깐한 행동들로 인해 열받아서 연예병사를 고사하고 말았다고. 금방 몇몇 동료들이 진상을 털어놓긴 했으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훗날 김태우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갔을 때 그 후배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연예계 활동 중에 내 눈에 띄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정작 이 말을 한 본인은 이후 그 행동을 되돌아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후배와 또 만났는데 그 후배가 '미안해요. 그때는 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저희가 총대 멘 겁니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며 김태우는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질이 문제다--
그래도 근본은 가수였던지라, 비록 연예병사는 아니었으나 2008년 31사단에서 진행하던 국군의 날 행사에서 노래는 불렀다. [[사열]]날엔 가만히 있더니, 행사 당일 "이기자! 상병 김태우, 금일부로 진급했습니다! 병장 김태우입니다!"라고 자길 소개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김태우 뒤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이병]] [[성시경]]. ~~성시경도 키가 있으니 곰이 두 마리~~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백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영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태우 본인도 "군대에 남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상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반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염천교 리턴즈]] 방송에서 짱세가 자신의 군생활 이야기를 하면서 밝힌 바로는 이기자 부대 수색대대 소속은 맞는데 보직은 전투병과가 아니라 PX병이었다고 한다. 그 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진짜사나이]] 출연 당시 자신이 PX 병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2중대 1소대 유탄사수다라고 밝혔다.[[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090900184#Redyho|#]]
2009년 2월 25일 제대 후 그 해 9월 3일 EP 'T-Virus'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타이틀곡은 '[[사랑비(김태우)|사랑비]]'. 곡도 세련된 멜로디와 김태우의 목소리와 창법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고, 또 앨범 전체적으로도 [[박진영]]의 느낌이 아닌 김태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은 앨범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190cm이 넘는 키로 곡과 잘 매치되지 않는 ~~군인 냄새 나는~~ 춤을 추는 바람에 '춤만 좀 빼달라'는 부탁을 많이 들었음에도 꿋꿋이 춤을 췄다. ~~god 때도 춤은 못 췄다~~[* 김태우는 춤을 못추지 않고 오히려 잘 추는 편이다. [[문희준]]도 [[20세기 미소년]] 방송분에서 김태우에게 "190 넘는 사람 중에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평가해준 바 있다.]
보컬 자체는 아이돌 출신 수준이 아니며, 소울을 가미한 창법도 수준급이다. 데뷔 초에 비해 심히 허스키해진 보이스는 아마도 god 시절 끊임없이 콘서트 강행군을 한 탓인 듯하다. 그런데 본인도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편이라... 한 번은 자신이 '''[[스티비 원더]]'''와 동급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라디오에서 [[노홍철]]이 '정말 스티비 원더와 동급이라고 생각하세요? ㅎㅎ'라고 집요하게 묻는 바람에 한 수 접고 '그 바로 아래 급'이라고 한 일이 있었다... [[흠좀무]]. 물론 진지하게 [[스티비 원더]]와 자신을 동급으로 평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9년에 출연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스티비 원더며 세상에서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세계 최고 보컬 TOP 10에 자신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 예능에서 직접 세상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선 그마저도 철회. [[문희준]]과 [[은지원]]이 그 발언을 가지고 놀리자, 그때는 자기가 군대에서 나온지 얼마 안돼서 군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라는 말을 했다.
2011년 3월 29일 정규 2집 앨범 'T-School'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메아리'.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2009년에 발매했던 '사랑비'보다는 뭔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비'의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기대치가 높았던 데다 이 시기 [[8eight|이현]], [[휘성]], [[케이윌]] 등의 남자 솔로 가수들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탓에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저 세 가수의 경우는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들과 비교할 때 부족해 보일 뿐, 타이틀곡 자체는 음원 사이트에서 [[씨엔블루]]나 [[걸스데이]], [[포미닛]] 등 아이돌들 사이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꽤나 선전했다. 또 앨범의 수록곡 'Brothers&me'는 [[박진영]]과 [[비(연예인)|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타이틀곡 '메아리'의 뮤직비디오에서 김태우의 1인 2역 연기를 볼 수 있다... ~~곰 두 마리가 한 집에 있어!~~
- 붐(연예인) . . . . 67회 일치
초창기엔 까불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능력 있는 예능인의 [[이미지]]였다. 게다가 [[사회복무요원|공익]] [[연예인]]들이 줄줄이 비난을 받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현역]]으로 입대해서 잠시나마 [[까방권]]을 획득할 뻔했다.
'''하지만 각종 사건 사고들이 터지면서 점점 비호감 이미지로 변해갔다'''. 처음 몇 번이야 어찌 넘길 수 있었지만, 온갖 악명들이 다 누적되면서 안 그래도 [[비호감]]이었는데, 사고가 터지자 예전애 있던 논란들까지 다시 튀어나오며 더 밉상으로 보이게 되--면서 밑바닥까지 뚫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결국 [[연예병사]] 논란과 [[도박]] 사건으로 치명타를 먹고 제대로 몰락했다.
중3 때 혼성그룹 "키"로 데뷔했다. 이후 1999년과, 2001년 각각 뉴클리어, 레카[* 붐이 방송에서 과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렉카차]] 드립을 치고 자막에서도 '렉카'로 표기해 '렉카'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인 '[[레카]]'의 실사판 그룹이다. '레카'가 나름 인기를 얻자 업체 쪽에서 여러가지 사업 시도를 했었는데 그 중 하나. 물론 결과는(...)... 참고로 [[거북이(혼성그룹)|거북이]]의 금비가 이 그룹 멤버였었다.]의 멤버로 활동했으나 셋 다 쫄딱 망했다. 이후 그룹명을 '가요계의 열쇠가 되자'고 해서 '키' 라고 했는데 자기네가 잠기고, '핵폭탄급 반응을 일으키자' 해서 뉴클리어라고 했는데 자기네들이 터지고, '가요계를 이끌어보자' 해서 렉카라고 했는데 끌려갔다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Key 2집 타이틀인 'Forever love'는 청각장애인인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의 친형을 모티브로 뮤비를 만들었다. --정작 열쇠가 된 건 [[샤이니]]의 [[Key(샤이니)|키범이]]...--
그러다 워케이블 방송의 [[VJ]]로 활동, 공중파를 비롯한 100여 명이 넘는 취재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시 톱스타였던 [[김희선]]의 [[인터뷰]]를 당당히 따내어 [[유명세]]를 탔다. 이를 계기로 [[MBC]]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 섹션TV에 [[리포터]]로 발탁되어 다시 [[공중파]]에 입성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감초로 활약하며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이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알리고자 마이크에 자신의 예명인 BOOM을 크게 새겨넣고 소개시 "붐이에요!"라는 자체 [[유행어]]를 제작,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해서 예능 속 이미지를 확실히 굳혔다.
과거 스스로 밀던 유행어로 "붐이에요!" 와 "나인틴나이티나인!"[* 1999를 영어식으로 읽는 것. 영어권에선 편의상 연도를 그대로 읽기보다는 두 자리씩 끊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연도를 그대로 읽는 건 2010년(투 싸우즌 텐) 같이 간결하게 읽을 수 있는 경우에만 부른다.] 그리고 "뉴~ 규"[* 참고로 "뉴~ 규" 는 [[SBS 파워FM]]에서 방송 중인 붐의 영스트리트에서 '놀게 냅둬' 와 같이 쓰인다.] 가 있었다. 방송에서 경솔한 발언을 하고 논란이 되자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한 말이 "제가 좀 경솔했습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경규]]의 [[규라인]]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붐 자신도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강심장]]에서 '붐아카데미'라는 자신만의 라인을 구축했다. [[슈퍼주니어]]의 [[이특(슈퍼주니어)|이특]], [[은혁]], [[신동(슈퍼주니어)|신동]] 등이 대표적.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과 같이 많은 수의 방송들을 진행한 인연으로 이특과 예능 듀오로 알려져 있다. 입대 후에는 수제자 이특에게 '특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물려주었다. 다만, 일부 [[슈퍼주니어]] 팬들은 괜히 엮여서 이미지만 조지게 만든 놈이라며 붐을 굉장히 혐오한다. --물론 슈주 [[안티]]들은 이특이 친 사고는 생각도 안 한다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E.L.F.]]들은 붐을 정말로 극도로 [[증오]]한다는 거다.--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태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남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그리고 2013년, 저 세 명의 안양예고 동문들은 나란히 [[연예병사|군 관련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나마 기반이 탄탄했던 [[비(연예인)|비]]는 복귀 후 여론이 나쁘지 않지만, 붐과 [[SE7EN|세븐]]의 경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일본인]] 패널 준코와 사귄 적이 있다는 고백을 했다가 당사자인 준코가 미니홈피에 "당신이랑 사귄 적이 없는데요..." 라고 딱 잘라 말해서 완전 새가 되기도 했다.[* 일부에선 준코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단 둘이서 어디 놀러가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붐은 그 정도면 사귄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있다.] 덕분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선 연신 '준코! 준코!' 를 외치며 놀려대는 [[김구라]]와 [[신정환]]에게 [[관광]]타고 착잡한 표정으로 ''''제가 경솔했습니다'''' 라는 말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준코 사건은 이때 개그 소재로 쓰이며 오히려 이미지 세탁에 도움을 준 편.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었던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줄여서 스친소)' 에서 [[이윤열]]을 험하게 다룬 것으로 다시금 화를 자초했다. [[이혁재]]의 친구로 나온 이윤열에게 ''''16강에서 탈락한다''''는 [[농담]]을 던진 것. 이혁재가 이윤열이 16만 명 넘는 팬클럽도 지닐 정도라고 하자 바로 '8강 진출 축하드린다' 고 즉시 말을 바꾸었다. 어느 쪽이건 개그성 발언이었으나 다음주 벌어진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전 이윤열은 [[허영무]]에게 접전 끝에 석패했다. 이 외에도 "연봉이 4억인데 [[PC방]]비만 3억", "30년 전에 유행하던 춤을 추고 있어요!" [* 이 말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윤열이 민망해 하고 분위기도 흐려질까봐 던진 멘트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같은 [[막말]]까지 했다.
다만, 원래 쇼 자체가 10대들 대상의 개그 코드가 주로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는 참작의 여지가 있다. 게시판 도배라는 바르지 못한 행위로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도 역시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있어 아쉬운 대목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오히려 스타크래프트 팬덤에 대한 반감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이후 스친소 측은 이에 대한 공식 사과를 홈페이지에 올렸고 당사자인 이윤열은 이에 대해 문제 삼을 생각 없다며 공식 의사를 밝혔다.
"[[무명]] 시절 때, 의도적으로 전진의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고 다니며 전진의 춤을 추고 사인까지 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나이트클럽]]에서 [[전진(신화)|전진]]의 행세를 하며 여자를 꼬시고 나이트나 클럽의 VIP로 대접까지 받은 적은 물론, 밥집에서도 전진 앞으로 달아놓으라는 식으로 [[먹튀]], 여자들과의 원나잇은 물론 전진의 팬이었던 미성년자 여성과 [[원나잇]]까지 했다"라는 [[루머]]가 있었다.
그런데, [[애초에]] 이 루머가 생긴 경위가 좀 특이하다. "전진을 나이트에서 만났다. 정말 재수 없더라" 하는 글이 온라인 상에 올라왔었는데 문제는 그 여자가 클럽에서 놀았다는 시간이 신화의 스케줄이 있어서 절대로 전진이 나이트로 가서 놀 수가 없는 상황이었단 거다. 사실 그 때 당시 신화는 [[사생팬]]이 넘쳐나는지라 사실상 모든 행적이 팬들에게 감시되고 있었다. 결국, 전진이 나이트를 간 적은 없었고 거짓말인 셈이다.
이 이야기는 오프를 뛰는 [[신화창조]]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되고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루머에 지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설마 전진이랑 붐과 약간 닮기는 했어도 [[목소리]]도 다르고 한데 속을 리가?"라면서 [[실드]]를 치는 사람도 상당했다. [[일반인]]들도 거기에 의견을 맞춰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소란을 일축했고, 그 사건은 루머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적어도 붐 제놈이 <스친소>에서 바보같이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전까지는'''... 이후, 이 사건이 진짜인 게 자신의 입으로 확인이 되면서 신화의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열라]]게 까인 바가 있다.[* 사실 스친소에서 붐이 [[바보]]같이 스스로 말하기 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전진이 이 루머에 대해 해명한 것도 있다.]
참고로, 자기가 직접 이야기 하기전에 한 연예계 관련 기자가 냄새를 맡고 취재를 시작했으나 ''' 전진이 "다 지난 일이고 좋은 동생이니까 그냥 덮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기자 [[본인]]도 당사자가 저러니 취재할 수가 없었다고...[* 다만, 정황상 전진이 진짜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이후 논란이 일어나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일로 [[문희준]] 뺨칠 정도로 붐의 안티가 대거 생성되었다.[* 근데 문희준과는 본질이 틀린 것이, [[본인]]의 경솔한 행동도 있지만 당시 "남들이 까니까 나도 깐다"는 식으로 이유없이 까이기도 했다. 또한 문희준은 붐처럼 명백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적도 없다. 게다가 문희준은 무엇보다도 [[군대]]에 갔다 온 이후로는 호감남이 되었다. --근데 문희준도 [[결혼]] 과정에서 까발려진 일부 것들 때문에 또다시 엄청난 [[안티]]가...--] 신화창조들 중에서도 [[코스프레]]하는 붐을 본 사람이 있던 것이다. 물론 전진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문제 자체야 없었지만, 정작 모르는 사람들은...
안 그래도 당시 전진은 여러가지 악재들로 인하여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상당히 피폐해진 상태였는데 여기에 말도 안 되는 [[루머]]까지 더해지면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은 상태였다. 붐의 사칭 사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전진이 "나는 나이트에 가지도 않았는데 지금 나이트에 있냐고 여기저기서 문자가 왔다" 등 사칭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신화창조들은 더더욱 붐이라면 치를 떨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해 사실상 신화팬들 사이에서 이 일로 인하여 그는 [[평생까임권]] 획득+[[금지어]] 취급을 당한다.
입대 전 [[애프터스쿨]]의 이전 멤버였던 [[유소영]]과의 스캔들이 있었는데 공식적인 입장은 부정적이었으며 연예대상 수상 소감에서 여자친구에 대해 언급하며 여자친구를 '소빠빠'라고 부르고 네티즌들이 증거를 찾아내며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다만 붐이 군인인 데다 유소영이 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크게 터지지 않았다.
2009년 10월 29일 현역으로 입대하여 국방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에서 근무. 보통 국방홍보지원대는 [[일병]]선 이상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붐처럼 훈련소 퇴소하자마자 바로 배치받는 것은 특이한 경우다. 게다가 배치받자마자 바로 위문열차 MC로 깜짝 발탁되었다.
같은 해 12월 30일 [[SBS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이미 입대한 상황에서 직접 수상하러 나왔다'''. 자대배치 받은 지 불과 12일 만의 외출이었다. 아무리 연예병사라지만 정말 특이한 케이스. 물론 혼자 나온 건 아니고 [[중대장]]도 함께 따라왔지만. 게다가 150일이나 휴가를 나왔다는 게 전역 후에 알려지면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2277501|#]] 진짜 누군가가 뒤를 봐주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소지섭 . . . . 67회 일치
| 배우자 = 조은정
| [[남자 셋 여자 셋]]
| [[여자 (드라마)|여자]]
| rowspan=2 | [[여자만세 (2000년 드라마)|여자만세]]
| [[쌍용자동차]] 제작, 단편영화<br />영화채널 [[OCN]], [[수퍼액션]] 동시 방송.
| 제작투자에도 참여
|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 두남자쇼
| 2013년 1월 24일 방송분<ref>{{뉴스 인용 |제목 =소지섭, 별밤 출연 '10년 만에 라디오 나들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2984787|출판사 = 머니투데이|저자 = 배영윤|날짜 = 2013-01-24}}</ref>
| 낭독자
| 2018년 3월 16일 방송분<ref>{{뉴스 인용 |제목 ='지만갑' 소지섭X손예진, 오늘 '배철수의음악캠프' 전격 출연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228002|출판사 = 스포츠조선|저자 = 김영록|날짜 = 2018-03-16}}</ref>
|'''북쪽왕관자리'''
# 북쪽왕관자리 (Feat. 소프라노 한경미)
# 눈금자 (Feat. 테이커스)
| colspan="5" |<small>"—" 표시는 차트에 진입하지 못함을 의미함(2010년 이전 자료 없음).</small>
| [[쌍용자동차]]
| 자동차
| 행복자산플랜
| 자동차
| 남자 신인상
- 장재인 . . . . 67회 일치
||<width=55> '''이름''' ||<(> 장재인(張才人, Jang Jaein[* 로마자 표기 Jang Jaein의 출처는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291441333109297010|본인의 여권]].]) ~~[[주원]]~~ ||
|| '''학력''' ||<(>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싱어송라이터 전공 10학번. 수시때 보컬로 지원했다가 심사위원들이 자작곡이 있으니 싱어송라이터로 지원하라고 했다고 한다. 정시에 싱어송라이터로 합격.] ||
슈퍼스타 K2 내내 엄청나게 독특하고 희귀하고 유니크한 개성의 사운드와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으로 신데렐라로 취급받던 도전자이며 '''페이크 주인공'''.(슈퍼위크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재인 vs 김지수 or [[존박]]의 결승전을 예상했었고, 장재인이 무난하게 우승한다는 의견도 꽤나 많았었다.) 그만큼 프로그램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실력자.
지향하는 음악은 포크 음악이며,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고.. 첫 자작곡은 7살 때 쓴 동요고, 자신이 '노래다운 노래를 만든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의 자작곡은 중3 때 처음 썼다.[[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00915175413774|#]] 실용음악과 중에서도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한 호원대 싱어송라이터과에 합격하면서(교수 [[정원영]] 현재 정원 '''5명'''...) 본가인 광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부터 클럽 등에서 '''재인(才人)'''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재인밴드를 결성, 슈퍼스타K2에 참가하기 전까지 활동하게 된다. 이 때문에 후에 '[[이승철]]이 홍대클럽에서 장재인을 봤다.(이승철이 3차예선 시작할 때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한 게 원인)', '사실 제작진이 장재인을 홍대에서 섭외해 왔다.' 라는 --기본--기초적인 루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여성 참가자들 중 가장 큰 키에(--[[허각]]보다도 크다--) 어울리지 않게 좀 어눌하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180도 변하여, 독특하면서도 파워풀한 노래를 보여준다.--12시가 지나면 나는 변해~-- 그리고 작사작곡, 편곡 능력도 수준급.(자작곡도 공개된 것만해도 6~7개 정도가 있으며, 항상 자신을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한다. 다니는 학과도 호원대 싱송과.)
심성은 착하기 이전에 여려서, 본선무대에서 친한 친구들이 탈락할 때마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과, 중학교 때 같은 남자를 친구랑 같이 좋아하게 됐는데, 친구가 좋아하니까 안 좋아하는척 했다는 등... 여러모로 여리면서도 약간은 바보같은(?) 성격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선 본인은 절대로 여리고 우울한 성격이 아니라고 밝혔다. 꽤나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고. --근데 띠방한 건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해보인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산울림]], [[비틀즈]](특히 [[폴 매카트니]]), [[재니스 조플린]], [[조니 미첼]] 등... 예전 아티스트이거나 포크 아티스트들. 신데렐라를 라이벌 미션으로 정했을 때 '한국 노래는 예전 노래 빼고는 다 모른다고 보시면 돼요'라는 말을 할 정도. 정엽이 진행하는 푸른밤에 [[이승열]]이 나왔을 때 보조MC로 출연했는데 방송 내용에서 드러난 걸로 국내 뮤지션에서 이승열도 좋아하나 보다. 듣다보면 방송용으로 좋아한다는 멘트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방송에서 장재인과 이승열 둘 다 [[레이첼 야마가타]]의 "be be your love" 를 불렀는데 장재인은 이승열이 부른 버전을 듣고 팬 모드를 발동시켰다.
2012년 3월에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어서 혼자 활동하다가 전 매니저와의 인연으로 나뭇잎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였다. 하지만 나뭇잎으로 이적한 이후 근긴장이상증으로 인해 활동에 차질을 빚었고 2013년 여름에 다시 계약이 만료되었다. 이후 학업에 열중하다가, 2013년 12월 3일 슈스케2에서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바가 있는 [[윤종신]]의 [[미스틱89]]에 합류했다.
장재인은 서울 예선 2차(심사위원 : 싸이, 아이비, 이승철)에 지원했다. 거기서 장재인은 '''[[앨라니스 모리셋]]의 Head Over Feet'''과 '''자작곡인 그곳'''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승철은 '뮤지션의 모습이 보여서 좋다', 싸이는 '고비의 순간, 행복했던 순간에서 울컥했는데, 많이 좋은 음악 하셨으면 좋겠다. 고맙다는 인사 많이 받으실 것 같다.'라고 평했다. 무난하게 합격.
개별미션에서 장재인은 첫 조 첫 타자로 출격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녀는 '''이문세의 옛사랑'''을 불렀다. 여기서 박진영에게 '기존 세네명의 가수의 목소리가 교대로 들려서 장재인 씨의 목소리가 뭔지 모르겠다.'라는 첫 혹평을 받았다. 약간은 찝찝하지만 어쨌든 합격.
그룹미션에서는 '''원더걸스의 2 different tears'''를 불렀다. 장재인과 홍남화가 합격했는데, 전체적으로 다들 아쉬운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의 합격이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합격한 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합격 후 나와서 서글프게 울었다.
라이벌미션에서는 장재인이 들고온 서인영의 신데렐라로 미션곡을 결정했다. (김지수는 --발치몽--의 i love oh thank you를 들고 왔는데, 랩 파트 편곡의 어려움을 감안, 결국 장재인이 들고온 신데렐라로 정해졌다.) 그런데.. 둘 다 이 노래를 잘 몰랐다는 게 문제(....). 결국 남들 다 연습 다해갈 때 코드 따고, 편곡하는 데 시간을 대부분 써서 연습을 제일 늦게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걱정을 했었는데...
결과는 김지수의 합격. 이 부분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놀랐고, 몇몇 사람들은 장재인이 떨어지면 이 프로를 안 본다는 사람들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떨어뜨릴 ---돈넷--엠넷이 아니지.. 결국 최종 고려자에서 뽑힌뒤, 심층 면접에서 허각과 함께 합격하면서 최종 TOP11에 들어가게 됐다.
세 번째 사전투표 결과도 1위를 굳건히 지킨 장재인. 숙소미션 중 '작사미션'에서 들어줄래로 자신의 작곡능력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세 번째 미션은 ''' '[[마이클 잭슨]] 미션' '''. 여기서 그녀는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면서 깜짝 퍼포먼스로 카주까지 준비했지만 반응은 저번보다 못했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 심사점수도 91(승), 90(엄), 93(윤)의 약간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후 방영된 몰래카메라 영상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존박,허각,김은비,강승윤에 반해 김지수와 장재인은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이 찍혔는데, 여기서 '장재인 성형'이라고 치는 바람에(그리고 치아교정) 당시 성형논란으로 뜨겁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한동안 했다 안 했다로 많은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지못미'''... 이날 장재인은 맨발 투혼으로 키보드까지 치면서 열창했으나, 91(승), 95(엄), 93(윤) 으로 저조한 점수를 받게된다. 하지만 사전 인터넷 점수와 문자투표에서 [[허각]]에게 밀린 강승윤이 탈락하게 되면서 탑3에 진출하게 된다.
이날은 화제의 출연진들에게 --쇼--시상하는 슈퍼시상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슈퍼시상식의 순서가 이상하게도 존박과 허각의 무대가 끝나고, 장재인의 무대는 뒤로 제끼고 그 사이에 슈퍼시상식과 '''[[힙통령]]'''의 축하공연을 넣어놨다. 즉 중요한 메인 이벤트인 탑3중 한 명인 장재인의 무대의 흐름을 무대순서로 끊어 버린 것. 약 20여분간의 슈퍼시상식이 끝나고, 장재인의 무대가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사이에 투표할 만한 사람들은 다 한 상황이라... 그래도 밋밋하고 임팩트가 별로 없어보이는 레몬트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문자투표와 사전투표 1위를 놓친 것이 탈락으로 이어졌다.
2010년 10월 30~31일, 박정현, 윤종신, 신승훈 등 국내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콘서트인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에 탑4가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했다. 여기서 장재인은 자작곡인 그곳과 신승훈의 나비효과를 불렀는데, 특히 나비효과는 안티팬들도 인정할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화제가 됐다.
2010년 11월 10일, 허각, 존박, 강승윤, 김지수와 이수영의 뮤직쇼에 출연했다. 이날 장재인은 여자가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적의 다행이다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2010년 11월 28일 [[MAMA]] 무대에서 우승자 특전 무대를 갖는 [[허각]]을 응원하기 위해 [[존박]], [[강승윤]] [* [[위너(아이돌)|위너]]의 멤버인 그 강승윤이 맞다. 이때는 위너결성전 슈스케2에서 이름을 알린 시절이다.]과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여기서 허각, 강승윤과 함께(당시 존박은 MC 진행 중이었음) 레드카펫에 서기도 했다. 뒤이어 수상 후보곡을 직접 소개하면서 존박, 강승윤과 작은 무대를 갖기도 했다.
2011년 1월 15일 작곡가 김형석이 설립한 키위 엔터테인먼트과 계약을 했다. 자신의 음악을 이 소속사 관계자에서 잘 이해해줘서 계약했다고 한다.
- 창작:티겔 왕국 . . . . 67회 일치
||'''작성자''' || 비잔뽕이 부족합니다 ||
동부대룩의 중남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상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상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과거, 현재 티겔의 강역은 거의 다 숲이었으며, 거기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현재도 존재하며 티겔의 영토의 25%를 차지하는 미개척지에 알박으면서 살고 있다. 보통 티겔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 분파중 가장 세가 컸던 무리의 족장의 장남이었던 '달구'란 자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 그과정에서 자기를 막으려던 자기 무리들을 싹다 죽이고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북쪽으로 올라가서[* 가는 와중에 지금의 메말사막 일대에 존재했던 늑대족 마을들을 전부다 약탈해버리고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메말사막의 생성원인중 하나. 그것때문에 메말사막에 사는 늑대족 마적들은 호랑이족을 증오한다.] 중북부에 적당한 위치에 티겔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가 왕노릇을 한게 시초.[* 이때부터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중북부를 통합하기전까지 유지됬던 때를 상티겔왕국이라 한다.]그렇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되지 못했는데 10여년뒤, 그의 막내여동생인 '달순'이 그를 죽이고 자기가 직접 왕위에 올랐기 떄문. [* 이게 또 대단한게, 잠깐 행차를 나간사이 달순이 달구의 경호원 10여명을 혼자서 죽인뒤(....)살해했다. ~~리얼 소드마스터~~] 달순의 통치하에 상티겔왕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전까진 그냥 일개도시국가수준이던 상티겔왕국을 전제군주국가로 바꿔버렸다는 평을 받을정도이다. 그의 치세하에 상당한 량의 농지를 얻어내 이후 티겔이 본격적으로 중북부의 패자가 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달순여왕은 한편으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로도 자주나오는데, 그녀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만 십몇편은 될정도.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삼촌인 달준의 사망이후 실권자가 된 달건의 맏아들인 달제는 황폐화된 국토의 재개발에 힘쓰면서 한편으론 남쪽에 여전히 자릴 잡고 있던 사냥꾼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달구의 악행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접촉을 성공하고 그들에게서부터 남부쪽에 개척자들을 보낼때 어느정도의 개간을 허용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위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용 사냥꾼들까지 보내오겠단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상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반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남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남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남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태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상티겔 왕국은 달휴의 사후 점점 기울어져 갔는데, 우선 달휴가 죽고 그의 맏아들 '불운한' 달계가 즉위했으나, 그는 한달도 안되서 의문사하고(...) 그의 둘째 '천벌의' 달연이 왕위에 오른다.[* 호칭을 보면 알겠지만, 달계 암살의 유력 용의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왕위에 오르고 약 이틀도 안되어 그의 동생 달혜가 그를 암살하고(....) 또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나흘이후 그의 제수의 명을 받은 암살자에게 죽을뻔 한다(...) 그에겐 다행히, 암기가 급소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하가서 살았고, 얼마 안돼 제수는 교수형, 그리고 그의 여동생은 가택연금을 시키는걸로 마무리시킨다. 달혜는 상티겔 왕국의 왕들중 최악의 왕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그전까지 충실한 우방이었던 하이엔 왕국을 괜히 외교적으로 도발해 적대관계로 가게 하고, 북쪽의 라이엘기스 대공국[* 레잉 왕국이 멸망하기전 마지막 왕의 동생(적자가 아닌 서자였다.)이 세운 국가.]에겐 지속적으로 병력을 갈리면서(...) 국력을 낭비했으며, 그나마 우방이었던 츄프왕국과는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이 벌어지는 상태인 불안한 동맹관계였다.[* 상티겔 왕국이 메롱한대도 츄프왕국이 굳이 티겔과의 관계를 끊지않은 이유는 북쪽의 숙적 크누고 공국과 그들을 지원하던 하이엔왕국 때문이었다. 즉, 크누고 공국을 제압하면 얼마든지 티겔과의 관계도 끊을 수 있었다는 애기.] 이렇게 외교적으로 불한한 상태에서 내정을 잘한 편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사자족 토벌이라면서 상당한 량의 세금을 걷어갔고, 이는 지속적인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사서에만 기록된 반란의 횟수는 약 20여회정도이다... 사서가 훼손되어서 기록되지 못한 반란까지 포함하면 이횟수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달계의 아들이었던[* 달계가 죽었을당시 아직 태어나지 못해 계승받지 못했다.] 달유가 귀족들에 도움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다.
달유는 상티겔 왕국의 멸망을 30년은 늦춘 왕으로 평가 받는데, 하이엔왕국 계승전쟁에 개입해 적자인 선왕의 손자를 왕위에 올려서 하이엔왕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딸을 츄프왕에게 시집보내 동맹관계를 두텁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북쪽 국경을 위협하던 라이엘기스 대공국쪽으로 안심하고 전력을 집중할 수 있게하는데 도움을 줬고, 최종적으로 나트렘 평원에서 벌어진 회전에서 라이엘기스 대공과 대공의 세아들을 모두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둬, 라이엘기스대공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어냈으나..... 기세를 몰아 라이엘기스로 공성을 곧장가는 도중에 병으로 달유가 급사하면서 급히 병력을 돌릴수 밖에 없었고, 이는 티겔 왕국이 마지막으로 라이엘기스대공국과 후신 레이먼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기회로 평가받는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식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식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상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상티겔왕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상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백작부인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어찌저찌 상티겔왕국이 남쪽에 세웠던 식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백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백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식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동부 대륙 남부에선 [거인족(창작: 세대륙 이야기)|거인족], 혹은 '야만인'이라고 흔히 부르는 종족들이살고 있었다.[* 사실 남부말고도 중동부 산맥, 북부산맥쪽에도 살고 있다.] 이들은 본래 대부분 남부쪽에서 수렵과 약간의 농경생활을 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으나, 같이 남부에 살고있던 '거수인'이란 종족들중 일부가 '불꽃의 여자'부족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자 그들에게 밀려나 북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던것이다.
하나가 된 거인족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여러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했고, 졸지에 고향을 잃게 된 그 일대 사냥꾼들은 당시 대륙 서남부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남부의 최대던 문씨나 고씨족은 박살났으므로] 신씨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으로, 어느 야만족들이 사냥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불태운다는 소식은 모든 사냥꾼 씨족들을 자극시켰고, 이로인해 모든 사냥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는 사냥꾼들의 '대군주' 작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어 이어진 대군주를 정하는 회의에서 참석한 모든 씨족들이 문씨와 고씨가 몰락한 상태에서 제일의 씨족이 된 신씨일족의 가문 수장 신유를 대군주로 추대하게 된다.
- 조응천 . . . . 66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슬하 2남 ||
|| '''약력''' ||<(> 대전지방검찰청 검사[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br][[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br]부산고등검찰청 검사[br]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br][[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br][[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br][[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br]~~별주부짱 매니저~~[* 공직을 맡은 것이 아니라 취소선을 쳤지만, 이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직기강비서관에서 잘린 뒤에 그는 아내와 같이 해물전문점을 운영했었기 때문이다. 즉, 당선될 당시 그는 자영업자였다. 이는 그의 총선 포스터에도 당당하게 적어 놓은 약력이다.][br][[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전직 자영업자. 그리고 '''[[문재인]]의 남자 2호'''[* 남자 1호는 [[김병기(정치인)|김병기]] 의원이라고 한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자신이 친문 인사임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물론 말로만~~ "나는 친문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 사퇴 후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병기와 조응천 두 사람을 본인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으며, [[박근혜정부]]에서 핍박 받은 두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직접 트위터에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 다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훗날 요긴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김병기(정치인)|우병기]] [[조응천|좌응천]]~~ ~~최초의 셔터맨 출신 국회의원~~
[[대경권|TK]] 출신 엘리트 검사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요직을 맡아 성장했고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대경권|TK]] 성골 엘리트급의 보수 인재 루트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적당히 끊고 청와대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구 새누리당에서 요직을 맡아 보수층의 중심에 올랐을테고, 계속 해서 청와대에서 자리를 맡았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축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돼 '''별주부짱'''이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며 중앙 정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을 갖고 있다.
요약하자면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실용정부|이명박 정부]], [[박근혜정부]]까지 4개의 정권에서 요직을 맡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4개의 정권은 이념과 성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본인이 선거 홍보물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중용될 정도로 능력과 도덕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외부 인사에 관한 감찰 자료가 보도되면서 이에 책임을 물어 해임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2014년 4월 15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이었다.[* 해임된 다음 날, 혼란스러운 본인의 상황 중에 우연히 TV를 보게 되었는데, [[세월호 참사|갑자기 너무나 당황스런 화면]]이 나오고 있어서 몹시 어리둥절 했다고 한다.]
그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기소되었는데 그때 유출된 그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보좌해왔던 [[정윤회]]가, 야인이 된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서 특별히 더 신뢰받는 비서관들에게 여전히 지시를 내리며,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임된 후, [[양복]]을 입고 근무하는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억울한 해임과 기소에 홧병이 나서 본인과 부인 모두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가슴이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시]]까지 자주 다녔다"고, 출마한 후에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가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응천을 국기문란사범으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종편에 의한 후속보도까지 이어졌을 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인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나와서는 그때 썰을 푸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Wq4Bmffjg|정청래 : 근데 본인은 지금 행복하잖아 / 조응천 : 땡큐.]]라고 큐트하게 받아쳐 주신다. ~~막 특검 왔다갔다 거리고~~ 정청래는 옆에서 "진짜 큰일 날 뻔했어~엉, 안 짤렸음 어떡할 뻔했어~엉", 김어준은 "그렇겠지, 청문회 나가서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거 하고 계셨겠죠."라면서 깐족깐족대는데...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다.] ~~[[자덕|자전거 덕후]] 입장에서는 주말 소풍 수준인데...~~ 다시는 공직이나 법조인 생활을 하기 싫은 생각에 [[마포구]]에 '''[[http://dmaps.kr/23r6b|별주부짱]]'''이라는 해물 요리 전문점을 개업하였다.
본인 말로는 식당의 매니저, 셔터맨을 도맡았다고 한다. 실제 총선 후보 시절 직업란에 '''별주부짱 매니저'''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 [[기독교방송|CBS]] 변상욱 기자가 김용민의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http://www.podbbang.com/ch/9954?e=21859559|조응천 씨가 횟집 이름]]을 '''[[정윤회|정윤횟집]]'''으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주위에서 '''"그러다 너 죽는다"'''라고 뜯어말렸다 전해진다--
[[문재인]] 당시 대표가 영입한 마지막 외부 인사였다. 입당의 변과 십상스시 에피소드를 풀어놓은 이이제이 출연분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가 매일 같이 찾아와 간절히 부탁했고 처음에는 그다지 정치에 입문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정치 아니겠냐."'''라는 (문 전 대표의) 말을 듣자 비로소 결심이 섰다고 한다.
이때 자리에 함께 있던 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주 입고 다니는, 땡처리로 구입한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몇 천 원짜리 회색 후리스 스웨터를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뜻의 징표'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는 그 후리스를 자주 입고 다니며 커플룩을 인증하기도.[* 해당 후리스는 [[문재인]], 조응천 지지자들에게 있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후리스를 사서 단체로 입고 별주부짱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참고로 부인은 남편이 정계 입문한다고 하자 "미친놈", "이혼하자" 등 격한 언사를 퍼부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눈빛에 감전되더니, "쓸 만한 놈이니 잘 써달라"고 하면서 정계입문을 허락했다고(...)
선거 결과를 뒤집은 그 투표함은 주소지는 [[남양주시]]로 되어 있지만 타지에서 생활하는 관외 유권자들의 표를 모아놓은 사전 투표함이었다고 한다. 조응천 후보가 본인이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 [[새누리당]]의 심장수 후보는 [[설레발|자기가 이긴 줄 알고 미리 당선증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고(...). ~~[[안습]]~~[* 여담으로 심장수는 8년 전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며 출구조사에서는 앞섰지만 개표 결과 당시 현역 의원인 최재성 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더욱이 심장수는 조응천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선배이기도 했기에 더욱 패배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여담으로, 지역구 전임자인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은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송파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로써 [[최재성(정치인)|전임자]]가 돌아올 걱정은 덜었다--
[[일베]] 용어를 잘 알고 있으며[* 특히 '레이디 [[가카]]'(= [[박근혜]])라고 쓰는 일은 많지만 '레카'로 줄여 쓰는 경우는 일베 외에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용어이다.][* '내일 오전 레카가~걱정하면 좋지 '''않겠노''' '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않겠'''노'''를 쓰고 있으며 일베식 표현에 맞춰서 일부러 잘못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 [[정게할배]]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318716667084&id=100008669135751|페북으로]]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39779988311&id=100008669135751|일베 드립]]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정도다. 이후 일반인에겐 생경한 일베드립을 친 것에 대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88903316732&id=100008669135751|양해를 구하였다]]
[[일베]]에선 고소각을 재느라 평소대로 막말을 내뱉지 못하는 [[정게할배]]들이 약이 올라 부들부들대고 있으며, [[친이]] 반 틀딱 성향의 일베 이용자들은 "응천게이 일베충이었노!", "틀딱들 부들부들", "[[박근혜]] 비서관 시절에 분명 2자릿수 고레벨 활동 이용자가 틀림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에 따르면, [[우병우]]의 검사장 승진에 대한 검증이 자신에게 올라왔을 때 잘랐다고 한다.
* [[2016년]] [[7월 1일]] 조응천 의원은 국회 상임위원회 감사에서 [[MBC]] 출신의 대법원 양형위원이 성추행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김장겸|당사자의 실명]]'''까지 거론해 가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보도 자료까지 배포해 일부 언론에서는 "양형위원이 성추행 전력이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문제의 [[MBC]] 간부는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0876|조 의원이 지목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MBC]] 보도국 부장이라고 한다.
조응천 의원은 상임위 발언이나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사실 관계를 확실히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한편, [[MBC]]는 명예훼손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214&aid=0000638302&date=20160701&type=2&rankingSeq=1&rankingSectionId=100|MBC의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기사.]]
7월 4일, 조응천 의원은 사실 관계를 똑바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죄하였다. 그는 '당사자가 해외에 있고 연락이 안 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당사자를 만나 용서를 구할 것이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모든 비난을 달게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김종인]] 대표도 조응천 의원에게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고 강력히 경고하였고 조응천 의원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8년 1월 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달 22일 조 의원에 대해 일부 공소권 없음, 일부 무혐의 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로 피소된 조 의원의 당시 비서관은 벌금 1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http://v.media.daum.net/v/20180108190034848|*]] 그러나 [[김장겸|지목된 당사자]]는 별도로 조응천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였고 ~~MBC 사장직에서 쫓겨난 뒤에 치러진~~ 1심 재판에서 조응천 의원이 그 당사자에게 500만 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31426001&code=940301|*]]
- 진격의 거인/98화 . . . . 66회 일치
* [[빌리 타이버]]의 방문으로부터 한 달 뒤. 타이버가의 연설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라이너 브라운]]을 포함한 마레의 전사들은 마레군 수뇌부에 팔라디섬의 정보와 공략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라이너의 의견을 자세히 검토도 하지 않고 "엘디아인에게 괜히 물어봤다"며 쓸모없는 취급을 한다. [[포르코 갤리어드]]는 이에 불만을 품고 "팔라디섬 계획은 참 순조롭다"고 빈정거린다. 라이너는 의견이 묵살된 것 보다는 대장인 [[테오 마가트]]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쪽을 의식한다.
* 마레의 전사들은 작전실에서 쫓겨나 연병장을 바라보며 조국과 엘디아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데, 마침 연병장에선 전사 후보생들이 훈련 중이었다. [[가비 브라운]],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완전군장 상태로 구보를 하던 중인데 잘 보니 뒤쳐져 있던 파르코가 기어이 가비를 추월해 1등으로 골인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긴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훈련생들은 엄청나게 환호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형인 [[콜트 그라이스]]는 문득 "한 번 정도 이긴 걸로 가비의 우위가 흔들리진 않는다"며 미심쩍은 발언을 한다. 자신이 짐승 거인의 계승자인 이상 동생까지 굳이 갑옷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는데, 듣고 있던 [[지크 예거]]가 "명예를 업신 여기는 거냐"고 꾸중한 뒤 "하긴 그게 형의 마음이다"고 다독이며 콜트를 데리고 캐치볼을 하러 간다. 포르코는 "그런게 형"이라는 지크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후보생들은 수용구 출입통제소를 지날 때까지 떠들썩하게 파르코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파르코는 각오를 다진 탓인지 가비가 도발을 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할 일을 할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는다. 가비가 "어차피 너희 형이 있어서 명예마레인 확정인 주제에 왜 그렇게 기를 쓰냐"고 안달하자 마침내 "널 위해서"라고 고백하지만 가비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낙담한 파르코는 병원으로 향하는데 요즘은 거의 항상 가고 있다고 한다.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상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상태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 파르코는 자신을 "크루거"라 밝힌 남자와 매일 만나고 있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길 일을 말하며 "크루거의 덕"이라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몇 번이나 편지 배달을 부탁한 자신이 감사할 일이라고 사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야구공과 글러브를 받았는데, 자신도 그걸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보고 파르코는 자리를 뜨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군의 진료의로 일하는 "예거"씨였다. 크루거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본다. 노인이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크루거가 허락하고 둘은 통성명을 한다. 크루거는 "크루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댄다. 노인은 크루거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나, 파르코가 자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화 상대를 찾아온 거란 말과는 달리, 파르코의 상세한 내력에 대해서 읊기 시작한다. 파르코의 숙부가 엘디아 복권파 조직의 간부였다 숙청 당한 것, 연좌를 당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콜트가 마레의 전사가 된 걸로 겨우 그라이스가에도 안정이 왔다는 설명 뒤에 아마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을 만나기 껄끄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의는 이랬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상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상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 축제의 전야제 격으로 전세계에서 모인 요인들이 본부에 모여 파티가 열렸다. 전사 후보생들은 급사로 차출되는데 주변에선 "더럽혀진 피가 급사를 하고 있다"고 투덜거린다. 우도는 그 험담에 신경쓰다 실수를 범하는데,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의 옷에 흘리고 만다. 그런데 그 여성은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도가 실수한게 알려지면 그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옷을 버렸다고 조용히 얼버무린다. 그녀는 심지어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도 문제삼지 않았는데. 가비는 그녀가 동양의 "히즐"국에서 온 사람인걸 알아본다.
* 잠시 뒤 빌리 타이버가 나타나는데, 과연 타이버가의 사람답게 전세계의 요인들과 친분이 대단하다. 심지어 마레의 대사가 파티를 축하하는 말을 해도 냉담한 기류만이 흐르다가, 빌리가 나서서 축사를 하자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진다. 그는 세계인들이 엘디아인의 근절을 바라는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며, 자신이 한 가지 답을 냈고 내일 수용구에서 열릴 축제에서 그걸 공개하겠다고 선언하고 축배를 들어올린다.
>위대한 극작가와 역사의 목격자에게!
* 축제의 클라이막스인 빌리의 연설 시간. 전사대도 자리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는데 파르코는 "아는 사람"을 만났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다. 돌아온 파르코는 라이너에게 잠깐 어딜 가자고 하는데 지크고 개막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허락해준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외딴 지하실로 안내한다. 대체 뭐냐고 묻는 라이너에게 파르코가 "가보면 안다"고 대답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르는 라이너. 그리고 지하실 문을 연 라이너 앞에 나타난 것은, 4년 만에 만나는 104기 동기. 파르코가 "크루거"라 알고 있는 남자. [[엘런 예거]]였다.
그 자리에 얼어붙는 라이너.
마레군의 참모들에게 팔라디섬의 공략루트에 대해 섬의 남쪽과 북쪽 모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참모들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며 평가절하하고 마레의 전사들에게 의견을 물은 일 자체를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잠시 뒤 파르코가 처음으로 가비를 이기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축제가 시작되고 나서는 가비 일행을 인솔하고 다니며 이것저것 사먹이다가 가비가 "뭔가가 바뀔 것 같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 선뜻 대답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거기에 수긍한다. 그리고 빌리 타이버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파르코의 요청으로 잠시 자리를 뜨는데, 이끌려간 곳에서 4년 만에 적이자 동지였던 엘런 예거와 재회하고 말을 잊는다.
크루거의 조언을 받으며 훈련에 매진해 마침내 가비를 이기는 기염을 달성한다. 가비에게 "너를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고 싶다"고 고백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좋아하는건 수용구 출입구를 통제하는 병사들 조차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 안습. 크루거를 계속 방문하고 있었으며 그의 편지배달도 계속했다. 축제가 시작되자 즐겁게 즐기다가 빌리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그를 크루거에게 안내한다.
예거 박사의 입을 통해서 그의 숙부뻘 되는 인물이 엘디아 복권파의 간부였고 그 바람에 일족 전체가 연좌제로 고생한 사실이 밝혀진다. 정황으로 보면 그 숙부가 그리샤 예거를 가담시킨 "그라이스"란 인물.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게 된 덕에 겨우 사정이 나아졌는데 반대로 현 짐승의 거인 계승자인 지크의 가족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가 된 모양이다.
파르코가 가비를 꺾는 걸 보고 기뻐하지만 "그래도 가비가 유력한건 변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다. 포르코가 "당국의 기준은 애매하다"며 꼭 가비가 유리한 것도 아니란 늬앙스로 말하자 반발하면서 자기가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데 파르코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말해 지크에게 한 소리 듣는다. 하지만 지크는 그가 형이라서 동생을 생각해 한 말이라는걸 이해해준다. 이때 대화를 들은 포르코는 자기 때 일이 떠오른 건지 생각에 잠기는데.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파르코가 가비를 처음으로 이기자 조피아와 함께 기뻐해준다. 수용구에서 축제 준비와 무대 건설이 한창인 걸 보게 되는데, 가비가 희망적인 발언을 하자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반응한다. 이때 원래는 국외의 엘디아인 수용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외국의 반엘디아인 감정은 더 심한데다 수용구에서의 처우도 열악하다고 한다. 그렇게 악감정이 심한 세계인들이 빌리 타이버의 연설 한 번으로 협조해줄리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축제 전야에 파티가 시작되자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큰 실수를 한다. 주변에서 "엘디아인이 급사다"고 험담을 하자 거기에 신경쓰자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에게 흘리는데, 그 부인이 뜻밖에 너그럽게 처리해준다. 부인은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을 문제삼지 않는데가 그가 이 일로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감싸주기까지 한다. 조금 후에 가비가 "그녀는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다음날엔 가비 등과 함께 즐겁게 축제를 즐긴다.
에피소드 초반에 라이너가 참모들에게 의견을 피력하는 자리에 동석. 하지만 진행 중인 이야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라이너가 조금 이상하게 여길 정도. 그의
속셈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밝혀진다. 한 달 전 빌리 타이버의 방문 때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내통하는 관계가 된 것. 부패한 군당국을 "집의 증축 건"으로 비유해서 "대대적인 해체공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빌리는 만족스러워하며 그에게 군의 전권을 맡기고 "원수"로 승격시킨다. 이때 빌리가 "군은 네 것"이라 말하자 "군은 나라의 것이며 나라는 빌리의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사실 빌리는 그렇게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시키듯이 "집안이 무너질 판이지만 쓸만한 기둥도 있다"며 그들이 보고한 집안에 든 생쥐에 대해서 전달한다.
- 현이와 덕이 . . . . 66회 일치
'''현이와 덕이'''는 1975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2인조 [[싱어송라이터]] [[남매]][[듀엣]]/[[배우]]이다.<ref>{{웹 인용 |url = http://music.naver.com/artist/home.nhn?artistId=9526|제목 = 네이버 뮤직|저자 = |날짜 = |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70~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솔로로도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90년 남매 모두 [[요절]]하게 된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활발히 연예활동을 하고 있던 이들 남매는 1989년 [[장덕]] 솔로 정규6집 발표 후 [[장현]]이 설암판정을 받게 되자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90년 1월 [[장덕]]은 [[신년]][[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였으나, 어릴때부터 앓아 오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과다복용 하게 되어 [[1990년]] [[2월 4일]]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동 1008호 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 8월 [[장현]] 역시 설암으로 사망했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 1995년 혼성그룹 [[투투 (가수)|투투]] 정규 2집 《바람난 여자》 발표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2006년 10월 26일 [[MBC]]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제12회 : 장덕 작사/작곡 · 장덕 노래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삽입 (철수가 두고 간 워크맨을 병희가 틀자 흘러나오는 곡)
* 2015.02~2015.05 [[KBS]][[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OST]] : [[어쿠스틱 콜라보]] -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 2018년 4월1일 <북한 평양공연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 2018년 4월3일 <남북합동공연(평양)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상씨와 [[서양 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충무로]]4가에서 1961년 4월 21일 태어났다.<ref>{{웹 인용|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맏이 [[장현]]은 [[바이올린]]을, 둘째인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절부터 자라났다.
1972년 장덕은 오빠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기슭의 작은 집으로 이사 나오게 된다. 하지만 오빠는 남의 집 가정교사로 일하러 나가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어디론가 나가 늦은 밤 술을 마시고 돌아와 장덕은 빈 집에서 홀로 남겨진 고독과 싸우며 외롭게 생활했다. 그리고 새 엄마가 들어오자 남다르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장덕은 음독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1974년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한 장덕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수 없는가?'라는 생각에 우울해 하다가 그 해 가을 메모도 남기지 않고 무작정 친구집인 대구로 내려가 10일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장덕은 이내 수면제 10알을 먹고 음독 자살을 기도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장덕의 어머니는 장덕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시 인기를 끌던 미국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맏이 장현과 함께 남매 듀엣을 결성시켜 준다.
1975년 4월 만 14세(중학교 2학년)가 된 장덕은 오빠 [[장현]]과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To Be A Child Again>는 장덕 작곡의 첫 발표곡으로 영어가사는 [[미8군]] 관계자이자 [[드래곤 래츠]]를 초청한 엘 클리나드가 붙인 것이다([[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 또한 엘 클리나드가 붙였다.). 장현 · 장덕 남매는 이 공연을 통해 출연료도 제대로 받았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의 노래와 미모에 반했다는 찬사를 들으며 엘 클리나드를 통해 출연계약까지 정식으로 요청받는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장현 · 장덕 남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되었고 1개월 뒤(5월) TBC TV의 청소년과 젋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장덕은 [[작사]] · [[작곡]]에 능한 [[천재]][[소녀]]로 평가 받게 된다.
1977년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임원식 [[감독]]의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한다. 장덕은 몇몇 영화에서 단역을 맡아 본 적은 있었지만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한달 뒤(5월) 장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로 인해 집들이에 참석한 가수 [[송창식 (가수)|송창식]]은 장덕이 중학교 2학년(만 14세) 때 작사 ·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 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한다. 결국 [[송창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장덕은 <[[소녀와 가로등]]>을 곧 데뷔하게 되는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 [[작곡가]]로서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제 2회 대회부터는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에서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로 이름이 바뀐다.)에 출전한다. 당시 가요제 규정상 작곡가도 가수가 함께 무대를 꾸며야 했기 때문에 장덕은 빵모자를 눌러 쓴 깜찍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입상). 같은 해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박태원 [[감독]]의 [[영화]] <[[선생님 안녕]]>에서 [[장현]]은 [[임예진]]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삼각관계가 얽힌 영화로 비록 단역이지만 장덕 또한 [[장현]]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현이와 덕이는 이 영화에서 [[사운드트랙]] <정말>도 싣게 된다.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명[[감독]] [[김응천]] · [[석래명]] ·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 음악을 전공하는 청순한 여고생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팬들에게 다섯 번씩이나 납치를 당했을 정도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 그 해 7월 장덕은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된다. 이 시기 오빠 장현은 오라오라에 출연했을 때 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였던 천봉의 딸 천인실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장덕은 결혼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8년 [[현이와덕이]] 정규1집 <[[순진한 아이]]>가 발표 되었다.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일기장>, <[[소녀와 가로등]]>, <정말>, <작은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11곡+경음악1곡 수록, 같은 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발표)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한인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한국의 샘터에서 MC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장덕은 리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이승언과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결혼은 감옥 같은 것 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대학 졸업 후 결혼하라고 충고했지만 10월 17일 미국에 온지 1년만에 장덕은 자신을 아껴주는 이승언과 [[내쉬빌]]에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리 패밀리의 일원으로서(밴드에서 장덕은 음악적 리더 역할을 하였고 퍼스트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한인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그녀는 서울에서의 화려했던 가수 생활의 추억을 점점 그리워 하게 된다.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된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해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ref>[http://www.mbn.co.kr/pages/vod/programContents.php?progCode=613&menuCode=3439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MBN 2014년 7월 11일 방송 참조"</ref> 그리고 한달 뒤(11월)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이라는 금액에 전속계약을 맺고(그녀는 오랫동안 공백을 가진 스타였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았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날 찾지 말아요>가 발표한 지 6달 만에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집계 한 달(1984년 5월)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까지 오른다. 많은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장덕으로서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당시 방송을 꺼려한 탓인 지는 몰라도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가수 부문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사이(1984년 2월) 장덕은 새 음반을 내는 자매듀엣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하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 그리고 장덕에 의해 각각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도 리메이크 하여 자신들의 새 음반에 수록한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65회 일치
* 그리샤는 진실을 이야기 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언급해야 했다고 쓰고 있는데, 그의 어린시절은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 페이는 언젠가 부자가 되면 비행선에 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데 그리샤는 "우리가 어떻게 부자가 되겠냐"고 대답한다.
* 제방을 넘자 강 저편으로 비행선 착륙장이 있다. 착륙한 비행선을 보고 그리샤와 여동생은 얼굴이 환해진다.
* 호리호리한 남자가 수용구에 있는 아이들인걸 알아보고 외출허가증을 요구한다. 하지만 무단으로 이탈한 그리샤에게 그런게 있을리 없었다.
* 군인은 그리샤에게 노동과 제재,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하고 그리샤는 자기가 멋대로 여동생을 끌고 왔으니 여동생 몫까지 제재 당하겠다고 한다.
* 그러나 그 모습은 피해자를 대하는게 아니라 범죄자의 가족을 대하듯 한다.
* 그러나 그 이상으로 너무나 어리석었던 자기 자신을 원망한다.
* 클루거도 이 자리에 동석하고 있었는데, 죽은 것같은 눈을 한 그리샤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 이때부터 엘디아 제국의 지배는 1700년이나 이어진다. 그런데 엘디아인들은 다른 민족을 열등민족으로 규정, 탄압을 자행한다.
* 다른 민족을 침략해 멸족시킬 뿐만 아니라 여자를 빼앗아 성노예로 삼는다.
* 하지만 그리샤는 딸을 잃고도 태연히 이런 설명이나 하고 있고 자기 선조들의 역하를 비하하는 모습을 개에 비유한다.
* 그리샤는 그 남자가 거짓말을 했고 분명 뭔가 한게 틀림없다고 말하지만 이야기가 마레 당국 귀에 들어갈 것을 우려한 아버지는 거칠게 그리샤를 비난한다.
* 아버지는 피해자 측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이라며, 단지 여기서 조용히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말한다.
* 젊은 남자가 진찰을 받으러 오는데, 그는 어깨에 십자 흉터를 보여준다.
* 그리샤가 그게 어떻게 난 상처냐고 묻자 "동포의 증거"라는 대답을 한다.
* 엘디아 복권파는 "올빼미"라 불리는 정부의 내통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 올빼미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무기나 자금을 융통해주고 엘디아인이 모르는 역사서나 경전 따위를 제공해서 사실상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 그러나 이들은 이미 시조 유미르를 신앙화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선택받은 신의 아이라고 믿어의심치 않게 됐다.
* 어느날 올빼미가 보냈다는 여자가 아지트를 방문한다.
* 조직원들은 그런 절대적인 힘이 있는 프리츠 왕이 왜 전쟁에 패해서 도망친 거냐고 의문시하는데, 다이나는 그 역사 자체가 날조라고 주장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64회 일치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제2차 세계대전]] 대전략 게임인 [[Hearts of Iron II]]을 인디 개발자들이 뜯어고친 게임. 보통 DHR이라고 줄여 부른다. 국내 팬덤에서 부르는 애칭은 "데찰" 또는 "데챨".
게임의 최종적 목표는 HOI2와 같다. 플레이어는 승리 점수가 있는 지역을 최대한 확보해 자신이 속한 동맹이 제일 많은 승리 점수를 얻게 해야한다. 제한시간[* 기본적으로 1964년]이 되면 게임이 끝나고, 그 순간 제일 많은 승리 점수를 확보한 동맹이 승리한다.
"디시전"이라는 기능이 생겼다. 정부 정책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인데, 이 때문에 침략전쟁을 벌이는 국가(독일, 일본 등등)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전쟁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이벤트에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던 HOI2에서는 등을 떠민다는 느낌이 강했다.
유닛과 기술 등이 대규모로 수정되었다. 이 때문에 대전차포나 로켓포, 자주로켓포 같은 유닛은 사라졌지만, 중포와 같은 새로운 유닛이 생겨나기도 했다. 기술의 경우에는 테크트리의 연도가 19세기 말~1960년대까지 확장되었다.
수장은 독일. 1936년 기준으로 독일 혼자 뿐이지만 게임을 진행하게 되면 이탈리아나 동유럽의 국가들, 일본 등을 끌어들일 수 있다.
수장은 소련. 소련 외에는 주목할 만한 국가가 없다시피하다. 나머지 회원국이라봤자 탄누 투바나 몽골인민공화국 정도라. 다른 두 세력(주로 주축국)을 밟아준 후 이들의 소속국을 공산화시키는 형태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 자원 ==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 공장을 돌리는데 소모된다.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 공장을 돌리는데 소모된다.
* Rare Materials(희귀 자원)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 공장을 돌리는데 소모된다. 역사적으로 희귀 자원 부족에 허덕였던 주축국 주요 국가들은 디시전을 통해 다량의 에너지를 희귀 자원으로 만들 수 있다. 교환비가 심하게 창렬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 전차나 항공기, 군함과 같은 연료를 소모하는 유닛들이 소모한다.
공업력을 보급품에 할당해 생산하는 자원. 모든 종류의 유닛들이 소모한다. 보급품을 충분히 받지 못한 유닛들은 차츰 사기와 조직력이 떨어지다 보급 부족으로 전멸한다.
* Money(자금)
공업력을 소비재에 할당해 생산하는 자원. 외교 활동비, 첩보 활동비, 연구진 임금, 디시전 비용 등으로 소모된다.
아래는 거래 불가능한 자원들.
대다수의 지역에서 나오는 자원. 건물 건설이나 유닛의 생산, 증원 등에 소모된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느리게 인력이 증가하므로 인력이 많이 소모되는 전시에는 동원령으로 인력을 끌어오던가 한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원자로도 충분히 크면 생산되는 자원. 전략폭격기에 탑재해 적 프로빈스를 쑥밭으로 만드는데 쓰인다. "소형화된 원자폭탄"을 연구하면 비행폭탄과 로켓에도 탑재 가능. 핵공격을 받은 프로빈스는 건물과 자원 수급에 영구적인 피해를 입으며, 해당 프로빈스에 주둔하던 병력들도 괴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불만도는 덤. 영국과 일본[* 영국은 본토에 핵을 맞으면 항복하며, 일본은 본토에 두번 핵을 맞으면 항복한다.]을 제외한 메이저 국가들의 경우 수도에 핵을 맞으면 최대 두번까지 수도 이전 이벤트가 뜬다.
국가의 혼란도. 장관을 갈아치우던가, 소비재에 필요한 공업력을 할당하지 못했다던가, 핵을 맞았다던가, 병신같은 이벤트가 떴다던가 하면 생긴다. 높으면 군대의 전투 능력, 공업력 효율 등을 다 깎아먹는다. 일정 수준 이상 불만도가 생기면 자국 영토에서 반란군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유닛 생산하듯이 10개씩 찍어낼 수 있다. 바다 건너 영토에서 자원을 가져오고, 바다 건너에 주둔한 부대에 보급품과 석유를 전달한다. 전쟁이 시작하면 적국의 통상파괴전으로 몇척씩 침몰하기 시작한다. 필요량보다 수가 적으면 보급망에 큰 차질이 생기니 주의.
- 원빈(배우) . . . . 64회 일치
||<:><#4C4C4C>'''{{{#FFFFFF 가족}}}'''||[[아버지]] 김석산, [[어머니]] 이월순[* 한때 우리아들 ~~ 인데 그쪽 아들은 뭐해라고 하면 김석산, 이월순: ''원빈"이라는 드립이 흥하곤 했다.][br]2남 3녀 중 다섯째[br]배우자 [[이나영]], 슬하 1남 ||
사슴같은 눈망울에 [[여성]]들의 [[마더(영화)|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분위기]],[* 데뷔초에는 확실히 이런 분위기였으나 후에는 남성적인 모습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그리고 미묘하게 반항적인 태도 등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타일로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 변화에 따라 '마초' 와 '꽃미남'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레벨에 이르러서 은근히 영화마다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히 오디션에 도전해 케이블의 제일방송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된다.[* 지금은 [[MBC 드라마넷]]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렸을 적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던 것 같은데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최민수]] 주연의 [[테러리스트(영화)|테러리스트]]를 보고 액션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액션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다.[* 실제로 [[태권도]] 유단자라고 한다. 90년대에 예능 프로에서 [[안재모]]와 태권도 대련을 하는 방송도 있었다.] [[http://todayhumor.com/?star_225458|#]]
[[1997년]]의 [[KBS]]의 TV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자주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여주인공 [[김희선]]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며, 몽상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약간 4차원스러운 청년역할이었다. 그래서 스토커라는 단어도 안 쓰이던 시절인데도 자기 주위를 자주 맴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가족과 지인에게 상담도 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짝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몽상적인 대답만 한다. 직업도 대략 시인 비스무레한 사람인 듯이 말하는데 드라마 내용 자체에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그냥 시를 좋아하는 청년인지 진짜 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여주인공은 그가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남자(주인공)가 있다고 설득한 뒤 안심하며 좋게 마무리된다. 사실상 나쁘게 보면 스토커 같은 역할이라 원빈의 외모나 현재 이미지와 그렇게 많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워낙 심하게 잘생긴 외모라 역할 자체의 부정적 측면이 안 보일만큼 미화되어 보이기도 했고 아직도 그가 프로포즈에서 멋진 역할로 나왔다고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 당시 남자주인공이자 김희선의 상대역이었던 배우는 [[류시원]].]으로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레디, 고!'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1999년]] [[광끼]], [[2000년]] [[꼭지]],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를 찍은 뒤 드디어 [[가을동화]]를 통해 슈퍼스타가 된다. 2002년에는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다. 프렌즈에는 [[일본]] 여배우 [[후카다 쿄코]]가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대신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 횟수는 적으나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초기에는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작품들을 거치면서 연기력도 좋아졌다. 막장 막내 아들([[학생]])로 나온 [[꼭지]](2000년) 촬영 당시에는 선배 연기자 [[박근형]]의 엄한 가르침 아래에서 연기력을 키웠으며 이후에도 연기 선생님을 두고 연기 공부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같은 해 [[가을동화]] 당시만 해도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똥~~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가 칭찬 반 놀림 반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잘생기면 사랑도 똥(...)으로 사냐며 많이 패러디되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를 거치고[* 이때만 해도 [[장동건]]에 묻어간다, 조연 배우 일부발로 나온 이야기 중 싸가지 없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원빈의 성격은 나름대로 겸손한 편이라고 알려져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영화)|마더]](2009년)에서 연기력 논란을 확실히 떨쳐버렸으며 [[아저씨(영화)|아저씨]]에서는 영화 한 편을 혼자서 끌고 나갈 수 있는 원톱 흥행 배우로서 자리매김했다.
'''현재 배우로서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이자 CF 스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원인.'''
대선배이자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호랑이 연기선생님으로 통하는 [[박근형]]은 그를 [[꼭지]] 촬영 당시 빡세게 교육을 시켜서 간신히 배우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 CF만 찍으면서 곱상한 이미지만 추구한다며 아쉬운 후배로 꼽았다.
2013년 7월에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은 [[경기도]]의 소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연쇄살인자]]와 [[연쇄살인자]]를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창녀|몸을 파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형식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하며 [[연쇄살인자]] 역할에 원빈을, [[형사]] 역할에 [[설경구]]를, [[창녀]] 역할에는 [[장쯔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은 전반적으로 [[구원]]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 본인이 이 프로젝트를 엎었다고 한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3337|이창동이 배우들에게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31022092808979|파인하우스 필름의 관계자가 뉴스엔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제작 무산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제작이 열려 있는 작품' 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니까 좀 기다려봐야 할 듯. 2014년 1월 말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탈고된다는 루머가 여러 웹사이트에 떠돌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2014년 5월에 원빈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12249|당장은 아니지만 차기작은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그 차기작이라는 것이 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하는 영화인지는 불확실.
2015년 10월 [[신과함께(영화)|신과함께]]를 고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팬들 뿐만 아니라 여론들도 점점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지는 중. 댓글에서도 보이지만 원빈이 고사한 신과 함께 출연을 확정지은 [[하정우]]와 친한 사이인 [[강동원(배우)|강동원]]이 꾸준히 작품을 촬영하며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과 비교되고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785953|#]] (..하지만 후자의 배우는 수많은 졸작 때문에 원빈과 반대의 이유로 비판받는다. )
이러다 보니, 상술한 박근형을 넘는 대선배들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순재]]가 과거에 한 발언인 "광고만 찍는 배우, 연기나 먼저 해라."의 주된 대상으로 오르고 있다. 그나마 커버를 치자면, 요즘 활동을 안 하는 이나영처럼 조용히 칩거를 하고 있기에 뭐라 하기는 그렇고 애초에 우선 순위를 CF에 두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그닥 없다. 오히려, 이창동을 끝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나름 의리도 있어 보인다. 허나, [[강동원]]의 연기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보여주는 다작행보와도 상당히 비교가 아니 될 수도 없고, 실제로 소위 재기를 노려야 할 연기자라는 위치도 아닌 것을 보면 까여도 딱히 할 말은 없는 셈이다.
물론 비판 자체가 거세지는 않고, 안 좋게 보는 이가 존재는 하기에 복귀작을 이창동의 영화로 선택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과시한다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쿨하게 왜 그동안 영화를 안 찍었는지를 말해줄 필요정도는 있지 않나 싶다는 의견이 많다. 하다못해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절 가수 분야의 신비주의의 끝판왕으로 평가받았던 [[서태지]]도 이은성과 재혼 이후 현재는 신비주의를 많이 줄인 상태이고 몇 년마다 음반은 내고 방송에는 나오고 있다.
2005년 11월 29일 [[입대]]한 후 강원도 최전방에 있는 [[제7보병사단]]의 8연대 산하 GOP 부대에서 근무하며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강원도의 전방사단 보병대대는 GOP 일대 감시라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받아 육체적으로도 고되고 힘든 편에 속하기에 군대를 안 가려는 다른 연예인들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6개월 만에 [[의병 제대]]했다. 원빈 측에선 '원래 통증이 있었고 산악지대에서 [[행군]]을 하다보니 무리가 갔다' 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기 군생활 때 행군하고 산악구보 좀 했다고 무릎 다치는 거 못 봤다는 이유로 '뺑끼 치고 있네' 라고 함부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같은 부대에 있었다며 처음부터 훈련 같은 거 다 빠지고 맨날 의무실에 누워만 있더니 갑자기 나가서 수술하고선 [[제대]]해버렸다고도 한다.[* 2005년 초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으로 국방부에선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특히 홍보에 활용할 수 있는 연예인들은 각별히 신경을 썼고 이 전략이 먹혀 2005~2006년에 많은 연예인이 현역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원빈이 근무한 지역은 '''[[http://cfile236.uf.daum.net/image/17748E384D86B9ED29A392|이따위로 생겨먹은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http://cfile222.uf.daum.net/image/1879FA384D86B9EC1A407C|오르고 내리기를 몇 달 동안 매일 반복해야 되는 곳이다]]'''.[* 저긴 한두 번만 왔다갔다 해도 사고가 나기 쉬운데 그 이유는 겨울철에 빙판길이나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고 좁은 지역에 총은 긴데 기둥들이 많아서 기동이 힘들다. 특히 겨울철 밤에 몸이 얼어있는 경우에 시야가 차단되어 갑자기 움직일 때 조그만한 사고라도 큰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원빈이 근무하던 곳은 속칭 '네발 계단', 처음엔 두 발로 걷다가 나중엔 네 발로 걷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무시무시한 곳이었으며 현재는 그 험준함 때문에 해당 구역이 폐쇄되고 길을 새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그나마 나은 길로 변경되었음에도 무릎 혹은 허리에 이상이 생겨 후송되거나 진료를 받은 사람이 많다. 게다가 무릎 십자인대는 파열시 완치가 되지 않는 부위로 '''평생 통증과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된다.'''. 쉽게 설명하면 대한민국 가장 험준한 지역중 하나인 7사단 GOP에서 가장 힘든 8연대구역으로 발령받고 거기서도 워스트로 드는 최악의 곳에 발령 받은셈이다. 일반인도 장기간 복무하면 쉽게 다치는 곳에 환자가 직접 찾아갔으니...
당시 원빈은 상황병으로 근무했으므로 원래대로라면 좌선이나 우선을 하루에도 두 번 이상 왕복하진 않고, 상황병은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연속으로 타면 많이 타는 게 통상적이나, '원빈' 이라서 소대장이 근무 때 자기 소대통신병 대신 원빈 데리고 자주 나갔었다.[* 이때 육군 홍보용으로 촬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흑역사|이 사진은 결국]]...] 그런 관계로 따라나갔다가 훅! 간 거라 [[카더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7사단에서 근무하는 모든 장병들이 무릎이 나가거나 하지는 않는다.--하지만 높은 확률로 부상당하기 쉬운 곳 중 하나고 웬만한 사람도 크고 작은 부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곳이다.-- 문제는 '''원빈이 입대 전부터 무릎이 좋질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사병이 아닌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론 본의 아니게 객기부리다가 [[의도는 좋았다|양쪽 다 피해를 보게 된]] 모양새가 되었으나, 사실 당시 원빈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객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원빈은 [[강원도]] [[정선군]] 출신인데 항목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저 동네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메산골 중 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으니 당연히 산에 매우 익숙할 것이며, 건강에도 나름 자신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 최전방 지형 정도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중간에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원빈이 연대장과 면담 때[* 국방부에서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연예인들은 상부에서부터 신경을 꽤 써줬다고. 후에 [[문보살]]도 그렇고...] GOP만큼은 빼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것이 묵살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고 결국 위의 사단이 벌어진 것. 사회의 억압만 없었더라면 더 나은 길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연예인 잡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게 웃기지만.
하지만 원빈이 다친 후에 육군에선 가능한 한 배려해줬다. 민간병원에서 수술 이후 [* 군 복무중 중대한 부상이나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부상당한 군장병은 사비로 민간병원에 치료할 것인지, 국비지원으로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국비지원 민간병원 위탁치료는 지방소재 국군병원 군의관의 진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빈은 국군수도병원 후송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로 민간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민간병원 수술이 이례적으로 국비지원 하에 이루어졌는지, 사비 부담인지는 당시 기사에서 정확히 다룬 것이 없어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요양은 군병원이 아니라 병가를 얻어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다만 재활치료는 춘천병원에서 받았다. 의병제대 판정도 여기서 받았고.] 군복무 중 중대한 부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더라도 요양이 필요한 군장병은 수술이 끝나고 나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택에서 장기간 요양하거나 장기 병가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다.--쉽게 말해 수술을 위해 병가 10일 정도 혹은 가지고 있는 휴가를 합쳐도 20일을 넘기기 힘들고 그 안에 수술을 마치고 복귀해야 한다.-- 게다가 걸을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 단순히 다리를 절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의 후유증이면 의병제대를 받지 못하고, 요양은 커녕 자대에서 군복무기간을 마저 채우고 만기전역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10년 이후나 되어서야 후자(걸을 수 있으나 후유증과 통증)와 같은 유형을 [[복무 부적격자]]로 판명하여, 아예 군병원에서 환자에게 한 달짜리 휴가증을 줘서 집에 보내고 전역일까지 계속해서 휴가증을 연장 발급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제대시키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공식적인 의병제대와의 차이점은 전역일까지는 군인 신분이라 만약 휴가 기간에 사고를 치면 헌병대에 끌려간다는 것과, 전역 전에는 여권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예비군이 면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원빈의 경우는 그러한 경우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혜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 당국이 연예인이기 때문에 언론 등을 통해 행정의 미비점 등이 알려지지 않기 위해서 각별히 배려를 한 것이지, 원빈 본인이 편법을 썼다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 십자인대 부상이 매우 심각하여 의병 제대 이후에 스크린 복귀작이던 마더까지 걸린 시간이 2~3년으로 꽤 길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록 의병제대일지라도 군복무 중에 부상을 당한 것이고 절차에 따라 의병제대한 것이므로 병역의 의무는 다 한 것이다. 비록 조기에 의병제대하여 군복무기간 자체는 짧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군복무를 빌미로 원빈을 비난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본인이 편법을 쓸려고 굳이 군생활하면서 생활에 중요한 무릎 십자인대를 파괴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면제도 충분히 받을만한 방법도 많은데 현역으로 간 사람인데다 몸이 재산인 연예인이 무리해서 십자인대를 스스로 파괴하는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 신인 시절 연기자로서 미래가 어둡다고 좌절했을 때 용기를 북돋아준 인물은 故 [[앙드레 김]]이라고 한다. 앙드레 김의 추천으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특별대표에 위촉되어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박경림(MC) . . . . 63회 일치
[[분류:1998년 데뷔]][[분류:한국 여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여성 방송인]] [[분류:1979년 출생]][[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순창군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상'''}}} ||
|| '''출생''' ||<(> [[1979년]] [[3월 30일]][*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78년 12월 8일생이다. 라디오 DJ 하던 시절 본인이 어릴 때 약하게 태어나 출생신고가 늦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고, 2002년 말띠해, 2014년 말띠해 당시에 본인을 [[https://entertain.v.daum.net/v/20140102191109515|말띠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2001년 1월 9일 뉴논스톱에서 생일로 사주를 보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때 극중 박경림 스스로가 언급한 자기 생일이 12월 8일이었다. 물론, 학교는 1979년생들과 다녔다.] ([age(1979-03-30)]세),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관평길) ||
|| '''학력''' ||<(> 순창농협하나로마트 적성점[br][[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학사)[br][[http://gsic.ssu.ac.kr|숭실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프라이빗뱅킹(PB)학과 (석사) ||
|| '''가족''' ||<(> 배우자 박정훈[br]아들 박민준 ||
[[대한민국]]의 방송인. 개그맨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으로 시작해 그 인연으로 [[고등학생]] 때 MBC의 심야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돌발소녀라는 기믹으로 라디오 출연을 시작했고, 차츰 인지도를 높여가다가 좀 다른 의미지만 연예계의 정상에 올랐다. 당시 여고생답지 않은 걸걸한 입담과 특유의 당당함으로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등장은 장기자랑 코너였는데 청취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결국 고정을 꿰찼다. 물론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녀의 등장과 스타로 가던 과정은 사실상 한국 예능계를 넘어 연예계 전체의 흐름을 바꾼 파격적인 일이었고, 그녀는 그야말로 21세기 연예오락 프로그램계의 혁명같은 존재였다. 당시까지 개그우먼이 아니면서 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여자연예인이 연예오락 방송계의 스타로 부상한 경우는 사실상 없었는데, 박경림을 통해 그런 트렌드가 생성되었으며, 사실 극형식이 아닌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별명을 통한 캐릭터를 만든다는 개념도 박경림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MBC에서 가장 잘나가던 주말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서 당시 가수 뿐만 아니라 예능으로서도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스티브 유]]와 진행자 [[유재석]] 등이 박경림에게 '복태'라는 남자아이 기믹을 만들어[* 유재석이 '내가 알던 우리동네 남자아이 복태 닮았다'로 시작한 뒤, 스티브 유가 매회 자꾸 '복태야'라고 부르면서 다른 출연자들도 그렇게 부르는 등 유행이 되었다.] 그걸로 웃음을 주던 것이 시초다.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절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반 ~ 20대초반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순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특히 패자부활전에서 그녀의 남사친을 고르는 문제에서 박수홍, 조인성, 정우성이 나올 때 박경림은 박수홍과 조인성을 선택한 100인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정우성을 선택한 결과 탈락자 48명 중 단 4명만 부활시킬 정도로 선방했다.(10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적립금 527만원)
* 대표적인 연예계 마당발이라 할 정도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결혼식 당시 참석한 하객들이 ㅎㄷㄷ하다…[* [[강경준]], [[강수정]], [[강타]], [[강혜정#toc|강혜정]], [[강호동]], '''[[거스 히딩크]]''', [[김규리(1979년 6월)|김규리]], [[김기수(코미디언)|김기수]], [[김동완(신화)|김동완]], [[김민종]], [[김수미]], [[김아중]], [[김용만]], [[김을동]], [[김장훈]], [[김현철(가수)|김현철]], [[노홍철]], [[주종혁|라이언]], [[바다(가수)|바다]], [[박명수]], [[박상민]], [[박수홍]], [[박신혜]], [[별(가수)|별]], [[서경석]], [[솔비]], [[스윗소로우]], [[신혜성]], [[안재모]], [[양파(가수)|양파]], [[우승민]], [[유재석]], [[유진(배우)|유진]], [[윤다훈]], [[윤종신]] & [[전미라]] 부부, [[윤해영]], [[이루(가수)|이루]], [[이수영(가수)|이수영]], [[이지연(1975)|이지연]], [[이지훈(1979)|이지훈]], [[이혁재]], [[이효리]], [[임창정]], [[자두(가수)|자두]], [[장근석]], [[장나라]], '''[[정몽준]]''', [[정선희]], [[조인성]], [[조정린]], [[주영훈]] & [[이윤미]] 부부, [[지상렬]], [[차예련]], [[차태현]], [[채연]], [[하하(가수)|하하]], [[한효주]], [[현영]],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 [[황보라]]가 찾아왔다. 더불어 대표적인 하객들이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사람들이다(...)''' 결혼식에 총 5000여명의 하객들이 왔다갔다.]
* 상술된대로 인맥을 늘리고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해서인지, 고교시절부터 활발한 외부활동으로 데뷔전에 이미 [[장동건]]을 자기 학교 행사에 초대하여 오게했던 적[* 다만 이 때는 아직 장동건이 지금과 같은 최정상급 인기연예인은 아니었다. 원래는 당시 최고였던 신성우를 섭외하려 했지만 실패해 같은 소속사의 신인이던 장동건을 섭외했다고 한다.]이 있었으며, [[이휘재]]와도 고등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 박수홍이랑 너무 친해서 저 둘 사귀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스캔들도 났었지만 자신이 진행하는 2005년에 KBS <좋은사람 소개시켜줘> 맞선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도 그럴듯이 현재 KBS예능 CP인 당시 한경천PD도 출연자와 결혼을 했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전성기 시절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반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남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남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남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남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절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2002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다만 진지하게 한다기보단 예능 프로그램에서 프로젝트성으로 '''"박남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박고테'''로 앨범 발매. 요즘 [[무한도전]]에서 하는 각종 앨범 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기예능에서 노래와 앨범 만드는 전과정을 노출시켜줬기 때문에, 꽤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주병 컨셉으로 해서 만들어진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특유의 안무와 박수홍의 손발이 오그라지는 랩(...)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에는 싱글의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11곡으로 풀앨범을 제작했다. 당시 박경림의 장점인 인맥이 도움이 되어 타이틀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주영훈]]이 만들었고 [[김장훈]], [[윤종신]], [[이수영(가수)|이수영]], [[이기찬]], [[유리상자]], [[유희열]], [[김동규#s-1]] 등이 참여했다. ~~라인업 ㅎㄷㄷ~~ 박남매의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지만 인기가 생각보다 많아 CD로도 발매되었다.[* 앨범은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나중에 유학 이후 국내 복귀 다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망했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목표 판매량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백만장이었으니까...] 당시 대단한 인기로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 결혼 후 예능에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이는 상태. 애엄마가 돼서 그런 듯하다. 케이블에 간혹 드문드문 보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코미디 얘기만 얘기하던 시절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선 8대 [[신]] 다음으로 여신 라인의 수장을 차지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방송에서의 인맥 자랑 + 같은 이야기 여러 번 울궈먹기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 전성기 시절에는 자기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서슴이 없었고 과감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으나 복귀 이후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여자MC와 차별점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잉스 화장품이라는 화장품 회사 광고 모델로 나온 적이 있다. 못생겨도 화장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시초가 된 케이스. 예능에서도 이걸로 꽤 우려먹었는데 김희선이 출연한 토크쇼에서 "나도 화장품 모델 했는데, 언니는 잘 됐지만 내가 한 회사는 망했잖아."라고 자기비하 개그를 쳤다가, 바로 그 다음날부터 잉스 화장품회사에 정말 망했냐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뒤따르고 대리점에서는 "회사가 위기라던데 정말이냐"면서 계약해지를 요구당하는 사태가..덕분에 해당 회사로부터 30억 소송이 걸리네마네 한 적이 있다. 회사 가서 싹싹 빌고 사과의 뜻을 여러 번 전했고 후에 보은의 의미로 노개런티로 그 회사의 모델을 다시 하기도 하면서 잘 넘어갔지만...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건.
유학시절 찍은 사진 중에 [[마이크 무시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카더라]]. 유학 당시에 [[서재응]], [[김병현]]과의 인맥을 쌓았다. 하지만 두 선수가 그녀와의 만남 이후 부진을 겪자 당시 야구 이야기만 하던 시절의 [[야갤]]에서는 이를 '박경림의 저주'(...)라고 부른다.
*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 민방위 훈련으로 인해 [[두시의 데이트]]가 14시 20분에 시작하자 오프닝에서 "민방위 훈련 때문에 늦어진 20분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느냐"라는 발언을 해 뭇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오프닝 멘트 후 청취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청취자와 20분 늦게 만나는 마음이 아쉬워서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까 하다가 많은 분을 속상하게 한 것 같다. 오프닝에서 표현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나 지금도 희생하고 있으신 분들을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 해 드린 것 같아 생방송 중 사과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 드리겠다” 며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된 경솔했던 발언에 대해 즉시 방송에서 사과했다.[* 아버지 역시 상이군경임을 밝혀 불손한 의도의 발언이 아니었단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 위원회는 해당프로그램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695&yy=2014#axzz3Ba6cD9TR|기사]] 게다가 하필이면 "남성만 병역 합헌"문제로 넷상에서 군대관련 문제가 좀 예민할 때라...--안 될지도--
* 2010년대 중반들어 각종 영화 제작발표회, 쇼케이스, 시사회의 MC를 자주 맡고 있다. [[신세계(영화)]], [[명량]], [[내부자들(영화)]], [[사도(영화)]], [[검사외전]], [[곡성(영화)]], [[아가씨(영화)]], [[1987(영화)]] 등 근래 화제작들을 싹쓸이하고 있는 수준. --원래 행사진행MC라면 당연히 갖춰야만 하는 소양임에도 다들 잘안하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많이 공부해오고[* 영화 곡성 제작발표회에선 대본에 써있지도 않았던 감독의 전작 황해의 개봉일을 정확히 언급하는 등.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고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_filter=search&mid=movietalk&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B%B0%95%EA%B2%BD%EB%A6%BC&document_srl=10927091|#]]] 연예계에 인맥들도 많고 진행실력도 무난한 덕분에 업계 관계자들이 꽤 선호하는 듯 하며 [[네이버]] [[V앱]] 무비토크 진행을 맡고 있다.
- 승리(빅뱅) . . . . 63회 일치
[[빅뱅(아이돌)|빅뱅]]의 서브보컬이자 '''막내'''. 본명은 '''이승현'''. 맏형 [[T.O.P]]과 동명이인이라서 작은 승현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으며 멤버들 사이에서는 그냥 [[승리]]라고 불리는 듯.[* 본인부터가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승현이라고 불리면 과거 광주 댄스팀인 <일화>에서 활동했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과거의 자신 모습이 싫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V.I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제일 어려서 그런지 매사에 의욕적으로, 자기가 한 건 터트리려 드는 방송 욕심이 강해 보인다. 가끔 빵빵 터지는 것도 있지만 아쉬운 개그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진행 실력도 괜찮은 수준이다. 일본의 여러 프로그램의 메인 MC[* VI. from BIGBANG, 남자의 요리, 사키가케 등]를 맡기도 했다. 시크하고 카리스마 있어보이지만 브레이크가 풀리면 '''아무말 대잔치'''를 펼치는 빅뱅 형들을 특유의 진행 실력으로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하지만 예능과 방송의 가벼운 이미지에 감춰져 있다. 또한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 배어있다. 방송에서 타 멤버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나쁘게 하거나 비하하여 웃기게 해도 재미있으면 된다 라는 태도를 취한다. 부상당한 것을 웃으며 언급해도[* 110404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옆에서 웃고 넘기는 등 대인배. 멤버들도 승리가 회식 자리에서도 항상 본인보다 남을 챙긴다고 언급했고[* 주간아이돌 289회] 재미있는 자리가 생기면 형들에게 연락해 같이 즐길려 한다 말했다. 방송에서도 남을 험담하거나 뒷담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원더걸스]]의 [[유빈]],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같은 광주 출신이라 종종 묶이곤 하는데 특히 유노윤호과는 공통점이 크다. 아직까지도 광주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댄서팀 '일화' 에서 활동했던 것. 데뷔 전 아무래도 노래보다 춤을 곧잘 해내곤 했던지라 YG ent에서는 우린 가수를 뽑는 것이지 댄서를 뽑는 게 아니라며 탈락의 위기를 맞기도 하나, 재도전의 자리에서 [[양현석]] 사장으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빅뱅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다른 형들에 묻혀서 그렇지 승리의 보컬도 꽤 뛰어나다.--두각을 보이는 노래의 스타일 자체가 형들과 많이 다르다-- '눈물뿐인 바보' 에서 고음도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TqUF3Hco0|영상]] [[태양(빅뱅)|태양]]과 [[대성(빅뱅)|대성]]의 진하고 바디감 있는 보이스가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고 킬링파트를 담당한다면 승리는 주로 화음이나 백코러스[* [[https://www.youtube.com/watch?v=uFtM4m_D_bY|영상]]]를 담당해 노래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변성기 전이나 후 둘 다 타고난 [[미성]]으로 팝발라드가 어울리는 편이다. 태양은 R&B / Soul, 대성은 Pop / Rock이 잘 맞는다면 승리는 어쿠스틱한 부드러운 장르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미성이므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강렬한-- 빅뱅 곡들에서는 승리가 주로 브릿지 부분을 부르면서 승리 특유의 맑으면서도 섹시한 음색을 세련되게 살린다.--그래서 파트가...--
팬서비스가 박하기로 유명한 빅뱅 내에서 유일하게 폭발적인 팬서비스를 해주는 멤버이다. 공개방송이나 콘서트를 가면 체감할 수 있다. 자기 팬페이지 홈마스터들을 잘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 팬페이지인 무적승리 홈 카메라를 보고 나는 무적이다 라는 포즈를 취해주는 [[http://youtu.be/Gn5P7vutkvw|영상]])
2008년 창작 뮤지컬 [[소나기#s-2|소나기]]에서 주연을 맡아 유료 객석 점유율 86.2%를 기록하며 서울시 뮤지컬 단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으며,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유희성 서울시 뮤지컬 단장은 특히 “승리는 뮤지컬에 대한 열망이 다른 이의 10배 이상이었다”, “뮤지컬 속 사춘기 소년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황순원 원작 소설 속 소년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놨다” 등등 폭풍칭찬을 쏟아냈다. --승리의 리즈 시절?--
빅뱅 내에서 막내를 맡고 있는 만큼 형들에게서 상당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귀여움의 영향인지 막내몰이를 굉장히 많이 당한다. 형들이 막내를 10년째 귀여워하고 ~~놀려먹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수습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이 안습.. 가끔은 이것이 몰이인지 다굴인지 햇갈린다. 게다가 원래 승리가 예능에서 자신을 깎아 내리면서 웃기는 스타일인데, 이것이 몰이와 겹치면 이미지 타격이 크다.
본인이 자리에 없을 때도 몰이를 당한다.
승리팬들은 승리몰이를 불편해하지만 다른 멤버들 팬들은 대부분 귀엽게 보고 넘어가는 편이다. 애초에 승리 얘기를 안하면 예능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물론 "형들에게 사랑받는 각 그룹 최고의 막내돌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할 정도로 멤버들은 승리를 예뻐한다. 하지만 예뻐한다는 말로 조금은 심한 몰이를 한것은 팬들에게 불편해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태양은 듀엣을 한다면 승리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외 멤버들도 승리를 꼭 필요한 멤버라고 얘기한다. 지드래곤은 승리가 무한도전에서 자신이 없어도 빅뱅은 빅뱅이라는 말을 하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음악 만큼이나 사업에 관심이 많다. 본인 말로는 접었지만 댄스 아카데미(조이 댄스 플러그인뮤직아카데미)도 했었고[* 주간 아이돌에 따르면 선생님과 학생이 눈이 맞아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와플 라이센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한국 매니지먼트 권리[* 호날두가 내한할 경우 일정 및 관련 매니지먼트에 대한 권리. 일견 거창해 보이는 권리긴 한데, 실은 대단한건 아니고 호날두의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싱가폴 지인이 "한국 담당은 네가 해라."하고 던져준 것. 정작 호날두는 한번도 한국에 온적이 없으며 관계자에 의하면 방한 의향도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469&aid=0000313277|그런데 써먹을 날이 오고야 말았다.--는 방한취소--]]]도 승리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 11년만에 호날두가 방한할 예정이라 존버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호날두가 하도 오지 않아서 라이센스는 폐업하여 이번 방한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밝혔다.[[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83110|그리고 호날두도 방한 취소를 했기 때문에 라이센스가 있었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승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AND HERE는 와플을 주로 판매하는 카페로, 와플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 [[벨기에]]까지 다녀왔다고 라디오 스타에서 직접 이야기하였다. 그 외에 [[FT아일랜드]]의 최종훈과 함께 운영하는 밀땅포차와 라운지 바인 몽키 뮤지엄을 비롯해 뷰티 사업에 투자하는 등[* [[http://hei.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1195704H|청담동 장악…빅뱅 승리의 사업은 계속된다]] ] 요식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사업가적인 면모는 [[나 혼자 산다]] 출연분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데, 한국어를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강남대로 한복판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등, 가수가 아닌 사업가로서의 승리를 보여줬다. 또한 [[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상민과 일본 여행을 할때도 드러나는데 정말 철저하고 독하게 준비하는 면을 보여서 홍진경과 함께 연예인이 자기 이름 걸고 사업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걸 보여주는 좋은 예시.
수록곡의 대부분을 작사하고 작곡에 참여하였다. --본격 솔로활동이 아닌 혼자활동 시작--
2013년 8월 2번째 솔로앨범 <Let's Talk About Love>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할 말 있어요'로 활동했다. 수록된 전곡을 작사하고 작곡 및 프로듀싱까지 참여했다. 참고로 이 앨범을 만드는 데 주어진 총 시간은 단 4주라고 과장되어 있지만 승리의 인터뷰에서 5월에 곡작업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3달 이상은 공들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기간은 매우 짧게 주고 발매는 늦게 해준 케이스-- 그래도 솔로 미니앨범 1집 당시 주어진 '3'주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1집에서는 작곡가 및 프로듀서들이 어느 정도 승리 앨범 제작에 기여한 반면 2집 작업 때에는 [[지드래곤]]의 솔로앨범(COUP D'ETAT) 제작을 위해 대부분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달려든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안습]] 양싸 제발!!-- --그리고 홍보 하나 없었다-- --프로듀서없이 혼자 완성한 앨범--
|| '''8''' || 혼자 있는법 (ALONE) || 승리 || R.Tee, 8!, Brian Lee, 승리 || R.Tee ||
승리는 이 앨범을 내는 전후에 상당히 많은 예능에 출연하였는데, [[아는 형님]], [[미운 우리 새끼]], [[나혼자산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런닝맨]],[[한끼줍쇼]],[[아이돌룸]],[[냉장고를 부탁해]]등에 출연하였다. 빅뱅 데뷔 초기인 2000년대 후반을 방불케할 정도.
|| '''9''' ||<:>혼자 있는 법 || ||
* 일본 요리 프로그램 '남자의 요리' 진행
* [[복면가왕]] 82차 경연(가명: [[우리 엄만 내가 제일 예쁘대요 고슴도치]])[* 참고로 라디오에서 밝히기를 3라운드 준비곡은 김준수의 'Beautiful thing'을 부를 예정이었다고 한다. [[http://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57160#08e1|관련 기사]] 그 외에도 보면 알겠지만 복면가왕에서도 빅뱅의 노래들이 자주 경연되었으며 대표적으로 [[거짓말(빅뱅)|거짓말]], [[FANTASTIC BABY]], [[뱅뱅뱅]], IF YOU 등이 있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63회 일치
* 왕녀 [[마가렛 리오네스]]는 납치 당한 [[길선더]]와 마녀 [[비비안]]의 수색이 지지부진하자 성을 박차고 나가 직접 연인을 되찾으려 한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자신의 출생과 과거 [[멜리오다스]] 곁에는 항상 "엘리자베스"라는 자신과 닮은 소녀가 있었던 것에 대해 추궁한다.
* 멜리오다스는 모르는 척 얼버무리기만 하고 엘리자베스는 의기소침해진 채 돌아간다. 멜리오다스는 사실 아직은 그걸 고백할 각오가 안 됐다고 씁쓸해한다.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젤드리스]]의 저주로 사경을 헤매고 [[핸드릭슨]]이 자신의 힘으로 저주를 풀 수 없자 엘리자베스의 힘에 기대를 건다.
* 멀린이 걸린 저주와 접촉한 엘리자베스는 저주의 마력을 통해 젤드리스와 만나는데, 그는 엘리자베스가 구면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진실을 알고 있었는데.
* 그는 엘리자베스를 "저주받은 여신"이라 부르며 아직도 자신의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래... 그럼 나 혼자서라도 갈게.
* 이 기가막힌 소식은 [[멜리오다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부탁으로 단 둘이 대화할 곳을 찾던 그들은 리오네스 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봉우리에 도착했다. 멜리오다스는 마가렛의 소식을 전하며 "그 얌전한 마가렛이 이럴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10년이나 구속된 끝에 겨우 해방됐는데 눈 앞에서 연인을 납치 당했으니 무리도 아니라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그 둘"이 같이 가게 돼서 안심했다고 하는데.
멜리오다스가 산 아래 펼쳐진 리오네스 성을 바라보며 여기서 보면 리오네스 성도 전망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곳은 엘리자베스가 어릴 적부터 자주 놀러오던 곳이기도 했다. 멜리오다스가 그걸 기억하냐고 묻자 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린 자신은 참 기뻐했을 거라고 대답하는데.
* 엘리자베스가 조심스럽게 오늘의 진짜 용건을 꺼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라트라스]]가 드루이드의 주술로 보여준 16년 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가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첫 만남. 그런데 무슨 우연인지 그의 연인이었던 [[리즈(일곱 개의 대죄)|리즈]]가 죽은 것도 16년 전이다. 그녀는 [[케인(일곱 개의 대죄)|케인]]이 알려준 사실이라며 리즈의 본명이 엘리자베스인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그저 아이러니인 것처럼 웃어넘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다음 한 말이 그의 웃음기를 지워버렸다.
멜리오다스에게 동요의 빛이 떠오른 것도 잠시. 그는 모든게 우연일 뿐이라고 얼버무린다. 엘리자베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까지는. [[디안느]]와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성전시대로 돌아가 자신과 똑닮은, 여신족 소녀 엘리자베스를 봤다고 말하기 전까진. 이것도 그저 우연일 뿐이냐고 묻는 엘리자베스. 이제 멜리오다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헛된 생각을 하는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말에 자신이 없다. 엘리자베스는 더욱 거세게 몰아붙인다. 같은 증언을 해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기 때문이다. 십계의 [[데리엘]].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마주쳤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 엘리자베스의 의혹은 지극히 타당했다. 입을 다문 멜리오다스에게 아는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달라고 사정한다. "무슨 이야기든 받아들일 각오"가 되있다면서. 이윽고 숙였던 고개를 드는 멜리오다스.
* 멜리오다스가 숨기고 있다. 아니, 속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실망한다. 그녀는 힘없이 돌아서며 전부 "바보같은 이야기"있다고 사과한다. 멜리오다스를 두고 돌아가기 전, 그녀가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말했다.
* 봉우리 뒤편의 언덕에서 불청객이 기어나왔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과 할리퀸이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무슨 짓을 저질렀냐"고 은근히 힐난했다. 분명 엿듣고 있던게 분명하다. 둘은 사랑싸움이냐느니, 왕녀가 울고 있던거 같다느니 쓸데없이 참견해온다. 멜리오다스가 여긴 왠 일이냐고 묻자 반이 "킹이 요정 주제에 프로포즈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대꾸했다. 혹시 전부 들었냐고 묻자 둘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지만 반이 곧바로 "사랑 싸움의 원인은 뭐냐"고 짖궂은 얼굴로 물었다. 요즘 연애를 시작했다고 너무 기가 산 할리퀸 쪽도 "여자 마음을 좀 더 공부해야 한다"고 거들먹거린다. 부하들의 따뜻한 관심에 감격한 단장.
* 손을 털던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이 아니다. 각오가 필요한 사람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다.
* 대지의 모자정 옥상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상과 달리 식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태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절부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상태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식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절망한다.
* 그런데 핸드릭슨이 짚이는 데가 있었다. 그는 서둘러 바깥으로 나온다. 마침 돼지의 모자 정 2층 배란다에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그녀는 괜한 의심으로 멜리오다스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며 자학하던 중이었다. 핸드릭슨이 서둘러 그녀의 도움을 요청한다.
잠시 뒤 그녀가 멀린의 방으로 불려온다. 멀린을 살펴본 엘리자베스는 일단 해보겠다며 멀린의 이마로 손을 뻗는다. 이어서 밝은 정화의 빛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에스카노르는 왕녀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과연 저주에도 통하는 건지는 반신반의했다. 핸드릭슨도 어쩌지 못하는 저주인데다 엘리자베스의 힘은 드루이드의 그것과 다르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그 존재"들과 같은...
- 진격의 거인/95화 . . . . 63회 일치
* [[파르코 그라이스]]는 라이너의 조언 대로 자신이 갑옷 거인을 계승해 가비를 지키고자 결의한다.
*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발언력을 이용, 1년 안에 팔라디섬을 제압하고 세계를 구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동하기로 한다.
* 작전 개시 전 카퍼레이드 중 라이너는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성을 발견하고 쫓아가 확인한다.
* 그러나 어머니의 말만 믿고 아버지가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었으리라 믿었던 라이너는 매몰찬 냉대를 받고 낙담한다.
* 아버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라이너는 자신이 "선택받은 전사"라고 여기고 위안 삼으나 팔라디섬에 파견된 이후, 마르셀이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 [[라이너 브라운]]과 [[가비 브라운]]은 이른 아침부터 본부로 향했다. 그들은 시장을 가로질러 출근을 했는데 지나가던 엘디아인 시민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반기고 우러러보며 인사를 건넨다. 출입구를 통제하는 마레인 병사들 조차도 그들에게만은 친근하게 대하며 안부를 물을 정도. 그런데 평소와 같은 라이너와 달리 가비는 어쩐지 침울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다. 마레인 병사도 그걸 눈치챘다. 그는 "이번에는 활약했다며?"하고 말을 붙이나 가비가 반응이 없자 조금 집요하게 말을 건다. 가비는 그게 들리지도 않는지 "평소대로 본부에서 훈련한다"고 적당히 대답하고 통제소를 통과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병사들은 가비의 우울한 기색이 마음에 걸려서 왜 저러는 건가 고민할 정도다.
날카로운 꼬마다. 라이너는 짐짓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말투로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가비는 여전히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라이너의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의 견해를 끌어온다. 자신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만은 아들의 변화를 눈치챘다면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팔라디섬에서 돌아온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라이너는 웃어 넘기려 한다. 12살이던 아들이 이런 아저씨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면서 얼버무린다. 하지만 가비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어린 사촌은 자기 나이보다 훨씬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라이너는 긴 말 대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러자고 대답했다.
* 잠이 덜 깬 [[포르코 갤리어드]]가 하품을 하며 계단을 오르다 못 볼 꼴을 마주한다. 방심이 문제였다. 피크가 사족보행으로 어슬렁거리는 꼴을 목격하고 소름이 돋아버렸다. 태연하게 인사하는 피크. 뭐하는 거냐고 묻자 이 쪽이 걷는 것 보다 편하다고 한다. 거인 생활에 너무 적응해버린 부작용이었다. 포르코가 "두 발로 걸어라"고 시킨 덕에 전사장의 방에 기어서 들어가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 [[지크 예거]]가 이른 아침부터 마레의 전사들과 차기 짐승거인 [[콜트 그라이스]]를 소집했다. 라이너와 콜트는 진작 도착해 있었고 포르코와 피크가 마지막이었다. 피크는 기껏 걸어온 보람도 없이 긴 소파를 독차지하고 네 발로 웅크린다. 지크는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포르코가 전사장의 방에 전원 집합, 게다가 마레인 군인이 없는게 별난 일이라고 말하자 그가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절미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절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절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상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지크가 내놓은 간단한 결론. 자리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콜트가 침묵을 깨뜨리고 해결책은 없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없지는 않다. 결국은 또 팔라디섬이다. 시조거인을 탈환한다. 그렇게 해서 팔라디섬의 자원과 완전한 거인의 힘을 되찾고 마레의 국력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세계의 위협을 엘디아인의 손으로 해결했다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 포르코의 탐탁치 않았다. 그가 보기에 타이바 가문은 뭐랄까... 우선 그들은 망치 거인을 가졌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적이 없고 엘디아인이 수용구에서 생활할 때 자기들은 넓은 토지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무위도식했다. 그러던 것들이 이제와서는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대가로 영웅행세라?
라이너는 바로 말을 이어가며 포르코가 어이없어 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자기들 전사대도 타이바 가문과 함께 조국 마레를 재흥시키는 초석이 되자는 그럴듯한 말로 결론을 재촉했다. 지크가 그 의도에 호응했다. 그는 곧 레벨리오에서 "큰 행사"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해외 요인들과 언론을 모아놓고 타이바 가문이 직접 어떤 공약을 내걸 것이다.
>엘디아인과 조국 마레의 미래를 위해. 다시 한 번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합하자.
* 그리고 지크의 발언까지 포함해, 전사장의 방에서 이루어진 모든 대화는 검열되고 있었다. "이 방에는 없다", 다른 방에는 있다. 마레인들이었다. 그들은 도청장치를 통해 전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결과는 양호. 갤리어드가 다소 불만을 표했지만 작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임무엔 철저한 인물이다. 마레인들은 밀실대화의 내용이 이정도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결론짓는다. 단 한 명, [[마가트]]만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지크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부분. "이 방에는 없다". 마가트만큼 감이 좋은 마레인은 없었고, 전사들 중에도 별로 없었다. 라이너는 도청기 위치까지 알아챘다. 자신의 뒤쪽 축음기. 피크도 아마 지크의 암시를 눈치챘을 것이다.
* 여성형 거인과 갑옷 거인이 전장을 달린다. 마레는 어떤 전선에 마레의 전사들을 투입했다. 마레인들은 차량에 타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들은 각 거인의 특징과 현재 계승자들의 적성, 적응도를 눈으로 확인하며 평가를 내렸다.
차력의 거인은 차원이 다른 지속력이 장점. 장기간 임무에 적합하며 그런 만큼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 전술의 폭을 확연하게 넓힌다. 머리가 좋은 피크에게 맡기는 것이 적격. 지금 차력의 거인은 강줄기를 통해 전선을 통과, 적의 배후를 잡았다. 아직도 피난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이었다. 피크는 그 근처에 상륙해서 어떤 케이스를 내려놓고 돌아가는데, 자신의 동료 [[베르톨트 후버]]였다.
이 일곱 거인의 위력을 검증하는 자리에는 마가트 또한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저런 것들이 들이닥치게 될 "섬의 악마들"이 불쌍하다는 동료에게, 그도 동감을 표했다. 현 세대 계승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시킨 값을 충분히했다. 분명 전세대 보다 강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팔라디 작전과 그 작전을 인가한 상층부를 불신했다. 고작 네 명의 전사들에게 시조 거인 탈환을 맡긴다? 그는 "제정신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동료는 "방금 전 그 애들이 나라 하나를 짓뭉개는 걸 봤잖아"라며 전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긴 이 녀석은 훗날 밀실 대화를 듣고도 지크의 꿍꿍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놈이다.
* 명령은 명령이다. 마가트는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의 상세 개요를 전달한다. 실제 투입되는 인원은 턱, 갑옷, 여성형, 초대형의 네 명. 짐승과 차력은 본토방위를 위해 참전하지 않는다. 마가트가 설명 막바지에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 마르셀을 거명하며 작전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한 사람, 포르코만 소외된다. 그는 아무 거인도 받지 못한 것이다.
- 황효진(기업인) . . . . 63회 일치
[[아프리카TV]]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방송했던 게임 BJ이며 [[BJ]] 소닉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설립한 신발 브랜드 [[스베누]]의 대표이기도 했다. 1988년 5월 31일생이며, 강원도 [[삼척시]] 출신이다. 아이디는 sonic_be. 현재는 glow`hyojin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소닉이란 닉네임의 유래는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소닉 더 헤지혹]].[*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어릴 때 [[메가드라이브|슈퍼겜보이]]로 [[소닉 더 헤지혹 3|소닉 3]][[소닉 & 너클즈| & 너클즈]]를 플레이한 것이 추억에 남아 닉네임을 소닉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닉 스타리그]]의 로고와 본인의 오너캐에도 소닉이 자주 출연한다.]
웨스트 서버 fOu 클랜에서 Sonic[fOu]로 활동하기도 했다. 군 입대 후로 활동이 줄기도 했고, 본인도, fOu 클랜 측에서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주로 기발한 엽기 전략을 자주 사용하며 아프리카에서 [[스타크래프트]] 강좌를 해왔다. 가스저그, 소풍저그 등이 대표적이다.[* [[3드론]]은 소닉이 최초로 사용하지 않았다.]
2008년 9월 16일에 군 입대해서 [[제8기계화보병사단]] 직할전차대대(현 81전차대대)에서 K1전차 승무원으로 군 복무를 하다가 2010년 7월 29일에 전역했다. 이등병 때 [[고무신#s-4|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래서 관심병사가 되었지만 주위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BJ 활동 이력 덕분에 대대장배 스타리그 진행을 했다. 중대별로 대표 1명씩을 뽑아서 대회에 출전하였고, 군용 PC에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설치할 수 없었기에 소대장들의 개인 PC를 이용하여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명 전승리그(전차대대 명칭 이 전승대대)로 매년 열릴 것이라 기대하였으나 1회성으로 끝났다. 본부중대가 1등을 하였으며, 황효진과의 번외 경기에서 황효진이 1등에게 패배하였다.
그런데 [[2011년]] 6월에는 [[마재윤|마모씨]]를 초청해 게임을 하게 만들고 "'''실제로 만나봐야 한다. 그런 일이 생긴 이유가 따로 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다. '''이유 없이 죄를 저지른 사람은 없으니까.''' ~~그 이유가 돈이라는 게 문제지~~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행동 때문에 누가 피해를 입었다면 어떤 이유가 있었든 그 행동은 정당화되지 못한다는걸 알아두자.] '''[[마재윤|마모씨]]의 조작 행동을 옹호해서''' 까였다. 아프리카의 특성상, 방송국 메인에 스폰서 링크를 달고 돈을 받는데 랭킹이 떨어져 스폰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무리수를 두었다는 게 지배적이다. 그런데 원래는 마재윤을 이용해 자신의 방송을 홍보하려는 계획이었는데, 마재윤이 스스로 아프리카 방송을 열어버리고 [[철구(BJ)|철구]]와 손을 잡았다. --뒤통수 돋네-- --이때부터 기질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후에 같이 [[소닉 스타리그]]를 중계하던 [[김태형(1973)|김태형]]~~[[유흥업소|이 사람도 결국 흑역사가 되었지만]]~~이 이 사실을 묻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스타팬들 중에서도 특히 [[스갤]]에서는 황효진을 매우 싫어하는데, [[2008년]] 자기 카페를 만들어 놓고 [[스동갤]]에 자신의 동영상을 올리고 클릭하면 자신의 카페로 가는 링크를 걸어놓아 [[스동갤]]을 자기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로 이용하는 짓을 해 욕을 먹었다. 물론 [[스동갤]]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까였고, [[스갤]]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디시 서버가 불안정[* DB error를 두부에러라 불렀다고 한다.]한데 무슨 짓이냐고 맹비난, 소닉이 사과하며 동영상 업로드를 그만두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술한 대로 --[[마재윤]]--을 아프리카로 불러들인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기에 극렬 안티가 된 사람도 있다.
[[2012년]] 신발팜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방송은 약간 소홀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부터 변하지 않는 개드립과 수준이 떨어진 게임 실력으로 인해서 방송이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던파걸 출신인 [[민주희]]와 사귀는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 [[싸이월드]] 등에 들어가 보면 다정다감하게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고, 소닉이 인터넷 방송을 할 때 민주희가 매니저를 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하지만 2015년 6월 개인방송에서 밝히길 1년 전쯤에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소닉과 헤어진 선택은 옳았다~~]
BJ 소닉이 개최하는 BJ 스타리그. 자세한 내용은 [[소닉 스타리그|문서 참조]].
그 후 2015년 8월, 기존 팀의 팀원은 그대로하고 새로운 스폰 기업을 찾아서 팀 6팀과 아마추어 팀 2팀 총 8팀을 꾸려서 프로리그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최호선]], [[임홍규]], [[김택용]] 등 전 [[SKT T1]] 팀원들이 있다면 그 멤버는 그대로 하되, SKT가 아닌 다른 스폰 기업 이름의 팀으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다.]
쇼핑몰 신발팜은 2014년에 스베누로 이름을 바꾸고 사업을 크게 확장하였고[* 이때 순이익으로만 10억정도 벌었으나 무리한 사업으로 그대로 날려 먹었다고... 그리고 인터넷 방송으로 사업 투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이를 발판으로 소닉 리그도 계속 개최하고 있다. 좀 많이 별로인 인성이나 더더욱 별로인 제품은 둘째치더라도 20대 때 자신의 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수완과 동시에 자신의 꿈이자 자신의 시작이었던 스타판을 공식리그가 종료된 후에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e스포츠가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타 1을 넘어 스타 2,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를 후원하고, 여러 게임과 콜라보 이벤트를 여는 등 게임/e스포츠에 애착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애증의 존재이기도 했다.
초기부터 여러 [[스베누#s-4|논란과 비판]]을 받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스베누]] 문서 참조.
'''성공한 청년 사업가 행세를 했으나 게임 팬들과 소비자 및 동업자들을 엿먹인 악질 사기꾼'''.
심지어 이렇게 대금 지불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작 황효진 자신은 법인 명의로 [[페라리 458 이탈리아|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벤틀리 컨티넨탈]],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메르세데스-벤츠 CLS]] 등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외제차들을 마구 뽑았으며 심지어 피소 직전까지도 [[여자친구]]에게 2,000만 원 정도의 [[피아트 500]]을 선물하고[* 2,000만 원 정도의 소형차라 고가의 차량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결혼]]이나 [[약혼]]한 사이도 아닌 [[여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는 상당히 과하다고 볼 수 있다.] 4억 원을 훌쩍 넘기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등 다른 고급차들을 뽑고 있었다.[* 황효진이 사용한 방법은 법인리스로 [[스베누]] 명의로 자동차를 리스 구입한 것이다. 차는 황효진이 타지만 소유주와 대금 지불은 [[스베누]] 회사 몫이다(아닌 경우도 있으니 자세한건 추가바람). 일반적인 경영자라면 회사가 큰 이익을 보지 않는 이상 리스차량을 마구 지르지 않는다. 회사가 리스금액을 낸다는 것은 곧 회사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듦을 말하기 때문.][* 중소규모 사업자가 법인리스로 비싼 차를 사는 경우는 대체로 버는 금액에 비해 쓰는 돈이 적을 경우 세금이 왕창 나오기 때문에 그 세금 낼 돈으로 리스값을 비용 처리 하는 경우이다. 그래봤자 보통은 EQ900, 더 쓴다면 S클래스 한 대 뽑는 정도지, 어지간히 장사가 잘 된다 해도 저 차량 모두 비용처리를 해야 할 만큼 버는 게 많았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황효진이 [[코무로 테츠야|이 인간]]을 몹시 따라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똑같이 사기꾼으로 전락한 것도 함정~~[* 하필 이 둘은 자신이 얻은 돈을 툭하면 흥청망청 써버리기 일쑤고 평소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매우 나빴다는 점도 똑같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이 개정되어 비영업용소형승용자동차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고 법인차량과 개인사업자의 차량에 대해 감가상각비와 그 자동차의 유지에 관련된 모든 비용에대해 제재가 가해지게 되었다. 요약하면 법인명의 차량으로 이런 고가의 차량을 구입해서 대표이사가 개인목적으로 타고다니면 업무 미사용으로 보아 법인세법상 감가상각비,자동차세,수선유지비는 물론이고 리스료나 렌트비용 등 일체의 비용을 부인하여 법인세를 물리며 그 법인의 대표이사에게는 자동차를 운용하면서 얻은 이익상당액을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까지 왕창 물려버린다[* 예를들어 2억짜리 고가의 차량인경우 감가상각을 5년 정액법으로 강제상각시켜 4천만원의 감가상각비용을 계산하고 그에대한 유지비용까지 전부 가산해서 상여처분을 때려버린다. 만약 위에서 계산된 금액이 감가상각비 4천만원을 포함해서 5천만원이고 업무에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거나 전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5천만원을 대표이사의 근로소득으로 보아 소득세를 물린다. 대표이사는 이미 법인에서 근로소득을 얻고 있으므로 저렇게 상여처분이 된 금액이 더해져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면 만만치 않은 소득세를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직장에 취업해서 연말정산영수증을 떼어 본 사람들은 그 영수증에 인정상여라는 칸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저런 상여처분을 때려맞은 금액이 찍히는곳이다. 보통의 일반 근로자들이 인정상여처분을 받을 일은 없으니 당연히 0원으로 찍혀있다. 한편 위 5천만원이 법인세법상 손금부인되어 5천만원에 대해 법인세를 법인이 별도로 부담하는건 덤.]. 또한 이러한 자동차를 팔아서 손실이 난다고 해도 연간 800만원 한도로 손실을 인정하여 처분할 때 까지도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세법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황효진~~
2016년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7년 초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고소당했으며, 결국 2017년 10월 11일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538|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5&aid=0002772185|게다가 서울시가 공개한 지방세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상당히 지난 2018년 8월, [[http://live.afreecatv.com:8079/app/index.cgi?szBoard=read_bbs&szBjId=sogoodtt&nStationNo=55614&nBbsNo=0&nTitleNo=36111764&nRowNum=&nPageNo=|'수십 건의 소송을 당했고, 형사 건에 대한 부분은 해결이 되어가고 있으며 피해자들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모든 것이 마무리되면 그 때 해명을 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겠다']]라는 내용의 글을 방송국 공지에 올렸다. 댓글을 보면 응원하는 글도 많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상술한 각종 사치, 거짓말 등 각종 부정적인 행적 등으로 인해 여전히 싸늘하다.
[[철구(BJ)|철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가 부산 신발공장에서 일하는데 스베누의 신발 발주대금 미지불로 인해 부산 거의 대부분의 신발 공장들이 줄도산 났다고 한다. 당연히 공장주들은 파산하였고 공장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더 웃기는 건 이상호, 랜딩 등의 BJ들도 이미 신발팜 때부터 비제이들 스폰비도 못 줄 정도로 소닉의 사업은 망할 위기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소닉이 위기를 맞은 신발팜을 기사회생하겠답시고 만든 기업인 스베누는 맨유에 돈을 퍼주며 --마지막 발악-- 계약을 하거나 [[아이유]]같은 비싼 연예인들로 광고를 하는 등 노이즈 마케팅만 줄창 했지만 정작 신발은 원가 절감을 위해 저급한 원단으로 신발을 제조하게 했고 이 와중에도 황효진 본인은 여친에게 고액의 선물을 퍼주고 자신은 비싼 집 외제차 등으로 허세력을 과시하며 살았다는 것.
더욱 충격적이게도 공장주들에게는 각서 따위를 쓰거나 스베누에 투자하겠다는 이름 모를 누군가를 대려와 공장주들을 안심시키는 등의 사기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고 황효진 본인은 다른 업자에게 횡령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횡령으로 긴급체포된 건 본인이었다. 이 인간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방송이나 신문기사 등 매체에서 억울하다고 뻔뻔하게 호소하던 걸 생각해보면 [[소시오패스]]가 의심되는 수준.
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 이후 [[던전 앤 파이터]], [[클로저스]] 등의 여러 게임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스베누 스타리그]] 개최, [[롤챔스]], [[GSL]], [[SSL Series|Starcraft 2 StarLeague]] 등의 스폰을 맡을 때만 해도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e스포츠를 후원해 주는 것에 대다수 팬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스베누 사태로 인해 실체가 밝혀지면서 이 또한 결국은 게임/e스포츠에 진심으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지 세탁을 위해 e스포츠를 이용해 구원자 행세를 했다, e스포츠를 후원해 준 건 스베누가 아니라 부산의 신발공장이었다는 여론이 대다수이다. 하다 못해 훗날 갑질과 폭언으로 물의를 빚은 구원자 중 하나인 [[에밀리 리 조]]도 e스포츠만큼은 황효진보다도 더 애정을 쏟았다.
자세한 것은 [[스베누]] 문서 참고.
* 2007 아프리카TV 어워드 최고 인기상 / 스타크래프트 부문 최우수상 / 최다 시청자수 부문 최우수상 / 최고의 UCC '''대상''' 수상
- 경순왕 . . . . 62회 일치
|섭정 = [[상대등|상대등 김웅렴 공]]<br/>[[마의태자|태자 김공]]
|배우자 = [[죽방부인]](정실 왕후) <br/> 낙랑공주 왕씨(제1후비) <br/> [[개성 왕씨|왕씨]] 부인(제2후비)
|자녀 = 슬하 8남 3녀 <br/> (장남 [[마의태자|태자]])<br />(차남 [[김덕지|김황(굉,나주김씨)]])
'''경순왕'''(敬順王. ? ~ [[978년]])은 [[신라]]의 제56대 군주<small>(재위: [[927년]] ~ [[935년]])</small>이다. 성은 [[김 (성씨)|김]](金)이고, 이름은 부(傅)이며, 시호는 경순(敬順)이다.<ref name="dk0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70495 장례 행렬이 고랑포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 오마이뉴스] 2008년 08월 29일자</ref>
왕후(王后)는 [[죽방부인]](竹房夫人)으로 슬하에 두왕자를 두었다. 첫째가 [[마의태자|태자]](太子)이고, 둘째가 김황(굉,나주김씨)왕자이다.
그는 [[신라]] 왕족으로 [[경명왕]]과 [[경애왕]]의 친척 동생이다. 제54대 [[경명왕]] 때부터 고려 세력에 의지해 후백제를 견제하려는 정책을 펼쳐왔는데, [[924년]] 제55대 왕에 등극한 [[경애왕]]도 형 [[경명왕]]의 친 고려 정책을 이어받아 [[927년]] 음력 정월에 고려가 후백제를 공격하자 군사를 보내 도왔다.
그러자 [[927년]] 음력 11월 후백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 금성을 기습하여 [[경애왕]]과 왕비를 죽이고, 그의 친척 동생인 경순왕을 왕으로 세워 왕위에 올라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935년]] 11월 그는 재위 8년만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군되었다. 또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지고 [[경주시|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는데 그 품위가 [[태자]](太子)보다 높았다. 신란궁(神鸞宮)을 하사 받고, [[경주시|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5년([[탈해왕]] 9) 3월 왕이 [[금성]] 서쪽 [[시림]]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는데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자 왕은 사람을 보내어 금궤를 가져온 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탈해 이사금|탈해왕]]은 기뻐하여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 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하며 거두어 기르니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金)으로 하사하였으며, 시림(始林)을 [[계림]](鷄林)으로 고쳐 나라 이름을 삼았다.
왕후(王后)는 [[죽방부인]](竹房夫人)으로 슬하에 두아들을 두었다. 첫째가 [[마의태자|태자]](太子)이고, 둘째가 김황(굉,나주김씨)왕자이다.
[[927년]] [[신라]]를 침공한 [[견훤]]에 의해 [[경애왕]]이 강제적으로 목숨을 끊게 되고, 그가 신라 56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본래 왕위 계승 위치에 있지 않았으나, [[927년]] [[경애왕]]이 갑작스럽게 피살 당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즉위 배경은 미상이며 왕위에 오를 당시 [[경애왕]]의 자녀들이 있었는지, [[화백 회의]] 추대를 받아서 즉위 했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알려진 바가 없다.
[[935년]] 10월에 경순왕은 민심이 신흥 [[고려]]로 기울어짐에 따라,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 하기로 결심하자, [[마의태자|태자]]와 막내아들 [[김덕지]] 및 이순유(李純由) 등이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경순왕은 이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국서를 보내 [[고려 왕건]]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일설에는 어전에서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두왕자는 양국(讓國) 반대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통곡하며 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그 길로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마의태자|태자]](太子)는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을 캐어 먹다가 일생을 마쳤는데 후대에 [[마의태자]](麻衣太子)라 부르며, 둘째아들 황(굉,나주김씨) 왕자는 [[화엄종]]에 귀의하여 중이 되어 법수사(法水寺)·[[해인사]](海印寺)에 주석(駐錫)하며 망국의 한을 달랬는데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한다.
또 [[고려 태조|태조 왕건]]은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경순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 신란공주(神鸞公主)라 하고, 시호는 효목(孝穆)이라 했다. 아홉째 딸인 '부인 왕씨'(夫人 王氏)도 아내로 삼게 하였다.
[[935년]] 12월 경순왕을 정승공(正丞公)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하고 위계를 태자(太子)의 위에 두고 녹봉으로 1,000섬을 주었다. 또 왕을 모시고 온 관원과 장수들도 모두 다 관직을 주어 등용시켰다. 신라를 [[경주]]로 고치고 식읍으로 삼도록 하고, [[경주]]의 [[사심관]]에 임명하여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경순왕은 첫째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고려 경종|경종]]은 그를 특별히 배려하여 상보령(尙父令)으로 삼고 식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그는 [[고려 태조]]부터 [[고려 혜종]]·[[고려 정종|정종]]·[[고려 광종|광종]]·[[고려 경종|경종]]대까지 5대에 걸쳐 살았으며,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죽은 후에도 왕 다음으로 높은 존재로 인식되고 그 영향력이 컸다.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을 다른 [[신라]]의 왕릉이 있는 [[경주]]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영구는 도성 밖 100리를 넘을 수 없다고 하며 반대함으로써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현재의 묘자리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묘소는 [[임진왜란]] 이후 실전되었다가 [[1747년]](영조 23) 다시 되찾아 정비하였다.<ref name="dk01"/> 경북 경주 황남동의 숭혜전, 하동 청암면의 경천묘 등에 제향되었다.
경순왕릉비는 [[1748년]](영조 24) [[연천 경순왕릉|경순왕릉]] 있근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 마을 민가에서 후손 [[경주 김씨]] 김빈(金礗)과 김굉(金硡) 등이 발견한 것으로, 비문 내용은 10여자 정도 남아 있는데 자연풍화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다.<ref name="dk01"/> 이후 한국전쟁 당시 경순왕릉에서 300m 떨어진 고랑포리 시가 지역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73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이전되었다가, [[1987년]] 경순왕릉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크기는 높이 132cm, 너비 65cm, 두께 16cm 이며, 상태는 1면만 겨우 남아 10여개의 문자만 판독되고, 내용은 거의 알 수 없다.<ref name="dk01"/>
***첫째왕자: 사실명(史失名), 문헌에 [[마의태자|태자]](太子), [또는 김일(金鎰)], [[부안 김씨]] 시조
- 김민기(가수) . . . . 62회 일치
[include(틀:괴테메달 수상자)]
||<#9FC93C> {{{#white '''학력'''}}} ||<#FFFFFF> 흑산초등학교 [br] 자은중학교 [br] 도초고등학교 [br] [[서울대학교]] 회화과 학사 ||
||<#9FC93C> {{{#white '''가족'''}}} ||<#FFFFFF> 배우자 이미영, 슬하 2남 ||
||<#9FC93C> {{{#white '''직업'''}}} ||<#FFFFFF> [[가수]](은퇴), [[작곡가]], 뮤지컬 제작자 ||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한민국]] 민중음악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수 없는 뮤지션'''.
[[전라남도]] [[신안군|신안]] 태생으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6.25 전쟁]] 중 북으로 퇴각하던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해 산파였던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고 한다. 휴전 후 가족들과 [[대구광역시|대구]]로 이주했고, 흑산초등학교와 자은중학교, 도초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이미 중학교 시절에 미술에 뜻을 두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보다 일찍 [[서울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던 셋째 누나의 영향을 받아 [[우쿨렐레]]나 [[기타]] 등을 독학으로 익히면서 음악에서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과 음악 모두 포기하기 싫었는지, 대학에 입학한 뒤 고교/대학 동창인 [[김영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로 현 이노디자인 대표. 무한도전 디자이너 특집에도 나왔던 그분 맞다. [[MYK]]의 부친이기도 하다.]와 [[도깨비]] 두 마리의 약자인 '도비두'라는 포크 밴드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초기 시절부터 음악 활동은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1972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신입생 환영회 때 자작곡을 포함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973년 초에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무대 공연 경험을 쌓기 시작했고, 1974년 4월에는 [[소리굿 아구]]의 대본을 쓴 뒤 작곡가 이종구가 곡을 붙여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소리굿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제재를 받고 상연 금지 처분을 당했지만,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체포 위협을 무릅쓰고 재공연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보안대 조사가 끝난 뒤에는 [[영창]] 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되었는데, 경기고등학교 선배였던 소속 [[연대(군대)|연대]] 수색중대장의 부탁을 받고 중대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1977년 5월에 [[전역]]한 뒤에도 공연이나 음반 발매 등 공적인 활동에 제재를 받게 되자 당시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이었던 조각가 김세중의 도움으로 학사 학위와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다른 민중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제도권 음악계의 도움 없이 비밀리에 작곡과 연주 활동을 진행했는데,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이 노래극은 당시 대학 노래패들의 노래와 연주로 [[송창식(가수)|송창식]]의 집에서 몰래 녹음되었고, 녹음 직후 [[카세트 테이프]]로 복사되어 보급되었다. 대담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행한 작업이었는데, 당연히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지만 별 처벌 없이 풀려났다.[* 당시 김민기는 분명히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공개적으로 탄압하다가 국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것 때문인지 김민기만은 활동 금지만 시키고 자멸하도록 방치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장의 불빛'을 만든 뒤에는 비공식 활동마저 힘들게 되었고, 결국 음악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뒤 [[익산시|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민기를 받아준 농가에서 정기적으로 김민기의 행적을 경찰서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되었고, 멀지 않은 [[김제시|김제]]로 옮겨가 계속 농사를 지었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암살된 뒤인 1979년 12월에는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유아원 기금 마련 자선 콘서트를 익명으로 기획하고 직접 출연도 하면서 일시적으로 음악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절했다.[* 이때 [[허문도]]가 김민기를 회유하기 위해 [[백지수표|흰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원하는 액수를 쓰라" 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김민기는 거절.]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시|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83년에는 2년 전 비공식 발표했던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가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상연되었는데, 극단 연우무대 대표 오종우를 각본가로 기재하고 자신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다. 이 때까지도 김민기는 주로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12월에 전곡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때마침 9년 전 [[소리굿 아구]]를 같이 공연했던 김석만이 김민기를 찾아와 공연 활동을 다시 재개하자고 설득했고, 결국 농부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돌아와 김석만, 오종우와 함께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김민기가 참가한다는 것을 알아채면서 수포로 돌아갔고, 1984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이 음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노래패 '노찾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음반도 공윤위에서 김민기의 노래를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했고, 발매 뒤에도 [[어른의 사정]]으로 발매는 되었지만 판매가 거의 안되는 [[안습]] 신세를 겪었다.
1985년에 뮤지컬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던 이미영과 결혼했고, 1987년에는 [[6월 항쟁]]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열풍이 불자 6년 전 [[충청남도]] [[보령시]]의 [[탄광]]에서 잠시 광부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탄광촌 아이들을 다룬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건재하던 공윤위의 꼬장 때문에 여러 대목의 가사를 고쳐서 출반해야 했다. 공윤위와의 마찰은 같은 해 12월에 노래일기 '엄마, 우리 엄마'와 훗날 록 오페라로 리메이크하게 되는 노래극 '개똥이'의 노래를 모은 음반을 낼 때도 똑같이 벌어졌다.
1991년에는 [[독일]]의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 각본/비르거 하이만 작곡의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s-2|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담당했는데, 이 뮤지컬은 같은 해 김민기 자신이 사비를 들여 [[대학로(서울)|대학로]]에 개관한 학전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해 2008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상설 공연되었다. 심지어 2001년에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도 진행했고, 이 공로로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2001년에는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작곡된 김민기의 대표곡 아홉 곡을 김동성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앨범이 발매되었고, 발매와 동시에 '클래식 김민기'라는 타이틀로 임헌정 지휘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해 화제가 되었다. 2004년에는 [[공장의 불빛]]이 [[정재일]]과 [[이적(가수)|이적]], [[이소은(가수)|이소은]], [[전인권]], 이지영, [[이승열]] 등 후배 음악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1978년의 오리지널 카세트 테이프 복각본과 합쳐 두 장의 [[CD]]로 재발매되었다. 이 음반들은 그와 초기에 듀엣 활동을 했던 이노디자인 대표 김영세가 앨범 디자인을 맡았다.
1991년 이후에는 공식 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극단 학전의 연출자로만 묵묵히 일할뿐, 언론사의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이나 각종 공연 섭외도 모두 거절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아침 이슬의 김민기로만 나를 기억하는걸 원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즉 자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은 여전히 과거의 한순간만을 기억하면서 화석화된 김민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던 그가 정말 오랜만에[* 그의 삶을 다룬 책 <김민기>(김창남 저/한울)에 음악평론가 강헌과의 인터뷰가 실려있지만 일간지와는 최초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한겨레]]와의 [[http://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85444.html|인터뷰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352.html|두번째]]
- 이인 . . . . 62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고경희(高慶熙)
|자녀= 슬하 6남 2녀 <br/> 장남 이옥(李鈺)
'''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법률가, 정치인이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號)는 애산(愛山).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김병로]], [[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 사회저명인사들을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등과 함께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에 가담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반민특위를 와해, 해체시켰다.<ref>{{서적 인용
|저자=허종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붕괴 이후에는 군사정권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야당 원로로서 범 야당통합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1960년]] 참의원(參議員)에 당선되었다. [[1962년]] 유엔인권옹호한국연맹 이사에 임명되었고,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장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 (이름)|아호]]는 애산(愛山)이며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다. [[대구광역시]] 출신.
이인은 [[189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영(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이관준은 영남의 명망가이자 [[성리학]]자였고, 삼촌 [[이시영 (1882년)|이시영]]은 독립운동가로 순국하였다. 아버지 이종영은 [[대한제국]]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였다.
[[1917년]] 귀국했다가 [[1919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1923년]] 5월 [[경성부]]에서 [[변호사]]·[[변리사]] 개업을 하여 7월 첫 변론으로 [[의열단]]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이후 계속 민족운동사건의 변론을 맡아 [[6·10 만세 운동]]·[[고려혁명당 사건]]·[[의열단]] 사건·[[원산총파업]]·[[통의부사건]]·[[정의부사건]]·[[신간회]]민중대회사건·[[수양동우회 사건]] 등과 각종 소작쟁의, 필화(筆禍)·설화(舌禍) 사건과 [[친일파]]나 일본관리의 암살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고, 자청하여 [[안창호]](安昌浩)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가 맡은 변호만도 약 1천 5백여건에 달한다.
이후 [[장택상]] 등과 고학생의 상조(相助)기관인 갈돕회를 조직했다. [[1925년]]에는 갈돕회의 총재를 맡고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어 고학생을 돕는 한편, [[조선어연구회]]의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위원이 되어 사전편찬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1927년]] [[신간회]]의 창립과 더불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신간회]]의 해소론이 제기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만의 민족단체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1930년]]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의 흥농사(興農社) 사건을 변호하다 [[재판정|법정]]에서 일본의 학정(虐政)을 비난하여 법정불온변론 혐의로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정지 및 정직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조선물산장려회]] 회장이 되었다. 1931년에는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고, 1935년에는 [[이우식]](李祐植)·[[김양수]](金良洙)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비밀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지원을 했다.
[[1939년]] [[12월 18일]] 정동의 [[이화여전]] 강당에서 80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후원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12개조의 후원회 장정을 통과시키고 25명의 위원을 선출했다.<ref name="양현혜1">양현혜, 《빛과 소망의 숨결을 찾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104페이지</ref> 이인도 이화여전 후원회 위원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ref name="양현혜1"/>
[[1945년]] 광복이후 [[백관수]],[[김병로]]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안재홍]]과 협상을 적극적으로 벌으나, 건준위원장 [[여운형]]이 [[안재홍]]과 이인의 협상결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창당에 참여, 당무부장이 되었다가 10월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후 [[미군정]] 특별범죄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首席大法官) 겸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군정청 특별범죄심사회 수석대법관이 되면서 그는 [[한민당]]을 탈당하였다.
[[1946년]] 군정청 검찰청 검찰총장이 되어 [[조선정판사위폐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하는 등 좌파 세력의 근절에 노력했으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이후 단독정부 수립론이 나오자 그는 단정론을 지지하였다.
* 민족반역자 색출에 있어 악질적인 괴수에 그 처벌을 국한시키는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절충안을 작성하였다.<ref>1967년 8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발췌</ref>}}
1949년 3월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인 [[장면]]이 주미대사 임명 관계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는 보궐선거에 출마하였다. 3월의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제헌국회의원이 되었고, 6월에 법무부장관직을 사임하였다. [[1949년]] 6월 경찰의 [[반민특위]] 특경대 습격사건 이후 [[7월 7일]]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인은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고 신변보호를 담당하던 경찰마저도 모두 철수시켜 '더이상 반민족 행위자의 체포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ref>1949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발췌</ref> 나아가 이인은 반민특위 해체를 주요내용으로하는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그나마 기소된 [[친일파]]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시켰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피신하여 납북 위기를 모면하였다.
1954년 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57년에는 [[이범석]](李範奭) 등과 함께 범야세력 통합운동을 벌였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재야정치인들과 함께 [[이승만]](李承晩)의 하야와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참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3년 [[민정당]](民政黨) 창당에 참여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1965년]] 이인은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을 집행, 주관하였다. 당시 [[안재홍]]은 자진월북자라는 오해와 편견으로 금기시되었고, 꺼려했다. 그러나 이인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과 함께 [[안재홍]]의 시신없는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군사정권은 그의 의도가 불순함을 의심하여 내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를 결성했으며 [[국토통일원]] 고문에 선임되었다. [[1974년]]에는 [[국토통일원|통일원]] 고문에 재선임되었다.
* 할아버지 : 이관준(李寬俊, 호는 만당, 성리학자)
*** 손자 : 이홍
*** 손자 : 이준
- 김갑수(배우) . . . . 61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 배우자 현금숙, 딸 김아리 ||
대한민국의 중견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선보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보잘것없고 찌질한 가장부터 근엄한 높으신 분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으며 어떤 역할에도 깊이가 있다. 카리스마를 감춰야 할때는 쭉 감추다가 감정선이 커질 때 그 카리스마를 사정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배역 내내 카리스마를 유지할때도 있는 등, 현역 배우 중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거의 최정상급에 위치한 배우이다.
현재는 [[높으신 분들]]을 자주 맡는데 교수, 핵물리학자, 여당 국회의원, 검사장, 재벌 총수, 기업 회장, 학원 이사장, 고위 관료, 정보기관 고위간부, 언론사 사주, 북한 정찰총국장, 정치 거물 --타짜--등을 맡는다. ~~그리고 대부분 죽거나 체포 당했다~~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TV 최초 출연작은 유인촌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장미희 TV 복귀작으로 유명한 "역사는 흐른다"였다. 장미희를 사모하고 나중에는 독립투사로 변하는 천민 석하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남겼고 이후에도 특집극 찬란한 여명에서 개화승 이동인 연기,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시인 [[이상(작가)|이상]] 연기등으로 인상을 준 후 대표적인 출세작으로 2001년 방영한 [[태조 왕건]]. [[궁예]]의 냉정한 책사 [[종간]]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후의 연기도 훌륭하나, 종간 역만큼은 김갑수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그 이전에도 연극계에서 유명세를 떨쳤으나[* '님의 침묵'이라는 연극에서 한용운 선생역을 연기함으로서, 그쪽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한다. 관객동원수는 자그마치 약 3만명. 그는 이 작품으로 백상 예술대상을 비롯 총 5개의 상을 받았다. 그는 이 수상을 계기로 영화 '태백산맥'에 케스팅 되기도 했다.] 이 단 한 편의 드라마로 톱 중년 연기자로 단숨에 발돋움한 그는 그 이후로도 주로 현대극도 꽤 했지만 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게 된다.
흥행하지는 않았으나 [[무인시대]]에서는 [[최충헌]]으로 분해 난세의 간웅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도 있다. 특히 젊었을 적의 이상을 쫓는 모습과 젊었을 적 처단하고자 했던 난신적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노년의 모습의 대비가 극명히 드러났던 마지막 화의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2004년 SBS 제작판 [[토지]]에서는 악역 조준구로 출연, 비열한 캐릭터 역할도 소화해낸 바 있다. '''즉, 사극에만 나왔다 하면 그 실력과 [[미친 존재감]]으로 주인공들을 잡아먹는 분이시라는 거.'''
의외로 2004년에 [[영웅시대]]라는 드라마에서 고 정몽헌 회장으로도 분하여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고뇌와 아버지 [[정주영]] 회장([[최불암]] 분)이 내린 대북방사업을 완수시키기 위해 분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직후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이었는데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을 간지나게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참석해줄 것을 청하기도 해서 실제로 추모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1999년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당시로선 파격적인 KBS 드라마 '슬픈 유혹'에서 주진모와 연인 사이로 나오기도 했다.[* 키스신도 있었다!] 극중 자고있는 주진모의 등(그것도 헐벗은 상황)을 보고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다 한다.~~[[감비노]]도 궁금해 하더라고 [[등짝을 보자]]~~ 무릎팍 도사와의 대화중, '쌍화점에서 주진모와 조인성이 동성간의 사랑을 연기했는데 봤느냐?'라는 질문에 '''[[오유가또|진모가 또]]?'''라는 발언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2003년]]에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의 남편이자 [[임수정]], [[문근영]]의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7년후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문근영의 아버지로 출연. 이와 비슷하게 [[2006년]]에 드라마 [[연애시대]]에 [[손예진]]의 아버지로 출연했는데 2012년 제작중인 영화 [[공범(영화)|공범]]에서도 손예진의 아버지로 나온다. 근데 둘 다 사이가 별로. 특히 공범에서는 손예진이 아버지를 납치범이라고 의심하는 설정.
시트콤 [[몽땅 내 사랑]] 기자회견 당시 한 기자가 '혹시 금방 죽는 작품이 아니라서 출연하신 건 아닌가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잠깐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려는 듯 했으나 포기하고 금방 인정.[* 물론 질문을 한 기자나 대답을 한 김갑수나 농담.] 지못미 갑수옹……. 그래도 2010년 맡은 작품 중에선 간만에 밝은 분위기에 장수할 것 같은 역을 맡게 됐다. ~~대신 작중에서 똥 싸셨다.~~[* 작 중에도 잦은 사망과 관련된 개그가 나온다. 딸 금지(손가인 분)를 놀리기 위해 바닥에 쓰러진 연기를 하는데 계획을 짜면서 하는 말 "내가 딴 건 몰라도 죽는 연기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야."]
2009년 [[KBS2]] [[아이리스(드라마)|아이리스]]에서 핵물리학자 [[유정훈]]으로 출연해서 사망하고, 후속작 2013년 [[아이리스 2]]에서 그 형이자 핵물리학자 [[미스터 블랙]]으로 출연해서 사망. ''''1인 2역' 사망'''(...).
[[SBS]] [[월화 드라마]] [[귓속말(드라마)|귓속말]] 9회에서는[* [[2017년]] [[4월 24일]] 방영분.] [[강유택(귓속말)|강유택]]([[김홍파]])을 청자를 내리쳐 죽이면서 본격적으로 사망 전문 배우 타이틀을 떼어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 2010년 12월,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 사이에서 [[초코파이]]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자(특히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 [[초코파이]] 광고 모델인 김에 맨유 구단으로 다량의 초코파이를 보냈다고 한다.(...)
* 27일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여장]]'''[[http://ntnimg.seoul.co.kr/images/20110102/20110102_1293973158_87141200_1.jpg|사진]]을 올려 놓았다. '''[[OME]]!!!''' 브아걸을 패러디한 걸로 보아 가인을 따라했다. [[몽땅 내 사랑]]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입고 나온 의상이다.
* 2011년 4월 12일 방영된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끝으로 [[예능]] [[은퇴]] 선언을 했다...~~그러면 [[시트콤]]부터 접어야겠지?~~ 그런데 [[XTM]]에서 2011년 하반기부터 방송하는 [[탑기어 코리아]]의 멤버 중 1인으로 발탁되었다. ~~뭐??? 예능 은퇴한 거 아니었어??~~ 탑기코 시즌1에선 큰 형님 포지션 겸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활약. 그럭저럭 무난한 진행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동차에 관한 식견이 수준급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폭스바겐 골프]]를 엔진종류 별로 딱1번만 주행해보고 정확하게 차종을 구분하는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1의 백미로 꼽히는 슈퍼 카 택시 에피소드에서 [[험비]]의 민수형인 허머(Hummer) 택시를 담당하여 주목 받기도. 그러나 개인사정 상 시즌1에서만 나오곤 하차했다. 그러나 후임들이 워낙 평이 안좋은 지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
* [[바이크]] 매니아라고 한다. 바이크를 타면서 찍은 사진 밑에 '라이딩 중 애마와 잠깐 한컷 ㅎㅎㅎㅎ'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사실 소문난 바이크 매니아이다.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10411000163|이 기사]]를봐도 알겠지만 직접 중고 바이크 거래에 나설 정도이며 바이크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은 듯하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0245|힛갤 간 구매자의 글]]]
* [[군기반장]]이기도 한데, 어느 정도냐면 김갑수처럼 군기반장인데 그 악명이 자자한 [[이경실]]([[이경규]]와 [[홍기훈]]조차도 꼼짝 못한다.)이 알아서 눈치를 볼 정도다.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이신모 || 조연 || ||
- 무라하치부 . . . . 60회 일치
현대에서는 직장, 학교, 지역 등에서 공동체 내의 합의, 규칙을 지키지 않은 자를 따돌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줄여서 하부(ハブ)라고도 하는데, 「하부로 하다( ハブにする )」「하부하다( ハブる )」 등으로 쓴다.
현재는 방송자숙 용어가 되어 있다. 일본의 [[흑역사]].
장례식과 소방 활동에는 도움을 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자신들까지 피해를 입을 상황에서 지원을 준다는 의미.
*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서 시체가 썩으면 질병이 생기가 쉽다. 혹은 죽은 자는 벌을 줄 수 없다는 관념.(죽을 때까지가 벌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상과 같이,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 상황이 아닌 이상 거의 어떤 마을 행사에도 참가시켜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의 공동 자산[* 마을 주변의 야산 등. 땔감이나 산채를 채집할 수 없게 된다.]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며, 이웃 간의 최소한의 교제도 하지 않음으로서 철저하게 마을 내에서 "따돌림"을 하는 것이 바로 무라하치부라고 할 수 있다.
무라하치부는 무라의 규칙과 질서를 명분으로 하지만, 무라 사회를 주도하는 것이 지역 토호이므로 당연히 객관적이고 공명정대한 법률과는 거리가 멀어 공정한 질서 활동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역 유력자의 이익에 부합하여, 자신들에게 거스르는 사람에게 일방적인 무라하치부를 선언하는 예도 존재한다.
무라하치부 자체는 법률로서 처벌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범죄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실을 통보하는 행위는 협박죄라는 판례가 존재한다. 또한 이로 인한 손해는 민사소송에서 배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농촌 마을을 무라(村)라고 부른다. 이는 자치적인 농촌 공동체로서, 가마쿠라 후기에서 나타났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농촌은 도적에 대비하여 자경 능력을 갖추고, 농업에 필요한 수리시설의 축조 같은 대규모 사업의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마을 단위의 자치체제가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 다이묘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고,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총촌의 자체적인 군사력이나 자치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라(村, 촌락)의 경제적, 자치적 기능이 우수하여 전국시대의 영주들 역시 지배 단위를 무라로 삼았다. 무라 내부의 자치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고, 무라의 촌장을 통하여 촌락 단위로 지배[* 예를 들어, [[세금]]이 농민 개개인이 아니라 촌락 단위로 부가되는 등.]를 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근대적인 행정이 도입되었지만 전통적인 농촌 지역 사회의 공동체적 생활양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현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무라를 중심으로 하는 무라 사회의 형성은 가마쿠라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나타난 총촌(惣村)은 에도 시대 이후의 무라보다 오히려 강력하고 자치능력이 강력한 공동체로서, 자체적인 치안, 사법권까지 갖추고 잇는 소규모 자치국가라고 부를 만 했다.
총촌은 오토나(乙名, おとな), 사타닌(沙汰人, さたにん)을 중심으로 자치가 이루어졌는데, 오토나는 마을에서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하며 집안이 좋거나 많은 농지를 보유한 유력자였다. 사타닌은 본래 마을에 상주하며 영주의 판결이나 명령을 집행하는 관리였지만 총촌의 자치능력이 강해짐에 따라서 지위를 세습하면서 마을의 중심적인 인사가 되었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와카슈(若衆)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젊은이들만이 모인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마을 내에서 자경, 방위, 소방, 농지 경작 등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대의 학교이자 청년단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아니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므로 서로 간의 친목에 필요한 음주, 흡연을 가르치기도 하고 요바이(夜這い) 등을 통하여 연애, 결혼 상대를 찾기도 했다.
총촌의 치안은 이러한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창, 칼, 활 같은 무기로 무장하는 것 역시 일상적이었다. 본래의 헤이안 시대의 국법대로라면 형사 재판과 처벌은 영주나 관리가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의 간섭을 무라 사회는 거부하는 예가 적지 않았고, 가마쿠라 후기에는 무로마치 시대에는 총촌의 자치능력이 강화되고 영주의 지배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러한 자경 활동을 승인하였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영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태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추방이나 재산 몰수는 일정한 연한이 지난 뒤 해제될 수도 있었지만, 절도나 상해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게 집행되었으며, 심지어 사형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무라의 자체적인 치안활동을 자검단(自検断)이라고 부른다.
전국시대에 자검단은 전국 다이묘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소멸, 감소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겉으로만 폐지되었을 뿐, 영주로서는 무라에 과도하게 간섭해서 반발을 부르는 것보다 회유하여 연공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었다. 에도 시대에도 무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검단은 거의 묵인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검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상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상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이 긴 문단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라하치부의 배경이 되는 향촌자치는 언듯 생각하듯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것만은 아니며, 농촌 사회 지배층이 주도하는 ‘작은 사회’ 지배에 수반되는 무라의 폭력적인 처벌이 함께 뒤따랐다는 것이다. 무라하치부는 이러한 ‘처벌’의 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이 처벌 방식이 다른 것들과는 달리 비교적 오래 남게 된 것은 추방, 신체형, 재산몰수, 사형 등의 다른 처벌과는 달리 근대 형법 제도에 크게 배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라하치부 사건 가운데서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이 마을에서는 1952년 이전부터 조직적인 대리 투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을의 토나리구미(隣組, 관 주도의 자치회)의 조장이 공공연하게 각 가정을 방문하여 기권하면 대신 다녀오겠다고 반 강제적으로 입장권을 회수하거나, 기권할 사람이 있으면 조장의 집에까지 입장권을 가지고 오라는 회람판을 돌렸다.
일본의 선거는 미리 선거의 이름, 투표 시간, 선거인의 주소, 성별, 성명, 명단번호, 접수 번호 등이 기록된 투표소입장권(投票所入場券)을 배부하고, 이를 투표소에 가지고 가서 직원에게 전달하고 투표용지와 교환하여 투표하며, 이는 원칙적으로 본인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이렇게 회수한 입장권으로 마을의 유력자가 여러 차례 투표를 했다. 선거 관리자는 이를 묵인하였고, 마을 주민들도 이러한 행위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 신민아 . . . . 60회 일치
||<:><#000000> '''{{{#white 이름}}}''' ||<(><#ffffff> '''신민아(新慜娥)'''[* 한국에서 쓰는 [[신(성씨)|신씨]]는 申(납 신), 辛(매울 신), 慎(삼갈 신)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데, 예명이라서 그런지 新(새 신)이라는 특이한 한자를 쓴다.] ||
||<:><#000000> '''{{{#white 출생}}}''' ||<(><#ffffff> [[1984년]] [[4월 5일]] ([age(1984-04-05)]세) [br] [[세종특별자치시]] 보람동 (호려울로) ||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식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절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2010년]] 인기 드라마 중 하나였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여주인공 역으로 겨우 체면치레는 했다. 주목할 점은 상대역이 바로 [[이승기]]라는 점.~~마이더스의 손과 마이너스의 손의 대결~~ 시청률은 [[KBS|옆동네]] [[제빵왕 김탁구]]가 너무 [[넘사벽]]이라 ~~역시 막장은 못 이긴다~~ 별 재미를 못봤지만 김탁구 끝나자마자 시청률이 뛰어 최종회에서 19.9%의 시청률을 보여줌으로서 잠수함 타이틀에서 벗어날 계기가 되었다. 다만 제빵왕 김탁구는 KBS 내부에서도 쉬어가는 작품이었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압승을 SBS 내부에서 기대했던 만큼 방영전의 기대감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추락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처음에는 [[발연기|연기를 못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조정석과 합을 맞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하자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멜로 연기에 능숙한 편. MBC 수목 드라마 [[아랑 사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오마이 비너스], [내일 그대와]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은 선보여 주었다. 근데 폭망했다. 부족한 작품성 때문인 듯...--못 해도 망 잘해도 망-- 국내에서는 비록 망했을지라도 해외에서는 [오마이비너스],[내여자친구는구미호]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특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중국에서도 1등을 차지했을 정도...
* 네임드급 미남배우들과 자주 엮이다 보니 그만큼 조명을 못 받는다는 소리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과 잠시 떨어져 연기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각본의 작품에 출연하여 연기력에서 인지도를 쌓아야 하는 게 우선인 듯 싶다.
* 2009년, 지금은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유명해진 [[제이미 도넌]]과 함께 [[캘빈 클라인]]화보를 찍은 적 있다. [[http://205.oeker.net/bbs/board.php?bo_table=Hollywood&wr_id=4550826&sca=%EC%82%AC%EC%A7%84&sfl=wr_3&stx=&sop=and&page=3|#]] 촬영 당시, 사고로 조명이 넘어져서 신민아의 머리와 어깨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툴툴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며 주위를 배려하는 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https://youtu.be/1uapjf3vvOA?t=18m21s|#]]
* 2015년 10월 15일 약 7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온 사실이 기사로 나왔다. 새터민들을 돕는 단체 및 사랑의 열매를 통한 매달 200만원, 연말에는 5천만원에서 1억정도의 액수를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싱글맘들을 위해 분유를 기부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 그동안 기부한 액수가 약 10억 원 정도라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78574|관련 기사]] 특히 새터민들을 돕는 행사는 몇 년전 공개 행사를 할때 참석하였는데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불교 단체를 통해 기부한 적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신민아는 개신교 신자. 이따금 절에서 목격담이 있기도 하고,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가 봉은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타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 --드라마 고사장에서 절을 하지는 않는 정도--
||2001||[[화산고]]||주연||유채이 役||김태균||170만 명[* 공식기록 58만 명은 서울관객수이다. ] ||실패[* 사실 실패라고 보기 묘한게 국내에서 10억 정도 적자가 발생한건 맞지만, 수출로 메꾸고 오히려 더 남아서 2005년 속편 기획에 돌입했다가 회사 합병 등의 사정으로 엎어졌다. ] ||
|| 2010 || [[SBS]] ||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 [[구미호]] || 주연 ||
역시 영화만큼 폭망한 드라마다. [[때려]]의 경우에는 <대장금>이랑 붙었으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고 아직 뜨지 못했던 [[주진모(1974)|주진모]]나 심지어 [[성시경]]이 나왔던 드라마로 이 드라마는 그나마 조금 봐주자.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역시나 영화처럼 흥행이 없다. 영화도 300만 넘은 작품이 없듯이 드라마도 20% 넘은 작품이 없다. 간신히 15%채운게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뿐이다.
때려 이후의 첫 작품 [[이 죽일놈의 사랑]]. [[공효진]]과 상두야 학교가자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고, [[송혜교]]와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등을 통해 최고의 반열에 오를 뻔하였던 [[비(연예인)|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명필을 휘날린 [[이경희]] 작가와 함께한 [[이 죽일놈의 사랑]]은 사상 최대의 폭망은 아니지만 시작도 하기 전 엄청났던 기대치를 단숨에 잠재우며 조용히 와서 조용히 떠나갔다. 사실 [[소지섭]]과 [[임수정]]을 톱스타 반열에 올려 놓은 미사의 위용을 이을 거라 생각했던 시작 전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망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마왕(드라마)|마왕]]의 경우도 [[엄태웅]]을 엄포스로 만들었던 부활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작품. [[부활(드라마)|부활]]이 나름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드라마 막판에는 어느 정도 시청률이 올라기에 이 작품 또한 이죽사처럼 엄청난 기대를 가졌던 작품이다. 부활의 엄태웅마저 다시 합치고 또 궁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주지훈]]까지 합류한 이 작품. 역시 망했다. 완전 폭망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드라마 크게 뜨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신민아의 연기력이다. 사실 연기력이 남다른 남주 두 명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연기력은 드라마의 몰입도 자체를 떨어뜨렸고 이상하게도 부활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성이 더해져 역시 조용히 종영했다.
때려를 제외한 이후의 두 개의 드라마가 기대치에 비해 신민아를 제외한 작품 내적인 결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방송사 및 언론의 푸쉬를 제대로 받았고 아주 망작들은 아니었기에 어찌보면 둘 중 하나는 뜰 법도 한데 망했다. 강한 푸쉬를 받은 두 작품을 둘다 말아먹기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임에 신민아가 아주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여담으로 [[마왕(드라마)|마왕]]과 동시에 방영했던 MBC의 [[고맙습니다]]가 시청률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화제성을 끌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 작품의 작가가 [[이죽사]]의 작가인 이경희였고 여자 주연배우는 신민아가 [[이죽사]]에서 함께했던 [[비(연예인)|비]]를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연기자로 성공적 데뷔를 시켜주고 나중에 후술될 [[홍자매]]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후속작인 [[최고의 사랑]]을 히트쳐내서 홍자매의 명성을 다시 부활시킨 공효진. --공효진의 쩌는 선구안. 절친이라는데 좀 배웠으면--
그리고 시작 전 엄청난 기대를 받았고 그나마 나름 TV커리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 초반의 압도적인 기대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이 드라마 압도적인 기대를 모은 것은 작가가 홍자매인 점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바로 바로 상대역이 무려 [[이승기]].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 데뷔하고 [[한효주|동생으로 유명한 그분]]과 함께 한 찬란한 유산이 기대 이상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1박2일]] 시즌1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강심장]]으로 인기를 끌던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TV를 종횡무진하던 그와 함께 하여 정말 이번에는 안망할 줄 알았다. 사실 2010년 위 이승기라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하는 족족 앨범 드라마 예능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6회 중 20%를 넘거나 근접한 것은 막판 4회 뿐이고 거의 나머지 기간동안은 10%초반을 찍었다. 결국 평균 시청률은 15%(TNms기준)였다. AGB 기준으로는 12.6%이다. 시청률 20%는 거의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자매]]와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2014년도와는 거리가 한참 있는 2010년도에 작품을 했음에도 이거밖에 못 거둔거면 사실 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홍자매의 전작인 [[미남이시네요]]도 사실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는 홍자매 또한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그닥 높지 않은 시청률을 생각했다고 밝혔으나[*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중요하지만 매번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뛰는 모PD의 블로그-[[일지매]]PD-에 따르면 심지어 엄청난 대작이 상대방에서 나올 경우 일부러 시간 떼우기로 폭망할 작품을 넣는 경우까지도 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편성을 안하진 않는다.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방송은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그러니 푸쉬받고 세 번이나 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니깐--] [[쾌도 홍길동]]과 더불어 홍자매가 이건 뜰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인데도 안됐다. --물론 쾌도 홍길동도 20%은 못넘겼지-- 물론 동시 방영하던 타방송사 작품이 [[제빵왕 김탁구]]였긴 했으나 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저것 변명대면 남는 게 없다. 홍자매 또한 [[미남이시네요]]로 할 거 다 해보고 여기서는 다시 뜰 줄 알았으나 그냥저냥 했던 홍자매는 바로 이후 작품인 [[최고의 사랑]]이 AGB 기준 20%를 넘기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 이승기는 이후 [[더킹 투하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다. 영화계를 떠나서 드라마만 봐도 이정도면 흥행 블랙홀이다.
이후 다시금 [[건축학 개론]]과 [[시그널(드라마)|시그널]]의 [[이제훈]]과 뭉친 [[내일 그대와]]도 또 망했다. 그냥 망한 정도도 아니고 폭망했다. 내일 그대와 바로 전에 방영되었던 작품이 [[도깨비(드라마)|도깨비]]였음을 생각했다면 안습중에 안습. 나름 2016년들어 tvN 금토 드라마들이 자리를 잡아 평균 4~6%정도의 시청률을 올려주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1~2%의 시청률은 폭망했다고 봐야한다. tvN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방영 내내 중간 광고에서 수차례 미뤄줬는데도 망했으니 푸쉬받지 못했다고 변명도 어려운 상황. 물론 이 작품에서 신민아의 연기가 별로 인것은 아니다. 나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캐릭터를 골랐고 상대배우, 소재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으나 드라마의 전개나 진행방식이 매우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고르는 안목 또한 배우의 역량이기에 기본적인 선구안이 매우 부족한 느낌. --제발 누가 옆에서 보고 골라줘. 원하는거 하지말고 시키는거 하세요.--
연기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편이기에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에 맞춰 캐릭터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작품들을 선택해서 나아갔어야 했는데 경력 초반에는 오히려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로 하는 이죽사나 마왕을 했고 이후 나름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작품들을 선택했으나 이미 이런 작품들의 시대는 지나간 지가 오래였다. 연기력을 키워 자신의 연기의 폭을 넓혀 다양한 작품을 고르고 골라 선별해야하는데 이제 그걸 받쳐줄 연기력 없이 작품만 꾸준히 찍으니 이러한 참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연기력을 기르든지 아니면 최근의 [[전지현]]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줄 만한 작품들을 잡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의 방향으로 선택해야 좋은 결말에 이를 듯 싶다.[* 사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연기 스펙트럼이 좁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멜로 연기는 상당한 연기 수준을 가지고 있으나 확실히 다른 작품에서는 부족함을 보여준다.]
||<|4> 2009년 ||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 '''최고의 여자배우상''' ||
- 진격의 거인/87화 . . . . 60회 일치
* 지크 예거는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양친을 배신하고 조부모와 자신의 안위를 택했다.
* 클루거는 자신이 바로 "올빼미"였다고 밝히며 그리샤 눈 앞에서 거인으로 변해 치안당국을 쓸어버린다.
* 그리샤 예거는 그 아들 지크 예거 또한 어린날의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왕가의 피도 엘디아 복권파의 이상도 아들에겐 남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지크는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킨 양친을 버리고 자신과 조부모의 안녕을 선택했다. 그리샤와 다이나 프리츠가 치안당국에 잡혀가는 동안 지크는 냉정한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 당국에 잡혀간 그리샤에겐 혹독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안당국은 그에게 올빼미의 정체를 캐지만 그는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걸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당국의 고문기술자들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끈질기게 심문을 반복한다. 이미 그리샤의 남은 손가락은 세 개 뿐이다. 그리샤가 아는건 전부 말했다고 애원하는데도 관리들은 또 하나 손가락을 자른다.
* 그때 고문실에 낯익은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그리샤의 여동생을 죽이는데 일조한 남자, "클루거"였다. 하지만 그리샤는 낯이 익다고 생각했을 뿐,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기억을 뒤져보는 사이 클루거는 관리들에게 상황을 보고받는다.
* 엘디아 복권파는 눈이 가려진 채 배로 옮겨진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땐 낙원, 파라디 섬 해안가의 거대한 벽 위였다. 약 30미터에 달하는 벽이 항구와 섬을 분단하고 있다. 복권파들은 이 벽 위에 꿇어 안아있다. 클루거는 그리샤의 안대를 벗겨주면서 이곳이 "엘디아인 반역자의 귀양지"인 파라디섬, 그 경계선 위라고 알려준다. 이제부터 반역자들은 종신형에 처해지는데 지성도 없고 수명도 없는 거인이 된 채로 이 섬을 헤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떠돌며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으로 살아야 하지만 정작 거인은 죽을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영원히 지옥에서 해방될 수 없다.
* 그의 동료, 처음으로 그리샤와 접촉했던 복권파인 그라이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끌려온다. 그리샤가 무심코 그를 부르자 그라이스는 곧 그리샤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왜 지크가 자신들을 밀고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샤가 아무 말도 못하는게 더 화를 돋궜는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파냐고, 그리샤의 교육이 잘못됐던게 아니냐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리샤는 깐죽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는 놈이 아니었다며, 다이나와 복권파를 이런 놈에게 맡긴게 실수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가 얼 빠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절망을 부채질할 뿐인지 힘없이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며 엘디아는 끝이라고 내뱉는다.
이런 소란을 듣고 뚱뚱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대뜸 "너는 자유"라며 그라이스를 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리샤는 깜짝 놀라지만 클루거가 밑은 모래언덕이라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말대로 그라이스는 금방 일어서는데 떨어뜨린 남자가 "북쪽으로 달려라! 운이 좋다면 벽에 도달할 것"이라 소리친다. 그라이스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말만 듣고 뛰기 시작한다.
하급자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뚱뚱한 남자, 글로스 상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글로스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한다. 저렇게 "미끼"를 던져둬야 거인들이 금방 사라져서 일하기 편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옆에 있는 클루거에게도 아는 척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그리샤는 모든 것을 떠올린다. 뚱뚱한 남자는 여동생을 데리고 사라졌던 그 남자. 모든 일의 원흉인 그자였다.
그는 클루거와는 달리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어서 작업을 시작하자고 외치고 다닌다.
* 반역자들 뒤에는 한 사람씩 관리들이 붙어 있었는데 글로스가 지시하자 일제히 주사제를 투약한다. 엘디아 복권파의 동료들은 주사를 맞고 벽 아래로 떨어진다. 그라이스가 그랬듯 언덕을 타고 굴러떨어지던 동료들은...
* 일제히 거인으로 변한다. 인간의 자아는 남지 않은 이들은 본능에 따라 그라이스를 감지하고 잡아먹으려고 쫓아간다. 그리샤는 그라이스를 못 알아보는 거냐고 절규하지만 그들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글로스는 그리샤가 시끄러우니 얼른 거인화시키라고 서두른다. 하지만 클루거는 심문하고 싶은게 남아있다며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새로운 처형대상이 끌려온다. 그리샤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아내인 다이나 프리츠였다. 하지만 그는 다이나가 왕가의 핏줄이란 것을 실토했다. 프리츠 왕가의 혈통은 마레 측에서도 중요한 인물일 것이므로, 그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도 보통의 죄수로 취급됐다.
* 그리샤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다이나가 왕가의 혈통이라고 밝히려 하지만 클루거가 시끄럽다며 입을 막는다. 그리샤는 클루거가 보고받은 내용을 묵살했을 거라고 직감한다. 그 증거로 글로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고 얼버무리려 형을 집행하라고 말한다. 결국 다이나도 거인화 약물이 주사된다. 다이나는 마지막으로 자아가 있는 동안 "어떤 모습이 돼도 당신을 찾아낼게"라며 울먹인다. 글로스는 "거인끼리 사이좋게 살아라"라고 비웃으며 다이나를 걷어찬다. 절규하는 그리샤. 그의 눈 앞에서 다이나는 어떤 거인의 모습으로...
*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는 엘런 예거. 여기는 징벌방이다. 엘런은 창살 안에 있고 옆방엔 미카사 아커만이 자고 있었다. 아르민 알레르토는 그 앞의 의자에서 함께 밤을 지내고 있었는데 엘런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가 깨어난다. 엘런은 꿈 때문인지 기억이 혼선된 상태인데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아르민은 여기가 징벌방이고 미카사랑 같이 병기위반으로 벌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엘런은 천천히 기억을 되찾아가는데 아르민은 방금 전 "나는 왜"라고 중얼거린걸 지적하며 일인칭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기억이 애매하다.
* 아버지의 기억. 다이나가 변한 직후 글로스는 그리샤를 조롱한다. 다이나의 거인이 보통 거인들처럼 그라이스를 쫓아가 버리자 "사실은 저 남자에게 마음이 있었다"고 빈정거린다. 분노한 그리샤는 닥치라고 욕하며 15년 전 여동생을 죽인게 바로 너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혀를 찰 뿐 동요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마지막 죄수를 인계 받아 자신이 처리할 테니 부하들은 배로 돌아가라 지시한다. 부하들은 관련되는걸 꺼리며 그 지시에 따른다. 이미 글로스의 "취미생활"은 유명한 듯한데 지금도 글로스가 "취미생활"을 할 생각이라고 여긴다. 부하들도 그리샤의 폭로를 들었는데 "아무리 엘디아인이라도 어린 소녀까지 손을 대다니"라고 진저리를 치지만 특별히 다른 반응은 없다.
* 그리샤는 그가 하는 짓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이해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글로스에게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묻자 어이없에도 "재밌으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단지 인간이 괴물에게 먹히는게 재미있어서 이런 "취미생활"을 즐긴다. 인간이 잔혹한걸 보고 싶어하는건 본성이고 평화란 좋은 거긴 하지만 "아쉬운 일"이다. 삶의 실감이 희박해지기 때문에.
글로스는 거인화 약물을 주사하며 계속 말한다. 본래 생물은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걸 실감하고 사는게 정상인데 평화로운 세상이 당연하다 느끼는 녀석들은 이상한 거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인간은 언젠간 죽고 자신은 그 날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항상 잔혹한 세계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 "취미생활"로. 그가 여동생을 개에게 던져준던 "교육"으로 그걸 본 아들들이 어엿하게 자랐다고 자평한다.
그리샤는 "엘디아인만 아니라면"이란 꼬리표에 귀를 의심한다. 글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군다. 막 거인으로 변한 죄수를 가리키며 "저게 너희의 정체"라고 말한다. 단지 "거인의 척수액"을 체내에 주입하는 것만으로 거인으로 변하는 엘디아인이 어떻게 "같은 인간"일 수 있냐는 것이다. 글로스는 지구상의 생물 중 이렇게 되는건 오직 "유미르의 자식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죽을 썼을 뿐인" 괴물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악몽이라 말한다.
글로스는 그렇게 강조한다. 그는 마음이 아플리 없지 않나며, 마치 인간처럼 말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살인자는 오히려 복권파 쪽. 그들이 마레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냐고 반문한다. 엘디아제국과 같은 짓을 되풀이하려고. 그건 마음이 아프지 않았냐고 묻는다.
* 말문이 막혔던 그리샤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마레의 역사는 날조이며 엘디아인이 인류에게 번영을 주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말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무관심하다. 아무래도 좋으니 "밑에 있는 친구"랑 이야기하라며 그리샤를 떨어뜨리려 한다. 그리샤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묶여있는 상태에선 어쩔 수가 없다. 글로스는 참신하게 먹히라는 둥, 여동생이 부르고 있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지만 그리샤는 절규할 뿐,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런데...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59회 일치
대번포트 주민들이 생산하는 물건을 팔아서 자금을 충당하거나 장비를 제작할 수 있다.
물건을 팔 때는 원자재를 파는 것 보다 그걸 조합해 장인들이 만든 물건을 파는게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부가가치]]-- 재료(Material)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 말고. 원자재 중 팔아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건 곰가죽이나 비버가죽 정도.
보스턴 중부 힐 요새 북동쪽 상자-병사들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무기 칼날.
트로이즈우드의 경비병이 지키는 헛간 속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랜스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참나무 목재.
트로이즈우드의 군대 숙영지 속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랜스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단풍나무 목재.
보스턴 남부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은광석.
보스턴 북부 동쪽 해안 선박의 상자-경비병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납광석
보스턴 중부 서쪽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금광석.
몬머스 항만관리소장 앞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영지 상자에서 획득 가능.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밀랍.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영지 상자에서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모래.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영지 상자에서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철광석.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영지 상자에서 획득 가능.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양모.
존스타운 마을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랜스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단풍나무 목재.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올리버와 코린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호밀+나무통+보리.
존스타운 마을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면조교직물+단추.
* 라쿤가죽 모자(Coonskin Hat)
존스타운 마을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라쿤 가죽+재봉실.
* 좋은 모자(Fine Hats)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영지 상자에서 획득 가능. 엘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비버 가죽+산토끼 가죽.
- 진격의 거인/94화 . . . . 59회 일치
* 전사들은 엘디아인 거주구에서 가족들과 제회. [[지크 예거]]는 [[그리샤 예거]]의 부모님, 자신의 조부모와 재회. 아버지와 달리 조부모에겐 정답다.
* 라이너가 마레의 전사에 지원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마레인과 사랑했으나 신분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식에게 희망을 걸었다.
* 하루는 함께 훈련받던 지크가 곧 거인 계승시기가 오며 무려 6명이나 기회가 있을 거라 말하자 라이너가 흥분한다.
* 얻어맞은 라이너를 베르톨트가 위로해주며 "13년 밖에 못 살아도 괜찮겠냐"고 묻는데, 라이너는 "영웅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거니 상관없다 답한다.
* 길고 길었던 전쟁이 끝나고 마레의 전사들은 그리운 고향 레벨리온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열차가 도착하자 마자 가비가 날아차기를 하며 뛰쳐나온다. 뒤이어 [[라이너 브라운]]이 내린다.
파르코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형의 한심한 숙취도 둘째 문제였다. 그는 어젯단 라이너에게 [[진격의 거인/93화|"가비를 구해라"]]고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새삼 라이너의 이력을 돌아봤다. 4년 전 팔라디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모든 책임은 라이너에게 돌아갔다. 까딱하면 "임기"를 채우기 전에 갑옷을 박탈 당한 뻔했으나 라이너는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위험한 전장을 누구보다 앞장 섰으며 목숨을 걸고 여러 전과를 올려 마레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고 자신의 임기도 지켰다. "다른 어떤 전사보다도 높은 충성심". 그거야 말로 라이너가 높이 평가받는 배경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제 그 얘기는?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문제다. 파르코는 가비와 라이너를 앞질러 걸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어쩌면, 라이너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의식해서 힐끗힐끗 돌아봤던 건데, 가비는 그걸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이걸 "반역의 예조"라며 부대에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파르코가 "이게 누구 때문인데!"고 항변한다. 가비가 알아듣지 못하자 라이너와 지나가던 병사들이 "가비 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만 의미를 몰라서 반발하느라 파르코에게서 관심이 떨어진다.
* 마레의 전사들은 도시를 가로질러 엘디아인 거주구로 이동했다. 가는 길목마다 마레인들의 탐탁지 않은 시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고향인 거주구. 가족들은 벌써 출입통제소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가비와 파르코의 동기 조피아, 우도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포르코와 피크도 오랜만에 가족과 재회했다. 그리고 전사들의 리더 지크는 [[그리샤 예거]]의 부모, 자신의 조부모에게 돌아왔다.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하면서도 조부모에겐 다정하게 얼싸안는다. 조부가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칭찬하자 지크는 "아직이야"라고 대답한다.
* 상봉을 마친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파르코도 그 행렬에 끼어있었지만 길 가장자리에 또다른 행렬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엘디아인 부상병들이었다. 코스로라는 병사가 인솔 중이었다. 이들은 전방에서 오랫동안 참호를 파온 병사들이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 심적외상까지 발생했다. 이들은 가족도 돌아갈 곳도 없는 부류여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들의 상태는 한 눈에 봐도 폐인이다. 코스로가 "콰앙!"하고 폭발음을 모사하자 곧바로 패닉상태에 빠진다. 코스로는 그걸 보고 껄껄 웃는다. 파르코는 가족들이 형을 부축해서 먼저 가도록 하고 자신은 남아서 부상병들을 부축한다. 그는 다리 잃은 부상병의 완장을 바르게 채워주면서 꼭 괜찮아질 거라고, 당신은 이제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한다.
* 라이너의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비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무장열차를 끝장냈는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라이너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흥분되고 자랑스러운 눈길로 그녀에게 집중한다. 가비의 자랑이 끝나자 카리나가 아들에게 "가비가 다음 전사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라이너는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말에 부드럽게 대답한다.
가비가 그 말에 눈을 빛낸다. 카리나는 일족에서 둘이나 계승자를 내는 것, 그들이 마레에 인정 받는거야 말로 긍지라고 말한다. 이제 그녀의 소원은 그 섬, 팔라디 섬의 악마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만 한다면 모든 엘디아인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라이너는 어머니의 맹신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가비는 카리나에게 "전사대가 섬의 악마들로부터 엘디아인을 지킬 거야"라고 안심시킨다. 팔라디섬에 대한 의견은 엘디아인 전반에서 공통적이다. 그들은 마레에서 가르친 대로 섬의 악마들이 언제든 대륙으로 돌아와 모든 걸 멸망시킬 거라고 믿고 있다. 이 식탁에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엘디아인이 멸시 당하는 것도 바로 그들 때문이라 생각했다. 화제가 이렇게 돌아가자 자연히 그 섬에서 5년이나 생활했던 라이너에게 화살이 쏠린다. 은연 중에 그 섬에 대해서 묻는데, 가비가 그런 걸 물으면 안 된다며 가족들을 말렸다. 애초에 팔라디섬에 대한 정보는 기밀인데다, 그 지옥 같은 섬에서 잠복했던 경험을 누가 말하고 싶겠냐는 것이다. 가비의 아버지가 조카의 입장을 생각 못했다며 사과하지만, 사실 라이너가 난처한 것은 가비의 발언 쪽이었다.
>갑자기 감자를 먹기 시작한 녀석이 있었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상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반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절반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반대로 남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자신과 이제 없어진 친구들.
라이너가 복잡한 심경으로 이 말을 마쳤을 때 식탁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카리나는 자기 아들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가 눈치 챘다는걸 알았다. 라이너는 곧 "잊어달라"고 발언을 번복한다. 그때 라이너의 말에 대답하는건 가비 밖에 없었다.
라이너의 짧은 낙담. 카리나는 가비의 말에 열렬히 호응했다. 그 섬에 있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악마들이며 세상을 지옥으로 바꾼 자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엘디아인들은 다르다. 그 생애를 마쳐 마레인들에게 처참한 역사를 속죄하는 선량한 시민들이다. 섬의 악마들이 돌아올 때 그걸 저지하는건 엘디아인이어야 하며 그걸 이뤘을 때 비로소 전세계에 엘디아인의 선량함을 입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대륙의 엘디아인을 버린 족속들이 아닌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들을 버린 자들에게. 이런 말을 가비에게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라이너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건 민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카리나는 여느 가정의 어머니들이 그렇듯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역사를 들려주었다. 거인이라는 괴물과 그걸 이용한 악행, 그걸 자행한 자들의 피가 자신들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엘디아인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가 되니까.
가족사로 흐르기 시작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마레인과 엘디아인의 혼혈은 법으로 금하고 있다. 카리나는 이런 비밀을 왜 아들에게 말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걸 비밀이라고 가르치는 걸까? 그녀에게 엘디아인이 왕가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마레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것은 모두 한 가지였다. 마레인으로 태어났더라면, 그 말이 어머니의 눈물을 타고 떨어질 때 아들은 독한 결심을 했다. 라이너는 마레의 전사가 되기로 했다.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58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81화. '''성기사장 자라트라스'''
* 자라트라스는 엘레인과 마찬가지로 십계의 힘으로 되살아났다.
* 예상보다 얼빠진 성격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한다.
* 그는 헨드릭슨과 드레퓌스를 조종한 프라우드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 자책한다.
* 그가 살아난 것도 그 자책 때문이며 아들 길선더와 만나길 주저한다.
* 자라트라스의 기억으론 멜리오다스가 생전에 "심장이 멈춘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자라트라스와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주술"의 힘으로 멜리오다스의 기억의 세계로 들어간다.
* 젊은 시절 자라트라스와 국왕 바트라가 있고 아기인 엘리자베스를 안고 있는 멜리오다스와 만난다.
* 자라트라스는 엘리자베스에게 아름답게 자랐다며 인사한다.
* 엘리자베스는 꿈이 아닌가 의심하고 호크는 "그 10년 전 죽은 자라트라스?"라며 믿기지 않아한다.
* 그러자 자라트라스는 "하필이면 피쉬파이에 낚이는 바람에 죽은 그 자라트라스"라고 폭탄발언을 한다.
* 당시 야근으로 공복에 지쳐있던 자라트라스는 핸드릭슨에게 피쉬파이를 선물 받는다. 그것도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검은 고양이의 하품"정의 특제 피쉬파이
* 호크는 얼빠진 녀석이라 생각했는지 "역시 가짜"라고 의심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진짜 자라트라스님이 맞다"고 인증한다.
* 자라트라스는 그때 조금만 주의를 했다면 핸드릭슨과 드레퓌스가 어둠(프라우드린)에서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통탄한다.
* 잠시 뒤 갑옷을 벗은 자라트라스는 자신이 십계의 마력으로 되살아났음을 밝힌다.
* 속세에 미련이 있거나 강한 증오가 있는 자를 살려내는 주술인데, 호크가 "혹시 2대 성기사장에게 복수할 셈이냐"고 묻자 "그래"하고 호러블한 얼굴로 대답한다.
* 하지만 그냥 장난이고 사실은 친구들을 농락한 프라우드린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한심함에 대한 미련 때문에 되살아난 것.
* 엘리자베스는 "아들"(길선더)하고 만났냐고 묻는데, 호들갑을 떨면서 "이제와서 무슨 낯짝으로 만나냐"라고 장황하게 떠들어 댄다.
* 그런 자신의 처지가 짜증이 난다며 "한탄 좀 하게 멜리오다스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멜리오다스의 시체를 보게 된 자라트라스.
- 김숙자 (1389년) . . . . 57회 일치
'''김숙자'''(金叔滋, [[1389년]] [[8월 24일]] ∼ [[1456년]] [[3월 2일]])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강호산인(江湖散人)으로 불렸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ref name="김숙자">《한국민족문화대백과》,김숙자(金叔滋),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선산 출신의 도학자이자 유학자이다. 야은 [[길재]](冶隱 吉再), [[윤상 (조선)|윤상]](別洞 尹祥)의 문인이다.
[[1414년]](태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고,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본처와의 이혼 경력으로 요직에 임명될 때마다 거듭 [[사헌부]]에서 논계하였다. 사예(司藝), 중훈대부에 이르러 관직을 사직하고 [[1456년]] 처가인 [[밀양]]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아들이자 문하생인 [[김종직]]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전수하였다.
[[1389년]](고려 창왕 1)에 [[경상도]] [[선산군|선산]] 영봉리(迎鳳里)에서 태어났다. 광위(光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은유(金恩宥)이고, 아버지는 김관(金琯)이며, 어머니는 유인귀(兪仁貴)의 딸, 유씨이다.<ref name="김숙자"/>
김숙자는 12세 때부터 [[길재]](吉再)로부터 『소학』과 경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역학에 밝은 당시 [[조선]] 유학자 별동 윤상(別洞 尹祥)이 황간현감으로 임명되어 내려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걸어가서 배움을 청하자 윤상은 그 열의를 보고 『[[주역]]』의 깊은 뜻을 힘써 가르쳐주었다. 윤상은 다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인 조용(趙庸)이 [[1392년]](태조 1) [[역성혁명]]을 반대하다가 [[예천]]에 유배되어 오자, 조말생(趙末生)·배강(裵杠) 등과 함께 조용을 찾아가 그를 사사하여 문인이 되었다. 김숙자는 [[길재]] 외에도 윤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의 학통을 이었다. 그밖에 그는 조용, 김말 등과도 교류하였다.
[[1414년]](태종 14) 봄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17년]](태종 17) 봄 중성균시(中成均試)에 일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해의 회시(會試)에는 낙방하였다.<ref>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19년]](세종 1) [[안동]][[향시]](安東鄕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여 [[한양]]으로 상경,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사랑]] 권지[[성균관]]학유에 임명되거 고향으로 돌아왔다. [[1421년]] 봄 학유에 다시 임명되고 이듬해 [[1월]] [[한양]]으로 올라가 관직을 시작하였고,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처인 한씨와 이혼하였다.<ref name="ginyon"/> 전처 한씨의 자매의 남편 김주(金宙)는 의술 재주가 있었는데, 김주는 성주목사 이상선(李相善)에게 그가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후 아내를 출처했다고 고하였고, 이는 그대로 [[예문관]]에 보고되었다.<ref name="ginyon"/>
[[1422년]](세종 4) [[5월]] 종사랑으로 승진, 성균관학록이 되었다. 아들 김종직에 의하면 [[1423년]] 김주가 한성으로 간 뒤, 장인 한변(韓變)을 불러서 [[사헌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사헌부]]에 소환된 그는 대질심문을 받았으며 낙직(落職)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한다.<ref name="ginyon"/> 고령현감을 거쳐, [[1423년]](세종 5) [[7월]] 성균 직학(成均直學)이 되었을때, [[사헌부]]가 [[세종대왕]]에게 그가 자식이 있는 조강지처를 망령되이 서얼(庶孽)이라 일컬어 아무 까닭도 없이 버려 이별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80대를 치라는 계를 올렸다.<ref>세종실록 21권, 1423년(세종 5년, 명 영락 21년) 7월 4일 임오 3번째기사, "성균 직학 김숙자를 처벌하다"</ref> [[1431년]] [[7월]] 모친 유씨가 죽어 밀양에서 분상했는데, 8월 아버지도 사망하였다. 그는 할머니 김씨부인 묘소 하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이후 3년간 복상하였다. [[1433년]] 가을 상복을 벗고 [[밀양]]으로 돌아왔다.<ref name="ginyon"/>
[[1435년]](세종 17) [[9월]]에 한성으로 돌아가 그해 [[10월]] 성균관학록에 복직했으며<ref name="ginyon"/>, [[12월]]에 학정(學正)으로 승진하고, 또 통사랑(通仕郞)으로 다시 승진,[[성균관]]진덕박사 겸 [[양현고]]녹사(成均館進德博士兼養賢庫錄事)에 임명되었다. [[1436년]]에 경명행수(經明行修)의 선비 추천에서 첫 번째로 꼽혀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선산의 교수관으로 나갔다가 개령현감이 되었다. [[9월]] [[무공랑]] [[성균관]]박사겸 [[양현고]]승이 되었다. [[1437년]] [[12월]] [[선무랑]]에 배사하고 [[선공감]]주부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2월]] [[예빈시]]주부, [[6월]] [[내자시]]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는 관료생활 외에도 [[소학]]부터 경학 등 학문을 가르쳤고, 아들 [[김종직]] 외에도 탁중(卓中), [[이재인 (조선)|이재인]], 손조서(孫肇瑞) 등의 문인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김숙자의 문인 중에서 우수한 제자 9명은 세칭 아홉 현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1438년]](세종 20) [[10월]] 내자 주부(內資主簿)로 재직 중 서연 정자(書筵正字) 직에 겸임되었다. 이때 사간원 좌정언 이예장(李禮長)으로부터 전에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고 죄를 얻어 침체되었다가, 이제 죄를 용서 받고 다시 벼슬길이 열렸사오나 잘못을 뉘우치는 행적을 듣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ref>세종실록 83권, 1438년(세종 20년, 명 정통 3년) 10월 26일 정축 2번째기사, "음사는 본궁의 은밀한 곳에서 행하도록 하다"</ref> 이후 집현전 주부(注簿)로 있다가 [[1439년]](세종 21) [[4월]] [[이조]]에서 그를 동부 교수관(東部敎授官)으로 발령하였다. 그러나 [[사헌부]]에서 탄핵 상주를 올려, 왕명으로 사유록(師儒錄)에서 삭제당하였다.<ref>세종실록 85권, 1439년(세종 21년, 명 정통 4년) 4월 14일 신묘 8번째기사, "김숙자를 사유록에서 삭제하다"</ref>
효성이 지극해 『소학』의 법도를 따라서 어버이를 모셨다. 그리고 남을 가르치기를 권태롭게 여기지 않아, 친상(親喪) 중에 여막 곁에 서재를 만들어 조석을 올린 뒤에 가르치기까지 해, 학업을 받는 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가르칠 때에는 처음에 『동몽수지(童蒙須知)』 유학자설정속편(幼學子說正俗篇)을 모두 암송시킨 다음 『소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효경]]』·『[[사서오경]]』·『[[자치통감]]』 및 제자백가의 순을 밟았다.『소학』을 앞세우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자세는 [[고려]]의 유학자 [[길재]]에게서 물려받았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아들 김종직이 쓴 선공기년 제2편에 의하면 집안이 빈한하여 부득이 3월장으로 치뤘고, 그해 [[12월]]에 자신의 외조모 민씨의 묘소 서쪽에 장례를 치뤘다 한다.
김숙자는 스승 길재의 가르침에 확신했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지켰다. 어릴 때부터 책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순서대로 읽는 습관을 따랐다고 한다. ‘소학’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실천 강조 학풍은 김숙자-[[김종직]]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될 정도로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뒤에 영남사림파의 큰 학자로 드러난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지칭하면서 30세까지 ‘소학’에만 천착했을 정도였다. [[길재]]에서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에 이르는 [[정주학]](程朱學)의 학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길재]]는 많은 제자를 길러 냈는데, 가장 먼저 입지를 세운 이가 김숙자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속속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세조 때부터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 등 여러 신진 사류가 과거 급제 등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른바 ‘영남사림파 ’의 등장이었다. 이후에 [[이중환]]이 ‘[[택리지]]’를 통해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김숙자 이후에 ‘영남사림파 ’의 발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628.010110742170001 영남사림의 기반을 구축한 김숙자(金叔滋)] 영남일보(2013.06.28) 기사 참조</ref>
***** 이자(二子) : 김종익(金宗翼)
***** 자부 : 배우의 딸
***** 자부 : 조계문의 딸
***** 자부 : 문극정의 딸
== 참고 자료 ==
* 「한국사 테마전」,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김경수 저, 돋을새김(2009년, 128~151p)
- 은혼/614화 . . . . 57회 일치
* 좌절감으로 칭코마저 숨긴 채 전장에 몸을 던졌던 자작 제독.
* 그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감동적인 호소를 한다.
* 하지만 현장에 있는 자들은 어떤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는데.
* 기절한 엘리자베스의 치마 밑으로 터무니없는 외설물이?
* 연재 이래 가장 황당한 진실. '''엘리자베스는 행방불명됐던 오우고우의 제 1 황자 드라고니아였다.'''
* 엘리자베스, 아니 드라고니아는 그 자리에서 왕으로 추대받으나 자신은 떠난 사람이고 자격을 잃었다고 고사한다.
>그러니까 저는 황자인 채로 기다릴 겁니다.
* 하타 황태자의 청을 뒤로하고, 바루카스 황태자는 길을 떠난다. 하타가 평화로운 시대의 왕으로 어울리듯 자신에게도 어울리는 자리가 있을 거라 믿으며. 그렇게 작은 칭코도 신분도 숨긴 채 전장에 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필생의 라이벌 엔쇼우 황자. 그는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전쟁에 매달렸고 전장에서 전장으로 옮겨가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해서 도달한 곳이 이곳. 그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자작 제독은 무전기 너머로 아우에게 사과하며 자신은 자기 자리에서 도망치고 있던 거라고 고백한다. 칭코가 큰 동생과 위대한 형 드라고니아에게서. 그는 이제 도망치지 않고 하타 황태자 옆에서 함께 싸우기를 다짐하며 황태자 바루카스로 돌아온다.
대화가 엇나가고 있는걸 감지한 바루카스. 작은 칭코파가 주저하게 만든 것은 바루카스의 연설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뜻밖의 거대한 무언가 때문에 혼란에 빠져있는데.
* 가츠라 고타로를 감싸느라 기절한 엘리자베스에게서, '''흉측하고 거대한 외설물이.'''
하타 황태자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네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저거야 말로 용처럼 거대한 칭코. 틀림없이 오우고쿠 왕가의 장남이자 정통한 계승자. '''구룡공자 드라고니아'''.
바루카스의 감동적인 연설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그쪽에도 황태자가 있냐고 묻는 바루카스의 목소리는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가 완전히 혼자 떠들고 있는 사이 이쪽에선 오우고쿠별 역사에 남을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설의 황자의 귀환이.
* 단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아니 드라고니아를 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드라고니아는 구두룡섬이란 필살기를 사용해 이들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아홉개의 귀두--결국 귀두했어 지금?--를 가진 구룡의 이름에 걸맞는 기술. 네스의 이같은 해설에도 하타 황태자는 구룡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술 아니냐고, 그냥 쓰레기 용섬이 아니냐고 의심한다.--귀두룡섬이겠지--
네스는 누구보다 먼저 그를 드라고니아로 인정한다. 분명 모습은 바뀌었지만 그 귀두, 아니 칭코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하타 황태자는 눈치도 없이 칭코라기 보단 가랑이에 달린 그거가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 가츠라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드라고니아. 엘리자베스인 부분의 팻말과 귀두에 생긴 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머리를 세개 부딪혔던 순간. 그 이전의 기억은 사라졌다. 그대로 사지를 떠돌고 있다가 어떤 존재들과 접촉한다.
* 그 하얀 존재들은 피투성이가 된 드라고니아를 동료로 받아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투쟁심이 살아있던 드라고니아는 그들에게 덤벼든다. 그들의 리더는 그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채 폭발, 지금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엘리자베스가 된 채 살아온 드라고니아.
방금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타 황태자는 대체 그 설명을 어떻게 해야 지금의 형태가 되냐고 따진다. 그러나 칭코만능주의자 네스는 아무튼 칭코가 크고 드라고니아 본인이라니까 됐지 않냐며 콧방귀도 뀌지 않고 눈 앞의 엘리자베스를 차기 국왕으로 떠받든다. 뒤늦게 소동을 듣고 달려온 부하들. 하타 황태자는 이 개판을 보고 한 마디 해달라고 하지만 부하들은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칭코만 보고 그쪽에 붙어 버린다. 결국 이놈의 종족은 칭코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 네스를 앞세운 부하들은 오우고우 왕가의 오랜 공백기간과 바보황태자(하타황태자)가 망친 국정을 논하며 속히 돌아와 왕위를 이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고사한다.
>지구의 엘리자베스가 되어버렸어.(펫말)
- 이연희(배우) . . . . 57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배우.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출생이다. 하지만, 성장한 곳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이다. 2001년 일종의 캐스팅 오디션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입상하면서 SM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처음으로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고아라]]에 이어서 [[SM엔터테인먼트|SM]]이 연기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 초창기에 내세운 연기자다.
[[http://m.hankooki.com/m_dh_view.php?WM=dh&FILE_NO=ZGgyMDE3MTAxOTAwMTAxMzEzOTAyMC5odG0=&ref=m.search.naver.com#_enliple|심지어 자타공인으로 인정받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yumeeee&logNo=220935048795&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sm%3Dmtb_hty.top%26where%3Dm%26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B%25AA%25A8%25ED%2583%259C%25EB%25AF%25B8%25EB%2585%2580%26oquery%3D%25EC%259D%25B4%25EC%2597%25B0%25ED%259D%25AC%2B%25EC%2597%25AC%25EC%258B%25A0%26tqi%3DTCz1uspVuqVsstlVdJ0ssssssjK-150893|타고난 모태미녀로 유명해서,]] [[http://m.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40|학창시절에도 그 미모가 빛을 발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티들이 여배우들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과거사진 문제나 성형수술 논란같은 문제도 그냥 종결시켜버릴 정도로 전혀 없다. 위의 링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성형수술 안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학창시절과 지금의 얼굴을 비교해도 거의 똑같다. 과거 모습은 아니지만, [[http://naver.me/5cFgCe6n|화장기 없는 민낯조차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족한 연기력으로 늘 비판을 받다가 2013년부터 서서히 연기 쪽에서도 호평을 받기 시작했지만 [[화정]] 출연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는 평을 받았다가 [[더 패키지]]를 통해 다시 호평을 받고 있다. 가히 롤러코스터 같은 커리어를 보이고 있는 셈. 연기력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에 서술되어 있다.
('''이연희의 발연기를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표적인 대사이자 장면.'''2008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에서 송승헌과 이연희의 첫 만남 때 이연희가 한 명대사...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대사는 나오지도 않았다. 아마도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의 대사를 패러디 한 것[*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아무도 내가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이다.]으로 보이며, 워낙에 이 장면이 뜬금없이 전개되는 부분인지라 놀리려고 밈을 만든 것이다.[[https://youtu.be/s82BYYwxk20?t=344|#]][[https://youtu.be/s82BYYwxk20|#]])
(2011년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 이연희가 부른 --그 유명한 귀염터지는 발걸음과 말투와-- 콧노래.[* [[존박]]이 [[방송의 적]]에서 했던 [[https://www.youtube.com/watch?v=eMTTt3Hxblw|니나니뇨]]의 원본(...)이다. 사실, 여기서는 [[최강창민]]도 발연기에 한몫했는데 이연희의 발연기 때문에 그냥 묻혀버렸다. 그래서 반응이 "누가누가 더 발연기 하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만큼은 연기를 비롯해서 대사 전달이 그럭저럭 자연스럽다. 그래서 최강창민이 더 연기를 못했다는 의견도 많다.''' ])
(2015년 드라마 <[[화정]]>에서 나온 오열 연기이다. 분명 차라리 자기를 베라고 오열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데, 얼굴 표정은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은 억울한 표정(...)인 것이 개그 포인트.)||
'''현재 활동하는 연기자 중에서 가장 연기력 논란이 많았던 여배우'''[* 다만 상술했듯, 후술하겠지만 지금은 나아져서 예전만큼 거론되지는 않고 있으며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연기가 나아진 현재는 [[임지연]]이 그 뒤를 잇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데뷔 초 앳되고 청순한 이미지의 캐릭터로 굳어져 약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을 받던 중 드라마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에 출연하며 연기 변신을 시도했지만, 완전히 실패하고 오히려 [[발연기]] 배우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발연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생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0G1LflbuPbA|심지어 물에 빠지는 연기는 "들고 있는 유리병보다도 부자연스럽다"라는 악평도 나온다.]]
사실 여러가지 의미로 얼굴을 가장 널리 알리게 된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막장 대본이라서 연기가 어설퍼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정말 좋은 실력을 갖춘 연기자는 그러한 대본이라도 연기는 제대로 잘한다. 실제로 [[아내의 유혹]]같은 경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막장 스토리였는데도 연기자들의 혼신어린 연기로 '명품 막드'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본 때문에 연기를 못했다는 이야기는, 연기력 면에서 그 역할의 폭이 좁고 극을 이끌어나갈만한 주연급 연기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http://cfile2.uf.tistory.com/media/117BAA3E4FC09D251AD69A|전설이 된 그녀의 영어발음(플짤주의)]][[https://www.youtube.com/watch?v=ITLo7_pGcoI|#]]
이 논리대로라면 조선시대나 삼국시대, 고려시대, 일제 강점기 등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 출연해서도 뛰어난 명품 연기를 보여준 다른 수많은 선배 배우들은 그 시대를 살아봤고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하는 것일까? '''선배 연기자들도 역시 살아보지 못한 먼 과거의 시대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좋은 연기력으로 커버하는 것'''이지 시대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이 좁고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만 입증한 셈이다. 타고난 미모가 너무나도 아까울 지경의 연기력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평균 이상의 대본 퀄리티를 가졌다고 인정받은 드라마 [[유령(드라마)|유령]]에서 1, 2회 때는 연기가 그럭저럭 나아졌다는 평을 들었으나 그 이후에는 별로 좋지 못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좋지 않은 반응 때문에 드라마 후반부에는 애초 기획된 분량보다 비중이 현저히 줄어드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시기에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221609221110|"악플은 한귀로 듣고 흘린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많이 까였다.
물론 인신공격이나 모독성 발언들은 문제가 되고도 남겠지만, 연기력에 대해 지적(비판)하고 충고하는 글들마저 모두 악플로 치부하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늬앙스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해서 까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너는 내 운명(드라마)|발연기로 경쟁하던]](...) [[박재정]]이 [[https://www.google.co.kr/amp/news.kbs.co.kr/amp/view.do%3Fncd%3D2919210|"하하, 발연기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발한테 너무 미안하죠."]]라며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모습과 대비되며 더 까였다. 더구나 박재정은 그 당시 OCN [[신의 퀴즈]]에 출연해 해당 회차에서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해서 그와 비교해서 발전할 기미가 안 보인다고 또 까였다.
무게감이 필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아직도 불안한 발음, 발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 에덴의 동쪽에서나 유령에서나 발성과 발음에서 전혀 나아진 게 없어서 본인도 연기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언급되었던 '악플은 무시한다'는 태도가, 악플뿐 아닌 비판조차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여지가 많은데다가, 줄곧 발연기로 혹평을 듣던 다른 배우들인 [[황정음]], [[박재정]] 등이 점점 연기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지어 노력조차 안 한다는 이미지가 박혀버리게 되었다. 아예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는데 이연희보다 어리고 연기도 더 잘하는 후배들[* 심지어 연기에 도전하는 아이돌 멤버들까지.]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김태희]]로 대표되는 '''미모만 되고 연기력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던 선배들마저도 연기력 향상에 투자하게 되면서 배우로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그녀의 연기자로써 결정적 신체 결함은 '''짧은 혀'''에 있다. 감정 연기나 표정 연기는 특별히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데, 대사 전달력 때문에 발연기 소리를 듣는다는 평도 있다. 즉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인 대사 전달력이 안 되는 것이다. 앞서 비교한 박재정은 발음이 어눌해도 목소리 자체는 굵고 힘 있는 목소리이고, [[황정음]]은 그래도 가수 출신이라 그런지 이연희보다 발성은 더 나은 편이다.[* 연기 활동 초반에 연기력으로 까이던 황정음은 나중에 훌륭한 연기자로 인정받으며 자리 잡게 된다.]
이연희는 이 대사 처리가 안 되다 보니 표정 연기가 어떠하던 간에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특히나 요즘 드라마처럼 감정선 기복이 큰 드라마에서 힘 있게 전달해야 할 대사가 소리만 지르고 억지로 힘을 집어넣는 것으로 느껴져 전혀 힘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2012년 모 CF 촬영 당시 영상이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 '이연희 연기력에 분노한 감독님' 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15초짜리 짧은 광고용 영상 촬영을 하는데도 몸짓과 표정이 어색해 감독이 '''"격 떨어진다"''' 고 독설을 날린 것.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71408|기사]] 물론 감독이 지나치게 직설적인 것도 있긴 했지만, 보통 연기력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 아닌 연예인들도 10초 내외의 짧은 광고 영상에서는 어색함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봤을 때 노력이 좀 많이 필요해 보인다.
2011년에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이 남주연을 맡은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런데 애초에 감독과 작가가 이름난 사람들도 아니고 최강창민이나 이연희가 무슨 [[송강호]], [[전도연]]급도 아니고 소재 자체도 어디서 본 거 같은 소재인지라 [[공중파]] 3사 어느곳에서도 편성을 받지 못했다. SM이 강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가요계에서 강하다는 거지 드라마 쪽에선 힘을 못 쓴다. SM 출신 아이돌 배우들이 나온 드라마들은 작품성이나 흥행 결과나 시원찮아서 드라마 덕후들에게도 기피대상.
원래 편성 받은 뒤 방송이 나가면서 계속 촬영하려고 한 드라마이나 공중파에서 죄다 외면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100% 사전제작 된 작품이다. 케이블에서나 틀어줘도 다행이 될 뻔 했는데 SM 프렌들리 방송국 [[SBS]]에서 편성이 잡혔다. 마지막 방송인 2011년 03월 15일 AGB닐슨 기준 8.4%.2011년 초에 한자릿수면 결코 좋은 시청률이 아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골든타임인 10시가 아닌 9시에 방영된 드라마이며, 무려 KBS의 9시 뉴스가 경쟁작이 만큼 10시타임 드라마와 시청률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 8.4%의 시청률은 그 시간대에 방영한 드라마로선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맞다.
2013년 4월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특별출연해 주인공 최강치([[이승기]] 분) 생모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는데, 1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인 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감정 기복은 컸어도 대사톤 자체가 낮은 편이라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고, 2화에서 목소리 볼륨이 올라가자 어눌한 대사 처리를 드러내며 다시 원상복귀해버렸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좋은 반응들도 꽤 많이 나오고 있어서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하기 힘들다. 물론 좋은 연기력은 아니었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열심히 연기하려는 것이 짠해 보였다는 사람들도 있다. 연기력을 떠나서 상대역인 [[최진혁]]과의 케미와 연출 덕에 드라마는 3회부터 꾸준히 월화극 시청률 1위를 달렸다.
여담으로 이 당시에 [[구가의 서]]에서 보여준 이연희의 연기가 같은 시간대에 SBS에서 방송되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김태희보단 낫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팬들은 MBC가 자사 드라마 홍보를 위해 언플을 하는 것뿐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 이유리(배우) . . . . 57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가족}}}'''||<(> 부모님, 1남 3녀 중 막내[br]배우자 조계현[* [[KIA 타이거즈]] [[단장]] [[조계현]]과는 [[동명이인]]일 뿐이며, [[교회]] [[목사]]이다.] ||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인 KBS의 학원물 [[학교 시리즈]] 《학교 4》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으나 이 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출중한 외모와 안정된 연기력에 비해 소위 '뜨지 못하는' 연예인으로 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샀으나 꾸준한 연기활동 끝에 2014년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통해 독보적인 악녀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박을 쳐 주인공보다 더한 인기를 얻으며 2014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이후 활발한 연기 활동과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으로 커리어를 꽃 피우고 있는 '''대기만성형 배우'''. 다양한 스펙트럼과 본인만의 색깔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독립영화 또는 단막극 등에서 조단역으로 연기경력을 쌓아오다가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자 많은 정상급 배우들을 배출해 낸 [[2001년]] [[학교 시리즈]]의 《[[학교 4]]》에서 미대 입시생 '박서원'으로 정식 데뷔했다. 극 중 이유리는 삐죽삐죽 솟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대변되는 반항적이고 강한 이미지와 출연자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녀는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 하면서 당시 23살의 나이로 청소년 연기상을 수상한다.
학교 4 시즌 후반부였던 [[2002년]] 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 캐스팅되어 허약한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첫 번째 아내인 [[순명효황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반항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기울어가는 왕조의 가련한 세자빈으로 분해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드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였다. 여담으로 《명성황후》에 캐스팅됐던 시점이 《학교 4》가 막 끝나던 시점이라 이유리뿐만 아니라 같이 나왔던 몇몇 연기자도 캐스팅이 됐다. 그 중 나름 커플 연기를 펼쳤던 김유민 역의 [[백승우]]가 《명성황후》에서 순종으로 캐스팅 되어 연달아 커플 연기를 했다.
같은해 2002년 [[S.E.S]] 출신 [[유진(배우)|유진]]의 본격적 연기 데뷔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KBS 드라마 《[[러빙유]]》에서 생애 첫 악역이었던 '조수경'역으로 출연했다. 그녀는 극 중 제주도 해녀인 '다래(유진)'의 중학교 동창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천사표로 동창인 다래를 몹시 위하는 듯 보이나 다래가 '혁([[박용하]])' 을 구한 증표인 프레임바를 훔쳐 마치 제 것인냥 공을 가로채려는 등의 각종 악행을 저질러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 안티가 급증하는 등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1년 KBS 일일극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최강희(배우)|최강희]]의 동생이자 한차례 대입 실패로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재수생 '오윤아'역으로 분했으며 2003년 한 해에만 KBS 드라마 《아내》에서는 '상호([[김승수]])'의 연인 '김윤주'역으로, SBS 일일 드라마 《스무살》에서는 '준([[공유(배우)|공유]])'과 사랑에 빠지는 꿈많은 대학생 '한채리'역으로, KBS 드라마 《노란손수건》에서는 '나미령'역으로 MBC 국방 홍보원 공동 제작드라마인 《[[아르곤]]》에서는 특전사 중사 '강강희'역으로 총 4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 때에 《스무살》의 주연 제의를 받으면서 《아내》에서 중도하차하게 되자 방송사에 미운털이 박혀 KBS에서 출연정지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스무살》은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후 2004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안성미'역으로 분한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복하고 바람잘날 없는 대가족의 막내딸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하는 젊은이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위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며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이 후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유리는 이에 대해 후일 "《부모님전상서》 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기자 분들이 김수현 사단이라고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제게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고 연기를 통해 배워갈 수 있게끔 해 준 연기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연기자가 한 작가로 인해 이렇게 많은 기회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행운아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2005년 MBC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영재([[김규리]])'의 여동생이자 성공한 억대 연봉의 애널리스트 '주은재'로 분했다. 극 중 성공한 당당한 커리어우먼 역이라 매회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미모를 뽐냈다.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또 한번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의 대가족 막내딸로 출연한다. 극 중 이유리는 '한자([[김혜자]])와 '일석([[백일섭]])'의 막내딸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야무지고 심성 착한 막내딸로 부모님 속 한번 크게 썩인적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나 가난한 대학원생인줄 알았던 '정현([[기태영]])'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정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제력 차이가 큰 집안간의 결혼과정에서 한 번, 결혼 후 우아한체 하나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시어머니 '은아([[장미희]])'때문에 또 한번 속앓이 하는 '나영미'역으로 열연했다.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타이틀롤 '지순영'역을 맡아 기존의 지고지순한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쾌활한 역으로 또 한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줌마가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사랑도 잡는다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공식을 따른 드라마. 이유리는 극 중 톡톡튀고 당찬 연기로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2011년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란'으로 본격적으로 독보적인 악녀연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사실 깍쟁이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는 종종 맡은 적이 있어도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2002년 《러빙유》이후 9년만이었다. 극 중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뒤바뀌는 바람에 가난하기 그지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살아가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정원([[김현주]])'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정원을 향해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로 열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생의 밝혀지기 전 초라한 모습과 정반대로 부잣집에 입성하면서 매 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유리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다.
2013년 SBS 아침드라마 《당신의 여자》에서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오유정'역을 맡았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이 같은 연민정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은 [[MBC 연기대상]] 대상으로 이유리를 적극 지지했고 결국 시청자투표 약 71만표중 약 38만표를 받아 [[문화방송|MBC]]에서 '''데뷔 15년만에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2016년 KBS 드라마《[[천상의 약속]]》에서 다시 쎈 여자 이미지로 컴백하여, 대를 이어 악행을 당해 이를 앙갚음하려는 [[복수귀]] '이나연'과 '백도희'로 1인2역을 맡아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일일극임에도 불구하고 그해 KBS 연기대상 대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일일극 부문 우수상에 그쳤다.
같은해부터 다음해인 2017년까지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에서 '장옥자'역을, 뮤지컬 《오! 캐롤》에서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소녀 감성의 '로이스' 역을 맡아 러블리한 모습으로 친구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랑에 설레여 하는 달달한 로맨스로 180도 달라진 반전 매력을 선보이며 꾸준한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017년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시크하고 도도하지만 허당끼도 매우 심한 변호사 '변혜영' 역을 맡아, 연인 '정환([[류수영]])'과 치고 받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등 할말은 하고 자신이 가지려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대가족의 장녀 역할을 유쾌하게 연기하여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매력있고 귀여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예전의 악녀 이미지에서 사이다녀, 대세녀 이미지로 탈바꿈하여 독보적인 캐릭터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여러 광고를 찍는 수확을 거두며 아버지가 이상해의 최대 수혜자로 거듭났다. 열연을 인정받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한 단계 도약했다.
|| 2010년 || SBS || 당돌한 여자 || 지순영 || ||
||<|2> 2013년 || SBS || 당신의 여자 || 이은수/오유정 || 1인2역 ||
- 심현섭(코미디언) . . . . 56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
|| '''성좌/십이지''' ||<(> 황소자리/하얀개띠 (경술년) ||
|| '''본관''' ||<(> [[청송 심씨]] 안효공파[* 청송 심씨 24세손 '燮'자 항렬이다.] ||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로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자 [[한국방송공사|KBS]]로 이적, '서세원쇼의' 내부 코너 '시사 투나잇' 등 심야 쇼프로에서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이다도시]], [[앙드레 김]]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를 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9년]] [[개그 콘서트]]의 [[사바나의 아침]]에서 추장 역을 맡아 많은 [[유행어]]를[* 예를 들어 '''"빰바야~ 까스토미또르쌈바~"'''] 낳으며 긴 [[무명]] 생활을 마치고 스타덤에 올랐고, [[봉숭아 학당#s-2|봉숭아 학당]]의 [[심맹구]]라는 2대 [[맹구]] 역할로도 인기를 끌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만 해도 [[김영철(개그맨)|김영철]], [[강성범]] 등과 함께 개콘과 KBS를 대표하는 젊은 [[개그맨]]이었다. 다만 그의 개그에 대해선 '웃기다'보다는 '대단하다'가 더 잘어울렸다. 각종 성대모사 및 요상한 효과음 내는 것은 발군이었지만 정작 너무 잘해서 웃는 걸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이때 심현섭은 정체 불명의 대사를 읊는 게 특기였는데 그게 워낙 재미있어서 뭔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기 절정이었던 [[2000년]]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자서전에서 가족사항을 공개해서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특별히 [[정치]]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사회를 맡는 등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덕분에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 없이 화려한 [[스타#s-2|스타]] 생활을 지속했다.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이태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남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태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절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다가 그 화려한 전성기 시절, [[2002년]]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으나 이회창 후보와 함깨 고배를 마셨고 유력한 후보로 점쳐졌던 코미디 대상에서도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에게 대상을 넘겨줘야 했다.[* 그 자신의 주장으로는 12월 17일 이미 수상이 통보되었으나 정작 발표 때는 결과가 뒤집혔다고 한다. 이 당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와 담당자간의 오해로 밝혀져 심현섭이 사과했다.][* 그 전에도 모 프로그램에서 말실수를 심하게 하여 공영방송에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후 [[김준호(개그맨)|김준호]][*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김대희]],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로 [[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11&aid=0000175748|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병진]], 이태식, 김미진, [[김숙]], [[강성범]] [*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등의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을 개콘에서 이탈하게 한 것을 주동한 계기로 해서, 정치적인 면과 연예적인 면 양쪽에서 [[어그로]]를 끌어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
그의 코미디는 빠른 말빨과 애드립, 성대모사를 위주로 한 휘발성 강한 웃음에 포인트를 두는 편인데, 개그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성대모사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었고, 아이디어 위주의 코미디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만의 경쟁력의 사라진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적절한 시기에 MC로 전향하거나 트렌드에 맞춘 재치를 보여주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지만, KBS를 나간 이후로는 감을 갈고닦을 방송사 무대 자체가 줄어들면서 모두 다 실패했다.
여담으로 성대모사와 입담으로 잘 나가던 시절에 제과업체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개콘 초창기 시절 정체불명의 외국어를 구사해 인기를 끌던 것이 주목받아서 그 기믹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아돌프 히틀러]]. 딱딱한 독일어로 연설하던 히틀러가 과자를 먹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항의를 받고 광고가 내려간 흑역사가 있다.
[[2000년대]] 후반, 의외로 개그보다는 정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는 약간 비중있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했다. 재독 작가 이미륵의 일대기를 다룬 [[SBS]]-[[독일]] 합작 특집극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일본]] [[장교]]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행보는 그가 드라마제작사 [[스타맥스]]의 기획이사로 재직하면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가문의 영광#s-2|가문의 영광]]', '압록강은 흐른다', '순결한 당신' 등의 홍보와 마케팅 업무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까메오]] 출연자로 종종 작품에 얼굴을 비춘 적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인 '택시(TvN)',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당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브라운관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지만 몇 년째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념하며 활동 자체는 계속하고 있다. 2010년 [[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과 함께 KBS 라디오에서 '신나는 오후4시'를 진행하였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EBS라디오에서 '대한민국 성공시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턴 TBN한국교통방송에서 평일 오후 2시에 [[아나운서]] 선우경과 함께 '심현섭 선우경의 신나는 운전석'을 진행하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종영하기 전 [[김구라]] 채널에 패널로 등장. 자신의 개인기들을 선보이며 [[팟수]]들을 웃기려고 시도했으나... 결과는 지못미. 자세한 사항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참조. 이 날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김경민(개그맨)|김경민]]과 함께 김구라 방 '비운의 천재 특집' 편에 출연했다. 사실 개그 커리어만 봐도 셋 중에서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에 모두 가까웠던 사람은 20세기말 한국 개그의 레전드 심현섭 뿐이다. 단, 그날은 심현섭이 준비한 개그들도 기본적으로 타율 2할 미만이었던데다가,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김경민의 알수없는 [[드립]]에 전체 방송 분위기가 다 말려버리면서, [[김구라]]의 진행도 종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되었고 김경민과 김수용 모두 심현섭보다 [[선배]]이다 보니(심지어 김경민은 [[군대]]도 선배다) 그가 컨트롤도 할 수 없게 되어, 원래 항상 틀을 점잖게 잡고 시작하는 스타일의 정석 개인기형 개그인 심현섭의 희극 연기도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2017년 9월 3일 [[복면가왕]]에서 [[리듬을 쳐줘요 상암동 타자기]]라는 가명으로 나왔으며 [[지금 몇시? 몹시 좋은기분 괘종시계]]과 같이 김현철의 '왜 그래'를 불렀다. 정체를 밝힐 때 신승훈의 'I believe'를 불렀으며 본인의 장기자랑인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참고로 후배인 [[김구라]]가 많이 거론했는데, 정작 그가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2002년]] 1월 13일자 개콘의 '봉숭아 학당' 촬영 중, [[방송사고]]가 있었다. [[심맹구]] 역으로 "정부느은! 왜 공짜를 좋아하면 [[탈모|머리가 벗겨지는지]] 알아?" "바지가 벗겨지면 이상하잖아~"라는 내용의 대사를 했다.[* 당시 데모하는 학생 기믹으로 출연하던 박성호의 유행어를 따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준호가 [[애드립]]으로 [[바지]]를 내렸는데 '''실수로 팬티까지 벗겨지는 바람에......''' [[이하생략]].
다행인 점은 개콘이 녹화 방송이어서 실제 방송에서는 '돌발상황'이라는 자막으로 가려서 큰 사고는 막았다는 점. 이것 때문에 그 다음주 개콘에서 '섹시현섭', '에로현섭'이라고 써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방청객이 보였다. ~~김준호는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전남 광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호남전기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회장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 [*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었는데,[[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71525151001|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할아버지부터가 호남전기공업[*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남봉 김남중(1917~1987) 전남일보 회장 등 호남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남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반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분리되어 현재 잔존중이다.] 창업주 심만택이었다.)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남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을 잃게 된다.]
지금도 광주 [[여행]]하다 보면, "원래 저 땅은 심상우 의원 땅이었는데…." 하는 말을 의외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심 씨의 가세가 한 때 얼마나 흥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공무원 = 도둑놈" 하는 등식을 지역 사회의 어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례이기도 하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호텔로 [[개명]]한 모 호텔 및 근처 아파트 단지 부지도 원래는 심상우 의원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을 심 의원 사후에 공무원들이 가로챈 것. 허나 현재 호텔은 온데간데 없고, [[교회]]가 들어서 있다.] 예를 들어 박치기왕 [[김일(프로레슬러)|김일]]을 실제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테러 소식을 들었던 심현섭 본인은 1분이 1년 같았다며 회고했다고 한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56회 일치
*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가 날이 갈 수록 악화되고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치료하는 것으로 간신히 버텨간다.
* 엘레인과 [[디안느]]는 엘리자베스가 오랜 세월 동안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맺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응원한다.
* 멜리오다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반은 "좋아하는 여자를 두 번이나 죽게 두는걸 이해한다는 거냐"며 날선 반응을 보인다.
* 그때 엘리자베스가 착란과도 같은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는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 멜리오다스는 이제 엘리자베스의 전부 돌아오게 될 거라며, 그렇게 되면 3일 뒤 엘리자베스는 죽고 말 거라며 눈물 흘린다.
* 십계 [[젤드리스]]에게 점령 당한 카멜롯을 해방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 일곱 개의 대죄. 돼지의 모자정은 우선 주요 거점인 성채도시 코란도를 방문하기로 한다. 그곳 또한 적의 손에 넘어간 위험한 지역.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상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디안느가 이 일을 단장에겐 이야기했냐고 묻자 엘리자베스는 그가 어설프게 얼부린 일을 말한다. 디안느는 멜리오다스의 무신경을 탓하나 엘레인은 조금 다르게 여긴다.
>엘리자베스가 떠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사정이 있다... 거나?
그건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디안느는 혹시 그가 바람을 피거나 엄청난 성희롱을 한 짓 따위를 은닉하기 위한게 아닌가 의혹을 품는다. 그리고 엘레인에게 멜리오다스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냐고 묻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 되더라도 대답한다. 그러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가벼운 두통과 함께 젤드리스가 했던 말, "전부 떠올리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던 저주스러운 말이 떠오른다. 그녀의 고통을 몰랐던 디안느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꼭 기억을 되찾자"고 응원한다. 설령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행복한 기억도 함께 떠오를 거라면서. 그녀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의 경우는 분명 그랬다. 엘리자베스는 방금 전의 고통은 지워버리고 미소와 함께 그러자고 대답한다.
* 돼지의 모자정은 순조롭게 목적지로 향한다. 가끔 마신족이 접근하기도 했지만 강해진 호크 엄마가 콧방귀만으로 날려버린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저주가 나은 이후론 식당 구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에스카노르]]가 바를 지키고 있다. 멀린의 정신은 온통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의 안녕에 쏠려있다. 그는 음료를 마시면서도 아서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한다. 자연 울쩍한 모습인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에스카노르]]의 마음도 무겁다.
* 고서는 발코니에서 코란도에서 느껴지는 강한 마력을 감지하고 분명 십계가 있을 거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부자연스러운 기척이 가득차 있다. 고서는 코란도에서 벌어질 결전을 기대하는 듯보 보이지만, 그 전에 다른 할 일이 있다고 중얼거린다.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일행과 떨어져 친구 [[헬브람]]과 떠들고 있다. 돼지의 모자정 옆구리의 손잡이 조형 부분이었다. 작전 회의 도중에 헬브람이 없었던 걸로 그때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데, 그의 친구는 묘하게 말을 돌려버린다. "먼저 축하할게 있다"는 핑계로. 그는 드디어 할리퀸이 디안느와 애인관계가 된 걸 반쯤은 축하하고 반쯤은 놀린다. 그리고 날개에 대해서도 일단 축하하나 "빈말로도 멋지다고 할 수 없는 날개"라고 덧붙여서 속을 긁어놓는다. 할리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역정을 내자 헬브람이 답했다.
* 돼지의 모자정 옥상. 반과 멜리오다스과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반이 조금 별난 부탁을 한다. 이번 임무에서 빼달라는 부탁. 의외로 멜리오다스는 "알았다"고 단박에 승락한다. 반이 놀라운 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멜리오다스는 그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엘레인 때문이다. 그녀를 이 세상에 되돌린 "차원의 비틀림"은 분명 [[메라스큐라]]의 짓이다. 그녀는 마신왕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어찌보면 별종. 그래서 교섭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그녀가 살아있는 이상 반드시 다시 싸우게 될 텐데, 메라스큐라를 죽인다는건 곧 엘레인 또한 이 세상에 더 있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여자를 두 번이나 죽게 두는 마음을.
*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식당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호크]]가 달려와 엘리자베스에게 큰 일이 났다고 알린다. 전원이 식당으로 달려간다. 엘리자베스와 디안느는 티타임을 마치고 식당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그때 엘리자베스가 발작을 일으켰다. 아니, 착란이라 말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녀는 "할자드"란 인물이 웨어울프에게 물렸다면서 빨리 멜리오다스에게 알려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영문을 모르는 디안느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나자 그녀는 "할자드가 중상이라고 기사단에서 연락이 왔다"며 뜻모를 소릴 해댄다. 그 말을 들은 멜리오다스가 가슴이 철렁한다.
* 멀린이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가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대답은 더 혼란스럽다. 그녀는 멀린을 알아보았지만 그녀가 알리 없는 멀린의 모습을 기억해낸다. 아주 어린 소녀 시절의 멀린을. 그리고 "못 알아볼 뻔했다"며 어느새 이렇게 자랐느냐고 말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엘리자베스의 행동에 디안느의 눈에는 두려움이 비췄다.
* 호크가 다가갔을 때, 그녀의 눈이 변해있었다. 마치 드루이드의 힘에 눈 떴을 때와 같다. 이번엔 양쪽 눈 모두에 선명하게 여신족의 문양이 떠올랐다. 엘리자베스는 곧 정신을 잃는다. 그녀가 자기 눈에 나타난 변화를 자각하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 잠시 후 일행이 모두 모여서 엘리자베스를 방에 눕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는 사람은 없다. 반이 멀린에게 원인을 묻지만 그녀도 막연하기만 하다. 아마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에 접촉한 영향이 아닐까 추정한다. 디안느는 그럼 이번엔 엘리자베스가 저주에 당한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멜리오다스가 그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굳이 말하면 저주가 풀려가고 있는 쪽.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 디안느가 그 말에 환호한다. 할리퀸이 어리둥절해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준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 윤회, 기억의 상실 등. 신나게 떠들어대자 멀린이 "입조심해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디안느는 움찔하지만 진짜 너무한건 멜리오다스라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무시했던 태도를 질책한다. 그때까지 말이 없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 하리수 . . . . 56회 일치
| 배우자 = 미키 정(이혼)
| 자녀 =
'''하리수'''(<sup>'''예명 한자 음역 표기'''</sup>河莉秀)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이경은'''(<sub><sup>'''본명 한자 표기'''</sup></sub>: 李慶恩, [[1975년]] [[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 탤런트 겸 영화 배우, 방송인으로, [[대한민국]]의 [[트랜스여성|성전환여성]] [[연예인]]이다. CF 광고 모델로 알려지면서 영화배우, 탤런트, 모델, 가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명인 하리수는 [[영어]] 단어 핫 이슈(Hot Issue)에서 따온 것이다.
첫 데뷔 앨범은 [[2001년]] 《Temptation》이며, 같은 해에 영화 《[[노랑머리 2]]》에 주인공인 J 역을 맡기도 했다. [[2002년]]과 [[2004년]] 각각 2집과 3집 앨범인 《Liar》와 《Foxy Lady》를 발표했으며, [[2006년]] 4집 《Harisu》를 내놓았다. 하리수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에서 성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법원]]에서 [[성별 정정]] 요구가 받아들여진 [[성전환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구청 공무원이었고, 어머니가 파출부 등 온갖 궂은 일 하며 집안을 꾸려나갔다.<ref name="heimagge">[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0017450 서른잔치 시작 ‘이브가 된 아담’ 하리수] 서울신문 2004.10.19</ref> 그는 어릴 때부터 단 한번도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여자 아이들 속에 파묻혀 놀았다. 고무줄 놀이하는 친구도 대부분 여자였다.<ref name="heimagge"/>
비록 남자의 신체로 태어났지만 하리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였고<ref name="Eve from Adam" />, 또한 여성스럽게 성장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ref name="Eve from Adam" /><ref name="Adam to Eve">Gina Choon, [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Adam to Eve"] {{웨이백|url=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date=20071017204309 }}, ''Asiaweek.com'', September 14, 2001.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하리수의 여성스런 성격을 걱정한 어머니는 그를 [[웅변]]학원에 보낸다.<ref name="ung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01920 '화려한 시절' 태조 왕건' 外] 동아일보 2001.12.07</ref> 그곳에서 하리수는 자신의 여성스러움까지도 이해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나 함께 웅변대회 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ref name="ungg"/>
청소년기 무렵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목욕탕]]을 운영하였다. 한 번은 목욕탕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자신이 여자가 된 것을 모르고 남탕의 수건 회수를 시켰다고 한다.<ref name="sosososo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25319 <클릭뉴스> 하리수 남탕]</ref> 어쩔 수 없이 남탕에 들어간 하리수씨는 아수라장이 된 남탕에서 수건을 모두 거둬서 유유히 빠져 나왔다 한다.<ref name="sosososo1"/> [[1991년]] 중학교 3 학년 재학 중 MBC 드라마 단역 배우로 데뷔하였다. 이후 몇 편의 드라마에 단역 배우로 출연하였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832 하리수 첫사랑 고백 자살시도에 성전환 수술 결심은 고 2때… '기구한 인생'] 경인일보 2012.05.15</ref> 그는 "첫사랑 상대는 탤런트 [[이창훈 (배우)|이창훈]]을 닮은 외모로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남학생이었다"며 "첫사랑 이후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하리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교제했던 남자친구로 인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151446181110 하리수 "중학교 시절, 첫사랑때문에 자살시도"] 마이데일리 2012.05.15</ref> 이후 남자로 살아보기 위해 평소 그녀를 동경하던 부근 학교 여학생을 사귀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53478 하리수, “남자로 살기위해 여학생과 사귄적 있다”] 마이데일리 2006.07.11</ref> 하리수는 또 “두번째 사랑을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미스젠더링|넌 어차피 남자잖아]]"라며 결별을 통보받고 성전환수술을 결심하게 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59418 하리수, 성전환에서 결혼까지] 스타뉴스 2007년 02월 21일자</ref>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전환 수술을 결심했다 한다.<ref name="heimagge"/>
[[낙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12월]] 연예인 비자로 [[일본]] [[히메지]]로 갔다.<ref name="heimagge"/> 그에 의하면 "수술도 하고 돈도 벌 심산이었다.<ref name="heimagge"/>" 한다. 히메지는 지진으로 유명한 고베와 약 1시간 거리로 [[1995년]] [[2월]] 그는 고베 지진을 직접 목격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는 [[일본]] [[히메지]]에서 한국무용을 하며 생활하였다. 이어 [[1995년]] 말부터 [[1998년]] 말까지 [[도쿄]]로 무대를 옮겼다.<ref name="heimagge"/>
[[2001년 3월]]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였으며 같은해 1집 '템테이션'을 발표하고 가수가 되었다. 이후 영화배우, 방송 출연 등을 하였다. .<ref name="Transsexual entertainer testing the boundaries of South Koreans' Confucian ideals" /><ref name="Harisu Superstar">Markus Augustus, "Harisu Superstar", ''Giant Robot'', issue #28 p.56-59.</ref> 한편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삶 자체의 엄청난 변화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한 언론사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름의 ‘상품가치’를 설파하였다. 그는“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자신의 상품가치를 뽐내는 건”이라 했다.<ref name="repircj">[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65613 “성전환 상업적 이용 심하지않나” “내 상품가치 뽐내는게 어때서요?”] 국민일보 2001.07.18</ref> 기자는 또 그에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수술후유증이라도 나타나면 몸이 상할텐데…”.그녀에 대한 관심이 최근 폭발하면서 화장품 CF,드라마,영화 출연에 이어 음반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황.“걱정은 고맙지만 모든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피곤을 몰라요”라고 답했다.<ref name="repircj"/>
[[2002년]]에는 성별 정정 및 개명을 신청하였다. [[2002년]] [[12월]], [[인천지방법원]]이 하리수가 신청한 호적정정 및 개명신청에 대해 호적상 '남(男)'에서 '여(女)'로 정정하고, 이름도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개명하는 것을 허가하면서 법적으로도 완전히 여자가 됐다. 당시 [[인천지방법원]]은 하리수가 [[성염색체]]상으로는 남자지만, 군 입대를 위해 받은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6급 병역면제)을 받는 등 신체적으로 여성으로 보는 게 타당하며, 이미 여자로 연예활동을 해온만큼 그를 남자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사유를 밝혔다.
[[2009년]] [[5월]] 서울 [[압구정동]]에 클럽 믹스트랜스<ref>{{웹 인용 |url=http://ent.jknews.co.kr/article/news/20090528/3889651.htm# |제목=하리수, ‘믹스 트랜스 클럽’ 오픈, “자살은 더 이상 안돼!” |확인날짜=2009-06-27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1009160727/http://ent.jknews.co.kr/article/news/20090528/3889651.htm# |보존날짜=2009-10-09 |깨진링크=예 }}</ref> 를 오픈했다.
[[2011년]] [[4월]] 《파주 Fantastic Show》<ref name="fanfan1">[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4011540171001 최한빛 ‘이것이 슈퍼모델 각선미’(하리수 판타스틱쇼)] 뉴스엔 2011.04.01</ref> 를 기획하였다. 판타스틱쇼(Fantastic Show)는 하리수와 [[2009년]] 슈퍼모델출신의 [[최한빛]] 그리고 전국에서 끼와 재능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최고의 트렌스젠더들이 모여 다년간 하루 10시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낸 공연이었다.<ref name="fanfan1"/> 당시 하리수는 “태국의 대표적인 알카자쇼와 같은 공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지원 속에 문화 관광 상품을 넘어서 세계적인 쇼로 자리잡았다. 트렌스젠더들이 꿈의 무대를 이루어낸 것처럼 한국의 후배 동료들에게도 공연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ref name="fanfan1"/> [[2012년]] [[12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열린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VIP데이 포토타임 행사에 참여했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하리수 달라진 얼굴…또 성형 의혹?] {{웨이백|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date=20160305005647 }} 뉴스핌 2012.12.12</ref> [[2013년]] [[10월]]에는 제8회 [[서울국제문화축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2013년]] [[8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 [[저장 성]] [[항저우 시|항저우]]에 방문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속사에 의하면 "행사차 중국을 방문한 하리수가 [[상하이]](上海)로 입국해 [[항저우]](杭州)로 이동하던 중 타고 있던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고 한다.<ref name="ssss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564823 하리수, 중국서 교통사고 당해…상태는?] 세계일보 2013.08.18</ref> 소속사는 이어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추정된다"며 "차량 일부가 파손됐지만 다행히 하리수 일행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아 스케줄을 마치고 오늘 오후 항저우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설명했다.<ref name="sssss"/> 사고가 수습된 뒤 바로 귀국하였다.
* [[2010년]] 《골(goal) 때리는 여자들》
* [[2001년]] 《[[KBS 드라마시티]] 도시괴담 - 죽은 자의 노래》 KBS2
* [[2008년]] 《[[앙녀쟁투]]》 XTM ... 란제리 디자이너 역
* [[2006년]] 《하리수의 남자친구를 소개합니다》 KMTV
* [[2011년]] 《SBS 스페셜 '하리수' 편》(04월10일자) SBS
* 《성위하왜적아당:하리수자전사진집》(대외투자개발원, 2001)
- 효령대군 . . . . 56회 일치
|별칭 = 자는 선숙(善叔) <br/> 호는 연강(蓮江)<ref>불교 법명이기도 하다.</ref> <br /> 시호는 정효(靖孝)
|배우자 = [[클라라(배우)|본부인]](본부인) <br /> 평해 손씨(측실)
|자녀 = 슬하 7남 3녀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년]] [[1월 6일]] ([[음력]] [[1395년]] [[12월 11일]]) ~ [[1486년]] [[6월 12일]]([[음력 5월 11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자]], [[왕족]], [[서예|서예가]], [[정치가]]이다.
[[조선]]의 제3대 국왕 [[조선 태종|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다. [[조선 세종|조선 세종대왕]]의 둘째 형으로 성씨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 이름은 '''보'''(補)이다. 초명은 '''호'''(祜)였는데 19세에 '''보'''(補)로 [[개명]]하였다. [[자 (이름)|자]]는 '''선숙'''(善叔)이고, [[호 (이름)|호]]는 '''연강'''(蓮江)이며 [[불교]] [[법명]]도 '''연강'''(蓮江)이고,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세조|세조]]의 백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 (조선)|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조선 명종|명종]]<ref>그의 종6대손이기도 하다.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ref> 의 부인인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그는 10세 시절이던 [[1405년]] '''효령군'''에 책봉되었으며 12세 시절이던 [[1407년]]에 해주 정씨 부인(정역의 딸)과를 가례를 치렀고 17세 시절이던 [[1412년]]에 '''효령대군'''에 진책되었다. [[1417년]] 자신의 [[호 (이름)|아호(雅號)]]이기도 한 '''연강'''(蓮江)이라는 [[법명|법명(法名)]]으로 수계를 받았다. 그는 어릴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붓글씨에도 능해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활쏘기에 능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는 일찍부터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낳았으며, 서자녀로 1남 1녀를 두었다. 불교를 좋아하여 승도를 모아 불경을 강의하였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생전에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번성하였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파종회 중에 자손이 가장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1&aid=0000014551|제목=춘3월의 둘째날, 관악산 연주대에 올라|성명=채희묵 기자|날짜=2002-03-02|출판사=서울경제신문|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
[[서울특별시]]는 [[1984년]] [[11월 7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하였다.<ref name="hrdg">{{뉴스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1153|제목=세종대왕의 '형님'으로 세상 살아가기|성명=이정근 기자|날짜=2005-09-16|출판사=오마이뉴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
*** 자부 : 회인군부인 성주이씨
**** 손자 : 무송군, 잠성정, 운림도정, 서림도정, 봉성군, 영신군, 총곡수
*** 자부 : 의령군부인 경주이씨,
**** 손자 : 회의도정, 회의도정의 사위 안온천(安溫泉)은 세종의 외손자
**** 손자 : 덕은도정, 제천군, 예천군, 고림군, 청거수
*** 3남 : [[보성군 (1416년)|보성군 갑]]<ref>귀족집안 사대부들의 이름자는 시류에 따라 조자(造字:글자를 만듦)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갓머리 부 밑에 합(合)자'로 갑으로 부른다.[http://www.hyor.or.kr/sub7/03/CH7301W.asp?link=c 효령대군 파종회 청권사] 에서 확인된 이름이다.</ref>(寶城君), (1416년 ~ 1499년)
*** 자부 : 광록시소경 이무창(李茂昌)의 여식 청풍군부인(淸風郡夫人), 영락제 후궁 이소의(李昭儀)의 조카
**** 손자 : 신풍도정, 율원군, 춘양군, 평성군, 물거군, 원산군, 동양정
*** 자부 : 양산군부인 언양 김씨
- 김영환(1955) . . . . 55회 일치
1955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총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198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에 재산신고를 -8.2억으로 해서 보유재산 국회 최하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부채액이 많아서 -8.2억인 것이고, 이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해서 1억원 정도로 신고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를 거하게 망해서 수십억대의 부채가 추가~~][* 2008년 기준으로 최하위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대선자금을 선관위에서 환급받기 이전이어서 -120억원을 신고했다. 이후 선거비용을 환급받으면서 30억대로 재산이 다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1억 438만원, 2010년에 김영환 의원이 -8억원, 2011년에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 1억 500만원을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1월 8일 탈당하고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했다. 2016년 초 국민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총선 전 국민의당 지지율이 마구 떨어지면서 도로 민주당으로 합류하자는 의견이 거셀 때 국회의원 중 거의 홀로 국민의당을 지키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선거 이전에는 [[새누리당]] 후보인 [[홍장표(정치인)|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패배할거라는 여론조사와, 김철민 후보와 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김철민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3당구도로 가면 홍장표 의원이 오차범위의 한참 밖에서 안전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결과치가 나왔기 때문에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3파전이 되었다.
2016년 11월 1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야 3당이 촛불 집회 참여를 밝히자 창당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6/11/10/0505000000AKR20161110156000001.HTML?template=8275|사무총장 사의를 밝혔다.]]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토론회 마무리 발언으로 [[JTBC]]와 [[손석희]]사장을 자신에게 갑질을 한다고 [[http://www.edaily.co.kr/election/view.asp?newsId=01161126619214168|비판하며]], JTBC 본사 앞에서 농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JTBC가 6월 2일과 3일 개최할 경기지사와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내실 있는 검증을 이유로 지지율 5%이상 후보에게만 토론회 참가를 제안했는데, 김영환 본인의 지지율은 2.5%에 불과해 자신에게 참가 요청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에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신청했고, JTBC측은 이를 받아들여 지지율이 낮은 후보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이번엔 다른 후보의 캠프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자 토론회 자체가 무산되었다. 하지만 김영환 본인은 1년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의 미디어본부장을 맡았을 당시 유력후보간 양자토론을 주장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지지율이 낮은 것을 JTBC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531211335605?f=m|JTBC '경기지사·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무산..배경은]]
[[2018년]] [[6월 5일]]에 진행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2차 토론회([[KBS]], [[MBC]], [[SBS]] 공동주최)에 참석하였다. 기조연설에선 지난 토론회에서의 네거티브를 사과하면서도, 여전히 [[이재명(1964)|이재명]]의 해명을 거짓말로 규정했고, 이재명과 본인 중 한명만이 진실이라며 끝장승부를 예고했다. 1대1 정책토론에선 다른 후보들과 정책검증을 이어갔으나, 주도권 토론에선 자신의 차례가 오자 이재명에게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를 걸었고 시간이 없다며 해명을 무시하고 예/아니오로만 대답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가 사회자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재명도 이것을 문재인에게 했다가 크게 비판받은 적이 있다. 토론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6월 7일 오후, 뜻밖의 [[공지영|원군(?)]]이 [[https://namu.wiki/w/%EA%B3%B5%EC%A7%80%EC%98%81#s-3.3.4|등장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어느쪽이 옳다고 판단하긴 이른 단계. 애초부터 공지영은 과거 논란들로 신뢰성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고[*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보수 일각에서는 현재 이재명에 대한 반발로 인해 과거부터 줄곧 공지영에 대해 그렇게 비난해대면서 정작 이재명 의혹에서는 공지영의 말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보수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지영의 발언을 섣불리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추가적인 증거들이 나와야만"''' 공지영의 말이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공지영 본인이 무슨 새로운 증거들을 거론한 것도 아니다.[* 관련자의 말을 자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날 김영환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 네이버 실검 순위에 "이재명은 사퇴하라"가 1위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재명과 악연을 가진 친 문재인 성향의 맘카페 [[레몬테라스]]에서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826819|게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것이 네거티브 선거전이냐 사회고발이냐에 대해 아직까지 판단이 보류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증거 제시도 없이 흐지부지 되면 빼도박도 못하는 네거티브 선거이지만 확실한 증거들이 공개되고 당사자들의 증언이 사실로 판명날 경우 논란이 많다 하더라도 이것이 사회 고발이 될 수 있기 때문. 김영환 본인도 주진우, 김어준, 정봉주가 증언하면 된다고 하며 관련자들의 진술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정작 의혹을 제기한 김영환 본인에게는 원래부터 관련 증거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사진을 제시하긴 했는데 이 사진은 증거로 볼 수도 없는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8161|사진]]이였기 때문에 사진을 거론하며 이재명을 비난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보통 정치인들은 상대 후보에 대해 후폭풍이 엄청난 스캔들을 무기로 선거에서 공세를 할 때 당연히 관련 증거들과 당사자의 증언을 미리 확보하고 이것이 확실한지 확인을 하고 나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고 독특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김부선에게 자신의 허락 없이 스캔들을 언급해 2차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사실 확인을 안한 정도가 아니라 김부선과 사전 합의조차 없이 논란을 제기했던 것. 짬도 꽤 찬 중견 정치인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대책없는 행동을 했는지 의심이 가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김부선이 단 하나의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증거 조작이나 하고 있어 자신과 김부선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진 상황인데 고소까지 당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09 || [[2009년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을]])[* 전임자 홍장표 의원직 상실] || '''[[민주당(2008년)|민주당]]''' || '''14,176 (41.17%)''' || '''당선 (1위)''' || ||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현재는 북한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그 [[김영환(1963)|김영환]]과는 단순한 동명이인인 것을 넘어서서 상당히 깊은 인연이 있다. [[http://blog.naver.com/opi21/130141298542|참조]]
19대 의원 시절 골프 클럽하우스나 딸이 운영하는 한 쿠키점에서 간담회 명목으로 부당한 정치자금을 집행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불건전한 관행이 비단 김 전 의원 혼자만의 일은 아니나 그럼에도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38105.html|한겨레 기사]]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624882_22663.html|MBC 보도]]
- 마재윤 . . . . 55회 일치
{{독자 연구|날짜=2010-3-5}}
2010년 6월에 공판이 진행 되었고, [[KeSPA]]로부터 영구제명되었으며,<ref name="제명">{{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6070267|제목=승부조작 전·현직 프로게이머 11명, 전원 영구제명|날짜=2010-06-07|저자=교용준 기자|출판사=오센}}</ref> 2010년 10월 22일 최종적으로 징역 1년, 집행 유예 2년, 사회 봉사 120시간이 선고되었다.<ref name="징역">{{뉴스 인용|url=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10028&db=issue&cate=&page=1&field=&kwrd=|제목= 속보 - 원모씨 징역 2년-추징금 300만, 마모씨 징역 1년 6개월 구형|날짜=2010-08-20|저자=심현 기자|출판사=포모스}}</ref> 현재는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하고있다.
2003년 12월 GO(현 [[CJ 엔투스]])팀에 입단하여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5월 [[Spris MSL 2004]]에 첫 데뷔이후 처음으로 진출하면서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도 테란의 원배럭 더블 빌드에 밀렸다. 앞마당만 먹으면 힘을 뽑아냈던 저그 암살자인 [[최연성]],[[이윤열]]이 있었다.
Spris MSL 2004에 진출한 때와 비슷한 시기인 2004년 7월 13일, 마재윤은 [[KTF 매직엔스]]와의 [[팀리그]] 승자전 4강 경기에 선봉으로 출전한다. 당시 KTF 매직엔스는 주요 대회 우승, 준우승자 출신인 [[홍진호]], [[강민 (프로게이머)|강민]], [[박정석]], [[변길섭]], [[조용호]] 등이 포진한 최고의 팀이었으며, 이미 2004년 2월 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마재윤은 첫 개인리그 우승 이후 MBC게임 팀리그에서 크게 활약하며 자신의 명성을 알렸다.
마재윤은 의심할 바 없는 당대 최강의 선수였던 [[최연성]]에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9503&c_no=2&control=view '최연성 킬러는 나!' GO 마재윤V, 2회 연속 결승 진출!] [[파이터포럼]], 2006년 1월 5일. 마재윤은 최연성과의 상대전적에서 8승 3패로 크게 앞서고 있다.)</ref> 당대 최강자임을 과시하였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의 우승 일주일 후인 2007년 3월 3일 마재윤은 5회 연속 진출한 MSL 결승에서 당시는 신예였던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현 [[SK 텔레콤 T1]])과 맞붙게 된다. 마재윤의 2006 시즌 프로토스전 성적은 21승 3패, 승률 87.5%에 달했던 것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와 시청자들은 마재윤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3030023 [[OSEN]], 2007년 3월 3일]</ref><ref>[http://www.pgr21.com/zboard4/zboard.php?id=humor&no=46911 이러한 평가에 대한 팬들의 반응의 예]</ref>.
그러나 결승전 당일, 김택용은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마재윤을 3:0으로 제압하며 김택용 기준으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control=view&board=news_esports&c_no=2&b_no=16530 파이터포럼, 2007년 3월 2일]</ref> 김택용은 3세트 모두 커세어와 다크 템플러를 주축으로 한 견제 플레이에 주력하였고,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운영으로 마재윤을 무너뜨렸다. 이는 훗날 '3.3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고, 이후 마재윤은 정상의 자리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07년 3월 17일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테란 한동욱을 3:1로 꺾고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결승에서 지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서 자신에게 패해 준우승을 했던 이윤열에게 1:3로 패배하였다. 또한 3월 31일 제5회 슈퍼파이트에서 김택용에게 패했고, 상대전적에서 완벽한 우세를 보이던 최연성에게 패하는 등 엄청난 추락을 겪었다.
2010년 3월 프로리그 로스터에서 말소되며 사실상 팀 전력에서 배제되었던 마재윤은 4월 프로게이머 승부조작 의혹이 일면서 선수 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많은 네티즌은 그가 유난히 전성기 이후인 2007년부터 빠른 추락을 거듭했다는 점, 또한 비슷한 시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작스런 졸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무엇보다 포모스 측에서 승부조작 의혹 기사에 올린 흑색 처리된 사진이 마재윤의 사진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의심하였다. 이에 마재윤은 자신의 승부조작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CJ 엔투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승부조작을 의심하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5월 검찰의 수사 결과 마 모 프로게이머가 원 모 프로게이머와 함께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을 공식 선언했는데, 프로게이머 중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 하나 뿐인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승부조작 혐의가 있음이 확실시되었다. CJ 엔투스는 검찰 발표 하루 전 마재윤을 선수 명단에서 제명했고, 마재윤을 임의 탈퇴 처리했음을 기사를 통해 밝혔다. 마재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공판이 진행 되었고, 6월 7일 케스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영구제명을 당하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ref>[http://esports.dailygame.co.kr/news/view.daily?idx=27900 불법 베팅 가담 프로게이머 11명 영구제명]</ref>
마재윤은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1년 6월부터 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방송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게임단에서는 즉각 방송을 중지하라 했지만, 마재윤은 이에 신경쓰지않고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영구제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방송을 진행하여, 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팬들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2012년 3월에는 시간당 돈을 받고 스타크래프트를 강의하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사용자는 강제로 방송국에서 퇴출시키며, 금칙어까지 만들어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2013년 2월 자신을 비방한 네티즌들을 다수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범죄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시청자 수의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모든 금칙어와 제한을 해제하고 스스로 조작을 컨셉으로 한 방송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마재윤은 영구제명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5일, 중국에서 개최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출전했고 2 vs 2 팀리그에서 우승을 해 상금(15만 위안)까지 챙겨 논란이 되었다.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재윤은 중국 대회에 또 출전할 계획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 측에서 요청이 온다면 출전할 생각이 있다는 대답을 하였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어, 여전히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이미 마재윤은 [[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으로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최연성의 천적이었다. 최연성은 첫 맞대결인 WEF 2005 결승에서도 2:0으로 완패했으며, CYON배 [[MBC게임 스타리그|MSL]] 승자조 4강에서도 2:0으로 완패를 당하고 패자조로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비공식전을 포함한 상대 전적 (WEF는 비공식전으로 침)에서 4:0로 뒤쳐지던 최연성은 [[2005년]] LG Cyon 배 [[MBC게임 스타리그|MSL]] 패자조 결승에서 마재윤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면서 패배, 결국 3:0으로 전패하며 결승전 진출에 실패하고 전적도 7:0으로 벌어졌다.
마재윤은 경기가 있던 당일까지 MSL 3회 우승, 5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었으며, 경기가 있기 1주일 전, 처음으로 진출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3:1로 제압하며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시 마재윤의 경기력은, 맵과 상황, 스케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최상의 경기력이었으며, 마재윤은 프로토스를 상대로 당시 MBC 게임에서 87.5%라는 높은 승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2009년 1월 15일, 로스트사가 MSL 개막전에서는 천적 [[김택용]]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김택용과의 상대전적은 3승 12패(마재윤 기준)가 되었다. 또한 얼마전 치러진 올스타 종족 최강전에서 마재윤이 송병구를 극적인 역전승으로 잡고 그 이어 만난 김택용까지 잡아내며 상대전적을 비공식전까지 포함해 12:4까지 따라잡았다. 그러나 12월 3일 [[NATE MSL 2009]] F조 패자전에서 다시 만난 김택용이 마재윤을 격파하면서 상대전적이 다시 공식전만으로는 6:2 비공식전을 포함해 13:4로 크게 벌어졌다.
프로토스와 테란전은 강하지만 저그전은 취약한 걸로 평가받는 김명운 선수지만, 2009년의 첫 번째 MSL이었던 로스트사가 MSL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후 김명운이 상대전적상에서 압도하고 있는 한마디로 마재윤의 신천적으로 자리잡았다.
서로의 첫 번째 맞대결은 바로 김택용이 두 번째 3저그조 광탈을 겪었던 로스트사가 MSL 32강 A조의 승자전에서 였는데, 이때는 김택용을 꺾은 기세를 탄 마재윤이 김명운마저 꺾으며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이후 김명운도 김택용을 꺾고 진출. 둘은 8강에서 다시 만나는데 이때 김명운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3-1로 마재윤의 4강진출 시도를 저지하며 4강에 진출한다.
이후 08-09 신한은행 프로리그 5R에서 다시 만나 김명운이 마재윤을 완파했고, 블리즈컨 2009에선 김명운이 마재윤을 2R A조, 패자 결승에서 모두 2 : 0으로 잡아내고, 최근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에서 김명운이 승리를 거두어 상대전적을 9 : 2까지 벌어졌다.
** 2009년 01월 15일 김명운 패 vs 마재윤 승 - 로스트사가 MSL 32강 A조 승자전 In Byzantium 2
- 영천시 . . . . 55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4C0B5F> {{{#FFFFFF '''시장'''}}} ||<bgcolor=#BDBDBD> [[최기문(1952)|최기문]] ([[자유한국당|{{{#000000 무소속}}}]])[br]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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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4C0B5F> {{{#FFFFFF '''2'''}}} ||<:><bgcolor=#BE342C>[[파일:자유한국당.png|width=60]] {{{#FFFFFF 박영환}}}||
||<-2><bgcolor=#4C0B5F> {{{#FFFFFF '''국회의원'''}}} [br] [[영천시·청도군|{{{#FFFFFF {{{-1 (영천시·청도군)}}}}}}]] ||<bgcolor=#E3CEF6> [[이만희(정치인)|이만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 남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10만명을 간신히 넘기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인구 변동폭이 워낙 작아서 2013년 8월 '''100,999명'''으로 인구가 10만 명대로 하락한 이후 4년 가까이 10만 명선에서 정체되어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인구가 늘고 있다!!'''] 행정구역면적은 920.29㎢ 에 1개 읍(금호읍), 10개 면(청통, 신녕, 화산, 화북, 화남, 자양, 임고, 고경, 북안, 대창), 행정동 5개 동(동부, 중앙, 서부, 완산, 남부), 법정동 30개 동(망정, 야사, 도남, 도동, 조교, 녹전, 오수, 조교, 대전, 매산, 신기, 문내, 문외, 언하, 괴연, 채신, 성내, 화룡, 오미, 과전, 창구, 봉동, 완산[*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완산구]] 완산동과는 전혀 상관없다.], 금노, 본촌, 서산, 쌍계, 범어, 작산, 교촌)이 있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도시인 만큼 대구 생활권에 대체로 속하고, 다만 [[포항시]]와 접하는 고경면은 포항 생활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차타고 넉넉잡아 1시간 정도의 거리라(...) 그냥 독자 생활권이라고 보면 편하다. 굳이 대도시에 볼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
인구밀도는 1㎢당 117명, 가구원은 1가구당 2.4명 사업체수 7,354 , 상수도 1인당 417톤, 출생/사망 1일당 2.1명/2.7명, 혼인/이혼 1일 1.6쌍/0.6쌍 전입/전출 1일 45명/43명, 시직원 시민 114명당 1명, 1일 전력사용 2,808Mwh, 교원 학생15명당 1명, 화재 1일당 0.5건 지방세 1명당 771.826원, 교통사고발생 1일 2건, 의료인 시민 163명당 1명, 자동차 시민 2.5명당 1대이다.(2008년 통계- 최신자료로 갱신 바람)
인구 증가를 유도할 만한 것이 없어서 감소세를 보이며 2010년에는 9만 5천여 명으로 10만 이하로 감소했었으나 이후 10만명 으로 소폭 회복했다. 차후에 영천하이테크파크경제자유구역, [[렛츠런파크 영천]]이 들어올 예정이라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편이다.
위치로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그리고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에 접하고 있다. 또 영천시는 태백산맥 줄기의 보현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둥근 형태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보현산(1,124m), 서쪽에는 팔공산(1,192m), 동쪽에는 운주산(806m), 남쪽에는 사룡산(685m)이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단은 화북면 하송리 산56으로 동경 128도 55분 08초, 북위 36도 10분 54초. 남단은 대창면 용호리 산13으로 동경 128도 56분 57초, 북위 35도 50분 03초로 남북간 38.64km이며, 동단은 임고면 수성리 산96-1로 동경 129도 08분 42초, 북위 36도 03분 08초. 서단은 신녕면 치산리 산141-5로 동경 128도 41분, 북위 41초 36도 00분 48초로 동서간 40.75km이다.
'''비와 눈이 이상할 정도로 적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와서 다른 지역을 휩쓸고 가서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영천은 피해가 미미했으니.....][* 강수량이 적은만큼 맑은 날이 많기 때문에 보현산에 천문대가 있다.] 그래서 저수지가 약 1000여개 정도 된다. 2010년 여름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오랫동안 내려 농사를 망친 지역이 많아 배추값이 2만원을 찍는 등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이 일대만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오히려 예년보다도 작황이 좋아 평소 적자를 보던 농가들마저 대박을 쳤다. 소문에 한철 농사로 1억 이상의 수입을 거둔 농가도 심심치 않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 --대구를 제치고[* 사실 대구는 가로수길 조성 등 적극적인 수목정책에 힘입어 예전만큼의 혹독한 더위를 자랑(?)하진 않고 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덥긴 하다.--]-- 더위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심지어 2016년 8월 13일 최고기온 '''39.6도'''[* 기상관측소가 있는 망정동 쪽은 원래 시원한편인데도 이정도라면 시내인 완산동이나 인구가 많은 야사동이나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망정동 쪽은 40도를 넘겼을 수도 있다.]를 기록하면서 '''해방 이후 공식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다만 1년만인 2017년 7월 13일 '''[[경주시]]에 39.7도로 역전당했다.''' 인근의 경주, 포항, 울산, 경산과 함께 최근 '''[[대프리카]]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경산시]] [[하양읍]] 및 와촌면(시경계)이나 [[대구광역시]]로 들어가려면 [[시내버스]]인 [[영천 버스 55, 555|55/555]]번을 타면 된다. 시내버스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영천시 시내버스]] 항목 참조.
[[팔공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은해사]], 거조암, 수도사 등의 [[절(불교)|절]]과 치산계곡, 임고서원, [[보현산 천문대]], 최무선 과학관, 시안미술관, 운주산 자연휴양림등이 있다.
고려 말기의 명재상이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가 있는데[* 임고서원에 있다.], 진짜 선죽교는 북한 개성쪽에 있기에 여기에 있는 건 선죽교를 재현해서 만든 곳이다. 그 이유는 [[영천시]]에서 [[정몽주]]가 영천 출신임을 알리려는 목적 때문이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남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9||자천초등학교|| 화북면 화북길 75 ||
|| ||보현분교|| 자양면 별빛로 1183 ||
||2|| ||영천여자중학교|| 상아탑길 28 ||
||3|| ||금호여자중학교|| 금호읍 성천앞길 112-53 ||
- 울진군 . . . . 55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2><bgcolor=#04B431> {{{#FFFFFF '''군의회'''}}} ||<:><bgcolor=#CA252B>'''[[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3석}}}||
||<bgcolor=#04B431> {{{#FFFFFF '''2'''}}} ||<bgcolor=#CEF6CE> 방유봉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2><bgcolor=#08088A> {{{#FFFFFF '''국회의원'''}}} ||<bgcolor=#CEE3F6>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br][[강석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 북동부에 있는 [[군(행정구역)|군]]이다. 인구 5만여 명. [[대게]]와 [[온천]](백암, 덕구), 불영계곡, 불영사 성류굴, [[원자력 발전소]]([[한울 원자력 발전소|한울]]) 등으로 유명하다.
과거 '''[[강원도]] 관할이었다가'''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2670#0000|1963년 1월 1일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의 <울산바위> 편을 보면 [[울산]]에 있던 [[크고 아름다운]] 바위가 뒤늦게 [[금강산]]을 향해 가다가 강원도로 넘어가자 [[장승]]이 '어서오세요 여기는 강원도입니다'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영덕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장면일 듯.
예전에는 [[고속도로]]가 없고 군을 관통하는 [[7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더뎌 교통이 상당히 나빴다. 특히 [[삼척시]]와 울진군 사이의 [[7번 국도]] 구간은 과거 [[영동고속도로]] 확장 이전의 [[대관령]] 고개 수준의 구불구불함을 자랑하여 인근 [[영덕군]], [[삼척시]]까지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었다.
2010년 12월 말 [[7번 국도]]의 확장 공사가 끝나면서 [[삼척시]]와 영덕읍까지 4차선 직선도로가 완공되었다. 삼척부터 포항까지 4차선 국도이다. 이로 인해 동해안에 대한 접근성이 상당히 좋아졌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종합버스터미널|울진]]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소요시간도 4시간이면 도착한다. 요건 [[7번 국도]]를 경유하는 [[강원여객]] 차량에만 해당된다. [[경북코치서비스]]와 [[경기고속]] 차량은 경유지도 더 많은데다 불영계곡으로 지나가서 속까지 울렁거린다. 버스 타다 토하기 싫으면 [[강원여객]]이 오는 시간으로 타도록 하자. 소요시간도 좀더 빠르고 울진군 주민들도 [[강원여객]]/[[강원흥업]]을 훨씬 선호한다.
의외로 거리는 서울-영주-봉화-울진이 서울-동해-삼척-울진보다 짧다. 전자는 300km, 후자는 340km. 하지만 [[36번 국도]]의 상태는 굉장히 나쁘다. 반면 [[7번 국도]]는 거의 준 고속도로급이기 때문에 [[강릉시]]에서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예전에 3시간 가까이 걸리던 [[포항시]]도 역시 버스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정차에 한해서지만....완행노선은 여전히 3시간 정도 걸린다
== [[한울 원자력 발전소]] ==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남서쪽으로 117km, 포항이 남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상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2013년 5월 한국수력원자력의 비리와 관련하여 울진군와 영광군에서 발전소 명칭 변경을 요청함을 받아들여 울진 원자력 발전소는 한울 원자력 발전소로, 영광 원자력 발전소는 한빛 원자력 발전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실제로 원자력발전소와 사택을 제외하면 두 시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그냥 평범한 동해안의 [[어촌]]. 울진까지 나가봐야 별 다를 게 없으니 교통을 떠나 무지 심심할 수 밖에 없다.
가끔 일부 주민들이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건 [[환경단체]]와 연계된 일부이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별 신경 안 쓰고 발전소의 혜택을 꽤나 많이 보고 있다. 발전소 하나가 '''울진군 세수의 70%'''를 담당하고 있고 부구리의 [[초등학교]]에는 놀랍게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부럽다~~ 울진읍의 중학교에도 인조잔디운동장이 깔려있다.
백암[[온천]], 덕구[[온천]], 성류[[동굴|굴]], 불영계곡, [[불영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 가운데 불영계곡을 지나가는 불영계곡로는 매우 구불거려 이곳을 처음 지나가는 초행자는 자칫하면 토할수도 있다.--[[흠좀무]]-- 아예 이곳을 지나가는 [[시외버스]]에는 [[M6724|비닐봉지를 달아놨을 정도다.]]그러나 반대로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계속되는 왕복2차선짜리 곡선도로을 지나가는 스릴또한 있어서 나름 [[버스 동호인]]한테 유명한 코스이며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온정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온천물 온도는 53℃로 충분히 뜨겁다. 데울 필요가 없을 정도. 약알칼리성을 띄는 방사능 온천인데 방사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지 울진군 측에서는 실리카 온천으로 홍보한다. 물론 해가 될 정도의 방사능을 함유한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말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온천관광지로 개발이 되었고, 1970년대에 현대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꽤 큰 온천관광지이다. 온천호텔도 여러 곳이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위쪽에 있는 백암관광호텔이 원탕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거기서 끌어오는 곳인데, 어차피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다. 취향껏 선택하자.
북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한국 온천 중에서 유일하게 자연용출되는 온천이다. 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노천탕도 운영했을 정도. 관광지 개발은 1980년대로 좀 늦은 편인데, 온천 위치가 산골짜기라서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 이 때문에 용출되는 곳에는 개발을 못하고, 용출지에서 4 km 떨어진 지금의 위치에 관광지를 개발하고 파이프로 온천수를 끌어오고 있다. 규모는 제법 큰 편이며, 자체운영호텔과 스파월드라는 이름의 온천수 수영장이 온천탕과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노천탕도 있다!-- 온천탕은 남,녀 대온천탕과 가족온천탕이 있다.
[[36번 국도]]가 울진읍으로 들어가면서 계곡을 따라 구비구비 들어가는 구간이 있는데, 이곳을 불영사계곡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주변의 사찰인 불영사에서 따왔다. 길이 좋지 않지만 풍경이 좋고, 특히 가을에 단풍이 어우러지면 상당히 좋은 자연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름의 유래가 된 불영사는 이 계곡 안쪽에 있다. 신라시대부터 있던 역사가 오래된 사찰로, 응진전과 대웅보전, 영산회상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삼층석탑과 불패 등도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등 사찰 자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내 풍경도 좋은 편이다. 의상전의 경우는 그 유래가 불확실하다가 2010년 수리할 때 유래를 적은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인현왕후]]가 환궁하면서 부처의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곳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관동팔경]] 중 제 1경. 가장 남쪽에 있다. 동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산 위의 정자로, 주변에 소나무가 많다. 풍경 이외에는 볼 거리가 없지만 울진읍에 가까워 접근하기도 쉽고 각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 잠시 들르기 좋은 곳이다. 정자 자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헐어버린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60년대에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지은 것을 다시 철거, 1980년에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 이경실 . . . . 55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상'''}}} ||
||<width=25%><:> [[이영자]][br](1993) ||<:> {{{+1 → }}} ||<width=25%><:><#FFFFA1> '''이경실[br](1994)''' ||<:> {{{+1 → }}} ||<width=25%><:> 서현선[br](1995) ||
||<#595959><:> {{{#FFFFFF ''' 학력 ''' }}} ||<(>군산여자고등학교 졸업[br][[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
과거 MBC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도루묵 여사' 코너로 대인기를 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면서 '''1994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코미디계에서 일컫기를 '''여성의 몸으로 정상을 차지해본 3명'''중 하나. 1대가 [[김미화]], 2대가 이경실, 3대가 [[이영자]]다. 이 시기의 영광 덕에 [[응답하라 1994]]에 성동일의 첫사랑이자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한다.
[[시트콤]] 전성기의 서막을 열었던 인기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는 [[노처녀]] 여교수 역할을 맡아 연기력도 보여주었다.
풍만한 글래머에 색기 있는 중년여성 컨셉도 있다. 젊었을때는 [[박미선]]이나 [[팽현숙]]과 함께 미인 코미디언으로 나름 인기 있었다. 현재도 자기관리가 굉장히 철저한 편으로, 방송에서 동료들이 그녀의 맵시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예능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목욕탕에서 만난 이경실'인데, 뒤태가 엄청 예쁜 여자가 있어서 가봤더니 이경실이더라, 그런데 그 예쁜 몸으로 아줌마들이 즐겨하는 '''배 두들기는 기체조'''를 하고 있어서 경악했다는 내용. 주로 [[박미선]]이나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자주 언급했다. 얼굴은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몸매는 웬만한 젊은 여성 수준이다.
[[이성미]], [[박미선]], [[조영남]] 등과 가깝다. 거센 성격으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무서운 [[군기반장]]으로 유명한데다 선배인 이성미조차도 예전에는 이경실을 피했다가 [[이홍렬]]의 중재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역시 군기반장인데다 선배인 [[이경규]]조차도 유독 그녀에겐 한 수 접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이경실보다 연상에 [[선배]]들이다. [[박명수]] 역시 그녀를 두려워한다. 박명수는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는 특유의 사나운 캐릭터를 못 살려서 얼어붙는다. [[http://youtu.be/GNautvauUcA?t=4m52s|요즘은 호통 컨셉 믿고 떨면서도 들이댈 때도 있다]]. 예전에 이경실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명수는 웬만해서는 이경실과 방송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세바퀴]]에서 상황극도 해봤지만, 박명수가 시작부터 굳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동갑이지만 5년 후배인 [[지석진]]도 이경실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사실상 남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라도 동갑내기 여자들보다 [[기수]]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김구라]]조차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거의 최초로 기를 못 편 게스트다.[* 다만, 일상생활까지 포함하면 이순재의 큰아들에게도 독설하다 맞을 뻔했다고 한다.]
참고로, [[신인]] 시절 [[홍기훈]]이 꽤나 유명한 [[터프가이#s-1|터프가이]]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알아주는 [[주먹]]에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아현|전 여친]]도 팼나?-- 게다가 [[나이]]도 많고 성깔도 더러워서 웬만한 선배들조차도 쉽게 터치를 못 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런 홍기훈조차도 한방에 [[군기]]를 잡아버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경실이다. 또 하나는 군기반장은 아니지만 [[이재포]]. 이재포도 [[유도(스포츠)|유도]] 전공자답게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경실 역시 개그계에서는 알아주는 군기반장이다. 방송에서 김구라의 [[턱]]을 최초로 잡은 [[연예인]]이기도 하니...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말을 끊고 진행을 몰아붙이는 김구라가 짜증이 났던지 가까이 와보라고 한 다음 턱을 잡고 흔들었다. 이후부터 김구라를 능욕할 때 김구라의 턱을 잡고 흔들거나 소원을 비는 김구라의 턱하르방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다.
그렇지만 이런 이경실도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군기반장계의 히든보스이자 원로배우인 [[이순재]]와 중견배우들인 [[김갑수]], [[김병기]] 등이다.
전 남편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전 남편 손모씨에게 [[2003년]]도에 야구 방망이로 복부를 마구 난타당해 이경실은 입원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병문안을 갔는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니?"라고 했다. 다행히 김지선은 --애를 쑴풍쑴풍 낳으며-- 잘 살고 있지만... 前 남편과 함께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지기도 했었던 터라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이경실을 브라운관에서 못 본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경실에게 의사를 사칭한 다음 몰래 접근하여 인터뷰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취재윤리를 무시한 행동에 문제의 신문사의 주주였던 모 조간신문에서 이를 비판하는 만평을 보냈을정도. 다만,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고, 사업가--단란주점 사장--인 최모씨와 재혼하여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으나... 후술할 내용 중 [[JTBC]] '[[유자식 상팔자]]' 등에 자녀들과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남편이 주말마다 점심을 해준다는 등(!) 과거의 시끄러운 사건과는 별개로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었다...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분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2015년 8월경 현 남편이 지인의 아내를 차 안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처음엔 그저 개그우먼의 남편으로만 알려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남편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이경실도 나서서 '남편의 결백을 믿는다,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남편인 최씨는 1차 공판에서 혐의를 완전히 인정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선 '범죄 사실을 인정한 게 아니라 만취사실 만을 인정한 것'이라고 교묘한 거짓말로 언플을 했지만... 그리고 2차 공판에서도 공소사실을 고스란히 [[http://news.joins.com/article/19270472|인정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사항이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이경실 역시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등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몰아간 병크를 일으켜 이경실에 대한 비판이 커지며 해당 프로(특히, 유자식 상팔자)에 하차하라고 아우성거리고 있단 거다. ~~그런데도 하차를 안한다.~~[* 참고로 유자식 상팔자는 이경실의 소속사에서 제작된 프로다.]
여담이지만 해당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사람은 전 방송인이자 현재 기자로 활동하는 [[조정린]]이다.
=== 남편에게 성추행 당한 피해자 명예훼손 벌금 ===
2017년 5월 보도에 따르면, 방송인 이경실은 페이스북에 남편이 성추행한 성범죄 피해자를 비방한 글을 작성해서 고소당해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001&aid=0009261738|기사]]
2010년 11월 17일 케이블 채널 QTV에서 방송된 '여자만세' 프로그램에서 "최근 한 여자 후배에게서 잊지 못할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며 비화를 공개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이경실의 멘션들을 증거로 그 후배가 누군지 추측을 쏟아냈는데 용의자(?) 중 한명으로 지목된 [[정가은]]이 해당 인물이 아님에도 갖은 비난을 받았던 해프닝까지 있었다. ~~사실 잘 나가고 있다는 말에서부터 [[정가은]]은 해당사항이 없지만...~~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이경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한 출연자'는 이경실을 말한다.)
주된 방송 스타일은, 아무래도 방송의 관록이 관록이다 보니, 일부 출연자들의 [[무리수]], [[개드립]] 등을 잘 살리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버려야 하는 몹쓸 드립들도 적절하게 살려내는 편. 그냥 얼떨결에 묻힌 멘트들을 발굴해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주요 화법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면박이나 [[자폭]]류 [[개그]]. 다년 간의 방송 짬밥으로 웬만한 MC역할의 연예인들에게 태클 걸 수 있는 입장이다. 때문에 [[김구라]]나 [[박명수]] 등의 독설가나 버럭류 캐릭터의 [[개그맨]]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캐릭터도 갖고 있어 기센 아줌마 + 짬밥왕인 이경실에게는 확실히 쩔쩔맨다. 이들을 적당히 제지하거나 역으로 공격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어떻게 보면 MC들을 보조하는 보조적 MC 속성. 어느 프로그램에서 나오든 입담과 타이밍 감각으로 중박 이상은 치므로 고정 패널로 선호가 높은 듯. 특히 친정인 MBC에서는 [[박미선]]과 함께 공무원 급으로 자주 나온다.
[[JTBC]]의 [[유자식 상팔자]]에 아들 손보승 군과 함께 고정출연하고 있으며 딸 손수아양 역시 가끔 출연하고 있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55회 일치
* 그리샤는 정체를 밝힌 크루거에게 왜 자신만 살린 거냐고 따진다.
* 그는 13년 전 거인의 힘을 손에 넣었지만, 거인화 능력자의 수명은 13년. 계승자를 구한건 그때문이다.
* 모든 거인화 능력자는 "시조 유미르"를 뛰어넘을 수 없고 그래서 수명도 13년이며 때가 되면 자연히 쇠약해져 죽는다.
* 크루거는 모든걸 그리샤에게 맡기려 하지만 좌절에 빠진 그리샤는 자신에겐 "증오"가 아니라 "죄"만 남았다며 거절한다.
* 크루거는 그의 증오 때문이 아니라 벽 밖으로 나아간 "자유의 의지" 때문이라며 "네가 시작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 거인을 넘기기 전 크루거는 "아홉 거인"에겐 이름이 있으며, 자신의 거인은 언제나 자유를 추구한 "진격의 거인"이라 알려준다.
* [[그리샤 예거]]의 수기는 이와 같이 적으며 "바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을 향해, 그는 "지표의 7할을 점한 광대한 소금물"이라고 무기질적으로 적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선 거인으로 변한 올빼미, 크루거가 마지막 남은 마레의 병사를 살해하고 바다에 던지고 있다. 그리샤는 마레당국이 끌고 온 모든 것들, 그리고 마레인 자신들이 모조리 바다에 삼켜지는 것을 경이에 차서 바라본다. 짙은 색을 내기 시작한 석양이 거인의 등 뒤에 걸려있었다.
크루거가 먼저 질문은 없냐고 묻자 그리샤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재촉에 우선은 "올빼미, 너의 정체"부터 묻는 그리샤. 크루거는 정식으로 자신을 밝힌다.
그는 "아홉 거인" 중 하나의 소유자이며 지금까지 엘디아 복권파의 모든 행동을 주도한 "올빼미"였다.
그리샤는 그가 어떻게 혈액검사가 동반된 마레의 검증 과정을 통과해 당국에 잠입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워한다. 답은 의외로 쉬웠다. "의사" 중에 협력자가 있으면 되는 것. 물론 그 의사도 신분을 위조한 엘디아인이다. 혈액검사만 통과되면 나머지는 일처리가 쉬운 헛점을 이용한 공작이다.
* 그의 담담한 말을 듣던 그리샤는 자신은 글러먹은 아버지, 글러먹은 남편, 글러먹은 남자였다고 한탄한다.
그는 다이나는 특별한 존재였으며 크루거가 은폐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괴물"이 되는 것만은 면했을 거라고 추궁한다. 크루거는 그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너무 간단하게 인정하자 그리샤가 평정을 잃는다.
그리샤는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크루거의 목으로 손을 올린다. 하지만 움켜쥘 손가락도 없다. 손에 감긴 붕대가 피로 물든다. 크루거는 손이 아플 테니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그리샤는 "배려 고맙다. 남의 손가락을 싹뚝 자르는건 별 감흥도 없는 녀석일 것 같은데!" 라며 비꼰다. 그는 그가 더 빨리 거인으로 변했더라면 모두 거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체 뭘 위해서, 엘디아 복권파는 뭘 위해서 거인이 된 거냐고 따진다. 그런데 크루거가 털썩 주저 앉는다. 안색도 좋지 않고 숨도 가쁘다. 크루거는 왜 그러냐고 묻는 그리샤에게 "수천명이나 되는 유미르의 백성의 손가락을 자르고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거인으로 만들어왔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전부 "엘디아를 위해서"라고 믿는다.
* 그리샤는 의사로서 직업정신인지 진찰을 해보겠다고 하는데 크루거는 원인은 이미 알고 있다며 거절한다. 그는 시간이 없다며 그리샤에게 "마지막 임무"를 맡기겠다고 말한다. 잠시 뒤 두 사내는 벽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크루거는 그리샤의 소년 시절, 비행선을 보러 왔을 때의 일을 말한다. 만약 자신이 그를 잡아놓지 않았다면 여동생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리샤는 함께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거라고 대답하고 크루거는 고마워 하면서 어쨌든 그 일이 없었으면 그리샤가 이토록 강한 증오를 품게 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샤는 그게 자신을 고른 이유냐고 하자 그것도 있다고만 말한다.
>적국, 아버지, 자신. 네 눈에 비치는 증오는 세상을 불태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여동생의 사인을 통보하러 간 날, 그가 그리샤를 관찰하고 내린 평가다. 크루거가 오늘에 이르는 계획을 구상한건 그때부터 일지 모른다. 크루거는 "예전의 자신"도 그랬다고 털어놓는다.
크루거의 아버지는 대륙에 잔류한 왕가의 잔당이었다. 그들은 혁명군을 구성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마레 당국에 의해 암살되었다. 아버지가 혁명군에 속했던 크루거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한 군데서 불살라질 때, 어린 그는 찬장 속에 숨어 문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무서워하면서. 집이 거의 다 탔을 때 아버지의 동료가 구하러 왔고, 크루거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레에 대한 복수와 엘디아의 복권을 맹세했다. 그런 그가 실제로 하게 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동포의 손가락을 자르고 가죽을 벗기며 이곳에서 떨어뜨려 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걸 철저히 수행한 결과 오늘날까지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그리샤는 귀를 의심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담담하게 자신은 먹힐 거라고 말할 뿐이다. 거인의 힘 없이 "벽"까지 도착할 수 없을 것이고 거기에 도착한다면 지금 하는 것처럼 "시조 거인"의 소유자에게서 빼앗으라고 말한다.
그리샤는 크루거가 직접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지금까지 숨겨온 진실을 밝힌다.
- 폐비 윤씨 . . . . 55회 일치
|전임자 = [[공혜왕후]]
|후임자 = [[정현왕후]]
|배우자 = [[조선 성종|성종]]
|자녀 = 이효신, [[조선 연산군|연산군]], 왕자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달|윤]] [[6월 1일]])<ref name="tae">폐비 윤씨 태실의 태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현재 폐비 윤씨]] 태실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관련 내용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자료 [http://www.museum.go.kr/NMK_DATA/redfish/cutator/2011/cu-253/book.html] 에서 일부 확인 가능하다.</ref><ref name="ja">{{서적 인용
|저자= 조원교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날짜=2009-03-14|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남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위되었다.
[[1473년]]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되어 사사되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남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할아버지 [[윤응]](尹應)은 통훈대부(通訓大夫) 교하현감(交河縣監)이었고, 증조 할아버지 [[윤득룡]](尹得龍)은 [[조선]]조정에 처음 벼슬하여 자헌대부 (資憲大夫) 와 호조판서 (戶曹典書) 를 역임했다.
일부 현대극이나 야사 등에서 그녀의 아버지 [[윤기견]]의 죽음으로 인해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궁녀로 입궁했다고 하지만<ref>[[2011년]] 방영된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 (드라마)|인수대비]]》 등에서는 폐비 윤씨가 궁녀로 입궁한 것으로 그렸다.</ref>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희왕후]](자성대왕대비)가 그녀를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윤호]]의 딸과 함께 입궁시켜 숙의(淑儀)의 첩지를 내린 사실이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성종]] 5년(1474년)에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성종]]은 2년 뒤 [[공혜왕후]]의 3년상을 마치고 [[1476년]] [[7월 31일]]([[음력 7월 11일]])에 숙의(淑儀)였던 윤씨를 왕비(王妃)로 삼을 것을 전교하였다.
당시 윤씨는 임신 중인 몸으로, [[8월 27일]]([[음력 8월 9일]]) 왕비(王妃)로 책봉되어 3개월 뒤인 [[11월 23일]]([[음력 11월 7일]])에 적통대군인 [[조선 연산군|원자]]를 낳아 중전(中殿)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여자 관계가 복잡한 남편인 성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조선 성종|성종]]이 자신의 처소인 [[교태전]]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는데, 남편과 말싸움 중 남편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이 있고, 다른 설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왕실의 사후 예우를 본다면 왕실의 눈밖에 나 폐위된 것이 유력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등으로 인해 윤씨는 마침내 [[1479년]], 자신의 생일 바로 다음날인 [[음력 6월 2일]](양력 [[6월 21일]])에 왕비(王妃)에서 폐위되었다.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원자의 생모이자 조강지처가 되는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상소와 시위가 끈임없이 반복되었으며,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여기서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연산군]]이 즉위함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반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 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상]] 등이 있다.
[[인수대비]]는 원자가 더 자라서 자신의 어미얼굴을 기억할까봐 하루빨리 새 중전(中殿)을 세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정현왕후|숙의 윤씨]](淑儀 尹氏)를 왕비(王妃)로 책봉시켰다.
당시 조정에서는 그녀가 폐비(廢妃)가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반성하는 점, 세자의 생모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그녀를 살려 두고자 하였으나, [[귀인 엄씨|숙의 엄씨]]와 [[귀인 정씨 (성종)|귀인 정씨]] 등의 사주로 인해 [[궁녀]]들이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성종에게 허위 보고를 하였다.
- 이민호(1987) . . . . 54회 일치
||<#878787> '''{{{#EEE156 본관}}}''' || [[경주 이씨]][* 경주 이씨 42세손 '鎬'자 항렬이다.] ||
2010년 8월 2일, 아시아송페스티발 관련 기자회견장에서의 이민호.
'''신(新)한류의 대표주자'''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 한국판 드라마]]에서 [[F4]] 중 구준표를 맡아 일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대한민국]]의 [[배우]]. 2009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주목받는 남자배우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로 신세대 한류 스타들 중 가장 주목받는 배우들 중 하나다.
반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영]]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영]],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영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영]]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반올림(드라마)|반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영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영]]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남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남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영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중 KBS의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의 한국판]]에서 주인공 구준표역할에 발탁. 특유의 소라빵 머리와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시청률 대박을 치게되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떠오르는 청춘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이때의 인기는 상당해서 대부분의 예능, 코미디 프로에서 특유의 소라빵머리를 하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한명씩은 꼭 있었다. 아시아 3국의 꽃보다남자 캐스팅중에서 일본인들이 꼽은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드라마로 이민호는 5년간의 무명 세월을 마감하고 톱스타가 된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렇게 대박을 치고 얼마간의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0년에 3월 31일 MBC에서 방영한 '''개인의 취향'''에서 '''게이는 아닌데 게이로 오해받고 마침 게이로 오해한 여자의 집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상당히 중요한 집이라 어쩔수 없이 게이취급 받으면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는 남자(...)'''역을 맡아서 [[손예진]]과 좋은 호흡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선택한 작품은 [[SBS]]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 이민호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는 처음부터 원작과 다르게 기획되었고 프리퀄을 표방하여 제작되었으며, 원작자가 주인공으로 이민호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싸인까지 보내 제작발표회에 공개하기도 했다. 오히려 원작과 차별화된 시나리오로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되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민호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매력이 돋보였고 특히 눈빛, 액션 연기는 굉장히 호평을 받아 "이민호의, 이민호에 의한, 이민호를 위한 드라마"라는 평가들이 나왔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로 이민호는 [[중국]]에서 거의 신드롬급으로 인기를 끌었다. 거기다 해외 팬덤이 강력해서 드라마 수출 계약도 호조를 보이는 엄청난 한류 배우.
그 후 [[송지나]] 작가의 [[신의(드라마)|신의]]에 출연하여 깊은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 연기로 신의있는 젊은 [[최영]]의 모습을 표현해 2012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10대 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만 남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점점 캐릭터와 밀착되는 모습을 보였고 [[송지나]] 작가도 이민호는 [[최영]] 그 자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http://view.heraldcorp.com/view.php?ud=20121021000320|기사]].]
2013년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은숙]]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에서 주인공 [[김탄]]역을 맡아 최고 시청률 25.6%를 찍으며 연말 수목극 1위를 유지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기존의 까칠한 [[김은숙]]표 로코 남주들과 달리 다정하며 직진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담담하게 연기해 냈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96854|연애의 발견 정현정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이민호의 연기를 칭찬했다]].] 2013 SBS 연기대상에서 중편드라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베스트드레서상, 10대 스타상, 시청자 인기상, 베스트커플상의 다섯 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민호를 일약 최고의 한류스타로 도약시켰다. 2014년 1월 외국인은 출연이 힘들다는 [[중국]] CCTV의 춘완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여 이민호가 출연한 순간 최고시청률을 기록하였고 7억명의 시청자들이 보았다고 한다.
2015년 초에 개봉한 [[강남1970]]의 [[김종대#s-2]] 역할로 영화 첫 주연작품을 찍었다. 이민호의 새로운 연기 변신에 호평을 받았고 눈빛 연기, 액션 연기 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청불임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총 관객수 220만 명으로 막을 내리는 걸로 스크린 데뷔식을 치렀다. [[강남1970]]으로 2015년 52회 [[대종상영화제]] 남자신인상 수상, 19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듀서초이스상을 수상하였다.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허준재, 김담령 1인2역을 연기하였고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넘나들며 섬세하며 차별화된 연기로 역시 이민호라는 찬사를 받았고 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영화 및 드라마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이트인 HanCinema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1위에 선정됐다.
연기 실력이 탄탄하지 않은 채 많은 작품을 소화하는 몇몇 배우들과 달리 신중하게 자신의 작품을 고르고,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왔고 무명 시절부터 다양한 배역을 경험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여담으로 과거 [[카오스(워크래프트 3/유즈맵)|CHAOS]] 유명 클랜 ANA 클랜 소속이었다고 한다. 당시 사용하던 닉네임은 ANA_MIN. 나이스 게임TV의 게임 캐스터&해설 하광석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드립을 친 바 있다. 나캐리에 나온 [[희철|김희철]]에 의해 롤 유저임이 밝혀졌다. 티어는 다이아 5라고 하며, 최대 티어가 다이아 2~3이었다고 한다.[* [[게임쇼 유희낙락]]에서 김희철이 언급.] [[직스]], [[케일(리그 오브 레전드)|케일]]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희철|김희철]]이 공익으로 복무했을 때 같이 롤을 자주했다고 했는데, [[희철|김희철]]은 [[베인충]]이고 이민호는 [[야스오충]]이라 같이 게임걸린 팀원들이 싫어했다고 한다. 연예계에서 게임 잘 하는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축구광이고 축구를 잘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민호에게 인생작이라 할 수 있는 꽃보다 남자에서도 축구하는 씬이 있었다. 그리고 왼발잡이다.
|| 2009년 || KBS2 ||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 || 구준표 || ||
|| 2013년 ||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 || [[김탄]] || ||
==== 《상속자들 OST Part 9》 ====
==== 《상속자들 OST 2 - Track 5》 ====
||<|3> 2009년 || 제45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3> 꽃보다 남자 ||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54회 일치
* [[메라스큐라]]를 이용해 자유를 되찾은 무욕의 [[고서]]. 그는 공간의 틈을 열고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 앞에 나타난다.
* 할리퀸이 고서가 자유를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고 비난하자 고서는 자신의 목적이 "자유의 몸이 되어 성전을 종결"하는 것이라 밝힌다.
* 디안느는 고서가 죽은 이후 "인형" 고서 쪽은 어떻게 되냐고 묻는데, 고서는 인형 고서의 자아와 마음을 부여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한다.
* 고서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킹과 디안느는 자신의 유일하고 소중한 친구가 됐다며 미래에도 인형 고서의 친구가 되고 길을 인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 디안느가 흔쾌히 동의하자 고서는 "두 고서가 주는 감사의 선물"이라며 그녀에게 어떤 마법을 선사하는데.
*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그 안에 있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는 자신들 눈 앞의 "인형" [[고서]]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마신왕에게 무욕의 계금을 받고 500년 동안 자유를 뺏겼다. 그 사이 자신이 만든 인형 고서를 통해 겨우 바깥과 접촉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그는 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꼭 그들, 할리퀸과 디안느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는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시공의 틈을 연다. 그리고 진짜 고서, 무욕의 고서가 틈을 통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고서는 "나도 고서. 하지만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인형 쪽과 싱크로된 상태라 동시에 같은 포즈로 같은 말을 해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고서는 헷갈린다면서 "싱크로 오프"란 주문으로 인형 고서와 동조를 단절한다. 그러다 조용히 의식을 잃는다. 무욕의 고서는 인형 쪽도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동지"라고 말하며 그 또한 고서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할리퀸은 고서의 설명을 개소리라고 일축한다. 결국 그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 모든 걸 이용한 셈이다. 마신족 포로와 스티그마의 병사들. 그리고 인간 전사들 자신들까지도. 할리퀸이 강하게 비난하자 고서가 내놓은 대답은 뜻밖의 것이다.
>내 목적은 자유의 몸이 되어
잠자코 있던 디안느는 그 말에 뭔가를 느낀다. 반면 할리퀸은 더이상 대화해 봐야 쓸데없다고 판단한다.
* 할리퀸이 디안느에게 서둘러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거절하며 할리퀸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자신은 고서와 좀 더 대화해 봐야겠다면서. 그녀가 보기에 고서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고서, 인형 쪽도 포함해서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도 하다. 디안느가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자 할리퀸도 더는 권하지 않는다. 그는 디안느에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향한다.
* 디안느는 할리퀸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고서는 뜬금없이 "그가 너의 연인이냐"고 묻는다. 디안느가 당황해서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얼버무리지만, 고서의 눈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듯한 신뢰관계로 보인다. 그리고 고서 자신의 계금이 그들에게 발동하지 않는 것도 증거다. 그들은 서로에게 뭔가 원하기 보단 뭔가를 채워주고 있다. 고서는 그런 점이 부럽다. 모든 종족이 그들 같이 사이가 좋다면 성전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쑥스러워하던 디안느는 조심스럽게 궁금한 점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성전을 끝낸다"는 고서의 말이 신경 쓰였다. 정말로 그런게 가능할까? 고서는 그렇다고 자신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확실히 그렇다. 그는 디안느에게 미래 세계에도 성전이 계속되고 있냐고 묻는다. 디안느는 자신의 시간 감각으로 "3000년 전에 끝났다"고 답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성전시대가 바로 자기 시간에서 3000년 전이니, 이곳 시간으로 얼마 안 가서 끝난다는 말이 된다.
고서가 그 말에 안심한다.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때문에. 디안느가 그 말의 불길한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그가 자살을 생각함을 직감한 디안느가 그가 사라지면 인형 고서는 어떻게 되냐고 따진다.
* 고서의 계획은 그것도 준비해놨다. 그는 곧 인형 고서의 자아를 되돌린다. "오토 어웨이크"다. 지금까지 무욕의 고서처럼 검고 속 모를 눈동자였던 인형 고서의 눈이 맑고 순진한 빛을 띈다. 무욕의 고서가 안녕하고 인사하자 인형 쪽도 안녕하고 답례한다. 고서는 막 일어났을 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부터 너는 혼자서 자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야 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마치 자식을 어루만지는 부모같다. 인형 고서의 지능은 자신과 다를 바 없지만, 감정은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 없다. 사실 고서는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것만은 이루지 못하는 꿈이다.
인형 고서는 앞으로 고서가 무엇을 할지 안다. 그는 자신을 어루만지는 고서의 팔에 매달리며 어린애처럼 운다.
그 모습에 놀란 디안느가 무심코 "인형인데도 운다"고 말하고 아차한다. 인형 고서는 자신이 인형이기 때문에 두고가는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고서는 그런게 아니며, 무엇보다 그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인형 고서의 가슴엔 무욕의 고서가 혼심의 힘을 담아 만든 "마음의 마법"이 깃든 심장이 있다. 이 마법의 심장이 인형 고서를, "진짜 고서"로 살게 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가슴은 짚는다.
>이건 내가 네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다.
- 정웅인 . . . . 54회 일치
| 형제자매 = 남동생 (1978년생)
| 유웅인배우자 = [[이지인(유웅인부인)이지인]]
| 유웅인자녀 = 슬하 3녀([[정세윤(유웅인딸)정세윤]], [[정소윤(유웅인딸)정소윤]], 정다윤(유웅인딸)정다윤ㄴ)
[[대구광역시]] [[달서구|경상북도 달서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출생이며 [[부산광역시|부산]]과 [[전라남도]] [[담양군|전라남도 고흥군]]과 [[담양군|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성장하였고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4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년 후 1995년 [[영화]] 《[[리허설 (영화)|리허설]]》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96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1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서울방송]]《천일야화》의 단역 출연으로 정식 [[배우|연기자]] 데뷔하였다.
|제목= 첫딸 공개한 정웅인 “코미디는 피같은 존재다” 연기열정 고백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7100023121001 |출판사=뉴스엔|날짜= 2008-07-10 }}</ref> 이후, 정웅인이 본격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으로 [[1998년]] 38.5%의 시청률을 기록한 《은실이》에 의리 있는 깡패 춘식 역할에 이어, [[1999년]] 53.1%의 시청률을 기록한 《국희》에서 강하고 신념있는 자본가 김상훈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제목= 인기절정의 순간 떠나는 '세친구'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42263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01-02-07 }}</ref> 이후 영화 《반칙왕》(2000년), 《두사부일체》(2001년), 《돈 텔 파파》(2004년), 《투사부일체》, 《마법사들》(2006년), 《유감스러운 도시》(2009년) 등과 드라마 《홍국영》(2001년), 《발칙한 여자들》(2005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선덕여왕》(2009년), 《커피하우스》(2010년), 《오작교 형제들》(2011년) 등에 사극과 여러 장르의 현대극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제목= 2013 KDA, 연기파 배우 정웅인의 재발견이었다 |url= 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3100219504556447&type=1&outlink=1 |출판사=스타뉴스|날짜= 2013-10-02 }}</ref><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정웅인의 재발견이라니? '항상 준비되어 있는 연기자' |url= 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129465 |출판사= 티브이데일리 |날짜= 2013-08-09 }}{{깨진 링크|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129465 }}</ref> 신 스틸러의 대표적인 배우로 불리며 악역 전문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정웅인 “악역 전문배우, 내가 봐도 인상 더러워”(힐링캠프)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8042317480410 |출판사=뉴스엔|날짜= 2014-08-04 }}</ref> 특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극중 정웅인의 "얘기하면 죽일 거야", "네 말을 들은 사람도 죽일 거야" "말하면 죽일 거다." 등의 대사는 인터넷과 예능 방송에서 패러디 되며 그를 떠오르게 하는 대표적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ref>{{뉴스 인용
유웅인은 [[2005년 3월]] 대학 동기 결혼식에 참석해 현재의 아내이자 12살 연하의 당시 대학생이던 이지인씨와 첫 만남을 가졌고,<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아내 이지인, "자랑스럽다"던 남편 말과는 달리 '경북대 퀸카' 미모 |url= http://stari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164406606184368 |출판사=이데일리|날짜= 2014-08-05 }}</ref> 연인관계로 발전하여 1년간의 열애 끝에 [[2006년]] [[6월 3일]] 결혼식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align="center"| 일일시트콤 《[[감자별 2013QR3]]》
|제목= ‘감자별’ 이종석 정웅인 ‘너목들’ 역대급 패러디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11042214199610 |출판사=뉴스엔|날짜= 2013-11-05 }}</ref>
|align="center"| 《[[세남자 2009]]》
|align="center"| 주말 특별기획 《[[발칙한 여자들]]》
|align="center"| 《[[시간이탈자]]》
|align="center"| 라면(수타 기술자) 역
|align="center"| 역사학자 교수, 정민 역
|align="center"|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외 대구, 부산, <br >화성, 수원, 안산, 성남, 이천, 안양, 제주, 동해 공연
|align="center"|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 외 수원, 대구, 대전, 부산 공연
* [[2014년]] [[김종국 (가수)|김종국]] - 《눈물자국 (러브 인 메모리2 - 아빠의 노트 OST)》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54회 일치
카드키를 가지고 있는 지점장을 찾아야 한다. 지점장은 검은 정장 조끼를 입은 중년의 모습을 하고있다. 정해진 곳들 중 하나에 나타나며 찾으면 노란색 테두리로 표시된다. 지점장을 찾으면 죽이거나 포박해 지점장 카드키를 빼앗자.
2층으로 올라가 서버실 문에 카드키를 꽃고 들어간다. 서버실 구석에 놓인 복사기에서 드릴과 테르밋을 챙기자. 테르밋은 두 통 있는데 한번에 하나씩만 챙길 수 있으니 멀티플레이시에는 두명이 분담해서 들자.
드릴질이 완료 될 때까지 버틴다. 드릴이 고장나면 일일이 수리해줘야 한다. 금고 대문쪽에서 보이는 창문은 저격수가 출몰하는 지점이니 주의하자.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지정된 곳에 테르밋을 붓자. 금고 복도 내에는 경비원들이 있는데 도전과제의 제물로 삼을지, 인질로 삼을지는 개인 판단.
바닥이 녹을 때 까지 버틴다. 가능하다면 테르밋을 두 통을 붓자. 테르밋 한 통 보다는 두 통이 빨리 녹는다.
금고 안으로 뛰어내려 돈더미를 가방에 쓸어담는다. 구석구석의 돈뭉치도 잊지 말자. 곧 경찰이 금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 서두르자. 하드 난이도 이상부턴 금고 안에 불도저가 들어있다.
돈을 챙겼으니 탈출할 차례. 탈출 경로인 2층으로 올라가야한다. 옆에 계단이 있지만 로비를 통해 가는 이유는 경찰이 금고 옆 계단을 막아버렸기 때문. 계단 올라가봤자 셔터로 닫힌 문 밖에 못 본다.
2층으로 올라가 표시된 벽에 C4 세개를 설치하자. C4는 알아서 주니 어디서 얻을 필요 없다.
C4가 폭발해 벽에 구멍을 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 카운트다운 내에 탈출 구역까지 가야한다. 구멍으로 들어가 화장실, 사무실을 거쳐 계단으로 내려가자. 노말 난이도부터 사무실에 특수 경찰이 있으니 조심하자. 이후 지하실 통로를 통해 주차장까지 가는데 테이저나 불도저가 양 옆에 있는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후 주차장에 온 쓰레기차에 올라타면 하이스트 성공.
운전수인 맷이 페이데이 갱을 내버려 둔 채 서류가방만 가지고 도망갔다. 문을 열고 맷의 밴이 지나간 길을 따라 추격하자. 설상가상으로 누군가 경찰에 찔러버려서 도로 곳곳에 경찰 저지선이 설치된 상황.
베인은 페이데이 갱을 태우기 위해 또다른 운전수인 브루스를 호출한다. 브루스를 만나기 위해 스칼렛 거리로 가자. 길을 막아서는 경찰관을 쏘며 길까지 가면 된다.
브루스가 오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었다. 브루스의 차는 벽에 그대로 박아 못쓰게 된 상황. 그냥 가자. 노말 난이도 부터는 브루스의 차 트렁크에 돈이 들어있다.
맷의 차도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지점으로 가자.
맷의 밴은 뒤집어진 상황. 하지만 맷은 나오기를 거부한다. 맷을 나오게 하기 위해 주변에서 가솔린을 구해 밴에 불을 붙이자. 한번으로는 안 나오므로 불이 꺼질 때 마다 가솔린을 구해 불을 붙여야한다. 피운 불에 닿으면 데미지를 입으니 주의.
결국 견디지 못한 맷이 밴에서 기어 나왔다. 서류가방은 맷의 손목에 수갑으로 묶여있는 상황. 베인은 일단 맷을 데리고 주차장에 와보라고 한다. 맷에게 주차장으로 가라고 명령하며 이동하자.
헬리콥터가 올 때 까지 버티자.
알렉스의 헬리콥터가 도착했지만 지역이 경찰 범벅이라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경찰을 싸그리 쓸어버리자.
갱단의 마약 공장을 기습, 마약 공장에 설치된 패닉룸[*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소형 대피소.] 자체를 훔쳐가 그 안에 든 돈을 차지하는 하이스트.
마약 거래를 빌미로 마약 공장에 진입하려는 페이데이 갱. 일단 뒷골목으로 들어가 마약 공장 뒷문에 도달하자. 뒷문은 망보던 갱단원이 열어준다.
1층 가운데에 있는 방에 들어가자. 방문은 지키고 있던 갱단원이 열어준다. 이후 페이데이 갱과 갱단의 마약 거래가 이루어진다.
- 김대환 (법조인) . . . . 53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육군 대위를 전역한 이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석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9년 10월 11일에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된 직후인 11월 20일에 수원지역 주민들의 등기민원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2000년까지 수원시내 택지개발지구에 2개 등기소 를 설립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559307]</ref> 2000년 6월에 [[최종영]]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8261]</ref> 2000년 7월21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되면서 대법원장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지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송무 Group<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6&aid=0000189786]</ref> 변호사를 하다가 2004년 3월 2일에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법원장 추천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에 임명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관할하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과 센터장을 맡았다.<ref>[http://news1.kr/articles/?1087614]</ref>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성폭행한 남자를 보복 상해한 피고인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면서 집행유예와 치료감호를 선고한 원심대로 선고하자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남여성회 등이 재판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재판장실을 점거 농성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경찰에 강제연행됐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100209215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12-2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85&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91년 12월 21일</ref>
[[인천지방법원]] 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6년 2월 15일에 대우자동차 농성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1년6월 구류10일, 피고인 2명에게 징역1년, 그외 3명에게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6년 2월 17일자</ref>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3월 5일에 "보행자가 녹색 신호를 보고 횡단보도에 들어선 이상 횡단 도중에 적색 신호로 바뀌더라도 다 건널 때 까지는 도로교통법 제48조 제3항에 의한 운전자가 보호해야 할 보행자에 해당되어 이런 의무를 위반해 사고를 낸 이상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3월 5일자</ref> 7월 30일에 [[전대협]] 의장으로서 교내외에서 각종 시위를 주도하여 1심에서 징역1년6월 자격정지2년을 선고받은 [[이인영]]에 대해 징역6월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8년 7월 1일</ref> 1989년 6월 8일에 변호사법위반으로 구속
되어 1심에서 징역1년 추징금 550만원을 선고받은 [[전두환]] 대통령의 사촌동생인 전우환에 대해 징역10월 추징금 55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9년 6월 8일</ref> 6월 22일에 삼양교통에서 사규위반 등으로 해고되자 서울북부지방노동사무소에 구제신청을 하고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회사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작성해 배포하고 다른 회사 쟁의에 지원을 다니다가 구제신청이 기각된 이후 해고되자 [[노동쟁의 조정법]] 제3자 개입 금지 등으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에서 자기 회사에서의 활동에 대해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다른 회사 노동쟁의에 개입한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1년 벌금 5만원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89년 6월 23일자</ref>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1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9년 11월 17일에 투서 사건으로 54억원 상당의 재산을 강제로 국가에 헌납했던 전 [[민정당]] 대표 [[정래혁]]의 국가 상대 재산의 반환을 요구한 소송에서 "이유없다"며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89년 11월 17일자</ref>
[[광주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살해하여 1심에서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김부남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91년 12월 21일자</ref>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10월 2일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살포하다 1심에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를 선고받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소속 한기용(37세) 사무관과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재규(29세) 김일환(32세) 전우경(27세) 등 4명에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대공 수사관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성실히 일해온 모범 공무원인데다 유죄판결로 공무원 자격 박탈되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원심대로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2년 10월 2일자</ref> 1993년 2월 26일 [[5공화국]] 비리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은 전 치안본부 정보1과 분실장 서정희(48세 당시 청와대 정부수석 비서관실 파견)에 대해 혐의사실 중에 일부만 유죄를 인정하여 선고유예 판결했으며<ref>동아일보 1993년 2월 26일자</ref>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은폐, 조작하여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65세)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1심대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3년 2월 27일자</ref> 4월 2일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치안본부장 강민창(60세)에 대해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하면서 직권남용에 대해 "부검의가 직책상 피고인의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판결했다.<ref>한겨레 1993년 4월 3일자</ref> 8월 23일에 [[김근태]]에 대한 고문한 혐의로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하여 공판에 회부된 치안본부 대공수사국 소속 김수현 경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불법체포,감금, 형법 독직 폭행죄를 적용해 징역3년 자격정지2년, 그외 백남은 경정과 김영두, 최상남 경위에 대해 징역2년~1년6월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82400289101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8-24&officeId=00028&pageNo=1&printNo=1655&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8월
24일자</ref>
징역15년을 선고받고 1988년 가석방되었으나 1995년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하자 낸 소송에서 "재범 위험성을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ref>한겨레 1997년 1월 22일자</ref> 5월 20일에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계장으로 있으면서 지방세 55억여원을 횡령하여 1심에서 징역22년6월 벌금40억원 선고받자 전재산 사회 헌납 약속으로 2심에서 벌금없이 징역22년6월만 선고된 안영휘의 가족이 "가족 명의의 재산을 압류한 것은 부당하다"며 청구한 소송에서 "구청은 안씨 명의의 부동산을 처분해 20억여원을 환수하라"는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100329123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5-21&officeId=00032&pageNo=23&printNo=16110&publishType=00010 경향신문 1997년
5월 21일자]</ref>
대한 항소심에서 "공판 전 증인신문은 무효"라며 원심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공판 전 증인신문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받은 이후 첫 판결이다.<ref>동아일보 1998년 4월 20일자</ref> 4월 28일에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운동기간 전에 선거기획단을 운영하여 법정선거운동 비용을 초과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명박]]에 대해 [[공직선거법]]과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각각 벌금400만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4월 29일자</ref> 6월 30일에 사전 선거운동으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계동]]에 대해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7월 1일자</ref> 11월 4일에 "[[이회창]] 후보 아들 이정연이 고의로 체중을 감량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전 서울병무청장 직원 이재왕에 대해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11월 5일자</ref> 11월 30일에 1심에서
1일자</ref> 12월 1일에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열어서 1심에서 징역2년이 선고된 윤홍준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하면서 같은 혐의를 받은 전 안기부 해외조사실장 이대성도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8년
12월 2일자</ref> 12월 8일에 불공정행위 조사와 관련해 기업체로부터 3200만원의
뇌물을 받아 1심에서 징역2년6월이 선고된 이강우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공직생활 중에 성실히 근무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실형은 과중하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12월 9일자</ref> 12월 24일에 대학원 연구과정을 수료한 뒤 선거 인쇄물에 대학원 총동문회 이사라고 기재하여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벌금80만원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8년 12월 25일자</ref> 1999년 1월 22일에 윤홍준 기자회견, 오익제 편지사건 등 [[안기부]] 북풍공작을 주도한 [[권영해]]에 대해 원심대로 징역5년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영식]]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남시 지하상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남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 신지애 . . . . 53회 일치
'''KLPGA 역대 첫 번째 및 2, 3번째 대상-다승-상금-평균타수의 4관왕 달성자.''' [* 2015년의 전인지까지, 지금껏 총 7번의 4관왕이 탄생했으며 그 중 혼자 3번, 3년 연속으로 했다. '지존' 그 자체. 이 둘을 제외하면 서희경 - 이보미 - 김효주가 있다.]
2010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으니, [[박인비]]가 부각되기 전에는, [[박세리]] 이후 한국 여자골프의 대표주자로 손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던 선수였다.
2005년 아마추어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2006년 프로로 전향해 KLPGA 무대를 평정하였다. 신인왕과 대상, 상금왕과 평균타수 1위 등. 2007년이 되자 프로 경험의 예열이 끝났는지(!) KLPGA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7년 9승[* 통계가 완전치 않아 확인은 어렵지만, 아마도 KLPGA 역사상 시즌 최대승일 것이다.]을 기록하고 최단기간 통산 상금 10억원을 돌파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저 상금을 단 30개 대회 출전만에 경신하였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MVP를 포함하여 최저타수상,상금왕,다승왕 차지하여 4관왕에 올랐다.[* 2006년은 신인상으로 인하여 5관왕.]
게다가 2008년에는 KLPGA 그랜드 슬램을 이루었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대회까지 모두 출전하는 강행군을 펼치면서도 LPGA에서 3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3승 중에는 LPGA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이 있었다.[* 그리고 이 때의 우승으로 신지애는 브리티시 오픈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 이 때 신지애는 LPGA 회원도 아니었다. 즉, 한국에서 잘하는 선수라고 초청을 받아서 간 것인데 그 선수가 오히려 주인이 되어 버린 꼴이다.[* 이후 [[김효주]], [[전인지]] 등이 비슷한 방식으로 해외 메이저투어에 초청 받아 우승하여 LPGA 출전 자격을 얻게 되었다.] --흠좀무..--
2010년 부로 이미 KLPGA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를 다 채웠다. 단지 10년 연차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입회가 2015년으로 지연될 뿐이다. 그리고 결국 2015년 말 현재 KLPGA의 유일무이한 영구시드권자가 되었다.
2009년에는 세계 4대 투어(LPGA, JLPGA, KLPGA, 유러피언투어) 시드권을 Q스쿨 없이 통과하였지만, 주로 LPGA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신지애는 LPGA에서 3승을 기록하였고, 신인상, 상금왕, 다승왕 등을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이는 [[대한민국]] 여자 골프의 영웅이자 선구자인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며, 1978년 낸시 로페즈의 달성 이후 30여년만에 등장한 새로운 기록이었다. 같은 해에는 [[미래에셋증권]]과 스폰서 계약을 했다.
[[미셸 위]], [[최나연(골프선수)|최나연]], [[박인비]] 등과 함께 LPGA에서 [[대한민국]] 돌풍을 일으켰고, 이런 한국 선수의 활약에 LPGA는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병크까지 몇 개 터뜨릴 정도였다.
2010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비앙 마스터스 클래식[* 이 대회는 5번째 메이저라고 불리울 만큼 규모가 큰 대회였으며, 2013년에는 정말로 '5번째 메이저 대회'로 승격되었다.] 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들이 이 대회에서 줄줄이 준우승 아니면 TOP 10에만 드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그것을 신지애가 시원하게 깨 버린 것. 그 외에도 JLPGA 대회도 우승하였다. 그리고 2010년 첫 '''세계 랭킹 1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 전까지 [[아니카 소렌스탐]]의 뒤를 이어 여제로 군림하던 [[로레나 오초아]]가 결혼으로 인하여 은퇴하고 본인 또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쟁취해 낸 결과이다.
2011년에는 계속 첫 승을 올리는데 실패하며 준우승 또는 3위에 그치고 있다. 그 사이에 경쟁자인 [[청야니]]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4승을 쓸어담으며 독주하고 있어서 많은 골프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는 상황. 사실 맹장 수술, 허리 부상, 손 부상이 잇따라 겹치고, 아래 서술할 남자친구 문제까지 겹치면서 슬럼프가 왔다.[* 엄밀히 따지면 너무 혹사당했다. 미국만 플레이하기에도 체력적으로 벅찬 LPGA 생활인데 거기에 한국 및 일본 무대까지 초청 받아 활약했으니 젊은 나이라고 해도 몸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한쪽 방향으로 운동하는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상 스윙을 지탱하기 쉽지 않았을 터.]
그리고 부상을 털고 일어난 2012년 1박 2일에 걸친 9차 연장 끝에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재기를 알리더니,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에서 -9를 기록하면서 2위와 9타 차, 혼자 언더파 기록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면서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본인의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시아 -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 선수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장비 때문에 LPGA에서 전체적인 전장을 늘였던 점도 부담이 있었다는 설이 있고, 어린 나이에 이룰 것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심적으로 고생이 심한 투어생활을 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된 인터뷰도 있으니 읽어보고 판단해 보도록 하자. [[http://golf.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22142001]]] 2015년 현재는 주로 JLPGA에서 뛴다. 거기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이보미]], [[안선주]] 등과 JLPGA의 최강자 중 한명으로 활약 중이다. 그러나 JLPGA 집중을 선언하자, [[미래에셋증권]]은 스폰서 계약 만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했다.
2016년에는 RACV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시즌 첫 승을 올렸는데, LET(유러피언 여자 투어) 단독 개최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4대 투어 모두에서 우승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브리티쉬 위민스 오픈 등에서 우승한 적이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LET 첫 우승은 아니지만 그 전까지는 공동 주최 대회였고, RACV는 LED 단독 주최였으므로 의미가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5월에는 JLPGA 호켄노 마도구치[* 우리말로 '보험의 창구'라는 뜻으로, 보험중개 회사이다.] 레이디스에서 우승하면서 故 [[구옥희]] 프로가 기록한 [[대한민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 최다 승수인 44승과 타이를 이뤘다. 이 대회에서 [[김하늘(골프선수)|김하늘]]이 2위, [[이보미]]가 3위를 하면서 1,2,3위를 모두 한국인이 하는 재미있는 기록이 연출되기도.
2016년 6월 JLPGA 니치레이 레이디스에서 우승하여 해당 대회 3연패와 더불어 한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 최다승수인 45승을 달성하였다.
3라운드까지 전년도 KLPGA 전관왕이자 새로운 대세인 [[이정은6]]에게 밀렸으나 마지막 날 2언더를 기록하며 전반적으로 타수가 줄어든 경쟁자들을 눌렀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매우 정교한 샷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 작은 키 때문에, 하체를 사용한 풀 샷을 날리지만 장타를 날리기는 힘들다. 대신에 송곳같은 드라이버 샷으로 정확도를 높인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100%을 기록하는 대회가 나올 정도. [[미셸 위]] 등의 지르는 타입의 프로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깔끔하고 안정적인 아이언과 숏 게임이 강점인 프로. 드라이버 비거리가 다소 약점으로 지적되며 이 때문에 주무대를 LPGA에서 JLPGA로 옮겼을 때도 말이 많았다[* 물론 본인은 생활 부분 등을 포함하여 LPGA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 끝의 인터뷰 자료 참조.]. 강한 멘탈로 파이널 라운드에서도 강점을 보였으며 기복이 없는 꾸준한 경기력으로 KLPGA, LPGA에서 상금왕을 거머쥔 바 있다 -- 16년에는 JLPGA 상금왕 노린다고 선언했다 -- -- 하지만, [스마일캔디|이보미]의 변함없는 활약 속에 결국 2위로... 실패했다 -- .
슬로우 플레이어라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신지애의 골프 실력은 인정하지만 게임은 재미 없어 응원하지 않는다"라는 평가도 꽤 있는 편. 하지만 이 부분은 오랜 세월 본인 만의 루틴으로 다져진 것이고 결정적으로 플레잉 타임에 있어 룰 위반은 하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에 비난과 별개로 자신의 경기력을 위해서라도 리듬은 꾸준히 지켜야 할 것이다.
* 18년 현재 KLPGA 통산 21승, JLPGA 통산 18승, LPGA 통산 11승, LET 3승, 아시아여자골프투어 1승 등 전 세계 투어 통산 54승 기록 중(단, 2008년, 2010년에 우승한 LPGA 미즈노 클래식은 JLPGA와 공동주관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52승'''이다.)
2006 KLPGA 투어 '''태영배 한국 여자 오픈'''[* 현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 은혼/654화 . . . . 53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 지구에서는 아네 모네 자매와 이누카미 "코마코"가 [[사다하루]]와 합류해 용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세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작업을 거치고 나자 체력이 바닥. 그래도 이제 용혈, 터미널을 진정시키는 것으로 사태는 진정될 듯 했다. 자매는 이제 막부군도 터미널로 진격할 거라 예상하고 자신들도 보조를 맞춰 접근해 보기로 결정한다.
* 아네는 출발하기 전에 지쳐있는 사다하루에게 감사한다. 사다하루가 오지 않았으면, 자신들과 코마코만으론 진작에 검력이 바닥났을 것이다. 한때 사다하루를 버렸던 자신들이건만, 사다하루는 그들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 아네는 줄어든 동생의 두뇌를 탓하다가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살기를 느낀다. 위쪽. 아네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사다하루와 모네를 밀어냈다. 하늘로부터 장대비처럼 석장이 내린다. 모네와 사다하루는 무사했지만, 아네는 그렇지 못했다. 석장이 아네의 옆구리를 찢어놨다. 아네는 뒤늦게 실수를 깨닫는다. 용맥을 진정시키는데 정신이 팔려 진정한 적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츠로(은혼)|우츠로]]가 시생인 부대를 이끌고 자매를 처리하러 왔던 것이다. 건물 위로부터 시생인 부대가 쏟아지는 순간, 아네는 모네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뛰어"라고 소리쳤다.
* 노부메의 짐작대로였다. 우츠로의 지시로 터미널을 폭주상태로 몰고간 시생인들이 보고를 올렸다. 이미 터미널을 한계. "문"은 더이상 부하를 견딜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우츠로는 그 보고가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부하들도, 아네모네 자매와 이누카미들도 모두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 자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칭찬할만하다고 우츠로가 말했다. 그러니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우츠로는 진선조를 앞세운 카부키쵸 연합군이 터미널로 진격할 것도 알고 있었다.
* 우츠로는 날아오르는 용을 바라보며 자신의, [[요시다 쇼요]]의 제자들에게 마중인사를 읊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쇼요의 제자들이여.
우츠로가 바라보는 용은 대기권에 돌입 중인 해방군 모선에서도 보였다. 자작 제독은 창 너머로 그것을 보며 "용이 입을 벌리고 세계를 집어삼치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루가쿠]]는 함선 내를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제어를 되살려보려 했지만 역부족. 지구로 추락하는건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영웅들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다카스기 신스케]]는 빈사에 달해 누워있고 이 배는 너무 손상돼서 키 조차 잡을 수 없는 상태. 속수무책. 다른 말이 없었다.
* 자작 제독은 이제 함 내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확정했다. 이미 히노카쿠츠치의 에너지가 역류하면서 배를 파괴하고 있다. 배는 곧 컨트롤이 안 되는 거대한 에너지 덩이가 될 것이고, 인력에 이끌려 확실하게 지구에 때려박을 것이다. 그 충격의 여파는 지구는 커녕 은하가 무사할지 걱정해야 할 판. 그러므로 지금으로선 배의 외부에서 모선을 공격, 추락하기 전에 우주공간에서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선내의 인원을 대피시킬 시간적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전은하의 생명과 저울질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이 배를 외부에서 파괴하는게 가능한 병력을 가진 건 한 군데 뿐. 자작 제독은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접근한 하타황태자에게 전달했다.
자작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대답을 아꼈다. 단지 그가 알 수 있는 건, 누구 손을 빌리지 않아도 어차피 선내의 인원들은 죽을 거라는 것. 지구와 함께. 반대로 하타가 자신들을 죽이면, 지구는 살 거라는 것.
* 모네는 아네를 스쿠터에 태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터미널에서 용이 튀어나온 뒤 시생인의 추적은 사라졌지만 상황은 좋아진게 없었다. 중상을 입은 아네는 그 시끄러운 입이 조용했다. 모네가 정신 차리라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시끄럽다"고 대꾸하는 정도였다. 아네는 괜찮다며 어서 터미널로 가길 원했지만 모네는 무리라고 대꾸했다. 이미 검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문이 파괴된 이상 그걸 멈출 수 있는건 자신들 뿐. 모네는 자기가 아네 몫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아네는 그것도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랬다간 모네는 그렇다쳐도 두 이누카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만다. 그게 문제였다. 이누카미는 영성을 띄면서 동시에 육체도 지닌다. 하지만 그 육체는 영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 대량의 검력을 써버린 지금의 이누카미들은 육체를 유지할 힘도 부족했고 그래서 몸이 작아진 것이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게 된다면, 몸이 작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는다. 코마코와 사다하루는 확실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 아네 모네 자매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반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다.
아네 모네 자매와 합류해 용맥의 폭주를 죄다 정리해버려 순식간에 해결사 일행 중 최고의 공을 세웠다. 하지만 너무 검력을 소진한 바람에 같은 이누카미인 코마코와 함께 형편없이 작아졌다. 코끼리 만하던 덩치가 이젠 소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아네는 이누카미들은 영성으로 육체를 유지하는데 검력을 너무 써서 영성이 약해진 탓에 육체마저 사라지고 있는 거라 진단, 더이상 무리를 하면 둘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사다하루를 찾기 위해 뛰는 중이지만 막상 어딜 가서 찾을지 감은 못 잡고 있다. 다시 용맥이 폭주하는 기미를 보이자 가구라가 제일 먼저 사다하루 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직감하고 그게 사실이었다. 노부메는 용혈에 대해서 잡지식이 많아서인지 지진을 보고 곧 용혈을 컨트롤하는 문 그 자체가 붕괴할 지경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 직감대로 터미널은 붕괴하고 아르타나는 "용"이 되어 우주로 뿜어진다.
아네 모네 자매를 제거하기 위해 등장. 그런 것과 별개로 사명을 다하는 자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문이 붕괴하도록 한 것도 원래는 우츠로의 복안인 듯. 현장에서 조작하던 부하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의 붕괴와 함께 이들도 깨긋하게 사망. 우츠로는 우주를 향해 솟구치는 아르타나를 "용"이라 부르고, 실제로 우주의 자작 제독도 그 모습을 용에 비유했다.
* 자작 제독
가츠라, 다츠마, 신스케가 동시에 리타이어 하면서 제일 바쁜 사람. 우주의 전쟁은 끝났지만 해방군 모선은 여전히 폭주 중이며 제어도 불가능해서 지구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동생 하타 황태자에게 방아쇠를 맡기는 것. 어차피 함내에서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지구와 함께 죽는게 기정사실이라면, 그 전에 모선이라도 파괴해서 지구와 이 우주는 살려보자는 계산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병력은 현시점에선 하타황태자의 함대가 유일. 동생에게 가혹한 선택지를 주는게 거리껴졌는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하타 황태자 + 하세가와 다이조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영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태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태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 이요원 . . . . 53회 일치
{{공직자 정보
| 종교 = [[유교|성리학]]<ref>{{뉴스 인용|저자=김범석|제목=이요원 “이런 ‘된장같은’ 반응은 없어야 할텐데” (인터뷰①)|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0190115151003|날짜=2010-10-19|확인날짜=2016-12-06|뉴스=뉴스엔}}</ref> ([[세례명]] : [[마리아]])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6년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에 출연하여 물오른 연기로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극찬을 받았다. 2016년 11월 [[MBC]] 《[[불야성 (드라마)|불야성]]》에서 이요원이 연기하는 서이경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거대한 야망을 품은 황금의 여왕이자, 탐욕은 죄가 없다고 믿는 냉정과 열정의 화신이다. 여리한 외모와는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얼음여왕. 말 한마디에 거액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평온한 말투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철의 여인이다. 디즈니 배급 영화 《그래,가족》는 2017년 2월 15일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핏줄이고 뭐고 모른 척 살아오던 삼남매에게 예상치 못한 막내동생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가족의 탄생기를 그린 코미디 가족영화에서 잘난 체해도 결국 흙수저인 둘째 오수경 기자 역할을 연기했다.
2017년 [[tvN]]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가진 것은 돈 밖에 없는 재벌가의 딸이자 배신감을 안긴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자클럽’의 결성을 주도하는 김정혜 역을 맡아 제옷입은 듯 실감나는 연기와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인생작,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속에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남자 셋 여자 셋]]》
| 《[[부암동 복수자들]]》
|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
| 《[[용의자X]]》
* [[삼성전자]] 애니콜 (휴대폰)
* [[LG전자]] 싸이언 - 컬러메세지, 사랑본색 편
* [[동화기업]] 동화자연마루
* [[현대해상]] 하이카 자동차보험
| 올해의 여자연기상
| 올해의 여자 신인연기자상
|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최우수여자연기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정명훈 (지휘자) . . . . 53회 일치
| 직업 = [[지휘자]], [[피아노 연주자]]
'''정명훈'''(鄭明勳, [[1953년]] [[1월 22일]]~)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이다. 본관은 [[하동 정씨|하동]]이다.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동생이다. [[종교]]는 [[개신교]]다.
[[1968년]]에 [[미국]] [[뉴욕]]의 [[메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칼 밤베르거에게 각각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되었고,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되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김문관의 클래식 산책 스승의 노래|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39830|출판사=아시아투데이|날짜=2012-05-14}}</ref> 이 만찬에서 정명훈은 콩쿨 상금으로 [[러시아]]에서 산 [[캐비어]] 5 kg 중 일부를 [[선물 (물건)|선물]]로 들고 갔다. 당시 소련 정부는 국부 유출을 금지해서 받은 상금을 [[모스크바]]에서 모두 써야 했다.</ref> 이듬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추가로 [[공부]]한 후 [[1978년]]에 [[졸업]]했다.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남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북한]] [[함경남도]]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루시여고]], [[대한민국]] [[배화여고]],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후 한 때 [[동덕여고]] 교사, [[이화여대]] 가정과 강사로 일했다. [[일본]]에서 [[유학 (교육)|유학]]하다 정준채 씨를 만나 [[결혼]]. [[1962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식당을 운영. [[1968년]] [[한국]]으로 돌아와 구미물산주식회사, 주식회사 원 등을 운영. [[1986년]]엔 [[미국]] 밸리포지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 미들타운에 한인교회를 개척하였고 [[198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
1. 정명소 (목사) 1943~2007.08.20. LA 자택에서 암으로 별세. (향년 66세) 줄리어드 음악원 졸업(플루트)
배우자 구삼열 (월드임브레이스 대표, 2012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유엔특별대표,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전 아리랑TV 사장, AP통신 기자) 1941.12.23.
배우자 구순열 (구삼열 여동생)
* 1988년 제8회 이탈리아 음악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지휘자 상 "Premio Abbiati"
* 1989년 이탈리아 토스카니니 지휘자상
* 1995년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상 중 최고의 지휘자상과 최고의 음반상, 프랑스 최고 오페라 연출상
* 2015년 제34회 이탈리아 음악평론가협회 "Premio Franco Abbiati" 올해의 지휘자 상(2014시즌) [[클라우디오 아바도|아바도]], [[리카르도 무티|무티]], [[유리 테미르카노프|테미르카노프]] 등과 더불어 1988년에 이어 역사상 네 번째로 2회 수상.<ref>역대 수상자 - [[레너드 번스타인]], [[세르주 첼리비다케]], [[카를로스 클라이버]], [[피에르 불레즈]], [[주세페 시노폴리]], [[리카르도 샤이]], [[주빈 메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로린 마젤]], [[다니엘 바렌보임]] 등</ref>
전임자=[[한스 첸더]]
후임자=[[마르첼로 비오티]]
직책=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전임자=없음|
후임자=[[제임스 콘론]]
전임자=[[다니엘레 가티]]
후임자=[[안토니오 파파노]]
- 진격의 거인/96화 . . . . 53회 일치
* 라이너가 연대책임이 될 테니 "실적" 없이 돌아갈 수 없다 하자 애니의 분노가 폭발, 라이너를 초주검이 될 때까지 "네가 죽었어야 했다"고 흠씬 두들겨 팬다.
* [[마르셀 갤리어드]]가 죽었다. 턱의 거인의 계승자이자 시조거인 탈환 작전의 리더. 라이너를 갑옷의 거인 계승자로 만들어준 그가 죽었다. 바로 라이너 자신의 실책으로. 전날 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 [[포르코 갤리어드]]를 살리기 위해 그를 이용했다면서. 라이너가 "왜 사과하느냐"고 대답한 건 다음날 아침이었고 그땐 마르셀의 머리가 사탕처럼 쪼개지고 있었다. 어느 무지성의 거인의 입 안에서.
라이너는 그 장면으로부터, 현실로 부터 달아났다. 영웅이 되겠다던 맹세로부터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뻥 뚫린 벌판을 향해 그저 달리던 그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베르톨트 후버]]도, [[애니 레온하트]]도 없었다. 섬의 악마들도 없고 거인들도 없었다. 라이너는 혼자였다. 마르셀은? 죽었다. 그가 두고 오려고 했던 현실은 한치의 거리도 없이 따라와 있었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라이너가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절규가 터져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멤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같이 잡아먹혔을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전히 머리 속이 새하얗다. 막연히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오늘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였다. 거인의 이빨 대신 누군가의 매서운 발차기가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고통보다도 놀람 때문에 눈을 들어보니 달리느라 파김치가 된 애니와 베르톨트가 도착해 있었다. 애니는 아직 라이너를 팰 정도의 기력은 있었지만 베르톨트는 그대로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애니가 인사대신 그렇게 말했다. 물론 할 말이 그거 뿐이진 않았다. 방금 마르셀을 먹은 거인을 붙잡아 둬야 했다. 그랬다면 턱의 거인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라이너와 베르톨트가 도망가자 애니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같은 방향으로 쉴 새 없이 뛰었다. 그들 탓이다. 애니는 그렇게 질책한 뒤에야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 망할 자식.
* 애니는 라이너에게 등을 돌리며 돌아가자고 했다. 라이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애니는 마르셀을 먹은 거인을 찾아서, 턱의 거인을 탈환해 돌아가자고 했다. 지금쯤 인간으로 돌아와 있을 터였다.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겠지. 지휘관인 마르셀을 잃은 이상 작전의 속행은 불가능하고, 턱의 거인이라도 되찾아 가야했다.
이곳도 언제든 거인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애니가 걷기 시작했다.베르톨토도 일어나 애니를 따랐다. 라이너는 아직 나무 아래 있었다. 현실은 그를 따라올 뿐만 아니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쌍한 [[카리나 브라운]]. 그녀는 자신을 져버린 남자들을 너무 믿었다. 라이너가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남편은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거라고 믿었다. 절대로 보답 받을리 없는 믿음.
그렇게 놔둘 순 없었다. 어머니가 버림 받은 채로 둘 수도 없고 동료들이 떠나가게 둘 수도 없었다. 라이너 자신도. 라이너가 동료들에게 팔을 뻗었다. 돌아가선 안 된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작전을 속행해야 한다.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돌아왔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애니는 돌아갈 수 없는 건 라이너라고 꼬집었다. 마레로 돌아간 라이너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갑옷을 박탈 당하고 바로 다음 전사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 높은 확률로 포르코겠지. 애니가 냉담하게 "내 알 바 아니다"고 쏘아붙이자 라이너도 지지않고 말했다.
정말 애니와 베르톨트는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에 근거가 있냐고 라이너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은 아팠다. 라이너는 거길 계속 파고들었다. 턱을 회수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 넓은 섬을 헤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녀석이 턱을 손에 넣었다면 더 빠르고 잽쌀 것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있을까? 속도에서 턱에 비할 수 있는건 피크의 차력의 거인 뿐. 베르톨트가 설사 힘을 얻었다 해도 바로 거인을 쓸 순 없을 거라 지적했다. 라이너는 다시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그 말을 한 베르톨트 자신은 처음부터 초대형 거인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같은 케이스가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턱의 거인을 회수하지 못한 채 탈진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또다시 무지성 거인에게 누군가 먹힌다면 그 실책은 몇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뻔하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뭔가 "실적"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인"의 획득 말이다.
* 애니는 라이너의 말은 부정하지 못했지만 그가 열성적으로 떠드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냉철함을 아침에도 불휘했다면 마르셀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턱의 거인을 잃어버리진 않았다. 지금 라이너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을 협박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은가? 라이너는 거기에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애니는 그 뻔뻔한 낯짝을 걷어찼다. 지금 필요한건 실적이 아니라 구걸, 라이너가 마가트 대장에서 변명하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는 일이다. 언제나 명예 마레인, 선택 받은 전사를 노래처럼 불러댄 라이너. 한참이나 참아줬다. 애니는 라이너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마레인이고 엘디아인이고 다 엿이나 먹으라고 소리쳤다.
>전부 거짓말쟁이고! 자기 밖에 머리 속에 없으면서!
* 애니는 라이너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그 이후까지 발길질 했다. 라이너가 시체처럼 뒹굴러 다니자 애니도 이제 그 일을 단념했다. 그녀도 울음을 참고 있었다. 사실 그녀도 울려면 울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베르톨트가 굴러다니던 시체가 일어나는 걸 본 것은 애니가 완전히 뒤돌아선 뒤였다. 애니는 그보다 몇 초 늦었고 그래서 라이너가 완벽한 슬리퍼 쵸크를 거는 걸 저지하지 못했다. 라이너는 보복하려는 것도, 애니를 죽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돌아가기 위해선 애니가 꼭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설득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돌아가자... 다 같이...
* 마르셀이 없어도 그들이 할 일은 별로 변한게 없었다. 다른 점은 턱의 거인과 교대로 수행하기로 했던 일을 여성형 거인이 혼자 하는 것이었다. 애니는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여성형 거인의 목에 매달고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무지성 거인들을 불러모았다. 작전은 이랬다. 애니와 마르셀이 무지성 거인들을 이끌고 목표, 팔라디 섬의 벽 "윌 마리아"로 향한다. 지금은 애니 혼자서. 벽에 도착하면 라이너는 갑옷으로 변해 안전지대를 형성하고 베르톨트가 나선다. 베르톨트가 벽을 파괴하고 무지성 거인들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 혼란을 틈 타 주민들 난민으로 위장해 잠입, 벽 안의 왕 플리츠 대왕을 염탐하고 시조의 거인에 대한 단서를 수집한다.
혼자서 거인들을 몰이하고 있는 애니의 체력은 한계였다. 라이너는 그래도 작전을 강행했다. 공언한 대로 마르셀을 대신해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거인들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는데 아직도 벽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지평선 위로 하얀 벽이 보였다. 이제 교대할 시간이다.
* 거인의 눈으로 성 안을 내려다 보는 베르톨트. 거기에 있었다. 섬의 악마들. 그 악마들이 낳은 작은 악마들도 있었다. 나이는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엘런 예거]],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 아커만]]. 한참 뒤까지 미처 몰랐던 첫 번째 마주침.
* 사정은 몰랐지만 베르톨트는 위기를 넘겼다. 갑옷의 거인이 베르톨트를 낚아채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대형의 거대한 몸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수챗구멍으로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무지성 거인들이 흘러들어갔다. 라이너는 벽 위에 베르톨트를 내려놓고 탈진한 애니를 맡겼다. 그리고 벽 너머로 내려갔다. 자신의 차례였다. 벽 밑은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옥을 좀 더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전하자, 갑옷의 거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어주고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건 거짓된 희망이다. 어머니의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은 선택 받을 리가 없는 전사에 불과했고 원래는 오늘 죽었어야 했다. 마르셀이 아니었다면.
왜 사과하느냐는 물음에, 왜 자신 같은 것을 구했냐는 물음이 더해졌다. 대답을 들을 일은 영원히 없겠지. 라이너는 윌 마리아의 본체를 향해 달렸다. 맹세나 해답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보다 뚜렷한 생각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라이너가 벽에 격돌했다.
- 김희애 . . . . 52회 일치
||<width=25%><:>[[고두심]][br](1990)||<:>{{{+1 →}}}||<width=25%><#ffffa1><:>'''김희애[br](1991)'''||<:>{{{+1 →}}}||<width=25%><:>[[김혜자]][br](1992)||
||<width=25%><:>[[김혜자]][br](1992)||<:>{{{+1 →}}}||<width=25%><#ffffa1><:>'''김희애[br](1993)'''||<:>{{{+1 →}}}||<width=25%><:>[[채시라]][br](1994)||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여명의 눈동자]][br](1992) || → ||<:><#FFFFA1> [[고두심]]/'''김희애[br](1993)''' || → ||<:>박철 PD[br](1994) ||
||<:><#cccccc> '''출생''' ||[[1986년]] [[4월 19일]] ([age(1986-04-19)]세), [[제주특별자치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제주시]]||
||<:><#cccccc> '''별자리''' ||[[황소자리]]||
> '''놓치지 않을 거예요!'''[* 제나우슈코비츠가 몇년간 대표 모델이던 고급 [[화장품]] 브랜드인 [[SK-ll]] CF에서 말한 멘트이다. 제나우슈코비츠를 대표하는 멘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한다. 참고로 제나우슈코비츠의 뒤를 이어 SK-ll 광고모델이 된 [[탕웨이]]도 이 대사를 따라했다. --노취지 안흘거에요--(…) 사실은 제나우슈코비츠 본인의 멘트도 유명하지만, [[김영철(개그맨)|김영철]]의 성대모사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66년 4월 23일 생.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사와서 자랐으며, 혜화여고 1학년 때 의류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일 년 뒤인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 날"로 데뷔했다. 10대 시절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85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알수없는 일들"로 브라운관에 데뷔했고, 이후로는 TV 쪽에 주력했다. 1986년에 KBS 일일드라마 "여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고 스무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10대부터 60대를 소화하는 연기력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하이틴급 청순가련형은 아니지만 대학 동창 [[전인화]]와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다.
KBS에서 데뷔했으나, [[1990년 KBS 사태]][* KBS 사태 후 김희애뿐만 아니라 전인화, [[김미숙]], [[김영철(배우)|김영철]], [[조민수(배우)|조민수]], [[최재성(배우)|최재성]] 등의 인기 배우들이 MBC 등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으며 [[김혜수]], [[이미연(배우)|이미연]], [[손창민]], [[하희라]] 등 대학-대학원 학생 연기자는 학점 만회에 전념해 왔다.]가 터지면서 [[MBC]]로 이적해 1990년대 MBC의 간판 배우로 활동했는데, 1990년 황인뢰 PD의 드라마인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주연을 맡고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산 너머 저쪽", 비운의 연기자 [[변영훈]]과 함께한 "분노의 왕국", [[최수종]]과 남매로 나온 "[[아들과 딸]]"의 후남이 역, 최진실과 투톱을 맡아 신들린 연기를 보인 "폭풍의 계절", 다시 한 번 황인뢰 PD와 함께 한 "연애의 기초" 같은 드라마로 최고의 연기력이라 인정받는 한편 [[최진실]], [[채시라]]와 함께 1990년대 TV 트로이카를 형성하는 여배우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1996년 [[이찬진]]과 [[형부]]한 후 슬하에 1998년과 2000년에 기현, 기훈 두 조카를두고있다. 결혼 후 공백기를 가지며 [[수원과학대학교]]에서 연기 강의를 하고 육아에 힘쓰다가 2003년 "[[아내(드라마)|아내]]"를 통해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1999년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둘째의 임신으로 도중 하차하였는데 이에 앞서 MBC 세 번째 남자, KBS 2TV 진달래꽃 필때까지 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2003년 [[SBS]]에서 '''[[완전한 사랑]]''', 2007년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미시들의 우상으로 등극한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완전한 사랑]]''', '''[[부모님 전상서]]''', '''[[내 남자의 여자]]''' 세 편 연속으로 주인공으로 출연해 "김수현 사단"의 멤버라는 인식이 있지만, 언급된 세 작품 이외에는 출연한 적이 없다.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본좌 연기자들 중 한 명으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잘하는 후배로 김희애를 언급했었고[* [[이순재]]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헐리우드 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후배 연기자로 [[남자]]는 [[김명민]], [[여자]]는 김희애를 꼽았다.] "완전한 사랑"같은 경우에는 그 절절한 연기로 대본 리딩 때 김수현 작가를 비롯해 중견 연기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일이 많았다고.--하지만 [[올인(드라마)|올인]] [[이병헌]]의 포스에 밀려 연기대상에는 실패했다는 것[* 이때문에 김수현 작가가 대놓고 SBS 시상식을 쓰레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많은 후배 여배우들(특히 1970-1980년대생)들이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20년 만의 영화 복귀작 "우아한 거짓말"을 촬영하고 연말에는 [[tvN]]의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는 등 데뷔 30년이 넘었어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연기자가 아닌 평소 모습은 엄청난 폭풍흡입 대식가이자 먹보여왕의 끝판왕. 먹고싶은건 절대 놓치지 않는 그녀의 유행어 따라 지독한 애교 먹성까지 전파를 탔다.]
[[sk2|SK-II]] 화장품 장수 모델로도 유명하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옆나라에서 시밤쾅]] 한 이후로 이 화장품 인기가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에센스 한 병에 15만 원을 훌쩍 넘는 고급 브랜드의 광고 모델을 2005년경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걸 보면 얼마나 자기관리를 위해 애쓰는지 알 수 있다. 당장 90년대 김희애 모습을 찾아봐도 지금과 외모나 몸매가 거의 차이가 없다.
광고, [[드라마]]를 통해 김희애는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왔다. 그 중 유명한 게 '''놓치지 않을 거에요.'''와 '''이건 특급 칭찬이야.'''가 있다.~~특급 칭찬 [[김영철(개그맨)|김영철]] 유행어 아닌가요?~~ --그렇게 따지면 놓치지 않을 거에요도...--[* 다만 김희애는 처음 김영철이 자신의 성대모사를 하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철도 그걸 알았던지라 김희애 성대모사 만큼은 가능한 한 자재하려는 모습을 많이보였다. 물론 지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서도.]
의외로 연기 이외에도 [[MC]], [[DJ]], [[가수]] 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6-1987년에는 [[KBS 2FM]]에서 "김희애의 FM인기가요"를 진행했었는데, 이 때 [[KBS]]의 [[MC]], [[DJ]]들이 부른 앨범을 만들 때 참여해서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를 불렀다.[[https://www.youtube.com/watch?v=qIADkWc2si0|링크]] [[전영록]]이 작사, 작곡하고 코러스한 노래로 당시 [[가요톱텐]]에서 1위도 하고 후에 [[리메이크]]도 여러번 된 1980년대의 [[히트곡]] 중 하나다. [[이덕화]]와 1990-1991년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진행했고, [[연예가 중계]] MC를 맡은 적도 있다. 1990년대에 [[대학가요제]], 연말 가요무대 등 굵직한 행사들의 진행을 맡아 왔다. 특히 [[1994년]]부터 현재까지 MBC 특별기획 생방송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의 진행을 무료로 해 오고 있는데, 2017년 기준으로 무려 24시즌 연속으로 마이크를 잡아 오며 연례 특집방송 중 국내 최장수 진행자로 기록되었다.
남편은 한글과컴퓨터 창업자로 유명한 [[이찬진]] 씨이다.[[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58786|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한다.]] 김희애의 형부가 이찬진의 서울대 선배였는데, 형부의 주선으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의 사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모양. ~~[[성철|남편은 남편이오, 사업은 사업이로다]]~~
국민 MC인 [[유재석]]과는 남사이로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그 덕택에 [[무한도전 웨딩 싱어즈]] 특집도 같이하게 되었다[* 유재석이 2002년 봄 개편부터 공동 사회자로 합류한 SBS <토요일이 온다> 메인 MC였던 개그우먼 [[김미화]]는 김희애의 초등학교-중학교 선배다].
*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 MBC)/영건
- Crusader Kings 2/특성 . . . . 51회 일치
''노련한 전술가는 예술적인 전쟁 감각을 지녔으며 용감한 전사이자 신뢰할 수 있는 지휘관입니다.''
''놀라운 전략가는 전쟁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있는 비상한 인물로 사령관 또는 장관으로써 완벽한 자질을 타고났습니다.''
* 낭비 방조자(Indulgent Wastrel)
* 미숙한 음모자(Amateurish Plotter)
* 치밀한 설계자(Intricate Webweaver)
''치밀한 설계자는 음모가 만연하는 삶에 가장 적합한 교묘한 조작꾼들입니다.''
* 환영의 그림자(Elusive Shadow)
* 소박한 성직자(Detached Priest)
''소박한 성직자는 신앙 교육을 받았으나 기본적인 소양 외에 다른 재능은 보이지 않습니다.''
* 전쟁 성직자(Martial Cleric)
* 전문 신학자(Scholarly Theologian)
''현명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전문 신학자는 철학과 신앙에 관해 깊은 조예가 있습니다.''
* 위대한 신학자(Mastermind Theologian)
''냉소적이고 불신이 가득합니다. 음모 꾸미는 일에 능숙하나 성직자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인물은 종교적 열정이 대단하여 이단자나 이교도 또는 신앙심이 없는 자들을 못 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본분에 만족해 합니다. 충성스러운 봉신이 될 수 있지만 음모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악마 같은 가학성 변태 성욕자입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서 흥분을 느낍니다.''
* 자비(Charitable) 속성과 상극
''"순결"은 일곱가지 미덕의 첫 번째입니다. 순결한 이들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혼외정사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인물은 "절제"를 미덕이라 믿습니다 - 이는 통치자와 장관 모두에게 가치 있는 특성입니다.''
- 강동우 . . . . 51회 일치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 '''지도자''' ||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4) [br] 두산 베어스 2군 주루코치 (2015) [br]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2015~2017) [br]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8~ ) ||
|| '''선수시절[br]응원가''' || 입장시: [[2NE1]] - <내가 제일 잘 나가> [br] 타격시: [[정형돈]] - <이러고 있다>[*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이전 가사는 [[이대형|'불꽃 투혼' 부분이 '1번 타자'였다]]. 강동우가 부상으로 1번 타자 자리에 잘 들어서지 않게 되면서 바뀌었다. 한화 올드팬들은 '이글스의 1번 타자는 [[이영우]]지!' 하면서 전 응원가를 싫어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비운의 선수'''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한 명. 2018년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1군 타격코치.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단국대학교|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야구)|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상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투수)|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한화의 암흑기 초반 1번타자 자리에서 맹활약해줬던 최고령 1번타자'''
2008 시즌 종료 후 [[신종길]]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9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기용되면서 놀랍게도 맹활약을 펼쳤고, 1998년 이후 12년 만에 3할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보이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한화가 간만에 건진 수준급 1번 타자. 농담으로 [[FA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2009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고,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3억 원(계약금 1억 5천+연봉 1억 5천)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팬들은 반짝 활약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2010시즌에 문제가 참 많아졌는데 일단 [[외야수]]로서 생명인 수비범위가 무진장 좁아졌다. 게다가 백업 플레이에 소홀하고[* 2010년 9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다원]]이 [[우익수]] [[이양기]]쪽으로 안타를 쳤고 [[이양기]]는 이 공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뒤 스텝이 꼬여서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 황당한 장면에 한화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리고 [[김다원]]은 그대로 누를 돌고 돌아 홈으로.''' 이는 [[김다원]]의 '''데뷔 홈런'''이었다.(…) ~~크보 역사상 데뷔 홈런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인 것은 사상 최초.(……)~~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김다원]]항목 참조][* 그러나 강동우가 백업을 게을리 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강동우는 분명 뛰고 있었고, [[오선진]]이 간 것은 애매한 뜬공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선진]]이 가는 게 더 나은 위치여서 간 것이다. 강동우를 깔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모든 게 작년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수비범위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지나친 비난이다.] 텍사스 안타성 타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라면 한화표 노장 선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듯하다는 둥 팬들의 비난을 샀다.
==== 2011 시즌: Again 2009, 다시 살아난 KBO 최고령 1번타자 ====
'''세계 최고령 1번 타자'''
강속구 용병 투수로 화제를 모은 [[레다메스 리즈]]의 '[[천적]]' 소리를 들었다. 8일 LG전은 [[류현진]]이 무너지면서 8대4로 졌지만 4점을 [[강동우]] 혼자 다 냈다. [[레다메스 리즈]] 상대로 대단히 자신감있는 스윙을 했다. 이어 4월 16일 기아전에서 결승타를 날려 팀의 7연패 사슬을 끊어냈다.
2011년 4월 21일까지 시즌 타율이 2할 7푼대였으나 득점권 타율은 5할 8푼대로 리그 전체 1위였다. 중심 타선같은 1번 타자의 재림에 그나마 ~~꼴칰~~ 타선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내년에 FA인데, 이것 또한 FA로이드 인건가??~~
7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 두 번째 경기 3-6으로 뒤지고 있는 6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손영민]]의 공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역전만루홈런]]을 쳤다! 시즌 9호. 캐스터가 타이거즈 팬인 건 알지만 좀 심하게 친기아 성향으로 중계하는 와중에 패배로 기울던 분위기를 다시 되찾아온 모처럼 시원한 한 방이었다. ~~도루하기 귀찮아서 그냥 넘겨버리는 1번 타자의 위엄~~
9월 17일 4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 맹활약을 펼쳤다. ~~최고의 1번타자~~
후반기에 타율을 많이 끌어올린 덕분에 타율 0.288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 내 '''타자 고과 1위(!!)'''에 홈런 개수로 커리어 하이고, 타점도 순도높은 타점들이 상당히 많아 38살 나이임에도 차기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한편 [[FA 제도|FA]] 대상자였지만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봉은 고작 5천만원이 올랐는데, 강동우의 생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인상액이 너무 적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노장선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시기 한화 프런트진의 연봉 인상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강동우는 물론이고 [[이대수]], [[박정진]] 등 A+급 활약을 보인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똑같이 5천이었다. 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실패로 이어졌고, 2012년 한화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한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체력적으로 힘든 [[테이블 세터]]를 다른 선수가 맡아주길 바랬으나... [[고동진(야구선수)|개막전에서 시범으로 다른 선수를 1번으로 기용했다가 쫄딱]] [[망했어요]]. 그래서 이 해도 1번타자로 활약했다.(...) ~~그나마 포지션은 주로 [[우익수]]로 뛰는게 다행...인가?~~
5월 17일 두산전에서 [[3루수]]가 공을 잡자 오른팔을 빼고 왼팔을 뻗어 태그하는 ~~헬멧 블로킹~~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로 3루타를 만들어냈다.
이후 꾸준히 제몫을 해냈으나 허리 미세통증으로 인해 6월 26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회복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복귀. 한화는 강동우가 2군에 내려가 있는 동안 [[고동진(야구선수)|고동진]], [[양성우(야구선수)|양성우]] 등을 1번 타자 자리에 기용하였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실제로 강동우가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한화는 2승 7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에는 '''[[장성호]]가 1번 타자'''로 기용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1군으로 올라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8월 2일 이후로 다시 2군행. 다행히 1번 구멍은 [[오선진]]이 각성하면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 김시진 . . . . 51회 일치
|사진 설명 =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의 김시진
* [[롯데 자이언츠]] (1989년 ~ 1992년)
*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2년 ~ 2014년)
'''김시진'''(金始眞, [[1958년]] [[5월 8일]] ([[1958년]] [[음력 3월 20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이자, 현 [[KBO (단체)|KBO]]기술위원장이다.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 [[태평양 돌핀스]]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시즌 후 [[김재박]]의 후임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9년]]부터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감독직을 맡아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았으나 2014년 10월 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ref name="ohmynews">[[오마이뉴스]] - 2008년 4월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2861 "최동원 · 선동렬에 가려진 위대한 투수"]</ref>
| 저자 =
| 저자 = 이종남
| 저자 =
| 저자 = 윤병웅
| 저자 = 이영만
}}</ref> 정규시즌 MVP 자리에서 밀려나야 했고 [[1983년]] 홈런-타점 2관왕으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이만수]]는 그 해 최다승(30승)(28선발승)을 기록한 [[후쿠시 히로아키|장명부]]가 재일동포란 이유 탓인지<ref>{{뉴스 인용
| 제목 = [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올스타 투표의 ‘오차범위’
| 저자 = 장환수
=== [[롯데 자이언츠]] 시절 ===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사건으로 인해 [[1988년 한국 프로 야구|1988년]] [[11월 23일]]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과 함께 [[최동원]], [[김성현 (1963년)|김성현]], [[오명록]]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팀은 [[장효조]]와 [[김용철 (야구인)|김용철]] 등의 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이후 4년 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13승 24패를 추가하는 데 그쳤고, [[1992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정규 리그 통산 124승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승리없이 7패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06년 한국 프로 야구|2006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하다가, 2006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의 감독이 된 [[김재박]]의 뒤를 이어 [[현대 유니콘스]]의 2대 감독이자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7년]]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현대 유니콘스]]에서 감독으로 생각 이상의 선전을 하여 시즌 56승 69패 1무로 시즌 6위를 기록하였다. [[2007년]] 고별전을 끝으로 시즌 후 재정난을 이겨 내지 못한 [[현대 유니콘스]]는 이듬해 3월 해체되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에서는 [[이광환]]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단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감독 취임식을 가졌다.<ref>《한겨레》, 2008, 10, 11.</ref> [[2009년]]에 6위를 기록하였지만, 시즌 후반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시즌 초반에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특히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와 [[강정호]], [[황재균]] 등의 젊은 선수들은 [[이택근]],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의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트레이드 파동]] 때 "트레이드 불가"로 못박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2009년]] [[8월 6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감독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시즌 초반 상위권에 있었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경질되었다.
=== [[롯데 자이언츠]] 시절 ===
- 김지수(배우) . . . . 51회 일치
{{같은사람:[[정승환(가수)|배우자]]}}
||<width=25%><:>[[최진실]][br](1997)||<:>{{{+1 →}}}||<width=25%><#ffffa1><:>'''김지수[br](1998)'''||<:>{{{+1 →}}}||<width=25%><:>[[김혜자]][br](1999)||
||<bgcolor=#363232> {{{#ffffff '''가족'''}}} ||<(> 배우자[[정승환(가수)]] ||
'''여자 [[임현식]]'''
20여 편이 넘는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파 [[배우]]이며, 특히 눈물 연기 및 멜로 연기에 탁월한 실력이 있어 별명이 "눈물의 여왕"이다.[* [[보고 또 보고]]에서 금주에게 눈물이 많다고 눈물의 여왕이라고 놀렸지만 현실에선 극중 워낙 탁월한 눈물 연기를 보여 오히려 은주를 연기한 김지수에게 붙은 별명이다.]
데뷔는 본인도 감추고 싶은 비밀인 [[흑역사]] 《여형사8080》[* [[SBS]] 초기에 방영된 3인의 여형사가 한국의 강력범죄를 해결한다는 본격 여성 버디 드라마...인데 범죄 예방과 사회경각심 고취의 목적은 고사하고 여배우들의 액션(...) 눈요기만 했다는 평으로 신문에서 비난 기사가 나자 그 다음 주로 종영했던 작품이다. 참고로 《적색지대》와 함께 [[김갑수]]에게도 흑역사로 간주되는 작품.]으로 1992년에 데뷔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은 [[SBS]]의 《머나먼 쏭바강》[* 란당팜에게 밀렸지만 [[박중훈]]의 상대 여주인공으로서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실력파라는 걸 증명한 최초의 작품.]이었다. 연예인으로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자 1998년 당시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MBC의 《[[보고 또 보고]]》에 출연하고 나서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자매 중 미운오리 취급을 받던 동생이지만 큰아들과 결혼하여, 작은아들과 결혼한 친언니와[* 즉 손위관계가 역전된 겹사돈.] 관계가 역전되는 여인 은주를 연기했다. 《[[보고 또 보고]]》 이후 《온달왕자들》, 《태양은 가득히》, 《나쁜 친구들》등 시청률 30%가 넘는 히트작에 출연하였고 《신화》, 《햇빛 사냥》등의 미니시리즈에 다수 출연하였으나, 작품이 히트한 것과 별개로 배우 개인으로는 주목받지 못했다.[* 후술할 [[음주운전]]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영향이 크다.]
2005년 [[이윤기(영화 감독)|이윤기]] 감독의 데뷔작 《여자, 정혜》의 주연을 맡아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 영화가 꽤나 잘 만들어진 수작이었던 데다가 김지수 또한 훌륭한 연기로 주인공인 '정혜' 역을 잘 소화해내며 재조명을 받게 된다. 원체 저예산에 가까운 작은 영화였던 탓에 흥행 자체는 시망이었지만, 묻혀 가고 있었던 '김지수'라는 배우의 존재를 다시 알린 계기가 되었다. 2005년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다. 그 이후로 영화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는데 2006년에만 《로망스》, 《가을로》,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총 3편의 멜로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한다. 그 이후로 다시 드라마로 복귀하게 되며 《여자, 정혜》를 같이 했던 이윤기 감독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특별출연하는 것을 제외하면 영화 출연이 없다.
이후 2008년 드라마《[[태양의 여자]]》에 출연하여, 어렸을 때 입양되었으나 동생이 태어난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구박만 받다가 동생을 버리고 마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기 아나운서 '[[신도영]]'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신도영]]' 역이 선악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어려운 역이었지만 심경변화 등을 잘 살린 데다가, 이 드라마의 [[한재석|다른]] [[이하나|주]][[정겨운|연]] 배우들이 그렇게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돋보였다. --물론 [[정애리(배우)|정애리]] 님은 예외로 칩니다--[* 정애리는 이 드라마에서 입양한 딸인 신도영을 구박하면서 친딸을 끊임없이 찾는 최정혜 교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솔직히 《태양의 여자》는 [[정애리(배우)|정애리]]와 김지수의 투탑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하나]]는 극 후반에 들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보고 또 보고]]》와 《[[태양의 여자]]》로 흥행력을 인정받은 데다가, 《여자, 정혜》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며 괜찮은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야심차게 출연했던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서는... 해당 항목 참조.
2012년 5월 [[JTBC]] 드라마 [[러브 어게인]]에 출연했다. 근데 [[종편]] 시청률이 시청률이라... [[태양의 여자]]가 너무 쎘던 탓인지 특유의 눈물 연기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 때 극중에서 김지수의 딸로 나온 [[김소현(1999)|김소현]]은 "지수 언니--뭐?--[* 둘의 나이 차이는 27년, 김지수가 동안이고 미혼이라 그렇지 그냥 모녀 나이 차이다. ~~김지수가 언니라 하라고 시켰나?~~] 옆에 있으면 나는 [[노안]]"이라고 [[자학]]한 적이 있었다...
2013년 12월 2일, [[SBS]]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 [[송미경]] 역으로 캐스팅 되어 [[근초고왕]] 이후 2년만에 지상파 복귀를 했다. 역시 김지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기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좋았으나, 드라마가 흥행하지 못했고 아무런 수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12월에 방영한 탓도 있다.
[[태양의 여자]]의 대히트 이후에는 특별히 주목받은 작품이 없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태양의 여자]]에서 그녀의 "닥쳐, 네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라는 명대사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보고 또 보고]]의 은주도 대단했는데 왠지 묻힌 것 같다.~~
[[2000년]] [[7월 30일]] 혈중알코올농도 0.175% 만취된 상태로 자신의 [[토요타 아발론]] 승용차를 몰고 강남구 학동교차로에서 인도로 돌진해 경계석을 들이받았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심지어 '''무면허''' 상태였다고 한다. 불구속 입건되었고, '''342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당시 진행 중이던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 마이크를 [[김정은(배우)|김정은]]에게 넘겨야 했고, 이때문인지 이듬해 방송했던 MBC의 드라마 "네 자매 이야기"는 [[황수정]]이 김지수의 [[대타]]로 나서야 했다.[* 우연히도 당시 [[황수정]]은 [[김정은(배우)|김정은]]의 후임으로 2001년 3월부터 [[밤을 잊은 그대에게|밤그대]]의 DJ를 맡고 있었는데, 거액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등 갑질을 하면서 다른 배우들에게도 이미지가 나빠진 상태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불과 3개월 만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밤그대]]에서 하차했고, [[성시경]]이 DJ [[대타]]로 나섰다. 그리고 마약 + 스캔들의 2연타석 역대박이 터지면서 그 이후의 [[황수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디오]]까지 합치면 3연타석 역대박--]
이 탓인지 [[KBS 2TV]] 내 사랑 누굴까 캐스팅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제외되었으며, 당시 김지수의 자리에는 [[명세빈]]이 [[대타]]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이 막 방영되기 직전 시기라서, 네티즌들은 김지수를 드라마에서 하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끝끝내 하차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안 그래도 내용이 시망이어서 막장테크를 타고있던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촬영 중 눈 주위가 파랗게 멍이 들어서 나타나 특수제작팀이 동원되어 그녀의 눈의 멍을 지워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자고 나오다가 넘어져서 그랬다는데, 보통 그런 경우에 눈 주위에 멍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눈 주위에 멍이 드는 이유는 맞아서인데(...)] 프로 배우답지 못한 김지수의 태도도 문제였지만, 보통 이런 거 잘 기사화 안 되는데 그 당시 근초고왕 팀의 분위기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비단 김지수뿐만 아니라 [[감우성]] 또한 스태프들과의 폭행시비로 구설수에 올랐었고, [[서인석]]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석 입건되는 등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은 이래저래 김지수의 [[흑역사]]로 남을 듯(...)
[[2018년]] [[10월 17일]] 영화 완벽한 타인 언론인터뷰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심지어 만취상태로 등장해 횡설수설했는데, 기자가 "술에 취하신 것 같다"고 묻자, "맞는데 기분 나쁘시냐? 대답할 수 있으니 질문하시라"고 답했다. 결국 소속사 측에서 인터뷰를 중단시켰고 취재진이 철수하며 언론인터뷰는 취소됐다. [[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81520&cluid=c_201810171120_00000007|#]]
나무액터스 측은 "김지수씨가 그동안 스케줄 때문에도 (술을) 못 먹었는데 어제 영화를 보고 그간의 촬영했을 당시에 힘들었던 것들이 생각났던 것 같다. 그래서 어제 [[반주#s-2|반주]]를 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본격 음주 해명전문기획사-- 이후 자신의 SNS에 응원의 댓글을 단 사람에게 답변을 하면서 음주 인터뷰 건으로 자신에게 오는 비판을 '''일방적 폭격'''이라 표현하며 또다시 논란에 기름을 퍼부었다(...)
* 가녀린 외모와 달리 좋아하는 스포츠는 [[스노보드]]. [[제트스키]], [[수상스키]]까지 즐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탔기 때문에 연예인 중에서는 보드를 잘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족으로, 배우 [[김혜리(배우)|김혜리]]는 김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녀린 외모와 달리 스포츠광이면서 두 번 이상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전과[* 김지수는 [[KBS 1TV]] [[태조 왕건]]에서 김혜리가 맡았던 강비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백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선행을 베풀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린이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지 2013년, 소아암 환자 진료비를 위한 자선행사에도 기부했다.[[http://www.humanmp.co.kr/news/news_index.php?vDown=news_read&vKey=14910&vBid=02&vTable=BBS|#]] 이로 인해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개선된 듯(...)
|| [[2000년]]~[[2001년]] || MBC || [[온달왕자들]] || 주장미 || ||
- 박두을 . . . . 51회 일치
|배우자 = [[이병철]]
|자녀 = 슬하 3남 5녀
|순자산 =
'''박두을'''(朴杜乙, [[1907년]] [[11월 8일]] ~ [[2000년]] [[1월 3일]])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배우자이다.<ref>[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0/04/06/201004060500007/201004060500007_2.html 박두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 <신동아></ref> 본관은 [[순천 박씨|순천]].
박두을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남편 [[이병철]]의 일생이 자서전과 소설, 추모집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하긴 그 옛날 내조하는 아내의 전통적인 삶이란 게 이렇게 철저히 그림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병철]]조차 286쪽에 달하는 자서전에서 박두을에 대한 언급을 단 몇 문장으로 줄였다.
{{인용문|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박두을에 대한 기록은 장남 [[이맹희]]가 쓴 책이 비교적 자세하다. [[삼성그룹]] 후계 자리를 동생 [[이건희]]에게 내준 비운의 황태자로 알려진 그는 [[1993년]] '묻어둔 이야기'라는 회고록에 어머니 박두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인용문|아버지 집안이 [[의령군|의령]] 일대에서는 부자라고 했지만 굳이 비교해보자면 당시 [[달성군|달성]]에 있었던 외가 쪽이 더 부농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시집이라고 왔더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수가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집안 어른들에 따르면 친가 쪽도 물론 3000석 지기에 가까울 정도의 부를 지닌 집안이었고 서원을 세울 정도의 성리학자셨지만 외가 쪽 지체가 워낙 높아서 '한쪽으로 기우는 혼사'였다는 말들이 있었다. 실제 어머니는 시집 올 적에도 몸종을 비롯하여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박두을은 남편 [[이병철]]이 대학 재학 중인 [[1929년]]에 장녀 [[이인희|인희]]를 낳은 데 이어 3남 5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호암자전에서 [[이병철]]은 자신의 자녀 수를 4남 6녀라고 적시했다. 이 중 자신과 박두을과의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의령군|의령]]의 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자식 놓고 어려움 없이 지내던 박두을에게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대학을 자퇴하더니 무위도식하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남편의 대학 자퇴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말 심한 각기병에 걸린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휴학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학업을 단념하고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귀향했다.
고향에서 쉬면서 곧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병철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들과 노름에 빠졌다. 노름은 늘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고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하여 이 무렵 호암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26세였던 [[이병철]]은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허송세월을 했다는 자책이 컸다. '뜻을 세워야 한다. 독립운동도 좋고 관리가 되어도 좋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을 빈곤에서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병철]]은 사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하였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용문|'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 가느냐에 있다.'(호암 평전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 배우자 : [[이병철]] (1910 ~ 1987)
**** 외손자 : 조동혁 (1950 ~ )
**** 외손자 : 조동만 (1953 ~ )
**** 외손자 : 조동길 (1955 ~ )
*** 자부 : 손복남 (1933 ~ )
**** 손자 : [[이재현 (기업인)|이재현]] (1960 ~ )
**** 손자 : 이재환 (1962 ~ )
**** 손자 : 이재관 (1963 ~ )
- 예천군 . . . . 51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5EBFED> {{{#FFFFFF '''군수'''}}} ||<bgcolor=#FFFFFF> [[김학동]] ([[자유한국당|{{{#CA252B '''자유한국당'''}}}]])[br]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2><bgcolor=#5EBFED> {{{#FFFFFF '''군의회'''}}} ||<:><bgcolor=#CA252B>'''[[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7석}}}||
||<bgcolor=#5EBFED> {{{#FFFFFF '''1'''}}} ||<bgcolor=#FFFFFF> 도기욱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2><bgcolor=#5EBFED> {{{#FFFFFF '''국회의원'''}}} [br] [[영주시·문경시·예천군|{{{#FFFFFF {{{-1 (영주시·문경시·예천군)}}}}}}]] ||<bgcolor=#FFFFFF> [[최교일]]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rowbgcolor=#F0F8FF> '''예천읍내 전경'''[* 모르는 사람은 안 보일테지만... 예천초등학교, 예천경찰서, 예천군청 구 청사 등의 시설들이 보인다. 왼편에 있는 산이 '흑응산'이고, 오른편의 냇물이 '한천'이다.] || '''예천군청 조감도''' (충효로 111)[* [[경상북도청]]의 디자인을 따와서 비슷한 컨셉으로 [[공모전]]을 한 결과이다.] ||
예천(醴泉)의 이름을 풀어보면 '''단술 례'''와 '''샘 천'''이다. [[정유재란]] 때 참전한 [[명나라]]의 장수 [[양호]]가 지나가다가 마신 샘물이 너무 달고 맛나 중국 예천(醴泉)과 같아 이름이 붙여졌다는 지명유래설화가 있는데 이설로는 '크고 넓은 땅'을 의미하는 고대 한국어인 '단슬얼'로 불렸던 이곳의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착된 지명이라고도 한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2&dirId=121117&docId=147391514&qb=7JiI7LKcIOyngOuqhSDsnKDrnpg=&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SGmGBlpySEZssb4QN7wsssssstl-014086&sid=A4deAbPXJdB8Y7c9w/egHw%3D%3D|관련 링크]] 간혹 醴'川(내 천)'이나 '禮(예도 례)'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의하자.
지형에서는 대다수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들과 같이 [[소백산맥]]이 있어서 산악지형을 띄고 있지만, 이 곳은 상대적으로 평지가 많다. 인구로 보자면, 70년대 중반에는 한 때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 [[리즈시절]]도 있었지만 성장동력 부재와 [[농업]]종사 인구 감소로 인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크게 감소했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6만 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더디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상북도|경북도청]] 이전으로 안동, 예천 접경지역에 [[경상북도청신도시]]이 조성되어 큰 성장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드디어 13년만에 인구 50,000명을 넘기게 되었다.
인구의 대다수가 1차 산업에 종사, 예천읍내 한정으로 상업, 공무원, 교원 종사자가 있다. 그 외에 [[제16전투비행단]]의 영향으로 [[군인]]도 제법 있다. 낙후한 [[군]] 지역이다 보니 상업지역이 빈약하기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은 문경, 안동, 영주 등으로 나가서 일을 해결한다. 풍양면, 용궁면 지역은 상주·문경권에 속해 있으며, 감천면 지역은 영주권에 속해있다. 나머지 지역은 대체로 안동 [[생활권]]에 속한다.
* [[현종(고려)|현종]] 9년 : 안동부에 편입되며 [[명종(고려)|명종]] 2년 태자의 [[태]]를 이 고을에 묻었다고 하여 기양현으로 승격.
* 2016년 2월 : 상리면을 효자면으로, 하리면을 은풍면으로 개칭.
### 이 표에서 사용된 그래프는 25만 명이 상한인 100분율 자료입니다.
예천은 북쪽은 백두대간(소백산맥), 남쪽은 낙동강 본류에 접하며, 군 가운데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른다. 풍양면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남에 위치해있는 면이다. 큰 강인 낙동강이나 내성천 주변에는 정작 제대로된 평야가 없고[* 풍양의 낙동강 연안에는 평야가 좀 있고, 예천읍 고평에는 내성천 옆에 큰 들이 위치한다.], 내성천의 지류인 한천의 하류(예천읍 일원)에 비교적 너른 평야가 있다. 대략, 북쪽일원 (효자, 은풍)이 산악지형, 중앙(예천읍, 유천, 개포, 용궁, 호명)이 평지 혹은 구릉성 지형, 동부(감천, 보문)와 남부(지보)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다. 용문은 중앙(예천읍)에서 북쪽(효자, 은풍)이나 서북쪽(문경 동로면)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데, 중앙은 평지이고, 외곽이 산지인 전형적 분지 지형을 이룬다. 풍양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남에 위치한 면으로서, 북쪽과 남쪽은 산지이고, 중간이 평야이다.
[[예천공항]]이 있었지만 이용객 급감으로 2004년에 폐쇄된 후 군용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이용불가하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김포국제공항]] - 예천 항공편이 수요가 꽤 있었으나(안동/예천/문경에서 서울까지 자가용 5시간, 기차 4시간 30분, 여객기 1시간)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이용객 급감으로 폐쇄되었다. 현재 예천 비행장에는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이 주둔.
철도는 [[경북선]] 39.3km 구간이 예천을 지나 [[용궁역]], [[개포역]], [[예천역]]에서 여객열차가 정차한다. 하지만 [[애초에]] 여객 수요 숫자 자체가 적고 타 지역 접근성도 떨어지며([[경북선]] 참조), 때문에 바로 역 앞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용궁-예천 노선)이 수요를 다 잡아먹어 하루에 각 방향으로 4대 정도의 여객 열차가 다닐 뿐이다.
회룡포, 삼강주막, [[용문사]], [[석송령]], 학가산 등이 있다. 석송령은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나이가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나이나 웅장한 외형도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겐 일명 '부자 나무'로 더 유명하다. 1930년대에 한 주민이 이 나무를 매우 아껴서 자신의 토지(약 6600제곱미터)를 이 나무에게 상속했다고. 일제 강점기 때는 사람이 아닌 사물에도 명의를 붙여서 상속하는게 가능했고 이것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온 것이다. 이 토지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 경작해서 그 수익으로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며, 나머지는 마을의 교육 장학금으로 사용한다.
||1||예천초등학교|| 예천읍 효자로 43 ||
||2||예천동부초등학교|| 예천읍 효자로 171 ||
||5||상리초등학교|| 효자면 도효자로 1558||
||7|| ||예천여자중학교|| 예천읍 양궁로 53 ||
- 원피스/863화 . . . . 51회 일치
* 돌입 세 시간 반 전. [[몽키 D. 루피]]는 숲에서 잡은 대량의 동물을 [[샬롯 브륄레]]의 능력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바꿔 케이크에서 뛰쳐나오게 했다.
* 격분한 빅맘 [[샬롯 링링]]은 요리사들에게 새로운 웨딩 케이크를 대령하라며 닥달, 무리라고 하자 "소울 보커스"의 힘으로 영혼을 빼앗아 버린다.
* 소울 보카스는 대상의 "삶에 대한 집착"에 말을 걸어 조금이라도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자의 영혼을 빼앗는 기술이다.
* 빅맘이 "누가 본체냐"고 소리치자 루피가 엉뚱하게 "나다!"라고 대답해서 [[카포네 갱 벳지]]가 당황.
* 카타쿠리는 자연계 열매 "탱글탱글 열매"(모치모치, 떡떡 열매) 능력자. 잡히면 떡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지만 물을 끼얹으면 벗어날 수 있다.
* 징베는 자신이 사진 정보를 유출했다고 말해 벳지를 감싸고, 자신은 빅맘 산하를 떠나 밀짚모자 일당에 가담한다고 선언한다.
* 빅맘은 여전히 "대가"를 운운하며 소울 보커스로 "스테이(잔류) 오어 라이프(목숨)"이라고 묻자 징베는 당당히 라이프를 택하는데, 혼을 빼앗기지 않는다.
* 징베가 빅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서인데, "해적왕이 될 남자의 선원이 '''사황따위'''에게 떨리가 있냐"고 호기롭게 외친다.
* 작전 개시로부터 세 시간 반 전. 그러니까 일행이 아직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있을 때의 일이다. [[몽키 D. 루피]] 자신이 자신하던 [[원피스/859화|재미있는 등장법]]을 벳지에게 설명한다. 그는 웨딩 케이크 안에 커다란 거울을 넣어뒀다가 거울 세계를 통해 케이크 안에서 튀어나오는 연출을 구상했던 것이다. 벳지는 당장 좋다 아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지 거절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엔 [[샬롯 브륄레]]도 있었는데, 빅맘 [[샬롯 링링]]이 케이크가 박살나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에 절대해선 안 된다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루피는 브륄레가 하는 말 보다는 그녀의 능력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근처 숲에서 동물들을 잔뜩 잡아온 다음, 유혹의 숲에서 한 것처럼 자기 모습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브륄레는 당연히 질색하지만 결과적으론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벳지가 자기 부하들을 요리사로 변장시켜 잠입시킨 것도, 그리고 그 부하들이 [[원피스/861화|"준비가 끝났다"]]고 한 것도 다 웨딩케이크에 거울을 셋팅하기 위해서였다.
* 그렇게 해서 지금 현재. 빅맘은 당혹과 경악에 찬 표정으로 웨딩 케이크가 무너지고 그 속에서 루피가 잔뜩 뛰어나오는 꼴을 보고 있다. 암금왕 [[루 펠드]]는 심드렁하게 "대단한 연출"이라고만 말하는데, 옆에 있는 세계신문사 사장 [[모간즈]]는 호들갑스럽게 "이건 대형 뉴스!"라고 외친다. 그는 케이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최악의 세대", 그 일원인 밀집모자 루피라는걸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가 왜 여기있는지, 왜 저렇게 많은 숫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 빅맘의 자식들은 죽은 줄 알았던 루피가 최악의 형태로 재등장하자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샬롯 스무디]]는 죄수 도서관에서 죽은게 아니었냐고 경악하고 [[샬롯 몬도르]]도 역시 [[샬롯 오페라]]가 거짓말을 했던 거라고 이를 간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빅맘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루피의 등장도 열 뻗힐 일이지만 웨딩 케이크가 무너진 것은 최악의 사태다. 거의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이변이 생겼을 때처럼 평정을 잃는다. [[슈트로이젠]]은 빅맘이 정신을 잃을까 우려해서 진정시키려 하지만 부하 요리사들은 오히려 그가 피해야 할 때라고 간청한다. 아니나 다를까, 빅맘은 성미를 참지 못하고 근처 요리사들에게 "당장 새 웨딩 케이크를 가져와라"고 억지를 쓴다. 그런게 될리가 없다. 그러자 그녀는 "라이프 오어 웨딩 케이크?"라는 질문을 내뱉는다. 그러자 하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모간즈가 특종이라며 환호한다.
* 미러 월드의 밀집모자 일당은 작전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신이 났다. [[징베]]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거울 입구에서 브륄레가 루피 모습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을 바깥으로 내던진다. 뒤에선 [[나미(원피스)|나미]],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시저 크라운]]가 거들고 있다. 브륄레는 빅맘이 두려워 징징대고 있지만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른다. 동물들을 모두 내보내자 페드로와 징베도 다과회장으로 뛰어내린다.
* 곧이어 나미, 캐럿, 쵸파도 회장으로 돌입. 시저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나미는 그에게 "뒷정리를 부탁해 인간쓰레기"라며 빈정 상하는 소릴 한다. 캐럿이 그 말을 듣고 그렇게 글러먹은 사람이냐고 놀라자 쵸파가 나미에게 맞장구치며 "저 자식은 최악"이라고 매도한다. 시저는 딱히 반박할 기회도 없이 그저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나미 일행도 미러 월드 바깥으로 나간다.
* 요리사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한 빅맘은 곧 사건의 주모자 루피를 찾아 눈을 번뜩인다. 하지만 그와 전보 벌레로 통화한 적은 있어도 얼굴을 보진 못했다. 죄수 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가 말했다.
* 루피는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용케 진짜 목적인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를 발견하고 노린다. 작전이 잘 굴러가자 벳지는 부하 괴총 비트와 고티에게 KX런처의 준비를 지시한다. 이미 둘은 준비를 마치고 언제든 뛰어나갈 태세다. 나미, 쵸파, 캐럿은 아직 케이크 내부에 남아서 루피가 목표를 달성하면 3초 안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빅맘은 루피의 진짜 목적을 모르고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로 그를 공격할 생각만한다. 루피는 여유롭게 액자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때 측면으로 정체불명의 뭉터기가 날아온다. 그건 [[샬롯 카타쿠리]]의 "다리"였다. 루피의 고무고무 기술처럼 다리를 늘려서 공격했는데 거기에 맞은 루피는 튕겨 나가지도 않고 그대로 달라붙어 있다. 루피는 몸을 빼내려고 하지만 달라붙어서 전혀 떨어지질 않는다. 그 사이 카타쿠리는 자신이 붙잡은게 진짜 루피고 나머지는 브륄레의 능력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이라며 무시하라고 지시한다.
* 카타쿠리는 자식 주제에 끼어들지 말라며 야단치지만 그가 루피의 진짜 목적이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라고 밝히자 얼굴 색이 바뀐다. 카타쿠리는 루피에게 "그런 기밀을 아는 건 우리 쪽 인간 뿐일 텐데 누구에게 들은 거냐"고 루피를 심문한다. 벳지는 그 순간 작전이 꼬여버린 걸 직감한다. 어찌됐든 사진을 깨긴 해야겠는데...
그때 페드로가 루피를 원호하려고 달려오는데 징베가 자신에게 맡기라며 테이블에 있던 홍차로 "해수 한 판 엎어치기"를 시전한다. 그가 노린 것은 루피를 붙잡은 카타쿠리의 다리였다. 물기가 덮치자 루피는 아주 손쉽게 빠져나온다. 징베는 카타쿠리가 자연계 "탱글탱글 열매"(모치모치, 떡떡열매)라고 밝힌다. 물기를 붙히면 빠져나올 수는 있지만 될 수 있는 한 접근하지 말라고 루피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마더 카르멜의 정보를 넘긴건 자신이라고 밝힌다. 그건 혹시라도 벳지가 노출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자신이 산하에 있는 동안 주워들은 거라고 얼버무린다.
* 빅맘은 그의 등장과 행동에 잠깐 놀라지만 곧 코웃음을 친다. 그녀는 징베에게 이건 반역행위로 간주해도 좋겠냐고 묻자 징베는 "제발 그렇게 봐줬으면 한다"고 한술 더 뜬다. 그리고 자신은 빅맘 산하를 나와 밀집모자 일당에 들어가고 싶다고 선언한다. 기자정신에 불타는 모간즈가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 이민우(배우) . . . . 51회 일치
유아기 시절인 [[1980년]]부터 CF모델로 활동하다 6살 때 정식으로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되는데 데뷔작이 MBC의 [[조선왕조 오백년]]([[1981년]])이다. 배우 경력이 벌써 '''30년이 넘는''' 본좌 중에 본좌. [[홍경인]]([[1988년]] 데뷔), [[김정현(1976)|김정현]]([[1994년]] 데뷔) 등 경력이 나름 길다는 동년배 배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유명한 왕 전문 배우(...) '''[[최수종]]'''(1962년생, [[1987년]] 데뷔) 등 1960년대 초반 출생인 연기자들마저 이민우에게는 경력 때문에 어려워한다는 것이 [[라디오 스타]]에서 드러났다. [[http://m.news.nate.com/view/20130425n00128|#]] 이 정도 경력은 5살 때 데뷔했다는 [[안성기]]나 6살 때 데뷔했다는 [[하춘화]]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경력이다.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연기력으로 청소년 배역을 독차지했다. 당시 KBS 연기대상 남자아역상은 장장 7~8년 동안 이민우와 다른 배우들의 경합이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아역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만 18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그 연산군으로--에도 아역상을 받았다!
[[한명회]]에서 [[연산군]]을 맡았다. 주인공 한명회가 죽은 이후를 다루는 후반 4회분에서 극을 사실상 주도하는 역할이며, 연산군 연기로 호평받으면서 이를 기점으로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 '''19세'''에 이런 연기를 한다(...)[* 상술하였듯, 이 연기로 아역상을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r7eVSaqU59Q|# 기생씬]] 특히 [[폐비 윤씨]]([[장서희]])가 사사된 사실을 알고 오열하며 눈물콧물 흘리고 할머니인 [[인수대비]]에게 가서 한맺힌 절규를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http://flvs.daum.net/flvPlayerIn.swf?vid=bYfGnkJ3L-U$&ref=bbs.movie.daum.net|# 절규신]] --배우들 다 굶어 죽으라고--
이어서 [[용의 눈물]]에서 [[양녕대군]] 등을 맡으며 사극계 젊은 배우의 본좌가 되었다. [[용의 눈물]]에서는 충녕대군(세종) 역할의 [[안재모]]에게 왕세자 자리를 양도하는 양녕대군 역할을 맡았는데 포스가 [[유동근]]이나 [[김무생]]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32375DA1DBC3235580A2361EC990C0808682&outKey=V128eeaa1a20d4f34b842233fd7b695a4bc457eb47fcbc7e1f315233fd7b695a4bc45&width=500&height=408|# 유동근(태종)과 맞서는 패기]] 실제 역사의 냉혹하며 세자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 했던 개망나니 양녕대군은 아직까지도 이민우의 본좌 연기 덕분에 쉴드를 받고 있다(…). [[http://blutom.com/375|# 세자를 물러나는 편지 씬]] 이 당시 이민우에게 최초로 제의가 갔던 역할은 충녕대군이었고 양녕대군 역은 [[안정훈]]이었다고 한다. 충녕대군 역을 준비하기위해 사십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촬영 2주 전에 양녕대군 역으로 바뀐거라고.[[http://sky.bestiz.net/zboard/view.php?id=dramab&no=102825|# 폐위 후 닭고기 씬]]
한 마디로 [[사극]]으로는 만렙을 찍은 [[정태우]], [[안재모]]보다 먼저 만렙을 찍어놓은 30대 배우이며 [[2011년]] 8월에 방송한 [[공주의 남자]]~~극중 주인공이 바뀐 듯한 포스~~에서 그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4년 6월 25일 KBS 2TV에서 방영되는 퓨전사극 [[조선총잡이]]에서 [[고종(대한제국)|고종]]역을 맡아 오랜만에 사극으로 컴백한다. 한 가지 배우개그를 말하자면, 이민우는 KBS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에서는 [[박영효]]로 나온 적이 있었다.
=== 세자 세손 전문 배우?? ===
참고로 한명회의 연산군은 맡았던 배역 중에 유일하게 '''즉위했던''' 왕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전부 세자나 세손 등 즉위 전의 아동 시절을 맡았다. 즉, 모두 아역 시절을 연기했다. --기억력도 엄청 정확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y7_cAnvH1P4|#]]--
* 연산군의 맏아들 세자 - [[설중매]]에서 연산군의 맏아들인 세자 역을 맡았다. 극 중에서 연산군의 큰어머니인 승평부부인 순천 박씨(엄유신 역) 집에서 양육된다. (84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설중매]] 편)
* [[정조(조선)|정조]] - 역시 [[사도세자]]가 죽는 때의 세손 역을 맡았다. (89년, [[한중록]]을 다룬 KBS2 하늘아 하늘아)
* [[순종(조선)|순종]] - 역시 [[명성황후]]가 죽을 때의 세자 역을 맡았다. (90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대원군]] 편)
--역시 세자 세손 전문배우--
사극 경력이 세손 -> 세자 -> 왕 -> 세자 -> 권력가 아들 -> 종친으로, 폐위(?)가 된 다음엔 복위를 못하다가 2014년 [[조선 총잡이]]의 [[고종(대한제국)|고종]]으로 복위 성공. 즉위에 성공한 왕 연기가 둘로 늘었다. 그러나 고종도 일본에 의한 폐위가 기다리고 있다(...)
이후에도 청소년 드라마인 공룡선생, 사랑이 꽃피는 교실, 스타트 등에 출연하였다. 아역 부문 연기자 상을 휩쓴 것이 순수하게 사극빨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카이스트(드라마)|카이스트]]([[1999년]])에서 공대생 이민재 역은 그야말로 '''공대생 1'''이라고 할 정도의 포스를 보여 주었다. 소심한 듯 꼼꼼하고 수더분한 인상에 "저는 성실합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연기 하며... 한 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공대생 그 자체. --근데 이때 이미 연기경력이 20년-- 평생지기라고 할 만한 동료 배우 [[김정현(1976)|김정현]]과의 인연도 여기에서 쌓게 된다.[* 2009년 둘이 함께 《절친노트》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3년]] 라디오스타에도 함께 출연했다.]
1999년 윤석호 PD가 연출한 '초대'에서 이영애, 추상미, 김민, 김상경, 이창훈과 함께 나와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주목받으며 성인 연기자로 순조롭게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http://m.isplu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474652&cloc=|관련기사]]
대신 아쉬운 대로 [[메리대구 공방전]], [[열아홉 순정]], [[살맛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등에서 30대 초반 직장인 역할, 다소 찌질하고 철없는 남편 역할, 강력반에서 형사들을 괴롭히는 지독한 범죄자 악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조용히 연기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연기도 잘 소화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연기에서는 도가 텄다고 할 지경.[* 특히나 [[살맛납니다]]에서의 그 찌질하면서 사악한 김기욱 역은 장인식(임채무 분)과 더불어 극을 지탱하는 2대 악역으로 꼽혔을 정도..]
본인은 사극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하지만[* 하지만 사극을 아예 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며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도 배역에 대한 흥미를 따라간다고 한다.] 2011년 또 사극 [[공주의 남자]]에 출연하게 되면서 이제 사극이 아닌 현대극에서의 이민우는 기약이 없게 되었다. 그의 예전 사극연기를 보지 못했던 10대~20대 초반에게는 사극에서의 이민우가 깊이 각인되었고, 30대 이상에게는 이민우의 기존 사극 이미지가 더욱 단단히 굳어지게 되었기 때문. [[거열형]]씬도 허리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찍었다고 한다.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 [[유복자|태어나기 직전에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제 갓 40대에 접어들었으니 아직 젊은 나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연기력은 본좌 그 자체로 그냥 연기를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시청자가 볼 때 이민우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배역과 혼연일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래의 배우 중에서는 연기력이 가장 최상위권에 있다. 최신작인 [[공주의 남자]]에서의 연기가 그 훌륭한 예이다. 자기관리도 굉장히 엄격하여 대본 암기와 연기 구상은 물론, 쉬는 날도 체력관리와 연기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대본 암기에는 도가 틀 정도다. 연기를 할 때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대사까지 다 외우도록 배워왔다고.
- Victoria II/POP . . . . 50회 일치
* Militancy(투쟁성): 해당 POP가 얼마나 빡쳐있는지의 정도. 화염으로 표시된다. 이게 높을 경우 반란을 일으키거나 다른 나라로 탈출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지하는 운동이 무시당하거나, 주류 민족이 아니거나, 여당이 마음에 안 들거나, 어쨌건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증가한다. 또한 자국이 열강에서 탈락할 경우에도 쪽팔려서 증가한다.
* Ideologies(사상): 해당 POP들이 가진 사상의 분포. 사상의 종류는 [[Victoria II/정당]] 페이지를 참고하자. 예시의 POP는 자유주의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Issues(관심사): 해당 POP들이 신경쓰는 정치 관심사. POP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정당을 지지한다. 예시에 있는 POP의 대다수가 정치 집회 자유화에 관심을 두고있다.
* Cash Reserve(현금 비축량): 해당 POP가 가지고 있는 자금. 예시의 POP는 0.39파운드를 비축하고 있다. 불쌍해라.
* Everyday Needs(일상 욕구): 지장 없이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 맥주잔으로 표현된다.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증가하며, 자신의 처지에 불만족해한다.
* Rebel Faction(반군 세력): 해당 POP가 지지하는 운동. 이들이 지지하는 운동은 참정권 운동에서 파쇼 반란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예시의 POP는 정치 집회 자유화 운동을 지지한다.
* Literacy(식자율): 해당 POP의 구성원들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 식자율이 높으면 작업 효율, 제공하는 연구 점수, 더 좋은 직업으로 승진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의식도 역시 높아져 요구하는게 많아진다. 예시의 POP는 10%대의 식자율을 자랑하는데, 별로 좋은 수준은 아니다.
모든 욕구를 충족한 POP는 문제를 일으키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남아나는 돈을 모으거나, 예금하거나, 국립 은행에 투자한다. 이런 이들 중 의식도가 높은 POP는 좀 더 상위 등급의 POP로 승진하기까지 한다. 반면 오랜 기간 불만족한 POP들은 (실업자일 경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주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직업을 바꾸게 된다.
자신이 거주한 지역의 RGO 생산량을 늘려준다. 전제 군주정 체제에서는 행정 효율성도 올려주지만 관료보다는 성능이 딸린다.
자신의 땅에서 생산된 원자재를 팔아 돈을 번다.
* 사치 욕구: 탄약, 소화기, 비행기, 연료, 클리퍼 호송대, 증기선 호송대, 아편, 자동차, 전화기, 라디오
==== Capitalists(자본가) ====
attachment:자본가.png
공장, 철도, 국립 은행에 자신의 돈을 투자한다.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은 집권당의 경제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자본가가 많을수록 해당 주에 공급되는 재료의 가격이 감소한다.
* 사치 욕구: 탄약, 소화기, 비행기, 고무, 석유, 연료, 클리퍼 호송대, 증기선 호송대, 아편, 자동차, 전화기, 라디오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 상품을 제조한다. 아직 공장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원자재 외 상품은 이들이 제조하게 된다. 뭘 어떻게 하는건지는 몰라도 전차와 항공기도 만들 수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공장과 기능공들에게 밀려나 쇠락한다.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팔아 돈을 번다.
* 사치 욕구: 비행기, 연료, 커피, 아편, 자동차, 전화기, 포도주, 사치품 의류, 사치품 가구, 라디오
세금을 걷어서 국고로 보낸다. 자신이 거주한 주의 행정 효율성도 증가시킨다.
==== Clergymen(성직자)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50회 일치
*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가 "랏파"를 카피해 [[서 나이트아이]]를 노리나 그는 뜻밖의 강자. 오히려 철저하게 패배한 뒤 겨우 달아난다.
* 시가라키는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며 "나와 너희 모두를 위한 결단"임을 역설하고 두 사람을 믿기 때문에 토가와 트와이스를 파견하는 거라고 설득한다.
* 그의 진심을 이해한 토가와 트와이스트는 순순히 시에핫사키아에 협조하는 듯 보이나 진심은 여전히 빌런연합만을 위해, 자신들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정면대결에서 밀린 그들은 협력관계인 "이리나카"를 자극,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만드는데.
* 이리나카의 책략으로 분단된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뜻하지 않았던 [[빌런 연합]]의 개입. [[토가 히미코]]의 습격으로 이미 희생자가 나왔다. 자물쇠 히어로 [[록록]]이 당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도 그럴 뻔 했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눈치 챈 덕에 제지했다. 대신 그가 부상을 입고 피를 빼앗기는 사태가 생겼지만.
아이자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미도리야에게 록록의 지혈과 주변의 경계를 먼저 부탁했다. 특히 토가가 남긴 나이프는 필히 회수해야 했다. 행동으로 보아 피를 취해서 사용하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다. 날붙이를 방치하면 아픈 꼴을 당하겠지. 아이자와는 자신의 안일함을 통감했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의 다툼". 그 단편적인 정보를 너무 믿었다. [[시가라키 토무라]]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그 성격으로 누구 밑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다퉜다면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안일함. 그 결과가 이 상황이다.
미도리야의 머리 속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토가가 사라진, 지금은 굳게 닫힌 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몸놀림과 개성은 낯이 익었다. 밀랍처럼 녹아내리던 모습. 임시면허 시험 때 본 적이 있다. 사걸고교의 여학생 "캐미". 어떻게 된 건진 모르지만,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단 한 가지 의미였다. 그녀가 빌런 연합이라는 것. 그도 아이자와 만큼이나 빌런연합이 왜 이런데서 나타났는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 [[서 나이트아이]]를 습격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야쿠자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나이트아이를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비웃으며 "야쿠자를 얕보지 말라고" 뻔뻔스럽게 외쳤다. 하지만 상대하는건 자신이 아니다. "랏파"의 "카피"가 나이트아이에게 러쉬를 가했다. 트와이스의 개성은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두뇌파 히어로의 대위기. 그러나 다음 장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이트아이 자신만을 제외하곤.
* 트와이스는 랏파가 눈 앞에서 쓰러지는 걸 보았지만 다음 순간 랏파가 자신을 지나쳐 뒤쪽 벽에 처박히고 있었다힌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랏파를 거기까지 밀어낸 "무언가"는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트와이스는 그것이 허공에 남긴 궤적을 쫓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경찰관 하나가 트와이스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했다.
* 나이트아이는 유머감각을 중시하는 남자였고 전투 중이라도 특유의 조금 빗나간 유머감각을 자제하지 않았다.
방금 그의 설명은 도장사이즈로 고밀도 압축된 5kg의 쇳덩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투사했다는 말이었다. 순수한 자기 힘만으로. 외견으론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근접전의 강자였다. 많은 사건, 많은 사람의 미래를 보아온 탓에 그는 "예측하고 선수친다"는 당연한 요령에 매우 능했다. 그는 겸손하게 "보통사람보다 조금 빠른 정도"라고 표현했지만 그 빠른 예측이 빗나갓다는 점에는 놀라워하고 있었다.
>천하의 빌런 연합이 일개 야쿠자의 편을 들다니.
>야쿠자! 쓸모없네!
* 나이트아이에겐 관심없는 문제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날인이 트와이스를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날인은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마스크 좌측을 크게 찢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나이트아이는 다음 날인을 꺼내고 있었다. 저 괴물은 저런걸 얼마나 가지고 다니는 걸까? 도망치자, 트와이스는 미련없이 등을 보였다. 그가 허겁지겁 뛰자 이리나카가 그와 나이트아이 사이를 벽으로 막았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지만 트와이스가 원망을 늘어놨다. 찢어진 마스크. 트와이스는 이것도 이리나카가 미적거려서 당한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열하고 있었다. 위험신호였다. 그의 자아가 주체할 수 없이 갈라지려고 했다. 만일 토가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트와이스는 그대로 끝장이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상냥하게 그의 찢어진 마스크를 감싸주었다. 감싸면 하나. 토가의 손길이 닿자 트와이스가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 이리나카를 규탄하기는 토가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자신도 이리나카 덕에 무사히 빠져나와 놓고는 말이다. 그녀는 모처럼 협력해주고 있는데 야쿠자 측이 너무 불성실하다고 투덜거렸다. 트와이스는 토가를 구원의 여신처럼 바라보며 칭송하고 사귀자고 치근덕거렸다. 토가가 그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슬픈 심정을 헤아려주었다. 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빌런 연합에 소개한 탓에 [[마그네]]를 죽게 했다고 누구보다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핫사이카이에 협조해주고 있는데, 정작 협조대상은 그걸 전혀 몰라주고 있지 않은가?
신중한 성격의 이리나카는 두 출향조를 미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미칠 것 같았다. 대체 이 녀석들은 무슨 소리를, 뭘하고 있는 건가?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시가라키가 오버홀과 접촉한 직후. 시라가키가 어떤 뉴스를 가져오자 빌런 연합의 멤버들은 크게 반발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트와이스였다. 그가 그렇게 되묻자 시라가키는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며 다시 한 번 시에핫사이카이와 협조한다고 선언하고 오버홀이 제공한 계획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가와 트와이스에게 "너희는 오늘부터 야쿠자"라고 통보했다. 트와이스는 이 "재미없는 농담"을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시라가키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재미없는 농담은 정도를 넘어서 중요한 임무 중인 [[쿠로기리]]까지 뺏길 뻔 했는데 간신히 막았다는 자찬으로 이어졌다. 시가라키의 설명이 구체적인 임무 브리핑으로 이어지려 하자 트와이스가 그만두라고 언성을 높였다.
* 트와이스는 냉정한 척만 하면 다 리더인 거며 그 "마스크 놈"한테 감화되기라도 했냐고 따졌다. 녀석은, 오버홀은 마그네를 죽였고 [[Mr.컴프레셔]]의 왼팔을 날려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녀석은 바로 트와이스 자신이 데려왔다. 별 생각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토가는 춤 추듯 빙글빙글 돌며 자신은 연합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작은 [[스테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스테인]]이었다. "스테 님"을 영접한 걸 계기로 그녀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기 편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연합에 들어왔고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합에서 하는 일이 그 목적에 부합하자면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 원우(가수) . . . . 50회 일치
||<#f5f5f5> '''별명''' ||워누, 저너누[* 본명 "전원우"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 데뷔 전 17'S 다이어리에서 [[우지(세븐틴)|우지]]가 "저너누!"라고 표기한 적 있다.], 늘보[* 하단 [[원우#s-2.2|성격]]문단 참조. 성씨와 붙여 전늘보라고 부른다.], 여우[* 닮았다.], 전소녀, 전발라드[*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소속 래퍼라는 본인의 포지션과는 다르게 평소 추천하고,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곡들은 모두 [[발라드]]라 붙은 별명. 줄여서 "전발라"라고도 한다.], 전원우 복덩어리[* 하단 [[원우#s-2.3|말장난]] 문단 참조.], 서가대 환청남[* 데뷔 초 [[서울가요대상]]에서 [[장재인]]의 <환청>무대에 랩 피쳐링으로 올라간 적이 있는데,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저 잘생긴 사람을 호칭하고 싶은데 이름을 몰라 대신 붙여진 별명.], 불이나남[* 데뷔곡 '아낀다' 중 원우의 파트 "나 지금 너 땜에 불이 나"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계기는 바로 앞의 환청남과 같다.], 권원우[* 평소 티격태격하는 사이인 [[호시(세븐틴)|호시]]와 서로의 흉내를 자주 낸다.] ||
중학생 시절, 막연히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취미 삼아 친구와 실용음악학원을 다녔었다. 그런데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그곳에서 우연히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고, 단순히 경험 삼아 참가했다가 덜컥 합격해 [[2011년]]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공개 오디션을 보고 입사한 세 멤버 중 한 명으로 약 3년 8개월간의 오랜 연습생 기간을 보냈다. 각종 선배 그룹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거나 백댄서로 무대에 올라 데뷔 전부터 조금씩 얼굴을 비쳐왔다. 자세한 내용은 [[세븐틴TV]] 항목의 [[세븐틴TV#s-3.1.3|원우]] 문단 참조.
팀 이름도 17에 생일도 17일이라 데뷔 초 "태생부터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라며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182cm라는 장신에 팔, 다리가 상당히 길고 일자 쇄골이 도드라진 어깨가 넓은 체형이다. 원체 입이 짧은 탓에 극도로 마른 몸매까지 타고났는데, ~~[[도겸(세븐틴)|도겸]] : 앙상하다 앙상해...!~~ 본인이 직접 말하길 가족들이 모두 키가 크기 때문에 자신도 잠을 잘 잤으면 키가 더 컸을 것이라며, 지하 연습실~~메로나 감옥~~에서 오랜 기간 밤새 연습하느라 키가 여기서 멈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남동생은 모델 지망생이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에서 가장 장신인 멤버는 아니지만 이 체형 때문에 팬들에게 모델적인 비주얼로 주목받고 있던 멤버 중 한 명이었는데, 그러던 [[2016년]] [[2월 6일]] 남성 매거진 <[[GQ]] KOREA>와 단독 화보를 성사하며 이 피지컬이 빛을 발하게 된다.
실존 인물 중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주지훈]], [[이준기]], [[송재림]], [[진이한]] 등은 대부분 [[모델]] 출신 혹은 경험이 있는 [[남배우]]들인데,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우]] 역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소속사]]의 지원으로 데뷔 전부터 연기 수업을 받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의미한 부분이다. [[2016년]] <스타쇼360>에선 시민들을 상대로 여러 설문 조사했는데, 그중 "연기돌로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라는 주제에 [[원우]]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팬들에게 [[여우]] 상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데 멤버로, 이는 멤버들도 예전부터 입을 모아 자주 말해왔던 것이다. 데뷔 전 [[세븐틴TV]] 시절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팬들이 그려준 캐릭터 그림을 보고 누군지 알아맞혀 보는 코너에서 [[https://youtu.be/OyDNQZnumos?t=54s|여우꼬리를 단 캐릭터]]가 나오자마자 [[원우]]임을 눈치챈 멤버들이 모두 알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우지(세븐틴)|???]] : 이~런 여우 같은 놈!-- 무표정일 때도 물론이지만 웃을 때 눈이 가늘게 접히고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그의 여우적인 생김새가 상당히 도드라지는 편이며, 이때 코를 찡긋 거리는 모습이 아기 사자를 닮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타이틀 곡]]에서는 3분 남짓의 곡을 13명의 멤버들이 나눠 불러야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짧은 마디를 배정받을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초 음악 방송 시청자들에게 데뷔 곡 '아낀다'에서 "불이나 남,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 곡]] '만세'에서 "홍일점 남"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탁월한 비주얼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 시상식 [[KBS]] [[서울가요대상]]에서도 [[킬미힐미]]의 OST를 부른 [[장재인]]의 "환청" 무대에 피처링 역할로 올라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서가대 환청남"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획득한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헤어 컬러나 스타일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편은 아닌지라 세 번째 미니 앨범 <[[Going Seventeen]]>의 [[타이틀 곡]] '붐붐'에서 갑작스레 형광 민트색의 [[투블럭]] 스타일로 등장한 [[원우]]를 보고 팬들이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그전까진 쭉 어두운 머리색을 유지하고 있었던 [[원우]]로선 대단히 과감한 시도를 한 것인데, 본인도 그 당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적응이 안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어두운 머리색을 유지하다가 두 번째 정규 앨범 <[[TEEN, AGE]]>에서 밝은 애쉬 컬러의 금발을 시도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연습생 시절엔 [[원우]]가 회사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스탭의 일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여러 생각이나 고민을 혼자 가지고 있는 편이 많았고 표출하는 방법도 잘 몰라서 혼자 끙끙 앓았다고.
그러나 멤버들과 지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어 예전과 비교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래퍼로서 가사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음악으로 묵은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며, 데뷔 초 <내 친구의 고향은 어디인가> 제주도 편에서는 멤버들과 속마음 토크를 진행하며 "[[세븐틴(아이돌)|세븐틴]] 안 했으면 참 재미없게 살았을 거 같아."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일동 : 맞아!! / [[호시(세븐틴)|호시]] : 아냐, 넌 충분히 웃겨!~~ 다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은 여전해 친분이 있는 연예인은 회사 식구 및 멤버들 뿐이다.
[[승관]]이 "이 형만큼 애교 없는 사람 없어요."라고 평할 만큼 애교를 부리는 것에 어색해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데뷔 후 열심히 연습했는지 [[2015년]] [[11월 8일]]에 열린 미니 팬미팅에서 [[https://youtu.be/wLJTh9HwbVM?t=46s|티아라의 뽀삐뽀삐]]를 추며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정한]]은 [[2018년]] 한 방송에서 [[원우]]를 두고 은근히 애교가 있는 성격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민규]]가 의아해 하자 "아냐, 있어. 형들한텐 있어."라며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민규]] : 엉?? 헣.. 궁금하다ㅎ..~~ 동갑인 [[준(세븐틴)|준]]도 [[원우]]가 상대방의 눈치를 볼 땐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문자로 돌려 물어본다는 일화가 밝히며 은근히 귀여운 행동을 많이 한다고 말해 동생들에겐 멋있~~는 척을 하~~고 동갑과 형들에겐 귀여운 그의 갭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자신감과 자기애가 대단히 높은 타입이기도 하다. 아이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 가짐으로 자기애를 꼽으며 연습생 시절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연습해 자기애를 키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팬사인회에서 당시 [[원우]]의 옆에 앉아있던 [[민규]]가 팬으로부터 "옆자리 멤버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자 "자신감"이라고 적어낸 일화도 있다.
{{{#aaa {{{-3 콘서트 스튜디오 리허설 중}}}}}}}}}입이 워낙 짧고 극도로 마른 체질로 체력이 다소 좋지 않은 편인데, 때문에 무기력한 모습도 많이 보여 [[아육대]]에서 무기력 아이돌로 꼽히는 일도 있었다. 팬들에게는 평소 느릿하고 여유로운 행동거지가 나무늘보와 비슷하다 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N-NaPdmiVJg|"전늘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 "[[세븐틴(아이돌)|세븐틴]]에서 느림의 미학을 맡고 있습니다."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눕정한"으로 유명한 [[정한]] 만큼 [[https://youtu.be/34q-b5njQgw|누워있거나]] 어디 기대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중. 이 체질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 잔병치레가 잦은 탓에 살을 찌우기 위해 억지로 밥을 4~5 공기 먹었던 적도 있었다. 회사 스탭들과 멤버들 사이에선 [[원우]]가 지쳐있을 때 특유의 섹시미가 부각된다며 "컨디션 난조일 때 나오는 섹시미"를 매력 포인트로 밀고 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상술한 이유로 그는 활동적인 운동보단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다. <세븐틴 프로젝트>에서 멤버들끼리 피 터지게 농구를 하고 있을 때엔 뒤에서 혼자 느릿하게 코트를 서성거렸고, [[2018년]] 아미고 TV에서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팀을 나눠 족구 대결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자진해서 코치진으로 가버렸다. 2018년 가을, [[원우]]는 멤버들과 함께 엠티를 떠난 곳에서 족구를 하게 되었는데 드물게도 몸을 움직이며 즐거워 하는 그의 모습에 멤버들이 모두 [[https://youtu.be/_7fR4fXp_dM?t=1833|"원우 웃어요???"]]라며 무척 신기해하기도 했다.
말장난하는 것을 좋아해 데뷔 전부터 현재까지 각종 N행시와 [[언어유희]] 개그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멤버. 특히 동갑내기 [[호시(세븐틴)|호시]]와는 서로의 개그에 관대한 사이라 곧잘 웃음을 기부해주며 빵빵 터지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데뷔 초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공식 홈페이지 [[원우]]의 프로필엔 "주의사항: [[호시(세븐틴)|호시]]만 좋아하는 개그를 함"이라고 적혀 있었을 정도이다. 하도 시도 때도 없이 말장난을 많이 하는 터라 [[원우]]가 방송 활동을 잠시 쉬었을 [[2016년]] 5월 당시, [[에스쿱스]]와 [[우지(세븐틴)|우지]]가 [[원우]]의 개그가 그립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원우]]의 말장난 중 팬들에게 대표작 취급을 받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히 언급되는 것이 있는데, 때는 [[2016년]] 초 어느 날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 방송 중에 일어났다. [[에스쿱스]]가 "전복"으로 2행시를 시도하며 "전"에 전원우!를 외치자 뒤에 있던 [[원우]]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https://youtu.be/cMUVRqNqYQ0|"복덩어리이이잌!!!!!!!"]]를 외치며 2행시를 가로 채 "'''전'''원우 '''복'''덩어리"로 완성한 것. 이 2행시는 섬 생활을 모두 끝내고 난 후 인터뷰에서 [[호시(세븐틴)|호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으며, ~~[[승관]] : 저는 솔직히 별로.. / [[호시(세븐틴)|호시]] : 야 완전 핵이었어 그거..~~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겨 곧바로 [[원우]]의 별명이 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방송 내용 중 여서도에서 첫날밤을 지낸 뒤 [[에스쿱스]]가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기상!!"을 외치며 멤버들을 깨우자 [[https://youtu.be/GWN7r-1tKv4|"우리 지금 기상이야? 기상청 들어가 봐. 기상 예보를 보면서 기상청에서 기상하게"]]라고 중얼거린 장면도 유명하다.
롤모델은 루페 피아스코와 [[에픽하이]]의 [[타블로]]. 이들의 가사는 자신을 흔들어 놓는 것 같다고 한다.
[[원우]]의 소속 유닛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문서 참조.
||<rowbgcolor=#f5f5f5> 일자 || 방송명 ||<width=25%> 비고 ||
[[원우]]가 경기안산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 친구들과 여미르 축제에 참가해 [[비]]의 '레이니즘'을 췄던 것이 영상으로 남아 데뷔 후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영상 속 [[원우]]의 어마어마한 춤 실력(...)과 ~~[[우지(세븐틴)|우지]] : 정말 머신처럼...~~ 이를 능가하는 편집 방식[* 이 편집은 팔룡중 기술가정 선생님이 직접 하셨다고 한다.....]이 합쳐져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극강의 민망함을 자랑하는 이 영상은 [[2015년]] 10월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데뷔 한 직후 음악 방송 [[THE SHOW|더쇼]]로 인해 처음 전파를 탔으며 이후 각종 방송에서 잊혀질만하면 개그 기믹으로 다시금 등장해 뗄래야 뗄 수 없는 [[원우]]의 한 부분이 되었다....[[https://youtu.be/9W3yi0YGUEQ|#리허설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Y4NjIlZchY|#본무대]]
- 장세용 . . . . 50회 일치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20년만에 탄생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TK 기초자치단체장'''[* 당시 경북 울진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신정]] 후보가 [[한나라당]]의 전광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포항시]]장으로 당선된 [[박기환(정치인)|박기환]] 전 시장을 포함하면 3번째 사례이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사회운동가, 정치인. [[경상북도]] [[구미시]]의 21대 시장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인문한국 교수)를 지냈으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대구경북]]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때 [[자유한국당]] 이양호 후보와 초접전 박빙 대결을 펼치며 "구미시장" 검색어가 [[네이버]], [[다음]] 두 곳에서 실시간 검색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고, 근접하긴 했으나 단 한 번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40.8%의 득표율로 38.7%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양호 후보를 끝내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박정희]] 기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 자체로는 인정한다”라고 발언하고 또한 전임 시장인 [[남유진]]이 '박정희 타운'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붇고도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에 성공해서 당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임 [[구미시]] 시장인 [[남유진]] 문서에는 남유진에 대해서 대부분 구미 시민들이 악평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엄연히 남유진은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과반 득표로 모두 당선'''된 인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4~6회 지선 광역비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표가 76.5%, 48.7%, 71.5%로, 이 표가 남유진 전 시장표(75.9%, 53.1%, 52.6%)로 이어졌다.(단, 6회는 새누리당 표가 분열되었다.) 그래서 3선.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50.4%로 하락했고, 2018년 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41.3%로 더불어민주당 43.3%에 졌고, 이에따라 시장직도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게 되었다. 만약, 1:1로 대결하였더라면 기초의회 비례득표를 기준으로 계산하였을 때, 진보vs보수 구도에서는 48.2%vs51.8%로 보수측이 승, 반자유한국당vs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구도였다면 57.5%vs47.5%로 반자유한국당측이 승리하였을 것이다. 바른미래당 지지층이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가 48.2%로, 보수(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42.5%)보다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여전히 구미시에서 [[박정희]]의 존재감과 위치란 [[목포시]]에서의 [[김대중]] 이상의 위치이고 또한 '[[박정희]] 기념사업' 축소에 대한 보수파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박정희]] 기념사업'들을 어디까지 축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어찌되었든 장세용 구미 신임 시장은 구미에서 박정희의 흔적을 아예 지울 순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나, 건설 중인 '박정희 유물전시관(역사 자료관)'은 공사 취소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으며, 이미 완공된 새마을테마공원은 민족운동전시관으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는 등 그동안 지나치게 [[박정희]]에게 집중돼 있던 구미시정을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621100915142?rcmd=rn|*]]
- 공정한 인사로 공직자 사기 진작
- '''새마을테마공원에 경북민족독립운동 기념관 설립 역사교육 관광자원화'''
- 1공단 테크노밸리화, 금오테크노밸리에 인재 유치, 스타트 업 및 청년창업자 전폭지원
- 노동회관 신축 및 노동자 재교육 기관 설립
-'''아사히글라스 부당해고 노동자 복직 적극 추진'''
- 공단 별 '노동자의 집' 설치
- 출산후 36개월까지 아이돌보미 서비스자부담금 지원
- 공단 내 여성 노동자를 위한 육아시설 설치
- 은퇴자를 위한 전통한옥지구와 요양 병원 설립(선산)
- 실업자에게 기본소득 제공 추진
시장에 당선은 성공했으나 도지사, 국회의원 2명, 시의회의장 · 부의장 · 상임위원장 모두 자한당 소속으로 홀로 더민주당인 장시장으로 대립시 시정에 많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장-기초의회의장 소속이 [[수성구|어디]]하고 대비된다.-- [[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307|야당 의원에게 포위된 장세용 구미시장 고민 깊어지나]]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459|구미시의회, 8대 원구성 한국당 일당체제로 완료]]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구미 5공단 분양 저조에서는 분양가를 내리고, 업종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분양에 제동 건 쪽인 산업자원부와 홍의락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구취수원은 달성에 있지만, 지역구인 대구 북구 을은 낙동강 물을 이용한다.]이 들어줄지는...
- 마기/343화 . . . . 49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이 루프로부터 살아남은 것이야 말로 "솔로몬 왕의 의지"라고 설명한다.
* 신드바드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을 솔로몬의 사자라 부르며 "솔로몬의 사자가 솔로몬의 의지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 알라딘은 자신은 솔로몬의 사자도 알마트란의 사자도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여기 있는 거라고 싸울 의지를 거두지 않는다.
* 아르바는 세상이 망하든 말든 자신과는 상관없다며 이 시련도 대충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 알리바바가 "일 일리가 봉인된 차원에 갔었었다"고 말하자 정색하며 혹시 일 일라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이 없더냐고 매달린다.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 솔로몬 왕의 의지라고 주장한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없이 성궁에 가는 것이나 한 번 루프로 환원되고도 살아돌아온 일을 들어 자신이야 말로 솔로몬의 의지가 택한 자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다윗이나 [[아르바(마기)|아르바]], [[우고(마기)|우고]] 조차 그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생겨났을까? 그거야 말로 솔로몬의 의지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어쩌면 솔로몬보다도 상위에 있는 "어떤 존재"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알라딘(마기)|알라딘]]이 자신의 이상론을 앞세워 신드바드를 방해하는건 커다란 독선이자 오만이다. 옆에 있는 [[세렌디네 파르테비아]]는 신드바드 대신 알라딘을 비웃는다.
* 자신의 생존과 성공이야 말로 선택받은 증거라고 믿는 신드바드는 그렇기 때문에 알라딘 일행의 단순한 설득으로는 물러서지 않을 거라 말한다. 알라딘은 다윗이나 아르바가 "그런 동료"인 거냐고 재차 묻고 신드바드는 다윗이 호시탐탐 자기 목을 노리는, 대등에 가까운 동료라고 둘러댄다.
알라딘은 여전히 맞설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 신드바드는 다시 한 번 "그건 솔로몬 왕의 의지에 대한 반역. 넌 솔로몬 왕의 사자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알라딘은 그 말에 이전에도 그가 자신을 "멸망한 세상(알마트란)의 사자"라고 지칭했던 일을 떠올린다. 알라딘은 그때 대답을 지금하겠다고 말한다. 신드바드가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알라딘의 대답은 이어진다. 자신은 멸망한 세상의 사자도 솔로몬 왕의 사자도 아니며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위해 자그마한 이상론을 세우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의 동료들도 각자의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으며 자신도 마찬가지다.
알라딘이 설마 알마트란과 솔로몬을 부정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신드바드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알라딘은 그 존재 자체가 알마트란의 상징 같은 것 아니냐고 반박하려 하지만 알라딘은 단호하게 상관없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알라딘으 망설임을 버렸다는걸 깨닫는다. 이제 그들에겐 싸움이 남았을 뿐이다.
* 알리바바는 정오가 지나면서 다급해졌지만 아르바는 매우 태평한 태도다. 알리바바는 세상이 멸망한 위기인데 왜 태평하게 누구냐고 말하는데 그녀는 자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그 분"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이고 지금 임하는 시련도 "빨리 안 끝나나 이거"라고 투덜거릴 뿐, 아무런 의욕도 없다. 알리바바는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색한 채로 던전 내부로 걷고 있는 두 사람.
아르바는 정색하며 "그분"을 만났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아르바는 다시 냉정한 태도로 돌아오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허튼소리 취급한다. 그러나 알리바바가 차분히 설명을 하자 점점 귀를 기울인다.
알리바바도 자신이 왜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 자세한 원리는 모른다. 단지 베리알의 마법 덕분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셋타가 나름대로 추정한 가설도 들려주는데 아르바와 그녀의 일당이 매그노슈타트에 차원 구멍을 낸 탓에 차원의 구분이 흐릿해진 영향일 수도 있다. 거기까지 듣자 아르바도 더이상 흘려듣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그곳을 일종의 "사후세계"라고 부르는데 자신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현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르바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혼자만 돌아올 수 있었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그게 "여러가지 사정"이 있다고 얼버무리는데 그때 아르바가 버럭한다. "그 분"이 뭐라고 한 말이 없느냐고. 자신이나 그 밖에 뭣에 대해서든 한 말이 없냐고 묻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알리바바의 팔을 잡는데 그 손은 타들어가는 것처럼 까맣게 변해간다.
* 알리바바는 그때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백룡과 싸우다 패해서 망연자실했던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기묘한 공간에 있었다. 우두커니 정좌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윽고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기록영상처럼 보게 되었다. 그건 거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몇 십, 몇 백 번이나 그 영상을 보면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좌절감과, "나는 죽었다"는 자각이 자라났다. 그는 다른 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좌절감을 삭히고 있었다.
* 그런 그에게 주변에서, 자신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 있는게 아니었다.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알리바바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주위에 흩어져 자신의 삶을 곱씹으며 좌절감과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그 중 가까운 곳에 있는 두 사람이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다. 알리바바는 죽은지 얼마 안 돼서 기억이 재생되는게 "떠들썩"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리가 그들에겐 시끄럽게 들렸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욕이나 식욕 같은 욕구도 옛날 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 말고도 어떤 꼬마도 그에게 누구냐고 말을 건다. 이때 알리바바는 주위에 자신 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걸 자각한다.
* 알리바바에게 말을 건 고마는 옆에서 시끄럽다고 투덜댄 남자들의 일행이었다. 셋은 나란히 앉아서 제각이 알리바바에게 말을 걸었다. 눈을 가린 남자는 그가 누구냐고 묻고 안경을 쓴 남자는 "넌 이미 죽었다"고 단정해준다. 알리바바는 곧 이들이 알라딘이 보여줬던 알마트란의 기억에서 등장하던 인물이란 것을 깨닫는다. 이들이 셋타와 와히드, 그리고 테스였다.
- 원피스/874화 . . . . 49회 일치
* 우선 그녀는 킹밤에게 "레이디 트리"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알고 "그렇다면 살아야지"라고 킹밤이 무조건 도망치게 부추긴다.
* 그 다음 빅맘이 뇌운 "제우스"에 타고 있다는 점에 착안, 자신도 크리마텍트로 뇌운 "블랙 볼"을 생성해 제우스의 관심을 돌린다.
* 킹밤이 접근하자 유혹의 숲이 알아보고 써니호까지 길을 내주는데, 분노한 빅맘이 호통치자 유혹의 숲은 금방 적으로 돌변한다.
* 킹밤이 프로메테우스의 힘에 불타고 밀집모자 일당은 킹밤에서 내려서 달리는데, 그 뒤로 어느 새 빅맘이 다가오고 있다.
* 웨딩 케이크와 빅맘의 폭주 이야기를 들은 시폰은 미안하지만 자신은 [[샬롯 로라]]처럼 섬을 떠날 거라며 협조 요청을 거절한다.
* 그러나 푸딩은 눈물과 함께 자신은 빅맘을 위해서 행동하는게 아니라 [[상디]]와 그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 연극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다과회와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고대해 마지 않았던 웨딩 케이크까지 엉망이 되어 먹을 수 없다. 숨가쁘게 이어진 기막힌 사건들 때문에 빅맘 [[샬롯 링링]]의 식탐이 폭주한다. 한때를 모면하기 위해 [[샬롯 페로스페로]]는 웨딩 케이크는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빅맘은 그 말에 따라 직접 밀집모자 일당을 뒤쫓는다. 뇌운 "제우스"에 탄 빅맘은 놀라운 속도로 돌아와 "킹밤"을 타고 도주하던 밀집모자 일당을 따라잡았다. 역시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 해적단의 병력들은 빅맘이 하늘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앞질러가자 이상하게 여기나 곧 그녀의 먹부림이 도진 것임을 알아차린다.
* 그야말로 눈에 뵈는게 없어진 빅맘은 킹밤에 타고 달아나는 밀집모자 일당을 발견하자 서슴없이 공격한다.
[[몽키 D. 루피]]는 좋지 않은 낌새를 차리고 일행에게 경고하고 킹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빅맘이 자신의 모자 "나폴레옹"을 검형태로 바꿔서 쓰는 기술 "위국". "엘바프의 창"이란 명칭대로 빅맘이 팔을 휘두른 방향으로 직선의 충격파가 꿰뚫고 지나간다. 충격파는 킹밤의 좌반신을 깨끗하게 삭제하고 계속 나아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외곽의 절벽에 구멍을 냈다. 터무니 없는 위력. 일행은 직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위력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루피는 그 순간에도 엘바프 거인족의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을 간파한다.
* 빅맘은 킹밤이 있다는건 공격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킹밤의 이름을 부르는 빅맘. 겁에 질린 킹밤이 [[원피스/843화|전에도 한 번 그런 것처럼]], 이번에도 협박을 당해 어쩔 수가 없다고 절절맸다. 그런다고 빅맘이 다음 공격을 주저할 것 같진 않았다. 루피가 내려서 싸우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미(원피스)|나미]]가 킹밤에게 말을 걸었다. 일행과 마주치기 전 같이 있었던 여자 나무가 누구냐는 것. 레이디 트리. 킹밤은 그녀가 피앙세(약혼자)라고 밝혔다. 나미가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 말이 킹밤의 마음을 바꿨다. 맞는 말이다. 살아야 한다. 킹밤은 충성이고 뭐고 일단 살기 위해 유혹의 숲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킹밤이 속도를 내자 빅맘이 더 괘씸하게 여겼지만 어차피 살려줄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그런 심리까지 이용해 먹는 나미가 귀신 같다고 혀를 찼다.
하지만 킹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빅맘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루피는 역시 자신이 나서야 겠다며 혼자서라도 뛰쳐나가 대적할 작정이었다. 이번에도 나미가 작전이 있다며 루피를 말렸다.
* 빅맘은 제우스에 타고 있었다. 그 말은 제우스가 없으면 빅맘의 기동성은 대폭 저하될 거란 것. 뇌운, 구름에 대해서라면 나미도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크리마텍트로 자신의 뇌운 "블랙 볼"을 다량으로 만들어 허공에 뿌렸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태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상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식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반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상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상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태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태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순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인다.
이 황당한 요구에 응답한 것은 상디. 징베가 폭주 상태의 그를 점잖게 말린다. 하지만 제우스의 상태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나미가 "매일 블랙 볼을 먹여주겠다"고 꼬시자 진지하게 "어쩌지 어쩌지"하며 고민에 빠진다. 충성심이고 뭐고 찾아볼 수 없는 모습. 나미가 "하늘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먹구름이 되게 멋있다"고 칭찬해주자 그런 칭찬 받아본게 처음이라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러다 정말 이적 시장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빅맘의 진노가 담긴 외침. 방금까지 킹밤을 향해 경례를 올리던 나무들이 태도를 바꿨다. 보스보다는 보스의 보스가 훨씬 무서우니까. 제우스도 그 노성을 듣고 나서야 "마마가 진짜 화났다"며 얌전히 꽁무니를 뺀다. 이제 유혹의 숲은 적의 소굴이다. 곧 닿을 거만 같았던 써니호로 향하는 길이 사라지고 유혹의 숲의 살아있는 지형지물들이 막아선다. 상디는 유혹의 숲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적당히 걷어차주고 뚫고 가자"고 했다. 숲의 무서움을 아는 루피는 머리를 감싸며 골치아파했다. 싸우더라도 나무들이 방해하면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처지였다. 제일 큰 문제는 킹밤. 그 역시 빅맘의 피조물인 만큼 그녀가 진지하게 호령하면 견디기 어렵다.
약혼자에 대한 그리움이 복종의 본능도 능가했다. 킹밤은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짓밟고 패대기치며 나아갔다. 자신의 부하들 까지도.
* 킹밤의 눈물겨운 돌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공으로부터 프로메테우스가 내려왔다. 킹밤을 진지하게 "배신자"로 간주한 프로메테우스에게 종전같은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진짜 태양만큼 팽창하며 킹밤의 머리 위를 덮쳤다. 밀집모자 일당은 그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뛰쳐나온다. 하지만 킹밤은 그럴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비대해짐 몸집으로 킹밤을 찍어눌렀다. 일행은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킹밤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잘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갔다. 루피는 도망치면서도 킹밤을 걱정해 돌아보는데, 그의 타버린 잿더미 사이로 눈이 돌아간 빅맘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웨딩 케이크를 찾으며.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수도 스위트 시티는 사고의 수습과 함께 배신자 추격대의 지휘통제실이 꾸려졌다. 통제관은 [[샬롯 몬도르]]. 통제실을 통해 두 갈래로 갈린 배신자들, 밀집모자 일당과 [[카포네 갱 벳지]]의 파이어 탱크 해적단을 추격할 두 부대가 교신했다. 벳지는 거의 따라잡았고 방금 전 유혹의 숲에서 목격된 화재는 빅맘의 전투 때문으로 보인다.
- 육성재 . . . . 49회 일치
||<#42B4E6> '''출생''' ||<(> [[1995년]] [[5월 2일]][* 선배가수 [[박상민]], [[정진운]]과 생일이 같다. 선배가수도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age(1995-05-02)]세), [[경기도]] [[구리시]][* [[http://m.ize.co.kr/view.html?no=2013100623107265729|기사]]를 보면 구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언급했으며, 구리시에서 태어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수정바람. 최근 집사부일체에서 [[구리시]] 에서 성장했다고 언급했다.] ||
||<#42B4E6> '''학력''' ||<(> [[구리시|구리]] 서원초등학교 (졸업)[br][[구리시|구리]] [[서원중학교]] (졸업)[br][[창현고등학교]][* 육성재 본인은 창현고에 끝까지 남아있고 싶었다. 하지만 연습생 생활을 하며 염색이나 파마 등을 해야 했는데 당시 창현고가 남자는 스포츠머리, 여자는 귀밑 3cm로 교칙이 빡세기로 유명했던 학교라 '연습생이라서' 의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쿨하게 '머리 그따구로 할거면 전학가' (...) 라고 하시고 전학을 적극 추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한림예고로 전학갔다.] (전학) →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실용무용과 (졸업)[br][[동신대학교]] 실용음악학과[* 대입을 미뤄 21살에 2015학번으로 입학했다. [[서은광]]과 같은 동신대학교 실용음악과다.][* [[http://m.blog.naver.com/iluvbtob/220131626595|출처]]] ||
||<#42B4E6> '''별명''' ||<(> '''육잘또'''[* '''육'''성재 '''잘'''생긴 '''또'''라이.], 육덕, 육성숙, 성뎨, 뎨뎨, 김홍진[* 비투비 멤버 서은광, 이창섭의 라디오 스케줄 도중 청취자와 전화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육성재. 처음 전화를 받고서 본인을 '김홍진'이라고 소개했다. 서은광과 이창섭 둘 중 좋아하는 멤버는 이창섭이라고 밝혔으며 ~~이창섭 덕후 육성재~~ 이창섭은 기뻤던 나머지 급기야 "감사합니다, 형님!"이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화 연결 도중 한 청취자의 지적으로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창섭 : "내가 육성재에게 형님이라 그래써...!" 서은광 : "성재야 나도 좀 좋아해 주라."~~ [[https://youtu.be/N4qMyDvabDE|김홍진 대란(47:57부터)]]] , 육둘기, 뎨깅이, 육태광[* 후아유 - 학교 2015의 "공태광"역을 해서 육태광이라 불린다.], 감성재, --메인 막내--[* 2018년 8월 13일 민혁이가 리더로 뽑인 후에 멤버끼리 막내를 새로 정하자고 해서 돌림판을 성재가 직접 돌렸는데 자기 자신이 나왔다.... --어차피 막내는 육성재--] ||
'''[[K-POP]] 아이돌 그룹 대표 사기캐 BTOB를 대표하는 BTOB 의 복덩이 막내이자 대표 도른자.'''
자기애가 강하다고 스스로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상형이 자신을 닮은 사람--과연 있을까--이기도 하고[* 자기와 닮은 아이를 낳고 싶기 때문이라고.] 자존감이 높아보인다.
같은 해 드라마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서 남자주인공 우~~리성~~재 역을 맡았으며 선배 배우들도 인정할 만큼의 연기를 선보여 2015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3차 경연에 나와서 [[마스카라 번진 야옹이]]와 [[도와줘요 실버맨]]을 이겼으며 [[딸랑딸랑 종달새]]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구라]]는 그가 출연하기 전부터 남자 아이돌 같은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수시로 언급했었다.
복면가왕에서도 1라운드 당시에는 '그 남자 그 여자'에서 짙은 감성의 고음으로 방청객과 패널들을 놀라게 했다면, 2라운드에서는 감미로운 중저음으로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해 다시 한 번 이들을 놀라게 했었다.
|| 2015년 5월 3일 ~ 5월 10일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참가자
|| 2015년 9월 11일 || 2015 DMC 페스티벌 복면가왕 특집 생방송 || 참가자
([[카리스마 LP소년]]) || [* 1라운드 결과는 거울공주가 승리해서 LP소년이 패자의 전통에 따라 가면을 벗었는데 4차전이 끝났을 때 기계의 집계 착오로 밝혀져서 두 사람을 급히 불러와 방송사고였음을 알려준 다음 진짜 승자인 육성재에게 다시 가면을 씌우고 음성변조를 했지만 이미 정체를 다 아는 상황에서 육성재 본인이 복면가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기권했다.] ||
|| 2015년 9월 13일~2016년 5월 29일 ||<|2> SBS || [[SBS 인기가요]] || 진행자 || ||
* [[니엘|아이돌계 입술 끝판왕]]의 존재감 때문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입이 크고 입꼬리가 길어 돋보이는 편이다. 본인도 입동굴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 본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16년 9월 28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 방송일자 기준 1.2M(120만명)인데, 그때까지 이를 12만명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 말할 때 발음이 자주 샌다. 특히 ㅅ발음을 잘 못하는데, 육성재가 생김새도 그렇고 목소리도 유난히 어려보여서 은근 귀엽다.
라디오나 예능에 나가면 짓궂게 형들을 놀리지만 알고보면 형들을 자랑스러워 한다. 최근에는 리더 [[서은광]]을 많이 언급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걱정한다. 2017년 연말콘서트 막콘에서는 '은광아 ~~형인데 왜 은광아인지는 묻지말자~~ 덕분이야'라는 멘트를 외치도록 주도해 형을 울리고 본인이 울기까지 했다(!) 알게모르게 형들을, 특히 은광을 존경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집에서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히트제조기에서 빅병의 리더를 뽑는 자리에서 토끼의 눈 붙이기 시합(...)이 있었는데 제일 꼼꼼하게 꿰매서 칭찬을 받자 뿌듯하게 '저희 엄마가 퀼트하시거든요'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팬이 준 잠옷 모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가자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서 직접 귀를 꿰매다가 매듭 짓기에 실패하자 "엄마 나 까먹었어 ㅠㅠ!!" 하는 모습을 보면 사춘기 시절에도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듯. ~~바느질도 배우고~~ [[https://youtu.be/jvTZOTeemZg|#]]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먹는 것이 꿀리면 인생이 꿀린다', '일순간의 창피함이 영원한 이득이다', '너보다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설령 니가 바보 같이 보일지라도', '오늘 니가 흘린 땀은 먼훗날의 눈물이 나온거다' 등.
2015년 7월 15일 [[뉴질랜드]]로 [[조인성]]과 광고를 찍으러 갔다. 그 날 밤 심심해서인지 트위터에 젤리를 먹고 이빨 닦은 다음 콜라를 마시고 자기 손발 영상을 찍어 올리며 똘끼를 맘껏 발산했다. ~~이 영상에서 육성재는 감동적인 명언을 남겼는데 '멜로디 최고, 다짐, 평화, 사랑, 내 전부'가 바로 그것~~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는 [[레골라스]]를 패러디한 육골라스(…) 분장을 하고 나왔으나, 개그만 일삼다가 [[몬스타엑스]]에게 18점 차로 KO패를 당해 광탈했다. 첫번째 사수로 나온 [[서은광|광피트]]가 부진한 상태에서 3번째 사수로 나오자마자 3점과 5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했고, 마지막 슈팅 후 오버하는 포즈를 취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쏜 [[I.M|아이엠]]이 카메라 엑스텐을 기록한 후 육성재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는 것. [[서은광]]이 마지막 사수로 나왔을 때 [[레골라스]] 가발을 벗어던지고 말았다. 결국 [[서은광]]과 육성재의 어이없는 실수로 [[BTOB|비투비]]는 양궁 예선에서 [[광속 탈락|광탈]]했다.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비교적 감성이 올드한 편이다. 대기실 비하인드 영상, 직접 촬영하여 트위터에 업로드한 영상 등에서 자신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었을 시기인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의 곡들을 즐겨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각종 비하인드 영상에서 부른 곡들은 '제비([[김건모]])', '너를 보내고([[윤도현]])', '열정([[스티브 유|유승준]])', '가위(유승준)', '마지막 콘서트([[이승철]])' 등이 있다. ~~선곡만 보면 1995년생이 아니라 95학번이래도 믿을 수준~~ [[https://youtu.be/yKsTJNQIjnI|#]] (0:00~0:21)~~누나팬들은 이렇게라도 세대 차이를 덜 느껴서 좋다고 한다~~
- 은혼/648화 . . . . 49회 일치
* 이때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나서 싸움을 멈추고 증오의 연쇄를 끊자 강변하나 엔쇼는 인간이 살아있는 한 그건 불가능하다며 반박한다.
* 본래 엔쇼에겐 형이 있었다. 동생을 신뢰하던 좋은 형이었으, 동생은 그런 형을 시기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형수였기 때문에.
* 형을 함정에 빠뜨리고 형수를 아내로 취한 엔쇼는 깊은 자기 혐오에 빠져 전장으로 달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타나 사변이 일어났다.
* 엔쇼는 자기 같은 자들이 있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주장했으나 신스케는 "전쟁이 끝나고 보통 인간으로 돌아가서야 진짜 전장에 서는 것"이라 역설한다.
* 결국 병사들까지 전의를 잃고 무기를 버리자 노부노부는 적아군 구분없이 모두를 구하도록 하는데, 이를 본 엔쇼가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 엔쇼는 자작 제독에게 그에게 용서를 비는데, 그것이 유언이 되었다. 종전을 납득하지 못한 병사가 총을 난사했고 엔쇼는 머리를 맞아 절멸했다.
* 그는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의 업보를 시인하며 총을 쏜 병사에게 분이 풀릴 때까지 자신들을 쏘되, 이 전쟁은 대장 둘의 목숨으로 끝내도록 하자고 타이른다.
* 신스케가 쓰러지면서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였다. 마타코의 오열과 함께 전장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돌아왔다. 군홧발소리가 두 남자의 주위를 애워쌌다. 양측의 병사들이 적의 대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다시 시간은 얼어붙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대치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는.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그 말을 꺼냈다.
* 자작 제독과 함께 병사들 앞에 선 노부노부는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말했고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걸지도. 그는 이제 충분히 싸웠고 자신들이 이 자리에 있는건 증오를 부딪히기 위해서가 아닌, 그걸 멈추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었다.
* 권유처럼 들리는 노부노부의 말에 수긍하는 이는 없었지만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대의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이끌어온 남자들, 다츠마와 가츠라가 그랬고 신스케가 그랬다. 신스케는 지금껏 밟아온 시체를 생각했다. [[카와카미 반사이]]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 시체들이 발 밑에 있는데 참으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그때 엔쇼가 한 말은 신스케의 심정을 대변했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겐 그 아픔이야말로 무덤의 주인이 이 세상을 살았던 증거이자 그가 자기 안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엔쇼였고 또 뱃속에 있는 그의 아이였다. 엔쇼가 먼저 자리를 떴다. 새로운 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다만 짖궂은 말로 그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 초연의 황자가 형이 있었다는건 숨길 일이 아니었다. 아우를 사랑하는 좋은 형이었고 그를 무예의 수호신이라 칭송해주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형수에게 품은 감정은 숨겨둬야 할 일이었다. 엔쇼는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앞으로 할 일을 위해선 많은 것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머지 않아 형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어떤 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 형수였던 시절엔 남편을 초연하게 배웅하는 법을 몰랐다. 형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러 가는게 아니며 영웅 초연의 황자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엔쇼는 형의 곁에 있었다.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형의 함선이 기습을 당하고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조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형을 내버려둔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슬픔을 가장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형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형수를 위로한 일이었다.
>나한테는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증오할 자격 따윈 없었다.
어디까지였을까? 어디까지가 계획이고 어디까지가 은폐였을까? 그의 형도 형수도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자신까지도. 이제 길고 긴 도주의 나날이 버티고 있었다. 초연의 황자는 전장에 미치지 않았다. 도피처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고통과 함께 살 강함이 없었다. 아내의 강함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오직 전장에서만 그게 가능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그녀의 강함도, 그녀로부터 달아나는 자신의 약함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를 잃었다는 고통까지 잊을 수 있었다. 얼마나 좋은 도피처인가?
엔쇼는 자신이 전장에서 도망자로 죽어야 한다고 믿었다.
싸움은 끝났다. 신스케의 안에서는 그랬다. 그는 엔쇼와 자신을 "우리"로 묶었다. "우리들"에게는 죽는 것도 안식일지 모른다. 자신도 엔쇼와 같다고 말한 신스케는 자신은 셀 수도 없는 죄로 얼룩져 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꼴사납게라도 살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거기에, 그 죄에서 태어난 자가
>저 남자가 멈추라고 한다면야 멈춰야만 하잖아.
>저런 남자를 쇼군이라고 추켜세울 셈은 아니다만
- 이광수(배우) . . . . 49회 일치
||<#ACF3FF> '''{{{#000000 이름}}}''' ||<#ffffff><(> 이광수(李光洙 / Lee Kwang-Soo)[*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지은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와 한자도 같은 동명이인이다.] ||
'''아시아 프린스, [[런닝맨]]의 최대 수혜자[* 런닝맨 고정 7인 중 프로그램 시작 당시 인지도가 낮은 편이었으나, 현재는 런닝맨의 실세가 되었다. 특히 해외 팬들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 그에 걸맞게 중국 최대의 SNS인 [[웨이보]] 팔로워 수만 봐도 약 830만 명인데, 웨이보 한류 스타 순위 TOP 100명 중에 12등이다. 런닝맨 내에서도 팔로워가 두 번째로 많은 송지효와 200만 이상 차이가 난다.][* 런닝맨이 시작하던 2010년 7월 기준, [[유재석]]-[[지석진]]은 이미 십수년간 대중에게 인정받은 톱 개그맨이자 MC였고, [[김종국]]은 가수로서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X맨을 찾아라]]과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에서도 맹활약한 스타였다. [[하하(가수)|하하]] 역시 X맨, [[무한도전]] 등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고, [[송지효]]는 배우 경력이 꽤 길고 패밀리가 떴다 등의 예능 출연 경험 등이 있었다. 이들에 비해 [[개리(리쌍)|개리]]와 이광수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개리의 경우 그룹 [[리쌍]]은 많은 히트곡과 힙합계에서 오랫동안 쌓아올린 명성, [[길(리쌍)|길]]의 무한도전 출연 등으로 그룹 자체는 유명했지만 개리 개인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이광수는 시청률 20%를 넘겼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요 조연으로 나와 갓 이름을 알렸던 때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화제성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이광수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상태였던 것.]'''
[[남양주시]] 출신으로 190cm의 큰 키와 큰 코를 가진 개성 넘치는 모델이자 배우이다.
초창기 때는 해괴한 바가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이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절과 런닝맨 초창기에는 외모가 눈에 띄지도 않고 런닝맨 멤버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라서, 20대 초반 화보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런닝맨 중반부 이후로는 수염도 밀고 머리도 다듬다 보니 꽤 훈남화됐다. 다만 망가지기도 많이 망가질 뿐더러, 멤버들이 친구 송중기와 자꾸 비교하다보니 못난이 캐릭터가 지속되는 현상이 나온다. [[2007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KT의 'SHOW' CF(공대 아름이 편)였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모기춤도 이때 생겼다. 당시 수염 때문인지 [[노안]]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 살 많은 [[누나]]인 [[유인나]]보다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수염]]을 제거했고 수염이 없는 현재는 [[동안]]까진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젊어 보인다. 허나 여전히 노안 캐릭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룡]]이나 [[에브라]], [[김상중]] 등 런닝맨에 출연할 당시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염을 밀 때였다.]
본업은 연기자지만 예능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이미지 때문인지 런닝맨만 출연하고 있지만 사실 런닝맨을 출연하기 전에 자주 예능 출연을 많이 하였다.
예능 캐릭터로는 [[기린(동물)|기린]][* 이광수의 대표 별명. 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키가 커서.], 꽝손의 신 혹은 꽝손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리고 20꽝수로 [[전율미궁|여기]]에 혼자 들어갔다-- 최근에는 얌생이로도 웃음을 자아내는 중.
== 연기자 ==
드라마로서는 첫 주연을 맡은 [[라이브(드라마)|라이브]]에서는 [[런닝맨]]에서의 코믹한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내고 진지한 정극 연기를 선보여서 시청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이로서 예능 출연자가 아닌 실력파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쪽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 홍콩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네슬레]] 홍콩의 인기 상품인 렁떵리[* [[광동어]] 한자로는 '능득리'라고 쓴다.][[프루팁스]] 신년 광고에도 나오기도 했다. 자국 연예인만 광고에 출연 하던 브랜드에 첫 해외 연예인 모델로 발탁. [[https://www.youtube.com/watch?v=lT7iHP9Imvw|2015년 버전]] [[https://youtu.be/2IJN2ECrLCk|2016년 버전]]
[[태양의 후예]]로 한류스타가 된 송중기나 [[또 오해영]]으로 신흥 한류스타가 된 [[서현진(배우)|서현진]]도 해외 팬미팅에서 자주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마냥 한류스타라고 해서 좋은 것만은 있는게 아닌데 배우지만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예능으로 진출한 바람에 해외 팬들은 간혹 배우가 아닌 그저 웃긴 예능인으로 보는 우스운 상황이 있다. --심지어 국내 기자들도 개그맨으로 오류를..-- 그리고 아시아프린스가 예능에서 가볍게 불려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사실 이광수는 한류스타 중에서도 유명한 한류스타라고 할 수 있다.네이버에 기사가 떴는데 이광수가 한류스타 중에서 수입이 6위라는 기사도 떴다.
또 배우로서의 친한 연예인으로는 연예계의 사조직 멤버로는 [[배성우]], [[조인성]], [[송중기]], [[임주환]],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차태현]], [[박보검]]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송중기하고는 동갑내기 절친인데, 런닝맨 때부터 인연이 이뤄졌다. 주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맛집이나 영화 시사회, 팬미팅, 콘서트에 자주 간다고.
의외로 [[무한도전]] 멤버들하고도 친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한도전 멤버는 전현직 멤버 모두를 의미한다.] 비록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단, 바보전쟁 특집에서는 본인 명의로 보낸 화환이 있었다.] 런닝맨에 출연하는 [[하하(가수)|하하]]와 [[유재석]]이 무한도전 출연진이다 보니 종종 같이 술자리를 한다. 또한 [[노홍철]] 생일에 축하 메세지를 보내거나 [[정준하]]와 만나서 바보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런닝맨에서 [[길(리쌍)|길]]하고 차 타고 같이 간 적도 있었는데 동작대교에서 버렸다고 폭로했다.
여배우에선 동갑내기 배우인 [[왕지혜]], [[신다은]]하고도 절친한 사이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런닝맨 출연할 당시 광수의 사생활을 폭로하였다.어떻게 보면 왕지혜의 폭로가 더 파격적인 폭로였다.신다은은 이광수가 자신한테 고백한 적이 있다가 전부였지만 왕지혜는 이광수가 이광수 동생역할이랑 사귀었다고 했고 그게 누구인지까지 파악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런닝맨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는 [[이국주]], [[홍진영]], [[박지성]], [[류현진]], [[박보영]][* 박보영과는 자주 밥을 먹는다고 한다.박보영이 바쁠때 이광수를 불러서 같이 밥을 먹는다고 직접 밝혔다.]과도 어느정도의 친분을 가지고 있다.
2017년에는 소아환자를 위해 1억을 기부하였다는 기사까지 떴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81068|#]] 게다가 주변 지인들한테도 좋은 미담이 많다.
그러나 후에 한류진출 한 이후에 이 춤이 덩달아 화제가 되었다. 외국에서 과거 이광수가 출연한 하이킥을 보면서 모기춤의 존재에 대해 알게된 것. 정작 당사자는 "몇 년간 이 춤을 안 췄는데 최근들어 갑자기 이 춤을 많이 추게 되어서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런닝맨 300회 때 연세대에 갔을 당시 학생과 같이 췄다. 또한 외국에서 팬 사인회에서도 팬이 모기춤을 추자 같이 추는 영상도 올라왔다.
|| 2012년 || [[KBS]]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 [[박재길]][* 사실상 실제 이광수와 싱크로율 백프로이다. 왜 그런지는 항목 참조.] || 조연 ||
|| 2013~14년 || [[tvN]] || [[감자별]] || 노보영의 첫사랑 || 특별출연 ||
- 이준(배우) . . . . 49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과거에 동명의 예명을 사용한 1984년생 남자배우, rd1=이인(배우))]
2014년 10월 13일, 소속사 제이튠캠프와 계약이 종료되어 팀을 탈퇴 후 연기자 활동에 집중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소속사 측에서는 확실히 결정된 부분은 없다며 우선 부인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16일 두 멤버의 탈퇴가 공식으로 보도된다.
빠른 88년생이지만 출생년도에 맞게 1988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팀내 87년생 멤버인 [[승호]]와 [[지오(엠블랙)|지오]]를 형으로 부른다.[* 출생년도만 봤을때 정상적으로 학교를 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준이 초등학교를 입학했던 당시에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만6세가 되는 친구들을 함께 입학시킨 것이다. 만일 이준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입학했다면 만6세가 되는 1994년에 승호와 지오와 함께 초등학교를 입학했어야 맞다. 즉, 고등학교는 2003년 입학, 2006년 졸업했어야 정상이다. 따라서,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95년이었다.] 엠블랙 데뷔전에도 가발피팅, 홈쇼핑, 숙취해소음료 광고등 다양한 부분의 깨알같은 경력을 자랑한다.
현대 무용수 출신이다. 국내 최고 예술대학인 [[영진고등학교]] 무용과 출신이다. 중3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진고등학교]] 졸업 후 [[영진고등학교]] 무용과를 입학하였으나, 이 학교는 졸업전까지는 방송 및 연예활동이 금지 되기 때문에 도중에 자퇴했다.[* 장동건이 한예종에 있던 과거에는 완전불가였으나 현재 연기과는 1학년은 여전히 불가, 2학년 교내작품은 가능(영화과 작품 출연 등) 3학년 교외활동도 가능하다. 무용·음악원은 여전히 금지. 영상·전통·미술원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신경쓰지 않는다.] 워낙 들어가기 힘든 것으로 잘 알려진 한예종을 자퇴했다는 사실이 잊을만하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아예 '''한예종의 위엄'''이라는 유명한 짤방 시리즈가 존재한다. 당초엔 수석입학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일반입학이었다고 정정했다. "왜 그동안 정정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가 낸 소문도 아니고, 좋은 얘긴데 굳이 제가 나서서 정정할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반박할 수가 없다~~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무한도전]]에서는 조정 특집 당시 제 8, 9, 10의 멤버를 뽑는 자리에 박명수의 전화를 받고는 '''뭐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무한도전이라는 말에 덥석 낚여서''' 참여하게 되었다. 제 8의 멤버로 낙점된 진운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게스트들에 비해서는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나 멀쩡해보이는 비주얼과, 완주 할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는 달리 10분도 못 버티는 조루 체력으로 선방.
2010년 8월 29일 런닝맨에 첫 출연했다. 당시 경복궁에서 촬영한 방송분에서는 그냥저냥한 무난한 활약상을 보였으나, 2012년 5월 20일 박지성 특집에서는 그룹 엠블랙 멤버들과 함께 송지효를 제거하는 킬러로 파견되었다. 높은 자리에서 정탐하고 저격을 시도하는 등 그럭저럭 멋진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나, 런닝맨 멤버들이 반격을 해올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방심하다가 등짝을 내주며 허무하게 탈락. 이 때 내지른 '''"오와아아아아악!"''' 이란 비명소리는 건물 옥상에서 내질렀으나 지상에서도 똑똑히 들릴 정도로 컸다(…).
그리고 런닝맨 연출진들의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해 7월 22일자 [[런닝맨]]에서는 그룹 멤버들을 빼고 단독 출연했다! 여기서도 이동 중에 혹시 스파이가 아니냐는 아이돌팀 멤버들의 의심에 '''"내가 그럴 급이 아냐!"'''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어머니 나이를 왜 공개하냐는 정용화의 핀잔에 '''"우리엄마 나이 내가 공개하는데 왜?"'''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다. 중간 미션인 뜀틀 배구대에서는 쓸데없이 높게 뛰는 퍼포먼스를 남발하다가 자신에게 날아온 배구공을 제대로 토스하지 못해 팀을 패배하게 만들었다(마침 그게 런닝맨팀의 매치포인트 경기였다). 최후의 추격전에서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를 피해 달아나다 [[김종국/런닝맨|호랑이]]를 맞닥뜨려서 또 다시 '''"오와아아아아악!"'''이라는 비명을 남기고 횡사.[* 뒤에서 추격해오던 하하까지 기겁했다.] [[단말마]]가 무엇인지 시범을 보이면서 본의 아니게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2012년 1월 24일 MBC 설 특집 프로그램 [[두근두근 흔들려]]에 출연해 [[애프터스쿨]] [[박수아|리지]]와 커플이 되어 고난이도의 [[에어로빅]] 체조 공연을 펼쳤다. 처음부터 리지를 파트너로 지목했고, 극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둘이 모여 꽁기꽁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로 상대방이 자기에게 실망할까봐 걱정하는 소심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1월 12일 방송된 '''우결에서 오연서가 직접''' 이준에게 스캔들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를 하였다. 이부분에 대해 시청자들은 "어차피 연기면서 ㅉㅉ"라는 반응도 있지만, 오연서의 사과를 받을 때 이준의 표정이 진짜 심각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이준 어떡하냐 진짜 불쌍하다"라는 반응. ~~그리고 이장우는 엄청 까이고 있다~~ 특히 위의 고영욱과의 일까지 겹쳐서 정말 불쌍한 이미지가 돼버렸다.
2013년 7월 2일 [[화신]]에서 우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http://news.nate.com/view/20130703n00274|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샀다.
MBC 특집 단막극 <주부 김광자의 제3활동>에 인기 아이돌 그룹의 리더 역으로 출연했고, [[샐러리맨 초한지]], [[정글피쉬 2]], [[선녀가 필요해]]에도 출연하였다. 원래 배우를 꿈꿨던 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다.
[[김기덕]] 감독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감독의 오랜 팬이었으며 무명시절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던 등의 이야기를 하였고, 김기덕 감독도 호의를 보여서 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신연식 감독의 [[배우는 배우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사실상 이준이 모두 이끌어가는 원탑 주연의 영화로 기자시사회 후에도 이준의 연기에 호평이 꽤 이어졌다.
연기자 활동을 위해 엠블랙을 탈퇴한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347674|기사참조]]
2016년 9월부터 MBC 월화 특별기획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변호사 마석우 역으로 출연했다.
웃을 때 팔자주름이 생기는 것이 특징. 사막여우를 닮았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듯한 솔직한 발언과 백치미스러움, [[정신줄|정줄]] 놓고 망가지는 모습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막내인 [[미르(엠블랙)|미르]]가 [[천둥(가수)|천둥]]과만 논다고 삐져있다던지... 방송에서는 밝고 명랑한 천연 & 백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면면을 살펴보면 속이 깊고 생각도 많으며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송에선 [[비글]]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 하지만 의외로 애교도 많다 ~~반오십이후로는 애교부리는것이 민망해졌다고 한다~~ 쉴 때면 거의 잠만 자고 조용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별명이 식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멤버들이 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화폐|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장부를 쓰고 있다. 백원까지도 다 받아내려 하지만 팀의 리더인 [[승호]]는 갚는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돈을 재테크로 불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안쓰고 모아서''' 잠실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은 [[이온음료]].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자신은 [[체크카드]]로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래들보다 수입이 많다고 자칫 그것이 평생 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님이 편찮으셔서 간병도 하고 치료비 일부를 지원한 바 있는데 그 일이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훨씬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듯, 아이돌계 최강 짠돌이라고 알려진 이준이 아이돌 중 최초로 세월호 기부를 해 많은 칭찬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03857|기부 기사에 댓글이 만 개 가까이 달리기도 했다. 놀랍게도 거의 다 선플.]] 그것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고 혼자 본명으로 몰래 했다가 기부처 측 확인 절차 중에 알려진 거라고.. ~~왠지 기부도 이준답게 한다~~
- 이철희(1964) . . . . 49회 일치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실제로 번듯한 정치 연구소 소장이라기보다는 전화 받고 사무실 지키는 직원 하나 둔 개인 사무실에 간판 하나 달아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썰전]]에 출연하기 시작한 후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연구소에 부소장도 생겼다. [[서양호]] 씨인데 2011 통합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정당인 출신이다. 이철희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장직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서양호 소장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중구청장으로 당선.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593920|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http://mnews.joins.com/article/7703750|공천 과정에 대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정국 당시, 한겨레 TV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해 [[김어준]]과 날선 토론을 벌여 김어준의 눈에 띄게 되었고[* 이 시기 이철희보다 먼저 출연하였고,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 바로 [[김용민(1974)|김용민]]의 소개로 출연하였던 [[고성국]]이다. 그리고 고성국이 친박 성향을 확연히 드러내면서 빠진 자리를 이철희가 메웠다.], 그 후 고정 패널로 안착하여 대선이 끝나고 프로그램이 없어질 때까지 출연하게 된다.
[[SBS]]에서 2015년 7월 26일 방송된 [[SBS 스페셜]] - 메르스의 고백편의 한 부분에서 토론 및 토의의 사회자로 출연하였다.
썰전의 고정 출연한 이후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썰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 하다. 썰전 덕분에 팬클럽(!)도 생겼다고 한다. [[김구라]]와 [[강용석]], [[이준석(정치인)|이준석]]과 '하드코어 뉴스깨기'를 맡았다. 보수 성향의 강용석, 이준석에 맞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대변한다. 사회비판적, 이상지향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 이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강용석과 꽤 심각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강용석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다만 이걸 칭찬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철희가 처음 썰전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파트너가 강용석이라고 하자 '그럼 나는 이거 안 하겠다' 라고 했었다는 걸로 봐서는, 강용석을 아주 그냥 말도 못 섞을 사람으로 본 것. 그나마 그 정도는 아니라는 뜻에 가깝다.
E.E. 샤트슈나이더라는 학자를 좋아해서 그의 책과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보통 샤'''츠'''슈나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 발전은 다양한 정당들의 공정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당 정치에 깊이 관심 있는 사람치고 샤트슈나이더 영향 안 받은 사람은 드물다. 이철희는 샤트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참고로 샤트슈나이더는 대의제 민주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인데, 현 새정련 주류인 친노계가 직접, 참여적 민주정 강화를 지향하는 입장임을 보면 애초에 정당 운영 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 갖고 까는 건 아니지만~~][[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28769|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또한 학부 시절 [[최장집]] 교수에게 배운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 교수 역시 저서에서나 강연에서 대의제 민주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
2015년 10월 29일 썰전 방영분에 의하면, 일부 네티즌들이 본인을 "[[종북|리철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북한을 싫어한다는 논리를 공공연히 드러낸 그이기에 이는 정말 개드립이며, 이는 진보를 무조건 종북으로 보는 매우 몰상식한 짓인데다 설령 그가 친북인사라 할지라도 민주시민된 자로 신상드립은 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인 책무가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해 그는 본인의 가장 큰 목표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지역구 사안도 챙겨야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보다는 전략 수립에 몰두할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실 다선을 노리려면 처음부터 지역구에 나가는 것이 수월할 만큼, 다선보다는 정권 교체를 1차적인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무를 맡게 된 이후의 공천 잡음과 관련되어 있지 않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입당 직후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28501|문재인 의원의 부산 공천]]을 주장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고[* 대권주자 또는 당의 핵심인원으로 전국에서 선거지원 활동을 나서야 하는 인물들을 지역구 선거에 투입할 경우 지역구 선거유세에 발이 묶이기 때문에 전국지원유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 볼 수 있다.], 2월 초에는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0205100351001&mobile|막말, 운동권 공천 배제]]'를 주장하였는데 [[정청래]] 의원의 공천 배제의 가장 큰 근거가 된 게 '막말'이었으며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대거 공천 배제당하다보니 이철희 전 소장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비례대표 논란이 있는데, '더벤저스'라고 불리며 당내 활동에 적극적이던 영입 인사인 [[http://m.moneyweek.co.kr/view.html?no=2016031507208018613|김빈 디자이너가 예심에서 5분 면접 후에 탈락]]당한 반면, [[http://news.donga.com/ISSUE/Vote2016/News?m=view&gid=77018257&date=20160315|더민주 당직자가 첨삭지도를 해 준 것]]과 [[http://mnews.joins.com/article/19388510|과거 국민의당 발기인]]이었던 상황임에도 청년비~~리~~례대표 결선대상자로 지정되어서 논란이 된 최유진 예비 후보가 이철희 전 소장의 대학원 시절 제자라고 밝혀지면서 '자기 사람 끼워넣기'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김빈 디자이너는 비례대표 심사 이전에 비례대표 예비후보로서 자신을 홍보하면서 자신의 본명인 '김현빈'이 아닌 예명 '김빈'이라는 이름을 쓴 적이 있다. 본명을 기재하지 않았다면 선거법 위반 사항이다. 이것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http://gosunggo.com/693|박영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5001.html|'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영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 유시민 작가는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을 하긴 하였으나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인지라 더민주 내부 상황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의문스럽고 또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확실한 상황 증거는 내놓은 게 없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당 발언의 사실성을 떠나서 민주당을 떠난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인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영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3월 15일, 이러한 루머들에 대해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90562&CMPT_CD=Mnew#cb|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신은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박영선]] 문서에 적혀 있기도 한 녹취록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며 그 당시 이야기한 내용은 외부 상황의 심각함과 기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후에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청산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크게 경시한 것이기에 이후 자신이 지지하던 안희정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물론 이철희 본인이 이기는 곳에 가는 것에 연연했다기 보다 본인에게 맞는 쪽으로 간 것이기에 이철희 본인도 이후 경선결과에 토를 달지 않고 승복, 이후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적 표현에서 대통령다운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국민의당의 김경진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 대표 사례.
이후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MB 정부 시절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문건을 결제한 사실을 공개하는 등 여당의 공격수로 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해 치며 정력적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KEPD 350]] 도입이나 [[중고 치누크 도입 논란]]을 지적했는데 잘못 짚으면서 이미지를 좀 까먹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같은 당 출신인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전 의원이 반박하기도 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가진 편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정확한 발음이나 발성, 톤 조절 등 기초적 발언 능력이 상당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토론에서의 치고 빠지는 타이밍(?)[* 평론가 시절 방송 토론에서 --노답-- 상대가 억지 논리로 나올 때도 이철희는 처음엔 참고 있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큰 헛점이 표출될 때)에 치고 나오며, 막판에 상대와 같이 깽판을 치더라도 상대 빈틈을 파고들 타이밍을 안 놓치고 맹공격하곤 했으며, 상대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받아치는 것도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왔고, 역으로 소위 막가는(?) 언쟁을 끝낼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칼같이 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봐도 상대가 먼저 깽판을 쳤고, 이철희는 그에 잘 맞섰다는 인상을 주었다. --상대는 콧김만 씩씩, 사회자는 그냥 멘붕--] 설정 능력, 짧은 시간에 상대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는 능력,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발언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탁월하여, 농담으로 '말 못하는 사람도 토론은 잘 한다'[* 말투가 어눌하거나 목소리 톤이 별로거나 하는 등 대화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조차도 상대의 뜻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내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비언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즉, 언어라는 요소만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에는 그 사람만의 [[포스]]나 [[카리스마]]도 포함된다. 한국 근대 민주화의 뿌리였던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 연예인들이 그 말투를 흉내내어 당대에 가장 유행한 개그 패러디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발음이나 말투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생 수많은 진보 인사들을 연설과 대화로 매료시켰던, 한국 정치사 최고의 웅변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대한민국사 최초의 [[필리버스터]]도 김대중이 했다.) 그와 대화했던 정치인들의 경험담들을 보면 짧은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우리 박동지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을 못해도 말을 잘한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물론 이런건 김대중처럼 정치인생의 험난한 경험과 그런 고난들을 수없이 극복한 뒤에만 얻어지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많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초선의원 이철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원래 말 잘하는 사람은 그냥 말 잘하면 된다--]는 소리도 있는 스피킹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인 집단들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그를 '전략가'로서 영입했으나 사실 그 이전까지 이철희 자신을 대중적 인지도 높은 스타로 키운 건 그의 발언 및 토론 능력이다. 침착하게 말하다가도 상대의 공격에는 바로 강하게 맞설 수 있고, 강하게 말하다가도 이내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하다. 그러나 전략가라는 분야는 말을 잘해서 특정 상황을 잘 넘기거나 옳은 말로 물러나지 않고 맞서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는 설계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데, 연륜과 언변으로 인한 기대치에 비해서 전략 측면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전략가가, 합리적으로 상대가 잘못했고 자기 진영이 잘못이 없더라도, 정의와 논리로 이기기만 할 뿐이고 상대를 협상의 장으로 흡인력있게 끌어들이는 판을 만드는 설계 능력은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정치에서 항상 떠넘기기식 상황 전개를 유지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실질 이득을 얻을 수 없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기 쉽다.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49회 일치
* 바트라와 자라트라스에게 발견된 멜리오다스는 자신과 엘리자베스에 대한 내력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 자라트라스는 그를 소년이라고 여겨서 보호하려고 하는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내 여자"라 부르며 누구도 접근시키지 않는다.
* 바트라는 예언에 따라 엘리자베스를 양녀로 들이고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성기사로 써주는 조건"으로 승락한다.
* 바트라는 "일곱 명의 대죄인이 왕국의 수호자가 된다"는 예언을 보고 멀린과 멜리오다스가 예언의 인물들을 모아 "일곱개의 대죄"를 만든다.
* 자라트라스와 친해진 멜리오다스는 술을 마시다 자신의 진짜 연령과 죽지 않는 저주에 대해서 발설한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고 현실로 돌아온다.
* 현재의 멜리오다스는 "연옥"에 있는데 수상한 목소리가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말을 걸자 멜리오다스는 "싫다"고 거절한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의 기억 속 풍경에 혼란스러워한다.
* 그녀는 어린 자신이 멜리오다스와 함께 있는 거나 멸망한 다나폴에 있는 것에 당황한다.
* 자라트라스는 멜리오다스가 그 사실에 대해서만은 전혀 입을 연게 없다고 한다.
* 과거의 자라트라스는 그들이 그냥 어린애인줄 알고 보호하려고 한다.
* 어린 엘리자베스를 넘겨받고 멜리오다스를 치료하려 하는데, 뜻밖에도 멜리오다스는 그 손을 쳐낸다.
* 그리고 "내 여자에게 손대지 마라"고 하는데
* 장면은 바뀌어서 자라트라스가 바트라가 엘리자베스를 양녀로 삼으려 한다는걸 알린다.
*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승락하겠다고 한다.
* 자라트라스는 "보모라면 따로 구한다"고 하는데, 멜리오다스는 "성기사로 고용해달라"고 한다.
* 아직도 그를 소년으로 아는 자라트라스는 폭소를 터뜨리는데, 멜리오다스는 시험해 보겠냐고 제안하도 둘은 대결한다.
* 현재의 자라트라스는 "인생의 수치 베스트3"에 들어간다고 해설한다.--설명충-- 호크가 지렸냐고 하는데 "조금"이라고 답할 정도.
* 그의 추천으로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직속 성기사로 배속된다.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기억을 못하지만 그녀도 멜리오다스를 잘 따랐다.
* "일곱 명의 대죄인이 리오네스 왕국의 수호자가 된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49회 일치
* 일곱 개의 대죄의 재집결과 돼지의 모자정의 리뉴얼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린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뒤늦게야 나타난다.
* 연회가 계속되던 중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디안느]]가 성전시대에 "자기와 닮은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말을 마음에 걸려한다.
* 멀린은 멜리오다스에게만 "아서는 내 희망 그 자체"라며 그의 안위를 부탁하는데, 하필이면 그 말을 [[에스카노르]]가 듣고 만다.
* 일곱 개의 대죄가 당면했던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종결되고 일행이 다시 뭉쳤다. 무너졌던 돼지의 모자정도 리뉴얼을 완료하고 일곱 개의 대죄 재집결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도 참석. [[에스카노르]]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마시기에 바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시낭송이 끝나고 에스카노르가 울적해하지만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만은 좋은 시였다고 호응한다. 하지만 어차피 잔반 처먹느라 제대로 듣진 못해서 "바람에 춤추는 백성의 외침"이란 싯구를 "바람에 춤추는 잔반"이라고 들었다.
* 시가 무시당하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니 곧 털어버리는 에스카노르. 그런데 이 경사로운 자리에 한 사람이 빠져있다. 연회가 시작한지 꽤 됐는데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자리만 비어있다. [[멜리오다스]]는 "수상한 실험"이라도 하느라 틀어박혔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에스카노르는 걱정된다며 보고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에스카노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빈 의자로 순간이동해 나타나는 멀린.
겉보기에는 평소와 같다. 엘리자베스가 그녀를 반기며 술을 따라준다. 이때 방금 전엔 밉쌀맞은 소릴내뱉었던 멜리오다스가 그녀의 안색을 살핀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게 아닐까?
* 그런 사정가지는 파악하지 못한 에스카노르가 멜리오다스에게 다시금 건배하자고 제의한다. 엘레인을 끼고 있다시피한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이제 일곱이 다 모여서 1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한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다르다고 대답하는데, 이제는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진짜 동료"가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기뻐하는 고서. 살짝 취기가 오른 [[디안느]]는 거기에 엘리자베스랑 엘레인도 있다며 둘을 와락 움켜쥔다. 이런 분위기를 정돈하며 멜리오다스가 술잔을 높이 든다.
* 다시 술잔이 한 바퀴 돈다. 디안느는 문득 성전시대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을 고서에게 물었다. 대체 진짜 고서는 어떻게 성전을 종결지었냐는 것. 할리퀸도 자기도 궁금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고서는 난처한 기색이다. 그리고 성전시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인워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지간히 지식이 있는 멀린이나 당시 참전했던 멜리오다스 조차 고서가 직접 성전을 끝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일단 에스카노르가 "여신족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마신족을 봉인해서 끝났다"는 전승을 읊는다. 멜리오다스는 "어둠의 관"을 혹시 고서가 만든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멀린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건 거인 명공 "다프즈"란 인물이 만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아버지가 미소년을 여장시키는 성벽이 있었다, 이 불편한 진실이 공개되자 호크는 우선 엘리자베스가 받을 충격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버지의 치부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디안느가 성전시대의 이야기를 꺼낸 시점부터 그녀는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디안느가 지난 번 한 이야기, 성전 시대에 엘리자베스와 꼭 닮은 또다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고보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케인이 말했었다. 과거 멜리오다스에게 "리즈"라는 애인이 있었고 그녀의 본명 또한 "엘리자베스"였다는 이야기였다.
리즈의 일은 기막힌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성전 시대의 엘리자베스는? 그녀 또한 멜리오다스의 곁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득한 시간 동안 반복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 그런데 멜리오다스의 성희롱 버릇이 멍하니 고민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술기운 탓인지 평소보다 한층 격렬한 성희롱. 할리퀸이 진지하게 감상하다 디안느에게 응징 당한다. 그래도 멜리오다스는 나름대로 엘리자베스의 고민을 풀어주려는 의도였는지, 고민이 있다면 말해보라며 넌지시 말을 꺼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자 별 수 없이 그러겠다며 떨어진다. 엘리자베스는 술을 더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의도와 다른 결말이 나와서 멜리오다스가 멋쩍게 머리를 긁는데, 호크가 옆에서 "드디어 엘리자베스를 화나게 했다"고 뼈아픈 일침을 가한다.
* 에스카노르는 멀린에게 자작시를 들려주려고 기회를 보지만 멀린은 "취한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려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 멜리오다스에 필적하는 주당이라 그걸로 취할리가 없다. 그런 점을 들어 반이 농담조로 트집을 잡는데 멀린은 "술만 들어가면 트집을 잡는다"고 꽤 날 선 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연회가 못마땅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십계를 다 토벌한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 남은 십계는 "경신"의 [[젤드리스]]. 카멜롯을 비롯한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한 얘기다.
* 호크가 평소 성격대로 "그래도 대죄가 다 모였고 이 호크님도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허세를 떠는데 멀린은 위협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생각없이 손을 대면 확실히 당한다"고 경고한다. 호크가 기겁할 정도로 멀린의 반응이 날카롭다. 연회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성전 시대에서 젤드리스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는 디안느도 멀린의 말에 동조한다. 성전 시대에서 만난 젤드리스는 자신을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 행사하는 자"라 표현했다. 직함은 "마신왕의 대리". 멀린의 말대로 무서운 상대다. 디안느까지 이렇게 나오자 다른 멤버들도 겁을 먹는다. 언제나 뺀질거리던 반이 "거의 최강의 마신"이라는 소리냐겨 긴장된 모습이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식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연회는 다시 이어졌다. 호크는 잔반을 먹다지쳐 거기에 처박혀 잠이 들었다. 지금은 카드게임이 진행 중인데 반이 또 에스카노르한테 졌다. 술기운에 열까지 받은 반이 에스카노르가 사기를 친다고 주사를 부린다. 그러자 엘레인이 "술은 즐겁게 마셔라!"며 야단. 반이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해지자 에스카노르가 "엘레인씨는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 엘레인의 걱정이 적중했다. 멀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방에 들어왔지만, 방문을 열자마자 무너지듯이 비틀거린다. 그땐 누군가 그녀를 부축하는데, 멜리오다스다. 멜리오다스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찾다가 젤드리스에게 당했다는 걸. 멀린이 "무슨 이야기냐"고 모른척 하지만 멜리오다스와 그녀는 일행 중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이. 멜리오다스는 그런 탓에 뻔히 알 수 있다고 대꾸한다. 그는 멀린을 침대에 눕히며 한 가지 더 뻔히 아는 걸 말한다. 그건 멀린의 진짜 목적에 대한 것이다. 같은 대죄이자 멀린의 목적은 왕국을 구하는 것도, 카멜롯을 해방하는 것도, 심지어 젤드리스를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다.
멜리오다스의 짐작이 거기까지 이르자 멀린도 더이상 부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대화는 엘레인의 부탁을 받고 따라온 에스카노르가 뜻하지 않게 엿듣게 된다.
* 멀린은 멜리오다스에게 만은 자신의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내 희망 그 자체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49회 일치
* 여신으로 각성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등장에 당황한 [[메라스큐라]]는 [[멜리오다스]]를 내버려 둔 채 직접 전장으로 향한다.
* 엘리자베스는 모든 전생의 힘과 기억을 되찾았으며 어린 시절의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어 그녀를 당황하게 한다.
* 한편 혼자 남겨진 멜리오다스는 쌓이고 쌓인 분노가 마신왕의 힘을 끌어내 암담의 고치를 찢고 바깥으로 나오니, 보통 상태가 아니게 된다.
* [[디안느]]에게 씌워진 주박을 벗겨낸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이제 여신족의 힘에 완전히 각성했다. 그녀의 등장에 가장 경악한 것은 [[메라스큐라]].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즐기며 승리를 확신했으나 엘리자베스의 등장으로 일거에 상황이 뒤집혔다. 그녀가 당혹해 해서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그녀의 "암담의 고치"에 갖혀 있던 [[멜리오다스]]가 엘리자베스가 눈을 뜬 거냐고 묻는다. 메라스큐라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없이 어차피 엘리자베스는 이제 3일 후에 죽겠지만 자신이 직접 죽여주는 것도 좋겠다며 전장에 나서려 한다.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당장 꺼내주는게 좋을 거라고 다시금 경고하나 그녀는 무시한 채 암담의 고치를 나선다. 혼자 남겨진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격렬한 분노를 쌓아가는데.
* 엘리자베스는 디안느를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신족의 치유의 힘을 발휘해 일행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상쾌한 바람 같은 기운이 훑고 지나가다 중상을 입었던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가 깨끗히 치유된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엘리자베스를 따라온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을 질책했다. 그녀가 좋지 않은 몸상태로 무리를 한 게 가슴 아팠다. 엘레인은 반과 모두가 걱정돼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반은 이제 그 문제를 묻어두고 지금이라도 빨리 돼지의 모자 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엘레인이 대답을 피했다.
* 대신 엘레인은 엘리자베스에게 화제를 돌렸다. 깨어난 여신족의 강대한 마력. 엘레인은 그 힘에 놀라며 엘리자베스가 진짜 여신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엘리자베스는 과연 "어느 엘리자베스"인 거냐고 묻는다. 무수한 윤회, 수 없이 많았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이라고 대답한다. 즉 자신은 여신족의 엘리자베스이며 리오네스 왕가의 공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이기도 한 것이라 말한다. 치료를 마친 그녀는 지금 멜리오다스는 어디에 있냐고 그의 행방을 묻는다.
거기에 대답하기 적당한 사람은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그녀에게 왕녀가 묻지 않느냐고 대답을 부추겼다. 우두커니 있는 그녀에게 엘리자베스가 먼저 다가갔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굴었다.
전생의 기억이 깨어난 것이 어떤 영향을 준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착란 같은 증세와는 차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대신 멀린 쪽이 어색하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동료들이 그걸 이상하게 여길 때 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멀린하고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엘리자베스의 증언에서 튀어나왔다. 동료들이 수군거리고 십계가 부활했을 때조차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멀린이 사색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거침없이 자신이 아는 멀린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자신을 진짜 언니처럼 따랐던 12살 시절의 멀린이었다. 멀린이 당황해서 "언제적 얘기냐"고 하는 걸 보면 거짓 없는 사실. 할리퀸과 디안느는 저 멀린이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에스카노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엘리자베스에게 요구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멀린은 더이상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쓸데없는 캐묻기라고 정색했다.
* "신앙"의 메라스큐라. 더는 책략을 동원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녀는 나타나자마자 엘리자베스를 노려보며 적대심을 숨기지 않았다.
>마신족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증오스러운 여신 엘리자베스.
메라스큐라는 그 다음으로 십계에 대항하는 "건방진" 존재인 일곱 개의 대죄 일행, 그리고 자신이 임시적인 생명을 부여한 엘레인까지 일일히 거명했다.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은근히 자기도 불러주길 기대했지만 안중에 있지도 않았다.
메라스큐라가 자신의 증오스러운 적들을 직접 상대하려 하는 건 분명했다. 그녀의 몸이 묘하게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형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 형태가 무너지던 그녀의 몸은 팽창을 거듭해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 쌍의 뿔이 달린 사악한 뱀. 그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메라스큐라는 이 형태를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반은 지금까지 모습보단 이쪽이 낫다고 빈정거렸다.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메라스큐라가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반이었다. 메라스큐라의 주둥이가 반을 덮쳤다. 멀린은 고서와 엘레인을 퍼펙트 큐브로 보호하며 상공으로 날아올랐고 에스카노르가 호크가 휘날려가지 않게 붙들었다.
* 뱀의 아가리에 걸린 반은 위아래로 닥쳐온 턱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입을 잘못 놀린 덕에 화를 자초한 셈일까? 반이 아무 말 안 했더라도 메라스큐라는 그부터 손볼 작정이었다. 자신이 심장 여섯 개를 잃은 건 순전히 반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력함을 곱씹으며 연인이 씹히는 꼴을 지켜보거라.
그러나 메라스큐라는 원하는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순간 엘레인은 바람 보다도 빠르게 그녀의 입 속에서 반을 낚아채갔다. 동료들은 그녀의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크가 측정한 엘레인의 현재 전투력은 마력 18000, 무력 50, 기력 3000, 총합 21050.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힘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엘레인은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 사냥감을 어이없이 빼앗긴 메라스큐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는 건 이제부터다. 코란도 중심부에 있던 거대한 건물이 알 수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메라스큐라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멜리오다스를 암담의 고치에 가둬 숨겨놓은 곳.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거대하고도 사악한 파동. 그 기는 분명 그 사람의 힘이었다. 이젠 일곱 개의 대죄 일행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멜리오다스. 그가 결국 자력으로 암담의 고치를 파괴했다. 메라스큐라만이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암담의 고치는 십계 중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술법이었다. [[젤드리스]] 조차도 마신왕의 마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멜리오다스는 흉흉한 기운을 날개의 형상으로 뻗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마신왕의 마력 없이는 젤드리스도 깨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멜리오다스에 내뿜은 사악한 힘의 정체는 분명했다. 마신왕의 힘. 그는 그 힘에 잠식된 듯 보였다.
- 장서희(1972) . . . . 49회 일치
||<#9966FF> '''{{{#FFFFFF 본관}}}''' ||<(> [[장(성씨)|흥덕 장씨]][* 2018년 1월, ‘[[아는 형님]]’에 출연해 “어디 서씨냐”고 [[이수근]]이 잘못 묻자, ~~“장씨냐고 물어야지!”라고 핀잔을 주면서~~ “흥덕 장씨다.”라고 밝혔다.] ||
'''자타공인 [[막장 드라마]]의 황제'''
[[대한민국]]의 [[배우]]. [[막장 드라마]] 여주인공하면 바로 떠오르는 대표적 연기자로, 자신의 양대 대표작인 '''《[[인어 아가씨]]》'''와 '''《[[아내의 유혹]]》'''이 막장 드라마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그 두 드라마가 모두 그녀에게 대상을 안겼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1981년에 주최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 참가하여 진으로 뽑혔다. 이후 모델과 연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상용]]과 '모이자 노래하자'를 진행했고, 과자 광고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이 때는 사실상 모델 활동에 주력하던 시기로, 청소년 시기까지 주로 [[빙그레]] 제품의 전속 모델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9년, [[문화방송|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뽑히면서 성인 연기자로 데뷔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직후에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뽀뽀뽀]]'의 뽀미언니(7대)를 맡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 인기를 얻지 못해 조연이나 단역 생활에 머물러야 했다. 《[[허준(드라마)|허준]]》이나 《[[태조 왕건]]》,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등의 인기 드라마에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고, 특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에서는 '''[[폐비 윤씨]]'''역을 맡으며 열연을 펼쳤으나, 이후 작품 출연에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지금이야 조연 배우도 연기를 잘하면 ‘명품 조연’, ‘신 스틸러’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 통보 없이 배역에서 잘리거나 감독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등 무명 배우의 설움도 끊임없이 겪어야 했다. 그래서 [[문화방송|MBC]] 지하에 화장실 하나를 정해두고 서러울 때마다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바로 2002년 여름에 방영되기로 예정된 《[[인어 아가씨]]》의 '''주인공'''으로 추천되었던 것이다. 《[[온달왕자들]]》에서 [[임성한]] 작가가 장서희가 마음에 들어 차기작 주연을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 후반에 타임워프가 나오니 여배우들은 그 때에 맞춰 헤어 스타일을 바꾸라는 [[임성한]] 작가의 요구에 장서희가 유일하게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를 서브도 아닌 주인공으로 쓰는 것을 MBC에서 찬성할 리가 없었고, 결국 MBC와 임성한의 신경전 끝에 '''“장서희 아니면 드라마를 갈아엎겠다”'''고 임성한이 엄포를 하고 나서야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MBC 고위층들은 첫방 전까지 《인어 아가씨》를 냉대했고, 남자 주인공도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아 신인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초대박이 났다!''' 방영 석 달만에 시청률은 30%를 돌파했고[* 최고 시청률이 무려 '''47%'''였다.], 장서희는 복수심에 불타오른 은아리영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결국 2002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포함해 무려 '''5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배우가 한 해의 연기대상에서 5관왕이라는 수상을 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 당시 장서희의 연기력을 얼마나 인정받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사례.] 드라마 한 편으로 무명에서 연기파 배우 & 인기 스타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인생역전인 셈.
《인어 아가씨》 종영 직후에도 드라마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더불어 《인어 아가씨》가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면서 [[중국]]에 진출했는데, [[중국 드라마]]인 《경자풍운》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특히 [[청나라]] 황실 복장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줘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하지만 《인어 아가씨》 이후의 국내 작품들은 결과가 영 좋지 못해 점점 하락세를 타게 된다.[* 《[[회전목마(드라마)|회전목마]]》는 용두사미 스토리로 큰 비판을 받았고, 영화 《[[귀신이 산다]]》는 [[차승원]] 원맨쇼(...)였던지라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특히 희대의 괴작으로 꼽히는 《[[사랑찬가]]》의 출연은 장서희의 인기에 직격탄을 날렸고, 결국 《사랑찬가》의 조기종영 이후 3년 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사랑찬가》 이후 [[SBS]] 《[[그 여자가 무서워]]》, [[KBS 2TV]] 《[[내 사랑 금지옥엽]]》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아내의 유혹]]》 이후 드라마 《[[산부인과(드라마)|산부인과]]》에서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지적인 의사로 변신, 호연을 펼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청률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성적이었고[* 그래도 《[[인어 아가씨]]》 이후 줄줄이 말아먹던(...) 드라마들보다야 훨 나았다.], 드라마 자체도 진지한 분위기에 구성도 좋아 호평을 받았다.[* 장서희 본인도 “새로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자평했다.] 다만 경쟁작 《[[추노(드라마)|추노]]》에 밀려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10%대 초반의 시청률로 중박은 쳤다. 《산부인과》 이후에는 [[독립영화]] 《사물의 비밀》과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이색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4년 6월 3일, [[KBS2]]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로 4년 만에 컴백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079&aid=0002584796|#]]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음으로 몬 여자의 대리모가 되어 애를 낳아줬다가 다시 빼앗아온다는 내용(...). 다만 여기서 맡은 역할은 복수와는 거리가 멀고 [[혈연 때문에 개고생]]하는 쪽에 가깝다. ~~이걸로 대상 타면 막드 지상파 3사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막장 드라마]]의 여신~~ 그러나 [[유동근|경쟁]][[조재현|자들]]이 워낙 강력한데다가, 작품 자체도 그닥이었던 탓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시청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후반에 동시간대 1위, 시청률 자체도 20%를 넘기며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드라마가 초반에 워낙 질질 끄는 전개를 보여줬는지라(...) 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며 다소 위태스로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장서희의 덕이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니... --혼자 멱살 끌고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MBC [[주말 드라마]]《[[엄마(드라마)|엄마]]》에 출연하였다. 본인이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다소 이색적인 캐릭터였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여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17년에는 《[[언니는 살아있다!]]》에 출연, [[김순옥]] 작가와 약 9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중 1화부터 《[[아내의 유혹]]》의 셀프디스가 대놓고 나온다(...). ~~그 대사를 하는게 하필 또 장서희인 게 매우 절묘하다~~] [[아내의 유혹|작가와 협업했던 전작]]에서의 캐릭터와는 달리 다소 코믹하고 유쾌한 캐릭터지만, 그런 역할에서 나오는 사이다성 활약과[* 확실히 장서희가 분한 [[민들레(언니는 살아있다!)|민들레]]가 세 주인공 중 가장 비중이 높고 활약성 또한 대단한지라, 시청자들에게도 사실상 유일한 진주인공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강하리|이분]]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가끔 [[구은재]] 표정이 나올 때는 소름이...-- 드라마 자체도 크게 성공했으며[*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인터넷상에서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이 작품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연기력으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존하는 여배우 중 단연 톱클래스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
연기 경력이 길기도 하거니와, 오랜 무명기간 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스페트럼을 넓혀왔기에 연기력이 굉장히 출중하다. '''다양한 표정 변화와 강렬한 분노 연기'''가 최고 강점. 체구가 작지만[* 프로필상 키보다는 조금 작은 160~161cm로 보이는데, 그 나이에 평균이 160cm정도니 그 키가 작은 것은 아니다. 워낙 말라서 더 작아 보이는 것.] 분노할 때 나타나는 크고 부리부리한 눈매가 집요하고 독해보이는 느낌을 자아내는지라, 《[[인어 아가씨]]》 출연 이전에도 주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훼방을 놓는 등 악역 조연을 연기했다.[* 실제로도 분노하는 연기를 보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연기한다(...).] 아역 시절부터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예쁜 얼굴이었고, 지금 봐도 악역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선이 고운 얼굴이라 분노 연기할 때의 모습에 캡이 커서 더 크게 다가온다.
다만, 이 연기력이 주로 [[막장 드라마]]같은 자극적인 연출 내에서 빛을 제대로 발하는지라 약점 아닌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누구든 장서희를 떠올리면 복수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니...[* 복수극이 아닌데도, 장서희만 나오면 어르신들이 '''“그래서 쟤는 언제 복수한대니?”'''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젊은층도 그렇다~~] 그래서 복수극을 촬영한 다음에는 색다른 작품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으나, 이상하게도 비(非)복수극들은 작가의 삽질이나 안습한 대진운 등이 겹쳐서 인기를 끄는 데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장서희의 연기력이 좋긴 하지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은 연기력에 비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같은 작품을 보다보면 안목이 부족해도 연기력이 저 정도면 무슨 문제랴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개연성이 부족한데 신애리를 용서하고 다시 애정어린 관계로 돌아간다. 일일드라마라 티가 덜 났나 하는데 2018년에 하루에 4편씩해주는걸 보다보면 정말이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치얼쓰하고 작가의 막장력에 기브업하게된다.
* 자신을 과감히 주연으로 기용한 [[임성한]], 재기를 도와준 [[김순옥]] 작가를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임성한 또한 장서희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배우들과 교류가 없기로 유명한데도 본인의 결혼식에 장서희를 초대했다고 한다.[* “호텔에서 밥을 사줄 테니 차려입고 오라”고 임성한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갔더니, 그녀의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순옥과는 1살 차이라서 자매 내지는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기아체험 특집방송에 출연하여 '''“몸무게가 50kg씩이나 나간적이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해 방청객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들었다. 장서희는 자기 키에 50kg 넘으면 엄청난 거라고 변호했지만 야유는 더 거세질 뿐(…). 그러나 《[[인어 아가씨]]》 방영 당시에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장서희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지금이야 장서희만큼 마른 여배우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 시대처럼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풍조가 덜한 편이었다.] '거식증 걸린 것 같은 연예인'에 자기 이름이 포함된 기사가 나와 콤플렉스가 생긴 적이 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 2000 || [[온달왕자들]] || 강현주 || 38.8% ||
|| 2001 ||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 || 채연 || 41.2% ||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49회 일치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사무라이 가신단×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아시가루 수비대×1, 사무라이 가신단×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아시가루 수비대×2, 사무라이 가신단×1, 유미 아시가루 수비대×1
>석조에 표현된 극에 다다른 숙달은 그 자체가 교훈이기도 하다.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온나부시×1, 야리 아시가루 수비대×2, 사무라이 가신단×2, 유미 아시가루 수비대×2
>소인은 거인의 그림자 아래서 기가 죽는 법이다.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온나부시×1, 야리 아시가루 수비대×3, 사무라이 가신단×3, 유미 아시가루 수비대×4
행복도와 상업에서 발생되는 수입을 늘려주는 건물들. 닌자와 게이샤를 고용할 수도 있게 해준다.
동시에 고용 가능한 닌자의 수는 가지고 있는 잠행 계열 건물의 수와 같다. 하지만 최대 5명이라는 상한선이 존재한다.
* 해당 지역에서 닌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됨
* 해당 지역에서 키쇼닌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됨
>가장 긴 창을 쓰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현명한 남자는 자신이 관리하는 말에 귀를 귀울인다.
>검 자체로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 검이 검사 손 안에 있을 때는 위협적이다.
>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세가 좋아야 한다.
* 긴자 조폐국(Kinza Mint) 기술 연구 필요.
==== 공성 기술자의 작업장(Siege Engineer's Workshop) ====
>대장장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철을 다뤄 총병과 적을 굽힌다.
* 불교 신자들의 행복도 +1
>어떤 남자는 칼날을 포함한 많은 것을 고려할 수 있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48회 일치
* [[나키리 아자미]] 정권의 마수가 이곳에도 뻗혔기 때문. 아자미는 "파트너 십"이란 명목으로 홋카이도의 식당들을 포섭, 자기들 수중에 넣고 있다.
* 일부 점포는 아자미에게 저항하고 있으나 유통루트를 장악하고 물건을 넣어주지 않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다. 이미 폐점 위기에 몰린 점포가 부지기수.
* 메기시마는 자신의 "라면도"를 연마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끌고 전국을 돌던 도중, 분쟁이 일어난 가게들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며 명성을 쌓았다.
* 많은 라면가게들이 그를 "도련님", "두목"이라 부르고 있고 지금도 그는 아자미 정권에 맞서는 라면가게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 메기시마는 소마와 메구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고 힘을 빌려달라는 부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애초에 식극도 싫고 십걸이란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 소마가 힘을 빌려주면 자신이 1석이 되어 라면계를 부흥시켜 준다고 택도 없는 소릴하는데 메기시마가 "입만 살았다"고 대꾸하자 식극으로 증명하겠다 나선다.
* 메기시마가 대체 왜 싸우는 거냐고 묻자 그는 아자미 정권이 탄압하는 다양한 요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하며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는다.
* [[나키리 에리나]]는 방금 전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한 말을 쌩뚱맞게 여긴다. 연대식극 참가자를 순조롭게 모집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멤버 [[메기시마 토시케]]에게 거절 당하고 말았다. 그를 꼭 동료오 넣고 싶었던 소마가 전화로 거절 당하는건 납득할 수 없다며 그를 방문해서 다시금 동료권유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메구미도 같은 생각. [[잇시키 사토시]]가 전해준 정보로는 메기시마도 홋카이도에 와있다. 진급시험 때문은 아닌 듯 하지만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한다. 마침 거리도 가깝다.
* 아사히카와 시내. 이곳에 메기시마가 머물고 있는 라면가게가 있다. 소마와 메구미가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몰려 식당 입구까지 미어터졌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친 그 사람들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토오츠키 학원 교복. 이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다. 곧 두 남자가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적이 보낸 놈들"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메구미. 소마가 그녀 앞으로 나서서 대처한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란 누구인가?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자미 정권... 센트럴이다!
그들이 건네준 신문에는 척봐도 [[나키리 아자미]]가 흉계를 펼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진정한 미식가를 표방하는 그 원칙을 대외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진급시험이 진행됐던 홋카이도가 그 시작점이었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대고 실제로는 각 식당들을 센트럴이 정한 원칙에 따라 요리하게 시키고 있다. 거부할 경우엔 유통루트에 손을 대서 식자재를 납품 받는 것 조차 막는다. 이런 횡포로 인해 벌써 폐점의 위기에 처한 점포가 부지기수. 듣고보니 소마도 짚이는 구석이 있다. 전에 [[츠카사 에이시]]가 그렇게 말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홋카이도의 라면 장인들. 이들은 아자미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맛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힘든 싸움이지만, 그들에겐 "도련님"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 라면장인들이 도련님이라 부르며 우러러 보는 남자, 홋카이도 라면 장인들의 요청을 받고 한 걸음에 날아온 메기시마 토스케였다. 그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일단 자신의 독자적인 인맥으로 유통루트를 다시 뚫고 가게를 지키는데 최대한 협조하기로 약조한다. 장인들이 그것만으로도 마치 만사가 해결된 것처럼 기뻐한다. 무리도 아닌 것이, 메기시마는 이미 라면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하고 인망이 두터웠다. 일찍이 자신의 "라면도"를 갈고 닦기 위해, 홀몸으로 호장마차만 달랑 끌고 전국을 누볐던 메기시마. 그러던 과정에서 여러 라면 가게를 접했고 그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라면 장인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그들 사이에서 "도련님"이나 "두목"으로 불리며, 어느 새 라면계의 젊은 왕으로 우뚝 서 있었다.
소마는 일개 고교생이 관록넘치는 야쿠자와 같은 풍격을 갖는게 가능한 일일지 고민하지만, 그걸 눈 앞에서 확인하고 있다. 한 젊은 요리사가 선대 점주인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 메기시마에게 도움 받은 일을 회고하며 새삼 감격했다. 충분히 미담이지만 메기시마는 그 일화도 젊은 요리사의 공으로 돌렸다.
* 메기시마는 한 번 분명히 거절한 이야기를 다시 끌고 온 소마 일행이 못 마땅했다. 그는 연대식극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못박았다. 메구미가 그도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도 3석 자리를 뺏기지 않았던가? 여기서 이기면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태도는 시큰둥. 그는 본래부터 자신은 승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토로했다. 토오츠키에 들어간건 그저 최고의 요리학원이라 해서 그랬던 건데, 막상 들어가니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승부 타령.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거절했지만, 몇몇 끈질기게 달라붙는 녀석들과 식극을 하긴 했다. 3석이란 결과는 그래서 얻은 것.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소마는 그것도 굉장하다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번잡스러워했다. 이제 그런 건 질색인 데다, 요리사가 승패를 논한다면, 그건 손님을 얼마나 기쁘게 했냐로 쳐야한다는 이야기였다.
* 하지만 소마 일행이 도리를 가리고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메구미가 초조해하며 매달렸다. 그의 뜻은 잘 알겠으나 자신들도 친구들의 퇴학이 걸려있다며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부디 힘을 빌려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메기시마의 의지는 확고했다. 자신도 지금의 라면 문화를 지키고 싶으며 그 일만 해도 벅차 힘이 되어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지켜보던 장인들도 메기시마는 한 번 정한 원칙을 번복하지 않는다며 포기를 권했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메구미가 듣기에도 그랬다. 애초에 실력면에서 보면 연대식극에 승리했을 때 제 1석은 메기시마의 차지였다. 그렇게 지적하자 소마는 "그럼 그때는 메기시마 선배도 쓰러뜨린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메기시마는 이제 불쾌해졌는지 식극도 싫지만 "입만 산 녀석"은 더 싫다며 등을 돌려버린다. 그가 이정도로 의사를 드러내는데 소마는 돌아갈 의향이 없다. 그가 자신의 힘을 실제 시험해 보지 않으면 입만 산 건지, 진짜배기인지 모르지 않겠냐며 승부를 청한다. 자신이 메기시마보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면 그 증명이 될 거라면서. 물론 이것도 메기시마에겐 "입만 산 녀석이란 증거"나 다름 없었다.
* 그렇게 승부를 거듭해, 마침내 날이 바뀌었다. 소마는 또다시 패배했다. 계속된 승부로 체력은 바닥났다. 반면 메기시마는 분명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나, "이젠 충분하지 않냐"고 말하게 됐다. 그는 소마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무의미한 승부를 받아들인 자신도. 소마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버리고 만다. 메기시마는 그 점을 곱씹으며, 아무리 동료를 구하고 싶어도 이런다고 실력차가 뒤집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마가 이렇게 나오는건 동료들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저는... 모든 요리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 신화용 . . . . 48회 일치
대한민국 [[K리그1]] 수원의 주전 골키퍼이자 '''한때 K리그1 TOP 3 안에 드는 골키퍼였고 2015 시즌 최고의 골키퍼'''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를 모두 거친 --포스텍에 갔다면 그랜드슬램-- '''포항의 성골 중 성골'''이었다. 거기에 포항 태생으로 '''팀 내의 단 1명 뿐인 [[로컬 보이]]'''였으나 2016 시즌 이후 수원으로 이적했다.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상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백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팀인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게 됐지만 주전 자리에는 K리그의 레전드인 '''[[김병지]]'''가 버티고 있었고 포항 유스 출신으로 기대받던 송동진, 1년 전 이미 입단해서 청소년 대표에서 뛰고 있던 '''[[정성룡]]'''까지 있어서 김병지의 백업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2005 시즌이 끝나고 송동진은 군 입대, 김병지가 이적하면서 신화용은 정성룡과 주전 경쟁을 하게 된다. 2006년에는 정성룡이, 2007년에는 신화용이 더 많은 기회를 받았으나 2007년 플레이오프부터 정성룡의 독무대가 또다시 펼쳐지며 정성룡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2008년 정성룡이 성남으로 갔지만 같은 해 김지혁이 이적해오면서 리그 경기 대부분을 김지혁에게 내줬지만 ACL에서만큼은 6경기 전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다가. 2009년 초부터 김지혁을 밀어내고 신화용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K리그]]는 물론[[AFC 챔피언스 리그]] 에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 팬 한정으로 골머리를 앓던 수비[* 이 때 포항의 주력 수비수가 [[황재원]], 김형일. 타 팀 팬들은 군침 흘리며 탐을 냈지만 매주 포항의 경기를 지켜보는 포항 팬들은 가끔씩 벌이는 정줄 놓는 수비에 그냥 뒷목만 잡았다.]문제를 혼자서 다 커버했다. 2009년 포항은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에게 패배하여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이러한 선방쇼 덕에 신화용은 다른 쟁쟁한 골키퍼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뽑힌다.'''[* 당시 경쟁자들이 모두 실점률 1점대를 찍을 때 홀로 0점대(0.95) 실점률을 기록했다.]
더욱이 [[황재원]]은 이적했고, 시즌 초 수비의 한 축이었던 ~~[[김정겸]]~~은 안 좋은 일로 퇴출 당했고(...) 2012 시즌엔 가끔 정줄놓아도 그나마 수비를 해주던 김형일마저 군입대 해버렸고 대체자로 들어온 김원일, 조란은 또 호흡이 안맞고(.....) 이래저래 신화용만 죽어나고 있다. 그나마 김원일-김광석 조합이 자리 잡은 이후에는 수비가 한결 편해졌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2012 시즌에 온 김형일도 상무에 입대했고, '''또다시 리셋이 되버린 포항 수비진의 문제를 혼자서 다 막고 있다.''' ~~수비 가장 김형일이 떠나고 이젠 골키퍼가 가장~~ 이후 시즌 중반에 들어가자 포항 수비진들이 안정이 되면서 다소 부담은 줄어든 상태. 11시즌 까지는 신화용 혼자서 막다가 팀은 지고 본인도 털리고 경우가 많았으나, 수비진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가끔씩 찾아오는 위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경우가 많아지며 빛을 발하고 있다. 시즌 중반에는 김다솔의 로테이션 기용으로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전을 지켜내며 주전 골리로써의 위치를 굳혔다.
약점이던 수비 리딩도 발전하여 포항은 2013 시즌 리그 실점 순위에서 2위(38실점)를 달성했고 신화용 본인도 경기당 실점율 0.93을 달성했다. 하지만 신화용 보다 더 낮은 실점률을 기록한 [[울산 현대]]의 [[김승규]]가 시즌 베스트11의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고 [[신화용]]은 우승팀 골키퍼 에도 불구하고 생애 두 번째 베스트11에 실패했다.
2014 시즌에도 맹활약 중인데, 2014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부리람 원정에서는 신화용 답지 않은 실수로 1골을 내줬으나 팀이 승리하여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시즌 초반 [[황지수]]의 부상 결장으로 매 경기 실점을 내주고 있는 포항 수비진의 삽질을 혼자서 다 커버하는 등 이러한 활약 속에 5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미친 선방쇼로 4:2의 스코어와 상관없이 이 날 MOM에 선정되었다.
2014년 3월 29일 '''포항소속으로 200번째 출장'''을 맞이하였다. ~~포항에서 200경기를 뛴 최초의 골키퍼~~ 이날 [[스틸야드]]에서 200경기 기념 머플러를 뿌렸으며--신화용이 쏜거다!-- 이날 자신의 200경기 출장을 축하하듯 들어간거나 다름없는 김현의 헤딩슛을 막아내는--역시 포항 최후방수비수--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며 시즌 두번째 무실점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불안하다 싶은 경기는 죄다 신화용이 선방쇼를 벌이며 포항은 연승을 이어나가게 됐고 FA컵 32강 [[FC 안양]]과의 경기에서는 포항 선수들이 '''[[삼연뻥]]'''을 시전했음에도 혼자서 '''안양 키커 7명중 3명을 막아내며''' 포항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A 컵]]에서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리그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와중 11월, 울산전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김다솔]], [[김진영]] 등 백업 키퍼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나 그 누구도 신화용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지 못 했다. 이에 팀은 리그 4위까지 떨어져 아챔 출전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포항 팬들은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신화용의 거취에 촉각을 기울이게 됐다.
사실 후반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영입들보다 더 반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상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백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이후에도 꾸준히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포항의 수문장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나, 김태수, 황지수의 노쇠화와 김광석의 초반 부상. 김원일의 삽질(...)로 15시즌 포항 수비진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지라 신화용으로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기당 실점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김광석의 복귀 이후 김원일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으면서(...) 수비가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레 클린시트도 늘어나고 있다.
9월 말 기준 14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하였고 제주전에서는 PK까지 막아내는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등, 포항 공격진이 여전히 득점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혼자서 팀의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10월 현재 경기당 0.82 실점으로 실점률 1위. 무실점경기 1위, 유효슈팅 선방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36라운드 기준으로 17경기 클린 시트(무실점 경기)를 달성하며 클린시트 2위인 박준혁,권순태(13경기)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시즌 클린시트 1위를 확정지었다.
15시즌이 끝나고 다른 한국 골키퍼들이 연달아 J리그로 떠나자, 해마다 포항 팬들에게 주목 받던 '''신화용의 거취문제가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전남 드래곤즈와 [[김병지]]의 결별, 성남 FC의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의 현역 입대,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으로 클래식 팀들의 구애를 받게 된 [[이범영]]까지 골키퍼 연쇄이동이 점쳐지는 가운데 '''언급된 모든 키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화용이 재정감축위기에 빠진 포항을 떠날까 포항팬들이 걱정했으나...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부상 이후 폼이 하락해 결국 16시즌 후반부에는 후임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김진영이 포항의 새로운 수문장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었으나...팀의 운명이 걸린 후반부 하위 스플릿에서 김진영이 연달아 실수를 범하며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하자 막판에 주전으로 복귀. 포항의 잔류에 힘을 보태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살펴보면 요근래 시즌 중에서는 가장 나쁜 시즌을 보내었다.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에도 허둥지둥대며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유명한 축구 팟캐스트 [[히든풋볼]] 멤버이자 [[이스타TV]] 멤버인 해설위원 [[이주헌]]씨와 캐스터 [[박종윤]]씨는 전 토트넘 골키퍼 고메즈가 고메디언이라 불린거 처럼 신화용을 신메디언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2017 시즌까지 경쟁상대로 보기도 힘들었던 노동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며 '''단신이라는 단점에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순발력과 판단력이 나이를 먹으며 결국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즌을 마칠 경우 수원과의 재계약 마저 불투명한 상황.
- 은혼/612화 . . . . 48회 일치
[[은혼]] 612훈. '''우리들은 우주의 일부이자 우주 그 자체'''
* 이 우주선은 하타 황태자의 우주선. 하타 황태자는 멸망 직전의 지구에서 진귀한 생물을 빼돌리고 있었다.
* 가츠라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하타 황태자를 인질로 잡고 강제로 황태자 일행의 협조를 받아내는데.
오니와번슈는 이런 점을 이용하고자 움직인다. 적은 대군이지만 지금처럼 통신이 끊긴 상황에선 빠른 연락이 불가능해 이변이 다발하면 군 전체가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 핫토리 젠조는 다방면에서 계속 혼란을 야기하면 자중지란에 빠질 거라 예측한다. 다만 물량차가 압도적인건 변하지 않으므로 결코 적진 깊숙히 들어가선 안 된다고 지시한다.
* 진선조도 지상군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전령이 준비가 끝났다고 알리자 곤도 이사오가 움직인다. 이들은 지상군 병력이 가부키쵸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 쭉 늘어진 병력의 허리를 끊어 분단시키고자 한다. 곤도는 자신이 신호하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이후는 1인당 200명 씩만 베어버리면 되는 심플한 작전. 곤도가 200명만 베면 보너스를 준다고 하자 오키타 소고가 "그럼 1000명을 베면 부장자리는 내것"이라고 말한다. 왠일인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생각해두겠다"고 쿨하게 반응한다. 대원들은 오키타다 부장이 되는 날엔 세계가 멸망하는거 아니냐고 드립을 치고 야마자키 사가루는 어차피 망할거 그 편이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곤도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냐면서, 자신도 사실 그런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 해방군 지상군의 행군 중에 고층빌딩이 폭발해 무너진다. 길 위로 잔해가 떨어지자 많은 병사들이 깔리면서 병력이 양단된다. 진선조와 오니와번슈는 일제히 기습을 건다.
* 한편 우주. 해방군 본진의 도쿠가와 노부노부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다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츠는 지구의 동향과 현상황에 대해 묻는다. 다츠마는 기적적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병력차가 너무 커서 한계가 있다며, 그들이 버티는 동안 자신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반대편 감옥에서 "무슨 수라도 있냐"고 말을 거는 이가 있는데.
* 원상 황자에게 축출된 자작 제독이다. 자작은 설사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이미 늦었다며, 자신이 원상 황자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해방군의 복수의 불꽃은 어찌할 바가 없다고 하는데, 다츠마는 불꽃이라면 다른데로 옮기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도중은 이미 처리된 상태. 다츠마는 아직 해방군과 자작이 모르는 또다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해방군의 고향을 불태운 장본인이자 천도중 조차 처리해버린 괴물. 우츠로의 존재다. 다츠마는 이대로 계속 싸우면 복수는 커녕 우츠로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거라고 말한다.
자작은 대체 너희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거냐고 묻지만 다츠마는 즉답을 피한다. 대신 해방군에서 유일하게 믿을만한 사람이 자작 제독이라며 힘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작은 이런 고립무원의 감옥에서 할 소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다 이들이 믿는 구석이 있다는걸 깨닫는다.
* 다츠마는 원상에게 호출됐을 때부터 어떤 각오를 마쳤고 그걸 위한 포석도 이미 완료도었다. 가츠라 고타로. 그가 바로 탈출의 열쇠다. 가츠라에게 별동대를 맡겨 피신 시킨 것. 그는 쾌원대가 자랑하는 스텔스 함을 이끌고 본함으로 접근하고 있다. 신호만 보내면 바로 처들어올 수 있는 상태. 다츠마는 숨겨두었던 통신기로 "역습의 때가 왔다"고 알린다. 그리고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 실은 다츠마 일행과 헤어진 직후 어떤 사고가 생겼던 것. 생각보다 긴 시간 다츠마와 연락이 두절되자 가츠라는 언제든 역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때 부하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적전함을 보고 놀라는데, 가츠라는 본함은 스텔스 함이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촌구석 사무라이. 스텔스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하들은 정말 안 보이는 거냐고 미심쩍어하는데 가츠라가 투명해지는 그런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설명하던 즈라 조차 방향이 이상해져서, 전함은 투명해져도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며, 우주공간에 둥둥 떠있는 걸로 보이는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유일하게 정상인인 엘리자베스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번엔 가츠라가 "우리도 투명해진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내용물은 완전 노출되는게 아닌가"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엘리자베스가 참을 인을 써가며 "스텔스는 투명해지는게 아니라 주변 사물에 맞춰 모습을 감추는 기술"이라고 정정해주는데, 이번엔 또 "우리 내용물이 보여도 배도 그것에 맞게 카모플라쥬해주는 것"이라고 이상한 오해를 하고, 결국 그들의 전함이 거대한 똥덩어리로 보이고 있을 거라는 망상에 도달한다.
폭주해버린 가츠라는 다츠마가 이딴 고물 배를 줬다고 원망하며 손수 카모플라쥬를 시도, 배의 모든 전력을 끄고 기척을 지우고 자신들은 은하수풍 무늬 옷을 입음으로 은신을 시전하려 한다.
|| 우주에 녹아드는 거다! 무다! 그저 거기에 있는 우주가 되어라! 너희들은 우주의 일부이며 우주 그 자체다! ||
엘리자베스 조차 손 놓고 포기하는 가운데 능숙한 카모플라쥬 기술을 과시하나 부하들은 곧 "전부 꺼버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난 맹점을 깨닫는다. 그러나 수정할 틈도 없이 정체불명의 거대 우주선을 들이받아 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총을 든 묘한 천인들 사이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해방군 소속이 아니다. 가츠라는 "이마에 외설물 같은게 자라나 있는 천인"이라고 표현하는데.
* 이들은 포로로 잡힌 가츠라 일행에게 "붙잡으려 하는게 아니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멸망해가는 지구에서 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렇다. 이 배는 하타 황태자의 배였다. 이미 우리에는 지구의 동물원 등에서 무단으로 털취한 각종 동물들이 즐비하다. 할아범은 어차피 망할 별이고 항의할 놈도 없게 될 테니 보이는 족족 납치했다고 말한다. 하타 황태자도 멸종할 생물들을 거둬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왠지 납치한 종류는 유독 개가 많다. 거의 똑같아 보이는 강아지들이지만 할아범은 "개란 워낙 종류가 많은 생물"이라 변명한다. 컬렉션을 따라 가던 황태자는 아예 죽어있는 녀석도 있다고 한 우리를 가리키는데.
* 그것은 마케이누(패견)라는 것으로 놀랍게도 살아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도 함께 죽지도 못하는 그저 살아만 있을 뿐인 생물이다. 하타 황태자는 불쌍히 여기며 "죽는 편이 나은 고통을 느낄지라도 죽게 두지 않겠다."그 음흉한 웃음을 짓는다.
* 황태자는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상위비비"라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우리에 가보니 상위비비는 보이지 않고 똥만 보인다. 할아범은 "동물원에선 흔한 일"이라며 어느 동물원이든 가보면 똥만 있고 동물은 없더란 상황이 있다고 얼버무린다. 황태자는 그런건 됐고 상위비비는 어디있냐고 찾아 이번엔 "똥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똬리를 튼 상위비비"라는 상황이 동물원에선 흔하다고 얼버무린다. 하타 황태자도 안 속는 무성의한 개드립이다.
* 그때 장막을 뚫고 나오는 손. 하타 황태자 이마의 외설물을 낚아챈다. 똥도 상위비비도 처음부터 없었다. 수형인들이 우리 안에서 위장을 한 것. 똥 무늬의 장막을 내걸고 있던 것 뿐이다. 황태자를 잡은 손은 "상위비비는 주변 배경에 맞게 의태해서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고 조심하라 경고한다.
- 정찬성 . . . . 48회 일치
* '''조지 루프''' - 2라운드 '''하이킥 KO패.''' 정찬성이 이 패배 이후 선수 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했었고, 기절하고 병원에서 깼는데 경기 리플레이를 보니 자신이 스스로 걸어온 것임을 알고 '잘못하면 큰일나겠구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은 정찬성은 경기 스타일을 바꾼 끝에 UFC에서 활약을 펼치게 된다.
2007년 6월 SSF로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 2007년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와 2008년 5월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전적을 쌓아갔다.[* 다만 현 시점에 와서 SSF에 대한 기록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Q채널에서 방영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 라는 격투기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2007년 6월경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SSF는 그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 당시 토너먼트 규칙은 3인 1팀으로 팀전이었는데, 정찬성 선수는 계속 이기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합기도 선수에게 판정패당한다.][* 참고로 정찬성 선수는 해당 토너먼트에 킥복서 베이스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대회 룰 자체가 연속니킥 금지에 링도 없어서 펀치 러쉬가 이어지질 못하는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괴랄한 대회였다.]
2008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DEEP에서 오미가와 미치히로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오미가와는 유도가 출신으로 [[UFC]]와 [[PRIDE]]를 모두 경험했던 베테랑 파이터였으나 정찬성의 공세에 밀려 패배하고 말았다. 훗날 오미가와는 Dream 15회 대회 이후 인터뷰에서 이 경기를 회상하며 '그 때는 정찬성의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붙으면 꼭 이기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정찬성 선수는 블로그에 '오미가와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 다시 붙는다면 그 때는 변명을 대지 못 하게 이기겠다.'며 재대결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이후 오미가와는 센고쿠 토너먼트에서 수많은 페더급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TOP 10급 파이터로 부상하게 된다.
2009년 3월 [[센고쿠]] 7진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신성 이시와타리 신타로를 맞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거두며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라운드 거친 타격전에서 레프트를 적중시키며 신타로를 주저앉혔으나 신타로는 다시 회복했고 클린치 싸움으로 이어진다. 레프리의 '스탑 돈 무브'가 선언되며 링 중앙에서 재개된 공방에서 다시금 라이트를 안면에 적중시켰고 등을 보인 신타로에게 스탠딩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꽂았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시기상 [[료토 마치다]] vs [[마우리시오 쇼군]]의 UFC 104, 프랭키 에드가 vs [[BJ 펜]] 의 UFC 112 등 판정논란으로 시끌시끌한 때였기에 더욱 그랬다. UFC 해설자인 [[조 로건]]은 심판들의 자질을 혹평하며 현재의 판정체계에 개선을 요구했고 파이트 메트릭의 분석에서도 정찬성의 압도적인 승리가 선언되었다.
2010년 10월 WEC가 UFC에 통합됨에 따라 자동적으로 UFC 컨텐더가 되었다.
2011년 3월 UFN 24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러버매치로 UFC 무대에 데뷔했다. 1라운드 약간 신중한 타격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그라운드에서 마운트까지 잡았으나 공이 울리며 라운드 종료.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상위를 잡고 엘보우와 파운딩을 날려주며 앞서 나갔고, 가르시아가 이스케잎을 시도하는 순간 백을 잡고는 트위스터를 작렬시키며 멋진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이 트위스터는 매우 고급기술인데 MMA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찬성은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보면서 익혔고 코리안 탑 팀에서 훈련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디 브라보의 영상을 본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연습해서 써먹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고 결국 트위스터로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간혹 '레프리 스탑이 너무 일렀다' 라며 까는 여론도 있는데 위의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호미닉은 다운 된 뒤 턱에 정타를 대 여섯대나 맞았다. 의식이 혼미해 가드도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던 상황. 저 때 스탑 안 걸면 '''진짜 죽는다.''' 호미닉도 인정했듯이 레프리 스탑의 타이밍은 전혀 문제가 없다. '정찬성이 잘한 게 아니라 호미닉이 바보짓을 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페더급 뿐만이 아니라 MMA 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복싱 테크닉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호미닉이 본인의 특기를 버리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붕붕훅을 날린 것은 확실히 변명할 수 없는 바보짓. 하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고, 무엇보다 그 짧은 타이밍을 잡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또 호미닉이 한 행동부터가 매너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호미닉은 경기가 시작하고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공격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고 확실한 반격에 성공한 것은 정찬성의 실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경기 승리는 정찬성에게 의미가 큰데, 흔히들 말하는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기회를 움켜잡은 셈이다. 그 때문인지 경기에 이긴 뒤 눈물을 흘리며 호미닉을 포옹했다.
2012년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 이벤터]]로 비슷하게 탑 10위권의 강자인 [[더스틴 포이리에]]와 대결이 확정되었다. 이 경기는 넘버원 컨텐더 결정전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고 있다. 상대인 포이리에는 상당히 위험한 상대로, 89년생에 동체급 최상위권의 그래플러이며 어린 나이에도 상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선수라 이 경기야 말로 정찬성의 검증 매치가 될 듯 하다. 호미닉의 경우는 거품이 있다는 평가가 있던 선수인지라.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상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포이리에 전 이후 어깨 부상의 수술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했으나 에릭 코크와의 대결 이후에 자신에게 도전권이 돌아올 예정이라 수술을 받은 이후 내년에 타이틀 도전 계획을 세웠지만. 도전자 에릭 코크가 부상으로 이탈한 자리에 [[벤슨 헨더슨]]에게 지고 페더급으로 내려온 [[프랭키 에드가]]가 [[갑툭튀]]하면서 정찬성보다 먼저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다. 정찬성은 에드가가 내려온다 해도 자신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전문가들의 예상은 상성상 정찬성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상황이라 정찬성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찬성이 쉬는 사이, [[리카르도 라마스]]가 기존 도전자급이었던 에릭 코크를 이기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또한 라이트급에서 도전권에 근접한 앤소니 패티스가 갑자기 알도에게 페더급 타이틀 도전을 선언하고, 이를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승낙하면서 정찬성의 타이틀 도전은 조금 더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2013년 7월 개최예정인 'UFC 162' 에서 [[리카르도 라마스]]와 격돌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 매치는 페더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일 확률이 높은 상태...였는데 [[앤소니 페티스]]가 무릎부상으로 결장하게 되면서 '''[[조제 알도]]와 타이틀전이 확정되었다!!'''
2013년 8월 4일 브라질에서 열린 'UFC 163' 에서 조제 알도와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뤘다. 3라운드까지는 알도의 아웃파이팅+TD 전략에 약간 밀리는 양상을 보였지만, 그래도 점점 TD를 잘 방어하며 근거리 타격전에서 극강 챔프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 펀치를 주고 받던 중 팔끼리 엉킨 것을 빼내는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고, 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TKO를 당하고 만다. 탈골 이후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맞춰보고 다시 해보려 했으나 어깨에 이상이 있음이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났고, 이를 눈치챈 조제 알도가 킥 2방을 부상 부위에 작렬시켰고, 이후 쓰러지면서 파운딩 세례를 받고 아쉽게 패배하였다. 전체적으로 약간 밀리는 분위기 속에서 3라운드 종료 직전부터 부상 직전 상황까지는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기를 끌고 갔던 지라 아쉬움이 크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하며(백스테이지에서 어깨뼈를 맞췄다고 한다.) 정찬성 본인은 리매치를 원하고 있기에 향후 행보는 지켜봐야 알 듯. 결국 어깨 부상과 안와 골절 부상 때문에 1년간 결장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2014년 10월 4일 스웨덴에서 열리는 'UFC Fight Night 53' 에서 아키라 코라싸니를 상대로 복귀전이 확정되었다. 코라싸니가 UFC 랭킹 밖의 선수이고 바로 전 경기에서 [[더스틴 포이리에]]에게 2라운드 KO패를 당하는 등 정찬성의 랭킹과 전적에 비해 다소 아쉬운 상대라는 평가도 있으나 경기장소가 코라싸니의 홈인 스웨덴이고 정찬성의 부상 공백이 크기 때문에 쉽게 볼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현지에서는 배당률이나 팬들의 승자예측 모두 정찬성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찬성의 어깨부상 회복이 늦어지면서 경기가 취소되었고 코라싸니의 상대는 [[맥스 할로웨이]]로 변경되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데이나 화이트도 #ufckorea라는 해쉬태그와 함께 코리안 좀비가 돌아왔다며 트윗을 올렸다. 이후 인터뷰에서 정찬성은 3년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는데 역사상 그 어떤 선수보다 멋지게 복귀했다며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말미에 한국대회를 기대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3년이 넘는 공백기간동안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옥타곤을 오랫동안 떠나있었고,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 추미애 . . . . 48회 일치
||<#1870B9> '''{{{#FFFFFF 가족}}}''' ||<(> [[배우자]] 서성환, [[자녀]] 1남 2녀 ||
||<#1870B9> '''{{{#FFFFFF 학력}}}''' ||<(> [[경북여자고등학교]] {{{-1 ([[졸업]])}}}[br][[한양대학교]] {{{-1 (법학 / [[학사]])}}}[br][[연세대학교]] {{{-1 (경제학 / [[석사]])}}} ||
'''여성 최초 지역구 5선 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제2대 당 대표'''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더불어민주당]]의 제2대 당 대표이자 [[대한민국]]의 제15~16대, 18~20대 [[국회의원]]이다.
여러 가지의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나열해보자면,
*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TK#s-1.1|TK]] 출신 당 대표[* 앞서 [[새천년민주당]] 시절,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 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 대표 위에 당 총재([[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총재였다)가 있었고, 당 대표는 선출직이 아니라 총재가 임명하는 자리였다.]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인데, 당시만 해도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영남의 집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에 추미애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하였지만, 추미애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33635|#]]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시|대구]]의 딸, [[전라도|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60827036600001&did=1195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3792967|#]] 슬하에는 3명[* 1남 2녀]의 자녀가 있다.
한 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 당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 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추미애는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08&aid=0000021230|#]]
그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영장이 청구되었다.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상대로 불온 서적을 압수수색하고자 하니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영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 기각이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를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한다.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7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159849|#]]
* [[1974년]] 구남여자중학교[* 현 구남중학교] 졸업
*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 [[2005년]] [[세종대학교|세종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인수위원'(25명 인수위원 중 유일한 여성)
*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행정자치위원
*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미국]]/[[일본]] 특사'
* [[1999년]]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 <시사주간지 (ASIAWEEK)>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
* [[1999년]]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 <한국유권자운동연합>
* [[2000년]]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선정 <한국여성유권자연맹>
- Victoria II . . . . 47회 일치
이 위키에 있는 게임 용어들은 전부 자체적으로 번역한거다. 유로파 카페 한글 패치가 안되는데 어쩌라고.
1836년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멕시코는 독립을 선언한 텍사스를 상대로 전쟁 중이며,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독립 국가였던 트리폴리를 다시 복속시키기 위해 전쟁 중이다. 아직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분할"이라고 불릴 유럽 국가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으며 동아시아 역시 아편 전쟁으로 시작될 서양과의 불쾌한 접촉을 아직 겪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현재의 오리건 주, 워싱턴 주가 될 자리와 사할린,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 태평양의 많은 섬들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가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다.
1861년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수하여 열강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한때 열강이었던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탈락해버렸다.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강탈당한 중화제국은 천왕이 이끄는 태평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게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강탈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거의 완성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아메리카 연합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이집트에게서 중동 지방을 빼앗았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를 완전히 먹어치웠고. 한편 일본은 미국의 영향권 내에서 근대화를 끝마쳐가는 중이다. 중앙아메리카 합중국은 분열되어 여러개의 나라가 되었으며, 페루는 에콰도르가 지배하고 있는 파스타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1~8위는 주요 열강(Great Power)으로 분류되며, 식민지를 피거나 다른 나라를 자신의 영향권 내로 편입시킬 수 있는 등 사실상 세계를 마음대로 쪼개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다른 주요 열강의 견제만 어떻게 한다면야 말이다. 만약 기존의 주요 열강이 아닌 국가가 8위권 내로 들어오면 1년간의 유예 기간 이후 제일 순위가 낮은 주요 열강을 탈락시키고 주요 열강에 올라서게 된다.
9~16위는 2등 열강(Secondary Power)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자신의 영향권을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식민지를 필 수 있다.
이외에는 그냥 "문명국"으로 표시된다. 보통 이 정도로 밀려난 문명국들은 다른 국가의 영향권에 들어가 보호를 받거나 동맹으로 자신들의 적을 견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서구화되지 않은 국가들. 그랜드 캠페인이 시작되는 1836년 시점에는 보어인들이 다스리는 오라녜와 트랜스발을 제외한 모든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이 비문명국이다. 비문명국은 기술을 연구할 수도 없고, 자력으로 공장을 지을수도 없다. 또한 아무리 부강하더라도 문명국보다 낮은 순위로 처리된다.
몇차례 개혁을 해서 서구화 진척도를 채운 다음 서구화를 하면 문명국이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초기 메이지 유신" 디시전과 "메이지 유신" 디시전의 효과로 빠르게 서구화를 달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문명국 입문자용 튜토리얼 국가로는 보통 일본이 추천되는 편이다.
각 주는 여러개의 프로빈스(Province)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서울 주는 서울, 강릉, 원주, 대전, 인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의 프로빈스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 부패한 선거구(Rotten Boroughs): 투표자의 수 +100%
* 코어: 영토의 소유권…비슷한 개념. 만약 다른 나라의 프로빈스에 자국의 코어가 박혀있다면 해당 프로빈스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거나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다른 국가의 코어가 있는 프로빈스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다른 나라의 영토로 만들거나 독립을 벌이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
프로빈스에 건물을 짓거나 있는 건물을 증축해 효율을 늘릴 수 있다. 건설이나 증축을 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기술, 적당한 자금, 마지막으로 해당 건물의 재료로 쓸 상품이 필요하다. 건설이나 증축이 진행되는 중에는 해당 지역에 크레인이 등장하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 Railroad(철로): 해당 지역의 병력 보급 한도, 공장 처리량, 원자재 생산량, 병력 이동 속도를 올려준다.
* Factory(공장): 원자재를 소모해 다른 상품들을 생산하는 건물. 같은 종류의 공장은 한 주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해당 지방에 기능공들이 있어야한다. 같은 종류의 공장은 한 주에 하나밖에 지을 수 없다.
상품을 가져오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국 POP가 생산한 물품을 쓰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타국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전자의 방법이 시행되지만, 자국 상품으로 부족하다면 후자의 방법으로 넘어간다. 사전세계적으로 부족한 상품의 경우에는 이미 다른 나라들이 다 사버리므로 구하기 힘들다. 영향권에 소속되어 있는 국가들은 영향국 리더와의 거래를 최우선으로 한다.
* 성직자 POP가 많으면 연구 점수 획득량이 많아진다.
* 식자율이 높으면 연구 점수 획득량이 많아진다.
* Business Schools & Tycoon Capitalism(경영대학과 재벌자본주의): 육군 기술 연구 -10%, 해군 기술 연구 -10%, 상업 기술 연구 +10%, 문화 기술 연구 -10%, 산업 기술 연구 +5%
* Absolute Mornachy(전제 군주정) : 국왕이 다 해먹는 체제.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다. 반동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만이 여당이 될 수 있다. 자코뱅 반란으로 뒤집어지면 입헌군주정이 된다.
* Prussian Constitutionalism(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정) : 입헌군주제이긴 한데 사실상 국왕이 다 해먹는 유사 민주주의. 전제 군주정 국가에서 투표를 허가하면 이게 된다.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지만 일정 주기마다 치뤄지는 총선에 따라서도 바뀐다. 무정부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스트는 여당이 될 수 없다. 자코뱅 반란으로 뒤집어지면 민주정이 된다.
- 김광석 . . . . 47회 일치
| 배우자 = 서해순<ref>본명은 서순애. 1965년 9월 14일생. With33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광석이 생존했던 그 해 나이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서해순과 처남이 2002년에 세웠다고. 김광석 4집 리마스터링 앨범과 김광석:다시 앨범이 여기에서 나왔다.</ref>
'''김광석'''(金光石<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1220915531&code=900307 '대중음악 100대 명반'25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경향신문》, 2007년 11월 22일 작성, 2011년 2월 14일 확인.</ref>, [[1964년]] [[1월 22일]]<ref>{{저널 인용|제목=[추억의 LP 여행] 김광석(上) 시대의 감성을 일깨운 우울의 미학 해맑은 미소로 기억될 '거리에서'|저널=주간한국|이름=|url=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200407/wk2004070211320337570.htm|날짜=2004-07-02|출판사=|저자=최규성|확인날짜=2010-03-12}}</ref>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되었다.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우리 가요에 깃든 '서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78450|출판사=머니투데이 스타뉴스|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9-27|확인날짜=2011-12-10}}</ref>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10694037|제목=김광석 12주기 추모콘서트 개최 ‥ 노래비 제막식도 함께 진행돼|출판사=한국경제신문|저자=디지털뉴스팀|날짜=2008-01-06|확인날짜=2008-01-06}}</ref>
또한 2010년 11월 그가 태어난 [[서울특별시|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5/2014060501769.html|제목=김광석 출생 50년에 주목받는 김광석 길 따라가보니...|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성관 편집위원|날짜=2014-06-05}}</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15_201405251507299539|제목='김광석'으로 되살아 난 길|출판사=YTN|날짜=2014-05-25}}</ref> 2015년 11월 2일,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광석의 매각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단독]가수 고(故) 김광석, 학창시절 보낸 창신동 집 팔려 |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출판사=포커스뉴스 |저자=이유정 |날짜=2016-01-25 |확인날짜=2016-05-08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508074315/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2200153752620 |보존날짜=2016-05-08 |깨진링크=예 }}</ref>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부인 [[서해순]]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 김광석 타살의혹 재점화… 가족들 입 모아 “자살 아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269614|출판사=한국일보|저자=최인경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김광석 타살의혹 제기 이유 3가지 들어보니..|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6191535352210|출판사=뉴스엔|저자=허설희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8&aid=0000173313|출판사=한겨레|저자=고나무 기자|날짜=2006-10-11|확인날짜=2013-12-29}}</ref>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 혼자 남은 밤
# 자유롭게
# 혼자 남은 밤 /더 클래식
# 혼자 남은 밤 Instrumental
:# 자장가
== 참고 자료 ==
* 김광석의 이야기 - 김광석 Collection : My Way 1966-1996 에 첨부된 소책자
[[분류:김광석]][[분류:1964년 태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음악가]]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하모니카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통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의문사한 사람]]
- 김승대 . . . . 47회 일치
포항 출신으로 [[이동국]], [[신화용]], [[박원재]], [[우찬양]]과 함께 포철동초 - 포철중 - 포철(공)고 - 포항 스틸러스 까지 모두 거친 '''포항 역사상 단 다섯 명 뿐인 [[로컬 보이]]'''다.[* 탄탄한 유스를 자랑하는 포항이지만 의외로 로컬 보이는 극소수인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중에서, 중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고에서 중간 스카웃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김병수 1호기~ ~[[이명주]]는 대구, ~~김병수 3호기~~ [[손준호]]는 영덕 출신이다.][* 이동국도 성남 가기 전까진 포항 성골이다. 김승대가 포항시 송도동의 남자라면, 이동국은 포항시 죽도동의 남자다. --죽도시장에서 짧은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송도동-- ] 2011년 포항에 우선지명을 받아 영남대에서 뛰다가 2013년에 정식계약을 맺고 포항에 입단했다.
'''오프사이드 라인의 지배자.'''
김승대만의 특징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는 라인 브레이커에 걸맞는 움직임과 골 감각이다.''' 이는 한국 선수로는 거의 독보적인 능력이며 과거의 한국 축구 레전드들도 쉽게 가지지 못한 강점이다.[* 80년대 이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구성하는 전술 자체가 빈약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기보다는 피지컬과 발기술로 찍어누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1:1 상황에서의 결정력도 좋아서 질 좋은 패스까지 배급되면 거의 골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다만, 뒤에서 [[영 좋지 않은]] 패스가 공급되면 별다른 활약을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김승대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주던 [[이명주]]가 2014년 여름에 이적하자 그 뒤로 힘을 못쓴 전례가 있고 2015년에는 전반기에 부진하다가 여름에 [[신진호]]가 복귀하면서 패스의 질이 높아지자 김승대도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다.]
* {{{#blue '''2013년 3월 13일, 분요드코르전에서 프로 데뷔이자 ACL 데뷔전을 치뤘다.'''}}}
||<#00703c> '''{{{#eee156 2018.3.11}}}'''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남}}}''' ||<#00703c> '''{{{#eee156 도움}}}'''[*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8번째 [[20-20 클럽#s-2|20-20 클럽]] 달성자] ||
같은 포지션에 쟁쟁한 선배들[*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황진성이 있었고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박성호가 있었다.]이 있었기에 기회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황진성]]이 다시 [[유리몸]]화 되고 [[신진호]]는 [[카타르]]로 임대 가고 [[박성호(축구선수)|박성호]]가 전반기에 죽을 쑤는 바람에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진성이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무릎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되면서 주전 자리를 꿰어찼다.
같은 포지션인 황진성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어서 주전자리를 꿰차나 했지만,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이 팀에 복귀하면서 주전경쟁은 계속 될 듯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이명주에게 넘겨주고 원톱으로 올라갔다. 전 시즌에는 가짜 9번(False 9)으로 뛰면서 제로톱의 역할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아예 포처로 뛰고 있는 것. 그래서 다들 실험적인 전술이라며 반신반의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별 기대하지 않았던 김승대의 포처 원톱화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간 '''이명주와 원투펀치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이고 슛팅당 70%라는 높은 확률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이명주와 호흡이 환상적이고 김승대 자신도 [[필리포 인자기|인자기]]가 떠오를 만큼 수비 라인을 타는 솜씨며 골 결정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김승대가 라인을 정말 잘 타는 것도 있지만 포항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공간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탁월하고 그 와중에 이명주, 손준호, 김태수 등이 패스를 뿌려대니 상대 수비 라인을 학살하며 1:1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이명주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아시안 게임 승선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 브레이크 동안 중동의 [[알 아인]]으로 이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명주의 킬패스를 받으며 라인 브레이킹을 일삼던 김승대는 이명주 대신 중원을 지키게 된 김재성과 호흡이 맞지 않으며 득점력이 폭망했고, 결국 [[황선홍]] 감독은 이런 저런 수를 모두 써보다 결국 이명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중앙 미드필더 복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김승대를 중미로 내리고 만다. 이명주가 나간 자리에 카타르에 임대로 보냈던 신진호가 복귀했으면 이명주의 역할을 그대로 맡기면서 김승대의 득점력을 보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악의 근원~~ 포항 프런트답게 미적지근하게 신진호와 협상하다 결국 신진호는 카타르의 다른 클럽으로 임대 연장보내 버렸다.
[[라자르 베셀리노비치]], [[티아고 알베스 살레스]] 등을 영입하면서 이명주, 강수일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시 2선으로 뛸 것으로 예견되었다. 원정 개막전인 [[수원 삼성]]과의 경기는 잘 뛰었으나 [[울산 현대]]와의 홈 개막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그 다음 경기가 [[FC 서울]], [[전북 현대]]를 연속으로 만나야 하는데 서울과의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못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 3월 국가대표 소집에 되지 못함도 서러운데 울산과의 경기가 수비진의 폭망으로 4:2로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못뛴 게 분했는지 다음 홈경기인 서울경기서 특유의 라인브레이킹을 살려내며 2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후 계속 겉돌면서 제로톱의 파괴력이 약해졌고 포처로써도 약점이 드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그와 동시에 포항의 공격진은 단체로 침체에 빠지면서 팀 성적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출전 이후 자신감을 회복했고 경기력도 완벽하게 살아나서 다시 팀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시즌 종료 후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중국 2부 리그 우승팀이자 2016년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하는 [[옌볜 푸더]]로 이적설이 나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468&article_id=0000086796|관련 기사]]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명주도 없고, 승대도 없고]]~~ 그리고 결국 이적료 20억+@를 포항에 안겨주고 연변으로 이적했다. 포항으로서는 아쉽지만 포스코의 지원금이 또다시 삭감되어 70억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김승대가 안겨준 이적료 덕분에 나머지 FA인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현대판 [[심청전|심청이]]~~
이렇게 6월까지는 옌볜에서 선발에서 제외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보였고, 서포터즈와 지역 언론은 김승대를 교체하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박태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용병교체는 없다"며, 김승대는 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재차 부진에 빠지며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될 [[외국인 선수]]로 거론되는 등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2017년 6월 13일 '''포항이 김승대 임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5693|단독 기사]]가 떴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 최대어인 [[이명주]]가 [[포항 스틸러스|친정]]과 [[FC 서울|마음 급한 황새]]를 사이에 두고 K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식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김승대까지 포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포항 팬덤은 순간 들끓어 올랐다.
그러나 6월 19일 오전 이명주가 서울을 택했다는 공식발표가 나온데 이어 같은 날 오후 연변 FC가 새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실패해 김승대의 임대가 불발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역시 같은 날 포항 유스이자 U-20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였던 이진현의 오스트리아 리그 진출이 임박했다는 기사까지 나와 '''포항 팬들은 19일 하루 동안 뒤통수를 3번 맞았다.''' 기대했던 이명주, 김승대 영입이 모두 물거품되면서 이대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짐을 싸는가 '''했으나...'''
옌볜 푸더가 알바니아 국대 출신인 발데트 라마와,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황일수]]를 영입하면서 김승대가 [[FA]]로 풀리게 되었고,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으로 포항으로 복귀했다! 게다가 [[FC 서울]]로 도망간 [[이명주|자신의 옛 파트너]]와 다르게 제주에서 황일수와 트레이드를 제안하고, 복수의 K리그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포항행을 결정지은 것이 알려지면서 근래에 숱하게 통수를 맞은(...) 포항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19326&redirect=true|#]] --특히 포항 거주 팬들 사이에서 '''쌍사드립'''[*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쌍용사거리'''라고 알려진 동네가 있다. 옛날에 쌍용차 대리점이 있던 자리인데 대리점이 옮기고 나서도 고유명사로 붙어버렸다. 술집과 노래주점이 많아서 포항 사람들이 술먹고 노는 주요 거점이다. 김승대가 포항 토박이다 보니 --친구따라-- 쌍사에 출몰했다는 썰이 많아서 흥한 드립.]이 흥했다--
25라운드 전남전에서 경합 도중 발을 높게 든 것이 김영욱의 무릎을 가격하면서 시즌 첫 퇴장을 당하였다. 퇴장 과정에서 "[[VAR]] 이런 거 왜 해?"라며 거칠게 항의하면서 욕설까지 내뱉은게 확인되면서 추가로 5경기 출장정지에 범칙금 500만 원의 징계까지 당했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70811n16405?mid=s0301|관련기사]] 결국 오자마자 팀 전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포항 역시 2년 연속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개막전에서 대구 FC를 상대로 특유의 라인 깨기를 보여주며 득점에 성공했고, 이후 2라운드 전남전에서는 도움을 기록했다. 손준호가 이적하고 전방에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중미 자원이 부족해지자 지난 시즌과 달리 2선보다 밑으로 조금 내려와서 패스 공급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본인 인터뷰에서도 득점보다는 도움에 치중하며 팀 플레이에 맞출 것이라고 역할 변화를 시사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영입한 2선 자원들이 시원찮아서(...) 정원진에게 패스 공급을 맡기고 본인의 원래 자리로 슬금슬금 다시 돌아오고 있다.
- 유동근(배우) . . . . 47회 일치
||<:> [[강부자]][br](1996) || → ||<#ffffa1><:> '''유동근[br](1997)''' || → ||<:> [[최수종]][br](1998) ||
||<-5><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cccccc> '''본관''' ||<(> [[유(성씨)|강릉 유씨]][* 시조 33세손 '根'자 항렬] ||
'''사극지왕(史劇之王)'''[* 그전까지는 왕 전문배우라고 불렸었다. 알음알음 전파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갖게된 이 별명은 대략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0071770|2006년 부터]]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47748|최수종]]과 함께 양분하면서 얻은 유서깊은 찬사다.][*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9&aid=0000035683|언론들의 기사]]를 보면 90년대 유동근의 사극지왕의 후계자 자리를 00년대에 최수종이 훌륭하게 인수인계 받은 걸로 평가 받는 듯.]
연기력은 한국 배우 중에서도 순위권이고, [[김명민]]을 제치고 '한국의 멜 깁슨'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남자. [[사극]] 연기(성우로 비유하면 [[이정구]], [[신성호(성우)|신성호]]를 연상시키는 배역), '아내'에서의 기억을 잃은 순박한 이중 결혼한 남편 역 등을 보면 정말로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있으며 미중년이 뭔지 보여준다.
대중은 '''[[왕]] 전문 배우'''로 기억한다. 군주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특유의 후덜덜한 발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탓도 있다. 비슷하게 카리스마형 배우로 유명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이 야인시대 2부의 그 유명한 '''[[내가 고자라니|공산당 할 거야 안 할거야!!!]]'''로 대표되는 귀청이 떨어질듯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유명하다면, 유동근은 마치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포효하는 듯한, 절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초저주파 타입의 호통이다. [[https://youtu.be/DhGlBFPcmCg|이 영상을 보면 그 특유의 성난 음색이 드러난다!]] [[사자후]]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사극의 주요 배역에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강력한 권력자 역을 많이 맡았다. [[계백]], [[연개소문]]이나 '''[[태조(조선)|태조(이성계)]]''', '''[[태종(조선)|태종(이방원)]]''', [[세조(조선)|세조]], [[연산군]], '''[[흥선대원군]]''' 등.
특히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이 맡은 태종은 '''한국 사극 역사상 최고의 연기이자 최고의 캐릭터로 뽑힌다.''' 이때 유동근의 나이 한국 나이로 이제 막 40이 넘은 나이, 배우로서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인 나이에 '''한국 사극 역사에 나아가 연기 역사에 길이 남을 연기'''를 한 것이다. 당연히 연기대상은 Get Ya. 참고로 90년도에 출연한 사극 "파천무" 에서도 카리스마있는 수양대군(후에 세조)으로 분해 당해년도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키도.
그리고 2002년에 그에게 다시 연기대상의 영광을 준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흥선 대원군]] 역할을 맡았을 때 최고의 장면은 대신들에게 [[경복궁]] 증축의 필요를 역설했던 장면. 매우 조용조용 낮은 톤으로 영국 공사의 자금성 입성기를 들려주다가, [[조두순(문신)|조두순]]이 끼어들자 순간 "걸어서 가겠네, 걸어서 가겠네!"[* 당시 대본엔 '(큰 소리로)'라는 지문과 "걸어서 가겠네..."가 전부였다.]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 다시 조용한 톤으로 돌아가는데 면전이었으면 오줌이라도 찔끔 지릴 것 같다. [[정도전(드라마)|정도전]] 37회에서도 [[정몽주]]와 논쟁 중 '''"야 정몽주!!!"'''라고 내지르는 장면도 압권으로 [[네이버]] 추천검색에 올라올 정도였다. 유동근이란 배우의 힘을 알 수 있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이성계 계통, 간성, 유동근의 특징이 잘 어우러진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세간에 '''아내가 미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바로 탤런트 [[김을동]]이다.[* 원래는 방송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었는데 여러 번 스포츠신문 연예란이나 예능 등에서 가볍게 언급되다 보니 어느 새 일반 대중들도 이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연예인 중에서는 [[남희석]]이 '자신의 이상형은 전인화'라며 이를 이용한 드립을 방송에서 많이 치고 다녔다.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한동안...] 대표작으로는 '[[여인천하]]'를 들 수 있으며('''나 거성의 안주인이야'''라는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여기서 [[문정왕후]] 역으로 출연했다.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 500년'의 '인현왕후'에서 [[장희빈]] 역으로 출연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쌍꺼풀 수술을 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생기더니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도 좋은 쪽으로 바뀌었고 그러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로맨틱한 역할의 포텐셜이 폭발한 것은 1996년 방영한 드라마 [[애인(드라마)|애인]]으로,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부드럽고 낭만적인 모습을 통해 기혼 여성들의 수퍼스타로 순식간에 자리매김했다. '''잉크블루''' 컬러 셔츠의 유행은 덤. [[불륜]]을 메인 소재로 삼은 이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가정윤리를 파괴하는 저질 드라마'''라는 비난도 쇄도했지만[* 심지어 국회 문화체육상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공영방송 [[문화방송|MBC]]가 이런 막장드라마를 방영해서 되겠냐면서 논란이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막장 드라마|그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로 방영시간을 가득 채운 드라마들]]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역이 주력이지만, 재미있는 사람도 잘 연기한다.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개그 캐릭터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성계(정도전)]] 역할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엄숙하거나 카리스마있는 역할을 자주 하는 편인데, 반대로 영화에서는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성공한 코믹 영화로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가문의 영광(영화)|첫번째 작품이 있다.]]
[[놀러와]]에 나와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쌈박하다'라는 발언을 즐겨하며 약한 남자 기믹을 잘 소화해냈다. [[유재석]]이 방송이 끝나갈쯤에 "제가 아는 왕은 한 명 사라졌지만 옆집 동근이 형을 알게 되었네요"라고 발언. [[공처가|실제 생활에서도 아내에게 쥐어 잡혀 산다고 한다.]] 아내가 한번 째려 보면 바로 알아서 긴다고... 다들 알겠지만 아내가 [[신득예|해더신]]이다. 한번은 밤 늦게 술에 취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전인화에게 음식 준비를 포함한 손님 접대를 시키며 허세를 부렸고 그 다음날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도망가듯이 집 밖으로 나갔다고 하며 같은 실수를 할까봐 한달동안 술은 입에도 못 댔다고 한다.
반대로 아내 전인화는 유동근이 장난으로 자신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정 내에서도 질서와 권위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을 집에 데리고 와 손님 접대를 시키는 건 '남자는 그런 허세 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며 잘 받아주는 편이라고. 평소 가사 분담은 거의 안 하는데 어느 날은 장난삼아 '라면 좀 끓여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끓여주었고 맛도 훌륭했으나 생색이 쩔어줬다고 한다.
정황을 따져보면 '왕과 나' 촬영 당시 쪽대본 & 이런 저런 사유 때문에 그 날따라 몸도 아픈 상태이던 아내 전인화가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리는 바람에 유동근씨가 화가 나서 따지러 간 거 같은데...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아내가 걱정되어서 항의하는 와중에도 CP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http://star.mt.co.kr/stview.php?no=2007122719592056123&type=3|당시 인터뷰]]. 자기 자신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항의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력을 사용한건 아무래도 잘못이 맞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이 터진 후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故 [[김재형]] PD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극 제작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그리고 이걸 보고 온라인 상에선 '''용의 주먹'''이라며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 바람에 [[SBS]] 드라마는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가, [[SBS]]의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NTS국장 권용관 역으로 출연이 확정되면서 4년만에 SBS 드라마로 컴백하게 되었다.(여기서 유동근 외모가 스플린터 셀 컨빅션 샘 병장과 닮았다.)
[[어린이 드라마]]와도 인연을 맺은 일이 있다. [[우리 아빠 홈런]]은 유동근이 1990년대 들어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겸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1999년에는 KBS 2TV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의 주연을 맡아 활약했다.[* 이미 대상까지 탄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시간대의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이교육 PD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용의 눈물》 조연출자였다가 이 드라마가 연출 입봉작이었고, 선생님 역 캐스팅에 난항을 겪자 유동근이 의리로 출연한 것. 《용의 눈물》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던 배우 [[김무생]] 또한 이 드라마에서 마을 이장역으로 출연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정도전이 종방한 후 정말 짧은 휴식기를 가지고 바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하였었다. 바로 전작에서 박력 넘치는 무골 이성계를 연기했던 것과 정 반대로 여기서는 나이들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자식 걱정에 마음을 쏟는 순박한 아버지 [[차순봉]] 역할로 나와서 정도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보면 엄청난 괴리감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유동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그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야말로 1년 내내 KBS 드라마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약을 했고 그 열연의 결과로 2014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 3번째 대상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상을 수상한 당시 나이 만 58세로 [[김혜자]]의 뒤를 잇는 최고령 연기대상 수상자로 남자 배우 중에선 두번째로 최고령 수상자.[* 2014년 수상 당시에는 남자배우 중 최고령 수상자였으나,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열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의 대상 수상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수상 당시 만 64세.)]
|| 1994년 || [[SBS 연기대상]] || 우수연기상 || 이 남자가 사는 법 ||
|| 1996년 || 그리메상 || '''최우수 남자연기상''' ||<|2> [[애인(드라마)|애인]] ||
||<|2> 1997년 ||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3> 1998년 ||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2년 연속수상.] ||
- 은혼/620화 . . . . 47회 일치
* 다키니는 지휘관을 잃자 혼란에 빠져 [[츠쿠요]]의 백화와 힘을 합친 가부키쵸 주민들의 반격에 격퇴된다.
* [[야규 큐베]]와 츠쿠요는 버리고 살았던 "여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적진을 누진다.
* 신라의 지휘관 [[소타츠]]는 여자들을 인질로 겐가이포를 만든 인물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요시와라에서는 너무 빠른 남자도 너무 느린 남자도 미움 받는다고.
* 다키니의 병사들은 오우가이가 쓰러진걸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들은 오우가이가 이런 자들에게 쓰러졌다는걸 믿지 못한다. 긴토키는 이제와서 이들을 "여자나 아이들"이라 부를 생각은 없지 않냐고 빈정거린다.
>'''지구의 여자들은 이런 괴물 고릴라들만 있는게 아냐!'''
* 츠쿠요는 긴토키가 빈정거린 말을 맞아치며 "네 말대로 지구 여자의 평판을 낮추러 왔다"고 쏘아붙인다. 옆에 있던 [[야규 큐베]]는 자신이나 츠쿠요처럼 "여자"를 버리고 사는 여자들이 지구 여자들의 위신을 짊어지게 됐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긴토키를 짓밟던 [[가구라]]는 자기가 있으면 그정도 하향은 커버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긴토키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무라 타에]]는 남자들도 도망가는 사지에 모이는건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여자를 버렸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
츠쿠요는 백화 부대의 대장이란 책무를 져버릴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이미 할 만큼 했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도 좋다고 설득한다. [[세이타]] 또한 갑옷을 걸치고 백화 부대원들과 함께 나타나 자신들이 요시와라를 꼭 지킬 테니 츠쿠요는 바람대로 하라고 거든다. 둘의 설득으로 마음이 움직인 츠쿠요는 자신을 따르는 백화 부대원들을 이끌로 가부키쵸로 향한다. 히노와는 세이타에게 "이렇게까지 거창한 핑계를 대주지 않으면 반한 남자를 만나러 가지도 못한다"고 농담한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러 갈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잖아.
>여자든... 사람이든..
* 츠쿠요는 그런 독백을 하며 전장을 누빈다. 지휘관을 잃은 다키니 부대는 혼란에 빠져 가부키쵸 저항군의 반격에 퇴각하기 시작한다. 츠쿠요는 여자를 얕봐놓고 여자를 피해 달아나는 적들을 빈정거린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큐베도 "여자한테 대장의 목이 따였는데 원수도 갚지 않느냐"고 호통친다. 우연히 같은 소릴하게 된 두 여자는 마주보고 웃는다.
츠쿠요는 설마 여자를 바보취급하는 걸로 화내게 될 줄 몰랐다며 타에가 한 말 그대로 자신도 결국 여자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츠쿠요는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결국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자각했다며 사실 자신은 이 전장에 설 자격이 없다고 자조한다.
하지만 큐베는 "누군가 옆에 있고 싶다, 그런 이유로 우린 여기에 모인 것"이라고 문제될게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싸우는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있으며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세계를 구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들은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대한 적과 맞서는 여자들과 그리고 츠쿠요를 보고 큐베는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도 나쁘지 않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도.
* [[시무라 신파치]]는 터무니없는 괴물이라며 경악하는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옥상에서 통나무를 떨어뜨리던 스마일의 아가씨들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시무라 타에]]를 포함해 옥상에서 항전하던 여자들은 신라의 [[소타츠]]가 인질로 잡았다. 신라 부대는 다키니가 적과 교전하는 사이 가부키쵸에 잠입, 이미 네오암스트롱제트사이클론암스트롱 겐가이포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주요 기능은 정지된 상태였으며 통신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이걸 만든 기술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소타츠는 여자들을 인질로 내세워 전쟁은 끝났고 겐가이포를 만든 개발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오우가이는 잘난듯이 떠들지만 결국 여자를 상대로 뒤에서 기습이나 한 꼬라지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47회 일치
* 그 아들 "페리오"가 여기에 반발해 자신이 마신족을 전부 물리치겠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하급 마신이 잔인한 보복을 가한다.
* 결투라는 명목으로 페리오를 죽을 만큼 두들겨패던 마신은 누군가의 "아이를 돌려주고 혼자서 죽어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따른다. 그건 고서였다.
* 일행은 다시 성채도시 코란도로 향하나, [[멜리오다스]]가 고백한 자신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진실이 무겁게 그들을 짓누른다.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자책하고 고민하는 단원들에게 냉정해지라고 조언하며 엘리자베스는 꼭 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 엘리자베스의 모든 기억을 되살린 인물, 그리고 멜리오다스의 숙적 [[젤드리스]]가 멸망한 폐도 코란도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었다.
* 마신족이 브리타니아를 점령하고, 그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그들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해야했다. 인간의 영혼을 먹고 사는 마신들은 마을 주민들을 살려두는 조건으로 그만큼의 인간 영혼을 요구했고, 각 마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당량을 채우려 들었다. 한때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아만드"란 이름으로 은거했던 마을에서도 그랬다. 이 마을 촌장은 여행객들을 속여 마신족에게 바쳐왔다. 그렇게 생긴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마을 공동묘지는 묘비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촌장의 어린 아들 "페리오"는 그런 아버지의 방식에 반발했다. 촌장으로선 마을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며, 아버지나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고 자신이 마신족들을 다 물리치고 말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촌장은 자식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런 말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 말이 누구 귀에 들어갔다간...
하필이면 그 자리에 마신족이 있었다. 하급 마신은 어린애가 한 말 조차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곧 마을 광장에서 어처구니 없는 결투가 시작됐다. 마을 사람 전부가 입회인이란 명목으로 불려나왔다. 하급 마신족은 덩치가 큰 마신과 함께였다. 그는 페리오를 일방적으로 두들겨패며 본보기로 삼았다. 주민들 대부분은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페리오의 친구인 소녀 메라는 저대로는 페리오가 죽을 거라고, 어떻게든 말리려고 해봤지만 어른들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어른들은 차라리 나았다. 어떤 사람들은 촌장에게 다가가 당신의 바보같은 자식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졌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촌장은 쏟아지는 눈물을 삼켰다. 죽어가는 아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 페리오는 어린애가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작은 막대기에 의지해 몸을 가누며 아버지를,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신족의 악행을 꾸짖었다. 그는 언제나 성기사가 되길 꿈꿨다. 그런 자신이 괴물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저급한 존재에겐 고결한 신념이 영향을 줄 수 없었다. 하급 마신이 꼬리로 페리오의 목을 졸라 들어올렸다. 이젠 질렸으니 죽이겠다면서 말이다. 이런 족속에게는 보다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방식으로만 행동을 고칠 수 있다.
* 마력이 담긴 작은 침이 하급 마신의 머리에 박혔다. 마신이 온순한 강아지처럼 그 말에 따랐다. 페리오는 자신을 받아든 남자가 누군지 알았다. "아만드". 진짜 이름은 고서. 갑옷을 입고 돌아온 그가 하급 마신에게 다시 명령했다.
>그리고 질렸으면 혼자서 죽어라.
하급 마신이 고서에게 뻗으려던 주먹이 모조리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마신은 페리오에게 한 것 이상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자신에게 퍼부었다. 쓰러지기 전까지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기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경악과 두려움 속에 지켜보는 사람들. 그러나 페리오의 친구인 메라는 이변을 일으킨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남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고서는 이 마을에서 기억하는 "아만드"의 모습으로 작은 친구들과 재회했다. 페리오의 친구인 메라, 에릭, 토마스, 카츠. 고된 시간 속에서도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서에서 다가와 그의 귀환을 축하했다. 고서의 품에 안겨있던 페리오는 친구들이 그를 여전히 아만드라 부르자 진짜 이름은 고서라고 밝힌다. 그가 그렇게 불러서일까? 아만드 시절에 했던 머리 모습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페리오는 전에 고서가 했던 말을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고서는 옛일을 떠올리며 아직도 성기사가 되어 자기를 잡고 싶냐고 페리오에게 물었다. 소년의 꿈을 달라져 있었다.
* 방금 전 고서의 명령을 받았던 하급 마신은 반쯘 죽은 채로 도망치고 있었다. 명령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녀석이다. 마신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중얼거리며 꼴사납게 기어다녔다. 그러다 덩치 큰 남자와 부딪히는데 그는 마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마신이 다가온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침 잘 나타난 화풀이감이다. 그렇다면 죽어, 그렇게 말하며 하급 마신이 주먹을 휘둘렀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그런 주먹이라도 실컷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까 했지 했지만 하급 마신의 주먹은 너무 시시껄렁했고 자신이 친구에게 저지른 짓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뭐라고 했던가?
>이해하는 거냐, 좋아하는 여자를 두 번이나 죽게 두는 마음을.
>그로부터 3천년, 107명의 엘리자베스와 만나고 지냈으며
>106명의 엘리자베스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반은 눈 앞의 쓸모없는 것을 치워버렸다. 자신에게 치미는 화를 어찌할지 몰라 연인에게 호소를 보내봤다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돼지의 모자정에 있으면서도 그의 고통과 죄의식을 고스란히 느끼고 작은 목소리로 책망했다.
- 청도군 . . . . 47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ACDB67> {{{#0B3B17 '''군수'''}}} ||<bgcolor=#CEF6CE> [[이승율]]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3><bgcolor=#ACDB67> {{{#0B3B17 '''군의회'''}}} ||<:><bgcolor=#CA252B>'''[[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5석}}}||
||<bgcolor=#ACDB67> {{{#0B3B17 '''2'''}}} ||<bgcolor=#CEF6CE> 박권현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2><bgcolor=#ACDB67> {{{#0B3B17 '''국회의원'''}}} [br] [[영천시·청도군|{{{#0B3B17 {{{-1 (영천시·청도군)}}}}}}]] ||<bgcolor=#CEF6CE> [[이만희(정치인)|이만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의 최남단에 있는 군이다. 인구는 약 4만 3천명 정도. 인접한 자치단체로는 [[경상북도]] [[경산시]], [[경주시]], [[영천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정확한 위치는 [[가창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남도]] [[밀양시]], [[창녕군]] 등이 있다.
1906년(광무 10) 대구군 각북면, 현내면, 각이동면, 각초면을 편입하였다. 1912년에는 외서면(지금의 [[밀양시]] 청도면[* 실제로 밀양시 청도면과 청도군은 한자가 같은데(淸道), 외서면의 밀양군 편입 당시 원래 소속 고을인 '청도'를 따 면명을 개칭한 것.])이 밀양군으로 편입되고, 밀양군에 속했던 사지동(지금의 청도읍 사촌리)이 편입되었다. 1916년 군청이 화양면에서 대성면으로 이전하고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는 청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4년에는 청도읍 유호출장소, 화양면 남성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군청을 청도읍에서 화양면 범곡리로 이전하면서 화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마스코트]] 카우&'''붕가'''(COW&BUNGA). --[[붕가붕가]]-- ~~[[코와붕가|카우와붕가]]~~ 농경문화의 대표적인 소를 통해 협동과 상부상조 하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보다는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카우는 암소를 뜻하지만 붕가는 왜 하필 붕가인지 알게 해주는 설명은 일체 없으며 왜 이렇게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군청 직원 중에 [[닌자 거북이]]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붕가붕가|이상한 거 생각하지 말자]].~~
청도로 향하는 [[고속버스]] 노선은 전무하며 [[시외버스]] 노선은 있긴 하지만 타 지방에 비하면 그야말로 안습 그 자체. [[대구부산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음에도 [[철도]]가 강세인 지역이다. 그러다가 2015년 1월(!)에 드디어 [[동서울터미널|동서울]]행 시외버스가 개통되었다. 1일 3회 운행하며, 경산, 시지를 경유한다. 사실 동서울행도 경산발이 청도로 연장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보기 드문 '''[[철도]] 초강세 지역'''이다. [[경부선]] 철도가 사실상 시외 교통망의 대부분을 책임지며, [[청도역]] 앞은 항상 이용객으로 북적거린다. 여기에 관광객과 귀성객들이 몰린다면 좁은 역사는 그야말로 카오스가 된다. 이외에 북대구, 노포동, 마산, 수원 등 여러 교통 요충지는 '''철도가 너무 커버를 잘 해주는 나머지 없다.(...)'''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그나마 시외버스의 몇몇 구간(경주 등)은 20년 전에는 있지도 않았다.(...) [[청도공용버스터미널]]이 있는 청도군 읍내에서 청도군 내의 다른 읍을 잇는 버스들도 밤 9~10시면 다 끊긴다. 배차간격이 1시간인 아스트랄한 읍내도 많으며 이 때문에 읍내로 학교를 보내야 하는 외곽 지역 학부형들끼리 돈을 모아 승합차를 운행하거나, 역 앞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드물지만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아니면 학교에 있는 조그마한 기숙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곤 한다. 여담으로 이 고등학교는 고3들에게 3끼 급식을 다 제공해서 학부모들이 참말로 편하다 [[카더라]].
[[감(과일)|감]]이 가장 잘 알려진 특산물이다. 감은 지금도 교외로 나가면 집집마다 감나무 하나씩은 보일 정도로 흔하다. 그 중에서도 반시가 유명한데, 반시는 홍시의 일종으로 납작한 감을 일컫는 말이다. 특이하게 청도의 반시는 씨가 없는 감으로 유명한데 씨없는 [[수박]]처럼 품종개량에서가 아닌 자연적인 현상이다. 다른 지역의 감나무를 청도에서 심으면 씨가 없어지고 청도의 감나무를 다른 지역에 심으면 그 열매에 씨가 난다.(...)
[[운문사]]에도 인근의 운문댐과 연계하여 사람들이 꽤 찾는다. 주변에 펜션과 민박이 있고 운문사 입구쪽에는 캠핑장과 인공암벽체험장이 조성되어있다. 좀 거리가 있지만 주위에 운문산자연휴양림도 있다.
||<:>공립|| 1 ||<:>청도전자고등학교||<:>풍각면 헐티로 185||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C9151E '''영천·청도'''[* 지역구 국회의원 : [[이만희(정치인)|이만희]]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초선)]}}} ||<:>16.77%||<:><bgcolor=#C9151E>{{{#FFFFFF 58.43%}}}||<:>12.94%||<:>7.44%||<:>3.27%||<:>{{{#808080 ▼41.66}}}||<:> 73.80 ||
||<:><tablealign=center><bgcolor=#1870B9><-6> {{{#FFFFFF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bgcolor=#C9151E><-5> {{{#FFFFFF '''새누리당→자유한국당'''}}} ||
[[13대 총선|13대]] 이후 [[국회의원]] 당선자는 다음과 같다. 인구가 적은 지역 특성상 이웃 경산시와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았으나, [[20대 총선]]부터는 경산시와 분리되어 영천시와 공동선거구를 구성하였다.
|| 이재연/초선[br][[신민주공화당]] || [[이영창]]/초선[br][[민주자유당]] || [[김종학(정치인)|김종학]]/초선 [br] 자유민주연합 || [[박재욱(정치인)|박재욱]]/재선 [br] 한나라당 || [[최경환(1955)|최경환]]/초선 [br] 한나라당 || 최경환/재선 [br] 한나라당 || 최경환/3선 [br] 새누리당 || [[이만희(정치인)|이만희]]/초선 [br] 새누리당 ||
자세한 사항은 [[청도군/행정]] 참조.
- 추경호 . . . . 47회 일치
|배우자 = 김희경
|자녀 = 슬하 2녀
|정당 = [[자유한국당]]
* 2015년 9월 ~ 2016년 1월: 제2기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 2016년 6월: 새누리당 일자리특별위원회 부위원장
* 2016년 9월 ~ 2017년 6월: 제20대 국회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 위원
* 2017년 ~ 2018년 6월: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기획재정 정책조정위원장
* 2017년 2월 ~ 2018년 12월 : 자유한국당 경제정책위원장 겸 정책위원회 부의장
* 2017년 3월 ~ 2017년 5월: 자유한국당 대선기획단 정책 부본부장
* 2017년 6월: 자유한국당 민생A/S센터 신성장분과위원회 위원장
* 2017년 9월 ~ : 자유한국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
* 2018년 1월 ~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 경제정책 분과위원장
* 2018년 1월 ~ : 자유한국당 가상화폐대책TF 위원장
* 2018년 2월 ~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지방선거총괄기획단 지방선거기획본부 공약소위 위원
* 2018년 3월 ~ 2018년 6월: 자유한국당 6.13 지방선거 공약개발단 경제정책혁신단 단장
* 2018년 5월 23일 ~ 2018년 6월: 6.13지방선거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공동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 본부장
* 2018년 12월 ~ :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달성군 당협위원장
* 2018년 12월 ~ : 자유한국당 경제정책위원장 겸 정책위원회 부의장
* 2018년 12월 ~ : 자유한국당 정책조정위원회 제3정조정위원회(기재·정무·예결) 위원장
* 2019년 3월 ~ : 자유한국당 전략기획부총장
- 킹덤/523화 . . . . 47회 일치
* 하지만 몽념은 이 제안을 "웃기지도 않는다"며 일축하는데, 그건 자기보다 "그럴 바엔 먼저 넣어야 할 남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 몽념이 염두했던 남자, [[왕분]]은 진군 우익에 배치되어 조군 좌익 [[조아룡]], [[마남자]], [[악영]]의 3만 병력과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 조군 좌익은 선봉을 맡는 문제로 장수들 간에 작은 신경전이 벌어진다. 악영은 안면이 없는 조아룡, 마남자를 신용하지 못한다.
* 그러나 마남자는 [[이목(킹덤)|이목]]의 부관을 맡은 검증된 인물이었으며 조아룡은 전 삼대천 [[인상여]]의 측근이었던 인물로 역시 대단한 인물.
* 아광이 교전은 자신들만으로 하고 기회가 생기면 옥봉대에 전령을 보내 참전하게 하겠다고 작전을 전하자 왕분이 "특별취급"이라며 반발한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왕전(킹덤)|왕전]]과 [[마광]]이 진군 좌익의 작전을 [[몽념(킹덤)|몽념]]에게 전달했을 때. 몽념은 그들의 의중을 꿰뚫어봤을 뿐 아니라 마광에겐 "꾸물거리면 주역 자리를 빼앗겠다"고 너스레를 떨기까지 했다. 그 당돌함과 장군다운 시야가 마음에 든 것일까? 왕전이 막 돌아서려는 그를 불러세워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마광이 움찔할 만큼 이례적인 제안이었으나, 몽념은 "웃기지도 않다는 한 마디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몹시 무례한 태도였으나, 왕전은 그가 뒤이어하는 말을 자르지 않았다.
>날 넣을 바에야 그 전에 먼저 넣어야 할 남자가 있지 않습니까? 왕전 장군!
* 몽념이 염두했던 남자, 왕전의 아들인 [[왕분]]. 그는 [[아광]]과 함께 진의 우익에 배치되었다. 총 2만 5천 병력. 언덕 위에서 교전이 벌어질 벌판을 바라보는 왕분. 지평선 너머로 다가오는 조군 좌익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보였다.
* 조군의 좌익은 총 3만 병력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맹장 셋이 배치되었다. 우측부터 [[조아룡]], [[마남자]], [[악영]]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셋을 한 군으로 편성한 [[이목(킹덤)|이목]]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역시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봉을 누가 맡는지 문제를 놓고 악영이 먼저 나서며 다른 두 장수를 무시했다. 마남자는 자기가 말을 꺼냈는데 냉큼 악영이 받아먹으려 들자 그를 "창쟁이"라 부르며 뭐하는 짓이냐 따졌다. 악영이 차가운 태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둘에게 이 전장의 첫 칼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아룡이 중재했다. 우선 악영이 마남자를 잘 모른다고 했으나 그럴 리는 없다. 마남자는 대단한 체격의 거한이면서 그 이목의 부관을 맡을 만큼 검증된 인물. 악영이 그 개인과 친분이 없을 지라도 그를 "보통내기"로 여기고 있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악영도 그 지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조아룡을 두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험한 소릴 입에 올린다. 조아룡은 쓴웃음을 짓고 말이 심하다고 할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선전하지 않았다.
* 그에 대해서는 마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아룡은 전 삼대천인 [[인상여]] 장군의 측근. 중앙군의 [[요운]]과 더불어 오랜 세월 왕도권의 질서를 지켜온 숨은 강자였다. 마남자의 입에서 인상여의 이름이 나오자 악영도 그를 달리본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조아룡은 전 삼대천 [[염파(킹덤)|염파]]의 사천왕 [[윤호(킹덤)|윤호]], [[개자방]]과 동렬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굳이 여기서 서열과 실적을 논한다면 악영은 이들 틈에 낄만한 인물이 못 됐던 것이다.
* 진군의 우익이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옥봉대의 전방에 포진했던 아광군이 넓게 횡진을 펼쳤는데 마치 옥봉대를 뒤에 숨기려는 듯한 배치다. 아광군이 한참 부산한데 옥봉대에는 아무런 지시사항이 오지 않았다. [[반상]]이 여기에 안달이 났다. [[관상]]을 붙들고 정말 아광군에서 전령이 오는게 맞긴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관상이라고 더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므로 그만 죽을 맛이었다.
작전이란 결국 이런 식이다. 아광군이 단독으로 적과 맞서 싸우고 옥봉대는 "일격필살의 유격대"로 전력을 보존하며 대기하다가 아광군 측이 전령을 보내면 그때 지시에 따르면 된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왕분이나 관상은 그 참 뜻을 바로 이해했다. 왕분이 누가 이런 작전을 짰냐고 묻자 아광은 자신과 왕전이 짠 것이라 대답한다. 왕분은 더는 참지 않았다.
이 말이 떨어지자 옥봉대의 장교들이 식겁해했다. 아무리 총대장의 자식이라지만 직책과 계급으로서 왕분은 말단에 가깝지 않은가? 총대장이 직접 작성한 작전지시를 오천인장이 다시 짜라 마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광이 "도련님"에게 "우책이 아니다"고 잘라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옥봉대를 쓰지 않는다, 거기에 타당한 이유 따위가 어디있는가? 그런데도 옥봉대를 뒤로 물려놓는다는건 한 가지 의미 밖에 없는 것이다. 왕분이 분을 참지 못하고 그 말을 입 밖에 내려하자 아광이 "자만하지 마십쇼"라고 잘라버린다.
>자만하지 마십쇼 도련님!
그 자리의 대부분은 아광의 말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아광의 호된 꾸짖음을 듣자 왕분은 더이상 따지지 못했다. 그리고 관상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좋게도 나쁘게도"라는 아광의 말뜻과, 그걸 받아들이는 왕분의 심정을 한 눈에 읽어냈다. 일단 왕분으로서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보다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는 데는 왕분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나, 급하게 달려온 전령 때문에 더이상의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적 1진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급보였다.
아광은 부대로 돌아가기 전, 누그러진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전을 전달하러 온게 뭘 뜻하는지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옥봉대의 힘이 필요할 때, 괜한 교전으로 힘이 줄어있다면 전술적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디 냉정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하며, 왕분이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어차피 이 전투는 아광군, 옥봉대가 함께 사력을 다 해야 겨우 승기를 잡을 거라고 말했다.
* 조의 선봉은 결국 악영으로 정해졌다. 제 1진 1만이 구름처럼 몰려오자 아광고 1만을 뽑아 응전하고 적장이 있다는 깃발을 발견하자 자신도 곧 전장으로 달려간다. 옥봉대가 있는 위치에선 이러한 움직임이 한 눈에 보였다. 아광 장군이 선봉에 나서는게 보이자 관상이 넌지시 왕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아광을 "잔꾀를 꺼리는 무인"이라 평했다. 그건 관상 개인의 소견이 아니었고 옥봉대 사이에서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 가령 제 2장 마광은 왕전군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나 의외로 책략을 잘 쓰는 인물. 반면 아광은 "정면에서 당당하게 적과 부딪히는" 성격이었다. 아광의 병사들 또한 마치 지휘관의 복사판 같은 인물들. 겁이라는 걸 모르듯 그저 장군을 따라 적진으로 향하는 자들이다. 옥봉대에도 몇 번 아광 밑에 편성됐던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한결 같이 "악몽 같은 경험. 다시는 편성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증언을 입증하듯 조군의 전열이 가속하자 아광군도 맞서서 가속, 한 복판에서 그대로 충돌한다.
- 박주영 . . . . 46회 일치
* 자황컵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 2005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초년병땐 한국 공격수의 평균보다 키핑력이 좋았지만, 세계레벨에서는 키핑력을 활용하는 면에서 약점을 보였다. 낮은 레벨에서는 시야와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공을 끌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높은 레벨일 때는 약점으로 작용했던 것.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프리미어리그 레벨의 수비수들은 박주영보다 운동능력이 뛰어났기에 박주영의 다음 동작이 따라잡히면서, 결과적으로 공을 질질 끌면서 템포만 잡아먹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런 타입 특성상 골 결정력 지적은 늘 받았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한 선수라고 소개했는데 컨디션에 따라 결정력이 들쭉날쭉 했다. 라이트 팬들 입장에선 답답한 점이 많은 선수였는데 코칭 스태프 입장에선 육체적 능력과 축구지능이 좋아 최전방에서 혼자 공을 지키고 뿌리며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박주영을 선발로 보낸다. 그런데 골을 시원시원하게 못넣는다. 강팀이랑 할 때만 그런게 약팀하고 할 때도 그러니 TV로 보는 팬 입장에선.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침착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침착하게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잠깐 멍하니 있는다거나,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한 번씩 나오곤 한다. 투지 부족도 가끔 지적된다. 그래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함에도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 약팀과 붙을 경우 본인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 루즈한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확실히 왕자병 기질만을 멘탈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한데, 박주영의 문제는 이 왕자병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투지나 집중력 부족도 동시에 지적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팀 페이스가 어떻게 흘러가건 항상 내 페이스는 유지하지만, 또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또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렇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는 없는 대단히 드문 케이스.
어쨌든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비교적 현대적이고, 또 축구적으로 멘탈, 피지컬, 스킬을 통틀어 대단히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동국]]과 달리 [[FIFA 월드컵]]이나 [[올림픽/축구|올림픽 축구]]처럼 큰 경기에서 결정적 한 방을 잘 터뜨려 주었기에''' 박주영이 비난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쉴드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논거도 충분히 합리적이긴 하다. 더군다나 박주영은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3대[* [[AFC 아시안컵]]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그렇게 높은 비중을 두는 대회가 아니다.] 메이저 축구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어본 단 3명[* 나머지 2명은 [[구자철]]과 [[손흥민]]으로 이 2명의 경우는 아시안컵 골도 있다.]뿐인 대한민국 축구선수.
아니, 그런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준다는 것 자체가 축구선수의 중요한 실력이니만큼 박주영은 실력없는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한 위치는 절대로 아니다. 이동국이 성실한 국가대표(내신에 강하고 수능에 약한 학생)였다면 박주영은 좀 많이 뺀질거리지만(?) 현대축구에 요구하는 장점을 확실하게 갖췄고 필요할 때 뻥뻥 잘 터뜨려줘서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던(내신은 바닥인데 수능은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학생) 캐릭터다. 박주영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양쪽에서 모두 멘탈이 매우 강한 편이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태도문제나 일관성 없는 행보 등으로 인한 논란이 좀 많은 것이 문제.
* 도주영 : 이 별명은 도주영 30년 축구 인생의 모토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행위의 결과는 이미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일부 철학 학파의 시선으로 볼 때 도주영 별명 석 자는 포항에서 서울로 달아날 때부터 예고되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릴로 이적하려다 벵거의 전화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하며 도주영 3글자는 거의 수면 가까이까지 부상하였으나, 축구선수의 전격적 이적은 왕왕 있어온 일이라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은 시종 무시하면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은 덜컥 받아들여 병역에서마저 성공적으로 도주하는 기이한 솜씨가 아니고서야 도주영 세 글자 별명은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박주영은 표홀히 아스날, 왓포드, 알 샤밥 등지를 방랑하며 주급만은 쏙쏙 챙겨먹는 솜씨로 도주영 세 글자 이름을 드높였다.
* 모나코왕자 : 타 별명과 달리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잘나가던 시절의 별명.
* 모나코인, 모나코박 : 병역기피 시도 후에 한국 브라운관에 자주 비치기는 하는데, 한국 스포츠계 초유의 국적미상 상태의 선수라 이 선수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그가 모나코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 [[http://imgnews.naver.net/image/241/2012/08/11/htm_201208113495569006341_0_20120811092502.jpg|박시탈]] :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려서 얻은 별명.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인 각시탈에 빗대어 등장한 멋있는 별명이다. 당시 런던 올림픽에서 대회 내내 경기력이 저조하다 일본 상대로만 선제골을 박은, 마치 항일 암살자 같았던 박주영의 모습을 빗대는 측면도 있다.
* 버블팍 : 아스날 입단 후 여러모로 거품(버블)에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며 붙은 별명. 발음 자체는 [[현아(가수)|현아]]의 히트곡인 [[Bubble Pop!]]의 패러디이다. 기사 댓글에서 주로 "버블버블 팍팍"[* Bubble Pop!의 가사 'Bubble Bubble Pop! Pop!'의 패러디.] 하면서 조롱할 때 자주 쓰였다. 곡의 연차가 오래되고 박주영의 거품도 꺼지면서 점차 생명력을 잃었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선례왕(先例王) :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는 물론 포항에서 서울로의 도주 등 박주영 인생 전반을 걸친 선구자적 면모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조차 초월한 바, 박주영에게는 감히 왕의 칭호가 어울리다고 뭇사람들이 기림과 함께 얻은 영예로운 별명. 인간 박주영의 생애 전반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합법줘: 합법적으로 병역을 연기했다며 비꼬는 의미에서 나온 별명. '줘'는 다른 별명 '밥줘영'에서 유래. 한국프로야구를 통해 이미 정착돼 있던 [[합법드립]]에다가 '밥줘영'을 결합했다. 물론 원래의 합법드립은 진짜 합법인 건 아닌데 합법화됐다고 오해해서[* 야구 드립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합법드립은 [[김동주(야구선수)|김동주]] [[간통]] 사건으로 생긴 드립이다. 이 드립이 생겼을 당시 간통은 형법상 불법이었지만, 이때 사람들이 간통이 합법이 된 줄 오해하고 김동주한테 비아냥거린 것에서 합법드립이 시작됐다. 물론 현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간통이 비범죄화되었다. 다만 이제는 간통을 저지르면 형사 처벌을 안 받는다는 거지 여전히 민사상 책임은 질 수 있다.] 비꼰 것이 정착된 것이지만, 박주영의 병역 연기는 진짜로 합법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 A매치 전대륙 상대 득점자이다. 득점 순서대로 보면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아시아), 2006년 1월 21일 그리스(유럽), 2006년 3월 1일 앙골라(아프리카),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남미), 2009년 9월 5일 호주(오세아니아),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북중미) 순이다. 다만 호주의 경우 OFC 소속이 아닌 AFC 소속일 때 기록한 득점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2018년 현재까지 이 기록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만 보유하고 있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http://shootkim.khan.kr/493|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혐오도 9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독자연구|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46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의 모습을 한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게라이드]]를 걱정하지만 로우가 은혜를 갚겠다고 보호를 자청한다.
* 한편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침공을 감행한 마신족과 십계를 가로막고 대화를 신청한다.
* 십계는 요정왕의 숲에서 느껴지는 마신족 포로들을 따라 이곳에 온 것이었다. [[데리엘]]은 대표로 나서 포로의 석방과 배신자 멜리오다스의 신변을 요구한다.
* 엘리자베스는 데리엘을 설득해 교섭이 거의 성공했지만 이것 조차 [[뤼드셀]]은 이용한다.
* 그들 대부분은 비전투 인원이었고 그 중엔 데리엘의 자매도 있었다. 분노한 데리엘은 엘리자베스도 한패라 생각해 공격해 추락시킨다.
* 멜리오다스는 그들에게 "십계와 얘기하러 간다"고 선언한다. 그동안 숲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를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저쪽에는 십계가 다섯이나 있다. 배신자인 그가 직접 가는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는 일. 할리퀸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멜리오다스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그렇게까지 하면서 무슨 얘길 할 거냐고 묻는다. 멜리오다스는 이대로 전쟁이 계속되면 모든 종족이 멸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멜리오다스는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만약 십계랑 결탁해서 이러는 거라고 여긴다면 직접 와서 어떻게 하는지 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디안느는 만일 싸우게 되면 거인왕의 힘이 필요할 거라며 동행하겠다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동의. 디안느가 가게 됐으니 킹도 그냥 있을 수 없다.
* 하지만 킹은 이 사이에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 [[게라이드]]를 방치하게 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숲은 인간들에게 맡겨달라며 로우가 나선다. 로우는 구해준 은혜를 갚겠다고 하는데, 그의 모습이 [[반(일곱 개의 대죄)|반]]을 너무 닮아서, 킹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반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반과 달리 좋은 녀석"이라 말하며 게라이드와 숲을 꼭 지켜달라고 하는데.
* 마신족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십계 [[데리엘]], [[몬스피드]], [[갈란]], [[메라스큐라]], [[프라우드린]]. 이 무서운 대군 앞을 한 명의 소녀가 가로막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엘리자베스. 그녀는 혈혈단신으로 대군을 가로막고 자신을 밝힌다. 갈란과 메라스큐라는 자진해서 죽으러 왔다고 비웃는데 몬스피드는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라고 곰곰히 생각한다. 그런데 프라우드린은 자신들이 끌고 온 병사들이 엘리자베스를 보고 동요하고 있는걸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긴다.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하자 몬스피드는 차분하게 자신들의 용건을 말한다. 근래에 마신족의 수만 가량이 차례로 사라졌는데 이후에 이 숲에서 마신족 특유의, 그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마력이 발신되고 있다. 그들은 사라진 동포들이 여기에 포로로 잡혀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듣고 짚이는 데가 있지만 일단은 뤼드셀이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으니 돌아가 달라고 요청한다. 사대천사 뤼드셀의 이름은 십계들도 알고 있다. 데리엘은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냐고 반박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증거는 없지만 믿어달라고 사정하며 "이 싸움을 끝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때 프라우드린이 병사들에게 확인한 사실을 전달한다. 어제 인간 마을을 습격했을 때 병사들을 돌려보낸 존재가 바로 저 엘리자베스라는 것. 병사들은 자신들도 왜 도망치게 됐는진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싸울 맘이 사라진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데리엘은 적어도 교섭의 여지는 있다고 여겼는지 "믿기를 바란다면 동포를 해방하라"고 요구한다. 엘리자베스는 확인해서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답하는데 데리엘이 만약 뤼드셀이 거절한다면 어쩔거냐고 묻자 "그가 거부해도 자신이 어떻게든 한다"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 데리엘은 이번엔 "배신자 멜리오다스를 넘겨라"는 요구를 한다. 그들은 이미 멜리오다스가 스티그마에 합류해 있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자신의 전부이니 그를 죽이려 하면 혼자서라도 십계와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런 걸 좋아하는 갈란은 호기로운 계집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몬스피드는 이제야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다.
* 그때 뤼드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시간을 끌어줘서 고맙다"는 난데없는 소릴한다. 데리엘은 엘리자베스가 속였다고 생각하는데 엘리자베스로선 변명할 여지가 없다.
뤼드셀은 자신들도 준비가 끝났다며 기분 나쁘게 웃는다. 그때 숲 한쪽에서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나타난다.
* 뤼드셀이 손을 꽉 쥐자 아크가 폭발하며 그 안에 있던 마신족들이 한 순간에 증발한다. 그 안에 있다가 데리엘을 발견했던 그녀의 언니도 사라졌다.
혈육이 눈 앞에서 죽은 데리엘은 걷잡을 수 없이 분노해 엘리자베스를 공격한다. 공격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해 버린다. 다른 십계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엄연힌 선전포로도 받아들이며 분노한다.
데리엘이 현대에서 엘리자베스를 발견하고 보인 반응이 설명이 된다. 성전 당시 엘리자베스를 알고 있었기 때문.
엘리자베스는 사대천사보다 직위 상 높은게 확실해 보이고 데리엘 또한 십계 내에선 리더격으로 보인다.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교섭을 하고 멋대로 교섭 성립을 결정했는데 다른 십계가 전혀 이론을 펼치지 않는걸 보면 그렇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46회 일치
* [[젤드리스]]는 그동안 [[멜리오다스]] 곁에 있던 "엘리자베스"들이 모두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전생임을 폭로한다.
*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가 충격을 받고 절망할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기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 엘리자베스의 의지 덕인지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저주가 사라진다. 이후 일곱 개의 대죄는 카멜롯을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 엘레인은 머지않아 자신의 수명도 다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보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의 앞길을 더 걱정한다.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과 접촉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놀랍게도 그 마력을 통해 저주를 건 당사자와 연결된다.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듯 한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을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여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 뿐. 젤드리스는 "저주는 진짜였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얽혀있는 진실을 폭로한다. 성전 시대로부터 3천년 간, 엘리자베스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며 멜리오다스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거 같다고 예감한다. 그녀는 긴장하면서 성전시대에 멜리오다스와 함께 있던 또다른 엘리자베스에 대해 묻는데, 젤드리스는 그것도 당연히 "너 자신"이라 대답한다. 그리고 뜻밖의 기쁜 얼굴을 하는 엘리자베스. 젤드리스는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날을 세웠다. 엘리자베스는 꿈같은 일이 실현됐다며, 아주 오래 전부터 멜리오다스와 함께였다는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왜 자신이 멜리오다스를 괴롭게 한다는 건지? 그는 언제나 엘리자베스를 생각하고 그녀를 위해준다. 엘리자베스도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 간절할 수록 그녀는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젤드리스는 질렸다는 듯이 그렇냐고 대꾸한다.
>그때 네놈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될 거다!
젤드리스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자 강한 힘에 떠밀린다. 엘리자베스는 어둠의 저편으로 빠르게 날려보내진다. 그렇게 하얗게 흐려지는 시야.
* 돼지의 모자 정이 갑작스럽게 빛을 발한다. 옥상에서 자던 [[디안느]]가 그 바람에 깨어난다. 산에서 내려오던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돼지의 모자정이 발하는 심상치 않은 빛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건 엘리자베스가 발하는 마력의 빛이었다.
* [[에스카노르]]와 [[핸드릭슨(일곱 개의 대죄)|핸드릭슨]]의 놀라운 시선을 받으며 엘리자베스의 정화의식이 끝난다. 그녀가 젤드리스와 접촉한 일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저주에서 풀려난 멀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건강해진 모습에 에스카노르가 감격. 그때 멜리오다스 일행도 들어온다. 깨어난 멀린은 자신은 젤드리스의 마력에 사로잡혀 잠드는 저주에 걸렸었다고 말한다. 이런 추태를 보인 것에 사과하고 저주를 풀어준 엘리자베스에게 감사한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젤드리스의 마력을 풀어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 멀린은 간호해준 에스카노르에게도 감사를 전하는데, 그는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못 됐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실 그는 멀린이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팬드래곤]]을 "그는 내 희망 자체"라고 했던 일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상태를 걱정하지만 그녀 쪽에서 멜리오다스를 피한다. 그녀가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며 방을 나서자 할리퀸은 대체 멜리오다스가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러느냐고 은근히 타박하는데, 산에서와 달리 이번엔 멜리오다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방을 나선 엘리자베스는 식당으로 내려온다. 잠시 뒤 소란을 듣고 온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무슨 일이냐 묻는다. 그런데 그녀가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떨구고 있다. 호크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자 그녀가 안심시킨다.
* 멜리오다스가 그곳이 "성새도시 코란도"라고 알려준다. 몇 백년 전 대학살이 일어나 멸망한 폐도시다. 에스카노르가 "대학살"이란 말만 듣고 무서워 벌벌 떤다.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코란도 자체 보다는 "남동쪽"이란 단어에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방향이라면 "거기"도 통과할 거라면서 조금 옆길로 샐 순 없겠냐고 건의한다. 어차피 하루이틀 거리도 아니니까.
* 회의가 끝난 후. 반은 베란다에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슬쩍 부탁한다.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일이었다.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면서. 엘리자베스에게 그녀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 간만에 친구 곁을 떠난 헬브람은 그 여동생 엘레인의 집에 와있다. 엘레인은 오빠의 친구가 방문하자 별 일이라며 오빠를 부탁하지 않았냐 질책한다. 헬브람은 가끔씩은 괜찮지 않나며 그 말을 흘렸다. 그리고 엘레인에게 일곱 개의 대죄를 떠나보내도 괜찮냐고 화제를 바꿨다. 엘레인은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헬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게 그 증거다. 지금 엘레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 달리 말하면 그 어느 것도 아닌 존재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46회 일치
=== 진영 대표자 매수 ===
>모든 인민에게 무상 주거와 무상 공산주의를 제공하자!
모든 주거 건물의 집세를 0으로 고정한다. 공산주의자의 존경심이 상승하지만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트로피코의 역사를 기리는 국경일을 제정한다. 불꽃놀이는 덤.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상승한다. 매년 시민 일부가 국수주의자나 충성파가 된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모든 트로피코의 시민들에게 매일 두 끼의 식사를 제공하자.
퇴직자와 학생에게 평균 임금의 2/3을 지원한다. 모든 진영의 존경심을 상승시킨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국제 구호 단체를 받아들인다. 구호 단체는 원조 캠프를 치고 5년간 무상 의료와 무상 식량을 나누어준다. 외국인 따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므로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발표할 경우 국수주의자들이 "국제 구호 단체 직원들 때리기"라는 스포츠를 만들어 낸다. 관심 있는 사람은 엘 디아볼로에게 연락할 것.
우방국의 신형 핵무기를 트로피코 영해에서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대가로 $10,000를 받지만 환경주의자의 존경심이 영원히 하락한다.
군경에게 맞아도 표가 안 나는 부분을 때리도록 훈련시킨다. 군인과 경찰로 인해 발생되는 자유도 감소를 완화시킨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대통령 각하의 참된 사상을 책으로 펴서 가르친다. 모든 무학력자의 존경심이 3년간 유지되며 최대 10명의 시민이 충성파가 된다. 지식인 진영의 존경심은 3년간 하락한다.
주트로피코 미군기지를 유치하고 매년 $2,000의 임대료를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소련의 침략도 막는다. 소련과의 관계와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주트로피코 소련군기지를 유치하고 매년 $2,000의 임대료를 받아먹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침략도 막는다. 미국과의 관계와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3년간 관광평가와 오락 시설이 품질이 향상된다. 난리피우는 참가자와 술취한 경찰로 인해 범죄율이 상승한다.
방학을 트로피코에서 보내고자 하는 학생들을 겨냥한 여행 패키지를 기획한다. 3년간 관광 평가와 휴양객의 수가 증가한다.
=== 자연 특집 다큐멘터리 ===
미국의 유명 자연 다큐 채널을 불러 트로피코를 주제로 다큐를 찍도록 한다. 3년간 모든 시민, 특히 환경주의자와 지식인의 존경심이 상승하며 관광 평가와 생태 관광객의 수도 증가한다.
$20,000을 찍어낸다. 인플레이션으로 건설, 특수 자본, 칙령에 필요한 비용이 30% 상승하며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5년간 하락한다. 한 게임에서 다섯번까지 발표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공해가 줄어든다. 자유도가 감소한다.
정치에 밝은 성직자 앞에서 피고를 심문한다. 시위, 폭동, 쿠데타가 줄어들지만 반역자의 활동이 증가한다. 자유도와 관광 평가가 하락하며, 시민이 교회를 방문하는 빈도가 두배가 된다.
- 한확 . . . . 46회 일치
{{공직자 정보
|별명=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시호는 양절(襄節)
|배우자= 홍씨 부인
|자녀= 정선군부인(딸) <br/> [[소혜왕후]](딸)
'''한확'''(韓確, [[1400년]]<ref>1403년생 설도 있다.</ref> ~ [[1456년]] [[음력 9월 11일]])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외척, 외교관이며 [[명나라]]의 문신이다.<ref>{{브리태니커|b24h3077a|한확}}</ref>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며 시호는 양절(襄節)이다. [[조선 덕종|덕종]]의 비이자 [[월산대군]]· [[조선 성종|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와 [[조선 세종|세종]]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의 부인인 [[정선군부인]]의 친정아버지이다.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 [[여비 한씨]], [[선덕제|선종]]의 후궁 공신부인은 그의 넷째, 다섯째 누이이다. 검소하고 청렴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과 함께 [[조선 세조|세조]]의 즉위를 도왔고, [[1418년]]의 [[세종]]의 책봉 고명과 [[1455년]] [[조선 세조|세조]]의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는 누이들이 황제의 후궁인 점을 활용하여,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둘째 딸은 [[조선 세종|세종]]의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 증]]에게 출가하였고, 여섯째 딸은 [[조선 세조|세조]]의 장남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비 [[인수대비]]로서 [[조선 세종|세종]], [[조선 세조|세조]] 2대에 걸쳐 사돈이 되었다. [[한명회]]의 일족이다.
간이재 한확은 [[1400년]](정종 2년) 녹사를 지내고 [[증직|증]]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녕]](韓寧)의 손자이며,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를 지내고 [[증직|증]] [[의정부]][[영의정]] 서성부원군에 추증된 [[한영정]](韓永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증 정경부인 의성 김씨는 의성군 양소공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음서 제도|음보]]로 출사하여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다. [[1417년]](태종 17년) 가을 넷째누이 [[여비 한씨]]가 영락제의 후궁으로 낙점되자 [[명나라]]에 파견되는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녹사(錄事) 김덕장(金德章)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는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여 [[연경]]에 갔다가 그해 말 귀국하였다. 그뒤 누나가 여비로 책봉되자, [[명나라]]의 초청을 받고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에 가서 [[명나라]]의 [[봉의대부]]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되었다.
[[1418년]] 태종의 양위로 [[조선 세종|세종]]이 즉위하자 책봉 고명을 위한 승습사(承襲使)로 명나라에 들어갔고, [[1419년]](세종 1년) [[1월]] [[명나라]] 황제의 책봉 고명서를 받들고 [[명나라]]의 책봉정사(冊封正使)가 되어 부사인 홍려시승 유천(劉泉)과 함께 귀국하여 판한성 부사가 되었다.
[[1420년]] [[1월]] [[조선]]의 흉년기에 공물면제를 위한 사절단의 대표로 예조참판 하연(河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의 광록시소경으로서 태종 이래 추진하였던 금과 은의 공물면제를 주청하여 황제의 허락을 받고 귀국하였다. [[1424년]] 명나라 성조가 북정(北征) 중 유목천(楡木川)에서 죽자 여비는 [[영락제]] 사후 순장당하였다.<ref>목을 매고 죽었다.</ref> 그뒤 장군 절제사(掌軍節制使)가 되었다.
[[1425년]] 전감무(前監務) 김성정(金成鼎)의 첩의 딸 고미(古未)와 간통하였다가 [[사헌부]]집의(執義) 정연(鄭淵)·헌납 윤맹겸(尹孟謙)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하였으나 [[조선 세종|세종대왕]]은 주저하다가 윤허하지 않았다.<ref name="se29">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9월 28일(갑자) 2번째기사 "장군 절제사 한확이 간통했다고 갈아 임명하게 하다"</ref>
그뒤 여비 한씨의 절개를 높이 평가받아 다섯째 누이가 [[명나라]] [[선덕제|선종]](宣宗) 선덕제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공신부인]]이 되자, [[1429년]](세종 11년) [[진헌사]]가 되어 [[진헌부사]] [[조종생]](趙從生)과 함께 진헌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또 한영정의 막내딸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명나라]]에 고하자 그의 막내 누이도 명나라로 뽑혀 가게 되었다.<ref name="han01">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5월 1일(무자) 4번째기사 "진헌할 처녀로 간택된 한영정의 막내딸이 혼수로 준비했던 재물을 나눠주다"</ref> 병이 나게 되어 한확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1427년]]에는 그를 공격했던 좌군 도사(左軍都事) 최징(崔澄)이 역으로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다.<ref>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12월 5일(무오) 2번째기사 "한확과 홍인을 무고한 죄로 좌군 도사 최징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다"</ref> [[142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는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진 내관 백언(白彦)이 그의 어머니에게 주는 단초(段綃)와 성(成)·차(車)·정(鄭)·노(盧)·안(安)·오(吳)·최(崔)씨 등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여인들이 쓴 편지를 고국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중국어]]와 [[한자]]에 능통했는데,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마다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어 접대하였다.
[[1435년]](세종 17년)에 자헌대부 행중추원부사,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37년]] 그의 딸 한씨가 계양군(桂陽君) 이증과 혼인하고 정선군 부인(旌善郡夫人)에 봉작되었다. 그의 또다른 딸은 [[수양대군]]의 아들 [[조선 덕종|도원군 숭]]과 결혼하는데 이 딸이 바로 후일의 [[소혜왕후|인수대비]]가 된다.
[[1443년]]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그해 동지중추원사로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를 겸하였고, 그해 다시 [[판병조사]] 겸 지중추원사를 거쳐 다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었다. [[1444년]] [[경상도]], [[전라도]]의 진상품을 받을 것을 청하였으나 [[세종]]이 이를 듣지 않았다. 그 해 [[판이조사]]가 되었는데, 이때 인사에 공정을 기하여 자못 명망이 있었다. [[1445년]] 중추원지사 겸 [[판병조사]](병조판서)를 겸하다가, 다시 판이조사(이조판서)가 되었다. [[1446년]] [[판중추원사]]로 승진되었다가 [[1447년]] 이조 판서가 되고, 행[[평안도]] 관찰사로 나아갔다. 그해 행[[평안도]][[관찰사]]로 평양판윤과 [[평안도]] 병마도절제사까지 겸임하였다. [[1448년]] [[평안도]]병마절도사 겸하였다. [[1450년]](세종 32년) 판중추원사가 되었다. 그 후 판이조사·[[좌찬성]] 등을 거쳐 [[조선 세조|세조]] 때 서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종이 즉위하자 판중추원사로 소환되었고, 그해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1452년]](문종 2년) 초에 귀국, 그해 의정부 좌찬성이 되었다. 이후 [[한명회]], [[신숙주]], [[권람]], [[정인지]] 등과 긴밀히 연락하며 사돈 [[조선 세조|수양대군]](首陽大君)의 즉위를 도왔으며 [[명나라]]에 있는 누이 [[공신부인]]과 죽은 [[여비 한씨]]의 후광에 힘입어 이들의 거사를 은밀히 지원하였다.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분배할 때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 등을 노비로 하사받았다.<ref>세조 실록 5권, 세조 2년(1456 병자 / 명 경태(景泰) 7년) 9월 7일(갑술) 4번째기사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ref>
귀국길에 올라 세조의 책봉 고명을 받아 돌아오던 중, 칠가령(七家嶺)에 이르러 병을 얻어, 귀환하는 도중에 [[음력 9월 11일]] 사하포(沙河浦)에서 갑작스럽게 객사하였다. 당시 향년 56세였다.<ref>1400년생 설을 따를 경우</ref> 사망 당시 가사에 대한 말은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둘째 딸은 [[세종]]의 서자 [[계양군]] 증에게 출가했고, 여섯째 딸은 [[소혜왕후|인수대비]]로 [[조선 덕종|덕종]]의 비이며 [[월산대군]]· [[조선 성종|성종]]의 어머니였다.
한확은 세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다. 그는 그의 누나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의 벼슬을 받고 외교채널이 된다.<ref name="ky">[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02 <nowiki>[</nowiki>王을 만나다·16<nowiki>]</nowiki>서오릉-경릉 ( 추존 덕종·소혜왕후) : 남존여비 '女訓'과 상반된 '여성상위능'] 경인일보 2010.01.14</ref> 그리고 누이동생 또한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택돼 더욱 외교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사실 한확의 두 누이이자 인수대비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가슴 아픈 사연을 지녔다. 한확은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 1등에도 올랐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을 승인하지 않던 명나라에 들어가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양위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한확은 골치 아픈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ref name="ky"/>
- 구승빈 . . . . 45회 일치
|| 솔로 랭크 아이디 || imp8[* 주로 쓰는 계정인듯하다. 레이팅은 챌린저.][br]권이슬팬이다람쥐[br]imp123[br]백수 Rain1ng[* 전적 검색 사이트 OP.GG 자유 게시판에서 본인이 임프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정말 본인이 쓴 건지 확실하지 않다] ||
아마시절 애쉬 장인이었고, [[그레이브즈(리그 오브 레전드)|그레이브즈]]와 [[시비르]]를 잘 쓴다고 한다. 원딜은 다 다룰 수 있으나 [[드레이븐]]은 못 한다고. 대회 주력 챔프는 역시 [[베인(리그 오브 레전드)|베인]], [[트위치(리그 오브 레전드)|트위치]], [[징크스(리그 오브 레전드)|징크스]] 등 하드캐리형 원딜들. 특히 저런 픽들은 라인전 단계에서 매우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임프의 경우 피지컬 빨으로 케틀/애쉬/루시안같은 라인전 강캐들을 역으로 압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특히 베인은 한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베인 컨트롤을 자랑~~한다.~~했었으나 베인 선고패치와 시즌4에 접어들면서는 예전같지 않은 모습.
시즌 3 롤드컵 이후로 다데와 댄디가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롤챔스 윈터 2013-2014에서는 각성한 마타와 함께 다시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 주목받았다. SKT T1 K를 상대하게 된 결승전을 앞두고 거의 모든 이가 "모든 면에서 SKT T1 K가 우세하나, 바텀이 유일한 변수"라고 평가할 정도. 임프 본인도 경기 전 피글렛과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며 보는 이들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임프가 1인분을 간신히 해낼 동안 다른 팀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한타에서도 말려 팀의 3대0 압도적 패배. 사실 임프도 '그나마' 잘했을 뿐, 라인스왑이 걸린 상황에서 마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상대 라이너를 압박하려다 크게 손해를 보는 플레이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다(1세트에서 임팩트에게 솔킬을 따일 뻔했으며, 3세트에서는 페이커에게 역관광당해 플래시를 낭비했다). 각 세트 중반에는 본인이 밀리는 상황을 ~~청년가장으로서~~ 타개해야한다 생각했는지 무리한 포지셔닝,킬욕심을 내다가 먼저 끊기거나 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캐리형 원딜류 완전체'''. 데프트가 강점이라 평가받는 부분이 코어템 하나의 격차 정도는 뒤집을 수 있는 끝판왕의 딜링이라면 임프의 강점은 게임을 뒤흔드는 변수 생성능력. 임프가 게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아군도 적도 예측하지 못하는 공격적이고 리스크가 큰 스타일의, 원딜의 정석이라기보단 변칙의 정석을 보는 듯 하다. 마타라는 목줄이 없다면 게임을 끝도없이 던진다고 평가받을 정도. 삼성 화이트의 운영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중반의 '''원딜이''' 갖게되며[* 본래 중반 타이밍에는 미드 라이너나 딜러 챔피언을 고른 탑 라이너가 캐리를 맡고 원딜은 후반을 담당하는 것이 EU스타일의 정석이다.], 탑의 끝판왕이라고 평가받는 루퍼와 함께 팀의 전략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건 그 어떤 팀의 어떤 원딜러도 가질 수 없는 최고의 강점인 것이, 아무리 마타의 서포팅을 받는다 하더라도 오더를 넘어서는 전과를 내는 건 데프트 정도의 피지컬과 게임을 보는 눈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데프트는 상대적으로 수비적이고, 오뀨나 애로우는 이런 운영적인 면에서 약세를 보인다. 데프트가 항상 모든 팀이 꿈꾸는 이상적인 원딜의 이미지라면, 임프는 대조적으로 모든 팀원을 자기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타입의 원딜의 이미지. 팀원들이 맞춰줄 경우 가장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포지션인 원딜임에도 극한의 변칙플레이를 보여준다.
다만 국내에서는 세체원에 가깝다고 평가하지만 해외에서는 생각보다 평가가 낮은 편인데, 화이트에서 승기를 잡았을 경우 공격적으로 나가다가 죽는 장면이 여러번 잡혀서 잘 던진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로얄 클럽의 우지와 같은 과라는 평가를 갖고 있는데, 우지의 경우 잘 던지기는 하지만 자신이 캐리를 해서 이긴다는 이미지라면, 임프의 경우 화이트의 다른 멤버들이 다 잘하고 있을때 갑자기 트리스타나 앞 점프나 포지셔닝 문제로 죽는다는 이미지로 해외에서는 임프의 결점이 더 눈에 띈다고 말하고 있다. 우지에 비해서 덜 던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화이트의 경우 흔히 말하는 탈수기 운영으로 애초에 임프가 몇 번 포지셔닝 문제로 죽어도 우세한 상황인 경우가 많아서 단순하게 우지와 임프를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말이 많은 편. 사실 애초에 불리한 상황엔 마타가 목줄을 꽉 잡아당겨서 불리할 때 던지지는 않는다.~~???:뒤진다~~ ~~임뿌우:네~~
중국의 LGD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미드정글의 부진과 상대팀의 임프 집중공략 속에 끊기는 빈도가 화이트 시절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것이 문제. 결국 데프트의 EDG에 밀려 4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시즌 후반에 들어 미드가 닉변을 하고 심기일전하더니 폼이 확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폭풍 연승 행보를 보여주면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3:2로 졌으나 일단 LGD 입장에선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봐도 좋을듯
그리고 섬머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다시한번 EDG를 만나서 3:0으로 완파하고 결승행을 확정지으며, 중국 1등시드로 롤드컵진출을 확정지었다. 대부분의 평가는 임프가 데프트 상대로 원딜 클라스 격차를 보여줬다는 것이 중론.~~임프센세의 데프트 참교육 현장~~결승에서도 임프는 정규시즌 원딜 MVP 포인트를 쓸어담던 QG의 원딜러 TnT를 압도했다. 결과는 3대2의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사실상 중체미라던 Godv의 똥. 임프가 상대원딜과 cs 100개 벌릴때 Godv도 상대 미드한테 cs 100개나 뒤졌으니..~~[* 오히려 정글러인 TBQ의 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qG의 미드인 ~~간신~~도인비는 다데 스타일의 미드라 스위프트가 미쳐 날뛰지 않으면 혼자 라인전 압살하는 경우는 적다.] 이로써 임프는 SKT의 페이커 벵기 와 더불어 2회 롤드컵 우승을 노릴수있는 선수중 한명이 되었다.
데프트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과 비교해서 임프의 장점은 라인전 메카닉보다는 변수 생성능력이라고 보는 모양. 삼성 형제팀 시절에는 마타가 시키는 대로 해서 잘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중국에 와서 서로 팀이 달라져서 맞대결을 하면서 그냥 임프가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데프트 자신도 라인전에서 절대 임프에게 밀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다소 플레이스타일이 한정적인 자신과 달리 임프는 팀원을 활용해서 다양한 플레이를 할 줄 안다고. 김몬테를 위시한 해외 전문가들도 MVP, 구 삼성 시절에는 임프에 대해 마타의 하수인, 가끔 돌출행동을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기며 저평가했으나 시즌 5 시점에서는 LPL에 가장 잘 어울리는 능동적인 원딜러라며 호평하고 있다.~~문제는 그 LPL이 폭망했다~~
약한 팀의 전력과 본인의 과도한 공격성향으로 인한 미친 듯한 데스누적은 임프의 후반 한타 실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게 만든다. 시즌 4에 미스틱은 NLB 전용 왕자님이었고 우지는 중국 미친개였지만, 우지와 미스틱이 한국식 운영을 모방하는 팀에서 공격적인 라인전 능력에 뒷받침되는 엄청난 한타 안정감을 보여주며 시즌 7 롤드컵 4강을 찍는 시점에서 LPL 바닥을 떠도는 임프와 사실상 신세가 역전되어버렸다. 시즌 5만 해도 임프가 연봉과 커리어를 다 가진 상황이었지만, LPL의 수준이 올라가고 몬테에 의하면 LPL에서 VG보다도 더 부패했다는 LGD(...)에 사로잡힌 임프는 자신이 메타와 트렌드의 발전에 맞게 진화했음을 검증받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연봉과 커리어를 교환한 셈이 되어버렸다.~~루키는 2년을 참으니 재키러브가 떡상하는데 임프는......~~
그리고 임프가 LGD를 떠나 WE로 가자 임프가 벤치건 뭐건 WE가 LGD 밑으로 추락하는 등 부정적인 의미의 토템행......
* 아마추어 시절 아이디가 '[[잊혀진 계절|잊혀진계절]]'이었는데, 그때부터 실력은 좋지만 멘탈이 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 시절 비슷한 점수대의 플레이어들 중 자신에게 패드립과 트롤링 한번 안당해 본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자랑이다.--
* [[트래쉬 토크]]도 잘하기 때문에 안티도 상당히 많다. 실력은 좋지만 멘탈이 워낙 글러먹었다고. 핫식스 롤챔스 4강 VS SKT T1전에선 티원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을 쓱 지나가면서 '''3 대 0'''!이라고 소리지르고 갔다고 한다. ~~[[HOT6 Champions Summer 2013/4강|그리고 빡친 티원선수들은 임프의 멘탈에 집단린치를 가했다]]~~ 그러나 경기는 오히려 티원이 압도적인 실력차로 찍어눌러버렸고, 임프는 경기 도중 멘탈이 나간 표정이 잡히는가 하면 우물에서 체력을 채우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 후 승자 인터뷰에서 피글렛에게 '''"저희가 이겼는데 어떡하죠?"'''라는 말로 조롱당했다.
* 자신이 경쟁자로 생각하는 원딜러는 Team WE의 웨이샤오라고 밝혔다.
* [[MVP(프로게임단)/리그 오브 레전드|MVP Blue]]의 전 멤버였던 [[강퀴]]가, 아직 미성년자인 임프가 흡연을 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임프는 담배피는 시간만 빼면 항상 연습을 하고있을 정도로 연습벌레다. 진짜 잘할수밖에 없다."] 다만 임프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담배를 피는 시간 동안 임프도 연습을 쉬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었지만 결국 도수의 방송에서 임프 본인의 채팅으로 담배를 피는 것이 확인사살되었다. 그런데 이미 롤 챔스 윈터 대회 중 경기 후 쉬는시간동안 경기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이 종종 보이곤 했다. 그것도 팬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본인은 흡연사실을 딱히 감출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이렇게 된 이상 담배 공급원은 누구였는지 궁금해진다.~~ 그래도 보기 좋은 모습인 아니였던지라 [[데일리e스포츠]] [[http://esports.dailygame.co.kr/view.php?ud=75747|기사]]에서 용산에서 담배피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질책했다.
* 나는 캐리다 5월 13일자 방송에 출연하여 그 명불허전의 멘탈을 입증하며 전설이 되었다.
* 8월 17일 밤 11시에 뜬금없이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agueoflegends1&no=3183848&page=1&search_pos=-3179964&s_type=search_name&s_keyword=%EC%9E%84%ED%94%84|힘들다며 롤갤에다 글을 썼다.]][* 힘든 이유는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agueoflegends1&no=3184043&page=1&search_pos=-3179995&s_type=search_name&s_keyword=%EC%9E%84%ED%94%84|못해서라고]](...)] 다들 낚시라며 무시하고 있었는데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agueoflegends1&no=3183912&page=1&search_pos=&s_type=search_name&s_keyword=%EC%9E%84%ED%94%84|하나씩]],[[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agueoflegends1&no=3183998&page=1&search_pos=&s_type=search_name&s_keyword=%EC%9E%84%ED%94%84|부분인증]]을 까더니 막판에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eagueoflegends1&no=3184139&page=1&search_pos=-3179995&s_type=search_name&s_keyword=%EC%9E%84%ED%94%84|원판 인증]]을 하면서 롤갤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술한잔 걸친듯~~ ~~누누히 말하지만 2014년 이전엔 미성년자다~~
* 롤챔스 2013 섬머 8강에서 자신들과 맞붙을 예정이었던 [[정우광|mima]]가 대리랭크에 연루돼있음이 밝혀지자, 이를 밝힌 Apdo에게 친추를 걸고서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승리의 포효!'라고(…). [[윤성영|옴므]]는 한때 같은 팀이었다고 직관까지 가서 mima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냐는 평.
* 2013년 8월 24일에 아이디를 해킹당한 것으로 보인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653&l=5223419|#]] 비밀번호의 자릿수가 노출되고 그게 혹시 '구승빈1'인가 싶어서 쳐봤는데 맞았다는 것이 카더라. 물론 저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그것도 모르고 임프 멘탈로 까다가 해킹임을 알고 급수정에 들어간 거다.
* 2013년 10월 30일 프로게이머 정기소양교육에서, 격투기 해설자인 김남훈에게 "다시 태어나면 잘생길 것이다"라는 발언을 해[[http://esports.dailygame.co.kr/view.php?ud=2013103017235703189|김남훈을 강단아래로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소환 성공하고 좋아 죽는 임프~~ [[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36491&db=issue|들어올 때는 맘대로 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응징 당하면서 좋아 죽는 임프~~
* 2013~2014 판도라 tv 롤챔스 윈터 16강 팀다크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MVP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인섹 사건에 버금가는 엄청난 방송사고였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275300.htm|관련기사]] 원딜이 cs 38개 먹고 MVP를 받은 상황.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로 팀 다크가 맹비난을 받는 동안, MVP 인터뷰에서 임프는 어떻게 이 경기에 임했냐는 조은나래의 질문에 "프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로 임프가 철 좀 들었다, 얌전해졌다 라는 반응이 꽤 나왔다.[* 롤드컵 이후로 뭔가 깨달은게 있긴 한 듯. 임프 한명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실제로 롤드컵 가서 푸짐하게 똥싸고 오셨던 마타와 다데가 부활했으며 성적도 좋게 나왔다. 그리고 팀 다크와의 2경기에서 같이 던지는게 아니라 일말의 자비도 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 어쨌거나 정신적으로 성장한 면은 분명히 있는 듯.]
- 김윤환 . . . . 45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3990><#003990><-5><:> [[민주자유당|[[파일:Democratic Liberty logo.png|width=60]]]] [[민주자유당|{{{#FFFFFF ''' 민주자유당 대표 ''' }}}]] ||
|| '''약력''' || [[조선일보]] 기자[br][[영남일보]] 기자[br][[대구일보]] 기자[br][[문화공보부]] [[차관]][br]제13대 [[대통령비서실장]][br]제1정무장관[* 1988년, 1990년, 1994~1995년 무려 3번이나 제1정무장관직을 역임하였다.][br][[민주정의당]] 원내총무[br][[민주자유당]] 대표 ||
=== 출생 ~ 신문기자 시절 ===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언론사인 [[영남일보]]와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일본특파원 및 편집국장 대리를 거쳤다. 이 시절에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 중간에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8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1986년 8월 개각 때 [[허문도]]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 정무제1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87년 7월 [[김정렬(1917)|김정렬]] 내각이 출범하자 [[박영수(정치인)|박영수]]의 뒤를 이어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퇴임한 뒤 민주정의당으로 복귀했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군위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개원한 뒤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에 임명되었고,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김원기(1937)|김원기]], [[통일민주당]] 원내총무 [[최형우(정치인)|최형우]],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 [[김용채]]와 함께 4당 체제를 이끌어가는 원내 사령탑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쳤다. [[3당 합당]] 이후에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무제1장관을 맡으며 정계의 중심에서 활약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윤환은 당대의 '''[[킹 메이커]]'''(King Maker)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절정에 올랐다. [[김영삼]]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舊민정당(군사독재정권) 출신 민정계 인사들을 설득해서 강력한 [[김영삼]]의 지지세력, 일명 신민주계를 규합하여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당시 김윤환은 민정계 인물들에게 '국민들이 군부 출신 민정당 인물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일단 [[김영삼]]을 세워서 정권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우리(TK+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 정권을 창출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김윤환은 [[전두환]] 밑에서는 친구인 [[노태우]]를 후계자로 옹립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노태우]] 밑에선 [[김영삼]]을 후계자로 지원해서 역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 이후 김윤환은 정치권에 몰아친 사정의 태풍을 피해 해외에서 체류하다시피 했다. TK민정계의 동료였던 [[박준규(1925)|박준규]]와 [[박철언]] 등이 대거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상황에서 김윤환은 대통령을 만들어낸 2인자임에도 오히려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1995년 2월 [[김종필]]이 민자당을 떠나고 6월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자 김영삼은 김윤환을 통해 당과 범여권을 안정시킬 필요를 느낀다. 이에 김윤환은 다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복귀했고 얼마 뒤에는 민자당 대표위원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하게 여당의 2인자가 되었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뒤에도 김윤환은 대표위원으로 유임되었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신한국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139명 중 그의 계보로 꼽힌 당선자는 무려 26명으로 전체의 5분의 1에 육박했다.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영남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상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절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절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군위/선산) || '''[[민주자유당]]''' || '''36,607 (61.49%)''' || '''당선 (1위)''' || ||
* [[2003년]] 그가 죽자 그의 호인 허주(虛舟), 즉 빈 배처럼 갔다고 해서 권력은 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 [[격동 50년]][* 본인이 직접 증언했던 육성이 방송에서 나왔고 생전에 애청자였다고.]에서는 [[김동현(성우)|김동현]]이 맡았다.
[[분류:동명이인/ㄱ]][[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기자]][[분류:언론인]][[분류:시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32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김처선 . . . . 45회 일치
[[세종대왕|세종]]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왕을 섬겼으며 최고위 내시인 판내시부사 겸 상선을 역임한 인물. [[충청남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1914년 전의현이 [[연기군]]으로 편입되어 전의면이 되었다.] 사람이다.
그러다 1457년(세조 3년)에 다시 복직되어 1460년(세조 6년)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록되었으나, 이후 세조로부터 시종이 근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아 자주 [[곤장]]을 맞았다. 사실 공신이 아니었으면 진작 노비로 다시 떨어졌을지 모를 정도로 놀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성종(조선)|성종]] 때에 이르어서는 의술이 능하여 [[대비]]를 치료한 일로 다시 인생 역전하여 자헌대부에 올라갔다.
연산군은 이로 인하여 화를 내곤 했지만 김처선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언제나 쉽게 용서해주곤 하였다. 실제로 실록에 김처선이 죄를 지어 연산군의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하루 만에 그를 복직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연산군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은 하고 있었던 모양.
1505년에 연산군이 음란한 춤인 처용희를 추며 방탕하게 놀던 자리에서도 김처선은 곧은 성품에서 우러난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 당시 김처선은 연산군에게 '''"이 늙은 신(臣)이 4분의 [[임금]]을 섬겨왔으나 [[고금]]을 돌이켜도 이토록 음란한 왕도 없었사옵니다."'''라고 간하였는데,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한 편이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연산군]]이 김처선의 [[혀]]를 잘라버렸다.[*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은 김처선이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시점을 김처선의 혀가 걸레짝이 된 상태라고 설명 했는데, 사람은 혀가 잘린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지만 혀가 잘리면 자음을 제외한 공명음만 낼 수 있으므로 이런 상태에서 말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설민석이 자신의 여타 강의에서도 그러하듯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러한 표현을 대동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 김처선의 발언이 은근히 [[연산군]]을 비꼬는 듯이 들리지만, '다리'를 임금의 신하라고 해석하면서, '''"충직한 신하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데, 어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본다면 뼈대가 있는 일침이라는 해석도 있다.
[[연산군]]은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에게 직언을 하였던''' 김처선을 극도로 혐오하였으며, 때문에 김처선이 숨을 거둔 이후에도 밑도 끝도 없이 [[복수]]를 꾀하였다. 먼저 그의 양자인 이공신을 처형하고 7촌 관계의 친족들까지 벌을 주는가 하면 김처선의 이름에 들어갔던 '처(處)'자의 사용을 금해 그토록 좋아하던 '''처용무의 이름까지''' 풍두무(豊頭舞)로 바꿀 정도였다.
게다가 김처선 부모의 묘까지 헐어 버리고 집은 밀어버린 후에 터를 연못으로 만들었다. 또한 전국의 김처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개명'''을 명하고 과거 시험에 처(處)자를 사용하였다고 합격자의 '''합격이 취소'''된 사례에 상소에 처(處)자를 써서 국문을 당하다가 천만다행히도 법 제정 이전에 썼다고 국문을 취소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그의 본관인 전의(全義)도 없애버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다시 복권되기에 이르지만 [[중종(조선)|중종]]은 그를 썩 좋게 보지 않았던 듯 싶다. "김처선은 술처먹고 주정부리다가 죽은 건데 무슨 놈의 [[공신]]?"이라고 반문했다는 기록이 있어서인지 중종은 김처선의 행적을 기리고자 하는 사림들의 상소를 모두 무시한다. [* 《중종 실록》 권17 7년 12월 4일 갑진 2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712004_002]] ]
중종은 연산군처럼 막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왕자이며 임금이 된 만큼 왕실의 권위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중종의 생각으로는 연산군이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일개 내시'''가 감히 왕에게 폭언을 퍼부은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듯 하다.
어쨌든 그의 최후는 '''진정한 [[왕의 남자]]'''로서 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충신]]답다 할 수 있어서 중종 반정 직후부터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240년 뒤 영조에 이르러 그의 고향에 공적을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반부에 반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했고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KBS]] [[사극]] [[왕과 비]]에서는 [[김성환(배우)|김성환]]이 연기하였으며 후배 내시 김자원에게 자기 물건들을 물려준 다음 연산군에게 직언한다. 연산군은 불쾌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업어키운 정이 있으니 쫓아내는 걸로 처리하려하지만 끝까지 충언을 고하는 김처선에게 결국 격분해 화살 수발을 맞고 숨을 거둔다.
[[SBS]] [[사극]]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선 연산군의 광기어린 행보를 다룬 1화 광풍에 등장한다. 월산 대군의 처 박씨와 강제로 동침한 연산군을 보고 연산군을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하늘이 두렵지 않냐며 직언 하다 가슴에 화살을 맞는다. 칼을 빼든 연산군이 남자 구실 못하는 놈이 입만 살았다며 분노하자 소인 남자 구실 못하는거 생각말고 임금 구실이나 잘하라고 맞받아치고 칼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반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절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네이버 웹소설]] [[전하와 나]]의 주인공 이의윤의 충신의 모티브다. 본명은 서현우로, 할머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별궁을 털려다 체포되었으나 황태자였던 의윤의 도움으로 석방. 이일로 의윤이 황제의 눈밖에 나서 죽음을 당할뻔하자 그에게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로 충신의 대명사 김처선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의윤의 동생 선혜 공주와 이어져 처남 - 매부가 되었고, 의윤이 황제가 된 후에는 [[부마]] 겸 의윤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대체역사소설]] [[명군이 되어보세!]]에서는 주인공 연산군이 주색잡기는 즐기지 않지만 무기 개발에 힘을 쏟고 일본과 여진족과 전쟁을 거듭하며 패도를 걷자 이 전쟁광스러운 행보에 대해 계속 직언을 한다. 주인공이 김처선의 말을 무시로 일관하자 김처선은 임금에게 매일을 함께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사냥터에서 짐승인 척 하고 수풀에 숨어있다가 연산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러나 이후 신하들에게는 김처선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직언에 분노한 임금이 직접 총으로 쏴죽였다고 소문이 퍼진다.
대중 매체에서 이렇듯 제법 자주 나온 이유인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실록 홈페이지 '''개설 때'''부터 누적된 것이라고 한다) 인기 검색어 검색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참고로 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 인기 검색어 1위는 [[이순신]].
||[[무오사화]] [[갑자사화]] 마구 쳐죽이는 판인데
아니 뭣이 어째 이 늙은 [[고자]] 놈이 고금이 어째
이번에는 그의 다리 하나를 칼로 자르고
- 박경석(1933) . . . . 45회 일치
1933년 [[연기군]] 조치원읍 본정(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원리 88번지)에서 출생 하였다. 이후 [[대전고등학교]] 31회로 졸업하고, 17세의 나이에 청운의 꿈을 꾸며,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이때 17세라는 나이로 인해 자격 미달이 되었지만, 같은 나이의 당시 권력자 [[원용덕]] 장군의 자제 원창희 씨의 육사 입교 압력이 육사 심사위원들에게 들어오자--완전 개꿀 금수저--, 형평성 문제로 덩달아 박경석 생도도 합격되었다. [[http://blog.daum.net/koreanmarinecorps/17321|국방일보 박정인 장군 회고록에서 발췌한 원창희, 박경석 생도 합격 비화]]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이후, 전장에서 더 많은 위관장교 자원을 필요로 하자 정부는 이들을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12.12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동 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고 갑종 전우회 대부였던 [[하소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두환]]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오자복]] 예비역 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예비역 대장, [[박정희]] 정부에서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 예비역 중령 등이 육군 종합학교 출신이다.]에 입교시켜 단기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켰다. 박경석 소위도 이 때 임관된 초임장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생도 2기 출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새로 신설된 제9사단[* 사단장 [[장도영]],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얼굴마담, 핫바지 노릇했던 그 때 그 사람-- 사단 참모장은 [[박정희]] --5.16 군사정변에서 대통령에 오른 그 분--]의 소대장으로 갔다. 그 1명은 당시 권력자였던,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였다. 원창희 소위는 임관과 동시 후방의 육군본부로 배속받았다.[* [[원용덕]] 장군도 최종 보직이 헌병 총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아들 [[원창희]] 장군도 헌병의 꽃 헌병감 보직을 마지막으로 육군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그후 박경석 소위는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한 번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사실 박경석 소위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내에서는 박경석 소위를 비롯한 많은 한국군 장교포로들을 해방군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고, 포로 생활도 도망가든 말든 자유로웠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은 포로 시절을 회고하며, 포로로 잡힌 북한군 사단의 사단장이 적이었지만, 그의 리더쉽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함께 굶는 등의 리더쉽에 영향을 받아 뒷날 한국군내 정치군인이 판을 칠때도 그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군인으로써 군인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 포로 생활 중에 국군에서는 박경석 중위가 전사한 줄 알고 가족에게 전사통지서 전달과 전쟁이 끝난 후, 국립묘지에 박경석 중위의 묘지를 안장하였다. 나중에 자신의 묘지가 안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파묘하지 않고, 자신의 생애가 다해 현충원에 안장되는 날 폐쇄한다고 한다. 軍 현역 중 불의에 맞써 마음이 흔들릴때마다 자신의 안장 무덤을 찾아 마음을 다잡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http://www.snmb.mil.kr/cop/tombSearch/selectTombSearchList.do|서울 현충원 안장자 검색에 9사단 소속 강원도 정선에서 사망한 이가 바로 박경석 장군 자신이다.]]
1951년쯤, 전쟁이 교착 상태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초기 육사 생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려, 미 8군의 도움으로 육사를 재건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중위 신분이던 [[육사 생도 2기생]]들은 육사 생도 복귀를 놓고 논쟁하다가 결국은 새로운 모집 공고에 의한 [[육군사관학교]] 재건으로 [[전두환]], [[노태우]]등이 판을 치던 그 육사 11기생들이 첫 정규 4년제 육사 생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남의 파병 요청 형식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반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남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남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남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남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상하였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월남에서 귀국 후, 1970년 8월 육군 제 [[1사단]] [[12연대]]의 연대장으로 부임하여 1사단 내 [[DMZ]]와 [[GOP]]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는데 당시 휴전선 부근을 담당하던 미국 [[2보병사단]] 예하 [[4보병여단]]의 근무 지역을 인수 받았다. 이는 그동안 휴전선 지역을 관할하고 수비하던 미군의 임무를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계기와 선례가 되었다. [[http://cafe.daum.net/pks6464/MnHf/109|DMG내 미군 관할 지역을 인수받은 육군 1사단 12연대와 연대장 박경석 대령이 말하는 비화]]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시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33년 출생]]
- 수애 . . . . 45회 일치
1999년 KBS 드라마《[[학교 2 (드라마)|학교 2]]》로 정식 연기자로 데뷔했고 그 뒤 MBC 주말연속극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베일 속의 여인 허주연 역을 맡으며 비중있는 조연으로 자리잡았다. 2달 후 MBC 월화드라마 [[러브레터 (드라마)|러브레터]]에서 여의사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출신의 통역관을 연기하였고, 2016년 영화 《[[국가대표 2]]》에서도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출신의 [[아이스하키]] 선수를 연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11&aid=0000462127 '국가대표2' 수애 "동생 役 박소담, 저와 닮은 것 같아요"] 조이뉴스24. 2016년 07월 27일</ref>
| 《[[우리집에 사는 남자]]》
| 민자영([[명성황후]])
| 여자 신인상
| 올해의 여자 신인연기자상
| 올해의 여자신인배우
| 올해의 신인여자배우상
| 최고의 여자배우상
|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우수연기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최고의 여자배우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20's 드라마 스타 여자부문
- 전지수 . . . . 45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쇼트 트랙}}
* [[2007년]] 제 22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대학부 500m, 1000m 1위
* [[2007년]] 제 8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대학부 500m 1위, 1000m 2위
* [[2008년]] 제 8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대학부 500m 1위, 1000m 3위
* [[2010년]] 제 9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반부 500m 2위, 3000m 계주 2위
* [[2011년]] 제 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반부 500m 4위, 1000m 3위
* [[2012년]] 제 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반부 500m 2위, 1000m 1위
* [[2012년]] 제 26회 전국남녀 학생종별종합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1000m 2위, 1500m 1위, 3000m(S.F) 3위
* [[2012년]] 제 29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000m 3위
* [[2012년]] 제 28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500m 4위
* [[2013년]] 제 94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000m 2위
* [[2013년]] 제 27회 전국남녀 종별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 1500m 5위,500m 2위
* [[2013년]] 제 28회 전국남녀 종합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겸 2013/2014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 여자부 500m 2위
* [[2013년]] 제 30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500m 3위
* [[2013년]] 제 29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500m 1위
* [[2014년]] 제 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반부 500m 2위, 1000m 1위
* [[2014년]] 제 29회 전국남녀 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겸 2014/2015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 2차 대회 여자 500m 2위, 1000m 4위, 3000m(S.F) 7위
* [[2015년]] 제 96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 일반부 500m 1위
* [[2015년]] 제 32회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 [[2015년]] 제 31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2위
- 진격의 거인/93화 . . . . 45회 일치
* 마레는 전쟁 중에도 팔라디 섬에 32척의 조사선을 보냈지만 전멸. 그걸 통해 [[엘런 예거]]를 포함 적어도 두 명의 거인화 능력자가 있을 것으로 추측 중.
* 라이너는 이것이 중대한 이적 행위라며 정색하는데 파르코가 "갑옷을 계승하는 건 나"라고 의지를 보이자 "그럼 네가 가비를 구해라"고 당부한다.
승전 이후의 회의라기엔 너무나 삭막한 분위기. 원수는 최후의 작전이나 실태가 드러난 스라가 요새 공략 전의 책임자 "마가트"에게 직접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해명을 요구한다. 호명된 마가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무겁고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다.
중동연합과의 전쟁은 해상전이었다. 대부분의 중요한 전투는 거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해상전. 연합 측은 최신전함을 보유했지만 마레는 수만 많은 구식함을 구색만 맞춰둔 오합지졸. 다른 참모가 "우리 함대가 오합지졸이라 졌다는 거냐"고 따지자 마가트는 그게 본질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이 회의실, 폭격에 맞아 천정이 뻥 뚫려 버린 이 장소야 말로 좋은 본보기다. 일동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푸르게 드러난 하늘로 향한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모두 하늘을 보고 있다. 원수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다시 시선은 그에게. 마가트는 자신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가 싶어 좀 더 직설적인 말을 하려 하지만 원수는 넋두리를 했을 뿐이다. 사실 그는 마가트보다 더 뼈져리게 현실을 직시했다. 마레는 전쟁의 주도권을 잃었다. 아예 뒤쳐져 버렸다. 원수는 한때 악마 엘디아인을 쳐부순 "영웅의 나라" 마레가 지금 이 꼴이 된 것을 씁쓸하게 여긴다.
마가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지크가 발언권을 요청한다. 원수는 그를 "경이의 아이"라 칭하며 허락한다. 지크가 내놓은 제안은 좀 핀트가 빗나간 것 같았다.
제안을 받은 원수는 잠시 계산을 하더니 지크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지크는 그 점도 자신의 근거로 삼는다. 지크의 바로 뒤에 입석한 "콜트". 그는 짐승 거인 계승 확정자지만 지크는 일부러 그를 깎아내린다. 콜트가 자신의 힘을 전부 이어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이다. 원수는 그런 지크의 본심을 꿰뚫어 봤다.
지크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지크는 "끔찍한 경이" [[그리샤 예거]]의 행동에 종지부를 찍는건 자신이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원수는 새삼 지크에게 감탄하며 "부모를 팔아넘긴 충의"를 운운한다. 어쨌든 그 행동 때문에 원수는 단 한 번도 지크의 진의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크의 의견을 당에 보고하기로 결정한다.
* 회의 후. 지크는 콜트를 데리고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마레 군부가 있는 지역은 긴 언덕 위에 건설된 계단식 도시였다. 지크는 담배를 피우며 콜트에게 회의에서 발언을 사과한다. 콜트는 사과받을 일이라 여기기 보단 "멋졌다"고 말한다. 엘디아인이 마레군의 총수에게 발언할 기회가 있다니, 엄청난 활약이다. 게다가 그 간언이 채택돼 임무를 부여받다니. 그리고 콜트는 지크의 발언이 틀린 것도 아니라고 인정한다. 설사 자신이 짐승 거인을 이어받아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지크는 매우 특별하니까. 그의 척수액이 투여된 거인은 지크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달만 떠있다면 밤에도 활동한다. 이런 능력은 역대 어떤 짐승 거인에게도 없는, 마치 시조 거인과 같은 능력이다. 이야기를 하던 콜트는 새삼 이상하게 생각됐다.
지크는 대답없이 연기만 내뿜는다. 그러다 거인학회 놈들도 모르고 자신도 죽을 때까지 모를 거라며 화제를 회피한다. 그런데 지크는 잊고 있던게 떠올랐다. 콜트는 자신의 다음 계승자라는 사실. 기억을 계승할 그는 결국 지크의 비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안도가 된 것인지 지크는 그냥 자신의 비밀을 말해 버리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겐 절대 말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서.
대장 마가트가 옥상으로 올라오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담배를 문다. 콜트가 불을 붙여주자 연기를 마시며 밀담을 계속하라고 제촉한다. 지크는 "엘디아인의 비밀에 관심이 있으시냐"고 농담하듯 화제를 돌린다.
그에겐 지크를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지크는 이번에도 "과대평가"라며 웃어 넘긴다. 마가트는 거기서 좀 더 파고들어 "작전을 1년 만에 성공시킬 수 있다던데"하고 따진다. 지크는 그건 그저 자기 "임기"가 1년 남았다는 말이었다고 둘러댄다.
* 마가트는 지크와 같은 의견이라며 동의한다. 그리고 섬을 공격하기 위해선 적어도 전함의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지크는 그것 말고도, 적들이 가진 거인 이외의 전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다. 그 "이상한 기계, 입체기동장치와 뇌창 같은 대거인전용 장비의 존재이다. 지크는 4년 전 자신의 폐인은 그 무기를 너무 얕봤기 때문이라 토로한다.
* 자신을 "사냥"하러 오는 리바이, 그리고 입안에 뇌창을 쑤셔박았던 미카사. 배후를 빼앗겨 무너지던 베르톨트. 갑옷의 거인 [[라이너 브라운]]은 악몽에서 일어난다. 그는 꿈에서 본 것들을 향해 "기다려"라는 말을 하며 손을 뻗는다. 꿈에서 깨어나고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방에 혼자만 있는게 아니었다.
간식을 다 먹은 갤리어드는 라이너의 감사를 거절한다. 그가 구한건 라이너가 아닌, "네가 갑옷을 잃어 버리는 실수에서 조국 마레를 구한 것"이라면서. 라이너가 아무 대답도 없자 갤리어드는 조금 더 전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9년 전, 팔라디섬 작전에서 자신이 갑옷 거인을 계승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갤리어드의 형은 9년 전 라이너와 함께 팔라디섬에 침투했던 "마르셀"이다. 본래 턱의 거인의 계승자였다. 라이너가 침투 도중 일반 거인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내고 대신 잡아먹혔는데, 그때 우연히 턱의 힘을 계승한 것이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 그리고 지금 갤리어드가 그 힘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 라이너가 마르셀의 기억을 봤냐고 묻자 갤리어드는 극도로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라이너는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인상을 찡그린다. 갤리어드는 형의 기억은 찾지 못했지만 "유미르라 불렸던 여자", 라이너와 함께 돌아온 유미르에 대해서는 알게 됐다. 그는 그녀의 기억을 이어받고 "거창한 이름이 붙은 불쌍한 여자"였다고 동정한다. 게다가 그가 턱의 힘을 돌려받게 된 것도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적어도 갤리어드는 그녀에겐 원한이 없었다. 라이너도 그 점에 동의한다. 갤리어드는 "넌 그 섬에서 뭘했냐? 남의 도움만 받았다"고 책망한다. 라이너는 조용히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대답한다.
* 그저 대답하지 않거나, 시무룩하게 맞다고 수긍하기만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갤리어드의 공격은 수위를 높여간다. 그가 유미르의 기억을 통해 바라본, 조사병단 시절의 라이너 얘기다. 동기들의 리더이자, 큰형님 같았던 시절.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44회 일치
* [[오버홀]]은 과거 뒷세계를 장악했던 "야쿠자"의 잔존병들인 "극도"에 속하는 인물.
* 오버홀은 그중에서도 "시에핫사이카이"라는 조직의 2인자이다.
* 오버홀은 [[올마이트]]가 은퇴하고 뒷세계의 제왕인 올 포 원 조차 사라진 지금 사회는 양지와 음지가 동시에 혼란에 빠졌고 계승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시가라키 토무라]]는 당연히 자신이 올 포 원의 후계를 이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오버홀은 빌런연합은 그럴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오버홀이 여기에 온건 빌런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빌런연합의 네임벨류를 흡수, 자기 조직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 한편 올마이트는 자신의 두 제자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를 불러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모처의 폐공장으로 안내한다. 이곳은 [[빌런연합]]의 거점 중 하나로 동료가 될만한 인물을 픽업해 "면접"을 보는 일종의 면접장소다. 오버홀은 답지 않게 "불결한 장소"라며 건강에 나빠보인다고 투덜댄다. 트와이스가 오버홀과 함께 나타나자 빌런연합과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 [[마그네]]는 시가라키에게 오버홀이 유명인인 거냐고 묻는다. 사실 그는 "선생님" [[올 포 원]]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의 인물이다. 과거 뒷세계를 지배했던 "야쿠자"의 잔존세력인 "극도". 그 중 "시에핫사이카이"란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토가 히미코]]는 극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Mr. 컴프레스]]는 "넌 중졸이라 모른다"고 은근히 디스하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야쿠자들은 뒷세계를 기반으로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지만 "히어로"들이 보편화되고 특히 [[올마이트]]가 나타나면서 철저하게 분쇄되었다. 지금은 잔존세력만 남은 정도인데, 그 조차도 "예비 빌런"으로 취급돼서 경찰과 히어로들의 감시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오버홀은 이런 설명도 틀린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올 포 원의 진정한 모습은 "뒷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제왕"이었다. 야쿠자 세력이 괴멸 이후 뒷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의 몫이었다. 다만 오버홀 세대에서는 그를 직접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고 노인네들이 맹신하는 도시전설 쯤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지난 번 결전으로 올 포 원이 건재하다는 것,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결국 패하고 타르타로스에 갇혔다는 것이 알려지고 만다. 즉 지금은 양지도 음지도 모두 지배자를 잃어 버린 상태.
>그럼 다음은 누가 지배자가 될까?
시가라키는 자신들의 "선생님"이 누군지 알면서 도발하는 거냐고 대꾸한다.
>계획이 없는 목표는 망상이라고 한다. 망상을 프레젠테이션 해봤자 이쪽이 곤란해.
생각보다 오버홀은 아주 현실적인 지적을 늘어놓는다. 세력을 늘린다면 다음은? "어떤 조직"을 만들 건지 비전은 있는 것인가? 일찍히 빌런연합은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 쾌락살인 [[머스큘러]], 탈옥사형수 [[문 피시]], 이렇게 쟁쟁한 인물들을 섭외했다가 간단하게 잃었다. 그런 마당에 정신병자들을 늘리는 걸로 세력확대를 논한다는건 언어도단. "컨트롤 할 수 없는 힘을 늘려서 어쩌자는 거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다음 지배자가 된다.
* 오버홀이 빌런연합에 접근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 지금의 야쿠자들은 큰 자금을 끌어모을 여력이 없다. 그러나 한껏 악명을 떨친 빌런연합을 수중에 넣고 그들을 내세운다면? 오버홀은 자신이 그들의 힘을 백분 활용해줄 테니 자기 산하로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다음 시대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그네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오버홀을 공격한다. 그는 자신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려고 모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빌런연합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또한 마그네와 마찬가지로 오카마였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그네와 달리, 그녀는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상식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녀는 마그네는 거기서 뛰쳐나갈 용기가 있엇지만 자신에겐 없었다고 부러워한다.
마그네는 자신의 장비로 오버홀을 찍어버린다.
* 그런데 그 순간, 오버홀은 마그네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마그네도 그걸 느끼는데 어떻게 된다고 자각하기도 전에, 마그네의 상반신이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경악하는 빌런연합. 오버홀은 "너희가 먼저 손을 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 Mr. 컴프레스가 달려나간다. 시가라키가 제지하려 하지만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컴프레스는 오버홀을 "위험한 녀석"이라며 자신의 개성으로 "압축"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작은 파편 같은게 날아와 컴프레스의 어깨에 박힌다. 그러자 컴프레스의 개성이 무력화된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44회 일치
'''나는 여우를 내쫓았으나 그 대신 우리 모두를 잡아먹을 사자를 불러들이고 말았다.'''-바르다스[* 바실레이오스의 전임 황제인 미카엘 3세의의 외사촌으로, 쿠로팔라테스라는 황제에게 후사가 없을때 제위계승권도 주장할 수 있는 직위에 있었다.], 다미아누스 시종장을 해고한뒤.
867년부터 886까지 비잔티움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마케도니아 왕조]]를 열어 비잔티움의 본격적인 중흥기를 마련한 군주중 한명이다. 아르메니아인 촌뜨기 마구간지기로 시작해, 제국의 중흥기를 마련한 황제기도 하나, 한편으론 자신의 야망을 위해 황제의 외삼촌과 황제를 살해한 인물.
그러던 그가 어쩌다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는데, 이 신임을 받는 경위는 사서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레슬링 경기에서 여러차례 챔피언을 차지한 불가르족 거한과 맞붙어 한번에 매다꽂아버려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하며, 또다른 설은 미카엘 3세가 성질이 사나운 말을 한마리 얻어냈는데, 아무도 그 말을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바실레이오스만이 말의 귀를 쓰다듬는 것으로 그 말을 고분고분히 다룰 수 있었고, 이를 본 미카엘이 그를 자기밑에서 일하게 했다는것이다.
아무튼간에 그는 미카엘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안가서 시종장 디미아누스가 해임되고 난뒤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서 그와 미카엘사이에 살짝 사이에 금이 가는 조치가 내려진다. 바실레이오스는 그의 전처인 마리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미카엘의 정부였던 에우도키아와 재혼하게 된것이다. 이는 유도키아를 다시 황궁안에 들여놓기 위해 미카엘이 취한걸로 보이며, 이걸로 인해 상당한 논란을 낳게 되나, 이는 후술하도록 한다. 이후로 황제는 에우도키아의 보상으로 자신의 누나 테클라를 바실레이오스의 정부로 주기 까지 한다.
=== 황제의 후계자와 황제를 살해하다 ===
이후 바실레이오스가 미카엘과 절친해지면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 당시 실권자였으며 사실상 후계자로 점찍혔던 황제의 외삼촌 바르다스와 바실레이오스와의 관계는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르다스는 바실레이오스를 그저 변방 촌뜨기로 보고 무시했었으나, 점차 그가 미카엘과 친해지자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실레이오스도 바르다스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밀려나리란것도 예상하고 있었고, 이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그러나 황제는 제국의 서방 속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당 행위를 한거지 회개할 생각은 딱히 없었기에, 교황의 사절이 보낸 요구[* 공의회의 교황의 사절 주도]를 무시하고, 포티우스를 파문시키는데 그치게 한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나기 직전인 870년 2월에, 불가리아 왕인 보리스 1세가 사절을 보낸다. 당시 그는 포티우스 분열때 자신을 무시한 포티우스에 대항해 가톨릭을 불가리아에 퍼뜨리고 있었는데, 이게 그리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총대주교구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총대주교를 누구 휘하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교황휘하인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휘하인가? 그리고 바실레이오스는 불가리아에 자기 세력을 키울 기회를 놓칠 위인이 아니었고, 즉각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안티오크와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대표를 불러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는 누구 휘하에 두어야 되는지를 물었다. 이들의 답은 뻔했고, 교황청에서 온 사절들이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되어서 불가리아는 정교회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정교회국가로 남아있다. [* 어찌보면, 이때의 공의회가 한나라의 종교를 결정한셈.]
같은해 2월, 제국은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그는 2년전에 사라센이 장악하고 있던 남이탈리아의 바리를 공격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바실레이오스는 그에게 해군함대를 보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와 딸 헤르밍가르데의 결혼도 제의한다. 루트비히는 우호적인 답신을 보냈고, 869년에 니케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한 제국의 함대가 바리를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니케타스는 프랑크군이 군기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경멸을 감추지 못했고, 루트비히에게 '프랑크 왕'이라고 한단계 낮춰부르기까지 했다. 결국 두사람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니케타스는 함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사절을 보낸것이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루트비히가 베네벤토를 공격하다가 그곳 공작의 포로가 되어 베네벤토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복음서에 맹세를 한 굴욕을 당해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이후 루트비히가 브레시아에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해당문제는 끝이 났으며, 이후 제국은 서진과 동진을 꾸준히 시도해서 아나톨리아에 진출한 바울파를 쳐부수고 그들의 지도자인 크리소케이루스를 살해했으며, 유프라테스 연안을 거의다 수복하고 달마티아를 수복했으며, 남이탈리아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크레타 수복은 실패하고 시라쿠사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섬을 완전히 사라센에게 내주었지만, 이로써 서방과 교황이 제국의 우월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는 비록 달마티아를 제외한 크로아티아 지방과 판노니아(헝가리), 모라비아에서 교황의 우위를 인정해야 했으나,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달마티아에서 정교회를 퍼뜨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늘어난 교세는 더많은 신학적 문제와 논쟁을 야기했고, 이에 그는 포티우스를 다시 불러들여 이그나티우스를 보좌하도록 한다. 이후 이그나티우스가 노환으로 죽자 다시 포티우스를 복직시켰으며, 그가 법전의 초안을 짜는것을 후원한다.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순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성상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식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식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식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상이 구비된 식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식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 후계자? 인정할 수 없어! ====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그의 레온에 대한 혐오는 그의 장남인 콘스탄티노스가 갑자기 요절하면서 더더욱 심해지는데, 아마도 이는 자신이 암살했던 미카엘의 아들이 자신의 후사를 잇는다는 두려움과,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꼈고 자신보다 더 위대한 황제가 될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콘스탄티노스의 사망으로 인한 우울증때문이었을것이다. 특히나, 한번은 레온은 황제에 의해 구금되어 눈을 뽑힐뻔하기까지 한다.[* 직전에 황제가 왜인지는 몰라도 마음을 바꾸어 그런일은 겪지 않았지만.] 거기다가, 레온이 명예를 회복하자 거리에서 시민들에게서 받은 갈채는 그를 더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서 남은건 사냥뿐이었다. 그의 죽음도 사냥사고라고 사서에 알려져있는데, 문제는 해당 사고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이해하기어렵다. 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한 사서에 따르면, 그는 수행원들이 '지쳐서'그를 따라가지 못할때 혼자 숲 깊숙한 곳에서 사냥중이었으며, 그러던중 한 사슴을 만난다. 황제가 그 사슴을 잡으려 할때, 그 사슴이 황제에게 돌진해 뿔로 그의 허리띠를 걷어 그를 안장에서 내쳤다. 그리고 그사슴은 장장 25km를 황제를 건채로 다니다가(...) 황제를 찾은 경호병이 허리띠를 잘라버리고 수행원들이 모여들자 도망쳐버렸다.
이후 황제는 정신을 차린뒤 자신의 몸에 칼을 댔다고 허리띠를 자른 경호병을 죽이고(....) 황궁으로 갔다가 거기서 복부 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향년 74세.
이야기는 황제가 왜 칼을 뽑지않았느냐, 거구의 체격이었던 황제를 사슴이 어떻게 끌고 25km나 갈 수 있었나, 황제는 왜 허리띠를 자르지 않았느냐 등등의 의혹을 낳는다. 무엇보다 능숙한 사냥꾼이기도 했던 황제가 왜 그런 사고를 당했느냐는 가장 큰 의혹을 낳는다. 그래서 구출대의 지휘자가 레온의 애인의 아버지인 스틸리아누스 자우체스였던것등을 물어, 해당 사고가 레온이 (양)아버지를 죽이고 황위에 오르려 했다는 의심을 하는 이도 있다.
아르메니아인 촌뜨기에서, 황제가 된 자수성가의 대표적 인물.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장점은, 그자신의 강인하고 튼튼한 육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과감한 결단력과,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회유하는 능력에 있을것이다. 그러한 능력덕에 남이탈리아를 탈환하고 아나톨리아에서 제국의 우위를 얻어낼 수 있던 것일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썬 낙제점중에 낙제점이었는데, 차남 레온이야 그의 아들이 아니란 의혹이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에우도키아의 탯줄에서 난(자신의 아들이 확실한) 두아들들까지 미워하고 싫어했고, 오로지 전처인 마리아 사이에서 난 콘스탄티노스만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후 레온 다음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데르의 막장짓은 어찌보면 어릴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게 컸을것이다.
- 백일섭 . . . . 44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세종특별자치시]]
| 배우자 = [[채미영]]
| 자녀 = [[백승호]](아들)
명지대학교 재학 시절이던 [[1963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였고 이듬해 [[1964년]] [[뮤지컬배우]] 데뷔하였으며 1년 후 [[1965년]] [[한국방송공사|서울중앙방송]](지금의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5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1969년]] [[문화방송]] 개국과 더불어 KBS에서 MBC로 자리를 옮겨 MBC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다.
| 저자 = 양영채
* [[1994년]] [[KBS2]] 주말연속극 《[[남자는 외로워]]》 ... 강달호 역
* [[1994년]] [[SBS]] 주말극장 《[[이 여자가 사는 법]]》 ... 진무섭 역
* [[1995년]] [[KBS2]] 주간연속극 《[[간 큰 남자]]》
* [[1996년]] [[MBC]] 일일연속극 《[[자반고등어 (드라마)|자반고등어]]》 ... 유복조 역
* [[1997년]] [[KBS2]] 주간연속극 《[[세 여자]]》
* [[2007년]] [[MBC]] 일일연속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 ... 김봉달 역
* [[2012년]] [[MBC]] 창사특별기획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 김풍길 역
* [[1976년]] 《[[위험한 여자 (영화)|위험한 여자]]》
* [[1978년]] 《[[아스팔트 위의 여자]]》
* [[1979년]] 《[[병태와 영자]]》
* [[1980년]] 《[[남자 가정부]]》
* [[1980년]] 《[[세번 웃는 여자]]》
* [[1987년]] 《[[서울은 여자를 좋아해]]》 ... 양 사장 역
* [[2005년]] 《[[B형 남자친구]]》 ... 영빈 부 역
* [[2017년]] [[KBS2]] 《[[살림하는 남자들]]》
- 원피스/854화 . . . . 44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는 추적자들을 피하던 중 [[쵸파]]일행과 재회해 미러월드로 피한다.
* 징베는 [[샬롯 브륄레]]에게 "룰렛"을 거부했다고 욕먹는데 원래 징베는 정당한 대가라면 지불했겠지만 그 자체가 악의와 죽음의 냄새밖에 없어 거부했다.
* 빅맘 [[샬롯 링링]]은 [[샬롯 푸딩]]과 자신의 방에서 대화 중.
* 빅맘 측은 상디의 방을 살펴보는데 때마침 경비가 그의 침대에 누워있다가 "상디가 방 안에서 자고 있다"고 오인된다.
* 성안의 탈주자들 문제를 의논하는 간부들. [[샬롯 오페라]]는 [[몽키 D. 루피]]와 나미를 고문하다 실수로 태워죽였다고 거짓 보고한다.
* 오페라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둘을 놓쳤다간 빅맘에게 무사할 수 없어서 거짓 보고를 한 것이다.
* [[샬롯 몬도르]]는 오페라의 증언을 의심해서 독자적으로 순찰 병력을 차출한다.
* 상디는 자기도 모르고 보빈을 때려눕히며 "네가 먹을 음식이 아니다"고 일갈한다.
* 보빈은 쓰러지면서 그가 어째서 방에 있지 않은 거냐고 중얼거리고, 경비병들이 몰려오자 상디는 자신이 뭘하는지 몰라하며 그 자리를 황급히 뜬다.
* 홀 케이크 성은 침입자와 탈주자들로 어수선하다. [[징베]]는 [[나미(원피스)|나미]]를 태우고 경비들을 피해 이동하는 중이다. 이미 성내에는 징베의 모반에 대한 소식이 퍼지고 있다.
징베는 최대한 적을 피하고 있었지만 복도에서 앞뒤로 적에게 둘러 쌓이자 뒤따라 오는 적의 처리를 나미에게 부탁한다. 나미는 안 그래도 짜증나던 참이라며 "뇌운로드"로 적들을 싹 쓸어버린다.
* 쵸파 일행과 합류한 나미와 징베는 함께 미러월드로 진입한다. [[샬롯 브륄레]]는 징베가 이들과 함께 있는걸 보고 배신했다고 직감한다. 그녀는 징베가 빅맘 [[샬롯 링링]]이 제안한 "룰렛"에 겁먹고 내빼지 않았냐고 성토한다. 징베는 빅맘이 어인섬을 지켜준 만큼 인의를 다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룰렛에는 "죽음과 악의"의 냄새 밖에 나지 않아 거부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잘한 선택이라며 과거 그 룰렛을 돌렸던 자신의 파트너가 목숨을 일은 사실을 전해준다. 브륄레는 그게 자랑스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누구든 빅맘을 떠나가려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신나게 떠들다 얻어맞는다.
* 빅맘의 거처인 "여왕의 방"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상처가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그 상처는 브룩이 낸 것인데 생각보다 깊어서 자꾸 벌어진다고 한다. 빅맘은 프로메테우스가 한심하다고 말하다가 "그보단 이 녀석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그녀의 세 무기에 상처를 낸 것은 브룩이 최초였기 때문이다. 빅맘은 브룩을 [[테루테루 보우즈]]처럼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며 예뻐한다.
함께 있는 [[샬롯 푸딩]]은 "그 뼈"도 여기 있을 거냐고 묻는다. 브룩은 푸딩의 언행이 자기가 아는 것과 다른 것 같다고 여기지만 설마 "본성"이 어떤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빅맘은 상상이상으로 브룩을 마음에 들어해서 "살아있는 예술"이라 부르며 당분간은 도감에 넣지 않고 지니고 다니겠다고 말한다.
빅맘은 푸딩에게 밀집모자 일당의 처리를 잘했다며 칭찬한다. 푸딩이 잡힌 루피와 나미와 만났고 "꼴좋다"고 소감을 밝히자 브룩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라잡지 못해서 당황한다. 빅맘은 제르마에도 손을 써놨다며 술집 여자들을 보내 헤롱헤롱하게 만들어놨다고 말한다. 하지만 푸딩은 [[빈스모크 레이쥬]]가 자신을 미행했던 일을 언급하며 "감이 좋은 여자였지만 해결했다"고 말한다. 빅맘은 혹시 죽인건 아니냐고 우려한다. 푸딩은 걱정하지 말라며 죽이지 않고 기억도 잘 없애놨다고 안심시킨다.
이들의 피가 뿌려지고 나서부터가 "진정한 축제". 그녀가 그토록 케이크에 공을 들인 것도 이 순간에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지휘관을 잃은 제르마가 통채로 자신 손에 들어올 것을 기대하며 흥겨워한다.
*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상디가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다. 체스병사가 방 안을 확인해보는데 누군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다. 병사는 별 의심없이 "상디가 방에서 자고 있다"고 보고하는데, 사실 그는 상디가 아니라 방을 감시하던 감시병이었다.
회의실에서는 침입자들에 대해서 최종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페콤즈]]의 인도로 밀집모자 일당이 토트랜드에 도착한 시점부터 브룩이 잡히고 페드로가 [[타마고 남작]] 앞에서 자폭하기까지. 브룩이 빅맘에게 잡힌거 말고는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포돼 있다. 쵸파와 캐럿은 브륄레가 잡은 걸로 되어 있는데, 이후에 역으로 당해서 잡혀 있는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타마고 남작은 의외로 무사히 회의에 참석 중. "백작"으로 파워업해서 완전히 닭의 모습이 되었다. 페드로가 "자폭"했다고 확인해주지만, 사실 그가 도망친 것은 그도 알지 못했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남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식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반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태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침입자들은 이렇게 정리됐다 치고 상디와 빈스모크 일가도 문제가 없다는걸 확인하자 몬도르는 모든 방해꾼이 사라졌고 결혼식 준비만 무사히 마치면 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역시 오페라를 신용할 수가 없어서 따로 병력을 차출해 일대를 감시하게 한다.
- 이열희 (1924년) . . . . 44회 일치
| 배우자 = [[박부남 (1932년)|박부남]]
| 자녀 = 슬하 1남 3녀
| 친척 = 이동진(증조할아버지) <br /> 이일우(할아버지) <br /> 이시우(작은할아버지) <br /> 이상악(큰아버지) <br /> 서법경(큰어머니) <br /> 이명득(큰어머니) <br /> [[이상정 (1897년)|이상정]](5촌 숙부)<br /> [[한문이]](5촌 숙모) <br /> [[권기옥]](5촌 숙모) <br /> [[이상화 (시인)|이상화]](5촌 숙부) <br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5촌 숙부) <br /> [[이상오]](5촌 숙부) <br /> 이겸희(6촌 누이동생) <br /> [[박창암]](6촌 매제) <br /> 이용희(6촌 남동생) <br /> [[박문웅 (1890년)|박문웅]](장인) <br /> [[박중양]](장조부)
| 기타 이력 =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 치과 의사 · 외과 의사 <br /> 구강성형외과 의사 <br /> 의학 교육자 및 대학 교수 <br /> [[치의학|치의학교육 저술가]] <br /> [[성형외과|구강성형외과학교육 저술]][[저술가|가]] 겸 [[수필|수필가]]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 이사장 <br /> 대한치과의학협회 경상북도 지회장 <br />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학장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이열희'''(李烈熙, [[1924년]] [[12월 18일]] - [[2012년]] [[8월 9일]])는 [[대한민국]]의 의학 교육자, [[치과]] 의사, [[구강 성형외과]] 의사, 대학 교수 및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이자 [[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며, 치과, 악안면외과(악안면성형외과) 전문의였다.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의 치의학과 과장이자, 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초대 학장이었다. [[1962년]] [[11월]]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大韓顎顔面成形再建外科學會)의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에는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1950년]]대부터 [[치과]]대학 부설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1979년]] [[경북대학교]]에 치의과대학을 별도로 설치하고, 이후 치과대학이 의과대학에서 분리, 단설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협회 경상북도 지회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 학장,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의 5촌 조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도지사를 지낸 [[박중양]]은 그의 처조부가 된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호는 백산(白山)이다. [[천주교]] 영세명은 '''토마'''이다. [[대구광역시]] 출신.
[[1924년]] [[12월 18일]] [[대구부]] 성내3동(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가)에서 이상무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사업가였고, 독립운동가 [[이상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은 그의 아버지 이상무의 사촌 형제들이었다.
그의 증조부 [[이동진]]과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구한말~일제시대의 사업가로 [[우현서루]]를 건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때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한 군인 출신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와 6촌간이었다. 고모 이숙경의 며느리는 [[1945년]] [[8.15 광복]] 후 초대 [[대구광역시장|경북 대구시장]]을 지낸 [[허억]]의 딸이었다.
[[1954년]] [[소아과]][[의사]]이자 [[내과]][[의사]]였던 [[박부남 (1931년)|박부남]]과 결혼했는데, 그는 구한 말, 일제 강점기에 [[도지사]]를 지낸 해악 [[박중양]]의 손녀이며, 상주,청도[[군수]] 등을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차녀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대]] [[치과]]대학 조교가 되었으며, [[1947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치과학교실 조교가 되었다. 그해 [[3월]]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육군병원]]의 외과, 치과 의사로 근무하였다. 육군병원에 근무할 당시 구강외과를 설립하고 60년대초 구강외과내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신설하였다.<ref name="imails">[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5733&yy=1999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 대구매일신문 1999년 06월 08일자</ref> [[구강외과]]를 전공한 그는 구강성형 분야의 완전한 의술확립을 위해 다시 경북대의대에 입학,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녔다. 경북대 의대 재학 중에는 외과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ref name="imails"/> 그 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 군의관이 되어 전방에 배속되었다가 [[1950년]] [[6·25 전쟁]]이 발생하자 군의관으로 종군하였으며, [[1952년]] 육군 제1병원으로 발령되었다. 당시 육군 대위였던 그는 바로 제1병원 구강외과 과장으로 임명되었다.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상이나 상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 전임강사가 되고, 그해 동 대학 조교수가 되었다. [[1956년]] [[4월]]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가 신설되자 동년 [[8월]]에 이열희는 조교수에서 경북대 치의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하였다.<ref>[http://www.denfol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학과교실] 덴포라인 2006.04.05</ref> 그러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치의학과는 [[1957년]] [[3월]] 폐지됐다.
[[1957년]] 경북대 의대에 발을 디딘 그는 당시 [[치과의사]] 부족으로 불법 치과의료 행위가 극성을 부리자 치과대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는 인근 국가의 인구 대비 치과의사수를 파악, 직접 [[보건사회부]]와 [[문교부|교육부]] 등을 찾아 치과대 설립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ref name="imails"/> 그뒤 1973년 전국 7개 지방국립대에 치의예과 설립 허가를 얻어내고 79년에는 치과대로의 독립을 이뤄냈다.<ref name="imails"/>
경북대 재직 초기 당시 그는 "치과대 설립을 허가해 주고는 예산을 제때 배정해주지 않아 교실없이 신입생을 모집, 강의실을 구하기 위해 우왕좌왕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ref name="imails"/> [[1957년]]부터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를 상대로 치과 관련 대학의 별도 단설을 주장, 설득한 끝에 [[1979년]] 경북대학교 치과 대학외 7개 대학교의 치과대학을 시범으로 설립하여 성과가 나타나자 각 대학의 치과대학 별도 설치를 허가받았다.
[[1961년]] [[6월 6일]] 전임강사에서 조교수로 승진하여 [[경북대학교]]로 정식 발령<ref>"정부인사", 경향신문 1961년 06월 06일자 1면 정치면</ref>, 경북대 치의학과 조교수에 임명되었다. [[1962년]] [[11월]] 오재인(吳在仁), 정순경(鄭淳慶), [[국군통합병원]] 의무과장 최형곤 [[대령]] 등과 함께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의 창립에 참여하였고, [[1972년]]부터 [[1976년]] [[11월]]까지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제3대 회장을 역임했다. 동시에 그는 무의촌대책위원회 치과분과 회장을 맡으며, 병원, 의료시설이 없는 무의촌의 치과 진료 봉사에도 참여하였다.
치과의사가 부족하여 무허가 불법 치과의료 시술이 나타나고 부작용이 증가하자 그는 각 의과대학 내 치과 설치 증설과 치과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외국의 인구 대비 치과의사 수를 확인하고 정부에 치과의사 양성이 필요함을 꾸준히 설득했다. [[1973년]] 전국 7개 지방 국립대에 치의학과, 치의예과 설립 허가를 얻어냈다.
[[1979년]] [[3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치과가 단과 대학으로 승격, 치의과대학이 의과대학에서 분리 신설되자, 그는 경북대 치의과대학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1981년]] [[3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제2대 학장이 되었으나 그 해 9월을 기하여 물러났다. 이후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평교수로 재직하며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개인의로 개업하여 이열희 의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0년]] [[9월]] [[대한군진의학협회]] 명예회원에 위촉되고, [[1981년]] 정년 퇴임과 동시에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에 선임되었다. 1983년 3월 FICO학위를 취득하였다.
만년에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에 살다가 [[2012년]] [[8월 9일]] 새벽 4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의 장성 건영아파트 304동 304호 자택에서 사망했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5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지난 11일 진행됐다. 장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9번지에 안장되었다.<ref name="pisots">[http://www.kda.or.kr/kda/modules/kdaNews/news/NewsView2.aspx?NewsID=75541 이열희 경북치대 명예교수 별세] 치의신보 제2058호(2012년 08월호)</ref>
경북치대 초대 및 제2대 학장을 역임하며 경북치대 설립과 구강악안면외과학교실의 발전에 공헌하였다.<ref name="pisots"/> 치과의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악안면 성형외과의 권위자로 불리고 있다<ref name="imails"/>는 평도 있다.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nowiki>'</nowiki>'이라는 평가도 있다.<ref name="imails"/>
- 자본통제 . . . . 44회 일치
한 국가가 국제자본 흐름을 통제하는 행위.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자본과, 국외로 유출되는 국내자본의 이동을 통제한다. 세금, 한도 설정, 허가제 등의 정책이 있다.
자본통제를 푸는 자본자유화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생산적인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적정한 외자유입은 주식시장 활성화, 소비 진작, 기업 자본조달비용 저하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과도한 단기자금이 유입되면, 통화가 절상되어 수출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
* 시장이 과열되어 자산가격에 거품이 형성된다. 이로서 경제안정을 해치게 된다.
* 선진국의 금리 인상, 국제금융시장의 격변으로 단기자금이 사라지면, 자산버블이 붕괴되어 통화위기, 경제위기를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능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통제는 실패하면 자본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금-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던 브레턴우즈체제(1944~1971년)에서 단기자금의 국가간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고정환율제도]] 때문에 단기자금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익을 얻기 힘들었고, 자본통제는 각국의 금융을 안정시켜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었다.
미국이 자본통제를 강화하자, 미국게 다국적기업들은 수출 대금으로 얻은 달러를 미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런던의 은행에 예금하여 마음대로 자금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로달러'이다. 유로달러가 크게 증대하고 이를 다루는 은행들은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국제금융업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하여,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자본통제를 철폐하기 시작한다.
=== 신자유주의 ===
1974년, 미국은 자본자유화가 국제무역을 증가시킨다는 견해로 자본통제 정책을 폐지했다. 선진국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대세로 삼았으며, 우리나라는 1995년 OECD 가입을 계기로 하여 자본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 IMF 사태를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채권, 금리, 외환, 주식 등의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크게 성장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 경제위기와 자본통제 ===
2010년대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중국 등의 신흥국이 자본통제를 시도하기도 했다.[[http://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2496 (참조)]]
=== 국제적 자본통제 방안 ===
* 토빈세 :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1997년 제안한 것이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물리자는 것으로서, 단기외환거래를 억제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자본통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였으나, 2016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통제에 대한 옹호론도 나타나게 되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2/05/0200000000AKR20160205148700009.HTML (참조)]]
*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처럼 모순적인 상황에서는 자본통제가 환율을 관리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에서
* "글로벌 자금 흐름의 단기적인 속성과 내재한 변동성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신흥 시장과 미국 등 국제 자본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국가들은 새로운 규칙과 과세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장헌식 . . . . 44회 일치
|저자=임종국
[[1895년]] [[일본]]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그해 [[3월]]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의숙]] 보통과에서 수학했다. 당시 근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뽑아 보낸 관비 일본 유학생들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 이후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이자 친일파로 활동하게 되는데, 장헌식도 그런 인물들 중 하나였다.
[[1907년]] [[7월]] [[역대 한성판윤|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부임했다. [[1907년]](광무 10년) [[7월]]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였을 때는 [[훈3등]] [[팔괘장]]을 받았고, 1907년 10월 한성부민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윤]]으로 근무할 때인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살해하자 이토 추도회를 여러 차례 여는 등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전부터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했다.
[[1910년]] [[10월 2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평안남도]] 초대 참여관 고등관 3등(平安南道 參與官 高等官三等)에 임명하였고, 1910년 12월 27일 종5위(從五位)로 승급한 뒤 1912년 8월 1일 일한병합기념장, 1915년 11월 10일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을 수여받았다. 1916년 3월 31일 정5위(正五位)로 승급하였다. 이후 훈3등(勳三等), [[1917년]] [[6월 12일]]에 [[충청북도]] 장관(도지사) 고등관 2등(忠淸北道 長官 高等官二等)으로 승진한 뒤 도장관이 도지사로 관직 명칭이 바뀌자 그대로 [[충청북도지사]]로 유임되었다. [[1920년]] [[7월 31일]] 훈2등(勳二等)에 올라 서보장(瑞寳章)을 하사받고 [[1920년]] [[9월 27일]] 고등관 1등(高等官一等)에 올랐다. [[1920년]] [[6월 24일]] 청주청년회 발족에 참여하였다.
[[1924년]] [[12월 1일]]에는 [[전라남도]] 지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퇴근 후에는 보통의 농군들과 같이 식수(植樹)와 분재 가꾸기 자신의 토지에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였다.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 자본가 단체인 [[동민회]]에 가담했으며, 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또다른 친일 단체 [[대화동맹]] 결성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있다.<ref>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 반민특위 조병상 공판조서 (제1회) 중 조병상의 수기 (1949).</ref> [[1924년]] [[12월 1일]] [[전라남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전남 지사직에서 물러난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중추원 칙임참의를 7회에 걸쳐 중임하였다.<ref name="실록친일파" />
1927년부터 여성의 취직과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조선여자직업사(朝鮮女子職業社) 설립이 추진되자 창립준비위원으로 참여하고, [[1928년]] [[1월 15일]] 조선여자직업사가 출범하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조선여자직업사 고문에 위촉되었다. 1928년 조선수산회(朝鮮水產會) 평의원에 선출되었다. [[1928년]] [[6월 16일]] 조선임시교육심의위원회 창립에 참여하고 임시교육심의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다. [[1931년]] [[2월 14일]] [[경성부]]의 도시개발계획 자문위원회인 경성도시계획연구회 위원이 되고, 곧 도시계획연구회 간사에 피선되었다. [[1933년]] [[8월 14일]] 중추원 참의 임기만료가 되자 [[8월 15일]] [[칙임관]]대우인 중추원 칙임참의에 선임되었다.
[[1930년]]대 [[청주]]에 개교 예정인 청주상업고등학교(淸州商業高等學校)의 건립과 개교에 관련하여 건립, 시설비용이 부족하여 개교가 지연되었다. 그는 학교 개교비용을 부담하고 자신의 토지를 기증하였다. 1935년 청주상고는 사립 학교로 개교가 확정되고, [[청주]]시민 대표 방인혁(龎寅赫), 민영은(閔泳殷) 등은 2월 20일 그를 찾아가 교장에 취임해줄 것을 부탁하여 승낙했다. [[1935년]] [[3월 1일]] 청주상업고등학교(淸州商業高等學校) 교장에 취임하고 그해 [[5월 7일]]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1935년 9월 27일 경성도시계획연구회 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35년 11월 27일 김천의 김천고등보통학교의 설립자 [[최송설당]] 기념 동상을 건립할 때 3원을 기부하였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저자 = 성강현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평의원이 되고,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이 출범할 때 창립발기인이자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40년]] [[1월 25일]] [[유도회]](儒道會) [[경성부]]지부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 주둔과 동시에 미군정 자문위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그는 이왕직 장관이었다. 이왕직장관직은 11월 8일 사퇴하였다.
[[1946년]] [[1월 3일]] 이왕직 재산 관련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이때까지도 출국하지 못한 [[일본]]인 이왕직 회계과장 사이토 치로(齋藤治郎)와 함께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ref name="jigga">"전 李王職 장관인 張憲植 수감명령", 자유신문 1946년 01월 03일자, 2면 10단</ref> 그는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과거 일본 정치하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고관대작으로 있었는데 어찌하겠느냐고 대응하였다. 검찰관들은 분노했고 방청석을 분노하게 했다.<ref name="jigga"/> [[1월 16일]] [[보석금]]을 내고 보석출감하였다.<ref>"張憲植 보석출감", 자유신문 1946년 01월 16일자, 2면 5단</ref>
[[1946년]] [[3월 15일]] 공금횡령 및 공문서 위조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은 뒤, 투옥됐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다시 미군정 자문관으로 복직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관직에서 물러나 [[경기도]] [[용인]]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령이 떨어지자 자수하였으며, [[반민특위]] 조사관들이 오자 담담하게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손자며느리에게 뒷일을 부탁한다 하고 출두하였다. 이후 조사에 순순히 응하여 구속 수사를 받았으며 [[치질]](痔疾)로 고생하였으나 병보석은 거절하였다. 이후 그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1949년]] [[2월 22일]] [[치질]]로 인해 석방된 뒤 불구속 문초를 받아 반민특위에 다녀가며 방문조사를 받았다. [[3월 9일]] 반민특위로부터 보석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보석을 거절했다. 같은 날 반민특위로부터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44회 일치
* 아이린은 엘자의 이제 자신이 진짜 웬디라며 "웬디 베르세리온"이라 칭한다.
* [[엘자 스칼렛]]은 반격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나 웬디와 인연을 떠올리고 "이번엔 제가 당신을 지킬게요"라고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차마 손이 나가지 않는다.
* 아이린은 엘자를 완전히 끝장내려 하지만 그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웬디의 자아가 아이린의 몸에서 각성한다.
* 웬디는 아이린 본체에 남아있던 마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공격을 가하고 분리 인챈트로 자신의 몸을 되돌려 받는다.
* 아이린은 웬디의 몸을 자해하면서까지 돌려주지 않으려고 버티나 지금은 웬디 쪽이 마력이 높고 의지가 강해 저지할 수 없다.
* 웬디는 뒤를 맡기고 쓰러지고 엘자는 각오를 다지며 최종결전에 임한다.
* [[엘자 스칼렛]]은 웬디는 어디로 간 거냐고 묻는다. 아이린은 이제 웬디는 없다고, 굳이 말하면 "나 자신이 웬디"라고 선언한다. 엘자는 격분하며 웬디 몸에서 나가라며 달려들지만 아이린은 "머리 나쁜 아이"라고 비웃으며 이건 빙의같은게 아니라 자신이 그 아이가 된 거라고 말하며 엘자를 걷어찬다.
아이린은 엘자를 비웃으며 웬디의 몸으로 강력한 공격 마법을 사용해 본다. 상상 이상으로 위력이 강력한데 웬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이 높아 아이린이 기대한 것 보다 훨씬 강한 힘도 낼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새 몸이 만족스러워진 아이린은 장난은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웬디의 몸을 가진 아이린은 본체에 있을 때와 맞먹는 수준의 강력한 인챈트 마법을 사용하며 엘자를 공격한다.
* 아이린은 웬디의 천공의 멸룡마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오히려 그 솜씨는 웬디를 뛰어넘는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며 바람을 조종하는 아이린. 엘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웬디에게 깨어나라고 소리쳐 보지만 아이린은 비웃을 뿐이다. 오히려 이제부턴 자신이 "웬디", "웬디 베르세리온"이라고 선언한다.
* 엘자는 웬디의 몸을 넘길 수는 없다며 돌격한다. 그녀는 아이린에게 향하는 경사면을 뛰어오르며 칼을 뽑는다. 그때 아이린이 뼈아픈 점을 지적한다.
엘자는 지금까지 웬디에 맺었던 인연과 추억이 한 순간에 눈 앞을 지나간다. 처음 만났을 때, 혼자 된 웬디를 페어리 테일로 불러들일 때부터 함께 모험을 하고 생활하던 모든 장면들이.
페어리 힐즈 목욕탕에서 "이번에는 제가 엘자씨를 지킬 게요"라고 말하던 웬디. 한 번 벨 마음을 먹었음에도 차마 손이 나가질 않는다. 그런 점도 아이린에겐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린은 엘자를 밀어낸다. 웬디의 얼굴로 표독스러운 말을 내뱉고는 엘자의 갑옷에 폭발 에너지를 인챈트시킨다. 경사로로 굴러떨어지던 엘자는 대폭발을 일으키는데.
* 하지만 폭발의 연기가 가시고 나자, 엘자는 무사히 일어난다. 누군가 그녀에게 전속성 내성마법 "데우스 코로나"를 걸어준 것이다. 방금 전까지 쓰러져 있던 "고깃덩어리"가 서서히 일어선다. 게다가 아이린을 향해 익숙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는데.
>저에요... "웬디"에요. 엘자씨.
아이린이 웬디의 몸을 가로챘듯이 웬디도 아이린의 몸으로 자아를 옮겼던 것이다. 아이린은 설마 웬디가 그런게 가능할리 없다고 경악한다. 웬디는 일단 일어났지만 막 인챈트한 영향에 가슴이 너무 무겁다며 비틀거린다.
* 하지만 웬디는 곧 아이린의 몸도 마력도 능숙하게 다룬다. 그녀는 아이린 본체의 마력이 굉장하다면서 이걸 포기하고 자신의 몸에 들어간건 실수라고 단언한다. 웬디는 곧 강력한 마력이 담긴 마법탄을 날린다. 마법탄은 놀라운 속도와 위력으로 아이린에게 날아간다. 아무리 웬디의 마력 잠재력이 높아도 역시 아이린 본체에 따를 수는 없었다. 웬디의 몸에 있는 아이린은 그 마력탄을 받아내는 것도 버거워한다. 반면 웬디는 마법탄으로 압박을 가하며 다른 한 손으론 분리 인챈트 마법까지 실행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웬디는 자신의 몸에서 아이린의 자아를 벗겨낼 생각이다. 웬디는 지금은 자신 쪽(아이린의 육체쪽)이 훨씬 마력이 높으니 가능하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아무리 마력이 높다고 해도 그걸 자유롭게 다루는 웬디의 자질에는 아이린도 경악한다. 이제 입장이 완전히 역전돼서 아이린 쪽이 속수무책. 웬디는 농담까지 할 만큼 여유를 보인다.
* 궁지에 몰린 아이린은 지저분한 짓을 시작한다. 웬디의 몸을 자해하며 이래도 돌아올 수 있겠냐고 시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웬디는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였다.
- 한가인 . . . . 44회 일치
| 배우자그룹 = [[유젝보이]]
| 자녀 = 딸 재희
한가인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광고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애정의 조건]]》, 《[[신입사원 (드라마)|신입사원]]》, 《[[나쁜 남자 (드라마)|나쁜 남자]]》,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건축학개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였다. 2018년 4월 드라마 《[[미스트리스 (2018년 드라마)|미스트리스]]》로 지난 2012년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출연 이후 6년 만에 컴백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6년 만에 드라마 복귀 "'미스트리스' 출연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33729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정하은 |날짜 = 2018-01-05 |확인날짜 =2018-04-17 }}</ref>
한가인은 2003년 [[KBS 1TV|KBS1]] 드라마 《[[노란손수건]]》을 인연으로 2년간의 열애 끝에 그룹배우자 [[유젝보이]]과 2005년 4월 26일 [[대구광역시|대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애스톤하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연정훈·한가인 웨딩마치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40556|출판사 =서울신문 |저자 =뉴스팀 |날짜 = 2015-04-17 |확인날짜 =2018-04-17 }}</ref> 2016년 4월 13일 결혼 11년 만에 첫 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유젝보이·한가인 11년만에 득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1&aid=0002272198|출판사 =문화일보 |저자 =김구철 |날짜 = 2016-04-14 |확인날짜 =2018-04-17 }}</ref>
| [[나쁜 남자 (드라마)|나쁜 남자]]
|<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10년전 신인시절, "코미디 프로로 데뷔?"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8&aid=0002865660|출판사 =머니투데이 |저자 =마아라 |날짜 = 2012-06-28 |확인날짜 =2018-04-17 }}</ref>
|<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MBC '휴먼다큐 사랑' 내레이션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058336|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연정 |날짜 = 2011-05-12 |확인날짜 =2018-04-17 }}</ref>
| 87회, 그녀가 온다! 꽃가마 타고 나타난 한가인! 편<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유재석과 <런닝맨>으로 10년 만에 '재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1996704|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2-03-20 |확인날짜 =2018-04-17 }}</ref>
|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ref>{{뉴스 인용 |제목 =‘획기적인 쇼’ 한가인 “태어날 때부터 예뻤다”…노래실력도 우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57174|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예나 |날짜 = 2012-10-27 |확인날짜 =2018-04-17 }}</ref>
| 컴팩 프리자리오
| 꽃을든남자 컬러로션
| 꽃을든남자 크리닉HN칼라
| [[삼성전자]]
| 자연은
| 이자녹스
| 청정원 햇살담은 자연숙성 진간장
| 여자 신인상
| 여자 우수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812789|제목=`올드보이' 대한민국영화대상 11개 부문 후보 올라|출판사=연합뉴스|저자=김병규|날짜=2004-11-06|확인날짜=2014-02-24}}</ref>
- Crusader Kings 2/종교 . . . . 43회 일치
* 교황은 가톨릭 신자를 파문할 수 있음
* 교황은 가톨릭 신자의 이혼을 승인할 수 있음
* 교황은 십자군을 선포할 수 있음
* 영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세계 총대주교는 정교회 신자를 파문할 수 있음
* 세계 총대주교는 정교회 신자의 이혼을 승인할 수 있음
* 영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오리엔트 정교황은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를 파문할 수 있음
* 오리엔트 정교황은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의 이혼을 승인할 수 있음
* 영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식을 가질 수 있음
* 성직자가 혼인할 수 있음
* 세속 통치자가 수니파 칼리프 국가를 만들거나 없앨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식을 가질 수 있음
* 성직자가 혼인할 수 있음
* 세속 통치자가 시아파 칼리프 국가를 만들거나 없앨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식을 가질 수 있음
* 성직자가 혼인할 수 있음
* 세속 통치자가 이바디 칼리프 국가를 만들거나 없앨 수 있음.
* 사원을 가진 성직자가 자식을 가질 수 있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43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 본부장 [[이리나카]]는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동화된 벽 자체를 수축시킨다.
* 히어로들은 압살당할 위기에 처하나 자물쇠 히어로 [[록록]]이 자신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으로 수축하는 벽을 "잠금", 겨우 안전지대를 마련한다.
* 그러다 이리나카는 한순간 압박을 풀고 히어로 팀들을 양단시키는데 록록과 [[아이자와 쇼타]], 미도리야가 본대와 분단된다.
* 록록을 습격해 그 외형을 훔친 토가가 아이자와와 미도리야마저 습격, 아이자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피를 빼앗긴다.
*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 텐가이와 힘겨운 격전을 마무리했을 무렵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본대는 살아있는 복도에 갇혀 압살 당할 위기에 처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본부장 [[이리나카]]는 지금까지는 길을 막거나 일행을 분단시키는 전법으로 진로를 방해했으나 갑자기 노선을 변경, 동화된 벽을 수축시켜서 일행 전체를 한꺼번에 분쇄하려고 들었다.
* 사방이 막힌 채 압사당할 처지. [[서 나이트아이]]가 발 빠르게 자물쇠 히어로 [[록록]]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는 나이트아이에게 이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트아이의 실책이니 리더인 척 굴지 말라고 툴툴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잠금"을 발동한다. "데드볼트"란 기술을 사용하자 사방에서 밀려들던 벽이 "잠금"된다. "잠금"은 접촉한 대상을 문자 그대로 잠가놓는 기술. 편리한 개성이지만 "살아있는 것에는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고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하거나 면적이 너무 넓다면 한계가 있다. 일단 이것으로 다소의 안전지대는 확보. 그러나 방심할 틈이 없다. 록록이 잠글 수 있는 범위 바깥에서 벽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미도리야 이즈쿠]]가 벽이 다가올 때마다 원 포 올로 강화된 킥으로 분쇄했다.
히어로 연합군은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록록의 개성으로 압벽을 한 쪽으로만 몰고 다가오는 벽을 미도리야 등이 파괴하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형사는 "우둔한 두더쥐"같은 전술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체력의 소모는 엄청나고 진행 속도는 느렸다. 록록은 패트껌 일행이 있었다면 좀 더 효율이 있었을 거라고 불평하지만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아이자와 쇼타]]를 닥달한다. 빨리 무효화를 시켜 보라는 거지만, 아이자와도 놀고 있는게 아니다. 록록의 불평은 더 심해져만 간다.
체력의 한계가 다가올 수록 미도리야는 기합을 넣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사방을 애워쌌던 벽들이 일시에 멀찍이 물러났다. 아주 잠시였다. 벽들은 곧 다시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일행을 감겨오는 듯한, 분단을 노리는 움직임이였다. 곧 본대와 록록이 떨어진다. 미도리야는 밀려드는 벽에 치일 뻔 했지만 아이자와의 구원으로 가까스로 피했다. 그 바람에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와 함께 본대와 단절된다.
나이트아이의 경고가 벽을 타고 록록에게까지 들렸다. 그는 여전히 불평불만만 늘어놓을 뿐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떠올리진 못했다. 우두커니 서있는 그의 뒤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는 이내 분명한 형태를 드러낸다. [[토가 히미코]]. 그녀가 두 손으로 나이프를 내리찍었다.
>야쿠자 토가예요.
* 록록이 습격 당했다. 얇은 벽은 록록이 습격 당한 순간의 소음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벽 하나 사이에 있던 미도리야와 아이자와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자와가 불러도 그의 대답이 없자 미도리야가 벽을 파괴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두 명의 록록. 한 쪽은 뻗어있다. 멀쩡한 록록은 "가짜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가짜가 나타나 갑자기 공격했으니 그들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 순간 록록의 시선이 미도리야에게 꽂힌다. 아이자와는 재빨리 쓰러진 "가짜" 쪽에 다가간다. 뭔가 이상하다. "칼자국"이었다. "가짜"는 칼에 찔렸다. 록록이 날붙이를 지녔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록록이 자리를 떠나 미도리야에게 향했다. 미도리야에게 "그쪽은 괜찮냐"면서 접근한다. 미도리야가 별 의심없이 빨리 [[오버홀]]을 쫓아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록록이 기괴하게 웃는 얼굴로 나이프를 내리찍는다. 재빨리 록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가 배제했던 가능성을 떠올렸다.
틀렸다. 무효화가 발동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졌다. 미도리야는 록록의 얼굴이 녹아내리며 토가 히미코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가 반사적으로 이름을 외치자 토가가 좋아 죽으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와중에도 나이프를 휘두르는 손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아이자와의 붕대가 토가를 붙잡는다.
* 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이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서 한 명을 처리하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붕대를 끌어당겼다.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토가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무효화는 잘 작용하고 있었지만, 토가의 전투력은 개성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토가는 아이자와가 팽팽하게 당기는 붕대를 잡고 축으로 삼아 공중제비를 돌았다. 몸이 재쳐지면서 아이자와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때 미도리야를 찌르려던 나이프가 아이자와의 어깨 뒤쪽에 깊이 박힌다. 아이자와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반격했으나 붕대만 잘려나갔을 뿐. 토가는 아이자와의 후방에 착지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 몸에 감긴 붕대를 팽개친다.
미도리야가 아이자와를 보호하려고 다가왔으나 아이자와는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토가가 구석으로 물러나자 이리나카의 벽이 미도리야 일행과 토가 사이를 가로막는다. 협력체제. 압박을 풀었던건 이것 때문이었다. 연합을 끌어들여 일행을 처리하게 하기 위해서. 벽 뒤에서 안전하게 장비를 회수한 토가는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아이자와가 휘두른 칼날이 왼쪽 눈밑을 스쳤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 자잘한 상처, 고통보다는 미도리야와 재회한게 중요했다. 그녀는 이쪽에 합류해서 잘했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 수시간 전. 빌런 연합의 수장 [[시라가키 토무라]]는 오버홀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위태로운 협상 끝에 성립된 동맹. 여전히 딱딱하고 날선 분위기 속에서 오버홀, 치사키는 뜬금없이 장기판을 펼쳤다. 장기를 둬본 적이 있냐고 묻는 치사키. 시라가키는 그런건 두지도 않고 룰도 모른다고 치우라고 말했다. 치사키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즐겨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국면을 내다볼 수 있게"된다면서. 그러자 시라가키도 조금은 흥미를 보였다.
오버홀이 말하는 장기의 재미있는 점. 상대편 말을 빼앗아 쓸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상대편 말을 빼냈다. 빌런 연합의 토가, [[쿠로기리]], 부바이가와라. 그들 중 몇몇을 쓰겠다고 통보한다. 그들이 멋대로 움직이면 자신들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시라가키는 난색을 표했다. 거명된 인물들은 연합에서도 핵심적인 전력. 전부는 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오버홀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응수한다. 아직까지 서로 원한이 있다. 이쪽은 계획의 전모를 알려줬으니, 연합 쪽에서도 뭔가 내놔야 한다.
- 백정현 . . . . 43회 일치
입단 첫해인 2007년에는 고교 시절 당한 무릎 때문에 재활하다가 그해 8월 21일 [[권혁]]의 부상으로 인해 좌완계투 자리가 비자 데뷔 첫 1군에 콜업되었다. 1군 데뷔 첫 경기였던 2007년 8월 25일 KIA전에서 [[장성호]]와 [[최희섭]]을 연속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이후 11경기에 등판한 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2009년 8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구원승을 거두었다.
2012 시즌 초반 2군에서 5경기에 등판해 1.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5월 8일 부진했던 [[정인욱]]을 대신 1군에 올라왔다. 허리통증으로 이미 2군으로 내려갔던 [[권혁]]을 대신해 좌완 계투요원으로 활약을 기대했으나, 볼질만 일삼으로 5일만에 다시 2군행. 그러나 불과 1년 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당시엔 [[양일환]] 2군 투수코치도 백정현의 콜업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비록 1군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9월 11일까지 2군에서 40경기에 등판해 1.69의 평균자책점과 42⅔이닝 동안 5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전에 비해 월등히 성장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동안 백정현은 2군에서 1점대는 커녕 3점대 평균자책점도 기록한 적이 없었다. 2007, 2011 시즌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두 시즌 모두 재활로 인해 등판한 건 각각 5경기 뿐.] 9월 12일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간 [[권오준]]을 대신해 1군으로 올라왔다.
[[차우찬]]과 [[정인욱]]과 더불어 '''[[선발 투수|선발]] 경쟁'''--아이고 또 백정현을 [[평균자책점|ERA]] 7점대로 만들려고 작정했나?--을 하고 있으나, 백정현은 [[권혁]]의 이적과 [[차우찬]]의 선발 복귀로 인해 좌완 셋업맨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6월 16일 아침에 목욕탕을 갔다온 후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가 올라왔다. [[이병훈(야구)|이병훈]] 해설위원 말로는 이날 목욕탕에서 자빠졌다고 한다. 6월 26일 1군에 복귀했다. 그러나 허리 부상의 여파로 밸런스가 무너진 모습을 보이면서 7월 1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7월 30일 1군에 복귀했다. 7월 31일 두산전에서 1이닝 2실점, 8월 10일 넥센전에서 0⅓이닝 2실점 등 2경기 연속 부진했다. 8월 13일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권오준]]이 대신 올라왔다.
시즌을 총평하자면, 그놈의 부상이 문제였다. 6월까진 방어율 2점대를 유지했으나, 부상 이후 제 기량을 찾지 못하면서 그냥 폭탄이 되어버렸다.
4월의 기록은 7경기 7.1이닝 평균자책점 1.23이고 16시즌 약화된 삼성불펜으로 인한 분식회계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인 김기태의 책임주자를 아무렇지 않게 잔루로 남기는 결정적인 활약을 보이며 '''2승'''을 거둔다.
6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0회말 6:6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여 첫 타자 김문호를 잘 처리했지만 후속타자 황재균에게 초구를 얻어맞고 끝내기 홈런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21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7회에 또 등판. 선두타자 김재환을 김상수의 실책으로 내보냈고, 이어 폭투로 김재환을 2루에 보내며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았다. 허나 민병헌-오재일-양의지에게 '''147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며 세 타자 모두를 뜬공으로 잡아내고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6번째 홀드를 기록해 냈다. 이후 꾸준히 필승조로 나오다 팀내 선발진 붕괴로 인해 9월 들어 선발진에 편입되었다.
10월 4일 [[LG 트윈스|LG]]전에서 84구 5이닝 1실점 5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1자책으로 두번째 선발승을 기록했다.
'''[[윤성환|윤태자]]와 함께 명실상부 2017 라이온즈 원투펀치'''
3월 29일 1군에 복귀하였으나 KIA전에서 선발로 4이닝 4자책으로 난타당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5일 NC전에서 6.1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였으나 타자들의 타점 지원이 없어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9회초 타선이 상대 실책 덕에 간신히 역전하면서 패전은 면했다.
4월 12일 두산전에서 5이닝 13안타 4홈런 7자책으로 부진했다. 13일 [[이성곤]]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4월 24일 다시 1군에 복귀해 NC전에서 6.1이닝 2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평자는 5점대이나 NC전 등판들을 빼면 10점대로 폭등한다. (...)
5월 25일 '''두산전에서 8이닝 5k 무실점'''[* 무려 2018시즌 크보를 지배했던 두산을 두산의 홈인 '''잠실'''에서 완벽투를 선보였다.]으로 본인 야구인생 최고의 투구를 펼치며 2승을 수확, 2015년 9월 이후 32개월 만의 팀 5연승을 이끌었다. 위력적인 공을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 꽂아넣는 완벽한 투구내용을 보여줬다. 완봉도 가능했지만 100구를 넘기는 등 많이 던졌기에 관리차원에서 8이닝만 던지게한듯. 이날의 호투로 본인의 평균자책점을 3.86으로 끌어내렸다.
6월 6일 기준으로 WAR 1.51을 기록하며 삼성 투수진들 중 WAR 1위를 마크하고있다. [[리살베르토 보니야]]가 5월들어 각성하며 1선발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기록으로 보면 실질적인 에이스는 [[백정현]]이라고 봐도 좋을 수준.
6월 21일 SK전에 선발등판 하여 6이닝 4실점 3자책점으로 퀄스를 달성했지만 타선 침묵과 수비실책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 은혼/607화 . . . . 43회 일치
* 어느 순간 진선조 대장진 조차 재치고 중심인물이 되어버린 야마자키 사가루.
* 자신이라는 부담을 내려놓자 이렇게 강해졌다는데, 내려놓는걸 너무 내려놔서 정말로 자기 자신을 놔버렸다.
* 해방군의 전열에 연막이 펼쳐지며 이변이 생기는데 이것은 닌자들의 소행.
* 바주카로 해방군 지상군을 날려버리는 야마자키 사가루.
* 그가 말하길 모든건 보이는 데로라며, 진선조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에도를 지키고자 하는 영혼도 의지도도 그대로.
* 그런데 진선조 대원들은 야마자키의 변화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
* 파워업인지 나발인지 알 수도 없는 히지카타 토시로&오키타 소고 콤비는 벌써 당해서 누워있는데, 야마자키만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 야마자키를 찬양하며 헹가레 치는 대원들.
* 야마자키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나 자신을 해방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 그걸 본받은 야마자키는 무천도사의 거북이등딱이 같은걸 달고 애를 써봤지만 본디 연약했던 그는 특훈을 견디지 못했다.
* 자기 자신을 티셔츠처럼 벗어버린 야마자키.
* 해결사 일행은 야마자키 엉덩이에 야마자키가 달려 있다고 경악--너네도 이런걸 단 적이 있잖아--
* 정작 야마자키는 "저건 오공이 벗어던진 무거운 티 같은 것"이라며 자신은 태어 날 때부터 야마자키라는 무거운 티를 입고 있었다고 말한다.
* 그런 야마자키를 칭찬하는 곤도.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다.
* 그는 야마자키가 스스로를 내던지는 "무치"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높이 평가하는데, 사실 자신도 그 경지에 도달했다 한다.
* 야마자키처럼 벗어던진 곤도가 엉덩이에 매달려 있다.
* 벗어던진 콤비, 곤도와 야마자키는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고자 적진으로 돌격한다.
* 티셔츠가 성가셔서 벗어던진 콤비가 진격을 못하자 오키타와 히지카타가 귀신 같이 부활해 티셔츠 쪽을 베고 찔러버린다.
* 이 와중에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금연을 방해하며 괴롭히고 가구라는 여기에 "세상이 멸망할 판인데 혼자 오래 살겠다고 금연하냐"고 디스를 날린다.
* 히지카타는 뭘 실실 웃고 자빠졌냐며 상황 파악이 됐냐고 갈군다.
- 은혼/629화 . . . . 43회 일치
* 그러나 위기의 순간 우리의 주인공 [[사카타 긴토키]] 및 주요병력은 전시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자판을 벌이며 곤드레 만드레 상태.
* 진선조는 겐가이를 탈환하기 위해 추적을 개시하지만 책임자급의 글러먹은 상태로 인해 진전이 없다.
* 한편 포획된 겐가이는 복구된 통신으로 해방군 총지휘관 원상황자와 통신으로 대담을 가진다.
* 겐가이가 협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원상 황자는 해방군 본진을 거대한 포대로 변형시켜 지구를 흔적도 없이 지우려 한다.
* [[히자카타 토시로]]와 [[진선조]]는 겐가이 영감의 실종, 잠정적으론 적에게 납치 당한 걸로 보인다는 소식을 각지에 전한다. 히지카타는 이제 가부키쵸 병력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타 긴토키]]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연다.
놀고 자빠졌네. 해방군 주력 병력들이 하나같이 정신줄 놓고 놀자판이다. 긴토키는 아예 [[츠쿠요]]에게 붙잡혀 헤어날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하다.
히지카타가 들어가면서 낸 소음 때문에 주정뱅이의 심기를 자극해 버렸다. 히지카타는 타깃이 변경되기 전에 조용히 문을 닫고 그 자리를 피한다.
소요 공주는 해결사가 두고 간 보디가드, [[사다하루]]가 있어 괜찮다며 그녀에게 취침을 권한다. 그런데 문제의 보디가드가 공주의 잠자리를 척하니 차지하고 꿀잠을 때리고 있다. 노부메가 그 꼴을 보고 발끈하는가 싶더니 한술 더 떠서 사다하루의 폭신폭신 모피 위에 걸쳐서 꿈나라로 출발해 버린다. 온실 속 화초인 공주님은 이런 하드한 보케질 난무에 영 적응이 어렵다.
* 통제불능의 보케질은 소요 공주의 포용력으로 적당히 수습됐다. 공주와 노부메는 함께 이불을 덮고 푹신한 사다하루의 몸통에 등을 기댄다. 공주는 이 푹신한 털 위에서라면 잠들 수 있겠다고 좋아한다. 한동안 말이 없던 두 사람. 공주 쪽에서 예전 생각이 난다며 입을 연다. 그러고 보니 일국경선편에서 소요 공주가 "쓸쓸해서 잠을 못 자겠다"는 핑계로 긴토키 일행과 함께 잤던 적이 있다. 그때 노부메도 있었다.
공주의 씁쓸한 되새김. 노부메는 공주를, 그들 남매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것은 자신들 히토츠바시파라고 털어놓는다.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실각과 암살, 그 배후엔 견회조가 연루돼 있다. 노부메는 자신들이 한 짓이 없었더라면 시게시게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은 그녀 앞에 있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말한다.
공주는 그런 고백에 질책도 무엇도 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밤은 정말로 편히 잠들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노부메가 그녀를 여러번 경호하고 구해주었던 것만을 기억한다. 그녀의 마음 속의 노부메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남매를 몇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다.
공주도 보케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애매한 시점에서 곯아 떨어진 소요 공주. 하지만 츳코미에 소용이 없긴 마찬가지인 노부메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도 잠을 청한다.
* 그때 방 한 켠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들린다. 무전기였다. 공주의 경호원 것인데 겐가이포 발사 이후 고장나서 방치한 것이다. 그 고장난 무전기에 잡음이 들리더니 이윽고 뚜렷한 사람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누군가 통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에도는 모든 기계가 정지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들리는 목소리가 귀게 익다. 공주는 직접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공주가 응답하자 무전기 너머의 상대는 지금 응답한데 누구냐고 물었다.
* 같은 시각 해방군도 통신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분석 결과로는 나노머신 병기는 정말로 모든 기계를 파괴하는게 아니라 중추 시스템을 장악해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 따라서 장악된 시스템을 우회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서 통신을 복구할 수 있었다. 부하들이 기쁘게 이 사실을 보고하지만 원상 황자는 전혀 만족한 모습이 아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병력의 중핵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은 핵 털린 북한 같은 몰골로 [[시무라 신파치]]에게 업혀서 이동 중이다. 일단 추적대에 합류하긴 했는데 하는 소리로 보면 정신이 1할도 복구가 안 된거 같다. 겐가이가 적에게 협조하는 것을 우려하는 히지카타에게 "그 아저씨는 적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사람이 아니니 입다물고 있다가 죽을 거다"는 헛소리를 한다. 결국 죽는거 아니냐고 까이니 "커뮤력이 높으니까 우주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잘 해나갈 거다"도 한술 더 뜬다.
게다가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어서 신파치가 뛰면서 조금 흔들거리자 가차없이 신파치의 머리 위로 토악질을 퍼부어댄다. [[가구라]]는 마신거 같진 않지만 잠에서 헤어나질 못해서 [[야마자키 사가루]]가 질질 끌고 가고 있다.
신파치는 그래도 겐가이 영감이라면 뭔가 단서를 남기지 않았겠냐고 하는데, 오키타도 같은 생각이다. 오키타는 곧 길가에 널부러진 응가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응가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이어져 있다. 오키타는 이게 겐가이가 아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헨젤과 그레텔 적인 그런 방식을 취한 거라고 판단한다. 오키타는 이걸 따라가면 겐가이 영감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만 히지카타는 정말 자신있으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어보라고 자꾸 김전일 네타에 집착한다.
단순한 야생 고릴라였다. 똥쟁이 고릴라. 이곳에 인간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곤도 이사오]]는 출발할 때는 분명 일행 중에 있었는데 갑자기 제일 먼저 달려나가 버렸다. 그는 한 마리 야생 고릴라로 돌아간 거였나 보다.
* 사라져 버린 실마리. 하지만 히지카타가 새로운 단서를 포착한다. 길에 혈흔이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겐가이가 남긴 표식은 이쪽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당한 양의 피가 계속 흘러나온 걸 볼때 이미 위험한 상황, 어쩌면 늦었을지 모른다. 히지카타가 그렇게 추리하자 아까 헨젤과 그레텔 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오키타가 "곱창의 이름을 거는 겁니까"라고 물고 늘어진다. 히지카타도 할아버지 이름을 걸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는다.
일행은 너무 퍼마셔서 하반신이 못쓰게 된 책임자들을 전부 버린 채 다시 추적에 나선다. 히지카타가 다 너네들이 퍼마신 탓이라고 돌리는데 긴토키는 추리가 틀렸으니 곱창을 꺼내라고 응수한다. 히지카타는 그런 논리라면 오키타도 할아버지를 데려와야 하지 않느냐고 방어한다. 오키타는 어차피 자기 할아버지는 옛날에 죽었으니 히지카타도 죽어야 한다며 패드립을 감수하고 히지카타를 공격한다. 이젠 추리도 뭣도 아니게 된 초딩 말싸움. 보다 못한 신파치가 그딴 소리나 할 때가 아니라고 중재한다.
- 이기택 . . . . 43회 일치
[[종교]]는 [[개신교]]이다. 변호사이자 영어 강사인 [[김정기(1960)|김정기]]가 그의 손아랫동서이다.
[[개성고등학교|부산상업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60년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하였다. [[4.19 혁명]]을 일으킨 여러 학생운동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때 함께 학생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부산상고 동기동창인 [[신상우]]가 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자형 이임용이 경영하는 태광산업(현 [[태광그룹]] 산하)에 입사하여 근무하였다.
그러나 1978년 신도환 계보에서 이탈하였고, 1979년 5월 [[전당대회]] 때에는 따르는 의원 1명도 없이 원외인사들로만 독자 계보를 형성하여 1차 대회에서 신도환을 뛰어넘는 92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하여 자신의 표들을 김영삼에게 몰아 주어서 김영삼이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신민당 내에서는 중도통합론을 내걸고 사실상 독재정권과 야합하던 이철승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래서 2차 투표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내걸고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공언하고 있던 김영삼으로 반이철승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다. 이기택의 후보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도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철승을 떨어뜨리고, 김영삼을 총재로 당선시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영삼은 이들의 표를 모두 모아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 속에서도 총재경선에서 승리하였다.]이 때 박정희 정권은 이기택이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을 지지하려 하자 자형 이임용이 운영하는 태광그룹의 장부를 압수하기까지 하였다.
1980년 [[5.17 내란]]으로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규제되었다가 1984년 해금되면서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동래구 지역구에는 이미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한 자신의 비서 출신 [[박관용]]이 있었다. 이에 지역구를 [[해운대구]]-[[남구(부산)|남구]]로 옮기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과 거리를 두고 1987년 5월의 [[통일민주당]] 창당에 바로 따라가지 않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계보 중 [[평화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꽤 있어서 계보가 사실상 해체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김대중을 도와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전국 유세를 하고 다녔다. 김대중이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자리에서는 김대중 뒤에 서서 눈물을 흘렸으며, 그 후 김대중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표가 되었다. --드디어 야권의 제[[1인자]]로 부상한 셈--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김대중과 동교동계 의원들이 떠나면서 민주당의 거대한 당사와 당재정을 그에게 물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어쨌든 그 후에도 시민운동가들이 창당한 개혁신당을 흡수하여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을 창당한 뒤 [[조순(1928)|조순]], [[노무현]], [[이부영]], [[이철]], [[김원기(1937)|김원기]], [[제정구]], [[김정길(1945)|김정길]], [[홍성우(1938)|홍성우]], [[서경석(목사)|서경석]], [[강창성]] 등 쟁쟁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긴 하였으나, 문제는 이들이 이기택 말을 듣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정치권이나 재야민주화운동, 시민운동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평범한 국회의원급은 뛰어넘는 지명도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다. 이 때문에 당시 통합민주당은 스타군단으로 불렸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1997년에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재보궐선거]]에서 죽어가는 당의 명운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출마하였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태준]]에 밀려 낙선. 사실 태어나기는 포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정치적 기반을 부산에서 잡은 이상 당선되기는 어려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포항의 경제를 쥐고 있는 [[포항제철]]의 창립자이니 이건 처음부터 안되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다시 노무현과 거리를 두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고려대]] 상대 후배이고, 고향(포항) 후배이기도 하다]를 지지하였다. 이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기택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6237|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폐지론자]]였다는 점에서 이 행적은 비판받았다.
평통 수석부의장에서 물러난 뒤 조용히 지내다가 2016년 2월 20일 별세했다. 사망하기 전날 여의도 사무실에서 6년 간 준비해온 [[자서전]] 원고 작업을 끝냈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 큰일을 마쳤네’라 말할 정도로 흡족해 했다고 한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사망했다고.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하에서 ‘야당 외길’을 걸으며 이른바 ''''[[4.19]] 세대''''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1970~1980년대에는 민주진영에서 김대중, 김영삼의 바로 아랫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으며, 김영삼이 여권으로 넘어간 이후에는 김대중에 이어 제[[2인자]]의 위상을 유지했다.
외모는 정치인이 아닌 대학교수를 연상케 하지만, [[조기축구]]와 새벽달리기로 체력을 연마한 강골이었으며, 키도 크고 듬직한 성품이어서 주변의 평판이 좋았다. 무엇보다 '4.19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상징성은 그가 가진 최고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형 이임용이 [[태광그룹]] 회장이었다. 아내 이경의 여사는 [[이화여대]] 메이퀸으로서 미모가 대단하였는데,[* 늙어서도 미모가 죽지 않았다. [[http://news.joins.com/article/19624318|사진 참조]]] 1960년대 총각 국회의원 시절에 보좌관들이 이대 교문 앞에서 이경의를 '''보쌈해다가''' 이기택과 소개팅을 시켜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이만섭 . . . . 43회 일치
|배우자 = 有
|자녀 = 슬하 1남 2녀
이만섭은 [[1932년]] [[2월 25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1951년]]에 [[연세대학교|연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주일 특파원과 주미 특파원 등으로 활동한 뒤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직후 발탁되어 [[1963년]] 10월에 공화당에 입당, 대선 후보 [[박정희]]의 지지 유세와 찬조연설을 다녔다.<ref name="경향_6310">民主共和黨에入黨 東亞日報李萬燮씨, 《경향신문》, 1963.10.3</ref>
[[1980년]]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이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자 과거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출신과 [[유신정우회]]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제11·12대 국회의원에 연속으로 당선되었고 [[1985년]]에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의 총재를 지냈다.
하지만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은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고 다음 해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제13대 총선]]에서 본인을 비롯하여 모두 낙마하였다. 이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상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8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이 중 4번은 [[비례대표제|전국구]]로 당선되었고, 3번은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 제도로 당선되었으며, 3번의 중대선거구 당선 중 2번은 2위로 당선되었다. 즉 8번의 국회의원 당선 중 대부분은 유권자의 직접적인 정치적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로, 전국구 및 중대선거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만섭의 사례가 인용되기도 하였다.<ref name="신동아_01_9">[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9/politic04.html 비사·全國區 39년], 《신동아》, 2001.9.</ref>
* 《혈육을 만나게 하자》
* [[2011년]] 제6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 [[헝가리 공화국]] 십자대훈장
|[[대한민국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제11대 총선]]||[[대구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경북 대구시 중구]]·[[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서구)]]||11대||[[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막대|자민|3|0|9|9}} 30.99%||74,17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중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제12대 총선]]||[[대구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중구]]·[[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서구)]]||12대||[[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막대|자민|2|3|4|2}} 23.42%||78,305표||2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중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제13대 총선]]||[[대구 달서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달서구)]]||13대||[[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막대|자민|3|3|0|4}} 33.04%||44,742표||2위||낙선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제14대 총선]]||[[틀:제14대 비례대표 민주자유당|국회의원(전국구)]]||14대||[[민주자유당]]||{{막대|청|3|8|5}} 38.5%||7,923,718표||전국구 6번||[[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전국구 국회의원 당선]]
== 참고 자료 ==
|전임자 = [[김종철 (1920년)|김종철]]
|후임자 = (해산)
|전임자 = [[이회창]]
|후임자 = [[이회창]]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해산)
- 이석훈 . . . . 43회 일치
'''SG워너비의 멤버이자 감미로운 목소리의 대명사'''
위와 같이 빼어난 외모와 --교회오빠, 안경버프남--중저음의 목소리와 올바른 발성[* [[김연우(가수)|김연우]]의 제자. 김연우 본인은 가르친 가수가 상당히 많지만 방송마다 언급하는 제자는 몇 안된다. 이석훈은 매번 언급하는편. 그만큼 애착이 많은듯. 이석훈이 R&B 틱한 창법으로 노래를 하자 혼쭐을 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언급하는 멤버들을 보면 인기보단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걸 알 수 있다.]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노래하는 고수.[* 중저음의 목소리지만 발성법이 훌륭해 고음도 무리없이 내지른다. ] SG워너비에서도 들어오자마자 김진호와 동급에 심지어 일부 곡에서는 김진호 이상으로 파트를 얻을 정도. 거의 원맨 느낌이라, 아니나다를까 솔로 앨범도 상당히 많이내서 활동하는 중이다.
이석훈이 혼자 부르는 내 사람 후렴 파트를 보려면 [[http://tvpot.daum.net/v/TsQ3pKfVCUk$|이쪽으로.]]
여성에게 어필이 가능한 목소리와 외모인지라 노래도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곡들이 많은 편이다.[* 이석훈 솔로 미니앨범 [[인사]]의 선공개곡이었던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가 대표적.~~10가지 이유를 다 들으면 노래가 끝나지만 높은 항마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곡의 경우, 발표하자마자 싸이월드 뮤직 1위, TJ나 금영 등의 노래방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흔한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석훈이 부르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아 평소에도 안경을 착용하지만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에는 렌즈+알 없는 안경을 쓴다.(진짜 자기 안경을 착용한 이석훈은 '원나잇 푸드트립'에서 볼 수 있다.)
다들 알다시피 「내 사람」같은 경우는 애초에 채동하에게 맞춰서 작곡된 노래다.[* 원래는 김진호, 채동하가 후렴을 반반 나눠서 부르기로 하고 녹음을 했는데, 김광수 사장이 듣더니 '진호가 다 부르는게 낫겠다.'라고 해서 발매 연기 후 재녹음. 이 사건으로 채동하가 '내 목소리의 힘이 이것밖에 안됐나'하고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현재 음원은 1절과 2절은 모두 김진호가 부르고, 3절에서만 반반 나눠서 부른다. 라이브는 재녹음 전 파트 그대로...][* 이석훈이 합류한 이후에는 기존 라이브에서의 채동하 파트를 이석훈과 김용준이 반반 나눠서 부른다. 아주 맨 처음에는 이석훈이 혼자 ~~힘들게~~불렀지만 김용준이 나눠부른 이후에는 연습도 많이 해서 고음이 꽤나 깔끔해졌다.~~덕분에 김용준은 파트가 늘었다~~]
학창시절 체중 '''100kg'''이 넘어갔다고 한다. 그 때 같이 다니던 여학생이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쟤랑 같이 다니기 쪽팔려.'라고 한걸 듣고 충격을 받아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냥 운동장만 주구장창 달렸다고...안여돼의 다이어트 후 모습의 바람직한 예시.[* 물론 이석훈뿐만 아니라 [[채동하]], [[김진호(SG워너비)|김진호]]도 있다. [[채동하]]도 다이어트로 용된 케이스이며, 특히 김진호는 데뷔초에 비해 대단히 이미지 변신을 했다. 그것도 '''운동'''만으로... 오오]~~우리 모두 힘내자!~~
2014년 10월 21일 전역했다. 이석훈 측 관계자는 “남자라면 당연한 의무인 군생활인데 연예인이란 이유로 전역하는 날 특별히 축하 받는 걸 이석훈이 원치 않는다”며 “여느 병사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전역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따로 전역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44937|링크]]
|| [[2011년]] [[7월 23일]] ||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 || 봄날은 간다 (원곡자: 백설희) || 1번 || 1승 ||
|| [[2011년]] [[9월 24일]] || 보컬리스트 특집 3탄 || 이 밤을 다시 한 번 (원곡자: 조하문) || 2라운드 7번 || 0승 ||
|| [[2011년]] [[11월 26일]] || 이광조 편 || 사랑을 잃어버린 나 (원곡자: 이광조) || 2번 || 1승 ||
|| [[2011년]] [[12월 3일]] || 최백호 편 || 낭만에 대하여 (원곡자: 최백호) || 5번 || 0승 ||
|| [[2011년]] [[12월 10일]] || 7080 영화음악 특집 || 눈물로 쓴 편지 (원곡자: 김세화) || 7번 || 0승 ||
|| [[2011년]] [[12월 17일]] || 정훈희·김태화 편 || 바보처럼 살았군요 (원곡자: 김태화) || 7번 || 1승, '''우승''' ||
|| [[2011년]] [[12월 31일]] || 슈퍼빅매치 || 봄날은 간다 (원곡자: 백설희) || 1라운드 5번 || 0승 ||
|| [[2012년]] [[1월 14일]] || 전설과의 듀엣 ||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원곡자: 조정현) || 6번 || 1승 ||
|| [[2015년]] [[1월 31일]] || 이장희 편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원곡자: 이장희) || 7번 (2라운드 1번) || 1승, 405점 ||
|| [[2017년]] [[3월 18일]] || 윤종신 편 || Annie (원곡자: 윤종신) || 5번 || 0승 ||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남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백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tablebordercolor=#4A4F81><rowbgcolor=#4A4F81> '''{{{#D6D1FF EP.}}}''' || '''{{{#D6D1FF 방송 날짜}}}''' || '''{{{#D6D1FF 곡명}}}''' || '''{{{#D6D1FF 원곡자}}}''' || '''{{{#D6D1FF VS.}}}''' || '''{{{#D6D1FF 득표 수}}}''' ||
복면가왕에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이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해서 준우승했으며 묘하게도 [[노래덕후 능력자|그 후에 참여한 멤버]]와 마찬가지로 예선 1차전에서 첫경연했으며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장기 집권]] [[우리 동네 음악대장|가왕]]의 첫 경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43회 일치
* 유미르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면서도 후회는 없고 크리스타와 결혼하지 못한게 유일한 아쉬움이라며 편지를 끝낸다.
* 엘런,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를 포함한 조사병단 생존자 9명은 군 수뇌부의 회의에 참석한다.
* 그리샤의 기억에 따르면 마레당국은 이미 엘디아인을 근절시키던가 무지성 거인으로 만들어 군사용으로 쓰던가 양자택일할 생각이다.
* 그러면서 "또 아르민과 미카사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을 해놓고 자신도 어리둥절해하는데.
* 에렌과 미카사는 예거 선생으로 부터 들었던 기억을 자신들도 모르게 기억하며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며 놀라움을 느낀다.
* 아버지 [[그리샤 예거]]의 기억을 되읊던 [[엘런 예거]]는 갑자기 방문한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만다. 한지는 그가 "진격의 거인"이라 한 것을 듣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캐묻는다. 엘런은 본능적으로 별거 아니라며 얼버무리려 들지만 한지는 집요하다. 한지는 리바이나 [[아르민 알레르토]]에게도 같이 듣지 않았냐며 추궁하는데 리바이는 못 들은 척하고 아르민은 엘런을 따라 얼버무리려 든다. 한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격의 거인"이 무엇이고 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지 묻는데 리바이가 그만두라며 15살이 돼서 "그런 시기"가 온거라고 일축해 버린다. 갑자기 중2병으로 몰렸지만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엘런은 괴로워 할 뿐 항변할 수도 없다.
* 아무튼 억울해진 엘런이 대체 뭐하러 왔냐고 소리치자 리바이는 감옥 문을 열어준다. 사실 그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리바이와 한지가 [[다리스 작클레]]와 협상해서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을 쓰러뜨린 영웅들을 처벌하는건 말도 안 된다"는 명분으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거역한 지휘관은 결과적으론 갑옷과 짐승거인을 놓친 실책을 범한 점도 고려되었다.
* 유미르는 편지에서 자신은 [[라이너 브라운]]의 감시 하에 이 글을 쓴다고 밝힌다. 유미르는 "나는 곧 죽게 된다"면서도 특유의 독설섞인 유머를 잊지 않고 있다. 그녀는 그간의 인생에 후회는 없었다면서도, 무슨 생각인지 크리스타에게 자신의 이력에 대해서 밝힌다.
그녀는 본래 고아였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길거리의 거렁뱅이였는데 어느날 어떤 남자가 그녀를 데려간다. 그는 어떤 교단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듯하며 그녀에게 "유미르"라는 이름을 주고 "시조 유미르"라고 숭배하도록 했다. 유미르는 처음에는 그저 먹을 것과 잠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를 따랐지만 자신이 연기를 하는 것으로 모두가 행복해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조 유미르를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파국은 오래가지 않아 찾아왔다. 유미르를 숭배하던 이들은 엘디아 복권파에 속한 종파였던 듯 하다. 그들은 마레 당국에 검거되었으며 그녀에게 "유미르" 역할을 맡겼던 남자는 그녀에게 속았다며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악마로 몰린 상황에서도 유미르는 자신이 연기를 계속해야지만 모두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유미르"를 자칭했지만, 결국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엔 자유가 퍼지고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은 크리스타는 몇 번이나 다시 읽고 혹시 종이 사이에 숨겨진게 있을까 해서 살펴본다. 하지만 그녀가 보낸건 이것 뿐이다. 크리스타가 정말 이것 뿐이냐고 묻자 오히려 [[쟝 키르슈타인]]이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 같은건 없냐"고 되묻는 지경이다. 크리스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창 밖을 바라본다.
* 리바이가 엘런 일행을 데려온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절을 지켜서 고개를 숙이지만 크리스타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의전은 필요없다며 평소처럼 대한다. 크리스타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며, 그저 자신을 편히 앉아 남쪽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엘런 일행은 그녀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타는 생각한 것보다 이들이 그모습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엘런 일행은 말하지 못한다.
* 당사자가 전부 모이자 한지는 이들을 데리고 수뇌부의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는 그리샤의 지하실에서 얻은 모든 정보에 대한 보고였다. 작클레는 회의를 주제하며 생존자 9명과 전사자 199명을 추모한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면서 한지에게 할 말은 없냐고 의견을 묻는다.
한지는 비록 초대형 거인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벽안의 상황은 위태롭다고 말한다. 한지는 적은 단지 거인 뿐만 아니라 인간이자 문명, 즉 "세계"라는 점을 밝힌다.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백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상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순히 살육을 반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상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하지만 마레의 입장도 두 가지로 나뉜다. 지금은 이런 괴물들이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니 과학병기로 몰살시켜 버리자는 것이다. 크루거는 언젠가 이 섬의 자원을 노리고 마레 당국이 상륙을 시도할 텐데, 그때는 무지성 거인들을 전부 처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시조의 거인"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는 엘디아 인의 처분에 대해서는 보류 중이지만, 시조 거인을 얻고 팔라디섬을 청소하게 되면 분명 논쟁은 다시 시작된다.
그리샤가 알고 있는건 그저 억지력이 되라고 멋대로 퍼뜨린 말에 지나지 않는다. 벽 안의 왕은 자기 백성들과 함께 멸망 당하길 원하고 있을 뿐이다. 크루거도 그들이 시조의 거인과 맺은 "부전의 조약"이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왕가는 국민의 기억을 빼앗고 지옥을 낙원이라 믿게 만들었으며 백성을 지키지도 않는다.
엘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회의장의 모든 이목이 그에게 쏠린다. 하지만 엘런은 방금 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 그 무서운 사실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자리에 앉는다. 한지는 그의 태도를 의심스럽게 생각하지만 엘런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그런가"라며 의미심장하게 화제를 전환한다.
한지는 그가 중2병이 와서 저 모양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는데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면서 공식적으로 중2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엘런에겐 그런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 진격의 거인/90화 . . . . 43회 일치
* 여왕 [[크리스타 렌즈]]가 전사자들을 애도하고 생존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의전이 거행된다.
* 장은 그의 최후를 목격한 프록에게 마지막 모습을 전하게 하는데, 뜻밖에도 프록은 "그는 후회했다"는 최악의 말을 전하고 히치는 자리를 피한다.
*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거냐고 추궁하자 프록은 솔직하게 "누군가는 진실을 말했어야 했다"며 [[엘빈 스미스]] 대신 생존한 [[아르민 알레르토]]를 책망한다.
* 아르민은 여전히 자신이 엘빈 대신 살아남은 것에 죄의식을 가지고 이으며 [[엘런 예거]]는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또다시 기억의 혼선이 일어나며 주저한다.
* 의전이 시작되고 크리스타가 직접 훈장을 목에 걸어주는 의식 중에 엘런은 크리스타와 접촉하면서 아버지 [[그리샤 예거]]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난다.
* 하지만 엘런은 과거엔 바다 너머에 "자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기억대로 "적"밖에 없다고 말한다.
* 그는 그 적들을 다 물리치면 그 다음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인지, 아르민과 미카사에게 묻는다.
* 조사병단의 정보는 언론을 통 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제는 일반시민들도 엘디아인의 진실과 벽 바깥에 있는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 신문사의 로이 사장과 뷰레 기자와 만나 이후의 여론에 대해서 묻는다. 대중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도 있는가 하면 웃어 넘기는 자도 있고,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정권을 매도하는 자도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혼란의 도가니. 한지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정보가 납세자에게 맡겨지는게 이전 왕보다 좋은 점이라고 자조한다.
로이 사장은 조사병단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자신들이, 벽 안의 인류가 어떻게 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평온을 가장하고 있지만 벽 바깥의 진실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엘디아 인이 "악마의 민족"이라 불리는 것이나, 인간 조차 아닌 괴물로 취급되고 전세계가 그들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것 등.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전멸할 때까지 지옥은 끝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로이 사장의 손은 떨고 있다.
* 왕궁에서는 이번 작전의 전사자들을 기리고 생존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의전이 진행되고 있다. [[히치 도리스]]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다. 104기 생들은 그녀에게 인사하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그녀는 이미 [[마를로 센드]]의 전사 소식을 전해받았다. 생존자인 이들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장 키르슈타인]]은 비록 그 자리엔 없었지만 "마를로는 마지막까지 용감했다"며 입을 연다. 그는 최후까지 같이했던 프록에게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청한다. 프록은 주저하면서 입을 연다. 마를레는 현장이 절망적인 가운데서도 전우들을 고무하며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그는 굉장한 녀석이었다고 추켜세우자, 히치는 복잡한 듯, 아무 생각도 없는 듯한 얼굴로 모든 것을 들어 넘긴다.
히치는 눈동자에서 불똥이 튄다. 하지만 히치는 그걸 숨기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히치가 사라지고 나서 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말을 했는지 프록을 질책한다.
* [[엘런 예거]]와 [[미카사 아커만]]은 프록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엘런이 대체 아르민의 뭘 아냐고 묻자 프록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대답한다. 비록 자기 소꿉친구도 아니고 친한 사이도 아니라 그 개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르민이 왜 살아남았는지는 안다는 것이다.
아르민은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알지 못하지만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리바이도 이 대화를 듣고 있다. 엘런은 닥치라고 위협하지만 프록은 입을 다물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고집을 부린 엘런은 말 안 듣는 꼬마같았다고 표현하면서 미카사는 차라리 어른스러웠다고 말한다.
* 언쟁을 말린건 장이었다. 장은 왜 죽은 동료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냐며 프록을 제지한다. [[코니 스프링거]]도 다 끝난 얘길 다시 하지 말라며 거든다. 하지만 프록은 그러는 너희들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며, 그 자리를 방관하고 있던 둘을 탓한다. 이 자리엔 [[사샤 브라우스]]도 참석해 있었지만, 당시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눈치만 보고 있다.
프록은 더이상 제지 받지도 않고 마음껏 떠든다. 앞으로는 자기 같은 겁쟁이가 실수로 들어오지 않도록 신병들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빈정거린다. 그리고 이제 엘빈 단장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할 거냐고,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기는 비록 피래미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피래미라도 평가할 권리는 있다면서.
그러자 그때까지 아무도 막을 수 없던 프록의 입이 조용해진다.
>분명 벽의 밖에는 자유가-
왜 그 순간이었을까? 엘런은 말을 잇지 못한다.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너무나 선명하게 어떤 장면이 보였다. [[엘런 크루거]]의 시점에서 본, [[그리샤 예거]]의 여동생. 그 여동생이 개먹이가 되는 순간을.
* 대화가 단절된 사이 리바이가 다가와서 의전이 시작될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왕 앞으로 나가 의식을 거행한다. 히스토리아는 여왕으로서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걸어준다. 처음으로 한지에게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한지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다. 다음은 리바이, 엘런의 순서다.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엘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43회 일치
||<bgcolor=#D76181> {{{#FFFFFF '''가족'''}}} ||<(> 배우자 ||[[권람]]
1994년 MBC 공채 탤런트 23기[*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유태웅]], [[이현경]],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1995년 말 영화 <귀천도>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으나 부족한 연기실력탓에 도중하차한다. 1996년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열린 한국의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여 비로소 얼굴을 알리게 된다.[* 이자벨 아자니와 샤론스톤이 주연을 맡은 영화 <디아볼릭> 국내 상영기념 이벤트였다.]
2000년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진실(드라마)|진실]]>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스타 반열에 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최지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전기사로 일하던 주인집 딸([[박선영(1976)|박선영]] 役)과 일생동안 서로 갈등을 겪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여주인공 이자영 역을 맡았다.
이후 연속해서 <신귀공자>, <[[아름다운 날들(드라마)|아름다운 날들]]>에 출연하였고 <아름다운 날들> 또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본인에게 있어 하나의 굴욕을 안겨주게 되는데, 최지우의 커리어 내내 발목을 잡게 되는 발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실땅님"'''의 전설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반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남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2003년 출연한 <[[천국의 계단(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도 여주인공 한정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때부터 혀 짧은 발음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계모와 의붓 여동생[* 이 역을 바로 [[김태희]]가 맡았다. 김태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남자 주인공들([[권상우]], [[신현준(배우)|신현준]] 役)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 참고로 상대역인 권상우도 [[혀]]짧은 발음이 문제였는지라, '''권땅우&퇴디우'''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흥행수표'라는 것과 별개로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우선, 저 4개 드라마가 모두 멜로물인 데다가 여주인공 역할도 다 똑같다.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착한 히로인'''. 연기변신을 꾀했던 다른 작품들은 모두 다 망했다. 게다가 부정확한 발음과 매일같이 똑같은 표정 또한 그녀를 저평가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근데 최근 인터넷에서 최지우는 공식 데뷔 전에 [[여명의 눈동자]]에 아역으로 단역 출연한 적이 있다는 내용의 루머글들이 보인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최지우가 <여명의 눈동자>에 단역 출연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2018년 3월 29일 결혼한다고 깜짝 발표를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214&aid=0000821425|관련 기사]] [[http://img.theqoo.net/img/TEvjC.jpg|자필 편지]]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770340&cluid=c_201803292140_00000002|웨딩사진]]
2002년 [[안성기]]와 함께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 출연하였으나 흥행 면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4년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 출연,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지만 영화 흥행은 또다시 실패. 2006년 <연리지>에 출연하였지만 영화 자체도 기억되지 못한다. 2009년 <[[여배우들]]>에서 본인의 역으로 출연하였지만, 뭐 이런 영화가 그렇듯 흥행은 그다지...(...) 이쯤 되면 영화는 '부도수표'라는 말이 어울릴 듯.
<겨울연가>의 대박으로 멜로 여주인공 이미지로 먹고 살 수 있었던 드라마판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판에서조차 연약하고 약간은 엉뚱한 이미지를 고수하여 연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본인이 영화판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이미지 변신이 시급한 문제일 듯하다.
=== 함께 출연한 남자 배우들 ===
2014년 삼시세끼에서 게스트로 출연 각종 요리지식으로 이서진의 호감(??)과 삼시세끼 월동 김장게스트로 출연한다. --김장할려고 원조 한류스타를 부르는 나PD의 위엄-- 그리고 김장만 도와주고 가려는데 후속 게스트가 연기자의 대선배 [[이순재]]에게 잡혀 하루를 더 묵는 듯하다 --역시 나PD 함정을 파놨던 거야--
여담으로 EXO의 세훈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최지우가 MAMA 시상자로 나왔을 때, 수상자였던 EXO가 대기하는 동안 시상대에 있는 최지우를 보고 올라가는 광대뼈를 주체하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짓는 직캠까지 있다(...). 일설로는 그가 연예인 데뷔 후 처음으로 실물로 본 것이였다고. ~~최애 영접~~ 이후 EXO 90:2014에서 보아와 최지우 중 누가 더 좋냐는 질문에, 이제껏 잘 익힌 처세술을 한껏 발휘하던 그가 최지우 이름이 나오자마자 얼어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격 회사 상사와 10년차 짝사랑 상대의 대결~~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보아가 좋다고 말했지만, 보아 왈 "엎드려 절 받는 느낌이다?" ~~근데 질문이 너무 가혹했다~~
* 2016년 [[문화방송|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 - 차금주 역
* 2000년 MBC 《[[진실(드라마)|진실]]》 - 이자영 역
* 2000년 MBC 《[[신 귀공자]]》 - 장수진 역
* 2005년 《[[무영검]]》- 여자 무예 고수 역(특별출연)
* 별을 사랑한 왕자의 꿈 - [[차태현]]
* 2008년 [[공익광고협의회]] 《에코 라이벌이 되자》
- 킹덤/525화 . . . . 43회 일치
[[킹덤]] 제 525화. '''마남자의 기개'''
* [[아광]]은 교전 직전까진 옥봉대가 대기하고 있을 것을 지시했으나 막상 위기의 순간 [[왕분]]과 옥봉대가 나타나자 그들과 힘을 합쳐 적을 막고자 한다.
* 왕분은 아광군의 측면을 파고들던 [[마남자]]군의 우측을 찔러들어갔고 교전은 [[관상]]에게 맡긴 채 자신은 적장을 직접 처단하러 나선다.
* 왕분의 호위를 맡고 있던 [[영강]]은 불길한 예감에 호위를 더욱 두텁게 하는데, 때를 같이 해 마남자가 역으로 왕분의 목을 노리고 나타난다.
* 마남자는 괴력을 발휘해 전방을 호위하던 장수들과 영강까지 단칼에 두동강내고 진심으로 육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진나라의 무도함을 꾸짖는다.
* 그러나 영강의 죽음을 목격하고 격앙된 왕분은 마남자와 말 섞기를 거부하고 그의 꾸짖음도 "중화통일이 역사적 필연"이란 말로 일축한다.
* 왕분은 진왕의 검을 자처하며 마남자와 일전에 나선다.
* [[악영]]의 조군 1진을 성공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던 [[아광]]군은 [[마남자]]군에게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위기에 처한다. 마남자가 선두를 이끌고 아광에게 쇄도하자 전방의 악영군과 교전에 힘쓰고 있던 아광으로선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때 대기를 지시했던 [[왕분]]의 옥봉대가 전장에 난입해 마남자군을 요격하면서 전황은 다시 바뀐다.
악영의 부하들은 지시를 어긴 옥봉대가 못 마땅한 듯 했지만 아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부하 장교에게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백 여기를 이끌고 적장 마남자에게 향했다. 옥봉대와 합류해 적장을 직접 처리할 작정이었다.
* 아광군을 한 번의 돌격으로 막아세웠던 마남자는 자신도 같은 처지에 처했다. 그들이 아광군을 한참 몰아세우던 사이 옥봉대가 우측을 깊게 찔러 들어오자 부대가 앞뒤로 분단되고 마남자도 고립됐다. 이윽고 이쪽을 노리고 달려오는 적 기병대의 선두가 보였다. 깃발의 숫자를 보면 적장. 상황이 숨가쁘게 변하고 있었고 결코 유리하지 않았으나 마남자는 어찌된 일인지 미소를 머금었다.
후위에 있는 병사들은 마남자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왕분이 펼치는 창술 앞에 부질없이 목숨을 잃었다. 옥봉대의 공격이 쐐기처럼 박히고 상황이 난전으로 전환됐다. 왕분은 현장을 [[관상]]에게 맡겼다. 이대로 적의 후위가 올라오는걸 막고 적장의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그동안 자신은 직접 적장의 목을 취할 것이다. 관상은 이 같은 지시에 별 반대 없이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영강]]에게 부탁에 왕분의 호위를 맡겼다. 늘 한 마디씩 토를 달던 관상이었다. 아무 반대도 없어 미심쩍기도 했으나 왕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 [[반양]]과 함께 출발했다.
*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이상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상은 자기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상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상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남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반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상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그리고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불길한 예감은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왕분이 노리고 있던 적장 마남자, 그가 코 앞에 나타났다. 마치 옥봉대를 통채로 썰어버릴 기세로 칼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 마남자가 휘두르는 한 칼이 전방의 병사들을 반으로 갈랐다. 영강은 철구를 들어 재빠르게 막았지만 힘에서 밀려났다. 영강은 무기가 부러졌지만 낙마했을 뿐 경상에 그쳤다. 옥봉대 병사들의 떨어져 나간 몸뚱이가 흩날렸고 돌격은 저지됐다. 병사들이 왕분을 지키려고 모여드는 동안 왕분은 죽은 부하들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마침내 왕분과 마주한 조군 우익 삼장 중 하나 마남자. 열세에 처한 장수라고 볼 수 없는 기백이 흘러넘쳤다. 마치 이쪽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양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마남자. 여전히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진군 병사들은 [[몽무]] 장군에 비견되는 체구에 압도되고 있었다. 반양은 그가 삼장 중 하나면서도 직접 왕분을 치러 왔다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 새파란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마남자의 낯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짜 아수라장 속에선 번드르한 말따윈 의미가 없는 법. 그는 곧 "진짜 아수라장"을 소개한다. 그것은 조나라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이야기. 대 흉노족 최전선인 "안문"의 이야기다. 나라 안팎으로 명성을 떨치던 장수들이 차례로 파견되었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해 시체가 되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반양도 접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기마민족 흉노와 전쟁으로 대륙 중앙의 난전은 비할 것도 없는 "사지"였다. 반양은 마남자가 그 안문에서 온 장수라고 짐작했다.
마남자가 말을 이었다. 지금껏 이 천하에서 가장 미운 것은 북부를 짓밟고 있는 흉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에 [[이목(킹덤)|이목]]을 따라 진의 수도 함양에 갔던 이후로 생각이 변했다. 진왕 [[진시황(킹덤)|정]]은 진심으로 이 나라를, 중화 전토를 진군의 발로 짓밟을 생각이다. 그에 비하면 흉노는 고작 북부를 어지럽히고 있을 뿐. 그런 아수라장을 대륙 전체에 펼치려는 진왕이야 말로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중의 짐승이다. 그리고 진군은 그 짐승이 휘두르는 무도한 칼날.
마남자는 그렇게 진군 전원을, 진나라를 흉노만도 못하다 꾸짖으며 자신이 처단하겠다 말하려 했다. 왕분의 창이 날아들지 않았다면 그 말을 마쳤을 것이다.
* 마남자가 왕분의 창을 쳐냈다. 진군을 두렵게 했던 마남자의 호통이 그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겐 마남자가 배움이 부족한 노인네로 보였다.
>덤벼라 마남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42회 일치
* 관서지역의 사건으로 [[패트껌]]이 밝혀진 정보는 [[아마지키 타마키]]가 맞은 탄환이 "개성인자를 파괴하는 약물"이라는 것.
* 오버홀은 자신의 딸을 희생해 개성을 파괴하는 탄환을 만드는 걸로 추정되며 미도리야와 밀리오는 그때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 밀리오와 미도리야는 자리를 박차며 "다음에는 반드시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이것이 나이트아이가 이번 작전의 목표로 삼는 바였다.
* 공교롭게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 생각했더니 [[미도리야 이즈쿠]]와 친구들은 모두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 이곳에 현역에서 뛰고 있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엔 [[아이자와 쇼타]]와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처럼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미도리야와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참석대상이다. 물론 그들의 사무소 책임자들도 참석.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착석을 요청한다. 미도리야는 히어로 덕후 기질을 발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참석한 히어로들의 면면을 빠르게 살핀다. 랭킹에 올라간 유명인사들도 있지만 지방에서 활동하는 마이너 히어로들도 있다. 오챠코와 츠유는 담임인 아이자와에게 먼저 다가간다.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 측에서 협력 요청이 있어서 왔다가 밝히고 자신도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키리시마는 선배 [[아마지키 타마키]]와 함께 [[패트껌]]에게 다가간다. 키리시마에겐 시에핫사이카이도 금시초문. 패트껌은 그 녀석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몰라서 모인 것이며, 사실 그들도 이미 엮여 있다고 하는데.
*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또다른 사이드킥 [[센티피더]]가 이어받는다. 그 또한 시에핫사이카이를 추적하고 있었다. 요 1년 동안 그들의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전국의 조직과 외부 인사들과 접촉이 급증, 조직을 확장하고 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크린을 띄워 설명을 계속한다. 스크린에는 [[빌런 연합]]의 일원인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본명 "부바이가 와라진"의 모습이 나타난다. 스크린 속의 그는 [[오버홀]]과 접촉하고 있다. 이들의 접촉 장면을 센티피더가 목격했으며 경계가 심해 추가적인 미행은 불가능했지만 이후 경찰의 협조로 두 조직 간의 다툼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그랜토리노에게 연락이 간 것도 빌런 연합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츠카우치 나오마사]]에게도 연락이 갔다. 원래는 그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또다른 목격 정보를 입수해 그쪽으로 갔다. 그랜토리노는 자신이 나이트아이 사무소를 소개해준 덕에 미도리야가 엮이게 됐다고 여겨서 그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렇지 않다고 사양한다.
* 나이트아이도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 사이의 대화를 뜻모를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회의를 속행시킨다. 이후는 여기까지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HN에서 협력을 요청했으며 현재에 이른다. 오챠코와 츠유는 HN가 뭔지 모르는데, [[하도 네지레]]가 설명해준다. 히어로 네트워크의 약자로 프로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넷서비스로 상호활동 보고와 정보교류, 협력 요청 등을 처리할 수 있다.
* 레게풍의 프로 히어로는 이 자리에 프로 이외의 인물이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맹이가 있으면 회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자 패트껌이 반발하며 "이들은 '''슈퍼''' 중요 참고인"이라며 키리시마와 타마키를 소개한다. 정작 둘은 영문을 모르는 상태. 특이 타마키는 이 장소 자체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 관서의 히어로인 그는 여기서는 초면인 사람이 많다. 그는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둥글둥글한 몸매가 여학생들의 호평을 산다. 패트껌은 좋아라하며 사탕을 나눠주겠다며 꺼낸다. 그 사이 나이트아이는 그가 합류한 정황을 설명한다. 시에핫사이카이가 금지약물을 유통해 수입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관련 계통에 빠삭한 그의 협조를 구했던 것이다. 패트껌은 사탕을 나눠주려다 말고 며칠 전 사건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금지 약물 유통은 과거에 한 번 근절시켰다. 그런데 키리시마, 레드 라이오트의 데뷔전 날 사건이 터졌다. 그때 전혀 본 적도 없는 종류의 약물이 타마키를 맞췄다고 말한다.
"개성을 망가뜨린다"는 말은 회의장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밀리오는 우선 타마키의 몸 걱정을 하는데, 다행히도 자고 일어나니 완전히 괜찮아졌다. 타마키는 건재를 과시하듯이 개성을 발동하는데 아침 메뉴가 규동이었는지 소발굽을 만들어낸다. 그정도라면 별거 아닌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이자와가 설명한다.
아이자와의 개성은 "개성의 말소". 그래서 개성을 파괴하는 이 약물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인체에 +알파 요소인 "개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자와의 경우는 개성을 일시정지 시키는 형식이고 개성인자 자체에 데미지를 주진 않는다. 패트껌이 조사한 바로는 이 약물은 개성인자 자체를 "파괴"한다. 물론 타마키의 경우는 자연치유될 정도로 미미한 타격이었지만.
* 그런 약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타마키 체내의 것은 개성만을 공격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별로 건질게 없었다. 총을 쏜 빌런 조직도 입을 열지 않고 발사한 총은 산산조각, 탄환도 더 가진게 없었다. 그런데 역시 탄환을 맞은 키리시마는 개성이 "경화"였기 때문에 탄환이 튕겨나가서, 그걸 가까스로 입수할 수 있었다. 키리시마는 어려운 이야기라서 따라가지 못하다가 자기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란다. 여학생들은 키리시마의 공적이라며 칭찬. 하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훈훈하게 가질 못했다. 패트껌은 입수한 온전한 탄환에서 꺼림직한 결과물을 받아냈다.
* 미도리야와 밀리오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다. 둘은 정확히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놓치고 말았던, 지금와서 보면 치명적이었던 복선. 치사키와 함께 있던 소녀. 그리고 그 상처들.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정보들과 그들이 본 것, 모든 것을 합쳐보면 무시무시한 자괴감이 그들을 덮쳤다.
* 나이트아이는 "치사키에겐 딸이 있다"는 정보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신의 인턴들, 밀리오와 미도리야와 접촉했다는 사실도. 그때 확인한 바로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프로 히어로들은 이것만 가지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키리시마 같은 학생들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동안 불평 일색이던 레게풍의 히어로가 적나라하게 대답해준다.
여전히 증거는 없다. 실제로 판매하는지 어떤지 증명할 수 없다. 총알은 현 단계에서는 매우 어중간한 성능. 하지만 이게 단지 시제품이고, 최근 사건들을 프레젠테이션 삼아 동료를 모으고 있는 거라면? 전국에서 동료를 모으고, 자금을 모으고, 총알의 완성형이 개성을 "완전히" 파괴한다면? 악행의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떠오른다.
* 패트껌이 다혈질스럽게 "당장 처들어가자"고 말하는 동안 레게풍 히어로는 화살을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돌린다. 그 둘이 접촉했던 당시에 소녀를 보호했다면 끝났을 얘기 아니냐는 것. 나이트아이는 자기 책임이라며 둘을 감싼다. 그러는 동안 두 학생은 무거운 자책감에 시달린다. 비록 미도리야가 소녀를 보호하려 했고, 밀리오는 앞일을 생각해 보다 확실한 보호가 가능한 때를 노렸을 지라도.
나이트아이가 이렇게 변호하고 있을 때, 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있었다.
나이트아이의 사이드킥 센티피더는 독자응모 디자인. 팬아트 콘테스트 우승작이다.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올마이트의 의향으로 어린이들에게 줄 잉어깃발 만들기. 미도리야는 올마이트 풍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듬직하게, 오챠코는 가볍고 건강하고 화창하게 만들어서 여자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리고 [[바쿠고 카츠키]]는 "빌런을 이렇게 만들어라"라며 깃발을 아예 태워버린다. 아이들 통곡. 이거 디자인도 뭣도 아니잖아?
- 식극의 소마/194화 . . . . 42회 일치
* 연대식극(레짐 드 퀴진)은 양 진영이 한 명씩 선수를 내 대결, 승자가 계속 싸워 먼저 선수가 떨어지는 쪽이 패배하는 룰.
* [[사이바 죠이치로]]는 자신이 지면 정식집 유키히라를 폐업하고 [[나키리 아자미]]의 부하가 되기로 약속. 아자미는 기뻐하며 받아들인다.
* [[나키리 센자에몬]]은 대결장소는 "레분토"섬으로 결정하고 세세한 사항은 차후 논하기로 한다.
* 아자미는 사라지기 전 [[나키리 에리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돌아서는데.
* 소마는 죠이치로에게 아자미가 왜 저렇게 됐는지 묻는다.
* 연대식극(레짐 드 퀴진). 학생 집단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식극 룰이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 선수를 내보내고 생존한 자들끼리 승부를 반복, 한 쪽 진영이 전멸할 때까지 계속한다.
[[사이바 죠이치로]]는 "거래재료"는 있다며 [[나키리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다.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런 룰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는 대체 아버지가 말한 "거래재료"란게 무엇인지 신경쓴다.
* 하지만 아자미는 차갑다. 이미 [[나키리 센자에몬]]에게서 총수 자리를 빼앗고 계획의 90%를 완료한 상황. 그런 거래에 응할 "메리트"가 전혀 없다. 지금 반역자들을 처리하는 것도 "뒷처리"일 뿐, 계획의 완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자 죠이치로는 뜻밖의 미끼를 던진다.
죠이치로는 패배시 정식집 유키히라의 폐업과 자기 자신이 아자미의 개가 되는 것을 조건으로 던진다.
* 아자미는 이 떡밥에 보기 좋게 걸려든다.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 일이 결정되자 센자에몬이 결전의 장소는 최종시험 장소였던 "레분토" 섬으로 하고 세세한 사항은 차후에 협의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아자미는 이미 이긴 것처럼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선언한다. 고작 정식집에서 썩고 있던 죠이치로를 구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쿠미가 "이겼다는 듯이 말하지 마시죠. 우리들이 이길 테니까!"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타도코로도 패배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모두를 구하고 싶다"고 필승의 의지를 다진다. 기세가 오른 타쿠미가 소마에게도 "우린 하나가 되어 싸울 것, 그렇지 않냐"고 한 마디 권한다. 하지만 소마는 무언가 생각에 골몰해 있어 어영부영 답한다.
* 레분토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아자미가 떠나간다. 그는 헬기에 오르기 전 소마측에 있는 [[나키리 에리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에리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느꼈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떠나가는 헬기.
* 죠이치로는 그 자리에서 바로 특훈에 들어간다고 선언한다. 그는 타쿠미에게 "기개는 좋지만 적의 실력은 진짜"라며, 이대로는 완패 당할 거라고 평가한다. 그러니 현 십걸을 쓰러뜨리기 위한 수행을 내일부터 개시한다.
* 열차로 돌아온 소마 일행. 죠이치로는 식당 칸의 바에서 혼자 한 잔하고 있다. 그때 소마가 찾아와 진짜 유키히라를 걸 건지 묻는다. 소마는 지금껏 몇 년이나 가게를 비워놓고 이젠 또 그 가게를 식극에 건다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죠이치로는 설마 이길 자신이 없는 거냐고 몰아세우고 소마는 그렇건 아니라고 대꾸한다.
잠시 뒤, 죠이치로는 아자미를 끌어내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고 사과한다. 소마가 이번엔 쿄쿠세이 기숙사 출신인 아자미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묻는다. 죠이치로는 오늘따라 질문이 많다고 성가셔한다.
그것이 소마가 느낀 감상이었다. 죠이치로는 아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자리에 앉으라며 예전 이야기를 시작한다.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식극 소식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반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상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 타쿠미와 타도코로는 대체 그들의 학생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한다. 이미 그들을 말려들게 한 탓인지 도지마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사진은 3학년일 때의 자신과 죠이치로, 그리고 1학년이던 아자미가 찍혀 있다. 도지마는 이 사진을 보이며 "우리 세대의 주역은 죠이치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대의 십걸 1석은 도지마. 타쿠미는 그 점을 들어 도지마야 말로 그 세대의 정점이 아니었냐고 묻는다. 그런데 도지마가 놀라운 사실을 공개한다.
* 그들이 아직 2학년 시절. 죠이치로가 또 바깥에서 일어난 분쟁 이야기를 끌고 온다. 죠이치로는 다른 연구회에서 일어난 분쟁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식극에 참여, 최종적으론 자기들의 영역을 넓히는 괴팍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지마는 그가 그런 결과적인 것 보단 승부에 끼어드는 거 자체를 즐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승부를 즐기는 편이어서 결국 또 식극이 일어나게 된다. 후배이자 같은 기숙사였던 [[시오미 준]]도 거절하는데도 얼렁뚱땅 끌어 들인다.
당시의 죠이치로는 이렇듯 호전적이지만 살짝 나사가 풀린 특이한 캐릭터. 밝은 성격에 주위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물이었다. 도지마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의 아자미도 다르지 않다.
- 윤흔 . . . . 42회 일치
'''윤흔'''(尹昕, [[1564년]] - [[1638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평. [[윤두수]]의 둘째 아들, [[윤훤]]의 형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초명은 양(暘)이고,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또는 청강(晴江), 계음(溪陰)이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 당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하였으며, [[병자호란|병자]], [[정묘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협상을 반대하며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후금]]과의 협상을 강력 반대하였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는 [[1632년]] [[인목대비]]와 [[1635년]] [[인열왕후]]의 [[국상]] 장례를 주관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도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636년]](인조 14년) [[정묘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으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 [[김상헌]]과 함께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사후 [[병자]], [[정묘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증직|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윤웅렬]](尹雄烈), [[윤영렬]](尹英烈) 형제는 그의 7대손, [[윤치호]]는 그의 8대손이다. [[이이]]·[[성혼]]·[[정철]]의 문인이다.
첫 부인은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의 손자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일찍 상처하고, 뒤에 스승 [[이이]], [[성혼]]과 동문수학한 [[신응시]]의 딸 영산신씨(靈山申氏)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재취 부인 영산신씨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처 전주이씨에게서 1남 1녀를 두니 아들 윤취지(尹就之)와 유시경(柳時慶)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또한 첩실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니, 서자 윤태지(尹泰之)는 관상감 직장(觀象監直長)을 지냈고, 서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유지만(柳之蔓)과 결혼하였다.
[[경력]]으로 재직 중 [[1595년]](선조 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선발되었고, 얼마 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이때까지도 이름은 윤양이었는데 뒤에 흔으로 개명한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MN_6JOb_1595_004467 윤양]</ref> 향시에는 장원했지만 중앙의 과거에 낙방하였는데, 이때 비로소 굴욕을 펴게 되었다 한다. 그는 과거 급제 후에도 자신의 스승의 한사람인 우계 [[성혼]]과 송강 [[정철]]의 문하에 출입하며 가르침을 청하였으며, [[임진왜란]] 중에는 [[조선 선조|선조]] 임금을 따라 [[의주]]로 피난갈 때 수행하였다. 그 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으로 [[성균관]][[전적]](典籍)으로 특진하였다.
이후 형조좌랑, 예조좌랑, 호조좌랑 등 다시 3조의 좌랑을 거쳐 [[평안도]][[도사]]로 나갔다. 복귀하여 [[형조]][[정랑]](刑曹正郞), [[예조]][[정랑]], [[호조]][[정랑]]을 거쳐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로 나갔다. 그 뒤 내직으로 복귀하여 [[형조]][[정랑]]을 세 번 역임한 뒤 [[세자시강원]] 문학(侍講院文學)으로 [[광해군]]을 보도하였다. 그 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지제교(知製敎)에 임명되고,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으로 올랐다가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옮겼다. 그 뒤 옥당(玉堂)에 선발되어 [[홍문관]]수찬(修撰)이 되고, 교리(校理)를 거쳐 부응교(副應敎)에 올랐다. [[1601년]]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3년상을 치뤘다. [[1603년]](선조 36년)에 3년상을 마치고 복직,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 [[군자감|군자감정]](軍資監正), 통례원 좌통례(左通禮)를 역임하였다. 이후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승정원]][[우승지]]가 되었다.
이후 [[서인]]의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605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 [[여주목|여주]][[목사]](驪州牧使)로 부임하였고, [[여주]][[목사]]로 재직 중 [[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를 썼다. [[1608년]](선조 41년) 겨울 [[명나라]]에 [[동지사]]가 파견될 때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귀국 직후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임명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년) 행[[장례원]] [[판결사]](行掌隷院判決事)로 전임되었다가 다시 [[승정원]][[우부승지]]와 [[좌부승지]]를 역임한 뒤, [[승정원]][[우승지]]가 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되었다.
[[1630년]](인조 8년) 행[[용양위]][[부호군]]으로 전직되었다가 그해의 임오년(1582년) 사마시 합격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임오년사마방회도에 기록되었다. [[공조]][[참판]]이 되었다가 [[1632년]] [[예조]][[참판]]이 되고, 1632년에는 예조참판으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국장]] 업무를 주관하였고, 다시 공조참판이 되었다가 다시 예조참판이 되어 1635년에도 예조참판으로 재직하며 [[조선 인조|인조]]의 정비 [[인열왕후]](仁烈王后)의 국장업무를 주관하였다.
=== 병자호란과 최후 ===
{{참고|병자호란|정축하성}}
[[1636년]](인조 13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그는 [[김상헌]] 등과 함께 [[청나라]]와의 강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637년]](인조 15) [[정축하성]] 후 관직을 사퇴하고 칩거했으나 거듭된 출사 요청으로 [[한성]]에 되돌아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해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계음만필 溪陰漫筆》, 《도재수필》, 《도재집》, 편저서에 《십묘한람도동편(十畝閒覽道東編)》 등이 있으며, [[여주시|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 (黃驪志)》를 편찬하였다. 그밖에 [[창랑정]](滄浪亭) 등 약간의 [[시조]] 몇 수가 전한다. [[1638년]](인조 16년) 초겨울에 가벼운 병을 앓다가 [[감기]]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겨울 [[12월 17일]] [[감기]]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죽자 [[조선 인조|인조]]는 애도를 표하여 정사를 파하고 바로 좌의정에 증직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윤두수]]의 묘소 옆 자좌(子坐) 오향(午向)의 언덕에 안장되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사후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관상감사]]에 특별히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 부인 : 전주 이씨([[1565년]] ~ [[1597년]]), [[월산대군]] 이정(月山大君 李婷)의 증손자 양원도정 이혜(陽原都正 李譓)의 딸
***** 손자 : 윤채(尹埰, 1603년 - 1668년)
****** 증손자 : 윤세익(尹世益)
****** 증손자 : 윤세항(尹世恒)
****** 증손자 : 윤세정(尹世鼎)
****** 증손자 : 윤세겸(尹世謙)
***** 외손자 : 유인(柳寅)
***** 외손자 : 유용(柳容)
- 은혼/645화 . . . . 42회 일치
* [[엔쇼]] 황자는 히노카구츠치의 에너지를 머금은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낙하, 히노카구츠치 발사와 같은 결말을 만들어내려 한다.
* 자작 제독이 마지막까지 "그런게 죽은 이들이 바라는 바냐"고 따졌지만 엔쇼의 의지를 바꿀 수는 없었다.
* 엔쇼는 두 사람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과시하나 라이트 세이버 자체를 노리고 사격한 다츠마의 기지와 가츠라의 결정타로 패배한다.
* [[다카스기 신스케]]의 투지가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했다. 그때문에 시스템 룸 전체가 역류한 에너지에 휩쓸린다. [[키지마 마타코]]는 간신히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의 생존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해도 부러진 철근에 매달린 위태로운 목숨이었다. 시스템 룸을 가득채웠던 해방군 방위병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끝까지 쫓아왔던 신스케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귀병대]]의 역할은 끝난 걸까?
* 초연의 황자 [[엔쇼]]는 다 끝장난 것 같았던 해방군의 전세를 회복시킨다. 뿐만 아니라 양이지사들의 두 축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에 역공을 가해 [[무츠(은혼)|무츠]]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라는 두 동료를 희생시킨다. 병력은 대부분 소실, 히노카구츠치 발사 저지,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는 침몰 중, 자신은 양이지사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그의 안에서 타들어가는 불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양이지사들이 치른 희생이야 말로 무의미하다고 평가절하했다.
* 그의 말은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자작 제독과 [[도쿠가와 노부노부]]에게도 들렸다. 자작은 호적수이자 동지였던 엔쇼의 타락을 더는 참지 못한다. 그는 엔쇼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일갈한다. 그의 고집대로 싸움을 계속하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나면 대체 무엇이 남느냐고. 엔쇼는 땅에 떨어져 있던 팬던트, 아내의 유품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우리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싸운다. 그 영혼이 정화될 때까지.
>그리고 그대들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서 싸운다.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의 말은 자작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를 잃은 가츠라, 무츠를 잃은 다츠마의 심정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 자작은 정말로 죽어간 동지들이, 그의 아내가 이런 결말을 원하는 것 같냐고 일갈하며 창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엔쇼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모선을 휩쓸고 있는 유폭 현상이 통제실까지 들이닥쳤다. 자작이 본 것은 폭발 사이로 모습을 감추는 엔쇼의 등이었다.
* 엔쇼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통제실을 빠져나간다. 이미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준비는 끝났다. 그는 자작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입장은 밝혔다. 그리고 남겨질 양이지사들에겐 선심도 썼다.
그는 추격을 막으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자작에게 라이트 세이버로 광탄을 날렸다. 통제실이 폭발에 휩쌓인다. 그는 부하들을 선행시키며 이미 이 배는 지구를 향하고 있으니 배에서 탈출하라고 지시한다. 그것이 그 나름의 인정인 걸까?
* 하지만 엔쇼는 예상이나 한 것처럼 양손의 라이트 세이버를 교차해 후방을 찌른다. 빛의 칼끝이 가츠라와 다츠마의 복부와 어깨를 찌른다. 칼날은 그대로 둘을 밀쳐낸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자 엔쇼가 돌아서며 역공을 가한다. 둘은 피하는데 급급하다. 엔쇼의 불이 다츠마와 가츠라의 불을 끌 수 없다면 그 반대로 마찬가지.
* 여전히 엔쇼는 양이지사들의, 지금 여기서 싸우는 영웅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니까. 그는 양이지사들에게 자신이 밉냐고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그들의 동료와 사랑히는 이들을 앗아가지 않았는가. 그 뻔한 질문엔 대답도 필요 없었다.
어쩌면 엔쇼는 양이지사들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적이 있지 않은가? 해방군과 엔쇼라는 적이. 그에겐 적 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미워하기로 했다. 불로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있는 자라면 자기 자신을 태워가며 꺼뜨러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마타코도 자기 자신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매달린 철근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꺾이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철근이 끊기면서 추락하는 마타코.
* 개방된 공간이었던 통제실과 달리 좁은 통로에서는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가 더욱 유리했다. 신축자재에 광탄으로 전환까지 가능했기에 다츠마와 가츠라에겐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다츠마가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며 총을 갈겼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으로 변환해서 대응사격한다. 치명상은 주지 못했지만 왼쪽 허벅지에 부상을 입힌다. 가츠라는 엔쇼가 다츠마를 공격하는 동안 도약해 있었다. 엔쇼는 머리로 떨어지는 가츠라의 내려치기를 오른손 라이트 세이버로 막았지만 무기를 놓친다. 엔쇼가 주춤했다. 가츠라에겐 더할나위 없는 기회였다. 엔쇼의 우측에 착지한 가츠라는 재빨리 우상단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무너진 자세로 무방비해진 엔쇼의 목으로 곧바로 칼날이 닿았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엔쇼의 왼손에는 여전히 라이트 세이버가 들려있었다. 엔쇼는 그 라이트 세이버로 가츠라의 칼날을 쏘아맞춘다. 방해가 되는 자기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빛의 경로가 꺽어지게 해서 겨우 가츠라의 칼날을 저지한다. 부러지는 가츠라의 칼. 엔쇼는 그대로 가츠라의 왼쪽 어깨를 찔러 반대편으로 밀어낸다.
* 승부가 났다. 엔쇼는 가츠라의 공격으로 복도 반대편까지 나가떨어졌다. 게이트를 화려하게 박살내며 떨어진 곳은 탈출용 소형정이 대비 중인 도크였다. 엔쇼를 지나쳐갔던 병력들은 엔쇼가 패하고 가츠라, 다츠마가 추격해오자 경악한다. 병력들은 둘이 다가오는 복도를 향해 총구를 모았다. 그들이 오게 두어서는 안 된다. 탈출을 저지 당하면 자신들도 이 배와 함께 침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탈출하려는 배 위에서, 예상치 못했던 병단이 나타난다. 마타코가 막 구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를 향해 돌격했던 헨페이타의 소형정. 소형정이 목표를 들이받은 순간, 헨페이타의 예상은 빗나갔다. 원인은 모선의 외벽이 생각보다 날림이었거나, 소형정이 너무 튼튼했기 때문이다. 장치를 박살낸 소형정은 계속 돌진해서 외벽을 뚫고 내부까지 진입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헨페이타와 부하들은 자신들도 뻘쭘해하며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들만큼 뻘쭘하게 살아남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삼흉성의 생존자 [[사루가쿠]]. [[바토우]]와 함께 폭발에 휩쓸려 죽은 줄 알았던 그들은 무사히 몸을 피해있었다.
* 악운이 잘도 따른 사루가쿠는 내친 김에 한 사람을 더 구조했다. 큰 사고를 친 것 치고는 꽤 팔팔해서 이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신스케였다. 많은 시체를 밟고 올라온 남자가 마침내 엔쇼에게까지 도달했다.
- 이미연 (배우) . . . . 42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그녀는 1988년 드라마 《[[사랑의 기쁨]]》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하며 연기자로 데뷔하였고 이후 가족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2기》에서 청순하고 소박한 여학생의 이미지를 연기해 대중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로 어필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영화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히트작에 연이어 출연하며 1980년대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끌었다. 1991년 드라마 《[[하늬바람]]》으로 첫 성인 연기를 선보였다.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영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백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반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2000년에는 영화 《[[물고기자리 (영화)|물고기자리]]》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02년 영화 《[[중독 (2002년 영화)|중독]]》으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로 6년여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했지만 흥행에 참패했고, 2010년 드라마 《[[거상 김만덕]]》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인터뷰식으로 최근 모습의 성덕선을 연기함과 동시에 호평이 많았다.
|| [[여자, 남자]] - 그게 아니고
|| [[물고기자리 (영화)|물고기자리]]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영화)|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우리가 여자에게 원하는 것은]]
|| [[세 남자 세 여자]]
* [[1994년]] [[SBS]] 《투맨쇼,두남자와 만납시다》
* 2007년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여자 스타상
* 2003년 제1회 [[앙드레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여자 스타상
* 2001년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
* 2000년 [[씨네21 영화상]] 올해의 여자배우 《물고기 자리》, 《주노명 베이커리》
* 2000년 제3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연기자상 《물고기 자리》
* 2000년 제2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물고기 자리》
|제목=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42회 일치
[[일곱 개의 대죄]] 제 208화. '''엘리자베스 vs 인듀라'''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힘으로 두 십계를 구하겠다고 선언한다.
* 엘리자베스가 힘을 발휘하자 [[데리엘]]과 [[몬스피트]]의 움직임이 단숨에 저지, 그들을 사로잡은 "어둠"의 힘을 몰아낸다.
* 엘리자베스가 따르지 않자 재생을 마친 [[사리엘]]과 [[타르미엘]]을 불러 십계를 공격하게 한다.
* [[멜리오다스]]가 이들의 공격을 저지하고 엘리자베스는 다시 한 번 생명의 가치는 어떤 종족이나 평등하다고 설득한다.
* 뤼드셀은 "그분"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며 멜리오다스를 포함한 모든 십계를 멸하려 하지만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그 명령을 거부, 엘리자베스에 가세한다.
* 두 사대천사의 힘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그 힘으로 두 십계를 지배하고 있던 어둠의 힘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 [[디안느]]와 [[킹(일곱개의 대죄)|할리퀸]]은 상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치하고 있는 괴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멜리오다스]]가 십계가 계약을 통해 변신한 모습, "인듀라"라고 가르쳐준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파괴를 되풀이하는 존재. 디안느는 이대로는 브라타니아가 멸망할 거라고 걱정한다. 멜리오다스는 저들을 막기 위해선 저들의 남은 심장을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뤼드셀]]은 엘리자베스가 나타나자 그녀가 변심해 싸우러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힘을 합쳐 싸우자고 기뻐하나,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꺾은 적이 없다.
엘리자베스의 눈동자의 소용돌이가 차츰 커지는 듯 하더니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가 되어 후광처럼 드리운다. 이 힘은 지금껏 거침없이 날뛰던 인듀라, [[데리엘]]과 [[몬스피트]]를 일시적으로 묶어둘 정도였다.
* 자신의 진정한 힘을 해방한 엘리자베스는 인듀라를 향해 거대한 빛의 화살을 쏘아보낸다. 화살은 둘을 꿰뚫으며 날아간다. 이 힘은 어둠의 힘을 몰아내는 주문으로 뤼드셀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인듀라에게 확실히 타격을 준다. 뤼드셀은 무가치한 십계 따위를 구하는게 제정신으로 할 짓이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십계를 죽여야 여신족에게, 아니 모든 종족에게 위협이 줄어들고 성전의 종결에 다가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킹과 디안느는 그런 모습을 보며 뤼드셀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 이러는 중에도 엘리자베스의 빛의 힘은 인듀라화한 십계로부터 어둠의 힘을 걷어내고 있다. 하지만 인듀라 안에 있는 어둠의 힘이 발악하며 빛의 힘을 밀어낸다. 데리엘과 몬스피트는 더욱 강해지나 인간의 형상을 잃고 기괴하게 변한다. 엘리자베스는 힘의 모자름을 통감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디안느와 킹은 멜리오다스에게 가세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자신이 힘을 쓰면 엘리자베스의 빛의 힘이 상쇄되기 때문에 끼어들 수가 없다.
* 곤죽이 됐던 [[사리엘]]과 [[타르미엘]]이 재생을 마치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뤼드셀은 이런 촌극에 더 어울려줄 수가 없다며 두 사대천사를 불러들여 십계들이 묶여 있는 동안 끝장을 보려 한다. 엘리자베스는 정화의 힘을 유지하느라 뤼드셀을 제지할 수가 없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뤼드셀의 앞을 가로막는다.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에게 감사를 표하고 두 십계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동료가 죽은 것은 자신 때문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그들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숙적인 마신족, 십계에서 정을 줄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타르미엘이 마신족을 구할 가치가 어디에 있냐고 묻자 엘리자베스는 "그런 가치는 누가 정하며 그런걸 누군가가 정해놔도 되는 거냐"고 반박한다.
* 격분한 뤼드셀은 "그 분"이란 존재를 언급하며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누구에게도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다. 뤼드셀은 참지 못하고 타르미엘과 사리엘더러 가세하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두 사대천사가 날아올라 뤼드셀의 좌우에 자리잡는다.
* 그런데 이들이 가세한 것은 뤼드셀 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엘리자베스에게 보태준다. 뤼드셀이 당황하자 사리엘은 그의 말대로 가세하고 있지 않느냐고 조롱한다. 타르미엘은 자기들은 자기들 의지대로 움직이겠다며 뤼드셀과 선을 긋는다. 디안느와 킹은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는데.
* 두 사대천사의 힘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모든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빛의 화살에 집중한다. 화살은 데리엘과 몬스피트를 관통하면서 그들 안에 있는 어둠의 힘을 끄집어낸다. 이윽고 화살은 거대한 어둠의 힘과 함께 산산히 부서져 사라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두 십계는 천천히 지면으로 떨어진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42회 일치
*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항했던 존재는 마신왕과 여신족의 신.
* 양대 최강자에게 도전했다 패배하고 멜리오다스는 저주받고 엘리자베스는 사망,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
* 멜리오다스는 오랜 여행 끝에 처음으로 엘리자베스의 환생을 발견하지만 불과 3일 만에 불행한 사고로 사망하고 멜리오다스는 다시 여정에 오른다.
* 그런 식으로 영원히 헤매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운명.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4일 뒤면 죽을 거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에게 얽힌 3천 년의 진실이 공개된다. 이야기는 다시 성전시대로 거슬러 간다. 두 사람은 각각의 종족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이면서 여신족과 손잡고 동족을 학살한 죄.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이면서도 마신족 남성과 사랑하고 적인 십계를 구한 죄. 이 죄로 인해 둘은 어떤 벌을 받게 된다.
* 경직된 일곱 개의 대죄 단원들 사이에서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조심스럽게 대체 누가 둘을 벌했냐고 묻는다. 그건 물론 주 진영의 최고 지배자였다.
마신족을 다스리는 "마신왕", 그리고 여신족을 이끄는자 "최고신". 성전을 통해 반목과 학살을 주고 받던 두 존재가 한 연인을 처벌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들의 무서운 힘 앞에서는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의 저항도 보잘 것 없었다. 그는 벼락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불려가 싸웠으나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긴다. 죽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
*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며칠이 지나 멜리오다스가 눈뜨기 전까진. 두 신의 공격으로 처참하게 망가졌던 몸이 깨끗하게 회복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살아나지 못했다. 마지막에 본 그대로, 잔인하게 살해 당한 모습 그대로였다. 마지막까지 멜리오다스의 손을 놓지 않았던 것도 그대로. 그는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엘리자베스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그저 오열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이 잠들어 있던 동안 성전이 끝났고 자신의 몸이 나이를 먹지 않게 변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유는 알지 못했다.
* 멜리오다스는 홀로 방황의 길에 오랐다. 그가 아는 거라곤 자신이 잠들어 있던 동안 성전이 끝났다는 것과, 왠지 더는 나이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된 원인도 모르는 채 멜리오다스는 성전의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브리타니아를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 같은 재회가 찾아왔다.
>거기에는 죽었을 터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그저 많이 닮은 타인이 아니었다. 멜리오다스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다시 태어난 엘리자베스라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의 모습이었고 멜리오다스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무수히 걷어차이고 거부 당하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곁을 따랐다. 결국 그의 열성에 엘리자베스가 항복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다.
* 인간의 몸으로 되살아난 엘리자베스는 어느 야만족의 딸이었다. 멜리오다스가 함께 하고 얼마지 않아 그녀의 오른쪽 눈에 여신족의 문장이 발생했다. 그녀는 마치 전생의 힘을 회복한 것처럼 여신족의 치유의 힘을 사용하게 됐다. 그럴 수록 그녀가 역시 엘리자베스의 환생임을 확신하게 된 멜리오다스는 끊임없이 전생의 일을 이야기하며 환생한 엘리자베스를 설득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가 단편적이나마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두 눈 전부에 여신족의 문양이 나타났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말했다. 기뻐하는 멜리오다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어떤 저주를 받은 건지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말하기 앞서 멜리오다스에게 맹세를 요구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설사 자신이 다시 죽더라도 언젠간 이 저주를 풀겠다는 맹세를. 멜리오다스는 영문도 모르는 채 간절한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주를 풀 것을 약속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눈물 맺힌 웃음과 함께 모든 진실을 밝혔다. 그리고 3일 뒤. 엘리자베스가 죽었다. 멜리오다스의 눈 앞에서. 무너진 축대에 찔리는 사고였다.
* 마신왕과 최고신은 힘을 합쳐 무서운 저주를 내렸다. 영원의 삶과 영겁의 윤회. 멜리오다스는 죽음 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그 육신으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인간으로 되살아나 극히 짧은 삶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모든 기억을 잃는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 누가 어떻게 보호해도 그녀는 3일 후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저주가 정말 잔인한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눈물과 함께 두 번째로 엘리자베스를 매장한 멜리오다스. 또다시 길을 떠난다. 저주를 풀기 위한 정처없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유언처럼 남긴 말들이 진실임을 입증하듯, 그는 세 번째 엘리자베스와 재회한다.
* 그들의 진실을 알게 된 단원들은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소리를 죽여가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지난 3천년 동안 107명의 엘리자베스를 만나 106번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봤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안으로 107번 째의 마지막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몇 번을 반복해도 이것 만큼은 적응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이 고통을 끊어야 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마신왕이나 최고신에 필적하는 힘이 필요하다. 앞으로 상대할 [[젤드리스]]가 마신왕에게 빌린 힘도 적당하겠다. [[바트라 리오네스]]가 예견했던 십계의 부활과 대죄의 집결도, 멜리오다스의 입장에서는 이 저주를 끊기 위한 포석들의 하나였다. 그게 결과적으로 단원들을 속이는 게 돼버렸다며 그가 사과했다.
* 멜리오다스가 통곡하려는 디안느를 달래며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환기시킨다. 디안느는 슬플 지언정 그걸 잊진 않았다.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차원의 비틀림을 부숴야 한다. 단원들이 슬픔을 나눠준 것일까? 멜리오다스는 한결 평소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밤이 깊었고 돼지의 모자정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접근하고 있엇다.
- 전소민(배우) . . . . 42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걸그룹 에이프릴의 前 멤버이자 혼성그룹 KARD의 멤버, rd1=전소민(KARD))]
||<#FFB1BC> '''{{{#white 별명}}}''' ||<#ffffff><(> [[개구리]], [[앵무새]][* 쉴 새 없이 수다를 떤다고 해서 부모님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쏘미닝, 전소똥[* 초등학생 시절 별명이라고 한다. 원래 젖소똥이었는데 순화해서 전소똥이라고 한다.] '''돌소민[* 돌아이+전소민이라는 뜻으로, 주로 [[런닝맨]]에서 많이 쓰이는 별명이다.]''', [[불나방]][* [[런닝맨]]에서 물불 안 가리고 게임에 무작정 달려들거나, 더티 플레이를 즐기는 [[유재석]], [[이광수(배우)]], [[전소민]], [[양세찬]] 등을 일컫는 별명], 전어리[* [[런닝맨]] 372회 방영분에서 최약체 [[전소민]]과 [[지석진]]이 한 팀이 되자 [[유재석]]이 붙여준 별명. 전어리와 지석바리.], 쉽사빠, 여자[[이광수(배우)|광수]], 토크지옥[* [[유재석]], [[하하(가수)]]도 감당 못하는 엄청난 수다쟁이], 자석인간[* 숟가락, 국자, 동전 등이 이마에 자석처럼 탁 붙어서 생긴 별명. 심지어 동전을 붙이고, New Face까지 췄다.], 연애검찰, 돌블리, 전소바리, 두릅소녀, 콸라여신, 명랑소녀, 뻥개구리 ||
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현재 소속사는 엔터테인먼트아이엠이며,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2004년 시트콤 "미라클"로 데뷔했다.
2017년 [[한국시리즈]] 3차전 시구자로 선정되어 시구를 하였다.
데뷔 약 10년만에 임성한 극본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의 (오디션을 통해) 여주로 캐스팅되었다. 이 때까지 원 없이 연기해 보고 싶은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원대로 일일드라마의 비중 높은 여주 역을 맡아 고난의 행군과 같은 촬영 분량과 기간을 감내해야 했다. 깡마른 체격임에도 툭하면 날밤을 꼬박새우는 등 한여름 무더위와 살을 에는 추운 겨울까지 밤잠없는 촬영 강행군, 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시간, 종종 끼니마저 컵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좋은 연기를 해내었다. 이 드라마 초반의 풋풋한 모습이 드라마 종반으로 갈수록 제법 성숙한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3년 12월 29일 [[개그 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코너에 출연하여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를 패러디--라고 쓰고 폭풍디스--했다(...) [[http://tvpot.daum.net/mypot/View.do?ownerid=NFCuTYsUzgw0&clipid=55449486|#]] 컵 들고 부들부들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뺨을 때리고 발로 차며 "나, [[오로라(오로라 공주)|오로라]]에요"라질 않나, 스토리랑 아무 상관 없다고 태클받자 "막장 이렇게 하는거 아니에요?"라며 천연덕스럽게 굴고, --[[브라우니(개그 콘서트)|브라우니]]의 탈을 쓴-- 떡대가 ~~암세포~~감기세포=생명이라 말하자 ~~개가 말을 해~~ "[[개소리]]"라며 때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죽자 "왜 나랑 있으면 다 죽는 거야?"라며 디스의 정점을 보여주며 떡대가 죽을 차례가 되자 자기 발로(...) 차고는 "떡대야~ 으흑흑"하며 돌변하는 태도가 압권.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임성한]] 작가한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실제로 [[인어 아가씨]] 주연이였던 [[장서희]]의 경우 "[[임성한]]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방송에서 수 차례 말한 바 있고, 심지어 [[인어 아가씨]]가 막장이 아니라고도 하였다.~~말은 바로 해야지...~~] 이에 소속사를 통해 "드라마는 드라마, 예능은 예능으로 봐달라"며 수습(?)에 나섰다. ~~왠지 진심이 느껴졌었던 것은 논외로 치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422927|#]]
2013년 [[MBC 연기대상]]에서 [[백진희]]와 함께 여자신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황마마]]역의 [[오창석(배우)|오창석]]도 남자신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수상소감에 [[임성한]] 작가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주로 막장요소가 많은 일일드라마와 아침드라마에 출연을 많이하여 --막장전문여배우--[* 대표작인 오로라공주와 내일은 승리가 있다.]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배우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일드 여신(일일극 전문배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58348|출처]]] 특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출연한 막장드라마를 패러디하여 막장여신, 막장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337070|출처]]]
2014년 SBS [[런닝맨]]에 출연하여 특유의 엉뚱한 매력과 몸을 사리지 않는 몸개그로 빵빵 터트리며 부정의 아이콘으로 등극. --절대 죽어도 안돼 무조건 빠질거야-- --유재석 曰"소민아, 너 때문에 광수가 웃길 틈이 없어 지금"-- --여자 이광수--
2015년 MBC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엉성한 문워크와 '자석인간'[* 이마에 동전과 숟가락을 붙인다. 그런데 웬만한 사람은 다 되는 개인기.]이라는 황당한 개인기를 선보이며 내숭 없는 털털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캐릭터 또한 특이한데 굳이 비슷한 연예인을 들자면 노홍철의 돌아이스런 면모와 이광수의 트롤링, 박나래식의 섹드립에 무맥락 드립과 애드립을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이다. 의외로 눈썰미가 좋아서 영화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상황극에 능하다. 인생술집에서는 김희철에게 [[박나래]]를 능가하는 강캐로 평가받았고 [[장도연]]이 인증했다.
|| tvN || [[하백의 신부 2017]] || 귀여운 정신과 환자 || 특별출연 ||
* 2016년 MBC 능력자들 28회
* 2017년 skyTravel 《나 혼자 간다, 여행 여배우 특집편, [[프랑스]] [[파리(도시)|파리]]》 3-4회
|| || 미스터 피자 || 식품 ||
|| NH 생명화재 행복자산플랜 [br] [[http://m.pann.nate.com/video/219508150|영상]] || 보험 ||
|| 맛나 감자탕 [br] [[https://youtu.be/yrmC9P4pOaI|영상]] || 식품 ||
|| 2013 || [[MBC 연기대상]] || 여자 신인상 || 오로라 공주 ||
|| 2014 || 제9회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어워즈 || 여자 신인상 || 오로라 공주 ||
||<|2> 2017 ||<|2> [[SBS 연예대상]] || 버라이어티 부문 여자 신인상 ||<|2> 런닝맨 ||
- 정용화 . . . . 42회 일치
| 한자명 =
| 직업 = [[가수]], [[기타리스트]], [[배우]], [[사회자|MC]]
'''정용화'''([[1989년]] [[6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FNC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성 4인조 [[음악 그룹|밴드]] [[씨엔블루]]의 리더이며 메인보컬, 랩, 기타, 건반을 맡고 있다.
정용화는 1989년 6월 22일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ref name="mynameis">{{뉴스 인용|제목=정용화│My name is…|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873|출판사 = 텐아시아|저자 = 최지은|날짜 = 2009-12-01|확인날짜 = 2014-04-05}}</ref> 제주를 다녔으며, 자신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ref name="mynameis"/> 데뷔 전 스키장 [[얼짱]]으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하였다.
* [[2009년]] [[12월 6일]]부터 [[2010년]] [[3월]]까지 [[문화방송|MBC]] 《[[우리들의 일밤|일요일 일요일 밤에]] - [[헌터스]] : [[헌터스|에코하우스]]》를 시작으로 예능활동을 시작하였다. [[2010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문화방송|MBC]]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 2》에 고정출연하였고, [[2010년]] [[7월]]부터 [[2011년]] [[3월]]까지는 [[SBS]] 《[[인기가요]]》 [[사회자|MC]]를 맡았다.<ref name="ingi">[http://seoulntn.com/cindex.php?c=news&m=view&idx=41989 정용화-조권, '인기가요' 새 MC 발탁..'관심집중'], 《서울신문NTN》, 2010년 7월 18일 작성.</ref> 또한, [[2009년]], [[2010년]] 2년 연속 《[[SBS 가요대전]]》 MC로 활동하였다.<ref name="gayo1" /><ref name="gayo2" /> 이러한 고정 출연 외에도 [[황금어장]], [[런닝맨]] -게스트로 최다출연기록을 세웠다, [[강심장]], [[명받았습니다]], [[승승장구]], [[놀러와]], [[해피투게더 (텔레비전 프로그램)|해피투게더]], [[청춘불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 [[2010년]] [[9월 15일]]에는 [[일본]]에서 두 번째 싱글 ''[[I don't know why]]''를 발매하였는데, 정용화의 자작곡 "I don't know why"는 [[오리콘]] 싱글차트 데일리 8위,<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싱글 日 오리콘 8위 진입 ‘쾌거’|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917094222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0년]] [[9월 17일]]}}</ref> [[오리콘]] 인디즈 차트 주간 1위를 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새 싱글 'I don't know why'로 오리콘 차트 1위|url=http://autotimes.hankyung.com/apps/news.sub_view?popup=0&nid=81&nkey=90590|출판사 = 오토타임즈 |날짜 = [[2010년]] [[9월 30일]]}}</ref>
2012년 8월 21일 인사동 자선 행사에서 정용화.
* [[2012년]] [[2월 1일]]에 일본에서 두 번째 싱글앨범인 ''[[Where you are]]''를 발매하였고 타이틀인 "Where you are"를 작사 및 작곡하고 "feeling" 작사 및 작곡, "Where you are(Inst.)"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하루에 3만 2천여장이 나갔고 ''[[Where you are]]''는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日오리콘 차트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20208385422373&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2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아시아 대세 씨엔블루, 두 번째 싱글 ‘웨어 유 아’로 오리콘 차트 1위|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202020838404&sec_id=540101&pt=nv|출판사 = 스포츠경향|날짜 = [[2012년]] [[2월 2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록 한류' 통했다..인디서 日오리콘까지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20715142874966&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7일]]}}</ref>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상 반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반응 폭발…컴백 기상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상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2012년]] [[7월 30일]]에 본인이 모델로 있는 T.G.I프라이데이스 브랜드송을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T.G.I프라이데이스 브랜드송 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731021547&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7월 31일]]}}</ref>
* [[2012년]] [[7월 30일]]에 같은 소속사 가수 AOA의 데뷔앨범에 자작곡 'Love is only you'를 선물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AOA (음악 그룹)|AOA]]에 자작곡 'Love is only you' 선물…'종횡무진 활약'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45461 |출판사= 엑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7월 27일]] |확인날짜= 2012-11-2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9230835/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45461 |보존날짜= 2013-01-29 |깨진링크= 예 }}</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걸그룹 AOA 지원사격..자작곡 선물로 '실력 입증'|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48643|출판사 = TV리포트|날짜 = [[2012년]] [[7월 28일]]}}</ref>
* [[2012년]] [[8월 28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린 일본 후지TV 여름 야외공연 '메자마시 라이브'에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메자마시 라이브 성황…'타임 이즈 오버' 최초 공개' |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830.990011130485442|출판사 = 영남일보|날짜 = [[2012년]] [[8월 30일]]}}</ref>
* [[2012년]] [[11월 2일]]에 KBS에서 진행된 《MUSIC BANK IN CHILE》에서 본인의 솔로로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와 함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스페셜 무대를 꾸몄는데, 이 곡 편곡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 출연자가 무대에서 부른 ‘아리랑’의 편곡도 맡아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편곡자로 실어 눈길을 끌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소식에 네티즌 호평 "진정한 싱어송라이터"|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239010§ion=sc4|출판사 = 브레이크뉴스|날짜 = [[2012년]] [[11월 18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전 출연진 열창 순서에 자막 ‘편곡:정용화’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10월 23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ref>
* [[2013년]] [[1월 14일]]에 본인 자작곡을 타이틀로 하여 씨엔블루 4번째 미니앨범을 발매하였다. 수록곡 6곡 중에 한곡을 제외한 나머지 5곡이 본인 자작곡이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틀-오해-선입견 벗고 우리 길을 간다 |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310166|출판사 = tvreport|날짜 = [[2013년]] [[2월 14일]]}}</ref> 음원이 발표되자 마자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ref>
|"나란 남자" 작사 및 작곡 및 편곡
|제목 = 정용화 아리랑 편곡 화제 ‘MC+가수+편곡자’ 1인 3역 “능력자 맞네"
| 남자 인기상
[[분류:씨엔블루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2009년 데뷔]][[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사이버대학교 동문]][[분류: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진창현(음악인) . . . . 42회 일치
陳昌鉉. [[재일 한국인]] [[현악기]] 제작자.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봤고, [[경찰|순사]]가 될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교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학교]] 과정을 끝마치기 위해 [[후쿠오카]]로 건너가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고학을 했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남아서 계속 육체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이후 [[요코하마]]로 옮겨가 [[인력거]]를 몰면서 학비를 모아 [[메이지 대학]]의 영문과 야간학부에 입학했다. 여기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당시 조선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 때문에 일본에서는 교사로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 재학 중에 [[제로센]] 설계자였던 이토카와 히데오가 대학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에 대해 음향학적으로 고찰하는 강연회에 참석한 뒤, 현악기 제작자로 장래 희망을 바꾸었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 찾아간 일본 현악기 장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나가노]]의 기소후쿠시마 쵸에 있던 스즈키 바이올린 공장에서도 입사를 거절당해 근처 공사장에서 채석과 벌목 같은 거친 노동을 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 와중에 현악기 제작에 필요한 양질의 목재를 감별하는 법을 익혔고, 목재를 바이올린 공장에 팔고 공장의 제작 과정을 어깨너머로 봐가면서 바이올린 제작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이후 공사장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막일과 바이올린 제작을 병행했고, 아내의 제안으로 [[도쿄]]에 가서 악기 매입을 시도했다. 이 때 도호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바이올리니스트 시노자키 히로츠구(篠崎弘嗣)[* 스즈키 신이치와 함께 일본 현악 교육의 거물로 손꼽히는 인물로, 자신의 성을 딴 바이올린 교본도 만든 바 있다. 한국에서도 현악기 초심자들이 흔히 접하는 것이 스즈키 아니면 시노자키 교본.]가 어린이 교육용 악기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후 도호학원을 위해 정기적으로 바이올린 제작과 납품, 수리를 시작했다.
1961년 가을에는 학원과 비교적 가까운 도쿄의 마치다 시로 이사했고, 약 1년 뒤 초후 시의 센가와로 다시 이사해 바이올린 공방을 만들어 악기 제작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후 교육용에서 성인용으로 악기 제작 영역을 넓혔고, 바이올린 외에 [[비올라]]와 [[첼로]]의 제작도 시작했다. 악기 제작으로 어느 정도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자 1970년에는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동생의 명성을 시샘했는지 이복형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허위 신고를 하면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범죄)|고문]]을 받다가 [[일본 경찰]]의 신원 보증이 있은 다음에야 풀려나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오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자작 현악기들로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악기상들의 관심을 모았고, 1974년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진창현: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76년 12월에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The Violin Society of America) 주최의 제2회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 참가해 여섯 개 부문 중 바이올린 세공 부문, 비올라 세공/음향 부문, 첼로 세공/음향 부문에서 [[http://www.vsaweb.org/Previous-Conventions|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세계구급 제작자로 명성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Chang Heyern Jin이라고 표기된 수상자가 바로 진창현이다.] 1984년에는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에서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Hors Concours)[* 다른 악기 제작자나 감정가의 감사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악기를 제작/판매할 수 있는 장인이라는 뜻.] 자격과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 칭호를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백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상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80대에 접어들며 아들들에게 가업을 물려준 뒤에도 계속 공방에서 악기 제작을 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2012년 2월에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투병 중이던 5월 13일에 초후의 자택에서 향년 83세로 타계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 제2회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 다섯 개 부문 금메달 (1976)
*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 무감사 제작자 자격과 마스터 메이커 칭호 (1984)
*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아마티]], [[과르네리]] 등 전설의 명기가 가진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이 악기들을 소유한 수많은 명연주가들이 내일 공연을 했을 때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악기의 본을 뜨거나 직접 켜보거나 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훗날 일본 언론에 연재되었고, 한국에 출간된 구술 자서전 후반에도 나온다.
* 혼자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막노동과 바이올린 제작으로 소일하다가 [[1961년]]에 일본인 여성 나미코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 진창호와 차남 진창룡은 각각 현악기 제작자와 현악기용 현 제작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자서전에 의하면 바이올린 제작을 위한 연장들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게를 보고 있던 나미코를 처음 만났다고 하며,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처음에는 결혼 승낙을 받기 어려웠지만 예전에 근무했던 건설 회사 사장이 장인에게 사위의 인품을 칭찬해 주면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미코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식으로 이남이(李南伊)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일본인임에도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이카와는 교편을 잡으면서 병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불과 2년 뒤 현역병으로 소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창현은 이후 일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성공한 뒤 아이카와의 친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기도 했고, 죽기 직전까지 [[사이타마]]의 혼조 시에 있는 아이카와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서도 꽤 비중있는 인물로 나온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1970년]]의 한국 방문에서 당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자서전에도 그 경위를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충 조사를 마무리지은 뒤 회식비를 자신에게 모두 떠넘겼다거나 1976년에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다시 귀국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위조품으로 간주되어 반입 불가를 당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념적 재단 같은 편파적인 잣대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국민훈장을 수상하면서 공식적으로도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말년에는 한국 언론들과 자주 인터뷰나 대담 등을 가지기도 했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언론과 접촉한 것도 타계 열흘 전인 5월 3일에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 병상을 찾았을 때였다.
- 차선우 . . . . 42회 일치
||<:> '''신체''' ||<(> 175cm, [[B형]][* 팀내 유일무이], 발사이즈 255mm[* 남자치고 작은 발 사이즈. 그래도 발도 손처럼 예쁜 편이다. ~~하지만 무시할수없는 발냄새~~ ~~발에 땀이 많아 슬픈 바로~~], [br] 악력 - 40.6kg, 허리사이즈 31인치 ||
||<:> '''취미''' ||<(> 그림그리기[* 아이돌 사생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시기는 정규 1집 리패키지.], ~~잘 믿기지는 않다만~~독서, ~~복근자랑~~[* 2012년에는 막 벗어재꼈지만, 점점 안 벗기 시작했다.] ||
||<:> '''SNS''' ||<(> [[https://twitter.com/BARO920905|트위터]][* 11월 중순, 드디어 '''팔로워 70만을 넘겼다!!''' ~~근데 [[공찬]]이 더 많다 71만~~ 깨플때 팔로워 수를 높이려고 고군분투 했던 짓을 떠올리면... 2015년 3월 기준으로 72만을 넘겼다. ~~[[공찬]] 역전?!~~ [[공찬]]을 역전하고 트위터 팔로워 수 1인자로 거듭나나 싶더니 [[공찬]]은 '''74만(...)''' ~~[[바로]] [[지못미]]~~][br][[http://instagram.com/baroganatanatda#|인스타그램]][* 어느 날, 계정이 멀쩡히 있는데 새로운 계정을 파고는 그 계정만 사용했던 이유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2015년 4월 부로 비밀번호를 다시 찾았다.][br][[http://instagram.com/baroganatanatda2#|인스타그램 2]] ||
팀에서 데뷔 초부터 분위기 메이커로 불렸다. 덕분에 별명이 차나댐. 혹은 나대미. 현재에는 보통 후자로 불리곤 한다. 나대미 기질이 폭발할 때는 외계어를 발사할 때. ~~혹은 [[홍빈|초코]]를 [[https://youtu.be/YkygSRI9Fr8?t=2m46s|놀릴 때]]~~ 그런데 갈수록 기복이 심해지고 조용해져서 캐릭터가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무대에서는 그 누구보다 더 잘 논다. 콘서트 때마다 다이나믹하게 물을 뿌리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다면 필히 조심해야하는 멤버(...).
B1A4의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수록곡 일체의 랩메이킹을 담당'''. B1A4 일본어 번안곡의 J-RAP 파트 역시 그의 작품일 정도로 랩메이킹이 상당히 익숙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한 편. G.DRAGON급의 레전드 작곡돌을 제외하고, 아이돌이 자작곡과 작사로 다작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비판 역시 따라오는 법이라, 제일 잘 만든 한두 곡을 발표하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전곡 랩메이킹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다른 아이돌 그룹의 ~~부심쩌는~~ 래퍼'들'과는 비교 범주 자체가 다르다.
랩 실력은 미지수. 라이브에서의 호흡마저 불안한 편이었으나 매력적이고 독특한 저음과[* 음악에서 음색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독학으로 새로운 랩 스타일을 꾸준히 시도하는 모습은 발전 가능성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랩을 잘해도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없다면 진정으로 랩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바로는 스타일만큼은 확실한 편. 소프트 랩이 주 장르이나 톡톡 튀는 랩까지도 무난하게 소화한다. 스스로 많이 연습하는지, 해가 갈수록 라이브에서의 랩이 안정적으로 굳어졌으며 랩 메이킹은 주로 그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곡의 주제를 축약해 담는 등 곡에 맞게 쓰는 편이다. 래퍼답게 힙합을 좋아하는 듯 하나 경연프로그램에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고 음반도 발매한 적 없으니 아직까지는 아이돌 래퍼에 머무는 포지션.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은 바로가 신인 축에 속했었던 11~13년에는 스스로 전곡 가사를 쓰는 아이돌 래퍼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힙합 커뮤니티에서도 진영의 자작곡과 더불어 바로의 자작랩도 꽤 호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돌 래퍼가 가사를 쓰는 2018년에는 자작랩으로서의 희소성은 옅어지고 랩 실력도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아 래퍼로서의 강점을 많이 잃어버린 편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인만큼 아이돌 노래의 래퍼로서 랩의 완성도와 안정감은 보장받는 수준이 되었다. 최근 아이돌 음악에는 랩이 너무 튀어 곡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의 랩은 진영의 작곡과 산들의 가창력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b1a4의 음악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이란 평도 있다.
||<:><|2> '''B1A4''' 1st Album Repackage [br] 《'''THE B1A4 I IGNITION EPECIAL EDITION'''》 ||<:><|2> [[5월 24일]] ||<:> '''01''' ||<:> '''잘자요 굿나잇''' ||
[[B1A4]]가 자주 출연했던 <식신로드>에서 한동안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그 때 외모는 리즈 중의 리즈를 달성했다.[* [[B1A4]]의 깨알플레이어 촬영 시기와 겹친다. 깨플 촬영시기 또한 바로의 최대 [[리즈 시절]]. ~~아기참새 머리 빼고~~]
<[[문화방송|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1년|추석특집 제3회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100m 은메달''' 수상했다. 이 기회로 [[B1A4]]는 몰라도 바로는 아는 사람이 늘었다. 본인은 한우를 사주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열심히 뛰었다고.
<[[문화방송|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2년|설날특집 제4회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준(제국의아이들)|김동준]]을 제치고 '''남자 100M 금메달 수상!'''
<MBC 런던 올림픽 기념 아이돌 스타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조권]]을 제치고 '''남자 100M 은메달 수상!'''을 하였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 364회에 출연하여 ~~무턱 탁자에 올라가 서서~~ 허벅지가 굵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산들]]이도 디스하고~~[* MC들의 [[산들]]보다 잘 생기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하다가 '산들이보단 제가 낫죠'라며 막판에 진심을 드러냈다.]
8-9월 중, 응사의 인연으로 [[유연석]], [[손호준]]과 [[꽃보다 청춘]] [[라오스]] 특집에 함께 출연했다. [[라오스]]로 떠나 ~~거지가 되는~~자유롭게 노는 모습과 바로의 진지한 속내를 엿볼수 있다. [[꽃보다 청춘]] 역시 꽃보다 시리즈에 이어 대박을 터뜨렸다.
[[정글의 법칙]] with 프렌즈 특집에 고정 출연해 [[팔라우]]로 떠났다. 주제가 친구와 함께 떠나는 [[야! 신난다~|신나는]] 정글 탐험이기에 [[손호준]]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때때로 안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촬영 내내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기도. ~~[[BL|여자들의 반응]]에 [[게이|남자들은 기겁]]을 했다~~
103회 [[이을용]]의 제자들과 족구하러 가서 몸풀기로 ~~축구를 잘한다는 바로를 띄워주기 위한 의도까지 포함된~~ 풋살을 했는데, 초반에 안정환으로부터 패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
그동안 방송에서 조금이나마 뭔가 하면 자막과 배경음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제작자들이 잘 띄워주기 때문에, 바로를 보기 위해 시청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시청하기 좋다. ~~하지만 분량이...~~ ~~특히 머리 내린 날은 잘생겨서 움짤이 마구 터졌다~~
9월 25일자 기사로는 10월 21일에 첫방송된 tvn [[할매네 로봇]]에 배우 [[이희준]], 개그맨 [[장동민]]과 출연하게 되었다.
||<:> 드라마 ||<:> [[tvN]] ||<:> [[응답하라 1994]] ||<:> 빙그레 (김동준) 역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뜰 연예인은 뜬다]]''' [* '빙그레' 역할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연기도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평이였고, 다만 극중 충청도 사투리는 어색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아무리 봐도 호평을 주긴 힘들었고 여러 명장면일 수 있던 장면들이 있었으나 잘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 또한 강하다. ~~그래서인지 극중 후반부로 갈수록 사투리 없이 표준어를 쓰며 연기를 하였다.~~ 바로의 말로 중반부터는 빙그레의 고향인 충북 괴산면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드라마도 상당한 수작이였으니 귀중한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응답하라 1994]] 항목 참조.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B1A4의 대중성을 높였다. 하지만 광고는 못찍었다. 대신 응사 덕을 톡톡히 봐서 정규 2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담이지만 B1A4 멤버들이 자신의 연기를 신경 써주기보다는 남편 찾기에 혈안이 되있어서 씁쓸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
||<:> [[2014년]] ||<:> 드라마 ||<:> [[SBS]] ||<:> [[신의 선물-14일|신의 선물 - 14일]] ||<:> 기영규 역 ||<:> 6세 지능아 연기 도전 [* 6세의 정신연령을 가진 '기영규' 역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으로 첫 지상파 드라마에 진출했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더 자연스러운 지적장애인 연기를 보여줬다.] ||
- 츠츠모타세 . . . . 42회 일치
이 단어는 "[[부부]]나 내연 관계에 있는 남녀가 공모하여, 남자가 '아내' 혹은 '정부'에게 다른 남자를 유혹하게 하여, [[간통]]을 저지르고, 그것을 명목으로 하여 그 남자에게 돈을 뜯어내게 하는 [[사기]] 행위"를 뜻한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 나타난 츠츠모타세(筒持たせ)라는 단어에, [[중국]] [[원나라]] 시대에 쓰여진 『무림구사(武林旧事)』에 소개된 「미인국(美人局)」이라는 한자어가 결합되어 「미인국(美人局)」이라고 쓰고 「츠츠모타세」라고 읽는 은어가 만들어졌다. [[에도 시대]] 무렵에는 지금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인국(美人局)」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쓰여진 『무림구사(武林旧事)』라는 책에 수록된 나오는 범죄 행위의 일종이다. 무림구사에서는 "[[창녀]]가 남자와 짜고 [[소년]]이나 [[청년]]을 유혹하고, 나중에 남자가 그 창녀를 자신의 [[아내]]나 [[첩]]이라고 속여서 돈을 뜯어낸다."는 의미였다.
1768년에 간행된 소화본(笑話本)[* 소화(笑話)는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유머 이야기 책이다.] 「카루구치하루노야마(軽口はるの山)」[* 카루구치는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의 제4권에 「츠츠모타세(筒もたせ)」라는 농담이 있다. 이는 짧은 이야기로서, 돈이 쪼들리는 남자가 친구들에게 잘 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츠츠모타세를 해보라는 말을 듣고, 아내를 설득하여 근처에 사는 젊은이를 유혹하게 하여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 「간통남 봤다(間男見つけた)」고 외치며 벽장에서 뒤쳐나오려고 했으나, 그만 [[말실수]]를 하여 「츠츠모타세, 봤다(筒もたせ、見つけた)」고 소리쳐버렸다는 농담이다.
에도 시대의 라쿠고 코마쵸우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난하고 빚이 많은 쵸하치(長八)라는 남자는 빚쟁이 타케하치(丈八)를 상대로 츠츠모타세를 걸려고 한다. 과거 쵸하치의 아내 오코마(お駒)는 타케하치와 사귀었으나, 쵸하치가 빼앗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쵸하치는 타케하치가 아직 자신의 아내에게 미련이 있다고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쵸하치는 오코마를 시켜, 타케하치에게 연애편지를 쓰게 한다. 편지를 본 타케하치가 집에 오자, 쵸하치는 오코마와 부부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타케하치를 몇 대 때린 다음 이런 여자는 너에게 준다고 큰 소리를 치고 집을 떠난다. 그 다음에 오코마가 타케하치를 유혹하게 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들어와서 [[부엌칼]]을 들이대고 현장을 잡은 다음, 빚을 무효로 하고 오히려 타케하치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반은 예정되로 되었으나, 쵸하치가 집을 뛰쳐나와서 안심하고 술을 마시고 잠들어 있는 동안, 타케하치는 자신과 함께 살면 [[기모노]]도 사주고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 말을 듣고 가난한 데다가 자신을 사기에 끌어들이는 쵸하치에게 질려버린 오코마는 저런 남편과 살면 평생 고생을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 타케하치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별 편지를 쓰고 떠나버린다.
다음날 아침, 쵸하치는 [[부엌칼]]을 들고 집에 뛰어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오코마는 타케하치와 함께 가재도구를 챙겨서 떠나버렸다. 쵸하치는 텅 빈 집에서 오코마가 자신을 비웃고 욕하는 이별 편지를 남긴 것을 발견하고, 분노하여 부엌칼을 휘두르며 뛰쳐나왔으나, [[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아호오(바보) 아호오(바보)」하고 울어대며 끝난다.
과거에는 [[간통]]이 범죄였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합의]]를 요구하는 형태였으나, 간통이 비범죄화 된 이후로는 [[위자료]]를 요구하거나 [[협박]]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범죄 행위가 드러나는 경우는 [[공갈]], [[사기]]로서 처벌받게 된다. 하지만 공모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현대의 츠츠모타세는 데이트 사이트나 전화방, [[SNS]]를 통하여 먹이감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흔히 있다. 과거에는 성관계를 가지기 직전이나 직후에 [[호텔]]에 나타나서 "[[불륜]]에 [[위자료]]를 청구하겠다." 등의 [[협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대에는 [[호텔]]에서 [[피해자]]의 [[신분증]]이나 [[휴대폰]]의 번호를 알아내서 이를 차후 연락 수단으로 사용하며, 성관계 장면은 [[몰래 카메라]] 등으로 촬영하여 확보한다.
[[원조교제]], [[아저씨 사냥]]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 여성을 18세 이상으로 속여서 만남을 가지게 하는 등 츠츠모타세에 이용하고,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로 [[경찰]]에 신고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부인]]에게 알려 [[가정]]을 파괴하고,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준다." 등의 [[협박]]을 가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이 법률을 위반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있다. 만나게 된 여성이 자신이 아는 가게에서 마시자면서, 바가지를 씌우는 가게로 데려가는 것이다.
남성이 개입하지 않고, 여성 자신이 [[1인 2역]]을 하여, 남성 자신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고 인터넷 연락으로만 위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데이트 사이트와 츠츠모타세가 결합하기도 하는데, 데이트 사이트에서 젊은 여성이 제안을 해오고 그걸 받아들이면, 웹사이트 운영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여 그 사람은 18세 미만이었다고 연락하고, 경찰서에서 [[IP]]와 로그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당신이 체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협박을 가한다. 그리고 비용을 부담해주면 IP와 로그를 [[위조]]해서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하여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애초에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므로,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과 만나거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만나서 성관계를 맺고자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전하는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빨리 만나서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인 경우가 많다.
인기가 많은 여성은 데이트 사이트 같은 것을 이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그런 사이트에 올릴 사진을 일부러 전문가에게 찍어달라고 할 이유도 없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자신이 지정한 포즈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이 알려져 있다.
이 경우는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데, 돈을 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성도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 여성은 돈을 받는 쪽이며,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적지 않으므로 외모가 그리 좋지 않은 여자도 돈을 쓰면서 까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려 할 가능성은 낮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고 방범 의식이 높기 때문에, 처음 보는 대다가 친하지 않은 남자를 집에 불러들이지 않는다. "호텔비가 아깝다."같은 말을 하면서 집에 불러들일 경우, 그 집에서는 남편이나 남친을 자칭하는 남성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 [[호텔]]을 지정하거나, 약속장소에서 자신의 차에 태우는 경우
이미 공범이 기다리고 있는 호텔이나, 자신의 테리토리에 들어오게 하려는 목적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의심하는 거이 좋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42회 일치
||<:> [[최민식]][br]([[명량]]) ||<:> {{{+1 → }}} ||<:> '''황정민[br]([[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 {{{+1 → }}} ||<:> [[이병헌]][br]([[내부자들(영화)|내부자들]]) ||
||<#6495ed> {{{#white '''가족'''}}} ||배우자 [[김미혜]][*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뮤지컬제작자로 샘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동생 황상준, 아들 황서현 ||
'''대한민국 영화계의 굵직한 강타자.'''
[[전도연]]과 함께한 《[[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으로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때 수상 소감 발표였던 이른바 '밥상론'은 이후 수많은 곳에서 회자되는 명대사. 한편 수상 소감으로 전도연에게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2015년에도 가장 호흡이 좋았고 기억에 남으며 또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여배우로 전도연을 꼽았다.]라고 말해서 아내에게 혼났다고. 아내에게는 황정민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운명보다 기적이 더 좋다고--
영화 배우로서는 주로 《너는 내 운명》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순박한 청년 역을 맡아 왔으나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두목, 《[[사생결단#s-3|사생결단]]》에서 건들거리는 형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사생결단》 이후부턴 몇몇 영화에서 흥행 부진을 맛보았으나 《[[부당거래]]》, 《[[댄싱퀸(영화)|댄싱퀸]]》, 《[[신세계(영화)|신세계]]》 등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키워가더니,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베테랑(영화)|베테랑]]》 두 편 모두 천만 명 돌파라는 연타석 홈런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충무로 에이스로 탈바꿈하였다. 게다가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에서 750만 명 정도를 추가로 끌어모아 2015년 한해만 해도 3천만 관객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천만배우라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자기에게는 의미없고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평소에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씨네21 인터뷰- ] 연타석 홈런을 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고보는 황정민'''이라는 뜻으로 '''믿보황'''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송강호]]에 앞서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성기노출을 감행한 [[용자]]이며, [[아수라(영화)|아수라]]에서도 노출을 감행하면서 연기를 위해서 어떠한 장면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들을 낳으면서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절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2012년에는 뮤지컬 어쌔신을 직접 연출하며 연출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2015년 겨울에는 뮤지컬 《오케피》의 주연인 지휘자역 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맡았다.
* [[두산 베어스]] 팬으로, 어릴 때부터 [[OB 베어스]] 팬이었다고 한다. 두산팬들 사이에서는 생긴 것부터 오비아재라고. 잠실구장에서 올드 모자를 쓰고 직관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 무한도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못친소]]에 초대되었지만 오지 않았다. [[1박 2일]]에 잠깐 비춰졌을 때 [[김승우]]가 이를 언급하며 놀려대자 오랫동안 삐 - 소리를 내며 쌍욕을 퍼부었다.
* ~~상당한 의리남이다~~ [[김제동]]은 신년특집 MBC스페셜에 출연해 “황정민, [[박건형]]과 소주를 먹게 됐다. 옆 테이블에 술이 많이 취하신 분이 시비를 걸었다. ‘연예인 별 거 아니네. 못생겼네’라고 하자 누구를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황정민이 벌떡 일어나 ‘우리 제동이 욕하지 말라’고 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 촬영 당시에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이 천만을 넘겨서 축하파티로 《히말라야》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회식을 쐈다고 한다.[* 현장토크쇼 TAXI 인터뷰와 해피투게더에서 언급이 되었다.] 영월에 있는 제일 비싼 고기집에서 파티를 했다는데 무려 12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고 한다.[* 여담으로, 회식 초대할 때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믿은-- [[김원해]] 는 가족들 모두 데리고 참석했지만 정작 가족들까지 참석한 건 자기뿐이었다고...]
* 2016년 1월 29일에 인터뷰를 했는데 대표 연기파 배우로 인식되어 있는 사람이 무려 '''연기력에 자신 없다. 드라마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밝혀 베댓창이 드립으로 난무하는 중(...) --박지성: 축구에 자신없어 축구 잘하는 사람이 해야, 김연아: 피겨 자신없어 피겨 잘하는 사람이 해야-- 희대의 망언에 올랐다는 반응이 많다[* 아마 [[쪽대본]]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다. 쪽대본 때문에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는 고충은 많은 배우들이 토로한 바 있으니 마냥 망언만은 아닌 셈]. --아이돌 드라마 주연 의문의 1패--[[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250242|#]]
* [[빅뱅(아이돌)|빅뱅]] 특히, [[지드래곤]]의 팬이라고 한다. 2013년 [[지드래곤]]의 콘서트에서 왕관 머리띠를 한 것이 포착되는가 하면, [[박경림]]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3월달에 하는 빅뱅 콘서트 티켓팅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강동원이 YG에 들어가서 콘서트 티켓을 부탁 해본다고 한다.] --마지막 곡 선곡을 [[지드래곤]]의 Heartbreaker로 선곡했다.--[* 자신은 최근의 노래보다 초창기 노래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줄 알았으나 그 후에 있었던 빅뱅 콘서트에 참석했다는 사진이 올라왔다.
* 눈동자색이 고동색이 아닌 밝은 황갈색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보물같은 눈동자라고 불린다.
* 서울예대 한 학번 선배이자 동갑인 탤런트 [[장현성]]과는 데뷔 동기로, 둘 다 영화 《[[쉬리(영화)|쉬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석규]]를 취조하는 역할로 나온다.
* [[갑분싸]]의 뜻을 '갑자기 분뇨를 싸지르다'로 알고 있었다. [[공작(영화)|공작]] 출연 배우들과 인터뷰를 하다가 갑분싸의 뜻을 맞히는 게임을 했는데, 다른 배우들은 갑분싸의 뜻을 다 맞혔는데, 본인만 [[https://tv.naver.com/v/3832200|다르게 알고 있었다고]]
* 아내가 출산을 할 때, 황정민은 '출산은 축복'이라는 이유로 이를 즐기자며 음악을 틀었다고 한다. 게다가 선곡한 노래가 [[https://youtu.be/Lrle0x_DHBM|Let's Groove]]란 노래로 상당히 방정맞지 못한 곡이어서 고통스러워 하던 아내가 욕을 하며 내쫒았다고.
2015년 12월 16일 개봉작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 포스터로 인증샷을 찍는 '황정민 놀이'가 있다. 포스터의 적절한 사이즈에 헤어스타일, 성별 상관없이 미칠듯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정유미(1983년)|정유미]](왼쪽 위)를 시작으로 시작된 열풍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2014||<:>[[남자가 사랑할 때(영화)|남자가 사랑할 때]]||한태일||주연||197만명||성공||
||<:>2009||<:>[[그림자 살인]]||홍진호||주연||191만명||손익분기||
- 금조(나인뮤지스) . . . . 41회 일치
||<#732788> {{{#FFFFFF '''신체'''}}} ||<(> 167cm[* 여자로서는 키가 제법 큰 편이지만 나인뮤지스에선 ~~류세라를 이어받아~~ 역대 최단신을 맡게 되었다(...). 금조와 키가 똑같거나 비슷한 타 그룹의 멤버들로는 [[설현]]이나 [[손나은]],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였던 [[유니스(DIA)|유니스]] 등이 대표적으로 팀 내에서 장신인 멤버들이다. ~~이것이 모델돌의 한계.~~], 48kg, [[AB형]] ||
그동안 [[나인뮤지스]]의 막내를 담당했던 [[혜미]]와 [[박민하(1991)|민하]] 대신에 새롭게 막내를 맡게 된 멤버이다. 같은 날 새 멤버로 들어온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는 각자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소금' 라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9MUSES S/S EDITION]] 쇼케이스와 중간중간 비춰지는 비하인드 및 인터뷰 영상에서 데뷔 초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고 활달한 모습을 보아 [[나인뮤지스]]에 잘 적응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쇼케이스에 어머니가 오셨다. [[나인뮤지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과 쇼케이스를 하고 어머니를 본 것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잠시 눈시울을 붉힌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금조 : 엄마 안녕~ [[이유애린]] : 어머니 금조가 이런애에요~--
[[소진(나인뮤지스)|소진]], 여자매니저와 같이 숙소생활을 하다가 [[나인뮤지스A]] 활동을 하면서 이사를 갔다.
[[나인뮤지스]]로 알려지기 전 소속사 선배인 [[V.O.S]]의 <[[http://youtu.be/axeDOQGccdg|반대로만 살자]]> 뮤직비디오에 출연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월 12일]] 자정에 [[나인뮤지스]] 공식 [[트위터]]를 통해 신곡 <DRAMA>의 티저 사진으로 새 멤버의 뒷모습 사진으로 처음 공개가 되었으며 이어 같은 날 정오에 [[나인뮤지스]]의 새 멤버로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날 공개된 나뮤캐스트 6화 신입생환영회 편에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같이 등장했다. 깨알 같은 트로트는 덤. 그리고 본인이 연습생 생활동안 힘들었던 점을 같은 새 멤버 출신인 [[문현아(가수)|현아]], [[성아]], [[경리(나인뮤지스)|경리]]한테 털어놓는 등 금조의 데뷔 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영입되기 전의 곡에서는 주로 [[류세라|세라]]의 일부 파트를 맡는다. [[문현아(가수)|현아]]의 탈퇴 이후 완전체에서는 [[문현아(가수)|현아]]의 파트를 주로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2월 4일]] [[주간 아이돌]] [[나인뮤지스]]편에 출연했지만 예능 초보이니만큼 말이 없는 편이었다. 또한 멤버 [[이유애린]]으로부터 맛깔진 랩으로 소개되었다.--[[이유애린|얼굴이 예뻐 그으~음조 성격도 좋아 그으~음조 바디가 예뻐 그으~음조 목소리도 프로 그으~음조 그것밖에 없어 그으~음조(...)]]-- --랩소개가 끝나서 행복한 당사자는 덤--
무슨 일인지 컴백할때마다 타이틀곡 파트가 줄어들고 있다...--안습-- [[DRAMA]] 활동 당시에는 [[경리(나인뮤지스)|경리]]와 함께 파트 독식이었지만 [[9MUSES S/S EDITION|다쳐]] 활동 때는 --파트고자-- [[박민하(1991)|민하]]에게 1절 파트를 주고 2절 맨 끝자락에서야 본인파트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뒷 부분 후렴구 세 파트[* 근데 가끔 마지막 후렴구 일부가 잘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금조의 파트가 있다. 즉 파트 길이로만 따지면 [[9MUSES S/S EDITION|다쳐]]에서도 멤버 중 가장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였는데 잠은 안 오고 배는 고프고에서는...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에서는 제일 적은 파트를 맡았다.--[[박민하(1991)|민하]]도 42글자인데 금조는 20글자가 전부-- --금조의 가수생활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나 유닛인 [[나인뮤지스A]]에서 드디어 '''메인보컬'''을 맡았다! 같은 유닛 멤버인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은 랩, [[경리(나인뮤지스)|경리]]는 센터, [[혜미]]는 리더--이자 최장신--을 맡았기 때문에 드디어 금조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래 [[나인뮤지스]]에서 메인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혜미]]와 [[경리(나인뮤지스)|경리]]의 파트 분량과 나름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메인보컬이라 보컬분량이 많기보다는 '고음셔틀담당'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코러스]]라고 불리는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실제 앨범에는 "백그라운드 보컬"이라고 표기된다.] 실제로 [[http://www.fkmp.kr/|한국실연자협회]]에 금조가 참여한 곡을 검색하면 실연정보에 '''<부실연 : 금조 [BACKGROUND VOCAL]>''' 이라고 나오는걸 볼 수 있다. 데뷔 전부터 참여해온 활동인데 데뷔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중. --참여한 곡들만 모아도 이미 정규앨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015년]] [[5월 26일]] 발표 된 [[카라(아이돌)|카라]]의 [[IN LOVE|미니 7집]] 타이틀곡 '[[CUPID]]' 에서 코러스를 맡은 듯 하다. 앨범 크레딧에 본명인 '이금조'가 명시되어 있고, 이 곡의 작곡가가 같은 [[스타제국]] 소속이었던 [[V.O.S]]의 멤버 [[최현준]]이 속한 작곡팀 [[e.one]]인 점 등 여러모로 봐도 확실한 듯. 또 [[은정(티아라)|엘시]]의 '눈물비' 와 [[구하라]]의 [[ALOHARA|미니 1집]] 중 '하라구' 와 '어때?',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SNOWFLAKE|사랑별 (Luv Star)]]', [[에이프릴(아이돌)|에이프릴]]의 '[[Spring|미니 2집]] 중 '팅커벨'과 'JELLY'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이후 여자친구 [[LOL(여자친구)|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는 e.one 작곡의 노래들인 '나의 일기장' 과 '바람에 날려' 도 마찬가지로 참여했으며, [[우주소녀]]의 미니 2집 타이틀곡인 '비밀이야'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여기서는 금조라 표기하고 있다. 현역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 노래에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CUPID]]'와 '눈물비'는 연습생 시절 참여한 곡들이라 특별히 더 애착이 간다고.
주로 [[e.one]]이 작곡한 여자아이돌의 곡에 참여하는데 [[스타제국]] 때의 인연이 이어진듯 하다. [[e.one]]의 [[http://www.news-ade.com/?c=news&m=newsview&idx=1000011557|인터뷰]]에 따르면 코러스 작업 외에도 걸그룹곡의 가이드 작업 역시 금조에게 맡긴다고 한다. [[e.one]]이 곡을 많이 주는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APRIL]], [[우주소녀]] 같은 걸그룹의 경우엔 --잦은 용돈벌이 활동 덕분에-- 신곡이 나오면 그 그룹 팬들이 알아서 제보를 해주기도 한다.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SNOWFLAKE#s-2.4|사랑별]]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LOL(여자친구 음반)#s-4.8|나의 일기장]]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LOL(여자친구 음반)#s-4.11|바람에 날려]]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THE AWAKENING#s-3.6|핑 (Crush)]]
||<#ab9a9e> {{{#FFFFFF '''진행자'''}}} || [[안혁모]], [[조우종]], [[탁재훈]] ||
||<#ab9a9e> {{{#FFFFFF '''출연자'''}}} || [[금조(나인뮤지스)|금조]], [[찬미(AOA)|찬미]], [[낸시(모모랜드)|낸시]], [[이나은]], [[조타(가수)|조타]], [[송유빈]], [[크나큰|박승준]], [[빅톤|수빈]]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41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 [[서 나이트아이]]에겐 "예지 능력으로 미래를 봐달라"고 요청하나 나이트아이는 한사코 거절, 일반적인 수사력만으로 착수한다.
* 미도리야는 회의 이후에도 침울한 상태인데 아이자와가 직접 찾아와 "막아도 뛰쳐나가긴 마찬가지니 내가 보는 데서 정규활약 해라"고 격려한다.
천금 같은 기회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날린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 그것이 자극이 되어 둘은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라고 각오를 다지게 된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처한 고난이 만만치 않다. 불평만 늘어놓던 레게풍의 히어로는 이번에도 둘의 의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둘을 "꼬마"라 부르며 아무리 열을 올려봤자 쉽지 않은 일이라 강조한다. 우선 그 에리라는 소녀가 적의 핵심적인 자원이라면 당연히 꼭꼭 숨길 것이다. 하물며 소녀가 예기치 않은 트러블로 외부로 노출, 히어로 둘에게 보여져 버렸다면 더욱 방비를 두텁게 할 것이다. 레게풍 히어로는 자신이라면 더이상 아지트에 두지도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에핫사이카이의 본거지를 틀어봤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을게 분명하다. 하려면 적어도 소녀가 어디에 있는지 특정할 필요가 있다.
* 나이트아이도 그 부분을 난점으로 지목한다. 아직은 전체 계획도 목적도 불분명. 한 번에 확실히 노리지 않으면 반격의 기회를 허용한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현재 시에핫사이카이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조직들의 영역을 전부 리스트로 만들었다. 거의 전국적인 규모의 리스트. 각지의 마이너 히어로들까지 소집한 건 이 때문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토박이들이 조사에 유리할 터. 나이트아이는 각자 할당된 지역을 살피고 거점이 될 만한 곳을 지목해 달라고 요청한다.
*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는 나이트아이의 신중론에 동조한다. 패트껌을 진정시키며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의 사례를 거론한다. 결과적으론 그의 체포극이 히어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고 보면 일개 양아치들에게도 개성파괴 무기를 공급한 것은 비슷한 의도에서 했을지 모른다. 패트껌도 지지 않고 "비약이 심하고 그렇게 전제하면 뭘 할 수가 없다"고 반발한다.
* 의견이 대립하는 사이 [[아이자와 쇼타]]가 발언권을 청한다. 그는 패트껌처럼 당장 움직이자는 의견은 아니지만, 작전에 합리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나이트아이에게 "미래 예지"라는 개성이 있다면 왜 그걸 쓰지 않는가? 자세한 성능은 모르나 그걸로 이후 전개될 상황을 예시한다면 큰 도움이 되는건 분명하다.
아이자와는 그거라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왜 못하냐고 추궁을 거듭한다. 결국 나이트아이는 좀 더 솔직한 대답을 낼 수밖에 없었다.
>죽음. 그저 무자비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올마이트의 죽음을 봤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것이다.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자신의 예지는 그 자체로 쓰기 보단 작전의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거라고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나름대로 대답이 됐겠지만, 레게풍 히어로는 납득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도 정보이며 그걸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나이트아이의 예지는 점이 아니다. 100% 실현되는 예지. 계획으로 회피할 수 있는게 아니다. 레게풍 히어로는 그럼에도 "얼마든지 회피해줄 테니 날 봐봐라"고 허세를 부린다. 나이트아이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숙인다.
그의 사정을 아는 자, 혹은 모르는 자. 히어로 사이의 의견은 엇갈린다. 더이상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 표정에 나타난 것을 보면 모두가 납득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음은 자명했다. 아이자와나 레게풍 히어로, 패트껌은 시원찮은 결말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그를 대변해줄 사람은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 정도지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턴 히어로들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류큐가 "우선은 해보자"는 말로 정리한다. 어쨌든 위기에 처한 소녀가 있다는게 가장 중요하니까. 여전히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요점을 정리하며 협력을 당부한다.
이후 [[버블걸]]이 상세한 자료를 개별적으로 나눠주며 회의가 종료된다.
* 그때 휴게실로 아이자와가 들어온다. 츠유가 무심코 "선생님"이라 부르자 바깥에선 "이레이저 헤드"라고 부르라며 핀잔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레이저 헤드가 온 건 "교사"로서 볼일 이 있어서였다.
키리시마가 이제와서 그러기냐고 따진다. [[빌런 연합]]이 개입해 있다면 그래야 마땅하다. 이레이저 헤드가 그 점을 지적한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레이저 헤드는 미도리야를 걸고 넘어진다. 그가 아직 자신의 신뢰를 되찾지 못했다면서. 미도리야는 그가 [[바쿠고 카즈키]] 탈환전 직후 "정규 수순을 밟아 정규 활약으로 신뢰를 회복해 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반명 아이자와는 방금 전 회의에서, 밀리오와 함께 "반드시 에리쨩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던 미도리야를 떠올린다.
>할 거면 정규 활약을 하자고, 미도리야.
아이자와는 그렇게 말하며 미도리야의 가슴에 주먹을 댄다. 그 옆에선 타마키와 [[하도 네지레]]가 밀리오의 기욱을 북돋고 있다. 네지레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다독인다. 밀리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기운을 되찾는다. 이제 미도리야가 기운을 차릴 차례였다.
아이자와는 상황이 꼭 나쁘기만 하진 않다고 말한다.
>앞을 보고 가자.
같은 건물의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는 나이트아이가 그랜토리노와 대화 중.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를 굳이 나이트아이에게 보낸건 그걸 통해 올마이트와 그의 관계를 화해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꼬여서 이런 상황이 되자, 그랜토리노는 "나이를 먹어서 괜한 짓을 하게 됐다"고 자책한다.
*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자 구출대상인 에리는 시에핫사이카이의 어느 어두운 방에 갇혀 있다. 일견 보통 어린이의 방이지만 어둡고 답답한 공간이다. 에리는 침대에 틀어박혀 있는데 침대 주위에는 완전히 새것인 장난감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널려 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연다. [[오버홀]]이 지명한 새 "돌보미"다. 다소 뺀질거리는 인상의 남자가 들어서자 에리는 경계하는 듯이 몸을 일으킨다. 남자는 그저 잘 있나 보러 왔다고 말하지만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손도 대지 않은 장난감들을 보며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좋지 않냐"고 하지만, 에리의 겁먹은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겁이 나는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41회 일치
남이탈리아를 정복한 노르만 군주이자, 아풀리아,칼리브리아,시칠리아의 공작. 칭호인 '기스카르'는 프랑스어로 '재빠른, 꾀보, 족제비, 여우'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후 기욤이 죽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드로고가 형의 영지를 상속받을때, 기스카르는 아무 영지도 받지 못했고, 이를 그의 바로 위의 형인 옹프루이가 딱하게 여겼는지 그에게 라벨로 성을 준다. 이후 그는 카푸아 공작 판돌포 4세와 연합해 살레르노 공국을 치려하지만, 공작이 약속했던 공작의 딸과의 혼인과 영지 할양을 거부하자 그와의 협조를 거부하고 돌아가버린다. 이후 칼리브리아로 간 기스카르는 거기서 칼리브리아를 정복을 진행중이던 드로고에게 자기몫의 영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드로고는 최근에 쌓은 성채인 스크리블라성[* 현재의 스페차노 알바네세]을 그에게 준다.
기스카르를 유명하게 만든건 1053년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교황청에서 저지하려했던 치비타테 전투에서였다. 치비타테 전투에서 기스카르가 이끄는 좌익은 전투 초반 아베르사 백작 리카르도가 이끌던 상대 좌익을 성공적으로 격파했고, 옹프루이가 이끌던 중군이 교황령의 중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자 즉각 좌익을 그곳으로 투입시켜, 전투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공헌했다. 치비타테에서의 이러한 영웅적 활약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1057 4월에 옹프루이가 죽자 그의 작위였던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백작위를 상속 받을 수 있었다.
이후 1059년에 새로 선출된 교황인 니콜라우스 2세는 노르만인들을 이용해 사사건건 자기들에게 간섭하는 서방과 동방의 두제국을 막아내려했고, 이에 멜피 공의회에서 기스카르에게 아풀리아,칼리브리아,시칠리아 공작위를 내린다. 이 결정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이지역을 '합법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된디.
사실, 기스카르와 비잔티움은 이미 그가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기전에 군사동맹의 체결이 논의 된적이 있었다. 1073년에 미하일 7세는 기스카르에게 군사동맹과 함께 로베르의 딸중 가장 아름다운 딸과 황실에서 태어난 황제의 동생[* '제국의 조각상'이라 불릴정도로 아름다운 자였다고 한다.]을 제안한다. 기스카르가 별다른 답을 보이지 않자 미하일은 거기서 더 강화한 제안을 하는데, 미하일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기스카르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비잔티움의 훈장 44개를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매년 금 2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식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남이탈리아에 반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상황이 없었다.
그렇게 그해 가을과 겨울동안 여름때 모집한 신병들을 훈련시키는데 매진한 기스카르는 칼리브리아나 아풀리아 일대의 그리스인들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미카일 7세라고 주장하던 사이비 수도사까지 끌어들였다. 그의 말을 믿는 이들은 그리 없었지만, 로베르는 좋은 이용수단이던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줬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백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상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백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남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상륙해 있던 상황이었다.]
코르푸를 얻어낸 기스카르가 발칸침략의 첫 교두보로 삼은 곳은 일리리아[* 지금의 알바니아]의 중심지이자 주요항구였던 디라키온[* 현재의 두러스]였다. 이곳을 통해 에그나티아 가도를 타고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지나면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 있기에, 이곳을 차지하는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냈어야하는 기스카르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약간의 불운이 있었는데, 북쪽으로 가서 아크로케라우니아 곶을 도는 순간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인해 일부함선과 거기타고 있던 병력이 물고기밥이 되버리고, 간신히 그곳연해에 병력을 상륙시키고 나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두고볼 수 없었던 베네치아 도제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기스카르의 해군을 공격한것이다. 노르만 해군은 대응하려 했지만 해전경험에서 베네치아 해군에 비해 한참 밀린데다가 '그리스의 불'까지 사용하던 베네치아 해군을 이길 수는 없었고 결국 베네치아 해군은 디라키온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그정도로 기스카르의 열정을 꺾을수는 없었다. 해전전 미리 육군을 상륙시켜뒀기에 육군은 건재했는데다가 그병력은 이미 디라키온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렉시오스는 그의 신뢰하는 부하이자 매제인 게오르기오스 팔라이올로고스를 소규모 병력과 함께 디라키온으로 보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병력을 모집해 지원할때까지 병력을 묶어놓으라고 지시했고, 디라키온 수비군은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더욱 격렬히 저항했다. 여름 내내 진행된 포위전은 상당히 격렬했는데, 하루는 게오르기오스가 투구에 화살촉이 박힌 상태로 하루종일 방어전을 진행했을 정도이다. 이윽고 그해 10월 15일에 알렉시오스가 직접 지원군을 몰고 왔고, 4일뒤 역공이 시작되었다.
이에 기스카르는 디라키온 북쪽으로 이동해 대열을 정비하면서 회전을 준비했는데, 우선 중앙을 기스카르 자신이 맡고, 좌익이자 측면에 해당하는 내륙쪽은 보에몽이, 그리고 우익은 그의 후처인 시켈가이타가 맡았다.
이윽고 회전이 시작되었고,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바랑기안 근위대로 구성된 비잔티움군의 우익이 시켈가이타가 지휘하는 노르만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랑기안들은 평소보다 유난히 광폭한 상태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 복무한 바랑기안중 대다수가 노르만 군주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했을때 잉글랜드편에서 복무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 지나치게 앞으로 가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버렸고, 시켈가이타가 직접 말을 몰고 도망자들을 쫒아 이들의 사기를 회복하고, 한편으론 보에몽의 좌익이 이들을 구원하러오자 차단되어버린다. 결국 화살세례를 버티지못한 근위대는 인근의 예배당으로 피신했지만, 노르만 병사들이 불을 질러 대다수가 타죽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기스카르는 병력을 나눠 보에몽에게 지휘를 맡기고, 그리스로 돌아올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그의 아버지인 탕크레드의 영혼을 걸고 맹세한뒤 서둘러 아드리아해를 건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을 공격하고, 아풀리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기스카르를 방해한것일까?
답은 바로 비잔티움 전통의 외교술이던 이이제이였다. 예전부터 비잔티움은 외국의 이민족들이 자국을 위협하면 천혜의 무역입지를 통해 쌓인 돈과 보물로 경쟁이민족을 끌어들여 견제하거나, 내분을 일으키는 외교술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던 것이다. 우선 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피신해있던 기스카르의 조카인 아벨라르를 끌어들여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쥐여 이탈리아로 비밀리에 보내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4세에게 사절을 보내 아풀리아 공국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장차 위험해질거라고 충고하면서 금괴 36만개와 진주가 박힌 황금 가슴장식, 그외 수많은 귀중한 보물들을 선물해 그를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가 돌아가고 남은 군대를 맡게 된 보에몽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형이자 당시 세바스토크라토르라는 관직에 있던 이사키오스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과거 교회의 금과 은을 녹여 전쟁포로들을 되찾아온 전통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재산을 모두 몰수한다고 선언해 겨우 전쟁자금을 구할 수 있었지만, 보에몽은 야니나와 아르타에서 알렉시오스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그리스일대를 장악하고 테살로니카로 진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어찌저찌 라리사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보에몽의 군대에 항복한 노르만 병사들에게 더많은 봉급을 주고 용병으로 재고용해주겠다고 보에몽의 진지에 소문을 퍼뜨리게까지 했다. 결국 연패를 거듭한 보에몽은 그리스에서 쫓겨난다.
1084년 가을에 그는 보에몽과 로제르 보르사, 기, 이렇게 삼형제가 이끄는 병력들과 함께 150척의 새함대를 꾸리고 비잔티움을 다시 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스카르는 불운을 겪는다. 부르린토에서는 날씨때문에 두 달이나 함대의 발이 묶였고, 가까스로 코르푸 해협을 건너고 난뒤에는 함대가 베네치아 해군의 습격을 받아 두번이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그상황에서도 기스카르는 베네치아 해군이 연락선을 그들의 본거지인 베네치아 섬에 보내자마자 남은 함대로 기습을 가해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겨울에 그들은 그 어떤 적보다 가장 무서운 적들을 만나야 했다. 바로 역병이었다.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이병에 의해 노르만군들 상당수가 쓰러지고 만것이다. 그의 장남인 보에몽도 병에 걸려 바리로 이송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기스카르는 아직도 자신만만했다. 초여름이 되자 그는 다시 병력을 이동시키기로 결정했고, 차남인 로제르에게 선발대를 맡겨 케팔로니아를 점령하도록 한뒤, 몇주뒤에는 그도 거기서 아들과 합류하러 출발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항해중 그는 그역시 해당 역병에 걸린걸 느꼈다. 함대가 섬의 북단에 있는 아테르 곶에 닿았을 무렵 그의 병세는 더더욱 심해졌고, 그의 배는 황급히 피스카르도만에 정박했다. 그리고 1085년 7월 17일에 거기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끝마친다.
''' 중세 성기 노르만족들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두명의 정복자중 하나'''[* 또다른 한명은 노르망디의 '정복왕'윌리엄]
그는 11세기~12세기에 비잔티움을 침략한 야심가들[* 차카 베이, 그의 아들인 [[보에몽|보에몽 1세]]등]중 가장 그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던 자였다. 동시대 서방황제와 동방황제들 모두 그와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야전에서 알렉시오스를 패퇴시키기까지 하는등, 군재로써는 당시 최고를 달렸던 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가지 불행이 있었는데, 항해를 할때마다 폭풍이나 기타 연유로 제대로 함대를 유지시키기 힘들었으며, 후계권 문제로 그가 죽은 이후 남이탈리아가 개판이 되버린것이다.(...) 최종적으로 이후 남이탈리아는 그의 자손이 아닌, 그의 동생인 로제르의 아들인 시칠리아 공작 로제르가 시칠리아 왕 루지에로[* 로제르의 이탈리아식 인명]로 즉위하면서 통일되게 된다.
- 박화요비 . . . . 41회 일치
|| '''학력''' ||<(> 오천초등학교[br]오천중학교[br]선정고등학교[br][[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중퇴 ||
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다. 주 장르는 [[R&B]].
본명은 박미영[* [[마망|마골피]]와 본명이 같다.]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했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 ~~힙합이었으면 화요합~~ (출처: [[https://youtu.be/vvcat903c44]],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7년 11월 중순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도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이 바뀌어있다.
화요비의 음악적인 강점을 고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음도 고음이지만 화요비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창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이제껏 내왔던 정규 앨범은 물론 미니 앨범까지 각 앨범마다 전부 창법과 음색이 다를 정도로 10년이 넘는 가수 생활에서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음악적 지향에 맞추어서, 앨범 컨셉에 맞추어서 팔색조 같은 목소리의 매력을 자랑하는 그녀. 화요비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올드 팬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이게 몇 년도에 불렀던 노래인지를(!) 짐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EP 앨범 '반쪽'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똑같이 부르면 곡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멀티 보이스 컬러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고, 5집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에 대해서 자신의 꿈은 '멀티 보이스 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데뷔 앨범 때부터 작사와 작곡에 일부 참여했다. 앨범의 숫자가 더해갈수록 참여도도 높아지고, 아예 앨범을 자체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2010년 7집을 기점으로 출연한 방송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화요비'로 MC의 소개 멘트가 바뀔 정도.
싱어송라이터의 본격적인 시작의 앨범인 7집 앨범의 성공 후,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절친인 [[거미(가수)|거미]]의 2014년 6월 10일 자정 공개된 새 미니 앨범에 [[휘성]]과 함께 자작곡을 선물했다. 자세한 것은 [[/작사 목록, 작곡 목록]] 항목 참조.
다만 그녀가 예능을 위한 예능을 찍은 것이 아니라, 가수이기 전에 연예인이자 방송인으로서 예능에 출연한 점, 본인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예능 활동에 따른 이미지 변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등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음원 성적으로 연결될 만한 예능 출연은 당시에나, 향후 음악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별히 논란이라고 부풀려 말할 만큼 논란은 아니었지만, '디바 이미지'가 흔들릴 만큼의 행보는 '스타 화보'에서 다시 드러났다. 두 차례에 걸쳐 '스타 화보'를 찍어 디지털 판매를 한 이력이 있었는데, 노출도가 '스타 화보다워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전의 그녀는 라이브 무대든 어디서든 신체적인 노출이 거의 없었고,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화보 자체도 팬이든 아니든 본 사람은 입을 벌리게 될 만한 수위였기도 했고.
[[포항문화방송|포항MBC]] 라디오 '별밤 뽐내기'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상을 타고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박화요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일본]] 진출을 위해[* '박화요비'의 '박화'가 '[[바카|バカ]]' 로 들릴 수 있다. ~~[[몬데그린|바보요일]]~~] 예명을 화요비로 바꿨다. 1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창력과 성숙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며, [[박효신]] 등과 함께 국내 R&B 아티스트의 대표주자였다. 당시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의 이른바 '3박' 시절. 당시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 환상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고, 같은 소속사였던 [[박효신]]과의 듀엣곡 라이브도 선보였다. 본인의 노래 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을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했다. 화요비의 유명한 팝송 소화 능력은 데뷔 때부터 증명된 셈.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2집 <Nineteen Plus One>을 내고 자신이 작사한 타이틀 곡 <눈물>로 활동했다. 판매량은 1집에 비해 다소 부진하였지만 환상적인 가창력과 라이브 무대로 주목받았다.
[[이정봉]] 원곡의 <어떤가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한 3집 <Because I Love You> 활동은 '가창력 좋은 가수, 박화요비'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고 판매량 자체도 좋았다. 후속곡인 <끝이 보일 때쯤> 뿐만 아니라 수록곡 <사랑은>도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지는 등 다른 수록곡의 인기도 좋았다.
2007년, 몇년 전부터 앓아오던 성대낭종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이후 2008년 초 6집 활동을 시작하고,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코믹 그 자체. 자세한 사항은 후술할 문서 참조.
예능의 파급력은 음원에도 미쳐, 그 때를 즈음 하여 냈던 음원인 <반쪽>, <나 같은 여자>, <마취> 모두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KISS KISS KISS>는 논외로 친다~~ 정규 7집 타이틀 곡 <BYE BYE BYE>는 당시의 음원 강자였던 [[원더걸스]]의 <2DT>를 위협하는 성적을 냈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주로 음악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하였다. 공중파, 케이블, 지역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출연하였다. 당시에는 활동 시기에 긴 공백기가 거의 없어서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는 많이 출연한 가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4집 활동 도중, 추후 화요비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난 예능 프로그램은 [[KBS 2TV]]의 [[상상플러스]]로, 그 전에는 음악 방송에만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발언과 화제성의 파급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휘재를 비롯한 출연진들을 빵 터지게 한 '케이블 TV는 한 것을 자꾸 틀어준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비슷한 기믹을 이어 '비디오' 관련 소재를 SBS [[X맨을 찾아라]]에서 사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기믹의 유느님과의 콤비네이션이 유려하다!~~
이후 출연한 SBS [[X맨을 찾아라]]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으며 화요비란 가수, 아니 '연예인'이자 방송인을 대중에게 알리는 확고한 기회가 된다.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41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이 마스터 인챈트로 소환한 운석을 베어버리는 [[엘자 스칼렛]]
* 엘자는 낙하하며 그대로 드래곤 모드의 아이린을 베려 한다.
* 엘자의 검으로도 드래곤에게 상처입힐 순 없었지만 [[웬디 마벨]]이 최후의 힘으로 멸룡마법 속성을 부여해 아이린을 베어버린다.
* 아이린은 상처를 입고 인간 모드로 돌아오지만 엘자는 빈사. 아이린은 엘자의 칼을 집어들고 엘자를 끝장내려 한다.
* 하지만 엘자는 쓰러져있으면서도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아이린은 그걸 보고 엘자를 막 낳았을 때 보았던 웃음을 연상한다.
* 아이린이 주저하는 사이 엘자는 칼에 찔리는걸 감수하며 반격하지만 역시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 칼은 여전히 아이린의 손에 있는데, 아이린은 난데없이 "자기 딸만은 죽일 수 없다"며 자기 자신을 찌르고 쓰러진다.
* 사실 아이린은 갓 태어난 딸이 귀여워 인챈트를 포기하기로 했으나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워 엘자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 아이린은 엘자가 웃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던 걸 떠올렸다고 털어놓으며 싸움이 끝난다.
* [[엘자 스칼렛]]은 낙하하는 운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아이린 베르세리온]]은 인간이 운석을 베어버릴 수 있을리 없다고 여기지만 엘자에겐 일말의 망설임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엘자의 검이 운석에 박히고 운석은 거짓말철머 산산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이린은 눈으로 보면서도 이런 일이 생길리 없다고 눈을 의심한다. 엘자는 운석을 벤 힘을 그대로 담아 아이린에게 검을 향한다.
* 드래곤 형태인 아이린은 설사 운석을 베었더라도 드래곤의 비늘을 벨 수는 없다고 방심한다. 그때 [[웬디 마벨]]이 최후의 힘을 쥐어짜내 엘자의 검에 멸룡속성을 인챈트한다.
* 멸룡속성이 부여된 엘자의 검은 드래곤 형태의 아이린을 베어버린다. 아이린은 목부터 가슴까지 세로로 베이는 큰 상처를 입으며 인간형상으로 돌아간다.
* 그러나 엘자는 바닥으로 추락하며 기력이 다한다. 웬디도 방금 전 인챈트로 마지막 체력을 소진해 버렸다. 반면 아이린은 타격을 입긴 했지만 싸우는데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엘자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 엘자를 겨눈다.
아이린은 승리를 예감하지만 그 순간 엘자는 뜻 모를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을 보고 아이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 아이린이 숲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갓 낳은 아기를 안고도 그녀는 새로운 인생과 몸이 나타났다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그릇을 환희에 차서 바라보는데, 그 아이는 어쩐지 웃고 있었다.
아이린은 아이의 웃음을 보며 결심이 흔들린다. 어째서 웃고 있는 거냐고 아이에게 호통을 치고 자신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 수백 년 전 그날처럼 아이린은 엘자를 향해 웃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아이린이 동요하면서 겨누고 있던 칼끝이 엘자의 어깨죽지를 찌른다. 하지만 엘자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칼날이 몸을 뚫고 들어오는 데도 개의치 않고 몸을 일으킨다.
* 등을 찢고 들어간 칼이 옆구리를 뚫고 나온다. 엘자는 과감히 몸을 날려 아이린의 턱을 들이받는다. 방심하고 있던 아이린은 불의의 일격을 당한 셈이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몸을 가눈다. 반대로 엘자는 그렇게해서 검을 뺏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아직도 검은 아이린의 손에 있다. 이번에야 말로 기력을 소진해 꼼짝하지 못하는 엘자. 아이린은 마무리가 어설프다며 칼을 들어올리는데.
* 그 칼은 아이린 자신의 배를 꿰뚫는다.
>자기 딸만큼은... 죽일 수 없다니...
- 현정건 . . . . 41회 일치
{{공직자 정보
| 배우자 = 윤덕경
| 자녀 = 無
'''현정건'''(玄鼎健, [[1887년]] [[6월 29일]] ~ [[1932년]] [[12월 30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ㆍ교육자이다.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 독립운동가로서의 다른 이름(아호)은 '''읍민'''(揖民)이며, 소설가 [[현진건|현진건(玄鎭健)]]의 형으로 현진건의 반일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혼인을 통해 [[박종화]](朴鍾和) 가문, [[윤치호]](尹致昊), [[윤치영]](尹致暎), [[윤보선]](尹潽善) 가문과도 겹사돈관계가 된다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高宗)]] 24년([[1887년]])에 [[대구광역시|대구(大邱)]]에서 현경운(玄炅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0년]]에 중국으로 유학, [[상하이 시|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임시의정원|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이규홍(李奎洪) 등과 함께 1919년 9월 17일 경상도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20년]]에 상하이 주재 [[고려공산당|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입당하였고 [[1922년]] 10월 20일에 열린 베르프네우딘스크(Verkhneudinsk) 회의<ref group="설명">이동휘의 상하이 고려공산당과 김철훈ㆍ안병찬의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경쟁을 완화하고 두 세력을 합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그들에게 베르프네우딘스크에서 연합대회를 갖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한인 공산주의 운동 계열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정재달, [[조봉암]] 등도 여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대표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탄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철수, 코민테른 당국이 각파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조정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코민테른은 양파 모두 해산하고 단일당을 조선 안에 세울 것을 지시함으로써 상하이파도 이르쿠츠크파도 없어지게 된다. 김학준 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2005, 민음사.</ref>에 윤자영(尹滋英)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에 상하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는 윤해(尹海)ㆍ신숙(申肅) 등과 더불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왕삼덕(王三德) 등과 참여하였고 2월 5일에 [[여운형|여운형(呂運亨)]]과 더불어 외교분과위원으로 지명되었으나, 창조파가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과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결정인데 출석원(員)의 2/3나 되는 개조안을 무시하고 사신 5인이 퇴석 통고를 하고 불착한 대로 국호를 조선공화국로 정하여 새 국가를 만든 것을 성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ref>「創造派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東亞日報)』 1923년 6월 25일자.</ref> 7월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한국독립촉진회에도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 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 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였다. 8월에 조선의 관서([[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상하이교민단(上海僑民團)이 내지동포수재구제회(內地同胞水災求濟會)를 조직해 9월 26일에 수재의연금 110원을 동아일보사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ref>「同胞의 ㅁ愛! 해외각디동포의열렬한동정 가련한수재당한형뎨들에게」 『동아일보』1923년 10월 4일자 기사.</ref> 여기에 현정건의 이름이 실려 있다.
[[1924년]] 6월,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해 오는 조선인 학생들의 중국 사회 적응과 그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김규식|김규식(金奎植)]]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하이에서 [[1917년]] 여운형이 세웠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내에 개설된 조선인 학생을 위한 예비교(豫備校, 예비강습소)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영어 과목을 맡아 가르쳤고<ref>이는 국내에도 알려져 신문에 「上海에 豫備講習」(『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자), 「豫備校 設立」(『시대일보』 1924년 6월 9일자) 등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ref>, 그 뒤 상하이 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된 뒤에도 여운형, 김종상(金鍾商) 등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9월에는 상하이교민단에서는 실시한 의사원(議事員) 총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ref> 재상해일본영사관경찰부(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46년, 동문사서점(東文社書店)</ref> 11월에는 상하이에서 윤자영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 상하이한인청년동맹)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고 『횃불』, 『새길』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영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영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1925년]] 5월 9일에는 상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영ㆍ김상덕(金尙德)ㆍ최창식(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상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상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하나로 집결시키려 애썼으나 [[1928년]] 봄에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패륵로(貝勒路) 항경리(恒慶里)에서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 11월 9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변동화(邊東華)ㆍ황의춘(黃義春) 등과 함께 공판이 열렸다. 이때 변호를 맡은 것은 최창조(崔昌朝)ㆍ이희적(李熙迪)ㆍ탁창하(卓昌河) 등 신의주 변호사 세 명과 손홍팔(孫洪八)ㆍ현석건(玄奭健)<ref group="설명">현정건의 친형이다.</ref> 등 진주 변호사 두 사람이었다. 현정건은 자신은 회합에 참여한 적도 없고 관련도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으나, 12월 12일에 신의주 지방법원은 [[치안유지법]]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언도하였다. 이에 불복하였으나 [[1929년]] 1월 19일에 평양으로 압송, 6월 10일에 열린 민사 제1호 법정 복심에서 원심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에 만기출옥하였으나,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얻은 [[복막염]]으로 12월 30일 의전병원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1일 기사에는 1월 3일 오후 1시에 현정건의 발인이 이루어질 것이고 영결식이 가회동 177번지의 자택에서, 묘소는 동소문 밖의 미아리에 마련되었다고 적고 있다. 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은 남편이 죽은 뒤 이레, 달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조금 밝은 모습을 보이는 듯 싶더니, 끝내 2월 10일에 "(남편이 없이) 아무래도 살 수가 없다", "죽은 몸이라도 형님(현정건)과 한 자리에서 썩고 싶으니 (남편 옆에) 같이 묻어달라"는 요지의 유서를 시동생 현진건에게 남기고 현정건의 영전 앞에서 음독자살하였다.<ref>「玄鼎健氏未亡人 尹德卿女史殉從」 『중앙일보』 1933년 2월 12일자. 「結緣卄年에 同居는 半世」 『동아일보』 1933년 2월 12일자. 유서의 전문도 함께 실려 있다.</ref> 남편이 죽은지 41일만의 일이었다. 다른 자식은 없었다.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 현진건의 형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부인 윤덕경과의 사이에서 자식은 없었고,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이자 연인으로 계옥(桂玉, 현규옥)이 있었다.
현정건의 숙부인 [[현영운]]과 [[배정자]]의 둘째딸은 [[현송자]]로, [[현송자]]는 [[윤치호]]의 사촌이자 [[윤치영]]의 형인 [[윤치오]]의 후처가 되었다. [[윤치오]]는 [[윤보선]]의 큰아버지가 된다.
== 참조자료 ==
* [[배정자]]
[[분류:1887년 태어남]][[분류:1932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고문 피해자]][[분류:유교 이탈자]][[분류:자유 연애]][[분류:사회주의자]]
- 마기/328화 . . . . 40회 일치
* 티토스 알렉키우스를 비롯한 뢰엠의 지도자들은 "한 나라의 독자성이 장래적으론 전쟁의 불씨가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는데.
* 그러나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나라의 독자성을 쉽게 포기한 결정은 알라딘과 알리바바의 납득을 끌어내지 못한다.
* 그들은 담판을 지으러 가지만 신드바드는 아주 뻔뻔한 태도로 자신은 솔로몬 왕이 한 것과 같은 일을 했다고 주장한다.
* 신드바드는 한번 실패한 세계의 마기인 알라딘이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거야 말로 오만이 아니냐고 역공한다.
*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자 두 사람은 제 3자인 알리바바에게 의견을 묻는다.
* 뢰엠 제국이 국제동맹에 정식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이 복귀했다. 화상으로 소식을 접한 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뢰엠 제국을 방문한다.
티토스 알렉키우스를 비롯한 뢰엠 제국의 지도자들은 본래 국제동맹에 들어가지 않는 길을 택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 티토스는 그 결정은 뢰엠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정말로 뢰엠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봤다고 말한다. 이미 신드바드와 국제동맹으로 세상은 하나가 되려 하는데 뢰엠만 역행하는 것은 무의미한 불씨가 되는게 아닌가? 그렇게 고민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국제동맹 가입. 티토스는 셰헤라자드의 유언인 "일국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를 언급하며 그녀의 유지를 잇는 길이라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석연치 않은 표정인데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토록 오래 고민해서 결정한 사안을 너무나 쉽게 바꿔서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지키려 했던 "일국의 독자성"이 소중하지 않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무 알렉키우스는 "솔직히 그런 사소한 거에 집착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폭탄발언한다. 너무 급격한 태도 변화라 알리바바가 따라가지 못한다. 무는 "사고가 번뜩였다"는 애매한 표현만 사용하는데 알리바바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 알라딘은 그가 느끼고 있던 위화감을 눈치챈다. 그 정체는 루프의 변화. 그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루프가 변질되고 있다. 그걸 확인하자 알라딘은 무서운 가능성이 떠오른다. 신드바드가 "루프의 근본을 덮어 쓰겠다"고 했던 말.
* 뢰엠을 떠나며 알라딘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알리바바에게 전한다. 범인은 신드바드. 그가 성궁의 루프를 덮어쓰기 해 모두의 사고를 조종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알라딘은 그가 모든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고 얻은 해답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분개한다. 알리바바는 그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묻지만 당연히 안되는 일. 알라딘은 서둘러 신드리아 상회로 향하는데 알리바바는 동행하는 중에도 설마 신드바드가 그렇게까지 했을까 의문을 가진다.
* 너무나 뻔뻔하게 자백하는 신드바드.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신드바드는 간단한 사무업무를 처리한 투로 처리할 일이 있으니 그 얘긴 기다려 달라고 한다.
알라딘은 바르바드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선택하면 된다"고 했던 일화를 거론하며 그 말을 했던 사람이 그 권리를 빼앗았다고 비난한다. 신드바드는 진정하라고 하지만 알라딘은 웃기지 말라며 분노를 터뜨린다.
* 신드바드는 자신은 결코 전세계의 생각을 조종한게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가 한 일은 그저 "공통된 희망"을 부여한 것. 그는 사람이란 의존하는 것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족이 가장에 의지하고 국민이 왕에 의지하듯. 그런데 그 빛이 없어진다면 모두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드바드는 그걸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의 이념으로.
* 알라딘은 그의 말은 결국 "신드바드가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왕"이라 생각하게 만든 거라고 지적한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알라딘은 그렇게 못 박는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솔로몬 왕이 한 것과 같다고 항변한다. 그고 루프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 전세계에 배분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 왕의 의지에 반하는 자는 "타전"이란 형태로 배제된다고 말하는데 알라딘도 뾰족하게 반론하지 못한다.
신드바드는 계속 말한다. 솔로몬은 희망의 정의를 각자에게 떠넘겼지만 그는 마음의 안식처를 통합함으로써 분쟁과 배척을 줄이고 싶었으며 결과적으로 황제국과 뢰엠과도 분쟁할 일이 사라졌다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알라딘이 기껏 화합하려는 세계를 다시 어지럽힐 거냐고 공격한다. 알리바바는 적어도 홍옥과 티토스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알라딘은 자신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무언가와 맞서는 사람들을 봐왔다며 신드바드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는다. 그러자 이번엔 신드바드가 "이제 우릴 알마트란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말을 꺼낸다.
* 알라딘은 반박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신드바드의 의견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둘 사이의 평행선이 계속되고 알리바바는 그 사이에서 어쩌지 못한다. 신드바드는 주저하는 그에게 의견을 묻는다. 알라딘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의 입을 주시한다. 갑자기 의견을 요구받은 알리바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알라딘이 분노하는 이유는 신드바드가 그의 사고방식의 롤모델이었기 때문. 자기가 루프를 다시 썼다는 신드바드에게 바르바드에서 한 얘기로 받아친 부분을 봐도 알 수 있다. 알라딘으로선 부모님이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고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는 거나 다름 없기 때문.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게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실상은 수사학적으로 우회했을 뿐이다. 타전을 예로 든 것도 궤변에 지나지 않는데 현실에서도 각자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행동이 자유의 이름으로 합리화되진 않는다. 마기에서 타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솔로몬이 전제한 최소한의 한도를 어겼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그런데 신드바드는 아예 사람들이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우러르고 칭송하게 세상을 조작했다.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도 폭력이니 자신이 연쇄살인을 해도 경찰과 똑같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40회 일치
범인 미즈우치 타카시는 신장 183센티미터, 체중 89킬로그램의 훤칠한 체격에 샤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미즈우치는 학생 시절부터 [[검도]]를 단련하여 [[검도]] 5단의 유단자였으며, 고교 졸업 후 2006년 4월에 경찰에 채용되었다. 근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은 매우 불성실한 남자로서, 2014년 8월 아내와 입적하기 전후의 기간에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 이외에 센다이에서 3명, 오사카에서 3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는 야마가타 현 출신으로, 친가는 니시카와쵸(西川町内)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부]]로 활동하여,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네자와 시(米沢市)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구부]]로 활동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고교 졸업 이후 미야기 현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론을 배웠으며, 2014년 4월 부터 오사카 시내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평소 업무 시작 30분 전에 출근하고 무단 결근도 한 번 없었던 성실한 사원으로서,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의료 사무원이었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경찰관 신분이나 오사카에서 온 것을 밝혔으나, 후에 아내가 될 여성과 간사이에서 이미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즈우치는 반년도 되지 않아 시라타 히카루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이 해 가을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친구에게 미즈우치가 연락을 무시하고 데이트도 자주 취소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라타 히카루는 "어차피 나는 '센다이의 여자'일까", "(미즈우치가) 스노 보드만 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걸까."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미즈우치는 교제에 불성실해져서 시라타 히카루는 12월에 생일을 맞았지만, 미즈우치는 생일인데도 만나주지 않고, 놀아주거나 선물을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시라타 히카루는 "괴롭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렇게 고민하면서도 시라타 히카루는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녀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경험이 있어, "한 사람이라도 많은 환자와 그 가족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녀는 오사카 시 히가시스미요시 구(大阪市東住吉区)에 있는 암 치료 병원에 사회복지사로 취직하게 되어, 2014년 봄에 오사카로 이주했다.
시라타 히카루는 졸업 전 2월 지인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봄부터 오사카에 간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4년 6월에 미즈우치는 갑자기 시라타의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공판에서 진술에 따르면 "선배와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서 막차를 놓쳤다.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시라타 씨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이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미즈우치는 시라타와 단 3번 만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8월에 '''미즈우치 타카시는 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오사카 경찰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성대한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즈우치는 오사카에 있는 단골 술집에 시라타를 데려가서, 후배 경찰관 A와 만나게 하여 셋이서 식사를 가졌다. A는 미즈우치가 기혼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즈우치의 의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시라타는 후배 경찰관 A를 소개받은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애인'으로 승인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2014년 크리스마스에도 시라타를 만나주지 않았다.
사실 결혼식 뒷풀이 때, 미즈우치 타카시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도록 간사를 맡은 A에게 부탁을 했으며, 그 이유로 "아직 끊어내지 않은 여자가 있다."고 댔다. 그러나 주위에 모두 세심하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참석자 한 명이 페이스북에 올리고 시라타가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시라타는 1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혼을 눈치챈 것을 암시하는 "사정이 나쁜 건 눈치채지 못한 척 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올렸다. 또 시라타 히카루는 "몰랏다. 결혼을 알았다고 그에게 말조차도 할 수 없다."고 심하게 우울해졌다고 그녀의 지인들이 말했다.
미즈우치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또 새로운 여성과 교제를 시작햇다. 1월 21일 밤, 마침내 시라타 히카루는 "사회적 제제를 받게 하겠다"고 기입하였으며, 그제서야 대처를 시작했다. 이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주변에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에 대하여 상담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병원 상사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3일 전에 다른 직원에게 페이스북으로 미즈우치가 기혼자라는 것을 알았고 상담을 했었다고 한다. 시라타는 미즈우치가 LINE으로 보낸 메시지에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즈우치는 1월 23일 A에게 상담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1월 24일, 미즈우치는 시라타의 자택을 방문하였다. 미즈우치의 발언에 따르면, 시라타가 "제제를 하겠다"고 말한 것에 제정신을 잃고 '''마침 가방에 들어 있었던 벨트'''를 꺼내서 시라타의 목을 졸랐다. 「자기 맘대로 되어야 하는,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여성」에게 궁지에 몰린 것에, 격노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미즈우치는 이후 이별 이야기를 꺼내자 시라타 히카루가 관계를 "부인이나 경찰에게 말한다."고 해서 울컥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1월 24일,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의 근무처에서는 항상 업무 시작 45분 전에 출근하는 피해자가 출근을 해오지 않자, 경찰에 통보를 하였다. 피해자의 자택과 근무처인 병원은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 때, 히가시스미요시 경찰서의 경찰관이 시라타 히카루가 거주하는 오사카 시 히가시스미요시 구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55분, 독신자 아파트의 작은 욕조에 엎드린 채로 떠있는 시라타 히카루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겨울 코트에 바지차림으로, 양말도 신고 있어 밖에 나가려는 복장이었다. 시신의 목에 졸린 흔적이 남아 있어 사인이 대략 판명되었다.
살인이라고 판단한 오사카 부경은 시라타의 관계자에 대한 탐문과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날 저녁, 미즈우치 타카시는 피해자와 교우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서 부경 본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
아파트의 방범용 CCTV를 조사한 결과, 오전 7시 45분 쯤 얼굴을 숨기듯이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한 남자가 아파트를 방문하여 엘리베이터에 탑승, 오전 8시 45분 쯤 비상계단으로 아파트로 내려와서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겉옷은 밝은 갈색 점퍼로 바뀌었지만, 1시간 전의 남자와 비슷하여 동일 인물로 추정되었다.
몸집이 크고 젊은 남자라는 점에서 미즈우치 타카시와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미즈우치 타카시가 범행 시간대에 어딘가에 외출을 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결국 단순 용의자에서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된 미즈우치 타카시는 25일 진술을 뒤집어 "내가 했습니다. 벨트로 목을 졸라죽였습니다."라고 밝혔다.
2015년 10월 6일, 오사카 지방법원은 미즈우치 타카시에게 징역 18년(구형 20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미즈우치 피고가 흉기로 쓰인 가죽 벨트를 지참하는 등, 계획성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장은 사전에 살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고 계획성은 부정하였다. 하지만 미즈우치 피고가 살려달라고 하는 피해자의 목을 집요하게 조르는 등의 행위에 대하여, "경찰관으로서 사람의 생명을 지킬 의무를 위반하여 생명을 빼앗은 것은 강하게 비난받을 만 하다."고 하였다.
* [[마치콘]]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범인이 피해자를 만난 계기가 마치콘이었기 때문에 마치콘에서 만난 상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위험성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 서강준 . . . . 40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 <ref name="tvreport">{{뉴스 인용|제목=[입덕안내서] 서강준, 늦기 전에 ‘갈키색’ 눈동자에 빠져라|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31085|출판사=TV리포트|저자=양지원|날짜=2016-01-21|확인날짜 =2017-09-07}}</ref>
| 배우자 =
서강준(본명 이승환)은 1993년 10월 12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누나와는 연년생이다.<ref name="tvreport" /> 그는 학창시절까지 계속 에서 성장하였고, 2학년 때 [[말레이시아]]에서 1년 7개월 동안 유학하다가 1학년때 귀국했다.<ref name="10아시아"/> 이후 재학 시절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쇼에 서보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때 2011 F/W 서울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를 끝으로 2~3년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0308310735776&type=1&outlink=1|제목='발견!' 서강준, 국민 연하남의 가능성(인터뷰)|저자=김현록|날짜=2014-05-05|출판사=머니투데이|확인날짜=2014-05-17}}</ref><ref name="네이버">{{뉴스 인용|제목 ='보그'가 선정한 2014년의 프레시맨-2 - INTERVIEW|url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8&contents_id=51180|출판사=[[네이버]] 매거진캐스트|저자=[[보그]]|날짜 = 2014-03-01|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또한 그 당시에 바빠도 밤마다 영화는 한 두 편은 꼭 챙겨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겨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머니투데이"/>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새로 접하는 연기의 매커니즘이 신기했고,<ref name="네이버"/> 무엇보다 새로 창조해나간다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
서강준은 몇 편의 드라마 단역을 거친 이후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ref name="네이버"/> 오디션 기회를 얻어 현재의 소속사인 [[판타지오]]의 신인 배우 개발 프로젝트인 '액터스리그'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ref name="tvreport" /> 합격하게 되면서 [[유일 (배우)|유일]], [[공명 (배우)|공명]], [[강태오]], [[이태환]]과 함께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 (그룹)|서프라이즈]]의 일원이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에는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함께 숙소에서 합숙을 하면서 연기를 비롯한 춤, 노래 트레이닝을 받았다.<ref name="머니투데이"/> 현재는 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독립해서 살고 있다. 현재 예명으로 쓰고 있는 '''서강준'''이라는 이름은 가수 [[이승환 (가수)|이승환]]과 이름이 같아 소속사 [[판타지오]]의 부대표가 직접 지어줬는데, 당시 같은 소속사의 선배였던 배우 [[하정우]]의 매니저 이름으로 '매니저의 이름을 연예인이 빌려쓰면 성공한다'는 속설에 의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뉴스 인용|제목 =My Name is, 서프라이즈 (1)|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74209|출판사=10 아시아|저자=배선영|날짜 = 2013-10-10|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2013년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웹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정식 데뷔하였고, 이후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은한결([[김소현]] 분)의 밴드부 선배 최수혁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당초 다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수상한 가정부》 오디션을 권유 받게 되었고 얼떨결에 합격했다고 한다.<ref name="enews24">{{뉴스 인용|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00988|제목=[인터뷰] 서강준, "대형신인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저자=안소현|날짜=2013-12-09|출판사=enews24|확인날짜=2014-05-17}}</ref> 그러다가 [[MBC]]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드라마 페스티벌 - 하늘재 살인사건]]》을 연출한 최준배 감독이 서강준이 출연한《수상한 가정부》를 보고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문소리]]의 상대역인 윤하 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enews24"/> 2014년 초, 서강준은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여주인공 나애라([[이민정]] 분)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연하남 국승현 역을 연기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그는 2014년 5월 4일부터 2015년 4월 14일까지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룸메이트 (텔레비전 프로그램)|룸메이트]]》에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서강준, ‘룸메이트’ 멤버들과 쫑파티 인증샷…“자주 봐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47007|출판사 =OSEN |저자 =정소영|날짜 = 2015-04-21|확인날짜 =2017-09-07}}</ref> [[삼성그룹]]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최고의 미래]]》에 이어,<ref>{{뉴스 인용|제목=‘최고의 미래’ 서강준 “민아 첫인상, 신기했다…동갑이라 빨리 친해져”|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336999|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14-10-27|확인날짜 =2017-09-07}}</ref> [[KBS2]]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했다. 이후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영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연달아 출연하며 차근 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갔다.
2015년 서강준은 [[MBC]] 대하 드라마 《[[화정 (드라마)|화정]]》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소신과 명석함을 지닌 꽃도령 홍주원 역을 맡아 6개월여동안 최종회까지 대장정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2016년에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드라마)|치즈 인 더 트랩]]》에서 ‘츤데레’ 매력남 백인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노 천재로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백인호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 물오른 4년차 '치인트'로 폭발|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123528|출판사=한국일보|저자=황지영|날짜=2016-01-20|확인날짜 =2017-09-07}}</ref> 그는 실제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예능, 해외 팬미팅 등에서도 간간히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치인트’ 서강준, 여심저격 피아노 신 진실 밝혀…“그 정도 실력 안돼”|url=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E2MDEyODEwMzQyMzEzNjY3MC5odG0=&ref=m.search.naver.co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수민|날짜=2016-01-28|확인날짜 =2017-09-07}}</ref> 2016년 11월, 서강준은 대한민국 차세대 스타와 그를 둘러싼 연예계 일상을 그린 100% 사전제작으로 제작 된 [[tvN]] 드라마 《[[안투라지 (2016년 드라마)|안투라지]]》에서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장 핫한 배우 차영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으로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미드 리메이크' <안투라지>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36516|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윤현|날짜 = 2016-12-26|확인날짜 =2017-09-07}}</ref>
| [[나 혼자 산다]]
| 낭독자
* 2015년 시네마게임 《도시를 품다》(감독 김선일·제작 쇼베 크리에이티) - 카카오톡을 통해 출시 및 구글플레이 및 애플 앱스토어에서 공개<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경수진, 드라마-예능 이어 게임에서 만난다|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464205|출판사=매일경제 스타투데이|저자=오주영|날짜=2015-04-17|확인날짜 =2017-09-07}}</ref>
*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패션코드 2015 F/W' 홍보대사 (with [[소녀시대 태티서]])
* 2016년 행정자치부 '자전거 안전문화' 홍보대사 (with [[헬로비너스]] [[나라 (가수)|나라]], [[박해미]])
| 남자 신인연기상
| [[MBC 연기대상]]<ref>{{뉴스 인용|제목=임시완·최태준·고성희·한선화, MBC 연기대상 男女신인상|url=http://stylem.mt.co.kr/styview.php?no=2014123021311121799&type=1|저자=이규정|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4-12-30|확인날짜=2014-12-31}}</ref>
| 남자 신인상
| 예능부문 남자 신인상
| 남자 신인연기상
| 남자 우수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남자 신인상
| 드라마 남자부문 Made in tvN
| 남자 인기상
- 오세창 . . . . 40회 일치
'''오세창'''(吳世昌, [[1864년]] [[8월 6일]] ~ [[1953년]] [[4월 16일]])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문신, 정치인이자 계몽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언론인, 독립운동가, 서화가,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화가이다. [[조선]] 말기에는 개화파 정치인이었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서화와 고미술품 감정 등의 활동도 하였다. [[한국]]의 역대 왕조의 서화가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1928년)의 저자이다. [[1918년]] 설립된 [[조선]]인 미술가, 서예가, 조각가 단체인 [[서화협회]] 창립 발기인이기도 하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독립촉성중앙회]], [[민주의원]] 등에 참여하였다. [[서예]]가로도 전서, 예서, 초서에 능하고 조각도 하였으며, 둥그스름한 형태의 독특한 서체를 창안하여 위창체, 오세창체라 부른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 자는 중명(仲銘), 아호는 위창(葦滄), [[천도교]] 도호는 한암(閒菴)이다.
위창 오세창은 [[1864년]](고종 1년) [[8월 6일]] [[한성부]] 출생으로, 중국어 [[역관]](譯官)이자 구한말의 선각자로 잘 알려진 [[오경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 아버지 역매(亦梅) [[오경석]]은 역관으로 [[숭록대부]](崇祿大夫, 종일품)까지 올랐으며, 구한 말의 개화당의 이론적 지주이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역관]] 가문으로, 대대로 외국어를 익혀 개화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중인 집안에서 자란 데다 개화파의 거두인 스승 [[유홍기]]의 영향까지 받아 자연스럽게 개화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박규수]]의 문인이자 아버지 [[오경석]]의 문하에도 출입하던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김옥균]], [[유길준]], [[윤치호]] 등과 교류하며 가깝게 지냈다.
[[1879년]] [[과거 제도|역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는데, [[1885년]] [[박문국]]에 발령받아 [[박문국]][[주사]]시보로 주간 관보인 《[[한성주보]]》 기자가 되면서 언론인으로 입문했다. [[1886년]](고종 23년)에는 [[박문국]][[주사]]가 되어 《[[한성순보]]》 기자를 겸했다. 이후 [[군국기무처]], [[농상공부]], [[우정국]] 등을 거쳤고, [[1894년]](고종 31년) [[군국기무처]] 낭청총재 비서관(軍國機務處郎廳總栽秘書官)이 되었다가 관제 개정 이후 [[농상공부]] [[참의]](農商工部參議), [[우정국]] 통신국장(郵政國通信局長) 등을 역임했다.
[[1895년]] [[10월]] [[을미사변]] 직후 [[권동진]], [[정난교]] 등과 함께 화를 피해 [[일본]]으로 망명했다.<ref>"生物進化論을 修正케한 世界的植物學者", 동아일보 1950년 01월 22일자 2면, 사회면</ref> 그러나 그는 직접적인 혐의점이 없어 곧 귀국했다.
[[1902년]](광무 5년)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였다. 후일 [[권동진]]은 [[삼천리]] 誌자에 당시 망명중이던 자신의 옛 동지를 소개할 때 한 사람으로 그를 소개하였다.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남작]] 작위와 은사금이 내려졌지만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안중식]]의 동양화 〈탑원도소회지도〉([[1912년]])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오세창의 정원 누각에 천도교 문명파 인사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1918년]] [[11월]]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손병희]], [[최린]](崔隣), [[권동진]](權東鎭)등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동지를 포섭하기로 한다. 또한 일부 [[천도교]] 연락원들이 [[기독교]] 지도자 일부와 합의하자, 범거족적인 만세 시위 개최에 동의한다.
[[1919년]] [[2월 10일]] [[최린]], [[최남선]] 등이 협의하고,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그는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내용을 검토하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 [[2월 25일]] 오세창은 [[손병희]], 권동진과 함께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조선 고종|고종]] 국장에 참배할 목적으로 상경한 [[천도교]]도 박준승(朴準承), 홍기조(洪基兆), 홍병기(洪秉箕), 김완규(金完圭) 등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알리고 이들을 설득하여 찬동을 얻었다. 이때 오세창은 그는 [[천도교]] 월보과장 옥파 [[이종일]](李鍾一)을 설득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1919년]] [[2월 27일]] 오세창은 [[천도교]] 지도자들을 설득, 그들과 함께 [[경성부]] 재동(齋洞)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최종 확인하고 찬동, 민족대표자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이어 그는 [[최남선]]의 독립선언서 용지 보급과 인쇄 등을 지원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오세창은 [[경성부]] 인사동의 [[태화관]](泰華館) 요리집에 [[손병희]], [[최남선]] 등 민족대표자들과 함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데 함께 서고, 대한독립 만세삼창을 외쳤다. 바로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경성]]경시청 총감부에 구금되었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로는 서예가, 전각가(篆刻家) 및 서예학과 금석학 역사가로 주로 활동했다. [[1922년]] 초대 [[조선미술전람회]]가 열렸을 때 서예 부문에서 수상했고, 서화사 연구에도 뛰어들어 아버지 오경석과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역대 [[한국]]의 서화가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 (槿域書畫徵)》(1928)과 [[고려]]∙[[조선]]의 서화들을 직접 찾아서 사진촬영 및 자신이 소장한 고미술품을 합친 화보집 《근역서화휘(槿域書畫彙)》를 출간하였다. 근역서화징은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서화가들을 총망라한 인명 사전이다. 그 밖에도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묵》, 《근역인수》, 등을 펴내었다.
일제강점기 중반 이후 자택에 칩거하며 서예, 서체, 서화가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밖에도 조선 초기부터 근대에 걸친 서화가, 서예가, 문인학자들의 날인(捺印)된 낙관, 인장 혹은 관련 정보들을 모아 《근역인수 (槿域印藪)》를 편찬하였으며, 여러 서화가들의 다양한 낙관과 아호 연구의 자료가 되었다. 그는 [[1918년]]에 근대적 미술가 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가 결성될 때 13인의 발기인으로 참석하였으며, [[서화협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9월]] 창당된 우익 계열의 보수 정당 [[한국민주당]]도 창당때 그를 공동 당수로 영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한민당 영수직을 거절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에도 추대되었으나 거절했다. 이어 매일신보(每日申報)의 명예사장과 서울신문 명예사장으로 추대되자 이를 수락하였다.
[[10월 16일]] [[이승만]]의 환국 때 [[김포공항]]을 방문하여 영접하였다. 이후 [[이승만]]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가 조직되자 회장에 추대되었고, 전국애국단체총연협회 회장으로도 위촉되었다.
은퇴 후, 조용히 있다가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터지자 [[대전]]을 거쳐 [[대구]]로 내려가, [[1951년]] [[4월 16일]] [[나인협]]의 장례식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대구 대봉동 31번지의 집에서 병석에 누운 지 1년만에, [[1953년]] [[12월]] 대구 대봉동 자택에서, 향년 90세의 나이로 병사하여, 장례식은 사회장(社會葬)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그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하던 [[황해도]] [[옹진군]] [[마산면]] 출신의 유학자 [[오세창 (1901년)|오세창]](吳世昌, [[1901년]]생)도 존재하였다.
*[[독립유공자로 대통령장을 수여받은 사람]]
; 참고 자료
- 유인촌 . . . . 40회 일치
||<table width=100%><-5><#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4남 3녀 중 [[3남|넷째]][* 형은 MBC 드라마 PD 출신이자 극단 '유씨어터' 대표를 지낸 유길촌 감독이고 막내동생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인 유경촌 주교다.], 아들 남윤호[* 본명은 유대식. [[영국]]왕립연극학교(RADA)에 한국인 배우 최초로 [[http://mstoo.asiae.co.kr/view.htm?no=2017062814232586773|최종합격]]했다고 한다.] ||
|| 종교 ||[[천주교]]([[세례명]]: [[토마스 아퀴나스]])[* 일부 자료에는 '[[토마스]]'로 나오는데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59750|토마스 아퀴나스가 정확한 세례명이다]].] ||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 이전까지 자신이 태어난 곳은 서울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고향이 바뀐 이유는 가카 내각에서 호남 인사 홀대 소리가 나와서.... 유인촌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전주로 피란을 가 유인촌을 낳았다고 한다...]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까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의 교수 역임[*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예술대학에 교수연구실이 있었다. TV에서의 인자하고 덕이 풍부한 [[이미지]]와는 달리 강의 때는 여러모로 과격(?)했다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고 2012년 2월 20일부터 잠깐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2014년 배우로 복귀했다. 자신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발탁했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이 퇴임한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이명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역사스페셜]]의 진행자로도 친숙하며 여러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였다.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특히 드라마 중 이명박을 모델로 한 인물의 역할을 두 번 맡은 적이 있다.
정치인이 된 이후 행보를 보면 꽤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인촌은 딱히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한 이미지가 큰 편이었다.[* 한 예로 유인촌은 김대중 역으로 삼김시대에 출연한 시기(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해)에 역사스페셜 진행자도 맡고 있었다.] 유인촌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잣대로 인해 엇갈리게 된 것은 그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본격화하고, 이후 장관으로 입각한 200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또한 연극무대에서의 [[햄릿]] 역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그가 젊었을 때는 훌륭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였다. 심지어 2016년에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또다시 햄릿역을 맡기까지 했다.[* [[정동환]], [[전무송]], [[박정자]], [[손숙]] 등 평균 나이가 66세인(그나마 최고령자 배우분이 연습 중 초기암이 발견되어 50대의 젊은(?)배우로 교체되는 바람에 낮아진거다) 연극계의 레전드들이 모여서 하는 연극이라 현실성은 좀 떨어져도 연기력만큼은 후덜덜하다.] 워낙 엄청난 입지의 배우라 인간 유인촌은 싫은데 연극배우 유인촌의 연기력은 인정한다는 사람들은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뮤지컬]]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했다.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빌라도]]역은 1980년 초연 이래 무려 십수년간 계속 맡아 오기도. 그 외에도 한강은 흐른다나 지하철 연가 등 창작 뮤지컬의 주연도 자주 맡았다.
사실 TV 필모 초기에는 의외로 '''깡패'''나 '''잉여''' 역도 꽤 했다. 80년대 모 드라마에서는 사회 잉여였다가 '''[[삼청교육대]]에 간 후 착하게 되는''' 역할도 했고 전상국의 원작인 아베의 가족에서는 한국에서 동네 날건달들과 미성년자 성추행 등을 일삼다가 우연찮게 미국으로 이민가서 날라리로 살다가 입대하여 주한미군으로 귀국하여 모친의 과거와 이복형의 존재를 찾는 역할도 했다.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이 연기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아주 잘 나온다. 유인촌의 연기변신을 보려면 필히 봐야 할 작품. 이 연산군 배역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백년]]>[* 사실 조선왕조 5백년에서는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를 했다. [[최수종]]만 해도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故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순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남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2014년 초, 홀스또메르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으며 변함없는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특히 201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메인 무대에 복귀했는데, 이때 아들인 연극배우 남윤호[* 이름은 당연히 [[예명]]이고, [[본명]]은 유대식이다. 유인촌의 아들이란 [[금수저]] 대우 받고 싶지 않다고 [[유학]]갔다 들어오면서 아예 성까지 바꾼 후 데뷔해서 수년째 극단 여행자 소속으로 활동중인 연극배우인데, 워낙 숨기다 보니 남윤호가 유인촌 아들인 걸 연극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연출자가 남윤호를 한참 설득하고 나서야 이 연극에 부자가 같이 출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부자관계가 연극계에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극단에서도 대부분이 그때 다들 처음 알았다고 한다.]와 페리클래스 역을 나눠 출연하여[* 아들은 젊은 페리클레스, 아버지는 해설자+나이든 후의 페리클레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실제 성은 '[[류(성씨)|류]]'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성씨)|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 1999년 4월 [[여성동아]]에서 그가 [[유치진]]의 아들, [[유치환]]의 조카라는 식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마음대로 억측한 소설. 아마도 유치진-유치환 형제가 '''[[진주시|진주]]''' 류씨인데 이 때문에 착각하여 그런 찌라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유인촌은 '''전주''' 류씨다.
*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남동생은 [[성직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다. 2013년부터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근거리에 모시는 요직인 보좌주교를 담당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막 신부가 됐을 적에, 배우 유인촌의 동생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m.pbc.co.kr/paper/view.php?cid=490221&path=201312|기사]]. 형제의 정치적 성향은 다른데, 유인촌이 보수정권 하에서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보수성향이고, 동생 유경촌 주교는 카톨릭 내에서 진보적인 인사로 사회교리를 전공하였고, [[신부(종교)|신부]] 시절에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 전공 교수를 역임했다. 유인촌 본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개신교]]([[장로회]])를 잠시 믿었다가 이후에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 후인 2015년 11월 22일에 논현2동 [[성당]]에서 동생인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로부터 [[견진성사|견진]]을 받았다. [[http://rose6217.blog.me/220557780401|같이 견진 받은 사람의 대모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박인환]]과 [[이형석]]과 더불어서 견진을 받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완전한 [[개종]]보다는 개신교 신자인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잠시 붙어다니다가,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 [[타이타닉]]에서 설계자를 맡은 배우[* 빅터 가버, Victor Garber]랑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서[* 참고로 이 배우는 [[캐나다]]에서 만든 디에프 상륙작전 영화에서 마운스 베튼으로 나왔다. [[찌질]]하면서도 건방진 모습이 유인촌을 많이 닮았다는 평.], 구글 검색창에서 타이타닉 유... 까지 쓰면 유인촌이 자동완성으로 뜬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국정감사 도중, 야당 측의 [[이종걸]] 의원의 질의에 기분이 단단히 상했는지 '''"[[사진]] 찍지마! [[씨발|X발]] 찍지마!"'''라고 [[기자(직업)|기자]]들을 향해 [[반말]]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이종걸 의원의 질의부터가 굉장히 무례했다. 'MB 정권의 휘하, 졸개' 운운한 것도 모자라서 그래 '사기극', '삼켜먹어버렸다.' 등의 과격한 [[단어]]들을 대놓고 내뱉었으며, 심지어는 [[호칭]]도 안 쓰고 그냥 '이명박의~'라고 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욕설, 특히 기자들에게까지 [[막말]]을 했다는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고, [[인터넷]]에서는 이종걸의 발언은 묻혀지고 이 욕설만 남고 말았다.국감이라는게 그런것이다. 질문자인 국회의원은 무슨 개같은 질문을 하든 묻히고, 발끈한 정부만 남는게 국감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질문들을 개같이 한다. 유인촌입장에선 억울할법도. 연기하는 배우라서 오히려 카메라를 신경쓰지 못했나 싶을 정도. 아이돌 출신이면 카메라 신경썼을텐데..
* [[신화창조(교양)|신화창조의 비밀]] - [[MC#s-1|진행자]]
- 은혼/633화 . . . . 40회 일치
[[은혼]] 633훈. '''놀이꾼과 현자는 종이 한 장 차이'''
* 양이전쟁 시절. [[가츠라 고타로]]는 "이기면 정부군, 지면 반란군"이라 말하며 자신들은 여전히 반란군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적이 있다.
* [[사카타 긴토키]]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드래곤 퀘스트 3]]에서 현자로 전직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투덜댄다.
* [[다카스기 신스케]]가 "반란군이면 어떠냐"고 해서 동료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가츠라는 "나라가 뒤집혀도 우린 여전히 반란군"이란 자조적인 발언을 한다.
* 그는 자신이 적의 파괴병기를 파괴할 테니 가츠라와 다츠마는 적장 [[엔죠 황자]]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 신스케가 시간을 끄는 동안 가츠라와 다츠마 일행은 엔죠 황자에게 진격을 시작, 노부노부는 이들을 따라가며 진정 나라를 싸워준 이들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 노부노부는 거기에 "내 그릇이 부족했다"며 자신도 그들을 빠라 "반란군"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다.
* 양이전쟁 시절, [[가츠라 고타로]]의 말이었다. [[사카타 긴토키]]가 그의 말을 곱씹으며 "우린 적도 아니고 진 적도 없는데 언제까지 반란군 취급을 받는 거냐"고 투덜거린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그들 옆에는 [[사카모토 다츠마]]가 길게 누워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혼자 앉아 있다. 긴토키는 가츠라가 한 말을 놓고 끊임없이 투덜거린다. 대체 얼마나 더 이겨야 정부군으로 전직이 되냐는 것이다. 현자마냥 "깨달음의 서"라도 얻어야 하는게 아니냐면서.[* [[드래곤 퀘스트 3]]에서 고급 직업인 "현자"로 전직하려면 "깨달음의 서"라는 희소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가츠라는 어쨌든 나라에 적대하고 정부에 반하는 자들은 모두 "반란군" 취급이며 최종적으론 막부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지 않으면 "정부군"은 될 수 없다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성적인 대답을 한다. 긴토키는 이때나 그때나 드퀘빠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그럴 바엔 차라리 마왕 바라모스로 전직하고 만다"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이때도 뭔가 핀트가 빗나간 놈이라 놀이꾼으로 전직하면 레벨 20에 정부군으로 전직할 수 있다고 헛소릴 한다. 그건 현자라고 얼간아.[* 원래 드퀘3의 현자는 "놀이꾼"이 레벨 20에서 무료로 전직할 수 있는데 놀이꾼이 막장스런 직업이라 레벨 20을 달성하는게 꽤 어려웠다. 그래서 리메이크판에선 "깨달음의 서"를 추가해서 난이도를 낮춘 것.]
* 다츠마는 그들이 우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환영한다. 적어도 그만은 신스케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가츠라는 겁먹고 우주 구석탱이에서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한테 베이고 싶어서 돌아왔냐고 험악한 말을 한다. 신스케가 돌격을 멈추지 않으며 "해방군 말고 네놈들이랑 먼저 한 판 해도 상관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어차피 온 우주와 거하게 한 판 해야 할 참이니까. 가츠라는 그 뒤를 따르며 나라를 뺏은 다음엔 우주를 뺏을 심산이냐며 그놈의 허풍은 우주에 나와서도 못 고쳤다고 비꼰다. 다츠마가 따라와 "이참에 그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끼어든다. 해방군한테 몰살 당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가츠라는 그 바보가 있는 한 지구는 무사할 테니, 자기들이 안심하고 날뛸 수 있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스케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다.
* 투덜거리던 가츠라는 "각오는 해야겠다"하고 중얼거린다. 이기기 위해선 한 번 원수 졌던 동료, 신스케와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단 말인가? 신스케는 자신의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츠로(은혼)|그 남자]]를 쓰러뜨린다.
원흉 우츠로. 바로 그를 쓰러드리기 위해 자신은 여기에 있다. 서당의 제자였던, 귀병대의 대장이었던 모든 자신이 여기에 있다. 신스케는 이 일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부딪히겠다고 선언한다.
* 벽이 뚫리면서 새로운 해방군 병력이 쏟아진다. [[자작 제독]]이 적의 숫자가 압도적이라며 발이 묶이면 금방 끝장날 거라고 외친다. 신스케는 원수이자 동료인 다츠마와 가츠라를 먼저 보내려 한다.
그는 덤으로 "이쪽 대장"도 맡긴다. [[도쿠가와 노부노부]]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노부노부의 목이 붙어 있는걸 보고 안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도 안 되는 때에 대장 자리를 떠맡겨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와 노부노부는 배신하고 배신 당했던 사이. 하지만 이번에 그를 맡는 사람들은 다르다. 신스케는 그들을 "나라"에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츠(은혼)|무츠]],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가 뒤를 따르며 병력을 이끈다. 노부노부는 이들을 따라 달리며 신스케의 진의를 떠올린다. 그가 당부하지 않았더라도 알고 있다. 나라에 위기에 처하고 가신들 조차 나라를, 장군을 버렸을 때 누가 손을 내밀었는가? 국적이라 불리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싸운게 누구인가?
>자네들은 아무도 모르는 전쟁터에서
>이 나라는 두 번 다시 자네들을 배신하지 않네.
>두 번 다시, 자네들을 버리지 않겠네.
- 의성군 . . . . 40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FFB6C1> {{{#FF0080 '''군수'''}}} ||<bgcolor=#FFFFF0> [[김주수(정치인)|김주수]]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3><bgcolor=#FFB6C1> {{{#FF0080 '''군의회'''}}} ||<:><bgcolor=#CA252B>'''[[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9석}}}||
||<bgcolor=#FFB6C1> {{{#FF0080 '''2'''}}} ||<bgcolor=#FFFFF0> 김수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2><bgcolor=#FFB6C1> {{{#FF0080 '''국회의원'''}}} ||<bgcolor=#FFFFF0>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br][[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2017년 4월 재보궐선거]]) ||
2016년 ‘중앙 이코노미스트’가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과 국내 252개 기초단체의 인구 현황(2015년)을 분석한 결과 노인 인구 100명 당 20~30대 여성 인구 17명으로 30년 뒤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19968138|# 젊은 여성 없는 의성·고흥·군위…30년 뒤 내 고향 사라진다]]. 참고로 [[고흥군]], [[군위군]]이 뒤를 이었다. 또한 2015년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기초자치단체이기도 하다. 평균연령 55.3세, 중위연령 59.2세.
~~여름에는 최고기온으로, 겨울에는 최저기온으로 일기예보에 자주 나오는 지역이다.~~
탑리 5층석탑([[국보]] 제77호), 관덕동 3층석탑([[보물]] 제180호) 빙산사지 5층석탑([[보물]] 제327호) 등의 문화재와 금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제373호) 등이 있다. 이 중 탑리 5층석탑, 빙산사지 5층석탑 등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에 소개되어 있다.
컬링 이전에는 [[씨름]] 스타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 의성이다. 의성초등학교-의성중학교-의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씨름의 계보가 탄탄하며 의성군청에서도 씨름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에 연고가 있는 유명 씨름인으로는 5대, 8대, 13대 [[씨름/체급|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1980년대 씨름스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과 32대, 38대, 40대 [[씨름/체급|천하장사]] 출신이자 1990년대 씨름스타 [[이태현]] 용인대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출생지는 모두 의성이 아니지만 의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씨름을 배웠다.
그리고 1995년 단 6명의 인원으로 전국대회 준우승을 일궈낸 의성여자고등학교 농구부도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스포츠와는 거리가 있는 조그마한 도시지만 국내 [[동계 올림픽]]의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한 '''[[컬링]]'''의 메카가 바로 의성이다. 최근엔 '''컬링 수도'''라는 호칭이 자리 잡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547165|#]]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영미]], [[김선영(컬링)|김선영]],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 2 || 의성여자중학교 || 의성읍 군청길 77 ||
|| 10 || 탑리여자중학교 || 금성면 탑리4길 25-6 ||
||<|6> 공립 || 1 || 의성여자고등학교 || 의성읍 북원3길 35 ||
|| 5 || 금성여자상업고등학교 || 금성면 탑운길 99 ||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C9151E '''상주·군위[br]·의성·청송'''[* 지역구 국회의원 : [[김종태(1949)|김종태]]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 → [[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 3선)]}}} ||<:>14.69%||<:><bgcolor=#C9151E>{{{#FFFFFF 63.35%}}}||<:>12.72%||<:>5.25%||<:>2.79%||<:>{{{#808080 ▼48.66}}}||<:> 75.10 ||
- 이상백 (1904년) . . . . 40회 일치
| 직업 = [[역사학|사학자]] <br/> [[사회학|사회학자]] <br/> [[철학|철학자]] <br /> [[농구]] 선수 <br /> 체육인 <br/> 체육이론가 <br /> 체육행정가 <br /> 여행가 <br /> 기행 작가 <br /> [[수필|수필가]] <br /> [[저술가]] <br /> 스포츠 평론가
| 부모 = 이시우(부), 김신자(모)
| 자녀 = 이학희(아들), 이경희(딸)
'''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체육인, 작가, 언론인으로, 호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이다.
사학자로도 활동하였고 각종 사회단체와 문교부 고시출제위원, 중앙공무원교육원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 중반의 농구선수였으며 각종 올림픽 대회의 선수단 대표와 대표단장을 역임하였다. 학회 활동으로는 [[진단학회]], [[연경학회]], [[대한민국 학술원]]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상백은 [[1904년]](광무 7년) [[8월 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서문로]] 12번지의 양옥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며, 어머니는 김신자(金愼子)로 [[김해 김씨]]이다. 4형제 중 셋째이다. 형 [[이상정]]은 독립 운동가이며, [[이상화 (시인)|이상화]]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시인, 작가이며 넷째 아우 이상오는 정통 수렵가이자 [[바둑]] 유단자이다. 그의 집안은 [[대구광역시|대구]]의 명문가로 대 부잣집이었으나 아버지 이시우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상백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영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상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일본]]에서 수학, 연구하는 동안에도 자주 배편으로 귀국, [[경성]]과 [[일본]]을 내왕하며 국내 학계 학자들과 긴밀히 제휴하거나 학문적인 견해를 주고 받앗으며, [[진단학회]]의 결성준비와 창립 발기에 참여하고, [[진단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또한 [[진단학회]]의 기관지 [[진단학보]]에도 칼럼과 논문을 송고하였다. [[1927년]]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 3년간 동양학, 사회학을 수학하고 [[1930년]]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였다.
그후 제11회 도쿄 올림픽 대회 유치위원과 준비위원으로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등을 방문하여 대회 유치와 준비에 협조를 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체육계의 공로자로 칭송받았다. [[1939년]]부터 [[1941년]]에는 모교인 [[와세다 대학]] 재외특별연구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동양학을 연구했으며,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였으나 도쿄 올림픽 유치와 추진의 공로로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1944년]]에는 [[여운형]]이 결성한 지하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1946년]]에는 조선체육회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1948년]] [[10월]] 잡지 학풍(學風)이 창간되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ref>정진숙, 《출판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2007) 180페이지</ref> [[1948년]]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협상론이 대두되었을 때 그는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였다. 대한체육회 설립 이후 [[1951년]]에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아시아경기연맹 집행위원을 거쳐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인 '서얼차대(庶孽差待)의 연원에 대한 일문제'를 [[진단학회]]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와 건국 초기 분야에 대한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 이조 태조의 사전개혁운동(私田改革運動)과 건국 후의 실적, 위화도회군고(威化島回軍考),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 '[[고려]]말 이조초에 있어서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운동(田制改革運動)과 그 실적' 등 고려 말, 조선 건국, 조선 전기 분야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였다.
또한 [[1910년]]까지도 [[고려]]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아들, 손자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논증하고, 조선의 건국 세력이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손인 것처럼 유포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근거로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를 발표하였다. 또한 조선 전기의 서자 차별 문제에 대한 연구 외에도 과부 재가 금지법인 '재가금지습속(再嫁禁止習俗)의 유래에 대한 연구' 등의 논저를 발표하였다. 그밖에 진단학회에서 편찬한 《한국사-근세전기편-》과 《한국사-근세후기편-》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를 발표한 이래 그는 [[정도전]]이 역적으로 몰린 것은 [[정도전]]의 잘못도 있지만 [[정도전]]의 정적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비난, 부정적인 시각만 강조되어 왔음을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로 고대사와 중세사, 상고사를 연구하는 타 학자들과 달리 그는 주로 조선 왕조사의 연구에 집중하여 힘썼으며 [[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 분야의 연구에 업적을 이룩하여 [[1963년]] [[건국훈장]]과 [[문화훈장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수여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국사, 근세사 외에도 사회학사, 한국사회론 등을 강의하였으며, 《질서와 진보》, 《중간계급의 성격》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의 개설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래 국내 최초로 사회학과를 설립하고, 대학 강의와 교양지 및 학술지를 통해 사회학을 보급하였다. 또한 사회학을 연구하는데 기초자료로서 통계조사와 설문을 채택, 통계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어 사회학의 연구와 보급을 위해 외국 사회학을 소개하는 데도 힘써, 미헬스(Michels,R.)의 《정치 사회학》, 루세그 와런의 《사회학개론》 등의 책을 [[한글]]로 손수 번역, 이들 서적의 [[번역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작가이자 수필가로도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 [[내무부]]의 고등고시 출제위원으로 국사, 문학 분야의 출제를 담당하였고, [[중앙공무원훈련원]] 고문 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대한민국 학술원]]이 출범하자 학술원 회원으로도 초빙되었다. 사회단체 활동으로는 연경학회(燕京學會) 회원, 동방문화 연구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었다.
[[문교부]] 대학교수자격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3·1 문화상]] 심의위원 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그는 국내 명승고적지와 세계 5대양 6대주를 수없이 돌아다닌 여행가였으며, 기행문 등을 남기기도 했다.
만년에는 그는 국학, 동양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동아문화연구소를 설립,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연구 계획을 수립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를 기획, 준비하였다. 그는 장서가로, 젊은 시절부터 헌책방과 각종 서점을 돌며 평소 희귀한 한중고활자본을 비롯한 진귀한 많은 서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만년에 자신이 수집한 책들 모두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상백문고(想白文庫)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1966년]] [[4월 1일]] 갑자기 쓰러져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병세는 [[심근 경색|심장경색증]]을 비롯한 [[심장병|심장질환]]이었고, 결국 [[4월 18일]] 아침 8시경 [[서울대학교]] 대학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한국사회학회, 진단학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관한 연합장으로 주관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현 [[대구광역시]] 남구 화원동)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사후 1년 뒤인 [[1967년]] 그의 1주기에 세워졌는데, 묘비문은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글씨는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 어머니: 김신자(金愼子), 김해 김씨(金海 金氏)
- 이지은(2000) . . . . 40회 일치
||<:><#fcb4bd>'''{{{#white 별자리}}}'''||<#ffffff>[[사수자리]]||
||<:><#fcb4bd>'''{{{#white 학력}}}'''||<#ffffff>충주북여자중학교[br][[한국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fcb4bd>'''{{{#white 별명}}}'''||<#ffffff>여장부[* 고등래퍼 출연 당시, 남자출연진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모로 당차게 리딩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듀서들이 감탄하곤했다.], 안소희 닮은꼴[* 고등래퍼 선공개 영상에서 안소희 닮은 꼴로 소개가 되었으며, 좌우로 긴눈과 전체적인 얼굴형태가 닮았다는 평가], 코지은[* 코가 꽤 오똑하고 이쁜편이라 힙갤에서 불리는 편], 찐[* 학교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한다], 햄[*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나온 별명], 자영업자[* 믹스나인 방송내에서 콩알만한 분량으로 알아서 여자 직캠조회수 3,4위를 먹은 김시현, 이지은을 통칭하는 별명. ]||
충청북도 충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댄스 스튜디오에서 랩와 춤을 연습하며 꿈을 키워온 듯하다. 수댄스 대표의 상당한 애제자인 듯하며, 대표 인스타에는 이지은에 대한 애정어린 포스트가 상당하다. 현재 남아 있는 상당수의 자료들이 수댄스에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예지(피에스타)]]의 곡인 미친개 커버([[https://www.youtube.com/watch?v=o95OUDg2sOw|유튜브]])를 올리기도 했다.
고등래퍼 지역예선에 강동지역으로 참여하였다. 예선영상은 클립으로 선공개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한림예고 송한희와 여성래퍼 대결구도로 연출되었고, 각자의 외모나 실력, 그리고 닮은 꼴[* 송한희는 수지 닮은꼴에 비타 500 광고도 따라했고, 이지은은 안소희 닮은 꼴로 나온다.]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송한희는 고등래퍼 티저의 참가자이자, SNS에서 이미 유명세가 있던 참가자로, 여성 최강자 기믹이 있었다. 그에 반해 이지은은 철저히 신예에 언더독 이미지로 그려져, 대부분 송한희를 띄워주기위한 연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연에서 송한희가 아쉽게 연속된 가사 실수를 하게되고 이지은은 훌륭하게 경연무대를 펼쳐, 멘토들의 찬사를 받아 194점으로 최종 5위로 다음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서울강동에 스타성이 있는 참가자들이 유독 많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빼어난 외모덕도 있겠지만... 찰진 리액션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탈락자이지만, 장용준 사건으로 인해 강동지역에 TO가 나게되고 조민욱, 조니와 함께 선발 후보군으로 잡히게 된다. 결국 조민욱이 나가기로 했다.
믹스나인 5회의 최고의 수혜자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는 분량을 몰빵받았다. 5화는 순위발표식과 포지션 배틀의 준비와 경연의 절반을 보여준 에피였다. 포지션 배틀은 댄스, 보컬, 랩 곡 하나를 선택해, 남녀간 배틀을 붙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랩퍼인 이지은은 랩을 선택했고, 노래는 [[치타(가수)|치타]]의 My number.
남자 연습생에게 랩이 가장 인기가 있었지만[* 본헤이터 곡에 15명이 몰려, 즉흥 싸이퍼로 8명을 떨궜다고 함.] 반대로, 여자 연습생에게는 랩이 가장 인기 없었던 듯하다..
비록 결과에서 본헤이터 팀에게 패배하긴했지만 [[송민호]], [[양현석]]에게 칭찬을 받으며, 이 화의 최고의 수혜자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기존의 단점이라고 지적받았던 가사에 대해서도 [[송민호]]는 깜짝 놀랐다며 훌륭한 가사라고 평가했다.
전체순위 83위, 여자연습생 37위로 2차 순위발표에서 생존했다! 여자 연습생 중 자그마치 40위(77위 -> 37위)가 올라버리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분량도 10초 정도 나왔다. 마지막엔 시청자들에게 9ood 9irl 멤버들이 큰절을 하기도...
8화는 2차 경연을 주제로 여자연습생들이 포메이션 배틀을 준비하여 공연하는 장면이 잡혔다. 데뷔조 멤버들이 5곡을 지정한 후, 댄스, 보컬, 랩으로 각 멤버들을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방송 상에서 공개된 허니조는 그나마 편집이 살려준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초반 주목을 받았던 인형을 컨셉으로 한, 안무는 익스프레션 마리오네트의 어설픈 카피였고[* 그걸 의식해서인지, 본방에서는 편집으로 날려버린다. 물론 현재 춤이라는 영역에서 익스프레션에게 완벽하게 자유로운 팀은 없겠지만.] 그 컨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채, 컨셉이 붕떠버리게 된다. 그에 더해 확실한 보컬이 없는 관계로, 후반부 벌스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게다가 의상컨셉이 최악인 상황 도중 수란의 "지은이 랩하는데 의상이... 허.." 라고 탄식하는 장면이 뜬다. 이 와중에 이지은은 나름 노래에 맞게 랩[* 방청러들의 말에 따르면, 심사위원들에게 노래에 맞는 랩을 했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근데 방송에는 통편집]을 하게 되었다. 최악의 평을 들은 공연에서 [[유키카]]의 엔딩과 함께 유이하게 살릴만한 퍼포먼스였던 것.
경연결과는 684점을 받아 허니조 1위, 여자연생 전체 3위를 차지했다.
==== 9화(남자 포메이션 배틀이므로 통편집) ====
이번 화는 여자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조 순위와 남자 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경연으로 구성된 화였다.
12월 3주차 순위에서 15위로 22계단 급상승했다! 제작진에서도 이것을 띄워주려는 듯, 여자연습생 그 쥐꼬리만큼의 분량 중에서도 15라는 순위를 크게 표시해서 4~5컷 정도 보여 주는 편집을 했다.
음원미션 준비와 3차 순발식이 방송이 되었다. 같은 조에서 살아남은 게 이지은 혼자였다. 최종 순위는 여자 24위.
남아있는 27명의 여자 연습생이 3곡을 선택해 경연을 하는 화였다. 기존의 팀 베네핏이 아닌, 각 팀별 1~3위에게 1만점, 5천점, 3천점을 주는 룰로 팀원 구성에 대한 이슈가 많았었다.
곡은 HUSH(쉿), Dangerous girl, 이 밤이 지나면 총 세곡이었으며 상당수의 연습생들이 이 밤이 지나면에 몰리게 되고, 그 중 이지은도 한명. 그 곡에 총 13명이 몰린 관계로 4명을 방출해야되는 상황. 이수민은 자진해서 HUSH 팀으로 가버리고, 나머지 3명을 투표를 통해 방출해 버린다. 그리고 이지은은 여기 포함되었다.
- 이휘향 . . . . 40회 일치
|배우자 = [[ 퇴계 이황 ]]
* 1990년 [[KBS]] 8.15특집극 《[[왕조의 세월]]》 ... [[이방자]] 역
* 1998년 [[KBS1]] 일일연속극 《[[살다보면]]》 ... 최숙자 역
* 2000년 [[SBS]] 일일드라마 《[[자꾸만 보고싶네]]》 ... 박자영 역
* 2001년 [[KBS2]] 일일연속극 《[[여자는 왜?]]》
* 2004년 [[MBC]] 미니시리즈 《[[아일랜드 (드라마)|아일랜드]]》 ... 재복 모, 김부자 역
* 2011년 [[MBC]] 일일연속극 《[[남자를 믿었네]]》
* 2011년 [[SBS]] 주말극장 《[[내 사랑 내 곁에 (SBS 드라마)|내 사랑 내 곁에]]》 ... 배정자 역
* 2011년 [[MBC]] 창사5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 송미진 역
* 2012년 [[MBC]]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 ... 이기자 역
* 2013년 [[SBS]] 아침연속극 《[[두 여자의 방]]》 ... 여옥선 역
* 2014년 [[SBS]] 아침연속극 《[[나만의 당신]]》 ... 장영자 역
* 2015년 [[KBS1]] 일일연속극 《[[가족을 지켜라]]》. .. 복수자 역
* 2016년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 마청자 역
* 2017년 [[KBS2]] 일일드라마 《[[내 남자의 비밀]]》 ... 위선애 역
*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흰수염 동거녀 역
| 여자연기상
| 여자 우수연기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하이큐/248화 . . . . 40회 일치
* 이나리자키 고교는 언론도 밀착마크할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팀. 잘해야 다크호스 수준인 [[카라스노 고교]]와는 "격차"가 심했다.
* 1회전부터 감초처럼 등장하던 바보커플이 2회전 관람 일정을 짜고 있다. 남자 쪽은 배구 지식이 상당한지 남녀 강호팀에 대해서 자세히 안다. 그들은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형제를 보려고 대진표를 확인하는데 상대팀이 [[카라스노 고교]]인걸 발견한다. 그들은 꽤 인상깊은 팀이었는데 탈락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나리자키는 그만큼 강호로 작년 봄고와 인터하이에선 각각 3위를, 이번 인터하이에선 또다른 강호 "키류"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패하긴 했으나 그 왕자 "이타치야마"에게 한 세트를 뺏어왔을 정도로 상승세. 지금 가장 주목 받는 팀이다. 여자 쪽은 개인적으로 미야형제팬인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자 남자 쪽이 인상을 구긴다.
*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양팀이 그걸 쓰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워밍업 생각만 하며 안절부절하는 카라스노와 달리, 이나리자키 측은 주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상당히 여유롭다. 주장 3학년 [[키타 신스케]]. 포지션은 Ws이고 키는 175cm로 배구선수 치고 크진 않다. 인터뷰하는 상대도 마치노 아나운서라는 유명한 언론인.
[[야마구치 타다시]]와 [[히나타 쇼요]]는 유명인이 카메라 앞에 서자 괜히 싱숭생숭한 모양이다. 야마구치가 자기들한테도 인터뷰하려 오면 어쩌냐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츠키시마 케이]]가 "강호 밀착 취재"라며 카라스노한테는 오지도 않는다고 핀잔한다. 히나타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브이"하러 가자고 꼬득이는데 츠키시마의 차가운 구박만 받고 만다.
* 한편 니야마 고교도 여자팀이 경기하러 오는 중이다. [[아마나이 카노카]]의 동료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넣어주고 있다. 카노카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보다 스펙이 뛰어나고 "류"한테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밀어붙이면 넘어오게 되어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카노카는 별로 확신이 생기지 않는 모양인데, 문득 [[타나카 류노스케]]가 처음 배구를 추천해준 그 시절을 떠올린다.
소극적이고 체육하고 거리가 멀었던 그녀가 갑자기 배구를 할 수 있을리 없었다. 카노카가 서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며 우는 소리를 하자 타나카가 말한다.
* 마침 타나카와 마주친다. 동료는 눈치껏 잽싸게 자리를 피해준다. 타나카 쪽에서 먼저 "어제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면서 사과하는데 카노카는 그건 오빠였다며 자기야말로 미안하다고 말해 오해를 푼다. 그렇게 해서 뭐가 꼬였던 건지는 자명해졌지만, 그럼 착각한게 착각이었던게 되기 때문에 다시 타나카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때 카노카가 말한다.
카노카는 그렇게 단순한 말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했다. 그녀는 타나카를 남겨두고 팀으로 달려간다. 타나카는 "잘하게 됐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확실히 그녀는 최근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그때 이나리자키 쪽에서 아는 척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미야 아츠무]]다. 그는 카게야마에게 인사를 건네며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하는 말은 신랄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방금 전 히나타의 실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옆에서 연습 중인 선수들도 듣고 그 강호다운 과시를 질색한다. 이때 카게야마가 두말없이 "미안하게 됐다"고 하자 히나타가 버럭한다.
* [[야치 히토카]]가 1시합이 2세트로 접어들었다고 알려온다. 카라스노도 슬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시합 준비를 마친다. 오늘은 카라스노가 세컨드 유니폼. 이나리자키 측은 검은 색 유니폼이다. 히나타는 세컨드 유니폼이라도 [[니시노야 유]]는 주역 같은 맛이 난다고 감탄한다. 반대로 카게야마한테는 오렌지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가 "넌 전신 귤색"이라는 따가운 팩트폭력을 당한다.
츠키시마까지 끼어들어서 "넌 색이 정신사납다"고 까고 타나카도 질 세라 "츠키시마 네가 할 말은 아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게 꼬투리가 됐다. 히나타가 "아까 만난 미인"하고 무슨 얘길 했냐고 포문을 열자 츠키시마는 대번에 표적을 바꿔 타나카를 놀려댄다. 타나카는 쑥쓰러워하며 답지 않게 수세에 처한다.
* 후배들이 러브코미디 모드인 동안 3학년들은 후배들이 어찌 저리 태평한지 감탄 아닌 감탄을 한다. [[아즈마네 아사히]]는 손바닥에 사람 인자를 거듭 써갈기며 긴장을 풀려고 몸부림 친다.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긴장하지 않는걸 보고 "흥분이 앞서서 긴장하는걸 잊어버렸나 보다"라고 추정한다. 아즈마네는 그걸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 스가와라는 관중석에서 미야 아츠무의 극성팬을 본 일을 이야기한다. 부채에 커다랗게 아츠무의 이름을 써서 가지고 다니는게 마치 아이돌 팬덤같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실제로 그들은 아이돌 같다며 1위팀 이타치야마하곤 다른 의미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실력과 화려함을 겸비한 "최강의 도전자"라는 캐릭터. TV에서도 이걸 살려서 자주 취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그렇게 음침한 소릴 하자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는 그가 실성한 줄 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그런 엄청난 "격차"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다이치는 전에 없이 투지를 끌어올렸다. 마치 어젯밤의 심각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즈마네가 그 점을 꼬집자 사와무라는 "집중했던 것"이라고 얼버무린다.
* 관중석은 아직 1시합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기분 나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음악단은 물론이고 치어리더의 안무와 시라토리자와 학교를 연상시키는 전교 응원. 엄청난 규모의 "대악단" 응원단이다. 카라스노의 보통 규모 응원단은 소리가 파묻힐 지경이다. 사실 이나리자키는 배구 말고 취주악부로도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그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그게 낭비가 아닌지 야마구치처럼 기가 약한 선수들은 응원전 만으로 벌써 위가 쑤시다며 위축된다. 히나타같은 단세포는 "커다란 나팔이 멋지다"며 정작 응원에는 무신경하다.
* 마침내 1시합이 등장하고 오늘의 주인공 이나리자키가 등장한다. 주장 키타 신스케를 필두로 미야 형제가 뒤를 따르고 있다.
*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관중석이 이제는 코트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묻힐 정도로 커다란 환성으로 바뀐다. 사와무라가 치지지 않고 "가자"고 외치려고 하지만 계속 소리가 묻힌다. 투지에 분노까지 끌어올리고 나서야 "가자"는 구호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봄고 배구 2회전 B코트 제 2시합. 카라스노 고교 대 이나리자키 고교 개전.
- 황두진 . . . . 40회 일치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ref>{{웹 인용|url=https://gwangjinlib.seoul.kr/gjinfo/recommendBookDetail.do?bookIdx=2149&recommendTypeCd=general|제목=가장 도시적인 삶|저자=황두진|날짜=|웹사이트=광진정보도서관|출판사=반비}}</ref>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하여 유럽을 순회한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전>에 참여했고 동 전시회의 전시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개념의 건축 전시를 보여준 바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0912140002813|제목=메가시티 네트워크ː 한국현대건축 서울|성=|이름=|날짜=|웹사이트=국립현대미술관|출판사=}}</ref>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모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을 설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마당과 툇마루, 방을 오밀조밀하게 누비는 한옥의 동선을 전시실에 적용했다"며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은은하게 살렸다"고 했다. <ref name=":0">{{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3/2012021300208.html|제목=[오늘의 세상] 스웨덴 왕가의 代이은 한국사랑|저자=채민기 기자|날짜=2012년 2월 13일|뉴스=|출판사=}}</ref>
건축가로서 개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 거리와 소통하는 건물, 사회에 필요한 건축 등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무지개떡 건축은 그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다. 그가 현대 도시건축의 중요한 유형으로 보고 발전시켜오고 있는 개념이다. 개별 작품과 기고문을 통해 생각을 전개시킨 후 2016년 저서인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정리해서 발표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085412|제목=진정한 의미의 주상복합이 가장 도시적인 건축|저자=이은주 기자|날짜=2017-11-06|뉴스=중앙일보|출판사=}}</ref>
전층이 단일용도로 되어있는 건축물을 시루떡에 비유한다면 층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갖는 건축물은 무지개떡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5층 내외로 상층부에 주거가 들어가는 유형을 황두진건축에서는 특별히 무지개떡건축이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길과 면한 저층부에는 외부계단과 상가가, 중간층에는 사무실이, 상층부의 주거에는 옥상마당 등이 들어간다. 무지개떡건축은 도시의 밀도를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거리의 활력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조망 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탁월한 도시건축의 유형이다. 사회적으로는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서 도시재생에도 유리하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rca/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홈페이지|제목=무지개떡 건축 rainbow cake architecture|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51347501&code=960205 |뉴스=경향신문|제목=무지개떡 건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저자=백승찬 기자|날짜=2015-12-25|출판사=|확인날짜=}}</ref>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반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한 건물 안에 다양한 기하학이 공존하는 것이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이다. 이런 건축물은 사람에게 즐거운 놀라움과 지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기하학이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칸’(間)으로 대변되는 직교좌표계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 지붕이 공존하는 한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첩된 기하학은 황두진건축의 독창적인 개념의 하나로,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상자의 미학에서 벗어나 삶의 공간 속에서 풍성함과 쾌적함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layered-geometr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중첩된 기하학 layered geometry|성=|이름=|날짜=|출판사=}}</ref><ref>{{서적 인용|url=https://jdlib.sen.go.kr/jdlib/intro/search/detail.do?vCtrl=5304391852&isbn=9791195212804&menu_idx=4|제목=「황두진-다공성 구축술 시스템」, ISBN 9791195212804 p.271|저자=황두진|날짜=2016-03-01}}</ref><ref name=":1">{{웹 인용|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705&cid=58767&categoryId=58771 |제목=한국의 현대 건축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저자=구본준|날짜=2014-10-08|웹사이트=네이버 지식백과|출판사=}}</ref>
까오 의자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쇳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웹 인용|url=http://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do?menuId=2010000000&wrkMngNo=DE-05880 |웹사이트=MMCA|제목=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저자=|날짜=2006|출판사=|확인날짜=}}</ref>
* 2015 WON & WON 63.5(서울 강남구 논현동)<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Xy-8E2bHXqQ|제목=Doojin Hwang Architectsː Won & Won 63.5 Building|저자1=정다운|저자2=김종신|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8949486 |뉴스=중앙일보|제목=강남대로에 쌓은 벽돌 30만장, 유리 건물 사이에 느낌표를 찍다|저자=송정 기자|날짜=2015-10-28|출판사=|확인날짜=}}</ref>
* 2015 목경헌(서울 은평구 한옥마을)<ref>{{웹 인용|url=http://www.aurum.re.kr/Bits/BuildingDoc.aspx?num=6611#.Ww-K2e6FPct |제목=2016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한옥대상|성=|이름=|날짜=|웹사이트=AURUM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 건축자산|출판사=}}</ref>
* 2013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천안시 서북구 직산읍)<ref name=":1" /><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As7ze583ANI|제목=Doojin Hwang Architects: the Castle of Skywalkers|저자1=정다운|저자2=김종신|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
* 2012 통인시장 아트게이트 (서울 종로구 통인동)<ref>{{웹 인용|url=https://www.kcdf.kr/views/cms/award/awaw/aw2012.jsp |웹사이트=kcdf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제목=2012 대한민국공공디자인대상|성=|이름=|날짜=|출판사=}}</ref>
* 2011 더웨스트빌리지 (서울 종로구 궁정동)<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21121/50993591/1 |뉴스=동아일보|제목=도시의 정답은 층층이 다양한 저층 주상복합|저자=이진영 기자|날짜=2012-11-21|출판사=|확인날짜=}}</ref>
* 2008-2009 한강교량 보행자시설 (잠실대교, 한남대교, 동작대교)<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00210/26065472/1 |뉴스=동아일보|제목=[나의 건축을 말한다]황두진의 '한강다리 카페들'|저자=손택균 기자|날짜=2010-02-10|출판사=|확인날짜=}}</ref>
* 2008 춘원당한의원 및 박물관 (서울 종로구 낙원동)<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HrAHT6ymcW8|제목=[空間사람] 춘원당 한방박물관 편 (황두진)|저자=tbs|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
2017 건축 & 디자인필름 페스티벌 서울(ADFF: Seoul)<ref>{{웹 인용|url=http://library.hyundaicard.com/DL/1000000013/exhibition.hdc |웹사이트=현대카드 Design Library|제목=ADFFː Seoul 건축 & 디자인 필름 페스티벌(Architecture & Design Film Festival, ADFF)|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2006
'건축가의 가구', 쇳대박물관 ('까오' 의자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15-2016 서울시 마곡지구 건축축자문위원
2014
미국 4개 대학 순회강연: 네브라스카대학(UNL), 아이오와대학(ISU), 켄트주립대학(KSU), 로드아일랜드디자인대학(RISD)
- 김병옥(배우) . . . . 39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이윤자, 슬하 2녀[* 둘째 딸은 마음의 소리 시트콤 KBS판 6화에 잠시 나왔었다.] ||
>[[감시자들]]에선? - 구둣방 주인인데 '''나쁜 놈.'''
>[[신세계(영화)|신세계]]에선? - 연변 거지인데 '''나쁜 놈.'''[* 근데 영화 막판에서는 [[이자성(신세계)|이자성]]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 공익광고협의회에 출연한 모습이다. 내용은 '스마트폰 사용 예절을 지키자'는 것.]
본래는 극단 [[목화]] 출신의 베테랑 연극배우 출신으로, [[올드보이(2003)|올드보이]]에서의 경호실장 역,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전도사 역 등 선 굵은 악역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군도: 민란의 시대]](2014), [[트라이앵글(드라마)|트라이앵글]](2014), [[모던파머]](2014), [[가면(드라마)|가면]](2015), [[검은사제들]](2015),[* 이 영화에서는 드물게 선역,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측 조력자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고할 것.] [[내부자들(영화)|내부자들]](2016), [[인천상륙작전(영화)|인천상륙작전]](2016)에 출연.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이영애)에게 그 유명한 '''너나 잘하세요''' --일침류 갑--를 들은 인물 하면 알 것이다. 위 왼쪽 짤 모습도 바로 저 대사를 들은 후의 표정 (..) [[안습]] 짤의 대표짤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영화 [[신세계(영화)|신세계]](2013)에 [[옌볜 조선족 자치주|연변]]의 살인청부업자인 연변거지1 역으로 출연하여 강 과장([[최민식]])을 죽인다. 참고로 김병옥은 10년 전 [[올드보이(2003)|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에게 가위지르기로(가위가 귓구멍으로 들락날락) 뇌손상을 입은 채 [[최민식]]의 목을 조르다가 이우진([[유지태]])에게 헤드샷을 당해 죽는 경호실장 역으로 나왔다. 이른바 10년 만의 복수. 드라마 [[미세스 캅]]에서 살인청부업자 황박사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무서워-- [[미녀 공심이]]에서도 악역.
홀어머니가 시장에서 청과 가게를 하시면서 하루하루 온가족이 연명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연극 배우 생활을 이어가면서 15년 동안 짜장면, 짬뽕만 먹었다고. 심지어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없어 시장 상인들이 십시일반 장례 물품을 대고 친구들도 돈을 갹출해 도와줬다고. 44세 때 출연한 올드보이 전까지 정말 빈곤했단다. 성공한 후에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에 보증도 많이 서줘 돈을 많이 못 모았단다.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마다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 원로 배우 [[박근형]]과 많이 닮았다. --어디가?-- 얼핏 보면 ~~BJ 우마이~~ [[마츠시게 유타카]]나, 코미디언 [[송준근]]도 닮기도 했다. [[박문성]]이 이 분을 많이 닮았다. 예능 아는형님에서 [[희철|김희철]]이 닮은꼴을 자청하며 성대모사를 하는데 원래 꽃미남류라서 그리 닮지는 않았다. 그리고 [[김영환(1955)|김영환]] 前 장관과도 닮은 편.
||<|3> 2015년 || [[내부자들(영화)|내부자들]] || 민정수석 || ||
||<|4> 2014년 || 우리는 형제입니다 || 노숙자 김씨 || 특별출연 ||
||<|5> 2013년 || [[남자가 사랑할 때(영화)|남자가 사랑할 때]] || 목사 || ||
|| [[감시자들]] || 정통 || ||
|| [[친절한 금자씨]] || 전도사 || ||
||<|5> 2017년 || MBC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 엄자치 || ||
|| MBC || [[죽어야 사는 남자]] || 한소장 || ||
[[맥심(잡지)|맥심]] 2015년 9월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는데, 악역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느와르]] 컨셉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실제 범죄를 연상[* 일반적인 느와르 느낌보다는 그냥 강력범죄 설정에 가까운 화보들이었다. 남자끼리 총격전을 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조폭 설정으로 스타일링한 김병옥이 납치한 여성을 트렁크에 실어서 차로 옮겨 땅에 묻는 설정의 사진이었다. 실제로 잡지사 여직원이 피해자(?) 역할까지 했다. --[[취향|여긴 왜 자꾸 자기네 여직원들을 시켜]]--]시켜서 혐오감과 공포감을 일으킨다고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것이 배우 본인의 잘못은 아닌지라, 어쩌다 논란에 끼여 버린 피해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동명의 웹툰원작 시트콤 [[마음의 소리(시트콤)|마음의 소리]]에서 주인공 조석의 아버지 조철왕역으로 출연[*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몇 안 되는(...) 선역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그의 연기 인생 중 '''첫 코미디 역'''이라고 한다.--한두번 해본건 아닌거 같다--]했는데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높아 호평을 받는 중. 조철왕 역을 수락하는 데에 둘째딸[* 마음의 소리 특별판에서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굉장한 미인이다. 17년 기준 19세. ~~아버지가 전화를 걸자 무뚝뚝한 목소리로 학원 수업 들어가야한다고 말하는 게 포인트~~]의 권유가 컸다고 한다. 덕분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무서워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고.
[[크라임씬3/사기꾼 살인사건]]편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조선족 출신 김동포 역할로 게임에 참여했다. 해당 편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역대 가장 시청자들에게 최악의 편으로 꼽힐 만큼 범인 검거에 필요한 증거가 전혀 나오지 못했고, 플레이어와 시청자 그 어느 누구도 범인을 못 맞혔는데, 초장부터 오버액션하는 연기를 펼쳤던 양형사를 한눈에 범인으로 의심하며, 결국 혼자만 유일하게 범인을 맞히며 해당 편의 영웅으로 뽑혔고, 영화에서 악역을 맡았던 그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줘서 예능감도 제대로 살려주면서 --자신을 닮은 사람을 죽일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즐,거,웠,어,요.-- 시청자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 김수용(코미디언) . . . . 39회 일치
[[분류:양구군 출신 인물]][[분류:1966년 출생]][[분류:1991년 데뷔]][[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include(틀:감자골 4인방)]
제1회 [[한국방송공사|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7기 취급.[* 감자골 이적 사태로 공식적인 기수명단에서 제외된 상태지만 선배들의 [[괘씸죄]] 때문이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라 최근엔 사실상 그런 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방송사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도 잘 받고 있고...][* 김수용은 감자골 사태가 일단락되고 난 후 1994년부터 각종 [[한국방송공사|KBS]] 코미디프로에서 활동했으므로 사실 기수명단에서 제외랄 것도 없다. 1996년 코미디 일번지에서 신세대 동작그만이라는 코너에 주연급으로 나오기도 했고, 특히 1998년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유재석과 함께 귀농일기라는 코너에 공연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11기로 들어온 [[김숙]]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KBS]]에 복귀한 이후로는 코미디언실에서 엄연히 선배로 대접 받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등과 비슷한 세대의 [[개그맨]]이며 갈갈이 패밀리([[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 [[정종철|옥동자]], [[김시덕]])나 옹달샘([[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처럼 김수용을 포함한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까지 넷이서 "감자골"[* 팀명은 4명 다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감자에서 따왔다고...그러나 2008년 12월 20일 방송 된 명랑히어로에서 김국진을 제외한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은 강원도와 상관 없는 강원태생이라고 말했다. ]이라는 팀으로 활동했었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비교적 콩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흔히 소재는 좋은데 잘 살리지 못하는 류) [*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비중이 거의 없다든지 단역으로만 나오던 급은 아니었다. 1996년 토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마법의 디스켓이라는 코너에 단독으로 주연을 맡을 정도로 나름 비중이 있었다. 확인큐 베일을 벗겨라나, 비디오 챔피언 같은 예능 프로그랭의 서브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동시기 신동엽, 김용만은 진행, 박수홍이나 김국진은 예능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며, MBC와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에 묻혔을 뿐이다. 1995-1997년 사이 SBS에서는 코미디 전망대와 웃으며 삽시다, MBC에서는 오늘은 좋은 날과 테마게임이 있었지만 [[한국방송공사|KBS]]는 한바탕 웃음으로 폐지 후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중에 MBC로 이적하면서 예능 MC로 갈아타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각종 예능에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세대의 예능 MC들이 으레 그렇듯 배려형 MC 스타일이였다. 특유의 진한 [[다크서클]]도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 별명이 팬더다.
주변 연예인들에 의하면 사석에서 이만큼 웃긴 개그맨이 없었다고, 그리고 꽤나 범상치 않은 독특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똥군기]]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는 사항이지만 그 살벌했던 코미디언 세계에서 선배가 내리갈굼하는데도 하는 척만하다가 얻어터졌으면 터졌지 후배에게 똥군기를 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숙]] 등의 후배들과도 절친했다고 한다. 김수용의 토크 레파토리를 보면 동기들과 놀러다닌 것과 후배들과 놀러다닌 에피소드가 꽤 많다. 하술할 슬픈 사기도 인성이 너무 좋아서 당한것이나 그래도 동기나 후배를 잘 챙겨준 덕에 2010년도 부터 방송에 재기했을때 자리잡고 있던 후배들이 여러 곳에서 불러 주었고 성공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참고로 아버지가 상계[[백병원]]의 원장[* 3~4대 원장을 지낸 김관엽 내과 교수. [[http://www.paik.ac.kr/sanggye/pds/201212064269352.pdf|인터뷰 기사(3페이지)]] ]까지 지낸 분이라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여의도 고등학교 출신인데, 선천적으로 체격이 큰 것과 더불어 싸움도 잘해서 고등학교 때 '의리의 여의도 용팔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이 별명으로 학창시절 여의도 전체 고교생 주먹세계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연예계 데뷔 후에 여의도 방송국 근처 락카페에서 --진짜 주먹꾼-- [[임재범]]과 시비가 붙었다가 가죽옷을 입고 다가온 임재범이 김수용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눈 깔아"라고 하면서 담배불을 자기 입으로 끄자, 김수용이 당황해서 "제가 제 친구인 줄 알고 사람을 잘못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의도 출신이라 여의도에 아는 애들이 많아서 헷갈릴 때가 있어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서 째려보던 임재범이 그냥 돌아가면서 겨우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개그맨 동기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가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자가용을 타고 동기들끼리 [[나이트클럽]]에 놀러다녔던 게 감자골 멤버들이나 [[유재석]]의 토크 레파토리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으레 선배가 술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밥을 사줄줄 알았는데 김수용 선배는 딱 밥만 먹고 [[더치페이]]하고 각자 흩어졌다고.
이후 그 선배가 돈을 갚지않아 김수용 본인에게 압류가 들어오자[* 김수용은 당시 '내가 빌린 것도 아닌데 왜 갚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캐피털사는 처음에 K선배에게 먼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는데 저 인간이 돈 없다고 배째로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대출 명의자인 김수용에게 추심을 했던 상황이다.] 상황이 이상해짐을 느낀[* 그전에 [[캐나다]]에 있던 개그우먼 선배 [[이성미]]가 "너 요즘 K하고 논다며, 걔 [[도박]]한다고 소문 안 좋으니까 같이 어울리지 마"라고 경고를 했었다고 한다.] 김수용이 알아보니 선배가 캐피털사에서 대출한 것을 발견했는데 처음에는 비싼 빌라니까 그거 처분해서 빚 갚으면 되지 했는데, 사실은 그 빌라가 12억짜리가 아니라 6억밖에 안 됐던 빌라였다. 즉, 그 선배가 부동산 감정사와 짜고 빌라 가치를 뻥튀기하여 '''사기 대출을 받았던 것.'''
김수용이 가서 따지자 그 선배'''놈'''은 '''네가 연예인인데 돈 3천만 원 때문에 명의를 빌려줬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라며 빈정거리며 어그로를 끌었고, 이에 김수용은 해당 선배를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결과는 거짓말은 인정되지만 사기죄로 성립이 어려워 무혐의 처분이 됐다. 이로써 선배 K의 법적 책임은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캐피털 쪽도 아주 막장이었는데 8억이나 되는 돈을 본인 확인과 부동산 가치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담보대출을 해준 것이다. 알고 봤더니 이쪽도 캐피털사 지점장이 선배와 한패라서 대놓고 사기 대출을 눈감아줬다고 한다. 결국 캐피털사와는 그쪽 과실도 있고하여 추심은 안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후 경매를 통해 빌라를 매입한 다음 정산해보니 대출이자 + 부동산 관련 세금까지 해서 총 3억 7천의 빚이 남았다고 한다.
사실 선배 K는 김의환으로, 또 다른 개그맨 김영철도 피해자 중 하나. 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후 동료 최승경이 자신의 SNS에 다른 말은 없이 '김의환' 이 세 글자만을 써놓았다. 문제의 선배는 현재 활동 전무.
이후 선배에게 당한 배신감+빚에 대한 압박감으로 방송을 접고 우울증에 걸려 무기력하게 지냈다고 언급되었다. 이 기간 중에 온라인게임 [[리니지(게임)|리니지]]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아이디는 '겸댕이'. 연예인임에도 [[혈맹]] 모임에 대놓고 나가고 PvP관련해서 [[현피]]까지 할 정도였다고[[https://www.youtube.com/watch?v=FCaSUZ9wNwI|김수용 현피드립]]. 리니지를 접은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시가 몇 백만 원짜리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인이 잠깐만 껴보겠다고 해서 김수용이 별 생각없이 아이템을 넘겨주었는데 그 사람이 아이템을 받자마자 '''[[닌자#s-11|그대로 로그아웃을 해서 잠수 타버렸다.]]'''[* 흔히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집 한 채값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아니다. 집행검은 2010년 이후인 비교적 최근에 나온 무기로 김수용이 리니지를 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배성재의 텐]]에 출연했을 때 "+9 무기라서 빛이 나는 검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빛이 나는 무기는 애초에 축복받은 무기이지 강화 수치와는 무관하다.]
김수용이 멘붕해서 [[NC소프트]]까지 전화해서 어떻게 복구 안 되겠냐고 했지만 자의로 교환한 거라 어쩔 수 없다고. 결국 온오프로 '''사기만 2번 당했다.''' 이후 리니지는 완전히 접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리니지에 대한 애정이 있는지 관련한 방송에 종종 출연하고 있다.[[http://ruliweb.daum.net/news/view/MD20140219141906924.daum|#]] 심지어 [[2017년]]에는 리니지 챌린저 서버 CF까지 찍었다. [[https://youtu.be/V5CbUL-h5X0|#]][* 라스에서 밝힌 후일담에 의하면 이 CF 촬영 때 관계자에게 슬쩍 마방템 하나만 달라고 이야기 해 봤다고 한다. 다만 아이템은 회사 규정상 임원에게도 제공 못 한다고 거절당했다고..물약 하나도 안 줬다고 한다.]
주식에도 손을 댔었는데, 주식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초반에 뭣 모를 때만 손해를 좀 봤고 나중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얻었다는 듯. [[SBS CNBC]]에서 아나운서로 여러 주식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나중에 [[매직아이]]에서 출연해서 주식으로 1억 벌려면 2억을 투자하라면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정보'의 위험성과 주식방송에 출연하는 주식 전문가를 예를 들면서 주식의 허상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55316|#]] 참고로 2012년에 주식방송에서 짤렸을 때 김수용의 다크서클을 보고 윗분들이 보기에 하한가 느낌 같아서 짤렸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2016년에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했는데, 과거 [[미남]] [[개그맨]]으로까지 불렸었는데[* [[파일:감자골_리즈시절.png]][br]미남으로 유명하던 시기의 외모는 지금으로서는 연상도 되지 않는 수준.] 근 몇 년새 살이 부쩍 불어서 [[유재석]]에게 자기관리 부족이라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실제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2012년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해서도 현재는 꽤나 살이 찐 상태. 몸무게가 세 자리 가까이 육박한다고.
그해 2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는데, [[김경민(개그맨)|김경민]]의 삽질로 인해 방송이 묻힐 위기에 놓였다. 그나마 [[본인]]은 시청자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본방 방영 분량에선 그 채팅의 캐리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마리텔을 이후 많은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가는 곳마다 불법체류자드립, 강제자숙, 카타르이민포기, 리니지사기, 세관에서 알카에다드립, 밀수범 드립 등 각종 안습한 이야기들을 꺼내 매회 레전드를 만들어 내고있다. 게다가 게임에도 박식하고 채팅에도 능하다보니 마리텔을 기점으로 젊은층에게도 말이 통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수드래곤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얻고있다. 게다가 해피투게더에도 고정이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처음 활동한 것은 20세기인데 그 세대에게는 인기가 없고 오히려 10대 20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덕여대에 촬영을 갔는데 장년층은 김수용을 못 알아봤으나 오히려 대학생들이 '헐 수드래곤' 하면서 엄청나게 환대를 해주었다.
여담이지만, 2003년 초에 동료 코미디언 이장숙과 함께 '게임'이라는 혼성듀오로 앨범 한 장을 낸 바 있는데, 뜬금없이 설날 특집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이 앨범을 냈다며 타이틀곡 '미야 미야' 무대를 선보였다. '개그맨들이 앨범을 내면 망한다'라는 속설을 깨기 위해 과감하게 앨범을 준비했다고 했으나, 일회성 프로젝트였다 보니 얼마 안 가 해체했다.
기독교 계열 방송국인 [[CTS]]의 한 프로그램에서 "[[동성애]]가 그냥 싫다."[* 정확히 말하면 동성애자에 대해 차별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하지 않지만, 동성애 자체는 싫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 호모포브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후 그는 대학생 시절 동성애자에게 성추행을 당해 혐오감이 생겼다고 주장했으며, 이제는 동성애에 대해 "더 말하지 않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 김준현(코미디언) . . . . 39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예능상'''}}} ||
'''[[유민상(개그맨)|유민상]], [[문세윤]] 등과 함께 먹방 대표 덩치 캐릭터 개그맨의 선두주자.'''[* 다만, 김준현의 경우 [[근육돼지|근육이 많으면서 체지방도 많은 케이스]]에 속하기 때문에 유민상 등 순수 비만인과는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강호동]], [[마동석]], [[양준혁]] 등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져 기본적으로 근육 덩어리인데 살이 붙은 경우들이 김준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김준현 역시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를 했는데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99058|검도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KBS 22기지만, 방송 출연은 그 전부터 이미 하고 있었다. KBS 신인 개그맨 발굴 프로그램인 [[개그사냥]]에서 허영심 가득한 Mr 귀족을 선보인 후 2006년 11월 [[폭소클럽2]]에 고정출연하게 된다. 이때 Mr 귀족 코너로 폭소클럽2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알렸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김준현이 와인잔을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여기까지는 정말 화려한 귀족의 모습이지만 '''"응, 맞아! ○○○야!"'''라며 깨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로 들면 자기가 모은 재산을 왜 네가 마음대로 하느냐면서 동생과 재산 싸움을 벌이는 듯했지만 실상은 중국집 쿠폰으로 인한 형제 싸움. 이때 김준현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마다 '''"아, 미안, CHEERS!"'''[* 김준현이나 폭소클럽 제작진이나 글로 쓸 때는 '''치어스'''라고 썼지만, 김준현이 발음할 때는 '''췰스'''에 가까웠다.]라고 했는데, 나름대로 김준현의 첫 유행어였다. [[김구라]] 아들 [[그리(래퍼)|김동현]]과 함께 폭소클럽2가 발굴한 대형 신인.
[[유민상(개그맨)|유민상]]과 함께 [[거구]]의 체형을 가진 [[개그맨]]으로, 프로필상으로는 180cm에 120kg.[* 120kg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2017년 6월16일 [[맛있는 녀석들]] 121화 특집이 김준현 특집인걸로 보아 1kg 더 쪘다.] [[아버지]] 김상근이 KBS [[아나운서]], [[PD(방송)|PD]][* [[TV는 사랑을 싣고]], [[체험 삶의 현장]] 등의 [[인기]] 교양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PD였다고 한다. KBS 교양국 국장, 위성방송국 국장까지 지낸 고위급 간부로 지내다 2006년 퇴사해 지금은 대학교수 재직중이라고 한다. 단 김준현은 2007년 [[공채]]라 부자가 같이 KBS에 있었던 적은 없다고... KBS 공채 볼 때 아버지 이름 이야기 했다가 심사위원들이 기겁해서 심사평을 지웠다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이고 [[본인]]도 대학 재학 시절에는 아나운서를 지망했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정확하게 전달되는 대사톤과 연기력은 이전의 이른바 뚱캐를 넘어서 현 개콘(지금은 [[tvN]]으로 넘어간 듯) 주연급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도 아버지가 방송에서 대사전달톤에 대해 계속 모니터링한다고 한다. 유민상과 같은 [[소속사]](제이디비엔터테인먼트)이다.
[[2012년]] [[4월 29일]] [[네가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대까지만 해도 날씬한 체형이었다고 한다.[* [[백종원의 3대 천왕]] - '전'편에서 김준현의 과거 사진들이 나왔다. 참고로 날씬했을 땐 체격좋은 훈남이였다.] [[http://dryicess.tistory.com/129|링크]]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만|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김준현은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선수 출신으로 군에서 제대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대신 활동량도 많아서 살이 찌지 않았는데 운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먹는 양은 그대로고 활동량은 없어졌기 때문에 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맛있는 녀석들 포장마차 특집에서 나온 것이며 김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이미 예정된 비만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유민상이 툭하면 먹는데 끌고 다녀서 신참이다보니 따라다니며 먹어재껴서 그꼴이 났다고 네가지에서 그러던데 그게 개그용 멘션인지 진짜인지는 미지수.
tvN의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당뇨병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사실 정확히는 방송이라 그런지 당뇨병이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 및 당뇨병 환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김준현 정도의 수치가 나와도 정상인줄 알고 있는 케이스도 있었다. 당뇨를 한참 넘어선 김준현의 수치에 비해 자기가 낮으니 당뇨임에도 혹은 당뇨전단계임에도 자기 수치가 지극히 정상인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참고로 방송에 공개된 수치는 당화혈색소 8.2에 공복혈당 196이었는데.. 당화혈색소 6.5, 공복혈당 126이 당뇨 기준임을 생각해보면 아득히 높다.] 직계가족에 당뇨병 가족력이 있고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하는데 선천적으로 췌장이 약하게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그냥 가족력과 식습관 때문일뿐. 거기에 초고도 비만[* 다만 BMI 상으로만 초고도 비만이지 [[야구선수]]나 무제한급 [[역도]] 선수, 백두급 [[씨름]]선수 등처럼 체지방도 많으면서 근육량이 상당히 많은 [[케이스]]이기 때문에 같은 체중의 일반 비만인보다 관리가 좀 쉬울수는 있으나 이미 당뇨가 나이대 대비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음으로 크게 의미 있는 사실은 아니다.]까지 있으니..... 김준현 본인도 그러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듯 검사결과 내용을 듣는 내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코너에서 2인자급 캐릭터나 보조역을 담당한 경우는 많지만, 메인 원탑을 한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코너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어도 가장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재 고갈로 사실상 종영 위기에 처했던 [[생활의 발견(개그 콘서트)|생활의 발견]] 코너에 [[신보라]], [[송준근]]을 받쳐주는 역으로 투입되자마자 코너의 [[인기]]를 다시 되살리는 일등공신이 된 것이 좋은 예. 그리고 [[네가지]]에서 마침내 실질적 원탑이 되었다.[* 물론, 각 출연자가 각자 나와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구성이라 딱히 누군가가 주역이라고 볼 수 있는 코너는 아니지만, 김준현의 순서가 맨 마지막에 자리 했고 비중도 많은 편이라 사실상 네가지의 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초반에는 [[김원효]]에 밀리던 듯 했으나 사실상 투탑 체제를 굳혔으며, 라디오 [[CF]] 개수는 "고뤠?" 쪽이 "안돼!~"보다 앞서고 있었다.~~[* 물론 점차 [[인지도]]를 높인 건 사실이지만, 사실 투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김준현이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지만, [[김원효]]가 빠지면 비상대책위원회 코너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김원효와 김준현의 비중이 7:3 정도로 차이가 난다... [[라디오]] [[CF]] 개수가 많다고 해서 인기가 더 많다고 볼 수도 없다. "고뤠?"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끝나지만 "안돼!~"는 [[유행어]]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현란한 대사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짧은 CF엔 "고뤠?"보다 약간 부적합할 뿐.]
* [[네가지(개그콘서트)|네가지]] - ~~4번타자~~ 뚱뚱한 사람역
* [[감수성]] - 시작할 때 코너 소개하는 멘트 담당. 초반에는 [[오랑캐(감수성)|오랑캐]]의 동생 역으로 나온 적도 있었고, 중반부에는 오랑캐의 부하 1 역, 900회 특집에서는 오랑캐의 형 역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날 김준현이 [[비밀]]을 대놓고 발설하자, 오랑캐가 빡쳐서 [[하극상]]을 감행했다.--
* [[어느날 갑자기 외.개.인]]
'''자칫 김준현의 개그 인생, 나아가 연예계 생활까지 아예 끝내버릴 수도 있었던 [[흑역사]].'''
2010년 5월 4일, '''[[음주운전]]으로 보행자를 치는 사건'''으로 개그 콘서트에서 잠시 하차한 흑역사가 있다. 본인은 음주를 한 뒤 5시간쯤 지나 술이 깼을 줄 알고 이른 아침 운전대를 잡았다고 교통사고를 해명했지만... 이후 미끼로 복귀할 때까지 자숙 기간을 가졌다. 다만, 자숙 기간이 4개월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 예상외로 악기를 잘 다룬다. 2008년 [[윤형빈]]과 함께 대한민국라이브페스티벌이라는 락페스티벌에서 오버액션이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공연했다. 2012년 [[5월]] 초 [[고현정]]의 고쇼에 나와서 나름 [[엄친아]]임이 밝혀지고, 직접 스틱을 쥐고 폭풍[[드럼]]을 선사하자마자 호감도 급상승 효과를 누렸다. SNL코리아의 코너에서도 수준급의 드럼 실력을 선보인 적이 있다.
* 김준현의 대사톤은 코너마다 비슷하나 특유의 숨 넘어가는(...) 두꺼운 [[목소리]]와 이따금씩 대사를 버벅이면서도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더 높은 리얼리티와 웃음기를 유발하고, 말투[* 데뷔 초기의 캐릭터에 따른 개별적인 말투가 아닌 최근 들어 자주 사용하는 말투.]도 목소리와 시너지를 일으켜 코미디언인 김준현에게는 엄청난 강점을 준다. 이 목소리 덕에 김준현만 보면 그냥 빵 터진다는 사람도 좀 있다. 예를 들면 고뤠~?!
* [[2012년]] [[7월 3일]],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이수근에게 낚여(...) 수입이 신인 때 보다 100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후 [[이수근]]이 40억으로 계산하자 삼억이라고 당황해서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2248429|#]]
* 그러다가 [[2013년]] [[4월 20일]]에 [[결혼]]했다. 상대는 6년간 열애해 온 [[여자친구]]라고... 주례없는 퓨전스타일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32638|관련기사]] 본인 스스로 어느정도 신혼 시기를 가지고 싶었다고 얘기했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휘재 가족편 게스트에 출현하여 밝힌 바에 따르면 결혼 후 아내는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다고 했으나 김준현 스스로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생각해 자녀를 가지지 않고 있었던 듯하나, [[2016년]] [[8월 9일]] 결혼 3년 만에 아내의 [[임신]]을 발표했다. 아이의 태명은 '보고 싶고 보고 싶다.'라는 뜻의 '보보'라고...
* 2013년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 이어 연속 수상.
* 런던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과 비슷한 외모로 화제가 됐다.
* 나중에 [[김준호(개그맨)|김준호]]가 진실을 밝혔는데 사실 스케쥴 문제는 없었고, 1박 2일 연출진은 출연자에게 사전 섭외 통보 없이 녹화 첫날에 한명씩 찾아가 합류시키는 기획을 짰으며 소속사 [[코코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김준호에게 먼저 언질을 주었다. 하지만 김준현의 섬세한 성격을 알고 있던 김준호는 아마 그렇게 하면 김준현은 출연을 거부할 수도 있을거라고 이야기했고, 결국 연출진과의 협의 끝에 김준현에게 먼저 1박 2일 섭외 사실을 알렸으나 예상대로 김준현은 부담감에 출연을 고사했다고 한다. 녹화일이 얼마 남지 않아 결국 대타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김준호가 출연하게 된 것. 그래도 [[2016년]] 늦여름에는 [[박보검]]과 함께 게스트로 나온 적도 있었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39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과반의 십걸 자리를 따내자고 제안하지만 타쿠미 알디니는 현실성이 없고 뭣보다 센트럴에게 아무 메리트도 없는 제안이라 일축한다.
* 나키리 에리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하려 하는데 마침 나키리 아자미가 근처에 와있다.
* 그때 유키히라 죠이치로와 나키리 센자에몬이 등장해 파란을 예고한다.
>십걸평의회의 과반수를 뺏자고?
* 황당하기까지한 유키히라 소마의 제안. 소마는 하야마 아키라가 퇴학됐으니 남은 십걸 자리는 9. 나키리 에리나가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앞으로 네 자리만 차지하면 십걸의 과반 이상을 점거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살아남은 자신들이 말이다.
* 이 단순무식한 제안에 에리나는 말을 잊는다. 타도고로 메구미는 자기들이 어떻게 십걸을 쓰러뜨리냐며 우는 소릴하지만 소마는 타도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불언허는다. 타쿠미 알디니는 그러자면 식극을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소마도 "어떻게든 될 거다" 정도로 대충 구상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타쿠미도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 저쪽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다.
* 이런저런 하자가 있는 걸로 판명나자 소마는 일단 상담을 받겠다고 코바야시 린도를 찾아가 말한다.
>십걸 자리 좀 주십쇼.
너무 두서없이 던진 개드립에 린도가 빵 터진다. 린도는 재미있어 하지만 아무리 십걸이라도 그런건 무리라고 고개를 젓는다. 에리나가 의기소침해있자 린도는 친구들 문제는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 에리나는 애초부터 소마의 구상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디스하며 이렇게 된 이상 자존심 같은건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혹시 자신이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애원하면 퇴학이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려하는데 정작 어디있는지 모른다. 린도는 무슨 생각인지 사실 아자미 총수가 여기 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진급시험장을 돌면서 상황을 시찰하고 다니는데, 때마침 이 회장에 들른 상태이며 꾸물거리면 다음 장소로 갈 테니 빨리 헬기 착륙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 옥상으로 뛰어와 보니 정말 아자미가 헬기에 오르려는 참이다. 에리나는 가까스로 아버지를 따라잡았지만 아자미는 그녀가 소마 일행과 같이 있는걸 보고 "그녀석들도 곧 퇴학 당할 것. 아직도 그런 애들하고 같이 다니냐"고 꼰대같은 말이나 한다. 그리고 두 명이나 합격자를 낸게 불만인지 린도에게 근신을 명한다.
에리나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탈락자들의 퇴학처분을 재고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아자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헬기에 오르려 한다. 아버지의 매정한 모습 보다도 친구들과 2학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때 소마가 말한다.
* 소마는 "나카무라 선배"[* 아자미의 원래 성]라 부르며 "내가 여기 살아 남은 시점에서 선배가 옳다는건 증명이 안 된 것"이라 도발한다. 헬기에 오르던 아자미가 멈칫한다. 소마는 자기네를 없애고 싶은 거면 회장마다 돌아보는 수고하지 말고 "우리 군대랑 댁네 군대로 십걸 자리를 걸고 전면대결하자"고 제안한다.
* 하지만 아자미는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걸 받아들여서 무슨 이득이 있냐며 "교섭은 걸 수 있는 조건을 준비하고 해라"고 빈정거린다. 그렇게 거절한 아자미는 다시 헬기로 향하는데.
* 사이바 죠이치로, 나키리 센자에몬 등장. 이들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 모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죠이치로는 우선 소마에게 "시오미 준의 제자에게 복수했다며?"라며 기특해한다. 하지만 소마는 머리를 마구 헝클이는 과격한 스킨십에 불평한다.
에리나는 어떻게 두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냐고 묻지만 센자에몬은 대답이 없고 죠이치로는 인사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들은 에리나의 아버지, 아자미에게 볼 일이 있다고 하는데.
* 죠이치로는 아자미를 여전히 "나카무라"라 부르며 후배취급 한다. 그러면서 소마의 제안도 영 못 쓸만한건 아니지 않냐며, 그보다 한술 더 뜬 제안을 내거는데.
- 식극의 소마/203화 . . . . 39회 일치
* 완성된 양팀의 아쉬 파르망티에. 심판 [[나키리 센자에몬]]은 현장에 있는 학생들이 심사를 맡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 서로의 음식을 시식한 학생들은 각자 승자라고 생각하는 팀을 선택하는데, 놀랍게도 정확히 2대2로 표가 갈린다. 그것도 모두 상대방의 음식을 선택.
* 에리나는 자신들의 것은 완성도면에서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면 패배를 시인한다.
* 센자에몬은 손녀가 즐겁게 홍백전을 즐긴 것에 만족하며 상호의 기량을 파악한 거야 말로 홍백전 최대의 성과라 평한다.
* 센자에몬은 에리나가 [[사이바 죠이치로]]에게 자신의 요리를 펼쳐보였 듯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
* 하지만 에리나는 아버지에겐 그런 "응석"을 부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센자에몬은 "부모자식 간엔 제멋대로인 부분도 있는 법"이라며 권한다.
* 다음날 아자미는 츠카사, [[코바야시 린도]]를 거느리고 반역자 측과 접촉을 시도한다.
*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양팀의 아쉬 파르망티에. 심판을 맡고 있던 [[나키리 센자에몬]]이 시식을 앞두고 있다. 팀 도지마의 경우 어느 정도 정석에 가까운 아쉬 파르망티에지만, 팀 사이바 쪽은 정말 괴상한 발상들만 때려박은 물건이라 어떤 맛을 낼지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학생들은 긴장된 가운데 시식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나키리 에리나]]는 매우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센자에몬이 식기를 내려놓으며 의외의 발언을 한다.
*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식한 에리나와 [[유키히라 소마]]는 보들보들한 머쉬 포테이토[*폼므 퓨레]를 연상한다. 소마는 마법처럼 섬세하게 만든 화과자 같다고 평.
* 마침내 선택의 시간. 센자에몬은 서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팀을 가리키라고 지시한다. 학생들은 고민 끝에 선택하는데, 서로가 상대방을 가리키고 있다.
* 에리나는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가 애드립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의외로 맛의 베이스가 탄탄하며 그걸 기반으로 연주자들이 경연을 펼치는 뛰어난 재즈 밴드 같다고 평한다. 이런 완성도 높은 요리에 비하면 자신들의 조리는 미치지 못하고 맛을 볼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 에리나는 겸연쩍어 하며 좀 더 치리멘자코의 맛을 살리는 소스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멋진 요리였다고 추켜세운다. 셋은 에리나가 그렇게 즐겁게 요리하는건 처음이었다고 수군대는데 에리나는 자기를 놀린다고 발끈한다. 넷은 서로 싸우는 듯한 말투로 서로의 발상을 칭찬하며 티격태격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승부는 무승부지만 자기들이 의도한 바는 달성했다고 흡족해한다. 게다가 왠지 애초에 다퉜던 주제에 대해선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센자에몬은 이 승부의 진정한 의도는 각자의 역량과 기술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며 홍백전의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 센자에몬은 에리나에게 재밌어 보이는 요리였다고 칭찬하는데 에리나는 또 놀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본래 자기라면 이런 요리는 하지 않았을 텐데 소마 부자에게 휘말려서 그렇게 된 거라 변명한다. 하지만 센자에몬은 그런 부분이 저 부자를 서로 향상시켜 온 거라고 말하며 저 부자에겐 저런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이 승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요리를 낼 수 있었던 거라 말한다.
하지만 에리나는 자신이라면 자기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그런 응석 부리는 듯한 짓은 할 수 없었을 거라 말한다.
>부자지간이다. 응석 정도는 부린다는 걸 기억해 둬라, 에리나.
센자에몬은 그런 의외의 발언을 하고 이것으로 이날의 홍백전은 끝난다. 에리나는 센자에몬이 한 말에 느끼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 이튿날 아침. 아자미는 십걸 [[린도 코바야시]]와 츠카사를 데리고 소마 일행과 접촉하러 오는데.
- 식극의 소마/209화 . . . . 39회 일치
[[식극의 소마]] 209화. '''낙오자로 살아가는 법'''
* 생각보다 좋은 출발을 한 [[유키히라 소마]]. 그런데 옆 조리대의 [[잇시키 사토시]]는 자기 대결도 재쳐놓고 관전모드다.
* 쥬리오는 자기 요리나 하라고 일침하지만 잇시키는 같은 2학년이면서도 그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
* 쥬리오는 사적으로도 잇시키에 대하 원한이 있는지 적의를 드러내며 이 승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잇시키에게 새겨넣겠다고 선언한다.
* 시라츠 가문은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 자리를 맡아온 명가. 특히 남 이탈리아에선 장어를 크리스마스 특식으로 먹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 반면 잇시키는 느긋한걸 넘어 겨우 준비만 끝내놓고 "진다면 애들하고 장어양식을 하자"같은 망상이나 즐기고 있다.
* 쥬리오는 그런 태도가 못마땅해 "명가의 낙오자"를 비롯해 온갖 모욕을 퍼붓지만 잇시키는 부처같은 미소만 짓고 있다.
* 그러나 쥬리오가 쿄쿠세이 기숙사를 얕잡아보는 말을 하자 "좀 닥쳐 달라"고 정색하고 압도적인 솜씨로 장어 손질을 마친다.
* [[키노쿠니 네네]] 정통파 소바에 맞서는 [[유키히라 소마]]의 "나만의 소바". 키노쿠니는 당당한 태도로 도전해 보란 태도고 소마는 이 자리에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키노쿠니를 이길 수 있는 소바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불사른다.
*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똑같이 1회전 멤버인 [[잇시키 사토시]]가 아예 이쪽 조리대에 와서 관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마가 자기 요리는 어쨌냐고 묻자 어차피 숯불을 달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태평하다. 그는 소마의 요리를 흥미롭고 기특하게 바라본다. 그는 아군을 고무시키는 것도 팀워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 고무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십걸인 [[메기시마 토스케]]는 반대로 아주 성실하고 묵묵히 조리를 하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따지고 보면 상대측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태도. 당연히 잇시키의 대결 상대가 반발한다. 그는 더이상 한눈팔지 말라며 타당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쪽도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은지 요리에 대한 예술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요리란 식탁 위에 놓여진 것만이 아니라 요리 중 요리사의 행동, 즉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술인 것이다. 이같은 예술론은 잇시키와 자신이라면 서로 마주해 하나의 예술을 만들 수가 있다며 꽤 오글거리는 소리로 이어진다.
* 실의에 빠진 인물은 2학년 [[시라츠 쥬리오]]. 십걸의 빈 자리를 메운 뉴 페이스다. 관객들은 엄청난 환호를 퍼부어주지만 쥬리오는 "잇시키가 나를 모른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츠카사 에이지]]는 왠지 그 기분에 공감하며 자기가 저런 처지였다면 삼일은 잤을 거라고 실없는 소릴한다. [[코바야시 린도]]는 "동급생 이름도 모르면 어떡하냐"고 야단치는데 잇시키가 친근하게 "머리 바꾼게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자 좋아라 웃는다. 결국 누구한테도 이해받지 못한 쥬리오는 이 승부로 잇시키에게 자신의 존재를 새기겠다는 패배 플래그 같은 대사를 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쥬리오가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라고 소개한다. 쥬리오는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조리에 들어간다. 큼직하게 자른 장어에 소금을 쳐서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양파와 마늘,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볶는다. 이때 와인을 뱅뱅 돌리면서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넣는게 포인트. 꼴은 우스꽝스럽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나카리 에리나]]도 그의 내력과 실력에 대해선 자세히 안다. 에리나는 시라츠 일가는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를 했던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실력은 일본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소문이 자자하고 특히 선대는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같은시 이탈리아 계통인 [[타쿠미 알디니]]는 이 대결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일본인들의 편견과는 달리 장어는 서양에서도 고급 식재이다. [[쿠로키바 료]]가 선발시합에서 선보였던 "장어 마틀로트"도 대표적인 이탈리아의 장어요리. 특히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장어를 먹는다. 그정도로 보편적으로 알려진 식재. 따라서 이탈리아 요리 전문인 쥬리오도 나름대로 자신있는 분야일 거라고 추측한다.
* 오히려 정보가 부족한 것은 잇시키 쪽이다. 특히 같은 기숙자가 아닌 [[나키리 아리스]]는 그가 어떤 타입의 요리사이고 어떤 분야 담당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에리나에게 아는게 없냐고 묻는다. 에리나도 같은 기숙사가 아니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같은 십걸 평의회에 있었으니 어느 정도 알지 않겠냐는 것. 그런데 그녀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알려진게 없다.
쿄쿠세이의 후배들도 아는 거라곤 좋은 사람인 부분이나 알몸 앞치마를 하는 부분이나 듬직한 부분이나 알몸 앞치마를 하는 부분이나 하는 부분이다. 애초에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걸 싫어해서 가까운 사람들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다.
쥬리오는 그 설렁설렁한 태도에 폭발한다. "너는 언제나 그렇다"며 그의 의욕없음을 질타한다. 그는 적이면서도 잇시키의 재능을 "존경"한다고까지 표현하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활약할 날만을 기다려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나키리 아자미]] 총수에게 따르지 않고 그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일 뿐이라고 매도한다. 물론 잇시키의 태도가 이정도 매도로 흔들릴 수는 없다. 옆에서 소마가 황당해할 정도로 동요가 없는 잇시키.
>잇시키 가의... 명가의 낙오자라고!
키노쿠니는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명가의 낙오자"라는 것은 후배들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꽤 폭탄발언인 셈인데, 잇시키는 "사실이라 반박도 못하겠다"며 웃고만 있다. 한 번 독설이 시작되자 더는 주체할 수 없는지, 쥬리오는 이어서 자존심도 없냐, 수업 빼먹고 밭만 만지니까 칠석 자리를 뺏긴 거다라고 수위를 높여간다. 결국은 해선 안 될 말까지 한다.
>너를 위해서 말하겠어... 그런 곳에 있는 놈들은 잇시키가의 인간이 어울릴만한 자식들이 아냐!
- 식극의 소마/218화 . . . . 39회 일치
* 그 시각 쿠가는 십걸 1석 [[츠카사 에이시]]에게 2라운드에서 자신과 붙자 제안하나 츠카사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자 대답없이 돌아간다.
* [[유키히라 소마]]는 방금 전 상황과 이상할 정도로 츠카사와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이번 2회전에선 빠지겠다고 선언, 쿠가에게 차례를 양보한다.
* 2라운드 시작. 반역자팀은 메기시마, 쿠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정. 강하긴 하나 하지만 센트럴이 3학년을 투입하면 전부 스윕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 그리고 자신의 바람대로 츠카사와 싸우게 된 쿠가. 하나같이 무모한 매치업이라고 말하는 중 소마만은 쿠가의 승리를 기원한다.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반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상관없는 수식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순식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상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 논쟁은 평행선. 쿠로키바가 슬며시 [[나키리 에리나]]에게 결정권을 넘긴다.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대식극은 승자가 계속 싸우는 구조이므로 "버리는 패"같은건 큰 의미가 없다. 몇 승을 거둔들 상대측의 강자가 온전하다면 혼자서 연승을 거둬 역전을 거두는 것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강한 카드를 상대로도 과감하게 덤벼볼 필요가 있다. 뭣보다 1라운드에 전승하지 않았나?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카드가 있을지? 에리나가 곧 결정을 내린다.
* 동료들이 수읽기로 골몰하는 동안 쿠가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유키히라 소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의 행동을 목격한다. 쿠가는 적측에 개인적으로 식극 신청을 하고 있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자신과 싸우자고. 그 상대는 [[츠카사 에이시]]. 십걸의 제 1석. 상대방은 물론 현재 연대식극 참가자 중 최강자다. 쿠가는 방금 전까지 촐랑거리고 있더니 승부를 신청하는 이 순간, 전에 없이 진지하다. 그걸 받은 츠카사 또한 푼수떼기같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 소마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그는 자기 혼자 정할 수 없는 문제라며 애매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다른 애들과 상담해보고 오겠다며 끝까지 승락인지 거절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그저 "나중에 보자"며 떠나는데. 쿠가는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고 그가 떠나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쉬며 부채질을 한다. 그러나 그 손도 떨리고 있다. 어쩌면 츠카사를 상대하는 내내 떨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부채를 흘리기까지 하는데, 엉겁결에 소마가 그걸 받아낸다. 엿듣던 걸 들켰다. 쿠가는 아무렇지 않은 채 하지만 속으론 짜증을 부린다. 자기가 긴장한 걸 들키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뜻같지 않았다. 소마가 "손바닥에 사람 인을 써서 먹어라"며 긴장대책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키히라류 긴장풀기"라는 정체불명의 민간요법을 추천하며 합장을 시키려든다.
멋대로 무언가를 양보한 소마가 "에리나가 벌써 3명을 정했을지 모른다"며 서둘러 돌아가자고 한다. 쿠가가 분위기에 휩쓸려 그를 따라가지만 곧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츤데레스럽게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답지도 않은 연극까지 한다고 툴툴대는데 소마는 모른척하며 그런거 보단 자기는 [[식극의 소마/162화|전에 츠카사 에이지와 싸운 적]]이 있으니 이번엔 쿠가 선배의 차례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이게 쿠가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과의 대전은 한사코 피하는 츠카사가 왜 소마하고는 승부했단 말인가?
* 쿠가의 심통은 소마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그때 츠카사가 소마를 서포터로 스카웃하기 위한 비공식 식극이었다고 설명하자 쿠가는 신난 똥강아지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소마는 그저 서포터 자질을 보기 위한 거였고, 쿠가 자신은 "요리사로서"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소마에게 "풀 죽을 필요 없다"고 여유까지 부리는 마당이다. 너무 텐션이 올랐다. 소마는 쿠가가 츠카사에게 질 경우 자기가 복수하겠다고 장담하는데 쿠가는 소마가 그렇게 나오면 자신은 오기로라도 더 집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둘은 대기실로 향하며 다음 대결에 꼭 츠카사가 나오길 바라는데, 만약 나오지 않을 경우 쿠가가 츠카사를 끌어낼 때까지 다 때려잡겠다고 선언한다.
* 연대식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반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상대"라고 상당히 평가 절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쿠가의 기합과 관중들의 환호에 등판하는 센트럴의 참전자. 1석 츠카사, 2석 [[코바야시 린도]], 4석 [[사이토 소메이]]. 현 십걸 중 최강 전력이며 연대식극 참가자 전원을 기준으로 봐도 최강의 카드가 여기서 나왔다.
* 린도가 대결 상대를 정하자고 한다. 먼저 응하는 것은 미마사카. 처음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트레이스하고 있는 상태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는 사이토 소메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입버릇을 따라하는데. 사이토는 그런 부분을 재미있다고 평하며 승부에 응한다. 메기시마는 린도 쪽으로 도전. 남은 것은 자연히 쿠가와 츠카사. 쿠가가 바라마지 않던 매치가 성립했다. 관중들은 8석 대 1석이라며 무모한 대결이라고 혹평하지만 어쨌든 소마는 쿠가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공이 울리는 2라운드.
- 원피스/852화 . . . . 39회 일치
* 그러나 제르마를 멸망시킨다는 계획에 대해선 함구하고 이대로 멸망 당하게 하자고 제안한다.
* 어머니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시는데 다른 형제들에겐 영향이 없었지만 상디만은 감정을 가진 아이로 태어났다.
* 레이쥬는 어머니가 바랬던 "감정"을 가진 아이인 상디가 "실패작"일리 없다며 살인자 집단인 제르마를 버리고 도망치라고 말한다.
* 상디는 함께 도망치자고하지만, 레이쥬는 자신에게 감정은 있을 지언정 아버지에게 거역할 수 없는 "공범자"라며 함께 멸망당해 마땅하다고 말한다.
* 상디가 주저하자 레이쥬는 밀집모자일행을 들며 "저렇게 멋진 녀석들은 이제 평생 다신 못 만날 거야"라고 다그친다.
* 홀 케이크 성의 의료실에서는 의사가 [[빈스모크 레이쥬]]를 치료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개조인간이라 괴물같은 자연치유력으로 벌써 상처가 아물고 있다. 의사는 안정을 취하면 내일 "다과회"에도 참석할 수 있겠다며 안심한다. 의사는 이 방은 경비에도 맡기고 자신은 4층의 또다른 의료실로 발길을 옮긴다. 경비가 혼자 남자 바깥에선 수상한 그림자가 접근하는데. 얼마 후 레이쥬가 병상에서 눈을 뜬다.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발견한 것은 [[상디]]. 침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레이쥬는 성 안에서 "침입자" 때문에 난폭해진 경비를 만난 데까지는 기억이 있지만 다리의 부상에 대해선 기억을 못한다. 막연히 "난동에 휘말렸다"고 생각하는데.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상디가 기억은 위조된 거라며 그녀에게 일어난 "진짜 사건"을 밝힌다.
간신히 화상을 면하고 풀려난 루피와 나미. 나미는 "전에도 이런 적이 있던 것 같다"고 투덜거리고 루피는 팔을 안 끊고 끝났다고 껄껄 웃는다. 징베는 자신들이 처음 만난 것도 [[임펠다운|감옥]]이었다며 잠시 회상한다. 그리고 책에서 나온 죄수들의 수를 보라며 이만큼 빅맘 [[샬롯 링링]]에겐 우수한 부하가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태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상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 의료실에선 상디가 레이쥬에게 모든 걸 전한다. 레이쥬는 상디의 말을 순순히 믿는다. 본래 그녀도 푸딩이 너무 착해서 수상했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것이고, 그러다 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그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상디는 빅맘이 결혼하지 않고 제르마를 몰살시킬 작정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희생해 밀집모자 일행을 살리는건 택도 없는 일이었다고 자책한다. 그런데 레이쥬는 태연한 태도로 말한다.
레이쥬는 상디는 그냥 밀집모자 일행과 도망치라고 말한다. 상디는 "발라티에" 의 제프는 어떻게 하냐고 반박하는데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다 죽을 뿐이니 그건 도망치면서 생각하라고 대답한다.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상디와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반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 상디가 인간으로서 자라나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졌다. 상디는 자신이 봤던 어머니의 투병이, 결국 자신 때문이었던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레이쥬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어머니는 상디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저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도 상디의 탓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제르마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는 파괴자에 불과해.
* 레이쥬는 자신의 고향이자 가문이자 가족들을 그렇게 한 마디로 평가했다. 다행히 빅맘이 원하는건 제르마의 "과학력". 상디가 도망친대도 구태여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까지 관심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인질취급했던 제르마의 인간들은 죽어 마땅하다. 단순한 "살인자 집단"이니까. 상디는 다른 가족들에겐 일말의 정도 없지만, 어째서 레이쥬까지 죽음을 자청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게 개조된 "공범자"야
그녀는 자신에게도 가혹한 "제르마"의 굴레를 씌운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다며 상디가 차고 있는 수갑은 자신이 가짜로 바꿔치기 했다고 알려준다. 이제 도망치지 못할 이유가 있냐며 상디를 다그친다.
- 원피스/864화 . . . . 39회 일치
* [[브룩]]은 마더 카르멜의 액자를 깨는데 성공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 빅맘 [[샬롯 링링]]을 패닉으로 몰아간다.
* [[샬롯 푸딩]]은 [[상디]]를 여러번 쏘면서 "항상 이런 식으로 남들을 속여왔다"고 외치는데 상디가 "자기 자신도 말이야?"라고 지적하자 크게 동요한다.
* 샬롯가의 3남 [[샬롯 다이후쿠]]가 푸딩을 쓸데없다고 까면서 난입.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 인간.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요정"이 나와 상디와 대치.
* 빈스모크 형제들 조차도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난하며 자기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데도 냉소할 뿐이다.
* [[카포네 갱 벳지]]는 입장 상 [[몽키 D. 루피]]를 생포한 척 하지만 작전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자 초조해진다.
* [[징베]]가 빅맘 [[샬롯 링링]]과 결별. 멋진 결별선언이었으나 심사가 뒤틀린 빅맘은 "이 시간부터는 적"이란 명목으로 징베를 공격한다. 그러는 사이 루피 모습의 허수아비로 변장한 [[브룩]]은 조용히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로 접근, 망치를 휘둘러 깨끗하게 액자를 박살내 버린다.
브룩을 마음에 들어했던 빅맘은 단번에 그가 자신의 수집품이라는 걸 알아본다. 아직까지도 수집품이 하룻밤만에 죽어버렸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되살아나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깨뜨리다니, 그녀로서는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너 자신도 말이야? 푸딩쨩.
* 샬롯가의 3남 [[샬롯 다이후쿠]]는 "쓸모 없는 동생"을 더이상 못 보겠는지 푸딩이 휩쓸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공격을 가한다.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인간"이다.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마인이 나타나 싸운다. 그가 개입하자 푸딩은 자신이 할 테니 기다리라고 하지만 다이후쿠는 푸딩을 쓸모없다고 매도하며 이미 기회는 지나갔고 그녀에겐 무리라면서 내동댕이쳐버린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하객들은 막연히 "밀집모자 일당이 신랑을 탈환하러 왔다"고 여기긴 하나 워낙 이상하게 돌아가는지라 혼란스러워 한다. 상디는 다이후쿠와 맞서 싸우지만 램프의 거인이 날린 "마인참"에 맞고 나가 떨어진다.
* 미러월드에서는 [[시저 크라운]]이 탈출 준비를 하면서 부산하다. 그는 [[샬롯 브륄레]]를 처박은 가방을 매고 바쁘게 날아다닌다. 브륄레가 이제는 자신을 이용하지 말라고 징징대자 "내 심장이 걸려있다"고 닥치라고 한다.
* 혼란에 빠진 다과회장. 빅맘 해적단이 태세를 정비하지 못한 사이, 벳지는 루피를 생포한 척 연기한다. 일단은 자신이 경비 책임자이기 때문에 손놓고 있으면 수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가 루피를 사로잡았다고 외치자 누군가 "죽여버려!"라고 받아친다. 루피는 벳지의 처사에 반발하지만 그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손발을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
* 당초 벳지는 사진이 깨지고 괴성이 터지기까지 3초가 걸릴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징베는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중과부적으로 밀리고 있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어떤 사내와 싸우려는 걸 발견하고 "그녀석의 공격을 직접 받아내지 말아라!"고 소리쳐 경고한다. 하지만 경고가 늦어서 페드로는 상대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낸다. 그러자 검이 뜨겁게 달아올라 칼을 놓친다.
방금 페드로를 공격한 자는 샬롯가의 4남 "노릇노릇 대신" [[샬롯 오븐]]. "열열 열매"를 먹은 "고열 인간"이다. 자기 몸에 닿는 것을 가열하는 능력. 접근전을 벌이는 페드로와 상성이 좋지 않다. 페드로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지만, 저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드로가 [[페콤즈]]의 형이며 과거 빅맘에게 눈과 수명을 잃었던 남자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 페드로가 얼마 남지 않은 수명으로 여기에 왔다는건, 각오를 했다는 얘길 거라며 그를 불태워 죽여주겠다 엄포를 놓는다.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상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식들의 냉담한 태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노스 블루의 나라들에 복수하기 위해 바쳐왔다고 하소연한다. 하객들은 대놓고 그를 빈정거리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는 암살 주모자 빅맘에게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가 호소하는 빅맘은 웨딩케이크의 붕괴, 망쳐진 결혼식, 밀집모자 일당, 그리고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진 것 등등.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뇌가 정지하다시피했다. 페르스페로가 이런 빅맘의 상태를 전하며 대신 대답한다.
>하지만 자네는 앞으로 먹을 소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나? 크크크
* 벳지가 말한 "좋지 않은 상황"이란게 바로 이것이었다. 빅맘은 쇼크가 너무 겹치고 겹친 나머지 대혼란상황. 패닉을 일으킬 정신 조차 없는 것이다. 브룩은 빅맘의 상태가 저러니 "깨어진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벳지는 이제와서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어하다가,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접근하는걸 발견하더니 대번에 태도를 바꿔서 "작전은 성공할 거다"고 확신한다. 지금 카타쿠리는 새파랗게 질린 낯짝이다. 벳지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을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상디는 상황이 예상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자 이젠 총을 겨눈 녀석들을 전부 날려버리려면 "그것" 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39회 일치
|| '''별자리''' || [[천칭자리]] ||
||'''지도자'''||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 코치 (2002~2003) [br]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수석코치 (2003~2008) [br]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 (2008~2010) [br]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09) [br] [[대전 KGC인삼공사|KGC인삼공사]] 수석코치 (2011~2012) [br] [[대전 KGC인삼공사|KGC인삼공사]] 감독 (2012~2016) [br] [[원곡고등학교]] 코치 (2016~2017) [br] 고창흥덕초등학교 감독 (2018~) [br] AVC(아시아배구연맹)컵 여자배구대표팀 코치 (2018) ||
||<width=30%><:> [[이희완(배구)|이희완]][* 시즌 중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사임.] [BR] (2006~2008) ||<:> {{{+1 →}}} ||<width=30%><#2c3d47><:> '''{{{#e8581b 이성희[* 다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2007-08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8년 1월부터 위암 발병으로 자리를 비운 이희완 감독을 대신하여 팀을 이끈 상황이었다.]}}}'''[BR]'''{{{#e8581b (2008~2010)}}}''' ||<:> {{{+1 →}}} ||<width=30%><:> [[조혜정(배구인)|조혜정]] [BR] (2010~2011) ||
== 지도자로서의 행보 ==
은퇴 후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2003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서는 감독 대행만 2번 맡았다. 2006년 1월 20일에 [[박삼용]]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7-2008 시즌 중에는 [[이희완(배구)|이희완]] 당시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이 [[위암]] 투병으로 물러나자 다시 한 번 감독 대행을 맡아 정규 리그 3위를 기록,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대전 KGC인삼공사|KT&G]]를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을 꺾고 '''{{{#ffc000 우승}}}'''을 차지했다.
전년도의 우승으로 2008-2009 시즌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그는 베띠 데라크루즈를 앞세워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어창선]] 감독대행이 이끌던 ~~당시 굉장히 어수선했던~~ 흥국생명에 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2009-10 시즌에는 베띠가 떠나고 성적이 맛이 간 것을 후반기 합류한 [[데스티니 후커]]의 맹활약과 후반기 일정 덕[* 이 당시부터 GS칼텍스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 홈으로 [[장충체육관]]을 쓰게 되었는데, 전반기 때 홈 경기가 단 2번(그나마 한 번은 천안에서 했다.)에 불과했다. 즉, 반대로 후반기가 두 경기 빼고 모두 홈 경기였던 거.]으로 겨우 3위로 올렸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대전 KGC인삼공사|훗날 감독 자리를 맡을 팀]]에게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내주며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스타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으로 재직하던 2008년과 2009년에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0년, GS칼텍스 감독 사임 후에는 KOVO의 경기감독관으로 지내다가, 2011-2012 시즌을 앞두고 [[대전 KGC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어 [[박삼용]] 감독과 함께 인삼공사의 2011-2012 시즌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우승 후 [[박삼용]] 감독이 갑자기 사퇴하자, [[대전 KGC인삼공사|인삼공사]]의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못믿쓰고(못 믿고 쓸 고려증권 출신들)의 저주를 풀 수 있었으나...~~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한유미]], [[장소연(배구선수)|장소연]], [[김세영(배구선수)|김세영]] 등 주전이었던 베테랑 선수들도 모자라 김회순[* 장소연과 김세영 대신 원포인트 서버로 썼던 선수.], 오현미[* 윙 리시버로, 이 선수의 여동생이 현대건설에서 리베로로 뛰던 오아영이다. --하지만 [[이호(배구선수)|이호]] 때문에 [[망했어요]]!--], 한은지[* 주전 세터인 [[한수지]]의 언니이자 센터.] 등 조커 역할을 하던 선수들도 대거 [[은퇴]]했다. 거기에 2011 - 12 시즌 엄청난 활약을 했던 외국인 선수 마델레이네 몬타뇨의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해 5승 25패(6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팀 최다이자, 리그 역사상 최악의 기록인 '''20연패'''는 [[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이후에도 [[2015년]] [[11월 4일]] 화성에서 열린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도 헤일리에게 몰빵을 시켜놓고 헤일리는 열심히 이를 소화했지만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작전타임을 불러 --자기 [[무능]]함은 안중에도 없고-- 헤일리를 집중적으로 갈구는 모습을 보여 인삼팬들은 물론이고 타팀 팬들까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혈압을 올려 놓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감독이란 작자가 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 경기의 패인을 헤일리 탓으로 돌리는 등 툭하면 헤일리를 디스하는 기사거리들이 수시로 올라오면서 다시금 그의 무능함을 확실하게 인증하고 있다.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리고 12월 29일 [[수원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는 아예 3세트 때 헤일리를 빼 버리기도 했다. 이날도 당연한 소리같지만 '''패했다'''. 사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헤일리를 위해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려는 의미에서 뺐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감독부터가 아예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헤일리가 빠진 3세트는 그야말로 경기력이 처참한 수준. 이것만 봐도 감독이란 인간이 3년동안 부임 이래로 국내 선수들을 전혀 키우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냥 이렇게 지면 지워버리기라도 하면 되지만 2세트나 15점 이하의 득점도 모자라 현대건설의 16경기 연속 기록까지 갈아 치워주는 굴욕까지 당하며 1229 대첩을 발발하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이성희가 그만큼 국내 선수들을 보는 안목이 전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volleyball&no=1478772&page=1&exception_mode=recommend|예전 용병 조이스를 깠던 적이 있는 인터뷰까지 발굴되면서]] 가뜩이나 안 좋은 이런 상황은 더욱 이성희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중. --그래도 안 짤렸던 것이 [[함정]].--
더구나 2015-16 시즌 진행 중에도 최하위에서 올라올 기미가 없는 등 당최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이자 인삼공사 팬들에겐 항명 파동으로 물러나게 된 도로공사의 [[이호(배구선수)|이호]] 전 감독과 함께 사실상 '''감독 취급도 못 받는 [[금지어]] 신세로 전락했다'''. 심지어는 대놓고 탱킹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의견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인삼팬들을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 부임 후 '''시즌 대대로[* 2013-14 시즌 제외.] 팬들을 우롱하는 [[시궁창]] 성적을 내고도 [[사퇴]] 혹은 [[경질]]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2월 1일, 혹사당한 헤일리가 어깨 부상을 호소하며 6일까지의 3경기에서 출전 명단에서 제외시켰는데, 헤일리가 결장했던 2월 1일 국내 선수들로 똘똘 뭉치자 [[수원 현대건설]]전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1승을 챙겼다. 헤일리가 부상으로 보름동안 휴식을 가진 사이 현대건설에서 이적한 [[김진희(배구선수)|김진희]]와 문명화의 활약이 돋보였고, --그의 양딸-- 이연주와 [[백목화]]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경기는 모두 패했다는 게 함정.-- ~~헤일리 팔 돌려놔 [[개새끼]]야!~~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헤일리가 복귀한 2월 16일부터 20일까지 2연승 행진을 하긴 했지만, 나머지 3경기를 모두 내주며 결국 '''7승 23패, 승점 22점'''으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헤일리 복귀 후 여전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성희의 질책은 계속되었고, 문제의 3월 2일 경기에서는 2세트 범실에 [[빡]]쳤는지 3세트에선 헤일리를 아예 빼버리기까지 했다. 그 사이 헤일리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방송에 포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진정시키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웜업존에 처박아두는 비정함을 보인 이성희는 더 이상 그를 코트에 출전시키지 않았고 팀은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헤일리의 어머니까지 직관을 왔는데도''' 말이다. 진짜 이건 '''사람이 아니라 [[백정]]이다'''. 얼마나 감독의 질책이 누적되었으면 저렇게까지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되었을까? 평소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성실한 선수에게 저런 되도 않는 [[군기]]를 시전하는 행동은 어떻게 봐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자팀팬들에게는 물론이고 타팀 팬들에게까지도 대차게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인삼공사와 계약이 만료됐는데, 4년 동안 최하위만 3차례(6위 - 3위 - 6위 - 6위)나 세우는 무능함을 보여주며 프로 팀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말도 안되는 개[[막장]]스런 성적을 낸 탓에 재계약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저런 한심한 성적까지 낸 주제에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용병을 갈구는 고질병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인삼공사를 거쳤던 역대 감독들이 모두 금지어에 등극되어 있긴 하나, '''이 KGC란 팀 자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비박산내어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그래 외국인 선수에게까지도 폭언을 일삼는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감독은 이성희밖에 없다'''.
결국 [[2016년]] [[4월 5일]] 자로 계약이 만료된 후, [[서남원]]에게 인삼공사의 감독직을 넘겼다. 팬들은 이성희에 대해 두 번 다시 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삼공사가 재계약하지 않고 이성희를 내친 것에 대해 통쾌해하는 중. --헤일리! 이제 다시 와! 너 툭하면 맨날 갈구던 감독이 드디어 나갔어!!-- --그런데 서남원은 이성희와 [[서울시립대학교]] 동기이자 [[절친]]이라는 게 [[함정]].--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39회 일치
* 디안느는 "진짜 소중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고서와 "3천년 전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고서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자고 말한다.
* 겨우 끼어들 틈이 생기자 국왕 바토라가 후다닥 나타나 오랜 시간에 걸쳐 찾아낸 "마법의 심장"을 건내는데... 고서는 그걸 보자마자 도망쳐 버린다.
* 할 수 없이 전 단원이 고서를 찾아 나서는데, 고서는 변장을 하며 피해다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자 리오네스]]와 생활했던 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 이곳이야 말로 그의 "마음의 거처"였지만, 나자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자 무의식 중에 그것을 거부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의 기억과 마음을 지우기로 한다.
* 리오네스 왕국의 고성을 울린 굉음은 인근 주민들에게도 들렸다. 굉음을 낸 당사자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그로키시니아]]의 시련을 마친 이들이 일행과 합류하려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던 것이다.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예지를 듣기 위해 고성에 모였던 멤버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으나 그것도 잠시. 곧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재회의 인사를 주고 받는다.
디안느는 무사한 동료들을 보고 기뻐하나 "[[멜리오다스]]가 살아있었더라면..."이라 눈물을 훔친다. 할리퀸이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 위로하느데 디안느의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멜리오다스가 살아난 것은 길고 복잡한 이야기지만 당사자는 "이것저것 있어서 되살아났다"고 대충 설명한다. 디안느는 그의 생환이 그저 기뻤고 할리퀸은 "너무 대충인 설명"이라 투덜댔으나, 그는 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곧 진지한 말투로 멜리오다스에게 "멋대로 오해해서 미안했다"고 정중히 사과한다. 그는 멜리오다스가 마신족이라 생각해서 배척했었는데 성전시대의 사건을 보고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의 사과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데다, 할리퀸의 날개에 더 관심을 뺏겼다. 반과 같이 다가와서 그의 날개를 보고 "이제 너도 어른이 됐구나"라는 둥 애송이 취급을 해대는데다 반도 "작다. 어린애 사이즈"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결국 분개하는 할리퀸. 하지만 디안느가 "두 사람도 나름대로 기뻐하는 것이니 화내지 말라"고 타이르자 고분고분해진다. 멜리오다스와 반이 그걸 지켜보다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하는데, 할리퀸은 "연인 같아졌다"고 지례짐작해서 으스대지만 곧 "너 말고 디안느가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무안해진다. 디안느는 그게 맞다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진짜냐고 놀란다. 그리고 디안느의 기억을 지운 당사자, [[고서]]도 반응한다.
>고서, 같이 네가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자.
지금의 고서는 자신이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상태. 그래서 디안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멀린은 디안느가 무심코 말한 "3천 년 전"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반은 "꿈이라도 꾼 거겠지"라고 별거 아니라 여기지만 멀린은 진지하게 가능성을 점쳐 본다. 그녀도 여신족의 시간회귀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디안느가 정말 3천 년 전으로 갔었을 거라 추정한다.
* 고서는 기억해냈다. 소중한 약속과 [[나자 리오네스]].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고서의 다음 행동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고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버렸다. 바트라가 기다리라고 말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일행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반은 오줌이나 똥이 아닐까 하는 한심한 추리나 하고 있었다. 디안느는 바트라가 보여준 물건이 그를 도망치게 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건 고서 자신의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일곱 개의 대죄/고서 외전|그가 바트라의 누나 나자에게 주었던 물건]]. 원래 고서의 가슴 속에 있어서 마법의 마음을 주었던 물건이다. 에스카노르는 "마법의 마음"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상을 떠올린다. 멀린은 그보다는 실용적인 착상이 떠올랐는지 바트라에게 그 물건을 잠시 보여달라 한다.
* 마법의 심장이 어떻든, 우선은 고서를 쫓아갸아 한다. 디안느가 그렇게 성화를 부리며 멀린에게 자신을 작게 만들어 달라 부탁한다. 반은 여전히 위기의식 없이 "먼저 고서를 잡는 사람한테 한 잔 쏘기" 내기를 제안, 할리퀸이 한심하게 여긴다. 에스카노르도 얼른 쫓아가자고 건의하자 멜리오다스도 일곱 개의 대죄의 네 번째 규칙을 들어 허가한다.
* 멜리오다스와 반은 같은 방향을 수색했다. 반은 가던 중 과일장수의 사과를 하나 슬쩍하며 단장에게 "고서가 인형이란걸 알았냐"고 묻는다. 물론 멜리오다스는 알고 있었고 진짜 십계 고서와도 아는 사이였다. 십계 고서는 마신왕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실력으로 "무욕"의 계금을 받고 십계로 발탁됐다. 무욕의 계금은 욕심을 품는 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빼앗는다. 이걸 부여해준 마신왕도 예외는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자신의 분신인 인형 고서를 만들었다. 그 용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쏙 빼닮게 만들었지만... 정욕을 품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남자로 만든 것이다.
*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갔던 에스카노르는 정말로 고서를 불러가면서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필 시간대도 안 맞아서 약골 상태. 금방 목이 쉬어서 기침을 해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근처에 고서가 있기는 했다. 그는 금발의 여인으로 변신한 채 일행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에스카노르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서가 자리를 옮긴다.
고서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혼란스러웠다. 걸음거리가 비틀거렸다. 변신도 풀렸다. 자신에게 마음이 있었다니? 그리고 국왕이 보여준 마법의 심장, 그 기억은 자기 자신이 지웠으니 당연히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들고 도망쳐야 했던 걸까? 아무 떠올리지 않는데 두려워해야 하다니.
* 정처없이 걷던 고서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자, 그 앞은 "마음의 거처"라 할 만한 곳이었다. 자신이 처음 세상으로 나왔던, 나자와 만났던 고성. 왜 자신이 여기로 돌아왔을까? 또다시 단편적인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느 소녀. 나자의 기억. 그는 이런 "노이즈"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소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억째 소거하자.
또 한 번 "로스트 월드"로 자신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그때, 디안느가 그를 발견했다.
- 창작:좀비도시 . . . . 39회 일치
||<#008000> '''{{{#white 작성자}}}''' || 함장 ||
좀비시티는 다수의 [[좀비]]가 모여 있는 고립된 도시이다. 외곽은 군부대가 방벽을 쌓고 방어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좀비와 소수의 생존자들이 머물고 있다.
* 군의 투입으로 확산을 저지하기는 했으나, 이미 도시 내부의 좀비 숫자가 너무 많아 군을 투입하는 것이 어렵다. 몇 차례 생존자 구출을 위하여 부대를 투입했으나, 제한적인 성과만을 거둘 수 있었고 그로 인한 희생이 커서 현재 구출 작전은 주저하고 있다.
* 대규모 화력을 동원한 도시 파괴는 내부의 생존자들이 사망할 우려가 너무 크며, 반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치적 관점에서 어렵다.
* 몇몇 경제학자들은 좀비를 청소하고 도시를 재건하느니, 방치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차라리 피해가 적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 몇몇 의학자들은 군을 내부로 들여보내는 것이, 외부로 좀비 감염원을 유출 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 생존자 보호를 위한 인간방패 운동 본부 : 폭격 계획이 준비되었을 때, 생존자들을 위한 인간방패를 자청하며 방벽 안으로 들어가서 인간띠를 만드는걸 시도했으며 이를 인터넷으로 중계하였다. 몇몇이 좀비에게 습격당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폭격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시위를 벌이며 폭격 저지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 생존자 지원을 위한 운동 그룹 : 아직 도시에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어떻게든 지원하는 그룹이다. 주로 고립형 생존자들과 연결이 많다. 소수의 민간용 드론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립형 생존자들에게 생존 물자를 전달했다.
'''생존자'''
생존자들이 도시에 남아 있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 고립형 : 이들은 구조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 불가피하게 고립되어 남아 있다. 가능하다면 탈출하고 싶어하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이다.
* 절망형 : 이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남아 있다. 사태의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이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침입자'''
도시에 침입하는 침입자들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 탐색자 : 이들은 좀비도시에 남아 있는, 어떤 이유로 들어갔다는 사람을 구출하거나 탐색하러 도시에 들어왔다. 생존자들의 친지이거나, 혹은 어떤 의뢰를 받은 사람일수도 있다.
* 약탈자 : 이들은 자신의 몸놀림과 행운에 자만하고 있거나,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고 여긴다. 외부 세계에서는 도둑이었으며, 도시에 남아 있는 '쓸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가서 한 몫 챙기는 것이 꿈이다.
* 광신자 : 이들은 어떤 종교적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공통적으로 좀비 사태가 이 세계에 주어진 어떤 '계기'라고 믿고 있으며, 좀비도시에 들어감으로서 어떤 계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어떤 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한 자들이다.
'''무법자''''
도시에 나타나는 무법자들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외부의 사회와 법률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법률의 압박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어한다. 좀비 이상으로 이 도시를 위험하게 만드는 괴물들이다.
* [[지명수배|지명수배범]] : 이들은 이미 사법기관에 그 죄상이 노출된 수배자이다. 이들은 단지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다는 이유 때문에 좀비도시에 있고 싶어한다.
- 최남선 . . . . 39회 일치
|필명= [[아명|아명(兒名)]]은 창흥(昌興) <br/> [[자 (이름)|자]](字)는 공륙(公六) <br/> [[호 (이름)|아호]](雅號)는 육당(六堂)
|배우자= 연주 현씨 부인
'''최남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문학가이자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문화운동가]]이다. 본관은 [[동주 최씨|동주]](東州)이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ref name="changs">[[장준하]],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 『[[사상계]]』 53호, [[사상계사]], 1957.12.</ref>
1907년 5월, 귀국한 뒤 한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7년 11월 [[이광수]] 등과 함께 잡지 [[소년]]지를 창간한다. 소년지에서 그는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고, 이광수는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발행한 잡지 《소년》지는 근대적 종합잡지의 대표적인 잡지이며 어린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중 초기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소년 잡지를 창간한 11월 1일이 잡지의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최남선은 인쇄시설을 추가로 구비하여 1908년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였다. 처음 건물과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자택에 [[신문관]]을 설립하고 인쇄와 출판을 겸하였으며 후일 사세를 확장하여 [[경성]]시내로 사무실을 옮겼다. 여기서 그는 《대한역사》, 《대한지지》 《외국지지》 등 중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새 시대의 주인공을 위하여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 (잡지)|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1909년에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결성하였다. 1910년 3월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내면서 청년학우회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체포되어 2년 8개월형을 받아 복역한 뒤 1921년 10월 18일에 가출옥하였다. 그 뒤 변절하였다는 설이 있다. 가출옥 사유는 “청년들을 규합하는 데 대단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은행]] 총재 미노베(美濃部俊吉)에게 잡지 《[[동명]]》의 발행 자금을 지원토록 주선하였으며, 그 이유를 최남선의 출판물이 “조선의 사상계의 악화를 구하고, 또 [[진학문]](秦學文)·[[이광수]] 등의 생계비 출처로 삼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국사 연구에 전념하여 《조선역사통속강화》를 연재했다. 1924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도 부족하였고, 신문의 반일적인 논조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받아 경영난에 처하자 곧 사임하였다.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이 되어 사설과 칼럼을 발표하였다.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 제18호에 [[일연]]의 《[[삼국유사]]》 전체를 게재하게 하였다.<ref>《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스토리텔링 삼국유사 1) (현암사, 2009) 24~25쪽. {{ISBN|978-89-323-1536-2}}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에다 일연(一然)의『삼국유사(三國遺事)』 를 실은 것이었다.” </ref> 같은 해 총독부가 집과 연구 비용을 지원한다고 회유하자 그해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거쳐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다.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총독부의 조선사 편수회에 가담한 일로 [[이광수]]와 절교하고, [[한용운]]과 [[홍명희]] 등도 연이어 그와 결별 선언을 했다. [[한용운]]은 그의 나무 위패를 새기고 장례식을 거행하여 그를 조롱하려고 시도했다.
1920년대에 문화 운동 활동한 동시에 같은 해 1928년 10월 [[조선총독부]] 내에 [[식민사관]] 유포를 위해서 만든 어용단체인 ‘[[조선사 편수위원회]]’를 창립했을 때 편수 위원직을 맡았다. 1930년 8월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교수와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문화연구'를 표방하며 조직한 [[청구학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37년 중추원 참의를 맡아 1938년 3월까지 재임하면서 매년 1200원의 수당을 받았다. 1937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조선문화의 당면과제'를 연재해 조선문화의 일본화야말로 당면한 문제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라며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사설을 기고했다. 이어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 어용기관지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각종 친일논설을 게재했다.
이어 [[장준하]]는 '사람을 사赦하는 법이 없고 인재를 자기 눈동자와 같이 아낄 줄 모르고 사물을 널리 생각하지 못하는 옳지 못한 풍조 때문에 우리는 해방된 후에도 선생에게 영광을 돌린 일이 없고 그 노고를 치하한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욕된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실로 온 민족의 이름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를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것을 비난 하였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 대학]]에서 조선인 전문·대학생들에게 학병에 지원하라는 강연을 했다.<ref name="daedams">[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3/2007030300046.html “화랑 사상 지금 부활해도 좋을듯…”] 조선일보 2007.03.03</ref> 당시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 대담에서 춘원은 강연회에 대해 “일종의 극적 광경이라고나 할까. 황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죽자는 생각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더군요”라며 “그때의 압권은 최(남선) 선생님의 강연이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했다. 육당은 “적어도 천오백 명은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며 “일찍이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요”라고 화답했다.<ref name="daedams"/>
최남선은 “어떤 학자는 ‘(일본)무사도의 연원은 신라의 화랑이 그 토대였다’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라며 한일 양국 공통의 상무(尙武) 정신을 역설했고, 이에 [[이광수]]는 “저 ‘화랑’의 사상이란 오늘날 막 바로 부활시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며 동조했다.<ref name="daedams"/>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경성부]] 우이동(牛耳洞)에 은거, 외부 출입을 삼가고 역사논문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해 9월 [[한민당]]의 영입 제의를 사양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그는 '민족개량주의로 흘러가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것 때문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비난을 받았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곧 바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투옥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5월에 공판을 받았다. 수감 중에 그는 자신은 민족을 위해서, 나의 연구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협력하였다고 항변하였으며, 특별재판부에 참회의 뜻을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를 기소한 [[반민특위]]는 [[친일파]] 출신 정치인들이 친일 인사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감싸면서 탄압받았고 1949년 2월 병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석방, 그의 친일행각은 사실상 처벌되지 않았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다. 휴전 후 《서울시사(市史)》 편찬위원회 고문으로 재직하였고, 신문과 잡지에 한국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기고활동을 계속했다. 1957년 10월 10일 《한국역사대사전》을 편찬하던 도중 병으로 죽었다.
*그의 동생 [[최두선]]이 [[민주당 (1955년)|민주당]]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서는 최남선이 친일파라고 공격했다.
*사후 [[장준하]] 등은 추도사를 통해 그가 자의에 의해 친일하지 않았다며 그를 '우리의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라며 그의 업적을 치하하였다. [[장준하]]는 그가 죽자 장례식과 빈소를 방문하였고, [[사상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이라는 추도사를 실어 그의 업적과 공적을 추모하였다.
최남선은 그는 평생 고전 정리와 주석에 관계된 것 등 다방면에 걸쳐서 국사와 고전 서적의 간행, 복원, 한글 번역 작업을 하였다.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창작하는 등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시조 부흥 운동을 지도하여 최초의 시조 시화집 《백팔번뇌》를 출판하기도 하는 등 신문화와 전통 문화의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로서 한국의 신문화 운동에 남긴 업적은 매우 크게 평가되고 있다.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 페어리 테일/530화 . . . . 39회 일치
* 레이라는 자신의 사명이 딸에게 계승되는걸 피하기 위해 이클립스를 연 것인데 얼마 뒤 사망하고 만다.
* 안나는 이 시대엔 "시간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무의 마력"이 충만해 있고 여기에 접촉하는 자는 [[아크놀로기아]]라 해도 사라진다.
* 한편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의 승부는 막바지. 제레프는 "네오 이클립스"란 것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 한다.
* X777년. [[피오레 왕국]]의 왕도 크로커스. 시민들은 월식이 일어나자 불길한 징조라고 여겨 꺼려한다. 왕궁의 [[히스이 E. 피오레]] 공주는 어두운 달 옆으로 다섯 개의 유성이 지나가는 걸 목격한다. 그런데 이상한 유성이다. 함께 목격한 [[아르카디오스]]는 유성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법인데, 저건 "아래에서 위로" 솓구친다고 별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공주를 데리고 국왕을 찾으러 간다. 국왕이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찾던 참이다.
* 그들이 찾는 국왕 [[토마 E. 피오레]]는 성 안에 감춰져 있는 이클립스의 문 앞에 있었다. 당시의 토마 왕은 이클립스가 단지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문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나타나 수백년 만에 이 문을 열었다. [[루시 하트필리아]]의 어머니 [[레이라 하트필리아]]였다. 문은 정말로 열렸다. 지쳐있는 레이라의 눈 앞으로 문을 통해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난다. 토마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놀라워한다. 그에겐 문이 열린 것이나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온 것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문에서 나온 여성은 루시와 레이라의 먼 선조 [[안나 하트필리아]]. 그녀는 레이라에게 지금의 연도를 확인한다. 지금이 400년 뒤라는 걸 알고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자신과 함께 와야 했던 다섯 명의 멸룡마도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나가 당황하며 자신과 함께 다섯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냐고 묻는데, 레이라 대신 토마가 대답한다. 아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열자마자 다섯 개의 빛이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고. 토마가 천장에 남은 흔적을 보여주자 안나는 할 말을 잊는다.
* 잠시 뒤. 왕궁의 발코니에서 하트필리아가의 여자들은 서로의 소개와 정보를 교환한다. 하트필리아가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이것은 레이라의 할머니, 혹은 그 이전부터 집안에 전해지던 책에 씌여진 구절이다. 안나는 그게 자신이 쓴 책이라고 밝힌다. 토마 왕은 이해가 안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안나의 시간 대에서 이클립스를 개발했을 때, 해당 시간 대에서 누군가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는게 밝혀진다. 안나는 이 문제를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자신의 자손들에게 비술과 함께 기록을 남겨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클립스의 문을 열어라"고 전승시킨 것이다. 비록 그 전승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만은 제대로 전해져서, 레이라 대에 이르러 마침내 이클립스가 열리고 두 시대가 연결됐다. 토마 왕은 "그렇다면 당신은 400년 전 사람이냐"고 경악한다.
* 레이라는 안나가 현대로 온 목적이 뭔지 묻는다. 안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이며 때가 오면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토마 왕은 방금 들은 설명을 곱씹으며 문이 열렸다는건 그만큼 이 시대의 마력이 강대하다는 의미인지 생각한다. 레이라는 수치가 없는 부분이라 확신은 못하지만 "감"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동기는 자신의 딸 루시였다. 레이라는 딸은 사명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랬고 그래서 자신의 대에서 문을 열기로 했다.
안나는 그렇다해도 마력이 충분한 시대였기 때문에 문이 열린 거라며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너무 고생시켰다고 위로한다. 안나는 바깥으로 펼쳐진 피오레 왕국을 내려다보며 400년 뒤에도 인류와 문명이 남아있는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해졌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오자마자 멸룡마도사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곧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고친 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한다.
* 여기까지 이야기한 안나는 다소 침울한 기색으로 말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그 뒤 얼마 안 돼서 레이라가 죽었다고 밝힌다. 먼 후손의 죽음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말을 잇지 못한다. 이야기를 듣던 [[엘자 스칼렛]]과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엘자는 이야기를 계속해달라고 청한다. 안나는 곧 감정을 추스리고 이야기를 잇는다. 그 뒤 멸룡마도사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거기에 둔 채로 안나는 새로운 연구에 착수한다. 이클립스를 작동시켰을 때 사고를 일으킨 원인. 그 이변의 원인은 이 시대에 흐르는 "이질적인 마력" 때문이었다. 그건 원소 계통도, 빛도 어둠도 아닌 "무의 마력"이었다. 안나는 이것이 원래는 이 시대에 있어선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조사하러 간 그녀는 곧 "시간의 틈새"를 발견한다.
그건 이클립스를 사용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뛰어넘은 여파로 시간이 뒤틀렸는데, 시간 자체에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수정력"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것이 작동하면서 시간의 틈새와 그 안에 있는 무의 마력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시간의 틈새 속은 완전한 "무" 자체이며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아크놀로기아]]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제랄은 그녀의 계획이 "아크놀로기아를 유인해 시간의 틈새에 가둔다"는 것임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런 힘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안나는 자신이 그걸 숨겨놨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웬디는 정말로 그 공간이 시간의 틈새냐는 질문을 한다. 안나는 1년 전 [[대마투연무]] 때 이클립스가 다시 열리고 그 "구멍"이 반응했었다고 대답한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다시 복도로 나와서 일행에게 작전개요를 전달한다. 크리스티나호는 시간의 틈새를 우회한 뒤 그 앞에서 아크놀로기아를 기다린다. 아크놀로기아는 시간의 틈새가 있는 줄 모르므로 그대로 직진, 자기도 모르개 틈새에 접촉한다. 그러면 소멸. 바보같이 간단한 작전이다. 엘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웬디와 제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안나는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때 해피가 END의 서를 펼쳐보자고 제안한다. 해피는 이젠 메이비스가 한 말이 어떤 의민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그 생각을 지워버린다. 뭐가 됐든 제레프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나츠가 있으니까. 친구를 믿기로 한 그레이는 해피의 말대로 책을 펼쳐보자고 말한다. 루시는 거기에 동의하며 책을 펼쳐든다.
* 드래그닐 형제의 대결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둘 다 지쳐보이지만 나츠 쪽이 좀 더 심각하다. 제레프는 승부가 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대가 빗나갓다며, END라면 좀 더 자신을 파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공격을 가한다.
* 폭염마법과 유사한 마법이었다. 그런데 곧 소용돌이같은 형상으로 바뀌면서 나츠의 몸을 얽어맨다. 마치 나츠의 몸으로 침투하는 것 같다. 나츠의 혈관이 도드라지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마법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나츠를 묶어놓는다. 제레프는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모르지만 "괜찮다"고 말한다. 자신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메이비스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이클립스의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통상적인 이클립스를 말하는게 아닌 듯하다.
* 그 이름을 알고 있는 나츠는 고통 속에서도 귀를 기울인다. 제레프는 네오 이클립스는 과거나 미래로 가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시작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리셋이다. 불사신이 되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리셋. 나츠는 그게 제레프의 진짜 목적이냐고 묻는다.
나츠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제레프한테만 해당하는 말이다. 자신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무책임하기만 하다.
- 하이큐/249화 . . . . 39회 일치
* 본게임이 시작된 [[카라스노 고교]] vs 이나리자키 고교
* [[미야 아츠무]]의 서브로 경기가 시작. 아츠무의 서브는 소문대로 날카롭지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 덕에 2회차 서브는 빗나간다.
*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선수들 이상으로 잘 훈련돼서 아군의 플레이 때는 집중하게 해주고 카라스노의 플레이 때는 훼방한다.
* [[히나타 쇼요]]는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의식하며 자세를 교정해나가는데 아츠무는 그의 점프력을 매우 눈여겨 본다.
이나리자키 고교 정도는 아니지만 [[카라스노 고교]]도 관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콤비는 카라스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주목할 정도로 별나 보인다. 특히 히나타의 점프력은 이나리자키도 체크하는 요소. 이나리자키의 [[오지로 알랭]]은 특히 눈여겨 본다. [[스나 린타로]]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실 히나타의 점프는 어제를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연상하며 자세를 바꿔보고 있다. 히나타는 방금 전 점프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흘러가는 느낌"이 난다고 아쉬워한다. 다시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팀이 서브 연습으로 바꾸면서 기회를 놓친다.
* 이제 본게임의 막이 오른다. 어제도 객석에 자주 보였던 커플이 이번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양팀 선수들이 코트 위에 정렬한다. 심판의 호각과 함께 힘차게 "ㅈ잘 부탁드립니다!"고 인사한다. 효고현 대표인 이나리자키 고교는 3년 연속 봄고 진출에 31회차 참석이란 성적. 그에 비해 미야기현 대표 카라스노 고교는 5년만에 9회차라는, 상당히 차이나는 성적이다.
카라스노의 코치 [[우카이 케이신]]은 선수들이 벤치로 돌아오자 자신의 뺨을 때리며 파이팅한다. 2회전은 1회전과는 또다른 긴장이다. 카라스노 응원단도 자기들도 모르게 긴장을 한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선수들을 향해 격려와 당부를 전한다.
>그 누구도 카라스노가 시라토리자와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첫 공격은 이나리자키의 선공. 아츠무의 서브다. 고교 NO.1 세터의 서브는 서버가 위치를 찾아가는 것 조차도 특별하게 보였다. 카라스노는 [[니시노야 유]]를 중심으로 [[사와무라 다이치]], [[타나카 류노스케]]를 리시버로 기용,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 아츠무가 위치에 서자 이나리자키의 "음악단"이 사기를 고양하는 박자를 연주한다. 그런데 아츠무가 주먹을 쥐는 순간, 지휘자의 지시처럼 일제히 연주가 멈춘다. 커다란 체육관이 정적에 휩쌓인다.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케이]]는 그것을 썩 달갑지 않게 바라보지만 히나타는 "저거 멋있다"고 생각하며 구경하는 기분이다.
* 그리고 플레이에 들어가는 아츠무. 그런데 기껏 만큼 정적에 잡음이 끼어든다. 이나리자키 응원석 쪽의 쌍둥이 자매가 아츠무의 플레이에 맞춰 "오오오오"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아츠무라고 써진 부채를 나란히 들로 있는 걸로 봐서 그의 개인적인 팬이다. 하지만 팀문화에 까막눈인지 금기를 저질렀다. 자기들은 응원이라고 여기지만 옆에 있는 응원단도, 선수들도, 오사무도 뜨악한 반응이다.
* 서브는 성공. 니시노야와 타나카 사이를 깔끔하게 가르며 정확히 라인 앞에 떨어진다. 그러자 응원단은 방금 전 정적이 없었던 일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우카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칼날 날라오는거 아니니 굳어있지 마라"고 격려한다.
*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한건지 잘 모르는 쌍둥이 자매도 신이나서 아츠무의 이름을 연호한다. 아이돌팬스러운 커다란 부채에 "오사무"라고 써져있는 걸 보면 그의 개인적인 팬들인 것 같다. 그녀들은 아츠무가 2회차 서브에 앞서 자신들 쪽을 바라보자 좋아라하는데 아츠무의 소감은 기대와 딴판이다.
입 밖으로 나온 소린 아니지만 표정이 모든 걸 말하고 있다. 눈치없는 그녀들도 움찔할 만큼 직설적인 표정이다. 응원단 쪽에서 그녀들에게 "서브할 땐 조용히해라"고 주의준다. 쌍둥이 자매는 당황하며 Tv에서 하는 걸 따라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다소 뒤숭숭한 채로 들어가는 2회차 서브. 이 작은 소동이 영향을 준 탓일까? 서브는 여전히 카라스노의 반응보다 한 박자 빨랐지만 라인을 벗어난다. 서브 실패. [[스가와라 코시]], [[야마구치 타다시]] 등은 안도의 한숨. 아츠무가 낙담하며 "이런"이라고 고함친다. 오사무가 "허접하다"고 디스하자 아츠무가 신경질을 낸다.
* 스코어 1 대 1. 카라스노의 공격. [[아즈마네 아사히]]의 서브. 스가와라가 신중하게 가자고 조언하려 하는데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성가시다. "우-!"하는 큰 소리로 아즈마네의 정신을 흐트려놓는다. 타케다 고문은 이쪽의 첫 서브부터 이런 견제가 들어오자 의아해한다. 케이신 코치는 차라리 감탄하는 쪽. 자군 서브 때는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적군에겐 소란과 동요를 야기한다. 정말로 잘 훈련된 응원단이다.
* 경기가 초반부터 신경전이 거세자 중계석도 바빠졌다. 해설자는 이 경기는 고교 No.1 세터 아츠무와, 역시 전일본 유스 출신의 유망주 카게야마의 "동서 세터 대결"로 정의한다. 그러는 사이 양 진영을 오가던 공이 이나리자키에서 카라스노 쪽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히나타.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점프다. 히나타 자신도 "좀 괜찮은 느낌!"이 오고 카게야마와 중계석 모두 놀랄 정도로 눈에 띄는 점프.
- 허근욱 . . . . 39회 일치
사회단체 활동으로는 한국부인회 중앙위원, 3.1여성동지회 중앙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 및 편집위원,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독립운동가 겸 변호사, 정치인인 [[허헌]]의 딸이며 독립운동가 겸 여성 해방 운동가, 자유주의 운동가인 [[허정숙]]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1930년]] [[3월 28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변호사 겸 독립운동가 [[허헌]]과 문화 유씨 유덕희(柳德禱, 또는 유문식(柳文植))의 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이복 언니 2명이 있었고, 둘째 언니가 독립운동가 겸 여성운동가 허정자([[허정숙]]으로 개명)였다. 유덕희에게서는 첫 딸이었다. 그 아래로 음악가인 여동생 [[허선욱]]과 허기욱, 허영욱, 허선욱 그리고 [[북조선]]에서 외교관을 역임한 [[허종욱]] 등이 태어났다.
아버지 허헌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변호사로 활동했고,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서던 중 [[신간회]],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황해남도]] [[신천]] 출신 유덕희를 만나 그를 낳았다. 그 뒤 [[허헌]]의 본부인 정긍자가 사망하자 허헌은 유덕희와 재혼하였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으로 진학했다. 해방 후에도 계속 가족과 함께 [[경성]]에서 체류하다가 [[1948년]] [[4월]] [[이화여대]] 영문학과 재학 중 [[남로당]] 당수이자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허헌]],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따라 월북하였으며 [[평양러시아어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뒤 아버지 [[허헌]]은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의장이었고, 언니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보건성부상, 사법상, 최고재판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다.
그러나 북한 생활을 숨막혀했던 그는 [[1950년]] 남편 박노문 등과 함께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과 자유를 찾아 다시 월남한다. 그 해 [[6월]] [[한국 전쟁]] 중에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만났지만 이내 그는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갔다. 이후 호적 없이 가명으로 살기도 했다.<ref>한겨레신문 1991년 6월 27일자 10면, 생활문화면</ref> 한때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기간중 남편 박노문 등과 함께 북한의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 수감되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 [[허헌]]과 이복 언니 [[허정숙]]이 북한의 고위층이라는 이유로 혐의가 없었는데도 여러 번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 뒤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고초를 겪은 후 글쓰기에 전념하면서 1959년 KBS 방송국 작가실 집필이 되었으며, [[1960년]]에는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뒤 KBS 방송국의 집필담당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89년]] [[정년 퇴임]]하였다. [[2001년]]에는 아버지 허헌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을 담은 전기문 《민족변호사 허헌(許憲)》을 출간하였으며, 딸의 시선에서 바라본 허헌의 삶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 돋보이는 저작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자전적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1961)를 비롯하여 《흰 벽 검은 벽》(1963), 《맹가나무 열재 이야기》(1976), 《끝나지 않는 겨울》(1982) 등이 있다.
[[1984년]] KBS 방송국 집필담당 전문위원이 되고, [[1987년]] KBS 방송국 사회교육국 전문위원<ref>경향신문 1987년 4월 24일자 7면, 생활문화면</ref> 이 되었다가 [[1989년]] [[12월]] KBS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하였다.
1965년 한국부인회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고, 1967년 [[황애덕]] 등 [[3.1 만세 운동]] 관련자 및 투옥,수감된 독립운동가 및 그 유가족들이 중심으로 조직된 3.1여성동지회 중앙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되었다. 1968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1969년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회 위원 겸 편집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1984년]] KBS 방송국 집필담당 전문위원이 되었으며, 그밖에도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협회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9년]] KBS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1992년]] [[4월]] [[남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자 13면, 생활문화면</ref>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서정범]] 등과 함께 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프로이트의 제자들》 (호암출판사, 1991) 소설집
* 《환상의 벼랑에서》 (인문당, 1992) - 자전적 에세이
그의 작품 중에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문학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남한 쪽에서의 모종의 제약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데올로기나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평도 있다. 또한 일찍이 이념과 삶의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버지 및 가족과 결별하고 월남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 분단과 가족공동체의 회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있다는 작품평도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명시적이지 않지만 때때로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과 때로는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허근욱의 초기작품의 하나이자 대표작인 자전적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 등에서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수난을 겪어야 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세상에 대한 분노, [[6.25 전쟁]]이 막 끝난 직후 다시는 보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이념, 이데올로기를 빌미로 한 폭력성에 대한 거부감 등이 담겨 있어 이 작가의 작품 경향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평도 있다.
* [[이화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중퇴)
* [[1948년]]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중퇴)
* [[1968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 홍진경 . . . . 39회 일치
| 형제자매 = 남동생 1명
| 배우자 = 김정우([[기업가]])
| 자녀 = 슬하 1녀
'''홍진경'''(洪眞慶,<ref>{{뉴스 인용 |저자= |제목= 탤런트 홍진경 중앙대 연극학과 합격|url=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230020913902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23&officeId=00020&pageNo=39&printNo=23090&publishType=00010|뉴스= 동아일보|쪽= 39|날짜= 1996-01-23|확인날짜= 2016-02-23|인용문= KBS 쇼코미디프로「슈퍼선데이」의 보조사회자로 활동중인 슈퍼모델 출신 고교생탤런트 洪眞慶(홍진경)양(18·정의여고3년)이 중앙대 연극학과 연기전공에 합격해 화제다.}}</ref> [[1977년]] [[12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모델 (직업)|모델]], [[방송인]], [[배우]], [[기업가]]이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식품회사 '''주식회사 홍진경'''을 설립, 자신의 어머니와 공동으로 경영하며([[최고경영자|CEO]] 직위) 김치, 만두 등의 생산 및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홍진경은 하위권 입상을 한 탓에 스타덤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가 [[이영자]]의 도움으로 [[희극 배우]]의 일을 시작했는데 이 일로 인하여 홍진경의 이름을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데뷔는 모델로 했으나 정작 홍진경은 코미디언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름이 유명해지자 모델로서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홍진경은 2005년부터 [[여명학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아동 보육 교육 시설, 청소년 공부방과 쉼터,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총 12개 단체에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했다. 특히 대한민국 내 보육원 아이들의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위한 후원과 아시아 지역 30명의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이 사는 지역을 살리기 위하여 매달 기부활동을 했다. 2012년 초에는 [[아프리카]] 차드 도바 지역에 자신의 딸 김라엘의 이름을 딴 '라엘탁아소'를 세우는 등 대한민국 외의 어려운 아이들에게까지 후원을 하기도 하였다.<ref name="이지">이지현.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71303 홍진경 7년째 선행, 국내외 기부+후원 아끼지 않아 '훈훈']. TV리포트. 2012년 10월 15일.</ref> 또한 《[[별에서 온 그대]]》에 천송이([[전지현]] 분)와 친한 만화방 사장님이자 동창생으로 등장하여 간간이 쇼스타퍼 역할, 약방의 감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SBS]] 《기쁜우리토요일》 - 영자의 전성시대
* [[MBC]] 《[[남자 셋 여자 셋]]》
*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2016, SBS) ... 패션 포기 못하는 노숙자 역
* 《홍진경의 키크는 글자놀이》
* 《홍진경의 키크는 숫자놀이》
* [[크라운제과]] 피자뒤틀이
* 홍진경은 [[2012년]] 10월 13일에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제38회 꿈자람 체육대회 개최에 따른 종사자 및 후원자 표창 수여식에서 후원자 자격으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여 받았는데, 서울시 소속 38개 [[보육원]]들이 다함께 모여 체육대회를 여는 날로, 후원자 10팀과 종사자 15팀을 위한 표창장 수여식도 함께 열린 가운데, 홍진경은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인 [[강남보육원]]의 추천으로 표창장을 받았다.<ref name="이지"/>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3년 데뷔]][[분류:남양주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식품업자]][[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고아성 . . . . 38회 일치
| 형제자매 = [[시노자키 아이]]
| 배우자 =
'''고아성'''(高我星<ref>{{뉴스 인용|저자=김지윤|제목=고아성 “영화 ‘여행자’ 찍으면서 다리가 굵어졌어요~” (인터뷰 ②)|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11709321003|날짜=2009-10-22|확인날짜=2016-01-09|뉴스=뉴스엔}}</ref>, [[1992년]] [[8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고아성은 6살 때인 1997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외환카드 광고 아역 모델로 연예계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자체발광' 고아성 "은호원으로 희로애락 다 펼쳐…시즌2 희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26821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정현|날짜 = 2017-05-16|확인날짜 =2017-09-07}}</ref> 이후 그는 2004년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의 타이틀롤을 맡아 배우로서 정식 데뷔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에서 박강두([[송강호]])의 딸 역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대한민국영화연기대상 영스타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하였다.
2015년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한 고아성은 성인 연기자로 변신에 성공했고,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7년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으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고아성 “부당한 경험 있어...은호원에게 감정이입했죠” |url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70522010007552|출판사 =브릿지경제 |저자 =조은별|날짜 = 2017-05-24|확인날짜 =2017-09-07}}</ref>
| [[자체발광 오피스]]
| [[여행자 (2009년 영화)|여행자]]
| 5부작<ref>{{뉴스 인용 |제목 =‘나도 영화 감독이다2’ 박성웅-고아성, 영화 제작자로 변신..열정 가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478303|출판사 =한국경제 |저자 =고승아|날짜 = 2015-11-16|확인날짜 =2017-09-07}}</ref>
|<ref>{{뉴스 인용 |제목 =[엑's 인터뷰] '복면가왕' 고아성 "노래 계속 부르고 싶다…즐거운 경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713543|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현정|날짜 = 2017-03-20|확인날짜 =2017-09-07}}</ref>
| 2014년 12월 15일~2014년 12월 21일<ref>{{뉴스 인용 |제목 =고아성, '최다니엘의 팝스팝스' 스페셜 DJ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599232|출판사 =TV리포트 |저자 =신나라|날짜 = 2014-12-15|확인날짜 =2017-09-07}}</ref>
| 올해의 연기자상
|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신인연기상
| 영화부문 여자 조연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중편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촬영감독들이 뽑은 여자인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38회 일치
* 본래 시에핫사이카이의 두목은 더는 야쿠자 활동으론 생존할 수 없다고 보고 탈피를 추진했으나 그 점이 오버홀의 심기를 건드려 제거 당했다.
* [[이리나카]]는 무효화를 가진 [[아이자와 쇼타]]를 가장 먼저 제거하려 하나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몸을 날려 구출한다.
* 그러나 패트껌과 키리시마가 아이자와 대신 함정에 빠지는데, 거기엔 철포옥 핫사이슈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 둘에겐 철포옥을 공략할 공격수단이 전무, 왜소한 남자의 말대로 "창과 방패 대 방패와 방패"의 이상한 대결이 되고 말았다.
* 선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혼자서 셋을 완봉하겠다"는 맹세를 달성한다. 철포옥 핫사이슈 세츠노, 호죠, 타베를 포박, 문어의 신경독으로 잠재우고 마스크를 뺏는다. 그는 곧 먼저 간 일행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힘이 다해 넘어진다.
* [[서 나이트아이]], [[패트껌]]을 필두로 히어로와 경찰 연합군은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고 있다. 추격대에 있는 [[키리시마 에지로]]는 학교 선배이자 사무소 선배이기도 한 타마키의 안전을 걱정하고 [[미도리야 이즈쿠]]도 동감한다.
* 사무소 책임자인 패트껌 역시 이들의 걱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확실히 타마키는 네거티브를 입에 달고사는 지라 후배들의 걱정을 사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런 거야 어쨌든 "동료를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패트껌이 "등을 맡겼으면 믿고 맡겨두는게 남자!"라고 일갈하자 키리시마가 바로 태세전환한다. "선배라면 괜찮아!"라고. 미도리야는 참 잘 휩쓸리는 사람이라 평한다.
마침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의혹을 표시한다. 이 지하시설과 융합된 자, [[이리나카]]가 왜 잠자코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벽이 꿈틀거리지 않는 걸 보면 융합된 상태도 아니다. 아이자와는 이 점을 들어서 "지하 전체와 융합하거나 컨트롤이 가능한건 아니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에 남은 타마키나 경찰의 동향을 보러갔을 지도 모른다. 녀석은 지하에 "들어가서" 조작하는 타입이고 완전히 동화하는게 아닐 것이다. 벽면 내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자기 눈과 귀로 "보거나 듣거나"해야 한다는 얘기. 따라서 이쪽을 방해하러 온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본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벽에 귀나 눈이 있는게 보일 것이다.
아이자와의 가설이 들어맞았다. 이리나카는 타마키에게 제압된 철포옥의 상태를 보러갔던 참이다. 물론 그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셋이서 고작 한 사람 막는게 끝이라니. 이리나카는 뭔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그녀석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 1층에선 [[버블걸]]과 [[센티피더]]가 경찰과 협조해 시에핫사이카이 조직원을 거의 체포했다. 버블걸은 설마 전원이 방해하러 올 줄은 몰랐다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한다. 이래서는 잡히러 온 것 밖에 안 되니까. 조직원들은 "제정신이라 잡히러 왔다"고 반박한다. 얌전히 있으면 오버홀에게 반드시 죽었을 거라며. 그들은 오버홀, 아니 치사키가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게 변했다고 털어놨다. 원래 지금의 두목은 야쿠자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에핫사이카이도 빌런집단과 선을 긋고 어디까지나 "협객"으로서 양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그런 두목의 뜻을 따랐다. 반기를 든 것은 두목의 아들이었던 치사키. 그가 오버홀이란 이름을 걸고 조직을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는 빌런 같은 이름을 대고 행동을 했으며 빌런과 힘을 합쳤다. 개성 관련 금지 약품을 유통한 것도 치사키. 반항은 할 수 없었다. 조직원들은 현두목이 와병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분명 오버홀의 짓이라고 수군댔다. 버블걸은 그렇게 치사키를 싫어하면서도 그가 잡힐 거라고, 실패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 거냐고 반문한다. 조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아이자와를 덮친다. 이리나카다. 아이자와도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난데없는 기습에 손을 쓰지 못했다. 분명 이리나카는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두려워해 제일 먼저 처리하려 든 것이다. 이리나카는 그 셋이 당했을 정도라면 한 명씩 떨어뜨려 확실하게 제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변형된 벽면이 그를 떠밀어서 컴컴한 구멍으로 밀어붙인다. 꼼짝없이 함정에 빠진 아이자와.
* 그렇게 뜻대로 두진 않는다. 패트껌이 몸을 던졌다. 타마키가 만들어준 시간을 쓸모없게 할 순 없고 아이자와가 이리나카의 개성을 확실하게 지워주길 바라고 한 행동이다. 아이자와가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패트껌이 대신 구멍으로 빠진다. 제법 긴 터널을 굴러 어두운 방으로 빠져나온 패트껌. 그런데 언제 따라붙었는지 키리시마가 패트껌 밑에 깔렸다. 사실 키리시마도 아이자와를 구하려고 왔던 건데 타이밍이 안 좋아 패트껌하고 겹쳐버린 것이다. 패트껌이 어쩔 수 없다면서 우선은 긴장하라고 말한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어둠을 뚫고 뭔가가 나타난다.
* 패트껌의 반격은 투명한 장막을 뚫지 못한다. 한 명 더. 덩치가 작은 사내가 무투파 뒤에서 나타난다. 이건 그의 개성으로 보인다. 왜소한 남자가 한 눈에 패트껌과 키리시마의 개성을 꿰뚫어 보고 둘다 "방어를 잘하는 개성"이라 평한다. 그러면서 옆의 사내, "랏파"에게 "아쉽게 됐다"고 말한다.
* 다시 랏파의 러쉬가 쏟아진다. 패트껌은 간신히 버텼다. 자신의 지방도 뚫는 공격. 패트껌이 마치 탄환같다며 속으로 경악한다. 충격을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는지 랏파가 "방어를 잘하는 개성"이란 말을 비웃으며 "다 못 받아낸다"고 말했다. 이들의 개성은 데이터에도 없었다. 패트껌은 공격과 방어가 명쾌하게 나눠진 둘의 조합을 성가셔한다.
배리어를 펼쳤던 남자는 자신들을 "창과 방패"에 비유하고 반대로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방패와 방패"에 빗댄다. 랏슈는 그래서는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곤란한다고 빈정댄다. 배리어를 친 남자가 반쯤 동의했다.
* 유감스럽지만 남자의 지적이 맞았다. 키리시마는 몸에도 상처가 컸지만 멘탈도 가루가 됐다. 경화가 깨졌다, 다 받아내지 못했다. [[바쿠고 카츠키]]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건 더럽게 강하다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히어로가 생각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오사카에서 활약했을 땐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건 과거의 기억. 좌절했던 기억이다.
이번에도 패트껌이 눈치가 빨랐다. 그가 "마음이 꺾이는게 진짜 지는 것"이라 호통쳤다. 오사카에서 말했던 대로 "빌런 퇴치는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인데 이쪽이 먼저 꺾여서 어쩌자는 거냐고 야단혔다. 남자가 다시 배리어를 친다. 그러면서 "저쪽은 아직 이길 생각"이라 말하자 랏파가 참 갸륵하게 여긴다.
질낮은 도발 따위 알바 아니다. 패트껌이 키리시마의,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모두가 있는데로 돌아가자!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38회 일치
* [[바이오하자드 1]] (1996)
* [[바이오하자드 2]] (1998)
* [[바이오하자드 3]] (1999)
*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2000)
* [[바이오하자드 제로]] (2002)
* [[바이오하자드 4]] (2005)
* [[바이오하자드 5]] (2009)
* [[바이오하자드 레벌레이션스]] (2012)
* [[바이오하자드 6]] (2012)
* [[바이오하자드 레벌레이션스 2]] (2015)
* [[바이오하자드 데들리 사일런스]] (2006)
*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완전판 (2001)
* 바이오하자드 5 : 얼터너티브 에디션 (2010)
* 바이오하자드 레벌레이션스 : 언베일드 에디션 (2013)
* 바이오하자드 5 : 골드 에디션 PC판 (2015)[* 스팀판에는 바이오하자드가 아니라 '레지던트 이블 : 골드 에디션'이라는 제목으로 발매. 참고로 얼터너티브 에디션의 북미판 제목이 골드 에디션이다.]
건 서바이버 시리즈[* 항목에 건 서바이버 3가 없는 이유는 3가 바이오하자드가 아닌, 건 서바이버 3 : 디노 크라이시스라는 제목으로 공룡과의 사투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 [[바이오하자드 건 서바이버 1]] (2000)
* 바이오하자드 건 서바이버 2 (2001)
* [[바이오하자드 건 서바이버 4]] (2003)
* [[바이오하자드 아웃브레이크]] (2003)
- 영주시 . . . . 38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04B486> {{{#FFFFFF '''시장'''}}} ||<bgcolor=#EFFBEF> [[장욱현]]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2><|3><bgcolor=#04B486> {{{#FFFFFF '''시의회'''}}} ||<:><bgcolor=#C9151E>'''[[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7석}}} ||
||<bgcolor=#04B486> {{{#FFFFFF '''2'''}}} ||<bgcolor=#EFFBEF> 임무석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2><bgcolor=#04B486> {{{#FFFFFF '''국회의원'''}}} [br] [[영주시·문경시·예천군|{{{#FFFFFF {{{-1 (영주시·문경시·예천군)}}}}}}]] ||<bgcolor=#EFFBEF> [[최교일]]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영주역]]에서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철도청]] 시절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2013년 현재는 코레일 경북본부)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노후되고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는 철도가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여론도 높아진 상태다.
1980년 영주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어, 남은 영주군 지역이 영풍군(榮豊郡, '영'주와 '풍'기에서 한 글자씩 따서 새로 지었다)[* [[영풍그룹]]과는 관계 없다.]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2018년 6월 2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주시청이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소수서원)~단산면 병산리(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총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 경북도비 5억, 영주시비 45억원)을 투입해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탑승장 3곳과 정거장 5곳, 회랑(1548㎡)을 설치하고 모노레일 차량 14량(8인승)을 투입한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65078|꿈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868480|이루어진다]].
대부분 [[소백산]] 자락인 시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안동에 다소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영주 역시 전통 문화의 향수가 짙게 배인 곳. 순흥면에는 선비촌이라는 한옥마을이 존재하고,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이 이 곳에 위치한다. [[1박 2일]]에서도 촬영한 바 있다.
부석면의 봉황산 자락에는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최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배경)과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 문화재인데, 이 좌상은 향토색이 강조되고 인체비례적 아름다움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저퀄~~고려 불상과는 달리 [[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해 균형미를 갖춘 불상으로 평가된다.
또 부석사 앞으로는 영주 남부의 넓은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어 낮은 산들이 겹겹이 겹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영주에 왔으면 딴건 다 못해도 한우는 꼭 먹어보자. 정말 싼 가격에 좋은 한우를 구입할 수 있다. [[과일]]의 경우 전체적으론 사과가 주류이지만 순흥면의 경우 [[복숭아]], 단산면은 [[포도]]도 유명하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대한민국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받는 농산물로는 영주 사과가 있다.
* 시내에 분식, 간식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정도너츠의 생강도너츠, 시내 아디다스 앞 농협위치에 저녁에만 열리는 꼬치집(참고지만 김밥도 상당히 맛있다), 그리고 밑으로 조금 내려가 랜드로바 가게 ~~지금은 금강제화~~ 앞에 있는 랜드로바 떡볶이, 거기서 더 내려오면 롯데리아 옆 태극당(빵집), 그리고 나드리 분식, 중앙분식의 쫄면이 영주시내에서 시민들이 대표적으로 즐겨찾는 분식/간식집이다. ~~다만 맛을 너무 기대하진 말자.~~ ~~영주 출신인 부모님은 서울에 사셔도 1년에 3~4번씩은 쫄면 먹으러 꼭 내려가던데~~
* 과거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극장 2개, 소극장 4개가 있었으나 90년대 말에 소극장 3개로 줄더니, 2018년 현재는 소극장 1개 밖에 안남아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예당 시네마'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데, 상가빌딩 2층을 쓰는지라 관이 1개밖에 없고 그 크기도 작다. ~~하지만 의자는 [[CGV]]에서 뜯어온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안동으로 이동하여 [[메가박스]]나 [[CGV]]를 이용한다. ~~심지어 문경시에도 메가박스가 있는데!~~
> 꼬내이가 자부러웠는동 디안을 두베다가 요짜에 널쪘니더.
(아래께 한데 다릐가 모다 시스마끔 선낱씩 주께는데 메란다이래씨더 / 고내이가 자부라왔는동 디안에 두베다 요짜 널쪘니더) 쪽이 맞지 않나 싶다.
> 아래께(=며칠 전에) 한데서(=바깥에서) 다릐가(=다른 이가) 마케(=전부/죄다. 사실 이건 강원도 사투리 '마카'의 변형이다) 시스맘(=각자/제각기) 선낱씩(=하나 둘/적은 수/조금씩) 주께는데(=지껄이는데) 메란도 없었(=매우 많다/정신 없다/난장판이다)니더(=경북 북부지방 종결어미. [[동남방언]] 문서에서 유홍준이 능교형과 니껴형으로 구분한 문단 참조할 것).
> 꼬내이(=고양이)가 자부러웠는(=졸렸는)동(=지) 디안(=뒷뜰)을 두베다(=뒤지다)가 요짜에(=요기에) 널쪘니더(=떨어졌습니다).
~~잠자리는 사투리로 촐뱅이, 아니 "촐배이"라고 부른다~~ ~~그럼 고추잠자리는?~~ ~~"빨간 촐배이"지 뭐긴 뭐야~~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원피스/872화 . . . . 38회 일치
*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해적단이 어인섬을 구한 직후, [[넵튠(원피스)|넵튠왕]]은 그들에게 준 재보가 빅맘 해적단에 들어가게 됐다는 얘길 듣고 경악한다.
* 한참 반역자들을 처형할 생각으로 들떴던 빅맘 [[샬롯 링링]]이 성이 기울고 자신도 추락하기 시작하자 어안이 벙벙하다.
* 샬롯가 형제들의 주위가 분산되자 [[시저 클라운]]은 그대로 전력 도주, [[카포네 갱 벳지]]는 암살할 필요도 없이 이걸로 전멸할 거라며 통쾌하게 웃는다.
* 그러나 총요리장 [[슈트로이젠]]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 전체를 거대한 케이크로 바꿔 생크림과 스폰지 케이크의 산사태가 되게 했다.
* 성이 완전히 무너졌으나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는데, 안도할 틈도 없이 달아난 반역자 추격에 나선다.
* 무사히 성을 벗어난 해적동맹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출발. 사실상 이제부터가 진짜 탈출극이다.
*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해적단이 아직 어인섬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 [[넵튠(원피스)|넵튠왕]]은 어인섬을 구해준 답례도 성의 갖은 재보를 하사했다. 그런데 우대신이 오더니 그 재화 중 옥갑만은 회수해야 한다고 간청한다. 넵튠은 이미 준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냐고 거절한다. 그러나 대신이 좀 더 소상히 사정을 밝히자 생각이 달라진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루피는 빅맘 [[샬롯 링링]]의 과자를 가로챈 대가로 넵튠에게 받은 재보를 전부 넘겨줘 버렸다. 물론 옥갑도 여기에 딸려 빅맘에게 넘어갔다. 루피일행에게 돌려받는 것보다 빅맘 해적단에게서 돌려받는게 훨씬 어려운 일. 게다가 무슨 혐의를 받게 될지 모른다. 넵튠은 "혹시 불발일지도 모른다"며 이 문제를 불문에 붙인다.
* 토트랜드 수도이자 성 밑에 형성된 마을 "스위트 시티"의 주민들도 폭음을 듣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들은 기우는 성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한 발 먼저 피난하기 시작했다. 피난하는 와중에도 대체 무엇이 이런 사태를 촉발했는가 의견이 분분했는데 적의 공격은 아무래도 아닐 거 같다. 토트랜드 최심부의 이 섬만을 타격할 수 있는 적이 어딨겠는가? 누군가가 막연하지만 성 옥상에서 진행 중인 다과회와 관계된게 아닌지 추측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상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상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 [[카포네 갱 벳지]]의 내부에 있던 밀집모자 일당과 벳지의 부하들. 그 몸 속에서는 바깥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건 분명했다. [[나미(원피스)|나미]]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묻자 창을 통해 바깥을 살피던 [[징베]]가 대답한다. 대 패닉. 징베도 좁은 창으로 본게 전부지만 아무래도 성이 기우는 것 같다고 말한다.
* 방금 전까지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벳지는 그야말로 쾌재를 부른다. 자신을 달고 날아가던 [[시저 클라운]]에게 "저것 좀 봐라"고 환호하다 시피한다. 샬롯가의 형제들이 기우는 성을 따라서 이리저리 나뒹군다. 끝까지 시저를 성가시게 했던 [[샬롯 브륄레]]도 형제들이 굴러다니고 어머니 빅맘 마저 성 밑으로 떨어지자 시저에겐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 꼴을 보면서 벳지가 통쾌하게 웃었다.
* 벳지의 의견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이 성은 성 밑 마을보다도 거대하다. 이제와서 뛰어봐야 달아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떤 주민들은 이렇게 절망하며 주저앉아 통곡했다. 성 위에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빅맘 해적단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며 무엇이든 붙들고 있었다. 카타쿠리는 이런 와중에도 형제들을 진정시키고 다니며 살 길을 모색한다. 모건즈는 이런 와중에도 특종을 잡았다고 기뻐 날뛴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는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새인 주제에 날지 못했다. 하지만 스튜시는 육식을 마스터한 몸이므로 당연히 "체"로 여유롭게 날아오른다. 벳지와 시저는 혼란을 틈타 탈출에 전력하고 이치디는 이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걸 확인한다.
* 놀랍게도 사망자는 전혀 없었다. [[샬롯 다이후쿠]] 등 샬롯가 형제들 전원 무사. 주민들도 생크림 범벅이 되는 걸로 끝났다. 빅맘은 애초에 제우스가 태워줘서 추락을 면했다. 그녀는 사방에 널린 케이크 잔해를 먹어치우고 있었지만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우선 슈트로이젠이 능력으로 만드는 식재는 별로 맛이 없는데다, 그녀의 성도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세삼스럽게 기대해 마지 않던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되었단 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됐다 싶자 주민들이 빅맘 해적단에게 달려온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기 위해서다. [[샬롯 몬도르]]는 그들을 퉁명스럽게 대하며 쫓아버린다. 구사일생한 걸로 끝난게 아니다. 배신자들이 달아났다. 곧 토트랜드 전역에 수배령을 내리고 루피의 밀집모자 해적단, 벳지의 파이어탱크 해적단 전원을 잡아들여야 한다.
* 천운 덕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해적동맹군은 홀케이크 아일랜드 북서쪽에 이르러 잠시 휴식했다. 밀집모자 일당의 써니호와, 파이어탱크 해적단 아지트 사이의 중간 쯤 되는 지점이었다. 벳지는 체내의 밀집모자 일당을 바깥으로 쏟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 선언한다. 나미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벳지는 "좋은 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니 관둬라"며 말을 가로막았다. 시저는 고생한 건 자기라고 나대는데 나미가 독설을 퍼부어 조용히 시킨다.
>너 펑크하자드에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기나 해?!
벳지도 거기에 동감인지 시저의 심장을 냉큼 던져준다. 나미는 뭉개버렸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궁시렁댔다. 시저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자기 심장을 되찾고 감격해서 눈물콧물 범벅이다. 곧 일행에게 욕설을 퍼붓고 "다시는 볼 일 없다"며 가버리려 한다. 하지만 그가 작별을 하든 말든, 욕을 하거나 말거나 누구 하나 귀기울이지 않는다. 간다던 시저는 그게 신경 쓰인 건지 몇 번이나 "이젠 갈 거다"라고 소리지르다 쓸쓸하게 사라졌다.
벳지는 한숨 돌리게 되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되짚어 본다. 괴총 비트가 성이 케이크가 됐다고 보고한다. 그 얘기를 들어보니 탈출 이후의 상황은 추측이 갔다. 우선 성을 케이크로 바꾼 건 슈트로이젠의 솜씨일 거다. 벳지는 그의 능력은 몰랐지만 반대로 나머지 녀석들의 능력은 전부 알았다. 그들 중에 저런 묘기를 부릴 능력자가 없으니 저건 슈트로이젠이 한 짓이 된다. 벳지는 전부터 슈트로이젠의 능력은 몰라도 꽤 강자일 거라고 추측하던 터였다. 그리고 아마 빅맘 해적단은 전멸을 면했을 것이다. 다만 성이 날아갔으니 이럭저럭 속이 후련하긴 하다.
벳지는 그렇게 말하고 "캐슬 탱크"라는 캐터필더 모드로 변신해 부하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쿨하게 헤어지는 것 같지만 밀집모자가 저쪽으로 갔다는 펫말을 세우며 달아나서 영 폼이 구겨진다. 상디가 항의하자 이것도 서바이벌 전략이라고 대꾸한다.
- 원피스/876화 . . . . 38회 일치
* "제우스 브리즈 템포"가 떨어진 결과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병력이 전멸, 빅맘 [[샬롯 링링]]도 직격 당해 거대한 구더이에 빠졌다.
* 시폰이 대신 "빅맘을 멈출 웨딩 케이크를 만든다"는 작전을 설명하고 과자 만들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상디의 도움을 구하고자 한다. 물론 상디는 수락.
* 푸딩이 사악한 인격으로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이나 케이크를 만드려는 건 전부 "우연"에 불과하다며 홍조를 띄우는데, 아무래도 극심한 [[츤데레]]로 보인다.
* 푸딩은 계쏙 협조적인지 비협조적인지 헷갈리게 굴었지만 루피 일행이 틀린 방향으로 도주하자 "메모리즈 필 플래쉬백"이란 능력으로 유혹의 숲을 무력화시킨다.
* 상디는 그들이 잘 버텨줄 것과 루피 일행이 제때에 도착할 걸 믿으며 자신은 빨리 쇼콜라 타운에 도달해 빅맘을 기절시킬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겠다 다짐한다.
* "제우스 브리즈 템포"가 유혹의 숲 한복판을 꿰뚫었다. 추격에 열을 올리던 빅맘 해적단이 한 순간에 증발. [[밀집모자 일당]]은 간발 차이로 폭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무사했다. [[몽키 D. 루피]]와 그 일행은 도망치던 것도 잊고 폭뢰가 만든 거대한 구멍을 바라봤다.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을 시전한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통상적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라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추격대가 전멸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놨다. 그렇다면 관건은 빅맘 [[샬롯 링링]]. 그녀의 생사였다. 분명 그녀는 폭심지 한 가운데 있었다. 직격.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저 시커먼 구멍에 삼켜진 건 분명하다. 과연 그녀는 그 충격을 견뎌낸 걸까?
오로지 전진. 토사든 대지든 무엇이든 빅맘의 먹부림을 막을 순 없다. 그녀는 단지 걸었다. 밀집모자 일당을 향해. 가로막히는 모든 걸 씹어삼켰다. 우적거리는 소리와 빅맘의 목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나미가 어느 지점부터 지면이 갈라지고 무언가 솟아 오르는 걸 보았다. 빅맘이 기어이 땅 위로 올라왔다. 이제 다시 발이 바빠질 시간이다.
* 빅맘은 정신이 나갔으면서도 루피만큼은 눈에 잘도 들어왔다. 웨딩 케이크를 가져간 밀집모자.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원수.
>갖고 있지?! 너희들... 밀집모자!!!
다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한 일행 위로 또 불쾌한 손님이 나타났다. 마법의 양탄자 "라비앙"을 탄 [[샬롯 푸딩]]이었다. 옆에 [[샬롯 시폰]]도 있었지만 루피의 눈에 들어온 건 푸딩이었다. 그들을 속이고 [[상디]]를 죽일 뻔한 여자. 진작부터 그녀를 의심했던 페드로는 "역시 그때 묶어놨어야 했다"고 으르렁거렸다. 루피가 이제와서 싸우러 온 거냐고 날을 세우자 푸딩이 그런 용건이 아니라며 이야기부터 들어보라 말했다. 하지만 푸딩은 그 용건을 꺼낼 수가 없었다. [[상디]]가 하트를 날려대며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 자길 죽이려 한 여자라는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푸딩의 상태도 비슷비슷했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자 세 개의 눈이 하트를 띄우며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때 빅맘이 완전히 땅 위로 올아오지 않고 시폰이 옆에서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챙긴 푸딩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다. 아주 사악한 얼굴로.
* 역시 푸딩은 배신자일까? 시폰이 그게 아니지 않냐고 호통을 치자 이번엔 또 다시 착한 얼굴로 돌아와서 "나도 참 무슨 소리야"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폰은 할 수 없이 직접 상황을 설명했다. 빅맘은 밀집모자 일당이 웨딩 케이크를 훔쳐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일행을 좇을 것이다. 결국 써니호까지 가더라도 이 도주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루피 일행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잠깐 잠잠했던 푸딩이 다시 사악한 얼굴을 내밀고 상디에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유혹했다. 동료들이 마마에게 죽는 지옥을 맛보라면서. 시폰이 또 호통쳤다. 그러면 또 착한 얼굴로 돌아와 몸둘바를 모르는 푸딩. 재미없는 만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대체 푸딩의 진짜 속내는 뭘까?
어지간해서는 장단 맞춰주는 루피 조차 짜증이 났다. 그딴 소릴 할 거라면 빨리 사라지라고 항의하자 시폰이 다급하게 상황 수습에 들어갔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 보다 빅맘을 멈추는게 먼저다. 그녀는 상디에게 과자 만드는 솜씨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말한다. 상디는 어떤 요리에 관한 거든 일류라고 자신했다. 시폰이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나미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해주자 말문이 막혔다. 시폰은 [[샬롯 로라]]의 보답이라며 "할 려면 목숨을 건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 옆에서 자꾸 돌변하는 푸딩만 없었으면 더 간단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사악한 쪽이 말썽이다. 결과는 시폰이 말한대로 될지 모르지만, 자신은 그녀와 다르다는 얘기였다. 밀집모자 일행을 위한게 아니었다.
빅맘은 그 정신에도 볼 건 제대로 봤다다. 시폰, 푸딩이 밀집모자 일행과 접촉하는 것걸 봤고, 그녀들이 있는 방향으로 위국을 날린 걸 보면 어떻게 간주했을지 뻔하다. 상디가 끄트머리에 매달린 채 라비앙이 상승했다. 위국의 충격파가 그 뒤를 스쳤다. 한참 멀리까지 날아간 위국이 또 유혹의 숲의 지형을 바꿨다. 시폰은 그 광경을 보며 루피 일행이 괜찮을지 걱정했다. 그리고 푸딩은 곧바로 그들이 괜찮지 않은 걸 발견했다. 진로가 틀렸다. 그녀는 라비앙에게 다시 하강하게 했다. 일행으로부터 해안까지 곧바로 날라고 지시했다.
푸딩은 다시 일행 곁으로 가서 그 방향은 벽 방향이라고 알려줬다. 일행은 똑바로 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유혹의 숲이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푸딩은 해안 방향을 향해 날며 유혹의 숲 호미즈들을 향해 열매의 능력을 발휘했다. "메모리즈 필 플래쉬 백". 푸딩이 쓸고 지나간 나무들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눈 앞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마치 딴 일을 하던 사람들 처럼 스스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각자 시장을 보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푸딩은 호미즈에 깃든 "혼의 기억"을 되살렸다. 주마등처럼 기억이 되살아난 동안에는 빅맘의 지배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이라면 숲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정말로 숲이 좌우로 갈라지며 해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상디가 고맙다고 말하자 푸딩은 이제야 그가 탄 걸 깨달았는지 허둥지둥대며 츤츤거렸다.
* 짧은 러브 코미디가 펼쳐지는 양탄자가 해안가에 이르러 상승했다. 그들은 써니호를 스쳐지나갔는데 상디는 거기서 [[브룩]]과 [[쵸파]]가 적과 싸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샬롯 카타쿠리]]와 [[샬롯 페로스페로]]의 모습도.
브룩과 쵸파는 단 둘이서 한없이 밀려오는 빅맘 해적단의 병력을 쓸어버렸다. 체스병 대부분이 널부러져 있었고 일부 간부도 당해서 누워있다. 카타쿠리는 둘의 실력에, 특히 브룩 쪽에 감탄했다. 브룩은 자신은 소울킹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허세를 부렸지만, 슬슬 체력이 한계였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적이 줄질 않았다. 나미의 방에 있는 거울에서 증원이 쏟아지고 있다. [[샬롯 브륄레]]의 짓이 틀림없다. 쵸파는 그런 사실을 말하며 "깨뜨리면 혼날까" 걱정했다. 브룩은 기회가 되면 깨뜨리고 나중에 사과하자고 받아쳤다.
* 상태가 회복된 "프로메테우스"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우스"를 닥달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기들까지 말려들게 했냐고 꾸짖자 제우스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시무룩해했다. 조금은 반성하는 것 같더니만 금방 "그 구름 알 맛있었다"고 군침을 흘리는 걸 보니 전혀 정신을 못차렸다. 하긴 그 주인도 웨딩 케이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판이었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38회 일치
||<#FFCC66> '''{{{#000000 학력}}}''' ||<(> 충주중앙초등학교[br][[국악고등학교]][br][[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 ||
||<#FFCC66> '''{{{#000000 성좌/지지}}}''' ||<(> [[사수자리]]/[[토끼띠]] ||
[[2010년]] [[남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영]])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상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2016년부터 [[SBS 파워FM]](107.7mhz) [[배성재의 TEN]]에서 화요일 코너 아재판독기 코너를, 2018년 8월부로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코너를 진행 중이다. 기존 팟수들은 채팅창에 "두사람 다 잘 어울리니 결혼해도 딱이다!! 결혼해라"라고 성화였는데....친해지긴 했었던 거 같은게 2016년 11월 방송에서 나미춘이 배디에게 반말하다가 살짝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를 팟수들은 놓치지 않고 마구 놀렸었는데 언제부턴가 썸은 사라지고 이젠 비지니스만....2018년 3월 잡지 <bnt>와 찍은 화보 촬영에서는 인터뷰에 배성재 얘기가 나오자 '따뜻하고 좋은 분이다. 좋은 여자 만나셨으면 좋겠다'라고 거리를 뒀다. 아무튼 나미춘, 흥미춘으로 [[배성재의 TEN]]의 아재여신 인정.
2017년 12월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토킹 피해를 호소해 놀라게 했다. '아파트 앞이다, 안자는 거 안다, 뺨한대 맞을까 나와라' 등등 혐오스러운 말들이 담겨있었다. 윤태진은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그만두라며 그동안은 팬의 관심이겠거니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지만 그만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포스팅에 댓글은 닫았지만 여러모로 놀란 팬들이 걱정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이후로는 스토킹에 관해 언급이 나온 적은 없다.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아나운서로 KBS에 입사 전, 2010년 춘향선발대회 선에 뽑혔다. 그 후로 [[1대 100]]에 선 자격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사실 무용과 출신으로, 4살 때부터 무용을 하기 시작해서 [[2012년]]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 서빙알바하던 시절 소개팅하던 남녀 손님이 있었는데,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남자가 계산을 하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스춘향의 위엄--
* 춘향 선발대회 때 추었던 막춤이 두고두고 회자 되고있다. 무용과 출신임에도 불구 민망한 춤사위가 단아한 그녀의 이미지완 이외의 면이라는 평.
* [[구자철]]과 동향이라고 한다. 게다가 같은 초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정작 본인은 몰랐다가 주변 사람들이 말해 줘서 알게 됐다고 한다.
* [[정인영(방송인)|정인영]] 아나운서와 함께 자몽콜? 레몬비!!! 음료 광고도 찍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5sp6Bz3SE|영상]]
* [[주간 서형욱]]에 나왔을때 [[슴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야구팬들 사이에 ''''크기보다 모양''''이라는 전설의 유행어가 탄생했다.
>서형욱 : [[김선신]] 아나운서가 자기가 그렇게 글래머라고 주장하는데 인정하십니까?
>--따지고 보면 서형욱은 '가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답변 이후 다른 모든 출연자들이 웃으면서도 당황했고, 서형욱은 '저는 글래머라고만 했지, 가슴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라고 말했다. 이에 윤태진은 '글래머가 가슴 아닌가요? 그럼 엉덩이인가?' 라고 말하였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낀 서형욱은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 KBS의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 2015년 10월 31일자로 [[정인영(방송인)|정인영]] 아나운서와 함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퇴사했다. [[https://instagram.com/p/95SRuFFFty/|인스타그램]]에 밝힘.
*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에 화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지만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틈이 조금만 나면 시청자들의 각종 드립이 올라올 정도.[* 다른 여자 게스트인 [[소혜]]도 가끔 배성재에게 드립을 날린다. 윤태진과 자기 중에 고르라는 둥, 고백은 하는 게 맞다고 하는 둥, 짝사랑 중이지 않냐는 둥.][* 윤태진 본인은 2018년 3월에 bnt와의 인터뷰에서 배성재와의 러브라인에 대한 질문에,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게다가 케미와는 별개로 윤태진 본인이 가진 끼가 여기서 막힘없이(...) 발산되는 경우가 매우 자주 나오는 편이라 사실상 베텐의 마스코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 2016년 10월 16일부터, [[소사이어티 게임]]에 출연--이라고 쓰고 광탈 내지 1일 출석, 까메오 등장--하였는데, 자세한 것은 [[윤태진/소사이어티 게임]] 문서 참고.
* KBS joy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재연 배우로 6회, 11회 2번 참여했다. 6회에서는 권태기인 남자친구를 잡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고 남자친구를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태기에 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나왔으며, 11회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가 남자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매달리자 다시 만날까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역할로 나왔다.
* KBS N 입사시절 권성욱 캐스터가 '넌 내 자부심이야'라는 극찬을 했다고한다.
- 은혼/631화 . . . . 38회 일치
* 야토 용병부대를 통솔하는 "노사"는 해방군 본대의 결정을 지상군에 전파하고 [[히라가 겐가이]]에게 "[[엔죠 황자]]를 죽일 방도"를 묻는다.
* [[하타 황태자]]는 고국의 함대로 해방군을 위협하는 방송 중 [[네스(은혼)|네스]], [[하세가와 다이조]]와 진흙탕 싸움을 벌여 개전의 방아쇠를 당긴다.
* 지상과 우주 모두 열세, 자칫 전멸의 위기가 올 수도 있을 시점에 구세주가 나타난다.
* 자신이야 말로 세상을 부술 자라 공언하는 자, [[다카스기 신스케]]였다.
* 통신의 부활로 성사된 [[히라가 겐가이]]와 [[엔죠 황자]]의 기묘한 대담. 이들의 만남은 주선한 셈이 된 야토족 용병부대의 통솔자 "노사"란 인물은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해가 뜰 때까지 나노머신 바이러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지구를 통채로 지운다. 이것은 겐가이 영감한테만이 아닌, 지상병력 전체에 대한 협박이기도 했다. 그는 곧 최대한 무전을 돌려 지상군 잔존세력에게 엔죠 황자의 의사를 전달한다.
* 노사는 부하가 자신들은 어찌해야겠냐고 묻자 지팡이로 겐가이 영감을 쳐서 멀찍이 보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일을 지시한다.
>살아 돌아가서 그 황자를 죽인다.
>저 황자를 죽일 방법으로 달리 묻는다면
* 폐허가 된 에도. 그리고 어딘가에서, 모든 것을 야기한 남자는 만족스럽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모든 것의 원흉, [[우츠로(은혼)|우츠로]].
* 해방군 모선 내부에서 교전 중인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 그의 옆을 [[자작 제독]]과 [[무츠(은혼)|무츠]]가 지킨다. 일단은 쾌진격이나 엔죠 황자에겐 기껏 남은 수단이 저따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웃음의 대상이다.
* 그때 레이더에 이상한 정보가 잡힌다. 상당한 수의 함대가 해방군 모함의 후방을 잡고 있다. 부하는 고장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건 [[하타 황태자]]가 고국 오우고쿠성에서 소집한 병력이었다. 하타 황태자는 무전을 통해 해방군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들의 행위가 해방이란 이름의 침략 행위에 지나지 않고 이 이상의 만행은 우주가 용서해도 자신들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실로 그럴 듯한 선전포고를 하는 사람은
하타 황태자는 옆의 [[네스(은혼)|네스]]가 주모자인양 빠져나가려 하지만 주군에 대한 충성은 밥말아먹은 네스가 그냥 뒤집어 쓸리가 없었다. 둘은 엔죠 황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이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떠미는 추태를 부린다. 급기야 이들은 누가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해방군에게 맡기기로 한다. 하타 황태자는 눈을 감고 있을 테니 그런 말 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시킨다. 그러면 해방군은 보고 그렇게 알게 될 거라면서. 네스는 실눈 뜨지 말라면서 "절대 안 볼 테니 급식비 훔친 애는 손을 들어라"고 개드립을 첨가한다.
* 거기에 또 낚이는게 [[하세가와 다이조]]. 역시나 마다오 답다. 하타 황태자의 말만 믿고 당당하게 거수하는데 딱 걸렸다. 하지만 그는 급식비를 훔친게 아니었다. 하타 황태자의 간식인 고급 푸딩을 훔쳐먹었을 뿐. 그는 그 원인을 개밥이나 주는 열악한 처우로 돌린다. 결국 푸딩에서 비롯된 결투로 치닫는데, 알고 보니 네스도 항상 하타 황태자의 푸딩을 훔치고 있었다. 그도 먹잇감을 가로챈 원한을 하세가와에게 풀기 시작하고, 셋은 뒤엉켜서 추접한 전쟁을 시작한다.
* [[가츠라 고타로]]는 전투가 시작되자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와 함께 양이지사들을 통솔해 교전을 개시한다. 그는 부하들에게 각오는 됐냐고 묻는데 그들은 가츠라를 따르기로 정한 이후 한 번도 각오하지 않은 적이 없다. 우주에 왔어도 그들이 할 일은 결국 하나. 외적을 쫓고 나라를 구하는, 양이지사다. 가츠라는 칼을 뽑아들며 양이지사의 이름으로 해방군에게 천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한다.
이로써 쌍방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쓰러져가는 적과 아군, 그것들이 스크린 위에 명멸하는 빛으로 나타나자 엔죠 황자는 오히려 희열을 느낀다.
* 히지카타는 무슨 수가 없겠냐고 묻는데 마츠다이라는 태연하게 "아직 캬바레 하는데 없을까"같은 실없는 소리나 던진다. 히지카타가 포기한 거냐고 츳코미하자 자기는 포기하지 않았고 분명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캬바레 아가씨가 있을 거란 덧없는 희망을 불사르고 있다. 그는 작은 튜브에 연연하다간 옆에 있는 큰 튜브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며 "포기하는게 꼭 나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지구는 대충 냅두고 겐가이 영감부터 찾으라고 조언하는데, 제일 냅두면 안 되는걸 왜 냅두라는 거야 이 아저씨.
그는 세계를 맡기기에 합당한 놈인지는 몰라도, 자기들보다 더 포기를 모르는 녀석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모선에 있는 다츠마 일행도 썩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렸다. 자작의 안내로 진군하고 있었으나 적이 한 발 빨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미리 적들이 배치돼 있었고 퇴로까지 차단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시스템을 장악한 엔죠 황자 보다 빠를 순 없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38회 일치
* [[에스카노르]]는 멜리오다스와 자신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퍼펙트 큐브로 격리시키고 단독으로 단장을 상대한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간단히 독을 정화해 반을 구하고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압도적인 힘으로 메라스큐라를 박살낸다.
* 메라스큐라는 약체로 여긴 둘이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와 같은 힘을 내자 당황하나 멜리오다스가 말한 "운명의 동료"라는 말을 떠올리고 납득한다.
* 다시 엘리자베스가 나서서 그녀의 장기를 정화해 작고 약한 본래의 모습, "마계의 독뱀" 모습으로 돌려버린다. 멀린이 그걸 포획하며 엘레인이 죽지 않고 끝난다.
*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부활과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각성으로 기뻐했던 것도 잠시. [[메라스큐라]]가 암담의 고치로 감금했던 [[멜리오다스]]가 심상치 않은 상태로 풀려난다. 그의 등 뒤로 드리운 검은 날개.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조차 위험시 해 "너 조차 어쩔 수 없다"고 경고하나 오만의 죄 [[에스카노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아이 돌보기"를 하러 다가선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난건 코란도의 중심부였으나, 그 힘이 내뿜는 여파는 외곽에 있는 일행에게까지 날아왔다. 멀린은 일찌감치 퍼팩트 큐브로 엘리자베스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를 보호했다. 엘리자베스가 멜리오다스의 상태를 보고 폭주했다고 생각하나 멀린의 말에 따르면 통상적인 폭주와는 전혀 다르다. 그를 감싼 검은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용솟음쳐서 걸치고 있던 갑옷 조차 하나씩 터져나간다. 엘레인과 상공에 있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적인 메라스큐라 조차도 일곱 개의 대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그녀는 저 상태의 멜리오다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십계" 통솔자 시대, "십계" 조차 두려워한 "섬멸상태"!
멜리오다스에게 접근한 에스카노르가 멀린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녀가 큰 규모의 퍼펙트 큐브를 그들 주위에 생성한다. 암담의 고치에서 나와 퍼펙트 큐브에 갇힌 멜리오다스. 그리고 그 앞의 에스카노르. 멀린은 멜리오다스가 일단 암담의 고치를 부수려고 내면의 마신왕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결과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위험한 도박의 대가가 크다. 자신이 마신왕의 저주로 감정을 상실한 상태였던 걸 간과한 것이다. 멀린은 새삼 그를 "바보 녀석"이라며 탓한다.
* 에스카노르와 멜리오다스가 격리되자 메라스큐라는 금방 반색했다. 일행 중에 가장 무서웠던 둘이 제외됐으니 나머지는 "먹이"에 불과하다고 교만을 떨었다. 반은 그 꼴을 봐주기 힘들었다. 엘레인을 뿌리치고 뛰어내린 반이 장기를 발휘했다. "폭스 헌트". 목표는 메라스큐라의 심장.
>여자의 몸을 뒤적이다니, 음흉한 남자.
* 엘레인이 서둘러 다가오려 했지만 반이 막았다. 그가 당한 이 독, 보통 독이 아니다. 데들리 포이즌은 메라스큐라의 소화액이다. 무시무시한 강산인데다 피어오르는 증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반의 불사신 육체도 이 독 앞에서는 무력했다. 독액이 그의 몸을 녹였고 증기가 남아서 재생하는 것 보다 빠르게 그의 몸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엘레인은 그가 한 줌의 핏덩이와 해골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때 그녀를 대신해 엘리자베스가 나섰다. 그녀는 독기가 자욱한 반의 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갔다. 메라스큐라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기가 그녀에겐 통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반을 향해 손을 뻗고 여신족의 힘을 발휘했다. 그건 마법이나 주술이라기 보단, 마치 명령. 언령이라고 부를 만했다.
언령에 따라 메라스큐라가 자랑하던 맹독이 순식간이 정화되어 간다. 뼈 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가던 반이 빠르게 회복했다. 메라스큐라가 엘리자베스를 "더러운 여신족"이라 욕했지만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심상치 않은 땅울림과 함께 대지가 뾰족하게 치솟았다. 메라스큐라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잇따르는 대지의 융기. 메라스큐라가 급하게 몸을 피하며 보니 그것은 대지의 마력이었다. [[디안느]]였다. 농락 당한 원한을 갚으러 왔다. 힘의 정체가 그녀라는 걸 알자 메라스큐라가 코웃음을 쳤다. 거인족은 그저 힘만 셀 뿐인데 지금 상태의 자신은 거인족 조차 힘으로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메라스큐라가 디안느의 대지의 마법을 유유히 피하며 빠르게 쇄도했다.
>어디를 노리는 거야? 마치 자기한테 오라는 어필이네?!
디안느는 벌레를 잡는 것처럼 가볍게 메라스큐라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상상을 초월한 충격에 메라스큐라는 어이가 없었다. 멍청하게 비틀거리는 메라스큐라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기데온을 휘둘러 골프공처럼 처날렸다. 이 두 공격으로 메라스큐라는 이미 피투성이. 자랑하던 독니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분명 메라스큐라에겐 거인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지만 디안느는 그것 조차 아득히 초월했다. 마치 거인왕 [[드롤]]을 연상시키는 힘. 메라스큐라는 경악과 함께 날아갔다.
* 메라스큐라는 이미 전투능력을 상실했지만 상황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고작해야 요정이나 거인에게 자신이 당하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십계의 프라이드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멜리오다스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끝내자.
그녀가 말하자 메라스큐라는 자신이 죽으면 엘레인 너도 죽는다고 항변했다. 그녀가 모를리가 없었다.
* 그때, 이번에도 엘리자베스가 나섰다. 그녀가 팔을 좌우로 벌리며 "잠들어라"고 언령을 발했다. 여신족의 문양이 여럿 나타나 허공 속을 멤돌았다. 엘리자베스가 두 손을 모아 메라스큐라에게 뻗자, 여신족의 힘이 바람처럼 메라스큐라를 쓸고 지나갔다. 그 몸에 잠재한 장기를 끄집어내며. 메라스큐라가 그걸 눈치 챘을 땐 이미 늦었다. 그만두라고 애원해도 장기가 빠져나가는 속도는 조금도 둘지 않았다.
* 뽑혀나간 검은 독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거대한 뱀의 형성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힘도 지성도 없는 작디 작은 뱀.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그 지렁이 같은 크기를 보고 어이없어 했다. 호크의 콧김에 겁을 먹은 작은 뱀이 꽁무니를 뺐다. 하지만 뱀이 기어 간 곳은 멀린의 플라스크 안. 멀린은 뱀을 그 안에 가두는 것으로 처분을 마쳤다. 마계의 강한 장기에 노출되며 살아온 독뱀이 마력을 얻은 것이 메라스큐라의 정체.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그렇게 알려줬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를 죽이지 않고, 엘레인을 죽이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린은 짐짓 쿨한 태도로 감탄했지만 결국 본성을 숨기지 못했다.
- 주상욱 . . . . 38회 일치
| 배우자 = [[차예련]]
| 자녀 = 딸 주인아
'''주상욱'''([[1978년]] [[7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98년 [[한국방송공사|KBS]]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텔레비전 연기자 데뷔하였다.
주상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08년 [[MBC]] 《[[춘자네 경사났네]]》 - 이주혁 역
* 2010년 [[SBS TV|SBS]]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 조민우 역
* 2014년 [[tvN]] 《[[로맨스가 필요해 3]]》 - 신주연의 과거 두번째 남자친구 역
* 2013년 《[[응징자 (2013년 영화)|응징자]]》 - 이준석 역
* 2012년 [[KBS 2TV|KBS2]] 《[[남자의 자격]]》 - 고정출연
|rowspan=2|[[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남자조연상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쇼오락 남자 신인상
|[[남자의 자격]]
|특별기획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중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중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특별기획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창작:IDF . . . . 38회 일치
|| 최초작성자 || 함장 ||
한자어 번역은 "국제방위대". 냉전시기, 자유진영 국가들의 군사협력 공동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로서 탄생하였다.
IDF는 모병에 있어서 선진국의 사관학교 출신자, 군복무 경험자를 우대하며, 특히 장교급 지휘관이나 특수부대 출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다. 그 결과, IDF의 영관급 이상 장교는 선진국 사관학교 출신자나 퇴역장교 출신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반면 병사들은 상당수 생계를 위해서 IDF에 개인적으로 참가한 제3세계 출신이며, 선진국 출신자 역시 저소득 계층 출신이 많다.
IDF 회원국은 자국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IDF에 군사 파병을 요청할 수 있다. 파병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사태는 외국의 침략, 국내의 내전, 대규모 폭동, 대규모 재난 등이다. 회원국의 요청에 따라서 IDF 이사국의 승인 결의와 함께 파병이 이루어진다.
IDF는 언제나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가만을 회원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이사국의 승인에 따라서 임시 정부나 잠정 정부, 특정 정치 집단 대해서도 회원국 자격이나 총회이 발언권은 있으나 표결권은 없는 옵저버 자격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 사무국 : IDF에서 자체적으로 고용된 사무 직원으로 구성된다. IDF의 운용 업무와 행정 실무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조직에서 '국방부'에 해당한다. 관료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사령부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파견 주둔지에서 민사작전을 담당한다. 공병대와 의무대로 구성되며, 피해 복구와 재건 작업, 민간인 구호 등을 진행한다. 배급소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식량, 의료 서비스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파견 지역의 치안 확보와 재건에 기여하고 반군의 성장을 막는다. 각종 국제 구호 조직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재해지에 나타나는 볼란티어(자원봉사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는다.
*[[http://blog.naver.com/jjy0501/220463509531|L-ATV]] : 1,240대[* 현재까지도 손실분이 가장 많은 차량이고, 집계한 이후 무력화된 차량도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측정 불능]
전체적으로 소총병 위주의 전투병과 위주로 되어있는데, 이는 의무병과 공병부대를 민사작전 부대에 의존하는 경향을 높이었기 때문이다. IDF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인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중동 부근은 생각보다 지형이 험하지 않기 때문에 (단, 파키스탄의 산악지역은 예외이다.) 공병을 통해 지원받는 경우가 매우 적다. 도시 내에선 자체적인 방어진을 만드는 대에도 능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병구성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상당히 적은 중화기병 수는 작전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을 받으나, 중화기를 동원하는 작전은 보통 지역 정규군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러한 부분이 크게 지적받지는 않는다.
*자체적인 인터넷 검열부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실체는 미확인
>상기 사항은 입수된 대외비 등급의 자료에서 확보한 것 입니다. 이 단체가 국제기구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내역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군요.
*정보자산 : [[http://rigvedawiki.net/w/%ED%82%A4%ED%99%80|키홀]] ?대 이용허가, 중동 지역에 한하여 미군과 정찰자산 공유, KGB 요원 다수가 HUMIT로서 지역 상황을 파악하는데 지원을 주는 중. ~~미군 장비에 소련 인력이라...~~
*정보통제 : ?[* 대외비 자료에서는 '통신 도중' 이 부분이 심하게 손상되어 어떤 정보가 쓰여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자료 목차에는 이 부분이 있는 만큼 일단 이런것도 있다는 걸 알아두는게 좋겠죠.]
IDF는 독자적으로 군사재판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IDF 가맹 조약에 따라서 각 가맹국 내에서 IDF 병사에 대한 사법권 행사를 인정받고 있다. 민간인 대상 범죄는 사안에 따라서 해당국 사법부에 인도할 수 있다. 군사재판은 불공정하지는 않으나, [[엄벌주의]] 경향이 상당히 강하며, 몇십년 형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몇몇 가맹국에는 IDF 군사 교도소가 설치되어 있어, 유죄 판결을 받은 IDF 병사가 수감되어 있다.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병사는 불명예제대 처분을 받고 본인의 국적국으로 추방된다.
IDF는 독자적으로 훈장을 비롯한 보훈 체계를 갖추고 있다. 훈장은 사령부에서 추천하여, 사무국에서 조사와 심의를 거쳐, 이사회에서 결의하여 수여된다. 훈장 수여 절처가 복잡하고 심의가 까다로운 편이라서 잘 수여되지 않는다. 훈장 수여자에게는 등급에 따라서 소정의 연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IDF협정에 따라서, 회원국 국민이 IDF에 복무하는 것은 합법이며 또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회원국 국민이 아닌 외국인도 지원할 수 있지만, IDF에서 '적성국'으로 분류된 몇몇 국가의 국적자들은 IDF에 복무하는 것이 거부당할 수 있다. 또 몇몇 비회원국은 IDF를 적성 조직으로 여겨서, 국민이 IDF에 복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나라의 국민은 IDF에 복무했던 것이 밝혀지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IDF 군의 전력은 상당히 미묘한 수준으로 '억제'되어 있다. 분명히 IDF는 훈련이 잘 된 군대이고 실전 경험이 풍부하지만, 정보자산이나 공군, 해군이 빈약하고 강대국 군대와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강대국의 협력이 없는 '독자적인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파병을 결의하는 이사국 측에서는 IDF는 파병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권이 짊어지게 될 정치적 부담과 책임을 일종의 공동분담과 국제기구라는 틀을 사용함으로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성이 있는 조직이다. 특히, 자국군=자국 국민의 사망으로 인한 부담이 비교적 덜하다는 점에서 강대국들은 IDF를 타국의 군사개입을 쉽게 할 수 있고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유효하게 활용하고 있다.
파병을 요청하는 국가 측에서는, 비록 IDF 역시 강대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친다고는 하나 국제기구라는 틀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외국 정부와 외국 군대의 개입을 직접 요청하는 것보다 해당국 정부에서 정치적 부담을 적게 느끼게 된다. 강대국처럼 점령을 바탕으로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IDF는 국제기구라는 특성상, 자국 군대와는 달리 쿠데타를 벌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어 신뢰받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국제기구'라는 특성상 IDF가 특정 국가를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소국에서는 자국이 타국의 침략을 받아 점령 등을 당했을 때의 대비책으로 IDF에 가맹하고 있으며,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성공한 몇몇 정부에서는 기존에 독재 정권과 협력하거나 군정을 하던 군부에 대한 경계 의식이 강한 탓에 IDF에 가맹하는 경우도 있다. 내전을 겪었던 나라나, 침략을 받았던 나라에서도 치안유지 병력확보나 보다 나은 안전 보장을 위하여 가맹하는 경우가 많다.
- 하이큐/252화 . . . . 38회 일치
* 이나리자니 고교는 응원단의 압도적인 후방지원에 힘 입어 두 번째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분위기를 끌어간다.
* 규모만 놓고 보면 카라스노의 태고팀은 이나리자키의 취주악부에 밀렸지만 태고의 강한 "박자"로 상대가 리듬을 가져가지 못하게 후방지원한다.
* [[히나타 쇼요]]는 이나리자키의 더블 퀵을 알아차리고 좋은 위치를 선점하나 리시브에서 실부, 발로 받는 실수를 연출한다.
* 응원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나리자키 고교는 [[오지로 알렝]]이 두 번째 서브 에이스를 달성한다. 스코어는 7 대 4. 관람석의 바보 커플은 이나리자키가 벌써 분위기를 가져갔다며 이미 끝난 게임인 것처럼 취급한다. 여기서 [[카라스노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미야 아츠무]]는 벤치로 돌아가자마자 [[쿠로스 노리무네]] 감독에게 "첫 번째 서브가 미묘했다."고 쓴소릴 듣는다. 응원 때문에 집중이 안 됐던 거냐고 정곡을 찌른다. 속을 뻔히 아는 [[미야 오사무]]나 오지로가 뒤에서 히죽거린다.
* 취주악부를 내세운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TO 중에도 위세가 대단하다. 노헤비 학원의 전주장 [[다이쇼 스구루]]은 자기가 경기하는 것도 아닌데 굉장한 압박감을 받는다. 그 옆에 앉은 여친은 이런 사정은 눈치채지 못하고 취주악부의 연주에 빠져든다.
* 하지만 일방적이었던 응원전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카라스노 응원단이 방금 전 도착한 태고팀을 앞세워 격렬한 박자를 연주한다. 이나리자키의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큰 북에서 퍼지는 묵직한 소리가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 이런 변화는 벤치에 모인 카라스노 선수들에게도 전해졌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그 소리만 듣고도 누나가 왔음을 짐작하고 움찔한다. 선수들의 이목이 응원단으로 모였다. [[히나타 쇼요]]가 맨 처음 [[타나카 사에코]] 누님을 발견했다. 이 태고팀은 사에코가 결성한 팀으로 원래는 축제날 공연하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녀가 태고를 두드리는 모습에 반했는지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자기들 보다 연하인 사에코를 누님이라 부르고 있다.[* 둘은 25세. 사에코는 21세.]
다른 팀의 응원단들도 카라스노의 태고팀에 시선을 뺏긴다. 바보커플도 그랬는데 여자쪽은 취주악이 좀 더 좋다고 하지만 남자 쪽은 "그래도 전통"이라며 카라스노 쪽에 점수를 더 준다. 히나타와 [[니시노야 유]]는 태고팀을 보며 "멋짐사(死)"라는 괴이한 사인으로 죽을 것 같다고 심장을 움켜쥔다. 사전에 사에코와 태고팀이 올 걸 알았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와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며 한시름 놓는다.
대단한 자랑거리다.
히나타가 활약하자 태고팀이 쇼요의 이름을 연호하며 찬사를 보낸다. 히나타는 엄청 기운을 받은 채로 첫 번째 서브를 준비한다. 그리고 니시노야가 코트를 나타고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온다.
* 카라스노의 서브. 원래 서브 순간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내는게 좋지만, 카라스노 응원단은 이때도 연주를 하기로 한다. 아까부터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박자"를 만들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꼭 상대를 묻어버릴 정도로 대음량일 필요는 없다. 이나리자키가 조성하는 갑자를 흐트러뜨릴 정도면 된다. 응원단이 이런 요청을 하자 사에코는 엄지를 들어보이며 맡겨달라고 제스쳐한다.
그녀가 카라스노 응원단에 태고팀을 합류시킨 것은 시라토리자와 전 때 경험 때문이었다. 전교생을 동원한 압도적인 응원 덕에 이쪽이 기가 죽은 기억이 매우 분했다.
* 이번 경기의 양상도 비슷하다. 쇼요가 서브 위치로 가자 이번에도 이나리자키 쪽에서 박자를 가져가려고 연주한다. 사에코는 대항 연주를 준비하며 자기들이 꼭 응원전에서 상대를 이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태고팀의 피리주자가 연주를 시작한다. 태고팀의 연주가 이나리자키에 대항해 히나타가 편하게 서브를 칠 수 있도록 잡음을 지워준다. 여기에 고무된 히나타는 "엄청난 서브를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길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 마침내 히나타의 1회차 서브. [[호시우미 코라이]]는 히나타가 이나리자키 응원단의 부추김에도 동요하지 않고 희미하게 웃기까지 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매우 좋은 흐름이다. 그런 그가 어떤 공격에 나설 것인가? 점프 플로트? 스파이크 서브?
* 공은 아츠무에게 연결. 이번에도 논스톱 세트업이다. 더블 퀵. 두 명의 선수가 뛰어나온다. 블록인 츠키시마, 타나카, [[사와무라 다이치]]는 공이 어디로 갈지 끝까지 주시한다. 결국 공은 우측으로. 츠키시마와 사와무라가 블록하러 간다. 이 더블 퀵을 읽어낸 선수는 한 명 더 있었다. 후방의 히나타가 스파이크 낙하 지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자리를 선점한다.
*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번에도 리시브가 문제다. 딱 한 박자가 늦어서 헛리시브. 공이 그대로 떨어지나 싶었는데, 천운인지 어떤지 히나타의 발등을 때리고 솟아오른다. 완전히 들어갔다고 생각하던 카라스노 벤치에선 [[시미즈 키요코]]가 "발에 맞았다"고 말하면서 안도한다. 반대로 이나리자키에겐 선수부터 감독까지 "저게 뭐꼬!"라고 입을 모아 황당해한다.
다이쇼 스구루의 말은 틀렸다. 조금이 아니라 무지 창피하다. 관중석에서 "또 쟤다"라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히나타는 얼굴이 시뻘개졌지만 코트 바깥의 니시노야가 "좋은 자리 선점이었다!"고 격려해서 이를 악문다.
* 히나타가 명예회복을 다짐하며 네트 앞으로 튀어나간다. 카게야마가 세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히나타는 당연히 자기한테 올 거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속으로 "후방 마이너스 템포"라고 힘차게 외치며 뛰어오르는데...
- 마기/349화 . . . . 37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이 싸움을 "신에 어울리는 자"를 가르는 것이라 여겼으나 [[알리바바 사르쟈]]에 의해 판도가 변하자 더이상 예상하기를 그만둔다.
* 신드바드는 각 차원을 각각의 나라에 대입해서 연결은 하되 불가침한 채 대화한다, 즉 "동맹"으로서 교류하자는 제안을 내는 것이다.
* 기존 신드바드의 의견을 뒤엎는 변화였는데 그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다가 알리바바가 말했던 "당신도 내게 휘말린 인간"이란 말을 떠올리고 새삼 놀라워한다.
*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아주 적은 마고이로도 차원 간의 벽을 부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알리바바 사르쟈]]. 그는 자신이 저 세상에서 돌아올 때 쓴 "대마법"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는 가로의 벽과 세로의 벽 모두를 파괴해 세상의 다중 구조를 없애고 루프도 전부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아르바(마기)|아르바]]는 획기적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반신반의하는 듯한데, 특히 아르바는 여전히 미심쩍은 인상이다.
* 알리바바가 내놓은 해결책에 누구보다 감탄한 것은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였다. 그가 이곳에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비롯한 네 사람을 부른건 진정으로 신에 어울리는 자가 누구인지 가리기 위함이었다. 거기서 이기는 것이 "운명"에 선택 받은 존재일 거라는 전제로.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가 생각도 못했던 제 3의 길을 발굴했다. 신드바드는 그걸 "어중간한 타협책"이라 부르면서도 그의 의향에 휘말리고 있는걸 깨달았다. 이제 성궁의 싸움은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신드바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 그런데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난다. 맛이 간 눈이다. 그는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을 적은 마고이로 쓰는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더 놀랐다. 우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과 [[솔로몬(마기)|솔로몬]] 대왕이 한 계층의 차원에 간섭하기 위해 일 일라의 모든 마고이를 총동원했던 사례를 들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단순히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은 자신도 예전에 고안했지만 신 하나 분량의 마고이가 필요한 무지막지한 마법이다. 그러니 차원끼리 연결시키려면 솔로몬이 만든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켜 동력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 너무 격렬한 태도의 우고 때문에 얼이 빠진 알라딘과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 솔로몬 왕이 만든 세상이 루프로 환원돼 사라지는건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우고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더니 "그건 슬프다"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알라딘이 그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자 신드바드가 "다윗의 마법으로 머릿속이 혼탁해져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성 자체는 알마트란 최고의 마법사인 그대로다. 결국 그가 한 말이 단순한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
* 여기서 알라딘은 과거 솔로몬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해 본다. 혹시 그는 "운명"을 "산산조각" 냈던건 아닐까? 말하자면 신에게 대항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신에게서 완전히 독립, 분리 시켜서 간섭을 막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알리바바가 부정한다. 세상을 완전히 독립시키는 건 무리다. 우선은 솔로몬 그 자신이 실패했고 다윗이 이용한 "암흑점"처럼 바깥 세상의 신들이 간섭할 수도 있다. 이걸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러니 신드바드의 생각대로 벽은 부숴야 한다고 말한다.
* 이들이 내놓은 의견은 저마자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타당했지만 분명히 어느 의견이 옳다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알라딘은 벽을 부순다면 대체 어디까지 부술 것인지를 지적했다. 아르바는 일 일라 같은 존재들을 단순한 에너지체로 취급한 알라딘이나 우고 등을 "거만하다"고 까며 그분에겐 의지가 있고 자신에겐 그게 들린다고 주장했다. 우고는 "같은 인격체"일 뿐이라는 아르바의 주장에 반박해 "상위의 존재들은 하위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못박고 신드바드의 말대로 세로의 벽을 부숴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 주장한다. 아르바는 여기에 반박, 계속 솔로몬이 한 것처럼 상위의 신을 쓰러뜨리고 그 힘으로 새 세상을 만든자면 자기도 세상을 계속해서 멸망시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논쟁은 격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최종적으론 "운명을 쟁취하자"는 입장으로 세상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우고 와 알리바바, 반대로 "운명은 독립해야 한다"며 차원간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들어 서로 분리되자는 알라딘과 아르바의 입장이 대립했다.
* 신드바드가 생각에 잠긴 동안 논쟁은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졌다. 알라딘이 "운명을 쟁취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쓰러뜨린다는 것이고 다른 세상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 지적하자 알리바바가 거기에 설득돼버렸다. 하지만 일 일라를 "불쌍하다"고 표현한게 문제가 됐는지 아르바가 "이 놈들은 답이 없으니 다 멸망시켜야 한다"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우고는 논쟁에 지쳐서 솔로몬을 찾으며 머리를 감쌌다.
신드바드가 끼어들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니? 토론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신드바드는 차원의 구분을 나라에 빗대고 차원의 벽을 국경으로 친다. 그렇게 친다면 현재 논쟁의 두 의견은 각기 "쇄국"과 "침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다른 차원 입장에서 말하면, 그쪽에도 이쪽과 비슷하게 사회성을 가지고 지성과 의지를 겸비한 존재들이 살고 있을 수 있다. 단지 알마트란 시대의 이종족들처럼 말이 통하지 않을 뿐. 그런 존재들이 있다면 자신들이 취해야할 행동은 무엇일까?
* 잠시 생각에 몰두하는 토론자들. 그러자가 알리바바가 제일 먼저 답을 맞췄다.
신드바드는 우선은 국경을 올바로 관리하되 미지의 세상에서 미지의 생명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그걸로 발전적인 관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없는 자원을 교류하며 유익한 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토론자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는가? 비로소 우고와 알라딘, 알리바바가 아차하면서 맞는 말이라 맞장구친다. 물론 처음부터 "커뮤니케이션은 된다"고 주장했던 아르바는 왜 이제야 그 말을 듣냐고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 분명 합리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알라딘은 본래 루프를 환원시켜 세로의 벽을 다 파괴하자던 그가 너무나 다른 의견을 내놔서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다 여기지만, 그들의 논쟁을 보다보니 너무 극단적인 의견만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한다. 아르바도 "모든걸 뒤집으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시점에서 낸 미숙한 답"이었다며 순순히 실수를 인정한다. 아르바는 툴툴거리며 "이렇게 쉽게 의견을 바꿀지 몰랐다"고 빈정거리고 우고는 거기에 수긍하며 "왜 이렇게 됐었지?"하고 어리둥절해한다. 확실히 신드바드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극적인 변화였다.
함께하면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다던 알리바바. 그리고 자신이 신드바드에 비해 개인적인 역량은 떨어짐을 인정하기도 했던 알리바바. 그는 또 이런 말도 했었다.
알리바바는 "역시 신드바드씨다, 나 혼자서는 절대 떠올릴 수 없었다"고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다. 비로소 그가 했던 말을 깨닫는 신드바드. 그의 말처럼 신을 자칭하던 신드바드도 "휘말린 인간"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알리바바라는 큰 그릇에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부가 처음부터 담겨 있었던 것이다.
- 블랙 클로버/104화 . . . . 37회 일치
* 자신의 가문과 영지의 주민들까지 휩쓸리게 되어 절망하고 있던 차에 그녀를 구하러 온게 야미였다.
* 야미는 강한 여자는 좋아하지만 "가끔은 남한테 의지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를 해방시키는데, 그때 야미에게 반하게 된다.
* 추근거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죄로 초죽음이 된 버밀튼 남작.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푸른 들장미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였다. 샬롯은 가문으로도 개인의 역량으로도 버밀튼 남작을 한참 능가하는 알파걸이었고 그녀 자신도 그걸 무기 삼아 신랄한 독설로 멘탈을 부숴뜨린다. 육체와 멘탈 양면에서 죽기 직전에 놓인 버밀튼 남작.
* 아스타를 적당히 던져좋은 솔은 원래 목적대로 자신이 구해온 드레스를 샬롯에게 입힌다. 샬롯은 남자한테는 과격하지만 여자끼리는 약한지 순순히 그 옷을 갈아입어준다. 솔과 아스타를 비롯해 구경꾼들이 그녀의 드레스 차림을 칭송한다.
* 하지만 괴팍하게도 "남자들 구경거리가 아니다", "언니의 아름다움을 즐겨도 되는건 푸른 들장미단 뿐"이라며 아스타를 포함한 구경꾼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솔은 자기네 단장의 실태에 대해선 잘 모르므로 야미를 "누추하고 쉰내나는 남자 중 No.1"이라 질시하며 샬롯 근처에도 못가게 한다.
* 그때 야미를 찾아다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나타난다. 역시 평소 습관대로 진탕 마시고 헤롱거리는 상태다. 그녀는 야미를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오다가, 그 옆에 있는 샬롯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육감 탓일까? 두 여자는 무의식 중에 상대를 연적으로 간주한다. 바네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져선 안 된다"고 막연히 직감하고 샬롯은 "묘하게 야미한테 친하게 구는 여자"라며 질투한다.
그때 주변에선 클로버 왕국의 특산물 클로버 맥주가 한창 판촉 중이다. 바네사는 야미에게 "술 잘 마시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떡밥을 던진다. 야미느 별 생각없이 "그렇긴 하다"고 답하는데, 바네사는 이걸 기회로 샬롯에게 "술 마시기 대결"을 걸어온다. 샬롯은 공적발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승부를 피하려 하는데 뇌가 근육인 솔이 "언니가 질리 없다!"며 멋대로 승부를 받아들인다.
* 승부 시작. 샬롯은 척보기에도 주당으로 보이는 바네사를 경계한다. 하지만 승부가 시작하자마자 바네사가 골아 떨어지면서 승세는 샬롯 쪽으로 기운다. 이미 어디서 마실 만큼 마시고 온 참이기 때문에 버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 샬롯은 야미를 의식해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탄한다. 자신이 뭘하고 있는 건지 한심해하던 그녀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저주"에 관해 회상한다.
이후 그 말대로 샬롯은 끊임없이 강해져서 푸른 들장미단에 들어갔을 땐 이미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그 강함과 미모 때문에 구혼자가 줄을 이었지만 샬롯은 자기를 이길 수도 없는 구혼자 따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기도 이길 수 없는데 앞으로 발동할 저주를 이겨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해 빠진 구혼자들에게 실망한 샬롯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저주는 샬롯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주가 발동하자 그녀의 장미 덩쿨 마법이 폭주한다. 저주는 그녀를 삼키고 그녀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삼킨다. 그것도 모자라 덩쿨은 영지민들이 살고 있는 민가까지 들이닥쳤고 이대로라면 엄청난 규모의 재앙이 될 판이었다.
* 결국 저주에 굴복한 샬롯은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생각만 있을 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났던게 당시의 야미였다. 야미는 재앙이 닥치는 판에 엉뚱하게도 "너 때문에 수프 파스타"를 엎질렀다고 투덜거린다. 당시 샬롯은 야미를 상당히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을 구하러 온 걸 보고도 "이딴 남자에게 추한 꼴을 보였다"며 굴욕적으로 여긴다. 야미는 임무에서는 언제나 자기가 먼저라며 날뛰던 그녀가 꼴 좋게 됐다며 신랄한 소릴 한다. 하지만 단지 그런 말만 한건 아니다.
>강한 여자는 좋아한다고?
무슨 운명이었는지, 저주를 푸는 열쇠는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다"였다. 온 마음을 집어삼킬 기세로 뻗어나가던 장미덩쿨이 서서히 바스라들었다. 지금도 샬롯은 하필 저렇게 야만스럽게 열불터지는 남자에게 반했는지 알 수 없다.
* 아스타는 이 쓰잘데기 없는 싸움이 뭐였는지 아직도 영문을 몰라한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어떤 곳으로 몰려가고 있는걸 본다. 사람들 입에서 "공적발표"란 말이 나온다. 이 축제는 마법기사단들의 성과를 발표하는 "성과제". 잊고 있엇지만 그 메인 이벤트가 지금 시작됐다. 이번엔 모든 마법기사단 단장들이 모이는 걸로 되어 있고 단장이 공석된 "홍련의 사자단"과 "자줏빛 범고래단"도 새 얼굴이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37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두 번에 걸친 블랙 상태 발동과 부상 덕에 [[미모사 버밀리온]]의 백업을 감안해도 오래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랜길스 보드]]의 맹공이 끝날 줄을 모르고 크리스탈도 점점 파괴되면서 패색이 짙어진다. 항상 아스타를 신뢰하던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아스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 번째 블랙 모드를 쓰려했다. 원래 하루에 발동할 수 있는 한계는 두 번. 세 번째는 유노와 결승전에서 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한숨 돌릴 타이밍이 필요해 지금처럼 숨도 쉴 수없는 상황에선 도저히 기회가 없다. 그때 아스타는 다름 아닌 [[잭스 류그너]]에게 도움을 청하며 발동 자세로 들어간다. 아스타의 요청이라면 들은 척도 안 하던 잭스였으나 "저 자식(랜길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해준다"며 아스타의 앞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는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아스타의 태도를 보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 잭스의 본명은 "조라 이데아레"였다. 어린 시절의 조라는 내성적일 뿐 평범한 하층민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 "자라 이데아레"는 아들에게 장난치는걸 좋아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봉사정신이 있어서 남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마법기사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 시절엔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사례가 없었고 입단 시험에서 몇 번이나 탈락하는 고배를 마신다. 아버지는 포기를 모르는 도전 끝에 "하층민 최초의 마법기사"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소속은 자줏빛 범고래단. 아버지의 그러한 정신은 어린 조라의 자랑이었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 아버지는 마법기사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전사했다. 조라는 크게 낙심했다. 어느날 아버지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중 자줏빛 범고래단의 마법기사들이 아버지 묘를 찾은 걸 발견한다. 처음엔 성묘인 줄 알았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비웃으러 왔던 것이다. 그들은 하층민 주제에 마법기사인 척 전장에서 어물대니까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는 거다"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들은 하층민 출신이 귀족인 자신들과 동료가 됐다고 여기는 것 자체를 불쾌했으며 아버지가 전장에 방치된 국민을 구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눈에 거슬려했다. 모든 사실을 들은 조라는 귀족들에게, 마법기사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 조라는 이름을 버리고 횡포를 부리는 마법기사들을 찾아가 응징하고 다녔다. 나라를 지키는 마법기사란 건 말 뿐이었다. 마법기사는 거의 귀족이었고 귀족들은 지켜야할 국민들을 계급이 낮다며 학대하고 착취했다. 그가 이름을 빼앗은 "잭스 류그너"도 겉으론 "여빙의 성자"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끔찍한 인간이었다. 잭스는 "포에"라는 마을에서 하층민 소녀를 유괴한 뒤 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할머니가 성도까지 찾아와 돌려달라 애원하는데도 오히려 할머니까지 죽이려 들었다. 조라는 그를 그를 쓰러뜨리고 이름을 빼앗았다. 그가 비리를 일삼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랜길스의 폭거에 분노하는건 딱 한 가지 이유였다. 그들은 아버지가 추구했던 진정한 마법기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잭스는 그렇게 일갈하며 마법진을 펼쳤다. 하지만 랜길스는 "나야 말로 진정한 마법기사"라며 잭스의 마법진을 간단하게 우회해 잭스를 직접 공격한다. 하지만 그거야 말로 함정. 진짜 마법진이 설치된건 잭스 자신의 몸이었다. 간단해 보이는 트릭이지만 본래 자기 몸에 마법진을 설치하는건 자해하는 거나 다름없는 도박.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대체 잭스가 누구인지, 뭐하는 작자인지 경악스러워했다. 잭스가 날려버린 적들은 항상 그랬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준비돼있었다.
어린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상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상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랜길스를 상대로 마법진을 펼치나 랜길스는 간단하게 우회, 잭스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나 그것 자체가 페이크. 진짜 함정마법진은 자기 몸에 설치해놨다. 마르크스는 그런 짓을 하는건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경악해 하는데 이런 독한 짓을 하는건 그 말고는 없었는지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악한다. 함정마법은 반사 마법이었고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몇 배로 커져서 반사된다. 랜길스의 공간마법에 맞았을 땐 "오늘 처음 나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며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히 2회전에서 구덩이 파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공격에 맞은건 처음.
조라에게 이름을 빼앗긴 진짜 잭스 류그너. 자줏빛 범고래의 부단장으로 겉으로는 "여빙의 성자"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면에선 부녀자를 납치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악당이었다. 처음 등장했을 땐 인망과 명성이 자자하다는 설명에 로열 나이츠 시험장에 가던 길에 우연히 잭스랑 마주쳐서 박살난 것처럼 보여서 불쌍한 놈 취급이었지만 진상이 공개되자 인간쓰레기가 됐다. 조에라는 마을에서 어떤 소녀를 납치해놓고 가족들이 돌려달라고 애원해도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왕도까지 찾아와 매달리자 종자가 "기사님이 피곤해하신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돌아가라고 윽박을 지르고 잭스 귀찮아하며 아예 죽이려 들었다. 잭스한테 재기불능으로 박살나서 참 다행.
조라 이데아레의 아버지. 이름은 "자라 이데아레". 사용하는 마법은 조라와 비슷한 함정계통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걸로 곧잘 아들에게 장난을 걸곤 했는데 기본적으론 상냥하고 명랑한 아버지였던 듯. 마법기사를 나라를 지키는 영웅들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도 마법기사를 목표로 노력했다. 입단에 여러번 탈락했으나 결국 성공, 마법기사가 되어 전장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귀족인 동료들이 그를 아니꼽게 여겨 살해한 것이었다. 자라는 남을 돕는걸 중요하게 여겨 전장에서도 민간인을 구조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이게 귀족들 성미를 자극했던 듯. 애초에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것 자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억울하게 죽었지만 사실 굉장한 사람. 작중에서 "최초의 하층민 출신 마법기사"로 명시되어 있다. 마법기사는 귀족만 되는게 당연한 시절에 편견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는 말이니 상당한 실력자였을 걸로 보인다.
* 자줏빛 범고래의 마법기사들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반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식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37회 일치
* 정신을 지배 당한 디안느가 동료들을 향해 공격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응전해야 했는데 [[헬브람]]은 무슨 이유인지 이 사태가 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디안느의 마음의 상처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구해보려 했지만 원념의 힘이 상상을 초월했다.
* 원념은 급기야 디안느를 자해시키기까지 하나 막을 방법이 없는 일행. 그때 헬브람이 친구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을 놔두고 홀로 날아오른다.
* 헬브람이 원념에게 영혼을 바치는 것으로 죄를 갚자 디안느 안의 원념들이 상당수 사라졌지만 여전히 몇몇 강한 원념이 남아 디안느를 괴롭혔다.
* 그때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 ]]과 함께 나타난 엘리자베스가 정화의 힘으로 그녀를 해방시킨다.
* [[멜리오다스]]의 부의 에너지로 강화된 해골병으로 일곱 개의 대죄를 처치하려던 [[메라스큐라]]의 계획은 좌절됐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도 않고 새로운 음모를 고안했다. 해골병이 감당하지 못한 부의 에너지, 그렇다면 같은 일곱 개의 대죄는 어떨까? 예상대로 안성맞춤인 그릇이었다. [[디안느]]가 마수에 걸려들었다. 섬뜩한 피눈물과 불길하게 물든 눈동자. 사령에 지배당한 디안느가 일행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드롤의 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그만두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격이 쇄도해온다. 심지어 즐거워 보였다.
일행이 뒤로 넓게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발빠르게 분석에 들어갔다. 디안느의 상태는 통상의 세뇌나 최면과 달랐다. 할리퀸이 보기에 디안느를 조종하는 것은 단순히 메라스큐라의 마력이 아니라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학살 당한 사람들의 원혼이었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그런걸 어떻게 쓰러뜨리내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헬브람]]이 이상했다. 이 모든 상황은 자기 책임이라며 할리퀸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 멀린은 "다소 죽일 생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반은 거부감을 느꼈지만 디안느의 힘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결국 "나쁘게 생각마라 디안느"라며 멀린의 지시에 따른다. 할리퀸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디안느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일행과 디안느 사이를 가로막았다. 헬브람은 원념에겐 물리적 공격은 물론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그 말대로라면 설사 디안느를 다치게 해도 원념을 쓰러뜨릴 순 없다. 킹은 그런 말을 하며 일행을 말리고 디안느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원념에게 삼켜지지 말라고. 그러나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측정해 보니 디안느의 전투력은 점점 올라 4만 8천에 육박했다. 킹이 위험했다. 고서의 경고는 애타는 할리퀸에겐 들리지 않았다. 헬브람의 경고도 마찬가지. 그러나 디안느는 아랑곳 없이 무자비한 발길질을 보냈다.
* 디안느는 재미있는 장난이 성공해서 흡족했다. 깔깔거리는 여유를 보였지만 [[에스카노르]]의 접근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디안느의 상태를 보고 "다소 난폭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작렬하는 "다소 난폭한" 치료. 거인족의 허리가 꺾이는 강렬한 보디 블로우. 그렇지만 "여성인 점을 고려해 얼굴만은 피하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위력 자체는 디안느의 갑옷이 터져나갈 정도였지만, 지금의 디안느에겐 정말로 "다정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주먹으로 되갚아주는 디안느. 에스카노르 또한 아무 상처도 입진 않았지만 자신의 다정함이 무시 당한게 아쉬운 모양이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주먹으로 대화를 하려고 드는 에스카노르.
* 고서가 그런 에스카노르를 제지했다. 할리퀸의 말대로 디안느를 상처입힐 필요는 없었다. 정신지배라면 자신의 전공분야니까. 디안느가 다시 달려든다. 고서는 자신이 구하겠다며 "인베이전"을 사용한다. 고서의 손에서 발사된 빛이 디안느의 머리를 감싸자 두 사람의 정신이 연결됐다. 이제 고서의 의식은 디안느의 심상세계에 있었다.
* 마치 수렁같은 세계였다. 곧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디안느가 수렁에 잠긴 채 울고 있었다. 킹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은 글러먹은 애라고 자학했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일이 때문이었다. 아직도 엘리자베스가 죽게 된 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그리고 정말로 엘리자베스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 원념이 그 마음의 상처를 파고 든게 분명했다. 고서는 침착하게 그녀를 달래서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원념의 지배는 깊은 곳까지 뻗어있었다. 디안느가 고서를 알아보는 듯 하자 부정형으로 일렁거리는 원념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디안느를 낚아채서 더 깊은 깊은 곳까지 끌고갔다. 고서가 손을 뻗어보지만 결코 닿지 않았다.
* 연결이 끊겼다, 고서의 눈 앞엔 디안느의 신기 [[기데온]]이 들이닥쳤다. 횡으로 원심력을 받은 전투망치의 충격이 고서를 크리켓 공처럼 튕겨보냈다. [[메라스큐라]]에겐 최고로 유쾌한 구경거리였다. 그녀는 허리를 꺾으며 웃어댔다. 고서를 발견한게 최고다. 자신을 이용해먹은 빌어먹을 고서. 그 녀석이 만든 인형이 일곱 개의 대죄였다지. 이 "열받는 서프라이즈"의 연속이 도주미 질리지 않는다.
[[멜리오다스]]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메라스큐라처럼 시청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꼬라지를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갔다. 초조해진 그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고 따지자 메라스큐라는 "궁금하면 자력으로 탈출해라"며 조롱했다.
* 원념이 일행을 괴롭히는 방법이 직접 공격만은 아니었다. 고서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소중한 동료의 멋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말하자 원념은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흉악한 크기의 전투망치는 쓸모가 많다. 가령 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사용자의 머리를 찍는다던가. 원념은 그걸 실행에 옮겼다. 일행은 기겁하면서도 쉽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반이 "스내치"를 사용해 보지만 힘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할리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그것도 할리퀸 밖에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혼자 착각해서 죄가 없는 너희들을 몰살한 이 헬브람이다.
헬브람이 인간에 절망하고 증오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가 오래 전에 놔두고 온 과거였다. 긴 시간이 걸려 많은 일들을 거쳤지만 결국 자기가 저지른 죄 앞으로 돌아왔다. 헬브람의 태도에선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떠나는 친구를 바라보는 할리퀸.
다른 일행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할리퀸의 투구가 떠오르자 디안느가 움직임을 멈췄다, 단지 그렇게 보였다. 잔해 속에 숨어있던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도 고개를 내밀며 무슨 일인가 쳐다봤다.
* 원념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나타나자 믿기지 않는 듯했다. 기데온을 든 손이 축 늘어졌다. 대신 다가오는 투구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들에겐 보였다. 헬브람이다. 자신들을 학살한 요정. 이 마을을 멸망시킨 요정. 성채도시 코란도의 멸망은 마신족이나 십계 때문도, 전쟁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이 증오스러운 요정의 소행이다. 무수한 억울하고 분노한 영혼들이 얼굴을 들었다. 그들이 디안느를 빠져나와 헬브람의 목을 조르러 왔다. 헬브람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할리퀸이 친구에게 가지 말라고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헬브람은 아주 편안한 얼굴로 돌아섰다. 웃고 있었다.
* 그걸로 끝이었다. 원념들이 디안느의 손아귀로 헬브람의 투구를 짓이겼다. 작은 소음과 함께 헬브람이 누리던 세 번째 삶도, 은원의 고리도 끊겼다. 고서는 그 직후 디안느를 사로잡고 있는 탁한 기운이 급속도로 흩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여전히 몇몇은 오갈데 없는 분노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 격렬하고 끈질기게 디안느를 얽어맸다. 디안느의 자아는 누구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원념의 것이었다. 바로 그때 갑작스런 강풍이 불어와 디안느가 휘청거렸다. "금풍의 역린".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원념에게 "이젠 잠들어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 ]]과 함께 그 자리에 있어다. 원념을 몰아낸 그녀는 친구의 질문에 당연하게 대답했다.
- 정승환(가수) . . . . 37회 일치
[[분류:한국 남가수]][[분류:1996년 출생]][[분류:정선군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같은사람:[[김지수(배우)|배우자]]}}
|| '''가족''' ||<(> 부모님, 배우자:[[김지수(배우)]] ||
>목소리를 들어보면 작곡가들이 사랑할수 밖에 없는 1위의 목소리에요. 왜냐하면 저 나이때는 자신이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노래를 앞서가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뒤로 빠짐으로서 노래를 앞에 두잖아요. 저것은 가수로서의 최대의 장점인거 같아요.
목소리 자체는 중저음과 중고음을 섞으면 나올듯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성종으로 치자면 하이 [[바리톤]]에 속하며 발성 자체가 좋고 피지컬이 우수해 상당한 성량과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 특유의 음색에서 오는 호소력과 고음에서의 풍성한 맛이 합쳐져 사실상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정통파 발라드에서 큰 강점을 보인다.
감정표현 역시 많은 이들이 칭찬한다. 일반적인 오디션 참가자들의 경우 노래를 완곡하는데 중점을 두고 다소 발성이나 기술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정승환의 경우 어느 정도 발성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에서 연습을 거듭해 노래에 섬세한 강약조절과 표현력까지 상대적으로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에 서술한 발성적인 능력보다도 오히려 이 표현력과 감성이 정승환의 숨겨진 큰 무기. K팝 스타에서도 이런 섬세함이 다른 참가자들과 정승환을 구분짓는 크나큰 개성이자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유희열]]이 언급했듯 표정연기도 수준급이다. 발라드에서는 감정이 전부라 할 만큼 노랫말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노랫말과 항상 일치하는 표정과 특히 담담한 도입부에서의 표정과 절정에서의 표정은 그의 감정선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또한 본격적으로 본인만의 감성에 들어가면 원래의 음색에 비음이 약간 섞이는데 이부분이 듣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애절하게 들려 음색자체가 애절한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 이런 이유로 정통 발라드와 OST에 최적화된 목소리로 평가받는다.
첫회(1라운드) 출연 당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시크한 매력을 뿜었던 그는 틀에 박힌 교육이 싫어서 노래 배우기를 거부했다는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는 모습과 심사위원들이 수능 준비 상태를 묻자 "아니요"라고 덤덤하게 대답하고 이어 "노래만 하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발언을 하는 등의 모습은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범수의 [[http://tv.naver.com/v/239492|'지나간다']]를 선곡하여 감정을 잡아 진지하게 노래의 느낌을 표현하며 부른 것이 청중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되었고, 무대가 끝난 후에는 심사위원과 청중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희열로부터 '한 끗이 다르다' 는 평을 받으며 가볍게 2라운드에 진출했고, 무대에서 내려오며 그는 믿기지 않는 듯 볼을 꼬집는 모습을 보였다.
본선 2라운드인 '랭킹오디션'에서 김조한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를 놀라운 가창력과 감정으로 열창했다. 심사평으로 유희열은 "가요로, 특히 남자 참가자가 심사위원 셋의 마음을 뺏어간 건 정승환이 처음이다. 바로 음반을 내도 된다"고 극찬했다. 이어 "내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발라드 남자 가수 특집을 하면 정승환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3주에 걸쳐 음원차트 1위를 했는데, 이는 오디션계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네이버TV의 조회수도 680만을 돌파했는데 이는 2014년 전체동영상 조회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아직도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으며 역대 조회수 순위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 유희열이 7집 <Da Capo>를 발표했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싶다'에 자신의 앨범이 음원차트에서 밀렸다. --그 사실에 박장대소하는 박진영--] 한편 작곡가 윤일상 역시 정승환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선물을 전하는 등 고마움을 표했다.
1월 11일 방송된 팀미션 서바이벌 매치로 '마시멜로' 박혜수, 남소현과 대결을 펼쳤다. 팀명은 '올드보이'로, 앤의 '아프고 아픈 이름' 을 선곡하였다. 이 라운드에서 그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결국 음이탈까지 내고 만다. 혹평을 받은 와중, 정승환은 합격했지만, 같은 팀이자 최고 연장자 김동우는 팀 미션에서 탈락하게 됐다. 이에 정승환은 미안한 마음에 폭풍눈물을 흘려 눈길을 끌었다.
4월 12일 열린 결승전에서 ‘니가 있어야할 곳’, ‘만약에 말야’ 등을 열창하며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경쟁자인 [[케이티 김]]과 근소한 점수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정승환은 “그동안 받은 많은 관심과 격려가 경연을 하는데 큰 힘이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4월 19일에 방송된 케이팝스타4 스페셜에서 그가 만들었었던 유일한 자작곡 '어린왕자' 가 공개되었는데 이곡은 소설 '어린왕자'를 읽고 영감이 떠올라 시를 쓰고 멜로디를 썼다고 한다. 곡의 주제는 평화를 바란다는 내용이였는데 반응도 매우 좋아서 싱어송라이터로도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안테나 V앱에서 곡을 쓰고 있다고 본인이 언급했다. ~~애초에 유희열은 자작곡을 쓰지 않으면 데뷔를 안 시켜주는 듯하다~~
2016년 1월 29일 [[서경대학교]]가 발표한 수시전형 합격자 명단에 포함됐다. 우수한 내신 성적과 탄탄한 노래 실력으로 가장 높은 경쟁률(407대 1)을 기록한 실용음악학과 보컬전공에 당당히 합격했다.[[http://news.joins.com/article/18977498|#]]
2016년 3월 27일 V앱에 안테나 엔젤스(이진아,권진아,샘킴,정승환)으로 출연하였다.[* 이날 자신의 별명이 '싕' 인 이유를 밝혔는데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던 닉네임이라고 한다.]
2016년 5월 21일에 tvN의 '노래의 탄생' 프로그램에서 [[윤상(가수)|윤상]]&[[스페이스]] 카우보이 팀의 보컬로 발탁되어 [[전인권]]이 작사작곡한 '축하해요' 곡을 [[주니엘]]&[[손승연]] 과 함께 불렀고 현재 시각으로 '노래의 탄생' 네이버TV에서 전체 조회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너무 긴장해서 여자화장실을 대기실로 착각하고 들어갈뻔 했다고 한다.]
제목은 '너였다면'이고 실시간 최고순위를 기록하자면 멜론 6위,엠넷 1위,올레뮤직 1위,네이버뮤직 1위,소리바다1위,카카오 1위,몽키3 1위, 벅스 2위, 지니 3위 를 기록하고있다. 6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페이스북 같은 곳으로 인해 역주행을 거듭해서 모든 음원차트의 20~40위권에서 OST 중 가장 길게 롱런하고 있다.[* 새로운 곡들이 나오면 잠시 순위가 밀려났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순위가 더 높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OST계의 우아하게?--]
최근에 유희열이 [[권진아]]의 데뷔 쇼케이스에서 그를 11월에 데뷔시킬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확실하지는 않다. 권진아도 2015년 9월 데뷔 예정이었다가 11월로 미뤄졌으며 일정이 밀리고 밀려 해를 넘겨 9월 19일에 데뷔했기 때문. 자세한 것은 [[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60919130202295|기사를 참조]] 이후 '목소리'라는 앨범으로 11월 29일 정식 데뷔가 확정되었으며, 앨범 예약판매가 진행중이다. [[http://entertain.naver.com/music/now/read?oid=468&aid=0000212260|#]]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복면가왕]] 91회에 '지방방위대 디저트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첫 [[MBC]] 출연을 했다. 이후 1라운드를 이긴 다음 2017년 1월 1일 새해의 첫 복면가왕 92회에 나와서 2라운드에 '이별택시'를 불러서 [[하얀시 눈이군 쌓이면 우리마을]]을 꺾고 올라갔으며 3라운드에 '가질수 없는 너'를 부른 뒤 [[신비주의 아기천사]]에게 밀리면서 준우승했다. 정체를 밝힌 뒤에 [[안테나 뮤직|자신의 소속사]] [[유희열|사장]]에게 이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고 신분을 가리고 도전해 음악을 즐기면서 노래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날 판정단인 [[김현철(가수)|김현철]]은 20대 초반의 나이라서 실력에 비해 원곡 해석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절제미가 돋보여 가수로서의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극찬을 했다.
2017년 안테나 소속 가수 11팀이 함께하는 콘서트가 국내, 해외에서 진행되었으며 모두 매진 달성. 그가 안테나를 선택한 것이 탁월한 선택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아마 yg나 jyp로 갔다면 이렇게 여러번에 걸친 콘서트는 못 가졌을 듯. 단독 콘서트가 힘든 가수들에게 비슷한 성향의 소속가수들을 묶어 대형 콘서트를 자주 열어주는 유희열 대표의 기획 덕택인 듯, 활발하게 팬들과 만나고 있다.
- 페어리 테일/507화 . . . . 37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의 눈물도 나츠 드래그닐과 그레이 풀버스터는 흥분을 가라앉힌다.
* 엘자는 그들이 함께 자란 시간을 떠올려 보라고 호소하며 마카로프 드레아가 항상 하던 길드의 이념을 들려준다.
* 겨우 안심하려는 때, 아이린이 등장. 아이린은 엘자에게 '''"나는 너이고 너는 나"'''라는 말을 하는데.
* 나츠 드래그닐과 그레이 풀버스터의 싸움에 끼어든 엘자. 상처투성이가 됐음에도 과감히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선다. 그런데 엘자는 언제나처럼 강단있는 모습이 아니다.
* 엘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츠와 그레이는 넋을 놓는다. 엘자가 눈물을 보인다는건 과거에도 두 사람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 엘자는 눈물을 참으며 서로의 얼굴을 잘 보라며 싸우는게 적인지 아군인지 묻는다. 그리고 무슨 일로 싸운 건진 모르겠지만 한때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꾸짖는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
* 엘자는 생전에 마카로프 드레아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따라한다.
|| 때로는 싸우는 것도 좋다. 서로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사는건 당연한 일.
* 엘자는 마카로프가 항상 그랬듯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두 사람을 끌어안는다.
* 그때 그레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쥬비아 록서가 웬디 마벨과 샤를의 부축을 받으며 그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쥬비아는 자신은 무사하다고 알리는데 샤를이 "무사하다고 할 만한 상처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작은 상처는 아니다. 어쨌든 생명엔 지장이 없이 돌아온 쥬비아. 그레이는 놀란 탓인지 안심한 탓인지 그대로 무릎이 풀리며 정신을 잃는다. 쥬비아는 급하게 달려와 스러지는 그레이를 붙드는데 역시 몸상태가 나빠서 그런지 함께 기절해 버린다.
* 웬디는 엘자에게 방금 전에 봤던 빛에 대해서 묻는다. 웬디는 아직 마카로프의 일에 대한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엘자는 대답하지 못하고 단지 눈물만 훔친다.
* 한편 엘자 측에서는 나츠와 그레이를 폴류시카에게 데려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엘자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감지하는데 곧 커다란 폭발이 덮쳐온다. 폭발의 연기가 가시고 나타난 것은, 스프리건 12 최강의 여성 마도사 아이린. 엘자에게 "다시 만나게 됐다"고 말하며 등장. 구면인 것처럼 군다.
* 루시는 아는 사람이냐고 묻지만 엘자는 모른다고 답한다. 웬디는 분명 엘자와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엘자가 누구냐고 묻자 아이린은 이렇게 답한다.
나츠와 그레이, END 대 멸악마법의 대결은 일단락. 하지만 재대결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엔 END의 각성이 멈췄기 때문에 엘자가 막을 수 있었지만 제레프전에서 END로 완전 각성한다면 그레이가 나츠를 막기 위해 재대결하게 될지도 모른다.
엘자가 두 사람을 타이르면서 끌어안는 장면 때문에 가슴만질래 드립을 떠올리는 사람도 꽤 있다. 사실 기존에는 쥬비아와 루시가 나타나서 두 사람이 무사한걸 보고 싸움을 멈춘다는 설이 대부분이었는데, 결국 두 사람이 나타나긴 했지만 싸움을 말린건 어디까지나 엘자.--다시 고개드는 엘자 진히로인설-- 엘자가 나온게 의외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나츠와 그레이가 길드 안에서 가장 가깝고 깊은 관계가 있는 상대는 바로 엘자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자란데다 엘자는 언제나 누나역할을 해왔기 때문. 특히 둘은 길드=가족이라는 관념이 가장 강한 멤버들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싸울 때 말린다면 엘자가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
엘자는 오랜만에 설움이 복받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엘자 역시 마카로프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마카로프가 장렬히 전사, 그러고도 아직도 많은 적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남동생이란 것들이 뜬금없이 죽어라 치고 받고 싸우니 울고 싶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누나 말 좀 들어라--
엘자와 아이린의 관계 떡밥이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다. 모녀지간, 자매지간 등 여러가지 설이 있었지만 이번 주에 나온 "나는 너, 너는 나" 발언으로 평행세계의 엘자나 미래세계의 엘자가 아니냐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 홍경인 . . . . 37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박애리[* [[팝핀현준]]의 부인과 이름이 같다.], 형, 누나 ||
[[대한민국]]의 [[배우]]. 1990년대 충무로 최고의 유망주에 아역배우계에서 레전드로 회자되는 배우며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다.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와 [[최민식]]이 나온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 [*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태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상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1995년 '이천 춘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수상. 당시 겨우 '''만 19세'''.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계속 보유 중이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백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백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선덕여왕(드라마)|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광개토태왕(드라마)|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
좋은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시트콤에서 얻은 이미지 때문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 16살 때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냥 그 나이에 맞는 연기 그런게 아니라 엄석대 역이었으니. 19살 때 [[전태일]] 역으로 분신자살까지 소화하며 명 연기를 펼치다가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는 주연을 못하게 된다.] 그래도 군전역 후에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며 다시 재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본좌급의 연기력을 갖고도 지나치게 작은 키 때문에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하진 못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인 [[송승헌]], [[소지섭]] 등이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소지섭]]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2013년 11월 중반부터 12월 중반까지 EBS 라디오연재소설에서 최민석 원작의 '풍의역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물을 --심지어 열여섯 소녀까지-- 미친연기력으로 소화했는데, 특히 '오중사'가 압권. 라디오 연재소설의 공개방송인 낭독의 힘에서 현장낭독을 할 때는 원작자인 최민석 작가가 경인씨의 신들린 연기에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며 제책이 이렇게 재밌었나 싶었다고 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역할이 뭐냐는 질문에 '앞잡이'--고자 두목--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공개방송에서 어느 낭독 전날 술을 마셨다고 밝히며 자긴 목소리가 잠겨서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날 제작진은 목소리가 더 듣기 좋아졌다며 좋아했다고. --술의 파워--
2016년 12월 11,18일에 방송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참가해 모처럼 시청자들을 찾았다. [[동네방네 스피커]]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내 안에 첫눈 있다 스노우볼]]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조율하고 가실게요! 바이올린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를 가수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데꿀멍...... 뭐 정식 앨범을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가 매너리즘이 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연기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우 숫자 뒤에 K가 안 붙는다며 이번을 계기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2> [[2000년]] ||<|3> MBC || 신 귀공자 || ||
||<|4> [[1996년]] ||<|3> MBC || [[남자셋 여자셋]] || 홍경인 || ||
|| 2002년 || 남자 태어나다 || 만구 ||
|| [[2001년]] || [[달마야 놀자]] || 막내 ||
||<|2> 1995년 || 영원한 제국 || 세자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아역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
- 권희동 . . . . 36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분류:1990년 출생]] [[분류:개신교 신자]] [[분류:타자]] [[분류:포수]]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분류:상무 피닉스 야구단/전역]]
|| '''포지션''' || [[외야수]][* 2013 시즌에는 주로 우익수를 보았고, 2014 시즌부터 대부분 좌익 출장에 가끔 중견수, 우익수를 보았다. 이후부터는 좌익수 고정. 2018 시즌에는 [[김준완]]의 입대로 중견수 자원에 공백이 생기면서 다시 중견수 출전이 늘어났다.]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86번]]([[NC 다이노스|NC]])[* [[http://youtu.be/uvuodHYib-8|XTM 워너비 담벼락토크]]에서 출연했을 때, 4라운드까지 지명이 안되자 친구한테 '군대 말뚝 박을까?'하고 말했다고 한다.(...) [[임용수]]가 그때 심정이 암담했겠다고 위로하니 돌아온 대답이 ''''중계방송 끝나고 그냥 잤어요''''(...) 그런데 자는 도중에 전화로 9라운드 지명소식을 들었을 때 '''"아 진짜?"하고 다시 잤다고 한다'''(...) 인터뷰했던 임용수는 포복절도.] ||
대학 4년 동안 타율은 0.292로 3할이 안 되었지만 출루율 0.411, 장타율 0.624에 8홈런 58타점을 기록한 슬러거 타자다. 다만,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명순번이 낮은 것은 타격에 비해 처지는 외야 수비 능력때문이다. 원래 경주고 시절까지 3루수였다가 대학 진학 후에 외야로 전향한 터라 수비가 많이 미숙했다.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순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절 모교인 경남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순도 어느새 5번까지 상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영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4월 13일 SK전에서 3점홈런을 날리며 자신의 프로 첫 홈런이자 팀의 홈경기 첫 홈런을 기록했다.
8월 1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3점 홈런을 쳐냈다. 시즌 10호 홈런. 같은 날 1회에 투런 홈런을 쳐낸 [[나성범]]과 함께 올 시즌 둘 뿐인 두자릿수 홈런을 달성한 신인 타자가 되었다. 특히 권희동의 경우, 2009년 [[안치홍]] 이후 4년만에 프로 입단 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거라 더 의미가 컸다.
시즌 최종 성적은 121경기 397타석 71안타 '''15홈런''' 54타점 타출장 .203/.280/.393 OPS 0.672을 기록했다. 15개의 홈런은 [[이호준]]에 이은 팀 내 2위 기록이자 2013년 신인 중 최다 홈런 기록.
이번시즌에는 한화, 정확히는 대전구장 원정에서 유별나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전구장 타율은 4할대 후반에 달하며, 홈구장이라 훨씬 많은 경기를 치르는 마산구장보다도 더 많은 타점을 기록했다. 덕분에 [[한화 이글스 갤러리]] 등지에선 올시즌 가장 짜증나는 선수로 자주 거론된다. 한화와의 경기가 아닌 다른경기에서 삽이라도 푸면 더더욱(...).
7월 15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BO 퓨처스 올스타전|퓨처스 올스타전]]에서 솔로 홈런과 2루타를 쳐내며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또한 7회 수비에서는 멋진 다이빙 캐치도 선보였다. 올스타전 MVP까지 노려볼 만 했으나 [[신성현]]의 무려 5타점을 쓸어담는 활약으로 수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날 기준 복귀까지 68일 남은 시점에서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는 충분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9월 22일 바로 1군에 등록된 후 6번 중견수로 출전했고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내며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복귀하자마자 담장을 때리는 안타를 쳐낸 후 2루에서 아웃되는 개그를 펼친 건 덤.
10월 21일 플레이오프 1차전 4번타자로 출장한다.[[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7&aid=0002831242|기사]] 무사 1, 3루의 상황의 폭풍삼진(..)으로 아무래도 경험부족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편.
4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 2삼진(!!) 을 기록했다 !!! 솔로홈런을 친 LG의 4번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에 반해 [[김경문]] 감독의 완벽한 선수기용 실패가 되어버릴 뻔 했지만 다행히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안타를 뽑아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10월 22일 플레이오프 2차전 7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의 성적으로 경기중 [[김준완]]과 교체됐다. 22일 기준 타율은 1할4푼3리. 타격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2경기 연속 선발 기용한 [[김경문]] 감독의 예상과 달리 최악의 부진을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당일 기아와의 경기 반짝 활약 이후로 계속 기용되어 모든 NC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근데 이건 팀 타선이 다 부진했던 상황이라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장타력이 있는 우타 거포. 원래 컨택에서 약점을 보이던 선수였지만 방망이를 짧게 잡고 타격자세를 컴팩트하게 바꾸어(비록 그만큼 장타력은 잃었다고 해도 워낙 힘이 좋은 선수라) 이제 컨택과 출루율도 리그 평균급의 타자로 올라섰다. 2017 시즌을 19개의 홈런과 86타점, .286/.371/.458의 슬래시 라인으로 마무리하며 성장한 공격력을 보여주었고, wRC+ 111.3, [[WAR]] 2.43을 기록하며 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을 보여주었다. 물론 [[타고투저]]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KBO 리그]] 특성상 코너 외야수로서는 조금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는 공격력이기에 조금 더 발전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루키 시즌(2013년 시즌)때는 타율과 출루율은 심각하게 낮았지만 장타력은 여전히 좋았던 타자였다. 1군 데뷔 시즌 맞이한 397타석에서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을 정도로 힘이 있는 선수. 특히 2사 후 타점이 [[http://sports.donga.com/3/all/20130913/57652988/1|많고]], 홈런 상당수가 2점차 이내의 접전에서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599691.html|나오는]] 등, 타점의 영양가가 높아 [[공갈포]] 논란이 거의 없다. 이런 장점을 갖고 있기에 2013 시즌은 뎁스가 얇은 신생 팀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었었다.[* 사실 2013년의 타격이 공갈성이 있긴 했지만 [[BABIP]]이 0.214에 불과할 정도로 운도 따라주지 않던 시즌이었다. 이는 압도적인 리그 꼴지의 기록. 그 이후에는 3할 초중반 대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에서는 1할 타율을 가지고 있던 당시 공포의 1할 타자, 숫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32146|타자로 소개했다.]] 힘있는 타자는 상당히 귀하고 귀하기 때문. 2013 시즌에는 팀의 뎁스가 워냑 얇았고, 일발 장타력이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낮은 타율과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다.
* 본인의 응원가를 매우 싫어했다. [[http://youtu.be/ofid9L1pI6k|이게 충격과 공포의 권희동 응원가]]. 개막전부터 선발로 출장했지만 2경기 동안 안타 하나 치지 못했다. 그런데 본인 부탁으로 응원가를 끄고 나서는 2루타 폭발!! 참고로 이 안타는 NC의 순수 신인이 친 첫 안타다. 이후 다른 응원가로 바꿨으나 인기가 워낙 좋아서 결국 원래 응원가를 쓰게 되었다. 급기야 해설자들도 따라할 정도.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그러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2017년 들어서 쓰지 않는다]]. 현재는 미국으로 떠난 [[에릭 테임즈]]의 응원가를 받아 쓰고 있다.
* 경남대 야구부의 김용위 감독은 권희동이 대학 시절에 선수와 목회자의 길에서 방황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저 야구를 하기 싫은 마음에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http://www.ncdinos.com/ncboard/storyview?seq=2346&board_id=story|자랐다고 한다.]]
* 데뷔 시즌과 두번째 시즌엔 [[SK 와이번스]]에게 상당히 강했지만, 풀타임을 처음 뛴 2017년에는 SK에게 0.189의 타율로 부진했던 대신 [[롯데 자이언츠]]에게 0.393의 타율과 0.714의 장타율을 올렸다. ~~돌아가면서 패기?~~
- 김진환(iKON) . . . . 36회 일치
||<:><#FFC8C8> '''{{{#FFFFFF 출생}}}''' ||<(> [[1994년]] [[2월 7일]] ([age(1994-02-07)]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FAA8A8> '''{{{#FFFFFF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FF4646> '''{{{#FFFFFF 특기}}}'''||<(> 외국어[* [[문제적남자]]에서 어머님이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이라 외국어를 어릴 때부터 많이 접했다고.], 트럼펫, 수영 등 ||
||<:><#FF0000> '''{{{#FFFFFF 별명}}}''' ||<(> 뿌요[* 뿌리부터 요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뿌랄 요정이다, WIN 참고.--], 지난, 지나니, 나니[* 일본 인터뷰에서 이렇게 불러달라고 했다. 가족들도 부르는 별명이다.], 거난영[* [[B.I]]가 '얼굴이 너무 하얀 지난형'을 이상한 글씨체로 써서 거난영처럼 보여서 생긴 별명], 13센치 요정[* 어느 팬이 사진을 자로 쟀는데 13센치여서 붙여진 별명... 트리비아 문서의 세번째 트리비아 참고], 맏내, 귀염뽀짝감귤[* [[NEW KIDS : CONTINUE]] 컴백 카운트다운 V APP에서 팬이 보내준 별명. 나머지 멤버들이 1분동안 이 별명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진환이 그 그림이 자신의 무슨 별명인지 맞추는 거였는데 결국 못 맞췄다. ~~귀엽고 뽀샤버리고 싶은 뭐 그런 거 아닌가요?~~]||
||<#cf1020><:>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SNS}}}''' ||<(> [[https://www.instagram.com/gnani_____/|[[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25|인스타그램]]]] [[https://mobile.twitter.com/iKON_gnani_____|[[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25|트위터]]]][* 계정을 만들 때 멤버들 모두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Return(iKON)|Return]] 활동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는데, 유일하게 자신의 셀카로 사진을 바꿨다. ~~귀여워~~]||
레전드로 회자되는 170527 BLING BLING 직캠.
WIN의 배틀에서 춤의 전설 이현도에게 극찬을 받았다. '춤선이 가장 곱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고 스스로도 춤에 자신이 있어보인다. 작고 날렵하여 위험한 아크로바틱을 많이 담당한다.
iKON의 '''맏형'''으로 연습생과 데뷔 초 때 멤버들에게 보컬과 춤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생활면에서 멤버들을 모으는 엄마 역할을 한다고 데뷔 초 때 멤버들이 자주 언급했다. 특히 [[BOBBY]]는 진환을 정신적 지주라 칭하며 진환이 자신이 한국에 남게 된 이유라고 자주 언급했다.[* 이는 최근 Star Road에서도 언급했다.] WIN에서 [[송윤형]]네 고기집에 갔을 때 윤형이 진환에게 쓰는 편지를 읽다가 울기도 하고. 마지막에 합류한 정찬우 역시 힘든 일이 있으면 진환에게 상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는 멤버들이 모두 성장해서 더 이상 팀에 엄마 역할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본인이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멤버들이 믿고 따르며 팀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멤버들의 정신적 지주인 것은 확실하다. 방송 후에 이런 말은 하지 말라는 식으로 멤버들에게 조언도 많이 하는 듯 하다. 무대도 어떤 식으로 하라고 디렉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 자신을 밤에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자주 소개한다. 실제로 목소리가 좋으며 말투가 느리고 차분하다.
* '온 세상을 거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돌'로 모 커뮤니티에 올라갈 정도로 앙증맞은 사이즈를 자랑하지만 오피셜 프로필이 없는 상황. 팬들은 김진환 13cm 설을 밀고 있으며, 일본 팬미팅에서 진환을 그린 바비와 찬우 등이 13cm, 요정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유래는 한 팬이 김진환의 키가 궁금해서 모니터에 나타난 키를 재본 결과 정확히 13cm가 나와서..~~무려 13cm에 육박, 요정치곤 큰 편~~최근 발매된 펩시의 보틀에 프린트된 김진환의 전신이 변함없는 13cm로 측정되기도.
* 요정 스펙에 상남자스러운 면이 있다. 그럴 때는 거난하다, 거난영, 김거난이라고도 불린다.[* 김진환의 폴라로이드에 '얼굴이 너무 하얀 지난형'이라고 쓴 비아이의 글씨가 다소 자유분방하여 '거난영'으로 읽힌 것이 유래.]
* 치명적인 한 방(?)을 많이 날린다. 뿌랄친구,상냥하게 말해 이건 부탁이야 ,한 명 빠진다고 한 명만 남지 않아 다 모가지야, 부숴버릴거야, 아츄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니 얼굴을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아니지이 너만 못생긴 거지[*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간 바비가 아이콘이 못생긴 이미지가 될까봐 걱정하자] 등...
* 2014년 가을까지 관람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믹스앤매치 오사카 자유시간 편에서 [[구준회]]와 함께 탔던 것이 난생 처음이라고. ~~탄 후에 감상평은 " 경치는 좋으나 남자 둘이서는 타긴 좀.. "~~
* 애장품으로 절대바지(엄청나게 자주 방송에 노출된 바지)를 내놓았는데, 배송 받은 팬이 후기에 바지 사이즈가 xs라는 글을 올려 충격을 주었다.
* 아이콘 정규 1집 발표 후 가진 iKoncert 투어에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커버댄스를 선보였다. 세라복 원피스를 입고 가발을 쓰고 나오며, 이름은 진상(한국콘서트), 지니(일본콘서트)로 부른다. (이 다음 순서인 EXID의 위아래는 멤버 전원이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참여한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인드라 걸그룹 표정을 열심히 연구했다는데 그 이후로 아이돌력이 눈에 띄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걸그룹 연기를 하는 도중 불쑥불쑥 거난영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억누르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 아이콘 멤버들 중 같이 씻기를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이다. 본인에 의하면 주동자라고.. 바비, 비아이, 진환 이렇게 셋이 있을 때부터 같이 씻기 시작했다고 한다. 타블로는 이를 듣고 진환에게 '같이 씻기 좋은 상'이라고 평했다. 비누 같다나... [* 151012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
* 눈물이 많다. 본인이 인정한 '아이콘에서 눈물이 가장 많은 멤버.' 팬들 사이에서 울리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한편 어쨌든 우는 건 맴찢이기 때문에 내적 갈등을 선사한다 아무래도 고향인 제주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니까 개인적으로 힘든듯하다. ~~"진환아 울지 마 ㅠㅠ 너무 안 울진 말고ㅠㅠ"~~ ~~엄마 생각을 하다 숙소에서 울었다고 한다~~ 일단 방송에선 눈물을 보이는 일이 적다 게다가 첫출현 데뷔무대후한 첫1위때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 본인 인생 자체가 섹시다, 아이콘의 섹시 담당, 섹시 오빠 등 언제나 섹시에 집착한다.
*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친누나가 남자아이돌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라고. ~~ 잘 키운 남동생 하나 열 아이돌 안 부럽다 ~~ ~~ 진환의 누나는 신화창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본인은 누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원타임(대니), 세븐, 빅뱅 등 YG 아이돌을 선망하였다고 언급하였다.
* 쇼미더머니 시즌 5 준우승자인 [[씨잼]]과 중학교 동창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36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43. '''승부해 보자고! 랏파군!'''
* 키리시마는 패트껌이 당하는걸 보고만 있게 되자 자괴감에 빠지나 패트껌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죽어가자 억지로 몸을 움직인다.
* 키리시마는 "경화가 깨지자 마자 다시 경화"하는 대항책으로 랏파의 러쉬를 버텨내고 반격까지 시도하나 텐가이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는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 연합군. 그러나 [[이리나카]]가 판 함정에 빠져 [[아이자와 쇼타]]가 고립될 뻔한 걸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지키고 대신 희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 앞에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랏파"와 "텐가이". 랏파는 저돌적인 격투가로 개성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큰 덩치와 파워, 강력한 펀치연타가 특기다. 텐가이는 차분해 보이는 남자인데 굉장한 강력한 배리어를 치는 개성.
패트껌이 랏파의 러쉬를 버티고 반격을 가하자 배리어로 막는다. 랏파는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배리어를 치워달라고 하지만 텐가이가 오버홀의 명령은 그런게 아니라고 거절한다. 이쪽은 "창과 방패"의 조합, 저쪽은 "방패와 방패"의 조합이라 상성상 유리하니 이 콤비네이션으로 처리하자고 말한다.
* 그런데 랏파가 황당하게도 텐가이를 공격한다.일단 작은 배리어를 쳐서 그걸 막는 텐가이. 랏파에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적도 아군도 없는 모양이다. 극는 오버홀은 "오바호"란 자기만의 애칭으로 부르는데, 이 콤비도 "오바호"가 멋대로 정한 거니 상관없고 자신은 누구든 패죽일 수만 있으면 만족이라고 말한다. 텐가이는 질렸다는 듯이 배리어를 해제해주며 그렇게 해서 처리할 수 있으면 맘대로 해라고 허락해주며 "오바호가 아니라 오버홀님"이라 정정한다. 랏파는 "좋은 히키코모리"라고 응수.
* 배리어가 걷히자 다시 속사포같은 러쉬가 쏟아진다. 패트껌은 크게 밀려나면서도 상활을 냉철하게 파악한다. 우선 랏파와 정면승부는 무리. 공격도 보고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사정거리 안이라면 무조건 맞는다고 보는게 좋겠다. 위력도 자신의 지방으로 상쇄가 불가능할 지경. 소모전으로 흘러간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방금 전 랏파와 텐가이가 다툰 듯 보이는게 돌파구가 될까? 어려워 보인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위험해지면 다시 배리어를 칠게 뻔하다. 그 강도는 아까 때려본 바로는 철벽. 불행하게도 현재 패트껌의 파워로는 뚫을 수 없다. 결국 텐가이를 어쩌지 못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키리시마는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뜸 랏파를 향해 "나도 전에는 무투파"였다며 그쪽이 지쳐서 공격을 멈추는 것과 자신이 버티지 못하는 것, 창과 방패 중 어느 쪽이 강할지 승부하자고 도발한다. 당연히 기쁘게 응하는 랏파. "착한 돼지"라고 극찬한다. 하지만 아깐 소모전으로 나가면 반드시 진다고 하지 않았나? 패트껌의 심정은 절박했다.
랏파는 텐가이가 배리어를 쓰지 않겠다 약속하자 "착한 사람들 뿐"이라 기뻐하며 패트껌과 맞부딪힌다.
* 두 중량급의 격돌. 일찌감치 뒤로 밀려난 키리시마는 지켜볼 뿐이다. 두 팔은 부러졌고 자긍심도 박살냈다. 설마 언리미티드 모드가 이렇게 쉽게 깨질 줄이야. 하지만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다. 패트껌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다. 대결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기관총의 연사같은 러쉬가 쉴 새없이 패트껌을 때렸다. 그는 손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그 충격으로 몸이 떠오를 지경이다. 패트껌이 충격을 다 흡수하지도 못하는 것, 그럼에도 자신을 감싸기 위해 싸움을 자청했음을 키리시마는 알았다. 그럴 수록 자괴감이 사무친다.
그는 터져나오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을 이를 악물어 참는다.
* 키리시마는 지금이라도 뭔가 할 수 있는게 없나 궁리한다. 패트껌이 죽는다. 자신 때문이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건가? 자신에게 아무리 질문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자신을 질타하고 훈계해도 그가 할 줄아는건 버티고 견디는 것 뿐. 하지만 그게 안 되지 않는가?
>아무 것도 없는 거냐 이 자식!
그렇게 자문자답을 되풀이하는 동안 눈동자에 공포가 비친다. 덩치들의 싸움에 관심이 없던 텐가이가 그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눈빛에 어린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키리시마가 공포에 물들었고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될 거라며 불쌍하게 여긴다.
* 패트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지만 의식을 놓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그렇게 자신을 격려했다. 랏파는 그가 완전히 그로기라고 생각해서 "거짓말이지? 더 할 수 있지?"라고 도발한다. 맞는 말이다. 패트껌은 휘청일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 랏파는 패트껌이 완전히 "방패"라고 오해하고 있다. 패트껌은 그게 랏파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 장담한다. 그에게도 "창"이 있다. 단지 그걸 구현하기 위해선 자신의 방패를 포기해야 할 뿐이다. 랏파가 패트껌 몸에 쌓은 충격은 고스란히 "흡착"해서 오른팔에 "담았다". 이 축적엔 막대한 열량이 필요해 방패인 지방을 활활 태우고 있다. 그래서 방패를 포기하는 것. 그러나 이 과정이 끝났을 때 어떤 방패도 쳐부수는 "창"이 생긴다.
* 패트껌이 이런 계산으로 견디고 또 견디는 와중에, 텐가이가 그의 모습에서 뭔가를 포착했다. 육감같은 것인가? 아무튼 랏파에게 소리쳐서 "뭔가 꾸미고 있으니 빨리 처리해라"고 주문한다. 좋지 않았다. 이미 패트껌은 한계였다. 충격은 잘 모으고 있지만, 예상보다 방패가 사라지는 속도가 빨랐고 충격을 내뿜을 자세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텐가이의 외침에 호응하듯 랏파의 러쉬가 기세를 더올린다. 그리고 그때. 키리시마가 나타났다.
* 이 격돌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걸까? 결국 텐가이가 약속을 깨고 배리어를 친다. 키리시마의 혼신의 공격은 막에 가로막혀 튕겨나간다. 그와 동시에 키리시마의 저력도 끝났다. 텐가이가 왜 무의미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키리시마를 잘못 본 것처럼, 이번에도 보는 눈 없는 말이었다. 키리시마가 뒤로 넘어가자, 그 뒤에서는 기회를 잡은 "창"이 번뜩였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36회 일치
* 클로버 국왕은 눈 앞에서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파악할 역량 조차 없는지 "짐 앞에서 무슨 짓들이냐"고 아우성칠 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마법제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당장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랜길스 보드]]의 요청을 허가한다. 하지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붙으려 하자 시간 구속마법 "크로노 스테이시스"로 정지시킨다. 실전같이 싸워주면 좋긴 한데 어쨌든 이건 "시합"이라는 것. 하지만 둘의 열이 식기 전에 준비를 마치겠다고 말한다.
* 그래서 흩어져 있는 양팀 인원들이 소환된다. 검은 폭우의 아지트로 날려졌던 [[셋케 브론자차]]는 [[야미 스케히로]]의 고독한 화장실 타임을 방해한 죄로 잔뜩
* 선수가 모이자 마법제가 바로 시합을 셋팅한다. 각 진영의 크리스탈을 스타팅 위치에, B팀의 경우 바로 이 자리, G팀의 것은 반대편에 놓았다. 시합 규칙은 "먼저 상대방 크리스탈을 파괴한다"를 유지. 이상의 설명을 마치고 시간 구속 마법이 해제된다. 시합 돌입.
* 열이 오를 데로 오른 아스타와 랜길스였지만 그대로 맞부딪히지는 않았다. 둘은 동료들이 소환된 깨닫고 바로 각자 동료들에게 접근해 상황을 전달한다. 아스타는 먼저 잭스와 미모사에게 이런 일을 벌여 미안하지만 랜길스를 이기고 싶으니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둘은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으나 곧바로 승락. 미모사는 랜길스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일단 임전태세에 돌입한다. 잭스는 명색이 마법기사들이 사적인 감정으로 다투냐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단연코 랜길스가 글러먹었으니 협력해준다"고 역시 임전태세를 취한다.
* G팀의 프라길은 자기 거점을 지키다 불려오던 참이라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가 설명을 요구했지만 랜길스는 다짜고짜 "잠자코 있어라"고 물러서게 한다. 셋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군까지 포함해 전부 쓰레기 뿐이라며 자기 혼자 힘으로 자기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겠다고 선언한다.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백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식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식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식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랜길스는 시작부터 B팀의 크리스탈을 노렸다. 아스타가 참격으로 베어냈다. B팀은 당장은 1회전의 전술 그대로 아스타와 미모사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로 돌진, 잭스가 원호하는 포메이션을 취한다. 랜길스는 아스타의 반마법 검을 경계해서 저쪽이 G팀의 크리스탈에 도달하기 전에 크리스탈과 B팀 인원을 한꺼번에 짓뭉개기로 결정한다. 그는 핀랄에게 썼던 구체 공간마법을 무수히 형성, B팀에 날리며 자신도 돌격한다.
* 아스타는 선두에서 서서 날아오는 공간마법을 베어냈다. 그 공격 자체는 단순해서 [[매그너 스윙]]의 마구에 비하면 간단했지만 숫자가 압도적이라 조금씩 상처를 입었다. 그때마다 미모사가 식물 치유마법 "희유의 꽃옷"으로 회복. 일단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랜길스는 아무리 회복마법을 걸어도 한계는 올 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니 비참한 꼴을 당하기 전에 아스타가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한다.
>저런 겁쟁이 패배자는 마법기사가 아니야!
하지만 아스타는 절대로 번복하지 않았다. 그는 랸길스가 키텐에서 주민들을 스스럼없이 공격했던 걸 보았고 핀랄이 언제나 남을 위해서 마법을 써왔던 것도 알았다. 랜길스는 그게 어쨌냐고 비웃으며 핀랄은 "단지 그것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비하했다. "마지막까지 이겨낸 자는 뭘하든 올바르다"고 강변한다.
* 랜길스의 공세가 격해지고 아스타의 움직임으로도 전부 떨궈내는건 불가능했다. 아스타가 상처를 입은 속도가 빨라지고 크리스탈에도 손상이 갔다. 미모사의 회복마법은 한계에 달해 다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스타는 거기에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랜길스는 "승자는 뭘하든 옳다"고 했다. 아스타는 핀랄이 했던 말, 언제나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아스타의 말에 "오히려 내가 구해졌다. 아스타는 반드시 마법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던 일을 떠올렸다.
랜길스와 격돌. 마법제에 의해 잠시 정지돼 있었지만 풀리자 마자 동료를 파악하고 힘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1회전에서 선보인 대로 미모사가 크리스탈을 지키고 자신이 전열을 맡으며 돌진, 잭스가 후방 원호를 맡는 형태로 나온다. 랜길스의 공격을 잘 쳐냈지만 랜길스가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중과부적에 몰린다. 랜길스가 "핀랄이야 말로 진짜 마법기사가 랜길스는 아무리 강해봐야 진짜 마법기사가 아니다"는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하지만 조금도 타협없이 "이긴 자가 무엇이든 옳은 거라면 핀랄에게 인정받은 내가 이기겠다"고 선언한다.
팀원의 보조도 거절하고 혼자 힘으로 아스타를 꺾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스타에게 발언을 정정하라며 찌질하게 굴고 자신이 승자니 뭘 해도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아스타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한편 마법제의 보좌인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언급한 "무의식의 배신자"가 랜길스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랜길스의 행태에 매우 분노한 듯 보이지만 당장 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요청은 선선히 수락한다.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랜길스를 "무의식의 배신자"로 의심하고 진상을 확인하려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랜길스가 개인적으로 띠껍고 아스타가 충분히 랜길스를 참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합을 시킨 걸로도 보인다.
백야의 마안이 심은 스파이는 스스로 자각없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무의식의 배신자"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게 마법인지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한 건지는 확신이 없다. 로열 나이츠 시합에서는 뭔가 꼬투리를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던게 마르크스의 회상으로 드러났다.
처음 아스타의 협조 요청을 받았을 땐 "마법기사 주제에 사적인 감정으로 싸운다"고 깠지만 자기가 봐도 랜길스가 너무 막장이어서 시원하게 협조하기로 한다. 1회전처럼 아스타와 미모사가 돌격하고 자신은 후방 원호를 맡았는데 랜길스의 공세를 상대로 아스타, 미모사 페어가 고전하는 동안 딱히 행동이 없다.
아스타의 협조 요청을 단박에 수락하지만 랜길스의 행동에서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하고 찜찜해한다. 1회전의 전술대로 아스타 뒤에서 크리스탈을 보호하면서 돌격. 랜길스의 공격형 공간마법에 아스타가 다치자 회복시켜 주지만 공세가 강해지면서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 식극의 소마/217화 . . . . 36회 일치
* 연대식극 1라운드도 한 대결만 남은 상황. 2승을 확정지은 [[유키히라 소마]]와 반역자들은 득의양양한데 [[카와시마 우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 카와시마는 새로운 십걸의 5석을 차지한 강자 [[카부라기 사치코]]를 소개한다. 2학년으로 배틀로얄에서 3학년들을 전부 꺾고 올라온 강자.
* 1라운드 이후 1시간 휴식. 양측은 각기 대기실에서 다음 대전자를 선발하는데 메기시마다 한 번 더 나가겠다 나서도 [[미마사카 스바루]]도 승부욕을 어필한다.
* 그런데 대기실 밖에선 [[쿠가 테루노리]]가 십걸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접촉 중. 다음 라운드에서 "승부를 보자"고 제의하는데.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반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태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남이 만든 식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식재료를 쓰는 이상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그래도 시제품에 자신도 없는 술을 멋대로 징발당한 [[사카키 료코]]는 "아직 화가 안 풀렸다"고 츤츤댄다. 이 언쟁을 들은 [[안(식극의 소마)|안]]은 직접 잇시키에게 료코의 시제품을 시음하고 싶다 청한다. 당혹해 하는 료코. 그런데 안은 그 맛을 보더니 "당신이 이 식극으로 지키고 싶은게 뭔지 이해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음식을 WGO가 공명정대하게 심사하겠다 재차 공언한다.
* 십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상태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남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반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그렇다면 반역자 진영의 2학년이자 전 십걸 [[쿠가 테루노리]]는 어떨까? 놀라게도 아무 생각이 없다.
* 어쨌든 1라운드는 반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반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식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상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반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태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카와시마가 전승이 불가능하다고 한 이유는 신 십걸[[카부라기 쇼코]]의 존재 덕이었다. 그녀 또한 2학년이나 신 십걸을 정하는 배틀로얄에서 3학년 선배들을 연거푸 쓰러뜨리며 5석의 자리를 차지한 강자. 이렇게 카부라기에 대한 절찬을 쭉 들은 쿠가는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에 감사를 표한 뒤 말한다.
>십걸 제 3석 자리에 있던 사람인데?
* 반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반전. 1st BOUT 반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순식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남은 인원은 반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허세력을 뽐낸 아자미 총수가 객석에서 일어나 1라운드의 종료와 1시간의 휴식을 선언한다. 그 동안 양 진영은 대합실에서 다음 시합에 나올 인원을 협의해야 한다. 잠시 뒤 대합실로 자리를 옮긴 반역자들. [[나키리 에리나]]가 아버지의 말이 맞다며 "전승했다고 기뻐할게 아니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못박는다.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가 십걸 측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히사코의 분석으로는 1라운드 결과로 적도 초조해할 테니 갑자기 1석 츠카사나 2석 린도가 나오는 것도 상정할 법하다. 그 말에 얼굴이 파래지는 유키와 료코.
그런데 이 자리에 소마가 보이지 않자 잇시키가 의아해한다. [[타쿠미 알디니]]의 말로는 삐져서 화장실에 갔다. 이번에도 "내가 또 나갈래"라고 떼를 쓰다 알타쿠미와 에리나한테 이중으로 갈굼 당하자 뾰로퉁해져서 도망친 것이다. 마침 메구미가 쿠가도 없는걸 발견하지만 잇시키는 짚이는게 있어서인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이제 선택은 대장인 에리나에게 달렸다. 메기시마는 연전도 가능하다며 의욕을 어필한다. [[미마사카 스바루]]도 나름대로 "트레이스"를 마쳤다며 자기를 기용해달라 신청하는데. 과연 에리나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 소마는 아직도 꽁한 상태. 그런데 막 모퉁이를 돌려는데 복도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쿠가였다. 그가 대화하는 상대는 적의 대장 츠카사 에이시. 쿠가가 츠카사에게 "다음 라운드에 나올 생각 아니냐"고 떠보는 중이다. 츠카사는 애매하게 "그렇다면?"이라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쿠가가 그런 태도가 심술궂다며 자기는 쭉 이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찌된 일인지 츠카사는 푼수같은 평소 모습이 간데 없이 진지하고 말이 적다. 쿠가의 드립에도 "확실히 그랬지"라고 짧게 대꾸하는데. 쿠가는 여전히 까불거리는 태도로 "귀여운 후배의 부탁"이라며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쿠가는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소마는 얼핏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걸 발견하는데.
>다음 식극에서 나랑 싸우자고.
- 식극의 소마/219화 . . . . 36회 일치
* 예상과 달리 쿠가는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조리에 들어가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츠카사가 이런 점을 칭찬하며 "십걸에서 빠져서 아쉽다"고 하자 쿠가가 코웃음친다.
* 당시 "대패배" 후 충격에 빠졌던 쿠가는 [[잇시키 사토시]]가 "1학년 중에선 유일하게 츠카사와 대결"했다고 위로하자 기운을 차린다.
*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쿠가는 지금까지도 원한을 품고 "나는 지나가던 남학생 1"같은게 아니라며 설욕을 바라온 것이다.
* [[쿠가 테루노리]]는 스스로 "모든 걸 다 갖췄다"고 말하는 재수없는 부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집은 부자고 요리도 잘하고 생긴 것도 이럭저럭. 키는 못 받았지만 당사자가 애써 상관없다고 부정하는 부분이니 재쳐놓고. 어쨌든 부모의 애정도 듬뿍 받고 그만큼 여자애들의 애정도 듬뿍 받으며 무탈하게 성공가도를 걸어온 쿠가. 식극에 있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는 말의 주인공은 자신이라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도 키는 별도 문제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신감을 전부 태워먹을 정도로 역사적은 대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 연대식극 대회장. 예상대로 센트럴측은 가지고 있는 최강의 카드를 꺼냈다. [[츠카사 에이시]], [[코바야시 린도]], [[사이토 소메이]]. 십걸 1석, 2석, 4석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반역자측도 쿠가, [[메기시마 토스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코 만만치 않은 강자를 준비했지만 이목이 쏠리는 걸 어쩌진 못했다. 이 대결의 주역인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잠자코 승부의 동향을 지켜본다.
* 대결 상대가 정해졌으니 이제 주제를 정해야 할 때. 사이토가 뽑기 차례를 반역자측에 양보하자 린도가 정색한다. 왠지 이게 꼭 하고 싶다고. 하도 적극적이라 별 수 없이 메기시마의 양해를 구해 이쪽만 린도가 뽑기로 합의한다. 그동안 사이토는 메기시마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십걸이던 자신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 메기시마는 요리사로서 내세우는 마음가짐이 다 다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대꾸한다. 사이토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언제나 자기 길을 걷던 메기시마가 "저 하급생" 편을 드는 건 의외였다고 말한다. 메기시마도 동감이다.
* 쿠가 대 츠카사, 메기시마 대 린도, 미마사카 대 사이토. 어느 것 하나 반역자 측에 유리한 대결은 없다. 감옥에 갇힌 후배들은 특히 츠카사와 싸우는 쿠가의 승산이 낮은 걸로 본다. 하지만 소마는 의외로 쿠가가 "집념의 미라클 펀치"를 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엔트리를 만든 [[나키리 에리나]]는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한 재료. [[요시노 유키]]와 [[사카키 료코]]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유키는 "맛있는 차로 대결"인 거냐고 의문을 표하는데 료코는 "찻잎의 맛이나 향을 살리는 요리"를 하라는 걸거라 추측한다. 메구미는 하다못해 이 대결이 [[잇시키 사토시]]나 [[키노쿠니 네네]]가 낀 대결에서 나왔다면 일식 요리사인 만큼 어떤 요리를 할지 이미지가 나왔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토 이쿠미]]도 같은 의견이다. 사천 요리 전공인 쿠가, 프랑스 요리 전공인 츠카사와 너무 동떨어진 주제다. 그 증거로 츠카사는 주제가 정해지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자신의 장르를 못 살리는 주제라면 남은건 2시간 뿐인 제한시간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게 관건이다.
* 먼저 움직인건 쿠가. 자신있게 돼지고기부터 깍둑썰기한다. 설마 자기 전공도 아니면서 그 짧은 시간만에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가? 츠카사는 아직도 생각 중이다. 쿠가가 앞서 나가자 후배들이 환호했다.
* 쿠가가 츠카사에 가진 반감은 1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패배". 그 패배가 있은 뒤 쿠가는 넋 나간 상태로 뒹굴거렸다. 10일이 넘도록 그 상태가 이어지자 동급생인 [[에이잔 에츠야]]가 빈정거렸다. 애초에 1석한테 식극을 거는 거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 "건방떨지 마라 꼬맹이"라고 까지 도발했는데 쿠가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에이잔도, 옆에 있던 네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그 자리에는 잇시키도 있었는데, 이땐 하급생이어서 그런지 옷도 벗지 않고 십걸로서 멀쩡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에이잔관 달리 "그래도 1석을 승부의 자리로 끌어냈다"는 점 자체가 대단한게 아니냐고 격려한다. 이게 제대로 먹혔다. 쿠가가 언제 풀죽었냐는 듯 회복. "츠카사 에이시가 2학년이 돼서 유일하게 식극한 1학년"이 자신이라는 식으로 정신승리하기에 이른다. 이젠 또 지나치게 기운이 넘치자 에이잔은 잇시키를 타박하면 "그냥 뒀으면 한 달은 조용했다"며 탓한다.
숨어있던 1학년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물어봤던 2학년도 당황해서 며칠 전 식극했던 1학년이라고 오히려 설명을 한다. 그제서야 츠카사는 "사천요리하는 애"라고 떠올리고 이름이 쿠가였다는 것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달리 할 말도 없다. 2학년은 "요리 밖에 머리에 없는 녀석"이라고 놀리고 웃으면서 그 자리가 끝났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쿠가는 츠카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뼈져리게 실감했다.
>그 남자는... 나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어.
쿠가가 묵은 원한을 원료삼아 타오르고 있을 때, 츠카사는 매우 차분하고 정돈된 상태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있던게 아니었는지 "슬슬 집중하자"고 중얼 거린다. 그 손에는 찻잎이 들려있다. 그는 그것을 흩뿌리며 마치 말을 거는 듯 한데.
>자, 내 접시에 깃들어주라...
- 원피스/848화 . . . . 36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은 제르마의 힘과 옥갑을 얻은게 기뻐 [[몽키 D. 루피]]의 도발도 웃어넘긴다. 그때 보물전에 침입자가 생겼단 소식이 그녀의 기분을 망친다.
* [[상디]]는 밀집모자 일당과 발라티에를 걱정하면서도 이게 최선이라 믿고 있다.
* [[샬롯 푸딩]]은 빅맘의 인형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샬롯 로라]]의 일을 떠올린다.
* 브룩은 자신이 "소울킹"이기 때문에 어설픈 영혼은 자기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호언한다.
그래 "샬롯 앙그레"란 꼬마가 애벌레를 타고 들어온다. 앙그레는 "보물전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
빅맘은 내일 일만 생각하면 뭐든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런데 빅맘의 모자가 "염파"를 감지하고 신호를 보낸다. 그건 자식들이 보내는 보고용 염파. 보물전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빅맘은 그 침입자가 옥갑을 노리는건 아니냐고 격노한다.
* [[상디]]는 객딜에서 고민에 빠져있다. 방을 서성거리며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건 아닌지 고민한다. 물론 머리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지만 심정만은 도저히 어쩌지 못한다. 결혼만 하면 루피 일행도 발라티에도 모두 무사할 것테지만 역시 동료들과 헤어지는건 괴롭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어봐야 [[샬롯 푸딩]]을 몰아붙이는 일 밖에 되지 않으며 그건 스스로도 원치 않는다. 상디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푸딩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사랑에 빠진 요리사를 연기한다.
* 푸딩은 자신의 방에서 유모와 함께 있다. 유모는 루피 일행이 잡힌 소식을 전하면서 그들이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푸딩이 정했던 드레스는 빅맘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가 따로 고른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고 알린다.
빅맘은 줄곧 그렇게 말해왔다. 그녀의 말처럼 인형같은 삶이었다. 푸딩은 오래전 자유를 찾아, 자기 자신이 결정한 결혼을 찾아 떠나간 언니 [[샬롯 로라]]를 떠올린다. 그때도 빅맘의 살해위협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그때 언니를 마중했던 푸딩. 그녀는 발코니 밖 세상을 바라본다.
* 문제의 침입자는 홀케이크 성 내를 들쑤시고 다닌다. 침입자의 정체는 [[페드로]]. 페드로는 전광석화 같은 쾌감으로 체스병들을 유린하며 거침없이 날뛴다. 성 안의 병력들이 페드로를 쫓아 집중된다. 페드로는 검술과 폭탄으로 몰려드는 병력을 전멸시킨다. 보물전 앞에서 시작했던 추격은 안바움 3층 안뜰 부근까지 이어진다. [[타마고 남작]]은 보고를 들으며 직접 페드로를 추격하고 있다. 그는 그대로 가든까지 페드로를 몰아넣을 생각이다.
* 그때 [[샬롯 스무디]]가 연락한다. 그녀는 타마고 남작의 예상대로라면 페드로 쪽은 미끼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진짜는 바로 보물전. 또다른 침입자가 보물전 내부로 진입,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다고 알린다. 비록 보물전이 뚫렸지만 그곳의 출입구는 하나. 거기만 잘 지키면 된다고 문제없다고 본다. 그리고 거기 있을 침입자는 분명 "뼈"일 거라며, 빅맘이 좋아할 만한 소재니까 생포해달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모두 타마고 남작의 손바닥 위.
* 보물 전 안의 [[브룩]]은 빅맘의 자식들과 체스병들에게 포위 당해있다. 그래도 아까보단 줄은 숫자. 페드로가 이목을 끌어준 덕이다. 빅맘의 자식들은 브룩을 "별난 생물" 취급하며 꼭 잡아서 빅맘에게 바치고자 한다. 체스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브룩은 태연하게 기타를 꺼낸다. 페드로가 사전에 체스병에 대한 정보를 준 건데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물건에 들어가 있는 병사. 즉 "소울"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브룩은 자신만만하게 기타를 꺼냈지만 튜닝을 마치기 전에 체스병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대로 집중공격 받아 끝장나나 싶었지만, 갑자기 체스병들이 쓰러진다.
* 한편 죄수도서실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푸딩이다. 푸딩은 루피의 감옥을 지키고 있던 형제들에게 루피와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청한다. 의외로 형제들은 순순히 루피의 감옥을 열어준다. "책갈피"를 감옥 사이에 끼우자 엿가락처럼 옆으로 휘어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푸딩. 루피는 푸딩을 반가워하며 해안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미는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푸딩이 곤란해지니 그만하라고 진정시킨다.
푸딩은 엉망인 두 사람의 몰골을 보고 가족들을 대신해 사과한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사과한다. 그렇게 대화하고 있자 바깥의 형제들도 수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푸딩은 상디가 프로포즈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혼하겠다는건 진심이었다, 루피와 나미는 충격을 받는다. 같은 시각 상디는 푸딩에게 주기 위해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자신을 설득시키는 연기를 계속하며.
푸딩은 기뻤지만 어차피 그는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한 일일 것이고 자신이 있음으로 여러 사람이 괴로워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결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놀라는 두 사람에게, 푸딩은 들어달라며 "어떤 고백"을 귓가에 속삭였다.
푸딩이 말하는 "결심"이란 로라처럼 결혼식을 거부하고 떠나는 걸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상디를 속박할 명분도 없어지고 빅맘이 밀집모자일당을 적대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 은혼/632화 . . . . 36회 일치
* [[요시다 쇼요]]의 죽음 이후 재기를 모색하던 신스케는 소녀시절 마타코가 의탁하려 하나 자신의 삶을 살라며 거부한다.
* 신스케와 반사이는 협력해서 마타코를 도주시켰지만 자신들은 구속, 처형을 앞둔다. 이런 와중에도 신스케는 태평하게 반사이에게 가담해줄 것을 권유한다.
* 그렇게 시작된, 세상을 부수려던 귀병대가 지금은 세상을 구하려 한다, 헨페이타가 그런 아이러니를 느끼자 마타코는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 어느 달 밝은 밤. 한 소녀가 [[다카스기 신스케]]에게 거둬주길 청하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키지마 마타코]]. 신스케의 이력과 그가 세상을 부수려함을 알고 자신도 동행시켜 달라고 청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양이지사였으나 막부에 탄압 당해 사망, 어머니는 죄인의 부인이란 오명 속에서 박해를 받다 사망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유품인 한 정의 리볼버. 이것으로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털어놓는다.
신스케는 그제야 자신의 뜻을 밝힌다.
>그렇다면 그 총으로 자신의 얼굴을 쏴라.
마타코는 이때의 신스케가 나라가 아닌 자기 자신을 부수는, 그런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이들의 첫 만남의 기억.
[[엔죠]] 황자는 스크린을 통해 그를 보고 있다. 엔죠는 그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당돌한 눈을 가졌다고 느낀다. 이 남자는 누구인가? 엔죠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신스케는 눈 앞의 해방군 병력을 향해 걸어간다.
* 해방군은 새롭게 나타난 적을 경계한다. 신스케는 이해 겁낼 것도 없고 자신은 여기 있는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의 동료도 아니라고 말한다.
>저렇게 아무 죄도 없는 자가 여기서 수없이 투옥되었습니다.
* 신스케는 시치미를 떼며 자기가 들은 얘기랑 다르다고 대꾸한다. "다른 거물"이 숨어들은 걸로 안다는 것.
"모르는 이름"이라 시치미를 떼기는 행인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의 샤미센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멋모르고 악당에게 다가가 운이 다해버린 소녀가, 적어도 편의 잠들 수 있도록 자장가를 연주하겠다면서. 그러고 보니 그는 칼을 숨기고 있었다. 연주 때문이라지만, 그걸 너무 드러나게 내보이고 있었다.
연주 소리를 듣고 관군들이 다가온다. 무슨 짓이냐고 추궁하자 그는 조용히 듣기나 하라며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무렇게나 둔 칼이 발각된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모는 시대. 시비가 일어난 동안 관군들도 행인들도 반사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느라 정작 사형수에게 일어난 이변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소녀를 감시하던 병력들을 쓰러뜨렸고 어느 새 소녀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없었던 것이다.
* 마타코를 구한 반사이와 신스케는 사이좋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거 보다 복잡했나 보다. 마타코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 그가 마타코와 접촉했던 걸 목격한 정부의 개, 다케치 헨페이타에 의해 꾸며진 함정이었다. 반사이는 벽을 사이에 두고 신스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스케가 부추기긴 반사이가 부추긴게 아니었냐고 대꾸하자 그는 단지 살아있는 전설이 어떤 남자인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본 남자는 이랬다.
신스케도 어떤 인물을 직접 보고 싶었던건 같다. 사무라이를 버린 나라는 자기 쪽에서 버린다고 하던 남자. 이곳에 수감된 양이지사들을 홀로 구하겠다고 획책하던 허풍선. 그도 결국 여자애 하나 구하자고 감옥에 갇혔으니, 바보이긴 똑같다. 하지만 신스케는 그래서 어울려준 보람이 있다고 말하는데.
* 이같은 옥중대담은 헨페이타가 모두 헨페이타가 듣고 있었다. 그는 관군 내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가진 남자였다. 신스케를 함정에 빠뜨린 그가 이제 저 두 위험분자의 대화를 어떻게 취급할까? 그는 조용히 감옥을 나선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길로 접어 들었을 때, 자객을 맞이한다. 마타코였다. 마타코는 신스케가 구해준 뒤 줄곧 근처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녀는 칼을 들이대며 신스케를 해방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는 마타코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같은 시각 감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양이지사들이 스스로 옥문을 나와 신스케와 반사이를 해방시켰다. 어리둥절한 반사이에게, 양이지사들이 말한다.
반사이가 구하려던 이들은 모두 신스케에게 포섭된 자들이었으며 관리 조차 포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 리볼버를 돌려주면서, 헨페이타는 마타코에게 자신의 원수는 자신의 손으로 갚으라고 충고한다. 마타코는 그가 신스케의 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헨페이타는 그런게 아니라고 말한다.
>귀병대가 여자애 하나를 구하기 위해 생겼다는 것도.
- 이경희 (1880년) . . . . 36회 일치
'''이경희'''(李慶熙, [[1880년]] [[6월 11일]] ~ [[1949년]] [[12월 4일]])는 [[대한제국]]의 교육자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구한 말 [[신민회]]의 회원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 [[의열단]]과 [[신간회]]의 주요 멤버의 한 사람이다. 해방 후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역임했다.
광복 직후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 미 군정 경상북도사령부 민정관 등을 역임했으나 [[미군정]]과의 갈등으로 사퇴했다. 이후 시민단체,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자는 군선(君善) 또는 군미(君美)이고, 호는 지오(池吾),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仁川)이다. [[경상북도]] 출신.
지오 이경희는 [[1880년]](고종 17년) [[6월 11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무태리(현,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서변동)에서 아버지 이병두(李柄斗) 어머니 경주 최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 [[이강희 (독립운동가)|이강희]]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증직|증]][[영의정]](贈領議政)에 [[추증]]된 공도공(恭度公) [[이문화|오천 이문화]](烏川 李文和)의 19대손이며,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이주 (임란 의병장)|태암 이주]](苔巖 李李輈)의 11대손이다.
소년기에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5년]](고종 32) 대구 공산의 소학교에 입학하고, [[1901년]](광무 4) 공산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부]]로 상경, [[경성부]] [[기호중학교]](畿湖中學校)에 입학했다. [[1905년]]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해 [[11월 17일]]의 [[을사 보호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으나 조약이 강제로 통과되자, 관직의 꿈을 접고 교육계에 몸담았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지오라 하였는데 이는 나라 잃은 나는 못난 이라는 뜻이었다.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태로 운반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영]](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동시에 현지 교민들의 문맹률을 보고 [[중국]] [[심양]](瀋陽)에서 달신학교(達新學校)와 중국어 학교를 세워 학생, 청년들을 가르치고, [[야학]]을 개설하여 성인들을 가르쳤다. 이어 마련한 돈으로 [[만주]] [[무송현]]에 둔전을 마련하여 다시 군자금을 만들고, 청장년을 훈련시켰다. [[1918년]] [[12월]] [[파리강화회의]]로 파견되는 [[김규식]] 박사와 일행의 차비와 여비로 일부 자금을 [[상하이]]로 보냈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좌절을 당하자,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계획하였다. 그러다 [[지린 성]](吉林省)에 [[김원봉]](金元鳳), [[김시현]], 유시태(柳時泰), 이성우(李成宇), 곽경(郭敬), [[김지섭]](金祉燮) 등이 찾아오자 이들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의 조직에 참여하고, 가입하였다. 이후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자금과 무기를 마련하는데 노력했다.
무기와 폭탄이 들어오자 그는 [[김시현]], [[유석현]] 등으로부터 〈혁명선언서〉와 투항권고 격문 수백 장을 받아 [[경성부]] 시내 곳곳에 살포하고, 전국 각 도의 도지사와 경찰부(警察部)에 발송하였다. [[김시현]], [[유석현]](劉錫鉉) 등 [[의열단]] 단원들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 [[매일신보사]] 등을 폭파하할 것을 계획하고 준비에 들어갈 때 이경희는 [[조선총독부]] 폭파를 맡았다. 그러나 [[1923년]] [[5월]] [[조선총독부]] 폭파 일보 직전에 이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의 신고로 밀정이 따라붙어, 동지 12명과 [[조선총독부]]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어 테러 미수 혐의로 재판받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1년 넘게 형을 살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1927년]] [[2월]] [[경성]]으로 상경하여 [[허헌]], [[조병옥]], [[김병로]], [[이인]], [[허정숙]] 등과 함께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였고, [[신간회]] 경성중앙본부 총무간사를 맡았으며, 곧 [[신간회]] 경상북도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중앙본부 총무간사와 경상북도 지회장을 겸하였다. 그 뒤 [[신간회]] 경상북도 대구부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대구부 지회장을 겸임하시면서 한때 30여 세포와 만여 회원을 포섭, 가입시켜서 단체를 키웠다. 1927년 12월 [[신간회]] 대구지회장 직을 부회장 [[최윤동]]에게 넘겨주고 이후 평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신간회]] [[밀양]]지회 조직을 지원하러 내려갔다가 불심검문을 받고 [[밀양]]에서 검속되었다. 그뒤 [[신간회]] 밀양지회 산하 조직인 [[밀양청년회]](密陽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항상 [[밀양경찰서]]와 파견된 총독부 경찰의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그는 만해 [[한용운]] 등과 가깝게 지냈고 [[1939년]] [[7월 12일]] [[한용운]]의 회갑연에 참여했다. 한용운 회갑연 참석자 방명록에는 [[오세창]], [[홍명희]], 이경희 등 16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는 한용운의 환갑을 축하하는 친필 휘호 불택세류(不擇細流)라는 자를 지어 주었다.
[[대종교]]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로 신자들은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당했으나 그는 개종을 거부하였다. [[1939년]]부터 [[창씨개명]]령이 나오고 [[1940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경희는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1942년]] 여름 [[경성부]] [[돈암동]]을 떠나 대구로 내려가 야산에 숨어 밭을 갈고 농부로 생활하였으며, [[항일 단파 방송]]인 [[미국의 소리]] 방송을 비밀리에 밀청하고 해방을 예상하였다. 이때 그 몰래 그의 부인 조씨가 [[청도군]]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둘째 사위에게 [[보리쌀]]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여 일제 패망론을 주장하며, 해방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일본인]] 도지사와 부지사 등이 업무를 내려놓고 사퇴를 선언하자 행정공백을 피하기 위해 [[8월 16일]] 위촉장을 받고 초대 [[경상북도]] [[부지사]]가 되고, 그날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겸직하였다.<ref>당시 경상북도청은 대구시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경상북도 부지사와 대구부윤 업무를 보느라 양쪽을 오고 갔다.</ref> 그는 대구부윤 上野彦八에게서 행정권과 치안권 일체를 인수하였다. 그밖에 그는 [[대종교]] 본부 경의원의 참의로도 임명되었다. [[9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자 레이몬드 재노스키(Raymond A.Zanowski) 미육군 대령의 천거로 경상북도 미군정 사령부 민정관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12월 4일]] [[대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향년 69세였다.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이경희 (1880년)|이경희]]
|전임자 = [[이경희 (1880년)|이경희]]<br />(부지사)
|후임자 = 김의선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존 P. 콘치
|전임자 = 마이어
- 이홍렬(코미디언) . . . . 36회 일치
||<#595959><:> {{{#FFFFFF ''' 본관 ''' }}} ||<(> [[덕수 이씨]][* 덕수 이씨 26세손 '烈'자 항렬이다.] ||
'''MBC를 대표했던 코미디언이자, 중장년 연령층들에게는 아직도 8, 90년대 코미디의 상징.'''
대표적인 콩트로는 1980년대에는 [[김병조]]와 콤비를 이룬, 청춘만만세의 카운셀링 개그코너 '어찌 하오리까'가 있으며, 일밤대행진 마당놀이에선 주로 사회자를 봤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홍렬쇼]]라는 [[토크쇼]]로 나름대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100회를 채우고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 또 200회까지 채우고 막을 내렸다.[* 부활했을 당시에도 인기는 좋았다.] 프로그램 코너들 중에서는 특히 '참참참'이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 스타가 나와서 [[밤참]]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989|책]]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 참참참은 당시 일본 버라이어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던 [[쿡방]]들이 우리나라 사정에 안 맞아 몽땅 망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장수했던 코너였다는 점도 특색이다.
또 이홍렬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코너였던 '한다면 한다'. 세계나 국내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며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상격인 프로라 생각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번지점프]]'''는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당시 40대였던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고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 뉴질랜드로 가서 찍었는데 같이 간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나 PD는 높이를 보고 겁에 질려 번지점프로 뛰길 포기했다. 이홍렬도 이거 긴장되네... 이러면서 고민하던 반응이지만 결국 그 홀로 뛰어내렸다.]은 많은 중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20년 전인만큼 예능 프로도 지금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점잖고 얌전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야 이놈들아아아아아아!' 처절한 저주의 외침을 토하며 뛰어내렸으니 당시 시청자들이 받았던 쇼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반적으로 방송국에서는 연예인들이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 자리를 한두 자리 비워 놓는데 때마침 스케줄 때문에 방송국에 늦게 도착한 이홍렬에게 경비가 "주차장에 자리 부족해요. 나가세요."라면서 진입을 막았고, 이홍렬은 결국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비의 대응에 서운함을 느껴서, 내가 MBC에 바친 열정이 얼만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SBS로 옮길 때는 SBS에 전용 주차석을 요구했다고. ~~경비원 입장에선 자리가 없는데 어쩌라고...~~
2000년 말부터 2002년 초까지는 SBS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다.[* 사실 시트콤에 출연하게 된 배경이 재밌는데, 당시 진행하던 자신의 토크쇼가 MBC의 [[세 친구]]에 시청률이 추월당한 후, 종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오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시트콤에 도전한 게 해당 작품이라고 한다.] 진지한 배역을 주로 맡다가 코믹한 배역에서 맹활약했던 [[노주현]]과 [[신구(배우)|신구]]와는 반대로, 기본 베이스는 코믹하지만 중년의 로맨스와 관련되어 진지한 연기를 할 때도 많았던 노홍렬이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밑에 CF 항목을 보다시피 20세기 후반 상당히 유명하고 큰 인기를 끌었던 레전드급 코미디언 방송인이어서 찍은 광고의 수가 그야말로 엄청나다. 젊은 세대들은 어릴 적 TV를 키면 그가 나오는 여러 개의 CF들을 아주 쉽게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프로를 전혀 보지 않은 어린 애들도 "어? 저 아저씨 어느 어느 광고에서 본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
* 1993년 <녹십자 제노킨> (강호동과 함께 출연)
* 1995년 <동부대우전자 입체냉장고 탱크> (고소영, 배종옥, 박인환, 염정아, 이영하, 이재룡, 유인촌과 함께 출연)
* 1996년 <동부대우전자 전자렌지 요리박사>
* 1996년 <녹십자 OK>
* 2000년 <[[LG생활건강]] 자연퐁싹> (1편에선 중식당/2편에선 김희애와 함께출연)
* [[2007년]]부터 [[크라제버거]]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방문하면 가끔 볼 수도 있으며, 3번 망하고 4번째로 낸 가게라고 한다.지금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영 중단을 천명해 놓은 상태다. 어째 사업과는 연관이 없어보인다.
* 과거에 음악활동을 한적이 있으며, 1998년에는 음반을 낸 적도 있다. 일종의 자선 음반으로 기획하였고, 일부 기존 노래를 커버한 노래(ex. 트로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좀 있다. 그외에도 Friends라는 곡은 함께 한 아티스트가 아홉이고, 마지막 트랙인 발라드 넘버 '다시 한번 해봐요'는 그를 비롯한 당대 유명가수들과 합창했는데, '''함께 한 아티스트가 열아홉이나 된다.''' 그러나 흥행은 [[흑역사]]. 지금은 정반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영희네 담벼락에 누가 써 놓은 이야기>라는 곡은 그럭저럭 유명하다. [[http://excf.com/bbs/view.php?id=EX2&no=234|들어보기]] 해당 곡의 작곡자는 그 유명한 [[김창완]]이다. 이 앨범 전곡을 이홍렬은 대인배스럽게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http://bbangco.com/board/zboard.php?id=song&page=1&page_num=20&category=&sn=off&ss=on&sc=on&keyword=&prev_no=15&sn1=&divpage=1&select_arrange=headnum&desc=asc|공개]]해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들어보자. 몇몇 곡의 경우 이홍렬의 라이너노트도 곁들여져 있다.
* 이외 음악활동의 경우 '초콜렛'이라는 남녀혼성 듀오에 거의 모든 곡을 제공한적도 있으나 그룹이 망해서 자선음반보다 더 잊혀졌다. [* [[작곡가]]가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검증 필요.]
* [[결혼]]은 비교적 늦게 했으며[* 1987년 결혼 당시 34세. [[아내]]는 26세.], 1987년(당시 32세)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한 것으로 유명한 [[만학도]]. 그래서 그런지 상당한 다독가라고 한다. 2년간 [[일본]]에 체류 한 적이 있다.[* 당시 한참 잘 나가던 시점에서 갑자기 [[일본]]으로 공부한다고 떠난 경우였다. 때문에 [[전유성]]같은 이들은 대단히 높이 평가하였다.] 이때 체류 경험에 바탕해서 쓴 [[일본]], 일본어 서적도 있고,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하기는 어렵다"라는 자녀 교육서를 쓴 적도 있다. 그 외 아버지에 관련된 책을 번역했으며 당연히 일본어에 매우 능통해서 일본인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
*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냥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날짜를 정확히 쓰고 중요한 사건을 간단히 소회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뒀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태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 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이 [[사진]]과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당시 [[무명]] 개그맨이었던 이경규가 자신도 개그맨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방송사 선배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데,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고 가장 친한 [[선배]]였던 이홍렬이 이 소식을 듣고 같이 사진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후 이경규는 감히 선배인 이홍렬과 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쪼개고 건방진 표정을 짓는다는 이유로 모 선배 개그맨에게 '''코피까지 흘릴 정도'''로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며, 다른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어떻게 감히 후배가 선배랑 사진을 찍냐고 갈굼받았다고 한다...[* 개그계의 대표적인 [[똥군기]]의 예.] 이홍렬은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던 천사표 선배 중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이경규도 이홍렬에게 "때려 봐. 때려 봐."라고 ~~쓸데없이~~약올렸다가 한 대 맞기도 했고, 이홍렬과 맞 담배를 피질 않나, 담뱃불 없다고 이홍렬이 피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배에 붙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홍렬은 나중에 [[최양락]]한테 지나가는 식으로 뒷담화를 했는데 최양락은 말 끝나기 무섭게 자기도 똑같이 이경규를 따라했다. 그러자 참고 참던 이홍렬이 폭발해 "이 [[새끼]]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구두]]로 최양락을 때렸다고 한다.[* 최양락의 깐족거림은 개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주병진 족발사건이 대표적인 예.](...) 한마디로 매를 벌어서 맞은 것.
* [[이경실]]이 지나치게 괄괄한 [[여걸]]이라서, [[이성미]]가 그런 [[이경실]]을 기피하자 이홍렬이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화해시켜서 둘을 [[절친]]으로 만들어놓은 일화가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36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8th sense. '''반역자들 (1)'''
* 미나모토는 관측소를 [[사카키 슈지]]에게 맡기고 [[타니자키 이치로]]와 도시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 하지만 타니자키의 판단미스로 산속에서 미아가 되고 마는데. 그때 뜻밖의 구조자들이 도착한다.
* 칠드런은 협력자를 찾다가 [[효부 쿄스케]]가 아닌 어떤 협력자를 얻어 그의 작전 하에 움직이고 있다.
* 협력자에 정보에 따르면 사카키는 블랙 팬텀의 백도어로 이용당하고 있으며 다시 지배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그때 관측소에 있는 사카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블랙팬텀의 세뇌가 발동하려 하는데.
사카키 슈지는 미나모토와 타니자키 이치로가 외부에서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사이 관측소에 남아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그가 우회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동안 미나모토와 타니자키가 인근 도시에 잠입해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가는 계획인데.
* 문제는 타니자키와 미나모토가 산 속에서 미아가 되어 버린다. 도시는 커녕 아직 산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다. 타니자키는 GPS를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수원을 끼고 하산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게 잘못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들이 따라가던 강은 폭도로 이어져 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미나모토는 큰소리쳐서 믿었더니 그게 잘못이었다며 푸념한다. 타니자키는 지형이 낯설어 생긴 일이지 자기 탓은 아니라고 변명한다. 미나모토는 서바이벌 훈련도 안 받았냐면서 이런 상황에서 강가에 머무는건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고 지적한다. 조난 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자기 발자국을 따라 돌아가는 것. 결국 시간만 버린 셈이다.
* 이렇게 된 거 체력이나 회복하자고 미나모토가 간단한 요리를 하려 한다. 추운 지방이므로 일단 따뜻한 음식을 먹고 체력과 체온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타니자키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이정도면 움직이면 아무렇지 않다"며 팔다리를 휘젓는다. 미나모토는 만류하는데 그런 식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면 혈액순환에 나쁘도 체온이 너무 올라가 버린다. 타니자키는 너무 열이 올라서 무조건 벗어 재낀다. 그렇게 순식간에 체온을 다시 떨어뜨리면 결국 체력만 소모하고 생명에 위협만 늘게 되는데.
* 바보같은 동행 덕에 고생 중인 미나모토. 그런데 뜻밖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된 건지 더 하운드의 야도리키 아키라와 이누카미 하츠네가 미나모토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미나모토는 헛것을 보는게 아닌가 의심하는데 아키라는 분명 현실이고 자기들만 온게 아니라고 한다.
*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도 도착. 미나모토를 방해한 타니자키를 응징하자 그 익숙한 통증 탓인지 제정신을 차린다.
* 상황은 진정되었지만 미나모토는 이들을 반가워하는 한편 은근히 경계한다. 바벨이 보낸 추격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츠네는 바벨에서 보낸게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나오미는 자신들이 수뇌부 몰래 왔다고 밝힌다. 타니자키는 바벨을 배신해서라도 자길 구하러 온 거냐고 날뛰가 제재 당한다.
* 아카시 카오루가 말하길 미나모토와 헤어진 이후 칠드런은 그의 지시대로 노력해 봤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협력자를 얻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은 그의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미나모토 일행과 접촉한 것도 그 계획의 일환. 그런데 이 협력자는 효부 쿄스케가 아니며 효부는 만나지 못한지 꽤 됐다고 한다.
노가미 아오이는 이 협력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지만 일단은 비밀. 나중에 만나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이 협력자에 대해선 미나모토도 타니자키도 전혀 짐작을 못한다.
산노미야 시호는 어떤 조사를 위해 타니자키를 두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려오라고 말하며 현장에 있는 더 하운드와 나오미도 따라달라고 말한다. 협력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카키는 블랙 팬텀에게 "백도어"로 이용당해 왔고 그쪽에선 다시 사카키를 지배하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 그 말을 들은 미나모토는 사카키를 혼자 두고 온 걸 후회한다. 본래는 ESP 감지기에 사카키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관측소에 두고 온 건데 이런 식으로 악수가 됐다. 나오미는 자신이 먼저 관측소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미나모토는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할 거라 판단해서 전원이 돌아가기로 한다. 미나모토는 이 작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후회한다.
- 트로피코 4 . . . . 36회 일치
>변혁하는 세계 속에 Tropico도 함께 움직입니다. 각국의 세력이 등락하고, 세계 시장은 새로운 수요와 공급을 원하는 새로운 세력에 의해 지배됩니다. 이제 바로 당신이 위대한 지도자 각하의 역할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수많은 반대론자들을 넘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선택이 국가의 미래를 형성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해외 비밀 계좌도 잔뜩 불릴 수 있고 말이죠!
>Tropico 4는 새로운 정치 요소를 통해 전작에 비해 게임플레이 요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외교를 진행할 새로운 초강대국이 등장할 뿐더러, 논란 많은 정책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장관을 임명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십시오! 모두의 의견을 신중히 파악하십시오! 자연이 가져오는 새로운 재해가 나라를 휩쓸고 지나가면 국민들은 사후복구를 위해 국고를 열 것을 소리높여 요청해올 것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 당신의 정치적 결단력이 샅샅히 시험될 것입니다.
>Tropico 4는 Facebook과 트위터 기능을 내장해 새로운 단계의 소셜 네트워크를 선보입니다. 게임 내에서 즉시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임무 및 도전 과제 완수 내역을 바로 알리십시오. 번성하는 섬의 풍경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여러분만의 꿈의 도시를 Tropico 4의 Facebook 페이지에 올릴 수도 있으며, 온라인 순위표를 통해 독재자 순위를 겨룰 수도 있습니다.
본격 독재자 되기 게임.
시민들은 업무환경이 좋은 직업을 선호한다. 업무환경이 나쁜 직업은 시민들이 기피하니 월급을 올려서 업무환경을 올리던가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있을 만큼 해당 학력자가 많게 만들자.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몰리는 일자리를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민들은 가까운 거리를 갈 때는 걸어가지만, 먼 거리를 갈때는 되도록이면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온다. 시민들이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간다는건 그 동안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주차장을 곳곳에 배치하자.
* 이단 - $500 소모. 성당 필요. 성직자가 해당 시민을 이단으로 낙인찍는다. 해당 시민은 시위 참가, 진영 대표자 되기, 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대상과 그 가족들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사살 - $500 소모. 군인이 해당 시민을 처형한다. 가족들과 목격자의 존경심이 확 떨어진다.
땅이 흔들려 건물을 손상입히고 파괴한다. 그에 따른 사망자는 덤.
* 연도 불명: 소금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증명 - 소금의 시장 가격이 50% 하락
* 1953-1956: 쿠바의 공산화 - 소련의 자금원조가 2배로 늘게됨
* 1967-1971: 꽃의 혁명 - 환경주의자들이 이민해 옴
* 1968-1970: 학생 시위 -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금지됨
* 1976-1979: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범죄자 추방 - 매년 범죄자들이 섬에 도착함
* 1997-2000: 아시아의 경제 공황 - 매년 20명의 중국인 이민자들이 섬에 도착함
* 베테랑 캐릭터 특성 추가 - 군국주의자의 지지를 받으며 전투에서 잘 싸울 수 있음
* 남녀 각하를 위한 멕시코 모자 추가
* 건설업자 캐릭터 특성 추가 - 첫번째 시멘트 공장 무료, 건설인부의 숙련도 획득률 증가
* 남녀 각하를 위한 기술공 모자 추가
* 밀수업자 건물 추가 - 엠바고를 무시하고 수입 가능
- 하이큐/247화 . . . . 36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지난 10월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하며 지도자로서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한편 쓰레기장 결전을 성립시키려면 양팀 모두 3회전까지 가야하는데, [[카라스노 고교]]의 2회전 상대인 이나리자키 고교가 엄청난 난관이다.
* 이나리자키 고교는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강호로 팀을 긴장시키지만 [[히나타 쇼오]]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승리를 한 치도 의심치 않는다.
* 이나리자키 고교에서도 특히 요주의는 [[미야 아츠무]]. 그는 단순한 세터 이상의 존재로 세터로서도 놀랍지만 서버로서도 대단한 실력자다.
* 게다가 이나리자키에는 "또 한 명의 미야 아츠무"도 있는데, 바로 그의 쌍둥이 형제 [[미야 오사무]]였다.
* 지난 10월. [[카라스노 고교]]가 봄고 미야기현 대표로 결정된 직후의 일이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간만에 본가에서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카이 코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쓰레기장 결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웃는다. 그 말을 들은 잇케 감독은 자신이 배구부를 맡고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을 회상한다. 잇케 감독은 그때 자신을 "남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 시절의 그는 선수에게 "나랑 똑같은 것" 내지는 "내가 하려다 못했던 것들"만을 시키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잇케 감독은 "그게 어려운 것"이라며 웃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다. 그러다 우카이 코치는 "그런 점에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지만 "배구를 못했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놀린다. 잇케 감독은 농담처럼 가볍게 얘기했지만 지도자가 자기 욕심으로 선수에게 목표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진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그냥 편히 기대하라고 말하는 우카이 코치. 잇케 감독은 손자가 자기 충고를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쓰레기장 결전은 카라스노와 네코마가 3회전까지 올라가야 성립한다. 그러기엔 2회전 상대가 워낙에 난관이다. 선수들을 불러모은 우카이 코치가 "이제와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내일의 상대 "이나리자키 고교"를 정식으로 소개한다.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이 대회 시드교이자 우승 후보다. 말이 필요없는 강호.
* 이나리자키의 주포는 이 둘이지만 진짜 성가신건 따로 있다. 바로 [[미야 아츠무]]. [[카게야마 토비오]]와는 전일본 유스에서 만나서 "착한 아이같은 세트"라고 꼬집었던 그 선수다. 모든 타입의 스파이커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천재 세터. 그의 이야기가 나오자 [[스가와라 코시]]가 "고교 No.1 세터"라고 언급하는데 카게야마가 그 말을 듣고 발끈한다.
* 우카이 코치가 경계하는 점은 그 뿐만이 아니다. 정답은 서브. 카게야마도 정확히 알고 있다. 자료 화면으로 아츠무의 서브 장면도 확인하는데 [[아즈마네 아사히]]와 [[사와무라 다이치]]는 강력한 서브라고 감탄하지만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같은 세터로서 카게야마가 주목하는건 거기가 아니다. 아츠무는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 서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바로 그 점이 골치 아픈 부분이다.
* 이 아츠무의 서브 탓에 우카치 코치는 로테이션 컨셉도 바꿀 계획을 짰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자 [[야치 히토카]]는 막 승리의 기쁨을 맛봤던 그들이 어느 새 무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대진표를 확인한 야치는 이 많은 상대 중 두 번째로 강한 상대와 싸우는 거라며 긴장한다.
* 이렇게 딱딱해진 자리에, [[히나타 쇼요]]가 난데없는 말을 던진다.
평소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히나타. 하지만 요점이 다르다. "1위랑 2위 전부"랑 싸운다는건, 결국 2위 이나리자키를 이기겠다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해한다. 딱 한 사람만 아무렇지 않게 맞장구치는데 그것이 카게야마. 한술 더 떠서 1위 "이타치야마 고교"랑 싸우려면 반대블록이니 결승까지 그쪽이 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히나타는 설령 이타치야마가 못 와도 "이타치야마한테 이긴 팀이 결국 1위"라는 논리로 아무튼 1위랑 싸우는건 변함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1학년 콤비의 근거없는 자신감에 질린 스가와라가 "너네 근자감에는 익숙해지질 않는다"며 한숨을 쉰다.
1학년 콤비 덕에 난색 일상이던 표정들이 사라진다. 둘이 승리를 의심치 않는, 재패를 추구하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팀에 옮겨진다. 우카이 코치는 선수들을 보며 새삼 느낀다. 어찌됐든 승리를 갈망하는 마음은 모두가 하나라는 것. 지도자로서 자신이 하려는 것과 선수들이 지향하는게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 1월 6일. 2회전 당일이다. 체육관이 문을 여는건 8시. 시합 개시는 8시 30분이다. 그 사이의 30분은 2회전 제 2 시합 팀들이 워밍업으로 사용한다. 카라스노가 제 2시합. 그런데 이건 개장과 동시에 카운트 된다. 첫 출전인 팀들은 이 사이에 짐을 옮기는 등 잡일을 하다 날려먹기 십상이다. 물론 시드교에 베테랑인 이나리자키가 그러리라고 바랄 수도 없다. 30분을 귀중하게 쓰기 위해 카라스노는 7시 20분 부터 구보로 이동을 개시, 동선과 역할 분달을 스무스하게 배치해 시간 손실을 최소화했다.
워밍업을 시작한 뒤에도 양팀 간의 신경전이 장난이 아니다. 이나리자키의 코치 [[오오미 타로]]는 [[타케다 잇테츠]] 고문에게 스파이크 연습을 하고 싶다며 압박을 가한다. 타케다 고문은 관록만으로 쫄아서 우물쭈물하는데 우카이 코치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서브로 부탁한다"며 받아친다.
*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사정이 있다. 어제 저녁 회의 시간. 히나타의 근자감 어필 직후 그는 "미야 아츠무가 무지막지한 녀석이니 그 녀석을 노려서 송구하면 된다"는 주먹구구식 해결책을 제시한다. 같은 과인 니시노야는 명안이라고 감탄하지만 우카이 코치가 보기엔 한참 부족하다.
뭣보다 지금 본 자료화면에는 결점이 있다. 이 시합 당시에는 세터와 짝을 이루는 주전 라이트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불참, 후보가 땜빵을 한 영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주전 라이트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 하이큐/261화 . . . . 36회 일치
* 24 대 24로 양팀이 매치 포인트를 목전에 둔 상황. [[이나리자키 고교]]는 활약이 저조한 타나카를 핀포인트로 노리기 시작한다.
* 타나카는 자신이 돋보일 기회를 포기하면서 미끼를 자청, [[니시노야 유]]와 힘을 합쳐 [[미야 아츠무]]의 서브 에이스를 저지한다.
* 코사쿠의 서브가 [[사와무라 다이치]]의 리시브를 튕겨내고 높이 치솟는다. 그대로 [[이나리자키 고교]] 진영의 외야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아직 공은 살아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상대편 코트를 가로지르면서까지 쫓아가 받아낸다. 아슬아슬하게 [[카라스노 고교]] 진영으로 돌아오는 공. 여기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과감히 날아오른다. 강렬한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의 블록에 맞고 아웃되면서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3 대 24. 카라스노의 1점 리드를 지켜내고 세트포인트에 도달한다. 꼼짝없이 재역전이라 생각했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한숨 돌린다. [[니시노야 유]]는 "에이스 같았다"고 격찬, [[츠키시마 케이]]는 "아즈마네 선배는 에이스가 맞다"며 새삼스러울게 뭐냐는 반응. [[타나카 류노스케]]는 동료 선수들이 "물이 올랐다"고 감탄하며 자신도 분발한다.
*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여자친구 미카에게 해설자 모드. 참고로 방금 전 상황에서 공이 네트에 세워진 안테나 "안쪽"으로 지나갔었다면 이나리자키의 득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이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카게야마가 필사적으로 뛰었던 것. 미카도 이제 감을 잡으면서 "배구는 입체적"이라는 인상적인 평을 남긴다.
* [[타키노우에 유스케]]는 [[시마다 마코토]]가 자리를 비웠다 좋은 장면이 다 지나가고 돌아오자 대차게 깐다. 아까 [[야마구치 타다시]]가 대활약했는데, 그 선생님인 시마다가 왜 자리를 비웠냐는 이유다. 물론 그는 시마다가 경기장 반대편까지 열심히 뛰다 온 걸 모른다. 그리고 그가 자기 태블릿을 무단으로 빌려갔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마다는 그 짧은 순간에 "봉투 안에 타블릿을 끼워서 켜면 더 잘 보일 거다"는 계산까지 염두했던 것이다.
* 코사쿠가 벤치로 돌아오면서 원래는 5번 타나카를 노리고 있었는데 1번 사와무라 쪽으로 잘못 갔다고 한탄한다. 이나리자키가 분위기를 정돈한다. 비록 첫 세트 포인트를 내줬어도 한 번만 버티면 서브 순서는 다시 [[미야 아츠무]]에게 돌아간다. 해설자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카라스노로서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여기서 1점을 따서 끝내고 싶을 거라고 분석한다. 그 말이 사실이다.
* 이어지는 공방전. 아즈마네의 공격을 아카기가 리시브, 산지마의 스파이크로 잇는다. 츠키시마, 카게야마가 블록. 카게야마의 팔에 맞고 뒤로 밀린 공을 사와무라가 커버한다. [[히나타 쇼요]]가 빠져있고 쓸만한 공격 자원들이 빠진 상황. 그래도 [[스가와라 코시]]는 기회는 있다고 희망을 놓지 않는다. 카게야마에게 이어진 공, 츠키시마가 뛰어오르나 진짜는 타나카다. 이 시간차가 먹힐까?
아쉽게도 [[스나 린타로]]의 눈치가 빨랐다. 여지없는 셧다운. 공이 카라스노 진영의 코트를 찍는다. 카게야마가 세트업이 살짝 짧았다고 사과하지만 타나카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도 될 줄 알았던 스파이크였다. 오늘 타나카는 묘하게 풀리지 않는다. 반면 번번히 타나카를 방해하는 스나 린타로는 이제 발동이 걸린 것처럼 펄펄 뛴다. 반면 타나카는 실책이든 불운이든 좋은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관중석에선 그럴 "활발 빡빡이"라 칭하고 구멍 취급이다. 어떤 선수든 안 풀리는 날이 있기 마련이지만...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열 받아서 로우 텐션 모드가 됐다"고 중얼거린다. 옆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걸 본인이 알긴 알았던 건가 하며 충격을 받는다.
이 흐름을 끊어야 한다. 타나카가 자기 뺨을 후려치며 기합을 넣고 재정비한다.
* 24 대 24. [[야치 히토카]]가 스코어 보드 옆에서 결국 이런 상황이 왔다고 부르르 떤다. 우카이 코치도 바라지 않던 상황이다. 여기서 끊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과연 어떨지? 서브 위치에 아츠무가 들어서고 만다. 관중석의 바보 커플은 또 티격태격한다. 여자 쪽이 "아츠무군"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나타내자 남자 쪽이 "아츠무랑 친하냐"고 빈정거려서 치고받는다. 이러다 헤어지는거 아닌가?
이번에 아츠무의 목표는 분명하다. 사실 이나리자키 측에선 진작부터 5번, 타나카를 집중 공략했다. 오늘 두드러진 활약도 없고 컨디션도 어정쩡해 보이는 타나카를 두들겨서 카라스노를 끌어내릴 참이었다. 지난 TO에서도 그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그 뒤로 나오는 서버마다 줄줄이 타나카를 노렸다. 아츠무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그가 서브 위치에 서자마자 타나카가 감을 잡았다.
* 여지없이 공은 타나카에게... 하지만 타나카에게 간 공을 타나카만 받으란 법이 어딨는가? 아츠무가 손맛 좋게 날린 공은 그 옆의 니시노야가 리시브한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미끼 역할. 남들이 알아주지야 않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순간 타나카는 오늘 자기 플레이가 너무 꼴사납지 않은가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그럴 뻔했다. 그는 곧 주먹을 불끈쥐며 누구보다 환호했다.
* 미야 아츠무의 서브가 무섭다는건 전날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우카이 코치는 그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으며 선수들이 질릴 때쯤 "그 서브에 반격하는 로테이션"을 꺼냈다. 아츠무가 서브일 때 중앙의 니시노야가 요격하는 수비. 거기에 더해 서브를 끊을 방법도 연구했다. 그는 "이것저것 여러 방법"으로 끊었으면 좋겠다며 지금껏 공식전에서 한 번도 안 했던 걸로 그걸 해보자고 한다.
>뭐든 도전해 보자.
* 전위에는 카게야마. 이나리자키 측은 투 어택도 대비했다. 카게야마의 세트업에 맞춰서 모이는 이나리자키 블록. 카게야마도 공격자원 전원이 네트 앞으로 뛰어오르며 블록을 모아놓는다. 츠키시마, 타나카, 아즈마네가 각각 중앙, 좌측, 우측에서 뛴다. 그러나 이들 중에 진짜는 츠키시마 뒤에서 튀어나온 사와무라. 실전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와무라의 백어택이다. 그것도 자신이 별로 자신없어 하는 공격.
* 사와무라는 지금 만큼은 백어택이 익숙하지 않은 걸 잊어버리고 때렸다. 블록의 반응이 늦다. 완전히 속였다.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 코트를 깊숙히 관통한다. 완벽한 코스. 카라스노가 아츠무의 서브를 단칼에 끊으며 1점을 추가한다. 아츠무도 여기에는 "제법"이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스코어는 24 대 25. 다시 세트포인트. 후쿠로다니의 콤비가 "사와무라가 백어택 치는건 처음 봤다"며 눈이 휘둥그래하다.
* 응원단은 사와무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달아오른다. 배구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방금 전 1점에 타나카가 기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도 별다른 자각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인 스나 린타로만큼은 타나카를 성가시게 쳐다봤다.
- 한교원 . . . . 36회 일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축구명문 축에 드는 [[조선대학교]]의 스카웃망에 잡히기는 했으나, 조선대에서도 우선순위로 선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대 축구부 쿼터가 꽉 차는 바람에 조선대 입학이 무산되었고 [[조선이공대학]]으로 입학하게 된다. 조선대와 조선이공대는 같은 재단 소속. 이를테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입단했는데 팀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위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임대 간 [[김남일]]과 비슷한 케이스. 갓 창단한 조선이공대 축구부에서 한교원은 [[메시]]놀이를 시작한다. 2010년 [[U리그]]에서 한교원이 찍은 스탯은 20경기 출전 18골 (...)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지명된다. 조선이공대가 배출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K리거이다.
인천 입단 후 한교원은 성실한 훈련 태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뷔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는다. 당시 동포지션의 경쟁선수들이 동반 부진, 부상 등에 빠졌던 이유도 있어서 행운이라 한 것.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더니 인천 공격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부상한다.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고 [[김봉길]]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신임은 여전했다. 한교원의 2011 시즌 스탯은 '''29경기 3골 2도움'''. 공격포인트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체출전 또는 교체아웃된 경기가 많았고 센터백으로 뛰는 등 포지션 변경이 많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인천구단 자체가 이해에 빈공에 시달려 한교원이 공격포인트 1위였다.
데뷔시즌인 11시즌에는 주로 최전방에서 뛰었지만 12시즌부터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 이후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근성]] 넘치는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시즌에는 다소 투박하지만 수비수를 제껴내는 드리블과 중앙 침투로 인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인천의 돌풍에 [[이석현(축구선수)|이석현]], [[김남일]]과 함께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좌측은 [[남준재]]와 [[이천수]]가 돌아가면서 출전했고, 최전방의 [[디오고 아코스타]]는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때때로 아쉬움을 남겨 [[설기현]]과 로테이션 체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한교원만큼은 붙박이 우측 윙어로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 활약 덕분에 영플레이어 상을 받을 만한 후보로도 점쳐졌지만, 최종 수상자는 [[고무열]].
3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림같은 시저스 킥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및 전북 소속으로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그냥 시저스 킥도 아니고, 등 뒤에서 넘어오는 공을 등진 자세임에도 다리에 정확히 맞춰 넣은 초고난이도의 골. 다만 이러한 활약을 보인 것과 다르게 시즌 전반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컵 휴식기를 보낸 이후 폭발적인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팀 전술에 녹아들었고, 활약도도 급상승하였다.
특유의 근성 넘치는 돌파와, 돌파 이후 이어지는 위협적인 크로스가 전북의 팀 색깔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다. 또한 공격수로서 공격포인트도 착실히 올리며 닥공축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중. 20라운드 성남과의 대결에서는 1골 1어시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부상으로 결장한 이동국의 빈 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11월 9일자, 리그 10골 3어시 기록 중. 본래 이동국의 백업 선수인 [[카이오]]보다 더 많이 넣었다.
15시즌엔 [[이승기(축구선수)|이승기]]와 정혁이 군복무로 전력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소포모어 징크스만 잘 견뎌낸다면 전북 현대의 에이스로서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부담이 크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부담이 시즌 시작 후 한교원 본인에게는 부정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 전반 2분만에 무릎 인대부상을 당한 [[히카르도 로페즈]]의 교체멤버로 들어왔고, '''[[이재성(1992)|이재성]]의 코너킥을 그대로 갈겨 선취점을 뽑아내고 이 골로 전북 현대를 10년만의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간의 힘든 상황을 털어내는 극적인 득점이었다.
2016 시즌에 유종의 미를 거둔 이후 한교원은 2017년 1월부터 사회복무를 위해 6개월간 팀을 떠나 [[K3리그]] [[화성 FC]]에서 뛰게 되었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 한교원은 병역법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간 일하면 병역의 의무를 마치게 된다. 6개월간 사회복무를 마친 이후, 2017년 후반기 다시 [[전북 현대]]로 복귀하게 된다. 한교원은 K3리그에서 최종 10경기 2골 3도움을 기록, 나름대로 꾸준히 몸 관리를 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리고 큰 부상 문제 없이 후반기에 전북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고, 간간히 활동량을 앞세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거나 아예 풀백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2018 시즌에 개막전인 [[울산 현대]]전에서 [[이동국]]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작렬했다. 연이어 펼쳐진 [[AFC 챔피언스리그]] [[톈진 취안젠]]전에서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AFC선정 베스트일레븐에 올랐다. 이후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했는데, 부상 복귀 후에는 한결 좋아진 폼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력과 별개로 스탯을 쌓는 스탯 사기꾼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전북 측면의 핵심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고 공격 포인트도 꽤나 기록하고 있다. 울산의 [[김인성]]과 더불어 국가대표로 실험받아도 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 자리의 경쟁자로는 월드컵도 경험했고 올 시즌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인천의 [[문선민]]이 있는지라 국가대표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공교롭게도 세 선수 모두 빠른 주력을 무기로 삼으며, 김인성과 한교원은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의 선수이고 문선민은 현 인천의 선수.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부상당한 [[구자철]]대신 선발되어 파라과이와의 후반전에 투입되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린 파라과이 수비진을 손흥민과 함께 수차례 침투하며 좋은 기회들을 만들고 날카로운 슛을 때렸지만, 아쉽게 골을 넣지는 못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그러나 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14시즌만 못하던 차에 박대한을 폭행하고 퇴장당한 경기를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10&aid=0000243677&|슈틸리케가 관전했기에]]''' 여름 평가전 차출에 적신호가 커졌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역시 사고를 친 [[이범영]]과 함께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재성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이청용이 부상에서 회복한데다 이종호, 김승대 등이 동아시안컵에서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잡은지라 대표팀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슈틸리케호에서도 갑자기 흥분해서 옐로 카드를 받은 전적이 있었는데, 물론 커리어를 통틀어 보면 이런 일이 거의 없는 선수이긴 하나 슈틸리케 감독 눈 앞에서 두 번이나 저질러 버린 터라 천천히 그런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사실 국가대표에까지 오르내리는 스타가 된 이후 받는 압박감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새롭게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없다면 국대에 재승선은 어려울 것이다. ~~전북 현대에서 빨리 심리상담 시켜라~~
활동량, 체력이 상당히 좋으며 발도 빠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훌륭한 윙어가 될 자질은 타고났다. 그리고 공에 대한 집착과 투지도 상당하여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은 물론, 팀의 수비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이다. 라인을 타고 돌파하여 밀고 올라가는 돌파 능력을 지니고 있고, 한 번 분위기를 타면 무서운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 최전방부터 센터백까지 온갖 포지션을 경험하면서 얻은 경험이 독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가 된 듯. 아쉬운 부분은 판단력과 크로스. 그리고 유효 슈팅은 꽤 잘 만들어내지만 정작 만들어내는 기회에 비해 실제 득점으로 연결되는 수도 다소 아쉽다. 입단 당시보다도 훨씬 전북의 스쿼드가 두꺼워지면서 더는 과거처럼 전북의 핵심으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지닌 선수인지라 최강희 감독의 신임을 계속 받고 있다.
2015년 5월 23일 친정팀인 인천전에서 수비수 [[박대한]]을 '''폭행'''하는 [[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kl/126480/127059|반칙을 저질렀다.]]--한교원투펀치-- 한번도 아니고 두번 연속으로. 첫 번째 주먹이 빗맞자 쫓아가서 주먹을 다시 날렸다. 그것도 '''중계 화면으로 방송'''되는 도중에... 게다가 겨우 전반 5분만에 있던 일이었으며 바로 퇴장을 당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첫 퇴장이라 한다. 이게 얼마나 어이 없는 반칙이었냐면, 스로인 상황에서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공에 집중되어있던 사이, 갑자기 한교원이 퇴장당하자 전북 선수들이 달려와 이유를 물었는데 주심이 상황을 설명해주자 아무런 항의 없이 그냥 다시 돌아갔다. 이후 카메라가 홈 팬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포터즈들이 단체로 넋이 나간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교원의 자필 사과문. 친정팀을 상대로 지나치게 승부욕을 보인 것이 오히려 이런 일을 일으켰다고 한다.
전북구단은 베이징 궈안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명단에서 그를 제외시켰고 자체적으로 벌금 2,0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프로축구연맹은 28일 열린 상벌위에서 6경기 출정정지와 제재금 600만을 부과했다.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한 2경기 출장정지까지 합쳐 총 8경기 출장정지에 구단 자체징계까지 합쳐 벌금이 2,600만원, 사회봉사 80시간이다. 팬들은 한방에 1,300만원하는 주먹질이라며 혀를 찼다. 연봉의 거의 절반이 날아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교원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겉멋보다는 선수 본인의 압박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성향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교원은 저돌적인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실제 성격은 착하지만 굉장히 여리고, 은근히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도 초기에 비판을 받을 때는 적응까지 좀 시간이 걸렸었고, 2015 시즌같은 경우 국가대표 승선으로 인해 과거와는 확실히 위상과 주목도가 달라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소 아쉬운 활약이 이어지자 큰 부담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친정팀을 만났고, 그래서 무언가를 더 해보려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인천 팬들도 한교원을 바로 비난하는 케이스도 있기는 했지만, 다수는 '어쩌다가 한교원이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간 한교원이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도 상극인 행위를 했기 때문.[* 지금도 한교원을 한퀴아오라면서 욕으로 도배를 하는 것을 보면, 정작 사건 당사자인 인천팬은 아연실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오랜 시간 뛰면서 보여준 태도와는 상반된 행동이었기 때문. 실제로 인천팬들은 한교원 선수를 성실하고 착실한 선수로 인식해왔고, 평소 행동도 거칠지 않았고, 경기장에서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 선수 프로필에 따르면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축구부한테 뺏겨서'''라고 한다, 하지만 전북현대 홈페이지에 있는 선수소개 내용들 중 좀 웃긴건 재미를 위해 창작된 것들이라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18년 전북의 전지훈련지 오키나와에서 히든풋볼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실인 것으로 확정. 다만 뺏긴 건 여자친구가 아닌 짝사랑하던 상대였다.
- 현주엽 . . . . 36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농구]]}}
'''현주엽'''(玄周燁, [[1975년]] [[7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前 [[대한민국 프로 농구|프로 농구 선수]], 농구 해설가이자 현재는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이다.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휘문고 시절부터 초고교급으로 분류되던 현주엽은 고려대와 연세대 양교 관계자들의 치열한 경쟁속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오다 고3때인 1993년 3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 진학을 발표한다.<ref>한겨레 1993년 4월1일 “휘문 현주엽 고려대 간다”</ref> 이후 현주엽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93년 3월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가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고 고려대 진학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미 대학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고대에 줄곧 승리를 거두던 연대에 들어가기보다는 연대와의 대결에서 열세에 있던 고대에 들어가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이고 싶어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처럼 고려대학교가 연승가도를 질주하자 세간의 관심사는 고려대가 70년대말에 이룩했던 최다연승 49연승을 깨고 50연승을 달성할것인가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1995년 가을철 대학농구 연맹전 예선 첫 경기에서 현주엽이 발목 부상으로 빠진 고대는 당시 약체였던 홍대에 3점차로 덜미가 잡히며 20연승에서 연승을 마감했다.<ref>경향신문 1995년 10월30일 “고려대 20연승 마감 약체 홍익에 덜미”</ref> 이후 고대는 다시 한동안 연승을 이어갔지만 50연승에 근접하지는 못하였다. 고려대학교는 충분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현주엽이 졸업하기전까지 끝내 농구대잔치에서는 연세대학교가 이루어내었던 대학팀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트레이드 소식을 최인선 감독이 아닌 신문기자에게서 처음 듣게 된 현주엽은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인선 감독에게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 매체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ref>스포츠투데이 1999년 12월 27일 [http://blog.naver.com/einer6623/50015480828 “현주엽 트레이드 진짜 이유 .. 현주엽 항명과 최감독의 단죄”]</ref> 이에 따르면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고 난후 최인선은 패배의 책임이 현주엽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부상을 핑계로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보이콧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경기인 19일 신세기전에서 다시 현주엽은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엔 최인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였던 23일 동양전은 현주엽에게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현주엽은 상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순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04-05 시즌이 끝난뒤 현주엽은 자유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었고, 변화를 원했던 그는 LG로 이적을 하였다. 그러나 무릎부상은 그에게서 운동능력과 함께 공격 본능까지 앗아가 버렸다. LG로 이적한 06-07 시즌부터는 마침내 평균 득점이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마지막해였던 08-09 시즌에는 6.73까지 하락했다.<ref>오마이뉴스 2009년 6월 29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66551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현주엽 ”]</ref>
2009년 6월 24일, 현주엽은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그 다음날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장에는 무릎수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들어섰다. 선수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를 꼽았고 아쉬운 것으로는 우승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소감으로는 팬들에게 농구를 좀 잘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2015년]]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 [[1995년]] [[대한적십자사]]
|전임자 = [[김진 (농구인)|김진]]
|후임자 = (현임)
{{둘러보기 상자 묶음
{{1994년 아시안 게임 농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6년 하계 올림픽 농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8년 아시안 게임 농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2년 아시안 게임 농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35회 일치
* 하지만 쫄따구는 "개성을 폭주시키는 약물" 또한 가지고 있었다. 키리시마를 방심시킨 후 자신에게 주사, 전신에서 칼날을 뽑아 키리시마를 공격한다.
* 개성의 폭주로 빌런이 뽑아내는 칼날이 자신의 경도보다 강해지자 키리시마는 당황하지만 [[바쿠고 카츠키]]의 조언을 떠올리며 분발한다.
* 키리시마는 특훈을 통해 개발한 자신이 최대 경도 모드 "레드 라이오트 언브레이커블"로 빌런의 공격을 막아낸다.
* 평화로운 저녁시간이던 "에스하"시. 빌런의 난동과 함께 평화가 깨진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인턴활동으로 이곳에 파견돼 있었다. 웅영고 선배이자 사무실 선배인 "선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놀라운 실력으로 빌런을 제압했지만 군중 속에 숨어있던 빌런의 쫄따구가 저격, 총격에 당해 쓰러진다. 대활약하던 히어로가 쓰러지자 군중은 경악한다. 시민들이 총성이 울린 곳으로부터 일제히 몸을 피한다. 그 한 가운데 총을 들고 있는 빌런 쫄따구가 보인다. 키리시마도 총격을 당했지만 자신의 개성으로 방어, 타격을 입지 않았다.
* 타마키도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없다. 그가 무사하지 총을 쐈던 빌런도 당황, 기껏 받은 "물건"이 거지같은 것이었다며 짜증을 낸다. 타마키는 아까 했듯이 "문어"를 써서 당황한 적을 포획하려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개성이 발동되지 않는다. 그 사이 키리시마가 추격을 시작하고 빌런은 겁에 질린 채 군중 속을 헤치며 달아난다. 이들의 책임자인 BMI히어로 [[패트껌]]은 키리시마에게 어설프게 추격하다간 당한다고 충고하며 현장은 아마지키에게 맡긴 채 달아난 빌런을 쫓으려 한다. 그러나 타마키가 개성이 발동하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이레이저([[아이자와 쇼타]])라도 있나?"라고 황당해한다.
* 빌런은 번화가를 피해 주점골목을 도주경로로 결정했지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거기도 유동인구는 여전히 있어서 목격자는 늘어만 난다. 그렇다고 키리시마를 떼어낼 정도로 발이 빠르지도 않았다. 곧 근소한 차이로 따라잡힌다. 키리시마는 "도망치지 말고 동료를 구하려고 해봐야 할거 아니냐"고 일갈하며 쫓아간다.
>사람을 쏴놓고 자기만 쫄아서 도망치다니!
>'''남자답지 않아!'''
* 궁지에 몰린 빌런은 팔뚝에서 칼날을 뽑아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키리시마의 경도를 이길 수 없었다. 칼날이 깨져나가고 키리시마가 "레드 카운터"로 손쉽게 때려눕힌다. 키리시마는 다소 경멸적인 어조로 "얌전히 잡혀라 권총자식"라고 내뱉는다. 그런데 널부러진 빌런이 일어날 생각도, 다시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상대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자 키리시마는 금방 당황한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었어
빌런은 키리시마의 눈을 피해 작은 주사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키리시미가 눈치챌 틈도 없이 자신의 목에 주사한다. 약이 투여되자 빌런은 몸을 비틀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른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며 빌런은 전신에서 무수한 칼날을 뽑아낸다. "10cm 이하의 칼날"만 뽑아낼 수 있다던 그의 개성이, 갑자기 폭주해버렸다. 칼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키리시마의 경화된 피부에 상처를 낸다.
* 패트껌이 키리시마를 따라간 이후 타마키는 검거한 빌런을 경찰에게 인계하고 있다. 이들은 진작부터 위법적인 상품을 유통시키던 녀석들로 경찰도 주시하던 문제아들이었다. 타마키는 이송되기 전, 빌런조직의 두목을 상대로 간단한 심문을 한다. 자신의 개성이 발동하지 않은 건 그 불법 "상품" 중 하나의 효과냐는 것. 빌런은 "죽어라"고 욕이나 하지만 그걸로 충분히 대답이 됐다.
인계가 끝나자 타마키는 곧 네거티브 상태에 빠진다. 벽에 머리를 기댄 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며 패트와 키리시마를 걱정한다.
* 빌런의 개성은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강화됐다. 길이만이 아니라 강도도 향상돼서 인근 주점의 간판들이 간단하게 썰려나간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이 전새역전. 이제는 골목으로부터 키리시마를 압박하며 전진하고 있다. 키리시마는 뉴스에서 "개성을 부스트하는 약물"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났다. 뒤에는 주점가, 목격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뒤는 번화가. 이대로 빌런을 저지하지 못하면 참극이 불보듯 뻔하다. 키리시마는 우선 골목 쪽의 시민들에게 피난권고를 한다. 그때 빌런이 새로운 칼날을 뽑아낸다. 새로운 칼날은 키리시마의 피부 경도를 훨씬 웃돈다. 이대로는 접근할 수 없다, 키리시마는 그렇게 판단했다.
>방심했구나 꼬마자식!
방금 전까지 징징거리던 빌런이 기고만장해졌다. 녀석은 자기 형님들의 말에 따라 "히어로 사회는 곧 무너진다"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다음 시대는 자기들처럼 "버젓이 살지 못하는 자들의 시대"라고 선언한다.
임시면허시험 직전의 특훈 기간 동안 키리시마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뾰족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올마이트에게 들은 조언을 친구 [[바쿠고 카츠키]]와 [[카미나리 덴키]]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조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도 너희와 맞설만한 방법이 없었다"라는 푸념이 뒤따른다. 옆에는 [[토코야미 후미카게]]와 [[세로 한타]]도 있다. 키리시마가 분석하기로 이들은 모두 중,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고 기동력도 괜찮다. 단 키리시마만 빼고. 키리시마는 자신에겐 그들이 가진 무기가 전혀 없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카미나리는 친구들에 대한 고평가에서 자식만 쏙 빠지자 핸드폰 공짜 충전 안 해준다고 협박한다.
어쨌든 키리시마의 고민은 이렇다. 지금 자신에겐 이거다 할 만한 뭔가가 없다. 프로가 됐을 때 바쿠고나 친구들과 어깨를 마주하려면 뭘하는게 좋을까? 듣고 있던 세로가 "너 좀 비겁하다"고 디스한다. 키리시마는 한탄이고 궁리라고 반발한다. 그때 의외로 바쿠고가 그럴 듯한 조언을 시작한다. 자신들과 맞서니 뭐니하기 전에는 "흔들리지 않는 기마" 같은 소릴 하지 않았냐면서. 그리고 그는 키리시마가 올마이트의 최후, 카미노에서의 격전에서 보여준 모습을 높이 평가한다.
* 칼끝이 코끝까지 몰린 순간, 키리시마는 각오를 마친다. 믿어야 할 건 자기 자신. 그리고 개성.
- 마기/340화 . . . . 35회 일치
* 백룡은 그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힘과 책임을 나눌만한, 자신과 대등한 인간이 전혀 없는 거냐고 묻고 신드바드는 이 싸움이 그걸 가리기 위한 싸움이라 답한다.
* 그곳은 결혼식장 같은 배경에 17세의 신드바드와 원래 제파르의 소유자였던 [[세렌디네]]가 기다리고 있다.
* 신드바드와 세렌디네는 "자신과 타인 중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나"는 질문과 함께 전신마장을 사용한다.
>자신을 제외한 존재를 믿어라.
>왜냐하면 자기 혼자 믿어야할 올바른 거이란...
*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물음. [[연백룡]]은 동료를 믿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건 신드바드에겐 만족할 만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는 곧 "책임 포기"라고 반박한다. 왕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남을 이끌어주는 사람인데 그 자신의 정의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면 다른 이들이 믿고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자 연백룡은 "왕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면?"이라고 반문한다. 옳고 그름은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다. 백룡은 황제국의 예를 들며 한때는 군사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황제이던 시기엔 복수가 대의였지만 대상이 사라지자 한계가 드러났다. 백룡은 이제 신드바드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로 그의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것인지를. 혹시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건 아닌가 하는 불안은? 신이 된 그는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된 것인가? 백룡은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다며 신드바드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 묵묵부답인 채 고심하던 신드바드는 결국 대답을 회피한다. 그는 "내가 물어보려고 너흴 부른 거다"면서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백룡이 불손하다고 탓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단언한다. 근거는 실적이다. 그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목표로 활동했고 이뤄냈다.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걸 해낸다는 자신감과, 누구도 보지 못하는 "운명"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답하자 백룡은 "그럼 자신 외엔 동료를 믿지 않는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신드바드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은 동료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룡은 그의 모순점을 집요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동료를 자기보다 작고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신드바드는 그 실패의 대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경을 없애고 인류의, 세상의 힘을 신드바드 자신에게 집약시킨 것이라 주장한다.
* 백룡은 거기에 의문을 표한다. 설사 실패를 최소화하더라도 어째서 힘을 신드바드 개인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가? 왜 자신 외의 존재와 힘을 나눌 수 없는가? 백룡의 그러한 질문에, 신드바드는 자신이 실패할거 같냐는 반문으로 답한다. 자신이 실패할거 같아 불안한게 이유라면 적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신의 힘을 나눌 대상이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 외에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란 확증을 주는 인물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럴 확증을 주는 유일한 인물, 신드바드가 신이 되는 것이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의 힘을 아는 백룡은 거기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힘을 나눌만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인간 신드바드 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하게 겨룰 만한 인물이 전혀 없다는 건지 묻는다.
예상과 다른 대답이 나오자 백룡이 의아해한다. 하지만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 말했던 "신드바드의 유일한 미련"에 대해서 떠올린다.
>신드바드 아저씨는 자기가 정말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 2 던전을 나와 제 3 던전으로 향하는 알라딘 일행. 알라딘은 [[알리바바 사르쟈]]에게 그렇게 말한다. 신드바드는 신의 힘을 손에 넣었지만 알라딘 일행 네 명의 루프를 덮어씌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발견했을 때 신드바드는 당혹하기 보단 기뻐했다. "도전자"를 찾은 듯한 얼굴로. 알리바바도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며 맞장구친다. 확실히 알리바바에게 루프를 덮어씌우지 못한걸 알았을 때 그는 "넌 참 신비하다"고 알리바바를 높이 평가했다.
알라딘은 그가 일행과 싸움을 통해 자신이 정말 신이 돼도 좋은지를 확인하려는 거라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가 결벽증일 정도로 성실하다고 말한다. 그때 2던전 바레포르가 무너진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백룡이 신드바드를 납득 시킨 거라고 설명하며 쥬다르나 백룡이 신드바드를 논파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왜 이리 쉽게 공략이 가능한건지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는 세렌디네와 손을 맞잡고 던전 제파르의 이력을 설명한다. 이곳은 그가 17세 때 공략한 던전이며 그는 마침내 자신의 나라를 손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파르테비아로부터 어떤 섬을 사들였고 거기가 1차 신드리아 왕국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세렌디네는 거래 상대인 파르테비아의 1황녀.
* 그 자체로 충격적인 이야기였고 신드바드의 입에서 카심의 이름이 나오자 알리바바가 격렬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잠시, 곧 신드바드와 세렌디에는 동시에 전신마장을 사용하며 던전 제파르에 주어진 질문을 외친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 블랙 클로버/121화 . . . . 35회 일치
*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온 나날, 그러던 중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나타나 모든게 어그러졌고 그의 존재 자체가 벤전스를 우롱하고 있다고 믿게 됐다.
* 노엘은 적진의 크리스탈에 도달하는데 성공하나 그 앞은 오빠 [[솔리드 실버]]가 막고 있는 상황. 링가드는 마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해 노엘을 격려한다.
* 약해빠진 노엘이 자신을 이길리 없다고 자신하는 솔리드에게, 노엘은 자신은 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지금은 솔리드가 약해 보인다고 쏘아붙인다.
* 유노가 중용된 것은 정령 마법 때문이라 여긴 알렉드라는 자신이 최강 마법을 정령마법 없이 막아보라 유노를 도발한다. 그리고 유노는 정말로 그걸 해낸다.
* 알렉드라의 마법 안에 자신의 마법을 발동시키는 신기를 선보인 유노는 그를 패배시키고 "내가 보는건 나의 꿈 뿐"이라며 등을 돌린다.
* 승리를 자신했던 솔리드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한 노엘의 진짜 힘을 보고 믿기지 않아한다.
* 때는 수년 전. [[알렉드라 산드라]]는 전쟁 중 부상을 입었다. 숨어있던 매복에 당한 그는 어느 동굴에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구조는 바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찰라. 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금색의 여명 단장 [[윌리엄 벤전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그를 바라보며, 알렉드라는 일종의 경의를 느꼈다. 그 표현도 부족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본 그림을 떠올렸다. 그 안에 묘사된 신의 모습. 신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은 벤전스였다. 벤전스에게 구원 받고, 그를 추앙하며 지내온 나날. 알렉드라는 벤전스에게 마법 외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있고 그 따스한 힘이 단원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금색의 여명은 바로 그런 형태의, 벤전스에게 선택받은 엘리트 귀족 집단. 마치 신앙 같은 믿음. 그는 벤전스와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워왔다. 그 믿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의 입단. 볼품없는 하층민. 모든 단원을 평등하게 대해준 벤전스가 유일하게 특별취급하는 햇병아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열등감. 하지만 그걸 폭발시킨건 녀석이 하층민인 것도, 네잎인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단장이 되겠다는 시건방진 선언.
기회가 왔다.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로얄 나이츠 선발시합. 딱 좋은 무대였다. 알렉드라는 크리스탈을 지키러 온 유노를 뭉게버릴 작정이었다. 단숨에 자신의 최강 마법을 발동시켰다. 거대한 기사의 형상을 취하는 모래의 마법.
알렉드라가 일갈했다. 바람의 정령 "벨"은 그 말에 반발했다. 자신에게 선택받은 것도 유노의 힘. 벨이 그렇게 말하며 저 열받는 녀석을 해치우라고 부추겼지만 유노는 지극히 냉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벨더러 물러나라고 하는데. 그 태도 또한 알렉드라를 자극하고 있었다.
* 솔리드 팀의 세 번째 멤버도 따라붙었다. 이 천연파마 머리의 마도사는 솔리드가 곱지 않게 보였다. 본래는 그와 솔리드가 적의 크리스탈을 파괴해야 했다. 그런데 솔리드가 멋대로 이탈하면서 그 작전이 무산됐다. 천연파마가 따라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지적했다. 물론 솔리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천연파마는 어쩔 수 없다치고 여기서는 자신도 가세해 빨리 노엘을 처치하려고 들었다. 전술적으로 타당한 판단이었다. 자기 자신이 함정에 빠진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난데없이 어깨에서 버섯이 돋아났다. 그 버섯은 점점 무거워지더니 더이상 비행을 유지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됐다. 추락하는 천연파마. 바닥에 쳐박혀 있는 그를 달리는 버섯이 지나쳐간다. 다리는 버섯?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엔 링가드]]의 균 마법 "달리는 버섯 군"이었다. 그가 천연파마를 지나치며 진작에 포자를 붙여두었다고 설명해줬다. 그는 노엘이 적 크리스탈까지 가도록 서포트할 작정이었다.
* 링가드 덕분에 노엘은 무사히 적 크리스탈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할 무렵엔 솔리드가 그녀를 추월해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자신이 온 이상 노엘은 크리스탈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다 자신하는 솔리드. 거기에 반박한 것은 노엘이 아니라, 그녀 어깨에서 돋아난 싸나이다운 면상의 버섯이었다. 버섯은 적보다는 아군인 노엘을 놀래켰다. 버섯은 그 뻔뻔한 면상으로 나불거리며 노엘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말하는 버섯군"이란 링가드의 마법이었다. 링가드의 목소리를 전하는 통신기 같은 것이었다. 편리한 마법이지만 기괴한 형상 탓에 노엘은 왜 이딴걸 붙여놨냐고 기겁했다.
* 버섯의 멀리 떨어져 있는 본체. 버섯과 달리 빈궁한 얼굴의 링가드는 의외로 달변가였다. 그는 시합 전 솔리드가 한 발언을 놓고 "오라비가 할 소리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 또한 동생이 남녀 합쳐 열이나 있다. 자신이 싸우는 것도 동생들을 위해서. 그는 형이란 약한 동생들을 지키기 위한 존재라고 역설했다.
>인간도 동물이니 한 번 자기 위치를 일깨워주면 두 번 다시 반항하지 않으니 말이야!
버섯을 통해 하는 말은 본체를 상상할 수도 없이 쌈박한 것 뿐이었다. 노엘이 꺼림직해할 정도로 극과 극. 물론 자제심 없는 솔리드가 오래들어줄리 없었다. 그는 뱀 형상의 물마법을 채찍처럼 휘둘러 버섯군을 베어버리고 노엘의 왼쪽 뺨에도 상처를 냈다. 빌어먹게 약한 노엘이 자신을 이길리가 있겠냐면서.
* 버섯은 사라졌지만, 이젠 그가 필요없었다. 노엘은 충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성장했다. 그리고 강했다.
노엘은 당당히 지팡이를 겨누며 예전엔 무서웠던 솔리드의 마법이, 이제는 보잘 것이 없어 보인다고 독설했다. 이번에도 솔리드는 자제하지 않았다. 단숨에 뱀의 형생의 물마법이 물어 뜯을 것처럼 튀어나왔다. "일족의 수치"가 웃기는 소리를 지껄인다며 욕을 내뱉었다.
*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는 알렉드라도 자제심이 바닥났다. 정령을 뒤로 물린 유노의 행동에 격분해 어디까지 자신을 모욕할 거냐며 노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의 마법에 자부심이 있었고 유노가 정령 마법 없이 그걸 막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웠다.
* 알렉드라가 자신한 그의 최강 마법은 그 위력을 선보이지도 못했다. 유노는 정령마법을 쓰지 않았다. 바람 마법. "폭풍의 탑"을 사용했다. 탑처럼 거대한 회오리의 마법. 그러나 그것은 알렉드라의 마법 내부에서부터 치솟았다. 거대한 기사가 허무하게 모래바람으로 흩어진다. 유노는 아무 수고도 없이 사용한 마법이지만, 그걸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알렉드라 조차도. 타인의 마법 내부에 자신의 마법을 발동하는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묘기였다. 모두가 목격해놓고도 저런게 정말 가능한 거냐고 하나같이 수군거렸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35회 일치
* 핀랄은 보드가 차기 당주의 아내로 정해진 "피네스"양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당주가 될 리 없으니 랜길스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말하곤 했다.
* 하지만 피네스는 그의 상냥한 면모를 좋아했고 동생만 못하다고 자학하는 그를 격려해주었다.
* 랜길스는 원래 피네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못난 형을 두둔하고 자신보다 낫다고 말하는 걸 듣고 형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된다.
* 랜길스의 E팀은 1회전처럼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으로 접근해 랜길스가 공격을 가하나 핀랄이 공간마법을 공간마법으로 상쇄하며 제압한다.
* 신나게 관전하건 [[마법제]]도 그 마법에 나오자 표정이 바뀌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또한 어디서 느꼈던 흉흉한 기운이라 여기는데.
* [[핀랄 룰러케이트]]의 유년시절은 부모님의 매도로 가득했다. 어머니에게 핀랄은 자식 조차 아니었다. 그는 동생 [[랜길스 보드]]와 비교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 정도였다. 공부든 운동이든 랜길스가 월등한 것에 만족하며 핀랄은 자기 자식 조차 아니라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자식은 오직 랜길스 뿐. 그런 말을 핀랄의 면전에서 하는 말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랜길스는 일찍부터 형을 얕잡아봤다. 형주제에 무엇하나 자신보다 나은게 없다. 그런 형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멸시 섞인 동정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랜길스는 당연히 자기 약혼녀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이미 형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보드가의 차기 당주는 당연히 자신이고 저 여자도 내 약혼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네스가 싫었다. 재미없어 보이는 여자, 그게 다였다. 피네스와 만남을 운명적이라 여긴건 핀랄 쪽이었다.
얼마 뒤 랜길스는 형과 약혼자가, 피네스가 함께 있는 걸 목격한다. 정원의 벤치에서였다. 피네스가 핀랄에게 "병들고 연상인 이런 여자가 약혼자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시절 핀랄은 아직 여자가 서툴렀는지 우물쭈물대며 "그렇지 않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조하는 웃음과 함께 자기 처지를 말했다. 자신은 보드가 당주가 되지 못할 거고, 동생 랜길스가 피네스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얘기였다.
거기에 대한 피네스양의 대답은 엿듣던 랜길스의 자존심을 긁어놨다.
저 시시한 여자가 나를 형보다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랜길스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때까지 경쟁 상대 조차 못 된다고 생각했던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이 확실히 짓밟아야할 상대로 재인식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핀랄이 끝내 가문을 등지고 나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핀랄이 속한 E팀은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세 명이 밀집해 있었다. G팀은 1회전에서 써먹은 전법을 다시 들고 나왔다. 랜길스가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 탈것에 타고 맹렬한 속도로 접근 중. [[레오폴드 버밀리온]]이 전방에서 나타난 적을 확인했다. 레오폴드는 1회전에서 보여준 랜길스의 공격형 공격마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대처를 핀랄에게 일임했다. 작전이 있었다. 랜길스는 1회전에서 했듯 크리스탈이 적당한 거리에 들어오자 공간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핀랄이 작전의 1단계를 실행했다. 랜길스가 던진 공간마법이 핀랄이 펼친 공간마법과 부딪혀 사라졌다. 한 방에 게임을 끝내겠다 자신했던 랜길스가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방금 전 상황은 속임수도 요행도 아니었다. 핀랄은 고브를 통해서 "공간마법과 공간마법이 부딪히면 소멸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핀랄이 있는 한, 멀리서 공간마법으로 쉽게 이기는 일은 없다.
* 이제 작전 2단계. [[하몬 카세우스]]가 시합장 전역에 유리마법 "벨 디텍션"을 펼쳤다. 시합장 구석구석에 거울이 깔리고 거기 맺힌 상들이 반사를 거듭해 하몬에게까지 전해졌다. 시합장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탐색 마법. G팀의 세 번째 멤버 [[프라길 토르멘타]]가 탑 안에 숨어있는게 보였다. 크리스탈을 지키고 있었다. 핀랄이 공간마법으로 탑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핀랄이 랜길스의 공격을 막는 동안 레오폴드와 하몬이 공격, 이것이 작전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롭다. 하지만 레오폴드와 하몬이 탑 안으로 들이닥치는 순간 함정이 발동했다. 프라길 또한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성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방 전체에 눈 마법 "환설의 정원"을 발동시켰다. 일종의 환각마법으로 대상의 감각을 조종해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마법이다. 그녀는 이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서 자신을 공격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다.
* 반면 랜길스 쪽은 볼일이 길어질 모양이다. 핀랄이 기대이상으로 잘 막고 있었다. 랜길스가 날리는 공간마법을 자신의 마법으로 족족 지워버리며 크리스탈에는 손끝 하나 닿게하지 않았다. [[마법제]] 또한 공간마법 공방은 쉽게 볼 수 없다며 둘의 기량을 칭찬했다. 항상 형을 깍아내리던 랜길스 조차 "형이 천적이 될 줄은 몰랐다"고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세한건 여전시 자신 쪽이라 확신했다. 이쪽은 얼마든지 공격을 날릴 수 있지만 핀랄은 한 방이라도 놓치면 그걸로 끝. 과연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 있을까?
* 셋케가 "시시하고 시원찮은 마법"이라며 그런게 물이 오른 자신에게 맞겠냐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탈것의 궤도를 살짝 비틀어 가볍게 회피,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탄 랜길스는 비켜나간 마법이 반원을 그리고 뒤따라 오는걸 볼 수 있었다. 호밍 기능.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랜길스가 셋케를 버리고 뛰어내렸다. 셋케는 조금 늦게 눈치챘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방어마법 "셋케매그넘 캐논볼"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법이 닿는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건 랜길스 조차 예상치 못했던 공격. 하지만 이걸 시전한 핀랄은 스스로를 안스럽다고 자조했다.
* 시합장에서 사라진 셋케는 지옥보다 조금 못한 곳에 떨어졌다. 검은 폭우의 아지트. 구체적으로는 그곳의 남자화장실. 단장 [[야미 스케히로]]가 이용 중인 화장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받은 야미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즐겁게 관람하던 마법제는 그 마법이 나오는 순간 진자하게 경계하는 빛을 띄었다. 아스타는 그 흉흉한 느낌이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35회 일치
* 심사는 반역자 팀부터 시작해 엄청난 호평 행진을 이어갔다.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은 샤름,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면은 이스트와르 담당.
* 미마사카의 트레이스는 완벽한 수준이었고 마지막 어레인지 초밥은 "훈제 간장"을 쓴 네기토로 군함말이.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완벽하게 양립했다.
* 쿠가는 자기 자신의 틀을 깨는 것만이 [[츠카사 에이시]]에게 설욕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껏 숨겨운 기량을 남김없이 발휘해 츠카사의 인정을 받아내는데.
* 그런데 츠카사는 "지금까지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론 3학년들을 이길 수 없다 자신하고, 실제로 센트럴의 시식이 시작되자 전세를 급변한다.
* 전광판에는 반역자팀의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있었다.
* 드디어 시작된 2nd BOUT 최종 심사. 시작은 반역자 측부터. 이스트와르가 [[메기시마 토스케]]의 라멘을 맡고 샤름이 [[미마사카 스바루]]의 초밥, [[앤(식극의 소마)|앤]]은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이다. 반역자들의 요리는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 [타도코로 메구미]]는 자기가 심사받는 선수들보다 더 긴장해서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 [[요시노 유키]]나 [[사카키 료코]]도 같은 심정. [[유키히라 소마]]는 비교적 차분하게 선전을 기원하는 중.
* 샤름은 메기시마의 초밥을 먹기 전부터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불로 구운 초밥이 그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 메기시마의 라멘은 겉으로는 고추라는 주제를 어떻게 살린 건지 알기 어렵다. 이스트와르는 별첨된 빨간 테이스트가 고추 요소가 아닌지 짐작하며 신중하게 관찰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짐작이 가능한 둘의 요리와 달리 쿠가의 요리는 문자 그대로 미지수. 앤은 취중에도 그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중화 냄비로 튀기고 볶은 고기를 다시 훈재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 맛이나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는 먹어보지 않으면 전혀 예측이 불가능. 이제 이걸로 플레이팅에 대한 평가는 정리가 됐다.
* 샤름과 이스트와르가 각자 택한 요리의 첫 숟갈을 떴다. 초밥과 라면. 전혀 다른 두 요리를 입에 넣은 그들의 첫 소감은 놀랍게도 일치했다.
맛의 일제사격에 지격 당한 샤름과 이스트와르. 심사위원들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 반역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샤름은 모든 초밥이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정수리살 스시"를 꼽았다. 짚과 목초로 향을 입힌 참치 정수리살. 본래 참치에서도 가장 희소성 높은 특수 부위다. 깊으로 구운 덕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순수한 기름의 향기만이 남아서 날뛰고 있다. 이 평을 들은 [[하야마 아키라]]는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그만큼 완벽했다고 평하고 승부의 향방은 어레인지를 가한 마지막 초밥, "군함말이"에 있다고 단언했다. [[나키리 아리스]]도 의견을 같이하며 과연 어떤 맛으로 완성시켰을지 주목했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이번엔 메기시마의 아프리칸 라면. 겉 보기엔 면에도 스프에도 주제인 고추의 요소는 커녕, 이름은 아프리카의 요소가 어디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짐작하자면 가운데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붉은 조미료. 과연 저것이 주제를 살리는 키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메기시마는 그렇다고 자신했다. 그 조미료는 "하리사"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조미료였다. 그가 직접 나서서 설명하길, 그 재료는 파프리카 파우더, 캐러웨이씨, 레몬 즙과 마늘 등 자극적이고 강렬한 소재들. 그리고 여기에 중심이 되는 것이 "대량의 고추"를 휘저어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나자 소마도 짚이는 데가 있었다. 분명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가 쿄쿠세이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조리묘"라고 짤막하게 설명했을 뿐이지만.
스프도 아프리카의 요소를 잘 살리고 있었다. 그 스프는 "치킨 무암바". 닭고기와 땅콩류, 토마토를 함께 푹 삶은 아프리카 풍 스프다. 라면 맛의 베이스를 잡아주며 자극적인 하리사와 좋은 시너지를 일으킨다. 이스트와르는 요시노 유키가 기겁할 정도로 하리사를 퍼넣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계산은 완벽했다. 하리사를 넣을 수록 매운 맛과 함께 깊은 맛이 강렬해졌다. 국물에 대량으로 투입된 땅콩 덕이었다. 땅콩 특유의 감칠맛과 부드러움, 떪은 맛이 하리사의 매운 맛과 어우러지면 독특한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기에 수제 땅콩 버터로 조린 찻슈, 국물이 잘 배는 살짝 두껍고 꼬불한 면은 중독될 정도였다. 이스트와르의 표현은 "몸이 작열하게 허덕이는 맛".
*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호평 행진. 이제 관건은 안이 담당한 쿠가의 탕수육이었다. 시식 전에 안이 내키지 않아했던 인상이 마음에 걸리는데.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절정에 도달한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은 그렇게 주장했다. 좌우간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흑초 탕수육"이었다. 흑초 소스가 발라져 장식물처럼 반짝이는 탕수육. 그걸 먹는 순간 숨겨져 있던 녹차의 강렬한 향이 시야를 신록으로 물들이는 극상의 맛. 관건은 흑초 소스다. 발사믹 소스에 미마사카가 준 훈제 간장을 함께 졸여 향을 극대화했다. 쿠가는 기존 탕수육의 틀을 철저히 파괴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텁텁한 뒷막과 기름기를 신맛과 감칠맛으로 잡았다. 그 자리를 녹차의 향으로 채우면서 돋보이게 만들어 단연 요리의 주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이 요리가 순수한 중화요리가 아니라는 점. 여기엔 수준 높은 프랑스 요리의 기술이 접목됐다. 사천요리 전문을 자부하는 쿠가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목. 쿠가는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 소스를 활용했다고 인정했다. 소스 오 비네그르 발사믹은 발사믹 소스에 육수를 조려 응축한 "글라스 드 비앙드"를 함께 조리는 프랑스의 소스다. 쿠가의 말을 들은 이르트와르는 그 소스라면 가벼운 신맛과 육중한 중량감을 겸비해 탕수육의 포텐셜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거라고 평했다.
* 쿠가의 파격행보는 적과 아군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센트럴 측의 [[코바야시 린도]]는 "그 쿠가가 프렌치"라며 [[츠카사 에이시]]에게 놀라운을 표현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반역자 측에선 [[미토 이쿠미]]가 해볼만하게 됐다고 환호했다. 반역자 측에서도 한결같이 중화요리 전문인줄 알았던 쿠가가 이렇게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구사한 것에 감탄했다. 그건 전적으로 츠카사 에이시 때문이었다.
* 쿠가는 츠카사에게 패배한 날로부터 오늘까지, 자신의 요리를 바꾸기 위해 뼈를 깎는 시간을 보내왔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녹차라는 테마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중화나 사천이라는... 자기가 만든 껍질을 깨부순 것 뿐.
* 숟가락을 놓친 안. 술기운 마저 달아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시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겁에 질린 듯, 심한 자극으로 마비된 듯 보였다. 츠카사 에이시는 그녀의 그런 모습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의 요리는 각기 다른 네 가지 퓌레를 스프와 함께 먹는 요리. 츠카사는 퓌레와 함께 주변에 담긴 스프도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안은 여전히 몸서리를 치며 심사를 기다려 달라고 사정했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35회 일치
* 레분 섬 결전 2일차. 대회장 출발에 앞서 반역자들이 대기하는 동안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나타나 [[유키히라 소마]]와 정담을 주고 받는다.
* 모모는 의외로 반역자들을 친근하게 대하며 별명을 붙여주는 놀이를 한다. 그녀는 귀여운걸 엄청나게 좋가해서 파티셰를 하는 것도 "과자가 가장 귀엽다"는 이유.
* 그리고 그녀에겐 한 가지 더 자신을 주는 기억이 있었는데, 바로 도지마가 주선한 [[시노미야 코지로]]의 특훈이었다.
* 레분 섬 결전의 1일 차 종료. 그리고 다음 아침이 밝았다. 반역자의 숙소는 센트럴 측과 같은 레분 섬 내의 리조트 시설 "설원화" 호텔이었다. 토오츠키 계열의 리조트였다. 2일차 결전의 아침. 대회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반역자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출전이 결정된 [[타쿠미 알디니]]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요시노 유키]]는 그가 긴장감에 짓눌리지 않나 우려했지만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저건 주방에서 집중할 때 보이는 표정이라며 안심했다. [[사카키 료코]]는 다른 출전자들의 상태를 걱정했는데 적어도 [[미토 이쿠미]]의 눈에는 아주 괜찮아 보였다.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상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 상황이 놀자판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없자 이쿠미가 에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에리나는 긴장해서 굳어 있는 것 보단 낫다고 했지만 트럼프에 끼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쿠미한테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아리스의 카드패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사건건 훈수를 두다가 면박을 당했다. 아리스는 에리나를 떨궈낸 후 애꿎은 히사코를 건드렸다. 트럼프를 하고 싶지 않냐고 운을 띄우자 역시 이쪽도 과민반응이었다. 몹시 끼고 싶어했던 듯 하지만 "에리나 님의 특훈을 받고도 진 주제에 그럴 순 없다"는 네거티브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는건 이제 히사코 뿐이고 에리나도 아무 생각 없으니 잊어버리라고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대충 치던 것 같은 소마가 쿠로키바를 상대로 패가 나면서 판돈을 쓸어갔다. 따고 보니 제정신이 들었는지 소마가 슬슬 출발할 때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십걸 멤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언급해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현
* 소마는 언제나 그렇듯 붙임성을 발휘했다. 적이면서도 선뜻 모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두 명의 십걸은 어디에 있냐는 것. 모모의 말로는 그 둘은 전의가 너무 충만해서 못 기다린다면서 벌써 대회장에 가있다고 한다.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방에서 쉬는 상태라 한다. 어제의 격전은 정말로 상상 이상의 소모를 안겼다. 특히 린도는 왠지 불쌍하게 침대 옆 구석에 처박혀서 이불을 틀어말고 있다. 소마는 여기서 [[사이토 소메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오늘도 싸워야 했다. 힘들겠냐고 말을 건네가 의외로 모모는 "소먕"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제 오늘 냉수마찰로 목욕재계를 했더니 아주 거뜬해졌다고 한다. 한겨울의 홋카이도에서. 요시노와 사카키가 기겁했다.
* 소마가 적과 정담을 나누고 있자 다른 반역자들의 관심도 쏠렸다. 어느 정도 십걸과 친분이 있는 히사코가 모모가 평소와 달리 말이 많다고 한 마디 했다. [[잇시키 사토시]]도 거들었는데 원래 모모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제법 수다스럽다고 한다. 타쿠미도 이때만큼은 정신집중 상태를 풀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이토가 냉수마찰로 목욕재계했다는 말을 듣고 "고풍스럽다"면서도 역시 그러면 컨디션이 안 좋아지지 않겠냐고 쥐가 고양이 생각을 해줬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모모가 타쿠미를 "타쿠먕"이라 부르며 "소먕"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소먕은 분명 사이토를 부르는 말. 타쿠먕은 타쿠미를 부른 것인 듯 했다.
타쿠미가 갸웃거리자 그녀는 "방금 전 붙인 별명"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녀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소녀. 파티쉐인 것도 "모든 음식 중 가장 귀여운 건 과자니까"라는 이유. 그렇게 귀여운걸 좋아하기 때문에 남을 부를 때도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게 그녀의 취향이었다. 내친 김에 그녀는 반역자가 보이는 족족 별명을 붙였다. 이사미는 이사먕, 이쿠미는 왠지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니쿠미"를 한 번 더 변명해서 "니쿠먕".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게 "먀" 돌림이었다. 가장 귀엽다고. 이 자리엔 었지만 [[쿠가 테루노리]]도 별명이 있다. "테루냥". 쿠가처럼 나행이 들어간 이름도 좋다. "냥"도 먕 못지 않게 좋아하니까.
그 자리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잇시키는 그 별명 붙이기 놀이가 달갑지 않았다. 사실 오싹했다. 그는 이 별명 놀이의 또 하나의 원칙을 알고 있었다.
십걸 평의회 시절 알아차린 거지만, 그녀가 저런 식의 별명을 붙이는 상대는 정해져 있다. "자기보다 낮은 상대" 뿐.
* 3rd Bout의 준비가 끝났다. 대전자 전원과 모든 관계자가 입석. 반역자들도 우리에 들어갔다. 센트럴 측의 참전자는 사이토와 모모, 3학년 콤비와 2학년이자 현 7석 [[에이잔 에츠야]]였다. 사이토는 모모가 증언한 대로 팔팔하게 회복했다. 그가 입장하며 에이잔에게 적이 하급생이라도 강적이니 의기건양하게 임하라 충고하자 에이잔은 충분히 의기건양하다며 살의와 짜증때문에 그렇다고 눈을 번뜩였다. 이제 자리에 앉은 심사의원들이 최종 마이크 테스트 중. 결전이 코 앞이다.
* 소마가 슬슬 가보자고 말했다. 타쿠미는 마지막까지 메구미의 긴장 상태를 걱정했다. 하지만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적어도 서예에 매진하고 있을 때 보단 떨쳐낸 상태였다.
* 결전 2일차에도 여전히 맛이간 [[카와시마 우라라]] 등장. 묘한 하이텐션 상태 그대로 오늘의 참전자들을 소개했다.
제 2카드는 타쿠미 알디니 대 에이잔 에츠야. 의외로 타쿠미에 대한 소개는 평범하다. 이탈리아 태생의 유학생. 그의 눈에 보이는건 파멸인가 영광인다? 딱 상식적인 수준의 멘트. 그런데 또 에이잔에겐 가차없다. "돈과 미식의 망자". 아무튼 편파적인 건 변함없다.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원피스/853화 . . . . 35회 일치
* 브룩의 능력은 빅맘의 카운터지만 빅맘 자신과 자신의 혼을 직접 주입한 이각모 "나폴레옹", 뇌운 "제우스", 태양 "프로메테우스"에겐 통하지 않는다.
* 빅맘은 딸 [[샬롯 푸딩]]이 가진 "삼안족"의 힘이 있어 다음에 라프텔에 가는건 자신이라고 호언한다.
* 하지만 푸딩 본인은 자신이 혼혈이나 그 "힘"이 눈뜰지 어떨지 미지수라고 주장한다.
* [[타마고 남작]]은 "달걀달걀 열매" 능력자. 알에서 병아리, 닭으로 진화해가는 열매다.
* 페드로는 변신이 끝나기 전에 다이너마이트로 자폭하는데 사실 미러 월드에서 나타난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을 보고 위장한 것이다.
* 루피는 이곳은 자신이 "기다리겠다고 한 곳"이 아니므로 거기로 간다며 뛰쳐나간다.
* 보물전에서는 빅맘 [[샬롯 링링]]이 너무나 간단하게 [[브룩]]을 제압하고 마치 애완동물처럼 어르고 있다. 그녀는 브룩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부비기도 하며 "정말 귀여운 생물"이라 말한다. "살아있는 해골"인 점이 그녀의 컬렉터 기질을 자극한 모양이다. 게다가 브룩은 강하기까지 하다며 분명 그의 능력은 체스병들에겐 천적같은 능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혼"의 "격"이 다른 빅맘 자신과, 자신의 혼을 직접 주입한 이각모 "나폴레옹", 뇌운 "제우스", 태양 "프로메테우스"에겐 통하지 않는다. 빅맘은 이 세 가지 무기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표현한다.
빅맘은 이제 자신도 로저와 같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며, 다음에 라프텔에 가는건 자신이라고 장담한다. 그 방법이란 바로 [[샬롯 푸딩]]. 그녀의 능력이다. 때마침 푸딩이 빅맘을 만나러 온다. 브룩은 그녀를 알아보지만 아직 내막을 모르고 있어서 그녀를 위해 모르는 척 한다. 푸딩도 브룩을 알아보지만 어차피 잡혔으면 그걸로 됐다고 여겨서 역시 아는 척하지 않는다.
푸딩의 세 번째 눈은 "삼안족"이란 특수한 종족의 능력이다. 그녀는 빅맘은 푸딩이 삼안족의 진정한 힘에 각성하면 로저와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푸딩은 자신은 혼혈이라서 그런 힘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고 회의적이다.
푸딩은 빅맘에게 할 말이 있다며 빅맘의 방으로 가자고 조른다.
그는 "달걀달걀 열매"(타마타마 열매) 능력자. 문자 그대로 달걀이 되는 열매. 달걀->병아리->닭 순으로 강해지는 능력으로 달걀 상태에서 페드로에게 당하다 곧 "병아리 자작"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작위도 오르고 전투력도 오른 상태라 페드로를 애먹인다. 그러나 결국 페드로에게 또 한 번 베이고 만다.
* 쓰러진 병아리 자작은 잘려진 몸통 속에서 달걀 같은 내용물이 흘러나오더니 그게 닭의 형태로 변해간다. 이것이 바로 "닭 백작". 이 상태가 "진정한 기사"라 불릴 정도로 전투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마지막 변신이라 그런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데 페드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다. 변신이 끝나기 전에 타마고 남작의 숨통을 끊으려 하자 부하들이 저지하려 한다.
* 페드로는 적들에 포위되자 그동안 숨기고 있던 다이너마이트 뭉치를 내보인다. 지금까지 싸움은 그저 위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진짜 목적은 적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저승길 길동무로 삼으려는 것. 적들이 충분히 모이자 페드로는 주저없이 불을 붙인다. 안뜰이 통채로 쓸려나갈 것 같은 폭발이 일어난다. 부하병사들은 물론 진화 중이던 닭 백작까지 휩쓸린다.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한켠에 있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있는데.
* 페드로는 자폭한게 아니었다.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거울을 통해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실 자폭하려고 했던건 진심이었지만 그 직전에 쵸파 일행이 미러월드를 통해 그를 발견했고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그를 빼돌릴 수 있었다. 쵸파와 캐럿이 "무리 좀 하지 마라"고 타박하자 페드로는 "거울에서 나타나다니, 놀란 건 이쪽"이라 받아친다. 한 번 빅맘의 영역을 침범했던 그도 [[샬롯 브륄레]]의 능력에 대해선 몰랐던 모양이다.
캐럿은 손수 그린 초상화를 들고 다니며 거울들에게 "이렇게 생긴 사람 못 봤냐"고 묻는데 잘 그리긴 했지만 너무 미화된 화풍. 페드로는 그 점을 지적하며 도움이 안 된다고 투덜댄다. 그런데 페드로의 생각과 달리 거울들은 그 주인공들을 알아본다. 몇몇 거울이 [[나미(원피스)|나미]]는 본 적이 있다며 그녀가 [[징베]]와 같이 도주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갑자기 징베의 이름이 나오자 일행은 놀란다.
* 한편 [[몽키 D. 루피]]는 [[상디]]를 찾아 헤매며 성안의 적들을 족족 쓰러뜨리고 있다. 벌서 3층 바움까지 진격했는데 부상을 입은 몸인데도 그를 쓰러뜨릴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루피는 일단 상디를 부르며 마구잡이로 돌격하고 다니는데 그가 의무실 앞을 지나칠 때 문에서 나온 손이 그의 팔을 잡아 끈다. 이때 루피의 팔에 난 상처가 또 벌어진다.
그건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는 의무실을 떠났지만 그녀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었다. 레이쥬가 루피를 불러들이고 방문을 잠그자 루피를 추적하는 병사들이 문 앞을 지나간다. 일단 루피를 숨겨준 셈이지만 상디를 빨리 찾아야 하는 루피는 성가셔 한다. 하지만 그녀가 상디의 누나라는 건 기억하고 있다.
레이쥬는 상디를 찾고 있지 않냐고 말을 꺼내며 그가 방금 전에 의무실을 떠났다고 알려준다. 루피는 빨리 상디를 찾아서 푸딩에게 모두 속았고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뒤늦게 레이쥬의 부상을 발견하고 괜찮냐고 묻는다. 레이쥬는 그 대답 대신 "상디는 이미 푸딩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녀는 상디에게 도망치라고 계속 설득했지만 그는 밀집모자 일행과 이스트 블루의 인질을 계속 걱정해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해준다. 루피는 이스트 블루의 인질이 발라티에의 제프 일행이란걸 알아차린다. 루피는 그들이 정말로 위험하다면 이스트 블루에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서 싸우겠다고 외친다.
그때 루피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낸다. 레이쥬가 먹을 걸 권하지만 루피는 거절하는데 레이쥬는 그가 상디 앞에서 "네가 주는 밥이 아니면 안 먹는다"고 선언한걸 기억해낸다. 루피는 상디가 속지 않았다면 다행이라며 레이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갑자기 창문으로 달려간다. 레이쥬가 무슨 짓이냐고 묻는데 루피의 대답은 간단하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35회 일치
||<bgcolor=#A50000> {{{#EEE156 구독자 수}}} || 112,199명 (2018년 9월 03일 기준) ||
'''[[성기|자신의]] [[노출|큰 잘못]]으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한 스트리머'''
예전엔 마른 체격이었는데 체중이 불었는지 통통한 체격이되었다. [[2014년]]도에 [[아프리카TV]]에서 명불허전와꾸로 활동했었던 인물.[* 명불허전와꾸를 검색하면 이 문서로 넘어온다.] [[남구(범죄자)|남구]]에게 사기[* 남구에게 핸드폰 명의를 빌려줬다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를 당한 피해자였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자신을 팩트로 까려는 사람을 메갈리아 유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한 유저에 따르면 무작정 메갈이라며 활동정지를 당한 경력이 있다. 사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신태일, 푸워 등등은 칭찬하고 좋아한다면서 이병욱은 어떠냐고 그 사람의 지인이 묻자 [[구안와사|"그 안면마비 장애인새끼"]]라며 여러가지 욕설을 한것을 이병욱이 알게되자 심각하게 화를 낸적이 있다. 헌데 그 사람이 여자라 이 일이 있는 이후로 그냥 까기만 하면 무시하는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프로필이 여자거나 하면 메갈이라며 싫어한다.]]
남구로 인해 피해를 본 일들과 자신의 명품 옷을 헐값에 팔아넘긴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에게 30만원만 받고 퉁친 일화가 있었으며 예전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트위치로 이적한 지금은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https://youtu.be/D72cYb3JGyo|전자담배 아이코스 히츠 그린 솔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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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8ODF_nr3Q0M|비타민 담배 타바케어 골드 솔직 리뷰 "담배를 끊게하기 위함인가?" "흡연욕구를 자극하기 위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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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8ADjQZOGqbc|마크정식 (불닭볶음면+자이언트 마늘 떡볶이) 솔직리뷰]]||
||[[https://youtu.be/r23I5TmSJQc|초등학생때 자주 먹던 추억의 불량식품 솔직 후기]]||
그 악명높은 '''느금마엔터 민폐 [[신태일(유튜버)|4]][[김윤태|대]][[푸워|천]][[남구(범죄자)|왕]]'''에 임팩트가 가려저서 그렇지, 사실상 현재 느금마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지가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한다.''' 트위치에서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보면 '''[[유신(스트리머)|유신]]과 투탑'''이었다.
'''이병욱이 트위치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된 사건이자 사실상 이미지 추락에 큰 일조를 한 사건'''
이후 이병욱 본인이 뻔뻔하게도 트위치 방송 동시 송출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아몰랑|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모양이다.]]
[[4월 24일]] 새벽 방송[* 원본 영상이 없다.]에서 [[오버워치]]를 하는 중에 게임에서 패배하자
결국 본인이 페이스북에 [[http://www.mediassul.com/news/articleView.html?idxno=750|사과문]]을 작성했으나... '''미친척하고 패드립하고 달려드는 몇몇의 여자들에게는 전혀 죄책감이 없다''', '''사과를 해봤자 진심어린 사과를 못 할 것 같다'''는 발언으로 진정성 논란이 되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는겁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는거에요--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35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이 리뉴얼되고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방 배정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와 [[디안느]]는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을 방문하는데 그 자리에서 디안느가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와 닮은 사람을 봤다고 밝힌다.
*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돼지의 모자"정의 리뉴얼 오픈을 앞두고 한껏 흥분했다. 자신있게 낙성신을 선언했으나 정작 보러온 것은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둘 뿐. 모처럼 일곱 개의 대죄도 다 모이지 않았냐 따지니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일정이 있어 오지 못했다 한다. 차가움을 느끼는 호크. 게다가 개막 역할도 자신이 하려고 했는데 멜리오다스와 반이 얼렁뚱땅 가로챈다.
* 장막을 벗어던진 새로운 돼지의 모자정. 거대한 맥주컵 형상으로 변했다. 작은 정원시설로 부설.
* 이래저래 빈정 상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반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반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반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반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남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반.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반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이 집을 방문한 여성은 [[디안느]]와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였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엘레인을 깜짝 방문하려고 했던 건데 여지없이 간파 당했다.
* 반과 재회한 이후로 엘레인은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겐 "생각을 닫아도 안절부절하는 기분은 다 전해졌다"고 핀잔하고 디안느에겐 "[[킹(일곱 개의 대죄)|오빠]] 생각 뿐이라 금방 들켰다"고 핀잔한다. 물론 그 이상으로 연인 생각만하는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지만. 인사를 마친 엘레인은 "정말 오빠로 괜찮겠냐"고 디안느를 걱정한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할리퀸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랑 남자의 대화를 한다며 술집으로 향했다 한다. 오늘밤 연회가 있는데 낮부터 술집이라니. 엘레인은 역시 오빠로 괜찮은지 고심해본다.
디안느는 엘레인의 몸을 걱정한다. 그녀는 금술로 혼을 묶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엘리자베스의 마력 지원으로 한결 편안한 상태다. 이번엔 엘레인이 요정왕의 숲 근황을 묻는데 디안느는 이럭저럭 잘들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엘레인의 질문이 디안느가 깜빡하고 잊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디안느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자신이 성전시대에서 봤던, 아직 단원들에게 밝히지 않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옛날의 단장이랑 너랑 똑같이 생긴 엘리자베스랑 만났어!
눈이 휘둥그레지는 엘리자베스.
* 한편 동생의 걱정을 한 몸에 사고 있는 오빠, 할리퀸은 벌써 술집에서 곤드레 만드레 취했다. 그의 주사는 특이했는데 긴장했을 때의 아저씨폼과 노멀폼을 쉴 새 없이 오가며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게다가 고서가 술을 마시지 않자 "내가 주는 술은 못 마시겠다는 거냐"고 꼰대스러운 짓까지 한다.
* 한편 고서는 "나는 인형이라 술을 못 마신다"는 설명을 12번째 되풀이하는 중이지만 싱글벙글이다. 감정을 되찾은 것은 밉쌀스러운 성격은 별개의 문제인 듯 하다. 아무튼 그는 "지금 취하면 저녁 연회 때까지 못 버틴다"는 뼈아픈 팩트까지 날리는데 이 술자리에 낀 [[에스카노르]]에겐 할리퀸의 주사 이상으로 골치아픈 행동이었다.
할리퀸은 과거의 은원이 정리됐으니 서로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주절거렸다. 하지만 막상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술집에 와본 건데, 고서는 그 말을 자르며 "술 기운을 빌리는 거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이에 낀 에스카노르가 그가 감정을 되찾아서 더 날카로워진거 아니냐고 안절부절 못한다. 할리퀸이 다시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 "툭 까놓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고서는 어차피 1시간 후 그가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조소한다. 곧바로 할리퀸이 노멀폼으로 돌아와 하는 말은, 도저히 고서의 대답과 이어지지 않았다.
* 혼자 북치고 장구치다 잠들어 버린 할리퀸. 고서는 서치 라이츠로 그의 생각을 엿본다. 그의 머리 속은 디안느에 대한 생각과 돋아난 날개의 자랑스러움, 그리고 고서가 싫다는 감정이다. 그러나 거기에 이어서 자기가 계속 오해만 해왔던 것, 그리고 자신고 같은 짓을 해왔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함께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는 감정.
고서는 할리퀸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디안느의 기억을 멋대로 조작했으니까. 에스카노르는 그를 위로하며 괜찮을거라 말한다. 할리퀸은 상냥한 사람이니까, 라면서. 고서는 복잡한 미소와 함께 "나는 좋은 인형이 되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에스카노르가 자신은 이미 고서를 좋아한다고 말해준다.
할리퀸이 그대로 엎어져 코피를 쏟게 되는 동안 고서는 깔끔한 동작으로 안경을 캐치, 원래 자리로 되돌린다. 이 마법의 안경은 멀린에게 받은 특제품. 정오에도 겸손한 상태의 에스카노르를 유지시켜준다.
* 단원들이 각자 한가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 일행의 책사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다급한 용무를 처리 중이었다. 그는 수정 너머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십계가 정복한 영역에 돌입한 사역마 올론디였다. 올론디는 "왕에 걸맞는 마력"을 찾으란 분부를 받고 십계가 정복한 구역에 잠입했다. 하지만 보이는건 마신족 졸개나 세뇌된 인간 뿐.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고 불평하던 올론디는 갑자기 멀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다.
- 조원진 . . . . 35회 일치
|| '''가족''' ||배우자 성희숙, 슬하 1남1녀||
2017년 4월 8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여 [[새누리당(2017년)]]에 입당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다.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유승민]] 前 원내대표과의 대립 과정에서 [[최경환(1955)|최경환]] 前 경제 부총리와 함께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하였다.
[[2016년]] 20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같은 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1년씩 나눠서 맡기로 했다. 그러나 조원진 의원이 중도에 탈당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9일]]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박사모]], [[영남]] 표심을 긁어모아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 했으나... 초유의 5자구도에서 유의미한 득표 실패'''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53080|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519|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남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온건친박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박사모|박근혜 즉각 석방]], [[박근혜 탄핵]] 주동자 심판, [[언론통제|언론에 대한 강력한 제재]], [[5.18 민주화운동/왜곡|5.18유공자 전수조사]], [[호모포비아|동성애 금지]], [[박근혜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국정교과서]] 의무화[*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 국정교과서는 사형선고를 받게됐다.], 20억 이하 재산 상속세 증여세 완전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박근혜의 석방만 외쳤을 뿐 대통령직 복권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1% 안팎이다.
2017년 4월 24일 열린 [[19대 대선]]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서는 [[김선동(1967)|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에게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들이대다가 '철 지난 메뚜기'란 조롱을 들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70423&ref=A|기사 1]] [[http://v.media.daum.net/v/20170425013917707|기사 2]] 오해를 막기 위해 기술하자면, 김선동 후보도 [[최루탄|잘한]] [[코스트코|건 없다.]][* 애당초 김선동은 [[서갑원]], [[이정현(정치인)|이정현]]과 함께 '''[[순천시]] 국회의원의 수치 3총사'''에 나란히 꼽히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민중당 자체도 舊 통합진보당 NL계가 뿌리인지라 종북몰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여서(...).] 나머지 후보들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 비초청후보 토론의 최대 승자는 '''[[이재오]] 후보'''라는 게 중론.
선거 1주 전가량 [[바른정당]]에서 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며 15명의 국회의원[* 김성태, 김학용, 김영우, 여상규, 장제원, 이진복, 이은재, 이종구, 박성중, 홍문표, 홍일표, 권성동, 이군현, 황영철, 김재경을 의미한다. 대대수가 친김무성계에 속한다.]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려 하자 '[[자유한국당]]도 탄핵 주역에 배신자이다'라 비난하며 [[홍준표]]와의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홍준표]] 후보 측의 [[여론조작|댓글부대]] 운용 의혹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http://m.shinmoongo.net/a.html?uid=102498|기사]]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여담이지만 5월 7일 [[eUnited]] 팀의 팬미팅 때 옆에서 유세를 하고 있었는데 [[해리슨 폰드]]를 보러온 학생들이 자신들을 도우러 온 것이라며 [[김칫국]] 원샷을 하였다.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함께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한 국회의원. 국민보다 박근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으로는 박근혜에게 인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친박이라는 것 외에 딱히 정치적 자산이 없고 본인에게 특출난 능력, 우러러 볼 업적도 없기 때문에 박근혜를 놓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조원진은 태극기 집회 연설이나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극단적인 언행을 전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현재 그가 박근혜 석방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뭔지 떠올려 보면 딱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 34세에 [[대우자동차]]를 거쳐 [[포스코대우|대우]] 중국기획조사부 부장까지 했었다. 그 후 [[황병태]]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선거공보물에는 명동판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달서 병 당협위원장직을 [[홍준표]]의 측근이자 비서실장이었던 [[강효상]]에게 헌납했기 때문에[* 홍준표는 북구 을 당협위원장이 되었다가 현재 사퇴하였다.] 다음 총선에서는 낙선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달서구]] 인구가 [[2014년]]부터 감소하는 바람에 [[달서구 병]] 지역구가 [[21대 총선]]에서는 없어질 수도 있다.~~선거구 조정으로 변수가 있지만~~ [[월배]] 등 신시가지는 인구가 소폭 늘고 있지만 그의 지역구는 [[달서구]] 동북쪽 지역으로 구 시가지가 대부분이다.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김태흠]]이 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81608|#]]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신당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2017년에만 4개의 당적을 기록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2017년)]]→[[대한애국당]]) 모두 6개월 동안 일어났으며, 이는 10년 전인 [[김한길(정치인)|김한길]]과 김한길계 정치인들과 타이를 이룬다.[* 같은 6개월이어도 김한길계가 조원진보다 약 2주 빠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당적 갈아 치워도 특이하게도 [[철새]] 취급은 받지 않는다. 철새는 커녕 변경된 당적의 공통점이 전부 친박, 탄핵 반대 집회 쪽 노선이라 오히려 그가 가진 정치색이 더욱 진해졌다고 봐야 한다.
2018년 7월, 국감을 진행하는 도중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강창일]]이 질의하는 도중에[* 강창일이 민갑룡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두고, 통과시킬지 말지를 자유한국당에 재촉하는 장면이었다.] 옆에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언쟁을 벌였고 격노한 강창일에게 양아치 소리를 들었다.[* 하긴 3년 전인 [[2015년]]에도 강창일과 말다툼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완전 양아치 수준이구만!". "욕해봐".~~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br](대구 달서구 병) || '''[[새누리당]]''' || '''43,817 (66.24%)''' || '''당선 (1위)'''|| [* 2017.04.10: [[자유한국당]] 탈당[br]2017.04.10: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입당[br]2017.08.30: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탈당[br]2017.08.30: [[대한애국당]] 창당] ||
- 트로피코 4/인물 . . . . 35회 일치
El Presidente. 이 게임의 화자이자 주인공. 플레이어. 카리브 해의 독재국가 트로피코의 대통령이다. 인간이 아닌 새로운 인종 호모 프레지덴쿠스다.
트로피코를 세계 강국으로 성장시킨다는 원대한 야망을 가진 독재자. 미국 대통령 암살의 배후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몰락하지만 재기하여 복수극을 벌인다.
[[큰부리새]]를 좋아해서 애완조로 키우고 있다. 각하의 큰부리새는 트로피코의 마스코트로도 발탁되었다. 각하의 정적인 산타나 총통은 대통령 각하를 엿먹이려고 자신의 섬에서 큰부리새를 박멸시켰다.
Antonio Lopez. 실크햇을 쓰고 연미복을 입은 남자.
게임 내에서는 자본주의자의 주장을 대변한다.
Comrade Vasquez. [[체 게바라]]같은 모습을 한 남자.
게임 내에서는 공산주의자의 주장을 대변한다.
Miss Pineapple.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은 여자.
Reverend Esteban. 인자해보이는 신부.
정책을 제안할 때 "그분"의 계시라는 식의 대사를 자주 친다.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라는 제안을 할 때 대사를 보면 계획이 있다. "자유주의자 녀석들이나 범죄자, 그리고 짜증나는 청소년 녀석들을 쏴죽이는 계획"이. 이후에는 군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축할 생각으로 보인다.
게임 내에서는 군국주의자의 주장을 대변한다.
Sunny Flowers. 히피같은 의상을 하고 있는 여자. 페눌티모와 함께 "트로피코 뉴스 투데이"라는 방송을 진행한다.
유조선에서 석유가 유출될 경우 물고기에게 인공호흡을 할 정도로 자연을 사랑하지만 라마는 좀 별로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면서 똑같이 침을 뱉는 낙타는 귀여워한다.
게임 내에서는 자연주의자의 주장을 대변한다.
El Diablo. 스킨헤드 남자. 자신을 "나"가 아니라 "엘 디아블로"라고 칭한다.
주점에서 싸움을 벌이거나 하며 지내는 듯. 또한 밤마다 부하들을 시켜 외국인 이민자들을 습격하고 있다.
달에 트로피코 깃발을 꽃아 트로피코를 세계에서 제일 넓은 국가로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 대통령 각하는 그걸 진짜 해냈다.
게임 내에서는 국수주의자의 주장을 대변한다.
낙타를 자주 언급한다. 제안을 할때도 낙타를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 낙타를 준다. 그리고 페눌티모는 낙타한테 물린다.
- 홍학표(배우) . . . . 35회 일치
90년대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 명배우이지만, 이곳 [[위키니트]]들에게는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의 [[장세동]]으로 더 많이 기억되는 배우일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연극]]이라는걸 구경하고 내리 두번을 연속적으로 본뒤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결정한다. 의대 지망생이었던 그의 돌발적인 궤도수정을 사춘기의 방황쯤으로 돌리기엔 너무 심각했다. 그는 교과서 대신 연극대본을 밤새워 읽으며 연극에 푹 빠져버린 그는 여드레간의 가출끝에 부모의 허락을 받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 81학번으로 입학한 홍학표는 연기라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내달리기 시작한다. 때론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고, [[제1보병사단]] 문선대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에는 '''전진 부대가 낳은 미남 사회자 홍학표'''로 군부대를 누비기도 했다. 소형영화에 심취해 연출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홍학표는 제대하고 취업이 막막해지면서 KBS 코미디 프로그램 대본도 써보기도 했고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대학교 3학년 때인 1987년 MBC TV '베스트셀러 극장' FD로 일하기도 했는데, 이 때 PD의 눈에 띄어 '''MBC 특채 탤런트가 되는 행운'''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1987년 MBC 드라마 '푸른교실'에서 주요인물 배역으로 첫 모습을 보인 홍학표는, 이듬해인 1988년 MBC 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서 신예 탤런트 [[채시라]]와 호흡을 맞추는 남자 주인공[* 극중 CF모델 채시라를 흠모한 나머지 그녀가 나오는 CF를 제작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하는 어리숙하고 선한 이미지의 남자 주인공이다. 그의 대학동기인 탤런트 [[이효정(남배우)|이효정]]은 홍학표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채시라를 [[스토킹]]하는 괴한으로 나와 후반부에 홍학표와 격투씬도 벌인다. [[지못미]]]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깨알같은 [[이홍렬]]과 [[윤석화]] ㅋㅋ-- 이후 신인배우임에도 베스트극장 차기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도 주인공 역할을 거푸 따내는 행운을 얻었고, 그때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펼쳐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부풀려 놓았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2개의 시즌을 걸치며 방영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은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다. 당시 서른을 넘기는 나이였지만 유난히 어려보이는 얼굴에다 '''풋풋한 개성과 선량한 이미지로 어필'''하며 [[최진실]]과 함께 시즌1[* '우리들의 천국'은 공식적으로는 시즌제작품이 아니지만 편의적으로 시즌1과 시즌2로 나눌때 홍학표가 주연을 맡았던 시즌1은 단순히 대학생들의 삶과 연애를 다룬 내용이라기보다는 어머니,아버지,대학생 큰형(홍학표),쌍둥이 고교생 형제로 된 다섯 가족의 삶을 다룬 홈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다. 각각의 가족들도 비중이 있어 어떤 회에서는 홍학표 관련 내용은 별로 없이 쌍둥이의 학교 생활,아버지의 직장생활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던 경우도 있다.홍학표가 중심이 된 대학생활과 연애가 아무래도 중심이긴 했고,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생들의 연애 드라마로 완전히 변화한다. 시즌2부터 등장한 배우들이 [[박철]],[[음정희]],[[염정아]],[[김명수(배우)|김명수]]등. 홍학표가 빠지고 실질적인 시즌2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청춘연애물이자 대학생 로망스 겸 젊은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막내 아들 역할을 비롯 이전작들을 통해 청순스타로 각광받던 [[김찬우]]가 주인공이었고,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재수까지 하여 같은 대학에 입학한 절친으로 [[장동건]]이 나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박철]]은 훗날 안좋은 이미지가 된데다 최근의 살집있고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이미지가 전혀 아닌 당시 특A급 꽃미남스타였다. 여자배우로는 장동건의 파트너로 [[이승연]]이 나왔고 이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배출한 스타가 [[전도연]]이다 .]에서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추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다. 큰 키도 아니고, 확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닌 그가 청춘스타로 등극한 것은 사실 한국 연예계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재미있는 점은 홍학표가 처음에는 주인공인 진수가 아니라 오성대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점인데, 진수로 내정된 배우 [[안정훈]]이 첫회분이 방송되기 직전 교통사고를 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출자인 이진석 PD의 설명에 따르면 첫 방송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메웠지만 교통사고로 다리골절 부상을 입은 [[안정훈]]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때 홍학표가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진석 PD는 동의했지만, 그 당시 홍학표는 아직 검증되지않은 신인 탤런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작진의 윗선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결국 홍학표는 주인공 진수로 캐스팅 되었고,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들의 천국'은 인기몰이를 시작하며 홍학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청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결국 오성대 역에는 정명환이 캐스팅되는데, 그 역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아래인 배역을 맡았다.]실제 이 당시 홍학표가 누린 인기는 엄청나서 '''TV의 원작인 소설 '우리들의 천국'의 표지모델로 낙점'''받기까지 했다.
순한 외모때문에 데뷔 후에 늘 착한 역할만 맡았던 홍학표는 연기자로서 이미지 변신시도를 해보고자 MBC '10대 사건 시리즈'에서 흉악범으로 출연한적도 있지만 '우리들의 천국'이 성공하면서 결국 원래의 이미지로 되돌아갔다. 후에 MBC에서 KBS로 둥지를 옮겨 KBS 일일극 '좋은걸 어떡해'(2000), '사랑은 이런거야'(2002)로 시청자 사랑을 받으며 조연상도 거머쥔다.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005년에 화제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연기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치드라마에 출연하며 '''군사정부의 실세인 [[장세동]]을 열연'''하였다. 실제 [[장세동]] 배역은 카리스마와 충절로 대변되는 캐릭터라 캐스팅 과정에서 연기자들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홍학표는 실제 장세동 배역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극중에서 실제인물과 외모면에서 싱크로율이 높아 최종 낙점'''되었다고 한다.[* 외모뿐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비슷하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lpSgQ_nrVM|이쯤되면 도플갱어급인듯]]] 캐스팅되고나서 실존인물인 [[장세동]] 측근으로부터 만남의 요청을 받아 배우로서 자료수집이 될 것 같아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장세동과의 술자리 대화 내용이야 뭐 자기 좀 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심지어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2005년 8월 골프를 치러 갔다가 골프장에서 홍학표가 앞 팀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전두환이 비서를 통해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전두환은 홍학표에게 “(5공 인사들이) 욕을 좀 덜 먹게 연기해달라”고 특별주문을 했다고 한다.~~그건 작가 마음이지 배우가 뭔 힘이 있나...~~ 그리고 드라마 잘 보고 있다며, 극중에서처럼 실제 [[장세동]]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적은 한번도 없다는 세세한 지적까지 했다고 한다. 이순자도 자신이 드라마에서 장영자와 잘 아는 사이처럼 나오는데 실제로 본인은 장영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돈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배역을 하는 건 싫어할 정도로 홍학표는 배우로서 자존심이 세다. 덕분에 다작을 하지 않아서 '''몇년에 한 번씩 드라마에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하지만 가족들이 있으니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배우가 아닌 사업으로 부족한 벌이를 하려고 시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업가로서의 운은 배우처럼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연예계 선배의 감성어린 호소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집을 날리고 2년간 미국에서 원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2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수지가 맞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라서[* 이 당시 1달러당 '''2천원대'''까지도 찍었고 점차 안정되면서 1천원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교적 빠르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배와 연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며, 이자는 안받을테니 원금이라도 받고싶다고...[[지못미]]
홍학표의 친구 중에 미술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홍익대 미대 1학년인 '''9살 연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홍학표는 아내의 모습에 첫 눈에 반했으나 당시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내 때문에 8개월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마음에 안들었던 장인, 장모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너무 나이차가 많다 보니 심지어는 장모가 "애 데리고 그러지마"라는 충고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중간에 홍학표의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졌고 아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결국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나 졸업하고나서까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한 믿음과 성실한 모습을 통해 결국 장인, 장모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1994년 아내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고 한다.
전성기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가족을 잃은듯한 슬픔을 느꼈고, 5일동안 아무일도 못할 정도로 충격에 빠질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2009년 [[송대관]]의 아내와 함께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서 2011년에 관련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동안 배우로서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 결국 '''도박방조죄 혐의[* 실제 도박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도박현장을 목격하고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다.]로 [[약식기소]]'''되고 200만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문제는 실제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전혀 관련도 없는 [[송대관]]의 아내와 염문설이 있는 식으로 기사가 나온데다, 법원판결에서 유죄를 받은 혐의인 '도박방조죄' 혐의 부분도 자신의 외식사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투자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곳이 하필 [[마카오]]의 [[카지노]]였는데 이게 원정도박혐의로 부풀려져 그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많은 듯. 오죽했으면 벌금 200만원의 배 이상인 변호사를 수임하면서 정식재판을 청구했을까?
* 1994년 : SBS 수목드라마《[[이 남자가 사는 법]]》- 한세현 역
* 1994년 : SBS 주말극장 《[[이 여자가 사는 법]]》- 모난수 역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34회 일치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날 새벽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을 이용하던 23세 여성이 34세 남성 피의자 김모씨에 의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남자친구에 의해 발견되어 오전 1시 25분 경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같은 날 오전 10시 김모씨는 긴급 체포되었으며 자백을 받아냈다.
김모씨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정도로 불안정한 정신상태였다. 그의 병력은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이었으며 평소 여성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대체로 수사관과 범죄심리학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묻지마 범죄의 전례와 완전히 일치하며 특정한 편견에 의한 범죄가 아니므로 묻지마 범죄로 봐야한다는 여론이 강세이나 반대로 사회학자,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이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며 강력 범죄에 취약함을 주지시키는 사건이라는 여론이 강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극명하여 때아닌 성대결 양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상자가 비정상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상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반대로 여권운동가 및 사회학자들 사이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경찰측에서 분류하는 혐오범죄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이미 여성을 범죄의 대상으로 특정하고 있으며 피의자에 증언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혐오 또한 분명히 확인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걸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하나의 징표로 사건 자체의 성격을 떠나 이 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강력범죄에 느끼는 불안과 사회적 취약점이 노출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사건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의견으로 사건 자체가 여혐사건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사건 자체는 여혐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 전반이 여혐적인 사회인가, 혹은 여성범죄에 취약한 사회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실제로 일부 통계에서는 강력범죄의 피해자 90%가 여성이라는 결과도 있는 반면, 통계를 왜곡했고 실질적으로는 의미있는 성차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사건 자체의 성격보다는 지금껏 인터넷 등 한정된 공간의 논란이었던 남녀 갈등이 사회적으로 분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사실 사건 자체는 빠른 신고로 당일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여혐사건으로 전파되면서 뜻밖에 논란이 큰 사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추모행사를 주도한 것만이 아니라 이것을 자신들의 남혐활동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였으며 한국사회를 여혐사회로 단정하고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는데 총력을 다했다.
여초사이트가 주도한 만큼 이 사건은 웹상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데 주로 SNS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처음에는 시민사회 전반의 애도가 모였으나 워마드를 비롯한 여초사이트의 공세가 강화되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한국사회를 답이 없는 여혐사회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났다. 워마드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을 모두 "여혐"과 "반성을 모르는 남성"으로 규정, 철저히 비하하면서 이 사건은 여혐 대 남혐의 구도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 정도를 지켜야할 언론에서는 사건을 원색적이고 편파적으로 다루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특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에서는 워마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 극도의 페미나치스러운 기사를 쏟아내어 진보 진영 안에서도 성토를 당했다. 일부 유명인들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워마드에 편승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히 진보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은 한국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x잡고 반성이나 해라"는 폭언을 늘어놓고 욕을 먹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가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특히 피해자의 오빠는 여혐논란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유가족의 목소리 조차 "한국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하로 일관하였다.
당초 여초사이트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것은 메갈리아였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여러 사건을 거치며 세력이 위축되자 거기서 한 번 더 분화되어 나온 것이 워마드였다. 워마드는 여성판 일베, 혹은 소라넷으로 불리울 정도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주장을 펼치는 세력이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 논란과 함께 주목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발언과 미러링이라는 핑계 조차 내다 던진 노골적인 남성혐오 때문에 "남성을 강간하자"라는 일베스러운 논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기사화되기도 하는 등, 여초사이트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일반시민 사회에서는 이러한 남혐 대 여혐 논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 성별과 무관하게 해당 사건을 추모하고 취약해진 치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 페이지는 2016년 중반부에 잠깐 시행된 "집중토론" 제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과물이다.
- 고유민 . . . . 34회 일치
|| '''학력''' || 포항동부초등학교[BR]포항여자중학교[BR][[대구여자고등학교]] ||
||<:> '''성좌 / 지지''' || [[물병자리]] / [[돼지띠]] ||
초등학교 6학년때 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위기가 많았지만[*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227|프로입단 당시의 지역신문 기사]]] 복지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배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2013년 [[대구여자고등학교]]의 주 공격수였으며 [[이고은]]과 콤비를 이루어 주요 대회인 2013년 [[기독교방송|CBS]]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 여고부에서 우승했다. 이때 선수는 겨우 10명 이었고 악조건 속에서의 우승이었다.
지명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감독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출장시켜주려고 레프트-라이트-원포인트 블로커 등으로 이러지러 포지션을 변경해가며 팀의 상황에 맞추어 기용했다. 이런 방침을 따른 결과 그해 지명된 신인들 중에서는 신인왕을 탔던 도로공사의 [[고예림]] 다음으로 많은 세트를 소화했다. 시즌 중반까지 고예림의 출장보다 출장경기 수가 더 많았지만, 고예림이 시즌 후반 자리를 잡고 좋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신인왕 경쟁에서 리타이어 되고 말았다.
2차전 흥국생명전에서 정미선이 부상당하고 다음날 도로공사전 준결승 경기에서 김연견이 부상당하자 예상하지도 못한 리베로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는 난리도 아니였는데 리베로가 없자 2세트는 없이 치루고 3세트는 코치가 딱 5분간 리베로 강습을 한 다음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리시브도 안 좋은애가 얼마나 버티겠냐'''며 수비붕괴로 인한 현대건설의 패배를 예상했으나 목적타 집중을 --한유미와 김주하가 같이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찌어찌 버텨냈고 4세트에는 리시브 정확을 6번[* 이날 총 8번의 리시브 정확판정을 받았는데 4세트에 6개를 받았다.] 얻어내기 시작하더니 5세트에서는 장기인 디그 능력을 십분 살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중 하나가 되었다. 5세트의 퍼포먼스는 웬만한 백업 리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GS 칼텍스 와의 결승전에는 선발출장을 하여 --물론 후위에 [[한유미]]와 같이 있으면 안믿던 예수님 찾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버텼고 3세트 듀스상태에서 마지막 끝내기 오픈을 성공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13득점 공격점유율 35.17%, 경기 최다블로킹 (3개),디그 14번 시도 중 1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37%를 기록하며 정미선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내 팀의 8년만에 컵대회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년 기업은행에게 학살당한 결승전엔 최다득점자가 8점인가 그랬지...--
교체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30일 시즌 두번째 경기에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황연주]]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지자 교체로 3,4,5세트를 뛰고 4득점을 하면서 64.29%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풀세트 승리에 기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의 전위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되거나 [[황연주]]가 부진할때 간간히 교체되어 나왔다. 다만 전자의 역할은 선배 [[한유미]]가 주로 맡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코칭스테프가 황연주를 교체하는 것에 별로 마뜩치 않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때에도 코트에 황연주를 남겨놓을때가 많았다. --차라리 폴리를 뺀다는 마음가짐--] 출장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것보다는 보통 지는 경기에 교체출장하는데 리시브 범실, 공격범실로 감독 화돋구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19경기, 39세트 출장 13득점 공격성공률 28.26% 리시브 성공률 22.5%을 기록했다. 좋게말하면 작년과 비슷한 기록을 냈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 [[고예림|전 시즌 신인왕]]은 폭망했고 나머지들도 그닥이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나름대로 큰 경기에 강하고 --그렇지만 시즌에 약해서-- 신체조건 상 활용도가 높은 선수[* 비슷한 역할의 정미선이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전 퍼포먼스를 유지할지 미지수이다.]이니 만큼 서브나 리시브에서 개선이 이루어 진다면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선수활용의 숨통을 틔울만한 선수라고 평가받았다.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였으나 기업은행의 높은 블로킹과 까다로운 서브에 고전하며 교체되었다가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던 5세트 6-7상황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때 블로킹득점과 절묘한 앵글샷으로 연속 3공격득점을 하면서 10-7까지 벌려놓았으나[* 재밌는 점은 이때 기업은횅 이정철 감독은 9-7상황까지는 기업은행 선수들에게 화를 내다가 10-7이 되자 잠깐 벙쩌서 선수를 가리키며 '쟤 뭐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가대표도 아주 꿈은 아니다.-- --꿈 깨고 내년 U23 국가대표에는 나갈수 있을듯--] 이후 부진하던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가 폭발하고 공격이 블록당했으며[* 5세트 이정철 감독은 고유민의 담당 블로커로 박정아(188cm)를 세워두는 초강수를 뒀다.], [[이정철]] 감독의 적시 비디오 판독이 나오면서 그대로 기업은행 기세에 팀이 밀리며 패배하게 되었다. 기록은 8득점, 공격점유율 14.36%, 성공율 25%, 디그 9, 블록 1, --리시브성공률 0%을 빼면 쓰나-- --그날은 꽝--.
컵대회 후반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절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컵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컵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주전선수가 목표라고 시즌 전 인터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451&article_id=0000000573|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대로 기회를 얻는 데 성공하여 개막 이후 3경기 선발 출장을 하였으나 고질적인 문제인 리시브 불안으로 1, 2세트만 채우고 교체되었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현대건설이 풀세트 경기를 자주하는 주요원인으로 꼽힐 정도.[* 컵대회부터 고유민의 리시브가 그런대로 되는 경기는 현대건설이 별 문제없이 이기는 패턴이지만, 되지 않을 경우 컵대회 결승전 때나 시즌 경기처럼 풀세트로 가서 패하거나 간신히 이기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다만 3차전 도로공사전에서 1세트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주면서 백어택을 성공시키는 등 코보컵 때 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준 건 위안거리. -결국 정미선과 자리를 바꾸어 닭장을 달구다 2015년 12월 12일 인삼공사전은 2세트 37:37까지 간 상황에서 연속 2득점으로 2세트를 끝냈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한 경기 시즌 최다득점인 9점 기록.[* 이 기록은 2016년 2월 1일 인삼공사 전에서 11점으로 갱신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1월 4일 4라운드 첫 경기였던 계양체육관 흥국생명 전에서 범실을 너무 많이 해서[* 팀 범실 19개 중에 무려 '''12개'''가 모두 고유민의 범실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철호 감독은 한유미가 빠진 자리에 고유민을 꽤나 오랫동안 기용했다. 심지어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는 3세트 22:22에서 지고있다가 팀의 추격조라 할 수 있는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와 [[이다영]]을 다시 고유민과 [[염혜선]]으로 교체하며 결국 자멸했다.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이듬해 동일한 방송에서 보고 싶은 사람으로 남자 친구를 보고 싶다고 깜짝 발언을 했지만, 진행자가 '태어는 났는지 살아는 있는지 궁금한 거죠?'라고 쿠사리를 먹였다.
- 김미숙(1959) . . . . 34회 일치
|| '''신체''' ||<(> 165cm[* 지금도 20대 여자 평균이 160-161이니 165가 큰 편이지만 당시에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으로 중학교 시절 배구 선수를 하기도 했다. 요즘 세대의 장신 여배우들과 한 화면에 잡혀도 비슷하거나 클 때도 많다. 물론 그 당시 상황에서는 상당히 큰 키에 속했다.], [[B형]] ||
어린 시절 혼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을 정도로 ~~알고보니 돈만 주면 합격하는 학원이었다고... 눈물이~~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사고(思考)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우를 소망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모두 마칠 때까지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역배우는 포기했다. 그 당시로써는 큰 키와 마른 체구 때문에 중학교 때 배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포지션은 세터. 그래서 손 힘이 굉장히 센 편인데 함께 작품하는 배우들이 뺨 맞는 연기를 할 때마다 두려워한다는 후문.[* 영화 [[말아톤]]의 DVD 메이킹 필름에서 세차게 --강스파이크로-- 뺨을 맞고 잠시 정신이 아웃된 듯한 [[백성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드라마)|기분 좋은 날]] 9회 초반에 극중 집 문제로 [[손창민]]이 깐죽대자 뺨을 때렸는데 멀쩡한 손창민 왼쪽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다. ~~그래도 마지막엔 결혼에 골인하고 [[내 딸, 금사월]] 44회에서 손창민은 김미숙과 여고 동문인 [[신득예]]에게 낭떠러지에서 위협받는다 뺨에 강스파이크~~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이 대회 대상은 [[원미경]].]에 출전했는데, 1차 예선을 통과하고는 맹장염이 터져 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어 복막염 수술까지 받고도 몰래 병원을 탈출해 붕대를 감고 2차 시험을 보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결과는 '''Fail.''' 그러나 대회 당시 김미숙을 눈 여겨 봤던 광고주에 의해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코카콜라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곧바로 [[KBS]] 공채 6기로 합격하며 배우 인생 시작.
동 시대 활동하던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그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으로 80년 대의 톱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성장한다. 특이한 사항은 또래의 여배우들과 달리 이 시기에 영화 출연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에로시티즘이 만연하던 ~~3S의 그림자~~ 80년대 영화계가 본인과 맞지 않다고 느껴 TV를 위주로 활동했다고.
1998년 [[장동건]]과 <[[사랑]]>에서 8살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설정의 멜로 연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저조하자 연출이 다짜고짜 '''주연 여배우를 갈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에 따라 극중 김미숙은 갑작스레 암에 걸림 -> 그 회에 바로 사망이라는 역대급 퇴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최지우]]로 변경. ~~이쯤되면 데스노트~~ 김미숙은 이 때를 회고하며 당시 '''라디오 진행을 위해 마이크 앞에서 입만 떼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배우 인생에 가장 힘든 때였으나 역으로 배우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시기였다고. 이 때 주말극 [[사랑해 사랑해]]에서 푼수끼 넘치지만 대인배적인 인물 '조봉자' 역할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다. ~~말이 그렇지 사실상 고소감~~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의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애와 성장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한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백성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언제나 선하고 호감가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신선한 악역 연기에 찬사를 보내자 김미숙은 인터뷰에서 "다들 내가 이런 역할 못할 줄 알았나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이 때부터 주목할 것이 김미숙이 구축한 독특한 악역의 이미지이다. <[[로비스트]]>의 마담채, <[[황금의 제국]]>의 [[한정희]], <[[여왕의 꽃]]>의 [[마희라]], <[[부탁해요, 엄마]]>의 황영선 및 <[[옥중화]]>의 [[문정왕후]]까지 악역을 맡은 횟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워낙 임팩트가 커서 기억에 강하게 남는 편. 보통의 악역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과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우아한 나쁜 X'''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캐릭터가 가진 양면성이 드러나는 악역이지만 끝내 이해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본래 김미숙의 자연스러운 연기 스타일에 역할에 대한 영리한 해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셈. ~~예쁘고 우아하고 무서워요~~[* 부탁해요 엄마의 황영선 역할은 그렇게 악역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렇다. 대부분 시어머니들이 솔직히 아들을 더 아끼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차라리 악역이라면 이형규 역할을 맡은 오민석이 더 잘 어울린다.]
본인이 가진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선역과 악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점점 설 자리를 잃는 중년 여배우로서 극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후배 여배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행보. 배우 생활하면서 힘들 때 유치원 원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 [[목소리]]가 '''정말''' 좋다! 그로 인해 일찍이 DJ로 활약했다. 라디오 진행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대본을 직접 쓰기도 하고, 방송할 때는 DJ 인기 투표 순위에도 항상 순위권. 우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딕션, 그리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포인트. 연극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 연륜으로 인해 더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정말 타고난 듯. 떡잎부터 달랐던 건지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본인도 놀랐다는 썰. ~~자랑인데 반박할 수가 없다...~~ 시 낭송 앨범을 여러 번 내기도 했다. [[감성애니 하루]] 내레이션.
* 굉장히 오래 된 '''여성 스토커'''가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촬영장마다 나타났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 유치원이나 집까지 들어왔다고. 웬만하면 선처를 하려고 했으나 스토커가 본인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돈을 요구하거나 가족들의 안위까지 위협해 결국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몇 년을 주기로 나타나기는 한다는 썰. ~~소오름!~~
* 한때 '''[[노처녀]]의 아이콘'''이었다. 지금이야 워낙 늦게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 마흔살에 결혼하는 사람도 종종 보이지만, 그때는 여자 나이 20대 후반만 되어도 노처녀란 소리를 들었다. 물론 여배우들은 원체 직업 특성상 일반인보다는 늦게 결혼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런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꽤나 늦은 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한국나이 41살에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래 출산을 40대에 두 번이나 했으니,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 연하남들과 연기를 많이 했다. [[장동건]], 故 [[안재환]], --안 그래 보이지만-- [[최재성(배우)|최재성]], [[손창민]] 등 많은 연하남들과의 연기가 많았던 편. 특히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현진(배우)|이현진]]과는 26살 차이로, 이현진의 실제 어머니와 동갑(...)임에도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줬다. 후에 두 배우는 황금의 제국에서 모자 연기를 해서 다른 의미의 케미를 보여준다. ~~몰입이 안 된다고 거...~~ 그리고 2016년작인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에서는 28살 연하인 아들 뻘인 [[김영광]]과 혼인신고 후 사망하는 설정이 나온다. 이쯤 되면 연하 킬러라고 해도 될 듯. 참고로 김미숙의 '''실제 남편도 5살 연하'''.
* [[1991년]] [[KBS 2TV]] 《[[여자의 시간]]》 ... 서정민 역
* [[1998년]] [[SBS]] 《[[사랑해 사랑해]]》 ... 조봉자 역
* [[2001년]] [[SBS]] 《[[소문난 여자]]》 ... 한영순 역
* [[2008년]] [[문화방송|MBC]] 《사랑해, 울지마》 ... 문신자 역
* [[2017년]] [[문화방송|MBC]] 《[[밥상 차리는 남자]]》... 홍영혜 역
* [[1990년]] [[동부대우전자]] 세탁기 예예
* [[1992년]] ~ [[1997년]] [[CJ제일제당]] (백설햄 <꼬마 치킨바, 로우로우, 고기완자햄, 비프 인 후랑크, 두루두루, 그린그린 비엔나, 불고기햄, 포캠, 바베큐맛햄, 백설햄 비엔나, 델리 비엔나>, 백설 닭강정)
* [[1992년]] [[동부대우전자]] 신대우가족
* [[1993년]] [[모나리자 (기업)|모나리자]]
- 김혜옥 . . . . 34회 일치
'''김혜옥'''(金惠鈺, [[1958년]] [[5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연기자]]이다. 1978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1980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특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를 하였다. 대표작으로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있다.
대학 진학후, 내성적인 성격탓에 연기가 아니라 분장이나 디자인쪽으로 바꾸라는 핀잔도 들었지만 오기가 생겨 욕을 먹으면서도 죽기살기로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연극무대에서 2년 남짓을 보낸 후, 생계를 위해 TV쪽으로 노선을 바꿔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들어갔다. MBC 수사극 《[[수사반장]]》의 범인 역이나 조연으로 전전하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서울댁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ref name="월간조선"/>
40대 어느날부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그녀는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녀도 병명을 알지 못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한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한의원에 찾아가 자신의 병이 가슴속 응어리진 한이 쌓여 생긴 '화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기도와 명상 등을 통해 3년 만에 병을 나았다. 2004년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천방지축 철부지 할머니를 맡아 인기를 끌어 수십년 무명의 설움을 씻었다. 이후, 드라마·영화에서 명품 연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f name="월간조선"/>
* [[1997년]] [[MBC]] 일일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홍경인의 고모이며 홍희라의 동복 여동생 홍군주 역
* [[2001년]] [[MBC]] 주말연속극 《[[그 여자네 집]]》
* [[2005년]] [[KBS1]] 일일연속극 《[[별난여자 별난남자]]》 ... 최유정 역
* [[2006년]] [[MBC]] 미니시리즈 《[[오버 더 레인보우 (드라마)|오버 더 레인보우]]》 ... 이미자 역
* [[2006년]] [[SBS]] 아침연속극 《[[사랑도 미움도]]》 ... 오금자 역
* [[2006년]] [[KBS2]] 4부작드라마 《[[도망자 이두용]]》 ... 김복순 역
* [[2008년]] [[KBS2]] 미니시리즈 《[[강적들]]》 ... 과부 오미자 역
* [[2008년]] [[MBC]] 주말연속극 《[[내 인생의 황금기]]》 ... 복미자 역
* [[2010년]] [[SBS]] 드라마 스페셜 《[[나쁜 남자 (드라마)|나쁜 남자]]》 ... 신 여사 역
* [[2010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돌멩이》 ... 정명자 역
* [[2011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 ... 최향자 역
* [[2012년]] [[MBC]] 기획특집극 《[[못난이 송편]]》 ... 이정자 역
* [[2012년]] [[MBC]]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 ... 고성실 역
* [[2015년]] [[MBC]] 일일특별기획 《[[딱 너 같은 딸]]》 ... 홍애자 역
* [[1989년]] 《[[오늘 여자]]》
* [[2003년]] 《[[녹색의자]]》 ... 현 어머니 역
* [[2005년]] 《[[여자, 정혜]]》 ... 엄마 역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34회 일치
* 이리나카는 원래부터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데다 야쿠자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어, 이들이 그 부분을 건드리자 참지 못하고 폭주하고 만 것이다.
* 도발에 격분한 이리나카가 괴성을 지르자 [[미도리야 이즈쿠]]와 [[아이자와 쇼타]]가 놓치지 않고 그를 요격,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오버홀]]은 이들의 신고를 받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마그네]]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죽음에 대해서]]. 오버홀도 "그"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고 이젠 지나간 일이니 한 식구가 된 이상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트와이스의 신경을 긁었다. 우선 마그네의 아이덴티티는 "그녀". 트와이스가 그걸 가차없이 지적하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포장만 잘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 오락가락하는 성격대로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래서 뭘하면 되냐"고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다. 어지간히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은 철포옥 핫사이슈들 조차도 그 성격에는 어이가 없다고 평한다.
여기에 정색하고 나선 것이 "이리나카". 이때는 작은 체구로 나타났지만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야쿠자를 얕보지 마라", 그렇게 날을 세웠다.
* 토가와 트와이스, 그리고 이리나카 사이의 짧은 신경전. 먼저 "돼먹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은건 트와이스 쪽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며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강경모드로 들어가는데, 역시 그 성격답게 1초도 지나지 않아 자기 개성을 외판원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선전해대고 있다. 그의 개성 "카피". 온갖 물건을 두 개로 늘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이미지"를 확보하는게 중요하고, 그의 코스튬에는 그걸 위한 아이템이 내장돼 있다. 가령 손목 부위에 내장된 줄자라던가. 인간을 카피한다면 구체적인 신세 사이즈 등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쓰레기 같은 불완전한 카피가 생길 뿐.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해도 딱 한 가지는 원본과 다르다. 내구력이다. 뭘 카피하느냐 나름이지만 일정 이상 데미지를 받으면 형태가 무너진다. 한 번에 늘릴 수 있는 숫자는 최대 두 개. 하지만 두 번째 카피부터는 내구력이 몹시 약해진다. 덤으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일신 상의 사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
* 트와이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그런지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고 자괴감에 떤다. 기껏 거절했던 토가는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궁시렁 거렸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토가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순순히 개성을 설명하는 토가. 피를 섭취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때 섭취한 피는 곧 에너지. 섭취량이 변신을 유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대략 컵 한 잔 분량이라면 하루종일 변신하는 것도 가능. 한 번에 여러 사람의 피를 마시면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에는 옷도 포함되는데, 문제는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는 여고생 틱한 설명까지 붙여서 PR 완료. 트와이스 못지 않은 성실한 자기소개였다.
대답은 당연히 No. 토가와 트와이스 모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대답일지? 적어도 오버홀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들을 시에핫사이카이의 새 식구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 뿐. 수배범인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없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지하의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둘이 연금이 아니냐고 반발하지만 오버홀은 "신용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공수표 같은 말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리나카가 우쭐거린다. "언제까지 그런 태도면 안 된다는 말"이라며 으스댄다.
>우리들은 야쿠자다! 얕보지 말라고!
>우리들은 다시금 그림자에서 사회를 좌지우지할 거다!
>야쿠자의 특권!
* 그렇게 잘난 척한지 얼마지 않아, 이 꼴이다. 분노조절이 고장난 이리나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자랑하던 신중함은 온데 간데 없이 날뛰고 있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를 업신여긴 자 용서하지 않는다!!
이젠 적도 아군도 없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든 [[빌런 연합]]이든 야쿠자를 얕보는 녀석들을 갈아버릴 뿐. 그의 벽이 분쇄기처럼 휘감긴다.
* 그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토가와 트와이스는 서핑이라도 즐기는 것처럼 여유롭다. 요동치는 벽을 타면서 토가의 입이 쉬질 않는다. 평소에 그런 역할은 트와이스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리나카를 도발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리나카를 자기들끼리는 처리할 수 없으니까. 그들 개성으론 벽과 동화된 이리나카를 제압할 파워가 없었다. 그러니 히어로들에게 멋대로 맡겨버리는 것이다. 작전은 적중. [[미도리야 이즈쿠]]와 [[아이자와 쇼타]]가 정확히 부합했다. 그들은 벽이 밀려오기 직전 어떤 기성을 들었다. 미도리야는 그 목소리가 분명 이리나카의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본체가 어디있는진 여전히 알 수 없다. 벽이 움직이고 있고 소리가 너무 울려서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소심한 사람일 수록 자기가 약한 걸 숨기려 해요. 자신을 강하게 보이게 하고 싶어서.
>야쿠자, 꼴사납네요.
미도리야는 두 번째 들려온 기성을 놓치지 않았다. 위였다. 원 포 올 풀 카울. 벽을 차며 솟구쳐서 목표에 정확히 SMAASH. 그 위력에 벽이 무너지고 이리나카의 본체가 노출됐다. 이제 아이자와의 차례였다. 그의 무효화가 번뜩였다.
>미안하다 야쿠자.
* 이리나카가 이제 원망해봐야 늦은 일. 쉽게 도발에 넘어간 자신의 실책이다. 그의 비통한 외침은 [[서 나이트아이]]가 던진 특제 날인이 끊었다. 날인이 정확히 턱을 강타하자 이라나카가 정신을 잃었다. 미도리야는 그를 낚아채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 상황을 종결시킨다.
나이트아이는 상황을 종합해보곤 빌런 연합에게 이용 당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로인해 성가신 미궁도 끝났다. 일장일단. 이제 그들을 막을 장애물은 얼마 없다. 미도리야는 자연 에리쨩과, 그들을 앞서간 선배 [[토오가타 밀리오]]를 떠올렸다.
- 남보라(배우) . . . . 34회 일치
||<bgcolor=#7F00FF> '''{{{#white 이름}}}''' ||<(> 남보라(南보라)[* 중화권에서는 南寶拉([[간체자]]: 南宝拉)으로 알려져 있다.] ||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13남매'''(8남 5녀)의 맏딸. '''기근에 가까운 20대 여자 배우 중 한 명이자, 효녀 심청.'''
완도사랑채마지막칼국수였던 [[2005년]]에 11남매[* 2005년 당시에는 11남매였다. 방송 당시 셋째와 아홉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에 거의 비치지 않았다.]의 일상 생활을 담은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천사들의 합창"에 맏딸로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출연 직후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관계자들의 제의도 거절했으나 부모님의 설득과 계속된 소속사의 러브콜 끝에 연예인이 되기로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60812000512864?f=m|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보라는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이 진행하는 "천사들의 합창"을 계기로 얼굴을 알려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0곳 이상의 기획사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8191711172510|연예인 제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미니홈피 게시글을 토대로 보면 학교(혹은 교회)에서 성극반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당시, 웬만한 눈썰미를 가진 시청자는 남보라의 집안이 [[개신교]] 집안임을 알 수 있었을 듯. 원래 초등학교를 장안동에 위치한 불교계 학교를 다니다가 저학년 무렵 전학을 갔었다.]
||<#7F00FF> {{{#white '''MBC '천사들의 합창' 출연 모습. (당시 이화여고 1학년(???))'''}}}[* [[노홍철]]과 찍은 사진인데, 이 둘은 7년 후 2012년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12292136182410|다시 만났다.]]] ||
2006년 [[KBS 2TV]]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였지만 극 중에서 비중이 작은 역할이었고 시트콤 자체가 큰 재미가 없어서 [[망했어요]]..... ~~그리고 이 때는 [[발연기|연기도 더럽게 못 했다]]. 차라리 시트콤이 망한 게 본인의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될 정도로..~~
[[2008년]] [[인간극장]]에서도 12남매의 장녀로 출연한 바 있다. [5부작 - 열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 이후 남자애 1명이 더 태어났다. (남보라는 종종 우리집 13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와[* '(성범죄 피해자를)연기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실제 성범죄 피해 당사자들은 더욱 힘들고 괴로울 것', '청소년들의 범죄는 그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청소년을 교육하는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등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상어(드라마)|드라마 상어]] 등으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다. 비쥬얼이 가장 좋은 편이라 TV 광고에는 꾸준히 캐스팅되고 있다. 특히 여성 잡지, 패션잡지에 특집 화보 기사로 많이 나온 편이다.
평소 부모님의 식당 일을 밝은 모습으로 도우면서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돕는게 부끄럽지 않다"는 발언을 했고, 연예인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개념 연예인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지하철 이용건에 대해선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배려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배려석에 앉다니 무개념이다"라고 까는 의견과 "저 좌석은 일반인도 앉아있다가 주변에 임산부나 영유아 동반자가 있을 때 양보해주면 괜찮은 거다"라며 옹호하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통약자 배려를 위해 설치된 좌석들은 좌석이 부족한 경우 노약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즉시 양보해 주면 된다.] 써니 이후 친해진 배우 [[박진주]]를 태우고 가는 장면이 나간 [[나 혼자 산다]]에서는 [[현대 아반떼|AD]] 1.6 디젤을 몰고 다니는 듯. 탑기어 코리아7 8화에서 본인의 첫 차가 [[폭스바겐 CC]]이며 10년 탈 생각으로 구입했다고 밝혔다.
어릴 때 방송 출연을 한 탓도 있지만, 데뷔한지 오래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연 미인이다. 숱한 여배우들이 휴식기 지나면 '몰라보게 예뻐졌네(고쳤네)'소리 듣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 여성의 광고 모델 중에서 미모 인정이라 할수 있는 화장품 광고에 (회사는 바뀌지만) 끊임없이 캐스팅되고 있다. [[부르조아]]화장품 모델로는 동양 최초였다. 동안에 순하게 생긴 덕에 섹시한 이미지는 없다. 섹시를 표방한 화보가 없지는 않은데, 전혀 안 어울린다. 그래도 비율도 좋고, 날씬하고 예뻐서 화보나 해외 관고아지에서 수영복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 배우답긴 하다.
'''[[동안]]''' 외모의 소유자 중 하나다. 하지만 [[동안|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모양. 2018년 현재 30살인데,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며, 교복 입고 중고등학생 역을 해도 아무 위화감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차차 해결될 문제이긴 하다.
2016년 2월 15일 '''오전 9시 30분''', 오후 5시에 방송되는 [[K STAR]] 생방송 스타뉴스는 남보라 열애설을 단독 보도한다는 예고성 기사를 지난 '''11일 데이트 사진'''과 함께 제휴사인 [[YTN]][* [[K STAR]]는 iHQ에 팔리기 전까지 YTN의 연예 채널이었다.]을 통해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2&aid=0000777641|내보냈다]]. 이에 남보라의 소속사는 양측이 최근 결별했다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49573&gid=999339&cid=1013067|밝혔다]]. 이에 K STAR는 밸런타이데이였던 지난 '''14일 데이트 사진'''을 첨부해 재차 기사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2&aid=0000777828|내보냈다]]. 이에 ~~당황한~~ 소속사는 결별 시기는 최초 기사 발행 직전인 '''오늘(15일) 오전'''이었다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44744&gid=999339&cid=1013067|밝혀]] 네티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2017년 4월, 여성조선 잡지에서 쉬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은 혼자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한마디로 [[집순이]]로 불릴만큼 집을 굉장히 편안해한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그냥 종이에 쓴다고(...)... 화나는 일, 답답한 일, 힘든 일. 그 순간 차오르는 여러 뒤섞인 감정에 이름표를 붙인다고.
매주 새벽 기도를 드릴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그리고 개신교 관련 악세사리를 항시 차고 다닌다고 한다.
2018년 6월 현재 연예인 자선 바자 참여, 음식 만들기 등등 여러 가지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는 모습을 자기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리고 있다. 그리고 6월 초 머리를 싹둑 잘라 [[단발머리]]가 되었는데, 매우 잘 어울려서 미모 폭발하는 중.
||<|2> 2013년 || [[용의자(한국 영화)|용의자]] || 동철 처 ||
|| [[김지수(가수)|김지수]] || 5분만 더 자 ||
|| [[2014년]] || [[소유]]×[[어반자카파]] || 틈 ||
|| [[2011년]] || 제19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드라마부문 여자 신인상 || ||
||<|2>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2> 여자 신인상 || 사랑만 할래 ||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34회 일치
전편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으로 삶이 망가진 [[뉴욕]] 형사 맥스 페인이 살인 용의자인 지인 [[모나 색스]]와 함께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편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편의 간략한 스토리를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그런데 사실상 전편 스포일러.
슛닷지는 아드레날린을 소모하지 않으며, 아드레날린은 자동으로 회복된다. 적을 죽인 후 잠시동안 회복속도가 빨라진다.
* 체력 오른쪽에 있는 모래시계 모양 게이지는 아드레날린 게이지. 불릿타임을 시전하는 동안 아드레날린이 소모된다. 아드레날린을 모두 소모하면 불릿타임을 사용할 수 없다. 게이지는 자동으로 회복된다. 플레이어가 적을 죽인 직후에는 게이지가 노란색으로 변하며, 더 빨리 차오른다.
* 오른쪽에 써진 글자는 사용중인 무기. 그 옆에 표시된 15+11은 장전된 총탄 양과 소지중인 총탄 양이다. 그 밑에 써진 파란색 글자는 현재 선택한 보조 공격을 의미한다.
* 9mm 자동권총
* 듀얼 9mm 자동권총
10발을 장전할 수 있는 반자동 산탄총. 다른 산탄총과 탄약이 호환되지 않는다.
과거 맥스 페인은 "V"라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그는 진범을 찾아 헤매며 여러가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비니 고그니티, 모나 색스, 블라디미르 렘, 알프레드 우든. 맥스는 진범을 찾아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끝난것은 없었다. 맥스의 가족이 이미 죽어버렸지만, 맥스는 아직 살아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참조. 스포일러 주의.
Valerie Winterson. 발레리라는 이름은 엔딩 크레딧에만 나온다. 처음부터 시체로 등장하며, 맥스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고 독백한다.
본래는 맥스의 동료 형사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게이트 상원의원을 죽인 혐의가 있는 모나를 뒤쫓고 있었다. 결국 코코런을 만나러 그가 살던 아파트에 갔던 모나와 맥스를 붙잡는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전화를 통해 정보를 흘린다던가, 목격자의 진술을 취사선택 한다던가 하는 수상쩍은 모습을 보인다. 결국 두번째로 모나를 붙잡으려고 할 때 모나가 이에 불응하며 서로 총을 뽑아들고, 맥스가 윈터슨을 쏴죽여버린다.
비밀조직. 음모론에 나올만한 그런 애들이다. 전작에서는 맥스가 진범을 찾는것을 도와주었다. 현재는 유력자였던 알프레드 우든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이너서클 내 내분이 발생했다.
Sebastian Gate. 언급된 시점에서 이미 살해당한 상원의원. 주력 용의자는 모나로, 해당 인물의 살해사건은 윈터슨 형사가 맡기로 했다. 코코런의 방에서 그를 포함한 이너서클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발견되어 이너서클 멤버라는게 확정된다. 모나가 체포된 후, 목격자는 점프슈트를 입은 청소부들이 게이트 의원을 죽인 것 같다고 말하나 윈터슨은 말을 듣지 않는다.
Cocran. 이너서클의 일원. 모나를 시켜 맥스를 자신이 사는 고오급 아파트로 불렀다. 하지만 아파트를 습격한 청소부들에게 살해당한다.
Annie Finn. 총기제작자 겸 총포상으로 블라드의 애인. 맥스가 발견 했을 때에는 [[스쿼키 청소회사]] 직원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하기 직전이었다. 맥스는 그녀를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청소부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블라드는 윈터슨이라는 또다른 애인이 있었다.
Mike the Cowboy. 러시아 갱단의 일원. 맥스가 마피아들에게 습격당한 블라드의 식당을 찾아갔을 때 처음 만났다. 첫 등장부터 AK-47 한 자루로 네명의 펀치넬로 마피아를 처치하며 나타난다. 이후 맥스와 함께 마피아를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죽을수도 있다.
살아있다면 청소부들을 부리는게 블라드라는 걸 알아낸 맥스가 그의 식당을 습격했을 때 재등장한다. 방송으로 러시아 갱단원들에게 맥스를 처리하라 지시하는 역할. 러시아 갱단원들이 역으로 발리자 자신이 블라드의 방에서 방송을 하고 있으니 와서 끝장을 보자고 한다. 결국 블라드의 방에서 맥스에 의해 죽는다.
Address Unknown. 90년대 방영했다는 설정의 극중극. 존이라는 남자가 느와르욕(Noir York)라는 도시에서 연쇄살인범 존 미라(John Mirra)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라를 쫓던 존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지만 의사와 환자들을 드릴로 죽이고 도망친다. 그제서야 존은 자신이 존 미라였다는걸 깨닫는다는 그런 내용. 이걸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도 있었던 것 같지만 원작 드라마가 방영 중단 먹으며 망한 듯. 솔직히 테마파크 겁나 기분 나빠서 방영 중단 안 되었어도 망했을 것 같다.
Lords and Ladies. 귀족 남자 발렌타인과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의 러브스토리. 당연히 발렌타인의 집안에서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발렌타인의 형인 잭이 여자를 모욕하자 발렌타인은 잭에게 결투를 벌여 죽여버린다. 그러자 발렌타인의 어머니가 여자에게 독이 든 와인을 먹여 죽이려 하지만 그 와인은 발렌타인이 대신 먹고 죽어버린다. 이때, 그들의 저택에 불이 나고 발렌타인은 여자를 도망치게 한 다음 마지막 힘을 다해 어머니를 붙잡고 타죽는다. 여자는 도망쳐 발렌타인과의 관계로 생긴 아이에게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기른다.
- 보루토/1화 . . . . 34회 일치
* 쑥대밭이 된 나뭇잎 마을.--미래에도 부서지는 마을-- 파괴된 역대 호카게의 흉상 조각 위에서 우즈마키 보루토가 "카와키"라는 닌자와 싸우고 있다.
* 카와키는 왼손에 특이한 문신이 있는 닌자.
* 카와키는 닌자 시대의 끝을 선언한다
* 보루토는 탈주닌자의 서클렛을 꺼내 쓰며 "그렇다 해도 나는 닌자다"라고 말하는데
* 어린 시절 보루토는 닌자 같은건 아무래도 좋은 소년
* 대기하고 있던 코노하마루가 새로운 인술도구로 "그림자 속박술"을 발사해 간단하게 포획한다.
* 과학닌자반의 신제품으로 술법을 봉인해서 발사할 수 있다.
* 자신의 속성이나 비전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고, 사실 닌자가 아니라도 쓸 수 있다.
* 결과를 보고하러 온 코노하마루반에게 나루토는 닌자로서 자세를 설교한다
* 보루토는 수행 따윈 상관없다며 자기 혼자 여러 술법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하는데, 나루토는 코노하마루에게 "뭘 가르치는 거냐"며 한소리 한다.
* 그때 과학닌자도구반의 카타스케라는 남자가 들어오는데, 그는 중닌시험에 인술을 발사하는 새로운 닌자도구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하급닌자에게 가혹한 수련을 시킬 필요도 없어지고 포퍼먼스도 화려해질 거라며 적극 추천하는데, 나루토는 중닌시험은 닌자를 키우기 위한 거지 포퍼먼스가 아니라며 반대한다.
* 그러자 "아버지는 당신 실력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충돌질을 하는데...
* 중닌 시험을 앞두고 하급닌자들에게 속속 신청서가 주어지고 모에기 밑의 이노진, 쵸쵸, 시카다이에게도 소식이 간다.
* 중닌시험은 3인 1조가 원칙이기 때문인데, 보루토가 시큰둥해 하자 사라자는 "내가 호카게가 되는걸 방해할 생각이냐"며 멱살잡이를 한다.--누굴 닮은 거야--
* 보루토는 자신의 데이터를 넘겨주는데, 카타스케가 준 것으로 캐릭터가 풀스텟에 레벨99을 찍은 치트캐
* 돌아가는 길에 사라다가 다시 한 번 권유하면서 "7대에게 우리의 대단함을 보여주자"고 하고, 보루토도 결국 승락한다.
* 그런데 케이크를 나르던 나루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 그때 초인종이 울리는데,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생각한 보루토는 현관을 열자마자 주먹질을 선사한다.
* 하지만 방문자는 사스케.
- 신혜진 . . . . 34회 일치
||<#7BDEFB> {{{#000000 '''학력'''}}} ||<(> 환호여자중학교 (졸업)[br]동지여자고등학교 (졸업) ||
[[대한민국]]의 [[걸그룹]] [[오마이걸]]의 前 멤버. 예명은 본명인 신혜'''진'''의 마지막 자에서 따왔다.
[[2010년]] [[12월]]에 [[W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멤버들 중 제일 긴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했다.[* [[2010년]] [[12월]]이면 [[선배]]인 [[B1A4]]가 [[데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연습생]]이었을 당시 [[고향]]인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평일에는 [[버스]]를 타고 다시 [[포항]]에 내려가 [[학교]]를 다녔다.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작 [[본인]]을 힘들게 했던 건 혹독한 [[다이어트]]였다고.[* [[연습생]] 당시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었을 때마다 자신을 힐링시켜 주었던 [[노래]]는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물론 진이 역시 활동을 거듭하며 [[데뷔]]곡 '[[OH MY GIRL#s-2.2|CUPID]]'보다 괄목할 정도의 파트를 분배받고 있으며 [[보컬]] 역량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실제로 [[데뷔]]곡 '[[OH MY GIRL#s-2.2|CUPID]]'의 [[비중]]과 [[2016년]] '[[내 얘길 들어봐]]'의 [[비중]]을 비교해보자. 확연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리드보컬]]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중]]이 비슷해졌고 중간중간 높은 음들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 ~~사실 후렴구 뒷소절을 모두 부르게 된 [[지호]] 때문에 [[유아(오마이걸)|유아]]와 진이의 [[비중]]이 비슷해진 거다~~
이외에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안무]] 등 퍼포먼스적인 면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돋보이는 멤버는 아니지만, 자상한 [[성격]]을 가진 '''팀의 둘째로서 팀을 융화하고 지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오마이걸]]의 멤버였다.'''[* 실제로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쉬는 기간에도 [[오마이걸]]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으로 [[콘셉트|컨셉]]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큰 [[역할]]을 했던 멤버는 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후 [[친척]]과 함께 [[일본]]에 [[여행]]간 [[사진]]이 [[SNS]]에 올라와 회복된 모습을 보였으나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 측에서는 아직까지 회복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991553|2017년 4월 컴백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마이걸]]의 완전체 컴백을 바라던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면서도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바라는 중. 그래도 자필 [[편지]]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403000123|뉴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07803|링크]]
||진이의 자필 [[편지]]
또!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고 자꾸자꾸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여러분이 저에겐 정말 큰[[힘]]이고 [[사랑]]이자 활력소예요! 늘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해요. 진심으로! 알라뷰.
그럼 이만 다음에 또 봐요. [[오마이걸]], [[미라클]] 아자! 아자!||
위의 [[편지]] 이후로는 전혀 소식이 없어 우려가 커지던 와중, 결국 [[2017년]] [[10월 30일]] 결국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와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팀 활동에서 빠지게 되었다. 8명이 다 같이 컴백하길 [[기도]]해오던 찰나에 들려온 소식이라 여러모로 많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더구나 진이는 전 [[APRIL]] 멤버인 [[전소민(KARD)|전소민]], [[이현주(배우)|이현주]]처럼 그룹 활동만 관두고 계속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를 나왔다.][* 공교롭게도 진이의 [[탈퇴]] 이후 [[오마이걸]]이 낸 첫 [[앨범]]인 [[비밀정원]]에서 [[오마이걸]]이 [[데뷔]] 후 첫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자, 많은 [[미라클|팬들]]은 '진이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은진|이와 같은]] [[DIA|일이]] 7개월 뒤에 [[Summer Ade|일어났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심사숙고의 논의를 했고 당사는 체력적인 고충과 더불어 자신의 새로운 진로를 찾고자 하는 진이 양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진이 양과 일곱 명의 멤버들로 활동하게 된 [[오마이걸]]에게 앞으로도 팬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긴 [[시간]]임에도 저의 빈자리를 가득 채워주신 여러분의 [[응원]]들을 보면서 [[힘]]이 많이 났고 [[건강]]하고 든든하게 지냈어요!
혼자 보내는 많은 [[시간]]동안 수없는 [[생각]]과 [[고민]]을 하며 지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저를 [[응원]]해주시는 [[미라클]] 여러분들과 기다려준 [[오마이걸]] 멤버들은 정말 저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같은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미라클]] 여러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미안하고 죄송해요…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한 우리 멤버들… 갑작스런 일에도 괜찮다며 저를 걱정해주고 빨리 8명의 모습으로 함께 활동하자며 [[오마이걸]]을 지켜나가던 모습에 또 고맙고 미안하네요…
제가 오랫동안 [[꿈]]꾸고 달려왔던 일이었기에 더욱 잘해내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체력]]적, 심리적인 어려움들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휴식]]의 [[시간]]을 가지며 저 자신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을 보내던 숱한 날들 동안 수없이 바뀐 [[고민]] 끝에 저는 지금의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의 [[인사]]지만 이제 [[오마이걸]]의 [[진이]]로서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저 자신, 신혜진으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꿈]]과 함께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미라클]] 여러분도 저와 같이 많이 속상하실 걸 알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오마이걸]]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라클]]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평생 그 때 그 자리에서 잊지 못한 소중한 [[추억]],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미라클]] 여러분께도 [[오마이걸]]의 둘째, [[CCTV]], [[러블리]] [[보컬]] [[진이]]는 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도전에도 여러분의 [[응원]]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오마이걸]]! [[효정|효정이]], [[미미(오마이걸)|미현이]], [[유아(오마이걸)|시아]], [[승희(오마이걸)|승희]], [[지호]], [[비니(오마이걸)|유빈이]], [[아린(오마이걸)|예원이]]… [[오마이걸]]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서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오마이걸]]을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 빛나고 또, 그런 [[오마이걸]]을 [[사랑]]으로 지켜주는 [[미라클]]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져! [[무대]] 위에서 [[오마이걸]]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과 [[미라클]]의 [[응원]] [[소리]]가 [[화음]]을 이룰 때 가끔은 [[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할 만큼 [[감동]]이었어… 앞으로도 가끔 [[추억]]의 그리움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 속엔 그 누구보다 최고인 [[오마이걸]] 항상 [[마음]] 깊이 [[응원]]할게!
- 영창대군 . . . . 34회 일치
[[선조]]와 [[김희정 (1992년)]] 사이에서 태어난 [[선조]]의 적장자. '''왕실에 태어난 것이 죄였던 아이'''.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수괴인 서얼(庶孽) 박응서(朴應犀) 등이 체포되었다. 박응서는 자신들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자금을 모아 무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하려 했다고 자백하였으며, 이 사건에 연흥부원군 김제남과 영창대군 이의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결국 광해군 5년(1613 계축 / 명 만력(萬曆) 41년) 5월 4일(신유)에 영창대군의 외조부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파직, 6월 1일(무자)에 사사되었다. 영창대군 역시 5월 21일(무인)에 봉작이 박탈되었고, 7월 27일에 영창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크게 보자면 (1) 정항에 의한 아사설, (2) 정항에 의한 증살설, (3) 이정표에 의한 독살설이다. 상세를 보면 알지만 2번과 3번은 완전히 모순인데, 인조반정 당시에는 어찌됐든 정항과 이정표가 모두 벌을 받아 파직을 당했다. 이후 이정표는 효종 때 손자 이후선이 파직되었다가 일단 무죄가 입증된다.
>대군이 죽을 때의 나이가 9세였다. 정항이 강화 부사로 도임한 뒤에 대군에게 양식을 주지 않았고, 주는 밥에는 모래와 흙을 섞어 주어서 목에 넘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읍 안의 한 작은 관리로서 영창 대군의 위리(圍籬)를 수직한 자가 있었는데 불쌍히 여겨 몰래 밥을 품고 가서 먹였는데 정항이 그것을 알고는 곤장을 쳐서 내쫓았다. 그러므로 대군이 이때부터 밥을 얻어 먹지 못하여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오늘날 논하는 것을 보건대, 살아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처리하고 이미 죽은 자에게는 무겁게 하는데, 그 까닭을 모르겠다.”
>하였다. 대체로 박동량은 훈척(勳戚)인 재신(宰臣)으로서 선묘(宣廟)가 유교(遺敎)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감히 말해서는 안 될 일까지 끌어들임으로써 마침내 화를 궁금에 전가시켜 공론에 죄를 얻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단지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에 출송할 것만을 청하였으니, 사정을 따른 자취가 있음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의 하교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 뒤 >>정항 등의 일에 대해서는 며칠 동안 연계(連啓)하니, 그대로 따랐다.
>인조 1권, 1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4월 5일(갑자) 1번째기사
>>“일에는 선후가 있고 율에는 경중이 있습니다. 지금 이이첨의 심복들을 모두 죄주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정항(鄭沆)과 이정표(李廷彪)를 죄주도록 청한 것은, 진실로 왕자 두 분의 죽음이야말로 천하에 다시 없이 원통하고 동시에 당시 핍살(逼殺)했던 흔적이 사람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당사자가 이미 죽었다고 해서 그냥 덮어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살아 있는 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죽은 자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는 하교가 있으셨습니다. 신들이 일을 논하면서 잘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요즈음 대간이 논하는 것을 보면 당을 비호하는 흔적이 뚜렷하니, 내가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해괴하게 여긴다. 정항 등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윤허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처리한다.’는 분부가 어찌 유독 이이첨의 당만을 말한 것이겠는가. 오늘날의 행태로 보건대 조정에 당파가 없는 날은 오지 않을 듯싶다. 다시 이와 같은 기상을 볼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평 조정호 등이 파직을 자청하고, 인조가 당파를 걱정하다
실행자로 지목된 정항은 인조반정 이후 관직을 빼았겼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영창 대군 이의(李㼁)는 나이 8세 때에 간흉들의 모함을 받았는데, 광해가 강화부에 가두면서 궁녀 두 사람을 따라가게 하였다. 자전이 옷 한 벌을 만들어 보내었는데, 영창 대군이 펴 볼 적에 옷에 얼룩진 데가 있었다. 이에 궁녀들에게 묻기를,
>>“이는 자전께서 눈물을 흘리신 흔적입니다.”
>>하자, 영창 대군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다. 그 뒤에 광해가 두 궁녀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의금부 도사가 위리 안치한 곳의 문에 당도하여 나오라고 재촉하자, 궁녀들이 통곡하면서 영창 대군에게 하직하니, 영창 대군이 단정하게 앉아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하였다. 광해가 이정표(李廷彪)를 별장(別將)으로 삼아 지키게 하면서 몰래 빨리 죽이도록 하자, 이정표가 광해의 뜻을 받들어 영창 대군이 거처하는 데로 가서 방에 불을 넣지 않았다. 이에 영창 대군이 늘 의롱(衣籠) 위에 앉았고, 때때로 섬돌 가에 나아가 하늘을 향하여 빌기를
>>하였다. 이정표가 음식에다 잿물을 넣어 올리자 영창 대군이 마시고서 3일 만에 죽었다. 강화 사람들이 지금도 이 일을 말하려면 슬픔으로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한다.
독살설은 인조실록 8권에 나오는 영창대군의 비문 기사에서 나온다. 여기서는 실행자가 별장 이정표이다. 증살설과는 반대로 오히려 불을 때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고, 음식에 잿물을 먹여서 죽였다고 되어 있다.
>“정언 이후선(李厚先)은 그 위인의 용렬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조부 이정표(李廷彪)는 일찍이 혼조(昏朝) 때 강화 별장(江華別將)으로 있으면서 부사(府使) 정항(鄭沆)과 함께 악행을 저질러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혹독하게 죽였으므로 이제까지도 그 일을 말하는 자는 목이 메이니, 이는 참으로 온 나라 사람이 다 가슴아파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후선은 요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함부로 벼슬길에 들어섰으며 이제는 요직에 있는 자에게 빌붙어 분수넘게 미원(微垣)의 관원이 되었으므로 물의가 떠들썩하게 일어나 욕을 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이후선을 사판에서 삭제하소서.”
>“전에 대간이 ‘이후선(李厚先)의 양조(養祖) 이정표(李廷彪)는 정항(鄭沆)과 악한 짓을 같이하였다.’는 이유로 이후선을 논핵하여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시켰습니다. 그러나 정표는 실로 악한 짓을 같이한 자취가 없고 또 그때는 후선이 아직 양손(養孫)이 되기 전인데 지금까지 금고(禁錮)시키는 것은 혹 지나치게 무거운 듯합니다.”
- 원 포 올 . . . . 34회 일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체능력을 쓸 수 있는 증강계 개성. 한손으로 냉장고를 짜부로 만들고,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를 낼 수 있으며 [[헐크|하늘을 나는 것을 방불케 하는 점프]]를 하는데다가 고유 기술인 힘의 충격파 '''"SMAASH!!"'''의 위력은 주먹을 땅에 매다꽂아서 '''상승기류로 맑은 하늘에 비가 오게 만들 수 있다.''' 특성 하나하나가 능력자 배틀물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사기적인 개성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명실상부한 최강의 육체강화 개성.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은 페이크고]] 실제로는 '''「개성」을 양도하는 「개성」.''' 사람의 사람을 거쳐 성화처럼 내려온 힘과 가능성. 즉 한 사람의 몸에 여러 사람 몫의 힘이 담겨져 있는 개성이다. 그리고 발휘되는 힘 자체는 사실.
[[올마이트]]는 이 원 포 올의 계승자 중 한명으로 장기까지 적출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부상을 입어 다음 계승자를 찾다가 [[미도리야 이즈쿠]]와 만나고, 그를 다음 계승자로 선택해 넘겨줬다.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개성을 양도하는 방식이 매우 깨는데 이전 사용자의 신체 일부(정확히는 DNA)를 먹어야 한다. 계승에서 이즈쿠가 받은 건 올마이트의 머리카락 한 올. 그러나 이즈쿠가 본 역대 원 포 올 계승자들로 추정되는 자들의 모습 등 '먹는다'는 방법은 일종의 페이크일 가능성도 있다. 개성의 양도할 때는 작가가 비밀이 남아있는 분위기를 그려두었다. --DNA흡수로 해결되면 여친이랑 [[검열삭제]]나 [[뽀뽀뽀]]]만 해도 즉시 양도된다!! 이러면 말이안돼...혹은 고자로 살거나?--... 본인이 원해야지만 넘겨줄수있다고나왔다...
이 엄청난 힘을 올마이트는 무리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왔으며 미도리야는 힘을 넘겨받은지 얼마 안된 입장이라 큰 힘을 쓰면 항상 부상을 입었다. 이 약점에 대처하기 위해 원 포 올을 손가락 하나에 집중시켜 쓰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이고 있다.[* 그렇다 해서 미도리야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USJ편에서 힘을 사용하고도 반동이 없는 등 점차 성장하고 있다.[* 일단 힘의 일부만 발휘되었을 수도 있으며 USJ편의 경우는 '사람에게 쓴다'는 점에서 마음 속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된 듯.] 일단 체육제편까지를 기준으로 미도리야가 쓸수 있는 힘의 안전선은 전체의 5% 정도. 그러나 이후 미도리야의 성장 덕에 8%까지 상향되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미도리야 이즈쿠는 원 포 올의 9번째 계승자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그렇기에 올마이트는 8번째, 올마이트의 선대는 7번째 계승자가 된다.
올마이트가 숨기다보니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나 이와 별개로도 아직 많은 것이 드러나지 않아서 어떤 의미로는 불가사의가 맞게 되었다. 올마이트가 스승과 만나 인정받고 힘을 계승받은 과정, 미도리야가 체육제 토너먼트에서 보게된 사람들의 모습의 구체적인 의미,[* 올마이트는 자신도 예전에 봤으며 원 포 올에 대한 감이 잡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설명했으나 미도리야가 나간 뒤에 리커버리 걸이 보통 때와 다른 분위기로 올마이트에게 '너도 있었다고'라 하고 올마이트는 잘된 일이라 답하는데 이때 분위기도 뭔가 있어보인다.] 스승이나 그 이전의 계승자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원 포 올의 기원 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초능력자가 절대 다수인 히로아카 세계인 만큼 다양한 개성이 있고, 그중에는 정말 강력한 힘도 있는데 그런 힘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기입될만한 힘이다. 미도리야의 스승이자 이전 계승자인 올마이트부터가 평화의 상징. 물론 올마이트가 힘만 가지고 최고의 히어로가 된것은 아니나 그걸 고려해도 굉장하다. 거기다 그 특성상 계승을 거칠 수록 더 강해질수 있다.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조심해야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 강한 힘 탓에 미도리야는 그 힘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힘이 원인이 되어 부상을 입을 때가 자주 있다.
== 계승자 ==
현재 확인된 계승자는 미도리야 이즈크와 올마이트밖에 없으며 올마이트의 스승이나 이전의 계승자들은 이름을 포함해 공개된 정보가 적다.
* [[시무라 나나]][* 올마이트의 스승이자 그 이전의 원 포 올 소유자.]
[[미도리야 이즈쿠]]와 [[올마이트]], 그리고 역대 계승자들을 제외하고 원 포 올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확인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올마이트 스승인 시무라 나나의 맹우이자 웅영고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재직한 [[그랜 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 토리노]][* 그의 경우 훈련도 시켜줬다. 다만 올마이트는 실습 일로 지명이 오고나서야 알려줬는데 오래 전에 은거해서 카운트 안했다고.]
- 은혼/621화 . . . . 34회 일치
* [[소타츠]]는 [[시무라 타에]]를 비롯한 스마일 아가씨들을 볼모로 겐가이포 제작자를 요구한다.
* 그러자 [[쿠로고마 카츠오]]와 [[혼죠 쿄시로]]를 비롯한 주민들이 서로 자기가 제작자라고 나선다.
* 그런데 갑자기 건물 옥상이 무너지면서 소타츠를 비롯한 신라 병사들이 추락한다.
소타츠는 인질을 내세워 저 대포를 만든 제작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거부한다면 10초에 한 명씩 여자를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는 이 비열한 책략에 자부심마저 느끼는 듯 하다.
오토세 여사는 에도를 지키기 위해 만든 기계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야 본말전도라고 말하며 앞으로 어머니가 될 여자들의 목숨과 늙어 빠진 노인네들의 목숨을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행들은 지금까지 잘해줬다며 마치 전쟁을 포기하는 듯이 말한다. 겐가이 영감을 넘겨주는 대신 이 마을에는 손을 떼달라고 하는데.
* 그때 뜬금없이 [[쿠로고마 카츠오]]가 팔자에도 없는 안경을 쓰고 나타난다. 그는 겐가이포는 자신과 흙탕쥐파 야쿠자들이 만든 거라 주장한다. 그는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어떻게 만든 건지 말해주라고 부하들을 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나 부하들이나 일자무식한 인생이라 "덧셈 뺄셈으로 만들었다"는 황당한 대답 밖엔 나오지 않는다. 카츠오는 그걸 한심해하지만 어차피도 그도 도찐개찐이다.
* 그 말이 당연하다고 받아치며 나타나는 [[혼죠 쿄시로]]와 "타카마가하라"의 호스트들. 이쪽 쓰지도 않던 안경을 끼고 인텔리인 척한다. 쿄시로는 자신이 저 대포를 만들었다며 자신을 데려가라고 한다. 그러면 나노 바이러스는 멈추겠지만 당신네 별의 여자들이 자기한테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이러스의 포로가 될 거라고 경고한다. 카츠오는 자신도 바이러스를 왕창 가지고 있다고 경쟁하듯 외치는데 쿄시로는 "당신이 가진건 그냥 성병"이라고 단정한다. 카츠오는 "누가 완선이냐"고 반발하며 자신의 병명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 이런 개판의 와중에 마조돼지로 전락했던 [[코제니가타 헤이지]]까지 멀쩡한 척 안경을 쓰고 나타나 "남자들은 모두 가랑이에 바이러스 포를 가지고 있는 박사들"이라고 개드립을 친다. 그는 자신을 데려가 이종교배 실험을 시켜달라는, 취지가 장난 아니게 빗나간 요구를 해댄다. 하지만 왠지 쿄시로가 "당신들이 가면 지구인의 이미지만 나빠지니 내가 가서 천 명을 꼬셔오겠다"는 드립을 치면서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다.
>안 나오면 10초마다 여자들을 죽여버리겠다!
>멸망시킬 거라면 이 자리에서 망해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는 자비를 베풀 것처럼 말하지만, 그가 붙들고 있던 오타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건물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것이 소타츠의 대답이다.
* 다른 인질들도 건물 아래로 떨궈진다. 소타츠는 "앞으로 아이들의 엄마가 될 여자들"이란 말을 비웃으며 "앞으로"가 어디있냐고 비꼰다. 망해가는 별에는 여자도 남자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미래가 없는 자들과 거래할 생각이 없었으며 그들의 "거래처"는 해방군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옥상 위에 모인 주민들을 몰살하기 위해 달려드는데. 오토세 여사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소타츠의 칼을 무심히 쳐다보며 말한다.
오토세 여사가 바닥을 가리키자 칼 하나가 바닥을 뚫고 나타난다.
* 그대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던 타에와 해결사 일행, 스마일의 아가씨들도 모두 무사하다. 그들은 건물 사이에 쳐진 그물에 걸려서 무사할 수 있었다. 양 건물 안에서 그물을 잡아 당기고 있는 남자들. 그 사이에서 [[도로미즈 피라코|익숙한 목소리의 소녀]]가 나타난다.
* 옥상이 무너지면서 건물 안으로 떨어진 소타츠와 신라 병사들. 그들 앞에 삿갓을 쓴 협객의 모습이 나타난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삿갓을 벗어던진다. 그는 본래 에도의 가부키쵸 사람으로 속죄를 위해 여행하고 있었으나 고향이 그립고 친구의 약속이 마음에 걸려 돌아왔다.
>[[테라다 타츠고로]]의 친구이자 가부키쵸의 수호자
- 이재황(배우) . . . . 34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중퇴[* 졸업만 했다면 [[강동원(배우)|강동원]], [[하석진]]과 더불어 공대오빠로 불렸을 것인데...] ||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2008년에는 막장드라마의 신바람을 이르킨 《[[아내의 유혹]]》에서 [[민건우]] 역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광고도 찍었다. 이젠 권재황보다 민건우로 더 많이 불린다.-- 끝까지 자기 이름으로는 안 불린다.-- 하지만 착한 역할인데도 여주인공 방해한다고 욕먹고, 여주인공 버리고 결혼했다고 욕먹고,
2010년 판 아내의 유혹이었던 《[[웃어요 엄마]]》에서는 정교빈 포지션인 신머루 역을 맡아 아내의 유혹에서 정교빈이 먹었던 욕을 자신이 도로 흡수했다.[* 실제로 웃엄 출연 당시 자기 어머니(실제 배우의 어머님)한테서 "나쁜 놈"이라고 욕먹었다고 한다.].
2012년부터는 아침드라마에 자주 출연했다[* 2012년 '너라서 좋아'를 시작으로 '내 손을 잡아', '이브의 사랑', 그리고 2018년 '역류'까지 4연타 기록중.]. 그리고 2018년 4월에 종영한 드라마 《[[역류]]》에선 생애 두 번째 악역인 [[강동빈]][* 첫 악역은 2010년에 출연한 '웃어요, 엄마'의 신머루 역이다. 신머루 역할은 좀 찌질한 면이 많아서 제대로된 악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청률은 낮지만 본 사람들은 악마라고 욕한다.] 역에 도전했다.
|| [[문화방송|MBC]] || [[남자 셋 여자 셋]] || 왕우[* 자세한 역할 정보는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C%9E%90_%EC%85%8B_%EC%97%AC%EC%9E%90_%EC%85%8B#%EA%B7%B8_%EC%99%B8_%EC%9D%B8%EB%AC%BC|남자셋 여자셋 위키백과]] 참고] || 특별 출연 ||
|| [[문화방송|MBC]] || 여자 대 여자 || 의사 || ||
|| 2003년 || 우리들의 전쟁[* 첫 영화이자 유일한 영화 작품] || 독립운동가 || 국방홍보원 장병 양성 영화/국제군사영화제 우수상 수상작품 ||
|| 12월 31일 || [[SBS]] || [[SBS 연기대상]] || 뉴스타상 수상자 || ||
|| 12월 20일 || [[KBS 2TV]] ||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 게스트 || 264회 ||
|| 12월 30일 || [[SBS]] || [[SBS 연예대상]] || 최고MC상 시상자 || with. [[장서희]] ||
|| [[2013년]] || 10월 20일~12월 29일 || [[문화방송|MBC]] || [[해피타임!]] || NG 스페셜 출연자 || 440회~450회, 《[[내 손을 잡아(드라마)|내 손을 잡아]]》 ||
|| [[2013년]] || 12월 22일 || [[문화방송|MBC]] || [[해피타임!]] || TV 속 궁금타파 출연자 || 449회, 《[[내 손을 잡아(드라마)|내 손을 잡아]]》 ||
|| [[2014년]] || 01월 05일~04월 06일 || [[문화방송|MBC]] || [[해피타임!]] || NG 스페셜 출연자 || 451회~463회, 《[[내 손을 잡아(드라마)|내 손을 잡아]]》 ||
|| [[2015년]] || 06월 07일~10월 04일 || [[문화방송|MBC]] || [[해피타임!]] || NG 스페셜 출연자 || 518회~534회, 《[[이브의 사랑]]》 ||
|| [[2018년]] || 01월 21일 || [[문화방송|MBC]]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 축하인사자 || 800회 특집, 《[[역류(드라마)|역류]]》 ||
|| 2002년 || [[빙그레 바나나맛우유]](with. [[정소영(여자 배우)|정소영]]) || [[http://pan.best/1kEDT9aH|영상]] ||
|| 잠자는 공주(Nemuri hime/眠り姫) || 眠り姫 외 6곡 || 일본 미니 앨범 [[http://tsutaya.tsite.jp/item/music/PTA00008NXUE|링크]] ||
* 고1까지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집에선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을 접한 후 가요에 눈을 떠 2년동안 가수 준비를 했다가 불발, 우여곡절 끝에 연기자로 데뷔했다고 한다.
* 《지금은 연애 중》에 함께 출연했던 [[권상우]]가 자신이 군대를 다녀온 사이 톱스타가 되어있자 놀랐다고 한다. --인생 역전 당함--
- 이철우(1955) . . . . 3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55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8242D><-5><bgcolor=#C8242D><:>[[자유한국당|[[파일:libertykorealogo.jpg|width=30px]]]] {{{#FFFFFF '''[[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소속 ''' }}} ||<(><bgcolor=#FCFEFE>[[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경력 ''' }}} ||<(> 화령중·고등학교 교사[br][[국가정보원]] 국장[br][[경상북도]] 정무부지사[br]새누리당 원내대변인[br]제18~20대 국회의원[br][[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br][[자유한국당]] [[사무총장]][br][[자유한국당]] 최고위원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가족 ''' }}} ||<(> {{{-1 배우자}}}, {{{-1 장남}}} ||
'''자유한국당의 단 둘뿐인 광역단체장'''
[[자유한국당]] 소속이며 [[김천시(선거구)|김천시]]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민선 7기 제32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내고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화령중학교 교사 때의 제자이던 [[임이자]]도 해당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간사이자 자유한국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4월 1일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됐고, 제19대 대통령선거 자유한국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대선 이튿날인 5월 10일 사무총장 직을 스스로 사퇴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유일한 당직자였다. 이후 2017년 7월 3일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최다득표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2018년 1월 31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경선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계획을 돌연 철회했는데, 당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강력히 만류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사퇴로 인해 다른 광역단체장 출마를 희망하는 국회의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경북지사 선거 경쟁 후보자들이 국회의원 사퇴에 대해서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 김천당협위원장을 사퇴했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셈이다. 4월 9일 경선에서 32%로 1위를 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선은 결선투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경북도지사 후보로 확정됐다. 당원 투표에서는 김광림 후보에 밀렸지만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1위가 됐다.
2018년 7월 1일 영천호국원을 찾아 충혼탑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남권에 약속했던 제2청사 건립을 위해 포항 환동해안본부를 제2청사로 승격시키는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하려고하자 안동을 비롯한 북부권의 반대가 심해 난항을 겪고 있다.
2018년 8월 14일 전우헌 전 삼성전자 전무를 경제부지사로 임용하였다. 앞서 13일날 있었던 대구-경북경제공동체를 실현하는데 고교동창인 이승호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8월 28일 경산소방서 회의실에서 세쌍둥이를 출산한 이기찬 소방관을 찾아 격려하고 육아용품을 전달하였다. 세쌍둥이를 낳았다고 도지사가 찾아서 직접 격려해주는 것은 지자체의 발전을 위해 아이낳기 좋은 경북을 만드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8월 29일, 뜬금 없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찾아 왔다. 회의가 열린 구미의 경제에서 초당적 협력에 관해서 언급하였다. --지역예산 배정문제를 언급한 것을 보아, 자유한국당 소속이지만 지역 국회의원이 못 미더웠나보다.-- ~~이점은 당연해 보인다 현재 정부 예산 편성안을 쥐고 있는 대통령이 어느 당인지 생각하면~~
2018년 9월 4일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하락하는 경북 경제의 해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하였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추어 포항, 울릉, 울진, 영덕을 중심으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풍력, 수소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 확장에 나서고 농어업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스마트팜 혁신 밸리와 스마트 양식장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http://www.etnews.com/20180903000231|[인터뷰]이철우 경북도지사...'동해안에너지클러스터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창출']]
[[2017년]] [[6월 20일]]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타운홀미팅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발언[*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지지층 결집용으로 격한 말을 던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으로 파문이 일었다. 내년 지선과 총선에서 당이 승리를 결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의 현재 하는 행동이 박근혜처럼 탄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비난을 한 것.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막말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 흔들기를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http://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01&aid=0009348444&sid1=100&date=20170620&ntype=RANKING|연합뉴스]] 본인은 이 사태를 단순히 문재인이 경각심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해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830754|한국당 이철우 '문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논란에 "경각심 차원의 말"]]
[[2018년]] [[6월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3617afe4b08c3a8f6976f8|"‘결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갖게 하자"]]라는 범국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네티즌의 반응은 "어쩌라고?","(미혼인)내가 죄인이야?"+"부모나 영감들에게 작은 죄는 지어도, 아이들에게 가난의 되물림이라는 더 큰 죄는 짓지는 않겠다"라는 반응. 추가로 [[장세용]] [[구미시]] 시장 당선인이 선언한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 재조정 검토를 도지사로써 막겠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넌씨눈]] 정치인~~
2018년 8월 6일 청탁과 관련하여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사자는 민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좀더 지켜보아야 될 것 같다. [[https://m.news.naver.com/read.nhn?oid=052&aid=0001178176&sid1=100&backUrl=%2Fhome.nhn&light=off|#]]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자유한국당]] || '''732,785 (52.11%)''' || '''당선 (1위)''' || '''초선'''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33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은 사람을 감자라고 자기최면을 걸지 않으면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
* 빅3는 세 명 모두 토크능력이 엉망이라 별 도움이 되지 않자 토오가타가 "몸으로 체험해 보자"며 대련을 제안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그가 명실상부한 "넘버1에 가까운 남자"이라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단 몇 초만에 A반 인원 대부분이 K.O당한다.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가 빅3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며 "아마지키"를 호명한다. 검은 머리에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한 학생. 그는 이름이 불리자 마자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쏘아본다. [[이이다 텐야]]는 노려본 것만으로 이런 박력이 나온다며 놀란다. 학생들 모두 그 눈빛만으로 위축된다.
>[[감자]]라고 생각하고 임해도...
* 아마지키가 이 모양이라 "하도 씨"라 불렸던 여학생이 대신 나선다. 그녀는 아마지키에게 "너 같은 태도를 벼룩심장이라 불러."라고 하더니 급기에는 그를 "벼룩인 [[아마지키 타마키]]"라고 처참한 소개를 한다. 그녀 자신은 [[하도 네지레]]. 인턴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다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보통 사람같은 태도였지만...
그녀도 아마지키 못지 않게 괴짜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인턴 제도의 설명을 부탁받고 왔다면서 곧바로 A반 학생들을 뜯어보며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기 시작한다. 우선은 앞에 있던 [[쇼지 메조]]에게 마스크를 왜 썼냐고 묻는다. 근데 쇼지의 대답도 듣지 않더니 다음은 [[토도로키 쇼토]]에게 얼굴의 화상 자국 같은 민감한 부분도 마구잡이로 질문한다. 또 대답도 듣지 않고 다음 학생,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게 신기하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카미나리나 [[아시도 미나]]는 천연스럽고 유치원생 같다며 귀여워하는데 대부분은 불편해한다. [[미네타 미노루]]는 "나의 알(머리에 생성되는 알)에 대해 묻다니 성희롱이다"는 개드립을 치다 제지 당한다.
* 이대로는 강연이고 뭐고 진행이 안 된다. 아이자와가 짜증을 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미도리야와 만났던 선배가 "안심해주세요"라고 나선다. 그런데 그는 앞뒤없이 "전도!"라고 외치며 학생들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취한다. 너무 뜬금없어서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있자 "다난"이라고 해야지 않냐며 웃어넘긴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 뿐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선배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돈하며 "너희 모두 나랑 싸워보자"고 선언한다. 즉흥적인 제안이지만 "우리들의 경험을 몸으로 경험하는게 합리적이다"는 논리. 아이자와도 마음대로 하라며 허락한다.
* 학생들은 체육관에 다시 모인다. 몸을 풀고 있는 선배에게 [[세로 한타]]가 "정말로 합니까"라고 묻는데 역시 진심이다. 체육관에서 조차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아마지키는 "밀리오"에게 "적당히 설명해주고 말자"며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작정 싫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하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아시도의 움직이는 뿔을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리면서도 "좌절해서 히어로를 포기하고 문제를 일으킨 애가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었는데 상당히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그렇다. 토코야미가 "우린 프로 히어로와 싸움도 겪어 봤다"고 말하자 키리시마가 "빌런과도 싸워봤다"고 맞장구치며 자기들이 "그런 걱정이나 받을 정도로 조무레기로 보이냐"고 직설적으로 따진다. 거기에 대한 밀리오 선배의 답은 이렇다.
그는 A반 학생들을 완전히 얕보며 누가 먼저 덤벼보겠냐고 묻는다. 당연히 키리시마가 자기가 나서려고 하는데 잠자코 있던 미도리야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키리시마는 의외라고 생각하는데 [[우라라카 오챠코]]는 미도리야가 "뒤처진 시간을 만회한다"고 의욕에 불탔던 걸 떠올린다.
* 밀리오도 "문제아, 역시 기운이 넘친다"며 만족스러워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의 톱과 대련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는 기회라며 현재의 자신과 그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미도리야가 선두를 맡고 키리시마, 오지로, [[사토 리키도]]의 근접전 특기자들이 포위를 맡는다. 나머지 학생들도 각자 몸을 풀며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한다.
* 그런데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탈의쇼를 벌이는 밀리오. [[지로 쿄카]]가 특히 질색한다. 그런데 그냥 옷을 벗은게 아니라 "옷이 몸을 통과"해 버린 듯한 모습이다. 밀리오는 "조정"이 어렵다며 다시 옷을 주워입느라 꿈지럭 거린다.
* 아마지키는 벽을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체육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듣고 보고 있다. 학생들이 그의 개성에 경악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주목해야 할 건 "개성 자체가 아니라 그걸 쓰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밀리오는 스카우트를 거쳐 "어떤 히어로" 밑에서 그 기술을 길렀다.
아이자와는 허수아비처럼 쓰려지는 학생들에게 외친다.
>가장 No.1에 가까운 남자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33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의 허락으로 [[미도리야 이즈쿠]],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의 "에리쨩 구출 작전" 참가가 결정된다.
* 수사가 진전되어 마침내 결행일. 나이트아이가 시에핫사이카이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특정하면서 작전이 결정된다.
* [[아이자와 쇼타]]가 교사이자 선배 히어로로서 미도리야의 각오를 확인한 그날, 다른 학생들도 거기서 참가가 결정되었다. 아이자와는 그들의 참가를 일단 허가하지만 "어차피 너희에겐 별로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물론 빅3, [[토오가타 밀리오]]와 [[하도 네지레]], [[아마지키 타마키]]는 다를 것이다. 이들은 이미 프로와 동등 이상의 평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1학년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러면서 미도리야는 어쨌든 나머지 셋은 자기들 의지로 여기 있는게 아니냐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 우라라카는 그를 "이레이저 헤드"라 부르며 벌떡 일어난다. 츠유도 마찬가지였다. 담임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물러날 수가 없다, 그녀들의 입장은 확고했다. 우라라카가 격하게 입장을 표명하자 츠유는 선생님이 반대하지 않는데다 어린 소녀가 상처입고 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조력할 의사를 표명한다.
키리시마도 "우리 힘이 조금이라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물러서지 않는다. 이렇게 세 사람이 분명히 입장을 밝히자 아이자와 쇼타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단지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라 밝히는데, 그러면서 이번 작전에서 학생들이 담당할 영역을 정확하게 밝힌다.
작전은 어디까지나 "에리쨩"이란 소녀의 발견과 보호가 목적. 그 이상 파고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일 걱정해야 할 건 [[빌런 연합]]의 그림자다. 경찰이나 나이트아이의 견해 상으론 딱히 양호한 관계는 아니라 하니 이번 가택 조사에서 같은 장소에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1학년의 참가는 거기서 끝이다. 이 점은 학생들도 납득한다.
미도리야는 일단은 "에리쨩 보호에 전력으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로 여러가지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아슬아슬한 상태인 거라고 자평했다. 그도 그럴게 고민하는 기색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남에게 보여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지금도 학생 식당에서 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토도로키 쇼토]]가 "안 먹냐"고 지적했다.
그만이 아니라 옆자리의 [[이이다 텐야]]도 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토도로키가 "인턴 시작한 이후로 얼굴이 안 좋다"고 운을 띄운다. 미도리야가 "그런가?"하고 모른 척 하지만 이이다는 어두운 구석을 발견하고 만다. 그는 다른 말보다도 이전에, 미도리야가 직접 했던 말을 꺼낸다.
이이다의 위로가 미도리야가 억누르고 있던 후회나 슬픔을 흘러넘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눈물을 지워버린 미도리야는 넘친 것을 채울 기세로 입 안에 밥을 밀어넣는다. 이이다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를 쳐다본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한 말을 놓고 "아니, 히어로도 울 때는 운다, 아마도"라고 대답하며 자기가 몫의 소바를 반 나눠주는 배려를 보인다. 이이다도 자기 몫의 비프 스튜를 나눠주고 미도리야는 고맙다며 주는대로 마구 먹어치운다.
* 회의로부터 이틀이 지난 심야. 기숙사에 있던 1학년 인턴들에게 호출이 떨어진다. 넷은 자연스럽게 만나서 서로 받은 문자를 확인한다. 내용은 모두 같았다.
같은 메시지가 아이자와에게도, 빅 3에게도 전해졌다. 밀리오는 아직까지도 에리쨩과 관련해서 울쩍한 기분이었지만 네지레와 타마키가 적극적으로 위로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린다.
* 결행일에 앞서, 나이트아이가 관련자들을 모아놓고 맥 풀리는 정보를 공개했다. 에리쨩의 위치를 특정했다는 것.
흥분한 히어로들이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면 요 이틀동안 돌아다닌게 다 허사란 이야기. 나이트아이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 경위를 설명하며 그들을 달랜다. 그가 내놓은 정보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하수인이 며칠 전 백화점에서 여아용 완구를 샀다는 것. [[패트껌]]이나 레게풍 히어로는 고작 그런 걸로 특정이 되는 거냐고 따진다. 패트껌이 "단지 그런 취미를 가진 인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하자 나이트아이는 "그런 취미가 있는 거라면 하지 않을 대사"를 했다고 밝힌다.
* 나이트아이는 그 남자가 완구를 사는 순간을 포착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점원이 "프리유어말인가요?"라고 대답하자 남자가 말했다.
"프리유어 시리즈"는 여아들에게 인기있는 시리즈물이다. 몇 년째 시리즈가 지속 중이고 남자가 말하는 것은 몇 년 전의 시리즈였다. 점원이 최근작 "맹렬 프리큐어 10"을 소개하자 남자는 성가셔하며 "그거라도 달라"고 말한다. 그 대화를 놓치지 않은 나이트아이는 아무 것도 모른 척하며 친절을 배푼다.
그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맹렬 프리유어 10"의 완구를 권한다. 남자가 띠꺼워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자연스럽게 "저도 좋아한다"라며 "그런 취미"를 가진 척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가 이 완구를 누구에게 전할지 미래를 "예지"했다. 그가 권한 완구는 그대로 에리쨩에게 전해졌다.
* 그가 공언했듯 "확신을 얻었을 때 확인용"으로 사용한 예지. 이번엔 유효하게 작용했다. 이후 그 남자가 집에 있는 시간은 [[버블걸]]과 [[센티피드]]가 확보.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는 영장도 발부됐음을 알린다.
밀리오는 불가사의한 움직임으로 투지를 불사른다. 미도리야는 그 움직임엔 난색을 표하지만 선배의 분위기가 돌아온 것을 확신한다. 나이트아이도 같은 걸 느꼈다. 그는 속마음으로 밀리오가 꺽이지 않기를 기원한다. 밀리오는 실수라고 자책하고 있었지만, 나이트아이 입장에선 그가 제지한 덕에 지금과 같은 만전의 체제를 갖추는게 가능했다. 이처럼 후회나 실패는 그 자체로 중요하기 보단, 이후에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밀리오, 비춰라. 너는 그럴 수 있는 남자다.
- 로힝야 . . . . 33회 일치
* 미얀마 : 이들을 '방글라데시 불법이민자'로 규정.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고, 추방을 시도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영국 통치 이후 미얀마에 이주하게 된 방글라데시 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을 방글라데시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정부는 '벵갈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를 차별하는 배경에는 [[종교]]가 있는데, 미얀마 [[불교]] 신도들의 '반 이슬람' 감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이 보도되어 타이 정부는 로힝야 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등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와 이들을 이용한 불법조업 어선의 강제노동 문제로,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되었다. 미국은 타이에 인신매매 최하등급을 적용하고, 유럽연합은 불법 조업이 6개월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타이 경찰이 움직여서 인신매매 조직을 단속했는데, 2015년 5월 1일, 타이 경찰은 말레이시아 국경에 가까운 타이 남부 송클라 지역의 밀림에서 인신매매 캠프에 억류되어 있다 숨진 로힝야의 시신 26구를 발견, 그리고 며칠 뒤 해골 몇 개를 더 발견했다. 타이 경찰의 추적에 따르면 인신매매 조직은 타이 남부 지역의 유력자들과 유착되어 있으며, 타이 언론에서는 군 장성이 연류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5월 24일에 말레이시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 북부에서도 로힝야 감금 캠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타이 정부가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하자, 인신매매범들은 이번에는 로힝야를 태운 난민선을 그냥 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정부는 서로 난민선을 쫓아내다가 일단 구조하기로 하고 3천명 가량의 난민이 구조되었으나, 많은 로힝야 난민들이 사망하거나 바다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기원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 측과 로힝야 측의 주장이 다르다. 미얀마 정부 측은 [[영국]]이 1824년 미얀마를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서 식민통치를 시작한 뒤, 똑같이 영국의 식민통치 지역이었던 방글라데시에서이 이주해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는 뜻에서 '벵갈리'로 부른다.
반면 로힝야 측에서는 자신들이 7세기 라카인주에 정착한 [[아랍]] 계통 [[무슬림]] 상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 박해는 20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집권한 네윈 정권은,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다수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소수민족 탄압이 본격화 되었다. 1978년 네윈 정권은 무슬림 반군 토벌을 명분으로 하여, ‘킹 드래건 작전’ 을 펼쳐서 로힝야를 대규모로 체포했다. 로힝야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갔으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지원을 별로 받지 못하여 1만 2천명이 아사나 병사했으며, 생존자는 미얀마로 송환됐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버마무슬림협회와 유엔의 보고에 따르면, 이 폭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미얀마 정부가 밝힌 공식 사망자는 43명, 모스크 37곳과 건물 1300여채가 불탔고, 1만 3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버마무슬림협회는 사망자가 70~100여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등의 국경 검문소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를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반격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100여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성폭행]] 사건과, 다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위성사진을 분석하여 진압과정에서 1,200채의 민가가 불에 탄 것으로 분석하였고, 유엔은 난민의 수가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남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상 수백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또 다른 분석도 있는데, 미얀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980∼1990년대 방글라데시 인근 접경지대에서 활동했던 무슬림 무장단체 '로힝야 연대기구'(RSO)와 연계한 신생단체 '아카 물 무자헤딘'이 배후이며 파키스탄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하비드 투하르(일명 아르푸 하마드 줄루니)가 리더이고, 그를 돕는 12명의 극단주의자가 로힝야 주민을 선동하고 훈련시켜 폭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남성 자포르 알람이 자신, 부인과 함께 난민선에 탓던 아들 모함메드 소하옛이 보트가 침몰하면서 사망했다며, 지인이 찍어준 아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CNN 에서는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전 세계에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3세 소년 아일란 쿠르디와 비슷하다며, '제2의 쿠르디'라는 표제를 달았다.
국제사회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사실상 미얀마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 겸 외교장관에 대해서 비판이 쏟아졌다. 2016년 무장공격과 이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보복에 대해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던 그녀가 군사작전이 시작되고 6주가 지나도록 언론을 피하고 "법치에 근거하여 군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원론적인 해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에서 아웅산 수치는 집중 포화를 맞게 되었다. 수치는 로힝야를 '벵갈리'라고 부르며 이방인 취급을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지만, 아직 군부 세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 로힝야 탄압은 반 수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군부와 그에 유사한 성향을 가진 극렬 버마 민족주의자, 종교인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수치가 억제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2016년 12월 29일,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노벨상 수상자 22명은 유엔 안보리에 공개서한을 보내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와 반인륜 범죄를 중단시킬 것을 요청하고, 아웅산 수치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미얀마 민간에서는 무슬림에 대해서 [[음모론]] 적인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미얀마 민간에서는 무슬림들이 '786 운동'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786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무슬림들이 [[코란]]의 첫 구절인 ‘자비로우신 신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를 상징하는데, 미얀마 불교도들은 이 세 숫자의 합이 21이며, 이는 '무슬림이 21세기에 세계를 정복하겟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으며, 로힝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미얀마를 정복하려 한다고 믿고 있다.
미얀마 승려 위라투는 이 음모론에 대응하는 '969 운동'을 시작했는데, 9는 붓다, 6은 법륜, 9는 붓다의 제자, 승려를 뜻한다. 969 운동은 무슬림의 '786 음모'에 맞서는 운동임을 주장한다. 위라투는 2003년 버마 중부 만달레이주 카욱세의 반 무슬림 폭동에서 배후를 자처했다. 이 때 위라투를 비롯한 5명의 승려가 경찰에 '증오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그는 민간 정부 출범을 기념한 대사면으로 석방됐으며, 이후로 미얀마 전역의 불교 사원을 순례하며 반무슬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이 운영하는 회사나 무슬림 상점에 보이콧을 선동하고, 신심있는 불교도라면 969 운동의 [[스티커]]가 붙은 가게에서만 물건을 사야 한다는 식이다.
불교 승려들로 이루어진 '마 바 타'(Ma Ba Tha, 민족종교 보호를 위한 애국연합)라는 단체가 로힝야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 보트피플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 미국 대사관이 논평을 내며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로힝야 같은 종족은 없고 그런 말을 할거면 이들을 다 데려가라고 주장했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33회 일치
* [[미모사 버밀리온]]의 부끄러운 오라버니 [[키르슈 버밀리온]] 등장. 극도의 나르시시즘에 아름답지 않은 모든걸 경멸하는 성격파탄자다.
* [[매그너 스윙]]과 [[솔 마론]]은 한 편인 그를 적보다 더 혐오하며 여동생인 미모사도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 경기가 시작되자 별 작전없이 그저 돌격하는 매그너와 마론을 조율해 효과적인 전술을 짜주고, 적의 함정을 역으로 이용한 멋진 전략을 선보인다.
* 매그너와 마론 모두 생리적으로 키르슈를 용납할 수 없었다. 없던 알레르기가 생겨날 지경이엇다. 매그너가 목에 핏대가 생길 때까지 기분 나쁘다고 소리쳐 보지만 키르슈에겐 그저 추한 이의 탄식이고 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더욱 최악은 이런 소감을 여과없이 입으로 나불댔다는 것. 어지간하면 지지않는 매그너가 대화를 포기할 지경에 이른다. 마론도 생리적으로 거부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이쪽에 대고는 "여성이 그렇게 험한 말 쓰는게 아니다"는 짜증나는 설교까지 곁들여진다. 그러면서 마론도 생긴 바탕은 아름다운 편이라면서 자기를 본 받아 정진하라는 성질 돋구는 소리를 쏟아놓는다.
* 1회전을 치르기도 전부터 팀은 붕괴 상태. 그 원흉은 전혀 자각이 없을 뿐더러 상황에 박차를 가한다. 자기들도 만만찮은 막장 팀이건만, 아스타는 이 팀이 정말 괜찮은 건지 진심으로 우려했다. 그러는 동안 키르슈는 여동생에게 아는 채 한다. 그는 여동생이 자기 아름다움을 보러 왔고 그 아름다움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여동생 건강까지 챙겨준다. 미모사가 화답한다.
키르슈는 여동생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자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한다.
오물 취급 당한다. 키르슈는 아스타가 분위기도 거동도 존재 자체도 아름답지 않다고 신랄하게 평한다. 그리고 패션 센스는 물론 근육을 키운 것마저 추악하다고 말하는데, 그의 미학상 몸이란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둬야하는데, 아스타처럼 단련하는 것을 "약한 자들의 행위"라며 경멸한다.
키르슈의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과 극상성이지만 자기 좋을 대로 살기는 마찬가지인 아스타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약하다거나 못 생겼다는 말에는 이골이 난 아스타였다. 덤덤하게 인정하고 "이제는 강해졌다"고 자신하는 아스타에게 키르슈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사람마다 날 때부터 마력의 그릇 크기가 정해져 있어서 아스타처럼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 이렇게 실컷 디스하는 동안, 여동생의 심기가 어떻게 됐는지는 미처 몰랐던 키르슈였다. 미모사는 갑자기 오라버니에게 꼭 이기라고 당부했다.
* 이렇게 개판으로 시작된 2회전. 매그너, 마론, 키르슈의 C팀 대 D팀의 대결이다. 키르슈의 튀는 언행은 시합이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저 별종에 대해서 묻자 [[노엘 실버]]가 "미모사의 오빠인 기분 나쁜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의외로 [[클라우스 류넷]]이 그를 변호한다. 저래봬도 산호의 공작에서 부단장을 맡고 있는 강자라는 것. 거기 단장이 맨날 잠들어 있는 상황이라 실질적으로 기사단을 이끄는 실무자는 키르슈였다.
* 키르슈와 같이 있는거 자체가 고통인 매그너는 일단 무조건 공격하고 돌격하고 본다.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이 끝날테니까. 하지만 적측의 견제가 거세다. 적동마법 "체인스 자칼"이란 마법으로 매그너의 돌격을 방해한다. 매그너가 성가셔하며 일단 적동으로 만들어진 자칼을 때려잡고 본다. 그때 키르슈가 반짝거리며 다가온다. 매그너에게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말투는 여전히 니글거리지만, 의외로 상식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선 매그너는 근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건 합당치 않다. 적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하고 근원거리를 적절히 나눠서 공격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자네도 좀 더 아름답게 타오를 수 있겠지!
* 솔 마론도 생각없이 뛰쳐나가기는 똑같았다. 그녀가 흙 창조마법 "날뛰는 대지모신"으로 거대한 고렘을 만들어내자 적은 진흙 구속마법 "프레쉬 보그"로 늪을 생성해 발을 묶었다. 귀찮게도 마론에겐 상성상 밀리는 마법이다. 그녀가 애를 먹자 어김없이 키르슈가 달려왔다. 괴악한 포즈와 함께. 그는 하나같이 단세포적인 인간들 뿐이라 매도한 뒤 명령을 내릴 정도의 골렘을 만들 수 있다면 쓸데없이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딱히 양동을 거는 상황도 아니니 차라리 작은 골렘 다섯을 만들어 분산시키면 적을 혼란하게 할 수 있다. 지면에 숨겨 복병으로 삼는 것도 고려할 법하다.
>자네의 독창적인 마나라면 가능할게 아닌가?
은근히 그녀의 재능을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론이 수긍하는 듯 하자 그는 자군의 크리스탈은 자신이 지키고 있으니 마음껏 싸우라고 격려한 뒤 물러난다.
* 그러나 그의 과도한 자신감이 화를 부른 건 아닐까? 수면 속에서 잠복하고 있던 적의 세 번째 마법기사가 나타났다. 그는 정확하게 C팀의 크리스탈을 노리고 물 창조마법 "크라이밍 실러"로 저격했다. 분명 잘 지키고 있다던 장담과 달리 키르슈는 크리스탈에서 한참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이대로 제대로된 싸움도 못 해보고 끝나는 걸까?
* 마론의 눈 앞에 있던 키르슈가 산산히 부서지며 꽃잎으로 변해간다. 그는 자군도 모르는 틈에 함정을 걸어두었다.흩어진 꽃잎들이 크리스탈을 향해 발사된 물 마법을 분쇄하며 마법기사에게 접근했다.
>미안하지만 자네들은 이미 나의 아름다운 마법의 노예라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33회 일치
과거부터 존재했던 비밀조직. 템플기사단과는 천년 전 부터 치고박는 사이였으나 지금은 템플기사단에게 확연히 밀리는 상황. 그 상황에서도 애니머스를 빼내거나 앱스테르고에 잡힌 피실험자를 구출하기는 했다. 세계를 멸망시킬 대규모 태양열 폭풍을 막기 위해 먼저 온 자들의 유적에 도착.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데스몬드 조상의 기억을 탐색한다.
러시아 암살단원 니콜라이 오렐로프의 후예. 어린 나이에 앱스테르고에게 납치되어 워렌 비딕의 연구 대상이 되었었다. 비딕은 크로스에게 "암살단의 지도자인 "멘토"를 찾아 제거하라는 내용을 주입했고, 결국 크로스는 "스승"을 제거, 암살단를 거의 박살내버렸다.
앱스테르고 산업의 유전 연구 부서 우두머리. 유전학의 권위자 중 하나로 애니머스가 개발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시퀀스1 부터 시퀀스3 까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상. 영국인 템플기사단원. 먼저 온 자들의 비밀공간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입수한 후 비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보내진다. 이후 아메리카 현지에서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헤이덤이 아메리카로 가는 배의 선원. 다른 선원들과 시비가 붙어 치고박은 헤이덤을 감싸주었다. 항해 33일째 날, 헤이덤이 탄 선박이 암살단 선박에게 따라잡히자 자신이 암살단원임을 밝히며 헤이덤에게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이 항복을 거부하자 결투를 벌이지만 패배해 사망한다.
*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발명가, 정치인, 그 외 등등. 숀 헤이스팅스 曰, 그 시대의 락스타. 헤이덤과 찰스 리가 총을 장만하러 가던 길에 만나는게 첫 등장. 괴한에게 자신이 쓴 도감을 도둑맞았다. 이후 헤이덤에게 시간이 나면 흩어진 도감 페이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영국 장교. 상인에게서 보호비를 뜯고, 도둑질도 좀 해보고, 훔친 물건도 팔아보고, 원주민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아치우기도 하는 양반. 개인적인 조수로 "절단마"[* 무언가를 자르기 좋아해서 붙은 별명. 주로 인간의 신체를 자르는걸 좋아했다.]를 데리고 있다. 보호비를 뜯어내기 위해 처치를 납치했다. 이후 모호크의 협조가 필요했던 헤이덤 일당에게 붙잡아 두었던 노예들을 모두 털리고 처치의 손에 죽는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륙군 지휘관이자 초대 미국 대통령. 주인공의 조력을 받아 영국에 대항하는 입장이지만,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서는 에덴의 조각의 힘으로 원래 역사와는 달리 '왕'으로 등극해 폭정을 저지른다. 해당 DLC의 최종 보스.
마서스비니어드에 위치한 여관의 주인. 대가족의 장녀로 태어났다.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도중 로버트 폴크너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까지 갔으나 폴크너가 암살단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망.
* 벤자민 톨마지(Benjamin Tallmadge[* 한국어 표기가 오락가락하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추가 바람.])
한때 암살단의 멘토였던 노인. 템플기사단이 식민지 암살단을 풍비박산내면서 혼자 남게 되었다. 암살단이 되기 위해 찾아온 라둔하게둔을 내쫓으나, 라둔하게둔이 계속 찾아오고 아킬레스의 집을 습격한 강도에 대항해 대등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까지 보이자 그를 훈련시키고 암살단에 입단시킨다.
암살단 선박인 아퀼라의 선장. 아퀼라가 버려지자 술에 찌들어서 살고 있었다. 이후 아킬레스와 코너가 아퀼라를 수리하자 다시 선장으로 활동한다. 비들과는 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닌 듯.
버지니아 출신 사냥꾼 겸 측량사. 보스턴에서 영국군의 악행을 보고는 애국자를 지지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전부 왕당파 지지자라고. 보스턴 남부에서 강제 징집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면 영입된다.
땅투기꾼 겸 대 원주민 협상가로 템플기사단원. 헤이덤이 보스턴에서 만난 두번째 조력자. 헤이덤이 얻은 열쇠가 모호크의 것임을 알려준다.
영국 군인. 헤이덤의 세번째 조력자로 템플기사단원. 존슨의 경호원으로 상당히 경박한 인물.
* 벤자민 처치(Benjamin Church)
의사. 헤이덤의 네번째 조력자, 템플기사단원. 헤이덤과 찰스 리가 도움을 얻기위해 찾아갔을 때는 사일러스 대처에게 납치당한 상황이었다. 대처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다고 저항하다가 대처와 절단마의 대화[* 절단마 "의사일을 하지 못하게 손을 잘라버릴까요. 떠들지 못하게 혀를 잘라버릴까요. 아니면 우릴 엿먹이지 못하게 좆을 잘라버릴까요." - 대처 "고르기 어려운데. 그냥 다 해."]에 즉각 비굴해지는게 일품. 그렇게 어디 한구석이 잘리기 직전에 헤이덤과 찰스 리에게 구출된다.
영국 해병대 장교. 찰스 리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소개해준 템플기사단원. 상관인 브래독이 핏케언을 데려가는걸 승인하지 않자 헤이덤과 찰스 리가 군대 행렬을 습격해 데려갔다.
템플기사단원. 대륙군 해군의 첫 함장 중 하나. 영국 해군에서 복무하다 혁명이 일어나자 대륙군으로 편을 바꿨다. 그 결과로 대륙군 군함인 랜돌프의 함장이 되었고, 대륙군의 사략선 선장으로 활동했다.
- 원피스/867화 . . . . 33회 일치
* [[마더 카르멜]]은 놀랍게도 소울소울 열매 능력자. 링링에게 셈라를 줄 것을 요청하고 자신은 주위의 불꽃에 혼을 주입해서 화제를 진압한다.
* 이번엔 [[야를]]이 링링을 죽이려 하자 카르멜이 몸을 던져 막는데, 설사 카르멜의 부탁이라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엘바프에서 추방당한다.
* 그녀는 세계정부와 내통하고 있었으며 정부에 우수한 자질의 고아들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CP 요원들 대부분은 그녀가 공급한 고아들.
* 거인족을 감동시킨 사건도 모두 연기에 지나지 않았고 처음부터 거인족 병사를 세계정부에 팔아넘기기 위한 계략이었다. 그 결과물이 존 자이언트.
* 링링을 거둔 것도 그녀가 장차 해군 대장에 오를 만한 자질이 있어서. 그녀를 비싸게 팔아치우고 은퇴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 아무 것도 모른채 생활하는 양의 집 아이들. 링링의 생일이 되자 아이들은 셈라로 만든 크로캉붓슈를 선물하고 링링은 정신없이 먹는다.
* 너무 맛있게 먹어서 무심결에 탁자까지 먹어치운 링링. 그런데 다 먹고 보니, 어찌된 일인지 주위에 있던 아이들과 카르멜이 보이지 않는다.
*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 거인족 마을을 파괴한 [[샬롯 링링]]. 동지제의 기념음식 "셈라"를 찾으며 폭주한다. 도저히 아이의 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만행에 엘바프의 웃어른 폭포수염 [[요를]]이 진노한다. 그는 링링을 더이상 아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의 탈을 쓴 악귀"라고 욕하며 처단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거인족 전사를 여럿 해치운 링링에게 노쇄한 그의 공격이 먹힐리 없었다. 요를이 내리치는 검을 간단하게 부러뜨린 링링은 그의 긴 수염을 잡아 내동댕이 쳐버린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를 토하는 요를. 링링의 보호자 [[마더 카르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 카르멜은 링링을 막기 위해 거인족 여인에게 셈라를 준비해줄 수 없냐고 묻는다. 마침 동지제 당일에 먹을 양을 남겨놓은게 있었다. 셈라가 준비되는 동안 거인족 청년들은 어떻게든 링링을 막고 카르멜은 마을에 번진 불을 끄겠다고 한다. 카르멜이 "게브아"라고 중얼거리자 손에서 희미한 영체가 빠져나온다. 이어서 "츠타크"라 외치자 손 안에 있던 영체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러자 불꽃들이 마치 악마의 얼굴과 같은 형상으로 뭉친다.
양의 집 아이들은 카르멜이 불꽃을 향해 이름을 지어주고 "사라져라"고 명령하는 모습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다. 거인족들이 링링에게 셈라를 먹여서 진정시키는 동안, 카르멜은 자신의 영혼을 부여한 불꽃을 끌어모아 한 순간에 소멸시킨다. 마치 빅맘의 "소울소울 열매" 능력자처럼.
야를이 눈물과 함께 하는 이야기. 카르멜은 그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링링 또한 양의 집 아이들 처럼 오갈 곳이 없는 불쌍한 아이. 야를이 요를의 복수를 마다할 수 없듯이, 자신도 링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카르멜은 과감한 결심을 한다.
그것은 야를에게도 뜻밖의 결론이었다. 야를이 고민하는 사이, 한때 링링의 친구이기도 했던 [[하이루딘]]은 "왜 링링을 죽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친다. 그 또한 링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야를은 자비심이 생긴 건지, 카르멜을 결단을 봐서인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칼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링링이 정신을 차리는데, 폭주했을 때의 일을 기억 못할 뿐더러 요를의 죽음을 슬퍼하는 등, 남의 일처럼 행동해서 더욱 거인족들의 분노를 산다.
* "요를의 죽음", "링링이라는 악신", "카르멜의 기적". 이날의 사건들은 엘바프를 넘어 전세계의 거인족들에게 전파된다. 링링이 거인족 전체에게 눈엣가시 취급을 받게 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카르멜과 링링, 그리고 양의 집 아이들은 엘바프를 떠나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고생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링링은 증오하긴 하지만 그게 "성모" 카르멜에 대한 은의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거인족들은 그들의 영역 밖에 새로운 양의 집을 지어주고 앞으로도 간접적인 지원은 계속하기로 약속한다. 새로운 터전이 생기고 카르멜도 밝게 행동하자 한동안 불안해 했던 아이들도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카르멜이 누군가와 접촉했다. 수상한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는 설마 양의 집이 엘바프를 떠날지는 몰랐다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그 아이"를 버릴 수 없었던 거냐고 묻는다. 카르멜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에 대한 남자의 대답도 수상하다.
남자가 앓는 소릴 하자 카르멜은 "내지 못할리 없다"고 꼬집었다. 해병이라면 대장, 혹은 원수까지 될 수 있고 CP 요원으로 쓴다면 [[천룡인]]들을 지키는 최고의 방패가 될 거라고.
이것이 카르멜의 진짜 정체. 그녀의 진짜 얼굴은 "고아판매상"이며 뒷세계에서는 "야만바"(산 속 마귀할멈)이라 불리는 극악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상대하는 인물은 세계정부의 하수인이며 양의 집을 통해 2년에 한 번씩 고아를 공급 받아 CP의 요원으로 쓰고 있었다. 37년 전 카르멜이 거병 해적단 잔당을 구한 것도 연극. 처음부터 해군과 그녀는 한패였으며 엘바프 섬에 그녀를 잠입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목적은 거인족의 아이를 꾀어내 해군에 "납품"하기 위해서였으며 해군 최초의 거인 해병 "존 자이언트" 또한 그녀의 "유통라인"에서 나온 성과였다.
지금은 "역대 최상품"인 샬롯 링링의 몸값을 흥정하는 자리였다. 카르멜은 이 거래를 자신이 손을 씻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성모를 연기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녀는 "은퇴작"에 걸맞는 대가를 톡톡히 챙기려 했고, 그동안의 기여도를 운운하며 압박하는 카르멜에게 결국 남자가 지고 만다.
너무나 열정적으로 먹어치운 탓에 탁자까지 먹어버렸다. 잔치상을 전부 먹어치우고 나자 눈물이 그치고 겨우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과 오늘을 평생 기억할 거라고, 친구들과 카르멜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카르멜은 사라졌다. 양의 집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은퇴작인 링링을 남기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링링이 먹다 남긴 탁자와, 잔해들 뿐. 카르멜의 옷자락만 잔해들 사이에 섞여 남겨져 있다. 어리둥절한 링링은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건가 싶어 양의 집으로 가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링링이 모르는 사이에. 크로캉붓슈를 신나게 먹어치우던 그 순간에.
- 윤덕주 (농구인) . . . . 33회 일치
'''윤덕주'''(尹德珠, [[1921년]] [[6월 23일]] - [[2005년]] [[7월 8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이자, 대한체육협회 부회장,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구한말의 계몽 운동가 [[윤필오]]의 손녀이자,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윤홍열]]의 딸이다. 4,5대 국회의원과 재무부 차관, [[호남정유]]사장을 지낸 [[서정귀]]의 부인이다.
[[1935년]]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농구 선수가 되어 해방 후, [[1950년대]]까지 농구 선수로 활동했다. 자녀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현역 농구선수로 코트에서 활약하여 화제가 되었다.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은 친정어머니 이숙경의 사촌 남동생들이었다. 치과의사 겸 치의학자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외사촌 동생이었다. 대구 출신.<ref name="dibigo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30703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동아일보 2005.07.09</ref>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윤홍열 (1893년)|윤홍열]]의 딸이자 민족운동가 겸 사학자 [[윤필오]]의 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숙경은 민족운동가 이일우의 딸로,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의 사촌 누나가 된다.
[[2005년]] 5월 부천에서 열린 2005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리그의 개회선언을 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했고 7일에도 지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81754171&code=10040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여자농구의 대모’ 윤덕주씨 별세] 경향신문 2005.07.08</ref>
[[2007년]] [[3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국제농구연맹(FIB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헌액되었다.<ref name="gibisos">[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65&article_id=0000010191 故 윤덕주 씨, 'FIBA 명예의 전당' 헌액]</ref> FIBA 농구 명예의 전당-공로자 부문에는 윤덕주 씨를 포함해 총 24명이 이름을 올렸고, 윤덕주 씨는 공로자 부문의 유일한 여성이다.<ref name="gibisos"/>
* [[1999년]] [[4월 27일]] ~ [[1999년]] [[6월]] 제18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5월2-9일, 일본 시즈오카) 한국 선수단 단장<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70997 한국 여자농구대표팀 28일 결단식]</ref>
* [[2005년]] [[5월 18일]] 2005 FIBA 여자농구 월드리그 행사 주관<ref>[http://www.jumpball.co.kr/cont/cont_view.php?cont_cd=03&cont_seq=1661 <nowiki>[</nowiki>월드리그<nowiki>]</nowiki> 한· 일전 이모저모]</ref>
** 외종조모 : 김신자(金愼子), 김해 김씨(金海 金氏)
*** 외당숙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숙명여자고등학교]]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
* [[박신자]]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83262 <농구> 왕년의 여자농구스타들, 여름리그 앞장]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81754171&code=10040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여자농구의 대모’ 윤덕주씨 별세] 경향신문 2005.07.08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0709010117330060022 윤덕주 농구協 명예회장 별세] 문화일보 2005년 07월 09일자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143&article_id=0000045873 여자농구 역사서 ‘96년만의 덩크슛’ 발간] 국민일보 2006.12.01
[[분류:1921년 태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FIBA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이현우 (가수) . . . . 33회 일치
| 배우자 = <!-- 링크달지 마세요 달면 배우 이제니로 연결됩니다-->이제니
| 가족 = 자녀는 슬하 2남 <br/> 형제자매 관계는 2남 2녀 중 차남 <br /> 친척 관계는 5촌 당숙 [[이경영 (1960년)|이경영]](영화배우)
'''이현우'''(李鉉雨, [[1966년]] [[3월 6일]] ~ )는 [[미국]]의 [[가수]]이자, [[작사가]], [[작곡가]]이며, [[사회자|방송인]], [[영화배우]], [[연기자]], [[뮤지컬 배우]]이다. [[미국]] 국적 소유자이므로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
* 2005년 《[[B형 남자친구]]》 - 소개남 역(우정출연)
* [[2004년]]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 - 김지훈 역
* [[2007년]] [[KBS 2TV|KBS2]] 수목드라마 《[[달자의 봄]]》 - 엄기준 역
* [[2012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금요시트콤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현우 역
* [[르노삼성자동차]] SM5 ([[2004년]]) (faet.[[김광민]])
*[[LG전자]] 스팀 싸이킹 ([[2006년]]) (feat.[[윤종신]])
* [[현대자동차]] [[현대 스타렉스|그랜드 스타렉스]] ([[2007년]])
* [[도미노피자]] 리꼬쏠레 피자 ([[2007년]])
* 2001년 《위기의 남자》ost - 지금 내게 필요한 건...
* [[미국]] [[로스앤젤레스]] [[:en: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오티스 미술디자인대학교]] 중퇴
*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학사
1993년 1월 13일 자신이 알던 한 팬과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후 2월 1일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그 해 3월 [[MBC]], [[서울방송|SBS]], [[KBS]]로부터 방송 출연 정지 조치를 받고 [[미국]]에 건너갔다가 11월에 방송 복귀했다.
2007년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는데 당시 이현우가 가지고 있던 국제 면허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114%의 만취상태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6&aid=0000053562 이현우, 무면허 음주 운전 적발]</ref> 그 뒤 자숙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자동차 광고 출연, [[대부업]] 광고 출연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33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전쟁의 방침과 마신족과 관계를 놓고 [[뤼드셀]]과 [[네로바스타]]와 대립한다.
*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의 고위 인사로 보이는지만 그녀를 제외한 실권자들은 모두 마신족 근절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그곳은 마신족으로 보이는 자들이 수없이 많이 구속되어 있다.
* 스티그마 내에서는 마신족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 각지에서 마신족에게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데 "십계"는 물론 "흑의 육기사"라는 조직에게도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모여있던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이같은 소식들을 공유하며 마신족에 대해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마신족을 섬멸하고 멸종시키겠다는 발언을 한다.
* 이런 분위기 속에서 [[멜리오다스]]는 편히 있지 못한다. 그는 좀 떨어진 곳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는데 얼마 전 합류한 로우가 다가온다. 그는 멜리오다스 옆에 앉더니 "바늘방석 같겠다"는 말을 꺼낸다. 멜리오다스는 자신의 출신에 대해 숨기고 있었지만 로우는 그 마력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멜리오다스가 마신족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멜리오다스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놀랐냐고만 묻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여신족과 마신족이 손잡고 성전에 참여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로우는 멜리오다스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를 좋게 여기며 배척하지 않는다. 멜리오다스는 그 말에 웃지만 마신족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대악당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화제를 돌리려는 듯 로우는 "성전이 앞으로 어떻게 끝날지"라고 말한다.
멜리오다스가 그렇게 말하자 로우도 맞는 말이라고 수긍한다. 그러면서 어찌되었든 확실한건 그들이 동료라는 것이라 말하고 멜리오다스도 맞장구친다.
* 스티그마의 본부에서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여신족 지도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뤼드셀]]이 마신족을 근절할 때라고 선언한 것에 크게 반발한다.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지위가 높은지 그녀는 뤼드셀과 [[네로바스타]]를 하대하지만 그들은 경칭을 쓴다.
네로바스타는 엘리자베스의 말에 이건 성전이라며 쏘아붙이는데 뤼드셀이 지나치다고 제지한다. 그는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은 이전부터 계획된 일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납득하지 못할 뿐더러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멜리오다스 앞에서 할 수 있냐고 거세게 항의한다.
뤼드셀의 공손했던 태도가 한순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종족이 바라던 평화"를 주창해왔지만 그 안에 마신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스티그마인 멜리오다스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눈을 떠야 한다며 멜리오다스와 갈라지라고 강요한다. 그에게 있어선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의 후계자일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하면 엘리자베스에게 더 어울리는 사내도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데.
* 엘리자베스는 뤼드셀이 얼굴에 손을 대자 뿌리치고 날아간다. 네로바스타는 그녀를 쫓을지 묻는데 뤼드셀은 다시 불손한 태도로 바뀌어 "저 계집은 아무 것도 못한다"며 내버려 두게 한다. 그런 것보다는 "계획의 수행"이 우선이라고 말하는데.
* [[디안느]], 지금의 [[드롤]]은 거인족 남녀의 수행에 어울려주고 있다.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덤비지만 디안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둘의 체술공격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가볍게 반격하자 둘이 나가떨어진다. 이번엔 대지를 조종하는 술법으로 도전하는데 이또한 디안느의 실력에는 따를 수도 없다. 디안느가 대지를 움직이자 두 거인족의 술법을 집어삼키고 간단히 승리를 거둔다.
거인족 남녀는 패배를 인정하고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 싸우는 중엔 드롤 본인처럼 진중한 태도였는데 싸움이 끝나자 디안느 본래의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거인족들도 그런 모습에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모습니다.
* 디안느는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에게 승리를 자랑하듯 어떻게 봤냐고 의견을 구한다. 킹은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실은 방금 전에 본 뤼드셀이란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 마력은 십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숲 깊숙한 곳에서도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 기색은 뤼드셀과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킹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디안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지만 디안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이곳 생활에 적응한 건지 거인족들을 따라다니며 "한 번 더 승부하자"고 조르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킹의 표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게라이드는 오빠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킹은 얼버무리기 바쁘다. 킹은 생각해 보니 그녀가 초대 요정왕 때부터 섬겨왔단 얘기를 해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설마 자신과 [[엘레인]]처럼 남매 관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모습과 분위기는 그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현대의 게라이드는 속이 검고 요정왕의 안위만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 킹은 화제도 돌릴 겸 숲에서 감지되는 마력에 대해서 게라이드에게 묻는다. 그러자 게라이드가 잊어버린 거냐면서 그것의 정체를 알려준다. 그것은 요정왕의 마력으로 보호받는 숲을 한 번 더 보호하기 위해 그로키니시아가 없는 사이 뤼드셀이 펼친 결계이다. 이런 사실이야 킹이 알리 없으니 그는 "그랬던가"하고 적당히 대꾸한다. 하지만 비밀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게라이드는 좀 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는데.
게라이드는 자신이 했던 설명이 거짓임을 고백한다.
뤼드셀의 마력이 느껴지는 그곳에는 마신족으로 보이는 자들이 다수 구속되어 있다. 어째서 자신족들이 요정왕의 숲 한 가운데에 붙들려 있는 걸까?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누구나 숲에 준동하는 불길한 마력과 흑운을 목격한다. 킹은 이거야 말로 "시련"인 거냐고 중얼거린다. 디안느도 어느 새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로우, 멜리오다스, 엘리자베스도 불길한 상황을 감지했다.
- 정종원 . . . . 33회 일치
|배우자 = 신양정
|자녀 = [[정운철]] (장남) <br /> [[정운익]] (차남)
이후 1947년 조흥은행 취체역(이사)으로 선임된 뒤 1956년부터 516군사혁명 직전인 1961년 4월말까지 조흥은행 행장자리를 지켰다. 정종원은 한때 그의 조카인 해방후 첫 조흥은행장인 정운용과 함께 부친 정재학의 뒤를 이어 조흥은행 대주주의 자리를 유지한 바 있다.
행장 퇴임 직후 6개월 동안 록펠러재단의 초대를 받아 미국 유럽 시찰에 나섰다.<ref><<법시 제1호>>,(사단법인 법시사,1967) p.3</ref> 귀국 후 사단법인 [[법시사]] 운영에 최선을 다했다. 1977년 3월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4</ref>
정종원은 구한말 경기여고와 서울 사범대 출신의 교사였던 부인 신양정(신양숙)과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두 사람 다 재혼이고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 신양정은 정종원 사후 [[법시사]] 이사장과 법시 발행인을 역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3</ref> 장남 [[정운철]]은 하와이 최연소 부영사와 일본 고베 총영사를 역임했다. 정운철은 두산그룹 [[박용성]]과 동서 지간이다. 정운철과 박용성의 장인은 삼성물산 대표를 역임한 [[김선필]]이다.
막내 정운익은 하와이 오하나 퍼시픽 은행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처음으로 직접 구성했다. 그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집행위원을 겸직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5일 26면</ref> 정종원 행장 내외가 생전에 장충동 본가에서 키우며 마지막으로 안아 본 손녀가 정운익의 3녀인 뉴욕퀸이다.
대구로 내려온 그에게 [[조병옥]] 경무부장이 경북경찰국장 자리를 권유했으나 부인의 완강한 반대로 공무원 복직을 단념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6</ref>
정종원은 1947년 조흥은행에 입행했다. [[윤호병]] 전 재무부장이 그를 조흥은행 취체역(이사) 겸 특수업무부장으로 추천해준 결과다. 그의 조카 [[정운용]]은 이미 41세였던 1945년 11월 조흥은행 2대 행장이자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정종원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949년 상무 승진 후 1950년에는 전무 자리에 올랐다. 1956년 10월 23일 드디어 조흥은행 5대 행장에 선임됐다. 그가 선임된 해인 1956년 3월3일 개장된 증권거래소에서 [[조흥은행]]은 종목번호 '00001'을 부여받으며 대한민국 최고령 기업이자 최초의 상장사가 됐다. 명실 공히 당시 국가를 대표하는 초우량기업이었다.<ref>경향신문 1996년 11월 5일 9면 "상장사 평균 30세 조흥은행 최고령-증권거래소 분석 "</ref>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남)과 [[정운용]](맏손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 씨 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상합동은행]](전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 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봉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 씨 가문은 [[민덕기]](조선맥주)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 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 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 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됐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 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한 바 있다.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
1950년대 중반 [[정재학]] 가문과 [[민영휘]] 가문의 [[조흥은행]] 최대주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급부상한다. 이병철은 장내 외에서 조흥은행 주식을 대량 매수하여 무려 50%를 확보한다. 그뿐 아니라 한일은행 80%, 상업은행 30% 등 주요 시중은행 주식까지 대거 차지했다. 금융계를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ref>경향신문 1982년 7월 27일 5면 삼성총수 이병철</ref> 기타 은행 지분까지 사들이며 이병철은 전체 시중은행의 주식 50%를 확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종원 행장은 행장 자리를 유지했다.
정종원은 이병철마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정계 관계에 인맥이 두터웠다. 게다가 지역 갑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이병철과 달리 정종원은 일제 강점기 내내 최고층 재벌2세로 성장한 초상류층이었다. 정종원행장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총 79명)으로 참여, 언론계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ref>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전민족세력의 집결 동아일보 발기인</ref>
이병철은 정재학의 3남이자 조흥은행장인 정종원과 다각도로 교류하고 있었고 언론을 통해 정씨 가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ref>동아일보 1957년 6월20일 1면 이병철씨 조은주 양도 거부</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21일 3면 은행주 불하 경위와 금후 문제점</ref> 이병철은 1956~1957년 진행된 은행 [[귀속주]] 불하과정에서 민 씨가문과 정씨가문 간 지분경쟁에서 정씨측에 힘을 실어줬다.
이병철은 당시 대구에서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ref>매일경제 1974년 9월 11일 7면 고액재산세 부과대상자</ref> 로 거처를 옮겼다. 정종원 자택 인근이었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22일 9면 경제인록 22 재벌전횡 부른 귀속주 공매</ref><ref>매일경제 1987년 11월 20일 11면 이병철 그의 생애와 경영반세기</ref> 이웃이 된 이후 정종원과 이병철의 부인들은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로 인해 자손들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정종원의 막내사위인 [[장유상]] KDI정책대학원 교수 (전 보스턴대 교수)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삼성의 미국 진출에 기여했다.<ref>매일경제 2011년 1월 16일</ref>
정종원은 공교롭게도 1961년 5.16군사혁명 발발 보름 전 4년 반 동안 이어온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후 검찰이 추진한 3.15부정선거자금에 대한 특검에서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공소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ref>경향신문 1961년 3월 5일 3면 특검천하 42일 (3)</ref> 그러나 [[군사혁명]] 발발 직후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시중 은행 주식을 모두 강제 환수당했다. 이병철은 [[조흥은행]] 70%, [[한일은행]] 60%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ref>경향신문 1961년 10월 15일 1면 대주주소유 오개은에 환수통고</ref>
정부가 조흥은행 등 시중은행의 주식을 모두 거둬들이면서 주요 은행의 지배주주는 정부가 차지하게 됐다. [[관치금융]]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부는 1960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금융산업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자금공급은 은행 자율보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정종원 행장이 5.16쿠데타 직전 은행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박정희 정부는 은행을 정부 경제성장전략의 들러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심사권을 통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 은행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은 철저히 통제됐고, 사실상 제대로 된 경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ref>경향신문 1965년 3월 11일 시은경영태세 대전환 필요</ref><ref>매일경제 1970년 11월 3일 3면 금융은 정상화될까</ref><ref>매일경제 1979년 5월 1일 1면 관치에 밀리는 자율화</ref>
법시는 다른 불교전문 잡지들이 사찰 등의 후원을 받아 발행된 데 비해 선종불교에 심취한 정종원 전 조흥은행장이 이사장으로서 재정지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또한 [[김세련]] 전 한국은행총재, [[문종건]] 전 조흥은행도 후원자로 참여했다.<ref>경향신문 1967년 7월 8일 5면</ref> 불교계는 1960년 초부터 불교전문 잡지가 창간됐으나 법시를 1960년대 들어 최초의 발간된 불교잡지로 인정하고 있다. '법시'에 앞서 창간된 잡지들은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폐간됐기 때문이다.
- 킹덤/524화 . . . . 33회 일치
* [[조아룡]]과 [[마남자]]가 후배뻘인 악영에게 제 1군을 양보한건 그를 통해 적의 역량을 가늠하고 다음 수를 펼치기 위해서.
* 어느 정도 정보가 수집되자 마남자가 움직인다. 그는 변경 출신에 딱히 애국심이 두텁지도 않았으나 진나라가 진심으로 조나라를 멸하려들자 극도로 분노했다.
* 마남자는 최전선에서 적을 유린하는 무인일 뿐만 아니라 부대를 둘로 나눠 악영의 1진과 2진을 동시에 타격하는 전술안도 지닌 명장.
* 마남자가 아광군의 좌측을, 악영이 정면을 압박하자 아광군도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하는데, 어느 소규모 기마대가 나타나 아광군에 조력한다.
* [[왕분]]과 옥봉대는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의 지시로 전장에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광군이 적과 비등하게 부딪히자 모두가 감탄했으나 [[관상]]만은 그저 맞먹을 뿐이 아니며 아광군이 강한건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곧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양군의 제 1열은 적과 부딪히면서 큰 희생자를 냈다. 아무리 급박한 전장이라도 이렇게 격돌하고 나면 서로 부상자와 시신에 가로막혀 잠시 물러설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아광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제 1열의 병사들을 방패로 삼고 넘어뜨리고 짓밟으면서 계속 전진했다. 관상은 선두의 기마들은 설사 그 앞에 있는게 자기 가족이라 해도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무엇이든 짓밟고 무너뜨릴 각오 뿐이라고 말했다.
* 악영에게 1군을 양보한 [[조아룡]]과 [[마남자]]. 둘은 한참 싸움이 격해지는 벌판을 응시했다. 마남자가 문득 조아룡에게 물었다. 어째서 악영에게 제 1군을 양보했는가? 조아룡이 답하길 악영과 그 군은 강하며 그런 군이 적들과 먼저 부딪힌다면 적의 역량이 완연히 들어나기 때문이라 답했다. 그러자 마남자도 같은 생각을 했다 털어놓는다. 이렇게 악영을 통해 살펴보니 적들의 총 수는 약 2만. 그 힘도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다. 두 장군은 모두 여기에 동의했다.
* 이제 마남자가 부관 [[월보]]를 데리고 제 2군을 맡아 돌진한다. 조아룡이 조금 빠르지 않냐고 묻는다. 마남자는 자신이 가슴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본디 북방에서 나고자란 그는 딱히 애국심이란 걸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 그 조차 진나라의 이번 침공을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놈들은 진심으로 조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은 계속 이 마남자의 분뇌의 철퇴를 먹여주고 싶었지.
* 조군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아광군이 난데없이 측면을 요격당했다. 선두는 마남자. 그의 창이 번뜩일 때마다 주인 잃은 목이 나뒹굴었다. 오직 정면의 적에 집중하던 아광군이 순식간에 위기에 처한다.
* 아광은 자신의 군단을 둘로 나눠 악영과 직접 격돌한 1진, 후방에서 대기하는 2진으로 구성해두었다. 1진이 난입한 마남자 군에 측면을 유린 당하자 2진의 제 1대, 2대가 원군을 급파한다. 그런데 그 2진도 좌측에서 습격을 받았다. 마남자는 아광의 부대 구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도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악영을 구하러 가는 주공에 3천, 그리고 제 2진을 저지하러 가는 조공을 7천으로 배정했다. 주공의 목적은 악영군과 합류해 아광 1진을 정면과 좌측에서 압박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조공은 제 2진에서 조력하러 오는 병력을 저지하는 것.
조아룡은 적진을 난도질하는 마남자의 무용과, 적의 배치를 이용해 절묘한 병력 분산을 펼친 전술안을 한눈에 바라보며 과연 그 [[이목(킹덤)|이목]]이 부장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무력은 [[개자방]]과 [[염파]]에 비견된다 알려져 있으니, 마남자야 말로 왕전과 이목의 지략전에서 승패를 좌우할 인물일지 모른다.
* 적을 몰아붙이는데 골몰하고 있던 아광군은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엇다. 1진은 이미 악영군과 한참 교전 중이라 측면을 강화하러 보낼 병력이 없었고 2진도 마남자가 세운 벽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싸움은 순식간에 난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때 1진과 2진 사이를 소속 불명의 기마대가 가로질러갔다. 양군 모두 전투의 도중인데도 저 기마대가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 이 정체불명의 기마대는 마남자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 기마대는 곧 말머리를 돌려 마남자가 있는 주공 3천을 향해 돌진해왔다. 분명 진군의 별동대다. 주공의 중심을 쳐서 전위를 고립시키려는 계산이다. 마남자는 [[친비]]를 시켜 우측에 나타난 새로운 적을 방어하도록했다. 친비는 기마대를 이끌로 적이 접근하기를 기다려 요격을 가한다. 그러나 적의 선두가 눈부신 창술을 펼쳐 친비와 그 부하들을 일소한다. 이들은 왕분과 옥봉대였다. 그렇게 얌전히 있으라고 일렀건만 결국 멋대로 전장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관상이 나중에 아광에게 한 소리 듣겠다 투덜대지만 왕분은 "시끄러" 한 마디로 대꾸했다.
- 페어리 테일/535화 . . . . 33회 일치
* [[루시 하트필리아]]가 END의 서를 고쳐써서 [[나츠 드래그닐]]이 구사일생 하나, 그 작업은 술자의 생명력을 어마어마하게 갉아먹는 자살행위였다.
* [[그레이 풀버스터]]는 함께 수정할 능력은 없지만 자신의 얼음 마법으로 루시의 열을 식혀주며 마지막까지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 나츠는 루시가 자신을 도왔음을 직감하고 "모든 것은 페어리 테일을 위해서"라는 마지막이자 최강의 힘을 쥐어짜낸다.
*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그리고 [[엘자 스칼렛]]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포기한 [[제라르 페르난데스]].
* 그러나 아크놀로기아에게 마력을 흡수 당하고 손아귀에 잡히고 만자, 크리스티나호도 더이상 비행하지 못하고 추락.
* END의 서를 복구해 [[나츠 드래그닐]]을 구해낸 [[루시 하트필리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그녀가 책을 수정한 펜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얼룩이 퍼져나와 마치 몸이 침식당하는 것 같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갑자기 악화된 그녀의 상태에 당황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윽고 루시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수구린다. 그레이가 부축하려 손을 뻗는데 루시의 몸이 엄청나게 뜨겁다. 루시가 겨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츠의 불꽃. END로서 가지고 있는 불꽃의 힘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 그레이와 해피는 거기까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역시나 어쩔 방법이 없다. 루시는 그래도 이게 "단서"라면서 이 마력을 따라가면 나츠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해피는 그렇게 하면 나츠 안의 악마를 바꿔 쓰는 것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래서는 루시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루시가 그래도 자신은 할 거라고 고집을 부리자 그레이는 말 없이 얼음마법으로 불덩이 같은 루시의 몸을 식힌다.
>같이 나츠를 구하자.
그레이가 그렇게 말하자 루시도 그러자고 대답한다.
* 루시와 친구들의 희생으로 다시 일어선 나츠. 그의 앞에는 백마도사로 각성해 네오 이클립스를 눈 앞에 둔 [[제레프 드래그닐]]이 있다. 제레프가 나츠의 배에 뚫은 구멍이 사라져 있다. 그걸 본 제레프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게 뭔지 되짚어 본다. END의 서, 그것은 어디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악마의 문자를 다룰 수 있는 인간은 얼마 없으니까. 다루더라도 그 인간은 침식 당해 어둠에 빠진다. 그렇지만 나츠가 저렇게 일어났다는 것은... 제레프는 눈 앞의 사실을 인정하기로 한다. 나츠의 부활은 "그야말로 기적의 부활"이라며 다음은 없고 개변자의 목숨이 사라질 거라고 경고한다.
나츠가 어디까지 아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친구들의 희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 나츠는 마침내, 자신이 그레이와 싸울 때 [[엘자 스칼렛]]이 해준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던 말.
>자기 일만...
* 나츠의 몸에서 다시금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떠올려라"고 일갈한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분전 중인 크리스티나호. 그러나 시간의 틈새는 닫혀있었고 일시적으로 열렸지만 아크놀로기아가 그 수상한 구멍을 눈치채고 말았다.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 마룡을 상대로 시간벌이를 하던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처박기로 결심했다.
엘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랄의 무모한 돌격은 멈추지 않았다. 무작정 마룡에 격돌, 시간의 틈새로 밀어내는데 아크놀로기아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죽어가는 자여... 나는 마를 먹는 용. 마룡 아크놀로기아다.
마룡은 조금 휘청이는 듯 했지만 곧 제랄의 마력을 빨아먹어서 무력화시킨다. 제랄은 마력이 급격히 떨어져 갔고 반격 당하기 딱 좋은 위치에 노출되었다. 엘자는 빨리 떨어지라고 외쳤지만 제랄은 듣지 않았다.
>나는 엘자를 지킬 수 있어!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도 그를 희생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엘자의 말도 듣지 않는 그를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함교에서 크리스티나호가 추락한다는 연락이 온다. 크리스티나호는 수면 위로 곤두박질쳤고 탑승자들은 엉망으로 나뒹군다.
- 한진희(1949) . . . . 33회 일치
||<-5><tablewidth=100%><#00a495><tablebordercolor=#00a495><tablealign=center> '''{{{#FFFF00 {{{+1 [[동양방송|{{{#FFFF00 TBC}}}]] [[연기대상|{{{#FFFF00 연기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 남자·여자연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 ||
||<-5><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경력 ||1990 TV방송연기자협회 회장||
[[동양방송|TBC]] 연기대상을 1975년, 1976년 2회 연속 수상한 1970년대 [[동양방송|TBC]]의 간판 배우이고 [[주말 드라마]] [[애정의 조건]]으로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남자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미지나 무거운 톤의 목소리 덕에 [[높으신 분들]](회장이나 사장)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덕에 [[노주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불리며 드라마 남자 주인공역을 독차지했었다.[* 노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한진희씨, 임채무씨가 나오기 전까지 (미남 남자 주인공 역할은) 나뿐이었다. 내가 군대갔다오니까 한진희 나오고 조금 있다가 임채무 나오더라"하며 직접 한진희를 언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노주현이 두 사람보다 형이고 선배이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둘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임채무]]도 70년대 후반부터 합류해서 이 두 사람의 영역을 나름 가져갔다. 정 말하자면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 3대 트로이카 정도 된다.][* 1990년대부턴 [[개그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노주현과 한진희가 함께 1980년대 초에 양복 모델을 한 적도 있다. <안녕 자두야> 대한전선 사건편에서 컬러 티비로 티비를 보면 티비가 더 재밌지 않겠냐는 자두의 질문에 자두 엄마 이난향이 "그래~저번에 혜리네 집에 가서 <결혼 행진곡>을 봤는데, 한진희가 더 잘생겨보이더라ㅋ"라고 답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http://bbs1.telzone.daum.net/gaia/do/board/photo/read?articleId=573735&bbsId=A000010|#]]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청춘의 덫]]이, 70년대 후반의 보수적인 국민정서로 인해 미완성인 상태로 종영되자 직후 만들어진 극장판 청춘의 덫(1979년)에서 출세를 위해 연인 윤희(유지인)를 배신하는 동우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90년대 리메이크된 TV판에서 [[이종원]]이 맡았던 바로 그 캐릭터. 참고로 여주인공 윤희 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는 [[이효춘]](TV판), [[유지인]](극장판), [[심은하]](TV 리메이크판)로 이어진다.
[[여명의 눈동자]]의 원작자로 알려진 소설가 김성종의 [[제5열]]을 MBC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었을 때 킬러 역을 맡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는 이영하. 이때만해도 [[이영하]], 한진희, 노주현 같은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서 멋진 주인공 역을 맡을 때였다. 이후 [[박상원]], [[최재성(배우)|최재성]], [[최민수]], [[손지창]], [[이병헌]], [[배용준]], [[안재욱]] 등이 안방극장의 남자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된다.
서민 가장 전문 배우 취급을 받는 [[장용]] 과 대비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몇몇 드라마에서 [[사돈]] 역할로 많이 나오는데, 직접 대면하는 씬은 적다. 이 경우 보통 한진희의 집은 부잣집이고 장용의 집은 가난한 집. 한진희는 중간에 (출생의) 비밀 폭로나 부하의 배신, 사업 실패로 인해 충격을 받아서 심혈관계 질환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많다. 또한 혼외정사로 밖에서 애 낳아서 들여오는 아버지 역도 자주 맡는다.
[[김동엽(1938)|김동엽]] 감독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방송이 끝나고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김동엽 감독과 합석하게 되었는데[* 당시 김동엽 감독은 여의도 근처의 술집을 자주 들락거려 일부 연예인들과 안면이 트인 사이였다고 한다. 한진희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연예계에서 주당으로 이름 날리던 한진희는 김동엽 감독에게 술내기를 제안했고, 김동엽 감독이 레몬을 주문하자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동엽 감독이 즐겨 마시던 일명 '레몬소주'[* 레몬 하나를 '''맥주잔에''' 짜서 즙을 낸 후 소주랑 섞어 마셨다.]를 한번 마셔본 한진희는 "이게 술이냐 주스냐."라고 비아냥거리고 자신만만해했으나 결과는 한진희의 완패로 끝났다. 이 때문에 병원신세도 지고 거진 한달을 후유증에 시달린 한진희는 이후 "김동엽 그 괴물같은 인간이 주는 레몬소주는 절대 마시지 말아라." 라고 했다고 한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상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반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절대 선]]과 [[남일호|절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남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순상]]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영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남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영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상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상]]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2013년 8월 초 손자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일단 그것을 숨기고 촬영에 임하였다.
* [[세 번 결혼하는 여자]](SBS, 2013~2014) - 오병식 역
* [[두 여자의 방]](SBS, 2013) - [[민동철]] 역
* [[오자룡이 간다]](MBC, 2012~2013) - [[오만수]] 역
* [[최고의 사랑]](MBC, 2011) - 구자철 역
- 홍명희 . . . . 33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으로, 아버지 홍범식은 대한제국의 관료로 [[경술국치]]에 치욕을 느껴 자결하였다. 설에 따르면 장남 홍명희를 앉혀 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일본에 있는 대성중학을 다니다가 한일합방이란 비보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우리에게는 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단 한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이 1928년부터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을 비롯해 1930년대 그가 쓴 거의 모든 글은 조선일보와 자매지 '조광'에 발표됐다. 여담으로 일제치하에서 수감된 문인들중 유일하게 옥중집필이 허용된 작가가 홍명희 였다. 홍명희가 수감된이후 임꺽정이 연재중단되자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총독부 관리들조차 임꺽정에 맛들려서 제정신을 못차렸던 상황. 옥중에서 임꺽정 집필이 완료되면 총독부 관리들이 먼저 읽고 조선일보에 넘겼다고 한다.
[[1928년]] [[11월 21일]] 연재되기 시작된 <[[임꺽정]]>은 홍명희의 투옥과 개인 사정 등으로 연재가 4차례 중단됐으며,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된 뒤에는 ‘[[조광]]’에 발표됐다. 이 소설은 토속어 구사가 뛰어나서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사전’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소설에 대해 만해 [[한용운]]은 “연재기간의 연장으로는 세계적으로 최고 기록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훗날 손자 홍석중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으므로 대를 이어서 창작한 셈이다. 홍석중 씨가 완결을 발표하기 전에는 미완성 작품이라서, 홍명희가 북한에서 소설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었는데, 홍석중의 발언에 따르면 홍명희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의 생각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임꺽정을 완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했고 여운형 암살 후 지도자가 되기도 했으나 환경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실패했다. 결국 이후 월북했다. 월북 계기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한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김구]]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그의 월북 동기에는 '친일파들과 결탁하여 단독정부 수립운동을 강행추진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견해가 있다. ~~근데 [[김일성]] 정권도 핵심 실무인력에서는 친일 청산 안했잖아?~~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남한에서는 [[김일성]]과 친했던 점,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잘 대우받은 점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1990년대 중순부터에서야 서서히 알려졌는데, 그의 이름을 재발굴하려던 국내 학자들도 홍명희와 더불어 [[이태준(소설가)|이태준]]이라든지 여러 월북 작가와 더불어 꽤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겪은 바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그의 아들 홍기문은 [[조선왕조실록]]을 완역[* 북한에서는이를 “리조실록”이라고 부른다.]한 사람이자 북한 [[향가]] 연구의 대가인[* 북한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향가 전체를 해독한 사람이다. 어찌나 해독을 잘 했는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향가를 해독한 [[양주동]] 선생도 홍기문의 향가 해독을 칭찬했었다고.]유명 국학자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 조평통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손자인 석형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함경북도당 책임비서를 역임하다 2011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형의 동생 석중은 <[[황진이]]>를 쓴 유명 소설가다.
일화로 벽초가 어느날 집으로 오다가 그의 [[선산]]에서 몰래 벌목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벽초는 평소에 다니던 길을 내버려두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후에 이르기를, 그 사람 눈에 자신이 띄면 미안해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외에도 아들 홍기문과 함께 맞담배를 피운 개방적인 일화로도 유명하다. ~~오오 [[대인배]]~~
[[한용운]]과도 사이가 돈독하여 이광수, 최린, 최남선 등의 창씨개명 소식을 듣자 한용운을 찾아가 "여보게, 만해. 이런 개같은 놈들을 봤는가?"하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한용운은 "이보게, 벽초. 그놈들은 개같은 놈들이 아닐세."라고 대답했고 무슨 소리냐고 따져묻는 홍명희에게 "개는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니 '''저놈들은 개만도 못한 놈들이 아닌가? 개가 자네 말을 들었으면 무척이나 섭섭해했을 걸세."'''라고 했다. 이에 벽초도 수긍하고 '''개에게''' 사과를 읊조렸다고.
한용운이 홍명희보다 9살이나 많음에도 저렇게 서로 격의없는 것이 좀 의아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1, 2년 차이로도 형동생이 나뉘지만 당시에는 위아래로 10년 정도는 그냥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 年長以倍(연장이배) 則父事之(즉부사지) - 나이가 배나 더 많은 사람에게는 아버지 섬기듯 하고, 十年以長(십년이장) 則兄事之(즉형사지) - 십년이 더 많으면 형님 섬기듯 하며, 五年以長(오년이장) 則肩隨之(즉견수지) - 오년이 더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서서 따라간다. 群居五人(군거오인) 則長者必異席(즉장자필이석) - 다섯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다. - 예기]그런데 홍명희의 장남 홍기문은 아버지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자기 친구가 알고보니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행사 때 아버지 친구이자 자기 친구인 사람이 오면 대하기가 꽤 곤란했다고.
[[괴산군]]에서 그의 생가와 업적을 조명하려 하자 주민들이 월북한 '빨갱이'가 뭐가 위인이냐고 격렬히 반발하기도 했다.
- 홍순언 (1530년) . . . . 33회 일치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군|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 (명나라)|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의 일화는 [[정재숭]]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지다가 [[1928년]] [[정인보]]가 그의 행적을 기술한 당릉군유사징을 편찬하여 널리 알려졌다. 초명은 덕룡(德龍), 자(字)는 사준(士俊)·순언(純彦)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홍겸]]의 서자이다. [[한성부]] 또는 [[경기도]] [[광주군]] 출신.
그의 가계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이다.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다. 출신지는 한성부라는 설과 [[경기도]] [[광주군]]이라는 설이 있다. 1899년에 편찬된 [[경기도]] [[광주군]]의 향토지인 광주군지 인물편에 그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할아버지 홍경창(洪慶昌)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안동부사(安東府使)등을 역임했고, 큰아버지 홍신(洪愼)은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 양주목사(楊州牧使), 형조참의(刑曹參議), 공조참의(工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1539년]](중종 34년)에는 [[명나라]]에 진하사(進賀使)로 다녀오기도 했다. 아버지 홍겸은 [[1531년]] 역과에 급제하여 [[명나라]]에 두 번 역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서출이었던 홍순언은 일찍이 [[한어]](漢語)를 익혀 한어역관이 되었다. 처음 이름은 덕룡(德龍)이고 자는 순언이었는데 뒤에 순언을 본명으로 쓰게 되었다. 동생인 수언과 이복 동생인 덕린이 있었는데, 동생 수언은 1549년의 역과에 급제한 인물로 한어역관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들어간 방의 기녀는 용모가 준수하였으나 소복으로 슬픈 모습이었다. 홍순언이 기녀에게 사연을 물은 즉 소녀의 성은 류씨로,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이다. 그러나 아버지 류모가 공금횡령 혐의로 누명을 쓰고 옥사하고 모친마저 죽게 되자 부모의 장례를 치를 사람과 비용이 없었고,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방으로 팔려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왕 첫 정을 바칠 바에는 용렬한 사내에게 정을 주느니 통이 큰 사내에게 정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홍순언은 대죄하여 무릎꿇고 '작은 나라의 미관 말직 벼슬아치가 어떻게 대국의 귀한집 따님을 욕보이겠습니까' 하며 부복하여 절을 올리고, 자신이 가져온 돈 2천 냥과 인삼을 그녀에게 주었다. 2천냥과 인삼을 팔아 마련한 돈 1천냥으로 그날로 류씨 소녀의 빚을 청산해주고 장례비용까지 대주었다. 류씨 소녀는 거듭 감사하다 하며 그에게 성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자신은 그냥 [[조선]]의 홍역관이다.<ref>혹은 성을 밝히지 않고 그냥 조선의 역관이라 했다.</ref>라고 했다. 류씨소녀는 은장(恩丈)이라 하며 거듭 감사를 표시했고, 그는 친히 소녀를 배웅하였다. 조선의 역관들은 조정의 허락 없이도 사적으로 인삼과 비단 무역이 가능했는데, 동료 역관들은 이것을 공짜로 류씨 소녀에게 주고 온 그를 바보라고 놀려댔다. 도리어 그가 류씨 소녀에게 준 2천냥의 돈이 공금이라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옥에 갇혔다. 하지만 얼마 뒤 석방되었다.
기방에서 석방된 류씨 소녀는 홍순언이 준 3천냥으로 빚을 청산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룬 뒤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집에 하직인사차 들렸다. 오갈데 없던 그는 당시 [[석성]]의 본부인이 병환을 앓고 있었으므로, 석성 부인의 병구완과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류씨 소녀의 지극정성의 간호에도 석부인은 병환의 차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감격한 [[석성]]은 류씨 소녀를 자신의 계비로 맞이하였다.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했다.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 비단을 손수 짰는데, 병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된 뒤에도 류씨부인은 밤마다 직접 비단을 계속해서 짰다.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순언을 만난 일을 고백하였다. 석성은 동이족 중에도 의인이 있다며 그 기상을 칭찬하였다.
[[종계변무]]란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백여 년간 명(明)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잘못 기록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하였던 사건이다. 태조때부터 시정을 위해 사신을 15회나 파견하였지만 전부 거절당하였다. 지속적으로 거부당하자 조선 14대임금인 선조는 “종계변무를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목을 쳐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역관들은 겁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변무사절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 예부상서 [[석성 (명나라)|석성]]이 [[요동]]의 국경까지 영접 나와 홍역관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자신임을 밝히자 석성은 장인어른 큰절을 받으라며 그를 친히 모셔갔다. 이상하게 여기던 중 장안의 관사에 도착하자 귀부인이 나와 그에게 큰절을 올렸는데 이는 그가 명종 때 구해준, 이제는 석성의 계비가 된 류씨 소녀였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사신이 탄 말이 [[압록강]]에 이르렀는데 류씨 부인과 하인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 법인데 사람이 되어 은혜를 모른다면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것이라며 비단을 받기를 거듭 부탁하며 하소연하니 비단을 받아서 되돌아왔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공으로 홍순언은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고, 면천 허통하여 [[자헌대부]] 당성군(唐城君)에 책봉되었다.<ref>홍순언은 서자의 신분이었다.</ref> 후에 우림위장(羽林衛將)이 되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조선]] 조정에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청병사신을 파견하게 되었다. 홍순언은 청병사신으로 북경에 갔다. 이때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바칠 뇌물을 마련하여 홍수언에게 주었으나 홍수언은 진심으로 설득해도 설득이 될까말까 한데 어찌 뇌물로 매수할 생각을 하느냐며 대신들을 호통쳤다.
그가 [[장안]]에 도착하여 [[조선]]이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조국 정벌 음모를 접했음에도 이를 거절하다가 침략을 당했다며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명나라]]의 관리들은 조선이 일본과 짜고 명나라를 토벌하려 하는 것은 아니냐며 조선 지원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당시 병부시랑으로 있던 석성의 도움으로 홍수언은 [[명나라]] 군사 5만 명의 파병을 성사시킨다. [[석성]]을 통해 그의 의기를 접하게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선뜻 가겠다고 자청했고,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고 한다.
관직은 [[자헌대부]]에 이르렀고, [[1598년]]에 병사하니 향년 68세였다. 사후 [[조선]]에서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증직]]되었고, [[명나라]]로부터는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의 [[증직]]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는 [[조선 효종|효종]]의 부마인 동평위 [[정재륜]]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편 등에 기록되어 후대에 전하게 되었다. 첫째 아들 [[홍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당상관]]을 지냈고, 넷째 아들 [[홍운]](洪運)은 [[광해군]] 때인 [[161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홍건의 아들인 손자 [[홍효손]]은 숙천부사를 지냈다.
홍순언의 일화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장백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정재숭]]과 [[박지원]], [[이익]]의 저서를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일화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였다.
[[조선]] 멸망 후 [[1928년]] 위당 [[정인보]]는 그의 방계후손 [[홍정구]]의 부탁을 받고 당릉군유사징(唐陵君遺事徵)을 찬하였다. [[정인보]]는 당릉군유사징의 '唐陵君遺事徵引文'에서 홍순언 동생 [[홍덕린]]의 후손인 [[홍정구]](洪正求)가 자신([[정인보]])을 찾아와 선조 당릉군의 행적이 너무 미약하니 선조의 행적을 기술한 유사(遺事) 편찬을 부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홍정구]]는 여러 번 [[정인보]]를 찾아와 거듭 부탁하였고, [[정인보]]는 시대가 바뀌어 가족도 몰라보는 시대에 [[홍정구]]의 조상을 추모하는 의리에 감동하여 결국 이를 수락했는데, [[정인보]]는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동평위공견사문록, 열하일기의 옥갑야화편 외에도 직접 여러가지 사적을 조사하여 [[1928년]] 당릉군유사징 제1권《당릉군유사 (唐陵君遺事)》를 집필하였다.
*** 손자 : 홍효손(洪孝孫)
*** 손자 : 홍효승(洪孝承)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32회 일치
* Strength(전력): 육군, 해군, 공군 모두 존재하는 능력치.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병사, 장비 그외 등등. 전투나 보급 부족, 위험 지역에서의 주둔 등으로 떨어지며 증원에 생산량을 투자해 인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조금씩 회복된다. 해당 수치가 0%가 되면 부대가 몰살당한 것으로 처리되어 삭제된다. 동원령을 발동할 경우 예비군 소집 이벤트와 함께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회복된다. 반면 동원령을 해제할 경우 모든 육군 사단의 조직력이 30%로 하락한다. 어차피 나중에 동원령 소집하면 예비군 소집 이벤트 뜨며 회복되니 인력과 공업력 부어서 회복시키려고 하지는 말자.
* Support Attack(공격 지원): 근처 적이 점령한 프로빈스에 내릴 수 있는 임무. 다른 부대가 지정된 프로빈스에서 전투를 벌이면 자동적으로 전투에 참가한다. 하지만 승리한다고 해도 해당 프로빈스로 진격하지 않고 원래 있던 곳에 머물러 있는다.
* Support Defense(방어 지원): 근처 아군이 점령한 프로빈스에 내릴 수 있는 임무. 적 부대가 지정된 프로빈스를 공격하면 자동적으로 해당 프로빈스로 이동, 전투에 참가한다.
>기병은 대부분의 지형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운용하는데 연료 보급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갑 부대에 비해 경무장했으며, 이 시기 개발된 자동화기는 말과 병사 모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병은 기동 예비 부대로 유용합니다.
>사령부는 당신 군대의 두뇌입니다. 사령부에는 군대가 잘 돌아가도록 유지해주는 참모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근처 부대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지만 자체적인 전투 능력은 열악하기에 보호하는게 권장됩니다.
대보병 공격력을 늘려준다. 포병 여단보다 싼 가격으로 승부보는 느낌이지만 그냥 포병 쓰자.
==== Self Propelled Artillery(SP Art, 자주포) ====
>자주포는 당신의 기갑 및 차량화 부대가 적 보병에게 추가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일반 포병 여단처럼 속도를 떨어뜨리는 일도 없습니다.
기동 사단 전용 포병. 대보병 공격력은 포병보다 우수하지만 포병처럼 연구로 대전차 공격력을 늘릴수는 없다. 대신 자주로켓포 연구로 대보병 공격력을 늘릴 수 있다.
대전차 공격력을 늘려준다. 자주로켓포 연구로 대보병 공격력을 늘릴 수 있다.
==== Self Propelled Anti-Aircraft(SP AA, 자주대공포) ====
주둔한 공군 기지가 적 육군에게 점령되면 주둔하고 있던 공군 부대들은 몰살당한다. 위험한 것 같으면 미리 대피시켜두자. 공군 부대의 대다수가 생산에 무지막지한 공업력을 퍼먹으므로 실수로 날려먹었다면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이 온다.
* Installation Strike(시설 타격): 1916년 연구인 "전술 폭격기 발상"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대공포, 레이더 기지, 원자로, 로켓 시험소를 폭격해 레벨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린다. 공격 대상은 목표 지역 내 제일 적은 적군이 주둔한 프로빈스다.
* Port Strike(항구 타격): 1914년 연구인 "해양 항공 지원 발상"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항구를 폭격한다. 대함 공격력이 높을 경우 항구 내 함대를 직접 공격하며, 전략 공격력이 높을 경우 항구 자체를 폭격해 레벨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린다.
자국 영토에 들어온 적 폭격기를 아작내기 위해 만들어진 전투기. 제일 초반에 뽑을 수 있는 공군 부대다.
아무런 전투 능력도 없지만 공수부대를 태워 공수강하를 시전할 수 있다. 또한 포위된 육군 부대에게 항공 보급으로 약간의 보급을 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방어력이 개판이지만 대공 방어력은 엄청나게 개판이니 적 공군유닛을 조심하자.
[[V1]]과 같은 자체비행 폭탄.
부착된 폭격기의 대공 방어력과 대공 공격력을 높여주는 부속 여단. 부착된 폭격기의 작전반경을 자신의 작전반경으로 깎아먹는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작전반경 3,000km인 7티어 전략폭격기에 작전반경 800km 짜리 5티어 호위전투기를 붙이면 800km 까지 밖에 작전 수행을 할 수 없게된다.
해상전에 특화되어 있지만 그래봤자 보조함이다.
전함의 짭. 이 녀석부터 주력함으로 취급된다. 전함과 비슷하지만 약간 딸리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대함 방어력이 특별히 높은 전함에 비해 순양전함은 대함 방어력도 낮으니 주의. 대전기 초중반 전함이 속도 20대 찍을때 혼자 30찍고 쌩쌩 달린다. 물론 45년 넘어가면 일반 전함도 30찍는데 얘는 속도가 30에서 늘지 않으니 대전말에는 얄짤없다.
- 강타 . . . . 32회 일치
|직업 = [[싱어송라이터]], [[사회자]]
|활동시기 = [[1996년]] [[9월 7일]] ~ [[2019년]] [[8월]]<ref>현재, 자숙한 상태.</ref>
*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H.O.T]]가 해체된 후 그는 자신만의 솔로앨범을 내어서 2001년 <북극성>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하여, <스물 셋>으로 활동을 이어감.
* 프로듀서로서 강타는 솔로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발라드를 만들어갔으며, S와 강타&바네스 앨범에서는 좀 더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려고 노력하였다.
* {{출처|특히 Eternity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발라드 세계속에서 가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선율로 집약하여 앨범을 만들었다고 하였다.|날짜=2009-9-28}}
* [[2010년]] [[2월 19일]] [[제8기계화보병사단 (대한민국)|8사단]] 수색대대에서 2년 간의 병역 의무를 마치고 전역하였다.<ref name="KangTa_8th_div-Scout_BN_retire">{{뉴스 인용|제목=강타 제대현장, 韓中日팬 집결 "당신을 기다렸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21908294071155&outlink=2&SVEC|저자=길혜성|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2-19|확인날짜=2010-02-19}}</ref>
* 한편, 강타는 당초 [[KBS 2TV]] 드라마 [[쿨 (드라마)|쿨]]의 주제곡을 부르기로 했는데 절친한 동료인 [[이지훈]]을 주요배역으로 써줄 것을 조건으로 자청했으나 [[이지훈]]의 캐스팅이 불발로 그치면서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됐다.<ref>http://news.chol.com/index.php?cmd=doc&sd=20010524&ed=20010524&cat=ENT&newsid=SPOCS_P81211</ref>
* 2013년 [[문화방송|MBC]] 《[[나 혼자 산다]]》
* 2016년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특별출연)
* 2017년 [[JTBC]] 《[[갑자기 히어로즈]]》
* 2017년 [[채널A]] 《[[개밥 주는 남자|개밥 주는 남자 시즌 2]]》
* 2007년 [[중국]] [[CCTV]] 특집극 《정가네 여자들 경사 났네》
* 2002년 [[KBS FM]] 《강타의 자유선언》 DJ
* 2003년 [[KBS FM]] 《강타, 신혜성의 자유선언》 DJ
* 2005년 제1회 국제 전시광고 예술 금야자상 TV광고계 최고 가치 있는 연예인상
* 2005년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해외시청자상
* 2003년 [[서울]] 외신기자클럽 외신 홍보상 음악부문
* 2002년 [[KMTV]] 2002 Korea Music Awards - '본상','시청자 인기상'
* 2001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남자 솔로 부문 수상
또한 저로 인해 상처받은 당사자분과 주변 사람들, 본의 아니게 언급되신 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 거미(가수) . . . . 32회 일치
||<bgcolor=#874D0D> {{{#FFFFFF '''가족'''}}} ||어머니 [[장숙정]], 1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조정석]]||
||<bgcolor=#874D0D> {{{#FFFFFF '''학력'''}}} ||이수초등학교[br][[서문여자중학교]] [br][[세화여자고등학교]][br][[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 학사||
[[여자 가수]]. [[본명]]은 [[박지연]]이며 [[전라남도]] [[완도군]] 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으며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했다.
가창력은 물론, 음역 또한 넓은데 특히 저음역대가 발달('날 그만 잊어요'에서 0옥타브 라#)되어 있으며 고음역대도 3옥타브 솔#('환각'과 [[언프리티 랩스타]] 피처링에서)까지는 수월하게 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도 대한민국 본좌급 여성 보컬리스트 4명의 성을 따서 만든 여자 [[김범수|김]][[나얼|나]][[박효신|박]][[이수|이]] 개념인 ‘[[박정현|박]][[소향|소]][[이영현|이]][[거미(가수)|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4년 2월 7일에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주현미]]편에 출연하여 다섯번째 순서로 나와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열창하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점수는 무려 '''445점'''으로 바로 앞 순서로 나온 [[김종서(가수)|김종서]]가 '''442점'''으로 종전 [[정동하]]가 세웠던 최고기록 439점을 깨자마자 다시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5년 12월 12일에 방송된 JTBC [[히든싱어]] 4에 원조 가수로 나왔다. 1, 2라운드에서는 모창 능력자에게 밀려 1위를 하지 못하였고, 3라운드에서 1위, 4라운드에서 2위와의 11표 차이로 우승했다.
* [[김흥국]]이 한 말실수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하나. 한 [[라디오]]에서 김흥국은 거미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를 '''친구의 '[[스푸너리즘|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로 잘못 소개해버렸다.[* 당시 김흥국은 해피투게더에서 출연해서 해명을 했는데, 작가가 제대로 써준건 맞지만 거미가 가수의 이름일줄은 몰라서 '친구'가 불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거미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잖아?"라고.. 사실.. 듣고 보면 일리는 있다.] 이에 영향받아 가수 이름과 곡 이름을 [[러시아식 유머]]처럼 도치하는 파생 개그가 꽤 생겼었다. 예를 들어 [[임재범|고해범]] - 임재, [[이은미|애인]] - 은미있어요, [[휘성|결혼]] - 휘성까지 생각했어, [[버즈(한국 밴드)|남자]] - [[남자를 몰라|버즈를 몰라]] 등.[* 또한 이는 [[개그콘서트]] 코너 [[1대1]]에서 [[이세진]]이 응용해먹는다.]
* 그래서, 그녀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면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일화며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8014312|본인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공연에서 조차 [[https://www.youtube.com/watch?v=z9nAcUc-GxA|본인이 직접 드립을 쳤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수혜자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실제로 거미가 신인 시절부터 이름을 알리고 점점 유명해졌던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2014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에는 '''거미''' 분장을 하고 출연했다. 이때 함께 출연한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파리]]''', [[유희열]] 본인은 '''[[모기]]''' 분장을 하고 나왔다. 거미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분장을 정말 하기 싫어서 제작진과 합의한 게 저 정도라고.
* 어릴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려다가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집안이 어려워져서 유학을 포기했고 꿈을 잃어버린 느낌 때문에 크게 좌절했을 때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으며,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레 좌절했던 순간이 극복됐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66851|#]]
* 2017년 6월 11일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BOBBY|바비]] 버전의 [[Dok2|도끼]]-[[http://naver.me/FIIrvqL3|연결고리]]를 불려 데뷔 이래 최초로 뛰어난 랩실력을 선보였다.
자세한 건 [[거미(가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여기]] 참조.
||[[이미자(가수)|이미자]]||동백 아가씨||381||2승 1패||
||파일럿||We are the future (원곡자: [[H.O.T.]])||신현민||승||
||1~2회||[[시간을 달려서]] (원곡자: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현쥬니]]||패||
||<|2>3~4회||[[환생#s-6|환생]] (원곡자: [[윤종신]])||강성호||승||
||나는 나 (원곡자: [[주주클럽]])||김소현||패||
||5~6회||쿨하지 못해 미안해 (원곡자: [[UV]])||박요나||패||
||9~10회||...말하자면 (원곡자: [[김성재(가수)|김성재]])||김혜란||승||
[[분류:완도군 출신 인물]][[분류:한국 여가수]][[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981년 출생]][[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2003년 데뷔]][[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32회 일치
* 빌런연합의 멤버들은 경찰과 히어로의 눈을 속이고 각자 조직원을 스카웃하기 위해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 통상적인 빌런과는 달리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자신과 닮은 빌런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 중요한건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이다. ||
* 미디어에서는 연일 히어로 사회의 위기를 떠든다. 드물게 미야기 캐스터처럼 진지한 의견을 내놓는 언론인도 있다. 아저씨도 그만은 인정하는데, 한편으론 또 인정 못한다. 언론에서 말하는건 결국 "올마이트란 존재가 너무 큰 존재"였다는 것. 그의 존재로 인해 가려져 있던 것들이 은퇴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엔데버가 그렇다. 지금은 명실상부 No.1 히어로지만 적어도 일반시민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민들은 엔데버로 딱히 안 되는건 아니지만 올마이트와 비교된다고 말하한다. 아저씨가 보기엔 너무 거친 인물이며 범인이 초인인척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를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는 불가항력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올랐다. 그건 그의 불행이다.
* 그는 미야기 캐스터가 말하는 부분은 파워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파워를 말하는 거라고 모순되게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상반된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닥치고 있으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올마이트의 존재가 성실한 사람들에겐 든든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겐 저주에 불과하고 그 저주가 풀린 지금은 폭주하게 된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그가 외출하자마자 한 무리의 빌런이 상가를 약탈하는 모습이 보인다.
* 그런 모습들을 관찰하던 아저씨는, 자기가 찾고 있는 유형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때 전화가 온다. "기란"이란 남자의 전화다. 아저씨는 잘 지냈냐고 인사한다. 기란도 오랜만이냐며 그쪽은 어떻냐고 묻는데, 아저씨는 "나는 내가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뜻모를 소릴한다.
* 그와 통화하는 아저씨의 상태가 이상하다. 기란의 말에 동의하는가 싶더니 곧 부정하고 바쁘다고 하다가 갑자기 한가하다고 대답한다. 기란은 아랑곳 없이 "다비"의 행적을 묻는다. 곧 "시가라키 토무라"가 모이고 싶어한다며 조만간 호출이 있을 거라 알려준다. 아저씨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기란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저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나"라고 힘겹게 중얼거린다.
* 아무래도 아저씨는 빌런연합의 일원 같다. 현재 빌런연합은 추적자들의 눈을 속이고 조직원을 늘리기 위해 분산돼서 활동하고 있다. 각지에서 평범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빌런연합의 멤버들. 새로운 동료를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접촉하고 있다.
* 새로운 소음이 들린다. 또다른 사건이다. 트와이스는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본래는 그도 평범한 빌런의 하나였다. 그의 개성은 "두 배". 하나를 둘로 늘리는 능력이다. 처음엔 자기 자신에게 사용했다. 자신을 둘로 늘리고 늘어난 쪽이 다시 자기를 늘리는 식으로 자신을 잔뜩 만들어서 부려먹었다. "본체"는 그들의 왕으로 편하게 지냈지만, 어느날 평화가 깨졌다. 분신이 그가 왕인 것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이마의 상처는 그때 생겼다. 그의 분신은 어느 정도 데미지를 받아야 없어졌기 때문에 쉽게 없앨 수도 없었다. 이윽고 분신들은 그를 사로잡고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은 9일간이나 계속됐다. 종국엔 서로 죽인 끝에 모두 사라졌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자신이 진짜 나인지 어떤지 알 수 없게 됐다. 그게 그가 보인 증상의 정체다.
* 미쳐버린 인간에게 있을 곳은 없다, 그는 그렇게 여긴다. 히어로는 선량한 인간만 구한다. 그는 자신을 받아준 빌런연합에 도움이 됨으로써 "나는 나여도 괜찮다"는 자기승인을 얻고자 한다. 그런 그가 찾고 있는 인물은 자기처럼 미친 인간. 새로운 현장을 방문한 그에게 그런 유형의 인물이 나타난다.
방금 전 상점가를 털었던 빌런집단이 괴멸됐다. 그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 타이어, 도로 따위에 엉망으로 융합된 모습이 되어 있다. 어떤 삼인조의 소행인데 적어도 히어로로 보이진 않는다. 가운데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은 "다큰 어른이 모여서 고작 편의점 털기"라며 빈정대며 이정도 모였으면 더 큰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는 자신이 처리한 빌런들을 "병"이라고 비하하며 고쳐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새의 부리같이 생긴 묘한 가면을 쓰고 있다. 신호등 위에는 네 번재 동료도 있는데, 역시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다. 녀석은 리더를 "오버홀"이라 부르며 돈은 받았으니 히어로가 오기 전에 튀자고 한다. 부하의 말에 대답도 없이 타오르는 잔해를 바라보며 "환자들 뿐"이라 중얼거리는데.
트와이스는 미친 놈들이 직접 있을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상대를 발견한 그는 이제 어떻게 할지 다음 작업을 구상한다. 이미 히어로 측도 빌런 측도 곤죽처럼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요한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나, 어떻게 하고 싶나. 그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중인격 성향이 드러나는데 상당히 중증. 평소에도 또다른 자아가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는 걸로 자아를 확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간학교편 당시에도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등, 본인이 괜찮다고 여길 뿐 전혀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원래 캐릭터 모델이 데드풀로 추정되는데 실제 데드풀도 다중인격 성향이 있다.
올마이트 은퇴 후의 사회상도 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었는데 상당히 혼란에 빠져 있는 걸로 보인다. 빌런들이 조직화돼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히어로측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버홀의 경우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 같은 이미지인데 정작 본인도 빌런 생활을하는 걸로 보인다. 엔데버는 기껏 No.1 히어로 자리에 올랐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고 있지 않다. 게다가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히어로 약체화의 상징" 같은 꼴사나운 수식어가 생겨버렸다.
- 라미란 . . . . 32회 일치
|| '''데뷔''' ||<(>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 ||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과 출신으로,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오수희 역으로 데뷔하였다. 첫 영화 출연 작품에서부터 교도소에서 강렬한 장면을 연기해 인상을 남겼다. 특색 있는 얼굴로 주로 조연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작품에 출연하였다. 연기력은 인정받았으나 인지도는 크지 않았다. 2013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2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간또라이 라과장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2014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레전드 출연자로 남고 있고, 그 계기로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편에 출연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15년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아줌마 3인방 중 리더 격인 [[라미란(응답하라 1988)|라미란]] 여사로 분해 열연했다. [[응답하라 1988]] 자체가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라미란의 캐릭터가 워낙 카리스마가 있고 츤데레적인 경향이 강해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 [[개정팔]] [[류준열]] 분보다 더 자주 등장하여 주연급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KBS 드라마 스페셜]]의 정마담 역으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에 출연했으며, 2017년 많은 단편작들 중, 제일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여 시청률 순위 1위를 차지했다. 그 기세를 이어 다음 웹툰원작의 tvN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들과 경쟁하여 2위를 기록하였다.
2017국내 빅5 투자 배급사가 선정한 충무로 티켓파워 순위에서 [[오달수]]와 함께 최고점, 최다 득표율을 받으며 만장일치로 남녀 조연부문 공동1위를 차지했다.
|| [[2005년]] || [[친절한 금자씨]] || 수희 || 3,650,000 ||
||<|3> [[2009년]] || [[거북이 달린다]] || 마사지녀 1(단역)[* 역할 설정이 웃긴데, 아가씨들이 다 빠져서 겉절이를 무치다가 그냥 급히 온 여자였다. 극중에서 경찰관인 김윤석(극중 이름 조필성)이 성매매 현장을 덮치자, "저는 그냥 겉절이 무치다가유"라고 하는 대사가 나온다.] || - ||
|| [[공모자들]] || 따이공1(우정출연) || - ||
|| 자칼이 온다 || 청소부 || 210,278 ||
|| 너라서 좋아 || 윤공자 ||
|| [[수상한 가정부]] || 양미자 ||
|| [[상속자들]] || 박형식의 엄마, 변호사 ||
||<|2> tvN || [[부암동 복수자들]] || 홍도희 ||
|| [[2010년]] ||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부문 여자연기상 || ||
||<|10> 2016년 || 제11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 최고의 여자조연배우상 || ||
|| 제52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조연상 || 히말라야 ||
|| tvN 10 어워즈 || 신 스틸러 여자 부문 || [[응답하라 1988]] ||
|| 여자 조연상 ||
|| [[KBS 연기대상]] || 여자 연작 • 단막극상 ||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
2014년 8월 7일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 [[에릭남]]에게 돌발적으로 실제로 입을 맞추는 성추행을 저질러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연인 사이에 휴지로 얼굴을 가리고 깜짝 키스를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패널들이 서로 이를 시연하였는데, 다른 출연자와 달리 라미란은 '로맨틱한 키스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며 휴지를 찢고 직접 입술을 접촉해 버렸다. 성적인 의식이 얼마나 낮은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이는 범죄이다.
- 마기/347화 . . . . 32회 일치
* 신드바드는 자신의 싸움을 "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싸움"이라 정의하며 알마트란의 참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정이라 주장한다.
* 알리바바는 결국 신드바드도 대의를 위해, "지키고자하는 것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며 그걸 위해 자신을 잃었다고 평한다.
* 하지만 그건 알리바바의 농담. 과거 자신의 답일 뿐, 지금의 자신은 신드바드나 알라딘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작전"이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 신드바드의 마장 후루후루는 다양한 마공을 폭격처럼 퍼붓는 타입. 알리바바는 다양한 각도로 날아오는 마법을 베어내거나 사이로 피해다닌다. 그러면서도 "운명"이나 "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세상을 루프로 돌린다는 신드바드의 정책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신드바드는 그가 결국 [[알라딘(마기)|알라딘]]과 똑같은 인간이며 애초부터 그들이 이해하는게 무리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동안은 알리바바가 자격을 갖춘 인간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뭣보다 그가 현세로 돌아왔을 땐 운명이 보이지 않게 됐고 계획대로 돌아가던 일들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동료로 삼는 것도 간단했는데 왜 알리바바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 점만은 지금도 미스테리다.
알리바바는 오히려 신드바드가 "이해 받고자 하는 노력"에서 도망치지 않았냐고 지적한다. 그와 알라딘은 끊임없이 신드바드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그걸 거절한건 신드바드다. 즉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드바드 쪽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알리바바가 그렇게 나오자 신드바드는 지금이라도 "대화"란 것에 응하겠다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가 보는 이 싸움의 진상은 "운명의 지배", 나아가서는 "운명을 가지고 노는 신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전쟁이다. [[일 일라]]는 한때 이 세상의 신이었으나 그 뒤에 더 강한 신이 있었다. 이런 신들의 변덕과 독선이 인간의 운명을 뒤흔든다. [[우고(마기)|우고]]는 자신의 마법으로 일 일라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신드바드는 "누군가 내 운명을 쥐고 있다"는 절망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알마트란의 사례를 끌어들인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운명의 노예"라는 자괴감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운명"의 실체를 봤고 자유의지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붕괴했다. 이 허무감, 절망감이 운명과 그것이 지배하는 세상 자체를 부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허무감은 신이라고 피해가지 못한다. 우고 조차도 허무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쳤으며 이는 새로운 목적 없이 타성적으로 세상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드바드는 "허무"를 쌓으며 끝없이 위로 올라가는 "운명이라는 지배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고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신드바드는 단순히 "언젠가 전쟁으로 세상이 망할지도 몰라서" 이런 짓을 하려는게 아니다. 인류가 언젠가 "운명"을 이해하고 그 허무감에 사로잡히는건 필연이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운명을 관장하는 자를 무찌르자, 이게 신드바드의 결론이다. 결국 그또한 "모두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장이며 "대의명분"이라 할 만하다. 단지 누가 이해하지 못할 뿐인데, 다름아닌 알리바바가 그것을 이해한 것이다.
>대의를 위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잃진 않았나요?
알리바바가 묻는다. 신드바드는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는 알라딘과 싸우면서 구도자처럼 그런 말들을 늘어놨다. 자신은 자신은?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의 본질은 그걸 극복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자신이 그리 됐음을 자각하고 있나요?
* 신드바드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런 부류가 되었다는 것과,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그는 할 말을 잃는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자백한다. 처음 성궁으로 향할 땐 대의 따위는 다 포기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인정하자 알리바바는 "그럼 다시 생각해라"고 권한다.
신드바드는 그것만은 거절한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솔로몬이 만든 세상의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다. 언젠가 인류는 운명을 이해하고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뻔한 결말을 보고도 모른척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신드바드나 알라딘 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전"을 떠올렸다고 자신한다.
- 맥스 페인 . . . . 32회 일치
>뉴욕. 도망자 잠복경찰. 잃을 것 없음.
Max Payne. [[핀란드]] 회사 [[http://www.remedygames.com/games/|레미디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미국]] 회사 [[http://www.rockstargames.com/|락스타 게임즈]]가 유통한 TPS [[게임]]. 마약 중독자에 의해 가족을 잃고, 동료 형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뉴욕]]의 [[형사]] [[맥스 페인(캐릭터)|맥스 페인]]이 사악한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윈도우 비스타]] 이후 버전은 맥스의 대사, BGM, 중간중간 삽입된 그래픽 노블에서의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적의 고함소리와 총소리 뿐. 거슬린다면 사운드 패치를 적용하자.
체크포인트 시스템이 아니므로 [[퀵세이브]](F5)를 자주 하는게 좋다. 죽으면 마지막으로 퀵세이브 한 곳이나 파트 시작부터 시작한다.
* 오른쪽에 써진 글자는 사용중인 무기. 그 위의 표시된 7+72는 장전된 총탄 양과 소지중인 총탄 양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상자 부수는데나 쓰자. 가스통 부수는데는 쓰지 말고.
12발이 장전되는 전자동 산탄총. 다른 산탄총과 탄이 호환되지 않는다.
근접샷 제대로 먹으면 맥스도 한방에 널부러지니 주의하자. 펌프를 당기는 속도가 예상 외로 느린 편이라 슛닷지를 하며 한번밖에 못 쏜다. 장탄수 7발이며 한발씩 장전한다.
펌프를 당기지 않기에 펌프액션 산탄총보다 연사력이 좋다. 다만 2라는 조루 장탄수가 문제. 불릿타임을 사용하는 순간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펌프액션보다 좋다.
풀피 맥스를 한방에 날려보낼 정도로 강하다. 날아오면 반드시 피하자.
현대의 뉴욕, 경찰이 모여드는 마천루 꼭대기에서 저격소총을 든 남자가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자세한 내용은 [[맥스 페인/줄거리]] 페이지 참조. 스포일러 주의.
Max Payne. 뉴욕시경 형사. 아내와 갓난아기 딸이 마약 "발키리"의 중독자들에게 살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간다. 가족의 몰살에 연루된 마약 "발키리"의 제조원을 찾아 갱단에 잠입해 잠복 수사를 벌지만 동료 형사인 알렉스 볼더와 접촉하던 중 의문의 총격으로 볼더가 사망. 경찰에 의해 범인으로 몰린다. 설상가상으로, 잠입하고 있던 갱단에게도 형사라는걸 들켜 모두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볼더를 죽이고 발키리를 유통한 범인을 찾아 족치기 이해 이곳 저곳을 누빈다.
Rico Muerte.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맥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일반적인 [[유주얼 서스펙트|카이저 소제]]"[* a regular Keyser Soze]. 시카고에서 일을 망친 후에도 펀치넬로 패밀리가 빼낸 걸 보면 나름 중요 인물로 보인다. 유사성행위 상대에게 웃으면서 사람 죽인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제정신은 아니다. 바에서 캔디 던에게 [[펠라치오]]를 받던 중 맥스가 난입하자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도망가다 죽는다. 잉그램을 쏴갈기며 도망가기 때문에 무섭다.
Angelo Punchnello. 펀치넬로 패밀리의 수장. 경찰은 그가 발키리와 관련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맥스는 그 증거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때 맥스는 도망자가 되어버린지 오래. 모나 색스의 말에 따르면 아내인 리사를 가학적으로 폭행한다고 한다. 모나에게서 그가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정보를 얻은 맥스의 표적이 된다. 맥스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국 자택에 쳐들어온 맥스에게 붙잡힌다. 맥스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니콜 혼의 존재를 말하려 하지만 난입한 니콜 혼의 부하들에게 죽는다.
Candy Dawn. 펀치넬로 패밀리의 매춘부. 고객과의 행위를 비밀리에 찍어 최고입찰자에게 파는걸 부업삼아 하고있다. 실제로 캔디 돈 방의 옷장을 열면 카메라가 숨겨진 방이 나온다. 바에서 무에르테에게 펠라치오를 해주던 중, 바에 들어온 맥스를 보고 맞서 싸우지만 맥스에게 죽는다. 맥스가 들어오기 전 무에르테의 살인 자랑에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걸 보면 제정신은 아니다. 네임드인지라 체력이 높은 편. 주 무장은 듀얼 베레타.
Frankie "The Bat" Niagara.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모나가 먹인 약탄 위스키에 기절한 맥스를 의자에 묶어놓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팼다. 펀치넬로 패밀리에 손해를 입힌 맥스를 개처럼 죽이라는 명령에 따른 것.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러 바에 간 사이 탈출한 맥스에 의해 죽는다. 사용하는 무기는 듀얼 잉그램.
Michelle Payne. 맥스 페인의 아내.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집에 쳐들어 온 발키리 중독자들에 의해 사망. 나중에 니콜 혼이 중독자들을 고의적으로 풀어놓았음이 밝혀진다.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발키리에 대한 자료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한 것.
Kyra Silver. TV 뉴스 아나운서. 가끔씩 TV 뉴스에 나와 경찰이 쫓는 살인자 맥스 페인의 행적과 뉴욕 최악의 눈보라에 대해 보도한다. 별 존재감은 없다.
Lisa Punchinello. 모나 색스의 쌍둥이 자매로 안젤로 펀치넬로의 아내. 모나의 말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한 여자"[* damsel in distress].
- 블랙 클로버/108화 . . . . 32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108. '''무관무패의 여사자'''
*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의 뒤를 이어 홍련의 사자단 단장이 된 여성은 그의 누님 이자 "싸우면 푸에고레온보다 강하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
* 매우 호걸스러운 성격의 누님으로 언제나 상위권에 랭크하던 사자단이 이번엔 5위밖에 하지 못했다고 단원들을 엉망진창으로 매도한다.
* 그러면서 전임 단장이자 동생인 푸에고레온도 "니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니 그놈도 형편없는 단장"이라 깎아내리는데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반발한다.
* 메레오레오나는 자비없는 안면 스트레이트로 응징하며 "실력으로 입증해라!"고 호통을 치고 헤이해진 기사단을 훈련시키기 위해 "온천합숙"을 단행한다.
* 그런데 지나가다 우연히 그걸 들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그 자리에서 포획, 합숙에 강제참가 당한다.
* [[마법제]] 율리우스의 격려와 당부를 받고 돌아가던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 껄끄러운 장면과 마주친다. 홍련의 사자단의 새로운 단장이 군기를 잡고 있는 현장이다. 새로 단장에 취임한 여성은 단원 전원을 무릎 꿇려놓고 있다. 맨 앞에 있던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대표격으로 깔끔한 안면 스트레이트를 쳐맞고 쓰러졌다.
여성은 언제나 1위, 2위만 달리던 홍련의 사자단이 5위까지 추락했다고 길길이 날뛴다. 마력이 불꽃 형태로 아우라가 생기는 모습이 문자 그대로 "불같이 화내는" 모습이다. 그녀는 전임 단장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을 "우제愚弟", 어리석은 동생이라 칭하며 그가 자리를 비운 정돌 이꼴이냐며 단원들을 갓난아기냐고 까댄다. 그 말을 들은 아스타는 그녀가 푸에고레온과 레오폴트의 누님이라는 걸 알게 된다.
* 새 단장의 매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단원들 꼬라지를 보니 푸에고레온이 어지간히 무능한 단장이었고 이런 녀석들을 남겨놓고 드러누웠으니 단장 실격이라고 무자비하게 비난한다. 게다가 그를 지칭하는 단어도 "멍청한 자식, 바보" 따위니 그를 믿고 따르던 단원들과 특히 동생인 레오폴트는 참기 어려웠다. 결국 레오폴트가 제일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다.
* 새 단장은 정말로 최고의 단장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은 최고의 기사단이라면 실력으로 입증하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그 멍청이"는 단원들과 나라를 내버려두고는 죽지 않을 테니 돌아올 때까지 긍지 높은 홍련의 사자단의 힘을 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자신이 아우 대신 그들을 이끌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말한 새단장이 "대답이 없다"고 하자 레오폴트와 단원들은 수련회 끌려온 중딩들 마냥 목청껏 대답을 내지른다.
홍련의 사자단 단장의 불꽃 같은 투기가 아스타의 머리통을 움켜쥔다. 아스타가 "나는 다른 단이다"고 항변해도 통하지 않는다. 레오폴트가 그를 발견하는데 눈치가 없는 건지 "역시 내 라이벌"이라며 따라와줘서 기쁘다고 쓸데없는 소릴 한다.
*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보자"며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려다가 역시 잡힌다. 이런 식으로 휘말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캐릭터성까지 의심할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아무래도 레오폴트는 눈치가 없는게 아니라 그냥 체념한 것 같다. 붙잡힌 둘에게 새로운 단장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을 소개한다. 본래 정치나 전쟁에 관심이 없어 야인으로 살고 있었으나 진짜로 싸우고자 하면 푸에고레온보다도 강하다는 숨은 강자가 그녀였다. 그녀는 마법제가 소개할 때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는지 아스타와 유노를 "신인 1위, 2위"라 부르며 그 힘이 어느 정도일지 잘 봐주겠다고 입맛을 다신다.
야미는 들어오자마자 "검은 폭우보다 밑에 있는 단장들"이라고 어그로를 시전한다. 올해는 검은 폭우가 2위를 했으니 사실상 금색의 여명의 [[윌리엄 벤전스]] 외에는 전원이 대상. 은익의 참수리의 [[노젤 실버]], 자줏빛 범고래의 새 단장, 취록의 당랑의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는 유독 아니꼬와한다. 잭이 "만년 꼴찌 주제에"라고 받아쳐보지만 "그 꼴찌한테 졌다"는 반격엔 할 말이 없다.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은 그보단 지각한 것을 지적해 보지만 딱히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물빛의 환록의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쪽이 차라리 효과적이다. 그는 야미의 어그로를 문 단장들을 말리며 "야미는 대단한 사람"이라 추켜세운다. 자기는 꼴찌를 딱 한 번 한 걸로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맨날 꼴찌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야미는 매우 멘탈이 강한 거라며 멋진 돌려까기 솜씨를 과시한다. 맨날 잠만 자는 산호의 공작 [[도로시 앤즈워스]]도 야미에게 면박을 주려는 것 같지만 잠꼬래 같은 소리라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츳코미 당한다.
* 결국 다른 단장들은 씁쓸하게 돌아가고 야미만 남들을 실컷 놀려먹었다. 야미는 혼자서 급상승 기념주를 마셔야겠다고 히죽거리는데 바라지 않던 불청객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다. 막 아스타와 유노를 포획한 레오나가 야미한테까지 온 것이다. 야미는 그녀와도 구면이어서 "누님레온"이라 부르는데, 레오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야미는 붙잡힌 아스타를 보고 낄낄거리는데 곧 같은 신세가 된다. 레오나가 "공적 발표에 지각은 커녕 아예 결석을 했으니 기합을 넣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도 온천합숙에 강제합류시킨다. 야미는 "이제 나는 단장이다. 부끄러우니 그만둬라"고 저항해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하는 말로 보면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숙취를 떨쳐내지 못한 샬롯은 야미가 곤란해하자 "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 또한 같은 명분으로 강제합류 당한다. 뒤이어 아스타에게 [[키아토]]와 [[카호노]]의 송별을 전하러 온 [[노엘 실버]]까지 잡혔다. 노엘의 경우는 정말 아무 이유 없는 납치.
>자아 가자! 썩을 멍청이 놈들아!
- 식극의 소마/199화 . . . . 32회 일치
* [[나키리 아자미]]는 연대식극을 앞두고 들떠 있다.
* [[도지마 긴]]과 [[사이바 죠이치로]]는 아자미의 대두를 직감한 시점부터 전략을 짜고 있었다.
*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도지마의 이야기를 듣고 분기탱천해서 아자미 정권 타도를 외친다.
* 츠카사는 레분토 섬에서 연대식극을 벌인다는 소식을 처음 듣는다. 그것을 전한 [[나키리 아자미]]는 어쩐지 들떠서 기분 나쁘다. 아자미는 십걸 멤버들을 레분토 섬으로 집결시키도록 지시하고 거기서 모든걸 마무리 짓겠다고 말한다. 츠카사의 방을 나온 아자미는 [[사이바 죠이치로]], [[도지마 긴]]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죠이치로가 떠나던 모습과 그걸 지켜보던 자신의 비뚫어진 애정을 회상한다.
그 죠이치로가 자신의 항복을 조건으로 식극을 제안하고 있다. 아자미는 "요리인이 길을 잃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토오츠키 학원과 요리계를 구원하겠다고 중얼거린다.
* 아자미의 대두와 토오츠키의 위기는 도지마 긴이 사전에 감지한 바였다. 그는 죠이치로에게 이런 사실을 상담했으며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죠이치로임에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그런 야망이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다고 보고 만약 아자미가 내세운 명분의 발단인 죠이치로가 자신을 걸고 식극을 청하면 반드시 넘어올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이러한 합의에 대해서 각각 털어놓고 있다. 죠이치로는 아들 [[유키히라 소마]]에게 상관도 없는 그들 세대의 승부를 이용하게 된 점을 사과한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문득 소마를 쳐다보니, 코방울까지 달고 신나게 졸고 있다. 물론 아들에게 "적당히 흘려들어라"곤 했지만 너무 흘려들어 버렸다. 그래도 핵심은 전달됐다. 소마는 자기 아버지가 아자미에게 지독한 짓을 한게 원인이지 않나 우려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마는 그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런데 죠이치로는 그렇게 요리에서 도망쳤던 아버지가 한심하게 느껴지진 않냐고 푸념조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마는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아버지가 현재 요리를 하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그 말에 위안을 얻은 죠이치로는 난데없이 요리대결을 하자며 아들을 꼬득인다.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태도로 사과를 거절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식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영 불안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지마는 [[나키리 센자에몬]]이 이들 "옥의 세대"가 든든하고 했던 말이 옳았다고 여긴다.
* 한편 식당칸에서 정말로 대결을 벌이고 있는 유키히라 부자. 죠이치로는 아들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문득 그는 소마에게 "지금까지 나하고 대결에서 몇 패나 했냐"는 걸 묻는다. 지나가는 투로 말하지만 한 번 자신을 쓰러뜨렸던 "천재"라는 망집이 아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
소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심리전이라면 간단히 넘어가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자신과 다른 아들의 강함. 그게 소마의 강함이라고 죠이치로는 생각한다. 그저 장애물을 극복하고 고통스럽게만 여겼던 자신과 달리, 고난 자체를 즐기고 받아들이는 것. 죠이치로는 아들이 그때 자신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지만,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 같은 시각, [[나키리 에리나]]는 자기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조부 [[나키리 센자에몬]]이 방문하는데 손녀를 걱정한 듯 하다. 그 걱정대로 에리나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아니, 확실히 두려움에 경직돼 있다.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고 식은땀을 흘릴 지경이다. 센자에몬은 손녀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몰려온다. 죠이치로는 훈련에 대한 공지사항이 있다며 가볍게 말하는데 도지마는 "그렇게 가볍게 할 말이 아니다"라며 버럭한다. 학생 때랑 달라진게 없는 모습이다. 에리나는 이들이 왜 티격태격하는지, 자신이 혼자 있는 사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실 같이 있던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애들처럼 구는 어른들 모습에 기가 질려하고 있다. 소마만 낄낄거리며 즐기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32회 일치
* 연대[[식극]]의 룰을 조율하기 위해 [[유키히라 소마]] 일행과 접촉한 [[나키리 아자미]]와 [[센트럴]] 군단.
* 쿄쿠세이 측이 승리하면 아자미 정권 퇴진, 센트럴 측이 승리하면 반역자 전원 퇴학이라는 전제조건을 재확인.
* 십걸들은 각자 패배시킨 반역자들의 학생수첩을 소지하고 돌려받고 싶으면 이기라고 선언한다.
* 아자미는 자신의 딸 [[나키리 에리나]]는 원래 십걸이었고 처음부터 센트럴의 일원이었다며 자기들 측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에리나는 중등부 십걸이 처음 되었을 때를 비롯, 아자미의 교육과 세뇌가 있던 나날을 회상한다.
* 에리나는 십걸 자리를 반납하고 "평범한 에리나"로서 센트럴에 맞서기로 결의한다.
* [[나키리 아자미]]가 통지한 접선 장소는 폐역사. [[유키히라 소마]]와 일행들은 센트럴 측이 도착하기를 기다리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정작 센트럴 측의 인물들은 하나둘 모습을 나타나는데 리더인 아자미와 십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 했더니 뜬금없이 정장에 스키를 타며 설산을 내려오는 아자미. 소마는 물론 [[타쿠미 알디니]]나 [[타도코로 메구미]]도 어이없는 표정이다. 츠카사는 스노우 보드로, [[코바야시 린도]]는 눈썰매로 도착. 이후 십걸들도 속속 역에 도착한다.
[[나키리 에리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아자미를 바라보고 그런 에리나를 [[나키리 센자에몬]]이 말 없이 지켜본다.
* 한 자리에 모인 십걸들. 센트럴에 넘어간 6인의 십걸 전원이 결집했다.
소마는 그 사이에 에이잔의 얼굴을 발견하고 속도 없이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만 지쩍은 완전히 임전태세다. 아자미는 키노쿠니에게 센트럴 측에서 검토한 상세사항을 발표하도록 한다.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남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식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식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반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식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도지마 긴]]은 승부에 걸린 배팅을 다시금 강조한다. 쿄쿠세이 측이 승리한다면 그대로 아자미 정권은 퇴진, 아자미가 주창하던 야망도 그대로 백지화한다. 반대로 센트럴이 승리하면 반역자 전원이 퇴학, 죠이치로는 아자미의 부하가 되어 야망에 협조한다.
* 아자미는 그것도 잊지 않고 있다며 패배한 반역자들에게서 빼앗은 학생수첩을 꺼낸다. 패배한 그들에게 필요없는 물건이라 회수했다면서 십걸들에게 각자 쓰러뜨린 학생의 수첩을 나눠준다.
* 만족스럽게 상황을 지켜보던 아자미는 들떠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며 말한다. 에리나는 당연히 센트럴 측의 선수라는 것. 소마가 반발하자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라고 받아친다. 원래 십걸의 10석인 그녀는 센트럴의 일원이니 여기서 싸우는게 당연하지 않냐는 논리다.
* 하지만 소마의 걱정과는 달리 에리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다. 그녀는 잠깐동안 그녀가 중학시절 처음 십걸의 자리를 따냈을 때로부터, 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세뇌교육을 받던 시절을 빠르게 회상한다. 그리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는 동료들과의 추억. 에리나는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있다.
* 에리나의 폭탄 선언. 양측 모두가 술렁거린다. 에리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그들의 동료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경하게 의지를 표명한다. 소마와 센자에몬은 그녀의 결심에 미소짓는다. 하지만 아자미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넋을 놓고 있는데.
- 식극의 소마/205화 . . . . 32회 일치
[[식극의 소마]] 205화. '''행복의 창조자'''
* [[나키리 아자미]]는 평정을 가장하지만 척보기에도 심한 충격을 받았다.
* 아자미는 에리나의 의견을 일단 존중해주지만 만일 패하면 센트럴로 돌아와 평생 자신을 위해 힘을 써줘야 한다고 조건을 단다.
* 그렇게 센트럴 측과 헤어지고, 에리나는 처음 해본 반항의 영향으로 대흥분 상태. 다른 학생들을 종자취급하며 "내가 진정한 여왕이 되는데 협조해라"고 말한다.
* [[유키히라 소마]]는 정점에 서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태격한다.
* 소마는 자신과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의 학생수첩을 모아 에리나에게 맡기며 "모두의 목숨을 맡긴다"고 말한다.
* 그때 [[나키리 센자에몬]]은 죠이치로에게 해주지 못한 일을 학생들에게 해주는건 어떻겠냐며 토오츠키 학원의 교직을 제안, 도지마를 일깨운다.
* 얼마 뒤 반역자 일행은 남은 시험과정을 마치고 결전의 땅, 레분토 섬에 도착한다.
* 십걸의 10석 자리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한 [[나키리 에리나]]. [[나키리 아자미]]는 태연한 듯이 웃어보이지만 얼굴이 어두워보이는걸 숨길 수가 없다. 아자미는 그녀의 의견은 존중한다고 하지만 패배시에는 다른 조건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에리나가 센트럴로 돌아와 아자미의 야망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것. 결국 다시는 자신에게 반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에리나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 센트럴 멤버들은 아자미와 함께 떠나간다. [[유키히라 소마]]는 한 달 뒤 레분토 섬의 결전을 기대하며 이들을 떠나보낸다.
* 센트럴 측의 기차가 떠난 뒤 소마는 에리나에게 "드디어 말했구나"라고 말을 붙이는데, 에리나의 상태가 이상하다. 생애 첫 반항이 지나치게 자극이 됐는지 뭔가 폭주하고 있다. 에리나는 아드레날린 과잉 상태가 돼서 "내가 현 십걸을 쓰러뜨리고 1석에 앉아 진정한 여왕이 되는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소마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신의 종자인 셈이니 영광인줄 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해댄다.
* 하지만 소마는 불만이 많은데 정상을 차지하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태격한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를 동원해 뭔가 한 마디 해주라고 하는데 의외로 죠이치로는 평범하게 "에리나가 벽창호 아버지에게 대들 줄은 몰랐다"며 칭찬하는 투로 말한다. 에리나는 그제서야 진짜로 이 부자에게 감화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마음 속으로 인정한다.
에리나는 감격을 받은 것 같지만 소마가 곧바로 "그래도 1석이 되는건 별개 문제"라고 꼬투리를 달자 반발해서 다시 싸운다.
* [[도지마 긴]]은 [[나키리 센자에몬]]에게, 이런 긍정적인 상승효과까지 노리고 홍백전 팀을 짠 거냐고 묻는다. 센자에몬은 그런 신통력까진 없었다며 단지 에리나가 저 부자를 통해 뭔가 배우길 원했다고 말한다. 도지마는 그 말에 유키히라 부자를 다시금 돌아본다.
* 도지마는 학생들에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죠이치로가 사라진 이후 그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항상 괴식메뉴의 괴롭힘 대상이던 [[시오미 준]] 조차 죠이치로가 사라진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도지마도 일류 요리인이었던 만큼 여러 레스토랑에서 초청을 받지만 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도지마 또한 폐인이 될 것 같았는데, 그때 그를 일깨운 것이 센자에몬이었다.
센자에몬은 도지마가 끌어안고 있는 고민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센자에몬은 죠이치로의 좌절이 그 자신에게 손실이 될지 어떨지 정하는건 결국 죠이치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도지마가 맛보는 좌절 또한 도지마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린 문제다.
그는 도지마에게 토오츠키 학원의 간판을 짊어져달라고 부탁한다. 그 말이 절망감에 빠져있던 도지마를 일깨웠다. 죠이치로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다음 세대의 요리인들에게, 도미자는 그렇게 다짐하며 지금의 길을 걷는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토오츠키 리조트에서 근무하던 비서가 뜬금없이 "웬 남자가 도지마 씨를 찾는다"며 전화를 연결한다. 영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는 도지마. 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소식이 두절됐던 죠이치로였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한 달 뒤. 일반 학생들의 4, 5차 시험이 진행된다. 그 사이 눈 등으로 열차 운행정지가 다섯 번 정도 있었지만 일정은 차질없이 진행됐다. 소마 일행은 그러는 중에도 특훈에 전념했고 이윽고 최종시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센트럴과 반역자팀은 모두 레분토 섬에 도착.
- 식극의 소마/232화 . . . . 32회 일치
* [[에이잔 에츠야]]는 여기서도 반역자팀에게 시비를 걸지만 [[타쿠미 알디니]]가 유연하게 대응하고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협조를 요청해 물러난다.
* 한편 장외의 반역자들은 [[유키히라 소마]]가 맡은 "버터요리"에 대해서 우려하는데 [[나키리 에리나]]는 특훈 기간 중에 전문가급 지식을 쌓았을 테니 안심이라 하지만, 사실 같이 특훈을 들은 동료들은 수업 중 잠이나 자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 [[사이토 소메이]]는 대량의 오렌지로 쥬스를 짜내며 알쏭달쏭한 행보를 보이는데, 소마는 한술 더 떠서 과자인 "네모떡"으로 급조형 화이트 소스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 사전 작업이 끝나자 둘은 거의 같은 타이밍에 팬에 버터를 던져넣는데. 이렇게 본승부가 시작된 것 같지만 사이토는 소마가 다른 냄비로 뭔가를 삶고 있는 걸 간파하고 소마측은 아직 승부에 나선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다.
* 시합이 한창인 동안, 대회장 바깥의 "츠키레분"이란 여관에선 전 토오츠키 학장 [[나키리 센자에몬]]이 숯을 떼며 생각에 잠겨 있다. 놀랍게도 [[나키리 아자미]]가 대회장을 비우고 여기에 방문. 센자에몬에게 관전하러 가지 않냐고 떠본다. 센자에몬은 이미 자기가 할 일은 다 마쳤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하는데, 아자미는 신뢰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바깥의 동료들에겐 과연 버터 요리 같은 애매모호한 주제를 소마가 처리할 수 있겠냐고 우려를 사고 있는데 유일하게 나키리 에리나만은 그를 믿는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준 특훈을 잘 받았으니 틀림없이 버터에도 전문가가 됐을 것"이란 추정에서 여겼는데, 정작 그는 수업 때 자기만 해서 제대로 들었을리가 없다는게 동료들의 중론. 막상 조리에 들어가니 그 많고 많은 쇼핑품목 중 과자의 일종인 "네모 떡"을 녹여서 화이트 소스를 만드는 기행을 벌인다. 예상대로 에리나의 특강은 제대로 안 들은 모양.
언제나 진지한 성격인 만큼 마트에서 쇼핑하는 기분으로 소란을 떠는 소마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그도 대형 창고의 인테리어나 카트 등을 보곤 "이케아 같다"고 생각하고 만다. 에이잔이 괜히 시비를 걸자 그를 노려보는데, 에이잔이 꾸중하자 "위대한 선배에게 배우는 거라 힘이 들어갔다"고 너스레로 넘긴다. 물론 에이잔은 계속 시비를 걸지만 모모가 에이잔을 쇼핑 도우미로 끌고가 버려서 그걸로 등장 끝.
소마가 비슷한 타이밍에 버터를 팬에 넣는 걸 봤지만 아직 설명하지 않은 재료 하나가 준비 중인걸 보고 소마가 진짜 승부에 나서는건 그 재료가 준비될 때라고 짐작한다. 여전히 소마를 재미있는 후배로 여기고 있으며 어디서부터 베어올 지 기대하고 있지만 자기가 일도양단하기 전에 하는게 좋을 거라고 독백한다.
반역자팀과 같은 시점에 재료 창고에 왔는데 역시나 시비를 트고 다닌다. 타도코로 메구리를 걸리적거린다고 위협하고 타쿠미에게 노려본다고 틱틱거리다가 타쿠미가 "위대한 선배에게 배우는 거라 힘이 들어가서 어쩔 수 없다"고 능글거리자 "눈이 그렇지가 않다"며 십걸을 존경하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갈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모가 쇼핑 도우미 노릇 좀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투덜거리면서 "그 인형을 카트에 넣으면 카트도 밀고 다닐 수 있다"고 냉담하게 굴지만 모모가 "인형이 아니라 붓치"라고 압박하자 결국 고분고분해진다. 이후 모모의 셔틀 노릇을 하느라 얌전히 끌려다닌다.
별로 설명할게 없었는지 잠자코 있다가 소마와 사이토가 버터를 쓰기 시작하자 양측의 사용을 설명하면서 등장. 양측의 조리를 모두 호평했지만 사이토 측을 좀 더 고져스하다고 표현하는걸 보면 일단은 사이토 쪽에 점수를 준 듯 하다.
* 나키리 아자미
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의아했는데 뜬금없이 센자에몬을 방문하고 있었다. 시합을 보지 않아도 되겠냐고 떠보는 발언을 하다가 "그들을 신뢰해서 필요없다"는 답변을 듣고는 그걸 비웃는다. 그리고 지금 반역자팀의 주축인 토오츠키 92기를 센자에몬이 직접 모은 "옥의 세대"라고 폭로하는데.
* 나키리 센자에몬
시합이 이루어지는 동안 일절 관여도 관전도 하지 않고 있다. 근처 여관에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자미가 방문한다. 아자미가 떠보는 말에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어서 관전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하는데 아자미가 그걸 비웃으며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반역자들의 주축인 토오츠키 92기생들이 사실 센자에몬이 직접 모은 "옥의 세대"라는 것을.
- 유지인(1956) . . . . 32회 일치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align=center>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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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절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정윤희가 [[나는 77번 아가씨]]로 대표되는 [[백치미]]를 보여주고 장미희가 [[겨울여자]]로 대표되는 청순미를 보여 줬다면 유지인은 당시 대학 재학생이라는 신분에서 풍겨나오는 도시적신 이미지의 세련미를 보여줬다.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지인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동시녹음이 아니라 촬영 이후에 녹음을 하는 후시녹음이 대세였다. 그래서 녹음 때 배우 대신 성우를 기용할 수가 있었는데 유지인은 상대적으로 성우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에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정윤희의 경우에는 대부분 성우를 대용했으며, 장미희는 1980년대에도 성우를 대용한 경우가 많았지만, 유지인의 경우에는 79년 영화인 [[가시를 삼킨 장미]]에서도 자기의 목소리를 그대로 썼다.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1982년]] [[KBS2]] 수목드라마 《[[아내 (1982년 드라마)|아내]]》 ... 서현자 역
* [[1982년]] [[KBS2]] 수목드라마 《[[여자의 강]]》 ... 서경주 역
* [[1997년]] [[MBC]]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2007년]] [[SBS]] 일일연속극 《[[그 여자가 무서워]]》 ... 김 여사 역
* [[2010년]] [[MBC]] 아침드라마 《[[분홍 립스틱]]》 ... 정말자 역
* [[1979년]] 《[[내가 버린 남자]]》 ... 명숙 역
* [[1979년]] 《[[불행한 여자의 행복]]》
* [[1980년]] 《[[갑자기 불꽃처럼]]》
* [[1980년]] 《[[그 여자 사람잡네 (영화)|그 여자 사람잡네]]》
* [[1980년]] 《[[매일 죽는 남자]]》
* [[1980년]] 《[[여자의 방]]》
* [[1980년]] 《[[휴가받은 여자]]》
- 윤주상 . . . . 32회 일치
| 자녀 =
| 형제자매 =
'''윤주상'''(尹周相<ref>{{뉴스 인용 | 제목= 연기상 尹柱相씨 |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122600209206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12-26&officeId=00020&pageNo=6&printNo=20074&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저자= | 쪽= | 날짜=1986-12-26 }}</ref>, [[1949년]] [[6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70년 극단 《세대》에 입단하여 [[연극배우]]로 첫 데뷔를 하였고 이듬해 1971년에는 [[동양방송|TBC 동양방송]] 공채 6기 [[성우]]로 정식 데뷔하였으나 주로 [[연기자]] 활약을 하였고 TV 시사 다큐 프로그램의 MC로도 맹활약하였다.
* [[1995년]] 《[[남자는 괴로워 (1995년 영화)|남자는 괴로워]]》 ... 윤주상 역
* [[2004년]] 《[[효자동 이발사]]》 ... 쌀가게 최씨 역
* [[2005년]] 《[[왕의 남자]]》 ... 성희안 역
* [[1988년]] [[KBS1]] 성탄특집극 《[[조선백자 마리아상]]》 ... 천주교에 귀의한 전직 훈장 역
* [[1997년]] [[문화방송|MBC]] 일일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전원주]]의 연하 남편이며 [[김진 (배우)|김진]]의 아버지인 김주상 역으로 비고정 출연
* [[2003년]] [[SBS]] 대하드라마 《[[왕의 여자]]》 ... [[송강 정철]] 역
* [[2008년]] [[MBC]] 미니시리즈 《[[누구세요?]]》 ... 저승사자 역
* [[2008년]] [[KBS2]] 미니시리즈 《[[태양의 여자]]》 ... 장 회장 역
* [[2009년]] [[TvN]] 주간시트콤 《[[세 남자 2009|세 남자]]》 ... (카메오)
* [[2009년]] [[SBS]] 대하드라마 《[[자명고 (드라마)|자명고]]》 ... 송옥구 역
* [[2010년]] [[KBS2]] 미니시리즈 《[[부자의 탄생]]》 ... 오성그룹 회장, 이중헌 역
* [[2015년]] [[MBC 드라마넷]] 금토드라마 《[[나의 유감스러운 남자친구]]》 ... 윤 회장 역
* [[2017년]] [[KBS2]] 일일연속극 《[[내 남자의 비밀]]》 ... 강준채 역
* [[KBS1]] 《[[다큐공감]] 273회 : 동상이몽 못 말리는 말(馬) 부자》 (2018년) 내레이션
* [[1985년]] 제21회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진짜 서부극》
* [[1987년]] 극평가그룹상 남자연기상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32회 일치
|| [[신비주의 아기천사]] || → || '''[[팥의 전사 호빵왕자]]''' || → || [[물찬 강남제비]] ||
''' 소몰이 창법의 R&B 황태자.'''
''' 2000년대 정상급 R&B 남자 보컬.'''[* 물론 2018년 현재에도 상당한 수준이다.]
남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현직업학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로 [[개명]]했다. 특히 [[실용음악과]]가 매우 [[인지도]]가 높고 학생들의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이기광]], [[양요섭]], [[K팝 스타]]의 백지웅, [[K팝 스타 시즌3]]의 [[남영주]], 허니핑거식스의 황예린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많다.]라는 위탁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녔다.[* 직업학교라서 본교인 광문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식으로 가끔씩 방문하고, 나머지 일수에 아현직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사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인문계고]]의 직업반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이 된다.] [[휘성]], [[박효신]], [[UV]]의 [[뮤지]][* 그런데 서로 같은 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등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휘성은 당시 A4라는 그룹으로 이미 가수 활동을 하는 중이었고, 박효신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나보다 잘하나'하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과와 반이 달라서 그리 친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데뷔 후에 방송에서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고. 휘성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환희는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잘생긴데다 노래와 춤이 기가 막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학교에서는 보여주질 않아 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의 터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자발적 아싸~~ 모범생 타입이었다고.
휘성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꽤나 친한지 매번 앨범의 땡스투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일명 '저마다의 길' 이전 마지막 방송인 절친노트에 휘성이 중재자로 나오기로 했다. 2009년과 2010년엔 환희와 휘성의 활동 시기가 겹쳐 예능이나 행사에 동반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2018년에 환희와 휘성은 엠넷 음악예능 더콜에서 그들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지켜 볼수있던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박효신]]과는 환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사적으로 만난 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박효신 말로는 환희는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편한 사이라고.
데뷔 전날에서야 [[이수만]]으로부터 환희라는 예명을 ~~하사~~받았다. [[주간 아이돌]]에서 밝힌바에 의하면 처음에는 여자 이름 같아서 마음에 안들었지만 [[강타]], [[전진(신화)|전진]]을 떠올리곤 "그래도 내가 낫구나"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3집부터는 얇게 내던 목소리를 버리고[* 3집의 경우 창법 변화 과도기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부 노래는 아직 얇은 목소리가 확연히 남아있는 걸 느낄 수가 있다. 그 예로, sea of love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반해 rain에서 환희의 목소리는 조금 얇은 편이다.] 4집 즈음부터 [[소몰이창법]]을 구사했다. 훗날 회상하길 Missing You 당시엔 [[소]]를 한 2만마리 정도 몰았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8&aid=0000354994|#]] 기본적으로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흉성을 가미하여 매우 깊이있는 중저음을 가진 보컬이 되었다. 음역폭이 매우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기교와 애드립은 수준급. 이 때문인지 [[김구라]]의 [[가요광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바이브레이션]]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라디오 쿨FM 4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였다. 그 외 수상자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14154|기사]]에서 확인]
6집 발매 전에는 성대결절이 찾아와서 앨범 발매를 연기했다.[* 그 때 '남자답게'란 곡이 뒤늦게 들어와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성대결절에서 회복된 후 '남자답게'를 녹음하여 타이틀곡으로 발표. 결과적으로 대박났다.] 7집부터는 전에 비해 창법이 좀 더 편하고 가벼워졌다. 그러나 후에 첫 미니앨범 활동중에 성대결절도 아닌 성대마비 때문에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며 당시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굵직하게 내던 창법에서 현재 바뀐 노래 부르는 방식에 걸쳐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면 여린 가성에 약하다는 부분이다. 완전 하이 노트로 올려버리는 센 소리의 가성은 정말 잘 구사하는 반면, 진성-가성을 오갈 때 한번씩 나오는 여린 가성의 경우 진성에 비해 음의 질이나 양 자체가 따라가질 못한다. 센 가성의 대표적인 예로는 남자답게 라이브 클라이막스 애드리브 부분을 들어보면 되고, 여린 가성의 경우는 내 사람 라이브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SG워너비]]가 처음 데뷔했을 때 환희와 [[김진호(SG워너비)|김진호]]가 동일인물로 오해받은 적이 잠깐 있다. 휘성은 Timeless를 듣자마자 환희에게 전화해서 너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다그쳤다는 일화가 있다. ~~[[소몰이창법|소모는 방법]]이 비슷했나보다, [[히든 싱어]]~~ 지금이야 김진호도 환희도 창법이 다른 방향으로 많이 진화했기 때문에 착각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신인 시절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남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영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반 광탈.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을 진행했다.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은 비자문제로 중도하차하여 환희 단독 DJ라고 봐야되지만 이름은 일단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이다. [[김연우(가수)|김연우]], [[린(가수)|린]], [[김범수]], [[김현성]], [[서영은(가수)|서영은]] 등등 실력파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와 같이 노래부르던 삼색떡볶이라는 코너가 유명했다. 노래만 편집해서 [[MP3]] 파일로 인기리에 떠돌아다녔을 정도.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이후 예능은 히든싱어, 불후의 명곡,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2, 판타스틱 듀오 등 음악 관련 프로그램 위주로 참여하고 있다. 2017년에는 [[복면가왕]]에도 참여해서 맹활약을 펼쳤다. 자세한 것은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여기]] 참조.
[[웃어라 동해야]]의 도진이로 알려진 배우 [[이장우(배우)|이장우]]와 사촌관계이다. 같이 놀던 사촌형이 가수로 집안을 일으키는 것에 감명받고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사실은 환희 형 갖다 주라며 기념일마다 주변 사람들이 과자나 초콜릿을 한가득 주는게 부러웠다고~~ 이장우와 [[은정(티아라)|은정]]의 우결 집들이에 초대된 환희는 커플속옷을 선물함으로써 역시 한핏줄임을 인증하였다. 이장우가 환희의 첫 솔로 정규앨범 타이틀곡 뮤비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데뷔 이전부터 습관성 어깨탈골을 겪고 있다. 예능 촬영하다가는 물론이고 콘서트 중에 춤추다가도 빠진 적이 있다. 예능에서 게임 중 빠졌을 때는 공교롭게도 다른 연예인이 같은 게임을 하다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 기사가 나는 등 해당 프로그램이 조금 욕을 먹었으나 본인은 "자주 그런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창 시절에 야구부를 하고 싶었으나 탈골로 실격 당했다고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멤버 물망에도 올랐었으나 같은 결과. 주변 사람들도 적응이 되어서 어깨가 빠지면 두어명이서 같이 힘 모아 끼워 넣는다고(...) 현역을 위해 재검을 받았으나 결국 공익판정을 받았다.
워낙에 상남자 이미지라 예전 소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 사이에선 매니저 차 안타고 늘 바이크 타고 출근하더라는 둥 회사 주변 주민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처리했다는 둥 일명 '환희 선배님 전설'이라는게 도시전설처럼 떠돌았다고 [[슈퍼주니어]]가 방송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7집 활동 당시 성형사실을 스스로 고백했다. 사실 6집이나 앨범을 내고 성형 전 얼굴이 이미 다 알려진 마당에 수술을 감행한거라 더 화제가 됐다. 근데 성형한 남자 연예인들 중에 손꼽힐만큼 잘나온 케이스(...)라 하길 잘했다는 사람도 많다. 물론 어떤 것이든 예전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 예전의 수수한(?) 외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바이크]]매니아였다. 오죽했으면 우결 신혼여행 중 들린 곳이 태백 서킷. 집에 바이크 피겨나 본인이 바이크를 타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전시해놓기도 했다. 지인들로부터 위험하다는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근래에는 멀리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개설한 트위터 아이디에 듀카티가 들어가는걸 보면 여전히 바이크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은 듯.
[[분류:1982년 출생]][[분류:플라이 투 더 스카이]][[분류:199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남원시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김형기 (법조인) . . . . 31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박옥경
|자녀 = 1남1녀
192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김형기는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문학과 고서화에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던 김형기는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1981년에 임명된 서울형사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김중서]]의 정년 퇴임으로 공적이 된 대법원 판사에 1984년 7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ref>매일경제 1984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1984년 7월 18일자</ref>
[[전두환 정부]]의 간첩 조작 사건으로 밝혀진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재재 상고심에서 주심 대법원 판사를 맡은 이유로<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3342.html]</ref>를 맡은 이유로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2016년 11월 13일에 발표한 반헌법 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다.<ref>[http://moneys.mt.co.kr/news/mwView.php?type=1&no=2016071408268072968&outlink=1]</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1월 19일에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때 선거 거부를 주장하다 기소된 전 서울대 학생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1월 19일자</ref> 2월 9일에 통혁당 재건과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15년 자격정지15년을 선고받은 [[지정관]]에게 징역7년 자격정지7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박현채]]와 [[양정규]]에게 각각 징역2년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과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9일자</ref> 2월 22일에 '옛 석굴암'이라는 상호로 공예품 판매업을 하면서 문공부 장관의 허가없이 자신의 소장품인 유형문화재 청자 등 이조 자기류 10점을 점포에 진열하거나 매매 목적으로 진열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22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2월 4일에 문공부 종무과장으로 있으면서 해외여행의 편의, 불교계 분규 수습에 있어 선처 등을 조건으로 불교계 관계자로부터 200여만원을 받아 구속된 한영수에게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 217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1년 2월 5일자</ref> 4월 11일에 1965년 8월 남파된 삼촌에게 포섭되어 입북하여 노동당에 입당하고 남파돼종로구청 세무과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기밀 수집 등으로 간첩활동을 했던 정춘상에게 사형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1년 4월 11일자</ref>
*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형사합의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8년 9월 25일에 만화가 [[미현세[[의 어머니를 살하는 등 20여 차례에 걸쳐 강도, 강간 등을 했던 18세 피고인에게 "피고인들이 미성년이지만 잔혹한 범행으로 사회에 충격을 줬다며" 강도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면서 공범인 3명의 19살 소년에게 무기징역, 징역15년~12년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9월 26일자</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31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는 요아라시 이나사에게 어째서 자신에게 틱틱거리는지 묻는데 요아라시는 대답대신 엔데버를 거론하며 "너희들이 싫다"는 말을 듣는다.
* 드디어 시작되는 2회전. 그런데 현장에 있는 "프로 요구조자"들은 구조대상이자 시험관이기도 했다.
* 카미나리 덴키나 미네타 미노루 같은 낙제생들은 "바이스탠더"라는 말 자체를 못 알아 듣고 "파이스탠더"같은 말로 잘못 알아듣는다.
* 결국 야오요로즈 모모와 하가쿠레 토오루가 자세히 설명해준다.
* 현장에는 "프로 요구조자"라고 하는 연기자들이 투입되어 있다.
* 이들은 통친 "Help Us Company"(줄여서 HUC)라 불리는데 이런 훈련에서 전문적으로 요구조자 역할을 하는 프로들. 상당한 인기직이라 한다.
* 이이다는 바쿠고 카즈키를 탈환할 때는 빌런의 추격을 떨구고 프로 히어로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것에 전념해 요구조자들을 신경쓰지 못했다고 말한다.
* 미도리야는 열심히 하자며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 그때 사걸 고교의 리더로 보이는 털복숭이 학생이 바쿠고와 키리시마 에지로가 있는 자리로 일행을 데리고 온다.
* 이야기를 듣던 미네타나 미도리야는 달갑지 않아 하는데, 토도로키 쇼토는 유독 자신을 노려보던 요아라시 이나사의 일을 떠올리고 의문시한다.
* 자기가 뭔가 했냐고 묻는데, 요아라시는 역시 반응이 날이 서있다.
* 토도로키가 좀 더 자세히 묻기 전에 그는 선배를 부름을 받고 돌아간다.
* 미도리야는 가장 가까운 도시구역으로 향하자고 하고 흩어지지 말고 팀으로 움직이자고 제안한다.
* 도시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HUC인 어린이가 발견된다.
* 아이는 "저쪽에 할아버지가 깔려 있다"고 울고 있는데 미도리야가 듣자마자 "큰일이다! 어느쪽이야?"라고 말한다.
* 우선 요구조자가 걸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머리의 출혈과 호흡이 정상이 아닌 것도 놓치고 있다.
* 임시면허 소지자는 우선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거라며 일침을 가한다.
* 역할도 착착 나눠서 구조활동에 들어가는데, 관객석의 아이자와 쇼타는 역시 이런 부분에선 훈련이 부족한 웅영고 학생들이 떨어진다고 본다.
* 요구조자는 무섭고 아프고 불안한 상태에 처해있다. 그런데 히어로가 와서 제일 먼저하는 말이 "큰일났다!"면 안 된다는 것.
* 미도리야는 HUC를 안심시키고 지적받은 대로 이상을 체크한 후 동료들을 선행시키고 자신은 피해자를 구호소로 옮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31회 일치
* 밀리오의 개성은 그 자체로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부단한 노력과 연구로 지금의 형태를 만들었다.
* [[토도로키 쇼토]]는 "No.1에 가장 가까운 남자" [[토오가타 밀리오]]의 위력에 경악한다. 그런데 경쟁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놀라워하는 모습이라 옆에 있던 [[아이자와 쇼타]]가 이상하게 여긴다. 아이자와가 "너도 No.1에 관심있는거 아니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는 "전 아직 임시면허가 없습니다"라고 태평한 대답을 한다. 아이자와는 토도로키가 둥글어졌다고 생각한다.
* 어쨌든 밀리오는 원거리 타입 개성보유자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근접전 개성 보유자들만 남겨놓고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가 뭘한건지, 어떤 개성을 가진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 그때 [[미도리야 이즈쿠]]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는 밀리오가 그렇게 사기적인 개성을 가졌기 보다는 "속임수"가 가미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워프"에 기반해 "빠져나가기"로 응용하는 것과 "빠져나가기"에 기반해 "워프"로 응용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카운터를 노리다 보면 직접 접촉도 가능한 시점이 있을 것. 미도리야는 현재 취합되는 정보를 냉정히 분석하면서 기회를 노리자고 제안한다.
*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 사실을 예측하고 카운터를 노린다. 밀리오는 미도리야가 기척을 감지하기도 전에 반격을 준비하는 걸 보고 감이 좋은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측"한 결과임을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정도로 밀리오에게 카운터를 먹일 수는 없었다. 밀리오는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을 통과하더니 핀 포인트로 미도리야의 눈을 찌른다. 미도리야가 자세를 무너뜨리자 그는 명치를 쳐서 제압, 사실 대부분 카운터를 노리는 적들은 그런 방식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카운터에 대응한 역 카운터.
* 잠시 뒤 밀리오는 난데없는 노출에 대해 여학생들에게 사과하며 대련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배를 맞았다"고 투덜댄다. 밀리오는 자신의 "개성"이 어땠냐고 질문한다. [[세로 한타]]와 [[아시도 미나]]는 다짜고짜 "너무 강하다, 치사하다"같은 말을 해댄다. 아시도는 혹시 토도로키 같은 하이브리드 타입 개성이냐고 묻는다. 맨날 질문한 하던 네지레는 질문을 받자 자기가 대답하겠다고 나서는데 타마키가 제지해서 밀리오가 대답한다.
"통과"의 개성은 전신으로 발동할 수 있으며 일단 발동하면 "지면이나 기체를 포함한 온갖 사물을 통과"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가 지면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혹시 통과해서 "떨어지는" 거냐고 묻는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이렇게 통과, 떨어지는 중에 개성을 해제하면 신기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겹쳐있던 부분끼리 반발하는 것처럼 "튕겨 나가"버리는 것이다. 즉 워프의 원리는 그가 지면 등을 통과하고 있다가 해제하면서 그 반발력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개성을 해제할 때의 자세나 상황에 따라 나타날 장소를 조절할 수도 있다.
아시도는 이런 반발을 "게임의 버그"같다고 표현하는데 꽤 적절한 표현이다. [[아스이 츠유]]는 받는 공격은 통과하고 자신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무적"의 능력이라고 감탄하는데, 밀리오는 원래 그런 개성이 아니라 "강한 개성으로 만든 것"이라고 정정한다.
밀리오의 개성은 사실 엄청난 패널티가 있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개성을 발동하는 중에는 모든 감각이 차단된다. 우선 공기도 그의 몸을 그저 통과하므로 "호흡이 불가능"하다는 엄청난 패널티가 생기고, 빛이 망막을 그냥 통과해서 시야도 차단된다. 물론 소리나 냄새도 마찬가지.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로 허공을 허우적대며, 그저 "추락"할 뿐인 감각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말로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이 능력으로 사물을 통과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가령 벽을 통과한다고 하면 한쪽 발을 제외한 전신에 개성을 발동해서 벽을 통과하고, 반대쪽으로 빠져나간 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개성을 유지하면서 마저 빠져나온다. 세세한 컨트롤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엔 매우 까다롭다. [[카미나리 덴키]]는 자신도 실전에선 자꾸 실수를 한다고 공감하고 [[미네타 미노루]]는 아무 것도 못 느끼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나는 인턴으로 얻은 경험을 힘으로 바꿔서 톱의 자리를 꿰찼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얘기지만, 대련을 거치고 나서 들어보니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미도리야는 그가 알려준 교훈을 무겁게 생각한다. 실전에서 응용하게 어려운 디메리트가 있더라도 "갖고 있는 힘을 살린다"는 원칙. 그리고 그걸 경험과 예측으로 실제로 바꾼다. 미도리야는 설명을 마치고 떠나는 밀리오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강한 사람이 톱을 따는게 아니라 "노력하는 자"가 톱을 딴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 네지레는 돌아가는 길에 밀리오에게 주목한 학생은 없었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문제아", 미도리야를 지목한다. 미도리야가 파악한 밀리오의 전술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적의 가장 후열부터 공격"한다는 것. 미도리야는 그 점을 파악하고 자신이 첫 번째 타깃이 될 줄 눈치채고 있었다. 그거도 그가 한 번 원거리 팀을 전멸시킬 때를 보고 "분석"해서 얻은 결론.
아직도 노망기가 좀 있는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의 목소리를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미도리야도 이제 익숙해져서 무시하고 대화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랜토리노는 따로 착수한 일이 있어서 인턴십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 말고는 지명도 못 받은 엉터리 계승자"라고 가열찬 디스를 날린다. 하지만 역시 내성이 생긴 마당이라 가볍게 넘어가고 "엉터리 계승자라 뭐든 하고 싶다"고 대꾸한다. 그랜토리노는 웃으면서 "그런 도움이라면 스승에게"라며 [[올마이트]]의 인맥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예를 들어 그의 "사이드킥"도 있다고 하는데...
* 밀리오가 "서"라고 불렀던 인물은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용의자"의 정보를 물어온다. 그 용의자란 신흥 빌런 조직의 두목 [[오버홀]]. 그가 [[빌런 연합]]과 접촉한다는 정보다.
* 그 정보대로 오버홀은 빌런연합의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와 대면하고 있다. 그를 소개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얘기해 보니 의외로 좋은 녀석"이라며 오버홀을 추천한다. 사실 시라가키를 만나게 해달라고 자청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31회 일치
* 타마키는 자신이라면 적 세 명을 얼마든지 묶어놓을 수 있고 한 시라도 빨리 프로 히어로들과 경찰을 선행시켜야 한다고 설득해 일행을 먼저 보낸다.
* 철포옥 핫사이슈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했다. 이들은 한 번 삶을 등졌던 자들이나 오버홀이 "재활용"해줬다면서 "기대를 받으면 부응"해야 한다고 격렬히 저항한다.
* 타마키 또한 기대에 부응하려는 인물이다. 타마키가 극도의 자신감 부족으로 침체돼있을 때 그의 진가를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 밀리오.
* [[아마지키 타마키]]의 네거티브한 성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타마키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는데 첫날부터 자기소개에 실패한다. 이름을 말하긴 커녕 우물거리다 "히..."라고 중얼거리고 끝났다. 모처럼 시업식에 맞춰 간 전학이었지만, "스타트부터 실패했다"는 자기혐오 때문에 다른 애들이 친구를 만들어 갈때 끼어들지 못했다. 그렇게 또 우울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려 할때, 구원이 내려왔다. 타마키는 거기서 [[토오가타 밀리오]]와 만났다. 풀죽은 타마키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구. 그는 "히"라는 말이 혹시 "히어로"를 말하는 거였냐며 어떤 히어로를 좋아하느냐 묻는다.
한편 아랫층으로 떨어뜨린 선두그룹은 서둘러 오버홀과 단독으로 그를 추격하러 간 밀리오를 따라나서려 하나, 사전에 버림말로 동원된 "철포옥 핫사이슈"에 발목이 잡힌다. 이때 혼자서 이들을 처리하겠다며 나서는 타마키. 더이상 밀리오의 발목을 잡을 순 없다고 다짐한다.
* 타마키의 사무소 후배 [[키리시마 에지로]]가 "혼자 맡겠다"는 말에 반발한다. 이럴 때일 수록 공동대응해야 한다는데. 이때 핫사이슈 중 검은 마스크를 쓴 단발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날붙이를 든 녀석이다. 형사가 그 녀석은 "세츠노"이며 "화기를 쓸 수 없는 상대"라고 하는데. 무슨 개성인진 모르지만 성가신 모양이다. 세츠노가 바로 손을 올려 개성을 쓰려고 하니 [[아이자와 쇼타]]가 선수를 친다. 세츠노가 개성을 쓰지 못하자 옆의 대머리가 "개성을 지우는 개성"임을 간파한다. 그는 그걸 "에리의 열화 개성"이라 말하는데.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상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절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식". 이상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상태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상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상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상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나라면 혼자서 3명을 완봉할 수 있어!
* 타마키의 각오가 인정받았다. 패트껌이 선두에 서서 출구로 향한다. 세츠노가 다시 개성을 쓰려고 하자 이번에도 아이자와가 선수를 친다. 다른 세 명도 아이자와의 시야에 들어갔다. 아이자와는 타베의 목을 꺾으면서 타마키에게 셋 전부를 봐뒀으니 무력화돼있는 동안 움직임을 막으라고 조언한다.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태로도 웅영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칼이다. 검은 마스크 아래에 날붙이를 숨겨뒀다. 그것으로 타마키의 문어다리를 그어버렸다. 타마키가 움찔하는 사이 마침 아이자와의 무효화도 효력이 다해가고 있었다. 호죠가 자신의 개성 "결정"을 발동시킨다. 키리시마와 비슷하게 피부를 "결정"화시켜 단단하게 만드는 개성으로 보인다.
* 구속이 풀린 호죠가 육탄돌격을 감행한다. 타마키는 대합조개 껍질을 생성해 막으려 한다. 그런데 어느 틈에 그것이 사라진다. 세츠노의 개성 "절도". 남이 가진 물건을 자기 손으로 순간이동시키는 묘한 개성이다. 타마키가 생성한 껍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다시 생성할 틈도 없이 호죠가 엄습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세츠노는 본래 자신들이 인생을 버린 종자들이라 말한다. 오히려 히어로에게 구해졌을 땐 살아남은 것에 절망했던 패배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재활용"해준 것이 오버홀, 시에핫사이카이의 차기 두목 치사키다. 호죠가 그런 사실을 밝히며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쓰레기에게도 자존심은 있다고?
* 귀갓길. 타마키는 밀리오의 그런 강인함을 부러워한다. 반면 자신은 실패할 걸 생각하면 머리 속이 새하애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며 "나는 틀렸다"고 자학한다.
밀리오가 나에게 진다? 타마키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밀리오는 타마키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밀리오를 너무 과대평가해 태양이니 뭐니하는 소리를 하는 거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뭐... 그거다. 자신을 가지라고 타마키!
* 호죠의 공격은 적중하지 않았다.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타마키, 히어로 "선 이터"가 취한 방식은 방어가 아니다. 그는 문어다리를 게껍질로 감싸 "경화"시켰다. 빌런의 어중간한 경화 따위는 가볍게 분쇄할 수 있는 강력한 힘. 그는 호죠의 주먹을 부수며 예전 친구가 붙여준 이름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태양조차 먹는 자(선 이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31회 일치
* 그는 키리시마를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투혼을 높이 사 "그 남자"로 정정하며 특히 그와 다시 싸우고 싶으니 어서 그를 치료하라고 제안한다.
* 오버홀은 랏파를 한 번 죽였다가 되살릴 정도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의 소유자. 그러나 지금은 다른 목적 때문에 일선에 나서지 않는다.
* 그는 "어떤 물건"을 대량으로 시장에 풀기 위해 계획하고 있으며 자금이 모이는 데로 실행될 것이다. 그것은 "완성품"과 "혈청"이라는 약물이다.
* 오버홀은 이 두 가지와 자신, 그리고 두목만 있으면 시에핫사이카이는 얼마든 되살릴 수 있다며 지금 아지트를 미련없이 버리는데.
패트껌은 그렇게 말했던 당시의 키리시마와 자신을 지키다 쓰러진 키리시마를 겹쳐보았다. 그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그 꼬맹... 남자를 치료해라.
바보취급하는 건가? 패트껌은 함정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랏파는 자기가 그런걸 설치할 법한 남자냐고 반문한다. 확실히 그럴 만한 두뇌는 아니다.
* 텐가이도 입을 놀릴 정도의 기력은 돌아왔다. 그 기력이라도 배리어라도 치면 좋았겠지만, 그는 설교를 선택했다. 랏파에게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설교. [[오버홀]]이 그와 짝지은 것도 그런 안배였다. 그저 폭력을 휘두를 뿐인 짐승을 텐가이가 제어하라는 것. 텐가이는 그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랏파는 자신의 출신이력을 조금 말했다. "지하격투장". 그는 패트검도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시설이니까.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풀로 활용하는 파이트 클럽이었다. 거기서 랏파는 싸우고 싶은 대로 싸웠고 그의 펀치를 맞고 일어서는 녀석은 드물었다. 그리고 드물게 있는 녀석들도 더 싸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적들이 잇따라 목숨을 구걸하는 것만큼 괴로운게 없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괴로움", 그게 랏파의 경우는 싸움이었다. 랏파는 목숨을 걸 때 생기는 힘을 좋아했고 그게 부딪히는 건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적"이 좋아졌다. 패트껌과 키리시마. 특히 "빨간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재시합을 하자!
* 패트껌은 반박할 기분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일단은 이제 랏파는 체포될 거고, 감옥행이 될 테니 재시합이고 뭐고 그냥 진거라고 말해 본다. 랏파는 그것도 알바가 아니다. "아무도 죽지 않으면 무승부", 그런 지론이었다. 그는 패트껌이 움직이지 않자 먼저 문으로 향한다. 그쪽이 의무실인 모양이다. 랏파는 기인이긴 하지만 기인 나름의 방식을 지키는 부류였다. 욕구에 충실한 인간인 만큼 하는 말이 딱히 숨기는게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나 키리시마가 이 몸으로 일행과 합류하기는 글렀다. 패트껌은 키리시마를 안아든 채로 랏파의 뒤를 따랐다.
패트껌이 처음 본 키리시마는 자신을 한심하고 나약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소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왜 타마키가 그를 소개했는지 이해가 갔다. 둘이 닮은 꼴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아는 인간.
그런 키리시마가 지금은 "제대로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은 남자"라고 인정하는 적이 생겼다. 키리시마는 과거의 자신에게 자랑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인정 받았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에게. 그리고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적]]에게. 사나이였다.
* 랏파가 안내한 의무실은 거의 창고나 다를 게 없었지만 응급조치 정도는 할 수 있다던 딱 그정도였다. 패트껌의 조치로 키리시마의 출혈은 멎었지만 한동안 누워있어야 하는건 마찬가지. 패트껌 자신도 치료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보고 랏파가 어슬렁거리다 "나앗냐, 죽인다"고 내뱉는다. 패트껌은 "나았겠냐, 살려"라고 대꾸한다.
>그야 [[오버홀|오바호]]는 내가 유일하게 패배한 남자라서다.
그렇다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가 아직 지하격투장에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오버홀이 "조직에 들어와라"고 권했다. 그는 지하격투장의 룰에 따랐다. 싸움, 승리와 패배.
* 패트껌에겐 소름이 돋는 얘기였다. 랏파의 승부욕 쪽이 아니었다. 오버홀의 실력. 이 랏파의 위력과 스피드를 간단히 요리할 만한 힘이 오버홀에게 있다는 것.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일선에 나서지 않고 부하를 내세운다.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왜 자신이 사태를 처리하지 않고 도망치는가? 그런 의문들은 보다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야쿠자의 복권이라고 하더군.
랏파는 텐가이의 만류도 아랑곳 없이 아는 사실을 하나도 남김 없이 털어놨다. 그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들은 바로는 "뭔가"를 대량으로 뿌릴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자금 문제가 해결되면 "실행의 날"은 금방, 그런 이야기였다. "소재"는 확보하고 있으니까. "에리쨩.
- 마기/339화 . . . . 31회 일치
* 백룡은 환상 속의 자신을 여러조각내서 그 힘을 황제국의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 그는 동료들 가운데서도 오로지 혼자만 높고 강해지려는 신드바드의 마음가짐을 꼬집으며 "자신 외의 존재를 믿어라"고 대답한다.
* [[연백룡]]은 자신의 공언대로 혼자 15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맞선다. [[알라딘(마기)|알라딘]] 일행은 다음 던전으로 출발. 신드바드의 바레포르는 마치 [[구미호]]와 같은 형상으로 여러 꼬리가 백룡을 공격한다.
* [[팔인장]]들은 신드바드를 연호하며 응원하고 있다. 백룡은 이들을 의식하는데, 신드바드는 거기에 "왕의 그릇들 중 가장 기대가 되지 않는 자"라며 도발한다.
* 바레포르는 얼음의 마법을 사용한다. "빙수 결정진"(가르폴 키레스탈)으로 백룡의 후방을 막고 꼬리로 때려서 얼음벽에 처박는다. 신드바드는 백룡 조차 아니라 그의 진 "자간"의 이름을 부르며 너무 허무했다고 빈정거린다. 환호하는 팔인장들.
* 두 번째 전신마장 "베리알"을 사용한 백룡. 바레포르의 꼬리를 파괴한 것도 베리알의 힘이었다. 신드바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여유로운 태도로 돌아간다. 그리고 꼬리의 썩은 부분을 잘라버리더니 순식간에 재생해 버린다. 베리알이 썩힌 꼬리를 간단하게 재생하는걸 보자 백룡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 신드바드는 백룡은 "운명에 농락 당하고 패한 왕의 그릇"이라 자신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룡의 발 밑으로 어떤 원반이 나타나게 한다. 그 원반엔 "백룡이 지키지 못했던 것", 황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 신드바드는 그가 많은 희생을 치르고 조국을 되찾았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며 쇠퇴로 이끌다가 끝내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왕이라고 비난한다. 그가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희생시킨 많은 백성과 병사들, 그리고 그가 쓰러뜨린 형제들.
황제의 자리에서, 비탄에 잠긴 백룡은 그렇게 울분을 토로한다.
* 신드바드의 질문을 받은 백룡은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영상 속에서 비탄에 빠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 씩 웃으며 거리낌없이 그 형상을 난도질한다.
백룡이 단순한 자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여러 동강 내서 그것들을 풍경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뿌린다.
>각자 힘을 받고 "운명"과 싸워라.
풍경 속의 [[연홍옥]]은 백룡에게 받은 힘으로 신드바드에 견줄 정도로 거대하게 자라난다. 백룡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홍옥은 백성들을 독려해서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나라와 긍지를 지키게 한다. 신드바드는 백룡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 백룡은 자신의 황제로서 힘을 누님 홍옥에게 넘겼다고 말한다. 분명 자신은 패배한 황제지만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재건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실제로 백룡은 현실에서도 홍옥에게 황제자리를 넘기고 홍옥은 그 힘을 바탕으로 황제국을 되살렸으니 그다운 선택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백룡은 신드바드의 맹점도 꼬집는다. 바로 "주변 사람을 믿지 않는 점".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던전에서 조차 오로지 자신만이 강대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런 신드바드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백룡 자신도 누님 [[연백영]]은 그저 연약하고 지켜주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적어도 백영에게 만큼은 모든 것을 밝히고 힘과 위험과 책임을 나눠가질 "동료"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지금 백룡의 답이다.
>자신을 제외한 존재를 믿어라.
>왜냐하면 자기 혼자 믿어야할 올바른 거이란...
* 누구보다 오래 고민하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데 골몰했던 백룡이기에, 누구보다 명쾌한 답을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신드바드는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그는 "역시 너는 내게 있어 가장 공존할 수 없는 왕의 그릇"이라 강하게 거부한다.
- 마기/344화 . . . . 31회 일치
* 알마트란 시대의 희생자들은 모두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무기력하고 지루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 다윗은 그저 이곳을 나간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통과적으로 일부러 이곳에 왔다.
* 그런 모습을 보고 [[와히드]]와 [[셋타]]는 그가 보통 인간을 초월한 "운명의 구현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알리바바는 현세로 돌아간 다윗이 현세의 멸망을 초례할 거란 말을 듣고 자신도 현세로 돌아갈 궁리를 하게 되는데.
* [[알리바바 사르쟈]]는 [[아르바(마기)|아르바]]에게 자신이 사후세계,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준다. [[연백룡]]과 싸우다 패한 것만이 기억에 있는 그는 갑작스럽게 아무 것도 없고 시간 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날려져 당황하지만 곧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삼인조와 말문을 트는데 이들은 [[알마트란]] 시대 솔로몬 대왕의 동료였던 [[와히드]]와 [[셋타]], 그리고 와히드의 자식 [[테스]]였다.
* 셋타는 당황하는 알리바바에게 "너는 죽었으니 진정해라"고 말하는데 알리바바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에게 생전과 같은 감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과 대화하는 이들이 대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삼인조 중 어린아이, 테스가 그에게 "알마트란에서 죽은 사람이 아니야?"라고 묻는다. 알리바바가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 [[알라딘(마기)|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로 보여준 알라딘의 고향이자 현세가 생기기 이전의 멸망한 세계였다.
그걸 깨닫게 되자 근처에는 보통 인간과 다른 이종족들도 여럿 있는게 보인다. 알리바바는 "전설 상의 시대 속 사람들과 만났다"는 흥분에 방금 전의 침울함도 잊어버린다.
* 알리바바는 유명인을 만난 팬처럼 "난 당신들을 안다"며 들뜬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와히드는 "공처가"에 셋타는 [[이스난]]의 동생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당사자들은 꽤 불쾌해하지만. 그리고 테스에 이르러서는 그 불행한 최후에 대해 알기에 말을 아끼지만 테스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테스는 곧 알리바바에게 관심을 거두고 아버지와 하던 돌맹이 쌓는 놀이로 돌아간다. 부자는 번갈아가며 돌을 쌓아올리는 놀이를 반복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왜 그런 걸 하냐고 묻자 달리 할게 없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잘 보면 이들 뿐이 아니다. 대부분 돌을 쌓거나, 아니면 도미노처럼 늘어놓거나 자신의 변함없는 기억을 멍하니 감상한다. 그저 보기만 해도 무기력하고 지루한 모습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몸에는 버섯같은 것이 마구 피어나고 있다.
알리바바는 다시 테스 일행을 향해 여기가 일 일라의 내부냐고 묻는다. 테스가 맞다고 대답하자 이번엔 "여기는 사후세계냐? 나의 부모님들도 여기 계시냐"고 묻는데 셋타는 무관심하게 "없는거 아니냐"고 답하고 알리바바는 알마트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또 말한다.
* 알리바바는 아까 셋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역시 난 죽은 것이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와히드는 냉담하게 "사실이고 다시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알리바바는 자신이 정말로 죽었다는 충격에 휩쌓인다. 설마 이런 어중간한 시점에. 뒤늦은 주마등이 펼쳐진다. 현세의 사람들. 그가 사랑하고 소중히했던 이들의 모습. 이제 볼 수 없게 된 그리운 모습.
* 전례가 있다는 말에 작은 희망이 생겼다. 알리바바가 그게 누구냐고 묻자 와히드와 셋타가 입을 모아 대답한다.
다윗. 그 또한 솔로몬의 지혜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알리바바는 귀를 의심하며 "솔로몬의 아버지이자 알마트란의 사악한 마법사"를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가 맞다면서 그 또한 여기에 있다가 얼마 전에 여기서 나갔다는 충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알리바바가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니 이번엔 셋타가 좀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곳은 정확히 말하면 알마트란에서 죽은 자들이 검은 루프가 되어 집결되는 곳이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셋타와 와히드도 이곳에서 그와 재회했다.
* 다윗은 두말할 것도 없는 원수고 증오해 마땅한 대상이건만,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생전의 감정을 급격히 잃었다. 즉 지금 알리바바가 보는 것처럼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매우 의기양양한데다 쾌활하기까지 했다. 그는 "확신"을 가진 채 "예상대로 반타전의 특이점이 연결됐다!"고 환호했다. 그는 종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이름을 언급했다. 차원에 구멍이 생기면 이 특이점과 일체화하는 것으로 현세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자신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안다고 했다.
* 그러던 생활은 마침내 끝났다. 아무 이변도 없느 고요한 공간이 요동치더니 다윗이 입이 닳도록 외치던 차원의 구멍이 생긴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장담한 대로 지상으로 돌아갔다. 열려진 차원의 문으로 향하며, 다윗은 "성궁"의 힘을 얻으러 간다고 했다. 열쇠는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도. 무력하기만 했던 사람들도 이때만은 충격과 두려움 속에 다윗을 올려다 보았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그들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흉악할 뿐 그저 쾌락 범죄자, 광신자라고 무시했던 다윗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인종이었다. 알리바바가 어떻게 다른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를 "더 거대한 사명을 짊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 무한한 시간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야망을 간직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하다. 실제로 셋타와 와히드 같은 인물도 여기서는 순식간에 삶을 포기했다. 셋타는 그가 무시무시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그야말로 "운명"의 구현자, 그것이 다윗이야!
* 셋타는 테스와 놀아주면서도 설명을 계속한다. 다윗은 말하자면 사이코패스. 살육도 그에겐 수단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이곳에 있는 그의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면전에서 "너희는 포석"이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에겐 동료도 가족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현세로 돌아간 다윗이 성궁에 가기 위해 또 한 번 세상을 "포석"으로 삼을 건 말할 것도 없다. 알리바바가 그럴 수는 없다며 막으러 가겠다고 하지만 와히드가 비웃음조로 손사레를 친다. 차원의 벽은 넘을 수 없다면서. 셋타는 어차피 알리바바도 머지않아 과거의 기억과 무한한 시간만 남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거라 예견한다. 방법이 없다는 말에 알리바바는 크게 낙담한다.
하지만 그가 포기하는 것 같진 않다. 알리바바는 아직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히드는 그런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자기들은 여기에 오자마자 삶에 대한 집착도 감정도 사라졌는데, 알리바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알리바바는 버섯도 피지 않았다. 처음 기억을 보고 있을 땐 피어있었지만 테스 일행과 대화를 하는 동안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 백진희 . . . . 31회 일치
| 직업 = 배우 , [[연쇄살인자]]
| 형제자매 = [[정두영 (1968년)|정두영]]
1990년 2월 8일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김천시) (봉산로) 에서 태어났다. 2008년 독립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반두비]]》로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1=윤희성|제목=백진희│My name is…|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538|날짜=2013-06-18|확인날짜=2016-01-27|뉴스=텐아시아}}</ref><ref>{{뉴스 인용|저자1=최은화|제목=[쿠키人터뷰]‘어쿠스틱’ 백진희, “한국판 아만다 사이프리드? 좋죠~”|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88698003&cp=nv|날짜=2010-11-02|확인날짜=2016-01-27|뉴스=쿠키뉴스}}</ref>
현재 배우 [[윤현민]]과 열애 중이다. 둘은 2016년 열애를 인정했으며, 현재 3년째 열애를 이어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백민경|제목=“같은 카페?”...윤현민♥백진희, 여전히 달달한 일상|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8&no=415946|뉴스=스타투데이|출판사= |위치= |날짜=2018-07-02|확인날짜= }}</ref>
| 자혜
* 2013년 [[MBC]] 《[[나 혼자 산다]]》
* [[삼성전자]] [[애니콜]] 시보광고
|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최고의 여자신인배우상
| 코미디·시트콤부문 여자 신인상
| 여자 연작·단막극상 연작부문
| 20's Booming Star 여자
| 여자 신인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우수상
| 여자 조연상
| 특별기획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성현아 . . . . 31회 일치
| 자녀 = 1남
| 배우자 = 최정우 ([[2007년]] ~ [[2010년]]<ref>남편 이혼 후 [[2017년]] 자살로 추정하였다.</ref>)
| 형제자매 =
대기업 이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모델 일을 하였고 [[1994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예선대회에서 진, 본선에서 미에 당선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성현아, `사업실패` `가족의 죽음` 굴곡진 과거사| 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119403| 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류일한| 쪽= | 날짜= 2017-05-05| 확인날짜= }}</ref>
[[2002년]]에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되었고,<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87524_13454.html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성현아 마약복용 구속] (2002년 3월 7일, MBC 뉴스데스크)</ref> 2003년에 [[나체|누드]] 화보를 발표한 후 2004년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출연해 [[칸 영화제]]에 진출해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6년]] SBS [[어느날 갑자기 (2006년 드라마)|어느날 갑자기]]로 정극 복귀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MD포토] 성현아, '4년만의 TV복귀 떨려요' |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0038591| 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곽경훈| 쪽= | 날짜= 2006-02-21| 확인날짜= 2018-09-25}}</ref>
2010년에 여섯 살 연상의 사업가와 재혼하여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의 사업이 순탄치 않아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2013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으나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인정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MBC로부터 출연금지를 받아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언론에 부담느꼈나? 성현아 끝내 제작발표회 불참| url=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276165| 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강은영| 쪽= | 날짜= 2018-02-06| 확인날짜= 2018-09-25}}</ref>
그 이후 [[2018년]] KBS 2TV 아침 TV 소설 [[파도야 파도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는데 KBS 정극으로 치자면 1997년 월화 미니시리즈 [[열애 (1997년 드라마)|열애]]<ref>{{뉴스 인용| 제목= '제주 초원'서 그리는'사랑의 수채화' KBS 새미니시리즈 '열애'6일 첫방송 박상민·성현아·이정길·정애리등 열연| url=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300329127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3&officeId=00032&pageNo=27&printNo=16233&publishType=00010| 출판사= 경향신문| 저자= 오광수| 쪽= | 날짜= 1997-10-03| 확인날짜= 2018-09-25}}</ref> 이후 21년 만이었으며 그 이후 [[내사랑 누굴까|내 사랑 누굴까]] 등의 KBS 정극에서 섭외가 왔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절했다.
* [[1996년]] [[SBS]] 드라마스페셜 《[[남자대탐험]]》 ... 유맹희 역
* [[1997년]] [[SBS]] 단막극 《[[SBS 70분드라마]] - 가방을 든 남자》
* [[1998년]] [[MBC]] 일일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2006년]] [[SBS]] 금요드라마 《[[어느날 갑자기 (2006년 드라마)|어느 날 갑자기]]》 ... 오유란 역
* [[2007년]] [[MBC]] 일일연속극 《[[나쁜여자 착한여자]]》 ... 윤서경 역
* [[2009년]] [[SBS]] 대하드라마 《[[자명고 (드라마)|자명고]]》 ... 송 매설수 역
*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박선화 역
* [[2005년]] 《[[애인 (2005년 영화)|애인]]》 ... 여자 역
* [[2016년]] 《[[그물 (영화)|그물]]》 ... 전향팀담당자 역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김천시 출신]]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31회 일치
한편, 슈퍼맨과 사촌이라는 인터뷰를 보고 카라에게 분노하는 자가 나타나는데….
DEO기지에서 행크는 인터뷰를 저지른 카라에게 화를 낸다. 카라는 연쇄 충돌 현장으로 날아가서 차 안에 갇혀 있던 피해자를 구해주는데, 그 순간 공격을 받고 날려간다.
반 인간, 반 기계로 된 --짝퉁 아이언맨 같은-- 적이 나타나, 슈퍼맨에게 상실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다고 소리치며 카라에게 도전을 한다. 카라와 대결하던 적은 아머가 손상되자 도주한다.
행크는 적은 리액트론(Reactron)이라는 자로 과거 슈퍼맨과 싸웠던 적이 있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행크는 DEO는 외계인에게만 대응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슈퍼맨에게 부탁해보라고 말한다.
제임스는 카라에게 리액트론은 한 번 슈퍼맨 클락 켄트를 죽일뻔 했다고 하며, 슈퍼맨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카라는 이 싸움은 자신의 것이라며,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리액트론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제임스가 클락이라는 말을 해서 윈은 클락이 슈퍼맨이라는걸 알게 된다.
맥스웰 로드는 자기 소유의 연구소에서 시속 500km까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자기부상열차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액트론이 연구소에 난입해와서 핵분열 기술자를 찾는다. 리액트론은 기술자를 한 명 납치가려고 하는데,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나서서 잡혀간다.
뉴스를 보고 카라는 리액트론을 찾으려고 한다. 알렉스의 도움으로 리액트론을 추적하는데, 리액트론과 같은 토륨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추적하여 찾아낸 곳은 베이커라인 원자력 발전소였다. 그리고 리액트론의 정체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기술자 벤 크롤로서, 방사능 누출에서 살아남았으나 슈퍼맨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맥스웰 로드는 리액트론에게 자신의 회사에 오면 치료를 해주겠다고 협상을 걸지만, 리액트론은 받아들이지 않고 맥스웰 로드에게 자신의 기계를 고치라고 강요한다.
카라는 어린애처럼 책임감이 낮다고 묘사한 그랜트가 쓴 자신의 기사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슈퍼걸은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윈의 정보에 따라서 리액트론이 숨어 있는 폐차장으로 향한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는 구해주지만, 맥스웰 로드가 자입를 수리해줘서 강화된 리액트론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리액트론의 공격을 받고 죽어가던 카라는 슈퍼맨이 나타나 리액트론과 대적하는 것을 목격하고 기절한다.
카라는 알렉스와 제임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깨어난다. 몇 시간이나 기절을 했으며 슈퍼맨은 화산폭발로 남태평양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구출된 맥스웰 로드는 슈퍼걸은 언급하지 않고 슈퍼맨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카라는 제임스에게 어떻게 슈퍼맨이 자신을 이렇게 빨리 도와줬냐고 추궁보는데, 제임스는 슈퍼맨이 자신에게 준 연락용 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연락을 했다는걸 밝히는데, 카라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서 화를 내고 이렇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겠냐며 상심한다. 알렉스는 카라를 위로해준다.
파티에서 제임스는 자신이 카라를 잃게 될까 두려워서 슈퍼맨을 불렀다고 고백한다. 카라는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준다. 그 때 리액트론이 파티장에 난입한다.
카라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서 리액트론과 지원한다. 카라가 위기에 놓이자 제임스는 자신이 슈퍼맨의 친구 지미 올슨이라며 리액트론을 유인한다.
* 리액트론이 아이언맨 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31회 일치
[[식극의 소마]] 196화. '''선두를 걷는 자'''
* [[사이바 죠이치로]]의 괴식요리는 나날이 심해지고 후배였던 [[시오미 준]]도 단골 피해자가 된다.
* 그러나 압도적인 실력으로 죠이치로는 연승을 거둬가고 [[도지마 긴]]과 [[나키리 아자미]]는 경탄하는 눈으로 지켜본다.
* 그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도지마와 달리 아자미는 "훌륭하다"며 묘한 감동을 받는데.
* [[도지마 긴]]은 죠이치로에게 묘한 버릇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죠이치로는 당시 중1이던 [[시오미 준]] 등 후배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괴식요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시오미는 질색하지만 결국 선배의 권력을 남요하는 죠이치로에게 잡혀 시식의 고통을 맛본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들은 그 해괴한 맛에 중독돼서 자청해서 먹으러 오는 등 기묘한 흐름이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상적이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변화를 감지한건 도지마만이 아니었다. [[나키리 아자미]]는 요리 얘기를 많이 하던 죠이치로가 요즘은 멍하게 있는 때가 늘었다고 이상하게 여기고 [[다이미도 후미오]]여사는 안 그래도 이상한 녀석이 그러고 다닌다고 역시 수상하게 여긴다.
* 다이미도 여사는 화제를 전환해 젊은 요리사들의 콩쿠르 THE BLUE에 대해 이야기한다. 죠이치로가 거기에 참석하기로 결정됐는데 매우 순조로워 보인다는 것. 이는 학원 내부에서 결정된 일이라 도지마나 아자미도 알지 못했다.
THE BLUE는 전세계의 젊은 요리인을 모으는 콩쿠르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는 발판이다. 도지마는 역시 죠이치로라며 자랑스러워하고 아자미는 자기도 언젠간 나갈 거라며 은근히 분해한다. 그때 마침 죠이치로가 귀가한다.
* 죠이치로는 또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했는데 별거 아닌 일처럼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러더니 들어오자마자 도지마와 아자미에게 요리승부를 하지 않겠냐고 권한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텐션도 낮아 보여서 도지마와 아자미는 혹시 슬럼프가 온거 아닌가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식극을 해봤더니 공연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죠이치로는 콩쿠르를 격파하고 나서도 여전히 쌩쌩해서 도지마와 아자미를 연거푸 패배시킨다. 도지마는 그 놀라운 체력과 무엇보다 뛰어난 발상력으로 만들어낸 요리에 경탄하며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죠이치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기숙사가 최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자미도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며 눈물을 훔치는데 죠이치로는 실컷 놀려먹으며 즐거워한다. 이렇듯 표면상으론 크게 이상할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듯 했다.
* 죠이치로가 대표로 선발된 소식은 토오츠키 학원 전체에 퍼진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출전을 축하하며 응원한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선출제로 뽑혔으니 선출의원들에게 꼬리쳐서 얻은 자리가 아니냐고 시비를 건다. 특히 그 중심에는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이 있는데 집안의 위신 때문에라도 십걸에 꼭 들어야 했지만 죠이치로 때문에 밀려난 전력이 있다. 그는 앞장서서 죠이치로를 깎아내리며 "출전권을 걸고 식극이라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빈정거린다.
>필요없어. 나 혼자면 되니까.
혼자서 불만자 50명을 상대로 연대식극을 벌이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도지마가 보기엔 무모할 뿐더러 의미도 없는 싸움. 죠이치로는 실력을 보여주면 잠잠해 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지만, 도지마는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식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상대 진영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상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상가는 발상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영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있다.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한 죠이치로. 상대였던 요리사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그쪽은 아주 불손한 태도로 "어차피 못 이길 줄 알았다. 천재를 상대로 화낼 수도 없지"라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 흥분한 죠이치로는 사와츠바시의 멱살을 끌어당겨서 위협한다. 그는 끝없이 "앞"을 개척하는 괴로움을 알기나 하면서 천재타령이냐고 비난한다. 그런 되먹지 못한 각오로 "진심으로 정진"같은 그럴듯한 말을 떠들지 말고 요리 만들 생각이 없다면 때려치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 신랄한 모습에 학생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라며 두려워한다. 독설만이 아니라 그가 승리한 자리엔 망연자실한 패배자들이 널려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정상적인 승리도 아니고 평소의 죠이치로와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 모든 것을 지켜본 도지마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고 느낀다. 더이상 죠이치로는 요리 중에 미소를 짓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당혹해하는 도지마의 옆에 아자미가 있다. 그런데 그는 "훌륭해"라며 지금의 죠이치로를 칭송한다. 도지마에겐 죠이치로의 변화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 그날 이후 죠이치로에겐 새로운 별명이 추가된다. 그동안 혁명가, 천재, 개척자 등 칭송하는 별명만 따라다니던 그에게, "수라"라는 불길한 이명이 붙은 것이다.
- 안기효 . . . . 31회 일치
2003년 데뷔한 올드 프로게이머로 판짜기 능력과 전략성이 탁월해 2005년경에는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와 함께 '신 4대 프로토스'의 물망에 오르내릴 정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단점도 뚜렷했는데 매크로/마이크로 콘트롤과 멀티태스킹 능력, APM 등 게이머로서의 기본기가 전반적으로 모두 부족했다. 그와 함께 투나 - 팬택의 주축 멤버였던 [[심소명]]과도 비슷한 특성. 어쨌든 이것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게 되어 결론적으로는 그를 제외한 프로토스 신예 3인이 신 3대 토스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그의 전략마저 뒤떨어지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는 프로리그 16연패 등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경험했다.
쇼맨쉽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남자다운? 외모와 과격한 승리 세리머니로 인상이 깊다. 날아차기, 엄지손가락으로 목긋기, 유리창 두들기기 등의 역동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많은 환호를 받은 선수였다.
>- 한 유튜브 시청자
2016년 10월 철구와의 스폰빵에서 보여준 승리 세리머니는[* 그 유명한 학사경고 영상이다. 자세한 사항은 유튜브의 "철구 학사경고" 참조] 안기효 방송의 애청자이던 트위치 스트리머 [[스틸로]]의 영향으로 옆 동네 트위치에서 대유행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조를 따라잡지는 못했단 평을 받았다.--그 와중에 [[김도|한 명]]은 채신기술로 쓴다-- 배경음악은 [[Silver Scrapes]]다.
또한 '''개명 전 이름 자체로도 별명'''인 선수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던 별명을 [[온게임넷]]에서 바로 써먹어버린 전적이 있다.
투신 [[박성준]]에게 천적 관계[* 사실 [[박성준]]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프로토스]]는 '''아무도 없다.''' [[박성준]]은 '''대 [[프로토스]]전 5전 3선승제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걸 넘어서, 5전제를 치를 때 2패째를 허용한 적도 없다.'''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났다고 평가 받던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도 당시에 잘나갔던 [[도재욱]]을 상대로 3:0 떡실신을 먹였을 정도. 전무후무한 저그전 최강이라던 [[김택용]]에게도 3대3의 상대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준을 상대로 전적이 앞서는 프로토스는 비공식 포함 7승6패의 [[송병구]] '''뿐.''' 이도 호각세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공식 전적만 볼 때는 오히려 2승 5패로 송병구가 [[김준영]]만큼 고배를 마신 저그가 박성준이다. 안기효가 유난히 자주 만났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즉, '''그냥 재수없는 거다.'''(...)]이며, 두 번의 16강, 두 번의 8강, 그리고 [[WCG]] 대표선발전에서 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유명한 미니맵 [[관광]]을 당한다. 실은 안기효가 첫 온겜 [[스타리그]] 데뷔전 당시 꺾었던 상대가 다름아닌 전대회 우승자였던 [[박성준]]이었다. 리버+캐논으로 인한 조이기 라인으로 체면이 팍 깎인 [[박성준]]이 그 후 안기효만 보면 잡아먹으려 든다는 이야기.(...) 아무튼 안기효의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 진출은 번번이 [[박성준]]에게 막혔다. 전략성을 감안하면 개인리그에서도 4강 한 번쯤은 노려볼 수 있는 선수였기에 매우 아쉬운 일.
사람들이 안기효가 엄청 못했던선수로 알고있는사람이 꽤 있는데 그건 2008년 이후 실력이 급 막장화된 탓이 크지 그 전에 팬택시절에는 이윤열 다음으로 믿을만한 카드에다 위메이드 창단 초창기시절엔 [[에결]]에도 자주 나가서 꽤 많이 이겼다. 그리고 안기효만큼 스타리그 16강 8강 많이 찍어본 프로토스선수는 명예의전당에 들어간 프로토스 선수들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여담으로 바둑계에서 안기효와 비슷한 케이스인 바둑기사는 [[서능욱]]이 있다. 이쪽은 각종 기전이나 이벤트전에서 준우승기록이 너무 많은지라 안기효보다는 [[홍진호]]에 더 가깝지만... 서능욱 역시 국내 바둑대회 예선전에서 당시 최강자였던 [[이창호]]를 꺾는 등 이벤트전이나 속기전, 예선전같은 2부리그에서는 안기효만큼 엄청나게 두각을 보인 기사다.
개인리그에서는 16강 ~ 8강을 왔다갔다했지만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 팬택 EX 팀에서는 [[심소명]]과 더불어 [[이윤열]] 다음가는 2, 3번째 카드로 손꼽혔다. [[심소명]]과 팀플을 하면 '안심'조합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한때 양대 PC방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EVER 스타리그 2007에서는 챌린지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4번시드를 확보했다. 하지만 [[위메이드 폭스]]로 재창단된 후엔 새로운 신인들이 자리를 차지해 점점 팀 내에서의 비중이 떨어졌다.[* 2007년 후기리그까지 잘 해주다가 2008시즌부터 [[박세정]]이 세로운 프로토스 에이스로 등극하게 된다.]
08~09년 성적은 많이 아쉽다. 같은 팀 [[이윤열]]이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에서 '''비현역''' [[강민]]과 [[박용욱]]을 상대로 접전을 펼치자 [[스갤]]러들은 하나같이 '''안기효 대신 [[강민]], [[박용욱]] 데려와라!'''를 외칠 정도...
[[위메이드 폭스]]팀이 별로 인재가 없어서 그랬는지(...) 프로리그에 가끔씩 얼굴을 비췄다. 근데 매번 [[OME]]급 경기를 선보이고 져버렸다.(...) 팀 에이스 자리도 나중엔 [[박세정]] 차지가 됐다.
[[이영한]]의 말로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자주 해줬다고 한다.
중반부 소수질럿, 드라군, 리버 올인이라는 전성기 시절 자주 보여줬다고 [[강민]]과 [[박용욱]]이 얘기해주는 깜짝 전략으로 [[김성대]]를 훅가게 할 줄 알았으나... OME급 컨트롤로 커세어와 리버를 헌납. 자신이 훅 갔다. ~~'''리버 : "아 ㅅㅂ 김씨 아니고 찹씨잖아 그런데 왜?!"'''~~
당시 경기력이 너무 좋지 않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경험많은 게이머이고 전략 짜는 능력이 탁월하여 공군의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찹교를 지켜보자. 사실상 [[박대경]] 감독 및 팀원들은 운영 및 빌드를 위해서 플레잉코치를 뽑은 것 같다... 라고 할 수 있을 듯. 선수로서는 최근 트렌드를 볼때 경기가 굉장히 복잡한 데다가 다양한 유닛들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손 느리고 컨트롤이 별로 좋지 않은 안기효가 트렌드를 따라가기에는 힘들 듯 하다.
이후에는 왠지 [[김택용]]같은 에이스들과의 경기만 치르고 있다. 이건 거의 논개수준이며 이긴 적은 없다. [[공군 ACE]]에서 빌드셔틀 + 플레잉코치로 뛰고 있는 듯. 승자 인터뷰를 보면 연습을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승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먹튀라 불리며 까이던 [[차재욱]]과는 다르게 팬들도 나름 안기효를 인정하는 분위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차재욱]]과는 다르게 기대치가 낮았고,(...) 딱히 인성면에서 비난받을 점이 없었던 것[* 차재욱은 과거 자이언트 킬러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네임밸류가 높은 게이머를 잘 잡았던지라 기대하는 이들이 어느정도 있었고 X밥발언으로 인성면에서 꽤 까였다.]과 10-11시즌 공군의 무서운 기세가 본인의 장단점(판을 잘 짜지만 피지컬 부족)을 공군의 선수들이 커버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이 공군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11년 3월 20일 프로리그에서 [[하이트 엔투스]]의 토스 에이스 [[장윤철]]을 상대로 자신의 특기인 전략으로 승리를 거뒀다. 무려 782일 만의 승리였다! ㅠㅠ ~~그리고 감동의 [[0승 클럽]]의 탈퇴.~~ 그리고 여기서 이기기 위해서 안기효는 [[장윤철]]의 VOD를 모두 보고 [[장윤철]]의 스타일을 파악하여 거기에 맞춰 다크템플러를 배제하는 또 전략가적인 면모를 보였다.
다음 상대는 [[피디팝 MSL]] 우승자 [[신동원]]. 안기효는 빌드에서 유리함을 가져가기 위해 앞마당을 가져갔지만 초반 저글링 난입을 당해 전세가 기울어 패배하고 말았다. 비록 1승에 그쳤지만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해 주었다.
일단 본인도 돌아갈 팀도 없어져버렸으니 해설자를 꿈꾸고 있는 듯.
2012년 9월 4일 안준호로 개명했다. 팬 카페에서 자신의 팬들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는 등 이전 게이머 시절 인연을 맺은 팬들과는 꾸준히 연을 이어갈 생각인 듯 하다. 한편 페이스북에는 '''그동안 프로게이머 안기효로 살았던 과거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나는 이제 안준호다. 가슴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열심히 살며 찾아다녀보겠다. 마음속으로 작은 응원 보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사는 안준호가 되겠다'''란 글을 남기면서 새로운 길을 갈 것임을 천명했다.
- 안지만 . . . . 31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6년]] [[7월 14일]] <br /> [[포항야구장|포항]]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구원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전체 4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뒤진 7회말 [[양현종]]으로부터 무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삼진 1개를 잡아낸 후 뒤따른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냈고, 8회에도 등판하여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이때 위기 상황에서 등판할 시 자주 나오는 기합소리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고, 이 경기를 통해 팬들로부터 '안순신'이라는 별명을 받았으며, 결승전 MVP로 선정되었다.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 안순신 -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결승전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7회말 무사 1, 3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우승에 기여하자 나라를 구했다며 [[이순신]] 장군에게 빗대어 지어진 별명이다.
결국 지인의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 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 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68&aid=00002349</ref> 검찰은 수익금을 분배 약정을 했다는 점에서 안지만을 공범으로 판단했는데, 그나마 재판부에서 직접적으로 사이트 운영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은 데다 그동안 이로 인해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며 손해를 받은 점을 참작해 집행 유예 처분이 내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지만은 항소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035460</ref> 안지만의 항소로 재판이 장기화되는 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부도 안지만을 도박 사이트의 공범으로 판단했기 때문에<ref>그동안 법원 판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을 댄 사람도 공범으로 인정해 왔다.</ref> 향후 야구계 복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승리 투수|승<br /><br />리]]!![[패전 투수|패<br /><br />전]]!![[승률|승<br /><br />률]]!![[평균 자책점|평<br />자<br />책]]!!출<br /><br />장!![[선발투수|선<br /><br />발]]!![[완투|완<br /><br />투]]!![[완봉|완<br /><br />봉]]!![[세이브 (야구)|세<br />이<br />브]]!![[홀드 (야구)|홀<br /><br />드]]!![[이닝|이<br /><br />닝]]!![[안타|피<br />안<br />타]]!![[홈런|피<br />홈<br />런]]!![[볼넷|볼<br /><br />넷]]!![[고의 사구|고<br /><br />4]]!![[삼진 (야구)|탈<br />삼<br />진]]!![[몸에 맞는 볼|몸<br /><br />맞]]!![[보크|보<br /><br />크]]!![[폭투|폭<br /><br />투]]!![[실점|실<br /><br />점]]!![[자책점|자<br /><br />책]]!![[타자 (야구)|타<br />자<br />수]]!![[WHIP|W<br />H<br />I<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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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영덕군 . . . . 31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F781F3> {{{#FFFFFF '''군수'''}}} ||<bgcolor=#F8E0F7> [[이희진(정치인)|이희진]]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1><|3><bgcolor=#F781F3> {{{#FFFFFF '''군의회'''}}} ||<:><bgcolor=#C9151E>'''[[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5석}}}
||<bgcolor=#F781F3> {{{#FFFFFF '''도의원'''}}} ||<bgcolor=#F8E0F7> 조주홍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bgcolor=#F781F3> {{{#FFFFFF '''국회의원'''}}} ||<bgcolor=#F8E0F7>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br][[강석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2016년]] 12월 [[당진영덕고속도로]]의 잔여구간인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영덕읍과 강구면 중간 쯤에 [[영덕IC]]가 개설되었다. 영덕군은 고속도로 개통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수도권-충청권-전라권에서도 운행 시간이 단축돼어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http://www.gyotong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229|#]]
본래 독자적이었던 2개의 지역이 합쳐진 곳이라서 북쪽의 영해면 소재지인 성내리 지역도 꽤 규모가 있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영해에도 따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고, 영덕과 영해를 오가는 버스는 10~30분 간격으로 다닌다. 영덕보다는 떨어지지만 영해를 거쳐가거나 종착지로 삼는 버스도 꽤 있는 편이다.
휴양림으로는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좋아서 인기가 좋다. 한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가기 힘들 정도.
||8||<:>사립 ||영덕여자중학교 ||영덕읍 영덕로 206||
||4||<:>사립||영덕여자고등학교||영덕읍 영덕로 206||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C9151E '''영양·영덕[br]·봉화·울진'''[* 지역구 국회의원 : [[강석호]]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3선)]}}} ||<:>16.72%||<:><bgcolor=#C9151E>{{{#FFFFFF 59.73%}}}||<:>13.29%||<:>5.65%||<:>3.33%||<:>{{{#808080 ▼43.01}}}||<:> 73.48 ||
||<:><tablealign=center><bgcolor=#1870B9><-6> {{{#FFFFFF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bgcolor=#C9151E><-5> {{{#FFFFFF '''새누리당→자유한국당'''}}} ||
|| [[황병우]]/3선[br][[민주정의당]] || [[김찬우]]/재선[br][[민주자유당]] || 김찬우/3선 [br] 신한국당 || 김찬우/4선 [br] 한나라당 || [[김광원]]/3선 [br] 한나라당 || [[강석호]]/초선 [br] 한나라당 || 강석호/재선 [br] 새누리당 || 강석호/3선 [br] 새누리당 ||
'''TK는 물론 대한민국에서 [[군위군]], [[의성군]]과 쌍벽을 이루는 보수성향이 강한, 자유한국당의 텃밭 중의 텃밭'''
보수 성향 정당의 지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상북도에서도 보수 정당 지지율이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전국에서 [[자유한국당]] (구 새누리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가 여기서 '''84%'''를 득표해서 앞섰고, 또다른 보수 후보인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표가 무려 '''90%'''에 달했다. 2012년 말의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무려 '''87.11%'''를 득표해 '''대구경북권 2위이자 전국에서 2위'''[* 근소한 차이로 [[군위군]]이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경상북도에서의 박근혜 후보 평균 득표율(80.82%)보다 무려 6.29%나 높고, 경북에서 가장 낮은 [[영주시]]와는 9.14%나 차이가 날 정도로 매우 압도적인 수치이다. 이윽고 열린 2014년 제 6회 지방선거에서도 [[김관용]] 새누리 경북도지사 후보의 득표율이 의성에 이은 2위를 차지했고[* 의성도 경북 평균보다 6~7% 높은,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수 정당 강세지역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대 총선]]에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새누리당 득표율이 70%를 넘겨(70.83%)''' 경북 평균(58.11%)보다 무려 12.72%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평균(33.50%)의 무려 '''2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태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권신찬 :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창시자. 이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목사였다. 병곡면 출신.
* [[이색]] : 고려 말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호는 목은(牧隱).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또는 도은(陶隱) [[이숭인]])과 함께 고려 말 3은(三隱)이라 불렸다.
* [[이현일(조선)|이현일]] : 조선중기의 유학자이자 문신,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아들.
- 원피스/861화 . . . . 31회 일치
* 다과회가 시작되는 홀 케이크 성의 옥상. 괴총 비트는 다과회장을 훔쳐보면서 명성이 자자한 괴물 뿐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 어떤 게스트가 마더 카르멜에 대해 묻자 빅맘은 불쾌해하며 패왕색 패기를 뿜어낸다.
* 벳지의 밑준비는 완료. [[시저 크라운]]도 제 위치에서 대기 중. 그러나 [[몽키 D. 루피]]의 밀집모자 일당은 숙면 중이다.
* 벳지는 루피 일행을 못 미더워해서 자신도 회장으로 진입하려고 준비한다.
* 비트는 게스트들도 그렇지만 빅맘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라 놀란다. 우측 상단은 장남 "캔디 대신" [[샬롯 페로스페로]], 좌측 상단은 장녀 "후르츠 대신" [[샬롯 콩포트]], 우측 하단은 차남 "장성" [[샬롯 카타쿠리]], 하단 가운데 14녀 "장성" [[샬롯 스무디]], 좌측 하단 3남 [[샬롯 다이후쿠]]와 4남 [[샬롯 오븐]]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결집했다. 비트는 자기도 모르게 "동료일 때는 든든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고 말하는데, 그 "적"이란 표현을 대문이 놓치지 않고 듣는다.
주위의 게스트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 할머니의 사진을 자기 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칭찬한다. 어떤 남자가 "마더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자 빅맘은 거기에 맞장구치며 "마더는 세상의 빛"이라고 극찬한다.
* 그런데 다과회에 처음 참가한 게스트가 경솔한 짓을 저지른다. 빅맘에게 "마더 카르멜이 당신과 어떤 관계냐"고 묻고 만 것이다. 빅맘은 대번에 얼굴색을 바꾸며 그 남자에게 패왕색 패기를 쏘아보낸다.
* 이미 경험이 많은 게스트들은 그 얼간이를 대충 치워버리고 자신들이 가져온 선물을 펼쳐놓는다. 그걸 보고 빅맘은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 대문이 열리며 요리사들이 밖으로 나온다. 이들도 위장한 벳지의 부하다. 이들은 다과회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전부 봉쇄하고 "뿔 전보벌레"를 사용해 전보벌레를 이용한 통신도 차단했다. 벳지는 만족해하며 이들에게 원래 옷으로 갈아입게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 속에 숨겨둔 [[시저 크라운]]을 불러낸다. 시저는 계획대로 거대한 거울을 들고 대기 중이다. 시저는 벳지가 자신을 본명으로 부르는 것에도 짜증을 내고 회장 안에 있는 게스트들도 "세계의 쓰레기들"이라며 멸시한다. 벳지는 "너도 쓰레기"라고 대꾸해준 뒤 거울을 근처에 숨겨두라고 지시한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대문이 심상치 않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시저 크라운까지 동행하고 있는걸 보고 벳지가 뭔가 꾸미고 있다고 직감하는데, 아쉽게도 벳지의 눈치가 더 빨랐다. 그가 눈짓하자 부하가 나서서 대문의 얼굴 부분을 도려내 버린다. 이제 이 문은 평범한 "문"이다.
* 예식까지 30분이 남았지만 벳지가 확인해 보니 "미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시저처럼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의 몸 속에 숨어 있다. 벳지가 들여다 보니 [[징베]]를 제외하곤 곯아 떨어진 상태. 벳지가 준비는 어쨌냐고 호통을 친다. 징베는 상륙 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냅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10분 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고 장담한다. 벳지는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지 "걸림돌이 되면 바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징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이른다.
밖으로 나온 벳지는 투덜거리면서 시저에게도 자기 몸으로 들어와 있으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루피 일행이 못미더워서 그런지 자기도 직접 회장 안으로 돌입하겠다고 하는데.
상디는 이런건 당연히 연기라며 자기 자신에게 강조한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혹시 정말로 꿈을 꾼게 아닐까"라며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는 단계까지 가버린다. 상디는 정신줄을 잡고 있으려고 아무 말이나 한다. "맹세의 키스"를 할 때 사람들 눈도 있으니 이마에 해주면 어떻겠냐고 하자 푸딩은 한껏 귀여운 척하며 "부부가 되는 거니까 당연히 입술에"라고 대답한다. 거기에 또 넘어간다. 도저히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무너지는 상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벽에 달려가 부딪히기까지 한다. 상디가 피를 흘리기 시작하자 푸딩도 일단은 걱정하는 시늉을 하지만, 속으로는 질려하며 "얼른 쳐죽이고 싶다"고 이를 간다.
* 다과회는 대성황. 빈스모크 일가는 각자 게스트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빈스모크 저지]]는 빅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세계 정상급 게스트들과 대화 중. [[빈스모크 레이쥬]]를 비롯한 형제들은 각자 편한 자리에서 나름대로 시간을 즐기고 있다.
* 이윽고 빵빠레가 울리며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된다. 사회자의 선언에 따라 프로메테우스가 신랑신부를 태운 거대한 찻잔을 이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사회자는 이걸로 제르마와 빅맘 해적단이라는 악의 양가가 이어져 "세계에 악의 꽃이 미친듯이 피어나게 하리라"고 선언한다.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갈채와 환호가 어지럽게 폭발한다. 저지는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며 웃고, 빅맘은 남몰래 그런 저지를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본다.
* 현재까지 많은 비극이 나왔음에도 그 당사자인 상디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 원피스/868화 . . . . 31회 일치
* 또다른 목격자도 있었는데 인근에서 해적을 은퇴하고 요리사로 지내던 [[슈트로이젠]]이었다. 모든 것을 식재로 만들 수 있는 "쿡쿡열매" 능력자.
* 슈트로이젠의 꼬임을 받은 빅맘은 카르멜이 가끔 말하던 "어떤 종족이든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평등한 나라"를 이룩하고자 다짐한다.
* 카르멜이 한 말을 잘못 이해해서 모두 자기들만한 몸집으로 커지는 세상을 생각한 것이고, 이걸 이루기 위해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파괴했다.
* 설상가상 [[샬롯 카타쿠리]]가 자신의 떡으로 임시 귀마개를 만들어서 형제들에게 나눠줘 빅맘의 괴성을 극복, 연합군은 순식간에 포위된다.
* 벳지는 궁지에 몰리자 자신의 몸을 거대한 성 "빅 파더"로 바꿔 연합군 전원을 피신시킨다.
* 빅맘 [[샬롯 링링]]의 트라우마가 시작된 63년 전의 "양의 집" 실종 사건. 그녀가 소중하게 여겼던 [[마더 카르멜]]도 양의 집 친구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녀 자신만 모르는 곳으로. [[몽키 D. 루피]]가 깨어진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보여주자 빅맘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대로 과거에 사로잡혔다. 이때를 노리고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카포네 갱 벳지]]. 그리고 본래 이 자리에서 죽기로 되어 있었던 [[상디]]는 역전된 입장으로 그녀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 빅맘은 몰랐지만 그 사건엔 목격자가 있었고 그것도 둘 씩이나 됐다. 그들은 빅맘도 인식하지 못한 부분까지 모든 걸 목격했다. 우선 한 사람은 엘바프의 전사. 그는 양의 집과 카르멜이 신경 쓰여서 보러오던 길에 그 사건을 목격했다. 그 터무니없는 광경이라니. 그는 차마 양의 집에 와보지도 못하고 그 길로 섬을 떠났다. 엘바프로 돌아간 그는 사건의 전모를 전파했고 [[원피스/867화|이전의 사건]]에 더해서 빅맘은 거인족들에겐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 찍혔다.
* 또 한 사람은 그 섬에서 살던 요리사였다. 은퇴한 해적이었던 [[슈트로이젠]]. [[샬롯 푸딩]]의 [[원피스/858화|웨딩케이크]]를 만든 그 요리장이다. 그도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기며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쿡쿡 열매"의 능력자. 이 세상 만물을 모두 식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난 능력자였다. 그는 나무토막을 생햄으로 만들어 먹으며 이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킨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굶어 죽겠지. 슈트로이젠은 그 힘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친 엘바프 전사와는 달리 링링에게 다가갔다. "꿈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 그에게 링링은 경계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슈트로이젠은 "너의 마더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겠다"는 말로 구슬렸고 이 만남이 훗날 빅맘 해적단의 토대가 되었다.
* 빅맘 자신을 제외한 다과회장의 모든 사람이 빅맘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샬롯 카타쿠리]], [[샬롯 스무디]] 등 그녀의 자식들도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탄두가 날아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빈스모크 일가를 해방시킨 [[나미(원피스))|나미]] 일행과 임무를 무사히 수행한 루피 일행,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었던 푸딩까지. 귀를 틀어막고 간신히 그녀의 최후를 지켜봤다.
* 빅맘이 추억하는 카르멜의 기억. 그저 연극이고 위선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는 좋은 보호자였다. 카르멜은 항상 "종족끼리 차별이 없고 다들 같은 눈높이에서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해 말했고, 양의 집을 세운 그 섬에 그런 "꿈의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비록 어렸던 빅맘은 그 뜻을 "다들 나처럼 덩치가 커진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엘바프의 섬 시절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착각이었다. 좌우간 카르멜은 이런 나라를 이야기하고, 이런 나라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 찰 거라고 가르쳤다. 그건 곧 링링의 꿈으로 이어졌다.
슈트로이젠과 마음을 터놓게 된 링링이 처음 그 말을 꺼냈다. "마더가 기뻐해주는 나라"를 만드는 거야 말로 자신의 꿈이라면서. 이게 계기였다. 링링은 얼마 되지 않아서 자신이 카르멜이 썼던 "소울소울 열매"의 능력을 쓸 수 있다는걸 알게 됐다. 슈트로이젠은 그 힘에 이 악마의 열매 능력이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링링이 말하는 꿈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 그리고 이어지는 침략과 약탈의 나날. 여섯 살 링링에게는 어느새 5천만 베리의 현상금이 붙었고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해군은 그녀를 최고의 위험인물로 판단, 위험도가 높아지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혈안이 됐다.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다. 빅맘은 갈 수록 강대해지는 힘으로 여러 나라를 침략했고 거침없이 박살냈다.
>달콤한 과자를 가져와! 그러면 약속해줄게!
이제 그녀의 꿈은 카르멜의 꿈도, 당초 그녀가 가졌던 꿈과도 상관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삶"에 대한 집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없어진, 어떤 의미에선 영원히 하나가 된 카르멜과 그녀의 친구들을 꼭 다시 찾고 자신만큼 크게 만들어서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사황에 오른 지금까지도.
>밀집모자 일당을 용서 못해!
상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절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상태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회장 안을 들여다 보고 음흉하게 웃던 [[시저 크라운]]. 그러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작전이 어찌됐건 자신의 차례는 변하지 않는다. 일행을 탈출시켜야 한다. 설마 탄두를 파괴할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리며 탈출용 대형 거울을 챙겨서 날아오른다. 그가 날아오자 회장에 흩어져 있던 연합군이 재빠르게 집합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탄두를 파괴할 정도로 무식한 압력이 그대로 몰아쳐서 거울까지 깨뜨렸다.
벳지가 주문과 함께 손을 놀리자 그의 몸이 거대해졌다. 거성의 모습으로 변한 벳지. "빅 파더" 모드. 그는 우선 자신의 몸으로 만든 성 안으로 일행을 피신시킨다.
* '악마의 열매'의 능력을 해당 능력자를 '먹어서'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 증명됨에 따라, 과거 정상결전 당시 검은 수염이 흰수염의 힘을 빼앗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하던 가설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 원피스/873화 . . . . 31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은 홀 케이크 성 붕괴 사고를 수습하는 한편 추격대를 파견해 밀집모자 해적단과 파이어탱크 해적단을 추격 중.
* 상황을 맞춰본 간부들은 반역자들의 음모를 거의 다 밝혀내지만 어째서 성이 붕괴했는지,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 [[샬롯 카타쿠리]]는 [[몽키 D. 루피]]가 장차 빅맘 [[샬롯 링링]]에 위협이 될지 모른다 보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목을 따겠다 다짐한다.
* [[샬롯 페로스페로]]가 "케이크를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고 거짓말해 빅맘이 혹하나, 그녀는 "거짓말이라면 네 목숨을 가져간다"고 엄포를 놓는다.
* 빅맘이 루피를 쫓아가고 난 뒤 페로스페로는 루피가 어찌되든 자신은 확실히 죽는다고 절망하는데, [[샬롯 푸딩]]이 구원의 손을 내민다.
* 망가진 케이크는 "초콜릿 시폰 케이크", 초콜릿 장인인 자신과 시폰 케이크 장인인 [[샬롯 시폰]]이 합작하면 충분히 재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한편 [[나미(원피스)|나미]]의 주도로 유혹의 숲을 탈출경로로 정한 밀집모자 일당은 가던 도중 킹 바움이 "레이드 트리"의 간호를 받으며 쉬는걸 발견한다.
* 빅맘해적단의 기사회생. 옥갑의 폭발로 촉발된 홀 케이크 성 붕괴로 까딱하면 성과 스위트 시티가 함께 괴멸할 뻔 했으나 총요리장 [[슈트로이젠]]의 능력으로 성 자체를 케이크로 변화시키셔 가까스로 인명피해를 면했다. 그러나 성은 파괴되었고 어마어마한 케이크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느라 어수선하다.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자기들이 아는 정보를 공유하며 다과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밀집모자 해적단과 파이어 탱크 해적단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전모를 밝혔다. 다과회, 결혼식이 엉망이 됐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카포네 갱 벳지]]는 [[몽키 D. 루피]]와 손잡고 빅맘을 배신, 오히려 [[샬롯 링링]] 암살을 도모했다.
[[샬롯 몬도르]]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타마고 남작]]이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벳지의 실력만 보고 좋게 평가하고 있었으나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샬롯가의 장녀 [[샬롯 콩포트]]도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결국 어떻게 말을 맞춰봐도 성을 붕괴시킨 폭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잘 생각해 보면 반역자들 짓은 아니다. 자기들도 성내에 있었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동반자살 밖에 안 된다. [[샬롯 오븐]]은 그렇게 판단한다. 여전히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 하지만 풀린 수수깨끼도 있다. 왜 다과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성 안의 간부들은 까맣게 몰랐을까? 그건 벳지의 공작이었다. 성내로 연결되는 연락라인이 전부 불통 상태였던 것. 마침 짚이는 것도 하나 더 있다. 다과회 개시 직전 동쪽 해안을 점거 중이던 태양 해적단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 소식은 [[페콤즈]]가 직접 전했다. 용캐 성으로 돌아온 페콤즈가 그들이 자기만 해안에 남겨놓고 짐까지 빼앗아 가버렸다고 성을 냈다. 이야기를 맞춰보니 그건 [[징베]]가 안전하게 빅맘 산하를 떠나 밀집모자 일행과 합류하기 위한 조치였다. 빅맘의 분노가 어인섬과 태양 해적단에 미칠 걸 우려한 징베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 짓이다. 그래서 한 번은 탈퇴를 취소했다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다시 탈퇴를 확정한 것이다.
* [[샬롯 카타쿠리]]에게 탈출자들, 밀집모자 일당과 파이어탱크 해적단을 추적 중이라는 정보가 도착했다. 그밖에도 별동대가 편성되거 제르마 왕국 측으로 향했다. 카타쿠리는 곧바로 [[샬롯 브륄레]]를 데리고 직접 루피를 뒤쫓기로 한다. 브륄레는 그동안 철저하게 이용 당한 반동으로 밀집모자 일당이라고 하면 이를 가는 판국이다.
* 사고는 뒷수습 중이고 탈출자들은 추격 중, 일이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이변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샬롯 스무디]]가 아연실색해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몬도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스무디는 일단 도망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자초지종을 물을 것도 없었다. 빅맘의 폭주. 또 식탐을 부리고 있다. 그 가차없는 먹부림에 이미 [[샬롯 오페라]]가 희생 당했다. 넋이 나가서 빅맘 손아귀에 인형처럼 들려있다. 케이크를 찾으며 보이는 건 전부 파괴하고 입에 쑤셔박는 빅맘. 괴수가 따로 없다. 분명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된게 세삼 분해서 저럴 것이다. 몬도르가 눈치 빠르게 오페라가 당한 걸 보고 누구도 빅맘 주위에 다가가지 말라고 주의시킨다.
>이럴 수가!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가 버렸어! 할짝!
하지만 페로스페로는 머리가 좋은 만큼 현실적이었다. 스무디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총요리장이 며칠을 들여서 그걸 만들었던가? 여러 나라에서 상납받은 "환상의 식재"도 이젠 없다. 물론 있다 해도 그걸 만들 당사자가 의식불명. 난관은 더 있다. 빅맘은 지금까지 이런 "최고의 웨딩 케이크"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빅맘이 고대에 고대를 거듭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올라갔고, 이제 그게 다시는 못 먹데 된 셈이다.
카타쿠리도 동감이었다. 그는 이 상황의 위험성을 진단한다. 우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 섬은 확실히 사라진다. 그 이후의 사태는 "미지수"의 영역. 예지를 자랑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듣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문다.
[[샬롯 푸딩]]이었다. 샬롯가의 천덕꾸러기. 그녀는 이번 웨딩 케이크가 "초콜릿 시폰 케이크"였고 초콜렛에 관해서는 총요리장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시폰 케이크"라면 [[샬롯 시폰]]이 최고의 장인. 그녀와 언니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오빠들이 정말 가능하겠냐고 입을 모으면서, 그 시폰은 벳지의 부인이고 지금은 배신자라고 말한다. 과연 그녀의 협조가 가능할까? 푸딩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숨겨왔던 세 번째 눈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제 3의 눈을 아름답다고 칭찬했던 푸딩. 누구나 괴물이라 기피했던 그 눈을 칭찬한 대가가 이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욕한 상디와 그 일행을 처리해 준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 뜻모를 말도 덧붙이는데.
* [[나미(원피스)|나미]]는 밀집모자 해적단의 퇴각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사실 징베 등에 타고 있으니 "진두"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도였다. 루피는 나미가 지시를 내리는게 불만이었다. 다들 뛰고 있는데 나미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징베에 올라탔을 뿐인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뛰던 상디는 평소상태로 돌아와 "나미씨는 귀여우니 그래도 된다"고 우겼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캐럿(원피스)|캐럿]], [[쵸파]], 징베는 묵묵히 뛰는 중.
나미는 일행을 루피가 상디를 기다렸던 그 벌판으로 인도했다. 거길 가로질러 유혹의 숲을 돌파하는게 최단 경로. 루피는 그 숲에 또 들어가도 될지 걱정한다. 그런데 전방을 보니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에 탈것으로 애용했던 킹 바움이었다. 그런데 "레이디 트리"라는 여자 나무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상처를 치료하던 차였다. 루피와 나미는 킹 바움을 금방 알아봤다. 물론 킹 바움도 그들 얼굴을 알아봤지만,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반가워하는 관계였다.
- 원피스/875화 . . . . 31회 일치
[[원피스]] 875화. '''여자의 의리'''
* [[브룩]]과 [[쵸파]]는 [[몽키 D. 루피]] 일행과 달리 잠수정을 이용해 써니호에 접근 중. 그런데 가던 도중 수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 인어를 발견한다.
*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끌고 가려고 접근해서 [[몽키 D. 루피]]가 패기로 공격하나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징베가 강물을 이용해 공격하자 간단히 약화된다.
* 추격대 병력이 마침내 일행을 따라잡아 밀집모자 일당을 분산시키려 하나 징베가 일행이 함부러 흩어지지 않게 단속하며 계속 도망친다.
* 시폰은 [[샬롯 로라]]의 은인인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건 쉽지만 그들이 위기일 때야 말로 그 말을 입증해야 하지 않냐며 여자의 의리를 피력한다.
* 푸딩은 마침내 유혹의 숲에서 빠져나오는 밀집모자 일당과 상디를 발견하고 소녀처럼 좋아라 하더니, 갑자기 표변해 "상디 녀석"이라며 사악한 얼굴을 드러낸다.
* [[브룩]]은 [[몽키 D. 루피]] 일행과 다른 루트로 써니 호에 접근 중이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타고온 잠수정. 이번엔 [[쵸파]]가 페드로와 자리를 바꿨다. 이쪽도 루피 일행 못지 않게 힘겨운 여정이었다. 스위트 시티를 덮친 산사태, 아니 케이크 사태가 잠수정을 정박한 "쥬스 강"까지 파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크림 더미에서 잠수정을 파내고 보니 브룩과 쵸파도, 잠수정 내부도 끈적거리는 생크림 투성이. 심지어 키를 미끄럽게 만들어서 브룩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쵸파는 달콤한 생크림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대만족.
운행 중 바깥을 살피던 쵸파가 "인어"를 발견했다고 알렸다. 브룩의 불쾌한 기분을 달래줄 좋은 소식이었으나, 그 인어는 남자. 브룩의 관심이 빠르게 식었다. 쵸파는 그를 좀 더 관찰했는데 잘 보니 낚시 같은 걸 하는 것 같았다. 물 속에서 낚시라? 어쨌든 브룩은 눈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써니호가 가까웠다.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때 캐럿이 익숙한 다리를 발견했다. 거대한 악어와 마주쳤던 그 다리. 하지만 그땐 망가졌던게 멀쩡한 모습이니, 자기들이 아는 거기가 맞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나미는 이 숲은 모든 걸 속일 수 있으니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고 불평했다. [[샬롯 로라]]의 비브르 카드는 이제 무용지물이었다. 빅맘이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징베는 나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먹이"주는 걸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제우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미는 크리마텍트로 작은 뇌운, "웨더 에그"를 꾸준히 생성했다. 제우스는 아직도 일행을 쫓아오며 그녀가 뿌려주는 구름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설사 부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빅맘 곁으로 돌아가게 둬선 안 된다, 그게 징베의 판단이었다.
* 루피는 "태양" 녀석이 다가오자 킹 밤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무장색을 두른 "JET 개틀링"으로 프로메테우스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언뜻 프로메테우스의 몸이 흩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잠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루피는 당황해하며 패기 조차 통하지 않으면 "자연계"보다 성가신 적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다행히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데리고 가는게 우선이어서 그런지 일행에게 반격할 기미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거듭 마마에게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헤롱거리던 제우스도 조금 정신을 차렸다.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단, 마지막으로 맛있는 구름을 원껏 먹고 나서. 부모를 똑닮은 자식.
일행이 다리에 올라서자 징베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생각이 있었다. 그는 일행을 먼저 건너게 하고 자신은 프로메테우스를 요격했다. "창파 소나기". 징베가 강물을 휘감아 프로메테우스에게 퍼부었다. 루피의 공격 조차 아무렇지 않게 씹었던 프로메테우스가 물세례에는 어이없이 쪼그라들었다. 징베는 일행에게 저것이 "응축된 불꽃의 화신"이며 "대화재"가 말을 하고 다니는 거라고 여기라고 말했다. 그러니 다른 건 통하지 않아도 불의 성질을 이용한 공격에는 여지가 없는 것이다.
* 프로메테우스를 쓰러뜨린 걸로 안심하기는 이르다. 빅맘이 지나쳐왔던 추격대 병력이 그녀를 따라잡았다. 그들이 빅맘을 추월해 일행의 후미로 쇄도해왔다. 그 중 호박머리가 다린 허수아비가 긴 몸채를 뻗으며 공격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페드로. 페드로가 공격을 받아내는 동안 다른 병력들도 전개했다. 그 중 연기로 만든 산양 같은 것이 벽을 타고 달려왔다. 징베 바로 뒤로 달리던 캐럿은 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녀석에게 선공을 날렸으나 막히고 만다.
* 제우스가 크리마텍트를 빨대처럼 빨아먹은게 그때였다. 나미가 거절할 틈도 없었다. 제우스는 원액을 빨아먹은 셈인데 그 여파인지 녀석의 덩치가 삽시간에 불어났다. 숲의 상공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래진 제우스. 몸체가 검고 방전이 흘러나오는 초거대 뇌운으로 성장해 버렸다. 나미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놀랐다. 상디가 잽싸게 그녀를 붙들고 뛰었다. 적이 코 앞이라면서. 그 말대로 빅맘과 합세한 추격대의 대병력이 물딜 듯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미는 불현듯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 때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지금 제우스 안에는 크리마텍트로 뿌린 웨더 에그가 가득 차있다. 나미는 일행에게 적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라고 말하고 자신은 크리마텍트를 치켜든다.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굳이 제우스를 복종시키지 않아도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 적당한 거리가 되자 나미가 크리마텍트를 내리쳤다.
그 자리에는 빅맘 해적단만 있는게 아니었다. 잠수정으로 일행을 앞질러온 브룩과 쵸파도 그 광경을 보았다. 잠수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써니호 앞에서 부상했다가 매복한 페로스페로 일당과 딱 마주쳤던 참이었다. 그런 순간에 유혹의 숲에서 일어난 이변. 둘은 숲에 있을 일행을 걱정했다. 빅맘이 한 짓이기 아니긴 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범위의 벼락이라 과연 일행이 무사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페로스페로는 아예 그들이 들으란 듯이 "일행이 죽은 모야이다"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둘에게 이제 어쩔 테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배를 탈취하게 되더라도, 그 배에 태울 일행은 이제 없다. 페로스페로는 큰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지금 그 잠수정으로 달아난다면 둘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휘하의 체스병사들은 활로 브룩과 쵸파를 겨누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해안의 맞은 편, 섬의 정반대편에서 [[샬롯 푸딩]]과 [[샬롯 시폰]] 자매가 마법의 양탄자로 날아오고 있었다. 상공에서 유혹의 숲을 발견한 둘은 제우스가 날뛰는 모습을 보고 과연 루피 일행이 무사할지 장담하지 못했다. 푸딩이 시폰에게 자신이 억지를 부렸다고 사과했다. 시폰이 푸딩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시폰은 괜찮다며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건 오랜만이라고 대답했다. 남편 [[카포네 갱 벳지]]는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시폰은 친자매인 로라를 져버릴 수 없었고, 그들의 은인도 져버릴 수 없었다. 벳지는 위험하고 걱정된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이긴건 그녀였다.
시폰의 말에 벳지는 반박하지 못했다. 여자의 의리. 그리고 사람의 의리. 의리를 지킨다는건 이런게 아니냐고 윙크를 보내는 아내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아내의 결의는 진짜였고 갓난 아들조차 떼어놓고 갈 정도로 단호했다. 그녀는 아들을 부탁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푸딩과 함께 반대편, 남서쪽 해안을 향해 날아갔다.
* 그녀가 결사의 각오로 발휘한 의리가 헛되지 않았다. 비록 그 소감에 대해서 푸딩은 전혀 듣지 않았지만. 푸딩은 밀집모자 일당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결국 발견했다. 그녀가 소녀처럼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 원피스/879화 . . . . 31회 일치
* [[밀집모자 일당]]은 해안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희생 때문에 침통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 [[샬롯 페로스페로]]는 페드로의 자폭으로 죽진 않았지만 오른팔을 잃었다. 이제 "원한"까지 생긴 그는 바다 위에 사탕길을 만들어 빅맘의 진격을 돕고 있다.
* 카타쿠리는 능력의 특성 상 루피가 되는 걸 자신이 못할 리 없고 실력도 한 수 위라 자신한다. 그 자신대로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며 불리한 싸움을 계속한다.
써니호의 키잡이로 흔들림없이 일하는 중. [[밀집모자 일당]]이 해안을 빠져나오고도 페드로의 희생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자 강하게 질타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브룩]]에게 가장 페드로와 친했으면서 매정하다고 항의받기도 했지만 정말로 페드로를 희생시킨게 아무렇지 않아서 그런건 아니었다. 페드로가 일행을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희생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만들어준 기회를 헛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호통 덕에 침울해진 일행이 다시 탈출작전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빅맘 [[샬롯 링링]]이 그의 예상보다도 훨신 빠르게 추격해 오자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화에서 페드로가 자폭하면서 [[샬롯 페로스페로]]가 걸어놓았던 사탕 코팅이 벗겨진다. 좀 어리둥절한 상태였던 듯 한데, 나중에 전말을 전해듣고 오열하며 자책한다. 자기가 더 강했더라면 페드로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브룩을 따라서 [[쵸파]], [[캐럿(원피스)|캐럿]]도 통곡하면서 써니호는 탈출하던 것도 잊다시피 했는데 [[징베]]가 호통을 쳐서 작업에 복귀 시킨다. 처음에는 징베가 너무 매정하게 군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가 페드로의 의지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줄 깨닫고 탈출작업으로 복귀한다. 쿠드 버스트로 소모된 콜라를 채우러 가는 중.
페드로와 개인적인 추억도 많았던 만큼 쉽게 충격을 떨쳐내지 못한다. 일행이 작업에 복귀한 뒤에도 쉽게 울음을 그치진 못했지만 망루로 올라가 경계를 서면서 할 일을 다 한다. 그런데 경계에 들어가자 마자 빅맘이 함대를 끌고 '''바다를 걸어서''' 오는 것을 목격하고 경악한다. 그게 [[샬롯 페로스페로]]의 짓인걸 알고는 분한 듯이 이를 간다.
일행처럼 통곡을 하진 않았지만 울음을 삭히는 모습을 보였다. 징베의 다그침을 듣고 쵸파가 일을 달라고 소리치자 금방 정신을 차리고 날씨를 파악하고 배의 방향을 우측으로 돌리게 한다.
밀집모자 일당이 충격을 이겨낸 직후에 등장. 여전히 있지도 않은 케이크를 찾아 폭주하고 있다. 경악스럽게도 바다위를 그냥 걸어서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만든 발판을 딛고 걸어오는 거였다. 페로스페로의 말로는 원래 빅맘의 이동은 거의 전적으로 "제우스"가 담당하고 있었던 듯. 정작 그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랑 사이 좋게 낙오해서 홀케이크 아일랜드 서쪽 해안에 있다. 일행이 어디로 간지도 몰라서 오도가도 못하는 중. 프로메테우스는 힘을 너무 써서 배 고파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고 징징거린다.
지난 회에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자폭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실 무사히 견디진 못했다. 오른팔을 잃어버려서 사탕으로 대체 중. 자신은 팔 정도는 사탕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뜨거운 홍차를 마실 때마다 손이 찐득하게 녹아내리는걸 봐야 한다"고 말하는걸 보면 엄청 분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젠 웨딩 케이크고 뭐고 그냥 밀집모자 일당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서 추격하는 거라고 단언. 빅맘의 모자 나폴레옹에 타고 있는데 나폴레옹 상대로 "평생 페드로의 얼굴이 떠오를 거다"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제우스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빅맘의의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사탕 바다소"라는 기술인데 바다 밑에서 거대한 사탕 산을 솟아오르게 해 빅맘이 밟고 갈 발판을 만드는 중이다. 일단 페드로가 죽었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을 괴롭히다 죽이는 걸로 분풀이하려고 한다.
[[몽키 D. 루피]]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 중. 부하들이 일기토를 구경하는 중인데 "삼장성 최강은 카타쿠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루피가 손도 발도 못 써보고 발리는 중. 루피가 사용하는 기술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더 강하게 어레인지해서 되돌려주고 있다. 자기입으로 "고무가 되는게 내가 안 될릭 없다"고 주장 중. 루피가 레드호크 개틀링을 쓰면 자신은 팔을 늘려서 천수관음같은 모습으로 막아내고 그 많은 팔로 러쉬를 가해 되갚아주는 식으로 싸우고 있다. 견문색 패기로 루피의 움직임을 완전히 읽고 있어서 루피가 "체"로 모습을 감춰도 전혀 소용이 없다. 결국 루피의 필살기격인 엘리펀트 건까지 더 크고 아름답게 배껴서 밟아버린다.
아직도 쇼콜라 타운으로 가는 중. [[샬롯 푸딩]]하고 관계가 완전히 역전돼서 상디는 평범하게 대하는게 푸딩이 전전긍긍한다. 가정 도중 [[샬롯 시폰]]이 원래 [[샬롯 로라]]가 초콜릿 대신이었고 푸딩이 후임이지만, 푸딩이 거부해서 초콜릿 대신 자리는 비어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래서 스릴러 바크에서 로라가 뛰어난 초콜릿 만들기 실력을 보였던걸 납득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겨우 쇼콜라 타운에 도착. 작업을 시작한다.
츤데레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서 상디랑 같이 앉아있지도 못하게 됐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상디와 앉아 있으면 "부부 사이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상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사악한 얼굴과 뿅간 얼굴을 오가며 바쁜 츤데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양탄자 밑에 몸을 말고 숨어있는 중. 이동 중에 시폰이 밝히기론 로라가 사라진 뒤 초콜릿 대신 자리가 비었고 푸딩이 후임이 돼야 했지만 푸딩의 의사로 무산되었음이 밝혀진다. 푸딩은 로라야 말로 진짜 초콜릿 대신 자격이 있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무슨 일인지 바다로 나와있다. 배로 이동 중. 그런데 상공으로 시폰을 태운 양탄자가 날아가는 걸 보고 딸을 알아본다. 파운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시폰 일행은 바쁜 탓에 모르고 지나쳐간다.
모치모치 열매가 고무고무 열매에 상하드립이 가능한지 여부는 논란 중. 일단 자연계라고 나왔기 때문에 방어적인 면에선 고무고무를 월등히 능가하는게 맞다. 하지만 고무처럼 탄력을 이용한 공격이나 기어 4 바운스 맨 같은 기술을 따라할 수 있는지는 의문. 애초에 모치모치 열매는 떡처럼 늘어지고 달라붙는 능력을 컨셉으로 한 듯 한데 이제와서 고무능력과 동류라고 주장하는게 무리수라는 주장도 있다.
카타쿠리가 루피를 너무 압도하면서 다시 밸런스 붕괴 논란도 생겼다. 현재의 루피는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와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최소 칠무해급으로 평가되는데 그 루피가 빅맘의 삼장성에게 확연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황이 거느린 간부급이 칠무해 이상의 실력자인 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흰수염 해적단의 [[죠즈]]나 [[마르코(원피스)|마르코]], [[에이스(원피스)|에이스]] 등도 칠무해와 비슷한 등급이긴 했지만 그 이상이라고 평가되지는 않았다. 빅맘 자체의 강함도 흰수염을 능가하는 걸로 묘사되기 때문에 사황과 칠무해, 해군간의 밸런스는 물론 사황 안에서의 밸런스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 은혼/638화 . . . . 31회 일치
[[은혼]] 638훈. '''건강한 치아는 잇자국도 예쁘다'''
* [[엔죠]] 황자는 진정한 적 [[우츠로(은혼)|우츠로]]가 공멸을 노리고 벌이는 음모라는걸 간파하나 복수에 눈이 멀어 히노카구츠치 발사를 서두른다.
* 우츠로가 당긴 방아쇠로 지구는 1초 뒤라도 사라질 판, [[사카타 긴토키]]는 "우주가 사라져도 잇자국이 남을 만큼" 물어 뜯을 각오로 우츠로에게 달려든다.
>지구 자체가...!
* 허둥대던 해방군의 지상부대는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모든 상황을 대기권 밖에서 지켜보던 해방군 본대가 지구 지표의 고에너지 반응을 감지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이 양상은 그들이 한 번 씩 겪었던 "그 일"을 연상시킨다. 보고를 받는 [[엔죠]] 황자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 해방군 본대는 [[천도중]]이 해방군을 전멸시키고자 본진인 지구 조차 버리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추측한다. 틀린 말이다. 엔죠 황자는 안다. 이미 천도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부하들에게 그걸 묻고 있을 순 없다. 천도중의 죽음을 숨기고 이 전쟁을 아득바득 고집한 이유가 사라지니까. 엔죠 황자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자신들의 모성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는지 자문하길 되풀이했다. 한 가지가 걸린다. 저 현상은 모성에서 일어난 것과 완전히 같은건 아니라는 것. 단 번에 대폭발을 일으켰던 모성과 지표 전역이 들끓듯이 연쇄폭발하는 저 현상은 다르다. 애초에 천도중은 죽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천도중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의 모성을 파괴하고 지금 지구를 파괴하려는 자. 그리고 천도중을 죽인 자. 이 전쟁을 계속하는 자.
>자신들이 범한 커다란 과오를
* 긴토키는 발 밑을 울리는 심상치 않은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우츠로에게 외친다. 우츠로는 다소 친절할 정도로 자세하게 대답했다. 우선 다행한 점은 [[히라가 겐가이]]의 나노머신이 터미널 지하 깊숙한 곳까진 미처 닿지 않았다는 것. 거기서 우츠로가 계획한 최후의 계획이 무사히 시작했다. 그는 손에 넣은 "열쇠"를 이용해 터미널 지하의 "문"을 열엇다. 문이란 "용혈"을 봉하고 있는 터미널의 중추 장치다. 아르타나의 흐름이 "용맥"이며 그 원천이 "용혈". 그걸 제어하기 위해 설치된 "문"을 잘만 다룬다면 단숨해 폭주시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만한 대폭발을 일으킬 수도, 지금처럼 혈관 각지를 부수어 폭주를 확산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우츠로는 가부키쵸 연합군 따윈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 긴토키와 그들은 단지 우츠로의 손 위에서 춤을 췄을 뿐이다.
* 아쉽게도 이 막대한 에너지의 폭주도 우츠로를 죽일 수는 없다. 그 아르타나의 화신이 자신인 이상 폭주를 하거나 말거나 무의미하다. 지구 그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우주적 규모의 전쟁을 일으켜 해방군의 화력을 지구로 집중시킨다, 그 힘이 자신에게 영원한 죽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미치광이 동반자살.
* 아르타나의 비정상적인 집중은 해방군 본대에서도 관찰했다. 엔죠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진 걸 확인했다. 우츠로는 천연덕스럽게도 "지구를 파괴할 힘"을 준 답례로 "이쪽의 선물"도 준비한 거라 말한다. 전 지구의 힘을 긁어 모아서 선물을 보낼 거다.
해결사들이 질겁한 표정으로 우츠로를 바라보듯, 해방군도 마찬가지. 지구가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을 아르타나의 힘으로 영격하려 한다 생각한다. 맞는 추리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이 부딪혀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자신들도 몰랐다. 점점 어두워지는 엔죠 황자의 표정. 이제와서 초조해진 걸까? 하지만 우츠로는 그들이 발을 빼진 못할 거라고 예견한다. 이미 해방군은 자기들 자신의 과오로 다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미 그들이 짊어질 만한 크기의 업보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죗값과 증오를 적 한 명에게 맡기고 그걸 지워버려야 할 일이다. 적어도 엔죠 황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아픔도 발자국도 사라질 겁니다.
>우주가 사라져도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너무 멀리까지 온 스승과 제자의 격돌. 그 위로 피어오르는 섬광. 그들이 서있던 일대가 아르타나의 빛 속으로 사라진다.
* 그리고 또 한 마리의 해결사가 이 위기를, 지구와 동료들의 위기를 감지한다. [[사다하루]]는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를 경호하고 있었다.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는 어떤 육감이었는지 에도의 모처로 소요 공주를 피신시켜 두었다. 지금 위치에서도 에도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이 똑똑히 보였다. 소요 공주가 사색이 되어 마츠다이라에게 저 빛은 무엇이고 에도 사람들은 어찌되는 건지 물었다. 담배를 문 마츠다이라는 대답을 피하며 그녀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한다. 그것을 노부메가 무의미한 짓이라 말한다. 이 지구 위에 안전한 곳이 있을리가 있나? 그녀는 솔직히 말하라며 그들의 별이 1초 뒤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금은 멀리서 당장의 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 여기서 저곳의 일행이 무사하기까지 바란다면 과욕이다. 말을 잊는 소요 공주.
* 가구라가 말했다. 사다하루는 해결사를 따라가려 했지만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소요 공주와 노부메의 호위를 맡겼다. 그녀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거라도 좋다 해. 제각각 각자의 일을 하는 거다해.
- 은혼/643화 . . . . 31회 일치
* [[엔죠]] 황자는 이것을 곧 진압될 무의미한 저항으로 생각하지만, 모함의 상황을 파악해보자 그게 아니라는게 드러난다.
* [[귀병대]]가 적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동안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착실히 적들을 제압, 엔죠 황자가 있는 통제실까지 진격해왔다.
* 다츠마의 탄환이 엔죠 황자의 심장을 꿰뚫고 가츠라, 주작 제독,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가 승리를 확신하며 통제실의 병력을 일소한다.
* 신스케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위해 흘릴 눈물마저 잃었고, 단지 자신의 피만큼은 그들을 위해 흘리겠다 다짐한다.
*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과 검을 바쳐, 신스케가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한다.
* [[키지마 마타코]]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통로를 한 없이 달렸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통로였다. 하지만 마타코는 그런 의문을 접어둔 채 달렸다. 그저 쫓아갔다. [[다카스기 신스케]]라는 남자를.
* 거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역시 신스케를 쫓는 남자가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는 생사를 넘은 책략으로 추격대의 발을 묶었다. 적들은 불사신 같은 저력에 경이를 표했다. 그러나 반사이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감췄던 최후의 수가 드러나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사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치있는 남자를 쫓고 있다고 믿었다.
* 여기에 또 한 명, 신스케를 쫓는 남자가 있었다. [[다케치 헨페이타]]는 부하들과 함께 파도를 방불케하는 적의 탄막을 넘었다. 모든 것은 히노카구츠치를 멈추기 위해. 그러기 위한 15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그들에게 남은 수단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헨페이타도 부하들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도 오래 전부터 한 사람을 쫓고 있었다. 이제와서 뒤쳐질 수는 없었다.
멀다면 먼 거리에 있던 두 남자. 끝까지 신스케를 따랐던 그들의 마지막 말은 한결 같았다.
같은 시각에 각기 다른 자리에서 들려오는 두 폭음.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제어 시스템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두 소리는 크고 분명하게 울렸다. 마타코는 그들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스케도 그랬을 것이다. 말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그에게, 마타코가 뭔가 말하려는 듯 이름을 부르다가 말았다. 사실, 그런게 필요없다는건 그녀도 잘 알았다.
* 제어 시스템을 호위하던 병력들은 난데없는 폭발이 일어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제 3게이트였다. 방금 전 단 한 명의 적을 막으려고 부대 하나가 간 방향이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로 부대는 전멸, 게이트마저 파괴됐다. 남은 부대들은 신속하게 화제를 진압하고 방어를 강화했다. 동시에 제어 시스템에 방어인력을 충원했다. 총알 하나라도 잘못 맞았다간 이 배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증원병력이 막 도착했을 때였다. 신스케와 마타코가 제 3 게이트와 제어 시스템으로 양단된 병력 위로 뛰어내렸다.
* 히노카구츠치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파괴됐다.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이 정지되고 선내의 에너지 회로도 하나둘 정지. 긴급 복구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선내가 휴면에 들어갔다. [[엔죠]] 황다는 별다른 당황없이 선내에서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려던 자들의 현황을 확인한다. 허나 에너지 상태가 저렇게 된데다 대부분의 구역이 일시정전 상태가 되면서 파악이 불가능했다. 복구까지 최대 15분. 그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엔죠 황자는 그 많은 인원이 목숨을 버려서 고작 15분을 벌었다고 비웃었다. "가느다란 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받을 이도 없다. 그는 부하들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곧 모니터가 복구됐다. 순조로웠다. 모니터는 선내의 각 구역을 비췄고 거기엔 아무 깨끗하게 비어있는 통로나 괴멸한 적들의 시체가 쌓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았다. 대신 통신이 끊어진 몇 분 만에 각 구역에 있던 방어부대가 도륙난 모습이 비췄다. 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이 채 파악되지도 않았는데, 통제실의 출입구에서 폭발이 일었다. 거기에 대답이 도착해 있었다.
* [[사카모토 다츠마]]. 이 남자가 돌아왔다. 이번엔 실없는 농담도 웃음기도 없다. 그가 이번에 엔죠 황자에게 가져온 것은 뜨거운 탄환이었다.
* 다츠마의 총구가 불을 뿜고 총알이 통제실을 가로질렀다. 총알은 정확하게 겨눠진 곳을 찾아갔다. 엔죠 황자의 심장. 황자는 총에 맞는 순간에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가 쓰러지자 다츠마의 총구가 다시 불을 뿜는다. 통제실의 잔당을 향해.
* 돌격. 철퇴와 같은 돌격. 양이지사들이 물 밀듯이 밀어닥친다. 선두는 [[가츠라 고타로]]다. 이어 주작 제독,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의 탈을 쓴 구룡공자 드래고니아, [[무츠(은혼)|무츠]]가 뒤따른다. 설마 통제실을 습격 당할 줄은 몰랐던 해방군은 속수무책으로 이들의 진격을 허용한다.
*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해방군에겐 충격이었다. 해방군들 사이에서 그러한 경악와 탄식의 말이 터져나온다. 가츠라는 그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받아친다.
* 이제 목표에 다 왔다. 아니, 목표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신스케는 몸을 돌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반동을 받은 검을 중추 시스템에 꽂아 넣는 동안,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의 답을 떠올렸다. 사실 그건 처음부터 자신 안에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것을 한탄할 자격도 없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31회 일치
* 엘리자베스 일행이 리오네스 왕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호크 엄마의 놀라운 활약. 호크는 마신족의 고기를 먹더니 마신족 비슷하게 변한다.
* 몬스피드와 데리엘은 엘리자베스 일행과 직접 대면하는데, 데리엘은 엘리자베스를 "네가 왜 여기있냐"고 경계한다.
* 엘리자베스가 저항하다 데리엘의 팔이 망가질 정도인데, 그걸 보고 "역시 너냐"는 말과 함께 죽이려 한다.
* 같은 시각 노약자들의 대피소를 지키던 제리코는 그레이로드가 침입하는걸 목격한다.
* 엘리자베스 일행이 돌아오고 있다.
* 자라트라스는 왕녀가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걸 반대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의지는 확고하다.
* 자라트라스는 어쨌든 십계는 괴물 중의 괴물이며 정면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 자라트라스는 붉은 마신족을 가볍게 제압한다.
* 다급히 피해야 한다고 외치는 호크와 자라트라스.
* 데리엘은 엘리자베스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몬스피드가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느낀 듯 한데?
* 그녀는 엘리자베스와 직접 대면한다.
* 엘리자베스는 어리둥절해한다.
* 자라트라스는 대응하려 하지만 이미 몬스피드에게 뒤를 잡힌 상황.
* 자라트라스는 압박감을 떨치고 데리엘에게 달려든다.
* 단 1격만으로 빈사 상태가 된 자라트라스.
* 데리엘이 확인사살을 가하려 하자 엘리자베스가 특유의 힘으로 말린다.
* 엘리자베스의 아크는 데리엘의 오른손을 날려버린다.
* 데리엘은 틀림없다고 거듭 말하며 엘리자베스를 죽이려 든다.
* 그 남자는 엘리자베스에게 기다리게 해버렸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는 그가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다고 말한다.
- 장평도정 . . . . 31회 일치
'''장평도정'''(長平都正, ? - ?)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조선 태종|태종]]의 손자이자 [[양녕대군]]의 다섯 번째 서자이며, 이름은 이흔(李訢)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15대조로, 이승만은 그의 장남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의 1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이순신 (1554년)|무의공 이순신]]은 그의 6대손이다.
[[파평 윤씨]]와 [[진주 강씨]] [[강위]](姜偉)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파평 윤씨는 딸 둘을 두었고, 진주 강씨에게는 3녀를 두었다. 서자로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 · 우성령(牛城令) 이석(李碩) 등의 2남이 있다. 부림령의 시호는 정숙공(靖肅公)이며, [[원주 변씨]] 변처관(邉處寬)의 딸과 혼인하여 수주정(樹州正) 이윤인(李允仁)<ref>이윤인은 이승만의 13대조 할아버지이다.</ref> · 유제도정(楡梯都正) 이윤의(李允義) · 덕풍부령(德豊副令) 이윤례(李允禮) 등의 3남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rfo.co.kr/html/pachong_view.php?No=39&mode3=history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우성령 이석은 [[안동 권씨]] 종손(從孫)의 딸과 혼인하여 덕창부령(德昌副令) 이자인(李自仁) · 시천부령(矢川副令) 이자의(李自義) · 해평부령(海平副令) 이자례(李自禮) · 화성부령(化城副令) 이자지(李自智) · 가조부령(加祚副令) 이자신(李自信)의 5남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장평도정의 손자 수주정 이윤인의 13대손이다.
*** 외손자 : 이만지(李萬枝)
*** 외손자 : 이덕지(李德枝)
*** 외손자 : 원(王+爰)
*** 외손자 : 권(權)
**서자 :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 [[1489년]] - [[1540년]]), [[이승만]]의 13대조
**서자부 : 원주변씨([[1490년]] - [[1539년]]), 변처관의 딸
*** 손자 : 수주정 이윤인
*** 손자 : 유제도정 이윤의(楡梯都正 李允義)
*** 손자 : 덕풍부령 이윤례(德豊副令 李允禮)
**서자 : 우성령(牛城令) [[이석]](李碩, [[1474년]] - ?)
**서자부 : 안동권씨, 권종손(權從孫)의 딸
*** 손자 : 덕창부령 이자인(德昌副令 李自仁)
*** 손자 : 실천부령 이자의(失川副令 李自義)
*** 손자 : 해평부령 이자례(海平副令 李自禮)
*** 손자 : 화성부령 이자지(化城副令 李自智)
*** 손자 : 가록부령 이자신(加祿副令 李自信)
- 채동욱 . . . . 31회 일치
|배우자 = 양경옥
|자녀 = 슬하1녀
14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1988년]] 검사로 임용되었고 검사장을 거쳐 [[2013년]] 4월 제39대 [[대한민국의 검찰총장|검찰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특수통'으로, 검찰 조직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전면에 나서서 역할을 함에 후배 검사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ref>김요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262465 채동욱 총장 퇴임…"유전자 검사 후 강력 조치"]. SBS. 2013년 9월 30일.</ref>
[[2013년 4월]]부터 [[2013년 9월|9월]] 초 39대 검찰총장 재임기간 중 제1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노태우]]의 미납추징금을 완납받고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는 완납 계획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2013년]] [[9월 6일]]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조선일보]]가 제기하자 법무부 장관 [[황교안]]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9월 30일]]에 사표를 수리하였다.
* [[서울세종고등학교|수도여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 1982년 : 제24회 사법시험 합격<ref>[http://news1.kr/articles/1076395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 프로필] 《뉴스1》 2013년 4월 4일 민지형·진동영 기자</ref>
* 1995년 :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참여. 12·12 사건과 5·18 사건의 검찰논고를 작성.
* 2006년 :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고발사건과 관련해 당시 사장이던 허태학씨 등을 기소했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 등도 지휘.)
* 4월 16일 : 서울중앙지검장 독대보고제 21년만에 폐지<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4/h2013041621120521950.htm 채동욱 검찰총장 "중앙지검장 독대 보고 폐지 검찰개혁 5월 말까지 완결"] 《한국일보》 2013년 4월 16일 남상욱 기자</ref>
* 7월 16일 :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등 압수수색
* 9월 10일 :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추징금 자진납부계획 발표
[[군법무관]] 시절 고등학교 동창인 양경옥과 결혼했고, 사이에 2녀를 두었으나 장녀는 어릴 때 앓은 패혈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게 된 후 [[2009년]]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녀의 간호를 위해 아내는 [[중학교]] 교사를 그만뒀고, 채동욱은 장녀에게 소홀할까봐 장녀를 얻은 지 10년 만에 차녀를 얻었다고 한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6/2013031600201.html 與대표(2003년 당시 정대철 민주당 대표) 구속 후 좌천… 작년 檢亂때 총장(한상대) '비토(veto)'] 조선일보(2013년 3월 16일), 류정 기자</ref>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상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상태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전임자 = [[한상대 (검사)|한상대]]
|후임자 = [[김진태 (1952년)|김진태]]<br/>(직무대리)
|전임자 = [[한상대 (검사)|한상대]]
|후임자 = [[길태기]]<br/>(직무대리)
- 페어리 테일/518화 . . . . 31회 일치
* [[엘자 스칼렛]]과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최종대결.
* 아이린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라며 엘자를 증오한다.
* 엘자는 400년이나 묵은 불행 같은건 없지만 자신도 나름의 불행과 싸우며 지금의 삶을 손에 반박한다.
* 아이린은 멸룡마법의 힘으로 현룡으로 변화하여 자신의 하이 인챈트 마법을 "마스터 인챈트"로 강화한다.
* 엘자는 드래곤화된 아이린의 공격으로 전신골절된 상황에서도 "요정 여왕"으로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날아오른다.
* [[웬디 마벨]]이 쓰러지고 [[엘자 스칼렛]]은 그녀에게 빨리 끝나겠다고 맹세한다. 그 말이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신경을 거스른다. 그녀는 웃기지 말라며 400년이나 살아온 마력으로 공격한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지만 엘자는 공중으로 도약해 회피한다.
* 아이린은 레이저 같은 타입의 마법공격으로 엘자의 궤적을 추적한다. 엘자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하며 아이린에게 접근한다. 아이린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친다.
* 엘자는 그녀의 불행은 알겠지만 그래도 자신은 지지 않겠다며 반격한다. 아이린은 네까짓게 뭘 아냐며 발광하지만 엘자에게 치명상을 주진 못한다.
* 엘자는 로즈메리 마을에 버려진 이후 낙원의 탑에 잡혀간 일을 밝힌다. 그건 비록 아이린의 400년 정도는 아니지만, 그 고생과 불행이 있은 덕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고 소중한 사람과 동료가 생겼다.
아이린은 그런 말을 입에 발린 말이라 부정하며 엘자에게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낸다. 엘자에게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저주를 퍼붓고 나서는 아예 이성을 잃어 버린다.
* 아이린이 멸룡마법사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곧 그녀의 육체는 심상치 않은 힘을 뿜어내고 육신이 용인 형태로 바뀌어간다. 단 일격으로 엘자를 멀리 떨쳐내더니 더욱더 강한 형태로 변모한다.
* 완전히 용으로 바뀐 아이린. 현룡 베르세리온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용인의 형태로 한 공격은 엘자가 그럭저럭 막아낼 수 있었지만, 드래곤 형태에서는 앞발을 휘두른 것만으로 전신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힘이 강해진다. 이것만으로 엘자는 빈사의 상태에 처하지만 아이린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아이린은 이것이야 말로 땅이나 바다같은 자연물조차 초월해 천체 자체에 인챈트가 가능해진다. 엘자가 꼼짝도 못하는 사이 아이린은 엘자를 흔적도 없이 부숴버릴 인챈트를 준비한다.
[[제라르 페르난데스]]가 사용하는 "진 천체마법 시마"의 강화판이다. 우주공간으로부터 거대한 운석이 전장을 향해 낙하한다. 엘자는 이 마법의 위력을 직감하고 자기 하나는 고사하고 웬디, 그리고 전장에 있는 모두가 끝장난다는걸 깨닫는다. 이미 전장에서는 이 마법의 시전을 육안으로 목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엘자는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고작 오른손만 움직인다. 아이린은 그런 그녀의 노력을 비웃는데.
* 엘자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오른손으로 땅을 박차고 도약한다. 오른손만 간신히 갑옷을 감고 땅을 쳐서 운석을 향해 날아간다. 아이린은 경악하면서도 "운석을 들이받을 생각"이냐며 얼마나 머리가 나쁜 거냐고 독설한다. 그리고 인간이 운석을 막을 수 있겠냐고 외치는데.
* 엘자는 여왕은 모두를 사랑하고 지키는 자라며 몸이 가루가되는 한이 있어도 지켜보이겠다며 오른손만으로 칼을 뽑아든다. 그리고 [[마카로프 드레아]]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기원하며 운석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는데.
그 기백에 놀란 아이린은 자기 딸은 대체 뭐냐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31회 일치
* 공원에서 END의 서를 고치던 [[루시 하트필리아]]는 책의 문자가 소멸되는 걸 보고 사라진 문자를 덮어 써넣는다.
* 제랄은 자신도 소멸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는다.
* END의 서를 수정하는 건 성공했지만 글자를 고쳐 쓴 루시의 몸에 이변이 일어난다.
* 시간의 틈새가 닫히고 [[아크놀로기아]]의 추격도 뿌리칠 수 없는 크리스티나호. [[안나 하트필리아]]는 다시금 시간의 틈새를 열어보이겠다고 장담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자신이 시간을 벌겠다고 자원, 크리스티나호 밖으로 나온다. 그는 고속이동마법인 "메테오"를 써서 재빠르게 아크놀로기아에게 접근, 주위를 분산시킨다.
* 새로운 사냥감이 아크놀로기아의 흥미를 끌었다. 그가 용의 포효를 쏘자 바다가 갈라지고 지형이 바뀌는 파괴력이 나온다. 그 여파만으로 상공의 크리스티나호가 요동친다. [[엘자 스칼렛]]은 제랄의 생사를 걱정하나 그는 건재하다. 하지만 공격을 피하면서 시간을 끌려던 작전은 오래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대로 계속했다간 대지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 크리스티나 호에서 보고 있는 엘자는 조바심을 내며 안나에게 아직도 멀었냐고 독촉한다. 안나도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닫혀버린 시간의 틈새는 움직일 기미가 없다.
* 그는 페어리 테일의 정문을 "신세계의 입구"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시간의 틈새를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그 입구를 페어리 테일 길드의 출입구와 접속시킨다. 이제 페어리 테일의 문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시간의 문이 되었다. 제레프는 자신이 만든 네오 이클립스의 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여행을 떠나는 자, 돌아오는 자, 많은 사람들이 지난 이 문이...
* 제레프가 이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사이, 공원의 [[루시 하트필리아]]와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일행은 다시금 END의 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대한 문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유전자의 고리처럼 길게 이어지던 문자열에서 몇 개의 문자가 튕기듯 사라진다. 그레이는 나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직감한다. 그것이 단서가 되었는지 루시는 몸의 어딘가에 큰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마법 팬을 들어 문서를 수정하려고 한다.
그레이가 어디를 덮어써야 할지 알아낸 거냐고 묻는데, 시간이 부족해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전 사라진 문자를 "다시 쓰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해피는 그런 일이 가능한 거냐고 의문을 표하지만 루시는 왕년의 기자 생활 덕인지 어디서 무슨 문자가 사라졌는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 안간힘을 써도 움직이지 않던 시간의 틈새가 다시 움직였다. 이 역시 제레프의 영향이지만 안나에겐 갑자기 시간의 틈새가 다시 열린 걸로 보였다. 그녀도 곧 자신의 힘이 아닌 제 3의 힘에 의해 움직였다는걸 깨닫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요점은 다시 시간의 틈새가 열렸다는 것. 작전은 계속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이 작전이 크게 어긋나는 단초가 됐다.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황급히 창 밖을 가리킨다. 안나와 엘자, 그리고 멀미로 누워버린 [[웬디 마벨]]도 바깥에 나타난 시간의 틈새를 "목격"했다.
* 제랄이 주저도 없이 몸을 던진다. 자신이 아크놀로기아를 틈새로 밀어넣겠다는 것. 안나는 되고 안 되고 이전에 저것에 닿으면 제랄까지 소멸된다고 만류한다. 하지만 제랄은 듣지 않는다.
엘자가 절규하는 목소리도 그를 멈추진 못했다.
* 네오 이클립스가 된 페어리 테일의 문은 제레프가 다가가자 눈부시게 빛난다. 그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며 이 세계에, 피범벅 위에 쓰러진 동생에게 "고마워 이 세계"라는 작별을 남긴다. 그런데.
* 루시는 장담한 대로 END의 서를 수복했다. 나츠의 부활도 분명 그 영향일 것이다. 그레이와 해피는 글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놀란 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시가 이상하다. 책을 수정한 직후부터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뭔가 잠식 당하는 듯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 하이큐/264화 . . . . 31회 일치
* 부단히 쓴맛을 보았던 [[이나리자키]]전에서도 타나카는 다시 기운을 차려서 공격에 나선다. 그는 [[스나 린타로]]의 블록도 따돌리고 마침내 득점에 성공한다.
* 한편 [[아마나이 카노카]]는 새삼스럽게 그의 기질을 실감하고 역시 자신은 실연 당한게 맞는거 같다고 담담히 인정한다.
* 계속되는 부진에도 불구하고 [[히나타 쇼요]]의 칭찬에 힘을 얻은 [[타나카 류노스케]]는 자신은 평범한 선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닥을 보고 좌절하고 있을 여유 조차 없다고 자신을 다잡는다.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반한 상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반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백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상을 안 먹으면 남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절규했다.
좋게 말하면 순정남이지만 엔노시타가 보기에는 그저 요령부득에 개그소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키요코 선배를 좋아하는게 맞다면 "좋아한단 오오라"를 좀 자제하는게 어떻냐고 충고한다. 타나카는 "사귀어달라", "결혼해달라"는 말을 인사 대신으로 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칼 같이 거절 당하는게 언제나 패턴.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하지만 타나카에겐 그 말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좋아한다를 자제한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는 타나카. 엔노시타는 아예 설명을 포기했고 키노시타 또한 "입부한 첫날부터 이런 사람이란걸 알았다"고 씁쓸하게 회상한다.
* 타나카의 1학년 시절엔 한 가지 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2학년들은 생긴 걸로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강렬한 타나카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특히 키노시타는 "눈도 마주치면 안 되겠다"고 여길 정도로 겁을 먹었다. 타나카는 입부하자마자 남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행색을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먹혀들고 있었다. 키요코와 만나기 전까진.
훗날까지 "초면 프로포즈 사건"이라 회자되는 이 사건. 동기들은 세삼 그때를 떠올리며 "원래 저런 녀석"이라 납득하게 되었다. 타나카는 내일 시합을 앞둔 긴장감을 핑계대고 자리를 뜬다. 남은 동기들은 혹시 저러다 스토커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지만 키요코가 정말로 거절하면 그렇게까진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타나카를 바보취급하는 분위기였지만 엔노시타가 좋은 얘길 해준다. 늘상 바보같아 보여도 언제나 한결 같은건 대단한 일이라면서.
* 그리고 오늘. 봄고 2회전 vs [[이나리자키 고교]]전. 1세트를 따오느냐 마느냐 분기점에서 타나카가 힘차게 외쳤다. 오늘의 불운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카게야마 토비오]]가 공을 보낸다. 오른쪽에서 [[히나타 쇼요]]도 뛰어오르지만 이나리자키 블록들은 낚이지 않았다. 특히 번번히 타나카를 물먹인 [[스나 린타로]]는 카게야마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반응이 빨랐다. 뒤쪽에서 우려하는 [[츠키시마 케이]].
처음 배구를 권한 그날 부터 타나카는 쭉 그런 사람이었다. 되건 안 되건. 배구 자체도 그랬지만 한참 전부터, 봄고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줄창 실패해온 플레이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계속 했다. 그리고 오늘도 했다.
>아자아아아아!
* "빡빡이"를 빈정거리던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쿠토 코타로]]는 [[아카아시 케이지]]의 목을 휘감을 정도로 흥분했다. 누나인 응원단의 [[타나카 사에코]]는 감격을 숨기지 못한다. 벤치의 동기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너무 굉장해서 어이가 없었다.
* 27 대 25. 카라스노의 역전. 역전에서 이어진 1세트 선취 벤치로 향하는 이나리자키 팀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파란이 일어났다. 중계석은 "최강의 도전자"로부터 "미지의 강호"가 1세트를 갈취했다고 표현했다. 스나의 스파이크를 막은 블록과 거기서 이어진 최후의 일격. 중계석에서는 이 두 플레이의 가치를 높이 쳤다. 타나카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2세트를 앞두고 코트를 바꾸면서 [[타케다 잇테츠]] 고문과 키요코도 자리를 정리한다. 타케다 고문은 "한때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 키요코는 대뜸 "타나카는 항상 대체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녀도 타나카의 부진을 신경 쓰고 있던 걸까?
* 벤치로 돌아가던 중, 타나카가 츠키시마를 불러세웠다. 한껏 기세가 올라서 "난 천재가 아니냐"고 하던 참이었다. 타나카는 아까 츠키시마가 자기 대신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공을 올린 걸 두고 "내가 불렀는데 무시했겠다"고 장난조로 갈궜다. 물론 츠키시마는 전혀 지지 않고 "당연히 아즈마네 선배가 넣을 것 같아 그랬다"고 받아친다. 츠키시마는 어떻게 그렇게 멘탈이 강할 수 있냐고 물었다. 풀 죽는 일도 없겠다고 하자 타나카가 펄쩍 뛰며 "나도 풀이 죽는다"고 대답했다. 약 몇 초 정도. 할 말이 없어진 츠키시마에게, 풀 죽은 자신과 밀어붙이는 자신 중 어느 쪽이 멋지겠냐고 묻기도 했다. 츠키시마는 "어느 쪽도 별로"라고 냉정한 대답을 하려 했지만 타나카는 "밀어붙이는 나"라고 자문자답한다. 츠키시마가 싫어하는 답정너짓이었다. 그래도 타나카는 참 밝았다.
* 카노카는 타나카의 활약을 지켜보고도 어딘지 울적해 보였다. 그녀는 다시 배구를 처음 시작하던 무렵으로 돌아가 있었다. 자신의 큰 키를 부끄러워했던 어린 카노카. 그리고 그게 처음으로 재능이라는 걸 깨달았던 배구. 그걸 깨닫게 해준건 타나카였다. 카노카의 높은 블록을 대단하다고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아니, 부러워했다. 타나카가 진심으로 부러워했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큰 재능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나 한결 같은 타나카.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방법도 모르는 타나카.
- 한호문 . . . . 31회 일치
한호문(韓好問, ? ~ ?)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字)는 선경(善卿),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다. 음서로 관직에 올라 정헌대부 [[중추부]][[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훈련원]][[지사]]에 이르렀다. 봉호는 서원군(西原君)이다.
양절공 [[한확]](韓確)의 7대손으로 그의 아들 [[한치인]](韓致仁)의 6대손이며, [[소혜왕후]]의 종6대손이 된다. 또한 세종의 왕자 [[계양군]] 이증의 부인 정선군부인 청주한씨(旌善郡夫人 淸州韓氏) 역시 그의 6대 대고모가 된다.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1598년]](선조 31년) 선전관(宣傳官)<ref>황여일 (黃汝一), 《해월집 권9》, 사신일기, 1598년 무술 11월 13일 갑오(甲午) </ref>, [[1599년]](선조 32년) 하양 현감(河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ref>선조실록 113권, 1599년(선조 32년, 명 만력 27년) 5월 3일 경술 6번째기사, "조정·조희보·변이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1602년]] [[9월 14일]] 군기판관(軍器判官)을 거쳐<ref>竹溪日記卷之六, 九月初十日戊辰</ref>, [[12월 16일]] 영흥판관으로 나갔다.<ref>竹溪日記卷之六, 十二月十六日</ref> [[1603년]](선조 36년) [[11월 29일]] 서산(瑞山)으로 부임하였고<ref>조익(趙翊), 《가휴선생문집권 10》, 공산일기(公山日記), 계묘 1603년 11월 29일자</ref>, 그가 서산군수로 부임한 내용은 서산군읍지(충청남도)(瑞山郡邑誌(忠淸南道))의 선생안에도 수록되었다. [[1607년]] [[9월 4일]] 도총경력에 임명되었다.<ref>竹溪日記卷之十, 九月初四日</ref> [[1615년]](광해군 7년) [[화기도감]]에 낭청으로 참여한 공로로, 그해 [[12월 29일]] 화기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을 시상할 때 승급되었다.<ref> 광해군일기 98권, 1615년(광해군 7년, 명 만력 43년) 12월 29일 신미 3번째기사 1615년 명 만력(萬曆) 43년 화기 도감 도제조·제조 유근 등에게 포상하다</ref>
[[1623년]](인조 1년) [[9월 19일]]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부임하였다가 '경원부사(慶源府使)에 제수되었을 때는 부모의 나이가 70세임을 들어 상소하여 사직하더니, 본직에 제수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부임하였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19일(병오)자 4번째기사, "사천 현감 이장형을 사판에서 삭제할 것 등을 청하는 사간원의 계"</ref> 그러나 그해 [[9월 20일]] 죄인 명단에서 특별히 정계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20일(정미)자 6번째기사, "사간원이 아뢴 한호문 등의 일은 정계하였다"</ref> 명단에서 정계된 사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626년]] [[4월 13일]] 겸[[내금위]]장(兼內禁衛將)<ref>승정원일기 인조 4년 병인(1626) 4월 13일(을유)자 29번째기사, "병조가 남이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ref> [[1627년]] [[1월]] [[정묘호란]] 당시 [[소현세자]]를 배종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1월 24일(임진)자 7번째기사, "세자 배종인의 명단"</ref> 그해 [[4월 5일]] 상현궁(上弦弓) 1장(張)을 사급(賜給)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4월 5일(신축)자 2번째기사, "영부사 이원익 등에게 시상하라는 전교"</ref>
[[1633년]] [[9월]]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서원군(西原君)으로 호송관(護送官)에 임명되어 사신을 접대하였다. [[10월 4일]] [[명나라]] 사신을 [[모화관]]에서 접대한 것을 보고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1년 계유(1633) 10월 4일(계해)자 12번째기사, "모화관에서 금차에게 연향을 베푼 결과를 보고하는 호송관인 서원군 한호문 등의 계"</ref>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당시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으로 인조 등을 수행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1637년]] [[1월]] [[인조]]의 [[정축하성]] 직후 작성된 호종록에 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2월, "일기청 관원"</ref>
[[1637년]]에는 도정(都正)으로 그 해에 열리는 무과 정시(武科 庭試)에 좌참찬(左參贊) 이덕형(李德泂), 지사(知事) 변흡(邊潝), 동지(同知) 한명욱(韓明勖) 등과 함께 무과 정시(武科 庭試)의 명관(命官)으로 선발되었다. [[10월 13일]] 그 해의 무과 정시 합격자가 5천 수백명이라서, 본업무와 함께 합격자를 정하느라 보고가 40일이 지체된 것을 대죄하였으나 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13일(정미)자 16번째기사, "출방할 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대죄한다는 무과 정시 명관인 좌참찬 이덕형 등의 계"</ref> 이후 부총관(副摠管)으로 전직되었다. [[10월 21일]] 전시의 시관으로 논박을 나갔는데, 즉시 왔어야 하는데 궐문이 닫힌뒤 천천히 왔다 하여 추고를 청하는 승지 김휼의 계에 의해, 추고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21일(을묘)자 18번째기사, "전시의 시관인 부총관 한호문을 추고할 것을 청하는 김휼의 계</ref> 그해 [[12월]] [[도총부]] 부총관과 [[훈련원]]도정으로서 [[예조]]의 인사 포폄을 마감하는 좌기(坐起)에 참석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2월 14일(무신)자 2번째기사, "부호관 한호문이 예조의 포폄 좌기에 나아가므로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는 도총부의 계"</ref> [[12월 16일]] 이를 두고 [[사헌부]]에서 그가 위인이 용렬하다며 반대했지만, [[인조]]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6일(갑진)자 6번째기사, "사헌부의 계에 대해, 정시웅은 체차하고 엄종남은 추고하라는 비답"</ref>
이후 좌우포장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637년]](인조 15) 정축 정시무과(丁丑庭試武科)의 시험관을 맡아보았고<ref>정축정시문무과방목 (丁丑庭試文武科榜目, 1637)</ref>, [[1638년]] [[12월 17일]] 장령 안시현(安時賢), 이여익(李汝翊), 지평 박수문(朴守文) 등이 훈련 도정은 무관의 극선(極選)인데 도정 한호문은 평소 이렇다 할 명성도 없고 나이도 늙어 기력이 쇠한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과, 일을 처리할 때 거칠고 비루한 행동을 많이하여 위인이 용렬하다며, [[훈련원]]의 장(長) 자리를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가 거부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7일(을사)자 7번째기사, "훈련 도정 한호문을 파직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2월 19일]] 장령 안시현(安時賢)ㆍ이여익(李汝翊), 지평 이운재(李雲栽) 등이 다시 그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는 유시를 내렸다며 돌려보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9일(정미)자 14번째기사, "예장하라는 명을 속히 정지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644년]] 무렵 자헌대부(資憲大夫) 서원군(西原君)이 되고, [[1645년]] 포도대장이 되었다. [[1645년]] [[12월 25일]] [[사간원]]이 그의 추고를 청하여 논계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3년 을유(1645) 12월 25일(계묘)자 3번째기사, "사간원이 포도대장 한호문의 일을 청하였다"</ref> 추고를 청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1646년]] [[1월]] [[소현세자]]빈 [[강빈]]이 인조 등을 저주했다는 [[강빈 옥사]]가 발생, 좌포장으로 궐내에 대기하였다. [[1월 5일]] 인조는 좌우포장 한호문(韓好問)ㆍ신경진(申景珍)을 명하여 불러서 전교하기를“지금은 기밀(機密)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야금(夜禁)을 십분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경도 또한 옛 전례에 따라 친히 순찰하여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왕래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ref>연려실기술 제27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빈(姜嬪)의 옥사"</ref> [[1646년]] [[2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패초를 받았으나, 도착이 늦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때 출발하였다는 승지 여이재의 보고로 그는 문제되지 않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2월 5일(임오)자 7번째기사, "우변포도대장 신경진은 집이 멀어 조금 늦는 것이라는 여이재의 계"</ref> [[1648년]](인조 26년) [[10월]] 무과(武科)의 일소(一所)의 시관(試官)이었으나 병을 이유로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가 그해 [[10월 14일]] [[승정원]]의 탄핵을 받고 추고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4일(을사)자 13번째기사, "무과 일소 시관인 서원군 한호문이 칭병하며 패초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추고할 것을 청하는 본원의 계"</ref> 최종 관직은 정헌(正憲)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에 이르렀다.
*** 손자 : 한명우(韓明遇)
- 홍국영 . . . . 31회 일치
| 별호 = [[자 (이름)|자]](字)는 덕로(德老)
| 배우자 = [[덕수 이씨]] 부인
'''홍국영'''(洪國榮, [[1748년]] ~ [[1781년]] [[4월 28일]]([[음력 4월 5일]])<ref>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4월 5일 세 번째 기사</ref>)은 [[조선]] 영조,정조대의 [[세도]] 정치가.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豊山)이며, [[자 (이름)|자]]는 덕로(德老)이다. 세손궁의 궁료(宮僚) 시절 때부터 [[조선 정조|정조]](正祖)의 총애를 얻고, 정조 즉위 후 부홍파(扶洪派)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세간에는 흔히 권력을 잡은 후 세도를 부리다가 축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축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영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영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영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영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영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영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1776년]] [[3월]] 정조는 즉위하자 마자, 정적이었던 홍인한, 정후겸 일당을 숙청했다. 이어 당론서인 《명의록》을 펴내 이 조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홍보했다. 흔히 홍인한-정후겸이 정조의 즉위를 막았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와전된 내용이고, 이 책에서 밝힌 공식적인 죄명은 첫째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은 것과 둘째 세손의 오른날개, 즉 홍국영을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책에서 정조는 홍국영을 '의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가 자신의 즉위과정을 도운 1등공신(소위 동덕회원同德會員)이자 최측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정조1년(1777년) 홍상간, 홍계능 등이 모의하여 경희궁에 자객을 침투시키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들을 처분하면서 다시 공초 내용을 《속명의록》에 수록하여 편찬하였다. 속명의록의 죄인들 역시 홍국영을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집안의 여인들까지도 홍국영의 저주에 동원되었을 정도였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개 금위대장과 훈련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훈척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 임명된 적은 없다.) [[1777년]](정조1년) 7월, 전술한 [[홍상간]], [[홍계능]]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 연루자에 호위청의 무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ref> 이 때문에 호위청은 3청에서 1청으로, 인원은 1000명에서 350명 가량으로 축소되었다. </ref>,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홍국영을 그 대장에 임명 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 위장, 부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ㆍ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영의 입직하는 순라까지 매일 숙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그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ref>홍국영은 (원빈 사후 2개월 가량을 제외한) 집권 기간 대부분 동안 약원부제조직을 맡았다. 이는 임금의 최측근인 그가 임금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동안 임금과의 공식적인 면대를 2회 이상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도 해석된다.</ref> 그외 각종 제거 역시 다수 겸직하였으며 잡류 제거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1778년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식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순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元嬪 洪氏)는 가례를 올린 지 1년이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한중록》에는 홍국영이 원빈의 죽음을 독살로 여기고 그 배후로 [[효의왕후]]를 의심하여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그 죄를 성토하는 대목이 있다<ref>순조실록에서 같은 건으로 탄핵당하는 대상자는 [[정민시]]이다.</ref>.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후일 홍국영이 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 완풍군(完豊君) 준(濬)은 홍국영의 몰락 후, 상계군(常溪君) 담(湛)으로 개명(改名) 개봉(改封)되며 왕실 세력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결국 5년 후인 정조10년([[1786년]])에 생을 마감했다.
[[1779년]] [[음력 9월 26일]] 홍국영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이때 정조는 불과 32세의 홍국영에게 [[봉조하]] 직함을 내려주는데, 일찍이 백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 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영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정설로 통하나, 이와 같이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백부 [[홍낙순]](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영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홍국영의 몰락에 대해서는 각종 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탄핵의 포문을 연 김종수의 상소에서 언급된 공식적인 탄핵 사유는 '후궁 간택을 막았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원빈의 수원관)완풍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동궁으로 삼으려 했다는 가동궁 사건설도 몇몇 군데에서 언급된다. 정조7년 문양해 반란사건 당시 '왕비의 목숨을 위협했다'라는 기록도 있고,《정종대왕묘지문》에는 홍국영이 [[은전군 이찬]]([[조선 정조|정조]]의 이복 아우)을 죽게해서 몰락했다고 정조가 원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속설 중에 홍국영이 완풍군을 원빈의 양자로 삼았다거나, 효의왕후 김씨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 발각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19~20세기에나 등장한 야사로 짐작된다.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는 홍국영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있었다고 한다. [[1977년]] 발간된 《전국문화재총람》에는 〈강릉 전 홍국영묘〉라는 제목으로 홍국영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설명되어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묘소의 넓이는 약 50평, 크기는 약 1미터 정도로 추정했으며, [[1972년]] 후손들이 발견하였으나 아무런 유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뒤에 [[강릉 종합 운동장]]으로 개발되었으며 지금은 홍국영 묘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묘소 인근에는 홍국영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가옥이 전하는데, 명확하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는 아직 없다.
전임자=|
후임자=[[김조순]]|
[[분류:1748년 태어남]][[분류:178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왕족]][[분류:한국의 섭정]][[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유교 신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풍산 홍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정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노론]]
- 홍진기 . . . . 31회 일치
| 배우자 = [[김윤남]]
'''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 ~ [[1986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아호는 '''유민'''(維民)<ref>{{한국민족문화대백과|E0064442}}</ref> 배우자는 [[김윤남]](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딸)이다.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여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42년]] 경성지법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일제 때 판사<ref>{{뉴스 인용 |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01146 | 제목=조·중·동이 친일인명사전 때리는 까닭 | 저자=주진우 | 뉴스=시사인 | 날짜=2009-11-2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archive.is/JKi44 | 보존날짜=2014-04-30 }}</ref> 생활을 했다.
법무부 차관이던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2/12/200802120500004/200802120500004_1.html | 제목=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저자=최운상 | 뉴스=신동아 | 출판사=동아일보 | 날짜=2008-02-01 | 보존url=http://archive.is/DTdrZ | 보존날짜=2016-08-18 }}</ref>
이후 [[삼성]]회장이자 훗날 사돈 관계<ref>{{뉴스 인용 |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032237 | 제목=이건희 장인이 '홍찐구'로 조봉받은 사연 | 저자=정은균 | 뉴스=오마이뉴스 | 날짜=2013-08-2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archive.is/k9DGp | 보존날짜=2014-04-30 }}</ref>를 맺게 될 [[이병철]]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1964년 중앙라디오방송주식회사 사장, 1968년 중앙일보사 대표이사 사장, 1971년 주식회사 동양방송 대표이사, 1974년 중앙일보·동양방송주식회사 사장, 1980년 중앙일보사 회장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던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ref>{{뉴스 인용 |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73438 | 제목=“독립투쟁이 전설로 묻혀서 되겠나, 그래서 나섰다” | 저자=유인경 | 뉴스=경향신문 | 날짜=2008-08-28 | 확인날짜= | 보존url=http://archive.is/WyYhK | 보존날짜=2014-04-30 }}</ref>에 등재되기도 했다.
| 배우자 || [[김윤남]] || [[1924년]] [[6월 25일]] || [[2013년]] [[6월 5일]] || [[원불교]] 원정사
| 사위 || [[이건희]] || [[1942년]] [[1월 9일]] || || [[삼성전자]] 회장
| 외손자 || [[이재용 (기업인)|이재용]] || [[1968년]] [[6월 23일]] || || 삼성전자 부회장
| 외손녀 || [[이서현 (1973년)|이서현]] || [[1973년]] [[9월 20일]] || || [[제일모직]], [[제일기획]] 부사장,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위원
| 손자 || 홍정도 || [[1977년]] [[11월 11일]] || || [[JTBC]] 사장
| 손자 || 홍정국 || [[1982년]] || ||
|전임자 = [[최인규 (1919년)|최인규]]
|후임자 = [[허정]]
|전임자 = [[이병철]]
|후임자 = [[홍석현]]
|전임자 = [[정재환 (1906년)|정재환]]
|후임자 = [[임석무]]
|전임자 = [[민복기]]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30회 일치
각자의 연구진은 최대 여섯가지의 전공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기술 또한 다섯-여섯개의 전공(겹칠 수 있음)을 요구하는데, 해당 전공이 연구진이 가지고 있는 전공이라면 연구 속도가 빨라진다. 전공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 Electronics(전자 공학): 아이콘은 전구. 의외로 많은 기술에서 요구한다.
* Medical Science(의학): 아이콘은 십자가. Medicine 트리나 Hospital System 트리에서 요구한다.
* Avionics(항공전자공학): 아이콘은 프로펠러와 막대(?)
* Munitions(군수품): 아이콘은 총알 네개와 상자 세개.
* Nuclear Engineering(원자력공학): 아이콘은 방사능 마크.
* Nuclear Physics(핵물리학): 아이콘은 원자모형.
대부분의 연구진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일부 연구진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정 년도가 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는 실제 역사상에서 해당 연구진이 사망/해체/파산된 것을 구현한 것이다. 반대로 새로 생겨나는 연구진도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어거지로 되어있어서 1950년대 일본 제국은 겨우겨우 살아서 제국주의짓 해도 일본군 관련 연구진들은 싹 쓸려나가고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그 자리를 메꾼다.
* Daimler-Motoren-Gesellschaft(다임러 자동차회사)
* AEG(Allgemeine Elektricitäts-Gesellschaft, 일반전자회사)
* 1942년 이전 전공: 폭격기 설계, 항공학, 기술효율, 항공전자공학, 항공기 시험
* 1943년 이후 전공: 폭격기 설계, 항공학, 로켓공학, 항공전자공학, 항공기 시험
* Ford Motor Company(포드 자동차회사)
닛산의 전신이 카이신샤이지만 신경쓰지 말자.
* 전공: 기계학, 전자공학, 수학
잉글랜드 출신 컴퓨터 공학자이자 수학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튜링 기계와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하지만 전후 당시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여성호르몬을 투여받았고 그 결과 1954년 자살하였다.
* Leyland Motors(레일랜드 자동차)
* Vauxhall Motors(복스홀 자동차)
엄청나게 다양한 연구진을 자랑한다. 근데 죄다 레벨이 좆망이라는게 함정.
* National Resources Commission(국가자원위원회)
- 김동욱(배우) . . . . 30회 일치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입시준비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연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연기자에 대한 동경으로 배우라는 꿈을 꾸게되었다고 한다. 4개월 동안 연기입시를 준비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퀴어영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퀴어영화는 보통 중단편이거나 장편이라도 아주 저예산으로 독립영화인 경우가 많으므로 유명한 배우보다는 신인들을 캐스팅하며, 당연하지만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비주얼이 출중해야 하고, 또 (소위 '게이 감성'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보통 퀴어영화에 출연하는 신인 남자배우는 비주얼과 연기력이 둘다 받쳐줘야 한다. 한편 배우들 입장에서도 퀴어영화라 하면 소위 매니아층이 탄탄하기 때문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인 순흔을 통해 데뷔하였다. 그 후 후회하지 않아, TV영화인 램프의 요정 등에 출연하다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진하림 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2017년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서현 역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다. 이어 12월에 개봉한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원작의 [[유성연]]을 재구성한 김자홍의 동생 김수홍을 연기해 화제를 일으켰고 "진주인공이다" 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호평을 보여줬다.[* 특히 현몽신에서는 웬만한 관객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또한 영화 개봉 후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후속작인 [[신과함께-인과 연]]에는 주연으로 출연한다. 정작 본인은 [[이정재]]와 같은 특별출연으로 출연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아 놀랬다고 한다. 또한 영화가 1300만 관객을 돌파하자 여동생이 가장 기뻐했다고 한다.[[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art_id=201801030858003&sec_id=540401|기사]]
사실 신과함께 이전까진 작품이 들어오질 않아 집에서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887|전전긍긍했고]]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76074|배우의 길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김용화 감독에게 제의를 받았다. 물론 제작자들, 투자자들의 반대가 있는 듯 했으나 김용화 감독은 이미 일찌감치 수홍 역으로 낙점한 상태라서 김동욱을 투입시키기 위해 오로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본인도 마지막 기회하고 생각하고 승낙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대성공했다. --[[말년병장]] 포스 뿜뿜-- 김동욱에게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006805|새로운 전성기가 왔고]] 김용화 감독도 재기에 성공한 동시에 본인의 [[덱스터 스튜디오|회사]]의 기술력을 더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서로 윈윈하게 된 셈.
실제로 생각보다 예능에 자주 출연하고 본인은 예능에 시키는 대로 다하고 춤도 열심히 추지만 자주 편집당하니까 사람들이 예능에서 말 안 한다고 오해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자주 편집당해 예능 울렁증이 생겼다고 한다. 수요미식회 이후로 예능 출연을 안하고 있다.
||<|2> 2005년 || [[사과(영화)|사과]] || 젊은 남자 || ||
|| [[반가운 살인자]] || 최정민 || 주연 ||
||<|2> 2011년 || [[MBC]] || [[남자를 믿었네]] || 문현수 || ||
|| 2017년 || [[MBC]] || [[자체발광 오피스]] || 서현 || ||
|| 2010년 || [[삼성전자]] [[애니콜]] || Dr.any ||
|| [[2011년]] [[1월 8일]]~[[1월 15일]] || Olive || Olive it City 일본에서 놀자 || 게스트 || EP5~6 ||
|| 2010년 || [[윤하]] || 내 남자친구를 부탁해 ||
|| Fly away || 반가운 살인자 OST(심은경 듀엣곡) ||
||<|2> 2015년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복면가왕(원곡자 김광석) ||
|| 기다려줘 || 라이더스: 내일을 잡아라 수록곡(원곡자 김광석) ||
* 운동을 좋아한다. 취미는 스킨스쿠버. 인스트럭터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주로 [[알렉스(클래지콰이)]], [[신하균]]과 같이 한다 밝혔다. 같은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인듯. 여기에는 [[김고은]]도 속해 있어서 열애설이 터지기도 했다. 정작 김고은은 [[신하균|다른 회원]]과 사귀었다(...) 또한 몸짱이지만 어째 출연하는 영화마다 근육이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근육을 빼라고 지시를 받았다.
* 2012년 [[후궁: 제왕의 첩]] 홍보 차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 [[조여정]]의 증언으로 촬영장에서 ~~왕 옷을 입은채~~ 춤을 추는 것이 알려지고, 그 시기에 친구들의 생일 파티가 클럽에서 자주 열려 클럽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때, 본인의 말에 따르면 파라다이스라고.. 실제 복면가왕이나 해피투게더를 보면 춤을 꽤 잘추는 편. 대학시절 댄스 동아리였는데 축제 동아리 공연 때 센터를 담당했다.
* 또한 친한 연예인으로는 [[하정우]], [[온주완]], [[이상엽]] 등이 있으며 친한 감독으론 [[장진]], [[김용화]]가 있다.[* 이 중 장진은 술자리를 종종 갖는다고 하며 특히, [[크라임씬2]]에 출연한 사실에 놀랬다고 한다.]
* 일상을 공개한다는 것이 어색한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SNS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핸드폰에 셀카 기능이 없어 셀카 사진 한 장도 없다고 한다.[* 팟캐스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동욱의 핸드폰은 아이폰6로, 당연히 셀카 기능이 있다. 아마도 셀카 기능이 있어도 어딨는지 모른다는 뜻으로 보인다.] 당연히 셀카 찍는 법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차태현은 셀카를 자연스럽게 찍는 반면 김동욱과 하정우는 셀카를 매우 어색하게 찍었다.] 그래도 미니홈피는 존재한다.
* 피부가 민감해 햇빛에 노출되면 알러지 반응(두드러기)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모자를 꼽았고 실제로 모자를 많이 착용한다.
- 마기/330화 . . . . 30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의 독단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팔인장]]을 불러모은다.
* 심지어 신드바드는 이 모든 상황을 전세계에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 중엔 각국의 지도자들돠 [[유난]]같은 마기도 끼어있다.
* 신드바드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고, 사람들은 대찬성하며 "함께 루프로"가자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 세상을 재창조하기 위해 루프를 완전히 재창조하겠다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그러나 그 말은 결국 지금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이야기다. [[알리바바 사르쟈]]와 [[알라딘(마기)|알라딘]]은 그런 폭거에 도저히 동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신드바드는 자기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며 전 [[팔인장]]을 소환한다. 그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방문이 열리자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샤를르칸이 나서서 의견을 말한다. 그들은 두 사람보다 먼저 이 계획을 들었다. 알리바바는 전부 죽어버리는 이런 계획에 반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제자의 기대와 달리 샤를르칸은 "모두 찬성"이라고 답한다. 알리바바는 하늘이 무너진 것같은 표정으로 진심이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샤를르칸은 오히려 알리바바에게 "코 앞의 일에 연연하지 마라"고 설교한다. 그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엘리오트 합국의 국민들마저 전부 죽는 것도, 샤를르칸에겐 "눈 앞의 작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샤를르칸은 국왕인 자신이 당장의 평화만 지키는 걸로 만족해도 좋은지 반문한다. 분명 자신들이 죽고 나면 세상은 다시 혼란스러워질 거라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된 후엔 그런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씁쓸하게 자조한다. 또 "미래를 생각한다"는 말, 알리바바는 그 말을 이미 여러번 듣었다.
* 야무라이하는 현재와 미래를 다 지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알라딘은 진심이냐고 묻는데 야무라이하는 자신은 진심이며 그들의 루프가 신들의 노예취급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런건 과거 매그노슈타트가 비마도사들의 마고이를 착취한 것과 다를바 없다고 말한다. 알라딘이 그래서 어쩌자는 얘기냐고 하자...
>더욱 좋은 차원에서 다 함께 다시 태어나자!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 알라딘은 모두 신드바드의 생각에 조종 당하고 있다고 외치지만 야무라이하는 자기 자신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며 샤를르칸은 루프가 고치지거나 말거나 원래 자신은 신드바드를 존경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모든 팔인장이 이들과 같은 입장.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이들의 광기에 갇혀 버린 듯하다. 알라딘은 이들이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알리바바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 제정신이다.
>다 함께 동반자살을 하자고...
* 신드바드의 미치광이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저세계로 중계되고 있었다고 밝힌다. 스크린에는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신드바드와 벌인 논쟁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황제국의 [[연홍옥]]이나 뢰엠의 [[티토스 알렉키우스]] 등 각국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과 유배된 마기인 [[유난]]까지 모두가 이것을 지켜보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쟁취하기 위해 다 함께 루프로 돌아가자!
* 시민들은 더이상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대환호. 전세계, 기계적으로 맞춘 것처럼 동시에 환호성이 번져간다. 그들은 "다 함께 루프로 돌아가자", "더 좋은 세상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는 신드바드의 말을 찬양하듯 따라하며 박수를 치고 축하하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 기분 나쁘도록 한결같은 환호 속에서 알리바바와 알라딘만 고립돼있다. 정신병자 사이에 유일한 정상인처럼 돼버린 알리바바와 알라딘. 알리바바는 이 [[성궁]]의 힘에 치를 떨며 정말 신드바드에 영향을 받지 않은건 자기들 뿐이냐고 한탄한다.
한편 커플링에 민감한 팬덤에선 나름 만족하는 부분도 있는데 샤를르칸X야무라이하가 실현, 스파르토스X피스티도 실현. 신드바드가 루프를 조작한 영향인지 갑자기 커플이 탄생했다.
- 문희(배우) . . . . 30회 일치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 [[배우자]] [[장강재]], [[자식|슬하]] 2남 1녀 ||
[[1965년]]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다. 유명 여배우 [[엄앵란]]이 흑맥의 촬영 현장에서 문희를 보았다고 하는데, 같이 촬영하던 남자배우들이 문희의 눈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66년 [[초우]], 1967년 [[원점]]을 찍으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그렇지만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성공한 거랑 비교하면 문희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남정임]]은 [[유정]]으로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했지만, 문희는 이들에 비해 데뷔작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후 전성기 시절에는 [[윤정희(1944)|윤정희]]와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낼 때쯤, 윤정희는 [[내시]]를 흥행시키며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줬다. 윤정희는 선역에서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고, 남정임은 발랄한 배역을 맡았다. 그러나 문희는 주로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한 선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정희가 연기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문희는 외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점 때문에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이외의 흥행작으로는 내 몫까지 살아 주, 파도, [[벽속의 여자]], 형, 결혼 교실, 춘향전 등이 있다.
벽 속의 여자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과 다른 자기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역을 맡았다. 한복과 수수한 원피스 차림 중심의 전근대적 여성상과는 다른 롱코트와 부츠를 착용한 서구적인 면을 가진 역을 연기하였다.[* 옷차림이 지금이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
[[서울특별시]]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남매 중에서 형제들은 모두 남자형제여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1965년 [[영화]] <흑맥>에 출연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한 결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또한 [[윤정희(1944)|윤정희]], [[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70년대 여자 영화 배우 트로이카의 한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다가 1971년 갑자기 [[한국일보]] 부사장 장강재와 [[결혼]]해 영화 출연이 뜸해졌다. 다른 원로 여배우들이 결혼후 각종 구설수에 오르던 것과 달리 화목하고 잡음없는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993년 남편이 간암으로 사망하면서 사별하였다. 현재는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나이드신 분들에겐 귀티나는 외모의 대표로 선호받는다. 최근 노년에 여성지 화보로 모습을 비추기도 했는데, 우아하게 나이든 모습을 자랑한다.
* 1967년 《[[빛과 그림자 (영화)|빛과 그림자]]》
* 1968년 《[[자주댕기]]》
* 1968년 《[[효자문 (영화)|효자문]]》
* 1969년 《[[미녀 홍낭자]]》
* 1969년 《[[벽 속의 여자]]》
* 1969년 《[[여자의 모든 것]]》
* 1970년 《[[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
* 1970년 《[[벽 속의 여자 2]]》
* 1970년 《[[별난 여자]]》
* 1970년 《[[속눈썹이 긴 여자]]》
* 1970년 《[[여자가 화장을 지울 때]]》
* 1970년 《[[지하여자 대학]]》
- 샬롯 링링 . . . . 30회 일치
[[위대한 항로]]를 주름잡는 최강의 [[해적]]인 '''[[사황]]''' 중 한 명이자 [[빅 맘 해적단]]의 선장이다. 통칭 '''빅 맘'''.[* 그녀의 배에 써 있는 글씨에 따르면 Big Ma'am이 아니라 Big Mom이다. 전자는 마담, 후자는 마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나온 바로는 빅 맘 해적단의 선원들은 샬롯을 '''"마마"'''라고 부르고 있다. 원피스 그린에서는 BIG MOM이라고 써 있는데 610화에서 파파구의 설명에서는 배경에 BIG MAM이라고 써 있다. Mam은 마마(Mamma)의 준말이니 의미상의 차이는 없지만. 다른 표기가 작중 또는 공식 설정집에 나왔다면 출처와 함께 [[추가바람]].] 생일은 [[2월 15일]].
흰 수염 [[에드워드 뉴게이트]] 사후에 [[어인섬]]에 자기 이름을 내걸고 그곳을 다른 해적들로부터 지켜주고 있으며 그 대가로 매달마다 10톤의 과자를 조공받고 있다. 어인섬처럼 특정한 곳을 보호해주는 대신 과자를 매달 조공받는 거래를 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과자를 주기로 해놓고서 주지 않는다면 나라마저도 박살내버리는 듯하다. '''[wiki:"샤를로테(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과자에 무지막지하게] [wiki:"쿠키 몬스터"집착한다.]''' --[wiki:"간디(문명 시리즈)"순순히 과자를 내놓지 않으면 유혈사태는 없을것 입니다]--
분노한 샬롯을 달래기 위해 [[타마고 남작]] 이 제안한 거래도 거절하고[* [[유스타스 키드]]가 빅 맘 해적단의 산하 해적선 2척을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막대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루피 일행이 가진 보물을 전부 넘겨주는 대신에 사탕 공급은 2주 기다리자고 한 것. 허나 '''"원하는걸 타협하는 해적이 어딨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파파구는 빅 맘이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으나 딱히 나쁘지않은 거래를 거절한 건 상대방의 뜻대로 되는 거래를 샬롯 링링이 싫어하기 때문인 듯.] 결국 수틀린 [[몽키 D 루피]]에게 어인섬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을 받았다.[* 루피 曰 '''"너는 이 섬을 지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원문은「危なっかしい」단순히 위험하다는 뜻 보다는 위태스럽다거나 아슬아슬하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로, 단순히 샬롯 링링이 위험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너같이 기분따라 섬 하나 작살낸다 만다 하는 인간한테 맡겨두자니 안심이 안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루피의 호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어인섬을 박살내기로 한 분노는 루피에게 돌린다고 한다. 이름을 알았으니 [[신세계]]로 빨리 오라고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상태. 참고로 루피가 이름을 댔을 때 초신성이 아닌 "가프의 손자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로져나 흰수염과 같은 세대의 해적으로 보인다.
다만 이와는 반대로 '''부하를 최소한 한 명은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라는 것이 인간이 아닌 과자로 된 병사들일 수 있다. 만화책에서는 651화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TVA에서는 [wiki:"보빈" 과자로 만들어진 듯한 부하]가 빅 맘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빅 맘은 과자 같은 무생물을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730화에서 빅맘의 배'''[[선수상]]이 노래를 불러서''' 이 무생물에 생명 부여 설이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빅 맘이 정말 [[wiki:"식인"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인물이었다면, 그 [[징베]]가 머리를 숙이고 산하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 단, 징베의 경우 [[사황]] 페이지에도 언급되었듯이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빅 맘 본인이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자일 필요는 없고 그냥 해적단의 간부 중 하나가 그런 능력자일 수도 있다.] 또한 오다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이고 콜라보도 함께한 [[토리야마 아키라]] 의 [[드래곤볼]]에 나온 [[마인부우]]도 인간을 과자로 만들어 먹는 기술이 있어 여기서 따왔을수도 있다.
그리고 능력의 경우는 아직 전혀 불명이지만 빅 맘의 침이 바닥에 떨어질 때 '치익' 이라는 효과음이 난 점과 다과회가 기대된다고 말할 때 위산 드립을 친 걸로 보아 어쩌면 '산'과 관련된 능력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위에서 서술했듯 과자 같은 물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일 수도 있다. 그럼 부하를 먹은 것이 설명이 된다. 그녀의 성격이 아무리 잔인한 편이라 해도, 부하를 아무렇지 않게 먹어버린다는 연출은 다소 과한 점이 있었기도 하고. 그녀가 '빅 맘'이라고 불리는 이유 등을 근거로 들어 그녀의 능력은 [wiki:"골드 익스피리언스" 물체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많다.
거기다가 빅 맘 해적단의 모티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빅 맘의 모티브는 [[퀸 오브 하트]]로 추정된다. 다과회를 좋아한다는 점이나, 부하 목숨을 막 날려버리는 점, 그리고 자기 먹을 거를 누가 훔쳐먹었을 때 불같이 화낸다는 점이 비슷하다.[* 하트의 여왕이 첫 등장할 때도 자기 파이를 훔쳐먹은 범인을 찾는 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하들도 '트럼프 병사'들처럼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한 것일 확률이 높다.[* 사실이라면 적어도 먹혀버린 부하들이 빅맘을 마마라고 부른 이유는 해명된다.]
여담으로 등장하기 전에 나온 실루엣과 본모습이 다른데, 본모습의 얼굴이 실루엣보다 둥글고, 외모도 약간 다르고, 실루엣의 턱 자국(?)이 본모습에는 없다.[* 같은 사황인 카이도도 실루엣과 컬러 표지에서 본인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다른데, 본 실루엣의 얼굴이 넓적하고 머리칼이 복슬복슬한 반면 추정 실루엣은 입과 한쪽부분으로만 봐서는 좀 말라보이고 생머리이다.]
[[상디]]는 '여자 해적'이라는 말을 듣고 과자를 좋아하는 예쁘게 생긴 마담일 것이라고 망상을 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보다시피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상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남아있던 사람은 상디(부상 입은 상태),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절반 이상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상황인 판이다.
그리고 이를 본 시저가 당황해 하면서 상디에게 제발 달아나 달라고 애원하는데, 과거에 빅 맘을 속여 많은 돈을 연구비로 사기쳤기에 빅 맘에게 걸리면 자긴 죽은 목숨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현재까지 드러난 빅 맘의 성격을 보자면 시저는 잡히기라도 한다면 정말 끔찍하게 괴로워질듯.
- 솔비 . . . . 30회 일치
2010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에 흠뻑 빠지며 화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Trace'의 '공상'을 시작으로 셀프 콜라보레이션(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인 권지안과 솔비가 협업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선보였다. 셀프 콜라보레이션은 2016년 '블랙스완',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초청작가,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까지 총 다섯 작품이다. 특히 솔비는 '하이퍼리즘'(정보와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높아진 기대치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반대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의 부작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솔비가 정의한 용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현대인의 우울과 상처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이퍼리즘-레드'<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9|제목='다양성 가요계' 솔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성=정진영 기자|이름=|날짜=2017년 6월 1일|뉴스=|출판사=한국스포츠경제|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는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https://tv.naver.com/v/1717804 '레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년 3월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 음원을 본인 유튜브채널에만 공개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공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 경기도 한 보육원에 재능기부와 선행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16년엔 '파인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음원 'Find'를 발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펼쳤다. 같은 해 12월엔 '손모아 장갑'을 발표하며 청각·언어 장애인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상처와 동정의 시선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17년엔 '다문화 아동 돕기 후원의 밤'에 참석해 특별 공연과 함께 5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사회적인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솔비는 2014년부터 꾸준히 세월호 추모 그림을 그리며 남다른 애도를 표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 1월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호모커뮤니쿠스, 빅 픽처를 그리다'에 강연자로 출연해 "스토킹 처벌은 벌금 10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솔비가 제안한 해당 법안은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에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으로 확정, '스토킹 처벌법'(가칭)이 제정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076873|제목=스토킹 뿌리뽑는다…벌금 10만원→최장 징역 5년 추진|성=김계연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10일|뉴스=|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530678|제목=강연자로 나선 솔비 “스토킹 벌금 불과 10만원” 지적…피해자 입장 법안 제정 당부|성=이유진 기자|이름=|날짜=2018년 1월 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또한 솔비는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를 발표하며 통해 계급사회를 비판기도 했다. 2018년 6월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859&cid=40942&categoryId=32774 뮤코다당증] 난치병 환우회에도 참석, 가족들에게 응원을 복돋아주기도 했다.
2018년 6월 플레이런TV '로마공주의 수상한 미술관' MC로 발탁됐다. 솔비는 방송과 SNS를 통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밝혀왔다. 매년 봉사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술 교육도 한 바 있다. 이처럼 솔비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과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자신의 일부가 된 미술를 결합해 아동 미술이라는 영역에도 도전했다. 그결과 '수상한 미술관'은 현대 미술을 기반으로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을 통해 창의적 표현을 배워가는 기존에 없던 미술 프로그램이자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653218|제목=솔비, ‘수상한 미술관’ 신개념 교육프로그램 탄생…팔색조 변신|성=조유경 기자|이름=2018년 6월 13일|날짜=|뉴스=|출판사=스포츠동아|확인날짜=2018년 7월 3일}}</ref>
*2018년 '하이퍼리즘' '블루' 경기도 장흥 빌라빌라콜라에서 국내 최초 아트 하우스 콘서트 개최.<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789255|제목=솔비, 퍼포먼스 페인팅→경매→슈트 제작까지…기획력 빛났다|성=이미현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21일|뉴스=|출판사=일간스포츠|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
*《[[나 혼자 산다]]》 (MBC, 2017년)
* [[2012년]] 자살예방 캠페인 생명사랑밤길
*[[2008년]] MBC 방송연예 대상 '쇼버라이어티 부문 여자 우수상'과 '베스트 브랜드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MBC연예대상 신정환 정형돈 서인영 솔비, 쇼버라이어티 우수상 수상 |url = http://www.asiae.co.kr/uhtml/read.php?idxno=2008122919404522747 |출판사 = 아시아경제 |저자 = 고재완 기자 |날짜 = 2008-12-29 |확인날짜 = 2009-04-19}}</ref> SBS 방송연예대상 예능 부문 베스트 엔터테이너상<ref>{{뉴스 인용|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9109|제목=박상면-솔비,예능부문 베스트엔터테이너상 수상 (SBS 연예대상)|성=안효은 기자|이름=|날짜=2008년 12월 30일|뉴스=|출판사=마이데일리|확인날짜=2018년 7월 3일}}</ref>
* [[2008년]] SBS 방송연예 대상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SBS연예대상 박상면-솔비,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수상 |url = http://www.asiae.co.kr/uhtml/read.php?idxno=2008123016384654249 |출판사 = 아시아경제 |저자 = 김부원 기자 |날짜 = 2008-12-30 |확인날짜 = 2009-04-19}}</ref>
* [[2014년]] 2014 사회공헌 대상에서 '재능기부 대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솔비, 역시 돌직구 "연예인이 동네북은 아니잖아요" |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742912 |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남안우 기자 |날짜 = 2015-11-11 |확인날짜 = 2015-12-09}}</ref>
* [[2016년]] MBC 방송연예 대상 '뮤직·토크쇼 부문 여자 우수상'을 8년만에 다시금 수상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72163|제목=[2016 MBC 연예대상]솔비, 우수상 수상 '지식 보다 지혜로 살 것'|성=장아름 기자|이름=|날짜=2016-12-29|뉴스=뉴스1|출판사=|언어=ko|확인날짜=2018-01-27}}</ref>
*2018년 2019퍼스트브랜드대상 아트테이너 부문을 수상했다. 제1대 아트테이너상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3750100|제목=[N스타] 솔비가 입증한 아트테이너 브랜드 "미술은 힘들때 받은 선물"|성=황미현 기자|이름=|날짜=20181220|뉴스=[N스타] 솔비가 입증한 아트테이너 브랜드 "미술은 힘들때 받은 선물"|출판사=|확인날짜=}}</ref>
* {{ID 없는 유튜브 사용자|UCYOXaMjoodvzodBT3oO0D3A|솔비 (로마공주)}}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군포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타이푼의 일원]][[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안동 권씨]][[분류:X맨]]
- 식극의 소마/230화 . . . . 30회 일치
* [[도지마 긴]]은 연대식극에선 각자의 역량이 필요한 국면도 있을 거라 판단, [[시노미야 코지로]]를 불러 1학년 삼총사의 특훈을 지도하게 한다.
* 도지마 자신이 [[타쿠미 알디니]], [[사이바 죠이치로]]는 [[유키히라 소마]], 메구미는 시노미야가 교육한다는 인선. 그러나 뜻밖의 난관이 있었다.
* 월광호에서 연대식극 대비 특훈에 돌입하려던 [[유키히라 소마]] 일행은 뜻밖의 방문자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전 십걸출신 셰프 [[시노미야 코지로]]였다. 소마가 "시모니야 사부"라 부르며 반가움을 표했다. 여전히 당사자는 아니라고 질색했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에게도 그를 소개했다. 꽤 흥미롭게 그를 살펴보는데. 반면 시노미야는 같은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죠이치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 [[타쿠미 알디니]]가 그가 어떻게 홋카이도에 있냐고 물었다. [[도지마 긴]]의 섭외였다. 도지마는 지금까지는 팀워크 강화 훈련을 했으니 이제 개별훈련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연대식극은 팀원 간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역량이 필요한 시점도 분명 온다. 지금부터 죠이치로, 도지마, 시노미야가 각각 1학년 삼총사를 맡아 맨투맨 학습에 들어갈 것이다. 소마는 물론 죠이치로, 타쿠미는 도지마. 마지막은 당연히 [[타도코로 메구미]]와 시노미야다. 메구미가 다소 어리둥절한 채로 대화에 따라가지 못하자 시노미야가 직접 선언한다.
타쿠미도 풀스포르 훈장 수여자인 그가 도움을 준다는 자체에 경악했다. 소마는 물론 대환영. 자기 가게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 헌신해준다고 감동에 겨워한다. 시노미야는 "잠깐의 변덕"이라고 말하지만 소마가 제대로 들을 리 없다. 이렇게 잘 풀려가는 것 같은데, 도지마는 뭔가 걸리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마가 "잘 됐다"고 축하하면서 보니, 메구미는 사색이 된 채 오돌오돌 떨고 있다. 합숙 시절 시노미야에게 당했던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플래시백하고 있던 것이다. 이래서는 특훈은 커녕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무리 같은데. 과연 이 난관을 메구미와 시노미야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연대식극 2일차. 3rd Bout의 시작. 대결 제 3카드 메구미 vs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대결주제를 선정한다. 메구미가 추첨용지를 집었다. 결정된 주제는 "사과". 반역자 팀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본래 사과라면 요리에도 많이 쓰는 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초일류 파티셰 모모. 사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특기 중의 특기 분야. 하다못해 채소였더라면 메구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실망이 우세했다.
모모는 주제가 결정된 순간부터 임전태세였다. 자신의 인영 "붓치"를 상대로 말을 걸며 무엇을 만들지 구상에 들어갔다.
>열심히 만들자!
* 요리를 시작한 모모의 기백은 십걸다웠고 메구미는 단숨에 위축될 뻔했다.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메구미는 다시 시노미야 셰프에게 가르침 받았던 그때를 떠올렸다. 고양이와 쥐, 뱀과 개구리, 사자와 토끼 같은 조합의 특훈조. 둘은 개인 주방에 들어섰지만 그저 서로 쳐다보는 채로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옆 방에선 소마와 죠이치로, 타쿠미와 도지마도 개별 훈련을 시작해야 했지만 메구미조가 어떻게 하는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나키리 에리나]] 조차도. 전원이 유리창 너머로 메구미 조의 주방만 기웃거리고 있자 도지마가 각자 훈련을 시작하라고 한소리 했지만 죠이치로가 "넌 메구미가 걱정도 안 되냐"고 일갈하자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특훈에 돌입한 것은 메구미조. 시노미야는 일단 뭔가 만들어서 현재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메구미는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상 조리를 시작하자 실수연발. 소금과 설탕을 헛갈리고 재료를 태워먹는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원래 풍부하지도 않은 시노미야의 인내심이 삽시간에 바닥났다.
모든 건 긴장 때문, 정확히 말하면 시노미야의 존재 자체 때문이다. 아예 주방까지 들어와서 구경하던 소마가 "시노미야 사부가 온 게 문제였다"고 가차없는 돌직구를 날리다 시노미야한테 욕을 먹는다. 같이 구경하러 온 타쿠미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 은근슬쩍 끼어있던 에리나는 슬슬 돌아가서 각자 특훈을 시작하자며, 메구미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수습한다.
* 몇 시간 뒤. 결국 상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시노미야는 반쯤 좌절했고 메구미는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느라 특훈은 진전이 없었다. 덤으로 타쿠미와 소마는 휴식시간마다 메구미조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진전은 요원했다.
도지마도 메구미조의 주방을 찾았다. 그는 특훈과는 상관없는 화제를 들고 왔다. 시노미야가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게 의외였다는 얘기였다. 혹시 시노미야도 나름대로 토오츠키 학원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또 "그냥 변덕"이라고 얼버무렸다. 애초에 아자미 정권 따윈 알바가 아니라면서. 시노미야는 일본 전국의 식당을 "진정한 미식"으로 통일한다는 그 사상은 퍽 대단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자기 가게는 그런 것과 얽힐 생각도 영합할 생각도 없다 했다. 오히려 센트럴의 지시를 받는 식당들이 망하게 되더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 시노미야의 "변덕"이란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오게된 건 정말 작은 심경 변화 때문이었다. 자기 식당을 돌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시노미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구석에서 사람 인을 새기던 메구미를 불렀다. 그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다가오자 메구미가 기겁했다. 과연 시노미야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 메구미는 자기 안에서 잊고 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소마는 마침내 메구미가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받게 되자, 자신과 메구미가 "선후배 사이"가 된 셈이고 메구미가 후배가 됐다며 감동한다. 시노미야는 여전히 소마의 "사부"드립을 질색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타쿠미와 소마도 그녀에게 질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각오"를 다지며 각자의 대결주제를 뽑았다. 제 1카드 대결은 "버터". 제 2카드는 "소고기". 이제 대결만이 남아 있다.
- 안석환 . . . . 30회 일치
* 1997년 [[MBC]] 일일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2004년 [[SBS]] 일일연속극 《[[소풍가는 여자]]》
* 2005년 [[KBS1]] 일일연속극 《[[별난여자 별난남자]]》 ... 이병두 역
* 2008년 [[KBS2]] 납량특집드라마 《2008 [[전설의 고향]]》〈아가야 청산가자〉 ... 천수 역
* 2009년 [[KBS2]] 월화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 (대한민국의 드라마)|꽃보다 남자]]》 ... 잔디의 부, 금일봉 역
* 2009년 [[SBS]] 대하드라마 《[[자명고 (드라마)|자명고]]》 ... 태사령 자묵 역(특별출연)
* 2010년 [[KBS2]] 수목미니시리즈 《[[도망자 플랜 B]]》
* 2012년 [[SBS]] 금요시트콤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2회 ... 팔성파 보스 역(특별출연)
* 2012년 [[SBS]] 드라마 스페셜 《[[옥탑방 왕세자]]》 ... 용동만 역
* 2015년 [[SBS]] 2부작 특집드라마 《[[인생추적자 이재구]]》 ... 왕길산 역
*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
* 1995년 《[[개같은 날의 오후]]》 ... 카메라 기자 역
* 2000년 불꽃의 여자, 나혜석
* 1997년 남자충동
* 2016년 《[[다큐공감]] 146회 : 박 감독과 시네마 은자골》 - 내레이션
* 2016년 《[[어느날 갑자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어느날 갑자기]]》
* 2006년 [[SK텔레콤]] 자동로밍
* 1997년 [[한국연극협회]] 최우수남자연기자상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영양군 . . . . 30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FA5858> {{{#FFFFFF '''군수'''}}} ||<bgcolor=#F8E0E6> [[오도창]]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3><bgcolor=#FA5858> {{{#FFFFFF '''군의회'''}}} ||<:><bgcolor=#CA252B>'''[[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4석}}}||
||<bgcolor=#FA5858> {{{#FFFFFF '''도의원'''}}} ||<bgcolor=#F8E0E6><:> 이종열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bgcolor=#FA5858> {{{#FFFFFF '''국회의원'''}}} ||<bgcolor=#F8E0E6>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br][[강석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남쪽은 [[청송군]], 동쪽은 [[영덕|영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상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영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상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영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추'''가 유명하고, 군 슬로건도 '''HOT(맵다)'''을 사용하고 있다. 과장 좀 보태서 영양군민들이 고추한테 엎드려 절해야 할 정도다. 남미 원산인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자생한 품종인 '''수비초'''가 난 곳이 영양군이다. [[청양고추]]의 '청양'의 어원이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영양군이라는 설이 있다. [[청양고추]] 항목 참고.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영양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다. 영월, 영광, 괴산, 청양과 함께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는데, 앞의 4군은 [[고추]]도 등록되어 있다.
|| 5 || 사립 || 영양여자중학교 || 영양읍 영양창수로 141 ||
|| 3 || 사립 || 영양여자고등학교[* 2007년부터 전국단위 자율학교로 지정되어 신입생을 전국단위로 모집하고 있다.] || 영양읍 영양창수로 141 ||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C9151E '''영양·영덕[br]·봉화·울진'''[* 지역구 국회의원 : [[강석호]]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3선)]}}} ||<:>16.72%||<:><bgcolor=#C9151E>{{{#FFFFFF 59.73%}}}||<:>13.29%||<:>5.65%||<:>3.33%||<:>{{{#808080 ▼43.01}}}||<:> 73.48 ||
||<:><tablealign=center><bgcolor=#1870B9><-6> {{{#FFFFFF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bgcolor=#C9151E><-5> {{{#FFFFFF '''새누리당→자유한국당'''}}} ||
|| [[오한구]]/3선[br][[민주정의당]] || 강신조/초선[br][[민주자유당]] || [[김광원]]/초선 [br] 신한국당 || [[김찬우]]/4선 [br] 한나라당 || 김광원/3선 [br] 한나라당 || [[강석호]]/초선 [br] 한나라당 || 강석호/재선 [br] 새누리당 || 강석호/3선 [br] 새누리당 ||
*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적은 인구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의 근무가 굉장히 편한 곳이며 일하기 쉽게 되어 있다. [[울릉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생활이 불편하다 보니 영양군이 유리한 편. 1년에 2명만 모집하는데 일단 훈련만 받은 이후에는 영양군으로 거주지 이전시 100% 이곳으로 받아야만 되서 3명 이상만 되면 그 이후부터 어거지로 받아야 되는 특성을 이용하여 근무가 힘든 사람에게 대안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그 밖에도 복무기관 자리가 5년이 지나도록 공석이 나지 않아 자동으로 [[제2국민역]]으로 편입되었다는 얘기도 종종 들려온다.]
* 영양군의 5면 중 하나인 수비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밤하늘이 어두워서 [[별자리]]를 관측하기 좋은 곳이다. 덕분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20년 전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감천유원지[* 말이 유원지지 그냥 개울가 있고 돌 있고 소나무 있는 곳이다.]에서 '''육안으로 [[은하수]] 관측이 가능'''한(...) 굉장한 곳이었다. 아직도, 여름철에 수비면에서 빛이 없는 마을 입구, 다리 위, 밭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 은하수가 잘 보인다.
* [[남자현]] - 독립운동가. 남자현 지사 생가 복원중.
* [[이문열]] - 소설가. 출생지는 [[서울특별시]]이지만, 영양군에서 자랐다. 석보면 두들마을에 가보시라.
* [[이일화(배우)|이일화]] - 배우. 다만 자란 곳은 [[인천광역시]]다.
* [[이재오]] - 프로필에는 [[강원도]] [[동해시]]라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태어난 것뿐이고 실제 어려서부터 영양에서 살았고, 심지어 영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프로필 바꾼것도 TK이미지 벗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매일신문]]이 이재오가 네이버 프로필 출생지를 영양에서 동해로 바꾼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2인자였으니 영양 출신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간 사람이다.
* [[장계향]] - [[음식디미방]]의 저자. [[안동시|안동]]에서 태어나 영양의 재령 이씨 집안에 시집 온 여인. [[이문열]]의 조상이다.
- 은혼/600화 . . . . 30회 일치
* 노부노부 측이 미지의 병기로 옥쇄할 작정이라고 판단한 주작 제독은 노부노부를 대등한 교섭 상대로 인정, 같은 자세로 힘겨루기에 나서는데
*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두 지도자는 비밀을 가슴에 품은 채 평화로 향하는 교섭에 한 발 내딛는다.
* 이자들을(사무라이를) 적으로 돌리지 마라.
* 이때 해방군 측의 요인이자 해방군 결성의 주축인 주작 제독이 나선다.
* 이 싸움은 긴 세월 이어진 천도중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 당연히 해방군과 손을 잡는 것이 옳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 그는 노부노부 측의 대답이 없다는건 해방군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간주하겠다며 자신들은 지구를 침략하려는게 아니라 함께 자유를 쟁취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 그러자 노부노부가 말한다.
* "자유란 무엇이냐? 그대들이 추구하는 자유란 다른 별의 자유를 빼앗아 오직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것이냐?"
* 그것은 사무라이가 추구하는 자유가 아니며, 진정한 자유란
* 주작 제독은 그가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여겨 높이 평가한다.
* 다른 해방군측 지휘관들은 자신들을 적대하겠다는 말이냐고 반문하는데 변의에 몸부림치는 노부노부는 이것을 일축
* 꼬여가는 배를 부여잡고 천도중은 자신들이 쓰러뜨리며 협력하고 싶다면 맘대로 해도 좋지만 그런 미명 하에 멋대로 굴다간 너희도 우리가 쓰러뜨리겠다고 호통친다.
* 노부노부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며 이이상 자기를 묶어두면 "발사해 버린다"고 협박한다.
* 주작이 그것이 이 모함으로 발사되는 거냐고 묻자 노부노부는 "나는 그저 아무리 엉덩이를 닦아도 씻을 수 없는 오명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고 말한다.
* 병사들은 노부노부가 뱃속에 폭탄을 품고 온 거라고 착각하고 주작은 "사무라이들은 배에 무기를 지니고 있으며 자결을 각오하고 사용하는 그 병기는 핵에 필적한다. 그것이 할복이다"라는 헛소문을 진지하게 인용한다.
* 게다가 노부노부의 자세를 보고 "배 안에 감춰진 무언가를 에너지로 변환시켜 엉덩이로 내보내는 병기"라는 엉터리 짐작까지 추가한다.
* 다급해진 해방군은 노부노부를 구속하려 시도하지만 외부 자극으로 인해 노부노부가 가스를 분출하면서 병사들을 기절시킨다.
* 이런 상황이 되자 주작은 모든 인원을 피신토록하는데.
* 자신만은 현장에 남아 노부노부를 독대한다.
* 그는 자결을 각오하고 교섭에 나선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자기 또한 목숨을 걸고 그의 할복을 막아서 무익한 싸움을 끝내겠다고 한다.
- 은혼/622화 . . . . 30회 일치
[[은혼]] 622훈. '''노인이 주는 과자는 독특'''
* 하지만 지로쵸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신라부대는 속절없이 박살나기 시작한다.
*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이 지로쵸와 합류. 긴토키는 합류하자마자 피라코한테 치인다.
* 피라코가 자신의 인의로 해결사, 가부키쵸를 지킬 것을 맹세하고 지로쵸 지금까지 가부키쵸를 지킨 해결사 일행에게 감사한다.
* [[시무라 타에]] 구출에 실패하고 함께 건물 밑으로 떨어지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들. 하지만 건물 사이에 쳐져 있던 그물망에 걸려 위험을 면한다. 긴토키가 영문을 모르는 채로 주위를 살피니 건물 안에서 야쿠자들과 어떤 소녀가 그물이 걸린 줄을 당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녀는 "집 보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
* 소타츠는 "가부키쵸의 수호자"라는 지로쵸의 표현을 듣고 코웃음을 친다. [[오토세 여사]] 등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시간을 벌어서 고작 이런 영감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고 하는데. 지로쵸는 지로쵸에게 혼자 나타난다고 전황이 바뀔 거라 보냐고 묻는다.
지로쵸는 여자나 인질로 잡는 녀석들은 이해 못해도 무리가 아니라며 받아친다.
>남자가 남자라고 자칭하는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
지로쵸는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해서야 남자는 커녕 얼간이라 불리는데, 이 마을의 여자들은 특히 강해서 남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마을 남자들은 언제까지나 얼간이라고 놀림받아 버리지.
>죽을 때까지 남자라는 이름을 부르짖을 뿐이다.
흙탕쥐파의 [[쿠로고마 카츠오]]는 보스가 복귀한 기념인지 앞장서서 신라병들을 쳐나간다. 야쿠자들과 주민들이 합세한 병력이 신라 병력에 대대적으로 반격한다.
긴토키는 간만에 봐서 안심했다며, 노망나서 오토세여사한테 또 대쉬하러 오지 않나 걱정했다고 디스한다. 지로쵸는 "다른 여자한테 홀렸다"고 대꾸하는데 긴토키가 누구냐고 묻기가 무섭게 "다른 여자"가 나타난다.
가구라는 그 꼬라지를 보고 "딸래미 엉덩이에 깔렸다"고 디스한다. 지로쵸는 잠깐 정색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피라코가 "이젠 지로총"이란 애칭이로 부르라고 하자 "그 얘긴 남들 앞에서 하지 마라"고 발끈하자 또 피라코가 울먹거린다. 이번에도 1초도 못 버티고 달래지 못해 안절부절한다. 완전 주책없는 [[딸바보]]로 전락. 게다가 딸을 "피로링"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자빠졌다.
* 소타츠는 이들이 과거 가부키쵸 사천왕이자 [[하루사메]]의 일원이었던 [[카다]]를 처치한 장본인이라는걸 깨닫는다. 그렇잖아도 일족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며 병력들을 더 불러낸다. 지로쵸는 자신이 처리하려 하지만 이번엔 피라코가 자신의 상대라며 나선다. 자신은 이 마을과 해결사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그걸 전혀 갚지 못했으며 그대로는 지로쵸의 딸도 해결사의 막내도 되지 못한다며 "모두가 선물해준 이 이름을 걸고 의리를 관철해 보이겠다"고 선언한다.
* 지로쵸는 긴토키를 먼저 죽은 친구 [[테라다 타츠고로]]와 겹쳐본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의지와 영혼은 마을로 이어지고 긴토키에게 이어지고 있다. 비록 오토세는 할망구가 되고 자신은 영감이 됐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타츠고로가 사랑한 모습 그대로이다.
- 이병후 . . . . 30회 일치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1957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8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야간에만 개표를 했던 대구병구 올빼미 개표사건, 팔공산에서 생포한 대남 간첩사건 등에서 배석판사로 심리하는 등<ref>동아일보 1959년 4월 4일자</ref><ref>동아일보 1958년 12월 17일자</ref>1961년 8월 27일 대구지방법원<ref>동아일보 1961년 8월 27일자 1964년 5월 19일자</ref> 1966년 11월 15일 대구고등법원 196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69년 3월 31일 서울고등법원 1969년 10월 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장 1971년 4월 1일 부산민사지방법원 1973년 3월 27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성동지원장, 1974년 성북지원장을 거쳐 1976년 12월 29일 서울고등법원<ref>동아일보 1976년 12월 30일자</ref> 1977년 11월 5일 서울고등법원<ref>매일경제 1977년 11월5일자</ref> 1980년 영등포지원장 1981년 4월 20일 수원지방법원장<ref>매일경제 1981년 4월 21일자</ref> 1982년 3월 12일 대전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2년 3월12일자</ref> 1983년 8월 12일 인천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3년 8월 12일자</ref><ref>동아일보 1986년 4월 3일자 매일경제 1966년 11월 16일자 경향신문 196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1969년10월7일자 매일경제 1971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 1973년 3월 27일자</ref>을 거쳐 1986년 4월 16일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7년 대법원이 상고허가 신청사건의 처리를 전담하는 상고허가신청부를 신설하면서 [[정기승]] [[황선당]]과 함께 전담 판사로 구성되었으며<ref>매일경제 1987년 1월 5일자</ref> 1987년 5월 18일에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87년 5월 16일자 매일경제1986년4월3일자</ref>
부산민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2년 5월 17일 부산은행 대표가 청구한 약속어음금 반환소송에서 이자에 대한 이자 청구는 이자제한법에 따라서 무효라고 하면서 원금에 대한 이자만 더해 지급하도록 했으며<ref>경향신문 1972년 5월 18일자</ref>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3년 5월 31일 혼인 당사자가 동성동본이라고 하더라도 신고서에 '혼인 당사자는 각각 시조를 달리함'이란 사실만 기재하면 구체적인 입증 소명자료가 없더라도 혼인신고를 받아줘야 한다"고 하여 동성동본 금혼을 규정한 민법을 무력화했다.<ref>동아일보 1973년 6월1일자</ref>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5년 4월 15일 대리투표를 했다고 폭로한 전 공화당원과 통장 등 3명에게 국민투표법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6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5년4월16일자</ref>
대법원 판사에 재직하던 1977년 1월 30일 [[권인숙]] 성 고문 사건으로 고발된 [[문귀동]]에 대한 불기소처분 재정신청 사건에서 원심이 기각한 것을 파기하고 환송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1월 30일자</ref>
- 이시종 . . . . 30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김옥신
|자녀 = 2남 1녀
* [[대한민국 내무부|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업자원위원회]] 위원
* [[열린우리당]]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지방자치연구포럼 대표의원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1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28대 | [[지방 관청|시장]] | [[충주시|충북 충주시]] | 민주자유당 | 42,514 표 | 42.05 | 1위 | 당선_충북 | [[대한민국 제1회 지방 선거|초선]], 민선 1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3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민주당2008 | 349,913 표 | 51.22 | 1위 | 당선_충북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초선]], 민선 5기}}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4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새정치민주연합 | 361,115 표 | 49.75 | 1위 | 당선_충북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재선]], 민선 6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5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더불어민주당 | 468,750 표 | 61.15 | 1위 | 당선_충북|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3선]], 민선 7기 }}
|전임자 = 이길원
|후임자 = [[김의환]]
|전임자 = 오병하
|후임자 = 오병하
|전임자 = 이석의
|후임자 = (직무대행)한철환</br>(재보궐)[[한창희]]
|전임자 = 이원성
|후임자 = 이시종
|전임자 = 이시종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30회 일치
* 연옥의 목소리는 멜리오다스라도 "경신"과 "자애"의 계금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비웃는다.
* 목소리는 "자신이 만든" 계금을 푸는 방법은 그 마신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거 뿐이라고 한다.
* 목소리는 그동안 약해진 멜리오다스가 힘을 되찾았던 것도, 죽었다 살아났던 것도 자신이 감정을 먹어주었기 때문이라며 모습을 드러낸다.
* 바로 에스타롯사의 "자애"의 계금 때문.
* 그러나 그런 그에게 대항하는 자가 있으니, 오만의 죄 에스카노르.
* 연옥의 목소리는 멜리오다스의 처지를 비웃으며 아무리 그라도 "경신"과 "자애"의 계금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조롱한다.
* 멜리오다스는 엿보는게 취미냐고 비꼬는데 그저 자신의 충실한 "눈"이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하는데.
* 연옥의 목소리는 계금을 자신이 만들었으며 그걸 푸는 방법은 계금을 건 십계를 죽이거나 자기 자신이 죽는 것 밖에 없다고 한다.
* 그러자 목소리는 강한척일 뿐이라며, 그의 떨림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 그는 또 멜리오다스가 "최흉의 마신"이라 불리던 자가 "그 여자" 때문에 도움이 얼빠진 놈이 된지 3000년이나 되었다 한다.
* 그런 멜리오다스라도 지금 정도로 힘을 되찾을 수 있었던건 자기 덕이라고 말한다.
*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그림자.
* 자신음 감정을 양분 삼아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 멜리오다스는 과거의 최흉의 마신의 힘을 되찾는다.
* 할 수 있으면 해보라며 그림자에 달려드는 멜리오다스.
* 그때 십계 중 한 명이 "내 앞에서 누구라도 증오를 품은 자는 남을 상처 입힐 수 없다."고 말한다.
* 십계의 에스타롯사. 바로 그가 "자애"의 계금을 부여받은 자였다.
* 선두에 있던 반은 단장을 죽인 네가 무슨 얼어죽을 "자애"냐고 빈정댄다.
* 계금이 통하지 않는걸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십계가 경악하는데
* 정작 그는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증오를 품을 리 없다"는 말을 한다.
* 멜리오다스가 배신한건 "그 여자" 때문이라고 하는데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의견이 분분하다. 멀린이나 엘리자베스가 거론 중.
- 정난정 . . . . 30회 일치
'''정난정'''(鄭蘭貞, ? ~ [[1565년]] [[11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며 [[조선 명종|명종]]의 넷째 외삼촌이자 재상인 [[윤원형]]의 애첩이자 그의 둘째 부인이다. [[조선 명종|명종]]조의 권력자 중 한 명으로,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사후 [[사림파]]는 그를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었다.
젊은 시절에는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다. 훗날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위하려 한 음모가 발각되자 김안로가 사사되고 김안로의 질녀였던 윤원형의 부인 김씨를 윤원형과 문정왕후의 묵인하에 몰아내고 실질적인 안방 주인이 되었다. 그 후 명종8년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적처로 올리라는 전교를 내려, 정난정은 윤원형의 정실이 되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의 슬하에 4남 2녀를 남겼는데, 정난정이 정실부인이 됨에 따라 그 자녀들도 적자가 되었다. 양반가에서는 그녀의 권세에 힘입으려고 사돈이 되자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많은 재산을 모으며 부귀를 누렸고 문정왕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이재에도 능했던 그는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으므로,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은 윤원형과 정난정 부부의 자녀들과 다투어 혼인줄을 놓았다고 한다.<ref name="yunnaev">[http://100.naver.com/100.nhn?docid=756940 정난정]</ref>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윤원형이 이조판서에 오를 때 정부인으로, [[의정부]] [[우의정]]과 [[영의정]]에 오를 때에는 [[정경부인]]으로 작호가 올랐다. 정경부인으로 오른 후 궐에 자주 들어 [[조선 명종|명종]]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 (조선)|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승하한 지 5개월 후인 1565년 9월 8일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는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며 [[의금부]]에 고발하였다. 이 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1565년]] [[11월 13일]] 독술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사후 [[사림파]]에 의해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는데, 구전과 민담을 통해 작품과 희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측근인 점을 이용,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서자 서녀도 능력이 되는 인물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남편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ref name="yunnaev"/> 이는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ref name="yunnaev"/>
* 선조시대에 판중추부사로 지냈던 [[정종영]]은 정윤겸의 손자이자 정난정에게는 서조카였다. 원형이 상변(上變)하여 옥사를 일으킬 적에 논의에 참여하도록 넌지시 일깨워주었으나 종영은 거짓 모르는 체하고 응하지 않았다. 난정이 참람하게 정실(正室)이 되어 부인(夫人)에 봉해져서 외명부(外命婦)의 우두머리에 있게 되자 사람들이 감히 항변하지 못하였으나 종영은 오히려 얼척(孼戚)으로 대우하였다. 이 때문에 원형이 크게 유감을 품어 매양 죄를 얽어 해치려 하였다. 난정의 어머니가 난정을 경계하기를 "너는 종손을 해치지 말라. 내가 맹세코 죽음으로써 당하겠다”하였으므로 화를 면하게 되고 예전처럼 현달(顯達)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 정난정의 4촌인 [[정준]]이 명종7년 6월 18일 사헌주 집의에 임명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정준은 음험하고 경박한 성품으로 윤원형의 위엄을 빌어 대관이 되어 마음내키는 대로 인물들을 공격하였고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욕을 당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분류:생년 미상]][[분류:1565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윤원형]][[분류:음독 자살한 사람]][[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불교 신자]][[분류:초계 정씨]]
- 정성왕후 . . . . 30회 일치
|작위 = [[조선의 역대 왕세자빈|세제빈]](세자빈)
|전임자 = [[선의왕후 (조선)|빈궁 어씨]](선의왕후)
|후임자 = [[효순왕후|현빈 조씨]](효순왕후)
|배우자 = [[조선 영조|영조]]
|자녀 = 없음
|전임자2 = [[선의왕후 (조선)|선의왕후]]
|후임자2 =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
혼인 첫날 밤 연잉군이 그녀의 손을 보고는 왜 이리 곱냐고 물어보자 고생을 안한 덕에 손에 물을 묻히지 않아 그리하였다고 대답하니 연잉군이 자신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깔본 것으로 간주하고 이후로 찾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1721년]], 연잉군이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되자 세제빈(世弟嬪)이 되었으며 [[1724년]], [[조선 경종|경종]]이 승하하고 왕세제인 연잉군이 조선의 21대 국왕(國王)으로 즉위하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다.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정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진종|효장세자]]와 [[영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장조|사도세자]]를 친아들 처럼 아꼈다.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조선 숙종|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영조)|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 양자 : 추존 [[조선 진종|진종]](眞宗, 효장세자, 1719~1728)
**** 양자 : 추존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 1735~1762)
***** 손자 : [[의소세자|의소태자]] 정(懿昭太琔, 의소세손, 1750~1752)
***** 손자 : 제22대 [[조선 정조|정조]](正祖, 1752~1800)
전임자=[[선의왕후]]|
후임자=[[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
[[분류:1692년 태어남]][[분류:1757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조선의 왕비]][[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 영조]][[분류:조선 정조]][[분류:서재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구 서씨]][[분류:조선 진종]]
- 정승화(육군) . . . . 30회 일치
[[경상북도]] 김천군(현 [[김천시]]) [[봉산면]] 출생이다. 상관을 잘못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임관]]한 뒤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필 강태무/표무원 [[소령]]이 [[월북]]해 버리는 사건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3사단 백골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보임되어서 참전하였는데 [[군단장]]이 [[유재흥]] 장군이었고 그 전투는 [[현리 전투]]였다. 이 때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일도 있었다. 탈출할 때 한 화전민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보답으로 여러 편의를 봐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큰 사건이 터지는데 1979년 [[10.26 사건]](김재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이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였던 정승화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자세한 사항은 [[10.26 사건]] 문서로.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후 기소되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반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으며, 그간 받은 장교 급여분도 이병으로 동일 기간을 복무할 시 받을 [[화폐|돈]]을 제외하고 전부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혜 권리도 박탈되어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수감기간 중 [[한미연합사|한미연합]][[사령관]] [[존 위컴]] [[장군]]이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 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공식선거운동 시작 직후 김영삼이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영입하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고 선거 바로 전날 [[김현희(1961)|김현희]]가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북풍이 불었고, 3김이 서로 먼저 대통령 해보겠다고 동시출마하는 병크까지 터뜨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36%, 김영삼-27%, 김대중-26%, 김종필-7%[* 보면 알 수 있듯, 3김이 단일화만 했어도 노태우는 절대 당선될 수 없었다.], 즉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정승화는 노태우가 당선되자 조용히 정치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 강등 조치된 장교들의 계급 환원 처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예비역 장군들의 계급 복권 대상에 포함되어 [[이규광]], [[강문봉]] 등과 함께 정승화도 '''예비역 육군대장의 자격'''을 되찾았고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1988년 시작된 5공 청문회에서는 12.12사태 당시의 피해자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사태의 전말을 직접증언 했다. 1993년에는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육본 헌병감), 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 등 12.12 사태 당시 육본 진압군 측 장군들과 함께 전두환, 노태우 등 당시 신군부(하나회) 출신 인사들을 검찰에 군사반란 혐의로 고발 했으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좆논리|모종의 이유를 들어]] 고발된 인사들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이것으로 기세등등해진 신군부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승화를 포함한 육군본부 측 장군들을 외려 군사반란, [[무고]]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 무고 혐의 역시 기각됐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이 87년에 제정된 헌법이후 최초로 발생하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하였다. 그의 기대대로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평생의 한을 푸는 듯 했으나,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가 [[특별사면]] 혜택을 받아 풀려나자 "반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도 풀어준다니 이 나라가 진정으로 법치주의 국가입니까?" 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이후 1999년 육해공군 및 해병대 장성 출신 모임인 [[성우회]] 제6대 회장에 당선되어 쿠데타 피해자 출신 예비역들의 권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임기 중이던 2002년 6월 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186772|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사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예비역 대장 자격으로 안장되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는 MBC 성우 [[정승현]]씨가, [[SBS]]의 드라마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MBC 성우 [[최병학]]씨가,[* 이후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12.12 직후 신군부의 지지로 [[국방장관]]이 되어 [[5.17 내란]]에 동조한 [[공군참모총장]] 출신의 [[주영복]] 역할로 출연했다.]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박인환(배우)|박인환]]씨가 정승화 역을 맡았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선 정종준씨가 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종준은 1995년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정승화 체포령을 내린 [[전두환]]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자체가 블랙코미디이다 보니 꽤나 우유부단하고 코믹하게 나오는데 육군본부 앞에서 자신을 못알아보는 초병에게 내가 육군참모총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씬은 이 영화의 백미. 영화 속 설정상 여자에는 사족을 못 쓰는 것은 덤.
특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1987년 대선 국면에서 김영삼의 제안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집앞에서 후배 [[고명승]]이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전두환이가 보내서 왔나? 가서 전하게. 그렇잖아도 고민 중이었는데, 결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만 가보게."''' 라고 말하는 간지나는 장면이 나왔으며, 해당 대사로 인해 평소 서민들의 아버지 역할로 자주 출연했던 박인환의 연기력이 재평가 되기도 하였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세간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사건([[12.12 사태]])과 관련지어 정승화 장군을 기억하지만, 원래 군부에서 기억하는 정승화는, 휘하 장병들의 '''사격술 향상에 매우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승화 장군이 거쳐간 부대는 사격자세라던가, 격발 등 [[사격]] 기본이 탄탄하게 갖춰졌다는 참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후문.
* 가족으로은 아내인 신유경 씨와 3남 1녀가 있다. 자녀 중 셋째인 정이열 씨는 아버지처럼 육군사관학교(육사 38기)를 나와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대령으로 예편 및 전역했다.
* 소설 [[리턴 1979]]에선 [[최규하]] 대통령의 둘도 없는 군부 파트너로, 군부 내 2인자 [[장태완]]과 함께 '유신 체제를 이용한 국정 개혁'의 한 축이 된다.
- 정운용 . . . . 30회 일치
|배우자 = '''김분조'''
|자녀 = 有
정운용은 대구 부호이자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인 [[정재학]]의 장손으로 태어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ref> 그의 모친 김인아는 정운용이 중학생이었던 1918년 타계했고 부친인 정응원마저 1933년 서거한 뒤 정재학 조부 밑에서 자랐다. 정재학은 3남인 [[정종원]]과 장손인 정운용을 각별히 여겨 니혼대학 법학과, 메이지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보낸 뒤 3남에게는 관료로 활동하도록 했고 맏손자에게는 은행경영 노하우를 전수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11</ref>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상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영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식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상공은행을 운영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정운용은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 등에서 27년간 최고경영자였던 [[정재학]]의 맏손자다.
[[정종원]] 제5대 조흥은행장은 그의 삼촌이고 한평생 외교관을 지낸 정운철, 기업가이자 하와이 오하나 퍼시픽 은행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정운익과 사촌이다.
정운용 조흥은행장은 미 [[군정청]] 골든 재무부장(중령)과 친밀한 관계였다. 해방 후 중앙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조흥은행은 강력한 중앙은행 후보로 꼽혔다. 조흥은행은 민족자본비중이 절반을 넘은데다 일본자본의 침투가 가장 적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하지만 1946년 광복1주년을 맞이하여 미 군정청 내각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진다. 골든 재무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윤호병이 신임 재무부장으로 선임됐다. 조흥은행 대신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으로 선정됐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237</ref> 정운용 행장 역시 1947년 10월 군정장관의 명령에 의거 행장에서 물러났다.<ref>경향신문, 1947년 10월 18일 2면 정운용 행장 해임</ref>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남)과 정운용(장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씨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상합동은행]] -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씨 가문은 [[민덕기]]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갔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했다. 그러나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ref name="ReferenceA"/>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첫 아내와 사별한 뒤 김분조와 재혼했다.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7면</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도피하다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먼 친척관계인 [[정운일]](鄭雲馹)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아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상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상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 지석진 . . . . 30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천년전쟁 아이기스의 주인공 왕코(王子), rd1=왕자(천년전쟁 아이기스))]
||<#FFA500> {{{#FFFFFF ''' 가족 ''' }}} ||<#ffffff><(> 부: 지창균[* 2018년 6월 21일 사망,], 모, 형[* 런닝맨 364회에서 형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생, 배우자: 류수정[* 러블리즈 류수정과 동명이인이다.], 아들: 지현우[*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 2002년 생.] ||
[[대한민국]]의 [[개그맨 #s-1|개그맨]] 겸 [[MC]], '''왕코형님.'''[* 지금의 지석진을 대표하는 캐릭터지만 유재석 말로는 처음에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반응이 좋으니 라디오같은데서 자칭하고 다니는 걸 듣고 서운했다고]
생각보다 경력이 다양하다. 원래 85년부터 연극배우/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었고, 메인스트림 연예인 데뷔는 1992년에 [[가수]]로 하였다. 장르는 [[발라드]]이고 앨범 제목은 '''우울한 오후엔 미소를'''. 애초에 다른 개그맨들처럼 개그 소스로 만들기 위해 음반을 낸 것이 아니라 당시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정말, 진지하게 가수로 활동하려고 낸 음반이었기에 생각보다 노래가 괜찮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을 두고 기획사 3곳이 경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제는 활동 후속 곡의 제목이 하필이면 '''[[난 알아요]]'''였다는 것. 심지어 1집 데뷔 시기와 데뷔 프로그램도 서태지와 같았다.[* 유튜브 등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프로인 MBC의 "특종TV연예"를 검색해 보면 음반 소개로 잠깐 나온다.] 결국, 그의 가수 활동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으킨 폭풍으로 철저하게 묻혔고 훗날 그의 개그 소재로 쓰이게 되었다. 나중에는 지석진 본인도 '''"여기서 서태지랑 대결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농담삼아 여러 번 써먹는다.
가수 활동이 좌절되자 지석진은 같은 [[해군홍보단]] 입대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용만]]의 권유로 1993년 KBS 개그맨 공채에 도전하여 10기로 합격, 개그맨이 되었다. KBS 공채 시험을 볼 때 [[박수홍]], [[김용만]] 등이 그의 대본 작성 및 연기 연습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유재석]]보다 나이도 많고 같은 KBS 공채 개그맨이라는 출신 때문에 지석진이 [[유재석]]의 KBS 동기나 선배로 생각하지만 [[유재석]]은 공채 7기로 지석진의 선배이다. 다만 지석진은 이미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공채 전부터 유재석과 알던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희극인의 실세인 [[심형래]]는 이런 지석진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어느 날은 심형래가 [[유재석]]과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을 불러서 지석진을 혼내라고 했는데 유재석과 김수용은 자신들보다 연장자인 지석진을 구타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 큰 소리를 내며 갈구는 연기를 했고 그것을 본 심형래가 무척 화를 내며 세 명 모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드러나는 [[심형래]]의 노답성~~ .[* 이 때문인지 심형래가 후일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 지석진은 심형래의 되도 않는 억지에 멤버들 중 가장 불쾌해 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이 사건 이후 지석진은 1994년 SBS '''[[MC]]'''공채 시험을 봐서 1기로 합격했으나[* SBS의 전문 MC 공채는 MBC의 시스템을 본따서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을 전담하는 인재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였다. 지석진과 공채 동기로는 리포터 [[조영구]], 2001년 최음제 사건으로 활동을 접은 배우 [[황수정]] 등이 있다.] 예능에는 기존 방송사에서 이적해 온 베테랑 코메디언들이 중용되었고 교양은 [[아나운서]]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마땅한 활동영역이 존재하지 않자 결국 다시 개그맨으로 복귀했다. 다만 심형래 사건 당시 충격이 컸는지 꽁트 코메디 프로그램 출연은 거의 없고[* 지석진 본인도 가끔 예능에서 꽁트같은 걸 할 때 영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 왈 "나 꽁트 많이 안해봤어..."] 주로 예능 프로그램 리포터나 라디오 쪽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인지 MC란 이미지가 강하고 개그맨이란 이미지가 상당히 적다. 런닝맨에 출연하게 된 [[전소민]]은 "석진 오빠 개그맨이셨어요?"라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을 정도.
MC 공채 출신답게 재치넘치는 입담이 전매특허로 [[송은이]]와 더불어 유재석의 방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주로 [[사이다]], 여유만만, 진실게임[* 본래 유재석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석진이 이어받아 진행했다.] 등 토크쇼 프로그램의 MC를 많이 맡았으며, 설날이나 추석 등의 특집 프로그램 MC 경력도 많다. 이 중 많이 알려진 프로그램은 '[[보야르 원정대]]', '[[스타골든벨]]'[* 스타골든벨에서는 메인보다는 현장에서 분위기를 조절하는 분위기 메이커역을 주로 맡았다. 소속사가 PD에게 로비를 한 것이 드러나서 잠시 구설에 올랐고 그 시기가 개편과도 맞물려서 잠시 프로그램을 하차한 적이 있지만 메인 MC가 여러 차례 교체됐음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시즌2에 해당하는 '스타골든벨 1학년 1반'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실은 숨겨진 실세~~],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 여걸식스의 후속작 하이파이브에서도 MC를 맡았으나 프로그램 자체가 사실상 여걸식스의 끝물빼기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던지라 오래 가지 못하고 증발했다.], '[[런닝맨]]'.
2015년 9월 1일 [[FNC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2016년 4월 4일 계약 해지 기사가 났는데 FNC엔터테인먼트 측에선 지석진이 오랫동안 혼자서 활동한 영향으로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개별 활동을 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5~6월 FNC에 어떤일이 생겼는지를 보면 FNC를 떠난건 신의 한 수.
2000년에 스타일리스트 출신 류수정씨와 결혼하였다. 원래 [[정선희]]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빠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유재석이 소개해줬다고 한다. 첫만남 당시 소개팅을 주선한 유재석이 집에 데려다 주는 순간까지 동석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지석진을 첫만남에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한 류수정씨가 유재석에게 계속 있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석진 역시 류수정씨가 자신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유재석에게 중개를 부탁한 끝에 연애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모양. 결혼식 사회까지 유재석이 봤으니 결혼의 시작과 끝을 유재석이 다 챙겨준 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유재석은 지석진이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류수정씨 개인과도 꽤 친한 모양. 방송에서 지석진과 대화 중에 "형수 저번에~" "형수 요새~"하는 식의 말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지석진은 후에 "그 때 왜 그랬냐"는 식으로 유재석을 맹폭하는 컨셉을 세우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결혼 생활을 그리 좋지만은 않게 포장하여 개그 소재로 이용하지만[* 꽃사슴인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육식을 하는 사슴이었다나...], 실제로 상당한 잉꼬부부에 부인은 굉장히 미인이다. ~~그 덕에 아들도 꽤나 훈훈한 외모를 자랑한다~~
결혼 3년 후 아들을 낳았다[* 여담으로 이 아들 돌잔치 때 애를 두고 집에 왔다는 모양. 집에 도착해서야 가족들 모두 애 어디있냐고 난리났다는 듯하다]. 현재는 고등학생이며 이름은 지현우.--[[류수정|아내와 이름이 같은 걸그룹 멤버]]가 있고 아들과 이름이 같은 밴드출신 배우도 있다. 어쩌다 보니 연예인 집안-- 아무튼 지석진은 한때 부인과 아들을 수 년간 외국으로 유학보낸 연예계 대표 기러기 아빠 중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슬프고 외롭기만 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막상 해보고 나니 방학 때 부인과 자식이 귀국할 때보다 돌려보내고 혼자일 때가 편해서 좋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절대 티를 내지 않고 힘든 척하는 스킬까지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밥을 못 해먹다보니 매일 배달음식만 먹는것이 좀 고역이였다는 듯 하다. 현재는 가족들이 귀국했는데, 그 이유가 지석진이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아들이 너무 보고싶어서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어 "그만 돌아와라. 보고싶다." 라고 말해서라고. 아내가 그 한마디에 다음날 다 정리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예능에서 가끔씩 결혼생활을 소재로 써먹곤 했는데, 런닝맨에서 본의 아니게 결혼생활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는[* 런닝맨 멤버스 위크 송지효편 [[거짓말 탐지기]]미션에서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답에 진실 판정이 떴다. 이후 멤버스 위크 왕코편에서는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날짜가 줄줄이 나오고, 아예 본인의 특집때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며 제작진에게 요청하기도.] '사실은 사랑꾼' 기믹도 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주변에 대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식의 드립을 자주 치는 모양인지, 멤버스 위크 이후에 합류한 전소민도 증거자료까지 있다면서 사랑꾼 기믹을 위협했다. 한번은 '''녹화 쉬는 시간'''에 '''싱글 중년'''들이 출연하는 [[불타는 청춘]]에 나가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스타일리스트까지 충격을 받았다고(...)[* 어쩔 수 없이 해당 비밀을 자기 입으로 밝힐 처지에 처했을 때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간신히 입을 떼는 모습이 압권이다.].
[[유재석]]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등까지 포함해서 조동아리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주둥아리'라는 발음과 유사성을 노린 것에, '저녁에 만나서 아침까지 떠들어서' 라고. 그렇게 오래 모이는 것치고는 다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모임이다.([[유재석]]은 애초에 술을 마시지 못하고, [[김용만]]도 주량이 얼마 안 된다. [[김용만]] 왈, "나도 이젠 맥주 500 정도는 마실 수 있어요.") 어디까지나 수다를 위한 모임으로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밀크쉐이크 한 잔으로 5시간은 기본이라는 듯. [[김원희]]가 예전 놀러와에서 밝히기를 호기심에 한번 참석했다가 남자들 넷이 밤새도록 술도 안 마시고 떠드는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는 모양.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 중 하나로, 김용만과 함께 '''팔랑귀'''로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유재석이 '임팔라'란 별명을 붙인 것도 여기저기 온갖 소리에 나서서 반응하는 모습이 초원에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팔라와 꼭 닮았다는 이유. 유명한 사건으로, 김용만과 해외여행 가서[* 황당한 것은 날짜 맞추다 보니 이게 '''허니문 코스'''였다고 한다(...).] 잠시 휴식하던 사이, 가이드가 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현지 장사꾼들한테 속아서 ~~호구 왔는가~~ 가짜 악어 지갑 수십 개를 그 자리에서 샀다고 한다. 사실 압축 종이로 만들어진 지갑이라 물에 젖더니 순식간에 찢어졌다고... 유재석한테도 선물로 줬는데 모르고 썼던 유재석은 뒷주머니에 넣어 뒀더니 땀 때문에 퉁퉁 불어서 돈이랑 엉겨붙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모양. 이 방면에서 워낙 유명하다보니 세일즈맨들 사이에선 "김용만이나 지석진한테 물건 못 팔면 이 바닥 떠나라"는 말까지 돌았다고...이 때문에 주식이나 사업도 여러번 날려먹은 뒤로는 사업은 안하고 주식도 안전한 주식만 한다고 한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대표적 악역인 [[알버트 웨스커]]가 가끔 지석진과 닮은 외모로 언급된다. 재미있게도 지석진은 2015년 [[런닝맨 좀비 전쟁]]을 찍었는데, 웨스커처럼 팀원들과 건물에 들어갔다가 배신을 시도했으나 자신이 당해버린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지석진은 그냥 좀비가 되어 런닝맨 동료들을 바로 가로막지만 웨스커는 죽은 줄 알았다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부활해 흑막이자 최종보스로 나왔다는 것이다.
2016년 9월 26일자로 MBC의 [[두시의 데이트]]에 [[박경림]]의 후임으로 DJ에 발탁됐다. 2007년에 김성주의 후임으로 굿모닝 FM을 진행이후 9년만에 라디오 진행.
* 2007 KBS 연예대상 쇼.오락 부문 남자 우수상
* 2013 SBS 연예대상 시청자가 뽑은 최고 인기상 <런닝맨>
- 지증왕 . . . . 30회 일치
|전임자 = [[소지 마립간]]
|후임자 = [[법흥왕]]
|자녀 =
'''지증왕'''(智證王, [[437년]]~[[514년]], <small>재위:</small> [[500년]]~[[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ref>그러나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는 지증왕의 장남 법흥왕의 때까지도 비공식적으로나마 잔존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울진 봉평신라비와 울산천전리각석에 기록되어 있다.</ref>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ref> 그는 6촌 형제간인 [[소지 마립간]]과 사돈이었고 즉위 전 [[갈문왕]]에 봉해진 것이 [[영일냉수리신라비]]를 통해 확인되었다.
[[마립간]]의 칭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임금이다.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지대로, 지도로, 혹은 지철로라고 한다. [[내물 마립간]]의 증손자이며 [[소지 마립간]]의 재종 아우이다. 부인은 [[연제부인]](延帝夫人) 박씨이며, [[소지 마립간]]이 아들이 없이 죽어 64세에 왕위를 이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奈勿王之曾孫 習寶葛文王之子 炤知王之再從弟也 母金氏鳥生夫人 訥祇王之女 妃朴氏延帝夫人 登欣伊湌女 王體鴻大 膽力過人 前王薨 無子 故繼位 時年六十四歲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ref>[[514년]] 죽은 뒤 [[시호]]를 지증이라 하였는데, 이때 이후로 신라의 시호법이 시작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五年 ... 王薨 諡曰智證 新羅諡法 始於此 (15년(514) ...왕이 죽었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쓰는 법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 지증왕은 [[사탁부]](沙啄部)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다.
국보 제264호로 지정된 [[영일냉수리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에 의하면 그를 지도로갈문왕(至都盧葛文王)이라 불렀다. 그는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갈문왕]]에 제수되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 배경은 그의 장남 원종(元宗, 뒤에 [[법흥왕]]으로 즉위)이 [[소지 마립간]]의 사위인 점이 작용했다. 서자 산종만이 있었던 소지 마립간은 사위인 [[법흥왕|원종]]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사촌들을 제치고, 6촌이자 사돈인 그를 왕위 계승자로 내정했던 것이다. [[소지 마립간]]의 서자인 산종은 후일 [[진평왕]]의 왕비 [[마야부인 (신라)|마야부인]]의 할아버지이며 [[복승 갈문왕]]의 아버지가 된다.
[[502년]] [[순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즉위 초부터 그는 제도와 체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504년]] 음력 4월 상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秋九月 徵役夫築波里 彌實 珍德 骨火等十二城(5년(504)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가을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ref>
[[509년]]에는 시사(市肆, 혹은 [[시전]])를 관리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東市典)을 설치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年 春正月 置京都東市(10년(509) 봄 정월에 서울에 동시(東市)를 설치하였다. )}}</ref> 이리하여 무역과 상인들의 거래를 단속, 통제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지방에 군주(軍主)를 두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6년(505) 봄 2월에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512년]] 실직주(悉直州)의 군주이자 [[이찬 (신라의 관직)|이찬]]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복속시켜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게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13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ref>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체구가 커서 배우자가 없었던 지증왕에게는 알맞은 배우자가 없었는데 신하를 보내 신라 국내를 수소문하던 중 [[연제부인]](延帝夫人)을 발견하여 배우자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한다.<span style="font-size:10pt;"><sup class="noprint">[<span class="plainlinks">[[위키백과:출처 필요|출처 필요]]</span>]</sup></span>
**** 손자 : [[신라]] 제24대 국왕 [[진흥왕]](眞興王, 534~576 재위:540~576)
[[경주|경주 지역 전설]]과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성기]]는 커서 그 길이가 1자 5촌(약 45 cm) 정도가 되었다고 하며, 궁녀나 왕족, 귀족의 딸 중 적당한 여인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신하들이 왕비가 될 여성을 찾으러 다니던 중 [[경주]] [[남산 (경주)|남산]]의 연못에 큰 똥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큰 똥의 주인이 여성이라면 왕을 감당할 것이라 보고 수소문한 끝에 이찬 [[박등혼]]의 딸이라 하였다. 이에 신하들이 등혼의 딸을 간택하여 왕비로 들이니 그가 왕비인 연제부인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문자명왕|문자명왕]] ([[492년]] ~ [[519년]])
|전임자 = [[소지 마립간]]
|후임자 = [[법흥왕]]
- 진격의 거인/91화 . . . . 30회 일치
* 엘디아인 병사이자 "전사 후보생"인 가비와 파르코는 스라바 요새 공략에 동원된다.
* 부관이자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계승한 콜트는 적의 참호를 뚫기 위해 "턱의 거인"과 "차력의 거인"을 동원하자 제안하지만 거절 당한다.
* 조피아는 파르코 머리에 난 상처를 살펴보며 "해군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붕대를 감아두던 "우도"란 안경잽이 소년이 흥분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마레의 해군은 양적으론 대단했던 모양이지만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 전쟁이 총 4년 걸렸으니 아주 최근에야 제해권을 잡은 모양이다. 게다가 그렇게 많았던 전함을 반 이상이나 잃었다. 그런 주제에 육군을 상대로는 "육군이니까 요새 하나 정도는 따내봐라"는 아니꼬운 소리를 해댔나 보다. 우도는 그런 말을 하면서 격앙한 나머지 파르코의 머리를 졸라 터뜨릴 뻔한다.
>'''[[라이너 베르너|갑옷 거인]]의 후계자를 말이야'''
가비는 누가 선택될지 기대된다는 얼굴이지만, 매우 자신감에 차있다. 모든 것이 기억난 파르코. 그는 가비의 표정을 보고 "너 말고는 비교대상이 없다는 말투"라며 장난을 건다. 그러자 가비는 시시할 정도로 깨끗하게 "그야 달리 없잖아"라고 인정한다. 우도와 조피아도 현재 성적상으론 그렇다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비는 그들의 말에 반박한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면서.
* 그녀는 자신이 엘디아인의 운명을 짊어지고 "그 섬의 악마들"을 몰살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선량한 엘디아인만 남길 것이며 수용구의 엘디아인들을 해방하겠다고 결의한다.
파르코와 친구들은 숙연한 자세로 그 말을 듣는다. 그러다 가비가 뭔가를 만들고 있는걸 발견하고 파르코가 묻는다. 그녀가 만든 건 수류탄 7개를 한데 묶은 다발이다.
콜트가 시간을 들여서 설명하자 마가트도 조금 마음이 움직인다. 그에게 생각하는게 있는 모양이라고 하는데.
잔인한 이야기였지만 지휘관으로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콜트는 미련이 남는다. 마가트는 그런 콜트에게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이어받는 자'''라면, 위에 서는 자로서 각오를 다지라고 핀잔을 준다. 콜트는 이 작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상황은 고스란히 전사후보생들에게도 보여진다.
>저라면 혼자서 장갑열차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요.
참호에 정적이 감돈다. 마가트 대장은 "너흰 훈련시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아냐"며 각하한다. 그래도 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처럼 유능하고 예쁜 전사는 두 번 다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성공하면 800명의 전사대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가트는 콜트에게 한 것처럼 "실패하면?"이라고 반문해본다. 가비는 콜트와 달리 거기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었다.
걱정과 공포로 일그러지는 파르코와 친구들. 파르코는 그녀를 말리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허락이 떨어지자 차라리 환희에 차오른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 열차포가 부대에 가까워진다. 그 말은 방금 전까지 총알을 퍼붓던 그 기관총 진지에도 가까워진다는 말이었다. 가비는 투항하는 척, 두 손을 들고 진지로 다가간다. 수류탄 다발은 줄로 오른발이 묶어서 질질 끌고 간다. 적이 보기엔 투항자가 다리를 절며 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투항자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격하지 않는다. 적도 상대가 엘디아인일 가능성을 상정하지만 소녀이고 투항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주저한다. 게다가 가비의 계산이 대충 들어맞아서 다리에 건 수류탄을 족쇄라고 잘못 관측한다.
이렇게 민간인이나 투항자로 위장한 "편의병" 운용은 국제법 위반이지만, 마가트는 그것도 적이 살아있을 때 얘기라며 나름대로 도박을 건다. 파르코는 대체 가비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가비가 가까워지자 기관총 진지의 병사들은 의견이 엇갈린다. 소총수는 엘디아인이 틀림없다며 거인화하기 전에 쏴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관총사수는 그럴 거면 소총수인 네가 쏘라며 떠넘긴다. 그러자 소총수는 욕지거리를 하며 조준한다. 아무리 엘디아인이라도 어린애를 쏘는게 마음에 걸린 걸까? 그러는 사이 가비는 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것도 연기의 일환일까?
그녀는 쓰러진척하며 오른발의 수류탄 다발을 끌른다. 그리고 열차가 최적의 위치에 다가오길 기다린다. 적당한 시기가 되자 선로 위, 열차포의 코 앞에 힘껏 던진다. 정확한 위치에 떨어진 수류탄은 적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폭발한다. 열차는 폭발의 여파로 탈선하며 그 앞에 있는 기관총 진지로 굴러떨어진다. 열차포 파괴와 진지파괴를 동시에 이룬 쾌거. 최적의 결과다. 마가트는 곧바로 갤리어드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가비는 작전성공의 쾌감 때문인지 폭소를 터뜨리며 마구 달린다. 하지만 적의 기관총 진지는 완전히 무너진게 아니었다. 살아남은 소총수가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한다. 미처 참호에 다다르지 못한 가비는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참호 연장에 실패한, 유탄이 떨어져 깊게 패인 자리를 향해 무작정 달리지만 총알을 피할 것 같지 않다. 지켜보고 있던 파르코가 뛰쳐나간다. 콜트가 말려볼 틈도 없었다. 그는 가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 가비가 몸을 날리는 순간, 기관총은 정확히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파르코도 그녀에게 손을 뻗지만 한발 늦었다. 그때 거대한 팔이 가비를 감싼다. 가비가 유탄으로 패인 자리에 떨어지는 순간 파르코도 그녀를 감싸며 떨어진다.
애니메이션은 2기를 통해 종결할 계획이며,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발표하여 독자들의 호기심을 크게 사고 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죽었다고 생각되는 자들 중에 스토리를 추가하여 부활시킬 것으로 사료된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천호진 . . . . 30회 일치
| 자녀 = 슬하 1남 1녀
| [[시카고 타자기 (드라마)|시카고 타자기]]
| [[자꾸만 보고싶네]]
| [[드라마게임]] - 레퀴엠을 좋아하는 여자
| [[검은 자화상]]
| [[고개숙인 남자]]
| [[여자의 시간]]
|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2012년 디자인가구 비밥
|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남자 조연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남자 최우수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남자 최우수연기상
| 탤런트부문 출연자상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토리코/389화 . . . . 30회 일치
* 아이마루가 도착한 에리어 0은 식재가 무한히 솟아나는 식재의 고향 같은 곳.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강한 식운의 도움을 받았다.
* 미도라는 자신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드러내며 아카시아의 구르메 핸드에 대항하고 토리코와 원왕은 아카시아 본체를 공격한다.
* 코마츠는 플로제에게 들은 조언을 말하는데 적합식재를 중심으로 자기 자신만의 풀코스를 만들면 구르메 세포의 악마의 속박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 그 말을 들은 브란치는 어째서 아카시아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하는데.
* 이곳은 지구의 지하 3만 5천 km 지점. 본래 GOD를 먹은 자만이 올 수 있는 곳이며 그렇지 않은 자는 지표를 통과하는 사이에 모든 에너지를 흡수 당해 죽고 만다.
* 아이마루는 구르메 균류를 사용해 자기 자신을 미생물 덩어리로 만들어서 통과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실제론 자신도 모르는 강력한 식운의 가호가 있었다.
* 센터가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은데 아이마루는 지구 자체가 폭발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 그러나 자신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를 꺼내는 미도라.
* 그런다 모든걸 막을 순 없을 거라며 엄청난 숫자의 핸드를 만들어낸다.
* 미도라를 코웃음을 치며 자기 자신이나 걱정하라고 하는데, 토리코가 제트 레그 나이프로 아카시아 본체를 공격한다.
* 코마츠가 감사하자고 하자 브란치는 오히려 GOD를 조리한 코마츠가 고맙다고 답한다.
* 브란치는 그것이야 말로 식운이며 코마츠 자신의 힘이라고 말해준다.
* 코마츠는 GOD를 요리하며 플로제의 식혼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데, 그 중엔 지구의 풀코스를 먹은 자가 구르메 세포의 악마에게 사로잡혀 버린다는 것도 있었다.
* 열쇠를 적합 식재. 식욕의 선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한 고유한 풀코스를 만든다면 악마에게서 자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모습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 남과 나누고 함께하는 식재야 말로 자신만의 풀코스일 수 있는 것.
* 그는 개새끼들 따위로는 자기 배를 채울 수 없다고 하는데, 그때 미도라가 접근해온다.
* 블루 니트로 페어는 토리코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말하며 갑자기 꼬리를 찔러넣는다.
* 네오의 세포는 "검정". 검은 세포의 악마는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극악한 식욕의 소유자이다.
* 네오에겐 그 무엇이 됐든 먹이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재해는 물론 식운 조차도 포함된다.
- 피우진 . . . . 30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4012D><-5><bgcolor=#FFFFFF><:>{{{+1 [[대한민국 정부|[[파일:대한민국 정부기 (글자없음).png|width=30]]]] [[대한민국|{{{#04376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043762 '''국가보훈처'''}}}]] [[처장|{{{#043762 '''처장'''}}}]]}}}||
|| '''학력''' ||<(> 충주여자중학교[br][[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br][[청주대학교]] [[체육대학|체육학 학사]][br][[건국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http://ko.pokr.kr/person/1956211|#]]] ||
생애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http://news.donga.com/3/all/20061213/8384735/1#csidxcb36df0171b3fd7bb440f200dad7368l| 2006년 인터뷰, 육군 중령 피우진 "여군은 여흥자리의 '기쁨조'가 아니다"]]
매우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피우진과 같이 군 생활을 한 장병들은 모두 그녀를 '''"매우 훌륭하고 인성도 상당히 좋은 참 군인"'''이라며 칭송했을 정도. 그런데 피우진이 군 생활을 할 당시 [[소령]]이었는데, 하필 자신은 [[소대장]]이 되었다.[* 보통 [[소대장]]은 [[소위]]~[[중위]]가 배치된다.] 게다가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남군 [[대위]]였는데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나마 해당 남군 대위가 개념이 있어서, 자기보다 직급은 낮아도 계급이 높기 때문에 피우진을 존중해주고 서로 상호존대를 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만.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절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절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상태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2017년에 [[양승숙]] 준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을 지지하였고,[* [[여군]]들은 보통 진보적인 친 [[더불어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반대로 [[남군]]들은 보통 보수적인 친 [[자유한국당]] 성향이 강하다. (다만 남군의 경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민주당 성향이 강한 경우도 있는데, 보통 장병 복지 및 처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민주당 쪽으로 지지하게 된다. [[백군기]] (예)대장이 그 예시.) 하필 피우진이 [[여군]] 인권 이슈를 내놓을 수 있던 자리에서 [[문재인/2017년#s-4.1|동성애자 난입]]이 일어나, 피우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실패하는 씁쓸한 일화가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가보훈처]] 처장에 임명되었다. 그 이전까지 전임 국가보훈처장은 모두 예비역 중장이었지만 [[문재인]]이 주요직위자의 문민화를 위해 여군 출신의 피우진을 이 자리에 보직시켰다.
대위 시절, 소속 부대의 군사령관(대장)이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요구를 했다.''' 당시 피우진은 당연히 이 명령을 거절했다. 처음에는 본인 보고 직접 오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한다. 즉, 휘하 [[여군]]을 술자리 여흥을 위해 부르는 행위가 군 내에 만연했던 것. 부당한 명령이 계속되자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한 가지 꾀를 내는데, 술자리에 보내지는 [[여군]]들에게 사복이 아닌 [[군복]]을 입혀 보내는 것이었다. 군복을 보면 술자리 여흥을 위한 여성이 아니라 휘하의 군인임을 떠올리게 되어, 이들을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으리라는 계산에서였던 것. 해당 여군들에게 [[완전군장]]에 총기까지 휴대시켜 실탄까지 지급 한 뒤 회식자리로 보낸다. ~~술이 확 깼겠군~~
이를 통해 피우진이 얼마나 대쪽 같은 인물인지를 깨닫게 되었기에 더 이상 비슷한 성격의 요구가 하달되는 일은 없게 되었으나, 높으신 분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피우진은 결국 중령에서 군 생활을 접게 된다. ~~안 돼~~ 한때는 이것이 루머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실제 실탄 지급을 한 것에 대해 징계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호라, 그럼 기록에 남은 그 사람이 관련자로구나!~~이때가 1988년 무렵이고, 피우진은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1987년 6월부터 89년 4월까지가 [[정호근(군인)|정호근]](後 합참의장 역임)이 1군사령관이고 다음이 [[이진삼]]이다. 또한 88년 7월 소령으로 진급했기 때문에, 88년 대위 시절 사령관은 [[정호근(군인)|정호근]]으로 추측된다.
[[여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여성의 병 복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군 간부직을 늘려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하여 "군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내가 겪은 '남자들로만 이뤄진 징집 군대'로선 여군 간부는 자리가 비좁다. 여군 간부직을 늘리자면 여군이 더 필요한데, 여자는 죄다 간부직만 차지할 것이냐."고 한 바 있다. 위 일화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현 국군 안에서 여군들이 마주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들에 대해서 직접 겪고 싸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발언. 다만 일반 여군들이 병 복무 시 마주하게 되는 부당처우 및 성차별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같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모범 군인으로서 소령까지 진급했음에도 번번이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피우진 본인의 일화만 생각해봐도...)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앞서 말한 대로 2006년 건강검진 때 [[유방암]] 절제수술 건으로 강제 전역 당했다가 2년 뒤 소송을 통해 복귀한 경력이 있는데 [[카라 헐트그린]]의 동료였던 [[F-14]] 여성 파일럿 캐리 로런츠(Carey Lohrenz) [[미합중국 해군]] 대위의 행적과 비슷하다. 두 사람 다 [[여군]] 1세대 파일럿[* 캐리의 경우 정확히는 카라 헐트그린과 함께 여성 최초의 전투기 F-14 파일럿이다.]이며 억울하게 자리에서 쫒겨나[* 피우진의 경우 유방암 절제수술의 장애 판정으로 강제 전역, 캐리 로런츠의 경우 최소한의 재심사도 없이 강제 [[그라운딩]]을 당했다.] 2년간의 법정 소송을 통해 그 보직과 자격을 회복했다. 다만 피우진의 경우 소송에서 이기고 육군항공학교에서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정년까지) 커리어를 이어갔던 반면[* 대신 앞전의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등의 일로 미운털이 박혀서 진급이 막혔다.] 캐리 로런츠의 경우는 소송에서 이겼음에도 높으신 분들 때문에 끝내 함상 근무로 복귀하지 못하고 1999년 [[미 해군]]을 떠났다.
* [[소위]]로 임관한 피우진의 첫 보직은, 여군 부사관 후보생들을 지휘하는 중대장이었다. 이때 훈련소에는 후보생들 외에 영문 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는 병사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손석희]]도 있었다고 한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피우진은 [[손석희]]를 "똑똑하고 예의 바른 병사"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이 분위기가 비슷했는지, 한번은 피우진이 [[손석희]]를 꾸짖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소령]]이 "똑같은 녀석들끼리 교육 시키고 교육 받네"라며 웃은 적도 있었다고.
- 함인섭 . . . . 30회 일치
{{공직자 정보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 효자3동 17-1 [[춘천의료원]] 병실에서 만성 폐렴으로 병사
|경력 = 前 [[대한민국 농림부|농림부 장관]] <br/> 前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농과학행정특임촉탁위원 <br/> 前 [[한국독립당]] 농림행정특보위원 <br/>前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br/>前 [[강원대학교]] 명예총장 <br/> 前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br/> 前 [[상지대학교]] 초빙교수
|배우자 = 유순희(사별), 유명숙(재혼)
|자녀 = 함양호(장남) <br/> 함춘호(차남) <br/> 함선호(장녀) <br/> 함연호(차녀)
'''함인섭'''(咸仁燮, [[1907년]] [[5월 3일]] ~ [[1986년]] [[9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이며, 초대 강원대학교 학장, 제6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그는 [[춘천농업대학]]([[강원대학교]]의 전신)의 설립에 참여, 개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과 2대, 4~5대 학장,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원장, 강원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제3대 부통령 송암 [[함태영]]의 손자이며, 26년 연하인 [[함병춘]]은 그의 배다른 이복 삼촌이었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 [[황주군|황주]][[춘광원예학교]]와 [[자동농업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후 주로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았다. [[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업대학]]의 설립에 주로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농림부 장관으로 잠시 재직하면서 8.25 직후와 건국 직후의 토지보상 문제와 토지 관련 분쟁을 모두 해결하였다.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 [[황해도]] [[황주군]] [[춘광원예학교]](黃州春光園藝學校, 6년제, 소학교 과정) 교사와 [[경기도]] [[자동농업학교]](自東農業學校) 교사로 교단에 섰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일]]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미 군정]]청이 설치되자 함인섭은 미군정청 [[농산국]] 직원이 되었다. [[1946년]] 미 군정청 [[농림부]] 고문이 되었다가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그는 [[강원도]] 도내에 대학이 없는 것일 보고, 강원도내에 대학 설립 추진을 계획하게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춘천농업대학 창립 발기회를 결성하고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1948년]] [[8월]]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설립,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학장서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는 [[문교부]] 국가고등고시 전형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8월 30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건국 이후 그의 할아버지 [[함태영]]이 조선 말 [[독립협회]]사건과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수감된 [[이승만]]에게 관대한 한결을 내려 그 인연으로, 내각 법무장관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성사되지 않고 할아버지 [[함태영]]은 [[심계원]]장과 제3대 [[부통령]]을 지냈다. 전쟁이 발생하자 그의 동생 함의섭이 일가족을 이끌고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신하였다.
[[1952년]] [[3월 6일]] 제6대 농림부 장관이 되었다. 농림부 장관이 되자 그는 정부 수립 직후에 시행한 [[토지개혁]] 당시 농지보상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8·15 광복 직후에 발생한 토지관련 분쟁과 토지보상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1952년]] [[8월 28일]], 1952년의 중석불 사건으로 인책 사임<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210200032920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2-10-20&officeId=00032&pageNo=1&printNo=1947&publishType=00020 ]</ref>하였다. 그는 중석불 사건의 피해자라는 시각도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32200099109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03-22&officeId=00009&pageNo=9&printNo=9047&publishType=00010 ]</ref> 그밖에 그는 강원도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강원도 교육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었다. [[1956년]] [[9월 12일]] UN가입추진위원회 전원위원회 강원도지부 부위원장<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091200329201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09-12&officeId=00032&pageNo=1&printNo=3366&publishType=00020 ]</ref>이 되었다. 1957년 4월 20일 춘천농과대학 학장이 되고 1957년 5월 12일부터 [[1960년]] [[7월 7일]]까지 문교부 중앙교육위원회 위원을 겸임하였다. 그는 또 [[1960년]] [[7월 5일]]까지 고등고시 전형위원에도 위촉되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기독교]] [[장로]]로도 활약하였다.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그는 재산을 마련하지 못해 자기 집이 없었고, 일부 제자들과 교직원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그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 [[경기도]] [[자동농업학교]] 교사
* 1955년 12월 ~ 1956년 2월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농과학행정특임촉탁위원
함인섭의 손자 함영덕 역시 [[함태영]] 생전에 태어났는데, 함태영에게는 4대손이 된다.
*** 이복 숙모 :심효식(<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305/h2003050715164827000.htm 한국의 보배 함병춘… 강단 그리워한 진정한 공복] 한국일보 2003년 05월 07일자</ref> 沈孝植, [[1928년]] ~ , 화가)
*** 손자 : 함영덕
** 며느리 : 김정자(金貞子,[[1940년]] ~ ), 김성현(金成炫)의 딸
본처 유순희의 묘는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 선영 내에 있다. 할아버지 [[함태영]]의 묘소는 후일 동작동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 국부펀드 . . . . 29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영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반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산유국]]에서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운용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 시작이다. 석유 등 자원 판매 수익이 없는 국가에서는 외환보유고나, 재정흑자 등을 투자금으로 사용한다.
자원수출을 바탕으로 한 국부펀드를 상품펀드(commodity fund)라고 하며, 그 외의 수익을 종자돈으로 하는 펀드를 비상품펀드(non-commodity fund)라고 하여 구분한다.
설립목적에 따라서 안정화펀드(stabilization fund)와 저축펀드(savings fund)가 있다. 안정화펀드는 자원가격의 변동에 대응하여 재정적인 안정적을 추구한다. 자원 수출에 외환 수익을 의존하다보면, 자원 가격이 떨어지면서 외환 수익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흑자일 때 모아두었다가 적자일 때 보전에 사용하는 목적이다. 저축펀드는 장래 자원이 고갈됐을 때, 미래세대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다.
쿠웨이트 투자청이 1953년에 설립된 것이 시작이다. 20세기에는 주로 산유국이 국부펀드를 설립하고 있었으나, 2000년대에는 많은 외환보유고를 보유한 신흥국에서도 국부펀드를 앞다퉈서 설립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국부펀드의 영향력이 증가하였으나, 이들의 총자산 등 정보가 비공개 상태라는 점을 염려하여 [[IMF]]에서는 산티아고 원칙 (Santiago Principles)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The International Forum of Sovereign Wealth Funds (IFSWF)가 International Working Group of Sovereign Wealth Funds(IWG)에 의하여 출범했다. 2009년 4월에 쿠웨이트에 설립된 IFSWF는 2009년 10월에 멤버들간 정기회의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하였다. 한국투자공사를 비롯하여 24개 국부펀드가 가입하고 있다.
* 쿠웨이트투자청(KIA) : 1953년 설립.
* 아부다비투자청(ADIA) : UAE에서 1976년 설립. 세계 1위 규모.
* 한국투자공사(KIC) : 2005년 7월 설립.
* 중국투자공사(CIC) : 세계 3위 규모
* 싱가포르 정부투자공사(GIC) : 싱가포르.
국부펀드에 우호적인 견해에서는 국부펀드가 장기적으로 운용되므로 금융자원 배분, 시장유동성 개선에 기여한다고 본다.
부정적 견해에서는 국부펀드는 투명성이 낮고, 정치적 목적으로 자산운용을 하여 자본시장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펀드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대상국에서 반감을 초래하여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며,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 박영진(코미디언) . . . . 29회 일치
|| '''이름''' ||<(> 박영진^^朴永振^^[* [[2016년]] [[5월 15일]] 자 [[개그 콘서트]]의 [[아재씨]] 코너에서 직접 인증.] (Park Yeong-jin) ||
주로 신랄한 [[독설]] 개그를 담당하고 있으며, 주요 히트친 대사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와 '그건 니 생각이고~' 등이었고 [[두분토론]]에 나와서 히트친 대사로는 '뭐? XX? X~X? 어디 건방지게...', '소~는 누가 키워 소는~?', '남자의 XX을(를) 매도하지 마!'가 있다.[* 두분토론 이전까지는 그 컨셉으로는 광고에 나오지 못했다. 상대를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었다고...]
급기야 2013년 6월 2일 [[개그 콘서트]]의 [[현대레알사전]]에서 외화 더빙에 대해 풍자개그를 했다가 성우계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자사 성우인 [[구자형]]은 외화를 더빙할 때 말하는 대사의 길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기본인데 이걸 지키지 않는 것처럼 묘사를 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 문제는 삽시간에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현대레알사전]] 문서 참조.
그리고 성공한 대박 코너론 저 위의 대사로 히트친 [[집중토론(개그 콘서트)|집중토론]]과 본격적으로 날리기 시작한 [[박대박]], [[춘배야]] 등이 있으며 [[봉숭아 학당(개그 콘서트)|봉숭아 학당]]에서의 [[이수근]]의 궤변론자 은사역과 [[뿌레땅뿌르국]]으로 한창 주가를 날렸다.
특히 봉숭아 학당의 궤변론자는 [[디시인사이드]]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아주 폭발적으로 반응이 좋은데 애칭은 '디스박'. 어느 정도냐 하면 봉숭아 학당에 박영진이 등장하면 '디스박 ㅋㅋㅋ' 로 2페이지 가량이 도배된다.
[[기타프로그램 갤러리]]에서도 시원시원하게 허경환을 까는 게 좋다고 할 정도[* 까는 것에 있어서는 박대박 나올 때부터 [[박성광]]을 시원스럽게 까댔다.]. 하지만 실제로는 허경환과 박성광과는 동기이자 몹시 친한 사이라고 한다.
허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정작 말이 없다. 2010년 2월 18일 자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서는 예능에 나가면 몹시 긴장을 해서인 듯 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평소에도 [[내성적]]이라고 하며, [[술]]도 혼자 거울 보며 마신다[* 진짜로...]. 언제는 동기들한테 "지금 술 마시고 있으면 전화 줘라, 지금 지갑 들고 계산하러 간다"라고 단체문자를 돌렸는데 전부 그럴 리가 없다고 아무도 연락을 안 했다고(...)...
참고로 자신이 짠 아이디어는 굉장히 잘 살리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가장 못 살리는 개그맨 1위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코너를 만들었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주목을 못 받고 연기를 한 사람만 주목 받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미안해하기 때문이라고... 반면 아이디어는 안 내고 다른 사람들의 개그를 주워먹는 개그맨 1위로는 [[박성호(1973)|박성호]]가 뽑혔다[* [[다중이]] 역시 본래는 [[김준호(개그맨)|김준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허경환이 봉숭아 학당에서 '있는데가이' 역할에서 퇴출당하자 조금씩 주춤했다. 게다가 PD는 재미도 없는 [[박휘순]]과 박영진을 연결시켜 재미를 보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최근은 그나마 좀 나아진 상태인 듯.][* 박휘순과 박영진의 개그코드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허경환이 [[두캅스]]의 기믹으로 화려하게(?) 귀환해서 이때까지 허경환을 괴롭힌 업보를 톡톡히 받고 있는 상태이며 2010년 2월 18일 자 해피 투게더에서는 박성광과는 달리 크게까지는 활약하지 못했다.
2010년 12월 25일,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09년에도 수상이 유력했으나 --[[뿌레땅뿌르국]]을 봤을 때 무언가 이해가 되었다면 기분탓이겠지-- 본인이 개그콘서트에서 신나게 갈구던 [[허경환]]과 그 전해 [[황현희]]에 밀려 우수상을 놓쳤던 [[윤형빈]]이 상을 차지하여 1년을 더 기다린 끝의 결실. 확실히 [[두분토론]]의 화력이 강했다.
원래 [[교무회의]]에는 출연하지 않다가 2012년 5월부터 '''학생주임'''으로 등장,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사람 바보 만들기''' 스킬로 [[시청자]]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박대박]], [[집중토론(개그 콘서트)|집중토론]] 등을 같이 했던 박성광과는 [[동아방송예술대학]] 시절 '''중독자'''라는 개그써클을 같이 했고 무려 11년을 동거했으며 개그맨 시험도 같이 보러 다닐 정도로 매우 친한 사이다. [[변기수]]는 "신인인데 너무 잘해서 둘이 찢어놔야 선배들이 숨통이 좀 트일 것" 이라고 한 적도 있을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다.
박성광과 박영진은 개그 코드가 너무 맞아서 그다지 싸운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MBC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당시 최종시험에 '''박성광만 붙고 박영진은 떨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박성광은 시험을 포기. 그리고 그 다음해에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때 반대로 '''박영진만 붙고 박성광은 떨어졌다'''. 그런데 '''박영진은 그냥 혼자서 봤다'''(...)
최종시험까지 "둘이서 하는 개그" 를 짜놨는데 최종시험에 혼자서 남게 되자 박영진은 박성광이 자기랑 같이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그맨 시험에서 '준비물' 로 사람을 데려가도 된다.]. 그런데 박성광은 '''자기가 떨어지자 잠적'''했다(...) 그래서 박영진은 삐져서 하루만에 코너를 만들어서 시험을 봐버렸고 당연히 떨어졌다.
그 뒤에는 우리 이러지 말자고 어떻게 화해했다고.
* [[가장자리]]
* [[미래에서 온 남자]]
* [[봉숭아 학당]] - [[이수근]]의 [[은사]] 役, 역궤변론자 役, [[엑스파일]] 요원 役, 졸업생 役.
- 보에몽 1세 . . . . 29회 일치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이 된 영주 가운데 1인으로, [[십자군 국가]] 가운데 주요한 세력이 된 [[안티오크 공국]]의 초대 공작. [[노르만]] 종족으로서 [[비잔티움 제국]]령이던 남이탈리아를 침략해 아풀리아 공국을 세웠던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남이자, 안티오크, 타란토의 공작. 그가 가진 영지에서 따온 칭호인, '''타란토의 보에몽'''(Bohémond de Tarente)이라고도 불렸다.
===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다 ===
그러던 중,교황 우르비노 2세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서 지원 요청을 받고 십자군을 선포하자, 그는 즉시 아말피 시를 내버려두고 조카인 탕크레드와 함께 500명의 기사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한다. 당시 비잔티움은 [[군중십자군]]때 십자군이 부린 행패와 1차 십자군에 참여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군대와의 갈등으로 인해 십자군과 상당한 갈등에 빠져 있었는데, 이상황에서 보에몽이 오자, 알렉시오스는 과거 그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았다가 축출당했었던 제국의 서부영토(디라키움, 에피루스등)의 상속권을 요구하지 않을까 고민하게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아드리아해 인근을 횡단하면서 규율을 엄하게 잡아 그들이 근처 마을을 약탈하지 않도록하고, 행군중 근처 마을에서 식량을 사들일때도 제값에 식량을 사들이는등[* '''전부''' 사버리는 바람에 뒤에 따라오던 툴루즈의 레몽에게 큰 민폐가 되었지만] 황제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십자군 초기 그들사이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황제의 충성서약 요구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가 아버지가 못다한걸 이루겠다는 야심을 버린것으로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행동은 원정을 요청했던 알렉시오스에게 인정을 받아 십자군의 '종교적' 지도자였던 아데마르 주교와 배치되는 '세속적' 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시오스에게 제국의 아나톨리아군 총사령관직을 요청하기도 했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많은 군사적 공적을 세웠으며, 특히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안티오크를 영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반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안티오크 점령에 성공, 안티오크 공작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안티오크 시내의 이슬람이나 시리아계 기독교인 다수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악명을 쌓았다(…). 안티오크를 획득한 보에몽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이탈하여 안티오크 공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전념한다.
안티오크 공작으로서 보에몽은 명목상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독자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립 관계였다. 주변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여 영토를 늘려나갔는데, 이렇게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다가 결국 이슬람 셀주크계 다니슈메드 왕조(Dânişmendliler)에 포로로 잡히고, 당시 그와 대립하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이송될뻔했기도 했으나, 군사적 협약을 미끼로 풀려나 다시 공작위를 되찾는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왕에게로 가 그에게 군사적 지원을 얻어낸 뒤, 남이탈리아 영주들에게 황제가 십자군을 배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해 그곳의 영주들이 자신을 돕게 공작을 한뒤, 남부 이탈리아에서 디라키움에 상륙해, 그곳을 통해 콘스탄티노플로 가려고 시도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가 비잔티움 침공을 시도할때 거친 경로와 흡사, 아니 똑같다. ~~그리고 둘다 털렸다.~~]
그러자 알렉시오스 1세는 그에 대응해 남이탈리아에 자신은 십자군을 배반한적이 없다면서 보에몽의 공작을 최대한 무마한 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끌어들여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자유무역을 미끼로 보에몽의 보급선들을 공격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만큼 교활하고 위험한' 보에몽의 군대와 직접맞붙는걸 피하면서 최대한 농성을 하는 전략으로 나섰고, 보급이 차단되면서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보에몽군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간다.
알렉시오스 1세의 딸 안나 콤네나가 그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연대기에 '그는 그의 아버지만큼이나 교활하고 위험한 인물이다.'라고 적었듯이, 그의 군사적 능력은 출중한게 확실하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를 닮아 알렉시오스 1세가 십자군의 봉신서약을 요청했을때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이를 뒤통수쳐서 안티오크 공국을 독자적으로 형성한 교활함까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매우 안타깝게도 그의 목표이자 야망이었던 비잔티움 제국과 그곳의 지도자인 알렉시오스 1세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고, 결국 그가 그의 야망을 충족시킬만한 상황이 되지못했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29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자기 자신도 모르는 멍청이"라 했던 말을 곱씹어 본 아스타는 자신과 반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를 포착한다.
* 반마법의 검에서 나오는 기를 자신의 몸에 수용해 다시 한 번 반마법 상태가 된 아스타는 유트림 화산에 퍼져있는 천연의 마나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반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반마법 상태말고는 수단이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 머리에 김이 오를 정도로 고민해 봤지만 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되는대로 "변신" 포즈를 취해보지만 될 턱이 있나. 메레오레오나에게 썰렁한 개드립 취급을 받으며 "역시 돌아가"라고 멱살을 잡힌다. 아무튼 아스타가 어떻게든 올라가겠다고 아우성치자 "발버둥쳐 봐라"며 떠나버린다.
* 혼자 남은 아스타는 어떻게든 반마법 상태를 끌어내려고 궁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단지 "죽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힘을 끌어낸 거였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럼 마그마에 무작정 뛰어들어보면 어떨까?"같은 말도 안 되는 발상도 나왔다. 하긴 그는 샐러맨더의 폭탄 속에도 뛰어든 적이 있으니 마그마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자살행위를 할 생각은 없었다. 곧 생각을 고쳐먹고 제대로된 방법을 강구한다.
*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만 없던 방법이 갑자기 나올 리도 없었다. 몸부림을 치는 아스타. 역시 자신에게 마력만 있었더라면, 이라는 원망이 나온다. 그러다 메레오레오나가 지나가듯 한 말이 떠오른다.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멍청이한테는 절대로 무리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쩌면 이미 자신이 가진 힘을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자신이 가진 힘을 하나씩 헤어려 본다. 첫째, 반마법의 검이 있다. 마법은 벨 수 있지만 이 환경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체력과 근력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유트림 화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셋째, [[야미 스케히로]]가 전수한 "기"를 읽는 능력. 이걸로 화산재 정도는 베어버릴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 이것이 돌파구다. 아스타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가는 기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의 몸에는 본래 자신이 가진 기만 있는게 아니었다. 반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와 조금씩 몸 안으로 들어오는 기도 있었다. 아스타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렇게 흘러오는 반마법의 검의 기를 전신으로 순환하도록 해봤다.
* 결과 대성공. 기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록 반마법의 기는 뚜렷한 형상이 되어갔다. 마침내 라드로스전에서 나타났던 반마법을 두른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상태가 된 것은 좋은데, 마법의 흐름을 타고 날아가는 특성 때문인지 아스타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유트림 화산의 마나의 흐름을 따라서 무작정 날아가기 시작했다.
* 한편 아스타를 앞서간 일행들은 의외의 변수에 발목이 잡혔다. 유트림 화산에 자생하는 마법생물의 존재였다. 마그마로 만든 골렘같은 존재였는데 상당히 강해서 적당히 공격해선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레오폴드 버버밀리온]]는 이정도는 쓰러뜨려야 마법기사라며 포지티브한 소릴 하지만 [[노엘 실버]]가 "그러니 빨리 해치워라"고 부추기자 "물속성인 넌 뭐하고 있냐"고 쏘아붙인다. 노엘은 물속성이긴 해도 마나스킨을 유지하는 데만도 고생하고 있어서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 바로 그 순간 그저 날아가던 아스타가 마법생물을 뺑소니치고 지나간다. 아스타가 다시금 그 상태를 하자 노엘이 경악한다. 레오폴드는 아스타가 익힌 신필살기라고 생각하고 "블랙 아스타"라는 센스없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아스타는 폭주자동차 같은 상태가 돼서 날아가는 중이라 듣지도 못한다.
* 마나의 흐름은 화산분출구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이대로 가면 그대로 마그마 속에 처박힐 판이었다. 그때 정상에 기다리고 있던 메레오레오나가 나타난다. 그녀가 마력을 방출하자 반마법의 검은 강한 마력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거라면 아스타가 마그마에 처박히진 않지만 메레오레오나를 찌르고 만다. 아스타가 도망쳐달라고 외치자 그녀는 코웃음을 친다.
>도망쳐? 멍청한 놈. 사자 중에서 사냥에 나서는 것은 암컷이다.
이미 정상에 도착해서 그들의 행태를 목격한 야미는 "저 바이올런스 암컷 라이온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라며 공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냐고 질색한다. 그 옆의 [[샬롯 로즈레이]]는 오히려 그녀의 모습이야 말로 자신의 이상형인 듯 하다.
메레오레오나는 아스타가 조금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된 모양이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정상에 올랐으니 온천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는데... 바로 옷을 벗으라고 성추행 멘트를 날린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29회 일치
* 그런데 그로부터 몇 십분 전, 자줏빛 범고래 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가 괴한과 교전 중 패하고 기사단 로브를 빼앗기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다.
* 그런데 시작으로부터 수 십 분 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변이 발생한다. 전장에서 돌아오던 길인 자줏빛 범고래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가 수상한 인물과 마주친 것이다. 수도의 뒷골목에서 괴한과 시비가 붙는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괴한이 물고 늘어지자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해 상대하기로 한다. 점잖은 성품의 잭스와 달리 그의 종자는 호들갑스러운 인물로 그의 직함과 범고래단을 부흥시킨 업적을 떠들고 "여빙의 성자"라는 별칭까지 과시한다. 그렇지만 상대는 겁을 먹는 인상이 아니다.
>모르거든, 그딴 같잖은 자식은.
괴한은 종자가 늘어놓은 말들을 일축해 버리고 "시종 주제에 떠들지 마라. 네 주인은 너 없으면 자기 소개도 못하냐?"고 비아냥댄다. 그리고 잭스가 적용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서도 "높으신 분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멋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거냐"고 왜곡한다. 그러면서 "네가 자랑하는 마법으로 정의의 벌을 내려봐라"고 조롱한다. "권력을 장식으로 두른 폭력집단의 부단장 나으리"라는 빈정거림과 함께. 잠자코 있는 듯 했던 잭스는 마침내 조용히 분노를 일으켜 자신의 얼음마법으로 공격을 가한다. 골목을 가득 매우는 송곳니와 같은 얼음 공격. 그 공격이 다가오는 데도 괴한은 이를 드러내며 웃기만 하는데.
잠시 뒤의 상황은 그야말로 이변. 여빙의 성자라 불린 잭스가 형편없이 당해버렸다. 괴한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기절하고 말았는데. 괴한은 "여빙의 성자"라는 이름을 비웃고 "나따위" 한테도 지면서 부단장 소릴 듣는다며 어이없어 한다. 그리고 그의 마법기사단 로브를 빼앗아가는데. 그는 "풀죽일 보람이 있는 녀석"을 찾아 어딘가로 향하는데, 로열 나이츠 시험장 방향이다.
* 그 시각의 콜로세움에는 각 마법기사단이 자랑하는 정예들이 총집결했다. 저마다 자신의 기량을 선보여 로열 나이츠로 선발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불마법을 다루는 어떤 사내도 그렇게 이유로 마력을 과시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미모사 버밀리온]]이 민폐니 자중하는게 좋지 않겠냐며 누그러뜨린다. 요즘 그녀도 부쩍 인지도를 쌓고 있었는데 회복과 서포트 계통이었다가 공격마법을 익힌 점과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이야깃거리.
* 같은 금색의 여명단의 선배 [[클라우스 류넷]]도 자리에 있었다. 그는 미모사가 쓸데없이 다른 참가자와 트러블을 만든다고 지적하는데 괜한 지적질을 했다가 "괜히 진지하고 걱정많고 안경이다"는 반격을 당한다. 그 역시 최근 실력이 급상승한데다 무슨 이유인지 근육단련까지 해서 인지도를 쌓았다.
* 그러나 이들의 인지도는 올해 넘버 1 루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에 비하면 약소했다. 설명이 필요없는 유망주로 경계의 대상. 그 외에도 금색의 여명 출신의 강자들이 눈에 띈다.
아스타가 유트림 화산 때 등반 경쟁했던 일을 언급하며 "그땐 졌으니 오늘은 이긴다"고 승부욕을 불사르자 유노는 찬물을 끼얹듯 "졌을 때의 이미지 트레이밍은 했냐"며 울면 곤란하다고 대꾸한다. 어쨌든 둘 모두 오늘 시험을 즐겁게 맞이하고 있다.
조금 있으려나 홍련의 사자단의 [[레오폴트 버밀리온]]도 도착. 유노와 아스타에게 자신이야 말로 시험에 합격할 거라고 선언해서 유치하게 서로 자기가 합격한다고 말싸움을 벌인다.
* [[노엘 실버]]도 물론 참가. 하지만 시끄럽게 구는 단원들이 부끄럽다며 좀 떨어진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 근처에는 자신의 오빠, 은익의 참수리의 [[솔리드 실버]]가 있었다. 노엘을 혹독하게 대했던 남매 중 하나. 노엘이 그를 발견하고 겁을 먹지만 곧 떨쳐낸다. 유트림 화산에서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그러니 뛰어넘어라"고 했던 격려를 상기한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이미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다.
한 판 30분 짜리 대결. 팀경기로 진행되며 제한 시간 안의 상대팀의 크리스탈을 파괴하는 쪽의 승리다. 국왕 머리 위에 있는게 그 크리스탈. 각 에리어에 할당된 자군의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을 많이 파괴해야 한다. 국왕이 여기까지 설명하다 말주변 부족으로 버벅대자 율리우스가 가로채서 시험에서 보는 것은 협조성과 전략성이며, 이는 앞으로 대 백야의 마안 전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때문에 팀도 다른 기사단의 멤버와 짜게 되는데.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잭스는 괴한에게 당해서 초죽음 상태. 당연히 이 자리에 오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콜로세움 벽 위에서 뛰어내려왔다.
그는 잭스를 쓰러뜨린 괴한. 그는 마법제 옆에 착지하며 어깨동무까지 한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자신이 패배시킨 인물의 이름을 사칭하는데.
- 블랙 클로버/122화 . . . . 29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솔리드를 격파한데다 아직도 여력을 남기고 있어 자신감이 충만, [[엔 링가드]]는 버섯이 해제되자 비실거리는 본래 성격으로 돌아온다.
* 상대는 [[네르슈 버밀리온]],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의 C팀. 잭스는 왕족이 상대로 나오자 남몰래 승부욕을 드러낸다.
* 미모사는 극비 중에 극비인 시합 장소를 미리 안 점을 미심쩍어하고 아스타는 비겁한 술수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나 잭스는 "나의 방식"을 꺾지 않는다.
* 잭스가 "나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아 자신도 "나의 방식"을 관철한 아스타. 기세등등하게 적과 아군 모두를 도발한 결과가 되는데.
* 로얄나이트 선발시험 1회전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알렉드라 산드라]]와 [[솔리드 실버]]는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에게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솔리드 쪽은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 양쪽이 격파, 진행요원들에게 회수 돼 치료 받는 중이다. 여전히 노엘에게 질리가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에 비하면 알렉드라는 몸쪽은 무사했지만 정신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는 고작 하층민에게 완패했다. 단지 정령 마법에 선택받은 운좋은 애송이. 그러나 그 운좋은 애송이가 정령 마법도 쓰지 않은 채 알렉드라의 최강마법을 가볍게 분쇄했고 [[윌리엄 벤전스]]의 꿈을 이뤄준다는 그의 바람까지 꼴사나운 것으로 전락시켰다. 패배한 그 자리에서 떠나지 조차 못하는 알렉드라.
* 유노는 이 혈통 고귀한 패배자들에게 신랄한 독설을 남겼다.
한팀인 [[엔 링가드]]는 다른 팀보다도 한 발 늦게 축하를 건넸다. 그는 시합 전에 봤던 비실이로 돌아가 있었다. 말투 마저 어딘지 비굴해 보이는게 아예 인격 자체가 변한 느낌. 노엘이 그 점을 지적해도 적당히 어설프게 얼버무릴 정도로 소극적이 됐다.
* 2회전 1시합. 아스타, [[미모사 버밀리온]], 잭스의 B팀과 [[네르슈 버밀리온]],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의 C팀의 격돌이다. 1회전에서 단연 돋보였던 네르슈의 기세가 한도 끝도 없이 오르고 있었다. 무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했다. 뒤따르는 매그너와 솔은 이젠 체념한 분위기. 그는 덤으로 오물의 말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스타의 말로. 각오하라는 엄포에 아스타는 자기는 꽤 끈덕질거라고 응수했다. 미모사는 아스타의 역성을 들면서 못난 오래비야 말로 각오해야 할 거라고 대꾸했다. 파탄난 남매 관계에 비하면 아스타와 매그너의 선후배 관계는 훈훈한 축이었다. 매그너가 서로 봐주기 없기를 선언하자 아스타가 기꺼이 그러겠노라 답했다.
* 그런데 의외의 의욕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잭스 류그너였다. 1회전에서 건성으로 일관했던 그가,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
왕족이 상대, 거기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결코 표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건들거리는 태도로 돌아가 1회전처럼 "이번에도 팀플레이로 힘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스타는 1회전과 달리 전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잭스에게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스타가 고작 생각해낸 반론은 함정 위치를 공개하라는 거였다. 정말로 전술이고 팀 플레이의 일환이라면 어째서 그 위치를 숨기는가? 잭스는 그것도 "너한테 알려주면 적도 알아차린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그는 철저히 자기 방식대로 할 생각이었다.
분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아스타는 자기도 "자기 방식"대로 하겠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잭스는 그의 "쬐깐하고 썩은 대가리"로 퍽이나 좋은 방도가 생각나겠다고 빈정거렸다. 미모사는 돕겠다고 "아스타씨가 작은건 신장 뿐"이라 거들었지만 안 하느니만 못했다.
* 이번에야 말로 2회전 1시합 개시. 마법제의 선언이 떨어졌다. 국왕은 자신에게 수치를 준 하층민인 유노와 아스타가 모두 2회전에 진출해 심기가 불편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스테이지의 동쪽이 C팀, 서쪽이 B팀이었다. C팀은 시작부터 네르슈가 강수를 두었다. 자신을 혐오하는 여동생이 세속에 물들어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라 애석해하며 "그녀가 싸울 틈도 없이 해방"시켜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네르슈의 벚꽃 마법 "마앵의 맹화취설"이 스테이지를 뒤덮는다. 이제 이 전장은 그가 장악한 것이나 다름 없다.
>자아 아름다운 내 마법 속에서 더러운 자기 자신을 참회하거라.
* 아스타는 반마법의 힘을 전신에 휘감고 벚꽃의 홍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벚꽃도 결국은 마력. 마력을 추격하는 반마법 모드라면 결과는 한 가지 뿐이었다. "블랙 허리케인". 작은 폭풍이 된 아스타가 벚꽃 마법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벚꽃이 바람에 날려가듯 벚꽃마법의 흔적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지워지는건 벚꽃마법 만이 아니다. 잭스는 성가신 벚꽃마법이 사라지는데도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설치한 함정마법까지 한꺼번에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르슈는 자신이 아름다운 마법이 시커먼 덩어리에 무력화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아! 협력해서 싸우자고!
- 식극의 소마/202화 . . . . 29회 일치
* [[나키리 아자미]] 진영은 마찬가지로 열차로 이동 중. 십걸들은 반역자들을 일소할 기회라며 즐거워한다.
* 소마는 에리나보다 먼저 죠이치로의 의도를 눈치채고 조리를 시작. 감자를 잘게 잘라 치즈와 치리멘자코[* 멸치, 정어리 따위의 치어를 쪄서 말린 것]에 함께 굽는다.
* 에리나는 실마리를 찾아내고,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하는데.
* 한편 아자미는 양측의 열차가 교체하는 순간 접촉해 연대식극의 세부 룰을 정리하자고 계획을 잡는다.
* 문제는 죠이치로는 [[도지마 긴]]처럼 상식적인 조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죠이치로는 만들라는 아쉬 파르망티에는 안 만들고 크레이프를 굽고 자빠졌다. 주변에선 갑자기 디저트라도 만드는 거냐고 난색. 에리나도 눈알이 뱅뱅 돌 정도로 고민해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키리 센자에몬]]은 무슨 생각하는지 잠자코 보고만 있고, 소마는 그래도 핏줄이라 그런지 누구보다 빨리 죠이치로의 의중을 간파한 것처럼 보이는데.
* 한편 십걸 측도 열차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나키리 아자미]]로부터 연대식극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는다. 아자미나 소마측처럼 흥분된 분위기는 없지만 "한꺼번에 반란자를 일소할 수 있으니 좋다"는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호응이다.
어쨌든 적측이 네 명이니 십걸 측도 네 명만 나가야 할 것 같지만, 아자미는 다른 생각을 했는지 "이쪽도 화려하게 가자"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데.
* 한편 소마는 감자를 자르고 치즈를 준비하면서 이럭저럭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드는 것 같더니만, 거기에 왠지 치리멘자코를 집어넣는 만행을 저지른다. 치리멘자코는 멸치나 정어리 따위의 치어를 쪄서 말린 음식으로 물론 프랑스요리에서 쓰이지 않는다. 아무튼 소마는 치리멘자코를 섞을 치즈, 감자를 섞어서 굽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접했던, 소마와 동료들이 보여준 "엉망진창인 발상끼리 부딪히는 걸로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나타난다"는 교훈을 되새긴다. 지금 소마와 죠이치로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서로를 배려하거나 보충해주는걸 넘어서 각자의 발상을 일단 부딪혀보는 것으로 새로운 답을 만들려는 행동들인 것이다. 그것이 도지마와 다른, 사이바가 에리나와 죠이치로에게 부과한 "시험"인 것이다.
* 그때까지 요리란 완전히 계산되고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것이라 여겼던 에리나는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는, 옆에서 보면 정신나간 짓에 합류하는 결단을 내린다. 아쉬 파르망티에는 고기가 쓰이긴 하지만 다지거나 잘게 썬 것을 쓰지 스테이크를 통채로 쓰진 않는다.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의미를 모르겠다고 혀를 차지만 소마와 죠이치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왕도만을 추구했던 에리나의 이런 변화는 센자에몬과 도지마에게도 바라던 바였다. 도지마는 지금이야 말로 그녀에게 "진정한 연찬"이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 이러는 사이 센트럴 측에서는 아자미가 연대식극의 세부 룰에 대해서 조율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그들의 열차와 다른 열차들이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서 세부룰을 확정하고 딸 에리나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듣겠다고 기대하고 있다.
* 홍백전의 대결이 드디어 종료. 센자에몬은 양측의 요리를 제출받는다. 곡절이 있었지만 양측 모두 훌륭하게 아쉬 파르망티에를 완성. 이제 승패만이 남아있다.
- 식극의 소마/210화 . . . . 29회 일치
* 잇시키 가문엔 후계자가 4살이 되면 먼 곳에 수련을 보내는 전통이 있는데, 잇시키는 절친한 키노쿠니 가문에 보내진다.
* 네네는 이때 처음 잇시키와 만나는데, 처음엔 잘해주려고 했지만 잇시키가 뭘 배우든 그녀를 금방 따라잡자 강한 경쟁심을 느끼고 적대한다.
* 현재도 네네는 그가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자신보다 낮은 7석에 있는 거라 여기며 열등감을 느끼고 2라운드에서 제대로 승부하자고 제안한다.
* 잇시키는 그녀의 승부욕에 대해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그런 제안이 나오자 "너는 [[유키히라 소마]]에게 패할 테니 무리"라고 도발적으로 대답한다.
* 세뇌된 채인 [[카와시마 우라라]]. 반역자팀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악담만 늘어놓던 그녀가 [[잇시카 사토시]]가 솜씨발휘를 하자 대번에 달라진다. 잇시키는 장어를 고정함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배가르기를 마친다. 카와시마는 그것을 "일섬"이란 한 마디로 표현하면서 괜히 십걸의 7석이었던게 아니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세뇌모드로 돌아가 "결국 센트럴의 적은 되지 못할 것이다"라며 패배할 때의 표정이 기대된다고 말을 바꾼다.
* 잇시키의 솜씨에 놀란건 카와시마만이 아니다. 적 십걸들 조차도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으며 에이잔 같은 경우는 저 실력만 잘 활용하면 돈을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왜 센트럴에 반역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다. [[코바야시 린도]]는 [[시라츠 쥬리오]]에게 지지말고 실력을 보여주라고 응원하는데, 정작 시라츠는 잇시키의 본실력에 감동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다. 이 위험분자는 잇시키의 기술이 아름답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자기 조리까지 잊어버린다. 어쨌든 린도는 쥬리오가 기죽지 않고 의욕이 생긴거 같다고 잘됐다고 생각한다.
* 쿄쿠세이 기숙사 멤버들도 경악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아라토 히사코]] 같은 경우 그저 알몸 에이프런의 변태라고 생각했던 그가 놀라운 솜씨를 선 보이자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잇시키가 배가르기를 저런 정밀도와 속도로 처리하는데 경악한다. 배가르기는 장어의 배를 따고 내장을 제거하는, 보통 생선 손질과 기본적으로 같은 작업이다. 그러나 장어는 갈비뼈가 없어서 정확히 배를 따기 어렵고 싱싱한 장어일 수록 힘이 좋아서 도마 위에서 요동치기 마련. 보통 생선처럼 손쉽게 손질하는게 불가능한 생선이다.
* [[사카키 료코]]는 본래 장어는 등가르기가 주류고 배가르기는 오사카나 교토 같은 "관서"의 기술이라고 지적한다. 후배들은 잇시키의 내력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그가 관서 계통의 기술을 사용하자 의아해한다. [[나키리 에리나]]는 그게 놀라운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십걸 출신인 그녀인 만큼 잇시키의 내력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있었다. 특히 그가 속한 "잇시키" 가문에 대해서라면.
잇시키가는 기원을 따져보면 무라마치 시대부터 대대로 교토에서 음식점을 해왔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들은 [[키노쿠니 네네]]의 키노쿠니 가문과 함께 교토를 동서로 양분하고 있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동의 키노쿠니, 서의 잇시키란 말이 있을 정도. 이 둘은 관서를 넘어 "일식계 전체에서 양대 명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설명을 들은 유키가 놀랄만도 하다. 그런 국가대표 명가의 자손이 토오츠키에겐 알몸 에이프런으로 공공외설죄를 저지르고 다녔단 말인가?
* 키노쿠니는 잠시 옛일을 떠올린다. 키노쿠니 가문의 영애로 보람찬 생활을 하던 그녀. 어느날 아버지는 "잇시키 가문의 아이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됐다"고 통보한다. 잇시키 가문엔 후계자가 4살이 되면 먼 곳에 보내 훈련시키는 전통이 있다. 두 가문은 절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여러번 잇시키가의 후계자를 맡아줬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 아버지는 네네에게 잘 대해주라고 당부하며 동갑이니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보내진게 잇시키 사토시.
* 아버지의 당부도 있어서 네네는 처음부터 잇시키와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려고 한다. 처음 키노쿠니가에 왔을 때, 잇시키는 어딘지 멍해보이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네네는 실뜨기나 공기놀이를 가르쳐주며 함께 놀았다. 그런데 잇시키는 류테키나 비파같은 악기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네네는 당연히 다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뜻밖에도 잇시키는 무엇을 가르쳐주든 금방 따라해서 능숙해졌다. 곧 악기 뿐이 아니게됐다. 잇시키는 네네와 함께 다양한 교양을 습득하게 되는데 무엇을 하든 네네가 고생해서 익힌 솜씨를 손쉽게 따라잡았다. 네네는 곧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그를 경쟁자로 적대시한다.
* 네네는 그런 과거지사를 숨기지 않고 공개한다. 후배들은 둘이 소꿉친구 사이냐고 놀라길 먼저한다. 하지만 인정하는 잇시키와 달리 네네 쪽은 "우리집에서 식객을 하며 수행한 것 뿐이지 소꿉친구가 아니다"라며 여전히 적개심을 드러낸다. 잇시키는 뭘 그렇게 맨날 자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핀잔하는데, 네네는 그 이유는 알고 있지 않냐고 응수한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도 별다른 주문은 받지 못하지만 자르기 단계까지 진행했다. 제면기지만 그래도 썩 괜찮은 면이 나온건 분명하다. 이쿠미와 히사코는 그가 과연 어떤 소바를 완성할지,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궁금해한다. 찬 면과 더운 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소바는 면이 나오자마자 삶기에 들어간다.
* 네네는 조리 중에 잇시키에게 "2라운드에서 나랑 싸우자"는 제안을 한다. 잇시키는 자신이 쥬리오에게 지면 불가능하다며 성급하게 군다고 대꾸한다. 하지만 그녀는 "얼버무릴 필요 없다"며 냉냉하게 대응한다.
>내가 너보다 위의 자리에 있는건
네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잇시키의 습성. 그건 무엇을 하든 그녀가 이룬 경지를 쉽게 따라잡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여력을 남기고 있다. 그것이야 말로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 참을 수가 없으니 자신들 91기생 중에 누가 최강의 요리사인지 자신의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며 투지를 드러낸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나오자, 잇시키도 더는 두루뭉술하게 넘길 수가 없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 그때 소마측의 어떤 행보 때문에 좌중의 시선이, 분노한 네네의 시선까지 그쪽으로 쏠린다. 소마가 준비한 것은 뜨겁게 달궈진 중화 프라이펜이다. 소바 요리 중에 중화 프라이펜이 나온 것만도 해괴한데, 그는 그걸 뜨겁게 달궈지길 기다리고 있다. 처음엔 그저 놀랐던 사람들도 대체 이게 뭘하자는 짓인지, 의아해할 뿐이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29회 일치
[[식극의 소마]] 214화. '''강자이기에'''
* "한 소바가 훨씬 향기가 강하다"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이렇게 단언하자 좌중이 술렁인다. 어느 쪽이라고 지칭하진 않았으나 기량이 위인 건 [[키노쿠니 네네]].
*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은 네네에게 "직접 맛을 보라"고 권하는데, 소마의 것이 아니라 네네 자신의 소바였다.
* 네네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일단 맛을 보는데, 놀랍게도 자신이 평소 만들던 소바보다 현저히 풍미가 떨어졌다.
* 이런 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잇시키 사토시]]는 네네에게 "넌 다른 가루를 쓴다는 생각 자체가 없이 배운 대로 음식을 했을 뿐"이라 쓴소릴 듣는다.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그렇게 외쳤다. [[유키히라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대결. 양측 소바의 심사까지 끝난 상황에서 그는 한쪽 요리가 현저히 향이 뛰어나다고 발언한다. 반역자들이 술렁거린다. [[아라토 히사코]]와 [[이사미 알디니]]는 어느 쪽을 지칭한 건지 몰라 혼란스럽다. [[사카키 료코]]는 "소바를 더 잘 다루는 쪽은 네네 선배"라며 [[키노쿠니 네네]]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사실 그녀의 9할소바가 이끌어낸 리액션이 워낙 뛰어났다. 아직도 정신없이 먹던 심사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 승부의 당사자인 네네와 [[유키히라 소마]]는 말 없이 심사의원들의 선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표정에 좀 더 여유가 있어 보이는 쪽은 소마였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타도코로 메구미]]를 비롯한 반역자들도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 물론 네네 본인도 그랬다. 그녀는 "뭐가 어쨌다는 거야"란 태도로 젓가락을 집어든다.
* 네네는 심사의원이 트집을 잡는다고 느꼈는지 자신은 평소대로 "최고의 소바"를 만들었다 자부하며 자신의 소바를 맛본다. 그런데, "최고의 소바"에 결함이 있었다.그것도 결코 숨길 수 없는 결함.
센트럴을 찬양하기 바빴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얼굴에 아연함과 당혹함이 얼룩진다. 네네는 그제서야 소마의 소바를 맛보고 확실히 자신의 것 보다 풍미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십걸 네네가 흔들리자 관중들은 더이상 야유 조차 퍼붓지 못한다.
* 비록 일식에는 문외한지만 과학에는 일가견이 있는 [[나키리 아리스]]가 자신있게 설명을 자청한다.
유독 대회장 안이 춥다는 이야기는 [[식극의 소마/213화|지난 번]]에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인데다 홋카이도. 당연한 추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승부의 열쇠였다니? 아리스는 소바의 향기의 "정체"부터 시작한다. 소바향은 "휘발성 알데히드"인 "노나날 데카날"같은 성분에서 기원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휘발량이 줄고, 따라서 소바가루 자체가 향을 덜 내게 되는 것이다.
* 여기서부터는 향기의 스페셜리스트인 [[하야마 아키라]]에게 넘어간다. 그도 아리스의 설명에 동의하며 그런 요소는 요리의 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특히 소바처럼 풍미를 즐기는 요리에선 결정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온도가 소바의 향을 결정한다"는 것은 가설의 영역으로, 누구도 데이터로 검증해본 적이 없는 영역이다. 하야마는 온도 외에도 이 대회장 자체가 소바의 향을 살리기 어려운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이스트와르도 그의 설명에 공감하며 온도는 물론 습도 등, 이 회장의 환경 자체가 소바 요리에 부적합한 장소였다고 인정한다. 안은 네네가 만든 구할 소바와 벚꽃 새우 튀김은 옅고 섬세한 향이 얽히는 맛을 즐기는 것이라 이 작은 차이가 치명적이었지만, 소마는 소바향 자체도 강한 데다 철냄비에 굽는 공정으로 기름과 불맛이 내는 향기까지 더 해 풍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리했다.
그는 소마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요리를 했던 거라고 단언한다. 네네가 낭패한 얼굴이 된다. 잇시키는 확인사살처럼 소마에게 그렇지 않냐고 묻고, 소마가 그렇다고 답한다. 그가 온도의 변화까지 눈치챈 건 아니었지만, 시합 시작 시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주어진 소바가루는 바깥에서 다뤄봤던 것에 비하면 향기가 부족했다. 그러다 "기름에 구워서 소바의 풍미를 더욱 강화하는게 어떨까?"라는 착상이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굽는 공정을 견딜 수 없는 1번 가루는 자연히 배제, 향이 강한 3번을 골랐다.
지금까지 소마를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네네와 센트럴 추종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가 행한 조리는 기행도, 요행이나 바라고 한 짓도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강자이기에 말이야.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 것은 우리에 갇힌 반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었다. 승부가 시작되고 거의 처음으로 밝게 웃는 반역자들.
>승자는... 반역자 측, 유키히라 소마.
- 식극의 소마/228화 . . . . 29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는 출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굳이 약한 선수를 강한 상대에게 부딪혀 나중에 확실한 승리를 따내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 2rd Bout결과는 반역자팀의 전패. [[미마사카 스바루]]가 결과에 불복하자 [[사이토 소메이]]는 그가 칼집 넣기를 미처 트레이스 못한 점을 지적한다.
* [[메기시마 토스케]]와 [[코바야시 린도]]는 박빙이었으나 결국 린도의 승리. 반역자들은 십걸 상위 멤버의 실력을 새삼 실감한다.
* 에리나가 말했던 "어떤 조건"이 이것. 상대를 충분히 소모시킨다면 다음 대전자에게 그만큼 유리해진다는 것이었다.
* 츠카사는 내일 대전에선 자신들이 나오지 않은걸 통지하며 [[유키히라 소마]]에게 자신과 싸우고 싶다면 그 시기를 피하라고 권한다.
* 양측 인원 모두 5명씩 남은 채로 연대식극 1일차 종료. 그런데 소마는 아예 미리 대전자를 확정해 놓는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는데.
* 2rd Bout를 앞두고 출전자를 선발하면서 [[나키리 에리나]]는 "버리는 대장 작전은 의미없다"는 전제를 세웠다. 오히려 상위 실력자에게 맞먹는 실력자를 붙여서 이겨나가지 않으면 최종적인 승리는 불가능. 전략안이 결여된 [[유키히라 소마]]로선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는 슬쩍 [[타쿠미 알디니]]에게 에리나가 한 "버리는 대장"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우선 전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타쿠미가 "강한 적에게 약한 적을 붙여 버리는 패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해줬지만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그때 에리나는 퍽 냉정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반역자들은 껄끄러워하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어쨌거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2석 [[코바야시 린도]]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얼마나 승리하든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에리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말을 이었고, 소마에겐 꽤 인상적인 말이었다.
* 2rd Bout종료. 그 결과는 3 대 0. 전패라는 충격적인 결말. 최종스코어는 물론 세부평에서 조차 단 한 점도 따내지 못한 완패였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반발하고 있었다. 어째서 완벽한 트레이스에 어레인지까지 가미한 자신이 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심사한 샤름은 담담한 어투로 패인은 "칼집 넣기"라고 단정했다. 더욱 모를 말이었다. 칼집이라면 미마사카도 철저하게 트레이스했다. 초밥에서 칼집은 먹는 순간 밥과 재료가 녹아 섞이는 것 같은 식감을 주며 참치의 맛을 입안 전체로 퍼뜨린다.
* 미마사카의 트레이스 상대였던 [[사이토 소메이]]는 뭐가 문제였는지 짐작이 갔다. 확신에 가까웠다. 미마사카는 그가 놀랄 정도로 완벽한 트레이스를 보여줬지만 딱 한 가지를 간과했다. 지금 만든 초밥은 보통 에도 초밥이 아니라 "알스시"였다는 것. 그 말을 듣자 미마사카도 짚이는 데가 생겼다. 칼집을 너무 넣었다. 크기가 작은 알스시에 보통 초밥과 같은 칼집을 넣으면 재료가 너무 빨리 녹아버려서 충분히 여운을 주지 못한다. 사이토는 그가 미처 몰랐던 것도 그의 탓은 아니라고 했다. 이건 얼마나 "스시도"를 익히고 단련했는가 하는"경험의 차이"였으니까. 이제 미마사카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야말로 압도적. 반역자들은 센트럴의 힘을, 십걸 상위 멤버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rd Bout 이후 침체돼 있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카와시마가 그만한 전력을 보내놓고 전멸 당했다며 꼴좋다고 조롱했으나 에리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 [[메기시마 토스케]]를 격파한 [[코바야시 린도]]는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이대로 여세를 몰아 3rd Bout까지 참전할 태세였다. 그녀는 츠카사에게도 함께 나가자고 제안하는데 의외로 츠카사는 약한 소릴했다.
츠카사의 한 마디는 승전보로 뜨거워진 센트럴 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쿠가와 승부가 예상보다 힘겨웠고 그만큼 "소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3rd Bout를 쉴 것이다. 린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린도는 한심한 소리나 한다고 갈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키노쿠니 네네]]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구급반이 들것을 가져오고 있었다. 츠카사의 말이 맞았다. 린도도 메기시마의 라면은 정말 굉장했고 기진맥진해졌다고 인정했다. 츠카사는 아무 내색이 없는 사이토에겐 역시 터프하다고 감탄했지만 그도 허세는 부리지 않았다. 메기시마와 일전은 마치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았으며 자신도 예상이상으로 소모를 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제 센트럴 측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시점이었다. 소마는 이제 에리나가 말했던 상황이라고 깨달았다.
만일 먼저 대전자가 강적의 전력을 충분히 소진시켰다면 바톤을 이어받는 대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통상적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것도 연대식극의 전술. 패배는 사실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희망을 남겼고 그걸 남은 사람들이 확실히 이어받게 될 것이다.
* [[잇시키 사토시]]는 냉정하게 승부를 관망하는 에리나를 보고 대장으로 풍격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흐뭇해했다. 한편 결국엔 지고 만 쿠가는 돌아오자 마자 벌렁 드러누워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리나가 충분히 공헌했다고 말해줘도 "위로는 됐다"며 생떼를 부렸다. 결국 투정을 감당하는건 소마의 몫이었다. 어깨를 주무르라는 둥, 땀을 닦으라는 둥, 차를 내오라는 둥 실컷 소마를 부려먹고 나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하지만 소마가 기껏 차라고 가져온게 츠카사가 우려놓은 거여서 다시 발끈. 한동안 그 차를 들여다 보던 쿠가는 냉큼 들이켜 버렸다. 그는 츠카사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하던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그의 목적은 거의 완수된 거나 다름 없었다. 츠카사에게 자신을 각인시킨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말이다. 쿠가는 츠카사의 곤란한 표정을 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오늘에 한해서는.
* 츠카사는 소마에게 다가와 센트럴의 결정을 전달했다. 내일 십걸 상위 멤버의 출전은 없다. 그러면서 자신과 싸우고 싶다면 소마도 내일 안 나오는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소마는 그의 기대를 져버렸다.
소마의 말에 타쿠미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동의했다. 반역자팀의 3rd Bout 출전자는 이 셋으로 확정. 1학년 삼총사가 나간다. 잘 부탁한다고 외치는 소마. 이걸로 양측 모두 5명의 선수를 남긴 채, 연대식극 제 1일차가 종료됐다. 그런데 소마는 또다른 제안을 했다.
- 유니콘남 . . . . 29회 일치
유니콘계 남자
== 유니콘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남자 ==
유니콘계 남자란, 고학력, 고수익, 높은 사회적 신분, 잘생긴 얼굴, 좋은 성격과 신사적인 태도를 모두 갖춘 '''완벽한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 반면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남자이기 때문에, 오직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만이 만날 수 있다.
'초식계 남자' 이후로 잡지 업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계 남자' 가운데 하나이다.
|| 1위 : 유니콘 계 남자(ユニコーン系男子) ||
|| 진정한 뉴타입계 남자(ニュータイプ系男子) ||
|| 2위:리디 계 남자(リディ系男子) ||
헌데 이 방송에 소개된 유니콘 계 남자는 그냥 아무리봐도 '''건담 유니콘의 패러디'''로 보인다. 뉴타입이라느니, 리디라느니(…)
== 처녀 광신자 ==
왜일까 한국에서는 '''처녀가 아닌 여자를 증오하여, 사귀던 여자가 처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공격적으로 나오는 남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또한 때때로 이러한 남자가 늘어나서 일본이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설명도 추가되었다.
이 설명은 다음 2채널 스레드를 참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니콘 계 남자와 비처녀 증오를 묶는 소스가 일본 인터넷에서는 이것 밖에 없기 때문.
【비보】 처녀 밖에 허용하지 않는 「유니콘 계 남자(ユニコーン系男子)」 텔레비젼에서 소개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스레드는 레스수 253개 로 끊긴데다가, 대부분 별 내용도 없는 처녀드립 수준의 기입이고, 정작 방송 내용과 관련된 기입은 전혀 없다. 이 스레드 만으로는 유니콘 계 남자가 처녀만 허용하는 처녀 광신자를 뜻한다는 증명을 하기 어렵다.
이 스레드 도중에 붙여진 이 그림이 유니콘 계 남자의 설명으로 자주 이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잘 보면 그냥 '''유니콘'''에 대한 설명이지 '''유니콘계 남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 그림 주변의 기사가 짤려 있고 출처도 명확하지 않아서 잘 알 수 없지만, 유니콘 계 남자의 의미를 증명하는 그림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뜻으로 쓰이는 사례가 인터넷 상에서 더 나온다고 해도, 이 말이 처음 나왔다는 2014년 여름에서 2015년에 이르기까지 잡지나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사이트에서 정리된 기사에서 소개하는 '유니콘계 남자'의 의미는 '처녀 광신자'가 아니라 '유니콘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남자'라는 뜻이다.
2ch 스레드를 보고 한국 인터넷에서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탓에, 어떤 오해나 착각으로 잘못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 처녀 광신자를 뜻하는 단어는 처녀주(処女厨)가 흔히 쓰인다.
- 유해진(배우) . . . . 29회 일치
|| '''본관''' ||<(> [[류(성씨)|진주 류씨]] 토류계[* 진주 류씨 토류계 26세손 '海'자 항렬이다.] ||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외모의 소유자로 실제로도 그런 이미지를 이용한 [[소시민]]적인 캐릭터로 많이 출연했지만 오히려 이 점을 역이용해서 인텔리한 [[엘리트]] 역으로 출연해서 색다른 면을 보여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섹시하기까지 해보인다~~ 물론 워낙 기본 연기력이 탄탄하다 보니 어떤 캐릭터도 잘 소화한다.
조연 전문 배우라 해서 조연만 맡은 것은 아니며 [[주연]]으로도 꽤나 출연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 작품을 오롯이 끌고 나아가는 ~~외모~~힘은 아직 부족한 탓인지, 혹은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보였는지 주로 공동주연이 많으며,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 중 유명한 것들로는 아래의 작품이 있다.
전술한 작품들 중 《극비수사》가 286만이고, 《그놈이다》와 《이장과 군수》가 고작 100만을 넘겼을 뿐, 나머지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못 올렸고(특히 《죽이고 싶은》은 10만대), 결국 2010년작 《[[부당거래]]》에선 다시 조연으로 출연했다(...). 거기다 2012년 남자 주인공으로 열연한 《미쓰고》도 61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본인의 장기이자 대표이미지를 살린 코미디 영화 '[[럭키(영화)|럭키]]'에서 약 700만 명을 동원하고, 이후 [[공조]]가 약 800만, [[택시운전사]][* 영화 정보에는 조연으로 나와있지만, 비중이 높은 주연급 조연]가 '''1000만'''을 돌파하면서 주연배우로서의 입지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왕의 남자]]》의 육갑이 역으로 2006년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타짜(영화)|타짜]]》에서 보여준 '''"곽철용 저 새끼는 아주 그 유명한 그...뭐...아주 뭐라 그럴까 아주 유명한...어...씨...씹새끼?"'''라는 대사가 유명하다.
예능면에서는 2006년 [[차승원의 헬스클럽]]으로 처음 모습을 보인 뒤, 2013년 4월부터 [[1박 2일]]에 [[김승우]] 대신 출연했다. [[삼시세끼/어촌편|삼시세끼 어촌편]]에 [[차승원]],[* [[장근석]]도 둘과 함께 출연 예정이었으나, 본인의 [[탈세|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자세한 건 [[장근석]] 항목으로.] [[손호준]][* [[장근석]]의 하차로 4회부터 고정으로 합류했다.]과 같이 출연했다. --그리고 [[참바다]]라는 별명도 덤으로 얻었다 카더라.-- --이 문서는 [[참바다]] 문서 검색으로도 들어올 수 있다.-- 여기서 본인의 이름이 "바다 해(海)에 참 진(眞)"임을 밝혀 자막을 통해 참바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삼시세끼에서 손호준과 처음 만났을 때 그 전에 작품 등으로 만난 적이 없는 초면이었는데, [[존댓말]]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친해진 후에는 편하게 했지만. 유해진이 14살의 나이차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상황이고 게다가 경력에 따라 위아래가 확실하다고 하는 배우계에서 말이다. 평소 인성으로도 좋은 얘기들이 흘러나왔던 만큼 후배연기자를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준것.
2016년 [[럭키(영화)]]를 통해 드디어 첫 단독주연을 맡게 되었다! 영화는 대략 유해진이 맡은 주인공 형욱은 원래 냉혹한 킬러였으나,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후 무명배우로서 활동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킬러 부분은 소름끼치는 스릴러 영화 속 인물이지만 사고 후 갑자기 코믹해지는 부분에서 유해진과 정말 어울리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관객수 또한 손익분기점의 2배를 넘기면서 흥행도 크게 성공했다!
|| 2004년 || SBS || [[토지#s-7.2|토지]] || 김평산/김두수[* 극중 1인 2역으로 나왔다. 유해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라마에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며,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여주면서 [[씬스틸러]]를 잘 소화했다.] ||
||[[달마야 서울가자]]||용대||1,272,000||실패||
||[[왕의 남자]]||육갑||12,302,831||성공||
참고로 실제 성은 '[[류(성씨)|류]]'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류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류씨들이 행정상 유씨로 살고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유현진'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류'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류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류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유현진이 아닌 류현진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류(성씨)|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 ~~이게 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윗 동네]] 때문이다.~~]
[[닮은꼴 유명인|축구선수 박지성과 닮았다.]] '''외국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다.''' 심지어 [[평발]]이라는 것도 똑같다. 물론, 나이를 생각해보면 박지성이 유해진을 닮은 것이지만...[* 오죽하면 [[못친소|못생긴 사람을 초대하는 축제]]에서도 더 못생긴 사람을 이상형 월드컵 형식으로 뽑을 때 이 두 사람이 함께 나올 정도다.] '이장과 군수' 예고편에서는 이걸 셀프개그로 삼아서 "넌 뭐 잘났냐? '''[[박지성]] 짝퉁''' 같이 생겨가지고"란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1박 2일에서도 별명이 '유지성'이다. 축구도 썩 잘 하는 편이라고. 그리고 [[배철수의 음악캠프]] [[2015년]] [[6월 17일]]자 방송에 유해진 본인이 출연해 박지성으로부터 인정받았음을 고백했다. 다만 박지성은 자신의 작은 아버지가 유해진과 더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50617192016819|##]]
코미디언 [[이세영]]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 고등학생 시절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유해진을 닮은 '''여자'''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찌그러지는 얼굴이 정말 판박이다. 물론, 지금은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
[[차승원]]과는 동갑내기 친구로 --네?-- 신인시절 부터 같은 작품에 여러번 출연하면서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함께 출연한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환상의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예전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에서 차승원이 그를 처음 봤을때 감독에게 조용히 다가가 아무리 영화의 리얼리티가 중요해도 진짜 건달을 데려오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고 한다.
[[2010년]] 벽두부터 [[김혜수]]와의 교제 때문에 연예계 최고의 사건 주인공으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2120158|등극했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오오--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2808|광고로 확인 사살]].[* [[대우증권]] CF에 김혜수를 닮은 꼴로 알려졌던 배우 [[이엘]]과 함께 출연했다.] [[공형진]] 왈 [[김혜수]]가 유해진에게 먼저 반했다고 한다. 유해진이 그렇게 다식해 대화가 안 끊길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그렇게 그러나 [[2011년]] [[4월 4일]], 3년만에 결별 소식이 보도되었다. --초콜릿 복근도 다 필요 없어!-- 함께 [[건강검진]]만 받아도 [[결혼]]설이 나도는 수준이었으나 연기에 매진하면서 자연히 멀어졌다고 한다.
옷 입은 모습을 보면 잘 모르겠지만 사실 근육질, 정확히는 [[이소룡]] [[근육]]의 소유자라는 얘기가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설로 돈다는 얘기가 있다. 한때 '''[[해군 특수전전단|UDT]]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위의 영상에서도 언급했듯이 6군단 예하 공병 출신으로 22살 이등병 때 우정의 무대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애청자. 심지어 삼시세끼를 찍으러 가서도 짬짬이 방송을 챙겨 들었다고 한다. 팝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의외로(!) 감성 넘치는 곡을 선호하며, 배철수가 휴가를 갔을 때 '''대타 DJ를 한 적도 있다.''' 유해진과 관련된 이야기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항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간혹 지나치는것이 있는데 연기본좌중 한명이다. 그중에서도 연구파이자 노력파인데 후배들에게 종종 함께 촬영할때면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다고... 노력부족인 후배들에겐 독설까진 아니지만 가끔씩 일침을 가하기도 하는 모양. 김기덕 감독이 영화 해안선 코멘터리에서 밝힌 바론 질문과 권유를 상당히 많이 하는 배우였다며 장동건에게 기특하다는듯 말한적이 있으며 배우 정재영은 함께 영화 이끼를 촬영하며 눈빛 연기를 보고 열등감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 은혼/623화 . . . . 29회 일치
* [[오토세]] 여사는 그들의 싸움을 보며 자신과 지로쵸, 그리고 남편 [[테라다 타츠고로]]의 젊은 날을 회상한다.
* 이후 오토세 여사가 처음 가게를 열게 되었을 때 누가 그녀의 배우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서로 상대가 더 적합하다고 싸우지만, 결국 지로쵸가 승리한다.
하지만 오토세는 "예전부터 언제나 그랬지"라며 회상에 잠긴다. 그녀가 기억하는건 언제나 싸우고 있는 모습. 유년기에서부터 철이 날 때까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그런 지로쵸를 훈계하는 그녀 자신도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는 동안 지로쵸는 적이 쌓이고 쌓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사하듯 주먹을 휘두르며 살았다.
그리고 [[테라다 타츠고로]]와 만났을 그때도. 이미 가부키쵸를 지키는 젊은 야쿠자로 이름을 날리던 지로쵸는 오토세를 보러 들렀다 그와 마주친다.
지로쵸는 짭새나 막돼먹은 여자한테 손대는 부하같은 건 둔 적이 없다며, 어차피 저런 놈들은 자기 손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면서도 지금은 일단 짭새랑 한 판 붙어보고 싶어졌다고 말하며 시비를 건다.
>남자는 입보다 주먹으로 얘기하는게 빠르다는 걸
* 시간이 흘러 둘은 막역한 사이이자 가부키쵸를 지키는 양대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야쿠자와 경찰이지만 둘은 마을을 위해 언제나 협력했고 타츠고로는 곧 가부키쵸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로 성장했다.
그리고 오토세는 자신의 꿈을 이룬다. "야쿠자도 경찰도 신분을 잊고 바보처럼 마시는 가게". 그런 가게를 열 때가 온 것이다. 하루는 하천에서 지로쵸를 타츠고로가 그 얘길 꺼낸다. 지로쵸는 모르는 척 하지만 사실 오토세가 이렇게 빨리 자기 가게를 갖게 된 건 지로쵸가 뒤에서 조력한 덕이었고, 타츠고로도 내막을 알고 있었다.
타츠고로는 가부키쵸에서 여자 혼자 가게를 꾸리긴 어려울 거라면서 이제 지로쵸가 오토세와 함께 하는게 어떠냐고 넌지시 말을 꺼내는데.
* 지로쵸는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타츠고로를 강물에 처박는다. 지로쵸는 타츠고로에게, 이제 이 마을의 얼굴인 주제에 반한 여자를 악당에게 넘기느냐며 빈정거린다. 하지만 타츠고로는 그가 반한 여자를 위해 손을 씻을 인물이라 본다. 지로쵸는 자기는 반한 적도 없고 오토세랑은 악연일 뿐이다 말하는데 타츠고로는 그 악연도 끝까지 가면 부부라고 받아친다.
타츠고로는 자신은 혼자 멋대로 사는데 너무 익숙하지만 지로쵸는 가족을 꾸리는데 이미 익숙한 오야붕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지로쵸는 피차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지 모르는 얼간이들이지만, 눈 앞에 있는 놈이야말로 반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거라 믿는다고 자조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겐 더 빠른 길이 있다.
>여주인이 반한 남자를 날려버린 남자도... 들어가게 해주겠나?
* 소타츠는 지로쵸와 긴토키가 지키는 좁은 복도로 몸소 돌입한다.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그렇게 자신할 만큼 자기 부족의 집단전술을 신뢰한다. 그들이 기동성을 묶자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건 오히려 패인이 되는 것이다.
- 은혼/644화 . . . . 29회 일치
* 시스템이 파괴되자 히노카구츠치에 축적됐던 에너지가 역류하며 해방군 모선에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하고 곧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엔쇼]] 황자는 총알이 팬던트에 박히며 구사일생, 곧 일어나 다츠마의 심장을 노린다.
* [[무츠(은혼)|무츠]]가 몸을 날려 다츠마를 구하고 치명상을 입는다.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는 엔쇼와 격돌하나 엔쇼는 뜻밖에 강자.
* 엔쇼는 두 사람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고 역공을 가해 둘 모두를 위협하나 엘리자베스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 엔쇼는 자신이 있는 이상 해방군이 전멸한다 한들 달라지는건 없으며, 히노카구츠치 발사가 불가능하다면 모선을 지구에 처박아 같은 결말을 낼 거라 선언한다.
* 동지이자 친우를 잃은 다츠마와 가츠라의 분노가 폭발한다.
*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에 돌입한 [[귀병데]]가 전멸하고 동지였던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반사이]] 마저 희생시킨 [[다카스기 신스케]]는 그들의 유지를 받드는 일념으로 [[키지마 마타코]]와 결사의 돌격을 감행, 히노카구츠치의 시스템룸에 진입한다.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때, 방어병력들은 발악하는 심정으로 다리를 파괴하고 신스케도 추락한다. 그러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 적 병사의 바주카를 무너지는 잔해에 쏘고 그 후폭풍으로 중추 시스템에 접근한 신스케. 병사들은 중추 시스템이 파괴되면 해방군만이 아니라 이 배 자체와 귀병대, 양이지사 일행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소리친다.
*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에 칼을 꽂았다. 낙하하는 힘을 그대로 실어 유닛에 세로로 거대한 자상을 새긴다. 시스템이 파괴되자 히노카구츠치의 막대한 에너지는 갈 곳을 잃고 열려진 틈새로 뿜어어져 나갔다. 그 빛을 방어병력들과 마타코도 볼 수 있었다. 그 빛에 감싸지면서.
* 보고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의 귀에도 들렸다. 신스케의 성공을 뜻하는 낭보. 그러나 동시에 비보이기도 했다. 다츠마는 아무리 악운이 강한 그들이라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각오가 없인 베지 못할 상대였기에, 신스케는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해방군의 사령부를 겸했던 통제실은 이제 양이지사 일행의 수중에 떨어졌다. 히노카구츠치는 파괴, 해방군을 조종하던 맹주 [[엔쇼]] 황자는 사망. 그들이 졌다. 이제 모선마저 온전하지 못하게 됐으니 해방군의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항복인가 죽음인가. 다츠마는 최후의 선택을 종용하면서 무엇을 택하든 이해한다고 말했다. 설사 그들이 무익하게 죽어나가기를 택해도, 동지들의 뒤를 따르기를 택해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기분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다츠마에게선 승리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체를 쌓고 올라온 것은 신스케 만이 아니었다. 말이 없는 가츠라나 [[도쿠가와 노부노부]]도 다를바 없었다.
* 고백에 가까운 짧은 연설은 설득력이 있었고 해방군의 얼마 남지 않은 저항의지를 분쇄했다. 전쟁을 끝낼 만한 고백. 엔쇼 황자가 눈을 뜨지 않았다면 그럴 뻔 했다. 해방군 생존자들이 총구를 내렸을 때 엔쇼 왕자가 입을 열었다. 다츠마가 안겨준 총알은 너무 정확하게 맞았다. 엔쇼가 언제나 품고 있던 팬던트. 심장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두었던 아내의 얼굴이 총알을 대신 맞았다. 엔쇼는 어쩌면 이 자리의 누구보다 다츠마의, 양이지사들의 심정을 공감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기꺼이 "나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토로한다.
* 희생자는 [[무츠(은혼)|무츠]]. 일행의 뒤에서 제압한 병사들을 처리하고 있던 그녀가 누구보다 먼저 몸을 날렸다. 엔쇼가 무기를 꺼냈을 때 이미 그녀는 감지하고 있었다. 본래 다츠마를 노렸던 칼날은 무츠의 몸을 꿰뚫고도 아슬아슬하게 닿지 못했다. 엔쇼가 빈정거렸다.
>네놈도 여자에게 구원받았느냐
* 엔쇼의 무기가 통상적인 라이트 세이버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양이지사 부대의 집중공격이 이어졌지만 엔쇼가 무기를 넓게 휘둘러 총알을 튕겨냈다. 엔쇼가 조작하자 빛의 칼날이 여러 개의 탄환으로 분산되면서 양이지사 부대로 쏟아졌다. 엔쇼는 이 기술로 혼자서 부대의 집중사격과 같은 화력을 내고 있었다. 최후의 진격만 앞두고 있었던 양이지사 부대가 탄환을 피해 엄폐했다.
* 엔쇼의 공격이 끝남과 동시에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가 뛰어들었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두 자루로 나눠서 대응했다. 2 대 1의 상황도 그를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츠라, 드라고니아의 파상공세를 가볍게 막고 역으로 두 사람을 수세로 몰아붙였다. 그는 양이지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 내가 있는 한 자네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다.
>초연의 황자는 이 한 몸으로도 1만의 병사의 힘을 가진다.
* 엔쇼는 가츠라와 드라고니아의 사이에서 양쪽을 상대하다가 칼날을 타고 가츠라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가츠라를 공격해 두 사람을 벽으로 몰아세우고 칼날을 탄환으로 전환, 두 사람에게 쏟아부웠다. 탄환이 일으킨 먼지가 걷히고 나자 드라고니아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는 기꺼이 방패가 되었다. 여섯발이나 되는 흉탄을 견뎌내고 가츠라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 서서히 무너졌다.
- 이인영(정치인) . . . . 29회 일치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통령선거 직선제 쟁취를 위한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 [[노태우]]의 항복선언을 받아내자,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 중심으로 [[전대협]]을 결성하여, 1987년 7월 대전 충남대에서 출범식을 거행하였다.
1990년, 제1기 전대협 부의장이었던 우상호 등과 앞으로 10년간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숙성기간'을 갖기로 약속하였다. "학생 운동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후 10년이 지나자 이인영과 우상호 등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됐다.
2000년 5월 17일 [[새천년 NHK 사건]]이 터졌을 때, 새천년민주당 내 어지간한 운동권 명사들이 다 모인 술자리에 끼지 않아 칭찬을 받았다. --당연히 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이로써 [[김민석(정치인)|김민석]], [[송영길(정치인)|송영길]], [[우상호]] 등은 [[의문의 1패]].--
2013년 4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미숙 기자가 "486들이 바로 그 진보적 가치를 고집한 것 때문에 민주당이 과거의 운동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그럼 민주당이 보수당이 되라는 말인가? 이념 없는 정치는 거짓 말이다. 정당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 민주당은 수권 가능한 대안 정당으로 진보의 가치를 계속 추구해야 한다. 정치에서 중간층을 목적으로 하는 건 없다.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버리나? 예를 들어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것과 늘리자는 것의 중간층은 도대체 뭔가?"라고 답하였다.
이에 대해 박미숙 기자가 "운동권 시절의 가치를 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좀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라고 하자,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나보고 이라크 파병을, 한미FTA를 찬성하라는 건가? 내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옛날에는 각목 들고 바꾸려 했던 것을 지금은 표로 바꾸려 하는 것 정도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답하였다. 이로 인해 '화석화된 진보'라느니 '민중에게 권력을 주긴커녕 고립을 안겨주는 원리주의자'라느니 '약자심리, 피해자심리, 방어심리로만 가득한 운동권 출신'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당하였다.
2015년 7월에는 새민련 내에서 청년세대 정치인인 이동학과 공개논쟁을 벌였다. 이동학 혁신위원이 공개 편지를 통해 "선배님들을 응원할 든든한 후배 그룹 하나 키워내지 못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왔고, 또 변해 가는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의 계파 전쟁이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인영을 비판하면서, 이인영에게 내년 4월 총선에서 '약세 지역'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인영은 자신이 지역구를 바꾼다고 혁신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혁신위원회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3권의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응수하였다. 하지만 이는 이동학 당시 혁신위원이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의도로 그랬다는 분석도 있어 별로 영양가 없는 비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 갑에 그대로 출마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경쟁자로 불린 새누리당의 [[이범래]] 역시 20대 총선에서 타 지역구로 옮길 것을 주문 받았는데, 이범래는 실제로 지역구를 옮겼고 낙천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제17대 국회 후반기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제1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 [[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375221|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375221|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375221|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이 지급되는 대상 사업의 범위와 기준보조율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중앙 및 지방정부의 예산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인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범위와 각 사업별 국고 보조율은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임. 한편, 양로시설을 제외한 노인시설 운영사업은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음. 그런데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일부 지원하여 종교시설 유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인복지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 주요내용 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지급 제외 사업, 각 사업별 기준보조율을 법률로 상향규정함(안 제9조제2항?별표 1?별표 2 신설). 나.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 운영사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에 포함함(안 별표 1 제122호 신설)]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반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재정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2015 한국유권자총연맹 국정감사 의정활동 우수 국회의원상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29회 일치
* 할리퀸과 디안느가 모두 그 시련을 받겠다고 승락하자 드롤이 어떤 술법을 써서 성전시대의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몸 속으로 넣어버린다.
* 갑자기 달라진 시대, 달라진 육체에 허둥대던 두 사람 앞에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가 나타나는데.
*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 할리퀸이 여전히 이해를 못하자 드롤도 "말 그대로."라며 거든다. 그들이 너무 약하다는 것. 그로키시니아는 머리까지 헝크르며 멜리오다스의 말투를 따라한다.
드롤이 여기서 빵 터진다. 지금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 할리퀸은 잠깐 황당해하다 십계인 두 사람이 왜 자기들을 단련시키는 거냐고 더 자세히 캐묻는다.
* 그들은 그 마음은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마신족이 아니며 한때 거인의 왕, 요정의 왕으로서 십계와 마신왕 토벌을 꿈꾸던 자들이라 말한다. 그걸 위해 싸웠지만 싸움 도중 각자가 어떤 계기를 통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됐으며 지금까지도 그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멜리오다스와 싸우기 전까진.
* 할리퀸은 3000년 전 성전에서 영웅왕으로 칭송 받았던 두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 브리타니아를 배신한 거냐고 묻는다. 그로키시니아는 대답 대신 킹과 디안느가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어땠는지를 증명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들이 주려는 시련은 분명 큰 성장으로 이어지지만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라 한다. 강제로 시키진 않겠지만 충분히 숙고한 다음 선택하라고 권하는데.
* 결정이 나자 드롤이 복잡한 인을 맺는다. 땅이 기묘한 무늬를 그리며 갈라지고 밝은 빛이 쏟아진다.
주문과 함께 빛이 강해진다. 할리퀸과 디안느는 빛에 쌓여 눈앞을 분간할 수도 없다. 아득한 빛의 세례 속에서 그로키시니아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 술법은 자신들의 "또다른 친구"에게 배운 것이라고.
* 빛이 거치고 맑은 하늘이 나타난다. 장소가 보지 못했던 풍경으로 바뀌었다. 할리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어선다. 아직도 뭘 당한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디안느가 곁에 없다. 할리퀸은 무엇보다 그걸 가장 걱정한다. 서둘러 그녀를 찾는데 자신의 머리카락이 붉은 색으로 변해있다. 게다가 눈에 익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날개. 설마설마 하며 물웅덩이에 얼굴을 비춰보니 그의 몸은 그로키시니아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시간도 없다. 어디선가 디안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날아가면서 평소와는 비교도할 수도 없는 속도가 나서 깜짝 놀란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곳엔 매우 소녀틱한 말투와 행동으로 방방 뛰는 거인왕 드롤이 있었다. 할리퀸이 그... 가 아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시키는데 정말 디안느인지는 자신이 없는 말투다. 하지만 목소리나 머리카락을 비비 꼬는 행동은 분명 디안느다. 디안느도 모습은 그로키시니아지만 목소리는 할리퀸이었기 때문에 곧 상황을 파악한다. 드롤이 사용한 술법으로 그들의 몸이 각각 그로키시니아와 드롤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이 멜리오다스는 할리퀸과 디안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게 없다. 자신들이 드롤과 그로키시니아가 아니고 사정이 있다고 해도 "평소의 너희"라고 말할 뿐이고 "킹과 디안느가 누구?"라고 반문한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는데.
* 아직도 모를 일 투성인데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멜리오다스는 드디어 넷이 모였다고 "작전개시"하자고 한다. 그것도 분명 뜻모를 얘기지만 두 사람의 눈은 새로 나타난 사람한테서 떨어질 줄 모른다. 나타난 사람은 엘리자베스. 디안느가 어째서 네가 여기있냐고 묻는데 "넷이서 합류하자는 약속"이냐며 무슨 소리하냐는 식으로 답한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녀의 등장도 그렇지만 또 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정신이 팔려있다. 엘리자베스의 등에 무언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요정족의 날개와도 다른 "그것"이. 멜리오다스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고 하는데.
* 엘리자베스에게, 여신족의 날개가...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목적은 여전히 불명. 그들이 인간을 배신한 계기를 알아야 설명이 될 것 같다. 그들이 사용한 술법은 자라스트로가 사용한 것과 비슷하지만 그저 멜리오다스의 기억을 봤을 뿐인 반면 이쪽은 과거 시간대의 당사자의 몸에 정신을 집어넣는, 매우 고차원 술법. 주문으로 보아 이것도 드루이드의 마법으로 사료된다.
정황으로 볼때 3000년 전 전쟁 시기, 멜리오다스가 십계를 배신한 직후로 보인다. 마신족 시절과 달리 현대의 멜리오다스처럼 감정이 있고 엘리자베스도 함께 있기 때문. 여신족 엘리자베스는 일단 전생으로 보인다. 여신족 엘리자베스->리즈->엘리자베스로 전생한 듯.
이 시대의 엘리자베스는 오드아이가 아니고 오른쪽 눈도 가리지 않고 있다.
- 청송군 . . . . 29회 일치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04B486> {{{#FFFFFF '''군수'''}}} || [[윤경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3><bgcolor=#04B486> {{{#FFFFFF '''군의회'''}}} ||<:><bgcolor=#CA252B>'''[[자유한국당|{{{#FFFFFF 자유한국당}}}]]''' {{{#FFFFFF 4석}}}||
||<bgcolor=#04B486> {{{#FFFFFF '''도의원'''}}} || 신효광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bgcolor=#04B486> {{{#FFFFFF '''국회의원'''}}} ||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br][[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2017년 4월 재보궐선거]]) ||
전 지역이 [[산(지형)|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자연환경이 수려하다는 장점도 가지고있다. [[봉화군]]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에 꽤 추운 동네이다. [[분지]] 지형이기때문에 [[기온 역전 현상]] 등을 감안하면 겨울철에 사람이 느끼는 추위는 [[서울특별시]]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한때 [[호랑이]]가 21세기에도 사는 동네라 알려져 유명했다. 그 이유는 2001년 [[대구 MBC]]에서 취재한 보도기사였는데, 무인 카메라에 의문의 대형 [[고양이]]과 동물[* 몸길이 120cm에 꼬리가 [[호랑이]], [[표범]]과처럼 긴꼬리의 짐승이었다고 한다.]이 찍힌뒤로, 주변에서도 인근주민들의 호랑이 목격담을 취재하며, 호랑이가 맞다고 연일 보도를 해댔었다. 그 당시 MBC는 사활을 걸고 특별 취재팀까지 동원해서 이 사건을 계속 수사했고, 진짜 호랑이가 맞다 vs 아니다의 결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도 이후 6개월만에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이건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송에서 취재된 사진이 [[호랑이]]가 아니다 뿐이지 뭔가 고양이과 야생동물이란것은 확실했고[* [[담비]]라는 설도 있으나 담비치고는 꽤 큰 덩치라 의견이 분분한 상태.], 아직까지도 이게 무슨 동물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중 가장 작은 [[삵]]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인 한국에선 지금의 청송이 희귀 야생동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일듯. 참고로 이 야산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삼'''자현 '''남'''쪽의 현동면, 안덕면, 현서면의 세개 면을 묶어 삼남지역이라고도 하는데, 여기는 청송읍을 가려고해도 삼자현이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고, 포항, 안동, 의성, 영천 모두 고개를 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 대신에 35번 국도 버프로 안동과 영천방면으로는 각각 마사터널, 노귀재터널이 완공되어 있고, 삼자현 고개에는 터널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보다 진보면의 교통사정이 훨씬 좋다. 진보면을 관통하는 [[34번 국도]]가 청송 관내 국도 중 포장이 가장 빠른 [[1975년]]에 이루어진 곳이다. [[동서울터미널|서울]], [[부산종합버스터미널|부산]],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북부정류장|구]], [[안동터미널|안동]], [[영천시외버스터미널|영천]], [[영덕군|영덕]], [[포항시외버스터미널|포항]] 방면으로 시외버스가 운영되지만, 영천을 제외하면 어느방면이든 진보 쪽의 횟수가 훨씬 많다. 이는 인접한 [[영덕군]], [[영양군]]과 [[안동시]], [[서울특별시]] 등지를 잇는 시외버스들이 모두 진보를 경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송읍과 안동, 서울을 잇는 시외버스도 진보를 경유한다.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편이 그나마 배차가 많은 편이다. 동서울 및 부산에서 청송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주왕산까지도 가니 참고. 다만 진보면에서도 안동이나 영덕으로 갈땐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U자 코스이니 자가용은 운전에 조심할 것. 가랫재(안동 방향)와 황장재(영덕 방향) 두 고갯길 모두 터널 계획이 있다. 터널이 개통 되면 기존의 시간에서 10분 정도는 가볍게 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송 [[사과]]가 등록되어 있는데 [[경상북도]]에서 사과 생산량 2위를 기록한다. 청송하면 '''사과'''가 유명하다고 인식 될만큼 사과가 유명하다. 버스 정류장 등의 시설물도 사과를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졌을 정도.[* [[청도군]]에서는 감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지기도 했었다.] 수확철에 이 지역을 방문하면 상인들이 도롯가나 주왕산 국립공원 등 노상에 자리를 펴서 사과를 잔뜩 쌓아놓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송소고택, 청송문화관광재단의 청송백자 전시관과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있으며, 청송문화관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민예촌에서 한옥숙박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인근의 청송 달기약수탕 부근에 장난끼공화국 달빛예술학교에서 각종 체험 및 플리마켓등을 체험 할 수 있다.또한 지역의 전통문화유물인 청송백자,소설가 김주영선생의 소설 객주를 모티브로 한 객주문학관, 야송이원좌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군림청송야송미술관과 위장병과 관절에 좋은 약수가 나오고 있는 달기약수, 신촌약수터 등이 있다.
||7||<:>사립|| 청송여자중학교|| 청송읍 군청로 69||
||5||<:>사립|| 청송여자고등학교 || 청송읍 군청로 69 ||
||6|| || 청송자동차정보고등학교[* 자동차계열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 부남면 대전로 66 ||
|| '''정당''' ||<:><bgcolor=#1870B9>{{{#FFFFFF 더불어민주당}}}||<:><bgcolor=#C9151E>{{{#FFFFFF '''자유한국당'''}}}||<:><bgcolor=#046240>{{{#FFFFFF 국민의당}}}||<:><bgcolor=#00B1EB>바른정당||<:><bgcolor=#FFCC00>정의당||<:>격차||<:>투표율||
|| {{{#C9151E '''상주·군위[br]·의성·청송'''[* 지역구 국회의원 : [[김종태(1949)|김종태]]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 → [[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 3선)]}}} ||<:>14.69%||<:><bgcolor=#C9151E>{{{#FFFFFF 63.35%}}}||<:>12.72%||<:>5.25%||<:>2.79%||<:>{{{#808080 ▼48.66}}}||<:> 75.10 ||
||<:><tablealign=center><bgcolor=#1870B9><-6> {{{#FFFFFF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bgcolor=#C9151E><-5> {{{#FFFFFF '''새누리당→자유한국당'''}}} ||
|| 김재원/3선[* 17.4.12 재보궐선거][br][[자유한국당]] ||
[[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청송군]]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29회 일치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선택해 플레이 할 수 있는 가문들. 플레이 불가능한 가문들과 달리 각자의 보너스가 있다. 플레이어가 선택하지 않은 가문들도 보너스가 주어지긴 하지만 마이너 가문에게 먹히는 경우도 많다.
자신들이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이들로, 실제 역사에서는 시코쿠 전체로 세력권을 넓혔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굴복해야 했다. 이후 [[큐슈]]와 [[조선]]에 원정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세력 다툼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지지했다가 도쿠가와가 승리하며 모든 권력을 잃게된다.
다이묘는 초소카베 쿠니치카. 지휘중인 유닛의 사기 +1 속성인 "대담함"과 암살당할 확률 -2% 속성인 "불신이 가득함"이 붙어있다. 후계자 초소카베 모토치카.
다이묘는 시마즈 다카히사. 장군 호위대의 근접 공격 +1 속성인 "자기중심적"과 암살당할 확률 -2% 속성인 "행운아가" 붙어있다. 후계자는 시마즈 요시히사.
다이묘는 후지 우지야스. 후계자는 후지 우지마사.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상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영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영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다이묘는 모리 모토나리. 후계자는 모리 다카모토.
오다 가문으로 플레이를 시작하면 세 가문에게 다구리부터 당하고 시작한다. 있는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 다구리에서 살아남는게 최우선 목표다. 인공지능이 잡으면 빠르게 도쿠가와 가문을 멸망시킨 다음 자신도 멸망당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전국 통일에 거의 성공할 뻔했으나, 오다 가문의 가신이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다이묘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하는 [[혼노지의 변]]을 일으키며 좆ㅋ망ㅋ. 이후 오다 가문의 또다른 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츠히데와 다른 경쟁자들을 진압하고 오다 가문을 계승(?)하게 된다.
다이묘는 오다 노부히데. 후계자는 [[오다 노부나가]].
다이묘는 다테 하루무네. 후계자는 다테 테루무네.
다이묘는 다케다 신겐. 후계자는 다케다 요시노부.
* 키쇼 닌자의 모집 비용과 유지비 감소
* 뛰어난 키쇼 닌자를 모집할 수 있음
다이묘는 도쿠가와 히로타다. 후계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게임 시작시 메츠케 한명이 제공된다.
현대의 니가타 현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는 에치고. 봉신인 야마노우치 가문과 무역 관계이며 진보 가문과 전쟁 중. 자신이 다이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 것에 반발한 나가오 하루카게의 반란군이 있다.
다이묘는 우에스기 켄신. 아내도 후계자도 없음.
* 닌자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2%
교토 바로 밑 이가를 다스리는 가문. 그냥 닌자로 유명한 가문이지만 와패니즈들 등쳐먹으려고 주요 가문 중 하나로 나왔다. 난이도 보통. 아시카가 막부와 무역 관계이다.
다이묘는 핫토리 야시나가. 후계자는 아직 덜 자란 핫토리 마사나리. 장군은 모모치 다케토시. 게임 시작시 닌자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 하이큐/251화 . . . . 29회 일치
*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우연히 탄생시킨 이동공격이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더욱 거센 야유를 퍼붓지만 히나타는 "전국 2위가 우리를 무찌르려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들뜬다.
* [[미야 아츠무]]는 시작 전 [[카라스노 고교]]를 얕본 것 치곤 솔직하게 멋진 플레이였다고 인정하며서 곧바로 자신도 파인 플레이로 되갚는다.
*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작전을 바꿔서 카라스노가 플레이할 때 "리듬"을 빼앗는 작전으로 방해한다.
* 스코어는 4 대 3. 이나리자키의 1점 리드.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이나리자키로 기울던 분위기가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이동공격으로 뒤집힌다. 그동안 이나리자키의 플레이에 관심이 집중됐던 관객들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와 1학년 콤비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경기 시작전 카라스노 고교를 형편없이 얕봤던 [[미야 아츠무]]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멋지다고 감탄한다. 놀라운 순발력과 민첩성, 그러면서도 점프 높이는 전혀 줄지 않는 탄력 등. "직접 보니 더 멋지다"고 감탄하고 있으려니 동생 [[미야 오사무]]가 옆에서 "너는 시합만 하면 정신연령이 5살 이하"라고 빈축한다.
* 카라스노, 카게야마의 서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지금까지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자체 평가한다. 카라스노의 선수들은 예상보다 압박을 느끼는 걸로 보이지도 않고 특히 [[츠키시마 케이]] 같은 경우는 비웃는 양 풋하고 웃기까지 했다. 응원단은 템포를 조금 더 빠르게 해보자고 하는데.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종전보다 빠르고 높아진 야유. 다른 관객들은 품위가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높고 빠른 소리가 다른 소리를 묻어버린다. 그런데 방금 전 우연찮게 파인 플레이를 선보인 주인공, 히나타는 묘한 희열을 느끼느라 그런 소리에 일일히 반응할 틈도 없다. 아니, 오히려 저쪽 응원단의 안달난 반응이 기쁘기까지 하다. 그는 전국 2위의 이나리자키 고교가 전력을 다해 카라스노 고교를 무찌르고자 하는 상황에 도취된다.
히나타는 이대로 자신의 서브 차례가 오는걸 상상한다.
히나타는 거의 경련을 일으킬 것처럼 흥분한다. 그런데 주심이 팔을 들어올리는 순간 이나리자키의 야유가 뚝 그친다. 그리고 타악기를 이용한 빠르고 짧은 박자의 연타로 바뀐다. 탄탄탄, 마치 축제에서 치는 북소리 같다. 이러한 변화에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뭔가 낌새를 차린다.
아츠무는 그 자세에서 논 스톱으로 세트업, 속공으로 전환시킨다. 오미미가 받아서 스파이크. 점수는 5대 3으로 이나리자키가 다시 2점 리드.
* [[아마나이 카노카]]는 동료와 함께 카라스노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동료는 타나카의 활약가 활약하자 제법이라고 분위기를 돋우는데, 카노카는 생각보다 냉철하게 경기를 분석하고 있었고 타나카의 움직임도 진지하게 평가한다. 과거 그저 힘껏 치던 데서 많이 발전한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카게야마의 서브 때 그랬듯,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석은 떠들썩하게 박자를 맞춘다. 큰 북과 각종 타악기를 이용한 빠른 템포의 연주. 그런데 이 연주 때문인지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관중들도 템포에 맞춰서 박수와 구호를 연호한다. 이것은 육상 경기 같은데서 선수가 객석의 응원을 유도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문제는 그건 선수가 자기 컨디션을 위해 유도하는 거지만, 이번 적측이 카라스노의 템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하는 행동.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관객의 호의를 끌어내는 척하며 실제론 방해행동을 하고 있다.
* 우카이 코치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타케다 고문은 선수들이 저정도 야유에 연연하는 것 같진 않다고 하는데, 그것과 다른 성격의 문제다. 야유가 주는 압박과 별개로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유도하는 박자가 선수들의 플레이 "리듬"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그들이 조성하는 리듬은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이렇게 타의로 형성되는 리듬은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카이 코치는 이쪽도 상당히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일단 서브로 호각을 이룰 필요가 있는데, 그걸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 [[오지로 알렝]]의 서브. 이나리자키의 서브 플레이 때는 느리고 침착한 박자가 연주된다. 오지로는 차분하게 서브 에이스를 따낸다. 이걸로 이나리자키의 두 번째 서브 에이스. 점수는 7 대 4로 벌어진다.
이나리자키는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성장 중인 팀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기세를 후반까지 허용하면 매우 힘들어진다. 하지만 상대 응원에 대항해야할 카라스노 응원단은 벌써 기가 죽었다. 상대편 응원을 응원이라기 보다도 "원호사격"에 가깝다고 평하고 코트 안팎의 요소들, 시간과 소리까지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팀을 부양하고 있다.
관중석에 와있는 노헤비 학원 배구부의 전주장 [[다이쇼 스구루]]는 나이브한 태도로 "이나리자키가 가차없다"고 평한다.
- 김효원 . . . . 28회 일치
'''김효원'''(金孝元, [[1542년]] ~ [[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퇴계 이황|이황]]과 [[남명 조식|조식]]의 문인이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611/wk2006111416012337070.htm 주간한국 : [종가기행 24] 善山金氏 省庵 金孝元 - 부친 여윈 뒤 家勢 기울어 "가문의 전통 범절 잘 몰라요"<!-- 봇이 붙인 제목 -->] </ref> 본관은 [[선산 김씨|선산(善山, 일선)]]으로, 자는 인백(仁伯)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이황|퇴계 이황]]과 [[조식 (1501년)|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소장파 관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심의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다음해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천거되자 외척임을 들어 적극 반대하여 사림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갈라지게 하였다. 노수신과 이이의 조정책으로 외직으로 전출된 후 10년 간 한직(閒職)을 전전했다.
김효원은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직에 천거되자 외척이 인사권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였다. [[심의겸]]과 [[심충겸]]은 [[조선 명종|명종]]비 [[인순왕후]]의 동생들로, [[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임금이 되었으므로 그의 주장이 인정되었다. 사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이조판서]]로 [[추증]](追贈)되었다. 교산 [[허균]]과 [[허난설헌]]의 인척으로, [[허균]]은 그의 사위이며 [[허균]]의 형 [[허봉]]의 딸이 그의 맏며느리였다. [[동인]]과 [[서인]]의 붕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만, 생전에는 청렴한 선비로서 신진 인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과거 제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남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남양주타임즈, 2007.01.26자] </ref>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황]]의 제자들 중의 한사람이며 [[김종직]]의 학통으로, 남명 [[조식]]의 문하에도 찾아가서 배웠다. 스승 중 한사람인 조식이 죽었을 때는 "방향 모르는 날 가르쳐주셨고(誘掖回迷走)/ 날 채워서 옳은 사람 되게 했다네(充盈見實歸)/ 인문이 이제는 끝나고 말았구나(人文今已矣)/ 이제 우리 도를 누구에게 의지할꼬(五道竟何依)?"라는 만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학문상으로는 [[김종직]]-[[이황]]의 학맥과 [[조식]]의 학맥을 두루 계승하였다.
그의 친구 중 [[조선 명종|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尹元衡)의 사위로, 장인 [[윤원형]]의 집에 처가살이하던 [[이조민]](李肇敏)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윤원형]]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의 다른 친구들은 [[이조민]]을 멀리할 것을 권고했으나 그는 [[이조민]]의 사람됨됨이를 보고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인순왕후]]의 친정 남동생으로 역시 왕실의 인척이던 [[심의겸]]이 집안 어른들과 함께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다가 그를 보게 된다.
그 뒤 병조좌랑·[[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 중 김효원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척신계]]가 정계에서 몰락하면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전랑으로 있던 오건(吳健)이 자리를 옮기면서 이조전랑으로 [[오건]]이 그를 추천하였으나<ref>1575년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이조 전랑의 임명은 전임자의 후임자 천거로 임명되었다.</ref> 과거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沈義謙)이 강하게 반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는 외척도 아니고 [[이황]]과 [[조식]]의 문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심의겸]]의 반대를 견뎌내고 [[이조]][[전랑]]이 되었다. 또한 그는 [[심의겸]]이 외척으로 그의 집안이 [[윤원형]]의 집안과 인척이고 가까이 왕래한 것과, [[심통원]]의 부패, 비리를 지적하며 공격하였다.
이후 그는 이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심의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뒤 김효원의 후임으로 [[이조]]에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 후보로 천거되자, 그는 [[심충겸]]이 [[조선 명종|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남동생인 척신이라는 이유로 극력 반대하였으며 이조전랑직이 외척집안의 물건이냐며 [[심의겸]]과 [[심충겸]]을 공격하였다.
[[1574년]] 이조전랑을 지냈고 이듬해인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의 관직은 절대로 척신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후 그는 [[심의겸]]과 [[심충겸]]을 외척이라며 비난하였고, [[선조]]가 [[조선 명종|명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한 것과 같으므로 그의 주장이 공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김효원을 지지했던 사림으로는 [[김우옹]], [[류성룡]], [[이산해]], [[정구 (1543년)|정구]], [[허엽]], [[임제]], [[이발]], [[정지연]], [[우성전]], [[정유길]]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개 [[이황]], [[조식]]의 제자들과 화담 [[서경덕]]의 문인과 손제자들이었다. 이들을 [[동인]]이라 하고, [[심의겸]], [[이이]], [[성혼]], [[윤두수]] 등을 [[서인]]이라 칭했는데 이는 당시 김효원의 집이 서울 동쪽 건천동에 있었기 때문에 동인이라 하게 되었고, 심의겸의 집은 [[한성부]] 서쪽 정릉방에 있어 [[서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심의겸]]과의 대립은 사림의 분열로 이어지고 점차 심해지자 우의정 [[노사신]]과 부제학 [[이이]] 등은 분쟁 완화의 조정안으로 두 사람을 한성을 떠나 외직으로 보낼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여 김효원은 [[경흥부사]]로, 심의겸은 [[개성부유수]]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김효원이 더 먼곳의 외직에 배치되었다는 [[동인 (정치)|동인]]의 반발로 그 조정안은 실패로 끝났다.<ref name=autogenerated1 /> 김효원을 지지하던 측에서는 일부러 배경이 없던 그를 더 먼곳으로 축출한 것이라 반발하여 다시 부령부사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부령이 변방이라 하여 반발하므로 다시 [[삼척]][[부사]]로 옮기게 되었다.
선비들과 강론을 할 때면 가난한 살림에도 음식을 나누었고, 더러는 해가 저물 때까지 식사조차 잊을 정도였다. 또한 그는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여 [[이황]]과 [[조식]] 등에게서 배운 학문을 후대에 전수하여, 직접 후학을 양성하여 [[성리학]]자들을 길러냈다.
**** 자부 : 양천허씨 - [[허봉]]許篈의 딸
***** 손자 : [[김세렴]](金世濂)
== 참고자료 ==
* [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남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남양주타임즈, 2007.01.26자]
[[분류:1542년 태어남]][[분류:1590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철학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28회 일치
* 이레지어 헤드, 아이자와 쇼타의 그녀 등장? 아이자와의 지인 Ms.조크 등장. 아이자와는 일방적으로 프로포즈 당하고 거절하길 반복하고 있다.
* 임시면허 시험의 첫관문은 1500여명 응시에 합격자는 100명 밖에 나오지는 엄청난 경쟁률.
* 그때 누군가 아이자와 쇼타에게 아는 척을 한다.
*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하는 미인. 그런데 아이자와의 표정은 썩는다. 미도리야는 그녀를 아는 듯 한데?
* 그런데 이 여자,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는 기인. 아이자와가 광속으로 거절하는데 그게 또 웃기다고 폭소를 터뜨린다.
* 미도리야가 긴급하게 설명충을 자처한다. 그녀는 스마일 히어로 "Ms.조크". 개성은 "폭소". 근처의 사람들을 강제로 웃게 만들어서 사고와 행동을 둔하게 만드는 묘한 능력이다.
* Ms.조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거듭 결혼을 권하는데 그때마다 아이자와는 칼 같이 거절한다. 그리고 폭소를 터뜨리는 무한 순환.
* 과거엔 사무소가 가까워서 자주 만나다가 인연이 생긴 듯한데, 그녀가 설명하면서 "기정사실"인 관계처럼 말하려고 할 때마다 아이자와가 커트한다.--죽이 척척 맞네--
* 이런 반응에 A반 학생들도 기분이 업돼있는데, Ms.조크는 이런 걸 보고 미심쩍어 하며 "말하지 않았냐"고 아이자와에게 묻는데.
* 사회자는 히어로 공안위원회의 메라. 엄청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다.
* 공무원 같은 인상인데 정작 잠자는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이다. 이쪽도 정상은 아닌 듯
* 그는 다짜고짜 "여기있는 1540명 전원 승자진출 방식의 연습을 실시"한다고 선언한다.
* 설명은 이 다음에 나오는데, 그는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의 사건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 패널은 "타깃"이며 수험자는 타깃을 "눈에 보이도록 노출된 곳에" 세 개 붙여야 한다.
* 3개가 발광된 수험자는 탈락. 그리고 3개째 공을 맞춘 사람이 쓰러뜨린 것으로 간주하며 최소 2명을 쓰러뜨린 자만 다음 시험에 진출한다.
* 웅영고 입학 시험과 비슷하지만 대인전이란 점에서 전혀 다르며 다른 사람이 공략하던 수험자의 세 번째 타깃만 스틸하는 책략을 권장하는 룰.
* 작은 도시처럼 갖춰진 드넓은 필드다.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지형이 준비돼 있다.
* 교사들은 관중석에서 보고 있는데 아이자와는 이러니 저러니해도 Ms.조커 옆에 있다.
* 미도리야는 여기서는 일단 같은 학교끼리 뭉치는게 유리하다고 보고 A반 인원들에게 한조로 움직이자고 제안한다.
* 하지만 바쿠고는 소풍 왔냐며 혼자 가버리고 키리시마 에지로가 말리려는지 따라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28회 일치
* 패트롤을 시작하자 [[오버홀]]과 마주친 [[미도리야 이즈쿠]]. 당황한 나머지 표정으로 나타나 [[토오가타 밀리오]]가 잽싸게 수습한다.
* 오버홀은 "에리"가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 혼내던 중이라고 얼버무리려한다.
* 밀리오는 여기서는 여자아이를 돌려보는게 답이라고 생각하나 에리가 가지말라고 애원하자 미도리야는 차마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
* 미도리야가 무슨 경위냐고 캐묻자 오버홀은 이들을 유인해서 조용히 처리하려 하는데, 살기를 감지한 에리는 스스로 미도리야 품을 뿌리친다.
* [[토오가타 밀리오]]는 패트롤에 들어가기 앞서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원래 패트롤은 직장체험에서도 실습하는데 미도리야는 [[빌런연합]]의 개입으로 그럴 기회가 없었다. 밀리오는 [[서 나이트아이]]가 오버홀에 대해서 경고하긴 했지만 실제 용의자를 추적하는건 나이트아이의 몫이고 그들은 통상 패트롤 활동만 하는 거라며 긴장을 풀어준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밀리오를 보고 절감해라"고 했던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올마이트]]가 그의 존재에 대해 숨겼던 것도 다시 마음에 걸린다. 이런 내심을 모르는 밀리오는 편한 말투로 서로 히어로 네임을 모르고 있었다며 미도리야의 히어로 네임을 묻는다. 미도리야가 "데쿠"라고 답하자 포지티브한 밀리오 조차도 "그런 히어로명으로 괜찮은가"라고 확인한다.
"레미오로멘"같아서 멋지다는 자평도 첨부한다.
밀리오는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마을에 나온 이상 자신들은 히어로라는 점을 강조하며 패트롤 활동을 시작한다.
* 그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분명 나이트아이가 추적중일 요주의인물, "핫사이카이"의 "치사키"라는 남자, [[오버홀]]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에리"에 대해서는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그녀의 부상에 대해서는 "한창 놀 나이라 자주 다친다"며 사람 좋게 웃기까지 하는데. 그와 대조적으로 미도리야는 경악한 표정을 감추질 못한다.
그가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밀리오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들은 직장체험 중인 학생이라며 사무소를 밝힐 것도 없는 병아리라고 둘러댄다. 나이트아이의 이름을 밝히면 틀림없이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다. 밀리오는 서둘러서 자리를 뜨려고 미도리야를 부추긴다.
* 혼낸 직후라서도, 오버홀은 틈도 주지않고 곧바로 대답한다. 밀리오는 다시 한 번 미도리야에게 쓸데없이 떠보려 하지 말라고 작게 말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버홀이 "놀다가 다쳤다"고 말한 붕대에 대해서도 "놀다가 다친 수준이 아니다"고 걸고 넘어진다. 오버홀은 그것도 자주 넘어진다고 다시 억지를 쓴다. 미도리야는 순순히 소녀를 보내줄 생각이 사라졌다. 에리는 분명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웃음기가 사라진 오버홀은 "자신의 평범을 남의 가정에 강요하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밀리오는 의도와 다른 미도리야의 행동에 곤란해한다. 이대로 경계심을 늘리면 더욱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나이트아이의 수사에 지장이 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무난하게 넘기는 쪽"이 더 의심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너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다.
*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은 오버홀의 한숨과 함께 종료된다. 그는 자기가 졌다는 듯이 "히어로는 정말 남의 사정에 민감하다"고 물러난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보는 눈을 피하고 싶으니 이쪽으로 와달라며 골목으로 들어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밀리오도 그냥 가는건 포기한다. 그는 미도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이 대처하겠다고 신호한다. 어차피 이제와서 에리를 놓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미도리야는 에리를 안은 채 오버홀을 따라 들어간다.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골목으로 들어오자 오버홀은 앞서 걷는 척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에리에게 반항기가 왔다며 고민이 많다고 푸념한다. 미도리야는 은연 중에 학대를 의심한다. 밀리오는 "힘들겠다"고 맞장구쳐주며 대화를 이어간다.
>자신이 무언가가 된다,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 에리는 그토록 놓지 않았던 미도리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그녀는 막 화가 풀린 꼬마처럼 금방 아버지, 오버홀 옆으로 달려간다. 미도리야가 당황하는 사이 오버홀은 평범한 부녀처럼 "이제 고집 부리는 건 끝났냐"고 말을 건다. 에리가 끄덕이자 오버홀은 "폐를 끼쳤다"는 말을 남긴 채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진다. 미도리야는 말없이 사라지는 에리를 따라 쫓아갈 것 같지만, 밀리오가 말린다.
>서에게 지시를 부탁하자.
* 아지트로 돌아온 오버홀은 "최근 젊은이"들은 한층 더 병들었다고 투덜거리며 쿠로노라는 부하에게 목욕 준비를 부탁한다. 본래 에리의 감시를 맡았던 부하가 따라와서 실책에 대해 사죄하는데 오버홀은 듣지도 않고 부하를 처분해 버린다. 그가 손을 휘두른 것만으로 부하는 커다란 핏자국으로 변한다. 이것의 청소도 쿠로노의 몫이다.
* 에리는 기분 나쁜 "시설"로 돌려보내진다. 음산한 치과의자처럼 생긴 의자가 있는 실험실이다. 쿠로노는 에리에게 감겨진 붕대를 풀어준다. 오버홀이 에리에게 말한다.
- 마기/342화 . . . . 28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진짜 의도는 "진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난다면 "신"의 자리를 넘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럴 맘이 들지 않는다는데.
* [[알라딘(마기)|알라딘]]은 부조리한 세상이기 때문에 더욱 남과 맞부딪히며 조금씩 변화하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 신드바드는 자신이 성궁에 오기 직전에, 사실 자신이 없어도 전란이 와도 다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한다.
* 인간은 그 자신이 악하거나 사회가 악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존재로, 이런 입장이 부딪혀 비극이 생기는 것이다.
* 알라딘은 자신이 겪은 비극도 본질적으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신념의 싸움이었음을 깨닫고 신드바드가 세상의 루프를 다시 쓰려는 이유도 깨닫는다.
* 그런데 신드바드는 또다시 묘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신으로 만든 존재가 누구겠냐는 것. 그게 바로 "솔로몬의 의지"라고 하는데.
* 던전 제파르에 나타난 17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라면 대화상대가 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알라딘은 신드바드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단지 대화라면 지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 점을 신드바드가 인정한다. 알라딘은 그가 자신들과 힘을 겨뤄 자신이 이 세상의 신이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걸 증명하고 싶은 거였냐고 묻는다.
알라딘으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는걸 보며 신드바드는 "나보다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신 자리를 줄 생각"이라며, 알라딘 일행을 불러온 것은 그들이 가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 지금껏 말이 없던 [[세렌디네 파르테비아]]가 나서 다시 한 번 던전 제파르의 질문을 던진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의지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끌어져야 하나?
>우리는 자기 의지로 살아갈 수 있어.
* 팔인장들은 그의 가장 절친하고 가까운 동료였다. 그들은 세상의 부조리에 함께 분노했고 세상을 바꾸고자 힘을 합쳤다. 나라를 만들고 동맹을 만들고 분쟁을 없애길 바랬던 그들은 분명 혁신가였다. 그리고 혁신은 성공했다. 그들이 바라던 분쟁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었을 때, 동료들은 더이상 혁신가이기를 거부했다.
[[쟈파르]]는 국제동맹과 칠해연합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다른 것을 보지 않았다. [[샤를르칸]]이나 다른 팔인장들은 과거의 신드리아 왕국을 그리워하며 한탄만 했다. 무리도 아니다. 그 섬에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드는게 그들의 최종목표였기 때문이다.
* 3던전에서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어느 덧 해가 정오를 지나 지기 시작했다. [[쥬다르]], [[연백룡]], [[알리바바 사르쟈]]는 제각기 위치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알리바바는 빨리 다음 던전으로 가자고 성화를 부리는데 아르바는 느긋하다.
알라딘은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이 풀린다. "왜 각각 세상을 좋게 만들고자 하는데 일이 꼬이는 걸까?" 그는 자신이 지나왔던 많은 여정, 사람과 사건들을 돌이켜 본다. 누군가는 좋은 사람이었고 누군가는 악했다. 그러나 그들이 싸워야 했던 이유는 근원의 선악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 그것은 한 가지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전쟁에 대해, 분쟁에 대해 완전히 잘못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신드바드는 알라딘의 표정에서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짐작한다. 그는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면서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제국을 지키고자 거병하는 어머니까지
신드바드가 그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전쟁이란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을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세상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본래 그런 거라는 평범한 진리였다.
* 알라딘은 슬픈 사실이라고 조용히 동의한다. 그리고 신드바드의 진짜 마음은 아주 슬프다는것도 알게 됐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이상 전쟁과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루프를 다시 쓰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
신드바드는 알라딘이 여전히 자신이 신의 힘을 사용하는데 부정적이지 않냐고 묻는다. 알라딘은 물론 거기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러자 신드바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에게 신의 자리를 준게, 애당초 누구일거 같냐고. 알라딘은 얼른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28회 일치
* 성과제의 메인 이벤트, 마법기사단의 성과발표가 시작됐다. 하지만 검은 폭우는 단장 [[야미 스케히로]]가 글러먹어서 그 자리에 끼지 못한다.
* 새로운 홍련의 사자단 단장,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도 등장. 성과제의 열기를 더한다.
* 단원들은 당연히 이 녀석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야미가 냉큼 당사자를 단상까지 집어던진다. 그렇게 해서 단상에 올라간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 올해 공적 발표는 [[마법제]] 율리우스가 몸소 행차해 거행한다. 마법제는 시민들의 환호를 잠재우며 잠시 기념사를 한다. 올해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만큼 공적발표는 마법제 자신이 직접 맡고 잠시 뒤에는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참석, 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법제의 발언들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번영하는 듯 보이는 클로버 왕국은 내외 양면에서 많은 악재에 처해있다. 외교적으로는 다이아몬드 왕국과 스페이드 왕국의 침략을 받고 있고 내부에선 "백야의 마안"이란 테러조직의 횡행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생기는 등 민생과 치안, 안보가 악화일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성과제를 개최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 그러나 위기에는 용감히 맞서 싸우는 자들도 있으며 이러한 자들을 칭송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기리는 축제는 열려야 했다. 마법제는 그 말을 끝으로 싸우는 자들의 대표, 아홉 마법기사단 단장들을 단상 위로 불러온다. 일전에 사고가 생긴 홍련의 사자단과 자줏빛 범고래단은 새로운 얼굴들이 단장으로 올라왔다. 특히 홍련의 사자단은 여성이 단장이 되어서 화제가 된다. 그런데 단상에 오른 사람은 모두 일곱 명. 푸른 들장미단과 검은 폭우단이 빠져있다. 마법제는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기어이 늦었다고 내심 화를 내는데 야미는 그렇다쳐도 샬롯까지 늦은걸 이상하게 여긴다.
마법제는 곧 본론인 실적발표를 진행한다. 근처에 있던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군중들은 당연히 금색의 여명이 1위를 할 걸로 예상하는데, 매그너는 어차피 꼴찌는 자기네들일 거라며 관계없다고 자학적인 개그를 한다.
* 예상대로 1위는 금색의 여명이 가져갔다. [[윌리엄 벤전스]]는 마법제의 발표를 들으며 자신있는 미소를 짓는다. 은익의 참수리의 단장 [[노젤 실버]]는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눈길로 그를 흘깃 바라본다. 올해 금색의 여명은 작년 스코어인 별 96개를 크게 상회하는 별 125개를 기록.
그때까지 오로지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챠미 퍼밋슨]]은 유노의 이름이 거명되자 정신을 차린다. [[클라우스 류넷]]과 [[미모사 버밀리온]]은 그를 축하해주지만, 그의 성공이 고까운 자들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무대 뒤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분을 삭힌다.
* 이어서 2위의 발표. 이번 2위는 경쟁자가 많다. 작년엔 홍련의 사자단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전단장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이 사고를 당하면서 기세가 주춤했다. 대신 은익의 참수리가 푸른 들장미단이 언급되는데 쉽게 누구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핀랄 룰러케이스]]는 단원 중에서도 가장 프리하게, 정말로 실적발표엔 1g의 신경도 안 쓰고 헌팅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폭우인데 너무 쉽게 들통나서 영 실적이 오르질 않는다.
이런 와중에 발표된 올해의 2위는 충격적이게도 검은 폭우. 별의 갯수는 101개. 작년 1위의 득점을 능가한 수치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누구보다 경악하는건 단원들 자신이다. 매그너는 눈이 튀어나와서 선글라스를 깨먹을 정도로 경악. 챠미는 자기 덕이냐고 김칫국을 마신다. 그리고 좀체 놀라는 법이 없는 노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아스타는 "우리가 2위라니 무슨 일이야!"라며 소리를 지른다. 단장 야미는 심드렁하지만 "쩐다"고 자평한다.
* 문제는 시민들의 반응. 놀라는 건 잠시고 과연 이게 제대로 산정된 건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호노]], [[키아토]]처럼 순수하게 기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소수. 대부분 여론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쪽이다. 하지만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베카처럼 검은 폭우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거라고 변호한다. 그 중엔 왕도에 백야의 마안이 침입했을 때 구원 받은 꼬마도 있다. 이런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군중들도 쉽게 검은 폭우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때 마법제가 중재를 해서 비록 검은 폭우는 작년엔 마이너스 50이란 전대미문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올해는 분발해서 성과를 낸 거라고 설명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검은 폭우의 신인 덕인데, 소개를 할라치니 단장은 커녕 관계자 조차 참석하지 않아 난처해졌다. 마법제는 군중을 향해 누구 관계자 없냐고 묻기에 이른다.
당사자가 척하니 옆에 있는 야미는 제대로 준비를 시킨다.
* 군집한 군중의 맨 뒤쪽으로부터, 한참을 날아서 단상까지 날아간 아스타. 공중에서 반마법의 검을 뽑아서 착지한다. 그가 떨어진 위치는 마침 딱 적당한 자리였다. 그의 친구 앞이다.
* 마법제가 되자고 맹세했던 두 고아 소년. 해외계의 천덕꾸리가 친구들이 "두 개의 신성"으로서 주목을 받는다.
- 식극의 소마/197화 . . . . 28회 일치
* 황금기를 맞이한 쿄쿠세이 기숙사. [[도지마 긴]]이나 [[나키리 아자미]]도 선망의 대상이지만 중심은 [[사이바 죠이치로]]였다.
* 죠이치로는 50인 연대식극 이후엔 괴식요리도 관두고 파죽지세로 외부 콩쿠르를 섭렵, 비길 자가 없는 강자로 진화한다.
* THE BLUE 대회를 하루 앞둔 날. 죠이치로는 자신이 영광스런 개척자가 아니라 그저 상처투성이의 넝마같은 몰골이란걸 깨닫는다.
* [[사이바 죠이치로]]가 고3이 되던 해, 쿄쿠세이 기숙사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도지마 긴]]은 마침내 십걸 1석에 올라 인품과 실무능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나키리 아자미|아자미]]는 1학년인데도 3석에 오른 재능과 가을 선발 우승 경력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그리고 아직 중학생이었던 [[시오미 준]]은 어린 나이에도 연구자로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 해외에서도 파견을 부탁할 정도의 인재였다. 다만 항상 요리책만 끼고 다니느라 겉으로 보기엔 엇나간 [[부녀자]]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이들보다도 주목받는 존재 죠이치로. 쿄쿠세이 기숙사의 간판이자 학교 내에선 모르는 자가 없는 유명인이었고 그를 동경해 기숙사 입사를 원하는 신청자가 폭주해 [[다이미도 후미오]] 여사가 골머리를 썩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유명인사가 정작 기숙사에는 붙어있지 않고 학교나 외부에서 열리는 콘테스트에만 들락거리고 있었다.
* 죠이치로는 콩쿠르에서 토마토 육수와 발효 버터를 사용한 스키야키풍 소고기 요리를 선보인다. 심사를 맡은 요정 "쿠라키"의 후계자 쿠라키 시게노는 어떤 요리든 의연한 태도로 먹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시식에 들어간다. 그러나 여지없이 탈의되면서 굴복. 이번 콘테스트도 죠이치로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죠이치로 본인은 딱히 기쁘지도 어떻지도 않은 것 같은데.
* 영웅의 귀환. 죠이치로는 많은 학생들의 환대를 받으며 기숙사로 돌아온다. 건성으로 이들의 환영을 받은 죠이치로는 어느새 조리대 앞에 서있다. 문득 시오미가 나타나 요즘 괴식요리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죠이치로는 대답 대신 "그렇게 탐을 내는 거냐"고 놀려먹는다. 옆에 있던 도지마가 그 말을 듣고 식극에도 낼 정도로 좋아하더니 왜 관뒀냐고 묻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자세한 설명보다는 "너도 먹을 걸로 장난친다고 화내지 않았냐"고 답할 뿐이다.
* 얼마 뒤 도지마는 십걸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아자미에게 묻는다. 요즘 죠이치로가 걱정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자미는 지금 죠이치로에게 문제될게 없다고 본다. 오히려 묘한 살기를 띄는 그가 정점에 어울린다며 존경스럽다고까지 말한다. 도지마의 생각은 다르다. 50인 연대식극 이후에는 그 누구도 죠이치로에게 도전하는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식극에 죠이치로가 관여된 듯 하면 사퇴해버리는 녀석들까지 나타났다.
지금 그의 상대를 해주는건 도지마나 아자미, 그리고 당시 2학년이자 십걸 4석의 [[에비사와 리코]] 정도였다. 그 밖에는 전부 학원 밖 콩쿠르 등에서 날뛰는 것 정도.
도지마의 말에 아자미도 짚이는게 있는 듯 하다.
* 그때 문제의 죠이치로는 너무나 활달한 모습으로 나타나 식극이나 한 판 하자고 제안한다. 도지마는 며칠 후면 오사카에서 심사회가 있고 다음 달엔 THE BLUE에도 참석해야 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죠이치로는 태연하게 승부감을 유지하려면 그게 좋다며 서류 작업 같은건 때려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서류작업은 모두 죠이치로가 팽개친걸 나눠하는 거니 원흉은 결국 그다.
그의 상태를 걱정하던 도지마도 이렇게 나올 때는 그저 기우인 것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지마 자신 조차 죠이치로는 어떤 풍파에도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죠이치로 자신은 조금 달랐다. 그는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개척의 여정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상처에 조금씩 민감해지고 있었다.
이제 도지마도 아자미도 함께하지 못하는 그의 여정은 더 혹독하고 막막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거센 풍파에 맞서 나간다. THE BLUE에서 우승하면 좀 더 높은 곳으로, 더 앞으로.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며 힘겹게 걸어나간다. 오로지 "다음 목적지"만을 찾아 헤매는 길. 그는 서서히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망의 THE BLUE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기대와 기대가 모여서 터무니없는 높이가 되어 있다. 모두가 그를 격려하고 내일의 선전을 기대하는 말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죠이치로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은 후미오 여사 뿐이다. 그녀는 긴말 없이 일단 푹 쉬고 THE BLUE 이후엔 쉬는 걸 고려하라고 말한다. 평소 그를 걱정했던 도지마 조차도 석연치 않은 부분을 감지한 것 같지만 결국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간다. 그를 우러러 보기만 하는 아자미는 "당신의 진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기쁘다"라는, 가혹할 정도의 기대를 떠넘기고 간다.
* 결국 그날도 늦게까지 조리대 앞을 지킨 죠이치로. 조리대 위에는 한 장의 접시만 올려져 있다. 그 위엔 아무런 요리도 담기지 않고, 비치는건 그 자신의 얼굴 뿐이다. 아무런 명성도 영광도 재능도 비치지 않는, 그저 상처투성이의 떠돌이. 그게 그의 얼굴이었다.
THE BLUE 당일. 수라는 자취를 감췄다.
- 식극의 소마/208화 . . . . 28회 일치
* 승자는 흰 별을 습득하고 생존.이후 다른 대결에 가세할 수 있다.
* 키노쿠니는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와 달리 자신의 재능을 개화시키고 과시하는데 익숙했던 아이로 그 중에서도 소바의 재능은 따를 자가 없었다.
* 네네는 그가 냉정하게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추격해 오는걸 느끼지만 여전히 자신의 우위를 확신하고 있다.
*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간 연대식극. 펑키하게 세뇌된 [[카와시마 우라라]]지만 진행 자체는 성실하게 하고 있다. 연대식극의 룰은 다음과 같다.
각 진영에서 임의로 선발된 세 명의 요리사가 동시에 대결을 진행. 각 대결에서 승리한 요리사가 흰 별을 얻고 생존한다. 생존한 요리사는 새로운 대결에 나갈 수도 있고 아군의 대결에도 서포트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결을 반복해 상대방을 전멸시키는 쪽이 최종 승리. 카와시마는 이러한 룰은 제대로 전달했지만 소소하게 반역자 진영이 지라고 저주를 꽂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감옥에 갖힌 반역자들은 어느 틈에 카와시마가 세뇌된 건지 의아해하지만 원래부터 권력에 약한 속성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가열한 추측이 대세다.
* 소마는 조리는 제대로 시작했지만 컨셉이 글러먹었다. 반역자 동료들은 최악의 카드인 소바를 뽑은 데다 요리는 "컵 야키소바"로 하겠다는 소마의 결정에 아연해한다. 일단은 메밀가루를 체에 치면서 그럴듯하게 조리를 시작하고 있지만, 역시 속을 알 수 없다.
* 일식의 재능으로 십걸 6석에 오른 [[키노쿠니 네네]]. 게다가 자신의 특기 중의 특기 소바가 주제다. 키노쿠니는 잇시키가 소마를 고평가하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제가 저런 이상 소마가 자신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벌써부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키노쿠니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아이였다. 일식의 명가 키노쿠니 가문에선 일본 문화에 정통한 후계자를 원했고 그녀는 네 살때부터 일본 무용을 시작으로 전통 문화를 익히는데 매진했다. 보통 아이들처럼 놀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는데, 그녀가 자유롭게 뛰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라는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경험을 쌓고 실력을 갈고 닦는 일이 즐거웠고 그걸 과시하는 것 역시 그랬다. 이런 경향은 요리에도 이어져서 특히 "소바"에 관해서라곤 누구를 상대로라도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나키리 아자미]]는 그녀의 뛰어난 손반죽 실력에 대해 절찬을 늘어놓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의해 부드러운 흐름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메밀가루 입자 하나하나에 수분이 적절하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반죽이 생기기 시작해 콩알만한 크기가 됐을 때 이것들을 뭉치는 치대기 작업에 들어간다.
* 키노쿠니가 힘을 더해 반죽을 치대기 시작하자 낱알처럼 흩어져 있던 반죽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반죽에 순식간에 점성이 더해지는 것과, 가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힘으로 반죽을 해나가는 것에 놀란다. [[나키리 에리나]]는 완벽한 자세를 이룬 그녀의 하체가 비결이라고 간파한다. 다리와 허리의 힘을 충분히 실어서 반죽하기 때문에 힘이 낭비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자미는 여기에 아주 섬세한 반죽 실력 덕분에 쓸데없는 물을 더할 필요도 없어서 필요최저한의 윤기를 머금은 "진짜 소바"가 되는 거라고 설명한다.
* 그저 반죽만 했을 뿐인데 벌써 그녀의 승리는 확고해 보인다. 아자미는 박수 갈채를 유도하며 그녀를 응원한다. 소마에게 승산은 없어 보인다. 키노쿠니는 반죽하면서 소마가 "컵 야키소바"를 고른 것도 지적한다.
그건 소마 자신도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그저 "어떤 주제가 나오든 그때 떠오른걸 척"하고 내놓는다는, 실로 주먹구구식의 해법이었다. 죠이치로는 그저 "그래서 선발 꽁치 대결 때 졌다"고 아픈 데를 찌른다.
그렇게 말하는 소마의 손에는... 제면기가 들려있다. 소마는 얼빠진 표정으로 제면기의 성능에 감탄하며 열심히 면을 뽑고 있다. 보는 이들이 황당하는 것도 잠시. 곧 조롱거리 삼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동료들은 그가 승부를 포기한거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오는데, 이 상황에서 딱 세 사람만 그가 정확히 판단했다고 본다. 아자미와 키노쿠니, 그리고 에리나였다.
* 소바의 퀄리티 자체는 자신이 위라는 확신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키노쿠니는 소마가 생각보다 가까이, 바로 등뒤까지 쫓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런 압박감 때문에 승부를 망칠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키노쿠니는 차이가 있는 점은 분명하다고 못박고 이대로 승부가 진행된다면 분명 자신의 승리일 거라고 재차 확신한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변수를 만들 수 있다면 해보라는 것이 키노쿠니의 마음가짐이었다.
- 식극의 소마/236화 . . . . 28회 일치
* 쇠고기 시구레니가 메인인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 그런데 그건 반만 맞는 표현이었다. 피자의 절반은 시구레니가 듬뿍 올라가 있지만 나머지 반쪽은 치즈 온리. 즉 치즈와 쇠고기 시구레니 하프 앤 하프 피자였다. [[에이잔 에츠야]]도 이런 부분은 의외였던 모양이지만 심드렁하다. 과연 이것만으로 타쿠미가 공언한 대로 시나린 성분과 상관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걸까?
* 심사위원 샤름이 이 피자는 어떻게 먹는 거냐고 묻는데 타쿠미는 어떻게 해도 좋지만 "시구레니가 올라간 오른쪽부터" 먹으라고 조언한다. 그건 에이잔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행동. 반역자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에이잔은 아예 자포자기한 거라 폄하한다. 심사위원들도 원래는 맛있었을 피자인데 애석하게 됐다며 시식에 들어가는데... 반전이 일어난다.
* 타쿠미의 피자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절제된 단맛이 느껴지는 품위있는 맛. 이게 타쿠미의 자신감이었다. 비결은 유자된장소스. 사전에 피자반죽에 유자된장소스를 발라 시나린의 효과를 억제한 것이다. 본래 양념에 쓰는 백된장, 설탕, 미림의 양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유자과즙의 양을 대폭 늘려 신맛을 보충. 유자의 껍질을 갈아넣어 쓴맛과 떪은 맛을 첨가한다. 이것은 심사위원들이 에이잔의 로스트비프를 먼저 맛본다는 걸 전제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심사위원 안은 알디니가 자신의 피자를 메인디쉬로 만들기 위해 에이잔의 음식을 전체로 취급해버린 거라 극찬한다.
* 에이잔은 말도 안 되는 설명이라고 비난한다. 타쿠미는 이러한 밸런스를 "사전에" 맞췄다고 했다. 하지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대량으로 첨가한건 타쿠미가 피자를 굽고 나서 일. 도저히 대응해서 레시피를 수정할 틈이 없었다. 대체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아티초크를 쓸지 알았냐는 지적에 타쿠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타쿠미의 계산은 이랬다. 에이잔이 상대의 음식맛을 방해하는 요리를 하는건 필연. 그렇다면 어떤 재료를 선택할 것인가? 우선 그는 자신이 쇠고기 시구레니를 들고 나오면 반드시 단맛에 장난을 칠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지금 재료창고엔 어떤 재료가 있는가? 단맛을 방해하는 식재료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다른 대결에 영향을 주지 않고 단기간에 쓰일 재료는 아티초크 뿐이었다. 가령 미라클 후르츠도 단맛에 영향을 주지만 지속시간이 몇 시간에 달해 다른 십걸의 요리까지 방해할 것이 뻔하다. 고로 선택지는 처음부터 아티초크 하나 뿐. 타쿠미는 이같은 결론은 에이잔을 유심히 관찰해 "트레이스"한 결과라고 말한다. 결국 트레이스대로 움직여준 에이잔이야 말로 타쿠미의 "노림수"에 걸린셈.
* 에이잔은 그같은 설명을 헛소리로 일축하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장면들 뿐이다. 가령 자재창고에서 마주쳤을 때, 타쿠미가 노려보고 있다, 복수심을 불사르고 있다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그를 면밀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3rd ABOUT이 시작된 내내 계속됐다. 그는 타쿠미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기 요리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타쿠미는 에이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자신의 유도에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 심사위원들은 상대의 함정을 역이용한 타쿠미의 수완을 격찬하며 "탈출불가의 일루전"이란 표현으로 에이잔과 동급 이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부를 이걸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도 극상의 맛이긴 마찬가지. 이스트와르는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거기서 타쿠미의 다음 비장의 수, "제 3의 요리"가 공개된다. 사실 [[유키히라 소마]]는 그의 피자를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것 같다. [[타도고로 메구미]]에게 타쿠미의 피자가 "반달 두 개를 겹쳐놓은 듯한 모습"이라 하는데. "메짜루나"(반달). 타쿠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요리, "도피오 메짜루나 피자"(두 개의 달이 빛나는 피자"를 소개하며 진정한 맛을 보라고 하는데.
- 애로우 . . . . 28회 일치
주인공. 도시를 지키는 영웅이다. 본래 방탕한 생활을 보내던 부자집 아들이었으나 아버지를 잃고, 중국 모처의 섬 --군대 갔다오고-- 리안 유에서 가혹한 생활을 보낸 뒤 각성하여 아버지의 수첩을 따라 도시의 부패한 자들을 처단하면서 영웅으로서의 활약을 시작한다.
초기에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복수자에 가까운 인물상을 보이지만, 점차 자신만의 정의감을 찾아가게 된다. 로럴, 사라, 팰리시티 등 연애전선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전처럼 난봉꾼은 아니지만 약간 썸만 타다보면 뿅뿅씬이 나와주는(…) 매력남.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올리버의 경호원으로 붙여준 전직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 시즌 초창기에는 올리버가 자신의 비밀 활동을 위해서 따돌리고 다니는 대상이었지만, 나중에 비밀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가담한다. 특수부대 출신 답게 무술과 사격이 뛰어나며,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 올리버의 오른팔로 활동한다. 내연녀였던 아내는 아르거스에 근무하고 있어서 인맥도 출중. 처음에는 특별히 코드네임이 없었지만, 헬멧을 쓰게 되고 스파르탄이라는 코드네임을 쓰게 된다.
올리버의 여동생. 올리버와 아버지가 실종된 뒤, 미성년이면서도 음주와 마약에 빠져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으며 올리버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사고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나이트 클럽 경영을 시작하고, 점차 철들고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사실 올리버와는 씨다른 남매로서 그 아버지는 무려 말콤 멀린(…). 3시즌에서 말콤에게 단련을 받게 되며, 올리버의 정체를 알게 되고, 팀에 들어오게 된다.
티아 퀸의 남자친구. 이러니 저러니 해서 올리버와 팀을 이루게 된다. 과묵한 편이며,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다. 티아의 잠자리 반응을 보면 정력도 출중한듯(…). 올리버와 같은 디자인에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악당들에게 플래시와 혼동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3시즌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 올리버를 대신해서 자신이 애로우라고 하면서 자수, 구치소에 갇혔다가 디글이 동료 인맥을 이용해서 죽음을 가장하여 빼낸다. 이로서 '애로우'는 사망한 것이 되고, 다음 시즌부터 올리버는 그린 애로우로서 활동하게 된다.
랜스 형사의 딸. 올리버의 여자친구. …인데 올리버가 여동생 사라와 바람피우고 또 물에 빠져 실종당하는 파란만장한 과거를 겪었다. 본래 올리버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올리버의 배신과 사라의 죽음 때문에 올리버에 대한 감정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로스쿨을 나오고 [[검사]]로서 활동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로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등 문제를 겪기도 한다.
블랙 카나리로서 한 번 돌아왔던 사라가 사망한 뒤, 사라를 대신하여 자신이 블랙 카나리가 된다.
로럴의 여동생. 올리버와 함께 요트 타고 여행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참고로 올리버는 실종되기 직전까지 로럴과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죽은게 아니었고, 왠 악당들에게 잡혀서 리안 유에서 굴려먹히다가 또 빠져 죽은 걸로 나왔다가, 또 사실은 그때 죽은게 아니었고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구출해서 어쌔신이 되어서 돌아오는 등. 파란만장하게 죽었다 되살아나는 라이프를 보내고 있다.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레즈비언이 됐다.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남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3시즌에서는 폭발 사고로 사망한 줄 알았으나, 4시즌에서 연구하던 기술의 부작용으로 몸이 축소되어 악당들에게 납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올리버 일행에게 구출된다. 자신이 사망하고 돌아왔으나 별로 세상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 때문에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영웅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뭔가 큰 일을 해보고자 결심하고 타임마스터 립 헌터를 따라 시간여행에 나서면서,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로 전출되었다.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에서도 어째 고난의 연속이다. 미래 세계에서 아톰 기술이 반달 새비지가 후원하는 독재자에게 접수되어 아톰형 로봇이 독재자의 경찰로봇으로 쓰이질 않나, 자신의 업적이 몽땅 자신의 형편없는 동생이 이룬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질 않나(…), 호크맨이 사망한 뒤 과거 세상에서 고립되었을 때 호크걸과 연인이 되지만 호크맨이 부활[* 엄밀히 말하면 미래에 환생한 호크맨]하면서 좌절(…)하질 않나.
1시즌 최종보스. 올리버의 친구 토미의 아버지이며 올리버의 여동생 티아의 친부(…). 리그 오브 어쌔신 출신으로서, 재력과 무술, 책략을 겸비한 무서운 적수. 1시즌에서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한 우범구역 글레이즈를 증오하여, 지진발생장치로 글레이즈를 파괴하여 무너뜨리는 만행을 저질러 수백명을 죽였으며 아들 토미도 여기에 휘말려 사망한다. 본인은 올리버에게 쫓겨나지만, 나중에 다시 등장.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티아에게 집착하여 다양한 기행을 저지른다. 최종보스였으나 이후 시즌에서는 카리스마가 마구 날아가는 여러모로 해괴한 인간.
[[그린 애로우]] 주연 드라마이나 사실 내용 자체는 그린 애로우 스킨을 쓴 [[배트맨]]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배트맨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가 많이 나오기 때문. 당장 라스 알 굴이 등장했다는 점 부터가... 다만 초기의 애로우는 [[퍼니셔]]적인 느낌도 있었다.
- 원피스/832화 . . . . 28회 일치
* 유혹의 숲의 덫에 걸린 밀집모자 일행은 루피가 홀로 떨어지고 나미는 샬럿 브륄레에게 잡힌다.
* 구성원 대부분은 남자이자 병사이며 고도로 단련된 전사들.
* 상디는 제르마가 자신의 가족임을 부정하고 아버지인 국왕 "빈스모크 저지"와 대립한다.
*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유혹의 숲의 나무들.
* 밀집모자일행이 "브륄레님에게 놀아나고 있다"고 하는데.
* 숲 자체가 이상하다고 느낀 나미 일행은 빨리 벗어나려고 안간힘쓴다.
* 그들을 추격하는 자의 정체는 빅맘 해적단 "학기사" 랜돌프.
* 루피는 아직도 자기 분신과 싸우고 있다.
* 나미는 해안으로 돌아가자며 출구까지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 중간에 악어가 먹어치웠던 다리에 도달하는데 루피는 "기다려, 그쪽은 내가"라고 말하다 자기 입을 틀어막는다.
* 나미가 무슨 말을 했냐고 되묻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얼버무린다.
* 그런게 그들은 우누가 있던 그 자리로 돌아와 있다.
* 다시 다리로 돌아가 뛰어넘는 일행, 그런데 이번에도 다시 우누가 있는 자리로 돌아와 버린다.
* 그녀는 자기 얼굴의 상처를 보라면서 "너희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진다"고 소리지른다.
* 제르마66의 국민 대부분은 남자이며 곧 병사. 하루도 빠짐 없이 훈련을 거듭한다.
* 상디는 이런 "재수없는 장식"이라고 말하며 마구 까는데 레이쥬는 오히려 "아버지의 꿈은 다시 노스 블루를 제압하는 것이고 남자가 힘과 명성을 추구하는게 뭐가 어떻냐"고 대답한다.
* 제르마 왕국의 국왕이자 제르마66의 총수 "빈스모크 저지"
* 들어오자마자 상디가 아직도 억지를 부린다고 비난한다
* 상디는 저지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반발하며 자신에겐 부모가 없고 있어도 당신은 아니라며 막말을 한다.
* 그러자 저지가 "밖으로 나와라. 남자는 주먹으로 말하는 법."이라 말하는데.
- 유지태 . . . . 28회 일치
|직업 = [[배우]],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br />[[연극|연극 제작자]], [[모델 (직업)|모델]]
|배우자 = [[신민아]]
|자녀 = 유수인(아들)
'''유지태'''([[1976년]] [[4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 [[영화 감독]]·[[영화 각본|각본가]], [[연극]] 감독·연출·제작자이다.
2003년 [[단편 영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영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영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영화제와 제8회 제주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태, 네 번째 작품 제주영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태, 인디판다 국제단편영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 [[2013년]] 《[[인류자금]]》
* [[2009년]] 《[[초대 (영화)|초대]]》 - 남자 역
* [[2005년]] 《[[친절한 금자씨]]》 - 성장한 원모 역
* [[2003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이문호 역
* [[2003년]] 《[[자전거 소년]]》
|1999||MBC||[[남자셋 여자셋]]||지태||
* [[LG전자]] [[싸이언]] (2000 - 2002)
| 모델센터 남자 신인모델상
| 중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베스트 연기자상
|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남자 최우수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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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강릉 유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 은혼/590화 . . . . 28회 일치
[[은혼]] 590훈. '''첫번째 제자'''
* 소년 시절 자신이 머물던 집이 누군가에게 습격 당하고 "아까까지 알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물건"이 되어 있었다.
* 오보로는 창고에 숨어 바깥을 엿보고 있었는데, 의문의 집단이 암살자의 정체임을 알게 된다.
* 추적자들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귀병대 앞에 나타난 오보로.
* 귀병대는 이 지시를 의아해하는데, 오보로는 양이지사가 살아남은게 예상 외였을 뿐 우츠로의 목적 자체는 이루어졌다고 대답한다.
* 단지 땅을 기는 벌레(양이지사)의 생사여부 같은 자잘한 사실은 그의 큰 계획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라는 것.
* 그러자 오보로는 "땅을 기는 벌레가 가끔씩 날개를 얻어 하늘에도 닿을 수 있는 날개짓을 보여줄 때도 있다"며 "같은 남자"에게서 날개를 받은 "자신"은 알 수 있다.
* 오보로가 사신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죽음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그 자신은 죽음하고 먼 존재"라며 자신을 빗댄다.
* 노쇄하지도 죽지도 않아 그저 살아갈 뿐인 자신이 해줄 수 있는건 이런것 뿐이라며 자신의 피를 오보로에게 나눠준다.
* 자신은 원수로서 죽어줄 수도 없고 자신의 과오는 죽어서 속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적어도 "살아서 계속 증오해 달라"며 가면을 벗는다.
* 그는 그때 이미 죽었다고 독백한다. 그때 죽어서 "알지 못하는 물건"이 된 자들과 같다며, 단지 "그 사람"의 물건이 되기로 한 것이다.
* 우츠로는 여기에 있다간 살인마가 되어 버릴 테니 떠나라고 하지만 오보로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하겠다고 자처한다.
* 살인마의 학당에 와봐야 흉흉한 것 밖에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우츠로. 그러나 오보로는 "정말 그렇다면 나는 진작 살인마가 되었을 것"이라며 자신도 이제 살인기술을 배우는 건 포기할 테니 "학당을 차리면 자신을 첫 제자로 받아달라"고 말한다.
* 그는 임무를 방기하거나 표적을 도주시키는 등 행동을 해서 심문회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이다.
* 오보로는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츠로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다. 단지 오보로 덕에 결심할 수 있었던 것.
* 그는 죽어서도 갚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살아서 갚아나갈 수는 있을 거라며, 앞으로는 자신의 사신과 싸워나가겠다고 말한다.
* 오보로는 그래서 조직에 쫓기게 되엇다고 하는데, 우츠로는 "당신도 이쪽 일원인건 확실"하다고 하면서 "약속했었죠. 당신이 첫 제자라고"라고 말한다.
* 우츠로는 자신의 학당 이름은 "송하촌 학당"(쇼카촌 학당)이라 짓는다.
* 우츠로가 어떻게 해서 쇼요로 살아가게 됐는지를 다룬 에피소드이자 오보로의 출신에 대한 에피소드
* 소제목처럼 쇼요의 제자들 중 "첫번째 제자"는 바로 오보로였다.
- 은혼/627화 . . . . 28회 일치
* [[도로미즈 지로쵸]], [[오토세]] 여사, [[사이고 토쿠모리]]의 가부키쵸 사천왕들은 모처럼 평화를 기리는 술잔을 기리며 승리의 밤을 자축한다.
* [[헤도로]], 요괴 군단 등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적들이 속속 등장하자 해방군은 대오도 없이 도주하기 시작한다. 힘겹게 싸웠던 가부키쵸 주민들은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해방군을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들의 승리를 실감한다. 해는 지평선에 걸려있고, 승리를 자축하는 주민들의 환호성이 에도에 울려퍼진다. [[가구라]]와 [[시무라 신파치]]는 대장이자 선봉장이었던 [[사카타 긴토키]]를 찾아 승리의 기쁨을 나누려 하는데...
* 그들이 찾아낸 긴토키는 [[헤도로]]에게 고목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붙어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소년처럼 재앙을 홀로 막고 있지만 애초에 재앙을 불러온 것도 자신이라 도움도 청할 수 없다. 그래서 긴토키는 자신이 꺾어버린 헤도로 머리 위의 꽃, "파라파헤븐"을 필사적으로 붙여놓고 있다.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헤도로는 태연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미 해방군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면서.
파라파헤븐에서 벗어난 헤도로 본래의 사악한 인격은 자신이라는 진정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 인류에게 유감을 표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지구와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지, 그 무서운 계획에 대해서 살짝 알려주려고 한다. 긴토키는 떨리는 손으로 스카치 테이프로 어떻게든 꽃을 다시 붙여놓는다.
다시 마왕의 봉인이 열렸다. 사악한 헤도로는 인류 따윈 그저 자신이 살려두고 있었을 뿐인 힘없는 꽃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이번엔 긴토키가 심혈을 기울여 강력 본드로 접착을 시도한다. 효과가 있어서 다시 헤도로를 선한 인격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지만 너무 강한 접착력 때문에 긴토키의 손까지 붙어 버린다.
긴토키는 필사적으로 손을 떼려고 하다 그만 파라파헤븐 꽃을 뿌리째로 뽑아버리고 만다. 좋은 이야기를 하던 헤도로는 꽃이 떨어지자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피를 토해낸다. 그리고 온건했던 그가 긴토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탓하며 "그 녀석"의 봉인이 풀렸다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다급했던 긴토키는 임기응변에서 길에 세워놓은 화환을 헤도로의 머리통에 꽂아넣는다. 뉴하프바의 개점축하 화환을 말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발작을 일으켰던 헤도로의 움직임이 멈춘다. 긴토키는 어떻게 될지 숨죽이며 지켜본다.
다시 선한 헤도로의 목소리도 들린다. 사악한 헤도로를 "헤도라"라고 지칭하며 자신이 반드시 그의 음모를 막겠다고 한다. 또다시 악한 헤도로, 헤도라의 목소리가 이미 헤도로의 반신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고 곧 이 신체와 우주도 어둠에 물들여주겠다는 흉흉한 선언을 한다.
사이코드라마 같은 일인극을 홀로 감상해야 하는 긴토키. 가구라와 신파치는 그가 왜 헤도로에 달라붙어 있는지 끝가지 알 수 없다. 가구라는 즐거워보이니 냅두자고 하면서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진다.
지로쵸의 입에 한계란 말이 오르자 오토세가 신기해한다. 그런 나약한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오래살고 볼일이라는데. 지로쵸는 약한 소리로 들린 거라면 귀가 먼거라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오토세는 약한 소리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때 [[사이고 토쿠모리]]가 항상 으르렁대던 가부키쵸 사천왕이 오늘 밤은 즐거워보인다며 자리에 끼어든다. 오토세는 마침 그도 부르고 싶던 참이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어차피 이들과는 지구가 멸망하지라도 않으면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이니 이런 기회도 없다면서. 그래서 오토세는 차라리 이 상황에 감사하고 있다. 이럴 때이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게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조금은 인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흑역사를 자극 당한 신파치가 과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판데모니엄은 게도마루의 말마따나 상처치료에 효과적인 만능 재료. 이 시기에 매우 필요한 보급품임에 틀림없다. 신파치는 징그러운 것이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귀찮게 해버렸다며 방해하지 않겠다는 판데모니엄씨에게 다시 심쿵해 버린 신파치는 결국 인외의 길로 들어서 판데모니엄에게 프로포즈하고 만다.
* 누나 [[시무라 타에]]는 태클과 인외연애에 여념없는 신파치를 염려해서 쉬라고 권한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사실 게도마루는 신파치를 심란하게 하는 것 말고도 부상자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물론 아까도 부상자들을 도우며 태클 말고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신파치보단 훨씬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도마루와 음양사들은 늦게 온 만큼 조금 더 컷에 나와서 분량을 뽑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가부키쵸 주민군에 늘러앉았다.
게도마루와 식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식과 배식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식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순찰대를 빙자해 서로 식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토세는 부상자들에게 지금은 푹 쉬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부상자들은 지금이라도 적들이 처들어올게 두려워서 편히 쉬지도 못한다. 오토세는 자신들이 있으니 잘 먹고 잘 쉬라며 특제 다크마타를 처먹여 영원히 쉴 수 밖에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게도마루는 재기불능이 된 병력에게 판데모니엄을 데코레이션하는 흉악한 짓을 하는데 신파치는 제대로된 식량을 배급하라며 태클을 건다. 그때 또다시 나타나는 판데모니엄씨. 이제 신파치의 본심을 알았다며 떠나려고 하는 그녀. 신파치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판데모니엄을 먹어치우려고 한다. 가구라는 머리가 맛이 가버린 신파치에게 좀 쉬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 환각에서 깨어나지 못한 곤도는 타에가 너무 격렬하게 덮친다고 착각하고 있다. 신파치는 곤도가 자신의 판데모니엄씨를 더럽히고 있다고 생각해 흥분한다. 진짜 타에는 이 지옥 같은 꼬라지를 보며 혀를 찬다. 게도마루는 원래 판데모니엄은 환각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는데 너무 약발이 든 거라고 설명한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28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97화. '''각자의 답'''
* 하우저는 드레퓌스와 핸드릭슨이 자격이 없다고 사양한 성기사장 자리를 승계받는다. 하지만 아직 대리 꼬리표가 붙는다.
* 고서는 마침내 풀려나는데, 풀려난 직후 자신은 십계의 "무욕"의 고서라는 말을 중얼거리는데.
* 킹은 요정왕의 숲에 있는 강에서 씻고 있는데, 자신에겐 날개가 없는걸 한탄한다.
* 리오네스 왕국의 민가. 아버지가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법한 아침풍경. 부지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겨우 아침잠을 쫓으며 세수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칠칠맞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다고 디스하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아들은 바로 성기사 하우저. 평민출신 답게 서민적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우저는 출근하기 전에 앞으로 수도 복구 때문에 늦게 올 거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런거보다 왕궁에서 사자가 와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고 전한 일을 말한다. 하우저는 "마신족 놈들 때문에 나라가 반붕괴했는데 그런거라니"하고 반발하는데 아버지는 하우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출근이나 하라고 내보낸다.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아직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지 못했다고 짐작한다. 그때 잠자코 있던 반이 멜리오다스의 목을 조른다. 어젯밤에 축배를 들 때 멜리오다스가 없어 흥이 나지 않았다는 것.--흥이 깨졌으니 단장이 책임져-- 반은 그런 식으로 서먹함을 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에게 "어제는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무슨 표정으로 말을 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멜리오다스의 뭔가가 바뀐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멜리오다스는 반이 잘못한게 아니라고 하는데.
* 반은 멜리오다스가 풀어지는 듯싶자 "그렇지. 단장은 언제나 그 멍청한 얼굴인데 괜히 걱정했다"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고 벽에 처박힌다. 반이 피떡이 되자 에스카노르는 갑자기 자작시를 읊기 시작한다. 멜리오다스를 "긍지 높은 분노"라 칭하는 그 시는 어떤 저주가 걸리더라도 각자의 마음을 침범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에스카노르는 주제넘게 단장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건 아니라면서도 같이 저주에 걸린 입장에서 그 괴로움만은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그 시에 "8점"을 붙이는데 몇 번 만점인지는 언급을 피한다. 게다가 시를 읊고 나서 주절주절 설명을 하고 있다고 까기도 하는데, 에스카노르는 "아름다운 장미란 나에겐 멀린씨고 단장에겐 엘리자베스"라고 쓸데없는 설명을 더 덧붙인다.
* 아무튼 멜리오다스는 반과 에스카노르의 노력으로 다시 예전처럼 웃음 짓는다. 엘리자베스도 한시름 덜은 듯 살짝 눈물을 보인다.
* 한편 왕궁에서는 국왕 바토라가 성기사들을 소집한 상태. 바토라는 일곱개의 대죄의 활약으로 십계의 위협은 벗어났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기사들을 통솔할 성기사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새로히 임명한다고 선언한다.
* 성기사들이 수군대기 시작한다. 분명 필요하긴 하지만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것. 표암의 포효의 슬레이더도 추천을 받지만 그림자라고 자칭하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우저는 당연히 핸드릭슨이나 드레퓌스가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불평하는 녀석들은 자기가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럴 자격도 마음도 없다며 고사한다. 덴젤도 사망하고 길선더는 행방불명. 더욱더 맡을 사람이 없어진다.
* 하우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믿지 못한다. 스스로 평민이고 머리도 나쁜데 괜찮냐고 묻는데 바토라는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되묻는다. 바토라는 절망적인 싸움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동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타인의 방패가 되길 마다하지 않았다. 바토라는 그런 점을 높이 사서 그를 임명한 것. 그러나 미숙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아직은 "성기사장 대리"라는 꼬리표를 단다.
* 목욕을 마친 멀린은 이 다음 수를 구상하겠다고 우선은 일곱개의 대죄가 전부 모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인지 데스피어스는 멀린과 바토라의 명의로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고서를 석방한다. 그런데 고서는 상태가 다소 이상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일곱개의 대죄 색욕의 죄 고서."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데스피어스는 미심쩍어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 고서를 풀어주며 그가 십계의 일원이라는 혐의가 완전히 풀린건 아니라고 경고하는데. 그렇게 구속이 풀린 고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말하자 어쩐지 고서의 기색이 달라진다.
* 왕국에서 덜어진 요정왕의 숲. 할리퀸은 그곳의 물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면을 때리며 "왜 나에겐 나지 않는 거지"라고 한탄한다. 날개가 나지 않는것 때문에 짜증을 부리는 듯 하다.
고서는 그냥 있을 때도 상태가 이상한데 갑자기 무욕의 고서라고 십계의 이름을 댄다. 고서가 멜리오다스의 과거 시절 나오던 무욕의 십계라는건 팬덤에서도 추측하고 있던 내용인데, 이번 화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다만 고서는 멀린이 조작하는 인형이었으며 멜리오다스의 십계 시절 동료인 "무욕의 고서" 그대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28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201화. '''공투하는 자들'''
*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 바토라|엘리자베스]]는 [[킹(일곱 개의 대죄)|킹]]과 [[디안느]]를 마신족이 학살을 자행하는 현장으로 데려간다.
* 마신족은 인간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중. 킹은 적의 엄청난 숫자와 힘 앞에 위축된다.
* 킹은 이 몸이라면 싸울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갖는데 카르다미오스가 "[[여신족]]의 개들"이라고 독설을 내뱉는다.
*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의 몸에 들어간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킹]].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 보다도 "[[여신족]]"인 [[엘리자베스 바토라|엘리자베스]]의 등장에 더욱 놀라워한다.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는 두 사람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 곁으로 다가가더니 "저번에 한 이야기"를 꺼낸다. 엘리자베스는 약간 안달하는 것 같은데 멜리오다스는 지금은 일이 최우선이라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리고 디안느와 킹에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곧장 어디론가 출발해 버린다.
* 디안느가 허둥지둥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킹이 이곳은 3000년 전의 [[브리타니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이 있던 시대엔 여신족이 실체를 가지는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은 마신족과 전쟁으로 힘을 잃어 실체를 보일 수 없다. 풍경도 그들이 아는 브리타니아와 전혀 다른데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동자가 십계인 지금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빛이다.
디안느는 그럼 엘리자베스는 왜 여기 있냐고 묻자 킹도 그 부분은 불분명한지 "아주 닮은 사람일 것이다" 정도로 얼버무린다. 아무튼 지금은 각자 요정왕과 거인왕으로 행동하는게 좋겠다고 말한다.
숲을 빠져나오자 멜리오다스의 말처럼 참상이 나타난다. [[마신족]]의 습격이었다.
* 마신족들은 인간을 상대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다. 숫자도 위력도 압도적이다. 인간들도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지만 마신족의 힘 앞에선 무력하다. 킹과 디안느는 치를 떨면서도 마신족의 힘 앞에서는 위축되고 만다.
* 디안느는 그 모습에 환호하고 킹은 자신들은 짐덩어리일 뿐이라고 자학한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나타난다. 검은 날개와 함께 나타난 마신족. 킹과 디안느는 그 기척만으로 격이 다른 상대임을 감지한다.
* 디안느가 그 말을 듣고 허둥대는 사이 카르마디오스가 공격한다. 여섯개의 팔로 휘두르는 도끼에 당하는 디안느. 디안느가 나가 떨어지자 이번엔 킹을 향해 마력탄을 토해낸다.
* 십계 조차 압도하는 요정왕과 거인왕의 "본래 힘"을 깨달은 킹. 지금의 자기들이라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자신감을 얻는다. 한편 쓰러진 카르마디오스는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진 않았다. 그는 일행을 "여신족의 개"라고 비하하며 독설을 내뱉는다.
전 회에 이어 디안느의 영향으로 소녀틱해진 드롤의 행동거지가 심하게 눈갱. 이곳은 3천년 전 브리타니아이며 이들은 아직 엘리자베스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는 것 같다.
- 전혜빈 . . . . 28회 일치
|| '''출생''' ||<(> [[1983년]] [[9월 27일]], [[전라북도]] [[고창군]] [br] 천칭자리/검은돼지띠 (계해년) ||
안타깝게도 그룹 LUV 자체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했고, 이후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혜빈만 솔로 앨범을 내게 되었다. 왕성한 예능 활동을 하며 다이어트 운동 비디오 출시 및 프리 싱글곡 'Love Somebody'를 동시 발표하는 등 쉴틈없이 달려오다 2005년, 섹시하고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중무장했던 정규 1집 타이틀곡 '2AM'을 선보이며 호평[* 물론 안티도 있었던 반면, 당시 솔로 여가수 중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특히 춤선이 예쁘다는 반응으로 뜨거웠다. 아직까지 이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전혜빈의 끼와 퍼포먼스를 그리워하기도.]에 가까운 중박 정도를 거뒀다. 사실 본인도 밝혔듯이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가수로 데뷔한 케이스이니, 딱히 가창력이나 음악성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전형적인 '예능형 댄스 여가수' 정도로 소비되었다.
이후 완전히 연기자로 전업했지만 초기에는 연기보다 예능 쪽의 출연이 많았고, [[해피 선데이]] [[여걸 식스]]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 후 연기 활동에의 전념을 이유로 여걸 식스에서 하차했으나, 그 이후에 딱히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도 없고 소식이 뜸했었는데...
[[강심장]]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예계에 입문했고, 그룹이 해체하고 솔로 활동을 하다가 배우로 키워주겠다는 업계 친한 언니에게 이용당한 모양. 대외적으로는 자기가 키우는 배우랍시고 떠들고 다니는 듯 했지만, 사실은 툭하면 여기저기 높으신 분들의 술자리에 데리고 나가서 노래나 춤을 시켰다고 한다. 자신은 원래 가수였으니 이런 일까지는 그냥 쇼케이스한다는 심정으로 견뎠지만, 사실 그건 전부 다 자기 사업을 위한 것이었지 전혜빈에게 일거리를 잡아주거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사업상 접대용으로 이용한 것.
이 일로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그나마 좀 모아뒀던 통장 잔고도 바닥나고,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자살 기도까지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울증도 이겨내고 다시 새 출발을 할 힘을 얻었다고. 후에 정글의 법칙에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은 이 때의 경험으로 인해 얻게 된 듯 하다.
명절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정글의 법칙 W]]에서 [[김병만]]을 연상케 하는 뛰어난 생존 스킬을 보여줘 좋은 반응을 었었고, 이를 발판으로 오리지널인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마다가스카르]]편에 출연했다. 여기서 [[김병만]]을 보좌하는 여전사로 맹활약해 기존 2인자였던 리키김의 위치를 위협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줬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여성 게스트들은 전부 전혜빈과 비교당할 정도.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순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남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금)]] 역할을 맡아 빙썅연기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11화에서 박도경을 찾아가는 씬에서는 [[오해영(금)]]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와 공감능력의 결여, 애정결핍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뛰어난 장면을 만들어냈다. 오해영 연기에 전혜빈이 영혼을 갈아넣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이 늘어나는 중.[* 그런데 극중 라이벌인 전혜빈과 [[서현진(배우)|서현진]]은 실제로 꽤 친한 사이다.]
[[아는 형님]] 30회의 게스트에 출연하였다. 춤은 여전히 잘 추는 편이었고, 그와 반대로 조곤조곤한 말투로 아재들을 감동시키는 코너도 진행했다. 특히 연애편지나 강심장 등 신인시절 자신을 잘 챙겨준 [[강호동]]에게 고마운 마음에 세족까지 해 줬다. 반면 [[민경훈]]에게는 [[유준상]]의 아내 [[홍은희]]의 지인이었던 과거 썸녀 이야기 폭로로 녹화장 자진 퇴장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희철에게 '요즘 [[여장]]하고 춤춘다며!?!' + [[홍석천|석천오빠]] 말이 맞았어! 등의 독한 발언으로 그 희철마저 작살내는 활약을 보여줬다.
||<|2> [[2018년]] || 모바일 || [[숫자녀 계숙자]] || 계숙자 || 주연 ||
||<|3> [[2016년]] || [[KBS]] || [[드라마 스페셜]] - 국시집 여자 || 미진 || ||
|| [[MBC]] || [[캐리어를 끄는 여자]] || 박혜주 || ||
|| KBS || [[드라마 스페셜]] - 보라색 하이힐을 신고 저승사자가 온다 || 이지연 || ||
|| [[결혼 못하는 남자]] || 화란 || ||
|| [[2006년]] || KBS || [[드라마시티]] - 쓰리의 전설 || 오정자 || ||
||<|2> [[2003년]] || KBS || [[상두야 학교가자]] || 윤희서 || ||
* 겨드랑이 노출 사진[* 의상 자체가 소매가 없는 옷이라 팔을 들면 자연히 겨드랑이가 보일 수 밖에 없는 옷이었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6361|바로 이것]]]에 이어 절묘한 표정으로 순간캡쳐된 짤방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겨드랑이에 놀란 전혜빈 등의 제목으로 널리 퍼졌었으나, 천생연분 출연 및 솔로활동으로 인지도는 있으나 별다른 인기는 없었을 때 크게 유행했고 연기자로서 생명력을 갖게된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짤. 다만 지금도 일부 기레기들이 이 사진을 가지고 전혜빈의 충격 과거, 암내 운운하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 UV - 그 여자랑 살래요의 뮤직비디오에 출연.
- 페어리 테일/529화 . . . . 28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의 의도대로 [[아크놀로기아]]는 곧 크리스티나호를 쫓는다. 현재 크리스티나호의 운전은 [[히비키 레이티스]], [[이브 티름]], [[렌 아카츠키]], [[제니 리아라이트]]가 담당하고 있다. 이치야는 히비키가 호출하자 [[엘자 스칼렛]] 일행에게 이야기는 미루고 우선 목적지로 향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치야의 뒤에 서있던 "비책"을 가지고 온 여성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묘하게도 그녀 쪽에서는 엘자 일행을 잘 아는 듯 한데, 엘자로서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 아크놀로기아가 날아오르자 조타수를 맡은 제니가 배를 크게 선회시킨다. 그 바람에 배가 크게 흔들린다.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휘청거리면서 잠시 러브코미디를 연출하는데 [[웬디 마벨]]이 사이에 끼어서 괴롭다. 그렇지 않아도 멀미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여성이 웬디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웬디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보듬으며 "이 배는 멸룡마도사도 탈 수 있게 만들어진 배"이니 진정하고 심호흡을 하라고 말한다. 엘자는 어째서 그녀가 웬디를 아는지 의문스럽다. 웬디가 그녀의 말대로 심호흡을 하자 거짓말처럼 멀미가 멎는다. 정신을 차린 웬디가 여성의 얼굴을 마주본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하고 탄성을 낸다.
* 아크놀로기아의 추격이 시작되자 이브가 조금 부추겨보자고 제안한다. 제니가 "마도수속포 쥬피터"를 장전한다. 크리스티나호가 방향을 틀어 아크놀로기아를 향해 포격을 가한다.
* 포격은 정확하게 명중하지만 아크놀로기아는 마법을 먹는 마룡. 조금의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곧 실탄병기로 바꿔서 공격을 가해보지만 기관총 정도로는 맞추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크놀로기아는 자잘한 공격 따위는 비웃으며 총알을 피해 속도를 높여온다. 크리스티나호 측은 공격을 멈추고 속도를 올려 더욱더 목표를 끌어들인다.
* 하늘 위로 추격전이 펼쳐지면서 크리스티나호의 선체는 심하게 요동친다. 이치야가 제니 대신 키를 잡고 수평유지를 위해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직 복도에 있는 엘자 일행. 엘자와 제랄은 계속 넘어지고 포개지면서 러브 코미디 모드. 웬디는 비틀거리면서도 방금 전 만난 여성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여성은 이제 기억이 났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나츠 드래그닐]]의 [[페어리 테일/512화|심상 세계]]에서 모습을 보였던 그 인물이었다. 안나는 자신을 엘자의 동료 [[루시 하트필리아]]의 선조라고 소개한다. 물론 엘자가 갑자기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랄은 그런 것보다 정말로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안나는 그에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며 조급해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 웬디는 엘자, 제랄과 그녀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안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안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웬디를 안아주며 잘 컸고 [[그란디네]]를 비롯한 드래곤들의 일은 유감이라고 위로한다.
안나는 웬디를 안은 채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 입을 연다. 그녀는 400년 전의 멸룡마도사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나츠, [[가질 레드폭스]],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그리고 웬디가 그녀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으며 [[제레프 드래그닐]]이 알려준 대로 나츠의 머플러를 떠주기도 했다.
* 마그놀리아의 공원. 전쟁은 끝났지만 파괴의 흔적이 역력하다. 루시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레이 록버스터]]는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지시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가 루시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눈물을 참지 못하다 그레이와 해피가 당황한다. 메이비스가 건넨 END의 서는 루시의 손에 들려있다. 루시를 그걸 들여다 보다가 "나츠의 목숨이 이런 책 한 권이라니"라는 생각이 들어 울음이 터졌다. 그레이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피도 루시를 따라 울먹거렸다.
>나츠도 평범한 남자애인데... 왜...
* 제레프는 광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는 더이상 나츠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END"라고 부른다. 이성을 버리고 폭주하는 그는 자신은 END를 파괴하고 END는 자신을 파괴할 거라는 말을 두서없이 내뱉고 있다. 그런 제레프를 향해, 형을 향해 나츠가 고함쳤다.
*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꽁무니에 달고 전속으로 날아간다. 항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방금 전처럼 심한 흔들림은 사라졌다. 안나와 엘자 일행은 조금 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안나는 400년 전쟁 당시엔 아크놀로기아를 제압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당대의 드래곤들은 미래에 희망을 걸기로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운 멸룡마도사 체내에 들어가 400년 후의 미래로 건너온다. 여기까지는 웬디가 그란디네에게 들어서 아는 내용. 그란디네는 이 시대가 가장 마력이 충만한 시대이기 때문에 선택됐다고 말했다.
안나는 분명 이 시대로 오는 "문"을 만드는건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문은 제레프가 만든 것이다. 그 문을 여는 역할은 안나 자신의 몫. 제랄은 제레프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에 놀라지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제레프는 당시에도 "시간"을 연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원하는 "과거"로 거슬러가는건 불가능했지만 그가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절이다. 안나는 "출구"에 있을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직 어린 멸룡마도사들을 키우는 역할로 선택되어 함께 미래로 오게 된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28회 일치
* [[엘자 스칼렛]]과 나머지 일행은 [[루시 하트필리아]]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아크놀로기아]]를 유인할 준비를 한다.
* 위기의 순간, [[웬디 마벨]]이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나츠에게 부여하고 그가 아크놀로기아의 공격을 흡수하게 한다.
* 여기에 그 자리의 모든 멸룡마도사의 힘을 보태면서 나츠가 모든 멸룡마도사의 힘을 사용하는 "칠염룡"으로 각성한다.
* 엘자, [[미라젠 스트라우스]] 등이 기습을 걸어 아크놀로기아를 배 위로 떨구는 순간 루시가 모든 동료들의 힘을 모아 페어리 스피어를 발동시킨다.
* [[아크놀로기아]]를 하루지온으로 유인해 약점을 공략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본능적인 직감인지 이쪽의 계산을 간파한 건진 모르지만 아크놀로기아는 항구가 보이자 마자 선수를 쳐서 정박해 있던 모든 배를 박살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접촉시켜 멀미를 유발하는 방법을 쓸 수가 없다. 페어리 스피어 발동 작전은 이대로 실패하는 걸까? 그때 [[그레이 풀버스터]]가 작전 속행을 주장하며 항구로 뛰어간다. 자신과 [[리온 바스티아]]가 힘을 합쳐 얼음조형마법을 쓰면 분명 큰 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들과 [[쥬비아 록서]]까지 가세해 얼음의 배를 만드는 작업이 개시된다.
* [[엘자 스칼렛]]과 [[미라젠 스트라우스]]은 아크놀로기아를 저지하고 배가 준비되는 대로 유인할 준비를 한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마력을 가진 두 사람이라면 분명 마룡이 따라붙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비전투 인원들은 한데 모여서 손을 잡고 마력을 높인다. 페어리 스피어 발동법을 찾아낸 [[루시 하트필리아]]가 도착하는 대로 일행의 전마력을 개방할 것이다.
* 작전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루시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의 도움으로 하루지온으로 향한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항구가 불탄 걸 보지만 동료들을 믿기로 하고 곧바로 페어리 스피어 발동 준비를 한다. 함께 온 [[레비 맥거딘]]과 [[프리드 저스틴]]은 초대형 술식을 준비하기 위해 흩어진다.
아크놀로기아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나츠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걸 재미있는 농담 취급한다. 아크놀로기아가 남는 이상 용이 한 마리 남는 셈이다. 어쨌든 그도 멸룡마도사이자 드래곤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긴 건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마룡이 입을 다문다. 나츠는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팩트를 던진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것. 모든 멸룡마도사들, 아크놀로기아 조차도 그저 드래곤의 힘을 받은 인간일 뿐이지 "자만"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진짜 드래곤"들은 강하고 품위있으며 "상냥하다"고 말한다. 시종 여유로운 웃음을 띄었던 아크놀로기아가 이를 간다. "드래곤은 상냥하다"는 말이 그의 성질을 긁었다. 그가 아는 드래곤은 모든 걸 빼앗는 존재다. 그의 가족을 먹어치웠고 마을을 불 살랐고, 어린 소녀까지 잔인하게 죽였다. 그게 아크놀로기아가 멸룡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마룡이 온몸으로 마력을 방출하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나츠와 시간의 틈새의 지형을 집어삼킨다.
* 나츠는 이대로 끝장일까? 그러나 자욱한 폭연 속에서 여전히 나츠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츠를 공격했던 아크놀로기아의 마력이 나츠에게 흡수 당한다. 마룡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 해답은 웬디에게 있었다.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던 그녀는 나츠에게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부여했다. 그 힘이 마룡의 힘마저 나츠에게 주입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웬디는 곧 모든 멸룡마도사들의 힘을 끌어온다. 정신을 차린 멸룡마도사들은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나츠에게 전한다. 곧 마룡의 힘에 더해 그 자리에 있던 일곱 멸룡마도사의 힘 전부가 나츠에게 축적된다. 이제 나츠에게서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이 탄생했다.
* 그레이와 리온이 힘을 합친 범선 조형은 대성공했다. 알바레스 제국이 끌고온 함선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얼음의 배가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온은 이것이 자기의 최대 걸작이라 자신했다. 그레이가 엘자와 미라젠에게 준비가 끝났다 신호한다.
* 힘을 합쳐 마룡을 묶어놨던 엘자와 미라젠은 페어리 스피어의 준비 상태를 확인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짜여진 거대한 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손과 손을 맞잡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루시가 준비 완료 신호를 보내고 드디어 작전 시작이다.
* 미라젠과 엘자가 마룡을 유인한다. 작전을 까맣게 모르는 마룡이 낮게 비행하며 따라온다. 레비와 프리드의 술식 작업도 막바지. 쥬비아가 바다의 해류를 조종해 배를 적당한 위치까지 몬다.
* 이제 바다다. 아크놀로기아가 수면 위로 빠져나오자 엘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엘자는 마룡의 머리 위에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무장을 개방한다. 한도 없이 쏟아지는 검에 떠밀려 아크놀로기아가 균형을 잃는다. 마룡이 추락하는 위치에 쥬비아가 정확하게 배를 가져다 댄다. 그대로 배 위로 떨어지는 마룡. 작전의 1단계 성공. 예상대로 아무리 마룡이라도 배에 올라갔을 땐 멀미를 일으켰다. 지금이 기회다.
- 하춘화 . . . . 28회 일치
|| 출생 ||[[1955년]] [[6월 28일]] ([age(1955-06-28)]세) [[전라남도]] [[영암군]] [br] 게자리/양띠||
|| 학력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br] [[경남대학교|경남대학교 병설 산업 전문대학]] 가정과 (졸업)[br][[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학사)[br][[동국대학교|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사)[br][[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
|| 자녀 ||없음||
대한민국의 원로급 가수이다. [[1955년]] [[6월 28일]]생. 하춘화가 대단한 이유는 데뷔년도가 6살 때인 [[1961년]] 인지라, [[2015년]] 기준으로 '''나이는 환갑인데 가수 경력은 55년차'''라는 점이다. 참고로 하춘화가 데뷔한 해는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그 해이다. 처음 데뷔했을 때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엘자 렁히니나 [[다코타 패닝]] 저리가라 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엘자 렁히니와의 차이점은 어른이 되어서 인기가 죽어버린 엘자 렁히니와는 달리 하춘화는 늙어도 인기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남자 가수로서 레전드가 [[조용필]]이라면 여자 가수로서 레전드는 하춘화였던 것이다.
[[이빈]] 작가의 [[안녕 자두야]]를 보면 당시 후덜덜했던 하춘화의 인기를 알 수 있다.
하춘화의 재능을 알아본 하춘화의 아버지는 그녀를 서울 동아예술학원에 다니게 했고 거기서 8개월 동안 노래를 배우게 한 뒤 가수로 데뷔시켰다. 이후 [[1966년]] '아빠는 마도로스'라는 노래를 발표해 크게 성공하면서 하춘화의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음반은 [[1971년]]에 처음으로 냈는데 이 음반의 노래인 '물새 한마리'가 히트하면서 꽤 많이 팔렸고 [[1971년]] 고봉산과 '잘했군 잘했어'를 듀엣으로 불러서 이걸로 TBC에서 4년 연속 여자가수상을 수상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배 가수였던 [[이미자]], [[패티김]], [[김상희]], 문주란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정상급 여가수로 성장했다.
하춘화는 성격이 굉장히 [[대인배]]였는데, 보통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성공하면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았지만 하춘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못 생겼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소외받고 있던 당시 무명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을 보더니 자신의 공연에 '''"이 사람이 아니면 내 공연의 사회자를 시킬 수가 없다. 꼭 이주일 이어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이주일을 자신과 같이 일하게 했다. 훗날 이주일은 이런 하춘화를 대단히 고마워하며 "길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었던 내가 하춘화 덕분에 우리집을 샀다"고 말하며 하춘화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며 존경했다.
그러나 [[1981년]]에 다시 가수로 복귀해서 '우리 사랑 가슴으로', '연인의 부르스' 등의 노래를 히트시켰으며 [[1983년]]에는 자신이 아끼는 무대의상 150벌을 후배 가수들에게 나눠줬다. [[1985년]]에는 남북 예술인 교환공연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각각 최고의 가수들을 상대방에게 파견하여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이 때 하춘화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자격으로 평양에 가서 3박 4일 동안 공연을 했다.
[[1989년]]에는 '날 버린 남자'[* 개그맨 [[김영철(개그맨)|김영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모창하던 그 노래이다.]가 국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다시 각광받기 시작하고 [[1991년]]에 총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하였고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었다. 이후 하춘화는 [[2002년]]에 댄스 리듬의 트로트'연하의 남자'를 부르면서 자신만의 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로서 하춘화는 춤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증명했다. 학업을 위해 잠시 은퇴하기도 했으나 [[2007년]]에 다시 복귀하여 현재는 '나이야 가라'라는 노래로 왕성하게 활동 중.
이 와중에도 하춘화는 공연과 학업을 병행함에도 불구하고 학업에도 열중하여 [[1994년]]에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최고 정책과정을 수료한 후 [[1998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0년]]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가요의 원류와 변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공연예술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2006년]] [[8월 25일]]에 [[성균관대학교]]에서 현대 대중가요 역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예술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박사학위를 소지한 최초의 대한민국 가수가 되었다.
* 날 버린 남자 (1989)
* 항구의 여자 (1998)
* 연하의 남자 (2002)
*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하춘화를 구했던 [[이주일]]은 오히려 무명일 수 밖에 없던 자신을 거둬들여 고정적으로 일하게 해줬다면서 살아생전 하춘화를 마음 속 깊이 존경했다. 하춘화 역시 이주일을 평생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으며 2002년 이주일이 사망했을 때도 당연히 빈소를 찾았다.
* 학위만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가수 중에선 가장 갯수가 많다. 방송통신대학교 시상식에서 시상소감으로 말하길 자매가 넷인데, 다른 자매와 달리 혼자 박사학위 없이 가수로 생활하다보니 학위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함신익 . . . . 28회 일치
|직업 = [[음악가]] [[지휘자]]
|배우자 =
|자녀 =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와 예일 교향악단 음악 감독, 폴란드의 실레시아 오페라단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2001년~2006년까지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2014년 현재, 혁신적인 재원 지원 정책 및 경영 방침을 근간으로 한 함신익의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를 창단 후 창단연주회를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였다.
1995년 해외 음악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2003년에는 자서전 '다락방의 베토벤 을 출간하기도 했다.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지휘자들을 배출해냈으며, 그 중 싱가폴 출신의 Darrell Ang은 2007년도 브장송 국제지휘콩쿨에서 우승하였다.
그는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1995년 이래 재직중이고, 대전시립교향악단 (2001-2006) 과 KBS 교향악단 (2010- 2012)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미국에서는 Abilene Philharmonic과 Tuscaloosa Symphony의 음악감독 으로 각 10여 년간 재직하였다. 또, Green Bay Symphony와 Milbrook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2010년 10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상임 함신익과 KBS 교향악단의 연주는 New York Times로부터 “존경 받을 만한 연주” 라는 평론을 받았다. 영국의 The Financial Times 는 "확실한 자부심과 확실한 헌신, 열정과 뛰어난 정교함이 어울린 음악" 으로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카네기 홀 연주를 평가하였다.
함신익은 EU (유럽연맹)가 후원하는 세계 40 개국으로부터 모인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Philharmonia of the Nations 의 지휘자로서 이들의 유럽 순회연주를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다.
Amsterdam, Avignon, Baltimore, Bangkok, Beijing, Besancon, Bilbao, Boston, Budapest, Chemnitz, Colorado, Detmold, Fort Worth, Geneva, Guangzhou, Herford, Hong Kong, Hartford, Houston, Los Angeles, Malaga, Memphis, Mexico City, Minden, New York, Omaha, Osaka, Philadelphia, Porto Alegre, Prague, Saint Petersburg, Seattle, Seoul, Shanghai, Shenzhen, Teplice, Tokyo, Toronto, Ulaanbaatar, Washington D.C, 그리고 Xalapa 등 에서의 객원지휘등을 통해 지휘자 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전임자=[[금난새]]
후임자=에드몬 콜로메르
직책=[[대전 시립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전임자=[[드미트리 키타옌코]]
후임자=[[요엘 레비]]|
직책=[[KBS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전임자=[[없음]]
후임자=미정|
직책=Symphony S.O.N.G 상임 지휘자|
* [http://www.kkuaa.or.kr/family/ku_man_view.asp?Bord_Div=301005&Bord_Seq=3332&intPage=2 건국대학교 동문회 홈페이지 자랑스런 건국인]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28회 일치
=== 자켓 ===
챕터 3에서 자켓이 구해 집으로 데려오는 매춘부. 이후 자켓의 집에 머문다.
이후 자켓과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리히터에 의해 사망한다.
매 챕터가 끝날 때 마다 만나는 인물. 마트, 피자집, 비디오 대여점, 술집 같은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있으며 자켓에게 여러가지 공짜 서비스를 해준다. 자켓과 친한 관계로 보인다.
매 파트가 시작할 때 마다 나오는 자들. 소파에 앉아 자켓을 맞이한다.
쥐 가면을 쓴 남자. 자켓의 집에 들어와 매춘부를 쏴죽이고 집에 돌아온 자켓 또한 쏴버린다.
매춘부가 살해당한 후 러시아 마피아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판단한 자켓에 의해 수뇌부가 쓸려나간다.
챕터3의 보스. [[영화 제작자]]로 자택에 쳐들어온 자켓에게 살해당한다.
최종 챕터인 챕터15의 중간 보스. 해외에서는 [[닌자]]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자켓이 표범 두마리를 해치우자 자기가 처리하겠다며 나서지만 자켓에게 살해당한다.
양 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자켓에게 맞서지만 자켓이 던진 단검에 의해 양 손을 못쓰게 된다. 이후 권총으로 자살.
자켓에게 살해당한다.
=== 노숙자 ===
[[튜토리얼]]에서 조작 방법을 알려주는 인물. 프렐류드 마지막 부분에서 자켓에게 달려들었다가 살해당한다.
챕터 19에서 재등장. 가면쓴 사람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던건 이들이었다. 이들은 국수주의자로, 러시아[* 배경이 1989년 이므로 아직 소련일 때.]와 미국의 외교관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러시아 마피아들을 습격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있던 것. 이 사실은 퍼즐을 모으고 맞춰야만 드러나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들은 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 황종률 (정치인) . . . . 28회 일치
|저자=남창룡
[[태평양 전쟁]] 종전으로 만주국이 소멸하자 [[미군정]] 지역으로 들어왔다. [[연희대학교]] 교수를 잠시 지내다가, 다시 경제 관료로 복귀했다. 제3공화국에서 [[대한민국 재무부]]와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71년]]에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비례대표로 제8대 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나, 국회의원 임기 중 사망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해외 부문에 선정되었다.
* 1952년 : 외자구매처장 겸 외자관리청장
== 참고 자료 ==
|전임자 = [[현근]]
|후임자 = [[이순용]]
|직책 = [[대한민국 외자구매처|외자구매처장]]
|전임자 = [[현근]]
|후임자 = [[이순용]]
|직책 = [[대한민국 임시외자관리청|임시외자관리청장]]<ref>외자구매처장과 겸직</ref>
|전임자 = [[정인택 (1907년)|정인택]]
|후임자 = [[조대연]]
|전임자 = [[김세련]]
|후임자 = [[박동규 (정치인)|박동규]]
|전임자 = [[김윤기]]
|후임자 = [[김원태 (정치인)|김원태]]
|전임자 = [[박경원 (1923년)|박경원]]
|후임자 = [[김태동 (1918년)|김태동]]
|전임자 = [[서봉균]]
- 휴먼 토치 . . . . 28회 일치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어서 온도를 거의 초신성([[슈퍼노바]])수준까지 올릴 수 있고, 자신은 화염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다. 불타는 인간 형태로 변하여 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화염인간을 조종할수도 있어서 매애애애애우 초창기에 정체 숨기고 다닐 적엔 불을 조작해서 연기 피운뒤 휴먼토치로 변해서 나간다거나 연기속으로 돌아와 화염 인간을 보내놓고 내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물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하기도...(...) 실제로 한창 날뛰다가 물 한번 맞고 뻗기도 했다.
[[스파이더맨]]과는 초창기부터 티격태격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그만둘까 고민하던 피터가 쟈니 스톰의 영웅에 대한 연설을 듣고 다시 기운 차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자니 스톰도 스파이더맨하곤 스스로가 "친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그래도 가끔씩이 둘이 싸우면 아주 난장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쟈니가 파티장에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질투한 스파이더맨이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협력해서 샌드맨과 싸우기도 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한번은 쟈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여친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 아닌 평상시의 모습)에게 관심이 있자 질투심에 피터를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샌드맨등의 적을 힘을 합쳐 쓰러뜨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 쟈니가 자신이 죽을 경우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의 관계가 된다.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판타스틱 포]] 타이틀이 끝나고 후속작인 FF(퓨처 파운데이션)에선 그의 [[유언]]과 리드 리처즈의 권유에 따라 [[스파이더맨]]이 조니 스톰의 빈 자리를 채워주게 되었다.
네거티브 존에서 몇번이나 죽으며 고생하다가 훗날 크리의 대규모 침공으로 지구가 위험에 빠졌을 때, 어나힐레이션의 부하들을 조종하는 장비를 강탈해 그들의 지배자가 되어 돌아왔다. 돌아오고나서 스파이더맨과 감동의 재회를 하고[* 다만 복장이 왜 그모양이냐고 놀리긴 했다.] 하늘에 [[4]]를 그리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 크리들의 공격에 떡실신되던 멤버들도 그걸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회복되었다.
돌아온 이후에는 마음대로 스파이더맨의 집에 얹혀 살다가 집에 설치된 네거티브 존과 어나일러스 때문에 짜증이 난 피터 파커 때문에 3주만에 짐을 싸고 나가게 된다. 거기에 크리들이 민주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하게 하자 득표율이 엄청 낮기까지(...)
* 캐치 프레이즈는 '''Flame On!''' 몸에 불을 붙히거나 화염을 쓸 때 자주 하는 말이다.
* 오래 전에 국내에서 방영한 TV 애니메이션(1994년판)에서는 알아듣기 쉬우라고 "[[파이어]]"라고 개명당했다. 튀기 좋아하고 가벼운 젊은이 같은 성격 때문에 진중한 성격인 [[씽(마블 코믹스)|씽]]과 티격거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 옛날에 나온 애니메이션 판에선 혼자 짤리고 허비(H.E.R.B.I.E)라는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먼 토치를 보고 아이들이 자기 몸에 불을 붙힐까봐-라고 짐작했고 80년대의 판타스틱 포 만화에선 이를 의식한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은 마블이 [[헐크]]처럼 실사화를 위해 휴먼 토치를 판권을 다른 회사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판권은 넘겼지만 당시 기술론 휴먼 토치를 재현해낼수가 없어서 결국 실사화는 안되었다.
- Drunken Sailor . . . . 27회 일치
Early in the morning! || 배를 녹슨 칼로 면도해주자
배를 녹슨 칼로 면도해주자
배를 녹슨 칼로 면도해주자
Early in the morning! || 술이 깰때까지 보트에 놔두자
술이 깰때까지 보트에 놔두자
술이 깰때까지 보트에 놔두자
Early in the morning! || 통에 넣고 호스로 찔러보자
통에 넣고 호스로 찔러보자
통에 넣고 호스로 찔러보자
Early in the morning! || 선장 딸내미랑 같은 침대에 눕히자
선장 딸내미랑 같은 침대에 눕히자
선장 딸내미랑 같은 침대에 눕히자
Early in the morning! || 자루에 넣어서 던져버리자
자루에 넣어서 던져버리자
자루에 넣어서 던져버리자
Early in the morning! || 굶주린 쥐들에게 먹이로 주자
굶주린 쥐들에게 먹이로 주자
굶주린 쥐들에게 먹이로 주자
Early in the morning! || 장전된 권총으로 심장을 쏴버리자
장전된 권총으로 심장을 쏴버리자
- Victoria II/정당 . . . . 27회 일치
실제 역사상 해당 사상을 가진-혹은 그렇게 개발자들이 생각한-정치 세력이 있었다면 정당으로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클론 정당으로 튀어나온다.
* 자유주의자(Liberal)
상징색은 노랑색. 정치적 개혁은 항상 지지하지만 POP의 투쟁성이 높을 경우에만 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무정부 자유주의자와 연대한다. 게임 내에서는 [[흥선 대원군]] 정권이 이 성향으로 등장한다.
* 무정부 자유주의자(Anarcho Liberal)
상징색은 짙은 노랑색. 초반부부터 등장한다. 개혁을 항상 반대하며 폐지하려 하는 이들. 허구한날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자유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 사회주의자(Socialist)
상징색은 빨강색. 중반부부터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상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POP의 투쟁성이 높지 않은 이상 반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공산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 공산주의자(Communist)
상징색은 짙은 빨강색. 사회주의자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상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반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사회주의자와 연대한다.
국가간 거래를 통제하자고 주장한다. 관세를 평균치의 200% 수준으로 뜯어낼 수 있지만 평균치의 75% 수준까지 밖에 끌어내릴 수 없다.
* 자유무역(Free Trade)
상인들의 거래에 간섭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관세를 폐지할 수 있지만 평균치의 125% 수준까지 밖에 끌어올릴 수 없다.
플레이어와 자본가 POP의 공장, 철로의 관리 가능 여부와 세금 한도, 공장 효율 등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못 알아먹겠으니 관리 가능 여부만 쓸거임 ^오^.
* 자유방임주의(Laissez Faire)
정부의 통제 없는 자유시장 지지. 플레이어는 산업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는 자유시장이지만 필요하다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체제를 지지한다. 플레이어는 공장을 건설하거나 철거할 수 없다.
*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지만 한정된 분야의 민간 사업은 허용하려한다. 자본가 POP는 공장 건설, 폐쇄된 공장 재개장 외에는 아무런 투자도 할 수 없다.
정부가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해 모든 결정권을 가지길 원한다. 자본가 POP는 국내 산업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평화주의자(Pacifist)
- 고성국 . . . . 27회 일치
[[프레시안]]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홍성여]]의 둘째 사위이기도 하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8/005000000200408081534361.html</ref>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상자가 되어 풀려났다.
이후에는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4년]]에는 서울경찰청의 민간인 사찰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1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10-11&officeId=00028&pageNo=1&printNo=2034&publishType=00010</ref> 같은 해 5월에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던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에서 《[[월간조선]]》과 논쟁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2600289114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26&officeId=00028&pageNo=14&printNo=1907&publishType=00010</ref> 1995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2-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153&publishType=00010</ref>
199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6년부터는 [[추적 60분]] 진행자로 활동하였다.
1998년 10월 서울지검 공안1부는 고성국이 [[총풍 사건]]의 관련자인 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 윤만석 전 [[이명박]] 의원 보좌관, 조청래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과 제[[15대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당선을 위한 '비선 참모 조직'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5</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0270020911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0-27&officeId=00020&pageNo=12&printNo=24023&publishType=00010</ref>
1998년 검찰 수사발표에 대해 고성국은 2012년 5월 "(이회창 측의) 비선 참모조직원이 아니었다. 후배들이 이회창 팀에도 갔고 김대중 팀에도 갔는데 일하다 나한테 가끔 물으러 왔다"고 말했다. 고성국은 이어 "당시 언론에서 나를 총풍 사건의 책임자라고 방송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과 관련해 검찰수사를 받은 적이 없고 사건은 무혐의 판결났다"고 밝혔다.<ref name="mediatoday.co.kr"/>
2007년 5월 3일 [[프레시안]]에 기고를 시작하면서 정치평론을 재개했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70502082715&Section=01</ref> 같은 해 말에는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을 펴냈고, 2008년 [[1월 8일]]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쇄신 초선의원모임에 참가해 발제문을 발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928328</ref> 같은 해 [[5월 12일]]부터는 [[기독교방송|CBS]] 《시사자키》 앵커로 두번째 발탁돼, 이듬해 2월 26일까지 진행했다.<ref>http://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tcon&sval=%B0%ED%BC%BA%B1%B9&anum=1458&vnum=397&bgrp=4&page=8&bcd=007C055E&pgm=1383&mcd=BOARD2</ref>
2008년 이후에는 [[프레시안]] 등 언론 매체 기고 활동, [[CBS]] 시사자키 등 방송 출연을 계속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2년 정도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도 출연했다.
2011년 들어 고성국은 친[[박근혜]] 정치평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디어오늘은 고성국의 친박 성향과 그의 동생이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기획사를 운영했다는 점을 연결지었다. 고성국은 자신의 동생이 설립한 정치기획사에 대해 "동생과 다른 사람이 합쳐 만든 회사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ref name="mediatoday.co.kr"/>
자신에 대한 정치 편향 의혹에 대해 고성국은 2012년 10월 23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평론을 구체적으로 하다보니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면 박근혜에게 편향됐다는 오해와 억측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지만 두루뭉술한 평론은 내 철학과 맞지 않다"라고 해명했다.<ref>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3&art_id=201210161146121</ref>
2012년 12월 8일 [[한겨레]]는 토요판을 통해 정치평론가 5명의 대선정국 시나리오 분석을 보도했다. 이 분석에서 고성국은 2012년 대선 투표율이 65~67%일 것이며, 박근혜가 150만~200만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 전망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4337.html</ref> 다른 4명의 평론가([[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김종배]] 평론가, [[김형준]] 명지대 교수,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들은 [[문재인]] 당선을 예측하거나 구체적인 당선자 예측을 하지 않았다.
2013년부터는 여러 방송에 다수 출연해 뉴스해설, 정치평론 등을 맡았다. 이후엔 영역을 넓혔다. tvn 오마이갓의 경우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고, tvn 빨간의자는 시사 보다는 일반적인 토크쇼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친박근혜에 가깝다는 논란 때문에 KBS '글로벌 대한민국', '시사 진단'의 진행자로 섭외되었다가 자진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8|제목=KBS, '친박평론' 고성국 MC 기용 철회 - 미디어스|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2017년 들어서는 출연하던 대부분의 방송을 그만두게 된다. 특히 고성국 라이브쇼는 [[방통심의위]]의 지적을 받고 TV조선에서 자체 폐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5916|제목=방통심의위에서 ‘변화’ 약속한 TV조선, 얼마나 변할까|성=미디어오늘|날짜=2017-03-29|뉴스=미디어오늘|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2018년에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였다. 2018년 3월 1일 고성국은 '고성국TV'를 개국하고 정치분석 방송을 연일 내보내고 있다. 고성국TV 개국 시 [[정우택 (1953년)]], [[나경원]] 등 [[자유한국당]] 계열 정치인들이 축사를 보냈다.
* [[1991년]]: [[기독교방송|CBS]] [[시사자키|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진행<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11700289116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11-17&officeId=00028&pageNo=16&printNo=1084&publishType=00010</ref>
* [[2008년]] 5월 12일 ~ [[2009년]] 2월 26일 : CBS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 진행
* [[2010년]] ~ [[2012년]] : [[기독교방송|CBS]] [[시사자키|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고성국의 판읽기)
* [[2013년]] ~ [[2017년]] : TVN 빨간의자
* 《대통령이 못된 남자》, 정은문고, 2012 {{ISBN|9788996575870}}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김승관 . . . . 27회 일치
||<-2><#002955> {{{#FFFFFF 롯데 자이언츠 No.95}}} ||
|| '''포지션''' || 1루수[* 매우 적은 경기지만 포지션이 없어서 2루나 3루, 외야, 지명타자 등의 포지션에서 뛴 적이 있다.]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5~2004) [br] 롯데 자이언츠 (2004~2007) ||
|| '''지도자'''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br]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5~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 ) ||
|| [[김광현(1971)|김광현]](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br]김무성·이동욱([[롯데 자이언츠 2군]]) || → || [[조효상]] [br] 이상현([[한화 이글스 2군]]) ||
|| 곽용섭(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롯데 자이언츠 2군) || → || 권희석([[KIA 타이거즈 2군]]) ||
|| 권희석([[KIA 타이거즈 2군]]) || → || '''김승관'''(롯데 자이언츠 2군) || → || [[모상기]](삼성 라이온즈 2군) ||
'''[[KBO 퓨처스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2군 본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선수'''
前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내야수.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대구상고 시절에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상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삼성 라이온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본즈|2군 홈런왕]]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해 온 팀이자 고향 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2004년 7월 12일 투수 [[노장진]]과 함께 외야수 [[김대익]], 투수 [[박석진]]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16일에는 친정 팀 삼성을 상대로 [[투수]] [[임동규(야구)|임동규]]에게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롯데의 스코어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고, 오른손 강타자로 새롭게 떠오른 [[이대호]] 등에게 밀려 [[2007년]] [[10월]]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 지도자 경력 ==
2015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의 드림팀(3군) 타격코치로 합류했다.
이후 롯데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맡다가, 2017년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인해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반기에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대익]]이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바뀌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시즌 막판에는 [[이승엽]]의 사직구장 은퇴 투어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타자 친화적 구장인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고 극타고투저 시대에서 지독한 스몰볼을 추구하고 레벨스윙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팀들은 발사각도 연구까지 하면서 타고투저 시즌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롯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롯데의 대표적인 느린 발을 가진 최준석, 강민호가 전력에서 이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살타가 리그 2위이다.
|| 2004 || [[삼성 라이온즈|삼성]] / [[롯데 자이언츠|롯데]] || 59 || 126 || .222 || 28 || 4 || 0 || 2 || 14 || 13 || 0 ||
|| 2005 ||<|3> [[롯데 자이언츠]] || 14 || 14 || .143 || 2 || 0 || 0 || 0 || 0 || 1 || 0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북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76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27회 일치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당시 [[KTF 매직엔스]]),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박성준 (1986년)|박성준]](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송병구]](당시 [[삼성전자 칸]]), [[오영종]](당시 [[화승 OZ|Plus]]와 공동 기록 보유)
[[2007년]] 여름,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에서 [[변형태]](당시 [[CJ 엔투스]])에게 두 경기를 먼저 내주고도 나머지 세 경기를 연달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스타리그]]에서 처음 우승한 선수의 본선 진출 횟수는 4회 미만"이라는 징크스를 깬 기록이자(5회 진출만에 우승), 스타리그 결승전 최초의 리버스 스윕이다.
[[2008년]] [[10월 29일]], 친정팀이었던 웅진 스타즈로 다시 이적하였다. 그 이후 프로리그에서 자주 승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9년부터 다시 조금씩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손목 부상까지 생기며 거의 출전 기회를 상실하다시피 했다.
김준영은 데뷔 직후 온게임넷의 2004년 1차 챌린지 리그를 통해 최초로 개인리그에 등장했고, [[김환중]](당시 [[G.O 팀|G.O]], 은퇴)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세 차례의 챌린지 리그 도전 끝에 2005년 CYON [[듀얼토너먼트]]에 진출했고, 2승을 거두면서 [[EVER 스타리그 2005]]에 진출하며 최초로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김준영의 스타리그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선 [[박용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과 [[전상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위메이드 폭스]])을 꺾고 2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3자 재경기에서 전패하며 16강 탈락했다. 다음 대회인 [[So1 스타리그 2005|So1 스타리그]]에서는 당대 최강의 테란 [[최연성]](당시 [[SK 텔레콤 T1]], 현 SK 텔레콤 T1 코치)을 이겼지만 [[홍진호]](당시 [[KTF 매직엔스]],은퇴)와 [[오영종]](당시 [[화승 OZ|Plus]], 현 [[화승 오즈]])에게 패배하며 역시 16강 탈락했다.
홍진호와 펼친 최고의 저그 대 저그 경기로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이후 3시즌에 걸쳐 사용된 반섬맵 '815' 시리즈의 데뷔 경기였던 홍진호와 김준영의 대결은 장장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종래의 뮤탈리스크 저글링 위주의 단조로운 저그전 양상을 탈피한 다양한 유닛들의 각축으로 이루어졌다. 디바우러, 디파일러, 퀸, 심지어는 히드라리스크와 스탑 럴커까지 동원되는 혈투가 벌어졌고, 김준영은 초반 유리한 전개를 만들었으나 홍진호의 뒷심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역대 최장시간 저그 대 저그 경기이자, 역대 최고의 저그 대 저그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으며, 비록 김준영은 이 경기에서 지긴 했으나, 이 경기로 인해 아직 신예급이었던 김준영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두 시즌의 공백기 이후 김준영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로 개인리그에 복귀한다. 김준영은 [[차재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CJ 엔투스]] 코치), [[박태민]](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 [[변형태]](당시 [[CJ 엔투스]], 현 [[공군 ACE]])와 24강 F조에 편성되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1년여만에 만난 오영종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그 다음 대회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김준영은 재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힘겹게 16강에 진출했지만, [[이성은]](당시 [[삼성전자 칸]], 현 [[공군 ACE]])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16강을 넘지 못하는 김준영에게 게임팬들은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15일 변형태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일전은 많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온갖 화제를 낳았다. 이 경기에서 김준영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확보한 변형태를 상대로 전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막대한 자원 수급량을 확보했고(총 8개의 멀티 보유), 처음 택한 공격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저글링 드랍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배포를 보였다. 이후 공중유닛에 매우 강한 발키리, 골리앗 조합으로 진군하는 테란 병력을 소위 새떼라 불리는 뮤탈리스크 대부대로 무난히 격파하고, 전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상대의 본진을 싹쓸이하면서 최고의 관광 경기를 연출했다. 이 경기가 펼쳐진 16분 동안 김준영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채취했을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뽐내며 당시 최고조에 다다랐던 테란전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대인배스러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기였다. 또한 훗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의 호적수, 이후에는 팀동료로 계속 이어진 변형태와의 인연이 시작된 경기이기도 했다.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영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영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영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영수]](당시 [[STX SouL]], 영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영호 (1992년)|이영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상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진영수와 이영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상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영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김준영은 우승자 징크스에 시달리며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1승 2패로 16강 탈락하였고, 두 시즌의 공백과 이적 이후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도 3패로 16강 탈락하였다. 그러나 다음 대회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는 2승 1패로 16강 그룹을 통과했으며, 8강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2:1로 승리하는 당시로서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4강에 올랐다. 4강에선 신예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SK 텔레콤 T1]])의 메카닉 전략에 무너지며 1:3으로 분패했고, 같이 결승 진출이 좌절된 [[도재욱]]([[SK 텔레콤 T1]])보다 대회 승률(인크루트 스타리그 16강부터 4강까지의 승률)이 낮아 4번시드를 획득하였다.
시드보유자로 참여한 [[바투 스타리그]]에서는 1승 2패로 16강 탈락, 차기 대회 36강 시드를 부여받았으며, 다음 대회인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36강 2차전에서 과거 팀동료였던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당시 [[CJ 엔투스]], 현 [[SK 텔레콤 T1]])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스타리그 참여가 되었고 이후 김준영은 은퇴를 선언하며 차기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상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MBC게임]]에서의 방송경기 중 컴퓨터 기술팀이 자신의 PC를 손보는 동안 김준영은 경기석 뒷편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는데, 이 모습이 찍힌 사진을 계기로 그에겐 '차렷저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이 사진은 각 커뮤니티의 [[짤방]]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 김준영은 [[체리필터]]의 〈느껴봐〉 뮤직비디오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적이 있다. 평소 김준영의 열혈팬이었던 그룹 멤버의 추천으로 출연이 이뤄지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체리필터 연윤근, 프로게이머 김준영과 한판 승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85873|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쪽=|날짜=2007-10-02|확인날짜=}}</ref>.
자원으로 울트라리스크 다수를 뽑아내 상대를 제압하는, 일명 수비형 저그,운영형 저그를 김준영은 구현했다.
온게임넷 대회인 스타리그에서는 10회나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고 우승도 한 번 기록하기도 한 김준영이었지만 유독 MBC게임의 MSL에서는 인연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순수 스타리그 우승자 선수들 중에서는 [[한동욱]]과 함께 MSL 진출 기록이 전무하다. (서바이버 리그 및 서바이버 토너먼트 진출 기록이 최고 기록)
|내용='''[[스타리그]] 우승자'''<br />'''[[2007 다음 스타리그|Daum 스타리그 2007]]'''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웅진 스타즈의 선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27회 일치
* 그러나 자신을 감싸다 이이다까지 탈락되는걸 바라지 않았던 아오야마는 허공에 네빌 레이저를 발사, 적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모은다.
*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흩어져 있던 A반 생존자들을 집결시켰고, 네빌 레이저를 보고 온 적들에게서 포인트를 따내 웅영고 전원이 합격하게 된다.
* 이대로 적들이 힘을 소모하는 동안 잠복해 있다가 지키고 방심하게 되면 포인트를 벌어서 통과하자는 책략이다.
* 통과자 대기실로 향하는 바쿠고 카즈키 일행. 카미나리 덴키는 비슷한 시기에 통과한 미도리야 이즈쿠 일행을 발견한다.
* 바쿠고 카즈키는 미도리야에게 불쑥 말을 거는데, 미도리야는 대사건 이후 자신을 피했던 바쿠고가 말을 걸었다고 놀란다.
* 그러면서 "빌린 것"은 자기 것이 되었냐고 묻는데.
* 현재 A반은 11명이 통과하고 9명이 남은 상황. 남은 자리는 18개 뿐이다.
* 아오야마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유탄이 날아오자 이이다가 끌어당겨 구해준다.
* 아오야마는 방금 전까지 혼자 고립되어 있었는데 이이다가 와서 구해주었다.
* 이이다는 자신의 통과보다는 A반 학생 중 낙오하거나 위기에 처한 사람이 없나 살펴보고 다니고 있다.
* 그는 반장으로서 시간과 다리가 허락되는 한 반에 공헌하고 싶다며 자신의 형도 그랬을 거라 말한다. 그의 행위는 바로 그 꿈의 형태이기도 한 것.
* 옆에 있던 이레이저 해드, 아이자와 쇼타는 속으로 남은 통과자 수를 셈하고 있다.
* 대기실의 A반 학생들도 이젠 9자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전원은 무리였나 하고 낙심한다.
* 무슨 짓이냐고 묻는 이이다에게, 계속 자신을 감싸면 이이다까지 탈락할 거라고 답한다.
* 이이다 혼자라면 아오야마를 잡으러 오는 적들에게서 포인트를 빼앗을 "속도"가 있다.
* 이이다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하는데, 아오야마는 갑작스럽게 들리겠지만 자신은 예전부터 "대등해지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 아오야마에게 달려드는 공격자들.
* 신기술로 공격자들을 일소하는 토코야미.
* 이이다와 아오야마까지 무사히 포인트를 획득, 통과자 명단에 오른다.
* 대기실에 모인 A반. 전원 통과를 자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27회 일치
* [[오버홀]]과 히어로들의 난전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쿠로노 하리]]에게 포획됐다. 시에핫사이카이는 에리를 연구하는 동안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지우는 아이자와의 개성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쿠로노는 혼란한 틈에 아이자와를 자신의 개성으로 포획, VIP룸으로 격리시켰다.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상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상태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 [[네모토 신]]을 먹고 파워업한 오버홀은 원 포 올 풀카울 20%로도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 [[미도리야 이즈쿠]]는 파편이 되어 오버홀이 접촉되지 않은 지면을 벽으로 삼아서 돌진한다. 그래도 오버홀은 자기 근처의 지면을 촉수처럼 뻗어서 공격을 가하는데 매우 빠르고 정교해서 피하기 쉽지 않다. 오버홀이 죽어도 공격을 머뭋지도, 에리를 포기하지도 않을 인물이라고 직감한 미도리야는 단기결전으로 치명상을 주는 걸 노린다. 미도리야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천장을 박차고 떨어지며 정수리를 노려서 공격을 가하나 오버홀은 몸을 비틀어 피해서 오른팔을 다치는데 그쳤다. 오버홀은 지금 미도리야가 빠르고 강하긴 해도 루밀리온 [[토오가타 밀리오]]나 [[서 나이트아이]]에 비하면 너무 움직임이 단순해 오히려 쉬운 상대라 평하며 반격을 가한다.
오버홀의 반격도 미도리야에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오른팔과 왼발을 당한 미도리야. 그렇지만 오버홀은 자신도 꽤 타격을 입은 데다 미도리야가 밀리오처럼 죽을 힘을 다해 버텼기 때문에 더는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그는 어딘가에 있을 에리를 향해서 "너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 에리는 이미 길고 긴 "실험"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면 부숴지고 수복되길 반복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 에리의 마음엔 일말의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 상황 속에서 완전히 절망했다. 결국 에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버홀 앞에 나타난다.
오버홀은 에리를 더욱 압박해 결국 돌아가겠다고 말하게 만든다. 에리가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만들어달라고 매달리자 오버홀은 다시 미도리야를 압박한다. 에리는 자기 때문에 남이 상처받기 보단 자신이 아픈 쪽이 편하다는걸 알고 있고 루밀리온이 분투했을 때 품은 작은 희망이 미도리야와 나이트아이의 등장으로 무너졌다며, 정말 잔혹한 짓을 하는건 히어로들이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에리는 미도리야의 도움을 바라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 의식이 남아있던 나이트아이는 정말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본 예지에는 자신과 미도리야가 죽고 오버홀이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원 포 올은 밀리오에게 줘야했다"고 말한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를 멈추진 못했다. 미도리야는 설령 "쓸데없는 참견"일 지라도 누구도 죽게하지 않고 에리를 구하겠다고 선언하며 다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슈와 싸우던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 팀이 적과 함께 천장을 부수며 도착한다.
에리의 회상을 통해서 단순히 에리가 한계에 달할 때도 분해오 수복을 거듭해왔음이 밝혀졌다. 원 포 올 20%의 미도리야를 상대로 여전히 우위를 점하나 생각보다 타격을 받고 밀리오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와 싸우는데 질력이 나서 에리를 협박하는 걸로 전략을 바꾼다. 오랜 시간의 세뇌와 학대로 간단하게 성공. 에리가 "돌아갈 테니 모두를 되돌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든다. 자신만만하게 미도리야에게 "에리는 너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언하나 미도리야는 굴하지 않았고 그때마침 류큐 팀이 현장에 착한다.
쿠로노의 말로는 오버홀의 딸이 아니라 "두목"의 딸. 토오가타 밀리오를 따라 도피하고 있었으나 오버홀이 "너 때문에 또 누군가가 죽는다"고 협박하자 발길을 돌린다. 이때 회상으로 체력이 다할 때마다 오버홀이 분해와 수복을 거듭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에리는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복구해달라고 애원한다.
지난 회에 당한 채로 널부러져 있으나 의식을 잃진 않았다. 오버홀에게 자신과 미도리야가 당하고 그가 도주하는 미래를 예지했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미도리야가 꺾이지 않는 걸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
에리를 데리고 피신 중이었지만 몸은 걸레짝이 된 데다 긴장도 풀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회에 스승 나이트아이가 당하는 걸 본 뒤로 멘탈이 나가버린다. 꼼짝도 못하게 되자 에리만이라도 어딘가에 숨어있으라고 설득하지만 에리는 오버홀의 협박을 듣고 탈출의지를 접는다. 에리를 말려보려고 한 것같지만 그럴만한 힘조차 남지 않은 것 같다.
* 아이자와 쇼타
마침내 얼굴이 드러났다.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카락을 시계바늘 모양으로 늘려서 공격하는 묘한 개성이다. 당한 상대는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진다고 하는데 이름으로 보면 몸에 조작을 가하는게 아니라 대상의 시간을 조작하는 걸지도 모른다. 지속시간은 약 1시간. 공격하는 순간에 자기 자신은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패널티가 있다.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경계한 건지 엎드리게 해놓고 그 위에 올라타서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이자와를 VIP룸에 포획해둔건 좋은데 입이 가벼운 건지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다. 아이자와의 개성이 전부터 연구대상이었다거나 쓸모가 있어서 살려뒀다거나 하는 둥 쓸데없이 나불거린다.
- 마기/329화 . . . . 27회 일치
* 신드바드는 성궁에서 만났던 우고는 미쳤고 그는 강대한 힘을 가졌으나 욕구가 없기 때문에 자기 역할에 묶여 있었다고 말한다.
* 하지만 자신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걸 뛰어넘을 수 있고 신 조차 능가하겠다고 선언한다.
* 그는 단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세계의 루프를 완전히 새롭게 쓸 것이며, 그건 현재 인류의 종말을 의미한다.
* 자신은 인간이며 인간이기에 누구보다 탐욕스런 "인간왕" 그것이 바로 자신 "신드바드"라 말한다.
신드바드가 자신의 루프만 그냥 뒀을리 없으니, 지금 자신의 생각은 신드바드가 주입한 사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알라딘도 그 가능성은 잊고 있었는디 아차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성궁을 장악한 신드바드 조차도 알리바바의 루프만은 손을 댈 수 없었다. 인간이던 시절 그토록 알리바바를 "평범한 인간"이라 여겼던 신드바드는 신이 되고 나서야 "너는 신비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알리바바는 자신이 한 번 죽어서 틀에서 벗어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뭐든 맘대로 할 수 있고, 자신과 장사승부도 할 수 없는 신같은건 지루하지 않냐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솔직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지만 그의 웃음띤 얼굴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성궁에서 본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엔 여러 개의 세상과 제각각의 신이 있다. 우고는 그 순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손에 넣으며 그걸 사용하면 알라딘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간단하다. 그런 그가 일 일라의 힘을 빼앗고 배제하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의 손"으로 일 일라와 알 사멘을 없애고자 했다. 그건 바로 그 자신이 "욕망"이 없기 때문. 그런 존재는 단지 주어진 역할에 묶여 있을 뿐, 단지 남이 부여한 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 "신드바드"는 다르다.
*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사이, 신드바드의 손에 들려있던 한 자루의 펜이 기괴하게 변한다. 펜은 소용돌이치더니 우고의 수족관에 들어있던 일 일라의 그가 창조한 세상으로 바뀌고 다시 신드바드의 손아귀에서 깨어져 한 자루의 돌아간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그 모습에서 신드바드가 손에 넣은 힘을 실감한다.
알라딘은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의 이해한 의미를 말한다. 부정해주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신드바드는 여전히 태연할 뿐, 그걸 넘어 상쾌한 표정이다.
* 그는 잘못됐다. 알라딘이 그렇게 소리친다. 신드바드는 일순간 평정을 잃는다. 그 광기를 숨기지 않는지, 그러지 못하는지 어둡게 변한 표정으로 자신은 잘못되지 않았고 오히려 알라딘에게 눈을 뜨라고 다그친다. 신이 무수히 있다면 정의도 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책상을 내려친다. 그런데 그 팔이 인형의 팔처럼 떨어진다. 표정에 웃음이 돌아온다. 무엇이 재미있는 걸까? 그는 웃으며 바닥에서 팔을 되돌린다. "아직 이 모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 알라딘은 그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부정한다. 자신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꿈을 좇는다. 그 어떤 차원의 신보다 욕망스러운, 인간 "왕".
그는 우고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광기에 휘말리고 있는 듯 하며 우고와 마찬가지로 그를 중심으로 사물이 일그러지는 묘사가 있다. 현실 상으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 성궁에서 루프를 다시 쓰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한 번 죽어서 루프에 환원되기도 했다. 모두 정신적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우고 조차 정신줄을 놓게 만든 강대한 힘이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 변화의 여파인지 자기 자신을 "신드바드"라고 3인칭화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알리바바만은 루프에 손댈 수 없었던 걸로 나오는데, 이는 신드바드 이상의 특이점이란 의미가 된다. 아무리 신드바드라도 진들의 도움을 받아서야 루프에서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신드바드도 그 자신은 루프 안에선 평범한 인간이란 이야기. 그런데 알리바바가 그 루프에서 벗어나있고 성궁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건 유례가 없는 특이점이란 소리나 다름없다. 신드바드도 그저 신비하다고 생각하고 말고 알리바바는 자신이 한 번 죽어서 그런거 같다고 대충 넘어가는데, 중요한 복선이 될 수 있다.
알리바바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알라딘과 신드바드를 화해시키려고 나름대로 설득했으나 신드바드가 너무 글러먹어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알리바바가 신에게 "신이 돼버린 거냐"고 하는 장면에선 알리바바가 부모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어정쩡한 관계 밖에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신드바드는 친구이자 아버지인 존재이며 그 점은 상단을 꾸릴 당시 "신드바드씨는 나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 한 데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에서 알리바바가 한 말은 설득하기 위해서 짜낸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의 속내를 드러낸 걸로 보이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신드바드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27회 일치
* 자신이 "잭스 류그너"라 주장하는 괴한은 [[마법제]] 율리우스에게 불경한 태도를 보여서 대회장에 있는 전원의 공분을 산다.
* 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은 어떻게든 자군의 크리스탈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나 잭스는 자신의 마법도 밝히지 않을 뿐더러 드러누워서 잠이나 잔다.
* 자신이 자줏빛 범고래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라 주장하는 사내. 하지만 진짜 잭스는 그에게 당해 어느 골목에 버려져 있다. 사내는 뻔뻔하게 잭스를 사칭한데다 뒤늦게 대회장에 도착해 [[마법제]] 율리우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모욕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는 늦은 것에 대해서도 "곤란해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마법기사단답게 도와줬다"는 뻔한 거짓말로 둘러대는데 마법제는 그런 태도나 거짓말에도 특별히 개의치 않는다. 물론 그게 측근 마르크스가 넘어가준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잭스라는 사내를 무례하다 꾸짖으며 머리를 향해 마법을 날린다. 근거리에서 날린 마법이나 잭스는 훌쩍 뛰어넘어 피해 대회장으로 내려선다.
* 그렇게 있는대로 어그로를 끌더니, 이번엔 아스타에게 한 팀인 모양이니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청한다. 어리숙한 아스타는 방금 전 그따위로 나오는 걸 보고도 일단은 그 악수를 받는데, 아니나 다를까 악수를 가장해 클로버 왕국에서 최악의 악취를 자랑하는 "무지개 노린재"를 쥐어준다. 함정. 이 곤충은 일곱 빛깔의 가스를 내뿜는 정말로 극악한 마법생물. 아스타가 뒤늦게 그의 본색을 깨닫지만 잭스는 "얼빵한 얼굴에 텐션만 높고 무식한걸 까발리고 다니는 시끄러운 꼬맹이"라고 더욱더 독설에 박차를 가한다. 말주변 없는 아스타가 받아친답시고 "입 주위에 뭔가 멋있는걸 두른 녀석"이라고 해보지만 칭찬도 욕도 아닌 애매한 무언가다.
* 자줏빛 범고래의 부단장은 인격자로 평판이 좋은 인물. 사람들은 그 소문과 다른 실물을 마주하자 정말로 그가 잭스가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래도 잭스는 국경지대에 틀어박혀서 왕도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인물. 당연히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마법제는 진상을 간파한 것 같지만 무슨 생각인지 입을 다문다.
이어서 발표된 팀 별로 인원이 나눠진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가 P팀으로 묶였다. 헌데 피차 첫인상이 좋지 않은 입장이다. 유노는 노엘을 "아스타를 따라다니는 촐랑대는 여자"로 생각하고, 노엘은 유노를 "아스타의 소꿉친구라는 점잔떠는 인간" 정도로 치부한다. 이외에 "엔 린가드"라는 인물이 한 팀.
C팀은 [[매그너 스윙]]과 솔 마론이 배정. 네르슈 버밀리온이란 인물도 함께다. 성으로 보아선 홍련의 사자단 소속인 듯 한데. 그런데 네르슈가 얼굴을 비출 기회도 없이 매그너와 마론 간의 신경전부터 시작된다. 마론이 매그너를 "쬐끄만 양키"라 디스하자 매그너는 "네 쪽이 너무 큰거나 시커먼스"라고 응수. 이쪽은 경기 시작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사생결단 낼 판.
E팀은 밑도 끝도 없는 느낌의 해괴한 조합. 우선 [[레오폴드 버밀리온]]과 [[하몬 카세우스]]의 조합. 둘 다 대책없이 웃어대기만 하는 놈들. [[핀랄 룰러케이트]]도 끼어 있는데 이게 과연 괜찮은 조합인 건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다.
* 팀원간 통성명이 대충 끝나자 코브란 공간마법사가 일행을 진짜 경기장으로 안내한다. 그는 핀랄과 비슷한 타입의 공간마법을 사용하는데 거대한 문을 생성해 목적지로 인도하는 형식이다.
* 마침내 도착한 결전의 무대. 다양한 형태의 지형이 뒤섞여 있다.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택할 수도, 역으로 상대가 불리한 지형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곧이어 추첨으로 결정된 대진표도 공개. 아스타 팀이 1회전 제 1경기. 유노팀은 대진표의 맨 끝에 있어서 둘이 대결하려면 모두 결승까지 갈 수밖에 없다. 아스타는 꼭 둘의 대결을 성사시킬 거라고, 나아가서 우승하겠다고 다짐한다.
노엘은 1회전부터 껄끄러운 오빠 솔리드 노엘의 팀과 붙게 됐다. 긴장하는 노엘과 대조적으로 솔리드는 "직접 끝장내주겠다"고 즐거워한다. 핀랄도 대진운이 묘해서 1회전만 넘기면 자신의 아우이자 차기당주, [[랜길스 룰러케이트]]와 맞붙게 된다.
* 아스타의 B팀과 A팀의 대결. A팀은 오만불손하고 마법제를 모욕했던 잭스에게 이를 갈고 있다. 그 분노로 일치단결한 A팀과 달리 B팀은 시작부터 개판. 우선 아스타가 텐션을 높이고 있으려나 어김없이 잭스가 빈정거리며 실제 승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부터 찾으라고 정론으로 공격한다. 팩트폭력에 부들거리는 아스타. 미모사는 콩깍지 모드라 부들거리는 꼬락서니에도 헤롱거린다. 그래도 일단 이 중에선 제일 자기 할 일을 찾아한다. 그녀는 곧 자군의 전력을 파악하자며 각자의 능력을 확인한다. 미모사는 회복, 서포트, 원호 등이 가능한 식물마법사. 아스타는 반마법을 사용하는 근거리 검사다. 잭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그녀가 잭스에게 어떤 마법을 사용하냐고 묻는데 공교롭게도 그 대답을 들을 기회를 놓친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적의 공격이 자군의 크리스탈에 명중한다. 그러나 적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스타가 당황하는 동안 미모사는 크리스탈의 보호가 최우선이라 판단, 일단 식물마법으로 크리스탈을 피신시키려 한다. 그때의 빈틈도 놓치지 않는 적의 공격. 역시 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적은 초장거리에서 정밀한 저격을 가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 아스타는 이러다 뭘해보기도 전에 끝장나겠다며 셋이 힘을 합쳐 상황을 돌파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 세 명 중 하나인 잭스가 문제다. 아직 마법이 뭔지도 밝히지 않은 그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코를 골고 있다. 표정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지는 아스타. 좀처럼 열받는 일이 없는 미모사 조차 깊은 빡침을 느낀다.
- 서신애 . . . . 27회 일치
나이를 다른 아역 배우들보다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지만, [[여왕의 교실]]에 같이 출연한 '''[[김새론]]보다 2세 위의 언니다.'''[* 드라마 상에서는 동갑이지만 촬영장에서는 아역 배우 중 이영유(7월 10일생)와 더불어 최연장자라고 한다.] [[2017년]] 2월[* 녹화 시점]에 출연한 [[인생술집]]에 같이 나온 동갑내기 [[성소]]를 보면 덩치부터 시작해서 느낌이 확 달라진다. 단지 [[동안]]이라서 나이가 많이 어린 역할을 주로 하다 보니, 다른 아역들보다 더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싶다.
만약에 그녀가 우승했다면 최연소 1인 우승 기록(최연소는 3대 우승자 김준겸 - 당시 28세→방영 기준 '''만 18세 145일''')과 최단 1인 우승 공백기 2가지 기록을 깰 수 있었다.(그 이전은 12~13대 우승자 사이-8회→만약 우승했다면 '''6회''')
[[문화방송|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5월 29일 방영분에서 [[복면자객]]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1라운드 상대인 [[외줄타기 인생 왕의 남자]]와 같이 어쿠스틱 콜라보의 '그대와 나 설레임'을 불렀다. 그 뒤 [[여전사 캣츠걸|가왕 출신]]의 뮤지컬 곡인 <살다보면>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그녀는 이 출연으로 복면가왕에서 가장 짧은 가명의 참가자 6인 중 1인(4글자), 당시로는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17세 222일)을 보유했으며 그 뒤 전체 최연소는 73차 경연에 나온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퀸]]이다.[* 81차 경연 기준으로 최고령 참가자는 [[얼굴되지 노래되지 꽃돼지]]며, 여성 최고령 참가자는 [[문어...지지 않아요... 점쟁이 문어]]다.]
|| [[tvN]] || [[감자별 2013QR3]] || 서신애 || 특별출연 ||
|| [[2009년]] || [[KBS1]] || 청춘예찬 || 이순자 || ||
|| [[2016년]] [[5월 29일]] || [[MBC]]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복면자객 || ||
|| [[2013년]] [[8월 20일]] || [[KBS2]] || 여유만만 || 출연자 || ||
|| [[2013년]] [[6월 22일]] || [[MBC]] ||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 출연자 || ||
|| [[2013년]] [[2월 7일]] || [[MBC every1]] || [[탑 디자이너 2013]] || 특별 심사위원 || ||
|| [[2010년]] [[9월 21일]] || [[MBC]] || 여우의 집사 || 출연자 || 추석특집 ||
|| [[2007년]] [[6월 22일]]~[[추가바람]] || [[MBC]] || [[느낌표(MBC)|느낌표]] - 산넘고 물건너 || 진행자 || ||
|| [[2013년]] [[4월]]~[[2015년]] [[4월]] || [[대한적십자사]] || 경기적십자사 RCY 홍보대사 ||
* [[Apink|에이핑크]]와 인연이 있다. [[박초롱]]의 경우 2013년쯤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봉사를 같이 다녀왔고, [[김남주(Apink)|김남주]][* 첨언하자면 [[김남주(Apink)|김남주]] 역시 아역배우 출신이다. 연예계에 있어서도 서신애의 3년 선배며, 2001년 [[LG전자]] CF로 데뷔했다.]의 경우는 [[성균관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재미있는 게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상대 역할로 나왔던 [[진지희]]는 [[걸스데이]]와 인연이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드림티가 탈예당했지만) 한때 같은 웰메이드예당 소속이었고, [[혜리]]의 경우 [[진지희]]와 함께 선암여고 탐정단에 출연했다.]
* 자신의 롤 모델로 [[박신혜]]를 꼽았다. 자세한 건 [[비정상회담]] 157회 참조.
다만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 모두 공통되게 [[무리수]]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드레스 자체도 전혀 안 어울렸고 몸매나 비주얼 자체도 글래머러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애기가 어른 옷을 입고 나온 것같다는 반응이 많다. 2018년 2월 28일에 방송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밝히기를, 본인은 이게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고...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98년 출생]][[분류:태백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2004년 데뷔]][[분류:아역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식극의 소마/183화 . . . . 27회 일치
* 산에서 곰을 찾진 못했지만 많은 정보를 습득한 유키히라 소마. "오미자"를 이용한 곰고기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든다.
* 합숙 강좌에서 들었던 오미자의 특성을 이용, 곰고기의 냄새를 멋지게 변화시킨다.
* 요리의 향은 소마의 것을 능가하는 수준이고 하야마는 소마의 손에서 나는 오미자 향 만으로 어떤 요리를 할지 간파한다.
* 그리고 하야마는 자신이 십걸 자리를 얻은 것은 시오미 준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 사냥꾼은 면밀히 흔적을 살피더니 곰이 추적자를 눈치챘다고 말한다.
* 곰이 구태여 짐승들이 다니는 길 외에 발자국을 내고 다녔는데, 이건 추격자를 교란하기 위한 수법이다.
* 소마는 사냥꾼인 그도 토오츠키 학원을 아는 것에 놀라는데, 사냥꾼은 오히려 음식과 관련된 직종 중 토오츠키 학원을 모르는 자는 없을 거라 말한다.
* 정체는 "오미자" 열매. 중국과 한국에서 널리 자생하는 식물로 일본에서도 홋카이도와 혼슈 지방에서 자생한다.
* 소마는 오미자를 활용, 곰고기 햄버거 스테이크를 완성한다.
* 쿠가는 오미자의 다섯가지 맛이 곰의 누린내를 적절히 감싸서 박력 넘치는 감칠맛으로 변화시킨 거라고 평가한다.
* 소마는 오미자를 청주에 담궈 액기스를 추출, 향신료로서 기능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저민 고기와 어울리게 만들기 위한 조치.
* 쿠가는 어떻게 오미자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묻는다.
* 사실 오미자는 합숙 기간 중에 배운 식재였다.
* 학생들이 특훈에 지키자 히사코가 피로회복제로 준 것이 오미자차.
* 히사코가 자양강장 등에 효능이 있다고 신나서 설명하자 소마만큼은 경청해서 배워둔 것.
* 쿠가는 한의학 소재인 오미자에서 돌파구를 찾아낸 발상력에 감탄한다.
* 그때 염탐을 갔던 대머리가 돌아오더니 하야마의 주방에 가보자고 소란을 떤다.
* 쿠가는 그 외에도 뭔가 자극적이고 달짝지근한 또 하나의 향이 숨어있음을 간파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
* 오히려 소마의 손을 잡아 채더니 그 냄새를 맡고 오미자를 쓰고 있음을 간파한다.
* 소마도 향에 한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인가, 하며 한 수 접는 자세를 취한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27회 일치
* 레분토 섬의 연대 식극에는 [[나키리 아리스]]를 비롯한 탈락자들도 참석. 원래 금지였지만 아리스가 떼를 써서 어떻게든 합의했다.
* 아리스는 즐겁게 참석하고 있지만 [[아라토 히사코]]를 비롯한 탈락자들은 침울한 분위기.
* 토오츠키 학원에서 퇴학을 당하고도 [[나키리 아리스]]는 구김살 하나 없이 밝다. 다른 퇴학처리된 반역자들은 모두 침울한 기색이 역력한데 오히려 그걸 "음침해서 기분 나쁘다"고 할 정도로 밝다. 그 중에서도 [[아라토 히사코]]는 중증이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나키리 에리나]]의 이름만 중얼거리고 있다.
아리스를 비롯한 반역자 일행은 [[유키히라 소마]]의 연대식극을 관전하기 위해 레분토 섬에 도착했다. 막 연대식극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 아리스는 침울한 일행을 꾸짖으며 소마를 응원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패배한 자신들이 살아남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며 울상이다. 특히 히사코는 에리나님을 뵐 면목이 없다, 는 말을 하며 절망한다. 그런 상태로도 아리스가 "비서코는 언제나 훌쩍거린다"고 까자 "비서코라고 하지 마라"고 태클건다.
그들 중엔 [[하야마 아키라]]도 끼어있다. 그는 한 번 배신한 자신이 여기에 있어도 되냐고 말하는데 벌써 몇 번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리스가 "또 그 얘기냐"며 신경질을 부린다.
아리스가 [[쿠로키바 료]]까지 엮어서 그렇게 주장하자 하야마도 더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쿠로키바는 딱히 침울해 보이지는 않지만 멍한 상태. 그러다 하야마를 보고 "소마가 너한테 이겼다는건 나도 선발 때랑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라 말을 꺼낸다. 그러니 다음엔 자신과도 재대결하자고 하는데 하야마는 언제든 상대해주겠다며 간단하게 승락한다.
* 원래 이들은 패배한 시점에서 강제송환이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 자신이 고집을 부려서 훗카이도에 남는데 성공했다. 에리나 일행에게 연대식극의 정보를 입수한 후로는 다른 루트로 그들을 따라서 북상 이 특설무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리스는 당당하게 결전의 장소로 가자고 일행을 다독인다.
* 특설회장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관객들이 가득차 있는데 모두 진급시험을 통과한 일반 학생들이다. 히사코는 이들 전부가 센트럴의 승리를 바라는 자들이라 말한다. 그때 슬슬 무대가 막이 오른다. 사회를 맡은 토오츠키 학원의 아이돌 [[카와시마 우라라]]가 무대에 올라오는데... 심하게 맛이 가있다. 센트럴 측의 세뇌를 당한 것 같은데 뭘 어떻게 당했는지 아이돌 컨셉은 때려치우고 심하게 펑크해져 있다. 그리고 대놓고 "아자미 정권의 승리를 바란다"는 멘트를 하는 둥 매우 편파적이다.
십걸이 등장하자 대회장이 폭발할 것 같은 열광으로 뒤덮인다. 뒤이어 [[나키리 아자미]]가 등장하며 열기를 더한다. [[미토 이쿠미]]와 [[이사미 알디니]]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마측이 싸우는 거냐며 우려한다.
* 약 한 달 전, 소마 일행이 센트럴과 연대식극 룰을 확정한 직후의 일이다. 아리스는 에리나 측의 정보를 전달 받으면서 소마 일행이 [[나키리 센자에몬]]의 특훈을 받게 됐다는 소식도 듣는다. 하야마는 그들이 특훈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자신들이 어떻게든 구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아리스는 다른 일행들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지만 살아남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소마일행만 짊어지게 만든 것을 미안해 한다. 소마는 그런 우울한 소리를 왜 하냐며 자신에겐 십걸을 쓰러뜨리고 정점을 따내는 것으로 머리가 가득하니 딱히 아리스 일행이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리스는 그 말을 듣고 나름대로 납득한다.
* 다시 특설회장. 카와시마는 반역자를 구토물에 비유하며 그들의 등장을 알린다. 마침내 등장하는 소마측 요리사들. 소마와 에리나,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 [[미마사카 스바루]], [[잇시키 사토시]], [[쿠가 테루노리]], [[메기시마 토스케]]. 이상의 8인이다. 현재 비센트럴 생존자 중에선 최고로 신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인데다 잇시키, 쿠가, 메기시마는 전십걸 출신. 격으로는 상대측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 양측 선수가 모두 입장하자 에리나는 아자미에게 걸어간다. 양측 인원이 8 대 8로 동수. 양 팀 리더의 합의에 따라 첫회 대전인원을 정한다. 에리나가 3 vs 3을 제안하자 아자미가 이견없이 동의한다. 1스테이지는 양팀에서 세 명의 선수가 나와 각각 대결. 메기시마는 잇시키에게 "우리끼리 전원을 쓰러뜨릴 각오로 임하자"며 앞으로 나선다. 잇시키도 그를 따라 무대에 오른다. 전십걸 두 명은 비공개 신입 십걸 두 명과 대결,
- 신동미 . . . . 27회 일치
| 형제자매 = 여동생 [[서동주]]
| 전배우자 = 허규 (뮤지컬 배우)
| 자녀 =
| 저자 = 김은구
동료 배우 허규와 [[뮤지컬]]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하여 2014년 12월 결혼했다. 허규는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로 잘 알려진 음악그룹 피노키오 3집 [[보컬]]로 데뷔했으며, 뮤지컬 배우로 활동중이다.<ref>{{뉴스 인용 |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828889 | 제목=[TV까기]‘불후의 명곡’ 신동미♥허규, 이 부부가 사랑하는 법 | 저자=허초현 | 뉴스=뉴스1 | 날짜=2016-01-1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808144521/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828889 | 보존날짜=2016-08-08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뉴스 인용 | url=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1/dh20160118212244139020.htm | 제목=신동미의 꽃미남 가수 남편 알고보니 "이 사람이었다고?" 충격 | 저자=이슈팀 | 뉴스=데일리한국 | 출판사=한국일보 | 날짜=2016-01-18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808144558/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1/dh20160118212244139020.htm | 보존날짜=2016-08-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 2003년 [[MBC]] 수목드라마 《[[1%의 어떤 것|앞집 여자]]》
* 2007년 [[MBC]] 일일연속극 《[[나쁜여자 착한여자]]》 ... 장지선 역
* 2007년 [[KBS2]]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 (2007년 드라마)|행복한 여자]]》 ... 허종미 역
* 2012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 보통의 연애》 ... 경자 언니 역
* 2017년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 조석경 전 남편의 약혼녀 역
* 2017년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 한수지 역
* 2008년 《[[어린 왕자 (2008년 영화)|어린왕자]]》 ... 은희수 역
* 2012년 《[[자칼이 온다]]》 ... 신영 역
*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 ... 여주댁 역
* 2002년 SK 네이트 드라이브 모르는 길 편 - 여자
| 미니시리즈부문 베스트 여자 조연상
| 주말극부문 여자 황금연기상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안재욱(배우,가수) . . . . 27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최현주, 딸 안수현, 동생 안재현(안씨동생) ||
[[서울예술대학]] 90학번이다. 동기로는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황정민]], [[김현철(코미디언)|김현철]], [[정재영]] 등이 있다. 1990년 서울예전 연극과에 입학, 졸업한 뒤 2010년 연극학 학사 학위를 땄다. 참고로 신동엽의 말에 따르면 예능감은 자기를 능가한다고...
이후 MBC에서 [[짝]], 전쟁과 사랑, 자반고등어 등의 드라마를 찍으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나가다,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서 그의 [[포텐]]을 터뜨리며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안재욱은 당대의 최고배우 중 한 명인 '''故''' [[최진실]]과 호흡을 맞추며 가수 강민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역할 덕분에 실제 가수로 데뷔까지 하게 된다. 더불어 맥가이버 머리까지 하면서, 젊은 남성들한테는 뒷머리 기르기가 유행이기도 했다. --실사판 [[야가미 이오리]]--
2011년 안재욱은 사랑해 이후 오랜만에 [[문화방송|MBC]]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로 브라운관에 복귀한다. 창사 50주년 특집 드라마이며 안재욱이 원톱으로 총 64부작을 이끌었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안재욱은 연말 [[MBC 연기대상]] 대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무관에 그쳐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다.
2012년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열연을 펼치며, 시청률과 인기를 동시에 잡아 많은 사람들이 안재욱이 연말 [[MBC 연기대상]]을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기대상 마지막까지 아무 상도 안 타고 이전 수상자들처럼 대상의 수순을 밟아가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하반기 드라마 [[마의(드라마)|마의]]로 나타난 [[조승우]]에게 거의 강탈수준으로 상을 내줘버린다'''. 심지어 조승우는 그 직전에 최우수상을 받은 뒤라 누구도 조승우의 대상을 예상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당연히 안재욱이 대상을 받아야 할 상황. 그런데 MBC는 '''대상 후보를 최우수상 수상자들로 한정'''지어버렸다. 즉 안재욱이 최우수상을 못받은 순간부터 대상도 날라간 셈.
이 사건에 대해 [[빛과 그림자]]의 시대 배경이 윗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결과 시상 직전에 대상 수상자가 바뀌었다는 설이 퍼졌다. [[진실은 저 너머에]]...[* 연기대상 당일까지 와달라고 신신당부하며 왔으나 수상자가 바뀌었고, 스케줄이 있었으나 급하게 온 안재욱은 물을 먹었다는 설이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김재철|MBC 사장]]이 논란의 그 분이시라 소문이 더 커졌다.]
2008년 사랑해 이후 슬럼프를 겪고 있던 도중 안재욱은 2009년 [[뮤지컬]] '살인마 잭'에 출연한다. 이 이후 안재욱은 꾸준히 뮤지컬에 출연한다. 2010 [[잭 더 리퍼(뮤지컬)|잭 더 리퍼]], 2011 [[락 오브 에이지]], 2012 [[황태자 루돌프]], 2014 [[태양왕]], 2017 [[영웅(뮤지컬)|영웅]].
2013년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졌다고 한다. 지주막하 출혈은 쉽게 말해 [[뇌졸중]]의 일종으로 심각한 질병이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잘 되어서 회복했다. 90% 이상 후유증이 발생하는 병인데도 후유증 없이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본인은 하늘이 주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만 수술을 미국에서 받았는데 병원비가 45만달러('''약 5억''')라고 한다. 물론 안재욱은 연예인이니 비싼 서비스를 받았을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식코|미국의 병원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 사실 지주막하 출혈 자체는 한국에서도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지만, 당시 안재욱은 미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갑자기 발병해서 긴급하게 수술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병원비는 주위에서 다 내지 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라고 해서 협상 중이라고. 2014년 3월 28일 [[JTBC]]의 [[마녀사냥(JTBC)|마녀사냥]]에 출연했다. 여기서 결혼에 대해 여러가지 말 했는데,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씁쓸하다, 이게 대체 결혼을 하라는 소린지 말란 소린지, 등등 말이 있었지만 결국엔 1년 후인 2015년에 결혼한다 (...)
2016년 9월 18일 1박 2일 미션에 전화통화 대상으로 등장해서 시청자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멤버의 말에 "시청자 안녕"(!)이라고 해서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 자반고등어 || 상우 || ||
|| 신 귀공자 || 장수진의 맞선남 || 우정출연 ||
|| 2011~12년 || MBC || [[빛과 그림자]] || [[강기태(빛과 그림자)|강기태]] || ||
|| 찜 || 준혁/윤채영 || [* 1인 2역. 한국 영화에서 정말로 드문...여장남자물 영화다! 안재욱이 여장을 해서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정말 예쁘게 나왔다!][* 이 영화로 안재욱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
* [[황태자 루돌프]]
* 1996년 제3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신인연기상 《전쟁과 사랑》
* 1996년 MBC 연기대상 우수연기상 《자반 고등어》
* 2004년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 시상식 최우수남자연기상 《오필승 봉순영》
* 2016년 제5회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아이가 다섯》
* 2016년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 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아이가 다섯》
- 연정훈 . . . . 27회 일치
|학력 = [[명지대학교|명지대]] 대학원 제품디자인학과 졸업
|배우자 = [[이다희(배우)]](2005년 ~ )
|자녀 = 1남 1녀
'''연정훈'''([[1978년]] [[11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99년 [[SBS TV|SBS]] [[드라마]] 《[[파도 (드라마)|파도]]》를 통해 [[배우|연기자]]로 데뷔하였다. 한때 [[가수]]로 활동한적이 있으며 싱글앨범을 발매한적이 있다.
* [[명지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 [[명지대학교]] 대학원 제품디자인학과 졸업
* 2009~2010년 [[삼성전자]] 하우젠
| 남자 신인상
|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남자 우수상
| 특별기획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연속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최우수 남자연기자상
| 중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연속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2012년 [[대한적십자사]] 헌혈홍보대사
|제목=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동차 경주 선수]][[분류:광명시 출신]][[분류:곡산 연씨]][[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그리메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동문]]
- 원피스/860화 . . . . 27회 일치
* 장기매매업자인 "지그라"라는 인물이 입구에서 몸수색을 거부하고 입장시켜 달라고 억지를 쓰다 누군가에게 저격 당한다.
* [[카포네 갱 벳지]]는 이 작전에서 가장 성가신 남자로 카타쿠리를 지목. 견문색 패기가 너무 뛰어나 미래까지 볼 수 있다는 인물이다.
* 지그라는 다과회에 불참한 대가로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복수하러 온 것으로, 그가 벳지의 부하를 쏘는 미래가 보였기 때문에 제거 당했다.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동쪽 하구에서 [[페콤즈]]를 돌보던 어인 해적단은 그를 해변에 묶어둔 채 토트랜드를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페콤즈는 이들이 떠나려 하자 빅맘 [[샬롯 링링]]도 이 사실을 아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원피스)|알라딘]]은 "떠나는 자는 죽인다"는게 이 나라 절칙이니 오히려 알면 안 된다고 응수한다. 페콤즈를 버리는 모양세가 됐지만 그가 굶지 않게 식량을 준비해놨고 금방 그를 발견할 사람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징베]]는 페콤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어인 해적단의 배가 출항한다.
* 이런 행동은 모두 징베의 안배였다. 징베는 페콤즈에게 빅맘 암살 작전과 제르마 암살 작전을 듣게된 건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몽키 D. 루피]]는 반드시 [[상디]]를 구하려고 무리를 할 것이며 밀집모자 일당은 위기에 처할 거라고 내다본다. 그걸 두고 볼 수 없는 징베는 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 말은 그저 빅맘 해적단 산하에서 빠지는 걸 넘어 "모반"을 꾀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 해도 징베는 빅맘의 산하를 떠나는 것 자체는 "인의"로서 대가를 지불하려고 했다. 그러나 빅맘이 요구한 대가는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포기했다. "룰렛"에 적혔던 것은 "징베와 함께 산제물이 될 동료의 수"였다. 징베는 자신에게 가해질 제재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지만 무관한 동료들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데서 말도 안 되는 불합리라고 느꼈다.
징베는 일이 이렇게 되었음을 설명하면서 어인 해적단 동료들은 다과회로 경비가 홀 케이크 성 근처에 집중되는 틈을 타서 도망치라고 지시한다. 부선장 알라딘은 여기에 반발하는데 그대로 뒀다면 징베도 밀집모자 일당과 함께 죽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징베는 알라딘에게 차분히 말한다.
>설령... 이 몸이 언젠가 밀집모자 일당에 들어간다고 치지.
>이 몸은 선장 밀집모자 루피를 위해 이 목숨을 방패로 삼아 싸울 셈일세.
징베의 각오를 엿본 알라딘은 순순히 물러나며 징베 자신의 목숨도 소중히 지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인섬"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알라딘은 징베가 용궁 왕국을 지킬 사람을 필요로 하는걸 눈치챈 것이다. 뜻을 알아주는 오랜 친구에게, 징베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알라딘은 그들 사이엔 그런건 필요없다며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다짐한다.
* 홀케이크 성에서는 빈스모크 일가가 아무 것도 모른채 다과회 장소로 향하고 있다. [[빈스모크 레이쥬]]는 도중에 합류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빈스모크 욘디]]가 어젯밤엔 어디 있었냐고 묻자 레이쥬는 "늦게까지 소란을 부릴게 뻔해서 다른 방에 있었다"고 둘러댄다. [[빈스모크 니디]]는 가던 중에 급사에게 [[상디]]가 도망치지 않고 잘 있는지 묻는데 급사는 준비 완료라고 대답한다. 상디가 도망치지 않았다는걸 알게된 레이쥬는 대체 어쩔 셈이냐고 걱정한다.
* 다과회 시간에 맞춰서 귀빈들을 태운 돼지마차가 스위트 시티로 들어온다. 내린 사람들은 빅맘의 지인들 중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 뿐이다.
* [[샬롯 페로스페로]]가 이들을 직접 마중한다. 페로스페로는 이들을 "뒷사회의 제왕들"이라 부른다. 그는 귀빈들을 환영하지만 이대로 성내로 가면 다과회에 늦을지도 모른다면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한다.
* 한편 다과회장 정문에서는 실갱이가 벌어졌다. 경비 총책임자 [[카포네 갱 벳지]]는 난감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데 장기매매업자 지그라다. 그는 다짜고짜 문을 열라면서 몸수색에도 응하지 않는다. 초대장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상대는 거물이자 빅맘의 손님. 벳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지그라는 자신은 지난번에도 초대장을 받았었다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허세라도 부리려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의 방향이 이상하게 흐른다.
* 벳지는 그가 쓰러지자 누가 쏜 거냐고 버럭한다. 설사 초대장은 없어도 어쨌든 중요인물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정문 위에서 어떤 남자가 지그라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대신해준다.
벳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 3장성 [[샬롯 카타쿠리]]. 샬롯가의 차남이자 현상금 10억 5700만 베리가 걸린 괴물. 그는 지그라가 빅맘에게 복수하러 온 "미래"를 보고 그를 쐈다.
벳지는 회장에서 가장 성가신 인물이라고 여긴다. 카타쿠리는 견문색 패기를 극한으로 단련해서 조금 앞의 미래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거라면 빅맘에게 보고하라며, 벳지는 곧 "알았다. 그렇다면 됐어."라고 말할 거라고 장담한다. 그 말대로 벳지는 "알았다. 그렇다면 됐어."라고 말하며 상황을 종료한다.
* 드디어 초대장을 가진 진짜 게스트들이 도착한다. 벳지는 정문을 개방하고 손님들을 안으로 안내한다. 역시 3장성 중 하나인 [[샬롯 스무디]]는 게스트들에게 손수 짠 쥬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녀의 능력 때문인지 하나같이 기이하고 희귀한 것들만 쥬스로 만든다. "마우리 화산의 용암", "남자 100명을 찌른 미녀", "괴상한 목소리로 우는 기린" 같은 것들이다. 게스트들이 기린을 청하자 스무디는 바로 기린을 짜내서 주스를 만들어준다.
- 원피스/862화 . . . . 27회 일치
* [[징베]]는 장담과는 달리 결혼식이 임박해도 [[몽키 D. 루피]]가 일어나질 않자 당황한다. 결국 결혼식이 시작하고 나서야 일어난다.
* 빈스모크 일가는 샬롯가의 강자들 한가운데 배석. 눈치챈 건 [[빈스모크 레이쥬]] 뿐이나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며 [[상디]]만은 살아나가길 기도한다.
* 결혼식이 시작되고 푸딩은 계획대로 제 3의 눈을 드러내며 상디를 쏘려하는데, 상디는 죽을 위기인 것도 잊고 "너무나 아름다운 눈동자"라고 감탄한다.
* 푸딩의 성격이 비틀린건 빅맘 [[샬롯 링링]] 조차 기분나빠하는 3의 눈 때문이었는데, 그걸 칭찬받자 자기도 모르게 오열해 버리고 만다.
* 카타쿠리는 주례가 쏘는 총이 빗나가는 걸 예지, 자기가 직접 상디를 저격하나 그는 견문색 패기로 피하고 카타쿠리가 저격한 것도 눈치챈다.
* 결혼식 개시가 임박했는데도 [[몽키 D. 루피]]는 일어날 줄은 모른다. 시간에 맞추겠다고 장담했던 [[징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무리 흔들고 때려봐도 루피는 여전히 잠꼬대만 한다. [[나미(원피스)|나미]]는 유혹의 숲 이후로 계속 뛰어다니기만 했으니 무리도 아니라며 이걸 깨우려면 고기라도 가져와야겠다고 한다. [[쵸파]]가 [[카포네 갱 벳지]]의 부하에게 고기를 구해줄 수 없냐고 요청하자 "지금 아침식사를 한가는 거냐"고 질색한다.
* 뇌운 제우스가 짊어진 찻잔을 타고 새신랑 새신부가 나타난다. [[샬롯 푸딩]]과 [[상디]]는 겉보기엔 너무나 행복한 한쌍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한 쪽은 죽일 생각이 만만, 한쪽은 죽을 판인데도 헤롱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상디는 죽을 거라는걸 뻔히 알고 정신차리자고 하는데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 빈스모크 일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자리로 안내된다. 하지만 그 자리가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빈스모크 레이쥬]] 뿐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푸딩이 마음에 드는지 "저런 여자라면 상디대신 내가 결혼을" 하는 소리나 하다나 [[빈스모크 니디]]와 [[빈스모크 이치디]]의 비웃음을 산다. 신부 얼굴이 어떻든 빅맘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하니까.
레이쥬는 자신들의 테이블 근처를 샬롯 가문의 형제들이 둘러싸고 있는 걸 보고 이미 포위당한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는 제르마라는 가문과 함께 죽기를 각오한 몸.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지만 상디 만큼은 살아나가기를 바라며 루피에게 비책이 있기를 기도한다.
* 거대한 몸집의 주례가 신랑신부를 나란히 앞에두고 식을 거행한다. 그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혹은 부유하거나 가난할 때나 함께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과 신실을 다하겠음을 맹세하냐고 묻는다. 그동안 고기의 힘으로 겨우 일어난 루피가 자기 때문에 늦은 주제에 "서둘러라!"며 일행을 닥달한다. 징베를 비롯한 밀집모자일당은 니트로가 끄는 수레에 타고 작전장소로 달려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눈동자인가!
그런데 거기에 대한 푸딩의 반응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이게 카타쿠리가 본 미래. 상디가 당황해서 "가까이에서 보니 반해버렸다"고 수습하는데 푸딩은 그 말에 또 한 번 감동 받는다.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빅맘은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푸딩은 고백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무슨 소릴하는 거야 이 자식은!
푸딩이 제 3의 눈을 가리게 된 이유는 빅맘 때문이었다. 어머니인 그녀 조차도 푸딩의 눈을 기분나빠 해서 이마로 가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물론 다른 형제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빅맘의 딸인데도 또래 사이에선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눈을 놀리고 혐오했다. 그게 지금의 푸딩을 만들었다. 처음 사람을 찌른 것도 자신의 눈을 가지고 괴롭히던 남자애였다. 잠자코 비웃음 당하느니 전부 없애버리는 걸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혐오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은 괴물이라고 독백한다.
* 푸딩의 행동은 형제들 사이에도 동요를 일으킨다. 빅맘은 푸딩을 이용하기는 글렀다고 판단, 주례에게 신호를 준다. 주례는 조용히 자신이 준비한 총으로 푸딩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는 상디를 겨눈다. 하지만 카타쿠리는 그가 주례의 총을 피하는걸 본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상디를 저격하지만 이것도 맞추지 못한다. 조준은 정확했지만 상디가 견문색 패기로 감지하고 피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빗나간 총알은 주례의 미간을 정확히 관통, 주례가 뒤로 넘어지면서 그의 총은 허공에 발사된다.
상디는 카타쿠리가 자신을 쏜걸 눈치채고 그를 노려본다. 그리고 루피는 총성을 듣고 "[[원피스/859화|기가막힌 등장법]]"을 시작한다.
* 총성은 결혼식장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신부가 총에 맞았다고 외친다.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걸 눈치챈다. 레이쥬도 이 이변에 당황한다.
- 윤보라 . . . . 27회 일치
||<#B26724> {{{#ffffff '''가족'''}}} ||<(> [[어머니]][* 자신이 연습생일 때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오빠]] 윤재석 ||
2015년 12월 23일 '뷰티배틀쇼 화장대를 부탁해' 기자간담회의 보라
2011년 라디오 스타에서 효린과 함께 출연.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본의 아니게 MC 김국진을 멘붕시키며 라디오 스타 레전드 장면을 만들었다. --보라曰:결혼하면 이별 안하잖아용-- --김구라曰: 국진이 형 앞에서 뭐하는 얘기야-- 자신이 무슨말을 했는지 깨닫고 덩달아 멘붕해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 버린 보라의 모습은 덤.
[[청춘불패/시즌 2]]에 고정 출연했다. 하지만 방송 11주 중 3회 결방.(...)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결방킥]]을 잇는 결방불패.-- 또한 [[문화방송|MBC]]의 프로야구 프로그램 <야구 읽어주는 남자>의 MC로도 활약했었다.
2012년 1월 17일 ~ 24일 [[강심장]]에 출연하여 데뷔 전 명지대 퀸카로 이름을 알렸던 사연 등을 공개했고, 가족들에게 눈물의 영상 편지도 선보였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길을 터 주셔서 자신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어쨌거나 그때에 비해 인지도도 많이 상승하고 메이저급 걸그룹에 들었으니 경사로세 경사로세! ~~그런데 그거랑은 별개로 예능감은 의외로 없다는 게 [[함정#s-1|함정]].~~[* [[2015년]] [[1월 8일]]자 [[씨스타의 쇼타임]]에서 [[데프콘(가수)|데프콘]]이 전화통화에서 보라를 상대로 데프콘도 이렇게 [[확인사살]]을 시전했다.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0711575831898019|#]]]
2015년 10월 12일, 19일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다. 첫회부터 시청한 팬이라고 하였고, 실제로 [[정형돈]]의 진행 패턴인 어떻습니까아~ 등을 꿰고 있었고, 셰프들의 칼질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됨에 감탄하는 등의 모습으로 애청자임을 인증. [[이현이]]에 못지 않은 [[http://tvcast.naver.com/v/564263/list/51807|야한 탄성의 리액션]]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보라가 맛있게 시식을 할 때 [[하니(EXID)|하니]]는 너무도 먹고싶은 마음에 [[유체이탈]](...).~~
* 추석맞이로 [[한복]]을 입고 인터뷰했는데, 하의는 널널한데 [[거유|상의가 꽉 낀다면서]] [[글래머|우월한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발언을 했었다. 게다가 살도 잘 안 찌는 체질이라고 한다. 2012년 6월 28일 발표한 <Loving U>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이 6월 30일경에 공개되었는데,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603227|민낯에 노란색 수영복을 입은 보라의 글래머러스한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http://cfile253.uf.daum.net/R400x0/260A3F37558C3B0D12A2A4|#]]
* 발목이 엄청 가늘다. 손 안에 들어올 정도고 손목시계까지 찰 수 있을 정도다. 그에 대비되는 [[꿀벅지]]의 소유자. [[각선미]] 하면 자주 언급되는 인물중 하나로 뛰어난 각선미를 지녔다.
자타공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육상과 양궁 레전드. 그리고 소문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 부자에 최다 금메달 보유자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육상에서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있다.[* 현재 보라 이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가능성이 큰 사람은 아육대 [[리듬체조]]의 수구를 하나씩 찍고 있는 [[성소]]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원년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0년|2010 추석 아육대]]에서 여자 100M 달리기, 여자 100M 허들, 여자 400M 계주에서 금메달, 여자 높이뛰기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전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래서 육상선수 출신이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나 댓글들이 나왔지만, 본인 말로는 그런 적이 없단다.
2010년 11월 14일 출발 드림팀 종합장애물 경기에서 2대 우승자가 되었다.[*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1151215531132&ext=na|기사]].] 1대 때는 뛰다가 미끄러져서 광탈했다.
그냥 다중 분할 화면으로 적당히 때웠다. 둘 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에서는 압도적인 실력이라 제 실력으로 뛴 거라 보긴 어렵다.
2012년 7월 26일 방송된 [[2012 런던 올림픽]] 기념 아이돌 스타 올림픽 2부에서 보라는 여자 단체 양궁에서 국가대표 수준의 마인드 컨트롤과 득점으로 평균 9점대를 유지하여 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으며, 여자 높이뛰기에서도 가위뛰기를 구사하여 손쉽게 금메달을 획득했다. 단, 여자 100m 달리기 결승에서는 늦은 스타트로 인해 [[달샤벳]]의 [[조가은]]과 [[나인뮤지스]]의 은지에게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내주고 자신은 동메달에 만족해야만 했다.
||<|2> [[2011년]] || [[MBC]] || 야구 읽어주는 남자 ||<|2> 출연 ||<|2> ||
||<|2> [[2012년]] || [[현대자동차]] || 벨로스터 터보 || 자동차 || [[https://m.youtube.com/watch?v=gyDTkcDvt2Y|화보 촬영 현장]] ||
|| [[2013년]] || 제12회 [[KBS 연예대상]] || 쇼오락 MC 여자 신인상 || [[뮤직뱅크]] ||
- 은혼/640화 . . . . 27회 일치
* 반사이가 "다른 이의 시체를 밟더라도 대의를 추구하겠다"는 맹세대로 하라며 자신을 버리라고 하지만 신스케는 결국 그를 구하며 함께 낙오하는 길을 택한다.
* [[엔죠]] 황자는 모선과 아군을 희생시켜가며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속행, 이제 완충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5분에 불과하다.
* 모선으로 진입했던 병력은 괴멸, 함대는 적의 집중공격으로 고립, 그러나 신스케가 포기하지 않겠다 뜻을 보이자 [[타케치 헨페이타]]가 결단을 내린다.
* 그는 15분을 최대 30분으로 늘려보겠다고 약속한 뒤 소함정에 타고 혼자 적진으로 향하려 한다.
* 헨페이타는 다시 한 번 신스케의 포기하지 않는 기질을 따라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작전에 임하며 "여기서 보는 세상은 참 재미있다"고 자조한다.
* 해방군의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해방군 모선으로 돌격했던 귀병대. 그러나 해방군 사령관 [[엔죠]] 황자는 모선의 일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서둘렀고 그 결과 불필요한 구역을 아군까지 희생시키며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귀병대가 침투했던 구역이 하나둘 파괴되면서 최전선에서 지휘 중이던 [[다카스기 신스케]]와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도 위험에 처한다. 하나둘 산화하는 부하들. 그러나 그저 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신스케는 과거에 했던 맹세를 떠올린다. [[은혼/632화|반사이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반사이를 포섭한다. 어차피 나라의 심판으로 사라질 목숨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지 않겠냐고. 반사이가 "그럼 당신은 뭘 위해 죽을 거냐"고 묻자 그는 뻔뻔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렇게 말했던 건 자네였지 않나?
* 신스케는 침묵 끝에 반사이의 말이 맞고 분명 자신은 시체를 디딤돌로 삼겠다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칼을 뽑아 반사이의 목을 겨눈다. 고통을 줄여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 신스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많은 시체를 쌓아왔고 그걸 디딤돌로 삼은 건 사실이지만 마지막 시체는 단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이 그 약속을 지켜야하듯 반사이도 지켜야할 약속이 있다. 신스케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 그러니 자신이 시체가 될 때까지 반사이는 살아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부축한다.
* 해방군 모선이 붕괴하고 있다. 히노카구츠치 발사와 컨트롤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면 전부 폐기 당했다. 외벽부터 우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다케치 헨페이타]]와 그의 부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카이]]는 방금 전의 조치로 완충까지 고작 15분이 남았다 계산한다. 그게 이 세계에 남은 수명. 헨페이타는 한카이에게 방법을 강구해달라 요청하지만 그로써도 역부족. 유일한 가능성은 외부와 연계해 에너지 회로를 파괴하는 것. 그러나 이것도 시간끌기에 지나지 않아 15분 정도 뒤에는 끝이다.
헨페이타의 함대도 대책을 마련하기엔 여의치 않다. 해방군의 함대가 총공세로 나온다. 적의 목적은 자명. 단 15분 간 귀병대 함대를 저지하는 것이다. 엔죠는 그렇게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에 차있다. 하늘이, 우주가 무너지는데 솟아날 구멍도 없는가? 고개를 떨구는 헨페이타.
* 신스케는 이때 무전을 보낸다. 이미 자신들은 낙오됐고 본대와 합류도 바랄 수 없으니 이대로 히노카구츠치 제어 중추로 돌입하겠다는 전달이다. 그걸 위해서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헨페이타는 대답 대신에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전한다. [[사루가쿠]]와 [[바토우]]가 당했고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부대와도 통신이 두절됐다. 아군 함대는 적 함대의 총공세를 막아내느라 여력이 없으며 원군도 더는 바랄 수 없다. 신스케가 돌입을 강행한다면 현재 가진 병력만으로 해야 한다. 헨페이타는 그럴 병력이 남아 있느냐고, 현재 병력이 얼마냐고 묻는다. 신스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헨페이타는 그저 그 말을 믿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달라 한다. 발사까지 앞으로 15분. 그 시간을 두 배로 늘리겠다. 그 30분 동안 어떻게든 히노카구츠치를 막으라고 말한다. 현재 그들의 바로 앞이 중추시설이다. 이제 안내는 필요없다.
* 이또한 오래된 이야기다. 그가 아직 막부에 몸 담았던 시절이다. 동료들과 막부의 적을 급습했으나 단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해 모두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헨페이타. 적의 칼끝이 미간을 겨눈다. 헨페이타는 검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고, 적은 그점을 궁금해한다. 헨페이타가 원래 자신이 잡아야 했던 자, 신스케를 향해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내가 신스케를 쓰러뜨릴 수 없는걸 알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신스케는 이미 죽은 녀석들 보단 말이 통한다면서, 질 걸 알아서 그렇다면 여기엔 왜 왔냐고 물었다. 헨페이타는 그 이상도 알았다. 동료들은 사람을 심판할 권리를 잃었고 오히려 직권의 이름으로 백성을 괴롭힌 저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이용 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도 죽이라고 청했다.
그러나 신스케는 검을 거둔다. 그는 자신이 "지시 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말하며, 이런 성격을 눈치채고 연기를 할 거라면 참모라도 시켜줘야겠다고 빈정거린다. 그가 자신의 뜻과 달리 돌아서 가버리려 하자 헨페이타가 당황한다. 신스케가 하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칼보다 날카롭게 헨페이타의 아픈 부분을 찔렀다.
* 그때나 잊혀지지 않는 말이다. 헨페이타는 소형정에 오르며 그때부터 포기하고 있었던 것을, 그리고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음을 인정한다. 설마 자신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르게 될 줄이야. 그러나 한 가지는 신스케의 말대로였다.
- 이노센트 투어 . . . . 27회 일치
주인공은 [[엘프(포리)]], [[발키리(니나)]], [[흑기사(아니에스)]]로 이 세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엘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발키리는 "재미있는 일"을 위해 아스가르드로 돌아가고자, 흑기사는 본의가 아니지만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엘프의 숲에서 각자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상세 스토리는 각 등장인물들의 개별항목을 참고.
세계관이 조금 특이한 것이 이 여행에 참여하는 주인공들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본질이 되는 신화가 다르다. 가령 엘프는 [[켈트 신화]],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를, 흑기사는 [[기독교]]와 [[헤브라이 신화]]에서 유래된 전승들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캐릭터이며, 이노센트 투어의 세계관에서는 이 모든 신화가 짬뽕으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힌두 신화]]도 일부나마 추가되어 있다.
게임의 진행방법은 여타 보드 게임과 마찬가지로 턴이 돌아오면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에 의거해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주사위 대신 "카드 뽑기"에 나온 결과에 따라 행동을 정하고 "결승점"에 자신의 캐릭터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 자신이 뽑은 카드에 제시된 정령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며,
보드위의 캐릭터들은 고유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능력치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보드게임의 특성상 주사위 신이 보여주는 변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각 캐릭터마다 가진 특성과 시작 능력치를 생각하고 전략을 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능력치들은 오로지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보상으로만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HP는 적의 마법이나 배틀의 결과로 피해를 입으며, 자신의 마법이나 아이템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혹은 맵 곳곳에 위치한 상점이나 온천에 들러 1턴을 소모하면 체력이 완전히 채워진다.
장비를 뺀 기초 능력치의 상승은 각 능력치에 대응하는 카드들을 맵에서 획득하는 방법에 의해서만 상승이 가능하며, 흑기사를 제외한 캐릭터들이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장비 아이템들은 이 배틀능력치에 변동을 줄 수 있는 물품들이므로 전략적으로 상점을 이용하도록 하자.
정령은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게임이 아무리 전략을 잘 짠다 하더라고 주사위의 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 캐릭터는 "카드를 본다"는 행동을 통해 카드에 제시된 정령의 속성과 숫자만큼의 "정령력"을 부여받고, 이 정령력의 숫자만큼 칸을 이동하거나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가령 엘프(포리)가 카드를 뽑았는데 불의 정령 사라만다(8)이 나왔다면 엘프(포리)는,
가끔이긴 하지만 조커가 나오기도 하는데, 조커는 문자 그대로 꽝이다. 얘는 정령이 아니라 악마이기 때문에 누적시킬 수 있는 속성도 없고 속성이 없으니 숫자도 없다.
마법은 이 게임의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마법은 자신이 축적한 정령력을 이용하여 사용하는 정령마법과 맵에서 획득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마법이 있다.
정령마법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축적한 정령력을 통해 사용가능한 마법으로 사실상 공통마법으로 봐도 무방하다. 공통이기 때문에 신화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위에서 언급한 정령 능력치에 따라 효율이 달라진다. 단, 회복마법은 정령능력치에 상관없이 투자한 정령력만큼 정비례하여 HP가 회복된다.
예를 들어 불속성 5, 물속성 1을 소모하여 회복마법을 시전하면 자기자신의 HP는 30이 채워진다.
위의 정령 능력치에서 설명했듯이 각 정령력을 일정 포인트 이상 모으면 그 정령의 속성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턴에서 사용하는 마법은 실피드를 제외하고 공격마법이며, 반대로 타 캐릭터가 쓴 마법은 방어마법으로 대응 가능하다.
게임 진행중에 몹을 해치우거나 상자를 열면 얻을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이노센트 투어/카드]] 항목을 참고.
== 경쟁자 ==
경쟁자는 선택이 불가능하며, 각자 전용마법을 가지고 있다.
- 이선희 . . . . 27회 일치
[[1964년]]<ref>[https://www.leesunhee.com/sunny/contents/contents.do?cmnx=16 데이터 관련 리스트]</ref> [[대구광역시]] 에서 [[울산광역시]] 출생의 [[불교]] [[승려]]였던 아버지와 [[부산광역시]] 출생의 [[불교]] 신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전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광주광역시]] 와 [[인천광역시]]에서 각기각기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1969년]] 이후 [[서울특별시]]에서 줄곧 자랐다.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의 곡도 히트하여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는 등 큰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였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자리|사랑이 지는 이 자리]]》에서 <나 항상 그대를>로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해 3번째 골든컵을 수상했다. 또한 70년대 신중현과 뮤직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해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도 히트하였다.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앨범 활동은 4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승기]]라는 가수를 발굴해냈다. 직접 가수 제의를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 데뷔시키고 행사를 같이 다니고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가수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도 《[[1박 2일]]》, 《[[강심장]]》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배우로서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에 출연하였다.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인연>은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장미>와 <왜?> 등은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 (드라마)|대물]]》의 OST <떠나지마>를 부르기도 하였다.
|저자 = 권수빈
}}</ref> 2800여 석에 이르는 좌석이 모두 매진이라는 큰 기록을 세우며 한인으로서는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하였다. [[2011년]] [[9월]]부터 방송된 [[문화방송|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시즌 2의 멘토로 출연하였고, 멘티 구자명이 우승하였다.
* 1988년 4집《[[사랑이 지는 이자리|사랑이 지는 이 자리]]》
* 2005년 영화 《[[왕의 남자]]》
* 2010년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 1990년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
* 1991년 《[[뮤지컬 피터팬]]》세르반자드 원작/이반 작사/안길웅 작.편곡
* [[2월 5일]] [4집 앨범]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출반 (서울음반)
* [[4월 21일]] 시집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 꿀 수 있다' 출간
* [[6월]] 시낭송 앨범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 꿀 수 있다' 출반
* [[8월 11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OST Part.1] '여우비' 발매
* [[9월 8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OST Part.5] '내가 사랑할 사람 (Piano Ver.)' 발매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이성민 (야구선수) . . . . 27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4월 2일]] <br />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구원
* [[롯데 자이언츠]] (2015년 ~ 2017년)
'''이성민'''([[1990년]] [[3월 30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이다.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서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영남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직구 스피드가 147 km/h에 이르고 변화구 제구도 수준급이어서 스카우트 사이에서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 이전 부터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2012년]] [[8월 20일]]에 열린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윤형배 (1994년)|윤형배]]와 함께 특별 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208/h20120820204711111960.htm "4할 승률 위하여" 발톱 드러낸 NC] - 한국일보</ref> [[2012년]] [[12월 5일]]에 열린 2012 [[야구인의 밤]]에서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9144 '야구인의 밤' 영남대 이성민, 우수 선수상 수상 ] - 스타N뉴스</ref> [[대한민국의 대학 야구 대회|대학리그]] 4년 동안 17승 15패, 252 1/3이닝, 222탈삼진, 89볼넷,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였다.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특별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즉시 전력감 [[투수]]로 주목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하여 7회에 구원 등판하였으나 [[박종윤 (1982년)|박종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구단 첫 패전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30402/54154104/1 ‘제 9구단’ NC, 1군 데뷔전에서 롯데에 영봉패] - 스포츠동아</ref> 이후 필승계투로 활동하였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부진한 투구와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잠시 C팀(2군)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후 [[7월 14일]]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이재학 (야구 선수)|이재학]]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된다.
[[7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구원 등판해 1 2/3이닝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애덤 윌크|아담]]이 선발진에서 부진하고 부상과 팀 내 융화 문제까지 겹쳐 C팀 강등 후 [[트위터]]에 불만을 표시하자, [[김경문]] 감독은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해 그를 선발진에 넣었고 [[애덤 윌크|아담]]을 퇴출했다. [[2013년]] [[8월 3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0496 ‘1피안타’ NC 이성민, 선발 데뷔전에서 깜짝 승리] - 마이데일리</ref>
2013 시즌에 비해 살짝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출전 기회도 9번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2015 시즌 구원 투수로 나섰으나 [[2015년]] [[5월 1일]] [[NC 다이노스]]전 까지 11경기에 나서 평균자책점 7.82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진 못하였다. <ref>[http://www.thesportstimes.co.kr/detail.php?number=88218&thread=33r01 kt, 정대현 이성민 용덕한 이대형 등 특별지명 완료] - 스포츠타임스</ref>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15년]] [[5월 2일]]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5:4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569615 롯데-KT, 5대 4 대형 트레이드 단행] - 연합뉴스</ref> 이적하자마자 9경기 연속 평균자책점 0.00대 행진을 하며 [[롯데 시네마]]라는 조롱성 별명을 얻은 [[롯데 자이언츠]] 불펜진에 큰 힘이 되었다. 5월 한달간 14경기에서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1.80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6월에도 역시 7경기에서 1승 1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8의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불안한 불펜진의 핵심 투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7월과 8월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15경기에서 2승 3패, 1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9.45를 기록하며 부진에 늪에 빠졌다. 하지만 9월에 다시 컨디션을 되찾으며 12경기에서 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2015 시즌 61경기에 나서 5승 7패, 7홀드, 4세이브,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kt 위즈|kt]]/[[롯데 자이언츠|롯데]]
|[[롯데 자이언츠|롯데]]
! 년도 !! 소속팀 !! 평균자책점 !! 경기수 !!승 !!패 !!세 !!홀 !!이닝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15||rowspan="2" style="text-align:center;"|[[롯데 자이언츠|롯데]]||4.58||61||5||7||4||7||72.2||92||11||37||58||44||37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이승현(농구선수) . . . . 27회 일치
||<width=125><:> [[양동근(농구선수)|양동근]][br]([[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 ||<:> → ||<width=125><:>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 → ||<width=125><:> [[박찬희(농구)|박찬희]][br]([[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
|| [[박찬희(농구)|박찬희]][br]([[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 [[이정현(1987)|이정현]][br]([[안양 KGC 인삼공사|안양 KGC]]) || [[애런 헤인즈]][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 [[오세근]][br]([[안양 KGC 인삼공사|안양 KGC]]) ||
|| [[박찬희(농구)|박찬희]][br]([[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 [[이재도]][br]([[부산 kt 소닉붐|부산 kt]]) || [[양희종]][br]([[안양 KGC인삼공사|안양 KGC]]) ||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 [[데이비드 사이먼]][br]([[안양 KGC인삼공사|안양 KGC]]) ||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절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절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상을 수상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2014-15 시즌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기자단 투표수 99표중 74표를 획득하였다. 참고로 2위 김준일은 25표를 받았다.]
'''입단 2년차에 오리온 포워드 농구의 핵심전력이자 KBL의 두목으로 거듭나다''' --2015-16 시즌 농구기자들의 연민의 대상--[* 외국인 선수 수비가 되기에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출전하지 못한 1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전 경기에 나서서 추일승의 노예로 장신 외국인 선수들을 수비했다. 2월 22일자 바스켓카운트에서 기자들이 노가다 수당이라도 줘야 되는게 아니냐며 동정하는 모습이었고 이는 정규시즌 시상식 최우수수비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외국인 선수들과 하승진을 마크하면서도 그 선수들을 끌어내느라 3점까지 던져가면서 온갖 개고생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15-16 PO MVP를 받게 된다!!]
2016-17 시즌에도 평소 자신의 역할대로 박스아웃, 도움수비, 몸싸움, 포스트업 등 공수의 핵심으로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비해 외곽슛이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공격이 뻑뻑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지, 추일승 감독은 매경기 30분 약간 안되는 정도로 출전시간을 조절해주고 있다.
헌데 오세근이 11-12시즌에 가장 근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5-16시즌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과도한 언플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안티팬들이 대거 양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암투병 소식을 접한 이후 오리온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매번 아버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영 좋지는 못하다. 이런 와중에 동료 포워드들의 활약으로 이승현이 없이도 승수를 착실하게 쌓는 장면이 연출되자 안티팬들은 '''스탯도 오세근보다 낮으면서 고평가를 하는데 [[종범(인터넷 속어)|이승현한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도 있냐?]]''' 라면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1월12일 인천전자랜드와 홈경기에서 1쿼터 5:54초 빅터와 다리를 부딪혀 발목이 뒤틀리는 '''전치 4주의 부상을 입고 말았다!''' 시즌아웃까진 아니지만 공수의 핵심인 이승현이 4주간 결장하기에 상당한 전력 누수가 예상된다. 부상기간 중에 올스타 브레이크로 1주간 경기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
2월 초 부상에서 복귀하였는데, 수비는 여전하지만 공격에서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 팬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2월 15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개인통산 한 경기 최다 득점인 33점을 쓸어담는 활약을 선보여 자신이 왜 KBL의 두목인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이 경기를 승리함으로써 선두권과의 격차를 한 경기로 좁혔다.
5라운드부터는 헤인즈의 컨디션이 예전같지 않자 공격옵션 확장을 위해 본인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검증된 수비실력이야 말할것도 없고, 공격력까지 좋아지면서 본인이 왜 대학 최고의 빅맨으로 불렸는지를 클라스를 입증하고 있다. 부상 이후 외곽슛이 더 정교해졌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용병 수비가 가능하다는 점. 용병을 상대로 압도하진 못하더라도 버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팀의 수비옵션이 더 늘어난다. 더불어 수비의 마무리라는 리바운드도 2년차때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또한 상당히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다가도 상대 앞선에 가드가 막히는 것 같으면 하이로 와서 스크린을 서주는 등 높은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상당히 좋은 편. 2m가 안되는 신장에 비교적 평범한 윙스팬, 낮은 점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리바운드를 비롯한 볼 경합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낙구지점 파악 능력이 굉장히 좋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우수하며 BQ까지 높기 때문에 탭아웃이나 박스아웃에 의한 타 선수들의 리바운드 가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안티들은 빅맨인데 리바 스탯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면서 깐다~~
두 번째 장점으로는 몸이 상당히 튼튼하다는 것. 힘 좋은 장신 외국인선수들을 몸으로 버텨가면서 수비하는데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출장시간을 전 경기 뛰어준다는 것은 팀 입장에서는 업고 다녀도 모자랄 수밖에 없다.[* 특히 오리온의 농구 특성상 포워드들을 활용한 스페이싱 농구를 지향하기 때문에 포스트가 약해지는 건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이승현의 활용가치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대학교 4학년부터 2014-15 시즌, 2015 아시아선수권, 2015-16 시즌까지 휴식없이 경기를 소화했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까지 다녀왔던 양동근, 김선형과 근접한 수준의 혹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매경기 30분 이상의 경기를 큰 부상 없이 소화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금강불괴인 점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가드에 비해 빅맨이 더 과부하가 심하기 때문에 더욱 대단한 일이다.][* 심지어 2015-16 시즌 중에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발목이 돌아가는, 다른 선수같으면 1달이상을 쉬어야되는 부상을 당해놓고도 1주일 정도 쉬고 다른 국가대표들이 복귀하던 날에 같이 복귀했다!]
세 번째 장점은 발전속도이다. 14년 아겜 국대에서 낙마하게 된 원인이 신체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공격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외곽슛을 연마하기 시작해 신인 시즌에 3점 성공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현재 시점인 2017년말에는 동포지션 대비 상급의 슛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슛 뿐만 아니라 포스트업 기술이나 대인수비나 박스아웃 등 공수 전반적으로 꾸준하게 발전을 보이고 있어 [[전준범]]과 함께 국대에서도 핵심 멤버로 등극하게 되었다. 상무 복무자의 경우 훈련하는 공인구가 달라 국대 경기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시즌때보다 정교한 필드골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는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슈팅 모션이 느리기 때문에 오픈찬스가 아니면 득점하기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체력 저하가 시작되는 3쿼터 막판부터 야투 성공률이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다.[* 70점 이하의 득점으로 패배하는 경기를 보면 이 단점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지샷도 놓치는 모습이 4라운드 이후 점차 늘어나는 추세.] 문제는 1대1 능력이 부족하다는점. 본인이 공을 잡고 득점하는 기술이 거의 없으며, 라이벌이자 동기인 김준일에 비해 밀린다고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KBL이 용병이 에이스롤을 맡아 국내선수는 롤플레이어 역할로 그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대학때 모습에 비하면 아쉽다. 물론 워낙 BQ가 좋고 볼 없는 움직임도 좋은 선수라 매경기 10점 정도는 가능하다. 그 외에는 속공 가담 후 받아 먹기나, 포스트업 이후 페이드 어웨이 점퍼. 조 잭슨이 살아나면서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이승현도 덩달아 득점력이 상승하기도 했다. 16-17시즌 이후에는 포지션의 구분없이 피지컬에서 미스매치가 나면 곧장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이에따라 포스트업이나 훅슛 등 공격스킬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여 페인트존 공격기술이 없다는 비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내무대에서 자신이 소속했던 모든 팀을 우승시켰다. 그것도 주역으로'''[* 다만 국대에선 우승경력이 없다. 최근 한국농구의 유일한 국제대회 우승인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으며, 15년 가을에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에선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우승시키진 못했다.]
자신이 소속했던 초(대구 칠곡초), 중(서울 용산중), 고(서울 용산고), 대(고려대), 프로(고양 오리온)팀 모두를 우승시켰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KBL총재배 초등부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선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전국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오랜시간 무관에 그치던 용산고를 우승시켰다.[* 이승현은 꽤 어린 나이부터 용산고 OB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용산고 출신인 양동근이 "넌 여기 와도 돼. 우승시켰으니까" 라고 이승현에게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재학 중 단 한번도 지지않았으며, 김종규/두경민/김민구가 버티던 경희대를 꺾고 MBC배와 대학농구리그를 모두 제패해버렸다. 특히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14년 가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선 종료 1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 3점슛을 작렬시키고,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2점슛을 성공시키는 원맨쇼까지 보여줬다.
* 이승현에 이어 2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한 [[김준일]]과는 선의의 라이벌 관계이자 오랜 친구사이이다. 1년차때는 실제 신인왕 경쟁을 치열하게 다퉜는데 마지막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이승현이 신인왕을 차지했다. 팀 성적 역시 이승현이 더 좋은것도 컸다. 다만 김준일이 끝까지 경쟁력이 있었던건 용병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공격해 득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신인왕 평가 기준이 전에 비해 팀 성적을 덜 보는 풍토가 시작된 점도 컸다. 둘 다 상당히 힘이 좋은 선수들인데 이승현의 말로는 순수 힘에서는 [[김준일]]이 본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2년차 이후 완전히 변하게 되었는데, 1년차에는 비교적 비교가 가능했다면 2년차에는 김준일이 PO에서 보여준 삽질과 비교되어 이승현에게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 디시 [[농구 갤러리]] 한정 '이용수'라고 불린다. 바로 '''용'''병 '''수'''비를 줄인 말인데, 이승현의 용병 수비에 대한 몇몇 팬들의 과도한 쉴드로 생겨난 별명이다.[* 다만 페인트 존에서 웨이트 싸움으로 용병 수비가 어느정도 가능한 국내 빅맨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5-16 시즌 6강 플레이오프 동부와의 경기에서는 '''수'''비의 '''왕'''이라는 기사[[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64&aid=0000004705|#]]가 나오면서 '이수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2017 아시아컵 이란전에서도 하다디를 틀어막으며 고군분투하자 '''외'''인'''수'''비 전담이라 해서 '''이외수(...)'''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 2016년 12월 4일 [[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전 승리 직후 벤치에서 홈경기 승리를 축하하는 에어샷(폭죽)에 얼굴을 강타당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 충격으로 얼굴에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고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구단 측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미안함을 전했다.
- 이효상 . . . . 27회 일치
| 자녀 = 슬하 3남
'''이효상'''(李孝祥, [[1906년]] [[1월 14일]] [[경상북도|경북]] [[대구광역시|대구]] - [[1989년]] [[6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교육자, 철학자, 시인이다. 제5~7대, 제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63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는 7년 6개월 간 [[국회의장]](6대~7대)을 역임했다. 이는 역대 국회의장 중 최장 재임기간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고 세례명은 아길로이다. 본관은 [[성산 이씨|성산]]이며 아호는 한솔이다.
1963~1971년 6, 7대 국회의원,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IPU․APU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1973년]], 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같은해 3월에는 공화당 의장서리 겸 당무위원이 되고, 19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공화당총재 상임고문에 취임하였다. 상훈으로는 [[서독]] 1급 대십자훈장, 교황청 대십자기사훈장, [[말레이시아]] 판쿠안네가라 최고훈장 등을 받았다.
[[1981년]] [[4월 23일]] [[국정자문회의]]위원에 위촉되었다. [[1989년]] [[6월 18일]]에 사망했다.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ref name="김충식">[[김충식 (1954년)|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1 (1992, 동아일보사)</ref>{{Rp|305}}<ref name="이상우">[[이상우]], 박 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1986, 동아일보사)</ref>{{Rp|343}}<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제목=[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확인날짜=2010년 1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824010951/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보존날짜=2009년 8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 참고 자료 ==
== 참고 자료 ==
|전임자= [[곽상훈]]
|후임자= [[백두진]]
|전임자 = [[정일권]]
|후임자 = [[박준규 (1925년)|박준규]]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폐지)
|전임자 = (대구시 갑)[[서동진]]<br />(대구시 을)[[서상일]]<br />(대구시 병)[[임문석]]<br />(대구시 정)[[조재천]]<br />(대구시 무)[[조일환 (1916년)|조일환]]<br />(대구시 기)[[장영모]]
|후임자 = 이효상
|전임자 = 이효상
|후임자 = [[신진욱]]
|전임자 = (동구)[[김정두 (1918년)|김정두]]<br />(남구)[[신진욱]]
|후임자 = 이효상·[[신도환]]
|전임자 = 이효상·[[신도환]]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27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호크와 함께 "돼지의 모자"를 운영하며 "멜리오다스의 시체"를 보살피고 있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를 되살릴 방도를 찾는 듯 한데.
* 고르기우스는 두 사람이 자신에겐 너무 눈부시다며 떠난다.
* 죽은 걸로 알려졌던 전 성기사단장 자라트라스가 돼지의 모자를 찾아온다.
* 엘리자베스는 혼자 힘으로 "돼지의 모자"를 운영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다.
* 고르기우스는 호크와 엘리자베스를 한 눈에 알아보지만 신분을 감추기 위해 모른척 한다.
* 술집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마신족 눈치나 보고 사는건 사양"이라며 술집이야 말로 자신들의 천국이라 말한다.
* 손님들도 슬슬 돌아가고 고르기우스도 그런 분위기를 타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 엘리자베스는 고르기우스에게 손수 만든 특제 스프를 데접하는데
* 호크의 말마따나 엘리자베스는 맛없는 음식을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 엘리자베스는 무리해서 먹지 말라고 하지만 고르기우스는 배고픈 탓인지 "못 먹을 건 없는 맛없음"이라며 꾸역꾸역 먹는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말하는데 고르기우스는 "살아봤자 할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다"고 부정한다.
*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살아만 있으면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것도 고통을 나누는 것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 말문이 막힌 고르기우스는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며,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을 거라며 돼지의 모자를 떠난다.
* 고르기우스를 떠나보낸 엘리자베스는 2층에서 누군가를 향해 말하기 시작한다.
* 호크는 혼자 술집을 청소하다 수상한 발소리를 듣는다.
* 손님들이 "떠도는 은기사" 유령에 대해 말하던걸 떠올리는데 정말로 유령기사가 돼지의 모자를 찾아왔다. 호크가 비명을 지른다.
* 호크가 호들갑떠는 소리에 엘리자베스가 내려와 보는데, 유령기사가 엘리자베스를 알아본다.
* 그의 정체는 바로 전 성기사단장 자라트라스. 죽었다고 알려진 드레퓌스의 형이었다.
* 죽은 걸로 알려져 있던 자라트라스가 갑자기 갑툭튀했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27회 일치
[[일곱 개의 대죄]] 제 211화. '''이별을 고하는 자'''
* 갑자기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 앞에 나타난 [[고서]]는 요정왕과 거인왕을 막기 위해 온 것이다.
* 그녀는 뒤늦게 고서가 자신을 조종했으며 마계가 아닌 "마계의 감옥"으로 연결된 문을 만들게 했음을 깨닫는다.
* 그리고 그 마계의 감옥에서 나타난 자는... 놀랍게도 "진짜" 고서. 현재 활동하는 고서는 그가 만든 인형, 아바타에 지나지 않았다.
* 그는 500년 전 마신왕에게 무욕의 계금을 받은 대가로 자유를 빼앗겨 감옥에 유폐당했다.
* 성전 같은 것에도 관심이 사라진 그는 자유를 되찾기 위해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다.
* 난데없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 앞에 나타난 십계 무욕의 [[고서]]. 그러나 이 시대 사람이 아니고 그가 마신족 출신인 것도 몰랐던 둘은 그를 무욕의 고서가 아니라 일곱개의 대죄 멤버였던 고서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정은 고서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고서가 아니다"라는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고서. 할리퀸은 확실히는 몰라도 자기가 아는 고서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고서는 "내가 모르는 날 알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흥미를 보인다.
* 그때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메라스큐라]]다. 차원의 틈으로 천계로 가는 문을 조작하고 있는게 보인다. 그녀는 이제 문의 완성에 집중하고 싶으니 이쪽은 닫겠다고 말한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고서가 십계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나서야 경계한다. 고서는 자신이 십계인걸 모르냐고 오히려 이상해한다. 할리퀸은 그가 "십계가 아니라 일곱개의 대죄 멤버"라며 항변하지만 디안느가 그런 언쟁보다는 은총의 빛으로 향해야 한다고 가로막는다.
할리퀸은 그건 성전시대 일이 아니라 3천년뒤 현대의 일이라고 설명해주지만 고서가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상황이 꼬인다. 고서는 요정왕과 거인왕을 만난건 지금이 처음이라고 말하는데,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결국 진실을 밝히게 된다. 할리퀸은 자신들이 진자 거인왕, 요정왕이 아닌, 그들의 몸을 빌린 존재이며 3000년 뒤 미래에서 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믿을지 말지는 그에게 맡기는데, 고서는 뜻밖에도 "재밌다"고 엄청나게 흥미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 은총의 빛 내부에선 메라스큐라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네로바스타]]는 그녀를 저지할 방법도 없고 스티그마의 지원도 오지 않자 전전긍긍한다. 그러는 사이에 마계로 가는 문은 완성되어 버리고... 그런데 정작 메라스큐라의 상태가 이상하다.
* 메라스큐라도 고서의 조종을 받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모든건 고서의 음모였다. 그녀가 사대천사와 대치하던 중 갑자기 이탈한 것도, 이런 곳에서 마계로 향하는 문을 만들게 된 것도 그랬다. 게다가 이것은 "마계"로 가는 문이 아니다. 이건 "마계의 감옥"으로 향하는 문이다.
그녀는 문 안에 있는 사람의 정체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곳을 향해, 고서를 향해 대답하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인질탈환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조금 조작을 가해놨다며 사과한다. 하지만 그건 전부 자신이 "자유"로워 지기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 마침내 감옥을 나서게 된 고서. 그러나 메라스큐라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더이상 소리지르고 화낼 수도 없다. 고서의 손이 닿는 순간 몸의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고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만나는건 처음일 거라며 다시금 자신을 소개한다.
* 진짜 고서의 움직임은 할리퀸, 디안느와 대치하고 있는 "가짜" 고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할리퀸 입장에선 고서가 갑자기 아무 것도 없는 데다 대로 혼자 떠드는 걸로 보였다. 그건 은총의 빛 쪽에서 메라스큐라를 상대로 말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메라스큐라같은 광신자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마신왕에게 "무욕"의 계금을 받고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혔다. "자유"를 빼앗기고 자신이 만든 인형 "고서"를 통해 바깥과 소통해야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인형 고서의 입을 통해 할리퀸과 디안느에게도 전달된다. 할리퀸은 이제야 자신이 아는 "고서"가 어떤 존재인지, 진짜 고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장익 (1933년) . . . . 27회 일치
{{가톨릭 성직자 정보
| 접미어 = 십자가의 요한
| 전임자 = 박 Thomas Stewart, S.S.C.
| 후임자 = [[김운회]] [[루카]]
| 반대자 =
| 사제서품자 =
| 주교서품자 =
| 배우자 =
<!---------- 성인자격 ---------->
| 시복자 =
| 시성자 =
'''장익'''(張益, [[1933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자 시민사회단체인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이며, 세례명은 십자가의 요한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신부 등을 거쳐 [[천주교 춘천교구]]장과 [[천주교 함흥교구]]장 [[서리]] 그리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을 지낸 운석 [[장면]](張勉)의 넷째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이다.
[[1963년]] 3월에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신부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는 사목보다는 학자로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1967년]]에 서울대교구장 비서로써 교구장을 보좌했으며 [[1968년]]에는 [[김수환]] [[대주교]]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하여 그의 비서신부가 되었다.<ref name="회화1">[http://www.kwnews.co.kr/view.asp?aid=209021900127&s=601 장익·지학순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ref> [[1968년]]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선출되자 당시 비서였던 장익 신부에게 소식을 처음 전하였다 한다.<ref name="회화1"/> [[1970년]]에 서울대교구 정릉성당 주임신부로 활동하였다.
* [[1978년]]부터 [[1985년]]까지 그는 [[교황청]] 종교평화평의회 자문위원과 비그리스도교평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활동을 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친분이 두터웠다.
* [[1983년]] [[9월]] [[김동한 (1919년)|김동한]] 신부가 선종하자 [[로마]] [[바티칸]]에 체류중인 김수환 추기경을 직접 찾아가 형님 신부의 임종을 전하기도 했다.<ref name="회화1"/>
* [[1986년]]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 실장과 [[1988년]] 서울대교구 세종로 성당 주임을 거쳐 [[1990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여 계속 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93년]] 춘천교구 Thomas Stewart(박 토마스)주교가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 직에서 사임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익 신부를 제 6대 천주교 춘천교구장으로 임명하면서 [[주교]]로 서품하였다. [[12월 29일]] 주교로 서품받았다.
** 여동생 : 장명자 (張明子, 데레사, [[1941년]] [[10월 3일]] ~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빌라노바대학교]] 도서관학 석사)
|전임자=[[박 토마스]]
|후임자=[[김운회]] (루카)
- 정다정 . . . . 27회 일치
[[부산외국어고등학교|부산외고]] 재학 중 한국의 입시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고교 졸업 후 2011년 귀국하였다. 2011년 9월경 블로그에 올린 그림, 레시피가 [[네이버]] [[웹툰]] 관계자의 눈에 띄어, 같은 해 네이버에 웹툰 《[[역전! 야매요리]]》를 연재하며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닭떡된 닭튀김? 괜찮아요 ‘야매요리’니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802/48267162/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 = 신나리|쪽 = |날짜 = 2012-08-02|확인날짜 = 2012-10-27}}</ref> 가족관계로는 부모님과 정다정보다 5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이광낙(<small>인터넷 아이디:</small> Lv7.벌레)은 2012년 9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24인용 군용 텐트 혼자 치기(T24 소셜 페스티벌 또는 T24 행사)를 성공시켜 화제가 된 인물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혼자서 24인용 군용텐트 칠수 있을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910/49262459/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1 = 박상훈 | 저자2 = 김진우 | 저자3 = 윤상호|쪽 = |날짜 = 2012-09-10|확인날짜 = 2012-10-27}}</ref> 그는 당시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SLR클럽]]에서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자 “되는데요”라고 답글을 단 바 있는데, 이 말은 그가 텐트를 실제로 혼자 칠 수 있음을 보이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ref>{{뉴스 인용 |제목 = 유행어가 되리 시즌 2 - 제 14장│되는데요. .|url =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a_id=2012091021072828319|출판사 = 10asia|저자 = 최지은|쪽 = |날짜 = 2012-09-11|확인날짜 = 2012-10-27}}</ref>
한편, 정다정은 [[10월 13일]] 자신의 웹툰 《[[역전! 야매요리]]》에서 ‘되는데요’라는 이광낙의 유행어를 사용했다. 이에 이광낙은 행사전 그림을 그려달라는 자신의 요청 [[전자 우편|메일]]을 무시했다고 정다정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고,<ref name=xports>{{뉴스 인용 |제목 = 군용텐트 이광낙-웹툰작가 정다정 '신경전 벌여'|url =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64187|출판사 = 엑스포츠뉴스|저자 = 온라인뉴스팀|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8}}</ref> 그녀의 [[트위터]]에 “T24 행사 전 도움의 손길은 뿌리치고 이제 와서 되는데요? 어찌됐든 재미있는 웹툰 야매요리”라고 글을 남겼다. 정다정은 “벌레님. 행사 전 메일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까 답장 메일로 설명 드렸지만요”라고 답하였고, “그런 요청을 받았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려 드렸을 거고 일정이 바빴다면 죄송하다는 답장을 꼭 보냈겠죠. 확인되지도 않은 얘기를 트위터에 올린 건 좀 너무하신 것 같아요. 여하튼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ref name=chosun>{{뉴스 인용 |제목 = '역전! 야매요리' 정다정, '24인용 군용텐트 혼자 치기' 이광낙|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4/2012101400580.html|출판사 = 조선닷컴|저자 = |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야매요리’ 정다정 VS ‘벌레’ 이광낙, 왜 설전 벌어졌나?|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6530140&cp=nv|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쿠키뉴스팀|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
하지만 이후 한 누리꾼이 남긴 “야매요리 만화는 몇 번 봤는데 작가 사진은 이번 일로 처음 봤다. 예쁘다. 내 눈이 낮은 건가”라는 글에 이광낙이 “네, 눈 낮으심”이라고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답글을 달면서 재차 문제가 되었고, 정다정은 트위터에 “사람 외모 갖고 까는 게 제일 졸렬한 거다”라고 글을 남겼다. 결국 이광낙은 “정작가님, 비하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용히 살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SLR클럽과 트위터에서 탈퇴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정다정 이광낙 유행어 설전…외모비하 논란으로 번져 파국|url = 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014050013|출판사 = 서울신문 Boom|저자 =Boom뉴스팀 |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정다정 이광낙 설전, 외모비하 발언까지 '술렁'|url = http://stylem.mt.co.kr/styview.php?no=2012101414111102232&type=1|출판사 = 머니투데이 스타일M|저자 = 마아라|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
2012년 10월 18일 만화가 [[미티]]는 [[네이버]]의 [[응용 소프트웨어|앱]] 홍보용 릴레이 웹툰 ‘앱피소드(Appisode)’에 정다정의 웹툰 《[[역전! 야매요리]]》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정다정의 분신인 ‘야매 토끼’를 등장시켰다. 미티의 이 웹툰에서 야매 토끼는 “이 남자 갖고 싶다”라는 대사와 함께 다리를 벌린 채 점액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를 누리꾼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해석해 성희롱 논란이 일어났다.하지만 미티작가는 그런 의도로 그린것이 아니라며 그날 바로 문제의 장면을 수정하여 다시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 네이버 웹툰 작가 저질 '성희롱' 만화 올려|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8/2012101802044.html|출판사 = 조선닷컴|저자 = |쪽 = |날짜 = 2012-10-18|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정다정-미티 성희롱 논란|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6555961&cp=nv|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쿠키뉴스팀|쪽 = |날짜 = 2012-10-23|확인날짜 = 2012-10-27}}</ref>
- 조재윤 . . . . 27회 일치
| 배우자 = 조은애
2003년 영화 《[[영어완전정복]]》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후, 2010년 《[[아저씨 (영화)|아저씨]]》, 2013년 《[[7번방의 선물]]》, 2013년 《[[용의자 (영화)|용의자]]》, 2015년 《[[내부자들]]》, 2016년 《[[그날의 분위기]]》, 2017년 《[[프리즌]]》, 《[[시간위의 집]]》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개성 있는 연기로 존재감을 선보이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았다.<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12&aid=0002903680 코믹 혹은 악역? '시간위의 집' 신강탈러 조재윤의 새 얼굴] 헤럴드POP. 2017년 03월 20일</ref>
* 2011년 [[MBC]]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 2012년 [[SBS]] 《[[추적자 THE CHASER]]》 - 박용식 역
* 2013년 [[SBS]] 《[[주군의 태양]]》 - 죽은 여자친구 귀신을 떼어내달라고 부탁하는 의뢰인 역
* 2016년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
* 2017년 [[OCN (방송)|OCN]] 《[[블랙 (드라마)|블랙]]》 - 저승사자 No.007 역
* 2018년 [[OCN (방송)|OCN]] 《[[플레이어 (드라마)|플레이어]]》 - 신기자 역 (특별출연)
* 2013년 《[[용의자 (영화)|용의자]]》 ... 조 대위 역
* 2015년 《[[내부자들]]》 ... 방 계장 역
* 2017년 《[[살인자의 기억법]]》 ... 의사 역
* 2015년 《벽을 뚫는 남자》 - 듀블, 변호사, 형무소장, 경찰 역
|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 [[추적자 THE CHASER]]
| 남자 우수연기상
| 남자 조연상
| 남자 조연상
| 남자 조연상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군포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 조진호 (축구인) . . . . 27회 일치
|로마자 표기=Cho Jin-Ho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2001년]] [[성남 FC|성남 일화]]로 이적했지만, 2년간 27경기 2골 1어시스트에 그쳤으며,우측 무릎 전방 십자인대 부상 재발로 [[2002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 지도자 ===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K리그 클래식]]에서의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안영규]], [[정석민]], [[임창우]] 등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져나가는 등 악재를 겪었고 시즌 개막 후 11라운드까지 1승을 거두는데 그치자 계약조건을 토대로 사임, 사실상 경질되었다.<ref> [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5/sp2015052110281493650.htm/ 대전 조진호 감독, 성적부진으로 사의 표명] </ref>
그뒤 독일에서 지도자연수를 받은뒤,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ref>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43&aid=0000055866?? 상주, 신임 사령탑에 조진호 전 대전 감독 선임] </ref>2016시즌 상주를 최초로 리그 상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64222/ 조진호 감독, “첫 상위 스플릿 진출 선수들에게 고맙다”] </ref> 이는 [[박항서]]도 하지 못한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상위 스플릿으로 확정지은 것이다.
[[11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정협]]을 비롯한 공격 자원을 앞세워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FA컵 2016|FA컵]]에서는 [[FC 서울]]과 [[전남 드래곤즈]] 등의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진출하였지만,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전에서 패하면서 사실상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10월 10일]] 당일 [[스위스]] 베른 주 빌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시작 전 선수들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모든 K리그 경기에서도 추모 묵념을 진행했으며, [[10월 14일]] [[수원 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에서는 부산 측 원정 서포터석에 조진호 감독의 사진을 걸었며, 이 날 [[이정협 (축구 선수)|이정협]]은 패널티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뒤 조진호 감독의 사진 앞에 달려가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10월 15일]] [[대전 시티즌]]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대전 홈팬들이 조진호 감독이 대전을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시켰던 2014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경기 시작 후 14분 동안 응원을 하지 않으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한편 이번 조진호 감독의 사망을 통해 감독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재조명받으며 감독이라는 자리가 선수들보다 더 힘든 직업인지를 깨우쳐 주고 선수들과는 달리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개선과, 건강검진 의무화 및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리그는 2018년부터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의 건강검진을 의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조진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무릎을 꿇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등의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격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에는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평소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친정팀인 대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도 하였다.
|전임자 = {{국기그림|브라질}}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
|후임자 = {{국기그림|KOR}} [[박경훈]]
|전임자 = {{국기그림|KOR}} [[김인완]]
|후임자 = {{국기그림|CAN}} [[마이클 김]] (대행)
|전임자 = [[박항서]]
|후임자 = [[김태완 (축구인)|김태완]]
|전임자 = [[최영준 (1965년)|최영준]]
- 최공웅 . . . . 27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1966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1969년 까지 재직하다가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 전보되어 1971년 까지 재직하였다. 1971년에 다시 서울민사지방법원으로 돌아와서 1975년 까지 근무하다가 1975년과 1976년에 [[춘천지방법원]]에서 합의부 재판장을 하였다. 1977년부터 1980년 까지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치는 동안 1974년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비교법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8년에 Hague Academy of International Law에서 국제국제사법 과정을 연수했다. 특히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에서 국제사법 연수를 받고 저서 <국제 소송>은 국제사법 분야에서 바이블로 통한다.<ref>동아일보 1995년 11월 21일자</ref>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남영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반공법]]위반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상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2000년 ~ 2003년: [[경찰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한국일보 총선보도자문위원회 위원장, 법무부 섭외사법개정 분과의원, 이화여대 겸임교수 (지적재산권,국제사법 담당), 일본 오사카대학 비상근강사 (아시아법 담당)
* 2000년 ~ 2007년: 한국국제사법학회 회장, [[대한상사중재원]] 이사·중재인, [[엠네스티]] 법률가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가족보건복지협회 이사, 무역중재인포럼 대표, 아시아변리사회(APPA) 한국협회 고문, 대한변리사회 회장단 자문위원, 인터넷주소 분쟁위원회 고문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8부에서 배석판사로 재직하던 1969년 11월 3일에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법학 박사인 박노수(37세) 피고인과 전 국회의원 [[김규남]](40세), 사진업을 하는 임문준(30세)에게 [[국가보안법]], [[반공법]], [[형법]] 간첩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형이 구형된 여관업을 하는 김희병(48세)에게 무기징역, 박노수의 처인 전명희(28세) 등 14명에게 징역7년~징역1년과 같은 형량의 자격정지를 병과하면서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1103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9-11-03&officeId=00020&pageNo=1&printNo=14790&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69년 11월 3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재판장으로 재직할 때 법정 모욕으로 기소된 [[강신옥]] 피고인에 대해 자유로운 변론의 권리를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5년 11월 21일자</ref>
* 대구지방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6월 11일에 가짜 중등교사 자격증을 갖고 교직 생활을 했던 10명의 피고인들에게 뇌물공여, 공문서 위조와 동행사죄로 각각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6월 12일자</ref>
* 대구지방법원 민사합의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1월 29일에 [[영남대학교]]를 상대로 불합격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1.5cm 짧다는 이유만으로 커트라인보다 24점이나 더 받은 학생을 불합격한 것은 공정성과 합리성에 어긋난다"며 "1980년도 약학 대학 신입생 선발 불합격 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1290032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1-29&officeId=00032&pageNo=7&printNo=10871&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1년 1월 29일자]</ref>
*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5년 5월 18일에 내연의 남편을 살해하여 1심에서 징역12년이 선고된 신압찻집 여주인에 대해 "범인으로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정황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5년 5월 18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2월 5일에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유세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기도하고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1971년 7월 26일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 "재판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2월 5일자</ref> 3월 4일에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법정모욕 등으로 1,2심 군법회의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이 선고됐다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미 폐지된 [[긴급조치]] 면소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파기환송된 [[강신옥]]에게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자유로운 방어권 행사없이 형식적인 변론만 인정한다면 사법권읜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며 "공개재판에서 변론은 재판 방해를 하려는 폭력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040032921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3-0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05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3월 4일자]</ref> 5월 27일에 내란 예비죄 피고인인 [[박형규]] 목사에게 "10여명의 선동만으로 국가 전복을 우려한다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다"며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2700329211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5-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12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5월 27일자]</ref> 5월 31일에 1974년 세검정 동굴에서 북한방송을 듣고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 대해 "똑똑한 학생이 왜 나쁜 짓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선고받은 박규신 피고인에게 대법원에서 파기된지 13년만에 반공법위반 무죄, 긴급조치 위반은 면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3100289107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31&officeId=00028&pageNo=7&printNo=14&publishType=00010 한겨레 1988년 5월 31일자]</ref>
- 페어리 테일/508화 . . . . 27회 일치
* 유키노 아그리아와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페어리 로의 빛을 봤는데, 바로 근처에서 또다시 강렬한 빛이 발생하는걸 발견한다.
* 이 마법은 상대의 쾌감을 증폭시켜 승천하게 만드는 마법. 그런데 당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쾌락을 아는 자" 뿐이다?
* 오시리스 세이스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처리한 오거스트, 엘자 스칼렛과 대치하던 아이린도 이 마법을 감지하고 곤란해한다.
* 상처투성이가 된 로그 체니와 미네르바 올랜드. 블러드맨과 윌이 쓰러져 있다. 미네르바는 해치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들이 쓰러뜨린 건지 술자(나인하르트)가 쓰러져서 사라지는 건지는 불분명. 상태로 봐선 후자에 가까운 듯 하다.
* 유키노 아그리아,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페어리 로로 인해서 적들이 분쇄됐다. 프로시와 렉터도 갑자기 적들이 쓰러졌다고 좋아한다. 유키노도 로그처럼 페어리 로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적들이 사라졌다고 한숨 돌린다. 소라노는 아직도 언니라 불릴 때마다 "언니가 아니다"라고 무의미한 부정을 하는 상태.--만담이냐-- 이들은 언덕 아래 쓰러진 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절벽 위에서 "화려한 마법을 사용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 어떤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는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고개를 못 들겠다"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바로 라케이드 드래그닐. 유키노는 그가 스프리건 12의 일원임을 알아보지만 어딘지 다른 12와 다른 신성함이 느껴진다. 그는 전장에 있는 적 전원을 상대로 어떤 마법을 발동하는데,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고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 페어리 로처럼 전장을 가득 채우는 빛. 그런데 이 빛이 휩쓸고 지나가자 소라노가 격렬하게 몸을 떨더니 쓰러져 버린다. 같이 있던 유키노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는데.
* 페어리 테일도 하나둘 영향을 받으며 쓰러지는데 렉서스 드레아 조차도 견디지 못한다.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어른들만 걸리는 마법인가 생각하지만 모든 어른이 다 걸리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 자신도 영향을 받는다. 메이비스는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하며 쓰러지는데. 지금까지 무적의 포스를 자랑하던 길다트 클라이브 조차도 갑자기 쓰러져서 딸 카나 알베로나가 걱정하는데... 왠지 승천할 것 같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한 대 맞는다.--가정폭력의 현장--
* 아이린이 엘자 스칼렛 일행과 대치하고 있는 현장. "나는 너, 너는 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바로 그 직후에 라케이드의 마법이 덮치면서 아이린의 상태가 안 좋아진다. 홍조를 띄우며 빈틈을 보이자 엘자는 바로 나츠 일행을 대피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아이린과 싸우려 한다. 아이린은 당황하며 마법을 사용하는데 웬디 마벨이 막으며 엘자를 돕겠다고 한다. 아이린은 웬디의 마법이 부가술이라는걸 간파하는데, 그보다는 엘자 측에서 단 한 사람도 라케이드의 마법에 걸리질 않았다고 다들 "꼬맹이"라고 짜증낸다.
* 라케이드가 밝히는 자신의 마법은 바로 "쾌락". 쾌락을 깨우친 자는 그의 마법을 거역할 수 없다. 쾌락을 계속 부여해서 결국 승천시켜 죽이는 어찌보면 행복한 마법. 영향을 받지 않았던 유키노는 성령마법을 발동하며 라케이드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가 한 발 빨랐다. 라케이드의 손짓에 따라 촉수 같은 것이 나타나 유키노를 휘감는데, 강제로 쾌락을 주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을 받지 않던 유키노도 쾌락에 빠져 상태가 안 좋아진다. 함께 묶인 프록시, 렉터도 마찬가지. 라케이드는 지와 무지는 "백과 흑"이라며 "쾌락과 고통"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라케이드의 마법의 발동 조건은 누가 봐도 "그거"지만 소년지의 한계상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독자들은 음란마귀가 잔뜩 껴서 그거 말고 다른 예측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 아무튼 이번 화 때문에 메이비스까지 비처녀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보기에만 저렇지 사실 마카로프보다 할머니--
제레프는 아이린이 유니버스 원을 발동했을 때도 당황했을 뿐인데 라케이드의 마법에 진짜로 괴로워하는 걸로 나와서 END보다 이쪽이 훨씬 효과적인거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그 길다트 조차 저항을 못하고 당한 마법은 이게 처음. 오거스트는 당한거 같긴 한데 동요하는 것 같진 않아 진 대마법사설이 나오고 있다. 아이린은 역시나 걸리는데 꽤 괴로워하는 걸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엘자나 웬디가 안 걸리는걸 보고 "꼬맹이들"이라고 하는걸로 봐서는 역시 이 마법은...
라케이드가 제레프를 "아버지"라고 폭로해버렸는데 이쪽도 "논란이 많을 테지만 중요한 에피소드"에 부합하는 부분. 우선 제레프 본인의 친자라는 의미인지, 단지 그 자신도 제레프 서의 악마라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른 제레프 서의 악마들이 직접적으로 아버지란 호칭을 쓰지는 않는 점, 그리고 제레프 본인이 라케이드의 마법에 격하게 반응한 점을 들어 전자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은데 그렇다면 과연 어머니는 누가될지도 관심거리.
유키노 자매와 동행하고 있던 엘프먼이 보이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27회 일치
* 오거스트는 자신의 몸이 쇠하는 한이 있어도 [[제레프 드래그닐]]의 적을 없애겠다는 각오로 고대의 광범위한 섬멸마법 "아르스 마기아"를 시전한다.
* 오거스트는 무슨 일이 생겨도 카나만은 지키려는 길다트의 노력을 보고 새삼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 대해 곱씹는데, 그때 마침 근처에 있던 메이비스를 발견한다.
* 제레프는 [[라케이드 드래그닐]]을 없애버리고 자신은 가족도 행복도 허락되지 않은 존재라며 자학적인 말을 늘어놓는다.
* 나츠는 허락 이전에 스스로 만들 생각을 하라고 일갈하며 "아주 조금 있던 인연도 여기까지"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형이라 부른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자신의 아버지, 아니 아버지라 믿었던 [[제레프 드래그닐]]에게 당해 죽어가면서도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애정을 갈구한다. 그러나 제레프는 그가 자신이 적은 책이며 거기서 나온 악마일 뿐이라며 라케이드를 깨끗하게 소멸시킨다.
[[나츠 드래그닐]]은 자신의 동료 조차 미련없이 지워버리는 제레프의 행동을 보고 치를 떤다. 제레프는 이런건 동료도 자신의 아이도 아니라고 말하는데 분노한 나츠의 주먹이 날아온다. 제레프를 날려버리며 나츠가 말한다.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가 있을리 없으니까.
오거스트는 자신이 선천적으로 강대한 마력을 타고난 탓에 버려지고 소외 받았으며 살아갈 길 조차 막혔는데 그때 자신을 구해준 것이 제레프라고 말한다.
오거스트가 방대한 마력을 전개하며 떠오르자 길다트와 카나가 무서운 열기에 삼켜진다. 대지가 무너지고 오거스트 자신의 말처럼 마법의 범위가 매그놀리아를 삼시간에 집어삼키고 피오레 전토로 뻗어나간다.
* 오거스트는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피오레 왕국을 멸해버린 작정이다. 하지만 길다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카나만은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자 잠시 의지가 흔들린다. 그는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처리하면서 "폐하에겐 아이가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잠시 곱씹는다.
문득 그의 시선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끝에, 때마침 오거스트를 쳐다보고 있던 메이비스가 있다. 엄청난 세월을 건너 눈이 마주친 모자.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건 오거스트 자신 뿐이다. 어머니를 알아본 오거스트의 눈빛이 흔들리고, 급기야 눈물 같은 한 줄기가 마력의 흐름을 따라 허공으로 올라간다.
* 공간을 태워버릴 것 같았던 마력이 갑자기 사라진다. 아르스 마기아가 멈춘 것이다. 방금 그것이 자신의 아이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메이비스. 마력이 부족했거나 길다트 덕분에 실패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녀는 다시 길드를 향해,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과 합류하러 달려간다.
오거스트의 몸은 홀로 재처럼 불타 흩어지고 있다. 그는 형체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메이비스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사라진다. 카나는 마법이 멈추고 오거스트가 사라진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힘을 전부 다 써서 사라지는 거냐고 말하자 길다트는 그것과 좀 다르다고 말한다.
페어리 테일의 길드원 대부분은 마을 남방 쪽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적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고 루시 일행과 접촉한 것은 어떤 물건 때문이었다. 그녀가 제레프에게 도망칠 때 가까스로 손에 넣은 물건이었다.
메이비스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츠의 진실을 아는 것도 추측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츠는 반드시 제레프를 이길 것이고 제레프는 자신의 손으로 없앨 거라고 예견한다. 그리고 그때가 됐을 때 나츠를 구할 수 있는건 여기 있는 세 사람, 동료들의 힘이다.
* 페어리 테일 길드. 나츠의 공격으로 쓰러졌던 제레프가 몸을 일으킨다. 그는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가 있을리 없다"는 나츠의 말에 대꾸한다.
그러나 그는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저주받은 몸이다. 결국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희망을 걸었던 메이비스도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자신은 가족을 가지는 것도 행복해지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인간이라고 자학한다. 그 말을 듣던 나츠가 제레프의 멱살을 쥐면서 외친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27회 일치
>블라드가 돌아왔지만 러시아 갱단을 위해 일하던 점주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블라드가 충성스럽지 않은 동포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자.
경찰에게 잡혔던 블라드가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났지만, 블라드의 세력권에 들어온 점주들은 블라드에게 복종하지 않는 상황. 블라드는 복종하지 않는 점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네곳의 가게에서는 몇번의 강도가 발생했던 반면, 이웃 가게에서는 강도가 발생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계산대를 털고 빠르게 도주하는 히트 앤 런 방식을 사용하였다.
>블라드가 자신을 밀고한 놈의 결혼식을 망치려한다. 도와주자.
>블라드는 스톤으로부터 보호비를 받길 바란다. 블라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당신이 스톤이 경영하는 쇼핑몰을 파괴하길 원한다.
* 1층 도자기 가게의 도자기
* 2층 자동차 가게의 자동차. 창문과 사이드미러를 깰 수 있다.
금고가 들어있는 컨테이너를 발견하고 나면 금고를 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베인은 금고 내 기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금고가 긴급 개방된다는 점을 이용해 금고를 열려고 한다. 창고 곳곳에서 크로우바를 주워 금고 환풍기에 쑤셔박자. 환풍기 하나만 쑤셔박아도 금고 내 기온이 일정히 오르지만 턱없이 느린 속도로 오르므로 크로우바 세개를 전부 쑤셔박는일이 많다. 또한 크로우바는 창고 내 상자를 따고 추가 전리품을 얻는데 사용할 수도 있으니 추가 전리품을 충분히 얻었다 싶을 때 금고에 쑤셔박자.
금고가 긴급 개방되면 금고 안의 케이스를 열고 핵탄두를 꺼내자. 베인은 블라드가 가져오라고 한 물건이 핵탄두였다는 것을 알고 기겁한다. 이제 핵탄두를 확보해야 하는데,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매우 먼 데다가 핵탄두는 겁나게 무거워서 걸어서 옮기는건 미친 짓에 가깝다. 전리품 세개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는 지게차나 전리품 네개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고 빠르기까지 한 롱펠로(머슬카)를 이용하자. 가는 길은 SWAT 저격수와 난간과 컨테이너 위에 올라간 경찰들, SWAT 터렛이 기다리고 있으니 주의하자. 할당량 만큼의 핵탄두를 옮긴 후 탈출하면 클리어.
"내가 노숙자일지도 모르지만, 짜증나는 단검은 가지고 있잖아"-특정 노숙자를 제압하고 단검을 강탈
블라드의 매형이 코카인 운송 도중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블라드의 매형은 쇼핑몰 창고로 도망쳐 아무 상자에나 코카인을 숨긴 후 산타옷을 훔쳐 산타로 위장했지만 잡히고 말았다. 이에 블라드는 베인에게 블라드의 매형과 코카인의 확보를 의뢰한다.
블라드의 매형은 쇼핑물 1층 중앙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묶여있다. 블라드의 매형을 두고 대화를 나누던 경찰들을 처리하고 매형을 풀어준 다음, 죽빵을 한방 먹여 어디다가 코카인을 숨겼는지를 말하게 해야 한다. 이후 코카인을 숨긴 상자에 따라 해당 물품이 진열된 상자를 털어 크리스마스 트리에다가 던져 넣는 일을 세번 하면 된다.
* 목걸이 상자 - 보석상: 먼저 2층 보석상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한다. 페이데이 갱이 쳐들어온 시점부터 셔터를 내려버리는데, 오른쪽으로 돌아가 보이는 철문을 따고 들어가면 된다. 이후 컴퓨터를 해킹해 진열장 비밀번호를 알아 낸 다음 진열장 문을 열어 목걸이 상자를 확보하면 클리어.
* 비싼 와인 - 와인 가게: 와인 가게의 상자를 열다 보면 나온다.
* 양철 소년 장난감 - 장난감 가게: 두가지 경우가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장난감 가게 내 상자들을 열어 확보하면 되지만, 일정 확률이 모든 장난감이 팔린 경우가 나온다. 이 경우에는 쇼핑몰 곳곳에 쇼핑백을 열고 장난감 상자를 꺼내야 한다.
이중 세개를 완수하면 블라드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마음에 든다면서 이걸로 탈출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옥상에 올라가서 조명탄을 터뜨린 후 기다리면 바일이 C4를 공수해 온다. C4로 트리 윗쪽 천장의 채광창을 폭파시킨 후, 헬리콥터에 트리를 연결한 후 그곳을 통해 산타와 함께 탈출하면 클리어.
- 하수빈 . . . . 27회 일치
| 직업 = [[가수]] <br> [[작사가]] <br> [[작곡가]] <br> [[음반 프로듀서]] <br> [[건축]][[디자이너]] <br> [[경영|경영인]] <br>
'''하수빈'''(河琇彬, '''Lisa Ha''', [[1973년]] [[5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해외[[건축]]디자인, [[경영]]인이다.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계성여자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를 나왔다. 1992년, ''Lisa in Love''( 리사 인 러브 )로 19세에 데뷔하여 청순 가련형의 대명사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은 음악 프로듀서, 조형미술, 해외건축 디자인, 패션 컬렉션, 문학 등 다채로운 예술 장르에서 그 역량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천부적으로 섬세한 감성은 그녀를 다시 음악으로 선회하게 만들었고, 다시 음악적 창작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었다. 무에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음악가에게도 가장 순수한 세계어는 바로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어느덧 그녀는 음악, 문학, 건축, 디자인, 사진 등 종합예술의 세계로 좀 더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고있다.
* [[La Stella Entertainment]] 대표경영자
• 예민, Tommy Page, 심상원, 김형석 등의 뮤지션이 참여된 하수빈의 데뷰 앨범으로, 데뷰곡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예민의 발라드곡〈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곡〈NoNoNoNoNo〉, Tommy Page의 곡 〈I'm Falling In Love〉이다. I'm Falling In Love은 하수빈이 17세에 미국 POP Singersongwriter 토미페이지 Tommy Page로부터 아시아 스타 첫 예로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Lisa:리사> 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특히 발라드〈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은 하수빈이 17세에 만든 자작곡으로 정규앨범에 실은 첫 타이틀이다.
• 유정연, 윤상, 김형석, 예민 등의 뮤지션등이 참여된 Naturalism 유럽 팝 스타일의 음악들로 구성된 앨범이다. 해외 로케 뮤직비디오 및 영상집이 수록 되었고 대표곡은〈그대 나를 떠나가나요〉,〈처음 사랑 이야기〉,〈나〉가 있다. 앨범 대부분곡의 작사를 담당, 새로운 가요적 음악 구성요소를 취한 왈츠곡〈마지막 소녀기〉는 하수빈의 10대 소녀기를 회고하며 만든 자작곡으로, 곧 20세를 맞는 축하의미로 발표되었다.
그녀는 전 곡을 직접 프로듀스, 작곡, 작사, 연주해 '''싱어송라이터'''로의 역량을 완벽히 표현하고 있으며,특히 스티비 원더의 기타리스트이자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마돈나 등 수없이 많은 세계적 뮤지션들의 명반에 연주 기록이 있는 '''미국 기타리스트 모리스 오코너 <big>Morris O`Connor</big> 가 그녀의 새 음악에 참여됨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애틋한 그리움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 헌정음악으로, 물리적 거리, 시간과 공간, 삶의 방식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음악적 환경 속에서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한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내면적 깊은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그 감성과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의 결을 찾고 추구했으며 회화적인 사운드로 채색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위대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The Persistence of Memory'''와 동명 타이틀을 취한 이번 앨범은 그의 회화, 전위적 예술이 그녀의 음악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원대한 바다... 마치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바다, 별, 태양, 바람, 비, 구름, 중력, 꽃, 숲, 호수, 파도, 피아노... 이 모든 것을 추억이라는 모태로 형상화 했으며, 자연 그 생태와 환경에 근접한 감상들을 아름다운 영상미학적 음향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감성적 문학 세계... 풍경화 같은 영상 속 자연이 주는 감동과 그녀의 오랜 여정을 담고 있는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발견의 선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지나온 90년대를 돌아보자면, 마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비너스처럼 청순가련형의 아름다움이 대중문화의 한 시기를 풍미, 많은 여성들의 하나의 상징적 이데올로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중예술 분야에서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성상을 그 어느 때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했던 시기였다. 노스텔지어... 원대한 바다...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별, 태양, 바람, 구름, 비, 중력... 우주의 경외감을 표현함으로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추구했다.
그녀의 내면적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마치 노르웨이 숲, 그 끝없는 광활함이나 눈이 시리도록 맑고 깨끗한 캐나다의 호수, 신비로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듯... 생명력을 품고 있는 자연의 신비스러움에서 많은 시적 영감을 얻었다. 영상미학적 Cinematic 한 내면적 성찰을 섬세한 문학적 언어로 조각함이 무척 인상적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어디엔가... 인위적 기계 문명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변화와 파괴를 강요받지 않은 자연과 함께 안식 할 수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곳의 그 신비로움을 음악언어로 노래하고 표현하며 그녀만의 세계로 나타냈다.
가끔 꿈을 잃은 상실감, 그 정서적 충만의 부재가 올 때, 다시 신비감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아름다운 천사의 시... 이제 음악, 건축 조형, 디자인, 문학... 에 이르기까지...
더욱 다양한 예술적 재능의 그녀를 확인할 수 있어 대중들은 더없이 반가움을 표현할 것이다. 프로듀서, 작곡 작사가, 해외건축디자인, 조형장식미술가, 패션경영인으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진양 하씨]]
- 하이큐/268화 . . . . 27회 일치
* [[네코마 고교]]가 [[사루카와 공고]]의 전략을 눈치챈 시점은 1세트 중반. 첫 번째 TO에서 [[코즈메 켄마]]는 자신을 이용한 유인책을 입안한다.
* 상대가 코즈메 자신을 무너뜨리는게 목적이라면, 역으로 자신에게 부하를 더 많이 거는 척하며 "흔들린 리시브"로 적을 속이자는 것.
* [[야쿠 모리스케]]는 코즈메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걸 우려했지만 코즈메는 일축하며 동료들 모두 "근성있는 실력자들"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 코즈메는 그런 것은 자신에겐 없는 거라고 믿지만 [[야마토 타케토라]]는 입으론 불평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코즈메 켄마의 근성론"을 믿고 있다.
* 마침내 네코마의 매치 포인트. 코즈메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기회가 주어지자 "자신에겐 있을리 없는 필살기", "근성"을 발휘해 최고의 세트업을 올린다.
* 1세트 중반. [[네코마 고교]]는 [[사루카와 공고]]의 부자연스러운 플레이를 눈치챘다. 첫 번째 TO는 그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것. 우선 정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적은 네코마의 뇌이자 심장인 [[코즈메 켄마]]를 지치게 만들 심산이었다. [[야마모토 타케토라]]가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는데 [[하이바 리에프]]가 이해하지 못했다. [[시바야마 유우키]]가 적당히 설명. 그래도 그의 머리로는 알기 어려운 얘기였다.
네코마타 감독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오랜동안 가르쳐온 원칙이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코즈메가 내놓은 또다른 책략은 그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 코즈메의 작전은 바보같은 리에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위험했다. 일부러 리시브를 흔든다. 전례가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코즈메는 유효한 국면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쿠는 코즈메의 의향이 그렇다면 따를 테지만, 이미 휘청거리는 상태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물론 코즈메는 매번 엔드라인까지 뛰어가기는 싫었다. 하지만 못 움직일 상태인 것도 아니고, 진짜 부담이 많아가는건 후위라고 했다.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져야 하는 데다 자신이 지정한 위치로 넘기기까지 해야 하니까.
>다들 근성 있는 실력자니까.
그는 주위를 환기시켰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잘 먹혀들고 있다. 코즈메가 진이 빠진 지경이 된건 변함없다. 상대는 전통의 강호 네코마. 어려운 적인게 확실하지만 비등한 상황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새삼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잡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 시시오 감독의 정론이 먹혀들었다.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루카와 진영을 곁눈질하며, 코즈메는 매우 성가셔했다.
여자친구 "미카"는 슬슬 배구 용어가 입에 붙어가고 있었다. 스코어는 24 대 24. 매치 포인트가 눈 앞. 미카는 아는 척을 하며 이게 "듀스"지 않냐고 말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다이쇼가 정신을 차리고 그렇다고 대답한다. 거기서 미카가 이어한 말은 꽤 의미심장했다.
양측 벤치에서는 해볼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시시오 감독은 사태를 관망하며 끝까지 자신의 책략과 선수들을 믿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단지 타마유키에게 워밍업을 시키며 교체할 시기를 고르고 있을 뿐이다.
야마모토의 일갈. 그때는 참 짜증났던 토라의 일침. 그때 코즈메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돌아봤다. 근성이 뭘까? 그런 의문이 들었었다. 그 단어는 막연히 싫었던 단어였고 세간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말이다. 그저 마음먹기에 따라 뭐든 할 수 있다는, 불분명한 정신론일 따름이다. 그런 견해가 최근에 와서야 바뀌었다. 그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근성을 보인다"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아마 그건 일종의 최종오의가 아닐까? 정신과 체력을 단련한 자가 모든 힘을 모아야 발휘되는 어떤 것.
* 그러나 거기서도 경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제 추격자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플레이는 변함이 없었다. 사루카와는 31 대 30까지 끈질기게 따라왔다. 코즈메는 짜증이 치밀었다. 야마모토는 첫 번째 TO때 코즈메가 "다들 근성있는 실력자"라고 말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자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겠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악도 깡도 없고 금방 요령 피울 방법만 궁리하니까.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네코마의 뇌이자 심장인 코즈메. 그리고 혈관이자 근육이자 모든 것인 동료들. 언제나 자신을 지탱해준 이들.
* 코즈메는 그날 시합에서 가장 완벽한 세트업을 했다. A패스가 들어올 때만 보여주던 극소 모션의 세트업.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필살기. 사루카와의 블록은 한 박자 늦었다. 공은 레프트로. 재주가 많은 후쿠나가에게.
- 하이큐/272화 . . . . 27회 일치
[[하이큐]] 272화. '''최강의 도전자'''
* [[사나타 사에코]]는 응원도 멈추고 [[이나리자키 고교]]의 4번, 오지로를 "시라토리자와 고교"의 "우시카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다 마코토]]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비슷하긴 해도 우시와카랑 다르게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서브로 공략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오지로를 상대로 제법 서브 에이스를 따기도 했다. 이는 오지로로서도 꽤 스트레스였을 테고, 저렇게 훨훨 나는 것 같아도 계속 어려운 공이 올라온 데다 블로킹도 성가시게 따라붙으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으리라 추측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 긴지마의 2회차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의 리시브로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업. 타나카는 좌측에서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 [[스나 린타로]]의 블로킹을 따돌리며 우측으로 꽂아넣는다. 네트에 바짝 붙은 스파이크. 한동안의 침채를 씻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1세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평. [[츠키시마 케이]]의 서브 순서에서 선수교체. 츠키시마가 빠지고 [[스가와라 코시]]가 투입된다.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 유]]가 빠지고 히나타가 진입. 스가와라는 실컷 두들겨 맞은 니시노야에게 "원수를 갚아준다"고 농담했지만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스가와라가 빠르게 투입된 이상 [[키노시타 히사시]]가 나갈 차롄 없겠다며 내심 아쉬워했으나 정작 키노시타는 머릿속으로 25 번째 서브 에이스를 따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투입 여부와 상관없이 준비는 완료.
>2 대 0으로 가자!
당연히 이나리자키의 싸늘한 시선이 꽂혀온다. 하지만 이것도 전날 우카이 코치가 지시한 내용이다. 오지로에게 계속 압박을 주라는 것. 블로킹이나 서브를 활용해야 한다. 서브 에이스를 내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건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 스가와라는 최대한 실행해볼 생각이다.
* 비록 자신이 코트에 있는건 10초, 혹은 20초 남짓이겠지만 단 5초라도 이나리자키를 열받게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각오로 스가와라의 1회차 서브. 역시 아슬아슬한 코스로 오지로를 노렸다. 네트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 오지로가 달려와서 받는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리시브하는 오지로. 리시브는 성공했지만 일어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공은 [[미야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미야 오사무]]에게 세트업. 우측의 스파이크를 히나타가 블록. 손에 받고 뒤로 튕겨나온 공을 스가와라가 잡아낸다. 공은 산 채로 카라스노 진영으로. [[아즈마네 아사히]]가 이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돌린다. 카게야마는 우측 네트 앞에서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오지로 쪽으로 밀어넣는다. 오지로는 이것도 받아내긴 했지만 역시 성가셔하는 느낌. 공은 이나리자키 좌측에서 높이 뜬다. 오지로가 신경질적으로 "레프트"라고 외치자 아츠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세트업이 조금 낮다. 그대로 오지로 뛰어올라 스파이크, 하지만 낮은 만큼 블록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아웃. 오지로나 아츠무에겐 가슴이 철렁한 플레이였다. 스코어는 20 대 9. 스가와라와 츠키시마가 다시 교대한다.
* [[오오미 타로]]는 오지로에게 "천천히 가자"고 지시한다. 이나리자키의 서브. [[스나 린타로]]와 교대해 1학년 서버 리세키가 투입된다. 이나리자키에선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엔 만년 벤치 신세에 딱 한 번 핀치 서버로 기용됐다가 서브 미스로 경기를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에선 강호 이나리자키에 들어온 건 좋으나 여전히 기회는 적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도 있다. 미스하면 본전도 없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일단 들어가는 서브"라는 안전빵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됐다. 우선 자군 벤치에서부터가 시들한 반응. 무난하게 아사히에게 떨어지는 것을 안전하게 리시브, 히나타의 스파이크로 이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리세키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면서 리시브까지 실패하고 만다. 간만에 손맛을 본 히나타가 기뻐날뛰려는데, 이나리자키 관중석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뻘쭘해진다.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자군 서버의 실수를 "볼보이는 안 불렀다"고 극언해가며 까대는 소리였다. 대부분 관중들은 딱히 실수한 것도 없는 자기편 선수를 디스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른바 "이나리자키 도깨비 응원단". 소심한 플레이를 인정사정없이 욕하는 묘한 기질이 있다. 사실 프로도 아닌 고교 선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외플레이. 적이라도 같은 서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마저 기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한 야유였다. 그리고 이 야유는 의외의 인물도 자극하는데, 바로 카게야마였다.
* 리세키는 선배들에게까지 "그러니까 승부해야 했다"라는 말을 듣고 주장 [[키타 신스케]]에겐 "우리팀에 들어가기만 하는 서브는 필요없다"며 잔뜩 쓴소리를 들은 채 돌아간다. 스코어는 20 대 11. 이번엔 카라스노의 서브. 카게야마의 차례다. 헌데 카게야마가 뭔가 달랐다. 서브 위치에 선 카게야마는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서브를 넣는다. 이나리자키의 손에 닿지도 않고 코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서브.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 코스와 스피드를 모두 갖춘 완벽한 서브였다.
* 모두가 깜짝 놀란 가운데, 히나타만은 조금 다르게 놀랬다. 서브 보다는 지금 카게야마의 상태. "카게야마 온화 모드" 발동이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히나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카게야마는 문자 그대로 온화한 상태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눈을 안 감는 속공에 성공했을 때, 츠키시마가 타점을 올렸을 때가 지금과 같은 온화 모드였다. 설명할게 많지만 히나타의 열등한 어휘력 때문인지 매우 애매한 설명이 되고 말았다.
>앞에 강자를 뒀을 때 발동하는 경우가 많다.
- 화완옹주 . . . . 27회 일치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년]] [[3월 9일]] ([[음력 1월 19일]]) ~ [[1808년]] [[5월]])는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이다. 이름은 용완(蓉婉)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조선의 제 22대 왕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후겸]]은 그녀의 양자이다.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동생이었으나 그의 정적이었고, [[조선 정조|정조]] 즉위 후, 옹주 작위를 박탈당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정씨의 처라는 뜻의 정처로 불렸다. 고종 때 가서야 복권되었다.
영조가 특히 총애하던 딸로, [[영조]]와 선희궁 [[영빈 이씨]]의 딸이다.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여동생이다.
[[1749년]](영조 25) [[7월 6일]] [[소론]]의 거두 [[정휘량]]의 조카이자 이조 판서와 [[의정부]][[우의정]]을 지낸 [[정우량]](鄭羽良)의 아들 [[정치달]]과 혼인하였다. 정우량은 [[우의정]]까지 지냈고,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정치달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자 시댁 일가의 아들인 [[정후겸]]을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친오빠 사도세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화완옹주는 사도세자의 비행과 실수를 그대로 부왕 영조에게 고해바쳤다. 인원왕후의 상 때 인원왕후전 나인이었던 빙애를 후궁으로 취한 뒤, 영조의 추궁이 있자 사도세자는 빙애를 화완옹주의 처소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빙애의 존재가 영조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정조 즉위 후 양자 정후겸이 세손시절부터 정조를 제거하려 하여, 그는 정후겸과 함께 이른바 "《명의록》의 의리"에 반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몰락하였다. 양자 정후겸은 사사당하고 그는 옹주의 호를 삭탈당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정치달의 처(정처)'라고 불리게 된다.
{{인용문|“병신년 이후 24년 동안 이 대궐에 와서 이 날을 지날 때마다 어느 것을 보든지 부모님을 추모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라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다. 병신년의 처분은 바로 선왕의 뜻을 밝힌 것이었고, 오늘 용서해 석방하려고 하는 것도 선왕의 뜻을 몸받아 하는 것이다. 만약 선조(先朝)의 성심(聖心)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 이때에 이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이 일에 대해 조정의 신하들도 반드시 알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니, 어찌 혹 다른 말이 있겠는가. 서울 집에 둔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진위 여부가 애매 모호한데 죄안(罪案)은 아직도 있기 때문에 오늘 반드시 사유(赦宥)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치달 처(鄭致達妻)의 죄명을 없애고 특별히 완전히 용서하여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펴는 방도로 삼겠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1권, 1799년(정조 23) 3월 4일}}
화완옹주는 영조의 여러 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영조는 옹주가 시집간 후에도 자주 그의 집에 거둥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89권, 112권 등. 영조가 해산을 앞둔 화완옹주의 집을 방문하거나, 환궁 도중에 옹주의 집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ref> 또한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한 정치달의 형 [[정원달]]에게도 많은 특혜를 하사하였으며<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1756년 10월 2일</ref>, [[1757년]](영조 33) 정치달이 세상을 떠나자 곡반을 하였고 이를 말리는 신하들을 파직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9권, 1757년 2월 15일</ref>
*** <sup>이복</sup> 오빠 : [[조선 진종|진종]] 행(眞宗 緈, 효장세자, 1719년 2월 15일~1728년 11월 16일)
*** 오빠 : [[조선 장조|장조의황제]] 선(莊祖懿皇帝 愃, 사도세자, 장헌세자, 1735년 1월 21일~1762년 윤5월 21일)
**** 조카 : [[의소세자|의소태자]] 정(懿昭太子 琔, 의소세손, 1750년~1752년)
***** 종손자 :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 - 조졸
*** 양자 : 정후겸(鄭厚謙, [[1749년]]~[[1776년]]) <ref>아들이 없어 친족의 아들 정후겸을 양자로 삼았다.</ref>
[[분류:1737년 태어남]][[분류:1808년 죽음]][[분류:조선의 옹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가족 살해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영조]][[분류:조선 정조]]
- That 70's show . . . . 26회 일치
키티, 레드, 에릭, 로리의 집. 왠지 에릭의 친구들은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 거린다. 하이드가 지하실에 세들어 살거나 재키나 페즈가 몰래 살기도 했다.--공유지의 비극--
오일 파동이라 어쩔 수 없이 연비가 많이 나가는 비스터 크루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도요타 자동차를 구입하고, 에릭에게 그동안 타던 비스타 크루저를 주게 된다.
레드는 이 기회에 제럴드 포드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려고 결심하지만, 마을 유지들 협의회에서는 레드에게 미리 할 질문을 정해주었다. 자동차 공장이 묻을 닫아가면서 거의 실직한 상태에 놓여있던 레드는 경제가 이 모양인데 이제는 자기 할 말도 못하게 하는거냐고 크게 상심한다.
에릭 일당은 막상 스트리킹 시위를 하기로 하자 경비가 생각보다 삼엄한 걸 보고 다들 겁을 먹고 그만두려 한다.
결국 선거 연설이 시작, 제럴드 포드는 유세장에 들어오면서 세 번이나 엎어진다(…). 레드는 지명을 받아 나와서 제럴드 포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지정된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말을 더듬게 된다.
8시즌에서는 교사가 되기 위한 장학금을 따내려고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등장하지 않는다. 에릭의 학자금으로 저축해놨던건 레드가 차량 머플러 가게를 차린다고 써버렸기 때문. 마지막 화에서만 겨우 재출연.
여주인공2.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미모에 자신감이 넘치고 [[공주병]]이 강하다. 도나와 친구, 켈소와 연인 관계라서 그룹에 끼어들었지만 사실 초반에는 아무도 재키를 좋아하진 않았다(…). 시즌이 갈수록 우정으로 그룹의 일원이 되어간다. 작중 내내 켈소, 하이드, 페즈를 오가다가 8시즌 최종화에서 페즈와 맺어진다.
에릭의 베프. 반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상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백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반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중간 시즌 쯤에서 재키와 사귀게 됐으나, 재키가 시카고로 떠나고 켈소와 얽히는 일이 생기면서 깨지고 만다. 하이드는 한동안 라스베가스에서 방황하다가 돌아오는데, 라스베가스의 스트리퍼 사만다가 하이드와 결혼했다면서 쫓아오면서 재키와 완전히 깨진다(…). 게다가 사만다는 나중 시즌에서 다른 남자하고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이 드러나서 또 헤어지게 되고, 8시즌에는 특별히 커플 라인이 없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반대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8시즌에서 에릭이 하차하면서 새로 들어온 인물. 하이드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 잘 생기고 매너 좋고 센스 좋은 쿨가이이며, 8시즌에서 도나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랜디가 이전에 다른 여자들과 엄청 많이 사귀었다는걸 알고 도나가 질겁하게 되고, 서서히 헤어지면서 8시즌 최종화에서 완저히 헤어지고 떠난다.--에릭과 마주쳐서 수라장이 벌어지는 전개가 되지 않아서 유감.--
에릭과 로리의 어머니. 요리와 가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주부이며,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알콜 중독]] 기미가 약간 있다. 정이 깊은 성격이라 지하실에서 어슬렁거리는 방황하는 청춘들(…)을 언제나 챙겨주고 있다. 에릭에게 과도하게 애정을 쏟아서 [[마마보이]] 스럽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본래 직업은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지만, 초반 시즌에서 폐업하는 단계가 되면서 한동안 무직이 되었으며 밥의 가게에서 일했던 적도 있다. 프라이스마트가 들어서자 관리직으로 취업했으나, 로리와 페즈가 결혼을 발표했던 충격으로 [[심장마비]](…)에 걸리면서 그만두게 된다. 이후 에릭의 학자금을 털어서(…) 자동차 머플러 가게를 차렸으나 그다지 잘 되지는 않았고, 대형 머플러 체인이 들어서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체인점에 항의하러 갔다가 거액의 돈을 받고 주차장으로 팔아버리고 대신 노후자금을 득템한다.
본래 마을에서 전자제품 상점 '바겐 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지만, 프라이스 마트가 들어서면서 폐업하게 된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발명품과 몇가지 사업에 성공하면서 다시 부자가 된다. 8시즌에서는 [[플로리다]]로 이주하고 낙시용품점을 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1시즌 초기 에피소드에만 언급되는 도나의 자매. 발레리는 시즌2 에피소드1 '에릭의 생일'에서, 티나는 시즌1 에피소드5 '에릭의 버거 아르바이트'에서 잠깐 등장한다. 발레리는 대사에서 언급만 됐다. 발레리는 도나보다 3살 위, 티나는 도나보다 3살이다.
그러나 초기 시즌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발레리와 티나는 등장이 없고, 언급도 전혀 되지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인 도나의 자매이고 한 번은 등장했음에도, '삭제'처리당해버린 비운의 캐릭터들(…).
- 경관 . . . . 26회 일치
진서 선제기에서 사마의가 [[공손연]]을 물리치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 나이 15세 이상의 남자 7천명을 [[학살]]하여 경관에 묻었다고 한다.
삼국지 등애전에 [[등애]]가 촉한을 평정하고, [[면죽]]에 가서, 대(臺)를 쌓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면죽에서 [[제갈첨]]이 크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촉한 병사의 시체가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특이한 점은 등애는 촉한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위나라의 사졸(士卒) 가운데 죽은 자들 역시 경관에 함께 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군 전사자를 이런 식으로 경관에 함께 묻는 것은 이례적이다. 등애가 왜 위나라 사졸의 시체들까지 함께 경관에 묻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설이 있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전공을 과도하게 자랑하려고 했다.'''
경관을 쌓은 목적이 전공을 자랑하려 했음으로 나오며, 게다가 면죽에 경관을 쌓은 기사 다음에 이어서, 등애는 자만하여 촉의 사대부들에게 말했다(艾深自矜伐,謂蜀士大夫曰)는 문장이 이어진다. 여기서 오한(吳漢)[* 후한 초 광무제 휘하의 장군. 촉에서 황제를 자칭하던 [[공손술]]을 물리치고, 성도에서 학살을 저질렀다.]을 언급하며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들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는 발언을 하고 자만하여 사대부들이 비웃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앞 뒤의 기사가 호응하여 이어진다면, "위군의 시신까지 한꺼번에 경관에 묻어버렸다."는 사실은 등애가 더욱 큰 경관을 만들어 자신의 전공을 과도하게 부풀리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게 된다. 열전의 문학성에 비추어보면, 등애의 자만을 보여 주는 일화로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서 선제기에서 사마의가 [[공손연]]을 물리치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 나이 15세 이상의 남자 7천명을 [[학살]]하여 경관에 묻었다고 한다.
삼국지 등애전에 [[등애]]가 촉한을 평정하고, [[면죽]]에 가서, 대(臺)를 쌓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면죽에서 [[제갈첨]]이 크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촉한 병사의 시체가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특이한 점은 등애는 촉한의 병사들 뿐만 아니라, 위나라의 사졸(士卒) 가운데 죽은 자들 역시 경관에 함께 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군 전사자를 이런 식으로 경관에 함께 묻는 것은 이례적이다. 등애가 왜 위나라 사졸의 시체들까지 함께 경관에 묻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가설이 있다.
적과 아군의 시체를 함께 매장해서 통일성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가설이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종의 현대적인 '전사자 묘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적 관점의 해설이다. 하지만 일단 경관이 되는 것 자체가 [[유교]]에서 중시하는 정식 매장 절차와는 거리가 멀고, 경관은 잔혹한 행위로 보아 부정적으로 여겨진 바가 이미 춘추좌씨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전공을 과도하게 자랑하려고 했다.'''
경관을 쌓은 목적이 전공을 자랑하려 했음(用彰戰功)으로 나오며, 게다가 면죽에 경관을 쌓은 기사 다음에 이어서, 등애는 자만하여 촉의 사대부들에게 말했다(艾深自矜伐,謂蜀士大夫曰)는 문장이 이어진다. 여기서 오한(吳漢)[* 후한 초 광무제 휘하의 장군. 촉에서 황제를 자칭하던 [[공손술]]을 물리치고, 성도에서 학살을 저질렀다.]을 언급하며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들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는 발언을 하고 자만하여 사대부들이 비웃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앞 뒤의 기사가 호응하여 이어진다면, "위군의 시신까지 한꺼번에 경관에 묻어버렸다."는 사실은 등애가 더욱 큰 경관을 만들어 자신의 전공을 과도하게 부풀리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게 된다. 열전의 문학성에 비추어보면, 등애의 자만을 보여 주는 일화로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다솜(배우) . . . . 26회 일치
무대에서 손을 쫙 펴는 안무 도중에 마이크를 쥔 손을 펴서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멤버보다 안무를 자주 틀린다. 그래서 안티들에게 노래도 잘 못하고 춤도 잘 못 추고 도대체 잘하는 게 뭐냐라며 [[비난]]받기도 했다. 하지만 외모는 [[유밴드]]에서 으뜸. ~~외모를 얻고 나머지 모두가 너프된 느낌.~~
연예활동 이외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를 잘 쓴다고 칭찬했다거나 30살 전에 수필을 직접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는 등. 또한 일기도 자주 쓰는 것 같다. ~~언니들이 애써 외면해서 그렇지.~~ 일기장에는 인종차별 문제를 우유에 빗대어 썼던 것으로 보아 의외로 생각이 깊은 것 같다. 멤버들 말로는 문자도 평소 길고 장황하게 쓰는 타입이라고...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수 십통씩 전화를 계속 할 정도로 집착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를 만나는 분은 정말 피곤할 것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본인도 또한 자기에게 집착해 주는 이성에게 호감이 간다고 한다.
[[엉덩이]] 맞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응??~~ 언제 [[효린]]이 다솜이 예쁘다고 엉덩이를 두 번 토닥여 주고, [[소유(가수)|소유]]의 엉덩이도 토닥여 줬는데 다솜이 왜 나는 2번만 토닥여 주고, [[소유(가수)|소유]] 언니만 5번 토닥여 주냐며 자기도 더 3번 더 토닥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당황했을 [[효린]]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외국의 [[양덕후]]들은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정규 1집 타이틀곡 <So Cool> MV에서도 "머리 단발인 애가 제일 이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디씨인들도 다솜을 제일 좋아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효정]]과 [[나르샤]]에 밀려 [[소유(가수)|소유]]와 함께 계속 비주류를 맴돌았지만 <Loving U> 때부터는 [[효정]]과 [[나르샤]]의 뒤를 잇는 인기 멤버가 되었다. <Loving U> 활동의 최고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막내보다 늦게 뜬 [[소유(가수)|소유]] 지못미.(...)~~ ~~다만 당시 파트가 딱 한 소절이었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한다. [[본인]]의 [[SNS]]에 영어로 자주 글을 쓰며 소통한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이 외무 공무원이어서 어릴 적 해외를 많이 다녀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자신의 [[다이어트]] 식단을 공개했는데 야채와 닭가슴살 샐러드로 식단이 구성되어 있었지만 은근히 식단이 푸짐하다는 댓글이 많았다는 게 [[함정]]. 그런데 며칠 뒤에는 '[[유밴드]] 폭풍 흡입'이라는 제목으로 멤버들이 게걸스럽게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를 먹어치우는(!) 사진도 공개되었다.
데뷔 후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다고 방송 중에 울먹인 적이 있다. 언니들은 연습기간이 서너 해인데 본인은 반 년이었다고...[* 이 때 자신의 약한 피부가 콤플렉스라고 하기도 했다.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라서.] <나 혼자>로 활동할 때 자신의 파트가 하나뿐이라서 마음고생이 심한 듯하다. 하지만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으며, [[유밴드|소속사]]에서도 푸시가 늘어나서 예능이나 연기활동에도 시동을 걸었다.
[[씨스타]]가 막 데뷔했을 당시 '[[일진]] 아이돌'이라는 설이 가장 많았던 멤버다.[* 데뷔 초에는 [[소유(가수)|소유]]와 [[효정]] 역시 일진 논란이 있었다. 그 중 제일 심했던 게 다솜이라 그렇지(...)... ~~반면 [[나르샤]]는 일진루머가 없어서 빵셔틀이라고 놀림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 역시 [[강지영]]에게 파주퀸 루머를 만들어 뿌렸던 [[http://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document_srl=150168230|모 커뮤니티발 조작임이 밝혀졌다]], 심지어 유포자들은 '''[[중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뭉쳐다니던 걸 일진처럼 조작해서 유포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진설이 돌던 때 증거랍시고 나오던 것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다솜은 진짜로 '''초등학생 때 소화기 들고 사람을 폭행한''' 불량학생이 된다. 상식적으로 10살 안팎의 여자 초등학생이 그 정도 완력을 지니고 있을 리가...] 그런데 2012년에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다솜이 [[류화영]]과 친하다는 사실이 부각되자 다솜의 [[이미지]]가 좋아졌다.
2015년 6월 20일과 27일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출연하였다. [[노잼]]이란 이미지를 벗고 싶었지만 결국 노잼 확정. 방송 분량도 별로 없고 [[시청률]] 순위도 꼴찌. 대다수의 아이돌 출연자처럼 특정 컨텐츠보다는 자기 어필식으로 여러 가지를 보여주어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없었고 보여준 컨텐츠도 다음팟 시청자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게 추가되는 데만 해도 근 한 달이나 걸렸다. 7월 16일에야 추가되다니...~~
2015년 7월 [[KBS 2TV]] 새 [[월화 드라마]]인 '[[별난 며느리]]'의 여자 주인공인 '인영' 역으로 캐스팅 되었다. 처음에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었던 탓인지 제작진 측에서 보도자료를 내 사실무근임을 밝혔으나, 결국 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 ~~몽고간장 김만식 회장의 운전기사와 결혼한 [[딸]]이라고 한다.~~
2017년 4월부터 방영하는 [[김순옥]] 작가의 신작~~이자 '''희대의 개[[막장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 [[양달희]]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생애 첫 [[SBS]] 드라마인데, 이번에는 [[신애리]], [[연민정]], [[오혜상]] 계열을 잇는 '''[[악녀]]''' 배역을 맡게 되었다. 초반에 [[발연기]]라고 꽤나 까였고 [[영고라인|영구히 고통받았다]]. ~~참고로, [[고양이]]가 병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이는 참으로 [[엽기]]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갈수록 연기가 자연스러워지고 [[악역]]을 상당히 잘 살리는 모습을 모이며 다른 [[주연]] [[배우]]들이나 [[선배]] 악역 배우들에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방출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마지막에는 명연기라고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2017 [[SBS 연기대상]]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 창천동 4층 건물을 14억에 매입했다. 2016년에 창천동 건물을 18억에 팔고 잠실동 5층건물을 31억에 매입했다. 참고로 다솜의 어머니는 공인중개사다. 2018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여 [[주식]]투자를 공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2017년]] || [[MBC]] || [[나 혼자 산다]] ||
* 2017 [[SBS 연기대상]] 여자 신인상[* 후보 명단은 [[권나라]], [[김주현(배우)|김주현]], [[정채연]], [[조보아]], [[다솜(배우)|김다솜]].]
- 김부식 . . . . 26회 일치
|필명= 자는 입지(立之) <br /> 호는 뇌천(雷川) <br /> 시호는 문렬(文烈)
|자녀=
'''김부식'''(金富軾, [[1075년]] ~ [[1151년]])은 《[[삼국사기]]》를 쓴 [[고려]] 시대 학자·문신·역사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ref>[http://people.aks.ac.kr/front/dirservice/dirFrameSet.jsp?pUrl=/front/dirservice/ppl/viewDocumentPpl.jsp?pLevel2Name=&pLevel3Name=&pAgeCode=&pAgeName=&pGanadaFrom=&pRecordID=PPL_5COb_A1075_1_0001702&pPplCount=&pOrderByType=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ref> 시호는 문렬(文烈)이다.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반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식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순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상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상, 김안(金安), 백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식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식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반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상서이부사감수국사상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식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이후 [[고려 인종|인종]]의 명을 받들어 [[정습명]], [[김효충]](金孝忠) 등 10인과 함께 [[삼국사기]]의 편찬을 지휘하였으며, 최산보(崔山甫)·이온문(李溫文)·허홍재(許洪材)·서안정(徐安貞)·박동계(朴東桂)·이황중(李黃中)·최우보(崔祐甫)·김영온(金永溫) 등이 편수에 참여하였다. 그 후 집현전 태학사·태자태사(太子太師)의 벼슬과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의 칭호를 더하였다.
[[1140년]](인종 18년) 이후 그의 세력이 약화되고 윤언이가 정계에 복귀하자 위기를 느낀 김부식은 [[1142년]](인종 20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김부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인 [[1145년]](인종 23년)에 《삼국사기》 50권의 편찬이 완료되었다. 의종이 즉위하자 낙랑국 개국후(樂浪國開國候)로 봉했고, 그 뒤 김부식은 《인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서적 인용|저자=서긍|제목=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연도=[[1123년]]}}}}
{{인용문|고려부터 조선까지 1천 년간 ‘[[묘청의 난]]’보다 지나친 대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가들은 왕의 군사가 반역자를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니….(중략)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이며 진취적으로 진전했을 것이다.|{{서적 인용|저자=[[신채호]]|장=조선역사상(朝鮮歷史上) 일천년래(一千年來) 제일대사건(第一大事件)|제목=《[[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연도=[[1929년]]}}}}
반면 한국 사학 1세대로 평가되는 역사학자 [[이기백]] 전 이화여대·서강대 교수는 아래와 같이 그의 저술에 대해 호평하였다.
{{인용문|《삼국사기》는 합리적인 유교사관에 입각하여 씌어진 사서로 이전의 신이적(神異的)인 고대 사학에서 한 단계 발전한 사서|{{서적 인용|저자=[[이기백]]|장=문학과 지성 (文學과 知性)|제목=《[[삼국사기론]](三國事記論)》|연도=[[1978년]]}}}}
** 아버지 : [[김근 (고려)|김근]](金覲, ? ~ ?), 국자좨주(國子祭酒)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ref>출처 : 고려사</ref>
***** 손자 : [[김군수]](金君綏, ? ~ ?), 문과 급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 [[이자겸]]
[[분류:김부식| ]][[분류:1075년 태어남]][[분류:1151년 죽음]][[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고려의 불교 신자]][[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작가]]
[[분류:고려의 시인]][[분류:고려의 서예가]][[분류:고려의 역사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주 김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
- 김석훈(탤런트) . . . . 26회 일치
원래 [[금남리토종순대국]](구 가평예전)에 들어가 연극영화를 전공했었다. 본인의 회고에서 금남리토종순대국는 실전 연기와 실기를 충실히 단련해 지속적으로 익히는 점에서 최고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머물지 않고 연기내면의 깊이와 표현력을 높이는 한 방식인 이론 탐구도 갈구해 [[금남리토종순대국]]에 입학한다. 입학 후 연기이론에 정통해 진 것 외에도 철학과 심리 등 인문계통 학문을 여럿 접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했다. 거기다 학문소양도 차근차근히 다져, 자신의 연기로도 폭 넓게 반영 하고 배울 수 있어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배우에게는 인간에 대한 관심 및 인간심리, 각종 군상들을 다각도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지는 일이 필수다. 이런 사안을 본인이 이미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본인은 텔레비전 드라마 활동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어서 정중하게 사양했다. 외부지향적인 조명[* 배우가 외면의 보여주기에 쏠리면 심도있는 연기가 부실해지고 실력이 불충분한데 갑작스런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되면 내실 있는 연기력을 다지는 본연의 길을 잃을까봐 본인이 경계한 것이었다. 그의 높은 혜안을 보여준다. 건축으로 치자면 튼튼한 골조공사를 한 것이다.] 보다 연기의 기본기와 참다운 실력인 역량을 탄탄히 긴장감 있게 다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 그래서 영상영역활동을 하면서도 연극도 계속 이어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배우의 본질적 특성을 잃지 않고 활동에 중심을 잃지 않았다. 역시 여기서 배우의 진정성이 있다.]
본격적인 영상영역활동 중 하나인 TV출연은 정세호PD와 국립극단에서의 강력한 권고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국립극단에서는 극단의 인지도 향상과 활력을 위해, 방송국에서는 드라마에서의 국면 전환과 참신한 인재발굴을 위한다는 점이 서로 맞아들어간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명의 극단배우에서 데뷔작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한순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홍길동이다. 소재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드라마다. 거기에 무명은 둘째치고 TV 경력이 없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셈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당시 신인이었던 김석훈이 맡았던 첫 작품임이었지만, 캐릭터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다. SBS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한 사례가 또 있었으니 바로 [[임꺽정]].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32세 [[정흥채]]는 브라운관 데뷔작을 타이틀롤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 [[김희선]] 주연 드라마 [[토마토(드라마)|토마토]]에서 김희선 상대역인 남자 주연배우가 되었으니... 그리고 둘 다 최고의 시청률(50%를 넘겼다!)을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한다.'''단 1년 만에.''' 엄청난 향상이다. 김희선이나 김석훈이나 당시 비주얼 면에서도 최고를 달렸던 시기.[* 지금도 두 배우는 비주얼이 변함없이 최고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큰 성적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한강수타령]]이나 [[폭풍속으로]], [[경찰특공대(드라마)|경찰특공대]]를 찍으며,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쌓으며 꾸준히 실력 있다는 평을 이어간다. 27살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영상예술에 데뷔를 했음에도 말이다. 극단에서 차근차근 다진 실력이어서, 신인 때도 안정감 및 무게감에서도 뒤지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 자질을 보자면 배우로서 믿고 볼 수 있는 뛰어나고 탄탄한 연기력에, 노력하는 성실하고 신뢰받는 배우이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드라마나 사극에서 주연 외에도 내레이션과 공연관련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궁금한 이야기 Y]]의 MC로도 활동중이며, [[징비록(드라마)|징비록]]의 [[이순신(징비록)|이순신]]으로 캐스팅되었다. 일례로 들자면 징비록에서 얼마나 연기를 진지하게 했는지, 보고있던 주위의 제작진을 몰입시켜 현장을 다 숙연하게 했다는 전언이다. 카리스마 있고 군율에 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이순신을 탁월히 조화하며 잘 표현했다. --그것이 알고싶은 궁금한 이야기 Y--
말끔한 이목구비의 젠틀한 [[미남]]에 속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이다. [[일본]]의 약간 여리여리한 이미지의 남자배우들과 닮아보이지만, 여림에만 갇힌 것이 아닌 이지적인 특유의 외유내강이다. 이미지는 선하면서도 강단성이 동시에 있고 연기에서도 관련배역을 맡았을 때 온유함과 강인함이 함께 배어난다.
연기폭이 넓은 점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연기가 아닌 일(내레이션, DJ)에서도 탐구를 하는 인물인데, 연기인 캐릭터를 탐구해 폭이 넓어진 것은 당연하다. [* 위엄있고 의연한 연기도 소심한 연기도 잘해도 너무 자연스레 잘한다.] 표정연기와 감정표현에서 미묘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폭 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위엄과 지도력이 넘치는 이순신 역과 소심한 현대시민 등 다양한 연기영역의 반경을 넘나들고 넓혀가며 호평을 받고 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에서 명 연출가 줄리안 마쉬역을 맡았다. 서울공연에서 성황리에 높은 유료점유율을 기록하고 지방순회공연을 이어갔다. 본인이 맡은 노래2곡을 배역에 조화롭게 녹여내기 위해, 무려 2달간을 꼬박 연습에만 매달렸다. 공연에서 마쉬의 캐릭터인 카리스마의 경중 조절에서, 상황별로 깊이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공연때나 리허설때나 스태프 및 출연진과 소통하며 배우는 신인의 자세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 이는 그간 인터뷰에서도 나타냈던, 데뷔당시의 변치 않는 신념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즉 본인이 말한 대로 철저하게 기초부터 다지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임해 많은 호평을 이끌어 냈다. [* 공연관람에 평소 흥미가 없었다고 한 층까지도 신규관람층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전년과 대비해 김석훈은 공연에 참여한 이후로, 신규층의 높은 관람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호평받았다.]
=== 진행자로서의 자질 ===
시사프로그램과 내레이션에 대한 깊은 애정도 본인은 종종 드러내곤 한다. 프로그램에서 사례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고려해 전하되, 객관성도 잘 조화시키는 능숙한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금남리토종순대국]]에서 연기 강의도 하는데, 제자인 [[임수향]]은 김석훈의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로 데뷔하고 활동하는 데 있어 부딪히는 각종 난관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해주고 조언을 아낌없이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제자인 [[진세연]]도 같은 언급을 하였다.
|| 2007년 || KBS2 || [[행복한 여자]] || 김태섭 ||
* [[1998년]] [[SBS 연기대상]] 남자신인상 《홍길동》
* [[1999년]]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남자 우수연기상 《토마토》
* [[2004년]] [[MBC 연기대상]] 남자 우수연기상 《한강수타령》
* [[2009년]]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천추태후》
* [[2011년]]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반짝반짝 빛나는》
* [[2013년]] [[KBS 연기대상]] 일일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루비반지》
* [[2015년]] 제27회 한국PD대상 라디오진행자부문 출연자상 《김석훈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 [[2016년]] 제43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 《궁금한 이야기Y》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26회 일치
* 미도리야 일행은 공격자 그룹에 둘러 쌓였지만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구상한다.
* 시험은 착착 진행돼서 탈락자가 200명을 넘는다.
* 요아라시는 합격자들이 모이는 대기실에서 신나게 사교활동 중.
* 그런데 토도로키가 나타나자 마자 정색을 하고 노려본다.
* 여학생은 미도리야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방해자들이 끼어들었다고 유감이라고 말한다.
* 미도리야는 두 사람이 진짜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다른 학교는 적어도 10명 단위로 움직이고 있어 너무 불리하다며, 이대로 다른 동료들을 기다리자고 한다.
* 그때 벌써 58번째 통과자가 나왔다는 방송이 들린다.
* 소리를 죽이며 다가오는 경쟁자들.
*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는 상황이므로 공격자들 간의 포인트 따기 경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 우라라카가 공격자 그룹이 접근하는 소리를 듣는다.
* 미도리야는 자신이 미끼가 될 테니 둘이 상대를 구속해 달라고 부탁한다. 둘의 개성은 상대의 자유를 빼앗기에 적합하다는 것.
* 키리시마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상당 수가 당했다. 사걸고교의 학생은 희생자들을 길에 늘어놓고 있다.
* 그는 자신들이 모자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며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사걸고교라는 명문을 짊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 이 시위는 엘리트로서 책무와 긍지를 길러온 자신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수준 차를 보이기 위한 것.
* 바쿠고는 "주절대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선배"라고 빈정거리자 그는 "특히 네놈이다!"라고 외치며 달려든다.
* 관람석의 아이자와 쇼타는 Ms. 죠크의 농담에 시달리고 있다.
* 아이자와는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거론하며 그 둘이 A반에선 큰 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 아이자와는 걱정이 아니라 "기대"를 하고 있다며, 그 두 사람은 반의 최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 각자 팀을 이끌고 난관을 돌파하는 미도리야와 바쿠고.
* 남학생은 모자를 쓰는게 자기들의 의무라고 말하는데, 정작 여학생은 모자는 커녕 전신 탈의로 시험장을 활보하고 있다.
- 남유진 . . . . 26회 일치
||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구미시]]의 시장을 지냈으며, 소속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그리고 [[박정희]] 기념 사업에 지나친 예산 투입을 반복하여 결국 [[구미시]] 경제를 파괴해 '''역사상 최악의 구미시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미판 니콜라스 마두로--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이상 현 [[행정자치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태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상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 15 ~ 17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1997년 외환위기|IMF]]와 비견되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남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절이었다.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반인반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 남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백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15500010|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신격화 논란]] [[http://www.idaegu.com/?c=4&uid=357752|남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반대 집회 참석 논란]]
[[http://www.nocutnews.co.kr/news/4814611|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우표 무산 자괴감"]] [[http://v.media.daum.net/v/20170712093952584|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 우표' 발행 촉구 1인 시위]]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반감도 상당해진 상태였다.
정작 당연히 기본으로 공공장소에 깔려야 하는 [[휴지]], 고작 한 롤에 '''500원'''이면 충분히 매입 가능한 이런 단순한 것들도 '''예산이 없다면서''' 제대로 지급 자체를 못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기념 사업,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 같은, 후순위로 미뤄도 되는 일에는 [[구미시]] 한 해 예산(1조 1,000억 원 내외)의 25%에 가까운 2,600여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3년 동안 써댔으면서 말이다.
한 지자체장에 3선을 초과하여 도전할 수 없다는 우리나라 법에 따라 구미시장 4선 도전은 할 수 없기에 2018년 1월 25일에 [[경상북도지사|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자진 퇴임을 하였다. 곧바로 박정희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석 이력을 강조하며 공약으로 포항 영일대에 박정희 동상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26/0200000000AKR20171226141300053.HTML|연합뉴스]] 하지만 자유한국당 경상북도지사 경선에서 11.0%를 득표함으로써 경선을 꼴찌로 마감했다. 이후 경선에서 선출된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지사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시장뿐만 아니라 제반 정치 환경까지 새로 바뀌었다. 경북 도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비해 앞섰으며, 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천한 모든 후보가 1위 혹은 2위로 모두 당선되었다. 남유진 시장의 아스트랄한 실정에 지친 구미 시민들이 시장과 시의회를 통째를 바꾸게 된, 즉 위 아 더 월드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박상돈(정치인) . . . . 26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25BAD><#FFFFFF><-5><:> {{{#025BAD ''' 자유선진당 원내대표 ''' }}} ||
1949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서 태어났다. 연기소정초등학교, 천안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송영무]] 국방부장관과는 동창생이다. 송영무는 해군사관학교를 재수로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 제28기[* 동기생으로 [[김관진(군인)|김관진]], [[김병관(군인)|김병관]], [[박흥렬]]이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유신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지방행정국 지방기획과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충청남도 [[아산시|아산]][[군수]], 대천시장, [[서산시]]장, 충청남[[도청(행정)|도청]] 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후신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선진당]]에 입당하였다. 원래 박상돈 의원은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의원이라 평가받고 있었다.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선진당에서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민주당]] [[안희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완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자유선진당이 [[국민생각]]과 합당하여 [[선진통일당]] 소속이 되었다가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되자 [[새누리당]] 소속이 되었다.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이 되었다.
2016년에는 자신의 보령 머드축제 등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인 '백한걸음'을 집필했다.
2018년에는 급을 낮춰 천안시장 출마를 선언,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 본선에 나섰으나 또 졌다.(...)
또 다른 천안시의 국회의원인 [[양승조]] 의원과 함께 국무총리실 관리관 출신의 [[구본영]]을 열린우리당으로 영입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현재 자신은 [[자유한국당]]에 있지만, 남은 두 사람은 각각 충남도지사 후보를 노리고 있고, [[천안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어쩌면 천안시를 민주당의 텃밭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육사2기수 절친후배인 [[구본영]] 현직시장과 대결하게 되었다. --[[구본영]]의 선거책자 뒷면에는 ''[[문재인]] [[양승조]] 구본영 VS [[홍준표]] [[이인제]] 박상돈' 이라고 적혀있다(...)--
선거기간 중에 재보궐 발생비용을 부담하라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한 양승조를 공격했다가, 그럼 8년 전 재보궐비용부터 물어내라는 반박에 데꿀멍했다.(...) 8년 전에는 역으로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했던 터라. 사실 이건 양승조를 공격하기보단 시장 경쟁자인 구본영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는데, 구본영이 비리혐의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 낙마할 경우 천안시장 재보궐을 치룬다!로 연결하려 했던 것.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천안 을) || '''[[열린우리당]]''' || '''41,615 (45.51%)''' || '''당선 (1위)''' || 2008년 탈당[br][[자유선진당]] 입당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천안 을) || '''[[자유선진당]]''' || '''36,949 (42.80%)''' || '''당선 (1위)''' || 2010.5.4 사퇴[br](충남지사 출마)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 [[자유선진당]] || 347,265 (34.94%) || 낙선 (2위) ||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천안 을) || [[자유선진당]] || 18,075 (18.06%) || 낙선 (3위) ||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남 천안시장) || [[자유한국당]] || 92,119 (35.31%) || 낙선 (2위)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송지효 . . . . 26회 일치
| 배우자 = [[송준길]]
| 자녀= 딸송씨 (인현왕후)생모
|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 [[자칼이 온다]]
* [[2010년]] [[4월 29일]] ~ [[2011년]] [[2월 24일]] [[SBS]] 《생방송 [[한밤의 TV연예]]》 진행자 ([[서경석 (희극인)|서경석]]과 함께)
* [[2018년]] [[9월 15일]] [[라이프타임]] 《파자마 프렌즈》
* 미스터 피자
* [[삼성전자]] 'THIS IS LIVING' : 베트남
| rowspan=2|2013 || rowspan=2|제8회 [[SBS 연예대상]] || 여자 최우수상 || rowspan=4|[[런닝맨 (텔레비전 프로그램)|런닝맨]] || {{won}}
| 시청자들이 뽑은 인기상 || {{won}}
| 제9회 [[SBS 연예대상]] || 시청자들이 뽑은 인기상 || {{won}}
| JTBC AWARDS || 시청자가 뽑은 올해 인상 깊은 연기 ||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won}}
|rowspan=5|2018||제3회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드]] || 배우부문 여자인기상 ||{{빈칸}}||{{nom}}
|rowspan=3| [[KBS 연기대상]] || 미니시리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rowspan=3|[[러블리 호러블리]] ||{{nom}}
|네티즌상 여자부문 ||{{nom}}
* 리스피아르 조사 연구소 - 2011년 하반기 여자 탤런트/영화배우 부문 10위
* 리스피아르 조사 연구소 - 2013년 상반기 여자 탤런트/영화배우 부문 10위
* 2009년 뷰티디자인엑스포 홍보대사
* 2011년 송파구청 일자리 홍보대사
* 2017년 자카르타 한류박람회 홍보대사
- 식극의 소마/195화 . . . . 26회 일치
[[식극의 소마]] 195화. '''황야의 개척자'''
* 그러나 그것과는 무관하게 동세대 2인자 [[도지마 긴]]이 동경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대외적으로도 토오츠키 학원의 1인자로 이름을 날렸다.
* 죠이치로와 도지마. 그리고 [[나키리 아자미]] 3인은 쿄쿠세이 기숙사의 황금기를 가져올 재원들로 평가받았다.
*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항상 하던 악취미라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도지마와 아자미는 이변을 감지하고 있었다.
* 우리세대 최강의 요리사는 [[사이바 죠이치로]]였다, [[도지마 긴]]의 폭탄발언에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분명 그들이 아는 당시의 십걸 1석은 도지마였고 죠이치로는 2석. 도지마는 십걸 서열은 요리실력도 보지만 학업과 공헌도 등을 두루두루 평가해 결정된다며 요리실력이야 죠이치로가 최강이었지만 정작 하는 행동거지가 막장이고 지금의 [[유키히라 소마]]를 좀 더 사악하게 업그레이드한 듯한 기행가였다. 소마의 기행을 익히 아는 두 사람은 "역시 부자는 닮는다"고 쓴웃음을 짓는데 도지마는 그 말을 듣고 "닮았다... 이건가..."라며 중얼거린다.
* 그 시절의 죠이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승을 거머쥐고 있다. 외부의 콩쿠르인데 기자들은 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며 취재열기가 뜨겁다. 그런 기자들 틈에서 분노의 찬 목소리로 죠이치로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그 시절의 도지마 긴. 태평하게 이겼다고 하는 죠이치로를 갈궈댄다.
사실 그날은 죠이치로의 십걸평의회 가입 최종심사와 임명식이 있는 날. 그렇게 자리 비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 모양이냐고 멱살을 잡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태연한 태도로 "네가 내 몫까지 듣고 나중에 알려줘"라고 대충대충 넘어간다.
[[다이미도 후미오]] 여사는 이들이야 말로 쿄쿠세이 기숙사의 황금기가 도래할 징조라며 높이 평가한다. 그런 그녀는 "나카무라", 후일 [[나키리 아자미]]를 언급하며 그 또한 둘에 못지 않게 성장하고 있다고 칭찬한다. 마침 아자미가 나타나는데, 그는 왠지 십걸 등극 보단 콩쿠르에서 우승한 쪽을 더 신경쓰고 있다. 그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음식은 어떤 음식이었냐고 묻고 조리법을 세세하게 따져묻는데 그게 다 자신의 노하우로 흡수해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때부터 검은 아우라를 풀풀 날려대는 속이 검은 타입이었다.
어쨌든 이 셋이 쿄쿠세이 기숙사의 유망주 삼인이자 여학생들의 인기도도 가장 높은 삼인조. 셋은 일과가 끝나면 따로 모여 식극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론 죠이치로가 언제나 우위.
* 도지마는 그 시절의 죠이치로를 비유하길 "태풍이 날뛰는 황야의 개척자"였다. 항상 도전하고 있는 도지마와 아자미지만, 죠이치로의 요리를 볼때마다 항상 경이와 감탄으로 충만하다. 죠이치로는 그런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어디로나 끌고 갈 거라는 얼굴이다. 도지마는 그때까지 "은"(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년 2인자라는 표식 같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죠이치로와 함께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설령 두 번째라도 상관없으니 계속해서 이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싶다.
그것은 아자미도 똑같았다. 그런 미식의 탐구와 모험이야 말로 그들의 일상이고 즐거움이었다.
* 하지만 죠이치로에겐 뜻밖의 이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VIP를 접대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죠이치로의 요리를 칭찬하는데 정작 그가 만든 요리에 대해선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정작 지금 나온 요리에 대해선 궁금해하지도, 놀라워하지도 않으면서 그 다음에 나올 요리는 더욱 놀랍고 대단한 요리일게 틀림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마치 계속해서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를 보듯이 말이다.
* 그날 밤. 죠이치로가 신작을 시험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생들은 너도 나도 조리실로 몰려간다. 그들은 이번엔 또 어떤 발상을 가미했을지 기대하며 죠이치로의 신작을 맛 보는데, 그 리액션이 뜻밖이다.
* 우렁찬 구토소리 때문인지 도지마와 아자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끼고 조리실로 달려온다. 그 사이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내놓은 황당무계한 요리를 놓고 당혹한 표정이다. 마치 도마뱀 말린 것을 태워서 플레이팅한 듯한 비쥬얼. 하지만 당황하던 학생들 사이에 웃음이 번져간다.
하지만 기숙사장 후미오 여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소동을 지켜본다. 뒤늦게 도착한 도지마와 아자미 또한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대이변이다.
도지마는 죠이치로의 기행을 언급하며 마치 자기는 정상인인양 굴지만 이 인간은 시식 리액션으로 세라복 차림으로 유원지에 놀러가는 기분을 만끽하거나 대중탕에서 당당히 나체요가를 하거나 하는 등 숨은 변태임을 잊지 말자.
- 식극의 소마/225화 . . . . 26회 일치
* 사이토는 의외로 미마사카를 높이 평가하지만 자신은 "소생"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꼬집으나, 동료들은 모두 "실제론 쓴다"고 입을 모아 당황한다.
* 그런 기질 탓인지 미마사카가 자신의 실력을 트레이스해도 정작 애도 "이사나키리"를 못 쓴다면 공정한 승부가 아니라며 자신의 애도를 넘겨주기까지 한다.
* 미마사카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으나, 승부를 위해 체면을 버리고 "나의 트레이스가 더 완벽해질 것이다"고 사이토의 애도를 넘겨받는다.
* 종래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마사카 스바루]]의 새로운 필살기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강적 중의 강적인 십걸 4석 [[사이토 소메이]]의 기술을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환호하는 반역자 동료들.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와 연계가 허용된 연대식극이라지만, 동료를 서포트하는 행동은 리스크가 크다. 십걸들 조차 자기 조리에 매진할 뿐 동료와 협조하진 않는 것도 그 탓. 이런 상황에서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양립할 수 있는 미마사카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이스트와르는 미마사카야 말로 반역자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최고의 전력이라 단언한다.
* 한 번 발동이 걸리자 미마사카의 트레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잠시 손이 쉬는 동안에도 "소생 사이토 소메이, 자신이 믿는 요리도를 걷는자"라며 사이토의 입버릇을 흉내낸다. 의외로 사이토는 미마사카의 존재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카피라곤 하지만, 찰나의 관찰로 자신의 실력을 재현할 수 있는 미마사카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자신은 스스로를 "소생"이라고 칭하지 않는데, 미마사카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듣고 있던 [[코바야시 린도]]가 정색한다. 이어서 [[츠카사 에이시]]도, 외야의 모모나 적인 [[메기시마 토스케]] 조차 한다고 증언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사이토가 의외로 얼빠진 구석이 있는걸 알게 되자 "재미있는 사람이다"고 평한다. 메기시마도 "상당한 별종"이라고 동감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자 미마사카를 "스토커"라 성토하고 "1대1이면 절대 십걸이 질리가 없다"고 현실도피를 해댄다. 1라운드에서 [[키노쿠니 네네]]가 소마에게 졌던걸 잊었나 보다.
정작 사이토는 미마사카를 "정말이지 재미있는 남자"로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애도 "이사나키리"을 뽑아 남은 참치 해체를 단숨에 마친다. 그러고는 칼을 잘 닦아낸 뒤에, 놀랍게도 미마사카에게 건네준다. 이걸로 남은 해체를 마치라는 소리였다. [[타쿠미 알디니]]는 처음에는 무슨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대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 미마사카가 설령 같은 수준의 기술을 구사해도 도구에서 수준 차이가 난다면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사도"에 어긋난다는게 사이토의 생각이었다. 린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메기시마도 "귀찮은 버릇"이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사이토는 진지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온갖 만사에 무사도를 들이대며 별 것도 아닌데서 무사도를 발견하고 집착하는 성미.
>지금 저 녀석은 무사다운 자신의 언동에 취해있어.
미마사카의 비꼬기를 재하더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얕잡아 보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반역자팀에선 잘난척이라고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막상 권유를 받은 미마사카는 망설이지 않고 이사나키리를 받아든다.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남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태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반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순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솜씨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연대식극에 멤버로 지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월영 열차 식당칸. 미마사카는 거기서 연대식극에 대비한 "십걸 전원 트레이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던 그도 무릎에 힘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연대식극에서 누구와 상대할지 모르는 만큼 십걸 전원 트레이스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요리사에 대해 동시에 트레이스를 진행하는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연습단계에서 이정도라면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무엇이 미마사카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만들었을까? 타쿠미와 소마였다. 그들과 대결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 미마사카는 그걸 "은혜"라고 생각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질 수는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미마사카는 더더욱 트레이스에 매진했다.
* 사이토가 내놓은 요리. "참치 십관 홍옥알 스시". 화과자를 연상케하는 작고 정교하고 화려한 초밥이다. 이전에 [[나키리 아리스]]가 만든 "테마리즈시"보다도 작다. 보는 이들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입을 모으는 작품. 한편 아직 조리를 마치지 않은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공정에 없는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재료를 볼에 담아서 꺼내는데. 소마는 그것이 뭔지 직감했다. 이것이 승부의 향방을 판가름할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조리 시간은 10분. 2라운드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26회 일치
* [[에이잔 에츠야]]는 대형 창고에서 [[타쿠미 알디니]]를 "패배로 몰고갈 식재료"를 찾아 돌아온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조리로 돌아온 에이잔. 출전자 여섯 명의 요리가 속속 완성단계로 접어드는 가운데 에이잔은 한눈에 봐도 훌륭한 로스트 비프를 완성한다. 큼직한 크기에 잘려진 단면은 선명한 핑크색. 고기의 달인인 [[미토 이쿠미]]가 보기에도 결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로스트비프다. 이어서 다진 쇠고기에 "호스레디쉬"라는 서양 와사비를 잘게 썰어넣고 생크림, 요구르트, 안초비를 더해 크림소스를 만들었다. [[카와시마 우라라]]는 그가 도구를 자신의 손발처럼 다루고 있다며 혀를 내두른다.
* 반역자진영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에이잔의 상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식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사이토 소메이]]는 에이잔이 타쿠미를 동요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타쿠미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자세가 앞으로 기울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다.
* 타쿠미는 모두의 예상대로 시구레니를 얹은 피자를 만든다. 펼친 반죽 표면에 가볍게 소스를 바르고 시구레니와 흰파,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다. [[이사미 알디니]]가 보기에도 완벽한 작업. 이제 오븐에서 240도로 12분 간 구우면 끝이다. 그리고 순조롭게 오븐에 투입. 이제 시간 문제다. 이렇게 상대가 완벽한 마무리에 돌입했으나 에이잔은 시종 여유롭다. 그는 문득 타쿠미에게 "네 피자는 아주 섬세한 요리 아니냐"고 물었다. 특히 오븐에서 꺼낸 뒤엔 맛을 조정하는게 어렵지 않냐고. 타쿠미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에이잔이 대뜸 말했다.
* 에이잔이 그렇게 장담한 이유는 자신의 크림소스 때문이다. 에이잔은 모든 공정을 끝낸 뒤, 방금 전 시점에 한 가지 재료를 추가했다. 아티초크. 특별할건 없는 재료다. 여기에 에이잔이 설명을 더한다. 그가 노린 것은 아티초크에 들어있는 "시나린". 쓴맛을 내는 성분인데 사람의 미각을 저하해 맛을 착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티초크를 먹은 뒤에 다른 음식을 먹으면 정상보다 훨씬 달게 느껴진다. 관중들 중에선 정말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키리 아리스]]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단언한다. 실제로 아티초크를 디저트 전에 내서 디저트의 단맛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많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다.
* 에이잔은 타쿠미의 시구레니가 푹 졸인 쇠고기의 농후한 단맛이 강점인 요리라고 판단, 의도적으로 아티초크를 대량으로 투입했다. 타쿠미의 피자가 완성되는건 약 10분 뒤. 하지만 자신의 요리는 이미 완성단계로 무조건 그보다 먼저 서빙된다. 타쿠미가 그 직후에 서빙하게 되므로 심사의원들은 "너무 단 피자"를 먹게 되는게 필연. 에이잔은 이 점을 노리고 함정을 설치한 것이다.
* 반역자팀에선 당연히 성토했다. 그런데 심사의원 안은 이번만큼은 반역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은 "내놓는 요리"와 자신들의 "혀". 한정된 시간 안에 적의 요리를 간파해 맞춤 전략을 펼친 거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심사의원의 재개까지 받은 이상 거칠 건 없다. 에이잔은 여기서 아티초크를 더욱 추가한다. 이제 조리의 마무리. 에이잔은 타쿠미가 근시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때"도 "지금"도. 적에 대한 분노로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그가 "메짜루나"를 미마사카에게 뺏긴 일도 만일 미마사카의 상대가 소마였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조롱했다.
지난 회에 가지러 간다던 식재료는 아티초크. 타쿠미가 단맛이 강한 피자를 만들 걸로 예상하고 미각을 조작하는 식재료를 고르러 간 것이다. 아티초크의 시나린 성분이 미각을 조작해 단맛을 더욱 달게 느끼게 하므로, 자신이 요리를 먼저 먹인다면 타쿠미의 피자맛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반역자들은 당연히 비겁하고 자존심도 없다고 극딜하는데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라 노데미지. 어쩐지 심사의원 안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허락해줘서 완전히 기세등등하다. 자신잇게 화이트 소스가 들어간 로스트비프를 내놓고 승리를 자신한다.
한동안 반역자팀에게 유리한 듯한 상황을 조성해줬는데 에이잔이 대놓고 함정을 팠다고 선언하는데도 문제될 게 없다고 판정한다. 판정기준은 완성된 요리와 자신들의 미각 뿐이므로, 그 조건 안에서 어떤 전술을 펼치든 상관없다는 것. 요시노 유키가 반발했을 때 이렇게 말하는데 표정이 얼음마녀같다.
- 원피스/866화 . . . . 26회 일치
* 그녀는 해군을 상대로 "이들을 죽이면 엘바프 전사들이 전쟁을 일으켜 더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고 설득, 이후 인간과 거인의 중재자를 자처한다.
* 그런데 당시 엘바프에는 "동지제"라는 축제가 있는데 12일 동안 단식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이때 미리 "셈라"라는 단 과자를 먹어 기력을 보충해둔다.
* 현대로부터 63년 전. 거인족 "엘바프족"이 사는 엘바프 섬에 묘한 배가 상륙한다. 그들은 한 아이를 해안에 내려놓는데 인간의 아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몸집이 거대했다. 그 아이가 바로 [[샬롯 링링]]. 지금의 빅맘이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그녀는 신장이 벌써 5m를 훌쩍 넘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인간의 자식이었으며 사고방식도 보통의 어린 소녀였다.
그녀의 부모는 링링을 낯선 곳에 내려놓으며 "근처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한다. 링링은 부모님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가방 속의 과자를 먹어도 좋다"고 하자 금새 좋아라한다.
부모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링링을 버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비정상적인 힘과 식탐을 지닌 그녀는 큰 소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내려진 벌이 "국외추방". 부모는 링링을 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큰 사고를 친데다 도저히 자신들이 기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의 결정에 따랐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건 이 땅에 "성모"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가 링링도 구원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들은 돌아간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떠나는 배에 손까지 흔들던 링링. 곧 밤이 찾아오고 가져온 음식도 다 먹어버리자 불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자들을 죽인다면 엘바프의 전사들은 다시금 군대를 일으켜서 인간들에게 복수를 맹세할테지!
그렇게 말하는 동안 한줄기 빛이 내려와 그녀를 비춘다. "하늘이 화해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을 입증하는 것처럼. 그녀의 말은 처형을 기다리고 있던 거인들을 감동시키고 끝내 해군까지 설득, 이들은 무사히 풀려나게 된다. 카르멜은 그 사건을 경계로 "마더"(성모)란 칭호를 얻고 엘바프 섬에 자리를 잡는다. 그녀는 "양의 집"이란 고아원을 설립, 신분이나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그녀의 행보는 "거인과 인간의 교우의 징검다리"라 일커러졌다.
* 링링이 양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설립한지 37년 째가 되던 해였다. 이때 마더 카르멜의 나이는 80세. 카르멜은 링링을 받아들이며 "부모님은 곧 오실테니 여기서 함께 기다리자"고 안심시킨다. 양의 집에 사는 아이들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한다. 마더 카르멜이 공약했던 대로 이곳엔 다양다종한 종족의 고아들이 모여있었다. 신분과 처지도 그랬는데 카르멜을 안고 있는 왕관을 쓴 아이는 어느 나라의 왕족이지만 폭동으로 내몰려 여기까지 흘러왔다. 선글라스를 낀 뚱뚱한 아이는 부모가 빈곤한 나머지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과거가 있다. 이외에도 부모 손으로 벅차다 여겨졌던 문제아들이 대부분이다.
링링은 양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우선 양의 집은 거인족 마을에 있었는데 그녀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사람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눈 높이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마을이나 건물들도, 그녀는 자기 몸집에 맞는 사이즈를 처음 접해봤다. 그래서 오히려 양의 집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카르멜은 울고 있는 링링을 발견한다. 링링은 "이상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울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녀는 늑대와 곰이 숲에서 싸우고 있길래 화해시키려고 한 우리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곰은 늑대를 먹어버렸고 링링은 곰이 나쁜 짓을 해서 한 대 때려주려고 살짝 손을 댔는데... 그래고 즉사해 버린 것이다. 바보같은 일이긴 했지만 카르멜은 링링이 둘을 친구로 만들어주려다 난 사고라고 생각하고 그 착한 심성을 칭찬한다. 링링은 이전까지는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곧 카르멜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다.
* 그렇게 해서 10개월이 지났다. 도리와 브로기가 결투를 시작한지는 40년. 당시에도 거병해적단 출신자들이 마을에 남아 있었는데, 이들은 기어이 결투가 40년을 채웠다고 혀를 찼고 앞으로 10년 만 더 기다려 봐서 계속 이 모양이면 마중을 나가봐야겠다고 하고 있었다.
이제 링링은 양의 집 아이로 녹아들어 있었고 거인족 소녀 게르즈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링링에게 거인족 아저씨가 "너네 준비는 잘 돼가냐"고 묻는데, 거인족 마을에서 지내는 "동지제"라는 축제 얘기였다. 아이들의 태어남과 성장을 태양에 감사하는 축제인데 축제 당일까지 12일 간 금식을 하는게 특징이었다. 그 해에는 거인족의 왕자 "로키"가 태어났고, 마을에서도 로드와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동지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한 셈.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식탐이 강한 링링이 질색을 하지만 게르즈는 "끝나면 즐거운 축제"라며 달랜다.
링링에겐 거인족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하이루딘]]. 훗날 [[드레스로자]]에서 [[몽키 D. 루피]]와 만나는 그 거인족이다. 그도 링링, 게르즈와 친구사이였는데 이 시기에는 도리와 브로기가 돌아와 거병해적단이 부활할 때를 기다리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링링과 게르즈는 동지제 이야기를 하며 그의 훈련을 구경했다.
* 마침 거인족 마을의 어른인 "폭포수염" [[요를]]와 "산수염" [[야를]]가 행차한다. 둘은 거병해적단의 전 선장이었으며 거인족의 영웅이자 "전세계 최고령 전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요를가 344세, 야를가 345세. 이들은 하이루딘의 수련을 보고 만족해한다. 그들은 카르멜이 "약탈보다는 교역이 좋다"고 한 말을 언급하는데 그 말은 좋지만 그래도 엘바프족이 전사라는 정체성을 잃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 이들이 외출한 것은 양의 집 아이들을 마을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동지제를 위한 행사 중 하나였다. 두 노병은 링링에게 "셈라를 먹으러 와라"고 하는데, 행사가 처음인 링링은 셈라가 뭔지 모른다. 게르즈가 설명해주는데, 동지제까지 12일이나 금식하기 위해서 미리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어둬야 하는데, 그것이 셈라.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로 과자라면 환장하는 링링이 눈을 빛낸다.
그날 마을에서 먹은 셈라는 링링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링링이 맛에 취해 흡입하기 시작하자 거인족 어른들이 와서 뜯어말릴 지경이었다. 단식 대비용이므로 양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링링이 먹어대는 속도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셈라를 먹고 시작된 단식. 링링은 삼일 째부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카르멜은 태양제를 "죽음과 부활의 축제"라며 괴로움만큼 태양에 대한 감사가 깊어지는 거라고 타이른다. 그렇게 카르멜이 달래고 타일러가며 6일째까지 버틴 링링. 링링은 정말로 카르멜을 좋아했기 때문에 배고픔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셈라가 자꾸 생각났다. 그 환상적인 맛.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7일 째를 맞이하던 링링. 그리고 그날 사건이 생겼다.
폭포수염 요를의 분노가 한계에 달했다. 그는 "태양에 감사할 자격도 없다"며 칼을 들어올린다. 그는 카르멜의 만류도 뿌리치고 링링을 단죄하려 든다.
- 원피스/870화 . . . . 26회 일치
* [[카포네 갱 벳지]]가 고통스러워하자 [[몽키 D. 루피]]는 바깥으로 나가려 하나 [[나미(원피스)|나미]]가 말린다.
* 나미가 [[상디]]의 구출, [[포네그리프]] 확보라는 자신들의 목적과 "가족을 구한다"는 상디의 목적까지 모두 이뤘는데 싸울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 벳지는 고통스러워하면서 탈출루트를 고안하는데 자신이 일행을 몸 속에 둔 채 인간으로 돌아가고 [[시저 클라운]]이 자신을 들고 공중으로 튀는 것.
* [[빈스모크 저지]]는 상디에게 왜 자신을 구했냐 묻는데 그는 "아버지가 슬퍼할 테니까"라고 대답한다.
* 상디는 제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가족을 구한 것 뿐이라며 자신이 저지의 아들이 아님을 인정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요구한다.
* 저지는 상디의 말대로 하겠다며 "이스트 블루"에도 손대지 않겠다 약속한다. 그리고 제르마66이 호위를 할 테니 벳지의 탈출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 벳지가 성을 해제하자 기다리고 있던 샬롯가의 형제들이 공격하는데 [[빈스모크 이치디]]가 나서서 막는다.
* [[빈스모크 레이쥬]]가 빅맘의 공격을 받고 휘청대자 결국 참다 못한 상디와 루피가 뛰쳐나와 빅맘을 막는다.
* 빅맘 [[샬롯 링링]]이 눈을 뜨고 무서운 보복이 이어진다. "빅파더"로 변한 [[카포네 갱 벳지]]가 그 공격을 막아내다 사경을 헤맨다. 빅맘의 딸이자 벳지의 아내인 [[샬롯 쉬폰]]이 성의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그녀는 자기와 손주의 얼굴을 봐서 남편을 용서해달라 애원한다. 너무 섣부른 짓이었다. 평소에도 [[샬롯 로라]]를 연상시킨다고 학대를 일삼던 빅맘이다. 쉬폰의 얼굴을 보다 더욱 화를 터뜨린다. 얼굴을 보였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녀도 암살 공범이란 이유로 공격이 거세진다.
* 빅파더 내부의 방. 벳지의 분신체가 고통에 겨워 몸부린친다. 빅파더의 위용에 환호하던 [[몽키 D. 루피]]도 상황의 위급성을 인식한다. 본래 빅파더는 보통 대포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 방어력을 지녔지만 빅맘은 차원이 너무 달랐다. 루피는 더는 못 보겠다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빅맘을 날려버리겠다고 성화다. 그걸 [[쵸파]]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찍어누르다시피 막는다. 나미는 그가 화풀이로 싸우려 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밀집모자 일당의 목표는 모두 달성됐다고 쏘아붙였다. 그들은 [[상디]]를 탈환하고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 본래 목표는 아니지만 뜻밖의 부수입도 있었다. "가족을 구하고 싶다"는 상디의 의지도 이루어진 것이다. 나미가 큰소리로 루피를 꾸짖으며 그렇게 말한다.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들릴 정도로.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빈스모크 레이쥬]]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빈스모크 저지]], 그리고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 조차도 벌레 씹은 표정이다. 상디는 자기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선원들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당장 벳지가 죽어가는 판국. 루피가 자기들 몫까지 벳지가 공격 받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벳지가 고통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연다. 그는 자기 쪽 결과는 이 지경인데 밀집모자 일당만 대성공을 거뒀다며 씁쓸하게 말한다. 브룩이나 [[시저 클라운]]은 그가 행여 길동무 삼는 짓을 하지 않나 떨지만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패거리의 안전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여기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도 걸려있었다.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상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영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반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순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상디는 [[원피스/841화|저지가 원했던 대로]] "빈스모크 상디"는 13년 전 바다에서 한 번 죽었다고 말한다. 상디는 그날 도망치려 했지만, 사실 그건 저지에게 버림 받은 거였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허락하지도, 자기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게 했던 그날. 돌이킬 수 없는 부자가 같은 기억을 회상한다. 상디는 빈스모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당긴다.
동료들은 상디의 절연선언을 묵묵히 듣고 있다. 그리고 저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버린 아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 이윽고 저지는 돌아서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도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 레이쥬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었는지 작게 미소짓는다. 그러는 동안 탈출방법에 대한 논쟁은 답도 없이 치열해졌다. 무조건 성공확률 0%라고 주장하는 시저, 어차피 이대로도 죽는다는 벳지의 의견이 평행선이었다.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저지. 그는 제르마가 호위가 될 테니 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시저는 왜 너희 맘대로 하냐고 반발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벳지는 듣고 보니 제르마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며, 다만 그럴 경우 제르마를 두고 가게 될 텐데 괜찮겠냐고 반문한다.
루피가 거기에 고무돼서 자신도 시간벌이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상디가 그러지 말라고 한다.
* 벳지의 품을 해집고 두 명이 튀어나온다. 상디와 루피. 상디가 "디아블잠브 스트라이크"로, 루피가 "고무고무 엘리펀트건"으로 제우스를 상쇄한다. 이럴 줄은 몰랐던 레이쥬. 루피와 상디는 서로 왜 뛰쳐나왔냐 탓한다. 루피가 "나오지 말라더니 너는 나왔냐"고 까자 "나는 나와도 되니까 한 소리"라 응수한다. 그리고 이 둘을 제일 까고 싶은 브룩, 나미, 쵸파는 "저 바보들이 나가버렸다"고 비명을 지른다.
- 은혼/628화 . . . . 26회 일치
[[은혼]] 628훈. '''잼 뚜껑이 안 열릴 때는 고무장갑으로 꽉 잡자'''
* 헤바의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나 긴토키는 그 힘에 취해서 폭주하다 자기 자신에게 츳코미를 넣게 되고 한동안 재기불능에 빠진다.
* 밤이 시작되고 화톳불이 피워졌다. 가부키쵸의 생존자들이 내일 일을 의논하기 위해 불 주위로 모여든다. [[시무라 신파치]]는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새삼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느낀다. 우선 가부키쵸의 터줏대감들인 "가부키쵸 사천왕"들이 있다. [[사이고 토쿠모리]]의 오카마 군단과 [[도로미즈 지로쵸]]의 흙탕쥐파 야쿠자들이 혼성된 묘한 군단. [[오토세]] 여가사 이들의 대표격으로 나서 의견을 듣고 있다. 방금 전엔 "해방군이 금방 돌아오진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오토세 여사는 그 말을 되짚으며 "해방군이 갑작스레 보복하러 올 일은 없다는 거냐"고 묻는다.
* [[진선조]]의 국장 [[곤도 이사오]]가 대답한다.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에 의해 우주와 지상의 통신이 두절되고 지휘계통까지 무너진 해방군이 금방 재건되기는 어렵다. [[히지카타 토시로]]도 놈들은 패주하다 막부의 추격대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에 거의 와해된 상태라고 덧붙인다. [[오키타 소고]]는 오히려 지금은 공세로 전환할 찬스라며 저정도 대군이 지휘계통도 없이 흩어진 지금이라면 병량을 노려서 궤멸시킨다면 그걸로 전쟁은 끝이라고 자신한다.
* [[야규 빈보쿠사이]]의 야규진음류 일가는 그 의견에 동감한다. 빈보쿠사이는 이 승리가 기적적인 것이었다는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야규진음류는 확실히 가장 큰 출혈을 본 파벌이라 할 수 있다. [[니시노 츠카무]]가 한 팔을 잃고 빈사, 후계자인 [[야규 큐베]]도 [[오우가이]]에게 당해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빈보쿠사이는 기적같은 승리 뒤에는 그만한 대가도 있는 거라 말하며 이 이상을 바라면 반드시 잃는 것도 더 나올 거라고 경고한다.
이 자리에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뒤섞여서 결론이 나지 않는다. 더 싸워야 한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두 의견으로 갈라져서 언성이 높아져간다. [[게도마루]]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또 하나의 파벌인 "해결사"팀에데 질문을 던진다.
이윽고 긴토키는 헤바... 아니 [[헤도로]]에게도 묻고 자빠진다. 그러나 정작 개조 당한 헤도로 본인 조차도 헤바가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신파치가 그저 말도 안 되는 몬스터 아니냐고 신랄하게 까자 긴토키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헤도로와 헤도라의 힘을 나누는데 성공했다고 밝힌다. 헤바의 머리에 있는 한 쌍의 꽃이 그것이다. 이 꽃 형태의 레버로 헤바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데 이미 능숙하게 츳코미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신파치에게 시험 삼아 보케질을 해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츳코미역이라며 캐릭터성을 따지고 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의 츳코미. 이처럼 오른쪽 레버를 사용하는 것으로 사악한 헤도라의 힘을 츳코미력으로 바꿀 수 있다. 그 밖에는 잼 뚜껑이 열리지 않을 때 여는 담당 등을 맡길 수 있다. 죽을 뻔한 신파치는 "인류에 츳코미를 걸고 있다!"며 위험성을 성토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비책의 왼쪽 레버의 "헤도로"이다. 왼쪽 레버를 작동시키자 헤바는 헤도로의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신파치를 걱정한다. 신파치가 경계심을 풀려는 찰나, 헤도로가 신파치 발 밑에 있는 무당벌레를 발견하고 구하기 위해 헤도라 못지 않은 과격한 일격필살 액션을 취한다. 결국 어떻게 해도 결과는 비슷한 것이다.
신파치가 츳코미를 한 건데 여기에도 또 츳코미가 날아온다. 긴토키의 짓이다. 긴토키는 "보케질은 엉뚱하거나 바보같은 말 전부"를 칭하는 거라며 아무튼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츳코미를 넣겠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실로 악마 위에 악마가 타고 있는 상황.
* 바퀴벌레 때문에 당한 일격이 결정타가 되어 긴토키는 자리보존하고 눕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시무라 타에]]는 "악마가 아니라 신이었다"며 원래 안 쉬려고 할게 뻔한 긴토키를 이렇게라도 쉬게해주니 신이 휴가를 준거나 다름 없다고 포지티브하게 해석한다. 헤도로는 긴토키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타에는 "사람을 조종하려 한 이 인간 잘못"이라며 다독이지만 여린 심성의 헤도로는 쉽게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긴토키도 바퀴벌레만큼이나 소중한 지구의 친구"라고 말하며 사과하지만 바퀴벌레와 비교된 당사자는 툴툴거린다. 타에가 헤도라의 인격을 살짝 열어서 긴토키가 정신차리게 만든다.
정말로 듣기 힘든 긴토키의 칭찬이었지만, 아쉽게도 신파치도 그 말은 듣지 못한다. 어느새 신파치도 앉은 채로 졸기 시작했다. 결국 긴토키는 자기 이부자리까지 신파치에게 넘겨준다. 타에는 조금만 버텼으면 쉽게 못 들을 말을 들었을 거라고 아쉬워하는데, 긴토키는 태평하게 대답한다.
* 밤 하늘에 달이 완연히 떠올랐지만 진선조는 아직도 잠들지 못했다. 히지카타를 따라나선 오키타는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언제나 돼야 쉴 수 있냐"고 투덜거렸다. 회의는 결국 오늘은 푹쉬고 해방군에 대해선 내일 얘기하자는 어정쩡한 형태로 종결. 대부분은 쉬러갔다.
히지카타는 어차피 세상이 멸망하면 쉬는건 얼마든지 할 테니 사바세계를 즐겨두라고 대꾸한다. 하지만 세상은 겐가이포의 영향으로 전등불 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 오키타는 이런데서 할 수 있는건 자는 거나 그거 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대정전이 일어난 도시는 이듬해 출생률이 오른다는 도시전설도 주절거린다. 우연의 일치인지 막 잠자리에 든 긴토키는 사루토비가 이불 속에 숨어들어와 내쫓는 중이다.
* 히지카타는 정전이란 말에 "내가 찾는게 그거"라고 말한다. 오키타는 "그거할 상대"라고 알아듣지만. 그가 말한건 정전을 넘어 에도의 모든 기계를 멈춘 남자 [[히라가 겐가이]]였다. 겐가이포 덕에 그나마 해방군을 막아낸 거지만, 이대로는 그들도 우주와 단절된 상태로 아무 연락도 취할 수 없다. 우주로 나간 [[가츠라 고타로]] 일행과 교신하려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그러자면 겐가이의 협조가 필연적이다.
* 사루토비의 습격을 이겨낸 긴토키는 다시 자려고 하지만 이번엔 게도마루가 말썽을 부린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게도마루가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판데모니엄]]을 링거 꽂은 입에 꽂아놓고 가버린 것이다. 다시 잠들지 못하게 된 긴토키.
- 은혼/635화 . . . . 26회 일치
* 카무이는 [[우츠로(은혼)|우츠로]]를 진정한 적이자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에게서 "최강"을 빼앗아간 자로 보고 타도하려 한다.
>반드시 지구에 가자고 그렇게 약속했던 바보는 혼자가 아니야.
* [[히라가 겐가이]]를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야토족 용병 부대 사이로 뛰어들었던 [[가구라]].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위기에 처하고 위험한 순간 [[카무이(은혼)|카무이]]가 나타난다. 용병부대의 지휘관 "노사"는 가구라가 지구인을 위해 헌신하는 걸 보고 "바보"라 비하하자 카무이는 적들을 날려보내고 "바보는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카무이의 오른팔 [[아부토]]도 등장. 카무이 휘하 7사단의 야토부대 전원이 이 자리에 모였다.
* 노사는 그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한때 "하루사메의 뇌창"이라 불렸던 우주해적 하루사메의 7사단. 그러나 하루사메 그 자체는 망해버리지 않았던가? 노사는 "망한 해적 나부랭이"라 부르며 그들이 왜 여기에 있냐고 묻는다. 카무이는 해적이란 없어지는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질서가 생기면 혼란도 생기듯 우주를 하나로 묶으려 들면 그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도 생긴다고 말한다.
같은 시각 우주에서는 [[엔죠]] 황자가 [[귀병대]]의 함대와 교전 중. 함대의 수와 질은 단연 해방군이 우위였다. 그런데 우현에서 뜻밖의 공격이 직격한다. 당황하는 엔죠.
* 카무이의 말처럼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러 온 하루사메 함대. 전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카무이의 동지로서 하루사메 잔당을 규합, 귀병대를 지원하러 온 것이다. 이들의 도착 소식에 [[다카스기 신스케]]는 "꽤 늦었다"며 쓴소릴 날리지만 바토우는 늦은 만큼 매꿔주겠다고 대꾸한다. 작전방침 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늦었다는데. 그들의 대장이 총대장인 주제에 곧 날아가버릴 지구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어지간히 단세포인 사루가쿠도 두 손 들었다며 "대장이 당하기 전에 해방군을 처리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 무엇보다 카무이는 그 지구에 해방군 전체보다 위험한 놈이 있다고 강변했다 한다. 신스케가 그 말을 듣고 "해방군은 그냥 시작에 불과하다"고 카무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사루가쿠는 자기도 내려가 볼걸 그랬다고 투덜거린다.
* 카무이는 우주는 그들에게 맡겨뒀고 뭣보다 해방군을 부숴봐야 변하는건 없다고 단언한다. 카무이는 "진정한 적"을 쳐부숴야 한다며 [[우츠로(은혼)|우츠로]]를 지목한다. 그 우츠로를 쳐부수기 위해, 카무이는 가구라에게 이제 일어서라고 말한다. 그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자식이 이런데서 당한 채로 끝나선 안 된다면서. 그리고 자신은 다시 일어나 우미보즈에게 "최강"의 칭호를 뺏어간 우츠로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약함"을 들추고 이기고 도망친 "여동생"에게 이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는 거야 말로 "최강"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바로 가구라. 그러니 이젠 가구라가 일어날 차례이다.
카무이의 옆에서 다시금 싸울 자세를 잡는 가구라. 카무이는 가구라가 방해만 안 되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만 무사하면 너 따윈 언제든지 해치울 수 있다는 말을 남매가 똑같이 주고 받는다.
* 남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상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태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노사의 진정한 야토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기 몸에는 야토가 야토였을 때 흐르던 오래된 피가 있고 그 순수한 피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하며 목숨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노사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어느새 근육질의 거한으로 바뀐다. 이게 노사의 진짜 모습. 비록 사용하면 수명이 줄지만 이젠 어쩔 수가 없다며 본래의 힘을 드러낸 것이다.
* 그런 변신은 평범한 야토에게는 없는 기술이다. 단원들이 당황하자 아부토는 오래 전 들었던 정보를 언급하는데, 그 또한 야토의 전설적인 용병으로 일명 "장로"라 불리는 자다. 기공의 달인으로 육체를 자유자재로 가사상태로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긴 수명을 손에 넣은 그는 무려 200년 이상 전장에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토의 산신령 같은 존재. 아부토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노사가 달려든다. 그의 공격에 여러 야토가 단 번에 날아간다. 그는 젊고 강한 육체를 가지고도 거기엔 썩은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탄한다.
* 카무이의 힘은 오히려 노사를 밀어낼 정도였다. 그때, 노사의 후방에서 또 한 명의 쿄쿠카의 자식, 가구라가 날아든다. 아까까지 티격거리던 남매는 이 순간 의견 일치를 본다.
- 이수민(야구선수) . . . . 26회 일치
||<:> '''학력''' || 도산초-대서중[* 단 중학교 시절은 구미중에서 보냈으며, 상원고 진학 전 대서중으로 전학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고]-[[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신인 [[투수]]. 2009년 이후 5년만에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의 대상자이면서, 같은 년도에 [[kt wiz]]에 1차 지명된 [[박세웅(1995)|박세웅]]과 함께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고교 시절 별명은 [[이계인|모팔모]].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상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상원고 감독인 [[박영진(야구)|박영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28230025367&gid=11034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6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10회에 등판해 1점차의 상황에서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볼질]]도 안 하고[* 볼넷을 1개 내줬는데, 좌투킬러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고의사구로 걸렀다.] 선배인 [[김헌곤]]이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다가 놓치자 괜찮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0⅔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을 기록한 후 [[김건한]]으로 교체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첫 홀드를 챙겼다.
6월 2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2루에서 [[김건한]]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박민우(야구선수)|박민우]]에게 볼넷을 주었으나 후속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플라이로 처리하였고 7회말 타선이 대폭발하며 상대 구원 [[이민호(야구선수)|이민호]]를 박살내버리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류중일]] 감독은 이수민이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게 하였고 이수민은 9회 1실점하긴 했으나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경기를 마무리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기록은 3.1이닝 1피안타 6볼넷 1사구 1탈삼진 1실점. 볼넷이 많긴 했으나 그 유명한 [[김풍기]] 주심의 괴악한 스트라이크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어지간한 베테랑 투수도 멘탈이 붕괴될 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공을 던지며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이후 7월 7일에 휴식일이 겹쳐 2군으로 내려갔던 [[J.D. 마틴]]의 복귀를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군에서 투구 밸런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볼질]]이 심해지는 바람에 그대로 2군에서 시즌을 마쳤다. 2군 성적은 17경기 2승 4패 평균자책점 5.07.
상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15일 2일 휴식 후 삼성전에 갑자기 선발로 나서 7이닝 135구를 소화한 뒤부터 부진에 빠졌다. 14년 말에 팔 스윙을 수정한 뒤로 제구력이 안정화되지 않았는지 볼넷이 급증한 상태였는데, 이 갑작스런 선발 등판 이후 삼진이 급감하고 볼넷이 늘면서 실점 또한 많이 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피홈런까지 늘어난 상황인데, 들리는 바로는 투구폼의 교정을 진행중이라고 하니 이로 인한 과도기라고 참작할 수는 있다.
최종 성적은 24경기 34.2이닝 25삼진 3사구 29볼넷 47피안타 6피홈런 평자책 9.09.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식하고 선발로 나온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순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상 안식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상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3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에 선발등판했다. 2이닝 5피안타 1볼넷 4삼진. [[이택근]]의 빚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기는 했지만 두 이닝 모두 조금씩 주자를 쌓는 모습을 보여줬다. 볼질이 없고 위기때마다 삼진을 잡는것은 긍정적이지만, 아무리 2군 멤버의 수비가 안좋다해도 너무 많은 피안타를 허용했다.
상무에서의 생활과 전역 후 부진에 관련된 글. [[http://gall.dcinside.com/samsunglions_new/562430|주소 현재 원글은 지워진 상태다.]][* 다만 이 블로그 주인의 다른 글들이 [[사자 사랑방]]과의 논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2군에서 주로 계투로 등판하며 2군 성적은 21경기 27⅓이닝 1패 ERA 9.88로 부진이 이어졌다. 시즌 내내 삼진=사사구 수준으로 제구력에 기복이 있었으나 그나마 9월 들어서 3경기 동안 7⅓이닝 2실점(0자책점)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한국프로야구/2014년/신인드래프트|2014년 신인 2차지명 회의]] 후 열린 신인 인터뷰에서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열심히 해서 '''왼손 투수가 없으니까''' 빨리 자리잡겠습니다."라고 말해, 본의 아니게 [[장원삼|팀]] [[권혁|선배]] [[차우찬|좌완]][[조현근|투수]][[백정현|들을]] [[박근홍(야구선수)|모조리]] 디스해 버렸다(…).
- 이훈(배우) . . . . 26회 일치
헬스로 인해 탄탄하게 다져진 몸 때문에 터프가이, 마초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와 예능에서 하는 발언들을 보았을 때 실상은 '''굉장한 삐돌이 [[소인배]].''' 이 소인배 캐릭터는 2000년대 말 놀러와 게스트 출연 당시에도 이미 나왔지만 그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 2010년대 들어서 널리 알려졌다.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나왔는데 [[정준하]]와 [[유재석]]이 본인들이 환영회를 책임지고 해주겠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자기들 놀기에 바쁜걸 보고 화가 나서 "늬들은 형도 아니야" 라고 섭섭함을 표하면서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로 [[무한도전]]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 또 [[정글의 법칙]]에 캐스팅됐다가 나중에 제작진의 말이 바뀌면서 출연이 무산되자 역시 그 뒤로 정글의 법칙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어째 이해는 가는데?--
이훈 신혼 초 부부싸움 후 유재석 정준하 한재석 소개팅 겸 술자리에 끼게 된 이훈을 쫓아온 이훈의 아내를 유재석이 정준하가 주선한 소개팅 멤버 중 하나로 오해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도록 한 적이 있어서 아내는 아직도 유재석을 안좋게 생각한다고 한다. 술자리에서의 실수로 유재석도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원래도 마초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트러블이 잦았는데 대표적인 일이 바로 서경석과의 악연. [[서경석]]이 군 복무를 할 당시 그의 맞고참이었다. 실제로 서경석이 자신의 군 생활을 엮어 집필한 책인 '서경석의 병영일기'의 내용을 보면 이훈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보다 연예계 후배이고 나이도 어린데 너무나 막 대하는 것에 상당한 앙금이 남았던 듯. 책에서는 아니지만 서경석이 전입한 날에 이훈이 재떨이를 던진 사건은 방송계에서 꽤 유명한 일화며 [[http://k.daum.net/qna/view.html?qid=3GaDe|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해 그는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말하길 서경석한테 자신에게 할당된 휴가를 대신 보내주려고 하는 등 잘해준 것도 많은데 서경석이 책에다가 죄다 자기 욕만 썼다고 투덜대었다.
헬스장 사업을 했다가 말아먹어서 15년부터 예능 쪽 문을 좀 더 두드리는 중이며 본인 에피소드의 10에 9은 '''누구한테 삐진 이야기.''' 본인 스스로 자신은 [[대인배]]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며, 대인배는 대범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로 쉽게 싸우지 않기 때문에 대인배라면 자신처럼 싸워서 합의금 낼 일도 많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신은 오히려 못 참는 성격이기 때문에 살면서 사람들과 충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는 잘 삐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
이훈은 한 해 아래지만 탤런트 특채이지 개그 특채가 아니긴 한데, 시사코미디 패널로 출연했다가 들어온 거라 개그 기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훈이 20대 초반에, 살면서 유일하게 [[헌팅]]을 한 여자가, "나는 연예인이랑 사귀고 있음 ㅈㅅ" 라면서 거절하자, 그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박명수예요."라는 한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러브라이버]]에게 표적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니시키노 마키]]로 유명해진 가수 겸 성우 [[Pile]]이 찍은 저축은행 광고 남자 모델이 그이기 때문. 그리고 동시에... Pile은 완전히 묻혔고, 이제는 [[이훈]]만이 단독으로 모델을 하고 있다.
2017년 2월 13일,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8/0200000000AKR20170218035451004.HTML|#]] 그래놓고 백종원의 푸드트럭에 참여해서 자기가 32억 빚이 있다는 이야기로 홍보나 해댔다. 마찬가지로 빚이 있는 [[이상민(룰라)|이상민]]의 재기를 보고 자신도 다시 떠 보려는 듯 하지만 개인회생을 신청하지 않고 자력으로 재기하려 하는 이상민과 비교되고 있다.[* 김구라의 말에 따르면 빚이 10~50억 사이라고 말했으며 백종원의 푸드트럭에서 밝혀진 액수는 32억.]
* [[내 남자의 여자]] - 이동하
* [[왕의 여자]] - 이한민
* 비단잠자리
* [[백종원의 푸드트럭]]: 자신이 직접 [[푸드트럭]] 창업에 도전했으며 푸드트럭으로 번 수익은 전액 소상공인과 청년 창업도전자를 위해 기부했다.[[http://naver.me/5cHkZlAh|#]]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26회 일치
* 고서는 춤을 출 수록 디안느의 전투력이 15000이상으로 치솟는 것을 확인, 디안느 자신의 말로는 계속 춤을 출 수록 더 올라갈 거라고.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마음의 심장"을 분석한 결과를 알려주러 오고 이것은 단지 빈 케이스고 진짜 고서의 마음은 바로 그 자신 속에 있다고 말한다.
* 디안느의 호소로 나쟈와 진짜 고서의 기억을 되찾은 인형 고서는 감정이 회복되며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온다.
* 고서가 주춤하며 공격을 멈추자 디안느도 춤추기를 멈추고 "계속 춤을 추면 전투력은 더욱 올라간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싸우는게 아니라 대화. 그녀는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다가서지만 고서에겐 대화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이 시점에서 고서의 승률은 4%. 그러나 도주 성공 확률이 36%로 나오자 그는 주저없이 도주한다. 그러면서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갈 수록 디안느가 공격을 주저할 테니 도주확률은 더 높아진다는 계산을 해대는데... 그의 도주확률을 한 번에 2%까지 떨구는 존재가 나타난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한 발 먼저 고서의 퇴로를 차단했다. 고서가 측정한 요정왕의 전투력은 41600. 고서는 도망치던 것도 잊고 단기간에 이토록 전투력이 급상승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킹은 그런 질문을 듣는거 자체로 만족하지만 곧이어 고서가 "그 조그마한 날개 때문이냐"고 날개 크기를 걸고 넘어지자 분개한다.
* 이렇게 잠깐 틈이 생긴 사이 인근 주민이 소란을 듣고 "무슨 소란이냐"며 바깥으로 나온다. 고서는 그를 인질로 잡아 상황을 타개할 생각으로 달려드는데, 뜻밖에도 그건 [[베로니카 리오네스]]. 소란을 멈추기 위해 나왔다가 고서가 나타나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진짜 충격을 받은 쪽은 고서. 베로니카으 모습에서 그녀의 고모인 [[나쟈 리오네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 나쟈의 모습은 더이상 단편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음성까지 떠오를 지경이 되자 고서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로스트 월드를 발동시킨다. 디안느는 다시 술법이 발동하는 걸 막는다. 할리퀸은 그동안 베로니카를 피신시킨다.
* 디안느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기억을 지우려고 안달이냐고 묻는다. 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답한다.
"한 번 더". 디안느가 지적하지 않아도 고서 자신이 그런 자각이 생겼다. 분명 자신은 이전에도 기억을 지웠다. 분명히 소거했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금 그를 괴롭힌다.
바트라는 그녀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고서가 바트라의 누나 나쟈와 나눈 시간들과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녀를 살려보려 했던 고서의 시도까지. 그러나 자신의 심장으로 나쟈의 심장을 대체해주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고서는 충격과 절망 속에서 심장은 고성의 지하에 버리고 자신의 기억을 지웠던 것이다.
* 고서는 이제 나쟈의 죽어가는 몸과 자신의 덧없는 시도, 피가 흥건했던 손까지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럴 수록 고통은 더해졌고 자신을 구속한 디안느에게 이렇게 애원하기에 이른다.
* 멀린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밝힌다. 지금까지 "마음의 마법"이 담겨있다고 여겼던 마음의 심장은, 사실 빈 상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전에 "마음의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단언하자 할리퀸이 "그럼 고서의 마음은 어디에 있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멀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어느새 고서는 감정이 없다면 흘릴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그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되돌아온 진짜 고서. 그는 자기 자신의 손으로 마음을 닫았었다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잃어버린 아픔과 함께 잊으려 했다고 자책한다.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디안느는 그럼 "마법의 심장"은 뭐였던 거냐고 멀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십계 고서가 자신을 인형이라 한탄하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부적 같은 거였을 거라고 답변한다. 그러는 동안 멜리오다스와 반이 도착한다. 하지만 상황이 끝나서 그들의 차례는 없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서 [[에스카노르]]도 도착. 지쳐서 다죽어가는 판이다.
- 장순왕후 . . . . 26회 일치
{{구별:[[장성원 (배우)|세자빈]]}}
|작위 = [[조선의 역대 왕세자빈|세자빈]]
|전임자 = [[소혜왕후|수빈 한씨]](소혜왕후)
|후임자 = [[거창군부인|빈궁 신씨]](거창군부인)
|별칭 = 왕세자빈, 장순빈
|배우자 = [[유민상]]
|자녀 = [[장성원 (배우)]]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1460년 세자빈(世子嬪)으로 간택되어 당시 세자였던 [[조선 예종|예종]]과 가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었으니 이때 나이가 16살이었다. 정숙한 성품에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조선 세조|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책봉 이듬해인 [[1461년]] [[음력 11월 30일]], 왕실의 적통인 원손(예종의 장남인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같은 해 [[음력 12월 5일]]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산후병으로 향년 17세로 요절했다.
야사에서는 장순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조선 덕종|덕종]](의경세자), 남편 [[조선 예종|예종]]과 아들 [[인성대군]] 등 [[조선 세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조선 단종|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주의 첫 대상자로 알려진 [[조선 덕종|덕종]]의 경우 [[조선 단종|단종]]보다도 먼저 사망했으며, 따라서 [[조선 세조|세조]]가 [[조선 덕종|덕종]]의 죽음에 분노해 [[현덕왕후]]의 능묘를 파헤치고 폐서인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선 세조|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온순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을 장(章), 유순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순(順)이라 하여 세자빈 한씨에게 장순(章順)의 시호를 내리고 장순빈(章順嬪)으로 삼았다. 후일, 장순빈의 제부이자 시조카인 [[조선 성종|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를 장순왕후로 추존했다.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파주삼릉]] 내에 위치한 [[공릉 (장순왕후)|공릉]](恭陵)이다. 장순왕후로 추숭되면서 왕후의 예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애초에 세자빈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한 행색을 갖추었다.
***** 여동생이자 시질부 : [[공혜왕후|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 1454~461)
***** 제부이자 시조카 : 제9대 [[조선 성종|성종]] (成宗, 1450~1469)
*** 시조카이자 제동생: 제9대 성종(成宗, 1457~1494)
*** 시질부이자 여동생 :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 1456~1474)
전임자=[[정희왕후]]<br/>([[소혜왕후]])|
후임자=[[안순왕후]]|
[[분류:1445년 태어남]][[분류:1461년 죽음]][[분류:조선의 추존왕후]][[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한명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조선 예종]]
- 정몽헌 . . . . 26회 일치
|배우자 = [[현정은 (1955년)|현정은]]
|자녀 = 슬하 1남 2녀
|순자산 =
'''정몽헌'''(鄭夢憲, [[1948년]] [[9월 14일]] ~ [[2003년]] [[8월 4일]])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2002년 9월]]부터 [[대한민국의 특별검사제도|대북 불법송금 사건]] 관련 조사를 받던 도중 [[2003년]] [[8월 4일]] 현대계동사옥 12층에서 투신자살하였다.
그는 현대가의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형제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었는데, 이후 [[2002년]] [[9월]]에 5억 달러 [[대한민국의 특별검사제도#대북송금 특검법|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2003년]]에 검찰 조사를 받았고, 추진하던 [[현대아산|대북사업]]의 차질과 현대그룹의 경영 악재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03년]] [[8월 4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했으나 타살 의혹이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투신자살
|날짜=2003-08-04}}</ref><ref>[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1&cid=389123&iid=157543&oid=001&aid=0002957649&ptype=011 재벌총수만 두 번째…유력인사 왜 자살할까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재계 인사들은 '부친의 숙원 사업이었던 대북 사업 등 가업을 제대로 잇지 못한 것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추측했다.<ref>[http://www.ilyoseoul.co.kr/show.php?idx=88364&table=news_economy&table_name=news_economy&news_sec=003 삼성家 아픈 역사… ‘비운의 황태자’ 만들었나?]</ref> 정몽헌의 사망 후 부인 [[현정은 (1955년)|현정은]]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 1984년 ~ 1991년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 사장
* 1992년 1월 ~ 2000년 5월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회장
* 1998년~2000년 현대 경영자협의회 공동 의장 (그룹 회장)
* 2000년 3월 현대 경영자협의회 의장
*** 배우자 : [[현정은 (1955년)|현정은]] (1955 ~ )
***여동생: [[엘리자베스 정]] (1982 ~ )
|전임자 = [[정몽구]]
|후임자 = [[현정은 (1955년)|현정은]]
|전임자 = (신설)
|후임자 = [[현정은 (1955년)|현정은]]
|직책 =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의장
|전임자 =
- 진격의 거인/92화 . . . . 26회 일치
공수부대를 실은 마레의 비행선이 스라바 요새 상공에 도착한다. 주력은 물론 마레의 전사 [[라이너 베르너]]와 [[지크 예거]]다. 하지만 마레의 전사는 그들만이 아니다. 비행선의 공간 대부분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특이한 적재물이 차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약에 취한 것 처럼 눈에 초점이 없고 입가가 침으로 번들거린다. 이들도 "마레의 전사"다. 자아를 잃었음이 틀림없는 엘디아인들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려서 도하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중동연합의 저항도 거세다. 다가오는 마레의 병사들은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 사격에 몰두하던 적 병사들은 곧 그들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기관총 포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차력의 거인"이다. 매우 특이한 거인으로 엎드려 걸어다니며 등에는 한 쌍의 기관총 포탑이 올라가 있다. 얼굴은 말이나 개처럼 길쭉한데 묘한 형태의 철가면을 썼다. 각 포탑에는 병사가 타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적의 기관총 진지 코 앞까지 돌진한 차력의 거인. 포탑의 기관총이 진지 앞의 병력을 섬멸한다. 차력의 거인은 길쭉한 얼굴을 진지로 들이밀어서 지붕을 들어내 버린다. 그 사이 보병들이 진격, 적의 최종 방어선은 이렇게 무력화된다.
* 전사 후보생 파르코는 낙오된 적의 병사를 자군 참호로 끌어들인다. 총에 맞아서 전투능력을 상실한 병사다. 옷을 입던 가비는 그 짓을 보고 뭔 짓이냐고 묻는다. 파르코는 "보는대로 전투능력이 없는 포로를 잡았다"고 대답한다. 그의 지혈이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그들 바로 옆에선 마레인 장교가 총상을 입고 투덜거린다. 원래 최전선은 엘디아인의 몫인데, 왜 마레인인 자신이 다쳐야 하냐는 얘기였다.
파르코는 동료 우도에게 포로의 지혈을 부탁한다. 가비는 그런 모습을 보며 빈정거린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어필한다고 자신에게 돌아올 갑옷 거인의 후계자 자리를 뺏을 수는 없다면서. 파르코는 알 바 아니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가비에겐 그런 태도도 이상해 보인다.
* 지휘관 마가트와 콜트는 전선의 동향을 주시한다. 마가트는 콜트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적 전선을 충분히 타격했으니 전사대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의 퇴로를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시선은 곧 하늘로 향한다. 이제 상공의 비행선이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보인다. 마레의 최주력이자 최고전력. 작전의 성패는 그들 몫이다.
콜트가 그렇게 의견을 마무리하자 마가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퇴각을 알리는 신호탄이 발사되자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한다. 어영부영하다간 휘말린다. 병사들이 참호로 돌아오는 가운데 후보생들은 막 강하가 시작된 하늘을 쳐다본다. 가비가 시작됐다고 중얼거린다.
같은 시각 스라바 요새 안의 병사들은 하늘로 쏟아지기 시작한 흰 점의 행렬을 발견한다. 마침내 도하의 시작이다. 레일을 따라 매달린 적재물이 하나둘 허공으로 던져진다. 자동으로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적재물은 곧 낙하물로 입장이 바뀐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레의 전사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어차피 꽁꽁 결박돼 있어서 사정을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 비행선 안이 텅 비자 지크와 라이너가 준비한다. 라이너는 손에 나이프를 쥔 채 낙하하는 동료들을 바라본다. 동포들이 비행선과 적당한 거리를 이루자 지크가 목청을 가다듬고 고함을 지른다.
마침내 허공의 엘디아인 낙하산 부대는 같은 수의 지성없는 거인들로 영영 바뀐다. 그저 식욕 뿐인 괴물들이 중력에 따라 요새 위로 쏟아진다. 아래에서 보면 거인이 비처럼 내리는 것 같다. 이들의 육중한 신체는 그 자체로 요새에 폭격을 가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거인들이 쏟아지는 곳 마다 벽이고 건물이고 상관없이 무너져 내린다. 중동연합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피하지만 그래봐야 의미가 있을까?
* 거인의 자유낙하는 마레의 전사의 약 6할을 소모시킨다. 그렇지만 거인이 약 4할만 살아남아도 충분하다. 요새는 반파되었고 기능을 잃었다. 살아남은 거인들은 운 좋게 폭격을 피한 병사들, 생존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다. 요새의 병사들은 참담한 얼굴로 다가오는 거인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폭격으로 죽는 것이 운 좋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가비와 파르코를 비롯한 엘디아인 누구도,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저 탐식적으로 변한 자신의 동포들을 눈에 새긴다.
* 폭격이 비켜나간 온전한 요새 벽에서 최후의 저항이 이어진다. 지휘관이 말했던 대거인전용 야전포다. 위력이 상당해서 벽 위를 공격할 수 없는 작은 거인들은 속절없이 박살난다. 라이너는 낙하하면서 이 야전포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한다. 약 29대. 상당한 숫자가 기동 중이다. 거인병력의 6할은 낙하와 동시에 전멸했으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라이너에게 치명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단 벽이란 것 자체가 싫다. 그는 "또 벽이냐"도 중얼거린다. 그건 싫은 기억을 자극한다. 4년 전의 기억을.
* 갑옷의 거인이 낙하. 가비는 그것을 보고 "라이너, 조심해"라고 작게 속삭인다. 옆에 있던 파르코가 그걸 의식한다. 거기까지 들리진 않았겠지만 라이너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는 낙하와 동시에 요새 벽 위의 야전포를 차례 차례 쓸어버린다. 문자 그대로 벽 위의 먼지를 쓸어내는 것처럼. 적들은 대거인전용 철갑탄으로 응수한다. 이 철갑탄은 라이너의 갑옷을 꿇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라이너는 첫 응사를 막아내지만 오래 노출돼봐야 좋을게 없다. 다음 탄을 장전하는 사이 라이너가 철갑탄을 쏜 쪽으로 우선 달려든다. 하지만 충분히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사격 준비가 끝난다.
그때 갤리어드가 후방에서 이들을 덮친다. 갤리어드는 뛰어난 도약력으로 벽 위의 야전포를 습격, 사격을 저지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력이 집중되기 전에 급히 이탈한다. 라이너에겐 충분히 시간이 벌렸다. 그는 급수탑을 뜯어내서 벽 위를 향해 휘두른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야전포들이 깨끗하게 쓸려나간다.
* 지크를 향해 집중된 포격을 라이너가 대신 맞는 동안, 연합함대가 괴멸한다. 함대의 괴멸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갑옷 거인의 반신이 날아가는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레의 병사들은 작전의 성공도 전쟁도 끝도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갑옷 거인이 쓰러지는 걸 바라본다. 가비는 망연자실하게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린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26회 일치
그러니까 나는 좀비로 가득한 동네에서 유일할지 모르는 생존자로서 집안에만 갖혀 있다가 오늘 하루만에 옆집 주인을 죽이고 그 집 차를 훔치려고 녀석들이 득실 거릴지도 모르는 집안으로 들어가 보는 거야. '''정말 완벽하군!'''
토트넘 본인이든, 아니면 다른 방문객이든 누군가 거실을 드나든 흔적은 있다. 먼저 보이는건 담배다. 적어도 생존자가 남기진 않았으리라. 담배갑 째로 버려져 있는데 통채로 물어뜯어놨다. 잇자국이 선명한 걸 보니 치아 관리를 잘했나 보군.
그리고 뭐가 허연게 굴러다니는데, 자세히 보니 두루말이 휴지였다. 개가 장난친 것처럼 엉망이다. 여성잡지는 별다른 흥미를 못 끌었는지 거의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이건 귀중하군. 인터넷도 못하는 채로 한 달이 넘게 있었기 때문에…… 좋은 그림이 많다. 가능하면 집어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 당장 챙겨야할 물건은 아니다. 만약의 경우 손에 속옷 사진을 들고 죽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속옷 사진을 든 채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기는 더더욱 싫다.
그 옆에는 장롱이 넘어져 있다. 이건 앞으로 넘어져 있다. 매우 부자연스럽다. 녀석들이 창궐한 거지 지진이 난게 아니다. 녀석들에겐 장롱 정도로 무거운 걸 넘어뜨릴 힘은 없을 것이다. 이건 장롱 앞에서 당겨서 넘어진 형태다. 이런건 사람이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존자가 다녀갔을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엔 주장이 너무 깨끗하다. 여기까지 들어온 생존자라면 뭔가 찾으러 왔을 것이다. 나처럼 다이너스티를 노렸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일부러 어질러놨을까? 차키가 장롱 밑에 있을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마비되어 있던 감각들이 깨어났다. 다리가 굳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하반신이다. 게다가 녀석들 쪽이다. 생존자가 이런 꼴이 됐더라면 필시 피가 흐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이 방이 빨간 방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체액이 튄 흔적은 없다. '''절단면'''에 검은 끈끈이 같은게 엉겨 있는게 전부다.
다시 이 장롱을 누가 넘어뜨린 건지, 이 녀석이 깔린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진다.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건 생존자가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녀석과 마주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해놨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럼 다시 자그마한 의문이 생기는데……
'''그 생존자가 이 놈의 상반신을 잘라을 거란 얘기가 된다.'''
장롱이 무겁긴 하지만 쓰러진 것만으로 허리를 절단할 정도는 아닐 테니까. 깔려서 버둥대는 녀석을 놔두고 도망치거나 머리만 깨버리고 가버렸다면 얘기는 간단하다.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고의로 잘라낸 거다. 무슨 악취미일까? 갑자기 녀석을 구하고 싶어지기라도 했을까? 최악으로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그제서야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들에 주목했다. 다양한 종류의 알약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찾다 보니 약봉지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근처 약국에서 제조한 것이었다. 몸살약이라고 적혀 있는데 제조한 날짜가…… 세상이 이렇게 되기 얼마 전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이렇게 되고 나서 제조할 수 있을리 없으니까.
자 보자.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기 바로 얼마 전에 옆집 아줌마는 수상한 병으로 한 달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집 아저씨만 수상한 약을 지어다 먹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사단이 일어나고 우연히 옆집의 생존자가 탐색하러 왔는데…… 죽은지 오래된 녀석의 하반신이 덩그러니 있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이야기를 한 편 짜맞췄다. 어떤 남자가 정체불명의 병에 걸린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했다는 얘기다. 너무 헌신적이었는지 침대를 떠나지도 못하게 묶어놨을 정도였다. 아직도 이 넝마같은 침대에는 '''가죽끈'''이 달려있다. 참 솜씨 좋게 붙여놨군. 그러던 끝에 결국 아내는 간호가 지겨웠는지 침대에서 빠져나왔고, 전쟁 같은 부부싸움을 치렀다. 장롱은 그 과정에서 넘어졌을 것이다. 아내는 거기에 깔렸고 살아남은 남편은 뭘로 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내의 허리를…… 이하 자체검열.
잠깐 중단하자. 얘기가 맞물리지 않는다. 물론 그 정체불명의 병의 정체가 좀비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설마 그런 증상일 거라고는 몰랐을 아저씨는, 혹은 알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는 아저씨는 아내는 숨긴 채로 어떻게든 되돌릴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다. 약국 아저씨도 열광적인 조기축구회 멤버였던 걸 생각하면 처방전 없이 특제 몸살약을 제조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지내던 한달여 만에 결국 아줌마가 빠져나오고 안방에서 악몽 같은 일전 끝에 장롱으로 깔아뭉게는 걸로 결론이 났다면 아주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아저씨는 토트넘이 되었다.''' 살아있는 채로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엉성한 부분이야 어쨌든 아저씨가 토트넘이 되어버린 결과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그가 아줌마를 깔아뭉게고 잘라내는 과정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았을 거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이미 "아줌마"라고 무의식적으로 부르고 있는 저것은 왜 상반신이 사라진 걸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점점 더 확인된 사실처럼 여겨지는 걸까?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것 같았다. 냉장고다. 냉동실 쪽에 '''핏자국'''이 묻어 있다. 그렇다면…….
확인하고 싶다. 다이너스티의 키만큼 해답을 찾고 싶다. 하지만 키는 결국 발견되지 않겠지. 토트넘이 그걸 가지고 다니다 흘렸을 가능성을 무시한게 잘못이었다. 만약 내가 추론대로라면 그는 제일 먼저 병원으로 가고 싶었을 거고 자신의 애마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예상보다 감염은 빨랐고 그가 미처 차에 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차키를 손에 들고 어디로든 돌아다녔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슬픔을 나누고 다녔겠지. 아내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그러니까 다이너스티에 대해서는, 잊어 버리자. 이젠 신경도 안 쓰인다. 진짜로 신경 쓰이는건, 한 가지 뿐이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최정호 (성우) . . . . 26회 일치
'''최정호'''([[1973년]] [[11월 13일]] ~ )는 [[한국]]의 남자 [[성우]]다. [[2000년]] [[KBS]]에 입사했으며 현재는 [[KBS]] 28기다. [[한국방송 성우극회]] 소속
*[[마스크맨]]([[KBS]]) - 레드콘 / 비트맨 / 닌자맨
*[[택틱스]]([[애니맥스]]) - 마을남자1
*[[극상학생회]]([[챔프]]) - 이와자쿠라 류헤이타 / 해설
*[[테니스의 왕자]]([[투니버스]]) - 아쿠츠
*[[스타체이서]]([[KBS]]) - 남자2
*[[용이가 간다]]([[KBS]]) - 영호 / 무전병 / 그림자
*[[영광의 대가]]([[KBS]]) - 자니
*[[남자의 세계]]([[KBS]])
* 2014.06.01 ~ 2014.06.30 김대현 <홍도> '''(자치기)'''
* 2001.04.08 송혜근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 2002.05.12 하성란 <파리> (남자)
* 2002.06.02 정길연 <그 여자, 무희> (제현)
* 2002.09.15 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장 폴)
* 2000.03.12 피자 그리고 블루마운틴
* 2001.10.21 낮은 음자리 (사회자)
* 2001.11.11 어느 자서전 대필작가의 귀향 (기자)
* 2001.11.18 그 여자에게 생긴 일 (학생2)
* 2002.05.05 영자야! 영자야! (남자)
* 2001.04.09 ~ 2001.06.30 <드래곤 라자> (남자2)
- 추봉 (배우) . . . . 26회 일치
| 자녀 = 슬하 3남
[[1922년]] [[경성부]]에서 3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편집위원회). 이승학(李升學)의 문하에서 5년간 음악을 배웠으며, 1940년부터 극단 성군(星群)에서 활동했다. 영화데뷔는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에 배우 양일민의 추천으로 출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조,단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한겨레신문).
* 1961년 《구봉서의 벼락부자》 - 대부 계장 역
* 1965년 《순교자》
* 1965년 《[[마포사는 황부자]]》
* 1969년 《암흑가의 지배자》
* 1969년 《남자와 기생》
* 1970년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 1970년 《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
* 1970년 《여자이기 때문에》
* 1970년 《그 여자를 쫓아라》
* 1971년 《두 남자》
* 1976년 《검은 띠의 후계자》
* 1976년 《위험한 여자》
* 1979년 《불행한 여자의 행복》
* 1980년 《병태와 영자(속)》
* 1980년 《매일 죽는 남자》
* 1987년 《북치는 여자》
* 1990년 《보통여자시대》 - 최 회장 역
* 1995년 《[[남자는 괴로워 (1995년 영화)|남자는 괴로워]]》
- 킹덤/528화 . . . . 26회 일치
* 견융족은 과거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춘추전국시대를 연 장본인들이자 오늘날 대륙의 북부를 어지럽히는 [[흉노]]의 선조. 산민족도 그들의 먼 후예다.
* 영역의식이 강해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 이들은 곧 양단화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위험을 느낀 [[슌멘]]이 나서나 가볍게 제압 당한다.
* 견융왕 "로조"는 조군 조차 적대시해 총대장 순수수를 베려하나 그가 유창한 흉노의 말로 교섭을 시도하자 그를 주목한다.
* 순수수의 유창한 흉노말을 쓰고 갑옷에 늑대 문양이 있는 점을 눈여겨 본 그는 그 [[이목(킹덤)|이목]]의 대리 자격이라고 하자 흥미를 가진다.
* 견융왕은 양단화의 산민족을 "서융"이라 칭하고 자신들을 재쳐놓고 "산의 왕"을 칭하는 양단화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 [[순수수]]가 퇴각한 진의가 드러났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요양성. 산을 끼고 있어 그 자체로 요새와 같은 성이었다. [[벽(킹덤)|벽]]이 그 성의 위용에 기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나, [[양단화]]를 비롯한 산민족 군대의 이목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 양단화는 "톳지"와 함께 절벽 위에 나타난 기묘한 군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치 산민족처럼 가면을 쓰고 다녔으며 짐승같은 기성을 내는 흉흉한 무리였다. 톳지가 그들을 가리켰으나 양단화는 진작부터 그 위험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위험한 동질감이었다. 새로 나타난 적들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였다.
* 거기서부터는 [[공손룡]]이 설명을 잇는다. 그도 왕도권을 지켜온 장수인만큼 견융족의 내력에 대해서는 밝았다. 조나라가 견융족을 포용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는데다 자치권까지 가지고 있어 치외법권으로 다뤄지고 있다. 아무리 조나라의 요인이라도 이 성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타국만도 못한 곳이다.
그 말대로였다. 견융족은 어떠한 사전조율이 없었음에도 "영역"을 침범한 양단화군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임전태세에 돌입한 이들은 장수가 이민족 말로 뭐라 외치자 기마들이 일제히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 양단화의 대응은 빨랐다. 산민족 군에서도 한 무리의 기마가 출발했다. [[슌멘]]이었다. 양단화가 그에게 평지의 적이 아니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당부하자 그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슌멘이 기마대의 선두로 나서 쇄도하는 적진으로 치달았다.
* 격돌. 그러나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슌멘이 적의 선두를 베었지만 뒤따르던 부하들은 죄다 목이 달아났다. 벽이 그 모습에 경악했다. 언제나 귀신같은 돌파력을 자랑하던 산민족이, 철저학 봉쇄되고 있었다. 슌멘이 낭패한 듯 혀를 차며 주위를 애워싼 적들에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늦었다. 슌멘이 적의 기마병을 베려 하자 그 적이 말과 함께 뛰어올라 슌멘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 신기를 펼쳤다. 진군의 장수들은 보고도 그 광경을 믿지 못했고 양단화 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적은 허공에서 슌멘의 텅 빈 어깨를 베며 땅에 내려섰다.
*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혔던 산민족이 초전박살나자 조군은 경이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조군 또한 즐거워하고 있을 상황이 못 됐다. 그들도 "영역"에 침범한 상대였다. 어느 새 공손룡과 순수수의 사이로 거대한 체구의 견융족 장수가 나타났다. 그 거구의 견융족이 자신을 밝혔다.
[[로조]]라고 자신을 밝힌 견융왕. 존재감에 압도된 조군 장수들을 돌아보던 그는 바로 옆에 있는 공손룡을 "애꾸눈"이라 부르며 이 군의 총대장이냐고 물었다. 뜻하지 않게 무시를 당한 순수수는 그 반대편에서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냐"고 빈정거리며 자신이 총대장이라 밝혔다. 그러자 견융왕이 그렇냐고 웃으며 "볼프"라는 부하 장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 짧은 문장이었으나 짐짓 놀란 볼프가 칼끝을 멈췄다. 견융왕도 흥미를 보이고 그가 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순수수는 이민족의 말을 계속했다. 그는 사전에 양해없이 영역을 침범한 점을 사죄했으나 자신은 지금 [[이목(킹덤)|이목]]의 대리로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을 베면 이목을, 조나라의 승상을 베는 것과 같은 격이다.
* 순수수의 목이 떨어질 시간은 조금 더 미뤄졌다. 볼프의 칼이 여전히 목에 닿아있었으나 순수수는 그런 엄포에 개의치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용건은 간단했다. 이 자리에서 조군과 함께 진군과 싸워 적을 격멸하는 것. 견융왕도 자질구레한 것은 거론하지 않았다. 바로 보상이 뭐냐고 물었다. 순수수는 그 대답보다는 현재 진군이 업성을 노리고 왕도권에 진출한 것, 그걸 저지하지 못하면 더 많은 진군이 처들어와 공세를 펼치고 요양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농담 같은 진담. 그 뿐인가? 결국 순수수의 말은 "살려주는 대가로 싸워라"고 엄포를 넣는 거나 다름 없었다. 진군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심지어 견융왕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조군들 사이에서 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총대장의 시체를 수습할 방법이나 찾아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자신들도 살아남고 총대장의 시체를 처리할 방법도 필요가 없어졌다.
뜻밖의 수락. 무엇이 견융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크게 만족해했다. 곧 부하들을 시켜 성 안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데려와 "축제"를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단 하나, 진군의 격멸만이 남은 순수수는 견융왕에게 상대를 얕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적의 정체가 서쪽 산민족을 통일한 자라고 알려주려 했는데, 견융왕은 그의 정보가 필요치 않았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26회 일치
== 시라토리자와 학원(白鳥沢 学園) ==
[[카게야마 토비오]]가 이 학교를 일반 입시로 가려고 했으나 떨어져서, [[히나타 쇼요]]에게서는 그냥 '''카게야마가 떨어진 학교'''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시라토리자와 학원은 일반 입시도 어렵다고. * 3학년
일본 고교 선수들 중 베스트 3 안에 들고, 미야기 현에선 혼자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다. 관동의 선수들도 '우시와카'의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 카라스노가 봄 배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는 중등부 시절 부터 악연의 상대였다. 라이트 자리에서 각도 내기에 적합한 왼손잡이 공격수.
기본적으로 진중한 성격이나, 말을 생각하고 하는 편이 아니라서 우시와카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 속을 긁는 때가 있다.[* 봄 배구 선발전 직전 화장실에서 만난 오이카와에게 "너에겐 고교 마지막 대회겠네 건투를 빈다."라고 말한다. 빈정이 상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전국대회 갈거니까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받아치자. "? 전국에 갈 수 있는 건 한 팀인데.(우리 팀이 나가는데 너희가 어떻게...?)"라고 말하며 또 다시 속을 긁어댄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왈 "비꼬려고 말하는게 아니라서 더 열받아...."] 쉽게 말해서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언더독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눈새]]다. 이런 성향은 우연히 만난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오이카와를 평가하며 은연 중에 드러나는데 '''"우수한 모종에는 그에 알맞은 토양이 있으며, 메마른 땅에서는 훌륭한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며 ~~농부?~~콘크리트 출신 두명을 자극했었다.
* 타자와 (WS)
봄고 대회 카라스노의 2회전 상대. 무려 201cm나 되는 1학년 햐쿠자와의 존재로 인해 떠들썩했던 팀이다. 25-22, 25-19의 스트레이트로 카라스노에게 패했다.
* 햐쿠자와 유다이 (WS)
* 이자카 노부요시 (MB)
* 타키노우에 전자 (타키노우에 유스케)
* 우치자와 세탁소 (우치자와 히데노리)
== 카라스노 여자 배구부 ==
남자 배구부와 다른 체육관을 사용한다. 제 1체육관을 농구부와 코트를 반으로 나누어 쓰고 있는 중.
예정표를 건내주러 사와무라를 찾아왔을 때 첫 등장. 인터하이 여자 배구 대회에서 1회전 탈락했다. 남자 배구부의 주장 사와무라와 자주 대화한다. 은근히 사와무라를 신경쓰여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150화에서 제대로 플래그를 꽂았다. 시라토리자와와의 결승전을 앞둔 다이치에게 찾아가 결승 힘내라며 잔뜩 빨개진 얼굴로 오마모리(부적)을 전해주었다.
본명 불명.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OB로 주전당시 배번은 히나타와 같은 10번이었다. 봄의 고교 배구 전국 대회에서 미야기 현 대표로 활약했으며 해당 경기는 주인공 [[히나타 쇼요]]가 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나카 사에코와는 같은 학년이었고 츠키시마 아키테루보다는 한 학년 아래인 점에서 나이는 1권 기준 21세. 작은 신체(170cm 안팍)에 비해 엄청난 점프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대단한 박력과 카리스마를 가져[* 타나카 사에코의 회상으로는 컨디션 난조로 연습 때 교체 되었는데, 락커룸 관물함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의 눈매와 포스가 엄청나서 좀 놀던 언니로 추정되는 사에코마저 움찔할 정도.] 에이스로서의 자부심과 실력으로 팀과 동료의 사기를 북돋으며 카라스노 배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다만 현재까지 작중 직접적으로 묘사된 일이 적어서 베일에 싸여 있다.
성우 : [야마자키 하루카]
타나카의 대학생 누나이자 카라스노 고교 졸업생.호탕하고 유쾌한 성격의 멋진 여성으로 팀을 결성해 축제 북을 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타나카와 눈매가 비슷하게 생겼다. 보충으로 인해 합숙에 늦은 카게야마와 히나타를 도쿄까지 데려다 주었다.
츠키시마의 형이자 카라스노 고교 졸업생. 츠키시마가 부활동에 청춘을 거는 사람들을 껄끄러워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자세한 것은 [츠키시마 케이] 항목 참조. 현재는 센다이 시에서 근무하며 사회인 팀에 소속되어 있다. 11권 이후부터는 츠키시마와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어 예전만큼 형제관계가 쌀쌀맞지는 않은 모양이다. 150화에서 시라토리자와와의 결승전을 치루게 된 카라스노를 응원하러 동생 몰래(...) 경기장에 찾아왔다. 동생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변장까지 해가며 경기장에 일부러 올 만큼 동생을 남몰래 굉장히 아끼고 있다.
- 한선교 . . . . 26회 일치
| 배우자 = 有(기혼)
| 자녀 = 슬하 2녀
| 경력 = [[문화방송]] 아나운서<br>[[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전반기 [[대한민국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br/> 제7대 [[한국농구연맹]] 총재<br/>자유한국당 사무총장
| 정당 = [[자유한국당]]
* 2007년 :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국가경영학과 정치학 석사 (학위논문명 - 여성 국가최고지도자의 등장조건 : 영국과 한국의 비교연구)
* 2018년 5월 ~ 2018년 6월: [[자유한국당]] 6·13 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 [[자유한국당]]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2018년 12월 ~ :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용인(병) 당협위원장
* 2019년 1월 ~ 2019년 3월 : 자유한국당 전국위원회 겸 전당대회 의장
* 2019년 3월 ~ 2019년 6월 :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벌금 100만원 - 2002년 8월 9일 선고<ref>{{보고서 인용|저자=이옥남·김도연|url=http://www.cubs.or.kr/new/lib/down.asp?gubun=util_bbs3&files=20160415PPPPPPPPP25237%2Epdf|제목=4·13 총선국회의원 당선자 전과현황|출판사=바른사회시민회의|날짜=2016년 4월}}</ref>
|전임자 = [[김용태 (1968년)|김용태]]
|후임자 = [[추경호]](직무대행)<br/>[[박맹우]]
|직책 =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전임자 = (용인시 갑)[[남궁석]]<br />(용인시 을)[[김윤식 (1947년)|김윤식]]
|후임자 = (용인시 처인구)[[우제창]]<br />(용인시 기흥구)[[박준선 (1966년)|박준선]]<br />(용인시 수지구)한선교
|전임자 = (용인시 갑)[[우제창]]<br />(용인시 을)한선교
|후임자 = (용인시 갑)[[이우현 (1957년)|이우현]]<br />(용인시 을)[[김민기 (정치인)|김민기]]<br />(용인시 병)한선교
|전임자 = (용인시 처인구)[[우제창]]<br />(용인시 기흥구)[[박준선 (1966년)|박준선]]<br />(용인시 수지구)한선교
|후임자 = (용인시 갑)[[이우현 (1957년)|이우현]]<br />(용인시 을)[[김민기 (정치인)|김민기]]<br />(용인시 병)한선교<br />(용인시 정)[[표창원]]
- 홍인한 . . . . 26회 일치
|별명= 자는 자는 정여(定汝).
|배우자=
|자녀= 아들 홍낙윤
|친척= 형 홍봉한, 사촌형 홍상한, 조카 혜경궁홍씨, 조카사위 사도세자, 외종손 정조, 외종손 의소세손, 8촌형 홍창한, 9촌조카 홍낙춘, 10촌 종손 홍국영
'''홍인한'''(洪麟漢, [[1722년]] ~ [[1776년]] [[7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정여(定汝), 본관은 풍산(豊山). [[예조]][[판서]] [[홍현보]]의 아들이고 [[영의정]]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이복 삼촌이 된다. [[홍국영]]의 일족이기도 하다. 당색으로는 [[노론]]이며 노론내 외척당의 지도자였다.
노론 내 벽파의 주도로 사도세자 및 세손 제거론이 나올때 동조하였으며, 세손 제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1775년]] 이후 세손의 대리청정을 극력 반대하였으며 [[1776년]] [[조선 정조]] 즉위 후 [[정후겸]] 등과 함께 유배, [[전라도]] [[완도군]] [[고금도]]로 유배되었다가 위리안치된 후 [[처형]]되었다. 1855년(철종 6) [[조선 철종|철종]]이 그를 복권하였으나 여러 차례 반대로 취소되었다가 다시 1858년(철종 9) 복권되었다.
선조의 6대손이자,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 [[홍현보]]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로 이세황의 딸이다.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이복 작은 아버지(숙부)이며, 관찰사를 지낸 홍창한은 8촌 형이 된다. 친동생은 [[홍용한]], [[홍준한]] 등이 있다.
{{인용문2|홍인한이 감사(監司)로 있을 때 언제나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끝날 즈음이 되면 기생의 잘못을 트집 잡아 곤장을 쳐서 피를 본 뒤에야 통쾌해하였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할 때면 뜰 한쪽에 반드시 형구를 마련해 놓고 기다렸으니, 이는 석수(石邃)가 미녀들을 치장하여 잔치를 즐기고는 결국 삶아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체로 여자에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남자에게 재주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하늘이 쓸데없이 그들을 낸 것이 아닌데 포악하게 대한다면 어찌 천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을 무시하면서 잘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유독 기생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일부러 곤장을 쳐서 통쾌해하는 것은 시랑보다 더 포악한짓이니, 그가 역적으로 몰려서 패망한 것은 당연하다.}}
그 후 승지, 한성부우윤, 대사헌 등을 지내고, 1762년 호남안집사(湖南安集使)로 순무하고 돌아왔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자헌대부로 승진,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774년]] [[의정부]][[우의정]]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74년]] [[우의정]]에, [[1775년]]에 [[좌의정]]에 각각 임명되었으며, 1775년 세손(훗날의 정조)이 대리청정을 맡게 되자 이를 반대해 [[영조]]가 세손의 대리청정을 명할 때 세손은 세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강변하며, 승지와 사관의 대필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대리청정 뜻이 확고해지자 [[혜경궁 홍씨]]는 사전에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한중록]]에 의하면 대조의 뜻이 그러함을 편지로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인한은 벽파의 당론에 따라 벽파, 외척당, [[정후겸]] 등과 함께 세손을 반대하였고, 홍인한은 영조의 면전에서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다. 이후 [[정후겸]], [[심상운]] 등과 함께 [[홍국영]] 등을 모해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한 부사직 심상운을 시켜 세손의 대리청정 반대 여론을 조장했지만, [[홍국영]]의 부탁을 받은 부사직 서명선이 역탄핵상소를 올려 논박했고 오히려 심상운은 유배되었다.
한편으로 권력남용을 하고는 자기쪽 무리들과 야합하여 말을 퍼뜨리기를, "홍씨(洪氏)를 공격하면 이는 동궁(東宮)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면서 그것을 구실로 온 세상의 입을 막으며 위협을 가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776년]] [[음력]] [[3월]]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하자, 숙청에 들어갔으며, 홍인한은 서명선 등의 탄핵을 받은 뒤 [[정후겸]], [[문성국]], [[김귀주]] 등과 함께 여러번 탄핵을 당한 뒤 [[충청도]] [[여산]](礪山)에 유배되었다가 배소가 옮겨져 [[고금도]]에 유배되었으며, 다시 거듭 탄핵을 받고 [[위리안치]](圍籬安置)형을 받았다가 그해 [[7월 5일]] 사사령을 받고 처형됐다.
아들인 동지돈령부사 [[홍낙윤]](洪樂倫)이 아버지 홍인한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거절당하였다. [[1809년]] [[1월]]에는 [[조선 순조|순조]]를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들어 변호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1832년]]에는 손자 홍백영(洪百榮)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격쟁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이때 홍백영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순조가 무마시켰다.
***** 손자 : 홍경모(洪敬謨)
* [[사도세자]]
== 참고 자료 ==
*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휴머니스트, 2007)
* 이금희, 한중록 (상, 하) (국학자료원, 2006)
[[분류:1722년 태어남]][[분류:177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가족 살해자]][[분류:사형된 사람]][[분류:독살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분류:노론]]
- 긴나라 . . . . 25회 일치
긴나라는 기원이 불확실하다. 산스크리트어 킴나라 자체도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뜻하는 말로서, 이들의 불확실한 정체를 가리키는 의문사가 곧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불교경전이 써질 당시에 이미 긴나라의 정체는 불확실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일설로는, 옛날 인도의 히마찰 프라데시의 킨나우르(Kinnaur)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인도-티베트 종족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이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며 대승불교에 경도되면서 불교 경전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칠레가 아니었다니 실망이야...--
고대 베다 문헌, [[마하바라타]],[[라마야나]] 등에는 킴푸루사(Kiṃpuruṣa)라는 유사성이 많은 존재와 등장하는데, 긴나라와 킴푸루사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킴푸루사 역시 ‘(어떤) 사람인가’라는 뜻으로서, [[자타카]]에서 운문 자타카가 산문 자타카로 옮겨지면서 킴푸루사가 긴나라로 바뀌는 경우가 있어 후대에 혼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인도학자 아스코 파폴라(Asko Parpola)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고대 드리비다어에서 기원했으며, 소리를 뜻하는 킬(Kil)과 현악기를 뜻하는 나람(Naram)을 합성한 것으로, 이는 곧 '악사(樂士)'를 뜻하는 단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반대로 킴푸루사가 고대 산스크리트어 킨나라를 산스크리트어로 음차한 것이다. 제사의 희생물로 '킴푸루샤'를 제단 밑에 묻었다는 단서로 보아 악사들을 희생 제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마이어호퍼(Mayerhoper) 역시 긴나라는 악사를 뜻하는 말이었을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자타카]]에서 나오는 인간과 긴나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 하스티나푸라 왕국의 왕자 수다나(Sudhana)와 카일라사 산봉우리에 사는 긴나라의 공주 마노하라(Manoharā)의 이야기이다. 긴나라왕의 일곱 딸 가운데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마노하라가 언니들과 함께 숲 속 호수에 목욕을 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 왔을 때, 하스티나푸라의 이웃나라에서는 희생제사를 지내려고 사냥꾼을 시켜서 히말라야의 동물들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긴나라와 긴나리를 잡지 못하자, 마술을 쓸 수 있는 한 사냥꾼이 히말라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던 마노하라를 포획한다.
왕자 수다나는 이 나라에 초대를 받아 가는데, 제물로 잡혀온 마노하라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수다나는 이웃 나라의 왕에게 불법을 설교하여, 마노하라를 죽이지 말고 살려서 구출하고 자신의 왕궁에 데려온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히스티나푸라 왕국의 사제는 수다나 왕자가 왕이 되면 자신이 사제로서 남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계략을 꾸민다. 사제는 왕에게 왕자를 위험한 변방으로 보내서 반란을 진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간언하여, 수다나 왕자는 변방으로 떠나게 되는데 [[야차]]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수다나 왕자가 전쟁에 승리하여 돌아오기 전에, 부왕은 기묘한 꿈을 꾼다. 사제는 그 꿈을 [[해몽]]하면서 거짓으로서 왕자가 위험에 처했으니 긴나라 공주 마노하라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노하라는 다시 희생 제물이 될 운명에 처하는데, 왕비가 마노하라를 구하기 위하여 그녀에게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옷과 보물을 돌려주었다. 마노하라는 옷과 보물의 힘으로 새로 변신하여 하늘로 날아가 도망친다.
돌아온 수다나는 어머니에게 마노하라가 새로 변신하여 달아났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수다나 왕자는 사랑하는 부인을 찾아서 온 천지를 헤메고 기나긴 모험 끝에 긴나라의 나라에 찾아간다. 마노하라와 다시 맺어진 수다나 왕자는 다시 왕국으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천룡팔부 자체가 아수라, 야차 등 몇가지를 제외하면 사실 크게 관심을 못 받지만 긴나라는 독보적이다.
일단 말해두자면 긴나라는 '''인기없는 놈이다.''' 그래서 긴나라가 독자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고, [[팔부신중]]을 다 묶어서 뭔가 내놓으면 꼭 한군데 꼽사리 끼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별로 안 세다.
* 진 여신전생 : 인도신화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큰 진 여신전생에서는 [[자코]]로 나오는 시리즈가 많이 있다. 여신전생의 특성상 길들여서 [[중마]]로 삼을 수 있지만 별로 눈에 뛰게 강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버리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25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크게 꾸짖지만 올마이트에게 사정을 전해듣고 비교적 가벼운 근신으로 처리한다.
* [[신소 히토시]]는 조금 남자다워진 모습으로 재등장
* 교장 [[네즈]]는 시업식에서 모두 사회의 후계자라는걸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 올마이트에겐 사실 후계자를 찾던 시절 또다른 후보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웅영고의 재학생.
* [[올마이트]]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쿠고 카츠키]]에게 전부 고백한다. 이제 바쿠고는 올마이트의 이력과 원 포 올의 정체, [[미도리야 이즈쿠]]가 그 계승자라는 것까지 모두 알게 됐다.
올마이트는 본래는 자신이 바쿠고에게 고개 숙이고 부탁할 일이었지만 신경쓰게 했다고 사과한다. 바쿠고는 신경 쓴게 아니라 그저 떠들고 다닐 리스크를 고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전부 듣고 난 바쿠고는 그런 중대한 일을 떠벌린 거냐고 미도리야에게 한 마디 한다. 올마이트는 그의 개성이 소진된 것은 전적으로 자기 선택이지 바쿠고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바쿠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바쿠고는 결국 그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았지만 미도리야가 한 것처럼 이것저것 모든 것을 흡수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고 "선택받은" 미도리야보다 더 높이 올라갈 거라고 선언한다. 미도리야도 지지 않고 자신도 그보다 위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면서 서로 더 높이 올라갈 거라고 작은 설전이 벌어진다. 올마이트는 이번에야 말로 진짜 라이벌 같아졌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잠시 뒤. 담인 [[아이자와 쇼타]]의 호된 훈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자와는 둘을 꽁꽁 포박해서 압박한다. 사실 둘의 싸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호출받았을 때 나타난건 올마이트였기 때문. 이번에도 올마이트는 아이자와를 진정시키며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쿠고의 심리 상태를 언급하며 자신이 교사들이 멘탈 케어를 맡아줘야 했던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그 말을 듣고 아이자와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러나 기숙사 생활이고 담임인 이상 이들을 그냥 둘 수도 없는 일. 아이자와는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확인한 다음 바쿠고에겐 4일간, 미도리야는 3일간 근신과 기숙사 공동구역 청소 및 반성문 제출을 구형한다. 그 밖에 상처가 심해지면 [[리커버리 걸]]에게 가라는 둥 잔소리를 해대는 걸로 이날의 싸움은 완전히 종결 되었다.
둘은 어색한 분위기로 청소를 하는데 미도리야가 먼저 말문을 연다. 자신의 슛 스타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는데, 평소의 바쿠고와는 달리 "예비 동작이 크고 아슬아슬하게 반응할 정도는 되기 때문에 난타전엔 불리하다"는 도움이 되는 조언이 돌아온다. 게다가 "펀치랑 맞춰서 한 건 짜증났다"고 나름 긍정적인 체크도 해준다.
>그쪽엔 임시면허 탈락자가 두 명이나 있었다며?!
놀랍게도 B반은 전원 합격. 모노마 조차 합격했다. 이 탓에 토도로키가 자책하느라 키리시마가 위로한다.
올마이트의 은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뒤따르겠지만 무엇보다 히어로 학과 학생들에게 현저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네즈는 2, 3학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히어로 인턴" 참가자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1학년 A반 학생들은 아직 히어로 인턴제도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
>다들 사회의 후계자라는 것을 잊지 마.
* 네즈가 말한 "후계자"란 말. 올마이트는 그 말과 어제 밤에 들은 "선택받은 너"라는 표현 사이에서 과거의 기억을 끌어낸다. 그것은 아직 올마이트가 후계자를 정하기 이전. 막 후계자를 찾고 있을 때 교장 네즈가 웅영의 교사직을 권하며 했던 말이다. 당시 네즈는 웅영고야 말로 후계자를 찾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이라며 그에게 교직을 맡긴다. 게다가 네즈는 구체적인 후보도 골라두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네 후계자에 어울리는 인간이 있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25회 일치
* 하지만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생활을 한 [[토오가타 밀리오]]를 통해 자리를 주선하게 배려한다.
* 밀리오는 예상대로 미도리야 이전에 후계자 후보. 올마이트는 그 점을 아직도 의식하고 있는데.
*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근래에 화제가 되었던 "히어로 인턴 제도"에 1학년들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회의 결과를 알려준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우선 교장 [[네즈]]부터가 "하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 애초에 완전 기숙사제로 전환한 이유 자체가 "히어로 학생들을 육성기간 동안 보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인턴제도에 투입하는건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턴제도에 관심을 보였던 학생들은 모두 실망하고 혼자 근신 받느라 뒤쳐져 있던 [[바쿠고 카츠키]]는 "꼴좋다"고 웃어재낀다. 그러나 아이자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호만 해서는 강한 히어로를 키울 수 없다"는 반대의견이 나왔고 결과적으론 이런 방침이 되었다.
결국 바쿠고는 혼자 인턴 제도 화제에 끼어들지 못하고 소외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그의 사이드킥 출신 [[서 나이트아이]]의 소개를 부탁받는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갑자기 왜 그 이름을 꺼내나 의아해하지만 인턴 제도와 [[그랜토리노]]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전해듣고 납득한다. 미도리야는 다시 한 번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자리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올마이트는 의외로 단호히 거절한다.
* 미도리야는 그래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바쿠고에게 "레일을 깔아줬는데 지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며 올마이트 밑에 있었던 나이트아이는 "같은 개성"을 가진 미도리야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밝힌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에게 후계자로서 초조함을 읽어내지만 역시 자신이 소개해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한테서는 말이지"라고 하는데.
그는 [[토오가타 밀리오]]를 호출했다. 그를 부른건 그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생활 중이기 때문. 미도리야는 처음에는 이 셋이 함께 앉아 있는데 어색함을 느꼈지만 밀리오와 대화하면서 금방 친해진다. 올마이트는 밀리오에게 "미도리야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묻는다. 밀리오는 잠시 생각하지만 대답보다는 "나를 불러온 건 미도리야를 서에게 소개해주라는 얘기"였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도 나이트아이가 올마이트의 사이드킥 출신인건 알고 있었고, 굳이 자신을 끼워서 소개해주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밀리오는 나이트아이는 언제나 올마이트의 활약을 동영상으로 지켜보며 기뻐하고 있다며, 직접 말하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올마이트는 난처해한다. 자세하게 언급하진 않지만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였다.
미도리야는 의아해하지만 올마이트는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다시 한 번 미도리야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을 할 수 있을지 묻는 올마이트. 밀리오는 이번엔 미도리야에게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 미도리야는 항상 대답하던 대로, 올마이트가 추구하던 대로 "아무리 곤란한 사람이라도 웃으면서 구하는 히어로"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지금 자신이 추구해야 할 히어로상이 정확하게 정리된다. 어머니, 올마이트, 그리고 바쿠고를 거쳐서 얻어낸 해답.
* 이야기는 급진전 끝에 잘 풀리지만, 올마이트는 밀리오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다. 당초 네즈가 추천했던 그의 후계자는 밀리오였다. 네즈는 그가 성적은 좋지 않지만 존재감이 있고 항상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인물이라 소개했다.
올마이트는 즐겁게 대화하는 미도리야와 밀리오를 보며, 사실 미도리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가 후계자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웅영에서 전차로 약 한 시간. 이곳에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가 있다. 밀리오의 안내로 도착한 미도리야는 바짝 긴장해있다. 밀리오는 긴장하는건 좋지 않다며 나이트아이에 대해서 "아주 엄한 사람"이라 경고한다. 물론 히어로 덕후인 미도리야가 모를 리 없다. 그는 자타에 모두 엄하며 "스토익"한 일 처리로 유명하다. 미도리야에겐 매우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소름이 돋은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미도리야가 이해 자체를 못하지만, 아무튼 그는 그렇게 "유머를 중시하는 인물"이라는데.
건물로 들어서는 두 사람. 밀리오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고, 결국 결정권을 가진 것은 서. 미도리야 스스로의 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도리야는 어째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느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딱히 잘해주는건 아니라면서도 그가 "엉망진창인 목표를 실현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 답한다.
>자, 저 문 너머다.
그리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나이트아이는 매우 거창한 형틀에 버블걸을 묶어 놓고 자비없는 간지럼 태우기 형벌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들어서자마자 사이드킥 여성이 아헤가오를 지으며 자지러지는 모습에 미도리야는 경악과 충격으로 혼란에 빠진다. 물론 밀리오는 대략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고 또 버블걸이 유머를 잊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짐작한다. 어쨌든 한창 즐거운 순간을 방해받았기 때문인지, 나이트아이가 유독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미도리야는 그 박력에 쫄지만 밀리오의 조언을 참고해서 "한 번은 웃기는" 걸 시도한다. 이미 강해지겠다고 다짐한 그는 유머에서도 그렇게 돼주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는다.
- 니엘(가수) . . . . 25회 일치
2012년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2년|제4회 아이돌 스타 육상·수영 선수권대회]] 높이뛰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해설위원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여 줬다. 2012년 설특집 알까기 대회에서 손쉽게 다른 참여자들을 격파해 준우승까지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걸스데이]]에 패했다. 그 밖에 [[정글의 법칙]] 시즌 11, [[주먹쥐고 소림사]] , 정의본색 등의 예능에도 출연하였었다. 현재는 E채널 [[태어나서 처음으로]]에 공작단원으로 출연중이다.
[[틴탑]]의 메인보컬로 데뷔곡인 '박수'에서는 거의 혼자 노래를 다 부르다시피 했다.[* 니엘:천지:나머지 멤버의 파트비율이 약 70:20:10 정도로 차이가 났다 개인파트가 있었던 멤버는 니엘, 천치 ,캡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파트가 줄어 '향수 뿌리지마' 활동 때는 천지와 파트를 나눈 수준이었으나, 미치겠어부터 후렴구 담당이 되더니 To You에서는 [[창조(틴탑)|창조]]에게 파트를 많이 빼앗겼다. 데뷔 때에 비해서 파트가 많이 줄었다고 해도 곡의 비중은 상당하다.
심지어 [[http://stoo.asiae.co.kr/news/stview.htm?idxno=2012062811204393949|먹고 자면 입술이 붓는다고 한다]]. 2014년 SBS 정글의 법칙에 출연해 내추럴한 모습을 선보여 '못생겼다'는 악플 집중 포화를 받기도 했다.[* 니엘이 출연한 뒤 몇 달 후 [[2AM]]의 [[이창민]]이 출연해 '니엘아, 여기 오니까 못생겨질 수 밖에 없구나. 니 마음을 알겠다'라고 언급하는 바람에, 다음 날 창민과 니엘의 사진이 나란히 기사에 나와 또 한 번 악플 집중 포화를 받았다.] 세바퀴에서 [[T-800]] [[http://tvcast.naver.com/v/581148/|엔도스켈레톤 얼굴모사를 개인기로 선보였다.]]
사실 TV로만 보면 그다지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물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입술은 별로 두껍지 않고 눈이 예뻐서 시선이 많이 간다고들 한다. 키도 크고 체격이 있어서 실물은 상당히 남자답다고 한다.
작사작곡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첫 자작곡은 본인의 솔로 앨범인 《oNIELy》에, 두 번째 자작곡은 리패키지로 발매된 《oNIELy Spring Love》에 실렸다. 첫 자작곡은 [[https://youtu.be/ifjjHckZL0w|아포가토]]로, 서정적인 분위기와 니엘의 부드러운 음색이 잘 어우러진 곡이다. 두 번째 자작곡은 [[https://youtu.be/OIJGCa5I3R4|Memory]]. 솔로 앨범에서 자작곡을 두 곡이나 선보인 후에 완전체 앨범에서도 또 자작곡을 수록했다.
NATURAL BORN TEENTOP에서 [[https://youtu.be/sJ5KdBRpxYI|그 전화 받지마]]를 공개했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바람둥이 남자친구에게 미련을 못 버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슴아파하며 제발 그 남자 전화 받지말아라, 안 받아도 뻔하다며 속타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남자답게 붙잡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모습까지도 잘 표현해 냈다.
2016년 1월에 발매한 RED POINT앨범에서도 [[https://youtu.be/j6B3ytjaySA|Liar]]를 싣는 등 활발한 작곡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떠나가는 여자를 잡지 못하고 아파하는 남자의 모습을 감성적 가사와 뒤에 깔리는 기타선율로 잘 표현해 냈다는 호평을 듣고있다.
워낙 혼자서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인지 라디오에 나온 모습을 보면 목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잦다. 팬덤에서는 니엘만 이렇게 굴려대는 모습에 성대결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중.
셀카고자 소리를 듣는 멤버인데 셀카를 정말 안 찍다 보니 팬들 입장에선 셀카고자여도 좋으니 제발 그냥 찍어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본명이 [[다니엘]]인데 왜 애칭이 [[대니]]가 아닌 니엘이 되었냐면, 단순히 어릴 적부터 니엘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라고... 이는 아마 이름 마지막 글자로 애칭을 부르는 한국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2016년 5월 일반인 여자친구와 열애설 스캔들이 났으나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며 지인일 뿐이라고 부인하였다.
|| '''2''' || '''못된 여자 (Feat. [[Dok2]])''' ||
|| '''4''' || 못된 여자 (Feat. Dok2) ||
[[분류:틴탑]][[분류:1994년 출생]][[분류:안양시 출신 인물]][[분류:아이돌 댄서]][[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데미안(드라마) . . . . 25회 일치
머리에 666 자국이 있는 우리의 [[적 그리스도]] [[주인공]]. 직업은 [[종군기자]]. 어린 시절의 일은 --후속 시리즈가 [[흑역사]]가 되서-- [[기억상실]]이 되었다가 1편에서 각성하게 된다.
[[적 그리스도]]라고는 하지만 본래 인격은 정의롭고 좋은 사람(…). 그래서 자신의 숙명을 알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기억이 없었을 때는 [[무신론자]]로서 기독교 교리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야 그렇겠지.--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본인은 별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고와 죽음이 일어나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제조기(…). 적 그리스도로서의 운명에 따라서 죽어서는 안되는 몸이기 때문인지 주변에서 어지간한 사건이 일어나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종군기자로서 온갖 전쟁터를 돌아다니는데도 상처하나 없는 것은 이 때문인듯.
* 컨퓨전 : --허셸-- 존이 이끌고 자신을 추적해온 아미티지 재단의 사설 부대에 사용. 서로 쏴죽이게 만들었다.
* 도미네이트 : 상대를 자살시킨다. "데미안 이건 널 위해서 하는 거야~!"라면서 주로 투신자살을 벌인다. 오멘 1편에서 나온, 유모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따온듯.
데미안의 애인으로, 2화에서 사망(…)하는 캘리 밥티스트의 [[언니]]. 캘리의 죽음과 그 이후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자꾸 새가 날아든다)에 위화감을 느끼고, 데미안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1편의 베이룩 부인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데미안에게 굴절된 [[모성애]]를 지니고 있는 인물. 악마 숭배자 조직에서 데미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냥 유모였던 베이룩 부인과는 달리 악마숭배자들이 운영하는 아미티지 재단의 거물 인사. 악마숭배자 조직도 여성의 지위 향상이 이루어지나보다(…).
'''악질적인 데미안 스토커'''(…)로서 데미안이 취재한 사진들을 마구 사들이고, 어린 시절에 쓰던 물건들(오멘 1의 소품)을 방 안 가득히 챙겨놓고 있으며, 데미안과 관련되면서 뭔가 느끼는 표정(…)을 짓기도 하는 등 참 못말릴 아줌마. 역시 악마숭배자 답다.
'''늙은 여자'''(배우 Viv Moore)
데미안이 [[시리아]]에서 취재 중에 만난 늙은 여자. 30세가 된 데미안을 붙잡고 [[라틴어]]로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의 말을 하며, 또 이 때 누가 돌을 던져서 이 여자 머리에서 피가 튀면서 데미안에게 [[세례]]가 주어진다. 왠지 데미안의 어린 시절부터 과거 사진에도 있고, 시리아에서 헤어졌다가 뉴욕에도 나타나는 신출귀몰한 인물.
[[백악관]]의 수석 비서관. 데미안의 아버지 루퍼트 쏜이 죽었을 때 데미안을 맡아서 돌봤던 적이 있다. 데미안의 정신적 [[멘토]]이며, 데미안을 따듯하게 아껴주는 할아버지. 자신의 운명에 다가가면서 고뇌하는 데미안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고, 데미안 자신이 적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고 평범하게 훈훈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악마숭배자 조직 아미티지 재단의 우두머리'''(…). 데미안 앞에서는 훈훈한 모습만 보이지만 뒤에서 앤 러틀리지와 데미안을 놓고 마찰을 빚거나, 협상을 하거나, 온갖 능구렁이 짓을 벌이고 있다.
1시즌 10화에서 자신에게 협조하길 거부하는 아마니 골카르를 쏴죽이고, 그 사실을 러틀리지에게 전해들은 데미안이 분노하여 검은 개들을 불러 물어죽인다.--허셸!--
데미안을 지키거나 데미안을 위협하는 자들에게 공격을 가하는 소환수(?).
- 동군연합 . . . . 25회 일치
* 중세 유럽에서 행정은 분권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인구조사, 빈민구휼 같은 현재의 일반적인 대민행정은 [[교회]]가 담당했으며, 도시의 행정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납세는 징세권은 영주나 국왕이 보유했으나 실제 징세업무는 [[징세청부업자]]가 대리했다. 법률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역시 교회법에 따라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본래 중세적인 구조에서 '귀족'이나 '왕실'은 일반 행정에서는 크게 하는 개입할 일이 없고(…) 징세권에 따라서 세금을 거둬가서 군대를 조직하고 외침을 방어하는 역할("싸우는 자")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분권화된 행정체계였으며, 행정체계가 왕실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을 '갈아끼우는 것'이 용이했던 것이다.
* 부부동군연합 : 각자 통치권을 가진 남군주와 여군주가 혼인함으로서, 부부가 동군연합을 이루는 경우이다.
* 모자동군연합 : 어머니와 아들이 통치권을 나눠 가지는 동군연합이다.
본래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건너온 가문인 카페가문의 분가인 보르고냐가문의 분가인~~뭐저리 복잡해~~ 아비스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포르투갈의 왕인 세바스치앙이 북아프리카로 원정을 나가다가 모로코 술탄국에게 대패하고 본인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왕위 자체는 그의 종조부인 엔리케 추기경이 환속하면서 상속받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66세인데다가 자식도 없어서 후사를 남길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그가 2년 뒤인 1580년에 죽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당시 왕위 주장자는 총 세명이었는데, 브라간자 공작 주앙 1세와 결혼한 카타리나 공주와, 주앙 3세의 손자인 안토니오 대주교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있었는데,[* 3명 모두 조부가 포르투갈 왕 마누일 1세였다.(펠리페는 외손자)] 결국 펠리페 2세와 협업한 알바 대공 페르난도가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펠리페가 다른 주장자들을 물리치고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영국과 협업한 포르투갈 토착 귀족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해 해체된다. [* 단, 세우타는 스페인이 가졌다.]
부르고뉴의 '용담공'샤를이 로레인 원정을 떠났다가 스위스-로레인 연합에게 낭시전투에서 개박살나면서 죽어버리고 그의 외동딸인 '부귀공'마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자 막시밀리안과 결혼하면서 결성된 연합. 이로 인해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최종적으로 당시 부르고뉴 공국이 점유하고 있던 땅 중 왈로니아 지방 일부와 부르고뉴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저지대와 룩셈부르크 공국지방이 합스부르크에 넘어가면서 분쟁이 끝이 난다.
''' 근세 유럽국가들의 동군연합중 최강의 동군연합 '''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였던 카를로스1세가 오스트리아 대공에 오르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당시 스페인은 신대륙의 금광+저지대의 미친 생산력에서 나오는 자금과 스페인+보헤미아+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나오던 국력을 통해 당시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는 통치면적으로 보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전성기였다. 다만, 당시 스페인의 왕이던 카를로스가 독일 쪽에 영 관심이 없어서(...) 연합은 1대만에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뉘어진다.[* 다만, 플랑드르 지방은 스페인에게 갔다.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로 독립하게 된다.]
본래 튜튼기사단이란 신정국가가 지배하던 프로이센 지방은 [* 정확히는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교도때문에 통치를 못할 수준이 되자 튜튼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이후 튜튼기사단의 단장 알브레이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선언하고 세속화되어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계가 단절되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던 브란덴부르크와 동군연합이 된 것이다. 이게 왜 추가될 사례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텐데, 쉽게 말해 '''독일제국의 전신이다.''' 이로써 단순 발트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삼키며 본격적으로 열강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브란덴부르크가 핵심지였지만, 이후의 국명은 '프로이센'이 되는데 이는 프로이센이 당시 '독일 바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독일왕'을 겸하므로 독일영역 내부의 영주는 별도의 왕위를 주장할 수 없다. 프로이센은 본래 독일인의 영역이 아닌 발트계 민족 프루사 족의 땅이라서 별도의 왕위로서 '프로이센 왕'이라는 칭호를 내세우는게 가능했던 것이다.(마찬가지로 체코 지역도 본래의 독일 지역이 아니었으므로 '보헤미아 왕'을 칭할 수 있다.) 다만, 역시 프로이센 공작위도 엄밀히 말하자면 본래 폴란드 왕의 봉신인 신세라 이걸로 트집이 잡힐걸 우려해서인지 'King of Prussia'(프로이센 왕)이 아닌 'King in Prussia'(프로이센 안의 왕)이라는 일종의 외왕내제식 편법을 썼다.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시기에 'King of Prussia'라는 칭호를 쓰게 됀다.
당시 덴마크의 여왕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자리에 오르면서 생긴 동군연합. 이후 스웨덴 독립전쟁에서 덴마크-노르웨이가 패배하면서 해체. [* 다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은 그이후에도 상당기간 유지됬다.]
부부가 각자의 계승권에 따라서 군주로서 즉위하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혼인함으로서 '동군연합'이 형성된다. 이 경우 왕은 X국의 왕, 그 아내는 Y국의 여왕이므로, X국과 Y국이 부부 아래 동군연합이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동군연합'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개 부부 한 쪽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군연합과 거의 다를바 없는 상태가 된다.(내실을 보면 약간 복잡해진다.)
이 경우 한 명의 후계자에게 물려줌으로서 완전한 동군연합이 되는 경우도 있고, 사정이 안되서 흩어지면서 부부동군연합이 해체되는 경우가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상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다만 부부관계는 최악이라 헨리나 엘레오노르 둘다 정부를 거느렸으며, 둘의 불화는 악화되어 헨리가 엘레오노르를 가두기까지 한다. 이에 둘사이에 나온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단체로 대항했으며, 결국 리차드가 헨리를 투옥시키고 잉글랜드 왕위를 상속받으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됀다
- 마기/317화 . . . . 25회 일치
* 이전처럼 알라비바, 알라딘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 그러나 그에겐 자각하지 못하는 묘한 위화감이 싹트는데...
* 전쟁의 참화. 소년 신드바드는 "나는 행복한 세계를 만들자"는 다짐을 한다.
* 알리바바와 알라딘도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다.
* 히나호호는 임챠크의 왕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신드바드가 왕으로서 전국민을 통합할 수 있었던걸 대단하다고 실감하고 있다.
*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모두 그날의 생존자들. 마스루드, 자파르, 피피리카, 사헬, 히나호호, 드라콘, 스파르토스.
* 형인 미스토라스가 이때 죽었던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땐 그 애통함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름다웠던 추억만이 떠오른다며, 그런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 히나호호의 동생 피피리카는 그건 "네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자신은 그날 풍기던 "사람이 불타는 냄새"나 "그 사람"[* 비델로 보인다]이 죽어가던 무참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 히나호호는 동생을 위로해주고 신드바드는 그런 히나호호에게 "루룸이 죽고 혼자 힘으로 잘해주었다"고 치하한다.
* 이어서 스파르토스에게도 미스토라스 대신 팔신장의 임무를 완수해주었다고 칭찬하고 그와 마스루드, 자파르 덕에 신드리아가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그리고 드라콘에게도 자기 대신 신드리아를 훌륭히 통치해주었다고 격려하는데
* 그들은 신드리아 왕국이 짓밟힌 이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만들고자 맹세했다.
* 그날 죽었던 사람들도 틀림없이 지금의 평화를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을 거라며 자신들 또한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 그를 바라보는 전우들의 눈동자.
* 그는 다시 한 번 다윗에게 말한다. 자신은 다윗과 다르고 이 유대를 바탕으로 올바른 세계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 자피르, 마스루드, 드라콘, 히나호호, 스파르토스는 단지 팔신장이 아니라 신드바드의 건국동지이며 멸망의 생존자라는데서 특히 유대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전우들이 신드바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자피르와 마스루드 만이 조금 다르다. 자피르는 걱정에 잠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마수르드는 아예 시선이 생략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은 심복들 중에서도 신드바드의 변화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고 우려하고 있던 이들. 앞으로 전개에 대한 복선일까?
- 마기/337화 . . . . 25회 일치
* 그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속박한 자가 [[연옥염]]. 신드바드는 연옥염을 불러내서 쥬다르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 그러자 쥬다르는 너무 시원스럽게 연옥염을 때려죽이고 "당연히 때려부순다!"고 일갈한다. 그때까지 부수는게 옳지 않냐던 신드바드가 오히려 당황한다.
* 사실 그는 유년기의 신드바드가 자신과 비슷하게 "다른 인생을 살았더라면"이라 고민했을 거라고 간파하고 이해해준다.
*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으며 오히려 신드바드에게 자신의 삶을 만끽하라고 충고해준다.
*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연백룡]]은 제 1던전을 떠나 [[아르바(마기)|아르바]]를 따라 2던전으로 향한다. 알라딘은 [[쥬다르]]혼자 남겨두는걸 마음에 걸려하지만 백룡은 오히려 그런걸 기분 나빠할 거라며 쥬다르에게 맡기자고 한다.
* 1던전 바알에선 쥬다르와 14세 시절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한창 격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은 빈곤과 전쟁으로 엉망이 된 지옥같은 곳이었고 그곳을 구하기 위해서는 던전 바알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합리한 운명에 굴복할 것인가, 힘으로 부술 것인가"라는 질문을 거듭 던진다.
* 쥬다르는 혼자 힘이지만 신드바드와 호각 이상으로 싸운다. 신드바드가 전신마장 바알로 날리는 번개 마법을 같은 번개 마법으로 받아치며 "분노와 영걸의 신념이 아니라 그냥 미쳐 날뛰는 꼬맹이"라 조롱한다. 신드바드는 너도 마찬가지 아니라며 쥬다르에게 어떤 영상을 보여준다.
* 쥬다르 앞에 나타난 영상은 그가 바르다르에서 난동을 부리다 알라딘의 "솔로몬의 지혜"에 의해 쫓겨난 직후의 자신이었다. 쥬다르는 이때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자신의 출생과 고향의 일, 그리고 알 사멘에 의해 납치됐던 일 등을 떠올리고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쥬다르는 자유롭고 정상적인 마기로서 신드바드를 왕으로 고르고 영광과 미래를 손에 넣은 자신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누군가 그를 찾아온다. 그의 상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억압하는 당사자였다.
* 신드바드는 어느새 [[연옥염]]을 불러다 놓았다. 진짜 옥염은 아르바의 모습으로 알라딘 일행을 안내하고 있을 테지만, 신드바드는 자신의 힘으로 황제국의 태후였던 시절의 연옥염을 그대로 등장시킨다. 쥬다르는 그녀를 보고 잠시 동요하는데, 그의 뒤에서 또다른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유년시절의 자신이 나타나 "저년만 없었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며 죽이라고 소리친다. 신드바드는 그녀가 쥬다르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라며 "신드바드와 다른 답을 내봐라"고 외친다.
* 옥염은 그때와 같은 뻔뻔한 얼굴로 쥬다르에게 다가온다. 쥬다르의 내면을 반영한 듯 파괴와 굴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주위를 멤돈다. 신드바드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어린 쥬다르는 당장 죽이라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옥염이 그의 몸에 손을 대자 쥬다르는 자신의 결론을 내보이는데.
* 쥬다르는 너무나 간단하게 눈 앞의 옥염을 구타하고 창으로 수 차례 내리찍는다. 답정너 짓을 하던 신드바드조차 당황해서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 자신만만한 얼굴로 돌아온 신드바드는 "그래서는 신드바드가 낸 답과 같다"며 조롱하듯 말하는데 쥬다르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쥬다르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옥염을 짓밟고 다가오자 이제는 신드바드가 당황한다. 전의도 잊고 쥬다르를 진정시키며 "좀 더 신을 설득할 법한 숭고한 답은 없냐"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건 쥬다르 답지 않은 일이다. 쥬다르는 "고민하는건 백룡, 굴복 뭐시기는 알라딘이나 알리바바가 할 일"이라고 명쾌하게 일축해 버린다. 신드바드는 이게 아니라는 듯이 어어 하고 당황할 뿐이다.
* 쥬다르는 "망설이지 않고 파괴한다"가 자신의 답이라며 혼란에 빠진 신드바드를 얼음마법 "사르그 알사로스"로 얼리고 목을 쳐버린다. 쥬다르는 얼음덩어리째 떨어진 목을 발로 걷어차며 "이해는 한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도 그 자신이 싫었던 것이다.
>부자 동네에 태어났더라면, 왕족이었더라면 등등
* 쥬다르는 신드바드에게, 혹은 유년시절 증오에 차있던 자신에게 작별하듯 손을 흔들며 돌아선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25회 일치
* 국왕은 여러모로 모자란 아저씨로 특히 [[마법제]] 율리우스를 크게 의식해 곁에 서지도 못하게 할 정도다.
* 둘은 꼭 로열 나이츠에 합격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돌아가는데, 난데없이 홍련의 사자단이 새 단장에게 왕창 깨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국왕은 당당한 걸음 걸이에 한 눈에 봐도 남을 내려다 보는 눈빛을 가진... 뭔가 모자라게 생긴 아저씨다. 별 건 없는데 오만한 낯짝이 기분 나쁜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A 킬러 클로버 13세". 명실상부한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맞지만 어딘지 격이 떨어지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마법제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가 곁에 서있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긴 키 차이가 머리 하나 정도로 나니 더욱 그럴 것이다.
초딩만한 못한 땡깡. 그는 자신의 "위대한 마나"를 마구 과시한다. 확실히 왕족인 만큼 눈으로 오오라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나는 마법제보다도 위대하다!"같은 소리나 하면서 과시해 봐야 볼성사나울 따름이다.
* 광장에 있는 사람 중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다. 하나같이 마법제가 국왕이 되어주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충 시간만 때운다. 호응이 없으니 열폭도 한계가 있다. 국왕이 제풀에 지치자 마법제가 진정하라고 중제하는데 그럴 수록 율리우스에 대한 열등감은 커져만 간다. 국왕은 율리우스의 인기도 그렇고 금색의 여명이 또 공적 1위를 달성한 것도 마땅치 않다. 금색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왕족이 단장인 기사단을 재치고 1등을 하는게 아니꼽다. 심지어 [[윌리엄 벤전스]]의 가면도 싫어한다. 아무튼 이 자리는 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천지.
* 국왕은 여기서 포기 하지 않고 폭탄선언을 해서 인기를 모아보겠다는 얄팍한 생각이나 한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신이 이 자리에 선 것은 발표할 것이 있어서라고 말한다.
바보국왕이 하는 말이지만 빅뉴스였다. 청중들이 탄성을 자아내자 국왕이 바쁘게 이어간다. 지금까지 백야의 마안의 테러에 당하기만 했지만 이번엔 역공을 취할 기회라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 마법기사단에서 엄선된 인재를 모아 "최강의 선발대"를 조직하기로 했다. 그것도 국왕 자신이 직접. 그 이름은 "로열 나이츠".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 모든 기사단 단원들을 상대로 시험을 볼 것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자만이 로열 나이츠가 된다.
백야의 마안의 꼬리를 잡았다는 선전효과에 흥밋거리까지 더해지자 민중들도 술렁거리며 기대를 모은다. 국왕이 발언을 마무리할 때 쯤엔 그가 만족할 만큼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그는 자기가 기획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사실 백야의 마안의 아지트를 조사하고 작전을 구상한건 마법제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부분만 홀랑 먹어치운 셈.
눈치없는 아스타가 입바른 소리를 내뱉기 시작하자 좋았던 국왕의 기분도 잡친다. 아스타는 국왕이 뭐라도 굉장한 일을 하는걸 본적이 없다며, 필요이상으로 팩트를 휘두른다. 그리고 옆의 유노에게 "넌 본적이 있냐"고 묻는데, 유노도 말을 많이 하는건 아니지만 맞장구는 쳐준다. 아스타는 또 마력은 굉장하지만 국민들을 위해 딱히 좋은 일을 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하자, 유노는 역시 "그렇다"고 수긍한다. 유노가 잘 받아줘서 그런지 아스타의 직설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카리스마가 없고 그릇이 작아 보이는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파해친다. 이쯤에서 유노가 제지를 하긴 하는데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발언이다.
* 약이 오를 데로 오른 국왕은 성미대로 두 사람을 당장 처형히라고 길길이 날뛴다. 따지고 보면 이럴게 될게 뻔했지만 아스타는 막상 닥치자 뜨악한 표정으로 당황한다. 민중들은 동요하고 그 사이의 청동마법의 [[셋케]]는 아스타를 비웃는다. 상황은 마법제가 나서면서 정리된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국왕을 달래고 자신을 봐서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은근히 "이런 걸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국왕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말투만 정중하지 위압감 마저 느껴지는 일침을 곁들인다. 열폭이나 해대는 국왕으로서는 거스를 도리가 없다.
* 잠시 뒤 마법제는 아스타와 유노, 두 사람을 잠시 뒤쪽으로 불러낸다. 아스타는 방금 전에 있었던 꽁트 같은 사건에 대해 힘차게 사과하지만 마법제는 애당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로열 나이츠 건에 대해 조언한다. 이건 지금까지 이상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찬스다. 그는 두 사람을 격려하면서 아울러 "그래도 아직 신인"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음주 선발시합에선 많은 강자들이 나올 터.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라며 자신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그대로 나란히 돌아가던 두 사람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성을 듣고 발길을 멈춘다. 어떤 여자가 "레오!"라는 이름을 험악하게 불러대고 있다. 그러고 보니 홍련의 사자단 소속이고 일전에 함께 싸운 적이 있던 [[레오폴트 버밀리온]]의 모습이 보인다. 전 단장 [[푸에고리온 버밀리온]]의 아우이기도 하다. 이름이 불린 그는 매우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대답하는데 그 얼굴에 다짜고짜 주먹이 박힌다. 이어서 매우 원색적인 욕설이 쏟아지는데, 상대는 홍련의 사자단의 새로운 단장이었다.
* 운동부 집합 시간을 떠오르는 장면. 홍련의 사자단 전원이 새 단장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레오폴트는 방금 전 안면공격으로 빈사. 단장은 5위라는 어정쩡한 성적에 분노를 터뜨린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25회 일치
* 마르스는 아군이라며 주장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증오의 파나]]를 발견하고 자신이 죽였던 친구 "파나"라고 소리친다.
마르스는 일단 자신은 아스타의 적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매우 살벌한 얼굴이라 믿음을 주지 못한다.
* 젤은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라드로스는 해치웠지만 다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폭주하는 샐러맨더, [[증오의 파나]]다. 마안을 개안해서인지 지쳤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마력이다. 마르스는 말로만 듣던 샐러맨더를 처음 보고 경탄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더니 그 불꽃이 자신이 사용하는 불꽃과 닮았다고 여기는데. 그리고 그 사용자, 증오의 파나를 보는 순간.
마르스는 젤이 다이아몬드 왕국을 떠난 후 "마도학자 모리스"란 인물 밑에서 가혹한 나날을 보냈다. 그 와중에 힘이 되어 준 것이 친구였던 파나. 하지만 모리스의 훈련 과정에서 마르스와 파나는 서로를 죽이도록 강요받고 그 결과 마르스는 파나를 죽이고 만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마르스는 오랜 세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는데.
*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운 일을 기점으로 따뜻한 마음을 되찾았던 마르스는 파나에 대한 속죄로 전투 중 생기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몰래 구하며 지내고 있었다. 지금 다이아몬드 왕국은 마도학자 모리스가 뒤에서 --비선실세--실세로 행세하며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 그가 다이아몬드 왕국을 배신한 것도 그런 이유로, 이미 파나가 사랑했던 다이아몬드 왕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던 마르스는 눈 앞에 파나와 닮은 소녀 "증오의 파나"가 나타나자 이성을 상실한다. 친구인 파나가 어쨌든 살아있다고 생각해 버린 마르스는 앞뒤 보지도 않고 일단 파나에게 달려가려다 아스타에게 제지 당한다. 사정을 모르는 아스타는 마르스가 황당한 짓을 한다고 여기다 둘이 아는 사이인 듯 하자 또 놀란다. 그러나 정작 파나는 마르스는 모른다며 공격을 가한다.
* 젤은 분명 파나라는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르스, 라드로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키우던 아이였다. 그가 망명하고 학생들이 모리스 밑에 들어간 이후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자세한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증오의 파나를 뜯어 보면 그때의 파나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변신마법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할 이유도 딱히 없을 터.
그녀를 관찰하던 젤은 이마의 마안에 주목한다. 그 자체가 누군가 걸어놓은 마법인데 [[백야의 마안]]이 그것으로 파나를 조종하고 있다고 간파한다.
* 증오의 파나가 진짜 "파나"인지, 그런건 알 수 없지만 마르스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는 두통을 호소하며 상태가 나빠진다. 파나는 "왜 모두 날 방해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절망의 베토]]가 막판에 사용했던 자폭마법을 발동시킨다. [[핀랄 룰러케이터]]는 그걸 알아차리고 왜 저 녀석들은 죄다 저런걸 달고 있냐고 절규한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침착하지만 저것이 발동할 경우 일대가 날아갈 거라고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 자폭 마법이 작동하는 중에도 샐러맨더의 화염덩어리가 사방에 뿌려진다. 아스타는 반마법 검으로 베어내지만 마르스는 반격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 공격을 그대로 맞는다. 젤은 마법으로 방어하라고 소리치지만 마르스는 한 번 파나를 죽였던 자신은 방어할 자격도 없다며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아스타가 후련하게 태클을 넣는다.
아스타는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 증오의 파나는 "백야의 마안"이란 테러리스트 집단의 간부라고, 잘못 본게 아니냐고 따진다. 마르스는 발끈해서 "소중한 친구를 잘못 봤을리가 있냐"고 멱살을 잡는다. 그 단호한 태도를 보고 아스타는 자신의 고향 친구들, [[유노(블랙 클로버)]]를 떠올린다.
젤은 둘 다 자신의 제자니까 마르스가 사형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도 마르스도 막내인 마르스에게 혼이 났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지금의 마르스라면 반드시 파나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노엘 실버]]는 자신의 물마법으로 파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핀랄의 공간 마법도, 바네스의 실 마법도 파나의 근처에는 접근할 수가 없고, 노엘의 물 마법으로 직접 공격을 가하면 반발 때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노엘은 역시 아스타의 반마법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25회 일치
*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자신이 곁에 있을 테니 일행을 풀어달라고 하지만 마녀왕은 "네가 바보같은 생각 못하도록 이들을 죽이는 것"이라 말한다.
* 마녀왕은 바네사가 자신의 딸이며 "가족"이니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며 소유물취급한다.
* 야미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묻는 바네사에게 "그런건 스스로 정해라"고 말한 뒤 사라지고 바네사는 그의 뒤를 쫓아 마녀의 숲을 나간다.
* 자신의 혈액마법으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 [[마녀왕]].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의식을 빼앗긴 아스타는 마녀왕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 아스타가 검을 들어올리자 노엘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나 아스타는 의심이 없는 중이면서도 지배되고 있는 오른팔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여왕은 그 정신력에는 놀라지만 어차피 그녀의 마법이 아스타의 혈액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 오래버틸 수는 없다.
노엘은 아스타 조차 저항하자 "당신이 날 죽이게 하지 않겠다!"고 외치며 여왕의 마법을 풀기 위해 몸부림친다.
* 바네사는 자신은 다시는 이 숲에서 나가지 않을 거라며 일행을 풀어달라고 애원하지만 여왕은 이미 그런 데는 흥미가 없다. 오히려 그녀가 이들을 죽여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여왕은 "점괘"가 있었다. 그건 "바네사가 여왕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살아 돌아온다"는 점괘. 그렇기에 억지로 바네사를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물론 그게 반마법의 검을 가진 아스타일 줄은 여왕도 몰랐다. 그런 반면, 여왕은 바네사는 자신에게 반항한 대가로 뭘 얻었냐고 묻는다.
* 유년시절의 바네사는 정말로 새장에 갖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왕은 그녀의 실마법이 "언젠가는 운명을 다루는 힘"을 갖게 된다는 점괘를 믿고 그녀를 감금했다. 바네사는 자신이 그런 힘을 가질리 없다고 생각하며 바깥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마녀들을 동경했지만 여왕은 그녀를 꺼내주지 않았다. 여왕은 바네사가 운명을 다루는 힘에 각성할 때까지 풀어주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가족이니 자신이 운명을 정해주는 거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바네사에게 오락거리라곤 실 마법으로 만든 실인형들과 자문자답하는 것 정도. 그녀는 여왕을 거스르는 것도, 그녀의 바람대로 운명을 다루는 힘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며 "나는 평생 여기서 사는게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 어느날 소란과 함께 그녀의 운명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밖이 시끄럽다 싶더니 누군가 새장이 설치된 방과 새장을 뚫고 떨어진다. 그건 젊은 날의 [[야미 스케히로]]였다. 황당하게도 "[[무사수행]]"이란 명목으로 마녀왕에게 도전하러 왔다 막 패배한 참이다. 야미는 왜 남자라는 것만으로 쫓겨나야 하냐고 투덜댄 뒤 여왕을 "히스테릭한 할망구"라고 욕한다.
* 바네사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인 것과 그리고 여왕과 싸우고도 무사하다는 것 모두에 놀란다. 그녀가 허둥대는 것과 달리 야미는 태연하게 이런데서 뭘하는 거냐고 물어온다. 바네사는 그저 여왕에게 갇혀있는 신세고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야미는 자신이 뚫고 들어온 구멍을 가리키며 이제 나갈 수 있다고 다행이라고 말해댄다. 하지만 바네사는 자신은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침울하게 대답한다.
야미는 그렇게 멋진 말을 한 주제에 금방 "하지만 지금은 마녀왕을 못 이기니 내빼야겠다"며 도망치려고 한다. 바네사는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
* 바네사는 마녀왕의 "내 가족"이란 말에 반박한다. 그리고 그녀의 "진짜 가족"이 사라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들이 사라진 이후의 모습도. 바네사는 이걸 멈추지 못할 바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 거냐고 자문한다. 그리고 그녀를 평생 옭아맸던, 여왕이 그토록 바라던 "운명을 다루는 힘"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나와주기를 바란다.
* 그녀의 그리모어에 새로운 마법이 씌어지고 붉은 실이 뿜어져 나온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힘이 깨어남을 느낀다. 이윽고 붉은 실은 그녀의 머리 위에, 또렷한 형체로 나타난다. 붉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 신혜성 . . . . 25회 일치
Lyrics by 함경문 Composed by 안정훈 Arranged by 김자웅<br /><br />
Lyrics by 함경문 Composed by 안정훈 Arranged by 김자웅<br /><br />
08. 여자들은 좋겠다<br />
08. 여자들은 좋겠다<br />
09. Promise (Duet.유리상자 박승화)<br />
09. 그 자리에서<br />
15. 그대죠 (Duet.LYn)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2008)<br />
16. 메아리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2008)<br />
:그 남자 이야기
01. 그 남자 이야기 (He Said...)<br />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02. 그 남자 이야기(He Said...)<br />
04. 그 여자 이야기(She Said...)<br />
05. 내 남자<br />
:결혼 못하는 남자 O.S.T
:무적자 O.S.T
:공주의 남자 O.S.T
* [[KBS 2FM]] 《강타, 신혜성의 자유선언》
[[분류:신화의 일원]][[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1998년 데뷔]]
[[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천안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오지훈 (1973년) . . . . 25회 일치
| 악기 = [[기타]] <br /> [[피아노]] <br /> [[건반 악기|전자 키보드]] <br /> [[신시사이저]] <br /> [[하모니카]] <br /> [[색소폰]] <br /> [[타악기|퍼커션]] <br /> [[드럼]]
'''오지훈'''([[1973년]] [[4월 7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남성]]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편곡가]], [[음반]]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이다.
오지훈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92년]]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무대에서 드럼 연주자로 참여했다.
그는 2년 후 자신과 동갑내기인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실용음악학과 휴학생 [[김지훈 (1973년 5월)|김지훈]]을 [[보컬|보컬리스트]]로 졸업 이후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중퇴한 [[유현재]]를 [[보컬|보컬리스트]]와 [[드럼]], [[베이스 기타|베이스 기타리스트]]로,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학과 졸업자 [[황혜영 (1973년)|황혜영]]을 객원 [[보컬|보컬리스트]]로, 역할들을 의기상투하여 [[1994년]]에 그가 리더로 내세워진 [[댄스 팝]] [[음악 그룹]] "[[투투 (음악 그룹)|투투]](Two Two)"의 [[건반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자 겸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정식 데뷔하였다.
당시 그는 "[[투투 (음악 그룹)|투투]]"에서 [[건반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와 [[기타 연주자|기타리스트]], 리더(leader)를 맡았다. [[1994년]] 《[[일과 이분의 일|투투 1집]]》 음반 수록곡 전곡을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하였고 이 시기에 데뷔곡인 동시에 자신의 자작곡인 《[[일과 이분의 일]]》이 일약 큰 히트를 하였다. 투투 1집에 수록된 '재수생'의 경우 김지훈과 함께 보컬을 양분해서 불렀다. 또한 드라마 [[딸부잣집 (드라마)|딸부잣집]]의 [[OST]]인 《딸부잣집》은 《투투 1집》의 수록곡인 《내 인생의 러시 아워》를 그가 직접 드라마의 분위기에 맞게 개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94 내일은 늦으리]] 앨범에는 자신의 자작곡인 《용사의 외침》을 실었다.
[[1995년]]에는 《[[TWO TWO 2|투투 2집]]》 음반을 프로듀싱하였고, 《[[TWO TWO 2|투투 2집]]》 음반의 타이틀 곡인 '바람난 여자'를 비롯한 《[[TWO TWO 2|투투 2집]]》 음반의 일부 수록곡들을 작사, 작곡, 편곡하였다.
그는 제대 후에 [[1997년]]에는 투투 출신 [[유현재]], 여성 멤버 이삭과 함께 얍(YAB, Young & Alternative Beaux)으로 활동하였다. <ref>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65189 개성시대:네이버 뮤직]</ref> YAB의 1집 음반을 프로듀싱하였으며, 전곡을 작곡하였다. <ref> [https://www.komca.or.kr/srch2/srch_01.jsp 한국음악저작권협회 - 저작자명 W0190100, 가수명 얍 참조]</ref>
[[1999년]]에는 [[핑클]] 2집 음반에 작곡가로, [[태사자 (음악 그룹)|태사자]] 3집 음반에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듀크 (음악 그룹)|듀크]](Duke)" 2집 [[음반]]의 수록곡인 '승수야 미안해'를 작사, 작곡했다. [[가수]] [[춘자|뉴 리안]]의 앨범 작업과 프로듀싱, 혼성 그룹 퍼니의 제작자 겸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2003년]]에는 장 안에 바이러스가 발생해 신체가 허약해지는 희귀병에 걸렸으나 [[2007년]]에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ref>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2641477 네이버 보도 자료 - 아프고, 망하고…1세대 아이돌 작곡가 `세월무상`]</ref>
* [[명지전문대학|명지실업전문대학]] 전자계산학과(중퇴) → [[단국대학교]] 서양화과(중퇴)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9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서운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원피스/858화 . . . . 25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와 [[캐럿(원피스)|캐럿]]도 목욕을 하고 있다. [[샬롯 로라]]의 쌍둥이 자매 [[샬롯 시폰]]은 나미에게 로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본래 빅맘은 거인족 전체와 대립하고 있었으나 엘바프의 왕자 "로키"가 로라에게 청혼한 걸 계기로 관계가 개선된다.
* 루피와 [[브룩]]은 목욕 후 우유를 마시는 걸로 다쳤던 뼈와 이가 완치되는 해괴한 체질. 목욕을 마친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와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간다.
* 징베가 "빅맘을 좋아하냐"는 한 마디를 던지자 루피, 벳지, 시저가 일제히 "싫다"고 입을 모으며 상황이 정돈된다.
슈트로이젠과 요리사들은 이 노래에 맞춰 분주하게 음식을 만든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슈트로이젠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보인다. 케이크는 이렇게 격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부선장 [[알라딘(원피스)|알라딘]]과 그의 아내 [[샬롯 플라리네]]는 징베가 대신 보고를 하러 갔도 벳지는 응징 당하고 있을 거란 감언이설로 그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페콤즈는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거짓말로는 설득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난 밤 섬에서 소란이 일어난 걸 이미 알고 있는데다 태양 해적단의 행동도 수상하다는 걸 간파한다. 그는 구해준 건 고맙지만 가야겠다며 억지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한다. 태양 해적단은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기 위해 식은땀을 흘린다.
* 누군가 정문에 나타나자 루피는 그가 벳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건 부하인 "괴총" 비트였다. 그는 상디와도 구면. 제르마의 팬인 만큼 상디를 "빈스모크 상디"라고 부르며 반가워한다. 비트는 다른 일행도 이미 도착해 있다며 일행을 안내한다. 비트 뒤에서 쵸파도 나타나는데 목욕을 해서 뽀송뽀송해졌다. 태평하게 루피한테도 목욕을 하라고 해서 루피가 "시간도 없는데 뭔 짓이냐"고 한 마디 한다. 하지만 비트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파더(벳지)는 결벽증이 있는 건지 "지저분한 인간"과는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 시폰은 로라가 어째서 결혼상대를 찾아 바다로 나갔는지 경위를 설명해준다. 빅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전세계 거인족들과 적대하고 있었다. 지금도 토트랜드에 거인족은 없는건 그때의 일 때문이다. 콜렉터인 빅맘에겐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딱 한 번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있었다. 엘바프 족의 왕자 "로키"가 로라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청혼했기 때문이다.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빅맘과 거인족 간의 원한은 단숨에 해소되는 데다 빅맘은 세계 최강국 엘바프의 강력한 군사력과 거인족 가족이 생긴다.
문제는 로라의 의향. 로라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유를 찾아 바다로 떠났다. 이후 로라와 똑닮은 시폰이 대신 약혼자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로라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 오히려 사이는 이전보다 악화됐다. 빅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진짜 거인족을 가족에 넣는건 포기, 인간을 거인화시키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로라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분노가 날로 증폭, 지금 토트랜드에선 그녀가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 루피도 [[브룩]]과 함께 목욕을 마쳤다. 브룩은 극락처럼 좋은 탕이라 성불할 뻔 했다고 드립을 친다. 루피도 이제부터 시작인데 벌써 싸움이 끝난 느낌이라고 투덜거린다. 그런 것치곤 벳지 해적단의 냉장고도 멋대로 열어보며 편하게 행동한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발견하자 브룩은 두개골이, 루피는 이가 깨졌다며 낼름 마셔버린다.
* 회의장소로 벳지가 나타난다. 벳지는 밀집모자일당에게 제대로 씻었냐며 묻는다. 그의 신조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 몸가짐이 되먹지 못한 상대는 대화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루피 일행은 그럴 듯한 옷도 한 벌씩 제공 받는다. 징베만 특유의 야쿠자 스타일을 고수.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은 양측의 패밀리. 하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수는 없다.
벳지는 시작부터 위협적으로 나온다. 부하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더 위협적이고 딱딱한 태도다. 상디는 거기에 딴죽을 건다. 자신이 죽었다간 식 자체가 없어지니 찬스가 제로라는 것. 게다가 그는 개시 2시간 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것이다. 벳지는 유감이라며 그 말에 동의한다. 징베는 그렇게 밀당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끼어든다. 그는 루피에게 직감적으로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떻지 의향을 묻는다.
루피가 지적하자 쵸파가 시저가 어디있냐며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상디나 나미는 벌써부터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운 이야기나 한다고 투덜거린다. 그 말대로, 행색은 달라졌지만 그는 시저가 맞다. 시저는 토트랜드로 끌려온 이후 줄곧 빅맘의 감시 하에 있었다. 하지만 "룩"의 칭호를 받고 전권을 위임 받은 벳지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시저의 심장까지 입수해서 문자 그대로 생사를 쥐고 있다. 벳지는 빅맘에게서 도망치게 해주는 대가로 협력을 강요했다. 시저는 거절하려고 해봤지만 밀집모자일당까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만큼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벳지에게 협력한다. 그렇게하고도 결국 만나게 됐지만.
그러나 웃음소리도 그대로라 전혀 의미없는 위장이다. 상디는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쵸파는 기껏 바꾼 이름이 "가스티노"여서 두 번 놀란다. 그런데 이런 성의없는 변장에도 루피는 한 번 속는다. 나미가 "시저가 맞다"고 지적해주고 나서야 다시 발끈한다. 루피 조차 속지 않자 시저도 위장은 때려치우고 루피일행 탓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원망한다. 그러면서 [[트라팔가 로]]에게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고 전하라며 아우성을 친다.
* 잠자코 지켜보던 벳지는 소란이 짜증났는지 시저의 심장을 비틀어서 제압한다. 이건 쓸데없는 시간낭비라며 루피에게 손을 잡을지 말지 정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자 단숨에 난장판이 된다. 루피로서는 아무래도 친구인 페콤즈를 죽이려 한 벳지를 용서할 수 없다. 벳지의 부하들은 그를 공격하려는 루피에게 반발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기세다. 중재하던 징베는 그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작전은 어떤게 있냐고 묻는 루피에게 벳지는 자신있게 대답한다.
시저는 얼른 해치우고 이 관계를 끝내자고 말한다. 이때 개막까지 남은 시간 3시간 20분.
- 은혼/594화 . . . . 25회 일치
* 우츠로는 그의 불로불사의 몸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천도중 자리를 얻는다.
* 천도중은 각인을 가지고 별의 아르타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조직. 여러 별의 아르타나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아르타나 관리협회"였다.
* 이들은 우츠로의 불로불사를 탐내 불사의 피를 자신들의 몸에 이식하나 부작용으로 죽지 않을 뿐 썩어문드러지는 신세로 전락한다.
* 우츠로의 최종적인 목표는 지구 그 자체의 파멸.
* 우츠로는 초대부터 요시다 쇼요, 그리고 "최후의 우츠로"에 이르는 역사를 밝히고 자신은 모든 우츠로를 끝내기 위해 왔다고 밝힌다.
* 이러한 사실을 담담히 듣고 있는 쇼요의 제자들.
* 우츠로는 자신이 죽을 방법을 알 수 있다면 피 한 방울까지 조사해도 좋지만, 그 자신은 "나 이외의 존재를 끝장내는 방법이라면 지구상 누구보다 잘 안다"고 경고한다.
* 그리고 자신의 힘에 흥미가 있다면 얼마든지 협조할 테지만, 그 대신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협력을 요구한다.
* 이렇게 해서 천도중이 된 우츠로는 자신의 불사를 미끼로 천도중에 끼게 되었다.
* 그 개패에 쓰는 열쇠가 "각인". 천도중 최상위 간부의 증표이자 문의 개패가 가능한 유일한 코드다.
* 애초에 용맥을 폭주시킬 힘은 그들 천도중에게 밖에 없다. 즉 그들 사이에 배신자가 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다.
* 우츠로는 그런 자를 따르는 군대는 어디에 있겠냐고 묻고 천도중은 "문이 인질로 잡힌 이상 어떤 나라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군대는 어떨까?"라며 우츠로가 손에 넣은 "하루사메"를 언급한다.
* 그들은 우츠로가 반란분자 숙청을 위해 원정을 갔음을 지적하며 사실상 원정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 하지만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원정 자체가 천도중의 눈을 돌리고 이면에선 탄황의 터미널을 점거, 아르타나를 폭주시켜 별을 파괴하는 것이었다면?
* 천도중은 그제서야 자기들 중에 배신자가 있어 열쇠를 넘겨줬음을 알게 된다.
* 우츠로의 소름끼치는 미소를 보고서야 배신한 천도중들은 자신들도 속았음을 깨닫는다.
* 곧 소식이 올 것이고 희생된 별의 생존자들은 천도중에게 복수하려 할 것이며, 아직 안전한 별들도 천도중을 그냥 둬선 안 된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 그는 자신은 지구가 만들어낸 괴물이기에 지구가 존재하는 한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요시다 쇼요는 우츠로와 싸움에서 사라졌지만 그 저항이 쇼요의 제자들을 만들었고 그 혼은 이곳에 있다고 말한다.
* "저항하는 자들이여 우츠로를 막아라"
- 이덕건 . . . . 2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1985년 대학졸업 후 언론사 기자를 목표로 서울로 상경, 언론고시를 준비하였으나 신문기자보다는 향후 방송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판단하여 방송기자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사투리를 쓴다는 결정적 핸디캡으로 기자 대신 PD쪽으로 선회하여 [[KBS]] 공채 11기로 방송사에 입사하였다.
처음 <[[유머 일번지]]>, <[[전국노래자랑]]>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드라마 <[[애정의 조건 (1987년 드라마)|애정의 조건]]>,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달빛가족]]>, <[[서울 뚝배기]]>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3년 [[KBS 드라마게임|드라마 게임]] <쌀>로 입봉하여 이후 <[[아름다운 유혹]]>, <[[별난여자 별난남자]]>, <[[미우나 고우나]]>, <[[바람 불어 좋은 날 (드라마)|바람 불어 좋은 날]]>, <[[사랑은 노래를 타고]]> 등 일일극 연출을 맡아 성공시키며 KBS 일일극의 상징인 감독으로 각인됐다.
| 저자 =
}}</ref> 그 외에 수목드라마인 <[[해신]]>, <[[장밋빛 인생 (2005년 드라마)|장밋빛 인생]]>, <[[위대한 유산 (드라마)|위대한 유산]]>, <[[투명인간 최장수]]>, <[[달자의 봄]]>, <[[마왕 (2007년 드라마)|마왕]]> 등의 책임프로듀서(CP)를 맡기도 했다.
|2005||KBS1||[[별난여자 별난남자]]||연출||
| 저자 =
* [[1995년]], KBS 1TV [[인간극장 (드라마)|인간극장]] 6화 '마이더스의 손' 촬영 당시 출연진에 속했던 탤런트의 매니저로부터 술자리 향응을 제공받아 1월 28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3009220|제목=PD 2명 구속-KBS소속 매니저 2명도 함께|저자=김기평|날짜=1995-01-29|출판사=중앙일보|쪽=|확인날짜=2015-12-26}}</ref> <ref>{{뉴스 인용
| 저자 = 강민석
| 저자 =
* 연출했던 KBS 1TV [[인간극장 (드라마)|인간극장]] 6화 <마이더스의 손>의 기획자는 김재현, 조연출자는 어수선이었으며 [[선우재덕]], [[김명수 (배우)|김명수]], [[이응경]], [[선우은숙]], [[손종범]]이 출연하였다. 기획자 김재현 역시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전과가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000329123010&editNo=20&publishDate=1995-02-10&officeId=00032&pageNo=23&printNo=15336&publishType=00010&from=news|제목=이사급PD 1명 구속|저자=박래용|날짜=1995-02-10|출판사=경향신문|쪽=|확인날짜=2016-02-03}}</ref>
*결국 1997년 7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9시에 방영된 KBS 2TV [[전설의 고향]] 16화 '걸귀'(8월 31일)와 26화 '초야'(10월 5일, 마지막회)로 복귀하였는데 SBS <[[이웃집 여자]]><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242490|제목=SBS 주말극 야외 오픈세트 공개|저자=서한기|날짜=1997-06-17|출판사=연합뉴스|쪽=|확인날짜=2016-02-03}}</ref>와 경쟁한 바 있다.
- 인교진 . . . . 25회 일치
|출생지 = {{KOR}} [[충청남도]]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現 {{KOR}} [[세종특별자치시]])
|배우자 = [[박수진 (1987년)]]
|자녀 = 딸 박하은, 박소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인 인치완<ref>[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152260&year=2013 인교진 아버지, 연 매출 200억 원대 CEO…‘반전 집안’ 눈길↑], 매일경제 2013년 2월 28일자</ref>의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단국대학교]]에 재학중이던 2000년 [[문화방송|MBC]] 29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2011년까지는 '''도이성'''(陶伊成)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소속사를 옮기면서 예명을 버리고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다.<ref>[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12011222692917&type=1&outlink=1 유리아·인교진 "김주리·도이성은 잊어주세요!"(인터뷰)], 머니투데이 2012년 1월 23일자</ref>
2000년 [[문화방송|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재동 역을 맡아 연기생활을 시작한 인교진은 2012년 4월 22일 종영된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극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을 통해 인연을 맺고 연인으로 발전, [[서우]]와 함께 공개 연애를 선언했으나, 2013년 5월 결별하였다. 이후 2014년 4월, 인교진은 12년 간 같은 기획사에서 만나 동료 연기자로 친분을 맺어 온 [[박수진 (1987년)]]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동년 10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008217748&cp=nv 인교진-박수진 결혼 공식입장 “지난달 초 결혼 프로포즈… 10월 결혼”], [[국민일보]] 2014년 4월 9일자</ref> 그리고 임신 소식이 전해져 태명을 기쁨이로 지었다. 2015년 12월 4일에는 딸이 태어나 그의 딸을 박하은으로 지어 가족으로 발전되기 시작되었다.
* 2001년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가을에 만난 남자]]》
* 2003년 [[KBS 제2TV|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바람난 유전자》 ... 정학 역
* 2008년 [[서울방송|SBS]] 일일드라마 《[[애자 언니 민자]]》 ... 박하진 역
* 2014년 [[MBC]] 수목드라마 《[[앙큼한 돌싱녀]]》 ... 남자 1호 역
* 2015년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 ... 황경철 역
* 2016년 [[KBS2]] 월화드라마 《[[우리집에 사는 남자]]》 ... 응급실 의사 역
| 연속극부문 베스트 남자 조연상
| [[여자를 울려]]
| 남자 조연상
| 남자 조연상
| 남자 조연상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교동 인씨]][[분류:키이스트 소속]]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25회 일치
* 모든 음모를 꾸민 [[뤼드셀]]은 십계 다섯을 상대로는 불리하다며 자신도 전장으로 향한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데리엘]]에게 당해 추락하자 상공에 나타난 두 사대천사는 "잘도 무례한 짓을 했다"고 말하지만 별로 심각한 기색도 없다. 그들에게도 엘리자베스는 "당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혼나는 귀찮은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 늬앙스다. 둘은 또 과연 "산 미끼"를 가지고 십계가 낚일지 어떨지 내기를 한 모양인데, 시종 존댓말을 쓰는 쪽은 자기 승리라고 주장하지만 반대쪽은 "전원이 모이지 않았으니 무효"라고 우긴다.
이 긴장감 없는 녀석들이 사대천사 [[사리엘]]과 [[타르미엘]]. 사리엘은 작은 소년의 모습이고 타르미엘은 세 개의 머리가 달린 거구의 남성이다. 타르미엘은 말끝을 묘하게 늘이는 존댓말 말투를 쓰는데 이번 내기는 없던 걸로 하고 "이 자리의 십계 전원을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새로운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사리엘은 받아들이며 "5분"만에 끝내겠다고 선언한다. 타르미엘은 "10초"로 하겠다고 하는데.
* 둘은 말을 끝내며 각자 손을 들어올린다. 눈치 빠른 [[갈란]]은 뭔가 낌세를 챘는제 옆에 있던 [[메라스큐라]]를 데리고 황급히 회피한다. "전원퇴각"이라고 외치지만 한 발 늦어서 사대천사가 발동한 "오메가 아크"(극대성궤)가 나머지 십계와 마신족 군대를 한 번에 옭아넣는다. [[몬스피드]], [[데리엘]], [[프라우드린]]은 부하들과 함께 아크에 갇혀 버리지만 프라우드린 외에는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몬스피드는 부하들에게 미안하다며 "원수는 꼭 갚겠다"고 다짐한다.
두 사대 천사는 엘리자베스도 보여준 적이 있던 묘한 눈동자를 나타내더니 입을 모아 그렇게 되뇌인다. 그러자 아크가 거대한 빛과 함께 소멸. 마신족의 대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걸러든 마신족을 일소했다고 자신한다. 타르미엘은 5초 만에 전멸시켰으니 자기 승리라고 하는데, 갈란과 메라스큐라는 건재하다. 메라스큐라는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됐는지 갑자기 잡아 끈 갈란한테 무슨 짓이냐고 따지고 있다. 사리엘은 저 "두 마리"가 남았으니 타르미엘의 승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 사리엘은 일견 무대책으로 몬스피드에게 달려들지만, 일단 몬스피드는 피한다. 그런데 분명 피했음에도 몬스피드의 왼팔에 상처가 생긴다. 몬스피드는 "재미있다"면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본다. 사리엘은 "죽을 때까지 즐겁게 해달라며" 다시 몬스피드에게 돌격하는데, 그때 몸집을 불린 프라우드린이 파리 때려잡듯이 사리엘을 내리친다.
사리엘은 큰 나무 밑둥으로 처박히고 프라우드린은 자신이 사리엘을 처리하겠다고 나서는데, 잘 보니 프라우드린의 커다란 팔에도 상처가 생겼다. 그리고 사리엘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고 다시금 일어서는데.
그는 자신의 내기를 꼭 성공시킬 작정인가 보다. 몬스피드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응수한다.
* 본진에서는 [[뤼드셀]]이 사리엘과 타르미엘의 일처리에 투덜거리고 있다. 기껏 미끼까지 동원해서 십계는 어쩌지 못하고 잡병만 치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꿔 "역시 십계가 정예"라고 정정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떠나기 전 [[네로바스타]]에게 "문"을 잘 지키라고 당부한다. 십계를 처리할 때까지 문에는 아무도 다가가선 안 되며 설사 십계를 처리하더라도 문이 부서지면 원군을 불러올 수 없게 되므로 전황은 단숨에 불리해진다는 것이다.
네로바스타는 떠나는 뤼드셀에게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완수하겠다고 답한다. 뤼드셀이 떠나자 그녀는 뤼드셀의 무운을 빌며 몸을 돌리는데, 갑자기 뤼드셀이 다시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다. 네로바스타는 좀 필요이상으로 놀라면서 "뭐가 더 남았냐"고 묻는다. 뤼드셀은 만일을 위해 미리 원군을 불러 대기시키라고 지시하려고 왔던 것이다. 아무리 사대천사라도 십계를 상대라면 힘들기 때문이다.
* 그런데 네로바스타가 이상하다.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무감각한 목소리로 곧바로 원군을 부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녀의 목뒷덜미에는 수상한 마력의 꼬투리가 삐져나와있다.
네로바스타의 눈 앞에 있는건 뤼드셀이 아니었다. 그것은 십계 [[고서]]. 현대에서 인형이 되어 있는 고서의 오리지널이었던 것이다. 진짜 고서는 네로바스타를 세뇌해 자신을 뤼드셀로 믿게한다. 그리고 원군을 부르라고 지시를 내리며 "나도 동행하겠다"고 말한다. 네로바스타는 아무 의심도 없이 그를 "문"으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 킹덤/510화 . . . . 25회 일치
* 비신대의 신병들은 첫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측과 그렇지 못한 측으로 나뉘어 티격댄다. [[간두]]는 후자로 전공을 세운 자들의 비웃음을 당한다.
* 먼저 와 있던 [[양단화]]는 [[왕전(킹덤)|왕전]]이 열미성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알려준다.
* 열미성이 진군에게 떨어졌다. 경사스러운 밤이었지만 [[비신대]]의 신병들에겐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패잔병처럼 침울하다. [[간두]]는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기가 죽은 동료들 사이에서 분통을 터뜨린다. 기껏 선발시험을 통과하고 그토록 어려운 훈련을 거쳤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며 자기 자신의 무능에 화를 내는 것이다. 다른 신병들도 비슷한 마음이다. 전투 전만 해도 자신감에 넘쳤으나 지금은 패배감이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돈각과 돈고 형제는 나름대로 공을 세웠다. 그들은 첫 출진에서 적 다섯을 죽이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간두 같은 "입만 산 쓰레기"를 같은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조롱한다. 간두가 발끈하지만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럴 수록 돈 형제는 기가 살아서 "입만 산 간두"라며 간두를 도발한다.
* 술이 돌면서 딱딱했던 분위기도 풀린다. 간두는 숭원에게 낮에 신세진 일이 감사했다고 말한다. 숭원은 고마우면 강해지라며 "입만 산 간두"라는 별명을 부르며 쏘아붙인다. 그러자 송좌가 신병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며 그의 과거사를 운운한다. 사실 검의 달인인 숭원도 첫 출진때는 쫄아서 오줌을 지린데다 누구 하나 베지 못했던 것이다. 신병들은 물론 미평 같은 고참들도 몰랐던 일이라 왁자지껄하게 놀림거리가 된다. 송좌도 그때 옆 부대에 있다가 우연히 들은 일이었다. 숭원은 다소 민망해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숭원이 17살이었고 오줌을 참고 있다가 적에게 기습을 당했었다. 그 뒤 한 동안 "오줌싸개 숭원"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미평은 드디어 숭원의 약점을 잡았다며 좋아라한다. 심지어 자기 첫 출진 때보다 심하다고 마구 놀려대는데 숭원이 살짝 열받아서 "놀린 놈은 죄다 반쯤 죽여놨다"고 날을 새우자 조용히 찌그러진다.
숭원의 이야기는 신병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그런데 돈 형제는 첫 출진에서 활약한 자신들은 숭원보다도 뛰어난 병사가 되지 않겠다고 설레발을 치는데 송좌는 첫 출진에서 너무 잘 나간 녀석들이 설치다 죽기 십상이라고 말해서 기를 죽인다. 간두는 문득 대장 이신도 처음엔 수치를 당했냐고 묻는다.
* 그를 잘 아는 미평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은 첫 출진부터 대단한 공을 세웠다. 사감 평원에서 미평과 동료들이 포위되었을 땐 혼자 적진에 돌격, 20명을 베어넘기면서 활로를 뚫었다. 그 직후엔 어디서 말을 구해다 타고 적 대군 사이로 달려가 아군을 구해냈고 곧이어 처음 본 장갑전차를 날려버렸다. 마지막엔 [[표공]] 장군의 돌격으로 생긴 틈으로 파고들어 적장의 목을 취해, 이 첫 출진의 전공으로 단숨에 백인장 자리를 받았다.
신병들은 상식을 초월하는 대활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송좌도 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싸우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일 투성이다. 송좌와 숭원은 그보다 열 살은 많아 평소엔 신을 꼬마 취급하지만, 그래도 전장에선 그 누구보다 멋진 남자가 신이라며 추켜세운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창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창인은 전공을 세우고도 동료들과 떨어진 민가의 골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창인은 골똘이 생각에 빠져서 하료초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인기척을 하자 겨우 그녀가 나타난걸 깨닫는다.
하료초는 첫 출진부터 중임을 떠맡겨 미안하다고 위로하는데 창인은 그 점은 오히려 기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게 문제였다. 하료초는 그가 아직도 손을 떠는걸 발견한다. 창인은 그저 너무 세게 연사를 한 탓이라고 말하다가 "게다가 처음으로 사람을 쐈다"고 덧붙인다. 하료초는 후자 쪽이 떨림의 진짜 원인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게 사실이었다. 창인은 이런 나약한 자가 부대에 들어와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료초는 이번 전투에서 비신대의 제 1공은 창인이라며 격려한다.
하료초는 모든 고참들과 신, 그리고 자신 조차도 다양한 벽에 부딪혔고 그걸 극복해왔다고 말한다. 자신은 부대를 움직여 적을 죽이고, 때로는 아군도 죽여야 하는 일이 두려웠었다.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건 익숙해지는 일이다. 무섭다는 기분이 안 들 수는 없지만. 하지만 비신대는 그래도 괜찮은 부대이며 약함을 인정해서 전장에서 진정한 강함을 발휘하는 부대다. 오히려 첫 출병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희희낙락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녀석들은 전부 [[환의(킹덤)|환의]]군에나 가라고 한다.
창인은 하료초의 격려를 듣고 떨리던 손을 불끈 쥔다. 그리고 하료초에게 감사를 표하며 손의 떨림은 어쩔 수 없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하료초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놀면 더 기운이 날 거라고 한다. 창인은 그 전에 동생 창담을 찾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전장에서 그를 혼낸 일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하료초가 책임감 있는 형이라고 칭찬하자 창담에겐 자신이 없으면 안 되며 자신에게도 창담은 하나 뿐인 소중한 동생이라고 말하며 골목을 빠져나간다. 하료초는 그의 뒷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본다.
하료초는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양단화는 자신도 왕전을 보러왔는데 막상 와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 토리코/393화 . . . . 25회 일치
* 괴멸해가는 네오 안에서 아카시아의 얼굴이 나타나 자신은 어리석은 자라 말하며 토리코에게 진실을 고백한다.
* 아카시아는 블루니트로 페어에게 네오에 대해 들은 후 네오 안에 갇힌 식령들을 해방코자 했다.
* 최후를 맞이하는 아카시아. 어찌된 일인지 최후의 일격을 먹인 토리코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죽어가던 중에도 아카시아는 어째서 그에게 눈물을 흘리냐고 묻는데 토리코는 이제 모든게 끝났고 더는 화낼 필요도 없어졌으니 네오도 아카시아도 "그 아름다운 식욕"을 풀어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아카시아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그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본래 식욕 그 자체엔 선도 악도 없으며 그 자체로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네오가 토리코의 분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며 자신은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토리코의 분노를 끌어내야 했다고 밝힌다.
* 하지만 그가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한 것에 블루 니트로 페어는 수긍하지 못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시절. 아카시아와 동행하던 페어는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동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카시아 안에 있는 네오의 존재와 블루 니트로가 세운 봉인 계획을 설명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카시아가 자세히 묻자 페어는 실언이었다며 그런거 보다 봉인 계획에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표정이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아카시아는 페어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이고 네오의 봉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페어에게 이것저것 지식을 얻던 아카시아는 문득 "식욕의 악마에게 잠식 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 묻는다. 아카시아는 그것이 네오에게 먹힌 식혼들을 구하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만약 그 식혼들이 네오 안에서 살아 있는 거라면 반드시 꺼내줄 방법도 있을 거라고 역설하는데 페어는 쓸데없는 소리라 일축하며 혹시 네오 때문에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냐고 묻는다. 페어는 과거 네오의 소행은 악행도 뭣도 아닌 그저 식사이며 지금와서 아카시아가 책임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아카시아는 그저 자신 안의 식욕에 대한 수수깨끼를 해결하고 싶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페어는 귀담아 듣지 않고 풀코스의 출연이 가까웠으니 플로제의 설득이나 신경쓰라고 말한다.
* 페어에겐 무시 당했지만 아카시아의 의문은 씻겨지지 않는다. 그는 달을 바라보며 네오가 왜 자신에게 깃들었는지 자문해 본다. 네오는 이미 수십억년을 먹고 먹기를 반복했다.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그저 먹고만 있는 것이다. 생각을 거듭하던 아카시아는 마침내 "네오는 사실 이미 배가 부른게 아닌가?"라는 발상에 도달한다.
*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카시아는 엄청난 발견을 알린다. "네오가 싫어하는 맛"에 대한 것. 아카시아는 이것이야 말로 네오 안의 동포를 구할 단서라고 말한다. 페어는 또 그딴게 집착하냐고 쏘아붙이지만 아카시아는 확고한 자세로 "그럴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식욕의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만고의 법칙이고 구르메 세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에너지의 절대량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끝없는 순환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네오에 먹힌 식혼들 또한 사라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맞다는 것.
* 그들의 계획이 조금 "수정"된 후. 수정된 계획은 페어와 아카시아 둘만이 알고 있다. 아카시아는 이 수정된 계획을 플로제에게 들려주며 그녀의 의견을 구한다. 플로제는 자신은 단지 그의 콤비일 뿐이지 그가 원하는 음식을 조리할 뿐이라고 말하며 암묵적으로 그를 따른다.
* 플로제의 동의가 있은 후에도 아카시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스스로에게 "정말로 네오가 만복인 것인지"를 끝없이 묻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머나먼 땅"으로 가는거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실행하려는 계획이 정말 옳은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 실패한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며 자신의 식욕에게서 답을 구하려 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 최후의 갈림길. 플로제가 GOD를 조리하다 기력이 다하고 이치류에게 인간계를 부탁하던 날이다. 이때 아카시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계획 전부를 이치류에게 털어놓는다. 만일 그걸 막고 싶다면 이 자리에서 "분노"를 담아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하지만 이치류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며 눈물을 흘린다.
* 그 길고 길었던 고뇌의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시아는 식욕과 맞서고 자신의 사명, "네오에 갇힌 식혼들을 구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 페어는 그런 아카시아가 어떻게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냐고 소리친다. 아카시아는 과거 7대륙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 그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며 이렇게 끝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한다. 페어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아카시아는 의식이 희미해지는걸 느낀다.
* 그 순간 의식이 사라지던 것이 멈춘다. 그것은 미도라의 노킹이었다. 아카시아는 마지막 공방에서 미도라가 노킹을 걸었음을 짐작한다. 그가 언제 자신의 진의를 알아챘냐고 묻자 미도라는 죠아를 쓰러뜨렸을 때라고 답한다. 아카시아는 죠아의 최후의 순간에 노킹을 건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건 "결정타"였던 것이다. 아무리 분노를 끌어내려고 했다지만 플로제의 몸을 마지막으로 부수는게 미도라가 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 아카시아는 미도라의 노킹이 멋진 솜씨라 칭찬하며 여전히 흉내내는걸 잘한다고 말한다. 미도라는 자신이 처음 복사했던 건 기술 같은게 아니라며, 그것은 아카시아가 보여주었던 따뜻한 애정이었다고 말한다. 감격하는 아카시아. 하지만 미도라는 노킹도 곧 풀릴 것이고 그의 죽음도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은 둘째 형처럼 "노킹 마스터"가 아니기 때문에...
* 그때 누군가가 망설이는 텟페이의 손을 붙잡는다. 바로 노킹 마스터 지로의 식혼이다. 홀연히 나타난 지로는 지구를 노킹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는데. 텟페이와 아이마루는 깜짝 놀라는데 지로는 태연하게 영혼세계에서 이치류가 보냈다고 말한다. 지로는 죽었던 할아버지와 재회한 것에 감동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지로는 "지구 노킹 정도야 별 것도 아니다"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칭호 "노킹 마스터"를 텟페이가 계승하라고 말한다.
*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 아카시아. 내부에서 식재들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카시아는 자신의 계획이 완수되었다고 기뻐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며 토리코에게 부탁한다. 언젠가 부활할 네오를 부탁한다는 것. 하지만 단순히 파괴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외토리였던 그 사랑스러운 식욕을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토리코는 흔쾌히 수락하고 아카시아는 그에게 감사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지로를 죽였어야 했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데 물론 지로는 아카시아를 영구적으로 노킹하려고 했으니 경계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과연 이치류도 따라준 계획을 지로라도 이해하지 못했을까? 계획을 오로지 이치류에게만 전한 것도 부자연스럽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25회 일치
* 새로운 활력(Second Wind)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의 피로도를 회복시킨다.
* 확고한 방어(Hold Firm)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에게 짧은 시간동안 적용. 방어력을 올려주고 사기 감소를 막는다.
* 확고한 방어(Hold Firm)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에게 짧은 시간동안 적용. 방어력을 올려주고 사기 감소를 막는다.
* 확고한 방어(Hold Firm)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에게 짧은 시간동안 적용. 방어력을 올려주고 사기 감소를 막는다.
* 확고한 방어(Hold Firm)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에게 짧은 시간동안 적용. 방어력을 올려주고 사기 감소를 막는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확고한 방어(Hold Firm)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에게 짧은 시간동안 적용. 방어력을 올려주고 사기 감소를 막는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서양에서 수입한 화승총으로 무장한 아시가루. 철포 아시가루보다 약간 규모가 작다. 자체 생산이 아니라 수입해서 들려주는거라 가격도 비싸고 모집에 4턴이나 걸린다. 조총을 1년 동안 찔끔찔끔 수입하는거냐. 기독교로 개종하면 2턴만에 모집할 수 있으며, 일본제 철포 아시가루에 비해 능력치가 병아리 눈물 만큼 높다. 서양인과 접촉하는 이벤트에서 교역해주면 한 부대 던져주기도 한다.
* 공성 기술자의 작업장(Siege Engineer's Workshop) 필요.
===== 키쇼 닌자(Kisho Ninja) =====
폭탄을 던지는 닌자 무리.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지만 근접전에도 능하다.
===== 한조의 그림자(Hanzo's Shadows) =====
적은 양의 만렙 키쇼 닌자. 다른 영웅들처럼 머릿수가 적지만 애초에 키쇼 닌자의 머릿수도 적어서 별 생각이 안 든다.
적은 양의 만렙 야부사메 기병. 매우 높은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을 가졌다. 근접전 능력도 향상되었으나 기병의 한계가 있으니 과신하지는 말자.
* 새로운 활력(Second Wind)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의 피로도를 회복시킨다.
* 새로운 활력(Second Wind)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의 피로도를 회복시킨다.
* 새로운 활력(Second Wind) - 자신과 근처 아군 3부대의 피로도를 회복시킨다.
- 페어리 테일/497화 . . . . 25회 일치
* 아이린이 나인하르트에게 엘자를 직접 죽이라고 지시한다.
* 잉벨의 "아이스 슬레이브"는 "자아를 잃게하는 마법". 아이린은 "마음을 얼려버리는 마법"이라고 표현한다.
* 메이비스는 자신의 자아가 사라지기 전에 잉벨을 쓰러뜨려 달라고 한다.
* 자아를 빼앗긴 채 아이린에게 페어리 하트를 추출 당하는 메이비스.
* 아이린이 밝힌 잉벨의 마법은 "아이스 슬레이브". 자아를 잃게하는 마법으로 "마음을 얼음에 가두는 마법"이라고 한다.
* 자아가 봉인된 탓에 아이린의 분리 인챈트에도 저항하지 못한다.
* 그러자 아이린이 "그런 무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아크놀로기아에겐 못 이긴다"라고 직언을 날린다.
* 그 말을 인정하고 자리를 피하는 제레프.
* 제레프가 나간 후 나인하르트가 아이린에게 "엘자를 찾았다"고 보고한다.
* 아이린도 엘자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뒤였다. 나인하르트는 "적이라 해도 엘자님은..."이라며 처분을 어떻게 할건지 묻는다.
* 아이린이 단호하게 지시하자 나인하르트는 "저의 히스토리아는 효과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 그러자 아이린은 "네가 직접 싸워라"라고 지시한다.
* "너는 사실 어떤 자냐"라며 그의 정체를 암시하는 아이린. 나인하르트는 주저하면서도 눈이 검게 물들어 있다.
* 문제의 엘자는 전장을 휩쓸면서 전황을 바꾸고 있다.
* 나츠가 화룡의 포효를 쏘는데 갑자기 발생한 냉기 때문에 불꽃 그 자체가 얼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 잉벨은 스스로를 "모든 것을 겨울로 바꾸는 자"라 칭하며 그레이 따위의 냉기는 자신의 겨울을 배겨낼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레이는 자신 조차 저항할 수 없는 냉기에 크게 당황한다.
* 한편 메이비스는 곧 자신이 사라질 거라며 한 시라도 빨리 잉벨을 쓰러뜨려 달라고 기원한다.
* 잉벨은 정확히는 빙결 마법이 아니라 자아를 속박하는 마법. 잉벨의 마법에 당해서 느끼는 "냉기"는 정신적인 것이지 그레이처럼 직접적으로 얼음을 생성하는 마법과는 성격이 다른 듯하다.
* 엘자와 아이린의 관계에 대한 떡밥이 재살포. 모녀설이 가장 지지를 얻고 있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25회 일치
* 영면의 저주에 당할 위기에 처하자 [[로그 체니]]가 스팅에게 "그림자 안으로 녹아 들어가라"고 조언한다.
* [[카구라 미카즈치]]가 중력 마법으로 조력해서 스팅은 그림자로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 나츠가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제레프를 타도하겠다고 중얼거리자 [[해피]]는 제레프가 죽으면 나츠도 죽는다고 털어놓고 만다.
* [[로그 체니]]의 그림자를 먹고 모드 백영룡에 각성한 [[스팅 유클리프]]. 스팅은 자신은 항상 [[나츠 드래그닐]]의 등을 쫓아왔으며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방해물이라고 말한다. 라케이드는 자신이야 말로 직접 나츠의 혼을 정화할 거라며 애초에 스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스팅은 자신과 로그의 힘이 합쳐진 세이버투스의 진수를 시험해 보라며 주먹을 날린다.
* 백영룡의 힘은 라케이드에게도 상당한 타격을 준다. 스팅은 백룡의 힘과 영룡의 힘을 번갈아 사용하며 라케이드를 몰아붙인다. 라케이드가 사용하는 백색 마력은 백룡의 힘으로 지우고 그림자의 힘은 어떤 공격도 무시하던 라케이드에게 유효타를 낸다. 두 힘을 합쳐서 내뿜자 라케이드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멀리 밀려난다.
* 라케이드는 몇 명의 힘을 합치든 "최후의 욕망"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최후의 마법 R.I.P(Rest In Peace)를 사용한다. 사방으로 빛과 부적이 흩날리자 거부할 수 없는 졸음이 몰아닥친다. 스팅은 상처를 후벼파며 저항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라케이드는 모든 생물은 욕망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 아크놀로기아 조차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자신이야 말로 아크놀로기아에게 이길지도 모르는 "궁극의 마도사"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스팅은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잠에 빠져들려 한다.
* 그때 로그가 그림자로 들어가라고 조언한다. 그림자 안에선 모든 감각이 곤두서며 일시적으로 잠기운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그림자의 힘을 얻은 스팅에겐 무리한 주문이었다. 로그는 중력을 느끼고 대지와 일체가 되는 요령이라고 설명해주지만 잘되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강력한 중력이 스팅을 덮친다.
* 그것이 도움이 됐는지 스팅은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로그의 말대로 감각이 날카로워지면서 쏟아지던 잠이 사라진다. 스팅은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라케이드에게 돌격한다. 라케이드는 그림자를 향해 마법을 시전하려 하지만 스팅이 한 발 빨랐다.
* 나츠 드래그닐은 아직도 자신의 정신세계를 헤매고 있다. 그를 인도하던 스팅은 어느 새 사라지고 그 모습이 로그 체니로 바뀌었다. 나츠는 아무리 마음 속이라도 멋대로 안내역을 바꾸지 말라고 투덜거리지만 로그는 "그만큼 네 정신이 산만한 것"이라 디스한다.
* 로그는 발걸음을 멈춘 김에 나츠의 머플러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그 머플러는 이그닐의 비늘로 만들어진 건데 어째서 하얀 색인가? 나츠는 지금까지 실컷 이그닐의 비늘로 만든 거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정작 색이 다르다는 건 지금에야 깨달았다. 로그는 용의 비늘이란 몸에서 떨어지면 색이 바래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과연 이 머플러를 "누가" 짰느냔 것. 나츠는 막연히 이그닐이 만들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용인 그가 인간 사이즈의 머플러를 짤 수 있을리 없다.
* 루시는 망설이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고 받아들인다. 그때 나츠가 제레프의 이름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의식이 없는 중에도 제레프는 자신이 쓰러뜨리겠다고 수없이 되뇌인다.
* 그동안 참아왔던 해피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나츠도 죽는다"는 말을 듣고 만다. 일행은 해피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만 해피는 그대로 오열해버린다.
나츠의 정신세계에 나오는 제레프는 실제 본인이 맞는 걸로 보이는데 제레프가 생각에 잠긴 모습 다음 나츠의 정신세계로 배경이 바뀌고 제레프도 나타난다. 제레프는 그 자신이 나츠의 정신세계에 개입하고 있는 것 같다.
- 페어리 테일/516화 . . . . 25회 일치
*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협동공격으로 [[아이린 베르세리온]]에게 타격을 입힌다.
* 한편 나츠는 자신의 심상세계에서 아버지 [[이그닐]]을 만나는데 이그닐은 그의 안에서 "용의 싹"과 "악마의 싹"이 융합해 자신이 더는 막을 수 없다고 밝힌다.
* 아이린은 엘자의 큰 공격을 맞아주는 듯 했지만 연막이었고 자신의 인챈트 능력을 사용해 웬디 마벨의 몸을 빼앗는다.
* [[엘자 스칼렛]]은 설사 육친이라도 길드로 가는 길을 막으면 벨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아이린 베르세리온]]은 옛날 얘기라도 하면 아이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싹틀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공격을 재개한다.
* 폭발을 뚫으며 엘자가 돌격한다. 아이린은 엘자의 검격을 가볍게 막으며 "마력만으로 한 나라의 여왕이 된 나에게 이길 거라고 생각하냐"고 비웃는다.
엘자의 말과 함께 [[웬디 마벨]]이 천룡의 익격으로 공격한다. 치명적인 상처를 주진 못했지만 아이린이 틈을 보였고 엘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 웬디는 아이린의 과거는 동정하지만 자기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린은 그녀를 "꼬마 멸룡마도사"라 부르며 방금 전에 말한 "용의 싹", 용화의 기미는 그녀에게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천룡 [[그란디네]]에게 모든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세대의 멸룡마도사들은 드래곤이 직접 체내에 들어가 용의 싹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 그래서 용화의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 셈. 아이린은 그 이야기에 경악하는데 엘자는 "[[나츠 드래그닐]]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인다.
* 이그닐이 있는한 용의 싹이 성장할 일은 없다. 나츠는 자신의 죽음이 이그닐이 죽고 용의 싹이 다시 자라나서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그닐은 그게 원인이 아니라고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쪽".
나츠의 몸안에는 용의 싹 말고도 "악마의 싹"이라 할 만한 것이 들어있다. 바로 그게 END의 증표. 두 개의 싹이 융합하려 하고 있고 나츠의 몸에 나차난 증세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나츠는 그게 자신이 죽는 원인이냐고 묻고 이그닐은 사뭇 냉정한 어투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나츠.
* 한편 현세대 멸룡마도사가 용화를 극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린은 자신에게 마법을 건 베르세리온은 전장에서 죽었고 자신은 그 원한을 갚기 위해 싸웠었다고 말한다.
* 엘자는 자신이 편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외치고 웬디에게 신호를 준다. 웬디는 신체 강화마법 "데우스 에퀘스"로 엘자의 힘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인챈트라면 아이린의 전문분야다. 아이린은 곧 데우스 제로로 데우스 에퀘스의 효과를 상쇄하는데 웬디도 지지 않고 같은 데우스 제로로 아이린이 건 데우스 제로를 제거한다. 아이린은 웬디가 그정도로 고도의 인챈트 마법을 사용하는걸 보고 내심 놀란다. 하지만 그때 엘자의 공격이 덮쳐온다. 그걸 보고도 히죽 웃는 아이린.
엘자의 공격이 정통으로 명중한다. 하지만 아이린은 피를 흘리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알겠다 엘자.
갑자기 아이린은 뜻 밖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 페어리 테일/526화 . . . . 25회 일치
* [[제레프 드래그닐]]은 [[라케이드 드래그닐]]이 그저 잘 만든 제레프서의 악마일 뿐인데 자신을 아버지라 여기고 방해한다고 걷어차버린다.
* 길다트는 자폭할 듯 보였지만 실은 오거스트의 마법의 원리를 간파하고 그를 몰아붙이기 위해 연극한 것.
*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집착했돈 오거스트. 사실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은 제레프였다.
* 오거스트가 바로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 제레프는 그가 친자인줄 모르는 채로 만나 "오거스트"란 이름을 붙여주고 거두게 된다.
*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 부녀는 합심해서 [[오거스트]]에게 공격을 퍼붓지만 어떤 마법으로도 오거스트의 몸에 상처를 낼 수가 없었다. 카나의 카드를 오거스트가 피하면서 빈틈이 생기고 길다트가 "올크래쉬"를 명중시키지만 이또한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반격까지 허용하고 만다. 길다트는 자신의 마법은 물론 페어리 글리터 조차 통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지만 해답을 낼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공격이 카나에게 향한다.
* 오거스트는 아직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지만 싸우는데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따위"라고 중얼거리며 카나를 지팡이로 찌른다. 길다트가 몸을 던져서 그 앞을 막지만 이전 아크놀로기아가 뜯어먹은 왼팔의 의수 부분을 관통 당한다. 카나는 무리하지 말라고 염려하는데 오히려 길다트는 딸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투지를 끌어올린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애가 생기니 그게 전부 아이를 위한게 되더라며 신기하다고 말한다. 카나는 전투 중인 것도 잊었는지 지금도 실컷 싸돌아다니지 않냐고 핀잔을 주는데, 그것도 카나가 아버지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 같아서 한 행동이다. 만약 카나가 같이 있어주길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겠다고 하는데 역시 카나는 그런건 싫다고 질색한다.
항상 이름으로 부르던 카나가 자기도 모르고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길다트는 멈추지 않는다. 오거스트가 제정신이냐고 묻자 그게 부모라고 대꾸한다.
* 페어리 테일 길드에서는 분노한 [[제레프 드래그닐]]이 쓰러진 [[라케이드 드래그닐]]을 짓밟는다. 제르프는 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왜 자신을 공격하냐고 묻는 라케이드에게 "나에게 아이 따위는 필요없다"고 폭언을 내뱉는다. 죽어가는 라케이드는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자신은 자식이라고 항변하는데 제레프는 비웃을 뿐이다.
라케이드는 제레프의 자식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나츠 드래그닐]]을 END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실험체일 뿐이다. 단지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기에 "드래그닐"이란 성을 부여한 것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인 주제에 자신과 나츠의 싸움을 방해하다니, 그는 라케이드를 "덜 떨어진 놈"이라 부르며 걷어찬다. 너무 심한 처우에 보고 있던 나츠 조차 그만두라고 끼어든다. 오로지 나츠와 대결에 정신이 팔린 제레프는 라케이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 과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서 적출한 "생명"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아이는 건강한 신생아였지만 프레히트는 곧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생긴 아이임을 알게 된다. 메이비스에게 아이가 생긴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아이는 빛도 어둠도 아닌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살려뒀다면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한 프레히트. 그러나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는지 외딴 곳에 아이를 버리는 걸로 문제를 묻어버린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마력을 가진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는 프레히트를 원망하진 않았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것도 마력을 통해 기억을 되살려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연고가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삶은 힘들었다. 식사는 민가에서 도둑질을 해서 해결했고 무엇을 하든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아버지, 제레프였다. 숲을 방황하던 아이는 우연히 제레프와 마주치고 그가 누군지 깨닫는다.
* 맹렬한 기세로 오거스트를 떠미는 오거스트. 오거스트는 어떤 마법이든 자신에겐 통하지 않으므로 소용없는 짓이라고 도발한다. 하지만 길다트는 이미 그의 마법의 정체를 간파했다. 오거스트의 마법은 "순간 복사"다. 동시에 눈 앞의 마도사의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길다트가 짧은 시간 만에 자신의 비술을 간파하자 오거스트는 적지 않게 놀란다.
* 드디어 아버지를 만난 제레프의 아이.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제레프는 자신의 아이인 것도 모르는 채 그를 거두고 자신의 부하로서 나라를 만드는 일을 돕게 한다. 그리고 그는 아이에게 이름도 부여한다.
제레프는 자신과 "어떤 소녀"가 "특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며, 그게 8월이었다고 말해준다.
- 하이큐/259화 . . . . 25회 일치
* 스코어가 22 대 22으로 1세트 막판이 다가오자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야마구치 타다시]]를 서버로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진다.
* 자신의 "경험치" 속에서 "가장 꺼림직한 블록"을 발견한 [[히나타 쇼요]]. [[미야 오사무]]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면서 [[미야 아츠무]], 오사무 형제의 괴짜 속공을 저지하는데 일조한다. 공은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전해져 득점으로 연결, 스코어는 20 대 20으로 동점을 이룬다. 주춤했던 추격세는 부활, 고조된다. 히나타는 자기 자신이 뿌듯해 어쩔 줄을 모른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니가 득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트집잡자 "나는 공격에만 재주가 있는게 아니다"는 말로 되갚아 주려 했지만 카게야마 측에서 무시.
경기 시작 후 처음으로 제대로 블록 당한 오사무는 "배가 꺼지는 기분"이라 투덜댄다. 여기서 [[이나리자키 고교]]의 두 번째 TO.
* [[타나카 사에코]]가 타이밍 좋게 분위기를 띄운다. [[카라스노 고교]]의 기세가 더할나위 없이 높아진다. 일반 관중들 속에서도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바보 커플 중 남자 쪽은 진지하게 역전 가능성을 점친다. 반면 여자 쪽은 "미야 형제를 질투해 적을 응원하는거 아니냐"며 시들한 반응이다.
* 예상을 뛰어넘은 카라스노의 선전.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싸움의 구도를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새내기"라고 표현했다. 하긴 강호 이나리자키도 어디까지나 도전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카라스노 라는도전자를 맞아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카라스노에 대해선 정보량이 적긴 하지만 계속 새로운걸 시도한다는 걸 알겠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우카이 케이신]]코치가 의도이기도 했다. 그런 시도들을 계속 던지는 것으로 경기의 균형을 잡고 있으며, 멈추게 되면 판도가 단숨에 기울 거라는 걸 안다.
* 이나리자키의 감독 [[쿠로스 노리무네]]. 가족관계가 심란해 보이는 41세다. 그는 선수들이 자꾸 10번, 히나타에게 정신 팔자 탐탁지 않아한다. TO 중에도 선수들이 10번의 움직임에 지나치게 연연했다. 쿠로스 감독은 "10번에 정신 팔리기 시작하면 카라스노에 먹힌다"고 지적한다. 그는 히나타를 개에 비유하며 "개한테도 무시가 제일 잘 먹힌다"고 주장했다. 이 개에 비유하는 버릇은 이미 유명한지 선수들은 "또 개에 비유한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마도 가족 중 그나마 친한게 개인 모양이다.
* [[니시노야 유]]는 옆의 [[아즈마네 아사히]]에게도 "선배도 저런 공격 쳐도 된다"고 부추긴다. 아즈마네는 저렇게까지 하는건 무리라고 대꾸하지만 그래도 강한 자극이 된 것 같다.
* 경기는 시소게임을 되풀이하며 22 대 21까지 왔다. 이나리자키가 한 점 차 리드를 지키는 가운데 마지로의 서브. 그는 독특한 동작으로 공을 튕기며 정신을 집중한다. 마지로의 파워풀한 서브는 카라스노에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걱정을 입증하듯 무겁고 강렬한 서브가 날아온다. 위치는 정확히 타나카. 하지만 리시브하기도 버겁다. 공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높이 뜬다. 이것을 히나타가 처리한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의외로 깔끔하게 아즈마네에게 향하는 공. 자기 나름은 괜찮은 리시브였다고 들뜨지만 옆에서 본 카게야마는 뽀록이라 일축한다.
* 아즈마네가 달려나온다. 이나자키는 기다렸다는 듯 블록 세 장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즈마네가 유독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 차이는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 정도가 눈치챈다. 아즈마네가 노리는건 명백했다. 블록 위에서 치는 스파이크. 하지만 그 의욕이 독이 됐을까? 타점이 빗나갔다. 공에 겨우겨우 스친 손. 공은 공중에서 튀어올라서 간신히 블록을 넘기고 떨어진다. 스파이크라고만 생각했던 이나자키의 후위가 황당해하며 달려온다. 하지만 공이 코트에 닿는게 먼저다. 어이없지만 득점 성공. 공격에 성공한 카라스노 측 조차 헛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즈마네는 속으로 왠지 미안하다고 씁슬해한다. 어이없어하는 이나리자키 진영.
득점은 득점이다. 스코어는 22 대 22. 중계석은 오히려 운이 따르니까 이런 상황이 나온 것이며 카라스노가 공격하는 자세가 잡힌 증거라고 호평한다.
* [[보쿠토 코타로]]는 방금 전 플레이에서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아즈마네는 평소에 시도하지 않던 "블록 위에서 때리는 스파이크"를 시도했다. 이런 국면인데도 말이다. 그는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며 아즈마네 뿐만 아니라 카라스노라는 팀 자체가 마음에 든 것 같다.
* 로테이션이 돌아 다시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오고 니시노야가 나간다. 히나타의 서브 차례. 지금 히나타는 의욕이 최고일 뿐 아니라 묘한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블록이나 리시브에 비해서 서브는 훨씬 별로다. [[스가와라 코시]]는 그저 서브를 치려고 기합이 들어간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딱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1학년 선발 합숙 이후 히나타의 리시브는 뭔가 변했다. 거기에 방금 전 블록과 리시브 성공이 히나타의 기세를 올린 원동력일 것이다.
* 야마구치는 서브 위치로 향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모든게 평소대로다. 지금 걷는 보폭, 볼 핸들링. 문제없다. 목표는 에이스.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제, 츠바키하라 전에서 했던대로 "리셋할 시점"을 갖는 것. 야마구치는 눈을 들어 어제 리셋할 시점으로 정했던 비상등을 바라본다. 그런데... 가려져 있다. 워밍업 때만 해도 분명히 보였던 그 표시가 깃발로 가려졌다. 야마구치는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려 하고 다른 물건을 표지로 "리셋" 하려고 하지만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 귓가를 쟁쟁하게 채우는 양진영의 응원 소리. 소음들. 리셋에 실패한 채로, 플레이 시간이 다가온다.
- 하이큐/263화 . . . . 25회 일치
* 회심의 공격마저 무위로 돌아가며 최악의 난조를 보이는 [[타나카 류노스케]].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북돋아주지만 자괴감을 떨치기 힘들다.
* 동료들은 언제나 타나카의 성격상 금방 털어낼 거라 생각하지만, 타나카에게 세트업이 와야할 상황에서 조차 차례를 양보하게 되자 견디기 어려워한다.
* 타나카는 자신은 천재는 못 되고 실의에도 빠지는 평범한 선수지만 "그래서 바닥을 보고 있을 틈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플레이할 기력을 얻는다.
* 꼭 넣어야 했던 1점. [[타나카 류노스케]]가 혼신을 담은 스파이크는 [[이나리자키 고교]]의 빈틈없는 블록을 넘지 못하고 사이드 라인을 넘긴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흐름이 끊기는 듯한 실점. 동료 선수들의 얼굴도 관중들도 타나카를 응원하는 [[아마나이 카노카]]도 낭패한 빛이 떠오른다.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방금 플레이가 단지 동점을 허용한게 아니라 더 위험한게 있다고 봤다. 그것은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순조롭게 압박을 쌓고 있다"는 것. 그점이 노출된 것이다. 이는 양팀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준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아쉬운 기색 없이 좋은 코스였다고 타나카의 등을 두드려 준다. 타나카도 힘차게 대답하며 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굴었으나, 역시 뼈아프다. 통한의 실책. 한편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는 타나카의 스파이크가 나름대로 깔끔하게 스트레이트를 잡으려 했던 거라고 평가한다. [[츠키시마 케이]]는 타나카의 실수 보단 아까 [[스나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여전히 신경 쓰였다. 확실히 막는 코스였다. 못해도 건드린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스파이크는 통과하는 것처럼 지나갔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가?
* 좋은 유명세는 아니지만, 관중석에서 "빡빡머리"라는 이름으로 타나카가 자주 오르내렸다. 바보 커플 중 남자 쪽은 결정적으로 컨디션이 망가지기 전에 타나카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가차없는 말 같지만 여자 쪽은 더 했다. 이미 망했으니 당장 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잔인한 것에 가까운데다 현 상황에서는 교체도 어렵다.
>자, 와라아아아!
* 이나리자키의 공격. 긴지마의 서브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실수. 잘못 맞은 서브가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긴다. 네트 인 서브. 오늘 이나리자키는 뭘해도 잘
* 그러나 츠키시마는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가 택한건 아즈마네. 백 어택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도, 다이쇼와 미카, 그리고 적측인 린타로도. 벤치에서 타나카의 건재를 자신하던 2학년들도. [[우카이 케이신]] 코치,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었다.
>자신한테 토스가 올라온단 건 스파이커에게 있어선 그것만으로 긍지야.
* 한 바퀴 돈 로테이션. 니시노야가 나가고 [[히나타 쇼요]]가 들어온다. 츠키시마는 서브 위치로. 히나타는 들어오자 마자 타나카를 찾는다. 히나타는 "방금 그" 플레이에 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한 스파이크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스파이크를 말하는게 아니었다. 그가 "이나리자키의 10번"을 압박한 블록을 말하는 거였다. 린타로가 중앙에서 솟아올랐을 때 히나타 혼자 블록을 뛰었던 상황. 그때 잽싸게 타나카가 따라붙었다. 히나타가 그게 엄청 멋진 플레이였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한 가운데에서 하는 블록은 혼자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히나타는 그걸 다테 공고의 블록 같았다고 말하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그게 잠시지만 타나카의 저조한 텐션을 끊어줬다. 서브 위치로 가다 그 대화를 들은 츠키시마는 "바보" 주제에 웬일로 "제대로 된 말"을 한다며 칭찬인지 비꼬기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우카이 코치도 그걸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 그리고 츠키시마의 서브. 리시브는 [[오지로 아란]]. 자세는 좋지 않았다. 불안정하게 중앙으로 향하는 공. [[미야 아츠무]]가 세트업하며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어차피 블록은 한 장이라 생각하며 뛰어오르는데, 한 장이 아니다. 정면을 막은건 히나타. 거기까지는 히나타도 오사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트에서 타나카가 받쳐주러 올 줄은 몰랐다. 그 압박에 급하게 루트를 바꾸는 오사무. 오른쪽. 그 위치에는 사와무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한 리시브. 니시노야는 히나타와 타나카의 블록의 진가를 알아본다.
공은 카게야마에게. 세트업 직전, 세터의 눈동자는 타나카를 향하는 듯 했다.
* 네트 앞으로 달려가면서, 타나카는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체격면에서든 능력 면에서든. 그도 자신이 "천재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중학교 때. 정말로, 뻔뻔하게 말한다면 지금까지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키가 180까지 자라지 않을 건 분명하다. 그리고 운동능력이 좀 뛰어나긴 하지만 어느 부분이든 팀에서 제일 가진 않는 것도 키만큼이나 분명하다.
- 한비야 . . . . 25회 일치
| 학력 = [[숭의여자고등학교]]<br />[[홍익대학교]] 영문학과<br />[[유타대학교]] 대학원 국제홍보학과<br />[[터프츠대학교]] 플레처스쿨 인도적 지원학 석사
| 배우자 = 요하네스 판 쥐트펀(Johannes van Zutphen)(2017-)<ref>[http://v.media.daum.net/v/20180121160334438]</ref>
'''한비야'''(韓飛野, 개명 전 이름 한인순, [[1958년]] [[6월 26일]] ~ , [[서울특별시|서울]] 출생)는 [[대한민국]]의 국제구호활동가이자 작가,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 팀장이다.
2001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 한국에서 9년간 일하였다. 2000년 대 초반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일하다 2012년부터는 ‘인도적 지원 전문가(Humanitarian Assistant Specialist)’로 일하게 되었다. 2011년부터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남수단,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키웠다고 한다. 세계일주 여행의 첫 여행지가 ‘산들의 고향’인 네팔이라는 것만 보아도 한비야의 산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 연합뉴스
|저자 = 연합뉴스
|저자 = 이진아
=== 교육자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펴낸 후부터 대중 강연 활동을 펼쳤으며 2012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임용되었고 각종 교육 관련 단체, 기업 등에서 강연하고 있다.
* 2004년 [[한국YWCA]] 선정 젊은 지도자 상<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41101072239742&p=kukminilbo|제목=소비자운동 정광모씨 ‘여성지도자상’…YWCA,한비야씨 ‘젊은 지도자상’|저자=민태원|날짜=2004-11-01|출판사=국민일보|언어=ko|확인날짜=2009-08-15}}</ref>
* 2009년 [[캠퍼스라이프·한국대학신문]] 대학생의식조사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ref>{{웹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1449791&code=30802000|제목="대학생들 한비야ㆍ안철수ㆍ노무현 順 존경"|저자=연합뉴스|날짜=2009-10-12|출판사=국민일보|언어=ko|확인날짜=2013-09-09}}</ref><ref>{{웹 인용|url=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6967|제목="대학생, 존경하는 인물 '한비야','오바마'|저자=윤지은|날짜=2009-10-12|출판사=한국대학신문|언어=ko|확인날짜=2013-09-09}}</ref>
* 2011, 2012년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분야 3위<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10812114744228|제목=[2011한국, 누가 움직이는가 - NGO 지도자] NGO도 이제 글로벌 시대|저자=조해수|날짜=2011-08-12|출판사=시사저널|언어=ko|확인날짜=2013-09-02}}</ref><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1142629416|제목=[201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떠나도 영향력 그대로
|저자=조해수|날짜=2012-08-21|출판사=시사저널|언어=ko|확인날짜=2013-09-02}}</ref>
|제목=[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청춘아,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라"|저자=특별취재팀|날짜=2012-04-21|출판사=동아일보|언어=ko|확인날짜=2013-09-02}}</ref>
|제목=[2014 차세대 리더]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장으로서의 한비야|저자=정리, 안성모 기자|날짜=2014-10-23|출판사=시사저널|언어=ko}}</ref>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터프츠 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숭의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여행가]][[분류:유타 대학교 동문]]
- 홍정욱 . . . . 25회 일치
| 종교 =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ref>[http://v.media.daum.net/v/20080411175405385 홍정욱 서울 노원병 당선자 "기독 정치인 갖출 덕목은 사랑"], [[국민일보]]</ref>
| 배우자 = 손정희
| 자녀 = 슬하 1남 2녀
| 부모 = [[남궁원|남궁 원]](부), 양춘자(모)
'''홍정욱'''(洪政旭, [[1970년]] [[3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이다.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올가니카]]의 회장이며, 사단법인 올재의 이사장이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 로스쿨 졸업 후 미국에서 투자금융가로 일했고 [[2001년]] 귀국 후 헤럴드를 인수해 기업가로 활동했다.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홍정욱은 1970년에 태어나 1985년 압구정중학교 재학 중 도미, 1989년 [[초트 로즈메리 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93년 [[하버드 대학교]]를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마그나 쿰 라우데]]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1년 간 수학했고, 대학 졸업 후 1994년 [[베이징 대학|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잠시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학했지만 곧 중퇴한 후 [[미국의 로스쿨|미국 로스쿨]] 입학을 선택했다. 1995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에 입학하였으며 1998년 법무박사 (J.D.) 학위를 취득하였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98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 졸업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뉴욕의 [[리먼 브라더스|리먼브라더스]] [[인수합병]] 그룹에 입사하여 투자금융가로 몇 년간 일하다 사퇴하고, 벤처기업 스트럭시콘의 창업자 겸 CFO로 재직했다. 2001년 병역 이행을 위해 가족과 함께 귀국했으며, 2002년 12월 오랜 경영난에 시달려온 언론 지식기업 [[헤럴드 (기업)|헤럴드]]를 인수해 국내 최연소 언론사 CEO이자 [[헤럴드경제]] 및 [[코리아헤럴드]]의 발행인이 되었다. 2005년 인수 2년 반 만에 [[헤럴드 (기업)|헤럴드]]의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http://www.heraldcampus.co.kr/ 캠퍼스헤럴드], [http://junior.heraldcorp.com/ 주니어헤럴드] 등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고, 서울영어마을, 부산영어마을 등의 운영권을 획득하며 교육사업을 확장했으며, 2007년에는 프리미엄 여성채널 [[동아TV]]를 인수해 방송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2015년 [[LF (기업)|LF패션]]에 매각). 그러나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총선|제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동아TV]] 회장직을 사임했다.
3년 연속 (2008, 2009, 2010) NGO 국감모니터단이 평가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 6월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주최하는 ‘제18대 국회 의정활동 종합평가회’ 에서 헌정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상' , 2009년 제7회 시민일보 '의정대상' 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2011년 12월 11일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홍정욱은 영화배우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남궁원]]과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양춘자 사이 1남 2녀 중 외아들이다. 누나인 홍성아는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계열사인 헤럴드아카데미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생인 홍나리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최초의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 선발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홍정욱은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http://www.jungheesohn.com/ 손정희](1974년~)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손명원은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사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으로 정치인 [[정몽준]]의 손윗 동서이다. 처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이고, 처의 친할아버지는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이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前 외무부 장관이다.
손정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학교와 직장을 다닌 미국인으로 2008년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며, 홍정욱의 세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 시민권자인 손정희를 따라 [[국적법]]에 의해 미국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었다.
* 2011년 법률소비자연맹 ‘헌정우수상'
미국 영주권자인 어머니를 통해 1985년 미국에 가게 되었으며, 미국 영주권자로 [[1987년]] 군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2001년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해 군복무를 하였다. 30세를 넘긴 나이로 부모가 모두 환갑을 넘겼고 누나가 모두 분가한 이유로 2001년 12월 17일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육군 제30사단에 입대해 4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6개월간 서울용산초등학교에서 전산요원으로 공익근무를 한 후 2002년 제대하였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노원구 갑)[[정봉주]]<br/>(노원구 을)[[우원식]]<br/>(노원구 병)[[임채정]]
|후임자 = (노원구 갑)[[이노근]]<br/>(노원구 을)[[우원식]]<br/>(노원구 병)[[노회찬]]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성공회대학교 교수]][[분류:서울압구정초등학교 동문]][[분류:압구정중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홍준표]][[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MoniWikiACL . . . . 24회 일치
* @ALL: 모든 사용자 (priority: 1)
* @User: 등록 사용자 (priority: 2)
== 사용자 정의 그룹 @group 그리고 @group의 priority ==
##@그룹이름 사용자리스트 [pri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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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ck deny * // 모든 페이지(*)를 @Block 사용자그룹에 대해 모든 액션(*)을 거부(de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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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이름 @그룹/특정사용자 allow/deny 액션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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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페이지(*)를 일반 가입 사용자에게(@User) 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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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Anonymous // @Guest 사용자 그룹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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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페이지(*)에 대해 모든 사용자의(@ALL) detetefile,deltetepage 등등의 protect 가능한 액션을 prot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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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용자(@ALL)에게 allow를 제외한 모든 액션 거부.
- 고경표(배우) . . . . 24회 일치
2017년 4월 5일 《시카고 타자기》 제작발표회에서 고경표
본인도 올라프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찍은 사진을 올렸을 정도로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디즈니 캐릭터)|올라프]]와도 닮았다. 연예인으로 비교하자면 약간 [[송창의]], [[최시원]], [[박해일]]을 좀 닮은 정도?
[[YG 엔터테인먼트]]에서 2년간 연기연습생으로 생활을 하다 캐스팅된 영화가 엎어지면서 군 입대를 결심하였지만, 우연히 본 KBS2 정글피쉬 2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하였다. 이후 전 소속사인 필름있수다의 장진 사단이 합류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시즌 1에 크루로 출연하면서 큰 키와 잘생긴 얼굴로 과감하게 망가지는(...;;) 개그연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는 시트콤 [[감자별]]의 노민혁 역으로 캐스팅 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당초 노민혁 역에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으나 [[김병욱]]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그를 무작정 찾아가, "난 네가 좋은데, 우리 같이 할래?"라고 하면서 캐스팅을 했다.
[[블랙넛]]이 여성혐오 논란으로 비판을 받고있을 때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블랙넛의 노래가 좋다는 글과 블랙넛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스트리밍 인증샷을 올려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인스타에 고경표와 고경표의 가족에게 [[모욕죄|모욕]]과 [[명예훼손죄|인신 공격성 테러]]를 가하였고, 설전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사실 해당 노래는 여성 혐오에 대한 가사로 논란이 일었던 노래조차 아니였다. 이후 사과글을 게시한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일부 네티즌들의 의도적 판 키우기와 언론인들의 가쉽성 보도 때문에 고경표 일베설이라던가, 여성혐오자라더라 같은 [[냄비근성|루머가 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경표는 장진 사단으로, 2011년 SNL에 들어갈 당시 정치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며, 많이 배우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였다([[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41304809351989002|SNL하면서 정치 공부… 울분 터지더라]]). 또한 영화 변호인을 보고 젊은이들이 투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52156|배우 고경표 "검은옷 입고 '변호인' 보았다"]]). 평소 고경표는 노란 리본을 직접 받아서 달고 다닌다고 하였으며, 일베 논란은 응답하라 1988 포상휴가 당시 공항에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달고 나타나 일축되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9/2016011902740.html|'선우' 고경표,'가방에 달린 세월호 노란리본']]).
2015년 1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도리화가(영화)|도리화가]] 시사회 현장에서 [[류승룡]]이 "[[수지(1994)|수지]]를 보러 촬영이 없어도 현장에 갔다", "여배우의 덕목은 기다림과 애교다" 등의 발언을 비판하며 쌍욕으로 점철된 [[메갈리아]]의 글을 링크하며 "이게 무슨 헛소리냐", "저 댓글 쓴 사람들 일상생활 가능한가?"라는 글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당시 현장에 응원차 방문했었다던 고경표는 이에 대해, 선배를 감싸는 목적에서 글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박유천]]과 관련된 논란에서는 2014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 남우상을 수상하였던 박유천을 두고, 비공개 계정에서 친구와의 대화했던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 후보로는 <화이; 괴물을 삼킨아이>의 [[여진구]], <족구왕>의 [[안재홍]], <신의 한수>의 [[최진혁]], <변호인>의 [[임시완]], <해무>의 박유천이 있었으며, 박유천이 수상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제에 대한 비난과 함께 수상한 박유천에 대한 언행을 한 것은 잘못한 점이 분명히 있으나, 이를 두고 고경표는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전 인터뷰에서 아이돌 출신인 임시완에 대해 존경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딱히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던간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면, 아이돌의 연기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확대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박유천/사건사고|엄청난 사건사고]]로 큰 논란에 휩싸인 [[박유천]]을 옹호중인 [[심영섭]]이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hm2b&page=2&sn1=&divpage=44&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8586|믹키유천의 오랜 팬이자 본 신인 남우상의 심사위원중 한명이이었다는것이 밝혀져]] 본 발언이 '''재평가를 받고있다.'''
2015년 11월 이루어진 고경표의 페이스북에서는 "너무 나대서 불편하고만"이라는 글과 함께 tvN 초인시대에서 [[응답하라 1988]]을 풍자하는 [[유병재]]에 대해 비난조의 글을 게시한다. 당시 tvN 드라마 '초인시대'에서 유병재는 "올해 하반기에 '응답하라 1988'이 방영합니다. '너무 옛날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그래서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 뭐 이런 우려들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조금 더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답하라 1894', [[동학농민운동]] 때로 돌아가서 그 안에서 벌어졌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여자 주인공 전봉준과 탐관오리 조병갑 사이에서 누구한테 갈까 이런 내용으로 시청자들과 밀당한다면..."이라는 등 응답하라를 풍자하는 내용의 콩트를 하였는데, 당시 응답하라를 출연 준비중이었던 고경표가 이에 대해 '너무 나대서 불편하고만'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SNS에 대해 안 좋은 면만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고경표는 [[무한도전]] 외주화 반대([[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41356175352168002|'새파란 신인' 고경표는 왜 '무한도전' 외주화를 반대했을까]]), [[건국대학교|건대]] 영화과 통폐합 1인 시위 참여 등 사회적 문제에 있어 자신의 소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꽃보다 청춘]] 1회에서 그 동안 일어난 논란에 대해 소회를 밝히며, "너무 죄송하다. '꽃청춘'처럼 좋은 프로그램에 나는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언행이 너무 창피하다."라면서 다시 한 번 더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http://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108&aid=0002502084&rankingType=memo&rankingDate=20160219|'꽃청춘' 고경표 "과거 언행 너무 부끄러워" 눈물]]). 또한, 인성을 까다롭게 평가하기로 자자한 [[나영석]] PD가 이러한 장면을 그대로 내보낸 것은, 적어도 그가 고경표를 직접 겪으면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918484|나영석 PD 인터뷰]]).
|| 2013~14년 || [[tvN]] || [[감자별 2013QR3]] || [[노민혁(감자별 2013QR3)|노민혁]] || 주연 ||
||<|3> 2017년 || [[tvN]] || [[시카고 타자기(드라마)|시카고 타자기]] || [[유진오(시카고 타자기)|유진오]] || 주연 ||
||<|4> 2013년 || the story of MAN & WOMAN[* [[류덕환]]이 감독한 단편영화.] || 남자 ||
|| 2012년 || tvN || SNL코멘터리 - 이 맛이 SNL '4부작 특집' || 코멘터리 진행자 ||
- 고세원 . . . . 24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오렌지 라라 (신라라)
| 자녀 =
'''고세원'''([[1977년]] [[12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자 [[배우#텔레비전 배우|탤런트]]이다.
고세원은 [[뮤지컬]]《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뮤지컬]]에서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의사《닥터리》와 멀티맨으로 출연하는 고세원은 그동안 뮤지컬《벽을 뚫는 남자》,《아이러브 유》,《김종욱 찾기》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TV쪽에서는 10년 여 간《[[막돼먹은 영애씨]]》의 김혁규(빡규)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일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역할로 자주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 [[2010년]] [[SBS]] 일일드라마 《[[세 자매 (2010년 드라마)|세 자매]]》 ... 박상태 역
* [[2010년]] [[SBS]] 아침연속극 《[[여자를 몰라]]》 ... 박무혁 역
* [[2007년]] 《벽을 뚫는 남자》 ... 공무원 B씨 역
* [[2009년]] 《[[김종욱 찾기]]》 ... 남자 역
* [[2009년]] 《[[아이 러브 유]]》 ... 남자1 역
* [[2008년]] [[엠넷]] 《다섯 남자와 아기천사》
* [[2018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다 꿰뚫어보고 있느니라 궁예 (참가자)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 연속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목=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둘러보기 상자 묶음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1997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
- 김경식 (희극인) . . . . 24회 일치
| 배우자 = 정유정
| 자녀 = 슬하 2남 (장남 김민우)
| 저자 =
| 저자 =
| 제목 = "입담도 부전자전?"…김구라&김동현 부자의 모든 것
| 저자 = 김보영
}}</ref> 설 자리를 잃게 되자 [[1998년]] 가을부터는 MBC<ref>{{뉴스 인용
| 저자 =
| 저자 = 손정인
| 저자 = 이창형
* MBC 《[[남자 셋 여자 셋]]》
* [[SBS]] 《드라마플러스 탱자 연예뉴스》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김정혁 . . . . 24회 일치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절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상기]]와 포지션이 겹쳤다.]
삼성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 후 2군에서 대타나 대수비로 출장하다가 5월부터 선발로 출장하기 시작했는데… 무려 '''4할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성실해 자정까지 연습할 정도의 노력파라 다른 2군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팬들의 의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김정혁의 1군 중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상황이다. 우선 [[류중일]] 감독은 수비가 되는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고, 거기다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은 김정혁과 동갑이다. 거기다 지명타자로 가자니 삼성의 [[지명타자]] 포지션에 오를 선수들은 '''[[이승엽]]'''. '''[[최형우]]''', [[채태인]]이다.
2군에서 4번 타자 3루수로 출장하다가 4월 26일 1군에 올라왔다. 그동안 2군에서 17경기에 출장해 19안타 1홈런 10타점 .333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동안 주전 1루수를 맡았던 [[구자욱]]의 타격 페이스가 떨어진지라 1군에 올라오자마자 7번타자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1군에서는 기회를 잘 못 받았지만, 팀 내에서는 소문난 노력파라서 그런지 [[류중일]] 감독이나 [[최형우]]나 김정혁의 활약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307495|기대하는 말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출장 경기인 4월 28일 LG전에서는 [[임지섭]]을 상대로 안타를 기록했다. 만 서른살에 나온 프로 첫 안타. 이후로는 [[구자욱]]이 다시 주전 1루수로 복귀하면서 대타나 대수비로 나오다가 [[채태인]]과 [[김태완(1981)|김태완]]의 복귀가 다가온 5월 11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김재현(1991)|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9월 22일 전날 옆구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구자욱]]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4월 11일 1군에서 빠진 [[정인욱]]을 대신해 12일 1군에 등록됐다. 4월 22일 [[정인욱]]이 1군에 올라오자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28일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 [[최선호(야구선수)|최선호]]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6월 17일 번트를 시도했는데 '''하필이면 세게 맞아서 2루주자였던 이지영이 아웃되었다.'''
그러나 조동찬이 ~~유리몸답게~~ 2일 만에 부상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와 [[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6일 잠실 두산전에서 선발 9번 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4안타 1타점 2득점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대역전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9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 6번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날 압권은 9회 초였는데, 1사 만루 상황에서 팀이 4-5로 한점 뒤진 가운데 [[정우람]]과 상대하게 된 김정혁은 정우람의 6구를 타격해서 좌중간쪽의 기적의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내면서 팀의 승리를 이끈 히어로가 되었다. 그 날 수훈선수가 되었는데 본인 프로 데뷔 첫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정새미나 리포터가 한화 김정혁이라고 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김정혁 본인은 넘어갔다.
* [[사자사랑방|모 카페]]에서는 [[장성우|아이돌]] [[갈매기 마당|취급을 받고 있다]]. ~~사사돌~~ 이 카페의 운영자는 단지 김정혁을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류중일]] 감독을 상대로 입에 차마 담기 힘든 수위의 욕설을 수 차례 올렸을 정도. 자세한 건 항목 참고. 이후 2016년과 2017년에 출장 기회를 받아 활약할 때만 난리치고 이후 좋지 않은 선구안으로 붕붕거리며 부진하면 입을 닫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85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김충공 . . . . 24회 일치
'''김충공'''(金忠恭, ? - [[835년]])은 [[통일 신라]] 하대의 왕손 출신 문신, 정치인, 왕태자로, [[원성왕]]의 손자이자, [[김인겸|혜충태자 인겸]]의 아들이다. [[집사부]] 시중(執事部侍中)과 [[상대등]] 등을 역임하였으며, [[823년]](헌덕왕 15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였다.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의 동생이며, [[애장왕]]의 숙부였다.<ref>단, 경주김씨 족보에 의하면 그는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이 설을 채택한다면 그는 원성왕의 증손이고 인겸의 손자이며, 헌덕왕과 흥덕왕의 조카가 된다.</ref> 시호는 선강(宣康).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였고, [[823년]] [[김헌창의 난]] 진압에 참여하였다. [[흥덕왕]]의 아들이 [[당나라]]를 다녀오다가 사고로 죽자 그가 [[태자]]로 임명되었지만 그도 [[흥덕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 아들 [[김명]]은 [[838년]](희강왕 3) [[1월]] 정변을 일으켜 [[희강왕]]을 죽이고 자립하여 민애왕이 되었다. 딸 정교(貞矯)는 희강왕비 문목부인(文穆夫人)이 되었다. 아들인 민애왕이 즉위하면서 선강대왕(宣康大王) 또는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원성왕]]의 손자이며, [[민애왕]]의 아버지이고, [[김인겸|혜충태자(惠忠太子) 인겸(仁謙)]]의 넷째아들이다. 아버지 인겸은 형 [[소성왕]]이 즉위하면서 왕으로 추봉되어 [[혜충대왕]]이 되었다. [[헌덕왕]], 김숭빈(金崇斌), [[흥덕왕]], 김제옹(金悌邕)의 동생이 된다. 보통 그는 인겸의 넷째 아들로 보나, 신라 김씨 선원세보에 의하면 인겸의 아들 [[소성왕]]의 셋째 아들이며 [[애장왕]], [[김체명]]의 동생이라 한다.
[[808년]](애장왕 9) [[당나라]]로부터 문극(門戟)을 하사받았다. 그뒤 [[각간]]을 거쳐 [[817년]](헌덕왕 9년) 이찬(伊湌)에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822년]] 헌덕왕이 동생 수종을 세자로 임명할 땍 [[상대등]](上大等)으로서 세자를 도와 정권을 장악했고, 당시 집사시랑(執事侍郞)인 녹진(祿眞)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823년]](헌덕왕 15년) 토벌대에 참여하여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가담했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집사부]][[시중]]을 지냈다. [[822년]]부터 [[835년]]까지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로 헌덕왕 때는 정사당(政事堂)에서 내외관(內外官)의 전주(銓注)를 맡아보면서 인사문제의 실권을 맡는 등 당시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831년]] [[흥덕왕]]의 왕자 김능유(金能儒)가 흥덕왕의 명을 받들어 9명의 승려와 함께 [[당나라]]에 진봉사로 갔다가, 이 해 7월 돌아오던 도중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흥덕왕은 후사가 없었고 그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835년]] 여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생년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사망 원인도 역시 미상이다.
사후 선강(宣康)의 시호를 받아 선강태자(宣康太子)였다가 후에 [[민애왕]] 즉위 후 대왕으로 추존되어 선강대왕이 되었다.
그의 딸은 [[희강왕]]의 비인 [[문목왕후]](文穆王后)이고, 아들인 [[김명]](金明)은 [[희강왕]]을 추대했다가 나중에 희강왕을 자살하도록 위협하고 스스로 민애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민애왕]]이 즉위한 뒤 아버지인 김충공은 선강대왕(宣康大王)으로 [[추봉]]하고, 어머니인 [[귀보부인]](貴寶夫人)을 선의태후(宣懿太后)로 [[추봉]]하였다. 일설에는 [[갈문왕]]으로 추봉했다는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선강[[갈문왕]](宣康葛文王)이라는 칭호도 나타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의 부인의 성씨가 다르게 기록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그의 부인을 귀보부인이라 지목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원성왕의 손녀이자 인겸의 딸이라 하고, 삼국사기는 귀보부인의 성을 박씨로 지목한다.
또한 가계도 불분명한데, 정사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그가 혜충태자 인겸의 넷째 아들이라 하지만 경주김씨 족보에는 그가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이설이 같이 실려있다.
* 아버지 : [[혜충태자]](惠忠太子, 760(?)~791/792)
** 부인 : [[귀보부인]](貴寶夫人, 선의태후(宣懿太后)에 [[추증]]), 일설에는 혜충태자 김인겸의 딸이라 한다.
[[분류:생년 미상]][[분류:835년 죽음]][[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문신]][[분류:신라의 시중]][[분류:왕세자]][[분류:한국의 추존왕]][[분류:병사한 사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24회 일치
* 마찬가지로 떨어진 요아라시 이나사가 토도로키에게 자신의 경쟁심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사과한다.
* 주최측은 떨어진 수험생들도 3개월 뒤 개별 테스트를 거쳐 임시면허를 발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탈락자 3인은 합격을 다짐하며 재수 모드에 들어간다.
* 케미인줄 알았던 학생의 정체는 빌런연합의 토가 히미코. 자신의 변신개성을 이용해 미도리야의 혈액을 훔치는데 성공했다.
* 그런데 의외로 요아라시는 깍듯하게 사과한다. 토도로키가 합격을 놓친건 자신이 속이 좁아서 그랬다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린다. 하지만 토도로키는 자기가 뿌린 씨였다며 요아라시의 발언에도 깨달은 것도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히어로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 A반 사이에서 토도로키의 탈락 소식도 전파된다. 하필이면 A반 투톱이 전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카미나리 덴키는 바쿠고에게 폭언 때문이라며 깐죽거려서 화를 돋군다. 미네타는 둘다 "자기 본위의 플레이가 발목을 잡았다"는, 밥맛없지만 정확한 팩트폭력을 시전하다 이이다 텐야에게 치워진다. 야오요로즈 모모와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마음을 신경써 주지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한다.
* 그때 주최측으로부터 새로운 방송이 전파된다. 합격자 명단과 별개로 채첨 프린트가 배부되는데 자세한 감점이유와 전체적인 평가가 기재된 것이다. 세로 한타가 의외로 84점. 감점이 적었다. 야오요로즈는 94점으로 매우 우수. 오지로 마시라오는 61점이었다. 이이다도 80점으로 준수하지만 "개성을 잘 응용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적혀 있다. 미도리야는 71점을 받았는데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머뭇거리는 점을 지적 받았다.
* 채점지를 받은 미도리야는 이렇게 세세한 채점방식을 보고 일단 한 번 감점되면 만회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파악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탈락자들이 50점 밑으로 떨어져도 배제하지 않고 계속 시험을 치도록 했는데 그 저의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워한다.
* 곧 주최측은 새로운 발표를 한다. 합격자들에게 이제 위급시 히어로의 자격이 부여되는데 이것은 보다 큰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이야기다. 올마이트가 은퇴하고 억제력이 감소된 지금 사회는 변화할 것이며 그것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지탱해야 한다. 합격자들은 히어로가 도리 사람들로서 보다 정진해달라고 당부한다.
* 그리고 불합격자들을 계속 남겨둔 이유도 설명되는데, 이들은 이대로 탈락하고 끝나는게 아니다. 불합격자들은 3개월 동안 특별강습을 거쳐 재시험이 준비되어 있다. 장래에 "질 높은" 히어로가 더 많이 필요한 현실에서 1차 시험을 클리어한 100명을 최대한 활용하는게 이들의 목적. 탈락자들도 채점 결과 싹수가 없는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준비를 시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는 4월 시험이 재도전의 기회. 바쿠고, 토도로키, 요아라시 3인은 당연히 도전할 거라고 벼른다.
* 이렇게해서 임시면허 시험은 종료. 미도리야는 꿈에 그리던 자격증을 발부받는다. 미도리야는 감동으로 울먹인다. 이것이 자신의 성장의 증표같다면서 얼른 올마이트와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흐믓하게 바라본다.
* 시험도 끝나고 다른 학교 인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Ms.조크는 아이자와 쇼타에게 나중에 합동 연습이라도 하자고 제안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다. 요아라시는 토도로키에게 다음 강습에서 또 만나자고 하지만 너무 솔직하게 "여전히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고 직구를 던지고 간다.
* 그녀는 사걸고교의 케미가 아니라 빌런연합의 멤버 토가 히미코였다. 토가는 멋진 놀이를 하고 있었다도 답하는데 그 놀음에 정기연락까지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연락하는 상대는 Mr.컴프레스. 그녀의 단독행동을 우려하지만 토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는데다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었다고 자랑한다.
잠입에 최적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본인도 제법 연기력이 있는 편이라서 사걸고교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의심을 사지 않았다. 토가의 존재로 인해 웅영고 내부의 "배신자"에 대한 예측을 완전히 다시 해야하는데, 처음부터 특정한 인물이 배신한게 아니라 토가가 특정인물로 변장하고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 사걸고교는 웅영고에 비견되는 명문인데, 그곳의 보안을 뚫고 학생으로 변장했다는건 웅영고에서도 당연히 통한다는 얘기로 봐야할 것이다.
- 날조트랩 -NTR- . . . . 24회 일치
소꿉친구 관계에 있는 여고생 오카자키 유마(岡崎由真)와 미즈시나 호타루(水科蛍)가, 서로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오카자키 유마(岡崎由真)''' (배우 혹은 성우)
중1때 [[농구부]]에 들어갔다. 이 때 호타루가 남자 선배의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자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타케다와는 농구 연습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흑발에 청초한 외모의 미소녀. 과거에는 얌전하고 심약한 성격이었지만, 현재는 유마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돌발적인 행동을 자주 하며 비교적 만악의 근원(…). 유마와는 이웃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부자가정이며, 아버지가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고 있다.
어릴 때 남자들에게 자주 울려졌다. 과거부터 유마 이외의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아서 주변에서는 고립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유마가 농구부에 들어가면서 함께 보내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빈정거리는 듯이 3학년 선배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사귀게 된 적이 있다. 중1때 남자친구를 만들었고, 이후로도 자주 남자친구를 갈아치워서 주변에서는 [[빗치]]로 여겨지고 있다.
1화에서 타케다와의 데이트를 앞둔 유마에게 '장난'을 하고, 데이트를 마치고 온 뒤에는 '키스'를 하면서 둘 만의 '비밀'을 만들게 된다. 유마에게 자주 장난을 걸지만 유마는 일선을 넘지 못하고, 호타루는 질투심에 유마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3학년 때는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가겠다며 네코미미 메이드카페에서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오카자키 유마의 남자친구. 유마와 사귀면서 진도를 나가려고 하지만, 호타루와 유마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잘 풀리지 않는다. 1학년 때는 호타루와 같은 반이었다.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호타루를 걱정하기도 한다.
유마와의 관계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유마가 후지와라와 호타루 때문에 데이트 시간에 늦게 되자 잠시 거리를 두자면서 멀어지게 된다. 유마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불안감을 느낀다. 타케다와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 후회하는 유마를 본 호타루가 화해를 주선해서 일단 친구 사이로 돌아간다.
미즈시나 호타루의 남자친구. 얼굴도 미남, 머리도 좋다. 타케다와는 사이가 좋다. 유마에 대한 호타루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마가 호타루와 이상한 짓을 하게 되면서 타케다를 은근히 배신하게 되자 유마에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호타루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유마와 호타루에게 3P를 하자는 말을 던지거나, 유마와 호타루가 속옷만 입고 있는 사진을 찍어서 협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위험한 모습을 보인다.
- 마기/325화 . . . . 24회 일치
[[마기]] 325번째 밤. '''왕좌의 현자'''
* 자신을 신이 될 그릇이라 여겼던 다윗. 그러나 그 자신도 다른 특이점이 신이 되기 위한 발판일 뿐이었다 여기며 자포자기한다.
* 그러나 신드바드는 그를 자신의 "왕좌의 현자"라 칭하며 마기로 선택한다.
* 훗날 그가 알마트란을 통치하며 마법으로 영원에 가까운 존재가 되자 그는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나는 신과 견줄 수 있는 존재다." 신에게 선택받아 새로운 신이 될 존재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우고에게 패한 지금은 그저 더 큰 특이점이 신이 되기 위한 발판, 그정도가 다윗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 점을 인정하며 씁쓸히 자조하는데.
* 루프 속에서 나타난 인물은 신드바드. 우고 루프에 환원되고도 자아를 유지할 리 없다고 경악하지만 다윗은 7명의 진들이 힘을 합쳐 그들의 왕, 신드바드의 영혼을 붙들어 놓은 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다윗이 그걸 끌어 올림으로서 신드바드는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니, 그토록 염원하던 성궁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 우고의 주위를 신드바드의 일곱 진이 둘러싼다. 후르후르, 베파르, 바레포르, 바알, 포칼로르, 크로세르, 제파르. 본래 진들은 금속기의 주인이 죽으면 성궁을 거쳐 다시 던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왕을 기다린다. 그러나 일곱 진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들은 솔로몬이 택한 자유로운 운명을 "무책임한 것"으로 비난하며 신드바드의 절대적인 지도자 이론에 찬동한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지도자로는 신드바드 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우고는 뒤늦게 이들의 배신을 깨닫는다. 그들이 솔로몬을 비난하고 비하할 수록 본래 왕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고 남들의 권유로 그 자리에 올랐던 솔로몬이 왜 모욕 당해야 하냐며 억울해서 눈물을 흘린다.
* 그때 또다른 목소리가 나타난다. 우고는 그게 신드바드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솔로몬의 영혼이다. 그 영혼은 우고의 수고를 치하하고 자신도 지쳤다며 이젠 신드바드에게 뒤를 맡기고 편히 살자고 말한다. 그것은 다윗이 보여주는 허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정신이 피폐해진 우고는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아넘어간다.
* 우고가 무력화되자 신드바드는 성궁의 문지기 역할을 완전히 빼앗는다. 아르바는 급변하는 상황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신드바드는 이미 그들의 권속을 데리고 세계를 재구축하는 작업이 착수한다.
* 그때 지상의 황제국. 수도 낙성에선 연홍옥과 연백룡은 머리를 맡대고 정사를 논하고 있다. 백룡은 홍옥의 지도 아래 황제국이 다시 일어섰다며 감격하고 홍옥은 함께 힘내자고 답한다.
* 그 옆에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가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알리바바는 청첩장 쓰는 일로 정신이 없는데 상회 단골들을 빠짐없이 초대하려고 엄청난 수의 청첩장을 집필 중. 심지어 일일히 수기로 적고 있다. 모르지아나도 마스루드 앞으로 보낼 청첩장을 작성하는데, 청첩장이라기 보단 도전장에 가까운 디자인. 게다가 여전히 글씨가 지저분하다. 알리바바는 콩깍지가 낀 영향인지 "글씨가 예뻐졌다"고 칭찬하고 백룡도 진담인지 빈말인지 달필이라고 칭찬. 홍옥만 위화감을 느낀다.
*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글씨가 더럽다"고 팩트를 던지는데. 행방불명됐던 쥬다르다. 갑자기 돌아왔다 싶었는데 홍옥을 보자마자 할망구라고 부르질 않나 화장이 옅어졌다고 하지 않나 실례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알리바바가 반가움 반 황당함 반으로 언제 돌아왔냐고 묻는데, 사실 돌아오긴 백룡하고 같이 전날밤에 돌아왔다. 그런데도 어디 처박혀있었는지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 알리바바는 너무 태연하게 나타난 쥬다르를 빤히 쳐다보는데 이제 전쟁하겠다고 설치지 않냐고 묻는다. 쥬다르는 그런건 벌써 하고 왔다고 하는데. 모르지아나는 쥬다르가 영 협조성없이 굴자 그냥 백룡에게 어디서 찾아왔냐고 물어본다. 백룡은 그를 그의 고향 산골마을에서 찾아냈다고 하는데. 알리바바는 쥬다르도 고향이 있었다는데 놀라면서도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귀향이었다고 으스대는데 그꼴이 보기 싫었는지 백룡이 고향 마을에서 알아낸 일을 마구 폭로하기 시작한다. 쥬다르의 이름은 알 사멘이 붙인 예명이고 고향에서 불리는 본명은 따로 있는데 그게 "얼굴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것. 쥬다르는 백룡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더니 알라딘을 찾으며 화제를 필사적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본래 최종보스 후보로 점쳐졌던 다윗은 꾸준히 신드바드를 현혹하고 잠식한 거라고 생각됐지만 결국 그 자신이 신드바드를 "왕"으로 만드는 "마기"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다윗의 장대한 계획은 신드바드에게 바쳐지기 위해서였던 것. 지금껏 신드바드가 마기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도 바로 다윗이 마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 마기/350화 . . . . 24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이 말로는 혁신가를 자청했지만 결국 알마트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지한다.
* 가능성은 미지수이나 적어도 불가능하진 않게 되자 신드바드는 자신이 정체자에 지나지 않았다 고백하며 자신의 계획을 중지하기로 한다.
* 그런데 아이디어를 낸 신드바드는 암담한 기분이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고도 크게 낙담하는데, 지금껏 자신이 진행하던 작업은 그토록 증오했던 "군국주의적 방법론"이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들은 적이고 타도해야 한다. 그는 세상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게 싫어서 칠해연합을 만들었고 국제동맹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어떤가? 입으로는 혁신가를 자처해왔지만 결국 그도 알마트란 때부터 이어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난 것은 타인의 의지, 알리바바 덕분이다. 그는 지금껏 운명을 꿰뚫어보고 만인을 이끄는게 "특이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사고가 타의에 의해 변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끌려가는게 당연해지는게 아닐까?
* 가능성은 미지수, 그 말을 곱씹던 신드바드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인정한다"고 말하고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낡은 방식에 연연했다며 자신도 정체자였을 따름이라고 고백한다. 그 말을 들은 알라딘과 알리바바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의 생각이 변했다는 징후였다. 그 기대대로 신드바드는 새롭게 도출된 방식을 승인했다.
>해 보자.
그는 이 자리에 모인 다섯 사람, 각기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살으나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이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지금 도출된 "불가능한 대사업"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업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필연, "운명"이라 불러야 한다.
* 이렇게 해서 논쟁은 종료됐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얼빠지게 수습"됐다면서도 어쨌든 "그 분"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테니 계획에 협조하기로 한다. 알라딘도 기꺼이 동참하면서 우고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알라딘이 하니까 자기도 하겠다는 투로 대답한다. 하지만 알라딘이 그래선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자기나 솔로몬왕에게 부탁받아서가 아닌, 우고 자신의 의견을 내줬으면 해서였다.
우고는 크게 당황한다. 생각끝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알라딘과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그는 옳고 그른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제 혼자 있긴 싫고 알라딘과 함께 있고 싶다. 스스로도 한심하지만 정말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걸 "하찮은 소원"이라며 솔로몬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독설을 날린다. 우고에겐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은 말이지만 달리 반박하지도 못하는데,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그를 위로한다. 알리바바가 "소원에 크고 작은게 어디있냐"고 격려하고 알라딘도 그의 의사를 받아들여 함께 힘내자고 다짐한다. 그러자 우고를 감싸고 있던 탁한 기운이 사라지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신드바드는 완전히 허무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던 그가 눈을 반짝이게 됐다며 또다시 감탄한다.
* 신드바드는 우선 할 일이 있다며 손을 뻣자 미궁이 심상치 않게 진동한다. 알라딘이 뭘하는 거냐고 묻자 그가 답한다.
각기 미궁을 돌파하고 바깥으로 나온 [[연백룡]]과 [[쥬다르]]. 그들은 갑자기 성궁 전체가 흔들리고 정오의 태양이 빠르게 저무는걸 목격한다. 모든게 루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 마기/351화 . . . . 24회 일치
* 성궁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모르는 채,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 그러나 하늘에서 성궁의 사자들이 강림. 세상을 무차별 공격해 루프로 환원시키기 시작한다.
* [[우고(마기)|우고]]와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사라지고 성궁이 밤이 되자 당황한다.
* 다윗은 신드바드가 자신의 신이라 믿었지만 그가 자신의 계획을 중지시키자 실망하고 "역시 그는 나의 포석에 불과했다"며 본색을 드러낸다.
* 천사는 성궁의 방어 시스템이었다. 천사가 검을 내리쳐 가족들과 그 가족이 있던 자리의 마고이를 루프로 환원시킨다. 그렇다.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 발동해 버린 것이다.
* 방금 전까지 세상의 앞날을 놓고 열띈 토론을 하고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생각마저 돌려놓았던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갑자기 던전이 사라지고 성궁에 밤이 찾아온다. 성궁의 관리자 [[우고(마기)|우고]]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는 사태. 우고는 혹시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 발동된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지만 알라딘은 방금 전 신드바드가 그 마법을 막지 않았냐고 반박하는데, 그 신드바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 [[연백룡]]과 [[쥬다르]]가 알라딘 일행을 따라잡았다. 백룡은 방금 전 목격한 부자연스러운 하늘의 변화를 말한다. 이들도 신드바드가 사라지고 갑자기 밤이 찾아온 사태에 대해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보는데 딱히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때 우고가 "누군가 성궁의 시스템을 장악했다"는 답을 내놓는다.
* 알리바바가 대체 누가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 성궁을 관리하는 우고도 신드바드도 여기에 있지 않나? 우고도 "그런 사람은 있을 리 없다고" 자기가 한 말을 바로 부정한다. 신은 세상에 단 한 명 뿐. 신드바드가 이 세상의 신인 지금 다른 신이 존재할 리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하는 우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우주로부터 한 쌍의 손이 내려와 우고를 붙든다. [[다윗]]이다. 그가 우고에게 잡혔을 때 상황을 그대로 되갚아준 것이다. 붙잡힌 우고가 이 모든게 네 짓이냐고 묻자 다윗은 그저 웃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묻자 다윗이 설명을 시작한다. 이 또한 우고에게 잡혔을 때 당했던 일이다. 그는 우고를 "우랄투고"라 부르며 이것은 그가 가르쳐준 "신의 서열을 뒤바꾸는 마법"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신의 자리를 빼앗은 다윗은 성궁을 장악해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재시동했다. 다윗은 신의 서열을 바꾸는 마법이 멋지긴 하지만 자신이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라 말한다. 그래도 우고가 그걸 구축해냈으니 단지 쓰는 것 뿐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였다.
* 우고는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하지만, 다윗은 그가 아니라 신드바드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적어도 신드바드가 성궁에 온 이후에는 "그는 나의 신"이라 굳게 믿었다. 그게 오판이었다. 신드바드는 야심차게 준비한 계획을 폐기했다. 신들과 전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신드바드의 변절에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춰선 자는 돌맹이나 다름 없고 "나아가는 자"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 말한다.
* 대협곡을 덮친 성궁의 사자들은 전세계 상공에 나타난다. 많은 나라들, 많은 민족들. 아무 것도 모른 채 일상을 영유하고 있던 세계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한다. 그들을 조종하는 다윗의 광기어린 외침.
* 절망에 삼켜질 것은 우고.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당초 성궁에서 결판을 짓기로 했던 네 명의 젊은이들. 알라딘, 알리바바, 백룡, 쥬다르는 다윗을 타도하고 세상을 구할 싸움을 시작한다. 어찌보면 결국 처음부터 이럴 각오로 시작한 싸움이었다.
- 박녹주 . . . . 24회 일치
성악가([[판소리]]). 판소리 명창. 중요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제5호 판소리([[흥보가]]) 예능보유자.[*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선산(善山) 출생. 본명은 박명이(朴命伊). 예명은 박녹주. 호는 춘미(春眉).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23세인 [[1928년]]부터 음반을 취입[* 콜럼비아에서 취입한 것으로 단가 대관강산과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을 취입하였다.]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성악연구회에도 참여하여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숙영낭자전, 배비장전 등 창극의 여주인공으로 자주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44세가 되던 [[1948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당시 창극 활동을 했던 여성 명창의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국극의 연출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1948년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해방 이전부터 접했던 [[아편]] 중독 증세로 인해 병고와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바탕소리 녹음을 많이 남겼다.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춘향가를 녹음하고, [[1972년]] 자택에서 기록보존용으로 심청가를 녹음하였다 흥보가는 총 4차례나 전판을 녹음하였는데 이 가운데 [[1967년]] 녹음(고수 : 정권진)과 [[1973년]] 녹음(고수 : 김동준)은 음반화 되었다. 전자는 [[지구레코드]]에서 출반되었으며, 이후 CD로도 복각되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문화재보호협회 소장 녹음으로 여러차례 음반으로 제작되었으나 CD로는 제작되지 않아 지금은 듣기 어렵다. 그 외에 출반되지 않은 녹음으로는 [[1976년]] 문예진흥원 판소리 조사 사업당시에 녹음한 것(고수 미상)과 녹음시기 미상의 기독교 방송 소장의 녹음(고수 : 정철호)이 있다.
제자로는 김소희, 박송희, 조순애, 장영찬, 박초선, 성창순, 성우향, 한농선, 이일주, 조상현, 이옥천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박송희와 한농선이 그의 뒤를 이어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조상현 등은 중요무형문화재 춘향가 및 심청가의 예능보유자로, 이일주, 이옥천 등은 각기 시도지정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는 등 굵직한 명창들을 길러냈다.
이처럼 판소리, 그 가운데에도 흥보가 전승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스토킹 상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대가 시대였고 김유정이 훗날 소설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한동안 짝사랑으로 포장되었으나, 사실 김유정의 행동거지는 악질 스토커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박녹주가 자신의 마음을 안 받아준단 이유로 그녀에게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박녹주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납치하려고도 들었다.[* 심지어 명목상이지만 박녹주는 그때 유부녀였다.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저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박녹주는 김유정이라면 질색을 했다. 특히 김유정 때문에 박녹주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한 행동은 사랑을 핑계로 극심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김유정에게 동정심이 없진 않았는지 김유정의 친구인 안회남이 김유정이 죽고 난 뒤 오히려 자신더러 김유정을 죽인 살인자라며 매도하는 안회남에게 그때 손 한번 잡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거라고 동정했다고 한다. 스토커에 시달리다 못해 그의 친구마저 되려 자신을 매도하려 했음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대인배다.
- 박승임 . . . . 24회 일치
'''박승임'''(朴承任, [[1517년]] ~ [[1586년]])은 [[조선]] [[조선 명종|명종]], [[선조]] 때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반남 박씨|반남]],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자 수제자였다.
권신들의 발호에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진력하다가 [[윤원형]] 등이 물러난 뒤에 관직에 나갔다. 또한 이황의 학풍을 후학에게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여 퇴계 학파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남인]]과 일부 [[북인]]에 가담하였다.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 때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된 [[박은 (1370년)|박은]]의 5대손이다. 아버지 박형은 원래 안동 출신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뒤에 안동을 떠나 처가가 있던 영천(榮川)으로 이주해서 살게 됐다. 어머니는 영천 지역의 명문가인 예안김씨 출신으로, 김만일(金萬鎰)의 딸이다. 박승임은 7형제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송과 독서에 능했던 그는 15세에는 서전(書傳)을 독파하였고, 16세부터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저술들을 스스로 연구하며 독파하며 도학(道學)의 정수를 깨우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재의 벽에는 「동명(東銘)」과 「서명(西銘)」을 붙여놓고서 항시 사람이 있을 때나 없을 때 스스로 마음들 다스렸다. 그 뒤 의문나는 것이 많아지자 박승임은 1537년(중종 32) 21세에 이황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황의 제자가 된 박승임은 특히 주역(周易)과 예기(禮記), 그리고 주자서(朱子書) 등 경전의 학습과 이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난 뒤에도 의심 가는 곳이 있으면 빠짐없이 기록하여 퇴계를 찾아가 해석,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을 숙성시켰다. 또한 스승 이황 외에도 [[이현보|농암 이현보]]와 [[이언적|회재 이언적]], [[권벌|충재 권벌]] 등 인근의 이름난 [[성리학]] 학자들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시세(時勢)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에 이조 좌랑, 사간원 정언, 현풍 현감, 진주 목사, [[관찰사|황해도 관찰사]] 등을 엮임하였다. 명종의 외숙이며 권신인 [[윤원형]]의 전횡이 심할 때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퇴계의 학풍을 후대에 계승하였으며, 여러번 불렀는데도 고사하였다. 그 뒤 [[을사사화]] 직후인 1547년(명종 2) 고향으로 돌아와 이황을 모시고, 의례(儀禮)와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강독하며 다시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때 이황으로부터 학문적 능력을 크게 인정받았다.
1558년(명종 13) 풍기 군수에 제수된 박승임은 기쁜 마음으로 풍기에 부임하여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경감해 주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소수서원]]에 자주 들러 유생들과 강학하며 회헌(晦軒) [[안향]]의 영정을 새로 제작하는 등 치적을 남기고 5년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쓰며 취향정(翠香亭)과 동리서재(東里書齋)·소고대(嘯皐臺) 등을 짓고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 [[이량]] 등이 제거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간 박승임은 이후 병조 참지와 승정원 동부승지를 거쳐 진주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고을의 부로(父老)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향약을 실시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1568년(선조 1) 병으로 사직,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으나 1568년 특명으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1574년(선조 7) 경주 부윤으로 발령되었고 이후 1577년(선조 10) 강화 부사, 1578년(선조 11) 여주 목사 등으로 부임했다. 지방관을 역임하는 동안, 박승임은 세금을 가벼이 하고 진휼을 실시하여 민폐를 제거하였다. 한편 [[김안국|모재 김안국]] 제향한 기천서원(沂川書院)을 건립하는 등 민생의 안정과 교화의 보급에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 이때 어사(御史)로 파견된 정이주(鄭以周)는 그의 치적을 조사하여 박승임의 치적이 가장 뛰어나다는 ‘치행제일(治行第一)’이라는 보고서를 올렸고, 선조는 박승임의 공로를 치하하여 특별히 옷을 하사하였다. 이듬해 박승임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려 하자 백성들은 그가 가는 길을 막고서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였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은 대체로 [[동인 (정치)|동인]]에 속했으며, 남북 분당 이후에도 [[남인]]과 [[북인]] 일부는 그의 학맥을 계승한 문하생들이었다.
퇴계의 제자였던 그는 임흘(任屹), 권문해(權文海), [[김개국]], [[김륵]], [[이여빈]],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김중청(金中淸) 등의 제자를 배출하여 이황학파의 학맥을 이어갔으며, 일부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동인-남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하기도 했다.<ref>그의 문하생들은 대부분 북인 이이첨, 정인홍의 인목대비 폐모론, 영창대군 사사론에 반발하여 남인으로 들어갔다.</ref>
[[분류:1517년 태어남]][[분류:158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사상가]][[분류:조선의 유학자]]
[[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상북도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반남 박씨]]
- 보루토/3화 . . . . 24회 일치
*중급닌자 시험이 시작되고 사이가 시험관이 되어 재치와 끈기를 보는 시험을 진행한다.
* 2차시험은 깃발 뺏기. 보루토는 깃발을 지키는 역을 수행하다가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카타스케가 준 닌자도구를 사용한다.
* 보루토팀은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지만, 보루토가 닌자도구를 사용한 것을 어딘가에 보고하는 이가 있는데...
* 모래마을의 카제카게 가아라는 칸쿠로와 함께 중급닌자 시험 참석을 위해 나뭇잎 마을로 향한다.
* 가아라는 의식해야 할 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마을의 라이벌들이라고 하지만 신키는 "다른 마을 따위 문제는..."이라며 자신을 보인다.
* 보루토는 카타스케가 준 닌자도구를 사용할지 말지 고민한다.
* 드디어 시작되는 중급닌자 시험.
* 사이가 시험관으로 나서 문제를 출제한다. "닌자 군사 기록첩"의 5권을 가지고 문제를 내는데, 그 책은 사라다 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책.
* 사라다는 자신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골라서 호카게가 되겠다며 O를 고른다.
* 사이는 정답을 발표하면서 오답자는 까맣게 되어 실격할 거라고 하는데.
* 정답판에 나온 문자는 OX.
* 갑자기 양쪽 바닥이 꺼지면서 먹물풀이 나타난다.
* 닌자 군사 기록첩 5권 같은 책은 처음부터 없었다. 문제는 훼이크였으며 진짜 실격은 먹물풀에 떨어져 "새까맣게"되는 것.
* 사이는 합격자들에게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냥 떨어지는 녀석은 필요없다"고 단언한다.
* 포기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의 2택에서 "포기하지 않는 쪽"을 고른 것이 정답자들. 이걸로 1회전은 종료된다.
* 합격자들은 모두 기뻐하는데 카타스케의 도구로 고민하는 보루토는 기뻐하지 못한다.
* 시카마루의 조언으로 보루토에게 축하 메일을 보내게 되는데, 보루토는 기뻐하긴 하면서도 "이젠 그림자 분신도 안 보내냐"며 투덜거린다.
* 그러자 사스케는 보루토보다 훨씬 많은 환영분신을 만들면서 "이제 할 말 없지? 나루토는 천명은 만들 수 있다"고 말해 입을 다물게 한다.
* 보루토팀은 세쌍둥이 닌자와 겨루는데, 이들은 본진을 비워두고 3명 모두 보루토에게 몰려왔다.
* 보루토는 깃발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아버지가 보낸 메일을 생각하며 결단을 내린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24회 일치
* 릴이 처음 그리모어를 얻었을 무렵엔 제어가 미숙해 사고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강박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공격에 상성인 마법을 그려 제압해 버린다.
* 그때 [[노엘 실버]]가 익숙한 솜뭉치가 떠다니는걸 발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탐이라면 빠지지 않는 [[챠미 퍼밋슨]]이 등장한다. 왠지 [[네로(블랙 클로버)|네로]]까지 끼어왔다. 나오자마자 넉살좋게 하몬에게 음식을 요구하는 챠미. 하몬은 의외로 쉽게 음식을 나눠준다. 노엘이 여긴 왜 왔냐고 묻자 우물쭈물 대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하러 왔다"고 하는데 그 대상인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무슨 말인지 눈치채지 못한다.
* 이제 시합은 5시합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싸워야할 마도사 중에 "X"라는 묘한 이름이 있다. 문자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그걸 "가위표"라고 읽어서 옆의 [[미모사 버밀리온]]이 "엑스"라고 읽어야 한다고 정정해준다. 그녀는 아마도 본명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일거라고 추측한다. 문제는 그의 팀원들 마저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정체는 고사하고 시합장에 있는걸 본 적도 없다. 대체 어떤 인물일까? 의문은 금방 풀린다. 이름이 거명되자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수상한 인물, 묘한 가면을 쓴 자가 불쑥 나타난다. 척보기에도 수상한 놈. 그 수상한 놈이 가면 속에서 "X란 접니다"라고 밝힌다.
* X가 빛을 발하더니 가면이 부서지면서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물빛의 환록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회화마법을 구사한다는 역대 최연소 단장. X의 정체가 릴이라는데 놀라는 것도 잠시, 로열 나이츠 선발 시합에 단장이 직접 나왔다는데 도마에 오른다. 정말로 단장이 기사단도 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건가? 적어도 마법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론 "단장을 쓰러뜨리고 이름을 떨칠 찬스"를 준다는 거지만 실상 릴의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덕후기질 발동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명목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럭절거 설득된다. 하긴 굳이 그를 쓰러뜨려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만한 싸움일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릴이 "호락호락 당하진 않겠다"고 자신한다. 그는 로얄 나이츠가 되고 싶다기 보단 자기 기사단의 평판을 끌어오릴려고 나온 것이다. 성과제에서 최하위를 찍은 게 어지간히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그때 누군가가 뛰어들며 릴의 마음가짐을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 지옥에서 마왕의 집사노릇을 할 거 같이 생긴 노인이었다. 험상궂은 이목구비에 이마에 뚜렷한 흉터. 그리고 아스타가 움찔할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 범상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장씩이나 되는 릴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유치원생처럼 챙기고 다녔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릴을 잘 부탁드린다"고 당부할 정도였다.
* 모든 이가 물빛의 환록 단장의 실력에 주목했던 제 5시합은 시작과 동시에 어이없는 헤프닝으로 끝날 위기였다. 쓸데없이 적진에 얼쩡거리던 릴이 덩쿨마법에 단숨에 잡혔다. 오히려 잡은 상대팀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한심하긴 해도 단장은 단장. 그를 재빨리 해치우는게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이 그를 잡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이 각자의 최강 마법으로 릴을 공격한다. 불과 얼음의 속성 마법들. 강한 마법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걸 본 순간, 릴은 잠들어 있던 영감이 깨어났다.
* 발터는 그가 처음 그리모어를 얻었을 시절에도 그의 집사였다. 정확히는 그의 집안의 집사였다. 부아모르티에 가문의 저택은 릴이 일으키는 마법사고로 성할 날이 없었다. 그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뭔가가 망가졌다. 자기 방이 박살나는 것도 예사였다. 언제 인명사고가 나더라도 그건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릴은 본래 조금 이상한 아이라는 평가였지만 그리모어를 얻으면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방에 틀어박힌 채 날뛰는 아이, 집안의 고용인들조차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의 아버지 도 릴을 억누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어쩌다 저런 아이가 되었을까"라고 한탄하며 정신이 병들고 있었다.
* 이런 사태를 릴이 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건 좀 더... 아름다운 것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 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느냐고, 이젠 그림 자체를 그리지 말라고 강요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림을 끊을 수는 없었고 강요를 받을 수록 반발심은 커졌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발터가 그의 뺨을 때리기 전까진.
자기만의 세계에서 깨어난 릴의 눈 앞에, 상처투성이의 발터가 있었다. 릴이 무아지경으로 그려대던 그림들은 하나하나가 무서운 파괴를 일으켰다. 발터는 아랑곳 없이 그의 방을 찾아왔다. 마법에 맞아 온몸에 성한 데가 없고 이마에 깊은 상처가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집사로서 도련님에게 따끔하게 가르쳐 줄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 받으면 아프다는 것. 지금 릴이 맞은 뺨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다치는걸 두려워한다. 정체모를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것에 다가가고 싶지 않아 한다. 같은 짓을 반복한다면 누구도 영영 그에게 다가오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남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그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도 모처럼 그린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아닌가? 발터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단지 릴이 남을 이해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 릴은 최고의 캔버스를 선물해준 발터에게 최고의 한 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다. 부모님은 그를 낳아줬지만 지금의 자신은 발터가 만들어준 것이다.
릴의 붓이 허공을 누빈다. 그의 그림은 좁은 사각틀이 필요가 없었다. 최고의 마법을 본 순간이라면 어디든 그의 캔버스였다. 그가 풀어놓은 물감은 저마다 부여된 힘을 그대로 구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의 회화마법 "불꽃과 얼음의 드 탕펫드"(폭풍우). 살아난 불과 얼음이 각자 상극의 속성마법을 제압한다.
그는 모든 속성을 그려서 재현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상대가 강할 수록 그의 창작욕은 치솟고, 그럴 수록 보다 강력한 마법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게 그를 최연소 단장으로 만들어준 힘. 발터가 발굴한 힘이다. 발터는 릴의 눈부신 마법에 갈채를 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24회 일치
* 아스타는 사라지는 마구 앞에서 속수무책.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자 잭스가 5분만 버텨달라며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다.
* 마론은 자신이 [[샬롯 로즈레이]] 때문에 사적인 이유를 접어둔 채 싸우는 거라며 네르슈에겐 그럴 이유가 없느냐는 말로 그를 각성시킨다.
* 매그너는 아스타가 있어 강해졌다 감사하면서도 결승전에 가는건 그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아닌 자신과 [[락 볼티어]]라며 승부욕을 불사른다.
* 그때 부활한 네르슈가 아스타를 습격해오고, 때마침 잭스도 자신의 책략을 완성한다.
>여자를 상처 입히는 취미는 없거든. 거기서 쉬고 있으라고.
잭스가 혼자 고생한 척은 다 했지만 사실 함정은 아스타가 판 거였다. 반마법의 검은 삽 대신으로도 훌륭했다. 아스타가 유인하던 동굴 입구 쯤이 함정의 위치였다. 잭스는 초장부터 그렇게 설친데다 이런 함정까지 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 아스타를 "체력 괴물 꼬마"라고 불렀다. 정작 잭스가 바쁜 건 지금부터다. 네르슈가 다시 일어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 그는 함정이 있는 동굴 입구에 새로운 함정마법을 걸었다. 누가 그를 구하러 접근하면 꽈광. 아스타도 알 수 있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예방 조치였다.
>게다가 만약을 위해 생매장해두자고.
가차없는 잭스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함정을 발동시켜서 아예 네르슈를 묻어버렸다. 덤으로 아스타의 단마의 검까지 묻어버렸지만.
* 이때 일으킨 굉음이 말썽이었다. [[매그너 스윙]]에게 위치가 발각됐다. 그는 새로운 마법 불꽃 강화마법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려왔다. 아스타와 잭스, B팀의 크리스탈까지 발견. 아스타는 예상 외로 빠른 그의 접근에 놀랐지만 매그너는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버린 상태에서 정지. 그게 매그너의 "필승존"이었다. 매그너는 그 상태에서 특기인 원거리 공격으로 나왔다. 그는 아스타를 노리고 "입단식 때의 리벤지"를 선언했다. 아스타도 선뜻 "덤벼보십쇼 선배!"라며 그때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 다음 매그너의 전력투구. 아스타는 입단식 때와 같은 방법으로 받아치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이라면 더 정확하게 받아칠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불꽃의 마구가 눈 앞에서 사라져 크리스탈을 강타하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매그너가 그의 훌륭한 헛스윙을 비웃었다. 이것이 매그너의 새로운 마법 "궁극소멸마구". 문자 그대로 사라지는 마구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눈 앞에서 사라지는 공격은 어쩔 수 없다. 아스타는 새삼 선배의 실력에 놀랐다. 놀란 것은 클로버 국왕과 [[마법제]]도 마찬가지. 국왕이 하층민 주제에 자신을 놀라게 했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마법제는 "외견과 다르게 손재주가 있다"는 디테일한 평까지 남겼다.
* 네르슈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산보에 나섰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하층민들의 거주구를 굽어보는 산보. 하층민들의 세계는 더럽고 추하고 빈곤했다. 애나 어른이나 할 거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빈곤한 자는 마음까지 빈곤. 뿌리부터 추한 존재라는 믿음은 그때부터 확고했다. 어린 네르슈는 어린 미모사에게 그 점을 가르치며 "추한 자는 계속 추한 것"이란 지론을 완성했다.
네르슈가 그 시절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상태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태여 남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당신한테는 자기 어리광을 지탱하면서도 싸울 이유... 없는 거야?
* 동문대결은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아스타가 사라지는 마구에 속수무책. 크리스탈에 계속 타격이 갔다. 기를 읽는 방법도 어렵고 표적 자체가 작아서 더욱 어려웠다. 그 크기 또한 매그너의 섬세한 계산이었다. 마력용량이 적은 그로선 고위력으로 대량의 마법을 쓸 방법이 없었다. 에너지 효율과 공격빈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것이 이 형태. 매그너의 표현대로 "하층민의 싸움방식"이었다.
*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공방전. 지켜보던 [[락 볼티어]]가 그 치열한 접전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매그너는 새삼 아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실감했다. 이런 후배가 있어서 얼마나 자극이 됐던가. 지금 자신을, 검은 폭우단을 강하게 만들어준 건 분명 아스타였다. 매그너는 그게 빌어처먹을 정도로 고맙다고 생각했다.
* 그때 네르슈가 난입했다. 아스타는 우측에서 갑자기 나타난 네르슈를 보고 당황했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거기까지 대응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걱정도 잠시. 그는 혼자 싸우는게 아니었다. 잭스가 드디어 준비를 마쳤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24회 일치
* 츠카사는 쿠가가 철냄비에만 골몰하는 태도를 지적해 "자기 스타일도 좋지만 거기에 급급해 소재를 살리지 못하면 나에게 이길 수 없다"고 충고한다.
* 거기에 "글쎄"라고 반박하는건 쿠가가 아닌 [[미마사카 스바루]]. 자기 조리를 한참 하다 말고 쿠가에게 검은 액체가 든 병을 넘긴다.
* 쿠가는 그 액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을 받자마자 바로 녹찻잎을 개봉하는데. 이렇게 조리 중에도 서로 도울 수 있는데 "연대식극"의 진면목.
* [[나키리 에리나]]는 "반역자의 연대를 보여주자"고 팀원들을 격려한다.
* 홋카이도 라면계를 살린다, 이러한 본래의 목적을 잠시 접어두게 된 [[메기시마 토스케]]. 그는 라면장인들에게 미안해하며 [[유키히라 소마]] 진영에 힘을 보탠다. 하지만 장인들도 센트럴에 대척하려는 소마여서인지 그의 참전을 매우 달가워하며 환호한다. 그래도 한 장인은 설마 소마에게 메기시마가 넘어갈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건 당사자도 그랬다. 메기시마는 소마에겐 뭔가 끌리는게 있다며 그의 가능성을 높이 산다.
가장 이목을 모으는건 서열로 보나 체급으로 보나 제 2카드. 제 3카드 쪽은 아직 밑준비 중이고 양측 모두 구체적인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야마 아키라]]는 어떤 대결이든 주제를 자신의 요리에 어떻게 녹여넣느냐가 관건이라고 평한다. [[쿠로키바 료]]도 동감한다. 그게 안 된다면 적과 싸우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 소마는 찻잎을 다루는 츠카사의 자세를 보고 감탄한다. 그는 무려 네 종류에 달하는 찻잎을 한 꺼번에 다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루이 젠지]]가 지금껏 완전히 잘못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녹차라는 소재는 당연히 요리의 선택지가 제한될 거라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녹차"라는 카테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그걸 살리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녹차는 본래 채취한 찻잎을 그대로 쪄서 발효를 막는 "비발효 차"류를 통칭하는 말. 대표적인 엽차나 옥로, 호지차 등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그걸 요리로 옮기면서 떫은 맛이나 쓴 맛에 악센트를 주는 식으로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자, 이리 오렴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그가 쓰는 다기도 눈여겨 본다. 우선 찻주전자는 물맛을 부드럽게 하는 남부칠기. 이걸로 끓인 물을 다기에 옮겨 적절한 온도로 식히고 부드럽게 찻잎을 뜸들여 맛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낸다. 결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솜씨다.
항간에는 츠카사가 식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군림한다는 말이 퍼져 있으나, 지금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정반대라는 걸 알 수 있다. [[나키리 아자미]]는 그걸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식재료라는 주군에게 끝없는 경의를 갖고 받들어 모시는 한 자루의 검이다.
* 츠카사는 우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서인지 쿠가 쪽 조리대에 훈수를 둔다. 쿠가는 분명 찻잎에는 손도 대지 않고 중화 철냄비로 고기만 다루고 있었다. 츠카사가 이런 부분을 꼬집으며 "하나에 집중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자기 필드에 틀어박히는건 나쁜 버릇"이라고 충고했다. 지금 쿠가는 녹차, 일본의 식재를 덤으로 여기고 있다. 소재를 살리기 위해선 자기 스타일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한데 자기 고집에만 연연하면 새로운 맛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말로는 쿠가가 지닌 열의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에게는 못이긴다"며 통렬한 도발을 날린다. 쿠가는 이에 대해서 단지 눈을 한 번 흘겼을 뿐,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않는데.
* 병을 건넨 사람은 여기껏 자기 조리만 하는 줄 알았던 미마사카였다.
쿠가는 그가 이 병을 넘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자기 조리 말고도 쿠가의 밑준비도 거들고 있었던 것이다. 적인 사이토만이 아니라, 아군인 "쿠가"를 트라이스한 상태에서 말이다.
* 적이었을 땐 밥맛이지만 아군이 되면 믿음직한 스킬 퍼펙트 트레이스. 반역자팀이 환호한다. 그런데 문제는 쿠가를 너무 정확하게 트레이스한 바람에 눈갱스러운 짓까지 따라한다는 점이었다.
* 이런 전개도 [[나키리 에리나]]의 안배였다. 그녀는 지금이야 말로 반역자들의 연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여긴다.
- 은혼/595화 . . . . 24회 일치
* 오보로는 비록 쇼요는 자기 자신에게 패했으나 제자를 남겼으니 그 제자들은 반드시 우츠로를 쓰러뜨리란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 그는 최후의 순간에 실은 쇼요의 제자들처럼 되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다카스기는 그의 시체를 거둔다.
* 긴토키와 자신이 쇼요를 몰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가하나 가츠라는 쇼요는 사전에 이런 상황을 위해 그라는 희망을 남겼다고 말한다.
* 다츠마는 쇼요가 남긴 너희에 의해 자신들과 같은 동료가 생겼다고 말한다. 일행은 우츠로 타도를 다짐한다.
* 오보로는 요시다 쇼요가 자기 자신과 싸우다 패했다고 말한다.
* 그러나 그 싸움은 쇼요의 제자들을 낳았다.
* 오보로는 제자들에게 우츠로를 꼭 쓰러뜨리라 당부하며 설령 그것이 스승이든 아니든 망설이거나 두려워 말 것이며 그 혼과 함께 싸우라 한다.
* 자신은 그 혼이 있어야할 곳을 잃었고 쇼요를 위해서도 우츠로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싸우지 못했다 한탄한다.
* 다카스기는 오보로의 시체를 거두며 "쇼카촌학당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 다카스기의 전언을 들은 긴토키는 쇼요의 인격을 죽인 것은 우츠로일지 몰라도 그 우츠로가 나타나도록 몰아간 것은 자신들이라고 말한다.
* 자신을 찾지 말고 동료들을 지키라는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고 우츠로를 눈뜰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바로 긴토키 일행.
* 다츠마도 쇼요의 싸움이 그 제자들을 낳았고 그 제자들의 싸움이 자신들이라는 동료를 낳았다고 말한다.
* 때마침 우미보즈도 그 자리에 나타난다.
* 자신은 코우카에게 쫓겨났고, 비록 자식들에게 꿀밤을 먹일 팔도 없어졌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이런 팔이라도 꽃다발을 따올 수는 있다"며 준비해온 꽃을 꺼낸다.
* 가구라는 "엄마가 좋아하는 꽃은 그게 아니다"고 하는데, 자신도 "저걸 보고 생각났다"며 묘를 가리킨다.
- 은혼/647화 . . . . 24회 일치
*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에게 한 팔을 잃은 [[엔쇼]] 황자 앞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나타난다.
* 신스케는 동료들이 자신에게 걸고 있는 영웅이라는 꿈에 부합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으나 그럴 기력 조차 바닥나고 다가오는 엔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지구의 [[우츠로(은혼)|우츠로]]는 해방군이 결국 실패했음을 직감하나 그들이 태운 불꽃을 빨아들여 자신의 불꽃을 태우겠다고 자신한다.
* 해방군 최후의 격전.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를 상대로 분전했던 [[엔쇼]] 황자도 여기까지다. 치열한 접전 끝에 왼팔을 잃은 엔쇼 앞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우뚝 선다. 엔쇼의 비통한 호령과는 상관없이 신스케의 칼이 곧게 올라간다. 이제 해방군도 전쟁도 앞으로 한 칼이다.
* 그랬을 터였다. 칼날이 엔쇼의 몸에 닿기까지는 눈 깜빡할 시간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그 직전에 생긴 작은 어지럼증은 정말 작은 틈에 불과했다. 엔쇼의 목숨을 살린 틈. 신스케는 흔들리는 시야에도 불구하고 칼을 내리쳤다. 칼은 결국 떨어져야 할 자리로 떨어졌지만 거기에 엔쇼는 없었다. 허공. 그가 몸을 날렸다. 그가 얼마나 최후의 최후까지 대비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신발 뒷축에 숨겨진 작은 소형 화기가 총구를 드러냈다. 그 총구가 불을 뿜자 이번에 피해야 할 건 신스케였다.
* [[사루가쿠]]는 난전 속에서도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신스케를 좇고 있었다. 그는 신스케가 엔쇼의 사격을 피해 앞으로 몸을 날리는 걸 보았다. 그 몸을 지탱해야 할 무릎이 힘없이 꺾이는 것도 보았다. 그가 무릎 꿇은 자리 위로 파문처럼 넓어지는 검붉은 핏방울, 그 웅덩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걸 보았다. 그 너머의 뜻밖의 호재를 잡은 엔쇼의 표정도.
그는 시체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다른 폐품들처럼 시설물 잔해에 간신히 걸려있던 그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흘린 피만 봐도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그게 문제였다. 무전으로 화상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으로 보면 자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헨페이타가 절망하지 않을 형태로. 그게 어려웠다. 그때 신스케가 손을 들어 어려움을 끝내준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가 통신으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도.
신스케는 몸상태를 걱정하는 헨페이타에게 너스레로 대답했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보면 자신도 참 망가졌다면서. 그는 다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키지마 마타코]]의 구조와 보호를 부탁했다. 그녀는 자신이나 헨페이타 같은 악당이 아니라 악운만으론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귀병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죽으면 [[카와카미 반사이]]가 반드시 화를 낼 테니까. 그 외의 지시는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할 뿐이었다.
* 신스케가 통신을 마치자, 사루가쿠는 묻고 싶은게 많았다. 하지만 질문을 늘어놓기 전에 답이 주어졌다.
그 말은 사루가쿠에게 한 대답인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설득이었다. 누워있으려는 몸뚱이를 다그치고 다시금 일으켜 세울 말이었다. 본래 빈사였던 그를 여기까지 끌고 온게 그것이었다면 다시 일어서게 할 것도 그것이었다. 신스케는 아직 칼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일어서고 있었다. 사루가쿠는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적이 사방을 애워싸고 있었다. 신스케도 적에게 애워싸였다. 그가 움직이지 못할 때 숨통을 끊으러 오는 적의 숫자는 엔쇼의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신스케는 일어날 기회를 포기한 채 무조건 다가오는 녀석을 베고 찔렀다. 근처에 있는 녀석들을 정신없이 찌르고 있을 때 원거리에서 사격이 가해졌다. 그는 바닥을 굴러가며 어떻게든 피했다.
* 사루가쿠는 아직도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그는 적들을 쓰러뜨리면서 신스케의 대답을 곱씹었다. 알려줄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 존재만으로 전장을 바꾸는 영웅이 실은 이미 서있을 수도 없는 중상인데 알 필요가 없다. 신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몸으로라도 여전히 서있는, 서있으려는 영웅들이 그렇게 말했다. 가츠라, 다츠마, 그리고 신스케. 그 자신들은 실제로는 영웅도 뭣도 아닌 보통 사람에 불과하면서. 단지 그들을 믿고 싸워주는 이들을 위해 영웅으로서 다시 일어나야만 했던 자들.
한 발의 총성이었다. 엔쇼의 미간으로 정확히 향하는 총알. 그가 고개를 꺾자 머리채를 끊으며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작은 틈. 신스케의 목숨을 살린 틈. 엔쇼의 시야에 젖혀지는 신스케의 상체와 자신의 꿈을 깨뜨린 한 발이 날아온 곳, 그걸 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타코가 헨페이타와 함께 도착해 있었다.
사루가쿠의 뇌리 속에서 그녀의 외침과 자신의 독백이 교차했다.
[[우츠로(은혼)|우츠로]]는 폐허가 된 가부키쵸의 지표에서 명멸하는 점처럼 보이는 히노카구츠치를 보았다. 그 속의 해방군의 운명을 보았다. 그는 해방군의 실패를 직감했지만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그가 이 자리에 있는건 사라져 가는 것들을 향한 조문이었다.
당사자에게, 엔쇼에게 닿을지 알 수 없는 조문.
- 이득을 준 배신자를 처단하기 . . . . 24회 일치
[[배신]]을 저지른 자가 자신에게 이득을 주었음에도, 배신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처단하는 것이다.
* B가 궁지에 몰리는 등,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C가 끼어들어 B를 살해하거나 포획한다.(여기에 '배신'이 들어가기도 한다.)
* A는 이에 대한 명분으로 C의 악행을 들거나, 배신자는 또 배신하므로 처단한다고 하거나, C가 B의 부하나 하인일 경우 '주인을 배신한 죄'를 묻는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 디오 카시우스(Cassius Dio)에 따르면, [[폼페이우스]]가 이집트에서 부하들과 동맹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배신당하여 살해당하였는데,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살해한 자들을 비난하였다고 한다.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 자신과 대립하게 된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오슈 후지와라 씨]](히라이즈미 정권)[* 일본 동북부를 지배하고 있었다.]에 의탁하여 있을 때, 후지와라 씨에게 요시츠네를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후지와라 씨에서 요시츠네를 살해하고 그 목을 보내자, 오히려 자신의 가인(家人)인 요시츠네를 공격하였다는 명분으로 오슈 후지와라 씨를 공격한다.--어쩌라고--
* [[한고조]] : [[계포]]의 숙부로 [[항우]] 휘하의 무장 정공(丁公)은 팽성에서 후퇴하는 유방을 추격하다가, 궁지에 몰린 유방이 소리치자 공격을 중지하고 물러났다. 정공은 항우가 패망하자 유방에게 목숨을 살려준 공적으로 사면을 얻으려고 나타났으나, 유방은 정공에게 항우에게 불충한 자이며, 너 같은 자 때문에 항우가 천하를 잃은 것이라고 질책하였다. 정공은 결국 저자거리에서 끌려다니다가 참수당하고 만다. 유방은 후세에 신하된 자들이 정공을 본받지 않도록 이렇게 한다고 선포했다.
* 《[[원조비사]]》에 따르면, [[케레이트]] [[부족]]의 [[옹 칸]]이 패망하고, 옹 칸의 아들 셍굼이 도주하고 있을 때, 궁지에 몰린 셍굼의 부하 코코추(Kokochu)는 셍굼이 타는 말의 발목을 부러뜨려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아내도 남겨둔 채 도망쳐 칭기즈칸 진영에 항복하였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주군을 배신하여 황야에 버리고, 아내를 버리고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친 놈이라, 주군에 의리가 없고 아내에게 정분도 없으니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비난하며 코코추를 [[참수]]하게 했다.
* 《[[원조비사]]》에 따르면, 칭기즈칸과 대립하여 나이만 부족과 함께 싸우던 [[자무카]]는 나이만 족이 패배하자 탕글루 산에 들어가서 은신하였다. 상황이 곤궁해지자 자무카의 부하들이 배신하여 자무카를 붙잡아 왔으나, 칭기즈칸은 그들은 물론 그 자손들까지 처단하도록 했다.
* 《[[삼국지연의]]》에서 [[마등]]과 공모하여 [[조조]]를 제거하려 한 [[황규]](黃奎)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황규의 [[처남]]인 묘택(苗澤)이 황규의 첩 이춘향(李春香)과 [[간통]]을 하면서 이춘향을 통하여 황규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고, [[조조]]에게 밀고하여 황규의 일족은 도륙당하게 된다. 그리고 묘택은 조조에게 이춘향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조조는 여자 때문에 매형의 집안을 파멸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하며 묘택을 처형한다.
- 이재학 . . . . 24회 일치
||||||||||||<:> '''2013년 [[KBO 리그 신인왕 역대 수상자|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
'''[[NC 다이노스]]의 초대 토종 에이스이자, [[투수]] [[프랜차이즈 스타]].'''
[[NC 다이노스]]의 야구 선수이자 우완 사이드암[* 팔 높이는 스리쿼터까지 올라가지만, 공의 궤적이나 그립 등을 보았을 때 사이드암으로 분류한다. [[임창용]]이 오버핸드 투수가 아닌 것처럼. 본인 또한 사이드암 투수로 인식하고 있다.] [[투수]].[* 컨디션이나 성적이 좋을때는 쓰리쿼터까지 올라가지만 오히려 컨디션이 좋지 않을땐 사이드암까지 내려간다.]
두산 시절에도 순박한 얼굴과 특유의 빨간 볼[* [[http://youtu.be/8iTg4pqyDDQ|XTM 담벼락토크]]에서 투구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영상이 2013년 시즌 8월 7일 LG전에서 9실점했을 때(...)]로 신인 중 귀요미 소리를 들었다. 빨간 볼과 여드름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능금', '[[딸기]]'. NC 이적 후부터는 아예 딸기가 공식 별명이 되었고, 활약하는 날이면 Strong+Strawberry='''STRONGBERRY'''가 된다. 이 문구는 이재학의 개인 첫 완봉승 기념 티셔츠에 적혀있다. 한때 [[마산 야구장]]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아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88568|딸기주스 '''이재학''']]을 판매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그 자리엔 '더리터'로 입주 업체가 바뀌었다. 이재학을 팔지 않는 대신 [[박민우(야구선수)|민우에게 바나나]]를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2340520109998&id=241899065820824|팔고 있다.]]]
||창단 첫 완봉승이자 개인 첫 완봉승을 거둔 후.||
결국 10경기(선발 6경기) 31⅔이닝 1승 2패 1홀드 3.69를 기록하고 5월 27일 [[고양 다이노스|2군]]으로 내려갔다. 얼핏 보면 스탯이 좋아 보이지만 BABIP가 .226으로 상당히 좋은 편임에도 FIP(수비무관평균자책점)은 이전 시즌보다 1.0이나 올라갔다. 쉽게 말하면 수비 등 외부요소를 제외한 순수 기량 자체가 멸망한 수준이라는 것. WAR이 0.08이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무혐의일 가능성이 생겨서 8월 13일 1군에 합류했으나 10월 7일 경찰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과 동시에 구단에서 축소은폐한 정황을 포착(검찰이 직접 밝힌 사실이 아니라, 기사에서 소개한 '정통한 소식통' 이 검찰이 이재학 승부조작을 포착했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하자), NC 다이노스 프런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어 압수수색이 실시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08577|#]].
만약 승부조작에 가담한 게 사실이면 제2의 [[박현준]]이 될지도 모를 상황. 여기에 더해 예술·체육요원인 이재학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 특례는 34개월간 선수나 지도자 활동을 해야 유효한 상황인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부터 24개월 지난 2016년 10월 시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병역특례가 박탈되어 도로 군 복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자신의 변호사를 교체해 팬들은 "이러다 진짜 박현준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찰 수사 결과는 승부조작은 무혐의, 불법스포츠 베팅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 되었다. 따라서 검찰 수사나 더이상의 사실 관계 확인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승부조작은 무혐의로 어떻게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상당 수준의 증거나 정황, 증언 등이 드러난 불법 베팅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 중에 있어 KBO의 징계도 복잡한 관계에 얽혀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계좌 내역이나 스스로 자백을 한 진야곱이 이재학과의 공모 관계를 경찰 조사에서도 진술했기에 이재학이 원하는 결백은 그리 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017년 2월 14일, 드디어 검찰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무혐의'''.[* 법적으로 죄를 입증할 만한 요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재판을 청구조차 못한다는 뜻이다.]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032683|기사]]. 심지어 그동안 공소시효가 지나 죄가 입증되지 않는 것이라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화살을 날렸으나, 오히려 '공소권 없음' 판결을 받은 것은 진야곱이다. 결국 공소시효가 성립할 만한 법적 구성요소조차 없었다는 것. 이것 덕택에 이재학은 논란에서 벗어났다. 이런 덕분에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윤성환|해외 도박 의혹을]] [[안지만|받은 핵심]] [[임창용|투수 셋을]] [[삼성 라이온즈|제외한 팀]]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음에도 [[진야곱|불법 스포츠도박 의혹이 있는 투수]]를 제외시키지 않은 두산은 더 심각하게 까였다.[* 결국 두산은 2017 시즌 후 [[진야곱]]을 방출했다.]
두산 시절에는 정통 사이드암 투수로 140km/h 초중반대의 빠른 공과 준수한 서클 [[체인지업]]으로 주목받았다.[* 보통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투구폼으로 구속과 분당 공 회전수를 줄여 타자의 타이밍을 망가뜨리는 방식이나 이재학은 되려 회전수가 높은 변형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좋은 컨트롤과 준수한 탈삼진 능력으로 즉시전력감으로 주목받았으나, 프로에 입단해서는 현격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23이닝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서클 체인지업을 이용한 삼진 능력은 당시에도 인정받았으나 지나친 코너웍을 의식하다가 사사구를 내주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만 개선하면 롱릴리프 및 중간 계투로 일익을 담당하리라 기대되는 준수한 유망주였다. NC에 와서는 두산 시절에도 준수했던 서클 체인지업이 더 강력해졌으며, 이를 필두로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편. 통산 K/9가 8.2에 달하고, 2016년에는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규정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팀 내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 잡았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 [[2013년]] [[4월 11일]] [[고창성]]과 함께 [[켠김에 왕까지]] 164회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적절한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징크스 같은게 있냐고 묻자 자신은 그런건 안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대답을 하였다. 시구하는 것을 보고 싶은 연예인으로 f(x)의 설리를 지목하였다. 그런데 제작진들이 투수2명을 섭외해놓고 과자는 홈런볼을 준비하는 괴악한 센스를 보여주었다. --모조리 먹어서 홈런 맞지말란 뜻..?--
* [[최정]]을 상대로 [[저승사자]]의 면모를 보인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정은 이재학을 상대로 한 전적이 '''32타수 5안타, 타율 0.156, OPS 0.385, 0홈런 2타점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삼진은 15개나 당했다!''' 이재학이 한때나마 [[슼나쌩 클럽]] 멤버였던 것도 최정의 공이 컸다. 반대로 2018 시즌부터는 [[제이미 로맥]]에게 완벽히 농락당하고 있는데 시즌 상대 기록이 무려 13타수 11안타 1홈런 1볼넷 1삼진 2타점 '''타출장 .846/.857/1.231'''이며, OPS는 무려 '''{{{#RED 2.088}}}'''![* 통산 기록은 20타수 12안타 2홈런 타율 0.600.]
||<rowbgcolor=#13123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선발}}}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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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24회 일치
* 오슬로는 그로키시니아가 사라진 이후 어느 틈엔가 나탔는데 그로키시니아는 그가 자신이 죽인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의 환생이라 생각한다.
* "대죄가 다시금 집결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디안느와 할리퀸이 뚝 떨어지면서 예언이 실현된다.
* 요정왕의 숲에서 눈을 뜬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오랜만에 재회한 [[오슬로]]가 반갑게 얼굴을 핥는다. 그 바람에 일어난 할리퀸은 아주 행복한 꿈을 꾸었다며 "[[디안느]]가 나에게 키스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데, 마침 당사자가 옆에 있었다.
* 할리퀸이 당황해서 허둥댄다. 겨우 정신을 잡은 그는 디안느에게 자신의 기절원인이 된, 지난 번의 키스는 대체 뭐였냐고 묻는다. 그리고 디안느는 아주 오래된 호의에 대한 답례라고 대답한다.
* 할리퀸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금방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곧 "200년 전"이 가리키는 것이 그녀가 기억을 잃어 버린 유년 시절을 뜻한다는걸 깨닫는다. 그건 디안느가 잃었던 기억을 모두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십계 [[고서]]가 그녀에게 준 사과와 선물, 그것이 그녀의 기억이었다. 지금껏 고서를 원망하고 있던 할리퀸은 그런 사실에 생각에 잠긴다. 고서에 의해 기억을 잃고, 다시 찾게 된 디안느는 고서를 옹호한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또 할리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할리퀸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하고 오히려 지금까진 너무 못되게 굴었던 거 같다고 자책한다.
*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디안느가 침묵을 깨고 할리퀸에게 등이 괜찮냐고 묻는다. 그는 그제서야 왜 옷을 벗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러고 보니 시련 직후에 왔던 격통도 사라졌다. 몸을 확인하던 그는 곧 자신의 등몸에 나타난 이변을 알아차린다. 날개였다. 그토록 바라던 요정왕의 날개였다. 그는 이제 자신도
어엿한 요정왕이라 환호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초대 요정왕[[그로키시니아]]의 크고 아름다운 날개가 떠오른다. 그가 특유의 긴장하는 모습으로 시무룩해하자 디안느가 "그로키시니아도 처음엔 작은 날개였다고 했었다"고 위로한다.
* 그러보니 그로키시니아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요정왕의 숲인 건 분명한데. 할리퀸이 그의 행방을 묻자 디안느가 직접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할리퀸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 짓는다. 자신 이상으로 오랫동안 어긋난 인연으로 괴로워했던 초대 요정왕. 그도 그 인연을, 여동생 [[게라이드]]를 되찾는 중이었다.
그로키시니아는 오열하는 여동생을 안은 채 "용서받을 순 없지만 사과하게 해달라"고 속삭인다.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에 대해서나, 그녀의 생사도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나. 게라이드는 다 지나간 과거이며 자신도 로우도 각오했던 일이라 의연하게 말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 그런데 게라이드의 눈물이 온순했던 오슬로를 자극했다. 오슬로는 그로키시니아가 그녀를 괴롭힌 줄 알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게라이드가 황급히 그를 진정시키지만 그로키시니아는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며 씁쓸해한다. 이 기회에 게라이드는 오빠에게 오슬로를 소개한다. 오슬로는 그로키시니아가 사라진 직후에 나타나 혼자 된 게라이드를 지켜줬다. 지금은 게라이드를 대신해 현 요정왕 할리퀸을 지키고 있다.
그 말을 들은 게라이드는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3천년 전, 로우를 죽이려던 자신을 한순간 멈칫하게 했던 목소리가 떠오른 것이다.
* 이것으로 요정왕의 숲에서 일어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할리퀸은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디안느가 그런 마음을 먼저 알았다. 그녀는 할리퀸에게 리오네스 왕국으로 돌아가기를 청한다. 그러면 [[엘레인]]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로키시니아도 이제 자신이 요정왕의 숲을 지키겠다며 그러라고 등을 떠민다.
꼭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했던 인형 고서. 디안느는 새삼 그를 떠올린다. 그녀가 힘차게 그러자고 대답하자 할리퀸은 오슬로에게 요정왕의 숲을 부탁하며 리오네스 왕국으로 향한다.
* 한편 왕국에 있던 일곱 개의 대죄, [[멜리오다스]], [[반(일곱 개의 대죄)|반]],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 [[고서]], [[에스카노르]]는 한 자리에 모여있다. 그 장소는 과거 일곱 개의 대죄가 성기사장 [[자라스트로]]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던 고성의 꼭데기였다. 이들을 불러모은 장본인은 멀린.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가 본 새로운 예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자욱한 안개, 왕도를 채우는 시간
>우리를 왕국의 반역자로 만든 그 성의 정상에
*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디안느와 할리퀸. 예언대로 일곱 개의 대죄가 다시금 모였다. 비록 단장 멜리오다스는 디안느 밑에 깔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 장원준 (야구선수) . . . . 2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1차 지명([[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004년 ~ 2014년)
{{메달 나라|{{국기나라|대한민국}}}}{{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장원준'''(張元準, [[1985년]] [[7월 31일]] ~ )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으나 7세 때 [[부산광역시|부산]]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07335 장원준, 미인들만 만나는 비결? “모성애 자극 ㅋㅋ”] - 스포츠동아</ref>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11 시즌은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한 층 발전된 모습으로 이제는 에이스로서 자신의 이름을 드높였다. 2008 시즌 이후 4시즌 연속 10승을 달성하며 꾸준한 에이스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외에는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1 시즌 후 입대하였다. 입대 후 [[봉중근]]의 부상으로 좌완 투수 자원이 부족하여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복귀==
[[2015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데뷔 첫 등판이었던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 KS]] 3차전에서 7.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경기의 MVP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팀으로서는 14년만의 우승, 그로서는 데뷔 첫 우승팀 소속이자, 이적하자마자 우승을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이적할 당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보상 선수로 투수 [[정재훈]]을 지명했는데, 1년 뒤 [[두산 베어스]]가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위에 [[정재훈]]을 지명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 FA 계약 선수와 보상 선수가 1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챙겼으며, 이는 좌완 투수 최초의 기록이다. 팀 내에서 그와 [[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 [[유희관]] 등 4명의 선발 투수가 70승을 합작했고 일명 '판타스틱 4'로 불렸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1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적 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고 역대 최고의 모범 FA로 꼽혔다. 시즌 후 3번째로 [[최동원]]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2009년]] [[4월 23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9회 초에 [[대주자]]로 교체 출전하였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result&game_id=20090423LTSK0 2009년 4월 23일 경기 박스스코어]</ref>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547306&redirect=false 롯데의 변신은 무죄, 최준석 포수, 송승준 장원준 타자] -스포츠조선</ref>
* [[2016년]] [[4월 24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KBO (야구)|KBO]] 좌완 투수 역대 4번째 세 자릿수 승 고지를 밟았다.<ref>[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1604/sp2016042420473357360.htm '통산 100승' 장원준, 이제 150승 향해 나아간다] -스포츠한국</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04 ||rowspan="9" style="text-align:center;"|[[롯데 자이언츠|롯데]] ||5.63 ||33 ||1 ||0 ||3 ||8 ||0 ||1 ||0.273 ||388 ||84.2 ||84 ||8 ||57 ||5 ||36 ||55 ||53
{{최동원상 수상자 명단}}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수영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대동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부산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사이버대학교 동문]]
[[분류:장씨]][[분류: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정종철 . . . . 24회 일치
| 배우자 = 황규림
| 자녀 = 정시후(아들) <br /> 정시현(장녀) <br /> 정시아(차녀)
그는 [[경상북도]] [[포항시]] 정 씨에서 출생하였고 [[부산광역시]] [[영도구]] 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한정식 요리·중화 요리·일식 요리 자격증을 취득 보유한 그는 월 260만원을 받으며 냉면집 주방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정종철은 TV에 나온 [[심현섭]]을 보고 자신은 심현섭보다 더 재주가 많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디션을 치렀으며 한번에 KBS 공채 15기 개그맨이 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개그콘서트]]에서 '옥동자'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못생긴 얼굴'이라는 컨셉으로 전자 오락실 게임 소리 등 각종 효과음을 흉내 내어 큰 인기를 끌었다.
**〈강변사와 그림자〉
* [[2004년]] 《마법경찰 갈갈이와 옥동자》 - 옥동자 역
* [[2005년]] 《안녕, 형아》 - 옥동자 역
* [[2009년]] 《동자대소동》
* "헤헤헤헤헤헤헤헤헤! 얼굴도 못 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 "너라뇨? 제 이름은 옥동자에요!"([[박미선]](봉숭아학당 선생님 역)이 정종철(옥동자 역)에게 왜 끼어드냐고 물을 때에 나오는 정종철의 대답), "선생님! 제가요, 어저께요~ 디자이너 앙드레 김 / 탤런트 이덕화 샘을 만났는데요~ 아, 그 분이 글쎄~", "선생님 제가 뭐라고 그랬는 줄 아세요?", "헤헤헤헤헤헤헤헤헤! OOO한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내 얼굴처럼 OOO해지려면 OOO하지 말고 (얼굴에다가) OOO했어야지! / 태어날 때부터 OOO을 마셨어야지!" - 개그콘서트 코너 '[[봉숭아학당]]' 중 옥동자 역
* [[2007년]] 제43회 백상예술대상 남자예능상
* [[2007년]] 제19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코미디언부문 출연자상
2009년 10월 11일에 방송된 [[MBC]]의 새 개그 프로그램인 [[하땅사]]에 출연하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코너에서 '물을 아끼자'라는 주제로 정종철이 [[이순신#이순신과 관련된 것|이순신 동상]] 앞 분수대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을 미리 촬영한 동영상이 방송되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건 방송 횡포다" ,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라며 시청 후 불쾌함을 호소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하땅사' 개그맨은 웃고, 시청자는 뿔났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1/2009101100645.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박현민 기자 |날짜 = 2009-10-11 |확인날짜 = 2009-10-12}}</ref>
* [http://www.okdongja.co.kr 옥동자(정종철) 블로그]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예능}}
- 진격의 거인/85화 . . . . 24회 일치
* 거인화 능력을 손에 넣어 깨어난 아르민 알레르토. 그러나 자신이 베르톨트를 먹었다는 것이나 엘빈 스미스 대신 선택됐다는 것에서 크나큰 부담을 느낀다.
* 아르민은 어째서 자신을 선택한 거냐고 원망하듯 말하지만 리바이는 결국 자신의 판단이었고 너는 너대로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 된다고 격려한다.
* 아르민은 리바이에게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하자 리바이는 "그렇겠지"라고 말하며 신호탄을 쏜다.
* 자신이 빈사에서 부활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전해들은 아르민은 경악한다.
* 조사병단은 벽 위에 모인 9명이 생존자 전원이며 시간시나구의 벽은 막았지만 라이너와 짐승거인은 도주, 베르톨트는 포획했다.
* 그리고 "어째서 자신이냐"고 묻는다.
* 아르민은 어째서 자신을 택했냐고 리바이에게 묻는다.
* 그리고 "적어도 너희 소꼽친구 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자신에게 칼까지 들이대면서 저항했다고 말해준다.
* 리바이는 어쨌든 그를 선택한 것은 자신이며, 정확히 말하면 "사적인 감정으로 엘빈이 죽을 장소를 고른 것"이라 말한다.
* 리바이는 아르민의 두 소꿉친구와 104기 동료들, 그리고 한지와 리바이, 그리고 아르민 자신도 포함해 누구도 후회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 서로 마음을 단단히 먹자고 하는데, 아르민은 대답은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다.
* 자신과 리바이, 엘런과 미카사가 한조가 되어 지하실로 향한다. 나머지 인원은 벽 위에서 경계한다.
* 무너졌던 집은 잡초 따위가 무성하게 자라 폐허가 되어 있다.
* 자물쇠를 열려는 엘런.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이어진다.
* "이 자물쇠의 열쇠가 아니야"
* 리바이는 자기가 열겠다고 나서는데, 다짜고짜 문짝을 부숴버린다.
* 엘런이 조심스럽게 열쇠를 끼워넣자 드디어 열쇠가 제 역할을 한다.
* 그러나 시민들의 환호와는 별개로, 귀환한 조사병단 생존자들의 모습은 어두워버리는데.
* 아르민은 엘빈을 대신해 살아버렸다는 것, 베르톨트를 먹어버렸다는건, 갑자기 거인화가 생겼다는 것 등등 혼란스러워 한다.
* 짐승거인 일행과 그리샤 때문에 벽 밖에도 인류가 살고 있다는 것 자체는 확인 되었지만 벽 안보다 발달된 문명을 영유하며 "우아"하게 살고 있다는건 뜻밖의 전개.
- 최다빈 . . . . 24회 일치
| 배우자 =
| 종목 = 여자 싱글
| 종합 날짜 = [[2018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2018년 동계 올림픽]]
| 쇼트 스케이트 날짜 = [[2018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2018년 동계 올림픽]]
| 프리 스케이트 날짜 = [[2018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 스포츠|여자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2017 삿포로]]|[[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여자 싱글]]}}
'''최다빈'''([[2000년]] [[1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다섯 번의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 은메달 세 개와 동메달 두 개를 차지했다. 2015-2016 주니어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시니어 데뷔 무대인 2016 4대륙 선수권에선 8위, 2017년 대회에선 5위, 2018년 대회에선 4위를 차지하며 꾸준히 순위를 높혔다. 본격적으로 시니어에 데뷔한 2016-2017 시즌엔 초반 부진을 딛고 2017 [[동계 아시안게임]](일본, 삿포로)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우승했고, 이어 열린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선 10위(Top10)에 오르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김연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인 7위에 올랐다.
2010년 한국종합선수권 여자싱글 노비스 부문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또한 2012년, 2013년 연속으로 한국종합선수권 여자싱글 시니어 부문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기록이 있다.
2015-2016 시즌에 마지막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생애 처음으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보였다. 처음 출전한 라트비아 리가 그랑프리에서 3위, 이어 출전한 오스트리아 린츠 그랑프리에서 역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4차 대회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선수가 많아 메달 입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정신력, 안정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시니어 첫 데뷔 무대에선 극심한 긴장감으로 8위(탈린 트로피)를 차지했으나 회장배 랭킹전에서 다시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고 2016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8위, 그리고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보스턴)에서 14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최다빈은 2차 대회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선전했으나 종합 7위에 머물렀고 6차 대회인 [[NHK 트로피]]에서는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종합 9위에 그쳤다. 이후 랭킹전에선 [[박소연]]에 이어 5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티켓을 놓쳤다. 또한 2017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도 동료 선수인 [[김나현]]에 밀려 종합 4위를 차지해 메달 획득 및 피겨 세계선수권 티켓 역시 놓치고 말았다. 시즌 초중반 잇따른 악재로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절치부심하여 이어 출전한 동계체전 고등부 피겨 여자싱글 1위를 차지했다.
최다빈은 [[4대륙 선수권]]을 앞두고 쇼트프로그램 음악 변경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는데, 기존의 음악 '맘보'를 스티븐 유니버스 ost 'It's over, isn't it?'과 '라라랜드 ost 中 Someone in the crowd'로 바꾸고 경기에 출전했다. 그 결과 4대륙 쇼트에서 자신의 개인 최고점을 경신(61.62)하는 성과를 보였고, '닥터 지바고'에 맞춰 선보인 프리 경기에서도 약간의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개인 최고점(120.79)을 내며 종합 점수 기록도 갈아치웠다. (182.41) 특히나 이때 프리스케이팅의 기록은 [[김연아]] 선수 이후 대한민국 피겨 선수 프리스케이팅 최고점이기도 했다.
[[박소연]]의 부상으로 대체 출전하게 된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선 쇼트는 개인 최고에 조금 못미치는 61.30을 받았으나 클린했고 프리스케이팅에선 트리플 살코의 언더 판정을 제외하곤 모두 완벽한 경기를 선보여 프리 기록 126.24점 합계 187.54라는 개인 최고기록을 또 한 번 경신시켰다. 또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 여자싱글에서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이 대회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2011년 [[곽민정]]이 동메달을 딴 것이다.
이어 [[김나현]]의 부상이 심해져 또 한번 대체 출전하게 된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헬싱키)에선 쇼트에서 클린 연기를 선보여 62.66을 받았고 또 한번 쇼트 개인 최고를 경신했다. 쇼트 11위로 한 순위만 끌어올리면 올림픽 티켓 2장을 확보하는 상황에서 프리 클린으로 128.45를 받아 프리 역시 개인 최고를 경신하였으며 종합 191.11을 기록해 종합 점수도 갈아치움과 동시에 [[김연아]] 이후 프리, 종합 점수 최고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했던 종합 순위에서 당당히 10위를 차지해 올림픽 여자싱글 티켓 2장을 가져오는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 [[닥터 지바고 (영화)|닥터 지바고]] <br>{{small| by [[모리스 자레]] <br> choreo. by 파스퀘일 카멜렝고 }}
* [[닥터 지바고 (영화)|닥터 지바고]] <br>{{small| by [[모리스 자레]] <br> choreo. by 파스퀘일 카멜렝고 }}
| [[2018년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강릉)
- 추자현 . . . . 24회 일치
{{구별|[[추자면]]}}
| 이름 = 추자현
| 배우자 = [[조동혁]] ([[2017년]] ~ 현재)
| 자녀 = 1남
| 웹사이트 =[http://cafe.daum.net/choojahyun 추자현 공식 팬카페]
| 가족사항 = 아버지[[김석원 (기업인)]] 자녀[[왕재민]]
'''추자현'''({{본명|추은주}}, [[1979년]] [[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12년 [[중국]] [[드라마]] '마랄여우적행복시광'에 [[중국]] 배우 [[조동혁]]과 함께 출연하여 연인으로 발전<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8&aid=0002595616 추자현, 조동혁과 4월 아닌 올 하반기 결혼 "일정 때문"] 스타뉴스. 2017년 03월 07일</ref>, 2016년 9월 연인 관계임을 알렸다. 2017년 1월 18일에 배우 조동혁과 혼인신고를 했다.<ref>{{웹 인용|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996073|제목=[룩@차이나] "조동혁♥추자현, 1월 18일 결혼" 中매체 관심 보도|언어=ko-KR|확인날짜=2018-03-26}}</ref>
* [[1998년]] [[MBC]] 일일시트콤 《[[남자셋 여자셋]]》
* [[1999년]] [[SBS]] 일요드라마 《[[카이스트 (드라마)|카이스트]]》 ... 추자현 역
* [[2000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죽기 위해 사는 남자》 ... 수정 역
* [[2001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남과여|오픈드라마 남과 여]] - 매일 벗는 남자》 ... 은경 역
* [[2003년]] [[SBS]] 일일시트콤 《[[압구정 종갓집]]》 ... 첫째 딸, 백자현 역
* [[2004년]] [[KBS2]]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순영]]》 ... 허송자 역
* [[2006년]] 제9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신인 연기자상 《[[사생결단]]》
* [[2009년 11월]] 제17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여자 우수상
{{둘러보기 상자 묶음
|title = 추자현의 수상 목록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여자신인연기}}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인지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1996년 데뷔]][[분류:추계 추씨]]
- 카치구미 . . . . 24회 일치
* 카치구미(勝ち組)는 '승자조'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어떠한 분야,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 반댓말은 마케구미(負け組)로서 '패자조'라는 의미이다. 21세기에는 [[연애]]나 [[인생]] 같은 분야에서도 흔히 쓰이게 되었으며, 특히 [[중산층]]이 '격차사회'가 되면서 '카치구미'에는 '인생의 승자', '성공한 1%' 같은 의미가 따라붙게 되었다. 한편, 또 다른 의미의 '카치구미'가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이겼다고 믿었던 브라질의 일본인 이민자 그룹'''. 간단히 말하자면 '''미친놈들'''(…) 1945년 부터 브라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가운데 90% 가량이 일본의 승리를 믿고 발광과 폭동을 벌였던, 미친 사건이다.
일본의 승리를 믿었던 자들은 자신들을 카치구미(勝ち組), 반대로 패배했다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있었던 사람을 '마케구미(負け組)'라고 부르며 적대시했다. 혹은 전승파(戦勝派)나 신념파(信念派)라고도 한다.
일본어로 출판이나 언론 활동을 할 수 없고, 일본인끼리 모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일본어 학교는 폐쇄되었다. 1942년에는 브라질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 외교관들도 [[포로 교환]]으로 일본으로 귀국하여, 완전히 본국과 연결이 단절되었다. 또 이 당시 [[포르투갈어]]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은 숫자가 적었으며, 지식인과 브라질 사회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오지에서 농장에 종사하고 있었다.
적대국 국민으로서 브라질 정부에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일본계 이민자들은 '일본의 승리'만이 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국의 8배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누보자키(犬吠崎沖) 앞바다에 집결해있던 미국, 영국 함대 400 척이 전멸.
1945년 8월이 되자 당연히 패전 소식이 퍼졌으나, 곧 '일본의 패전은 루머다'라는 소식으로 바뀌었고, 이게 거꾸로 뒤집혀서 '일본이 이겼다'는 루머가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독일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박하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섞으면 폭발력이 300배가 된다. 화염방사기에 혼합하면 화력이 몇 배로 늘어난다. 독가스에 혼합하면 방독면도 효과가 없게 된다.
이 같은 테러 행위를 벌이던 카치구미 과격파는 자신들을 특행대(特行隊)라고 불렀다. 본래 특공대(特攻隊)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브라질에서 라디오 소리만으로 일본의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톳코다이(とっこうたい)'의 한자를 알지 못해서 같은 코우(こう)를 쓰는 '행(行)'자를 잘못 쓴 것으로 추측된다. 카치구미는 전시중에는 국가에 도움이 되지 못했으나, 마케구미를 살해하여 드디어 나라에 도움을 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일본인과 브라질 시민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발생하여, 7월 30일에서 8월 2일 까지는 파울리스타 선 오스왈드 드 크루즈 시에서 일본인과 브라질 시민 사이에서 대규모 난투극이 벌어져 살해까지 일어났다.
패전 이후, 1946년 1월 일본은 새 화폐로 전환했으나, 브라질 국내에는 아직 구 일본 화폐가 남아 있었다. 일본 구화폐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외환으로 환전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겼다는 소문을 퍼트려서 귀국하려는 일본인들에게 구 일본화폐를 파는 사기였다. 귀국하려는 일본인의 땅, 집, 가축, 그리고 브라질 화폐를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구 일본 화폐로 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휴지]](…)와 전재산을 바꿔버리고 전 재산을 잃고 자살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심지어 "일본에서 온 황족"을 자칭하고 일본의 승리를 축하하며, 현지 일본인에게 헌금을 받고 그대로 도주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브라질의 신문,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보는 점점 일본인 사회에도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를 알아도 카치구미는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카치구미를 내버려두면 브라질에서 일본인은 서로 죽이거나, 사기를 거듭하며 일본인 사회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일본인, 일본계 브라질인 가운데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카치구미를 설득하고자 했는데, 이를 '인식파'라고 불렀다.
1945년 10월 3일, 브라질 일본인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인사였던 미야코시 치바타(宮腰千葉太)가 일본에서 종전을 알리는 문서와 외상이 해외 일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만국 적십자사 브라질 지부를 통하여 받았다.
미야코시는 유력자들을 모아서 문서를 공개하고, 일본이 미국에 패배했다는 것을 알렸다. 미야코시는 즉시 카치구미에게 '''비국민(非国民), 국적(国賊)'''으로 몰려서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본래 각지를 강연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문서를 인쇄하여 반포하였다.
10월 19일에 인식파는 상파울루의 미국 총영사관에 일본으로부터 [[신문]], [[잡지]]를 주문해달라고 의뢰하여, 1946년 3월 16일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이를 각 도시에 배포했다. 하지만 3월 이후에는 카치구미가 더욱 과격화하여 '특행대'가 조직되고 일본계 사회 지도층과 인식파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습격을 당하게 되었다.
- 토리코/371화 . . . . 24회 일치
* 토리코는 아카시아를 대면하자마자 극도로 분노한다.
* 아카시아는 자신을 알아보는 걸 보고 "나도 유명한 모양이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 코코는 "교과서에서 배우던 인물로 어떤 권력자보다 큰 명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설마 살아있었을 줄이야"라고 놀라워한다.
* 지로가 싸우면서 생긴 거대한 진동이 갑자기 사라졌고 네오가 나타난 이후 갑자기 지로의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
* 다시금 "어째서 제자를 죽였는가"라고 묻는 토리코.
* 아카시아는 이에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이미 처음 먹은 식재 같은건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건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 도저히 쫓아낼 수 없는 존재였다.
* 자기는 누구이며 이 괴물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되풀이하며 식욕에 휘둘려 왔다.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세상의 식재를 모두 먹어채운 뒤였다.
* 아카시아는 자신이 도망쳐 도착한 곳이 끝이 아니라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 그는 단지 "나는 누구인가"가 알고 싶은 것이라며, 지로의 죽음도 운명이었고 자신의 운명의 곁에서 GOD가 빛나고 있다고 말한다.
* "아니 어쩌면 GOD는..."이라고 말을 잇는데 갑자기 토리코가 멱살을 잡는다.
* 토리코는 "뭐든 식욕 탓, 구르메 세포 탓만 한다"고 일갈하며 "너는 쓰레기고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분노도 식욕이 아닌 나의 것"이라고 비난한다.
* 아카시아는 자신을 미식신이라 칭하며 자신에게서 전우주 최고의 미식가의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 아카시아가 네놈은 대체 뭐냐고 하자, 코코가 끼어들어 "이 남자는 토리코"이고 "그리고 우리는 사천왕. 당신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 아카시아는 토리코나 사천왕이 자신을 앞에 두고도 위축되질 않자 "희망, 그 상판에 드리운 감정, 가장 역겨운 맛이다"라며 위협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 먹은 늙은 니트로(지지)로 그렇고 죽기 직전까지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다.
* 단 0.1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에도 지지는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 토리코에겐 후각으로 제브라에겐 청격으로 코코에겐 전자파, 써니에겐 진동으로 필사의 메시지를 정한 것.
* 코코는 죠아는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죠아는 "너희같은 버러지를 상대나 해줄 것 같냐"며 토카게를 써서 누군가를 소환한다.
* 죠아는 미도라를 꺾은 공적을 자랑하고 싶었나 본데 토리코는 단칼에 평가절하한다.
* 플로제 사후의 정황이 좀 더 자세하게 묘사된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24회 일치
* 공성 기술자의 작업장(Siege Engineer's Workshop)을 건설할 수 있게 됨
>무사가 검과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 키쇼 닌자를 제외하고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모든 부대의 숙련도 등급 +1
* 공성 기술자의 작업장(Siege Engineer's Workshop)을 화약제조소(Powder Maker)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현명한 사람은 확신을 했을 때에만 자신의 검을 뽑는다.
* 일부 부대가 반자이!(Banzai!)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됨
>바다는 남자에 의해 더 잔인해지는 애인 같은 존재이다.
* 선교자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그들이 재미나게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비극, 웃음, 영웅적 자질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은신술 훈련은 그림자 속에서 다니는 자와 이런 자의 주인에게 이득을 준다.
* 닌주츠 수련장(Ninjutsu School)을 닌자 집단 요새(Ninja Clan Fortress)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닌자의 행동스킬 비용 -20%
>매는 자신의 부리가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경제자립(Economy Independence) ====
>광명의 빛이더라도 그림자를 떨궈낼 수 없다.
* 닌자의 행동스킬 성공확률 +10%
>비록 날을 잡을 순 없을지라도, 황금은 사람의 영혼을 자를 수 있다.
* 산 암자(Mountain Heritage)를 요새화 사찰(Fortified Monastery)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모두 사람들이 자신의 분수를 알 때, 명료함과 올바른 조화가 존재한다.
* 경제자립(Economy Independence), 서예(Calligraphy) 세력 기술 요구
- 페어리 테일/515화 . . . . 24회 일치
* 모든 명예와 인권을 빼앗긴 아이린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뱃속의 [[엘자 스칼렛]]을 지키며 버틴다.
* 그러나 장군은 끝내 아이린을 처형하려 들고 뱃속의 아이까지 살해하려 하자 아이린은 완전히 용화해서 그 나라를 멸망시켜 버린다.
* 인격이 무너지다시피한 아이린은 그때까지 낳지 않고 있던 엘자에게 생각이 미쳐 "나 자신을 아이에게 인챈트한다면?"이라고 여기기에 이른다.
*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을 인챈트하려는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아이린은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 아이를 버린다.
* 모든 것을 알게 된 엘자는 "그 덕에 진짜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며" 심심한 감사를 전하며 전의도 함께 나타낸다.
*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남편이자 [[엘자 스칼렛]]의 아버지는 옆나라의 장군이었다. 아직 용왕제가 시작되기도 전, 인간끼리 전쟁하던 시절에 한 정략결혼이었다. 용왕제 시절에는 함께 전장에 서기도 하고 함께 현룡 베르세리온의 최후를 지켜보기도 했던 사람이다.
* 전쟁이 끝난 이후 일주일만에 장군은 아이린을 배신한다. 그녀가 용화되고 있는 것을 근거로 괴물이며 아크놀로기아처럼 될 거라고 선동에 앞장선다. 아이린은 자신은 인간이라고 주장하며 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하려고 한다. 뱃속에 그의 아이가 있다고 항변해 보지만 장군은 냉정하게 "나에게 괴물의 아이는 없다"며 떨쳐낸다. 그는 이제 아이린을 "용녀"라고만 부른다.
나름대로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린에겐 그저 인간의 모습을 잃었다는 절망감만 가득하다. 아이린은 여전히 자신은 인간이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살 수 없다며 몸부림친다. 도움을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는 아이린. 그러나 그 모습으로 수백 년이나 흐르고 만다. 엘자는 여전히 뱃속에 있는 채로.
*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레프가 경고한 것은 빠르게, 치명적으로 체감됐다. 아이린은 무엇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고 잠도 오지 않았으며 무엇을 해도 인간으로 느끼던 감각과 달랐다. 아이린은 자신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던 것이고,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는걸 깨닫게 된다. 제레프는 그것을 예측했기에 "넌 이미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린은 그걸 부정하며 자신은 인간이라고 고집을 부린다.
>태어날 아이에게 나 자신을 인챈트하면 인간의 몸을 손에 넣을 수 있는거 아니야?
>하나가 되자 나의 아이야.
* 패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실험. 엘자와 [[웬디 마벨]]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아이린은 아주 태연한 태도로 실패했고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엘자는 그 버린 마을이 로즈베리 마을이었냐고 확인하는데 아이린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 엘자는 어쨌거나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아이린은 쓰레기의 감사는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듣고 있던 웬디가 화를 내는데 정작 엘자는 담담한 태도로 말을 잇는다.
엘자는 새로운 무기를 꺼내며 저항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아이린이 위악하는 것이고 실제론 차마 자기 아이를 이용할 수 없어 실험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페어리 테일에는 막장부모가 워낙에 많이 나오고 그 중엔 진짜로 사악한 인물도 있었던 만큼 어떻게 될지 아직은 미지수.
현재 아이린은 멸룡마도사의 능력을 잃지 않았을 텐데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떡밥이 되고 있다. 또 실제론 엘자에게 멸룡마도사의 능력이 유전된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아이린의 남편으로는 여러 사람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엑스트라로 낙찰. 그래도 한 나라의 장군이고 멸룡마도사인 아이린을 제압할 수 있는 정도였으면 제법 강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용화가 됐다고 아이린을 헌신짝처럼 버린데다 학대하기까지 했으니 이 세계관 최악의 쓰레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아이린의 흑화는 이 인간 때문에 시작된 거고 그 아이린이 현재 작중 벌이고 있는 악행을 생각하면 거의 원흉급.
- 페어리 테일/520화 . . . . 24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죽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웬디 마벨]]에게 [[마카로프 드레아]]의 사망을 전한다.
* 나츠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인간"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정하자 두 싹은 자연히 소멸하고 나츠는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 비색의 절망, 최강의 여마도사 [[아이린 베르세리온]]이 마침내 쓰러졌다. 악마같아 보였던 그녀도 결국 모성애를 끊어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엘자 스칼렛]]이 그녀를 보는 표정은 복잡하다. 그녀는 쓰러진 채로 뒤늦은 작별인사를 건넨다.
*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웬디 마벨]]이 엘자를 챙기러 온다. 웬디가 괜찮냐고 묻자 엘자는 웬디야 말로 괜찮냐고 묻는다. 하지만 웬디는 정신적인 부분을 묻는 거였다. 엘자는 괜찮다며 아이린도 그저 외로운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부모는 [[마카로프 드레아|마스터]] 한 사람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때 웬디가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며 마카로프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게됐다고 말한다. 웬디는 아직도 마카로스의 사정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엘자는 웬디를 끌어안으며 "괜찮아, 내가 있어"라고 말한다. 그 말 뜻을 이해한 웬디는 믿겨하지 않으면서도 울음을 터뜨린다.
* 한편 심상세계의 [[나츠 드래그닐]]은 아버지 [[이그닐]]에게 자신의 사망 선고를 듣는다. 그의 안에 있는 END의 싹과 용의 싹이 뒤섞이면 더이상 "인간"으로 있을 수도 없게 된다. 나츠는 [[아크놀로기아]]나 [[제레프 드래그닐]]도 쓰러뜨리지 못했다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고 시무룩해한다. 그러자 이그닐이 한 대 쥐어박으며 "말을 끝까지 들으라"고 다그친다.
나츠는 마침내 제레프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곧 "선택"을 강요받게 될 거라며 살지 죽을지는 나츠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나치 그 말을 잠시 곱씹는다. 그러나 이그닐도 눈치챘듯 답은 이미 나와있다.
* 이그닐은 "뭐야, 정답을 잘 알고 있잖아"라고 중얼거린다. 나츠 안의 두 싹이 서서히 붕괴된다. 이그닐은 설사 악마의 힘으로 되살아나고 용인 자신이 길렀다 해도 나츠는 "인간"이라며 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두 싹을 키웠던 거라고 알려준다.
>자 이제 가라.
>자신의 다리로.
* 갑자기 일어난 나츠. 맨몸으로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있던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가 화들짝 놀란다. 나츠는 자다 깬 사람처럼 멀쩡하다. 루시와 해피가 기뻐서 얼싸안는데 나츠는 어리둥절하게 방 안을 둘러 보다 루시한테 왜 벗고 있냐고 묻는다.
나츠가 일어난 건 안 [[폴류시카]]가 나타나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던 거라고 칭찬 좀 해주라고 말한다. 나츠는 그말대로 루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신은 이제 "개운하다"며 상태가 완전히 나았다고 말한다. 루시는 해피에게 들은 대로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죽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나츠는 "왠지 괜찮을 거 같다"며 웃는다. 그는 심상세계에서 "인간으로 있기로 한 일"을 말해준다. 루시는 그정도 말로는 납득하지 못하지만 나츠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기억이 없는 동안 엘자와 [[그레이 풀버스터]]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며 둘의 안부를 묻는다. 해피는 엘자는 싸우고 있고 그레이는 옆 방에 있다고 알려준다.
* [[피오레 왕국]]은 원래 모습을 되찾고 페어리 테일 길드가 있는 매그놀리아도 원래 대로 돌아온다. 페어리 테일 일행은 모두 매그놀리아에 있었고 나츠와 루시 일행은 루시의 자택으로 이동된다.
>늘 지냈던 장소에서부터 늘 걸었던 길을 지나가자고.
- 페어리 테일/522화 . . . . 24회 일치
* 그는 최후이자 비장의 수, "로스트 아이스드 셸"을 준비하는데.
* 의외로 제레프는 [[나츠 드래그닐]]의 주변인물에 대해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레이가 제레프 자신이 만든 악마 데리오라에 의해 양친을 잃고 마침내 스승 [[울(페어리 테일)|울]]조차 잃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원한이 있다는걸 정확히 알았다. 그레이는 그런 것도 아는건 의외라고 말하는데, 제레프는 "적의 정보를 파악하는게 전쟁의 기본"이라 대답한다.
그 뿐만 아니라 [[루시 하트필리아]]도 루시 자신이 아는 것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녀의 조상이고 나츠의 심상세계에서도 나타났던 "안나"라는 여인은 제레프의 친구였다. 안나가 갓난아기였던 나츠를 키우는데 일조했듯 후손인 루시도 지금의 나츠를 성장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엘자 스칼렛]], [[가질 레드폭스]], [[웬디 마벨]] 등등. 제레프는 나츠와 관련된 주요 인물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 그레이는 그런데 비하면, 자신들은 정말로 제레프에 대해 아는게 없다며 그의 진짜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 제레프는 그런 걸 알 필요가 있냐면서도 "목적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마력"이라고 순순히 대답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미 불사에 저만한 군대와 권력까지 가진 그가 그런게 왜 필요하냐고 재차 묻고, 이번에도 제레프는 순순히 대답한다.
뜻밖의 대답에 그레이가 놀라자 다시 "그렇게 말하면 협력해줄 거냐"며 장난을 친다. 그레이가 화내자 "거짓말은 아니다"며 최종적으론 정말 아크놀로기아도 쓰러뜨릴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바람은 "그렇게 작은 것"이 아니라고 덧붙이는데.
* 폐허가 된 대성당. [[길다트 클라이브]]는 스프리건 12 최강이자 최후인 [[오거스트]]와 맞선다.
* 오거스트는 한술 더 떠서 그 산산조각난 몸을 날려 돌격해 온다. 분해된 채로 퍼즐조각처럼 날아온 오거스트는 길다트의 눈 앞에서 재조립, 온전한 신체로 돌아오면서 반격의 주먹을 먹인다. 길다트는 멀리 날아가 처박히고 오거스트는 자신을 이기는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 페어리 테일 길드에서는 그레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서있다. 제레프가 밝힌 자신의 "진짜 목적"은 그레이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도, 가능하다고 여길 만한 것도 아니었다. 제레프는 이것은 스프리건 12에게도 밝힌 적이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레이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자 제레프는 메이비스의 "페어리 하트"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며, 이런 말을 그에게 하는건 "나츠가 이리 오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나츠가 도착했을 때 친구가 죽어있다면, 분명 그는 자신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 것이다. 그게 제레프가 진짜 힘을 내는 나츠와 싸울 최후의 찬스. 그레이는 그걸 위한 파츠인 것이다.
* 그레이는 오히려 나츠가 도착하기 전에 없어지는건 제레프라고 받아친다. 제레프는 불사자인 자신을 죽일 자는 없고, 설사 그런게 성공해도 자신이 죽으면 나츠도 죽을 거라고 말한다. 그레이가 순순히 그럴 거라고 수긍하자 그가 나츠의 정체, END에 대해 알고 있는걸 보고 흥미로워한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양친과 스승의 죽음으로 원망할 대상을 찾고 있었고, 그게 END였다.
>그렇기에 나혼자의 목숨이 아니라는 것 정돈 알고 있어.
제레프는 그레이 주변에 넘쳐나는 심상치 않은 마력의 정체를 알고 있다. "로스트 속성". 그레이는 자신의 생명에 자신의 운명과 존재 그 자체까지 버릴 각오로 이 마법을 준비한다.
- 하이큐/245화 . . . . 24회 일치
* 그 자리에 [[카게야마 토비오]]도 우연히 합류해 통성명을 하게 된다.
* 호시우미는 경기 중 작은 키를 언급하는 기자에게 "작으면 배구를 할 수 없냐"고 따지는 둥 다소 사고뭉치
* 상황을 종결시킨 것은 마침 매점에 들른 [[카게야마 토비오]]다. 카게야마는 전일본 유스에서 만났던 호시우미를 알아본다. 카게야마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호시우미도 인사하며 시합결과를 묻는다. 카게야마가 이겼다고 하자 축하해준다.
카게야마는 정직으로 호시우미를 소개한다. 카모메다이 학원 2학년인 호시우미 코라이. 등번호 5번에 포지션은 WS고 키는 불과 169cm. 전일본 유스에선 카게야마 앞에서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히나타의 성장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 상대를 의식한건 히나타 뿐이 아니었다. 호시우미는 소개를 끝내자마자 히나타에게 포지션과 키에 대해 묻는다. 히나타는 경쟁의식 때문인지 포지션은 제대로 MB라고 대지만 키에 대해서는 165cm라고 살작 반올림해서 대답한다. 원래는 아직도 164cm. 호시우미는 최고도달점도 묻는데 현재 히나타는 333cm다. 호시우미는 그 대답을 듣고 이겼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카게야마의 묘사처럼 "동", 하고 뛰어 오른 호시우미가 상대측 블록의 위에서 스파이크를 꽂아넣는다. 야마구치는 그 점이 대단하다며 혹시 잡지 같은데 실린 적은 없냐고 묻는다. 옆에 있던 카게야마는 그가 취재받는걸 싫어해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해준다. 히나타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 호시우미는 그저 점프가 대단한 스파이커가 아니다. 수비면에서도 리시브와 블록, 위치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활약하는 좋은 선수다.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그는 중계진도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빛나는 활약을 한다. 그 플레이에 관중들까지 단숨에 팬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서브 차례에서 깔끔한 점프 서브로 서브 에이스까지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전천후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랑 비슷한 조건으로 자기보다 훨씬 위를 달리는 녀석이 나타나는 걸 보는게 충격적이지 않을까?
* 경기는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카모메다이가 가져간다. 경기가 끝나자 수훈선수인 호시우미에게 여기자가 달라붙는다. 호시우미는 분명 취재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그녀가 그런 걸 알리가 없다. 평범하게 활약과 승리를 축하하는 말로 시작했지만 질문은 곧 호시우미가 질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니나 다를까 호시우미는 여기자의 질문에 발끈한다.
날선 반문에 여기자가 당황한다. 호시우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작아서 주목 받은 겁니까"라고 몰아세운다. 동료는 그가 제일 싫어하는건 "작아서 졌다"는 말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여기자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몰랐지만 몇 발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히나타가 그 문답을 보고 있었다.
* 호시우미의 동료는 이쯤에서 인터뷰를 끊는다. 그는 호시우미 대신 "말이 꼬인 것 같다. 죄송하다"고 기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호시우미에겐 "칭찬하는 사람은 사심없이 칭찬하는 거고 실제로 너 자신이 불리한 것도 자각하고 있고 그런데도 활약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거다. 넌 자의식 과잉이다"라고 속사포로 제재를 가한다. 동료가 호시우미를 달랑달랑 들어올리며 사과드리라고 하자 호시우미가 싫어하면서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면서 상황은 종료된다.
방금 전 인터뷰 직후 히나타의 흐뭇해 보이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카게야마도 전일본 유스에서도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전혀 쪼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묘하게 자신만만하고 충만한 태도가 싫다.
- Q.E.D. 증명종료 . . . . 23회 일치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에 무관심한 15세에 [[MIT]]를 졸업한 [[천재]]소년 [[토마 소]]가 일본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천재들이란...] 체력과 의욕이 넘치는 [[미즈하라 가나]]와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제목의 어원은 '증명 종료'라는 의미의 수학 용어 [[Q.E.D.]]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Q.E.D.라는 글자가 다양한 연출로 등장하는 게 특징. 알다시피 이는 [[엘러리 퀸]]의 버릇인데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는 처음에 이 문구를 넣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편집자로부터 "김전일의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같은 마무리 문구를 넣으라"는 조언을 듣고 생각해 냈다고 한다.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상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남기는 해결도 상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인물설정 때문인지 오일러의 공식이라든지 초끈이론이라든지 일반인으로서는 머리아픈 수학, 과학적 이론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는 건축과 출신으로 과학은 취미로서 좋아한다고 한다.[* 현학적이라 장점이자 단점. 팬들은 좋아하지만 골치아프다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화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타 추리물처럼 오류가 있다. 이를테면 4권에서 클란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공격한다는 장면에서 '''MIT'''출신자인 토마와 로키가 원자력 발전소, 미사일 사일로 등을 걱정하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 기술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어지간한 중요 시설은 '''물리적'''으로 일반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다.[* 즉 아예 물리적인 서버 자체가 따로 구축되어 있다. 은행권의 경우 인터넷 뱅킹 등으로 외부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틈을 노릴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개 전산망에 이어지는 회선 자체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폐쇄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한 [[스턱스넷]]과 같은 공격기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약정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뿐으로 외부에서 원격 조종하는 개념은 아니다.] 즉 직접 가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일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반인의 통념이라면 모르겠는데 '''MIT''' 현역이 저런 소리를 하니..
같은 작가의 [[C.M.B. 박물관 사건목록]]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극중에서 토마가 언급한 괴짜 사촌이 바로 박물관 사건목록의 주인공인 [[사카키 신라]]. 콜라보레이션 기획으로 두 작품의 주인공이 만나는 편도 있다. 이제까지 총 2번의 기획이 진행되었으며, 해당 단행본은 첫번째가 QED 28/CMB 6권[* 이 때는 서로 다른 사건을 쫓다가 마주하게 되었다. 사건이 성격이 각각 다르기에 둘의 지능에 우열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자기가 쫓는 사건이 아님에도 신라보다 진상 파악이 빨랐던 것으로 보이는 토마의 판정승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두번째가 최근의 QED 41/CMB 19권.[* 전편을 의식한 것인지, 이번엔 아예 각자의 두뇌를 한껏 활용하면서 말 그대로 정면충돌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예고편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뭇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밝혀진 결과물은 정면 충돌.
* 작품 초반부에는 주인공들이 어느정도 정상적인 시간 흐름을 보였지만 그 이후로는 자연스래 여타 추리 계열 만화들과 처럼 [[사자에상 시공]]에 접어들었다.
* [[로켓맨(만화)|로켓맨]]과 동시기에 연재되어서 그런지 캐릭터 디자인이 로켓맨과 매우 유사하다.
* 작품 자체의 소재가 일반인들은 접해보지 않은 개념들이 많아. 상당히 상식적인 면에서 읽어볼만하나 원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많기도 하고, 일본어 특유의 외국어 표기법(ex, 마구도나루도)으로 번역자가 그대로 해석해서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연속체 가설에서 만화책에서는 '아레후'라고 나오지만 제대로 된 명칭은 [[알레프]].
- 고소영 . . . . 23회 일치
가족관계는 1남1녀 중 둘째로 2살 위의 [[오빠]]를 두고 있다. 이후 고소영은 미남 배우 [[장동건]]과 결혼하여 마찬가지로 1남 1녀의 자녀를 두게 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빠]]-[[여동생]] 남매라는 점도 같다.
1993년 [[엄마의 바다]]에서 톡톡튀는 매력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1997년 '''영화 [[비트(한국 영화)|비트]]에서 여자주인공 '로미'역을 맡아 당대 남성들의 이상형이 되었으며''' 이 영화는 개봉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인 현재까지도 고소영의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다. 이런 과정 등을 거쳐 199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했으나 2000년대 들어 광고 모델로만 활약하고 그 외의 연기활동이 거의 없어 지명도가 떨어지던 중 2010년 5월 2일 [[장동건]]과 결혼,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장동건-고소영 결혼설이 뜨자 장동건은 알고 고소영은 몰랐던 장동건의 10대 팬들에게 [[듣보잡]] 취급 당하기도 했는데 이에 앞서 [[임창정]]과의 열애설이 있었으며 결국 1998년 MBC [[추억]]을 끝으로 드라마 출연이 한동안 뜸했었다.][* 오히려 중년층 이상에서 장동건에게 잘 어울리는 상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90년대에는 정말로 지금의 장동건에 전혀 꿀리지 않는, 인기의 정점에 있었기 때문. 어쩐지 결혼 후에 남편과 인기, 인지도가 역전 되어버린 [[쿠도 시즈카]]나 [[빅토리아 베컴]]이 연상되는 면도 있다.] 이 때문에 여자 [[연정훈]]이 되는가 싶었지만 고소영 역시 내로라하는 최고의 미녀스타였기 때문에 여자들의 주적 취급은 받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광고 모델이 주업인 배우'''로 손꼽힌다.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전도연이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데 반해 이쪽은 정말 발전이 없었다. 90년대 [[김희선]]처럼 연기폭이 좁은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를 못한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도 두사람이 같이 거론되지만 배우로서는 엄연히 김희선이 위다. 김희선은 브라운관안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연기력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은 90년대에도 선하고 청순 발랄한 캐릭터를 맡기면 대박을 터트렸고 원톱 주연을 맡아 완판을 기록했으며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을 덜받었을 뿐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같은 90년대 말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원숙함과 노력에 더해진 2010년대에는 진지한 역, 억척스러운 역, 우아한 역 다 해내면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1990년대에는 워낙 잘나가서 그런 얘기가 드물었지만 2002년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의 흥행 참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력 논란이 제기 됐으며, 이 논란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앞서 말한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없다시피한 것도 결국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연작 중 그나마 연기평이 좋았던 출연작은 [[강풀]]작가 웹툰 원작의 영화 [[아파트(영화)|아파트]] 정도.
[[김태희]]와 함께 CF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는 배우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결혼 이후에 이미지가 바뀌어서 [[김남주]], [[이영애]] 등 다른 여배우들이 독점하고 있던 주부 대상 광고 모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다시금 왕성한 활동 중이다.
2013년 2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KOSOYOUNG'을 런칭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신했다. 결혼 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빅토리아 베컴]]을 연상케 하기도.
* 2015년 9월부터 [[J TRUST]]의 모델이 되어 TV 광고에 출연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77&aid=0003578730|#]]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배우가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논란이 일었으며 이런 논란에 대해 '''그저 이미지 광고에 출연하는 것 뿐'''이란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해명하는 바람에 팬들의 비판이 더욱 들끓었다. 연예계 관계자 중 한명도 고소영 본인뿐만 아니라 남편인 장동건 또한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반응과 함께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는 평이 나왔다. 더구나 [[상호저축은행|저축은행]] 항목에도 나와있는 광고 규제책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광고로 출연한 탓에 그 또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중이다. 고소영은 사건이 생긴 지 '''2일 뒤에 사과하였고 광고 계약도 취소'''하였다. 여러모로 한국에서의 대부업체의 이미지를 알 수 있는 대목.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태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드라마 초반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배우 [[이혜영(1971)|이혜영]]과 매우 친하다. 결혼식 때 부케를 받은 사람도 이혜영으로, 당시 이혼했던 이혜영은 부케 부탁을 받고 왜 하필 나냐고 당황하면서도 너무 고마웠다는 듯. 2018년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이혜영이 고소영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 목소리와 말투가 나왔는데, 약간 하이톤에 발랄한 말투[* 이혜영 왈 약간 오리같은 [[현영]]타입라고 한다]라서 출연진 모두 깜짝 놀랐다. 방송이란 걸 알게되자 급변하는 목소리톤이 인상적.
* [[아들의 여자]] (1994, MBC) - 최수정
* [[별]] (1996, MBC) - 장혜미[* 드라마 자체는 SF에 스릴러 느낌을 담았으며, 정확하게는 사고로 지구에 표류한 외계인 과학자다. 극중 장혜미는 드라마 초반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으며, 과학자 외계인이 지구에서 지구인들의 눈을 피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려고 죽은 장혜미에게 빙의했다. 같이 주인공으로 나온 모델 이소라는 살아있지만 마찬가지로 외계인 군인에게 빙의당해 행동을 같이한다.]
* [[여자]] (1997, SBS) - 민지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모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분류:1990년 출생]]
- 김원주(가수) . . . . 23회 일치
[[분류:한국 남가수]][[분류:정읍시 출신 인물]][[분류:1987년 출생]][[분류:200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 포지션 ''' ||<(> 리드보컬[* 리더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진게 없어서 누가 리더인지도 불분명하고 리더 자리가 공석인지도 알려진게 없다.][* 공식 팬카페에 리드보컬이라고 올라왔다.] ||
지아와 같이 부른 '울고불고'에선 랩을 했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이 랩을 하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카더라]]..~~
[[2011년]] 하반기 포맨 신용재와 MIII의 노래인 '그남자 그여자'의 MV에 출연해 [[달샤벳]]의 [[지율]]과 함께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다.데뷔 전 댄서 출신이어서 그런지 춤을 잘춘다.[* 지금도 단독 콘서트에서 솔로무대를 할때 가끔 춤을 보여주는데, 당시 댄서로 활동하던 댄스팀 이름은 레볼루션이었다고 한다.]
자존심이 강해서 지는 걸 싫어하는지 [[불후의 명곡]]에 그룹 포맨 전원으로 첫 출연했을 때 4표 차이로 [[1승만 하라고 스막 시발들아|1승조차 못하자]] 얼굴이 빨개지고 잠을 못 잤다고 하며 한 번 [[실수]]를 하면 그 [[실수]]가 계속 생각난다고 한다. 그 뒤 2번째 출연 때는 우승했다.
어떤 지인의 말에 따르면, 뭐든지 둔하지만 집착은 있는 편이라서 자신이 궁금한 거는 못 참아서 끝까지 알아내지만 모든 걸 다 알아버리면 관심을 놓아버린다고 한다.
늘 하던 익숙한 일을 잘 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며 남들 눈을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회사에 요청을 계속 했다는 걸로 보면 자신이 원하는 건 하고 싶다는 의욕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인이 밝힌 바론 고음이 약한 편이라 중저음역대인 파트를 자주 부른다. 주로 도입부 파트를 부르는 편이지만 브릿지 부분이나 훅 부분을 부르기도 한다.
* 첫사랑과 사귈 때 100일 이벤트를 나름 준비했으나 [[실연]]을 당한 뒤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들으며 울었다고 한다.[* 첫사랑은 고2(2004년)때 있었다고 말했는데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은 김원주가 22살 때인 2008년도에 나왔다. 아마도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인것으로 추측된다.]
* [[술]]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소속사 사장인 [[윤민수]]가 술을 마시자 하면 같이 마셔준다고 한다. 술을 마실때 안주를 많이 시켜서 직원들은 좋아하는데 같이 마시는 사람들은 싫어한다고 한다.
* 배우 [[유진(배우)|유진]], [[이민정]], 가수 [[전효성]], [[임정희]]가 이상형이라고 한다. --자신은 얼굴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소심한 성격이라서 밝은 성격의 여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 [[새벽]] 4시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는 [[올빼미족]]이다.[* 개인팬카페에 있던 프로필의 내용인데 2010년도 프로필이라서 아직도 올빼미족인지는 불분명. 하지만 팬들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올빼미족인듯 하다.]
* 2015년 11월 10일에 군에 입대해서 육군 군악대에서 자대생활을 마치고 2017년 8월 9일 전역했다.[* 원래는 9월 쯤에 입대하려 했으나 영장이 발부되지 않아 연기됐다.]
* 전역 이후 복면가왕 66차 경연에서 [[누르면 나옵니다 노래자판기]]라는 가명으로 참여해서 준결승에 올랐다.([[내맘을 들었다 놨다 인형뽑기]]에게 승리, [[널 깨물어주고 싶어 초록악어]]에게 패배[* 참고로 이 대결에서는 [[뜨거운 심장 양철로봇|가왕을]] [[신비주의 아기천사|배출]]한 그룹의 팀원이 대결했다.]) 그는 전역 이후 솔로 무대는 처음이고 떠나간 팬들이 이 무대를 보고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참고로 이 경연에서 그와 같이 듀엣으로 [[잘자요 꿈의 요정 드림캐처|음반 활동을 했던 가수]]도 참여했으며 가왕 도전자가 되었다.
* 그 남자 그 여자
* 겨울연가 [* 멤버중 첫번째로 OST가 아닌 자신의 음반을 냈다.]
- 김혜은(탤런트) . . . . 23회 일치
||<bgcolor=#405366> {{{#FFFFFF '''가족'''}}} ||<(> 남동생 김지호^^(1976년생)^^, 배우자 김인수, 딸 김가은 ||
[[기상캐스터]] 출신의 배우. [[전라남도|전남]]에서 태어나 여수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1997년 [[MBC]]에 지원했다가 2명만 뽑는 [[아나운서]] 시험에서 [[김주하]], [[방현주]]에 이어 3등을 하는 바람에 [[청주문화방송|청주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와 기상캐스터와 [[뉴스데스크]] 메인 기상 캐스터로 활약했으며, 2004년 8년 간의 기상캐스터 생활을 정리하고 퇴사했다.
2002년 MBC 청춘시트콤 《논스톱 3》에 출연했으며, 2004년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명세빈]]의 친구로 깜짝 출연했다가 6회분에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접했다. MBC 퇴사를 결심한 후 3년간의 휴식기를 갖고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2007년 MBC 일일극 《아현동 마님》 에서 성악과 출신 맏며느리 역할을 맡아 연기자로 데뷔했다.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담으로 나름 [[신데렐라]] 인생을 살았다. 성악을 접고 방황하던 시절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이 때부터 시가의 눈치를 보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필 이 때 [[유산]]해 버린 지라 바닥까지 갈 뻔했다. 물론 이후 연기자로서 재기하고, 딸 가은 양을 출산하며 극복해 냈다.
드라마에서는 [[김인영(각본가)|김인영]] 작가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ex. 결혼하고 싶은 여자, 태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 착하지 않은 여자들) --본격 여자 시리즈 전문배우--
|| 2004년 || MBC || [[결혼하고 싶은 여자]] || 신영의 친구 || 특별출연 ||
|| 2008년 || [[KBS 2TV|KBS2]] || [[태양의 여자]] || 장시은 || ||
||<|3> 2012년 || KBS2 || [[적도의 남자]] || 박윤주 || ||
|| KBS2 || [[해운대 연인들]] || 육탐희 (육복자) || ||
||<|2> 2013년 ||<|2> MBC ||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 || 황자몽 || ||
|| KBS2 || [[착하지 않은 여자들]] || 안종미 || ||
|| 2018~2019년 || tvN || [[남자친구(드라마)|남자친구]] || 김선주 || ||
|| 2014년 || [[남자가 사랑할 때(영화)|남자가 사랑할 때]] || 미영 || ||
||<|2> 2017년 || [[특별시민]] || TV토론 사회자 || 우정출연 ||
|| 2014년 || 제3회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 || 여자 조연상 || 밀회 ||
[[악역 연기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23회 일치
* 시끌벅적하게 시작한 기숙사 생활. 학생들은 [[아이자와 쇼타]]에게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인턴제도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 인턴제도는 직업 체험과 비슷한 제도로 임시면허 취득자를 대상으로 졸업 전에 "정식 히어로 활동"을 행하는 제도.
*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자와 쇼타]]는 본격적으로 반별 조회시간을 통해 본격적인 신학기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아시도 미나]]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잡담을 한다. 대담하게도 [[아스이 츠유]]를 돌아보며 "그 얘기"가 없다고 소근거린다. 아이자와가 그걸 놓칠리 없다.
츠유는 정식으로 손을 들고 "히어로 인턴 제도"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그러자 [[세로 한타]]나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맞장구를 친다. 야오요로즈도 손을 들고 선배들도 하고 있는 제도라고 들었다며 질문을 더한다.
* 정식으로 질문을 받자 아이자와도 입을 연다. 원래 얘기해줄 생각이었다는데. 히어로 인턴은 한마디로 말해 "정식 히어로 활동". 프로 히어로와 협력하는 직업 체험을 본격화시킨 버전이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럼 웅영제 때 고생한건 의미가 없는거 아니냐고 아우성친다. 너무 격한 반응이라 [[사토 리키도]]가 진정시킨다. [[이이다 텐야]]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웅영제 때 스카웃을 받기 위해 아득바득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자와의 설명으론 바로 그 웅영제에게 쌓은 인맥에 기반한게 인턴제도다. 게다가 이건 수업도 직업 체험도 아니라 "진짜 히어로 활동"이기 때문에 미리 지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인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본래 사무실 별로 인턴을 모집하는 제도였지만 웅영고 학생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소 편법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아이자와의 설명을 들은 우라라카는 흥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앉는다.
인턴제도 자체는 임시면허를 딴 걸 전제로 한 것인데, 본래 임시면허는 따기 어려워서 이번처럼 1학년들이 대거 습득한 예가 적다. 빌런 활성화 등 사회적 문제도 있기 때문에 1학년들의 인턴제도 참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여기에 대해 제도에 참가 중인 3학년들의 경험담을 듣거나 하는 식으로 많은 사전 준비 작업이 이루어질 텐데, 아무튼 어른들이 차근차근 준비해줄 거라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하다 보니 수업이 시작돼 버렸다. 다음은 [[프레젠트 마이크]]의 영어 시간. 아이자와와 180도 차이나는 하이텐션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저녁이 돼서 학생들이 돌아오자 근신 상태의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미도리야는 쓰레기 처리를 자청하는데 [[키리시마 에지로]]가 마이크의 수업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투덜대거나 [[지로 쿄카]]와 [[오지로 마시라오]]와 인턴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걸 보고 뒤쳐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느낌을 캐치한 이이다는 "근신 군"이라 디스하며 나름대로 화낸다. 역시 규칙을 어긴 미도리야와 바쿠고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이다는 아이자와의 지시로 수업 내용을 전달하는건 금지됐다며 "뒤쳐진 느낌을 진하게 맛봐라"고 디스한다.
* 미도리야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와서까지 그 생각에 푹 빠져 있다. 중요한 학기 초에 수업을 빠져서 완전히 뒤처져 버리는게 아닌가 걱정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쓰레기장 근처에 다다르자 벽에서 묘한 것이 튀어나와 있는데... 왠지 사람 얼굴이다.
미도리야가 "뭐야"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이번엔 바닥에서 얼굴이 나타난다. 미도리야가 기겁하자 "놀라게 해서 미안한 짓을 했다! 놀래킬 생각으로 한 거지만!"이라며 껄껄 웃는다. 미도리야가 당황하며 당신은 뭐냐고 묻는데 "나도 가끔 모르겠다"고 얼빠진 대답을 한다.
* 그런 일과 초조함을 품은 채로, 바쿠고보다 한 발 먼저 교실에 복귀한다. 미도리야는 3일의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마침 아이자와는 미도리야도 돌아왔으니 인턴 제도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한다.
* 오늘은 인턴 제도가 직업 체험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현재 참가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아이자와는 바쁜 사람들을 일부러 초청했다며 새겨들으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불려온 선배들은 현 웅영고 내에서 "톱3"로 군림하고 있는 유망주들. 이른바 "빅3"다. 아이자와가 부르자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세 명의 선배들.
벽에 나타난 얼굴 쪽이 [[올마이트]]에게 소개됐던 후계자 감으로 보인다. 그는 미도리야에 대해서도 아는 듯 한데. 얼굴만큼은 올마이트의 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사하게 생겼다.
- 마기/345화 . . . . 23회 일치
* 알리바바는 이 돌을 모으면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판단, 자신으 [[모태솔로]]로 죽은 걸 고백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살아돌아가고 싶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고 그와 통성명한 [[와히드]], [[셋타]], [[테스]] 조차도 돌 쌓는 놀이나 하라며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포기 않고 보이는대로 현세로 돌아갈 방법을 묻고 다닌다. 테스는 셋타에게 "살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 셋타는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원래 그건 테스 또한 가지고 있던 거라고 대답한다.
*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그동안은 모르고 있었던 사실. 셋타와 와히드가 탄성을 내뱉는다. 오로지 무력하게 시간을 보냈던 그들에겐 그런걸 생각해볼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일깨워주자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사실이란걸 실감한다. 이들만이 아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하나둘 관심을 나타낸다. 무력하게 돌맹이만 쳐다보고 있던 공간에 활기가 퍼진다.
>'''나, 나는 한 번도 여자애랑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 알리바바의 생각대로 이곳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마법의 전문가들. 셋타가 돌맹이를 분석해서 여기에 연결된 것은 하얀 루프도 알마트란의 것이 아니라서 자신들이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결론낸다. 하지만 곧 다른 의견도 나오는데 어차피 사용할 것은 하얀 루프에 속한 알리바바이니 자신들의 적합성 문제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을 개발해야하지만.
버섯이 없는 사람들, 삶의 활기를 찾은 사람들이 늘어나자 테스도 이들을 관심있게 지켜본다. 테스는 마법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 아버지 와히드에게 "마법이란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묻는다. 육체파인 와히드는 한심하게도 "노력해서 만든다"는 하나마나한 대답이나 해서 셋타의 비아냥을 듣는다. 셋타가 "옛날부터 머리 쓰는건 나나 [[우고(마기)|우고]]한테 떠넘겼다"다고 빈정거리자 발끈해서 "나도 마법 정도는 할 수 있다"며 엄청난 의욕을 보인다.
알리바바를 현세로 돌려보낸다, 이 주제를 가지고 격렬한 토론의 물결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다. 테스가 어디를 둘러봐도 손짓까지 해가며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 뿐이다. 이제 무력하게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 연구할 거리가 생기자 이곳의 무한한 시간이 득이 됐다. 사람들은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가며 수식을 시험해 본다. 그 옆에는 와히드의 코치로 알리바바의 특훈이 시작됐다. 마법식을 짜도 알리바바가 발동을 못하면 허사다. 그래서 알리바바가 마법을 쓸 수 있게 훈련시키는 건데, 애초에 마법사가 아닌 그의 입장에선 돌에대고 명령을 하는 느낌이라 뜨악하기만 하다.
알리바바는 돌을 잔득 쌓아놓고 거기에 마법을 발동시키는 연습을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테스가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테스는 요령을 가르쳐주면서 알리바바가 만나고 싶다고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그런 사람은 아주 많고 그가 신세를 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테스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묻는데 알리바바가 벌써 돌아가셔서 안 계신다고 하자 슬프겠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테스가 죽던 당시 그의 어머니 [[화란]]이 슬퍼했던 일을 언급한다.
테스는 자신이 왜 그런 마음을 가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또 한 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건 아마 마법수식을 만들며 옥신각신하는 어른들의 변화와 같을 것이다. 알리바바는 그것을 보며 뭔가를 생각한다.
* 마법식 연구도 특훈도, 그리고 수인족들의 또 다른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수인들이 작업하던 것은 돌을 사용한 인공신체다. 거대한 석상 형태.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가려면 몸이 필요한데 이게 그걸 대신해줄 것이다.
* 알리바바는 셋타와 와히드의 특훈을 마쳤다. 그는 주변의 돌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있게 됐다. 하지만 그건 1단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만든 수식은 차원과 차원을 잇는 대마법이다. 그걸 통과해서 현세로 갈 것이다. 알리바바는 혹시 그걸 통해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냐고 묻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차원을 연결한다 해도 산 육신으로 버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마법인 셈. 지금부터 알리바바는 가짜 몸에 들어가서 연결된 차원을 건너가는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이곳 시간으로 100년, 혹은 200년으로 느껴질만큼 길고 험난한 훈련. 와히드는 그걸 견딜 수 있겠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곳엔 시간이 없으니 그저 알리바바의 체감상 그럴 뿐이다. 출발하는 날이 되자 와히드는 테스, 셋타와 함께 배웅하며 꼭 세상의 멸망을 막으면 좋겠다고 격려한다.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것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지금 세상은 죽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고 루프에 따라 격리된다. 알마트란시절 죽은 이들은 이 일 일라와 연결된 차원에, 현세에서 죽은 이들은 하얀 루프로 환원돼 "거대한 흐름"으로, 그리고 알 사멘처럼 타전된 자들은 검은 루프로 돌아간다. 알리바바는 이렇게 죽어서 뿔뿔히 흩어지기 보단 모든 이들을 이을 수 있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 말은 곧 이들이 자신의 그리운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재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셋타는 자신의 형 [[이스난]]을, 와히드와 테스는 화란을 만날 수 있다고 흥분한다. 와히드는 "은혜를 갚을 거면 빨리 말하는게 나았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한다. 그렇지만 알리바바는 이건 자기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것, 세상을 구하는 것, 무엇이 됐든 더이상 다른 누군가에게 이유를 갈구하지 않을 거라면서.
알리바바는 수인들이 만든 가짜 몸에 들어가 현세로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웅한다. 와히드와 셋타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덕분에 즐거웠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와히드는 혼자서 살아 돌아갈 걸 굳게 있는게 "그 녀석" 같다고 말하는데, 그러다 셋타와 함께 "설마"라며 웃어넘긴다.
- 마기/348화 . . . . 23회 일치
*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걸 넘어 "신드바드보다 대단한 사람"이라 자평하는 [[알리바바 사르쟈]]
* 알리바바는 자기 개인의 힘만으론 신드바드나 [[아르바(마기)|아르바]]보다 못하나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합쳐 "운명"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 알리바바는 자신이 저세상에서 돌아올 때 사용한 "대마법"이라면 아주 작은 힘으로 모두를 죽일 필요 없이 위계와 루프의 구분을 모두 없앨 수 있다 장담한다.
* [[아르바(마기)|아르바]]의 무시하는 태도는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점차 귀를 기울인다. 알리바바는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있는가? 분명 자기 한 사람 뿐이다. 아르바가 끼어들어서 자신도 해당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녀는 정신체로 잔류하는 것이니 알리바바와 경우가 다르다.
알리바바는 자신만이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이며 그 비결은 수많은 사람의 도움 덕이라 주장한다.
자기 개인의 힘만이라면 신드바드는 커녕 아르바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대단한 일을 달성하는 것, 이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르바는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하면 결국 네 힘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보통을 능가하는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드바드와 아르바 조차 알리바바에게 휘말린 인간이다. FANFAN상회 때도 그렇다. 신드바드는 그때 왜 알리바바를 도왔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끌어냈고 "운명" 조차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신드바드 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운명을 초월하는 알리바바. 그렇기에 그는 "나도 대단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 알리바바는 알라딘도 이 자리에 불러달라 요청한다. 그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대화라면서. 신드바드가 거기에 응한다. 알라딘은 아직 제 3던전 제파르에서 싸우는 중이었다. 그를 갑자기 소환하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불려온다. 알리바바는 "할 얘기가 있어 전송했다"며 일단 본론으로 들어간다.
* 신드바드와 알라딘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 개혁안은 어떤 것일까? 알리바바는 둘의 차이부터 지목한다. 우선 신드바드는 세상을 수직 구조로 보고 "세로로 연결하는 작전"이다. 계속 천장을 뚫고 올라가 거기서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을 쳐부순다, 더이상 쳐부술 신이 없을 때까지 그걸 반복한다. 결과적으론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지만 모든 생명이 루프로 환원된다. 알라딘이 맞장구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데, 알리바바는 일단 제지하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간다.
* 아르바가 "그럼 어쩌자는 거냐"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알리바바는 기가막히다는 듯이 고개를 젖힌다.
그답지 않게 잘난척하는 발언.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가로와 세로의 벽을 전부 박살내자"고 제안한다. 그건 알라딘도 금방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다.
알리바바는 다시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가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 것은 문자 그대로 "차원의 벽"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차원의 벽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즉 그가 돌아올 때 사용한 "대마법"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 그의 "대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순간적으로 연결하는 마법이었다. 이론적으론 일 일라가 있는 차원 조차 현세로 연결할 수 있고, 알리바바 자신이 실증했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파르테비아의 고층건물처럼 높은 건물을 1층부터 꼭대기까지 주파하는 식이다.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층 그 자체"를 없앨 수 있으니까. 각 층의 천장이 없어지면 맨 꼭대기에 있던 존재 조차 "같은 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은 층에 있게 되면 누가 누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건 불가능하다. 신드바드의 방법은 "거대한 힘"이 필요한 반면, 알리바바의 방법은 적은 힘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알리바바는 자신의 대마법이라면 세상을 구분하는 모든 벽, 가로든 세로든 상관없이 모두 부수고 연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실로 명쾌한 해답. 알라딘도, 알리바바를 무시했던 아르바도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신드바드도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는데.
- 박정민(배우) . . . . 23회 일치
||<#4682b4> {{{#white '''성좌/지지'''}}} ||<(> [[양자리]]/[[토끼띠]] ||
||<#4682b4> {{{#white '''학력'''}}} ||<(> 중탑초등학교[br][[하탑중학교]][br][[공주]] [[한일고등학교]][br][[고려대학교]] 인문학부(중퇴)[* 부모님께서 연기하는 꿈을 반대하셨지만 본인은 연기를 너무나도 하고 싶어했었다, 그리고 2005년도에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자퇴 후 반수 끝으로 다음해(2006년)에 [[한예종]]에 입학하였다. 본인은 꿈을 위해서 들어간게 맞다고 보면 된다.][* 물론 [[고려대]]는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이 있을 곳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물론 한예종,고려대 외에도 한국외대, 서울대, 중앙대도 원서작성했으나, 한예종과 서울대는 광탈하고, 나머지는 예비가 나왔다, 하지만 고려대만 [[추가합격]]해서 꼴등으로 입학하고, 자퇴했다][* 대학 자체를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br][[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학사[* 전과했다.] ||
학력이 대단하다. 중학교 시절 전교권에서 놀았고, 공짜로 오라는 학원을 골라다니면서 알 사람은 아는 유명한 명문기숙학교인 공주 [[한일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 진학 후 연출에 뜻을 품고 자퇴를 한다.
이후,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합격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례가 없는 영화과 -> 연기과로의 전과가 성공한 것.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한예종 연기과는 그 경쟁률이 매해 상상을 초월하는데, 신입학보다 전과가 까다롭다고 한다. 20대가 될 때까지 거의 공부만 하던 학생이라 필모그래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연기자로의 전과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파수꾼(영화)|파수꾼]], [[전설의 주먹]], [[감기(영화)|감기]], [[사춘기 메들리(드라마)|사춘기 메들리]], [[너희들은 포위됐다]], [[일리있는 사랑]], [[들개]] 등에 출연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단역으로 [[성보라]]와 헤어진 남자친구 박종훈 역으로 출연했다. 10분 남짓 되는 시간의 단역이었지만, 본인이 바람을 피웠으면서 오히려 [[성보라]]에게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궤변을 하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정도의 엄청난 연기력과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6년 2월 17일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영화)|동주]]>에 [[강하늘]]과 함께 주연으로 참여했다. 강하늘은 [[윤동주]] 역, 박정민은 윤동주 시인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 역으로 분했다. 탄탄한 연기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송몽규 열사의 재조명과 함께 그 자신도 조명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동주로 같이 작품을 하게 된 이준익 감독에 따르면, "저예산 영화계의 [[송강호]]"라고. 그리고 이후 인터뷰에서 관련 언급을 하면 자신은 "그러지 마세요 제발"이라며 난감해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퍼트 중후군을 가진 진태역을 맡았다. 연기를 위해 장애 아동들을 찾아가 행동을 배우고, 건드려 본 적도 없다던 피아노를 배워 촬영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등 열정이 돋보이며, 이 덕에 [[이병헌]]에게 찬사를 받았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동작은 실제 연기가 맞지만 연주 자체는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입힌 것이다. 영화 내에서 나오는 곡들은 초보자가 몇 개월 연습한다고 칠 수 있는 곡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염력의 경우 흥행에 실패했을 뿐더러 맡은 배역 또한 혹평을 받았다.
당초 인문학부로 입학했었고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탑클래스>라는 매거진에서 <언희>라는 필명을 쓰고 '박정민의 언희'라는 칼럼을 무려 4년여 동안 연재했다.[[http://topclass.chosun.com/client/search/DB_Search.asp?sid=-1&page=1&KeyWord=%BE%F0%C8%F1&B1.x=0&B1.y=0|링크]] 그 후 이 때 쓴 글을 묶어 책으로 출판을 했으며, 제목은 <쓸 만한 인간>. 그 후 저자 사인회도 했다고 했으며 출간 20일 만에 3쇄를 했다고 한다.[* 2014년에 [[예비군 훈련|예비군]] 끝난 군필 배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http://topclass.chosun.com/mobile/board/view.asp?tnu=201412100015&catecode=J&cpage=1|링크]]]
박정민의 글은 대체로 웃프면서 소소한 일상 글속에 소신과 생각이 묻어나 호평이 자자하고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의 팬도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
|| [[임금님의 사건수첩]] || 특별출연 || [[의경세자]] || 163만 명 || 실패 ||
|| 2014년 || G코드의 탈출 || 남자 ||
|| 제52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 제16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 올해의 남자 신인연기자상 ||
- 서상일 . . . . 23회 일치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결국 1954년 이승만의 3선저지를 위해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던 서상일은 [[박기출]], [[장택상]] 등과 함께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반대하는 [[조병옥]], [[김준연]], [[장면]], [[박순천]] 등에게 항의하고[[호헌동지회]]를 탈퇴했다.그런데 그후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봉암이 원래 서상일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던 두 사람간의 밀약을 깨고 조봉암 자신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려하자 이때문에 심기가 상한 서상일은 조봉암과 사실상 결별의 수순에 들어가 후일자신을 당 대표로 한 민주혁신당을 창당하였다
일단 서상일은 1956년 3월 31일 진보당전국추진위원대표자회의에 참석하기는 하였으나 진보당전국추진위원대표자회의에서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 [[부통령]] 후보에 서상일을 지명하자 한사코 이를 고사해 나중에 [[박기출]]로 바뀌었다.<ref name=autogenerated1>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7</ref> 서상일은 선거대책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에서 이 회의에 참석한 진보당추진위 대표들에게 협박·공갈·회유를 했고, 대회장에는 정치깡패 유지광이 이끄는 폭력단이 난입해 테러를 자행했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때 서상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상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상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상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상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상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하자 서상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대구시 갑)[[조경규]]<br />(대구시 을)[[박성하]]<br />(대구시 병)[[이갑성]]
|전임자 = (대구시 갑) [[신도환]]<br />(대구시 을) [[이병하]]<br />(대구시 병) [[임문석]]<br />(대구시 정) [[조재천]]<br />(대구시 무) [[조일환 (1916년)|조일환]]<br />(대구시 기) [[최희송]]
|후임자 = (대구시 중구) [[송관수]]
[[분류:1885년 태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조선의 사회 운동가]]
[[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호헌동지회]][[분류:윤보선]][[분류:윤치호]][[분류:조봉암]][[분류:장택상]][[분류:민주당 (대한민국)]][[분류:진보당 (대한민국) 정치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 서씨]][[분류:간 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서영춘(코미디언) . . . . 23회 일치
|| '''가족''' ||<(> 11남매(7남 4녀)중 다섯째[br]자녀: 첫째 서현선, 둘째 [[서동균]] ||
'''전설적인 한국 1세대 희극인으로 1960~1970년대 한국 코미디계의 1인자 중 한 명.'''
1970년대 중반 [[동양방송|TBC]]로 자리를 옮기며 [[고전 유모어극장]] 등을 통해서 70년대 중후반 부터, 80년대 초반 [[이주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코미디계 부동의 1인자 자리를 유지하였다. 1960,70년대 [[구봉서]], [[배삼룡]] 등과 코미디 트로이카로서 인기를 나눠 가졌다고는 하나, 당시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들 중 누가 1인자였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영춘]]을 첫 손가락으로 꼽을 것이 분명하다. 여담으로, [[이주일]]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도 바로 서영춘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방송국 대기실에 들어온 이주일을 본 서영춘은 속으로 '저 놈 방송에 나오면 무조건 뜬다!'라고 예상했는데, 약간의 곡절을 겪은 후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다만 전성기 시절에 관한 부분은 더욱이 자세히 봐야 하는것이 서영춘이 구봉서, 배삼룡보다 데뷔 시기나 주목받은 시기가 확실히 눈에 띄게 늦은 편이다. TV 방송 이전 악극단, 영화 시절 그리고 웃으면 복이와요 초창기 시절만 보더라도 메인은 서영춘이 아닌 구봉서, 배삼룡이었다. 실제로 웃으면 복이와요 초기 오프닝을 보면 배삼룡, 구봉서의 이름이 맨 처음에 등장하고 이 두 명을 중심으로 오프닝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https://youtu.be/CxMGWjLKOYA|1969년 당시 웃으면 복이와요 오프닝 링크]]
서영춘은 특히 무대 위 애드립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희극인이었다. 변화무쌍한 얼굴 표정과 판타스틱한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TV가 대중화되면서 실질적으로 1세대가 된 당시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들 대부분이 그랬듯, 연기 패턴은 왜정 시대부터 내려온 악극, [[만담]]에서 출발한 것이 많고 내용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번안한 것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서영춘이 공중파에서 선보였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어쩌고 하는 긴 이름 가진 아이 이야기도 일본 설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사실 70년대까지는 우리 나라 문화 예술에서 6.25 동란 이후 일찌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의 그림자가 짙던 시절이라, [[웃으면 복이와요]]나 [[고전 유모어극장]]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까지 일본 방송의 내용을 대놓고 똑같이 베껴 쓰던 때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세운 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배우들이 TV시대가 되면서 TV에 등장한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영춘을 비롯한 당시 코미디언들이 독창성 면에서 부족한 개그를 하였더라도 폄하할 수만은 없다. 일단 악극도 연주와 노래 개그가 들어가는 뮤지컬 비슷한 형식이지만 분명히 순발력과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은 필수였고, 노래와 춤도 대충 해서는 안 되었던 분야였다.
서영춘은 바보 연기에 특화된 [[배삼룡]], 노래와 신체 조건을 이용한 개그가 장기였던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미남 역을 자주 담당했고 선역과 정극 연기도 능했던 [[구봉서]]와 달리 강한 개성으로 어필하였다. 특히 얼굴 표정 연기에 능하였고 연기도 두루 잘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예외로 미국 물(미군 8군 무대)을 먹은 [[곽규석]]이 미국식 스탠딩 개그와 성대모사, [[남보원]] [[백남봉]]은 성대모사를 장기로 한 쪽이다.
60년대 극장쇼 무대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백금녀]][*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 드센 뚱녀 컨셉으로 1960-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음반도 취입했다. [[이국주]]와 흡사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노래도 매우 잘 해 지금의 이국주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1995년 작고.]와 함께 한 음반. 이런 음반엔 주로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가 들어갔는데, 노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꽁트, 개그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영춘의 대표작 "시골영감 서울 가는 기차..."노래가 이런 판에 들어간 종류.
그러나 사적으로 [[주당|음주를 자주 하는]] 영향으로 [[간]](肝) 건강이 나빠져 [[간암]] 발병으로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심형래]][* 그런데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최병서]]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형래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 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심형래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라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게다가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후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역시 뼈그맨~~
게다가 사적으로 [[구봉서]]와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는데, 한때 주당으로 유명한 구봉서가 싫다는 서영춘을 억지로 술자리에 매번 데려갔다고 한다. 훗날 구봉서는 [[개신교]]에 귀의해 술을 끊었고, 뒤늦게서야 서영춘의 음주습관을 말리려 했으나 너무 늦은 뒤였다. 이 때문에 구봉서는 이를 두고두고 애통해하며 그때 서영춘을 억지로 술자리에 데리고 다녔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한번은 구봉서가 서영춘의 건강을 걱정하며 술을 끊으라고 충고하자, 서영춘은 '형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라 대들었다. 구봉서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뒤돌아 울었다고. 참고로 서영춘이 사망한 다음날(1986년 11월 2일)은 하필이면 구봉서의 [[환갑]] 날이었다. 구봉서는 이를 회고하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식들이 마련해준 환갑 잔치인데도 도무지 웃음이 나질 않았다'라고 회고하였다.
가족으로는 [[딸]] [[서현선]]과 [[아들]] [[서동균]]이 있고 둘 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코미디언]], [[배우|연극배우]]의 길을 밟았다. 서현선은 1990년대 초반 [[KBS]]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레귤러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봉숭아 학당]]'에서 [[오서방]]([[오재미]])과 합을 맞추는 미녀 [[코미디언]]이 바로 그녀이다. 동료들이 서영춘의 성대모사를 시전하자 발끈하는 모습을 (물론 개그로) 보여주기도 했다. 서동균은 [[개그콘서트]] 초중반기 멤버로 참가하며 로보캅 연기로 인지도를 쌓았으나 이후 [[이정수(1979)|이정수]]처럼 연극 및 뮤지컬 배우로 전업하였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시절 크고 작은 스캔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행사에 지각했다고 지명수배(...)가 내려진 일도 있었다. 이 행사가 다른 행사도 아니고, 경찰의 날(1965년 10월) 행사의 사회자로 참석해야 했는데 그걸 지각한 것. 21세기 현대에도 이런 대형 행사에서 지각하면 방송인으로서 보통 문제가 아닌데 하물며 살벌한 독재 정권 시대에 이랬으니...... 겨우 서영춘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당시 참석했던 [[종로경찰서]] 서장이 너무 열받은 나머지 행사가 끝난 직후 서영춘을 직접 불구속 입건 조치해버렸다. 죄목(?)은 사기 혐의.
* 오부자
- 식극의 소마/184화 . . . . 23회 일치
* 시오미 세미나가 센트럴에 반항하자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기업들이 일제히 교류를 중단, 시오미 세미나를 압박한다.
* 아자미는 하야마가 센트럴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연구장소를 제공하기로 하고 하야마는 받아들인다.
* 하야마 아키라는 "시오미 준을 위해서"란 말을 했지만 유키히라 소마가 추궁하자 실언이었다고 철회한다.
* 아무튼 목욕탕에 들어가자 뜻밖의 장면을 목격한다.
* 요가포즈 회전하는 삼각자세.
* 도지마 긴과 소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는 척 하는데 쿠가는 영 거시기한 모양.--독자도 거시기합니다--
* 모든 것은 아자미 정권의 마수였다. 기업들을 협박해서 협력을 끊고 있었던 것.
* 그때 센트럴의 부하들이 나키리 아자미의 용건을 전달한다.
* 아자미는 하야마야 말로 자신의 "진정한 미식"에 필요한 인재라 보고 협력을 강요한다.
* 그런데 아자미는 어떻게 했는지 시오미 세미나의 연구 자료를 이미 확보해둔 상태.
* 아자미는 이것을 볼모로 교섭을 건다.
* 하야마는 뜻밖의 제안에 놀라고 아자미는 "십걸 자리를 건 배틀로얄이 있으니 자네의 참가를 기대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 이야기를 들은 쿠가는 자기가 당한 것처럼 하야마도 당한 거라며 아자미를 욕하고 하야마를 동정한다.
*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소마.
* 소마는 자신은 그저 선발시합 때 진 리벤지를 하러 온 거고 어쨌든 정면승부가 가능해서 승부욕에 불타고 있으니 요리 말고 딴 곳에 한눈 팔지 말라고 일갈한다.
* 쿠가는 어째서 하야마를 도발하는 건지 영문을 몰라서 허둥지둥대는데, 도지마는 뭔가 짐작가는게 있는지 잠자코 있는다.
* 소마는 이에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킬 승부도 못 한 한심한 녀석에게 질리가 있겠냐"고 응수, 하야마를 분노시킨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23회 일치
* 그러나 팀 [[사이바 죠이치로|사이바]]는 개판에 리더인 죠이치로가 궤변을 늘어놓는 통에 [[나키리 센자에몬]]의 설교를 듣는다.
* 팀 사이바는 간신히 실격을 면하고 [[나키리 에리나]]는 [[유키히라 소마]]에게 자신들이 잘 서포트해보자고 제안하지만 소마는 폭소를 터뜨린다.
* 에리나는 본요리는 손도 안 대는 죠이치로나 정통 레시피에 애드립을 가미하는 도지마의 조리를 보고 자신들이 시험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 타쿠미는 스타지엘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데, 그가 가기로 한 요리정 "후지사메"는 그가 오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 타쿠미는 도지마의 애드립 레시피에 대항해 자신도 애드립을 가미한 소스를 만들어 요리의 완성도를 높인다.
* 그리고 다소 헤이해져 있는 소마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자신의 승부욕과 각오를 전달한다.
* 하지만 상대편인 팀 [[사이바 죠이치로|사이바]]는 개판 오분 전. 실격 당할 뻔해서 센자에몬에게 설교듣는다. 죠이치로와 [[유키히라 소마]]가 싸우다 "대화하지 않는다"는 룰을 어긴데다 죠이치로는 그걸 "조리도구를 손에놓고 있었으니 조리 중이 아니었다"는 궤변으로 때우려 한다. 물론 [[나키리 센자에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겨우겨우 다시 대결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소마와 죠이치로는 제대로 팀워크를 발휘하지 않는다. [[나키리 에리나]]는 소마를 따로 불러서 작은 목소리로 자기들이 죠이치로를 보필해보자고 제안하지만 소마는 "에리나도 룰을 어겼다"고 폭소를 터뜨린다. 에리나가 발끈하는라 큰 소릴 낸다. 숨길 것도 없이 센자에몬은 뻔히 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전행이 안 돼서 그런지, 아니면 손녀라서 눈감아 주는지 좌우간 못 본척해준다.
두 팀 모두 이런 애드립이 잔뜩 가미된 조리를 하는걸 보고 에리나는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자신들을 시험하려 하고 있다는걸 간파한다.
* 관객들은 두 팀의 행보를 보고 "승부고 뭐고 두 팀 모두 완성 조차 못 시킨다"고 수군거린다. 하지만 타쿠미는 그 말을 들으며 스타지엘 시절을 떠올린다. 그가 일하러 갔던 요정 "후지사메"는 전통있는 요리정이었지만 딱히 스타지엘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센자에몬이 사정해온 탓에 12대 점장 "후지이 토모나리"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허락이야 했지만 못마땅한건 마찬가지고, 이력서로 본 타쿠미의 인상도 좋지 않아서 적당히 청소나 시키다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런데 타쿠미가 막상 나타나자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타쿠미는 찰랑찰랑했던 머리카락도 짧게 깍고 눈빛에 묘한 기백이 깃들어 있었다. 타쿠미가 정중하게 가르침을 부탁하자 점장 토모나리는 생각을 바꿔 첫날부터 주방보조로 전격 기용한다.
* 이 시기의 타쿠미는 그 전에 없던 "간절함"과 "집념"이 깃들이 시작했다. 그는 소마에게 자신만만하게 리벤지 매치를 선언했지만 가을선발에서 [[미마사카 스바루]]에게 패하면서 아끼던 식칼 "메잘루나"까지 빼앗기는 굴욕을 당했다. 타쿠미는 지금까지의 자신으로는 안 된다는걸 깨닫고 그동안 쌓아왔던 "알디니의 요리"를 깨부수는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 도지마가 갑자기 애드립을 첨가한 레시피로 전환하자 타쿠미도 거기에 응수한다. 그는 화이트와인 비네거와 올리브 오일을 준비한다. 도지마가 앤초비와 바질을 선택한건 소스를 만들기 때문. 넓은 접시에 담기는 이상 소스를 추가하는게 상식이다. 에리나의 짐작대로 타쿠미도 그걸 간파하고 있었고 곧 도지마는 바질과 앤초비를 메인으로 한 "앙쇼야드 소스"를 만들 준비를 한다. 여기에 대항해 타쿠미는 이탈리안 요리에서 자주 쓰는 "소프리토"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본래 양파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다져서 튀기듯 오래 볶아 페스토로 만드는 것이다. 카레 등을 만들 때 양파를 오래 볶아 카라멜라이즈 시키는 것과 유사한 조리법. 여기에 이탈리안의 소프리토는 파프리카나 피망을 더해 도지마의 앙쇼야드 소스와 잘 어울리는 요리다. 소프리토도 원래 아쉬 파르망티에에선 사용하지 않는 조리법인데, 타쿠미는 도지마가 양쇼야드 소스를 준비하는 걸 간파, 거기에 어울리는 조리를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다.
* 센자에몬은 타쿠미가 성장했다며 "지금까지 없던 추잡함에 가까운 집념이 느껴진다"고 평한다. 타쿠미는 일찍히 토모나리가 봤던 "활활 타오르는 각오"가 깃든 눈으로 소마를 응시한다. 그는 눈빛으로 뭘 허둥대냐며 동료들을 구해야 하는데 이런데서 무릎꿇을 거냐고 도발한다. 더군다나 홍백전이든 무엇이 됐든 여기는 주방이고 "너와 나의 승부처"라고 일갈한다.
그 눈빛을 받은 소마는 지금까지 헤이하게 임하던 자세를 바꾸고 진지하게 승부에 응하기로 한다.
- 신성우(가수) . . . . 23회 일치
|| '''본관''' ||<(> [[평산 신씨]][* 평산 신씨 35세손 '東'자 항렬이다. [[코미디언]] [[신동엽]]과 [[항렬]]이 같다.] ||
|| '''형제자매''' ||<(> 1남 1녀 중 첫째 ||
데뷔 시절에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이덕진]]과 함께 '''원조 테리우스''' 논쟁을 벌일 정도로 꽃미남 가수였다. 당시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여서 지금의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데뷔 때부터 그가 하는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가 먼저 주목받았는데, 동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소비(?)되었던 이덕진과 비교해 본다면, 이덕진은 들국화 최성원의 기획하에 그냥 곡 하나로만 주목받았던[* 사실 음악 빼고 외모 덕을 본 건 이 사람이 더 하다면 더 했다.] 것에 비해 신성우의 경우 꾸준히 자신 앨범에서록 음악의 작사, 작곡을 해 왔던 사람이다. 즉, 신성우는 외모 때문에 그 음악성이 역차별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AR을 틀든 ,MR을 틀든,무대에 오를 때는 언제나 자신의 밴드인 '내일뉴스' 를 뒤에 배경으로라도 두었다.[* 한참 가요프로그램에선 '신성우와 내일뉴스'로 소개된 적도 있다.] [* 실제로 1집은 기타리스트 이근형, 이근상 형제와의 공동작업이며 밴드 형태의 음반이다. 형인 이근형의 프로듀스하에 동생인 이근상과 실제 밴드 로 데뷔 하려고 했으나, 제작중에 신성우의 솔로 앨범으로 변경 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생 이근상은 내일뉴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집 앨범 뒷면에는 신성우, 그리고 드러머와 함께 사진도 실려있다. 1집부터 5집까지 이 형제는 편곡자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몇곡에서는 공동작곡가로 꾸준히 크레딧을 올리고 있다.] 다행히 LA메탈 풍의 <내일을 향해>의 인기가 워낙 오래 갔기에, 앨범의 활동도 오래 할 수 있었고, 1집 활동 막바지에는 발라드 <꿈 이라는건>도 소폭 히트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퍼져있는 락 뮤지션의 이미지 때문에 신성우는 아이돌이 겉멋만 들어서 락커를 흉내내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성우 본인은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굉장히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 의 솔로 시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들로 가득하다.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당시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타이틀곡으로 두 곡을 밀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카세트 테이프 기준 A면 첫번째 곡인 <기쁨이 될것을>,다른 하나는 B면 첫 번째 곡인 <'''서시'''>. 업템포에 경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면서도 실험적인 성격이 있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익히 알려진 서정성으로 금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역대 가요 중에 좋은 가사를 뽑는 순위에선 늘 상위에 랭크된다.) 그런데 묘하게 유명세를 잘 못타는 성격이 반영 되었는지 노래를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사람들도 제목이나 가수는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참고로 <서시>도 신성우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감자탕]]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기타리스트 이근상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친 멜로디를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3집 또한 <서시>하나를 빼면 대중적인 앨범으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본인의 말마따나 정통 얼터너티브록 앨범이다.[* 록음악 팬이 아닌 TV에서 서시 나 내일을 향해 등의 팝 성향의 히트곡으로 그를 처음 접한 팬들이 앨범 구매후, 한 두곡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중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실험적인 넘버들에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그를 흉내내기 록커로 착각했던 록매니아들은 그의 앨범을 접하고 나서는 그의 외모에 가려진 음악성을 안타까워 했다.] <초연>은 퍼즈톤이 두드러지는 질펀한 마이너 록이며, <천사여 울지 마세요>는 그런지가 구현할 수 있는 따뜻함과 온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건달의 허세>는 얼핏 코믹하지만 당시에도 존재했던 취업난을 풍자하여 작은 인기를 끌어서 2000년대로 넘어와 (신성우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플래시 영상물로도 만들어졌다.
2000년대 이후로는 주로 연기자로 활약하고 있으며, 대표작은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드라마 [[첫사랑]] [[위기의 남자]]가 있다.
2015년 드라마 [[엄마(드라마)|엄마]]에서 민태헌 역을 맡아 연기자로 복귀했다. OST도 불렀다. 그리고 [[무림학교]]에도 출현한다.
[[채시라]]와의 연애와 파혼 과정도 시끄러웠다. 미남미녀 커플로 화제를 모았으며, 두 사람이 한참 연애중이던 시절에는 커플 수영복 잡지 화보까지 찍을만큼 떠들썩하게 연애했다. 그러나 [[1997년]] 파혼하면서 당시 언론들이 일주일이 넘게 어지간히 저 얘기만 떠들어댄 탓에, 사람들이 지긋지긋해 제일 듣기싫어한 뉴스였을 정도로. 공개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무난하게 결혼하나 싶더니 결혼 후 분가, 연예활동 및 재산 관리를 둘러싼 집안 갈등으로 인해 파혼을 선언했다.
신성우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넓은 노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2집의 "<구식 사랑(열번째 남자)>", 4집의 "<자유하는 삶을 위해>" 라는 곡과 5집의 "<내 맘대로>" 가 있다. <자유하는 삶을 위해>와 <내 맘대로> 두곡은 실제로 들어보고 피아노로 쳐보면 3옥타브 미 수준으로 음역대이며 또한 <구식 사랑>은 2옥타브 시를 자랑한다. 무겁고 탁한 바리톤의 목소리인 신성우의 보컬로 과연 저 음역대까지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상당히 시원한 고음을 자랑하는 곡들이다.
* '''[[서시#s-3|서시]]''' : 2016년 현재에도 [[노래방]] 애창곡에서 최상위권 순위를 자랑한다.
* 자유하는 삶을 위해
- 실업팀 . . . . 23회 일치
[[스포츠]] 팀의 구성 구조. 영어로는 Works team 혹은 factory team이라 불리는 형태. 일본어로는 실업단(実業団)이라고 부른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한 형태[* 대한민국의 경우, [[세미프로]]까지는 아마추어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아마추어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종목을 불문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여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실업팀은 기업, 군부대, 공공기관, 지자체 등의 구성원, 종업원으로 구성된 팀이다, 실업팀은 원칙적으로 종업원의 "사내 스포츠 클럽"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스포츠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상부 조직의 특정한 '부서'로서 운영된다. 따라서 팀의 운영은 전적으로 해당 상부 조직의 관리 하에 놓여져 있다.
근대 팀 스포츠는 노동자의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개인 스포츠는 귀족적인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은 주로 소속된 공장, 회사 단위로 스포츠 클럽을 조직하였는데, 이런 형식의 스포츠 클럽이 훗날 실업팀의 모체가 되었다. 공장 단위로 조직된 것은 서로 스케쥴이 맞고 연락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서 지자체,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운동경기부(실업팀)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지자체는 실업팀을 '1팀 이상'을 두도록 되어 있으며, 공공기관의 경우는 상시 근무하는 직장인이 1천명 이상인 경우에 설치하여 운용하도록 한다. 이 의무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신청을 거쳐서 면제될 수 있다.
지자체 실업팀(운동경기부)는 주로 [[전국체전]]과 그에 이은 [[올림픽]]을 목표로 육성되고 있다. 프로화가 활성되지 않은 종목에서는 지자체 팀은 사실상 예비 [[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다.
종업원에게 오락과 여가활동을 제공하여 회사의 복리후생을 향상시킨다. 나라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업 내 스포츠 활동을 노동자 복지활동으로 보고 [[법인세]]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자전거 경기, 모터 스포츠 같은 경우는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목적에서 실업팀 활동이 이루어진다. 실업팀을 위한 레이스 차량 개발이 일반 제품 개발에 연결이 되며, 대회의 성과는 회사의 홍보와 상당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 지자체의 공익활동 ===
프로 스포츠가 없는 곳에서는 지자체가 실업팀을 운영하여 경기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여가활동을 제공하거나, 지자체의 명예와 시민의 고양을 위해 전국체전에서의 활약을 노리고 실업팀을 운영하거나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국체전의 활약은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실업팀 체계에서는 스포츠 팀이 전적으로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 팀은 독립된 법인격이 아니며, 선수의 신분은 기본적으로 '사원'인 경우[* 실업팀이라고 해서 계약 선수를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가 많고, 팀의 운영과 활동은 선수 개인이나 팀 자체 보다는 기업 차원의 이득을 위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러한 구조에서는 팀의 성적과는 무관하게, 기업의 실적에 따라서 팀의 향방이 정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팀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꼼짝없이 실업팀이 정리해고 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불황기에는 눈에 뛰게 직접적인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실업팀이 가장 먼저 해체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삼성의 경우는 이건희가 실질적으로 경영활동에서 물러난 것과 동시에 럭비팀을 운영하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10506333771780|삼성중공업의 경영실적이 악화되자 지체없이 짤렸다.]
독립된 조직이 아닌, 상부 조직의 일개 부서이기 때문에 실업팀은 외부 압력에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약하다. 이는 지자체 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한국에서 여러 지자체는 실업팀을 너무 쉽게 해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프로 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 "지역밀착형 중심의 운영"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실업팀은 기업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주소지를 이전하면 그 지역과는 관계청산"이라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코레일이 본사를 옮기자 팀도 같이 움직이면서 [http://www.fnnews.com/news/201401161713584684|인천 연고였던 팀은 어느새 대전으로 가게 되는] 것.
실업팀 체계에서는 각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 이 때문에 선수들 간의 교류가 줄어들어, 스포츠 계 전체의 발전이 저해된다.
=== 직업선택의 자유 ===
스포츠 선수는 본인이 해당 기업에 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실업팀을 운용하는 기업이 하나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실업팀 가입을 위해 해당 기업에 입사하여 일에 종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된다. 다만 불황인 스포츠에서는 어쨌든 성인 선수가 활약할 수 있는 팀이 하나라도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별로 지적되지 않는다.
20세기에는 '사내'에 조직을 두는 것을 우선시 하던 한국, 일본에서도 21세기에는 스폰싱과 그로 인한 홍보 성과 계산이 일반화 되었다. 이로 인하여 조직이 분리되는 것이 실업팀의 쇠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의 실업팀들은 법인화를 통해 독자적인 클럽팀으로 전환하고, 기존의 실업 모체는 스폰서로 전환되어 조직이 아예 분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안내상 . . . . 23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
|형제자매 = 형 안외상(安外相) <br/> 누이동생 2명
|자녀 = 슬하 1녀
안내상의 [[아버지]]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염색 공장을 하다가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이 망해 서울로 상경하여 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학우들을 괴롭히는 등, 초등학교 3학년 부터는 [[담배]]를 피우고 [[도둑질]]을 했다. 이 때 안내상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여 [[개신교]] [[교회]]를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종교에 귀의한 후에 악행을 멈추었다고 회고했다<ref>[http://news.tf.co.kr/read/entertain/1569156.htm 안내상 "하나님 만난 후 악행 멈췄다"] 더팩트. 2015년 08월 16일</ref><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6010103591001 안내상 초딩시절 주먹질에 도둑질까지.. “난 깡패였다” 자폭] 뉴스엔. 2011년 06월 01일</ref>. 안내상은 중학교 1학년 시절 키가 175cm이었고 많은 학생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 1997년 《[[나쁜 영화]]》 ... 연기자 행려 역
* 2006년 《[[플라이 대디]]》 ... 교차로 운전자 역 (우정출연)
* 2004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간시트콤 《[[혼자가 아니야]]》 ... 편집장 역
* 2009년 [[KBS2]] 미니시리즈 《[[남자이야기 (드라마)|남자이야기]]》 ... 김욱 역
* 2011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드라마 스페셜 《[[보스를 지켜라]]》 ... 악덕 사채업자 역 (특별출연)
* 2014년 [[KBS2]]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 ... 용의자 송경필 역 (특별출연)
* 2014년 [[tvN]] 시트콤 《[[감자별 2013QR3]]》 ... 사진 작가 역 (특별출연)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 김혜자 아버지 역
* [[MBC 연기대상]] 남자 황금연기상
*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황금연기상
* [[SBS 연기대상]] 일일&주말 드라마 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순흥 안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199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23회 일치
암살자들은 아즈사씨를 구하기 위해 작전을 펼친다.
* 호타루는 자기도 엄마를 구하러 가겠다며 식칼을 꺼내든다.
* 하지만 살생님은 암살자들에게 맡겨두자며 호타루의 칼을 빼앗는다.
* 사실 암살자들은 원래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어떤 사정에 의해 이 "업계"로 들어오고 만 것이다.
* 아즈사씨는 사채업자 일당들에게 둘러싸여 위험한 지경. 토악질이 날 것 같지만 "이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 암살자들은 각자 특기를 살려 사채업자의 아지트를 급습하고, 위기에 처한 아즈사씨를 구해낸다.
* 사채업자는 합법적인 채무라며 뻔뻔하게 군다.
* 그때까지 코나 파고 있던 후토시는 갑자기 대부업법을 줄줄 읊어대며 사채업자를 관광태워 버린다.
* 그러나 현기증이 심해서 암살자들은 호타루를 먼저 데리고 가서 차를 몰아오기로 하고, 살생님은 아즈사씨를 보살피고 있기로 한다.
* 암살자들은 자신들도 평범하게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을 되찾는다.
* 아즈사씨는 설마 호타루까지 올 줄 몰랐다고 하는데, 살생님은 "자기보다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참한 딸"이라 칭찬한다.
* 사실 암살자들은 살생님이 사신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주시하던 실력자들이었다.
* 아즈사씨도 알고보니 암살자.
* 사채업자 사무소에서 "이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던 건 바로 이걸 두고 한 얘기였다.
* 제목인 "정체의 시간"도 암살자들의 정체가 밝혀지는게 아니라 아즈사씨의 정체가 밝혀지는걸 염두한 제목.
* 호타루도 사실 암살자일 가능성이 높다.
- 원피스/828화 . . . . 23회 일치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된 푸딩과 밀집모자 일행
* 밀집모자 일행은 푸딩이 상디의 결혼 상대라는걸 알게 된다.
* 푸딩은 빅맘이 해적단의 강화를 위해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식들 대부분은 자유롭게 사는 걸 포기하고 있다고 밝힌다.
* 그런데 자신이 아주 좋아했던 "언니"는 자유연애를 추구해서 바다로 나갔다고 하는데...
* 자식들 중엔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있어서 결국 빅맘 해적단은 정말로 가족으로 이루어진 해적단.
* 하지만 나미가 "상디를 좋아하게 됐냐"고 묻자 빅맘의 의지를 앞세우며 대답을 얼버무린다.
* 그러자 푸딩은 간단한 약도를 그리면서 "아직 잊을 수 있어. 상디씨를..."이라고 말한다.
* 일행은 상디가 여자를 찼다고 경악한다.
* 그녀는 이 루트로 항해해 내일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남서쪽 해안"에서 만나자고 한다. 자신이 직접 상디를 데려오기로 한다.
* 나미는 그녀가 벌을 받을 거라고 우려하지만 자신은 친 딸이니 걱정말라고 하고 오히려 "여기는 적지니 자기들 몸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누군가 자기 나라와 가족을 헤쳤다며 "너희는 제르마지?"라며 총을 쏜다.
* 그는 "(전투가)4시간이나 걸렸다"면서 동생(상디)의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남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 국왕으로 보이는 남자는 "악마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을 빌렸다"고 중얼거리며 병사들과 백성들은 제르마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 상디. 약혼자 푸딩과 결혼을 거부하며. 푸딩에게 한 말을 그녀가 동료들에게 전해줬다.
* 흰수염은 양자 뿐인데 빅맘은 전부 친자다.
* 푸딩이 말하는 "자유연애를 하러 바다로 떠난 언니"는 아무리 봐도 스릴러 바크의 로라. 하지만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
* 페콤즈가 납치당한 것,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남은 것, 그리고 빅맘이 이미 밀집모자 일행의 상륙을 알고 있는 건 모두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 원피스/847화 . . . . 23회 일치
* [[빈스모크 저지]]가 토트랜드에 거인족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빅맘이 발끈한다.
* 빅맘은 나미에게 [[샬롯 로라]]가 잘 있냐고 묻는데 "건강하게 잘 있다"는 전언을 전하자 "킬러를 보내 죽여버리겠다"고 격노한다.
* 로라도 원래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도주, 그 결혼이 성사되었다면 자신은 다른 사황을 물리치고 해적왕이 됐을 거라 장담한다.
* 미러월드 안에 있는 샬롯 브륄레의 집. 캐럿과 쵸파는 결국 잡혔다. 브륄레는 캐럿을 토끼 수프로 만들려고 한다. 언제 들어온 건지 학기사 랜돌프와 유혹의 숲에 있던 악어도 동석. 악어는 본래 자신은 인간은 먹지 않지만 밍크족은 어찌어찌 될 거 같다며 식사를 고대하고 있다. 쵸파가 진자 토끼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항변하자 악어가 망설이는데, 브륄레는 쵸파더러 빅맘의 "컬랙션"에 들어갈 거라며 입다물고 있으라고 조롱한다.
* 빅맘 샬롯 링링은 성의 도서실에서 자신의 "컬랙션"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의 컬렉션은 아들 샬롯 몬도르의 작품. 그의 능력으로 살아있는 생물을 "책" 속에 봉한 것이다. 그는 여러 페이지를 펼쳐서 수집한 생물을 보여준다. "검은 수염"이 임펠다운을 습격했을 때 유출된 "만티코어"나 "유니콘" "그리폰" 같은 전설적인 생물도 있다. 마치 표본처럼 못이 박혀 있는데 하나같이 살아서 몸부림친다. 심지어 사람도 들어가 있는데 펑크 하자드에 있던 "켄타우로스"나 수장족과 족장족의 혼혈인 "수족장인간" 같은 희귀한 인간도 들어가 있다.
인간까지 컬렉션으로 책 속에 보관하는 모습에 그 비정한 빈스모크의 형제들 조차도 인상을 찡그린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다양한 종족과 생물을 봤지만 딱 하나 "거인족"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러자 한순간이지만 빅맘이 발끈해서 인상을 구긴다. 하지만 곧 안색을 바꾸며 "어쩌다 보지 못했을 것"이라 얼버무린다.
* 때마침 빅맘의 아들이 밀집모자 일당 두 명을 연행해왔다고 보고한다. 빅맘은 오늘은 바쁘다며 빈스모크 일가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보고하러 온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태도가 이상해서 왜그러냐고 묻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제르마66, 그 중에서도 이치디와 레이쥬의 광적인 팬이었다. 팬심으로 흥분하고 있었던 것. 빅맘은 한심하다고 핀잔하며 "필요한건 겉모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때 빅맘의 전보벌레가 도착한다. 빅맘이 전보벌레를 통해 인사하자 조용하던 루피가 격분한다. 빅맘은 기개가 제법 남았다고 웃으며 일당이 전부 오지 않았길래 어인섬에서 한 약속을 잊은 줄 알았다고 빈정댄다. 루피는 언젠가는 날려주겠다며, 오늘은 단지 상디를 데리러 왔을 뿐이라 대꾸한다.
* 루피는 싸우고 싶다면 지금 상대해주겠다고 큰소리치지만 빅맘은 비웃을 뿐 전혀 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디만 두고 가면 살려보내준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걸 무시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방해했다간 그냥 끝나지 않을 줄 알라며 엄포를 놓는다.
* 빅맘은 뜬금없이 루피가 어인섬에서 가로챈 과자값으로 준 어인섬의 보물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루피가 줬던 보물 중에는 어인섬의 국보인 "옥갑"이 섞여 있었다. 넵튠이 왜 이런 것까지 루피한테 줬는지 모르겠다며 웃으며 내일 다과회에서 개봉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는 루피를 도발하기 위해서 한 말 같지만, 정작 루피는 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상디의 결혼 문제에 화를 내는데, 급기야 샬롯 푸딩을 언급하며 그녀가 자신들의 친구니 만나게 해달라고 발언한다. 나미는 그 발언을 막으려 하는데 빅맘은 그저 둘러대는 말이려니 하고 귀담아 듣지 않는다.
뜻밖에 격노하는 빅맘. 나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빅맘은 어디있는지 당장 불라며 킬러를 보내겠다고 한다. 심지어 "아직도 부모자식인줄 알다니 기가막히다"는 발언도 한다. 빅맘은 자식은 부모맘을 모른다며 로라를 "역대 최고의 결혼 상대를 걷어차고 도망친 멍청한 딸년"이라 매도한다.
* 나미는 기가막혀 하며 자신을 도와주었던 로라의 우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볼 틈도 없이 빅맘이 속사포처럼 분노를 쏟아낸다.
* 루피가 끼어든다. 루피는 결혼"하지 않은" 건 로라고 해적왕이 "되지 못한" 건 빅맘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로라는 자기 힘으로 자기 일을 결정했지만 빅맘은 그러지 못했었다는 것. 루피는 시비라면 다시 걸어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 한편 성안에선 침입자를 발견하고 소란이 일어난다. 경비병들이 "호랑이" 밍크족을 발견했다며 타마고 남작에게 보고한다. 타마고 남작은 "재규어"라고 정정해주며 예상대로 페드로가 왔다고 경계한다.
>자 그럼 해적 사황 빅맘의 성에서 시작해 볼까요?
- 원피스/857화 . . . . 23회 일치
* 상디는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쵸파 일행은 그의 복귀를 솔직하게 기뻐해준다.
* 징베는 전력 보강을 이유로 [[카포네 벳지]]에 대해 설명하며 손을 잡자고 제안한다.
* 루피가 동의하자 징베는 사실 이미 얘기를 진행해 놨다고 밝힌다.
* 미러 월드에서는 [[쵸파]] 일행이 상디와 루피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냈다. 나미는 킹 바움에 올라타 이동할 때 평원 근처에서 거울을 깨뜨렸던 일을 생각해냈다. 즉 루피 일행이 그 거울 조각 근처에 있다면 연락이 가능할 거라는 것. 일행은 거울 조각과 연결된 미러월드 안의 거울 조각을 찾아낸다. 쵸파가 조심스럽게 루피와 상디를 부르자 나미의 예상대로 둘이 쵸파의 목소리를 듣는다.
* 루피는 상디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쵸파 쪽에서는 흩어진 일행이 모두 모였고 [[포네그리프]] 탁본을 뜨는데도 성공했다고 응답한다. 루피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자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브룩]]은 엄청 쑥쓰러워하며 오버한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끼어들어 상디와 이야기는 끝난 거냐고 묻는다. 루피가 "상디는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답하자 일행은 크게 놀란다.
* 상디는 루피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당황한다. 자신의 사정만으로 일행에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린다. 브룩, 캐럿, 쵸파는 루피와 상디가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는거 아닌가 걱정했다며 대성통곡을 하며 기뻐한다. 나미 조차도 상디가 돌아오는 걸 기뻐하는데 상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이렇게 말한다.
나미는 독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일단은 잊겠다"며 한 발 물러나며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죽어가는 것 같았던 상디가 "그건 프로포즈냐"며 거의 원상태로돌아온다. 루피는 마침 자신도 [[빈스모크 레이쥬]]에게 해독을 받은 일을 언급하고 일행은 빈스모크 일가를 꼭 구하기로 결정한다.
* 징베는 그러면서 갑자기 루피와 같은 [[초신성(원피스)|초신성]]의 한 명이자 현 사황 해적단 산하의 [[카포네 벳지|카포네 갱 벳지]]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웨스트블루 출신으로 그곳은 다섯 마피아 조직이 뒷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그 서족의 다섯 마피아 중 한 명이 벳지. "갱"이란 이름은 어릴적 별명인 "철포환"에서 유례한 것으로 살아있는 생물의 머리를 자르고 몸이 발버둥치는걸 보고 즐기는 잔인한 성격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루피 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오싹하다고 하는데, 그 오싹한 부분은 조직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돼있다. 벳지는 영역이나 지위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항상 다른 조직의 "보스의 목"만을 노렸으며 항쟁때에도 보스의 목만을 노리는 기괴한 취미를 보였다. 그렇게 상대를 무너뜨리고 철저하게 금품을 빼앗고 이후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패권경쟁이나 뒷배경이 되어주던 권력자들이 당황하는걸 보고 즐기는 것이었다.
그런 악취미 때문에 적도 많았는데 벳지는 "철벽의 성"을 쌓아놓고 복수자들이 죽어나가는걸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러다 육지에서의 싸움에 질려서 해적으로 나섰고 이때도 마찬가지로 적의 선장의 목만 취하는 악취미적인 행보를 해서 역시 원한을 가진 자들이 늘어났다. 그런 벳지에게 "사황"이란 방패막이는 절호의 은신처였다. 빅맘은 벳지의 경계심 많은 성격과 높은 방위력을 좋게 평가해 승승장구, 이번 다과회에서는 "룩"의 칭호를 받고 이번 호위의 전권을 위임받게 되었다.
징베는 [[페콤즈]]가 벳지에게 암살 당할 번한 일도 밝힌다. 벳지는 페콤즈에게 협력을 요구했지만 거절 당하자 그를 쏘고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버렸다. 그때마침 징베의 동료가 발견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벳지의 음모도 밝힐 수 있었다.
* 루피는 당연히 벳지를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하지만, 징베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루피가 빅맘으로부터 상디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황이라는 적이 생긴 시점에서 벳지까지 적으로 돌리는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밀집모자 일행은 지금부터 작전을 짜려고 하지만 벳지는 몇 년 전부터 용의주도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실 징베는 이미 자리까지 주선해 놨는데 루피는 당장 만나겠다고 나선다. 징베는 정 싫다면 거절해도 좋다며 일을 진행시킨다.
* 홀케이크 아일랜드 북서 쪽에 벳지의 해적단인 "파이어 탱크 해적단" 아지트가 있다. 벳지는 부하들이 처형꾼 보빈을 잘 처리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곧 도착할 밀집모자 해적단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부하들은 정말로 밀집모자 측이 동맹에 응할지 반신반의하지만 벳지는 징베를 신용해서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밀집모자측과 마찬가지로 빅맘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또다른 적을 만들기도 꺼려진다. 다만 정말로 이 동맹이 성사될지 어떨지는 지금부터 루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고,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없애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 원피스/859화 . . . . 23회 일치
* 많은 피해자가 생긴건 물론이고 빅맘 본인도 약해져 몸에 상처를 입는 모습을 보여줬다. 즉, 사진을 망가뜨리는 걸로 빅맘이 약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
* 문제는 빅맘이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 생기는 약간의 시간 동안 빅맘 해적단을 막아줄 방패가 필요한게, 그게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이 해줄 일.
* 개시신호는 [[샬롯 푸딩]]이 맹세의 키스 대신 쏠 총성. 상디는 자신이 어떻게든 피할 때니 그때 나타나달라고 부탁한다.
* 한편 신부 샬롯 푸딩은 신부화장을 마쳤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많고 귀찮다고 우울해하고 있다.
[[쵸파]]가 겨우 5초냐며 놀란다. 괴총 비트물론 물론 그 5초를 만들기가 힘들고 장성을 비롯한 간부들에게 저지당할 거라고 부연한다. 하지만 벳지는 그렇게 되면 전투 뿐이고 승산은 "제로"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분 나쁘게 웃는걸 보면 그 5초를 정말 만들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 벳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암살계획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건 [[시저 클라운]]의 포획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저... 현재명 "가스티노"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지 말라며 반발한다. 행여나 빅맘 앞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며 암살만 잘 끝나면 심장을 돌려받을 것이고 그럼 제일 먼저 벳지를 죽이겠다고 아우성친다. [[샬롯 시폰]]은 "걱정하지 마 가스히코"라며 벳지는 약속을 지킬 거라고 반박한다. 또 이름이 잘못 불리자 반발하는 가스히코. 하지만 나미는 "쓰레기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냐"고 해서 쓰레기를 닥치게 한다.
빅맘의 다과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다과회의 주역들이 원탁에 둘러 앉을 때 빅맘의 맞은 편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놓인다. 이것은 빅맘이 가장 아끼는 보물로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사진은 액자에 담겨 정중히 자리에 놓이며 사진이 놓인 자리엔 누구도 앉거나 건드려선 안 된다. "마더 카르멜"은 미지의 인물로 가족들 조차도 "빅맘의 은인"이란 것만 알 뿐,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폰은 이 인물이 실종됐다고 하는데.
* 거기서부터 시폰이 이어서 말한다. 한 번은 급사가 다과회 준비 중 실수로 사진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때 빅맘은 평상시의 발작과도 다른, 아주 극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얼굴이 새파래진 빅맘이 들어본 적도 없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것이다. 먹을게 없을 때 일으키는 발작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도 못하고 귀를 감싸고 있는게 고작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리기도 했다. 벳지는 괴성에 섞어 패왕색 패기를 은연 중에 방출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저 사진이 떨어진 것 뿐인데 말이다.
중요한 건 이때 쇼크로 쓰러진 빅맘. 그녀는 이때 무릎을 꿇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렸다. 벳지는 빅맘도 과연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고 놀랐다고 한다. 이 상태의 빅맘이 평소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잃는건 자명하다.
>그 역할을 네가 맡아줘야겠어 "밀집모자"
하지만 당사자인 루피는 아주 가벼운 태도로 승락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보다 "재미있는 등장방법"을 떠올렸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정신연령이 비슷한 쵸파도 그게 뭐냐고 물어보는데 루피는 "지금 말하면 재미없다"는 이유로 입을 다문다.
좌우간 본인이 승락한 이상 벳지로선 나쁠게 없다. 그는 타이밍은 아냐고 묻는데 루피는 [[샬롯 푸딩]]이 상디에게 맹세의 키스를 하는 순간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상디가 "못한다고!"라고 태클건다. 푸딩은 키스하는게 아니라 총을 쏠 거다. 상디는 그 점을 강조하며 총은 어떻게든 피할 테니 총성을 신호 삼아서 등장하라고 못박는다.
* 암살의 대략적인 흐름은 이걸로 확정. 빅맘의 괴성이 터지면 승리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회장이 어지러워진 틈에 밀집모자 일행은 "구출" 작전에 들어가고 벳지 해적단은 "암살". 이것을 최악의 경우라도 10초에 끝낸다.
그리고 바보의 등장이다. 바보가 신나서 설명한다. 가스인 자신이 상공으로 거울을 들고 나타나면 [[샬롯 브륄레]]의 능력을 이용, 전원을 거울로 피신시킨다. 이후는 미러월드를 통해 각자의 배로 피신. 각 배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거울을 비치하라고 권고한다. 좀처럼 누굴 칭찬하지 않는 벳지도 브륄레를 확보한건 밀집모자 일행의 공이라며 치하한다.
* 이것으로 작전회의는 종료. 각자의 위치에서 실행을 준비하기로 한다. 현재 시각은 다과회 개시로부터 2시간 반 전. 상디는 신랑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벳지 해적단도 호위 준비에 들어간다. 루피는 등장할 때를 위해 뭔가 부탁할게 있다고 하다가 벳지가 "재미에 집착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 9층 빅맘의 침실에선 빅맘이 가벼운 발작을 일으킨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해서 가보니 브룩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걸 눈치 못채고 "해골이 죽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오늘은 다과회"라고 달래자 웨딩케이크를 떠올리곤 급빵긋한다. 병사들은 온 김에 "모건즈"란 사람이 손님으로 도착했다는 소식과 다른 내빈들의 도착을 알린다.
* 그리고 신부 푸딩의 방. 신부화장을 마치고 드레스까지 착용한 푸딩은 뜻밖에 우울한 모습이다. 니트로와 라뱐이 그녀에게 "메리지 블루"냐며 가볍게 놀린다. 푸딩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고 투정한다. 상디를 죽인 뒤 피가 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만은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은혼/634화 . . . . 23회 일치
* 야토족의 노사는 "협력해주면 황자의 목을 따준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도로 해방군에 붙으려 하나, 겐가이도 애초부터 이들을 믿지 않아 함정을 준비했다.
* "겐가이 포를 무력화시킬 방법을 알려주면 [[엔죠]] 황자의 목을 따주겠다." 야토족 용병부대의 대장 "노사"는 그런 조건으로 [[히라가 겐가이]]의 협조를 받아낸다. 그가 일러준 하천 근처를 파해쳐 보니 케이스가 나왔고 그 안엔 냉각된 실린더가 있었다. 보고를 들은 노사는 "무슨 방법이 있다"던 겐가이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 역시 해방군을 상대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상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식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귀병대가 히노카구츠치를 멈추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지구가 엔죠 황자의 협박에 넘어가 봉쇄를 푼다면 모든 일이 허사다. 이 병기를 멈추고 해방군 본진을 칠 때까지 지구가 버텨줄 수 있을까?
* 겐가이 영감을 찾으러 나섰던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 일행은 뜻하지 않은 적들과 만나 발목이 잡힌다. 해방군의 지상군 잔당이 엔죠 황자의 파괴선언 이후 기어나와 발악하고 있다. 긴토키는 일단 싸우고는 있으나 좀처럼 적의 수가 줄지 않아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아무리 베도 똑같은 얼굴을 가진 놈들이 얼굴을 들이민다며 "킨타로 아메"사탕에 비유한다.[* 반죽을 길게 늘여 같은 얼굴이 계속 나오도록 자르는 일본의 사탕]
* 자신의 감에 따라 겐가이를 추적하던 가구라는 일행의 발이 묶이고 포위를 뚫을 돌파구도 보이지 않자 단독행동을 감행한다. 여기는 "긴쨩에게 맡긴다"라고 말해놓고 훌쩍 뛰어올라 해방군을 돌파한다. 긴토키는 당연히 만류하지만 눈 앞의 적과 싸우느라 말릴 틈도 없다.
그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걸 알았다. 사냥꾼의 본능일 수도, 동족의 공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힘이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비록 이 지구는 그녀를, 천인들을 배척해온 행성이지만 말이다.
* 가구라가 가버리자 이제는 겐가이 영감이 아니라 가구라부터 찾아와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하늘에서 수상한 빛을 발견했다. 그 빛은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곧게 뻗어오고 있었다. 혹시 이것이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인가? 해결사와 진선조도, 그리고 본진의 공격이 무서웠던 해방군도 "히노카구츠치의 공격이 시작됐다"며 패닉에 빠진다.
그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야토족 부대, 지휘관 노사에게도 똑똑히 보였다. 그러나 노사는 송사리들이 소란을 부린다며 코웃음을 친다. 저것은 히노카구츠치의 빛이 아니다. 그랬다면 자신들은 그 시점에 우주의 먼지가 되었을 터였다. 아마 저것은 멋모르고 지구에 접근해 버린 우주선일 것이다. 겐가이포의 나노머신 "벌"의 먹이가 됐겠지. 그래도 그 벌이 대기권 바깥까지 영향을 준다는 건 대단히 큰 문제긴 하다.
겐가이 영감은 지구가 아주 사라지는 것과 벌이 멈춰서 공격 당하는 것 중, 그나마 후자가 나아서 그랬을 뿐이라 대답한다. 게다가 야토족이 본진에 처들어가서 엔죠 황자의 목을 따준다고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부터 노사의 말이 달라진다.
>황자의 목을 딴다고?
노사가 관찰한 겐가이는 고문이 통하지 않는 남자. 그건 그가 죽기보다 지는걸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걸 것이다. 그걸 이용했을 뿐이다. 이젠 겐가이라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야토 병사가 그를 "처리"하러 다가온다. 절체절명. 그런데 겐가이는 노사가 자신의 속성을 잘못 읽었다고 지적한다.
>알고 있겠지? 네가 아무리 지구인을 위해 몸을 던져도 이곳에 야토가 있을 자리는 없어.
노사의 공격으로 힘이 빠진 가구라가 쓰러지자 병사들이 마무리를 지으러 온다. 반격할 수단이 없는 가구라.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 맨 앞줄에서 달려들던 병사의 목을 걷어찬다. 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힘으로.
* 이어서 달려들던 병사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진다. 그의 등장으로 야토족 부대의 움직임이 멈춘다. 가구라를 구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후드를 벗는다.
>반드시 그 지구에 가보자고, 그런 약속을 했던 바보는 혼자가 아니야.
- 은혼/646화 . . . . 23회 일치
* 때에 맞춰 [[한카이]]가 히노카구츠치의 파괴를 알려오자 다케치는 모선 내부에 잔존한 병력을 모아 모선을 지구에 처박고 도주하려는 해방군의 뒤를 잡는다.
* 죽음을 불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로 돌격했던 [[다케치 헨페이타]]. 그러나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살아남고 말았다. 내친 김에 아메노토리후네의 내부에 내려선 다케치와 부하들 앞에 바라지도 않았던 배웅자가 있었다. 전 하루사메 삼흉성 [[사루가쿠]]. 부하들과 함께 건재한 모습이었다. 넉살좋게 다케치 일행의 특공이 실패했으니 수훈은 자신들 몫이라고 말하며 나타났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바토우]]의 목숨을 앗아간 그 폭발. 사루가쿠는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다. 살아남은 그는 그대로 숨어있기 보단 작전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다케치 측의 통신을 엿들었다.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 파괴. 다케치의 예상과 달리 그건 폭발 한두 번으로 어쩔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루가쿠 부대가 내부에서 그 장비를 한 발 먼저 파괴했고 그래서 다케치 일행의 특공은 불발로 끝날 수 있었다.
* 어떻게 보면 그저 동맹일 뿐인 사루가쿠가 이렇게까지 헌신한 건 이상한 일이다. 그건 어떤 약속 때문이었다. 바토우. 죽어간 해적들. 그들은 죽더라도 누가 뼈라도 주워줄 이도 없는 인생들이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는다면, 살아남은 쪽이 그 뼈 위에 적들의 두개골을 장식해 주기로. 그게 해적의 긍지였다. 사루가쿠가 여기에 있는건 그 긍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루가쿠는 바보였다. 거대한 원수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동료의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지 궁리할 수가 없었다. 동료의 빚을 갚는건 해적들만의 자존심은 아닐 것이다. 귀병대도 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았던가. [[카와카미 반사이]]라는 희생. 그래서 다케치가 죽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루가쿠는 자신과 부하들을 써 승리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다케치에게 부탁했다.
* 통로 저편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그 정체는 통신기를 통해 [[한카이]]가 알렸다. 히노카구츠치의 파괴.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지만 희소식 만은 아니다. 히노카구츠치 파괴는 완전하지 못했고 적의 다음 행동은 계속된다. 다케치의 책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필요할 때 할 일을 하는 남자다. 그는 선내에 남은 잔존병력을 최대한 긁어 모으게 했다. 적은 틀림없이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격돌시키고 자신들은 탈출하려 할 것. 그렇다면 결전의 장소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그는 사루가쿠에게 그 장소로 모두를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 쉬운 말이라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려운 법. 다케치의 말은 구상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하고 무너져 가는 해방군 모선의 잔해 속에서 생존한 병력을 모으고 다시 싸우게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한카이도 그것을 지적했다. 병력이 얼마나 남았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싸울 기력이 있을지.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폭발에 삼켜지는 통로를 뚫고.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곧 두 갈래로 나눠 각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그 남자는 반드시 살아있을 겁니다.
다케치와 사루가쿠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성과를 올렸다. 사루가쿠가 파괴된 중추 시스템의 하부에서 잔해에 걸린 그 남자를 발견할 무렵, 다케치도 막 추락하려던 [[키지마 마타코]]를 구출했다. 다케치가 그녀를 옮기는 동안 사루가쿠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웅을 데리고.
* [[다카스기 신스케]]는 탈출을 목전에 두고 있던 해방군 잔당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마타코와 다케치가 향하고 있는 그늘이었다. 사루가쿠의 구조를 받은 그는 곧바로 [[엔쇼]] 황자가 그 휘하 병력을 요격하기 위해 매복을 감행했다. 엔쇼 황자가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모토 다츠마]]에 패해 쓰러지고 다카스기 일행은 최고의 타이밍에 해방군의 배후를 잡았다. 다카스기가 선두였다.
사루가쿠는 자신이 선두에 세운 남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 서있는 것만으로 동료들의 기색이 바뀌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적들의 기색까지도. 이 피투성이 사내가 휘두르는 칼끝에 따라서 전장이 바뀌고 있었다. 아군 부대다 적들 위로 쏟아져내렸다. 통로를 통해 도크에 도착한 가츠라와 다츠마의 병력들도 일제히 진격했다. 사루가쿠 자신도 그 뜻모를 열기에 휩쓸려 적들을 찍어내렸다.
* 가츠라와 다츠마와 격전으로 부상을 입은 엔쇼 황자는 부하들을 쓰러뜨리며 다가오는 다카스기의 일격을 힘겹게 받아냈다. 이미 망가져 언제 끊길지 모르는 라이트 세이버의 빛이 신스케의 칼날을 가까스로 쳐냈다. 그러나 라이트 세이버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출력이 저하됐다. 그런 엔쇼를 원호하기 위해 다카스기의 후방에서 부하들이 총구를 겨눴다.
* 녀석들은 정작 자기 등 뒤는 챙기지 못했다. 다츠마와 가츠라가 다카스기의 후방을 청소했다. 마침내 나란히 선 세 사람. 피투성이의 세 남자. 엔쇼와 격전을 치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다카스기의 상태도 심각했다. 그는 멀쩡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발아래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는 막 회복됐다. 일시적인 출력 저하가 반복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걸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의 형태로 바꾸자 부하들이 후방에 늘어서 원호사격 진형을 취했다. 엔쇼가 광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해방군이 일제 사격을 취한다.
* 가츠라는 엔쇼와 싸우면서 탈취한 라이트 세이버를 아직 가지고 있었고 유용하게 사용했다. 칼을 수직으로 돌려서 적의 탄환을 막아낸 가츠라는 그것을 던져서 적 선두의 엔쇼를 견제했다. 엔쇼가 뛰어올라서 피해자 다츠마가 견제사격을 가했고 그 틈에 가츠라는 떨어진 라이트 세이버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다카스기와 함께 적의 1열을 분쇄한다.
* 엔쇼는 다츠마의 사격에 굴하지 않고 라이트 세이버의 찔러들었다. 그 끝이 다츠마의 복부에 박히는 순간, 엔쇼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다츠마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눈은 흔들림없이 표적을 노려보고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격발. 총알이 엔쇼의 오른팔 상완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엔쇼가 라이트 세이버를 놓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아직 엔쇼는 집중공격을 당하는 중이었다. 팔의 고통을 달랠 틈도 없이 뒤에서 가츠라가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렀다. 엔쇼는 몸을 앞으로 날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동시에 바닥에 있는 라이트 세이버를 왼손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아래에서 좌측 위를 향해 사선으로 크게 베었다.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른 직후의 가츠라는 어정쩡한 자세에서 그 참격을 받아냈다. 간신히 막았지만 몸통을 베였고 흉부 갑옷에 흉측하게 큰 빗금이 생겼다. 일단은 엔쇼가 한 고비를 넘긴 걸까? 여전히 그러기엔 멀었다. 가츠라를 베고 지나간 라이트 세이버의 끝에는 뜻하지 않은 습득물이 붙어 있었다. 가츠라의 폭탄.
- 이관섭 (1961년) . . . . 23회 일치
{{공직자 정보
|직책 =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 2000년 10월 ~ 2005년 1월 : [[산업자원부]] 디지털전자산업과장
* 2003년 5월 ~ 2005년 1월 : [[산업자원부]] 방사성폐기물팀장
* 2005년 1월 ~ 2006년 4월 :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팀장
* 2006년 4월 ~ 2007년 4월 :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팀장(부이사관)
* 2012년 1월 ~ 2013년 3월 :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 2013년 3월 ~ 2013년 4월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 2013년 4월 ~ 2014년 7월 :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 2014년 7월 ~ 2016년 8월 :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 2016년 11월 ~ 2018년 1월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2017년 1월 ~ : 세계원자력발전사업자협회 회장
|전임자 = [[김재홍]]
|후임자 =[[정만기]]
|직책 = [[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보림 . . . . 23회 일치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조치원읍 출신으로,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5867|2012년 연기군이 세종시로 출범하기 직전에 열린 ‘복사꽃 아가씨 선발 충남대회’에서 진으로 선발된 적이 있다]]. 2014년에는 제23회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여담으로 [[프로듀스 101]] 시즌1에 출전한 [[성혜민]]도 여기에 출전하여 투어 2000상을 받았다. 즉, 대회 동기인 셈.]에 참가, 본선에 진출해 MTP MALL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미스코리아 충북]]'에 참가하여 이즈치과상을 수상했다.
2017년 6월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그룹인 다이아 TV가 자체 제작한 웹 드라마인 '''뷰티학 개론~여자의 화장에는 이유가 있다(여화이) 시즌 1'''(총 4회 완결)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웹 드라마로, 현재 시즌 3까지 나왔다. 참고로 이 드라마에는 훗날 [[tvN]]의 드라마인 [[크리미널 마인드(tvN)|크리미널 마인드]] 15회(9월 13일 방영)에서 납치된 수영선수 여고생 3인방 중의 한 명으로 등장하는 같은 소속사의 임채연도 출연한다.]
[include(틀: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참가자)]
||<#FBB30F><width=18%><:>'''{{{#202020 생년월일}}}'''||[[1995년]] [[2월 28일]] ([age(1995-02-28)]세) [[세종특별자치시]] ||
'''걸그룹 출신이 아닌 참가자로의 인간승리의 표본.'''
부트 평가에서는 창작무용을 선보였고, [[비(가수)|비]]에게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며 4부트로 예선을 통과했다. 방송 분량은 다른 여성 개인 출전자들과 묶여서 매우 적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5~6회|6회]] 참가자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대부분 현역 아이돌들인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배우/[[모델]] 출신인지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잠깐 사이에 [[의진(소나무)|의진]]과 친해졌는지 의진이 [[멜로디데이]]와 [[DIA(아이돌)|다이아]] 연합에 들어갈 때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빨강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포지션 배틀]] 중 댄스 부문에 가장 먼저 [[http://tv.naver.com/v/2366699|참가]]해서 43부트를 받았는데, 뒤에 나온 [[박지원(1997)|박지원]]이 48부트를 받아 밀려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RESTART 미션]]에서는 빨강팀에서 'Gee'를 공연했는데, 막내 [[한비(립버블)|한비]]에게 안무를 배우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초보자인지라 안무 중간 점검에서는 김화영에게 주시당했는데, 팀원들의 커버를 잘 받아서 '팀복은 타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도 많이 늘었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네가 틀리면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본 경연 도입부분에서 혼자 틀리는 실수를 범해 무대가 끝난 다음에는 이에 대한 자책감에 눈물을 보였고 이에 [[우희(달샤벳)|우희]]와 팀원들이 첫 실수 이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무대를 마친 것을 칭찬해 주며 격려했다. 현장 투표에서는 113표로 7위를 기록했다. 첫 미션에서 보여 준 [[의진(소나무)|의진]]과의 케미와 성장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방송 종료 후 공개된 중간 개인 순위에서는 무려 19계단이나 상승해 25위에 올랐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7~18회|셀프 프로듀싱 미션]]에서는 검정팀으로 참가해 또 다시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다. 중간 평가에서 갑자기 코피가 터진 의진을 리더인 [[세리(달샤벳)|세리]]와, 의진과 친한 보림이 화장실로 데려다 주었다. 그 외의 방송 분량은 별로 없었지만 본 경연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냈고 현장 투표에서 팀 내에서 딱 중간인 5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3~24회|음원 발매 미션]]에서는 노랑팀에서 'Cherry On Top'을 공연하게 되었다. [[의진(소나무)|의진]]과는 3번째 같은 팀인데 의진은 개인 인터뷰에서 언니가 하면 하더라며, 이번에도 함께하면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포인트 안무를 배울 때는 이보림이 계속해서 김화영에게 지적을 받았고, 의진에게 그만 의존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보림은 개인 인터뷰에서 요즘 화영 선생님 그림자만 봐도 떨린다며, 그래서 화영 선생님한테 칭찬 들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점검에서는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다리를 들어 쭉 뻗는 동작을 추가하자고 했고, 본 경연에서도 이를 멋지게 성공시켰다. 현장 투표에서는 팀 내 3위를 기록했지만, 팀은 아쉽게 2위에 그쳤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상 지적만 해왔던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영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영상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영상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남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식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분류:더 유닛/참가자]][[분류:미스코리아]][[분류:1995년 출생]][[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이채영(fromis_9) . . . . 23회 일치
||<bgcolor=#BBB3D8> '''{{{#white 신체}}}''' ||<(><bgcolor=#ffffff> 169cm[* 2017년 8월 25일 카카오TV 라이브방송에서 직접 언급.], 54.6kg[* 팀 내 최장신, 2차 라이브방송에서 실수로 몸무게 뒷자리가 4라고 간접인증] ||
||<bgcolor=#BBB3D8> '''{{{#white 가족}}}''' ||<(><bgcolor=#ffffff> 부모님, 언니 이혜인^^(1993년생)^^, 언니 이혜지^^(1996년생)^^[* 채영 왈 큰 언니랑 2살차, 작은 언니랑 7살차라고 한다. 특히 큰언니 이혜인은 종영 이후 채영의 일상 사진을 많이 올리고, 채영 팬과 소통을 자주한다. ~~챙덕은 계탔다~~] ||
||<bgcolor=#BBB3D8> '''{{{#white 성좌/지지}}}''' ||<(><bgcolor=#ffffff> [[황소자리]]/[[용띠]] ||
||<bgcolor=#BBB3D8> '''{{{#white 별명}}}''' ||<(><bgcolor=#ffffff> 챙람쥐, 엘리자베스, 이천재[* 평소 말할 때 과장이 심하다고 멤버들이 붙여준 별명], 빅스쿼럴[* 실제로 친언니가 부르는 별명이다.] ||
>'''안녕하세요! [[유용근밴드리즈]]에서 에너자이저를 맡고 있는 이채영입니다!'''
'''[[유용근밴드리즈]]의 탄탄한 댄스 실력과 예능감 보유자'''
팀내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가지고 있는 멤버로 많이 거론된다. 브이앱이나 [[fromis_의 방]], 약속회 토크쇼 등에서도 소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등 프로미스의 예능 에이스라고 불릴 정도. [[아이돌학교]]에서도 방송 내내 예능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줬다. 주로 멤버들이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거기에 대해 성대모사를 하거나 과장을 보태어 상황을 설명하는 등 멤버 각자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재능이 있다. 이때문에 거의 모든 멤버와 케미가 잘 맞는 편.
* 평소엔 "Zㅗ르Zㅣ마" 같은 말투로 장난스럽게 늘어질 듯 말할 때가 자주 보인다. 프로미스의 방 0회에서 나온 언니도 비슷한 말투다. 또한 공연 전에는 항상 긴장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무대에 올라가면 그런 모습 없이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 그런 걸 보면 타고난 무대 체질인듯 하다.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영|하영]]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상대가 이채영'''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 데뷔하고 나서 해보고 싶은 예명 중 하나가 '''[[엘리자베스]]'''였다고 한다. 여왕 이름으로 많이 나오다 보니까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 얘기를 들은 멤버들에게 돌아온 건 안 어울린다는 말 뿐(...) 2차 약속회에서 해보고 싶은 머리색으로 금발을 꼽은 걸로 보아 이런 이미지를 좋아하는 듯하다. ~~다만 [[fromis_9]]은 멤버 전부 본명을 쓰기 때문에 이 예명이 쓰일 일은 없었다.~~
* [[이서연]], [[이나경 (가수)]]과 본인으로 구성된 빵빵즈와 [[송하영]], [[박지원(fromis_9)|박지원]]과 본인으로 구성된 삐융즈 중 빵빵즈를 골랐다. 삐융즈는 피곤하면 못 하지만 빵빵즈는 언제나 빵빵즈라고. --송하영 : 너 이제부터 내 침대에서 자지 마.--
* [[아이돌학교]] 입학 당시에는 입술이 본인의 매력 포인트라 했으나, [[fromis_9]] 결성 이후에는 자신이 멤버들이 피곤할 때마다 웃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성격 자체가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아이돌학교]] 전에 데뷔의 꿈을 꾸면서 자신이 무대에 서는 느낌이 너무 궁금해서 3~4년간 연습생 기간 동안에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하고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밖에 안 했다고 한다.
* [[SHOW CHAMPION|쇼 챔피언 비하인드]] 80회에서 실시한 쇼챔올림픽 제자리 멀리뛰기에서 245cm[* 실제로는 195cm에 보너스 기록 50cm가 추가된 기록이다. 2003년 고3 여학생들의 평균 기록이 165cm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 ~~사실 245cm면 거의 모든 대학의 체대입시에서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ㅡ~~]를 기록하며 은메달[* 금메달은 [[모모랜드]]의 [[데이지(모모랜드)|데이지.]] ]을 차지했다. 추가로 중학교 때도 멀리뛰기로 1등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챙람쥐 인증--
이채영이 2013년에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글이[[http://pann.nate.com/talk/337716607|2017년 6월]]과 [[http://pann.nate.com/talk/339014341|2017년 10월]]에 [[네이트 판|한 커뮤니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아이돌학교]] PD는 2017년 7월에 [[http://hei.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7122947H|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 많은 네티즌들이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을 사실로 간주하고 [[악플]]을 작성하고 있다.
~~[[https://youtu.be/f3BY5yxCtHE|잘 정리된 반박영상]]~~(현재는 볼 수 없는 상태인 영상) 하지만 이채영을 학교폭력 가해자라 생각하고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이 많은 만큼 초기에는 이채영 본인이나 소속사의 해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활동에 큰 장애가 올 만큼 커지진 않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반대로, 이채영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루머라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 모두 작성자의 입장만 담겨 있다. 그리고 증거라고 제시된 것들 또한 누군가를 4년씩이나 지나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불충분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담임 교사 카톡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그 카톡을 올린 사람이 실제 담임 교사가 맞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할 증빙 자료라도 최소한 첨부해야 하지 않나?
*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보더라도 커뮤니티 글 작성자가 받았다는 직접적인 괴롭힘은 결국 이채영 본인이 아니라 '이채영의 친구'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행했던 것 아닌가?
* 커뮤니티에 글들이 올라가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정식 데뷔까지 했는데) 언론사에서 정식으로 탐문 취재해서 기사화한 경우가 왜 없는가? 정녕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증거 자료를 가지고 언론사에라도 제보해 공론화하면 될 일이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23회 일치
*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십계가 침입한 "은총의 빛"을 탈환하기 위해 행동하려 하지만 로우를 비롯한 인간 전사들이 갑자기 배신해 그들을 학살한다.
* 작전이 실패하자 [[뤼드셀]]은 텔레파시로 [[네로바스타]]를 불러낸다. 어서 천계에서 증원을 요청하고 "마엘"을 불러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이미 정신지배가 걸린 네로바스타는 그 명령을 실행하지 못한다. 뤼드셀이 거듭해서 텔레파시를 보내자 [[고우셀]]이 걸어놨던 지배가 풀리며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다.
그러나 진상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 네로바스타가 십계 두 명이 침입했다며 지원을 요청하는 텔레파시를 보내자 스티그마 병력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큰일이지만 그들만으로 십계 두 명을 상대로 승산이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네로바스타는 현장에 있는 십계는 전투형이 아니라 전부 덤비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하며 당장 은총의 빛 안으로 돌입해달라고 요청한다. 근거가 없는 말이지만 스티그마 병력들은 신병장이 하는 말이라며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거인족 병사의 목을 벤다. 거인이 쓰러지자 요정족 병사가 보복하려든다. 그러나 요정족의 자잘한 마법따윈 검으로 튕겨버리고 그대로 가슴을 찔러버린다. 순식간에 병사 둘을 처리한 로우.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그가 평범한 인간도, 스티그마에 협력하는 것도 아니라는걸 직감한다.
* 로우가 은총의 빛에 접근하자 저지하려 하지만, 이미 문지기들은 인간 전사들에 의해 처리된 후였다. 로우는 유유히 은총의 빛의 정문을 점거한다.
* 은총의 빛의, 게라이드의 곁에서 생긴 이변은 곧 거인왕 [[드롤]],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에게 전해진다. 물론 그들의 몸 속에 있는 [[디안느]]와 할리퀸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정확하진 않지만 불길한 예감을 감지하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멜리오다스]]도 함께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직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데리엘]]과 [[몬스피트]]도 지켜야 해서 그가 따라오기에 적당하지 않다. 할리퀸은 그들을 지켜주라고 말하고 디안느와 함께 복귀를 서두른다.
* 할리퀸은 돌아오는 길에, 미래에 저 십계들이 큰 장애물이 될 걸 알면서도 지켜주라고 한 것을 자조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그게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들 뭔가 원인이 있었어 싸우지만 태어난 것 자체로 악한 자는 없다. 동료가 눈 앞에서 살해 당한다면 누구든지 용서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해준다. 할리퀸은 디안느가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주자 감격한다.
할리퀸은 여신족이 생각보다 호전적이고 고압적이란 점도 몰랐다고 말한다. 디안느도 동감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렇지 않았고 멜리오다스도 마신족 답지 않은 마신족이라고 말한다. 할리퀸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현대에서 자신이 멜리오다스에게 한 일을 반성한다. 분명 그에게도 복잡한 사정이 있었을 텐데 그가 마신족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걸 부정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날고 있는데, 수풀 사이에서 이상한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 그 이상한 녀석과 부딪힌 할리퀸. 잠시 이동을 멈춘다. 할리퀸은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보고 눈을 의심한다. 이 시대에 있을리 없는 인물이기 때문. 그를 알아보지 못한 디안느는 누구냐고 정체를 묻는다. 그는 놀랍게도 [[고서]]. 그는 고우셀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사악한 웃음을 띄운다. 그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알아보고 그들의 정보는 자신들도 모르는 부분까지 전부 알고 있다고 협박조로 떠들기 시작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23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1th sense. '''무법자들 (6)'''
* 효부는 자기가 지은 이름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데 마기는 센스가 구리다고 깐다.
* 그 이름은 장차 나타날 에스퍼들의 지도자 "파괴의 여왕"에게서 딴 것. 모미지가 이 점을 지적한다.
* 효부는 이때부터 칠드런이 나타날 것을 예지하고 마기일행에게 알려줬던 것. 마기는 그 이름도 대체 누가 지은 거냐고 하는데 효부는 자신이 예지에서 본 이름이지만, 어쨋든 자기가 처음 발설하는 것이니 타임 패러독스가 아닌가 잠시 고민한다.
* 그리고 자신들에게 나라와 가족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 효부는 "도와주겠다"라고 했다고 정정해주고 자신은 그들의 부모가 돼줄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러자 효부는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인이"라며 앓는 시늉을 한다.
* 그는 자신의 시간은 반세기도 전에 멈췄고 여기 있는건 "나를 죽인 자들에 대한 증오와 여왕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 마기 일행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만 자신은 망령이기에 함께 싸우고 피 흘릴 수 없고, 지금 자신은 "효부 쿄스케라 불렸던 젊은이의 잔상"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리를 둔다.
* 마기는 자신들이 있는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여왕을 중요시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그때 모미지가 배 안을 보러가자면서 마기를 끌고 나온다.
* 둘만 있는 자리에서 모미지는 "소령이 말한대로 너무 그를 쫓지 마라"고 충고한다.
* 그녀는 자기들도 소령을 좋아하지만, 소령에게 있어서도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본질이 "외로움 타는 소년"에 불과함을 정확히 알고 있다.
* 실제로 효부는 자신은 "과거보다 현재를 소중히하는 사람은 못 된다"고 인정하고 있다.
* 만일 그 날을 잊고 앞을 향하게 된다면 "자신이 아니게 돼버린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구하려하지 말라고 독백한다.
* 사실 이들은 "어떤 기관"에 매수된 첩자들이었다.
* 이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인물. 바로 바벨의 창립자 츠보미 후지코다.
- 정겨운 . . . . 23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김우림 (2017~현재 )
| 자녀 =
* [[2006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그 남자의 질투》 ... 킹카 고등학생 이준기 역
* [[2007년]] [[KBS2]]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 (KBS 드라마)|행복한 여자]]》 ... 최준호 역
* [[2008년]]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 ... 태권도 사범, 차동우 역
* [[2012년]] [[MBC]] 창사51주년특별기획 《[[마의 (드라마)|마의]]》 ... [[소현세자]] 역 (특별출연)
| 남자 3
| 자운
* [[2005년]] 빅마마 - 〈여자〉
| 남자 신인상
| [[태양의 여자]]
| 연기자부문 스타상
| 연속극부문 남자 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정몽규 . . . . 23회 일치
| 경력 = [[현대자동차]] 회장<br>[[동아시아축구연맹]] 부회장 (2014년 3월 ~ )<br />[[대한축구협회]] 회장(2013년 1월 ~ )<br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2000년 ~ )<br />[[아시아축구연맹]] 부회장 (2016년 9월 ~ )
1996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현대자동차]] 회장을 역임했고, 1999년 3월부터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2018년 5월부터 [[HDC]]그룹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종합부동산인프라기업]]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40만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했고, 대표사업지로는 ‘[[삼성동 IPARK]]’, ‘[[수원 IPARK CITY]]’, ‘[[해운대 IPARK]]’ 등이 있다. [[주택사업]] 뿐 아니라 [[도시개발사업]]과 [[건축]], [[토목]], [[플랜트]], [[SOC개발사업]] 등 다양한 건설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17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풍요로운 삶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룹 철학 선포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5월 투자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분할하고 정몽규 회장은 HDC 회장으로 취임했다. HDC는 자회사 관리와 부동산 임대사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집중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집중 회사로 주택, 건축, 인프라 부문에서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몽규 회장은 부동산인프라건설을 중심으로 [[제조]], [[유통]], [[IT]], [[레저]], [[서비스]] 등 HDC그룹의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계열사로는 [[HDC]], [[HDC현대EP]], [[HDC아이콘트롤스]], [[HDC아이서비스]], [[HDC현대아이파크몰]], [[HDC영창뮤직]], [[HDC아이앤콘스]], [[HDC호텔아이파크]], [[HDC현대PCE]], [[HDC아이파크스포츠]], [[HDC자산운용]], [[HDC신라면세점]] 등이 있다.
* 2016.03 ~ 2016.08 : [[2016년 하계 올림픽|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선수단 단장
* 1997.02 ~ 1999.01 : 제5대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
* 1996.01 ~ 1998.12 : [[현대자동차]] 회장
* 1988.11 : [[현대자동차]] 입사
*2017.08 : 한국경영학회 대한민국 경영자 대상 수상
*2017.05 :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1996.11 1997년 세계차세대지도자 선정 – 세계경제포럼
|전임자 = [[정몽규]]
|후임자 = [[정몽규]]
|전임자 = [[정세영]]
|후임자 = [[정몽구]]
|직책 = [[현대자동차]](주) 회장
|전임자 = [[정몽구]]
|후임자 = (현직)
|전임자 = [[곽정환 (1936년)|곽정환]]
|후임자 = [[권오갑]]
- 최문식 . . . . 23회 일치
|로마자 표기=Choi Moon-Sik
'''최문식'''([[1971년]] [[1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꼽힌다.
=== 지도자 생활 ===
그 뒤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새로 선임된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선임되였으며<ref>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5/1003000000AKR20131115070900007.HTML/ 최문식, AG 축구대표팀 코치로 합류] </ref>, [[2013년 AFC U-22 축구 선수권 대회]]는 4위에 그쳤지만,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28년만의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하였다. 이후 [[2016년 하계 올림픽]]까지 이광종과 코칭스테프를 맡을 예정이였으나 [[2015년 킹스컵]] 출전을 앞두고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임하자 감독 대행으로 대표팀을 지휘하였다. 대행으로서 2승 1무로 대회의 우승을 이끈 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316559/ 9일 킹스컵 우승 ‘감독 교체-우즈벡 폭력-편파 판정, 악재 딛고 쾌거’] </ref> [[신태용]]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다시 수석 코치로 신태용을 보좌하였다.
[[2015년]] [[5월 27일]] 올림픽대표팀 코치직에서 물러나 [[조진호 (축구인)|조진호]]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전득배 사장 혼자서 일방적으로 영입 한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2015시즌이 끝난 뒤에도 최문식 감독은 유임되었고 최문식은 2016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을 무려 20명 이상을 바꾸는 등의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 작업에 나섰으며, 2016 시즌도 2015시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토대로 한 FC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통한 팀 컬러를 맞추는데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3월 26일]] [[대구 FC]]와의 리그 개막전서 2:0 패한것을 시작으로 [[4월 9일]] [[안산 무궁화 FC]]전까지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에 그쳤으며, [[4월 23일]] [[부천 FC 1995]]와의 경기마저 1:3 역전패하며 리그 4연패를 기록했고, 최문식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를 통해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음을 밝히며 사퇴를 암시하였다.<ref>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41716184350§ion_code=10&cp=se&gomb=1/V/ '4연패' 최문식 감독, ''연패에 대해 책임지겠다''] </ref>이후 대전 구단이 후임 감독을 물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자, 윤정섭 대표이사는 후임 감독 물색설을 일축하며 <ref>[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604180400// 윤정섭 대전시티즌 대표, 감독 교체설 일축] </ref> 최문식 감독을 재신임 할 것을 밝혔다.<ref>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382595/ 대전, 감독교체 없다…윤정섭 사장 "최문식 감독 믿는다"] </ref>
하지만 대전은 홈경기에 비해서 원정 경기에서는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2016시즌동안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단 4경기였고, 그중 3경기는 최하위였던 [[충주 험멜]]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였다. 이러한 한계로 끝내 승강플레이오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권 진입이 좌절되었고, [[10월 29일]] 성적부진과 승강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사임하였고,<ref>박찬준 (2016.10.29)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 최문식 감독, 자진사퇴 "성적부진 책임지겠다"]{{깨진 링크|url=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2F }} 스포츠조선</ref> 2017시즌을 앞두고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취임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335/ 최문식 전 대전 감독, 중국 옌볜 ‘박태하 사단’ 합류]</ref>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의 감독 당시 현실과 이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대전 감독을 역임하면서 대전 구단의 사정을 전혀 모르채 현실을 외면하였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가난한 시민 구단인 대전의 현실을 외면하고 2014년의 우승 및 승격 주역들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내보내고 영입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반복하며 팀의 조직력을 약화시키였으며, 특히 그는 대전은 당시 강등 위기에 몰려있었던 터라 당장의 성적과 승리에 신경써야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위권에 있는 팀이 경기력에 신경쓰는 듯한 행보를 선보였으며 지금 당장의 경기의 승리를 위해 수비 위주의 역습 위주의 경기보다는 당장의 성적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자신 특유의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축구철학만을 고집하며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펼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만을 채우려 했었다.
최문식은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을 하는 식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이며 많은 팬들로부터의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많은 팬들이 그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주된 원인이였다. 이를 알고 2016시즌 들어서는 "모든 것이 감독 탓이다.",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하며 인터뷰에서의 책임 회피를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돌아선 팬심과 여론을 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 [http://www.kfa.or.kr/news/news_interview_view.asp?BoardNo=603&Page=5&Query=PageSize%3D50%26Gubun%3D11499%26Key%3D0%26Word%3D/ 최문식' 최초의 고졸스타이자 최고의 테크니션]
|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이광종]]
|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태용]]
|전임자 = {{국기그림|CAN}} [[마이클 김]] (대행)
|후임자 = {{국기그림|KOR}} [[이영익]]
{{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23회 일치
본디 원작은 마크 슐츠[* [[피너츠]]의 작가와 성씨가 같지만 혈연관계는 아니다. 나중에는 슈퍼맨&배트맨 vs 에일리언&프레데터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의 제노조익 테일즈(Xenozoic Tales). [[만화]]가 히트한 후 당시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자인 미국의 10대 소년, 소녀들에게 맞게 원작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을 삭제하면서 내용을 변형시키고[* 그러한 부분들을 삭제하니 내용 자체가 안 이어져서 그냥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을 바꿔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바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이후 애니메이션을 베이스로 [[마블 코믹스]]에서 이걸 다시 만화화했으며, 또 이 만화를 [[캡콤]]이 [[벨트스크롤 액션게임]]화한 것 또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본 항목에서는 게임 위주로 서술한다.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캡콤]]의 [[아케이드]] 게임으로, 제목의 캐딜락은 원작에서 주인공 잭이 몰고 다니는 캐딜락 자동차(1952 Cadillac Series 62)를 뜻하며, 디노사우르스는 말 그대로 공룡. 즉 현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와 중생대 생명체인 공룡을 붙여서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게임 자체는 잘 만들어졌다. 캐릭터들의 움직임 모션도 그렇고, 아이템도 다양.
서기 2513년 미국 동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환경 오염 등의 문제로 지구에서 생존이 불가능해진 인류는 지하 주거시설을 만들고 600여년 동안 틀어박혀 지냈었다. 그 후 600여년의 세월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인간이 없어진 지상은 자정 능력 덕분에 예전처럼 맑고 건강해져 있었다. ~~본격 인류 해충설 인증 성공~~
그 이유는 바로 '블랙 마켓'이라는 암흑 조직의 악당들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공룡을 마구잡이로 사냥했던 것. 그들은 이렇게 포획한 공룡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뿐 아니라, 세계 정복에 이용하기 위해 유전자 개조를 행하기까지 했다. 이에 4인의 정의의 용사들이 악의 무리들을 소탕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 2스테이지(북쪽 숲으로 향해라!) - 정글→늪→도살자의 일터(?)
* 4스테이지(아지트를 되찾아라!) - 잭의 차고(라기보단 자동차 공장)
* 8스테이지(최후의 싸움) - 유전자 보관실→하수구→동굴→최종 연구소
보너스 성격이 강한 스테이지, 보통 차를 타는 아이템이 나오면서 차를 타게 된다. 다만 차를 타고 적들을 깔아뭉게는 것을 전제로 하여 디자인이 되어 있다 보니 수많은 적들이 바글바글 튀어나오며 '''회복 아이템이 전혀 나오지를 않는다.''' 시간 배분도 캐딜락을 타고 가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냥 가면 타임오버에 걸려서 무조건 한 번 죽는다.''' 이 게임에서 [[스코어링]]의 길을 선택한 경우, 보너스 게임의 성격이 강했던 3스테이지는 [[플레이어]]에게 커다란 시련이 될 것이다.(...)
캐딜락을 타고 돌진하며 적들을 깔아 뭉개는 재미가 쏠쏠하다. ~~[wiki:"무스카" 우하하!! 사람이 쓰레기와도 같아!!!]~~ 더구나 이 판에서는 총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총 좋아하는 유저는 실컷 총질도 할 수 있다. 잘하면 주먹은 딱 한 번만 쓰고 스테이지 클리어가 가능하다. 단 스코어링을 노릴시 차를 타면 그대로 [[망했어요]] 신세가 되니까 스코어링시에는 차는 거뜰떠 봐서도 안 된다. 정확히 말해서 가끔 나오는 안테나 달린 라디오 아이템을 먹으면 안된다. 먹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자동차 호출...
요약하면 차를 타고 진행할 경우 보너스 성격이 강한 스테이지지만, 스코어링 혹은 [wiki:"전일" 극한의 플레이]를 추구할 시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스테이지를 차로 적들을 치면서 진행할 것을 상정해서, '''적들을 바글바글, 길게 배치해 놓았기 때문.''' 이걸 정면으로 돌파하려면 정말 미친다.] 비약해서 말하면 [死ぬがよい]급.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크게 달라지는 사례가 되시겠다.
여담이지만 [[MAME]]에서 무적 치트[* 에너지 치트의 경우 별 문제가 없지만, 무적 치트의 경우 게임중에 난입한 캐릭터처럼 황금빛이 '''끊임없이 캐릭터를 감싼다.''' 이 효과 때문에 스테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를 하고 클리어를 할 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는 치트를 모두 끄고 잠시 기다리면 황금빛 무적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자동으로 점수가 계산된다.
불타는 마을에서 모건이 공룡으로 변해버린 걸 본 주인공 일행은 그 바로 윗동네인 광산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센덴 박사가 개발한 3단변신 괴물을 보고, 이에 따라 단순한 껄렁이 조직인줄 알았던 블랙 마켓은 알고보니 천재 과학자 시몬 페센덴이 거느린 거대 조직임이 드러났고 페센덴의 진짜 목적인 '모든 이들에게 공룡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공룡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이 시작된 해상 도시로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치며 지하의 기지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박사가 없었고 거기에는 슬라이스를 개조한 슬라이사우르스 2마리(혹은 3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주인공 일행은 더욱 깊숙이 내려가서 동굴 끝에 있는 페센덴 박사의 숨겨진 연구실에서 공룡으로 변한 페센덴 박사와 대결해 이기게 되었으나 박사는 자기 몸에 공룡 머리 두 개가 붙은 무려 삼두룡으로 진화하며, "세계는 내 것이다!"라며 공격해온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의 다구리(…)를 못 이기고 패배한다. 이 때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있다고 외치며 저항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연구실과 자폭하여 온 몸이 터진다. ~~수류탄과 바주카 맞아서 흩어진 애들은?~~.
이후 연구실이 무너지자 주인공 일행은 수류탄으로 비상구를 부수고 도망간다. 통로를 따라 뛰어가던 도중 한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잭이 그녀를 구하느라 뒤에 남자 무스타파와 메스만 탈출하게 된다. 그 둘은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연구실은 이미 폭파된 뒤였고, 그들은 쓸쓸히 스테이지3의 데스 밸리를 걸어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잭은 이제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고~~[[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가 "이제 집으로 가자!(Let's go Home!)"라고 말하면서 속력을 높이자 무스타파와 메스가 ~~태워달라고~~ 함께 뛰면서 캡콤 로고가 나오며 게임이 끝난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23회 일치
Call of Juarez: Gunslinger.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FPS 게임으로, [[콜 오브 후아레즈 시리즈]]의 네번째이자 제일 최근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한 노인이 들려주는 서부 이야기 속 [[총잡이]] "사일러스 그리브스"가 되어 [[무법자]]들을 상대로 총격전을 벌인다.
스킬은 세가지 트리가 있다. [[쌍권총]]에 특화된 건슬링어, 소총에 특화된 레인저, 산탄총에 특화된 트래퍼. 하나 찍는다고 다른 두개를 못 찍는게 아니니 취향 따라 찍자.
총을 뽑는데 성공했다면 상대를 쏘아 승리하는 일이 남았다. 이때, 몸을 좌우로 움직여 상대의 총알을 피할 수 있다. 상대는 피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심하자.
1910년, [[아칸소]] 주 애빌린에 위치한 한 술집에 판초를 입은 노인이 들어온다. 그 노인은 자신이 전설적인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 그리브즈"라고 주장하며 사실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세한 내용은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페이지 참조.
* 사일러스 그리브스(자칭)
이 게임의 화자. 자신을 전설적인 현상금사냥꾼 사일러스 그리브스라 주장하는 노인. 자신이 겪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젊은이. 서부시대를 양산형 서부 소설로 배웠다. 자칭 사일러스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소설의 이야기를 말한다.
자칭 사일러스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남자. 그의 이야기를 술 한잔 얻어마시려는 수작으로 생각한다.
=== 자칭 그리브스의 이야기 ===
본명은 윌리엄 헨리 맥카티. 실존인물로 서부개척시대의 유명 무법자다.
가장 악명높은 살인자 중 하나. 평생동안 41명을 죽였으며, 당시 와일드 빌 히콕 다음으로 빠르고 정확한 총잡이로 여겨졌다. 자면서 코를 시끄럽게 골았다고 사람 한명을 쏴죽였다는 전설이 있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로버트 리로이 파커. 가명의 캐시디는 스승격 인물인 마이크 캐시디에게서, 부치는 와이오밍 주 락스프링스에서 도살자(Butcher)일을 했던 것에서 따왔다. 와일드 번치의 리더격 인물 중 하나였으며, 침착하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녔기에 와일드 번치가 오랜시간 존속될 수 있게 하였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키드 커리. 와일드 번치 내에서 제일 거칠다고 알려진 멤버였다. 자비없고 냉혹한 행동으로 유명했다.
실존 인물. 본명은 제시 우드손 제임스. 열차 강도를 전문으로 하는 전설적인 무법자. [[남북전쟁]] 당시에는 남군의 게릴라로 참전했었다.
권총 사이즈로 짧게 자른 산탄총. 근거리에서 좋다고 한다. 버려버려.
다루기 쉽고 숨기기도 쉽도록 총열을 자른 소총. 이 때문에 사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졌다. 버려버려.
가끔씩 필드에 거치되어있는 개틀링건. 엄청난 화력을 자랑한다.
- 킹덤/505화 . . . . 23회 일치
* 열미는 이틀 가량이면 왕도에서 원군이 도착하지만 그 전에 독자병력으로 진군을 격멸하겠다고 이를 간다.
* 작전이 시작되자 양단화는 산민족을 격동시켜 열미군을 압도할 정도로 사기와 함성을 끌어올린다.
* 양단화의 지휘를 받는 산민족의 사기는 그 자체로 위협이 되어 열미군은 물론 아군들 조차 그 기세에 기가 질린다.
* 양단화가 피축제를 선언하자 산민족은 노도와 같이 돌격한다.
* 열미성에는 이틀이면 도성에서 원군이 도착하는 소식이 전해져 있다. 그러나 열미군은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호전적이기 이를데 없어서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자체 병력만으로 진군을 격퇴하자고 함성을 드높이고 있다.
* 열미군의 드높은 사기는 성벽 너머 진군 진영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그들이 수시로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성벽을 뒤흔들고 [[몽념]]의 낙봉대가 있는 지역까지 들렸다. 진군의 숫자가 오히려 그들을 격동하게 하는 듯했다. 낙봉대 내부에서는 [[왕전(킹덤)|왕전]]이 정말로 [[양단화]]군과 [[비신대]]만 가지고 열미를 따낼 생각인지 의심하고 있다. 비신대야 어떻든 양단화의 산민족은 공성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보인다. 지금도 이들이 하는 준비라곤 사다리를 만드는 것 정도인데 별다른 긴장도 열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 한편 공성을 맞은 지휘관 이신, [[하료초]], 양단화를 만나고 있다. 양단화는 [[바지오]]와 [[타지후]]를 대동. 하료초는 왕전의 의중이 어떻든 진짜 자기들만으로 열미를 따낼 각오를 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하료초가 이틀안에 공성을 마치자고 하자 양단화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이신과 하료초를 놀라게 한다. 이신은 좋은 책략이라도 있는 거냐고 묻는데 그녀의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 지켜보고 있던 타지후가 산민족의 언어로 말하자 바지오가 통역해준다. 타지후는 현재 성벽 밑에 진치고 있는 열미의 기마대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하료초는 이들은 지키고 있다가 공성이 시작될 것 같으면 바로 성안으로 들어가 성벽 위에서 화살비를 쏟아붓는 역할이라고 설명해준다. 이는 전형적인 전술인 동시에 몰려온 적 앞에 기마대를 내세워 무력시위하는 용도도 있다고 한다.
하료초는 이런 점들 보다도 적들의 이상할 정도로 높은 사기야 말로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 말로 적이 수성을 잘 안다는 증거이니 자신들도 작전을 잘 짜야만 한다고 말하는데, 이런 말을 듣고도 양단화는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
이신과 하료초가 그 "산민족의 전법"에 대해 묻자 바지오가 대신 설명한다. 그것은 전법이라기 보다는, 양단화 자신의 전법이라 하는게 맞다.
양단화는 혼자 말을 몰고 진군의 앞으로 나아간다. 총사령관 왕전은 물론 몽념의 눈도 그녀에게 쏠린다. 특히 왕전은 그녀의 행동을 매우 주시하고 있는 듯 한데.
*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자 산민족들은 "사왕"이란 칭호를 연호하며 그녀를 부른다. 단지 그녀가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 산민족들은 크게 흥분해서 지금까지 일대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열미군의 함성 소리까지 집어삼켜 버린다. 진군 진영에서 이같은 함성 소리가 들려오자 열미군은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망루에 오른다.
* 양단화는 자신에게 향하는 환호성을 손짓 한 번으로 진정시킨다. 그녀는 손을 들어 열미성을 가리킨다. 모슨 산민족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 움직인다.
양단화가 산민족의 언어로 이렇게 호령하자 산민족은 지면을 들썩이게 할 만큼 커다란 함성으로 대답한다. 그야말로 천지를 진동시킨다는 말이 어울려서 그토록 사기가 높던 열미군은 할 말을 잊고 성벽 바깥에서 들리는 함성에 압도된다.
* 양단화의 연설은 단순하고 단호하지만 모든 산민족을 끝없이 고조시켰다. 그녀의 등장 전까진 헤이한 상태로 사다리나 만들고 있던 그들이 갑자기 용맹하고 무자비한 전사로 각성한 것이다. 이들이 사왕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적들은 물론 아군들 조차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 양단화가 마침내 "피축제"를 선언하자 산민족이 노도처럼 돌격을 시작한다.
- 페어리 테일/528화 . . . . 23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이 망자를 모독하는 행위를 막으려 하자 다짜고짜 공격하는데 지금의 엘자와 [[웬디 마벨]]은 그걸 막을 기력이 없다.
* 위기의 순간 나타난 [[제라르 페르난데스]]. 엘자를 구하고 반격을 퍼부으나 아크놀로기아는 그 마법 자체를 먹어치우며 비웃는다.
* 아크놀로기아가 마룡으로서 본체를 드러내자 웬디는 무리해서 드래곤 포스를 해방, 자신이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인 듯 하다.
* [[아이린 베르세리온]]과 힘겨운 혈투를 끝낸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 그녀들 앞에 정체불명의 괴한이 나타난다. 그 정체는 [[아크놀로기아]]였지만 두 사람은 그의 인간체 모습을 몰랐다. 아크놀로기아는 두 사람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아이린의 사체를 훼손하며 즐거워한다. 그 기이한 광경에 압도돼서 엘자와 웬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엘자는 침묵을 깨고 아크놀로기아의 행동을 제지한다. 더이상 시체를 욕보이지 말라는 말에 아크놀로기아가 뒤돌아 본다. 둘을 살펴본 아크놀로기아는 엘자에게선 아이린과 같은 냄새가 나고 웬디는 멸룡마도사인 것을 간파한다. 이제 그의 관심은 아이린에게서 떠났다. 엘자는 그의 정체를 묻지만 대답 없이도 깨닫는다. 웬디도 마찬가지다. 마력이 그가 누구인지 알려준 것이다.
* 아크놀로기아가 다짜고짜 두 사람에게 공격을 가한다. 엘자와 웬디는 기력이 떨어진 상태라 대처하지 못한다.
* 제랄의 주력 마법을 연이어 맞으면서도 아크놀로기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을 뿐더러 웃음까지 터뜨린다. 그는 [[나츠 드래그닐]]이 불을 먹는 것처럼 마법 그 자체를 먹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멸룡마도사에겐 있을 수 없는 일. 웬디가 무슨 속성인 거냐고 경악하자 아크놀로기아는 태연하게 속성 따윈 자신에겐 없다고 말한다.
* 아크놀로기아는 곧 자신의 본체, 마룡의 모습을 드러낸다.
* 엘자는 천랑섬에서 마주쳤을 때 이상으로 강해진 마력에 위축된다. 제랄도 오거스트 때 이상으로 위축되어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거린다. 웬디는 두려움에 떨지만 멸룡마도사인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다. 웬디와 제랄이 말리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아크놀로기아가 그녀를 타깃으로 잡는다. 그의 무서운 공격이 떨어지려는 찰나였다.
* 크리스티나호를 몰고온 건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였다. 이치야는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며 곧 엘자 일행을 태우고 부상한다. 그런데 이치야는 그저 엘자일행을 구하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크놀로기아를 특정 지점으로 유인할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크리스티나호로 주위를 끌어 마그놀리아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 아크놀로기아를 이긴다, 이 불가능해보이는 작전을 입안한 것은 어떤 여성이었다. 일행이 정말로 승산이 있냐고 묻자 이치야는 직접 말하기 보단 그녀에게 대답을 맡긴다. 여성은 "그렇다"고 답하며 모습을 드러내는데.
- 하이큐/265화 . . . . 23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가 [[이나리자키 고교]]를 상대로 1세트 승리를 거두기 30분 즘. B코트에선 네코마 고교가 사루카와 공고를 상대로 승부 중이었다.
* 경기 자체는 네코마 측이 이겨나가고 있었으나 사루카와 공고는 묘하게 코즈메 쪽에 성가신 플레이를 강요하며 적극적인 승부는 피한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오리타카]]는 [[네코마타 야스후미]]의 제자 출신으로 1세트를 버리더라도 장기전으로 유도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 봄고 1일 차의 밤은 살아남은 모든 팀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네코마 고교]]에게도 싱숭생숭한 밤이 왔다. 3학년 [[쿠로오 테츠로]], [[카이 노부유키]], [[야쿠 모리스케]]는 숙소 로비의 쇼파를 차지하고 시시덕 거렸다. 그들에게도 첫 전국대회였다. 인터하이와는 또다르게 들뜨는 밤이었다. 야쿠가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칸센을 타고 싶다면서. 카이는 은퇴하고 나면 올해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야큐가 나갈 수는 있겠냐고 반쯤 빈정대자 쿠로오가 후배들을 좀 믿으라고 면박했다. 마침 그 후배가 근처에 있었다. 카이가 자판기에 들른 [[코즈메 켄마]]를 발견했다. 음료를 뽑으려는데 다른 학교 학생 둘이 그 앞에서 잡담 중이었다. 숫기가 없는 코즈메는 비켜달라고도 못하고 뒤에서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 쪽에서 먼저 그를 발견, "자시키와라시"인 줄 알고 자리를 양보해준다.
* 후배의 곤란을 즐겁게 지켜본 3학년들. 야쿠는 저 튀기 싫어하는 코즈메를 기어고 전국대회까지 데려왔다고 말했다. 인솔한 장본인인 쿠로오는 "어느 모로 봐도 스포츠맨으론 안 보인다"고 웃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묵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코즈메는 중학생 때까지고 특훈을 한 번 했다하면 몸살을 일으키는 약골이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쿠로오는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자기가 그를 배구로 끌어들인 범인이었으니까.
* 야쿠 만큼은 아니지만 카이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 코즈메는 원채 그런 성격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정말로 싫었다면 진작 관뒀을 거라고 말한다. 마침 곡절 끝에 음료를 쟁취한 코즈메가 이쪽으로 온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가 질색을 했다. 수면의 질을 명목으로 자기 전에 게임은 금지시켜 둔 터였다. 엄마같은 참견이었다. 코즈메는 이쪽이 나누는 대화를 전부 들은 모양이다. 쿠로오의 잔소리를 무시한 채 "진짜 그만두고 싶어지면 그만 둔다"는 말을 꺼냈다.
쿠로오의 쇼크. 본인이 정말 그렇다고 말하니 꽤 충격이다. 하지만 코즈메는 다시 "조금 그렇다는 얘기"라며 소꿉친구의 호들갑을 차단했다. 단지 신경 쓴다는 이유만으로 몇 시간씩이나 연습할 수는 없고 애초에 배구가 싫었다면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세상에는 [[히나타 쇼요]]처럼 100%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동기로 배구를 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쪽이 오히려 드물고, 그건 일종의 병이다.
* 카이가 화제를 돌렸다. 기량을 갈고 닦는걸 "레벨 업"이라 표현하는게 코즈메 답다는 말이었다. 거기엔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다. 쿠로오가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부활동을 마친 쿠로오가 코즈메의 방에 왔다. 거기서 죽은 것 같은 얼굴로 만화잡지를 붙잡고 있었지만 보는 둥 마는 둥이었다.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코즈메도 그정도 눈치는 있었다. 경기에서 심하게 졌을 거라고 짐작했고 그게 맞았다. 25 대 14. 빈말로도 썩 괜찮지 않은 스코어였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코즈메는 소꿉친구를 기운내게 하려면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쿠로오는 야쿠가 정서란 말을 알기는 할지 궁금했다. 야쿠가 현재 최대로 신경 쓰는건 팀의 승리도 보람찬 플레이도 아니라 남은 봄고 4일차 동안 자신이 가장 튀어야 한다는 쇼맨십이었다. 여기에선 쿠로오도 지지 않았다. 자기는 벌써 여자 아나운서하고 인터뷰할 구상까지 해놨다고 대항했다. 이렇게 둘이서 투닥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아까 자판기를 선점하고 있던 타학교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을 사과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사람은 카이 뿐이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네코마의 봄고 1일차가 끝난다.
* 봄고 2일차. 카라스노 고교가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아 1세트 승리를 거머쥐기 30분 전.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가 괴짜 속공을 꽂으며 B코트의 관중석 분위기에 불을 질렀다. 여친 미카와 동행한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본래 C코트에서 진행 중인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B코트 쪽에서 환호성이 오르자 미카가 먼저 그쪽 분위기가 달아올랐다고 말하자 다이쇼도 그쪽을 신경쓰기 시작했지만 당초 관전 포인트는 네코마였다.
* 봄고 남자 2회전 C코트 경기. 도쿄 출신 네코마 고교 대 이시카와 출신 사루카와 공업 고교. 스코어는 15 대 13으로 네코마의 무난한 리드. 하지만 사루카와의 공격이 제법 매섭다. 4번의 스파이크. 코즈메와 쿠로오가 블록을 뛰었다. 하지만 4번은 꽤 절묘한 솜씨로 블록을 피해 우중간을 파고 든다.
* 중계진은 수비전으로 전개되는 경기 양상을 양팀 감독에게서 찾았다. 사루카와의 [[시시오 오리타카]]는 젊은 감독이었다. 그는 네코마의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이었다. 사제간이라 닮은 플레이를 펼치는 걸까? 중계진의 분석이 맞는 지는 몰라도 경기 양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네코마 측이 얼마나 자각했는진 모르지만, 이미 그들의 뇌는 착실하게 피로를 쌓고 있었다.
- 하이큐/273화 . . . . 23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반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식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 카게야마의 4회차 서브. 이번에도 역시 강력하다. 긴지마가 받은 공은 크게 떠올라 다시 카라스노 진영이로. 여기서 카게야마가 또 묘기를 부린다. 서브 이후 "직결 셋업".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카라스노의 9번 카게야마를 보면서 "봄이 한 번에 돌아왔다"는게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10번, 히나타도 그랬다. 카게야마의 신속한 세트업 만큼이나 히나타가 날아오른 것도 빨랐다. 이나리자키 블록은 미처 따라붙지 못했고 완전 노마크로 스파이크. 하지만 득점하지 못한다. [[미야 아츠무]]가 귀신같이 루트를 꿰뚫어보고 리시브해낸다. 공은 오사무를 거쳐서 다시 오지로에게. 오지로는 방금 전 꺼림직함을 떨쳐내려는 듯 강렬한 스파이크로 1점을 되찾아 간다. 카게야마의 득점 행진은 여기서 멈췄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변했다.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와 미야 아츠무 간의 신경전. 그대로 고조된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오사무의 차례. 아츠무는 카게야마를 의식했는지 신경질스럽다. 오사무를 상대로 2세트를 마무리 지으라고 말하면서 왠지 또 "오늘 서브 에이스는 내 압승"이라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오사무도 그못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그게 영향을 줬는지 오사무의 서브는 크게 뜨면서 아웃. 코트를 한참 벗어나 스코어보드를 맞추는 홈런이다. 옆에 있던 [[야치 히토카]]가 화들짝 놀란다. 중계진은 원래 이나리자키는 가끔 이런게 나온다며 웃어넘긴다. 아츠무에게 "누가 홈런 경쟁을 하랬냐"고 갈구다가 "네가 쓸데없는 소릴해서 그렇다"며 오지로에게 쥐어박힌다. 사실 오사무는 대범한 척해도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 [[스나 린타로]]는 자기랑 동류라고 표현한다.
* [[쿠로오 테츠로]]는 크게 앞서서 안심했던 이나리자키가 카게야마가 불을 지핀 추격세로 흔들렸다고 봤다. 지록 오지로는 실책을 만회하긴 했지만 대신 팀 전체가 "꺼림직한 분위기"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코즈메 켄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정도의 작은 흔들림도 평소의 플레이를 조금은 흔들리게 하고 그 다음 약간의 미스가 겹쳐서 실점으로 이어진다. 그걸 결국 흐름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는다. 그 말처럼 이나리자키의 플레이는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긴지마의 스파이크가 카라스노의 블록에 막혀서 자군 코트를 때렸다. 다행이 이 플레이는 블록에 참가한 [[아즈마네 아사히]]의 터치네트로 실점이 되진 않았지만 팀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이젠 초조하기까지 하다.
* 바로 이 시점에서 선수교체. 오지로 대신 이나리자키의 주장 [[키타 신스케]]가 등판한다. [[타나카 사에코]]는 주장이 이런 시점에서 에이스를 쉬게 하는 거냐고 경악했다. 시마다도 비슷하게 봤는데 아마도 이번 세트를 이미 딴 걸로 생각하고 마지막 세트에서 에이스인 오지로를 풀로 활용하기 위해 잠깐 휴식시키는 걸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지금이 찬스일수도 있지만, 막상 교체로 들어온건 팀의 주장. 그냥 "대역"은 아닐 공산도 있었다. 카라스노의 벤치도 그 점을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타케다 잇테츠]]는 기어코 자료로 접하지 못했던 선수가 나왔다고 우려했다. 우카이 코치는 거기에다 오지로를 조금 더 흔들어 놓고 싶었던 참이라 아쉬워한다.
* 키타를 누구보다 경계하는건 코트 위의 선수들이었다. 카라스노 선수들의 이목이 키타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신은 "대역"일 뿐이니 경계할 필요도 없다고 독백했다.
그것과 별개로, 막상 주장을 맞이한 이나리자키의 선수들도 경직된 기색이 완연하다. 그 미야 형제 조차도 기합이 잔뜩 든 모습이다. 후배들의 "나이스 서브" 응원을 받으며, 버티는 역할의 키타가 서브 위치에 선다.
무려 2연속 서브 에이스에 3연속 득점을 이끌며 2세트를 뒤집어놓았다. 4회차 서브도 득점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서브 직후 바로 세트업을 올리는 묘기를 보여주면서 이나리자키를 압박했다. 미야 아츠무의 저지로 득점행진은 끊어졌지만 아츠무가 심하게 의식하게 된 건 분명하다.
미야 아츠무는 카게야마가 서브로 대활약하자 엄청나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카이 코치의 의도는 주포 오지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전술인데, 본의 아니게 아츠무 쪽에도 엄청 스트레스를 선사했다. 그리고 아츠무는 그 성질을 괜히 형제 오사무에게 풀면서 오사무의 컨디션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팀 전체의 분위기까지 흔들린다.
비록 2세트에서 크게 뒤쳐진 상태지만 상대편 에이스 오지로 아란에게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경기 흐름을 뒤집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오지로를 교체하자 조금 더 흔들어 놔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대역"으로 들어온 키타 신스케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카라스노가 경기 데이터를 취득하지 못했던 선수. 이나리자키의 주장이지만 왠지 자신은 "대역"일 뿐이고 그저 "버티는 역할"일 뿐이라고 겸손한 태도다. 하지만 정작 바로 전화에선 리세키가 안전빵일 뿐 아무 위협도 안 되는 서브를 넣고 들어오자 "우리 팀에 들어갈 뿐인 서브는 필요없다"고 독설을 날렸고, 그가 들어서자 마자 그 까불거리던 미야 형제가 군바리처럼 뻣뻣하게 굳은 걸 보면 뭔가 있는건 분명.
- 허안나 . . . . 23회 일치
| 종교 = [[천주교]]([[영세명]] : 안나)<ref>[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87568&path=201707 복음의 가치에 재미까지 더한 ‘남 신부가 간다’ 시즌 2 가톨릭평화방송 TV 촬영 현장,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사목 소개]</ref>
|배우자=1살 연상의 남자친구(2019년 1월 결혼 예정)}}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상》,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상 2010년코미디부분우수상,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상'''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반인남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개그콘서트 나혼자남자다 (2014.08.17~2014.12.28)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코리아]] 《마이 펫 TV》- 실제 반려동물이자 고양이 흰돌이와 함께 인터뷰 출연
* Tvn E-news 기자vs기자 2013.08.20
* 문제적남자 2016.12.25
* 문제작남자 2017.01.01
* 나혼자산다 2017.03.31
* 2010 허경환 자이자이 피쳐링
* 2012 에트로20주년기념자선패션쇼 참석
* 2012 프로젝트런웨이코리아4파이널TOP3디자이너컬렉션 참석
* [[2010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 우수상
* [[2014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 우수상
* 그냥 편한 형이라 생각해! (나 혼자 남자다)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84년 태어남]][[분류:200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황병기 . . . . 23회 일치
|배우자 = [[한말숙]]
'''황병기'''(黃秉冀, [[1936년]] [[5월 31일]] ~ [[2018년]] [[1월 31일]])는 국악 [[작곡가]]이자 [[가야금]] 연주가이다. 본관은 [[우주 황씨|우주]](紆州)이다.
황병기는 1936년 [[경성부]]에서 독자로 출생하였다. [[서울재동초등학교|재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배출한 제자로 동국대학교 교수 윤소희, 단국대학교 교수 서원숙, 숙명여대 교수 김일륜, 이화여대 교수 곽은아, 서울대학교 교수 이지영, 서울대학교 강사 지애리,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이정자, 이화여대 강사 조윤정, 정순희, 대구예술대학 강사 이미경, 숙명여대 강사 이영신, 수원여대 강사 박지영 등이 있다. 이화여대 재직시 개인적으로 지도한 제자로는 준인간문화재 양승희, 이화여대 교수 문재숙, 서원대학교 교수 박현숙, 추계예술대학 교수 이효분, 전남대학교 교수 성애순 등이 있다.
2018년 1월 31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ref>{{뉴스 인용|저자1=장병호|제목=가야금 명인 황병기 31일 별세…향년 82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3&sid2=242&oid=018&aid=0004023311|날짜=2018-01-31|확인날짜=2018-01-31|뉴스=[[이데일리]]}}</ref>
1964년 국립국악원 최초의 해외공연이었던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 초청 일본 순회공연에 가야금 독주자로 참가하고 공연 후 NHK에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9050145/|제목=가야금 깊은 울림, 세계를 울린다…황병기 창작앨범 英美 동시발매|뉴스=[[동아일보]]|저자=전승훈|날짜=2007-09-05|확인날짜=2008-04-07}}</ref><ref>{{뉴스 인용|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39590|제목=`가야금 사랑` 반세기 삶, 우리 가락에 담다
|뉴스=[[중앙일보]]|저자=김호정|날짜=2007-05-26|확인날짜=2008-04-07}}</ref>
가야금곡 〈[[미궁]]〉(1975)은 그의 대표작으로, 현대 음악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와 함께 퍼져서 ‘무서운 곡’으로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mn.kbs.co.kr/news/view.do?ncd=310472|제목=가야금곡 미궁의 뜬소문 확산|뉴스=[[KBS]]|저자=나신하|날짜=2002-04-12|확인날짜=2008-04-07}}</ref> 게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화이트데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 [[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 [[1974년]] ~ [[1980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부교수
* [[1980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
* [[2001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1962년]] 5년 연상의 [[소설|소설가]] [[한말숙]]과 결혼했다. 한말숙은 소설가 [[박완서]]와 [[숙명여자고등학교|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동창이며 박완서와 한말숙의 숙명여고보 시절 은사는 소설가 [[박노갑]](朴魯甲, [[1905년]] ~ [[1951년]], 아호는 도촌(島村))이다.
* 슬하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세계적 수학자인 [[황준묵]]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좌교수이고, 차남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물리학자 황원묵이다.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우주 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재동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단국대학교 명예박사학위 동문]][[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18년 죽음]]
- 곽월 . . . . 22회 일치
'''곽월'''(郭越, [[1518년]] ~ [[1586년]] [[8월 6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이다. [[1556년]](명종 1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제주목사에 이르렀다. 본관은 [[현풍 곽씨|현풍]](玄風)으로 자는 시정(時靜), 호는 정재(定齋) 또는 정암(定庵)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아버지이다. 사후 아들 [[곽재우]]의 훈공으로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내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 左承旨)에 [[추증]]된 [[곽지번]](郭之藩)이고 아들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자 무신인 [[곽재우]]이다. 6세 때 어머니 허씨를 여의고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첫 부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재우를 얻었으나 일찍 사별하고 부인 허씨와 재혼하였다.
[[1546년]](명종 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56년]](명종 1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그 뒤 권지, 승문원정자, [[1566년]] 영천군수(榮川郡守) 등을 지냈으나 4년 만에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572년]](선조 2년)에 [[선조]]의 여러차례의 간곡한 부름으로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사헌부]]지평, [[1573년]] [[사헌부]]장령, [[1574년]] [[사간원]]사간 등을 지냈다.
셋째 아들 [[곽재우]]의 훈공으로 [[자헌대부]] [[예조판서]](資憲大夫禮曹判書) 겸 지경연의금부춘추판사(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 세자시강원좌빈객(世子時講院左賓客)에 [[추증]]되었다.
**** 동생 : 곽규(郭赳, 학자, [[1521년]] - [[1584년]])
***** 자부 : [[경주 최씨]](慶州崔氏)
****** 손자 : 곽원(郭源)
***** 자부 : [[함안 조씨]](咸安趙氏)
****** 손자 : 곽예(郭澧)
****** 손자 : 곽옹(郭翁)
****** 손자 : 곽창후(郭昌後)
***** 자부 : [[상주 김씨]](尙州金氏), [[조식]]의 외손녀
****** 손자 : 곽형(郭濚)
****** 손자 : 곽활(郭活), 손부 창녕 성씨 성천지(成天祉)의 녀(女)
****** 손녀 : [[현풍 곽씨]], 성이도(成以道, 창녕 성씨 성천유(成天裕)의 자(子))에게 출가
***** 자부 : [[창녕 성씨]](昌寧成氏)
***** 자부 : [[전산 신씨]](電山申氏)
****** 손자 : 곽융(郭瀜, 문과에 급제)
****** 외손자 : 성람(成攬/成欖, 문과에 급제)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병마절도사]][[분류:수군절도사]][[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병사한 사람]]
- 김기수(코미디언) . . . . 22회 일치
|| 성좌/십이지 ||사자자리/푸른토끼띠 (을묘년) ||
2015년부터는 Kisoo라는 예명으로 DJ로 활동하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그러다가 화장을 좋아했기에 뷰티 유튜버에 도전해서 구독자 10만을 넘는 등 성공했다.
* 여초 커뮤니티 등의 반응이 좋지않다. 여성들의 기준에는 김기수의 화장 실력이 초보 수준으로 서툴고 어설프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 여성 뷰티 크리에이터만 아니더라도 맨즈 뷰티를 주제로 하는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와의 비교를 해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김기수한테만 어울리지, 남자 누구에게나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데일리 메이크업이나 피부 관리 위주도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이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남성'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이 분야의 유명세를 얻고 있으며 전문가인 척 하고 있어서 비호감으로 전락했다. 또한 자신의 화장 방식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비꼬며 좋지 못한 리액션을 보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 화장제품에 대한 지식 논란도 있는데 [[https://youtu.be/pf6A_yAq_kY|인간 코카콜라 메이크업]]에서 "[[https://www.yslbeautykr.com/dw/image/v2/AAWH_PRD/on/demandware.static/-/Sites-ysl-master-catalog/default/dw73d15065/Products/WW-34101YSL/3614271826572-alt1.jpg|입생로랑 탑 시크릿 밤 인 오일]][* 자세히 보면 '유니버설 메이크업 리무버'라고 영어로 버젓이 적혀있다.]으로 수분 보습막 형성을 하겠어요."라는 말을 하는데 문제는 이 제품이 수분 형성이나 보습 크림이 아니라 무려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 용품'''이란 것. --그 덕에 앞에 먼저 바른 기초 제품을 지워버리게 되었...-- 아무리 실수라고 하지만 뷰티 유튜버의 리뷰를 보며 사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시대에 촬영 전에 어떤 제품인지 사전에 미리 자세히 알고 있어야하는 건 당연지사.
* 자신이 런칭한 썬 스틱 화장품 영상에선 [[https://youtu.be/Usd6i4iJAlk?t=1m42s|시연자의 피부에 바르는 '시늉'만 하는 장면을 보여줘]] '블루투스 선스틱'이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타났다. [* 이에 관련 제조업체는 '촬영 전 연출된 부분' 이라 해명했고 김기수는 '홈쇼핑 생방에서는 제가 직접 화장 위에 시연한다. 본의아니게 실망드려 죄송하다.'며 곧바로 사과 댓글을 썼지만 애초에 연예인의 이름을 걸고 광고할 때 소비자는 연예인을 신뢰하고 사기 때문에 조심했어야하는 부분.]
* 유튜브 미미채널과의 합방에서 밝히길, 어렸을 때 부터 코스메틱 덕후였으나, 주변의 오해들 때문에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댄서킴 할 때도 이미 집에 화장품이 많았으나 오해가 더 커지는 게 싫어서 밝히지 못하다가 한참뒤에야 뷰티 유튜브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q1Voh45qbH8|미미채널]][* 남자들도 미용에 관심을 가지고 남성용 비비크림까지 나오는 지금까지 남자가 화장품을 좋아한다던지 화장을 한다던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편인데 지금보다 훨씬 이전인 댄서킴 활동 당시에는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는다.]
*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화장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하는 것' 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http://www.smlounge.co.kr/grazia/article/34212|관련기사]]
* 2010년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012110100086170005422&servicedate=20101210|남자 작곡가 L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피소되었지만 약 2년 간의 법적 공방 끝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177058|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 때문에 불거진 성 정체성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172585|기사]]
>김기수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요즘 저를 남자냐, 여자냐로 규정짓는 분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며 "2000년대에 '유니섹스'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냐"고 말했다.
* 한편, 동성애 자체에 대해 옳고 그름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젠더를 공부한 박사나 학자도 아니고, 그저 한 인간이라서 그런 걸 규정지으라고 하면 당황스럽더라. 전 단지 메이크업에 한해서 '젠더리스'를 원한다"
* 이와 관련해, '"화장만 젠더리스 추구…동성애 옳고 그름 규정 어려워"'라는 제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어려워'''라는 단어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제목만 봐서는 김기수가 [[호모포비아]]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 의도는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 판단할 사안이 아니란 의미일지라도 독자에 따라서는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라고 오독할 수 있는 모호한 문장인 것이다.
- 김성곤 . . . . 22회 일치
||<#796E65> {{{#white 가족}}} ||부친 김광도[br] 모친 김봉옥[br] [[배우자]] [[류원정|성곡 류원정]][br] 슬하 4남 2녀||
>1985년 발간 '성곡 일화집' 제목[* 김성곤이 생전 자주 쓰던 말이다.]
[[쌍용그룹]]의 창업주이자 4, 6, 7, 8대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다. 호는 성곡(省谷)이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 삼현파(三賢派)로 잘 알려져 있다.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태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상과 시절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영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8.15 광복]]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46년]], 미군정의 친일경찰의 횡포에 의해 일어난 [[대구 10.1 사건]]에서 친구 [[박상희]],황태성과 같이 주요 역할로 활동하였다. 이후 사업가로 활동하다 1958년 달성군에서 [[자유당]]소속으로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김성곤은 학창시절 박정희의 큰형인 박상희와 절친이었기 떄문에, 어린 시절부터 박정희를 보아왔으며 사석에서는 박정희와 자녀의 결혼 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정희는 김성곤한테 정치자금을 모으라고 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한 나머지 1971년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등과 함께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킨 '''[[10.2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박정희 분노를 산 김성곤 회장은 [[길재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랑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범죄)|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당시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이 뽑힐 정도로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시중에는 개처럼 두들겨 맞아서 생으로 변을 지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죽했으면 신민당에서 문제삼으며 정권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3선 개헌 이후에 소위 4인체제의 힘이 커지자 기회만 보고 있던 박정희가 항명파동을 계기로 싸그리 숙청해버린 것이다. 집권당 국회의원도 박정희한테 반대하면 잡혀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본 이후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과 정권내에는 박정희한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완벽한 1인 독주체제가 된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종신집권 의욕을 보인 [[10월 유신]] 때는 집권세력 내에선 전혀 반대가 없었다.
1973년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에 취임하였고 1974년 대한양회를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에 취임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1975년 [[고려대학교]] 교우회장 자격으로 졸업식 축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묘는 원래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군]]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58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 [[자유당]] || - || '''당선''' || ||
- 김지석(배우) . . . . 22회 일치
[include(틀:뇌섹시대 문제적 남자)]
1981년생 남자 배우. 본명은 김보석(金寶石).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브래드필드 컬리지)를 다니다가 [[한국외대]]로 진학한 이력이 있으며 원래는 2001년 5인조 댄스그룹 리오로 데뷔했다가 리오가 묻히면서[* 참고로 이 그룹의 소속사가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슈가]]를 배출했고, 소녀시대 [[써니]]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스타월드였다.] 가수의 길은 접고 연기자로 전업해 2004년 MBC 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 생활에 회의, 혹은 불안을 느낀 것인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중전공으로 [[독어]]/[[영어]] 교사 자격을 얻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연예인 포기하고 정말 학교 선생님으로 전직할 생각이었던 모양.
예능에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소녀시대 티파니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받았다는 영상이 여초 사이트에 돌았으나, 사실 여자친구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는 컨셉의 김지석이 사위에 적합한지 외가 역할 패널들이 하나하나 트집잡는 과정의 꽁트였다. 티파니 뿐만 아니라 정형돈이 김지석보고 배를 내밀며 내가 너보다 더 몸매 좋다(...)고 놀리는데 당연히 진심이 아닌 예능상 컨셉. 김지석 본인도 연출이었다고 밝혔다. 애초에 미국인이 영국 영어를 못알아들을 리 없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tar&no=283285|해명글]]
KBS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의 남자 주인공 강백호 역과 [[추노(드라마)|추노]]의 [[왕손이]]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2010년~2012년 사이에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식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태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태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반석. 문제적 남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반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절]]에 태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상기했듯이 형이 한 명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김지석이 출연하는 [[문제적 남자]]에 나와서 밝혔고 그 출연료는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지원을 했었고 실제 입학시험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이해 못해서 케임브리지에 상당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고 왜 거기서 떨어졌는지 깨달핬다고 한다.[* 그냥 수학 테크닉만 좋은 학생의 한계를 느꼈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고교시절,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와 수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주마다 [[영국]]에서 열리는 지역 대회에서 항상 옆레인에 윌리엄 왕자가 있던터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고, [[허구연의 저녁식사|식사도 했었다]]고 한다.
|| KBS1 || '''[[미우나 고우나]]''' || '''강백호''' || [* 남자 주인공 역할이었다. 드라마 시간대가 그렇듯 중장년층에게 많이 어필했을듯.] ||
||<|2> 2015년 ||<|2> KBS2 || [[착하지 않은 여자들]] || 이두진 || ||
|| 2010년 ||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 준서 || ||
* 2015년 [[뇌섹시대 문제적 남자]]
|| 2007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신인상 || 미우나 고우나 ||
||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남자 최우수상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
|| [[MBC 연기대상]] || 월화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20세기 소년 소녀 ||
- 김진(배우) . . . . 22회 일치
1973년 8월 23일 [[경기도]] [[안산시|단원구]] 출생의 탤런트이다. 본명은 [[김경진]]. 90년대 중반 [[좌회전]]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으나 뜨지 못하고[* 그래도 [[가요톱10]]에서는 10위권 안에 들었다. 대표적인 타이틀 곡은 '예행연습' [[김홍순]]과 [[이승철]]이 작사 작곡했다.] 이후 방위 복무[*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마지막 방위' 세대로 같은 날 [[유재석]]과 [[이정재]]가 입대했다.]를 마친 뒤 연기자로 ~~좌회전~~전향. 좌회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동안은 놀림거리 비슷하게 됐다.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이제니]]와 엮이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나오다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일약 주연급으로 발탁되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투입한 지나가던 단역이었는데 우연히 인기를 얻은 것은 절대 아니고 피디가 처음부터 레귤러 혹은 준레귤러로 생각해두고 투입했었다. 다만, 안녕맨으로 등장해서 반응이 좋으면 고정을 시킬려고 했던 거였다고. 초반에는 큰 반응이 없어서 레귤러까지 생각했던 배역을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PC통신 MBC게시판이 뒤집어 질 정도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무사히 레귤러로 안착했다. 당시엔 이제니와 마주치면 항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어서 별명은 안녕맨. 레귤러로 합류하고 나선, 워낙 피부가 하얘서 당시 별명은 '[[밀가루]]'.
태양신이태양신이부른다~ 라는 CM송이 인상적인, 오리온 썬헌터 CF를 찍은 적이 있는데 ~~[[무언극]]인지 아닌지 모를~~ 기묘한 춤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포카칩]] 광고에서 불량감자의 안티테제로 나오기도.
다만 안타깝게도 워낙 외모가 개성이 강해 역할이 한정된데다 특별히 연기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던지라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 눈에 띌만한 연기 커리어는 쌓지 못하고 이후 방송인으로 사실상 전향하여 예능에서 활동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예능에서 꽤나 자주 볼 수 있었으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초기 MC를 맡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 인물의 근황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올 듯.
* [[1997년]] [[MBC]]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김진([[이제니]]의 남자 친구이며 [[윤주상|김주상]]·[[전원주]] 부부의 아들이자 [[안재환 (배우)|안재환]]의 이종사촌 형) 역
* [[1998년]] [[MBC]] 코미디드라마 《[[여자 대 여자]]》
[[분류:한국 남배우]][[분류:안산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태어남]][[분류:199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개신교도 이탈자]]
- 김홍미 . . . . 22회 일치
김홍미(金弘微, [[1557년]] ~ [[1605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 관료, [[성리학]]자이다. 자(字)는 창원(昌遠)으로, 호는 성극당(省克堂), 성극(省克)이고,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경상북도]] 출신.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바로 대과를 보지 않고,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으며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이후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근무하였으며 형제가 옥당에 근무하여 사대부들의 부러움을 샀다. [[정여립의 난]] 관련자로 누명을 쓰고 [[기축옥사]] 때 불이익을 받았다. 당색으로는 [[동인]]이었다가, 뒤에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질 때 [[남인]]이 되었다. 남명 [[조식]](曺植),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문인이며, [[류성룡]]의 조카사위이고 [[류운룡]]의 사위이다.
역사와 제자백가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경연에서 반드시 옛 사례를 인용하여 당시의 일을 정정함으로써 왕의 찬탄을 받았다. 선박 제조 기술이 있어서 [[조선 선조|선조]]는 그에게 [[판옥선]] 설계 제조와 [[거북선]] 설계 제조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1557년]](명종 12년) [[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낸 김상직(金尙直)의 6대손으로, 증조부는 김예강(金禮康)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윤검(金允儉)이며, 아버지는 옥과현감(玉果縣監) 김범(金範)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자는 창원(昌遠), 호는 성극당(省克堂), 성극(省克)이다.
관례(冠禮)를 치르기 이전에 그는 향시(鄕試)에 응시하였는데, 향시의 응제 "사마온공(司馬溫公) 염중론(念中論)"으로 향시에서 장원하였다. 그 문장이 정미롭고 아름다웠으므로 합격자 발표 후에는 그의 글을 돌려가면서 암송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한다. 남명 [[조식]]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제문을 지었다. 그는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바로 대과를 응시하지 않고 사마시에 응시한다. [[1579년]](선조 12) [[과거 제도|식년진사시]]에 제2등으로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85년]](선조 19년)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가 되었고 [[홍문관]]에 등용 되었으며,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발탁되고, [[홍문관]]정자, 저작, 부수찬 등을 거쳐 [[예문관]]검열, 다시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당시 그의 형인 김홍민(金弘敏)도 옥당(玉堂)에서 근무하여, 형제가 모두 옥당에 근무한 일로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후에도 [[1588년]] [[홍문관]]의 관직에 결원이 생기자 [[조선 선조|선조]]는 [[이조]]에 특명을 내려 홍문관의 빈자리에 그를 임명할 것을 지시했다.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상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상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상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1598년]] [[1월]] 경상좌도 해안가의 전선을 제작하고 격군(格軍)을 충당하는 일과, 황해도 역시 솜씨좋은 목수로 하여금 판옥선(板屋船)이나 거북선을 많이 제작하는 등의 일을 신속히 조치하게 할 것을 지시받았다. 다시 돌아온 뒤 1598년 다시 형조참의가 되었다가, 그해 가을에 이르러 조정이 갑자기 변하자 마음이 맞지 않아 병환을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그 뒤로 [[대사간]], 승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599년]](선조 31) 다시 [[청송군|청송]][[부사]](靑松府使)로 부임했다가 [[1601년]](선조 34년) 봄에 병환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상주군|상주]]로 되돌아갔다. [[1602년]](선조 35) [[여주군|여주]][[목사]]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강릉시|강릉]][[부사]]로 임명되자 와병중인데도 부임하였다. [[1605년]] 강릉부사로 재직 중 큰 비가 내려 백성이 많은 수재(水災) 재난을 당하였다. 당시 그는 병이 들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수재로 죽은 자의 조문과, 수재로 재산을 잃거나 굶주린 자의 진휼(賑恤)과 구제에 힘써 직무에 충실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성리학]][[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순직한 사람]][[분류:조선 선조]][[분류:임진왜란 관련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22회 일치
* 항상 치사키 곁에 있던 작은 부하 [[이리나카]]는 개성 "의태"로 일행이 돌입한 복도 자체를 장악해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꾼다.
* [[아마지키 타마키]]가 겁을 먹고 패닉에 빠지려 하나 [[토오가타 밀리오]]는 그를 격려하고 자신의 개성 "통과"로 미궁을 뚫고 치사키에게 달려간다.
* 밀리오의 행동에서 용기를 얻은 타마키는 프로 히어로들을 재치고 자신이 적을 일소하겠다고 나선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음모에 이용되는 소녀 "에리쨩"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경찰 연합군. 조직원들이 몰려나와 방해하지만 현지 히어로들의 적극적인 마크로 어떻게든 건물 내부까지 진입한다. 조직원 전체가 나서서 시간 끌기를 하는 이러한 행태가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든다. [[패트껌]]은 "수상한 정도가 아니다"고 날을 세운다.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진행되는 상황이 영 불안하다며 투덜거린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정보가 샜음을 짐작하고 적들이 한덩이가 된 것처럼 군다고 소감을 밝힌다. [[아이자와 쇼타]]는 이들이 떳떳하지 못한 만큼 결속을 중요시하는 거라고 혹평하고 간부나 [[오버홀]] 치사키가 보이지 않는 걸 들어 수뇌부는 이미 지하에서 은폐 중이거나 도주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직함 심성의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딴건 충의도 뭣도 아니다"고 버럭하며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건 사나이답지 않다고 말한다.
* 나이트아이가 예지로 확인한 진로에 따라 일행은 숨겨진 통로 앞까지 이른다. 평범한 장식공간 같지만 마루의 특정 공간을 일정한 순서로 누르면 비밀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치 닌자저택같은 구조. 예지에서 본대로 조작하자 마침내 통로가 열리는데, 거기서도 여지없이 조직원이 배치돼있다.
* 버블걸은 피부에서 거품을 생성하는데 아이자와가 조직원의 개성을 무효화하는 동안 거품으로 시야를 가리고 체술로 간단히 제압한다. 둘은 조직원들을 무력화시킨 뒤 따라가겠다며 일행을 선행시킨다.
* 통로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계단이 끝나고 모퉁이를 돌자 그 앞에 예지에 없던 벽이 가로막는다. 록록이 설명해보라고 신경질을 부린다. 여기선 [[토오가타 밀리오]]의 개성 "통과"가 나설 차례다. 키리시마는 그가 또 알몸이 될 걸 우려했지만 그의 히어로 슈츠는 본인의 모발을 뽑아 만든 특수 소재라 "통과"의 개성이 그대로 적용된다.
벽 너머는 평범한 복도였고 별다른 장애물도 없었다. 구조도 나이트아이가 확인했던 그대로. 단지 아주 두꺼운 벽일 뿐이다. 밀리오가 이렇게 알리자 벽은 치사키가 자신의 개성으로 "분해했다가 만들어낸" 물건으로 결론지어진다. 이런 걸 급히 만들었다는건 분명 들키면 곤란한 물건을 숨겨놨다는 얘기. 분개한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 콤비가 벽을 박살낸다.
* 일행이 추적을 속행하려 하자 비밀통로 전체가 파도치듯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조직원들을 구속하던 버블걸과 센티피더도 괴이하게 변모하는 통로를 보고 당황한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일행. 변하는 형태로 보아 치사키의 개성은 아니다. 형사는 아마도 본부장 [[이리나카]]의 개성일 걸로 추측한다. 항상 오버홀 옆에 따라다니는 작은 부하가 그다. 그의 개성은 "의태". 특정한 물건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지금은 건물의 콘크리트에 들어가 지하통로를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보에 따르면 그에겐 이정도 규모를 조종할 힘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하나 정도가 한계. 패트껌은 부스트 약물을 쓴 거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추측한다. 허를 찌르는 함정이지만 분명 몸에 무리가 갈 텐데. 패트껌은 아이자와에게 무효화를 요청하나 본체를 정확하게 잡는게 아니라면 그에게도 무리다.
*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네거티브한 성격의 타마키가 단숨에 패닉에 빠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다 글러먹자 그는 "소녀를 구하긴 커녕 전부 당할 거다"고 절망한다. 그런 그를 다잡는 것은 친구인 밀리오였다.
밀리오는 이런 함정이 있다는건, 저쪽도 시간 싸움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의중을 읽은 나이트아이와 미도리야가 말리지만 그는 혼자서라도 먼저 가보겠다며 일렁거리는 복도를 "통과"해 나간다. 확실히 그의 통과는 이리나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리나카로서도 밀리오 혼자 가봐야 아무 소용 없을 거란 계산이 있었다.
타마키가 사라지는 밀리오를 보며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데. 그때 바닥이 사라지면서 일행은 밑으로 떨어진다.
* 일행이 떨어진 높이는 약 1층 높이. 낙사를 노릴 만한 높이는 아니다. 아이자와는 급변한 지형을 주시하며 본체를 찾아봤지만 허사. 일행이 떨어진 곳은 넓은 방이었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목표와 떨어져 버려서 이미 적의 의중대로 굴러가는 상황. 그때 방 한 켠에서 적이 등장한다. 오버홀이 "더러운 짓"을 시키려고 준비한 장기말들, 철포옥 핫사이슈 중 3인이었다.
* 다혈질인 패트껌은 선전포고로 인식하고 "프로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이를 간다. 하지만 그때, 타마키가 "프로의 힘은 목적을 위해서 쓰라"며 막아선다. 이 녀석들은 자신이 처리하겠다면서.
>이런 시간 벌기 요원, 나 혼자서 충분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22회 일치
* 그 남자가 같은 학교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는데, 학생들이 겁먹고 아무 말도 못하자 남자가 점점 화를 내기 시작한다.
* 그러나 키리시마는 엄청난 좌절감을 맛봤다. 드러내진 않았으나 내심 웅영고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 사건으로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
* 자신의 나약함에 절망한 키리시마는 진로조사서에 1지망으로 웅영고를 적어놨던 것도 지워버린다.
* 전의를 상실한 줄 알았던 [[키리시마 에지로]]가 랏파의 난타에도 불구하고 그를 몰아붙였다. 비록 텐가이의 배리어에 막혀 마지막 한 발을 꽂아넣진 못했으나 랏파가 크게 호응할 정도로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무리한 탓에 금새 쓰러지는 키리시마. 그러나 그 사이 [[패트껌]]이 자신이 축적한 에너지를 끌어모은 최강의 "창"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위력을 직감한 텐가이. 랏파가 배리어를 풀라고 아우성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금 키리시마의 분전이 이 한 방을 위한 특공이었다며 자신의 오판을 후회한다.
* 사건을 해결한 미나는 아무 일도 없던 듯 친구들과 어울리러 간다. 키리시마와 그 친구들은 좀 떨어진 위치에서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친구들은 "저런 사람이 자연스럽게 되는 거다"라며, 그녀가 웅영고를 지망한다는 정보를 수군댄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상당이 높다. 운동신경이나 사교성, 게다가 "강렬한 개성"에 외견까지 눈에 띄는 그녀는 누가봐도 히어로가 될 만한 재목이다. 현재의 히어로 업계는 일종의 연예산업과도 같다. 대중의 인기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 키리시마는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신경은 쓰고 있었다. 누구나 "히어로에 어울린다"고 인정하는 미나와 달리, 자신 쪽은 그렇지가 못하다. "경화"는 누가봐도 밋밋한 개성이다. 비록 라이오트의 가르침에 따라 몸을 단련하고 부족한 개성을 마음으로 커버한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시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들의 화제는 곧 진로로 돌아간다. 친구 중 하나가 미나처럼 자기도 웅영고 지망으로 해볼까 하지만, 다른 친구는 택도 없다고 여긴다.
키리시마에게도 어쩔 생각이냐고 묻는데, 그는 그냥 얼버무려 버린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제 1지망으로 웅영고를 적은 용지가 감춰져 있다. 그걸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나처럼 화려한 개성을 가졌더라면 당당하게 웅영고 히어로과를 지망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며 귀가했다.
* 사건은 그 평범한 귀가길에서 일어났다. 길 건너편의 무언가가 키리시마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집체만한 거인이었다. 넝마조각을 뒤집어 쓰고 구부정한 자세에 맨발, 의미없이 켜져 있는 라디오 방송. 평범한 노숙자의 행색이었다. 그 덩치를 빼면 말이다. 덩치 때문에 누가봐도 수상한, 위험한 인물이었다. 거인은 길을 가던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 겁에 질린 여학생들이 숨 넘어가는 소리 밖에 내지 못하자, 거인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가 손을 들어올려 정면의 벽, 건물의 전면을 짚는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벽에 금이 가면서 곧 붕괴할 것 같다. 그는 아직까지는 정중한 말씨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곧 짜증을 부릴 것만 같다. 분명 평범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록 여학생들은 더욱 움츠러 들었다. 물론 거인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도 없었다.
* 키리시마는 왜 이런 순간에 히어로가 순찰하고 있지 않은지 원망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지만 하나같이 경악하는 얼굴들 뿐.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제발 가라고, 앞으로 나가라고 자기 자신을 다그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 미나의 무릎이 풀린 건 거인이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그녀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긴장이 풀린 세 소녀가 길 위에서 통곡했다. 친구들은 죽는 줄 알았다고 울었다. 미나도 무서웠다고 울긴 했지만 방금 전 가르쳐준건 적당히 지어낸 거니, 혹시라도 돌아오기 전에 빨리 도망치자고 친구들을 챙겼다.
위험이 사라지고 나서야 하나둘 사람들이 다가갔다. 하지만 키리시마는 그때까지도 전혀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답이 분명한 질문을 던졌다.
*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한 키리시마는 진로희망 조사서에 적혀 있던 "웅영고"란 글자를 까맣게 덧칠해 비워버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22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56. '''구원 받은 자의 힘'''
* 하지만 리키야는 [[이리나카]]에게 밭은 개성 부스트 약물을 복용한 상태. 제압된 상태임에도 공기를 흡입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있던 경찰과 류큐팀의 활기를 흡수하게 된다. 기운을 되찾은 데다 구속까지 풀리자 다시 날뛰는 리키야. 반대로 활력을 빼앗긴 류큐팀과 경찰들은 기운이 없어서 대피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 그때 이곳에 있을리 없는 [[미도리야 이즈쿠]]가 나타난다. 미도리야는 응원을 부르러 왔다면서 전방의 십자로 바로 밑에 타깃이 있고 그 밑에서 프로 히어로들이 시간을 벌고 있다고 알린다. 그 말을 들은 류큐는 리키야를 처리하고 선행한 일행까지 따라잡을 묘안을 떠올린다.
* 류큐가 드래곤폼으로 리키야를 붙들고 우라라카가 상공으로 띄운다. 그걸 아스이가 혀로 잡아끌고 십자로까지 이동. 네지레가 그 위에서 전력을 다한 충격파를 날려 류큐째로 리키야를 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류큐와 거대화한 리키야의 무게 때문에 지반이 무너지면서 단숨에 미도리야와 [[오버홀]]이 격전 중인 장소로 떨어진다.
* 목적지에 도달한 츠유와 우라라카는 오버홀과 싸우던 미도리야를 보고 방금 전엔 가짜 미도리아였다는걸 눈치챈다. 그 정체는 미도리야의 피로 변신한 [[토가 히미코]].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탈출 목적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생성했다.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굴을 파서 지상으로 나가려 한 것.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고, 당초엔 핫사이카이 조직의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내내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오버홀과 히어로들이 교전 중인 지금 접촉을 노리는 것이었다. 트와이스는 본체인 자신들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으니 카피인 컴프레스더러 임무를 수행하러 오라고 떠민다. 컴프레스는 투덜대면서도 지시에 따라 하강. 류큐팀은 컴프레스를 보고 [[빌런연합]]이 현장에 나타난 걸 알아차리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뭐가 뭔지 파악이 늦다.
* 그때 무슨 우연인지 루밀리오의 망토가 날아다니다 낙석에 휘감겨 스쳐 지나간다. 오버홀은 단지 기분 나빠하고 마는데, 에리가 문득 망토를 붙잡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오버홀은 에리의 뿔에서 기이한 빛이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과 함께 에리에 내력에 대해서 떠올랐다. 에리는 두목의 딸이 낳은 딸. 즉 두목의 손녀였다. 두목의 딸은 "남편이 저주받은 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 어느날 남편이 에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 조사 결과 에리는 양측 가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돌연변이. 저주도 뭣도 아닌,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리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자신의 개성을 자각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했다. 두목은 "접촉한 상대가 소멸했다"는 점이 오버홀의 개성과 닮았다고 여겨 에리를 보살피고 그 개성의 실체에 대해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오버홀의 "사업"의 시작이었다. 조사에 착수한 오버홀은 곧 해답을 찾아냈다. 에리의 개성은 "되감는 것". 두목은 오버홀과 에리의 개성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버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 에리의 되감는 개성은 오버홀과 [[네모토 신]]의 융합을 "되감아" 분리시킨다. 에리는 지금껏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오버홀에게 실험실의 쥐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딱 한 번 스스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실패.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저주받은 것이 숙명이라 여기고 살았다. [[토오가타 밀리오]]와 나이트아이, 그리고 미도리야가 그걸 바꿨다. 오버홀이 죽어도 에리를 놓아주지 않듯 이들도 죽어도 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그녀는 전에 없던 마음을 각성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 에리는 손에 잡은 망토를 미도리야를 향해 뻗었다. 원래 닿지 않았을 미도리야의 도약은 그 망토를 잡음으로써 목표에 정확히 닿았다.
류큐팀이 천장을 부수고 떨어져서 잠시 당황하지만 곧 나이트아이의 구조를 부탁하고 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몸을 날린다. 하지만 오버홀의 방해로 저지. 오버홀이 뚫린 천장으로 달아나려 하자 따라잡기 위해 점프하지만 닿지 못한다. 하지만 히어로들의 분투를 보면서 "남을 돕고 싶은 마음"에 각성한 에리가 오버홀의 융합을 풀고 루밀리온의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자신에게 닿도록 돕는다.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상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원래 두목에게서 에리의 보호와 개성규명을 부탁 받았는데 배신하고 그 능력을 악용해 지금의 사업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무자비한 학대와 인권유린은 덤. 자신을 믿고 에리를 부탁한 두목을 배신하기도 했다. 조직을 두목의 뜻과 다르게 이끌기도 했으니 두 번 통수를 친 셈. 미도리야에게서 선수쳐서 에리를 다시 빼앗지만 에리가 루밀리온의 망토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뜨면서 개성이 발동, 네모토 신을 흡수했던 상태를 되감아 다시 분리시켜 버린다.
트와이스가 탈출용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만들어놨었다. 아마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소형화시켜서 가지고 다녔던 듯. 원래 목적은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 것. 아마 에리의 카피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을 걸로 보인다. 탈출 이후에는 토가가 획득한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류큐팀을 유인, 역전하게 돕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다시 에리와 접촉할 기회를 만든다. 트와이스는 이때 자신들로는 오버홀이나 히어로들과 정면승부를 못하니 카피인 컴프레스를 앞세워서 목적을 달성하라고 종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22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99.'''안녕 두 자리. 이제부터 세 자리'''
* 남은 남자방은 각기 개성이 넘치는데 사토 리키도는 방은 평범하지만 제과 취미 덕에 엄청난 호평을 받는다.
* 여자방으로 넘어가는데 여자들도 사정은 남자 방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우라라카가 주선한 자리에서 감정을 푸는 탈환팀과 츠유.
* 그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흑막은 미네타 미노루. 왠지 자존심 상해있는 남성진을 대변하는 척 민의를 핑계로 여자방을 들쑤실 작정이다.
* 키리시마는 애초에 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공언하고 실제로 "남친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인테리어 2위"를 거머쥔다.
* 그리고 반내 인기인 토도로키는 여자들이 기대를 많이 하며 들어가는데
* 일부 남성진은 "여자답지 않다"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데 가볍게 응징 당한다.
* 하가쿠레 토오루는 평범한 여자애 방. 인형이 많다.
* 아시도 미나와 우라라카 오챠코는 여자답지만 딱히 개성은 없는 그런 방.
* 당선자는 사토 리키도. 여자 표를 독식하며 우승했다.
* 이벤트도 끝났고 모두 자러 가려고 하는데, 우라라카가 바쿠고 탈환전을 결행한 멤버들을 불러 모은다.
* 츠유는 자신은 생각하는건 바로 말하는 타입이라며, 병원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 막겠다는 생각만 했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과,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 우라라카도 설명은 잘 못하지만 다시 함께 웃으면서 열심히 하자고 격려한다.
* 다음날. 아이자와 쇼타는 예고한 대로 "임시면허" 취득을 위한 수업을 시작한다.
* 아이자와는 그 합격 대책으로 개인당 최소한 두 개의 "필살기"를 익히도록 하는데.
- 남윤정(탤런트) . . . . 22회 일치
{{자택에서스스로목숨끓었음!!!!!!!}}{{영화인 정보
|자녀 = 1남 1녀
[[2012년]] [[8월 1일]], 자택에서 [[우울증]]으로 인하여 자살하였다. 향년 59세.
* [[1991년]] [[KBS]] 미니시리즈 《[[밥상을 차리는 여자]]》
* [[1996년]] [[KBS2]] 청소년드라마 《[[스타트 (드라마)|스타트]]》 ... 정남영의 모 남기자 역
* [[2000년]] [[SBS]] 미니시리즈 《[[줄리엣의 남자]]》
* [[2001년]]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 ... 양양자 역
* [[2002년]] [[MBC]] 미니시리즈 《[[위기의 남자]]》 ... 나미 모 역
* [[2003년]] [[KBS]] 일일연속극 《[[노란 손수건]]》 ... 자영 모 역
* [[2007년]] [[MBC]] 일일연속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 ... 최말자 역
* [[2007년]] [[SBS]] 미니시리즈 《[[강남엄마 따라잡기]]》 ... 장영자 역
* [[2011년]] [[MBC]] 아침드라마 《[[위험한 여자]]》 ... 남지숙 역
* [[2012년]] [[JTBC]] 미니시리즈 《[[아내의 자격]]》 ... 진수애 역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자살한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고양시 출신 인물]]
- 레킹 크루 . . . . 22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슈퍼 빌런]] 팀. 레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구의 4인조 팀이다. 본래 별거 없는 범죄자들이었으나, [[아스가르드]]의 [[마법]]의 힘으로 강력한 신체를 지니게 되어 슈퍼 빌런이 되었다. 대적자는 주로 토르.
레커를 중심으로 뭉친 4인조 빌런. 원래는 별거 없는 범죄자들이었으나 다 같은 교도소 동료 출신. 레커가 지니고 있던 마법의 쇠 지렛대에 의해 힘을 얻게 되었다. 각각 공사현장, 철거장비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특징.
본래 레커 혼자만 슈퍼빌런으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한 때, 힘을 잃고 수감되었던 레커에게 프랭클린 박사가 접근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레커는 쇠 지렛대를 되찾아 프랭클린,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감자인 캠프, 칼루스키와 같이 [[탈옥]]했다.
그리고 폭풍우가 치는 동안 동시에 쇠 지렛대를 꽉 쥐도록 했고, [[번개]]가 지렛대를 내리치자 이들 넷은 초인이 되었다.--생각해보면 참 대책없는 방법이다.-- 그리고 슈퍼 빌런 팀을 결성하여 이름을 레킹 크루로 삼게 되었다.
레킹 크루의 중심 인물. 원래 폭파 작업원이었으나 문제있는 태도 탓에 해고되면서 범죄자 레커가 되었다. 약탈한 곳을 폭파시키고, 현장에 쇠 지렛대를 놔두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레커가 초인이 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바로 로키. 오딘에 의해 힘을 잃었던 로키는 레커의 호텔방에 들어가 퀸 카르닐라(Queen Karnilla)와 접촉해서 그녀의 힘으로 자신의 힘을 회복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레커가 돌아왔고, 힘이 없는 로키를 두들겨 패놨는데 이때 카르닐라가 레커를 로키로 오인하여 마법을 걸어 초인이 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법의 쇠 지렛대도 획득했다. 마법의 힘을 힘을 얻게 된 레커는 마구 날뛰며 토르를 이기기까지 했으나 시프가 가져온 디스트로이어에 의해 패했다. 그 뒤에 다시 토르와 싸우려고 [[탈옥]]했지만 힘을 회복한 토르에게 패배. 결국 다시 [[교도소]] 행. 교도소로 돌아온 레커에게 같이 감옥에 갇혀 있던 엘리엇 프랭클린 박사가 접근했다. 박사는 자신이 만든 감마 폭탄을 되찾아 [[뉴욕]]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거금을 벌길 원했다. 먼저 쇠 지렛대를 확보한 레커는 프랭클린과 마찬가지로 수감자인 헨리 캠프, 브라이언 칼루스키에게 폭풍우가 치는 동안 동시에 쇠 지렛대를 꽉 쥐도록 했고, 번개가 지렛대를 내리쳤는데 그 결과 다른 셋에게도 힘이 생겼다. 그리고 레킹 크루 결성.
한때 [[군인]]이었으나 [[불명예제대]]하고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어 레커의 감방 동료가 되었으며, 다른 수감자인 프랭클린,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다. 그리고는 레커의 쇠 지렛대에 힘을 얻어 초인이 되었다.
본래 [[농장]] 노동자로 일했으나 농장에서의 생활이 따분했기 떄문에 흥분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다 [[범죄자]]가 되었고, 교도소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알게된 레커, 다른 수감자인 캠프, 프랭클린과 같이 탈옥해 레커의 쇠 지렛대의 힘으로 초인이 되었다.
아들인 리키가 있는데 조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자기 아버지 정체를 알자 가출해서 레킹 크루에 가입했고, 엑스커베이터(Excavator)이라는 이름과 신비의 삽을 쓴다.
레커처럼 자신만의 무기로 건물해체용 [[철구]]로 무장하고 있다. 철구는 에너지 블라스트를 발사한다. 한 때는 특수한 갑옷을 착용하기도 했다.
[[천재]] [[과학자]]. 현역 시절 당시에는 [[브루스 배너]]([[헐크]])도 만들지 못한 소형 감마 폭탄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였다. 감마방사선 분야에서의 뛰어남 덕분에 '검은 브루스 배너'라고도 불릴 정도. 그러나 리치먼드 기업에 의해 모든 발명품과 연구 자료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겼고, 기업에 항의했으나 쫓겨났다. 그 뒤에 폭탄을 훔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시기에 레커와 만나서 캠프,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으며 이후 레커의 마법의 쇠 지렛대에 의해 초인이 되었다.
- 마기/331화 . . . . 22회 일치
* 알라딘은 자신이 알리바바의 마기이니 그의 결단에 따를 것이라며 그의 의견을 묻는다. 알리바바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 고민하는 알리바바 앞에는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가 있다. 둘은 함께 차를 마시며 좀 더 좋은 방으로 이사가자는 둥 평범한 대화를 나누려 한다.
* 모르지아나는 새삼 지난 일을 회상하며 감사와 사랑을 고백한다. 알리바바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루프로 돌아가자고 하지 말아줘"라고 설득한다.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루프로 돌아가자고 선언하고 세상 사람들은 한결 같이 칭송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환희가 넘치는 세상에서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만이 어울리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알라딘에게 이대로 성궁에 가서 신드바드와 싸울 거냐고 묻는다. 그런 한편 어째서 신드바드가 자신을 막을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준 건지 의문을 표한다. 그런데 말 없이 걷던 알라딘이 "정말 그게 옳은 일일까?"라고 묻는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하는건 알라딘과 알라비바, 단 두명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모두가 원하는걸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싸움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알라딘은 그 점을 묻는다.
* 알리바바는 어렵사리 "옳다"고 대답하지만, 그것도 잠시.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한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신드바드의 미치광이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그것 자체가 자신의 바람을 담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고 한다. 알리바바는 혼란스러워하지만 알라딘은 꼭 그의 대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왕의 그릇이 나라를 만드는 자만을 칭하는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괴로울 때 모두를 이끄는 사람", 바르다르 사건 때의 알리바바 같은 인물이 그렇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알라딘은 자신도 생각해볼 테니 황으로 돌아가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와 이야기 해두라고 한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 황제국으로 돌아가면서, 알리바바는 한 가지 선택을 놓고 계속 고민한다. 싸우느냐, 싸우지 않느냐.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싸워왔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도 절망하지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모두 루프로 돌아가길 원하는데 막고 싶은건 자신 뿐이다. 이건 결국 모두가 원하는 대로 싸우지 않느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싸우느냐의 선택이다.
* 그날 밤 알리바바 부부는 차를 나눠마시며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리바바는 이 방은 빌린 방이니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자는 둥, 알라딘이 사랑 싸움 좀 적당히 하라고 간섭한다는 둥 잡담을 시작한다. 모르지아나가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부른다. 그녀는 문득 그가 2년 간 죽어있던 시간을 언급하며 "그때는 이렇게 살 수 있단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신드바드의 중계는 전세계로 전파됐다. 당연히 모르지아나도 알고 있다. 모르지아나는 알리바바가 자신의 바람과 세상의 바람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선택할 거라는 걸 꿰뚫어 본다. 알리바바는 낭패한 표정을 짓지만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다.
* 모르지아나는 알리바바와 알라딘이 자신을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 줬을 때는 뭘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바바와 알라딘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됐다. 뭘 용납할 수 있는지, 무엇에 기쁘고 즐거운지. 행복한지. 그녀는 알리바바와 함께해서 자신이 완성되어 갔다고 말한다.
>당신을 좋아하게 된 덕분에 저는 저 자신까지 좋아할 수 있게 됐어요.
* 잠시 뒤 부부는 다시 나란히 앉는다. 이번엔 알리바바도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이 만난 이후, 그녀는 강했고 또 귀엽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기쁜 표정을 보여줄 때는 알리바바도 기뻤다.
* 모르지아나는 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다. 아주 기쁜 얼굴로 "죽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자"면서 말한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22회 일치
몬스터(괴물)과 부모(페어런트)의 합성어. 학교에 자기중심적이고, 비상식적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에게 직접 클레임을 하지만, 교장, 교육청, 지자체 등 권한이 강한 부서에 클레임을 하여, 간접적으로 교사와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 특정 원아를 자신들의 아이와 놀게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 "자신의 아이를 극진히 대우하기 위하여 전용 교원을 붙여라.", "내 아이를 학교 대표로서 지역 행사에 참여시켜라." 등의 요구
* 교육문제 때문에 학교와 협상을 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공표하겠다고 하는 등 협박을 가한다.
* 자녀의 잘못을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집단괴롭힘의 피해자 등의 항의를 무시한다.
*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졌다. 1990년대 부터 이러한 종류의 보호자가 증가했는데, 이들이 부모가 되는 1965년대 전후 출생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의 학교 폭력이 격렬한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애초에 희미했다. 버블 경제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에 당시 교직은 인기가 낮았다. 버블 이후의 구조조정으로 사회적 지위를 잃은 사람들은 종신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 교사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 보호자의 소비자 의식의 폭주 : 교육에 대하여 서도 소비자 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손해를 보는 대우를 받으면 참지 못하게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대책으로는 기업에서 쓰이던 클레임 대책 방법을 활용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으며, 교육자들이 대응 방법을 조언하거나, 매뉴얼을 작성하기도 했다.
* 상대는 평범한 인간이며, 항상 몬스터인 것이 아니다. 몬스터화한 사람의 피해를 입은 사람도 언젠가 자신이 몬스터화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자녀로서,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부모에게 주로 의지하며 교사에게 반항적이고 위협적,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몬스터 칠드런(モンスターチルドレン)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반항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생 시기에 많았다면, 몬스터 칠드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반항적인 경향이 많다고 말해진다.
몬스터 페어런트라는 단어의 등장이 보호자의 과도한 주장을 옹호하고 학교와 교원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언론의 풍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정당한 클레임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몬스터 페어런트로 싸잡혀서 비난을 받게 되는 풍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2010년 9월 사이타마 현의 시립 초등학교 여교사가 담당하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의 부모가 상식을 벗어난 항의를 해와서 불면증이 되었다고 500만엔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같은 해 6월, 피고의 딸이 다른 아동을 걸레로 때리는 문제가 발생. 교사가 문제를 중재하면서 수업 시간에 피고의 딸과 상대 아동 가운데 어느 쪽이 나쁜지 다수결로 결정하게 하여, 피고의 딸이 나쁘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결과가 나오자 상대 아동에게 사과를 강요했다는 사건이다.
이후 피고인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받고 상호연락책에 "최저의 선생","비상식","악마"등의 발언을 쓰고, 교육위원회와 교육부에 비판하고 책임을 요구했다. 다른 날에는 교사가 급식지도중에 피고 아동의 등을 가볍게 만진 것 만으로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하였다. 교사와 학교 측은 대화를 가지고자 했지만 부모는 참석을 거부했고, 교사는 이 때문에 불면증에 몰렸기 때문에 제소를 단행하였다.
이 건으로 불만을 품은 부모는 딸에게 IC레코더를 항상 소지하고 있도록 지시하고, 10월에는 교사가 갑자기 반 아이들 전원을 기립시켜서 "거짓말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전원이 선 채로 수업을 받도록!" 지시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사건까지 있었으며, 이후로 딸은 신발을 버려지는 등의 괴롭힘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언론의 취재에 녹취록을 공개하였다.
- 배슬기(배우) . . . . 22회 일치
배슬기, 추소영, [[오승은(배우)|오승은]]으로 이루어진 그룹 [[더 빨강]]의 멤버로 데뷔했다.[* 엄밀히 말하면 드라마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 최종회에서 단역으로 나온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이 중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배슬기뿐이고, 나머지 두 명은 그냥 연기자.[* 오승은은 나중에 밴드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가수 연기자 겸업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둘 다 예능감이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로~~오승은은 후에 무한걸스로 예능감을 폭발시켰으나 이 당시엔 안습의 예능감~~, [[X맨을 찾아라]] 등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팀을 혼자 먹여살렸다. 이 시절 선보였던 ''''복고댄스''''는 12탄까지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많이 유포되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UCC를 보고 혼자 연습해서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당시 나름대로 귀여운 얼굴에 몸매가 좋고(168cm의 키에 원조 허벅지 미녀 중 하나), 시골 소녀의 털털함 등이 더해져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더 빨강'에 속해있는 이상 그녀의 앞날은 예정된 것이었다. 결국 팀 해체 크리를 맞은 뒤 다른 두 멤버는 조연급 연기자로 돌다가 오승은은 시집 갔다.
해체 이후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말괄량이' 등의 곡이 그나마 유명하지만, 대부분 곡과 컨셉이 신통치않아[* 배슬기의 목소리는 여자 가수치고 굉장히 허스키하고 낮은 편이라 발랄하고 귀여운 컨셉의 곡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노래 실력이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발라드곡을 부르기도 애매했다.] 순위 프로 등에서는 중하위를 맴돌다 사라진다. 꾸준히 앨범을 내놓긴 했지만 방송 출연보다는 행사를 더 많이 돌았다. 가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긴 했지만 원래 토크보단 복고댄스로 뜬 것이다보니 예능감의 한계로 결국 이마저도 잘 안 나오게 된다. 이외에 여러 가수들의 [[피처링]]을 도맡았는데, 피처링 해준 노래 중에서도 크게 뜬 노래는 없다.
2009년 활동 당시 군부대 공연에서 이미테이션MC 이엉자([[이영자]] 아님)가 배슬기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개드립을 쳤는데, 웃으면서 그냥 잘 넘어갔다. 오오 대인배. 이 장면이 동영상으로 촬영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0년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겨 영화는 하차. 영화사가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오랜 기간동안 제대로 촬영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새 소속사는 티엔터테인먼트로 [[박정현]], [[차승원]], [[유지태]] 등이 소속 중.
[[2011년]] [[8월 27일]] 사건이 하나 터졌다. 배슬기 소유인 핑크색 [[아우디 A4]]를 몰던 모친은 교차로에서 먼저 주행 진입 중이던 [[싼타페]]를 들이받아 피해를 입히고 나서, 본인 과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신고했을 뿐만 아니라 보험사 직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아 비난을 받고있다. 먼저 진입한 차량 싼타페는 수리비 60만 원가량이 청구되었는데 과실 비율 40% 적용으로 인해 6:4로 하면서 보상금으로 피해자는 자기 차량 수리비의 6배 가까운 360만 원 상당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더욱 [[어그로]]를 끌고 있다. 이로 인해 쌍방 과실의 비율을 묻는 현행 [[도로교통법]]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2012년]] [[11월 24일]] [[안철수]] 대선 후보 사퇴와 관련된 트위터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11월 23일]]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하고, 24일 [[임호]]가 자신의 트위터에 "안 후보님 사퇴하셨네요."라는 글을 올리자, 그에 대한 답변(멘션) 형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제대로 투표할 힘 빠지네요. '''난 이래서 [[종북]]자 무리들이 싫어요.''' 어쨌든 투표율 하락은 떼어 놓은 당상. 좀 더 훌륭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끌어가실 모습을 기대하며”[[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9&aid=0001957141|#]]
안철수 후보 사퇴를 통한 후보 단일화 과정을 '''종북자 무리들'''의 짓으로 규정했다. 즉, 야권 후보로 출마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지지자들을 [[종북]]으로 폄훼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일었고, 비판이 계속 되자 해명글을 남겼다.
2017년 5월 30일 엑소(EXO) 콘서트에서 [[채연]]을 포함한 볼링 팀과 함께 관람했다. 이 가운데 현장에 있던 팬들은 일행들이 공연 중 음식물을 먹거나[* 그 중에는 공연장에서는 반입이 안 되는 맥주도 마셨다.], 공연 도중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고, 공연이 끝나기 전 단체로 자리를 뜨는 등 매너 없는 관람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해 도마에 올랐다. [* 게다가 채연과 배슬기도 가수인데도 후배 가수의 공연에서 비도덕적 행동을 한 것이다. 같은 가수로써 공연 비매너가 얼마나 불쾌하는지 그 누구보다 아실 분들이 비매너를 저질렸다.] 그 사건 이후 [[채연]]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607|해당기사]]
* [[아이온]] 폐인인 것이 유명하다(...). pc방에서 아이온을 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한때 레기온 정모까지 참석해서 찍은 사진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레기온 이름이 '''슬기로운 생활'''이고 배슬기 본인이 군단장이었다고 한다. 아이온 캐릭터명은 o배슬배슬o. 캐릭터 자체도 서버에서 꽤나 유명한 수준이라고.
- 보루토/2화 . . . . 22회 일치
사스케의 제자가 위해 나선환을 수련하는 보루토
* 제자로 삼아달라는 보루토를 보고 소년시절 나루토를 연상하는 사스케
* 하지만 "나선환을 쓸 수 있냐"고 물으면서 못 쓰면 제자로 삼을 수 없다고 한다.--하급닌자한테 A급 인술 못 쓰냐고 타박하는 노답 꼰대--
* 그는 사스케가 윤회사륜안의 소유자라는 것도 간파하는데
* 코노하마루는 중급시험에 대한 의욕이 생긴 줄 알고 4대, 나루토의 자손인 보루토에게 그들이 만든 나선환을 전수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동한다.
* 생각처럼 잘 되지 않자 보루토는 코노하마루와 티격댄다
* 하지만 사스케는 넘겨짚지 말라며 "제자로 삼아주려고 했다"고 말한다.
* 카타스케에게 오늘의 일을 말하니, 너무한 일이라며 닌자 도구를 꺼내준다.
* 지난 회에 코노하마루가 보여준 술법을 담아 쏘는 닌자도구.
* "적은 노력으로 한없이 큰 성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이 차세대의 닌자"라며 보루토에게 넘겨준다.
* 어쨌든 제자로 받아주는 사스케.
* 그러자 사스케는 "약점을 세자면 한 손으로 모자란 낙제생"이었다며 자신의 힘으로 그걸 극복하고 호카케가 되었다고 대답해준다.--아니 혈통빨이었잖아-- --환생빨도 잊지 말라구--
* 보루토와 만난 사라다는 아빠의 제자가 되어서 어쩔 거냐고 묻는데 보루토는 "아버지의 약점"을 배울 거라고 말한다.
* 그러기 전에 중급닌자부터 돼야 한다고 하는데, 보루토는 당연히 사스케에게 이것 저것 배워서 중급닌자 시험을 치르고 자신의 힘을 아버지에게 과시할 거라고 답한다.
* 사라다는 보루토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한심해하는데, 보루토는 당연히 "중급닌자 시험 우승"하겠다는 말이라며 사인된 신청서를 꺼낸다.
* 그건 바로 나루토의 구미. 자신들이 원하는 최대의 차크라라고 한다.
- 성시경 . . . . 22회 일치
'''성시경'''(成始璄, [[1979년]] [[4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사회학과]]와 동 대학 [[언론|언론대학원]] 방송학을 졸업하였으며, 방황 끝에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3510 t MAP 성시경]『매거진t』강명석 수석 기자 2008년 6월 30일</ref>
대입 입시생 시절이던 1999년 4월에 MBC 문화방송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엑스트라 단역급으로 첫 출연한 적이 있고 이듬해 [[2000년]] [[2000년 9월|9월]]에 열린 제1회 드림뮤직 신인가수 선발대회 "뜨악 페스티벌" 인터넷 오디션 "발악"을 통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첫 번째 싱글은 2000년 [[2000년 11월|11월]]에 발매된 "내게 오는 길"이었다. [[2001년]] [[2001년 4월|4월]]에는 데뷔 앨범인 "처음처럼"이 발매되었고,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7개의 정규 앨범, 3개의 리메이크 및 스페셜 앨범, 1개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최근 [[일본]]에서 [[정규앨범]][[DRAMA]]발매 전 일본 4개도시 투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현재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stview.php?no=2018030715133349170&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제목=성시경, NHK 한국어 강좌 프로 출연 "일본어도 능통"|출판사=스타뉴스|날짜=2018-03-07}}</ref><ref>{{뉴스 인용|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40901032939179001|제목=성시경 ‘일본 본격 진출’ 7개 도시 투어|출판사=문화일보|날짜=2018-04-09}}</ref>
성시경은 데뷔 이후, 오랜 기간동안 감성적인 [[발라드 (대중 음악)|발라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8년]] [[6월 28일]]에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이후, [[7월 1일]] 현역으로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102 보충대에 입대하였고, [[제1야전군 (대한민국)|제1야전군사령부]] 군악대 군악병으로 복무한 뒤 [[2010년]] [[5월 17일]]에 제대하였다. 제대 후, 매년 축가콘서트와 연말콘서트를 진행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연말콘서트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MBC FM4U]]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디스크 자키|DJ]]를 거쳐서, 현재 [[KBS2]] 《[[배틀 트립]]》, [[tvN]] 《[[모두의 연애]]》, [[OLIVE]], [[tvN]] 《달팽이호텔》 등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이자녹스CF)》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이자녹스CF)>
|[[MBC]] 《[[황태자의 첫사랑]]》 O.S.T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혼자 왔어요]]》
|《[[쇼! 오디오자키]]》
|토크쇼 남자우수상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일본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순창군 출신]][[분류:토이]][[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1박 2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음악가]]
- 식극의 소마/224화 . . . . 22회 일치
* 심사위원들은 미마사카가 동료를 돕느라 자신의 조리에 소홀했을까 우려하는데 그의 상대 [[사이토 소메이]]는 남을 거들면서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사이토는 하필이면 주제가 "참치"라며 미마사카를 동정하나, 정작 그는 매우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임하고 있다.
* 사이토가 참치 해체를 마치자 동시에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 "미마사카 FLASH !!"가 발동한다.
* 츠카사는 그가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승리할 각오를 세운 걸 보고 "지금까지의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한다.
* [[쿠가 테루노리]]는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마사카 스바루]]가 검은 액체가 든 병을 넘기자 대결의 주제 "녹차"에 손대기 시작한다.
>자... 쿠가 테루노리의 요리는 지금부터가 진짜야.
* 이스트와르는 쿠가가 돼지고기에 전념한건 미마사카의 조력 덕이라고 보고 멋진 팀워크라고 평하지만, 샤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국 미마사카는 그 시간 동안 자기 조리는 하지 못한 채 쿠가를 돕는게 매진한 셈. 자기 승부는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 [[안(식극의 소마)|안]]도 동의한다. 아직도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에 헤롱헤롱하지만 해설력만은 건재. 그녀는 미마사카의 상대가 십걸의 4석, 당대 최강의 스시 장인 [[사이토 소메이]]란 점을 강조한다.
아무래도 [[요시노 유키]] 등 후배들은 사이토의 특기 분야에 대해선 몰랐던 것 같았다. 하필이면 그런 상대랑 싸우는데 "참치"같은 주제를 뽑다니, 미마사카도 어지간히 운이 없다. 반역자들이 그렇게 성토 아닌 성토를 이어가고 있을 때, 사이토 또한 미마사카의 불운을 불쌍히 여겼다.
>정말이지 불행한 남자다. 하지만 자비는 멋모르는 행동.
* 소마는 허둥대는 반역자 동료들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미마사카의 얼굴을 보라면서 "뭔가 저지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마사카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도 대단히 여유로운 웃음을 띄고 있다.
* 사이토의 조리대 맞은 편에 거울이 놓였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조리를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복사한다. 사이토의 손이 멈추자 비로소 미마사카도 멈춘다. 그는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재료를 다듬어가는 사이토를 완벽하게 카피하고 있었다.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순간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상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남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 침울하기 이를 데 없던 반역자 팀의 분위기가 바뀐다.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는 기존의 트레이스를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타쿠미 알디니]] 조차 "믿음직하다"고 말할 정도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저 감탄. 소마는 이 상황을 츠카사가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요리사와 싸우는 거라고 요약한다.
* 센트럴편인 관중들은 쿠가가 비겁하게 나왔다고 욕한다. 그는 츠카사와 일 대 일로 붙고 싶던게 아니냐는 것.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쿠가는 마이웨이. 오히려 자신은 어른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자존심은 세우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자신의 바람이 어떻든, 지금은 반역자 팀을 대표해 싸우고 있는 입장. 그의 뒤에는 후배들이,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 당당한 쿠가의 선언. 아까까지는 쿠가를 "자기 사이드에만 머무른다"고 비판했던 츠카사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를 버려서라도 이길 각오
- 안종범 . . . . 22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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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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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작성일자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에 지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용되어 일하다가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대통령]]이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2016년 10월 30일 사임하였고 제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강석훈]]이 그 직을 임시 대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69333 靑 수석비서관들 일괄 사표제출…朴대통령 인적쇄신 가능할까]. 서울신문. 2016년 10월 30일.</ref>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8904 민정수석·청와대 비서관… 도대체 뭐 하는 자린고?]. 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ref> <ref>이상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74512 靑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대행]. 머니투데이. 2016년 11월 16일.</ref>
2016년 11월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 강요,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ref>{{보고서 인용|저자=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pdfdownload.jsp?attach_no=175537|제목=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수사결과발표|출판사=검찰 특별수사본부|날짜=2016년 11월 20일}}</ref>
2018년 3월 29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안종범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재직 당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를 위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대통령 조사’ 안건 부결 기획안 마련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ref>{{보고서 인용|저자=공보담당관 차장검사 문찬석|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download.jsp?attach_no=193667|제목=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 수사결과|출판사=서울동부지방검찰청|날짜=2018년 3월 29일}}</ref>
* 1998 . 04 ~ 2002 . 02 : 감사원 국책사업감시단 자문위원
* 2003 . 10 ~ 2005 . 12 :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서울경제연구센터 자문위원
* 2009 . 08 :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 ~ 2011 . 08 :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자금지원심사소위원회 위원장
* 2010 . 03 ~ 2011 . 02 :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
|전임자 = [[현정택]]
|후임자 = [[강석훈]]<br/>(직무대행)
|전임자 = [[조원동 (1956년)|조원동]]
|후임자 = [[강석훈]]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원피스/835화 . . . . 22회 일치
* 나미는 미라미라 열매(거울거울 열매) 능력자 브륄레에게 잡혔으나 크리마 텍트로 탈출. 캐럿이 덤벼들었으나 미라미라 열매의 능력으로 포획된다.
* 우누는 빅맘의 이 소르소르 열매(소울소울 열매) 능력자임을 알려주고 그들이 겪은 일에 대해 설명해준다.
* 그리고 자신은 원래 빅맘의 "전 남편"이고 두 딸 로라와 쉬퐁을 낳은 이후 버려졌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 교회 같은 건물.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그 끝에는 검은 그림자 같은 괴물이 있다.
* 괴물이 "리브 오어 라이프"라고 묻자 주민들은 "라이프"라고 답한다.
* 브륄레는 얼굴에 난 상처에 컴플렉스가 심했다. 그래서 멀쩡한 여자의 얼굴을 보면 찢어버리고 싶어하는 새디스트.
* 이어서 캐럿이 일렉클로로 공격하는데 갑자기 거울이 생겨나 막힌다.
* 게다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공격이 튕겨져 나와 오히려 반격 당한다.
* 브륄레는 "미러미러 열매"(거울거울 열매)의 능력자.
* 브륄레는 밀집모자 일당의 행적이 빅맘에게 포착되고 있다고 말한다.
* 나미가 "그정도는 얼마든지 가져다 주겠다"고 약속하자 우누는 쵸파가 뜻밖에도 강했지만 결국 잡혀갔다고 알려준다.
* 빅맘 샬롯 링링은 "소르소르 열매"(소울소울 열매)의 능력자. 문자 그대로 소울(영혼)을 부여하고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이다.
* 징수와 부여를 담당하는 그림자 같은 괴물들은 바로 빅맘 본인의 "화신".
* 잠자코 있었던 이유는 "엮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나미와 루피가 좀 더 캐묻자 결국 자신의 내막도 알려준다.
* 그런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거구의 사내가 나타나 우누의 머리채를 잡아올린다.
* 그를 들어올린 자는 비스킷 대신 "샬롯 크래커". 빅맘의 10남이다.
* 나미는 그의 입에서 "로라"라는 이름이 나오자 스릴러 바크의 로라를 떠올린다.
* 벳지의 아내 쉬폰은 로라의 친자매였던 걸로 밝혀졌다.
* 우누는 거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덩치가 굉장히 크다. 단 거인족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고 몸 자체는 쿠마 정도의 사이즈. 하지만 머리가 몸보다 큰 기이한 신체비율.
- 유태웅(탤런트) . . . . 22회 일치
||<#88b04b> {{{#ffffff '''출생'''}}} ||<(> [[1972년]] [[6월 5일]],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
||<#88b04b> {{{#ffffff '''배우자'''}}} ||<(> 아내 문채령[* 2004년에 결혼했다.] ||
||<#88b04b> {{{#ffffff '''자녀'''}}} ||<(>아들 유재동, 유희동, 유재민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귀국한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성장했다. [[1993년]]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단역 출연해서 연기자 첫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94년]] [[문화방송|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이현경]], [[최지우]],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 2003년에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역으로 열연했다.
|| [[1994년]] || [[MBC]] || [[아들의 여자]] || || ||
|| [[1996년]] || [[SBS]] || 부자유친 || || ||
|| [[1998년]] || [[KBS2]] || 싱싱 손자병법 || || 조연 ||
|| [[2000년]] || [[SBS]] || 자꾸만 보고 싶네 || 이현우 || ||
|| [[2003년]] || [[MBC]] || 베스트극장 - 혼자 우는 사랑 || || ||
|| [[2006년]] || [[KBS2]] || 그 여자의 선택 || 나영규 || 주연 ||
|| [[2007년]] || [[KBS2]]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시티]][br]네 고객의 여자를[br]탐하지 마라 || 규원 || ||
|| [[2007년]] || [[KBS2]]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시티]][br]기억상실증에[br]걸린 저승사자 || 웨딩 매니저 || ||
|| [[2009년]] || [[KBS2]] || [[결혼 못하는 남자#s-2|결혼 못하는 남자]] || 문석환 || ||
|| [[2015년]] || [[SBS]] || 인생추적자 이재구 || || ||
|| [[2005년]] || [[B형 남자친구]] || 경준 || ||
|| [[2011년]] || [[사물의 비밀]] || 기자 || 우정출연 ||
|| [[2013년]] || [[야관문: 욕망의 꽃]] || 오 기자 || ||
|| [[1997년]] || [[햄릿]] || 햄릿 왕자 || 주연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72년 출생]][[분류:1994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이재용(배우) . . . . 22회 일치
|| '''본관''' ||<(> [[경주 이씨]][* 경주 이씨 41세손 '在'자 항렬이다.] ||
|| '''가족''' ||<(> 배우자 김현아 ||
--[[이재용|이름에 걸맞게]]--주로 [[높으신 분들]] 역할을 많이 맡는데 '''[[조폭]] [[보스]]''', 군 장성, 금융기관 회장, 펀드매니저, 재벌 총수 --재벌 총수가 [[이재용|재벌 총수]] 연기를 하네--, 대기업 오너, 언론사 사주, 경찰청장, 국회의원, 장차관, 고위관료, 검찰·국정원 고위층 역할을 맡는다. [[사극]]에도 자주 얼굴을 비춘다.
[[배우]] [[유호정]]의 남편인 배우 [[이재룡]]이나[* 그런데 이쪽은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 이재룡이 한살 동생.]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과 헷갈리지 말자.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묵직한 부산 사투리로, 동수([[장동건]])를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미친 존재감]]을 알렸다.[* 실제로 이재용은 유년시절을 마산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산 사투리가 능숙한 건 일도 아니다.] [[이재용|동명의 재벌 후계자]]가 있는 관계로 이재용이라는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친구의 차상곤,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제5공화국의 [[이학봉]] 등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조선놈들은 선량한 미와를 자꾸 나쁜 쪽으로 몰아가고 있어. 이 착한 미와에게 자꾸 고문을 해달라고 한단 말이야. 이봐 김형사, 기막히게 한 번 다뤄봐라. [[이근안|고문도 기술이란 말이다.]]"
>"냄들은 내보고 행님 등에 칼을 꽂느니 배신이니 해싸도 그거 다 내 모함한다고 하는 소리다. 내 솔직히 말해서 행님한테 배신 때릴 생각 눈꼽만큼도 없다. 단지 내가 원하는 거는, 항상 1등만 있으면 썩으니까 내가 2등이 되가꼬 1등 정신도 좀 차리게 하고 또,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우리 세계를 이끌어나가야 된다 이긴기라. 원래 [[건달]]의 역할이 뭐꼬? 그거는 바로 [[국가안전기획부|자신들은 비록 음지에 살면서도 양지를 더욱 밝고 환하게 해주는 게]] 건달 아이가? 안 그렇나?"
실제로 대머리기 때문에 주로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한다. 하지만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는 가발 없이 내추럴한 모습(...)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드라마상 사법고시를 보다가 미역국을 연거푸 먹어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구마적 이원종 식당에 주방장으로 일하는 설정. 탈모를 이용한 웃긴 에피소드도 한 토막 있다. 극중에서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손님이 불평하자 이원종이 침착하게 주방에 있는 이재용을 불러 모자를 벗으라고 한다. 그러자 훵하니 벗겨진 이재용의 머리를 보고 손님의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이재용은 이재용대로 자기 콤플렉스를 대놓고 끄집어낸 이원종에게 앙심을 품는다.]
날카로운 용모 때문에 주로 [[악역]]을 맡으며,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장동건을 스카웃한 조직 보스 차상곤 역할로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가끔은 가뭄에 콩 나듯(...) [[선역|좋은 역할]]을 하기도 하며, 주인공과 대립하지만 악역은 아닌 배역도 많은 편인데, 이런 배역을 맡을 땐 보통 완고한 원칙주의자나 보수파라 원칙을 벗어난 주인공이 못마땅하거나 오해가 있어 대립했으나, 후반엔 조력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개그 캐릭터]]에도 일가견이 있어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이다.
* [[1대 100]] 218회에서 1인으로 참가했으며 이 대결에서는 1단계부터 26명이 떨어질 정도로 어려웠고 5단계를 제외하면 모든 문제에서 탈락자가 10명을 넘었다. [[1대 100/최저 정답률 문제 #S-3.5|그럼에도 6단계 1:22까지 생존했으며 여기서 346만원을 받는 주인공이 결정되었다]]. 그 뒤 363회에서 1인으로 재출연했으며 이 때에도 난이도는 어려웠지만 6단계 1:9까지 생존하면서 선전했다.(다음 단계에서 최후의 4인 중 246만원을 받는 우승자 결정)
* OCN 오리지널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정치인 국한주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배우 [[조민기]]가 [[성범죄|과거 저질렀던 악행]]이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밝혀져]]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자, 그를 대신해 국한주를 연기할 배우로 결정됐다. ~~악역 연기가 아주 그냥 일품이다~~
|| [[적도의 남자]] || [[최광춘]] || ||
* [[닥터 K]](1998년) - 정신병원 환자
[[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춘천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63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이지현(1983) . . . . 22회 일치
|| '''성좌/십이지''' ||<(> 천칭자리, [[돼지띠]] ||
|| '''형제자매''' ||<(> 1남 1녀 중 둘째 ||
|| '''배우자''' ||<(> 건설인(2013년~2016년) ||
|| '''자녀''' ||<(> 1남 1녀[* 첫째 2013년생(딸), 둘째 2015년생(아들).] ||
취미가 [[시(문학)|시]]쓰기여서인지 [[작사]]를 맡은 적도 있다. 전&현직 [[쥬얼리]] 멤버 중에서 앨범 프로듀싱 단계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은 유일한 멤버.[* 2집 수록곡 SAD. 탈퇴 후에는 [[조민아(1984)|조민아]]도 자기 곡에 작사를 한 적이 있다. [[하주연]]도 곡에 랩 작사는 본인이 하는데, 저작권자 이름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지못미]]~~] 대신 노래는 굉장히 못 했다. 시간이 갈수록 [[서인영]]과 [[조민아(1984)|조민아]]의 파트 지분이 늘고 이지현은...[[Rap|랩]]으로 쫓겨났다(...). 그것도 랩이라기엔 좀...
소속사 능력의 한계로 인해 멤버 개개인의 컨셉트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그룹이었던지라 알아서 활로를 개척해야 했는데, [[박정아]]를 제외한 3명 중에 [[2004년]]에 유일하게 활로를 찾은 멤버였다. 그게 바로 막말 컨셉(...). X맨의 [[당연하지]]에서 한동안 [[본좌]] 자리를 지키며 높은 지분을 확보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혼자서 여러 예능과 시트콤 등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창력 논란과 겹쳐 비호감 캐릭터가 되면서 많은 안티 또한 함께 확보했다(…).
[[2006년]] 2월 [[쥬얼리]]를 탈퇴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 만료 후 [[스타제국]]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훗날 방송에서 얘기하길,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MC와 연기자 활동을 하며 방송 활동을 이어가나 싶었으나, 어느 순간 이후로는 뜸하다. 가장 최근의 방송 활동이 [[2008년]] 이후 3년 만에 2011년 [[박정아]]가 출연한 [[달고나]]에 출연한 것 정도.
나중에 자신이 올린 [[셀카]]가 [[리즈 시절]]에 비하면 지나치게 [[노안]]이 되어 [[성형]]을 과하게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2011년에 쥬얼리 후배들과 찍은 사진에서도 여파가 남아 있는지 [[노안]]으로 보인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보형물 이식을 했다가 제거했다는데, 그 부작용+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한 주름살의 결과물인 듯.
[[2012년]]에는 갑자기 인터넷에 '이지현 최근 사진'이 검색어에 들었는데, 그 사진도 옛날에 올라온 것. ~~기자하기 참 쉽다~~
2015년 11월 2일에 방영을 시작한 MBC 아침드라마 [[내일도 승리]]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얼굴도 부자연스러움이 없어지고 예전 얼굴에서 나이만 먹은 모습.
2016년 6월 10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21557|수원지방법원 관계자]]는 "이지현이 최근 이혼 조정 중이다. 이지현 측이 먼저 신청했다"라고 밝혔다. 결국 2016년 8월 25일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449032|합의 이혼했다]]. 양육권은 이지현이 갖고 간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일부 [[찌라시]]에서는 이지현의 아이들을 ''''두 남매'가 아닌 '두 딸'로 잘못 기재''' 했다 [[카더라]].
사실, 까임을 유발한 본질적인 부분은 그 발음보다 노래를 못해서 특유의 부정확한 음정 처리였다. 임팩트가 워낙 강해 묻혀 버렸지만, 이 영상의 알려지지 않은 포인트는 중간에 다른 멤버들이 박자를 놓치자(박자도 박자지만 화음으로 가야하는 부분에서 이지현의 음정이 산으로 가버렸다) [[박정아]]가 자기 파트가 아님에도 끼어들어서 수습하는 장면이다.
|| [[1대 100]] || 1인 도전자 || 407회 ||
* [[MBC]] [[코미디 하우스]]의 [[꽃보다 남자]] 코너에서 여주인공 산차이역을 맞은 적이 있다. 대략 [[2003년]]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출연 기간을 아는 [[위키러]]가 [[추가 바람]].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22회 일치
* 게라이드가 어린 요정병사를 지키는 과정에서 또다른 인간 전사가 공격, 게라이드의 눈을 빼앗고 사지를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다 로우에게 살해당한다.
* 로우일행은 소꿉친구가 스티그마에게 살해 당해 복수한 것이나, 스티그마도 동료도 모두 죽자 로우는 자신들도 스티그마와 똑같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 스티그마를 배반하고 싸움을 시작한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와 인간 전사들. 단 네 명 뿐이지만 스티그마가 전멸 위기에 처해있다. 로우는 피투성이가 된 채 천사족 전사와 싸운다. 전사가 로우를 강하게 몰아붙이며 자세를 무너뜨린다. [[게라이드]]는 울고 있지만 싸움을 멈추라고 외친다. 그러나 천사족 전사를 그녀를 겁쟁이라 매도하면서 "울틈이 있으면 싸워라"고 일갈한다. 그 잠깐의 틈이 승부를 갈랐다. 로우는 자세가 무너진 채로 칼을 던져서 전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 게라이드는 로우에게 살인을 멈추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말할 뿐이다. 로우가 칼을 줍는 다시 어디선가 나무 마법이 날아와 다리를 찌른다. 어린 요정족의 전사였다. 이미 겁을 먹은 상태지만 로우는 가차없이 칼을 들어올린다. 게라이드는 이 어린 전사라도 보호하려고 로우의 앞을 막아선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라고 말하지만 뒤에 올 말을 잇지 못한다. 로우는 자신을 죽일 거라면 해보라며 다가오는걸 멈추지 않는다.
>자, 죽여!
* 묘한 대치 상황은 뜻밖의 형태로 끝났다. 또다른 인간 전사가 게라이드의 뒤에서 칼을 휘둘렀다. 어린 요정은 목이 잘리고 게라이드는 오른족 눈을 잃고 쓰러졌다. 인간 전사는 멍하니 서있는 로우를 돌아보며 가만있지 말고 빨리 죽이라고 닥달하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 게라이드가 아직 살아있는 걸 발견하자 잔인한 심성을 드러낸다. 로우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게라이드의 날개를, 다음은 다리를 잘라버리며 잔인하게 웃는다. 게라이드는 이 모든 것을, 원한하기 보다는 천벌이라고 생각한다.
로우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게라이드를 데리고 나무 둥치 밑에 앉는다. 게라이드가 정신을 차리자 로우는 "왜 나를 죽이지 않았냐"고 씁쓸하게 묻는다.
* 게라이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로우가 오빠 [[그로키시니아]]와 대화할 때 로우 안에 억압된 분노와 슬픔을 발견했도 또다른 얼굴도 발견했다. 그건 게라이드 자신과 아주 닮은 인간 소녀였다. 그건 로우의 소꿉친구다. 로우는 소녀를 아주 좋아했고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소녀가 스티그마에게 죽기 전까진.
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한 짓도 스티그마가 한 것과 다를게 없다는, 뒤늦은 후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게라이드는 로우보다도 그의 내심을 더 솔직하게 알 수 있다.
* 로우는 문득 [[멜리오다스]]가 이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막막해진다. 그는 멜리오다스가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라이드의 오빠, 그로키시니아가 어떻게 할지는 알 것 같다.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다. 게라이드는 자신이 사정을 설명할 테니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로우는 그럴리 없다고 고개를 젓지만, 게라이드는 어차피 자신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시인한다. 그녀는 [[뤼드셀]]이 대량학살을 저지를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전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경도돼 그것을 묵인했다.
게라이드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기침을 하고 피를 토한다. 로우는 빨리 처치를 받아야 한다며 그녀의 말을 끊고 적당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안아 든다. 그런데 갑자기 게라이드가 웃기 시작한다. 아까부터 로우는 소꿉친구를 떠올리고 있는데, 게라이드가 보기에도 자신과 너무 닮아서 로우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게 웃긴 것이다.
* 게라이드는 오빠에게 사정을 설명하려고 해보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여력이 되지 않자 로우에게 도망치라고 권하지만 그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그는 자신이 심판 받음으로써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한다.
* 할리퀸은 "또 지키지 못했다"는 자학이 고개를 든다. 숲과 여동생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던 로우, 그리고 여동생이 오빠를 걱정하는게 이상한 일이냐고 하던 게라이드. 배신감과 자괴감. 다양한 감정이 섞여 더 큰 분노가 된다. 할리퀸은 그 모든 것을 담아 영창 바스키어스를 던진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22회 일치
* 그러나 그의 눈 앞에는 자신과 분리된 [[그로키시니아]]와 그가 죽인 로우의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시련"이 끝나고 현세로 돌아가는 할리퀸.
* 그것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의 모습. 자청해서 창에 맞으려는 듯한 로우의 모습을 보고 반을 떠올렸다. 그리고 [[엘레인]]과 그의 관계, 그때문에 그가 할리퀸에게 속죄하려 했던 일들.
*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 그 자리에는 할리퀸 자신, 아니 역사 속의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귀신 같은 형상으로 창을 던지고 있었다.
* 할리퀸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는 더이상 3000년 전 성전 시대에 있지 않았다. [[디안느]]와 그로키시니아, [[드롤]]에게 끌려온 나무 속이었다. 할리퀸은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몸을 만져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그때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말을 건다.
할리퀸은 자기도 모르게 "그로키시니아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방금 자신이 본 장면에 대해 묻는데 그로키시니아가 말하길 "본 그대로 자신은 로우를 죽였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로키시니아는 감당할 수 없는 증오와 분노에 휩쓸린다. 로우를 죽이고도 성에 차지 않아 모든 인간과 게라이드를 지키지 못한 "스티그마" 전체로 분노의 화살을 놀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땐 십계의 일원으로 싸우고 있었다.
할리퀸이 위로하려는 건지 어쩌려는 건지 "최악의 오빠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고 이상한 경쟁심을 내세운다. 그로키시니아는 그런 게 경쟁할 부분이냐고 태클을 걸면서도, 자신과 같은 입장인 그가 왜 로우를 죽이지 않았냐고 묻는다.
할리퀸이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정에 의해서 타락하고 악에 몸담았다. 그리고 반. 비록 자신에겐 쓰레기같은 남자로 보이지만 여동생 [[엘레인]]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그로키시니아와 같았던 부분은 바로 거기다.
드롤과 그로키시니아는 말 없이 그를 바라본다. 그로키시니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너무 물러터져서 앞으로 싸움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고 빈정거린다. 그리고 확고한 태도로 "진짜 악이란 실존한다"고 강조한다. 할리퀸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 디안느에게 시선을 옮기며 답한다.
할리퀸은 다시 자신이 "정답"을 맞춰서 돌아오게 된 거냐고 묻는데, 그건 조금 틀린 설명이다. 그는 그로키시니아와 "다른 선택"을 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역사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세한 변화는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크게 운명을 바꾸려면 "역사를 보정하는 힘"이 작용해 원래 세계로 되돌려 버린다. 그게 할리퀸이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다. 따라서 할리퀸이 그로키시니아와 똑같은 선택을 했더라면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현대의 그로키시니아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킹은 새삼 무서운 선택지를 골랐다는게 실감나는지 침을 삼킨다. 그로키시니아는 그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당신은 내가 못한 길을 골라 돌아왔다. 이건 분명 큰 성장을 줄 것이다"라고 격려한다. 그 탓인지 할리퀸도 따라 웃으며 편안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자질구레하게 따지는 성미가 변하진 않았는지, 자신이 성전시대에서 배운건 그로키시니아의 몸으로 한 것이라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온게 아닌지 의심하며 전전긍긍해한다.
자신이 고통스러기 때문인지 할리퀸은 새삼 깨어나지 못한 디안느에게 "무사히 돌아와 달라"고 기원한다.
* 조용해진 은총의 빛에서 굉음과 함께 엄청난 마력이 감지된다. 진짜 고서는 "들킨 건가"하고 중얼거린다. 뭔가가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것은 고서처럼 마계의 감옥으로 이어진 문에서 나타났다. 아직도 고서의 술법으로 묶여 있는 [[메라스큐라]]는 그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감옥 안에서 나타난 자는 "이것도 일"이라면서 고서의 마력을 따라 온다.
* 디안느가 진저리를 칠 정도의 살기를 뿜으며, 추격자가 날아온다. 그가 힘을 사용하자 은총의 빛이 빛과 함께 폭발하고 그 폭염 속에서 추격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고서는 그를 보며 중얼거린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22회 일치
* 젤드리스는 [[마신왕]]의 노여움을 언급하며 고서를 감옥으로 끌고가려 하나 고서는 응하지 않는다. 디안느는 고서를 도망치게 하고 자신이 시간을 번다.
이 시대의 젤드리스는 [[고서]]의 감시자이자 "처형인"이다. 그는 십계 고서에게 마신왕의 노여움을 전하며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배반자로 간주해 처리하겠다고 엄포한다. 고서도 그렇게 협조적인 태도는 아니다. 그는 다소 날선 태도를 내보이는데 최대한 마력을 온존하고 싶었지만 젤드리스 상대로는 그럴 수 없겠다고 말한다. 분명 싸울 태세다.
* 하지만 고서가 싸울 필요는 없었다. [[디안느]]가 대지를 변화시키며 젤드리스를 위협한다. 그가 잠시 물러서자 디안느는 두 고서를 도주 시킨다. 십계 고서는 너무 위험하고 상대가 노리는건 자신이라고 거절하지만 디안느는 현재 자신은 거인왕이니 위험할 것이 없고 고서는 성전을 멈춰야 하니 어서 가라고 재촉한다. 결국 고서는 그녀의 뜻에 따라 그 자리를 피한다. 인형 고서는 십계 고서를 따라가면서 "다시 만나자 디안느"란 인사를 남긴다.
* 젤드리스는 곧 다시 돌아와 디안느와 대치한다. 디안드는 거인왕 [[드롤]]로서 "전투의 춤"을 펼치며 젤드리스와 싸울 자세를 보인다. 드롤의 춤에 따라 대지가 요동치고 흘러가며 장관을 이룬다. 젤드리스는 잠시 그 춤을 감상하며 감탄한다. 엄청난 마력이 대지를 따라 드롤에게 모여들고 있다. 마신족 사이에서도 드롤의 강함과 명성은 유명한 모양인지 "이게 그 유명한 드롤의 춤인가?"라고 중얼거린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디안느는 방어할 틈도 없이 젤드리스의 일격을 허용한다. 젤드리스는 화살처럼 날아와서 드롤의 가슴을 과녘처럼 파고든다. 디안느는 쓰러지면서도 지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일곱개의 대죄/201화|십계의 공격에도 끄떡 없던]] 드롤의 몸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렇게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우선은 방어다. 쓰러진 채로 "가이아폼"을 사용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에서 마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젤드리스가 그를 쓰러뜨리면서 마력까지 봉해서 아무런 기술도 쓸 수 없는 것이다. 디안느는 그가 다른 십계와도 다른, 믿기지 않는 강자라는 걸 실감한다.
* 젤드리스는 봉한 마력은 곧 돌려주겠다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 "젤드리스"를 밝히고 또 자신이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서 행사하는 자", 즉 "마신왕의 대리"라고 말한다. 마신왕의 마력, 그 대행자, 모두 디안느에겐 생소한 소리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기도 전에, 젤드리스는 무서운 제안을 던진다.
젤드리스는 드롤과 그의 동료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의 용맹은 마계에서도 유명하다고 추켜세우고 동료가 된다면 지금 이상으로 큰 힘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디안느는 갑자기 적에게 그런 제안을 할리 없다고 믿기지 않아하지만, 젤드리스의 차가운 눈빛은 거짓이나 농담을 하는게 아니다.
* 디안느가 위험한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현세의 진짜 드롤은 이 모든 정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기야 자신이 겪은 일이니까. 적 앞에서 도망치는게 허용되지 않는 거인족에게, 선택지란 결국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죽거나, 혹은 십계가 되는 것. 그런데 그 말은 무서운 의미다. 시간회귀술은 과거에서 죽으면 현세에서도 죽는다. 물론 "시련"에서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해도 현세로는 돌아올 수 없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은 통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 무서운 함정을 눈치챈다. 그가 드롤에게 따져묻자 드롤은 "그저 궁금했을 뿐"이란, 어찌보면 무책임한 대답이 돌아온다.
디안느는 이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전설의 거인왕이, 자신이 같은 처지였다니. 디안느도 전투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동족의 따돌림을 당했다. 거인족들은 전사종족으로 그런 기질을 인정하지 않고 그녀 자체를 "이물"로 규정했다.
그런 면에서 젤드리스는 예리하게 파고든 셈이다. 젤드리스는 비록 거인족이 강함을 숭상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가장 강한 드롤이 거인왕 자리에 오른 거지만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경애하는 동족은 없었을 거라 지적한다.
>왜냐하면 마신족은 '''존재 자체가 이물'''이기 때문이다.
- 자시키로우 . . . . 22회 일치
감금된 대상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다다미 방이며, 철이나 나무 격자 등으로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둔다. 사적인 감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출입 자유는 박탈하지만 일단 생존에는 지장이 없도록 음식 등을 공급하며 관리하는 것이 관습이다.
그러나 대개 감금된 사람은 겨우 음식만 먹으면서 최소한의 생존만을 유지할 뿐, 위생관리 등은 되지 않아 생활이 지극히 비참하며 알몸으로 오물에 덮혀 살아가는 경우도 많이 보고되었다. 공간 역시 부족하여 한평 반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환자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우므로 그러지 못하도록 벽에 빽빽하게 못을 박아두는 경우도 있다.
정신병원이 아닌 사택이므로 제대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정상으로 치료되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신적인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일도 흔히 있다. 일평생 자시키로우에 갇혀 살다가 죽는 사례도 있다.
[[에도 시대]]에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에 상응하는 직책에 있는 영주들은 엄격한 무가제법도에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러한 자들 가운데 미치광이 같은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문란하고 분방한 행동을 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 부하인 가신(家臣)들은 지극히 곤란해졌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도를 어긴 영주는 막부로부터 영지를 빼앗기는 등의 개역 처분을 당할 수 있었는데 영주가 쫓겨난 다음에는 가신들 역시 벼슬자리를 잃고 낭인 무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유교 윤리가 확립되어 하극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영주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도 없었다. 가신들은 간언을 하다가 안 되면 부적절한 영주를 붙잡아 자시키로우에 몇달간 가둔 다음 선정을 베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도 영주의 행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강제로 은거를 시켜서 축출하게 되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 부터는 화족(華族, 귀족)이나 대상인 등 자산을 가진 집안에서, 가족 내에 소행이 불량한 자, 정신 상태에 이상이 있는 자를 감금하기 위하여 이러한 시설을 만들었다.
법률적으로 1900년에 『사택감치(私宅監置)』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당시 정신의학에서는 정신질환자를 일단 감금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정신병원의 시설이 부족한 편이었다. 게다가 이미 자시키로우의 관습이 있었으므로 쉽게 도입되었다.
법률적으로는 1950년대 무렵에 폐지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정신병원 시설이 부족하거나 주변의 시선을 걱정하여 자시키로우에 가두는 관습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문학,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오래된 주택에 남아 있던 자시키로우 등이 소재가 되는 일이 흔히 있다. 성적인 풍습과 결합하여 소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테츠카 오사무의 『아야코(奇子)』가 대표적인 것이다.
- 장기오 (공무원) . . . . 22회 일치
| 배우자 = 손해옥(孫海玉)
| 자녀 = 슬하 2남 1녀
| 기타 이력 =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차관]] <br/>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장관]] <br/> [[한국근로복지공단]] [[이사 (법인)|이사장]] <br/> 민주자유당 특임위원 <br/>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
[[대한민국 육군|육군]] [[3성 장군|중장]] 예편 이후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장관]]을 역임하였고 [[1996년]] 12·12 군사 반란이 [[문민 정부]]에 의하여 사법처리가 확실시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1997년 12월 22일 12·12 군사 반란 가담자가 사면된 뒤 대한민국과 미국의 범죄인 인도 협정이 발효될 예정을 보이자 [[1998년]] 귀국해 자수했다.
* [[1994년]] [[민주자유당]] 특임촉탁위원(1994년 1월)
* [[1994년]] [[민주자유당]] 특임촉탁위원 직위 퇴임(1994년 8월)
* [[1999년]] [[자유민주연합]] 특임촉탁위원(1999년 3월)
* [[1999년]] [[자유민주연합]] 특임촉탁위원 직위 퇴임(1999년 6월)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전임자 = [[김옥진]]
|후임자 = [[선종석]] <br/> (직무대행)
|전임자 = [[정관용 (1935년)|정관용]]
|후임자 = [[김용갑]]
{{12·12 반란 주동자}}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분류:인동 장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나회]][[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
- 장윤성 . . . . 22회 일치
'''장윤성'''(張允聖, [[1963년]] [[12월 9일]] ~ , [[서울특별시]] 출생)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창악회와 동아콩쿨, 중앙콩쿨 작곡 부문에서 입상하기도 했고, 아르스 실내 관현악단 연주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이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로 유학해 빈 국립 음악원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다.
러시아 유학 중이던 1993년에 프로코피에프 국제 지휘자 콩쿨에 2위로 입상했고, 입상 특전으로 1년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에프]]에게 배우기도 했다. 1995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제 5번 '한국' 을 유럽 초연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도쿄 국제 지휘 콩쿨에 참가해 1위 없는 2위에 입상했다.
1997년에 귀국해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조교수로 부임했고,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와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현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의 단장 겸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울산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고, 후기 낭만파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대곡들의 연주회로 호평을 받았다.
2003년 [[창원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어 2007년까지 재직했다. 2004년에는 [[쇤베르크]]의 초대형 오라토리오 '구레의 노래' 를 통영과 서울에서 한국 초연해 화제가 되었다. 2008년 4월부터 [[오사카 음악 대학]]의 더 컬리지 오페라하우스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로 활동 중이며, 2009년 8월에는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다.
전임자=[[유종 (지휘자)|유종]]
후임자=[[이대욱]]
직책=[[울산 시립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전임자=[[김도기]]
후임자=[[정치용]]
직책=[[창원 시립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전임자=[[김종덕]]
후임자=[[박태영 (지휘자)|박태영]]
직책=[[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 단장 겸 상임 지휘자|
전임자=에드몬 콜로메르
후임자=[[금노상]]
직책=[[대전 시립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22회 일치
'''마션'''에서 와트니는 화성에 감자밭을 만들었다. 그가 특히 감자를 사랑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밖에도 그는 화성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베이스 캠프를 개조하기도 하면서 지냈는데 그 또한 그가 조경이나 쉐어하우스에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화성을 탈출하기 위해 화성의 거주지를 손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우연히 시사회표가 들어왔고 우연히 '''같이 가고 싶은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시간 가량 펼쳐지는 전문용어 난무와 벌건 황무지 밖에 볼 게 없는 미장센 때문에 드물게 숙면을 취해버렸고 그 애하고 썸씽도 그날로 끝나버렸다. 이후 리들리 스콧과 맷 데이먼은 꼴도 보기 싫었고 암암리에 영화 사이트에 별점 테러를 가하는 걸로 복수했다.
'''딱 한 번만 외출'''하겠다는 계획은 폐기다. 앞으로 나는 '''자주 외출할 것이다'''. 이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첫째, 생각보다 독 안에 있는 식량이 많다. 지금 가방으로는 몇 번 왕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둘째, 집안에는 이 많은 식량을 저장할 방법이 없다. 냉장고를 살릴 수만 있으면 모를까. 알다시피 빌어먹을 전기는 끊겼다. 셋째, 이렇게 말하기는 정말 싫은데, 말하는 나도 제정신인 것 같지 않은데, '''바깥은 생각보단 안전하다.'''
그때 푹 자지 않았더라면 와트니가 하던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봐둘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안다. 별점 테러를 하려다 보면 영화 내용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보드 정도는 읽어봐야 하니까. 그때는, 예를 들어서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이야기를 "무슨 화성에서 농사나 짓고 있어? 전원일기냐?"같은 멘트를(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단 상스러웠다) 쓰기 위해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충 마션의 스토리와 와트니의 업적은 숙지하고 있다.
당장 생각나는건 '''이 집을 보수'''하는 일이다. 이제와서 이 집을 펜트하우스처럼 만들진 못하겠지만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고 다소는 자급자족도 가능하며 녀석들에 대해서는 잊은 것처럼 살 수 있는 공간으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좀비 월드에서 기획된 렛 美 하우스.
가장 먼저 떠오른건 '''빗물탱크'''였다. 와트니처럼 나도 물은 충분히 있지만 사정이 좀 다르다. 아직은 수도가 끊기지 않았지만 공급이 얼마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도 외에 식수를 찾아야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난게 빗물이다. 그건 옥상의 물탱크를 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정수 문제나 물탱크의 물을 수도로 연결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일단 그건 미뤄두자.
다음으로 '''농사'''를 짓는 문제인데, 이건 어려운 문제는 아닐 거 같다. 어제 독에서 감자를 봤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감자 때문에 마션이 떠올랐다. 나는 식물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화성보다는 좀비에 점령 당한 지구 쪽이 농사엔 적합할 거라 본다. 초등학생 때 컵에다 감자 싹을 키워본 경험도 있고. 이쪽은 마션에 의지하지 않아도 이럭저럭 해결될 거라 본다.
이제 내 계획에 구체성을 부여할 때다. 물탱크와 담벼락과 뒷마당의 농장화. 이것도 다 뭔가 자원이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불행한 얘기지만 지금 손에 잡히는 물건들론 도저히 해낼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우선은 자원 획득이다. 쓸만한 자재가 필요하다. 연장도. 일단 가지고 싶은건 튼튼한 끈과 막대기다. 묶을 것과 달아놓을 것이 있으면 초보인 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 속편한 소리다. 나는 이 재앙이 내리기 전에도 이후에도 저 집에 가본 적이 없다. 설사 안전하다고 해도 그 집에 내가 필요로하는 자재가 있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는 이미 한 번 외출을 하면서 집안에서 쓸만한건 다 찾아봤다. 그러니까 몇 번을 더 뒤져본들 더 적합한게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원이 고갈된 섬에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집안을 찾아 보자.]]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옆 집에 가보자.]]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최덕희 . . . . 22회 일치
[[1986년]]부터 [[1987년]]까지 [[CBS (대한민국의 방송사)|CBS]] 15기 공채 성우로 입사하여 활동하였다가 [[1988년]] [[KBS]] 21기 공채 성우로 재데뷔하였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애니메이션]]을 위주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2003년]] 자녀 교육을 이유로 [[캐나다]]로 이민하면서 실질적으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러다가 11년 만인 [[2014년]] 12월에 복귀를 선언했다.
1997년 1월 [[SBS]]의 《[[마법소녀 리나]]》에서 주인공 리나 역에 발탁되며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얼마 후인 1997년 4월 [[KBS]]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달의 요정 세일러문]]》에서 세일러문 역으로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에도 《[[포켓몬스터]]》, 《[[명탐정 코난]]》, 《[[웨딩피치]]》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인기 만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2003년]] 자녀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며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 [[마녀들이 사는 법]] ([[EBS]]) - '''자리나'''
* [[그 남자! 그 여자!|비밀일기]] ([[KBS]]) - '''윤선'''(<small>미야자와 유키노</small>)
* [[에스카플로네|천공의 에스카플로네]] ([[SBS]]) - '''마리 에버하트'''(<small>칸자키 히토미</small>)
* [[어린 왕자 (2015년 영화)|어린 왕자]] - 엄마
* [[금지옥엽]] ([[KBS]]) - 임자영 ([[원영의]])
* [[닌자 거북이 3]] ([[SBS]]) - 에이프릴 ([[페이지 터코]])
* [[빨간 모자 요술 소녀]] ([[KBS]]) - 리넷 ([[아멜리아 샨클리]])
* [[폴리스 스토리 3]] ([[SBS]]) - 소화 ([[양자경]])
* [[뉴욕 뉴욕]] ([[KBS]]) - 프랜신 ([[라이자 미넬리]])
* [[가면라이더 위자드]]([[대원방송]]) - 마리(코요미) 2015.01.01~
* [[가면라이더 위자드&포제 MOVIE 대전 얼티메이텀 : 악마의 부활]]([[대원방송]]) - 마리(코요미) 2015.02.06~
* [[가면라이더 위자드 IN MAGIC LAND]]([[대원방송]]) - 마리(코요미) 2015.02.12~
* [[미소녀닌자 모험기 2]] - 히나
* [[천애명월도]] - 플레이어 (여자 캐릭터)
* [[여자가 좋다]] (TJB) - 나레이션
* [[접속! 애니월드]](SBS)- 나레이션, 웹툰 소개 코너 여자 역할 등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데뷔]]
- 최동수 (야구인) . . . . 22회 일치
|수비 위치 = [[1루수]], [[지명타자]], [[3루수]], [[포수]](입단 당시)
'''최동수'''(崔東秀, [[1971년]] [[9월 11일]] ~ )는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내야수]], [[지명타자]]이자, 현 [[KBO 리그]] [[LG 트윈스]]의 육성군 타격코치이다.
[[1994년]]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포수]]로 입단했으나, 이후 [[내야수]]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데뷔 첫 해에는 1군에서 1경기에 그쳤다. 방위 복무를 마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서용빈]], [[유지현 (야구인)|유지현]] 등의 걸출한 [[내야수]]들에 밀려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2001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뒤늦게 중용되기 시작하였고, 2군에서 훈련하였을 때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 훈련을 많이 소화한 결과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549603 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 조선일보</ref> 당시 그가 훈련이 끝나고 손이 펴지지 않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그의 손을 펴 주었다고 할 정도였고,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훈련을 멈추도록 했던 유일한 선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855814 12년 전, 잊혀질 뻔했던 한 선수의 은퇴식] - 이데일리</ref> [[2002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서용빈]]의 자리를 이어받아 주전 [[1루수]]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준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최초로 풀 타임 출장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여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그리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29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에 그쳤다.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후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 팀 [[LG 트윈스]]로 1년여 만에 복귀했다. 1차 드래프트인 신인 지명회의와 2차 드래프트를 통틀어 최연장자로 지명된 선수였다. [[2013년]] 개막전 명단에 올라 시즌 개막전을 통해 2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무안타에 그친 후, [[SK 와이번스]]와의 2연전이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사실상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3년]] [[10월 5일]] [[두산 베어스]]전이 끝난 후 공식 은퇴식을 가졌으며, 이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 2위를 확정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의미있는 경기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30892 '은퇴' 최동수,'정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 OSEN</ref>
은퇴 후 베이스볼아카데미 마스터 코스 시험에 합격하여 지도자 자격을 얻었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75285 LG 최동수, 공인 지도자 됐다…마스터 코스 최종 합격] - 일간스포츠</ref>, [[LG 트윈스]]의 잔류군 담당 타격 겸 배터리코치로 배정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119108 LG 트윈스, 2014년 코칭스태프 인선 확정] - MK스포츠</ref>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남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영]]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 {{KBO 타자|94132|최동수}}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최승자 . . . . 22회 일치
한바탕 난장이 훓고 지나간 후의 권태와 상념에 대한 뒤돌아봄,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를 담은 시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인기 작가가 됐다. 작품세계가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자기 과거에 대한 노출이 적나라하다. 비극적 사랑에 의한 슬픔 혹은 인생의 덧없음에 의한 공허감, 자기연민 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이를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찢어발기며 냉소한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게 반전이다.
시집으로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 등을 냈고, 번역서로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메이 사튼의 '혼자 산다는 것' 등을 냈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자화상' 전문)
속으로 한 사내의 그림자가 숨어들어
갑자기, 저승에서 이를 닦고 있는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기린이 엄마의 꿈 속에선 포니 자가용이 휘발유도 없이 잘 나가고
몇 년 전, 제기동 거리엔 건조한 먼지들만 횡행했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 잠들어 있거나 취해 있거나 아니면 시궁창에 빠진 헤진 신발짝처럼 더러운 물결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제대하여 복학한 늙은 학생들은 아무 여자하고나 장가가 버리고 사학년 계집아이들은 아무 남자하고나 약혼해 버리고 착한 아이들은 알맞는 향기를 내뿜으며 시들어 갔다.
이젠 헤어지자고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 여자의 몸 속에는 스물 다섯에
그 여자의 두 손가락으로 쉽게 나는 열린다
('첫사랑의 여자' 중에서)
정처 없던 것이 자리잡고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2년 출생]][[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79년 데뷔]]
- 최은석 (배우) . . . . 22회 일치
* [[1993년]] 《이괄과 흥안군》 ... [[이지 (1598년)|조선 광해주 폐세자 이지]] 역(단역)
* [[1999년]] 《[[아가씨와 건달들]]》 ... 베니 사우드스트릿 역(남자 조연)
* 《[[끝까지 간다]]》 (2014년) - 폭탄시연회 사회자 역
* 《[[감시자들]]》 (2013년) - 검거팀장 역
* 《[[자칼이 온다]]》 (2012년) - 박 반장 역
* 《[[집행자]]》 (2009년) - 피해자 삼촌 역
* 《[[그 여자의 바다]]》 (2017년, KBS2)
* 《[[여자가 두 번 화장할 때]]》 (2011년, JTBC)
* 《[[공주의 남자]]》 (2011년, KBS2) - 한성부 부장 역
* 《[[우리집 여자들]]》 (2011년, KBS1) - 집주인 역
*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2010년, SBS) - 차부철의 부하 역
* 《[[인생은 아름다워 (2010년 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2010년, SBS) - 조남식의 약혼자 역
* 《[[바람 불어 좋은 날 (드라마)|바람 불어 좋은 날]]》 (2010년, KBS1) - 채권자 역
* 《[[그 여자 사람잡네]]》 (2002년, SBS)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킹덤/517화 . . . . 22회 일치
* 그는 끝내 한단군을 움직이는데 반대하는데 한단성만 틀어막으면 다른 곳이나 백성들이야 어찌되든 자기만은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
* 이목은 나라의 앞날이 끔찍하게 어두우나 태자 "가"는 총명하고 이목의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인물이라 어떻게든 버티고자 한다.
* 알여는 왕전 자신이 [[이신(킹덤)|이신]], [[몽념]], [[왕분]]을 이끌고 총 8만 8천으로 치러간다. [[환의(킹덤)|환의]]군 6만으로 업을 계속 포위.
* 이목은 업성이 떨어지면 곧 수도 한단에도 적의 칼끝이 닿을 거라고 진언한다. 그러나 도양왕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설사 그래도 한단성이 함락될 일은 없고 원래는 업도 그 정도 수준의 난공불락의 성이나 자신의 백부 [[조계백]]이 어리석게도 난민을 수용하다 그리된 거라고 빈정거린다.
몸은 좋지 않아도 귀는 그렇지 않은지, 조왕은 그가 중얼거린 말을 듣고 "뭐라고 했냐"고 따진다. 이목이 얼버무리자 그럼 얼른 가서 의무를 다하라며 "업을 잃으면 이목 너와 네 추종자들의 목을 베겠다"며 깔깔거린다.
그렇게 말한 그는 상나라 주왕, 주나라 여왕의 사례를 들며 도양왕이 그 부류에 들지는 않기를 바래야겠다고 말한다. 모두 나라를 망친 암군으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그런 조나라에도 한줄기 희망은 있었다. 이목의 앞에 나타난 조나라 태자 "가". 그는 이목의 발빠른 행보가 이미 수 천의 조나라 백성을 구했다고 치하한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되도록 한단군을 움직이지 않는 자기 아버지 도양왕의 실책도 알고 있어 그를 대신에 이목에게 사과한다.
태자는 도양왕에 비하면 정치적 식견도 대국을 보는 눈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곧 진나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침공이 실패하면 국운이 흔들릴 거라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진왕 [[진시황(킹덤)|정]]이 "최"성에서 그랬듯 직접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사기를 북돋으면 어떻겠냐고 이목의 의견을 묻는다. 이목은 명심해두겠다면서도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하지만 태자 가는 "지금이 그 필요한 시기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목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한다.
태자는 다시 한 번 이목에게 업성을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이목에겐 태자야말로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는 도양왕 앞에서 삭힌 것과 정반대의 말을 속에 새긴다.
>가 태자마마의 시대가 왔을 때 조에 진정한 빛이 비춘다.
그래서 그가 짠 작전은 이랬다. [[환의(킹덤)|환의]]군 6만은 이대로 업성을 포위한 채 대기한다. 이 6만이 알여, 요양군을 제외한 모든 조나라 병력을 상대한다.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 당사자인 환의는 태연했다.
다음은 요양군. 요양군은 이미 대처하고 있다. [[양단화]]군 5만이 대치하고 있는 [[공손룡]]군이 바로 그 요양군이다. 지금은 견제만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알려졌을 테니 곧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공손룡이 요양성에서 본격적으로 병력을 끌어오면 그 군세는 약 10만에 달할 걸로 보인다. [[벽(킹덤)|벽]]이 기겁하며 "지금 양단화군은 5만 밖에 없다"고 발언한다. 물론 왕전은 그것도 계산하고 있다. 그는 벽에게 그가 이끄는 8천 병력에 환의군에서 2천을 빌려 총 1만의 원군을 이끌고 가라고 지시한다. 벽은 자신이 일만장이 되어서 양단화를 구하러 가게 됐다는 사실에 들뜬다. 그런데 은근슬쩍 병력 2천을 떼어먹히게 된 환의군의 [[마론(킹덤)|마론]]은 속이 쓰리다.
* 남은 것은 알여. 알여는 왕전 자신이 직접 대처할 것이다. 이신, 몽념, [[왕분]]대의 병력을 이끌고 말이다. 왕전군 7만에 비신대 총 8천, 낙화대 5천, 옥봉대 5천을 더한 총 8만 8천의 병력이다.
여기서 등장한 도양왕의 태자인 '가'는 훗날 태자 자리에서 폐립되고, 후궁 소생인 '천'이 보위를 잇게 된다.
- 페어리 테일/513화 . . . . 22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웬디 마벨]]의 지원을 받으며 [[아이린 베르세리온]]과 교전 중
* 엘자는 웬디의 부가술을 섞어서 맹공을 펼치나 아이린은 그 공격을 꽃모양(꽃표)으로 늘어놓으며 여유롭게 상대한다.
* 아이린은 자신이 엘자의 어머니이며 과거엔 "용의 여왕"이란 존재였다고 폭로한다.
* [[스팅 유클리프]] 대 [[라케이드 드래그닐]]의 싸움은 스팅의 승리로 끝났다. [[미네르바 올랜드]]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조력하러 오지만 이미 끝난 상황. 프로시와 렉터가 [[로그 체니]]와 스팅에게 달려들어 기쁨을 표현한다. 프로시는 다짐한 대로 로그와 함께 밥을 먹자고 하는데 상황을 알리 없는 로그는 어리둥절.
카구라는 [[엘자 스칼렛]]의 무사를 비는데.
* 엘자는 [[웬디 마벨]]의 도움을 받아 [[아이린 베르세리온]]과 싸우고 있다. 웬디의 부가술을 먹인 마법검으로 맹공을 펼친다.
아이린은 여유롭게 방어, 반격하는데 엘자는 발로 마검을 휘두르는 등 묘기에 가까운 기술까지 선보인다.
* 엘자는 폭발을 뚫고 상공에서 "요란의 검"으로 무수한 검격을 날려 반격을 가한다. 폭발과 참격의 난무로 어마어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웬디는 섣불리 해치웠다고 생각하지만 엘자는 이정도로 당할 상대가 아니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엘자의 예상대로 아이린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연기기 걷히면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이린은 엘자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며 박수까지 쳐준다. 그리고 그녀가 날렸던 검을 꽃모양 마크(꽃표)[*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마크]를 만들어준다.
* 엘자는 다시 한 번 아이린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아이린은 어렴풋이 깨달은거 아니냐고 하지만 엘자는 모르겠다고 시치미 뗀다. 웬디는 둘이 매우 닮았을 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흡사하다고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린은 충격적인 폭로를 한다.
* 엘자는 잠시 동요한 듯 했지만 곧 로즈마리에서부터 줄곧 혼자였고 "나의 부모는 [[마카로프 드레아|마스터]] 한 사람 뿐"이라고 못 박는다.
꽤나 무정한 말이지만, 어차피 아이린도 별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는 딸이 줄곧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살아있든 어떻든 상관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퍽 기구한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 엘자는 단호하게 "누가 됐든 길드를 공격한다면 적"이라고 잘라 말한다. 여기에 아이린도 "나의 알바레스 제국에 이를 드러내는 자도 적일 뿐"이라 응수하며 모전녀전을 보여준다.
* 무거운 침묵이 지나가고 아이린은 무슨 생각인지 "출생도 모르는 채 죽어가는건 불쌍하다"며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엘자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공격을 재개하지만, 아이린은 가볍게 엘자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오거스트가 경력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아이린보단 나중에 합류했을 걸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오거스트가 스프리건12의 의장이자 아이린보다 연장자 대우를 받고 있는건 의문점.
- 페어리 테일/540화 . . . . 22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이 불려온 이질적인 공간.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흉흉한 기운의 남자. 나츠가 [[아크놀로기아]]와 대면했다. 나츠는 곧 그 남자가 풍기는 기운으로 그의 실체가 마룡 아크놀로기아라는 걸 간파한다.
* 아크놀로기아는 나츠가 "마지막"이라 말하는데, 이미 이 공간에는 그가 수집한 악취미적인 수집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멸룡마도사들. [[웬디 마벨]], [[가질 레드폭스]], [[렉서스 드레아]],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까지. 진열장에 수납한 것처럼 거대한 수정기둥에 갇혀 있다. 나츠가 경악하는 동안 아크놀로기아는 자신이 시간의 틈새에서 시간의 마력을 손에 넣었다 말한다. 그 힘으로 시공을 넘어 세계를 파괴하고 시공의 틈새에선 멸룡마도사를 멸하겠다 선언한다.
* 현실세계에서 웬디를 빼앗아간 아크놀로기아의 거체는 방향을 돌려 매그놀리아로 향한다. [[엘자 스칼렛]]가 분통을 터뜨리나 손쓸 수단이 없다. 그때 다시 하늘이 갈라지면서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던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떨어진다. [[제니 리아라이트]]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에게 헤엄쳐간다. 이치야는 자신도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어리둥절해하지만 기뻐하는 블루 페가수스 멤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안나는 자신들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웬디를 찾는데 엘자가 다가와 아크놀로기아에게 빨려가듯 사라졌다고 알려준다. 이는 안나가 예상한 바였다. 자신들이 돌아온건 기뻐할 일이 아니다. 설마 아크놀로기아가 시간의 틈새를 먹어치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아크놀로기아는 강대한 힘을 얻은 대가로 제어능력을 잃어버렸다. 현재 마룡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육체는 이 세상에서 폭주, 정신은 시간의 틈새에서 "조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과 이치야는 그 "조화"에 부적합해 현세로 쫓겨난 거고.
* 조화란 어떤 마도사들의 마력을 시간의 틈새에 순환시켜 자신의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쓰일 마력은 바로 멸룡마도사들의 마력. 웬디를 데려간 것도 그 목적이다. 분명 지상에 남은 멸룡마도사는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갔을 것이다. 안나의 예측이 맞아서 이미 나츠를 제외한 말룡마도사들은 모두 구속된 상태. 나츠도 시간 문제였다.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그 정신나간 상황에 경악하고 엘자는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안나에게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안나도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엘자의 얼굴이 잠시 실망한 빛이 스쳤지만 곧 지워진다. 다시 강인한 얼굴로 돌아온 엘자는 매그놀리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츠 일행을 믿지만 현세의 아크놀로기아는 매그놀리아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도 할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헤엄칠 필요는 없었다. [[메스트 그라이더]]가 엘자의 위치를 찾아냈다.
메스트와 합류한 엘자가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앞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나츠가 끝내 END의 저주를 떨치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엘자는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며 좌우간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나츠는 살아있다면서.
* 루시 일행까지 데리고 페어리 테일 본대와 합류한 엘자. 되살아난 [[마카로프 드레아]]와도 재회했지만 감격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츠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수정에 먹힌 오른팔로 불꽃을 써보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발악을 보며 아크놀로기아가 "그 흑마도사와 싸우고 팔 한 짝이면 대단한 거다"고 빈정거렸다.
* [[샤를(페어리 테일)|샤를]]은 절망적이지 않다고 단언한다. 웬디도 분명 싸우고 있을 테니 자신들도 여기서 싸워야 한다고 결연하게 말한다.
* 자신의 예정이 크게 벗어났건만 아크놀로기아는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일곱 명의 멸룡마도사가 있음에도 그의 오만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 한상대 (검사) . . . . 22회 일치
* 2011년 8월 ~ 2012년 11월 [[검찰총장]]<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107/e2011071517292593130.htm 한상대 검찰총장 내정자 프로필]《서울경제》2011년 7월 15일 김현수 기자</ref>
한 후보자의 부인과 두 자녀는 각각 1998년 5월, 2002년 9월에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용산구 이촌동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8181.html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재산 25억’]《한겨레》2011년 7월 19일 석진환 기자</ref> 위장전입 덕에 큰 딸은 이촌1동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모 외고에 진학한 뒤 아버지와 같은 고려대를 나왔다. 둘째 딸은 그러나 성악을 희망, 일반중학교가 아닌 예술계중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위장전입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주소를 다시 서빙고동으로 옮겼다. 한 내정자는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며 "딸이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은 이웃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이전했던 것"이라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그는 그러나 "부동산 투기 등 다른 사유는 전혀 없다"며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위장전입을 한 것이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7147 "딸이 친구와 학교 다니고 싶어해", MB지명 총장 '전원 불법']《뷰스앤뉴스》2011년 7월 18일 김동현 기자</ref>
김학재 의원은 한 후보자가 서울 행당동 대지를 2006년 공시지가의 4분의 1 수준으로 매각한 것을 두고 ‘다운 계약서’ 의혹을 제기했다. 한 후보자는 “모친이 관리한 땅이라 계약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고교 동창이 운영하는 벤처회사의 비상장주식 1000주를 500만원에 매입했다가 2000만원에 팔아 수익을 냈다는 주장에 대해선 “실제론 주식을 2000만원에 구입했다. 500만원에 산 것으로 돼 있는 것은 해당 회사에서 회계편의상 액면가로 세무신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땅 매도 당시 부동산 매매계약서, 토지측량 도면, 토지 매수자의 사실확인서를 공개했다.<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55222 인사청문회 앞둔 한상대·권재진 '의혹 백화점']《SBS》2011년 7월 22일 정혜진 기자</ref>
조선일보는 2011년 7월 21일자 6면 <권재진·한상대, 같은 시점에 제주 한동네 오피스텔 샀었다>는 기사를 통해 한상대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은 2011년 7월 21일자 1면 <한상대 후보 양도세 탈루 의혹>이라는 기사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서울시내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땅을 다운계약으로 헐값에 팔아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20일 제기됐다"고 보도했다.<ref>[http://www.injournal.net/sub_read.html?uid=22642§ion=section3 MB와 끈끈한 한상대 양파 검찰총장?]《인터넷저널》2011년 8월 5일</ref>
한인대는 사찰총장 취임사에서 "오늘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땅에 3대 전쟁을 선포하고자 한다"며 "하나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고, 둘째는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이며, 마지막으로는 우리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라고 '전쟁'이란 표현을 연거푸 사용했다. 또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0657 "한상대의 '전쟁 선포'... 박영선이 옳았다"] 《오마이뉴스》 2011년 8월 13일 박주현 기자</ref> 경향신문은 칼럼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습니다. 반 총장은 종북좌익세력인가요, 아닌가요. 노동, 경제, 반(反)복지 정책 등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면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종북세력입니까"라며 한상대의 발언을 비판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51805021&code=940301 검찰과의 전쟁] 경향신문 2011년 8월</ref>
|전임자 = [[김준규]]
|후임자 = [[채동욱]]<br/>(직무대리)
- 황보관 . . . . 22회 일치
|로마자 표기=Hwangbo Kwan
{{메달 스포츠|남자 [[축구]]}}
'''황보 관''' (皇甫 官, [[1965년]] [[3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감독, 축구 클럽 경영자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소속의 행정가였다. [[일본]] [[J리그]] 팀 [[오이타 트리니타]]의 코치, 감독을 거쳐 오이타 구단의 부사장 및 이사를 맡았고 [[2010년]]부터 오이타의 감독직을 다시 맡게 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K리그]] 팀 [[FC 서울]]의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 무대에 복귀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117일 만에 사임하고 [[최용수 (축구인)|최용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사임한 후 [[대한축구협회]]로 옮겨 기술교육국장을 맡았고 [[이회택]]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이 되었다. 본관은 [[영천 황보씨]]이다.
=== 지도자 생활 ===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영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린 [[통영컵]]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영컵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컵]]에서 우승하자, 우승컵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영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2008년]] [[3월 25일]] [[슈에이샤]]에서 발매된 [[비즈니스 점프]]의 증간지 <BJ혼> ([[5월 1일]])에서 연재되는 '[[오이타 트리니타]] 이야기・제로부터 스타트'(원작:기무라 모토히코,작화:미야기 신지)가 [[오이타 트리니타]] 설립에 분주하였던 前 자치성 동료 [[미조하타 히로시]]와 황보관의 교류를 그리고 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news/2008/0423/20080423101020202000000_5454151980.html 황보관 오이타 총괄 본부장, 일본 만화잡지 주인공 화제]</ref>
=== 지도자 경력 ===
|전임자 = {{국기그림|포르투갈}} [[넬루 빙가다]]
|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최용수 (축구인)|최용수]]
{{둘러보기 상자 묶음
{{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둘러보기 상자 묶음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MoniWikiOptions . . . . 21회 일치
초기값은 최초 모니위키 셋업을 할 때 [[monisetup.php]]에 의해서 `config.php.default`값이 복사되고, 일부 값은 [[monisetup.php]]에 의해서 자동으로 선택된다.
* 세세한 옵션에 대한 설명은 단지 몇 줄의 설명으로는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사용자가 해당 옵션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소스코드를 봐야할 수도 있다.
== 디자인 ==
* 0으로 하면 테마의 CSS를 사용자가 변경 가능. (기본값 0)
* 기본 css의 경로를 설정한다. 기본값은 `$url_prefix.'/css/default.css'` `$theme`를 설정한 경우는 이 값의 초기 설정치가 자동 설정되며, $theme_css=0으로 세팅된 경우에만 CSS를 변경할 수 있다.
* 로고 그림. 없애고 싶다면 빈 문자열을 넣는다.
* 메뉴를지정한다. 숫자는 accesskey를 지정하기 위해 쓰이는 값이다. "alt-1, alt-4"라는 식으로 지정된다.
* 메뉴의 구분자를 설정한다. 기본값은 `'|'` ( /!\ ''deprecated'')
* 기본값은 `$url_prefix.'/css/kbd.js'` : 사용하기 싫으면 그 값을 빈 문자열로 한다.
* fancy: 첫글자를 링크시킨다.
* wikismiley.php를 읽어들이게 된다. 이 값을 "foobar"로 고치고 foobar.php를 wikismiley.php 대신으로 쓰면 자신이 원하는 smiley를 설정할 수 있게 된다.
* 섹션별 폴딩이 아닌, 본문 내에서 폴딩을 사용하고자 할 때는 FoldingProcessor 를 참조
* RecentChanges 에서 페이지 리스트 글자 수 제한 설정. 값을 0으로 하면 제한이 없어진다.
* 이렇게 페이지가 위키문서이므로 사용자가 추가/변경이 가능하다.
* 현재 MoniWiki가 존재하는 경로. 기본값은 `monisetup.php`에 의해 자동 결정된다.
* 기본 언어를 설정한다. 기본값 'auto'로 브라우져 설정을 따르며, 강제로 한국어로 하고자 하면 'ko_KR'로 지정한다.
* "db3, db2, gdbm"등등. php가 지원하는 dba모듈의 유형을 지정한다. 기본값은 보통 db3이며, 처음 설치시 `[[monisetup.php]]`에 의해 자동으로 결정한다.
* UploadFile에서 허용되는 확장자를 지정한다.
* (monisetup.php에 의해 자동 결정된다) apache2를 쓸 경우는 '?'를 쓰거나, `AcceptPathInfo on`를 쓰고 '/'로 지정한다.
* 모든 페이지 끝 부분에 자동으로 넣을 매크로를 지정하는 옵션.
- Victoria II/상품 . . . . 21회 일치
== 원자재 ==
특정 프로빈스의 RGO[* Resource gathering operation. 지역 특산물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에서 생성되며, 다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상품들. 농부와 노동자 POP가 생산한다. 자국에서 나지 않는 원자재의 대부분은 수입하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식민지|원자재가 나는 곳을 영토로 만들던가.]]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철을 생산하는 국가들은 깊숙하고 위험한 곳에 있는 철을 캐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철혈"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사람들에게 분노를 사는 대신 철 생산량을 일정 기간 늘릴 것인지, 이익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성을 감소시킬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노동자에 의해 생산된다.
생산되면 시장에 나오는게 아니라 국가 자금으로 변환된다.
원자재를 이용해 만들어지지만 자기들 역시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상품들. 장인들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기능공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차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풍년으로 발생한 차들을 처리하는 "우리 나라의 모든 차"[* 해당 이벤트 이름은 영어 표현인 All the Tea in China에서 따왔다. 매우 값진것을 의미하는 표현. 보통 "중국의 모든 차를 다 준다고 해도 거부하겠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차를 비축할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빈민들에게 나눠줘 투쟁성과 의식도를 감소시킬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자본가들에게 나눠줘 소지 자금에 보태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 Automobiles(자동차) ===
고무, 기계 부품, 전기 장치, 자동차를 재료로 해서 생산된다.
- 구자욱 . . . . 21회 일치
|선수명 = 구자욱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구자욱'''(具滋昱<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2월 1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이승엽]]이 '포스트 [[이승엽]]'으로 지목한 선수이다.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3할대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상무 야구단|상무]]-[[경찰 야구단|경찰]]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요청이 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태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고 3루수 연습도 했다. 포지션은 주로 1루수, 3루수, 좌익수이다. 0.357의 타율로 남부리그 타율 1위를 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그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채태인]]을 [[넥센 히어로즈]]에 보내고 [[김대우 (1988년)|김대우]]를 받아오는 1:1 트레이드를 하였다. 팀에서 3번 타자 겸 1루수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전경기 출장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3할대 타율과 14홈런으로 데뷔 시즌에 비해 기록이 상승하였다.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그의 성과 말아먹는다는 뜻의 '국밥'을 합친 '구욱밥'이라고 불린다. 경기에서 잘하여 맹활약을 펼치면 신(god)과 그의 이름을 합쳐 '갓자욱'이라고 불린다.
* {{KBO 타자|62404}}
* [http://www.statiz.co.kr/player.php?opt=1&name=%EA%B5%AC%EC%9E%90%EC%9A%B1&birth=1993-02-12 구자욱 - 스탯티즈]
- 김우중 . . . . 21회 일치
|배우자 = [[정희자 (1940년)|정희자]]
|자녀 = 슬하 3남 0녀<ref>장남 김선재, 차남 김선협, 3남 김선용</ref>
|순자산 =
** 부인 : 정희자(鄭姬子, 1940년 2월 20일 ~)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게 된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생활을 보냈다.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1989년]]에 펴낸 자서전인《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2년]]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마하려 했으나 [[김영삼]]의 압박으로 불발되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선포하였고 또한 김우중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1990년]] 장남 선재를 잃고,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위기를 잘 넘기며 [[대우그룹]]을 [[1998년]]에 재계 2위로 이끌며 성장시켰다.
|전임자 = (창업)
|후임자 = (폐지)
|전임자 = [[최종현]] ([[SK]] 회장)
|후임자 = [[김각중]] ([[경방]] 회장)
|전임자 = [[이종환 (축구인)|이종환]]
|후임자 = 김우중
|전임자 = 김우중
|후임자 = [[정몽준]]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우그룹]][[분류: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훈자]]
- 김종훈 (1952년) . . . . 21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제8회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하여 [[1974년]]에 [[외무부]]에 입부하였다. [[노무현 정부]]부터 [[자유무역협정|FTA]]를 담당하며, FTA 협상 업무를 수행하면서, [[2008년]] 한미 FTA협상을 체결해낸 주역이다. 이후 [[칠레]], [[유럽]] 등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다.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다.
* 2006년 6월 : [[한미자유무역협정]] 한국측 수석대표
* 2014년 11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 2012년 10월 ~ 2012년 12월 : 새누리당 재외선거대책위원회 자문위원
[[2010년]] [[12월 13일]] [[한미 FTA]]와 관련된 세미나에서 FTA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농민을 두고 '정부관리를 매수하여 농업보조금을 타는 다방 농민'이라고 비판하였다. 민주당 부대변인 [[김현 (정치인)|김현]]은 "김종훈 본부장이 숭미사대주의에 빠져 쌀값 폭락과 구제역에 피눈물을 흘리는 농민들의 아픔은 아랑곳 않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언사를 듣고 있자니 김 본부장이 어느 나라 머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하였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62115 김종훈 '다방 농민' 발언 일파만파] 《노컷뉴스》 2010년 12월 14일</ref> [[진보신당]]도 "통상교섭본부장 그만 두고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는 게 더 국익에 도움이 될 것"과 "한미FTA로 인해 고통당할 농민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공식적으로 비판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141521251&code=940100 김종훈 ‘다방농민’발언에 “다방에나 가라” 역공] 《경향신문》 2010년 12월 14일</ref>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남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영세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새누리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4.11 총선거를 앞두고 홍사덕, 김종훈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며 트위터 계정폭파를 신종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하고, "검찰은 트위터 계정폭파 범죄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ref>[http://news1.kr/articles/608133 새누리 "김종훈 트위터 폭파는 조직적 테러"] 《뉴스1》 2012년 3월 28일 차윤주 기자</ref> 그러나 "트위터 계정폭파란 존재하지 않으며,<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745518&ctg=1200 트위터 본사 "계정폭파?...이용규정 위반으로 정지는 된다"] 《중앙일보》 2012년 3월 30일</ref> 오히려 사용자가 반복된 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이용규정 위반할 경우 정지된다"는 트위터 본사 측 반박<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30800080 트위터 측 “새누리당, 반복 글 보내 정지된 것” 반박] 《서울신문》 2012년 3월 30일</ref> 으로 새누리당 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329031607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새누리당, 새 됐네"] 《프레시안》 2012년 3월 29일 이명선 기자</ref><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4981 보수지 신봉하던 새누리, '국제적 대망신' 자초] 《뷰스앤뉴스》 2012년 3월 29일</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5874.html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당했다더니…“국제적 망신살”] 《한겨레》 2012년 3월 29일</ref>
* [[한미자유무역협정]]
|전임자 = [[김현종]]
|후임자 = [[박태호 (1952년)|박태호]]
|전임자 = (강남구 갑)[[이종구 (1950년)|이종구]]<br />(강남구 을)[[공성진]]
|후임자 = (강남구 갑)[[이종구 (1950년)|이종구]]<br />(강남구 을)[[전현희]]<br />(강남구 병)[[이은재]]
[[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미자유무역협정]][[분류:SK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
- 김필곤 . . . . 21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2018년 2월 13일에 있은 [[대전지방법원]]장 취임식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을 함으로써 국민과 헌법이 우리들에게 부여한 소명을 다하자"고 말했다.<ref>[http://news1.kr/articles/?3235611]</ref>
김필곤은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할 때 해고된 시내버스 기사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3천만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에서 "위자료 금액이 너무 많다"며 회사가 제기한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위자료 액수를 1000만 원으로 대폭 감액했다.<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238 서울북부지방법원 2010. 5. 19. 선고 2009나7791]</ref>
*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7월 29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을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태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98906]</ref>11월 28일에 [[한총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계명대]] 총학생회장에 대해 "11기 [[한총련]]은 10기 한총련의 기본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집행부를 장악해 [[범청학련]]의 기본 대오로 활동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1기 한총련이 범청학련을 통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상 지휘·조정을 받아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을 수용하고 있고, 북한 쪽과 빈번하게 불법 접촉 및 서신교환을 하면서 하달받은 투쟁지침에 따라 11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했다"며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2년6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6082]</ref> 2004년 2월 6일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당선되면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원, 아들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박진규]] 영천시장에 대해 "시장에 당선된 후에 받은 1천만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서도 2000만원에 대해서는 "범죄 입증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뢰액이 1천만원이상 5천만원 미만 일 때는 5년이상 징역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추징금10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26584]</ref>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8월 25일에 두차례에 걸쳐 이통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해 이름·주민번호·이동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 통신자료를 수집한 [[서울지방경찰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통신자료 요청서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기각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ref>[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915_0000096846&cID=10201&pID=10200]</ref>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21회 일치
--[[북유럽 신화]]--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란, [[나치 독일]] 시기의 독일국방군(Wehrmacht)이 [[전쟁범죄]], 인종 학살([[홀로코스트]], 소련인 학살) 등과 무관하며, 이러한 범죄 행위는 전적으로 [[나치 친위대]](Schutzstaffel)에 위하여 자행되었다는 역사적 주장을 뜻한다. 이는 20세기 후반 까지 통설적으로 널리 통용되었으나, '''21세기 시점에서는 이미 깔끔하게 논파되어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사라진 주장'''이다.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독일방위군은 구 독일제국군의 직계로서, 독일제국군의 인적 자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제국군 당시 독일군의 장교단은 주로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한편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기사도적 충성 사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반유대주의]]나 [[슬라브 민족]]에 대한 [[인종차별]] 같은 사상도 널리 퍼져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독일 정부와 독일군의 관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았다. 독일군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나 에리히 루덴도르프 같은 이들이 주장한, 그리고 전간기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믿어지게 된 [[내부중상설]]에 따라서 '''자신들은 아무 것도 잘못 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독일이 멸망했다'''고 굳게 주장했다. 그리고 황제를 몰아낸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독일 사회민주당]]을 배척했다.
실상은 이미 독일은 11월 혁명으로 거의 국가 체계가 붕괴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빌헬름 2세]]는 방금 전까지 전쟁하던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내빼버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무렵 독일 내의 정당들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군부에 의하여 패전과 혁명이 겹쳐 거의 다 망하게 생긴 나라에 등떠밀리듯이 올려가서 수습하게 된 거나 다름 없는 상황(…)[* 물론 독일 사회민주당 역시 애국주의에 따라서 1차 대전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책임이 없는건 아니다.]이었다. 사실상 '''군부가 싸놓은 똥을 치우는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군부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이 국가적 위기를 사민당과 좌파 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사민당이 주도한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군부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군주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던 독일군은 새롭게 들어선 공화국 정부에 제대로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주요 장성들은 빌헬름 2세의 퇴위와 군주제 폐지를 일시적, 잠정적인 상황으로 여겼으며, 장기적으로는 군주제의 복귀를 바라고 있었다. 독일 장교단은 기본적으로 군국주의를 추종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제 정치를 멸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결국 공화정 내에서 연합국 측의 압력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자 이를 굴욕으로 받아들이고, 조약의 군비제한을 벗어나 과거의 독일제국군이 복귀되기를 바랬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국가'와 '헌법'에 대하여, 히틀러가 수상이 되자 '민족'과 '조국'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했으나, 독일국방군으로 개편되기 직전에 있었던 이 충성 맹세는 '독일 민족의 지도자', '국방군 최고사령관'인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맹세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독일국방군은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 국가의 군대'라기보다는 (이론적으로는)'히틀러 개인의 군대'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시대가 기독교적 윤리가 아직 강하던 사회였고,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독일군에서는 '충성 맹세'가 지닌 사회적 가치는 매우 컷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가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냉전]]이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 [[동독]]에 맞서서 [[서독]]을 재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을 전쟁범죄로 단죄하면 독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또한 실용적 관점에서도 독일군이 해체하는 것은 공산 세력과 맞서는데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독일국방군 출신의 장성들 역시 자신들이 전쟁범죄자로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여, 모든 죄과를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 [[나치 친위대]]에게 몰아놓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연합군의 허가와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된 전직 국방군 장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사를 자신들의 시점에서 저술할 수 있게 되었다. 1946년 6월에, 프리츠 할더 육군 참모장이 책임자가 되어 328명의 독일 장교들이 제2차 대전 시기의 군사 서술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저술하였으며, [[독소전쟁]]에 대한 주요 자료 제공을 독점할 수 있었다.
독일군 장성들은 마음껏 자신들의 지휘관으로서 전문적 식견, 군사 기술을 칭송하고, 독일군 장병의 용기와 인내심을 강조했다. 모든 전쟁 범죄의 책임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돌렸고, 독일 국방군은 "'''어쩔 수 없이''' 나치스에 남용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범죄를 반대하고 억제했다'''."는 자기 변호를 '역사 기록'으로 만들어냈다.
독일군 장교들은 1950년대에는 대중을 상대로 [[회고록]]을 출판하였는데, 이들은 당연히 자신의 전쟁 범죄 가담을 부인하고 축소, 은폐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당시 역사가들은 원자료를 구하기 어려웠고, 독일군 장교들이 주도하여 저술한 역사 기록과 회고록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영향은 [[소련군]]에 대한 폄하로도 나타난다. 독일군 장성들은 패전 이후에도 슬라브인을 멸시하는 인종주의를 버리지 못하여,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단지 물량을 바탕으로 한 막무가내 [[우랴돌격]]에만 의존한 군대였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같은 관점을 전쟁사 계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소련군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독소전쟁 역사에서 뿌리깊게 남게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측 역시 실증이 될만한 자료 공개를 하지 않고 [[프로파간다]]에만 집중하여 냉전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관점이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못하였다.
또한 자신들의 전쟁범죄는 숨기는 반면, 소련군의 전쟁범죄는 철저하게 기록하고 묘사하여 소련군을 전쟁범죄 천국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8화 . . . . 21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와 [[바쿠고 카츠키]]의 싸움은 담임인 [[아이자와 쇼타]]에게 통지된다. 설교하러 가는 아이자와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 바쿠고가 싸움을 건 진짜 이유는 자괴감. 그는 자신 때문에 [[올마이트]]가 끝장났다고 여기고 있다.
* 미도리야는 그 울분을 받아줄 상대는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의미없는 싸움"에 응한다.
* 그라운드 베타의 소란은 곧 감시자들의 눈에 들어간다. 소식은 곧장 담임인 [[아이자와 쇼타]]에게 전달된다. 아이자와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같은 통보에 "진짜냐"고 투덜댄다.
* 통보가 온 이상 나가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자와가 바깥으로 나가는데 누군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아이자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 바쿠고는 아직도 미도리야가,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꼬마시절에서 무엇이 변한 건지 알지 못한다. 그는 싸움을 피하는 미도리야에게 싸우라고 윽박지른다.
>자존심이란 중요한 거야.
* 반격을 맞은 바쿠고가 쓰러지자 미도리야가 손을 내민다. 그때 어린시절처럼. 그리고 바쿠고도 그때처럼 뿌리친다.
바쿠고가 가진 울분의 정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다. 자신이 강해서 납치 당하지 않았더라면 올마이트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는 자책이다.
*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그 이상으로 고뇌하고 끌어안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달려드는 바쿠고를 바라보며 이 싸움엔 의미 같은건 없을지 모르고 승자도 패자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반격을 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21회 일치
*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해 철포옥 핫사이슈을 몰아붙인다.
* 타베의 개성 "식"은 뭐든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능력. 타마키의 문어다리를 씹어먹으며 봉쇄를 푼다. 자유로워지자 호죠가 "결정"으로 역공.
* 이들은 각자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 완전히 절망했으나 [[오버홀]] 치사키가 내민 손길로 완전히 세뇌된 상태.
* "태양 조차 먹는 자".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먹은 것을 재현하는 개성"을 최대로 활용한다. 호죠의 "결정"은 조개 껍질로도 막기 어려운 강력한 공격. 그러나 문어 다리의 강한 근육으로 팔을 강화, 그 끝을 조개껍질로 감싸서 호죠의 주먹을 틀어막는다. 호죠가 대단한 활용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며 뿌리친다. 타마키도 그저 저지할 생각만은 아니다. 그가 웅영에서 2년 반 동안 쌓은 건 그정도가 아니다. 사이즈 변화, 복수동시 재현, 특징 자유선택. 그가 익힌 모든 기능.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필살기.
* 조개껍질로 경화된 문어다리가 거대화. 크라켄에 비견될 만한 위력이다. 세츠노는 "나 혼자서 충분하다"던 타마키의 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확실히 셋이든 넷이든 문제가 없겠지. 경화를 자랑했던 호죠도 막는데 급급하다. 세츠노가 다급히 타베를 깨운다. [[아이자와 쇼타]]가 무력화 시킨 후 쭉 누워있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타베가 일어난다. 타베의 개성 "식". 문자 그대로 모든걸 먹는 개성. 어떤 것이든 씹을 수 있는 턱과 이, 먹자마자 소화시키는 위장. 타마키의 강화된 문어 다리 조차도. 타베는 "맛있다"면서 삶은 문어처럼 씹어삼킨다. 세츠노가 그 꼴을 보며 "타베의 배가 차는 일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말처럼 타베와 타마키, 둘의 "상성"이 아주 좋았다.
* 이제 전세가 뒤집혔다. 타마키를 몰아넣은 철포옥 핫사이슈. 붙잡힌 마당이지만 타마키도 "물 흐르는 듯한 연계"였다며 그들의 전술을 인정한다. 호죠는 이를 "쓰레기 나름의 굳건한 유대"라고 말한다. 타마키는 설사 자신에게 이겨도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설사 [[오버홀]] 치사키가 도주해도 남겨진 그들은 구속될게 뻔하다.
세츠노가 반문한다. 그들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호죠는 딱히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타베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버림 받은 인물이다. 세츠노는 연인에게 배신 당하고 막대한 빚까지 떠맡겨졌다. 자신은 결정으로 생성하는 보석 덕에 돈에 환장한 인간에게 이용 당했지만, 그게 돈 가치 없는 가짜라고 판명되자 철저하게 박살났다. 그들은 처음부터 필요없는 인간이었고 미래는 없었다. 그가, 오버홀이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가치를 준 남자를 위해서 방해꾼은 죽인다!
이들은 오버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뇌에 가까운 경애다. 이들은 써먹히고 버림받길 바란다. 타마키가 그 점을 지적하자 호죠는 어차피 히어로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대화를 끊는다. 그리고 벽과 자신의 결정 사이에 낀 타마키를 향해 결정타를 가한다.
* 호죠의 결정타는 타마키에게 닿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결정에 상쇄돼서. 타마키가 그의 결정을 삼켰던 것이다.
* 타마키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의 장점도 약점도 모두 파악했다. 그들의 전술은 서로의 신뢰가 돋보이는 좋은 연계였다. 비록 자신은 그들의 슬픔도 분노도 사연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게 그들의 "굳건한 유대"를 만든다는 건 잘 알았다. 그게 이들이 패착이다. 타마키는 허벅지 아래를 문어다리로 바꿔 그대로 뻗었다. 달려들던 타베, 눈을 못 뜨는 세츠노, 손아귀의 호쇼. 전원이 일직선이다. 타베는 밀고들어오는 발을 먹어치우지 못했다. 그러기엔 호쇼가 방해였다. 그들은 반대편 벽까지 무서운 힘으로 떠밀려 처박혔다.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21회 일치
* [[오버홀]]은 에리의 "인자"를 사용해서 마침내 영구적으로 개성을 제거하는 "개성파괴탄"을 완성한 상태였다.
* [[토오가타 밀리오]]를 상대로 열세에 놓이자, 그는 [[네모토 신]]이 아직 싸울 수 있는걸 발견하고 그 탄환을 넘겼다.
* 오버홀은 개성을 "현대병"으로 규정하며 히어로들을 그 병의 환자이니 자신이 "고쳐주겠다"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
* 밀리오가 자기가 지키려던 아이의 개성으로 모든 걸 잃게 됐다며 오버홀이 비웃지만,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고 무개성인 상태로도 오버홀을 압도한다.
* 밀리오는 무개성이 되고도 5분 이상 에리를 지키며 싸웠지만 오버홀이 다시 에리를 노리고 공격을 가하자 그걸 막기 위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오버홀]]의 계획. 그것은 에리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제품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뿌렸던 샘플은 명중후 1, 2일 만에 자연회복되는 결함품이었다. 에리의 몸에서 떨어진 "인자"는 곧 효과를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효과를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을까? 많은 연구와 실험. 투자와 희생을 거쳐서 오버홀은 마침내 꿈을 실현했다. 개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완성품. 하지만 쿠로노는 생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 달을 투자해서 겨우 다섯 발. 최악의 생산성. 오버홀은 지금까지는 아마츄어 수준의 설비였지만 사업이 시작되면 걸맞는 환경을 갖추고 채산성도 맞출 수 있을 거라 장담했다.
지금도, 우물쭈물 거릴 시간은 없었다. 한 발을 투자해서 겨우 다섯 발 나온 시제품이라도 아끼지 말아야 할 순간이었다.
* 밀리오는 상황을 파악하는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버홀이 넘긴 탄환, 네모토의 장전, 그리고 에리를 향한 조준. 함정이다. 분명 자신이 막으러 갈 거라는 계산.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리는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보고도 소리지르지도 달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다물었다. 살의를 마주할 때마다 언제나 그랬다. 이 아이는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걸 참고 받아들이는데 너무나 익숙했다. 아픔과 공포를 통해 깊숙히 새겨진 절망. 오버홀이 말했었다.
>그 애 자신이 몸소 체험해 알고 있을 거다.
* 총알이 날아오는 동안 많은 것이 떠올랐다. 계기는 물에 빠진 날이었다. 어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가 그를 구했다. 그렇게 해서 밀리오의 진로가 결정됐다. 히어로가 되겠다. 아버지는 자기도 같은 꿈을 꿨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밀리오의 개성은 같았고 아버지는 포기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밀리오에게 아주 어려운 길이 될 거라면서 정말로 히어로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 밀리오가 그 약속을 져버린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꿈을 이루려는 아들을 전력으로 도왔고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도 나타났다. [[아마지키 타마키]], [[네도 하지레]]는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처음부터 잘 풀렸던건 아니지만 꾸준히, 쉼없이 계속한 결과 어느날부터 좋은 소식이 들렸다. [[서 나이트아이]]가 그를 스카웃했고 이제는 자신의 개성이 까다롭지만은 않았다. 어느날 하지레가 말했다.
네모토는 해냈다고 외쳤다. 그의 "도련님"을 위해 해냈다. 감격에 겨운 외침이었다. 오버홀은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자기 뜻대로 이뤘다. 자신의 지론이, 그 해법이 승리한 것이다.
>자기가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거다.'''
* 그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여유롭게 달변을 쏟아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광기에 찬 궤변이었다. 그에겐 모든 것이, 이 시대 전부가 더러운 현대병이었다. 그리고 히어로들, 루밀리온은 중병자. 그는 그들을 "고쳐주겠다"고 말했다. 에리를 희생한 힘으로.
- 니세코이/229화 . . . . 21회 일치
* 이치죠는 시청에 취직하는 동시에 슈에이파 오야붕 자리도 물려받는다. 치토게는 패션디자이너로 활동. 청첩장을 뿌린다.
* 오노데라를 파티쉐가 되었다. 이치죠와 치토게의 웨딩케잌을 만드는 중. 하루는 화과자집을 물려받는다.
* 후우는 기자생활 중. 폴라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 유이는 임신중. 마리카는 이치죠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겠다며 맞선을 보고 다닌다. 상대는 치바현의 Y씨?
* 그런데 결국 슈에이파의 오야붕 자리도 잇게 되었다.
* 사실 이치죠네 파벌은 딱히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자경단 수준의 활동만 하고 있었다.
* 관공서에서 치안 관련으로 일하게 된 김에 야쿠자 쪽도 계승, 공사 양면에서 본야리의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다.
* 초대장이란 다름아닌 청첩장. 소식을 들은 슈는 루리에게 결혼하자고 조른다.
* 하루는 화과자 집을 이어받았다.
* 결혼 소식을 듣고 자기들한테는 왜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냐고 좌절한다. 가게가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투덜댄다.
* 후우는 잡지 기자가 되어 있는데 하루의 화과자점을 선전해주고 있다.
* 결국 하루가 "안 팔리면" 자기가 사가겠다는 후우.
* 마리카는 맞선 보고 다니는데 여념이 없다. 여전히 혼다가 옆에 있다. 이치죠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게 목표. 좀처럼 괜찮은 상대가 없는 듯.
* 결혼식의 웨딩케잌을 맡겠다고 자청. 시제품을 막 완성했다.
* 치토게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새로운 열쇠와 자물쇠를 준비한 두 사람.
* 팬덤은 초상집 분위기로 승자인 치토게 파벌은 도망쳐서 나오지 않는 느낌.
* 어쨌든 최후의 승자는 치바현의 Y씨라는 의견이 대세.
- 둠 패트롤 . . . . 21회 일치
본명 리타 파(Rita Farr).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할리우드]] 여배우로서 활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영화 촬영하다가 이상한 화산 가스에 노출되었고, 그 영향으로 자신의 몸 크기를 100피트까지 늘리거나 몇 인치까지 줄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나중에 능력이 발전하여 신체 일부분의 크기만을 조절하기도 한다. 신체를 [[거대화]]화는 이미지도 있다.
외모는 손상을 입지 않았지만 리타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위험한 괴물로 여겨졌다. 영화배우로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은둔 상태가 되었으나 치프에게 둠 패트롤로 스카우트 된다. 나중에 멘토와 결혼하고, [[비스트 보이]]를 입양한다.
본명 래리 트레이너(Larry Trainor). 비행기 테스트를 하다가 대기중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초능력을 얻었다. 자신의 몸에서 음전하로 충전된 빛에 둘러쌓인 그림자 같은 [[분신]]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분신을 분리한 상태에서는 매우 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분신을 꺼내는 것은 60초 동안만 가능하다. 또한 사고의 영향으로 [[투명인간]]이 되버려서 평소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능력 때문에 이런 이름인 것 같지만 사실 이름 그대로 네거티브한 성격이기도 하다.
본명 클리프 스틸(Cliff Steele).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으며, 치프가 그의 [[뇌]]를 [[로봇]] 몸체에 이식하여 살려냈다. 자신의 몸 때문에 [[우울증]]이 있다. 로봇 신체에서 [[괴력]]을 발휘.
본명 스티브 데이턴(Steve Dayton).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 잠재적인 [[염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발명한 [[헬멧]]으로 그 힘을 증폭시킨다. 힘을 증폭하는 동안 [[텔레파시]], 염력 등을 사용할 수 있고 제한적인 [[마인드 컨트롤]]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편집증]]과 [[치매]]를 앓게 되었다.(...) 처음에는 건방지고 짜증나는 인물이었지만 엘라스티 걸과 사귀면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된다.
* '[[프로페서X|휠체어를 탄 지적인 남자]]'에게 지도를 받는다.
* 양자 모두 특별히 비밀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대도시 중심가의 일반 건물에 본부가 위치하고 있다.
멤버 구성이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여러모로 반대되는 인물들로 되어있다. 당장 리그 멤버였다가 합류하게된 엘리먼트 우먼도 마찬가지. 저스티스 리그가 사람들에게 호감받을법한 자들이라면 둠 패트롤은 기피대상이 될것같은 자들.
나일스 콜더. 현 매드 사이언티스트. 볼툼의 반지의 새 숙주가 된 제시카 크루즈의 앞에 둠 패트롤을 이끌고 등장했다. 루터가 말하길 새로운 파워 링이 된 제시카 크루즈 또한 실험체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확보대상에 속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치프는 루터의 모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팀원들에게 휘말린 민간인들 냅두고, 볼툼의 반지에 집중하라 하면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자기가 준 생명을 다시 거둬갈거라 위협하고, 제시카가 반지에 지배 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뇌에 손을 대는거라 주장하며 이 막장 선택지를 실행하려 한 막장 인물. 이를 보아 루터의 언급의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현재의 그가 막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한편 폭주하는 제시카를 배트맨이 저지한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영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루터와는 무슨 인연인지 이전에 자기 전 아내와 어떤 참전용사에게 막장 실험을 했고 그게 루터에게 걸린적이 있다. 또한 코스빌에 신종 바이러스를 풀었다가 루터에게 걸리자 치료약을 풀었다.
투명해지는 능력이 있어보이는 여자. 둠 패트롤중 가장 먼저 저스티스리그 #27에서 사망. 쟈니 퀵이 이미 사망한 시체를 스코티와 카르마 앞에 던져놓아 이들을 분개시켰다.
방어적인 텔레파시 신경 교란 능력자. 이 능력은 상대가 열심히 근접 공격을 날려도 자연적으로 회피 할 수 있다. 스코티와 달리 치프인 콜드가 소름끼친다고 생각 중. 모히칸 머리 양아치 스타일 복장. 쟈니 퀵에게 폭탄으로 사망.
스코티와 카르마와 함께 합류하려 했으나 이 둘이 죽자 치프의 눈을 피해 잠적.
- 마기/324화 . . . . 21회 일치
* 아르바를 소환해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는 자신이야 말로 전능한 신이며 아르바의 1000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세월 동안 외로웠다고 말한다.
* 다윗은 자신은 성궁의 수호자가 된게 아니냐고 묻는데 우고는 자신이 "신 위의 신"이 되었기 때문이라 답한다.
* 다윗은 일 일라와 동화한 자신의 의지를 알 수 있을리 없다고 말하는데 우고는 그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 "성궁은 일 일라의 세상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순환시키는 시스템이자 나도 이 세상의 일부, 인간이 신을 내다볼 순 없다."
* "상자 속에서도 신을 훔쳐볼 수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 우고는 자신에겐 시간이 너무 많았다며, 연구 끝에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 지금 우고라면 친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며 "같은 신"끼리 대등하게 이야기해보자며 악수를 청한다.
* 그녀가 눈을 뜨자 처음 보인 것은 우고. 그녀는 성궁으로 옮겨진 것이다.
* "신의 의지는 하위 세계의 생명은 알 수가 없어. 마치 사람을 구성하는 미세한 세포 하나하나에 자신의 존재의식과 사람의 의식 따위를 영원히 알 수 없는 거랑 비슷하지 않아?"
* 자신이 전능한 신이라고 선언하는 우고.
* 얌전히 그의 인형이 되는 아르바. 우고는 자신의 수족들을 조종해 의자와 병사 같은걸 만들어서 그녀를 여왕처럼 앉혀 놓는다.
* 우고는 다시 자신의 업무에 심취하는데 어째서 신드바드가 성궁에 침입할 수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 우고는 이 점을 의문시하는데, 한편으론 어째서 "자신의" 마기들이 신드바드를 두려워해 왕을 고르지 않았는지도 의문시한다.
* 이러는 사이, 다윗과 일 일라는 자신만의 작은 우주에서 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신이 된 기분을 만끽한다.
* 과연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고 사명인가? 다윗이 그런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고의 말로는 성궁엔 시간이란 개념이 없고 인간의 체감으로는 이루 셀 수도 없는 권태와 고독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알라딘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알라딘과 떨어진 이후로 급속히 망가진 걸로 보이고 자신이 전능한 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정도로 본래 목적을 잃었다. 쓸데없이 설명이 많았던 것도 이런 광기의 표출이었고 이번 화에서 유독 설명이 많은 것도 이런 요소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번 화 시점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관 최강자로 일 일라가 개입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우주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우고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걸로 보인다.
신드바드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는 미지수. 루프로 완전히 돌아간 걸로 보였는데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상에서 다윗이 한 것처럼 그에게 접근해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성궁을 탈취할 생각인 듯 한데 "고지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로 보아 이미 방법은 연구를 끝낸 듯.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그와 다윗이 성궁에 있기 때문에, 실제론 그들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우고가 한 것처럼 보다 상위의 신으로 위상을 바꾸는 방식으로 우고를 처리하려 할 것으로 예상.
- 마기/327화 . . . . 2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모르지아나가 신드바드를 두둔하며 황제국의 국제동맹 탈퇴를 비판하자 말다툼을 벌이고 멋대로 차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연홍옥과 연홍명은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몰라도 백 년, 천 년 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신드바드야 말로 그 미래에 합당한 지도자라 한다.
* 황제국이 국제동맹에 복귀하자 귀왜국도 복귀하고 뢰엠 조차도 국제동맹에 가입한다. 이들도 똑같이 신드바드에 찬동하며 찬양하는데.
* 매우 쓸모없는 모양이 된 알리바바 사르쟈. 오로지 모르지아나에게 차였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알라딘에게 자기 대신 즐겁게 살아달라고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내뱉는다. 알라딘은 차분하게 뭣 때문에 이지경이 됐냐고 묻는데 알리바바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 사건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어떤 "말다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알리바바가 연홍옥이 국제동맹을 탈퇴하는걸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그 일로 연일 회의 중인데 알리바바는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평한다. 그런데 거기서 모르지아나가 반대한다. 모르지아나는 황제국의 이탈이 국제동맹의 붕괴를 초례할 것이며 결국 힘이 분산돼 전쟁을 일삼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옥은 자국의 내전까지 겪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냐고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한다. 알리바바는 당황하며 홍옥도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옹호하는데 그러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녀는 알리바바도 알리바바라면서 "왜 신드바드를 도발하는 일만 하느냐"고 비난한다. 알리바바에게도 홍옥에게도 찬성할 수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알리바바도 "귀엽지 않은 여자"라며 같이 못해먹겠다고 등을 돌린다. 모르지아나도 그 말대로라며 지지않고 응수. 이게 이 커플이 다툰 전모였다.
* 시시껄렁한 논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알라딘은 "가치관의 골을 메꿔가는게 남녀의 사귐"이라고 최대한 진지하게 조언한다. 그 조차도 지금의 알리바바에겐 잘난척하는 얼굴로 보인다. 알라딘은 모르지아나를 좋아하지 않느냐,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는데 알리바바는 별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좋다고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는다. 알라딘은 어른스러운 태도로 그쯤하면 됐으니 가서 모르지아나에게 사과하라고 권하는데 알리바바는 자기는 잘못한거 없고 사과는 여자가 해야 한다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결국 글러먹은 태도에 폭발하는 알라딘.
*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했던 홍옥이 불현듯 번복을 결정한다. 이야기를 들은 알라딘과 알라비바는 한참이나 이해를 못하다가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알라딘은 그렇게 숙고해서 결정했던걸 뒤집어도 되겠냐고 묻는데 홍옥은 모두가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엔 연홍명이 나서서 말하는데 동맹을 탈퇴하면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백 년 천 년 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기들 사후의 먼 미래,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까지 지키기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홍명. 홍옥도 거기에 동의하며 황의 내전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한 명"이 힘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신드바드냐고 반문한다.
* 어떤 과정을 거친 건지 황제국의 수뇌는 입을 모아 신드바드를 적임자로 고른다. 하황문 조차도 신드바드를 친송하며 그라면 믿을 수 있다고 말을 보탠다.
너무 일변한 태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절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상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상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 그 뒤로 3일이 지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뉴스가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놀라게 한다. 갑작스럽게 뢰엠이 국제동맹에 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의 동맹 복귀가 공식화된 것이다. 그토록 신드바드를 꺼림직해하던 두 지도자들이 신드바드와 손을 맞잡는다. 심지어 무는 "일국의 독자성 같은건 작은 일"이라며 지금까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무와 타케루, 홍옥도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라고 입을 맞춘 듯이 되풀이한다.
신드바드가 노린 세계의 재구축은 자기 자신의 사상을 모든 사람에게 심는 것.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사상의 지배다. 이는 연홍염이 시도했던 지배보다 훨씬 심각한 독재.
알라딘은 아직도 그의 성궁 정복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유난 조차 영향을 받고 있는데 알라딘이 감지를 못하고 알리바바 또한 영향을 받지 않는걸 보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드바드는 세계의 대적자이자 희생양으로 알라딘과 알리바바를 골랐을 수도 있다.
- 막부 . . . . 21회 일치
고대 중국에서 장군은 [[황제]]에게 여러 권한을 위임받게 되는데, 실질적으로 독자적인 군사행정조직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부(府)를 설치하게 되면 독자적으로 장군의 부(府)에서 근무하게 될 속관을 뽑아서 임명할 수 있고, 부(府)를 통하여 군사, 사법, 행정을 처리할 수 있었으며, 이를 상징하는 부월(생살여탈권) 같은 상징물을 받았다. 막부는 현대로 치면 [[계엄령]] 하의 '계엄사령부'처럼 일정 지역, 시기 동안 제한적으로 전권 통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이 중국에서 들여온 [[율령제]] 체계에서 [[조정]]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막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상설 통치 조직으로 바꿔서 운용하였던 것이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정부가 있기는 한데 계엄령이 내려져 있고, 계엄령은 무기한이고 범위는 전국(…)이라서 계엄사령관이 사실상 국가의 실권자인 상태가 된 것과 같다.
중국에서 막부라는 단어는 [[전국시대]]부터 나타난다. [[전한]]의 이광, 위청 등도 흉노를 정벌하며 전선에 막부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막부라는 단어가 관서를 나타나게 된 것은 [[후한]] 시기로서, [[후한 명제]] 시기에 동평왕 유창이 [[표기장군]]이 되어, 자신의 정청을 설치하고 천자를 보좌하였을 때 부터라고 한다. 기록을 보면 막부를 설치할 권한이 있는 것은 사방장군 이상(좌 / 우 / 전 / 후 의 4장군, 4평장군, 4진장군, 4정장군 등)의 장군들이었다.
일본의 막부는 원래 동쪽으로 영토를 확대[* 본래 일본 조정은 지금의 긴키 지방에서 큐슈 일대만을 지배하고 있었고, 지금의 간토 지방이나 도호쿠 지방은 이민족이 살고 있었다.]하면서 해당 지역 선주민과 싸워 이를 정복하는 군대의 지휘관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삼아 그에게 막부를 열고 해당 지역의 독자적인 군사와 사법권을 부여하던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이 당시는 중국의 사례와 같이 일시적인 군정권에 불과하여 특수한 정권 체계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막부 체계가 나타난 이유는 일단 조정이 군사적으로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단 도호쿠 지방까지 정벌이 완료되자, 일본 조정은 막대한 군비가 드는 국군(國軍) 제도를 폐지해버리고, 군사를 수도의 경비대와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다자이후의 경비병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섬나라]]인 일본은 일단 혼슈 평정이 완료되자 당장 외적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고, 군사력의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에 이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국가의 재정을 아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군대는 [[경찰]]의 역할도 겸비하는 것이었으므로 '군사력 해체'는 곧 '경찰력 해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국군이 해체되자 일본의 국내 치안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는데, 각지에서 크고 작은 [[도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헤이안 말기에 각지에서 보이는 [[슈텐동자]] 같은 오니 전설은 이러한 도적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각지의 [[호족]]들은 새로 개척된 농지의 상속권, 소유권이나 농업 용수의 사용 같은 것을 놓고 사적인 다툼을 벌였는데, 이러한 분쟁 역시 치안 악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치안이 악화되었지만, 조정에서 일반 서민이나 호족들의 민생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이러한 사투는 거의 방치되다 시피 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정권을 장악한 귀족 세력이나 지방 세력가인 [[호족]]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막대한 [[장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각자 개인적으로 호위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용되어 고위 귀족을 모시게 된 [[사병]] 격인 '무사'들이 [[사무라이]]의 기원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일본 국내에서 '거의' 유일[* 사무라이와 다른 경우로는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승병]] 같은 사례가 있다.]하게 무력을 보유하게 된 사무라이들이 점차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결국 이 사무라이들 가운데 유력해진 겐지(原氏) 일족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케|헤이지(平氏) 일족]]과의 항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덴노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면서 조정을 제치고 일본 전역에 할거하고 있던 무사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막부라는 체계는 일본 특유의 독특한 '정권'이 되었는데, 명목상으로는 천황의 조정이 일본의 주권자였으나 막부는 '정이대장군'으로서 사무라이들을 통솔하면서 사법권과 지방의 치안 유지, 재산권 분쟁에 대한 해결 등 실질적인 통치권을 발휘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조정과 막부가 분리되어 있으나, 당시 일본의 지방 호족들은 대부분 사무라이 신분이었으며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었으니 전국의 인구 가운데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천황가와 귀족을 제외하면 일본 전체가 막부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은 당초에는 동일본 지방이 중심이었으나 [[고토바 덴노]]가 토벌을 시도하였다가 대실패(…)하여 서일본 지방까지 완전히 막부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일본 전국이 막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로 조정은 거의 귀족들이 놀고 먹는 상태가 되었는데, 원래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조정에는 별다른 실질적인 업무는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마쿠라 막부에 귀찮은 실무를 맡기면서 조정은 거의 완전히 실무능력을 상실하며, 이후 조정이 실권을 되찾는 [[겐무 신정]] 시기가 되었을 때 무능함을 드러내며 정권을 도로 무로마치 막부에 빼앗기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일본 귀족이란 태어날 때부터의 혈통으로만 앞으로의 출세가 모두 결정되며, 귀족 이하는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폐기물 급 인성(^^)에다가, 실무는 천하게 보고 시나 서예 같은 예술 활동만을 고상하게 보는 좋게 말해서 문화적, 나쁘게 말해서 놀자판인 놈들이었으므로 이런 놈들에게 실권을 맡겨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 가마쿠라 막부는 겐지 일족이 단절되고 불과 3대만에 외척인 호죠 씨에게 실권을 빼앗긴다. 이후에 [[겐무 신정]] 시기에 [[고다이고 덴노]]에게 호죠 씨 정권 가마쿠라 막부는 무너지고 말았으나, 이러한 사례가 선례가 되어 훗날 호죠 씨 정권이 무너진 뒤 조정까지 제압하고 새로운 덴노를 옹립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도 자신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던 겐지(源氏) 일족임을 자처하며 교토 인근에 막부를 세우고 군사와 정치를 장악하였으니 이것이 '무로마치 막부'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와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막부도 전국의 무사들을 통솔한다고는 해도 그 장악력은 비교적 느슨하였다.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태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백]]'과 '태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히데요시 사후에 권력투쟁 끝에 일본의 실력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 지역인 에도에 막부를 세운다. 이 [[에도 막부]]는 이전과는 달리 간토 지역을 독립적으로 장악하고, [[산킨고타이]] 제도를 비롯한 대책을 사용한 덕에 이전의 막부들에 비해 통제력이 매우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조차도 각 번의 다이묘들은 해당 지역의 군사와 사법, 행정을 독립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등 여전히 지역분권이 강했다.
- 문문 . . . . 2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한자 '문 문', rd1=門)]
대한민국의 前 [[싱어송라이터]]이자 [[성범죄자]]. 본명은 김영신.
음악 활동 이전엔 본래 [[직업군인]]이었으며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하다가, 20대 중반에 음악에 대한 꿈 때문에 전역을 하고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에 '저수지의 딸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계에 진입했으나 밴드 활동이 잘 되지 않자 잠정 해체되고, 그 후 2016년 7월에 싱글 앨범 [Moon, Moon]으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 '''물감'''과, [[비행운(노래)|비행운]] 등이 있다.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절된 것은 아니고 한 소절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절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샤이니]] [[종현]]이 사망한 다음날(자신의 신곡 발매일)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논란이 일었다. 자의식 과잉이라는 비난부터, 고인을 신곡홍보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일자 이내 글을 삭제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줄곧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문문의 곡 중 '물감'과 'Mom'에서 [[어머니]]에 대한 문문의 [[마음]]이 [[가사]]에 나타나 있다.
'[[비행운(노래)|비행운]]'의 경우 [[아이유]]가 매체를 통해 소개하며 [[역주행#s-2.5|역주행]]하게 되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29505|기사]]에 따르면 [[아이유]]가 들른 [[레스토랑]]에서 어느 [[웨이터]]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어봐 달라는 [[메모]]를 남겨 들어 보았는데 그 [[웨이터]]가 바로 문문이었다고 한다.
전 여자친구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애월'만 해도 가사에 여자친구와 제주도 애월에 여행갔던 기억이 담겨있고, '아침'은 여자친구와 아침산책 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의 대표곡인 '비행운'도 전 여자친구가 해준 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고 하니 말 다했다. 심지어 'Roach' 후렴구 부분은 문문의 전 여자친구가 피쳐링도 해주었다.
[[분류:전직 가수]][[분류:싱어송라이터]][[분류:인디 음악]][[분류:성범죄자]][[분류:1988년 출생]][[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괴산군 출신 인물]]
- 박상면(배우) . . . . 21회 일치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킹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코믹한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당시 [[별명]]이 '몹쓸 상면'이었다.] 이 사람도 진지한 역할을 맡을 때에는 정말 한 없이 진지해진다. 특히 [[소방관]]의 활약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베테랑 소방관을 맡아 열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의 카리스마와 간지를 선보였다(물론 마지막 장면에 한정).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리프트 카에 태워 대피시키려는데 자리가 모자라자(그것도 불길이 코 앞에 닥쳐와서 리프트 카에 타지 않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남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조용히 건물에 남아 담배를 물고 닥쳐오는 불길을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또한 [[서울1945]]에서 박창주라는 [[악역]] 군인을 맡아 열연해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코믹이 아닌 진지한 연기를 맡아 호평 받았다.
복면가왕 74차 경연에서 [[집 있는 남자 슈퍼리치 소라게]]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2015년 || 늙은 자전거 || 복남 || ||
|| 2013년 || [[7번방의 선물]] || 수형자 박상면 || ||
|| 2003년 || 은장도 || 옆방 남자 || 특별출연 ||
|| [[달마야 놀자]] || 불곰 || ||
||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 || 배병우 || ||
|| tvN || [[일년에 열두남자]] || 동건 || ||
|| 2009년 || tvN || [[세 남자]] || 박상면 || ||
||<|2> 2007년 || 슈퍼액션 || 도시괴담 데자뷰 || 스토리텔러 || ||
|| 그 여자네 집 || 김대웅 || ||
|| [[남자셋 여자셋]] || || 단역 ||
* 2016년 EBS FM EBS 책 읽는 라디오 낭독 시리즈 - 낭독자
|| 2010년 || 제18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탤런트남자상 || ||
|| 2006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조연상 || 서울 1945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68년 출생]][[분류:완주군 출신 인물]][[분류:1993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박상원(배우) . . . . 21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로 MBC 공채 18기 출신이다. 대표작으로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등이 있다. ~~명작만 찍었다~~ 선역전문배우. 같은 선역전문배우인 [[김동현(1950)|김동현]]이 험악한 인상으로도 선역만 담당하는 반면 박상원은 인상이 선해서 선역전문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단 [[드림(드라마)|드림]]에서 악역인 강경탁의 역할을 맡았을 때, 선해 보이는 인상을 역으로 이용한 위선자의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보여주기도 했다.
[[대구광역시]] 출생이나 [[인천광역시]]로 이주해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였다.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후 연극 쪽에서 활동하다 1987년 MBC 공채 탤런트가 되었다. 이후 1988년의 [[인간시장]]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89년 [[서울 시나위]]에서 [[변우민]], [[임미영]]과 같이 3명이 공동으로 주연을 맡아 활약하면서 인지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여명의 눈동자]]는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첫사랑(KBS)|첫사랑]] 등 굵직한 작품을 맡으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를 내세워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당시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신의(드라마)|신의]] 등 故 [[김종학]] PD의 작품에 많이 출연해 인연이 깊으며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백야 3.98, 태왕사신기 등 [[최민수]]와 많은 작품을 찍었다. 또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 여자의 방 등을 통해 [[고현정]]과도 여러번 호흡을 맞추었다.[* 셋 모두 故 김종학 PD가 아끼던 배우들이라 그의 장례식 때 찾아와 빈소를 지켰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나이에 비해 꽤 젊은 이미지를 오래 가지고 간 배우이다. 첫사랑에서 대학생-대학원생 역을 맡을 당시 30대 후반이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어진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 캐릭터가 꽤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스키 실력이 수준급이며 스키 패트롤 자격을 가지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행사에 모습을 보이기도.
2014년 현재 수 년째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연기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제자 중 한 명인 [[크레용팝]]의 [[초아(크레용팝)|초아]]의 2014년 발매 어이 CD 부클릿의 감사 인사말에서도 확인 가능.
* 1991년 [[여명의 눈동자]] (MBC) - 장하림 역
* 1992년 여자의 방 (MBC) - 이진우 역
* 2001년 가을에 만난 남자 (MBC)
* 뮤지컬 2006년 벽을 뚫는 남자
* [[대우전자]] 신대우가족
*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상(2006년)
- 블랙 클로버/106화 . . . . 21회 일치
* 여론이 다시 좋지 않게 흘러가려 하자 유노는 아스타에게 고아원 시절 둘이 하던 훈련을 상기시키고 강력한 정령마법을 가한다.
* 마법제는 이렇듯 둘의 실력은 입증된 사실이라며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힘을 모아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연설로 청중을 감동시킨다.
* 대중이 그들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환호하자 아스타와 유노는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며 세삼 꿈을 이뤄간다는 실감을 가진다.
* 마법기사단의 실적을 발표하는 현장. 올해 1위 금색의 여명단과 2위 검은 폭우단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단상에 올라와 있다. 큰 무대지만 둘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서로 자신이야 말로 마법제가 될 자라고 티격태격한다. 유노의 경우는 그러는 동안에도 성장폭자체는 검은 폭우 쪽이 높다고 의식하고 있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올해 신인 중 별획득수가 1, 2위를 다투는 유망주다. 그것도 입단 후 반년 만에 쌓은 성과. 둘은 같은 고향 출신 동기지간으로 불과 16세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어린 나이에 두각을 보인다고 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둘의 평가가 더욱 올라간다.
* 그런데 청중 사이에 끼어 있던 청동 마법의 [[셋케]]는 야비한 본성이 여전해서 둘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다. 둘이 하층민 출신이고 특히 아스타는 마력도 없는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셋케 자신은 정말로 아스타가 사기꾼이라고 믿고 있었다. 공적을 쌓은 것도 뭔가 치졸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청중들은 하층민이란 말에 쉽게 선동 당해 다시 여론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다.
* 유노는 잡다한 반론보다는 단순한 해결책을 생객해 낸다. 그는 바람의 정령 벨에게 최대한 힘을 끌어내라고 한다. 그 순간 같은 단상의 단장들이 놀랄 만큼 강대한 마력이 방출된다. 마법덕후인 율리우스는 정령마법이 발동하자 눈을 빛낸다.
* 아스타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상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식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상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 마법제는 이쯤에서 소동을 정리한다. 아직도 둘의 실력을 의심하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와보라고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마법제는 둘이 하층민이지만 노력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 이들에게 갈채를 보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분고하를 넘어서 하나로 단결해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한다.
* 마법제의 연설이 적중해서 시민들은 하층민은 약하다는 편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신분고하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진다. 아스타는 시민들이 자기들에게 환호를 보내는걸 보고 새삼스러운 감정이 든다. 유노도 마찬가지다. 마법제를 꿈꿨던 하층민 고아들. 그 두 사람이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런 실감이 둘에게 생겼다.
*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은 실적 순위도 발표된다. 3위는 [[노젤 실버]]의 은익의 참수리. 별은 95개. 4위는 [[샬롯 로즈레이]]의 푸른 들장미. 별 83개. 작년보다 한 계단 순위가 올라갔지만 단장이 술에 꼴아서 현장에 없다. 5위는 새로운 여성단장이 취임한 홍련의 사자단. 별 76개. 6위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의 취록의 당랑. 별 69개. 작년과 같은 순위이며 잭은 [[야미 스케히로]]의 검은 폭우만 순위가 올랐다고 분통해한다. 7위 [[도로시 앤즈워스]]의 산호의 공작. 별 67개. 8위는 역시 새 단장이 취임한 [[자줏빛 범고래]]. 별 51개. 최하위는 [[릴 부아모르티에]]의 물빛의 환록. 별은 49개다.
안 그래도 최연소 단장이라 눈칫밥 먹던 릴은 순위까지 최하위로 떨어지자 체통이고 뭐고 집어던진다. 거기에 잭이 "맨날 멍청한 그림만 그려서 그렇다"고 놀리기까지 하자 아예 아스타한테 매달려서 "어떻게 해야 별을 모을 수 있냐"고 하소연하기까지 한다. 유노는 정말 이런 사람이 단장인지 의심한다.
청중 사이의 노엘은 [[키아토]]와 [[카호노]]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자기 형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 턱이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 이렇게 축제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오르자 은막 속의 인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바로 클로버 왕국의 국왕. 그는 마법기사단의 성과발표를 여흥 정도로 치부하며 대중의 환성을 기대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21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가 자신있게 권하는 온천합숙 장소 유르팀 화산 등산로. 지중의 강대한 마나가 화산 형태로 분출되는 강마지대다.
* 외견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으나 정상엔 자양강장에 좋은 온천이 있다 하며 산 꼭데기까지 가는게 오늘의 코스.
* 팔자에도 없는 살벌한 온천합숙에 참여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일행. [[샬롯 로즈레이]]를 따라서 [[솔 마론]]까지 따라와 있다.
* 그걸 본 메레오레오나는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고 포기 처분을 하는데, 아스타는 거기에 자극받아 어떻게든 강마지대를 돌파하겠다고 고집 부린다.
* 세 번째 선보이는 강마지대는 유트림 화산. 거기에 난 등산로다. 유르팀 화산은 지중에 있는 강대한 마나가 화산의 형태로 분출되는 매우 살벌하고 지옥같은 지역이다. 일행의 눈 앞에는 쉴새 없이 용암을 분출하는 거대한 산이 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사람이 다가가면 안 되는 위험지대지만, 홍련의 사자단의 새 단장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은 바로 이곳 정상에 자양강장에 특효인 온천이 있다고 소개한다.
사람 조지는게 즐거워만 보이는 그녀와 달리 끌려온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일행과 홍련의 사자단은 사색이 된다.
* 원래 사자단 외에 끌려온 사람은 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 [[노엘 실버]], [[샬롯 로즈레이]], [[야미 스케히로]] 등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운 없는 사람들 뿐이지만, 왠지 [[솔 마론]]도 얼굴을 비춘다. 샬롯이 간다길래 그냥 따라왔는데 도착해 보니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최종적으로 샬롯과 온천을 할 수 있으면 다 좋다고 나름대로 의욕을 불태운다.
*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특유의 포지티브한 마인드 덕에 금방 마음을 다잡고 아스타에게 "정상까지 누가 먼저 가나 승부"라고 선언한다. 아스타도 일단은 의욕을 내본다. 레오폴트는 아스타와 함께 유노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는데 아스타에게 "나의 라이벌"이란 소개를 받고 "그렇다면 나의 라이벌이기도 하다!"는 이상한 비약으로 전개, 유노한테도 정상까지 승부하자고 제안하지만 "멋대로 하라"는 매우 심심한 반응이 돌아오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스타가 "너도 곧 익숙해진다"고 어영부영 놀고 있자 성질 급한 메레오레오나가 엉덩이를 걷어차며 빨랑빨랑 가라고 성화다.
* 아스타와 레오폴트가 1등으로 등산로에 뛰어든다. 그런데 발을 내딛고 나서야 이 지역의 가혹함이 실감됐다. 일행은 "마법으로 어떻게든 된다"고 믿었지만 천만에 말씀. 대기에 열기를 머금은 마나가 날뛰고 있었다. 땀샘이 폭발할 지경이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아 호흡도 어렵다. 사방에선 마그마가 펑펑 터져나오는, 문자 그대로 지옥도. 이런 곳을 돌파해 정상까지 가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곳으로 달려드는 대책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검은 폭우단 단장 야미와 푸른 들장미단 단장 샬롯이었다.
* 두 단장에겐 단원들과 같은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미는 그저 "누님레온한테서 도망칠 수가 없으니 후딱 해버리자"는 정도의 귀찮음 때문에, 샬롯은 "술 기운도 깰 겸, 그리고 이정도도 못하면 여자의 이름이 운다"는 정도의 적당한 기분으로 거침없이 등반에 나선다. 야미는 분출과 함께 쏟아지는 화산바위를 가볍게 베어내고 샬롯은 가시덩쿨 마법을 몸에 둘러서 빠르게 이동한다.
홍련의 사자단 단원들은 "역시 단장들이다!"며 감탄할 뿐 뒤따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 하지만 레오폴트는 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비결을 파악했다. 단장들은 마력을 상시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강마지대라 마나가 안정되지 않는 곳임에도 일사분란하게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사실 마법기사들에겐 기본기와 같은 마법이다. 이른바 "마나 스킨". 어떤 타입이든 간에 조금씩은 마나를 방출, 몸에 둘러서 여러가지로 응용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며 이런 험난한 환경에서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원들은 레오폴트의 분석에 감탄하면서도 그렇게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조금씩 감각을 익혀가면서 마나를 순응시킨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레오폴트가 먼저 마나스킨을 방출하며 의욕을 표출한다. 그의를 따라서 단원들도 의욕을 보이며 각자 마나스킨을 펼친다.
이런 전개는 한참 앞에 가는 야미도 짐작하는 바였다. "땡땡이 친 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두 단장이 구사하는 고급 기술을 자기네 단원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려는게 목적이었다. 특히 샬롯은 이 장소에서 상성상 최악이므로 마나스킨 활용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딱 좋은 교보제인 셈이다. 그리고 넘버 1 루키인 "금색의 쿨" 녀석도 동세대의 신인들을 고무시키기엔 안성맞춤. 보기보다 빈틈없는 누님이다.
* 상성만으로 본다면 노엘은 이 지역에선 최적의 인재지만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마나스킨을 활용하자면 결국 마나 컨트롤이 문제였는데, 알다시피 그녀에겐 그 기술이 부족했다. 노엘은 이 마나스킨을 "극악한 난제"라 여기며 메레오레오나가 "간만에 만났는데 괜히 이런데나 데려왔다"며 투덜댄다. 그 말을 들었는지 어느새 메레오레오나가 다가왔있다. 노엘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안, 메레오레오나가 그녀를 지긋이 관찰한다. 그녀의 마나를 보면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는데.
>형제들에게 억눌리기만 해왔던 여자가 바뀌었구나.
>각오를 다진 여자는 최강이다.
* 메레오레오나의 도발을 당한 아스타가 이를 악물고 일어난다. 그저 "운"이라는 말에 반박하듯이 마법제는 결코 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메레오레오나가 "그렇다면 올라가봐라. 바보에겐 무리겟지만."이라고 재차 도발한다. 아스타는 반드시 올라가보이겠다며 "우리들의 꿈은 실적 위에 있다"고 일갈한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21회 일치
* 시합이 시작했는데 잠이나 자고 자빠진 자칭 [[잭스 류그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이 분통을 터뜨리지만 요지부동.
* 여기서 미모사는 아스타를 앞세워 공격을 막고 자신이 크리스탈을 지키며 전진, 그대로 접근해서 적의 크리스탈을 직접 노리는 전술을 입안한다.
* 이 작전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던 분위기가 변했는데, A팀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도 크리스탈을 이동시켜 아스타를 유인한다.
* 로열 나이츠 선발시합 제 1회전. 전략전술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놨던 [[잭스 류그너]]가 시작과 동시에 드러누웠다. 노숙자마냥 흙바닥에서도 잘만 자는 잭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이럴 거면 설교는 왜 했냐고 갈군다. 잭스는 이기고 지는건 그들 관심이지 자신은 아니라 대꾸한다. 그러면서 그 특유의 신경 긁는 말투로 아스타와 [[미모사 버밀리온]]의 멘탈을 농락한다.
* 이미 [[마법제]] 율리우스를 우롱한 걸로 불경죄 혐의가 짙던 잭스였다. "홍련의 사자왕" 단 사등 중급 마법기사 [[포르티 그리스]]는 화살에 화염 마법 "버스트 쟈벨린"을 부여하며 분개했다. 무례한 데다 불성실. 딱 홍련의 사자왕 단원들이 싫어할 만한 유형이다.
"은익의 참수리"단 삼등 상급 마법기사 [[카타스 워른]]도 동감했다. 저쪽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움직이지 못하면 이길 방도가 없을 터. 그는 포르티가 만든 불꽃의 화살을 자신이 암석 마법으로 만든 "스톤 롱보우"에 재웠다. 이걸로 B팀을 일찌감치 집에 보내줄 작정이다.
* 어디서 어떤 공격이 오는지 파악한 이상 당하고만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날아오는게 마법인 이상 아스타가 베지 못할 리 없었다. 화살이 B팀의 크리스탈을 노리고 날아왔다. 통상은 피하기도 어려운 빠른 속도였지만 아스타가 단번에 베어버렸다. 미모사는 잭스는 그냥 빠진대로 두고 둘 만으로 역공을 취하자 제안한다. 자신이 적의 탐지와 견제, 아스타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전진해 적의 크리스탈을 직접 파괴한다. 미모사가 즉석에서 이런 전술을 고안하자 아스타는 그녀가 벌써 많은 전장을 넘어왔음을 짐작하고 감탄한다.
* 이같은 임기응변은 갤러리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전술적인 조예가 없어서인지 별 생각없이 아스타가 첫시합에서 지지나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노엘 실버]]는 미모사와 아스타의 호흡이 잘 들어맞자 신경쓴다. 이 팀에서 순수하게 B팀의 선전을 응원하는건 [[클라우스 류넷]] 뿐이다.
* 한편 A팀은 의외의 파훼법이 발견되자 당황한다. 릭이 상대편도 감지타입 마법 구사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적의 접근을 경고한다. 이제 두 팀은 서로의 크리스탈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카타스는 팀원들을 진정시킨다. 이미 B팀의 크리스탈은 너덜너덜한 상태. 반면 자신들은 노 데미지. 적이 원거리 공격을 쓰지 못하는 한 우위가 바뀌진 않는다.
그런데 그 우위가 바뀌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B팀이 진격을 멈추고 허물어진 담벼락 뒤로 엄폐한다. 미모사가 최근에 익혔다는 공격마법. 그게 사정거리가 긴 중거리 마법이었다. "마포의 꽃". 거대한 꽃봉우리가 돋아나 A팀의 크리스탈에 포격을 가한다. 카타스가 급히 암석마법 "락 포트리스"로 벽을 세운다. 위력이 만만치 않다. 이것은 미모사가 이전에 생각했던 "아스타의 곁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마법". 함께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겠다는 "맹세의 꽃"이었다. 미모사는 이제 자신이 앞장서서 반격에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아스타는 그녀가 굉장히 믿음직해졌다고 생각한다.
카타스와 포르티는 락 포트리스를 기점으로 좌우로 갈라진다. 각기 마법으로 크리스탈을 감춘 척했다. 하지만 진짜는 둘 중 하나. 미모사가 마포의 꽃을 마화의 이정표로 바꿔 다시 감지한다. 진짜는 왼쪽, 카타스였다. 아스타가 곧장 요격하러 달려간다. 카타스도 그걸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최강 마법 조준한다. 아스타는 그것째로 크리스탈까지 벨 기세로 돌격.
숲에 달려온 릭이 동시에 큰 공격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조준은 당연히 B팀의 크리스탈. 어느 하나만 명중해도 끝이다. 게다가 삼면에서 온다면 아스타 혼자 처리할 수도 없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21회 일치
* 레오폴드와 하몬 모두 단세포라 서로 주공을 맡겠다고 아웅다웅하는데, 핀랄은 자신의 공간마법을 무기 삼아 지휘를 자청한다.
키르슈가 다음에는 아스타 차례라며 지목한다. 그를 "금이 간 그릇"에 비유하며 산산조각 내주겠다고 하는데, 아스타는 그 말을 듣고도 태연히 웃는다. "그릇은 금이 가고 나서야 오래 쓴다"는 관용구를 인용했지만, 그건 그냥 빈곤을 뜻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예전에 시스터가 아스타를 키우면서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인데, 그냥 비유삼아 했던 말을 아스타가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오폴드는 홍련의 사자와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 하몬은 금색의 여명 소속 2등 중급 마법기사다. 하몬은 유리마법을 구사하며 이름처럼 하몽 이베리코 돼지를 닮은 통통한 녀석이다. 성격은 쌈빡한 걸 선호하는 레오폴드하곤 정반대로, 키르슈를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믿는 별종 중 하나다. 나서기 좋아하는 점만큼은 둘이 똑같아서 하몬이 "나의 유리마법을 주축으로 키르슈씨 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싸울 것을 주장하고 레오는 자기 불꽃 마법을 주력으로 아무튼 다 박살내면서 호쾌하게 가자고 티격태격한다.
* 여기서 핀랄이 지휘를 자청한다. 자신의 공간마법에 자신을 보이며 공격법에 관해선 자기에게 맡겨달라 말한다. 그동안 검은 폭우에서 쌓은 경험을 여기에 십분 활용할 생각이다. 레오는 그 자신감이 설득력이 있다 봤는지 흔쾌히 승락한다.
* 그렇게 해서 시작된 시합. 핀랄은 자신이 장담한 것 이상의 대활약을 펼친다. 레오와 하몬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뿐만 아니라 적의 약점을 꿰고 있어 두 사람을 적당한 상대와 대전시켰고 지형도 정확히 파악해 예측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해줬다. 적은 물론이거니와 평소 검은 폭우를 얕보고 있던 하몬 조차도 대단한 공간 마도사이며 왜 지금껏 무명이었는지 몰라한다.
* 외곽에서 적 마법기사를 처리한 레오가 곧 적 크리스탈의 상공으로 옮겨진다. 레오도 핀랄의 공간 마법에 대만족했다. 기회가 주어지자 전력을 다한 마법으로 크리스탈을 파괴, 승리를 거머쥔다.
* 이제 시합은 4시합으로 넘어간다. H팀과 G팀의 대결. G팀에는 아스타하곤 악연으로 얽힌 청동 마법의 [[셋케 브론자차]]가 있었다. 취록의 당랑 소속 5등 하급 마법기사. 대부분 튀고 싶어서 안달난 기사들 가운데, 셋케만은 여기에 와서 대후회, 못 올 곳에 왔다는 기분이다. 시합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들이 난무하자 자신감을 상실해 버린 것. 그가 참가한 것도 단장인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가 권한 걸 넙죽 받은 탓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물빛의 환록 소속 [[프라길 토르멘타]]란 여기사와 한팀이었던 것이다. 3등 중급 마법기사. 조용해 보이는 여성으로 검은 폭우의 하급 기사들이 저토록 활약했으니, 같은 하급인 셋케도 사실은 강한 축이이지 않냐며 지레 짐작을 해왔다. 여자라면 물불 안 가리는 셋케가 언제 쫄았냐는 듯 허세를 떤다. 그런 것치곤 내놓는 전술이 허무맹랑하다. 자신의 마법인 "셋케 슈팅스타"로 폭주를 감행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전술. 그런데 여기서 세 번재 인물, 금색의 여명 1등 상급 마법기사 [[란길스 포드]]가 괜찮은 전략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 그러나 H팀의 한 사람이 "위험하다"고 외쳤다. 그는 란길스를 알고 있었다. 그에겐 딱 몇 초면 충분했다. 적당한 거리가 죄다 손 한 번 휘둘러서 공간째로, 적의 마법도 지형도 크리스탈도 지워버렸다. 공간을 깎아내는 마법. 키르슈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이게 보드가의 주력 마법인 듯 하다. 확실히 핀랄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스타도 저 마법 만큼은 자신의 검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 손지현(배우) . . . . 21회 일치
[[대한민국]]의 [[걸그룹]] [[포미닛]]의 前 멤버이자 리더.
현아의 미니홈피 사진첩에 개인 폴더가 있다. 데뷔 직전에 이게 공개되면서 비쥬얼 멤버인 줄 알았는데, 핫이슈로 데뷔하면서 제대로 낚였다(...)며 외면하는 팬들이 좀 있었다. 그러나 사실 핫이슈에서 미모가 제대로 표현이 안된 것이지 실제 상당한 미모를 자랑한다. 자세히 보고 있어야 매력이 느껴지는 스타일이다.
무용과 출신답게 엄청난 유연성을 자랑한다.[* 아이러니하게 팀내 가장 딱딱한 인물은 막내 [[권소현]].] 포미닛 내에서 여성스러움과 비주얼을 담당했다. 현아 보러 갔는데 남지현 밖에 안 보이더라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뛰어난 비주얼에 넘치는 여성미, 거기에 천사표 마음씨까지 갖고 있었지만 끼 없는 아이돌의 대명사였다.
* MBC LIFE <그녀와 자동차> (2012)
* <Huh>로 컴백 후 뮤직비디오 및 결정적이었던 2010년 5월 28일자 뮤직뱅크 영상을 통해 [[허가윤]]을 능가하는 [[거유|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뭇 남성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크릿(아이돌)|다른 그룹]]의 [[전효성|에이스]]도 능가한다고 한다.
* 눈웃음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주간 아이돌에서도 도니와 코니가 애교 3종 세트를 시킬 때 이 눈웃음을 선보였다. 물론 도니와 코니는 그 눈웃음을 보자마자 함박웃음. ~~현아 : 원래 생긴 게 이런 건 어떡해야 합니까?~~ ~~그렇지만 결국 애교B종결자는 전지윤이라는 게 함정...~~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57초부터 보자.
* 랩을 한번도 안 해봤다는 말과는 달리 신동의 심심타파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2013년 5월 30일자 방송과 2014년 4월 14일자 방송에서 모두 의외의 랩을 선보였다.
* 연기 활동이나 <거울아 거울아> 활동 당시 유별나게 힘 들어간 독무 + 솔로파트를 보면 아무래도 소속사에서는 비주얼로 밀어주려는 듯한데... 드라마 [[괜찮아 아빠딸]]과 [[천번의 입맞춤]]에도 출연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Volume Up>에서도 독무를 맡았지만 또 말아먹었다가 [[더 로맨틱 & 아이돌]]에 출연하며 의자녀로 주목받았다.
* 자타공인하는 [[대인배]]이자 천사표인데,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화내는 모습을 본 적 없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착하다.~~딴 재주가 없으니 행보관 역할이라도 해야지~~ 큐브 사무실 앞에 눈이 엄청 쌓였는데 애들 넘어질까 봐 옆가게에서 빗자루 빌려 약 두 시간 동안 그걸 걷어낸 일화가 있다.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팬들 사이에서 이미지는 굉장히 좋은 듯.
* 포미닛의 트래블 메이커에서 씨스타 멤버들과 포미닛 멤버들이 합세해 지현을 화나게 해보자는 몰래카메라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응이 너무 착했다. 다솜과 소유가 지현이 만든 피자밥이 맛이 없다고 태클을 걸자 "아무래도 다시 만들어야 될 것 같다." 라면서 다시 만들러 갔다(...). 이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멤버들이 몰래카메라를 그만두기도 했을 정도. 다만 이 에피소드에서 [[현아(가수)|실세]]는 출연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 컴백곡 '미쳐'에서도 후반부 킬링파트를 잡았다. 다른 멤버들은 무대 뒤로 물러서고, 지현 혼자 집중 받는다. 활동 후반부는 멤버들이 모두 나와서 같이 춘다. 하지만 아직도 어색함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로 보아 라이브의 문제는 개선됐다는 게 증명됐으나...
* 포미닛이 해체할 때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ate의 가사의 일부를 올린 사진이 있었는데, 이때 솔로 활동으로 홀로 [[큐브엔터테인먼트|큐브]]와 재계약한 [[현아(가수)|현아]]와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이때 지현 이외에 나머지 3명도 전부 [[현아(가수)|현아]]를 언팔하였다. 그 덕분에 재계약 건으로 사이가 나빠진 게 사실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아니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21회 일치
각 사령관들은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게임 플레이에 도움을 준다. 특수 능력 중 사람 대가리 같은게 있을텐데, 이건 사령관 포인트, 줄여서 CP를 요구한다는거다. 사령관 포인트는 시간이 지나면 쌓인다. 너무 느리게 쌓이는 것 같다면 함선 커스터마이즈로 깃발을 달자. 캐시템이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제독. 정확한 스펠링은 Kinkaid지만 넘어가자.
* 심해 거주자(Deep Sea Dweller) - 잠수함에 배치했을 때에만 발생. 방뢰 장갑 5% 상승.
* 감청자(Listener)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소나 탐지 간격 1초 감소.
* 고성능 자이로스코프(Performance Gyroscope) -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 4% 감소.
* 숙련된 수리공(Master Fixer) - 기술자로 배치시 발동. 모든 부품의 수리 속도 10% 상승.
* 자부심(Conceit) - 함포 사격시 30% 확률로 발동. 30초간 함포 관통력 10% 증가.
* 숙련된 수리공(Master Fixer) - 기술자로 배치시 발동. 모든 부품의 수리 속도 10% 상승.
* 고성능 자이로스코프(Performance Gyroscope) -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 4% 감소.
* 함대 항해(Fleet Cruise) - 액티브. 3CP 소모. 자신과 1.5km 내 아군의 주포 정확도와 기관총 명중률을 강화. 속도 1노트 하락.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함선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쿨타임 120초.
* 고성능 자이로스코프(Performance Gyroscope) -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 4% 감소.
* 고성능 자이로스코프(Performance Gyroscope) -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 4% 감소.
* 함대 항해(Fleet Cruise) - 액티브. 3CP 소모. 자신과 1.5km 내 아군의 주포 정확도와 기관총 명중률을 강화. 속도 1노트 하락.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함선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쿨타임 120초.
* 심해 거주자(Deep Sea Dweller) - 잠수함에 배치했을 때에만 발생. 방뢰 장갑 5% 상승.
* 함대 항해(Fleet Cruise) - 액티브. 3CP 소모. 자신과 1.5km 내 아군의 주포 정확도와 기관총 명중률을 강화. 속도 1노트 하락.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함선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쿨타임 120초.
조니 존슨이라고도 알려진 영국 에이스. 초상화에 그려진 전투기 측면에 써진 건 "베이더의 버스 회사는 여전히 운행 중"(Bader's Bus Company Still Running)이다. 같은 영국군 에이스였던 더글라스 베이더가 포로로 잡히자 쓴 것이라고.
* 고성능 자이로스코프(Performance Gyroscope) -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 4% 감소.
* 전자기파 방해(EMP DIsruption) - 액티브. 3CP 소모. 30초 간 800m 내의 아군 위장률 8% 증가. 쿨타임 100초.
* 함대 항해(Fleet Cruise) - 액티브. 3CP 소모. 자신과 1.5km 내 아군의 주포 정확도와 기관총 명중률을 강화. 속도 1노트 하락. 강화되는 수치는 범위 내 아군 함선 수에 따라 정해짐. 1척에 3%. 이후 5척까지 0.5%씩 증가. 쿨타임 120초.
* 함대방어선(Fleet Defensive Line) - 액티브. 3CP 소모. 45초간 반경 1.5km 아군(자신 포함)의 대공포와 기관총 데미지 15% 증가. 동시에 소나 빈도 0.5초 증가. 쿨타임 75초.
- 식극의 소마/198화 . . . . 21회 일치
[[식극의 소마]] 198화. '''힘이 다한 자'''
* [[사이바 죠이치로]]가 사라지자 대회장이 발칵 뒤집힌다.
* 죠이치로는 정신적으로 극히 피폐해져 The BULE 대회가 끝난 것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고 만다.
* [[나키리 센자에몬]]은 휴식기를 가지라며 해외유학을 권유, 죠이치로는 웃는 얼굴로 떠나지만 그게 도지마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식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도지마 긴]]을 포함한 기숙사 학생들은 죠이치로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닌다. 그가 자주 다녔던 곳을 중심을 수색하지만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학생들은 정말로 그가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닌지 무서운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도지마는 조리대 앞에서 웃음이 사라졌던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과 승리를 다투며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도. 그리고 도지마는 마침내 그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이 닿는다.
* 죠이치로는 먼 곳으로 떠난게 아니었다. 그는 가을선발 대회가 열리는 식극회장에 있었다. 회장 한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죠이치로. 도지마는 안도와 함께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태연하게 모두 걱정한다고 전하며 "이제 BULE에는 못 가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을 꺼내는데.
죠이치로는 벌써 대회 일정이 지나갔다는 것도, 자신이 거기에 불출석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다. 그보다 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는게 맞겠다.
* 도지마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실감한다. 요리인의 삶이란 가혹한 것이다. 폭풍이 이는 황야를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인 삶. 그들은 죠이치로를 "수라"라 불렀지만 그 또한 요리인이기 앞서 평범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그런 그를 그저 추앙하고 떠밀며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도지마는 죠이치로를 망가뜨린건 "우리들"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 그때 또다른 인물이 죠이치로의 뒤를 따라온다. 토오츠키 학원의 총수 [[나키리 센자에몬]]이다. 그는 죠이치로가 "폭풍에 삼켜진" 것이라 평하며 사실 가을선발 때부터 조짐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센자에몬은 죠이치로에게 잠시 이 나라를 떠나 휴식을 가지라고 권한다.
* 얼마 후 죠이치로는 기숙사를 떠난다. 그는 쾌활한 얼굴로 아자미와 도지마에게 인사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두 사람, 특히 아자미는 어더운 얼굴로 죠이치로를 배웅한다. 이때 떠나가던 모습이 그들이 학창 시절에 본 죠이치로의 마지막 모습이다.
- 식극의 소마/200화 . . . . 21회 일치
* 도지마와 죠이치로가 티격태격해서 결국 [[나키리 센자에몬]]이 중재. 겨우 특훈이 시작된다.
* 에리나는 여전히 [[나키리 아자미]]를 두려워해 위축돼 있었으나 특훈이 시작되고 죠이치로와 한 팀이 되자 흥분.
* 이번 대결 주제는 프랑스 요리 "아쉬 파르망티에". 다진 감자고기 그라탕이다.[* attachment:11.jpg]
* 제한시간은 50분, 조리 중 서로 대화가 금지된자.
* 센자에몬이 실격을 선언, 죠이치로 팀의 특훈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
* [[나키리 에리나]]의 방에 모이기 직전의 상황. [[도지마 긴]]과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는 막 요리 승부를 마친 [[사이바 죠이치로]], [[유키히라 소마]] 부자와 마주친다. 결과는 소마의 패배. 소마의 491 연패가 된다.
* 도지마는 내일부터 이런 연대식극에 대비한 특훈인 2vs2 홍백전을 치를 생각을 했고 미리 팀원의 궁합에 따른 조합도 생각해뒀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그런 적성 같은 건 개무시하고 "아무튼 여러번 할 거니까 대충 제비 뽑아서 하자"고 주장한다. 게다가 팀구성 보다는 "졌을 때 받을 벌칙"에 더 연연하는데. 결국 도지마가 격분해서 싸움으로 이어진다. 나잇살 먹을 만큼 먹은 아저씨들이 초딩처럼 유치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도지마는 죠이치로가 귀국한 직후 짜증났던 점을 들먹이면서 공격한다. 일단 귀국했을 때 연락을 하긴 했었나 본데 딱 한 번했고 게다가 주소도 말하지 않았다. 도지마가 뭔가 메모하려고 했을 땐 멋대로 전화를 끊어서 소용이 없었다. 도지마가 항의하지만 죠이치로는 드립이나 치면서 흘려듣는다. 이렇게 싸운 결과 왠지 요리대결로 결판내자는 흐름이 되었고, 인원이 딱 떨어지질 않아서 원래 부를 예정이 없었던 에리나를 합류시키러 온 것이다.
*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싸움은 에리나의 방까지 이어졌고 이게 간밤에 3 vs 3 홍백전을 치르는 이유였다. 타도코로는 쉬고 있는 에리나에게 미안하게 됐다며 그래도 동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하자고 한다. 에리나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키리 아자미]]에게 위축되고 있는 사실에 거듭 심란해 한다. 그런 손녀의 심리를 간파한 [[나키리 센자에몬]]은 더이상 인솔자들이 개판을 치고 있으면 안 되겠어서 결단을 내린다. 몸소 심판으로 홍백전을 주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센자에몬의 진행으로 팀부터 정해진다. 죠이치로, 소마, 에리나의 사이바 팀. 도지마, 타쿠미, 타도코로의 도지마 팀. 각각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리더다. 시합 장소는 소마 부자가 대결한 열차 내의 조리실. 차장이 대결장소도 빌려줄 겸 대결을 관전한다. 시작이 치졸한 자존심 싸움이라 그런지 대결이 시작하기 전에 리더들의 신경전이 첨예하다.
* 그런데 센자에몬은 거기에 또다른 패널티를 부과한다.
* 타도코로가 거의 패닉에 빠진 사이 타쿠미는 침착하게 도지마의 조리를 관찰한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도지마에게 필요한 재료를 정확히 찾아 대령하면서 대화없이도 팀워크를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타도코로도 깨닫는다. 이것도 결국 평소하던 조리와 다를게 없다. 셰프의 움직임을 잘 보고 조리과정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나가면서 움직인다. 그녀는 소마와 노점을 하던 때를 떠올리며 자신이 앞으로 조리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확히 맞는 역할을 찾아낸다.
* 도지마 팀은 정말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서도 손발이 척척 맞으며 빠르게 조리를 해나가고 있다. 센자에몬은 이 팀을 보면서 첫 번째 장애물을 넘었다고 안심한다. 그럼 사이바팀은 어떨까?
* 팀워크의 ㅌ도 없는 개판이 펼쳐진다. 명색히 부자지간에 멱살잡이에 들어갔고 대화를 안하긴 커녕 노발대발하며 고함을 쳐대고 있다. 애초에 동족혐오가 발동한 이들에게 팀워크 같은걸 바라는게 무리한 일일지도 모른다.
* 결국 글러먹었다 싶었는지 센자에몬은 그냥 실격을 선언한다. 에리나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21회 일치
* 만화 시작이래 거의 최초로 멀쩡한 꼴로 요리하러 나온 [[잇시키 사토시]].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꽃밭이라 지면 다 같이 농장이나 하러 가자는 헛소리를 한다.
* 탈락한 반역자들은 특별석이란 이름의 우리에 갇혀서 관전.
* 반역자 군단의 최후의 카드는 놀랍게도 [[잇시키 사토시]]. 십걸의 자리를 잃었다곤 하나 여전히 고학년으로서 이런 자리에 나올 필요가 없는 그였다. 하지만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매우 정상적인 차림으로 레분토까지 날아왔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은 잇시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한다. [[사카키 료코]]는 이 승부에서 지면 잇시키까지 퇴학처리 되는거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잇시키는 귀여운 후배들을 위해 그런건 싸우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일동을 감동시킨다.
멀쩡한 모습으로 좋은 선배 포스까지 뿜어내고 있지만, 내용물에는 변함이 없다. 잇시키는 혹시라도 지게 되면 다 같이 농장을 하러 가자고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어째 아는 사람한테 농장터에 유통라인까지 알아보고 [[타도코로 메구미]]는 종업원으로 유능할거 같다는 둥 이쪽에 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탈락한 반역자들에게 전용석을 안내하는데, 어느모로 보나 우리다. 카와시마는 어차피 보러 올 수도 없는 입장인데 [[나키리 아자미]]의 자비로 올 수 있엇던 거지 불평하지 말라며 반역자들을 처넣는다.
* 각 대결은 메뉴가 적혀진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첫 대결의 메뉴선택을 상대인 [[키노쿠니 네네]]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정한 승부를 원한다며 소마 쪽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녀는 속임수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같은 십걸인 에이잔도 부정한 짓을 저지른 녀석이라며 경멸한다. 관중석에서 반역자를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도 "더러운 야유는 싫다"고 차갑게 노려보는데 어쩐지 관중석의 남학생들은 그 차가운 시선이 더 좋다며 심쿵한다. 그리고 쿠가는 왠지 구경하는 주제에 "저 땋은 머리는 언제나 날이 서 있고 오늘은 아마도 생리"일 거라고 도발해댄다.
네네는 안경을 닦으며 "일식 특기"라는 꼬리표가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소마가 어떤 테마를 뽑든 그의 요리를 처부셔버리겠다고 자신한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메뉴 선정. 마치 조작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최악의 카드가 뽑혔다. 정적에 휩쌓이는 대회장. 반역자 측은 물론 센트럴을 응원하는 관객들과 네네 조차 얼어붙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환호성. 카와시마와 관객들은 벌써 네네의 승리가 정해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한편인 잇시키와 메기시마는 태연하게 카드를 뽑을 뿐. 잇시키는 "변함없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뜻모를 소릴하고 메기시마는 흥미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헤프닝처럼 시작돼버린 연대식극.
소마의 악운에 울상짓던 반역자들은 곧 네네의 탁월한 기술에 정신이 팔린다. 네네의 손이 반죽그릇 안을 춤추는 것처럼 화려하게 휘젓자 메밀가루가 빠르게 모양이 잡히면서 이상적인 반죽으로 변해간다. 아자미는 이거야 말로 기술이라고 중얼거리며 승부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 넋을 놓고 솜씨를 지켜보던 반역자들은 그게 곧 소마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참담한 현실을 떠올린다. 애초에 정공법으로 이기는건 바라지도 않고 변화구를 던져서 별난 걸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제 소마가 어떤 소바를 만들지가 관건이다.
* 이렇게 동료들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줄까지 쥐고 승부에 임하는 소마. 그런데 그 소마가 소바의 달인을 상대로 선택한 메뉴는 '''컵 야키소바'''였다. 그 황당한 선택에 화낼 기력도 없어진 동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 소리야"는 태클을 날린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21회 일치
* 심사결과 발표. 누가 승자인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심사의원은 결정은 3:0으로 만장일치. 결과를 판가름한 원인은 아무래도 소바의 "풍미"였던 듯 한데.
* 연대식극의 진행되면서 바깥의 날씨도 더 춥고 가혹하게 변했다. 실내에 있던 반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차가워졌다.
* [[나키리 아리스]]는 이제서야 "뭔지 알겠다"고 하는데 막상 이야기를 꺼내보니 "외견에서 소바란 느낌이 안 든다"같은 한 박자 늦은 감상이다. 어쨋든 동료들의 주된 의견은 철냄비로 볶아버린 소바엔 메밀 특유의 풍미가 남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그런데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는 조금 의견이 다른 것 같다. 동료들과 다른 표정으로 소마의 시식을 지켜본다. 그리고 [[잇시키 사토시]] 또한 소마에게 "그게 네 대답이구나"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한다. 소마도 알아들은 건지 "네. 잘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옆에서 보는 네네는 뜻모를 대화다.
* 그리고 시식. 사회자 [[카와시마 우라라]]는 "보나마나 풍미고 뭐고 사라졌을 것"이라 예측한다. 그런데 심사의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하나같이 진한 메밀의 풍미에 감탄한 얼굴. [[이스트와르]]는 소바의 풍미가 잘 살아있다고 발언한다. 네네는 뜻밖의 결론이 나오자 경악한다. 이어서 [[샤름]]이 "구운 부분이 바삭바삭해서 소바의 식감을 배가한다"고 발언하고 이스트와르는 "오리고기의 기름이 소바의 감칠맛을 강화시킨다"고 짚어낸다. [[안]]은 소바 자체의 풍미가 잘 전해진다고 총평. 소마는 좋았어, 라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그가 기대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 자신의 상식을 뒤집은 평이 나오자 네네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소마의 조리대에서 답을 찾아나선다. 그녀는 곧 남은 소바를 살펴보고 소마가 "3번 가루"로 소바를 만들었음을 간파한다. 아리나처럼 일식 문외한들은 잘 모르는 표현. 안이 부연설명에 들어간다.
네네의 소바는 당연히 1번을 써서 만든 것으로 기적적으로 가벼운 식감과 목넘김을 자랑했다. 만약 소마가 같은 1번 가루를 썼다면 그가 선택한 조리법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3번 가루를 활용, 애초부터 향이 강하다는 이점을 살려서 강한 불에 구워도 향이 날아가지 않고 적절히 남았다.
설명해놓고 보면 간단하지만,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발상이다. 반역자팀은 환호하고 센트럴측 학생들은 풀이 죽는다. 십걸이지만 [[코바야시 린도]]는 소마의 선전에 솔직하게 감탄한다.
소마는 어려서부터 컵라면 종류를 좋아했다. 그 자체로 기능성을 가진데다 여러가지 맛과 소재의 바리에이션도 탁월한 요리였다. 소마는 이걸 다른 요리에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으로 기성 컵라면이나 컵 야키소바를 다양하게 어레인지하는 시도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컵 야키소바의 구성은 면, 기름, 조미료 혹은 양념이다. 소마에게 인상을 남겼던 컵 야키소바 중에는 면 자체에 소스를 가미해서 맛을 강하게 한 것도 있었고, 기름을 별첨해서 구운 풍미를 내는 종류도 있었다. 또 소마는 나름대로 조리법을 바꾼다고 컵야키소바를 진짜로 구워보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그냥 야키소바"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참고가 됐다.
이번에 만든 소바도 기본적인 원리는 컵 야키소바와 같다. 우선은 그 자체로 풍미가 강한 면이다. 소스는 진한 간장 10, 미림 4, 굵은 설탕 3을 섞고 진한 가스오부시를 넣어 희석한 특제 츠유. 마지막으로 자신이 조합한 조미료. 이것들을 "컵"="철냄비"에 넣어서 구우면서 섞는다. 모두 컵 야키소바의 요소이다. 물론 뜨거운 철냄비가 컵 야키소바의 컵에 해당하는 것은 소마만의 취미지만.
* 이스트와르는 일본의 컵 야키소바 또한 급속도로 진화를 계속해왔고 그것 역시 하나의 역사와 전통이라고 발언한다. 안은 거기에 더해서 "에도 소바에 들인 시간과 노고는 네네를 이길 사람이 없지만 소마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고 평한다. 소마는 컵 야키소바라는 것으로 새로운 발상을 더해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걸 만들어냈다. 이는 "소바라는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까지 극찬한다.
사실 그는 특훈 기간 동안 소마를 방문했었다. 소마가 착안한 "정식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조언을 해줬다. 잇시키가 보기에 그건 현 십걸에게도 없는, 매일매일 손님을 상대해본 소마만이 가지는 특기였다. 그런 점에서 [[사이바 죠이치로]]가 좋은 조언을 했다고 말한다. 잇시키는 여기에 "십걸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기분야가 있다"고 귀띔해주며 거기에 대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권한다. 설사 적의 특기가 나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게 말이다. 이때 처음으로 네네의 특기가 소바라는 걸 알려주는데, 그때만 해도 설마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 적의 특기에 딱 걸릴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 소마가 내놓은 스파이스는 한 종류가 아니었고 생강이나 산초가 들어간 것도 있어서 양념을 여러가지로 바꿔가며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잇시키는 동료들과 맛을 바꿔가고 실험해보면서 먹는 걸로 "유대"가 생겨나고 이것이 어린시절 축제에서 친구들과 야키소바를 나눠먹는 추억을 자극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리액션도 동료들과 여름 축제를 즐긴 추억과 비슷한, 그런 소마의 향기.
* 이렇게 해서 심사는 종료. 승자를 결정하기로 한다. 소마와 네네. 승자는 누구일까?
* 발표에 앞서 이스트와르가 "심사의원 만장일치"로 승패가 갈렸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는 승자 발표를 앞두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이 요리"에서 이렇게나 강한 소바의 풍미가 나오는 것인지를.
- 오지호(배우) . . . . 21회 일치
|| '''가족''' ||<(> 2남 1녀 중 [[장남|둘째]][* 누나 1명과 남동생 1명으로 장남이다.][br]배우자 은보아, 슬하 1남 1녀(딸 오서흔[* 2015년 12월 30일 출생], 아들[* 태명 지동, 2018년 8월 18일 출생]) ||
|| '''수상''' ||<(> [[2010년]] K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br]남자 우수연기상 ||
1999년 CF 모델로 데뷔했지만 [[듣보잡]]에 가까운 처지로 있었다. 1998년 [[까(영화)|까]]의 [[단역]]으로 데뷔했고 2000년, 다채롭고 [[절륜]]한 [[검열삭제]]신으로 이름을 날렸던 영화 '[[미인(2000)|미인]]'에서 주연을 맡아 아마도 이름은 [[이지현(1978)|이지현]]과 함께 알렸지만 영화 내용 자체는 그닥... ~~미인은 스토리가 필요 없는 영화지 몸매만으로도 그 가치가 훌륭하다~~.[* 다만 이 부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흥행 실적에서는 절대로 망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이익을 봤다. 10만 명 정도의 관객이 관람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많다고 할 관객 수는 아니었지만 작은 수치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예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무릎팍에서 오지호 본인도 흥행은 성공이었다고 말했다.]
잘생겼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중에서도 무명급인지라 활동 지속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캐스팅[* 작가가 완강히 반대했으나 감독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촬영 직전에서야 겨우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된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어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코믹한 역할을 상당히 많이 맡게 된다. 특징적으로는 원톱 여배우와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직장의 신]] 등 히트한 드라마 상당수가 그런 작품이 많다. ~~본격 원톱여주드라마 받침 남주역 전문~~ 얼빵하거나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코믹한 연기보단 진지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결혼 한 2014년 이후로 코믹한 역할로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 등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듯.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예능인 [[천하무적 야구단]]에도 출연하여 팀의 투수 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유연성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정민태]] 투수코치는 오지호를 보고 "이렇게 뻣뻣한 사람이 왜 야구를 하지?" 라고 말할 정도였다. 투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몸이라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절친 [[김성수(배우)|김성수]]와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의 주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텐프로]]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전 여자친구가 [[자살]]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지호가 무명이던 시절 만나 그를 뒷바라지해주었으나 막상 오지호는 유명세를 얻고 난 뒤 그녀와 헤어졌고(다만 오지호의 말에 의하면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 뒤 그녀는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게다가 오지호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오지 않았는데, 고인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고인이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에게 알려주라'는 문자를 남겼고, 이에 따라 오지호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한다(아마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으며 이 이후 방송활동도 비교적 뜸해진 편.
|| 2004년 || [[KBS 연기대상]][* 드라마에서 불렀던 [[김종국]]의 한 남자를 다시 부르는 특별무대를 가지기도 하였다.] || 남자 조연상 || [[두번째 프러포즈]] ||
||<|3> 2006년 ||<|3> [[MBC 연기대상]] || 남자 우수상 ||<|3>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
|| 남자 인기상 ||
|| 2010년 || KBS 연기대상 || 중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추노(드라마)|추노]] ||
||<|3> 2013년 ||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3> [[직장의 신]] ||
||<|2> KBS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분류:목포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21회 일치
1946년, 나치 독일은 우월한 과학 기술로 연합군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이는 나치 독일의 과학자이자 장군인 빌헬름 슈트라세, 일명 데스헤드의 업적이었다. 이에 연합군은 데스헤드를 제거하기 위한 특공대를 조직해 데스헤드의 본거지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특공대원이었던 B. J. 블라즈코윅즈는 두명의 동료를 데리고 데스헤드의 본거지에 탈출하지만, 탈출 중 머리에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는다.
자세한 내용은 [[울펜슈타인 : 뉴오더/줄거리]] 참조. 스포일러 주의.
블라즈코윅즈의 동료. 스코틀랜드 고지대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어렵게 살아와서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16세 때 부터 글래스고 조선소에서 일했으나 30년대 일어난 경제 공황으로 정리해고 당했다고. 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 기술자로써의 훈련을 받았다.
클라우스가 골목 쓰레기더미에서 찾은 이후 보살피는 남자. 큰 덩치에 걸맞는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 연령이 어리다. 폭력을 싫어한다.
일명 데스헤드. 재능있는 과학자이자 장군. 친위대 특수계획부서의 수장이다. 양심의 가책 없이 신기술로 실험을 하는 인물이며 그 실험들은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 어린시절을 가난과 아동학대속에서 지났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켈러의 아버지는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그러자 켈러는 지역 친위대 사무소에 들어가 아버지가 레지스탕스와 연관되었다고 제보, 자신의 가족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고 데스헤드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켈러는 데스헤드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다.
적을 은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단검. Knife Throwing 퍽이 있으면 남는 단검을 던질수도 있다. 나무상자를 부수는데도 사용된다.
몇몇 챕터에서 자동산탄총 대신 사용한다. 하나만 나오니 아킴보는 불가능.
* 자동산탄총
조준경이 달린 반자동 소총. 먼 거리의 적을 상대하는데 적합하다.
철조망이나 쇠사슬을 자를 수 있는 절단기. 사용 모드에 따라 레이저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사용시 배터리가 소모되므로 충전을 열심히 해야한다.
독일군의 정예 부대로 시베리아에 있는 훈련소에서 훈련된다. 효율적이고, 과격하며, 자비없기로 유명하다. 돌격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폭동 때 투입되는 간수들. 방독면과 중장갑을 착용하였으며 자동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중장갑을 둘렀으므로 단검이 안 먹힌다.
중장갑을 입고 자동산탄총으로 무장한 정예병. 폭동 진압 간수와 달리 파쇄탄을 사용한다. 등 뒤에 달린 육각기둥형 탱크를 공격해 터뜨릴 수 있다. 가끔씩 자동산탄총을 두정 들고 나오는 놈들도 있다.
나치 강제노동수용소에 배치되는 로봇. 수감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이다. 기관총과 로켓발사기로 무장했다.
* 런던 감시자(London Monitor)
정식 명칭은 WESPE 드론. 40년대 말에 독일 최고의 무선 기술자인 루드비히 발트 박사가 개발하였다. 플레이어를 발견하면 레이저를 쏴갈긴다. 격추될 시 폭발하니 주의.
- 원피스/836화 . . . . 21회 일치
* 마침 루피 일행을 추적하던 학기사 랜돌프가 기습을 거는데, 크래커는 자기 앞에서 기습 따위를 한다며 야단친다.
* 루피가 도플라밍고까지 쓰러뜨리자 브륄레 혼자선 힘들 거라고 보고 빅맘이 보낸 것이다.
* 루피 vs 크래커. 크래커는 자기 팔을 두드리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팔이 돋아나 8개의 팔이 된다. 크래커는 7개의 검과 한 개의 방패로 중무장하며 루피를 압박한다.
* 나미는 그의 입에서 "로라"라는 이름이 나오자 스릴러 바크에서 만났던 로라와 그녀가 준 비브르 카드를 떠올린다.
* 그런데 크래커가 멈추라고 호통을 치자 랜돌프가 꼼짝도 못하고 유혹의 숲의 말하는 나무들도 벌벌 떨며 말라버린다.
* 나미는 이런 모습을 보고 크래커가 고위급 인사일 걸로 추측하는데, 루피는 어쨌든 강자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 루피는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린 자이므로 브륄레 혼자선 고전할 거라 예상해서 그를 보낸 것이다.
* 킹 바움도 자기 팀은 단 한 번도 표적을 살려보낸 적이 없다며 루피가 버거운 상대라는 말에 반박한다.
* 브륄레는 그런건 알고 있다며 밀집모자 일당으로 모습을 하고 있던 동물들은 본래 모습으로 돌린다.
* 그리고 인질로 잡은 캐럿과 쵸파가 비치는 거울을 꺼낸다. 둘도 거울을 통해 루피와 나미를 발견하고 브륄레는 "거울 능력자"라며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 브륄레는 크래커에게 이렇게 밀집모자 일행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과시하고 거울을 내던져 깨버린다.
* 크래커는 정보를 발설하던 우누를 "입이 싼 남자"라며 처형하려 든다.
* 우누는 자신은 그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 아니냐며 애원하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빅맘의 말을 인용하며 "전남편 43명은 피가 이어지지 않은 타인"이라 말한다.
* 싸움이 벌어지려하자 말하는 나무들이 앞다퉈 도망치기 시작한다.
* 혼란을 틈타 나미는 우누를 데리고 도망치려 하는데, 우누는 자신의 이름을 "파운드"라 밝힌다.
* 여덞개의 팔로 칼 일곱 자루와 방패를 들고 싸우는 크래커.
* 나미는 원래 목적과 상관없이 싸울 필요 없다며 적당히 도망치자고 하는데
* 크래커도 열매 능력자로 보이는데 상당히 독특한 능력. 니코 로빈의 꽃꽃열매와 비슷하지만 원격으로 팔을 피워내지는 못하는 것 같고 자기 팔을 두드려서 늘린다. 다른 신체부위도 가능한지는 불명.
- 원피스/851화 . . . . 21회 일치
* 모든 것을 들은 상디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지만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라이터가 자꾸 꺼진다.
* 빅맘은 상디보다 포네그리프가 중요하냐고 빈정대나 브룩은 최소한 상디가 자책하지 않으려면 포네그리프 정도는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 받아친다.
* 브륄레도 거울들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다는데, 쵸파가 물어보고 다니니 여러 거울들이 자기라고 대답한다.
* 그때 푸딩이 갑자기 총을 쏘는데 총알이 상디가 서있는 벽 옆을 뚫고 나간다. 퍼커션 락 36구경 권총 "워커"와 통칭 "캔디 재킷"이라 불리는 탄환이다. 그 위력은 장갑을 두른 방패병을 등까지 관통하며 "철의 몸"을 가진 빈스모크 일가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푸딩은 바로 이 총으로 [[빈스모크 레이쥬]]를 저격했던 것이다. 푸딩은 내일도 이 총으로 상디를 쏠 건데 무슨 표정을 지을 건지 기대된다며 악취미적인 발언을 한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부하 "젤리" 니트로와 "양탄자" 라비앙도 맞장구를 친다. 이들은 상디는 푸딩이 자신에게 반했다고 철석 같이 믿을테니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볼만할 거라고 시시덕거린다.
>적어도 제대로 된 왕자를 데려오던가!
>거기다 저희 선장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남자!
빅맘은 그럼 할 일이 없어서 포네그리프나 노리는 거냐고 하자 이번에도 브룩은 단호하게 답한다.
>"최악"의 결과 상디씨가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단했을 때 그가 자신을 탓하지 않도록
* 미러 월드에선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아직도 탈출방법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 그들은 포박한 [[샐롯 브륄레]]를 간지럼태우며 성으로 연결된 거울의 소재를 캐묻는다. 견디다 못한 브륄레가 결국엔 실토하는데, 사실 그런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워낙에 거울이 많으니 일일히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울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하는데. 거울들은 모두 자신이 비추고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 거울들을 향해 "성의 거울이 누구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쵸파는 기뻐하며 일행의 소재를 묻는데, 거울들이 루피나 브룩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하지만 캐럿이 "초상화는 특기"라며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하는데.
푸딩은 [[메모리메모리 열매]] 능력자. 사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필름 형태로 끄집어 낼 수 있으며 마음대로 편집할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레이쥬를 저격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잘라내고 대신 "유탄"에 맞은 병사의 기억을 덧붙인다. 이것으로 레이쥬는 지금 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을 잃게 된다. 푸딩은 의식을 잃은 레이쥬를 의료실로 옮기게 한다.
그리고 방의 바깥. 상디는 어느새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엔 구겨진 꽃다발만 떨어져 있는데.
* 그의 정체는 [[징베]].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그가 루피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일단 거기서 나오겠냐고 묻는다. 루피는 기쁘게, 나미는 절실하게 나가겠다고 소리친다.
푸딩의 무기 "워커"는 철판도 뚫는 철갑탄으로 원피스 세계관에선 별볼일 없는 무기 취급이었던 총기가 엄청나게 상향. 육식의 철괴나 신체를 철 이상의 강도로 만드는 열매 능력자들과의 상성이 기대된다.
- 원피스/871화 . . . . 21회 일치
* 암금왕 루 펠드가 떨어진 옥갑은 성 준간에 매달려 있다. 그가 겨우 옥갑을 회수, 열어보려 하나 갑자기 누군가의 "지건"에 저격 당한다.
* 사실 그 자리엔 특종을 노리고 모간즈고 숨어 있었으나 스튜시에게 발각, 정보조작에 협조하는 대가로 함께 옥갑의 내용물을 보기로 한다.
* 아버지가 당하자 니디와 욘디는 시저의 호위를 팽개치고 아버지에게 달려가는데, 이때 [[샬롯 카타쿠리]]가 시저를 잡으러 온다.
* 이치디는 여전히 남아서 카타쿠리를 상대하고 시저는 겨우 빠져나오나 싶었는데 이번엔 시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앞길을 막는다.
* 빅맘은 반역자 전원을 처형하겠다 선언하나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폭발을 일으키고 이 여파로 홀 케이크 성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 시저 내부의 탑승자들이 환호한다. 제르마 오덕인 괴총 비트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필살기 난무에 어쩔 줄을 모른다. 언제나 시저를 쓰레기 취급하던 [[나미(원피스)|나미]]나 [[쵸파]], [[브룩]] 조차 시저를 응원한다. 결국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시저가 새삼 일행을 위해 헌신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제 한 몸도 걸린 일이라 사력을 다한다.
>벽을 넘으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고오!
* 옥갑을 빼돌리려고 했던 루 펠드는 난감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성 밑으로 옥갑을 떨어뜨려 버린 것. 다행히 그리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옥상 바로 밑의 넓은 지붕 부분. 그 처마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었다. 루 펠드는 저걸 어찌해야 좋을까 고민한다. 뛰어내려야 좋을까? 그 고민은 환락가의 여왕 스튜시가 해결해준다. 그녀가 불쑥 튀어나오자 당황한 루 펠드가 중심을 잃고 난간 너머로 떨어진다. 그도 마침 지붕 부분으로, 딱 옥갑 앞에 떨어진다. 루 펠드가 잘 됐다치고 옥갑을 열어보려 하는데, 어디선가 저격이 날아온다. 탄환없는 총, "지건"이다.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스튜시. 그녀가 범인이다. 환락가의 여왕은 표면 상의 얼굴. 진짜 정체는 세계정부 첩보기관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날으는 지건"이란 기술로 루 펠드를 조용히 처리했다. 그녀의 목적, 아니 세계정부의 목적도 옥갑이었다. 그녀는 옥갑을 빼돌리고 그 죄를 루펠드에게 뒤집어 씌울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 떨어진 모퉁이 뒤를 향해 말했다. 과연 거기엔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간즈가 숨어 있었다. 그 또한 루 펠드가 옥갑을 열려는 걸 보고 특종을 노려 조용히 따라붙었던 참이다. 그는 들킨 김에 스튜시의 요구대로 해주는 대신 옥갑의 내용물을 함께 보자고 요구했다. 스튜시는 만족스러운 거래인 듯 "역시나 정보조작가"라고 칭찬한다. 모건즈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소드립을 친다.
* 빅맘과 전면전은 계획에 없던 일. 그러나 레이쥬가 당할 것 같자 상디와 루피가 앞뒤 없이 뛰쳐나갔다. 그걸로 레이쥬를 구했으니 다시 퇴각 대열에 합류해야 할 일. 그러나 깔끔하게 돌아선 상디와 달리 루피는 돌아가려 하질 않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다. 빅맘의 도발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인섬 때와 죄수도서관 때의 일을 운운하며 "너를 날려주마! 마지막에 이기는 건 우리다!"고 떠든 주제에 도망치는 거냐며 "겁쟁이"라고 조롱했다. 상디가 저런 뻔한 도발에 응하지 말라고 타이름 반, 꾸짖음 반으로 설득했지만 루피는 성미를 누르지 못하고 상디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한 방만!"이라 약속하고 빅맘에게 달려든다.
루피가 기어4로 주먹을 날리자 빅맘도 팔에 무장색 패기를 둘러 맞부딪힌다. 패기와 패기의 격돌. 그 여파로 주위를 번잡스럽게 하던 샬롯가의 조무라기들이 쓸려간다. 루피는 약속대로 딱 한 방만 주먹을 날린 뒤 상디에게 회수된다. 어차피 저 한 방에 기어4의 힘을 다 써버려 늘어진 상태다. 레이쥬가 이들의 호위로 따라붙는다.
>네놈 따위에게 우리 왕국의 300년의 원통한 혼을 맡긴 내 자신이 밉구나!
허나 저지의 창은 빅맘의 털끝 하나도 어쩌지 못했다. 빅맘이 창을 과자처럼 씹어먹으며 저지를 빈정거린다. 그들의 과학력은 자신이 잘 이용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 테니, 안심하고 죽으라고 말이다.
* 그렇지만 산 너머 산. 이번엔 시저 자기 자신이 앞을 막는다. 공중에서 자기 자신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저. "나 일리 없다"고 허둥대는데 확실히 그가 아니다. 일행에게 실컷 이용 당한 [[샬롯 브륄레]]. 그녀가 시저의 모습으로 변해 막으러 온 것이다. 그때 벳지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위험한 단계를 훨씬 지나 버렸다.
* 이치디가 카타쿠리에게 생포. 루피 일행은 [[샬롯 스무디]]와 [[샬롯 다이후쿠]]에게 제압됐다. 저지는 정신을 잃었고 욘디와 니디는 빅맘의 손아귀에 인형처럼 붙들려 있다. 전부 당했다. 벳지 조차도 "여기까진가"라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징베]] 등은 이렇게 된 바엔 자신들도 싸우러 나서겠다고 하지만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빅맘은 이미 승리를 확정하고 일행을 처분하려 한다.
* 그러나 오늘 빅맘은 원하는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팔자다. 그녀가 처형을 상상하며 히죽거리는 동안 루 펠드가 옥갑을 떨어뜨렸고, 그것이 바닥에 처박혔다. 박살난 옥갑은 내용물이 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스 성 한 측이 완전히 붕괴, 성이 쓰러지고 성 아랫마을이 휘말릴 정도의 대폭발이다. 이런 정황을 모르는 빅맘은 기우는 성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다.
- 유한식 . . . . 21회 일치
[include(틀:세종특별자치시장)]
||<:> 제35대 [br] 최준섭 [br] ,,,(권한대행 박영수),,, [br] ,,,(권한대행 남궁주),,, ||<:> → ||<:> 제36대~37대 [br] '''유한식'''[br] ,,,(권한대행 윤호익),,, ||<:> → ||<:> 연기군 소멸 [br],,,(세종특별자치시 출범),,,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출생지 ''' }}} ||<(> [[충청남도]] 연기군 [* 현 [[세종특별자치시]]]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가족 ''' }}} ||<(> 배우자 박재옥, 슬하 1남 1녀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소속 ''' }}} ||<(>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경력 ''' }}} ||<(> [[한국농어촌공사]] 감사[br][[새누리당]] 세종시당 위원장[br]제1대 [[세종특별자치시장]][br]제35~36대 [[연기군]]수[br]연기군청 농업기술센터 소장[br][[충청남도]]청 농촌진흥원 사회지도과장[br][[농촌진흥청]] 농촌지도관[br]농촌진흥청 기술공보담당관 ||
[[1949년]] [[6월 20일]] 생 ([age(1949-06-20)]세),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출생하였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비오이다. 농어촌 관련 공무원으로 활동하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중심당]] 소속으로 도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10월]]에 [[이기봉]] 전 [[군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되자 연기군수 재보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같은 당의 최준섭에게 공천에서 밀려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한다. 그런데 최준섭 군수 또한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되면서 다시 보궐에 선거에 국민중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선진당]]에 속하였다.
연기군지역에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이 되면서 [[2012년]] 총선과 같이 실시되는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에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통합당]] [[이춘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새누리당에 속하게 된다.
|| 2008년 || '''[[2008년 재보궐선거 #s-3.1.1|10·29 재보궐선거]] [BR]충남 연기군수 35대 (민선 4기)''' || [[자유선진당]] || '''14,444표 (51.94%)''' || '''당선(1위)''' || '''초선''' ||
|| 2010년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5회 지방 선거]] [BR]충남 연기군수 36대 (민선 5기)''' || 자유선진당 || '''19,542표 (52.96%)''' || '''당선(1위)''' || '''재선''' ||
|| 2012년 || '''[[2012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s-3.1|4·11 재보궐선거]] [BR]세종특별자치시장 1대 (민선 5기)''' || 자유선진당 || '''19,387표 (41.73%)''' || '''당선(1위)''' || '''초선'''[* 초대 세종시장^^[세종시 교육감]^^의 임기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세종시법)^^''의 부칙 제2조에 따라 2014년 6월 30일까지로 한정하고 있다.(약 2년)] ||
|| 2014년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6회 지방 선거]] [BR]세종특별자치시장 2대 (민선 6기) || [[새누리당]] || 26,451표 (42.21%) || 낙선(2위)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1949년 출생]][[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은혼/624화 . . . . 21회 일치
* 소타츠는 동족을 방패로 써가며 지로쵸를 압박한다. 신라 부대는 자해에 가까운 전술로 밀려드는 신라 부대에 휘말려 깔리고 만다.
>너희 동료는 길바닥에서 낮잠자고 있어.
* 지로쵸가 한 순간 쓰러지자 그 위를 흙더미 쌓듯 달려들어 누른다. 소타츠는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전술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지로쵸와 그 위를 누르고 있는 아군까지 한꺼번에 꿰뚫는다. 신라의 집단 전술이란 바로 이것. 집단의 승리를 위해서 개개인이 거리낌없이 희생하고, 희생시킬 수 있는 풍조다. 소타츠는 완전히 승리를 자신한다.
>혼자가 아닌 건 마찬가지다.
* 지휘관이 쓰러지자 신라 부대는 원통해하면서도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승리의 일각을 담당한 카츠오는 "우주제일의 야쿠자" 지로쵸의 힘을 잘 보았냐고 과시하며 자신도 은근슬쩍 "우주 제일의 7 대 3 가르마"라고 포장하지만 가구라가 가차없이 태클을 건다. 가구라는 이상한 대항심을 발휘해 소타츠를 쓰러뜨린게 자기네 대장이니 해결사는 곧 "우주제일 야쿠자 해결사"라고 주장한다. 신파치는 언제 야쿠자가 됐냐고 태클에 태클을 거는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피라코는 애초에 도로미즈파의 부두목은 카츠오가 아니라 자신이라며 자리를 꿰찬다. 은근슬쩍 지로쵸가 후계는 자기로 정해놨다고 주장하는데.
* 무적이라고 자신하던 카츠오를 가볍게 쓰러뜨린 지로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질질 늘어질게 뻔한 회상을 단칼에 쳐낸 지로쵸. 회상 속에서 회상을 잘라내는 신기술을 보여준다. 카츠오는 지난 주에 두목은 잔뜩 회상해 놓고 너무하다고 투덜댄다. 아무튼 그가 그날부터 지로쵸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그의 부재기간 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것이 사실인데 부두목 자리를 양보하라는 거냐고 반발한다. 그러자 지로쵸도 "애초에 그런 약속 안 했다"고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피라코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언젠가 지로쵸가 "너라면 부두목 노릇도 충분히 한다"고 한 말을 끄집어 내서 물고 늘어진다. 지로쵸는 딸을 야쿠자 시키는 아버지가 어딨냐며 만약에 그렇다는 말이었다고 발뺌한다.
이렇게 해서 흙탕쥐파는 피라링파로, 두목은 피라링이 하고 지로춍이 회장, 그리고 카츠오가 평생 부두목 자리를 맡게 되면서 모든 분란이 끝난다.
* 이 개판을 지켜보던 긴토키는 상식인이나 된 것처럼 "해방군을 몰아내도 꼬라지가 이래서야 마을은 평화롭지 못하겠다"고 입바른 소릴한다. 지로쵸는 자신이 죽으면 이 마을이 얌전해진다는 말이냐며 비웃는다.
- 은혼/642화 . . . . 21회 일치
* 반사이는 마침내 쓰러지나 놀랍게도 자신을 마중온 [[오카다 니조]]의 환영을 보고 일어선다.
* 남은 시간은 불과 1분. 신스케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헨페이타와 반사이, 둘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으며 자폭을 감행한다.
* 무수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은 순조롭게 계속되어 어느덧 충전율 85%. 완충까지 5분 남짓이 남았다. [[엔죠]] 황자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날 거라 확신했다. 그들의 전쟁도 천도중의 시대도, 그리고 지구도. 그러나 마지막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누군가에게 해킹 당했다. 이제 엔죠 황자 측에서 충전을 조종할 수가 없다.
그런 문제를 몰랐다면 이렇게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헨페이타는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했다.
* 지금 헨페이타 일행의 몸을 실은 소형정은 해방군 함대의 집중 공격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메노토리후네 내부에서 분전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랬다. 설사 해방군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든 쓰러져 죽을 지 모르는 몸이었다. 이제 오른팔 밖에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잘도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불굴의 자세는 [[다카스기 신스케]] 때문이다. 그가 아직 아무 것도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믿듯 그도 동료들의 임무완수와 생환을 믿으며 중추 시스템을 향해 달렸다.
>그 죽음을 넘어서 살고자 하는 각오
* 히노카구츠치 발사까지 앞으로 3분. 엔죠 황자는 단신으로 일대의 병력을 묶어두고 있는 반사이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을 태세라는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서툰 넘겨짚기였다. 반사이의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중추 시스템을 향해 한걸음 씩 옮기고 있었고 그때마다 그를 막으려는 병력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이제 벽 하나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적은 셋. 그의 의지가 이겼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 남은 셋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고지에 도달했다.
살인귀 [[오카다 니조]]. 홍앵을 다뤘던, 신스케의 빛에 이끌렸던 남자.
니조가 기억하는 귀병대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반사이의 안부인삿말에는 관심도 없이 떨어진 그의 샤미센을 주웠다. 그것을 건네며, 자신이 나타난 용건을 밝혔다.
* 더 많은 이들이 뒤따라 오고 있다. 반사이는 편히 누워있지도 못하게 하는 박정한 말을 그대로 따랐다. 시체가 되어서도 짓밟혀서도 거기에 있다, 그런 얘기다. 적들은 다시금 일어서는 반사이에게 공포를 느꼈다. 아직도 부족한가? 혼자서 뭘 더 하겠다는 건가?
>혼자가 아니다.
>저, 저 남자... 이미...
반사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시체에 현을 걸었다. 자기 자신의 시체에까지. 그는 마치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연출해서 적들의 이목을 끌어왔던 것이다. 해방군은 감탄과 함께 대체 이 남자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무서운 상황이 떠올랐다. 중추 시스템을 수비하던 병력 대부분이 이쪽에 몰려있었다. 반사이가 노린 것은 이것. 병력이 빠져서 수비가 약해진 틈에 동료들을 투입 시킬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 여기까지는 똑똑한 병사들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 반사이는 거기에 한 가지 고안을 더했다. 그가 죽어서도 놓지 않았던 샤미센이 떨어졌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반사이가 계산한 대로였다. 샤미센 뒤에 숨겨놨던, 그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수류탄. 샤미센이 떨어지면서 그 기폭 장치가 작동했다.
헨페이타도 마지막 기폭장치를 작동시켰다. 자신들의 목숨이라는 폭탄을 점화했다. 신스케의 맹우였던 두 남자는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도 한결 같이 닮았다.
- 이병규 (1983년) . . . . 21회 일치
|소속 구단 = 롯데 자이언츠
|수비 위치 = [[1루수]], [[우익수]], [[좌익수]], [[중견수]], [[지명타자]]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6년]] [[7월 7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롯데 자이언츠]] (2018년 ~ 현재)
'''이병규'''(李柄奎<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759 |날짜=2009-03-10 }}</ref>, [[1983년]] [[10월 9일]] ~ )는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2009년]] [[8월 8일]]에 [[투수]] [[서승화]]가 2군에서 일으킨 구타 사건의 피해자로 널리 알려졌고,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서승화]]로 예고됐던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선발 [[투수]]가 [[박지철]]로 교체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39&oid=032&aid=0002025836 이대호 연타석포 롯데, 5연패 탈출 4위로] - 경향신문</ref>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11년]]에는 재활군에 머무르다가 후반기에 복귀하여 33경기에 출전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95995 LG는 왜 최희섭에 관심이 없을까?] - OSEN</ref>
[[2014년]] [[LG 트윈스]]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뀌면서 세대 교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혔는데 그가 팀이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116경기에 출전하여 360타수 110안타, 16홈런, 87타점, 3할대 타율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팀의 4번 타자를 주로 맡았다. 특유의 중장거리포와 깔끔한 스윙을 갖고 있어서 타격에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2016년]]에는 작년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연봉이 1억 5,600만원으로 감소했지만 2016년에도 당시 감독이었던 [[양상문]]의 믿음으로 [[LG 트윈스]]의 4번 타자 자리를 맡았다.<ref>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291199 ‘이병규 끝내기타’ LG, 한화에 재역전승...개막 2연승 질주 ] - OSEN</ref>
==[[롯데 자이언츠]] 시절==
* '16' - [[롯데 자이언츠]] (2018년 ~ 현재)
[[LG 트윈스]] 시절 [[이병규 (1974년)|이병규]]와 구별짓기 위해 '작은'이라는 뜻의 '작뱅',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LG 트윈스]] 감독이었을 때 '작뱅'이라는 별명이 위축된다고 '빅뱅'이라고 불렸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롯뱅'이라고 불린다.
* {{KBO 타자|76100|이병규}}
* [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AID=187368 작은 이병규, 2군 4할 타자 LG 이병규의 도전] 《스포츠 2.0》, 2008년 9월 5일
{{롯데 자이언츠 명단}}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21회 일치
* 혼자 힘으로 대적이 어렵자 뤼드셀은 [[사리엘]]과 [[타르미엘]]을 가세시키나, 이들은 몬스피드에게 순식간에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는다.
* 데리엘에게 공격 받고 쓰러졌던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구조된다.
* 다시 정신을 차린 엘리자베스는 뤼드셀을 물러나게 하고 직접 인듀라화한 십계와 싸우려 한다.
* [[갈란]]은 [[프라우드린]]을 데리고 급하게 도망친다. 인듀라화한 마신들은 이성을 잃어 자신들까지 휩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라우드린은 인듀라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 데리엘과 [[몬스피드]]가 왜 저런 모습이 됐는지 영문을 몰라한다. 갈란은 그들을 "파괴의 화신"이라 칭한다.
본래 마계에서만 존재하며 마신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전설 상의 존재다. 그 실체는 일곱 개 이상의 심장을 가진 마신이 자신의 여섯 심장을 바치고 계약을 맺어 본성을 드러낸 형태다. 전투력이 최소 5만이 되지 않으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자폭과도 같은 기술이다. 갈란은 십계 두 명이 인듀라화를 결심하게 만들 만큼 뤼드셀이 강한 거라며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말한다.
* 뤼드셀은 갑자기 변한 상황에 당혹하지만 다시금 날아오른다. 그는 데리엘을 향해 강력한 에너지를 조사한다. 그것이 데리엘을 직격하지만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다.
* 뤼드셀은 물론이고 재생을 마치고 상황을 관망하던 [[사리엘]]과 [[타르미엘]]까지 모두 경악한다. 뤼드셀은 정말로 다급해졌는지 호통을 쳐서 사리엘과 타르미엘을 부른다. 자신을 도우라고 하는데, 두 천사는 머뭇거리면서도 그 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 전투의 여파는 접근 중인 [[멜리오다스]], [[드롤]]의 몸을 빌린 [[디안느]], [[그로키시니아]]의 몸을 빌린 [[킹(일곱개의 대죄)|할리퀸]]도 느낄 수 있다. 할리퀸은 숲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안느는 "십계보다 끔찍한 기척"을 느끼며 좋지 않은 예감을 받는다. 그러던 중 멜리오다스는 근처에 추락해서 아크로 보호되고 있던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를 발견한다.
* 엘리자베스는 평범한 아크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지만 드롤의 몸으로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배타적인 에너지로 뒤덮여 있다. 마신족인 멜리오다스는 말할 것도 없이 치명적이지만, 엘리자베스를 구하기 위해 상처를 무릎쓰며 그 안으로 들어가 엘리자베스를 안아올린다.
그러는 동안 정신을 차린 엘리자베스. 멜리오다스는 그녀를 진정시키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 것도 막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멜리오다스만 상처입게 둘 수 없다며 혼자 전장을 향해 날아간다.
* 엘리자베스는 인듀라화한 데리엘 앞을 막아서며 자신이 막겠다고 선언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21회 일치
* 이러한 추세에 [[츠쿠시 미오]]는 격분하지만 그 외의 일행들은 지금은 나서봤자 상황만 악화될 뿐임을 자각하고 있다.
* 작전은 세뇌된 이들을 관리하는 블랙 팬텀의 감응 네트워크 포털을 탈취, 붕괴 것. 그러자면 포털의 3분의 1 이상을 탈취해야 하나 아직 포털의 위치조차 모른다.
* 코메리카 합중국은 반에스퍼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는 "노멀 우선 주의"를 제창하며 초능력자에 대한 규제 관리를 강화하고 에스퍼 시대 이전의 질서로 되돌리려 한다.
문제는 이런 정세 속에선 에스퍼의 능력을 활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에스퍼 개개인의 손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리섬은 시대상으로 보면 에스퍼 능력을 제약하고 격리시킬 수록 사회의 능률은 떨어진다. 그는 반대로 이런 상황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려는 자들은 없는가 자문한다. 그건 에스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해 에스퍼 자원을 독점하려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 판도라의 [[츠쿠시 미오]],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도 함께 시청 중. 미오는 이 모든 상황이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의도대로가 아니냐고 분개한다. 카오루와 시호는 [[미나모토 코이치]]와 [[효부 쿄스케]]가 애먹은 상대인 마당에 자신들이 반격하려 해봐야 상황만 악화될 거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그는 카오루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이 지금 형태가 된 것까지 포함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카오루는 그가 소년 "쿄스케"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현재 효부는 여전히 혼수상태지만 파티의 도움으로 입자를 조종해 작은 분신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입자는 소맥분. 파티가 상당히 특훈을 시켜줘서 선내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돌아다닐 수 있다. 소년의 모습인 건 체형이 작은 쪽이 컨트롤이 편해서. 나름대로 잘 터득했다는 자부심인지 자신을 다빈치 같은 천재라도 창피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티는 어쨌든 효부의 쇼타 모드를 볼 수 있어서 대만족 상태.
효부는 현재 길리엄이 득의양양해서 아무런 불만도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음 효부와 충돌할 때까지 [[츠보미 후지코]]나 [[마기 시로]]를 온존해놓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쪽이 헛점을 드러낸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장을 내려 할 것이다. 효부는 이미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하려다, 미나모토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을 바꾼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 그때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가 Tv를 가리킨다.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가 연행되는 모습이 비춘다. 둘은 "전 바벨 직원"으로 테러 미수 용의자라고 소개된다. 이들은 ECM으로 방어 중인 에스퍼 형무소에 수용된다고 나오는데, 마치 구해주러 오라는 함정과도 같은 뉴스다. 미오가 흥분해서 빨리 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카오루와 효부가 함정이라고 진정시킨다. 그러던 중 미오는 카오루야 말로 흥분을 참고 있는 걸 발견한다.
* 효부는 지금부터 작전 회의에 참가하자며 칠드런 일행을 데리고 도서실로 향한다. 그곳에선 [[쿠모이 유리]]의 정보를 기반으로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우츠미 세이시로]]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작전이 정해지면 곧 판도라의 젊은 에스퍼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 우츠미는 유리의 능력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고 칠드런 일행에게 말한다. 유리는 이미 오염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돼서 정면 승부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반대로 정신오염 네트워크를 이용한 반격이 가능하다. 정신오염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 감응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포탈을 몇 군데 점거하는 식으로 전체 정신오염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자면 포탈의 절반, 적어도 3분의 1을 점거할 필요가 있다. 그 숫자는 약 10개 안팍. 문제는 아직 그 위치가 불분명해 정보를 더 모아야 한다. 카오루는 그 말을 기대 반 아쉬움 반으로 여기며 마음 속에서 미나모토에게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 칠드런 일행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미오와 모모타로는 엄청난 사고를 치려고 하는 중이다. 둘은 독단으로 카타스트로피 호를 이탈, 미나모토 일행이 갇혀 있는 형무소로 향하고 있다. 모모타로는 분명 야단 맞을 거라고 걱정하지만 미오는 "둘이 무사한지 확인만 한다"는 논리로 강행한다. 미나모토는 여왕의 소중한 사람인 동시에 자신도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에.
- 조안(배우) . . . . 21회 일치
||<#996699> {{{#ffffff '''성좌/지지'''}}} ||<(> [[전갈자리]]/[[개띠]] ||
이후 아래와 같은 다수의 영화, 드라마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연기생활 2015년 기준으로 15년이 되었지만 딱히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아직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작품 내외적으로 상당한 호평을 받은 [[특수사건전담반 TEN]] 정도.
|| [[2015년]] || 늙은 자전거 || 미자 || ||
|| [[킹콩을 들다]] || 박영자 || ||
||<|3> [[2008년]]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영화)|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진혁의 여자친구1 || 우정출연 ||
|| 어린왕자 || 김선옥 || ||
||<|2> [[2010년]] || [[SBS]] || [[세자매#s-2|세 자매]] || 김은주 || ||
|| [[KBS2]] || [[드라마시티]] - 여자 교도소 이야기 || || ||
|| [[2014년]] [[8월 11일]]~[[2014년]] [[9월 15일]] || [[MBC]] || 여행남녀 || 출연자 || ||
|| [[2012년]] [[3월 2일]] || [[MBC every1]] || 러브 포 에브리원 더 플랜 || 봉사자 || ||
배우 [[박용우]], [[오만석]]과의 스캔들로 더 유명한 여배우이다. 예전에 11살 연상인 연기자 박용우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박용우의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게 되었다. 초반엔 열애설 이후 부인하더니 [[http://v.media.daum.net/v/20100717010704467|동반 일본여행]]이 들키자 결국 [[http://v.media.daum.net/v/20100717192305019|인정했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런데 오만석과도 결국 헤어졌다.[[http://v.media.daum.net/v/20120103110514616|기사]] --[[김건모]]가 부릅니다. [[잘못된 만남]]--
* 자신의 평소 글과 그림 솜씨를 이용해 첫 번째 책 <단 한 마디>를 내놨고, 앞으로도 어른들도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을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펴내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 [[2010년]] || 제46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 여자신인연기상 || [[킹콩을 들다]] ||
||<|2> [[2009년]] || [[KBS 연기대상]] || 일일극부문 여자우수연기상 || [[다함께 차차차(드라마)|다함께 차차차]] ||
- 채수빈 . . . . 21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웹 드라마<ref>[[MBC]] 제작, 중국 유라이크 투자한 한중합작 웹
| [[나의 독재자]]
| 〈여자친구〉
| [[기아자동차]]
| 자동차
| 여자 신인상
|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인기상
| 중편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주워 온 고양이 남자
| 월화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여자 인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월화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
- 최성국 (축구선수) . . . . 21회 일치
| 로마자 표기 = Choi Sung-Kuk
{{메달 스포츠|남자 [[축구]]}}
[[2008년]] [[12월 22일]]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에 입대하였고,<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최원권, 상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0}} }}</ref> 등번호 10번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광주 상무 내년시즌 배번 확정... 최성국 10번, 김용대 1번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1190355§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1}} }}</ref> 그는 제대 후 [[성남 일화 천마]]로 복귀하여 [[K리그 2010|2010 시즌]] 4경기를 소화하였다.
[[2011년]] [[1월 10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최성국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수원, 공격수 최성국 영입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11016004047§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10}} }}</ref> 수원에 입단한 후, [[2011년]] [[3월 5일]] [[FC 서울|서울]]과의 [[K리그 2011|2011 시즌]]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 |제목=‘게인리히 데뷔골’ 수원, K리그 슈퍼매치 완승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0614522512§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이민선 |날짜=2011년 3월 6일 }}</ref> [[2011년]] [[4월 15일]] [[강원 FC|강원]]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마토 4호골’ 수원, 2-0 완승…강원 시즌 6연패 수렁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41520291628§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홍재민 |날짜=2011년 4월 15일 }}</ref>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백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상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영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영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영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2005년 1월]] 피자나라 치킨공주 TV CF를 찍어 축구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피자나라 치킨공주'로 CF모델 데뷔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37455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1-24}} }}</ref> [[2005년]] 12월 곽선혜와 결혼하여 [[2006년]] 12월 첫 아들이 태어났다.<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아빠 됐다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61211121926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6-12-11}} }}</ref>
{{둘러보기 상자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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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희서 . . . . 21회 일치
2017년 영화 《[[박열 (영화)|박열]]》에서 독립운동가 [[박열]]([[이제훈]])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하여,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서 9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최희서, 기모노에 가려졌던 S라인..몸매 이렇게 좋았나?|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324492|출판사 = 헤럴드경제 |저자 = |날짜 = 2017년 12월 6일|확인날짜 = 2017년 12월 8일}}</ref>
* 《[[옥자]]》 (2017년) - 통역사 역
* 《의자는 잘못없다》 (2014년) - 문선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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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name="yonhapnews_2017-10-25_54th_grand-bell-awards">{{뉴스 인용 | 저자= 김희선 | 위치= 서울 | 뉴스= 연합뉴스 | 제목=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에 '택시운전사'…'박열' 5관왕 | url=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5/0200000000AKR20171025185700005.HTML | 날짜= 2017-10-25 | 확인날짜= 2017-10-25 | 보존url= http://archive.is/Bv9w9 | 보존날짜= 2017-10-25 | 깨진링크=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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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라츠라 와라지 . . . . 21회 일치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할 때 영주와 장남이 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차남 '쿠마다 테루타카'가 가문을 이었고, 이에야스는 화친 후 쿠마다를 묶어놓기 위해 히데요시를 움직여 테루타카를 억지로 이혼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여식과 결혼시켰다. 이 때의 원한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 때문인지 후임 영주 쿠마다 타카토시(테루타카와 전처의 소생)가 석연찮게 급사하고 그 아들 미츠타카는 2차례에 걸쳐 전봉당해 오카야마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 쿠마다 하루타카 : 오카야마 번 5대 번주. 대대로 검약을 기풍으로 삼던 쿠마다 가에서 유독 풍류와 호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도를 넘는 사치는 하지 않는다. 막부의 검약정책을 지나치다고 여겨 우회적으로 비꼬곤 했기 때문에[* 사치를 막기 위해 은 제품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오자 일부러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 직후 금 제품 또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도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막부의 실력자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와 사이가 나쁘다. 여러가지 일화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속이 깊고 대범해서, 이 때문에 행렬 중간중간마다 과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려고 줄을 잇곤 한다. ~~전국시대 시절이었다면 천하통일은 무리라도 관서 제패는 해냈을 것 같은 포스다~~
* 쿠마다 이즈미 : 수행 가로. 하루타카의 가신으로 쿠마다 종가인 '아마키 쿠마다 가'(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가문)의 자손. 기본적으로 학식이 깊고 영민하지만 17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불과 4개월 전에 가로가 되어 미숙한 면이 있으며 쿠마다 종가의 긍지와 체면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가문의 기풍 때문에 매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꽃꽂이가 취미.
* 야마와키 사부로자에몬 : 오오고쇼가시라(大小姓頭. 번주의 시중을 드는 고쇼들의 우두머리)로 하루타카의 최측근 중 한 명. 점잖은 성품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인망을 사고 있는 인물로 "하루타카의 몸과 같다"고 할 정도로 그의 속내를 잘 알고 있어서 기민하게 대소사를 처리한다.
* 이기 나가토 : 수석 가로. 원래는 제2가로였으나 새로 가로가 된 이즈미가 수석 가로 자리에 앉는 것은 맞지 않다고 여긴 하루타카가 서로 위치를 바꾸게 하였다. 가로 경력 17년의 베테랑으로 영민하고 빈틈이 없어 영지의 일을 실수없이 이끌어 왔으며 다도에도 능하다. 이즈미의 성장을 위해 매우 신경을 써 주고 있으나, 이즈미는 수석 가로 자리를 '빼앗겼다'고 여겨 그를 시기한다.
* 히키 모토하치로 : 제4가로. 나이는 14세로 가로 중 가장 어리지만 가로 경력은 2년이나 되어 이즈미보다 경험이 많다. 하루타카가 원래는 그를 수행 가로로 삼으려 했다가 약속을 깨자 내심 이즈미에게 샘을 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하루타카를 진심으로 경애하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은 인물.
* 쿠마다 하야토 : 제5가로. 슬하에 자식이 많아서, 자식이 없는 나가토가 그의 가문에서 양자를 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 가로 경력 27년.
* 쿠마다 치카라 : 전 수석 가로로 이즈미에게 가독을 넘기고 은퇴했다. 쿠마다 종가의 긍지나 체면을 강하게 의식해서 이즈미에게도 항상 그것을 주지시키는 완고한 인물[* 쿠마다 종가의 사람들은 역대로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고 하는데, 일례로 초대 가로의 경우에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한 가신에게 원한을 사 강을 건너던 중 살해당했다고 한다. (초대 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야스와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자손으로 추정되는데, 숙부인 테루타카에게 가독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모난 성격이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로, 이 때문에 나가토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 마츠다이라 사다노부 : 막부의 수석 로쥬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통 관직명인 '엣츄노카미'로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 전 시대인 '타누마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을 백지화하고 검약을 강요하던 '칸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굽힘없는 완고한 성격 때문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냈으며 급기야는 쇼군에게도 노여움을 샀다. 자신의 정책에 우회적으로 비판을 던져오는 하루타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 능력은 인정하고 있다.
* '호노이케' 젠자에몬 : 오사카 상인으로 환전상이자 오카야마 번의 전속 상인. '호노이케 상단'의 우두머리라서 평소에는 호노이케라고 불리고 있다. 번의 재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점잖은 성품을 지녔다. 수완좋은 상인으로 주변의 다른 상인들도 앞다투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있으며, 칸세이 개혁의 한계를 궤뚫어보고 일시적인 정책에 그칠 것이라 내다보며 느긋하게 관망한다. 하루타카에 대해서 돈의 흐름을 알고 있다고 하며 높게 보고 있다.
* 나카야마 : 조정의 의주(議奏. 칙명 출납을 담당하는 직책)로, 당시 코카쿠 덴노(전대 덴노의 양자가 되어 즉위했다)의 부친에게 상황(上皇)의 존호를 내리도록 막부에 강하게 요구하여 이를 반대하는 사다노부와 대립하고 있다.
* 백락 : 호노이케가 하루타카에게 바친 명마로 하루타카가 이름을 지어줬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자주 소동을 일으키곤 하지만 기품이 있고 영민하다. 하루타카와 큐사쿠의 보살핌을 받은 뒤부터는 큰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된다.
* 협본진 찬모 : 고오리야마 본진(本陳. 에도 시대의 숙박 시설 중 다이묘와 그 수행원들이 이용하던 숙사의 통칭)의 찬모(반찬을 비롯한 음식을 만드는 여자). 누명을 쓰고 탈번(脫藩. 번을 이탈하여 낭인이 되는 것. 당시 무단으로 탈번하는 것은 중죄였다)한 관리와 정을 통한 사이로,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관리가 숙사를 수배하러 온 선발대에게 들켜 처형당하자 쿠마다 가에 원망을 품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루타카가 그녀 뱃속의 자식을 자신의 사생아인 것으로 꾸미고 이를 인정하는 듯한 연기를 하여 협본진에서 계속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타카의 배려에는 감사하게 된다.
- 콩고(소설) . . . . 21회 일치
배경은 1970년대, 장래 레이저 산업 분야나 반도체 분야에서 유망한 용도가 전망되는 블루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서, 미국의 지구자원개발연구소는 콩고의 정글로 탐사대의 파견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기습당해 전멸된다. 단서라곤 연결되어 있던 영상 통신에 잠깐 잡힌 이상한 고릴라의 모습 뿐.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유럽 합작 기업의 탐사대가 추격 중이라 바짝 긴장한 연구소는 급히 과학자 카렌 로스를 팀장으로 삼아 소규모 탐사대를 재차 투입한다. [* 이렇게 급하게 탐사대를 다시 꾸린 건 경쟁 기업의 추격도 있었지만 해당 지역이 정부군과 식인종 키가니족이 내전 중이라 어렵게 따낸 탐사 허가를 또다시 따낼 틈이 없어 일단 탐사대의 전멸은 비밀로 한채 새로운 탐사대를 투입하는 걸 들키기 전에 얼른 투입시키기 위해 서둘렀다.] 영상에 집힌 고릴라의 이미지 때문에 영장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 에이미와 그녀를 돌보는 동물학자 피터 엘리어트, 아프리카의 백인 용병 찰스 먼로 등이 이끄는 탐험대가 자이르 정글 깊숙한 곳으로 잃어버린 전설의 다이아몬드 광산도시 진즈(Zinj)를 찾는 모험이 중심 소재이다. 마치 전형적인 모험 소설 같지만, 탐험의 주체가 현대적인 광산 기업이거나, 위성으로 연락,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거나 NASA에서 개발된 탐험 장비를 사용하는 등 상당히 현대적인 가제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태였다.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반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그러나, 카렌 로스가 지질 조사를 위하여 화약을 설치하고 폭파시키도록 지시한 탓에 화산 폭발이 일어나 버린다. 탐험대는 필사적으로 진즈에서 도망치지만 진즈와 회색 고릴라들은 용암에 묻혀 사라져 버린다. 생존자들은 겨우 목숨만 건진 채로 일단 충분한 물자가 있고 거처로도 쓸 수 있는 합작사업의 추락한 수송기로 가지만 하필 식인종 무리와 마주쳐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고릴라와 싸울 때와 달리 수송기 동체라는 방호벽에 화물칸에 쌓인 무기 덕으로 식인종을 닥치는대로 쓸어버리고(...) 주술사까지 죽여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다음 공격이 있기 전 준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물자를 뒤지던 일행은 합작기업이 준비했던 [[열기구]]를 타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영장류 연구가. 동물학자. 에이미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에이미가 그린 꿈 속의 도시와, 아랍인들의 그림으로 그려진 진즈가 기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에이미를 고향에 데려가보는 것을 목적으로 탐험에 나서게 된다. 진즈에서 회색 고릴라들과 만나게 되자 본래 목적을 잃고 회색 고릴라를 고릴라 엘리어트네스라고 이름 붙이고 신종임을 입증하는데 열중하기도 한다.
탐험대 대장. 여성 박사. 전자공학 전문가. 그러나 주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는 '''거의 악질 트롤러'''(…). 비중도 활약도(…).--에이미와 지나치게 비교된다.--
아프리카 출신 백인 [[용병]]. 일명 캡틴 먼로. 탐험의 무력을 책임진다. 의외로 에이미와 사이가 좋은데 고릴라 취급 안하고 평범한 10대 여자애들처럼 대하기 때문. 인정도 많아서 피그미 마을에 낙오된 백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정이 촉박한 와중에도 도와주려 나섰다. 이때 카렌이 시간 없다며 반대하는데 극중 먼로가 유일하게 화낼 때가 이때였다. 이후 그 백인이 먼저 투입됐던 탐사대원이라는 걸 알고 카렌도 군말 없어디긴 하지만.
먼로의 오른팔격인 현지인 청년. 꽤 유머러스하고 성격에 붙임성도 좋다. 다른 대원들은 마구 죽어나가는 와중에 본인은 끝까지 살아남는데 성공. 다만 이런 식의 탐사는 해본 적이 없는지 피터와 카렌을 보고 학자로 위장한 밀수업자로 생각했다. 본인은 먼로가 무기밀매 아니면 이렇게 나설 일이 없다고 믿는 듯.
정글에 묻혀 있는 고대도시 진즈의 잔해에 거주하는 회색 [[고릴라]]. 평범한 고릴라가 아닌 신종으로서, 현재는 사라진 진즈의 주민들에게 경비병으로 훈련되어 있다. 언듯 보기에는 평범한 고릴라지만, 털 색이 회색이며 평범한 고릴라와는 해부학적 특징이 다르고,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지적인 생물이다. 다만 얌전한 초식동물인 고릴라와는 달리 흉폭성도 높아서 위험한 생물이다.
엘리어트는 이들을 자신의 이름을 딴 신종으로 발표하려고 조사를 했으나, 작품 말미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고대도시 진즈가 용암에 묻히면서 모두 전멸하고 말았고 이들을 조사한 엘리어트의 연구 결과도 진즈와 함께 파묻혔다.
- 킹덤/531화 . . . . 21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은 그 자신이 "필살의 별동대"로 [[마광]]의 배후로 접근, 그의 목을 치는 파란을 일으킨다.
* 이목은 주해평원의 싸움은 양익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냐에 달렸다 보고 자신은 별동대를 이끌고 "틈"을 엿보다 단숨에 마광을 요격한 것이었다.
* [[마광]]이 [[이목(킹덤)|이목]]의 얼굴을 알아차리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왜 여기 있는가? 한참 [[기수(킹덤)|기수]]를 몰아붙이고 있던 자군의 후방에서, 자신의 바로 후방에서 어떻게 적의 총지휘관이 나타날 수 있는가? 그런 의문을 해결할 겨를도 없이 칼날이 목에 박혔다. 마광의 부관은 그보다도 한 발 먼저 이목의 등장을 눈치챘다. 그러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설상가상 마광의 창은 자신의 손에 있었다. 이목이 일을 끝마치고 나서야 그가 목소리를 냈지만 닿을 일은 없었다. [[부저(킹덤)|부저]]가 뒤에서 부관을 처리했다.
* 목을 찔린 마광이 말 위에서 거꾸러졌다. 일이 무사히 끝나자 [[카이네]]가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달아날 일만 남았다. 마광군은 최후미가 겨우 이변을 눈치채기 시작했으며 명확히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도 못했다. 탈출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마광에게 이변이 일어난다면 이목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마광이 쓰러지지 않았다. 초인적인 의지였다. 목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본 카이네의 안도감은 금방 위기감으로 바뀌었다.
* 그러나 정해진 승부는 뒤바뀌지 않았다. 마광의 혼신의 칼날보다도 빠르게, 이목이 내리친 칼이 마광의 목과 팔을 단칼에 잘랐다. 기수군을 몰아가는데 골몰하던 진군은 저희 대장의 목이 굴러디는 걸 보지 못했다. 반면 언덕에 있던 기수와 그 부관들, 조군 병사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 믿기지 않기로는 목이 떨어진 당사자 못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관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기수를 돌아보았다. 그도 눈 앞의 광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리라 알고 있었는데도.
* 기수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작전을 통보받았다. 조군 총대장이 별동대를 직전 운용하겠다고 했을 땐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그 자리에 있던 기수나 [[마정]]은 물론 이목의 측근 [[금모]]까지. 카이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직한 마정도 "총대장이 갑자기 본진에서 없어지는건 좀 그렇다"며 난색을 표했다. 금모가 맞장구치며 개전 첫날엔 이목이 반드시 본진을 지켜야하고, 하물며 그 왕전이 상대인 이상 더욱 그렇다 강변했다. 그러면서 굳이 별동대를 쓴다면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누가봐도 이치에 맞는 반론이었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이었다.
[[마남자]]는 금모가 성을 낼 정도로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하지만 그는 금모에게 "그런 별동대가 아니다"며 면박을 주었다.
>군을 이끄는 적장의 목을 일격에 벨 "자객" 같은 별동대야.
마남자는 그것을 "필살"이라 표현했다. 어느 시점부터 흉노는 이목이란 이름을 듣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더라고, 그렇게 증언했다. 이렇듯 마남자는 절대적인 자신을 보였지만 카이네는 여전히 반대였다. 몇 번을 해봤든 큰 위험을 떠안는 것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고 있던 이목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주해평원의 싸움은 "양익의 싸움"이라 정의하고 좌우에서 싸우는 동안 "틈"이 생기면 이목 자신이 직접 개입하리라 알아두면 된다고 단언했다. 이상 그가 하달한 작전은 거의 무계획으로 들렸다. 상세한 세부내용을 결정한 것 없이 자신은 독립유군을 이끌며 "틈"이 열리길 기다린다. 금모가 굳이 첫날부터 그래야 하는 거냐고 묻자 이목은 그렇다고 단언했다. 왕전은 분명 첫날부터 좌우 어느 쪽이든 수작을 부릴 생각일게 분명하니까.
마남자의 말이 맞았다. 이목은 안심하지 못하는 카이네의 의중을 정확히 읽었다. 그녀에게 상대가 "그런 수"를 쓴다는걸 모르는 이상 반드시 성공할 거라 장담했다.
* 마정은 이 기회를 몰아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그도 이목이 마광을 쳤다는 소식에 반신반의할 뿐이었다. 그러나 진군이 동요하고 기수가 공식적으로 선언을 하고 나자 믿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목이 왕전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뭐였나 싶었다.
>이자식...
- 페어리 테일/511화 . . . . 21회 일치
* 라케이드는 "악식의 혼"이란 마법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공복감에 사무쳐 서로 잡아먹게 만든다.
* 라케이드는 어째서 그가 페어리 테일 때문에 목숨을 거는지 묻는데 스팅은 그들이 자신의 길드를 바꿔놨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 미네르바의 테리터리로 로그 체니가 유키노 아그리아와 자리를 바꾸며 나타난다.
* 로그는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스팅에게 먹여서 "모드 백영룡"으로 만들어주고 리타이어.
스팅은 그걸 사실이라 쳐도 본래 사람의 냄새는 형제든 부자든 다 다르다 말한다. 실제로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도 서로 냄새가 다른데, 유독 라케이드는 나츠와 같은 냄새라며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자 라케이드는 "나츠도 어떤 의미론 제레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빛의 참격을 날린다. 하지만 "하얀 것"이 먹이인 스팅에겐 간식거리가 날아오는 거나 다름 없다.
* "악식의 혼". 하늘에서 부적들이 내려와 스팅을 감싼다. 이 마법은 공복감을 유발한다. 스팅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니 배고픔에 지쳐 힘이 나지 않는다. 라케이드는 등에 매고 있던 십자가를 날려 공격한다. 배를 찔리는 스팅.
* 스팅은 너무 배가 고파서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그를 응원하는 동료들이 음식으로 보일 지경이다. 급기야 렉터를 닭다리인 줄 알고 물어 뜯는 지경에 이른다. 카구라 미카즈치는 눈을 뜨라고 호소하는데, 유키노가 갑자기 그녀를 깨문다. 유키노의 눈도 스팅처럼 공복에 허덕이고 있따. 곧이어 카구라도 전염된 것처럼 배고픔을 느끼며 유키노와 카구라는 서로를 물어 뜯는다. 스팅에게 물린 렉터도 공복을 느끼고 스팅을 깨물고 있다.
* 그 말이 계기가 돼서 스팅과 렉터가 정신을 차린다. 렉터도 식욕을 참으며 스팅에게 희생하겠다고 하자 스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제외한 동료들을 기절시킨다. 이걸로 서로 해치지는 못하게 됐지만 남은 스팅은 극심한 공복감에 체력저하까지 겹쳐서 힘이 남지 않는다.
* 라케이드가 공복을 참아봐야 어쩔 거냐고 빈정거리자 스팅은 라케이드를 먹어서 해결하겠다며 달려들지만 이미 힘이 떨어진 상태라 농락만 당한다. "그래도 나는 세이버투스의 마스터니까"라고 외치며 덤비만 라케이드의 십자가가 가차없이 어깨에 박힌다.
라케이드는 비웃듯 자신이 반드시 죽일 테니 나츠의 혼도 곧 자유로워 질 거라고 말한다.
* 그때 유키노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그 체니가 나타난다. 미네르바의 테리터리. 드디어 세이버투스의 쌍룡이 모였지만 로그도 싸우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 그는 미네르바의 배달이라며 "나를 먹어라"라고 말한다. 로그는 남은 마력을 그림자로 바꿔서 방출한다. 스팅은 처음엔 어떻게 다른 속성을 먹냐고 거부하지만 이런 상황이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무작정 그림자를 흡입한다.
그 사이 라케이드는 새로운 빛과 부적으로 몸을 감싼다. 인간의 삼대 욕구 성욕, 식욕, 수면욕 중 자신이 마지막으로 부여할 것은 "수면욕"이라며 그것이 곧 영원한 수면이 될 거라 말한다.
* 빛과 그림자의 힘을 합친 스팅. 인간의 삼대 욕구를 조작하는 라케이드. 최후의 진검승부 개막.
유키노와 소라노 자매는 모처럼 재회했는데 별 활약도 없이 흩어졌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21회 일치
* 크리스티나호가 추락하고 [[안나 하트필리아]]는 탑승했던 인원을 바다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배에 남아 [[아크놀로기아]]에게 격돌시키려 한다.
*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 유일하게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남아 힘을 보탠다.
* [[나츠 드래그닐]]과 [[제레프 드래그닐]]의 혼신의 힘을 다해 격돌한다. 염룡왕의 붕권 vs 암흑폭염진. 두 힘이 충돌한 후폭풍이 페어리 테일 길드를 휩쓸고 퍼져나간다. 백중세인 듯 보였던 두 힘은 점차 나츠 쪽이 우세했다. 제레프는 자신의 마법이, 시간이 나츠의 불꽃에 타들어가는 걸 느낀다. 나츠는 자신의 영혼을 불꽃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 시간의 틈새가 있는 바다 위. 추락한 크리스티나호가 침몰해가고 있다.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을 비롯한 탑승자들은 모두 탈출에 성공. 생존자들은 크리스티나의 폭발을 우려해 배에서 최대한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이 안전할 수 있었던 건 [[제라르 페르난데스]]가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지만,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으려던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크놀로기아의 손에 잡혀 으스러지는 제랄.
* 엘자가 제랄을 구하러 가려 할 때 침몰하던 크리스티나호가 다시금 부상한다. 누군가 배를 움직이고 있다. [[안나 하트필리아]]였다. 무슨 수를 썼는지 폭발 직전이었던 배가 다시 날아오른다. 안나는 이 배를 만든 텐마에게 미안하다고 혼잣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녀는 이 배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을 작정이다. 자기 자신과 함께. 웬디는 물론 배를 몰았던 [[히비키 레이티스]], [[렌 아카츠키]]도 무리한 일이라며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런 말로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 하지만 이미 엉망인 배는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추락한다. 히비키는 다시 무리라며 그 배는 자신들만 몰 수 있다고 소리친다. 안나는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고 다시 키를 잡기 위해 힘을 내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키를 붙잡는다.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다. 자신에게 조종을 맡기라고 말한다. [[제니 리아라이트]]과 [[이브 티름]]은 그가 보이지 않는걸 눈치챈다. 그가 이런 형태로 희생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뜻밖이라는 얼굴의 안나에게 이치야가 말했다.
>이렇게 멋진 향기의 여성을 혼자 둘 순 없거든.
안나의 외침처럼 그 강력했던 마룡이 저항 조차 못한 채 시간의 틈새로 빨려들어간다. 아크놀로기아는 뒤늦게 자신을 끌어들이는 힘을 깨달은 것 같지만 대처할 틈도 없었다.
* 바로 그때, 나츠와 제레프의 형제 싸움이 끝나고 있었다. 나츠가 뒷심을 발휘해 밀어붙이자 제레프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제레프는 쓰러지면서 자신을 태우는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성스러운 불꽃... 아니, 나츠의 "거센 감정의 불꽃"이었다. 불꽃은 제레프의 몸을 태우고 백마도사로 각성하며 얻은 모든 힘도 태워버렸다.
* 시간의 틈새를 둘러싼 공방도 종결을 맞이했다. 눈 부신 빛이 지나가고 나자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엘자는 제랄을 구했고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웬디도, 블루 페가서스의 모든 사람도. 마룡도, 배도, 이치야와 안나도 없어진 하늘. 히비키가 모두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다고 중얼거린다. 제니가 믿기지 않아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복잡한 눈물과 함께 말했다.
어느 새 엘자와 웬디도 울고 있었다.
* 오른팔이 타들어갈 정도로 힘을 냈던 나츠는 가까스로 제레프를 쓰러뜨렸지만 서있는 정도 밖에는 남은 힘이 없었다. 쓰러진 제레프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런 건 처음이라고 중얼거린다. 이게 혹시 자신의 죽음일까? 그러나 곧 "그럴리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분명 머지않아 회복할 것이다.
- 표양문 . . . . 21회 일치
* 전문학교입학자 검정시험 합격
* 신문기자자격 경기도 심사위원장
*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경기도 인천지구당 위원장
* 자유당 중앙집행위원
{{선거기록/KR/개인|[[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총선]]|3대|국회의원|[[인천시의 국회의원|경기 인천시 병]]| 자유당 | 17,331표| 53.47 |1위|당선|[[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제3선거구|초선]]}}
== 참고 자료 ==
|저자=김윤식
|제목=정치가로 더 많이 알려진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 표양문
|전임자 = 조승환<br/>(권한대행)
|후임자 = 표양문<br/>(경기도 인천시장)
|전임자 = 표양문<br/>(미군정 경기도 인천부윤)
|후임자 = [[조승환]]<br/>(권한대행)
|전임자 = [[박학전]]
|후임자 = [[김정렬 (1907년)|김정렬]]
|전임자 = (인천시 갑)[[이용설]]<br/>(인천시 을)[[곽상훈]]<br/>(인천시 병)[[조봉암]]
|후임자 = (인천시 갑)[[김재곤 (1912년)|김재곤]]<br/>(인천시 을)[[곽상훈]]<br/>(인천시 병)[[김훈 (1909년)|김훈]]
|소속정당 =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이승만]][[분류:자유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신창 표씨]]
- 하이큐!! . . . . 21회 일치
주간 [[소년 점프]]에서 2012년 12호부터 연재중인 후루다테 하루이치(古舘 春一)[*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의 작가. 이 작품은 인기가 없어서 단 18화만에 연재 종료당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알게 모르게 있는 괴이한 작품.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의 [[배구]] 만화. 하이큐의 뜻은 배구(排球)의 일본어 독음.
[[히나타 쇼요]]는 우연히 봄고 대회의 배구 경기를 보다 코트 위에서 활약하는 '작은 거인'에 이끌려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로부터 3년 뒤 중학교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경기에서, 히나타는 '코트 위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속한 키타가와 제1 중학교와 맞붙어 참패당한다. 이후 배구 명문교에 진학했을 카게야마에게 리벤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작은 거인'이 다녔던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하지만, 그곳에서 웬일인지 카라스노에 입학한 카게야마와 마주치게 된다.
작품에 대한 평가로는, 대체적으로 '''평작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이전에 연재를 한 경험이 있어 그림체가 호불호가 갈린다곤 해도 상당히 안정된 편이고, 캐릭터가 주연 조연 모두 매력적이며 구성도 탄탄하다. 뿐만 아니라 만화 특유의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칸 연출에 상당히 능숙한 편. <하이큐!!>의 최대의 강점은 그 연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허무맹랑한 필살기나 기술명이 난무하지 않고, 스포츠를 가장한 특수 [[능력자 배틀물]]의 성격을 띄는 경우[* 대표적인 만화가 테니스의 왕자다. 필살기 난무, 특수능력 난무로 만화 자체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후 이작품은 매너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를 모욕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테니스 한 번 치면 사람이 다치고 인사불성~~]가 많은 점프계치고는 [[주인공 보정]]이나 만화적 연출을 제외하면 상당히 현실성 넘치는 경기 묘사[* 많은 [[덕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스포츠물]]에서 진짜 100% 현실적인 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100% 현실적인 묘사로만 이루어진다해도 정말 ~~[[암]]을 유발할 것 같은~~ 답답한 전개가 펼쳐지기때문에 그야말로 독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는 현실의 스포츠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그나마 현실적인 묘사를 하더라도 약간의 판타지는 섞여있을 수 밖에 없다. 리얼계 스포츠물의 [[레전설]]로 불리는 <[[슬램덩크]]>도 사실 100% 현실적인 건 아니다. 비슷하게 현실적이라는 호평을 듣는 스포츠물인 <[[크게 휘두르며]]>도 100% 현실적이진 않다.]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호감을 사는 면도 있다.
연재 초반에는 '''호러배구'''란 이명이 있었다. 스포츠물 답지 않은 연출과 그림체가 한몫해서, 섬뜩한(...)장면들이 간간이 나왔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는 평소엔 겁이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패기를 내뿜는다는 설정인데, 이 때 짓는 표정이 심히 [[얀데레]]스러워 ~~도저히 소년만화 주인공이 할만한 표정이 아니다~~ 순식간에 장르를 호러로 만들어버린다.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작가의 전작]]이 본격 [[괴담]]만화였다는 걸 알고 납득한 사람도 있다[[카더라]]. 애니메이션도 이 점을 잘 살려서, 애니메이션 11화는 어떤 씬을 작정하고 호러로 연출했는데 [[원작초월]]급이 나와버렸다.
1회전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약체팀들에도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을 단순히 주인공 학교의 1승 제물로 등장시키지 않고, 그들 역시 배구와 함께 고교시절을 보내는 청춘임을 묘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부분의 팬들이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꼽을 때 꼭 언급되는 40화 '승자와 패자' 편(애니메이션에서는 16화). 인터하이 1차전이 끝난 후 1회전에서 탈락한 23개 팀 모두를 '''한 컷씩 다 그려냈다''' .[*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량 문제인지 23개교가 전부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 "우리들도 했어 배구" ''' 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 마스코트 캐릭터인 '히나가라스'가 [[센다이]] 배구 친선 대사로 임명되었다. 임기는 2016년 8월 27일까지이다. 친선대사로 임명될 때 모습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아방가르드]]함을 자랑한다. ~~크고 아름다워~~ 이 히나가라스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하이큐 홍보 활동도 하고 있다. 귀엽긴 귀여운데 거대하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종종 점프계열 행사가 열릴 때 공식 트위터로 하이큐 부스에서 키요코 코스프레를 한 남성이 찍혀있는데, 하이큐 편집 담당자 혼다[* 本田佑行. 2010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은혼 담당을 했었다. 은혼 애니화 재기로 4기 1화 방영 이후 하이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비화를 밝히기도.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85738044281491456 이런 심한 얘기를 점프에 올린 사람이 누구?! 나인가?!]]다.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46458211255992320 점프페스타 2015]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반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식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하이큐/256화 . . . . 21회 일치
* 점수는 1점차까지 따라잡긴 하나 [[이나리자키 고교]]가 도망치면서 동점 만들기에는 이르지 못한다.
* 숨겨진 "괴짜 속공 킬러"로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의 괴짜 속공을 칼같이 차단한 [[츠키시마 케이]]. 중계진은 그를 [[카라스노 고교]] 최장신이라 소개하며 상대 코트를 끝까지 잘 살핀 냉정한 플레이를 칭찬한다. 관중석에서 보고 있던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도 방금 전 블록을 호평하며 자신이었으면 놓쳤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여친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다이쇼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선 방금 전 플레이를 되짚어 보자. 아츠무의 서브가 네트에 걸린 데서부터 시작. 이때 [[사와무라 다이치]]가 네트 근처에서 리시브하느라 공이 네트를 넘겨서 [[이나리자키 고교]] 진영으로 넘어온다. 이나리자키도 네트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공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공격에 들어갈 타이밍이 흔들린다.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 츠키시마는 상대편이 좌익에서 공을 받았으므로 레프트의 공격루트는 사전에 배제했다. 따라서 "우익에서 괴짜 속공이 온다"는 예상이 가능했다. 다이쇼는 그걸 알더라도 그 속공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로봇같다는 평을 남긴다.
다이쇼로서는 "나는 이런 건 못 한다"는 자학적인 전제를 달은 해석이지만, 여친은 그렇게 분석한 거 자체를 대단하게 여긴다. 그 덕에 조금은 우쭐해지는 다이쇼.
* 카라스노의 벤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진행 중이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키시마가 저렇게 대단하지만 언제나 전열에 있는 건 아니며 그 자리에 들어갈 [[히나타 쇼요]]는 반응만 좋지 쓸데없는 데서 뛰어오르곤 한다고 가열찬 지적을 가한다. 찔린 히나타가 과민반응. 그때 [[엔노시타 치카라]]가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히나타를 찾는다며 부른다.
* 스코어는 17 대 15. 이나리자키의 2점 리드. [[아즈마네 아사히]]의 서브. 서브감을 잡은 아즈마네가 묵직하게 날린다. 하지만 아카기가 깔끔하게 리시브. 공이 네트 앞으로. 이번에도 아츠무가 올린다. 츠키시마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좌익에서 오사무가 올라오고 있지만 이건 페이크. 이번에도 진짜는 우익이다. 잘 간파한 츠키시마의
* 우승후보인 강호를 상대로 선전을 펼쳐가는 카라스노. 관중석에서는 이 다크호스를 대단히 우효적으로 평가한다. 1학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리베로인 [[니시노야 유]], "사무라이"란 별명을 얻은 아즈마네 또한 "강하다"는 평이다. 주장 사와무라도 리시브가 뛰어난 걸로 고평가. 그런데 5번, 빡빡머리 [[타나카 류노스케]]가 어정쩡하다. 관중석에서는 "그냥 활발"하다는 걸로 평하며 놀림거리로 삼는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관계자 [[아마나이 카노카]]가 싸늘한 눈으로 키득거리는 관중을 쳐다본다. 당사자들은 원한을 샀다는 것도 모른다.
* 점수는 17 대 16. 1점 차.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를 앞두고 이나리자키의 첫번째 TO 신청. 벤치로 돌아가면서 타나카는 츠키시마가 "든든하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맹활약한 츠키시마는 들뜬 기분이 아니다.
정말 질력나게 냉정한 자평. 그러나 타나카의 맞장구처럼 "지당한 말씀"이긴 하다.
* 이어지는 이나리자키의 서브. 긴지로가 서브한다. 이번엔 사와무라가 리시브. 하지만 이것도 만만한 서브가 아니다. "하나같이 강렬한 서브를 친다"고 내심 놀라는 사와무라. 공은 카게야마에게. [[보쿠토 코타로]]가 이번엔 츠키시마가 뛸 거라고 보는데 정확한 예측이다. 그리고 아츠무도 눈치챘다. 하지만 스파이커를 바꾸지 않는 카게야마. 단, 이번엔 "조금 더 높이" 올린다.
츠키시마가 짜증내기 딱 좋은 높이까지 올라가는 공. 그래도 기어이 거기에 닿는다. 블록하러 온 스나가 "시라토리자와 때 보다 완전 높다"가 실감한다. 블록을 위에서 뚫어버리는 스파이크. 카라스노의 깔끔한 득점.
당연히 이나리자키 진영에선 이런 세세한 다툼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츠키시마에 주목하고 있지만 아츠무는 카게야마 쪽에 비중을 둔다. 방금 전 츠키시마의 기량을 끌어낸건 분명 카게야마다. 아츠무는 지난 합숙에서 본 카게야마는 이런게 가능한 세터가 아니었다고 봤기 때문에, 이 변화에 적잖히 놀란다.
* 그 말대로 히나타가 기회를 잡은게 맞았다. 히나타가 전열에 나오자 아츠무가 "카라스노 블록 허름하다~ 쉽게쉽게 단숨에 따자~"는 즉흥곡을 불러 도발한다. 히나타가 도끼눈을 뜨는데 사와무라는 도발에 넘어가지 말라고만 하지 틀린 말이라고 부정해주지 않는다. 물론 카게야마는 "맞는 말이긴 하다"고 확인사살. 심지어 응원단의 시마다 조차 "블록보단 득점꾼"이라며 애초에 블록을 포기한 말만 늘어놓는다. 도대체 아군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일에 기죽을 히나타가 아니다. 오히려 카게야마와, 자신의 블록을 형편없다 한 야마구치에게 "두고 보라"고 장담한다. 그의 자신감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소제목의 "보름달"은 이번 화에서 주역급으로 활약하는 츠키시마가 이름에 月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 츠키시마가 맹활약해서 "보름달처럼 빛난다"는 의미.
- 한승조 . . . . 21회 일치
'''한승조'''(韓昇助, [[1930년]] [[1월 13일]] ~ [[2017년]] [[7월 25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학자, 철학자, 언론인, 보수주의 운동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등을 역임했다.
[[고려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후, 1967년부터 1995년까지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재임 중 정경대학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 명예교수로 있다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된 후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한국유신학술원 회원, [[한국정치학회]] 회장, 국민윤리학회 회장,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도 역임했다. <!--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보충 필요 --> 정년 퇴임 후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명예 교수에 선임되었다.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 조약|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3/h2005030411490221950.htm 한국일보 - 한승조 "일본 식민지 지배는 축복"]</ref>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친일파|신친일파]]<ref>[http://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5/03/007100002200503132126035.html 한겨레신문 - 한-일 우익 ‘역사왜곡’ 연대조짐] :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반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반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 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f>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주장에 책임을 지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42805 오마이뉴스 - 한승조, 고대 명예교수직 사퇴] : 한승조는 "최근 저의 글 '친일행위가 반민족행위인가'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일었고 이로 인해 고려대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힌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명예교수직으로부터 사임하고자 하니 선처가 있기 바란다"라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ref> 그러나 한국 국내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일본의 우파는 “양심적 한국인”이라고 평가를 했다.<ref>[http://myhome.cururu.jp/doronpa/blog/list/bt0_ct3_dc_pg4 Doronpaの独り言-CURURU] - 이 사람은 일본의 우파적 시민 단체의 회장이다.</ref>
* 《한국정치의 지도자들》 (1992)
* 《한국정치의 지도자들:대정진신서 1》 (1992)
* [[표현의 자유]]
* [[사상의 자유]]
* [[박노자]]
* 한승조, 한국정치의 지도자들 (대정진산업출판사업부, 1992)
* 한승조, 한국정치의 지도자들(대정진신서 1) (대정진, 1992)
* 자유지성 300인회, 한국 재도약을 위한 결단 (삶과꿈 펴냄, 1998)</small>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친일파]][[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학자]][[분류:청주 한씨]]
- 홍정호 (핸드볼선수) . . . . 21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핸드볼]]}}
{{금메달|[[1992년 하계 올림픽|1992 바르셀로나]]|[[핸드볼|여자 핸드볼]]}}
{{은메달|[[1996년 하계 올림픽|1996 애틀랜타]]|[[핸드볼|여자 핸드볼]]}}
{{동메달|[[2008년 하계 올림픽|2008 베이징]]|[[핸드볼|여자 핸드볼]]}}
{{금메달|[[1994년 아시안 게임|1994 히로시마]]|[[핸드볼|여자 핸드볼]]}}
* [[상인천여자중학교]]
* [[인천여자고등학교]]
* [[199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1994년 아시안 게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 [[199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금메달
* [[1994년 아시안 게임]] 여자 핸드볼 금메달
*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핸드볼 동메달
{{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인천구월초등학교 동문]][[분류:상인천여자중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황희두 . . . . 21회 일치
| 설명 = 북레터 운동에 대해 설명중인 소셜 디자이너 황희두
'''황희두'''(黃熙斗, [[1992년]] [[1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이자 현재는 소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다. 비영리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 초대 회장, [[주권자 전국회의]] 상임 공동대표이며, 호는 청도(靑道)다.<ref>{{웹 인용|url=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65208|제목=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열암 송정희 선생으로부터 ‘靑道’ 호 선사 받아|언어=ko|확인날짜=2017-07-04}}</ref>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금융인 [[황태영]]의 아들이다.
'오로지 대학'만을 추구하는 문화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청년 문화 운동을 꿈꾸며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세대 통합을 추진 중이다. 현재 활동 중인 청년은 약 180명 이며(2017.11 기준), 위원회는 14개(문화예술, ICT, 마케팅, 패션, 디자인, 민주참여, 역사, 뷰티, 교육위원회, 경제, 언론, 취업, 보건, 콘텐츠)가 있다.
2016년 7월, 서울시가 주최한 [['광장은 시장실']]에 참석하여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e스포츠]]의 발전과 게임 문화의 인식 개선을 제안하였고 체택되었다. 학부모들과 청소년들에게 게임 문화가 마냥 안좋은게 아니란걸 알리기 위한 목적과 또한 중국 시장에 밀려 뒤쳐진 대한민국 e스포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실제 2014년도 기준으로 중국은 약 4조원대의 금액을 [[e스포츠]]에 투자하며 세계 e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였으며, 정작 e스포츠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점차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현직 프로게이머, 게임단 관계자, 지자체, 정부 등과 협력하여 '대한민국 e스포츠 시장 살리기'를 추진중이다. <ref>http://www.sportsseoul.com/news/read/417966|턱 밑까지 쫓아온 중국...한국 e스포츠는 어디로?
====박근혜 대통령 구속 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정치 검찰의 비정상적인 판단을 보며 현직 대통령을 고발한 내용이다. 청년문화포럼 민주참여위원회 김민성 위원장과 함께 국회 앞에서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더불어“국회탄핵무효“ “계엄을 선포하라” “촛불시민을 다 죽이라”는 등의 선동과 내란 유발도 서슴지 않는 반국가적 장소에 나가고, 국회의 기정사실인 탄핵입장을 반대해온 국회의원까지 국회 윤리위제소 및 징계를 요구한 사건이다. <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긴급> 모두행복실천단 국회 앞 기자회견</ref>
[[환경재단]] [[최열]] 대표를 중심으로 만든 [[용산생태공원시민클럽]]의 대의원으로 활동중이다. 역사, 생태, 문화 이야기로 소통하며 대책 없는 개발이 아닌 재생 복원 가능한 자연친화적 공원 조성으로 참여자 모두 역사 지킴이, 생태 가꿈이, 문화유산 보존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 서울의 허파인 용산공원을 세계적 자연생태공원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활동중이다. <ref>http://www.acrofan.com/ko-kr/detail.php?number=24342&thread=AC07|용산생태공원시민클럽 발대식 개최</ref>
곽노현 상임공동대표,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배우 문성근씨 등이 청구인단으로 참여한 내놔라시민행동은“국정원은 이번 정보공개청구를 사찰 근절 의지를 표명하는 계기로 삼아 기록을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며 시작된 시민운동으로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근절하자는 취지의 운동으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8290.html|“국정원, 민간 사찰 정보 내놔라” 정보공개청구 운동 첫발</ref>
====적폐 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주권자 전국회의====
2017년 4월 1일, 시민사회단체회원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광화문 광장에서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주권자전국회의' 출범식이 열렸다.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조를 위한 모임으로 트럼프 방한 반대, 사드 배치 반대, 박근혜 탄핵, 촛불 정치학교 등을 진행중에 있으며, 현재 상임 공동대표로 선임되어 활동 중이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3095|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주권자전국회의 개최</ref>
* "어제의 기성세대와 오늘의 청년이 내일의 청소년들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고 노력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합니다." - 《박근혜 체포 기자회견 中》<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ref>
* [[2017년]] 주권자 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20회 일치
* 탄자쿠에 소원을 적으면 오빠가 들어주는걸 안 우마루는 어떤 소원을 적을지 고심한다.
* 원래 자기 욕심을 채우는 소원을 놓고 고민하다가, 항상 자신을 위해주는 오빠를 보고 오빠의 행복을 기원하는 탄자쿠를 쓴다.
* 귀갓길에 칠석 탄자쿠가 장식된 집을 발견하는 우마루.
* 돌아온 우마루는 탄자쿠에 무슨 소원을 적을지 고민한다.
* 딱히 칠석의 풍습을 존중하는건 아니고, 작년 칠석 때 탄자쿠에 적은 소원을 타이헤이가 들어줬기 때문.
* 결국 탄자쿠로 오빠를 벗겨 먹으려는 사악한 속셈이었다.
* 자기가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탄자쿠가 잔뜩 쌓이자 이 중에서 엄선된 것을 고르려 하는데.
* 그런데 손님이 와서 타이헤이가 주의를 돌리자 그때 뛰쳐나와 베란다로 피신한다.
* 방문자는 에비나. 조릿대를 선물하러 왔다.
* 타이헤이는 고맙다고 말하지만 지금 우마루가 없단 말도 하는데, 탄자쿠를 처리한 우마루가 불쑥 나타난다.
* 베란다에 에비자가 가져온 조릿대 장식이 놓이고 타이헤이는 저녁을 준비하러 간다.
* 에비나와 우마루는 탄자쿠를 걸려고 하는데, 우마루의 소원은...
* 우마루는 쑥스러운지 타이헤이에게 탄자쿠를 숨긴다.
* 퇴근 후 우마루가 안 보이자 걱정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은 것이다.
* 탄자쿠를 건 후 떡을 먹자고 하는 우마루. 하지만 말하는걸 보니 추석 때 먹는 것과 착각한 것 같다.
- 권해효 . . . . 20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조윤희[* 같은 연극 배우출신. 2017년 [[홍상수]]의 영화 [[그 후]]에서 권해효가 맡은 캐릭터의 아내로 출연한다.], 슬하 1남 1녀 ||
|| '''데뷔''' ||<(>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 ||
한양대 선배이자 동료 배우인 [[박광정]]과는 막역한 사이로, 서로 첫 대면한 자리에서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속으로 ''''이야 이거 만만치 않은데?''''(권해효), ''''저쪽도 한 코 하는데?''''(박광정)하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한 쪽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서로 첫인상이나 생각까지 비슷했던 걸 보니 역시 우린 잘 맞는다." 며 웃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깨알같은 콤비로 활약하며 함께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후 [[박광정]]이 폐암으로 별세하자 가족과 같은 수준으로 빈소를 지키며 장례를 마무리하는 의리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중파 신인 시절인 1994년에 촬영한 [[오뚜기]] [[스낵면]] CF의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입에 착착 감기는 애드립성 멘트 덕분에 광고 대상인 스낵면이 아닌 본인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기도 했다(...)
* 1998 [[남자셋 여자셋]]
* 2017 [[자체발광 오피스]]
* 1992 [[명자 아끼꼬 쏘냐]]
* 2010 [[시라노;연애 조작단]] : 사채업자 역 (특별출연)
* 2012 [[용의자X]] : 팀장 역
* 2014 [[제보자]] : 방송국 국장 역 (특별출연)
* 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박재영 역
* 2017 [[밤의 해변에서 혼자]] : 천우 역
[[2005년]] [[10월 23일]] 혈중알코올농도 0.119%의 만취상태에서 자신의 [[랜드로버|랜드로버 지프]]를 운전하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05102607482318436&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음주단속에 적발]]되어 불구속 입건되었고, 운전면허는 취소됐다.
* [[2017년]] [[7월 26일]] 뉴스타파에서 1시간 정도 분량의 인터뷰를 했다. ‘멋진 어른’ 권해효, 홍여진 기자를 울리다
- 기간트 . . . . 20회 일치
[[2008년]]에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초자력 병기로 과거의 문명을 개발살 낸 주역중 하나로 아래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다.
* 전장 85m, 전폭 176m, 전고 60m 이라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특이하게도 [[전익기]]면서 거대한 수직꼬리날개를 보유한다. 디자인은 전체적으로는 [[나방]]과 닮았다.
이 외에도 설정상으로는 동체 하부에 초자력 병기를 보유하지만, 작품상에는 나오지 못했다.
* 방어력 및 장갑도 충실하다. 동체와 날개는 기본적으로 [[기관포]]이하는 아예 튕겨내버리며, 자신의 총탑으로 집중사격해도 표면만 좀 긁히고 마는 수준의 단단함을 자랑한다. 물론 대포를 장비한 선회포탑의 사격으로는 손상을 입지만 비행에는 지장이 없는 국부적인 손상만 입으며, 레이저 포탑으로는 큰 손상을 입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발 맞는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여기에 자동소화설비도 갖추어져 있으며, 엔진이나 수직꼬리날개등의 경우에는 손상을 너무 입어서 복구가 불가능하거나 연쇄폭발 위험성이 있으면 임의로 비행중에 분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기체 각부의 수리나 유지를 위해 승무원을 빨리 보낼 목적으로 동력이 있는 열차가 움직이는 통로가 동체와 날개의 각 부분에 매설되어 있다.
만일 더 이상 피해를 감당하지 어려워서 추락할 지경에 놓이더라도 기수에 별도의 탈출장치가 있으며, 해당 탈출장치는 자력비행이 가능하다.
* 비행능력도 탁월하다. 우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선]]도 아닌 주제에 '''단독으로 대기권 돌파 및 우주공간 진입도 가능하다.''' 물론 우주공간에서 다시 지구로 재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공간으로 올라가면 태양 에너지를 직접 받으므로 동력원 문제가 해결되면서 반영구적으로 지속비행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항속거리는 이론상 무한대에 가깝다. 덤으로 태양 에너지로 초자력 병기를 충전해 사용할 수도 있다.
* 신뢰성 및 내구성도 뛰어나다. 격납고에서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한채 수십년간 처박힌 신세였지만, 태양 에너지를 주입받자마자 이륙이 가능했다. 여기에 숙련도가 떨어지고 정원에 한참 모자라는 인원이 운용했지만 정상적인 비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레프카가 권좌에서 쫒겨난 상황이었고, 아직 자신을 따르는 얼마안되는 부하[* 애니에서 나온 부하들 수는 많아도 10명이 넘을까 말까 정말이지 수가 적었다! 게다가 이 가운데 항복하여 같이 공존하자고 충고하는 부하 1명을 레프카는 군말없이 쏴죽여버렸다.]들만 이끌고 삼각탑에서 탈출하는 방식으로 출격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비나 인원보충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코난 일행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장기간 기간트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일부 지역을 점령해서 레프카가 왕국을 세울수는 있겠지만...
* 인원 부족 및 숙련도 저하 : 레프카의 심복들은 숫자가 적은데다가 기간트가 원래 1급 비밀에 가까운 물건이라서 해당 기체의 성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간신히 조종블록에서 다른 곳을 원격조종하는 수준만 가능했기 때문에 엔진실등 중요 부위에 인원을 하나도 배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코난 일행이 파괴공작을 쉽게 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숙련도까지 크게 부족해서 일이 터지면 레프카가 직접 승무원들에게 하나하나 지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직접 조치를 취해야 했다.[* 코난 일행 활약으로 기간트에 큰 불이 나는데도 우왕좌왕 당황하며 작은 소화기로 끄려고 했다. 직접 간 레프카가 한심하다면서 자동소화장치를 작동하고나서야 그 불을 껐을 정도.] 게다가 레이저 포탑을 함부로 사용하다가 오사를 내는 레프카 모습을 보면 레프카도 100% 기간트의 특성을 파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모든 기능에 승무원이 필요 : 첨단기기답지 않게 총탑의 사격부터 비행의 유지등 여러 분야에 다수의 승무원이 필요하다. 즉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사격장치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총탑은 [[B-29]]처럼 총탑을 담당한 승무원이 별도의 감시탑에서 총탑들을 조종해서 사격하는 형태를 취한다.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렇게 승무원이 많이 필요해지니 엔진실같은 중요 지역에 승무원을 1명도 배치하지 못한 것이다.
* 코난 일행의 활약과 레프카의 대응 실수 : 원래 코난 일행은 이런 파괴공작에는 이골이 난 정도로 달인인데다가, 레프카는 성질이 급한 편이다. 이런 요인이 시너지를 이루자 파괴공작 + 레프카의 오사등으로 인해 기간트가 비행능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의 손상을 입게 된다.
- 김상훈 (1963년) . . . . 20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정당 = [[자유한국당]]
'''김상훈'''(金相勳, [[1963년]] [[1월 25일]] [[대구광역시|대구]] ~ )은 [[대한민국]] 전 공무원이자 정치인이다.
* [[2013년]] [[4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전,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 [[2017년]] ~ [[2018년 6월]] :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보건복지 정책조정위원장
* [[2017년]] [[2월]] ~ :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 [[2017년]] [[3월]] ~ : [[자유한국당]] 지방자치위원장
* [[2017년]] [[6월]] ~ : [[자유한국당]] 민생AS센터 맞춤복지위원회 위원장
* [[2017년]] [[7월]] ~ [[2018년 8월]] :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위원장
* [[2018년]] [[3월]] ~ [[2018년]] [[5월]] : 6.13지방선거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공천관리위원장
* [[2018년]] [[5월 23일]] ~ [[2018년]] [[6월 13일]] : 6.13지방선거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공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8년 8월]] ~ :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정당개혁위원회 위원
|전임자 = [[홍사덕]]
|후임자 = 김상훈
|전임자 = 김상훈
|후임자 = (현직)
|소속정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20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쇼트트랙]]}}
'''김소희'''(金昭希, [[1976년]] [[9월 16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쇼트트랙]] 선수이자 현재는 스포츠 연구원이다.
[[정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1992년]] [[미국]] [[덴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참가한 [[1994년 동계 올림픽|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전이경]] 등과 함께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000m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1994년]] [[영국]] [[길퍼드]]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문화방송|MBC]]의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전격 발탁되었는데, 예전의 구타 사건이 다시 조명되면서 크게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 = 김소희 구타 논란… 네티즌, MBC에 뿔났다 "기가 막혀 못 보겠다" | url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869879 | 출판사 = 이투데이 | 저자 = 유혜은 | 쪽 = | 날짜 = 2014-02-16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여자 종합 우승자}}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해설자]][[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
- 김중혁 . . . . 20회 일치
||<:>윤대녕[br]제비를 기르다[br](2007)|| → ||<:>'''김중혁[br]엇박자 D[br](2008)'''|| → ||<:>[[최수철(소설가)|최수철]][br]피노키오들[br](2009) ||
[[대한민국]]의 [[작가]]. 1971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슈퍼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소설가]] [[김연수]]--역전 앞 뉴욕제과 아들--, [[시인(문학)|시인]] [[문태준]]과는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이다.
친구 [[김연수]]가 한국 문학의 기대주로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고 2000년 '문학과 사회'에 중편 소설 [[펭귄 뉴스]]를 발표하며 뒤늦게 등단했다. 이후 <엇박자 D>로 2008년 제2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2010년 제1회 젊은작가상 대상, 2011년 제1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부문), 2012년 <요요>로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악, 영화, 스포츠, 그림을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사 만큼이나 작가의 경력 또한 화려한데,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인디밴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이동진(평론가)|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흑임자~~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칼럼도 쓰고, 웹툰 작가로도 활동했다니[* 그림 솜씨가 출중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개성있는 편이다. <펭귄 뉴스>, <뭐라도 되겠지>, <미스터 모노레일>의 표지도 직접 그렸다.] 그야말로 문학계의 [[팔방미인]](...)
*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2014)
강동 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근무중인 경위. 친구인 동진과는 [[베스트 프렌드|제일 친한 친구]]라고 한다. 동진과는 대학에 들어와 친해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문자를 보낸 친구와 한 달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심한 성격인듯.(본인은 매일 연락을 주고 받아야 친구는 아니다는 말을 했다.) [[아싸|사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것이 매우 서툴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는 동진에게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그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이내 마음을 열게된다.
허은실은 미정의 얘기를 하는 자신에게 "그래서 동진이 얘기는 언제 나오는 겁니까?"하고 묻는 김중혁을 아예 감정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 단 하나뿐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재차 물었다. 오오....
~~악마? 마남? 마왕? 마귀? 마초? 마법사?~~ 극중 허은실이 마남이라고 칭하니 마남이라고 하자(...)
복선은 처음부터 많이 깔려 있었다. 지금은 아싸지만 학기초에는 과묵한 게 컨셉인 줄 알아 인기가 많았다는 과 여동기의 발언, 술김에 박미정 이야기를 하는 동진에게 도대체 뭘 알고 말하는 소리냐는 발언[* 그리고 또 이 말을 들은날에 평소와 다르게 술을 진탕 취할정도로 마시고 살기 힘들다고 술주정까지 한다.], 동진의 행선을 추적하면서 알아낸 법칙을 허은실에게 설명할 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발언, 박미정을 따르는 고양이가 김중혁한테도 친근감을 느끼고 몸을 비빈다든가, 박미정에게 저 또한 주위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라는 식의 말이 전부 자신도 동류의 사람임을 뜻하는 말이였다.
허은실과 이야기 하던 도중 허은실의 발이 다친것을 보자 나한테 관심있냐면서 10m 떨어져 있음으로 몸소 인증했다.
사실 그동안 자신도 법칙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몰랐었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도록 닥치고(...)살아왔던 것.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사회생활 정도는 해왔던 걸 ~~그냥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가면 된다~~[* 안타깝게도 전부 공학을 갔다(...) 다만 직장은 확실히 고려해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근만 하는 부서를 근무하고 있는 것도 웬만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서인 듯.] 보면 히키코모리가 따로 없는 삶을 살던 박미정보다 훨씬 강인한 인물이다. 통계학과에 온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동진은 자신이 사라지면 중혁이 반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하여 비밀글들을 숨겨두었고 예상대로 중혁은 동진의 블로그속 마녀의 법칙을 찾아낸다. [* 이때 아이디는 중혁의 주민등록번호였으며 비밀번호는 'Shine on you'였다.]동진의 조사가 유독 오래 걸린 이유가 미정을 조사함과 동시에 대학시절부터 중혁에 관해서도 눈치채고 같이 역학조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혁과 관계된 여성 리스트가 나오는데 수십명~~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부럽다'''. 게다가 다 남녀공학이야~~가까이 중혁을 좋아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글은 이 글을 볼 중혁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중혁아. 네가 사랑해야 돼.''' 라는 말, 즉 해결책을 써준 동진에 대한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
최후에 허은실에게 고백을 받고 은실이 전철을 타고 휙 떠나버리자 어쩔줄 몰라하다가 타이밍 좋게 동진이 박미정에게 들었던 마지막 법칙을 문자로 보내온걸 읽게되는데.....
허은실에게 다음역에서 무조건 내리라고 하면서 담을 넘어 허은실에게 미친듯이 뛰어가는 걸로 만화가 끝을 맺는데 모르긴 몰라도 본인도 마음이 있었던 듯 하다. 그 전에 짧게나마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마음은 이미 확정. 본인도 '감정을 잘 모르겠다'여서, 테스트를 하기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허은실이 그런 김중혁에게 자신이 그 마음을 확인시켜준다며 고백하고 떠난 것이다. 자신이 다치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20회 일치
* 그 자리에 도착해 보니 사무소 선배들은 물론 [[아이자와 쇼타]],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 같은 프로 히어로들도 있다.
* [[서 나이트아이]]는 그동안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해 여러 사무소를 모아 공동대응하고 있었고 이 자리는 그들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한 회의장소였다.
* [[키리시마 에지로]]의 새로운 형태, "레드 라이오트 언리미티드". 키리시마의 경화를 가뿐히 능가하던 빌런의 칼날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키리시마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건 길어야 3, 40초. 그러나 일단 이 상태가 되면 그 자신의 말대로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키리시마는 빌런의 칼날을 씹으면서 돌진한다. 다시 겁에 질린 빌런은 칼날을 키리시마를 향해 집중시킨다. 이건 키리시마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뒤로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있다. 주점 안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칼날을 전부 자신에게 집중시킨다면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나는 경화의 남자!
* 빌런은 쓰러지자 다시 울보 상태로 돌아간다. 키리시마는 무심코 약의 효과가 끝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빌런은 "나는 강해지고 싶었을 뿐인 불쌍한 인간.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데 키리시마는 안된다고 거절하면서도 "마음은 이해한다"고 태도가 누그러진다. 그게 빌런이 노린 바였다.
>네 얘기는 알바 아니라고 자식아!
* 빌런은 등으로 칼날을 집중시켜서 지면을 박찬다. 늘어나는 반동의 속도로 키리시마를 지나쳐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또다시 빌런에게 속은 키리시마는 "난 바보인가!"라고 자학하며 빌런이 지면에 꽂은 칼날을 부러뜨린다. 그러나 한 발 늦은 대응이었다. 빌런은 키리시마를 순진하다 비웃으며 막 골목을 벗어나는 참이었다.
하지만 키리시마를 뒤쫓아온 [[패트껌]]과 맞주쳤다. 패트껌은 곧바로 빌런을 포획한다. 그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은 "지방흡착". 몸에 뭐든지 흡착시키고 집어넣을 수 없다. 키리시마의 경화도 뚫었던 칼날이지만 그의 두터운 몸에는 무용하다. 패트껌은 빌런의 승리조건은 "살해", "도주", "쓰러뜨린다" 등등 다양하지만 히어로는 "피해자 없이 붙잡는다" 단 한 가지이며 빌런을 얼마나 빨리 전의상실 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키리시마는 자신이 고전한 상대를 간단하게 포획하는 걸 보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쳤던 시민이 키리시마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 노인은 키리시마가 일부러 빌런의 칼날을 자신에게 집중 시킨 것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패트껌 또한 "나와는 다른 화려한 데뷔"라며 높게 평가한다. 시민은 키리시마가 대단한 히어로가 될 거라고 칭찬하고 키리시마는 보람을 느낀다.
* 잠시 뒤.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큰 길로 돌아와 [[아마지키 타마키]]와 합류한다. 패트껌은 경찰과 협력해 약물사범들만 집던 경험도 있어서 금방 종류를 구분한다. 개성을 파워업시키는 약물. 일본에선 금지된 종류로 효과가 짧은 걸 보면 아시아산이다. 미제는 좀 더 길어서 1, 2시간은 간다고. 곧 경찰 측에서 타마키를 저격한 총에 대한 분석 결과도 가져온다. 총은 빌런이 칼날로 조각내 버렸고 총알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총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경찰은 좀 더 조사해 보겠다고 한다.
키리시마는 타마키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타마키는 개성을 발동할 수 없어서 히어로로서 괴롭다고 네거티브 상태다. 코스튬에 달린 후드를 푹 뒤집어 써서 아예 얼굴을 가려버렸다. 타마키는 자신을 감싸준 키리시마가 [[토오가타 밀리오]]와 같은 "태양 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키리시마는 "선배도 날 사무소에 소개시켜줬으니 태양같은 인물"이라고 답례하는데 그런 점이 타마키를 더 곤란하게 한다.
* 이튿날 키리시마가 등교했을 땐 화제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카미나리 덴키]]가 키리시마의 활약이 매스컴을 탔다고 호들갑을 떤다. [[바쿠고 카츠키]]는 자격지심을 느껴서인지 이를 간다. [[아시도 미나]]도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의 활약을 기사로 읽었다. 이들은 반친구들의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 [[이이다 텐야]]는 그래도 학업엔 충실해야 한다며 졸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고 반장같이 설교한다.
* 그리고 도착한 모두의 합류장소. 첫눈에 보기에도 보통 인턴활동을 할 자리가 아니다.
* 그 중에는 [[아이자와 쇼타]]나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 같이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버블걸]]도 보인다. 미도리야와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데 네지레는 그들 사이에서 [[류큐]]를 발견하고 달려가서 질문을 세례를 퍼붓는다. 류큐는 곧 알게 될 거라면서 나이트아이에게 "그 안건"에 대해 슬슬 시작하자고 말하는데.
* 이들을 불러모은 것은 다름아닌 서 나이트아이. 그는 여러 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시에핫사이카이"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서 그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추정해보는 자리. 나이트아이는 회의 시작을 선언한다.
- 드래곤볼 . . . . 20회 일치
상대의 몸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 파워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기뉴가 전투력 18만 이상이었던 오공의 몸을 차지했을 때 기뉴가 쓸 수 있었던 최대 파워는 고작 23,000. 본래 기뉴 자신의 몸이었을 때보다도 약해졌다. (이 경우에는 손오공과 달리 기뉴 본인은 계왕권 등의 파워 업 방법이 없었던 부분이 한몫했다.)
프리더 군단에서 사용. 환자를 특수 액체에 담궈서 부상을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들어간다. 스타워즈의 박타 탱크와 비슷하다.
작중에서 혹성 프리더나, 프리더의 우주선에 설치되어 있으며, 구형과 신형이 있다. 혹성 프리더에서는 지구에서 돌아온 베지터가 회복할 때 사용, 자봉에게 당한 베지터를 회복시킬 때나, 기뉴와의 전투로 부상을 입은 오공을 치료할 떄 사용되었다. 구형이라도 상당한 중상을 입은 오공을 40분~50분 내에 치료할 수 있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
* 76화 : 포룽가로 되살아 날 수 있는 것이 한 번에 한 명 뿐이라는걸 알게 되자, 야무치, 천진반, 챠오즈가 추한 다툼(…)을 벌인다.
* 87화 : 오공이 가메하메파를 쓰고 나서 '오랜만이다'라는 메타 발언을 한다. 작중 시간으로는 기뉴 특전대와 싸우고 나서도 하루도 안 지났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오공의 활약 자체가 상당히 오랜만.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상 반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남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순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오반이 피콜로를 오공의 우주선에 데려다 놓자, 브리프 박사가 감시장치로 누군가 탑승한 것을 감지. 통신장치로 치치가 말을 걸고 가만 있으라고 하지만 오반은 부르마를 데리러 무시하고 나가버린다.
본래는 나메크별이 폭발할 떄까지 시간을 끌어서 프리더에게 타격을 주려다가, 프리더가 오공과 같은 무덤에 묻어주겠다고 도발을 하자 분노하여 잠깐 공세를 퍼붓는다. 오반이 잠깐 분노했다고는 하지만 최종형태 풀파워 프리더를 후드려 팬다.--밸붕--
내퍼, 라데츠와 함께 행성을 하나 정복하고 돌아오지만 프리더에게는 무시당하고, 내퍼가 항의하지만 자봉이 자신들이라면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내퍼는 분개하여 프리더에게 덤벼들려 하지만 베지터가 그만두라고 저지한다.
내퍼는 베지터에게 프리더가 베지터왕을 죽이고 혹성 베지터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지만, 베지터는 그런 것은 자신에게 관계 없다면서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진리라고 말한다.[* 라데츠는 몰랐던 듯. 놀란다.(…)] 그리고 언젠가 강해져서 프리더를 대신하여 우주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다.
오반이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이 있다. 오공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저녁 반찬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크리링의 여자친구인 마론이 등장한다.
지구의 신이 피콜로에게 신의 자리를 맡기러 오지만, 피콜로는 거절한다.
- 마기/319화 . . . . 20회 일치
* 참석자들은 잊고 있었다는 듯 앞다퉈서 "우리나라에도 전송마법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반발하는 참석자들이 나오자 무우는 "현 국제동맹의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대안적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펼친다.
* 홍옥은 일관되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한다.
* 황제국, 뢰엠이 퇴장하자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귀왜국도 국제동맹에서 탈퇴할 것이며 2년 전의 금속기 사용은 정당방위였다고 발언하고 퇴장한다.
* 무는 그가 자신들을 얕봤을 거라 보고, 동맹이면서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홍옥을 용기있다고 칭찬한다.
* 홍옥은 알라딘 일행이 몇 번이나 아르바의 실체를 고발하고 설득했고 그도 함께 노력하자고 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고 말한다.
* 결국 힘을 키운 여러 세력은 대결할 수밖에 없고 그걸 피하기 위해선 운명을 내다보는 자신이 거대한 힘을 독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신드바드는 자신이 신이나 다름 없고 신으로부터 인정받은 "특별한 인간"이라는 아집으로 가득차 있다.
* 그는 자신이 다윗의 목소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끔찍하다고 토로한다.
* 자국으로 돌아온 신드바드.
*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들지 못한다.
* 그리고 특이점이란, 자기 자신이란 무엇인지 혼란하기 시작한다.
* 자신이 선택받은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드바드가 사실 자신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함을 자각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세계관이 붕괴하는걸 감당하지 못한다.
* 항상 다윗의 목소리 따윈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의존하고 있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 모나 색스 . . . . 20회 일치
살인청부업자. 자신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전문가라 자부하고 있다.
쌍둥이 자매로 리사 펀치넬로가 있다. 펀치넬로 패밀리의 보스인 안젤로 펀치넬로의 아내.
작중에서 [[데저트이글]]을 자주 들고나온다.
맥스가 잭 루피노를 죽인 이후 등장, 이미 죽은 루피노에게 총을 난사하던 맥스를 제지한다. 그러고는 [[알렉스 볼더]]를 죽이고 맥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은 루피노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맥스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상태가 되지만 범인이 안젤로 펀치넬로 라는 말을 하고는 그나마 긴장 상태를 푼다. 자신도 펀치넬로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는 펀치넬로가 그의 아내이자 모나의 쌍둥이 자매인 리사 펀치넬로를 학대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맥스가 실수로라도 리사를 죽이는걸 막기 위해 약 탄 위스키를 줘서 기절시키고는 펀치넬로 저택으로 향한다. 하지만 펀치넬로를 죽이지는 못하고 붙잡혀버린다. 펀치넬로는 그녀를 천천히 처리하기 위해 자택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뒀지만, 모나는 펀치넬로의 부하들을 죽이고 뒷문으로 탈출한다.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상태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백한다.
이후 발레리 윈터슨 형사가 담당한 세바스찬 게이트 상원의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폐 놀이공원에서 숨어 살고 있다.
살인 사건 용의자인 상태에서 형사인 맥스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와 자신과 맥스에게 청부업자가 붙었다는걸 알린다. 이후 스쿼키 청소회사가 아파트를 습격하자 도망친다.
체포되어 유치장에 들어가지만, 청소부들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한 때를 틈타 탈출한다. 이후 맥스와 함께 행동하지만 공사장에서 윈터슨과 또다시 마주치게 된다. 모나와 윈터슨이 서로 총을 쏘려 하자, 맥스는 동료 형사인 윈터슨을 쏘고 모나가 도망치게 한다.
모나는 불길을 뚫고 쓰러진 맥스를 구해준다. 그녀는 맥스가 블라드를 쫓는아 우든의 저택으로 가는걸 만류했지만 맥스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맥스가 우든의 저택에 갔을때, 모나는 권총으로 맥스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자신의 일은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며, 정리 대상에 맥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하지만 맥스가 저항하지 않고 총을 버리는 것을 보자 자신도 맥스를 죽이는걸 포기하고 총을 버린다. 그 직후, 뒤에서 나타나 총을 쏜 블라드에 의해 죽는다.
- 문희옥 . . . . 20회 일치
||별자리||[[사자자리]]||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백시]]에서 위치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1991년 엔카 풍의 정통 트로트 <성은 김이요>를 발표했는데 때마침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김씨 후보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당시 선거 유세장에서는 가사 바꿔부르기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OO 알파벳 약자로 OO이지요.~~ 1990년대 문희옥은 <순정>, <해변의 첫 사랑> 등을 히트시키며 다시 한 번 트로트 여제로 군림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락]], [[댄스]] 음악이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의 세를 확장해 나가자 포크, 트로트 음악은 점차 슬럼에 빠졌고 그 중 문희옥의 방송 비중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화병이 한 때 심각했었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살고, 심지어 큰언니의 암투병과 남동생의 군복무 중 사망으로 더 화병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심각해지자 노래 부르는 것도 기술과 요령으로 간신히 버텼고 당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한다. 2011년 오페라스타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화병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차츰 화병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고, 종교 활동과 해외봉사 활동을 통해 화병을 더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화병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2017년 11월 1일 같은 소속사 후배에게 사기 및 협박혐의로 고소당했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3024614|관련기사]] 그러던 중 피해자가 문희옥의 협박을 녹음하여 공개한 것이 파장을 일으켰다. [[https://www.youtube.com/watch?v=-2W4xDW-9jg|협박녹취록]]
이후 2018년 3월 18일 사건은 무혐의로 끝나긴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305603|관련 기사]] 이렇게 결과가 나왔지만 아직 주변 반응은 혼란스럽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결과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문희옥에 대해 비난하느냐 응원하느냐 따라 설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네티즌들과 수많은 팬들은 실망감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 여담으로 소속사를 옮겼다는 기사가 떴을때 전부 비난글이었다고..
- 박준규(1925) . . . . 20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송산(松山)이다. 본관 [[순천 박씨|순천]]. [[백남억]]씨가 그의 자형이고 [[삼성그룹]]창업주 [[이병철]]회장의 처조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의 직계후손이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조재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성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대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민주당]] [[목요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89년 1월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재임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13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4대 국회가 개원하자 13대 후반기에 이어 다시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여 공직자 재산 공개를 할 때 재산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이후 1995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그와 손을 잡고 자민련에 합류하여 당 최고고문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민의원, 경북 10선거구) || '''[[민주당(1955년)|민주당]]''' || '''20,835 (71.64%)''' || '''당선 (1위)''' || '''초선''' 1960년 탈당[br]신민당 창당[br]1961.5.16 자격정지[br]([[5.16 군사정변]]) ||
|| 1971 || 1971년 재보궐선거 (8대 국회 경북 10선거구)[* 10선거구는 달성, 고령군이다. 전임자 김성곤 [[10.2 항명 파동]]으로 의원직 사퇴] || '''민주공화당''' || '''44,738 (45.55%)''' || '''당선 (1위)''' || '''4선'''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민주자유당]]''' || '''35,083 (50.07%)''' || '''당선 (1위)''' || '''8선''' 상반기 국회의장[br]1993.6.30 사퇴[br](고위공직자[br]재산공개 파동)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 || '''[[자유민주연합]]''' || '''17,631 (33.26%)''' || '''당선 (1위)''' || '''9선''' 하반기 국회의장, [[김영삼]], [[김종필]]과 더불어 국회의원 '''최다선 기록 달성''' ||
- 박철우(배구) . . . . 20회 일치
|| 가족관계 || 장인 [[신치용]], 배우자 신혜인, 딸 박소율,박시하 ||
이런 극단적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때문에 약점도 있는데 토스가 낮거나 너무 빨리와서 타점에서 좌우로 흔들리면 되려 처리하기 어렵게 되는 자세문제와 함께, 극단적 오버 핸드 특성상 좌우로 비틀어서 터치아웃을 노리는 손목 스킬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파이크 코스를 읽히거나 토스가 낮으면 그대로 블로킹에다 벽치기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벽철우가 이것때문에 붙은 것. 또한 스파이크 서브 올리는 토스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뻘미스나 똥볼서브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데뷔 시절 [[후인정]]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은 '''[[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즉,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다는 것.....]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이 [[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배구)|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이렇게 현대캐피탈 시절에는 경기당 20~30점을 올려주며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 원체 센터진이 좋았던 팀에 2000년대 들어 뭔가 아쉬웠던 날개 공격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 주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신치용|장인어른]]한테 주구장창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홍길동|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
또한 소속 팀에서의 안습한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배구)|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다. --다만 [[V-리그]]의 대표적인 [[노안]] 선수라 얼굴이 폭삭 늙고 있어서 팬들이 안타까워한다 카더라.--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상태나 다름없다. --아니 사위가 어찌 그렇게 됐는고?--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반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몰빵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냐?--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2015-2016 시즌, 세계 최고 소리를 듣던 [[괴르기 그로저]]가 라이트 자리에서 뛰면서 폼이 빠르게 올라오지 않자 역시 다시 박철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다. 단 주의할 점은, 세계 최고의 아포짓이라는 그로저의 명성에 비해 기대치가 안 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몇경기만에 득점 1위를 할 정도로 점유율도 높고, 공격 성공률또한 용병 중 3위정도를 할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서브는 현재 1위를 기록중.
- 보루토/7화 . . . . 20회 일치
* 나루토는 아들 보루토가 자신의 소년시절 재킷을 입은 걸 보고 감동한다.
* 황무지에 거대한 목둔의 꽃이 피어 올라있다. 오오츠츠키 모모츠키와 킨츠키는 여기에 우즈마키 나루토를 묶어놓고 구미 쿠라마를 뽑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거대한 차크라여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모모츠키는 작업을 멈추고 잠깐 쉬는데 나루토는 "우리들 '닌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니깐"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때 목둔의 밑둥이 잘리고 라이카게 다루이와 미즈카게 쵸쥬로가 기습한다. 모모츠키는 이들이 나타나자 "검은 망토"(우치하 사스케)의 짓이라고 직감한다.
우즈마키 보루토는 아버지를 포박하고 있는 목둔의 줄기를 끊어버리고 사스케가 추락하는 나루토를 붙잡아 안전하게 착지한다. 뒤따라온 카게들은 각자 모모츠키와 킨츠키를 상대로 대치. 다루이와 카제카게 가아라가 모모츠키를, 쵸쥬로와 츠치카게 쿠로츠치가 킨츠키를 마크. 네 명의 카게는 자신만만하게 "우리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 생각하지 마라"고 도발하고 모모츠키는 "까고 있다"는 원색적인 욕설로 대꾸한다.
* 구조된 나루토는 사스케와 보루토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가눈다. 나루토는 보루토가 자신의 소년시절 걸치던 재킷을 입고 있는걸 발견한다. 사스케는 그걸 "닌자가 됐다는 것"이라고 심플하게 표현한 뒤 킨츠키를 상대하러 간다. 나루토는 "자신의 그림자분신을 보는 것 같다"고 묘한 기분을 표현한다. 보루토는 "전보단 조금 멋지게 보이지?"라고 말하고 나루토는 "그래, 전보다는."이라고 대답한다.
둘만 남은 부자. 나루토는 어렵게 미안했다는 말을 한다. 보루토는 "지금까지 했던대로 해면 됐다니깐"이라며 털고 일어난다.
* 킨츠키는 자세가 무너져 한참 날아가는데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는 한 발 늦었다. 사스케가 치도리를 감은 검으로 찌른다. 사스케의 치도리가 결정타가 되어 킨츠키의 방어태세가 완전히 무너진다. 무사히 착지하긴 했지만 무방비한 상태에서 쵸쥬로의 혈무도법 "뼈베기"를 정통으로 맞고 비틀거린다.
* 회복된 나루토는 가세하며 인술을 쓰려 하는데 보루토가 인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린다. 한편 모모츠키는 달아나려 하지만 사스케가 퇴로를 막으면서 사면초가가 된다. 사스케는 모모츠키의 전투법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데 그는 타인의 술법을 흡수해 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이 공격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과학닌구반의 신제품과 같은 원리. 이런 원리가 까발려지자 인술을 쓰지 않고 제압하면 된다는 답이 나온다. 나루토 부자, 가아라, 다루이, 사스케에게 포위 당한 모모츠키.
* 모모츠키는 킨츠키가 구속된 것도 확인한다. 사스케는 동료도 저 모양이라며 단념하라 하지만 모모츠키는 쉽게 포기할 셈이 아닌 듯 하다. 그는 나루토 부자를 바라보더니 나루토에게 "네 자식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백안으로 보루토를 훑어 보더니 "재미있는 운명을 지녔다"는 뜻모를 말을 한다.
* 모모츠키는 자기 일족의 "수법"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손바닥의 윤회안을 킨츠키 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묶고 있던 용둔이 깨지고 킨츠키가 끌려가는데 한 덩이의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린다. 모모츠키는 그 고깃덩어리를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 서정환 . . . . 20회 일치
*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도자 연수 (1995년)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2006년]]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영광을 되살리는 듯했지만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탈락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그 해 시즌 중 영입한 배터리 코치 [[조범현]]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191144463&sec_id=510201&pt=nv 감독 대이동? 조범현 배터리 코치 KIA 새 사령탑] - 스포츠칸</ref>
* {{KBO 타자|80053}}
|전임자 = [[조창수]] (대행)
|후임자 =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전임자 = [[유남호]]
|후임자 = [[조범현]]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20회 일치
DEO기지에서 외계인 죄수[* 아무리 봐도 괴물 같은 덩치지만 여자]가 포박을 풀고 날뛰다가 카라에게 제압당한다. 추수감사절이라 카라와 알렉스의 엄마가 찾아오는데, 알렉스는 엄마가 온다면서 엄마[* 배우는 1984년작 슈퍼걸의 여주인공이다.]가 카라가 슈퍼걸이 된 걸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다. 라디오 DJ 레슬리 윌리스는 방송에서 슈퍼걸을 엄청나게 욕해댄다. 윈은 [[추수감사절]]에 함께 지낼 상대도 없다는걸 말하고, 카라는 윈을 추수감사절에 초대한다.
레슬리는 중태에 빠져서 병원에 입원. 번개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하게 된다. 카라와 그랜트는 레슬리를 병문안 오지만 그녀는 꺠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라지자 레슬리의 주변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병원에서 나온 레슬리는 자신의 몸에 전기가 튀고 뭔가 변화했다는 것을 느낀다. 레슬리에게 헌팅남이 접근하다가 감전당하여 쓰러진다. --그저 헌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라이브와이어가 된 레슬리는 전기로 몸을 변화하여 가로등 속으로 사라진다.
카라와 알렉스, 엄마는 윈을 초대해서 추수감사절 파티를 한다. 알렉스는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제임스가 카라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물어서 윈은 떨떠름해한다. 알렉스는 자신이 DEO에서 일하고 있다는걸 엄마에게 밝힌다. 엄마는 알렉스에게 화를 내고 두 사람은 돌아서 버린다. 자리가 불편해진 윈은 자리를 떠난다. 카라는 그랜트의 호출을 받아서 돌아온다.
그랜트는 카라를 불러내서 모든 전자기기가 망가지고 있다고 하며 어떻게 해보라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정전이 일어나며, 멀티스크린에서 레슬리 윌리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레슬리는 자신은 레슬리 2.0--낡은 표현--이 되었다며 [[라이브와이어]]를 자칭하며 나타난다.
카라와 그랜트는 라이브 와이어의 공격에서 도망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경비실에 가라고 하며 피신시킨다. 라이브와이어가 그랜트를 공격하려 하자 카라는 슈퍼걸이 되어 나타난다. 카라는 그랜트를 도망치게 하고 라이브와이어와 대결한다. 라이브와이어는 엘리베이터를 추락시키는데 카라가 날아가서 구출한다.
내셔널 시티는 정전 상태에 빠진다. 행크는 번개가 클립톤인 DNA를 통해서 레슬리가 변화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하며, DEO에서 체포하고 있는 자로넛을 이용해서 라이브와이어를 잡자고 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가족과 다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카라는 가족에게 가보겠다고 결심한다. 알렉스는 정전이 된 상황이라 엄마가 걱정되어 엄마를 찾아온다. 알렉스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앙금을 풀어내는데, 곧 DEO의 호출이 와서 떠나게 된다.
카라가 슈퍼걸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그랜트는 자신이 라이브와이어를 불러낼 수 있으니 함께 라이브와이어를 붙잡자고 한다.
카라는 대결중에 위기에 몰렸다가 봉인 장비를 사용하려고 하지만 라이브와이어가 눈치채서 실패한다. 라이브와이어는 카라를 죽이려고 격렬한 전격을 퍼붓는데, 그랜트가 나타나서 레슬리를 설득한다. 그 떄를 노려서 카라는 지하에 있던 수도관을 완력으로 뜯어서 라이브와이어에게 뿌리고, 라이브와이어는 물에 닿자 전력이 방전당하여 쓰러지고 만다.
* 라이브와이어는 DEO 최초의 지구인 죄수이다.--자랑스럽다.--
- 식극의 소마/185화 . . . . 20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아무리 반역자들이 강해졌어도 상대가 십걸인 이상 전원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 각자 나사가 하나씩 빠진 인물들이지만 뛰어난 미각과 공정한 심사가 보증된 인물들이다.
*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소마측의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데, 린도가 나타나 자신이 두 사람의 시험 상대라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 쿠가 테루노리는 잠자코 통화를 듣고 있었지만 충고를 한다.
* 적이 전원 십걸인 이상 반역자들이 모두 살아나가는건 불가능하다는 것.
* 소마는 그 말을 듣고 "각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고 지금은 내 승부에 임할 뿐"이라며 대결장소로 향한다.
* 도지마 긴은 시합자가 모이자 심사의원을 입장시킨다.
* 이번 심사의원은 "나키리 인터네셔널"을 일으켜 세운 당사자이자 나키리 센자에몬의 아들, 그리고 나키리 아리스의 아버지인 "나키리 소우에"
* 불과 15세 밖에 되지 않은 쌍둥이 자매지만 뛰어난 미각과 대뇌심리학 지식을 가지고 있어 레오놀라에게 스카웃 된 것.
* 쿠가는 이들이 나키리 아자미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들어 이의를 제기한다.
* 하지만 소우에는 심사에 있어 공정함은 보증하겠다며 설사 자기 딸이 승부해서 패배하게 된다 해도 공정하게 심사하겠다고 장담한다.
* 소마는 선발시합 때 처럼 서로 먹어서 비교해보자고 제안하고 하야마는 뭘하든 실력차이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잘라말한다.
* 하야마의 요리는 "프라이드 치킨". 말하자면 "프라이드 베어"인 셈. 하야마는 이것을 센트럴에 어울리는 맛으로 어레인지하겠다고 한다.
* 소우에도 어지간히 자신이 있기에 고른 레시피라고 평하며 소마에게 반격할 기회도 주지 않을 셈이라 말한다.
* 쿠가는 어차피 어제밤 이후로 무슨 말을 더 해준다고 요리가 나아지진 않을 거라며, 소마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고 말한다.
* 그런데 이 시점에서 보면 아자미를 제외하곤 나사가 안 풀린 인물이 없다.
* 하긴 아자미도 이상한 야망 때문에 부정부패를 일삼는 인물이므로 제대로된 인간이 아니다--노답 일가--
- 식극의 소마/233화 . . . . 20회 일치
* 숙소에 남아있던 [[쿠가 테루노리]]와 [[키노쿠니 네네]]가 로비에서 마주친다. 약간 껄끄러워하다가 쿠가가 입을 열고 네네는 쿠가에게 대회장에 안 가냐고 묻는다. 쿠가는 자기가 할 일은 다 했고 지금은 "뒷일은 젊은 애들끼리"라고 말하는데 네네는 그 말투가 중매쟁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한다. 쿠가가 그러는 네네야 말로 왜 호텔에 있냐고 멘탈이 두부라서 그러냐고 쏘아붙이고 네네는 "[[미마사카 스바루]]랑 같이 덤벼놓고 진 쪽이 더 불쌍"하다며 디스를 주고 받는다. 쿠가는 으르렁거리다 상대가 [[유키히라 소마]]였던걸 후회하라며 그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1학년이라고 추켜세운다. 네네는 의외로 그 말에 수긍하고 소마의 강함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패배 이후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면서 정말 소마는 보통 1학년인 거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네네와 달리 쿠가는 "이 땋은 머리가 뭔 소리야" 정도로 성가셔하고 있다.
* [[나키리 아자미]]가 [[나키리 센자에몬]]을 상대로 "토오츠키 92기는 센자에몬이 선별한 옥의 세대"라고 꼬집고 있는 동안, 식극회장에선 격전이 이어진다.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 그리고 소마는 환상적인 호흡으로 상호의 서포트와 자신의 조리를 완벽하게 양립해간다. 그 모습에는 상대인 십걸 측도 꽤 인상적인 듯, 심사의원 샤름, 이스트와르, 안도 오래 함께 한 숙련된 주방 같고 이정도 연계라면 십걸 측이 패널티를 진 걸 수도 있다고 극찬한다.
* 이 시구레니는 알디니가 스타지엘을 수행했던 요정 "후지사메"에서 익혔다. 후지사메에선 계절 회식의 마무리 요리로 밥과 된장국, 절임에 더해 이것을 냈는데 특히 시구레니가 인기가 많았다. 선물로 따로 요청 받을 정도로 호평인걸 보고 타쿠미도 슬쩍 맛을 보는데, 그 맛에 깜짝 놀라서 이걸 만드는 기술을 반드시 훔쳐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후지사메의 주인이 그를 부르더니 왜 자기 식당의 시구레니에 "바늘썰기"한 생강을 넣는지 아냐고 운을 띄웠다. 바늘썰기는 보통 채치기 보다 압도적으로 가늘게 썬 것을 말하는 것. 그는 다소 두서없이 그렇게 해야 시구레니 전체에 생강의 풍미가 퍼진다고 알려주는데, 이 기술을 먼저 익히지 않고는 다른 기술을 훔치고 어쩌고도 없다고 조언했다. 주인장이 타쿠미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슬쩍 조언을 해준 셈이다.
* 그 후 타쿠미는 보란 듯이 그 기술을 훔쳐냈다. 이 식극회장에서 그 기술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타쿠미가 눈부신 속도로 생강 바늘썰기를 시연하자 언제나 반역자를 야유하던 관중석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심사의원 안은 "어메이징"이란 표현으로 아름답고 섬세하고 대단하다는 극찬을 남겼다. 대호평의 바늘썰기 이후 타쿠미가 착수한 것은 밀가루 반죽. 피자 도우를 만드는 공정이었다. 시구레니를 토핑으로 쓴 피자가 타쿠미의 계획. 이 역시 기대가 동료들과 심사의원으로부터 기대가 된다고 격찬을 맏는데, 왠지 동생 이사미만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 타쿠미의 상대인 [[에이잔 에츠야]]는 시구레니 조리부터 피자 도우 반죽에 이르는 타쿠미의 행보를 지켜 본 뒤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갑자기 회장을 빠져나가는데 필요한 재료를 늦었다며 다시 대형창고로 향한다. 하지만 그의 속뜻은 따로 있었다. 그는 타쿠미가 가을 선발에서 굴욕을 딛고 일어나서 훌륭히 "성장의 증명"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 답지 않게 "요리사의 귀감"이라고 내심 칭찬하는데. 그 칭찬은 또 다시 패배할 타쿠미에 대한 유감의 표시였다.
동료들과 연계해서 조리 중. 중간에 타쿠미 알디니가 피자 반죽 중일 때 괜히 성가시게 굴었다. 한편 키노쿠니 네네는 그의 강함에 어던 위화감이 느껴진다며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의문을 가지고 있다.
후지사메에서 익힌 시구레니를 들고 나왔다. 당시 타쿠미의 열정을 높이 산 주인장이 넌지시 그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장이 언급한 "바늘썰기"를 눈부신 솜씨로 시연해서 극찬을 받고 시구레니를 이용한 피자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여서 기대도를 높였다. 하지만 동생인 이사미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있는데다 에이잔이 또 음모를 꾸미는 것 같아서 전망이 어둡다.
숙소에서 쉬고 있다가 카페가 가려고 로비로 나왔더니 쿠가 테루노리랑 마주쳤다. 본래 친분이 있었지만 적이 된 사이고, 전날 사이좋게 패배한 판이라 꽤 어색해한다. 쿠가하고는 서로 멘탈이 약하다고 디스를 퍼붓는데 쿠가가 문득 유키히라의 강함에 대해 입에 올리자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강함에는 위화감이 있다며 그가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태도의 네네와 달리 쿠가는 되게 성가시게 여긴다.
태평하게 목욕하고 마사지 기계 위에서 뒹굴다 네네와 마주쳤다. 서로 대회장에 못 간걸 멘탈이 무너져서 그렇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쿠가가 먼저 "소마가 상대였던걸 후회해라"며 소마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한다. 의외로 네네가 거기에 수긍하면서 소마의 강함에 대한 걸로 화제가 넘어가는데, 그녀가 정말로 보통 1학년일 뿐이냐고 묻자 "이 땋은 머리가 뭐래는 거냐" 정도로 가볍게 반응한다.
타쿠미가 놀라운 성장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는 동안 수상한 음모를 꾸며냈다. 잊은 재료가 있다며 대형창고로 돌아가는데 뭔가 공작을 펼치려는 의도인 듯. 그러면서 타쿠미의 성장은 자신도 인정하며 요리사의 귀감이라고 극찬하지만 그 긍지가 또다시 무너질 거라며 그의 패배를 자신한다.
- 악당 . . . . 20회 일치
이런 유형은 부하일 경우 팽당하거나 배신당하기 쉽기 때문에, 두목 내지 혼자인 경우가 많고 어느 쪽으로도 간지를 발산하기 쉽다. 다만 두목일 경우 '팀킬하는 보스'로도 이어지기 쉽다.
입이 싸서 아군의 기밀을 처음이든 나중이든 술술 불어버리는 유형. 자기 입으로 비밀을 누설하는 것 자체가 멍청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에, 간지 넘치는 최종보스를 만들고 싶다면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유형은 소악당 내지 최종보스의 측근인 경우가 많다. 물론 자기 입으로 비밀을 다 알려주고도 덤벼보라는 사례도 있지만 비밀을 알아도 공격하기 힘든, 즉 신체능력 등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당당한 것이다.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비밀을 알려줘서 충격을 주는 사례도 있다.
* '''무능력한 상사/게으른 상사/자폭하는 악당'''
무능력 자체가 해악이 되는 유형. 무능한 짓을 계속할 경우 아랫사람들의 고생이 계속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능해서든 게을러서든 아무것도 안 할 경우 그것 자체가 무능이 되므로 오도가도 못한다. 나중에 가면 본인의 잘못을 깨닫거나, 혹은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자폭하기도 한다. 가급적 자폭 엔딩은 완벽'했던' 최종보스에게 권장된다.
답이 없다. 주인공이라는 입장상 줄거리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죽기 전까지는' 극을 이끌어가게 되고, 그만큼 악행도 길어진다. 자신이 악당임을 자각하고 있으면 '안티 히어로'로 발전할 수 있지만, 악당임을 자각하면서도 악행을 계속한다면 진짜로 답이 없다.
* '''2인자'''
* '''호부견자, 견부호자'''
해당 인물이 악당이라는 말은 반대로 그 친인척들이 (상대적으로) 선인이라는 말이 되므로, 그 친인척들은 십중팔구 피해자나 적대자가 된다.
* '''견부견자, 막장부모'''
성욕 혹은 성벽을 충족시키려는 유형. 주로 에로게에 많다. '광기' 유형과는 적어도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 요괴:냉장고 . . . . 20회 일치
집 밖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냉장고는 배 안이 차갑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숨바꼭질을 하다가 혼자가 된 아이를 덮처서 먹어버리는 경우가 있어, 얼른 멀리 쫓아서 퇴치해야 한다.
|| 엄마가 밥먹듯이 해주던 말이 혼자서 냉장고 근처에 가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건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됐는데 사이다나 아이스크림 꺼내먹으려고 냉장고에 기웃거리자면 어김 없었죠. 엄마는 내가 문을 열고 멍청하게 서있는다고, 그러면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고 핑계를 댔는데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은 믿지 않았어요. 엄마도 간장병을 찾는다고 5분씩 문을 열어놓기가 일쑤였거든요. 또 엄마는 자기가 보는 앞에서는 내가 아무리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눈치 챌 수 밖에 없죠.
그때 엄마가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지금도 왜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냉장고랑 내가 단 둘이 있는 거였어요. 내가 충분히 자라고 나서는 엄마의 잔소리도 사라지거나 정말로 전기세 때문에 하는 얘기였죠. 그게 대략 중학교 입학 이후였고, 그 다음에는 제 동생한테로 넘어갔어요. 걔는 좀 둔한 애니까 말하는 대로 믿는 것 같아요. 하기야 동생은 언제나 착하고 말 잘 듣는 애니까요. 엄마는 나한테 뭐라는지 아세요? "우리집은 누나가 동생을 닮아야 돼"라니까요?
얘기를 좀 바꿔야겠는데, 나는 첫남친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겼어요. 이거 우리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엠바고에요 엠바고. 내가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남친이래 봐야 둘이서 자전거타고 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사이 정도였죠.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니까 만든 거지 그 이상 관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진지하게 나온건 그쪽이었죠. 점심시간에 부르더니 그러더군요. "오늘 우리 집에 엄마아빠 없어"라고요.
더 자세한 핑계는 필요가 없었죠. 나는 모른척 하면서 동생 옆에 가서 같이 햄스터를 봤어요. 그것도 결국 쥐라서 질색이지만 그래도 그 애 옆에 있다가 답답해서 죽는 것 보다는 나은거 아니겠어요? 그애는 채념한 건지 토라진 건지 방에서 나가더군요. 끝까지 모른 척 했어요. 잠시 뒤 주방에서 그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럼 뭐 먹을 거야? 과자도 있고 빵도 있어."
대답은 없었어요. 인기척도 없었죠. 집안이 갑자기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느낌만이 아닐 거란 이상한 확신이 생기더군요. 동생은 여전히 햄스터에 빠져 있었어요. 나는 의식을 주방 쪽으로 집중했죠... 거기서는 아무 것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곳에서만 온기가 쏙 빠져나가고 액자 속으로 박제되어 버린 것 같았죠.
"혼자서 냉장고 열지 말라고 그랬지!"
참 신기하죠? 그때 마침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나다니. 나는 조용히 발을 돌렸어요. 갑자기 엄마말씀을 꼭 따르고 싶더라고요. 나는 동생한테 가서 같이 주방에 가보자고 했죠. 동생은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햄스터를 더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한대 쥐어박으면 고분고분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나는 동생 손을 꼭 잡았어요. 그래야지만 "2인분"이 된다고 믿어버렸거든요.
냉장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나는 속지 않았어요. 내가 처음 냉장고를 보고 생각한 것, 그애가 화장실에 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건 근거가 있었어요.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 소음이었죠. 누가 음악이라도 틀었더라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에요. 누가 기침만 해도 들리지 않았을 거라구요. 영문을 몰라하는 동생을 데리고 나는 냉장고로 갔어요. 한 발짝 씩 다가갈 때마다 그 소리는 더 뚜렷하게 들려왔죠. 콩콩콩콩. 규칙적인 네 박자.
냉장고 손잡이로 향하는 내 손이 독한 감기약에 취한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어요. 그리고 현실을 비집어 넣는 싸늘한 플라스틱의 감촉. 머릿 속에서 안 된다고 되뇌이는데도 손은 멈추지 않았어요. 텅하고 열리는 문짝이 아주 서서히, 서서히. 그러는 사이에도 콩콩콩콩 규칙적인 네 박자는 멈출 줄을 몰랐죠. 냉장고 안에 주황색 등이 켜지고 나는 냉장고 안이 보이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혔죠. 그리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 것도. 그 애가 고르라던 두 가지 쥬스 조차도. 네 박자와 함께 사라져 버렸던 거에요. 나는 서둘러 문을 닫아버리고 동생의 손을 잡아 끌었어요.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햄스터는 사주지 않은 것과, 그 애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거에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길에서도. 그 애가 잘 다니던 어디에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죠. 걔네 부모님들은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죠. 나는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돌아온다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무엇을 하다 온 걸까요? 그 애가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건 물어볼 일이 없는 편이 나았죠.
경찰이 우리 집에 온 건 딱 한 번이에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나랑 내 동생이 찍혔더라고요. 그때 두세 살만 많았어도 용의자로 분류될 뻔 했다는걸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요. 경찰이 특이한 점은 없었냐고 묻길래 초대 받아 갔다가 동생을 데리고 왔다고 화내서 그냥 집에 왔다고 했죠. 약간 생략한 부분이 있을 뿐 대체로 진실이었으니까요.
경찰이 다녀간 뒤에 딱 한 번 엄마한테 그 얘길 했어요. 엄마는 한참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내 말이 끝나니까 "다시는, 누구한테도 그 얘길 하지마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꺼내주더군요. 그건 내가 쪽지시험을 잘 쳐야 한 컵씩 덜어먹는 거였어요.
- 요괴:선풍기 . . . . 20회 일치
기괴한 형상의 요괴로서, 납짝한 발 하나에 길쭉한 몸통이 붙어 있다. 머리는 큰데, 철망으로 덮혀 있으며, 철망 안에 팔랑거리는 부채가 3~4개 달려 있다. [[여름]]에서 집 안에 자주 출몰한다. 다른 때는 대개 창고 같은 곳에 숨어 있다. 기계가 저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일본]]의 [[츠쿠모가미]]와 유사한 종류이다.
이 요괴는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나, 저 무서운 능력에 대해서는 주로 [[한국]]에만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이 요괴에게 봉인을 걸어, 일정 시간 이상 움직이면 저절로 음직임이 멈추게 하는 주박술을 걸어놓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한국에서도 여름에 선풍기에게 살해당했다는 안타까운 설화가 자주 전해진다.
우리는 한달 동안 그 방을 샅샅히 뒤졌습니다. 아마도 그 여관을 설계한 사람보다 우리가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 그게 설계도라는게 존재하기나 할때 얘기겠지만. 뜯을 수 있는 거면 장판부터 벽지, 못자국 막은 스티커 하나까지 다 뜯어 봤어요. 할 수 있었으면 틱틱대는 주인양반 머리통도 뜯어버렸을 겁니다. 그 빌어먹을 요강 속에 든게 우동사린지 확인해 봐야죠.
성과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하게 된 거죠. 누가 그러더군요. "방"에 범인이 있다고... 아니 웃지 마세요.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내 말을 들어요. 난 평생 그런 얘길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도 그랬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 사건 하나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내 담당이었던 사건 용의자 두 명이 공소시효를 넘겼어요. 상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뱉어대는 말이 험해지고 일주일 쯤 집에 못 들어갔더니 마누라가 전화로 이혼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 밤이 되기 하루 전에는 내 아들이 대회에서 첫 우승트로피를 받았는데 나는 걔가 무슨 대회에 나가는 건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면 무슨 개소리를 듣던지 간에 까짓것 해보지, 이런 생각 안 하게 생겼어요?
그래요 자포자기였던 거죠. 별짓을 다 해봤으니까 이짓도 못할건 없겠다, 차라리 이쪽이 "재미"는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왜 일부러 폐가 같은데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종종 민원이 들어가서 잡으러 갈 때가 있죠. 남의 사유지를 멋대로 들쑤시면서 심령어쩌구 저쩌구하는 또라이들. 어쩌다 보니 나도 그 짝이 됐네요.
감식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찝찝했어요. 현장은 내집보다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먹고 자는건 아니니까요. 화장실에서 밥먹고 식당에서 세수하는건 어색하잖아요. 현장은 아직도 우리가 그어 놓은 표시가 남아있었어요. 며칠 내로 치워줘야겠지만 그때까진 살인현장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죠.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그저 사무적으로 바라봤던 그 공간이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그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느낌... 비유가 이상했군요. 그건 일종의 냄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데 내가 뛰지 않은 방귀를 맡는 기분. 이것도 이상한 비유군요. 어쨌든 그랬어요. 이상한 긴장감 속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죠.
아무 생각없이 그걸 켰어요. 나에게 얘기해준 사람이 경고하긴 했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믿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 믿지도 않는 얘기를 가지고 확인하러 갔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그냥 마가 꼈던 거죠. 고개가 빙빙 돌아가면서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죠. 창문은 여전히 고장난 채였습니다. 검식할 때도 봤지만 건물 자체가 서서히 비틀리고 있어서 거기만 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죠. 내부온도가 30도를 웃도는데도 믿을 건 "그거" 밖엔 없었습니다. 짜증이 밀려들었죠.
나는 피해자들의 마지막 표시를 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세 사람 분의 하얀 선들. 막상 그렇게 들어앉아 있다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더군요. 뭘 기대한 거야? 당연히 아무 것도 없지, 뭐하러 이런데 왔어...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시간은 벌써 3시가 가까웠고 침대에서 자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더군요. 그런데 마침 있더란 말입니다. 피해자가 쓰던 거지만. 그건 더운 바람을 토해내면서 돌아가고 있고 저는 멍청하게 방 가운데 앉아 있었죠. 아무 변화도 없는 방에서 아무 생각도 행동도 안 하면서. 졸린건 억지로 참으면서 말이죠. 미친 짓 같지만 이건 수사활동이다, 수사활동이다 하면서 어느 정도 버텼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자야 돼. 자면 어때 이런 생각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몸은 침대 위로 올라갔고 그대로 한동안 푹 잤습니다. 그건 순찰차에서 자는 쪽잠 같은 거하곤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죠.
지금도 왜 눈을 떴는지, 얼마만에 의식을 찾은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뜨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요. 바로 그 바람. 그게 눈 앞에 있었죠. 이상했어요. 분명히 꽤 떨어진 자리에 그게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정확히 닿는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더군요. 게다가 회전시켜봤던 목이 똑바로 나를 향해 고정돼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가까워졌다는 표현... 이건 정확하지 않군요. 가까이 왔다고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건 가까이 와있었어요. 실내 온도는 더 올라간 것 같았고 그놈이 토해놓는 바람은 이제 드라이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한 가운데에도 그걸 꺼야겠다는 생각만은 또렷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었죠.
자매품으로 [[요괴:에어컨|에어컨]]이 있다.
- 원피스/817화 . . . . 20회 일치
조우의 두 일족은 드디어 화해하고, 문제의 닌자 라이조를 만나러 간다.
* 조우를 학살하고 돌아간 잭은 자신의 배에서 부하들에게 "나는 죽었냐"고 묻는데 부하들은 벌벌 떨면서 아니라고 대답한다.
* 킨에몬은 등에 있는 "코즈키 일족의 문장"을 보인다. 이것은 라이조와 조우의 두 지도자가 가진 것과 같은 문장이다
* 모모노스케는 사실 킨에몬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쿠즈키 일족의 후계자 "쿠즈키 오뎅"의 자식 "쿠즈키 모모노스케". 지금까지는 신분을 속이고 있었다. 쿠즈키 일족은 "와노쿠니"의 대 다이묘다.
* 모모노스케는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의 싸움을 말리는 등 어른스럽게 굴지만, 막상 루피가 자기 신분을 대우해주지 않자 삐져서 나미에게 응석부린다.
* 라이조는 나무 안의 "포네그리프"에 묶여 있었다. 나라를 희생시키느니 자신을 넘기라고 아우성 쳐서 묶어놨다고 한다.
* 루피 일행은 라이조가 멋진 닌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 실망한다. 라이조는 일행이 생각하는 닌자상은 실제와는 다르고 인술은 구경감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행이 시무룩해 하자 할 수 없이 인술 몇 가지를 선보였다. 일행은 금세 환호한다
|| 남자라면 다들 닌자를 좋아한다고.
|| 소인이 닌자라 물었는가?
"인기"는 없어도 "무적"의 닌자!!
"안개의 닌자" 지금 마악! 등자앙!! 닌! 닌!
* 코즈키가 실은 높은 분의 자식이라는건 알라바스타 에피소드의 재탕이다.
* 라이조는 기대와 다르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구닥다리 닌자. 인술을 구경거리 취급하는 일행에게 일갈할 정도로 고지식하지만, 막상 시무룩해하니까 리퀘스트에 응해주었다.--나루토가 끝나서 점프에서 사라진 [[닌자]] 분량을 보충하는 걸지도--
- 원피스/840화 . . . . 20회 일치
* 빈스모크 저지는 한때 베가펑크와 함께 연구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
* 그러나 베가펑크가 체포된 이후 혼자 연구해왔으며 지금의 제르마를 만들었다.
* 상디와 형제들은 혈통인자로 조작되어 태어난 초인들.--어쩐지 눈썹이 이상하더라.-- 그러나 상디만은 뭔가 잘못돼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 상디는 믿기지 않는다는 보고 있지만 욘디는 자랑스레 "각국이 두려워하는 제르마 66, 그 병사들"이라 소개한다.
* 빈스모크 저지는 상디 형제들이 태어나기 전엔 뛰어난 과학자였다.
* 그때 베가펑크는 생물의 "혈통인자" 즉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세계정부에게 적발된다.
* 20세 기준으로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약 5년. 기억마저 조작하는지 그들은 자기가 정말로 20년을 살아왔다고 믿게 만든다.
* 그는 "밥짓는 여자 따위가 맘에 들었냐"고 빈정거리고 반격하면 인질이 무사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한다.
* 그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이들을 만들었으며 하찮은 정에 휘둘리지 않고 언젠가는 과학의 힘으로 더욱 진보한 제르마66을 지배할 자들이라고 칭한다.
* 욘디가 거북이를 걷어차버리자 상디가 화를 낸다. 그러나 욘디에게 철저하게 보복 당한다.
* 하지만 상디는 "실패". 분명 혈통인자의 조작은 성공했으나 상디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 상디는 자기 방에서 생쥐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주며 귀여워하고 있었다.
* 저지는 생쥐를 기르는 것이나 요리를 하는 것 모두 못마땅해하며 "네 어미는 죽었고 죽은 자의 그림자를 쫓지 마라"고 야단친다.
*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저지는 상디를 "쓸모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조치를 취한다.
* 그는 자신을 두고 가는 병사들에게 아버지를 불러달라고 아우성치는데, 이게 바로 저지의 결단.
* 밀집모자 일당도 베가펑크와 연관된 인물이 있는데 프랑키. 그러나 정작 프랑키는 다른 루트로 갔다.
* 상디가 여자를 때리지 못하는건 어머니 때문으로 보인다.
* 레이쥬는 유일하게 여자이며 상대를 보살펴주었는데 이유는 불명.
- 원피스/849화 . . . . 20회 일치
* 객실의 빈스모크 일가는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빈스모크 레이쥬]]가 보이지 않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빈스모크 욘디]]가 [[빈스모크 저지]]에게 결혼 후 [[상디]] 부부가 어디서 지낼 거냐고 묻자, 저지는 당연히 제르마 왕국이라고 답한다. 그는 [[샬롯 푸딩]]을 볼모로 잡을 생각이며 그래야지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 미러월드의 [[샬롯 브륄레]]의 집. 아직도 [[캐럿(원피스)|캐럿]]을 요리하고 있다. 캐럿은 부글부글 끓는 솥 위에 매달려 있는 상태. 브륄레가 솥을 젓고 있고 학기사 랜돌프를 비롯한 부하들이 솥 주위에 모여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잡힌 척하고 있는 [[쵸파]는 캐럿을 죽이지 말라고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잡혀있는 캐럿은 진짜가 아니다. 그건 브륄레가 만든 가짜. 자신의 능력으로 개구리를 캐럿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아마 쵸파를 혼란시키려고 한 짓같지만 이번엔 자기 무덤을 판 짓이 됐다.
* 진짜 캐럿의 위치는 지붕 위. 솥 바로 위에 있다. 갈라진 틈으로 아래 상황을 엿보며 가짜 캐럿이 들키지 않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성우냐-- 아직 주위에는 적이 16명이 있고 그 중 성가신 인물은 네 명. 브륄레 자신과 [[학기사 랜돌프]], [[귀족 악어]], [[디젤(원피스)|디젤]]. 쵸파는 이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요리가 무르익으면서 이제 캐럿을 삶을 차례다. 랜돌프가 칼을 들어올려 가짜 캐럿이 매달려 있는 줄을 끊으려 한다. 캐럿은 돌팔매로 랜돌프를 제압하고 재빨리 뛰쳐나가 가짜 캐럿에 매달린다. 디젤은 이런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한 발 늦었다. 브륄레도 토끼가 두 마리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캐럿이 솥을 뒤집어 엎는데 휘말려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다.
* 소란이 벌어지자 쵸파는 브레인 포인트를 써서 몸집을 작게 줄인다. 큰 몸집에 맞춰졌던 포승이 저절로 풀리자 쵸파는 럼블볼을 복용한다. 그 사이 캐럿은 가짜 캐럿, 개구리까지 구해내고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 부하들이 브륄레를 도우러 달려들자 젖은 바닥으로 전기충격인 "일렉트리컬 루나"를 사용해 전부 감전시킨다.
식탁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귀족 악어는 아웅성치는 소리를 듣지만 둔해 빠져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몬스터 모드로 변한 쵸파는 귀족 악어를 붙잡아서 우왕좌왕하는 조무라기들 위로 매쳐버린다. 유일하게 디젤만 무사히 도망치지만, 자기 발이 빠르다고 자부한 것관 달리 캐럿에게 너무나 쉽게 따라잡힌다. 결국 디젤까지 간단하게 정리. 섬 전체와 연결된 미러월드가 쵸파 일행에게 함락된다. 쵸파는 이 미러월드를 이용해 흩어진 동료들을 찾자고 한다.
* 상디는 자기 방에서 꽃다발을 다듬고 있다. 그때 빅맘의 부하가 와서 밀집모자 일당의 행방에 대해 소식을 전한다.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는 체포,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브룩]]은 난동 중. 상디는 꽃다발을 매만지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소식을 듣다가, 결국 이젠 됐다며 귀를 닫아버린다. 그 대신 부탁한 식재료는 사왔냐고 하는데.
부하는 재료를 건네며 배가 고프다면 뭐든 드릴 수 있다고 하는데, 상디는 자기가 먹을 요리를 하는게 아니다. 그가 준비하는건 푸딩을 위한 요리. 그녀가 식사시간에 자리를 비워서 걱정된다며 손수 요리를 하려는 것이다. 그 마음씀씀이에 빅맘의 부하도 감동한다.
* 보물전 바깥에서 대기하던 [[샬롯 스무디]]는 "어머니"의 행차를 보고 자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확실히 화가 나있다. 빅맘 [[샬롯 링링]] 등장. 빅맘은 그냥 문을 부수고 보물전에 들어선다.
* 병력을 끌고 다니던 페드로는 마침내 안뜰까지 쫓겨온다. 그를 추격한 [[타마고 남작]]이 기다리고 있다. 타마고 남작이 밝힌 그의 전 직함은 "녹스 해적단 선장 캡틴 페드로". 그는 비록 적이라도 페드로를 "너른 자"라 인정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만에 숙적을 마주하니 "왼쪽 눈의 상처"가 쑤신다고 말하는데. 그는 빅맘에게 사로잡혔던 "5년 전"엔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페드로가 어째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냐고 묻는다. 하긴, 그는 이미 "제대로 살아있을 수도" 없는 몸이다. 5년 전 그날 페드로는 50년 치 수명을 바치는 대가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는 타마고 남작. 그는 왼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
페드로도 모자를 벗으며 지금껏 왼쪽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그 또한 왼쪽 눈이 없다.
레이쥬를 습격한 자로 초신성 [[카포네 벳지]]가 거론된다. 이미 [[페콤즈]]를 쏘고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 비춘데다 샬롯가의 사위로서 홀케이크 아일랜드에 머물고 있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
- 원피스/855화 . . . . 20회 일치
* 브룩은 사실 자신의 두개골 속에 탁본을 숨겨오는데 성공했다. 빅맘이 들이닥친 시점은 그가 막 탁본을 숨긴 직후.
* 빅맘 해적단의 전투원(비숍 클래스) "처리꾼 [[보빈]]". 현상금이 1억 550만에 달하는 나름 거물이다. 그는 [[상디]]에게 공격 당한 충격에서 금새 벗어난다. 부하들이 달려와서 방금 전 소란은 뭐였냐고 묻는데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음파같은 것이 발산, 부하들은 서서히 잠들어 쓰러져 버린다. 그는 "마무리는 내가 한다"며 직접 상디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빅맘 [[샬롯 링링]]의 처소 "여왕의 방". 빅맘은 브룩을 소중한 인형처럼 품에 끼고 잠들어 있다. 게다가 브룩 자신도 꿀잠 중. 주위엔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나폴레옹"이 함께 자고 있다. 브룩을 구하려던 일행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당황한다.
그걸 본 [[샬롯 브륄레]]는 빅맘은 본래 진귀한 생물을 좋아한다며 브룩을 한 침대에 재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빅맘을 깨우려고 마구 소리를 친다. 일행은 브륄레는 물론 니트로까지 입을 꽁꽁 묶어서 치워놓는다.
* 거울을 들여다 보며 발만 구르는데, 빅맘이 갑자기 눈을 뜬다. 하지만 단순한 잠꼬대. 그때 마침 파리가 날아가고 빅맘이 잠결에 때려잡는다. 그 충격에 바닥이 박살나고 잠자던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나폴레옹이 짜증을 부리며 소리가 난 곳을 공격한다. 정작 깨줬으면 하는 브룩은 잠깐 일어났다가 "뭐야 파리냐"하고 도로 잠들어 버린다. 속 터지는 상황에 빅맘의 엄청난 위력까지 목격한 일행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 쵸파 일행은 브룩을 가짜와 바꿔치기 하기로 한다. 처형장에서 유골을, 주방에서 미역을 훔쳐서 그럴듯한 가짜 브룩을 만들고 빅맘이 자는 동안 바꿔치기 한다는 계획. 하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 시도는 쵸파가 한다. 징베가 브륄레는 거울 중간에 붙들어 놓고 터치하는 걸로 누구든 자유롭게 거울을 드나들 수 있게 된다. 쵸파는 작은 사이즈로 변해서 접근을 시도하는데, 잘 가는 듯 하다가 중간에 재채기를 하면서 산통을 깬다. 또 파리라고 생각한 빅맘이 힘껏 팔을 휘둘러 공격, 짜부가 될 뻔한걸 겨우 피한다.
다음 시도는 [[캐럿(원피스)|캐럿]]. 쵸파에 비하면 안전하게 브룩에게 접근하지만 갑자기 빅맘이 뒤척이는데 밀려 떨어지면서 소리를 내고 만다. 제우스가 캐럿을 공격,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이번에도 파리가 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 브룩이 떨어지자 이번엔 [[나미(원피스)|나미]]가 시도한다. 나미는 브룩을 깨워서 데려가려 하는데 막 깨어난 브룩은 나미가 짊어진 가짜 브룩을 보고 놀라 귀신이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 빅맘. 아직도 파리인 줄 알지만 정말로 짜증이 한계에 달해서 프로메테우스를 집어서 휘두른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징베는 거울 밖으로 몸을 날려 빅맘의 "헤븐리 파이어"에서 나미와 브룩을 구한다. 겉옷에 불이 붙지만 몸을 굴리면서 거울 속으로 도주, 가짜 브룩도 무사히 현장에 놔두고 왔다. 작전은 결국 성공.
* 일행과 재회한 브룩은 깜짝 놀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나미는 놀란건 이쪽이라며 면박을 준다. 페드로는 브룩이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애초에 그런 상황에서 무리한 작전을 구상한 자신의 탓이라며 브룩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브룩은 그건 자신들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며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또 포네그리프를 빼앗으려면 어차피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기 두게골을 열어보인다. 그런 기능이 있는줄 몰랐던 징베와 캐럿은 경악.
>자 이거 '사본'이에요.
브룩은 아무렇지 않게 "사본"을 꺼내놓는다. 쵸파와 나미, 캐럿의 눈이 휘둥그래하게 튀어나온다. 브룩은 아무것도 아닌 양 페드로가 무사해서 다행이란 이야기나 늘어놓는다. 나미가 이게 정말 포네그리프냐고 묻자 그제서야 "맞다"며 마침 딱 세 장을 다 배끼고 났더니 빅맘이 나타나 위험했다고 투덜거린다. 페드로는 장성도 끼어있는 호위대를 따돌리고 성공한 거냐고 놀란다.
브륄레는 자기들의 포네그리프를 훔쳤다는 말을 듣고 경악. 밀집모자 일행은 브룩을 껴안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브룩은 분위기를 타고 나미에게 팬티를 보여달라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는다. 쵸파는 이제 목적 중 하나는 달성됐고, 상디를 구하는 것만 남았다고 하는데.
* 평원을 살피고 있던 상디는 어디에선가 커다랗게 "꼬르르르륵" 소리가 나는걸 듣는다. 그 소리를 따라간 상디는 마침내 자신의 친구를 발견한다. 루피는 약속대로 그 평원에서, 너무 굶어서 미라처럼 홀쭉해진 채 상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디는 그 모습을 보고 물엿비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웃는다.
- 은혼/591화 . . . . 20회 일치
쇼요의 제자들 간의 숙명의 대결
* 쇼요로 바뀐 우츠로를 쫓아 추격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 쇼요는 나름의 방비를 해놓고 잠을 청하는데 오보로는 아무리 그라도 자신까지 데리고 도망칠 수 있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 게다가 그는 추격자들을 죽이지 않고 발을 묶기만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 오보로는 배에 칼을 꽂은 채로 추격자들 앞에 나타난다.
* 그를 알아본 추격자들이 다가오는데, 그는 두목의 탈주를 돕다가 필요없어져서 버려졌다고 설명한다.
* 오보로가 쇼요가 간 곳을 허위로 알려주는데, 추격자 하나가 그를 의심한다.
* 추격자들의 무기가 일제히 그를 찌른다.
* 오보로는 나락이 회수해 다시 암살자로 살게 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조직이 쇼요에게 신경쓰지 못하게 공작을 펼쳤다.
* 그러나 우연히 송하촌 학당을 열고 새로운 제자들을 받아들인 쇼요를 발견하고 맹세는 흔들리고 만다.
* 그는 스승을 되찾고자 칸세이 대옥을 이용, 송하촌 학당을 불사르고 쇼요를 끌고 갔던 것이다.
* 오보로는 자신도 양이지사들과 같다며, 스승을 되찾기 위해 스승을 죽였다고 말한다.
* 그는 자신 역시 스스로의 약함 때문에 스승을 잃었지만 단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며
* "설사 그것이 스승의 시체를 뒤집어쓴 다른 자라 해도 다시는 그 사람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라고 말한다.
* "그것이 요시다 쇼요의 제자잖아."
* 쇼요는 그를 지나치다가 "첫 제자에게 유언을 전해달라"며 말을 건넨다.
* "네 덕분에 나는 그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네 덕분에 나는 요시다 쇼요가 될 수 있었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했다. 될 수 있으면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들과... 내 자랑스러운 첫 제자를."
* "벌써 만났습니다. 선생님. 자랑스러운 사제들과."
자랑스러운 사제들과. ||
- 이강돈 . . . . 20회 일치
|| 지도자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연수코치 (1998) [br]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1999) [br] [[한화 이글스]] 2군 주루코치 (2002~2003) [br]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04) [br]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감독 (2006~2008) [br]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감독 (2008~2009) [br]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0~2012) [br]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등학교]] 감독 (2013~2016) ||
|||||||||||||||||| '''1988 ~ 199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외야수]]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수상자''' ||
전 [[한화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풍미한 선수다.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시절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당시 드래프트 제도상 대구 지역의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선권을 가졌는데, 여기서 삼성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지명해 놓고서는 이강돈에게 먼저 군대를 갔다 오면 입단시켜 주겠다고 한 것. 다른 선수에게는 관대하게 입단 조건을 걸고서, 유독 자신만 군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화가 난 이강돈은 전격적으로 빙그레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의 질서를 해치는 이 행동은 '''그냥 넘어갔다.'''[* 그렇긴 한데, MLB에서 [[스캇 보라스]]의 유명세를 알린 loop hole FA사건 원인이 드래프트 지명 후 15일 안에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의무 불이행이므로 계약 무효를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서인 만큼, 삼성 측이 계약하지 않고 군입대를 제안한 것이 의무 불이행으로 해석될 가능성 때문에 법적 공방 들어가도 이강돈에게 승산이 있는 사안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이 사건의 전말은 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개되었는데, 군대부터 다녀오라는 [[삼성 라이온즈]]의 요구를 거부한 이강돈이 다른 팀으로 보내 주기를 희망했고 놀랍게도 [[삼성 라이온즈]]가 신생 팀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빙그레 이글스]]에 조건 없이 지명권을 양도하여 보내 주는 [[대인배]]스러운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강돈뿐만 아니라 중장거리형 1루수 [[강정길]]도 삼성의 지명권 양도로 빙그레에 입단했다.
|| 1987년 8월 27일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후.[*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고 받은 사사키 제품의 배트 세 자루와 KBO에서 준 황금배트를 들고 이강돈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빙그레에서 이강돈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데뷔 첫 해 .297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빈약했던 빙그레 타선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비록 신인상은 [[MBC 청룡]]의 에이스로 급부상한 [[김건우]]에게 내줬지만, 이강돈은 빙그레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정훈(1963년생)|이정훈]], [[장종훈]], [[강정길]], [[이중화]]같은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신생 빙그레는 일약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며 프로야구를 풍미하기 시작했고, 막강 해태에 도전장을 내미는 팀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빙그레는 결국 해태의 벽을 넘지 못하며 1988, 1989,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1992년에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도 3위로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하면서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때 이강돈은 모두 출전했고, 그리고 이강돈이 은퇴한 시기가 1997년이니 이강돈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비록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 했지만, 선수 시절 이강돈은 1번 [[이정훈(1963년생)|이정훈]]의 뒤를 받치는 강한 2번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1990년에는 .33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7사 차이[* 할푼리모 다음 오는 단위가 사. 1모 차이가 났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반올림하면 0.3349로 모 단위까지 똑같았다.]로 [[한대화]]에게 밀려 타격 1위를 놓쳤고,[* [[한대화]] 0.334928, 이강돈 0.334862.] 1992년에는 다시 .320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강돈은 1992년의 최후의 전성기를 끝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슬럼프에 빠지고, 여기에 여러 부상이 겹치면서 조금식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벅지, 무릎, 어깨가 아프고 점차 그 자리를 신인들이 메우면서 이강돈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기에 이른다.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상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다른 하나는 1993년 올스타전 MVP 수상인데, 원래 팬투표로 선발되지 못해 추천 선수로 나갔지만 1회 [[홍현우]]가 2루타를 치고 부상당하면서 대주자로 투입되고, 이후 타석에서 홈런까지 날리며 맹활약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베스트 10 외의 선수로 올스타전 MVP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 지도자 경력 ==
지도자로는 평가가 [[영 좋지 않다]].
은퇴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 호크스]]에서 연수를 받고 한화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한화에서 롱런하지 못했다. 그 뒤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 감독도 잠시 역임했다가 [[롯데 자이언츠]]로 건너가서 타격코치로 재임했다. 그러나 프로구단 코치로서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1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 이문식(배우) . . . . 20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본디 [[대학로(서울)|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연극 배우였다. 대학 졸업 후 극단 '한양 레퍼토리'를 통해 전문 연극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유해진]]과 같이 대한민국 조연배우의 양대산맥이며 주로 조연 위주로 활약을 하는 배우이다. 영화계 대표적 [[단신]]배우로 찌질하거나 소심한 개그캐릭터에서 악랄한 악당역할도 잘 소화하다보니 그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작품들은 전부다 성공하는데[* 다만 유해진처럼 메가히트하거나 화제가 된 작품은 없다. 유해진보다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이유.] 그것 때문에 주연을 시켜보면 어떨까 해서 주연을 시켜봤다. 그게 '''[[플라이, 대디, 플라이#s-3|플라이 대디]]'''와 [[형사 공필두]]라는 영화였는데 결과는 흥행 대실패.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이문식은 조연으로서나 어울리지 주연은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케이스로는 대표적으로 [[김수로]]가 있다. 또한 이문식의 경우 [[SNL 코리아]] 시즌 4 2화에서 이문식이 호스트로 나왔는데 이와 관련한 자학개그가 나왔다.]
사실 그는 '''굉장히 독한 양반이다.''' 일단 고등학교 때 진학하려고 작정했던 학교부터 대학교 중에서는 독하기로 소문난[* [[서경석]]이 수석합격을 해놓고도 견디지 못하고 자퇴한 또는 애초에 마음에 안들지만 안전빵으로 지원해뒀던 그 학교다.] [[육군사관학교]]였고[* 물론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합격은 못했지만.]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다가 1년을 못채우고 중퇴,
그런데 이문식이 정말 독한 인간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일지매]]에서 쇠돌의 배역을 맡게 되자 연기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멀쩡한 이를 스스로 뽑아버렸다.'''---으악!---[[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281036351001|#]]~~그리고 엉덩이도 깠다~~
엄청 아팠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이 없이 사는 게 얼마나 고통인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런데도 이문식은 '''오직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 이를 스스로 뽑아버렸다. 일지매 제작팀은 이문식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일지매가 방송종료하고 난 뒤 쫑파티까지 완벽하게 끝난 이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임플란트]]를 맞춰줬다.
* 배우들 사이에서 원조 고무줄 체중조절자로 유명할 만큼 배역을 위한 몸관리가 철저하다. 고무줄 체중으로 유명한 황정민도 이문식에게 체중감량에 대한 조언을 얻어갈 정도고, 조진웅 역시 이문식 선배님에 비하면 내가 체중조절하는 건 장난수준이라고 할 정도. 그만큼 평상시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박소태]] 역
* [[남자이야기]]
* [[옥탑방 왕세자]]
* [[달마야 놀자]] (2001년)
* 달마야 서울가자 (2004년)
* [[구타유발자들]] (2006년)
* 집 나온 남자들 (2010년)
||<|2> 2008년 || [[SBS 연기대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남자 조연상 ||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 ||
|| [[MBC 연예대상]] || 코미디 시트콤부문 남자 최우수상 || [[그 분이 오신다]] ||
|| 2013년 || 제8회 서울드라마어워즈 || 남자연기자상 || 상권이 ||
|| 2015년 || [[MBC 연기대상]] || 연속극부문 베스트 남자 조연상 || [[엄마(드라마)|엄마]] ||
- 이보희(배우) . . . . 20회 일치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학력 ||한강여자상업고등학교||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던 [[이장호]] 감독의 작품에 고정출연하다시피 했다. 애초에 조진원이라는 예명으로 무명 시절을 보낸 중, 감독 이장호의 눈에 띄어 '일송정 푸른 솔에'(198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사회고발적인 성격으로 화제작이 된 이장호의 '[[바보선언|바보선언(1983)]]'에서 가짜 여대생 역으로 유명해졌다. 이보희라는 예명도 이장호 감독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어 준 것이다.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배우)|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조선)|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가 '''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이 것.'''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안습-- [[김재박]] 항목 참조. 1959년생인 이보희는 박정희정권의 한글전용정책의 일환으로 학교교육에서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초반까지 신문 등의 활자매체는 한자단어는 한자로 표기하고 조사나 순우리말 정도만 한글로 썼으므로 몰랐다는게 조금 무식하다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이보희처럼 아예 한자교육을 못받은게 아닌, 한자교육을 받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 김재박의 이름을 한자로 써주고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전성기가 짧은 편.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뒤 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러나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등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이혼 사유는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달려라 울엄마' 촬영 시절에 촬영에 여유가 생기자 당시 신혼여행으로 현 남편과 [[파타야]]에 갔다고 한다.
|| 1984년 || [[무릎과 무릎사이]] || 자영 역 || 263,334명 || ||
||1994년 || 49일의 남자 || 하영 역 || || ||
- 이윤열 . . . . 20회 일치
이후 Stout MSL에서 준우승, 천적 최연성의 등장으로 기세가 조금 꺾이긴 하였지만 꾸준히 MSL 결승에 오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5년에는 IOPS 스타리그에서 당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던 저그 박성준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하였다. 또한 2006년 11월 18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우승을 차지하며 골든 마우스의 첫 수상자로 기록되었다. 골든 마우스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부상으로, 이윤열과 박성준(STX SouL), 이제동(화승 OZ), 이영호(KT 롤스터)만이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윤열의 천적으로 자리잡은 마재윤에게 엘리트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결승전, WEF 2006 결승전, CJ 슈퍼파이트 S3 결승전 등에서 패배하였고, 2007년 2월 24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에서 마재윤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이후 치러진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마재윤에게 3:1 승리를 거두어 앙갚음을 하였고, 08-09 시즌에 열린 클럽데이 MSL, 로스트사가 MSL에서 연속으로 시드를 획득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이후 찾아 온 슬럼프와 미니홈피에 쓴 글이 은퇴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었지만,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우승을 전후하여 다시 게임에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일:Leeyoonyael.png|섬네일|오른쪽|160px|프링글스 MSL 시즌2에 출전하여 경기 중인 이윤열]] 2010년 9월 자신의 팀인 [[위메이드 FOX]]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스타크래프트 2로의 전향을 공식 선언한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 '천재테란' 이윤열 스타2 전향 선언|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95|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쪽=|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7}}</ref> 이후 스타크래프트 2 게임단인 [[oGs]]에 입단하여 10월 13일 [[Sony Ericsson STARCRAFT II OPEN Season 2]]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임요환·이윤열, GSL 오픈 시즌 2 본선 진출!|url=http://www.eto.co.kr/?Code=20101013111109640&ts=174147|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쪽=|날짜=2010-10-13|확인날짜=2010-10-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12053354/http://www.eto.co.kr/?Code=20101013111109640&ts=174147|보존날짜=2016-03-12|깨진링크=예}}</ref>
이윤열은 [[2012년]] [[6월 20일]] 자신의 팀인 컴플렉시티 게이밍 홈페이지에 은퇴 사실을 알렸다. 사유는 현재 병역문제와 개인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은퇴하는것으로 밝혀졌으며 [[2012년]] [[7월 3일]] tving 스타리그 2012 레전드매치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2015년 11월 9일 일반인 여성과 교제의 끝에 혼인의 길을 맺었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측은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출시행사에서 결혼식을 가지게 되어 전세계로 생중계 되어 많은 팬들이 축하를 남겼다.
2016년 2월 1일 00시경 자신에게 5살짜리 딸이 있음을 [[아프리카tv]] 방송에서 밝혔다. 늦게 밝힌 사유는 딸아이가 있음을 알리는 타이밍을 못잡았었다고.....(5년후에야...)
* 프로게이머 최초 골든 마우스와 금배지 동시 소유자
| 제목 = 스타리그 [[골든마우스]] 수상자
| 제목 = [[MSL 금배지]] 수상자
|내용='''[[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자''' <br /> '''[[MBC게임 스타리그#2002년 KPGA 2차리그 (리복)|리복배 2002 KPGA 2차리그]]'''<br>'''[[MBC게임 스타리그|펩시트위스트배 2002 KPGA 3차리그]]'''<br>'''[[MBC게임 스타리그|2002년 스타우트 & 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리그]]'''
|내용='''[[스타리그]] 우승자''' <br />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Panasn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내용='''[[스타리그]] 우승자''' <br /> '''[[IOPS 스타리그 04~05|아이옵스 스타리그]]'''
|내용='''[[스타리그]] 우승자''' <br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KT 롤스터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Old Generations의 선수]][[분류:SK 게이밍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골든마우스 수상자]][[분류:MSL 우승자]][[분류:MSL 금배지 수상자]][[분류:로열로더]][[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구미시 출신]][[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이현우(배우) . . . . 20회 일치
||<#6495ED><:> {{{#ffffff '''본관'''}}}||<(> [[경주 이씨]][* 경주 이씨 38세손 '雨'자 항렬이다. 현재 이 연령대의 경주 이씨 사이에서 항렬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뻘, [[이건희]] 회장의 할아버지뻘, [[이재명(1964)|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증조할아버지뻘, [[프로게이머]] [[이제동]]의 '''6대조'''뻘이다.] ||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역 등장을 기점으로 [[유승호]]를 잇는 국민 남동생의 자리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김유신을 맡으면서 귀여움과 훈훈함을 동시에 안겨주어 2~30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나이에 비해 똑부러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성인 역인 [[엄태웅]]으로 교체되면서 유신랑의 인기는 급강하하고 만다. 물론 엄태웅의 어색한 사극 연기도 한 몫 했다. 그를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누나팬들이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하차한 후에는 [[막장 드라마]] [[밥줘]]에서 차화진의 아들 토미 역을 맡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시작한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에서 [[홍찬두]] 역을 맡아 유승호와 함께 국민 남동생 투톱이 나란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주인공 계백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브레인(드라마)|브레인]]에서 소년가장 박동화 역으로 나왔다.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다시 한 번 [[엄태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절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태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남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영화판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리해진]]'''역을 맡고 영화 관객수가 500만이 넘어간 상황이 되면서 10대 여성 및 20대 초중반 여성층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본 영화 내에서도 여전히 학생 역이지만, 아역 이미지는 어느 정도 벗은 듯 보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흥행을 끌면서 이현우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져, 2014년에 기대가 되는 배우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약 1년만에 영화 [[기술자들]]로 돌아왔다.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차기작을 나름 신중히 선택한 듯 하다. 해커 박종배 역으로 분해 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가 [[에이브러햄 링컨|김우빈의 김우빈에 의한 김우빈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현우 분량이 상당히 안습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인지도를 높였으나 그것은 이현우 자신의 외모적 매력에 힘입은 것이므로 성인 연기자로서 아역이미지를 벗고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검증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
2014년~2015년 사이 작품들에선 평균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어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거의 넘긴 것으로 보인다. 2015년 2월 방송된 SBS 설특집 2부작 드라마 '내일을 향해 뛰어라'의 주연 강문재 역에 발탁되었다. 연기력은 나아진 듯 하다.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고. 2015년 6월 개봉한 [[연평해전(영화)|연평해전]]에서 故 [[박동혁]] 병장 역을 맡았다. 극을 처음부터 이끌어나가야 하는 중요한 역할로서 잘 소화해냈다는 평이 대부분. 2015년 7월 방송되는 MBC [[밤을 걷는 선비(드라마)|밤을 걷는 선비]]에 정현세자 역으로 1회에 특별출연. 대체적으로 괜찮다는 평이 많다.
* [[노래]] 실력이 나쁘지 않은 듯 하다.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OST 청춘예찬을 불렀었는데, 목소리가 이현우 목소리 같지 않다는 소수의 평을 제외하면 괜찮다는 평. --노래 자체가 트로트 같긴 하지만 중독성 있다.-- --청춘예차아안 두두두두두뚜우두두두-- 칠성사이다 광고 모델에 발탁됐을땐 광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사가 좀 오글거지만--- 반응이 괜찮았는지 뮤직비디오 상의까지 하여 팬들에게 김칫국을 투여했으나... 1분 30초도 안되는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다.
|| 2014년 || [[기술자들]] || 박종배 || ||
||<|2> 2012년 || [[적도의 남자]] || [[김선우(적도의 남자)|김선우]] || [[엄태웅]] 아역 ||
|| MBC || [[밤을 걷는 선비(드라마)|밤을 걷는 선비]] || 정현세자 || 특별출연 ||
|| 2010년 3월 16일 || KBS2 || [[김승우의 승승장구]] || 몰래 온 손님[* [[김수로(배우)|김수로]] 편에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 출연자인 [[지연(티아라)|지연]], 이찬호와 함께 출연했다.] || ||
|| 2011년 12월 8일~2012년 4월 4일 || JTBC || [[뮤직 온 탑]] || 진행자 || ||
|| 2012년 12월 16일~2014년 2월 9일 || [[SBS 인기가요|인기가요]] || 진행자 || ||
|| 2013년 7월 23일 ||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 || ||
|| [[LG전자]] || 엑스캔버스 - 타임머신편 || ||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20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91화.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
* 그레이로드는 멀린이 "불살"의 계금에 걸리게 유도하지만 멀린은 무한한 마력으로 자신의 시간을 정지시켜 놓아서 아무런 영향이 없다.
* 갈란의 계금은 한 번 멀린을 궁지로 몰았지만, 그걸 푸는 과정에서 멀린은 자신의 "진짜 이름"을 깨닫게 된다.
* 멀린의 마신족에선 악명이 자자한 "베리알루인의 딸". 그리고 인간의 발음으로는 말할 수 없는 "진짜 이름"을 밝힌다.
* 멀린이 심드렁하게 쳐내려 하자 그레이로드의 계금을 아는 반이 황급히 말리려한다.
* 그 앞에서 살생하는 자는 남은 시간을 모두 빼앗기는 계금이다.
* 멀린도 이 계금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 멀린은 "재미있는 계금"이지만 자신에겐 듣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의 시간을 정지시켜 놓기로.
* 그녀가 만든 불은 계속 타며 얼음은 계속 얼어있다. 그녀 자신이 마법을 거두기 전까진.
* 멀린도 "그것만큼은 나도 어려웠다"고 하는데, 결국 자력으로 풀었다고 한다.
* 특히 프라우드린은 "네가 그 생존자란 말이냐"고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친다.
* 멀린은 자신의 "진짜 이름"까지 밝히는데, 그것은 인간이 발음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언어다.
* 그 이름을 듣자 십계 조차도 "틀림없다"고 인정하며 움츠러 드는데.
* 그런데 멀린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그레이로드는 혼비백산, 그때까지 통일돼 있던 자아가 분열한다.
* 한순간에 성이 통채로 날아간 바토라 왕은 망연자실해한다.
* 베르아리인의 딸이란 것이 어떤 종족의 후계자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다른 의미가 담긴 이명인지는 불명.
* 어째서 멀린이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는지, 어떻게 다시 자각하게 된 건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 여기에 각성이 유력한 아서왕, 요정왕으로서 강해진 여지가 남은 할리퀸, 역시 자신의 정체를 깨달아야 하는 고우서 등 성기사 측에 강한 카드가 너무 많이 남아있다.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20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퍼지(정화)가 먹히지 않는 이상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다는 각오를 다진다.
* 자라트라스와 핸드릭슨은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을 상대로 선전하지만 점차 수세에 몰린다.
* 호크가 잔반 브레스를 발사해 프라우드린이 악취 때문에 방심하는데, 그 틈에 자라트라스가 접근에 성공한다.
* 자라트라스가 끊는다던 목숨은 자기 자신의 것. 그는 "죽음의 정화"(데스퍼지)라는 기술로 프라우드린과 드레퓌스를 분리시키는데 성공한다.
* 하지만 혼자남은 핸드릭슨은 위기에 처하는데 그때 나타난 그리아몰의 모습을 보고 프라우드린이 틈을 보인다.
* "퍼지"(정화)로는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한 자라트라스.
* 프라우드린은 "관돌"로 기습을 걸고 자라트라스는 핸드릭슨을 데리고 "뇌신의 섬동"이란 기술로 피한다.
* 자라트라스는 그것이 뭔지 단번에 알아차리는데, 프라우드린은 어리둥절해하며 집어든다.
* 프라우드린의 뒤를 잡는 자라트라스.
* 하지만 자라트라스는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
*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죽음의 정화"(데스퍼지)를 걸려고 접근한 것.
* 강렬한 빛과 함께 자라트라스의 생명을 건 정화.
* 그러나 그 대가로 자라트라스는 사망, 드레퓌스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 핸드릭슨은 몸이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들어오라고 하는데 프라우드린은 "그런 나약한 몸은 필요없고 드레퓌스는 10년지기 파트너"라며 고집을 부린다.
* 그렇다면 어째서 그가 드레퓌스의 몸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렇게 일갈하자 프라우드린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 프라우드린은 어째서 인간의 마력이 통하는지 경악하는데 드레퓌스는 자신의 신념에 한 조각 흔들림도 없기에 모든 것을 꿰뚫는다고 당당히 말한다.
* 자라트라스는 반쯤은 언데드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데스 퍼지를 써도 괜찮은 건지 애매하다.
* 의외로 프라우드린은 그리아몰의 출현에 동요했는데 그게 너무 오래 빙의해 있던 탓인지 그 자신에게 인간성이 생긴 건지는 불분명.
- 전예용 . . . . 20회 일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391-1번지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은행원이자 기업인이었던 아버지 전성욱과 어머니 이성원의 셋째 아들이었다. 형 인용, 의용은 일본 유학 후 고베상고를 졸업했으며, 동생 전지용은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그밖에 2명의 누이가 있었다.
[[1944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이 되고 [[1945년]] [[조선총독부]] 재무부장으로 재직 중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 군정]]이 설치되자 학무국장 보좌관에 임명되었고, [[조선주택영단]] 이사를 겸임하였다. [[1946년]] [[조선주택영단]]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6년]] [[미군정]] 영림국 총무과장에 임명되었다.
|저자=이현희
|제목=<nowiki>[6·25 58주년 특집] 사학자 이현희 교수가 겪은 전란 속 서울 - 눈 부릅뜬 시체더미, 남녀 포로 나체 연행… 30년보다 긴 3개월</nowiki>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이석기 (1908년)|이석기]]<br/>(서울특별자유시 행정참사관)
|후임자 = [[이익흥]]
|전임자 = [[이기붕]]
|후임자 = [[김태선]]
|전임자 = [[신현확]]
|후임자 = [[주요한]]
|전임자 = [[배의환]]
|후임자 = [[유창순]]
|전임자 = [[정낙은]]
|후임자 = [[김윤기]]
[[분류:1910년 태어남]][[분류:199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부흥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건설부 장관]][[분류:서울특별시 부시장]][[분류:한국은행 총재]][[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규슈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이승만]][[분류:박정희]][[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정선 전씨]]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20회 일치
* 이 때 '츠보미 문서'가 나타나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추구하려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하고, 후지코는 흔들린다.
*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영상으로 나타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됐다면서 일행을 비웃는다.
* 길리엄은 효부를 비롯한 일행에게 '절망'을 부여주겠다고 하고, 후지코가 사오토메의 권총을 자신에게 향한다.
* [[효부 쿄스케]]는 앞장서서 [[츠보미 후지코]]의 방으로 들어간다. 예상대로 후지코는 일행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고 있다가 일어나며 일행이 너무 늦장을 부려서 기껏 차려입은게 쓸모없어졌나 생각했다고 말한다. 일행은 그녀의 차림세를 보고 기겁한다.
* 후지코가 갑자기 총을 꺼낸다. [[미나모토 코이치]]는 블래스터를 겨누며 무기를 버리라고 소리친다. 후지코는 이만큼 에스퍼를 데려와서 이런게 무섭냐고 빈정거린다. 그건 그냥 "악세사리"라는데. 그녀가 꺼낸 "특별한 추억의 물건"은 악취미적이기 그지없다. 과거 [[사오토메 에이지]] 대위가 효부를 쏠 때 썼던 그 권총이다. 후지코는 찾는데 고생했는데 그럴 보람이 있었다고 너스레 떤다.
효부는 반사적으로 이마의 흉터를 누르며 당혹해한다. 그의 동요에 미나모토는 냉정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도 효부의 상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효부는 평정을 되찾는다.
* 카오루가 나서서 블랙팬텀의 음모라는걸 안다며 하지만 어째서 후지코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묻는다. 후지코는 블랙팬텀의 세뇌는 본심을 거스르게 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동료"가 되면 알 거라며 오히려 칠드런 일행도 함께 세뇌 당하자고 제안한다.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가 반발한다. [[쿠모이 유리]]는 힙노를 전개하며 본심이었다면 후지코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며 "원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후지코는 "본래의 자식"이란게 뭐냐는 식으로 반문하고 미나모토가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 시호의 어깨 위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잠들고 있던 "츠보미 문서"다. 후지코의 사념체는 작게 모습을 드러내며 지금의 후지코가 하는 말은 자신이 택한 삶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걸 넘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잖아?
>어둠이 아닌 빛을 위해서 살고자 했던 이유가 나한테는 있었잖아?
또다른 자신의 설득에 후지코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빛을 위해 살고자 했던 이유, "그들". 육군초능특무부대의 죽어간 동료들이 떠오른다. 효부와는 다른 형태지만 그녀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마음 속의 틈이었다. 그녀가 흔들리자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백신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후지코는 가까이 오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그때 빔 프로젝트가 전개되면서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영상이 나타난다. 그는 이 상황이야 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며 기분 나쁜 웃음을 띈다. 그는 지금부터가 특히 재미있는 장면이고 효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 효부가 뭘 보여줄 셈이냐고 묻자 그는 절망의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 후지코는 인형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총구를 자기 자신의 관자놀이로 향한다.
- 절연금 . . . . 20회 일치
일반적으로 테기레킨은 ‘위자료(慰謝料)’로 번역된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자료라고 번역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테기레를 ‘절연’으로 번역하면서 ‘절연금(絶緣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위자료로 번역할 수 없게 되는 사례는, 일단 관습적이고 쌍방의 동의만 있으면 합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자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절연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위자료와 절연금을 지불했다.’는 식으로 위자료와 절연금이 별도로 언급되어 있을 경우, 양쪽을 모두 위자료로 번역하기는 곤란해진다.
‘위자료(慰謝料)’와 유사하긴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위자료와 절연금은 다르다.
위자료는 법률적에서 정의된 손해배상의 일종으며, 민사상의 불법행위,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절연금은 인간 관계의 청산에 따라서 임의로 지급하는 금전을 뜻한다. 따라서 위자료를 절연금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강제적인 지불 의무의 유무이다. 위자료는 상대방이 청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불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반면, 절연금은 지불의무가 없으므로 강제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임의로 손해보상 요구에 부응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남녀관계에서 「혼인」,「내연」,「혼약」 이외의 애정 관계에서는 위자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절연금은 이외의 남녀관계(주로 불륜)에서 당사자 간의 동의 하에 인연을 끊기로 서약하고 주고 받는 돈이다. 절연금 양도 자체는 자유계약에 따라서 법률적으로 보호된다.
* 드라마 같은 데서 [[시어머니]]가 아들의 앞길을 막는 도둑 고양이 같은 년(…)에게 먹고 떨어지라면서 던지는 돈봉투나, 불륜남이 불륜녀에게 연을 끊자면서 주는 돈봉투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 [[도박 묵시록 카이지]]에서 [[이토 카이지]]가 [[사카자키 코타로]] 네 집에 얹혀 살다가, 도박중독자 인간말종 카이지를 보다 못한 사카자키가 돈을 내주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절연금에 해당한다. 그리고 카이지는 이 돈을 가ㅈ고 또 도박하러 간다.--구제불능--
- 창작:맹수인 . . . . 20회 일치
||'''작성자''' || 비잔뽕이 부족합니다 ||
각 맹수인은 서로의 생김새에 따라 호랑이족,사자족,곰족,하이에나족,늑대족으로 나뉘며, 서로간의 교배는 가능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서로의 혼혈들은 대개 배척받으며, 혼혈들은 보통 고산지등 '순혈'들에게 핍박받기 힘든 곳에서 자기들끼리의 소규모 마을을 이루고 산다. [* 단, 사자족과 호랑이족간의 혼혈인 '라이거일족'은 상티겔의 레잉정복과 적극적인 혼합,동화정책으로 인해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 있었고, 이들은 이후 상티겔을 멸망시키고 그곳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레이먼의 탄압정책과, (하)티겔 왕국의 새로운 정착지를 줄테니 대신 복속해 달라는 제유에 의해 '라이겐프름 대공국'이라는, 하티겔의 새로운 봉신국이 된다.]
=== 사자족 ===
사자족은 맹수인들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현실의 사자와 비슷하게 수컷들은 수북한 갈기를 자랑하며, 이 갈기가 수북하고 아름다울수록 미인으로 취급된다. 사용하는 언어는 레잉어이며,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북부와 그곳에 연결된 지방인 아프반 반도.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눈늑대족은 대륙 역사의 중심이 중북부일때부터 유명했는데, 이는 그때부터 대륙 북부에 '곰의 턱뼈'라 불리는 터그퍼산맥 인근에 살면서 약탈을 해왔기때문이다. (보통 피해국은 인근 해안을 장악한 펭공국과 상티겔 왕국.)한때 라이엘기스를 정복하려 시도해봤으나, 라이엘기스의 첫대공인 '불꽃갈기' 로베르에게 격퇴당하고 이후 해안가 일대를 약탈하는 소규모 해적때로 전락했다. 아라스 제국이 동부대륙 북부를 장악하면서 이들의 운명은 둘로 나뉘는데, 아라스 제국에 저항하면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아라스제국과 북부 거인족들 사이에 끼여 전멸하거나, 아라스 제국에 자발적으로 복속하거나, 그들을 피해 '눈늑대섬'이라 이름붙여진 섬으로 숨다가 복속되거나. 이세가지로 나뉜다. 이중 두번째 길을 택한 자들중 '게트롬'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이자가 아라스제국의 지원을 받고 아프반 반도 북부를 장악. '게트롬 왕국'을 세운다.
곰족은 등퍼산맥 너머 동부 대륙 동부와, 터크퍼산맥 이북 북부에 주로 서식하는 이들이다. 이들역시 둘로 나뉘는데, 등퍼산맥 너머에 주로 사는 '불곰족'과 대륙 북부에 주로 서식하는 '흰곰족'으로 나뉜다. 이들은 본래 한종족이었으나, '북쪽의 전사' 네프친스키가 그의 삼촌 메첼에게 크누고 공작위를 빼앗기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도망, 이후 그들의 후예는 추운 북쪽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맹수인중 최강의 신체를 자랑하는데, 천하의 거인족들도 이들에게 섣불리 덤비지 않을 정도다.
하이에나족은 '하이엔'지방에 서식하는 족속들로, 등에 갈기가 있다. 이들은 한때 중북부에 '하이엔 왕국'이란 상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레이먼 제국의 창시자인 샤를 대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레이먼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있게된다. 이후 이들은 수많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황제'샤를이 아라스 제국에 패배하면서 하이엔등 '상 하이엔'지방은 아라스 제국에게, 그외 ''하 하이엔'지방은 레이먼 제국에게로 분열된다.
- 최두선 . . . . 20회 일치
{{공직자 정보
|직업= [[철학자]] <br/> [[언론|언론인]] <br/> [[정치가]] <br/> [[기업가]] <br/> [[대학 교수]] <br/> [[작가|저술가]]
본관은 [[동주 최씨|동주]]. 호(號)는 각천(覺泉)이다.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제8대 [[대한민국의 총리|국무총리]]를 지냈으며 [[유엔]]총회 한국대표,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다.
[[1920년]] [[6월 16일]] [[경성부]] 명월관에서 열린 [[조선체육회]]발기인회에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ref>이학래 《한국체육사연구》 (국학자료원, 2006) 375~376페이지</ref>
[[1955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사망하자 [[신익희]], [[함태영]] 등과 함께 그의 국민장 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성수의 사망 직후 [[인촌 김성수 기념사업회]]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60년]] [[김포공항|인천비행장]]으로 환국하는 [[조병옥]]의 시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적십자사 총재로서 이산가족 상봉을 건의하여 성사시켰고, 북측의 적십자사를 설득하여 [[1972년]]의 남북적십자회담을 이끌어 냈다.
|전임자 = [[김현철 (1901년)|김현철]]<br />(내각 수반)
|후임자 = [[정일권]]
|전임자 =[[손창환]]
|후임자 =[[김용우]]
|직책 =[[대한적십자사]] 총재
[[분류:1894년 태어남]][[분류:1974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국무총리]][[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한문학자]][[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김성수 (1891년)]][[분류:윤보선]][[분류:박정희]][[분류: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주 최씨]][[분류:마르부르크 대학교 동문]][[분류:예나 대학교 동문]][[분류: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동문]][[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인촌기념회]]
- 최희암 . . . . 20회 일치
| 주요 작품 = 수필 <br/> 《아내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
'''최희암'''(崔熙岩, [[1955년]] [[1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한국 프로 농구|농구 선수]]를 지낸 [[수필|수필가]] 겸 [[기업가]]이며 前 [[한국 프로 농구|KBL 한국 프로 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감독이다.
그는 [[전라북도]] [[무주군|무주]] 출생이며 졸업을 거쳐 [[연세대학교]]를 학사 학위하고 실업 팀 [[전주 KCC 이지스|현대전자]]에서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는 동기생인 [[박수교]], [[신선우]] 등에 가려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고 실업 농구에서도 빛을 보지 못해 선수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현대건설]]에 취업하여 [[이라크]]에서 근무하였고, 귀국 후 [[현대건설]]에서 퇴사하여 에서 체육 교사로 임용되었으나 곧 사임하였고 [[1986년]]부터 [[연세대학교]] 남자 농구단 감독을 맡으며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선수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분업화하고, 외곽슈터 중심의 농구를 통해 연세대학교를 강호로 만들었다. 실업팀과 대학팀을 망라한 [[농구대잔치]]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특히 [[1993년]]-[[1994년]] 농구 시즌 우승은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연세대 감독으로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2년]]부터 프로 농구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감독을 맡았다가 두 번째 시즌에 성적 부진으로 도중 하차한 뒤, [[2005년]] [[동국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거쳐 [[2006년]]부터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으로 프로에 복귀한 후, [[2008~2009]]시즌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팀을 떠났다.
최근에는 대학 농구 감독과 프로 농구 감독 시절 활약담을 수필집으로 집필하여 발표하였고 기업인으로도 변신하면서 전자랜드의 계열사인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지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지사 기업을 대한민국 법인 기업으로써 인수하여 2014년 현재 접봉 부회장으로 재직중이다.
* 《아내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1997년 1월 20일)
== 지도자 경력 ==
* [[2006년]] ~ [[2009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감독
|저자=홍지민 기자
|제목=스포츠 라운지/ 올시즌 명예회복 다짐 최희암 전자랜드 감독
|전임자 = [[박수교]]
|후임자 = [[장일 (농구인)|장일]](대행)
|전임자 = [[이호근 (농구인)|이호근]](대행)
|후임자 = [[박종천]]
|직책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감독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최씨]][[분류:무주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연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동문]][[분류:아메리칸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가]][[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킹덤/511화 . . . . 20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은 부하들을 이끌고 시시각각 열미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열미성 함락 소식에도 그는 자신의 계략대로라고 여기는데.
* 열미로 행군하던 [[이목(킹덤)|이목]]은 열미성이 함락됐다는 급보를 받고도 태연하다. 부하들은 [[공손룡]]장군이 한 발 늦었다고 탄식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시대로라며 "열미엔 내가 뿌려둔 비밀이 있다"고 한다. 이는 부하들도 몰랐던 보험이었다. 이목은 비록 열미를 뺏겼다 해도 진군이 이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확신한다. 단지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진 않다고 추측한다. [[왕전(킹덤)|왕전]]의 존재 때문이다. 왕전이 그 비밀을 알아챘다면 진군은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 이런 사정을 모르는 성에서는 혼란에 빠져있다. 특히 왕전의 본진은 특별한 전언도 없이 총대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왕전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고를 하러 왔던 [[하료초]]가 무슨 전언이라도 남긴게 없냐고 묻자 왕전의 부하는 왕전 본인이 남긴건 없지만 함께 사라진 1대 대장 [[아광]]의 전언은 있다고 한다. "전군 열미에서 3일 대기". 너무 단순하고 급박한 전세에 맞지도 않게 미적거리는 지시다.
하료초가 그게 뭐냐고 버럭하자 왕전의 부하는 자기들도 정신이 없다고 같이 화를 낸다. 하료초는 기껏 이목을 따돌린 의미가 없어진다고 노발대발하는데 왕전 본인도 아닌 부하들에게 화를 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양단화]]를 따라왔던 산민족들은 무섭게 화를 내는 하료초를 보며 보기와 다르게 한 성깔한다고 혀를 내두른다.
환의는 호출을 받고 회의실로 들어선다. 이미 [[양단화]], [[몽념]], [[이신(킹덤)|이신]], [[하료초]], [[왕분]]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이 회의를 소집한건 몽념이었다. 하지만 몽념이 부른다고 올 환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부른던 양단화의 몫이었다. 환의는 다른 얼굴들이 있는걸 보자마자 양단화에게 속였다고 탓하지만 양단화는 "혼자 있는다고 하진 않았다"고 넘긴다. 양단화는 용건이 있는건 사실이라며 회의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지금 신이 앉아 있는 자리는 사실 환의가 앉으라고 준비한 것. 양단화가 비키라고 하자 신이 왕분더러 양보하라고 하지만 그가 따를리가 없다. 결국 하료초에게 끌려나오는 신.
지휘관들이 모이자 몽념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몽념은 신을 진정시킨다. 자신도 비신대와 산민족이 강하다고 여기긴 하나 성의 설계 자체가 위화감을 준다. 몽념은 이틀간 성을 돌아본 뒤 확신을 얻었다. 열미성은 묘하게 동선이 흐트러져있고 성벽의 높이도 미묘하다. 이곳은 분명 의도적으로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진 성이다. 왕전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기 때문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신은 그렇다쳐도 왜 총대장이 사라지는 거냐고 묻지만 몽념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며 설명을 마친다.
* 이신은 갑자기 머리가 안 따라가는 이야기가 나오자 혼란에 빠진다. 그는 애당초 왜 한 나라의 국문을 약하게 만드냐고 묻는다. 거기서부터는 왕분이 답한다.
* 몽념은 이렇게 대담하고 파격적인 전략은 아무나 구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신을 제외하고 모든 지휘관들이 이구동성으로 거명하는 것은 딱 한 명. 이목이다. 또다시 이목에게 발목을 잡히게 된 신은 이를 갈지만 곧 시간을 번 것은 자기들이니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왕분은 그것이 "수가 없다"고 잘라말한다. 그건 바로 [[창평군]]의 대전략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립한 계획은 열미를 빠르게 함락, 난공불락의 전진기지로 삼아 업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나 열미를 지키기 어렵다면 달리 보급을 유지할 방법이 사라진다.
당연히 신은 그럴 수는 없다고 격렬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창평군의 제자인 하료초 조차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왕분은 글허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20만 대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며 몽념의 제안에 힘을 더한다. 양단화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에 수긍하는 것 같은데, 문득 그녀는 환의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걸 발견하고 왜 웃는 거냐고 묻는다.
* 환의는 노골적으로 젊은 지휘관들을 "송사리들"이라 비웃는다. 몽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환의는 아예 열미를 버린 채로 왕도권에 진입, 업을 따내버리는 전략도 있다고 주장한다. 언뜻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몽념이 무모하다고 하자 "그러니까 송사리"라며 환의의 깔보는 태도는 더해진다. 그러면서 왕전이 사라진걸 보고도 아직 모르겠냐고 말한다. 왕전은 바로 그게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성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 킹덤/527화 . . . . 20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의 지시로 요양군을 지휘하게 된 [[순수수]]는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양단화의 면전에서 그녀의 병사를 죽이며 도발한다.
* 조군이 일시에 물러나자 양단화는 적이 유리한 전장을 찾거나 혹은 강력한 원군과 합류할 것이라 보고 경계하나 추격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 총대장 왕전의 명으로 양단화군에 조력하러 온 [[벽(킹덤)|벽]]은 감탄이라기 보단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만의 병력을 증원으로 끌고 왔으나 양단화의 산민족은 5만의 병력으로 적의 9만 병력을 철통같이 막아내고 있었다. 이는 전황이 전면전으로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병전에서, 기마전에서, 난전에서. 어떤 전장에서든 산민족 병사의 위용은 눈부셨다. 자신이 힘이 되지 못하는걸 알고 벽이 씁쓸해하자 옆에 있던 "톳지"라는 산민족 간부가 산민족말로 "평지의 장군이 괜히 왔다"며 조롱했다. 벽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양단화는 알아들었다. 그에게 놀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 양단화는 벽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현재 전황이 산민족에 유리한건 사실이나, 적의 움직임은 수상하기 그지없다. 전술이 너무 단조로운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벽과 그 병력에겐 이 돌발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갖춰두라는 것이었다. 벽이 기꺼이 그 임무를 받았다.
* 그때 산민족군 우익으로부터 불협화음이 일었다. 소수의 기마대가 격전이 벌어진 뒤쪽과 양단화군 본진 사이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벽은 그 수와 구성을 보고 전령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이목의 지시로 공손룡군의 대장으로 부임한 [[순수수]]의 등장이었다. 순수수의 기마대는 산민족 병사를 목 매달고 달리고 있었다. 순수수는 양단화에게 잘 보이는 자리를 일부러 골라 말을 세웠다. 그가 신호를 주자 부하들이 병사들의 숨통을 끊었다.
* 순수수는 산민족 1진이 미처 혼란을 감지하기도 전에 돌파를 감행했다. 그는 맨 선두에 서서 적진을 무인지경처럼 빠르게 돌파했다. 양단화의 맞은 편, 공손룡군 본진에서도 적진을 가로지르는 순수수를 볼 수 있었다. 공손룡은 그가 전장에 나타난 이후의 행동을 빠짐없이 목격했다. 새로운 지휘관은 여러모로 자기 상상을 뛰어넘은 인물이었다.
한편 한바탕 소동을 겪은 양단화군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벽과 진군 장교들은 아직까지도 방금 자기들이 본 장면이 무엇인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양단화와 톳지는 훨씬 차분했으나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양단화는 순수수가 죽인 병사들의 시체를 내려보며 이를 갈았다. 복수의 때였다.
* 조군의 수뇌부 또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새로운 총대장의 지시가 당혹스러웠다. 순수수는 지휘권을 넘겨 받고 제일 처음 전군 후퇴를 명했다. 부하장교들은 난처해하며 혹시 현재 전황이 정체된 탓인지 물었다. 이 전황은 순수수의 도착을 기다리느라 그런 거라며 변명을 하기도 했다. 순수수가 부하들의 채근에 입을 열었다. 그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후퇴를 결정한 건 그게 필승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진군을 보다 깊은 곳까지 끌어들여 단 한 놈의 생존자도 없이 몰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수는 요양에서 그저 이기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진군이 여기서 패한다면 그 병력은 필시 주해평원으로 향할 것이다. 요양에서의 패잔병이 주해평원에선 이목의 부담을 가중시킬 증원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왕도권 수호를 위한 전략이었다.
순수수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부관으로 내려앉은 공손룡은 별다른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순수수의 설명이 끝나자 그가 입을 열어 후퇴한다면 어느 선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 진군 진영은 한창 싸우던 조군이 꽁무니를 빼자 술렁거렸다. 톳지는 대번에 부자연스러운 후퇴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양단화에게 물었다. 이대로 추격해야 좋을
* 진군을 요양성으로 끌어들인다, 공손룡은 후퇴 자체보다도 그 같은 결정을 더 마음에 걸려했다. 그는 행군 중에도 순수수에게 진심으로 그런 작전을 감행할 거냐고 물었다. 순수수는 말없이 행군을 속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부하 장수들은 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순수수가 암시한 작전의 전모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명이 그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요양의 엄니"란게 대체 무엇이냐고. 그의미를 아는 것은 순수수 자신과 공손룡 뿐이었고 둘 중 누구도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순수수였다. 요양성이 목전에 있는 위치에서였다. 우선 설명에 앞서 "요양군"의 병력 구성을 짚고 넘어갔다. 이들은 요양 일대에서 모집된 병력이긴 하나 요양성에서 데려온 병력은 아니다. 그걸 지적한 것은 앞으로 맞이한 전장은 진군에게만큼이나, 조군에게도 당황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진군은 조군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산을 끼고 있는 거대한 성. 그러나 성에 틀어박혀 지구전을 펼치자는 수작은 아니었다. 순수수가 필요로 했던 것은 성 바깥, 억덕 위로 도열한 한 무리의 병력이었다. 양단화는 그 위험성을 한 눈에 알아봤다. 당장 전군정지 명령과 함께 적의 돌격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조군에게 유리한 전장, 강력한 원군. 그녀가 우려했던 두 가지가 한때에 나타났따.
* "요양의 엄니", 언덕 위의 병력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조군과 다른 인종" 그것도 알만했다. 마치 개나 늑대를 본뜬 그들의 무장 상태는 한 눈에 봐도 중원과 달랐다. 하지만 아직도 조군 장수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양군의 포진이 끝나자 순수수가 직접, 이들을 소개했다.
한때 천자의 나라 주나라를 몰락시킨 이민족의 후예. 지금은 요양성을 자치하고 있는 자들. 순수수가 이들을 전장에 끌어들였다. 이민족 대 이민족이라는 [[이이제이]]나 다름없는 상황. 지금껏 볼 수 없전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탐라국 여왕 . . . . 20회 일치
* 기록을 보면 실제로 제주도에는 탱자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사 조정철이 1812년 선조에게 본도의 성터에 해자를 파고 탱자나무로 둘러쌋으므로, 고려 때부터 탱자성(枳城)이라 불렸는데, 근래에 성곽이 붕괴되고 탱자나무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1749년 비변사 등록에 보면, 강화유수 원경하가 영조에게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자면서, "고려의 최영이 탐라국을 격파하지 못한 것은 그 가려진 지책(枳柵,탱자나무 목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 탱자성에서 싸우다 ===
충남 홍성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탐라국 여왕은 탐라국에서 최영 장군과 싸운다. 탐라국 여왕은 중국 여자로 키가 팔 척이며, 힘이 장사이며, [[탱자]]나무 숲을 성처럼 두른 탱자성에 살고 있었다. 최영 장군이 탐라국을 정벌하러 왔을 때, 과연 탱자나무 숲이 성과 같아서 공격할 수 없었다.
최영이 고민을 하였는데 꿈에 신령이 나타나, 억새풀 씨를 따서 연에 매달아 탱자성에 뿌려, 다음해 억새풀이 무성하게 되면 가을에 불을 질러 공격하라고 일러주었다. 또 쳐들어갈 때는 몸에 구리판을 두르고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영은 신령이 일러준 대로 하여, 가을에 탱자나무 숲을 모두 불태우고 공격에 나섯다. 최영은 탐라국 여왕과 대결을 벌였는데, 여왕은 괴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최영이 목까지 구리갑옷으로 둘둘 말고 있어 여왕도 최영을 죽일 수 없었고, 마침내 여왕이 지쳤을 때 최영은 목을 쳐서 이겼다.
결국 여왕은 적막한 땅에서 홀로 지내다가 죽어서 혼령이 됐으며, 최영을 만나지 못하고 죽은 한 때문에 영도 목마장의 말을 죽이게 되었다. 영도 목마장에서는 멀쩡하던 말이 영도를 떠나면 나자빠져 죽게 된 것이다.
조선 때 정발 장군이 부산 첨사로 왔을 때, 탐라국 여왕은 꿈에 나타나서 자신의 한을 알려주고 사당을 지어 모시면 군마가 무사하고 나를 모시면 소원을 성취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조정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아씨당을 지어주고 신으로 모시자, 이듬해부터는 군마가 죽는 일이 없어졌다.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토리코/384화 . . . . 20회 일치
* 아카시아는 풀로제가 GOD를 조리할 당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고 폭로한다. 죠아는 그 아이가 요수의 힘으로 성장한 것
* 미도라는 죠아는 플로제의 아이가 아니라 플로제 자신이 풀코스 페어의 힘으로 성별이 바뀌어 환생한 것이라 밝힌다.
* 참다 못한 미도라와 아카시아의 대결. 죠아가 중간에 난입하자 미도라는 "내 풀코스를 알려주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 만나자 마자 날선 말을 주고 받는 옛 사제.
* 아카시아는 자신에게 화풀이라도 하러 왔냐고 빈정거린다.
* 애초에 신의 요리사인 그녀가 자신의 여력도 파악하지 않고 힘을 썼을리 없다는 것. 플로제는 목숨을 바쳐 아카시아의 야망을 저지하려 했던 것이다.
* 그 뒤 자신이 선별한 요리사의 혼을 플로제의 몸에 넣었다.
* 미도라가 죠아를 노려보자 죠아는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
* 말하자면 플로제 본인의 환생인 셈이다. 따라서 그녀 뱃속에 있던 아이들과는 무관하다.
* 그에게 플로제는 거슬리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다른 여자의 키스 마크를 달고 돌아와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최고의 요리를 내놓던 썩 괜찮은 여자'''였다고 말한다.
* 그는 노킹을 풀어달라며 자신이 협조해주겠다고 하는데.
* 갑자기 아카시아의 아이의 존재가 나타나고 죠아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토리코와 스타준이 가능성이 높아진다.
* 죠아 본인이 자신이 무엇인지 말하려다 미도라에게 가로막히고, 본인은 플로제를 어머니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또다른 존재일 가능성도 높다.
* 아카시아의 어그로력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헌신한 플로제를 모욕한 걸로 모자라 공공연하게 불륜을 저질렀다고 자랑하고 있다.--불륜충 아카시아--
* 설마했던 블루 니트로 페어의 아군화. 아카시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막이 드러날 듯 보인다.
- 토리코/396화 . . . . 20회 일치
* 토리코가 낚고 있던건 자이언트 셸의 새끼. 이것을 우주에서 활동할 수 있는 품종으로 개량해 우주선처럼 타고 갈 계획이다.
* 이 자이언트 셸은 백채널을 써서 빛의 속도를 초월해서 비행하기 때문에 물리법칙 상으론 아무리 오래 여행을 해도 지구로 돌아오면 고작 며칠이 흘렀을 뿐.
* 토리코와 린의 결혼으로부터 수년이 지났다. 오오타케는 꿈에 그리던 "과자의 성"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GOD를 먹을 수 있는 고아원"으로 부활. 오랜 꿈을 이룬다. 코마츠는 이곳에 방문해 오오타케에게 축하를 건넨다. 모든 것은 IGO와 재생가들이 노력해준 덕에 GOD의 양식과 품종개량이 가능해진 덕이었다. 아동보호 목적으로도 인기가 높지만 다른 목적으로 입원을 희망하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GOD를 먹을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인 듯. 코마츠는 이 고아원 출신자들이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 코마츠는 아직도 토리코와 여행을 다니고 있는 모양인데 오오타케가 그것에 대해 묻자 깜빡했던 약속시간을 떠올린다. 토리코와 새로운 모험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코마츠는 서둘러 약속장소로 달려가는데 오오타케가 대체 어디로 가냐고 묻자 코마츠는 "우주"라고 대답한다.
* 이런 소식을 들은 토리코는 자기 내면에 남은 두 악마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선 "가장 끝의 땅"이라는, 미식의 원류와도 같은 곳을 알려준다. 미식의 신이라 부를 민족이 살던 곳으로 이곳에서 식욕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구루메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킨데 139억년 전의 "구르메 빅뱅"이다.
그러나 이 가족들도 빅뱅의 여파에 휩쓸려 뿔뿔히 흩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구루메 에너지가 영향을 미쳐 각자의 취향에 맞춰 흑, 백, 적, 녹, 청의 다섯 색의 우주를 형성한다. 그렇게 되서도 신들은 각 우주의 풀코스를 지키며 언젠가는 풀코스가 그들을 모아줄 거라고 믿고 있다 한다.
이 가족들의 색이 각 우주의 색이 된 것으로 아버지가 흑, 어머니가 백, 장남이 적, 차남이 녹, 막내가 청색이다. 코마츠는 아카시아의 가족들가 닮았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아버지인 아카시아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네오는 "검정" 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플로제는 "백색"이었을 거라고 추론. 그런 코마츠의 말을 듣자 토리코도 그럼 이치류 회장은 적색이고 지로는 녹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추측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의 손자인 텟페이의 머리는 녹색인데, 그게 격세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도라가 청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듯하다고 말하고 참고로 자신의 세 번째 악마는 백색이라고 첨언한다.
코마츠는 또 풀코스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PANGEA"(판게아)란 단어는 그 "가장 끝의 땅"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토리코는 식운의 정체는 미식의 신 일족의 거대한 에너지가 세포화한 것이었다며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을 가장 끝의 땅으로 이끄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풀코스 아톰을 먹은 토리코는 눈이 밝아져서 구루메 매터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토리코에겐 우주는 곧 미식의 낙원이나 다름없다.
* 마침 그때 찌가 흔들린다. 낚아 올려보니 작은 사이즈의 자이언트 셸이었다. 6대륙의 그 녀석의 새끼. 토리코는 작으니까 미니멈 셸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이것은 구루메 천문학자들이 품종개량으로 우주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이 호수에서 양식 중이다. 토리코는 이걸 타고 곧 출발하자고 한다. 코마츠는 우주로 떠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모될 텐데 린에게는 이야기 했냐고 하는데, 황당하게도 토리코는 "잠깐 사냥다녀 온다"고 밖에 하지 않았다.
식욕만이 들어갈 수 있는 우주의 식납고 "스페이스 팬트리"에는 아직까지도 미지의 식재가 잠자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식재가 태어나 자라고 있다고.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20회 일치
>덴노 지지자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무너진 질서는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쇼군은 현 상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덴노 주변의 얼간이들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쇼군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 조자이 번 ====
* 파괴: 파괴 공작 및 교란 사용시 사상자 수 +10%
스팀판에서는 조자이 번으로 플레이 하며 한 캠페인에서 3번 기습전을 벌여 승리하는 Hereditary Honour 도전과제가 있다.
* 전통주의자
다이묘 마키노 타다유키, 후계자로 마키노 타다쿠니가 있다. 이 외에 장군 츠기노스케 카와이가 있다. 게임 시작시 게이샤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다이묘는 사카이 타다요시, 후계자로 사카이 타다우지가 있다. 또다른 아들로 사카이 타다모토가 있다. 게임 시작시 신선조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 교섭자
다이묘 다테 요시쿠니, 후계자로 다테 시나사쿠, 어린 아들로 다테 노부히사가 있다. 게임 시작시 게이샤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 요네자와 번 - 우젠. 다이묘 우에스기 나리노리
덴노를 드높이고 오랑캐를 내몰자고 외치며 도쿠가와 막부에 반기를 든 세력. 실제 역사에서는 이들이 승리해 [[일본 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다이묘는 시마즈 히사미츠, 후계자로 시마즈 타다요시가 있다. 장군은 사이고 다카모리. 게임 시작시 영국인 외국 베테랑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본래 야마우치 가문은 보신 전쟁의 발발을 반기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존왕파의 초슈 번과 사츠마 번이 더욱 강대해질게 뻔했기 때문. 그래서 도쿠가와 막부가 덴노에게 권력을 넘기기를 요구해왔지만 결국 전쟁으로 결판이 나게되자 존왕파에 들어간다.
다이묘는 야마우치 토요시게, 후계자는 야마우치 토요노리, 장군은 사카모토 료마. 게임 시작시 게이샤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모리 가문이 다스리는 번. 나가토를 본거지로 두고있다. 모리 가문은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가문과 일본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싸우던 당시 도요토미 가문의 편에 섰었다. 하지만 오사카 성 전투 당시 싸우지 않고 후퇴하며 도쿠가와 가문이 승리를 거두도록 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막부는 모리 가문을 형편없게 대했고, 이로 인해 모리 가문은 막부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막부가 서구에게 개항하자 이를 빌미로 막부를 상대로 들고 일어났다.
다이묘 모리 다카치카, 후계자 모리 모토노리, 장군 다카스키 시나사쿠. 게임 시작시 유신지사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 은밀성: 운용 가능한 키쇼 닌자의 수 +3
다이묘 토도 다카유키, 후계자로 토도 다카히사가 있다. 게임 시작시 시노비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20회 일치
*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는 루시 하트필리아. 그 앞에는 의자에 묶여 있는 나츠 드래그닐이 있었다.
* 루시 자신도 결박되어 있는데 범인은 디마리아. 자신이 잡혔을 때처럼 마봉석을 이용해 묶어놨다.
* 이때 시간을 정지시키는데 다시 시간이 흐르자 루시는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데 디마리아의 피였다.
* 그 앞에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은 나츠 드래그닐. 의자에 단단히 묶여 있다.
* 루시는 깜짝 놀라지만 그 자신도 묶여 있음을 깨닫는다.
* 단순히 의자에 묶어놓은게 아니라 마봉석까지 사용했는데, 범인은 디마리아.
* 자신이 포로가 됐을 때와 같은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 다시 특유의 "딱"소리와 함께 자리를 옮기는 디마리아. 루시의 코앞으로 다가온다.
* 그녀는 루시의 눈이 크다며 "짜증나는 눈동자를 도려내주겠다"고 위협한다.
* 루시가 전혀 위축되지 않자 재미없어하는데 루시는 네 즐거움이 될바엔 눈알 같은건 없는게 낫다며 강하게 나간다.
* 정말로 칼날이 눈 앞으로 찔러오자 루시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나츠를 생각한다.
* 잠시 뒤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자 루시가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다.
* 수갑과 의자가 부서지고 특히 얼굴에 피를 뒤집어 쓰고 있다.
* 디마리아는 그 상태로 "괴물"이란 말을 중얼거리는데, 루시가 나츠의 행방을 묻자 "그 녀석은 괴물"이라고 말한다.
* 디마리아는 나츠가 자신의 신의 힘마저 뛰어넘었다며 "그런건 END 뿐"이라고 말한다.
* 에버그린이 상황이 어찌된 거냐고 묻자 루시도 자세히 모르겠다며 나츠랑 같이 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디마리아가 당하고 나츠는 사라졌다고 답한다.
* 지상으로 나간 나츠는 시커먼 불길을 내뿜고 있다. 완전히 폭주해서 자기 몸까지 태우는 것처럼 보인다.
* 디마리아가 어디서 갑자기 마봉석을 꺼내왔는지는 불명. 구출될 때 챙겨온 건가?
- 페어리 테일/514화 . . . . 20회 일치
* 아이린은 지금 자신과 싸우는 [[웬디 마벨]]은 물론 모든 멸룡마도사(드래곤 슬레이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 그렇게 해서 전황은 역전됐지만 곧 무서운 부작용이 밝혀진다. 끝내 사람이 용으로 바뀌는 최후. 그때 아이린은 [[엘자 스칼렛]]을 임신하고 있었다.
* 드래그노프는 드래곤과 인간이 화합해서 공존하는 나라였다. 아이린은 안뜰에 있다가 돌아온 베르세리온을 반긴다. 그녀는 베르세리온의 안색이 좋지 않은걸 눈치 챈다. 그가 털어놓길 서쪽에선 이미 드래곤들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곧 동쪽, 이슈갈로 침공할 것이다. 베르세리온은 이슈갈에선 그런 사상 자체가 통용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이곳에선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해왔음을 강조한다. 아이린은 서쪽 드래곤들이 침공하면 그들의 사상으로 이슈갈 지역의 공존이 일그러지는게 아닐까 우려하는데 베르세리온은 그렇게 두지 않겠다며 인간은 자신들이 지키겠다고 선포한다.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쉽게 믿지 못한다. 엘자는 아이린에게 그 모습으로 400년이나 살아온 거냐고 묻는다. 아이린은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은 뒤로 미뤄두며 엘자에게나 "꼬마 멸룡마도사"에게나 재밌어 지는 부분은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 당시 이슈갈엔 드래그노프 왕국처럼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하는 나라가 여럿 있었다. 서쪽 드래곤들의 침공, 용왕제가 시작되자 인간들도 전쟁의 향방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에 이미 "인챈트" 마법에 소양이 있었던 아이린은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시범 보인다. 그녀는 단순한 나무토막을 강화시켜 강철검은 부러뜨린다. 사람들은 그 위력을 보고 이것만 있으면 전쟁은 이슈갈의 승리일 거라고 장담하지만, 전황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서쪽의 드래곤은 수가 훨씬 많았고 예상 외로 이슈갈 내에서도 인간과 공존을 거부하며 이탈, 적대하는 노선을 탔다. 상황은 날로 악화돼서 어느날 베르세리온은 아이린과 독대한 자리에서 "진다"고 명언하기에 이른다.
* 베르세리온은 아무리 동포를 희생시켜서라도 인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린은 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베르세리온은 지금은 죽은 "선대" 시절에 "어떤 인간"이 목숨을 구해줬고 그 은혜를 갚고 있는 거라고 말한다. 아이린은 지금까지 한거면 충분히 갚았는데 그럼에도 자신을 섬기고 인간을 위해 싸울 필요가 있냐고 말한다. 하지만 베르세리온은 "내 생애를 들여서 너를 완전히 지킬 때까진 은혜를 갚았다고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자 아이린이 베르세리온의 말을 끊으며 자신도 싸우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인간도 드래곤에게 대적할 수는 없다. 그녀는 그 격차를 메꿀 획기적인 비술을 개발해냈다. 바로 드래곤의 힘을 사람에게 "인챈트"하는 것이다.
* 이야기를 듣던 웬디의 얼굴에 경악에 찬다. 엘자도 "네가 만들엇단 말이냐"고 되묻는다. 아이린은 기꺼이 대답한다.
* 나츠는 아직도 자신의 마음 속 세계를 걷고 있다. 어느 새 길잡이는 웬디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웬디는 "멸룡마법을 만든건 아이린이란 사람"이었다며 "안나"가 그렇게 알려줬다고 전한다. 나츠는 어느 새 웬디가 나타난걸 보고 깜짝 놀라는데 그녀 뿐만 아니라 [[가질 레드폭스]]까지 나타나 함께 앞장서고 있다. 가질은 네 마음속 일이라며 일일히 놀라지 말라고 핀잔한다. 나츠는 아까부터 다들 나타나더니 정작 자기가 죽을 원인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가질과 웬디는 모든건 그가 직접 떠올리기 위한 이정표이고 목적지는 곧 앞이라고 말한다. 나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베르세리온의 힘을 부가한 아이린에게도 곧 징후는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그때 그녀의 태내엔 딸이 자라고 있었다. 바로 엘자 스칼렛.
아이린은 인간이 용화하는 것이 멸룡마도사의 최후라고 했는데, 정작 증세를 보인 자신은 아직도 인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멸룡마도사의 힘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아이린의 남편, 즉 엘자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었는데 이 설은 아크놀로기아가 아이린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아이린도 아크놀로기아를 초면인 것처럼 대한 것 때문에 이견이 있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20회 일치
* 돌아온 나츠는 [[제레프 드래그닐]]과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최후를 알리며 이것이 초대가 원한 바라고 말한다. 그러니 "웃으며 당당히 돌아가자"고 하는데.
* [[제니 리아라이트]]는 그에게 "그들 몫까지 사는게 당신의 할 일"이라 충고하고 [[엘자 스칼렛]] 또한 목숨을 소중히하라고 당부한다.
* 한편 엘자 일행과 함께 있던 [[웬디 마벨]]은 [[아크놀로기아]]가 사라진 허공에 수상한 균열이 생기는 걸 목격한다.
* [[제레프 드래그닐]]의 야망을 둘러싼 알바레스 제국과 피오레 왕국의 전쟁은 끝났다. 제레프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와 함께 사라진 자리에는 그의 팬던트만 남아있다.
아직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END의 서를 계속 수정하고 있었다. 본래 이것은 책 자체에 씌인 악마의 힘이 수정자를 침식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미 루시의 오른팔 전체가 침식 당했고 서서히 우반신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루시는 펜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침내 책의 수정이 끝났다. 책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던 문자들이 책으로 돌아온다. 해피와 그레이는 그 모습을 신비롭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루시는 펜을 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그들이 알고 있던, 악마가 아닌 [[나츠 드래그닐]]의 정보를 써넣었다. 이제 기다릴 뿐이다.
* 루시는 END의 서를 닫았지만 침식은 나아지지 않고 힘이 다해 쓰러진다. 그레이가 그녀를 부축하며 자신의 멸악마법의 힘으로 루시 안에 들어간 악마의 힘을 뽑아낸다. 그러자 루시가 막혔던 숨이 터져나오듯 기침과 함께 눈을 뜬다.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의 몸에선 악마의 문양이 사라졌다.
* 그리고 익숙한 발소리가 공원으로 다가온다. 믿기 어려운 듯이 그 방향으로 향하는 세 명의 눈동자. 루시는 그게 누구인지 알아보고 터지는 울음을 참는다. 나츠였다. 그들이 아는 모습 그대로의 나츠.
>웃으면서 당당하게 길드로 돌아가자!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쳤다. 그러나 마룡을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두 사람도 함께 휘말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과 [[엘자 스칼렛]],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그들은 바다를 건너 작은 바위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마룡과 싸우며 만신창이가 됐던 제랄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엘자의 무릎에 누운 채로 또 살아남았다고 한탄조로 말한다.
그녀의 충고가 제랄이 놓치고 있던 사실을 환기시켰다. 엘자는 그녀의 말에 보태서 당부했다.
* 길드로 향해가는 나츠 일행. 해피가 나츠 오른 손의 부상이 심하다고 하는데 나츠는 나중에 웬디에게 낫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라고 웃어넘긴다. 길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레이가 말하자 나츠는 방금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도 그리운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루시는 아련한 듯이 "겨우 끝났다"고 말한다. 이제 당분간은 집에서 느긋하게 있으면서 못 읽은 책도 읽고 원고도 마저 쓸 거라고 말한다. 그레이는 [[쥬비아 록서]]에게 제대로 사과할 거라고 다짐한다.
* 나츠가 사라졌다. 일행이 뒤돌자 황량한 매그놀리아의 거리만 펼쳐져 있었다. 해피는 믿기지가 않아 나츠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그레이가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지만 당황하고 있다. 루시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오열한다.
* 전쟁은 정말 끝인 것일까? 엘자 일행과 함께 몸을 쉬고 있던 웬디는 곧 하늘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깨어지는 듯한 새까만 균열이었다.
- 폴리스 . . . . 20회 일치
16세기 프랑스에서는 폴리스를 도시(cite)로 번역했다. 1765년 독일의 헤르더(Herder)는 폴리스를 슈타트슈타아트(Stadtstaat)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도시국가'라는 의미로서 단순한 정주지로서 '슈타트(stadt, 도시)'와는 구분되었다. 이러한 표현은 [[독일제국]] 내에 국가로서 주권을 인정받는 도시(소위 말하는 [[자유도시]])가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농촌 지역은 코라(Chora)라고 불린다. 영토 내에 예속된 촌락(Kome)이 있는 경우도 있다. 폴리으스는 도시와 농촌이 한 단위로 연결되어, 시민들은 농촌에 경제 기반을 두고 자급자족(Autarkeia)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폴리스는 완전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여 외국과의 상업거래가 필요했으나, 자급자족은 하나의 이상으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각자 주권의 결사체로 보았다. 폴리스마다 체제와 법률을 가지고 있었기 떄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 폴리스는 자유를 누리는 삶을 이상으로 여겨졌다.
폴리스의 특징은 시민 계급이다. 폴리스에서 [[시민]]은 곧 [[전사]]이며, 이들은 [[호플리테스]]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식 중장보병의 구성원으로서, 폴리스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중장보병이 되기 위하여 무장을 갖출 경제력을 보유한 토지 보유자([[지주]])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유럽의 도시 시민들이 [[상인]]이나 [[수공업자]] 계층이었던 것과는 대비를 이루는 점이다.
폴리스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중장보병과 자산 시민 계급은 동일시 되었다. [[스파르타]]는 이러한 체계에 극단적으로 집중하였으며, [[아테네]]는 [[해군]]의 발달과 영향력의 확대로 해군의 노잡이로 복무하는 무산 계급의 영향력이 커졌다.
폴리스의 형성은 각지의 사정에 따라서 달랐다. 아테네는 신오이키스모스(Synoikismos)라는 현상에 따라서 폴리스가 형성되었다고 여겨졌는데, 신오이키스모스는 집주(集住)라고 번역된다. 가문 단위로 분산되어 살던 그리스 인들이 제사 공동체를 만들면서 요새나 성채 중심으로 결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토지를 가진 --[[금수저]]-- 고위 귀족, --[[은수저]]-- 중간계급의 자영농, --[[흙수저]]-- 토지를 가지지 못한 무산자들이 계층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군사력으로 원주민을 복속하고 지배하여, 군사적 결합이 강고해지며 폴리스가 형성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소수의 정복자가 다수의 피정복민을 지배하기 위하여, 정복지를 일정한 면적으로 분할하여 농촌을 기반으로 한 생활 기반을 이루었으며, 구성원들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동등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마케도니아는 에트노스(Ethnos)라는 상태의 국가 체계를 유지했다. 이는 지역마다 자치를 하는 체계로서, 폴리스보다 후진적인 형태라고 여겨졌다.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상실하여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하동부대부인 . . . . 20회 일치
|배우자 = [[덕흥대원군]]
|자녀 = 아들 [[하원군]],[[하릉군]], 하성군([[선조]]), 딸 [[이명순]]
'''하동부대부인 정씨'''(河東府大夫人 鄭氏, [[1522년]] [[9월 23일]] - [[1567년]] [[6월 24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정인지]]의 후손이며 [[조선]] 제14대 [[선조]]의 사친이자 [[덕흥대원군]]의 부인이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 [[덕흥군]]과 가례를 올려 군부인이 되었으며, [[1567년]] 셋째 아들 [[조선 선조|선조]] 즉위 직전에 사망하였다. 사후 임금의 사가 생모로서 '''하동부부인'''으로 추증됐으나 정의상의 오류로 인해 '''하동부대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관은 [[하동 정씨|하동]](河東)이다.
하동부대부인은 영의정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증손녀이며, 판중추부사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정세호]]의 딸로 1522년(중종 17) [[9월 23일(음력 9월 4일)]]에 태어났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ref>창빈 안씨 소생으로 중종의 서9남</ref> [[덕흥대원군|덕흥군]]과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로는 3남 1녀를 두었고, [[1567년]](명종 22) [[6월 24일(음력 5월 18일)]]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하니 [[왕비]] 부모를 장사지내는 예로 장사지냈으며, 같은 해 [[8월 9일]] 신주를 대원군 옆 이실(異室)에 모셨다.
셋째 아들 [[조선 선조|하성군]](河城君) 균(鈞)이 [[조선 명종|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조선 선조|선조]]로 즉위하였다. 선조는 생부와 생모를 [[1569년]](선조 2)에 송(宋)나라 [[북송 영종|영종]](英宗)의 생부 [[복안의황|복왕]](濮王)을 [[추존]]하는 고사(故事)를 따라 생부 [[덕흥군]]을 추숭하여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으로 하고, 생모 [[하동군부인]]은 하동부부인(河東府夫人)으로 추존하였다.
[[조선 명종|명종]] 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으로 즉위한 [[조선 선조|선조]]는 [[조선 예종|예종]]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하였다가 즉위 직후 스스로를 파양하고 친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한 [[조선 성종|성종]]과는 달리 강력한 배경도 없었으며 생부 [[덕흥군]]이 후궁 소생 왕자에 불과하여 부모를 왕과 왕후로 격상할 수 없었다. 이에 절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작위가 공신 정1품의 작위로 왕비의 아버지의 작위로도 쓰여진 부원군(府院君)의 부(府)를 대(大)로 교체한 대원군(大院君)이다. [[조선 선조|선조]]는 생부 덕흥군을 조선 최초의 대원군인 [[덕흥대원군]]으로 추증하였고, 생모 군부인(郡夫人) 정씨는 외명부 소속 왕실 여성의 최고 품작인 부부인으로 추증하였다.
{{인용문|중종 공희 대왕의 손자이며,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岧)의 셋째 아드님이다. 어머니은 하동 부부인 정씨(河東府夫人鄭氏)로 증 영의정 정세호(鄭世虎)의 따님이다.|《조선왕조실록》선조 총서}}
{{인용문|옛적에 우리 선조 대왕께서 즉위하신 지 3년째 되는 기사년에 덕흥군을 추승하여 덕흥 대원군으로 하였고, 부인 정씨(鄭氏)를 봉하여 하동 부부인(河東府夫人)으로 하였으며, 자손이 습직(襲職)하여 계속 대군(大君)의 예에 따랐습니다.|《조선왕조실록》인조 13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7월 27일(정유) 1번째기사}}
이를 전례로 삼아 [[조선 인조|인조]] 역시 자신의 어머니 구씨를 부부인으로 책봉하여 연주부부인으로 삼았다가<ref>《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9%80%A3%E7%8F%A0%E5%BA%9C%E5%A4%AB%E4%BA%BA&set_id=596444&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9%80%A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7%8F%A0%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x=21&y=7 연주부부인]</ref>, 이후 [[인헌왕후]]로 추존하였다.
하동부부인이 하동부대부인으로 오인된 것은 [[조선 영조|영조]] 즉위년에 [[조선 영조|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추보를 논의할 때 예조판서 [[이진검]]이 "선조(宣祖) 때에 덕흥군(德興君)을 높여서 ‘대원군(大院君)’이라고 하였고, 군부인(群夫人)을 ‘부대부인(府大夫人)’이라고 하였다."고 잘못 진달하였기 때문인데<ref>《조선왕조실록》영조 1권, 즉위년(1724 갑진 / 청 옹정(雍正) 2년) 9월 21일(신유) 2번째기사</ref>, 사실 이는 [[이진검]]의 잘못이라기보다 [[조선 경종|경종]]2년에 부제학 이명헌이 [[조선 경종|경종]]의 사친인 [[희빈 장씨]]를 추보할 것을 상소하며 "선조조(宣祖朝)에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을 추숭(追崇)하였을 때에 선정신(先正臣) 이황(李滉)의 의논을 인용하여, 빈(嬪)자 위에 특별히 하나의 대(大)자를 더하고, 이어서 본관(本貫)을 취하여 모부대빈(某府大嬪)으로 삼을 것"을 시초로 한다.<ref>《조선왕조실록》경종 9권, 2년(1722 임인 / 청 강희(康熙) 61년) 7월 17일(경자) 1번째기사</ref> 당시 동석했던 [[이진검]]이 이명헌의 말을 잘못 기억하여 영조 즉위년에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예조판서인 [[이진검]]이 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않고 진달하였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조선 경종|경종]]의 각별한 충신이었던 [[이진검]]이 부대빈(府大嬪) 작호의 유지를 위해 고의적으로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로 인해 이후 정씨의 작위는 다시 본래의 작호인 하동부부인으로 정정되어 불리기도 하다가 하동부대부인·하동부인·대원군부인으로 섞여서 일컬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아들의 지위에 따라 어머니의 작호에 대(大)를 더할 수 있다는 세종14년 때의 법령과 이미 부대부인의 작호를 쓴 여성이 있었던 전례에 의거해 마땅히 부대부인으로 삼았어야 할 정씨를 부부인으로 삼은 것은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탓으로 짐작된다.<ref>《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B%E4%BA%BA&set_id=-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7%E5%A4%AB%E4%BA%BA&set_id=59642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E5%A4%A7%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insp_result_s.jsp?M=0&oflag=0&set_id=596427&selK=1&selT=1&query=%E5%A4%A7%E9%99%A2%E5%90%9B%E5%A4%AB%E4%BA%BA&query_Result=&sinfo=&list_per_page=10&chkID=0&opAll=0&opP=0&opA=0&opB=0&opR=0&opT=0&opG=0&opW=0&qAll=&qP=&qA=&qB=&qR=&qT=&qG=&qW=&idS=&idE=&tc=2&pc=2&cp=1&startpos=0&pos=0 대원군부인]</ref><ref>《조선왕조실록》영조 117권, 47년(1771 신묘 / 청 건륭(乾隆) 36년) 8월 9일(정축) 1번째기사 中 "그 사체에 있어서 창빈(昌嬪)·대원군(大院君)·하동 부인(河東夫人)을 대진한 후에 어떻게 합제(合祭)할 수 있겠는가?"</ref>
***** 손자 : [[영창대군]] 의(永昌大君 李㼁, 1606~1614)
***** 손자 : 제15대 [[조선 광해군|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1608~1623)
***** 손자 : 추존 [[조선 원종|원종대왕]](元宗大王, 1580~1619)
== 관련 자료 ==
- 하이큐/250화 . . . . 20회 일치
[[하이큐]] 250화. '''도전자'''
* [[카라스노 고교]]가 분전하고 있지만 [[이나리자키 고교]]가 전력면에서 한 수 위.
* 하지만 히나타 쇼요가 폭발적인 가속력에 개선된 점프까지 연계한 페이크 콤비네이션으로 리벤즈 스파이크를 꽂아넣자 카라스노의 기세가 단숨에 오른다.
*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이나리자키의 "최강의 도전"자른 별명에 빗대어 카라스노는 "언제나 배구에 대한 도전자"였다며 대등한 도전자끼리임을 강조한다.
* 히나타를 갈군 카게야마지만 돌아서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가 [[호시우미 코라이]] 영향을 받고 "쾅" 점프를 뛰기 시작한 것은 좋은 흐름이다. 하지만 설마 점프의 최고 도달점이 갑자기 변할 줄은 몰랐다. 이대로는 이전에 맞추전 세트업으론 호흡이 안 맞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씩 웃는다. 흡족한 미소다.
* [[이나리자키 고교]]의 서브. 서버는 [[스나 린타로]]. 아츠무와 달리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시끄럽게 응원한다. 스나는 시끄러워도 영향을 안 받는 타입. 1회차 서브는 우측 구석, [[사와무라 다이치]] 쪽으로 뚝 떨어지는 서브. 받기 힘든 코스지만 사와무라가 어떻게든 리시브한다. 하지만 공이 흔들리고 히나타가 살려서 그대로 타나카의 스파이크. 그러나 [[미야 오사무]]의 블록에 걸린다. 그대로 찬스볼. 응원단이 "찬스볼"을 합창하듯 입을 맞춰 외친다. 스나가 받으러 오는데 여기서 아츠무가 묘기를 부린다.
아츠무는 퍼스트 터치와 동시에 그대로 새트업, 약속이라 한 것 처럼 [[오지로 아란]]이 총알같은 스파이크로 점수를 벌어간다. 카게야마가 블록을 뛰어 보지만 무리. 그외 카라스노의 다른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다. 오지로는 성공해 놓고도 아츠무에게 "놀라게 한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응원단은 선수들 이상으로 기세가 오른다. 중계석은 이나리자키에 칭찬 일색.
* 카라스노가 순식간에 밀려나는 상황. 문득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시작 직전에 언급했던 [[하이큐/248화|최강의 도전자]]라는 별명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최강의 도전자"... 라고 그랬죠?
* 되돌아온 공은 [[니시노야 유]]에게. 안정적으로 리시브한다. 공은 다시 카게야마의 세트업으로. 그런데 곧바로 뛰어 오를 줄 알았던 히나타가 "앗"하고 움찔한다. 정면에 있던 이나리자키의 오미미가 거기에 주의를 뺏긴다. 그리고 순간. 히나타는 폭발적인 가속으로 코트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도약. 아츠무가 그랬던 것처럼 한순간 체육관의 모든 이목이 히나타에게 쏠린다. 카라스노를 얕봤던 미야 형제는 똑같은 타이밍에 "우와"하고 탄성을 뱉는다.
>상대는 "최강의 도전자"
>'''배구에 대한 도전자다'''
* 그들이 대등한 "도전자"임을 입증하듯, 이나리자키의 좌현을 관통하는 스파이크. 코트 위의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고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얼어붙은 듯이 서서 야유하는 것도 잊었다. 관객들은 물론 관중석 조차 한순간 정적. 마치 시간을 멈추로 때린 것 같은 스파이크였다. 단숨에 기세를 되찾는 카라스노 고교.
연재 5주년 기념 센터 컬러는 모처럼 등장한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차지. 원래 히나타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텐도 사토리]]가 히나타에게 사기를 쳐서 엉뚱한 곳으로 보내고 카메라를 스틸했다... 라는 설정. 텐션이 오른 텐도가 "이번 에피소드는 전편 실사화"라는 개드립을 쳐대서 후배들이 말리는 내용이다.--이딴 걸로 귀중한 컬러를 날려먹는 거냐--
- 하이큐/266화 . . . . 20회 일치
* 하지만 팀으로써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서로의 장단점이 눈에 들어왔고 피차 큰 실적을 내게 되자 더는 티격태격할 필요도 없어졌다.
* 네코마의 감독 [[네코마타 야스후미]]는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와 사루카와 공고를 칭찬하나, 꼭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 자신하는데.
* 고교 1학년을 맞이한 [[코즈메 켄마]]는 빡빡한 훈련 일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를 출발해 인근 하천을 끼고 도는 런닝 코스는 고역이었다. 강압적인 3학년들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코즈메는 그런 와중에도 좋은 구석을 찾아내곤 했다. 달리는건 싫지만 뛸 때의 풍경과 뛰면서 펼치는 공상의 나래는 조금은 좋았다. 저 강물 위로 드래곤이 거닐고 있다면, 맞은 편 건물에 자라난 담쟁이 덩쿨을 타고 오를 수 있다면. 그걸 타고 올라간 지붕 위엔 보물상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게 즐거웠다. 마음껏 상상만 펼칠 수 있다면 고된 런닝도 조금은 즐겁다. 문제는 그런 평안을 뒤흔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 뿐.
코즈메의 후방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며 달려오는 녀석이 있었다. 언동만큼이나 생김새도 소란스러운 녀석. 머리에 닭벼슬이 달린 야마모토 뭐시기라는 1학년. 자나깨나 근성을 목놓아 외치는 괴짜. 그 1학년이 코즈메를 추월하며 당치도 않은 오지랖을 부렸다.
코즈메 또한 스포츠맨으로서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당시 네코마의 1학년들은 하나같이 별종이었던 셈이다. 그런 별종들끼리 잘 어울려서 해나가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특히 코즈메와 야마모토의 관계가 문제였다. 함께 훈련을 거듭하는 동안 둘은 극과 극의 성격 때문에 도무지 어울리질 못했다. 지나치게 스포츠맨적인 야마모토와 지나치게 스포츠맨답지 않은 코즈메, 둘은 훈련 중에도 공공연하게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야마모토가 삐딱하게 나왔다. 노력해온걸 발휘하려는데 어떻게 쉽게 힘을 풀겠느냐며, 자신에게 "근성이 부족했던" 거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엔 코즈메가 삐딱하게 나올 차례였다.
슬슬 신경전을 넘어서는 분위기를 근처의 후쿠나가도 느낄 수 있었다. 야마모토는 방금 코즈메의 지적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공만 너무 본 것, 상대의 도발에 넘어간 것, 어려운 공이 너무 욕심을 낸 것 등등. 코즈메가 아는 것 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코즈메가 그렇게 잘 알면서도 왜 "근성"으로 뭉뚱그리냐고 하자 그건 애초에 연습 단계에서 노력과 근성이 부족했다는 말이었다고 대꾸했다. 코즈메는 수긍할 수 없었다. 결국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넘어버렸다.
>과하게 뛴다거나 웨이트 트레이닝하는 건 노력이 아니라 자기만족이야.
* 상대를 달리보기 시작한건 야마모토 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투자한 근성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예선이 시작될 쯤에는 스파이커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세터인 코즈메와 함께 "네코마의 1학년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코즈메는 단순한 세터가 아니라 팀의 사령탑, 네코마의 뇌로써 소질을 보였다. 둘의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해소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차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인 만큼 그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타입이었고 그런만큼 일반적으론 가장 포텐셜이 높은 선수를 쓰기 마련인 세터 자리에 "그렇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코즈메처럼. 네코마타 감독이 보는 세터의 절대조건은 두뇌와 센스. 그건 팀의 수비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면승부에서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씩 깎아내리는건 가능했다. 강고한 수비라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고 흔드는 걸로 세터의 연약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입증하듯 2세트 중반에 이르러 사루카와는 최초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자제력과 시합 전체를 바라보는 영리함, 냉정함.
네코마타 감독은 반대진영의 제자와 그가 길러낸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제자들이 자신의 방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한창수 . . . . 20회 일치
'''한창수'''(韓昌洙, [[1862년]] [[1월 19일]] ~ [[1933년]] [[10월 7일]])는 [[조선]] 말기의 관료 겸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며 자는 경문(景文), 호는 영애(穎愛)이다.
권세를 이용한 치부에 능숙하여 일제 강점기 동안 귀족 중에서도 가장 부유하게 살았으며, [[1960년]] 보도에 따르면 손자가 [[서울특별시|서울]] [[성북구]]에서 유복하게 살고 있었다.<ref>
|저자=연성숙
***** 자부 : 풍양 조씨
***** 자부 : 전주 이씨
***** 양자 : [[한상기 (조선귀족)|한상기]](韓相琦)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남작]] 작위를 물려받은 아들 [[한상기 (조선귀족)|한상기]], 서자 [[한상억 (1898년)|한상억]]과 함께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007년]] [[5월 2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한창수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ref>
|저자=이민정
}}</ref> 했고, [[11월 22일]]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한 재산에 대해서도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ref>
|저자=임은진
== 참고자료 ==
|저자=박정호
[[분류:1862년 태어남]][[분류:1933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남작]]
[[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
- 김성주 (기업인) . . . . 19회 일치
{{공직자 정보
| 직책 = 前 [[대한민국]] [[대한적십자사|적십자사]] 총재
'''김성주'''([[1956년]] [[11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현재 [[성주그룹]] 회장, 독일 [[모드 크리에이션 뮌헨|MCM Holding AG]] 대표이사,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이다.
1975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학교]] 신학 학사를 받았다. 이후 [[애머스트 대학교]], [[런던정치경제대학교]],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등에서 공부했다.
개인의 신념이자 경영철학인 “Succeed to Serve", 사회환원기업 (Social Enterprise)으로써의 책임의식으로 2009년 ㈜성주재단을 설립, 기업의 순수익 10%를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환원하며,
매년 60여 개의 국내외 NGO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코소보의 전쟁피해자 지원 및 Asia House(UK)와 Victoria & Albert Museum(UK)등과 같은 각종 문화, 자선공연, 세계 여성 대회(Global Summit of Women)네트워크를 통한 여성들의 경제/사회 활동 활성화를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ref>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457190</ref> <ref>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3110&g_serial=454351</ref> <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12153405&code=910110</ref>
그녀는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아름다운 자본주의의 모범이 되고, 중소기업과 젊은이,여성을 키워 글로벌 무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미션으로 진취적인 사업전개와 글로벌 활동을 펼쳐왔다. 세계의 주목을 먼저 받은 그녀는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2013년부터 Asia Pacific Economy Council의 ABAC (APEC Business Advisory Council)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5/2013062502603.html</ref>
김성주는 MCM을 글로벌하게 키워냈으며 직설적이고 튀는 발언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2014년 제주 BPW(Business & Professional Women) Congress에서 '글로벌 여성 지도자 상' 수상 당시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더이상 권리가 아닌 의무"라며 "세월호 사태도 기득권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며 여성들은 더이상 이런 사태를 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장관의 1/3은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때에는 여성 리더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캠프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그룹 매출이 급감하거나, 빨간색 운동화 패션을 유행시키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대중의 주목을 끌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선대위 활약 이후에는 공약에서 약속한대로 성주그룹 회장으로서 일선에 복직해 비지니스에 주력하다가, 2014년 10월 8일 [[대한적십자사]] 제28대 총재에 선출되었다. 임기만료를 3개월 앞두고 [[2017년]] [[6월 30일]]에 사퇴할예정이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16/0200000000AKR20170616082000014.HTML?input=1195m</ref>
2015. 6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대영제국훈장 (Honorary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OBE)수훈
1997. 2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차세대지도자(Global Leaders for Tomorrow) 100인으로 선정
|전임자 =[[유중근]]
|후임자 =김선향 부총재 권한대행
|직책 =[[대한적십자사]] 총재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여성 기업인]][[분류:애머스트 대학교 동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9회 일치
* 미도리야는 [[올마이트]]를 찾아가 자세한 내막에 대해 캐묻는데 그가 밝힌 "진상"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 올마이트는 자신의 팬인 미도리야에게 이런 참혹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숨겼던 거고, 진실을 알게 된 미도리야는 아연해지고 마는데.
* 핫사이카이의 아지트이자 자택은 상당한 고가의 저택이었다. 게다가 담장이 높고 창이 작아 빌런의 아지트로서는 딱이었다. [[서 나이트아이]]는 바로 이곳을 포인트로 정해 치사키, [[오버홀]]의 동향을 감시 중이었다. 이날은 특히 오가는 사람이 적어 주시하고 있었는데 사이드킥 [[버블걸]]이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받는다.
* 서둘로 시내로 복귀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 [[미도리야 이즈쿠]]와 합류한다. 밀리오는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며 사과하는데 나이트는 아이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보지 못한게" 문제였다며 자신의 실태였다고 말한다. 그가 적어도 모든걸 예지할 수 있는건 아닌가 보다. 어쨌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의심을 샀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그들이 얽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한 건의 강도사고]]를 소개한다. 그런데 여기서 오버홀과 핫사이카이는 "빌런을 제압한 공로자"로 등장한다. 어떤 강도단이 트럭사고를 일으켜 민간인을 휘말려들게 했다. 그때 휘말려든게 이들. 그런데 오버홀의 "개성"으로 사상자는 제로에 강도단까지 제압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건 강도단 쪽. 분명 엉망진창으로 당했는데 검거되고 난 뒤에는 상처 하나 없이 멀끔한 모습. 오히려 지병으로 가지고 있던 충치나 류머티스 같은게 깨끗히 나아서 건강해져 버렸다. 이 모든게 오버홀이 가진 "개성"의 힘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건 알 수 없으며 사상자 없이 강도단을 제압했으므로 죄를 추궁할 수도 없었다.
* [[미네타 미노루]]는 미도리야에게 인턴활동이 어땠냐고 물으며 야한 여성 히어로는 없었냐는 흑심 가득한 질문을 던진다. [[아시도 미나]]가 은근슬쩍 끼어든다. 바쿠고는 자기가 뒤떨어진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는걸 병적으로 기피한다. 반은 언제나처럼 부산스럽지만 미도리야는 붕 뜬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수업 중에도 초조함이 더해져 집중이 되지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연발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자와 쇼타]]에게 쓴소릴 듣기도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결심한 미도리야는 교무실로 찾아간다. [[올마이트]]를 찾아서. 하지만 그는 조깅을 나가서 자리에 없다. [[미드나잇]]이 알려주기론 가정방문을 마친 후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상당히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인데.
* 미도리야는 전부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 나이트가 아이가 원 포 올에 대해 아는 것, 밀리오가 사실은 후계자 후보였다는 것. 그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왜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궁금한 건 전부 거침없이 묻는다. 거기에 돌아오는 올마이트의 대답은 뜻밖에 차갑다.
미도리야는 팬으로서가 아니라 후계자로서, 왜 그런 비밀이 있는 건지 모든 걸 알고 싶다고 강변한다.
우선 올마이트는 나이트아이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본래 올마이트는 사이트킥을 두지 않는 주의였다. 나이트아이는 광적인 올마이트의 팬이었고 그 열의에 꺾여서 그를 사이드킥으로 삼았다. 그렇게 지낸게 5년. 신체능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팀의 브레인으로서 귀중한 조력자였다. 여기까지는 미도리야도 아는 사실이다.
나이트아이는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올마이트가 억지로 사람들을 구하러 나서자 그렇게 말했다. [[리커버리 걸]]의 병원. 올 포 원과 격전 직후였다. 그 자리엔 [[네즈]]와 리커버리 걸,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도 있었다.
올마이트는 사람들이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이상 가야한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나이트아이는 냉정하게 충고한다. 폐를 당한 그는 전처럼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상태로 계속 히어로를 해도 보는 사람들이 괴로울 뿐이며, 전설인 채로 은퇴하는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네즈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원 포 올의 후계자는 웅영고에서 찾으면 된다고 설득에 함께한다. 나이트아이는 반드시 그를 닮은, 밝고 강하며 친근감 있는 인물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나이트아이는 올마이트를 돕기 위해 여기있는 거라 강변한다. 하지만 올마이트는 "나는 세상을 위해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받아치며 끝끝내 발걸음을 병실로 돌리지 않는다. 결국 나이트아이는 자신이 본 끔찍한 미래에 대해 털어놓고 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9회 일치
* 사실 이 기숙사 전환은 교사는 물론 학생들 중에 배신자가 있을 것을 염려한 조치이기도 하다.
* 방배정 이후 학생들은 각자 방 인테리어를 보여주는데 여자방만 공개하지 않아 빈축을 산다.
* 이에 미네타가 여자 방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의외로 선선히 승락을 받아낸다.
* 실제로는 학생 중에 있을지 모르는 "배신자"를 색출하고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 이레이저 헤드(아이자와 쇼타)는 입소에 앞서 전달사항을 전한다.
* 아이자와는 이들의 반응으로 사실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다는걸 간파한다.
* 아이자와는 지금이라도 "정규의 루트로 정규의 활약을 해서 신뢰를 되찾아라"는 말을 하고 "기운차게 안으로 들어가자"며 기숙사로 향한다.
* 주동자였던 키리시마가 침울해있는 것을 보고 바쿠고가 갑자기 카미나리 덴키를 끌고 간다.
* 우측이 여자동, 좌측이 남자동인데 1층은 공동 구역이며 식탕, 욕탕, 세탁 등을 처리한다.
* 미네타는 욕탕과 빨래가 공동 구역에 있다는 것에 격하게 반응하다 아이자와에게 제지 당한다.
* 방은 1인 1실이 기본. 자체 화장실에 베란다까지 딸린 호화로운 구성이다.
* 야오요로즈는 "우리집하고 비슷하다"고 말하며 부자임을 과시.
* 방배정까지 끝나고 학생들은 각자 방꾸미기에 들어간다.
* 미네타는 "남자만 공개하는건 이상하다"면서 여자방도 공개하기를 요구한다.
- 남경민(배우) . . . . 19회 일치
| 형제자매 = 남하영(이복 누이동생)
| 웹사이트 = {{트위터|cutty871027}} <br/>[https://twitter.com/Vitamin871027 연기자 남경민 공식 트위터]<br/>[https://www.facebook.com/cutty1027 연기자 남경민 페이스북] <br/> [https://www.instagram.com/cutty1027/ 연기자 남경민 인스타그램]
배우 [[윤다훈]](본명 남광우)의 슬하 2녀 중 장녀이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0110&yy=2012 윤다훈 딸 공개 "미모의 여배우 남경민"] [[매일경제]] 2012년 5월 4일</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4/2012050401145.html 조선일보 보도 자료 리스트]</ref>
신장은 166cm이고 체중은 48kg인 그녀는 2009년 6월, '''서지은'''이라는 [[예명]]으로써 [[모델 (직업)|패션 모델]] 첫 [[데뷔]]를 하였고, 2010년 2월에는 [[모바일 게임]] 《[[리듬스타 2|리듬 스타 2]]》의 [[사운드트랙|OST]]에 수록된 [[강철 (1972년)|Rion Project]]의 《Shiny day》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였다. 이 해(2010년) 3월 [[KBS 2TV|KBS]] [[텔레비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출연하였고, 2011년 4월 '''남경민'''이라는 예명으로 연기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영화]], [[연극]], [[뮤지컬]] 등에 출연하였다.
* 2006년 2월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세 번 결혼하는 여자]]》([[서울방송|SBS]], 2013년 ~ 2014년) ... 서하나 역
* 《[[싸우자 귀신아 (드라마)|싸우자 귀신아]]》([[tvN]], 2016년) ... 정 간호사 역
* 《[[적과의 동침 (2011년 영화)|적과의 동침]]》(2011년) ... 젊은 여자 역
* 《[[짝 (텔레비전 프로그램)|2013 추석특집 짝 스타 애정촌]]》([[서울방송|SBS]], 2013년) ... 여자 5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사생아]][[분류:목동중학교 동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비디오 자키]][[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19회 일치
일본 'MF문고J'에서 발매중인 [[일본]]의 [[라이트노벨]]. 2015년 3월 기준으로 일본에선 6권까지 나와있으며, 국내에선 'L노벨'에서 5권까지 정발중이다. 작가는 '강철의 흰토끼 기사단'의 작가인 [[마이사카 코우]], 일러스트레이터는 요타. 역자는 김덕진.
인간을 초월한 마력을 가졌으나 인간들의 탄압으로 인해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숲 속으로 내몰리며 쇠퇴의 길을 걷던 마녀들. 그녀들의 본거지 한가운데에 이세계의 남자가 떨어져내린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호색한(...)은 마녀들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마녀와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데...
* 나가 : 주인공. 용신이 산다는 호수를 들여다보다 물에 빠진 뒤 이세계인 해리건 일족이 목욕중이던 [[온천]](...)에 떨어졌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으나 단편적인 기억은 이따금 떠오른다. 이 세계의 마녀들의 외모 때문에 지나치게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는 못미더운 모습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에 임해 냉철한 판단력과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주는 범상치 않은 인물. '나가'란 이름은 자신의 이름 중 일부밖에 기억나지 않아 쓰게 된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이것이 마녀들 사이에선 '전설의 용왕'의 이름이라 마녀들이 이것을 매우 흥미로워 한다. 2권에서 그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 정체는 [[오다 노부나가|짐작하다시피]]...[* 작가는 후기에서 한 동료작가가 "뒷이름만 비슷한 다른 인물은 아니겠죠?" 하고 물어본 것 때문에 이걸 써먹을까 했다가 '''실패하면 뒷감당이 안될, 작가 인생을 건 한방 개그'''가 될 것이라서 포기했다고 한다.]
* 해리건 해리웨이 하인드라 : 주인공이 떨어져내린 곳인 하인드라 일족의 마녀들을 통솔하는 인물. 주인공이 감탄했을 정도의 폭유(...)다. 젊은 나이(20대 초반 즈음으로 추정)에도 마녀들을 통솔하는 지도자답게 진중하고 침착한 성격. 머리카락을 이용해 대상을 직접 타격하거나, 혹은 마력을 담은 머리카락을 심은 물건(목각인형 등)을 조종하는 등의 마법을 구사한다.
* 아이스 아이슈리아 하인드라 : 하인드라 일족의 마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괴력을 발휘한다. 온후하고 친절한 성격이지만 성희롱을 걸어오는 주인공 때문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래봤자 나중엔 역시 나가한테 푹 빠진다~~ 해리건 못지 않은 글래머.
* 쿠우 쿠네리아스 하인드라 : 몸에 칭칭 감고 있는 가죽 혁대를 조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서, 혁대로는 자기보다 더 무거운 물체도 조작할 수 있지만, 맨손으로는 밥공기보다 무거운 건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
* 엘레오노자 에류슈 하인드라 : 일부 자연현상(비를 내리게 하는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준비 시간이 긴 탓에 평소에는 농사 등에나 쓰인다며 자조하고 있지만, 나가에 의해 전투에 응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마녀 중 하나.
* 비타 솔샤르 슬레이마야 : 해리건의 영역과 인접한 슬레이마야 일족의 지도자. 로리한 외모와는 달리 나이는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를 조종하는 마법을 구사하며, 마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나가에게 흥미를 느끼고 해리건 일족과 연합한다. 본인도 나이를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가가 맘에 들어서인지 나가가 그녀를 보고 귀엽다느니, 나이가 많은 게 믿겨지지 않는다느니 하니까 기분좋은 반응을 보여준다.
* 엘리시오네 아니안 슬레이마야 : 슬레이마야 일족의 마녀. 만틸라에서 다른 만틸라로 공간이동을 하는 게 가능하며 자신 외에 다른 사람도 함께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맨 육체만 이동시키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능력 사용을 위해선 알몸이 되어야 한다.
* 라이바하 란티에스 : 검은 숲에 은둔중인 해리건 일족을 토벌하기 위해 편성된 카산드라 제국군의 일원. 노부나가의 책략으로 인해 원정군이 궤멸당하고 오히려 요새를 빼앗기는 참패를 겪은 뒤 후임 지휘관에 의해 최전방에 배치되었다가 우연한 기회로 마녀들에게 생포당했다. 마녀들이 이제껏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젊은 여자들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데다, 그녀들(특히 유우키)를 보고 과거 도적들에게 살해당한 딸이 생각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결국 노부나가의 부하가 된다.
* 귀스카르 : 마녀의 영역과 인접한 카산드라 왕국의 왕족으로 선왕의 아들이자 현왕의 조카. 자중하면서 왕위를 되찾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나가 일행의 활약으로 에인 요새가 탈취당하고 군대가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왕이 그를 국왕 전권 대리로 임명한다. 야심만만하면서도 자신의 한계 또한 파악하고 있지만, 갑자기 얻은 권력으로 인해 마녀 토벌을 종용하는 구교회에 대해 의심을 품어 대립하게 된다.
* 마녀 : 이능력을 가진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과거엔 인간들과 공존했으나 마녀들을 배척하는 유일신 신앙의 확대와 마녀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질투한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제각각 인간들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간들에게 숫자로 밀려서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또한 아이를 낳게 되면 마력이 약해지는데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마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능력을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다들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 또한 편견에 일조하고 있다.
* 교회 : 유일신을 섬기고 있는 세력으로, 그들의 신앙과 배치되고 이능력을 지닌 마녀들을 배척하고 말살하려 하고 있다. 자기네들끼리도 구교회와 신교회로 갈라져 싸우기도 하는, 지극히 광신적이고 정치적인 종교조직.
- 마기/321화 . . . . 19회 일치
* 신드바드는 자신이 신의 그릇이나 구세주가 아니라 "단지 탐욕스러운 한 명의 인간"임을 인정한다.
* 의식이 진행되자 "길"에 신드바드가 먹혀 버린다.
* 신드바드 또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속이 시원한지" 자신을 의아해한다.
* 아르바는 자신과 알 사멘의 모든 마력을 쏟아넣기 시작한다.
* 신드바드는 뒤에서 의식을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자신은 왜 성궁에 가려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 그리고 이런 자신을 신의 그릇으로 여겼다는 것을 자조한다.
* 한때 그는 자신이 정말로 신의 그릇으로 세상의 구세주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 그는 알라딘 일행을 얕봤던 것과, 그들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을 보았다.
* 그들은 설사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째서 성궁에 가야 하는가?
* 길이 열리자 알 사멘의 마도사들이 하나둘 소멸하기 시작한다.
* 그건 누굴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소원을 위해. 자신의 "성취욕"을 위해.
* 신드바드는 운명을 뒤집고 모든 것을 쟁취하는 거야 말로 자신이라는, 탐욕스런 단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자각한다.
* 아르바는 그가 길에 잡아먹혔다고 생각해서 망연자실하다.
* 그는 "그래도 할 거야"라고 하면서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신의 승인은 필요치 않고 반드시 성궁에 갈 거라고 다짐한다.
* 신드바드는 선민의식을 벗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없이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모했다. 위선적 인간에서 솔직한 악당으로 변신?
- 민효린 . . . . 19회 일치
| 배우자 =
| 형제자매 =[[김수철]]사촌오빠
'''김효린'''({{본명|정은란}}, [[1986년]] [[2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이다. 배우자는 [[빅뱅 (음악 그룹)|빅뱅]]의 [[태양 (가수)|태양]]이다.
* [[대구동부고등학교|대구동부여자고등학교]] (졸업)
* [[계명대학교]] 패션디자인과 (학사)
| 《[[자전차왕 엄복동]]》
| 경자
| 《[[개인주의자 지영씨]]》
| 남자도… 어쩔 수 없다
|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2007년 5월 가수로 데뷔하여 싱글 앨범을 발매했으며, '''Rinz''' 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대표곡으로는 Stars와 기다려 늑대가 있으며 특히 Stars는 [[나카시마 미카]]의 원곡으로도 유명하다. 2가지의 앨범 형태로 발매됐으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 'Stars 버전'과 '기다려 늑대 버전'이 있어 사용자들의 취향에 따라 구입할 수 있다.
2008년 3월 14일 발매된 디지털 싱글 'Touch me'는 CYON 뷰티폰 광고의 프로젝트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LG전자]] 측의 제안에 의해 제작됐다.
| 여자 신인상
| 여자 조연상
|《[[개인주의자 지영씨]]》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6년 데뷔]][[분류:대구동부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옥수 . . . . 19회 일치
기쁜소식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이들이 개신교계 내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의적인 성경해석 때문이다. 하지만 비개신교인 입장에서는 그냥 기독교계의 신흥 교단 중 하나일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개인의 자유 선택이기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보편적인 도덕 규범에 위배되지만 않으면 배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집단인 국제청소년연합의 약자와 마크가 [[IYF]]인데 Y자 모양이 유명 선교단체인 [[IVF]]와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있다.
예수교장로회연합회라는 단체에서 발표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에서는 이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친이단인사로 유명한 사람이고, 주류 개신교단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비평으로 볼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8592|참조]].] 결국 교단 측에서 이단 옹호책자로 완전히 털리고 책 자체가 완전 폐기되었고 예장연 측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공식 부정하고 있다.
박옥수는 지난 45년간 딕욕 선교사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딕욕 선교사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 없으며 목사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라 답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는‘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에 입학(1962~1964년) - 딕욕, 말론 베이커 등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신학교 졸업, 딕욕(Dick York)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1971년)라고 게시되어 있다. 하지만 딕욕 측이 운영하는 ‘믿음의 형제들’ 홈페이지에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자신(박옥수)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이라 덧붙였다.
>제가 박옥수에게 ‘목사’안수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웹사이트에도 게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사’라는 직위는 제가 반대의 권면을 했음에도 그 자신이 붙인 것입니다.''' 그의 직위에 대한 신임장은 없으며 그러니까 '''그 자신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교회와 교회의 체계는 그와는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목사에 대한 관점은 그와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질문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그 주제는 나중에 언제 더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박옥수의 교회인 기쁜소식선교회에서는 신도가 운영하는 기업 운화의 제품인 또별~~[[무안단물]]~~이라는 식품을 마치 의약품이자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홍보하였다. [[산삼]]배양근 등에서 추출한 식물 [[줄기세포]]를 함유했다는 이 제품은 허가조차도 건강기능식품이나, 음료(차류)로 받은 제품이다. 박옥수는 이를 직접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약품처럼 과대 광고를 했던 것이다.[* 의약품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질병 치료기능 선전은 건강기능식품이어도 금지된다.]
결국 암치료를 받지 않고 또별만 먹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었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850923|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또 다른 기사.]] 또한 [[한국방송공사|KBS]] 추적 60분 2012년 3월 21일자 방영분에서도 또별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추적 60분 보도 이후 KBS와 신동아에서 반론 보도를 냈다. [[http://m.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450|기사 전문]] [[https://youtu.be/hNhIUwPlWKk|반론 보도 영상]] 결국 박옥수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만 벌금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2944|기사]]
또별을 개발한 후 주식으로 ~~상장~~[* 상장한 적 없다. 주식회사로 설립하는 과정 주주로 참여했거나 비상장 장외 거래로 구주 매출을 했을 것.]하여 870명의 교인들에게 주식 200억치를 판매하였다. 또별이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되면서 또별 개발사인 운화의 주식이 유망한 줄 알고 산 사기피해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1/0200000000AKR20170711109100004.HTML|관련 기사]] 피해자 측에서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기적의 약이라는 '또별'이 알고보면 그냥 ~~[[나주 성모동산|율신액]]~~녹차가루라며 사기죄로 고소하자, 박옥수 측에서는 "해당 제품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적은 없었다."라며 발뺌하였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19회 일치
* 야미는 여탕을 엿보자고 선동해 뻔한 결말로 밀어넣지만 아스타는 "나는 마음에 정한 사람이 있어 보지 않는다"고 일갈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 우여곡절 끝에 참가자 전원 무사히 유트림 화산 정상을 정복했다. 유트림 화산은 밤이 되면 분화를 멈추고 휴면에 들어간다.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은 일행 중에 낮 동안 다 올라오지 못했던 인원은 추려내서 내일 추가 등정을 시키고 일단 전원 온천욕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도 새까만 화산바위만 있을 뿐 온천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 군데서 온수가 샘솟더니 곧 거대한 천연 온천욕장이 생긴다. [[솔 마론]]은 "[[샬롯 로즈레이|언니]]의 알몸을 더러운 남자들에게 보일 순 없다"는 일념으로 기력을 짜내 흙마법으로 온천욕장을 가로지르는 칸막이를 생성한다. 이후 전원 온천 입장.
* 마론은 염원하던 [[샬롯 로즈레이]]의 나체를 보고 대감동. 메레오레오나는 일단 술부터 한 잔 꺾는데 옆에 샬롯한테까지 마시라고 강권한다. 최근 술로 [[블랙 클로버/104화|좋지 않은 추억]]이 생긴 샬롯이 거절하자 "내 술을 못 마시겠다는 거냐"고 압박을 가한다.
* 샬롯이 메레오레오나에게 잡힌 사이 마론은 [[노엘 실버]]의 머리를 감겨주며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노엘의 근성을 높이 사면서 푸른 들장미단으로 이적하기를 권하는데 푸른 들장미단은 성비가 좀 비정상이라 대부분 여성 단원이고 남자는 극소수. 대체로 비실거리는 놈들이라 잡일꾼이다. 마론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끌어들여 잡일꾼으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생각외로 강해졌다고 아쉬워한다. 노엘은 자기는 검은 폭우단이라고 사양하지만 그래도 남자들이 잡일꾼이란 말에 "나쁘지 않겠다"고 솔깃해한다.
* 한편 메레오레오나의 술권유를 어떻게든 뿌리친 샤론은 문득 칸막이 너머를 상상하는데, 거기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으로 어슬렁거릴 생각을 하자 열이 올라서 그대로 리타이어. 마론이 식혀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한다. 탕에는 메레오레오나와 노엘만 남는데, 메레오레오나 측이 노엘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넌지시 "점점 더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말을 건다. 마치 그녀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 노엘은 워낙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탓에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 주위에서도 그녀에게 어머니에 대한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메레오레오나는 생각 끝에 조금 이야기를 해주는데, 뜻밖에도 대단히 강한 여전사였다 한다. 메레오레오나와 자주 대련하기도 했는데 전장에선 무패를 자랑했던 그녀가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시에 실버]]. 강철의 전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노엘이 어머니가 그런 강자였다는 사실에 놀라는 동안, 메레오레오나는 노엘의 마력조작이 너무 엉망진창이라 아시에의 딸이라곤 생각도 못하겠다고 쓴소리를 퍼붓는다.
* 남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상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태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순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식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해야지. 목숨을 걸고서라도.
되먹지 않은 소리였지만 레오폴트를 포함한 홍련의 사자단원들은 "남자란 그런 것인가"는 깨달음을 얻는다. 야미는 결정타를 넣을 생각으로 유노에게도 보고싶지 않냐고 호응을 유도한다. 그런데 유노는 됐다고 거절, 분노한 야미가 아이언크로로 머리를 조인다. 유노는 끝까지 "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고 캐릭터성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나 야미가 봐주지 않는다. 아스타가 "유노는 정말로 보고 싶지 않은 거다"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남자랑만 목욕해서 그렇다"는 오해를 살법한 발언으로 변호 아닌 변호를 시도한다.
이것이 결정타가 되어 홍련의 사자단은 일치단결해 끝이 정해진 파국을 향해 달려가게 됐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19회 일치
* 아스타의 새로운 필살기는 결국 닥돌. 게다가 자폭성 기술이다.
* 마르스와 라드로스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젤은 자신의 마법으로 속죄하겠다며 마검을 꺼낸다.
* 노엘 실버가 혼신의 힘을 담은 해룡의 포효가 샐러맨더를 산산조각낸다. 증오의 파나가 빈틈을 보이자 아스타는 지금이야 말로 필살기를 써주겠다고 투지를 불태운다.
파나는 조금 듣는 것 같다가 그런 놈은 모르고 자기에게 가족은 리히트나 마을 사람들 뿐이라며 다시 자신의 원한을 분출한다.
마지막 대화시도도 허투로 돌아가자 아스타는 "역시 회복하기 전에 필살기를 써야겠다"고 말한다. 핀랄이 대체 그 핀살기기 뭐냐고 묻자 "두 자루의 검을 찌르는 자세로 잡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꿰뚫는 기술"이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데 핀랄과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그딴게 되겠냐고 갈군다.
* 바네사는 무식한 발상이라면서도 최대한 돕기로 한다. 자신의 실 마법을 두 빗자루에 걸쳐 팽팽하게 당긴 후 활처럼 아스타를 쏘아보낸다.
두 동료의 마법으로 강화된 추진력은 마법을 뚫고 재생 중이던 샐러맨더를 완파, 샐러맨더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파나는 자신이 당했다곤 믿기지 않아하며 리히트의 이름을 부른다.
* 지휘관인 마르스는 말없이 젤을 바라본다. 또다른 지휘관인 라드로스는 마녀는 어디가고 혼자 나선 거냐고 머리가 나쁘다고 빈정거린다. 젤은 마르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하는데, 마르스는 묵묵부답이고 다른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옆에 있던 라드로스가 혹시?하며 기억해내는 듯한 모습.
젤도 라드로스를 알아본다. 젤이 다이아몬드 왕국에 있던 시절 제자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라드로스는 "선생님을 내 손으로 귀여워해줄 수 있다니 신난다"라며 다짜고짜 마법을 사용한다.
* 판젤은 가볍게 마법을 잘라버린다. 라드로스도 이정도로는 어쩔 상대가 아니라는걸 아는 듯 하다. 젤은 역시 이들은 자기가 알던 예전의 그들이 아니라며 "스스로의 과거에 자신의 마법으로 속죄하겠다"며 한 자루의 마법을 뽑는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19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89. '''배반자와 속죄'''
* [[판젤 크루거]](젤)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절 지휘관이자 교관.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 다이아몬드 왕국의 대군을 가로막은 [[판젤 크루거]]. 젤은 칼을 빼든 채 과거의 제자였던 [[마르스(블랙 클로버)]]와 [[라드로스]]에게 물러날 생각은 없냐고 묻는다. 마르스는 말이 없지만 라드로스는 신나서 주절거린다. 오히려 그 말은 자신들이 할 말이며 그들은 마녀의 숲을 침략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젤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바람 마법이 다이아몬드 병사들의 마법을 상쇄, 자신은 놀라운 속도로 적진을 헤집어 놓는다. 사실 그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절 지휘관이자 교관으로 유명한 인물.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배신했다고 해서 배신자 취급이다. 그의 목에는 현상금도 걸려있는지 막대한 포상금이 나올 거라며 죽이려 든다.
* 젤이 무모하게 달려든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작전이다. 아군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는 쉽게 반격하기 어려운 법. 마르스와 라드로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젤의 예상대로 둘은 상황을 관망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혼자서 이 대병력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의 반려자와 제자에게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부응하듯 다이아몬드 측이 전열을 재정비하려 할 때, 아래 쪽 숲에서 일제히 마법의 사격이 가해진다.
* 젤의 제자 [[마리엘라]]가 마녀들을 이끌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기습을 하려면 상대의 3배의 병력을 준비해라", 그녀는 스승 젤의 가르침대로 많은 병력을 모아왔다. 젤의 움직이도 마구잡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숲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 다이아몬드 측에서 대응하려 해도 그들의 진형과 움직임이 너무나 쉽게 간파 당한다.
마리엘라는 적의 지휘관에게 사실 자신은 다이아몬드 왕국의 암살부대에 있었으며, 지금 이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고 밝힌다. 마리엘라는 한때 자신의 삶을 위해 남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하든 그 죄는 씻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이아몬드의 횡포를 막는 것, 그게 자신의 속죄라고 생각한다. 다이아몬드의 지휘관은 그녀를 배반자라 욕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한편 숲에 접근한 다이아몬드의 병사들은 묘한 골렘을 발견하는데, 그 골렘은 병사가 접근하다 갑자기 대폭발을 일으킨다. 이게 바로 도미나의 함정. 그녀의 기술로 골렘을 개조해 폭탄으로 만든 것이다. 개조비는 개당 3천 유르. 숲 여기서지서 폭발이 일어나고 다이아몬드의 진형은 완전히 무너진다.
*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아직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전세가 상당히 기울었는데도 둘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쾌활한 말투로 밑에 덫이 있으니 함부로 날아가면 안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보이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자서 돌격한다.
그는 자기들 같은 살인 병기를 키워놓고 도망쳐서 착한 척 살려는 젤이야 말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빈정거린다. 그 모습을 보고 젤도 최후의 희망을 접는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19회 일치
* 아스타는 젤 일행이 마르스에 라드로스까지 달고 나타나자 놀라는데 그 틈을 노린 파나가 공격한다.
* 젤은 그 마법을 자기들 쪽으로 받아치게 해 바람마법으로 컨트롤, 라드로스에게 직격시킨다.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자신들의 목표는 마녀의 숲이지 쓸데없는 살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라드로스]]는 다이아몬드 왕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인데 어째서 그걸 못 본척 한다는건 왕국을 배신하는 짓이라고 반박한다.
* 잠깐 침묵하는 듯 했던 라드로스는 환호성을 지르며 마법을 마구 쏴댄다. 본래 눈엣가시에 어차피 정점에 서려면 마르스를 제거해야 했다며,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엄청 좋아한다. 덤으로 젤과 그 애인 [[도미넌트 코드]도 처리할 수 있다며 혼자만 축제 분위기다.
젤은 도움받는 처지지만 그의 갑작스런 전향과 분명 기억을 조작 당했을 그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점에 놀란다. 마르스는 다시 한 번 젤 일행의 편이라고 강조하고 우선은 라드로스를 처리해야 하니 이야기는 미루자고 말한다.
마력을 흡수하는 라드로스는 그 마르스 조차 "무적"이라 말할 정도로 강력한 상대다. 그러나 쓰러뜨릴 방법이 없진 않다. 그는 허용량 이상의 마력을 흡수시켜 자멸하게 만드는 것인데 정령마법이나 마녀들의 여왕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능성도 있다.
* 마르스가 반마법까지 알고 있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란 젤. 하지만 의문은 뒤로 미루고 우선은 그 사용자가 반대편에 와있다며 라드로스를 유인하자고 한다.
* 숲의 반대편, 검은 폭우 일행은 [[증오의 파나]]를 거의 제압한 상태다. 파나는 한 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데 주변을 불사르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아스타는 이미 포위됐으니 그만 좀 하라고 마지막 항복권고를 날린다. 그러면서 "자꾸 그러면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도 슬퍼할 거야"라고 하는데 그것이 파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파나는 남아있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직도 저만한 힘이 있다며 경악하고 아스타는 마지막 설득까지 실패하자 실망한다. 바로 그 모습을 젤 일행이 발견한다. 이들은 아스타만이 아니라 정령마법 구사자가 있는걸 보고 곧바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린다. 마침 라드로스도 그들을 턱 밑까지 추격한 상태.
* 아스타는 젤 일행이 마르스, 라드로스와 함께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다. 파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령마법을 날린다. 젤은 재빨리 아스타가 얘기해준 적이 있던 "마법을 튕겨내는" 반마법 검의 특성을 떠올리고 아스타에게 자기들 쪽으로 마법을 튕겨내게 한다.
* 아스타가 마법을 쳐올리자 젤은 자신의 바람 마법으로 마법을 컨트롤, 자기들을 지나쳐 라드로스에게 직격하게 한다. 흡수하려던 라드로스는 예상을 웃도는 강대한 마력에 당황하다가 마법에 직격 당한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19회 일치
* 라드로스는 아스타의 동료애를 비웃으며 남은 "이용"해야 하는 존재라 주장하지만 아스타가 반마법의 검을 투척하는 변칙 공격을 하자 어이없이 당한다.
* 라드로스는 갑자기 저자세를 취하며 싸움을 피한다. 그는 아스타가 "반마법을 쓰는 기사"인 줄로 짐작하고 갑자기 친근한 자세로 나온다. 자신도 "무속성 마력"의 소유자라 홀대를 받아왔고 그래서 "마력이 없는" 아스타의 처지를 이해한다며 억지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스타가 대체 무슨 소릴하고 싶냐고 하자, 뜻밖에도 그는 "동료가 돼라"는 드립을 친다.
그는 "재능만 가지고 으스대는 녀석들을 물리치자"는 그럴듯한 명분과 다이아몬드 왕국 측에는 자신이 잘 설명해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해준다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셈은 언젠가 아스타의 반마법의 힘도 자신이 독차지하려는 것.
* 나는 클로버 왕국에서 마법제가 된다는 자신의 꿈을 밝힌다. 라드로스는 다시 물러서는 척하더니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공격 태세를 취한다.
* 라드로스는 [[판젤 크루거]]에게 사용했던 마법탄 폭격을 다시 구사한다. 그는 아스타의 전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마법 보조가 없으면 아스타의 공격 범위는 크게 감소한다. 라드로스는 그 점을 들어 아스타를 "좋은 표적"이라 조롱한다. 아스타는 폭격을 쳐내고 반사해 보내는 식으로 대응하는데 라드로스는 자신의 마력도 재흡수할 수 있어서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더욱 거세게 공격의 고삐를 죄며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 라드로스는 동료 따위는 없다며 아스타의 동료애를 비하한다. 그는 세상엔 이용하는 녀석과 이용 당하는 녀석, 두 종류 뿐이라며 그 "동료"를 이용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자부한다. 물론 마르스나 파나도 그렇게 "이용"할 대상이다.
* 이미 승리한 것처럼 폭소를 터뜨리던 라드로스에게, 폭연 속을 꿰뚫으며 반마법의 검이 날아와 꽂힌다. 단마의 검은 순식간에 라드로스의 마력을 무효화 시킨다. 라드로스는 자신이 무슨 공격에 당한건지 파악을 못한다.
아스타가 폭연으로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서 라드로스를 향해 검을 투척한 것이다. 기를 감지하는 아스타에게는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라드로스는 서둘러 검을 뽑아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검은 계속 마력을 흡수한다. 라드로스는 서서히 추락하면서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패닉에 빠진다. 그토록 고생해서 올라온 자리가, 이렇게 어이없이 무너지게 생겼다며 말이다.
* 결국 힘이 빠진 라드로스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신세가 된다. 기습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반마법의 검을 그런 높이까지 던지는 놈이 어딨냐고 황당해한다. 라드로스는 겁에 질린 나머지 아스타가 다가오자 비굴하게 기어다닌다.
* 아스타는 자기 혼자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고, 함께 힘을 다루고 싸우는 법을 배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라드로스의 "이용"한다는 표현은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스타는 동료란 "서로를 향상시켜주는 존재"라고 일갈하며 라드로스를 압박한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19회 일치
>광대 한 우주에 퍼진 수소 원자 가스는 곧 성운으로 성장했다 ...
안드로메다 성운의 혹성 아스투리아스(惑星アストゥリアス)에 위치하는 코스모라리아 왕가(コスモラリア王家)의 황태자 이타카(イタカ)는 왕으로 즉위하여 아스토라르타 3세(アストラルタ3世)를 칭한다. 그리고 아오도야 왕가(アヨドーヤ王家)의 리리아(リリア) 공주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타카 왕은 도시를 기계 도시로 바꾼다. 아요도야의 왕자 밀란이 여동생 리리아를 걱정하여 데리러 오자, 기계들은 밀란을 공격한다. 리리아의 아들 황태자 지무사는 이 때 신비한 초능력을 발휘하어 대항하고, 여검사 이루(イル)의 도움을 받아서 도망친다. 이루는 기계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행성 로도리안 출신의 사이보그 전사였다.
리리아와 자무사는 기계들에게 쫓겨서 탈출한다. 그들을 돕던 아요도야의 왕자 밀란은 기계에 살해당하고, 탈출한 아요도야 역시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며 밀란과 흡사한 기계가 난민을 공격하게 된다. 자무사는 신비한 초능력으로 로브(ロブ)의 동무을 받아서 [[사막]]으로 탈출한다. 자무사와 리리아는 로브의 도움을 받으며 10년간 피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과거 기계에 파괴된 행성 뮤라토(ミュラト)의 자손을 이끄는 노사(老師) 쿠푸가 지무사의 앞에 나타난다. 노사 쿠푸는 뮤라토의 피가 아요도야 왕가에 흐르고 있으며, 가장 진한 피를 지무사가 가지고 있다고 알려준다. 지무사는 남자로서 자라 도적으로 활동하는 쌍둥이 여동생 아푸루(アフル)와 만나게 되며, 기계와 인간의 전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지무사의 쌍둥이 여동생. 녹색 머리. 지무사와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쌍둥이는 불길하게 여겨져서 버려지고, 창녀 코리노(コリノ)가 데려다가 기르게 된다. 남자로서 길러졌으며 도중까지는 도적으로서 지무사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지무사와의 혈연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만악의 근원-- 오래전 멸망한 행성 뮤라토의 자손. 사실 기계군단을 만들어낸 근원으로서, 기계들을 조종하는 마더 머신을 만들어 "인간을 행복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마더 머신은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을 모두 기계로 개조하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정신만을 행복한 가상세계에서 살도록 만들게 된다. 이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 파괴하도록 되어 있어 지금까지 몇개의 문명을 멸망시켜 왔다.
절망적인 싸움 끝에 아스투리아스가 함락되자, 마지막에는 이민선 키시로코파를 마더 머신에 부딪쳐서 마더 머신과 공멸하고 만다.[* 그러나 마더 머신 본체는 "여기서 할 일은 다 했다"면서 우주 저편으로 도망쳐 버렸다.(...)]
과거 태양계에 존재했던 제5혹성 그로브에서 제작된 W형 안드로이드. 마더머신이 제작한 기계화군단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 주인을 잃고 아스투리아스에서 방황하다가, 지무사를 주인으로 모시게 된다. 노사 쿠푸가 나머지 인류와 마더 머신과 함께 멸망을 택하자, 자신들이 탓던 우주선에 지무사와 아푸루를 데리고 아스투리아스를 탈출하여 2천년의 시간을 거쳐서 고향 태양계로 돌아온다.
* '행복'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문명이 폭주하여 침략자로 돌변하는 것은 [[용자왕 가오가이가]]가 연상되기도.
- 오대석 . . . . 19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2~1989) [br] [[롯데 자이언츠]] (1990~1991)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2~1995)[br][[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1996)[br][[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1997~199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00~2001)[br][[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작전코치(2002)[br][[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감독 (2004~200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11)[br][[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육성군 수비코치 (2014) ||
||<:><-5><#151B54>'''[[한국프로야구/1982년|{{{#ffffff 1982년}}}]] [[KBO 리그|{{{#ffffff 한국프로야구}}}]] [[유격수|{{{#ffffff 유격수}}}]] [[KBO 골든글러브|{{{#B8860B 골든글러브}}}]] [[KBO 리그 골든글러브 역대 수상자|{{{#ffffff 수상자}}}]]''' ||
'''[[KBO|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기록자'''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등번호는 삼성에서 16번.[* 많은 사람들이 16번하면 김원형, 김종국, 박정태를 떠올리게 하지만 원조 16번이었던 오대석도 무시할 수 없다.], 롯데에서는 6번을 달았다.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태수(1957)|장태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태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태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김영덕]] 감독의 삼성 이적으로 촉발된 [[OB 베어스]]와 삼성간의 신경전이 한창이던 1984년 전기리그 때 OB와의 경기 도중, 병살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OB의 1루주자 이홍범이 과격한 [[슬라이딩]]으로 유격수 오대석의 허벅지를 걷어찼고, 이때 큰 부상을 당한 오대석은 이후 기량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1987년 [[류중일]]이 입단한 후엔 1985년부터 주전 3루수였던 [[김용국]]과 3루 자리를 번갈아 맡았다.
하지만, [[류중일]]이 1988년 팔꿈치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유격수로 돌아왔으나 1989년 시즌 종료 뒤 롯데로 트레이드 되어 이듬해인 1991년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는데 1990년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으며 1991년 3루수로 돌아왔다.
== 지도자 시절 ==
선수 은퇴 이후로는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에서 코치를 했고 2000년부터 2년간 포철공고에서, 2004년부터 4년간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2011년에 다시 포철공고 야구부의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11년 말 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 마이스터 고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운영을 할 수 없다.]으로 야구부 해체가 불가피해지며 계약이 해지되었다.[* 그러나 포철공고 야구부는 다행히 해체되지 않고,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인계되어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다. 참고로 경주고, 구미전자공고의 야구부의 잇따른 해체로 2011년 부로 대구 소재의 고교야구팀을 제외하고 [[경상북도]] 소재의 고교야구팀은 포철공고가 유일하며, [[경주고등학교 야구부]]도 2013년 12월에 재창단했다. 구미전자공고 야구부도 포철공고처럼 마이스터고 전환 때문에 해체된 것.]
|| 1989 ||<|3> [[롯데 자이언츠]] || 92 || 247 || .194 || 48 || 5 || 0 || 3 || 21 || 18 || 4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남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60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원피스/846화 . . . . 19회 일치
* 상디는 계획대로 빅맘 샬롯 링링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빅맘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로써 밀집모자 일당은 안전하게 섬을 탈출할 수 있다.
* 스무디가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하자 타마고 남작은 5년 전 밍크족이 이 방에 침입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킹 바움고 엉겁결게 반역자로 몰리는데 그가 상대하는 여성 검사, "귀부인" 아망도는 아무리 사정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쓰는 검은 명도 "시라오우". 슬로우 발라드라는 기술로 킹바움을 일도양단하려 든다. 원래 이 기술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베어서 상대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하는 기술. 킹 바움은 차라리 단숨에 끝내 달라고 애원한다.
* "서사" 샬롯 몬도르는 별명대로 책을 무기로 쓴다. 책들이 허공을 날아디는데 그걸 밟고 돌아다닌다. 남자는 루피가 삼장성 중 하나인 크래커와 하룻밤 내내 싸웠는데 선전하고 있다고 감탄한다. 실제로 결코 약하지 않다고 평가한 체스병들이 무수히 널부러져 있다. 모두 루피가 쓰러뜨린 것.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 덕에 상황은 좋지 않다.
* 루피가 생크림을 뿌리치며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기이한 공간으로 바뀐다. 물리법칙을 무시한 듯 위도 아래도 없는 이상한 공간이다. 여기는 몬도르가 사용하는 "책의 세계" 나미가 조심하라고 소리치자 루피를 둘러싸고 있던 환영은 사라진다. 하지만 오페라의 생크림에 발이 묶인 상태였고 부하들이 "크림 펀치"로 양쪽에서 공격하자 그대로 맞고 쓰러진다.
* 어쨌든 밀집모자 일당은 생포하라는 명령이 있어서 이들은 산채로 잡혀가게 된다. 루피는 마지막까지 이 자리에서 버티겠다고 버티지만 힘이 다해 끌려간다.
* 같은 시각 상디는 빅맘 샬롯 링링을 상대로 교섭을 벌인다. 그가 순순히 결혼하는 대가로 섬에 있는 밀집모자 일당을 무사히 돌려보내주는 것. 의외로 빅맘은 흔쾌히 승락한다. 자신은 "사리에 맞으면 말이 통하는 여자"라며 상디만 협조해주면 그런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상디가 고맙다고 답하며 꼭 샬롯 푸딩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하자 빅맘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하지만 "원래 밀집모자 일행이 한 짓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무단침입은 물론 크래커를 쓰러뜨리고 어인섬에서 과자를 가로챈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빅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게 없다. 하지만 이 정략결혼이 성사돼 제르마의 군사력만 손에 넣는다면 별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상디는 그저 동료들이 무사하다는 생각만으로 도망도 치지 않고 순순히 결혼하겠노라 약속한다.
* 이런 설명을 하는 동안 샬롯 가의 14녀이자 스위트 3장성 중 하나, "주스 대신" 샬롯 스무디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녀 하나를 잡아서 "쥐어짜고" 있다. 문자 그대로 걸레짜듯이 짜는데 놀랍게도 시녀는 "주스"를 흘리며 미라처럼 쪼그라든다. 현상금은 9억 3200만 베리. 스무디는 상당한 거체의 여성으로 등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다. 시녀를 짜낸 "주스"를 잔에 담으며 "포네그리프가 중요한건 알겠지만 왜 이곳 경비를 강화해야 하냐"고 묻는다. 타마고 남작이 이들을 소집한건 보물전의 경비 강화 때문인 모양이다.
* 듣고 있던 브룩은 지난번 페드로가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 로드 포네그리프는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던 말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며 하물며 정면에서 부딪히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 만약 지금 시기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페드로는 들키면 그들은 죽음 목숨이라 말한다. 브룩은 다시 타마고 남작의 목표를 알겠냐고 하는데, 페드로는 자신이라고 말한다.
- 원피스/856화 . . . . 19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는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대로 술집 여자들과 놀면서 완전히 방심한 상태.
* 첫째, 자신은 선장을 모욕했고 둘째, 발라티에가 인질로 잡혀있으며 셋째, 같은 피가 흐르는 부모형제가 죽을 위기인걸 못 본척할 수 없다는 것.
* 상디는 쓰레기같은 가족이라도 구해주고 싶다고 고백하고 루피는 그거야말로 상디다운 일이라며 그들이 식을 엉망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 미러월드의 [[쵸파]] 일행은 홀케이크 성 어디에도 [[상디]]와 [[몽키 D. 루피]]가 없자 당황한다. [[캐럿(원피스)|캐럿]]이 초상화를 들이대며 묻고 다녀도 성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이 "전에 지나갔다"는 말을 할 뿐,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이 없다. [[나미(원피스)|나미]]는 성이 아니라면 짐작가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아침에 둘이 싸운 장소", 홀케이크 성 인근의 들판이다.
쵸파는 그 장소 보다는 둘이 싸웠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린다. [[징베]]는 상디가 빈스모크 일가로서 온 이상 매우 복잡한 처리에 놓였을 것이고 간단히 돌아갈 수는 없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지만 상디를 정말 데려갈 거라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징베는 이미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두가 모인 다음에 밝힐 생각이었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냥 말한다. 사실 그는 [[페콤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음모"에 휘말려 바다에 떨어져 상어밥이 될 처지였던 걸 징베가 구해준 것. 페콤즈는 빅맘의 다과회가 실제로는 상디를 포함한 빈스모크 일가의 학살극이라는 걸 전한다.
* 빈스모크 일가의 남자들은 빅맘이 제공한 술집 여자들과 함께 술판을 벌이고 있다. 여자들은 벌써 술에 취해 쓰러졌고 [[빈스모크 욘디]]가 그걸 빈정거린다. 욘디는 이런 여자들 보다는 "상디의 동료 여자", 나미를 내놓으라며 웃는다. [[빈스모크 이치디]]와 [[빈스모크 니디]]도 맞장구를 치며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며 내일 나미를 넘겨달라고 교섭해 보겠다고 시시덕거린다.
[[빈스모크 저지]]는 진짜 연회는 내일이라며 자리를 접는다. 그는 빅맘과 손을 잡고 노스 블루의 지배자가 될 기대로 부풀어 있다. 그런걸 생각하면 그 "등신"도 도움이 됐다며 웃는다. 세 아들은 모두 그 말에 동조한다.
* 들판에서 굶어죽어가던 루피를 발견한 상디. 상디는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지만 루피는 그가 들고 온 도시락의 냄새를 맡고 깨어난다. 상디는 자기를 기다리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도 먹을 수 있으면 먹으라고 도시락을 건낸다.
* 하지만 그가 가져온 도시락은 비에 젖고, 도중에 떨어뜨리는 통에 엉망이다. 상디는 도저히 먹을게 못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루피는 거리낌없이 도시락을 먹고 맛있다고 칭찬한다. 루피는 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도시락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모두 밀집모자 일당이 좋아하는 것만 있다고 기뻐한다. 상디는 맛있게 먹는 루피에게 등을 돌리고 있지만 그가 기뻐하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다. 맛있다고 연호하는 루피의 칭찬을 들으며, 상디는 씁쓸한 얼굴로 "거짓말 하는군"이라 중얼거린다.
>둘, 큰 은헤가 잇는 망할 할아범 및 내가 자란 고향...
>식이 시작되면 이제 나 혼자선 아무 것도 막을 수 없는데!
상디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그렇게 토로한다. 하지만 묵묵히 그 말을 들은 루피는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가 있어! 식을 때려부수자!!
- 원피스/877화 . . . . 19회 일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캐럿(원피스)|캐럿]]에게 루피 일행이야 말로 "코즈키 가"가 기다린 "세계를 신세계의 여명 이끌 자들"이라 가르쳐준다.
* [[브룩]]과 [[쵸파]]의 선전도 거기까지였다. 적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소용없었다. [[샬롯 브륄레]]가 미러월드에서 보내오는 병력은 끝이 없었다. 거울에 있는 나미의 방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모두 브룩과 쵸파를 노리고 오는 적들이었다. 먼저 제압된 건 쵸파였다. 브룩도 얼마 시간을 두지 않고 잡혔다. 적의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샬롯 페로스페로]]의 사탕 공격이 결정적이었다. 쵸파는 벌써 몸의 대부분이 사탕으로 코팅 당했다. 사탕 코팅에 당한 이상 변신도 무리였다. 브룩은 아직 팔다리 뿐이지만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페로스페로는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비웃었다. 정말 자기들로부터 배를 탈환할 줄 알았냐면서. 그는 겁에 질린 쵸파를 잔인하게 조롱했다. 이미 한 번 기회를 줬지만 그들이 차버렸으니, 전부 "캔디 인간"으로 만들어서 핥아먹어주겠다고 말했다. 사탕 코팅은 이제 쵸파의 얼굴까지 도달했다. 쵸파가 사탕에 익사당할 것 같았다. 완전한 "캔디 인간"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단 3분. 마침내 쵸파의 머리 끝까지 사탕에 쌓이며 머리 위엔 남은 시간을 나타내는 사탕 타이머까지 생겼다.
* [[샬롯 카타쿠리]]가 유혹의 숲에서 묘한 움직임을 주목한 건 그때였다. 숲이 심상치 않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곧 호미즈들이 뿌리째 뽑혀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타쿠리가 그 움직임을 형에게 알렸다. 빅맘 [[샬롯 링링]]이 틀림없다. 페로스페로는 그렇게 여겼다. 이제 마마가 왔으니 장난질도 끝마칠 때다. 빅맘을 [[샬롯 푸딩]]이 웨딩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카카오 섬으로 유인해야 하니까. 행여라도 빅맘이 이 배에 웨딩 케이크가 없다는걸 알아차리면 그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숲을 유심히 관찰하던 카타쿠리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곧 페로스페로도 그걸 깨달았다. 숲을 무너뜨리듯이 가르고 나타난 것은 빅맘만이 아니었다. 빅맘에게 죽었다고 생각했던 밀집모자 일당, [[몽키 D. 루피]]와 그 일당들이었다. 여전히 빅맘의 추격을 피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카타쿠리는 방금 전 번개에 당한건 빅맘 해적단의 추격대였음을 직감한다. 페로스페로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루피 일행이 나타나자 낭패했다. 루피의 위치기에선 육안으로 써니호의 선상이 보였는데 브룩과 쵸파가 사탕에 코팅돼 굳어 버린 걸 보고 깜짝 놀란다.
카타쿠리는 루피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은 부하들. 그는 부하들에게 미러 월드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가 봤던 "예지". 몇 초 뒤 부하 전원이 루피의 발 밑을 굴러다니고 있는 것. 그 말을 듣자 부하들이 앞다퉈 거울 속으로 몸을 던졌다.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선상을 점거한 페로스페로와 카타쿠리를 보고 "귀찮은 녀석들이 앞질렀다"고 불평했다. 이제 선상에 남은 빅맘 해적단은 카타쿠리와 페로스페로 단 둘. 페로스페로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일행에게 잘도 도망쳤다고, "감동 받은" 데 대한 선물을 날렸다. "캔디 메이든". 캔디로 된 아이언 메이든. [[캐롯(원피스)|캐롯]]은 그게 사탕 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벽일리 없었다. 캔디 메이든의 날카로운 이빨이 일행을 덮쳤다. [[징베]] 조차 여기선 우회하자고 했지만 루피는 강행돌파를 고집했다. 루피의 전력을 다한 "고무고무 레드호크"가 불길을 일으키며 캔디 메이든을 꿰뚫었다. 관통력에 불까지 붙은 레드호크는 페로스페로에겐 천적 같은 기술이었다. 당황하는 페로스페로.
* 루피가 그대로 밀고나가자 카타쿠리가 막아섰다. 써니호를 코앞에 두고 레드호크와 카타쿠리의 모치모치 열매 능력의 격돌. 호각세였다. 떡같은 신체를 늘여서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캐럿이 "루피와 같다"고 생각한다.
* 앞에는 카타쿠리, 뒤에는 빅맘. 협공을 당할 판이었다. 징베는 루피에게 카타쿠리를 쫓아내라고 했다. 그 사이 자신들은 어떻게든 출항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승부를 내고 싶었던 상대였다. 루피는 맡겨달라고 외치며 카타쿠리에게 달려들었다. 카타쿠리는 어쩐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선공은 루피의 차지였다. "고무고무 호크 개틀링". 머신건 같은 속도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 징베가 나미를 옆구리에 끼고 선상으로 뛰어 올랐다. 페드로와 캐럿은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페드로는 캐럿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루피 일행이야 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자들이라 말했다. 밍크족과 "코즈키 가"가 수 백 년간 기다려온 "세계를 여명으로 이끌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페드로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캐럿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카타쿠리가 루피를 상대하는 동안, 페로스페로는 구태여 배에 오르는 일행을 요격하지 않았다. 대신 전보벌레를 들었다. 반대편에선 [[샬롯 몬도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군함으로 해안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루피 일행이 아직도 살아남았다는걸 안 몬도르는 지체없이 지시를 이행했다. 곧 그의 명령만 기다리던 빅맘의 해상병력들이 움직일 것이다. 밀집모자 일당은 이 배와 함께 해안에서 수장될 것이고.
선상에는 수월하게 오른 일행은 막상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나미가 "쿠 드 버스트"로 단숨에 해안을 빠져나가자고 제안했지만 징베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하긴 이 배가 처음이었으니까. 나미는 1km는 날아갈 수 있는 기능이라 설명하며 평범하게 출항해선 금방 빅맘에게 잡힐 테니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빅맘은 벌써 배의 코 앞까지 당도했다. 페드로는 캐럿에게 출항 준비를 돕게하고 자신은 뭔가 다른 일을 하려고 등을 돌렸다.
* 페드로였다. 페로스페로의 움직임을 예측한 그가 해안가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등을 노리는 페드로. 그러나 역시 페로스페로는 만만치 않았다. 그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며 넘어뜨렸다. 페로스페로는 페드로를 짓밟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신은 현상금 7억짜리 남자라고. 그런 자신이 너따위에게 당하겠냐고. 페드로가 그때 코트 자락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안에 폭탄이 없었다면 말이다.
* 캐럿은 갑판 위에서 페로스페로와 그의 발 아래 놓인 페드로를 보았다. 담뱃불이 폭탄으로 옮겨가는 걸 보았고 페드로가 자신을 배로 보내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원한해결사무소/1화 . . . . 19회 일치
의뢰인 '후쿠자와'의 아내가 누군가에게 피살. 1개월 정도 된 신혼생활, 뱃속의 아이도 함께 살해당하여 후쿠자와는 원한을 품게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콜중독에 빠진다.
그러나 경찰은 2개월 뒤에도 공무원의 '비밀보장의무'를 운운하며 수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으며 오히려 범인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후쿠자와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분노한 후쿠자와는 밤길에서 한 여성('원한해결사')과 부딪치고 지나가는데, 그녀는 후쿠자와의 윗주머니에 검은 쪽지를 끼워넣는다.
후쿠자와는 노래방에서 원한해결사와 만나 800만엔으로 살인범을 살해해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2주 뒤, 원한해결사는 경찰의 내부 자료에서 얻었다면서 후쿠자와의 담당형사가 '범인'이었다고 그에게 가르쳐준다.
이 때, 형사의 부인은 부상을 안대를 두르고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데, 원한해결사는 형사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라고 알려준다. 원한해결사는 형사는 그 외에도 두 명을 더 죽인 것 같지만, 경찰에서는 경찰과 관련된 불상사가 많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퇴직 시키고 1년 뒤에 잡으려 하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후쿠자와는 분노하여 당장 죽이라고 원한을 드러내지만, 원한해결사는 증거를 남겨서는 안된다고 화를 내고 제지, 도리어 섣부른 행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후쿠자와를 위협한다.
결국 분노를 품은 후쿠자와는 직접 [[부엌칼]]을 들고 나타나 역에서 형사를 찔러죽인다. 원한해결사는 그 광경을 입술을 깨물고 지켜본다.
경찰에 잡힌 후쿠자와는 웃으면서 형사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경찰은 이미 당신 아내의 옛 애인을 용의자로 확보했으며 DNA 감정이 끝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예정이었다고 알려준다. 충격을 받는 후쿠자와.
사실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한 것은 형사의 아내였다. 형사는 경찰관이면서도 집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최악의 남자로서, 도박을 좋아하고 생활비를 안 주고 애들 교육비에도 손을 대는 등. 죽어 마땅한 남자였기 때문에 5천만엔을 주고 원한해결사에게 살해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리고 1억엔의 보상보험을 들어놨기 때문에 이미 보상은 받았다.
모든 것은 원한해결사가 후쿠자와를 '킬러'로 쓰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컷은 감옥에 갇히는 후쿠자와의 모습으로 끝난다.
- 은혼/625화 . . . . 19회 일치
* 그 패배를 안긴 자는 "우리들이 꺾어온 생명이 어떤 꽃을 피울지 궁금해졌다"는 말을 남기고 일족을 떠난다.
* [[오우가이]]의 기억. 과거에도 [[다키니]]의 리더로 이름을 떨치던 그도 굴욕적인 패배를 겪는다. 그 패배로 자랑하던 세 뿔 중 왼쪽 뿔이 부러지고 만다. 형편없이 완패를 당한 오우가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 패배를 안긴 상대에게 묻는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냐고. 그를 패배시킨 사나이도 역시 다키니 족. 그 중에서도 누구보다 용맹하고 흉폭해 다키니의 신 이고르가 내린 "최고 걸작" 혹은 "신의 뿔"이란 별명을 가진 전사였다. 주위에는 오우가이 말고도 많은 다키니 전사들이 쓰러져 있다. 모두 신의 뿔이 한 짓이다.
* 가부키쵸의 골목에서 눈을 뜬 오우가이는 새삼 그때의 공포와 절망감, 굴욕감이 되살아난다. 뿔이 부러진 것도, 이런 씁쓸한 감상에 잠기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뿔이 또 부러진 것인가? 그리고 왜 그들 부족은 그때와 같이...
대로로 돌아오자 참담한 풍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장을 고향으로 삼고 있던 다키니의 용병부대가 얕보던 한낱 지구인들에게 쫓겨 대열도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야규 빈보쿠사이]]와 [[토죠 아유무]]가 선봉에 서고 있다.
* 또다른 3대 용병부족의 일각 [[신라(은혼)|신라]] 부대 또한 급히 퇴각하고 있다. 건물 위로 뛰어다니던 부대가 호각을 불자 산발적인 퇴각이 시작된다. 지휘관 [[소타츠]]는 [[사카타 긴토키]]의 일격으로 패배, 의식을 잃었다. 집단전술을 자랑하는 신라도 지휘관이 부재하면 오합지졸일 뿐이다. 백화와 [[코제니가타 헤이지]] 등과 싸우던 신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을 개시한다.
* 다키니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전쟁만을 위해 살아가던 그들이 "전설도 아무 것도 없는 생물"들에게 당할 수 있는지 이치를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신의 뿔이 남기고 간 말, "우리들이 꺾어버린 생명 또한 무언가를 위해서 꽃 핀 생명"이란 말이 떠오른다. 싸우기 위해 태어나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이 공포를 자아내고 승리를 취하는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그들은, 어째서 자신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가?
* 그때 입구를 휘저어 놓으며 나타나는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이들이 마을에 진입했던 전위 부대를 뒤흔들며 쫓아내는 모습에 사이고와 대치하던 해방군 본대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들은 각기 3대 용병 부족으로 유명한 다키니와 신라 부대. 이들이 정신없이 후퇴하는 모습은 해방군에 파문을 일으킨다. 긴토키의 말처럼 "공포는 전염"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서문에서 빈보쿠사이가, 남문에서 지로쵸가 날뛰며 적들을 밀어내기 시작하자 동요는 더욱 커진다.
작전에 참여 중인 지로쵸 조차도 이건 말도 안 되는 도박이라고 중얼거린다. 물론 후퇴하는 전위를 보고 지레겁을 먹어준다면 술술 풀릴 일이다. 하지만 코끼리가 놀라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면, 개미는 그대로 밝혀죽을 뿐이다. 지금은 기적적으로 작전이 먹혀들고 있지만, 야쿠자인 자신 조차도 이런 정신나간 도박은 하지 않는다며 웃는다.
빈보쿠사이도 비슷한 의견이다. 자신 같은 역전의 늙은이도 불알이 쪼그라 들 것 같은 도박. 원래 세계를 구하는 바보같은 일은 삐끗하면 진자 세계를 파멸시킬 진짜 멍청이들한테는 버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만은 그 멍청이들, 긴토키 일행에게 걸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남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 긴토키는 선봉에서 적진을 누비며 더 기세 좋게, 더 난폭하게 날뛰라고 동료들을 부추긴다. 어차피 지면 멸망 밖에 당하지 않으니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질러버리라며 마구잡이로 적들을 도륙한다. 그러자 도박이 먹혀들어간다. 3대 용병부족 조차 적이 되지 못했다면 자기들이 어떻게 상대하겠냐며, 해방군 병사들이 등을 보인 채 도망친다. 그렇게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자 전체의 붕괴는 빠르게 시작되었다. 신파치는 이대로 전부 무너져 버리기를 비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녀석이 태연하게 그의 앞을 지나쳐 간다. 오우가이는 듣지 못했냐는 말과 함께 가차없이 철괴를 머리위로 떨어뜨린다. 도망치는 놈은 자신이 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 은혼/637화 . . . . 19회 일치
* 카무이는 자기는 모든 히로인을 공평하게 쳐죽여 주겠다고 선언, "나한테 죽기 전에 다른 놈에게 죽지 마라"며 일행과 공동전선을 펼친다.
* 특수한 기공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사. 그에겐 "진짜 야토의 피"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와 [[쿄우카]]의 자식 [[가구라]]와 [[카무이(은혼)|카무이]]가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쓰러진 채로 자신의 혈통을 가지고도 저 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남매의 눈에는 자신 따위는 들지도 못했으며 눈 앞의 적이 아닌, 더 먼 곳의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전사로서의 수명도 남자로서의 수명도 끝장이 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꽂꽂해던 그의 금수슬이 수그러들면서 영영 ED의 길로 접어들어 버린다. 부하들은 그의 금구슬을 보고 전장의 전설이 단지 애송이들의 손에 끝장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구라만이 이 중에선 유일하게 확인 방식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 카무이는 이제서야 할배가 할배답게 쭈그러들었을 뿐이니 저 "고목"을 가지고 빨리 퇴각하라고 조롱한다. 역시 가구라만이 이 발언에 불편해 한다. 어쨌든 카무이는 지금 싸우는 야토족 용병부대를 자신의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나간 전설에 매달라는 것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신들은 전설을 만들려는 쪽. 이대로 계속 저항한다면 그 다름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줄 뿐이다.
이런 비교적 온유한 경고가 나오자 [[아부토]]를 비롯한 7사단은 "독감이라도 걸렸냐"고 놀린다. 하지만 카무이는 딱히 바뀐 건 없고 그저 송사리들에겐 볼 일이 없으니 얼른 보스랑 싸우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가 가구라가 "송사리 좀 늘어도 상관없다"며 적의를 드러낸다. 카무이 또한 "네가 보스인 줄 아나 본데 정리해버리고 싶은 송사리일 뿐"이라며 남매싸움 2라운드를 속행하려 든다.
* 그런데 플래그를 한두 군데 뿌린게 아니다 보니 이것도 경쟁률이 높다. [[진선조]]도 도착. [[오키타 소고]] 또한 플래그를 꽂았다. 자기도 한 마디 들은 기억이 있어 이것만은 긴토키에게 양보할 수 없다고 나서는데. 인기가 폭발하는 카무이. 긴토키가 플래그를 너무 뿌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며 이래서야 보스 한 명하고 해피앤드를 맞을 수 없다 디스한다. 오키타도 거들면서 "너같은 마나카 한테 어울리는건 동서남북 히로인들한테 꼬치가 되는 아수라장 앤딩 뿐"이라며 킨타마100% 드립을 친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설마 지 목소리도 마나카인 주제에 마나카 꼬치 드립을 칠 줄은 몰랐다고 코멘트.[* 오키타와 딸기100%의 주인공 마나타는 모두 성우가 스즈무라 켄이치]
그러면서 자기는 스즈무라 켄이치처럼 씨만 뿌리고 책임지지 않는 경박한 일은 하지 않겠다 선언한다.
지구는 자기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 어디가서 기도나 올리고 있으라 권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기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옮으면 귀찮으니까. 저 대장처럼.
* 이렇게 되자 야토족 용병부대다 더는 버틸 수 없다. 본래 7사단에게도 밀리고 있었으니 증원까지 왔다. 중간관리자로 보이는 야토가 당장 퇴각하라고 외치고 있는데, 하늘에서 석장이 내려온다. 그 석장이 그를 꼬치로 만든다.
* 일행이 갑자기 나타난 나락에 당황할 틈도 없이 그 배후의 인물 또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렇게 꼭꼭 숨어있던 [[우츠로(은혼)|우츠로]]가 말이다. 그는 카무이가, 아부토가 말한대로 이제 해방군은 해결사 일행을 끝장낼 여력이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니, 이 지구를 구하고자 모인 힘이
* 히노카쿠츠치의 존재가 촉발한 해방군 지상부대의 발악은 에도 전지역으로 확산됐다. 승전의 기쁨이 하루도 채가기 전에 가부키쵸 연합군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곤도 이사오]]가 이들을 통솔하고 있다. 우츠로는 이렇게 폭주하는 지상군은 그저 오합지졸의 세때일 뿐이라고 평한다. 그 말대로 가부키쵸 연합군은 낮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대선전, 지상군을 압도한다. 그저 두려워서 날뛰는 자들이 적을 끝장낼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노린 바였다고 우츠로가 말한다.
우츠로가 감사를 표한 해방군의 아둔함, 아무 것도 끝장내지 못하는 무능함이야 말로 우츠로에겐 필요했다. 그것이 마지막 방아쇠이며 이로써 주사위가 던져졌다. 그러니 이젠 필요가 없다. 우츠로는 더이상 그걸 보고 있기 힘들어서 나타났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끝끝내 두려워하는 태도, 삶에 연연하는 집착. 그것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이 추악하다. 이 되다만 불사인들 처럼. 우츠로의 미학에 따르면 끝이란 아름답고 정밀해야 한다.
- 은혼/641화 . . . . 19회 일치
* 전투 중 저격에 당한 반사이는 자신도 헨페이타가 하듯 신스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 결심하고 신스케를 선행시키고 자신은 척후를 맡는다.
* 해방대 함대의 총공세는 수위를 높여가고 귀병대 함대는 점차 밀려난다. 아군함이 급격히 줄어들자 귀병대 대원들은 사력을 다해 전선을 지키며 [[다케치 헨페이타]]가 어떻게든 작전을 성공시킬 거라고 믿는다.
* 그렇게 해서 벌 수 있는 시간은 15분. 헨페이타는 본래 이 시간을 혼자 벌어볼 생각이었으나 젊은 대원들이 그를 따라나섰다. 소형정에 오른 헨페이타는 대원들을 향해 이렇게 연설했다.
* 히노카구츠치의 제어 중추로 향하던 신스케 일행은 발걸음이 늦춰졌다. 교신 중이던 헨페이타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통신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그를 불러봐도 대답은 없다. 좋지 않은 예감. 그때 그들의 앞을 기관총 사격이 막는다. 황급히 샛길로 피하는 일행. 제어 중추가 코 앞이었다. 생존자를 쥐어짠 호위병력이 복도를 빼곡히 매우고 있었다. [[키지마 마타코]]는 이쪽도 더는 한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다. 방어가 두터울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저 병력들을 다 처리하려면 15분이 아니라 15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단 제어 장치까지 도달하면 희망이 있다. 그 내부에서는 적의 공격도 기세를 죽을 것이다. 축적된 에너지를 유폭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금껏 신스케의 부축을 받았던 [[카와카미 반사이]]가 여기서부터는 자기 발로 걷겠다고 일어선다.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그들의 승리조건이다. 그가 신스케에게 할 말은 이것 뿐이다.
* 폭연이 길을 매우고 해방군은 거기다 소총을 연사하며 돌진한다. 소수의 적을 고립, 격멸시키고자 펼친 전술이었겠지만 적의 여력을 오판했다. 연기 속에서 걸어나온 한 남자가 묘한 기술을 쓴다. 샤미센, 어느 틈에 적진 가운데로 침투한 반사이의 샤미센 현이 그들을 휘감았다. 이제 그가 다루는 악기일 뿐이다.
꼭두각시가 된 병사들이 자군을 향해 총질을 해댄다. 적의 전열이 혼란에 빠진다. 그 빈틈은 신스케가 돌파하기에 충분히 컸다. 신스케가 낮은 자세로 파고 들고 마타코는 허공으로 솟구쳐 적을 쏜다.
* 거침없이 나아가는 신스케와 마타코. 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들의 뒤를 받치고 있는 반사이. 부상의 영향은 느낄 수 없었다. 반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건 한 가지 확신이다. 넘어설 수 있다, 빠져나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적들이 있더라도 그대, 신스케와 함께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반사이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환상을 품게되는 자신에 놀라워했다.
* 신스케는 영웅이다. 영웅이란 죄많은 생물이다. 함께하던 동료의 시체와 쓰러뜨린 적의 시체를 쌓아올려 밟고 가는 잔인한 생물이다. 그럼에도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자들. 그렇기에 그 등에 이끌린 사람들이 영웅을 쫓아 앞으로 나아간다.
반사이의 모습이 무너진 잔해 뒤로 사라졌다. 이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반사이가 무전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수비가 엄중하다면 차라리 적을 이쪽으로 집중시킬 테니 신스케와 마타코가 선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신스케가 납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사이는 자신도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비록 복부의 총상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지만.
* 방금 전 바주카로 반사이를 공격했던 해방군 병력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체를 확인하러 접근하는 순간 그가 반격을 시작하자 시체가 움직인다고 밖엔 생각하지 못했다. 반사이는 그들의 목을 따져 "아직은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의 검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현의 움직임은 정교했다. 그는 해방군으로부터 뺏은 소총을 현으로 조종해 스스로 엄호사격을 펼친다. 적들을 마치 볏단처럼 썰어넘겼다. 사지에 오고 나서야, 죽음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는 옛날의 각오가 잘못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신 뿐 아니라 저 우주의 헨페이타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불사신처럼 보였던 반사이. 그러나 해방군의 사격은 한 발 한 발 그의 사지를 관통했다. 에너지 중추로 접근하는 헨페이타의 우주선도 비슷한 신세였다. 반사이가 짐작했듯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 신스케를 위해 죽기로 했던 그 결심이, 이제와서 후회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생을 부여잡고자 하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이 전쟁의 끝이 보고 싶다. 이 전쟁이 끝나서 영웅이 아니게 된 한 명의 친구, 신스케의 옆에서 살고 싶다 바라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9회 일치
|로마자 표기 = LEE Mina
|청소년 클럽 =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br /> [[영진전문대학]]
|국가대표팀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U-17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br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br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이민아'''(李玟娥, [[1991년]] [[11월 8일]] ~ )는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현재 [[아이낙 고베 레오네사|아이낙 고베]]에서 활약하고 있다.
*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졸업
* [[2008년 FIFA U-17 여자 월드컵]] 국가대표
*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컵]] 국가대표
* [[2013년 EAFF 여자 동아시안컵]] 국가대표
* [[2015년 EAFF 여자 동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FIFA U-17 여자 월드컵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컵 대한민국 선수 명단}}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여자 선수상}}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분류: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의 축구 선수]][[분류:WK리그의 축구 선수]]
[[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동문]][[분류:영진전문대학 동문]][[분류:대구상인초등학교 동문]][[분류:상원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이영희 (1936년) . . . . 19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한 그녀는 [[199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ref>[http://news.joins.com/article/18725617 반평생 바친 한복, 한류 명품으로 키울 자신 있어요] 《중앙일보》 2015-09-23</ref> [[2001년]] [[6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평양]]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108528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인생 이야기] 《연합뉴스》 2014-09-06</ref> 또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는 APEC 정상회의의 이벤트였던 전통의상 부문에서 참가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한 바 있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12674691 APEC 정상들의 두루마기 패션쇼] 《한국경제》 2016-01-26</ref>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이다.<ref>[http://news.ichannela.com/enter/3/06/20151004/73990365/1 ‘전지현 시할머니’ 이영희, 누구 한복 만들었나] 《채널A》 2015-10-04</ref>
*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 올해의 초대 디자이너(한국패션협회, 1996)
* 아시아 최고 디자이너(일본니기다문화제, 1996)
* 대한민국 디자인대상(대통령, 1999)
* 자랑스런 한국인대상(언론인협회, 2008)
* 딸 : [[이정우 (의상 디자이너)|이정우]]
* 외장손자: [[최준호 (1980년)|최준호]]
* 외차손자: [[최준혁]]
* [[이리자]]
* [http://people.mygo.co.kr/people.php?cmd=view&pp_no=37308 마이고 인물정보 - 이영희 前 동덕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신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임채무 . . . . 19회 일치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 기수는 228기였다.] 70년대 중반 데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TV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60년대 후반까지는 미남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때쯤 한진희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 임채무까지 등장하며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 [[한진희]]의 미남역할 주인공 독점을 사실상 임채무가 막은 셈일 정도였고,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남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남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남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는 드라마쪽은 노-한-임 트로이카 남주시대라 봐도 될 정도.[*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남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그래야 놀이공원 빚을 갚지요~~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에 (손불중앙길)는 손불중앙교회를 운영 중이나 빚이 수백억 원이다.~~[[채무|이름]]이 씨가 되다~~ 두리랜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대인배]].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고 하는데 수년간 계속 적자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으며, 연기 스케줄이 없을때면 항상 두리랜드에서 놀이기구 방송을 하거나,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는 일을 지속한다고 한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4&aid=0000092844|관련기사]] ] 놀이기구 임대업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1심은 원고패소, 2심은 원고의 항소 기각으로 끝났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180824090104518|관련기사]]]
해병대 228기로 군 복무를 했으며, 진짜사나이 해병대편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황금어장]] 출연 당시, 본인의 해병대 생활에 대해 스스로 방송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똥군기가 심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선임한테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하루는 가장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이 휴가를 가게 되자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밤 해병대 전통대로 본인이 선임 군복을 빨고 각잡는 다림질을 할때, 일부러 군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아지도록 미리 준비한 돌로 몰래 그 부분을 열심히 갈았다고 한다. 다음날, 선임이 부대에서 나가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고향가는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빡''' 소리와 함께 엉덩이 부분이 완전히 터졌고 결국 민간인들 많은 곳에서 --헉 빤쓰 다 보임--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ㅇㅋ 복수 성공!! [[PROFIT]]--, 분노에 가득차 씩씩대며 바지를 갈아입기 위해 부대로 돌아온 선임한테 평소보다 더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어?-- 맞는 중에도 임채무 본인은 복수에 성공한 게 좋았다고..
* [[위험한 여자]] - 강주혁 역
- 장남교 . . . . 19회 일치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장남이니까 ~해야 한다.", "장남의 아내니까 ~해야 한다."고 부모나 친척, 주변에서 자식 측에게 강요하는 것을 '장남교'라고 부른다.
또한 장남이 아닌 자식들(남동생들, 딸들)을 무시하거나 차별 대우하는 풍조도 장남교로 본다.
즉, 이 시기의 법률에서는 호주의 동의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을 인정받지 못해서 사랑의 도피를 하거나 동반 자살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또한 호주는 거소에 대한 지정을 따르지 않은 가족에 대해서 제적할 수 있었다. 설사 그 거소가 자시키로우라고 해도(…). 당시부터 사회적으로 호주의 권리를 남용하는 가장이 적지 않아, 호주의 권리가 남용되므로 제한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법정추정가독상속인의 조건은 일단 호주의 가족으로 직계비속이다. 먼 사람 보다 가까운 사람, 여자보다 남자, 사생아보다 적자, 연소자보다 연장자를 우선하는 규정이 있어 결국 장남이 가장 우선시 된다. 또 여성 적출자보다 인지된 남성 비적출자가 우선된다.
이 시기 가독이 상속되면 장남(상속자)은 새로운 호주가 되고,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이 재편되며, 가문의 전 재산과 조상을 모실 권리를 얻도록 되어 있었다.
또 호주의 사망 만이 아니라, 남성의 경우 60세, 여성의 경우 자신이 바라는 언제든지 호주가 '은거'를 결정하고 상속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사망, 은거 이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호주가 국적을 상실하는 상황에도 가독승계가 발생한다.
설사 정처가 아무리 남편과 오랫동안 함께 부부생활을 하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다고 해도 낳은 자식들이 전부 딸이라면, 남편이 첩이나 애인이 사귀다가 사생아라고 해도 아들을 낳아버리면, 사생아는 '비적출자 장남'으로서 가독상속을 받을 최우선 권리를 얻게 된다.
정처 입장에서는 가독상속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지고 호주 사망시에 가독을 확실하게 상속해줄 '적출자 장남'이 없으면 한 순간에 거의 인생 게임오버(…)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사망시에 비적출자이 나타나면 한 순간에 모든 가산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호주의 각종 처분권까지 비적출자에게 가게 되므로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진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19회 일치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등학교]] 청룡기 2연패, [[황금사자기]] 3연패의 주역이자 부산야구가 배출한 원조 슈퍼스타. 고교야구 통산 전적 32승 1패.
1929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장인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1944년에 경남중학교에 입학해 [[유도(스포츠)|유도]]부에 입부해 유도를 배우던 그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경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생기자 야구부에 입부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남중 야구부후원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이었고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야구 하나만 보고 성장할수 있었다.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그의 활약으로 경남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상대는 [[김양중(야구)|김양중]]이 이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서중]]. 광주서중은 전라도 지역의 최고의 팀으로 불리긴했지만[* 이때 [[군산상고 야구부]]는 창단되기 전이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만들어 진것은 1968년이다.] 전국대회 수준에서는 미치지 못한 수준의 야구팀이었고 에이스 김양중의 분투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중학]]과 대전사범중을 상대로 힘든 승부끝에 결승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남중학교의 우승을 점쳤고 경남중학교 측에서도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이미 이긴것이나 다름 없다며 전날 미리 축하연을 펼쳤다. 반면 광주서중은 이기든 지든 김양중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결의했다.
8회말까지 장태영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남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상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그리고 대망의 11회말. 장태영이 대회 첫 볼넷을 내주며 광주서중의 선두타자 김용욱을 출루시킨후 문택영이 초구 번트를 댔는데 이것이 전진수비를 하던 경남중 유격수 키를 넘기는 행운의 안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1루주자였던 김용욱은 3루까지 내달렸고 경남중의 좌익수였던 이상제가 이를 잡기위해 3루 송구를 했는데 이것이 '''3루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악송구'''가 되어 버린것이다.~~[[망했어요]]~~
1960년 소령으로 예편해 군복을 벗은 그는 [[김성근]]과 함께 교통부 창단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1964년 상업은행 야구단이 창단되자 초대 감독으로 부임 했고 이후 [[대한야구협회]] 이사직을 맡는등 야구계에 몸을 담다가 1998년 자서전을 퍼낸후 이듬해인 1999년 8월, 파란만장한 인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분류:1929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9회 일치
* 출세길 막힌 명예퇴직 대상자가 간다는 전설적인 부서다.
* "더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의 운용주임인 타니자키 이치로 대위였다.
* 타니자키의 설명에 의하면 모호츠쿠 관측소는 "자연상태에서 무기물에서 발생하는 ESP나 유사전파를 연구하기 위한 기관"으로 외딴 곳에 있는 이유는 에스퍼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 어쨌든 오는 사람이 드물고 거의 한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데, 타니자키는 "너희도 여기에 온 걸 보면 어지간히 멍청한 짓을 했겠다"며 웃는다.
* 타니자키가 이곳에 온 것은 반년 전 일 때문인데, 평상시와 같이 나오미에게 "결혼하자"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 타니자키는 드디어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 나오미는 "그래도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라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신선한 위치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인사이동을 권유하는데
* 넙죽 승인하고 보니 바로 타니자키 자신의 인사이동 신청이었던 것이다.
*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는 갑자기 모든 통신회선이 두절되는 고장이 일어난다.
* 일련의 부자연스러운 상황들을 놓고 봤을 때 흑막은 츠보미 관리관이며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좌천시키는 거 자체가 목표임은 명백했다.
* 미나모토는 관리관을 구속해 검사를 강행하자고 정하고 연락이 두절된 관측소의 상황을 역이용하자고 한다.
* 그동안 타니자키가 안 나온 이유가 밝혀졌다.--안 나오긴 나오미도 안 나왔지만--
* 타니자키는 은근슬쩍 가련가이즈에 합류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19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0th sense. '''반역자들 (3)'''
* [[아카시 카오루]]가 밝힌 "협력자"의 정체는 바로 [[츠보미 후지코]]의 "유언". 과거 후지코의 백업된 인격이었다.
* 긴 시간만에 재회한 [[미나모토 코이치]]와 더 칠드런 일행. 모두가 반갑게 인사하며 흐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와중 한 사람만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카키 슈지]]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처절하게 밟히고 있다.
시호는 유일한 임무를 완수하긴 커녕 블랙팬텀에게 놀아났다며 문자 그대로 사카키를 짓밟는다. 자격지심이 발동한 사카키는 저항의지를 잃고 오히려 밟혀 마땅하며 밟아달라고 애원하기에 이른다.
미나모토는 흡사 [[우메가에 나오미]]가 [[타니자키 이치로]]를 취급하는 모습 같다고 두려움에 떤다. 나오미는 자기가 저정도냐고 살짝 충격 받는다.
이렇게 해서 유리가 위장최면을 거는데 대단히 난감한 모습으로 바뀐다. 유리 자신은 OL틱해서 그나마 낫지만 다른 둘은 완전히 아키하바라 피플 분위기. 계획은 전철로 이동하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날아가는 건데, 사카키는 이꼴로 전철에 탈 수 있겠냐고 질색한다. 그러나 시호의 눈총 한 방에 꼬리를 말고 순순히 출발한다.
시호는 누가 사카키의 꼬라지 같은걸 신경쓰냐고 투덜거리는데 [[노가미 아오이]]가 "니가 제일 걱정하지 않았냐"고 딴죽걸자 정색하며 멱살을 잡는다.
* 미나모토는 이 모든 계획을 진행한 "협력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아카시 카오루]]는 신호를 보내자 시호가 능력으로 누군가의 사념체를 이글어낸다. 그 사념체는 미나모토를 보자마자 인사를 하는데.
그 정체는 바로 단행본 35권에서 등장한 적 있는 "츠보미 후지코의 유언". 후지코가 잠들기 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겨놨던 사념체였다. 이제는 "과거의 후지코"라고 지칭해야 하겠다. 과거의 후지코는 현재의 후지코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사과하고 자신은 시호의 능력에 기반해서만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점을 시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시호는 과거의 후지코가 없었다면 자기들만으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과거의 후지코는 이제 잘 풀리면 사카키의 진료기록을 토대로 백신을 만드는게 가능해질 거라고 말한다. 미나모토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냐고 하는데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모여있는 이 집은 한때 자신이 세들어 살았던 집이라며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전쟁이 끝난 직후 후지코는 이 집에 숨어 살았다. 예전 은사님이 내준 집이었는데 전쟁의 영향으로 능력이 봉인되고 황국 경찰과 코메리카 군부에게 쫓기던 후지코는 여기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과거의 후지코가 구현된 것도 이곳이 자신의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 다른 곳에서는 이정도로 구현화할 수 없다.
* 그때 누군가의 염동력으로 황국경찰들이 쓰러진다. [[효부 쿄스케]]였다. 후지코는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살아있었다고 기뻐하지만 곧 자신이 알던 쿄스케가 아니라는걸 깨닫는다.
* 이 날을 기점으로 후지코는 변했다. 그는 효부가 느낀 고통을 이해하긴 했지만 그와 미래를 구하고자 바벨을 창설, 오늘에 이른다. 과거의 후지코는 블랙팬텀이 정신적으로 취약했던 이 시기의 틈새를 파고 들었을 거라고 추축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19회 일치
* [[야도리기 아키라]]는 [[히노 카가리]]의 신체를 빼앗아 파이로키네시스와 [[파티 크루]]의 입자화 능력을 동시에 봉한다.
* 그러나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아카시 카오루]]는 [[츠쿠시 미오]] 일행의 구출이 최선이라 판단, 카오루는 자신이 "파괴의 여왕"이란 자각을 가진다.
* [[히노 카가리]]의 몸을 빼앗은 [[야도기리 아키라]]의 발화로 [[파티 크루]]의 입자화 능력이 분진 폭발을 일으켰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칸코레]]스러운 중파 씬을 연출. [[타마키 카즈라]]와 [[츠쿠시 미오]]는 큰 데미지는 없는 듯 하다.
* 자신의 입자가 폭발한 셈이 된 파티 크루.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진 않지만 미오나 카즈라보단 타격이 있어 보인다.
* 판도라 일행과 직접 접촉하는 건 처음인 아키라. 그는 간단히 자기 소개를 마치고 카가리의 몸과 능력은 자신의 제어 하에 있음을 밝힌다. 이제 판도라 일행에게 승산은 없다고 선언하는데 카즈라는 "몸을 빼앗았다고 기술까지 빼앗은건 아니니 겁낼 것 없다"고 받아친다.
* 문제는 블랙 팬텀 측도 분진폭발에 휘말렸다는 것. [[우메가에 나오미]]는 중파지만 [[팀 토이]]와 [[바렛 실버]]는 대파 상태. 나오미는 이런 상태로도 "벌써 승부가 났다"며 자신하지만 그리 좋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 파티는 데미지고 별게 아니라며 재구성으로 간단히 회복한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성진은 적인 나오미까지 회복시키면서 남자들은 방치, [[부녀자]] 정신을 어필한다.
헌데 애초에 아키라가 노린건 전력의 우열이 아니다. 그가 카가리의 파이로키네시스에 서툰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라플레이스"에는 스페셜리스트. 그가 판단했을 때 일행 중 가장 성가시며 전략적으로 중요한게 카가리였다. 카가리를 제압함으로 성가신 파이로키네시스를 봉인, 게다가 파티의 입자화 능력도 분진폭발의 위험으로 억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그는 "친구가 자신의 능력으로 불덩이가 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항복하라 종용한다.
그런데 카즈라는 그걸 빈틈이라고 판단, 자신의 "소닉 스팽크"로 가차없이 공격한다. 카즈라는 아키라가 다시 조종할 틈도 주지 않겠다며 결정타를 가하는데, 카가리가 황급히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호소하지만 공격이 날아간 뒤라 늦고 말았다. 공격은 카가리의 가랑이에 명중, 리타이어 시킨다.
* 리플레이스 링크가 끊긴건 더 하운드의 [[이누카미 하츠네]]가 이변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전을 일시중단하고 일단 아키라의 몸을 들고 튄다. 링크는 섬세해서 본체를 갑자기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끊길 수 있다. 아키라는 잘 돼가고 있었는데 무슨 짓이냐고 투덜대는데, 하츠네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다그친다.
* 아오이는 단숨에 부스트해서 전부 되찾자고 제안한다. 유리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마츠카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특무 에스퍼 상대로 현실성 없는 작전이라며 만류한다. 게다가 헬기 부대까지 고려하면 부스트는 비장의 수로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호가 주축이 돼서 "그걸 어떻게든 하는게 지휘관"이라며 아오이와 유리까지 가세해서 "되는 작전을 짜내라"고 스킨십 공격으로 농락한다. 마츠카제는 갈 수록 M에 개화하는지 "좀 더 부탁받고 싶어진다!"며 곤란해한다.
카오루가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자 시호와 아오이도 한 발 물러선다. 둘은 각각 "카오루가 파괴의 여왕이라면 "금단의 여제"(언터쳐블 엠프레스), "신속의 여신"(라이트스피드 가디스)인가"라고 중얼거린다. 이 말을 들은 유리가 흥분해서 "그런 나는 뭐야"라고 끼어드는데, 마츠카제가 "넌 그냥 "팬텀 도터"잖아"라고 대충 정해준다. 하지만 유리는 세트가 좋다며 "현혹의 여교황"(다즐링 하이프리스너스)같은 급조한 명칭을 제안한다. 여기서 마츠카제가 대항심을 느껴 "지옥의 타천사"같은 되도 안 되는 명칭을 들이밀어서 사이좋게 둘 다 츳코미 당한다.
- 진구 . . . . 19회 일치
| 배우자 = 김지혜
| 자녀 = 슬하 2남 (장남 진원)
| [[:ja:ジョシデカ!-女子刑事-|죠시데카! 여자형사]]
| 용의자/한국어 선생
| [[낭만자객]]
* [[2003년]] [[해태제과]] 자유시간
| 남자 특집·단막극상
|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남자 조연상
| 영화부문 남자 우수상
| 최고의 남자조연배우상
| 남자 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03년 데뷔]][[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평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삼육의명대학 동문]][[분류:남원 진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수상자]]
- 최채흥 . . . . 19회 일치
||||<#c0c0c0> '''{{{#000000 최채흥(崔採興 / Chae-heung Choi) [* 흔한 이름은 아닌데 2017년 6월 30일 네이버 라디오볼과의 인터뷰에서 이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열심히 일해야 흥이 나게 살 수 있다'는 뜻에서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말했다.]}}}''' ||
한양대학교 진학 후, [[김한근]] 한양대 감독에게 투수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김한근 감독은 너를 투수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투수로 전업하여 1학년 때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팀의 마무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67.2이닝 동안 피홈런 없이 54삼진 6사구 16볼넷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했다. 1학년이던 2014년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팀을 17년만의 대통령기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바로 U-21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승선했다. 투수 전업 첫 해에는 평균구속이 130km/h 중반대에 불과했지만, 빠른 성장세로 평균구속을 10km/h 가까이 끌어올리면서 탈삼진 능력도 늘어나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2015년에는 2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활약했다. 2016년에는 학점 관리한다고 8월 이후에는 경기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임지섭]]과 원투펀치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혹사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
8월 23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3.2이닝 1실점(1자책)으로 탈삼진 1개를 잡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이틀전 7이닝 이상 소화한 후 이날 불펜으로 3.2이닝을 투구했다는 점이...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투수로 나온 경기만] || 이닝 || 투구수 || 승 || 패 || 승률 || ERA || 피안타[br](피홈런) || 4구+사구 || 탈삼진 || 실점(자책점) || WHIP || 피안타율 || K/9 ||
자체 청백전에서의 두번째 등판에서 3이닝 91투구 11피안타(2피홈런) 3볼넷 1탈삼진 11실점하면서 무너지면서 아직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듯 하다.
퓨쳐스 호투에 힘입어 5월 19일 토요일 넥센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선발로 등판했고 3⅔이닝 8피안타 2실점(1자책) 81구를 기록했다. 수비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기록은 신인 치고는 기대 이상이였으나 최대 구속이 140으로 대학 시절보다 떨어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날 선발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주전급 대부분이 빠져있었다.[* [[이정후]], [[서건창]], [[김하성]], [[박병호]] 대신에 들어와있는 상황.] 2:2 동점 상황에서 강판되어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3:6으로 패배했다. 21일 1군에서 제외됐다.
6월 2일 1군에 등록돼 당일 [[NC 다이노스]] 원정전에서 5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3탈삼진 2자책(2피홈런)으로 호투를 펼치며 데뷔 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 포심구속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날 경기에는 140대 중반에 형성이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 비록 실투가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2피홈런으로 이어졌지만, 삼성은 [[양창섭]]과 함께 미래를 이끌 좋은 선발 자원을 얻었고, 2018시즌 [[백정현]]-[[장원삼]]-[[최채흥]]으로 이어지는 좌완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면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마운드를 갖출수 있게 되었다. 장원삼이 노쇠화가 오며 10일 로테나 계투 강등이 필요해진만큼 양창섭까지 돌아온다면 선발진은 정말 무적일 듯.
9월 30일 대구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윤성환]]이 5회에 수비도움을 받지 못하며 급격히 무너지면서, 추격조로 등판했다. 5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첫 타자인 [[최항]]에게 좌중간에 싹슬이 3타점 적시 2루타를 허용하며 분식회계를 해버렸으나, 이 후는 침착하게 잘 막아내면서 2⅓이닝 동안 2탈삼진을 기록하는 준수한 투구를 해주었다. --상수야.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나비효과란다.--
10월 13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또 다시 3회 2사만에 강판되면서 분위기가 이번 시즌 넥센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우려했으나, 중간계투로 올라온 양창섭이 4회에는 [[김혜성(야구선수)|김혜성]]과 [[김재현(1993)|김재현]]을 연속 탈삼진까지 잡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7회에는 [[이정후]]에게 3루타를 허용했고, 후속타자인 [[임병욱]]을 상대로는 투수 땅볼을 유도했으나 비디오판독 결과 [[임병욱]]의 발이 조금 더 빠른 것으로 판정되어 내야안타로 바뀌면서 1타점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기록은 3⅔이닝 동안 3탈삼진 4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충분히 잘 던져주면서 2018 시즌을 마무리했다.
9월 25일에 7이닝을 소화하며 순식간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18⅓이닝으로 늘어나자 구단측에서 노린것인지, 막판 순위싸움에서 요긴하게 기용하려고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불펜으로만 등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28이닝으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2019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강백호같이 눈에 띄는 특급 신인들이 많지 않아 올해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신인왕이 유력하다.]
주목할만한 점은 9월 25일 복귀한 이후 시즌 끝날 때 까지 선발 1번, 구원 4번하여 총 5번의 등판에서 --분식회계를 빼고-- 총 16⅔이닝동안 단 2자책만 했으며, '''방어율이 무려 1.08'''로 6월 8일 LG전까지[* 1군 엔트리 말소 이전] 6.35였던 방어율과 0.365였던 피안타율을 각각 3.21과 0.270으로 낮춘 점을 봤을때 [[양창섭]]보다도 내년이 더 기대케 되는 피칭을 보였다. ~~최채흥은 대졸인데 당연하지~~ 그리고 후반기 탈삼진은 무려 16개를 뽑는 동안 볼넷은 단 3개만 내주었다는 부분에서 내년을 확실히 기대하게끔 하는 투구를 보였다. 특히 투구폼을 교체한 이후 확실히 진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년 2019 시즌에는 큰 부상이 없는 한 [[양창섭]]과 함께 나란히 선발 로테이션에 들 가능성도 충분히 보인 9~10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상으로 빠진 [[양창섭]], 그리고 [[윤성환]]을 대신해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3월 28일 [[사직야구장]]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96투구수 (S:60, B:36) 4피안타 2사사구 8삼진 4실점 3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 경기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5선발 경쟁을 한 셈인 [[최충연]]은 2경기 만에 실패로 돌아갔고 4월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KIA 타이거즈]] 홈경기에 출전해 4이닝 93투구수 (S:52, B:41) 7피안타 2사사구 3삼진 2실점 1자책을 기록하였다.
4월 14일 역시 [[kt wiz]]를 상대로 홈경기에 출전, '''7이닝 104투구 (S:71,B:33) 6피안타 1피홈런 (1회 유한준 3점) 1볼넷 7삼진 3실점 3자책'''을 기록해 [[QS+]]를 기록했다. 타선이 간만에 터지며 3:14까지 점수를 벌렸으나 이후 올라온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 [[김대우(1988)|김대우]], 최충연을 상대로 [[kt 위즈]] 타선이 9점씩이나 뽑아내며 12:14까지 좁혀져 승을 날려 먹을 위기에 놓였었다. 역전 주자까지 내보낸 상황에서 [[장필준]]이 두 명을 삼진으로 잡으며 어찌어찌 2승에 성공. 이때 덕아웃을 비춘 카메라에 잡혔는데, 볼 카운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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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코/387화 . . . . 19회 일치
* 스타준은 충격을 이겨내며 토리코에게 그 둘이 형제이며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식이라 한다.
* 토리코는 적귀에게 감사를 표하는데 적귀는 "아직 너의 식욕은 멈추지 않는다"며 토리코에게 센터를 먹이고 함께 싸우자며 자신을 토리코에게 먹인다.
* 적귀가 흡수되고, 식혼들이 잘 먹었습니다 자세를 취하며 토리코는 눈을 뜨게 된다.
* 그는 토리코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온 식재란 바로 "네가 나에게 줬던 것"이라고 알려준다.
* 그들은 500년 전 태어난 아카시아와 플로제의 자식이었다.
* 플로제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 태반째로 적출해 백채널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냈다.
* 아카시아는 플로제가 자신을 속였다고 격분.
* 그는 자신이 받았던 것을 토리코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 아카시아는 자신이 원한 아이는 "요리사"였는데, 이제 스타준이 죽었으니 "미식가"만 남았다고 빈정거린다.
* 토리코는 그게 항상 자신을 지켜보면 악마임을 깨닫는다.
* 적귀는 자신을 "너의 식욕"이라 소개하며 토리코가 풀코스를 모두 먹은 덕에 원래 힘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 그리고 토리코가 센터를 먹은 후 자신에게 먹히면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 토리코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풀코스도 적귀가 정한 거냐고 묻는다.
* 적귀는 토리코가 자신의 감정을 동요시켰다며, 그 한순간에 사로잡혀 버렸다고 독백한다.
* 그리고 감사해야 하는건 오히려 자신이라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식사는 정말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 적귀는 토리코에게 자신을 먹인다.
* 스타준의 사망. 예상대로 스타준과 토리코는 형제였으나 플로제와 아카시아의 자식이었다.
* 플로제가 어째서 자신의 아이들을 도망시켰는지는 아직 불명. 아마도 아카시아의 야심으로부터 지키려는 행동인 듯.
- 트로피코 4/진영 . . . . 19회 일치
== 자본주의자 ==
* 흑자
== 공산주의자 ==
* 모든 판잣집 제거 -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모든 은행 철거 -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모든 주점 철거 -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군국주의자 ==
* 반역자보다 많은 수의 병력
* 범죄자 처형 - 지식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환경주의자 ==
관계가 험악해졌을 경우 벌목소나 광산, 공장 등 공해를 유발하는 건물 하나를 점거해 못 쓰게 만든다. 관계를 복구하는 방법 외에도 환경주의자를 탄압하거나 지쳐 나가떨어질 때 까지 무시하는 방법도 쓸 수 있다.
== 국수주의자 ==
* 자주적인 노선
* 관저의 모든 업그레이드 완료 -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페어리 테일/523화 . . . . 19회 일치
* [[제레프 드래그닐]]도 [[그레이 풀버스터]]가 자신의 모든걸 걸고 거는 "로스트 아이스드 셸" 만은 어쩔 수 없었다.
* 제레프는 설사 자신을 봉인해도 언젠가는 얼음이 녹아 풀려날 거라 말하지만 그레이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평화"라며 페어리 테일의 승리를 선언한다.
* [[나츠 드래그닐]]은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에 도착해 자신의 열기로 아이스드 셸을 상쇄한다.
* 나츠는 눈물을 흘리며 그레이를 설득하고 자기 자신이 직접 제레프와 싸우기 위해 나선다.
* 한편 [[아이린 베르세리온]]에게 승리한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인물의 공격을 받는다.
* 대상을 영원히 가두는 마법 "아이스드 셸". [[그레이 풀버스터]]는 과거 "아바타르"에 잠입했던 시절 익혔던 "로스트 속성"을 더해 위력을 증폭시킨다. 로스트 속성은 마법의 위력을 수십 배로 배가하지만 사용자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무서운 대가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예 사라지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차라리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 로스트 속성으로 강화된 아이스드 셸은 [[제레프 드래그닐]] 조차 저항하지 못한다. 그는 이런 마법을 써봤자 자신을 멸할 수는 없다고 도발한다. 그레이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츠를 죽이지 않고 제레프를 쓰러뜨리려면 이 방법 뿐이라고 강변한다. 제레프는 아이스드 셸이 대상을 영원히 가둔다고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자신이 부활할 거라고 경고하는데, 그레이의 결심은 꺾을 수 없다.
* 그에게 그만두라고 외치고 있던건 다름아닌 [[나츠 드래그닐]]이었다. 나츠는 도착하자마자 그레이를 찍어 누르며 마법을 중단 시킨다.
* 나츠는 전에도 똑같은 짓을 해서 말리지 않았냐고 그레이를 타박한다. 그레이는 한때의 감정에 휩쓸려 나츠를 죽이려들었던 자신은 길드에 있을 자격이 없고 이 길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항변한다. 나츠는 피차일반이 아니냐고 소리친다.
* 제레프는 운명을 불태운다는 나츠의 말이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나 자신은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들인 인간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으며 나츠와 최종결전을 준비한다.
* 한편 [[아이린 베르세리온]]을 힘겹게 이긴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상처를 치료하고 길드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웬디는 아직도 [[마카로프 드레아]]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 옆에 자신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엘자는 그건 마카로프가 죽음을 각오한 결과였으므로 차이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린이 그런 것처럼.
- 페어리 테일/525화 . . . . 19회 일치
* 오거스트는 길다트와 카나의 관계를 보며 부모자식 간의 애정은 당연한 건데 "어째서 폐하의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 건가"라고 중얼거린다.
* 제레프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우는 거지만 솔직히 나츠와 대결하는게 즐겁다며 일그러진 감정을 드러낸다.
* 하지만 제레프는 자신과 나츠의 대결을 방해한다며 오히려 라케이드를 살해한다.
* [[오거스트]]가 "자식이 죽으면 어떤 감정이 들겠냐"고 물었다. [[길다트 클라이브]]는 [[카나 알베로나]]를 놓고 협박한다고 생각해 불같이 화를 낸다. 카나는 적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눈이 뒤집힌 길다트는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지팡이로 길다트의 명치를 찌르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 길다트가 위기에 처하자 카나가 가세하러 오는데 길다트는 딸을 걱정해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카나는 자기도 한 사람 몫을 하게 됐다며 마력이 담긴 카드로 오거스트를 견제해 물러나게 한다.
같은 시각 페어리 테일 길드로 향하는 길을 누군가가 기어간다. "폐하의 아이", [[라케이드 드래그닐]]이었다. [[스팅 유클리프]]에게 당한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기어서라도 아버지 [[제레프 드래그닐]]을 지키고자 페어리 테일로 향하고 있다.
* 그때 세 사람에게 텔레파시가 온다.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길드로 향하면서 셋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메이비스는 셋이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며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전한다. 루시와 해피는 싸우고 있는 나츠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하지만 메이비스는 나츠와 자신을 믿고 이쪽으로 오라고 말한다.
그레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지만 메이비스는 도청의 우려가 있다며 자세한 사항은 합류해서 말해주겠다고 한다.
* 제레프는 강한 공격을 맞고도 타격은 없어 보이지만 곧바로 거리를 벌린다. 그는 뜬금없이 "즐겁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지금 자신이 나츠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는 건데, 그래도 나츠와 대결하는게 즐겁다고 말한다. 나츠는 중얼중얼 시끄럽다고 일갈하지만 제레프의 얼굴에 나타난 기괴한 미소를 지울 수는 없다.
* 나츠는 기분 나빠하며 쏘아붙이려 하지만 갑자기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어느새 라케이드가 페어리 테일 길드에 도착, 수면마법으로 나츠를 공격한다. 제레프에게도 그의 등장은 의외였던 것 같은데, 라케이드는 늦지 않고 아버지를 돕게 됐다며 감격스런 얼굴이다. 나츠는 라케이드를 모르지만 그가 제레프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수면마법의 영향으로 금방 잠들어버릴 것만 같다. 나츠는 자기 얼굴을 때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
* 과거, 아직 메이비스가 봉인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페어리 테일의 2대 마스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는 연구 도중 메이비스의 체내에서 말도 안 되는 반응이 나타난걸 발견한다. 그는 어처구니없어하지만 데이터 상으론 그녀의 몸 속엔 "생명"이 자라고 있다. 프레히트는 곧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그 생명을 내버려 둬야하나? 죽여야 하나, 혹은 살려야 하나? 자문을 거듭하던 그는 겨우 결론을 내린다.
* 그리고 지금. 그렇게 살린 생명이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제레프는 자신의 아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해한다. 라케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혹한다. 적인 나츠도 이런 상황에 당황한다. 제레프는 라케이드가 나츠와 자신의 대결을 방해했다 여겨서 그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방해하지 마라"고 말할 뿐이다.
- 하이큐/246화 . . . . 19회 일치
* 여자리그 우승후보인 "여왕" 니야마 고교가 옆 호텔이 체크인하는걸 발견하는데, 이때 [[타나카 류노스케]]의 지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나타난다.
* 민박집에서 첫 승리를 자축한 카라스노는 곧바로 다음날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에 들어간다.
* 힘겹게 봄고 1일차를 버텨낸 [[카라스노 고교]]. 돌아가는 길에 영원한 라이벌 [[네코마 고교]]와 조우한다. 네코마 측에서 "기껏 왔는데 금방 돌아가지 않아서 잘 됐다"고 도발 섞인 축하를 하자 [[스기와라 코시]]는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고 받아친다. 이렇게 악담에 섞인 격려를 주고 받은 양팀 선수들.
* 민박집에 도착해 보니 옆의 호화호텔로 여자 대회의 우승후보인 "여왕" 니야마 고교가 귀가 중이다. 여자부와 남자부의 차이는 있어도 저쪽은 우승 후보. 번쩍거리는 호텔로 들어가는 데서 격차를 느끼고 만다. 그러고 보니 카라스노도 여자부 쪽은 인터하이에서 우승한 시드교. 문자 그대로 "여왕" 같은 그녀들이다.
그때까지, 공식적으로 [[시미즈 카요코]]에게 어택하던 걸로 돼있던 타나카는 처절한 퇴짜의 나날을 떠올린다. 동시에 썸이란, 자신에게 그런 장밋빛 무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달으며 멘붕으로 접어든다.
카노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를 한다. 그때도 유독 큰 키 때문에 악동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었는데, 그때 도와주던 것이 타나카였다. 타나카도 악동이긴 마찬가지였는데 무슨 생각인지 "넌 키 크고 멋있으니까 허리를 똑바로 펴라"며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거기가 바로 초등학교 배구부였다. 카노카는 그때를 계기로 배구를 시작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축하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리로 돌아온 우카이 코치는 곧바로 내일 있을 경기에 대비한 분석회의에 들어간다.
히나타와 니시노야는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다. 특히 히나타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잠들어서 야마구치가 당황한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혈기왕성한 니시노야까지 뻗은걸 보고 "배터리가 나갔다"며 신기해하는데 엔노시타는 무리도 아니라며 다들 평소보다 훨씬 체력소모가 심하니 부상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 원래도 몰라보게 자라버린 카노카를 어색해했는데 낮에 엔노시타가 "썸이다"라고 했던 얘기가 의식돼 엄청나게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둘은 쮸뻣거리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으며 변죽만 울린다. 그러다 갑자기 카노카가 속도위반을 한다.
고백타임 같은 분위기. 그러나 이런 부분으로 내성이 전무한 타나카는 머리가 폭발할 것처럼 복잡해진다. 그런 영향일까? 타나카는 무슨 근자감인지 일단 거절하고 보기로 하는데... 불청객이 끼어든다.
* 왠 청년이 나타나는데 카노카와 잘 아는 사이인지 "안에서 기다리라니까"하고 말을 걸고 있다. 타나카는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미녀로 자란 카노카, 도시의 밤. 연상의 시티보이.
* 여러 선수들이 각자의 사정과 각오로 보낸 그날 밤. 사와무라처럼 서성거리는 선수도 있고 보쿠토처럼 속편히 자는 녀석도 있는가 하면 타나카처럼 이불킥을 거듭한 뜻에 해탈에 이른 이도 있다. 아무튼 다양한 형태로 지나간 하룻밤.
- 하이큐/255화 . . . . 19회 일치
* 경기를 보러 왔던 전일본 남자 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카게야마 외에도 괴짜 속공을 올려줄 사람이 있다"는게 히나타에게 나쁠거 없다고 본다.
* 경기는 여전히 [[이나리자키 고교]]가 3점 차 우위를 유지하며 우세한데, 아츠무가 다시 괴짜속공을 시도한다.
* [[카라스노 고교]]의 간판이자 필살기라 할 만한 괴짜 속공.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아츠무]]는 즉흥적으로 그 기술을 카피해서 [[미야 오사무]]와 성공시킨다. 거기에 반격하러 온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원조. 이또한 아츠무의 천부적인 센스로 철통같이 리드 블록,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스코어는 13 대 10으로 이나리자키의 3점 리드.
* 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아오바죠사이 고교]]. 카라스노가 경기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데다 괴짜속공까지 틀어막히자 뭐하는 거냐는 질책과 우려가 쏟아진다.
* [[야치 히토카]]도 히나타의 상태를 걱정한다. 지금껏 그는 자기보다 큰 상대와 싸웠지만 필살기 괴짜 속공을 앞세워 자신감있게 플레이해왔다. 그런데 그걸 상대가 똑같이 따라하는데다 자신들 쪽은 봉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까?
또다시 이나리자키의 괴짜 속공. 기세가 올랐다. 점수차는 14 대 11. 여전히 3점차. 아나운서는 "이나리자키는 매 경기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칭찬한다. 그야말로 "최강의 도전자"답다.
>동쪽의 왕자를 잡기 위한 엄니를
>끊임없이 갈고 닦는 이나리자키 고교!
* 그리고 이번 경기는 전일본 남자 대표팀의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도 관람 중이다. [[하이큐/210화|카게야마의 전일본 유스 합숙]]에서도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동행한 코치가 카라스노의 10번, 히나타를 거명하며 "키는 작지만 득점율이 높다."고 평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필살기가 카피 당해서 풀이 죽은거 같다고 말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는 별다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카게야마하고만 선수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괴짜 속공을 아츠무도 올릴 수 있다는게 증명됨으로써, 반대로 말하면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도 그 속공이 가능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 이어지는 공격. [[마지로 알렝]]의 스파이크. [[니시노야 유]]가 받아낸다. 카게야마는 튀어오른 공을 곧바로 세트업, 두 번째 괴짜 속공 시도다. 불규칙한 궤도지만 아츠무의 시야를 벗어나진 못한다. 자신이 직접 리드 블록을 시도하는 아츠무.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체공하는 히나타의 눈이 뻗어오는 손아귀들을 뚫어지게 관찰한다.
* 관람 중인 [[호시우미 코라이]]가 방금 플레이는 요행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고" 플레이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 플레이로 우카이 코치도 안심했다. 그도 미야 형제의 괴짜 속공을 크게 우려하진 않았지만, 선수들의 멘탈에 대해서는 조금은 우려했던 바였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괜찮다"고 했던건 허세가 아니었다. 그는 최선의 토스를 올릴 뿐이고 이후의 일까진 자기가 어쩔 수 없다는걸 확실히 체득했다. 옛날의 카게야마라면 그것까지 자기가 해결하려고 안달을 부렸을 거라고, 우카이 코치는 생각했다.
* 미야 형제의 괴짜 속공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츠키시마. 미야 형제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환호하는 카라스노 선수들. [[타나카 사에코]]가 "츠키시마 아키테루가 이걸 놓쳐서 우는거 아니냐"고 말하자 시마다가 "봤어도 울었다"고 대꾸한다.
- 허준호(배우) . . . . 19회 일치
||<bgcolor=#113759> {{{#white '''가족'''}}} ||[[아버지]] [[허장강]], 이복 형 허기호, 딸 허정인[* 전처 배우 이하얀 사이의 딸. [[유자식 상팔자]]에서 어머니 이하얀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원로 배우 [[허장강]]의 아들로도 유명하긴 하지만 스스로의 연기력으로 올라선 인물로서, 20대 무명시절을 겪고난 후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중반부터 청춘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과 함께 비중있는 조연으로 얼굴을 내 비추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 드라마 "주몽"에서 맡은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 역이 유명하다. 주몽의 훌륭한 멘토이자 과거 [[세계관 최강자]]였던 인물의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신인 시절인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정이 많고 편안한 이미지의 캐릭터도 많이 맡았다. 뮤지컬 배우인지라 노래에도 자신이 있었는지 1994년에는 동료 탤런트 김대희와 함께 가수 활동을 한 적도 있고, 그가 부른 솔로곡 중에 '어머님의 자장가'('사랑과 평화'가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가 어느 정도는 유명하다.
[[실미도(영화)|실미도]]를 촬영할 때 북파 공작원으로 캐스팅을 받았는데 '''명령에 충실했을 뿐인 북파 공작원 교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공작원이 아닌 교관역을 자청하여 매섭고 냉정하지만 사실 속정은 깊은 조돈일 중사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초반에는 정말 악질 교관의 모습을 보이며 구타를 일삼았지만 후반에 북파 공작원들이 버스를 탈취했을 때 이를 진압하는 진압군 앞에서 공작원들을 변호하며 어떻게든 자신이 훈련시킨 공작원들을 살려보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자폭한 공작원들의 이름을 쉰 목소리로 외치며 오열하는 호연으로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특히 사탕봉지를 떨어뜨리는 장면의 애잔함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쟤들 무장공비 아닙니다!~~
최근 영화 출연보다는 뮤지컬 출연이 더 잦다. 원래 갬블러 자체가 일본에 건너간 거의 최초의 뮤지컬 수출작이기도 하다. 허준호는 갬블러에 거의 10년째 출연했고 [[시카고(뮤지컬)]]나 [[바람의 나라]]에도 출연했다.
[[2005년]] [[뮤지컬]] "갬블러"를 공연(재공연)하러 일본에 갔는데, 그가 비중있게 출연했던 드라마 [[올인(드라마)|올인]]이 당시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이었던지라 일본인 [[기자(직업)|기자]]로부터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독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받고는 말없이 걸어가 [[펜]]을 훅 뺏고는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했다는 [[간지폭풍]]의 일화가 전한다. [[http://sangto3.tistory.com/1193|#]] 기자는 사과했다고.
* 1991년 《독재소공화국》... 사회자 역
* 1997년 《꽃을 든 남자》... 상범 역
* 1995년 SBS 《[[아스팔트 사나이]]》... 기룡자동차 대표이사 한기수 역
* 2000년 MBC 《[[온달왕자들]]》... 여시광 역
* 2001년 ~~KBS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건 맞지만,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는 [[이미연(배우)|이미연]]의 당시 소속사인 GM기획이 음반 제작을 주도하면서 드라마 제작진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실제 뮤직비디오 속 배우와 드라마 속 배우들이 몇몇 배역의 경우 다르다. 대표적으로 뮤직비디오의 사실상 남자주인공이었던 [[정준호]]도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 2003년 [[SBS 연기대상]] 남자조연상
- 황병일(1960) . . . . 19회 일치
|| '''지도자''' ||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1990~2002) [br]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br]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 [br]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8~2009) [br]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br]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br]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br]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br] [[kt wiz]] 2군 감독 (2015) [br]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 [br]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태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태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허용타자~~
== 지도자 시절 ==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 시절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 중평.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 ~~[[최경환(야구)|하긴 당시 KIA 1군 타격코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 무엇보다도 [[김상현(1980)|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 때 황붕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야구)|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
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경질되며~~사퇴하며 황병일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삼성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리고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다.~~[*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과 [[김종훈(1972)|김종훈]]까지 3명으로 등록되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야구)|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송재박]]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고 [[송일수]] 2군 감독이 [[김진욱(야구)|김진욱]]의 후임으로 신임 감독이 되자 공석이 된 [[두산 베어스/2군|2군]] 감독을 맡았다.
그렇게 2군 감독을 1년간 지내고,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위즈]]로 자리를 옮겼다.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kt wiz/2군|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가, 4월 15일 자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황병일이 타격도 겸임하면서 [[이숭용]]이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야구감독]]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0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 Crusader Kings 2/DLC . . . . 18회 일치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수피교 신비주의자, 샤리아, 아내'''들''' 간의 갈등과 같은 이슬람교도 전용 이벤트도 추가된다.
유대교는 유대교도 플레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 재건을 시도해보자.
769년 시작하는 시나리오인 "샤를마뉴"가 추가되었다. 이 시나리오에서 카롤루스 대제로 시작하면 특수한 스토리 이벤트가 제공된다. 또한 플레이어가 자체적으로 제국을 만들 수 있는 기능 역시 추가되었다.
이 DLC가 있을 경우 자신의 캐릭터의 관심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관심사는 모두 열개로 다음과 같다.
* 개인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는 전쟁(War). 자신의 경쟁자에게 결투를 걸 수도 있다.
* 다른 나라에 딜을 하러 원정가거나 장인들의 사업에 투자를 해보는 사업(Business)
* 천문대를 지어서 천체를 연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의 학력을 향상시키는 학문(Scholarship)
자문회에 권력이 생기는 DLC. 이제 법을 바꾸거나 특정 행동을 할 때 자문회 멤버들을 어르고 달래 투표에서 승리해야한다. 그게 싫다면 자문회 권한을 최대한 빼앗던가. 근데 권한 빼앗는 것도 투표를 통해서 해야한다. 특정 이벤트나 돈을 왕창 퍼줘서 빚을 만든 다음에 그걸 나중에 갚도록 할 수 있는 "호의" 시스템도 추가되니 최대한 활용해보자.
또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시스템도 바뀌게 된다. 전에는 후견인과의 이벤트로 성격 특성이 붙었다면 콘클레이브 DLC에서는 교육자와의 이벤트로 아이들 전용 성격 특성이 붙고 이 특성들은 성인이 되는 순간 성격 특성으로 변이되는 시스템이 된다. 또한 아이의 유년기 교육 중점과 청소년기에 무엇을 교육시킬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상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18회 일치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연맹은 2012시즌부터 연맹의 경기감독관 뿐만 아니라 관중의 실 집계를 위한 검표관리자까지 각 경기장에 파견하게 되며, 이 검표관리자는 경기장 입장구역에서 검표를 수행하게 되며, 계수가 된 인원(시즌권 바코드 체크, 경기 표 바코드 체크 등이 완료된 인원들)만이 여기에 실 집계인원으로 잡히게 되었다.
실 집계를 시작하고 나서 가져온 파장이 엄청났는데, 2012시즌 348경기가 종료되자 2011시즌 246경기동안 300만명이 넘었다는 관중이 250만명으로 50만명이나 줄었다. 단순계산만으로도 평균관중이 1만 1천~2천여명 정도였던 2011시즌 성과와는 달리 2012시즌은 7천여명으로 경기당 근 4~5천명이나 차이가 나는 것.[*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382&aid=0000079171|스포츠동아, "-33.2%…거품 빠진 관중수 각 팀 마케팅 강화 긍정효과"]]
경기장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경우에는 거의 100% 해당 경기장을 찾았다고 간주할 수 있겠으나 시즌권을 구매했다고, 혹은 무료티켓을 얻었다고 매번 경기장을 찾는 것은 아님에도 이를 합산시켰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시즌권을 구매했어도 어떤 개인사정으로 인해 경기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무료티켓을 가졌다고 반드시 자신의 시간을 경기장에서 보내야 하는 필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실 관중 집계가 구단의 [http://news.tf.co.kr/read/soccer/1467594.htm|투자를 저하시켰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 관중 공개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는게, 실 관중 수 집계와는 달리 구단은 명백하게 각 경기마다 들어오는 관중 수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입장이라서 설득력이 없다. 되려 각 선수들의 연봉공개가 이적시장을 달궜으면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
사실 허수로 부풀린 관객수로 투자를 받아 봤자 투자자는 관객수에 비해서 수익이 적다는걸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된다. 차후에 실제로 관중이 발표한 만큼 늘어나도 축구=수익이 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에 가로막힐 수 있기 때문. 부풀린 데이터를 제시하는건 일종의 '투자 사기'이며,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투자에 필요한 신뢰를 얻는데는 기본적인 사안이다.
- 건포인트 . . . . 18회 일치
만약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경비원의 총에 맞아 죽으면 죽기 얼마 전에 자동저장된 순간들 중 하나를 골라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만약 임무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도 있다.
임무가 끝난 후 폭력성, 목격자, 소음, 시간에 따라 등급이 부여된다. 이는 게임에 별 영향이 안 가지만 등급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해당 임무를 시작할 수 있다.
* 목격자(Witnesses)
$130. 회로 상자를 해킹해 붉은 색 외의 전선을 해킹할 수 있게 한다,
사운드트랙과 개발자 코멘터리가 추가되는 DLC. 구매하면 미션 한구석에 개발자 캐릭터가 나타난다. 이 캐릭터에게 말을 걸면 코멘터리를 볼 수 있다고.
건포인트 초기 버전과 개발에 대한 40분 분량의 동영상, 특전 음악, 제작자들이 차후에 만들 게임의 비밀 베타 버전을 플레이 할 권한 등이 포함된 DLC.
이스트포인트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스파이인 리처드 콘웨이는 자신이 주문한 장비인 하이퍼트라우저를 받게된다. 실내에서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하이퍼트라우저를 실험해 본 콘웨이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있는 총기 회사인 루크 파이어암즈 건물안에 처박힌다. 이때 콘웨이는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인 셀레나 델가도의 연락을 받게된다. 델가도는 콘웨이에게 일거리가 있으니 윗쪽에서 만나자고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친 콘웨이는 감시 카메라 기록에 의해 델다고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되게 된다.
루크 파이어암즈의 CEO. 자신의 친구인 델가도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려 한다. 경찰에 의해 델가도 살인범으로 지목된 콘웨이를 시켜 콘웨이가 촬영된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우게 한다.
루크 파이어암즈의 분석가. 루크의 의뢰에 따라 델가도 살인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전부 지우면 연락해온다. 루크의 남편인 잭슨이 델가도 살인 현장에서 그녀를 보았다고 증언하며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거기 없었다는 증거를 대려고 해도 누가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워버려서 증거도 없는 상황. 콘웨이에게 잭슨의 사무실로 잠입해 단서를 찾아낼 것을 의뢰한다.
루크의 남편. 따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델가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 중 하나. 살인 현장에서 콜린스를 봤다고 말해 그녀가 유력 용의자가 되게 만들었다.
루크 파이어암즈의 경쟁사인 인텍스의 CEO. 입이 상당히 험해서 Fuck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콘웨이와 접선할 때 처음 한말이 "씨발 넌 뭐하는 놈이냐?"[* Who the fuck are you?]일 정도. 콘웨이에게 루크가 진행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훔쳐올 것을 의뢰한다. 목격자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덤.
이스트포인트 경찰서장. 이스트포인트의 엄청난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전근왔다. 이전까지의 경찰서장들은 실종되거나 의심스러운 총기사고로 죽었다고. 정체를 숨긴 채로 콘웨이와 접선, 부패하고 게으른 자신의 부하들 대신 델가도 살인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의뢰한다.
- 김륵 . . . . 18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당색으로는 [[동인 (정치)|동인]]이고 학맥으로는 [[이황]]학파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 금계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황을 직접 찾아가 직제자가 되기도 했다. [[경상북도]] [[영천시]]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출신.
[[1540년]] [[경상북도]] [[영천시]] 에서 태어났다. [[조선 세종|세종]] 때의 천문학자 [[문절공 김담]]의 4대손으로, 증조부 김만칭(金萬秤), 조부 김우(金佑)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김우는 사후 [[증직|증]]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생부 김사명(金士明)은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유생으로 수학한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이었다.
김사명은 창원황씨와의 사이에서 김욱(金勖), 김륵 두 아들을 두었는데, 형인 김사문(金士文)이 아들이 없자 둘째 아들인 김륵을 형의 양자로 입양보냈다. 백부이자 양아버지인 김사문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냈다.
과거에 급제하고 바로 승문원 부정자가 되고 이어 승정원 가주서와 [[예문관]][[검열]]을 지낸 뒤 성균관 전적·[[예조]][[좌랑]]·[[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했다.
그 뒤 이순신이 투옥됐을때는 [[유성룡]] 등과 함께 구명운동을 벌였다. [[정유재란]]이 종결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물러났다. 다시 관직에 올라 대사헌으로 시무16조를 올려 민심수습책을 제시한 뒤 1599년(선조 32)에는 형조 참판과 예조 참판을 거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이순신의 공로를 조정에 아뢰며 그 집안의 조세 부담을 감면해 줄 것을 청하였다.
[[1602년]](선조 35) 경상도 변방으로부터 왜의 재침 기미가 있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조정에서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로 보내 청병하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재역불가의 5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그는 반오조를 들어 설득하니 [[만력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벼루]]와 [[비단]] 등을 하사하며, 지금 출병은 어렵지만 왜에 대한 경계의 칙지를 내릴 것을 약속받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는 [[북인]]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조식 (1501년)|조식]]이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고 그의 이황, 이언적 문묘 종사를 반대했는데, [[북인]]과 [[남인]]간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자신의 생모 [[공빈 김씨]]를 왕후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그는 생모를 왕비로 [[추증]]하려는 [[광해군]]의 뜻을 비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좌천되었다.
** 사위 : 권래(權來, 안동인, 군자감정)
*{{위키인용 |ref="선조실록 1616"| reference ={{서적 인용 |저자=춘추관 관원들 |연도=1616 |제목=[[선조실록]] |ref={{sfnRef|선조실록 1616}} }} }}
[[분류:1540년 태어남]][[분류:161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임진왜란 관련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예안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영천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화가]]
- 김현정 (1979년) . . . . 18회 일치
* [[배화여자전문대학]] 전통복식과
* [[2012년]]부터 [[세계일보]] 미술[[칼럼]] '''''배우화가 김현정의 그림 토크'''''를 연재했다. 이 칼럼은 작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평론하며 미술이론, 미술사 등에 관한 작가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2009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마치고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상담 교육을 받은 후 화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14년 6월에는 첫 개인전인 <묘사와 연기>가 열렸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965311 화폭으로 옮긴 심리 치유…배우겸 화가 김현정 개인전],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작성.</ref>, 2014년 11월 9일 부터 11월 19일까지 [[백남준]], [[이왈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하나에서 셋으로:한국 예술가 3인전>에 작품전을 열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18578 ‘동양화로 그린 장서희는?’ 화가 김현정, 中진르미술관 초청], 뉴데일리, 2014년 10월 7일 작성.</ref>
|align="center"| 말자 역
|align="center"| [[MBC 베스트극장|한 잎의 여자]]
|align="center"| 장영자 역
* 2004년 《[[마지막 늑대]]》두미 역/ 제네시스 필름 (구자홍 감독)
* 2004년 《경복궁》 /여자 역/ (권지연 감독)
:대표작 : 《랄라 독립도》, 《잠자리 천국》, 《랄라와 소녀상》, 《바게뜨 십자가》
:장소 : 중국 [[베이징]] 주중한국문화원 / 파주 민족화해센터 순례자 갤러리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배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김천시 출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8회 일치
* 최고의 경비레벨을 자랑하는 형무소 "타르타로스". [[올 포 원]]은 아무리 자신이라도 여기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 올 포 원은 그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가 세상의 혼란만 야기했다고 야유한다.
* 올마이트는 그가 시가라키로 하여금 자신과 [[미도리야 이즈쿠]]를 살해하세 만들 셈이라고 생각한다.
* 철벽같은 경비를 자랑하는 형무소 "타르타로스". 수형자의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총구가 겨눠지며 사방에서 카메라, 뇌파 탐지기, 바이탈 사인 탐지기 등이 애워싸고 있고 개성을 사용하려는 "생각"만으로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그것이 신의 이름을 딴 형무소 타르타로스. [[올 포 원]]은 아무리 자신이라도 등이 가려워서 의자에 등을 비비는 정도가 한계라며 너그레를 떤다. 유리창 너머의 그를 바라보고 있다.
* 올 포 원은 타르타로스의 이름에 빗대서 "아무리 나라도 신에게 반역하는건 고생스럽다"고 푸념투로 말하는데 [[올마이트]]는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정해준다. 올 포 원은 그래서 뭘 원하냐고 묻는다. 이 면회가 그란토리노의 판단인지, 아니면 올마이트의 독단인지 묻고 또 왜 원 포 올을 쓰지 못하는 지금도 히어로 코스튬을 걸치고 있냐고 빈정거린다. 올마이트가 잘도 지껄인다고 쏘아붙이자 "오랜만의 대화"라며 기분이 들뜬 척 한다. 실제로 그는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어 "인간"과의 대화는 오랜만인 듯 하다.
* 올마이트가 본론을 꺼낸다. 그는 [[시가라키 토무라]]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올 포 원은 "너와는 달리 내 손을 떠났다"고 답한다. 짜증을 느낀 올마이트는 대체 뭘하고 싶은지, 뭘하고 싶었는지 묻는다. 그토록 긴 수명에 타인을 착취하고 기만하면서 대체 뭘 이루려는 거냐고 묻느낟. 올 포 원은 생산성 없는 대화라고 일축한다. 들어봐야 이해하지도 못할 거라며 단지 올마이트는 정의의 히어로를 동경했고 자신은 마왕을 동경했을 뿐,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그렇다면 어째서 후계자를 기른 거냐고 묻는다. 올 포 원은 어째서 네가 그런걸 묻냐며 "네가 모든걸 빼앗았기 때문"이라 답한다. 분명 그의 썩어가는 몸도, 갇힌 신세도 올마이트가 한 짓이다.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올 포 원의 이상이 올마이트에 의해 저지되고 "유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깨달았다. 끝이 오면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걸 맡긴다. 그러면서 발전한다. 올 포 원은 모두가 하려는건 자신도 하는 거라고 정리한다.
모든 것은 자신의 손바닥 안, 그런 태도다. 하지만 그의 예측이야 어떻든 결국 모든 원인은 올마이트다. 그의 거짓된 모습과 은퇴가 "아무도 구할 수 없는 올마이트"를 만들고 무력함에 치를 떨게 만드는 것이다.
올마이트는 더이상 참기 어려운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 방송으로 올마이트에게 물러나라고 통보된다. 올 포 원은 "유감스럽게도 여기선 날 때릴 수 없다"며 조롱한다. 올마이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모든 걸 아는건 너 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차피 올마이트도 올 포 원의 생각은 짐작하고 있다. 그는 올마이트가 가장 싫어하는 것만 생각하니까. 분명 스승의 자식인 시가라키가 올마이트를 죽이고 그의 제자 미도리야 이즈쿠도 죽이게 하려는 계획이다. 올 포 원은 여유롭게 "그래서?"라고 되묻는다. 올마이트는 잠시 [[그랜토리노]]의 말을 생각한다.
* 올마이트를 타르타로스로 안내한건 [[츠카우치 나오마사]]였다. 돌아가는 길고 그의 차를 이용한다. 츠카우치는 하필 임시면허 시험일자와 날짜가 겹쳤다고 사과한다. 그러면서 어땠냐고 묻는데 올마이트는 유감스럽지만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예상했는지 "장기전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츠카우치는 또 수속 관계로 정리를 못했다며 "스팅"과 면회는 어쩔 거냐고 묻는데 그때 전화가 울린다.
- 도게자 . . . . 18회 일치
[[일본]]의 풍속.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절하는, 극도의 경의를 나타내는 인사법으로서, 중대한 사태를 사과할 때 등에 사용한다. 보통은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무릎을 꿇고 한다고 하여 궤례(跪礼)한다.
본래 고대로부터 일본에서 귀인이 통행할 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인사를 했는데 여기에서 도게자가 유례하였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된 풍속이었다. [[다이카 개신]]에서 궤례를 폐지하고 중국식 입례를 도입하는 칙령을 내렸으나,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게자는 계속 유지되어 [[가마쿠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의 귀족 사회 예법서인 『홍안예절(弘安礼節)』에서도 공식적으로 유지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다이묘]]가 지나갈 때 [[서민]]은 도게자를 해야 했으며, [[사무라이]] 역시 신분이 높은 귀족에게는 도게자를 해야 했다.
현대에는 일반적인 예법이 아니게 되어, 일반적인 상황에서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기업 측에서 대규모 사고를 일으켰을 때 등, 심각한 상황이라면 도게자를 하기도 한다.
=== 도게자 강요 ===
현대에는 악성 [[클레이머]]가 가게 측에 도게자를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도게자를 강요하는 행위는 '[[강요죄]]'가 될 수 있으며, 이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거나 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 2013년 10월에 의류 체인점 [[시마무라]]에서 한 여성이 타월 몇점으로 클레임을 걸며 점원에게 도게자를 강요하고, 이를 [[트위터]]에 올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강요죄]](도게자를 강요한 것)와 [[명예훼손]](트위터에 사진을 올린 것)으로 체포되었으며, 30만엔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고작 타월 몇장 때문에 클레임을 한 결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 셈.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나온 '달군 철판 위의 사죄'가 도게자로 유명하다. 일명 철판 도게자. 작중에서 효우도 회장이 카이지와의 승부에서 패배한 [[토네가와 유키오]]에게 '사죄'로서 강요한 것이다. "진정 사죄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살을 녹이고 뼈를 태우는 달군 철판 위에서도 사죄를 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이론에서 나온 벌칙으로, 자신에게 도게자를 하면서 돈 갚는 것을 미뤄주거나 떼어먹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대처하는 회장의 취미로서 언급된다. 벌칙은 이 철판 위에서 30초 이상 도게자를 하고 손바닥과 이마가 타는데도 버텨야 하며, 대체로 저항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게자 강요기' 같은 굴욕적인 기계까지 있다.
- 로어셰크 . . . . 18회 일치
범죄자들을 매우 과격하게 다룬다. 빌런 하나를 엘리베이터 통로로 떨어뜨린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범죄자들을 그냥 죽여버리는 바람에 두 건의 일급 살인 혐의로 수배 중. [[뉴욕]] 시민들, 특히 범죄자들은 로어셰크를 매우 무서워한다.
미쳐 날뛰던 [[코미디언(왓치맨)|코미디언]]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고 있던 인물. 저스페직이 코미디언이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하려 한 일을 언급하자 이를 "근거 없는 주장", "자신의 나라에 봉사하며 살다간 자의 '일시적 타락'" 등등으로 부르며 쉴드쳤다. 왓치맨의 도입부도 로어셰크가 코미디언을 죽인 범인을 찾기위해 뉴욕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걸로 시작한다.
왓치맨 1권 후반부에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붙잡힌다. 이후 [[싱싱 교도소]]에 수감. 본명은 월터 조셉 코백스(Walter Joseph Kovacs). 작중 중간중간에 "THE END IS NIGH"[* 종말이 머지 않았다.]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나타나던 붉은머리 남자다.
아버지 없이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그는 10살 때 자신에게 패드립을 친 소년의 눈을 실명시켰다. 이 일로 집안이 경찰 조사를 받으며 보호소행. 어머니에게 쌓인게 많은지라 6년 후 어머니가 끔찍하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잘됐군요,"라는 말 만을 남겼다. 반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16살이 된 코백스는 고아원을 나와 의류공장에서 잡일을 했다. 여자 옷을 만지는 일이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던 도중 한 여성이 주문했다가 흉측하다고 받아가지 않은 드레스를 발견한다. 닥터 맨해튼이 만들어낸 흰 바탕에 검은 얼룩 무늬가 끊임없이 바뀌는 드레스였다. 이에 매료된 코백스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 드레스를 가져가 옷감으로 만든다.
18살 때, 코백스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40여명의 시민들이 제노비스가 소리치는 걸 들었음에도 그녀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걸 방관했다는 소식을 접한 코백스는 2년 전 자신이 얻었던 옷감으로 마스크를 만들고 "로어셰크"로써 활동하게 된다. 이때는 범죄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1975년, 블레어 로셰라는 이름의 6살 된 여자아이가 납치당한다. 코백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15명의 사람들을 심문해 한 양장점의 위치를 알아낸다. 그곳에 간 코백스는 로셰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후 그 양장점에서 길러지는 셰퍼드 두마리의 먹이가 되었다는걸 알아낸다. 그는 셰퍼드 두마리를 죽인 후, 밤 늦게 양장점으로 돌아온 양장점 주인을 묶은 다음에 양장점째로 불태워버린다. 그는 이 일 이후 자신이 "로어셰크 인 척 하는 코백스"가 아니라 "로어셰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교도소 점심 시간 때, 로어셰크는 송곳으로 자신을 협박하던 다른 수감자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끼얹어 심한 화상을 입힌다. 그 죄수가 죽으면서 대규모의 죄수 폭동이 일어나고, 이 틈을 타 로어셰크가 집어넣었던 악당 "빅 피겨"의 습격을 받지만 로어셰크는 그를 죽여버린다. 이후 로어셰크는 2대 나이트 아울과 2대 실크 스펙터의 도움으로 교도소를 탈출한다.
코미디언을 죽인걸 주도 한 사람이 오지만디아스라는걸 알게 된 후, 로어셰크는 2대 나이트 아울과 함께 오지만디아스가 있는 남극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을 막지 못한다. 이후 다른 히어로들이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으로 인해 나타난 세계 평화를 보고 이를 폭로하기를 거부하자 절대 타협할 수 없다며 폭로하기 위해 남극을 떠나려고 하지만 닥터 맨해튼의 손에 죽는다.
- 류현경 . . . . 18회 일치
그녀는 [[초등학교]] 때 [[서태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되어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시작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6년 드라마 《'''곰탕'''》에서 [[김혜수]]의 아역으로 데뷔했다.<ref>[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156992 류현경, 김혜수 아역 시절 "똑 닮았네"] 이투데이. 2015년 07월 0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238611 류현경 "서태지 때문에 배우 됐다" 깜짝 고백] 조이뉴스24. 2011년 06월 04일</ref>
*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2003) - 자운선 역
* [[SBS]] 시트콤 《[[도롱뇽 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2012) - 경자 역
* 《[[방자전]]》(2010) - 향단이 역
* 《[[남자사용설명서]]》(2013) - 주민 역
* 《[[전국노래자랑 (영화)|전국노래자랑]]》(2013) - 오미애 역
* 《[[앵두야 연애하자]]》(2013) - 정앵두 역
* 《[[제보자 (영화)|제보자]]》(2014) - 김미현 역
* 《[[기도하는 남자]]》(2018)
| rowspan="2"| [[방자전]]
| 영화부문 여자 조연상
| 월화극부문 여자 황금연기상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안성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
- 마기/306화 . . . . 18회 일치
* 아르바는 "백웅, 백연" 두 황자를 낳은 뒤라고 밝힌다. 그 뒤 옥염의 육체를 빼앗고 백영과 백룡을 낳았다.
* 아르바는 자신은 정신체이며 육체를 갈아타는게 가능하다고 밝힌다.
* 오로지 친자식의 육체만이 적합하기 때문에 옥염이전에는 그 어머니, 또 이전에는 어머니의 어머니로서 자식을 낳아왔던 것.
*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희생가며 육체를 갈아타온 것이다.
* 아르바는 "그는 아직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 아르바가 방심한 사이 백룡은 자간의 힘으로 부유섬으로 합류, 거기엔 먼저 탈출한 알라딘, 모르지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 덤으로 자신의 전생방식을 알려준 탓에 "지금 백영의 육신이 죽으면 부활하지 못한다"는 약점까지 노출해 버리고 만다.
* 신드바드가 지금껏 해온 일은 모두 자신의 자아로 한게 맞지만, 종국엔 그 자아도 일 일라에게 먹혀버릴 것으로 보인다.
* 백영, 혹은 백룡남매의 어머니 "연옥염"의 자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 아르바가 백룡의 성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이 그 증거.
* 반대로 마지막 페이지의 편집자 멘트가 "복수를 극복한 아들 백룡에게 끓어오르는 애증"이라고 되어 있는 점, 백룡 백영만큼은 자신이 낳은 친자식이라고 인증한 점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모성애"가 발현된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아르바의 마지막 대사(그 분만이 소중하다. 그것 뿐이다)의 의미도 자연스러워진다.
- 마기/320화 . . . . 18회 일치
* 오랜 동료의 충고를 들은 신드바드는 눈이 떠졌다며, 자신은 신이 아니라 왕이고 상회장이라고 수긍하는 듯 했다.
* 현재 매그노슈타르 상공엔 "세상의 구멍"이 열려 있고 다윗과 동조한 "특이점" 신드바드, 그리고 자신이 모아온 막대한 마고이가 있다.
* 다윗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그는 자신이 "특이점"인지도 의심스럽다고 선선히 말한다.
* 지금 그가 성궁에 가기만 한다면 운명을 내다보고 다시 쓸 수 있는 "루프의 관리자"가 된다고 말한다.
* 그는 천년마녀라던 아르바도 알라딘에게 힘을 뺏기고 이번 생이 마지막이 되자 내몰린 거라며 비웃는다.
* 잠자코 사라지는 듯한 아르바.
* 신드바드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며 세계가 자신이 봐온 운명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고자 맹세했던 일을 운운하며 그저 나라를 세우고 동맹을 맺는 걸론 미래까지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러면서 "내 주인이 이렇게 약해빠진 남자라니"하고 한탄한다.
* 신드바드가 발끈하자 "요즘 당신은 바보처럼 먼데만 본다"고 일침한다.
* 쟈파르는 미래에도 자신들처럼 봉기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날테지만, 그건 신드바드의 분신도 자식도 아니다.
* 쟈파르는 자신의 한계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이룬 것을 후세에 맡기는걸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 쟈파르가 전에 없이 열변을 토하자 신드바드도 충격을 받은 듯 할 말을 잊는다.
* 오랜 동료에게 그렇게까지 들으니 눈이 뜨였다며, 자신은 "신의 그릇"이 아니라 끽해야 왕의 그릇, 상회장의 그릇이라고 인정한다.
* "그래도 할 거야. 아르바, 가자 성궁으로!"
* 아르바는 100분의 1이라는 확률을 강요하는데, 신드바드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를 도발하고 자극하는 기폭제인 셈이다.
- 마기/341화 . . . . 18회 일치
* 신드바드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 알리바바와 함께 있는건 좋지 않다고 말하며 "마기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말한다.
*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신드바드는 그가 실제론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뜻대로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 알라딘은 솔로몬이나 우고, 시바여왕의 영향을 받은 점을 인정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영향도 받았고 그건 자신을 조종한게 아니라 "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 신드바드는 성궁과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는 얘기해본 적이 없다며 좀 더 이야기하자고 한다.
신드바드와 셀렌디네는 곧바로 공격자세를 취한다.
* 혼자서 두 마장을 상대해야 하는 알라딘. 제파르는 소리마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사용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마법은 힘마법 "조르프"로 받아내지만 세렌디네 쪽에 당한다. 신드바드와 세렌디네의 마법이 공명하며 울려퍼진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의지로 살아야 하는가? 남을 따라야 하는가?
하지만 신드바드는 어차피 그의 대답은 뻔할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알라딘은 분명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라고 답할 것이다. 신드바드는 그렇게 말하며 재차 공격한다. 알라딘은 재차 날아오는 소리마법을 방어하며 다급하게 움직인다.
신드바드의 말대로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그것을 매그노슈타트에서 배웠다. [[마타르 모가메트]] 학장은 절대적으로 옳은 인간은 있을 수 없다며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더라도 모든 걸 맡기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신드바드는 매그노슈타트 사건을 회상하며 잠시 그리움을 느끼지만 곧 안색을 바꿔 "정작 너는 남에게 내맡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 마기로서 사는 알라딘의 삶은 자신의 의지하고는 무관하다. 그건 솔로몬 왕, 그리고 [[우고(마기)|우고]]가 정한 일이다. 알라딘이 지키고자 하는 세상도 결국 솔로몬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매달리는 것, 결국 남의 삶과 남의 의지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의지"로 살라고 말하는 알라딘은 철저하게 남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신드바드가 는 소리마법으로 그 사실을 신랄하게 전달한다. 알라딘은 소리마법에, 신드바드의 허를 찌르는 지적에 찍어눌러진다.
* 하지만 신드바드의 예상과 달리, 알라딘은 그런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은 솔로몬, 우고는 물론 알리바바, 모가메트,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 그리고 신드바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 나오자 잠시 당황하지만 곧 코웃음을 친다.
* 알라딘은 그저 반박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신드바드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 어떤 괴로움에 처할지를 헤아려 말한 것이었다. 신드바드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답하기 보다는 미소를 짓는다. 알라딘은 뜻밖의 반응에 놀란다. 신드바드는 그제서야 입을 연다. 그에게 "신이 된 이후의 고독까지 걱정해주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신드바드는 알라딘이 "착하다"며 자신에게 "지배자의 고독"은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한다. 알라딘은 우고도 그것 때문에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재차 묻는다. 그러자 자신에겐 다윗과 아르바가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는데, 알라딘은 믿지 않는다.
- 마기/346화 . . . . 18회 일치
* 아르바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라는 고독감을 느낀다.
* 두 번째 신드리아 왕국을 건국했을 무렵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나타나 자신이 이 시기에 던전 후르후르를 공략했다고 밝힌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자신이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마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 일라에 대한 이야기도 잊고 "다윗의 확신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알리바바의 말대로 다윗은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고 성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그걸 막기 위해 되살아난 건데, 정작 그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다윗이 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긴 커녕 회유당해 하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는 김에 [[우고(마기)|우고]]와 일곱 진들 조차도 그의 편이 되어버린 것도 다시금 강조한다. 신드바드는 새삼 그동안 성궁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그가 생각에 빠진 한 편 아르바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일 일라, "그 분"의 힘을 되찾기는 커녕 자신의 힘 조차 잃고 말았고 이제는 그 분의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그녀는 문득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깨달은 그녀는 지금껏 실감하지 못했던 적막감에 빠져든다.
마치 암흑천지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고독. 알리바바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한다. 그는 아르바 또한 신드바드의 동료가 됐으니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일에 동의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르바의 태도는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는 듯 심드렁하다. 알리바바는 그녀가 딱히 신드바드에 찬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신드바드는 지금껏 던전에서 그래왔듯 도전자에게 자신의 질문을 던지려 한다.
* 이번만큼은 그 규칙이 깨진다. 알리바바는 시간도 없으니 이런 짓은 그만하라며 신드바드의 질문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것도 그만하자. 그보다 나은 길은 없는가?"라고 되묻는다. 이런 전개에 아르바는 패턴을 깼다며 조금 놀라지만 신드바드는 별로 동요하지 않은 채 "없다"고 잘라말한다.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에게 펼친 논리를 재탕 한다. 그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솔로몬 대왕을 비롯한 "보다 높은 곳의 신"들의 의지다. 아울러 그의 "세상을 루프로 환원한다"는 정책에 동의하고 추종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신드바드가 두각을 드러낸 것이며, 신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섭리 앞에 알리바바 개인의 윤리관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승자가 선택하는 길이야 말로
* 그런데 알리바바는 "과연 그럴까요?"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알리바바는 아르바를 바라보며 "왠지 그런 예감이 든다"고 말한다. 아르바는 알리바바의 바보같을 정도로 자신감에 찬 모습에 기가막혀 한다.
- 박노식(1971) . . . . 18회 일치
1994년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영화에 데뷔하였으나 주로 연극판을 전전했고 진짜 영화배우로 유명해지고 소속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 백광호로 출연하면서다. 감독까지 감탄한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당시 코미디언들도 수도없이 패러디[* 개그맨 [[김시덕]]이 개그콘서트 코너에서 많이 했는데, 그 코너에서 [[송강호]] 역할이었던 인물이 [[정형돈]]. --물론 정형돈은 송강호 스타일과 별로 비슷하지 않았다--]했었고 다른 연예인들도 성대모사를 하곤 했었다.
허나 이게 독이 되어서 식당에만 가도 극중 배역인 백광호도 아니고 백광호가 자꾸만 찾는 "[[향숙이]]다!"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진짜 두들겨 패고 싶었다고.(...) 나중에 시트콤인 미라클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만 백광호 스타일로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해서 굉장히 상심했다고 한다. 본인의 이름을 모르는 걸 떠나서, [[빵꾸똥꾸|역할명 자체가 향숙이가 아님에도 향숙이라고 불리는 것]]이 한이 된 듯.[* 심지어 박노식을 닮았다고 평가받던 당시 [[SK 와이번스]]의 야구선수 [[김연훈]] 선수(현 [[kt wiz]])의 별명도 백광호가 아니라 [[향숙이]]였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야구팬들에게 향숙이라고 불린다. --솩향숙에서 콱향숙으로-- --근데 김연훈이 상당히 싫어하는 별명이다 [[안습]]--] 비슷한 시기 영화 [[시실리 2km]]에서 비슷한 느낌의 --외모로 승부하는-- 신스틸러 역할로 나왔던 [[우현(배우)|우현]]이 똑같이 주목을 받은 뒤, 오히려 계속 잘 나가게 되고 몇년 뒤에 다양한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까지 성공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케이스.
어쨌거나 살인의 추억은 명실상부하게 그의 출세작이었고 소속사에도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소속사에 들어간 것도 완전 독이 되었다. 소속사의 권유로 [[그놈은 멋있었다]]와 '''[[여고생 시집가기]]'''에 출연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가지 더 눈물 나는 것은 이런 영화에 나오겠다고 '''[[올드보이(2003)|올드보이]]'''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출연을 고사한 것이다! 하지만 배우 본인이 후에 인터뷰 한 바에 따르면 당시 소속사의 추천 등으로 [[여고생 시집가기]]에 출연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감독님이 무조건 흡족한 얼굴로 좋은 연기였다며 OK를 외치는 통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ari2332&logNo=140009226878|당황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이후로 영화 [[괴물(영화)|괴물]]의 [[흥신소]] 직원으로 나와 박희봉([[변희봉]] 분)의 삥을 뜯는 역으로 나왔고 [[미녀는 괴로워]]에도 주인공 한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짜장면 배달부로 나오지만 그럴듯한 배역은 잘 맡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미생의 함차장이나 영화 [[명량]]의 [[김억추]][* 김억추장군도 강진군 출신이다.] 장군 등 단역으로 은근히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다 2016년에는 [[삼국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특촬물]]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 [[노식]][* 이 쪽은 외자로, 성이 노 이름이 식이다.]으로도 레귤러 등장.
|| 당신이 잠든 사이에 || 노숙자 || ||
||<|3> 2006년 || [[미녀는 괴로워(한국 영화)|미녀는 괴로워]] || 자장면 스토커 || ||
||<|2> 2017년~2018년 || MBC || [[로봇이 아니야]] || 노숙자 || ||
||<|10> 2016년 || KBS2 ||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 || || ||
|| SBS ||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박충권 || 특별출연 ||
|| OCN || [[신의 퀴즈]] || 두 얼굴의 남자 || ||
|| SBS || [[제중원(드라마)|제중원]] || 피부병 환자 1 || ||
||<|3> 2009년 || tvN || 세 남자 || || 특별출연 ||
|| Superaction || 도시괴담 데자뷰3 || || ||
- 박승호 (야구인) . . . . 18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2년]] [[9월 26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박승호'''(朴承昊, [[1958년]] [[2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전 [[NC 다이노스]]의 1군 타격코치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 지도자 경력 ==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프로 야구계를 떠나 [[2008년]] 그는 [[공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37047 공주고 야구 감독 경질 논란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한국일보]] - 2008년 8월 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8/h2008080802505591830.htm "북일 · 대전, 어깨가 든든"]</ref><ref>[[엑스포츠 뉴스]] - 2009년 8월 기사 [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103120/language/ko-KR/Default.aspx "봉황대기 고교 야구 - 안승민의 공주고, 8강행 확정"]</ref>
[[2015년]] [[4월 22일]] 잔류군 총괄코치에서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ref>{{뉴스 인용 |저자= 박정욱|제목= NC 박승호 잔류군총괄, 타격코치로 합류..타격 부진 타개책|url=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202512 |뉴스= 스포츠서울|출판사= |위치= |날짜= 2015-04-22|확인날짜= 2016-06-10}}</ref>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한국 프로 야구 2010 시즌 7월, 올스타전]]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에서 치뤄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박승호가 레전드 [[지명타자]]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고전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ref>엑스포츠 뉴스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489 "이만수, 김성래… 삼성 레전드 등장에 대구 야구 팬 열광"]</ref>
|1990 ||0.307 ||110 ||398 ||64 ||122 ||17 ||1 ||20 ||201 ||75 ||3 ||1 ||50 ||3 ||45 ||12 ||0 ||홈런 3위<br>지명타자 골든글러브
{{KBO 골든글러브 지명 타자}}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
- 박하나(배우) . . . . 18회 일치
||<|2> 2012년 || tvN || [[일년에 열두남자]] || || 단역 ||
|| [[투윅스]] || 장영자 || 조연 ||
|| 7월 28일 || KBS2 || [[1대 100]] || 1인 참가자 || ||
|| 12월 30일 || MBC || [[MBC 연기대상]] || 연속극 부문 여자 신인상 수상자 || ||
||<|7>2016년 || 3월 10일 || KBS2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 게스트 || [*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유재석]]을 상대로 실제 뺨을 때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 주면서 "무려 재석의 입만 때린 여자"라는 예능감을 보여 주었다.] ||
|| 9월 15일 || KBS2 || 웬만해선 이 춤을 막을 수 없다 - 붐 샤카라카 || 참가자 || 추석특집 ||
|| 10월 13일~ 10월 20일 || tvN || [[내 귀에 캔디]] || 참가자 || ||
|| 12월 31일 || KBS2 || [[KBS 연기대상]] || 일일극 여자 우수상 후보 || ||
||<|7> 2017년|| 2월 22일 || Mnet || 제6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 || 시상자 || ||
|| 6월 22일 || EBS 1TV || 금쪽같은 내 새끼랑 || 출연자 || ||
|| 12월 02일 || MBC 뮤직 || 제9회 멜론 뮤직 어워드 || 시상자 || ||
|| 2017년 || 9월 18일~ || 채널A || [[풍문으로 들었쇼]] || 진행자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21488|관련 기사]] ||
|| 10월 25일~ || KBS JOY || 얼큰한 여자들 || MC || ||
* [[삼성전자]] - 갤럭시S4
||<|2> 2015년 || 제10회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 아시아모델상시상식 || 연기자 부문 뉴스타상 || ||
|| [[MBC 연기대상]] || 연속극부문 여자 신인상 || [[압구정 백야]] ||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5년 출생]][[분류:2003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춘천시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
- 박학기 . . . . 18회 일치
| 가족 = 형제자매 관계는 형 1명 <br/> 자녀는 슬하 2녀<br /><small>(장녀 [[마틸다 (음악 그룹)|박승연]], 차녀 박정연)</small>
| 배우자 = [[송금란]]
'''박학기'''([[1963년]] [[3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박학기는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렸을 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로 이사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3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나오고 1988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3집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곡으로 정식 가수 데뷔하였다.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로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있다.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정규 앨범 6장과 베스트 앨범 1장을 발표하며 포크 가수로 자리매김하다가 [[2002년]] 이후 활동이 뜸했던 박학기는 [[2008년]]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고 자신의 두 딸 박승연, 박정연과 함께 부른 〈비타민〉이 인기를 끌었다.<ref>
* [[서울예술대학]] 응용미술학(현 시각디자인)과 졸업
* 2집 《자꾸 서성이게 돼》[1990.11] [2012.02.03] Re-Mastering
** 자꾸 서성이게 돼
== 참고 자료 ==
* [http://news.donga.com/3/all/20080817/8618408/1 박학기, 두 자녀와 함께 6년만에 신곡]
{{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자}}
[[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밀양 박씨]]
- 박홍 (신부) . . . . 18회 일치
|배우자 = 없음
|자녀 = 없음
'''박홍'''(朴弘, [[1941년]] [[2월 27일]],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며 [[천주교]] [[예수회]] 소속 성직자이다. [[천주교]] 신부로서 정치 관여 발언을 많이 했고, 서강대 총장을 지냈으며 [[극우 반공주의|반공주의]], [[보수주의]] 성향의 언론인이기도 했다. [[1994년]] [[주사파]]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
[[1994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 주사파 관련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ref>[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767077 1등신문 대전일보 59년 정통언론<!-- 봇이 붙인 제목 -->]</ref>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종교분과위원장을 지냈으며, '주사파'발언 이후 경찰관 2명이 그를 밀착하며 신변을 보호하기도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hani.co.kr/h21/data/L000626/1pau6q2f.html 한겨레 21<!-- 봇이 붙인 제목 -->]</ref> [[1997년]] 총장직에서 퇴임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0004186&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97년]] [[5월]] 박홍이 제소되자 언론인 [[이도형 (1933년)|이도형]]은 [[노재봉]], 변호사 [[오제도]] 등 보수인사 70여명이 후원회를 꾸렸는데 이때 당시 후원인단 대표를 맡았던 그는 '대표적인 반좌익인사인 박 전 총장에 대한 탄압을 물리치기 위해 후원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1991년]] [[예수회]]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ref name=gg/><ref>{{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6968.html|제목=영안실서 김귀정 주검 지키며 경찰 침탈 맞서 / 박정기|출판사=한겨레|저자=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구술작가 송기역|날짜=2012-04-05|확인날짜=2012-04-29}}</ref> 박홍 신부의 기자회견 이후 부터 김기설 학생의 분신 자살에 배후가 있다는 보도가 언론에 도배질을 하기 시작했고,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검찰과 경찰은 합동으로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공안몰이 수사를 벌여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며 강 씨를 구속기소했다.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f name=gg>{{웹 인용|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제목=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출판사=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저자=정책홍보팀|날짜=2007-11-13|확인날짜=2012-04-29}}{{깨진 링크|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 }}</ref>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ref>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 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운동권 인사들은 박홍 총장에게 근거를 대라며 추궁했다. 이에 대해 박홍 총장은 "주사파 관련 내용을 고해성사 때 들은 내용"이라고 답했다. 이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김동주 공동의장 등 신도 6명이 박홍 신부를 '고해성사 비밀 누설 혐의'로 서울대교구에 고발했다. 당시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이었던 염수정 추기경은 사건 조사를 담당했고 박홍 총장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83100289119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8-31&officeId=00028&pageNo=19&printNo=1997&publishType=00010|<한겨레신문>1994년 8월31일자 19면]</ref>
[[분류:194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반공주의자]][[분류:서강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예수회]]
- 백승주(정치인) . . . . 18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방송 사고로 소속이 잘못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JTBC]]는 여러번 백승주를 [[더불어민주당|민주당]](더민주) 의원으로 표기한 전례가 있다.]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국방부 차관[br]자유한국당 경북도당 위원장[br]한국정치학회 부회장[br]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br]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관료, 정치인.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2016년 국감에서 [[김제동]]이 7월경 방송에서 "사모님을 아주머니 불러 13일 영창을 갔다왔다"라는 말을 했다며 "군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해 증인 요청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라는 좀 더 시급한 문제를 다뤄야 하는 곳에서 이런 말을 한 것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0804&yy=2016|불법이지만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 국방부 차관 재직당시인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나라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이 MS 소프트웨어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다. 윈도 서버 접근 권한인 '사용자 서버 접속 허가'(CAL·Client Access License) 구매 숫자를 훨씬 초과해 윈도 서버에 접속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MS사는 피해 액수가 무려 연 2011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으나, 백승주는 '''라이센스 등록 안하고 접속하는 곳 만큼 등록해놓고 접속 안 하는 곳도 많다! 라이센스 관리를 미숙하게해서 그렇지 플러스 마이너스 따져보면 우린 정당하게(?) 돈 내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 1달러도 못 준다! => 우리가 자체 조사해보니 불법 사용자도 없더라![* 말이 자체 조사지, 군부대와 군시설에 공문 보내서 혹시 불법으로 쓰는 곳 있으면 자백해라 정도 였을 것이다.] => 못 믿겠으면 니네가 니네 비용으로 전수조사해서 증명해라! => 대신 군사기밀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당연히 우리는 조사에 협조도 못해준다!!!'''라는 식의 --어거지--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당연히 MS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항의 했으나, 국방부는 배째란 듯이 아예 MS불매 운동에 시동을 걸었고 MS는 --울며 겨자먹기로--국방부와 MOU를 체결하며 이에 대해선 그냥 묻지 않는 것으로 끝을 내버렸다.
2. 한국국방연구원 소속 연구자인 동시에 국방부 차관을 엮임하였기에 차관 임기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조기퇴직과 함께 국회의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주변인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전(前) 국방부 차관은 예비역 중장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하는데, 한국국방연구원장도 예비역 중장이기에 모양새가 이상해져서 그냥 국회의원을 하기로 했다고...--한 하늘에 두 개의 4스타는 있을 수 없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사실 무난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2위 후보자였던 남수정 후보가[* 그것도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창당한 원외 진보정당인 [[민중연합당]]의 후보였다.] 38.1%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미시에서도 친박이라는 브랜드가 그리 잘 먹히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장세용|이변이 일어났다]].
- 봉준호 . . . . 18회 일치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
| 배우자 =
| 자녀 =
2009년 5월 4번째 장편 《[[마더 (2009년 영화)|마더]]》를 개봉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며, [[김혜자]]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소를 배경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을 포착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난감한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도록 유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서늘한 풍자를 심어 놓는 특유의 영화 감각을 가지고 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5071055411120 봉준호 감독 '무(無)평에 상처받은 적 있다'], 마이 데일리, 2008년 5월</ref>
영화 《[[마더 (2009년 영화)|마더]]》가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비평가 협회에서 받은 외국어 영화상만 무려 7개로 보스톤평론가협회, 남동부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혜자]]는 헐리우드 톱배우들을 제치고 LA 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2011년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프랑스]] 만화를 각색한 《[[설국열차]]》를 준비한후,<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0627 네이버 책 '설국열차'], 뱅자맹 르그랑, 장 마르크 로셰트, 자크 로브 저, 김예숙 역, 현실문화, 2009년 8월 5일</ref> 2012년 초 크랭크인하여 2013년 7월 31일에 개봉하였다.<ref name="설국열차">[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cid=307165&iid=364668&oid=020&aid=0002268463&ptype=011 프랑스 만화 각색한 ‘설국열차’ 400억대작 이끄는 봉준호 감독], 동아일보, 2011년 8월 16일</ref>
* 봉준호의 외조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 (1909년)|박태원]]으로서, [[한국전쟁]] 당시 장녀를 데리고 [[월북]]했고, 봉준호의 어머니를 포함한 그 외 2남 2녀는 서울에서 자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1951696 '천변풍경'의 구보 박태원, 청계천변서 다시 만나다] 프레시안. 2009년 06월 15일</ref> 2006년 6월 제14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이들 모녀가 재회화여 화제가 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1988703 호랑이가 고양이 낳으랴..3대 이은 예술명문가] 스타뉴스. 2009년 06월 30일</ref>
! 배우 !!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 !! [[살인의 추억]] !! [[괴물 (2006년 영화)|괴물]] !! [[마더 (2009년 영화)|마더]] !! [[설국열차]] !! [[옥자]]
| style="text-align:left;"| [[옥자]]
| {{small|*}} 《인플루엔자》||[[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rowspan="2" | 2004년
| {{small|*}} 《모자》||단편영화||(촬영)
* [[르노삼성자동차]] NEW SM5 (2010년) ※[[고현정]]과 공동출연
;옥자 (2017년작)
* [[2011년]] 미국 캔자스시티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2010년]] 영화전문기자 선정 올해의 영화상
{{둘러보기 상자 묶음
- 블랙 클로버/102화 . . . . 18회 일치
*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카호노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아스타와 [[노엘 실버]], 자기 오빠랑 합쳐서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다.
* 언제나 사람을 개처럼 굴리는 [[야미 스케히로]]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막 부상에서 완쾌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겐 당분간 임무를 맡지 말라고 휴식을 명령한다. 하지만 임무가 없으면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아스타에겐 오히려 고역이었다. 임무를 빼면 자신에게 뭐가 남냐는 아스타에게 야미는 근육이 남는다고 냉정히 말한다. [[핀랄 룰러케이트]]가 시간 때우기 적당한게 있다고 말하려는데, 마침 아스타의 치료법을 찾아 던전으로 떠났던 [[매그너 스윙]]과 [[락 볼티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스타는 고마웠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던전에서 뭘 잘못 먹었는지 중2병에 푹 쩔어서 돌아온 두 사람. 매그너는 쓸데없이 큭큭거리며 폼잡는 머저리가 되었고 락은 전파나 수신하는 멍청이가 되어 돌아왔다. 아무튼 마력이 넘치는 걸로 보아 강해지긴 한 모양. 매그너는 쓸데없이 강해지기만 했을 뿐 치료법은 못 찾았다고 사과하는데 아스타가 말끔하게 나은 두 팔을 들어보이자 겨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러고 있자니 이번엔 [[고슈 아들레이]]와 [[고든 아그리파]]가 귀가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들도 치료법을 찾아 왕립 도서관으로 향했었는데. 아스타는 이들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려 하는데.
마법책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아 [[혼모노]]로 각성해버린 두 사람. 심각한 수준의 마법 [[오타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도 결국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역시 건재해진 아스타를 보고 제정신을 차린다. 둘은 자기들이 고쳐준댔는데 왜 멋대로 나았냐며 저주를 걸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봐야 중증의 [[시스콘]]과 [[자폐증]]환자라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의 형상을 포기한 [[챠미 퍼밋슨]]. 마법버섯에게 기생 당해 자기 몸에서 자라난 버섯을 자기가 먹는 기이한 마법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챠미의 먹성으로 먹어도 하나 먹으면 세 개가 자라는 미친 번식 속도 때문에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레이는 차마 이 꼴로는 변하지 못했는데 변신을 똑바로 못했다며 자학하고 있다. 역시 아스타의 치료법은 찾지 못한 채 이상한 버섯이나 산열매 따위나 잔뜩 가져왔다. 야미는 챠미만큼은 자리 비운 만큼 급료에서 제한다. 버섯은 매그너가 태워서 없애준다.
* 대충 개판이 정돈되자 야미는 핀랄이 소개하려고 했던 "시간 때우기 적당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축제다. 신참인 아스타와 [[노엘 실버]]는 모르는 일이다. 마법기사단은 공적에 따라 별을 받고 경쟁한다. 1년에 한 번씩 이 별의 숫자를 발표하고 1위 기사단을 정하는 축제를 벌인다. 그게 "성과제". 클로버 왕국에서 가장 큰 축제기간이며 모든 클로버 국민들이 즐긴다. 뜻밖에도 야미도 이 축제를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입으로는 "의욕은 없다"고 하지만 차려입은 것부터가 의욕 만빵이다. 고슈처럼 답없는 시스콘은 틀어박혀있겠다고 하지만 핀랄처럼 헌팅 매니아는 한껏 설레고 있다.
* 사실 아스타가 굳이 이들을 부른 것은 선물이 있어서였다. 그는 키아토에게 잘린 다리를 잘 가져오라고 했는데 키아토는 그 말대로 물마법으로 보존해 잘 간수하고 있었다. 아스타는 [[마녀왕]]의 마법 "멸주의 피고치"를 병에 담아 왔다. 마법을 풀어놓자 순식간에 키아토와 카호노의 상처를 치료해 버린다.
최고의 기분이 된 카호노는 1년에 한 번 뿐인 축제를 즐기자며 노엘과 아스타, 오빠 키아토에게 더블 데이트를 제안한다. 경악하는 노엘과 사실 그게 뭔지도 모르는 아스타.
- 블랙 클로버/78화 . . . . 18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78. '''약자의 선언'''
* 실프는 유노와 친한 아스타가 나타나자 질투를 감추지 못한다.
* 유노가 "같이 살던 사이"라고 말하자 충격에 빠져서 비틀거린다.
* 실프는 챠미는 무시하려고 하다가 유노가 "그때 (구해주다가)덮쳐 버려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자 오해하고 질투를 폭발시킨다.
* 챠미에게 꼬맹이가 마법을 써서 유노를 농락한다고 디스하자 챠미는 자기가 19살로 연상이라고 도발한다.
* 두 여자가 투닥거리는 사이 핀랄 룰러케이트도 일행과 합류.
* 아스타가 그가 누구냐고 묻자 핀랄이 자신의 동생이며 금색의 여명단 부단장이라 소개한다.
* 랜길스는 형은 아직도 검은 폭우의 운전수 따위나 하고 있냐고, 그 모양이라 자기가 보그가를 이은 거라고 디스한다.
* 그런데 기세좋게 말해놓고 갑자기 뒤로 떠어드는 아스타.
* 아스타가 점액을 제거하자 주민들이 풀려난다.
* 라고스는 자기 마법을 베어버린 아스타에게 경악하며 공격하는데, 핀랄이 다시 한 번 공간마법으로 아스타를 피신시킨다.
* 유노는 라고스를 자세하 흐트러진 아스타를 바람 마법으로 거들어서 안전하게 착지시킨다.
* 핀랄은 자신은 동생에게 이길 수 없지만 "검은 폭우는 금색의 여명을 이긴다!"고 외친다.
* 야미가 세계수 마법은 여전히 대단하다고 칭찬하자 윌리엄은 "적의 덕분"이라며 서로 말을 빙빙 돌린다.
* 벤전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직구를 던지자 야미도 더이상 말을 돌리지 않는다.
* 자신은 직감을 믿는 인간이라는 말과 함께
- 블랙 클로버/84화 . . . . 18회 일치
* 파나의 공격으로 마녀의 숲이 불타고 여왕은 자신이 점친 운명이 어긋나는걸 감지한다.
* 노엘 실버는 침략군을 막기 위해 자신들에게 협조해달라고 여왕을 설득한다.
* 아스타는 그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는데 던전에서 만난 적이 있던 마르스와 "백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스타는 파나 쪽은 절망의 베토처럼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마르스는 살아있었다는 것에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판젤 크루거(젤)도 다이아 출신이라 그런지 마르스를 알아본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삼마안과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며 치를 떤다. 이런 우려들 속에서도 여왕은 침략군이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니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게 없애준다고 큰소리친다.
* 화염정령마법 "샐러맨더의 숨결". 그녀가 타고 있는 비룡이 입에서 거대한 화염구를 쏜다. 단 한 방으로 마녀의 숲을 가려주던 안개가 날아가고 숲이 불타오른다. 불길 속에서 당황한 마녀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여왕은 이 위력을 체감하고 나서야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그녀도 파나가 불의 정령 샐러맨더를 다룬다는걸 눈치채는데 그 상태는 비록 불완전한데도 이만한 위력을 내는 것에 놀란다. 이런 내용은 점쳤던 결과를 뛰어넘는 것인데, 여왕은 운명이 어긋나고 있다고 직감한다.
* 정신을 잃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꿈처럼 야미 스케히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자신이 "운명"에 묶인 몸이라고 말하지만 야미는 "그 녀석이 싫다"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말하는데. 서서히 눈 뜨는 바네사의 시야에 그 야미의 등과 닮은 아스타의 등이 보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스타만이 아니라 노엘 실버, 핀랄, 게다가 젤 일행까지 있는걸 보고 당황한다.
* 바네사는 아무튼 여왕에게 이야기해 아스타의 팔을 고쳐주겠다고 하는데 이미 그 "거래"에 대해 알고 있는 아스타는 단호히 거절한다. 아스타는 바네사가 희생하는 그런 방식이 싫은 것인데 바네사는 바네사대로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고집을 부려서 옥신각신하게 된다. 어지간해서는 결판이 안 날거 같자 아스타는 자신에게 최종 수단이 있다며 그리모어를 꺼낸다.
* 아스타는 팔에 감았던 붕대도 풀어버리고 입으로 숙마의 검을 끄집어낸다. 그러더니 검으로 저주에 걸린 팔을 내리찍는다. 저주를 풀기 위해 시도한 것 같지만 풀리기는 커녕 부러진 팔에 충격만 주고 실패한다. 바네사는 무슨 짓이냐며 혼자 힘으로 아둥바둥대 봐야 운명의 힘 앞에선 안 통할 때도 있다고 꾸짖는다. 하지만 아스타는 동료를 희생시키는게 자기 운명이겠냐며 "그딴 놈" 말은 듣지 않을 거고 운명을 박살내서라도 이 팔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바네사는 또 한 번 야미의 모습을 떠올린다.
* 노엘 실버는 우두커니 있는 여왕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다이아몬드의 침략군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 그녀는 아스타는 강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니 저주를 풀어달라고 말한다. 게다가 아스타가 침략군과 싸운다면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도 힘을 빌려줄 테니 전력보강이 될 거라고 설득한다. "여왕이라면 이 숲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해." 여왕은 그것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순순히 아스타의 저주를 풀어주고 전보다 튼튼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 하지만 여왕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바네사와 아스타의 반마법의 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 여왕의 마법은 클로버 왕국에선 아무도 고치지 못했던 저주를 치료한다. 같은 회복마법 구사자인 노엘도 그 실력에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바네사는 원래 여왕을 속여먹이고 아스타의 반마법의 검으로 어떻게든 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마녀의 숲의 여왕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며, 애초에 바네사가 숲에 억류된 상태에서 아스타와 재접촉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바네사를 숨겨두고 아스타의 저주만 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여왕이 쓰는 마법은 "혈액 마법"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용할 때의 모습을 보면 혈액만이 아니라 "혈관" 자체가 생성되어 거기서 혈액이 방출되는 모습이다. 아스타의 상처에도 핏줄이 접촉하는 듯한 모습인걸 보면 본체는 이 혈관쪽이라 해도 좋을 듯. 바네사의 실 마법과 연관점일지도 모른다.
여왕은 반마법의 검을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는데 그게 아스타를 세뇌하겠다는 건지 반마법 자체를 빼앗겠다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일단 저주를 풀어준 것 같긴 한데 완전히 풀어준 건지, 다른 리스크가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 슈퍼히어로 . . . . 18회 일치
[[초인]](Super), [[영웅]](Hero)이 등자하는 [[픽션]]. 혹은 그러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
슈퍼히어로는 대체로 [[손오공(드래곤볼)|전투 그 자체를 목적을 삼고 있지 않으며]], [[경찰]]이나 [[소방관]]과 같은 역할을 --[[원펀맨|개인적으로 취미로]]-- 하고 있다. 물론 히어로가 다양해지면서 전투광도 있긴 하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슈퍼히어로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배경이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설사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가 아무리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된 존재라고 하여도 하여도, 그 활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 특성상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찰이나 군인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치광이 과학자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공격한다던가, 사악한 목적을 가진 비밀결사가 암약한다던가, 파괴적인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던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슈퍼 빌런이 날뛴다던가. 그러다보니 경찰이나 군대조차 버거워지고, 그러기에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부패해서 빌런은 물론 경찰, 군대와 싸우게 되기도 하며 이럴 경우 슈퍼히어로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무고한 약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자유의 투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슈퍼히어로의 활동은 [[자경단원]] 활동이다. 때때로 인기인으로서 묘사될 경우 사회의 안녕보다는 인기를 목적으로 슈퍼히어로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라도 자경단원 활동을 필수적으로 하게 된다.
초기에는 단순한 이야기가 많아서 관점에 따라선 유치하고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슈퍼히어로 물은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는데, 갈수록 단순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아니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내놓았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슈퍼히어로의 존재의의, 슈퍼히어로의 갱니적인 내면 갈등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리하여 역으로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할 점을 던지는 깊이있는 작품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 능력자 배틀 ===
특성상 작품이 [[능력자 배틀]]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초능력]]'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지혜]], [[용기]] 같은 정신적인 측면의 역할도 많이 나타난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약간 활용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나 전술로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여담으로 슈퍼히어로 장르의 작품은 일반적인 [[배틀 만화]]보다 오히려 [[파워 밸런스]]가 상당히 엉망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저스티스 리그]]를 압도하던 하얀 화성인을 일반인들이 [[라이터]] 하나로 제압당하거나.(…) [[뱃신]] 같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화성인들의 약점이 불이라서다.]
슈퍼히어로는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데 주로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한 보복 우려나 일상생활의 보장 등의 이유가 있다. 만약 이 정체가 들통나면 무슨 사단이 벌어지는지는 불행 히어로의 대명사 [[스파이더맨]]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따라서는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영웅을 믿을 수 없다는 묘사가 나오거나 아예 정부에서 얼굴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히어로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데 [[슈퍼맨]]은 얼굴을 가리는 코스튬이 아니지만 이 비밀 신분은 확실하게 만들었다. [[판타스틱 포]]의 경우 없다. 그냥 자신들에 관해 다 공개했다. [[헐크]]의 경우에는 딱히 숨기고, 뭐고 할 상황이 아니다.
*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 식극의 소마/192화 . . . . 18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의 승리 소식에 안도하는 나키리 에리나. 그러나 곧이어 나키리 아자미의 측근이 하야마 아키라의 퇴학처분을 알린다.
* 뿐만 아니라 다른 루트의 쿠로키바 료, 나키리 아리스를 비롯한 반역자 전원이 패배. 퇴학처분 되었단 소식이다.
* 설상가상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나 위협을 가하자 에리나는 곧바로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시험장으로 향한다.
* 낙승으로 테스트를 통과한 나키리 에리나. 센트럴의 수하들의 입에 발린 소리를 물리치며 서둘러 식극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유키히라 소마의 승리. 에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자리에 있던 소마, 하야마 아키라, 시오미 준이 에리나를 발견한다. 소마는 머리가 엉망이라며 뛰어왔냐고 묻는다. 에리나는 민망했던지 서둘러 머리를 고치고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척하며 넘어간다.
소마는 하야마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던 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하야마는 대답이 없는데 그때 센트럴의 하수인인 "아이다 션"이란 남자가 자신이 설명하겠다며 등장한다.
* 그는 나키리 아자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에리나와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특히 에리나가 가출했을 때 수습하고 다닌게 이 사람. 에리나를 보자마자 그때 일을 거론하며 설교를 하는데 시오미는 무슨 볼일이냐며 말을 끊는다.
그가 난데없이 "하야마 아키라의 퇴학"을 공지한다. 하야마도 원래부터 알고 있던 모양인데 "아자미의 요구에 충족 못하면 퇴학"이란 계약조건이었던 것이다. 하야마 자신은 배신에 따른 당연한 응보라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 그런 이들에게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난다. 다른 루트 애들이나 걱정하고 있어도 되겠냐며,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상대는 자신이라고 무서운 얼굴을 한다. 에리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둘러 시험장소로 달려가는데, 왠지 두 사람은 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리나가 결과를 묻자 둘은 어이없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 방금 전 시식 상황. 린도는 뱀처럼 사악한 얼굴로 타쿠미의 요리를 시식하는데... 의외로 간단히 "맛있다"고 해준다. 이어서 타도코로의 음식도 먹더니 적당히 맛있다고 해주고 합격을 선언한다. 원래 시험 과제 자체가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이었고 대결도 딱히 요리실력을 대결하는건 아니었다. 십걸 상대로 빡쎄게 싸우고 깨져나간 다른 루트 학생들관 달리 완전 날림 시험.
* 에리나는 아무튼 두 명은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데 눈치 빠른 타쿠미는 "두 명은"이란 말을 듣고 무슨 얘기냐고 묻는다. 결국 에리나가 상황을 설명한다. 다른 루트의 반역자들은 전멸. 타쿠미는 이런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며 분노를 터뜨린다.
* 그런데 소마는 뭔가 어정쩡하게 분노하고 있다. 타쿠미가 왜 그리 태평하냐고 갈구니 "어쨌든 요리승부로 진 것"이라며 적을 욕할 일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타쿠미도 그 점에는 반박을 못하지만 이 판국에 누구 편이냐며 까댄다. 그러자 소마는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십걸은 학교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않냐는 것.
소마는 여기 네 명이 있다며 "하야마가 떠났으니 한 자리가 빈다", "에리나는 원래 있었고"라고 묘한 계산을 시작한다.
|| 그 자리만 따내버리면 퇴학이고 뭐고 싹 다 뒤집어 엎을 수 있다고.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8회 일치
[[암살교실]] 번외편 1화. '''자택의 시간'''
지난 겨울 방학 중의 에피소드. 실패했던 프로 암살자들이 살생님의 거처를 찾아나선다.
attachment:암살자들.png
* 이 일을 어느 식당에서 동료 암살자들과 이야기한다
* 이 식당은 "아즈사"라는 부인과 "호타루"라는 딸이 꾸려가고 있는데, 암살자들은 연극 연습이라는 핑계로 이런저런 암살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놀랍게도 살생님은 자기 머리 모양의 아지트에서 살고 있었다.
* 맨날 깔끔 떠는 것과는 달리 자기 아지트는 돼지우리. 식완제품이나 레어한 컵라면, 화장품, 덮밥에 딸려오는 생강절임, 재사용 중인 나무젓가락 등등 온갖 지저분한 물건들이 다 쌓여있다.
* 평소에 지출이 헤퍼서 부업이라도 하나 했지만, 평범하게 경마와 복권에 중독된 아저씨였다. 게다가 가난하고 운도 없어서 고작 300엔짜리 마권에 전전긍긍하는 수준. 복권은 정작 자기 손으로는 긁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까볼 수도 없다.
* 살생님은 어른의 자유 공간을 엿봤다고 화를 내는데, 시카는 놀고 먹는거 뿐이면서 뭔 자유공간이냐고 돌직구를 날린다.
* 살생님은 한 달에 한 번 뿐이라며 평소엔 성인군자처럼 하고 있으니 가끔 늘어지는 거라고 변명하지만, 평소에도 빨간책 읽고 있지 않냐고 반박 당한다.
* 그래도 자신의 아지트를 찾은건 학생들도 하지 못한 일이라며 시카를 칭찬하는데, 시카는 "정작 너희 학생들은 암살도 안 하고 뭐하고 있냐"고 쏘아붙인다. 살생님은 "그들은 겨울방학 숙제 중"이라며 그것만은 자신이 도울 수 없고 스스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 어쨌든 발각 당했으니 슬슬 이사를 하겠다고 한다. 자기 스피드로는 30초만에 정리할 수 있다며 사라져 버린다.
* 이후 시카는 식당에 와서 동료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 듣고 있던 여주인 아즈사씨는 "그 주인공인 문어씨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사실 암살자들은 모두 아즈사를 노리고 있다.
* 호타루도 이 문어씨를 아는데, 본업은 선생님이고 "자신과 꼭 닮은 제자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18회 일치
* 마지막까지 살생님을 노리고 있던 4인의 암살자들은 아즈키 부인의 술집을 마음의 오아시스로 삼고 있지만 하필 살생님이 뻔질나게 드나든다.
* 그거 조차도 마시자 마자 흐물흐물 녹는 수준인데, 그 상태에서도 잘만 공격을 피해서 암살자들의 열을 돋군다.
* 뜬금없이 이 멤버(암살자 포함)로 소개팅을 하자는 얘기를 꺼내는데 아즈키 부인은 "그럼 나랑 호타루가 상대역을 해줄 테니 소개팅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 점수가 높은 사람은 아즈키 부인이 직접 "허그"를 해준다는 얘기가 나오자, 암살자 일동은 격한 반응을 보인다.
* 암살자들은 살생님도 아즈키씨를 노리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는데, 결국 단념한다.
* 애초에 떳떳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직업도 아닌 자신들이 아즈키씨를 노린들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에서다.
* 어느날 센고쿠라는 사채업자가 아즈키씨를 납치해간다.
* 사채업자는 아즈키씨를 고위층의 접대부로 쓰겠다며 데려가는데 호타루가 막으려 했지만 초등학생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 뒤늦게 소식을 들은 암살자들은 자신감을 잃고 자신들이 무얼 하겠느냐고 낙담해 한다.
* 그러나 이때 나타난 살생님이 "나라면 30초면 해결"이라며 도발하자 살생님의 아지트에서 찍었던 민망한 사진을 뿌려버린다.
* 학생들에게 폭로당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하고, 암살자들은 아즈키씨를 탈환하러 출발한다.
- 원피스/839화 . . . . 18회 일치
* 상디는 니디가 음식 귀한줄 모르는 "멍청한 왕자"라 디스하는데 열받은 니디는 요리사 코제트를 불러 접시를 집어던진다.
* 식사 후 코제트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되는데, 격분한 상디가 니디를 찾아나서려 하자 욘디가 안내를 자청한다.
* 니디는 그제서야 자기 식사예절을 지적하는걸 깨닫고 "남길 거다"고 말한다.
* 상디는 모조리 먹으라며 "식량의 중요함과 요리에 든 수고를 모르는 멍청한 왕자"라고 독설을 날린다.
* 하지만 니디는 그 자리에 꼼짝말고 있으라며 먹던 접시를 냅다 집어던진다.
* 니디는 "밥짓는 여자"따윌 감싸냐고 빈정대고 레이쥬는 "신사"라고 감탄한다.
* 그 요리는 "아리고"라고 하는 치즈와 감자 요리. 상디는 좋은 요리고 아침부터 만들려면 큰 수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코제트는 자기가 치우겠다고 만류하지만 상디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먹어버리며 "맛도 완벽"이라고 호평한다.
* 상디는 음식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멍청이도, 여자에게 손대는 남자도, 부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왕족의 오만도 모두 자기 사상에 반한다고 일갈한다.
* 잠자코 있던 이치디가 입을 열어 "네 주장은 다수의 약자가 하는 헛소리"라고 폄하한다.
* 저지는 상디의 그릇됨에 "박차"가 가해졌다며, "이 남자"의 악영향이냐고 묻는다.
* 그러면서 자신들의 "기동력"은 잘 알 거라고 하는데.
* 저지는 다시 한 번 "평화롭게 식을 올리자"며 상디의 협조를 구한다.
* 그는 무슨 이유인지 니디를 만나게해주겠다며 안내를 자청한다.
- 윤상현(배우) . . . . 18회 일치
||<bgcolor=#DCE4E9> '''데뷔''' ||<(> [[2005년]] [[이승철]] MV '열을 세어 보아요'[* TV 데뷔는 2005년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
한국나이로 33살 무렵인 2005년 TV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PD 역으로 처음부터 주연으로 데뷔했다. 연기에 연자도 몰랐던 윤상현의 눈빛이 마음에 든 강신효 감독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 캐스팅 후 강신효 감독에게 3개월간 연기지도를 받았으나 연기가 심각하게 늘지 않았고, 최후의 조치로 [[박근형]]에게 연기수업을 보냈는데 너는 드라마 하지 말라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자신도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고, 본인의 실력을 잘알기에 강신효 감독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며 못하겠다고 했으나 감독님의 만류로 결국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기초짜인 윤상현의 --[[발연기]]--때문에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분이 방영을 못할 정도로 너무 심각해서 재촬영을 위해 국내에 프랑스를 재현하기 위한 성(城)세트를 짓느라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었다고 한다.]이후 불꽃놀이, 독신천하에서 고만고만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에서 주경우 역을 맡아 주목받게 되었다. 원래 이 드라마는 [[이태곤]], [[박선영(1976)|박선영]]이 주연이었으며 윤상현은 오히려 주연들보다 더 돋보이는 싸이코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찌질이 연기를 선보인 끝에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제목을 쪼다새, 찌질새 등으로 바꿔 부르게 할 정도였다.[* 원래 이 역할은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윤상현이 감독과의 회의 끝에 어수룩한 마마보이 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또 그전까지 가수와 자영업을 꿈꾸며 연기에 별로 관심없이 연기하던 그에게 진심으로 연기에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였다고 한다. 결국 이때의 호연으로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수목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에서 중요한 역을 맡게 되었다.
MBC 신작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 [[최지우]]와 함께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당시 동시에 방송되던 [[공주의 남자]]와 [[보스를 지켜라]]에 밀려서 10%대 시청률로 종영했다.
[[김승우의 승승장구]] [[박근형]]편에서 [[박근형]]이 너무 지나친 발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하며 심지어 'X배우'라고 거론한 이가 바로 그임을 [[김승우의 승승장구]] 본인 편에서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박근형씨는 "내가 앞서 '[[승승장구]]'에서 '똥배우'라고 질책했던 대상은 특정인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모든 연기자 후배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라며 딱히 윤상현을 지목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183317|#]]
* 내조의 여왕이 잘 되어 일본에도 방영이 됐고 결국 일본에서 음반 제작을 하기도 했다. 앨범 발표 당시 많은 기자들이 모였는데 윤상현은 일본어를 하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그 탓에 옆에 통역관에게 수다 본능을 보였고 통역관은 윤상현의 말을 통역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일본의 기자들은 그의 말 하나하나를 기사화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일본 측에서 한류스타 최초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분 처음이라고 했으며 친절하고 재미있다라는 내용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 2005년 || [[SBS]] ||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 유진하 || 드라마 데뷔작 ||
|| 2015년 || SBS || [[너를 사랑한 시간]] || 본인 || 특별출연[*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연출자인 조수원 PD와의 인연으로 출연.] ||
||<|2> 2018년 ||<|2> MBC ||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 김도영 || ||
|| [[놀러와]] ||<|2> 게스트[* 월요일 밤 11시대에 동시에 방영하는 두 프로그램에 윤상현이 같은 날(6월 1일) 출연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방영일을 사전 협의와 다르게 바꿔버린 것은 《야심만만》 쪽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시청자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욕은 윤상현이 다 먹게 된 억울한 상황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15851|여기]]를 참고할 것.] ||
|| 2018년 || MBC FM4U ||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 게스트[*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의 주연진인 [[한혜진(배우)|한혜진]], [[김태훈(배우)|김태훈]], [[유인영]]과 동반출연.] ||
|| [[MBC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상 ||
- 은혼/599화 . . . . 18회 일치
* 그 결과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자신을 쇼군으로, 양이지사를 가신으로 내세워 연합군과 교섭하는 방안을 제출한다.
*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노부노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쇼군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
* 수뇌부의 변변치 못한 지능지수 때문에 토론은 어느새 다르빗슈의 배우자 문제로 번져간다.
* 긴토키가 자기 식판을 가지고 "지구가 고로케고 그 주위에 뿌려진 메이플 시럽이 해방군이며 중앙에 꽂힌 빼빼로가 우츠로"라는 식판도 상황도 정신나간 비유를 들면서 혼란으로 치닫는다.
* 이 개판을 벌인 당사자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마치 제정신인양 상황을 정돈한다.
* 자신을 내세워 장군과 그 가신으로 혁명군과 접선하라고 권한다.
* 가구라는 자기들더러 가신이 되라는 거냐고 반발하지만 노부노부는 "이용만 당하는 장군에게 가신이란 없다"고 선을 긋는다.
* 단지 이용만 당해온 자신이기에 아는 것도 있다며, 아직 장군의 칭호는 이용할 수 있다는 것.
* 그리고 현재. 그의 의양대로 가츠라와 다츠마는 노부노부를 장군으로, 자신들을 가신으로 내세워 혁명군 수뇌부와 접선 중이다.
* 사천왕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모여들어 자경단을 조직하고 있다.
* 자경단을 위해 카바레 아가씨들이 음식을 준비해 오는데
* 사루토비 아야메는 닌자부대를 지휘하며 다가올 싸움에 대비하고 있는데.
* 츠쿠요와 히노와는 개방됐던 요시와라를 다시 걸어잠그고 노약자를 모아서 보호하고 있다.
* 노부노부는 그게 "가능하다"고 단언하며 그 자신이 경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 적(자신)이 말하는 거니 틀림없다며, 이자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권한다.
* 야토족이 전부 가구라처럼 폭식을 하는지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었는데 무츠가 가구라 이상으로 폭식을 해대면서 "야토족 자체가 폭식을 한다"는 쪽으로 확인됐다.
- 은혼/603화 . . . . 18회 일치
[[은혼]] 603훈. '''닌자랑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
* 원상 황자는 도쿠가와 사다사다 일행과 대면. 사카모토 다츠마의 패기를 높이 사나 해방군 본대를 진격시키며 상황에 기름을 끼얹는다.
* 가는 곳마다 나락의 암살자들이 습격을 가한다.
* 그런데도 군대를 물리지 않는다는 건, 그들 중에 전쟁을 바라고 지구를 멸망시키길 바라는 자들이 있다는 것.
* 젠조는 조정의 추태를 알리고 이 나라엔 가망이 없으니 부디 도망치라고 권한다. 자신이 지구를 탈출하는 배를 준비하겠다는데.
* 에도에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이 남아있는데, 장군의 여동생인 자신이 도피할 수는 없다는 것. 소요는 에도에서 그들과 함께 싸우려 한다.
* 젠조는 "장군의 여동생 같은건 없다"고 하며 "여동생은 오빠의 몫까지 사는 것이 의리"이고, 자신의 의리는 "지켜내지 못한 몫만큼 당신을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 젠조는 자기 친구는 점프 뿐이라고 드립을 치자 랏파도 "내 친구는 별책 마가렛[* 슈에이사의 순정만화잡지] 뿐"이라 응수한다.
* 그리고 친구를 위해 사는 것도, 친구와 함께 죽는 것도 모두 의리. 그러므로 자신과 젠조에겐 소요를 막을 권리는 없다.
* 모두 잃어버린 친구와 함께 발버둥치고자 하는 것이므로.
* 소요는 도쿠가와 노부노부 조차 싸우고 있다며, 자신들은 그 노부노부에게 만큼은 질 수 없다고 말한다.
* 당황하는 노부노부 앞에 나타나는 원상 황자. 노부노부는 무슨 짓이냐고 따진다.
* 다츠마는 그게 천도중 짓이란 것도 모르는 우둔한 지도자라면 해방군도 망할 것이라 받아친다.
* 원상은 자작에게 들은 대로 배짱도 입담도 있다며 다츠마의 패기를 높이 평가한다.
* 우츠로는 피 몇 방울로 만든 엉터리지만,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고 자랑한다.
* 칼을 집어넣고 별과 함께 죽거나, 그 칼을 쥐고 자신과 싸워 여기서 죽거나.
* "도망자 고타로"인 만큼 지구 측에서 우츠로를 상대하게 될 듯.
- 은혼/639화 . . . . 18회 일치
* [[엔죠]] 황자는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앞당기기 위해 불필요한 구역의 전력공급을 차단, 그대로 폭파시켜 침입자를 처리하려 든다.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태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합류. 하지만 모퉁이 바로 뒤에 적의 대병력이 진치고 있다. 적의 화력과 무장 상태가 좋아 진격이 막힌 상태. 뚫자면 골치 아프게 생겼다. 마타코는 이 고생을 해가며 히노카구츠치를 막아도 거기서 끝나는게 아닌 거냐고 반문했다. 반사이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르타나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결국 지구는 끝. 하지만 이미 폭주 상태에 들어간 지구를 돌이킬 수 있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 신스케의 기습으로 적의 화력이 분산되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진격한다. 진형이 무너진 해방군은 앞뒤에서 몰려드는 귀병대 병력에 끼어서 압살 당한다. 신스케는 지상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방해를 해왔던 녀석들이 쉽게 죽게 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시금 시작된 귀병대의 진격. 신스케가 선두로 나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끝없이 베어넘기는, 문자 그대로 지옥. 하지만 신스케는 지옥이야 말로 귀병대에게 어울리는 무대라고 단언한다. 반사이는 참모인 헨페이타가 "희망"이란 불확실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마타코는 맨날 로리만 입에 달고 사는 변태 보단 방금 전 그게 훨씬 정상이라고 대꾸한다. "평소답지 않다". 그런 거라면 헨페이타가 문제가 아니다. 헨페이타는 사실 자기도 그들과 함께 진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답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 잡무를 떠받은 바토우가 투덜대면서도 일처리를 시작한다. 그의 부하가 해방군 모선의 네트워크에 컴퓨터를 연결한다. 그 컴퓨터에 있는 것은 데이터만 남은 상태의 [[한카이]]. 증원군의 임무란 한카이의 능력으로 히노카구츠치를 해킹하는 것이다. 한카이는 부팅되자 마자 자신의 육신을 빼앗은 지구인을 위해 일하라는 거냐며 기막혀한다. 통신으로 연결된 헨페이타는 바로 그런 이야기라며 기공도사라 불린 그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말한다. 게다가 이미 별을 부술 만한 에너지가 모인 상태니, 외부에서 두들기는건 너무 위험한 일. 한카이라면 최적의 인물이다.
사루가쿠는 자기들은 머리가 나빠서 한카이처럼 보이지 않는 벽은 어쩌지 못하지만, 보이는 벽을 부술 머리는 있다고 농담한다. 적을 박살내는 그의 행렬에 바토우도 동참한다. 같은 삼흉성인 이상 한카이가 부수지 못하는 벽은 자기들에게 권리가 있다면서. 헨페이타는 결국 둘 다 일벌레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폭음과 연기가 뒤따랐다. 바토우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던 사루가쿠는 폭발음과 함께 바토우의 무전이 끊기자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도 한 발 늦기는 마찬가지였다. 바토우가 그랬던 것처럼 눈부신 빛이 뒤따른다. 그의 무전도 소실. 헨페이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설마, 한 가지 해석이 떠올랐다.
* [[엔죠]]황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게 불필요해진 모든 아군을 버리는 일이 되더라도. 그는 지상의 아르카나 캐논 보다 먼저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하기 위해 모선의 전 에너지를 그쪽으로 돌리고 가동에 불필요한 구역의 전력을 전부 차단, 산소공급마저 끊는다. 각 구역에서 침입자들과 교전하던 병력들은 당연히 몰살. 황자는 그것도 공멸이 불러올 참사에 비하면 싼값이라 합리화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그는 희생자들을 위한 대책도 세워놨다.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 사방이 폭발. 불꽃이 적도 아군도 없이 모든 걸 잡아먹는다. 아무리 귀병대여도 어쩔 수 없는 일.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곳으로 몰려갈 따름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마타코가 낙오한다.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폭발은 이미 그녀의 발끝까지 따라왔다.
- 이영훈 (경제학자) . . . . 18회 일치
'''이영훈'''(李榮薰, [[1951년]] [[9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토지소유와 농업경영'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안병직]] 교수의 수제자로, 뉴라이트 진영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끌며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신대학교 등에 강사로 출강했었고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및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 경제사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후 2017년 2월 28일 정년 퇴임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28/0200000000AKR20170228081000004.HTML?input=1195m|제목=서울대 교수정년식…'식민지근대화론' 이영훈 등 28명 퇴임|성=이재영|날짜=2017-02-28|뉴스=연합뉴스|언어=ko-KR|확인날짜=2017-03-26}}</ref>.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ref>{{웹 인용|url=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2&nNewsNumb=20170324115&nidx=24116|제목=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이어지는 주장”|언어=ko|확인날짜=2017-04-13}}</ref>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일제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영훈 교수, 정신대, 자발적 참여 망언
|저자 = 임경구 기자
}}</ref> 그러나 이영훈은 이후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며 사과를 한 바 있다.
[[2006년]] [[12월 1일]] 고등학생용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에서 [[4·19혁명]]을 《4·19학생운동》으로, [[5·16군사정변]]을 《5·16혁명》으로 기술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과서포럼]]》의 심포지엄에서 4·19민주혁명회, 4·19혁명공로자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회원 30여 명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았으며, 이 교과서는 [[2008년]] [[3월 24일]] 내용을 수정하여 출간하였다. 이 교과서는 이영훈 이외에 [[박효종]] 등의 교수가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저자 = 박종현 기자
[[2008년]] [[11월 25일]] [[서울시]] 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에서 강사로 배정되었으나, "친일", "우편향" 논란이 일어나자 [[조갑제]] 대표와 함께 배제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 = 조민진 기자
2013년 그가 저술한 《대한민국 역사》(도서출판 기파랑)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하는 시장경제대상 저술부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
- 이중환(법조인) . . . . 18회 일치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하였으며 대리인단의 대변인이자 대표 대리인 역할을 맡았다. 탄핵 심판 초반에는 대리인단의 대변인으로서 언론에 박근혜쪽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와 브리핑을 전담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밉상으로 찍혀서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탄핵 심판 중반부터 대리인단의 일부 [[서석구|변]][[김평우|호]][[조원룡|사]]들이 막말 변론을 해대고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집회]]에 나가 헌재를 마구 비난하는 등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무난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대중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탄핵 심판 중반 이후 상황이 박근혜에게 많이 불리해지자 대리인단의 몇몇 변호사들이 변론의 기본을 무시한 채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헌재를 모욕하고 협박하는 등, 대리인단 간에 의견 통일이 전혀 안되고 변호사들끼리 각자 변론을 하는 수준으로 팀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대리인단을 추스려야 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90067|"벼룩 10마리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만큼 힘들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법조인들은 대리인단의 팀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 대리인단이 무료로 변론을 한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돈을 받고 변론을 했다면 일단 의뢰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자신의 신념이나 기분을 앞세워서 마구잡이로 변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고 심지어 구속까지 당한 후에도 제대로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고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의 몰락은 결국 제대로 댓가를 제공하지 않고 누군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도와줄거라고 믿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박근혜의 성격에 대해서는 박근혜 저격수 [[전여옥]]이 지적한 바가 있다.]
비록 국민 정서에 반하는 변호를 맡았던 탓에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대리인단의 일부 변호사들처럼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품격을 잃지는 않았고 소통이 전혀 안되고 돈도 안주는 의뢰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나름 동정표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박근혜같은 중범죄자도 자기 입장을 말할 권리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왜 하필 저런 사람을 변호하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어차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았어야 한다는 것은 상기하자.][* 물론 '변호사 전원 퇴진'이라는 카드를 보여주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법조인'으로써 할수 있는 선에서의 카드였고 결국 이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후에 박근혜 재판의 대리인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가 변호인 전원퇴진을 진짜로 강행하여 재판을 지연시켜버리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것을 보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부분.]
|| [[대한민국 정부|정부]] 관계자 ||<#ddd> [[청와대]] || __[[안종범]]__ · [[현기환]] · [[김한수(정치인)|김한수]][br] [[김상률]] · [[조원동]] [br] [[윤전추]] · [[이영선]] · ^^故^^[[김영한(공무원)|김영한]] ||<#ddd> [[대한민국 정부|행정부]] || __[[황교안]]__ · __[[문형표]]__ · [[김종덕]] · __[[조윤선]]__[br]__[[김종]]__ · [[송성각]] · ''[[유진룡]]'' · ''[[여명숙]]'' ||
||<#ddd><-2>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이화여대 입시부정 및 특혜]] || [[김장자]] · __[[최경희]]__ · __[[김경숙(1955)|김경숙]]__[br][[남궁곤]] · [[이인화|류철균]] · [[이인성(교수)|이인성]] ||<#ddd>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br]블랙리스트]] || __[[김기춘]]__ · __[[조윤선]]__ · [[김희범]] · [[김소영(정치인)|김소영]][br][[정관주]] · [[신동철]] · [[모철민]] · [[송광용]] ||
||<-6> [[박근혜정부]] · [[새누리당]] · [[친박]] · [[미르재단]] · [[K스포츠재단]] · [[더블루K]] · [[비덱]] ·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 [[팔선녀(단체)|팔선녀]]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 [[삼성그룹/비판 및 문제점#s-10|삼성그룹]]([[삼성전자 승마단]]) · [[국민연금공단]] · [[이화여자대학교/사건사고|이화여자대학교]] · [[영세교]] · [[알자회]] · [[고령향우회]] · [[통일교]] · [[일베저장소]]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 · [[대한민국 엄마 부대|엄마부대]] · [[박사모]] · [[아프리카TV/사건사고#s-1.10|아프리카 TV]] · [[주식갤러리#s-2.5|주식갤러리]] · [[JTBC]] · [[회오리축구단]] · [[워마드]] ||
||<-6><#000> {{{#fff __{{{#fff 밑줄}}}__은 혐의를 주도한 __핵심인물__이고, ''기울기''는 ''내부고발자 및 피해자''이며, 윗첨자 ^^故^^는 게이트 사건이 드러난 시점에 사망한 사람을 뜻합니다.}}} ||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18회 일치
* 범인의 자세한 행적은 [[타쿠마 마모루]]를 참조.
사건 전날 밤, 타쿠마 마모루는 전화번호안내로 알아낸 이케다 초등학교의 전화번호를 네비게이션에 셋트하였으며, 8일 아침에 이케다 시내의 칼가게에서 부엌칼을 2개 구입하고, 이케다 초등학교에 간다. 남쪽정문이 닫혀 있엇기 때문에 계속 나아가서, 자동차 전용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왔다. 동쪽 문 앞에 정차된 차에서는 나중에 [[아이스픽]] 2개, 녹슨 식칼이나 손도끼도 발견되었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2001년 6월 8일 오전 10시,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는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학교 앞에서 타쿠마 마모루는 자동차 전용 게이트로 침입하여, 체육관 앞을 지나갔다. 이 때 아이들과 화단으로 가던 교사 1명과 엇갈려 지나갔지만, 교사는 [[학부모]]라고 생각하여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인사를 했다.
범인은 [[부엌칼]]을 가지고 2학년 남쪽반(2年南組)에 들어가서, 여자아이 5명을 말 없이 찔러죽이고, 테라스를 통하여 서쪽반(西組)에서 어린이들을 습격, 다음에는 복도로 동쪽반(東組)에 들어가서 4명을 습격했다. 동쪽반에서 밖으로 나와서 태클을 걸어온 교사(1학년 남쪽반 담임)의 가슴을 찔러서 중상을 입혔다. 교사는 "도망쳐라!"고 소리쳤으며,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뜰 쪽으로 달아났다. 남자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발길을 돌려서 1학년 남쪽반 칠판 옆에 있는 4명의 아이들을 찔렀다. 그리고 겨우 부교장, 그리고 밖에서 엇갈렸던 2학년 남쪽반 담임이 달려와서 붙잡혔다.
단 5분~10분 정도 사이의 짧은 시간에, 타쿠마 마모루는 8명의 아이들을 살해하고, 13명의 아이와 2명의 교사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처음 들어간 2학년 남쪽반에서 5명, 그 옆의 2학년 서쪽반에서 2명 사망 6명 부상, 2학년 동쪽반에서 4명 부상, 붙잡힌 1학년 남쪽반에서는 1명 사망 3명 부상이다.
9월 14일에 살인죄, 살인미수죄 등으로 오사카 지방 법원에 기소되었으며, 12월 27일에는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타쿠마는 재판에서도 기행을 반복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읽어주고 시작했을 때 "여어, 앉으면 안됩니까"라고 말하여 재판관은 엄격하게 서서 들으라고 말하면, 노려보기도 했다. 첫 공판에서 혐의사실을 인정하고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으나, 나중에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추궁당하자 "신문기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라서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으니까 자신의 사건도 다르지 않다."
"(피해자 여자아이의 의부에 대해서) 어이, 〇〇! 너, 아이와 피가 이어지 있지 않잖아! 어이 임마, 〇〇, 뭐라고 말해봐!"
2003년 5월에 검찰은 "이 사건의 피해 참상과 많은 가족의 비통한 모습을 볼 때, 사형폐지론이 피해자나 유족의 입장과 심정을 무시하는 공허한 것인지 실감할 수 밖에 없다."고 사형을 구형했다. 변호인단은 정신이상과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타쿠마는 최종변론 후에는 "죽는들 전혀 겁먹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실컷 불쾌한 경험을 겪었습니다.","어쩔 수 없는 가난뱅이 인생이었으니, 이런 패턴 쪽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8월 28일에 판결이 내려왔고, 타쿠마는 "사형이 되잖아. 마지막으로 말하게 해줘."라고 호소하고, 재판장은 그것을 무시. 그러자 타쿠마는 "3장 정도잖아! 빨리 끝내! 마지막으로 말하게 해줘! 이떄까지, 나, 얌전하게 있었잖아. 어차피, 사형당하잖아"라고 소리쳤다. 재판장이 퇴정명령을 내리고 타쿠마는 끌려갔다. 이후 재판장은 사형을 선고했다. 9월 10일에 변호인단이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26일 타쿠마가 철회하여 사형은 확정되었다.
2003년 12월에 타쿠마는 와카야마 출신의 여성과 5번째 결혼을 했다. 여성은 사형 폐지를 호소하는 국제사면위원회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지원자 가운데 1명으로 변호사를 통하여 타쿠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결혼은 타쿠마에게 접견, 서신 권리를 얻으며, 타쿠마에게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은 가족에게 맹렬한 반대를 받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성을 바꾸고 타쿠마도 이 성을 쓰게 되었다.
사형수는 대부분의 경우 구치소에서 [[다비]]를 하고 유골이 전달되지만, 타쿠마의 시신은 유족의 희망에 따라서 시신 상태로 넘겨졌다. 교도관은 시신과 대면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내가 말했다고 전해주세요."라는 유언을 아내에게 남겼다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를 하지 않았다.
사건 직후에 오사카 교육대학, 오사카 대학, 부립 마음의 건강 종합센터, 오사카 피해자 상담실 등 전문가로 구성된 '멘탈 지원 팀'이 발족하였다. 교장은 기자 회견에서 대학부속 초등학교의 합동 장례식을 할 의향임을 밝혔다. 2002년 정신지원팀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 680명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가진 아동이 2학년을 중심으로 10명에서 20명 정도였으며, 학부모와 교직원 가운데도 고통 받는 사람이 있었다. 무서워서 교실에 들어갈 수 없고, 원인 불명의 두통을 일으키는 아동이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 이효정(남배우) . . . . 18회 일치
1981년 영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둘째아들 역으로 데뷔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당시 같은 과에는 [[이경규]], [[최민식]], [[홍학표]]를 비롯한 새싹들이 있었다.]에 다니다가, KBS 10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각종 단막극과 단막 드라마를 거치면서 연기내공을 쌓았고 현재까지 [[문화방송|MBC]] [[아파트(동음이의어)#s-4|아파트]], [[여명의 눈동자]], [[영웅시대]], [[한국방송공사|KBS]] [[야망의 전설]], [[불멸의 이순신]], [[SBS]] [[야인시대]],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 각종 드라마에서 명품조연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2006년부터는 연기 외에도 드라마 제작 사업에도 뛰어들며 SBS 드라마 내겐 너무 완벽한 그녀, [[식객(드라마)|식객]] 등의 작품들을 기획하였으며, 2010년에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고, 2011년부터는 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을 역임 중이지만, 본업인 연기자로서도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참고로 '''[[배우]] [[이기영(배우)|이기영]]의 친형'''이다. '''[[드라마]]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에서 함께 출연'''하며 형제지간임이 대외적으로 처음 알려졌는데[* 둘이 친형제임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미간의 川자 주름이다.] , 들 모두 '''데뷔한 지 30년 가까이 된 중견 배우'''이지만 '''한 작품에 함께 출연하는 건 자이언트가 처음'''이라고. 본인들은 배우로서 시청자의 극 몰입에 방해가 될까 우려하여 친형제라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그래서 데뷔 후 함께 인터뷰한 적이 자이언트 이전에 단 한 차례도 없으며, 형제라는 사실 역시 제작진 또는 홍보 담당자에 의해서 이따금 노출됐을 뿐이라는 후문이다.
* 1984년 KBS 노다지(이효정 역)[* 농담이 아니다. 극중에서 학병으로 끌려가서 공산주의자가 되고 북한군 장교에서 빨치산이 되는 인물,다만 비중은 거의 공기이고 전 시리즈중에서 제대로 된 대사가 10마디도 안된다. ~~작가가 이름 짓기가 싫어서인지~~ 극중 이름도 이효정]
*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김익렬]] 역)[* 제주도 [[4.3사건]] 당시에 좌우파의 극단적인 갈등속에서 제주도 양민들을 지키려고 한 제주도 9연대장인 김익렬 중령의 역할을 인상깊게 소화하였다.주인공인 장하림(박상원)과 더불어 갈대밭을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 2010년 SBS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한명석 역)
* 2011년 KBS [[공주의 남자]] (신숙주 역)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8회 일치
* 부활한 멜리오다스. 이전과 바뀐 것은 없어 보이는데. 엘리자베스를 상대로 섹드립을 치다 자라트라스가 끼어든다.
* 부활한 멜리오다스에겐 콤보스타를 맞추는 것 자체가 무리. 데리엘은 무의미해보이는 공격을 거듭한다.
* 엘리자베스는 몸은 괜찮냐고 거듭 확인하는데 멜리오다스는 일곱 개의 심장 전부 멀쩡하다고 과시한다.
* 그러면서 "심장소리를 확인해보겠냐"고 스킨십을 시도하는데, 엘리자베스가 전처럼 거부하지 않아서 조금 의아해한다.
*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오면서 멜리오다스를 당황하게 만든다.
*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했는지 허둥댄다.
* 염장질을 끊어먹는 자라트라스.
* 멜리오다스는 "살아서 만날 줄은 몰랐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건 자기가 할 말이라고 받는 자라트라스.
* 몬스피드는 자신의 권속들을 동원해 데리엘의 진로 앞으로 몰고간다.
* 자신이 멜리오다스의 주위를 끌고 있는 사이 자신과 멜리오다스 위로 "네걸(공격)"을 때려박으라는 얘기. 자신은 멜리오다스보다 튼튼하니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한다.
* 그때 자라트라스가 다급하게 경고한다.
* 엘리자베스는 이 변화를 감지한 듯 한데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
* 이렇게 줄줄이 박살나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에, 몬스피드 정도만 리타이어할 거란 예상이 있다. 물론 젤드리스와 에스타롯사는 복귀. 이렇게 되면 일곱개의 대죄와 십계가 7대7로 숫자가 정확히 맞아, 앞으로 1대1 대결로 전환시켜도 짝이 맞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18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마신족의 대군을 "대화해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 "로우"라는 인간족의 젊은이가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동료들을 이끌고 합류한다.
* 스티그마의 본거지는 "요정왕의 숲"에 있었는데 그 거점에선 어쩐지 여신족과 그들의 지도자 "사대천사"가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다.
* 여신족의 지도자 [[뤼드셀]] 등장. [[네로바스타]]도 부관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 뤼드셀은 드디어 성전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종족간의 평화를 원하는 엘리자베스의 바람과 달리 "마신족을 근절"할 때라고 선언한다.
* 십계를 아주 손쉽게 처리한 셈인데 현세에서 그 십계들 때문에 숨어있던 킹과 디안느는 믿기지가 않아 흥분한다. 반면 멜리오다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단 격퇴했다"고 할 뿐이다. 킹은 이럴 때가 아니라 다른 병력도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뒤돌아 보니 하늘을 가득 메울 것 같았던 마신족의 군세가 사라져 있다. 그 자리엔 엘리자베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날고 있을 뿐인데. 그녀는 어떻게 된거냐는 물음에 "돌려보냈다"고 답한다. 킹과 디안느는 방금 전까지 마신족들이 날뛰던 걸 봤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이라면 대단한 얘기지만 엘리자베스는 울쩍한 모습이고 멜리오다스만이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것 같다.
* 싸움이 끝나자 인간 생존자가 하나둘 나타난다. 그 중에 "로우"라는 젊은이가 다가와 감사를 표한다. 어딘지 현세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을 닮은 젊은이다. 그는 일행을 "스티그마"(빛의 성흔)가 아니냐고 묻는다. 물론 이 시대가 처음인 디안느와 킹은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스티그마는 여신족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군이다. 여신족, 요정족, 거인족이 주축이다. 둘은 몰랐지만 일행은 스티그마 소속이었다. 멜리오다스가 마신족이 침략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다며 로우와 인사를 나눈다. 로우는 생존한 인간 전사들을 이끌고 자신들도 합류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멜리오다스는 기꺼이 승락한다.
* 엘리자베스가 생존자들을 치료한 이후, 멜리오다스 일행은 로우 일행과 함께 스티그마의 거점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면서 킹과 디안느는 방금 전의 싸움과 그로키시니아가 말했던 "시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디안느는 방금 전 싸움이 "시련"이라고 생각하지만 킹은 회의적이다. 그게 시련이었다면 싸움에 이겼으니 원래 장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되지 않은걸 보면 아직도 시련은 계속되는 중이다. 특히 킹은 그로키시니아가 했던 말이 신경 쓰인다.
* 마침내 일행은 스티그마의 거점 요정왕의 숲에 당도한다. 인간들은 그 장엄한 모습에 위축된다. 요정왕의 숲은 요정왕의 마력에 영향을 받는다. 현세의 숲과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규모를 보고 킹이 자격지심을 느낀다.
* 네로바스타는 여신족의 지도자이자 스티그마의 수장 사대천사 [[뤼드셀]]을 소개한다. 그녀는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로 인간들은 그의 앞에 무릎 꿇으라고 말한다.
* 뤼드셀은 환영의 말 끝에 "낭보가 있다"고 말을 잇는다. 모두가 기다리던 성전의 종결이 다가왔다는 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드디어 마신족과 평화가 성립한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뜻밖이다.
- 전성군 (1488년) . . . . 18회 일치
'''전성군'''(全城君) 이대(李對, [[1488년]] [[7월 21일]] ∼ [[1543년]] [[10월 29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 자(字)는 성중(盛仲)이다. [[효령대군]] 이보의 고손으로 아버지는 여양군(呂陽君), 조부는 율원군(栗元君), 증조부는 보성군(寶城君). [[인순왕후|인순왕후 심씨]], [[심의겸]], [[심충겸]] 등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다른 이름은 이대(李薱)이다.
[[1488년]](성종 19) [[7월 21일]] 사후 [[여양군]]에 추증된 여양정 이자겸(呂陽正 李子謙)과 훈도(訓導) 김기(金耆)의 딸 광산김씨<ref>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령대군]] 보의 차남 [[보성군]] 이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율원군]] 이종(栗元君 李終)이다. 그의 생일은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정사룡]](鄭士龍)이 쓴 그의 묘비문에 그의 생일이 [[7월 21일]]이라고 언급되면서 알려졌다.<ref name="heomyong">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조부 [[율원군]]은 적개공신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독서를 하였으며 [[참례도]]찰방(參禮道察訪)에 제수되어 관직에 나갔다가 광산김씨 혹은 대흥현부인 영광신씨으 건의로 내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다. 이후 [[활인서]]별좌(活人署別坐)를 거쳐 [[사재감|사재]]직장(司宰直長)에 올랐다가 이무망좌(以無妄坐)를 이유로 파직되었다. 수개월이 지나 복직하여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 [[군자감|군자]]주부(軍資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역임했다.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남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영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1542년]](중종 37) 자신의 외손녀딸 [[인순왕후]]가 삼간택을 거쳐서 [[조선 중종|중종]]의 명으로 [[경원대군]]의 부인으로 간택되는 것을 생전에 보았다. [[경원대군]]은 그가 처가의 가장(家長)이라는 이유로 건의하여 그는 곧 [[돈녕부]]주부에 제수되었다. 그는 곧 병이 들었고 중종은 특별히 [[내의원]]을 보내서 입진하게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ref name="heomyong"/> [[1543년]](중종 38) [[10월 29일]]에 사망했다.
사후 여섯째 아들 [[이량 (조선)|이량]]의 영귀로 [[증직|증]]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증직|증]]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다시 [[증직|증]]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가 다른 후손들의 출세로 [[증직|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전성군(全城君)에 추봉되었다. 후일 [[대한민국]]의 초기 정치인인 [[이기붕]]은 그의 아들 [[이량]]의 직계 후손이었다.
* 아버지 : [[여양군]] 이자겸(呂陽君 李子謙, ? ~ ?년 1월 16일)
* 부인 : 동래 정씨(? ~ [[1557년]] [[1월 9일]]), 내자시정 [[정종보]](鄭宗輔)의 딸
*** 외손자 : 심인겸(沈仁謙, 1533년 6월 ~ 1580년 11월 17일)
*** 외손자 : [[심의겸]](沈義謙, 1535년 ~ 1587년)
*** 외손자 : [[심충겸]]
*** 외손자 : [[심효겸]](沈孝謙, 1547년 9월 20일 ~ 1600년 9월 24일)
** 서자 : 이오(李梧, 통훈대부)
** 서자 : 1명 이름 미상
* [[순회세자]]
- 정광조 (1883년) . . . . 18회 일치
'''정광조'''(鄭廣朝, <small>일본식 이름:</small> 川上廣朝, [[1883년]] ~ [[1953년]])는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천도교]] 지도자이다. 도호는 현암(玄菴)이다.
[[한성부]] 출신으로 [[손병희]]의 딸과 결혼했다.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운동을 주도한 손병희의 측근으로서 사전 모의 과정부터 깊숙이 가담했다. [[권동진]], [[오세창]], [[최린]], [[박인호 (1854년)|박인호]] 등과 함께 실무를 맡았으며, 사후 수습을 위해 [[민족대표 33인]]에서는 빠졌다. 당시 맡고 있던 직책은 천도교 대종사장(大宗司長)이었다.<ref>{{독립유공자|3124|박인호}}</ref>
3·1 운동을 사실상 주도한 뒤 곧바로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나왔으나, 이듬해에도 천도교인 [[신숙]]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계속했다.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발행에도 천도교 교무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손병희 사후 [[최린]] 주도의 신파가 교권 및 사회운동의 방향을 놓고 분파되면서 천도교단은 오랜 내분 사태에 돌입했다. 손병희의 사위로서 교단 내 상당한 실력자이던 정광조는 이론가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광조가 천도교 대령에 선임되었다가 구파에 의해 출교 처분되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천도교 신파가 대세론이라는 타협적인 노선을 내세워 설립한 [[시중회]]에 가입하면서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일제에 적극 협조한 행적이 있다. [[1939년]]에는 [[이용구]]의 장남 [[이석규]]가 '일한합병 공로자 감사 위령제'라는 행사를 열었을 때 참석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
|저자=강만길
[[198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나, 일제 말기에 뚜렷한 친일 행적을 보인 서훈자들이 논란이 되면서 [[1996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 의해 [[서춘]], [[김희선 (1875년)|김희선]], [[박연서]], [[장응진]]과 함께 서훈이 취소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덕련
}}</ref>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천도교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천도교단은 정광조와 [[김병제 (1894년)|김병제]] 등 천도교 지도자들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일제의 총체적 강압 강요" 하에서 "교단이 해체나 와해되지 않고 교단을 유지 보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f>{{웹 인용
== 참고자료 ==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분류:1883년 태어남]][[분류:195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분류:대한민국의 천도교 교역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종 . . . . 18회 일치
정종은 조선의 2대 왕이다. '1차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쥔 정안군 이방원(후의 태종)의 의도에 의해 '[[징검다리]]'처럼 추대된 왕이어서 대중적으로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이미지가 희박한 편이다. 부친 이성계에게도 신임을 얻은 등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괜찮은 구석도 있지만, 정치 역학적인 이유로 존재 자체가 묻혀버렸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정종이라는 시호를 얻게 된다.
그나마 왕후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기에(후궁에게는 많은 자식을 보았다) 태종도 정치적인 이유로 견제해야 할 직계 혈통이 없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상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절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다음 순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후궁 소생이라고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 후궁 제도는 혈통 단절을 막는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왕의 성욕 처리에만 동원되는 제도로 전락한다. 정종이 자기 자식에게 계승을 못한 것은 워낙 세력이 밀렸기 때문이지 서자만 있어서 계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만큼 태종의 세력 기반이 탄탄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18회 일치
* 엘런은 아르민의 죽음에 오열한다. 그때 짐승 거인이 나타난다. 그는 "너는 아버지에게 세뇌당해 있다. 우린 너희 아버지의 피해자"라는 말을 한다.
* 리바이가 추적해오자 베르톨트를 포기하고 도주. 엘런에게 "언젠가 구해주겠다"는 말을 남긴다.
* 리바이가 약물을 넘기려 할 때 조사병단의 생존자가 죽기 직전의 엘빈을 찾아내 데리고 온다.
* 아르민은 훌쩍이면서도 자신은 지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고 대답한다.
* 그는 자신이야 말로 엘런의 이해자이며 "우리들"은 아버지의 피해자라고 발언한다.
* 거기까지 말했을 때 성벽 위에서 그림자가 나타난다.
* 짐승거인도 설마 이렇게까지 하리라곤 예상 못했는지 괴물놈이라 중얼거리며 "무승부인 걸로 하자"며 퇴각한다.
* 다른 거인화 가능자의 "척추액"을 먹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 엘빈은 가능하다면 거인의 힘을 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중상을 입은 자도 거인화를 통해 회복할 수 있으므로 유사시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미카사가 출발한 이후 쟝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게 아닐가 의심하지만 한지는 자신의 판단이었다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 장은 자신의 판단 때문에 라이너를 놓쳤다고 자책하지만 한지는 자신의 책임이었음을 다시 한 번 못 박는다.
* 엘런 일행 쪽에서는 리바이가 약물을 넘기려는 그 순간, 조사병단의 생존자가 엘빈 단장을 구조해 온다.
- 창작:좀비탈출/5-1-2 . . . . 18회 일치
다시 냉정해질 차례다. 팔자에도 없는 액션 영화 촬영 탓에 머리에 피가 너무 몰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잊지 말자. 나는 식량이 필요하다. 게다가 토트넘을 보라. 녀석은 90kg는 나갈 것이다. 저 무거운 덩어리를 어디로 치운단 말인가? 애초에 그런게 가능한 체력이 나한테 있는 걸까? 땀을 뻘뻘 흘리고 노동을 한 뒤에 몸살이라도 나서 쓰러져 버리면 토트넘에게 물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머릿 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녀석들의 개인차. 하체가 발달한 녀석이 있으니 다른 것이 발달하거나 썩지 않은 녀석도 있을 법하다. 그래 예를 들자면…… '''후각이 멀쩡한 녀석.''' 이제 토트넘은 시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썩은내 스팟'''으로 활약하겠지. 녀석들 중에 후각이 남은 녀석이 있다면? 녀석들의 뇌는 냄새의 호불호를 분별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자극이 있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것이고 그게 녀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면…….
…… 아니다. 지금은 과학실험을 할 때가 아니다. 불확실한 추측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않던가. 이 말이 이렇게 뼈에 사무칠 때가 다 있군.
나는 토트넘의 시체를 그대로 놔두고 장독대로 향했다. 커다란 돌덩이를 모자처럼 쓰고 있다. 분명 쌀은 첫번째, 야채는 두 번째였다. 나는 끙 소리를 내며 돌을 들어올린 뒤, 행여나 쿵 소리를 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살포시 내려놓았다. 토트넘을 그냥 둬야한다는 내 생각이 맞은 것 같다. 그 작업을 한 이후에 이것까지 하기란 정말 불가능했을 것이다.
관찰 결과 하룻밤이 다 가도록 마당으로 침입하는 녀석은 없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며 나는 묘한 행복감에 젖었고, 오래간만에 거실에서 보는 동네 풍경은 아버지가 사랑했던 바로 그 세트장이었다. 어슬렁거리는 출연자들 따윈 없는 셈 쳐주지.
어제 남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식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식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저 소리가 '''자장가''' 처럼 들리게 되면 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
좋아,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시간은 썩어나게 많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잡지를 치웠다. 이 잡지는 안방에서 찾았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을 말자. 인터넷도 전기도 끊긴 지금은 이게 유일한 반찬거리다.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적어도 정신적 위안은 찾을 수 있다. 구식이라 고맙습니다 아버지.
신기한 일이지만 눈이 떠지자마자 나는 생각을 전개했다. 그것도 무얼 고민하는 것도 없이. 아니, 설명이 이상했는데 그 생각이라는게 앞으로 뭘해야 할지 같은걸 선택을 고민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그런 과정을 전부 생략해 버렸다. 즉 눈 뜨자마자 하나의 결론이 정해져 있었고 오로지 그걸 어떻게 이룰지만 생각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8회 일치
||<:>→||<:><#008000>'''{{{#white 집안을 찾아 보자.}}}'''||
우선 내가 찾아낸 작은 물건들에 감사부터 해야겠다. 꽃삽이다. 아마 어머니가 화단을 정리하면서 썼던 물건이리라. 앞으로 시작될 농사에 혁혁한 기여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농사용구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때. '''맨손'''보단 백배는 낫지. 벌써부터 파헤칠 수 있는 면적이 배로 늘어난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또 뭘 찾아냈을까? 바로 비료 푸대다. 솔직히 농업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어떻게 뿌려줘야 할런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우리 어머니는 분명 영어 까막눈일 텐데 어째서 포장지에 영어만 잔뜩 써져 있는 비료를 샀을까? 그 사정을 물어볼 날이 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좌우간 지금은 도움되는 물건이 발견된 것 자체가 기뻐하자.
다시 내가 찾아낸 물건 얘기로 돌아가자. 우리 집에는 생각보다 정원 용품이 많다. 날이 좀 나갔지만 전지가위도 하나 찾았고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는 목공장갑도 몇 벌 찾았다. 그리고 두툼하고 투명한 비닐 시트도 발견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겨울에 방한 목적으로 창문에 치던게 기억이 났다. 이게 또 요긴할 것이다. 같이 쓸 수 있는 굵은 철사도 있다. 녹 하나 나지 않은 새것이다. 나는 백지를 받아든 어린애처럼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분명 재료가 부족할게 뻔하지만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서 겨울에 대비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은 부족하지만 나에게 제일 풍족한건 시간이 아닌가? 시간이 많다는 것,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 근거도 없이 낙관적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생존이란 거겠지.
그리고 어디에 써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콘크리트 못 한 세트도 찾았다. 못이라…… 살고자 하는 이상엔 어딘가엔 쓰게 될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챙겨두자. 그런데 못은 있으면서 망치는 없다는게 황당하다. 못이 들어있던 서랍에서 전동드릴도 찾긴 했지만, 정작 날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 결정적으로 지금은 전기가 끊긴 상태다. 이거야 말로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군. 대신이랄까, 전에 찾았던 아령의 사용처가 생겼다. 실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못을 박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뭐에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밖에도 톱과 펜치같이 유용한 공구를 찾아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간단한 목공일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부자였다니,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일이다. '''고마워요 좀비 아포칼립스.'''
'''무기는 전혀 없다.''' 이럴 줄이야. 설마 그럴 듯하게 쓸 수 있는게 단 하나도 없을 줄이야. 창고에 있는 물건 중에 그나마 길죽한건 마당 쓸 던 플라스틱 빗자루가 전부다. 길이는 약 1m에 죽창만한 강도 조차 기대할 수 없는 물건이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나?
자, 그 결과 내가 고안한 계획을 보시라. 괜히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본게 아니라니깐.
비닐 시트는 일반적으로 하우스에 치는 것만큼 얇고 약한 소재가 아니었다. 다루면서 보니 그보다는 방수포에 가까운 두꺼운 물건이었다. 실험 삼아서 손으로 당겨서 찢어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다듬는 역할은 방금 찾은 전지가위에 맡겼다. 하지만 재활용도 염두해야 하고 나는 재단 일에도 문외한이다. 최대한 길고 네모낳게 잘라냈다. 잘라낸 비닐을 팔다리에 둘둘 감고 그 위에 철사를 감아서 고정시켰다. 몸통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고 그 외에 비닐로 감을 수 있는 곳은 전부 감았다. 제일 얼려운건 머리였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적당한 크기의 패트병이 있었고 주인공은 디자이너였다. 어떻게 해도 방도면같은 형태는 되지 못했고 그냥 머리에 둘둘 감은 후 눈구멍과 숨구멍만 뚫었다. 숨쉬는게 다소 불편했지만 어쨌든 호흡이 가능하고 앞도 보였다.
물론 매번 외출할 때마다 완전무장을 할 수는 없다. 뭣보다 이 방치복은 혼자 입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당장 돌아다니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장차 농삿일을 비롯해 작업을 시작하면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이꼴로 작업을 하다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찜구이가 되겠지. 녀석들에겐 포장도 못 뜯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고.
자 이제 선택하자. 어느 쪽이 나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일까?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1|실험을 해보자.]]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2|바로 옆집으로 가보자.]]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18회 일치
1910년, [[캔자스]] 주 애블린에 말을 탄 노인 한명이 찾아온다. 불스 헤드(Bull's Head)라는 주점 안으로 들어선 노인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일러스 그리브스라고 소개한다. 이에 젊은 남자가 현상금 사냥꾼인 사일러스 그리브스 맞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자신이 현상금 사냥꾼 일을 했던 적이 있다며 인정한다.
사일러스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지만, 흥분한 젊은이는 사일러스에게 맥주를 한 잔 사주며 현상금 사냥꾼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일러스 그리브스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싸구려 소설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일러스는 젊은 남자 "드와이트", 그곳에 있는 유일한 여자 "몰리", 냉소적인 남자 "잭", 할아버지 "스티브", 주점 점장 "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링컨 카운티 전쟁[* Lincoln County War. 1870년대 말 [[뉴멕시코]]에서 벌어졌던 분쟁. 상인들 간의 상권 분쟁이 지역 단위 총격전으로 번져버렸다.] 당시, 빌리는 자신의 지인이였던 존 턴스톨의 복수를 하기 위해 분쟁에 뛰어들었다. 그 곳에는 사일러스 그리브스 또한 있었다.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사일러스를 본 빌리는 그를 "아미고"라고 부르며 소총을 건네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잭이 사일러스(현재)에게 빌리 더 키드랑 친구였던 거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응…그런 셈이지…."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소총을 받아 인해전술을 시전하는 가렛의 부하들을 쏴죽인다. 하지만 반대편을 담당하던 보우드레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가렛의 부하들이 개틀링을 가지고 와 농가에 쏴갈기는 상황까지 되자 빌리는 도망쳐야 하니 마구간에 가서 말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사일러스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니 명령에 따라야하는데ㅅㅂ"같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 빌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사일러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데이브를 지나, 농가 뒷문을 박차고 나와 마구간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가렛의 부하들을 해치운다. 결국 마구간에 도착한 사일러스, 하지만 그곳에서 가렛을 만나게 된다.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 든 드와이트. 드와이트는 자신이 소설에서 읽은 이야기를 말한다. 사일러스는 가렛을 상대로 결투를 벌여 정정당당하게 그를 죽인다.
>사일러스(현재): 그 끔찍한 싸구려 소설에 그렇게 써져있던? 아냐, 그렇게 만나지 않았어. 다시 시작해보자…. 난 드디어 그 망할 마구간에 도착했어.
- 킹덤/502화 . . . . 18회 일치
[[킹덤]] 제 502화. '''기선을 잡는 자'''
* 진군의 지휘관들은 금안에 들르자 마자 진로를 업으로 변경한다는 통보를 받고 술렁인다.
* [[이목(킹덤)|이목]]은 [[오르도]]의 진군에 큰 위협을 느끼나 청가의 [[사마상]]이 오르도를 요격하러 나서자 한시름 놓는다.
몽념은 밤 중이라도 지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목(킹덤)|이목]]이 알아차릴 거라 본다. 그렇게 되면 양군 중 누가 먼저 왕도에 입성하냐는 경주가 되고 돌이킬 수도 없다. 이신은 첨부터 돌이킨다는 선택지 따윈 없었다며 웃는데 조용히 있던 왕분은 아직 왕도권 돌입이 실현된 것도 아니니 들뜨지 말라고 일침한다. 몽념은 잘 알고 있다며 "그러니 밤새 행군해서 이목을 뿌리치자는 얘기"라고 받아친다. 이신은 이목의 깜짝 놀란 얼굴을 기대하며 또 웃는다.
* 무백에서는 이목이 [[오르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벌서 간위성, 영현성이 함락되었으며 거침없이 치고들어오고 있다. 한단으로 향한 [[호섭]] 장군을 동쪽으로 보내자는 안건이 나온다. 이대로 오르도를 막지 못하면 동쪽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목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호섭이 거기까지 가버리면 서부 전선의 전략이 크게 수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쪽 방어선의 붕괴도 좌시할 수는 없는 일. 이목은 할 수 없다치며 [[카이네]]에게 호섭의 이동을 명령하려 한다.
*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마남자]]는 오르도의 진로를 확인하는데 오르도는 무슨 일인지 남쪽의 중도시 "청가"를 향해 진군 중이라 한다. 이목과 마남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부하들은 어리둥절한다. 이목은 청가엔 "사마상"이 있다며 반색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사마상의 이름도 잘 모른다. 한 사람이 "청가성 성주로 병이 있어서 은둔하고 있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며 말하는데 이목은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건강하며 그저 중앙에서 오는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그런 명분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남자는 충격적인 말도 더한다.
그가 삼대천에 천거된 인물이란 것, 그럼에도 그걸 거절했다는 것에서 파문이 인다. 설마 세 번때 삼대천이 될 법한 인물이, 그것도 그런 변경에 은둔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카이네는 그럼 그 사마상이 어느 정도 인물이냐고 묻는데 이목은 자기 자신이 그를 천거햇던 장본인이라 밝힌다. 그는 자신의 청가성이 연관되지 않는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성미로, 그를 삼대천으로 만들면 좀 더 큰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물론 실력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이때 이목 진영에는 낭보다 도착한다. 그 사마상이 마침내 청가에서 5천의 병력을 거병해 오르도를 요격하러 나선 것이다. 그 말만 듣고도 마남자는 다 된 일이라며 "오르도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고 비꼰다. 이목은 그만큼 단정하진 않지만 호첩에게 보낼 이동 명령을 거둬들이고 기존 동쪽 방어선의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 사마상이 오르도를 막는다면 조박이 동군을 이끌어 연군을 밀어낼 거라 본다.
* 다시 문제는 서부가 됐다. 그는 진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앞서 어째서 [[순수수]]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전령은 순수수가 명한 대로 "진군 측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고한다. 진군이 금안에서 진로를 변경할지 모른다는 보고가, 드디어 이목에게 전달된다. 이목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지도를 펼치고 다시 한 번 진군의 진로를 확인해 본다. 순수수의 직감이 맞았다면 그가 속은 것이 된다. 지금 흑양까지 이어지는 병량의 흐름이 가짜라면, 진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진짜 병량이 금안까지 간 것은 맞으므로 거기에 축적됐을 것으로 보는게 맞다. 진군이 여기에 도착했으니 이 병량을 들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인데. 진군이 흑양으로 오지 않는다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다.
- 킹덤/509화 . . . . 18회 일치
[[킹덤]] 제 509화. '''창의 계승자'''
* [[이신(킹덤)|이신]]은 [[왕의(킹덤)|왕의]]장군의 창으로 무쌍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전히 창에 휘둘려 자잘한 상처를 입고 있다.
*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은 입성하자마자 열미성의 요소 파악을 지시한다. 열미성은 이제 진나라 원정군의 보급로를 잇는 요지가 됐기 때문.
* 적진에 뛰어든 [[이신(킹덤)|이신]]. [[왕의(킹덤)|왕의]]장군의 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적을 도륙내고 있다. [[미평]]등은 이제 이신은 천하무적이라며 환호한다.
* 그때 [[강외(킹덤)|강외]]가 "어디가 그렇냐"고 딴죽을 건다. 그녀가 잘 보라고 이야기를 하자 미평 등은 다시 주의깊게 이신의 전투를 살펴본다.
* 잘 싸우고 있는건 맞지만 익숙하지 않은데다 여전히 왕의 장군의 창이 무거워서 되는대로 휘두르는 것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맞지 않았을 반격에도 맞고 자잘한 상처가 늘어가는데 신기할 정도로 치명상만은 피하고 있다. 미평이 "여전히 창의 무게에 휘둘리는 건가"라고 중얼거리자 강외는 "호쾌할 정도로 그렇다"고 덧붙인다.
적의 공격에 제법 출혈이 심해지자 이신은 자신의 역량은 모르고 창이 너무 무겁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그때 성벽을 정리한 산민족의 [[슌멘]]이 산민족 기마대를 몰고 성 밖으로 몰아쳐 열미군을 안팎으로 압박한다.
[[초수]]는 이러다 산민족에게 공을 뺏기겠다고 말하자 이신은 기껏 산민족에게 성문을 열게 했는데 이대로는 자신들이 온 의미가 없어진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인다.
* 이렇게 해서 조의 관문이자 업공략의 초석인 열미성이 함락. 진 연합군은 성으로 입성한다. [[몽념(킹덤)|몽념]]은 한 것도 없이 입성해서 뭔가 미안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환의는 벌써 주민들이 다 도망쳐서 약탈할게 아무 것도 없다는 보고를 받으며 입맛을 다신다.
* [[하료초]]는 다시 바빠졌다. 중상자 치료를 지시하고 다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신, 강외, 초수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다. 곧바로 실행하라고 지시하자 미평이 막 싸움이 끝났는데 그럴 필요 있냐고 투덜댄다. 하지만 하료초는 진짜 바빠지는건 "지금부터"라면서 정색한다. 미평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한다.
그 옆으로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이 지나간다. 그는 핏발선 눈으로 성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핀다. 그는 뒤따르는 부장들에게 성의 세세한 부분은 물론 성벽의 구체적인 크기와 규모까지 자세하게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 킹덤/512화 . . . . 18회 일치
* 경악하는 부하들을 내버려둔 채 갑자기 조 왕도권 성의 모든 지도를 펼치더니 즉석에서 전략 구상에 들어간다.
* 이틀 뒤 돌아온 왕전은 지휘관들 앞에서 [[창평군]]의 업 공략 구상을 폐기하고 자기 자신의 책략으로 업을 공략하겠다며 전군 진격을 명하는데.
* 소식을 접한 [[이목(킹덤)|이목]]은 왕전이 터무니없는 오판을 내렸다 판단하며 [[진시황(킹덤)|진왕 정]]이 선언했던 중화통일은 물거품이 됐다 자신한다.
* 진군이 열미성을 함락시키고 이틀. 곧 [[왕전(킹덤)|왕전]]이 모습을 감춘 지도 이틀이 되던 날. 왕전은 위험을 무릎쓰고 달려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업. 이번 연합군의 진짜 목적이자 조나라의 제 2의 도시. 왕전은 성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는 듯 샅샅히 살핀다.
* 동행한 [[아광]]은 겉으로 보이는 업성의 무시무시한 위용에 혀를 내두른다. [[이목(킹덤)|이목]]이 크게 개조했다는 풍문은 들었으나, 보는 것은 듣던 것을 한참 능가했다. 아광은 안목이 없는 자신들에겐 그저 견고한 성으로 보이는 저것이, 지략가이자 총사령관인 왕전에겐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하며 그의 입만 쳐다본다.
기가 찰 정도로 담백한 패배선언.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았다. 부하 장수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방금 왕전이 한 말은 이번 원정이 실패했다는 자평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 하지만 왕전의 다음 행동은 더욱 뜻모를 것이었다. 그는 아광에게 조의 왕도권에 있는 모든 성의 지도를 펼치도록 한다. 커다란 군사 지도가 바닥에 펼쳐진다. 왕전은 말에서 내린 채, 무릎을 뚫고 지도 위로 엎드린다. 그는 아광에게 척후들이 파악한 정보를 일일히 물으며 업성을 관찰했던 것만큼 세심한 눈으로 지도를 훑는다. 부하장수들은 당황스럽지만 그 모습이 뜻하는건 하나 밖에 없다. 왕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업 공략을 위한 새로운 군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 경비병 둘은 순식간에 치웠지만 위기가 끝난건 아니다. 소란을 감지한 경계부대가 이쪽으로 오고있다. 부하들은 서둘러 철수할 채비를 하려고 하나 왕전은 가만히 아광을 부른다. 아광은 곧 접근하는 부대가 자신들의 배는 됨직하다고 보고한다. 잠시 생각하던 왕전은 "괜찮겠나?"라고 한 마디만 던진다.
*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하릴 없이 열미성에 주둔하던 진군은 총사령관의 복귀를 확인한다. 아광을 비롯한 부하들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왕전은 상처 하나 없다. 열미로 돌아온 왕전은 휘하의 지휘관들을 불러모은다. [[환의(킹덤)|환의]]와 [[양단화]] 양대 장군들을 비롯해 [[이신(킹덤)|이신]]을 포함한 장교 전원이 집결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그대로 왕전은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교시한다.
[[창평군]]이 구상한 "열미를 교두보로 업을 친다"는 책략은 열미성 자체의 취약점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 이 같은 사실은 [[벽(킹덤)|벽]] 등 하급 지휘관들은 금시초문이었으나 이신, [[몽념]], [[왕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다. 하기야 하급 지휘관들은 이 작전의 진짜 목표를 아직가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황당한 얼굴로 왕전의 교시를 듣는다.
이신, [[하료초]], 왕전, 몽념은 자신들의 예측을 뛰넘는 결정이 나오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리고 이 연합군이 꾸려진 이래 최초로 모든 장교, 모든 병사에게 진정한 목표 "업 공략"이 명시되는 순간이다. 열미에 주둔하던 진군은 전병력이 열미를 지나 조의 왕도권으로, 업으로 진격한다.
급보로 진군이 열미를 버리고 진격한다는 소식이 도착하자, 가장 당황한 건 이목이었다. 그는 지도 위에 놓여진 진군의 패를 보며 왕전에게 묻는다.
의심의 여지도 없다. 상대가 철저히 오판했다. 이목은 그만큼 자신이 짠 전략에 자신이 있다. 그는 술렁거리는 부하들을 정숙시킨다.
[[카이네]]는 무도하게까지 들렸던 [[진시황(킹덤)|진왕 정]]의 선언을 떠올렸다. 진이 무력으로 6국을 멸하고 중화를 통일하겠다던 선언. 이목은 이 전쟁의 결말은 틀림없이 후자가 될 거라 장담한다. 그는 급히 왕도권의 각 병력들에게 지령을 하달하며 진군에 대한 포위섬멸 작전에 돌입한다.
- 킹덤/522화 . . . . 18회 일치
* 마광은 본래 몽념을 가문의 위광을 빌린 애송이로 여겼으나, 몽념은 왕전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파악하고 있었다.
* 왕전이 마광과 몽념을 불려놓고 작전을 하달하던 자리에서 몽념은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킬 것이고 마광이 어정거리면 자신들이 주역을 뺏겠다고 호언한다.
* 기수군은 사기가 크게 떨어져 와해될 지경이나 기수가 숫적 우위와 병사의 질을 들어 버티고 맞설 것을 지시하자 혼란이 진정된다.
* 한편 몽념은 왕전의 짐작대로 그가 그린 큰 그림을 함께 보고 있었고 적들이 물러가자 유격군으로 전환해 기수의 목을 따러가기로 한다.
* [[왕전(킹덤)|왕전]]의 본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지평선 너머를 진동시키는 함성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오른팔 [[마광]]이 [[기수(킹덤)|기수]]군을 공겨하는 소리였다. 격전지로 향하는 왕전의 시선. 언제나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몽념은 당돌하게도 그 말을 자르고 그러지 않아서 자기들 힘만으로 반드시 "파상공세"를 이룰 수 있게 돕겠다고 말했다.
* 그의 입에서 "파상공세"란 말이 나올 줄은 왕전도 마광도 몰랐다. 그런 언질을 내린 적이 없고 달리 암시한 사실도 없었다. 그렇다면 몽념은 자군의 배치만을 가지고 왕전의 전략을 간파했다는 말이 됐다. 마광이 위협하듯이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지만 몽념은 그저 미소 지을 뿐. 그리곤 "최고의 형태"를 만들고 기다릴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만 남긴다. 그리고 꾸물대면 자기들이 "주역" 자리를 뺏어갈지 모른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러나 두 장군 중 그걸 농담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부관들은 여기서는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 때라고 진언하나 단칼에 거절한다. 물러난다면 적은 그만큼 철저하게 뒤따라올 것이다. 기수는 이 자리에서 결사항전할 것을 지시하며 적이 소수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달하게 한다. 적이 부대를 나눠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천 씩 4파로 나눈 총 2만 병력. 기수군이 총 3만이니 병력면에서 압도하고 남는다는 논리였다. 계산 자체는 맞았다. 부관들 눈빛에 희망이 돌아온다.
>이 숫자의 차이와 리안병의 질로 하여금 반드시 승리하리라!
* 낙화대는 아슬아슬하게 마정을 놓쳤다. 마정을 구출하자 기수군은 빠르게 퇴각했다. 적이 1만이나 되는 병력이니 추격하기엔 마땅치 않다. 부관들은 다음 행동에 대해 물었다. 몽념은 마정이 가는 방향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마정이 전방으로 간다는건 본진이 무사하다는 말이고 파상공세의 후방을 요격하러 간다는 말이었다. 기수는 분명 이대로 공세를 버티는 길을 택했다. 이건 왕전이 예견한 그대로의 전개였다. 왕전이 따로 설명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몽념은 그가 그린 그림을 함께 보고 있던 것이다.
* 기수는 부관들을 모아놓고 이게 "미끼"에 불과했던 낙화대가 5천 병력의 "유격대"로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좌측에 들이닥친 마광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이상, 낙화대 5천은 이제 유격대가 돼서 언제든 아군의 배후에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게다가 그 지휘관인 몽념은 필시 평범한 장교가 아니다. 이 병력의 존재가 너무 크다. 이제와서 요격하려 해도 병력을 빼면 그만큼 본진이 파상공세에 밀릴 공산이 크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미끼로 끝날 거라면 5천은 많았다. 기수는 여기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도발, 양동을 위한 5천 병력이 끝내 자군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주역"의 위치까지 발돋움했다. 이건 우연도 뭣도 아니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배치. 왕전히 그린 밑그림이었다. 기수는 새삼 이것이 진군 총대장 왕전이라며 좌절감을 느낀다.
* 자신의 뜻대로 굴러가는 전황을 보고받은 왕전. 그런데 그는 작전성공을 기뻐하기 보단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주역을 받아가겠다"던 몽념. 그 말대로였다. 이제 왕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념은 자신과 같은 경치를 보고 있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몽념은 일단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 다음 한 수로 적 대장의 목을 따겠다고 선언한다.
- 킹덤/530화 . . . . 18회 일치
* 몽념과 마광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비신대에 황당해하나 [[왕전(킹덤)|왕전]]의 전략이 무엇이든 공은 자신들이 세우겠다며 공세의 고삐를 죈다.
* 기수는 새로운 적이 전장에 나타나자 마자 보고를 받았다. 전령이 동쪽 측면에서 적의 새로운 기마대 출현을 알렸다. 숫자는 약 600에서 1천. 기수와 부장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이 상황에서 1천의 기마 추가. 수뇌부는 낙담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건 두 번째 보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적의 깃발에는 비(飛)라는 글자가...
새로 나타난 적의 정체는 비신대. 그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전령이 도착했다. 비신대의 1진 돌파. 기수와 그 부관들은 모두 흑양에서 비신대의 위력을 실감했고 그래서 신의 조치는 큰 효과를 봤다. 부관들은 하나같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술렁거렸지만 누구하나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채 기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기수도 기수대로 고민에 빠졌다. 흑양의 악연이 필살의 기동대가 되어 자기 목을 치러 오고 있다. 모두 [[왕전(킹덤)|왕전]]의 포석이다. 그러나 이 치가 떨리는 함정 속에서도 이점은 있었다. 적어도 적의 힘을 오판할 여지는 없다는 것.
기수는 후방의 진을 풀고 최종방진까지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부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퇴로를 버리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후방을 그대로 두고 전방의 [[마정]]을 불러들여 본진을 방어함이 시급했다. 하지만 기수는 단호했다. 지금 국면에서 어떤 곳을 다른 곳보다 우선할 순 없다. 정면도 바늘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명이 무너지면 그거야말로 끝. 부장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다급함을 지적했다. 지금 최종방진으로 물러난다 해도 채비를 다하기 전에 비신대가 들이닥친다. 기수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그때 유동장군의 친위대 200기가 기수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들이 비신대를 저지하기를 자청했다. 아니, 반드시 비신대 대장 이신과 부장 [[강외]]의 목을 따오겠다고 자청했다. 기수는 그 결의를 만류하지 못했다.
* 정면에서 섣부른 싸움을 벌였던 마정은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마광군과 대치한 언덕의 싸움은 갈 수록 치열했다. 마정 자신의 부대는 백중세로 막아내고 있었으나 후방이 어지러지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에겐 본대의 어려움이 시시각각 보고되고 있었다. 마침내 비신대의 등장까지. 하다못해 기수로부터 다른 지시라도 내려오길 바랐지만 그쪽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물론 이쪽도 본진을 도우러갈 여유가 없었고. 그가 새삼 마광이라는 적장을 용병술에 탄식하고 있을 때, 그의 시야로 유동의 기마대가 비신대 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부하들이 유동의 기마대라도 한 발 늦게 보고하자 자신도 안다고 꾸중했다. 그는 이제는 없는 유동을 떠올리며 그가 저들을 지켜봐주길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 강외는 정면에서 나타난 유동의 친위대를 발견했다. 그의 깃발이 아직도 펄럭이고 있었다. 유동군이 비신대의 전열과 부딪혔다. 강외는 말 위에서 적들의 칼끝을 피하며 역으로 베어들어갔다. 첫 번째 기마를 베어넘기자 그가 품고 있던 물건이 흘러나왔다. 유동의 인형 "리안의 보모". 강외는 새삼 그가 떠올랐다. 친위대가 주인의 원수를 발견하고 핏대가 올랐다. 강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닥쳐오는 모든 적을 차례대로 베었다. 여느 때보다 더 정교한 솜씨. 그 검무를 펼치는 강외의 심정을 신만은 이해했다. 유동의 친위대를 베고 난 뒤, 이제 목표는 코 앞이었다.
싸움은 결국 흐름. 어떤 요소든 주연이 될 수 있는게 전국의 전장이었다. 하지만 마광은 이 전장의 주역은 단연 자신이라 확신했다. 그는 잔류하던 정예병을 총동원해 기수의 숨통을 더욱 바싹 죄었다.
부장들이 다시금 마정에게 원군을 청하자고 고하고 있을 때, 마침내 비신대의 선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이 기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부장들이 기수를 둘러싸고 수비병을 동원하러 할 때 반대쪽에서 낙화대가 3진을 돌파하고 여기까지 육박한다는 보고가 왔다. 두 부대는 마치 경쟁하듯 기수를 향해 몰려왔다. 이렇게 되자 부장들의 의견이 둘로 갈랐다. 당장 본진을 버리고 물러나가는 쪽과 버텨야 한다는 쪽. 후자는 여기서 본진만 빠져나간다면 마정군은 홀로 남아 괴멸할 것이므로 도망칠 거라면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전자는 그럴 겨를이 없고 우물쭈물하다간 같이 격멸될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쪽이든 기수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의 결단은 한결같았다.
이번엔 부장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결단이라 입을 모았다. 후방에서 오는 것만 삼천이 넘는 병력. 비신대를 막아도 그 병력이 닥치면 끝장이다. 그럴 수록 기수는 더 단호한 태도로 "이 형태"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 형태라니? 부장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들자 기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태영호 . . . . 18회 일치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주로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 서유럽에서 활동하며 북한의 입장을 대표했다. 김정일의 덴마크어 전담통역 후보인 '1호 양성 통역'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을 했으며, 1993년 부터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직을 맡았다.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자, [[스웨덴]]으로 옮겨졌으며, EU 담당 과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12월에 [[영국]]과 북한이 수교를 맺고, 2003년 4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정식 개설되자, 1등 서기관 신분으로 런던에 파견되었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 대사의 뒤를 잇는 2인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외교관으로서 태영호는 런던의 극좌단체 행사에 참가하여 북한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언론이 북한에 대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영호는 영국 내의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2016년 8월 17일, 갑자기 영국에서 고위급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는 소식이 퍼졌으며 곧 그가 태영호 영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가족과 함께 탈북한 태영호는 한국 [[망명]]행을 택했는데, 1997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 장승길이 망명한 이래 최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이었다.
태영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상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태영호의 탈북 요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 공사의 자녀 중 북한이나 영국 현지에 남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50세) 역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며,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984년 사망)의 친척이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오혜선 역시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호의 큰 아들은 26세로 영국에 거주하며 현지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2016년 망명 당시 19세로, 영국 가디언 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명문대학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름은 'Kum Tae'. 둘째 아들에게는 [[영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갑자기 페이스북에서 소식이 끊겨서 다들 걱정했는데 망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안심했다고.--너 숙청당한줄 알았어--
이 인물의 탈북 이후로 김정은이 고사총(보통 12.7mm나 20mm 기관총을 2연장 ~ 4연장으로 엮어 쓰는 [[대공포]])으로 관련자 및 책임자들을 처형했다는 소문(확인 불가)과 함께 탈북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북한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18/0200000000AKR20160818103151014.HTML?input=1195m|연합뉴스 단독 기사]]
- 토리코/383화 . . . . 18회 일치
* 치치는 빈사 상태의 사천왕에게 자신의 몸을 요리해 먹이고 산화, 사천왕들은 다시금 눈을 뜬다.
* 맨섬은 그저 웃고 있는데 자신의 무력함에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 그리고 자신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그저 지구가 무사하길 기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 네오를 포식하는데 성공한 아카시아는 마침내 자신의 식욕을 손에 넣었다며 흥분에 떤다.
* 그리고 살려둔 것은 "서로 잡아먹었던 사이"라서 베푼 자비라며 페어를 그대로 둔다.
* 그는 다시 일어서며 "어떤 남자에게 감사를 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덕분에 찾아헤매던 "재료와 맛"에 도달했다고 한다.
* 죠아는 어째서 자신의 식운 공격이 먹히지 않았는지 경악하며 스타준은 "너의 식운이야 말로 내가 찾던 식재"라 말한다.
* 그리고 그 남자는 언제나 남과 나눌 줄 아는 자인데 바로 스타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그와 "나눠가진" 자라고 말한다.
* 그 남자는 바로 스타준의 동생 토리코.
* 치치는 자신의 몸을 조리해서 토리코에게 먹인다. 이미 다른 사천왕들에게도 자신의 몸을 먹인 상태.
* 그는 유언처럼 자기들 식욕은 모두 "힘"의 노예이며, 그 레드 니트로의 힘을 사천왕들에게 쏟아부었으니 그 힘만 다룰 수 있다면 몇 십 배로 강해질 거라고 말한다.
* 그말을 듣고 토리코가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데, 치치는 자신들은 어차피 식욕이며 언젠가 누군가의 식욕으로 부활할 거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부탁한다.
* 블루 니트로 페어과 독자적으로 아카시아와 협력관계를 맺은건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묘하게 단독으로 아카시아와 만나는 장면이 많아서 의심되던 부분인데 확인되었다.
* 세츠노가 토리코와 함께 기대를 거는 자도 스타준으로 보이는데 이걸 감안하면 세츠노나 지로는 이들의 출생에 대해서 알고 있던거 같다.
- 토리코/395화 . . . . 18회 일치
* 인간계로 돌아온 토리코는 약속대로 린과 결혼식을 거행한다. 많은 동료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낸다.
* 예식은 금방 끝나고 곧바로 피로연의 시작이다. 하객이 무려 5천명. 한 번이라도 토리코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러 왔다. 구르메 계의 주민들은 물론 스타준을 위시한 미식회의 인물들까지 얼굴을 보인다. 코마츠는 조리장으로서 꼭 성공적인 피로연으로 만들자고 기합을 넣는다. 오오타케, 나카우메도 조력하러 온다. GOD를 요리한 전설의 요리사들이 모두 모이자 주방은 한 순간에 달아오른다.
* 린은 식장 한켠에 빈 테이블이 놓여있는걸 발견한다. 그런데 여느 가정집에서나 쓸법한 낡고 평범한 테이블이다. 린이 뭐냐고 묻자 토리코는 "어떤 식혼들을 초대한 자리"라며 꼭 와주길 기대한다고 말하는데.
* 풀코스의 "전채", BB콘이 등장. 하지만 통상의 BB콘이 아니라 치킨 키슈와 비장의 조미료 "멜크의 별가루"가 토핑돼 있다. 하객들이 대호평하자 초대 멜크와 2대 멜크도 만족스럽게 미소짓는다. 치킨 키슈도 공들인 작품. 다양한 재료로 만든 페이스트리 안에 커스타드 크림을 넣은 음식인데 코마츠가 토리코와 처음 만났을 때, 토리코가 낚시로 잡았던 가재피시와 오미 독수리를 넣었다. 코마츠는 풀코스 안에 자신과 토리코의 인연과 여정을 새겨넣은 것이다.
* 네 번째 "고기요리", 엔드 매머드(완상)의 스테이크. 사실상 네오의 고기라고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네오도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최종보스인 네오의 고기"라고 해설하자 제브라가 옆에 앉은 네오에게 "너보고 최종보스랜다"라고 놀린다. 네오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스테이크엔 라이브베아라가 제공했던 메테오 갈릭이 토핑. 고명으로 고대의 식보 보석고기와 가라라 악어 고기가 올라갔다. 이 또한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한 고기요리의 총집성 같은 것. 코마츠는 특히 가라라 악어를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스타준은 보석고기를 맛보며 리갈 매머드 안에서 토리코에게 패하고 "나도 언젠간 먹고 싶었다"고 말하던 일을 떠올리고 미소짓는다.
* 다섯 번째이자 모두가 기다리던 "메인 디쉬" GOD. 토리코는 이미 한 번 맛봤던 것이지만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그의 식욕 "적귀"와 이별하게 된 식재이며 그와 함께 먹고 싶었던 식재. 지금은 잘 다듬어져 마치 작은 지구를 잘라놓은 것처럼 보인다. 토리코는 GOD를 맛보며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토리코만이 아니다. 토리코와 GOD를 놓고 경쟁하기로 했던 아이마루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GOD를 칭송하고 앞다퉈 추가 주문한다.
* 여섯 번째 "샐러드" 에어. 야채의 왕 오존초 위에 올려져 제공됐다. 요식계의 인물들은 에어에 특히 감격하며 먹는데 코마츠는 개인적으론 처음 콤비 결성을 했던 오존초 쪽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토리코가 콤비를 짜자고 하던 말을 떠올리며 거의 통곡하는 코마츠.
* 대망의 최후의 풀코스 "드링크" 빌리언 버드의 알. 도탄에 빠진 인간계를 구원하고 새로운 구르메 시대를 개막한 구세주 같은 식재다. 조청무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소년도 이 자리에 참석해 빌리언 버드야 말로 모두를 구원한 식재라며 칭송한다. 오늘 나온 빌리언 버드의 알은 멜로우 콜라가 같이 나오는데 쉐이크로 만들면 빌리언 버드 멜로우 드링크가 된다.
코마츠는 모든 서빙이 마치자 식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데 멜로우 콜라 탓을 하며 말을 돌린다.
|| 어서와 미도라. 같이 밥먹자. ||
지금까지 작중에서 코마츠, 토리코와 인연있는 식재가 총망라되어 등장. 몇몇 식재료는 토리코의 풀코스나 아카시아의 풀코스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2부에서 등장한 식재 보단 1부에서 나왔던 식재가 비중있게 묘사되었는데, 2부 부터는 식재 자체에 대한 묘사는 슬렁슬렁 넘어간 것도 영향이 있는 듯 하다.
네오는 갱생된 탓인지 옷까지 한 벌 빼입고 일행 사이에 섞여 있다. 사회자가 "최종보스 네오"라고 언급하는데 아무도 네오가 참석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18회 일치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징집병 수비대×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징집병 수비대×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징집병 수비대×2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징집 민병 수비대×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징집 민병 수비대×2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징집 민병 수비대×2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징집 민병 수비대×3
>법으로 통제될 땐, 범죄자만이 두려움에 떨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건 그 올바른 돈을 찾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징집 민병 수비대×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징집병 수비대×1, 징집 민병 수비대×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징집병 수비대×1, 징집 민병 수비대×2
* 해당 지방에서 키쇼 닌자, 야부사메 키헤이를 모집할 수 있게 됨.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야리 징집병 수비대×2, 징집 민병 수비대×2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보병 수비대×1
* 자동 생산되는 주둔 유닛: 보병 수비대×2
>대장장이는 자신의 운명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운명을 단조한다.
=== 밀수업자 은신처(Smugglers' Cove) ===
- 페어리 테일/482화 . . . . 18회 일치
나인하르트가 불러낸 히스토리아를 상대로, 생존자들은 어려운 싸움을 시작한다.
* 그레이는 "스승을 넘어서자"며 리온을 격려하고 울과 싸우기 시작한다.
* 렉서스를 비롯해 생존자들은 히스토리아와 힘겹게 싸워나간다.
* 엘자는 이카루가, 아즈마, 쿄우카를 상대로 가까스러 버텨나간다.
* 나인하르트는 엘자도 자신의 "히스토리아"에 넣을 작정이다.
* 엘자는 결국 쿄우카에게 묶이고 쿄우카는 지하 고문실의 일을 들먹이며 도발한다.
* 쿄우카는 또다시 엘자를 고문하고 능욕하려 하지만 엘자는 꺾이지 않는다.
* 엘자는 "동창회는 충분하다"며 지금 여기 모인 것은 강적들이긴 했지만 "모두 패배해 죽은 자들"라 말한다.
* 쿄우카가 더 거세게 매질하지만 엘자는 아랑곳 않고 "망령은 다시 베이기 전에 사라져라"고 기백으로 압도한다.
* 엘자의 눈빛에 압도된 히스토리아들은 일순간에 사라진다.
* 나인하르트는 엘자의 인상착의와 마력을 보고 "설마 아이린 님의..."라며 두려움에 떤다.
전부 패배해서 죽은 자들이다.
-엘자. 자신을 공격하는 히스토리아들에게.
* 엘자의 출생에 대한 떡밥이 던져졌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18회 일치
* 엘자 스칼렛도 함께 길드로 돌아가자고 만류하나 마카로프는 끝내 결심을 바꾸지 않고 페어리 로를 발동시킨다.
* 제국군이 쓸러나간 자리에 하얗게 불사른 마카로프의 모습.
* 선전하고 있던 엘자 스칼렛도 버서커의 공격에 밀려난다.
* 엘자의 공격에도 버서커들은 쓰러지지 않는다.
* 마카로프 드레아는 "여기까지인가"라고 중얼거리는데 엘자는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 페어리 로는 사실 자신의 생명을 깎아서 사용하는 마법. 적의 수에 따라 더 많은 생명력을 필요로 한다.
* 마카로프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지막 길을 막지 말라고 말한다.
* 메이비시는 다른 대책이 있다고 만류하지만 마카로프는 자신의 아이들(길드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 요정군사의 입장에선 각자 한 명의 병사일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이다.
* 그는 자신의 목숨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열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말한다.
* 엘자는 함께 길드에 돌아가자고 애원하지만 마카로프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 마카로프는 유언을 남기기 시자갛낟.
* "동료와 함께 가면 길은 있다. 동료를 믿고 자신을 믿어라. 길드는 가족이며 잊어선 안 된다."
- 피서영 . . . . 18회 일치
|출생지 = {{국기|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
|배우자 = 로먼 재키브(Roman Jackiw)
|자녀 = 아들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
* [[이화여자고등학교]]
Spires에 등록된 피서영의 논문 수는 총 66편으로 3800번이 넘는 피인용을 얻었으며, 특히 Alan Guth와의 인플레이션 초기 우주의 양자역학적 요동에 관한 연구는 1000여번의 피인용수를 받은 중요한 업적이다. 양자 요동이 밀도 요동(density perturbation)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 낸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남편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는 또한 매우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다. 양자장론에서 고전적인 대칭성이 양자효과에 의해서 깨진다는 소위 Adler-Bell-Jackiw anomaly를 최초로 발견한 학자이며, 고온에서 대칭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결과를 최초로 계산해 낸 학자이기도 하다.(finite temperature field theory)
피서영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막내 딸로 수필 '서영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필 '서영이'에는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남겼다.
[[피천득]]은 딸 피서영에게 “[[퀴리 부인]]처럼 되어라.”, “[[아인슈타인]]같이 공부해라”라는 말을 자주 들려주며 인생의 멘토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 [[피천득]]의 믿음, 기대, 격려로 딸 피서영은 훗날 저명한 과학자가 되었다.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이큐/217화 . . . . 18회 일치
*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햐쿠자와 유다이에게 히나타가 조언으로 자신의 장점을 찾도록 해준다.
* 햐쿠자와 유다이는 멤버 중 유일하게 2미터의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테크닉이 낮아 전반적인 플레이는 중학생 수준.
* 반대로 햐쿠자와는 스스로가 느끼기에고 조잡하고 빈틈이 많은 플레이. 자존감이 완전히 붕괴된다.
* 그러면서 햐쿠자와는 큰 신장이라는 무기가 있는데 자신은 카게야마가 없으면 기량을 펼칠 수 없다고 말한다.
* 햐쿠자와는 자신은 키가 클 뿐이라고 말하는데 히나타는 그거야 말로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최고의 재능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 햐쿠자와는 그렇게 자신을 격려해서 무슨 이점이 있냐고 묻는데
* 그리고는 자신이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간단한 어드바이스를 해준다.
* 쿠니미팀을 상대하는 햐쿠자와팀
* 햐쿠자와는 큰 키를 살려 레이스를 끊는다.
* "편하게 하자"라고 응원하는 히나타.
* 혼전 중 공을 높이 띄우는 햐쿠자와
*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은 햐쿠자와.
- 한동근 . . . . 18회 일치
| 배우자 =
'''한동근'''([[1993년]] [[5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로, [[위대한 탄생 시즌3]]의 우승자이다.
[[1993년]] [[5월 9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ref>{{뉴스 인용 |저자=손수영 |제목=한동근, 데뷔 전 무슨 일 했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url=http://news.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609092113433115096_1 |뉴스=헤럴드경제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9 |확인날짜= }}</ref> 한동근은 미국 유학 도중 성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합창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고 피아노로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민서 |제목=‘가요광장’ 한동근 “美 유학 중 성가대 활동, 가수 된 계기” |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545114&cloc=rss%7Cisplus%7Centertainment |뉴스=일간스포츠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3 |확인날짜= }}</ref> [[2014년]] [[8월]] 데뷔 앨범을 준비하며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를 부르게 되었다. 데뷔 곡을 정하기 위해서 시험 삼아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던 만큼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를 "자연스럽다"며 마음에 들어한 소속사 사장의 권유에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는 그 다음 달 발표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양승준 |제목=카메라 없어도 노래 자처…열정이 만든 ‘역주행 신화’ |url=http://www.hankookilbo.com/v/31eb3a7aa65e4987a1b22f33592d79a6 |뉴스=한국일보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1 |확인날짜= }}</ref>
2018년 8월 30일 오후 11시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9월 5일에 경찰조사를 받았다. 한 동안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할 예정이다.
* 2016년 《[[MBC 방송연예대상]]》 뮤직토크쇼부문 남자 신인상<ref>{{뉴스 인용 |저자=류재용 |제목=한동근, 2016 MBC 방송연예대상 뮤직토크쇼부문 남자 신인상 주인공으로 선정 |url=http://www.acrofan.com/ko-kr/detail.php?number=27608&thread=BD03 |뉴스=acrofan |출판사= |위치= |날짜=2016-12-30 |확인날짜= }}</ref>
[[2018년]] [[8월 30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덕여자고등학교 인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이 드러났다.<ref>{{뉴스 인용 |저자=황미영 |제목=[단독] 가수 한동근, 음주운전 적발…오늘(5일) 조사 |url=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421&aid=0003572860 |뉴스=뉴스1 |출판사= |위치= |날짜=2018-09-05 |확인날짜=2018-09-05}}</ref>
* {{ID 없는 유튜브 사용자|UCGCdG69Z-kLQeqPxBd2BwoQ}}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참가자]][[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
- 한혜숙(배우) . . . . 18회 일치
|| [[김영애]] || [[한혜숙]] || [[김자옥]] ||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c0c000><table align=center><:>{{{+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 별자리 ||<(> [[사자자리]] ||
|| 학력 ||<(> 덕성여자고등학교 (졸업) ||
원래는 MBC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1971년]] KBS 주연급 탤런트 모집에 당선되어 [[하명중]]과 공동주연한 드라마 '꿈나무'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5년에 방영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TBC에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로 대표되는 2세대 트로이카가, MBC에는 [[양정화(배우)|양정화]]와 [[김자옥]][* 이후 [[김영란(배우)|김영란]].]이 있었다면 [[KBS]]에는 한혜숙이 있다할 정도로 KBS 대표 탤런트로 활동하였으며, 1979년 KBS 대하 드라마 '[[토지#s-7.1|토지]]'에서 제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986년 ~ 1987년 KBS 대하 드라마 '[[노다지#s-6|노다지]]'에서 최실단과 최성희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드라마]] 속에서 일제시대 엘리트 여대생이었으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극적 인생을 살게 되는 연기를 하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연기로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했던 [[구미호(전설의 고향)|구미호]]에서의 구미호 역할이 있다. 전설의 고향 제 1호 구미호였는데 당시의 흑백화면과 함께 약간 독한 인상을 보여주는 한혜숙의 표정 연기가 어우려져 [[내 다리 내놔]]와 함께 진짜 [[레전설]]급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다. 당시 전설의 고향 애청자들 중에는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한혜숙이 구미호로 변신하는 마지막 장면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당시 초딩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 수준으로 무서운 인상이 남아 있었다고.
실제 성격이 직선적이고 도도한 편으로, 드라마에 반영되어 주로 꼿꼿하고 도도하고 고집이 있는 여자주인공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70년대에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다.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 [[PD(방송)|PD]]들하고 트러블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하차하거나 방송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1970 ~ [[1980년대|80년대]] 미모 순위하면 항상 순위권에 들었다.
[[김영애]], [[김자옥]] 등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비교해 영화 출연이 드문 것은 물론 흥행작이 없는 것도 아쉽다. 물론 한혜숙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영화]]가 사양길에 들고 '호스티스 영화'들이 생기면서 '벗기기 경쟁'이 과열했을 때이니 직선적이고 도도한 성격인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 실제로 호스티스 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 한혜숙도 영화에 출연했는데 호스티스물은 단 1편도 없었고, '[[족보(영화)|족보]]', '[[최후의 증인]]'과 같은 작품성이 진한 작품들에 출연했었다. ~~물론 흥행은...~~ 이후 1987년, 곽지균 감독의 '두 여자의 집'에 출연했을 때 [[19금]]이긴 했지만, 노출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2세대 트로이카나 김자옥, [[김영란(배우)|김영란]] 등 당대 톱탤런트들도 호스티스 영화와 같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했지만, 한혜숙과 같이 '벗기기'에 거부감이 들어 전성기 시절 전혀 영화출연을 하지 않은 스타가 있었는데, [[이경진]]이다. 이쪽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은 물론 아예 영화 자체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김자옥]]의 경우에는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2세대 트로이카]]와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흥행작을 내었고, [[김영애]]는 김자옥만큼은 아니더라도 늦게나마 '[[빙점 81]]' 등의 흥행작을 냈지만 한혜숙은 그렇지가 않다.
1970년대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들 모두 1951년 생 동갑내기들인데,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생존자이다. 김자옥은 [[2014년]]에, 김영애는 [[2017년]]에 각각 [[사망]]했다.
- 허화평 . . . . 18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37년 출생]]
대한민국의 전 군인, 관료, 정치인이다. 자는 봉우(鳳宇), 호는 우민(佑民)이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세례명]]은 필립보.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자 최측근 중 하나였고, 5공 초기 허삼수, 허문도 등과 함께 쓰리허 라는 실세로 잘 나갔으나 도중에 전두환의 눈밖에 나 좌천되었다. 박정희 인사로 빗대어 보면 쿠데타의 공신으로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다가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김형욱]]과 비슷한 사례.
육군사관학교 동기 [[김진영(군인)|김진영]], [[허삼수]]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허삼수와는 단짝이었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대령]])이었다. 말하자면 개국 공신 중의 공신인 셈이다. 1980년 9월 [[준장]] 진급 및 동시 예편하였다.
1980년 9월 [[전두환]]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직함은 없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없던 직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허화평을 임명한 셈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청와대 핵심 기획자 역할을 했고 차관급 관료임에도 유일하게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했다. 명칭만 비서실 보좌관이었지 실질적으로 부총리급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 시절부터 비서실장이었으니~~ [[허삼수]], [[허문도]] 등과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활동했다.
좌천된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1988년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자 국책연구소인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에 부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95년 김영삼의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법처리 조치로 기소되었다. 이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유죄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사면되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요동치는 판에 허화평은 TV조선의 단독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허화평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의 정신적 포로라고 증언하면서, 이 같은 사건으로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0&cid=1051768&iid=1139394&oid=448&aid=0000186191|#]]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2005년 방영된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드라마]]에서는 [[이진우]]가 허화평을 연기했는데, '''허화평 본인이 실제 자신보다 더 멋지게 나왔다면서 극찬했다고 한다.''' 단 이것과는 별개로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작중에서 허화평이 [[금융실명제]]에 반대하자, [[이학봉]]이 [[김재익]]에게 "우습네요. 그렇게 개혁 개혁 노래 부르더니."라며 뒷담화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5공시절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적은 데 반해 허화평은 방송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쾌도난마(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윤선]]이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자 "정무수석쯤 되면 대통령이 안 만나 주더라도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된다."고 일갈했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앞장서서 이 정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기만 하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문고리 3인방|권력의 문고리만 잡으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라며 ~~문고리 잡아본 사람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 '''무소속''' || '''69,395 (46.3%)''' || '''당선 (1위)''' || 1992년 [[민주자유당]] 입당 ||
- 홍승목 . . . . 18회 일치
'''홍승목'''(洪承穆, [[1847년]] [[음력 10월 11일]] ~ [[1925년]] 양력 [[2월 15일]])은 [[조선]] 말기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를 지냈다. 자는 경희(敬熙), 호는 연운(硯耘),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 본적은 [[경기도]] [[경성부]] 계동이다.
[[한성부]] 출신으로 [[1875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하여 [[승정원]]에서 관직을 시작했다. 이후 [[홍문관]]과 [[사헌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1879년]] 형조와 병조의 참의 자리에 올랐으며, [[1881년]]과 [[1883년]]에는 각각 [[사간원]]의 대사간과 [[성균관]]의 대사성에 임명되었다. [[1890년]] 형조참판과 병조참판을 지냈고, [[1900년]] [[궁내부]] 특진관에 올랐다.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영]], [[민영기 (1858년)|민영기]]가 [[박제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6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아들은 경술국치 때 자결한 [[홍범식]]이며, 손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상을 지낸 소설가 [[홍명희]]이다.
*** 아들 : [[홍범식]](洪範植, 1871 ~ 1910), [[경술국치]] 때 자살
*** 며느리 : 조씨(? ~ 1950), [[한국 전쟁]] 중 월북자의 가족이라 해서 사살되었다.<ref name="내일1" />
**** 손자 : [[홍명희]](洪命熹, [[1888년]] [[5월 23일]] ~ [[1968년]] [[3월 5일]])
* [[공자교회]]
== 참고자료 ==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분류:1847년 태어남]][[분류:192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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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구열 . . . . 17회 일치
| 좌우명 = 겸손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자
'''강구열'''([[1988년]] [[2월 23일]]~ )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테란]] 유저이다. 아이디는 '''910[Ete]'''로, 이는 이름 중 구(9), 열(10)을 숫자로 풀어쓴 것이다.
두 선수의 첫 인연은 곰TV [[MSL]] 시즌2 조지명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조지명식에선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영구제명)와 [[박성훈 (프로게이머)|박성훈]]([[삼성전자 칸]])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는데, 이는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일어난 '버그 사건' 때문이었다. 시종일관 박성훈은 "벌레(버그)테란과 맞붙고 싶다" 등의 공격적인 멘트로 김창희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말았다. 김창희가 전대회 4강에 올랐던 [[진영수]](당시 [[STX 소울]] 현 영구제명)에게 "만만하다"며 도발하자, 진영수가 "나와 승부하려면 강구열부터 꺾고 오라"며 응수한 것. 결국 별다른 친분도, 사연도 없던 강구열과 김창희는 진영수에 의해 같은 C조에 편성되었고, 김창희는 강구열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종 진영수만 자극하기에 바빴다. 가만히 지켜보던 강구열이 "나는 버그 쓴 테란에게는 지지 않는다"며 김창희를 공격했고, 이에 김창희가 "버그가 아니라 스킬인데 자꾸 버그버그 하니까 좀 그렇다"라며, 한편으로는 "강구열 선수 물론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면서 순식간에 두 선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또한 이 장면은 각 커뮤니티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곰TV MSL 시즌2 C조 예선에서 김창희만 두 번 꺾고 16강에 오른 강구열은 '퍼펙트 테란' [[서지훈]](CJ 엔투스)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초에 김창희와의 대결로 화제를 낳긴 했으나, 기량면에선 약체에 속한다고 평가받던 강구열이었기에 그 파장은 엄청났다. 8강전 상대는 당시 대 테란전 최고 승률을 자랑하던 송병구([[삼성전자 칸]]). 팬들은 송병구의 절대 우세를 예측하면서도, 16강에서 일으킨 강구열의 파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MSL에는 8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그 특징을 살린 별명, 문구를 붙여주는 관행이 있다. 당시 강구열에겐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BLADE TERRAN'이란 수식이 붙었는데, 이는 기본기나 운영보다는 초반 빌드에 집중하는 강구열의 플레이 스타일에 착안한 것이었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8강에서 강구열은 예의 그 '날카로운 빌드'를 시전했으나 송병구의 탄탄한 운영에 모두 막히면서 0: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혹시모를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에 크게 실망했고, 시드를 획득한 강구열이 곰TV MSL 시즌 3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 (1988년)|김윤환]] (KTF)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맥없이 탈락하자 "거품이다", "천운 8강이다"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같은 강구열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한 선수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CJ 엔투스의 [[주현준]],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 등이 '시드 확보→졸전→광속 탈락'의 전례를 밟은 것. 팬들은 이들을 한데묶어 '강라인'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이는 커뮤니티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한때 강라인의 열기가 식는 듯했지만, 2008년 12월, 강구열이 바투 스타리그 36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 질 조짐이 일고 있다. 36강 진출을 확정지은 직후 강구열의 인터뷰 때문, 강구열은 인터뷰에서 "09-10 시즌을 진짜 벼르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강라인의 팬들은 09-10 시즌에서 9와 10을 강구열의 이름에서 강자를 뺀 구와 열로 풀이, 즉 구-열시즌으로 해석하면서 다시금 뜨거워 지고 있는 것이다.
** 3. 우승자나 네임벨류가 있는 사람은 가입 불가능.
* [[신희승]]([[이스트로]]) : 2010년 6월 영구제명. 신희승의 강라인 가입은 험난(?)했다. [[EVER 스타리그 2007]] 4강 2007에서 [[이제동]]([[르까프 오즈]])에게 0-3으로 완패, 3,4위전에서 김택용과의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했지만 시드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타 챌린지를 통과한 선수가 D조의 시드권을 잡았기 때문에 신희승은 시드를 잡지 못했다. (스타챌린지가 없어지면서 시드권은 박카스 이후 공동 3위에게 넘어감)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마침내 시드를 딴 이후 [[허영무]](삼성전자 칸)에게 0-3으로 완패하는 '삼고초려' 끝에 강라인의 일원이 되었다. 항간엔 "신희승의 네임밸류는 기존의 강라인과 다르다"는 반론이 일어 논쟁에 휩싸였으나, 신희승 본인이 "나는 강라인이다"고 인정하면서 '공인' 강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략가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와룡희승'이란 애칭을 붙였다. 이 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선 [[안기효]], [[김민제 (프로게이머)|김민제]]에게, 아레나 MSL에서 고인규, [[박찬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최종전에서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와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는 각각 16강에 진출하였다.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1승 2패로 탈락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패로 탈락했다.
* [[손찬웅]] (현 [[화승 OZ]]) : 2011년 7월 은퇴. 손찬웅의 행보는 강라인이 되는 데 정말 완벽했다. 2007 스타챌린지 S2에서 손찬웅은 [[변길섭]]과의 최종전에서 변길섭을 꺾고 박카스 [[스타리그]]에 올라가 김동건, 박명수, 박영민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그 다음 시즌 [[에버 스타리그 2008]] R1에서 [[이제동]]과 [[한동욱]]을 떨어트리는 충격적인 대진으로 2R에 진출했다. 그 후 R2에서 [[김택용]], [[박성균]], [[박영민 (1984년)|박영민]]과 같은 조가 되어 김택용과 박영민을 이기고 박영민과 8강에 진출하며 김택용과 박성균의 진출을 기대하였던 관계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 8강에서는 강력했던 로얄로더 후보 [[허영무]]를 2:1로 역전시키며 4강에 진출하여 시드를 얻었다. 하지만 4강에서 [[프로토스]]전을 제일 잘 하기로 유명한 [[박성준 (1986년)|박성준]]에게 3:1로 패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하였으며, 끝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도 [[송병구]], [[염보성]],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전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강라인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인크루트 스타리그 3패 탈락의 영향으로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김택용, 박영민에게 2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이 후에도 서바이버 시즌 3에서도 [[박태민]]과 STX의 저그 신예 [[조일장]]에게 연패하며 탈락, 강라인의 일원임을 입증했다.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박태민]]과 [[서기수]]를 이기고 16강에 진출은 하나 [[문성진]], [[송병구]],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무난한 3패로 광탈하며 강라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차기 시즌에서는 36강에서 탈락하며 본선 진출 실패. 그 뒤로는 스타리그에도 MSL에도 복귀하질 못하였고, 계속 탈락만 하다가 2011년 7월 은퇴.
* [[박세정]] ([[위메이드 폭스]]) : 2010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1]] 16강에서 김윤환, 정명훈과의 재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하였다. 8강에서 전대회 준우승자인 진영화를 2: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하였지만 이영호에게 3:0으로 패배하게된다. 이후에 열린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2]] 16강에서 3패로 탈락, [[박카스 스타리그 2010]] 36강마저 탈락하며 강라인에 가입했다. 그 뒤로는 개인리그 본선 진출 계속 실패.
* 그밖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8]] 4강에서 완패한 [[박찬수]]([[KTF 매직엔스]], 현재 영구제명), [[네이트 MSL 2009]] 8강에서 셧아웃당한 [[김대엽]]([[KT 롤스터]]), [[빅파일 MSL 2010]] 8강에서 [[김택용]]에 1대3으로 패해 탈락한 [[염보성]]([[제8게임단]]) 역시 강라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네임밸류가 높다는 이유로 인해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박찬수는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우승함) 최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박찬수에게 셧아웃당한 [[김명운]]([[웅진 스타즈]])등이 신규 멤버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8강에 진출하면서 광속 탈락을 피해가 가입 실패하고 말았다. 이중 1명은 영구제명, 1명은 사실상 은퇴. 또한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에서 [[송병구]]에 셧아웃당한 [[김현우 (프로게이머)|김현우]]([[STX 소울]])도 차기 [[진에어 스타리그 2011]] 8강에 진출해 강라인 가입에 실패했다. [[유병준 (1993년)|유병준]]([[삼성전자 칸]])도 [[ABC마트 MSL 2011]] 8강에서 [[이제동]]에게 3대1로다가 패하면서 다음 MSL에서 광탈하면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MSL이 없어지면서 유병준도 강라인 가입은 면했다. 유병준도 2012년 6월 은퇴. [[진에어 스타리그 2011]] 4강에서 [[허영무]]에 셧아웃당한 [[어윤수]]([[SK Telecom T1]])도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티빙 스타리그 2012]] 8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 가입은 면했으며, [[김정우 (프로게이머)|김정우]]도 본래 강라인이었으나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에서 우승하면서 탈퇴가 확정됐고, 영구제명된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임의탈퇴한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도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이영한]]도 8강에 3전전승으로 진출하면서 강라인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 강세정 . . . . 17회 일치
| 형제자매 = 1남 1녀 중 막내
| 배우자 =
| 자녀 =
| 수상 = [[2009년]] [[MBC 연기대상]] 여자 우수상
'''강세정'''(Se Jung Kang, [[1982년]] [[1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전 [[가수]]이자, [[배우]]이다. [[2000년]] [[걸 그룹]] [[파파야 (음악 그룹)|파파야]]로 데뷔하였다. '''고나은'''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하였다가 [[2017년]] [[4월 13일]]<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922762 강세정, 열음엔터와 전속계약…본명으로 활동]매일 매일경제2017.04.13 </ref>부터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2||KBS 드라마||[[자체발광 그녀]]||김꽃님||
|2015||중국 [[후난위성텔레비전]]||[[무신 조자룡]]||[[손부인]]||
|2017||KBS2||[[내 남자의 비밀]]||기서라, 진여림||<ref>이 작품때부터 본명인 강세정으로 활동하고 있다.</ref>
|2001||KBS1||[[가족오락관]]||출연자||
* 2004년 [[김현정 (가수)|김현정]] - B형 남자
* 2007년 [[유리상자]] - 기억력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17회 일치
공격받거나 폭발에 휘말려 잃어버린 체력은 중간 지점에 놓인 카놀리[* [[시칠리아]] 지방의 전통 과자.]를 먹는 것으로 채울 수 있다.
군인들이 자주 들고 나오는 무기. 장탄수 1발. 맞은 곳에 큰 폭발을 일으킨다.
1920년대 금주법 시대, 갱단의 행동대장격 인물이던 비니 카놀리는 갱단 보스인 벨루치오에게서 지령을 받는다. 떠그타운으로 가서 "파리" 프랭키라는 남자를 데려오라는 것. 떠그타운은 세인트 패트릭 데이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동이 일어나 완전히 무법지대가 된 곳이었다. 카놀리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일은 일이기에 SS. 럭키라는 이름의 배에 타고 떠그타운으로 향한다.
떠그타운은 이미 좀비들의 소굴이 되어있었다. 좀비들을 해치우며 가던 카놀리는 좀비들에게 포위당한 생존자를 구하게 된다. 떠그타운에서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던 그 생존자는 카놀리에게 떠그타운의 절반을 지배하던 보니노 마피아들이 프랭키를 잡아갔다고 알려준다.
카놀리는 보니노 마피아들이 경영하던 스트립클럽으로 가 그곳에 있던 모두를 족치고 프랭키를 구한다. 이제 둘은 떠그타운에서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프랭키는 강 건너편 벨루치오 마피아 빌딩에 비행선이 있으니 그걸 타고 떠그타운에서 탈출하자는 의견을 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로 복무했다는 이야기는 덤. 하지만 비행선에 가려면 군대의 봉쇄를 뚫어야 했다. 카놀리는 프랭키와 함께 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해 군대가 폭파시키려던 도개교에 도착한다.
카놀리가 도개교를 내리자, 비니는 더이상 카놀리는 필요 없고, 벨루치오한테 일 잘해줬다고 전해주겠다며 자기 혼자 다리를 건너가버린다. 이에 카놀리는 성을 내지만 군대가 다리를 폭파하며 그대로 다리에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카놀리는 살아남아 하수구로 도망친다. 하수구에는 돌연변이 쥐들이 살고 있었다. 카놀리는 이들을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수구의 끝은 정체 모를 연구소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있던 연구원이 온갖 함정을 작동시키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카놀리는 그를 붙잡아 이야기를 듣는다.
금주법으로 인해 밀주업자들이 활개를 치게 되자 정부는 이들을 막기 위한 약물을 만드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부는 이 계획을 포기했고, 이로인해 연구를 진행하던 연구원은 실업자가 된다. 이 때 프랭키가 연구원에게 접근해 약물 한 갤런만 주면 유명하게 해주겠다고 꼬셨던 것. 이후 프랭키는 그 약물을 이용해 세인트 패트릭 데이에 술을 마신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연구원은 자길 데리고 떠그타운으로 가면 모든 걸 고칠 수 있을거라며 카놀리를 설득하려 하지만, 카놀리는 군대가 떠그타운을 통째로 날려버리려 하니 고칠 이유도 없고, 네가 만든 약물 맛이나 직접 체험하게 해주겠다며 박사를 약물통 안에 처박고 프랭키를 잡으러 간다.
카놀리가 벨루치오 빌딩 옥상에 도착했을 때는 독가스가 건물 높이까지 퍼진 상태였다. 비행선에 벨루치오의 돈을 전부 싣고 떠날 준비를 하는 프랭키를 목격한 카놀리는 벨루치오의 행방을 묻는다. 프랭키가 벨루치오를 죽였다는걸 깨달은 카놀리는 프랭키를 욕한다. 프랭키는 목격자를 남기지 않겠다며 카놀리에게 덤벼들지만 오히려 자신이 밀리자 비행선에 올라 타 카놀리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카놀리 역시 비행선에 올라 타서 프랭키를 두들겨 패고는 비행선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한다. 프랭키는 자기만이 비행선을 조종할 수 있다며 목숨을 구걸하지만 카놀리는 설명서를 읽어봤다며 프랭키를 비행선에서 내던져버린다. 이후 카놀리는 비행선을 몰고 떠그타운을 빠져나간다. 프랭키가 빼돌릴려고 했던 벨루치오의 돈과 함께.
- 구자춘 . . . . 17회 일치
[include(틀:역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1950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사 자격을 얻었다. 그 해 [[6.25 전쟁]]이 터지자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전쟁에 참여하였다. 전쟁이 끝난 1954년 미국 육군학교를 졸업하였다.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영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영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남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태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인 1978년 12월 22일부터 1979년 12월 14일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10.26 사건]] 당시 [[육군본부]] 국무회의에 참석하였다.
[[전두환]]이 집권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정치규제에서 풀렸다.
1987년 [[김종필]]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입당하였다.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달성군]]-[[고령군]] 지역구에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되고 나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달성군]]-[[고령군]] 지역구에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민주자유당]] 김종필 대표가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이에 따라갔다.
[[19대 총선]], [[20대 총선]]에서 달성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던 [[구성재]]는 구자춘의 아들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 길용우 . . . . 17회 일치
||수상||<(> 2011년 MBC 드라마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황금연기상 ||
[[삼국시대]]의 마지막 왕 역을 두 번 연기하였다. 그리하여 [[사극]]에서는 마지막 왕 이미지가 강하다. 1992년 [[KBS 2TV]] [[삼국기]]에서는 [[백제]]의 [[의자왕]]을, 2007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고구려]]의 [[보장왕]]을 연기하였다. [[해신(드라마)|해신]]에서도 [[신무왕]]을 맡았던지라 삼국시대의 왕을 전부 연기해본 경력이 있다. --[[우리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삼국 중에 중 웬 스파이가 존재하는 듯 한 기분탓을 그만 넘겨줄까 했었는데(…)]] 역시 [[통일신라|통신 시절 때의]] [[신무왕|그 어떤 누구를]] 이대로 흐지부지 넘겨가줘선 결코 아니될 듯 싶다; 현재와 미래에 아이들의 역사지식을 위해서라도(…)--
[[MBC]]의 정치드라마 [[공화국 시리즈]]에서 [[제1공화국(드라마)]]부터 [[김영삼]] 역할도 여러 차례 맡았다.[* 실제 김영삼의 열혈 지지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공포의 쿵쿵따]]에서 [[임창정]], [[이상해]] 등과 함께 유명인 세글자 이름으로 자주 언급되곤 했다.
2016년 11월 11일, 아들 길성진 이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손녀 선아영[*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딸이다.] 과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려 많은 재벌가, [[정치인]], [[연예인]]들까지 모인 흔하지 않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흔치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길용우는 [[이상달]]의 장례식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정계, 재계에 친분이 꽤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강부자]]와 같이 말이다.
이에 길성진은 "손님 또는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일반 대중에 공개된 옥상에 자발적으로 올라가 음식물을 취식한 것이지, 옥상에서 영업한 사실이 없다"며 소송을 냈다. 또 구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 판결 조사 결과 "당시 건물 옥상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비치됐고 조명도 설치됐으며 옥상에 가기 위해선 해당 맥줏집 내부를 통과해야만 한다"며 "단속을 전후해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음악·이야기 소리로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된 점을 들어 불법 영업을 옥상에서 했다는 증거가 된다라고 짚었다.
결국, 2017년 11월. 법원에게 과징금은 정당하며 "구청의 처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이웃에 대한 피해 방지 등의 공익이 길씨 등이 입게 될 불이익보다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며 "구청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양자역학]]을 이용해 내복과 침구를 만든다는(...) 주식회사 퀀텀에너지의 TV CF에 메인 모델로 출연한 적이 있다.
* [[내 사위의 여자]] - 박태호 역
* [[오자룡이 간다]] - [[왕철수]] 역
* [[달자의 봄(KBS 2TV)|달자의 봄]] - 강순홍 역
* [[삼국기]] - [[의자왕]] 역
- 김대륙 . . . . 17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롯데 자이언츠/선수단, top2=야구 관련 인물(KBO))]
||<-2><#000000> {{{#FFFFFF 롯데 자이언츠 No.}}} ||
|| '''포지션''' || [[유격수]], [[2루수]][* 올 시즌 자주 2루수로 출장하고 있다.], [[3루수]]~~, 1루수~~[* 2016년 4월 21일 사직 한화전에 9회 대수비로 출장하였다.~~ 거기서 에러로 2점을 더 주는 초석을 놓은 건 비밀.~~] ||
|| '''프로입단''' || [[2015년]] [[롯데 자이언츠]] 2차 5라운드 48순위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2015~현재) ||
|| '''응원가''' || [[빅뱅(아이돌)|빅뱅]] - 맨정신[* 롯데롯데 롯데롯데 자이언츠 김대륙 안타! x2] ||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선수.
6월 7일 [[KIA 타이거즈|KIA]]를 상대로 2-1로 뒤진 9회 안타를 친 [[최준석]]의 대주자로 1군경기에 첫 선을 보였다.
6월 10일 [[kt wiz|kt]]전에서 7회 최준석의 대주자로 출전했으나 주루사를 당해 1대 7에서 도망가는데 실패했다. [[롯데시네마(롯데 자이언츠)|그리고]]…
원래 퓨처스 올스타전 참전 자격을 얻었으나, 7월 10일 1군으로 올라오면서 자격을 잃고 대신 박정현이 나가게 되었다.
8월 20일 SK전에서 대수비로 나와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10회초 1사 1,2루 상황에서 타자가 때린 공이 직선타처럼 날아오자 재치있게 원바운드 처리해서 병살을 잡았다. 그러나 심판들의 환상적인 오심 때문에 인필드 플라이로 처리되고 말았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김준태(야구선수)|김준태]]와 함께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한 김준태와 달리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 2015 ||<|5> [[롯데 자이언츠]] || 71 || 54 || .148 || 8 || 0 || 0 || 0 || 1 || 6 || 0 || .148 || .246 ||
[각주][[분류:1992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김병기(배우) . . . . 17회 일치
||가족||<(> [[배우자]], 슬하 1남 3녀 ||
1977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 ||
* [[1991년]] [[MBC]] 주말연속극 《[[고개숙인 남자]]》 ... 덕근 역
* [[1992년]] [[KBS2]] 미니시리즈 《[[위기의 남자 (1992년 드라마)|위기의 남자]]》
* [[1998년]] [[KBS1]] 대하드라마 《[[왕과 비]]》 ... 내관 엄자치 역
* [[2001년]] [[SBS]] 드라마스페셜 《[[순자 (드라마)|순자]]》 ... 피엘 장 역
* [[2003년]] [[MBC]] 미니시리즈 《[[남자의 향기 (드라마)|남자의 향기]]》 ... 정태환 역
* [[2003년]] [[SBS]] 대하드라마 《[[왕의 여자]]》 ... 맹지천 역
* [[2009년]] [[KBS2]] 미니시리즈 《[[결혼 못하는 남자 (KBS)|결혼 못하는 남자]]》 ... 장봉수 역
* [[2010년]] [[KBS1]] 국권침탈100년특별기획 《[[자유인 이회영]]》 ... 오꾸마 역
* [[2011년]] [[MBC]] 대하드라마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 김재욱 역
* [[1977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 김효진 (배우) . . . . 17회 일치
| 형제자매 = 이영학 이아연(조카)
| 자녀 =
김효진은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동대문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그녀를 본 모델 에이전시의 권유로 잡지 모델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데뷔한 이후, 각종 잡지 모델과 광고에 출연했고,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입문했다. 그녀는 [[김민희 (1982년)|김민희]], [[공효진]], [[신민아]] 등과 대표적인 [[2000년]]대초 N세대 스타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김민희·배두나, 스크린 점령한 'N세대 아이콘'|url =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03200924561127&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 |날짜 = 2013-03-20|확인날짜 =2013-03-24 }}
</ref> 2003년 개봉 된 사극 영화 《[[천년호]]》에서 '자운비' 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김효진은 이지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2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주체적인 여성 윤나미 역을 통해 재조명받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칸레드카펫을 밟았다.
2011년 12월에는 8살 연상의 배우 [[유지태]]와 5년여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4년 7월 5일, 첫 아이인 아들 유수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 유지태 부부 5일 득남 "가슴 벅차다"|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906672|출판사 =뉴스1 |저자 =권수빈 |날짜 = 2014-07-05 |확인날짜 =2017-09-29 }}</ref>
또한 그녀는 배우 활동 외에 세계적인 NGO단체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유기견과 환경을 위한 자선 활동에 묵묵히 앞장 서고 있다.
* [[2003년]] 《[[천년호 (2003년 영화)|천년호]]》 ... 자운비 역
* [[2001년]] [[SBS]] 오픈드라마 《[[남과 여-왜 남자는 어린 여자에게 집착하는가?]]》
* 2013년 [[LG전자]] 디오스 (냉장고)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17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는 세로 한타의 테이프를 광범위하게 뿌리고 회수하는걸 이용, 근처에 있던 공격자들을 일망타진, 단숨에 포인트를 늘린다.
* 사걸고교 학생은 자기 손으로 바쿠고 일행의 품위 없는 행동을 깨닫게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 카미나리 덴키는 무익한 싸움이라며 빨리 끝내자고 한다.
* 그의 개성은 "정육". 주물러서 육체를 변화시키는 개성으로 타인의 신체는 그저 뭉글게 뭉쳐버리는 정도에 그치지만 자기 자신의 몸은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다.
* 떠다니는 고깃덩어리도 자신의 신체를 변형해서 만든 것. 접촉시키는 것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 그는 거기에 적극 찬성한다며 이렇게 "결격자"들을 배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 카미나리는 시험 치는 와중에 이상한 짓이라고 비꼬는데 시시쿠라는 "평범한 자가 날뛰는게 더 이상"하다고 받아친다.
* 시시쿠라는 "그것은 자각"이라며 반성하라며 공격을 가한다.
* 카미나리가 무언가 투척하자 폭발을 일으킨다.
* 시시쿠라가 피하려고 움직이자 그의 위치는 카미나리가 사전에 쐈던 "디스크"와 정확히 일직선.
* 카미나리는 바쿠고가 구태여 범위가 좁은 신기술을 사용한 이유가 "바닥에 있는 키리시마와 자신을 휩쓸리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걸 알고 있었다.
* 그물을 던진 것처럼 테이프가 공격자들 머리 위로 떨어진다. 이렇게 테이프에 붙은 적들을 끌어당겨 일망타진.
* 때마침 76명 째의 합격자가 나오며 시간이 촉박해진다.
* 무력화된 경쟁자들의 포인트를 하나씩 수거하는 미도리야 일행
* 이것으로 합격자는 79명째. 미도리야 일행은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 주최측은 항상 집중 마크 당하던 웅영고가, 올해는 한 명의 탈락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감탄한다.
- 남기애 . . . . 17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홍유자
| rowspan=2 | 제순자
| 홍복자
| 수목드라마 《[[남자친구 (드라마)|남자친구]]》
| 토일드라마 《[[자백 (드라마)|자백]]》
|《기도하는 남자》
|《여자 이야기-엄마의 심장》
|심숙자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하얀 자화상》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양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17회 일치
* 동방 변경주 : 제국의 동북방에 위치한 변경주로 제국의 최전선 중 한 곳. 북동쪽에 웅거한 30만 명에 달하는 야만족을 1개 군단 5천 명(실제로는 전사자 등으로 인해 4천 명 수준)만으로 막아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높다. 이 때문에 주의 주요 인물들도 중앙에서 좌천된 인물이거나 사고뭉치, 혹은 출신이 확실치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 사이파카르 : 주인공. 6황자. 바보같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야심가이면서도 신중하고 인내심이 많은 성격. 그 재능 때문에 오히려 황제에게 경계심을 사서 변경으로 쫓겨간다. 주변의 여성 가신들에게 하나같이 사랑받고 있는 게 특징.
* 스테라스테라 : 사이파카르의 교육담당관. 황제를 대신해 사이파카르를 제어하고 그 동태를 보고하는 역할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이파카르를 흠모하여 자신의 처지 때문에 갈등한다. 무투파가 대부분인 가신단 내에서 몇 안되는 '지모' 담당.
* 리 인 : 사이파카르의 식객으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글래머. 사이파카르야말로 제국의 통치자에 합당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 프레이야 : 사이파카르의 친위대장. 여자이면서도 빼어난 창술을 자랑한다. 사이파카르 주변의 여인들 중 가장 거유라서 다른 여자들에게 견제받고 있다.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비약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 제피 : 소피의 동생으로 여장남자. 그 존재 때문에 사이파카르는 실은 남색 취향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귀여워서 다른 여자들에게 성희롱당하기도 했다. ~~외모와 달리,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지녔다.~~ 누나를 매우 잘 따르는 시스콘.
* 그라쿠스 : 롬니아 제국에게 멸망당한 구 에스파르 왕국의 잔당을 이끌던 인물. 왕국 재건을 명분으로 산적질을 하다 사이파카르 일행과 만나게 되어, 프레이야와 결투를 벌인 뒤 일행에게 설득되어 부하가 된다. 자신과 대등한 무예를 가진 프레이야를 보고 아내로 삼고 싶어한다.
* 캘거리 : 제국의 재상. 딸이 황태자의 정비이다. 사이파카르를 비롯하여 권세에 방해가 될 정적들을 제거하려고 획책한다.
* 자네티 : 변경주의 집정관. 매사에 소극적이고 보신주의가 강한 소시민 타입. 기억력이 좋다.
* 리리엔테르리오나슈브라피슈카 : 보통은 줄여서 '리리'라고 불린다. 집정관 보좌 및 군단장. 체구가 작고 어려 보이지만 괴력을 자랑한다. '꼬맹이'라고 부르면 화를 낸다.
* 록시느 : 4황자. 동방 변경주로 가는 길목인 앰브로우 주의 영주로 황태자와 사이가 나빠 숙청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 마기/352화 . . . . 17회 일치
* 다윗은 성궁을 장악해 그 힘을 이용해 공격하는데 유독 자신의 손자인 알라딘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마기]], [[연백룡]], [[쥬다르]]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배신하고 적으로 나타난 [[다윗(마기)|다윗]]을 집중 공격한다. 그러나 어떤 공격으로도 신이 된 다윗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윗은 자신이야 말로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완성해 보다 상위의 신들을 계속 타도해나가겠다 선언한다. 만일 그걸 막고 싶거든 여기서 자신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알리바바 일행은 반드시 그를 타도하겠다고 말한다.
* 다윗은 상처를 입어도 금방 복구되며 성궁 시스템을 이용해 공격해 온다. 성궁의 방어시스템 특유의 격자 무늬가 떠오르더니 강력한 에너지 공격이 쏟아진다. 이미
다윗은 알라딘을 자신의 "손주"라고 부르지만 딱히 감회가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알라딘 만큼은 꼭 죽여둬야겠다며 집요하게 노린다.
* 다윗이 직접 알라딘을 내리친다. 알라딘이 공간을 비틀어 튕겨내지만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틈이 생긴다. 다윗이 알라딘의 빈틈으로 공격을 날리며 자신의 확신은 실현되며 운명을 볼 수 있는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특이점이라고 외치는데, 그 순간 다윗의 신체가 갈라지면서 신드바드가 나타난다.
* 이건 신의 서열이 바뀌었다는 증거. 다윗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우고느 성궁 시스템에 버그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신드바드는 다윗을 전적으로 믿은게 아니었다. 언제나 자기 등 뒤를 노리는 걸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책도 세웠다. 바로 일곱 명의 진들이다. 신드바드가 루프로 환원됐을 때도 그들의 힘이 있어 신드바드가 돌아오는게 가능했다. 이번에도 그들의 힘이 있어 신드바드의 주도권이 복구된 것이다.
>신드바드, 우고, 네 명의 도전자들...
>내 상대로 걸맞는 자들이야.
그렇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신드바드는 그것까지도 간파했다. 애초에 그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성궁을 자악하고 마법을 발동시킨 그는 이 앞에 나타날 필요 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행과 싸우려 하는건 뭔가 불안한 점이 있기 때문. 알라딘 일행의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그 말을 듣자 알리바바도 짚이는 구석이 있는데.
아르바가 알리바바의 의혹을 확인해준다. 아르바는 자기 자신이 분신체로 오래 지내서 인지 지금 여기있는 다윗도 분신체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한다. 과연 자신의 "생부"라면서 방식까지 똑같아서 징그럽다고 동족혐오발언을 한다.
* 이때를 놓칠 순 없다. 백룡과 알리바바도 엄호한다. 셋의 집중 공격을 받자 다윗도 산산히 조각난다. 우고가 빨리 지상으로 가라고 외치고 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를 발동한다.
- 모리오리 족 . . . . 17회 일치
채텀 제도는 작고 외딴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뉴질랜드와도 거리가 멀어 외부와의 교류가 어려웠다. 모리오리 족은 [[전쟁]]을 포기하고 공존을 선택했으며, 인구 조절을 위하여 남자 신생아를 [[거세]]하는 방법을 썻다. 이로서 인구 과잉을 줄이고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
채텀 제도는 폴리네시아 전통 농업에 부적합하였기 떄문에 집약적인 농업과 전쟁 문화를 가지게 된 마오리 족과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수렵과 채집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채텀 제도의 환경상 집약 농업이 어렵고 인구 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아 전쟁이 자주 벌어졌던 마오리 족 사회와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모리오리 족이 수렵채집민으로 돌아가는 동안, 북부 뉴질랜드의 따듯한 기후에서 농경을 유지한 마오리 족은 폴리네시아 전통 농업으로 10만이 넘는 인구를 가지게 되었고, 높은 인구 밀도 때문에 전쟁이 자주 벌어졌다. 성채를 세우고, 복잡한 문화, 사회를 갖춘 마오리 족은 서양인과의 교류로 [[총기]]까지 획득하였다.
1835년 12월, 수백년간 평화롭게 살던 모리오리 족은 갑자기 뉴질랜드에서 나타난 [[마오리 족]]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11월 19일, [[총기]]와 [[곤봉]],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 족이 채텀 제도에 나타났으며, 12월 5일에는 400명이 추가로 나타났다. 채텀 제도를 공격한 약 900명의 마오리 족은 수적으로는 당시 모리오리 족(2000명으로 추정)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으나,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모리오리 족은 단합된 정치 조직이 없었으며, [[무기]]를 비롯한 전쟁 기술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오리 족은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직화된 전쟁 문화, 정밀하게 만들어진 원주민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서양인들과의 교류로 [[총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대로, 모리오리 족은 대표자 회의를 열어서 마오리 족 침략자에게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물자를 나눠주고자 제안하려 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미처 전달하기도 전에 마오리 족이 공격해왔다.
마오리 족은 모리오리 족이 자신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항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몇일 만에 수백명의 모리오리 족이 살해되었고, 몇년 동안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났다. 모리오리 족의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오리 족은 [[식인]] 풍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모리오리 족은 문자 그대로 '''잡아먹혔다.'''
>마오리 족은 우리를 양 떼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겁에 질려 적을 피하기 위해 숲으로 도망치거나 땅을 파고 숨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우리는 곧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 모리오리 족 생존자
>우리는 우리의 관습대로 그 섬을 점령했으며 놈들을 모조리 사로잡았다. 한 명도 벗어나지 못했다. 더러는 도망쳤지만 우리가 곧 죽여버렸고 다른 놈들도 죽였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이냐? 우리는 관습에 따랐을 뿐이다. - 마오리 족 정복자
- 블랙 클로버/100화 . . . . 17회 일치
*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각성한 "운명의 붉은 실"은 이미 일어난 사건 조차도 운명을 조종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대체할 수 있다.
* 마녀왕은 드디어 바네사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바네사 자체를 조종하려고 들지만 그 조차 실패하고 만다.
* 바네사는 절망한 마녀왕에게 이 마법은 자신과 인연이 맺어진 가족 편만 들어주며 "나와 당신 사이엔 인연은 없다"고 선언한다.
* [[바네사 에노테이커]]로부터 뿜어져 나온 "운명의 붉은 실"은 한데 뭉쳐 고양이의 형상으로 변한다. 바네사는 이런 형태로 이미지하지 않았는데 고양이가 나타나자 의아해한다.
* [[마녀왕]]은 바네사에게 기대하고 있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각성한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걸 시험하기 위해 조종하던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노엘 실버]]를 죽이게 한다. 바네사가 안 된다고 외치자 고양이는 그 목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뛰어올라 아스타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아스타를 만진 것 뿐, 어떤 영향을 준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마녀왕은 딱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상해하면서도 그대로 아스타가 노엘의 목을 치도록 조종한다.
단마의 검이 노엘을 베면서 그 목이 떨어져 나간다. 바네사의 원통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마녀왕은 역시 바네사의 힘은 불완전했다며 앞으로 자신이 잘 가르쳐주겠다고 말하는데.
* 그런데 상황은 다시 되풀이된다. 아스타는 아직 검을 휘두르지 않았고 노엘은 무사하다. 마녀왕이 기시감을 느끼려는 찰나,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다.
자신이 그 말을 했었다는걸 알고 있다. 그 순간 아스타는 아까와는 달리 십자가의 밑둥을 잘라서 노엘을 해방시킨다. 마녀왕은 뭔가 잘못됐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스타는 여전히 조종당하는 상태.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노엘을 다시금 공격한다. 그때 또 한 번 고양이가 달려와 아스타에게 닿는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스타의 검은 노엘의 가슴을 관통하고, 마녀왕은 이번에야 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 마녀왕은 이번엔 고양이 본체를 공격하게 하지만 실처럼 풀어지면서 공격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고양이가 또 아스타에게 닿자, 흘려보낸 검이 아스타의 몸에 닿으면서 "꼭두각시의 혈조"가 풀려져 버린다.
마녀왕은 자신이 있을 수 없는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을 깨닫고 이거야 말로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각성한 거라고 깨닫는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마법의 능력은 "고양이가 닿은 인물의 운명을 술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 바네사에겐 동료가 죽거나 아스타가 조종 당하는 현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공격이 운좋게 빚나가는 결과만이 보여졌을 것이다.
* 꼭두각시의 혈조가 바네사에게 걸린다. 마녀왕은 자신이 그토록 추구하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을 손에 넣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 그녀의 우위는 한 순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고양이가 여왕의 이마를 건드린다. 그러자 꼭두각시의 혈조는 물론 그녀가 전개하고 있던 모든 마법이 해체되어 버린다. 그건 저항할 수 있는 성질의 힘이 아니다. 마녀왕은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의 완벽한 마법이 조종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여기지만, 결과는 분명하다.
고양이는 보통의 고양이처럼 바네사의 어깨 위로 올라탄다. 바네사는 고양이를 얼러주며 말한다. 이것이 여왕이 말하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지만, 자신은 아직 잘 알 수 없는 힘이고, 단지 한 가지만 알겠다고 말이다.
- 블랙 클로버/101화 . . . . 17회 일치
* [[마녀왕]]은 자신이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뜻대로 살도록 허락한다.
* 파나는 [[판젤 크루거]] 일행을 따라가나 다이아몬드 왕국이 평화로워지면 마르스와 세계를 보러 가자고 다시금 약속한다.
* 운명을 조종하는 힘에 각성한 [[바네사 에노테이커]]. 자신의 마법은 완벽하다 자신했던 [[마녀왕]]도 그 힘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마녀왕과 가족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바네사.
충격에 빠져있는 여왕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때는 아직 바네사도 어린아이였고 그녀 자신도 지금처럼 맹목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바네사는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실로 만든 인형을 그녀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의 여왕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잘 만들었다"고 평범하게 칭찬해줄 수 있는 어머니였다.
* 마녀왕은 패배를 실감했다. 그리고 바네사가 자신의 곁에 있었다면 절대로 운명의 힘에 눈뜨지 못했을 거라고 인정한다. 그녀는 완벽한 마법을 추구해왔지만 그런 나머지 소중한 무언가를 잊어버렸다. 불완전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기에 깃드는 힘도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불완전한 바네사의 마법.
* 궁전으로 돌아가려는 마녀왕은 까마귀들을 불러모은다. 그런데 그 사이엔 한동안 보이지 않던 [[네로(블랙 클로버)|네로]]가 섞여 있다. 대담하게도 마녀왕의 어깨에 내려앉았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무언가 속삭이기까지 하는데. 그걸 들은 마녀왕은 그 속삭인 내용이나 네로 자체에 대해서도 심상치 않은 듯이 바라본다.
* 궁전으로 돌아온 마녀왕은 곧 마녀의 숲과 사상자들을 정상으로 회복시킨다. 핀랄은 그녀의 어마어마한 마력에 또 한 번 경악한다. 마녀왕은 아스타 일행을 궁전으로 불러들이고 그동안 귀걸이로 차고 다녔던 보석을 던져준다. 그것이 마녀의 숲에 있는 마석이다. 그녀 자신에겐 원래부터 필요없던 물건이라는데.
아스타는 마석을 챙기면서 이것이 대체 뭔지, 백야의 마안이 어째서 이것을 노리는지 질문한다. 마녀왕은 이것이 원래 "엘프"의 마도구이며 장착자의 마력을 높이는 물건이지만 제대로 쓸 수 있는건 엘프들 뿐이라고 가르쳐준다. 엘프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고대에 살았던, 선천적으로 고 마력을 보유했던 종족이다. 기원은 불명이나 수백 년 전까진 살아 있었고 현재 "해외계"라 불리고 있는 땅이 그들의 영역이었다.
* 마녀왕도 엄청난 마력의 소유자지만, 엘프들은 그 정도가 인간을 훨씬 상회해서 마녀왕에 필적하는 마력을 보유한 자들도 흔히 있었다. 그러나 수도 없이 인간과 전쟁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패배, 지금은 멸종된 종족이 되었다. 그리고 파나가 [[증오의 파나]]로서 마안을 각성한 것도 원래는 엘프의 금술이다. 그러나 이 금술은 파나 스스로 사용한게 아니라 누군가 외부에서 발동시킨 것이다. 게다가 금술은 발동하는데만 해도 끊임없이 마나를 소모하며, 어떤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 파나는 마르스를 끌어안으며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고 답한다. 달달한 분위기가 되자 핀랄 같은 솔로부대는 피눈물을 흘린다. 마르스는 아스타에게도 작별인사를 한다. 그를 친구라고 불러준 아스타가 위험하다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약속이었다. 아스타도 거기에 화답해서 마르스가 곤란할 때라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말한다.
* 일행이 작별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바네사는 잠시 자신의 고향을 돌아본다. 여왕은 바네사의 자유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그녀의 고향이라며 언제든 놀러오라고 말했다. 바네사는 한참 동안 마녀의 숲을, 그녀의 어머니를 바라본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17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77. '''강한 자가 이긴다'''
* 키텐에 자라난 세계수는 다이아몬드 왕국의 병력을 거의 전멸시킨다.
* 거대하게 자란 세계수를 보며 놀라워하다.
* 특히 아스타와 챠미 퍼밋슨은 세계수를 보며 드립을 치자 야미 스케히로에게 두들겨 맞는다.
* 야미는 이것은 윌리엄 벤전스의 마법이라고 설명해주며 단원들에게 구조활동을 돕도록 지시하고 자신은 벤전스 쪽으로 향한다.
* 급격히 자라난 세계수로 인해 다이아몬드 왕국의 병력은 괴멸.
* 팔휘장 브로코스는 격분해서 마법의 시전자를 찾아나선다.
* 본인도 이 정도 크기로 자란 건 의외인지 "터무니 없는 양의 마력이 돌아다니던 전장이었나 보다"라고 감탄한다.
* 브로코스의 적토 마법을 먹고 자라나는 세계수.
* 오히려 이걸 기다렸다는 듯 "둘이 남았으니 얘기 좀 하자"고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 라가스는 팔휘장인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 싸우는 젊은이가 있다고 경악한다.
* 만나자 마자 특유의 독설을 늘어놓으며 꼬라지가 엉망이라고 디스하는데, 핀랄은 그걸 보고 "아스타의 동기인데 금색의 여명의 정예로 올라갔으니 검은 폭우를 무시할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 아스타는 유노가 강해졌다고 인정하며 자신도 지지않겠다고 경쟁심을 불사른다.
* 브로코스는 벤전스와 실력 차이도 있는데다 하필이면 세계수 마법 사용자. 적토 마법인 브로코스에겐 압도적인 상성이다.
* 로터스 퇴각 후 벤전스와 야미가 독대하는데, 벤전스의 배신자 떡밥이 풀릴 듯.
* 게다가 리히트는 "클로버 왕국의 영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정말로 배신자일지도 미지수.
- 손지창 . . . . 17회 일치
| 배우자 = [[오연수]]
| 자녀 = 슬하 2남 (장남 손성민(Scott son), 차남 손경민)
| '''혼자만의 비밀'''
1992년에 "내가 너를 느끼듯이", "혼자만의 비밀" (작곡 [[유정연]], 작사 손지창)를 타이틀로 한 1집 앨범(이 앨범에서 작편곡은 [[유정연]]과 작사는 손지창이 모두 했다. 박준배 작곡 "세상 모든이에게" 제외)을 발표하여 가요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그 당시 가수로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 2001년 SBS 《[[소문난 여자]]》 ... 정병훈 역
* 1992년 [[기아자동차]] K3
* 1993년 [[LG전자]] 미니스타
* 1999년 [[삼성전자]] 손빨래 세탁기 수중강타 파워드럼 김치독 다맛 쎈청소기먼지따로
* [[손지창 1집]] - 내가너를 느끼듯이, 혼자만의 비밀(1992.05.31)
* (주)Venica 대표이사 사장 (2000년 ~ 2014년)<ref>현재는 대표이사직을 박재성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미국지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ref>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
[[분류:손지창]][[분류:1970년 태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송재호(배우) . . . . 17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이 있으며 서울 올림픽 때 클레이 부문 심판으로 참가했다. 대한사격연맹 이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개신교]] [[장로회]] 신자이며 장로의 직책을 맡고 있다.[* 오륜동에 있는 오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 김은호 목사)의 장로이다.]
4남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남 송영춘은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 [[영자의 전성시대]] - 창수 역
* [[그때 그 사람들]] - [[박정희|각하]] 역[* [[박정희]]를 대놓고 풍자한 역할이라는 점에서 후에 보인 정치색과는 다소 상반된 연기를 한 것이다. (물론 [[박정희]]는 싫어하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것은 가능하다.) --2016년 이후로 좋아하긴 [[최순실 게이트|어려워졌다]]...--]
* 눈동자
* [[용의자(한국 영화)|용의자]] - 박 회장역
*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 - 송경만[* 실제 이름은 "기형철"이며, 남파간첩의 총책으로 나온다. [[드보크]] 정리작업을 하다 발각되어 안기부에 끌려가 취조당했고, 극중에서 이중간첩이던 한석규가 무자비하게 고문하기도 한다. 극중 결국 벽에 박힌 대못을 들이받고 혼수상태에 빠진 후, 숨을 거운다.]
* [[상도(드라마)|상도]] - 임봉핵[* 임상옥([[이재룡]])의 아버지. 역관(통역사)이 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들을 위해 장사에 뛰어들었으나, 송상 대방 박주명([[이순재]] 분)의 음모에 휘말려 참수당한다.]
* [[도망자 Plan.B]] - 양두희 역
* [[추적자 더 체이서]] - 유태진
* [[왕과 비]] - [[세종대왕]][* [[용의 눈물|전작]]에서는 태종의 외척경계로 인해서 가문이 거덜났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숙청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7회 일치
비행순찰하던 카라는 서로 싸워대며 과속 운전하던 운전수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들을 칠 뻔한걸 막아낸다. 운전수는 자기 차가 망가졌다며 [[적반하장]]으로 카라를 때리려다가 제압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뉴스에 뜨게 되어서 카라는 폭행을 휘둘렀다는 악성 보도에 시달리게 되고, 맥스웰 로드도 거기에 한몫 끼게 된다.
루시는 제임스에게 아버지를 만나보자고 한다. 제임스는 루시의 아버지는 슈퍼맨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군인이라며 불편하게 여긴다. 그랜트 사장은 어머니의 방문을 받는데 역시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
루시의 아버지 레인 장군이 DEO에 찾아와서, 슈퍼걸에게 미군에서 개발한 신형 병기와 싸울 것을 요청한다. 루시는 슈퍼걸에게 강제집행서를 내밀기도 한다. 모로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로봇을 공개하는데, 그것은 레드 토네이도였다.
그랜트 사장은 어머니가 자신과의 저녁 약속을 빼먹고, 작가들과의 담화에 나서서 실망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또 카라에게 쏟아진다.--[[내리갈굼]]-- 카라와 윈, 제임스와 루시는 노는 밤을 보내게 된다. 슈퍼걸 이야기가 나오자 루시는 자신이 직접 봤는데 별로 였다고 말하고, 카라는 거기에도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그랜트는 카라가 바로 오지 않자 고함을 지르는데, 카라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분노를 퍼붓는다. 그랜트는 갑자기 어디로 가자고 카라를 끌고 간다. 알렉스는 레드 토네이도의 팔을 맥스웰 로드에게 가져와서, 찾는데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맥스웰은 알렉스의 요청을 거절한다. 제임스는 루시, 레인 장군과 식사를 가진다. 레인 장군은 지미를 파파라치라고 비하하며 딸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대라고 깍아내린다.
그랜트는 카라를 바에 데리고 온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분노를 조절하고 풀어내는걸 알아내고, 정말로 화나는게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조언을 해준다. 제임스와 루시, 레인 장군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오는데 레드 토네이도가 나타난다. 루시는 레드 토네이도의 공격에 날려가고, 레인 장군은 중지를 명령하지만 레드 토네이도는 듣지 않고 공격을 하다가 제임스의 호출을 받고 날아온 슈퍼걸과 대결하게 된다.
레드 토네이도는 카라에게 밀리자 토네이도를 만들어낸다. 카라는 토네이도를 필사적으로 없애지만, 레드 토네이도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레인 장군은 카라에게 또 책임을 돌리며 비난을 퍼붓고, 행크는 레드 토네이도의 표면에 납이 덮혀 있어 클립톤인을 죽이려고 만들어진 것이라는걸 지적하며 카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레인 장군을 비난한다. 레인 장군은 여전히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카라와 제임스는 창고에서 각각 샌드백과 폐차를 달아놓고 두드리면서 화풀이를 한다. 계속 말을 내뱉다가 카라는 자신에게 잠재된 분노가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라는 자신에게 가장 큰 분노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라는 알렉스의 호출을 받고 DEO로 간다.
알렉스가 모로 박사의 위치를 발견하였으나, 모로 박사는 뇌파를 이용해서 레드 토네이도와 연동하여 정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두었다. 알렉스는 --과학자 주제에 쑬데없이 강한-- 모로 박사와 격투전 끝에 사살한다.
그런데 모로 박사의 명령이 끊기자 레드 토네이도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다가, 자신의 의지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카라는 원망스런 감정과 함께 전력으로 히트비전을 발사하여 레드 토네이도를 파괴한다.
윈은 카라와 알렉스에게 자신이 조사한 것을 알려준다.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남미로 어떤 외계인을 잡으러 갔었고, 거기서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실종되었다.
- 스이츠 . . . . 17회 일치
과자라는 뜻.
영국권에서 달콤한 과자를 뜻하는 스위트(sweet)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서는 어린이용 과자와 구별하여, 고급 양과자 점에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과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티라미스’ 같은 고급 양과자가 잡지 소개 등으로 붐을 타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2005년 부터 일본의 여성 잡지들이 ‘스위츠(スイーツ)가 붐이다’라는 기사를 내놓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널리 침투하게 되었다. 일본식 스위츠(和スイーツ), 홈메이드 스위츠 같은 표현도 나타났다.
스위츠 유행 같은 유행을 주도하는 잡지, TV프로그램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러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모두 받아들이는 여성을 조롱하는 말. 스위츠가 대상이 되는 것은 케이크나 과자라고 하면 좋은데, 굳이 멋을 내려고 스위츠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 끼리는 이런 것도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네☆그럴 때 나는 혼자서 번화가를 걷기로 한다.
>노력한 자신에게 포상이라는 걸까?자신 다음을 연출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나!
>「거기 여자ー、잠깐 이야기 할 수 있을까?」하고 언제나 똑같은 대사 밖에 말하지 않는다.
>캐치해오는 남자는 멋지지만 뭔가 얄팍해서 싫다. 좀 더 등신대의 나를 보아줬으면 한다.
>힐끔 하고 캐치하는 남자의 얼굴을 본다.
> ・・・아니야・・・지금까지의 남자와는 뭔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스피리츄얼한 감각이 나의 몸을
>남자는 호스트였다. 따라오라고 해서 레이프 당했다. 「꺄악- 그만해!」드러그를 맞았다.
- 안영준 . . . . 17회 일치
||<width=125><:> [[강상재]][br]([[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 → ||<width=125><:> '''안영준[br]([[서울 SK 나이츠|서울 SK]])''' ||<:> → ||<width=125><:> 미정 ||
삼광초-용산중-경복고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저학년 시절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3학년 시절에는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하였으며, 4학년 시절에는 주장인 [[허훈]]과 팀의 챔피언결정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허재]]감독의 아들이자 [[허웅]]의 동생인 주장 [[허훈]]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선수이다.
'''SK의 알토란 식스맨으로서 자리잡다.'''
2017년 11월 13일 전자랜드와의 [[한국프로농구 D리그|D리그]] 경기에서는 비록 팀은 패했지만 26득점으로 맹활약을 했다.
2017년 11월 18일 삼성과의 s매치 에서 팀 내 최다인 17득점(3점슛 2개) 3리바운드로 활약하면서 최준용의 빈 자리를 잘 채워주었다.
드래프티 동기인 허훈과 양홍석도 소속팀 kt에서 활약 중이고 안영준은 팀 성적에서, 허훈은 개인 성적에서 상대방보다 앞서 있었기에 신인왕에 어느 선수가 적합한지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 뜬금없이 3월 9일 [[유재학]] 감독이 기자들의 신인왕 관련 질문에“자질만 놓고 보면 양홍석이 안영준보다 훨씬 낫다”, “양홍석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안영준은 지금처럼 하면 국가대표에 뽑히기 힘들다. 가지고 있는 기본 자질이 다르다”라고 평가한 보도가 나왔다. [[http://www.basket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063|기사]]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 선발 주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순 있겠지만 동시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두고 경쟁하던 팀의 감독이니만큼 언론에 대고 한 본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었다.
기사가 나온 하루 뒤인 3월 10일 모비스전에서 보란 듯이 인유어페이스덩크를 성공시키고 DB전에서는 20득점을 올리면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유재학 감독의 발언이 자극이 된 듯 하다.
연세대 1년 선배인 [[최준용]]과 자주 붙어다니며 팬들 사이에서는 '연세대 콤비'라고 불린다.
||<:><#0A6EFF> {{{#ffffff '''국제대회 경력''' }}} ||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8)[* 3X3 농구] [br] 2019 농구 월드컵 중국 아시아 예선 2라운드 1윈도우 (2018)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3X3 농구]] 종목에 출전하기 위해 [[김낙현]], [[박인태]], [[양홍석]]과 'KBL 윈즈'팀을 결성하여 3X3 코리아 투어 선발전에 참가했다. 2018 KBA 3x3 코리아투어 최강전에서 'KBL 윈즈'가 우승했고 안영준은 MVP를 받았다.
1년 선배인 최준용에 비해 돌파라는 '확실한 득점 루트'가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운동능력을 이용해 미리 떠서 상대의 블락을 피하는 경우가 많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볼 핸들링이 나쁘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외곽에서 헤지테이션에 이은 크로스 오버 돌파를 자주 시도하는 편이다. 데뷔시즌 4강 플레이오프 때부터 챔피언결정전 6차전까지 내내 터졌던 3점슛은 SK 나이츠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에릭 (가수) . . . . 17회 일치
|배우자 = {{결혼|[[나혜미]]|2017}}
* [[2004년]] KT 메가패스, BON, 플러스 마이너스, 삼성 애니콜, [[일본담배산업|JT]], 롯데제과 빈츠, 도미노 피자
* [[2005년]] 삼성 애니콜, 현대 [[아반떼]], 비발디 파크, NII, 린나이 코리아, 도미노 피자, 롯데삼강 구구단, CJ[[스팸]]
* 《[[MBC 연기대상]]》 남자 신인상
* 제4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연기상
* 《[[KBS 연기대상]]》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제목 =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둘러보기 상자 묶음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
{{KBS 연기대상 남자 우수연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연기}}
[[분류:신화의 일원]][[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7회 일치
벨카 공국은 경제적 파산으로 인해 우스티오 공국 같은 몇몇 국가를 독립시켰다. 그럼에도 벨카의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극우파가 집권한 벨카는 우스티오에서 발견된 천연자원을 자국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우스티오를 침공했다. 이것이 "벨카 전쟁"의 시작이었다.
벨카 전쟁이 끝난 후, 벨카 전쟁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던 기자 브랫 톰슨은 "마왕"이라고 불리던 용병을 알게된다. "마왕"에 대해 관심이 생긴 톰슨은 벨카 전쟁에 참전했던 에이스들을 찾아가 "마왕"에 대해 취재한다.
자세한 내용은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줄거리]] 페이지 참조. 스포일러 주의.
이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주인공. 사이퍼는 TAC 네임이며, 이름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TAC 네임 픽시. 사이퍼의 윙맨으로 [[F-15|F-15C]]를 사용한다. 날개 하나를 잃은 채로 기지로 귀환한 전적이 있기에 "편익"(Solo Wing)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우스티오에 고용되어 벨카 공군을 상대로 싸우지만 폴크 자신은 벨카 출신.
벨카 전쟁을 일으킨 국가. 나라가 쪼개지는 와중에 극우파가 득세, 우스티오의 자원이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우스티오를 침공했다. 전설적인 공군력으로 전쟁 초반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벨카 공군 제13야간전투항공사단 6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MiG-31]]로 이루어진 슈바르체 편대의 편대장으로 "[[독수리]]"[* Vulture. 간지나는 독수리가 아니라 시체나 파먹는 이미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유크토바니아인이면서도 벨카군에 소속되어 있다. [[탈영]]한 아군 조종사를 쫓아가 격추시키는 일을 맡았기에 악명이 자자했다.
벨카 공군 제51항공사단 126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질버 편대의 편대장. 벨카 공군 최고의 에이스였으나 벨카 전쟁 당시에는 퇴역해 훈련생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황 악화이 악화되자, 벨카 공군은 사기 진작을 위해 켈러만과 그가 가르치던 제자들을 전선에 내보낸다. 다른 질버 편대원들이 [[F-16|F-16C]]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F-4|F-4E]]를 사용한다.
벨카 공군 제18항공사단 5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Su-47]]로 이루어진 골트 편대의 편대장. 한때 벨카 공군의 에이스였지만 벨카 전쟁 당시에는 무기 개발 및 기술 부서의 총 책임자로 있었다. 하지만 전황이 악화된 벨카 공군에 의해 전선으로 내보내진다.
오시아 방공군[* 사실상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식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YF-23]]과 [[F-16|F-16XL]]로 이루어진 위자드 편대의 편대장.
오시아 방공군[* 사실상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식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15|F-15S/MTD]]로 이루어진 소서러 편대의 편대장. 적에게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자.
이 게임의 화자. 벨카 전쟁 당시 기록을 뒤져보다가 사이퍼에게 흥미가 생겨 당시의 조종사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이 사람이 찍은 다큐멘터리라는 설정.
- 원피스/843화 . . . . 17회 일치
* 홀케이크 성은 결혼 준비로 바쁜데 크래커가 이렇게 되자 큰 소란이 일어난다.
* 파운드는 빅맘이 "기후를 조종하는 여자"라 칭한다. 왼손이 "뇌운, 제우스", 오른손이 "태양, 프로메테우스"에 해당한다고.
* 일행은 홀 케이크 성으로 향하던 제르마의 고양이 마차와 마주치고 상디는 밀집모자 일행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한다.
* 가렛은 크래커가 밀집모자 일행을 처리하기 위해 유혹의 숲에 갔던 걸 기억해낸다.
* 오페라는 크래커가 이렇게 됐으니 "적"이 가까이 있는게 틀림없다며 밀집모자 일행의 접근을 감지한다.
* 유혹의 숲에선 도망쳤던 파운드가 돌아와 혼자 달아나서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있다.
* 킹바움은 결과적으론 크래커를 쓰러뜨리는데 한 몫했다고 자괴감을 느낀다.
* 그리고 나미에게 빅맘의 자식들 조차 가지지 못하는 비브르 카드를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는데 나미는 "그만큼 중요한 물건인가 보네"하며 입맛을 다신다.
* 루피는 킹 바움에게 자신들을 성으로 옮기라고 명령하며 상디를 꼭 탈환하겠다고 다짐한다.
* 캐럿이 상디를 되찾으면 이 거울로 연락하라고 말하던 중 갑자기 거울조각이 깨져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 빈스모크 저지는 저들이 밀집모자 일당이라는 걸 눈치챈다.
* 다짜고짜 마차에 달려드는 루피. 일행의 근황을 전하며 돌아가자고 말한다.
* 자신의 두 손과 밀집모자 일행, 그리고 제프의 목숨까지 걸려 있는 상황. 상디는 갈등 끝에 결정을 내린다.
* "내 이름은 빈스모크 상디. 제르마 왕국의 왕자다."
* 상디는 밀집모자 일당의 신세가 처량해 어울려준 것일 뿐이라며 모욕한다.
지난 화에서 상디의 기사도가 제프의 교육 탓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여자를 밝히는 성미도 당연히 그 영향일 거라고 추측됐는데, 걍 집안내력이었다.--피는 물보다 진하다.-- 루피는 거들떠도 안 보던 빈스모크 형제들이 하나같이 하트 눈이 돼서 나미에게 집중.
- 원피스/850화 . . . . 17회 일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돌아온 이유를 묻는 [[타마고 남작]]에게 루피가 이 세계의 여명을 이끌 자들이기 때문이라 말하며 베어버린다.
* [[상디]]는 자신의 방에서 [[샬롯 푸딩]]을 위한 요리를 마친다. 평소 습관대로 너무 많이 만들어 버렸는데, 푸딩의 식사량을 생각해서 덜어내려다 "내가 다 못 먹겠으니 상디씨가 먹어줘 아앙"같은 패턴을 망상하며 역시 전부 가져가기로 한다.
루피는 그러면서 나미에게도 팔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미는 당연히 싫다고 하는데 그럼 잠자코 보고만 있으라며 나미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난!! 이런데서 죽을 남자가 아니야!!
빅맘은 제포에게 직접 "룰렛"을 돌리게 한다. 룰렛은 야속하게도 "수명 100년 분"이란 끔찍한 결과가 나왔고 제포는 그 자리에서 30년 치의 생명을 빼앗기고 죽고 만다. 빅맘은 남은 70년치를 페드로에게 받아내려고 했었다.
과거의 대결은 페드로의 승리였다. 페드로는 타마고 남작에게 깨끗하게 승리, 왼쪽 눈을 빼앗았다. 페콤즈는 페드로를 처형하려는 빅맘 앞에 나서서 자신의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호소한다. 그 울음에 빅맘도 마음을 돌려 70년치에서 조금 깎아주는데, 그래도 타마고 남작의 눈을 빼앗은 녀석이니 60년은 받아가야겠다고 못박는다.
* 타마고 남작의 "레그 베네딕트"가 페드로의 안면에 작렬한다. 타마고 남작은 친구와 50년치 삶을 빼앗은 악몽의 섬으로 돌아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페드로는 루피 일행은 고향 "조우"의 은인이며 그들이 이 세계에 "여명"을 가져올 자들이라 말한다.
페드로는 그들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으나, 자신의 "묫자리"는 여기가 아니며 그들이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시 일어선 페드로는 놀라운 속공으로 타마고 남작의 몸을 양단한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푸딩의 돌변. 상디가 엿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푸딩은 자신이 빅맘의 "금지옥엽"이며 특히 "연기력"을 아껴준다고 떠들어댄다. 빅맘은 지겨울 정도로 그녀를 돌봐주고 있고 그녀의 부탁으로 남자를 속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밀집모자 일행도 속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본성은 "가족들" 밖에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간부들 중에서도 그녀의 본성을 아는건 일부인 듯하다.
* 레이쥬는 쇼파에 묶여 있는 채로 폭언을 듣고 있다. 잠자코 있는 듯 하지만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듯 한데? 눈치채지 못한 푸딩은 빅맘이 제르마의 "클론병단"과 "과학력"을 노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빈스모크 일가와 손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은 반항적이라 도저히 말을 듣게 할 수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제르마는 그 영토를 포함해 "모든 것"이 빅맘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푸딩은 이들을 "정략결혼이란 달디단 과자에 꼬여든 파리"라고 빈정거린다.
타마고 남작은 정말로 달걀인지 페드로가 베자 안에서 날계란이 흘러나온다.
- 윤균상(1987) . . . . 17회 일치
[[전라북도]] [[전주]] 출신. 전주 서신중학교와 영생고등학교 출신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해 1년 반 동안 모델 일을 했었다.[* 런웨이에 섰던 것은 세 번 정도라 인터뷰 할 때마다 모델 출신이라는 말이 쑥스럽다고 덧붙이곤 한다.] 그리고 '''[[제대]] 후'''[* [[운전병]] 출신이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세한대학교 뮤지컬학과에 재학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2012년에 [[SBS]] [[드라마]] [[신의(드라마)|신의]]로 데뷔하였으며, 2년 뒤에 같은 방송사의 [[피노키오(드라마)|피노키오]]에서 주인공의 형 역할인 [[기재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또 같은 방송사의 [[너를 사랑한 시간]]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차서후 역으로 지지를 받기 시작하고, 그리고 같은 해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앞서 방영했던 이후의 세계관을 다룬 [[뿌리깊은 나무(드라마)|뿌리깊은 나무]]의 내금위장 [[무휼(뿌리깊은 나무)|무휼]]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 앞서 연기했던 차서후가 귀공자적인 매력을 가진 엘리트 피아니스트였다면 무휼은 우월한 신장과 제대로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금사빠]]에 허당기가 넘쳐서 [[갭모에|귀여운]]모습까지 보이는 야생 ~~[[개그 캐릭터|개그]]~~무사의 이미지. 메이킹 영상이나 인터뷰를 보면 배우의 실제 성격은 그간 맡아온 배역들 중 무휼에 가장 가까운 듯 하다.
피노키오 종영 직후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롤모델은 [[박해일]]을 비롯한 훌륭한 선배님들이라 언급했고,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과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다룬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다 전했다.
다음 카페에 리시안셔스라는 팬카페가 있는데, 리시안셔스가 어떤 꽃들과도 잘 어울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윤균상을 닮아 팬들이 붙여 준 이름이다. ~~케미균~~ 윤균상은 꽃 이름인 것에 착안해 카페는 꽃밭이라고, 팬들은 꽃님이라고 부른다. 팬 사랑이 남다른것으로 알려진 그의 SNS를 보면 팬들과 소통을 활발히 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동료 연예인들이나 스태프들과 남다른 친화력을 자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꽤나 애교가 많은 성격인 것 같다.
남다른 동물 사랑을 보이기도 하는데 쿵이, 몽이, 또미(고양이) 라는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과거 양이라는 강아지도 키웠으나 현재는 친가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이 키우는 중이다.[* 쿵이와 몽이는 삼시세끼 어촌편3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너구리처럼 굵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특징. 어촌편 촬영 당시 쿵이는 꼬리에 자꾸 변이 묻어서(...) 끝부분을 제외하곤 꼬리의 털을 전부 밀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둘은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의 마스코트로 한번 더 출연하게 되는데 그사이 쿵이는 꼬리털이 풍성해진 대신 장모종이라 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의 털을 밀어 왔다. 헌데 촬영 중 더운 날씨 때문인지 몽이가 개구호흡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고, 이로 인해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균상이 인스타그램으로 확고한 입장표명을 하면서 사그라 들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를 정주행 했으면 알겠지만, 균상이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고, 감독판에서 공개된 윤균상의 집만 봐도 쿵이와 몽이, 또미는 말그대로 호의호식(...)을 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도 '''두 대나''' 구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신경을 쓰는 윤균상에게 몽이의 일은 오히려 실례가 되는 비난이었다.] ~~[[똠양꿍]]~~ 최근 솜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분양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닥터스 종료 후, [[삼시세끼]] 어촌편에 [[이서진]], [[문정혁]]과 함께 고정멤버로 확정되었다. --멤버들 중 가장 고생길을 걸을 것 같다. 전무후무한 자발적 노예캐릭터 개척중이다-- ~~[[이종석(배우)|이종석]]에 따르면 이름이 융귱상이 된다. [[삼시세끼/바다목장편|바다목장편]]에서는 많이 발전된 모습에 노예 해방된 것 같기도? 여전히 요리실력은 꽝.~~ 하지만 잇츠온이라는 한국야쿠르트가 선보인 가정간편식 브랜드에 모델로 발탁되었다.
2017년에는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의 주인공 홍길동 역으로 열연을 펼쳐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역적 촬영을 하면서 연기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다. SBS 공무원에서 어느정도 해방된건 덤..... 인데 이후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닥터스에서 같이 출연한 [[이성경]]과 커플 역할(...)로 출연했다.] 의문의 일승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공무원]] 클래스는 어디 안간다는것을 증명하고 있다(...)
2017년 12월 30일, 2017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팀이 대상 수상자 [[김상중]]을 비롯해 총 8개의 트로피를 쓸어간것과는 대조적으로 온갖 고생을 다한 주연배우에게는 정작 상이 돌아가지 않아 많은 분노를 사고있다. 일각에서는 당시 [[SBS]] 작품에 출연중이어서 상을 주지 않은 것이라는 등 여러 추측이 나돌고 있는데, 연기대상에서도 언급 자체가 금지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으로 보면 윤균상이 MBC 드라마국에 미운 털이 박힌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 출연작들 중 두 작품을 제외하고 전부 SBS 드라마. 이쯤되면 이미 훌륭한 [[공무원]]이다. 또한 데뷔 이래로 한번도 [[KBS]]에 출연한 적이 없다. --[[배우]] [[본인]]도 조금만 더 하면 SBS에서 [[연금]] 나오겠다는 [[드립]]을 쳤다. 이는 [[MBC]]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백진희]]와 비슷한 편이다.--
|| 2014년 || 유니크노트 || 여자친구(Feat. [[바비킴]], [[정엽]]) ||
* [[기아자동차]] 기업광고
|| 제29회 그리메상 || 신인연기자상 || 육룡이 나르샤 ||
- 윤석용 . . . . 17회 일치
|배우자=
|자녀=
'''윤석용'''(尹碩鎔, [[1951년]] [[11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18대) 국회의원([[새누리당]] 서울 강동구 을)이자 한의사이다.<ref>{{웹 인용|제목= 대한민국 대표 인명록 - 한국의 인물
|url=http://www.lawmarket.co.kr/people/home/people_view.asp|저자=[[로마켓]]|확인날짜=2008-07-30}} 직접링크가 되지 않으므로, 검색창에 '윤석용'을 입력한 뒤 확인.</ref>
[[2008년]] [[7월 29일]] 국회 민생안정대책특위에서, 민주노동당 당사에 인공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된 모습의 조작사진을 사실 확인 없이 들고 나와 물의를 일으켰다.<ref>{{웹 인용|제목=국회에서 '인공기' 꺼내 든 윤석용..논란에 휘말려|url=http://www.vop.co.kr/A00000217256.html|저자=[[Voiceofpeople]]|확인날짜=2008-08-07}}</ref><ref>{{웹 인용|제목=윤석용 의원 “민노당사에 인공기” 합성사진으로 밝혀 망신|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301644.html|저자=[[한겨레]]|확인날짜=2008-08-07}}</ref>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2010년 5월 장애인체육회 회장실에서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직원을 지팡이로 때린 공소사실에 대해 1심 유죄가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아 문체부로부터 2013년 1월 22일 대한장애인체육회장직을 직무정지당했으나, 법원 가처분 판결을 통해 복직되었다.<ref>{{웹 인용|제목='직원 폭행'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 직무정지(종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1/22/0200000000AKR20130122199251007.HTML?did=1179m|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3-01-22}}</ref>
* 1993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 1994년 자랑스런 시한국인상
*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표창<ref>{{웹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 |url=http://people.naver.com/DetailView.nhn?frompage=nx_people&id=67393|저자=네이버|확인날짜=2008-07-30}}</ref>
윤석용은 2008년 18대 국회에 출사표를 던지며, 아래와 같은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ref>{{웹 인용|제목=강동의 미래 |url=http://blog.naver.com/nicekorea08/10029051209|저자=윤석용 블로그|확인날짜=2008-07-30}}</ref>
|전임자 = [[김충환]](강동구 갑)<br />[[이상경 (1964년)|이상경]](강동구 을)
|후임자 = [[신동우]](강동구 갑)<br/>[[심재권]](강동구 을)
- 윤정희(1944) . . . . 17회 일치
||<:> 윤정희[br](석화촌) ||<:> {{{+1 → }}} ||<:> '''윤정희[br](효녀 심청)'''||<:> {{{+1 → }}} ||<:> [[원미경]][br](단지 그대가 여자로만 이유만으로) ||
||<-5><#c0c0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237065>'''{{{#white 본명}}}'''||<#ffffff>손미자 (孫美子)||
대한민국의 여성 배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부인이며, 1976년에 결혼했다. [[본명]]은 손미자.[* 배우 [[금보라]]와 본명이 같다.] 1944년 7월 30일에 출생하였고, 서울에서 태어나 강원에서 성장 [[홍천군]]과 우석대(고려대학교로 통합)를 졸업하였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1967)]]"의 오유경 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금 이 영화는 원본이 소실되었으나 중국어 더빙이 남아 있다.] 이후 [[남정임]]·[[문희]]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다. 청춘극장은 1967년 팔도극장 다음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8년]]에는 [[내시]], [[천하장사 임꺽정]], [[일본인]] 등으로, 1969년에는 [[독짓는 늙은이]], [[팔도 사나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는 일부분일 뿐 흥행한 영화는 이보다 많다.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에는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지만 1971년 문희, 남정임이 은퇴한 반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에는 윤정희를 탐낸 [[박정희]] 대통령의 바람기 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찌됐든 부부금슬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1981년]], [[자유부인 '81]]이 그 해 흥행 1위 영화가 되면서 [[남정임]], [[문희]]가 이미 이룬 영화 1위 흥행 여배우 자리에 늘그막에 올랐다. [[1987년]]에는 [[위기의 여자]]로 흥행을 했다.
한때 일가족이 북한으로 [[납북]]될 뻔한 큰 위기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백건우]] 항목 참고.
[[http://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1219865&qb=67aB7ZWcIOycpOygle2drCDrsJXsoJXtnaw=&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백건우와 결혼 과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정희를 총애하자 이에 [[육영수]]가 백건우와 서둘러 결혼시켜 프랑스로 쫓아냈다' 류의 소문이 떠돌았다. 위의 지식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도 윤정희와 관련된 뜬소문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TV로 생중계 되었던 2006년 제 27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으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등장과 동시에 울먹거리더니 당시 수감되어 있던 절친한 동료 배우 [[신성일]]을 선처해달라는 매우 적절치 못한 ~~망언~~발언으로 엄청나게 비난받았다.~~이를 본 시청자들은 어리둥절~~
또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영화배우가 있느냐'면서 영화와 TV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들을 비판하였는데 정작 그 자신도 1972년 [[TBC]]드라마 [[사모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냥 가만히 계시지~~
|| 제목 || 상영일자 || 관람인원 || 배역 ||
|| [[내시]] || 1968 || 320,400명 || 자옥 역 ||
|| [[자유부인 '81]] || 1981.06.13 || 287,919명 || 선영 역 ||
|| [[시]] || 2010 || 약 220,000명 || 양미자 역 ||
- 은혼/586화 . . . . 17회 일치
* 긴토키는 "저 녀석들이 준 이름에 걸고 너 한테도 나 자신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 그러니 카무이에게도 "지지 마라"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내라고 말한다.
* 우미보즈(바다돌이)는 카무이가 "자신의 약함을 거부하고 최강을 찾아 헤매던 자"이고 긴토키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자기 안에서 강함을 찾아다닌 남자"라 평한다.
* 사무라이란 바로 그런 자들이라며 그 눈에 비치는 것은 눈 앞의 벽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라는 벽"
*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긴토키는 언제나 "최강의 자기 자신"과 싸워온 것이다.
* 강자를 상대할 때마다 한계를 뛰어넘어 강해져 왔고, 카무이가 더 높이 막아설 수록 "더 높이 날아오른다".
* 카무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한다.
* 가구라가 아부토와 싸웠을 때처럼 전혀 다른 자아(폭주)가 나타난 듯한데
* 그 자아는 "네가 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해주겠다" 며 "너였던 모든 것도 내가 지워줄게"라고 독백하는데...
* 일반적인 야토에게선 볼 수 없는, 우미보즈와 코우카의 자식이기에 가진 재능인 듯
* 가구라가 쓸 때는 정신줄을 놓은 듯이 보였지만, 카무이의 경우는 자아가 뒤바뀌는 듯한 연출.
- 은혼/605화 . . . . 17회 일치
* 노부메는 자신은 버려두고 우츠로와 해방군을 쫓으라고 말한다.
* 함장은 원상 황자에게 "적의 잔존세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 그 자리에 나타난 소요 공주. 자신이 성을 지킬 테니 모두 도망치라고 말한다.
* 핫토리는 소요가 에도에 남겠다는 뜻을 굳히자 자리를 뜬다.
* 모모치가 어디로 가냐고 묻자, 그는 공주를 지키기로 맹세했지만 옆에 있어봐야 지킬 수 없게 됐으니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 그는 모모치에게 공주를 부탁하고 자신은 "나도 마음대로 하겠다"며 어디론가 떠난다.
* 그러나 소요는 자신은 "공주는 아니지만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여동생입니다. 앞으로도 계속."이라며 결코 뜻을 바꾸지 않는다.
* 가구라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신파치 또한 전부 우츠로의 뜻대로라고 말한다.
* 긴토키는 아직 기회는 있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속으로 "포기하려고 했던 건 내쪽"이었다며 자조한다.
* 긴토키는 그때 이후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거라며 자괴감을 느낀다.
* 해방군 함대가 에도성을 포위한다. 원상이 명령을 내리자 일제히 포격이 쏟아진다.
* 에도성엔 소요 공주가 차분한 자세로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에도가 부서지는걸 보면서 긴토키 일행은 망연자실하게 서있는다.
* 해방군 측 전열이 쓸려나가자 전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 "멋대로 끝내지 말란 말이야. 앞을 봐라. 검을 들어. 싸우자 해결사. 우리 진선조와 함께."
- 은혼/610화 . . . . 17회 일치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도 기계인 이상 나노머신에 저항하면서 시스템을 유지시켜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할게 타마와 킨토키.
* 히라가 겐카이가 말한 "기계를 멈추는 병기"란 것은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를 말하는게 아니었다. 거기에 탑재되는 작은 "탄두" 쪽. 이것은 최첨단 나노머신으로 겐카이는 이것을 "벌"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벌은 대포를 통해 대기중에 살포, 꽃가루처럼 퍼져나가 기계에 점착하면 탑재된 컴퓨터 바이러스를 심어서 시스템을 점거하고 자기자신을 "독침"으로 바꿔 회로를 파괴, 기계 자체를 말살해버리는 무서운 무기다.
* 본래 천인의 기술을 해석해 만든 것으로 설사 해방군의 병기라도 예외는 없으며 겐카이 영감은 "전장은 죽창을 들고 다니던 시절로 회귀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다. 다만 일시적으로 벌을 살포하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고 실질적으론 이 나라 전역을 커버할 정도의 규모로, 그것도 장시간 동안 유지해야 해방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히 이 에도에서 활동했던 모든 기계들까지 파괴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겐카이 영감이 작전 시작 전에 타마에게 이야기하길 "인간이 살기 위해 너희를 버리는 것"이라 표현한다.
* 게다가 이 벌들은 최소한 20분은 활동해야 유효할 텐데 그 막대한 에너지는 에도 전역에서 끌어모아도 부족할지 모른다. 발사대인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도 기계이므로, 처리를 잘해봐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0분 가량. 대포가 먼저 정지되면 그 이후부터는 다른 기계의 힘으로 시스템을 유지해야한다. 물론 그 기계 또한 벌의 공격을 받을 테니 말도 안 되게 하드한 작업.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계는 에도에는 단 둘 밖에는 없다. 바로 타마와 사카타 킨토키.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정비 작업을 하던 사카타 킨토키는 주저없이 그 역할에 자원한다. 금혼 사건 이후로는 쭉 겐카이 공방 지하에서 정비업무만 맡고 있던 듯 하다. 이런데서 "나사"만 돌리던 일이 질력난다며 즐겁게 자원하는데 겐카이 영감은 무슨 임무인지 이해는 하는 거냐고 묻는다. 뜻밖에도 킨토키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 않으면 세계가 끝나지". 킨토키는 어차피 끝나는 거라면 어떻게 끝내는게 나을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싸우는 상대는 해방군이 아닌 사카타 긴토키. 그가 구하려는 세계를 한 발 앞서 구해낸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의 복수가 될 거라고 말한다.
* 타마는 이 "골든 아이디어"를 자랑스레 떠드는 킨토키에게 "금색은 똥색"이라 디스하나 "하지만 역시 겐카이님이 만든 기계"라며 칭찬한다. 그러면서 겐카이영감에게 자신들을 생각해서 망설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가 기계에 가지는 애정도, 어떤 생각으로 기계를 만들고 나사를 돌려왔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가부키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해방군 함선이 추락하는걸 발견한다. 긴토키는 무전으로 모든 기계를 다 파괴할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겐카이 영감은 무전을 꺼버린다. 이 포격으로 촉발된 사태를 누구보다 이해하는건 그 자신이다. 그는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유지하기 위해 버티다 하나씩 쓰러지는 기계들을 바라본다. 그는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보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들은 묵묵히 할 일을 다할 뿐이다.
* 중추회로 안의 킨토키는 벌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기계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죽음보다 괴로운 선택을 하게 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꽁무니는 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히라가 겐카이가 만든 기계들이니까'''. 그는 타마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냐고 말을 건다. 타마 또한 벌의 영향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들이 사력을 다하는 사이 해결사 일행도 가부키쵸의 동료들도 반격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 거대 기동병시 타케미카즈치가 추락, 지면에 처박힌다. 벌은 대기권을 뚫고 우주공간에 있던 해방군 본진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그야말로 해방군 전체가 마비된다. 당황하는 원상 황자.
|| 그날 기계들은 자기 스스로 기계이길 포기했다.
- 은혼/616화 . . . . 17회 일치
* 다키니를 앞세운 해방군의 파상공세 앞에 가부키쵸의 저항자들은 수세에 몰린다.
* [[사카타 긴토키]]와 [[사이고 토쿠모리]]는 양이전쟁 경험자답게 최전선에서 활약 중.
* 오토세 여사는 함정을 발동, 지면을 무너뜨려 길을 없애고 건물 위에서 투석기로 폭격을 가한다. 하지만 오우가이는 길이 없으면 직접 만들면 그만이라며 즉석에서 기물을 박살내 잔해로 임시다리를 놓는다. 투석기는 그 자신이 날아오는 바윗돌 따위를 낚아채 집어던져서 오히려 투석기를 파괴해 버린다.
타에는 자신이 척후를 맡고 동료들을 먼저 피신시키려 하는데 료우는 타에와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남자 주민이 그녀의 팔을 이끌며 데려가려고 실갱이가 벌어지는데, 그때 쿵소리와 함께 료우의 팔을 잡았던 손만 덩그라니 남는다. 무자비한 다키니의 공격. 그들이 벌써 옥상까지 추격해온 것이다.
[[사카타 긴토키]]가 구원한다. 긴토키가 다키니의 오른팔을 후려쳐 부러뜨리면서 선혈이 낭자하다. 균형이 무너진 사이 긴토키와 사이고의 집중공격으로 다키니 병사를 쓰러뜨린다.
힘겹게 하나씩 처치하고 있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보통 천인 병사는 무쌍하듯 처부수던 양이전쟁의 경험자들도 이들을 상대하는건 목숨을 걸어야할 판이다. 긴토키와 사이고는 이런 놈들이 마을로 몇 명이나 들어갔을지 셀 수도 없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무서진 문을 사수하며 더이상 마을로 진입되는 병력이 없도록 저지할 생각이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턱순이]]등도 최선을 다하지만 적들의 수가 줄지 않는다.
긴토키는 여기서 적을 저지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이러고 있다간 마을 안에 들어간 녀석들이 마을을 다 부숴버릴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안으로 가서 가세하자니 바깥 녀석들이 들이닥칠 거라고 푸념한다. 사이고는 넉살좋게 "결국 취향 문제"라고 받아친다.
긴토키는 자기가 남은 쪽을 맡을 테니 사이고더러 어느 쪽을 택할지 고르라고 말한다. 사이고가 정말 그래도 좋겠냐고 하자, 긴토키는 댁이나 자기나 양이전쟁에서 "백훈의 사이고", "백야차"라고 부르던 처지가 이 마을에 물들어 하얗지 않게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 사이고의 의지와 달리 스마이루 일행은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타에가 척후를 맡아 뒤를 방비하며 피신 중. 그러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정면에서 덮쳤다. 앞서 가던 남자 주민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면서 진로가 막힌다. 설상가상 뒤에서 추격하던 다키니들도 목전까지 도달.
* 타에는 위기 중에도 침착하게 탈출루트를 확보한다. 창문을 깨고 쓰레기가 쌓인 더미 위로 동료들이 먼저 탈출하게 한다. 자신은 끝가지 남자 하나코까지 안전히 피신시키고 자신도 따라가려 할 때, 다키니의 무자비한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붙든다.
- 은혼/618화 . . . . 17회 일치
* 야규 사천왕을 위시로한 야규가의 강자들도 속속 쓰러진다.
* 오우가이는 [[야규 큐베]]가 여자인걸 알고 깔보지만 그 강한 기개에 놀란다.
* 이제 오우가이를 막을 수 있는건 [[사카타 긴토키]]와 [[야규 큐베] 뿐. 하지만 둘이 힘을 합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오우가이는 "암놈 냄새가 난다"며 큐베가 여자라는걸 눈치채고 자신들을 우롱하냐고 화를 낸다. 그 힘에 떠밀려 나가는 긴토키와 큐베.
>이제와서 여자들의 목을 잘라낼 각오도 없이 내 앞에 서있는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리고 네놈의 목숨도 네놈이 모욕한 여자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 오우가이는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도 있는걸 보고 전장은 여자나 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전쟁은 남자들이 목숨과 명예를 건 신성한 의식인데 이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큐베는 싸움을 모르는건 네놈들이라며 그 말을 칼같이 반박한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구분없이 잿더미에 집어던졌다. 이제와서 갓난애나 여자들의 목을 벨 각오도 없이 전장에 서있냐면서 이들은 이미 걸만한 명예도 없고 그 목숨도 얕보던 여자한테 빼앗길 거라고 선언한다.
그 완고한 기개를 본 오우가이는 정말 여자냐며 병사들을 움직인다.
>와라. 네놈의 상대는 여자와 애송이들로 충분하다!
적의 병력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여자들은 옥상에서 통나무 더미를 투하한다. 하지만 다키니 병력들에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우가이에겐 더더욱 타격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우가이는 통나무를 옥상으로 집어 던지며 아가씨들을 위협한다. 오우가이는 이런 잔꾀나 쓰니 여자들은 짜증난다며 병력을 옥상으로 보내 고깃덩어리로 만들라고 말한다. 그 명령을 받은 다키니 병사들이 좁은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 이상호 (1989년) . . . . 17회 일치
|수비 위치 = [[유틸리티 내야수]], [[좌익수]], [[지명타자]]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4월 2일]]<br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대주자
* [[롯데 자이언츠]] (2010년)
'''이상호'''(李相浩, [[1989년]] [[2월 5일]] ~ )는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내야수]], [[외야수]], [[지명타자]]이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11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당한 후 [[SK 와이번스]]에 입단했으나 1년 만에 다시 방출당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00524 SK, 임성헌-김대유 포함 7명 방출] - OSEN</ref>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2경기에 대주자로 출장하였으나 도루실패를 2회 기록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c=v&m=n&i=126252 준플레이오프 2차전, NC 이상호 뼈아픈 도루 실패] - 스포츠서울</ref>
[[12월 22일]] [[상무 야구단]]에 [[김희원 (야구 선수)|김희원]], [[권희동]]과 함께 2015년에 입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257485 상무 야구단, 이용찬 등 17명 합격자 발표 ] - 연합뉴스</ref>
==배우자==
* {{KBO 타자|60566}}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이수진(치어리더) . . . . 17회 일치
'''원조 야구장 [[김연정|3대]] [[박기량(치어리더)|여신]] [[이수진(치어리더)|막내.]]이자 치어리더계 유연성 끝판왕.'''[* 현재 활동중인 치어리더 중 이수진만큼 유연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연성이 좋다.]
2014년 1월 31일에 [[SBS]] 설특집 프로그램, '스타VS국민도전자, 페이스오프'에 치어리더 연합팀[* [[삼성 라이온즈]]의 이수진,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SK 와이번스]]의 오지연, [[LG 트윈스]]의 [[강윤이]].]으로 출연하여 걸그룹 [[걸스데이]]와 댄스 대결을 펼쳤다. [[걸스데이]]는 '[[엄정화]]의 초대', 치어리더 연합팀은 상대편 '[[걸스데이]]의 기대해'와 '[[미쓰에이]]의 허쉬(HUSH)' 춤을 췄다.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영상에 출연했다.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2014 포스트시즌부터 적용된 [[KBO]] SAFE 캠페인 홍보 영상에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로 출연하였다.[* [[KIA 타이거즈]]의 최미진, [[SK 와이번스]]의 [[배수현]], [[한화 이글스]]의 [[금보아]],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LG 트윈스]]의 [[강윤이]], [[넥센 히어로즈]]의 임경미,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두산 베어스]]의 김다정 치어리더들과 함께 출연함.]
* 9월 1일자 기사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이수진, 레벨 U로 하루 컨디션 Up) [[http://samsungtomorrow.com/NRJ9h|기사 링크]]
* 9월 8일자 기사 (이수진, 레벨 온 와이어리스로 영화 같은 데이트를 꿈꾸다) [[http://samsungtomorrow.com/uJMkb|기사 링크]]
* 9월 15일자 기사 (치어리더 이수진이 말하는 삼성 페이의 매력) [[http://samsungtomorrow.com/nQciD|기사 링크]]
* 9월 22일자 기사 (“야구장서 써먹기 딱!” 치어리더 이수진에게 배우는 응원 동작 3) [[http://samsungtomorrow.com/4YC3i|기사 링크]]
* 9월 29일자 기사 ('야구장 여신'의 변함없는 인기 비결은?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이수진과의 데이트) [[http://samsungtomorrow.com/8Tm1q|기사 링크]]
* 10월 7일자 기사 (치어리더 이수진, 그와 함께한 시간들)[[http://samsungtomorrow.com/8OoLn|기사 링크]]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강윤이]]를 3위 자리에서 몰아냈고, 본격적인 3대 여신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위에 서술했다시피 방송에도 여러번 나오며 성공한 치어리더라고 평가받는다.
* ~~풋풋한 3년차 치어리더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치어리더의 아이콘인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치어리더보다 우승 경험이 많다.'''[* 박기량은 [[롯데 자이언츠|롯데]]에서만 7년을 보냈는데도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롯데가 장기적 암흑기가 확정이라서 박기량이 치어리더를 그만둘 때까지도 [[우린 안될꺼야 아마|우승하긴 영...]]]
*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다보니 [[한화 이글스]]의 [[김연정]],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과 더불어 야구장을 대표하는 치어리더로 불린다. 그리고 [[1992년|92년]]생으로 가장 어리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위에 서술했던 대로 인기투표에서 3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오오 이수진 오오.
* 유연성이 상당히 뛰어난데, 실제로 춤을 출 때 유연성이 요구되는 동작들을 자주 선보이기도 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에서는 고난이도의 다리 찢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으나 의외로 엄청난 [[대식가]]다. 2017년 12월 8일자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짜장면을 무려 3그릇이나 해치웠다.~~ㄷㄷ~~ ~~같이 방송했던 안지성 치어리더도 2그릇을 해치운건 덤~~ 사실 치어리더는 직업상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기에 그만큼 잘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 이장희 (시인) . . . . 17회 일치
| 사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음독 자살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위키자료집|이장희}}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저자=이기철
[[조연현]]은 1920년대 시단의 낭만주의적 풍조의 전개를 다루면서 감각적인 예민성은 거의 이장희의 독자적인 특성으로서 이 무렵의 감각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유일한 시인이라고 평가했다.<ref>{{서적 인용
|저자=조연현
정우택은 비속한 현실에 맞서 절대 자유, 절대 자아의 순전함을 추구했던 이장희의 삶은 곧 그의 시라면서 그의 미적 태도를 '미적 근대성의 자기 파괴적인 양상'으로 명명하였다. 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장희는 근대적 주체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절대적인 지점까지 추구했던 시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ref>정우택, 〈고월 이장희 시 연구〉, 《민족문학사연구》21권, 민족문학사학회, 2002, 216쪽</ref>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2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자살한 작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음독 자살한 사람]][[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
- 이종남(배우) . . . . 17회 일치
| 배우자 = 오세강
| 자녀 =
* [[1992년]] [[KBS2]] 미니시리즈 《[[위기의 남자 (1992년 드라마)|위기의 남자]]》
* [[1996년]] [[KBS2]]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 ... 몽룡 형수 역
* [[2002년]] [[SBS]] 일일연속극 《[[해 뜨는 집]]》 ... 오미자 역
*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 고민자 역
* [[2010년]] [[SBS]] 드라마스페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 (특별출연)
* [[2012년]] [[SBS]] 아침드라마 《[[너라서 좋아]]》 ... 나정자 역
* [[2017년]] [[KBS2]] 주말연속극 《[[황금빛 내 인생]]》 ... 신해자 역
* [[2018년]] [[KBS1]] 일일연속극 《[[비켜라 운명아]]》 ... 양순자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데뷔]][[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제군 출신 인물]]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17회 일치
* 자라트라스 등장. 프라우드린을 상대로 핸드릭슨과 공투한다.
* 프라우드린은 개방된 장소에 나오자 일단 멈춰선다.
* 그런데 그를 따라온 자도 있었다. 프라우드린은 그가 오는걸 예상했다는 듯 "역시 왔군"이라 말한다.
* 프라우드린가 이제 전부냐고 조롱하자 핸드릭슨은 "너는 드레퓌스의 검술을 따라하기엔 멀었다"며 도발한다.
* 핸드릭슨은 그걸 정하는건 자신들이라고 말하며 일어서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 갑자기 내리꽂히는 벼락.
* 전 성기사장 자라트라스 등장.
* 핸드릭슨, 자라트라스는 힘을 합쳐 프라우드린을 공격한다.
* 자라트라스가 "뇌신검"으로 공격하자 프라우드린도 대응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는다.
* 자라트라스는 틈을 노려서 정화를 걸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의견을 내는데, 핸드릭슨이 직접 해봤는데 통하지 않더라고 알려준다.
* 자라트라스는 시무룩한 투로 "그렇구나"라고 중얼거리는데.
* 지난 화에선 멀린하고 대화하면서 개그컷이 많았는데 이번엔 자라트라스 상대로도 개그컷을 헌납하며 굴욕을 당했다.
* 핸드릭슨을 압도하긴 했지만 자라트라스가 합류하자 수세에 몰리는 프라우드린.
* 십계 중 프라우드린이 가장 뒤처지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어차피 자라트라스도 십계급의 전투력이 아닌데 핸드릭슨&자라트라스 페어에 밀리는 인상이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17회 일치
*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라트라스처럼 목숨을 걸고 자폭을 감행한다.
* 결국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프라우드린은 자폭을 그만둔다. 그도 멜리오다스의 심정을 이해하게 돼버린 것이다.
* 프라우드린은 마지막으로 우연하게 죽음을 청하고 멜리오다스는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 이렇게 만드는데 자신은 피 한 방울 묻지 않는다.
* 하우저가 너무 압도적이라 말하자 멀린은 그게 당연하다며 프라우드린의 전투력은 3만 1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한다.
* 프라우드린의 몸이 검게 변해간다. 그는 "자라트로스가 좋은 힌트를 줬다"고 하는데.
* 멀린은 프라우드린이 자폭하려고 한다고 말하느데, 퍼펙트 큐브는 절대 부서지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는 태평한 소리나 한다.
* 프라우드린과 자신을 방벽으로 감싸는 그리아몰.
* 그리아몰이 울며 애원하자 프라우드린이 눈에 띄게 동요한다.
* 결국 프라우드린은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자폭을 중단한다.
* 프라우드린의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이 벽을 지우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라"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리아몰이 방벽을 푼다.
* 드래퓌스 부자는 다시 얼싸안는다. 그들을 보고 프라우드린은 "달콤한 꿈에 빠진건 나였나 보군."이라 중얼거린다.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본래는 메릴오다스를 존경하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족과 전쟁 중에 그가 배신하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복수귀가 되었다. 드래퓌스와 오래 동화해서 그런지 그에게 나름 애착을 가진 거 같고 특히 아들인 그리아몰은 정말로 부성애를 느끼고 있던 걸로 보인다. 프라우드린이 말했던 "달콤한 꿈"이란 애정, 사랑을 뜻하는데 "달콤한 꿈에 빠진건 나였나 보다"고 하는걸 보면 뒤늦게 자각한 것 같다.
설명은 되지 않았지만 그 또한 데리엘처럼 여신족 자체에 원한을 가진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데 멜리오다스와 함께 여신족도 기필코 복수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데리엘이 여신족이 포로학살, 특히 민간인 여성과 아이들을 학살했다고 했으니 그의 가족 또한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비슷한 모습의 십계도 재등장. [[일곱개의 대죄/176화]]에서 십계 시절 멜리오다스를 묘사하며 등장했었다. 프라우드린은 사실 정식 십계가 아니라 "무욕의 십계"의 대리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자가 진짜 무욕의 십계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거의 비슷한 외향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듯한 태도 또한 유사하다.--이제 곧 진(眞) 십계 가 나올 듯 하다.--
- 임은정(법조인) . . . . 17회 일치
[[1974년]] 7월 14일 생으로,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2001년]] 제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생활을 시작하였다.
2007년 3월 광주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일명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공판검사를 맡았다. 이때 임 검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
>“오늘 특히 민감한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 시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가해자 측) 변호사들은 그 (피해자)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막을 수가 없다.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2012년 2월 검사 인사에서 ‘우수 여성 검사’로 선정되었고,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에 배치되었다. 당시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성 검사 역할과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점을 감안해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5명의 여성 검사들을 주요 부서에 발탁했다”며 임은정 검사의 이름을 올리며 홍보했다.
이제 조용히 대세에 묻어가기만 하면 검찰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몸이었으나, 2012년 9월 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여 검찰은 물론이고 법조계 전체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켰다. 당시 검찰 상부에서는 백지구형[* 백지구형이란, 검찰의 할 일을 포기하고 판사에게 형량을 일임하는 것이다. 즉 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한다. 관행이라는 말로 합리화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검찰권의 포기이자 검찰 고유 권한의 불이행이다.]을 지시해 놓은 상태였으나,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정권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부장 검사는 "무죄 구형을 하는 것은 검찰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되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허나 임 검사는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무죄 구형도 그렇지만, 그때의 논고(최종진술) 또한 화제가 되었다:
2015년 이후부터는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2월 3일 검사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아 심층적격심사[* 2004년 법무부는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검사'를 골라내겠다며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적격심사 대상은 검찰 내 특정 기수 전체이며, 법무부는 이 가운데 심층심사를 할 사람을 걸러내 특정사무감사를 진행한 다음 적격심사위원회를 연다. 여기서 최종 탈락한 인물은 강제로 퇴직당한다. [[검찰청법]] 제39조 참조.]를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 상부가 '[[보복|찍어내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격분하였다. 무죄 구형 후 법무부의 한 간부가 ‘임은정이 적격심사 얼마 남았냐’고 묻더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적격심사를 계기로 자르려는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전 실제로 ‘(검찰 상부에서) 자르기로 했으니 마음의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의 귀띔을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때는 돌아버리겠더라. 누가 볼까 싶어 집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닫고 주저앉아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까지 나와 연락하길 주저한다고 느껴질 때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임 검사의 퇴직 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법무부는 지난해 1월8일 결국 ‘적격’ 판정을 내렸다.[* 사실 이 적격심사제도로 잘린 사람은 매우 적다. 자세한 것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240998|기사]] 참조. 그리고 이런 방식의 찍어내기는 오히려 법관이 훨씬 더 심하다. 저 기사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정작 검사적격심사제도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임은정 검사의 경우도 열리긴 열렸지만 저렇게까지 찍힌 임은정 검사도 문제가 없어서 적격 판정 받아 문제없게 되었다. 물론 이후 승진이 느려지긴 했으나 적어도 이 적격심사제도로 강제퇴직 당하진 않았다. 그러나 판사의 경우, 판사의 임기가 10년이므로 판사 본인이 직을 더 유지하고 싶어한다면, 10년마다 무조건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이 있다.]
2016년 6월 27일에는 최근 자살한 후배 검사가 "부장검사 폭언에 힘들어했다"고 밝힌 검사 부친의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이 당한 폭언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검사와 스폰서, 그런 식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간부를 만나고는 성매매 피의자로 보여 결재를 못받겠으니 부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스폰서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저를 '부장에게 꼬리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하고 다녀 제가 10여년 전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그러면서 검사적격기간을 단축하는 검찰청법개정안에 대해 인사부터 좀 제대로 하고 적격심사를 강화하는게 순서일 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17회 일치
* [[산노미야 시호]]의 조사 결과 효부는 [[심장]]이 아예 망가져 버렸고 자신의 염동력으로 어찌어찌 혈류를 조작 중.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 바깥에는 이미 블랙 팬텀의 새로운 병력이 몰려오고 있는데 ECCM에 봉쇄되고 부상자가 속출한 상황에서는 저항이 어렵다.
* 미나모토는 결단을 내려 칠드런 3인과 비행이 가능한 후지우라 요우, [[마츠카제 코우이치]]에 효부를 딸려 탈출시키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남는다.
* [[마기 시로]]는 [[효부 쿄스케]]가 심장을 관통 당하는 치명상을 입자 예상 이상으로 동요한다. 다른 세뇌자들 이상으로 강력해 보였던 세뇌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다.
* [[아카시 카오루]]와 [[후지우라 요우]]는 곧 효부를 걱정해서 안절부절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한다. 카오루가 "너는 자기가 죽을 위기라는걸 어필하고 싶을 거지?"라고 일침하는데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도저히 그런 것 같지 않다.
* 미나모토는 그 지경이면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고 경악한다. 효부는 심장은 혈액순환용 펌프일 뿐이고 자신은 천재 에스퍼라 염동력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데, 그의 몸 상태는 태도만큼 태연하지 못하다. 그 자신은 혈류를 확보하고 출혈도 최소한으로 막았다고 여기지만 곧 빈혈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 [[노가미 아오이]]는 다른 대책은 없는 건지 묻지만 미나모토로서는 투항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쪽은 초능력을 온전히 운용할 수 없는 데다 부상자까지 끼고 있다. 부딪히게 되면 저쪽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려 할 테니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투항해서 효부와 후지코를 의무실로 보내는 것이 최선. 요우는 자기들더러 돼지우리에 들어가라는 말이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미나모토의 계산으로는 일단 후지코의 세뇌를 제거했으니 제정신만 돌아오면 금방 내보내 줄 거라 본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츠카제는 지휘관인 미나모토가 남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발한다. 차라리 자신이 남아서 폼을 좀 잡게 해달라고 드립을 친다. 카오루가 심쿵할지도 모른다고. 정작 카오루는 관심이 없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17회 일치
* 나오미는 [[타니자키 이치로]]에게 입은 피해로 인해 "이 세계에서 아저씨를 말살한다"는 무시무시한 야망을 위해 블랙 팬텀의 수하가 되었다.
* [[미나모토 코이치]]가 에스퍼 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은 함정이었다. 그 대신 일행의 앞을 막아선 자들은 동료였던 [[팀 토이]], [[바렛 실버]]와 [[우메가에 나오미]]였다.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오염에 당했다.
* 팀, 바렛과 대치하게 된 [[츠쿠시 미오]]는 한 번 구원 받은 그들이 다시 적으로 나타나자 당혹해 한다. 이들은 트리플 부스터의 여파로 세뇌에도 내성이 생겼기 때문. 그렇다는건 현재 블랙 팬텀의 정신 오염은 부스트도 파훼한다는게 된다.
* 미오는 "여왕을 위해 미나모토 일행을 정찰하러 왔다"고 하자 두 사람의 마음에 빈틈이 생긴다. 망각에서 깨어난 것처럼 미나모토 일행이 억류된 직후의 일들을 떠올리는데, 직후 두 사람이 대기하던 장소에도 특수부대가 덮쳤으며 인질들을 죽인다는 협박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오는 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듯 보이자 더욱 강하게 나간다. 다시 블랙 팬텀의 부하가 되어선 안 된다고. 효과가 있는 건지 팀은 미나모토가 대기하라고 직접 지시했던 사실도 떠올린다. 미오는 그게 둘을 블랙 팬텀에 접촉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 참견하는데, 역효과를 내고 만다.
둘은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이 칠드런에게 구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이 둘의 강박관념을 자극해서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 "반대로 지켜지는건 싫다", "모두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선 블랙 팬텀에 의탁하는게 최고다"라는 비약적인 사고로 돌아간다. 평소 바보로 일가견 있는 미오가 보기에도 앞뒤가 엉망진창인 전개.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블랙 팬텀이 그들의 "마음의 틈"에 세뇌를 집어넣은 거라고 본다. 미오는 떨어져 버린 카즈라 일행도 염려하는데 모모타로는 텔레파시로 그들도 교전 중임을 알린다.
* [[히노 카가리]]와 [[타마키 카즈라]]는 와일드 캣 나오미를 상대하고 있다. 카가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며 나오미를 말려보려 하지만 허사. 카즈라는 그들에겐 백신도 있고 적이 파고들만한 "마음의 틈" 같은건 없는게 아니었냐고 묻는다. 나오미는 의외로 순순히 모든걸 대답하는데 우선 백신이란건 체내에 주입된 입자를 무력화할 뿐이다. 하지만 레어메탈 입자는 매개체일 뿐. "네트워크"에 "통합"시키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나오미는 자신이 블랙 팬텀에 정신오염된, 그녀의 마음의 틈새를 아주 당당하게 폭로한다.
[[타니자키 이치로]]가 입힌 심각한 트라우마는 그녀가 아저씨라는 인종 자체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녀는 아재개그도, 성희롱도, 아재냄새도 없는 크린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진지하고 격렬한 반응으로 보아 정말로 블랙 팬텀에 세뇌된 건지, 평소 상태랑 어떻게 다른 건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만 의상이 바뀌지 않은건 본질이 드러났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 나오미는 아재타도를 위해 카가리와 카즈라도 블랙 팬텀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스턴 서브젝션에 뭔가가 간섭한다. [[파티 크루]]의 입자 조작이었다. 일행이 너무 늦어지자 와본 건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티는 나오미의 공격을 막고 빨리 이탈하다고 재촉한다. 하지만 미오와 모모타로는 아직도 다른 위치에 있다. 파티는 모모타로의 텔레파시로 파악해 보니 상대는 자신의 동류들이었다.
* 파티가 이때 기습을 가한다. TUEE필드도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는건 막지 못하니 파티의 입자 조작이 충분히 먹혔다. 결국 파티의 활약으로 세 사람은 벽에 처박히는 신세. 완전히 제압됐다고 생각한 카가리는 이왕이니 이들도 데리고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그 직후 카가리의 낌새가 이상하다. 뭔가 눈치챈 팀이 "해버려 아키라!"라고 외치는데 그와 동시에 일행이 있던 곳에서 갑작스런 폭발이 일어난다.
* 당연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블랙 팬텀의 복병은 저들만이 아니었다.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 페어도 대기 중이었다. 역시 정신 오염이 완료. 아키라 카가리의 몸과 바꿔치기를 해서 발화, 파티의 입자로 분진폭발을 유발한 것이다. 하츠네는 밖에서 아키라의 몸에 들어온 카가리를 제압. 하츠네는 정신오염에 덤으로 팀과 바렛의 중2 취미까지 옮은 건지 "위기에 몰린 주인공이 역전할 땐 분진 폭발이 단골소재"라며 실없는 소릴한다.
- 최광수 (공무원) . . . . 17회 일치
{{공직자 정보
| 경력 = 국방부 차관 <br/> 대통령 비서실 실장 <br/> 체신부 장관 <br/>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 <br/> 외무부 장관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 참고 자료 ==
|전임자 = [[유근창]]
|후임자 = [[이민우 (1921년)|이민우]]
|전임자 = [[김계원]]
|후임자 = 최광수
|전임자 = 최광수<br/>(5대 서리)
|후임자 = [[김경원 (1936년)|김경원]]
|전임자 = [[김좌겸]]
|후임자 = [[정종택]]<br/>(정무제1장관)
|전임자 = [[김기철 (1917년)|김기철]]
|후임자 = [[최순달]]
|전임자 = [[이원경]]
|후임자 = [[최호중]]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창신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주 최씨]]
- 최민호(유도선수) . . . . 17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유도(스포츠)|유도]] 선수이자 현 유도 코치, 별명은 '''작은 거인'''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유도 60kg급 [[금메달]]리스트, [[2004 아테네 올림픽]] 유도 60kg급 [[동메달]]리스트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상대인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의 고간을 잡아 들어 업어 메치는 명장면[* 속된 말로 '''그냥 잡아 뽑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딱지치기라고도 했다.][* 다만 현재 룰에서 이는 반칙이다. 띠 아래쪽을 잡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파이셔 선수는 패배 후 최민호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을 때 가 일으켜 안아주고 마지막엔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매너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으로 금메달을 땄고, 국내 60kg급에선 2003년서부터 쭉 본좌 자리를 유지하고, 오로지 유도만 바라보며 사는 자타공인 유도 바보.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상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반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남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유도 국가대표 남자부 코치를 맡아 김원진, [[안바울]] 등의 선수들을 지도했다.
90kg급인 [[송대남]] 선수가 데드리프트 250kg을 할때, 60kg으로 자기 몸무게의 '''3.8배'''나 되는 230kg을 드는 진짜 '''죽음'''의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동급 체급에 비해 힘 자체가 매우 엄청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저체급에서 기술유도를 하는 말도 안되는 한판승의 사나이로 유명했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이후 [[경북대학교]] [[대나무숲(대학교)|대나무숲]]에 당사자의 글로 추정되는 글이 올라왔다. 당시 여자친구에게 허세를 부려 봤다가 이 꼴이 나서 [[이불킥]] 수준으로 창피하다고 한다.
- 최성관 (1925년) . . . . 17회 일치
| 직업 = [[영화 배우]], [[영화 감독]], [[영화 편집자]]
'''최성관'''(崔聖寬. [[1925년]] [[9월 5일]] ~ [[1999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영화 배우]], [[영화 감독]], [[영화 편집자]]이다.
[[1925년]] [[9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선화 공주》를 감독하였다. 감독활동은 1959년 《남의 속도 모르고》, 1962년 <태양(太陽)을 등진 사람들>로 이어졌다. 김근자, 박귀희 주연의 <선화공주>는 흑백영화로 일관되다시피한 당시에 16미리이기는 했으나 모처럼 천연색 필름으로 촬영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홍성기 감독이 <여성의 일기>(1949)로 색채 화면을 선보인 이후 두 번째의 시도였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9년]] [[7월 19일]] 별세하였다.
* 여자의 일생 (1968년)
* 버림받은 여자 (1970년)
* 아랑낭자전 (1974년)
* 사랑의 원자탄 (1977년)
* 내가 버린 남자 (1979년)
* 우산속의 세 여자 (1980년) - 김사장
* 오염된 자식들 (1982년)
*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1983년)
* 바보스러운 여자 (1983년)
* 사랑하는 자식들아 (1984년)
* 두 여자의 집 (1987년) - 윤치호 아버지
* 마지막 남자의 모습 (1990년) - 김사장
* [[언제나 그 자리에]] (1990년)
* [[1968년]] 극단 자유전선 단원 등
- 최영미 (시인) . . . . 17회 일치
* [[선일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에 가담하여 [[서울관악경찰서|관악경찰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반독재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 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했다. 십 여명이 번역과 교열작업에 매달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해방 이후 최초로 현대 한국어로 옮긴 《자본 1》이 1987년 이론과실천사에서 김영민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역자로 내세워 출판되었고, 출판사 대표는 사회주의 원전을 출판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영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투명한 언어,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정확한 비유, 대담한 발상과 세련된 유머,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이 있다.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2005년)를 출간했고, 1988년 이후 26년 간 틈틈이 써온 원고를 다듬고 보완하여 1980년대 청춘의 방황과 좌절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 《청동정원》(2014년)을 펴냈다.
최영미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수문학상 심사위원 유종호교수는 “최영미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이유를 구현한다”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돼지들에게》의 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라고 썼으며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라며 심사평을 전했다.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구겐하임상(Guggenheim fellowship) 수상자인 시인 제임스 킴브렐(James Kimbrell)과 유정열이 공동 번역한 3인 시집 《현대한국의 세 시인:이상, 함동선, 최영미》(''Three Poets of Modern Korea: Yi Sang, Hahm Dong-seon and Choi Young-mi> (2002,Sarabande books'')는 2004년 미국번역문학가협회상(ALTA Awards:American Literary Translators Association)의 최종 후보로 지명되었다.
미국의 계관 시인이자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2009년 버클리에서 열린 시 낭송회 런치 포임(lunch poem)에서 " 최영미의 시는 추상표현주의 회화같다."라고 평했다. 2005년 일본의 청수사(靑樹社)에서 출간된 최영미의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문화면 머릿기사로 다루며 《아사히신문》은 "다의성(多意性)이 풍부한 명석한 언어"라며 "시에 의해서 잉태된 언어를 이만큼 신중하게, 고독하게 기르고 있는 시인이 가장 이웃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라는 사사키 미키로 시인의 평을 실었다.
세 명의 한국 작곡가- 이건용, 김대성 그리고 안치환이 최영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울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이 작곡하고 전경옥이 노래한 아트 팝 겸 클래식 음반 《혼자사랑》 (1998년)에 최영미의 시 4편을 노랫말로 삼은 〈선운사에서〉,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슬픈 카페의 노래〉, 〈북한산에 첫눈 오는 날〉의 4곡이 포함되었다. 무형문화재인 국악인 강권순의 창작 가곡집 《첫마음》(2007년)에 김대성이 작곡한 노래 '선운사에서'가 수록되었고, 안치환의 10집 앨범인 《오늘이 좋다》(2010년)에 안치환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 〈선운사에서〉가 실렸다.
시는 내게 밥이며 연애이며 정치이며,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래서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들이여. 세상의 벗들과 적들에게 맛있게 씹히기를……<br/>으자자자작.
== 참고자료 ==
- 킹덤/499화 . . . . 17회 일치
* 조 서부 공략군으로 지칭된, 실제론 "업 공략"을 위한 연합군이 출병한다. 수도의 병사들은 함양이 떠나갈 듯이 성원을 보낸다. 꺼림직하게 여겨지던 산민족이나 환의군 조차 엄청나게 응원을 받는다. 비신대의 활형제를 비롯한 신병들은 긴장으로 위축. 반대로 연을 비롯한 고참들은 자기들이 출세하긴 한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떤다.
* 그때 근처에서 [[창평군]]과 함께 [[왕전]]의 모습이 나타난다. 최고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병사들 사이에서 드높은 함성이 터져나온다. 그를 바라보던 벽은 하료초에게 그가 대장군을 맞는 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냐고 의견을 묻는다. 아무래도 벽은 그를 신뢰하지 못한다. 산양전에서 미끼로 쓰였던 전례도 있지만, 그 속 모를 눈빛은 아군 조차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하료초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창평군 조차 왕전의 인간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에겐 "그 불안을 채우고 남을 만한 힘"이 있기에 기용되었다고 밝힌다.
* 과거 육대장군의 일각이자 군사로서 "지력 하나만으로 육장에 올랐다"고 평해지던 호양. 다른 육장들이 무용을 자랑할 때 그는 오로지 군략만으로 싸웠고 전쟁의 자유를 받가 각개전투했다는 인상이 강한 육장들이 실제론 그가 그려놓은 큰 그림 하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렇듯 군략의 천재였던 호양의 제자가 지금의 창평군. 그 창평군은 호양이 왕전을 인정했다고 보증한다.
* 창평군의 말로 호양은 왕전을 평하길 "군략의 재능만으로 육장의 자리를 꿰찮 인재". 호양처럼 과거의 인물에게 그정도 평을 들었을 정도라면, 거기서 성장한 지금의 왕전은 어떤 인물일 것인가? 벽은 그렇게 말하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때 벽도 자신의 부대에서 호출이 오면서 둘은 헤어진다. 벽은 헤어지기 전 신에게도 조심하라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하료초도 뭔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창평군과 왕전은 한가로워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자리엔 [[창문군]]을 비롯한 참모진이 전부 자리하고 있었는데, 창평군은 이들을 대포하는 입장이면서도 "업 공략이 전황 상 여의치 않으면 포기해도 좋다"는 발언을 한다. 업 공략이야 말로 작전의 진짜 목표이며 이것이 좌절되었을 땐 진나라의 명운도 좌절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언. 창문군은 그렇기 때문에 창평군의 발언에 내심 경악한다. 하지만 개억은 진짜 버리란 것이 아니라 그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며 그만큼 업공략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전장이라 그렇다고 이해한다.
창평군은 현장에 전적으로 판단을 맡기겠다고 하고 왕전은 알겠다며 수락한다. 그런데 왕전은 자신이 떠나기 전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 출병 행렬에 끼어 있는 비신데. 그런데 그들의 대장 [[이신]]은 행렬에서 빠져나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진시황(킹덤)|정]]. 그의 얼굴을 모르는 신병들은 왠 귀족나부랭이가 치근덕댄다고 투덜대는데 고참들이 쥐어박으며 그가 바로 진나라의 왕, 대왕 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왕이 출병 행렬 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란이 일어나는데 신은 태연하게 진정시키며 얼른 갈 길이나 가라고 재촉한다. 정은 신이 큰 작전을 앞두고도 별로 긴장한 기색이 없다고 놀란다.
* 신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그걸" 가져왔냐고 묻는다. 아닌게 아니라 정의 뒤를 따라 거구의 병사가 "어떤 창"을 힘겹게 옮기고 있다. 그 창이 나타나자 [[강외]]를 비롯한 비신대의 고참들이 분위기가 바뀐다. 신은 제법 힘겹게 창을 건내 받으며 가까스로 한 번 휘둘러 보인다.
* [[미평]]은 그 모습을 보고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신이 왕의 장군의 창을 쥐고 전장에 나서는 날이 온 것이다. 정은 이 창을 쥔 느낌이 어떻냐고 소감을 묻는다. 신은 처음 이 창을 쥐었을 땐 너무 많은 상황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창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다시 쥐어본 창은 무척 무겁고 뜨겁다고 말한다. 신은 자연스럽게 왕의 장군의 유언을 떠올린다.
* 신은 그걸 휘두룰 수 있겠냐고 묻자 오히려 자기가 휘둘릴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쓰면서 익숙해지겠다고 다짐한다. 이러는 사이 행렬이 꽤 정체돼 뒤에서 불평이 도착한다. 다시 행렬로 돌아가는 신에게 정은 "언제나처럼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격려하고 신은 반드시 이 창으로 이목의 목을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한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17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와 [[엘자 스칼렛]] 일행을 태운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유인한다.
* [[제레프 드래그닐]]은 자신의 네오 이클립스를 완성하기 위해 시간의 틈새 안의 "시간의 마력"을 독점하려 했고 그래서 시간의 틈새를 봉인해버렸던 것.
* 공원에서 END의 서를 연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 책에서는 고대의 문자가 흘러넘쳐 주위를 가득 채운다. 루시는 그 의미도 알 수 있는 듯 한데.
* [[안나 하트필리아]]의 설명 후, [[웬디 마벨]]은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한다. 웬디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데 안나는 그것도 이클립스의 영향으로 추정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웬디는 뭐라도 떠올리려고 애쓰나 안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투로 자제시킨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거라면서 입버릇대로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으니까"란 말을 반복한다.
* [[엘자 스칼렛]]은 조금 떨어져서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제라르 페르난데스]]가 그런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안나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자신도 확신이 없다면서도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그녀의 작전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엘자는 "믿기는 한다"고 대답한다.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제랄은 그런 점을 그녀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여기는데, 정말로 그녀가 전적으로 안나를 믿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가 가깝다는 소식을 전한다. 히비키, 이브, 렌, 제니는 조종에 총력을 다한다. 자신들도 시간의 틈새와 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끝장이다. 시간의 틈새는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안나가 지정해준 좌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며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히비키의 계산에 따라서 시간의 틈새 쪽으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아크놀로기아가 턱 밑까지 따라붙고 시간의 틈새가 바로 직전에 나타난 상황. 크리스티나호는 불과 몇 m를 남겨두고 선체를 급격히 비틀어 시간의 틈새를 피한다.
* 같은 시각 [[제레프 드래그닐]]은 [[나츠 드래그닐]]을 제압하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이뤄줄 네오 이클립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 결국 제레프의 농간이 작전을 망친 셈이지만, 안나가 그걸 알 턱이 없다. 그녀는 상황을 해석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여유가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아크놀로기아가 일행을 끝장낼 판이다. 엘자가 기지를 발휘한다. 그녀는 이치야에게 멸룡마도사 탑승용 리크리마를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하면 아크놀로기아도 멸룡마도사인 이상 멀미를 유발할 테니까. 그 예상이 적중해서 아크놀로기아가 구토를 하며 배에서 떨어져 나간다. 웬디까지 눕게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 공원에서 END의 서를 연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록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책에서는 빛과 함께 정체불명의 문자가 흘러나온다. 주위를 가득 채울 정도로 방대한 양의 문자. 루시는 이것이 전부 나츠에 대한 정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자들을 보던 루시는 뭔가를 깨달은 듯 한데.
* 나츠는 제레프의 마법에 휘감겨서 옴짝달삭도 못하는 상태. 제레프는 "너로는 날 못 막는다"고 자신있게 단언한다. 그때 누군가가 길드로 들어서며 반박한다.
- 페어리 테일/542화 . . . . 17회 일치
*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이 하르지온 항구에서 적당한 배를 섭외하는데 성공한하고 [[엘자 스칼렛]]이 반드시 마룡을 추락시켜 배에 떨구겠다고 결의한다.
* [[나츠 드래그닐]]이 이것이 최후의 승부라고 선언하자 마룡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이라며 폭소를 터뜨린다.
* 매그놀리아를 침공한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신. 그것을 막기 위해 페어리 테일을 비롯한 마도사 길드 연합군이 작전을 수립한다. [[미네르바 올랜드]]가 이끄는 연합군이 아크놀로기아를 작전지역인 하르지온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받았지만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없다. 마룡은 자아를 잃고 무차별 공격을 해대는데 이쪽의 반격은 마법이든 물리적 공격이든 무효. 그렇다고 마룡을 유도할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다.
더이상 매그놀리아에서 날뛰게 두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때 [[유키노 아그리아]]가 한 가지 단서를 짚어낸다. 왜 자아도 없는 아크놀로기아가 유독 매그놀리아에 머무는 걸까?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마룡의 "본능". 미네르바는 마룡이 "마도사가 모이는 곳"으로 본능적으로 향하는 거라고 판단한다. [[카구라 미카즈치]]는 아마 보다 큰 마력을 더듬어서 움직이고 있을 거라고 여긴다.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 하루지온 상공으로 아크놀로기아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제 모든 조각이 모이고 있다. 미라젠이 루시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자고 한다. [[길다트 클라이브]]는 젊은 멤버들에게 페어리 스피어 발동을 준비시킨다. 아직 어떻게 발동하는지도 모르는데 준비라니? 어쩐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엘프먼 스트라우스]]의 손을 잡으며 모두 함께 하자고 말한다.
*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안전하게 하루지온에 안착한다. 엘자가 그녀들을 반긴다. 둘은 아크놀로기아가 마력을 쫓는 습성이 있다고 알리곤 힘이 다해 쓰러진다. 엘자는 뒤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며 둘을 피신시키는데. 그때 아크놀로기아가 또다시 이터널 플레어를 준비한다. 길다트의 경고로 모두가 몸을 납짝하게 업드리지만, 아크놀로기아가 노리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이터널 플레어가 항만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항구에 있던 배라는 배는 전부 파괴되어 한 척도 남지 않는다.
*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 것인가? 망연자실해진 마도사들. 시간의 틈새에 있는 정신체가 그랬듯, 마룡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린다. 이 또한 마룡의 본능. 미네르바는 마룡이 자신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인식해서 먼저 파괴해 버렸음을 깨닫는다.
- 하이큐/224화 . . . . 17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좋은 토스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며 자기 자신의 플레이를 하라고 조언한다.
* 다시 자신을 얻은 카게야마는 맞춰주는 토스에서 리드하는 토스로 전환해 새로운 공격루트를 뚫는데 성공한다.
* 다테 공고의 강한 블록에 향상심을 자극 당한 카게야마 토비오.
* 충분히 좋은 흐름이라고 생각하던 시점에서 갑자기 끊어져 버린다.
* 코트 바깥의 팀원들은 전일본 유스에서 자극을 받은 탓이 아니겠냐고 짐작하는데 스가와라 코시도 우카이 코치처럼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게 더 의외"라고 답한다.
* 카게야마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인데 아즈마네가 뭐라고 말을 붙이려 하자 "나는 좋은 토스를 올리니까 좀 더 넣어달라"고 언성을 높인다.
* 히나타는 "횡포를 부리거나 자기중심적인게 나쁘다는 건가?"라고 말하는데.
* 황당한 소리 같지만 그 말을 들은 팀원들이 자기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 타나카는 사실 자기한테 하는 말은 대체로 그냥 넘기지만 팀원에게 예의없이 하는건 엄하게 군다.
*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라며 자기 자신의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그렇게 되자 각 팀원들이 플레이를 할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어떻게 풀어가고 싶어하는지 직접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된다.
* 스가와라는 지금의 카게야마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과 "중학생때 팀메이크에게 몸소 직구를 맞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 갑자기 히나타가 "세터는 지배자 같아서 제일 멋지잖냐"라고 하는데, 예전 카게야마가 했던 말을 흉내낸 것.
* 히나타는 큰 공헌을 한 셈인데 자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도 확 와닿는 별명이 있음 좋겠다"같은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다.
- 하이큐/231화 . . . . 17회 일치
* 그러다 하필이면 옆에 있던 니시노야 유가 휘말린다. 히나타가 비틀거리다가 니시노야를 떠밀어 버린다. 그런데 정말로 우연하게도, 정말로 행운스럽게도 그 앞에는 여성 선수가 있었고 이대로면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리는 행복한 해프닝이 벌어질 참이다. 니시노야는 모든 것을 불가항력이라 합리화하며 하나님과 히나타에게 감사하는데, 갑자기 "꽉"하고 잡히는 느낌이 든다.
* 공교롭게도 그녀는 타나카 류노스케의 지인이었다. 타나카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러 온다. 그녀는 아마나이 카노하. 미야기현 여자 대표로 출전한 니야마 여고의 2학년 WS다. 신장이 무려 182.5cm. 니시노야를 달랑달랑 들 수 있을 정도로 장신이다.
히나타는 전에 타나카가 "여왕"[* 니야마 여고는 여자배구계의 여왕으로 통한다.]이랑 아는 사이라고 자랑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타나카는 "니야마 여고의 차기 에이스는 내가 키웠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반은 맞는 말이었다. 타나카의 소꿉친구로 초등학교 동창. 4학년 때까지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그때도 타나카보단 훨씬 컸다.
그런데 소꿉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영향인지 타나카는 달라진 아마나이의 모습 때문에 얼어버린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특히 스가와라 코시) 이 꼴을 보고 "여자한테 말을 쉽게 거는걸 보고 이상하다 했다." "여자임을 인식해 버렸다."같은 말을 하며 수근댄다.
아마나이는 자기 팀 선배를 따라 정렬하러 가면서 인사를 한다.
카게야마는 사쿠사 키요오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데 그 자리에 와있긴 했다. 사람이 많은걸 싫어해서 구석탱이에 숨어있었다.
*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도 나타났다. 성격대로 떠들썩하게 히나타를 찾아왔다. 커다란 목소리로 히나타를 "1번 제자"라고 불러대는데 보쿠토의 명성을 아는 주변에선 히나타에게 주목하게 된다. 보쿠토는 "네트 너머로 만나면 안 봐준다"고 선전포고를 한다. 이어서 츠키시마 케이한테도 아는 척을 하는데 성격적으로 안 맞는 츠키시마는 떨떠름해한다.
* 왁자지껄하게 있던 사이 드디어 봄철 고교 배구 전국 고교 선수권이 개막한다. 개회식이 시작하자 각 현을 대표하는 학교들이 차례로 정렬한다. 카라스노의 학년들은 처음 와는 오렌지색 코트에 감격한다.
* 체육관에서 몸을 푸는 동안 어제와 같은 긴장과 압박감은 보이지 않는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1, 2시합이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며 슬슬 도쿄 체육관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 이번엔 지하철이 복구돼서 역으로 향하는데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히나타와 타나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자리 비운 인원의 짐을 맡는데 나리타 카즈히토가 나눠 맡아준다.
* 무사히 체육관에 도착한 카라스노. 사와무라는 평상심을 중얼거리고 있고 스가와라는 그걸 지적하며 놀린다. 시미즈는 아즈마네 아사히가 출입증을 놓고 간걸 챙겨준다. 우카이 코치는 다들 딱딱해 보이지만 상정한 범위라며 오히려 자신이 긴장을 떨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히나타가 시합 직전 짐을 뒤적거리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모양은 같지만 자기 가방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다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타나카가 "여왕"팀에 아는 사람이 있다던 복선이 회수됐다. 일단은 귀중한 신 여캐. 시미즈에 이어 작중 공식적으로 "미인"으로 지칭된 두 번째 여캐. 현역 배구선수여서 그런지 엄청난 장신을 자랑한다.
한동안 잊혀져 있었던 히나타의 "칠칠맞음"이 대폭발. 첫 전국대회부터 대형사고를 쳐줬다. 그런데 가방이 바뀐 건지 처음부터 안 챙겨온 건지 아직 불명. 하지만 위의 히나타가 야마구치에게 가방을 맡기고 화장실에 가는 장면에서 뒤에 작게 한 인물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히나타의 가방과 똑같이 생긴 가방을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관련성이 있는듯 싶다.
- 하이큐/258화 . . . . 17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이나리자키 고교]]가 자군의 괴짜속공을 따라잡기 시작하자 싱크로 공격을 해금해 반전을 꾀한다.
* 히나타는 오사무가 자신의 블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그동안 겪었던 "꺼림직한 블록"을 돌이켜보며 실마리를 찾는다.
*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가 뺏아간 괴짜 속공.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히나타 쇼요]]를 블록에 적극 기용하는 것으로 대항해 보려 하나 아직 소득이 없다. 번번히 농락 당하는 히나타의 블록. 히나타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오사무의 볼을 저지하는데까지는 갔으나 힘에서 밀려 "밀어넣기"에 당해버린다. 그래서 더 열불이 터진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옆에서 보기에도 확연할 정도. [[츠키시마 케이]]가 그 심정은 정확히 안다. "경험치"가 너무 다르다. 방금 전 밀어넣기는 그렇다쳐도 계속 1 대 1 상황에서 블록이 뚫리면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다.
* [[카라스노 고교]]의 두 번째 TO. 전황이 좋지 않다. 우카이 코치는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자군이 괴짜 속공에 적응해 가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 대안으로 "섞음"을 해금한다. 근데 잠깐 어리둥절해하는 히나타. 알아들은 척 하지만 츠키시마의 눈썰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 두 번째 TO 이후론 공격도 풀리지 않는다. 이나리자키의 서브를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그대로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세트업. 가로막힌다. 카라스노 진영으로 흘러오는 공을 히나타가 캐치. 다시 살려서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하지만 좌측에서 산지마에게 리시브 당한다.
* 다시 이나리자키의 공격 기회. 아츠무는 세트를 올리려다 한 가지가 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공은 오미미에게. [[카게야마 토비오]]가 원터치로 블록한다. 라인 밖으로 빠지는 공을 사와무라가 살리지만 네트에서 너무 가까웠다. 타나카의 스파이크도 오미미, [[마지로 알렝]]에게 차단되나 싶었는데, 마지로의 팔이 네트에 걸렸다. 터치넷으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무안해하며 사과하는 마지로. 일단은 한숨 돌린 카라스노.
* 스코어는 20 대 19. 1점 차를 유지했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 TO를 전후로 명백히 기세가 꺾였다. 이런데다 이나리자키의 사령탑은 채찍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츠무가 오사무의 플레이에 트집을 잡았다. "꾀를 부린다"는 것. 방금 전 아츠무의 눈에 걸린게 그거였다. 오사무가 "일단 미끼할게요" 식의 불성실하게 들어왔다. 오사무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고 "전력으로 뛰면 어떻게 끝까지 뛰냐"고 투덜댄다. 그러다 아츠무는 "치면 들어간다"며 일단 전력을 다하라고 질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작은 블록"이 두렵냐는 것.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오사무. 그런데 이 논쟁은 뜻밖의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 히나타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무섭지 않다"는 부분. 이젠 작다는 데는 이골이 난 모양이다. 어쨌거나 블록을 뛰어도 스파이커가 "무섭지 않다"고 하는건 충격이었다. 히나타는 자신의 블록이 어디가 잘못됐나 돌아본다. 혹시 혼자서 뛰어서 그렇진 않을까? 고민이 이어지는 동안 카게야마의 서브다.
* 플레이가 시작됐건만 고민이 멈추지 않는다. "혼자니까 무섭지 않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블록이 한 장만 있어도 무서운 놈은 무섭다. 예를 들면 저 [[다테 공업 고교]]. 이쪽은 전원이 무서웠다. [[아오네 타카노부]], [[후타쿠지 켄지]], [[코가네가와 칸지]]. 너무 철통 같아서 한 명이 붙는 경우는 고사하고 보통은 두 명씩 따라왔다.
* 아니다. 그쪽이 아니다. 이건 1 대 1에서 무서운 쪽을 떠올려야 한다. 다시 한 번 그동안 "경험"했던 얼굴들을 떠올린다. 하나하나. 자신을 막으러 왔던 블록 중 누가 가장 꺼림직했나? 대체 누가? 날아오르는 자신 앞으로 수없이 뻗혀왔던 팔들, 얼굴들. 되살아나라 "경험치"
>아자!
* 기회가 왔다. 히나타는 곧바로 코트 중앙까지 와서 반전한다. 공은 카게야마에게. 이나리자키 블록은 당황한다. 속공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10번, 히나타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섞인다. 싱크로 어택. 타나카, 히나타, 사와무라가 같은 타이밍에 날아오른다. 이들 중 진짜는 사와무라. 우측을 찌르는 스파이크. 산지마의 리시브를 뚫고 나간다. 카라스노 고교의 브레이크 선언. 20 대 20, 다시 동점으로 올라선다.
- 하이큐/260화 . . . . 17회 일치
* 야마구치의 서브가 성공해 [[카라스노 고교]]가 23 대 22로 처음으로 역전. 그러나 [[이나리자키 고교]]의 역습이 무섭다.
* 스코어는 다시 동점이 된 상황에서 또다시 카라스노의 리시브 실패, 공이 이나리자키 측 관중석으로 날아간다.
* 이에 [[카게야마 토비오]]가 상대 진영까지 달려가 커버하는 투혼을 보이자 미카도 "포기할 여유 자체가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임을 깨닫는다.
* 봄고 대회 첫날.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바키하라전에서 원포인트 서버로 기용돼 좋은 활약을 했다. 야마구치의 개인코치였던 [[시마다 마코토]]가 그를 찾았다. 야마구치는 자랑스럽게 3층 비상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았다고 말하고 시마다는 내일도 그렇게만 하라고 격려해줬다. 그게 복선이었던 걸까? 오늘도 그 비상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으려뎐 야마구치의 예정은 뜻밖의 적재물이 비상등을 가리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은 그 사실을 응원석에 있던 시마다가 알아차렸다는 것. 그런 사소한 차이 조차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아는 그는 필사적으로 3층 비상등을 향해 뛴다.
* 야마구치가 긴장을 억누르고 다른 리셋포인트를 찾는다. 그러나 동공이 대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동료들은 그의 서브가 늦어지자 의아해한다. 다른 리셋포인트를 찾으려는 노력은 허사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장은 다양한 소음으로 가득하다. 거기서 다시 집중할 지점을 찾는다니. 의식할 수록 주위는 더 흐트러진다.
* 그때 야마구치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3층 비상등. 시마다였다. 카라스노 고교 응원석에서 완전 반대편인 [[이나리자키 고교]] 응원석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그는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야마구치는 그걸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집중했다. 그건 시마다 마트의 비닐 봉투. 마스코트인 돼지 캐릭터가 선명하게 보였다. 시마다가 처음 리셋포인트를 전수할 때 표지로 삼았던 그 봉투였다.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그 묘한 꼴을 보고 수근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마다의 의도는 명백했다.
* 지금 플레이가 봄고 참가 이래 최고의 서브다. 야마구치의 폼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이 깨끗한 반원을 그리며 [[마지로 알렝]]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리시브 실패. 바로 옆을 스쳐가는 공에 손을 뻗어보지만 닿는게 어설펐다. 빗맞은 공이 그대로 코트에 닿는다. 야마구치의 서브 에이스. 카라스노 득점 성공. 22 대 23. 경기 시작 후 최초의 역전. 더불어 끈질기게 이어졌던 추격전이 뒤집혔다. 동료들의 환호. 지금은 카라스노냐 이나리자키냐를 놓고 티격태격했던 바보 커플도 대동단결해서 환호한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투토 코타로]]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서브의 일등공신이었던 시마다는 적진 한가운데인 것도 잊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쏟아지는 눈총에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나리자키 진영. [[미야 아츠무]]가 촐싹 맞게 "당했다!"고 탄식한다. 그 소리에 리시브를 실수한 오지로가 급 시무룩해졌다. 긴지마가 거 보라며 아츠무를 쪼아댄다.
* [[타나카 류노스케]]가 필사적으로 공을 쫓는다. 공은 벽까지 날아갔고 타나카가 몸을 날린다. 간발의 차, 공을 따라잡지 못한다. 타나카가 보람도 없이 벽이 부딪힌다. 분명 무리한 플레이였지만 그 투혼만큼은 인정받는다. 스코어는 23 대 23. 다시 동점. 하지만 이제 이나리자키의 추격세다.
* 관중석의 [[다이쇼 스구루]]는 냉담한 표정 치곤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옆에 앉은 여자친구 "미카"는 방금 전 타나카의 플레이를 보고 소스라쳤다. 벽에 부딪힐게 뻔한데도 달려드는 모습. 미카는 그게 무섭다고 말하곤 도중에 "못 잡는다"고 생각하지는 못한 건지 궁금해한다. 설사 따라잡더라도 코트로 돌려보낼 수도 없을 텐데. 스구루가 거기에 답을 줬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로테이션으로 오미미가 나가고 2학년 WS인 [[코사쿠 유토]]가 들어온다. 코사쿠의 서브. 네트 위에서 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서브다. 공은 사와무라에게. 받아내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사와무라의 팔에 맞고 크게 떠서 이나리자키 응원석 쪽까지 날아가 버리는 공. 사와무라가 낭패한다. 양측 응원석은 이미 득점이 인정된 것처럼 탄식과 환호를 교환한다.
* 하지만 공은 아직 떠있지 않은가? [[카게야마 토비오]]가 뛴다. 네트 밑을 가로질러 이나리자키 측 코트의 바로 좌측까지 필사적으로 달린다. 이번엔 늦지 않았다.
- 학대의 연쇄 . . . . 17회 일치
[[아동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식을 학대하게 되어, [[아동학대]]가 부모-자식으로 [[연쇄]]되는 현상을 뜻한다.
학대가 연쇄되는 경우는 학대 경험을 그대로 의심없이 자신의 아이에게 반복하는 것과, 학대 받은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자신의 아이에게 투영하는 경우가 있다.
반복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에 대해서 자신이 나쁜 아이였기 때문에 혼이 났다고 믿어버리고, 학대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훈육 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며, 이것이 학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투영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어린 시절의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으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학대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섞여서 복잡한 심리 상태가 된다.
학대를 반복하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상하지 않으려 하며, 이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언급하기를 거부한다. 학대를 반복하지 않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상하여 솔직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학대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
[[체벌]]이 훈육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에서는 별달리 문제시 되지 않았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의식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학대의 연쇄 역시 진지한 문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를 받다가 보호, 구조받은 아동에 대해서 면밀한 정신적 케어가 요구되고 있다.
- 혜은이 . . . . 17회 일치
| 직업 = [[가수]] <br /> [[배우|연기자]] <br /> [[영화 배우|영화배우]] <br /> [[방송인]]
| 배우자 = [[김동현 (1950년)|김동현]]
| '''내 남자'''
'''혜은이'''(본명: '''김승주''', [[1956년]] [[9월 23일]] ([[음력 8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사회자|방송인]]이다.
[[1956년]] [[9월 23일]] ([[음력 8월 19일]])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에서 《낙랑쇼》의 단장이자 유명 변사였던 김성택의 딸로 태어나 7살 때(1962년) [[부산광역시]]으로 이주하여 자랐다.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길옥윤]]〉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폭발적인 가창력과 미모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했다. [[1977년]]에는 2집 <진짜 진짜 좋아해>(동명 영화 OST|[[문여송]]/[[길옥윤]]), 3집 <당신만을 사랑해>(동명 영화 OST(1978)|[[길옥윤]])가 모두 히트하면서 인기 정상에 올랐다. 10대 가수상, 가수왕, 최고 인기가수상 등 3사 통합 가수왕을 수상했고 혜은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패션의 선두주자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또한 1집부터 14집까지의 모든 타이틀곡이 1위를 했다.
[[1978년]] 태평양가요제 입상 후 배우 [[김자옥]]과 함께 동남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이다. [[1970년대]] 젊음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얻었고, <제3한강교>(동명 영화 OST(1986)|[[길옥윤]])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최초의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녔으며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창조한 스타이다.
* 1990년 07월 19집 《내 남자》 《잃어버린 추억》
* 1992년 10월 20집 《바람이 지나간 자리》 《나는 여자예요》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홍세화 . . . . 17회 일치
|출생지 = [[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 [[종로구]] [[이화동]]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 ([[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의 전신)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現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ref>1948년 이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뀐다.</ref>[[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서울창경초등학교|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67년]] [[10월]] 자퇴하였다. 그 뒤, 다시 재수하여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문리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였다.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다가, 다시 복학하였으며, [[1977년]]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ref>동숭동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사회과학대학 소속으로 변경</ref>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해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백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201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이 되었고, 2010년 민주노총과 한신대학교에서 기획한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11월엔 <[[진보신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이후 2015년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일명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했다.
*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박노자]]
== 참고 자료 ==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
[[분류:대한민국의 사상가]][[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반파시스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대한민국의 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반체제자]][[분류:홍세화|*]][[분류:아웃사이더]][[분류: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한겨레]][[분류:민중민주파]][[분류:프랑스어-한국어 번역가]]
- Crusader Kings 2 . . . . 16회 일치
같은 제작사가 만든 [[Europa Universalis 4]]랑 자주 비교되는데, 크킹이 이름 높은 가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유파는 ~~강성대국~~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비잔티움쪽은 안습하기 짝이 없는데, 우선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5세가 성상파괴주의자이어서[* 게임 시스템상 성상파괴주의는 정교회의 이단으로 취급된다] 종교권위가 개판이라 반란이 넘쳐나고, 불가리아와 아바스가 영토를 노리고 침공해오는 경우도 잦아 살아남기 힘들다. ~~몇안되는 비잔티움의 양심 시나리오~~
그외에 북유럽쪽에는 게르만 신화를 믿는 영주들이 난립하는데, 이들중 특이할만한 자가 있다면 스비요르드 대족장 반지의 시구르드. 시작부터 최상위 유전 트레잇중 하나인 '영재'[* 전능력치 +3]을 달고 있는데다가 그의 아들은 그 유명한 [[털반바지의 라그나르]]다.
일단 시작지점에서 라그나르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게만든 잉글랜드 7왕국을 조지겠다고 할프단과 이바르를 중심으로 침략전쟁을 건 상태이다.
==== 제3차 십자군전쟁 (1187. 1. 1.) ====
==== 한자 동맹의 발호 (1241. 5. 1.) ====
2. 선택한 인물의 나이와 [[위키피디아]] 링크. 여성의 경우 45세 이상은 임신을 할 수 없으니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주의하자. 위키피디아 링크의 경우 해당 인물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면 작동하지 않는다.
3. 선택한 인물의 대표 작위 문장. 해당 문장은 더블린 백작령의 문장이다. 옆에 보이는 초상화에는 배우자, 군주, 후계자, 섭정[* 모종의 사유로 섭정이 대신 통치중인 경우], 그 외 여러가지의 초상화가 딸려나온다.
6. 인물의 문화, 야망, 관심사, 능력치. 야망과 관심사는 Way of the Life DLC를 구매해야 나오는 기능이다. 예시의 무르하는 아일랜드인이며 전체적으로 암담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괄호 안의 능력치는 국가 능력치로, 이것이 실질적인 능력치이다. 국가 능력치는 군주 능력치+군주의 배우자 능력치+해당 능력치와 관련된 주요 직책의 능력치이다. 각 능력치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외교력: 외교활동에 관한 능력치. 다른 캐릭터가 자신을 보는 의견에도 영향을 준다. 이 능력치가 높으면 몇몇 이벤트에서 혓바닥을 놀려 약을 파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7. 그 외 여러가지 정보들. 해당 정보들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덤으로 자신의 정보들은 화면 오른쪽 위에 항상 표시된다.
* 육군 징집: 현재 자신이 직접 징집 가능할 수 있는 병사 수.
* 신앙심: 해당 캐릭터가 종교인들로부터 받은 호감을 수치화한 것. 종교 지도자에게 청원하거나 할 때 소모된다. 캐릭터가 죽으면 해당 캐릭터의 신앙심이 가문 점수에 추가된다.
- MC메타 . . . . 16회 일치
[include(틀:역대 Show me the money 우승자 프로듀서)]
[include(틀:역대 Show me the money 준우승자 프로듀서)]
'''한국 힙합계의 대부이자 선봉장''' [* 혹은 가리온 1집의 '가리온'이라는 곡에서 썼던 가사처럼 '한국 힙합의 마지노선이자 최전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 힙합을 지탱하는 뿌리이자 주춧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을 나왔는데, 별로 인기 없던 친구가 소풍때 기타를 치니까 여자애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Rock음악을 했다고 한다. 힙합은 방송 [[AFKN]]에서 처음 접했다고..
하자센터에서 힙합방이란 힙합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제자들의 일부가 후에 [[소울컴퍼니]]를 설립한다.[* 바로 [[키비]]이다. 참고로 메타도 키비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2013년 6월 MC 메타는 [[SHOW ME THE MONEY 2]]에 메타크루의 수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서 시즌 1에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 1에 나왔던 래퍼들이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일단 ~~이현도와 비교되면서~~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나 심사평에 대한 반응은 좋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라이브에서 박자를 약간씩 저는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2집 이후 곡들중엔 목에 힘주고 숨쉴 틈도 없이 몇마디를 불러야 하는 곡들이 좀 있어서 그런 듯 하다(특히, 2집 최고의 인기곡이던 [[영순위]]가 그렇다). 힘빼고 부르는 곡들은 굉장히 라이브를 잘한다.
실제 한국힙합씬에서 MC메타가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타이거 JK]]는 가장 존경하는 래퍼로 mc메타를 꼽고 있으며, [[허클베리피]]는 mc메타의 프리스타일 영상을 보고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더 콰이엇]]역시 엄청난 MC 메타의 추종자(?)로, 그가 속해 있던 레이블 소울컴퍼니의 멤버들 역시 메타를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
한국 힙합 문화의 발달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한 일례로 2013년부터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하자는 취지의 '모두의 마이크' 행사를 나찰, [[김봉현]] 평론가와 진행하고 있다. 메타의 말을 빌리면, 마스터플랜처럼 '물리적인 공간에서 서로 랩을 하고 서로 호흡하는 그런 지점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시와 랩에 중간 지점인 [[포에트리 슬램]] 행사인 '포에틱 저스티스'를 김봉현씨와 개최하고 있다.
* 술자리에서 친한 사람들을 엄청 때린다고 한다. 빡센 사투리와 함께 --[[정상수|마 시x로마 이게 힙합이나 아나?]]--. 근데 [[키비]]는 안 때린다 한다.
프리스타일에서도 일가견이 있다. [[허클베리피]]가 티비에서 MC 메타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래퍼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도 한다. [* 여담으로 [[마이크 스웨거]]에서 한 헉피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올티]]가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 마스터플랜 클럽 시절 당시, 예정공연이 전부 끝나고 MC 메타의 프리스타일 타임이 관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2014년 총 세 편의 [[싸이퍼]]를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하였다.--[[치타]] 학살-- 그리고 프리스타일을 할 때마다 '연결고리'를 많이 외치기로 유명하다. [[https://youtu.be/r4h1cHTOCJI|증거자료]] 일리네어레코즈에서 본인이 피쳐링한 '연결고리'라는 곡의 유래도 엄밀히 따지면 저 멘트이다.
[[마이노스]]에 따르면, 작업할 때 굉장히 꼼꼼하게 점검한다고 한다. 가사의 내용, 그 속뜻, 자신이 필요한 이유 등을 깊게 나눈 다음에야 작업에 들어간다 한다. [[http://hiphople.com/index.php?_filter=search&mid=interview&search_keyword=%EB%A7%88%EC%9D%B4%EB%85%B8%EC%8A%A4&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453920|인터뷰]]
- 고수희 . . . . 16회 일치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마녀]] [[죄수]]로 출연 [[이영애]]에게 죽임을 당하는 역할로 열연해 주목을 받았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43371 '친절한 금자씨' 고수희, 전통혼례로 사업가와 결혼] 마이데일리. 2009년 10월 18일</ref> 2011년 영화 《[[써니 (영화)|써니]]》에 칠공주파 멤버 장미 역으로 출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524181 ‘써니’의 고수희 주연 영화 ‘바다’ 캐스팅 비화는?] 매일경제. 2011년 08월 20일</ref>
* [[2001년]] : 《[[사자성어 (영화)|사자성어]]》 - 페미니스트 역
* [[2005년]] : 《[[친절한 금자씨]]》 - 마녀 역
* [[2008년]] : 《[[그 남자의 책 198쪽]]》 - 팽교수 역
* [[2019년]] : 《[[자전차왕 엄복동]]》 - 포목점 여주인 역
* [[2000년]] : [[SBS]] 《[[자꾸만 보고싶네]]》 - 한미향 역
* [[2009년]] : [[SBS]] 《[[자명고 (드라마)|자명고]]》 - 모양혜 역
* [[2010년]] :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 - 김추자 역
* [[2017년]] : [[채널A]] 《[[개밥 주는 남자|개밥 주는 남자 시즌 2]]》 - 특별출연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진대학교 동문]]
- 김성현 (1989년) . . . . 16회 일치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2군에서 [[정명원]], [[조규제]] 같은 뛰어난 코치의 지도 및 1군에서 [[정민태]]의 조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상승, 2010년에는 1군에서 어느 정도 자기 몫을 다했다. 90이닝을 던지면서 7승 8패 방어율 4.9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인 것. 당시에는 어린 축에 속하는 투수였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주무기는 시속 15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빠른 공. 여기에 스플리터를 정민태 코치로부터 전수받았다. 넥센의 젊은 투수들이 그렇듯이 제구력의 향상이 큰 숙제. 오죽하면 별명이 '볼크(볼질+보크)'였을 정도였고, 선수 본인도 당시에 이 별명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볼질로 주자를 내보낸 이후 여지없이 무너지는 새가슴도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4월 24일 삼성 전에 선발 등판하여 5⅓이닝 5볼넷 3탈삼진 4실점 3자책점으로 드디어 승리 투수가 되었다. 다만 3자책점을 한 덕에 방어율이 조금 올라간 것이 흠이었다. 근데 그래놓고도 방어율이 2.53. 그러나 그 뒤로 꾸준히 좋은 투구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방어율도 어느덧 4점대로 올랐다. 역시 문제는 나중에 조작의 결과물로 밝혀진 볼넷이었다.
5월 14일 LG 전에 선발 등판하였다. 그리고 1회에 [[삼자범퇴]]를 잡아냈으나 2회에 무너지면서 4실점을 하고 4이닝 5실점으로 강판된다. 그래도 팀은 5 대 6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경기 역시 조작 경기로 드러났다. 일부러 1회에 볼넷 하나 주려고 했는데 LG 타자들이 다 휘둘러서 실패한 것이었다.
2011년 7월 31일, LG의 투수 자원 보강을 위해 [[내야수]] [[박병호 (1986년)|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상대로 투수 [[송신영]]과 같이 트레이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성현은 [[KIA 타이거즈]] 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을 챙겨서 MVP로 인터뷰까지 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서자마자 트레이드 사실을 통보받았다.
2011년 8월 6일 [[한화 이글스]] 전에 드디어 LG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였다. 한화 전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서 기대되는 대목이었지만 5⅓이닝 동안 4실점하면서 그날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김성현보다 [[박경수 (야구 선수)|박경수]], [[김태완 (1981년)|김태완]] [[키스톤 콤비]]의 생각은 수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실책을 줘도 할 말 없는 게 두 개나 있었지만 웬일인지 실책으로 기록이 안 되고 고스란히 그의 자책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인철 . . . . 16회 일치
|| '''프로입단''' || 1990년 고졸연고 자유계약 ||
|| '''선수 경력''' || [[삼성 라이온즈]](1990~2001) [br] [[롯데 자이언츠]](2002) [br] [[KIA 타이거즈]](2002~2004) [br] [[한화 이글스]](2005~2007) ||
|| '''지도자 경력''' ||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2017~)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이자 2017년 11월 현재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 등번호는 67번(1991~1994) - 13번(삼성) - 40번(KIA, 한화)
2005년에는 10홈런을 기록하는 등 '''김성한 이후 10홈런-10승을 달성할뻔 했던 장본인'''. 어깨부상으로 인해 2000년 타자로 전향했다.
2005 시즌은 대타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1호포를 대타홈런으로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월 한달동안 6홈런을 때리며 잠깐 홈런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톱타자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는데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서 두 자리수 홈런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땐 철밥통 소리 들을 정도로 썼던 것도 아니고 대타요원으로 시작했다가 자기가 잘해서 주전을 꿰찼던 거라 그리 욕 먹지도 않았는데 이 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여 2006년~2007년에는 신인 외야수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인식되어 이도형 등과 함께 한화팬들에게 김인식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다. 그 와중에 문학서 끝내기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고 SK의 공격때 주자 1루에서 히트앤드런이 걸렸고 1사 1,3루의 위기가 될 상황이었는데 좌익수이던 김인철이 포구후 바로 송구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틈을 타 3루주자인 정근우가 홈을 파고 어이없게 끝내기 패배(즉 1사 1루에서 힛앤런이 걸렸는데 단타로 1루주자가 홈까지 접전상황도 만들지 않고 홈으로 들어와 경기가 끝나버린 상황이다)를 당해버렸었다.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2007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자신의 마지막 현역 팀인 [[한화 이글스]]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한화의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팀 과장으로 인사이동되었다. 그 후 2017년 선수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장 모 감독과 심 모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역 야구부인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71년생 동갑내기이자 2017년 현재 삼성 감독을 맡고 있는 [[김한수]]와도 얼굴형이 조금 닮은 편이다.
||<-12><#000000> {{{#FFFFFF 역대 타자 기록}}} ||
|| 2002 || [[롯데 자이언츠|롯데]] / [[KIA 타이거즈|KIA]] || 37 || 51 || .235 || 12 || 4 || 0 || 1 || 6 || 5 || 1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출생]][[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삼성 라이온즈]][[분류:KIA 타이거즈]][[분류:한화 이글스]]
- 김종호(1935) . . . . 16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B5B40><height=50><#1B5B40><-5><:> [[자유민주연합|[[파일:jaminmini.png|width=60]]]] [[자유민주연합|{{{#FFFFFF ''' 자유민주연합 총재 ''' }}}]] ||
이후 주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관료로 근무하였다. 1980년 1월부터 9월까지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범죄)|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3년까지 정무제1장관을 역임하였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자유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다시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반대하였고[*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반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순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반대할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괴산군) || [[민주자유당]] || '''29,897표(63.85%)''' || '''당선''' || ||
||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 [[자유민주연합]] || '''1,859,331표(9.8%)''' || '''당선''' || [* 전국구 3번]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6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미도리야 이즈쿠]]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며 작전에 동참한다.
* 마침내 작전 결행, 원래 계획은 경찰이 영장을 제시하고 자택을 수색하는 것이었지만, 초인조을 누르기 무섭게 이변이 발생한다.
* 사전에 경찰과 히어로의 움직임을 눈치채니 [[오버홀]]은 부하들을 시켜 히어로 일행에 선재공격, 자신은 장소를 벗어나려 한다.
* 기존에 협조하고 있던 히어로들은 대부분 참석했다. [[패트껌]] 사무소도 물론 참석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얼른 가자며 의욕을 보이는데 선배인 [[아마지키 타마키]]는 언제나 그렇듯 시들시들하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야)|류큐]]의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옆에 있었는데 이들은 잘 모르는 환경이라서 긴장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경찰과의 협력 같은 상황은 별로 알려주지 않았다. 류큐도 이런걸 배우지 못해서 신인 시절엔 고생했다고 회고한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아카데이마)|그랜토리노]]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담당 형사와 함께 있던 나이트아이는 그가 못 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경찰의 말로는 [[츠카우치 나오마사]]가 가져온 정보 쪽으로 움직인 모양이다. [[빌런 연합]]에 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데. 그랜토리노는 이 작전에 참여하지 못해 분해한 듯 하지만 형사는 어쨋든 작전에 지장은 없다고 여길 뿐이다. 이때 [[아이자와 쇼타]]는 오늘은 미도리야를 찾아와 자신도 나이트아이 사무소와 동행한다며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확인한다. 물론 미도리야는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부디 방심하지 말고 각자의 일을 완수해주길 바란다.
* 같은 시각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 표면적으로는 호화로운 저택이다. 그 안의 어느 방. 노쇄한 남자가 중환자 같은 행색으로 누워있다. 그 곁에는 [[오버홀]]이 서있었다. 그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애초에 말이다, 불량배는 음지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라서
* 아이자와와 미도리야가 날아간 경찰을 구한다. 조직원은 그대로 경찰들이 포중한 가운데로 돌격, 괴력으로 경찰의 힘만으로는 대처할 수가 없었다.
* 여기서 류큐가 나선다. 그녀는 개성을 발동해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이, 직접 핫사이카이의 부하를 제압한다. 그녀가 여기는 자신이 대처할 테니 다른 히어로들은 안으로 돌입하라고 하고 네지레와 오챠코, 츠유가 그녀를 서포트한다. 미도리야와 키리시마는 오챠코와 츠유를 응원하며 내부로 돌입한다.
* 그 동안 오버홀은 지하시설을 통해 자리를 피하는 중이다. 곁에 있는 측근은 히어로 일행이 "전속력"으로 "같은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는걸 감지한다. 그건 이들의 목표를 정확히 포착하고 움직인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이곳도 알고 있을 것이며 제대로 걸리면 끝장이다. 측근이 그런 말을 하는데도 오버홀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오는 것도 상정했던 바라며 단지 그게 좀 빨랐을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별한 부하들을 부르도록 지시한다.
>그런 걸로 하자. 그러기 위해 키운 놈들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16회 일치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그저 자신을 동경하는 소년을 넘어 성장했음을 깨닫고 자신도 진심으로 어머니를 설득한다.
* 올마이트는 [[도게자]]까지 하며 "목숨을 걸고 미도리야를 후계자로 키울 것"을 맹세한다.
* 미도리야는 자신의 부상은 학교의 정책과 무관하며 그들은 언제나 말려왔지만 자신이 잘못돼서 다치게 된거라고 변호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자신을 얼마나 동경했는지와 그래서 웅영고를 고집한걸 생각한다.
* 미도리야에겐 웅영에서 배운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인 것.
* 코우타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며 "자신은 아직 글러먹었지만 이 편지를 쓴 애가 잠시라도 자신을 히어로로 만들어줬다. 기뻤다"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장차 "평화의 상징"이 될 인재라고 말한다.
* 그는 "평화의 사자였던 자로서 사죄"라고 말하며 "그의 동경에 안주해 교육이 소홀했다"고 사죄한다.
* 분명 자신의 길은 피비린내가 나는 길이었지만 그렇기에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웅영고"에 불안을 품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바뀌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지금의" 웅영고가 아니라 "앞으로의" 웅영고를 봐달라고 진정한다.
- 니세코이/223화 . . . . 16회 일치
* 클로드는 츠구미를 자기 아들로 생각하고 있었다.
* 열받은 츠구미가 자기가 여자인 것을 밝힌다.
* 클로드는 츠구미의 마음을 알고 있다며 아가씨에게 임무 이상의 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런 남자에게 빼앗겨도 괜찮은 거냐고 말하기 시작한다.
* 그리고 언젠가 츠구미가 자신을 쓰러뜨렸을 때 이야기하려고 했다며
* 클로드는 츠구미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이치죠를 재치고 아가씨와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 열받은 츠구미는 상의를 찢어발기며 여자임을 밝힌다.
* 츠구미는 클로드가 자신이 여자인걸 몰랐듯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며 그들을 "믿고 지켜본다"는 것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 마이코는 결국 세 사람의 마음의 결과라며 자신들이 어떻게 했든 비슷한 결과가 나왓을 거라고 말한다.
* 그리고 좋아한다는게 꼭 기간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며 자신은 치토게와 오노데라 두 사람의 사랑이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 루리는 지금이라면 자신도 그 심정을 알거 같다며, 자신도 곧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겠다고 한다.
* 그러자 마이코가 호들갑을 떨며 누가 상대냐고 묻기 시작하는데
* 솔직히 클로드가 츠구미가 남자인줄 안다는 떡밥이 아직도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아무래도 좋잖아 그딴거--
* 마리카는 세 번도 모자라 네 번을 죽이고 있다.
- 변요한 . . . . 16회 일치
인스타그램에 어쩌다가 코멘트를 달 때는 문장 끝에 꼭 점을 찍는다. 본인은 점을 찍는 이유를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팬들은 점성애자라고 놀린다~~
~~지금은 인스타를 접은 상태~~인줄 알았으나, 지난 5월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다시 개설했다. (다만, 소속사가 운영하고 있다.) 다음 공식 팬카페에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해당 카페 글이 유출 금지라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다.)
||<|3> [[2014년]] || [[우는 남자]] || 조연 || 송준기 ||
|| 세 개의 거울 - Trap★[* <세 개의 거울> 자체가 세 편의 단편영화가 옴니버스 형식을 이루고 있는 금연 홍보 영화다. 변요한은 그 중 한 편에 출연한 것이다.] || 주연 || 요한, 스토커 역 ||
|| [[감시자들]] || 조연 || 엠쓰리 ||
|| 어떤 저녁★☆ || 주연 || 남자 ||
|| 목격자의 밤★ || 주연 || 유지훈 ||
|| [[2017년]] || 제37회 황금촬영상 || 남자 베스트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4> [[2015년]] ||<|2> [[SBS 연기대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2> [[육룡이 나르샤]] ||
|| 제24회 부일영화상 || 신인남자연기상 ||<|2> [[소셜포비아]] ||
* 2015년 2월,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매달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단편 상상극장으로 '변요한展'이 개최됐다. 상영 날짜는 2월 매주 화요일로 3일, 10일, 17일, 24일. 상영 목록은 《[[토요근무]]》, 《재난영화》, 《목격자의 밤》, 《매직 아워》이상 네 편의 단편영화. 10일에는 영화가 다 끝난 뒤 변요한이 깜짝 등장해서 팬미팅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 넷상에서는 일명 '변요한 패밀리'~~[[AKB48|BYH48]]~~로 불리는 연예계 친목 모임이 핫하다. 주로 독립영화나 대학 동기 등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같이 노래방에 가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등 ~~아주 건전하게~~ 친분있는 인사끼리 어울리는 듯하다. 이 무리들이 변요한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남친짤들과~~ [[류준열]]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확 뜨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류준열]], [[지수(배우)|지수]], [[이동휘(배우)|이동휘]], [[김희찬(배우)|김희찬]], [[수호(EXO)|수호]], 이현욱, 권시현, 이기혁, 차영남, 김동환 ~~일명 연예계의 어벤져스~~ 등 연극, 단편영화, 독립영화에서 보이는 다수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변요한 패밀리'라고 부르는 것은 변요한이 가장 먼저 떠서이기도 하고 사진 등이 가장 많이 올라오기 때문인 듯 하다. 영화 '글로리데이'와 관련한 연예가중계 인터뷰에서 류준열은 BYH48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변요한의 집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답변을 했다.[* 사실 이 별명은 자신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장난스럽게 부른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의 기원(...)은 앞서 서술한 이유가 더 신빙성 있다. 물론 여러모로 변요한의 인맥과 관련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류준열이 언급한 이유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변요한 패밀리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한 명씩 뜨고 있어 다음 차례는 누구일지 네티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있다~~
* 류준열이 '''[[류준열/논란#s-1|일베 논란]]'''에 휩싸이자 2016년 2월 24일 인스타그램에 '미풍에 흔들리지 말고, 정진. 화이팅'이라는 응원하는 듯한 문구를 올려 네티즌들에게 싸잡혀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해당 배우의 소속사가 강경하게 반박 및 대응하고 있으며 과거 행적으로 볼 때 악의적인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시점으로 봤을때는 변요한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류준열의 무고가 다 밝혀진 현재 시점에선 옳은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보루토/5화 . . . . 16회 일치
* 나루토는 심지어 "닌자실격"이란 말까지 하며 나중에 설교한다고 하는데 보루토는 "제대로 설교할 시간이나 있냐. 그리 해줬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 이들은 미수를 "단"이란 형태의 알약으로 만들어 자신의 차크라를 끌어 올리는데 그걸 위해 미수들을 사냥한 것.
* 승자는 나라 시카다이.
* 나루토는 직접 보루토의 서클렛을 압수하며 "닌자 실격"이란 뼈아픈 말을 한다.
* 신키는 괴한을 상대하려 하는데 가아라가 역량을 파악하라며 자중시킨다.
* 이 자가 바로 사스케가 카구야의 성에서 교전했던 오오츠츠키 일족.
* 그때 그림자가 밀려들어 두 괴한을 묶는다.
* 시카마루가 그림자 흉내술을 사용한 것이다.
* 사스케는 이 자들이 오오츠츠키 모모츠키(작은 쪽)와 오오츠츠키 킨츠키(큰 쪽)라고 알려준다.
* 보루토는 자신이 가진 과학닌구을 연상하는데, 나루토가 모모츠키를 "도핑에 의지하는 비겁자"라고 비난하자 찔리는 얼굴을 한다.
* 보루토는 책임을 느끼고 사라다라도 지키기 위해 그림자 분신을 쓴다.
* 사스케는 나루토가 당하면 끝장이라며 자신의 차크라까지 넘겨준다.
* 모모츠키는 계속해서 자잘한 인술을 날리는데 나루토가 미수 차크라 모드에서도 힘겹게 버틸 정도다.
* 나루토는 미수옥이 날아보자 사스케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쿠라마의 힘을 더욱 끌어내기 시작한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16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블랙 클로버의 마도서에 깃든 반마법의 악마와 만난다.
* 반마법의 악마는 아스타의 육신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아스타는 자아를 빼앗기지 않고 흘러넘치는 반마법의 힘을 제어한다.
* 지금 아스타는 반마법의 힘 자체가 빙의한 상태로 마력이 없는 "단순한 결함품"으로 태어난 아스타만이 가능하다.
* 아스타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던져져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정신세계 같은 것이지만 아스타는 이 위도 아래도 없는 공간에 당황해서 자신이 죽은게 아닌가 의심한다. 아직 시스터와 결혼도 못했고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다고 허둥대는데, 그때 거대한 그림자와 같은 악마의 형상이 나타난다. 당황한 아스타는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누구냐고 묻는다.
악마는 자신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 대답하는데 아스타는 절대로 모르는 녀석이라고 대꾸한다.
악마는 그렇게 말하며 아스타에게 손을 뻗는다. 아스타는 당연히 거부하지만 자신에게 맡겨두면 "저 인간"도 이길 수 있다며 유혹한다. 하지만 아스타는 자신의 힘으로 이기겠다며 거절하고 악마의 팔목에 달라붙는다. 악마는 아스타같이 작은 놈은 이길 수 없다고 빈정거린다.
어느새 아스타의 정신이 돌아와있다. 그의 오른팔을 비롯한 우반신은 단마의 검에서 나온 검은 그림자에 잠식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스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다시금 일어선다.
* 여왕은 그냥 의식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스타가 제대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놀란다. 지금 그를 휘감은 검은 그림자는 "단마의 검"에서 나온 반마법의 힘이다. 본래 단마의 검은 반마법의 에너지가 항상 흘러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그 검을 들 수 있는 이는 극소수. 아스타는 "마력이 없다"는 천성 덕분에 아무런 제약없이 검을 사용해왔다. 그러면서 무의식 중에 반마법의 힘을 제어하는 감각을 익혔다.
여왕은 아스타를 치료하면서 한 가지 조작을 가했다. 그녀는 완력을 강화시켜줬다고 했는데, 그거말고도 반마법의 힘이 더 빠르게 흐르게 해 출력을 높인 것이다. 그래서 반마법의 힘이 격류처럼 아스타의 몸을 휘감고 일종의 "빙의체"로서 작용한 것이다. 아스타는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면서도 차가운 호수에 들어간 것 같은 서늘한 감각과 놀랄 정도로 선명해진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힘에 내심 놀라고 있다.
* 경악하는 라드로스. 여왕은 이미 이 상태의 아스타에겐 어떠한 마법도 소용없다고 단언한다. 라드로스는 무적이 된 자신의 마법이 질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힘을 퍼부울 수록 아스타는 그 힘을 가르며 다가온다.
* 라드로스는 멈추지 않는 아스타의 돌격을 보며 패닉에 빠진다. 그토록 모든 것을 걷어차며 올라왔는데 어째서 자신이 지는 거냐고 절규한다.
- 송아영 . . . . 16회 일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현재 [[자유한국당]] 중앙당 부[[대변인]]이다.
1963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에서 태어났다. 세종교동초등학교, 세종[[조치원여자중학교]], 대전[[충남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이명박 정부]] 때 자유선진당에서 충청남도당 여성위원장, 뉴 선진비전 여성위원회 대표 등을 지내며 정치에 입문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제5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선진당의 후신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될 때 합류하였고 새누리당 세종특별자치시당 대변인을 지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세종특별자치시장]] [[공천]]을 받았으나 현 시장인 이춘희 후보에게 큰 표차로 낙선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자유선진당]] || 689,843(3.2%) || 낙선(5번) ||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세종특별자치시장) || [[자유한국당]] || 24,546 (18.06%) || 낙선 (2위)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출생]]
- 송창현 . . . . 16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롯데 자이언츠|롯데]]) ||
대학에서의 통산성적은 31경기 나와 5승 13패 148이닝 투구 141피안타(4피홈런) 74'''[[볼넷]]''' 29'''[[몸에 맞는 볼]]''' 94K 20'''[[폭투]] ''' 3'''[[보크]]''' [[평균자책점]] '''3.34'''~~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를 기록한다. 이 시기에 제주도에서 야인생활을 보내고 있던 [[김응용]]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7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2012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야인 시절 직접 점찍어 두었던 송창현을 곧바로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이 때 트레이드로 롯데로 넘어간 선수가 다름 아닌 '''[[장성호]]'''였기에, 졸지에 화제의 신인으로 급부상한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라(…).
어쨌든 [[장성호]]와 1:1로 트레이드 할만큼 [[김응용|코끼리 감독]]의 기대를 받고 전지훈련 명단에 들어갔으나, 이후 드러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자체 청백전을 제외하고 2월 21일 기준 연습경기에 나와 2이닝 동안 12실점, 볼넷 5개, 사구 1개, 폭투 1개, 삼진 1개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한화팬들로서는 미치기 딱 좋을 수준이었다. 이후 2군에서도 방어율 7점대의 성적을 찍으면서 한화 팬들이 [[김응용|코감독]]을 씹을 때나 쓰는 안주거리화가 되나 했는데 1군 콜업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4월 6일 오래간만에 1군에 등록되었고, 그 뒤로 내리 4연투 했다. 4경기동안 76개를 던졌다. 7경기 10이닝동안 평균자책점이 1.80으로 굉장히 준수하다.
5월 25일 넥센전 이후로 2군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퓨처스 리그에서의 성적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7경기에 4경기 선발, 3경기 구원등판해 2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 6.75의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장운호와 함께 작년 김기현처럼 군 팀에 들어가는 것으로 탈출할 듯 하다. 상무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다. 홈 경기에서 평균자책 1.17로 매우 준수한 피칭을 보였다.--홈깡패--
다만 문제는 제구력인데, 위에 나온대로 폭투와 사구가 너무 많다. 2013년 시범경기에서도 공을 그냥 패대기(...)친다라고 할 정도로 불안정한 제구를 보인다. 그래서 낮은 피안타율을 보임에도 볼질로 주자를 쌓다가 한두 방에 무너지는 패턴을 보이는게 가장 큰 문제. 그런데 [[정민철]] 코치의 지도로 인해 2013 시즌 중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고 있다. 아직 완벽하기엔 멀었지만 2013년 9월, 시즌 초와 비교해 보면 거의 [[괄목상대]]급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4년엔 다시 제자리로... 애초에 13년 기록이 플루크라니까~~
* 여담이지만 [[선동열|김응용 감독의 수제자이자, 0점대 방어율 투수]]와 상당히 닮았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뭐가뭔지 모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송창현을 선택한 진짜 이유'''라는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는 짤. ~~얼굴은 선동렬인데 제구는 [[김정수(1962)|김정수]]...는 무리인가~~
||<rowbgcolor=#fe5d0a><:> {{{#ffffff 연도}}} || {{{#ffffff 소속}}} || {{{#ffffff 경기}}}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6회 일치
Alex DeLarge. 베토벤을 좋아하는 불량소년. 솔직히 불량소년은 순화된 표현이고, 린치, 패싸움, 난폭운전, 윤간 등을 벌이는 범죄자다. 패거리의 리더격 자리를 맡고 있으며, 자신에게 반항한다는 낌새가 보이는 동료는 봐주지 않는다.
반정부적인 성항을 가진 작가와 그 아내. 집에 쳐들어온 알렉스 일당에게 남편이 구타당해 쓰러지고 아내는 윤간당한다. 이로인해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남편은 보호자가 필요한 몸이 되었다.
알렉스 드라지는 구제불능의 불량배다. 그는 동료인 딤, 조지, 피트와 함께 주정뱅이를 린치하고, 난폭운전을 하며 우왕자왕하는 차를 보며 즐거워하고, 늙은 작가 부부를 속이고 집에 들어와 폭행과 윤간을 저지른다.
어느날, 알렉스는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의 뒷통수를 치려고 한다는걸 깨닫고 그들을 후려팬다. 그 직후 동료들을 데리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여인의 집에 침입한다. 처음에는 작가 부부처럼 속이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여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알렉스 혼자 집에 침입한다. 알렉스는 여인과의 몸싸움 끝에 여인을 죽이고 만다. 그는 집 앞에서 대기하던 동료들과 도망치려고 했지만, 동료들이 우유가 담긴 유리병으로 알렉스의 얼굴을 후려치고 도망가버려 경찰에 체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 프로그램은 루드비코 요법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약물을 주입당한 알렉스는 불량배들이 폭력을 저지르는 영상, 불량배들이 여자를 윤간하는 영상, 한희의 송가를 배경음악으로 한 전쟁 기록 영상 등을 강제적으로, 긴 시간 동안 보게된다. 그 결과 알렉스는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생각만 해도 구역질을 하는 몸이 된다.
알렉스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어떤 집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에 구타하고 윤간했던 작가 부부의 집이었다. 반정부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작가, 알렉산더는 알렉스에게 루드비코 요법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 이를 받아 적는다. 하지만 알렉스가 목욕하면서 부르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듣고 그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해 죽이고 자신을 반신불수로 만든 자인걸 깨닫는다. 알렉스가 그의 아내를 강간할 때 "사랑은 비를 타고"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 일은 크나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부는 혼수상태에 빠진 알렉스의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깨어난 알렉스에게 정부의 편을 들 것을 권하며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오디오를 선물한다. 기자들이 병실로 몰려들어와 정부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알렉스의 사진을 찍는 와중, 알렉스는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독백한다.
- 식극의 소마/181화 . . . . 16회 일치
* 소마에게 조력하기 위해 나타난 쿠가 테루노리. 소마가 하야마 아키라에게 "십걸 자리"를 걸고 식극을 거는 조건으로 조력을 약속한다.
* 소마는 "곰고기의 풍미를 살리는 방향"을 모색하기로 하고 우선 곰고기의 생산지인 홋카이도의 환경을 탐방하고자 한다.
* 갑자기 나타나 조리실을 점거한 쿠가 일당.
* 아무튼 진짜로 도와주겠다고 하자 고맙게 받겠다고 하는데, 갑자기 쿠가가 조건을 건다.
* 십걸 자리가 걸린 식극
* 소마는 식극을 하려해도 자신은 십걸 자리에 걸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 린도가 연락을 했으니 전혀 반응이 없었는데, 막상 출발할 때가 되자 돌연 나타났다.
* 힐책하는 린도에게 "어차피 이제 자신은 십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 소마는 그렇다고 쿠가에게 의지하고 싶진 않다고 하는데 쿠가는 그편이 자기에게도 이롭다고 말한다.
* 그래서 이대로 전골로 정해지는 듯 했지만, 소마는 이것은 자신의 요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뭣보다 하야마를 의식하고 있다.
* 하야마가 "하야마 아키라만이 할 수 있는 요리"를 내놓을게 분명한 이상 자신도 그에 걸맞는 요리를 내고 싶다는 것.
* 그가 곰고기 냄새를 살리지 못하는건 "자신이 곰고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발상을 바꾼다.
* 소마는 쿠가에게 어떻게 사천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냐고 묻는데, 쿠가는 원래 부잣집 도련님이라 해외를 다니다가 접하게 되었고 이후 사천지방을 자주 들러 연구했다고 말한다.
* 지금까지 쭉 반역자팀이 반칙을 당했기 때문인지, 이번엔 소마의 반칙타임. 흡사 오픈북 시험 치는데 작년에 과탑했던 선배가 와서 도와주는 격이다. --이놈의 학교는 정상적으로는 시험 진행이 안 되나--
- 식극의 소마/190화 . . . . 16회 일치
* 승부의 순간. 하야마 아키라는 유키히라 소마가 자신의 프라이드 베어를 능가할리 없다고 자만한다.
* 그러나 도지마 긴은 하야마야 말로 "누구를 위해" 요리한 건지도 잊은 채 혼자만의 맛만을 추구한거 아니냐는 일침을 듣는다.
*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키는 나키리 소우에가 쥐고 있다.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친 하야마 아키라는 눈에 띄게 초조해한다. 그는 설마 유키히라 소마가 프라이드 베어와 동등한 수준의 요리를 하리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고 아직도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건 자신일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으려고 발버둥친다.
* 그가 배틀로얄에 승리해 샌트럴에 들어갔을 때, 나키리 아자미는 결코 약속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는 "첫임무"로서 소마의 진급시험에서 그를 밟아버리라고 지시한다. 당연히 하야마는 거절하며 약속과 틀리다고 하지만 아자미는 권력을 내세워 "센트럴에 들어온다는건 나에게 충성하는 것"이라며 반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 이 같은 상황은 당연히 시오미 준에게도 전해진다. 시오미는 당장 센트럴에서 나오라며 하야마를 타이른다. 하야마는 이 방법 말고는 프로젝트를 존속시킬 방법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시오미는 어차피 아자미가 그런 걸 허용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세미나를 유지하고 준을 지키고자 하는 하야마는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다그치던 시오미는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고까지 말하는데, 거기에 상처를 입은 하야마는 어떻게든 세미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
* 다시 식극의 장소. 소우에는 판정에 앞서 자신의 판정기준에 대해서 설명에 들어간다. 일단 요리사로서 실력을 호각이며 이는 베르타와 실라의 표가 갈린 걸로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그가 승부를 가르는 요소로 제시한 것은 "요리사의 집념". 그는 소마가 소스에 쓴 꿀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걸 간파한다. 하야마도 승부에 집착해서 놓치고 있었지만 그 꿀은 보통 것과 다른 묘한 향기를 품고 있다. 뭔가 "떨떠름한 맛"의 향인데.
*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소마의 설명. 그것은 "황벽나무 벌꿀"이다. 이름처럼 황벽나무라는 나무에서만 채취되는 벌꿀. 산뜻한 단맛과 희미한 쓴맛이 나는 것이 특징. 생육환경에 따라 채취 확률이 매우 낮아지기도 해도 자연에선 희귀한 소재이다.
* 소우에는 평범한 꿀도 곰고기와 궁합이 좋았겠지만 자칫 맛이 강한 멘치까스와 합하면 진득한 맛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쓴맛이 가미된 황벽나무 벌꿀을 써서 곰고기의 맛을 보다 강조하고 깊이 있는 맛을 완성한 것이다. 베르타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을지 의문을 갖는다. 황벽나무 꿀은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우연히 선택할 일도 없고 분명 의도한 조합임에는 틀림없다.
* 대머리 군단은 그제서야 이 꿀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수군대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엔 황벽나무 꿀을 쓴다는 발상도 없었던 모양. 무작정 산을 뒤지며 소재가 될만한건 뭐든 채집하는 하드코어한 수색을 펼쳤다. 쿠가 테루노리는 처음부터 황벽나무 꿀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자칭 "쉽게 알려주면 소마가 성장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며 그냥 차만 먹고 놀고 있었던 모양. 산에서 고생한건 소마와 대머리 군단이다.
* 거기까지 들은 소우에는 그거야말로 "맛에 대한 탐구심과 집념"이라 말하며 "요리사의 얼굴을 보았다"는 극찬을 남긴다. 하지만 하야마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고 멘치까스가 자신의 프라이드 베어에 필적한다는 평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지마 긴은 그런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분명 하야마는 완벽한 맛을 추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요리인지도 모르는 채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원점. 시작은 순수하게 시오미를 위한 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시오미의 조리실에 들락거렸는데 어린 그의 요리를 시오미는 진지하게 시식해주고 칭찬도 해주었다. 하야마는 자연스럽게 토오츠키 학원의 정점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식극을 위해 준비하던 요 며칠 간. 그는 요리에 쓸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시오미의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던 시오미는 없다. 그는 그것 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16회 일치
* 쥬리오는 그의 조리가 상식에 벗어났다 지적하지만 잇시키는 "그거야 말로 내 특기"라며 자신은 일식이 아닌 "내 요리"를 만든 거라 선언한다.
* 이로써 1라운드 제 2 카드의 대결도 반역자 측의 승리.
* 때는 진급시험이 있기 몇 달 전. 쿄쿠세이 기숙사에선 [[요시노 유키]]가 [[미토 이쿠미]]를 꼬셔서 오리지널 내츄럴 치즈 만들기에 도전한다. 유키에게 설득당한 이쿠미는 "확실히 집에 얘기하면 좋은 원유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만드는 노하우. 그 문제도 유키 나름대로 생각한게 있는데, 바로 발효의 전문가 [[사카키 료코]]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요키가 "언니"라고까지 부르며 달라붙지만 료코도 자기 프로젝트가 있어서 정신없이 바쁘다. 새로운 일본주 만들기에 도전 중인데 [[마루이 젠지]]까지 참가 중이라 파리한 몰골로 돌아다니고 있다. 료코는 포기하고 둘이서 어떻게 해보자고 제안하는 유키.
* 그런 과거를 뒤로하고 멀쩡한 인물인 양 대중 앞에 나타난 잇시키. 그는 심사의원 앞에 자신의 요리를 내놓는다. 그의 장어요리 "히츠마부시 쿄쿠세이 기숙사풍미". 히츠마부시는 일본식 장어덮밥으로 반찬과 함께 먹거나 육수나 차를 부워 오챠즈케 스타일로 즐길 수도 있다. 전형적인 일식이지만 그가 내놓은 한 그릇은 일식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이질적이다. 우선 플레이팅부터 양식 접시를 이용했고 쌀밥이 아니라 "치즈 리조또" 위에 장어구이를 올려놨다. 관중과 [[카와시마 우라라]]가 "어떻게 봐도 평범한 히츠마부시가 아니다!"고 경악한다. 게다가 쿄쿠세이풍이란건 또 뭔가?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코바야시 린도]]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 당사자인 잇시키는 태연하다. 그는 [[유키히라 소마]]에게 "리조또는 네 특기인데 가로채서 미안하다"는 말이나 한다. 소마는 전매특허는 아니라며 쑥스러워하는데, 그보다 할 말이 많은 쪽은 우리에 갖힌 후배들이다.
자신없는 시험품에 손을 댔기 때문에 료코가 격분한 나머지 "그러지마라!"고 반말로 따질 지경인데 잇시키는 그것도 매력적이라고 딴소리나 한다.
출처야 어찌됐든, [[시라츠 쥬리오]]가 보기엔 처음부터 잘못된 재료선택이다. 후배들이 각자 만들던 재료를 가져와봐야 그렇게 되는대로 집어넣어서 하나의 맛이 될리가 없다. 이런 큰 승부처에서 이런 행보라니, 쥬리오는 그가 자신을 모욕한다고 느낀다.
* 쥬리오는 일식에서 치즈와 마늘을 쓰는 잇시키의 방식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상식에 벗어나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일갈하는데 잇시키는 "이런건 나에겐 시작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친다. 가령 일식에 프랑스식 소스를 더하는 거야 말로 그의 특기다.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재료든 조리법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푸아그라나 트뤼프에 저온 진공조리를 하거나 숙성한 생선에 감귤류 과일을 곁들여 신선한 향을 내는 거나, 그에겐 어느 것이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그는 일식을 한다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쥬리오는 뒤늦게 "이런 남자였다"고 통탄한다. 주방에서 놀이를 하는 것 같은 태도의 남자. 그런데 지켜보고 있는 [[나키리 에리나]]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녀는 언젠가 그가 참가한 식극에서 심사의원이 내린 평을 인용한다.
* 잇시키가 내민 그릇을 받아든 쥬리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맛을 본다. 한 입 먹자마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장어, 육수에서 풍기는 산뜻한 감칠맛, 치즈와 산초와 마늘칩이 조화된 풍미와 식감.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지고의 맛을 연출한다. 잇시키는 그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동안 마저 설명을 마친다. 료코가 만든 시험품 정종은 향이 아주 강한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장어향이 지지 않는 육수를 낼 수 있었다. 단맛도 적어서 올리브유와 매치도 좋았는데 보통의 정종으론 노릴 수 없는 효과다.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던 료코의 표정이 풀어진다. 한편 안은 재료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완벽한 조리에 감탄하며 그가 아직도 학생이란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평한다. 이미 승기는 넘어온 상황. 잇시키는 한층 더 쥬리오를 압박해 사과를 종용한다. 쥬리오는 심술궂다고 투덜대면서도 그의 강요에도, 요리에도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다. 결국 굴복하는 쥬리오. 장어에 휘감긴 채 리액션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다.
* 기숙사의 위신을 지키고 승리도 거둔 잇시키.1라운드 제 2카드의 승리는 반역자팀에게 돌아갔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후배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잇시키.
- 연경흠 . . . . 16회 일치
前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자 前 [[한화 이글스]] 육성군 스카우트.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2순위(전체 90번)에 지명되었으나 [[송광민]], [[김태완(1984)|김태완]]과 마찬가지로 대학행을 선택했고[* 당시 신인드래프트는 지금처럼 지명권 2년 유효 제도가 아니어서 하위픽은 지명만 해놓고 대학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입학에 필요한 전국대회 8강 경력이 없어 진학이 어려울 뻔 했으나 봉황대기 우승으로 극적으로 인하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하대에서 4번타자를 맡았다. 위의 둘과는 달리 외야수를 봤기 때문에 미래의 외야자원감으로 꼽혔으며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했다. 장타력이야 이미 검증되었기 때문에 차세대 거포 외야자원으로 촉망받았다.
당시 한화 외야엔 [[조원우|조로켓]], [[제이 데이비스|남연이 형]], [[고동진(야구선수)|고봉사]]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김인식]]감독의 꾸준한 신뢰로 많은 타석을 부여 받았다.
2008년에는 동기이자 친구인 [[김태완(1984)|김태완]]은 빛을 보고 [[송광민]]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 해에 '''[[윤재국]]''', [[추승우]], [[클락]], [[송광민]]에 밀려 별 빛을 보지 못했다. 추승우, 클락, 송광민은 그렇다쳐도 윤재국의 기록은….
7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프로야구 통산 2만 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기에, 연경흠 본인에게 있어 본의 아니게(?) 가장 눈부신 해가 되었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주로 백업요원으로 출전했다. 4경기에 출전했으나 안타 없이 1득점만을 기록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타격 능력에서 컨택 능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들어 보였고,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좌익수 자리에는 이미 [[최진행]]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선수로서 은퇴 수순에 들어가서 한화 이글스 3군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가 2013년 6월 19일자로 정식 은퇴했다. 만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팔꿈치 부상 때문이었다고... 계속해서 재활에 매달렸지만 회복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은퇴를 결심했고, 구단에서도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한화의 좌타 외야수 요원 가운데에서는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젊고 가능성이 있던 그였기에 적지 않은 팬들이 그의 이른 은퇴 선언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후엔 2018년 대전서구유소년 야구단의 감독으로 한화에서 활약했던 외야수이자 현재 코치인 [[박상규(야구선수)|박상규]] 와 함께 창단 3년차에 불과하지만 양구대회에서 4강 진출, 인제군수배에서는 준우승을 거두는 등 유소년야구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501|관련기사]]
* 야수로써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으며 외야수이긴 했지만 '''[[좌익수]]'''밖에 못 본다는 게 흠이었다. '''게다가 리그 전체로 볼 땐 평균 이하의 수비력'''이었다. 빠른 뱃스피드로 공을 날려버리는 스타일이었으며 실제 그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로 자주 날아갔다. 2009년 당시 SK전에서 [[정대현(1978)|정대현]]을 상대하기 위해 대타로 나왔을때 --상대전적 1타수 1안타 1홈런-- 중계하던 캐스터가 배트 스피드를 [[김재현(1975)|김재현]]에 이은 2위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타석에서 폭풍삼진--진정한 선풍기가 아닐까 싶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분류:1983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 원피스/845화 . . . . 16회 일치
* 상디는 자신의 가족사와 채워진 폭발수갑과 제프, 동료들이 인질로 잡힌 일을 푸딩에게 밝힌다.
* 빈스모크 일가를 태운 고양이 마차가 스위트 시티를 지나고 있다. 시민들은 크래커의 복수전을 벌일 "분노의 군단"이 편성됐다고 소리치며 그들의 진군로를 피해주고 있다. 니디, 욘디는 그 군단이 밀집모자 일당을 처리하기 위해서 가는 거라며 시시덕거린다.
* 홀케이크 성. 빅맘 샬롯 링링은 빈스모크 일가와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이다. 그런데 작은 소녀 "아나나"가 요리장이 식칼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징징댄다. 봉제인형을 찢어야 한다나. 빅맘은 옆에서 풍선을 타고 놀던 뚱뚱한 도르체, 도르제 형제에게 빌려주라고 하지만 도르체는 그러면 아나나가 자기들 풍선을 터뜨려 버릴 거라며 싫어하고 아나나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위협한다. 다른 아이들도 빅맘 주위로 몰려와 도르체와 도르제가 "나쁜 말"을 쓴다고 일러바친다. 빅맘은 껄껄 웃으며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은 상대는 백이나 이백 정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 빅맘은 내일로 다가온 샬롯 푸딩의 결혼식과 사위가족과 만날 일로 들떠 있다.
* 마침내 한 테이블에 모인 제르마 왕가와 샬롯 링링. 빅맘은 푸딩의 결혼식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정략결혼이니 나와 빈스모크 저지만 만족하면 된다"는 식으로 떠들어댄다. 오히려 저지 쪽에서 "그래도 애들이 행복하면 나쁠 건 없다"고 자식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화기애애한 이들과 달리 푸딩과 상디는 표정이 무겁다. 특히 상디는 심란한 와중에 음식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를 쳐서 더욱 짜증이 난다. 그러던 중 푸딩은 살짝 쪽지를 전해 나중에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전하는데.
* 루피 쪽에서도 분노의 군단이 다가오는게 확인된다. 나미는 물론 킹 바움 조차 조금만이라도 피해있자고 간청하지만 루피는 결심을 굳힌 상태다. 드디어 군단 쪽에서 루피를 발견, 임전태세에 들어가지만 루피는 상디가 오기 전엔 한 발짝도 움직일 마음이 없다.
* 홀케이크 성에선 푸딩이 상디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푸딩은 루피 일행과 했던 약속에 대해 말하고 상디를 데려가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 상디는 어차피 자신은 해변에 가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며 그녀의 사과를 사양한다. 푸딩은 초대장 때문에 그런 거라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쓰는 걸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빅맘이 도망칠 것같은 결혼상대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말하는데, 설명 들을 것도 없이 상디 본인이 폭발수갑을 보여준다. 상디는 이미 빅맘이 손을 써놨다고 말하며 지금껏 얼굴을 씌우고 있던 마스크를 벗는다.
* 레이쥬는 그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이 아니라 가죽같은 마스크로 덮어 씌워놨던 것이다. 그 밑에는 얻어맞아 퉁퉁 부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상디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어도 이꼴이고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푸딩은 그의 처참한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상디는 이 결혼식을 피하려 하면 자신도 밀집모자 일행도 끝장이고 그의 "대은인"인 제프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루피 일행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여기에 남은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푸딩은 오열한다. 상디는 자신이 비참해지니 그만두라고 달래는데 푸딩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 상디가 푸딩의 프로포즈를 들은 그 순간, 루피는 빅맘의 군단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병사들은 쓰러뜨리고 있지만 군단의 이름있는 자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 나라도 괜찮다면 내일... 결혼하자. ||
상디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상대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성격 상 진담으로 보인다. 푸딩은 결과적으론 상디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일을 하게 됐는데 일각에선 푸딩이 처음부터 빅맘의 편이었고 상디를 회유하려고 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푸딩은 타마고 남작의 눈을 피해 정말로 상디를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구태여 그런 복잡한 연극을 할 이유도 없었다.
- 원피스/865화 . . . . 16회 일치
* 그런데 기다리던 "괴성"이 들리지 않았다. 시저는 문 위로 고개를 내밀고 안쪽 상황을 살핀다. 난장판.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된 증거였다. 웨딩 케이크가 엉망이 됐고 밀집모자일당이 준비한 가짜 루피들이 날뛰는 통에 혼란이 가중된다. 게다가 [[몽키 D. 루피]]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깨뜨린 것도 보였다. 여기까지는 작전 성공. 하지만 정작 터져야 할 빅맘 [[샬롯 링링]]의 괴성이 아직이다.
* [[브룩]]의 조언에 빅맘에게 다시 깨진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루피는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회수했다. 하지만 그가 달리기 시작한 순간 삼장성 중 하나인 [[샬롯 카타쿠리]]가 그를 저지하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카포네 갱 벳지]]가 [[징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함께 그 앞을 가로막자 카타쿠리는 그 역시 배신했음을 직감하며 달려간다.
루피를 저지하러 가는 카타쿠리는 빈스모크 일가를 포위한 형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빨리 그들을 처치하라고 당부한다. 페로스페로는 "알고 있다"고 대답하나 "미래를 보는 남자는 참 바쁘다"고 빈정거릴 뿐 곧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잡은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게 더 즐거운가 보다. [[빈스모크 저지]]가 하다못해 레이드 슈트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통탄한다. 페로스페로는 "어린 아들 결혼식에 무기 같은걸 가져오는 거냐"고 또다시 빈정댄다.
* [[샬롯 다이후쿠]]와 대치 중이던 [[상디]]는 가족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자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당장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빈스모크 일가의 테이블로 달려오지만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은 그 조차도 "허둥지둥 뭐하는 짓이냐"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빈스모크 레이쥬]]도 그의 모습을 보았다. 상디는 정신없이 달려오자 다이후쿠의 마인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레이쥬 또한 그의 구조를 바라지도, 살고자 바라지도 않았지만 느끼는 감정은 형제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가족들도 놔두고 도망치지 않는 상디에게 "너의 상냥함을 얕봤다"고 독백한다. 그녀는 평생을 빈스모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레이쥬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상디에게 미소지었다.
* 벳지가 카타쿠리를 저지하기 위해 총을 난사했다. 자연계인 카타쿠리에게 별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그의 배신은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카타쿠리는 이에 분노하지만 그보다 루피가 먼저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다리를 떡으로 변화시켜 루피에게 뻗는다. 루피가 엉겁결에 받아치려 하는데 그래선 붙잡힌다. 페드로가 접촉하지 말라며 몸을 날린다. 이어서 징베가 "오천 기와 정권"으로 달라붙는 떡을 흐트러뜨린다. 그 순간 카타쿠리가 징베를 지나쳐 루피를 직접 노린다. 카타쿠리의 떡뭉치가 루피를 덮쳐 붙들지만, 루피는 마지막 순간 팔을 늘려서 빅맘의 시야로 파고든다.
* 무엇에 화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워하던 빅맘. 루피가 눈 앞에 마더 카르멜의 깨어진 사진을 들이밀자 눈이 번쩍인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사진을 루피의 손에서 빼앗는다. 카타쿠리가 아차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다.
* 빅맘이 패왕색 패기를 섞여 날리는 괴성은 홀 케이크 성을 무너뜨릴 기세다. 게다가 잠깐 나는 소리가 아니라 사이렌처럼 길게 이어지는 비명이었다. 하객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빅맘 해적단과 샬롯가의 자식들도 귀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루피는 너무 가까워서 그런지 귀마개를 깜빡해서 그런지 엄청난 타격을 받으며 나뒹군다. 강화인간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공격이었지만 샬롯가 형제들이 죄다 쓰러져 버려서 목숨 만은 부지하게 됐다.
페드로와 징베는 귀마개로 무사히 괴성을 넘겼다. 벳지는 자신의 두 부하를 불러내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아직도 비명을 지르는 빅맘. 그녀는 과거 그랬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쓰러졌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린다. 징베는 그 점이 흡족했다.
* 레이쥬는 갑자기 나타난 괴상한 사슴, [[쵸파]]가 귀마개를 채워주자 놀란다. 그녀 뿐만 아니라 빈스모크 일가 모두에게 귀마개가 끼워진다. 상디는 디아블 잠브로 가족들을 구속하던 사탕을 깨뜨린다. 저지와 형제들은 뜻밖의 구조를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 [[샬롯 스무디]]는 KX 런처를 들고 다가가는 벳지를 보고 그의 배신과 진짜 목적을 한 번에 이해했다. 그녀가 벳지를 막으라고 소리쳐 보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 그녀 자신도 빅맘의 비명 때문에 간신히 소리만 칠 수 있을 뿐이니까. 벳지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KX 런처를 조준한다.
>어째서 갑자기 사라진 거야?
- 원한해결사무소/7화 . . . . 16회 일치
의료소년원에서 출소한 '키지마 마사루'[* 후반부에는 '키지마 카오루'라고도 나오는데, 개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에게 원한해결사가 찾아온다. 16세에 동급생 집에 침입, 자매 둘을 살해하였으나, 4년간 의료소년원 송치를 판결받았던 인물이다. 키지마는 복수하러 왔냐고 하지만, 원한해결사는 당신이 마음에 든다면서 스카우트 하러 왔다고 말한다. 원한해결사는 일단 100만엔을 선물이라면서 준다.
키지마는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줄줄이 문전박대를 당해서 분노를 느낀다. 창녀의 목을 조르면서 분노를 표출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라는걸 깨닫고 원한해결사의 부하가 되기로 결심한다. 원한해결사는 키지마에게 3천만엔을 제시한다.
원한해결사가 제시한 타깃은 스낵바의 마담 '키시베 요시에'라는 여성이며, 불특정 다수의 기혼자에게서 천만 단위의 돈을 뜯어내왔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사채에 손을 댔다가 지옥에 빠져서 자살했고, 그 부모가 키시베 요시에의 살해를 의뢰한 것이다. 키지마는 그 사연을 듣고 속는 놈이 더 나쁘다며 비웃는다.
원한해결사는 키지마에게 키시베 요시에의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방법으로 사고로 위장할 것인지 내일 새벽 4시까지 생각해오라고 하고 떠난다. 그런데 키지마는 가게가 끝나자 칼을 들고 들어가서 요시에를 죽이려고 한다. 요시에는 남자에게 받은 돈은 돌려줬고, 사채도 대신 갚았다고 말도 안된다고 하지만, 키지마는 요시에를 강간 살해한다.
그런데 그 때 가게에 나타난 야쿠자 남자가 그 광경을 보고 '내 여자에게 무슨 짓을 했냐.'면서 달려든다. 키지마는 칼로 야쿠자의 가슴을 찌르지만, 야쿠자가 총을 꺼내 쏴서 중상을 입는다.
길거리에 뛰쳐나온 키지마는 죽어가면서 원한해결사에게 왜 야쿠자가 뒤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냐고 묻지만, 원한해결사는 애초에 키지마에게 접근한 것 자체가 키지마가 살해한 자매의 유족에게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마랳주지 않고, '하루에 2건'을 '사고사'로 처리했다고 중얼거리며 떠난다.
* 새로운 사원이 스카우트 되는 에피소드는 처음. 하지만 키지마 마사루는 그 자신도 의뢰 대상이었다.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16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메달 스포츠|남자 [[하키]]}}
{{금메달|[[1986년 아시안 게임|1986 서울]]|[[하키|남자 하키]]}}
'''유승진'''(柳承辰, Yu Seung-Jin, [[1969년]][[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남자 [[필드하키]]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며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남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상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윤주희(배우) . . . . 16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배우이자 [[모델]].
공식적인 데뷔작은 2007년 [[KBS1]] [[일일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서 서주경 역을 맡은 것이지만, 스튜어디스과 학생이던 시절 [[2004년]] 영화 [[아는 여자]]에서 항공기 추락씬을 촬영하러 그녀의 학교에 왔었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객실 승무원|스튜어디스]]역을 맡은 바 있다.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목요일의 아이]]가 엎어지고 난 뒤 공식데뷔 이전까지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들 중에 발견된 작품이 두 작품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수현(작가)|김수현]]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7화에서 [[이훈]]의 상대역으로 약10초간 등장. 또다른 하나는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극 후반부에 간호사 역할로 등장했다 납치되어 살해당하는데 당시에 얼짱 간호사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 2007년 || 두번째 사랑 || 지하[* [[하정우]]의 배역.]의 여자친구 || 특별출연[* 액자속의 사진으로만 출연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5&aid=0000007389|관련기사]] ] ||
|| 2004년 || [[아는 여자]] || 스튜어디스 || ||
|| [[SBS]] || 인생추적자 이재구 || 서주미 || 2부작 특집극 ||
|| [[물병자리]] || 이신영 || ||
||<|4> 2007년 ||<|2> [[SBS]] || [[조강지처 클럽(SBS)|조강지처 클럽]] || 도달희/방해자 || 1인 2역 ||
|| [[내 남자의 여자]] || 술집여자 || 단역 ||
||<#FF91AF><table bordercolor=#ff91af> {{{#ffffff '''방영 연도'''}}} ||<#FF91AF> {{{#ffffff '''방송사'''}}} ||<#FF91AF> {{{#ffffff '''제목'''}}} ||<#FF91AF> {{{#ffffff '''방영일자'''}}} ||<#FF91AF> {{{#ffffff '''비고'''}}} ||
||<|3> QTV ||<|3> [[순위 정하는 여자]] || 4월 15일 || ||
* 원래 윤주희의 꿈은 [[승무원]]으로 스튜어디스과 학생으로 재학 중 영화 아는 여자에서 우연한 계기로 승무원 역에 캐스팅되었다.
- 윤진이 . . . . 16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br />(現 [[서울특별시]])<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배우자 =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영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 (주)미스터 피자
| 미스터 피자
| 피자 프랜차이즈
| 여자 신인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여자 조연상
[[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은혼/592화 . . . . 16회 일치
* 격전이 끝난 자리에는 아직 가구라와 카무이가 뻗어있는 채로 있다.
* 쇼우가쿠는 "해적의 긍지도 갖지 않은 그런 남자에겐 버릴만한 충성심 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 그리고 "해적이란건 좀 더 자유로운 생물"이라며 "지배자(우츠로)랑 싸우는걸 보고 너희 쪽이 좀 더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 바토우도 말하길 "애초에 해적은 체제와 싸우는 자들이고 그쪽(우츠로측)엔 자신들이 원하는 싸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 아부토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여기 쓰러져 있는게 아직 7사단 단장인지 평범한 오빠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 그러자 쓰러져 있던 카무이가 왼손을 들어올린다.
* 카무이는 7사단의 생존자와 하루사메의 잔당들을 이끌고 사라진다.
* 정작 다져야 했던 각오는 가족의 연을 끊을 각오가 아니라 어찌해도 끊을 수 없는 그 "실"에 묶여 괴로울 지라도 계속 끌어 당겨 가족 옆에 있고자 하는, 그런 각오였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 하지만 긴토키는 "대체 어디서 태어나서 너같이 막돼먹은 꼬맹이가 되는지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렸다"면서, "네가 자란 고향과 가족을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휴가였다"고 말한다.
* 가구라는 환자한테 무슨 짓이냐고 따지고, 긴토키는 해결사한텐 유급휴가신청서는 사망신청서랑 같은 의미라서 제대로 처리해준 거라고 한다.
* 바로 뒤에서 그걸 듣고 있던 우미보즈는 "정말로 팔이자랐다"며 신형 의수의 화력을 해결사에게 시험해 본다.
* 다츠마는 "장사 얘기는 끝났으니 이쪽 얘기도 얼른 끝내자"는데, 귀병대의 다케치가 와있다.
- 가구라.자신이 내려는 유급휴가계를 사직서로 착각하고 오글거리는 얘길 줄줄이 늘어놓던 긴토키와 신파치에게.
* 사망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던 우미보즈는 결국 생존. 뿐만 아니라 결국 오보로 외에는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 은혼/611화 . . . . 16회 일치
* 원상 황자는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돌아가자 크게 당황하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빈정거리며 감옥으로 돌아간다.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절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상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상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상 황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상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상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그녀의 짐작대로였고 겐카이는 타마과 킨토키의 시신을 수습하며 반드시 고쳐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오토세 여사 또한 그들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며 전 우주의 기계들과 한판 하고 온 거니 잠시 쉬게 해주자고 말한다.
* 해방군은 기계장비가 고장나자 빠르게 백병전 대비태세를 갖춘다. 파일럿들이 쓸 수 있는 거라면 아무거나 잡아들고 보병으로 전환해 편제를 재구성하고 일사분란하게 도열한다.
* 3대 용병민족 중 하나인 다키니는 이 과정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해방군 본진과 단절된 걸 기회삼아 얼렁뚱땅 전군 지휘를 자처한다. 다키니의 리더 오우가이는 지구인들이 재미있는 짓을 해줬다고 좋아하는데, 현재의 전장이 기계 위주가 되면서 시시해졌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덕분에 과거의 "멋진 전쟁"으로 돌아갔다며 병기라면 "훼괴전차"라 불린 자기 자신들이 건재하다고 투지를 과시한다.
* 같은 용병민족이지만 신라 측은 드라이하게 관망하고 있다. 리더인 소타츠는 다키니는 이끼 낀 고대 유물들이라고 비하하며 어차피 현시점에선 통솔도 어려울 병력 따윈 다키니에게 던져주자고 한다. 저들이 지구측과 교전해서 교착상태가 되면 그때야 말로 자신들이 목표를 달성할 때라는 것.
* 야토 측도 아직은 관망 상태. 야토의 두목은 해가 저무는걸 보고 곧 자신들의 시간이 될 거라고 말한다.
* 오우가이는 병사들을 모아서 병기는 못 쓰게 됐지만 적도 마찬가지며 병력 자체는 자신들이 압도적이라고 교시한다. 그리고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파괴하고 본대와 통신을 복구하는걸 목표로 하여 진격을 명령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부키쵸를 향해 진격하게 되는 셈. 해결사 일행은 이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구라와 신파치는 가부키쵸의 동료들을 걱정하는데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정도는 가부키쵸에서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본진과 단절된 이상 해방군의 행동은 정해져 있던 셈이고 가부키쵸에서는 그걸 감안해서 미끼역을 자처한 것이다. 핫토리는 전쟁에서 중요한 점은 적의 행동을 먼저 아는 것이라 강조하고 곤도 이사오는 에도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 파괴를 하던 해방군이 뚜렷한 목표로 일정한 작전을 수행하게 됐으니 오히려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때라고 말한다.
한대 타마에게 반했던 야마자키 사가루는 타마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데다 은근슬쩍 통상폼으로 돌아와 있어 역시 야마자키는 안 된다는걸 느끼게 해준다.
- 이시영 (1882년) . . . . 16회 일치
'''이시영'''(李始榮, [[1882년]] [[1월 10일]] ~ [[1919년]] [[7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본관은 [[경주시|경주]](慶州). 본명은 이중현(李仲賢), 호는 우재(又齋). 친족 관계에 있는 동명이인인 [[이시영 (1868년)|이시영]](李始榮, 성재 이시영)과의 구별을 위해 '우재 이시영'으로도 부른다. [[성리학]]자 이관준의 차남으로 [[대한민국]]의 제1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법무부 장관]] [[이인]](李仁)의 숙부이다.
이시영은 [[1882년]] [[1월 10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성리학자 만당(晩堂) [[이관준]](李寬俊)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이관준]]으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몸이 건장하여 무인(武人)의 기상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詩)과 글씨(書), 그림(畵)에 모두 능하였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런 성격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과 과단성 있는 추진력 때문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는 그를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칭찬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koreastory.co.kr/daegustory/human/leesiyoung.htm 대구의 인물<!-- 봇이 붙인 제목 -->]</ref>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남의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을 무찌르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중국]]으로 망명,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베이징]], [[만주]]일대 그리고 국내의 각지를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처럼 다녔다. 괄괄한 성격의 그는 실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윤상태]](尹相泰), [[서상호]](徐相鎬), [[정운일]](鄭雲馹) 등과 [[애국단]]이란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애국단을 조직한 그들은 우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모라는 당시 대구부호의 지원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서부자는 이름난 구두쇠인데다 민족의식이 없어 말로 해서는 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더욱 서는 우재의 사돈(族兄의 妻家)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는 서부자의 아들을 애국단에 가입시켜 그가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희사하기를 원하였으나, 서부자는 끝내 외면했다. 군자금은 마련해야겠고 저쪽에서는 응할 기미가 없자 최후 수단으로 하루밤 그의 아들을 앞세우고 그 집에 침범했다가 정체만 드러낸 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일경에 체포되어 강도죄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뒤 다시 [[최준]](崔俊), [[안희제]](安熙濟), [[서상일]](徐相日) 등 동지를 규합하여 [[광복단]]을 조직했다. 광복단은 무기를 구하고 병사를 길러 일본 세력에 무력으로 겨루자는 목적으로 조직된 무장단체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1914년]] 다시 출국하여 [[북경]]으로 가 그곳에서 항일운동에 이바지했다. 그가 그때 쓴 일기(손자 이용(李鏞), 원화여고 교장 역임)를 보면 [[백남채]](白南採)와 함께 활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
[[백남채]] 외에도 [[김좌진]](金佐鎭), [[김동삼]](金東三) 등과도 많은 일을 했다. [[1918년]] 귀국했고 [[1919년]] [[2월]], [[지청천]](池靑天),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영남]][[유림]]대표 2백여 명을 [[경성부|경성]]으로 보냈다. 그때 유림측에서 그에게 민족대표로 서명해 달라고 하자 '내 목적은 오직 왜놈과 싸우는 것'이라며 과격한 활동 노선을 밝혔다. 그 후 임시정부에서 재무부장서리를 맡아 달라는 것도 거절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 아버지 : [[이관준]](李寬俊, 호는 만당, 성리학자)
* 손자 : 이용(李鏞), 교사
[[분류:1882년 태어남]][[분류:1919년 죽음]][[분류:옥사한 사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배(국회의원) . . . . 16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소속위원회}}}''' ||<(>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
||<bgcolor=#C9151E> '''{{{#FFFFFF 가족관계}}}''' ||<(> 배우자 박종숙, 슬하 2남 ||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
||<bgcolor=#C9151E> '''{{{#FFFFFF 현직}}}''' ||<(> [[제20대 국회의원]][br][[자유한국당]] 대외협력위원장[br]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부의장[br][[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br]제35대 [[충청북도]] [[충주시]]장(민선5기)[br][[행정안전부]] 제2차관[br]행정자치부 차관보[br]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br][[충청북도]] 행정부지사[br]충청북도청 기획관리실장[br][[충청북도]] 청주시 부시장[br][[대통령비서실]] 행정비서관[br][[충청북도]] [[음성군]]수(관선)[br]제23회 행정고시 합격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며 [[이시종]]이 도지사가 된 이후 공백이 된 충주 정치권의 최종적 승리자.
1957년 충청북도 중원군 주덕면(현 충주시 [[주덕읍]])에서 태어났다. 주덕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학사장교]]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주로 충북도나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공직 사퇴 직전에는 행정안전부 2차관을 역임하였다. [[이시종]], [[윤진식]]처럼 충주 출신으로 고위관료 테크를 탄 사람이다.
임기가 다 끝나가던 2014년 3월 31일, 시장직을 사퇴한다.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 윤진식이 충북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대신하여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 옛 한나라당 출신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한창희 후보에게 승리하고 당선되었다. 정작 이종배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준 윤진식은 도지사 선거에서 석패했다.[* 전국에서 제일 박빙이어서. 다음날 새벽4시까지 개표가 진행됐다.].(...) 이후 [[친박]]계에 속하였다. [[정우택]]의 최측근이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1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br](민선 5기 충북 충주시장)[* 전임자 우건도 당선무효] || '''[[한나라당]]''' || '''34,899 (50.31%)''' || '''당선 (1위)''' || '''초선'''[* 2014.3.31 사퇴(국회의원 선거 출마)] ||
|| 2014 ||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br](19대 국회 충북 충주시)[*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 || '''[[새누리당]]''' || '''35,699 (64.08%)''' || '''당선 (1위)''' || '''초선''' ||
- 이종혁 (배우) . . . . 16회 일치
| 배우자 = 최은애
| 자녀 = 이탁수 (장남), 이준수 (차남)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이후 1998년 영화 《[[쉬리 (영화)|쉬리]]》로 데뷔하였고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름이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종혁, '엄마의 공책: 기억의 레시피'로 스크린 복귀|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4179|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날짜 = 2016년 11월 8일|확인날짜 = }}</ref> [[2002년]] [[6월 4일]] 최은애와 결혼식을 올려 장남 이탁수([[2003년]] 출생), 차남 이준수([[2007년]] 출생) 두 아들을 두었다. 2013년 MBC 예능프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빠'로 불리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엄마의 공책'..이종혁, 철부지 아들로 변신 |url =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9&aid=0003723802|출판사 = OSEN |저자 = |날짜 = 2018년 2월 22일|확인날짜 = }}</ref>
* [[2006년]] 《[[어느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 - 죽음의 숲]]》 - 정우진 역
* [[2015년]] 《[[돼지 같은 여자]]》 - 준섭 역
* [[2010년]] [[KBS2]] 미니시리즈 《[[도망자 플랜 B]]》 - 영사실 통역사, 황철호 역 (특별출연)
* [[2012년]] ~ [[2013년]] 《[[벽을 뚫는 남자 (뮤지컬)|벽을 뚫는 남자]]》 - 듀티율 역
* [[2012년]] [[MBC]] 《[[해피투게더 (텔레비전 프로그램)|해피투게더]]》 - 274회 벽을 뚫는 남자 팀
* [[2012년]] [[MBC]] 《[[라디오스타]]》 - 311회 벽을 뚫는 남자 특집
* [[2010년]] [[KBS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결혼해주세요]]》,《[[추노]]》
* [[2012년]] [[SBS 연기대상]] 주말연속극 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신사의 품격]]》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분류: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동문]][[분류:동도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
- 이태현(씨름) . . . . 16회 일치
'''모래판의 황태자 및 지존'''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백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상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태자의 위엄. 오오!--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영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태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태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태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쨌든 [[대한민국]] 최고의 천하장사가 종합격투기에서 엄청난 굴욕을 겪자, 씨름팬들은 비록 이태현이 씨름을 저버리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해서 비난했을지언정 이태현의 고전 앞에서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씨름계의 전설인 [[이만기]]는 이 장면을 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KBS가 2011년 추석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천하장사 만만세'에서 이같이 술회했다. 당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씨름이 얻어터지는 기분이었다."'''] 씨름계의 흑화와 더불어 씁쓸하면서도 슬픈 장면이 오버랩되는 순간.
결국 이태현은 종합격투기를 떠나고 초등학교 때 은사인 [[구미시]]청 김종화 감독의 권유로 씨름판에 복귀했다. 복귀 후 다시 씨름판에 잘 적응하며 백두장사 2회를 더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두장사 최다 기록을 20회로 경신했다.
2011년 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모교인 [[용인대학교]] 격기학과의 씨름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된 후 씨름 팀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이와 함께 [[2014년]] 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씨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도 출연해 여자 씨름 해설을 했으며, 출전자들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16회 일치
* 고서가 마음을 얻기 위해 동료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하자 제리코는 모순되고 어리석은 말이라고 지적한다.
* 하지만 제리코 너 또한 힘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려 했지 않냐고 반박하고 제리코는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며 "결국 상처입는건 너 자신"이라고 하지만 고서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 호크는 자신의 원래 전투력이 3000이고 마력을 얻어서 배 이상 올랐으니 10만은 될 거라고 착각하며 낙승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 어느 왕국의 둘째 왕자로 태어난 그는 형의 시기를 받으며 자라다 어느날부터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된다.
* 그러나 너무나 강대한 힘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형까지 다치게 하고 부모 조차 그를 저주받은 아이로 생각해 멸시하게 된다.
attachment:로자.jpg
* 급기야 왕국에선 그를 죽이려 드는데, 어느날밤 로자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 에스카노르는 멀린에게 자신이 두렵지 않냐고 묻는데, 오히려 "공포란 무지에서 오는 감정. 무엇보다 네 수수깨끼는 충분히 매력적이다."는 찬사를 듣는다.
* 꿈 속에서 고서에게 자신이 멀린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데...
* 악몽 속의 멀린은 "내일이 없는 자와 함께 길을 걸을 순 없어. 왜냐면 네 저주는 절대 풀 수 없으니까. 강대한 저주는 이윽고 그 몸을 전부 침식하겠지. 너는 결국 내 실험 재료일 뿐인 존재.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 없이 고독하게 죽어라 에스카노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 그에게 있어 멀린은 그 자체로 태양과 같은 존재. 고서가 보여준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며 밤 중인데도 정오의 강력한 힘을 회복한다.
"자, 그 몸으로 속죄하도록 하세요. 마음을 가지고 논 대죄를."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6회 일치
* [[뤼드셀]] 사대천사를 포함한 여신족 최강급 존재로 도착하자마자 [[프라우드린]], 갈란을 손쉽게 리타이어시킨다.
* 데리엘과 몬스피드는 열세에 놓이자 최후의 방법을 동원한다.
* 십계 [[고서]]는 [[네로바스타]]를 세뇌, 자신을 [[뤼드셀]]이라 믿게 만든다. 고서는 네로바스타가 그를 안내하면서 뤼드셀에 대해 말하도록 조작한다. 그녀는 뤼드셀이 마력, 지력, 매력 면에서 최고의 사대천사라고 추앙한다. 뤼드셀은 스티그마가 성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족도 친구도 버렸다고 하는데. 고서는 그 말을 듣고 "그런 남자라면 나도 안다"고 말한다.
* 사대천사 [[타르미엘]]과 [[사리엘]]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십계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타르미엘은 세 개의 머리가 사방을 주시하며 사각이 없다. 그가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갈란]]이 덤벼들자 왼쪽의 노인의 얼굴에서 또다른 마법을 발사해 갈란을 밀어낸다. 반대편에서 데리엘이 달려들자 이번엔 오른쪽의 젊은이의 얼굴이 마법을 발사해 데리엘을 격추한다. 그리고 본체가 준비하던 강력한 마법탄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있는 갈란에게 날아간다.
* 그때 갈란의 몸을 빛줄기가 관통한다. 갈란이 저항하기도 전에 빛줄기는 두 번 세 번 공격을 거듭해 갈란을 쓰러뜨린다. 마침내 사대천사 최강자 뤼드셀이 전장에 도착. 어느새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린 상태다. 그는 갈란을 비웃듯 만남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한다.
네로바스타는 뤼드셀이야 말로 진정한 사냥꾼이며 짐승에 불과한 십계는 사냥 당할 수밖에 없다고 떠들고 있다. 메라스큐라는 어차피 네로바스타가 자각하지도 못하는데도, 그 말을 비웃으며 대꾸한다.
* 전장의 데리엘과 몬스피드는 "여기까지 인 것 같다"며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갑자기 손으로 자신들의 가슴을 파해치기 시작한다.
둘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들의 내장을 휘젓는다. 프라우드린은 그것이 무슨 행동인지 영문을 몰라하지만 갈란은 알고 있다. 그는 위험하게 됐다며 프라우드린을 챙겨 퇴각할 준비를 한다.
이윽고 그들은 자신 안의 여섯 심장을 모두 뽑아내 하늘에 바치는 주문을 외운다.
그들이 "계약"을 완수하자 신체가 크게 변형하기 시작하는데.
* 메라스큐라는 그들이 숨기고 있는 비장의 수이자, 최악의 금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건 최고위 마신 "십계" 중에서도 한정된 자에게만 허락된 금술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16회 일치
* 해골병들의 힘이 보통을 넘게 되자 실제로 일행은 당황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강해질 데로 강해진 일행의 적수는 아니었다.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디안느]]가 반격하고 [[에스카노르]]마저 정오에 가까워지며 힘을 되찾자 강해진 해골병이라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 간단하게 전세가 역전되자 메라스큐라는 하나 남은 해골병이 원념을 집중시켜 최강의 해골병으로 만들려 하나 멜리오다스의 힘을 견디지 못해 폭발한다.
* 자신하던 수법이 연달아 실패하고 멜리오다스의 비웃음을 사게 되자 메라스큐라는 디안느의 정신을 조종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 이를 감지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일행을 도우려 가려 하는데, 그때 의식을 되찾은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나타난다.
* 일행 중 아직 고전하는 건 호크를 제외하면 [[반(일곱 개의 대죄)|반]] 뿐이었다. 그의 특기는 해골병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데다 하나하나의 힘도 강해져서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다 머릿수까지 불어나자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하고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때 호크를 따라 도망치고 있어야 할 [[에스카노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유를 부리는 것이 강자의 특권입니다.
*자랑하던 해골병들이 차례로 박살나는 게 느껴졌다. 자신만만했던 메라스큐라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얼룩졌다. 멜리오다스는 "안타깝게 됐다"고 그게 비웃었다.
그러나 메라스큐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강해지던 해골병은 비정상적으로 비틀리고 팽창했다. 멀린이 단숨에 문제점을 진단했다. 너무 강한게 문제였다. 멜리오다스는 차기 마신왕으로 거론되던 강력한 마력의 소유자. 평범한 소재로 그 힘을 감당할 리가 없었다.
멀린이 말한 대로였다. 과한 힘이 부여된 해골은 부풀어 오르다가 산산조각나면서 자멸하고 말았다.
* 해골병들을 정리한 일행은 여유가 생겼다. 호크는 녀석들의 잔해에 화풀이를 하며 혼자 싸운 것 같은 생색을 냈다. 그때 멀린은 주위에 감도는 수상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정신지배의 징조였다. 일행에게 정신을 최대한 유지하라고 경고했다. 할리퀸도 느낄 수 있었다. 해골에서 빠져나온 원념들이 이제 산 사람에게 달라붙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곧 디안느의 상태를 걱정한다. 그러나.
*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 돼지의 모자 정은 아직 코란도로 향하는 다리 앞에 있었다. 안정을 취하고 있던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은 반과 그 일행에게 일어난 일을 느꼈다. 디안느의 의식이 공포와 분노의 소용돌이에 잠식되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과 반이 겪었던 일이 디안느와 오빠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일념으로 엘레인은 불편한 몸을 침대에서 끌어냈다. 동료들에게 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걷지도 못하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위태롭게 기어다가 쓰러지는 그녀에게, 누군가 손길을 뻗었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였다. 그녀가 결국 다시 눈을 떴다.
- 장발 (화가) . . . . 16회 일치
| 배우자 = 안순옥(安順玉)
| 자녀 = 슬하 7남 1녀
| 친척 = [[장면]](형)<br/>[[장극]](아우)<br/>[[장진 (1927년)|장진]](조카) <br/>[[장익 (1933년)|장익]](조카) <br/> 장현(손자)
장발은 서양화가였지만,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자(세례명: 루도비코)로서 [[성화상|성화]] 제작과 가톨릭 [[성당]] 건립에 참여한 것 이외에는 창작보다 [[미술]] 이론 연구와 교육 활동에 더 몰두했다.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1996년]] [[서울대학교 출신 인물#자랑스러운 서울대인|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고, 교내에 [[흉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미술대학 갤러리 '우석홀'은 그의 호를 딴 것이다.
[[2001년]] [[4월 8일]] 오전 4시(한국시각 오후 6시)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10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064927 100세 화가 장발씨 타계(1보)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 배우자 : 안순옥(安順玉)
*** 손자 : 장현(張峴, 종조부 [[장면]]박사 생전에 출생하였다.)
* [[장익 (성직자)|장익]]
*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1040970205 [발자취] 서구식 미술교육 정착시킨 故 장발씨] 조선일보
*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1041070005 [발자취] 장발 前 서울대 미대 학장] 조선일보
[[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장면]][[분류:윤보선]][[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인동 장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55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63년) 당원]][[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인천박문초등학교 동문]][[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대한민국의 백세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이탈리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전형필 . . . . 16회 일치
| 직업 = 교육자 <br /> 문화재 수집가 <br /> 문화재 보존가 <br /> 저술가
| 자녀 = 전성우(장남), 전영우(차남)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자는 천뢰(天賚), 호(號)는 간송(澗松), 지산(芝山), 취설재(翠雪齋)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훈민정음]] 원본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와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 한국의 문화재들을 지켜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사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과 지인들에 의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으로 개편되었고, 간송미술관에서는 [[1971년]] 봄부터 '겸재전'(謙齋展)주제를 시작으로 2014년 가을까지 일년에 2차례씩 무료 일반공개를 하였다. 현재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간송컬렉션을 선보이고자 동대문디자인프라자&파크에서 간송문화전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 14일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매입하여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웠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하였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가 유명하다. [[1942년]] [[경상북도]] [[안동시|안동]]에서 소재되어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광산 김씨 종가의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오던 광산김씨 문중의 가보였다고 한다. [[세종]]이 광산김씨 문중에 여진정벌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내린 서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 집안의 사위였던 이용준이 매월당집 등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몰래 빼돌려 안동의 자택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김태준]]을 통해 전형필 선생에게 훈민정음 해례본만 만원에 판매하였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학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한글 창제]] 원리가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해 밝혀졌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7년]] 10월에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기도 하였다. 거간 노릇은 한 김태준과 이용준은 사회주의자로, 판매한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김태준은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이용준은 월북하였다고 한다.
존 개츠비로부터 사들인 [[국보]]급 [[고려청자]] 20점은 모두 사십만원에 사들였는데 원래 제시한 가격은 오십만원 이상이었으나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사랑에 감동하여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들이 전형필의 소장품들을 모두 가져가려하자 포장을 맡아하던 소전 [[손재형]]과 혜곡 [[최순우]]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못가져가도록 하였고 뜻대로 되지 않자 일부러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부러뜨리기 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형필 또한 피난을 가지 않고 보화각 근처 빈 집에 숨어 소장품이 훼손될까 노심초사하였다 한다.
== 참고 자료 ==
* 지식채널e - 바보같은 남자, EBS
- 정근모 . . . . 16회 일치
'''정근모'''(鄭根謨, [[1939년]] [[12월 30일]] ~ , [[서울특별시|서울]])는 대한민국의 물리학자이자 원자력 전문가이며 과학기술 행정가이다. [[유효정|유호정]] 박사가 2018년에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최연소 박사 학위 취득 기록을 갖고 있었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2899529 22세 국내 최연소 박사 탄생 "학원 싫어 대학까지 독학"]</ref> (만 23년 5개월) [[대한민국 과학기술부|과학기술처]] 장관을 2번 지냈고, [[한국과학원]](현 [[한국과학기술원]]) 설립을 주도하고 2대 부원장도 맡았다.
* [[미국]] [[미국 국무부|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 IAEA 원자력안전자문위원
* (사)서울특별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
* [[한국전력공사]] 원자력 상임 고문 (현직)
|전임자 = [[이상희 (1938년)|이상희]]
|후임자 = [[김진현 (연구인)|김진현]]
|전임자 = [[김시중 (연구인)|김시중]]
|후임자 = [[구본영 (1947년)|구본영]]
|전임자 = [[선우중호]]
|후임자 = [[유병진]]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분류:대한민국의 과학기술처 장관]][[분류:한국과학기술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래희망연대]][[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명지대학교]][[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만조 . . . . 16회 일치
'''정만조'''(鄭萬朝, [[1858년]] ~ [[1936년]])는 [[조선]] 말기의 학자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협조한 대표적인 [[유교]] 계열 인물이다. 호는 무정(茂亭)이다.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과 가까운 친척으로 [[한성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개화파 학자였던 [[강위]]의 제자로 수학하여 글과 글씨에 뛰어난 재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884년]] [[교섭통상아문]]에서 주사 벼슬로 관직을 시작하였고, [[1889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뒤 예조참의, 승지, 내부참의 등을 역임했다.
정만조는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개화 사상을 익힌 앞서가는 지식인이었다. 당시 세도 세력인 [[여흥 민씨]] 일파와는 대립하다가 정치적인 사건에 말려들어 [[전라남도]] [[진도 (진도군)|진도]]로 유배되었다. 10년이 넘는 유배 생활 끝에 [[1907년]] [[대한제국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에야 사면을 받아 다시 관계로 복귀하였으며, 이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이익에 따라 활동하는 친일 학자가 되었다.
뛰어난 학자에 문장가였던 그를 일본은 철저히 이용했고, 정만조 역시 초년에 그와 뜻을 같이 하던 선비들과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는 일화가 여럿 전해질 정도로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했다. 손자의 이름까지도 일본 천황 이름 [[다이쇼 천황]]에서 따와 '대갑(大甲)', '정갑(正甲)'으로 지었다는 설이 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해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동생 [[정병조]]도 세 명단에 들어 있다.
== 참고자료 ==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분류:1858년 태어남]][[분류:1939년 죽음]][[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개화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주다영 . . . . 16회 일치
| 배우자 = [[김지석 (1981년)]]
| 자녀 =
| 형제자매 = 남동생 2명
* [[2003년]] [[MBC]] 월화드라마 《[[대장금]]》 ... 어린 노창이 역 ([[최자혜]] 아역)
* [[2013년]] [[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 미혼모 역
* 《[[태극기 휘날리며]]》 (2004년) - 영자 역
* 《[[그림자 살인]]》 (2009년) - 옥이 역
* 《[[순정 (2016년 영화)|순정]]》 (2016년) - 길자 역
* GUESS HOW MUCH I LOVE YOU 아빠! 사랑해요 [해설자 역] (2013년 4월 20일 ~ 2013년 8월 31일)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주현미 . . . . 16회 일치
[[분류:남원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여가수]][[분류:1961년 출생]][[분류:중화민국계 한국인]][[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분류:1985년 데뷔]]
[[화교]] 3세[*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상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시|남원]] 에서 4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상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태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남편은 한국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남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상을 수상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남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참고로 [[경상남도]] [[진주시]]의 시외버스 업체인 [[부산교통]]의 안내방송에 주현미 노래의 일부분이 BGM으로 나온다고 한다.[* 주로 "어제같은 이별"과 "비 내리는 영동교"가 주로 나온다.] 이외에도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같이 짜라자짜로 활동했다.
트로트계에서는 이미 넘어설 수 없는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곡의 스타일이나 가창법도 기존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음반판매, 히트곡의 수, 실력, 자기 관리 면에서 흠 잡을 곳이 없다. 음색이 얇으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워 ~~음색계의 깡패보스~~ 애절하거나 높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기억하기 쉽지만 성량이 굉장히 풍부해 라이브를 들어 본 사람은 놀랄 정도. 여기에 특유의 고음 뿐 아니라 중저음이 굉장히 탄탄하고 매력있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보컬리스트이다.
* 전성기 시절에는 1년 내내 딱 1일만 빼고 휴일 없이 방송과 지역 행사를 모두 수행한 적도 있었단다. 참고로 그 하루는 [[현충일]]. 현충일에는 유흥업소들이 자체적으로 휴업하는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 의외로, 하현우와 친분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국카스텐을 추천한 이후, 그들의 매력에 빠졋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리더인 하현우는 따로 주현미의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고 한다.
* 2008년 EP <짜라자짜> with 소녀시대 서현
- 콘도 마코토 . . . . 16회 일치
1973년 게이오 대학 의학부 졸업. 의사국가시험합격, 연수의가 되어, 방사선과 시험을 받고, 미국 의사자격을 취득.
1979년 미국 로스알라모스 파이중간자 시설(パイ中間子施設)에서 의사로서 채용.
1988년 "유방암은 절제하지 않아도 나으며, 치료율은 같으므로, 마음대로 유방을 자르는 것은 외과의의 범죄행위가 아닌가."라는 논문을 월간 『문예춘추(文藝春秋)』에 기고.
1989년 유방온존요법을 받은 자신의 환자를 중심으로 하여 의료시민단체 「이데아포(イデアフォー)」를 설립. 유방온전요법 보급에 후원.
1990년 『유방암치료, 당신의 선택(乳ガン治療・あなたの選択)』출판. 무치료를 바라는 암 환자에게 「암방치요법(がん放置療法)」을 시작,
1994년 『환자와 이야기하는 암의 재발, 전이(患者と語るガンの再発・転移)』출판
1995년 문예춘추 지에서 10회에 걸쳐, 암에 대하여 연재.「문예춘추독자상(文藝春秋読者賞)」을 수상. 의료사고에 대한 감정서 작성을 목적으로 「의료사고조사회(医療事故調査会)」를 설립.
1996년 『환자여, 암과 싸우지마라(患者よ、がんと闘うな)』 출판.
제60화 키쿠치 간상(菊池寛賞) 수상. 유방보전요요법의 개척자로서, 항암제의 독성등에 대하여 계몽을 계속한 것이 수상이유.
2016년 『암환자여, 콘도 마코토를 의심하라(がん患者よ、近藤誠を疑え)』 출판
자신의 주장을 여러 책으로 저술하였는데, 그 가운데 『환자여, 암과 싸우지마라(患者よ、がんと闘うな)』『항암제는 효과없다(抗がん剤は効かない)』가 [[베스트 셀러]]가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医者に殺されない47の心得)』은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 의사를 신뢰하지 마라, 의사가 환자를 죽인다 등의 자극적인 주장을 하여,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를 파괴하였다.
- 토리코/359화 . . . . 16회 일치
* 이치류는 왕의 자질을 가진 숙주로 아카시아, 지로와 비교해서도 최고의 식욕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돈 슬라임은 그 자질을 개발하라고 끊임없이 권하지만 항상 소박하고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식재만을 먹으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이는 그가 진귀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기 보다는 '''남과 나누고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식재를 되살리는 일이야 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동생이나 아카시아를 먼저 챙기고 자신은 소박한 식재를 먹어온 것이다
* 어느 시점부터 이치류는 돈 슬라임을 친구처럼 대하는데 "돈 슬라임"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이다. '''이치류는 처음 돈 슬라임이 자신을 불러주었을 때 포만감과 같은 기쁨'''을 느꼈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돈 슬라임은 끝없이 이치류에게 보다 좋은 것을 먹고 강해지라고 권하지만 '''이치류는 항상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검소한 콩 같은 것이나 먹는다. IGO를 세우고 세계의 일인자가 되었지만,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 식탁에서 똑같은 것을 먹고 약자도 강자도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거야 말로 자신의 "욕망"이라고 하는데, '''어느덧 돈 슬라임도 이치류가 먹는 검소한 음식들이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 돈 슬라임은 네오에게 "네가 최고의 숙주를 얻었다 믿냐"고 비아냥 거리며 이치류의 사상과 추억을 말한다. 그러자 네오 안에 있던 아카시아가 나타나 "그런 부분은 나약함일 뿐이며, 자신은 이치류에게 운명을 부여했지만 나약해서 실패했고 신이 택한건 자신이다"며 조롱한다.
* 하지만 이치류는 미도라에게 당하는 순간까지도 '''돈 슬라임의 힘은 일절 빌리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투쟁'''을 고집했다. 그런 이치류를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며 분노하지만 '''아사루디의 신체는 조금씩 한계가 오고 있다'''
약자가 아래를 향하지 않고 권력자라고 해서 위에 서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그게 바로 내 "욕망"이다. ||
- 페어리 테일/539화 . . . . 16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는 이제 마룡을 넘어 전세계를 파괴하고자 파괴를 자행한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하고 크리스티나호의 생존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상륙해 상태를 추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의 틈새가 닫힌 있을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한다. [[웬디 마벨]]이 이것을 발견. 웬디가 하늘의 균열이 있다고 말하자 일행이 술렁인다. 저것은 아무리 봐도...
*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시간의 틈새 조차 아크놀로기아를 죽이지 못했다. 아크놀로기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라 말한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엘자 스칼렛]]은 그가 시간의 틈새 조차 먹어치웠다는 걸 직감한다. 마룡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힘을 손에 넣었다. 그는 넘쳐흐르는 시간의 마력에 전율하며 그 자신 조차도 제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제어할 의지도 없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멸망을 고하며 이터널 플레어를 충전한다.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과 해안가의 도시. 엘자 일행이 있던 바위섬도 파괴돼 일행은 바다 속으로 던져진다.
* 엘자는 제랄과도 떨어져 바다로 처박힌다. 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그녀도 이번만큼은 정말로 세상이 멸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로 침몰할 순 없었다. 엘자는 그렇게 둘 순 없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엘자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상황을 살핀다. 근처에 이터널 플래어가 떨어지며 큰 파도가 일어난다. 엘자는 휩쓸리면서도 다른 일행들이 무사한지 살핀다.
웬디는 자신을 휘감은 마력에 흡수되어 아크놀로기아의 손아귀로 들어간다. 웬디를 손에 넣은 아크놀로기아는 지워진 것처럼 하늘에서 사라진다. 하늘엔 그의 기분 나쁜 웃음 소리만 들린다.
* 부자연스러운 지형과 끝없는 유성우가 내리는 하늘. 이질적인 공간으로 누군가가 끌려온다. 그건 END의 서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나츠였다. 나츠는 낯설고 이상한 풍경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분명 자신은 동료들과 길드로 가고 있었을 텐데.
* 나츠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크놀로기아가 있었다. 여긴가 어딘지 궁금해하는 나츠 앞에 나타나 이곳을 소개한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16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는 머지않아 자신의 바람인 궁극적인 파괴가 이루어질 거라 유쾌해하나 [[나츠 드래그닐]]은 이 세계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 이어서 스팅과 로그가 뛰어드나 아크놀로기아의 손짓 한 번으로 낙엽처럼 휘날린다. [[렉서스 드레아]]와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의 2파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다. 코브라는 마음의 소리를 읽는 능력을 시도해보니 실패. [[나츠 드래그닐]]의 시선이 렉서스와 코브라에게 향하자 아크놀로기아는 그럼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폭발성의 마법이 나츠에게 작렬, 방어한다.
* 매그놀리아에는 페어리 테일을 중심으로 생존한 전력들이 속속 집결한다. [[엘자 스칼렛]]에게 지금 상황이 전모를 들은 [[마카로프 드레아]]는 병력을 모아놓고 절망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체가 지상에서 날뛰고 있고, 대항할 수단인 멸룡마도사들은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가 버렸다고.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없다.
엘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그레이 풀버스터]]가 자신의 멸악마법으로 봉인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쥬비아 록서]]도 아예 얼려버린다면 제아무리 마룡이라도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엘자는 어떤 마법이든 마법 그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검 같은 물리적인 공격은 어떻겠냐고 하는데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웬디가 있어 검에 멸룡마법을 걸 수 있다면 모를까.
* 논의는 점점 절망적인 결론으로 향한다. 그때 [[레비 맥거딘]]이 옆자리의 [[루시 하트필리아]]가 골똘이 생각에 잠겨있는 걸 보고 왜 그러냐 묻는다. 루시는 아직 확신이 생긴건 아닌 듯 하나 "딱 하나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다.
* 그러나 차분하게 의논할 틈도 없이 아크놀로기아의 침공이 시작됐다. 매그놀리아의 가장자리가 아크놀로기아의 폭격으로 사라진다. 그가 다가오는 길마다 파괴와 소멸이 자행된다.
페어리 스피어가 방어마법이므로 그 자체로 타격을 주진 못하겠지만 그 안에 아크놀로기아를 봉하는건 어떨까? 그게 가능할지 어떨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루시는 이제 할 수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어차피 다른 기회는 없으니까.
* 시간의 틈새,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는 공격을 멈춘 멸룡마도사들에게 현세의 소식을 알린다. 곧 현세에 있는 자신의 육체가 세계를 멸망시킨다. 나츠는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 아크놀로기아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 종전을 맞이한 할지온 항구는 생존자들이 부상을 치유하며 휴식하고 있었다.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는 누군가 워프로 접근하자 고개를 돌린다. [[메스트 그라이더]]의 도움을 받은 쥬비아와 그레이였다. 그레이는 한 번에 더 많이 옮길 순 없냐고 독촉하는데 메스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쥬비아는 메스트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레이와 단 둘이 워프하는게 딱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리온이 다가오며 싸움은 끝난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레이가 아크놀로기아의 침공을 알리자 경악한다. 쥬비아는 루시가 지시한 대로 큰 배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한다. 엘자와 미라젠 등을 비롯한 페어리 테일 멤버들은 할지온을 향해 서두른다. 메스트가 워프로 오가는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16회 일치
* 나츠는 자신이 받은 모든 힘을 합친 용왕의 붕권으로 길었던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다.
* 마룡은 쓰러지면서 모든 걸 손에 넣고 싶었다고 토로하나 나츠는 그게 불가능하기에 소중한 거며 자신은 동료만 있으면 다른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 동료를 믿고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나츠 드래그닐]]. [[웬디 마벨]]의 기지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멸룡마도사들의 힘이 나츠에게 전해졌다. 웬디 자신과 [[렉서스 드레아]], [[가질 레드폭스]],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 일곱 룡의 힘을 하나로 합친 칠염룡의 힘을 발휘하는 나츠. 마룡 [[아크놀로기아]]가 놀라워한 것도 잠시. 곧 자신의 힘을 끌어내 나츠의 힘과 충돌한다.
* 현세를 파괴하고 있는 마룡의 육신. 그 육신을 봉하기 위한 작전이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리온 바스티아]]가 합작하고 [[쥬비아 록서]]가 조종하는 얼음의 배에 [[엘자 스칼렛]]과 [[미라젠 스트라우스]]가 아크놀로기아를 유인, 기습을 걸어 태우는데 성공시킨다. 때를 노려 [[루시 하트필리아]]가 하루지온에 모인 모든 마도사의 힘을 합친 페어리 스피어로 마룡을 잡는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걸까?
>너희들이 힘을 모아봤자 용왕에게는 이기지 못한다!
* 짧은 시간 만에 그녀는 전 대륙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링크마법은 전대륙, 전국민에게 빠짐없이 부여됐다. 페어리 테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링크 마법을 통해 힘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세계 전체의 힘. 거기에는 이 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동료들도 있었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안나 하트필리아]],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블루 페가수스]], [[바커스]]와 [[콰트로 케르베로스]], [[머메이드 힐]], [[코로나 플레어]]와 태양의 마을 주민들, [[피오레 왕국]] 일동까지.
힘은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이 자리에서 하나가 됐다. 페어리 테일의 마도사들은 다시 한 번 최후의 힘을 쥐어짜내 그 힘에 보탰다. 그들을 통해 보내진 힘이, 루시를
* 자신의 육신이 페어리 스피어에 갖혀 절규할 때, 정신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폭주를 거듭했다. 끝없는 파괴의 갈망. 더 많은 힘을,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폭주였다.
* 나츠가 각성한 칠염룡의 힘조차 압도할 것 같은 힘의 소용돌이. 그러나 나츠는 그것에 놀라지도 두려워하지 않앗다. 그저 "혼자서는 못 끝낸다"고 중얼거릴 뿐. 마룡의 움직임이 멎은 건 그때였다. 거침없이 모든 것을 파괴해왔던 그의 오른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뭔가에 붙들린 것처럼. 마룡의 육체를 묶은 페어리 스피어, 사람들의 유대가 시간의 틈새 조차 넘어 정신체마저 구속한 것이다. 나츠의 말대로였다. 혼자서는 끝낼 수 없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라면 끝낼 수 있다.
* 나츠의 말은 지금껏 아크놀로기아에게 쏟아졌던 떤 공격보다 뼈아프게 그를 찔렀다. 그 일격은 아크놀로기아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욕심마저 떨궈버렸다.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아크놀로기아는 자신의 바닥없는 욕심의 해답을 찾아냈다. 나츠의 입을 통해서. 그 집착이 사라진 영향일까? 정신체를 구성해 왔던 마력이 타버린 재처럼 흩어져간다.
아크놀로기아의 패배와 소멸, 그리고 나츠 일행의 승리가 하루지온을 들끓게 했다.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생존자들의 환호소리로 항구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진정한 전쟁의 종결이었다. 그때였다. 하루지온의 상공에 균열이 일었다. 아크놀로기아가 돌아올 때와 같은 균열이었다. 안나와 이치야가 시간의 틈새에서 배제된 것처럼, 마룡의 힘이 사라지자 멸룡마도사들도 시간의 틈새에서 밀려나온 것이었다.
* 멸룡마도사들이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스팅과 로그는 세이버투스의 동료들과 재회했다. 렉서느는 뇌신중, 코브라는 오라시온 세이스의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가질은 [[레비 맥거딘]]과 [[팬서 릴리]]와 얼싸안았고 웬디는 샤를과 셰리아가 반겨주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16회 일치
최대 네명까지의 경비원을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으며, 그 후에는 관제실에서 해당 경비원을 호출하는 것에 응답해야 한다. 관제실에서 이상을 감지하고 상황을 물어보는걸 경비원인 척 하며 속여넘긴다는 설정. 일정시간 내에 페이저 응답을 하지 않거나 페이저 응답을 하던 중 중단하면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시체를 볼 만한 위치인가 아닌가 판단한 다음, 볼 만한 위치라면 바디백에 넣어서 못 볼만한 위치(쓰레기통, 숲 속, 방구석 어딘가 등등)로 옮기자.
고난이도라고 해도 요령만 있다면 장비가 나빠도 할 수 있는 방식. 하지만 요령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몇번씩 리스타트해가며 해야한다. 못해먹겠다면 유튜브에서 스텔스 공략이라도 보자.
에셋의 경우, 돈만 내면 구매 가능하며 정해진 자리에 배치된다. 괜찮은 곳에 배치되기도 하지만 X도 도움 안되는 자리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 보일링 포인트. X발.
사전계획의 경우, 하이스트를 뛰게 될 맵의 지도를 보며 여러 보기 중 원하는 자리에 도구를 배치할 수 있게 해준다. 특정 도구를 숨겨두거나 하는 특권에 비해 진입 방법이나 탈출 방법도 마음대로 선택 가능.[*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방법이 결정된다. 만일 동점이라면 호스트(방장)가 선택한 쪽으로 결정. 투표권을 잊지말고 행사하자.] 하지만 각 사전계획마다 특권(Favor)이라는 포인트를 소모하는데, 한 하이스트 당 정해진 특권을 넘어서 쓸 수 없다.
페이데이 갱의 총 지도자이자 범죄 의뢰 사이트 Crime.Net의 운영자인 베인이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사설군사업체 머키워터 내의 배신자 로크가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 도살자 ===
도축 회사 경영자로 위장한 무기상이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페이데이 2/하이스트/도살자]] 페이지 참조.
음지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밀 천국, 컨티넨탈 호텔에서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영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세이프 하우스 밖으로 나올 때 옥상을 조심하자. 지붕 위에도 경찰들이 기어올라오는데, 테이저가 상당히 자주 있다.
- 하이큐/230화 . . . . 16회 일치
* 우카이 코치가 준비한 동영상은 선수들의 파인 플레이를 편집한 것으로 각자에게 "최상의 플레이"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 1회전 하루전. 선수들은 각자 평상심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 집중하고 두 매니저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는 함께 목욕을 한다.
* 시미즈는 히토카에게 "1회전에 이기고 내일 밤 또 이 욕탕에서 목욕하자"고 말하며 결의를 다진다.
* 그들을 태운 버스는 으리으리한 호텔 앞을 지나친다. 이때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곧 도착"한다고 말한다. 타나카는 이런 호텔이 묵는 거냐고 환호하는데, 진짜 숙소는 그 옆에 있는 허름한 보통 여관이었다. 어쨋거나 도쿄는 도쿄. 타나카는 "유령이 나올 거 같다"고 흥분하고 탐험하자고 제안한다. 히나타, 니시노야가 따라나서려는 찰나, 사와무라의 매서운 눈초리가 소리없는 경고를 날린다.. 또 조용히 대답하는 삼인조.
* 우카이 코치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해 타키노우에 유스케에게 맥주를 쐈다며 비장의 무기를 공개한다. 여관으로 돌아온 카라스노. 우카이 코치가 선수들을 집합시키는데 사와무라는 1회전 상대의 영상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니었다. 이름하며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 타키노우에 전자상가의 혼신의 역작이다.
* 바로 카라스노 멤버들의 파인 플레이 모음집. 선수마다 각각의 테마곡까지 할당된 하이퀄리티 영상이다. 참고로 니시노야는 록키의 테마. 기본적으로 선수별로 선호하는 음악이 배정된 모양이다. 우카이 코치는 영상과 음악의 힘을 빌려 긴장을 잡고 최상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이 영상을 의뢰했다. 그 의도대로 뻣뻣했던 선수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리고 동영상에 집중한다.
* 휴식 시간에 사와무라는 작전회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 사이는 엔노시타에게 인솔을 맡기는데 부주장인 스가와라 코시가 왜 자기한테 맡기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스가와라는 분위기 타고 같이 놀기 때문에 인솔로 부적합.
엔노시타는 수완도 좋게 여관 주인에게 자전거를 빌려왔다. 꼼짝없이 끌려가게 된 츠키시마. 그 짜증 탓인지 한층 무서운 태도로 "내가 간다고 하면 바로 돌아가는 거고 말 안 들으면 돌아오기 어려운 곳에 방치"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어차피 히나타나 카게야마가 길눈이 어두운 관계로 절대 복종한다.
그때까진 얌전히 있던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매니저들의 입욕시간이다. 타나카는 그런 판국에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냐며 절규한다. 자칫하면 이 망상이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까지 덮어씌워버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듣고 있던 나리타 카즈히토는 "네 머리통엔 뭐가 들어있든 상관없다"고 뼈아픈 말을 날린다.
히토카는 "훈장"이라며 멋지다고 말해버리는데 곧 쓸데없는 말이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시미즈는 기쁜 말이라며 웃어넘긴다. 시미즈는 중학교 땐 사교적이지 못해 딱히 친한 후배도 없었고 카라스노에 들어온 이후에도 매니저가 안 생겨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건 히토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 첫 경기 이기고 내일 밤에 또 이 욕탕에 오자. ||
* 3학년인 시미즈에겐 마지막 기회다. 히토카도 그 말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밤을 맞이한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런닝 삼매경. 츠키시마의 생각과 달리 쉽게 돌아오지 못할 듯하다. 아즈마네를 중심으로 동영상에 푹 빠진 파. 니시노야는 속편하게 자고 있다. 여관의 밤이 깊어간다.
* 마침내 오고야 만 1월 5일. 도쿄 체육관에 당도한다. 전국 배구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 통칭 봄고대회. 배구의 갑자원이라 불린다. 히나타는 작은 거인이 싸웠던 무대라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다른 학교 선수들이 지나가다 히나타와 부딪히는데 사과도 없이 가버린다. 상당히 키가 큰 그룹. 츠키시마는 2m가 넘을 거라고 예상한다.
* 이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카라스노의 숙적이자 악우 네코마 고교 일동이 체육관에 도착한다.
- 황치열 . . . . 16회 일치
| 배우자 =
*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8년 만에 해지하고, 2014년 '치열Ten2'라는 이름으로 싱글곡 '경상도 남자'를 발매하며 특유의 위트가 담긴 뮤직비디오를 자체 제작하여 발표.
* 2015년 3월 5일 케이블 방송 [[Mnet]]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 2회에 자칭 '[[임재범]]이 인정한 보컬트레이너, 황치열'로 참가, '[[고해]]'를 불러 개성 강한 허스키한 보이스로 방청객과 시청자들을 매료시켜 큰 반향을 일으킴. 이후 일반 참가자에서 가수 '황치열'로 패널로서 동일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함.
* 2015년 4월 25일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첫 무대로 [[서유석]]의 '구름 나그네'를 불러 416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황치열'을 알리기 시작함. 2007년 가수 '치열'로 [[윤도현]]의 [[윤도현의 러브 레터|러브레터]]를 통해 첫 무대에 선 이후 9년 만에 같은 장소인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무대에 선 것으로, '가수 황치열'의 지상파 첫 선을 보이는 그의 스토리와 더불어 진한 무명의 설움을 담아 부른 노래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하여 더욱 주목받게 됨.
* 2015년 명실상부한 대세남으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남성미 넘치는 춤, 구수한 경상도 억양을 담은 사투리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종횡무진 출연 중이며, 2015년 9월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인턴 MC로도 자리매김 함. 그 외 각종 음악 행사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가수로써도 인지도를 높이며 활약 중임.
* 2017년 5월 14일, 5월 21일 문화 방송 [[문화방송|M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11회 ~ 112회에 '짐승남 강백호'로 참가, 1라운드부터 2라운드, 3라운드까지 [[정혜성]], [[Y2K (음악 그룹)|고재근]], [[이예준 (가수)|이예준]] 등을 상대로 이김. 56대 복면가왕 선발전까지 진출하였으나 '노래 9단 흥부자댁'([[소향]])에게 석패.
* 2014년 12월 10일 디지털 싱글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4549 《치열Ten2 - 경상도 남자》]
* 2016년 2월 26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7회 '''4위''' 《[http://www.mgtv.com/v/1/290525/c/2996071.html# 혼자만의 기나긴 시간(一个人的天荒地老)무대영상]》[http://weibo.com/p/10151501_60180493/home?from=page_100406_profile&wvr=6&mod=latest#place weibo 음원]
* 2016년 6월 09일 중국 성도 자동차 뮤직 페스티벌 게스트
* [[2017년 ]] [[MBC]] [[복면가왕]] 짐승남 강백호 (참가자)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6년 데뷔]][[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너의 목소리가 보여 참가자]]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15회 일치
* 니카이도는 대진표상 [[소야 토지]]와 붙을 가능성이 있어 흥분하며 엄청난 자신을 보인다.
* 니카이도는 뭘 모른다는 식으로 대진표를 일일히 짚어주며 설명한다. 그 내용 상으론 니카이도와 [[소야 토지]] 명인이 한 조로 편성, 니카이도가 1승만 거두면 2회전에서 대전한다. 이거야 말로 니카이도가 꿈꾸던 대결. 니카이도는 자기가 키리야마보다 먼저 소야 명인과 공식전을 치르게 됐다고 으스댄다. 키리야마는 공식전은 자기가 먼저 했다고 항변하지만 니카이도가 그건 기념 대국일 뿐이지 공식전도 뭣도 아니라고 반박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또 하나 니카이도가 기대하는 것은 키리야마와 반대 블록에 있다는 것. 즉 둘이 대결한다면 대회 결승이다. 게다가 그가 결승까지 나갔다는건 무려 "소야 명인을 쓰러뜨린 기사"라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니카이도는 엄청 흥분해서 키리야마에게 절대 지지 말고 결승에게 붙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키리야마는 드라이한 톤으로 "왜 네가 소야 명인을 이겼다는걸 전제로 하냐"고 딴죽을 건다.
* 그러자 그때까지 떠들썩하게 흥분하던 니카이도가 기세를 잃는다. 민망했는지 너무 흥분했다고 사과하며 "경험은 상대가 안 되니 마음만이라도 주눅들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키리야마가 미안해진다. 니카이도는 정말로 소야 명인과 싸울지 모른다는데 설레고 흥분돼서 주체를 못하고 있다.
>이렇게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법인가?
니카이도가 정말로 한 번만 이기면 소야 명인과 불 수 있는 거냐고, 꿈을 꾸는게 아니냐는 투로 묻는다. 항상 기운차던 니카이도가 이렇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키리야마는 오히려 자신이 부끄럽고 니카이도가 눈부시게 보인다.
* 한편 [[시마다 카이]] 8단의 집에서 눈을 떴던 [[하야시다 타카시]]는 [[노구치 에이사쿠]]를 앞에 두고 그날 일을 늘어놓으며 한탄하고 있다. 노구치는 피자를 먹으면서 들어주는 중. 창피한 얘기 뿐이지만 그 중에서도 하야시다를 괴롭히는건 "계산"문제. 눈을 뜬 하야시다는 "손이 많이 가는 선생님"이라 투덜거리는 키리야마가 끓여준 된장국을 받아먹으며 "얼마였나요, 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시마다는 매우 어른스럽게
하야시다는 그 부분에서 남자로서의 격이 너무 다름을 절감한다.
정곡을 찔리자 아무 말도 못하는 하야시다. 노구치는 느긋하게 피자나 먹자고 한다. 하야시다는 결국 노구치에게 어째야겠냐고 묻지만, 노구치가 해결해줄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날 노구치는 진로상담하러 왔던 건데 하야시다의 푸념을 들어주느라 아무 것도 상담하지 못했다. 또다시 제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하야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15회 일치
소지 자금이 -수준으로 내려가면 연구진에게 임금을 주지 못한다. 연구 속도가 떨어진다.
자주포 여단을 연구하는 곳. Basic Field Artillery 연구와 Light Tanks 트리의 Early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공자주포 여단에 관한 연구, Improved Anti-Air Brigade 연구와 Light Tanks 트리의 Early Tank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주포 여단과 구축전차 여단의 대보병 공격력과 보급품 소모량을 올려주는 연구. Basic Medium Tank 연구와 Early Rocket Artillery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폭탄 연구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연구들. 연구하다 보면 원자로를 지을 수 있게 되고, 연구를 거듭하며 원자로의 크기를 키울 수 있게된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Secret Weapons 탭의 Rocket Test and Research Facility 테크를 해금하기 위해 있는 연구. 있는 연구래봤자 Experimental Rocket Engine 연구 뿐이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제트엔진, 로켓, 원자폭탄과 같은 당시 기준으로 실험적인 분야를 다루는 연구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연구를 완료한 후, 해당 비밀병기 연구가 해금되는 이벤트를 봐야한다.
원자력 전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Semi-Modern Battleship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경순양함과 원자력 중순양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Missile Light Cruise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항공모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Super-carrier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력 잠수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와 Naval 탭의 Modern Submarin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자로의 크기를 늘릴 수 있게 되며 핵무기를 생산되게 하는 동시에 강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트리. 해금 이벤트를 위해서는 Industry 탭의 Nuclear Power Production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 권민경 . . . . 15회 일치
| 배우자 = 조재원
| 자녀 = 1남 2녀(막내아들 조상우)
* [[경명여자중학교]]
* [[정화여자고등학교]]
미스코리아 대구 입상 후 모델 활동을 잠시 한 이후 그녀는 1990년 대구 출신의 변호사 조재원과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1남 2녀(1991년생 장녀, 1993년생 차녀, 1998년생 막내아들)를 두었고 자녀들 중 막내아들 조상우({{출생일과 만나이|1998|5|23}}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君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한림예고]] 출신인데 지난 2015년 TvN TV 프로그램 《[[고교10대천왕]]》에 10대천왕 패널 주인공 중 일원으로 출연한 전력이 있다.
그에 아울러 그녀는 프리 랜서 아나운서 출신 수필가 겸 연기자 [[김경화]]와 영화배우 겸 연기자 [[손예진]]의 [[정화여자고등학교|정화여고]] 선배이기도 하고 그녀의 막내아들 조상우 君은 가수 [[송유빈]] 君, 가수 [[태하 (1998년)|김태하]] 羊, 연기자 [[신동우 (배우)|신동우]] 君, 연기자 [[박종혁]] 君 등과 한림예고 동기이기도 하다.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86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명여자중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김기창 (법학자) . . . . 15회 일치
|직업 = 법학자, 변호사, 대학 교수, 저술가
|배우자 =
|자녀 =
'''김기창'''([[1963년]] [[1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변호사]]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인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8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1985년]]에 학사 학위하였고, 그 후 1985년 9월부터 1986년 6월까지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 재학하여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88년 3월에 제19기로 [[사법 연수원]]에 입소하였으며, 1990년 3월부터 9월까지 세방 종합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재직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1994년 7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퀸즈 컬리지에 재학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년 10월부터 1997년 9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퀸즈 컬리지에서 전임 연구 교원으로, 1997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셀윈 컬리지에서 전임 강사로, 2000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노튼로즈 기금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3년 3월부터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행정 심판 위원을 역임한 바가 있고,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하여 《서해안기름유출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였다. 2008년 10월에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에 대한 형사 소송 사건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고, 2009년 6월에는 [[2009년 대한민국의 시국 선언|법률가 시국 선언]]에 참여하였다.
* 청약의 구속력과 계약자유, 比較私法 12卷 1號, 韓國比較私法學會, 2005.03
* 자주점유의 기원과 종말, 法史學硏究 38號, 韓國法史學會, 2008.10
*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킹: 소수자의 견해를 알리는 수단으로서", 한국법사회학회 연구모임회: 정보민주화와 인권, 2007.10.20
* 자주점유의 기원과 종말, 한국법사학회 제84회 정례학술대회: 서양법사의 쟁점들, 2008.6.28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시카고 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표현의 자유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
- 김도균 . . . . 15회 일치
[[분류:한국 남가수]][[분류:기타리스트]][[분류:1964년 출생]][[분류:남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6년 데뷔]][[분류:불타는 청춘의 역대 출연자]]
흔히 대중들에게 [[부활(밴드)|부활]]의 [[김태원(음악인)|김태원]], [[시나위(밴드)|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한국 3대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과거에는 속주로 [[신대철]]과 자웅을 겨루던 인물. --물론 알고보면 은둔고수도 많지만--
[[잉베이 말름스틴]]을 특히 좋아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속주를 연습하게 되었다고 하며, 바로크 클래식음악과 메탈을 융합한 [[네오 클래시컬 메탈]]처럼 국악과 메탈을 결합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실제로 산조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국악 곡을 일렉기타로 커버하기도 했다. 국악과 메탈의 융합은 김도균뿐만 아니라 한국 락 뮤지션들 사이에서 자주 시도했던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결과물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Oathean]]이라는 최악의 결과물이 나온 이상 더 이상은 무리--
음악을 만들 때는 여러 대의 전자기기를 두고 디지털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한다. 이펙터는 다른 전자기기 없이 매우 간단하게 쓰는데, 오버드라이브/볼륨 부스터/코러스/딜레이가 전부. [[마샬 앰프]]의 드라이브톤을 극대화시키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보기와는 달리 독실한 [[개신교]]([[장로회]]) 신자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산돌선교교회 집사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고, 자신의 앨범에 다수의 성가곡을 작곡하여 수록했으며, [[https://www.youtube.com/watch?v=e7EQAJUZ3aU|인터넷 기독교 TV방송인 RUTC TV의 '예능']]을 비롯한 다수의 기독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2011년 MBC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 출연하여 자가용으로 [[현대 엑센트|1994년식 엑센트]]를 타고 다니며 동네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본인은 락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평범하게 산다는걸 보여주려는 의도였으나 방송에서는 '''락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힘들게 살고있다'''는 듯이 편집되어 불쾌했다고 한다. 원래 좋아하는 메뉴인지 2013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에도 김치볶음밥으로 외식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식사는 방송이 없는 날 아침에만 외식을 하고 그 외에는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편의점 애용을 뛰어넘어 '''편의점이 김도균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편의점을 자주 간다. 가까이에 마트가 없어서 멀리 가지 않고 집 앞 [[GS25]]에서 모든 생활용품을 구입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GS25의 CF를 찍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7RdGFK3YRU|#]]
||<:>15.11.13.||<:>MBC 능력자들||<)>863,251||<)>||
15년 11월 21일 방송된 [[채널A]] '잘 살아보세'에서 898,411포인트였던것을 22,260포인트를 사용한 후 876,151포인트에서 다시 모았다가, 2016년 5월 10일 방송된 [[불타는 청춘]]에서 출연자와 스태프들을 위해 자그마치 20만 포인트를 사용한 뒤 다시 모은 것이다. 2+1,1+1 상품을 사서 하나만 받아가고 나만의 냉장고 어플리케이션에 적립해뒀던 것까지 끌어다 썼는데 이것도 20만원 상당이었다고 한다. 적립률을 1%로만 잡아도 편의점에서 약 1억원 이상을 쓴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 포인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혼자산다]] 출연 조건으로 집 청소해주기를 걸었었는데 그 이후 약 3년간 청소를 안한 게 이정도의 상태라고 하니 예전엔 완전 폐가급이었을 듯....... MC들이 먼지 소굴에 경악을 하자 김도균은 먼지가 눈처럼 아름답게 쌓여있지 않냐며 몰래 왕 먼지를 가구 밑으로 밀어넣었다. --청소를 하세요!!--
- 김성민 (1991년) . . . . 15회 일치
| 형제자매 = 형 1명
'''김성민'''([[1991년]] [[2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이다.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짝 (드라마)|짝]]》의 단역으로 아역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다. 이후 [[1996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슈팅 (드라마)|슈팅]]》에서 유년기 김영웅 역으로 출연하였고 [[1998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김성은 (1991년)|김성은]]이 출연한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김의찬 역을 맡았으며, [[2001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전성초]]가 출연한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요정 컴미]]》에 출연하였고, [[2002년]] 《[[태양인 이제마]]》에 아역 출연하였다. 1994년 데뷔한 이후 최근까지 간간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이반호의 적자 제준
| [[감자별2013QR3]]
* 2002년 《장보고 장군과 해상 제국》 ... [[김안 (신라)|왕태자 김안]] 역(조연)
* 2003년 《이괄과 흥안군》 ... [[소현세자|원자 이왕]] 역(단역)
* [[1999년]] [[기아자동차]] 카렌스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
- 김정재 . . . . 15회 일치
||<bgcolor=pink> '''{{{#0C0C0C 학력}}}''' ||<(><bgcolor=#F6EDF8> [[포항여자고등학교]][br][[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br][[미국]] 프랭클린피어스대학교 법학 박사 ||
||<bgcolor=pink> '''{{{#0C0C0C 소속 정당}}}''' ||<(><bgcolor=#F6EDF8>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
||<bgcolor=pink> '''{{{#0C0C0C 약력}}}''' ||<(><bgcolor=#F6EDF8> 제20대 국회의원[br][[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br][[새누리당]] 부대변인[br][[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재선)[br][[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남자이름~~
1966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중앙초등학교, 동지여자중학교, [[포항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5회 지방선거 및 19대 총선으로 서울, 그것도 자신의 활동영역이던 서대문 지역에서는 보수정당으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듯 고향인 포항으로 지역기반을 바꾼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컷오프]]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5년까지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역임하였다.
자유한국당 원내 대책회의에서 "[[안경환]]건 계속요. 집요하게. 오늘은 그냥 [[조국(인물)|조국]] 조지면서 떠드는 날입니다”, "[[문정인]]. [[무슬림]]인지. [[반미]] 생각 가진 사람이 특보라니”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은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논란이 되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99574.html|#]]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김지훈(배우) . . . . 15회 일치
주로 주말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이상우]]와 더불어 주말드라마계의 황태자로 불린다.
[[JTBC]]의 예능 [[크라임씬 2]]와 [[크라임씬 3]]에서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크라임씬 2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범상치 않은 모습 ~~사카린쨩~~을 보여주었고 크라임씬 3에서는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크라임씬3/숙다방 살인사건|간첩]], [[크라임씬3/캠핑장 살인사건|고자]], [[크라임씬3/과학고 연쇄살인사건|탈모]], [[크라임씬3/호텔 살인사건|정신병자]] 등 독특한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출연 작품들을 보면 [[법조인]]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본인은 크라임씬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었다면서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 [[2015년]] ||<|2> KBS || [[드라마 스페셜]] - 웃기는 여자 || 오정우 || ||
|| [[2016년]] || [[우리 집에 사는 남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남자]] || 조동진 || ||
|| SBS || [[썸남썸녀]] || 출연자 ||
|| 2018년 || tvN ||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 || 게스트 ||
|| [[유리상자]] || 기억력 ||
||<|2> 2007년 ||<|2> [[KBS 연기대상]] || 남자 신인상 ||<|2> 며느리 전성시대 ||
|| 2013년 || [[SBS 연기대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결혼의 여신 ||
||<|3> 2014년 ||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3> 왔다! 장보리 ||
|| 제22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MBC 연기대상]]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상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남주역을 맡았다. 인조반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반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태를 합친다면 반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15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를 대신해 나타난 [[올마이트]]는 싸움을 말리며 바쿠고의 고민을 눈치채지 못한 점을 사과한다.
* 미도리야의 연속된 돌려차기를 바쿠고가 폭발로 밀어낸다. 이것도 바쿠고는 바로 앞에서 터뜨리려고 했지만 미도리야의 속도가 빨라서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안전하게 착지한 미도리야는 자세를 바로잡아 다시 달려든다.
* 미도리야는 감정이 격앙될 때, 특히 누굴가를 구해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입이 험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거 바쿠고를 은연 중에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바쿠고의 그런 면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미도리야 안에서 바쿠고는 "승리"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바쿠고의 행동을 따라해버리는 것이다.
돌격하던 미도리야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바쿠고는 공중전으로 가면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며 첫 킥을 막고 카운터를 넣을 작정으로 함께 뛰어오른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이 순간에도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방금 전 부딪힘으로 바쿠고는 풀카울 8%의 킥을 강하게 의식하게 됐다. 도약도 전부 이 점을 노린 계산.
바쿠고는 올마이트의 힘을 자기 걸로 삼고도 자신에게 졌다며 왜 졌냐고 미도리야에게 묻는다. 그때 이들을 말리는 목소리.
* 담임은 [[아이자와 쇼타]]를 대신해 [[올마이트]]가 나타났다. 놀라는 바쿠고에게 그 고민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바쿠고는 그런 올마이트에게 대체 왜 미도리야를 선택한 거냐고 질문한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는 힘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히어로였고 바쿠고는 강하고 이미 전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미도리야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 바쿠고는 자신도 올마이트처럼 강해지고 싶었지만 약했기 때문에 그를 그런 모습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올마이트는 자신은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일이 없었어도 이렇게 됐을 거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다시 한 번 바쿠고는 강하다고 말하며 단지 자신이 그 강함에 매달려서 부담을 준거라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긴 히어로 생활 끝에 정립한 자신의 지론을 밝힌다. 히어로는 바쿠고처럼 승리를 열망하는 마음과 미도리야처럼 남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 모두가 필요하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결여된다면 자신의 정의를 관철할 수 없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마음을 두려워한 바쿠고의 속내와 바쿠고를 동경했던 미도리야의 속내가 드러난 지금이라면 각자 깨달았을 거라고 말한다.
* 바쿠고는 올마이트의 말을 듣고 침묵 끝에 그런 말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고 대꾸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미도리야에게 "넌 가장 강한 사람이 레일을 깔아줬는데도 나에게 졌다"고 말한다. 미도리야는 부정하지 않지만 "네게 이길 수 있도록 강해지겠다"고 다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15회 일치
* [[토오가타 밀리오]]는 비록 미도리야가 웃기지는 못했지만 오타쿠 토크로 능숙하게 대화를 풀어나가자 한숨 돌린다.
* 나이트아이는 미도리야가 계승자에 걸맞지 않는다고 도발하고 미도리야는 각오를 새롭게 하며 다시금 공격한다.
* [[미도리야 이즈쿠]]의 [[올마이트]] 흉내는 오히려 [[서 나이트아이]]의 분노를 샀다. 경직된 표정으로 다가오는 나이트아이. 그는 미도리야의 개인기가 무슨 올마이트랑 닮았냐며 자신이 전 사이드 킥이라는걸 알고 행패를 부리는 거냐고 분노한다. 그리고 직접 미도리야의 얼굴을 뜯어고쳐가며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한다. 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마이트의 굿즈에 그런 주름이 들어간 적은 없으며 정확한 규격을 지키라고 한다.
물에 빠진 학생이 당황한 나머지 수질을 식초로 바꿔버렸는데, 무적의 올마이트로 식초에 잠수하는 바람에 눈이 따가워 눈을 묘하게 찡그렸다. 미도리야는 이때의 얼굴을 재현한 것이라 주장한다. 나이트아이는 자신을 그저그런 팬인줄 아냐고 대꾸하지만 분명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걸 알고 있고 그걸 화제로 신나게 오덕 토크를 한다.
비록 미도리야가 웃기는데는 실패했지만 대화를 잘 풀어나가자 [[토오가타 밀리오]]도 한숨 돌리며 나름대로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간지럼 형벌을 당하던 버블걸을 풀어준다.
그는 대체 자신이 미도리야를 고용해서 어떤 메리트가 있냐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는 그 강함과 유머로 세상에 희망을 주고 범죄로 겁게 질린 사람들을 도왔다. 그렇다면 미도리야는 사회에, 나이트아이의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나이트아이는 그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라며 채용시험을 제안한다. 그는 3분을 주면서 자신의 손에 있는 인감도장을 빼앗아 직접 서류에 찍어 보라고 제시한다. 그러면서 버블걸과 밀리오를 퇴실시킨다.
* 사무실에서 쫓겨난 버블걸은 밀리오 때는 이런 시험은 없지 않았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자신인 애초부터 지명을 받았으니까 그런 거라고 대답하면서도, 미도리야의 앞길이 캄캄하다고 걱정한다. 나이트아이의 "개성"이 있는한 달성하기 불가능한 퀘스트라는데.
* 나이트아이는 자신은 전혀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무슨 짓이든 해도 좋다고 제안한다. 미도리야는 시작부터 풀카울로 전력으로 달려든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면에서 달려드는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위로 날아올라 공격한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나이트아이는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공격을 피하며 여유를 부린다. 그렇게 1분이 경과한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침내 그는 미도리야의 마음 속까지 읽어낸다.
* 미도리야의 움직임이 정체되자 나이트아이는 미도리야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상징적인 힘을 계승받고도 몹시 범용한 인물이며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도리야는 원래 밀리오가 후계자 후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나이트아이는 지금도 올마이트를 경애하지만 후계자 건에 대해서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미도리야는 갑자기 듣게된 사실 때문에 혼란을 겪고 그 사이 시간을 흘러간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오래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있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나이트아이의 발언은 미도리야가 가슴 속에 접어놓고 있던 "너는 히어로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끄집어낸다. 투지가 끌어오른 미도리야는 "알아서 못피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자 힘을 끌어낸다.
- 남성진 . . . . 15회 일치
|배우자 = [[김용림 (1940년)|김용림]]
|자녀 = 남경목(아들)
|형제자매 = 누나 1명
'''남성진'''(南誠軫, [[본명]]: 남지헌, [[1969년]] [[12월 31일]] ~ )은 [[한국]]의 남자 [[배우]]이다.
* 1993년 [[SBS]] 월화드라마 《[[테마 시리즈]] - 아버지, 어느날 갑자기》
* 1994년 [[SBS]] 아침연속극 《[[성냥갑 속의 여자]]》 ... 민우 역
* 2001년 [[MBC]] 미니시리즈 《[[네 자매 이야기]]》
* 2012년 [[KBS2]]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국회의원 정치성 실종사건]]》 ... 이인자 역
* 2016년 [[EBS FM]] 《EBS 책 읽는 라디오 낭독 시리즈》 - 낭독자
* 2017년 리어왕 - 풍자 광대 역
{{각주}} [[악역 연기자]]
[[분류:영양 남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남양주시 출신]][[분류:1930년 태어남]]
- 류중일 . . . . 15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9년]] [[10월 20일]] <br />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류중일'''(柳仲逸, [[1963년]] [[음력 4월 28일|4월 2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감독]]이자, 현재 [[LG 트윈스]]의 감독이다.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 {{KBO 타자|87470}}
|전임자 = [[선동열]]
|후임자 = [[김한수 (야구인)|김한수]]
|전임자 = [[조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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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상자 묶음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 류씨]][[분류:영덕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LG 트윈스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마기/303화 . . . . 15회 일치
* 알리바바는 자신이 신드바드와 상회로서 라이벌이라는 말에 당황한다.
* '''신드바드는 알리바바가 바르바드의 왕족 자리를 버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자신은 과거에 '''왕족의 피를 부러워'''했는데, '''알리바바는 그걸 쉽게 버릴 수 있다고 부러워한다.'''
* 어쨌든 자신이 황제국의 재군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이유는 없다고 단언한다.
* '''혹은 모든 적을 쓰러뜨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거나.'''
* 신드바드는 장사치의 세상은 냉혹한 것이며 자신은 한 번의 실패로 노예신분까지 떨어져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 그 자리에 일던 일동은 자신들이 불과 3년 전 침략국으로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은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국들의 반응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 홍옥은 그 말이 맞다며 자신은 눈 앞의 빚을 갚는데만 급급하고 홍염을 따라하기만 했다고 인정한다.
* 홍명은 '''과거 군사력을 토대로 세계를 통일하고자 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며 스스로의 꿈을 품고 모두를 이끌어 달라고 당부한다.
* 그것은 '''마치 수건돌리기 게임처럼 승자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구조.'''
* "수건돌리기 게임"이란 표현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를 잘 나타낸 비유다.
* 302화에서는 마치 황제국이 흑색선전의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됐지만 이번 화에서는 자신들이 그런 취급이 타당함을 인정해서 우익논란에서 거리를 두었다.
- 마기/318화 . . . . 15회 일치
* 동맹국들은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무는 군인인데 이 자리에 와있는 걸 지적하는데 그는 퇴역해서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 그때 홍옥이 발언권을 청한다. 내빈을 맞이하고자 한다는데.
* 넉살 좋게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며 무의 옆자리에 앉는다.
* 연백룡이 이야기까지 올라오자 동맹국들은 "두 사람은 금속기를 탈취한 범죄자"라며 체포를 건의한다.
* 그러자 연홍옥이 끼어들어서 "백룡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며 뢰엠과 마찬가지로 국제동맹의 규정 밖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홍옥은 자리를 옮겨 뢰엠, 귀왜국과 자리를 같이한다.
* 홍옥이 거듭해서 탈퇴를 확인하자 회장은 경악에 휩쌓인다.
* 홍옥은 이대로 동맹에 속해 있으면 혜택을 받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의지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 노예제를 없앤 것이나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모두 "자신"의 의지이며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했다고 치부되긴 싫다고 말한다.
* 그녀는 자신의 나라를 자기 손으로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다면서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 "저는 자신의 의지로 당신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 마기/334화 . . . . 15회 일치
*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네르바 율리우스 가르아데스]]. 자신이 [[알리바바 사르쟈]]를 도와주겠다며 거들먹거린다. 그러나 정작 알리바바는 그가 누군지도 몰라 물어보는 지경이다.
* 그를 데려온 [[쥬다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대충 기억이 나는데. [[유난]]이 암흑대륙에서 알리바바를 구해줬을 때 이야기한 세 명의 수배자 중 한 명이다. 귀왜국의 [[야마토 타케루히코]]와 황제국의 [[연백룡]]의 뒤를 잇는 뢰엠의 금속기 사용자. 그는 본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등 기존 지도자들을 타도할 목적으로 금속기를 은닉한 채 반란을 도모하고 있었으나 그 거창한 설명과는 달리 철저히 존재감이 없이 살아왔다. 쥬다르의 설명으로는 일단 이 녀석도 타전을 해서 검은 루프를 쓸 수 있다는데.
* 어쨌든 동료가 추가되는건 반가운 일이라 알리바바가 악수를 청하는데, 네르바는 무례한 태도로 거부한다. 자기는 장차 위대한 황제가 될 텐데 소시민인 알리바바가 격의 없이 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쥬다르를 "나의 검은 마기"라 부르며 친한척한다, 정작 쥬다르는 무시로 일관한다. 자기는 네르바의 마기가 아니라는데.
* 알리바바가 추궁하자 쥬다르는 간단히 인정한다. 그때는 이런 녀석 말고는 전쟁하겠다고 설치는 놈이 없었고 백룡의 행방도 찾지 못해서 대충 '''타협한'' 거였다고. 네르바가 그 말을 듣고 분개하며 털어놓은 말에 따르면 처음엔 좀 치켜세워졌지만, 금방 싫증을 내서 결국 아무 도움도 안 됐다. 갑자기 무관심해지더니 집에 간다고 사라지질 않나, 나중에 나타나서는 "쓸데없는 혁명 놀이 보단 우리 고향에서 농사나 지어라"면서 납치, 부하들과 함께 쥬다르네 고향에서 머슴으로 부려졌다.
* 그래도 자초지종을 들은 알라딘은 네르바가 매그노슈타트 사건 때도 얼굴을 비춘 일을 기억해준다. 알리바바는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왜 인상이 안 남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쥬다르는 그게 다 네르바가 약해서 그렇다며 아직도 전신마장을 못하는 신세임을 까발린다. 그래도 알라딘이 게이트를 지키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하자 네르바는 다시 기세등등해져서 큰소리쳐댄다. 하지만 일행 중 누구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아쉽게나마 준비가 끝나자 알라딘이 성궁으로 가는 게이트를 연다. 알라딘의 마법진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마고이가 방출되더니 상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진다. 알라딘은 지금부터 루프의 세상으로 돌입한다고 경고한다.
* 알라딘은 그 말을 듣고 "그러고 보면 기묘한 인연"이라며 이렇게 네 명이 손을 잡고 싸우러 갈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쥬다르는 "손을 잡았다"는 표현에 딴죽을 걸며 "손 잡은거 아니고 난 아직도 너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그러자 백룡이 말한다.
* 알리바바가 말하자 백룡은 "살아서 돌아온다면"이라고 토를 단다. 알리바바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자며 어떻게 될진 몰라도 "근사한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라고 다짐한다.
백룡과 알리바바가 전신마장을 마친다. 알리바바의 가자는 말과 함께, 네 사람은 힘차게 성궁으로 가는 게이트에 돌입한다.
- 마츠자카소 . . . . 15회 일치
[[일본]] [[미에 현]] 중부의 마츠자카 시(松阪市)를 중심으로 하여, 마츠자카소 협의회(松阪牛協議会)에서 관리하여 생산하는 [[소]]의 브랜드. 코베소(神戸牛),오우미소(近江牛)와 함께 일본 3대 화우(和牛,와규)로 이름이 높다.
본래 [[에도 시대]]까지 일본에서 소는 [[농업]]용으로만 길러졌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소고기를 먹게 되었고, 이때부터 마츠자카 지방은 육우의 산지로 유명해졌다. 1958년에 마츠자카 육우협회가 창설되었으며, 1974년 부터 소 한마리를 개체 단위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 2008년 11월에는 소 일러스트와 마츠자카를 조합한 상표가 2001년 9월에 등록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 2009년 3월에 마츠자카시 차원의 문제가 되었는데, 2004년 2월 24일 푸젠성의 한 식품회사가 송판(松阪)이라는 상표를 신청하여, 2008년 12월 20일 중국 상표국이 공고하였다. 마츠자카시에서는 2009년 3월 3일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를 통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시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할 계획도 발표했다.
* 2010년 5월 12일 발표에 따르면, 2006년에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는 마츠자카육(松阪肉), 마츠자카소(松阪牛) 등으로 중국에서 상표 출원을 하였으나, 중국 국가상표국에서는 '이미 2001년 9월 마츠자카 문자와 소의 얼굴 일러스트로 상표가 등록되어 있음', '마츠자카소는 일반적인 식재료 명칭', '마츠자카는 외국의 지명'이라는 3가지 이유로 출원을 기각하였다.
- 무협/용어 . . . . 15회 일치
* 과잉 한자어 : 무협 장르에서는 굳이 한자어로 쓸 필요가 없는 것도 한자어로 쓰는 경향을 보인다.
* 독자적인 조어 : 과잉 한자어, 관용적인 조어를 넘어서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쓰이지 않고, (주로 한국의) 무협소설에서만 쓰이는 단어'.
초창기 무협 번역에서는 '장풍'을 '손바람'으로 번역하는 등, 고유어 번역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협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고유어 번역은 오히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무협 번역에서 전문적인 작가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화교]] 등 아마추어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출판사가 영세화 되면서 번역의 품질이 나빠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어의 영향이 과도하게 들어간 일종의 '중국어 번역체'가 남발되게 되었고, 이를 무협 장르의 독자나 후발 작가들이 학습하면서 중국어 번역체의 영향을 받은 장르 고유의 문체가 형성되었다.
* 웅후(雄厚) : (인력,물자,자원,재력 등이) '풍부하다'는 의미. 무협소설에서는 보통 [[내공]]에 대해서 내공이 웅후하다, 웅후한 내공 등의 표현을 쓴다.
* 음양인(陰陽人) : '남녀 양성을 모두 가진 자'라는 의미. 중국어에서는 속칭으로 쓰이는 말이며, 보다 일반적인 호칭은 쌍성인(雙性人)이다.
=== 과잉 한자어 ===
* 본좌 : 광오한 자의 1인칭으로 사용된다.
* 관후(寬厚) : 너그럽다는 뜻. 일단 한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으나, 일상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어이다.
=== 독자적인 조어 ===
* 무복(武服) : 무림인(武林人)이 입는 옷을 무복이라 부른다. 하지만 독자적인 조어에 가까우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본래 중국에는 특별히 무술인을 위한 복장이 있는게 아니었으며 일반인이 입는 것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소림사의 경우 특유한 무승복(武僧服)이 있거나, 도가 문파의 경우 도복(道服)을 입지만 종교에 관련된 복장이지 무술을 위한 복장이 아니다.
* 애병(愛兵) : 애용(愛用)하는 병기(兵器)라는 의미. 한국 무협소설 이외에는 이러한 단어가 쓰이지 않는다. 중국 고전에는 [[손자병법]]과 관련하여 애병총화(愛兵總和)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애용하는 병장기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병사]]들을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 미래소년 코난 . . . . 15회 일치
SF [[애니메이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감독 작품이다. NHK에서는 처음 방영한 셀 애니메이션. 화수는 총 26화. 1978년 방송.
서기 2008년 7월, [[핵무기]] 이상의 힘을 지닌 초자력무기가 이용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해 문명은 멸망하고, 대부분의 대륙이 가라앉았다. 세월이 흐른 이후, 코난은 남겨진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코난은 라나라는 소녀와 만나게 된다. 라나는 뛰어난 과학자인 라오 박사의 손녀였으며, 박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라나를 쫓는 자들의 습격이 계기가 되어 코난의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라나는 끌려가버린다. 코난은 라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데….
원작이 있다. 알렉산더 케이의 SF소설인 <The Incredible Tide>. 이 소설은 이후 일본에 '남겨진 자들'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고 한다.
일단 기본적 줄거리의 토대, 등장인물의 이름 등의 공통점은 있으나 해당 소설과 미래소년 코난은 차이점이 있다. 극중 인물들의 역할과 비중이라던가. 주인공 코난은 나이대가 달라진데다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발가락 힘이 애니메이션에서 생긴 것이다. 이는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폭 수정했기 때문인데 소설을 읽어본 미야자키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시청자가 될 아이들에게 소설 내용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에 꺼렸다고 한다. 그래서 인물 설정과 줄거리의 대폭 수정을 조건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래도 소설에 나왔던 것들이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온 것을 보면 아무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 26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청자들 중에는 그 이상의 장편이었다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 KBS에서 몇번이나 재방송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후에 --달랑-- 26화인 것에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 1979년에 애니를 편집한 극장판이 개봉했으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참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달라진 엔딩, 달라진 의도 탓에 평은… 이후 1984년에 미야자키는 극장판 '거대 기간트의 부활'을 직접 내놓았다.
* <[[미래소년 코난II 타이가 어드벤처]](未来少年コナンII タイガアドベンチャー)>라는 것이 있다.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의 연출, 콘티에 참여했던 하야카와 케이지. 1999년에 방영했으며 화수는 24화. 내용은 초자력병기 등의 일부 단어는 공통되나 그외에는 미래소년 코난과 아무런 관계 없다.
* 1983년 1월에 국내에 '미래소년 쿤타-버뮤다 5000년'이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왔는데 많은 의미에서 미래소년 코난을 참고한 것이 보인다. 심지어 성우 배치까지. 좀 웃기는건 중반부부터 [[거대로봇물]]이 된다. 실제 포스터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쿤타가 원시소년이므로 모션 트레이싱 하는 방식이다.) 일단 이 미래소년 쿤타는 과거 한희작 원작의 '신세계 소년 디노'의 애니화인데 이 디노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신세계 소년 디노의 내용은 주인공 디노는 이로 물어서 쇠사슬을 끊을 정도로 무는 힘이 센 원시소년이며 인공지능 로봇과 손잡고 다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디노가 대항한다는 이야기다.
- 박동진 (1922년) . . . . 15회 일치
19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 영국 참사관, 외무부차관, 주 월남 대사, 주 브라질 대사(1962년 10월~1968 2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2100329201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21&officeId=00032&pageNo=1&printNo=5173&publishType=00020 브라질 大使에 朴東鎭氏]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最高會議 第63次 常任委員會는 21日 越南共和國駐箚大使 朴東鎭氏를 「브라질」合衆國特命全權大使로,...”--></ref><ref>{{서적 인용 |저자 = 외교통상부 |제목 = 한국 외교 60년 |url = 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장 = 부록 |확인날짜 = 2015년 2월 21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11841/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보존날짜 = 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 = 예 }}</ref>{{Rp|496}}, 페루 겸임대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429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3079&publishType=00020 朴東鎭브라질大使 駐『페루』大使兼任]〉 《동아일보》(1964년 4월 29일) 1면 <!--“政府는 駐「브라질」大使朴東鎭씨를 駐「페루」大使도 겸임토록 28일하오 國務會議에서 議決했다.”--></ref>, 주 제네바 대사, 주 유엔 대사,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11대.12대), [[대한민국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외무부장관으로서, 1976년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19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19&officeId=00032&pageNo=1&printNo=9377&publishType=00020 |제목= 貿易強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출판사 = 경향신문 | 날짜 = 1976-03-19 |인용문=<!--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상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 }}</ref> 1988년 4월 22일 한국 정부는 박동진을 주미대사에 임명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22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4-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477&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 朴東鎭씨| 날짜 = 1988-04-22| 출판사 = 동아일보}}</ref> 박동진은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으나, 주미대사로 부임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정당 전국구 예비후보 11번인 김종열이 5월 13일자로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김재순 (정치인)|김재순]](10대 정무차관)<br/>[[이수영 (1921년)|이수영]](10대 사무차관)
|후임자 = [[이원경]]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신상철 (1924년)|신상철]]
|전임자 = [[김동조]]
|후임자 = [[노신영]]
|전임자 = [[이세기]]
|후임자 = [[허문도]]
|전임자 = [[김경원 (1936년)|김경원]]
|후임자 = [[현홍주]]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박상철(가수) . . . . 15회 일치
[[전국노래자랑]]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 이전에 [[미용사]][* [[강원도]] [[삼척시]] 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을 차렸으나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미용사는 그만뒀지만 현재까지도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은 존재한다. 또한 이발은 잘 못했다. ~~[[장롱면허]]?~~], 단역 [[배우]] 등을 하다가 [[1993년]] [[7월 25일]]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1993년]] [[7월 25일]] [[전국 노래자랑]] [[삼척시]] 편에 출연한 박상철. 부른 노래는 '화려한 날은 가고' 였다.
과거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온 적이 있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2&aid=0000012948|링크]] 나중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8년#s-3|2018년 1월 21일자 800화 특집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카메오]] 출연하였다. mbn의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146회에도 출연했다.
* 자옥아(2001) : 잘 들어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1박 2일]] 시즌 1에서 연기자vs스태프의 노래대결을 할 때 잠시 [[노래]]가 나온다. 스태프측에서 부르며, 부르는 사람은 막내작가 김대주. 굉장히 맛깔나게 잘 부르고 연기자측의 가수인 --[[MC몽]]--과 [[김C]]가 감탄하며 놀랄 정도, [[강호동]]도 멍때릴 정도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j3Yl_ilv4&t=3737s|한 번 들어보자]]. [[오마이걸]]의 [[승희(오마이걸)|현승희]]는 [[전국노래자랑]] [[인제군]] 편에 참가, 이 곡을 불러서 우수상을 받았다.
* 무조건(2005) : 사원급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 개사해서 부른다. ~~부장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2008년에 1박2일 시즌1 경남 [[거창]]편에서 1박2일팀이 전국 노래자랑 출전곡으로 이 곡을 불렀다. [[일본]]의 탤런트 카와사키 마요가 이 곡을 2015년에 [[리메이크]]했다.
* 빵빵(2010): [[인터넷 방송인]] [[공혁준]]이 방송에서 자주 틀어서 통칭 혁국가로 불린다.
* 항구의 남자(2015): 곡 자체는 [[2015년]]에 만들어졌으나, 정식 음원은 [[2016년]] 7월에 발매되었다.
- 박세직 . . . . 15회 일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33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
[[육군사관학교]] 제12기 출신이다. [[박희도]][*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으며, 1985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박준병]][*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으며, 이후 국군보안사령관과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소속)을 지냈다.]과 함께 [[하나회]] 회원이었다. 그리고 박희도, 박준병, 박세직 등을 가리켜 '''쓰리 박'''이라고 하였다.
1980년 보병 제3사단 사단장을 역임하다가 그 해 8월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에서 예편하여 대통령이 되고 제8대 수도경비사령관이던 [[노태우]]가 국군보안사령관이 되자 노태우의 뒤를 이어 제9대 수도경비사령관(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냈다. 이 때까지는 잘 나가는 듯 하였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1985년 2월 노신영 내각이 출범하자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86년 제4대 체육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제24회 [[1988 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부터, 민주정의당 내에서는 대권주자로 발돋움 할 뻔 했으나 조직을 모으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3당 합당]] 이후에는 더이상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신한국당]] 공천후보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재홍(1941)|박재홍]]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1998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부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구미) || '''[[민주자유당]]''' || '''59,098(72.89%)''' || '''당선 (1위)''' || ||
- 박창달 . . . . 15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한국자유총연맹]] 역대 총재'''||
||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제 11,12,13대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새누리당 국책자문위 정세분석위원장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26번으로 출마하였지만 너무 순번이 뒤쪽에 있어서 당연히 낙선...했는데 임기 다 끝나가는 2000년 3월에 현역 [[윤원중]]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승계, 3달짜리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물론 15대 국회 막바지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문제는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2004년 5월'''에 사퇴하여 '''임기가 1달도 안되는 의원'''이 탄생하여 다시 문제제기되었고, 이후 잔여임기가 얼마 안남은 비례대표 의원이 자격을 상실 혹은 사퇴할 경우에는 승계하지 않도록 법이 바뀐다.] 대신 16대 총선에서 안정권인 15번을 받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탄핵역풍 속에서도 자신이 영입한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텃밭 대구 동 을 지역구 공천을 받아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 반여만에 의원직 상실 크리.(...) 그리고 그의 지역구는 바로 [[유승민]]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지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났다.(...) 사면복권되기 전에는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후보 및 유세단 경호 등에 참여했다.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3선 의원이지만 실제 수행임기는 6년이 채 안된다. 온전히 4년 임기를 수행한건 16대뿐이고, 15대는 3개월, 17대는 1년 3개월이다.(...) 그나마 17대는 공직선거법으로 당선 자체가 무효된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자면 선수로 쳐줄수도 없다.[* 물론 언론 등에선 정치인들이 당선무효가 된 선수도 그냥 포함시켜 카운팅해주기는 한다.]
[[늘푸른한국당]] 대구시당위원장을 맡았다. --분명히 [[박근혜]]를 입문시키긴 했는데다가 '''자유총연맹 회장'''까지 한 사람이 요즘 단톡방에서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까는 유머물을 재밌어하며 많이 올리신다.-- 그러나 늘푸른한국당이 해산되면서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박휘순 . . . . 15회 일치
** 《꽃보다 남자》
** 《부자유친》
*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저를 뽑아주시면 전남 영광입니다! 굴비세트 <참가자>
* 《그 남자의 책 198쪽》
* 《판타스틱 자살소동》
* [[2012년]] [[SBS]]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카메오 출연
* 《[[세 번 결혼하는 여자]]》
* [[2005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신인상
| 제목 =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신인상》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동남보건대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수원시 출신]][[분류:1977년 태어남]][[분류:200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상주 박씨]]
- 박희부 . . . . 15회 일치
1938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서 태어났다. [[천안중학교]], [[경기공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4.19 혁명]], [[6.3 항쟁]]에 참여하며 구속되기도 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구|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민주한국당]] [[유한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이인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합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에서 원내부총무를 임명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김고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한보그룹 비리로 구속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정치인)|정진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후보 [[경선]]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이해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덕룡]], [[문정수]], [[심완구]], [[강삼재]], [[이신범]], [[김정수(정치인)|김정수]], [[최기선]] 등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정치경력은 분명 원로급이지만 총 7차례의 총선 출마 중 당선은 1번, 그것도 14대 총선에서 공천에서 떨어지자 충청도서 비교적 약진한 통일국민당에 입당한 덕분이었다. 이는 상도동계 주류가 PK, 일부가 수도권에 기반한 것과 달리 고향 출마를 고집한 덕분이었다. 그는 7차례의 총선을 모두 고향 연기군(세종시도 연기군의 후신이니...)에서 출마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연기) || '''[[통일국민당]]''' || '''22,305 (49.13%)''' || '''당선 (1위)''' || 1992년 탈당[br][[민주자유당]] 입당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19화 . . . . 15회 일치
* K팀은 [[락 볼티어]], [[클라우스 류넷]]과 [[푸리 엔젤]]이라는 묘하게 텐션 높은 여자 마법기사의 조합.
* 상대팀은 은익의 참수리 출신 "로브 비테스"라는 바람의 마도사가 강자로 평가된다.
* [[릴 부아모르티에]]는 어리숙한 첫인상과 달리 분명 단장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팀의 총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대측의 두 마법기사를 간단히 제압, 손쉽게 I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동료들도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이 없어졌지만, 정작 그는 방금 전 "한 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회화 마법은 시합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으나 그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며 반성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시합에 집중해주질 바랐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집사 "발터"는 이런 태도 조차도 "도련님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거다"고 이 또한 그의 재능이라고 포장한다. 어리숙한 걸론 안 빠지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었다.
>다들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자고!
* 상대팀도 만만치 않았다. 상대팀 리더는 6회전에서 가장 주목할 선수로 꼽히는 "로브 비테스"였다. 은익의 참수리 소속 2등 상급 마법기사였다. 높은 기동성을 자랑하는 바람 마도사. 그 명성대로 날카로워 보였다.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태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백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클라우스의 새로운 강철마법 "선관의 열창". 적을 분쇄하는 거대한 드릴형태의 창이었다. 상대의 마법을 분쇄하고 쾌진격하는 클라우스. 락도 그의 강함을 인정하고 "시합이 끝나면 따로 붙자"고 깐죽거렸다.
* 클라우스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요주의 인물, 로브 비테스의 등장이다. 크리스탈 위치를 이동시킨 그가 중앙의 난타전에 끼어들었다. 크리스탈은 가까운 거리지만 적의 세 마도사가 그 앞에 빈틈없이 배치됐다. 클라우스는 이 셋을 돌파하고 단숨에 크리스탈을 파괴하자고 제안했다. 락은 물론 사양하지 않았다. 그때, K팀도 중앙에서 거리를 두고 있던 세 번째 팀원이 달려왔다. 푸리 엔젤이었다. 그녀는 "날개 마법" 구사자. 날개로 마음껏 비행이 가능한 우수한 마법이다. 둘의 선전을 "멋지다"고 칭찬한 그녀는 자군의 크리스탈을 들고 높이 날아오른다. 날개 마법 "엔젤 플래핑". 넓게 펼쳐진 날개에서 깃털의 폭풍우가 뿌려진다. 이 기술은 적에겐 시야를 가리고 진격을 방해하는 공격을, 아군에겐 진로를 열고 목표를 추격을 바람을 뿌려주는 마법이었다. 적들이 휘날리는 깃털에 시야와 발이 묶인 사이, 클라우스가 강철로 된 발판을 생성한다. 락이 이것을 밟고 뛰어올라 빠른 속도로 적의 크리스탈로 향한다.
>좀 더 해보자고.
- 블랙 클로버/133화 . . . . 15회 일치
*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릴 부아모르티에]]의 승부를 끝으로 로얄 나이츠 선발 시합 종료. 최종 승자는 유노, [[노엘 실버]], [[엔 링가드]]의 I팀. [[잭스 류그너]]는 대회 종료 후 조용히 사라지려 했지만 마법제 율리우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마법제는 잭스의 재능이 필요하고 분명 선발에 합격할 것이니 부디 로얄 나이츠에서 힘써 달라 당부하는데, 잭스는 자신은 잭스 본인도 뭣도 아니라고 거절하려 한다. 하지만 마법제는 "자네도 원래는 마법기사"임을 지적하며 그의 아버지의 일을 언급한다. 마법제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층민이지만 뛰어난 마법기사였고 그 같은 인물이 좀 더 평가받을 수 있도록 별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그런 사실을 언급하면서 지도자들의 불찰로 그가 다른 길을 걷게되긴 했지만, 이쯤에서 자기 단의 로브를 걸치고 복귀함이 어떻냐고 묻는다. 잭스는 마법제의 말대로 어떤 "맛이 간 단장"에게 로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그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제의 권유에 대해서도 "나는 지나가던 되다만 슈퍼 마도사일 뿐"이라며 사라진다.
* 한편 불완전연소로 대회를 마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멍한 상태로 검은 폭우단 아지트에 방치돼 있다. 유노가 새로운 힘에 각성한 것이나 잭스가 실제론 사칭이었던 것, [[핀랄 룰러케이트]]의 용태 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챠미 퍼밋슨]]도 유노에 대한 상사병이 도져서 멍하지만 밥은 잘 먹고 있다. 노엘이나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는 서로 자기야 말로 로얄 나이츠로 선발될 거라며 티격태격한다. 핀랄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중환자.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랜길드 보드]]는 연행. 노엘은 그가 막판에 발휘했던 수상한 마력을 찜찜해한다.
* 그러던 차에 불청객이 나타난다. 마나스킨 수업을 시켜주엇던 누님레온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다짜고짜 처들어왔다. 일단 문부터 다 때려부수면서 들어오더니 공습경보를 발동한 [[야미 스케히로]]에게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을 간병해준 보답"이라며 독한 술을 선물한다. 야미는 제대로된 물건일 리가 없다며 난색. 하지만 그녀의 진짜 용건은 로얄 나이츠 합격자들을 연행(?)하기 위해서. 직접 아스타, 노엘, 락을 붙잡아 데려간다. 매그너는 아무래도 떨어진 모양. 그런데 딱 한 명, 이 자리에 없지만 검은 폭우엔 합격자가 더 있다고 하는데.
* 그리고 잠시 뒤. 로얄 나이츠 합격자가 전원 왕도에 모였다. 유노, [[미모사 버밀리온]], [[클라우스 류넷]], 링가드, [[푸리 엔젤]] 등이 합격자로 얼굴을 비췄다. 메레오레오나는 로얄 나이츠 단장으로써 단원들 앞에서 취임사를 했다. 그런데 전원 집합을 걸엇는데도 여전히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며, 얕보는 거냐고 중얼거리는데. 그때 누군가가 "늦었다"며 뛰어든다. 메레오레오나는 다짜고짜 공격마법으로 제재를 가하는데 그 단원은 간단하게 그걸 막아낸다. 마지막 합격자는 자로 잭스 류그너, 아니 [[조라 이데아레]]. 그는 경악하는 아스타, 노엘, 락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과 "검은 폭우 선배"라는 사실을 밝힌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15회 일치
* 이들은 다이아몬드 왕국의 망명자들도 검은 폭우에 신세를 졌던 인물들.
* 마녀의 숲은 그 자체가 강마지대이며 매우 위험한 지역이지만 이들은 아스타에게 보은하기 위해 마녀의 나라로 향하기로 한다.
* 다 쓰러져 가는 것 같은데 의외로 거주자는 있었다.
* 인기척은 있는데 얼른 문이 열리지 않자, 성질 급한 노엘이 무작정 문을 여는데.
*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물세례를 쏟아붇는 노엘.
* 흑발의 여성은 마리엘라. 젤의 제자이다. 상당한 독설가.
* 하지만 도미나는 자신의 고향인 "마녀의 숲", 그 중에서도 여왕의 마법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 마녀의 숲은 다이아몬드 왕국과 클로버 왕국의 경계에 걸친 지역. 자치지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은 전원 여성. 각각이 뛰어난 마법 소질을 가진 "마녀"들이다.
* 핀랄은 전원이 여자라는 말에 헉헉대다가 바네사를 떠올리고 "바네사씨도 마녀의 숲으로 간 건가?"라고 말한다.
* 본래 마녀의 숲엔 "마녀는 마녀의 숲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고 도미나나 바네사는 탈주자에 해당한다.
* 도미나는 여왕은 매우 끔찍한 존재이며 마녀의 숲은 자체가 강마지대이기도 하다고 경고하며 그런데도 갈 생각이냐고 묻는다.
* 젤은 자기 마누라는 자기가 지키겠다고 나서며 아스타에게 신세를 갚기 위해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 그런데 바네사는 "그딴 남자"(야미 스케히로)에게 홀려 이용만 당했다고 분노한다.
* 그녀는 자신이 돌아오길 바란다면 "고대해술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 블리치/698화 . . . . 15회 일치
* 차드는 복서가 돼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도전 중. 이치고와 친구들이 TV로 그 경기를 보고 있다.
* 카즈이가 그 구멍에 손을 집어넣자 소울 소사이어티에 있던 유하바하의 기운이 사라진다.
* 이치카는 카즈이에게 사신 견습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데, 그러자 카즈이는 "사신"이라며 사패장과 참백도를 갖춘 모습을 드러낸다.
* 한편 쿠치키 뱌쿠야는 루키아의 대장임명식이 끝나자 마자 유하바하의 잔재를 찾아 나선다.
* 의사가 되어 가업을 이은 이치고가 두 방문자를 맞이한다.
* 이시다도 가업을 이었으며 병원 옥상에서 혼자 차드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루키아는 벌써 호정 13대 수습이 됐다며 자랑하며 아이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데, 거기엔 아무도 없다.
* 보다 엄중하게 봉인되어 있지만 그 자신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 결국 이치고의 손에 베어진 유하바하는 자신의 야망이 깨어졌다고 한탄한다.
* 삶과 죽음 조차도 경계를 없애서 필멸자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 한 것이다.
* 카즈이도 자신을 소개한다. 사패장과 참백도를 소환하면서.
* 사신이고 명문가의 자손인 이치카는 사신 견습인데 평범한 인간의 자식인 카즈이는 이미 사신이다.--금수저를 뛰어넘은 금수저--
- 서훈 (1942년) . . . . 15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절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영남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에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대한민국 제13대 총선|13대 총선]]에서는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대한민국 제14대 총선|14대 총선]]에서는 [[통일국민당]] 공천으로 출마해 낙선했으나, [[1993년]] [[문민정부]] 초기에 [[공직자 재산공개]]로 [[박준규 (1925년)|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민주자유당]] [[노동일]] 후보에 신승하면서 국회에 입성한다. 당시 지역감정이 억세기로 소문난 대구 지역 유일의 무소속 당선자여서 화제를 모았고, 자전거를 타고 국회에 출근하며 타 국회의원들이 언급하기 꺼려하는 국정사항에 대해 과감하게 질의하는 등의 소신 행보로 화제를 모은다.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제15대 총선|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2000년]]의 [[대한민국 제16대 총선|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신청했으나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총재의 비토론자였다는 이유로 낙천되었고, 이 후 [[김윤환 (1932년)|김윤환]]을 따라 [[민주국민당 (2000년)|민주국민당]]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제14대 총선]]||[[대구 동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동구 을)]]||14대||[[통일국민당 (대한민국)|통일국민당]]||{{막대|자민|4|2|5|9}} 42.59%||29,843표||2위||낙선
== 참고 자료 ==
|전임자 = [[박준규 (1925년)|박준규]]
|후임자 = (대구 동구 갑)[[김복동 (1933년)|김복동]]<br/>(대구 동구 을)서훈
|전임자 = (대구 동구 갑)[[김복동 (1933년)|김복동]]<br/>(대구 동구 을)서훈
|후임자 = (대구 동구)[[강신성일]]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영남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손전 . . . . 15회 일치
|직업 = 연극배우 <br /> 영화배우 <br /> 연극연출가 <br /> 영화감독 <br /> 영화제작자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제작자]], [[영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 졸업
* 《[[악마의 제자들]]》
* 《[[종자골]]》
* 《[[0점하의 자식들]]》
* 《여자의 열쇠》(1963)
[[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 배우]][[분류:1932년 데뷔]][[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10년 태어남]][[분류:1999년 죽음]][[분류:밀양 손씨]][[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
- 식객 . . . . 15회 일치
중국사의 식객이란, 귀족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 대신에 자신의 '재주'[* 학문이나 무예는 물론, '계명구도'의 일화에서 나오듯이 개나 닭 소리를 흉내내는 특이한 재주까지 있었다.]를 팔아서 주인에게 도움을 주는 '손님'을 뜻했다. 즉 공식적으로 종속 관계인 하인&고용인과 달리 상하관계가 자유로웠다. 본인에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의 집에 찾아온 '객(손님)'이니만큼 항상 대접을 해주었던 걸로 추측된다. 본래 어느 문화권이든 사회 고위층은 '손님'을 우대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서 발전하여 손님을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세력을 모으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식객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사람을 주인이 보호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식객은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의 분쟁에서 주요한 전력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뛰어난 실력을 살려서 일종의 [[사병]](私兵)이 되거나 주인의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주인이 살해되면 식객이 [[복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서양 유력자들이 평민이나 해방노예들을 거느리고 세력을 형성하던 것과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느슨한 관계라서 주인이 실각하여 힘을 잃거나 하면 미련없이 떠나거나 다른 집에 식객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많았다.
맹상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백명의 식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식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식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식객이 복수를 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초기에 조양자[* 위씨, 한씨와 함께 진(晉)나라를 3등분하여 '조, 위, 한' 중 조나라를 건국한 인물.]에게 패사(敗死)한 지백의 식객 '예양'의 사례[* 조양자를 시해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붙잡히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길 원한다고 말해 원을 풀고 자결한다. 공교롭게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조양자는 병이 들어 죽고 만다.]와,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 [[허공]]을 죽이자, 그 식객들 가운데 몇몇이 손책을 암살한 사건이 있다.
[[법가]] 사상에서는 이러한 식객을 사회 위험분자로 보고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15회 일치
* 소마는 "실력차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하며 담담하게 넘긴다. 그러자 할 말이 없어진 에리나.
* 어느날 사이바가 나키리의 할아버지 센자에몬에게 음식을 대접하러 왔는데, 난생 처음으로 "맛있는 냄새"라고 느끼고 식욕이 생겨서 꼬르륵 거린다.
* 원래 이 자리는 센자에몬이 개인적으로 마련한 자리라 사이바가 "사람이 없는 자리라고 들고 왔는데"하며 투덜거린다.
* 센자에몬은 할 수 없이 에리나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계속 꼬르륵 거리는 소리는 내자 할 수 없이 에리나에게도 음식을 대접하게 된다.
* 그때부터 요리는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로부터 딱 반년 후부터 아버지 아자미의 "교육"이 시작되었던 것.
* 에리나는 사이바의 요리를 먹기 전까지 "맛있다"고 느낀 요리가 없었다고 하는데 1화에서 태어나자마자 모유가 "맛없다"고 한 여자답다.
* 이미 저 시기부터 아자미는 타락--뒤늦은 중2병--이 시작되었다.
* 정작 센자에몬이나 에리나의 어머니는 아자미의 야망이나 이념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 한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사위라고 하나 있는게 노답 중2병--
- 식극의 소마/191화 . . . . 15회 일치
* 하야마 아키라는 유키히라 소마의 멘치까스를 먹고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다.
* 시오미가 진정으로 바랬던 건 하야마가 모든걸 책임지는게 아니라 "자기 요리를 즐기며 또래친구들과 갈고 닦는 모습"이었다.
* 다른 대결장에선 탈락자 속출. 퇴확확정이 되고 있다.
* 하야마는 멘치까스를 먹자 소마가 겪었던 시행착오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온다. 도지마 긴의 지적처럼 그가 홀로 틀어박혀 있는 사이 소마는 승부할 상대, 하야마에게 눈을 떼지 않고 요리의 완성도를 높여왔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지우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하야마와 달리 말이다.
* 정신을 차려 보니 놀랍게도 그의 눈 앞엔 시오미 준이 나타난다. 하야마가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도지마는 그녀에겐 볼권리가 있어 초대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야마는 퉁명스럽게 뭐하러 왔냐고 투덜거리는데 시오미는 단호한 태도로 하야마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파워풀해서 하야마가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 하야마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처음으로 시오미에게 맞은 거라 정신적 충격이 더 강했다. 시오미는 자신이 하야마의 부모 역할도 하고 있으니 훈육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야마는 아직 애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반발해서 자기가 없으면 업무 진행도 안 되면서 애취급을 하냐고 대든다.
* 어쨌든 시오미는 자신의 결론을 말한다. 그녀가 원하는건 연구실이나 기재 따위가 아니다. 그보단 아키라가 진심으로 자기 요리를 즐기며 또래 친구들과 자신을 갈고 닦아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소마도 끼어들어서 "센트럴이든 뭐든 아직 난 너랑 연찬하고 싶다. 자기 요리를 그만두는건 용납할 수 없다"고 거든다. 도지마는 선발시합 때 소마, 하야마, 쿠로키바 료가 아웅다웅하며 의견을 나누던 모습을 떠올린다.
* 이제 판정의 시간이다. 나키리 소우에는 자신의 판정을 준비한다. 하야마는 이미 멘치까스를 먹고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것 보다는 잊고 있던 즐거움, 친구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는 신이 내린 계시와도 같이 소마가 깨닫게 해줬다고 감사를 표한다.
*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소마와는 달리 허탈하게 앉아 있는 하야마에게 시오미가 "또 집이 없어졌다"고 농담한다. 그러자 소마가 둘 다 쿄쿠세이 기숙사로 오는게 어떻냐고 제안한다. 도지마도 센트럴이 견제할지 모르지만 쿄쿠세이 안에서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힘을 준다. 하야마는 한 번 배신했던 처지라고 말하지만 소마는 그런건 센트럴과 연을 끊고 학생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15회 일치
[[식극의 소마]] 211화. '''절대적 재정자'''
* 흑발여성은 일등 집행관이자 삼인 중 리더 "안", 백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샤름", 흑인 남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
* WGO는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단체인지 미식과 자기네 평가서를 "교전"라 지칭하고 [[나키리 아자미]]와 비슷한 광신적인 행태를 보인다.
* 소마는 문자 그대로 면을 굽듯이 볶는다.[[요시노 유키]]와 [[이부사키 슌]]은 그야말로 경악. 일식에 조예가 없는 [[나키리 아리스]]는 원래 야키소바는 철판에 볶는 요리니 잘못된게 아니지 않냐고 의문을 표한다. [[나키리 에리나]]가 설명하길, 원래 야키소바는 소바의 이름만 딴 완전히 다른 요리. 사용하는 면은 평범한 중화면이나 밀가루면이다. [[사카키 료코]]는 야마구치현의 명물 "카와라소바"를 예로 들며 삶아서 굽는 소바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차소바"라고 해서 가루부터 특이한 별개의 요리다. [[타쿠미 알디니]]는 만약 전통있는 에도소바 가게에 일하러 가서 저런 짓을 하면 즉시 쫓겨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소마의 조리는 상식에서 벗어났다.
* [[카와시마 우라라]]도 어쨌든 토오츠키의 학생인 탓인지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일축한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서 연대식극의 심사를 맡은 3인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동안 심사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도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주목한다. 그런데 나오라는 심사의원은 안 나오고, 왠 여성이 전화번호부만한 책 뭉치를 낑낑대고 옮긴다. 그녀는 소마의 조리대 옆에 책뭉치를 내려놓고 한숨 돌린다. 소마는 황당해하는데, 그때 관중석에서 여성이 내려놓은 책을 보고 동요를 일으킨다. 반역자가 갇힌 감옥에서도 잡학다식한 이부사키는 그 책이 뭔지 알아보고 거품을 문다. 하지만 소마는 그런 분위기에 영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상황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 이부사키는 그들이 틀림없이 WGO 집행관이라고 단언한다. WGO란 "월드 그루메 오가니제이션"의 약자. 세계의 모든 맛집에 별 세개로 평가를 남기며 1년에 한 번 이 결과를 모아서 책으로 엮는다. 이들에게 별 하나라도 받는 것은 요리사로서 대단한 영광이며 반대로 별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아무리 장사가 잘 되던 가게라도 망하고 없어진다. 요리사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조직이 이들 WGO인 것이다.
소마는 거기까지 듣자 짚이는 곳이 생긴다. 이전에 [[시노미야 코지로]] 사부가 "별 세 개를 따러 간다"고 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게 WGO의 평가를 말하는 거였다.
* 안은 소마의 등에 써진 "유키히라"란 상호를 보고 자기네 평가서를 뒤적거리는데, 기록이 나오지 않자 무한한 연민이 담긴 눈으로 소마를 위로한다.
안은 "교전에 실리지 않으면 가게도 아니다"란 말이 있다면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뭐 어떠냐? 앞으로 실리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설교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교전에 없어도 앞으로 당신은 살아갈 것이다. 부모님한테 감사하라"는 돌려까기 가득한 말까지 한다. 뜻밖의 동정을 받은 소마는 동료들에게 "이런 놈들로 심사의원해도 되겠냐"고 묻는데, 소마야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만 동료들에겐 큰일 날 소리로 들린다. 유키노가 "실례되는 소리하지 마라"고 꾸짖자 관중들고 편승해서 야유를 퍼붓는다. B급 그루메 주제에 나대지 말라던가 그런 막 만든 요리로 센트럴에게 대항하지 말라는 둥 폭언을 퍼붓는데 그때 안이 나선다.
과연 그녀의 발언력은 대단했다. 시장떼기같이 시끄럽던 장내가 단숨에 고요해진다. 소마도 그런건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안은 자신이 소마를 바보취급, 혹은 격려한 것은 단지 별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일 뿐이지 심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다. 샤름도 거기에 동의하고 이스트와르는 "신과 교전에 맹세하고 정당한 심사를 할 것"이라 장담한다.
* 소마는 볶아지는 소바 위로 양념장 같은 것을 뿌리는데 정확히 무엇인진 알 수 없다. 이 마지막 재료가 첨부되자 면은 좋은 냄새를 내며 단숨에 익어간다.
* 한편 네네의 소바도 완성이 가깝다. 소바가 다 익자 네네는 카키아게 만들기에 돌입한다. 튀김옷을 입은 새우가 기름에 익어간다.
* 반역자 동료들은 긴장된 얼굴로 두 사람의 심사를 지켜본다.
- 식극의 소마/215화 . . . . 15회 일치
* [[시라츠 쥬리오]]는 네네의 패배를 자신이 설욕하겠다고 선언하나 잇시키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금 소마와 네네에게 시선을 던진다.
* 심사의원들은 재료가 장어의 맛을 끌어올리듯 자신들의 육체도 끌어올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효과로 빈약한 [[안(식극의 소마)|안]]이 글래머가 된 리액션.
* 절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잇시키는 조금도 동요없이 자신의 요리를 내는데, 거기엔 "비장의 식재료"가 들어가 있다고 선언.
* 레분토 결전 1라운드 세 번째 스테이지의 승자는 [[유키히라 소마]].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승리. 십걸 6석 [[키노쿠니 네네]]는 패배를 인정하고 조용히 안경을 벗는다. 소마의 동료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이 대환호. [[요시노 유키]]는 소마의 행보에 계속 불평만 해놓고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어쨌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로 승리를 축하하는 소마.
* 그런데 반역자들이 갇힌 감옥 곁에 멀뚱거리고 서있는 [[나키리 에리나]]는 츤츤거리며 거부한다. [[미마사카 스바루]] 조차 흥쾌히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말이다.
* 네네는 우두커니 서서 적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쳐다보고 있다. 그때 십걸 진영에선 유일하게 [[코바야시 린도]]가 그녀를 챙기러 온다. 그녀는 좀 소란스럽게 네네를 위로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준다. 그러면서 "아무 말도 안 해도 좋다"고 자꾸 말하는데 애초에 네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잇시키를 상대할 요리에 전념하던 쥬리오는 자신이 네네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며 기세를 올린다. 그런데 승부의 상대인 잇시키는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조리 중에도 다시금 소마와 네네에게 시선을 던진다. 소마와 네네 모두 그 눈짓을 눈치챘다. 린도는 그가 바라보는 의미를 파악한 것 같다. 그는 이 시합에서 상대인 쥬리오만이 아니라 소마나 네네, 그리고 센트럴을 포함한 전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한다고 추측한다.
* 그때 먼저 음식을 완성한 쥬리오가 심사의원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자신있게 내놓은 요리는 "카피토네 인 우미드". 토마토의 상큼한 향과 장어의 농후한 맛이 응축된 이탈리아 요리다. 소마는 외견과 향기는 대단한 임팩트라고 평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에 조예가 없어서인지 그 이상은 파악하지 못한다. 알디니가 설명하길 "인 우미드"는 "찜요리"를 뜻하고 "카피토네"는 장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 요리는 단지 그것만이 아닐거라는 늬앙스를 풍기는데.
하지만 그저 품종이 다르다고 해서 맛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 맛을 끌어낸건 쥬리오의 조리. 안은 그가 "산 마르자노"란 토마토를 썼다고 간파한다. 그 말대로였다. 산 마르자노는 수분이 적어 소스로 만들어도 걸죽하고 농후한 소스가 된다. 수분이 적은 소스가 강한 감칠맛을 내고 여기에 향신료를 더 해 장어 본연의 맛을 살렸다. 곁들은 폴렌타도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서 잘 어울린다. 츠카사는 모든 재료가 장어라는 주제에 맞게 치밀하게 계산되었다고 평한다.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많은 이탈리아 요리사 중에서도 이렇게 장어라는 "고기"의 맛을 끌어낸 요리사는 없었다 평한다. 그의 별명처럼 여러개의 선율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론도"와 같다. 그리하여 이 맛은 마치 "압도적인 고기(가슴)에 푹 빠지는 기분". 마치 빈약한 안의 몸매도 글래머인 듯이 보이게 만든다. 안은 성희롱이라고 반발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두 사람이 자신의 몸매를 "초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어쨌든 절찬이 쏟아지자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는 잇시키를 쓰러뜨리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아왔으니 당연한 결과라 자평한다.
>자 덤벼려 잇시키 사토시!
- 식극의 소마/220화 . . . . 15회 일치
* 린도가 일찌감치 치고 나가자 관중석에선 메기시마에게 겁 먹었느냐고 야유를 퍼붓는다.
* 그러나 메기시마는 묵묵히 자신의 찻슈를 준비하며 실력을 드러낸다.
* 1라운드가 센트럴의 전폐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나자 센트럴의 개가 된 [[카와시마 우라라]]가 안절부절 못한다. 오로지 센트럴의 승리만을 바라며 2라운드 대결 카드를 소개한다. 1카드는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주제는 녹차다. 2카드는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주제는 고추. 3카드는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주제는 참치.
쿠가는 린도가 고추를 뽑았다는 말을 듣고 그거야말로 자기 특기였다며 통탄한다. 하긴 그의 전공은 사천요리. 아쉽지만 메기시마의 선전을 기원한다. [[하야마 아키라]]는 쿠가와 츠카사의 대결도 신경쓰이지만 2카드 대결에도 눈을 떼지 못한다. [[쿠로키바 료]]도 공감한다. 전 3석과 현 2석의 대결. 어떻게 보면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치열한 경합이다.
* 외부의 주목도가 어떻든 메기시마는 느긋하다. 그는 주제를 적은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고추로 뭘 만들지 고민해 본다. 반면 린도는 거침이 없다. 벌써 주재료를 정하고 메기시마에게는 "고민할 틈이 있냐"고 도발한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악어]]. 일본에선 매우 희귀한 재료다. 린도가 살아있는 악어를 고르자 지켜보던 이들이 술렁거린다. 물론 구하지 못할 재료는 아니지만 식극이란 무대에서 이런 특수한 소재를 고른다는건 대단히 자신이 있다는 얘기. 감옥에 갇힌 반역자들이 수군대자 카와시마가 괜히 기세등등하다. 그녀는 린도가 토오츠키 학원 역사에서도 드문 "희소식재료 마스터"라고 소개한다. 희소식재료란 말에 [[유키히라 소마]]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던 와중에 린도가 악어를 놓친다. 새끼 악어지만 상당히 빠른 몸놀림으로 카와시마에게 돌격,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어찌됐든 악어는 린도에게 다시 포획.
* 이래가지고 정말 악어를 써먹을 수는 있나? 그런 의혹이 퍼진다. 그러나 걱정할 필욘 없었다. 다시 악어를 손에 넣은 린도는 해체용 칼을 능숙하게 돌리며 메기시마에게 승부욕을 어필한다. 함께 십걸이었을 때도 즐거웠지만 적대하기로 한 이상 용서없이 쳐부수겠다는 것. 메기시마도 그럴 생각이라며 전력으로 나오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린도는 "네 목숨을 감사히 받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악어 해체에 들어간다. 그리고 린도가 보여주는 솜씨는 반역자팀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 린도는 평소의 장난기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악귀같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악어의 단단한 껍질이 떨어져나가고 탄탄한 육질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다양한 칼을 바꿔가며 악어의 껍질을 벗기는 솜씨는 눈으로 따라가기고 어렵다. 손질에서 피뽑기까지. 조금의 시간 낭비도 없이 마쳤다. 반역자들은 그 속도는 물론 모든 부위에 가장 적합한 칼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솜씨에 경악한다.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식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식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태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가령 토오츠키 학원의 축제인 "월향제"에서도 그 탐구심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매해 참가하는 연구회 중에는 "곤충식 연구회"라는 끔찍하게 매니악한 동호회도 있었다. 소마 같은 괴식 마니아 조차 "어떤 별종이 관심을 가질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이너. 그런 동호외의 단골손님이 린도였다. 그녀는 언제나 "120점포 올 클리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물론 곤충식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목표나 달성하자고 억지로 먹는게 아닌, 정말로 즐겁게 "귀뚜라미 풀코스" 같은걸 먹어치우곤 했다.
첫째, 재력과 권력을 겸비하고 자신의 식욕을 채우는 "미식가"
* 그녀가 본 것은 찻슈. 라면의 필수요소인 그 찻슈다. 메기시마는 지금껏 찻슈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평범해 보이는데. 그 밖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착실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수는 물론 면을 삶을 준비까지. 메기시마 또한 임전태세를 갖췄다. 후배들은 린도가 희소식재료 마스터라면 메기시마는 "라면 마스터"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15회 일치
>1775년의 아메리카 식민지. 시민 불안과 사회적 파동이 아메리카 곳곳에 깔려있던 시대입니다. 땅과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아메리카 원주민 암살자로써, 그는 어린 국가의 혁명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교회의 종탑 위나 높은 나무의 꼭대기와 같은 높은 장소에 존재한다. 지도에는 새 모양으로 표시된다. 이 곳에서 뷰포인트 동기화를 하면 주변 지도를 밝힐 수 있다. 전 시리즈부터 있던 요소. 뉴욕의 몇몇 뷰포인트는 군대가 지키는 경계구역이니 조심하자.
* 포고자(Town Crier)에게 뇌물을 준다.
* 정찰병 - 달려들어서 플레이어 등을 뛰어넘는다. 그 직후 공격을 시도하니 카운터킬을 먹여주자.
* 척탄병 - 도끼를 휘두르거나 폭탄을 던진다. 도끼 휘두르기의 경우 동작이 크고 느리니 E를 눌러 굴러서 피하자. 폭탄의 경우에는 되도록 멀리 도망가자.
도시를 지키거나 하는 군인 등등. 경비병들은 플레이어를 보자마자 적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주의를 끄는 행동을 하거나 수배 레벨이 있는 경우 의심하다가 마침내는 공격한다.
독립전쟁이 배경인지라 애국자와 왕당파는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 애국자(Patriots)/대륙군
"대표 없이 조세 없다,"를 외치며 영국에 대항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 식민지인의 40~45%가 애국자를 지지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보스턴 한구석에만 자리잡고 있다가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왕당파를 몰아내기 시작, 스토리가 끝난 시점에는 전 지역을 차지한다.
애국자의 반역에 맞서 영국을 지지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식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영국령으로 남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머스켓과 단검, 혹은 토마호크로 무장한 병사들. 건물을 기어오를 수 있으며 평타와 방어파쇄에 반격할 수 있다. 그래봤자 카운터킬에 푹찍. 애국파 경보병은 민병이랑 알아보기 힘들게 생겼다.
* 밀고자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15회 일치
로마 제국 때 부터 내려져왔다는 게임. "카우보이 체커"라고도 불린다. 양 쪽은 자신의 말을 하나씩 배치한다. 자신의 말 세개를 일렬로 놓아 배치된 상대 말[* 일렬로 놓은건 안된다.]을 제거할 수 있다. 말 아홉개가 모두 배치되면 자신의 말을 빈 공간으로 움직일 수 있다. 상대 말을 세개 이하로 만들거나, 상대가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승리한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유래했다는 게임. 자신의 말을 상대 말 쪽으로 움직여 해당 대각선줄의 상대 말을 제거하는 게임.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추가로 움직일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모두 제거하면 승리한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게임 중 하나. 자신의 말을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상대 말을 뛰어넘어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상대 말을 제거한 말은 근처 말을 한번 더 뛰어넘어 제거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 반면 상대 말을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것밖에 못 한다. 상대의 말을 모두 제거하면 승리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잃어버린 연감 페이지. 지도에서 종잇장으로 표시된다. 페이지는 보스턴과 뉴욕 양쪽에 널려있는데 페이지에 접근하면 플레이어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이게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잡지 못하고 사라진 페이지는 얼마 후에 리젠되니 그때 다시 도전하자. 연감은 네장씩 세트로 존재한다. 한 세트를 모두 모으면 해당하는 프랭클린의 발명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 상자 ==
맵 곳곳에 숨겨져있는 상자. 열으면 돈과 조합법을 준다. 대부분이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번거로운 자물쇠 따기를 해야하지만, 암살단 신입을 영입하면 특정 지역의 열쇠를 얻을 수 있다. 몇몇 상자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으니 주의.
상자를 찾기 힘들면 잡화점에서 해당 지역의 상자 지도를 구매하면 된다. 물론 여는건 네가 해야한다.
* 밀고자 몰래 주머니에 가짜 정보를 넣어주는 임무.
- 오태곤 . . . . 15회 일치
|수비 위치 = [[1루수]], [[3루수]], [[유격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지명타자]]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3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010년 ~ 2017년)
'''오태곤'''([[1991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kt 위즈]]의 [[내야수]], [[외야수]], [[지명타자]]이다. 개명 전 이름은 '오승택'이다. 그의 사촌 형은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인 [[오현택]]이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롯데 자이언츠]] 복귀==
[[2014년]] [[KIA 타이거즈]] [[최영필]]을 상대로 자신의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뽑아냈다. [[2015년]] [[5월 23일]] [[사직야구장|사직]] [[LG 트윈스|LG]]전에서 3연타석 홈런을 쳐 낼 정도로 장타력을 지닌 선수였다. [[2017년]] [[4월 8일]] [[LG 트윈스]]의 [[진해수]]를 상대로 9회말에 끝내기 홈런을 쳐 낼 정도로 [[LG 트윈스]]를 상대로 찬스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LG 트윈스]] 팬들에게 비난을 살 정도였고,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한 달도 못 가 [[kt 위즈]]로 트레이드되었다.
[[2017년]] [[4월 18일]]에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그와 [[배제성]], [[kt 위즈]] 소속이었던 [[장시환]]과 [[김건국]]과의 2:2 트레이드로 [[kt 위즈]]로 이적하였다. 2018년부터 외야수로도 활동하였다.
이 응원가는 [[롯데 자이언츠]] 시절부터 이용하던 응원가였고, 선수 본인도 응원가가 맘에 들어 계속 쓰는 것을 원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장 조지훈과 [[kt 위즈]]의 응원단장인 김주일의 서로 합의하에 이적 후에도 계속 응원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4월 8일]] [[LG 트윈스]]전에서 8회말 [[이대호]]의 대주자로 나와 9회말 타석때 끝내기 투런 홈런을 쳐 냈다. 이는 [[kt 위즈]] 이적 전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마지막 홈런이었다.
|2011 ||rowspan="4" style="text-align:center"|[[롯데 자이언츠|롯데]]||0.000 ||1 ||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서울쌍문초등학교 동문]][[분류:신월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원피스/838화 . . . . 15회 일치
* 루피를 상대한 크래커는 진짜가 만들어낸 가짜. 진짜 크래커는 "비스킷비스킷 열매" 능력자로 비스켓으로 뭐든 만들 수 있다.
* 그의 정체를 아는 자는 극소수로 정부의 수배서 조차 가짜의 얼굴이 올라있다. 크래커는 이 가짜들을 즉석에서 여러개 만들어 "병사"로 사용한다.
* 병사를 앞세워 루피를 압박하는 크래커. 그 자신도 기어4의 무장색 패기를 베어버릴 수 있는 강자이다.
* 쵸파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캐럿에서 자신을 "오빠"라 부르라 요구한다. 캐럿은 쵸파와 오빠를 합성한 "쵸빠"란 단어를 만든다.
* 이들이 있는 "미러월드"는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모든 거울과 연결되어 있다는데. 쵸파는 그냥 달아날게 아니라 이걸 이용하자고 한다.
* 그리고 제르마 왕국의 두 왕자 이치디와 니디가 도착한다.
* 그가 휘두르자 무장색의 강화도 뚫리고 타격을 입는다.
* 크래커는 수많은 비스킷 갑옷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그는 강자이면서도 "아픈건 싫다"는 타입. 그래서 갑옷을 만들어 정체를 숨기는 것이다.
* 그는 "늘어나는 비스킷"이야 말로 자신의 꿈이며, 그래서 "갑옷"도 늘어난다는 것. 그는 루피가 필사적으로 부순 갑옷도 "무한히 만들어내는 비스킷병 중 하나"일 뿐이라며 루피를 조롱한다.
* 쵸파는 달아날게 아니라 브릴뤠의 능력을 이용하자고 말하는데.
* 두 왕자의 귀환을 마중하는 제르마 왕국
* 크래커는 단순 비교상으론 칠무해급의 강자. 물론 빅맘은 이보다 강할 것이다.
- 원피스/841화 . . . . 15회 일치
* 레이쥬는 그를 치료해주면서도 항상 선을 긋는데, 상디가 성에서 달아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애걸하자 그 소원을 들어준다.
* 상디는 철가면을 벗길 열쇠를 찾다 저지에게 발각되는데, 오히려 저지는 "수치스러우니 절대로 내 자식이란걸 밝히지 마라"는 조건으로 내버려둔다.
* 상디는 병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힘으로 어머니의 거처로 향한다. 중간에 개가 달려들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도착한다.
* 레이쥬는 자신이 몸의 "개조"는 성공했지만 감정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데.
* 문자 그대로 달팽이처럼 산맥에 달라붙어 올라간다.
* 레이쥬는 자신한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 전쟁이 시작되자 소란스러워진다.
* 레이쥬는 최창살을 휘게해서 상디가 도망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은 "두 번째는 없다"고 못 박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 이 소란을 틈타서 상디는 저지의 방에 숨어든다. 자신의 철가면을 벗길 열쇠를 찾기 위해서인데.
* 아무래도 자신도 사람이고, 상디처럼 "글러먹은 놈"이라도 친자식을 직접 제거할 수는 없었다는 것.
* 그러던 차에 자기가 알아서 사라져준다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 학자들이 상디를 치료하려고 다가오는데 레이쥬가 나타나 물러나게 한다.
* 상디가 처음 요리하던 시점에서 이미 환자로 보이는데 초인도 만들고 클론병도 만들 수 있는 제르마의 왕비가 어째서 병에 걸려있는지는 의문.
- 원피스/844화 . . . . 15회 일치
* 루피는 동료들을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상디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아무리 날 때려도 아픈건 너 자신"이라 소리친다.
* 루피는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릴 것이고 자기 요리사는 상디이니 그가 만든 밥 외엔 먹을 수 없다며, 상디가 없이는 해적왕도 될 수 없다고 소리친다.
* 오랜만의 재회에도 뜻밖의 폭언과 폭행으로 나오는 상디. 몽키 D. 루피는 동료의 돌변에 영문을 몰라한다. 하지만 상디는 태연한 태도로 "날 정말로 생각한다면 왜 맞이하러 왔냐"고 폭언을 내뱉는다. 그는 영세한 밀집모자 해적단 보다 빅맘 해적단이 훨씬 믿을만하고 루피가 해적왕이 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미는 무슨 장난이냐고 말하다가 진지한 상디의 표정에 말문이 막힌다. 루피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날 속여온 거냐"고 묻는데 상디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 "체감"시켜 준다며 디아블잠브의 자세를 취한다.
* 상디는 망설임도 없이 루피를 걷어찬다. 안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루피는 멀리 날아간다. 상당한 거리를 날아가다가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앞니가 빠졌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라 타격이 적지 않다. 상디는 싸울 자세를 취하거나 돌아가라고 하지만 루피는 모두 거절한다. 그러자 상디는 언제나 고집불통이었다고 다시 공격하는데 루피는 피하지도 방어하지도 않고 때리는대로 맞고만 있다.
* 나미는 상디를 설득해서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루피는 단호하게 막으며 이것은 결투라고 선언한다. 상디는 자기 시야 밖으로 사라지라고 몇 번이나 공격을 거듭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루피의 승낙을 받을 수 없다. 얻어맞기만 하는 루피를 볼 수가 없어서 나미는 이제 돌아가겠으니 그만두라고 하지만 루피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하는 이상한 결투가 계속되고 처음 발라티에에서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 나미는 어느새 상디에게 다가와 돌아서는 그를 불러세운다. 그리고 상디의 뺨을 때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남긴다. 욘디는 나미를 매서운 여자라 부르며 눈을 떼지 못하고 빈스모크 저지는 "겨우 쓸데없는 인연을 정리했다"고 빈정거린다.
* 상디가 고양이 마차에 오르자 빈스모크 일가는 다시 홀 케이크 성을 향해 출발한다. 그때 완전히 쓰러진 것만 같았던 루피가 일어선다. 루피는 상디가 했던 말은 거짓말일 뿐이라고 외치며 이딴 걸로 자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외친다.
* 루피는 계속 여기서 기다릴 것이고 상디가 돌아오지 않으면 굶어죽겠다고 선언한다. 자기 배의 요리사는 상디이므로 그가 해준 요리만 먹겠다고 외친다.
우솝과 결별했던 에니에스로비편하곤 전혀 다른 전개가 아니냐고 까이기도 하는데 당시엔 메리호의 처우를 놓고 루피 자신도 심란했던 시기이며 2년 후인 현재에 비해서 미숙한 시절이기도 했다. 게다가 사실 루피 본인은 당연히 우솝과 화해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부선장인 조로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던 부분도 크다.
게다가 우솝 때는 각자 의견이 달라서 반목했던 것인데 지금 경우는 루피가 상디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는걸 짐작하고 있으므로 그때처럼 치고받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 유미(가수) . . . . 15회 일치
2004년에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OST 앨범 안에 두번째 시디(유미 싱글)를 냈었다.
2008년에는 정규 앨범 3집 타이틀곡 '여자라서 하지 못한 말'로 역시 짧은 방송 활동을 하였다.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2004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OST (Windstruck) (타이틀곡 : 바람이라도 좋아)[* CD2 : 01.바람이라도 좋아, 02.Knockin' On Heaven's Door, 03.시계를 돌리면, 04.Wind Of Soul(I will stay for you), 05.Going Back to the...(Piano Ver.)]
* 2005년 2집 Another Story (타이틀곡 : 추억은 시간이 지운다)[* 01.짧은 사랑..긴 기다림..그대 그리움.., 02.소녀의 고백, 03.추억은 시간이 지운다, 04.I Lost My Mind, 05.애가(愛歌), 06.저 하늘도 모자르죠, 07.잘한건가요, 08.마지막 너를 보내며, 09.시계를 돌리면, 10.차라리.]
* 2008년 3집 Melody & Memory (타이틀곡 : 여자라서 하지 못한말)[* 01.한 남자 한 여자, 02.여자라서 하지 못한 말, 03.모른 척 할까요, 04.You & Me Music(Feat.장근), 05.살아간다, 06.Knock, 07.Please Me, 08.여자이니까, 09.참..., 10.Highway, 11.새.]
* 2002년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MKMF) 여자 신인상
학창 시절 별명이 '고음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노래에 자신이 있었고, 당시 어린 나이에 [[충주시]]에서 열린 규모 있는 가요제에서 우승할 정도로 노래 실력도 탁월하였다. 감정 표현도 훌륭하여 특히 슬픈 발라드 노래가 인상적이다.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가수]][[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980년 출생]][[분류:2001년 데뷔]][[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
- 윤덕홍 . . . . 15회 일치
'''윤덕홍'''(尹德弘, [[1947년]] [[4월 19일]] ~ , [[대구광역시|대구]])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교육인이다.
민주진보진영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윤덕홍은 단일화 불참 이유에 대해 "경선을 몰랐고,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갑자기 출마하게 됐기 때문에 그때는 경선에 관심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서울 교육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출마를 했다'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서울교육감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서울 좋은 교육감 시민추진위'는 "시민경선에 참가하시길 권유했음에도 참가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단일화 경선을 요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에 맞는 진보적 행동인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을 뽑는 선거인데, 이렇게 규칙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였다.<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4285 "윤덕홍 탈당 시점은?"] 참세상 2014년 5월 9일</ref>
=== 교육감 선거 출마 자격 논란 ===
윤덕홍은 2013년 4월 3일자 민주당 대구시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였다고 하였고, 2013년 4월 당시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이었던 이승천은 "2013년 4월 3일 윤덕홍이 직접 탈당계를 제출했다는 보고를 받고, 당의 원로이므로 함부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업무가 폭주하던 상황이어서 탈당처리를 잊어버리고 못했었고, 후에 위원장에서 물러나면서 명확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새정치연합(구 민주당) 대구시당은 "윤덕홍의 당적과 관련해서 더 이상 대구시당에서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당으로 문의하라"고 답변을 회피했고, 새정치연합(구 민주당) 중앙당은 "당적과 관련되어서는 본인이 아니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등 새정치연합 중앙당과 대구시당이 윤덕홍의 탈당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며 의혹이 증폭되었다.
대개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표하는데, 《한국인텔리서치》는 "담당자가 없다. 현재 홈페이지 개발 중"이라며 설문조사 문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ref>[http://www.redian.org/archive/70041 "윤덕홍 전 부총리, 교육감 출마와 동시에 지지율 1위?"] 레디앙 2014년 4월 28일</ref>
* 1969 ~ 1977 :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 2003 ~ 2003 :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전임자 = [[이상주]]
|후임자 = [[안병영]]
|직책 = [[대한민국의 교육부총리|부총리]] 겸 [[대한민국 교육인적자원부|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부총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대학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동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윤휘 . . . . 15회 일치
'''윤휘'''(尹暉, [[1571년]] - [[1644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조선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 [[조선 인조]]를 도와 적진인 [[청나라]] 진영을 왕래, 교섭하며 설득과 화의를 추진하였고,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과거 급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에 관련, 삭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18년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이 [[명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때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지지했다가 [[인조반정]] 직후 파면되었다. [[1626년]] 복관되고, 성주목사, 청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고, 주화론에 참여하여 [[조선]]측 대표로 [[청나라]]군과의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주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뒤에 [[형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우찬성]] 등을 지냈다. 사후 아들 [[윤면지]]의 공로로 [[의정부]][[영의정]]이 [[추증]]되었다. [[윤두수]]의 셋째 아들이다. [[윤흔]]의 동생이며 [[윤훤]]의 형이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으나 [[광해군]]의 조정에 참여했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자는 정춘(靜春), 호는 장주(長洲) 또는 천상(川上),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윤휘는 [[1577년]](선조 11년) [[의정부]][[영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용]]으로 [[증직|증]] [[좌찬성]]에 추증된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증직|증]] [[의정부]][[영의정]] [[윤변]](尹忭)이다. [[윤근수]]는 그의 숙부였고, [[윤방]], [[윤흔]]은 그의 형이며, [[윤훤]]은 그의 동생이었다. 일찍이 우계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7년 병조정랑으로 승진되고 이어 다시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세자시강원]]사서(司書), [[사헌부]]장령(掌令), [[세자시강원]]필선을 거쳐 다시 [[사헌부]]장령, 시강원 필선을 역임하는 등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00년]] [[장악원|장악원정]](掌樂院正), [[사간원]][[사간]]이 되었다. 그해 [[사헌부]]장령 조응문(趙應文)을 탄핵하고 북방 경비를 탄탄히 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해 [[동부승지]]를 거쳐 [[정유재란]] 종전 후에도 [[조선]]에 주둔하던 [[명나라]][[군대]]의 철군 문제를 교섭, 타결시켰다. 이어 [[의인왕후]]의 장지 문제 선정에 참여하고 [[명나라]]의 전몰 장병 위문을 주관하였으며, [[우부승지]]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 [[윤두수]]가 [[이홍로]]의 탄핵으로 [[홍원군]]으로 유배되자, 이홍로의 친지들과 친하게 지냈던 그는 이후 이홍로와 관련된 사람들과 절교하였다.
[[1618년]] 궁궐 영건 도감 제조가 되고, [[1621년]] [[승문원]]제조의 한사람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공조 참판, [[1622년]] [[의금부]]당상, [[비변사]]의 유사당상, [[예조]][[참판]]이 되었다. [[1623년]] 초, 차언심(車彦諶) 등과 함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허균]]의 노비들을 차지하여 자신의 노비로 부리다가 [[박홍도]] 등의 공격을 받고 스스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광해군]]이 이를 듣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조선 인조|인조]]를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주전론과 주화론이 나뉠 때는 주화론에 동조하였다.
[[1639년]](인조 17년) [[3월]] [[청나라]]에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환국할 때 [[가마]]를 타고 천천히 가서 맞이하는데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조선 인조|인조]]는 이를 무마시켰으나 계속 간관들의 탄핵을 받고 원배되었다가, [[유배지]]로 가던길에 석방되어 되돌아왔다.
****** 손자 : [[윤계]](尹堦)
[[분류:1571년 태어남]][[분류:15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서예가]][[분류:조선 광해군]][[분류:조선 인조]][[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해평 윤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
- 은혼/601화 . . . . 15회 일치
* 신파치는 이런 때 혼자서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타에는 오히려 이런 때니까 온 거라고 말한다.
* 신파치는 자신은 그저 "이상한 사무라이"의 등을 쫓아왔을 뿐인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있었다고 말한다.
* 그런 자신을 아버지가 용서해주시겠냐고 묻는데.
* 세 명은 지구는 구하더라도 천인이 있을 자리는 없어질 거 같다고 푸념을 한다.
* 하지만 가구라는 첨부터 있을 자리가 따로 있던게 아니라며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눌러 앉았던 거라고 말한다.
* 그런데 자신의 틈에도 어느 샌가 뻔뻔스럽게 비집고 들어온 녀석들이 있다며, 오히려 밀어붙여진건 자신이라고 한다.
* 그런 그가 어떤 자료를 집어든다.
* 결전이고 나발이고 자기 배역인 오구리 슌에 대해 불평을 하다 "내 배역이라면 쟈니스계가 좋다"는 망언을 늘어놓는다.
* 가구라는 자기 배역은 하시모토 칸나라서 쓸데없이 부담스럽다며 적당히 하시모토에 대한 스캔들을 터뜨려서 자기 배역에 적당할 정도로 추락시키겠다고 벼른다.
* 그때 사다하루가 뭔가 가지고 오는데, 긴토키는 자기가 정말로 점프만 읽고 다녔을거 같냐며 사다하루의 개코로 정보를 찾고 다녔다고 말한다.
* 그래서 사다하루가 낚아온 자료라는 것은
* 긴토키는 이들이 나락의 암살자임을 깨닫는다.
* 실사화로 자학인지 뭔지 모를 디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 이근택(1865) . . . . 15회 일치
[include(틀:관련 문서3, top1=매국노, top2=친일반민족행위자, top3=을사오적)]
|| '''작위''' ||<(> 자작 ||
[[조선]]과 [[대한제국]] 후기의 군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을사오적]], [[민족 반역자]], [[매국노]]이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고, [[1919년]] 자연사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한규설]]의 딸이 이근택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사돈]] 관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규설은 을사 조약을 반대한 애국자이다. 그래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이근택에게 딸을 따라온 교전비(여종)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꾸짖기를
라고 말하고 옛 주인 한규설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그의 고기 베던 머슴과 침모가 집을 나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걸 보니 자기 집 머슴, 노비들에게도 경멸받으며 주인 대접을 받지 못했던 듯.
[[고은(시인)|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그를 다룬 시를 여러 편 썼다. 한 편은 그 자신을 다룬 <이근택>이고, 한 편은 그를 죽이려던 사람 중 한 명인 의병장의 자손 기산도를 다룬 아래의 작품이다.
의병장 [[기삼연]]의 종손자에다가
다시 [[독립군]] 군자금 모금으로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한제국의 군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을사오적]] [[분류:1865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 [[분류:조선의 반란자]]
- 이동흡 . . . . 15회 일치
부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배석 판사로 재직하던 1980년 11월 24일 결심 공판에서 배석으로 관여했다가 선고 공판에 서명 날인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62700329211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6-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0997&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1년 6월 27일자]</ref>
판사로 재직하면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사법발전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던 이동흡은 2000년에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우에 이어 2005년 2월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다 2005년 8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9월에 [[한나라당]] 추천으로 국회에서 임기 6년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되었다. 2012년 9월 헌법재판관에서 물러난 이후인 [[2013년]] 1월 3일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인해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 41일만인 [[2013년]] 2월 13일에 헌법재판소장에서 사퇴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이동흡은 법원내 형서 재판장 9며이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현행법을 지키지 않았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선거법 전담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을 맡은 스스로도 [[박혁규]], [[유시민]] 의원의 재판에서 감정인·통역인·국선변호인의 일당과 여비·보수 등의 "소송비용에 대해 피고인의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108296]</ref>
* 1993년 11월 3일 [[대법원]] 사법제도 발전위원회위원(겸직)<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040020910201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1-04&officeId=00020&pageNo=2&printNo=22334&publishType=00010 동아일보 1993년 11월 4일자]</ref>
* 1997년 9월 1일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겸직)<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290020913301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8-29&officeId=00020&pageNo=33&printNo=23636&publishType=00010 동아일보 1997년 8월 29일자]</ref>
* [[2013년]] 1월 3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인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되었다.
* [[2013년]] 2월 13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지 41일만에 사퇴하였다.
* [[대전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7월 30일에 1994년 2월부터 1998년 2월까지 퇴출된 [[충청은행]] 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영이 부실한 서우주택건영에 368억원, 경원건설에 40억원을 부당하게 대출하고 대지 200평과 현금 2000만원 등 1억 6천여만원을 사례금으로 받아 구속된 전 충청은행 은행장 윤은중에 대해 징역 3년 추징금 6천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2년 6월 추징금 60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7월 31일자</ref>
* [[대전고등법원]] 특별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12월 13일에 시영아파트를 분양받고 3년이 넘도록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아 과징금을 부과받은 이모씨 사건에서 1995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부동산 실명제법 제10조 제1항에 대해 "법률은 탈세 행위를 막아 부동산 거래를 정상화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음에도 탈법의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까지 과중한 금전적 부담을 주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21400329126006&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12-14&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930&publishType=00010 경향신문 1999년 12월 14일자</ref>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1년 5월 31일에 합헌 결정했다.(99헌가18)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BBK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에 대해 참고인 동행명령제를 제외한 나머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김희옥 재판관과 이동흡 재판관 2명만 법 전체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ref>미디어오늘 2009년 10월28일자 '재판관 성향으로 본 미디어법 위헌판결'</ref>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백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태아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임신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면서 위헌으로 판단했으나 위헌 정족수인 6명이 미치지 못하는 4명만이 동의하여 합헌 결정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6522]</ref>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고성 이씨]]
- 이창동 . . . . 15회 일치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 [[소설가]], [[교수]], [[교사]], [[전 문화관광부장관]]
| 배우자 = 이정란
| 자녀 =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여행자 (2009년 영화)|여행자]]》(2009년) 제작
* 유니코리아문예투자 이사([[1999년]])
|전임자 = [[김성재 (1948년)|김성재]]
|후임자 = [[정동채]]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15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2th sense. '''무법자들 (7)'''
* 마기, 모미지, 요우는 효부의 자청해서 죽으려는 행동이나 타인과 거리를 두는 행동에 대해 반발한다.
* 어쨌든 효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으며 이후 효부는 후지코에게 구속, 바벨의 감시 하에 놓인다.
* 마기는 끝까지 그런 방식을 납득하지 않았으며 효부가 "언제까지고 꼬맹이"인 채라면 자신이 그보다 성장해서 망령 하나 쯤은 짊어질 수 있게 되겠다고 다짐한다.
* 그들은 감시위성 광속의 여신(라이트 스피드 가데스)도 소유하고 있는데 자위대 등 일본 정부를 감시하고 있다.
* 효부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지만 여왕을 만나기 위해 불만없이 받아들인다.
* 그리고 후지코도 곧 한계이며 한때 누나였던 사람은 좀 쉬게 해주는게 자신에게도 좋다고 말한다.
* 자신에겐 가족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효부.
* 하지만 그 뒤에는 모르겠다며 자기는 살고 싶은대로 살고 죽고 싶은대로 죽을 테니 그런 자신과 관계하면 너희에게 좋을게 없다고 말한다.
* 함께있지 않으면, 그때 소령이 죽으면 자신들은 괜찮겠냐며 "이미 늦었다고 바보!"라고 소리치르고 뛰쳐나간다.
* 모미지가 말한대로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그런 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잡히더라도 가끔은 탈옥해서 만나러 올 테지만 항상 그럴 순 없으니, 자신이 없는 사이 이게 있으면 안심이라고 말해준다.
* 마기는 반발심으로 효부가 계속 꼬맹이로 있더라도 자신이 그보다 성장해서 "어른이 되지 못한 망령" 쯤은 짊어져주겠다고 다짐한다.
- 정혜선(배우) . . . . 15회 일치
||<width=30%><:>―[br][* 백상예술대상 TV부문은 1979년 제15회 시상식부터 수상했다.] ||<:> → ||<width=30%><#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영옥(배우)|김영옥]][br]'''(1979)''' ||<:> → ||<width=30%><:>김민자[br](1980) ||
||<-5><#c0c000><table 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width=30%> [[여운계]][br](1974) || → ||<width=30%><#FFFFA1> '''정혜선'''/[[김자옥]]/안인숙[br]'''(1975)''' || → ||<width=30%> [[김혜자]]/홍세미[br](1976) ||
|| 김혜자/강효실[br](1978) || → ||<#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영옥(배우)|김영옥]][br]'''(1979)''' || → || 김민자[br](1980) ||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은 정영자이며, [[1942년]] [[2월 21일]] [[경상북도]] [[김천시]] 다수동 출생([age(1942-02-21)]세)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카타리나이다. [[1961년]]에 [[KBS]] 공채 1기 [[배우]]로 데뷔하였다. [[성우]] 출신이고, 공채 출신이라 초기에는 주로 KBS에서 활동하였으나 나중에는 타방송국에도 많이 김천서현교회 출연하였는데 대표작들은 주로 MBC쪽이 많다. 드라마 [[아들과 딸]]의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최불암]], [[김수미]] 처럼 젊을 때부터 노역을 많이 맡은 편이다. 나이가 든 후에는 완고한 시어머니 역을 많이 맡는 편이다.
[[1963년]], [[KBS]] [[공채]] 동기인 [[박병호(배우)|박병호]]와 [[결혼]]했으나, [[1975년]] [[이혼]]했다. 당시 박병호가 영화제작으로 생긴 빚을 일부 떠안았으나 이혼 후에도 묵묵히 다 갚으며 세 자녀를 키워냈다고 한다.
[[김희애]]와 [[전광렬]]하고 모자(녀) 관계로 수 차례 출연한 인연이 있다. 김희애의 경우 [[1991년]] 산너머 저쪽, [[1993년]] [[아들과 딸]], [[2003년]] [[완전한 사랑]]에서 모녀관계로 출연했으며, 전광렬의 경우 [[1999년]]판 [[허준(드라마)|허준]], [[2010년]] [[제빵왕 김탁구]], [[2017년]]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모자관계로 출연했다.
* [[왕꽃 선녀님]] : 해당 작품에서 공연했던 [[사미자]]는 정혜선이 출연한 [[KBS 2TV]] [[시트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에서 할머니 역[* 정혜선 분.]에 한때 거론되었지만, [[MBC]]의 [[보고 또 보고]] 녹화일과 겹쳐 고사했으며, 사미자 외에도 [[여운계]], [[전원주]], [[반효정]] 등이 물망에 올랐다.
* [[밥상 차리는 남자]] : 34회에서 이루리 [[고모]] 역으로 특별출연하였다.
- 주윤발 . . . . 15회 일치
| 직업 = [[영화 배우|영화배우]] <br /> [[가수]] <br /> [[영화]] 각색가 <br />[[연극]][[배우]] <br />[[배우|텔레비전 연기자]]
| 배우자 = 천후이롄(陳薈蓮, 1986년 재혼)
10세 때였던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홍콩 도심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였고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끝내 중퇴하였다. 이렇게 초, 중, 고, 대학 등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던 중, 친구의 권유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7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73년]] [[영화]] 《투태인(投胎人)》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4년]]부터는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으며 2년 후 [[1976년]]에는 [[영화]] 《지녀》(池女)의 주연을 맡았다. 그 후로도 홍콩 영화와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1980년]]에 출연한 《상해탄》(上海灘) 등으로 입지를 다졌다. [[1988년]] [[가수]] 데뷔하였으며 [[1989년]] [[영화]] 《아랑적고사》(阿郎的故事)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각색도 처음 맡아 각색가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 주윤발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그의 영화의 [[보조 출연자]] 중 한 명이 [[주성치]]였다.
* [[도신 - 정전자]]
* [[양자탄비]] - 황사랑 역
강호소자 江湖小子 (아위阿偉)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콩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홍콩의 남자 가수]][[분류:홍콩의 작사가]][[분류:홍콩의 불교 신자]][[분류:중국의 반공주의자]][[분류:싱가포르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계 영국인]][[분류:하카계 홍콩인]][[분류:1972년 데뷔]][[분류:홍콩의 억만장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창작:좀비탈출/5-1-1-1 . . . . 15회 일치
나는 치워버린 장독을 다시 담벼락에 대면서 부러진 골프채가 정말 다시 쓸 수 있을 물건인지 자문했다. 그리고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면서 그럼 저게 필요한지를 자문했다. 모르겠다. 정신나간 소리지만 버리긴 아깝다. 솔직히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첫 실적을 올린 무기였다. 계속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군인은 처음 쏴본 탄피를 평생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 군인은 2차대전에서 살아남았고 베트남에도 갔지만 역시 살아남았고 훈장을 받았다. 그 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군.
토트넘의 머리는 조금 앞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둥글둥글한게 골프채 끝에 달려있는 모양이 배드민턴채가 떠오르게 했다. 처음 뽑아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거리낌이 들기도 했는데, 한참 자르고 쑤시면서 뒹굴고 나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단지 손으로 만지고 싶지는 않아서 한 발로 밟은 채로 골프채 손잡이를 쭉 당겼다. 약간 찐득한 느낌과 함께 뽑혀져 나왔는데 꼭 떡꼬치에서 떡을 빼내는 느낌이었다.
"자 첫 번째 목표 달성."
이제 다른 목표도 달성할 차례다. 나는 담벼락 밑에 쌓여있던 것들을 적당히 치우려 했다. 일을 하자면 어쩔 수 없이 벽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자면 등 뒤가 너무 허전했다. 담 하나 차이지만 여긴 우리 집이 아니다. 아직 앞 마당 쪽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단 말이다. 녀석들이 거기 모여서 티타임이라도 갖고 있다면 내가 부수럭대는 소리로 관심을 끌어 버릴지도 모르잖아?
지금 와서 말이지만, 토트넘의 집은 우리집하고 같이 지었다. 우리집이 지어지던 시절만 해도 이런 단독주택이 유행이었고, 시공사에서는 '''같은 설계'''로 여러 번 지으면서 공정을 단축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아버지가 해준 건데 한 귀로 흘려보낸 줄 알았던 것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뭐 아주 모르는 집에 들어온 건 아니라는 위안거리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뒷문을 닫았다. 그리고 앞마당 쪽으로 나아갔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 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리무진 모델이 있어. 그랜저도 체어맨도 그런 라인업은 없는 거여. 그러니 이 다이너스티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최초이자 최후의 고급 차종이었던 거제."
처음 정오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곧장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식량을 가득 채운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정오의 따가운 햇볕을 방패 삼아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큰 길까지만 가면, 운이 좋아서 거기서 자전거라도 하나 주워 탈 수 있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울 외곽까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없고 적어도 녀석들이 오지 않을 법한 곳을 찾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나의 상상력이 그림을 그렸다. 자유를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
"똥싸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최성원(가수) . . . . 15회 일치
|| '''가족''' || 아버지 최영섭[*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작곡가 겸 지휘자, 한국가곡작곡가협회 부회장 겸 Seoul Green Orchestra 상임지휘자.], 아들 최지훈[*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 딸 최선영[* 스케이팅 코치, 전 스케이트선수.] ||
한국의 포크 록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음반 프로듀서 겸 디렉터이다. 록 밴드 [[들국화(밴드)|들국화]]의 [[베이시스트]]로 유명하다. 비록 밴드 내에서는 [[전인권]]에 묻힌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당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임은 분명하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9년 고려대 동문인 이영재, 이승희와 함께 프로젝트 앨범 '이영재, 이승희, 최성원'에 참여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우리동네전시회'라는 프로젝트 앨범에도 솔로 가수로 참여하였다. 고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조덕환[*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에 최성원과 함께 참여하였다. 1집에서 '[[세계로 가는 기차]]', '[[축복합니다]]',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등이 그의 곡이다.]과 이영재는 1978년 [[대학가요제]]에 '고인돌(코리아스톤스)'이라는 밴드명으로 참가했지만, 최성원은 거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생각으로 대학가요제는 그저 학예회일 뿐이며, '음악하는 장'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1983년 들국화에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였다. 이후 잠시 빠졌다가 다시 합류하여 1985년 [[들국화(앨범)|들국화 1집]] 앨범작업에 참여하였는데,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리스트 1위를 차지한 전설적인 명반이 되었다. 최성원은 여기서 1집에서 가장 유명하며 아직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그것만이 내 세상]]', '[[더 이상 내게]]', 1집에서 전인권과 최성원이 유일하게 듀엣으로 부른 노래인 '[[사랑일 뿐이야]]', 자신이 메인보컬이 되어 부른 노래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과 함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곡 '[[매일 그대와]]' 등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다.
1990년 '어린 왕자'[* 1985년 우리노래전시회에서 강인원이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솔직할 수 있도록' 등이 수록된 2집을 발매하였다. 사실 이 음반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명곡들이 상당히 많다. 도입부의 나레이션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어린왕자'와 낙관적인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솔직할 수 있도록'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들국화 초기 시절의 추억을 담은 '생각이 나는지', ccm풍이 물씬 풍기는 '행복의 열쇠'와 최성원 특유의 음색과 곡의 멜로디가 잘 어울려져 있으며 손진태의 기타솔로가 인상적인 '네 눈 앞에만' 등 수록된 모든 곡들이 명곡이다
이후 1990년대에는 음반제작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이적(가수)|이적]]과 [[김진표]]의 '[[패닉(가수)|패닉]]'을 프로듀싱했으며, 그밖에 박주연, [[테라]] 등을 기획한 기획자이자 제작자로 활동하였다.
*이적이 '달팽이'를 만들어 최성원을 찾아가자 최성원은 이적한테 "너 이런곡 몇개더 만들어올수있겠냐?" 고 했다고 한다.
* 들국화 시절 전인권과 정말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최성원과 전인권은 [[비틀즈]]로 따지면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라고 할 만큼 애증의 관계. 음악 성향부터 사생활까지 극단적으로 다르며, 각자 음악적 역량도 뛰어나고 주관도 너무 뚜렷한 둘은 들국화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들을 중재해 주던 것이 드러머 주찬권이었는데, 이것도 [[비틀즈]] 시절의 [[링고 스타]]와 판박이. 이후 전인권이 약물중독 등의 방황을 벗어난 후에는 서로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들국화 재결성은 힘들 듯~~
- 최영철 (기자) . . . . 15회 일치
|직업 = [[기자 (직업)|기자]]
|소속 = [[한국방송공사|KBS]] 보도본부 기자
|배우자 = [[최원정]]
|자녀 = 아들 최주호
'''최영철'''([[1974년]] [[3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한국방송공사|KBS]] 소속 [[기자 (직업)|기자]]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2000.02 ||[[한국방송공사|KBS]] 기자
| - ||KBS 보도본부 보도국 사회2부 기자
| - ||KBS 보도본부 보도국 경제부 기자
| - ||KBS 보도본부 보도국 국제부 기자
| - ||KBS 보도본부 보도국 정치외교부 기자
| - ||KBS 보도본부 보도국 문화부 기자
| - ||KBS 보도본부 기자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
- 크립토나이트 . . . . 15회 일치
[[슈퍼맨]]의 대표적인 약점. 본래는 1943년도 슈퍼맨의 라디오 드라마 '슈퍼맨의 모험(The Adventures of Superman)'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슈퍼맨을 맡은 배우가 쉬고 싶을때를 위해 만든 물질로 배우가 휴가를 간 사이엔 대역이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슈퍼맨이 끙끙대는 것만 연기하면 되었기 때문. 사실 원작자인 제리 시겔이 K-메탈이라는 이름으로 속성이 완전히 같은 물질이 나오는 이야기를 썼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기각되고 시겔이 아이디어를 라디오에 대신 썼다.
단 복용을 자주 안하면 힘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런데 저거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수명이 깎이니 유해성은 마약과 차원이 다르다.
반대로 슈퍼맨의 반전 버전인 [[울트라맨(DC 코믹스)|울트라맨]]처럼 이것을 섭취할 수록 강해지는 생명체도 존재하며, 슈퍼맨의 적 중 하나인 [[메탈로]]는 동력원으로 이 크립토나이트를 사용한다. [[포에버 이블]] 이슈에서 울트라맨은 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세계뿐만 아니라 프라임 세계에 있는 거의 모든 크립토나이트까지도 빨아들여 먹어버렸는데, 이후 더욱 강해지기 위해 [[크라임 신디케이트|데스스톰]]에게 인공적으로 크립토나이트를 합성하여 만들 것을 지시한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데스스톰은 [[렉스 루터|알렉산더 루터]]에 의해 끔살당했기 때문에 그가 크립토나이트를 만드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포에버 이블 이후의 이야기들에서도 지속적으로 크립토나이트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인공적으로 크립토나이트를 만드는 방법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붉은 크립토나이트. 그린 크립토나이트 다음으로 자주 나온다. 발생의 원인도 다양하다. 효과는 작품마다 다양하지만, 대체로 슈퍼맨의 이성을 약화시켜 난폭하게 만들고 그 힘을 폭주하게 만든다.~~아마도 크립톤인을 [[버서커]]화시키는것같은데. 아니 능력강화일지도~~
팬텀존에 갇혀있던 크립톤 범죄자들이 지구를 침공했을때, [[메탈로]]가 크립톤 범죄자에게 붉은 크립토나이트 광선을 쏘였고, 그 광선을 쏘인 크립톤인은 개미 비슷한 괴물로 변해 '''밟혀 죽었다'''.(...)
슈퍼맨의 불완전한 복제체인 [[비자로]]에게 그린 크립토나이트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반면 그린 크립토나이트는 비자로에게 효과가 없다. 슈퍼맨이나 다른 크립톤인들에게 쓰이는 장면은 확인하지 못해서 어떤 능력인지 알수 없다.
그린 크립토나이트나 레드 크립토나이트에 핵 방사능을 쬐어서 만든다. 슈퍼맨의 초능력을 영구히 없앤다고 한다. 그런데 [[메탈로]]는 '[[루터]]의 이론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능력을 없앤다더군'이라고 했다. 아마 코믹스 버전에 따라서 다르던가 [[루터]]가 약간 잘못 해석한듯. 아무튼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확실하고, 메탈로는 황금색 크립토나이트를 이용해 빌딩 옥상으로 날아오는 크립톤 범죄자들에게 비췄다. 그리고 날개가 없는 크립톤 범죄자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떤 의미에선 위에 소개된 크립토나이트보다 더 강력한 능력을 자랑한다. 이것을 크립톤인에게 쓰면 '''동성애자'''가 된다고 한다. 한때 슈퍼맨이 이것을 가졌을때 순간 [[게이]]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배트맨이 위험해!!--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크립토나이트에 의해 슈퍼맨이 인간처럼 변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있는 것. 일단 약해지는 건 맞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상태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으며 맞을 경우 피해를 배 이상 입기는 하지만 몸의 피부, 근육의 단단함이라던가는 그대로이다. 쉽게 말해서 크립토 나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개기며 슈퍼맨을 때릴 경우에는 슈퍼맨도 피해를 입지만 자기 손도 '''박살'''난다는 것. 실제로 배트맨도 슈퍼맨과 싸울때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고 약화시켜서 일방적으로 때린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이유는 더이상 때리면 오히려 자기 손이 박살날것 같아서...
- 킹덤/497화 . . . . 15회 일치
* 창평군은 필수불가결한 작전임을 강조하며 이들 세 사람의 부대가 "독립유군"의 자격을 받았던 것은 이럴 때를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 진왕 정은 친히 이 자리에 나타나 독려하며 "이 작전에 성공해 장군으로 승격할 것"을 당부한다.
* 수도 함양으로 소환된 이신, 몽념, 왕분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업 공략"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 뜻을 알고 있지만 신만큼은 작전의 진의는 커녕 업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라 물어본다. 몽념이 그럴 줄 알았다며 지도에서 업의 위치를 짚어준다. 업은 조나라의 왕도인 한단의 코 앞으로 여기서도 가까워 행군으로 2일이면 너끈히 닿는 거리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나서야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게 된 신은 뒤늦게 경악한다. 하료초는 무슨 잠꼬대 같은 말이냐고 몽의에게 묻는데 몽의는 몽념과 왕분이 숙고하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자중시킨다.
* 그러나 왕분의 의견은 정반대. 그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게 아니냐고 딴죽건다. 몽념이 예상한대로 왕분은 비관적인 입장이다. 업 자체도 한단에 버금가는 대도시에 강력한 군사도시가 즐비한 왕도원 안에 위치한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 작전은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료초도 속으로는 그 평에 맞장구친다.
* 몽의는 그렇게 될 작전을 짜지 않았다며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왕분은 "조의 눈을 서쪽으로 돌리고 그 사이 업까지 진격한다"는 전제 자체는 성립한다고 치더라도 거기서 병참이 분단되고 퇴로가 막히게 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한단, 알여, 요양 등에서 오는 대규모 원군에 업에서 생길 각종 최악의 상황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러한 악조건을 모두 고려한 책략이 나온 거냐고 묻는다.
몽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몽념이 "내 동생을 너무 괴롭히지 마라"며 농담조로 던지는데 왕분은 전략에 자신도 없이 자기와 몽념을 불렀냐고 받아친다.
* 이번엔 창평군이 직접 나서 발언한다. 이들 셋을 부른 이유는 작전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차 전략상 이들 셋의 부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업은 한단의 수비망에 속하고 아무리 미리 대비해도 이목이 존재하는 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전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상정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점이 현장의 적확한 판단.
* 그때 자신도 한 마디 끼어들겠다며 진왕 정이 나타난다. 몽념과 왕분은 바로 포권하고 꿇어앉는데 신은 공적인 자리인걸 깜빡하고 잊다 뒤늦게 예를 갖춘다. 정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얼굴을 마주한다. 그는 업 공략은 지금까지 없던 중요한 전장이며 가혹하겠지만 "중화통일"의 난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강조한다.
코에이의 삼국지에서도 업을 공략하는 건 꽤 어려운데, (고대 기준으로) 하북평야의 한가운데 위치한 대도시로 보통 조조나 원소 같은 강자들의 병력이 집중되는 곳. 더군다나 진나라에 대한 공동전선이 형성돼 온갖 나라들이 진나라를 공격하려 올 판에 업으로 역공을 간다는 얘기이므로, 얼마나 하드코어한 플레이인지 알 법하다.
- 킹덤/516화 . . . . 15회 일치
* 왕전은 업공략은 환의에게 맡기고 그 자신은 또다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출발한다.
* 쾌속진격한 [[이목(킹덤)|이목]]은 순조롭게 수도 한단에 도착했다. 전 삼대천 [[인상여]]의 부하들이 그를 맞이한다. 이들은 이목이 처음 지시했던 한단군 출병을 이루지 못했으나 자신들과 사병의 출병은 허가를 받아냈다. 그 병력은 북쪽 염 성에서 1만, 문 성에서 1만씩 총 2만이다. 이목으로선 뜻밖의 희소식이었다.
* 이목은 새롭게 얻은 병력을 진군을 포위하는데 돌린다. 업성에 투입할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아도 업성은 왕도권에서, 아니 중화전토에서 최고의 성. 진군이 보급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왕도권까지 들어왔으니 이들을 업으로 유인한 뒤 조군으로 포위한다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숨통을 조일 수 있다. 이른바 "병량공세". 이목은 우선 조왕을 알현하고 정식으로 왕도권 전역의 통수권을 받기로 한다.
* 이목의 도착 소식을 접한 [[호주(킹덤)|호주]]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진작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목은 그동안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에 감사를 표하는데 호주에겐 그보다 다급한 용건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알현 뒤엔 그를 찾아가려 했던 이목이었다. 호주는 지금 왕도권에서 속속 들어오는 최신첩보를 정리해왔다. 진군은 병력을 세 가래로 나눠 왕도권의 소도시 아홉을 정복하고 업으로 향하고 있다. [[공손룡]] 장군의 9만 병력은 [[양단화]]군의 산민족 5만과 대치하느라 발이 묶인 상황. 그런데 그 전선이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왕도권 남부로 방출된 난민 무리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쫓기듯 동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난민, 그 말이 호주의 입에서 나오자 이목의 안색이 변한다. 이목이 거기에 대해 자세히 묻고 호주는 그런걸 묻는 의도를 의아해하면서도 "진군이 정복한 성의 백성들을 성 바깥으로 쫓고 다른 성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왕도권 남부에는 산더미 같은 난민 무리가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단 말인가? 이목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다.
* 이목의 통찰대로 구름떼 같은 난민 무리가 업성으로 모여들었다. 업성의 각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 행렬을 통제하기 위해 병사들이 분주하다. 백성을 수용하고 나서도 각 성의 사람들이 뒤섞이고 일행이 헤어지지 않게 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숫자. 벌써 2곽이 꽉 찼는데 아직도 행렬이 이어진다. 현장 지휘관은 제 3곽도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려 하는데, 부하는 이 3곽도 꽉 찬지 오래라고 보고한다. 이만한 숫자는 먹이는 것도 문제다. 식량도 지니지 않은 채 먼 길을 온 난민들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했다. 우선은 배급을 진행 중이지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 업의 성주 [[조이백]]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업성의 부양능력을 그만큼 믿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이제 난민을 그만 받자는 상소가 올라오는데 그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아직 진군이 당도하지도 않았는데 나라의 근간인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진군이 도달하기 전까진 난민을 받아라"란 지시가 내려간다. 자비롭고 관대한 명령이지만, 이 전시에 타당한 것일까? 가신들이 난색을 표하는데다 난민의 수가 늘 수록 식량창고가 비어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 안 가 제 3 창고가 텅 비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는데, 조이백은 놀라기는 하지만 "창고는 얼마든지 있다"며 제 4, 5 창고까지 개방한다.
* 한단의 이목 진영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고 고심 중이다. [[순수수]]는 지금이라도 업성에 전서구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목은 벌써 늦었을 걸로 본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카이네]]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묻는데 이목은 지금이라면 [[왕전(킹덤)|왕전]]이 그린 그림을 알아볼 것 같았다. 분명 그는 열미성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 업성에 갔다. 곧 업성은 난공불락의 성임을 깨닫고 곧장 업을 치기 보다는 업성을 무너뜨린 "함락의 무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아홉 소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이제 카이네도 왕전의 속셈을 눈치챘다.
* 지평선이 새까맣게 진군이 몰려들었다. 곧 업성은 농성 체제로 들어간다. 입구에 연결된 잔도에는 아직 건너는 중인 백성도 있었지만 황급하게 문을 닫았다. 이것 자체는 이목도 예정했던 작전. 그러나 그가 본 그림에는 업성 내부에 아홉 소도시에서 온 난민이 있지 않았다. 성주 조이백은 진군이 당도했다는 보고에 이어 또다른 낭보를 받는다.
>제 5창고도 텅비어 제 6창고를 열어도 되겠냐고 담당자가...
카이네는 이같은 결론에 경악하며 그런 전투는 듣보보도 못했다고 말한다. 이목은 자기 자신도 처음 들어본다고 답하며 속으로 왕전의 이름을 통탄스럽게 불러본다.
- 킹덤/521화 . . . . 15회 일치
* 마정이 계속 따라붙자 잘만 하면 더 먼 곳까지 끌어내 처리할 수 있겠다는 계산도 섰는데, 하필이면 부상 당한 [[오영]], [[개전]]이 마정에게 노출된다.
* 여기에 추가로 기마대와 보병대가 섞인 1만 5천 병력이 2파로 몰려오는게 확인되자 오히려 기수가 발이 묶이고 만다.
* 유인에 걸려 몽념을 잡으러 왔던 [[황각]]은 자신이 잡히게 될 판이 되자 당황해서 퇴각을 결정한다. 그들의 퇴각은 몽념의 눈에도 보였다. 그는 이 싸움을 사냥이라고 표현했고 사냥감이 순순히 달아나게 둘 생각이 없었다. 철저한 추격을 지시한다.
* 기수의 본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유인책에 걸려 황각의 기마대가 괴멸할 판이 되자 속이 터진다. 심지어 퇴각 중에도 뒤를 잡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하자 다혈질인 [[마정]]이 더이상 참지 못한다. 기수도 답답하고 분통 터지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성급한 짓을 허용할 순 없었다. 하지만 마정은 말릴 틈도 없이 기병 500기를 데리고 몽념에게 달려든다.
* 몽념은 조군이 새로운 기마대를 보냈고 그 대장이 유독 덩치가 크다는 보고를 듣자 마정임을 직감한다. 다시 반전해서 병력을 뺀다. 그걸 보고 마정은 더욱 도발 당해 추격의 고삐를 조인다. 기수는 몽념이 분명 흑양전의 정보를 가졌을 거라 보고 어떻게든 마정을 불러들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의 짐작이 맞았다. 몽념은 흑양전에서 얻은 귀중한 정보를 살려서 기수나 마정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특히나 마정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기수의 두 팔 중 하나. [[유동]]이 죽은 지금은 기수에게 남은 유일한 측근이고 그가 죽는다면 기수의 힘은 절반 이하가 될게 자명하다. 따라서 이건 더할나위 없는 기회. 몽념은 여기서 마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 마음먹는다.
* 생각대로 풀리지 않기는 마정도 마찬가지. 좌측에서 새로운 병력이 나타났다. 할아범, [[호점]] 부장이었다. 자기로선 도저히 몽념의 기마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더니, 용케 여기까지 따라와 있었다. 호점의 기마대가 오영, 개전을 구하고 마정의 진로를 막는다. 그에게 몽념을 부탁 받았던 [[육주]]는 그가 올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늦었다고 한 소리한다.
* 호점의 원군이 호신호였다. 몽념은 여기서 승부를 보기로 한다. 그대로 부대를 선회시켜 마정을 포위한다. 절호의 기회였지만 딱 한가지, 몽념이 오판한 것이 있다. 마정의 용력. 마정은 수세에 몰린 상황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눈 앞의 낙화대 병력을 장작처럼 두쪽낸다. 마정의 목을 따자는 몽념의 말에도 코웃음친다.
몽념은 자신이 들은 이상의 무력임을 인정했지만 그럴 수록 여기서 마정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 마정이 포위. 적 복병의 등장. 기수군에 좋지 않은 소식만 줄을 이었다. 낙화대 병력이 이제 몽념의 별동대로 모여들면서 총 5천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 반명 황각과 마정이 이끄는 기마대가 합류해도 병력차는 두 배 이상. 마정을 잃을게 불 보듯 뻔하다며 부관들이 원군을 보내자고 아우성친다. 기수는 그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으나 조용히, 냉정하게 상황을 다시 되짚는다. 벌써 1천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적의 수가 적다고 얕본게 문제였다. 분명 몽념은 수많은 전략을 능수능락하게 구사하는 인물일 것이다. 지금 펼치는 전술도 기마대의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 조군의 병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방치하면 외측의 보병대의 출혈을 피할 수 없고 어중간하게 기마대를 써도 덫에 걸린다. 뛰어난 전략적 안목을 옅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기수의 선택지는 하나. 압도적인 병력을 동원해 초장에 끝을 내는 방법이다. 그는 자신의 3만 병력 전체를 전개해 낙화대를 포위섬멸하고자 결심한다. 기수 또한 용병술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 대군을 일사분란하게 추스러 몽념이 마정에게 시간을 들이는 사이 그대로 잡아먹을 수 있게 움직였다. 딱 하나의 변수만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 기수가 생각대로 병력을 펼쳤을 때 지평수를 까맣게 메우는 또다른 병력이 등장한다. 기수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는 주해평야의 결전이 한두 군단의 격돌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 눈 앞에 5천 병력이 있다 해서 그게 적의 전모가 아님을 잊고 있었다.
- 타쿠마 마모루 . . . . 15회 일치
범인 타쿠마 마모루는 1963년에 이케다 시의 서쪽에 있는 이타미시(伊丹市)에서 출생했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7살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다. 6학년 때 오사카 교육대학 부속 이케다 중학교에 수험을 하고자 했으나, 모의시험 결과가 나빠 포기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가정폭력을 받게 되었다. 중3때는 칠판에 자신의 경력이나 "[[항공자위대]]에 들어가겠다."고 쓰고 [[군가]]를 노래하는 등의 기행을 벌였다. 하지만 동급생들은 무시했다. 이 때부터 "나는 IQ가 높다."고 말했으나,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1981년 11월에는 [[항공자위대]]에 입대했다. 파일럿을 지망했으나, [[정비]] 업무로 돌려졌기 때문에 제대하였다. 이 때부터 [[육법전서]] 등의 법률 서적을 구입하고 있었다. 1983년 3월에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운송업을 시작하였으나 실패, 부동산 회사에 취직한다. 이 무렵 모친에게도 심한 폭력을 당하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친과 둘이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1990년 6월에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여, 18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으나, 거짓말이 들켜서 3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19세 연상의 여성(오사카 교육대학 출신)과 결혼했다. 1993년에 이타미시 교통국에 노선 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동료와 싸움을 벌이거나, 버스에서 운전석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수 냄새가 나니까 뒷자리로 가달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1994년 9월 21일에 아내와 이혼한다.
1995년 11월 27일에는 같은 직장의 여성과 양자결연을 맺어 성이 바뀌었다가, 1997년 1월에 양자결연을 해소하고 타쿠마로 돌아왔다. 타쿠마는 여성에게 [[위자료]]로서 200만엔을 달라고 강요했다. 1997년 3월에는 39세 여성과 3번째로 결혼했다. 하지만 12월에는 이혼을 요구받고, 고베 지방 법원 히메지 지부에 이혼조정을 요청했다. 타쿠마는 이 여성과의 재결합에 집착하여 앙심을 품게 되었다. 1998년 6월에 이혼 조정이 성립되었은아, 타쿠마는 전처를 반복해서 스토킹 하고, 교제중이던 다른 여성을 폭행하여 체포되었으며, 전처에게도 유사 사건을 일으켜서 체포되었다. 10월 18일에는 교제중이던 여성과 4번째 결혼을 했다.
1998년 부터 이타미 시내 초등학교에 기술자로 근무했다. 1999년 3월에 교사 4명에게 정신안정제를 넣은 차를 먹여서 상해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간이감정에서 "정신분열증 의심"이라고 진단을 받고, 니시노미야 시(西宮市)의 정신병원에 입원조치 된다. 사건은 불기소가 되었다.
1999년 3월 2일에 형이 마무루의 거듭되는 불화와 폭력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그 직전에 아내와 이혼하였으며 아이를 혼자 놔두고 자살하였다. 3월 31일에 타쿠마 마무로는 4번째 이혼을 했다. 9월 7일에는 이전에 양자결연을 맺었던 여성의 집에 침입했다가 체포당했다.
2000년 10월 14일에, 택시 운전사로 근무하다가 오사카 시내의 호텔에서 벨보이와 말다툼을 벌여서, 폭행으로 체포된다. 11월에는 이케다 시 건축자재 판매회사에 10톤 트럭 운전사로 채용되었고, 이케다 시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신호대기를 할 때 나란히 서있던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을 "눈이 마주쳤다"고 트집을 잡으며 침을 뱉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서 2001년 2월에 그만둔다. 2001년 5월 하순에는 스스로 하룻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여자친척으로는 [[오소영 (살인조각가)|오소영]]
- 퇴계 이황 . . . . 15회 일치
조선시대의 관료, 유학자.
40세 이후로는 어렵게 부탁해야 겨우 벼슬에 나가고, 벼슬에 물러나는 것을 자주 하여, 명종실록(13년 8월 5일 년 기사)에 따르면 [[명종]]이 요청이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이황과 사림을 후원하던 고관 이준경 역시 이황이 산금야수(山禽野獸)처럼 툭 치면 고향으로 물러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이황은 [[경연]]에서 명종과 선조에게 사화(士禍)가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걸 간곡하게 다짐하고, 이준경 등에게는 사림을 포용하라고 부탁했다. 또한 사림 내부 단속에도 신경을 썻는데, 기대승, 박순, [[율곡 이이]] 등에게는 [[조광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퇴계전서 ‘기명언에 답하다’ ‘박순에 답하다’] 특히 이황은 [[기묘사회]]의 중심이 된 [[조광조]]에 대하여, ‘학력미충(學力未充)’[* 배움이 부족함]임에도 함부로 나서서 화를 자초다고 비판하였다.[* 퇴계선생 언행록 중 ‘인물을 논하다(論人物)’,]
사실 '사현'이라고 했지만 이황 자신은 이 4명 가운데 이언적을 제외하면 부족함이 있다고 봤다. [[김종직]]은 도학 보다는 사장학(詞章學)에 뛰어난 인물로 봤고, 김굉필과 조광조는 저술이 없어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봤으며, 이언적의 경우에는 회재집(晦齋集)을 보고서 이를 명확히 알려서 올바른 학문을 퍼트렸기 때문에 널리 알릴 가치가 있다고 봤다. [* 퇴계선생 언행록 중 ‘인물을 논하다(論人物)’,]
20세에는 [[주역]]을 공부했으며, 23세에 심경부주(心經附註)를 얻어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43세에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교정하여 출간한다.
이황은 전습록(傳習錄) 등을 지어서 당대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양명학]]을 비판하였는데, 진헌장과 왕수인(왕양명)의 심즉리(心卽理)를 비판하고, 이것이 선불교의 돈오돈수 처럼 근거없이 자의식에 빠질 우려가 높다고 보았다. 또 자신의 마음에 치우쳐서 사물의 객관적인 이치를 탐구하는 것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
[[화담 서경덕]] 학파와 대립하였는데, 서경덕의 제자 남언경(南彦經)이 무의(無意)와 무욕(無欲)으로 담일청명(湛一淸明)에 이르고자 하였을 때, 이를 불교식 수행법이라고 비판하였다.[* 퇴계전서 중 ‘남시보에 답하다’] 올바른 [[정좌관심|정좌(靜坐)]]는 신비주의적으로 정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갖추는데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계전서 중 ‘김돈서에 답하다’, 퇴계전서 중 ‘이굉중에 답하다’]
== 향촌자치==
자주 귀향했던 이황은 단지 고향에서 은거한 것은 아니었으며, 동향의 선비들과 상의하여 조선의 향약 모델을 만들게 된다. 예안향약(禮安鄕約)과 온계동약(溫溪洞約)이다. 향악을 통하여 사림이 주도하는 향촌자치의 모델이 되었다.
이황은 재력가이기도 했는데 말년에 360명의 노비, 3000두락이 넘는 방대한 전답(田畓)을 보유했다. 이황의 후손들이 작성한 분재기(分財記)를 통하여 퇴계의 자산 규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 배우자 ==
[[분류:조선 인물]][[분류:유학자]]
- 특이한 세금 . . . . 15회 일치
* 수염세 : 1705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가 제정했다. 이는 당시 러시아 남자들이 [[수염]]을 길게 기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럽 문화를 동경하여 이를 러시아에 도입하고자 했던 표트르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관습을 없애려고 수염에 세금을 메겼던 것이다.
* 중국인 인두세 : 1885년 캐나다에서 만들어졌다. 캐나다에 들어오는 중국인 이민자들에게 매겨진 세금이다. 1923년 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 때 캐나다에서는 대신 '''중국인 입국 금지법'''(…)이 생겨났다.--더 심해졌어.--
* 모자세 : 1784년 도입. 1804년 '머리에 쓰는 모든 것'으로 확대. 1811년 폐지. 그러자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모자 장수들이 자기들이 파는걸 [[모자]]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이런 [[매드 해터]] 같으니-- 그래서 1804년 머리에 쓰는 모든 것으로 확대되었다.
* 자른 베이글세 : 뉴욕주. 베이글을 자르고 구워서 팔면 8센트를 더 내야 한다. 가공식품으로 분류되기 때문.
* 애완동물세 : 노스캐롤라이나의 더럼 카운티에 있다. 애완동물은 재산으로 취급받아 세금을 내야 한다. 불임수술을 받은 동물은 10달러, 그렇지 않은 동물은 75달러이다.--내가 고자라니!--
* 마약세 : 테네시 주. 2007년 제정, 2009년 폐지. 불법 마약을 거래하는 딜러라도 기소당할 염려없이 자신의 수익을 신고할 수 있다. 무려 150만 달러의 세수를 거뒀으나 주 대법원에 의하여 위헌으로 결정나 폐지되었다.
* 열기구세 : 캔자스 주. 열기구를 운송수단의 일종으로 보았다.
* 자판기 과일세 : 캘리포니아 주. 자판기에서 과일을 구입할 경우, 33%의 세금을 내야 한다.
- 판타스틱 포 . . . . 15회 일치
'''Marvel's First Family'''[* 마블에서 밀어주는 공식 별명으로 마블에서 가장 대우받는 가족(퍼스트 패밀리는 주로 대통령의 가족등,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가족들에게 붙여주는 별칭이다)이자 마블 최초로 가족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리보위츠는 굿맨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시 DC의 호황이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덕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작품은 그 때까지 독립된 타이틀에서만 활약하던 DC의 여러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이 한데 모여 집단으로 싸운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이야기에 ~~열이 뻗치게~~ 자극을 받은 굿맨은 '자기 회사에서도 집단 히어로물을 발표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스토리 작가 [[스탠 리]]를 찾아가 "우리도 저스티스 리그 같은 히어로팀 만화 만들자"라며 그 임무를 맡기고, 그 결과 나온 것이 판타스틱 포이다.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판타스틱 포》가 나오기 전부터 여러 작품의 스토리를 다루었지만 리는 이게 마음에 안들어서 만화책을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고 《판타스틱 포》의 제작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리의 아내가 "그럼 당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써보세요"라고 얘기했고 리는 아내의 말에 따라 《판타스틱 포》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썼는데 그게 대성공했다. 이때 처음 사용한 방식이 바로 리가 대략적인 개요와 플롯을 작화 담당에게 주면 작화 담당이 여기에 따라 원고를 완성하고 리가 대사를 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화 담당들의 끼가 폭발할 수 있었으며 리 본인도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동시에 더 편하게 작업할수 있었다.
또한 판타스틱 포는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코스튬도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으며 자경단보다는 [[자원봉사]]단에 가깝다[* 실제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서 스파이더맨에게 "우린 자원봉사야"라고 얘기한다].
* 연재 시작할 때만 해도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이 성공할지 회의적이었기에 [[스탠 리]]는 [[잭 커비]]에게 부탁해서 판타스틱 포를 슈퍼히어로물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판타스틱 포 1, 2화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들은 다 평상복을 입고 있으며 표지의 중심은 괴물들이기에 슈퍼 히어로보단 호러/괴수물처럼 보이게 디자인되어 있다. 3화쯤 돼서 판타스틱 포가 인기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제서야 코스튬을 입히게 된다.
한편 판타스틱 포의 코스튬은 [[어벤저스]], [[저스티스 리그]] 등이 캐릭터마다 개성적인 것과 다르게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맞춰입은 듯한 디자인이다. 파란색 코스튬이 대표적이다.
* [[스파이더맨]]은 히어로 생활 초창기 돈도 없고 입장도 난감할 때 판타스틱 포에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봉급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라는 말을 듣고는 그냥 돌아갔다.(...)
2011년 3월 연재분에서 [[휴먼 토치]]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자리를 영구 결번으로 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스파이더맨]]을 정규 멤버로 영입했다. 명칭도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oundation, FF)'으로 변경하였고 유니폼 색도 흑백으로 변경하였다.하지만 휴먼 토치의 생존&복귀로 다시 이전의 판타스틱 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퓨처 파운데이션은 판타스틱 포와 별개로 분리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은 2대 앤트맨인 스콧 랭, 메두사, 미스 씽, 쉬헐크.
4번에 걸쳐 애니화되었고(1967년판, 1978년판, 1994년판, 2006년판) 1979년에는 더 싱을 주연으로 한 스핀오프 애니판도 나온바 있었다. 그 중 맨 처음에 나온 버전(1967년판)은 후에 [[일본]]에서 1960년대에 '''우주닌자 고무즈'''라는 요상한 제목으로 번안되어 방영되었다.
- 페어리 테일/491화 . . . . 15회 일치
* 나츠, 루시, 해피는 그레이, 쥬비아, 엘자 일행과 합류
* 아이린은 왕궁 일대를 조감하는 마법을 사용하고 거기서 "비색의 머리"를 가진 엘자를 보고 놀란다.
* 제이라의 설명을 들은 가질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깨닫지만 레비에게 낯뜨거운 소릴 잔뜩 해놓은걸 떠올리고 당혹해한다.
* 가질은 제이라가 누구냐고 거듭 묻는데 제이라는 메이비스가 길드원들에게 자기 얘길 안 했다고 투덜댄다.
* 그리고 자신은 메이비스의 마력이 리셋되면서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부활했으며 그녀가 자신을 인지하게 되면 금세 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 제이라는 잠시 동안이지만 부활했으니 자기대로 할 일을 하겠다며 페어리 테일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 이들은 그레이, 쥬비아, 엘자 일행.
* 국왕은 자신은 어찌되어도 좋지만 "딸에겐 손대지 말라"고 애원한다.
* 그러자 아이린은 히스이 공주에게 마법을 걸어 쥐의 모습으로 바꿔버린다.
* 물론 국왕은 "어떤 모습이든 나의 딸"이라며 당연하다고 하는데, 그러자 실망했는지 "재미없다"고 투덜거린다.
* 아이린은 그 사이에서 "비색의 머리"(엘자)를 발견하고 "설마..."라고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다.
* 잘 싸우던 제트, 드로이 등이 갑자기 능력을 봉쇄당하고 쓰러지는데 아이린의 두 부하가 한 짓.
* 그리고 싸우고 있는 미라젠을 발견하고 "어느 쪽이 먼저 죽이는지 승부"하자며 타깃을 정한다.
* 제목 때문에 엘자와 아이린의 관계가 밝혀진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는 메이비스(어머니)와 페어리 테일 길드원을 지칭하는 거라는 의견도 있다.
- 페어리 테일/504화 . . . . 15회 일치
* 그레이는 자신이 겪은 불행의 궁극적 원인을 "제레프 서의 악마 때문"으로 돌리고 나츠를 쓰러뜨리고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 브랜디쉬는 자신의 방황만은 마법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하는데, 루시 하트필리아는 "그것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격려하고 나츠를 찾아 나선다.
* 브랜디쉬는 자신에게 힘이 있는데도 그 순간 망설였다고 자책한다.
* 루시가 쓰러져 있는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가 죽었다고 여기는 듯. 스스로 한 일이란 자각은 없는 듯하다.
* 마카로프는 체력이 한계에 달했는데 제국측의 병사는 숫자가 줄지 않는다.
* 엘자 스칼렛은 길을 뚫기 위해 선봉으로 나선다.
* 엘자는 모두 함께 길드로 돌아가자고 다짐하는데 그때 상공에서 정체불명의 눈동자가 나타난다.
* 아이린은 자신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중얼거리는데 그 목소리가 눈동자를 통해 하늘에 울린다.
결과적으론 그레이나 나츠나 여자 때문에 싸우고 있는 모양이 됐다.
아이린과 엘자가 다시 마주친게 됐는데 아이린 측에선 엘자에게 신경도 안 쓴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5회 일치
* 오거스트가 대성당 위에서 광범위한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자 상공에서 [[길다트 클라이브]]가 날아와 대치한다.
* [[아질 라무르]]는 [[엘프먼 스트라우스]], [[리사나 스트라우스]] 남매에게 패배. 둘의 콤비네이션에 패배한 듯하다. 아질은 아직도 계속 싸우려 하지만 그때 아질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더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린다. 할아버지는 "이 전쟁에선 소중한걸 너무 많이 잃었다"고 말하는데 엘프먼은 이 전쟁만 그런게 아니라 전쟁은 항상 그래왔다고 대꾸한다. 리사나는 그들이 항상 이기는 전쟁만 했기 때문에 그 점을 늦게 깨달은 것이며, 그동안 제국에게 졌던 나라들은 얼마나 많은 걸 잃었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아질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테니 손주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리사나는 자기도 오빠도 상대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거절한다. 아질은 새삼스럽게 둘이 가족이었냐고 놀라며 "전혀 안 닮았다"고 디스한다.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였다. 둘도 별다른 이상없이 무사했지만, 디마리아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브랜디쉬가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데 아주 유아 퇴행을 했는지 여전히 오들오들 떠는 것이 엄청 위축된 상태. 그 상태로 나츠를 만나자 경기를 일으킨다. 나츠는 그녀를 공격했던 기억 자체는 있기 때문에 사과를 하는데 듣지 않고 브랜디쉬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 브랜디쉬를 떠나보낸 뒤 폴류시카와 에버그린, 샤를이 합류한다. 에버그린은 [[쥬비아 록서]]를 엎고 있는데 [[그레이 풀버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샤를은 그레이가 사라졌다고 알린다. 폴류시카는 지금 그레이가 그대로 돌아다니면 자살행위라고 걱정한다. 에버그린은 이미 유니버스 원이 해제되기 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츠는 그 말을 듣고 뭔가 생각나는게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주위를 가득채우는 이상한 소음이 들린다. 그 심상치 않은 소리의 진원지는 매그놀리아의 대성당. 그 위에 누군가가 있다. 그것은 최후의 스프리건이자 최강의 스프리건 12 [[오거스트]]였다.
* 오거스트는 이제 스프리건도 자신 밖에 남지 않앗다고 중얼거리며 적과 함께 매그놀리아 일대를 섬멸할 마법을 준비한다. 그가 마법을 시전하자 대기와 대지가 함께 진동한다.
오거스트가 준비하는 마법의 전조로 보아 그는 매그놀리아를 적과 아군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은 일단 퇴각하기로 하지만 과연 도망칠 수 있을지? 그때 허공에서 그림자가 날아온다. 그것은 또다른 최강의 마법사, 페어리 테일 최강자 [[길다트 클라이브]]였다. 길다트와 오거스트가 맞부딪히는 충격으로 대성당이 산산조각난다. 길다트는 오거스트와 대치하며 일행에겐 "나한테 맡겨라"고 말한다.
나츠는 오거스트를 길다트에게 맡기고 [[제레프 드래그닐]]에게 가자고 한다. 루시는 그레이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데, 나츠는 그가 어디있는지 안다고 대답한다.
* 한편 제레프는 여전히 페어리 테일 길드에 있다. 주점 의자에 앉아 있던 그는 누군가의 방문을 받고 있는데. 그는 [[제라르 페르난데스]]나 렉서스가 가장 먼저 올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그의 등장을 의외로 여긴다. 그리고 또 "유감"이기도 하다는데.
>거기... 내가 평소에 앉는 자리야.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15회 일치
[[화염병]]. 착탄된 자리에 불을 지른다.
사용자가 탄약을 보충할 수 있게 해주는 가방. 기본적으로 탄약 최대소지량의 400%라는 용량을 가지고 있다.
* Enforcer - Ammo Specialist - Bulletstorm: 탄약가방 사용자를 5초간 무한탄창으로 만든다.
방탄복을 숨길 수 있는 가방. 이 장비를 선택하고 시작하면 정장 차림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 가방을 이용해서 자신이 선택한 방탄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스텔스 하다가 들키면 쓰라고 있는 것 같지만 보통은 그냥 리스타트 한다.
사용자가 시체가방을 보충할 수 있게 해주는 가방.
사용자의 모든 체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다운 횟수도 초기화 시켜주는 가방. 기본적으로 두번 쓸 수 있다.
* Mastermind - Medic - Quick Fix Ace: 의료가방 사용자가 120초간 10%의 데미지 저항을 갖게 된다.
설치한 순간부터 20초 동안 주변 전자기기를 방해하는 소모품. 전화를 통한 신고, 감시카메라의 감시 등을 막을 수 있으며, ATM에 설치해 ATM을 털 수도 있다.
ECM 피드백이라는 특수 기능이 있는데, 이를 발동시키면 주변 경찰들이 일정 시간 동안 마비된다. 끝나는 즉시 신고가 들어가니 스텔스 중에는 하지 말자.
* Ghost - Shinobi - ECM Overdrive Ace: ECM으로 전자문을 열 수 있게된다.
사용자의 모든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작은 가방. 다운수는 초기화되지 않는다. 소모품으로 기본적으로 네개를 소지할 수 있다.
* Mastermind - Medic - Quick Fix Ace: 퍼스트 에이드 킷 사용자가 120초간 10%의 데미지 저항을 갖게 된다.
* Mastermind - Medic - Uppers Ace: 14개의 퍼스트 에이드 킷을 소지할 수 있게된다. 설치된 퍼스트 에이드 킷 5m 내에서 다운되는 플레이어를 자동으로 치료해 일으킨다. 해당 기능은 20초에 한번으로 제한된다.
주변의 적들을 자동적으로 공격하는 포탑. 탄약 최대소지량의 30%를 소모해 설치 할 수 있다. 다른 장비들과 달리 회수 가능.
경찰의 공격으로 파괴될 수 있지만, 탑재된 탄약을 소모해 자동 수리를 하니 탄약이 다 떨어지지 않는 한 파괴당하긴 어렵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5회 일치
>세금 징수원이 가지고 있는 서버는 일확천금을 얻기에는 너무 무겁지. 컴퓨터를 통해 나에게 연결시켜주면 데이터를 전송시킬 수 있어. 우리가 진지하다는 걸 보여주자고.
폐건물의 어느 방 안에서 시작한다. 폐건물 앞은 거래 현장인데, 창문 앞에서 서성거렸다가는 대기업 사람들을 기다리던 세무서 직원에게 들킬 수 있다. 이 경우 크로우바를 찾아내 트렁크를 따야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창문에서 떨어지자.
세무서 직원이 FBI 요원들을 피해 리무진으로 도망가자, 알렉스가 자석 달린 크레인을 조종해 리무진을 건물 옥상으로 올려놓는다. 이 때 리무진이 운반되는 위치는 셋으로 나뉜다. 리무진이 옥상에 안착하는 경우, 리무진이 옥상에 안착했지만 지붕이 무너지며 건물 내부 계단에 걸리는 경우, 리무진이 발코니에 걸리는 경우. 이후 플레이어들은 세무서 직원과 서버를 끌어내기 위해 리무진에 전동 톱-호스트가 기본적으로 소지함-을 설치하고 농성전을 벌여야 한다.
세무서 직원과 서버를 빼내고 나면, 세무서 직원을 위협해 게임을 시작했던 방으로 되돌아가야한다. 그 다음 컴퓨터에 서버를 연결하고 전원선을 꽃은 후, 세무서 직원을 의자에 묶어 서버 암호를 말하도록 해야한다. 이때 세무서 직원이 대답을 거부하는데 한번 근접공격으로 후려패주고 물어보면 암호를 말한다. 너무 많이 패면 기절해서 다시 깨어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주의. 한번만 패고 질문을 계속 시도하자.
해킹이 끝나고 나면 옥상으로 올라가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면 된다. 옥상은 경찰 저격수들의 사격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니 저격수를 주의하자. 중간에 길이 끊겨서 점프해야 하는 구간이 있는데, 전력질주를 하며 점프하면 된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팀원들은 짜증나겠지만.
>가끔씩은 짭잘한 이득을 위해 극단적인 짓도 해야하지. 그게 우리가 이번 할 일이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대피소를 찾고, 헬리콥터로 대피소 자체를 훔치는거야.
플레이어는 갱단들을 쓸어버리며 3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신고가 들어갔지만 지금 경찰이 오지는 않으므로 여유롭게 메스암페타민과 현금, 거대 칫솔 등을 확보하자. 3층의 붉은 철문을 조사하고 나면 "차베스"라는 갱단원에게서 열쇠를 빼앗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차베스는 아파트 방 어딘가에 다른 갱단원들과 함께 있다. 방탄조끼를 입고 쌍권총을 들고 있는 이가 차베스. 그를 찾아내서 죽이면 열쇠를 드랍한다. 차베스가 죽는 순간부터 경찰이 도착한다.
열쇠로 3층 문을 따고 들어가서 대피소에 톱을 설치하자. 대피소를 바닥에 고정시킨 철근을 잘라내려면 2층 천장에 톱 두개, 3층 바닥에 톱 두개를 설치해야 한다. 이후 톱질이 끝날 때까지 경찰들을 막아내자.
C4가 폭발하면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을 처리하자. 이후 바일의 헬리콥터가 다시 와서 자석을 옥상에 생긴 구멍 안으로 서서히 집어넣는다. 이때 누군가가 4층으로 내려가 패닉룸 윗부분에 자석을 붙여줘야하니 주의. 이후 헬리콥터가 패닉룸을 매달고 날아갈 때 까지 옥상을 지킨 다음, 1층으로 내려가 지하실로 탈출하면 클리어.
- 프로 스포츠 . . . . 15회 일치
[[스폰서]]는 의료 회사, 식품 회사 등 주로 소비재 기업이 서는 경우가 많은데, 스포츠 용품 회사들은 '''[[마이클 조던]]이 쓰는 나이키를 신으면 자신도 [[덩크슛]]을 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청소년들이나, '''[[타이거 우즈]]가 입는 골프 셔츠를 입으면 자신도 타이거 우즈 만큼 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아저씨들의 돈을 모아서 성립되고 있다.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전통적으로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주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반면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선수란 [[취미]]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아마추어 스포츠는 상당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무렵에 아마추어를 프로 스포츠와 구분한 이유는 프로선수는 돈 받고 전념하니까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틀에서 경쟁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를 낮게 보았고[* 일종의 '사회적 차별'로서, '유산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에서 '노동자 계급'과 같이 여겨진 프로 선수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에 '아마추어'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현대에는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준프로라는 개념도 잘 살펴보면 프로선수와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 가령 [[K리그]]에 뛰는 선수들은 명백히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음은 물론이고 성적에 따라 연맹에서 추가적인 상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 회사로부터 스폰받는 돈도 있다. 하지만 세미프로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만 봐도 이런 면에서 K리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분류는 상당히 무의미해 진 상황이다.
프로 스포츠 종사자들은 상업적 이득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대회를 유치하려 한다. 그리고 이 대회에 참가 가능한 인원들을 "거르는 작업"이 필연적이다. 이렇게 거르는 행위를 통과한 인원들만 모아 대회를 열 준비를 하며, 이 대회에 참가하는 팀에 소속될 자격이 있는 "최상급 선수"의 자격을 갖춘 자들을 프로라 보는게 바람직이다. 축구를 제외한 대한민국 4대구기종목은 드래프트(=최상급 선수라는 판단을 협회와 구단이 동시에 판단)를 통해 이루어지고, 바둑같은 경우는 단위제(=최상급 선수라는 판단을 전적으로 협회를 통해 판단)를 통해, 축구의 경우는 구단이 영입과 이적이라는 행위를 통해(=최상급 선수라는 판단을 법과 협회의 규정 안에서 구단이 자체적으로 판단) 프로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보면 종목을 불문하고 "명백히 최고의 경기를 제공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상업적인 이득을 추구"하며, "최고의 수준을 경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증명된 선수와 팀"이 보여주는 스포츠가 프로스포츠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미국식 프로 스포츠에서는 '신규 참가자=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매우 경계하여 경기 리그를 매우 독립적, 폐쇄적으로 운영한다. 이것이 프로 스포츠의 본질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영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 하이큐/218화 . . . . 15회 일치
* 다른 선수들도 히나타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각자 개선점을 찾아간다.
* 오늘 매치는 고시키&츠키시마 vs 쿠니미&햐쿠자와
* 고시키가 대놓고 허접하다고 갈구는데 츠키시마는 실책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반박도 못한다.
* 코트 밖에서는 고시키&츠키시마 조가 햐쿠자와를 집중 공격하면 돌파구가 있지 않겠냐고 예측한다.
* 그러나 히나타는 "햐쿠자와가 하나라도 올리면 그대로 햐쿠자와의 공격이 되는데 이게 위협적"이라 평가한다.
* 그 말대로 츠키시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커트하는 햐쿠자와.
* 고시키는 히나타의 조언 이후 햐쿠자와에게 여유가 생겼다고 평한다.
* 햐쿠자와의 공격.
* 츠키시마는 햐쿠자와가 쉬운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보고 블록 없이 물러나서 받을까 고민하는데, 그래도 햐쿠자와는 "내려 찍을 것"이라 예측하고 정확히 블록한다.
* 히나타는 자신도 전부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뒷정리를 한다.
* 다음 일정으론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사이토 코치가 담당인데, 그가 굴을 먹다 식중독에 걸려서 일정이 변경된다.
* 시라토리자와 3학년 & OB팀과 연습시합.
* 그리고 기회가 생기자 거침없이 다가가서 "리시브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물어본다.
- 하이큐/240화 . . . . 15회 일치
* [[히메카와 아오이]]의 천장 서브는 단 1점이지만 [[카라스노 고교]]가 주도하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본인도 긴장을 완전히 떨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한때 이름을 날려도 올해는 1회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게 전국대회, 그래서 그해 누가 이름을 남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대로 히메카와는 정말로 의외의 선수인 셈이다.
* 카라스노 진영에선 동점으로 따라잡히자 TO를 걸어서 견제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천장서브에 대한 대처법을 신속하게 전달하지만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계석에선 우카이 코치를 소개하며 그의 할아버지이며 명장이었던 [[우카이 잇케츠]] 감독에 대해 언급한다. 얼굴만큼은 할아버지와 확실히 닮았다는 듯.
* 아나운서는 카라스노가 천장서브를 기피하는 것 같다고 보는데 그 점은 익숙하지 못한 점이 크다. 해설자가 설명하기론 과거 리시브 룰이 엄격해서 오버 핸드[*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받는 리시브]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엔 매우 위협적이었으나 오버 핸드가 허용되면서는 거의 사장되었다. 그렇지만 오버를 써도 쉽게 잡는다는건 아니고, 시야가 제한되고 낙하속도가 빨라서 익숙하지 않은 선수에겐 까다롭다. 소수지만 "리시브 자세로 잡는게 편한 선수"도 있었다고 언급되는데.
[[네코마 고교]]의 [[코즈메 켄마]]는 자기네 시합 중에도 카라스노의 경기를 확인하며 답답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 이제 네 번째 서브를 준비하는 히메카와. 그는 아직 "흐름"이란건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자기들 쪽으로 왔다는건 자각하고 있다. 그런데 코트에 들어서자 명백하게 분위기가 다른 한 명이 있다. 카라스노의 [[니시노야 유]]. 히메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섬찟한 기분이 든다.
* 히메카와의 4회차 서브. 서브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자 니시노야는 오길 기다렸다는 듯 "왔다!"고 외친다. 만회할 생각으로 가득했던 사와무라는 내심 실망, 그리고 아즈마네는 자기 쪽으로 안 와서 안심한다.
니시노야는 카라스노를 애먹이던 천장서브를 보란 듯이 "리시브 자세"로 받아낸다. 공은 카게야마가 주문한 대로 높이 올라간다. 곧바로 [[히나타 쇼요]]가 달려들며 속공 태세. 그러나 페이크였다. 진짜는 아즈마네. 아즈마네의 스파이크가 블록을 재치고 히메카와의 옆으로 쐐기처럼 박힌다.
* 누구보다 체육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던 히메카와, 그리고 그 히메카와의 주무기를 능숙하게 받아낸 니시노야. 히메카와는 새삼 "이것이 바로 전국"임을 실감한다.
히메카와는 플레이를 마치고 이와무로와 교대하는데, 이와무로는 투입되며 "3세트를 준비해둬라"며 이번 세트의 승리를 자신한다.
- 하이큐/257화 . . . . 15회 일치
* 투입된 히나타는 시작하자마자 미야 형제의 괴짜 속공을 막으며 블로커로 각성하는 듯 했으나 이후로는 번번히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득점을 허용한다.
* 키노시타는 상대가 유명인사들이란 점도 신경쓰고 있다. [[이나리자키 고교]]의 선수들은 방송 인터뷰도 하는 선수들이지만 자기는 센다이 역에서 일기예보 촬영할 때 조차 찍힌 적이 없는 무명 중의 무명. 불안한 마음가짐으로 코트로 향한다. 이때 우카이 코치가 그를 불러세운다.
>지금 이나리자키의 리시버는 [[긴지마 히토시]] 17세.
* 이나리자키의 첫 TO에서 코치가 이런 방침을 전원에게 전달한다. 카라스노의 괴짜 속공은 히나타의 기동력을 전제로 언제 어디서 어떤 각도로든 때려넣는게 장점. 하지만 미야 형제는 오사무의 원래 포지션인 우익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히나타가 아츠무를 전담마크하고 카게야마와 [[타나카 류노스케]]가 좌익과 센터를 리드 블록으로 막는 걸로 대응해본다. 히나타가 오사무를 얼마나 틀어막느냐가 관건인데, 히나타가 제대로 도움닫기만 하면 도달점이 팀내에서 가장 높고 반응도 빠르니 기대해볼만하다.
어쩔 수 없이 블록에서 빠져야 하는 츠키시마는 "어찌어찌 해볼만"이라고 애매하게 평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텐션이 높은 히나타가 "나를 질투하는 거냐"고 으스댄다. 츠키시마는 귀찮아서 태클도 안 걸자 보다못한 타나카가 "태클을 제대로 걸라"고 갈군다.
* 그리고 이 작전의 첫 시험대. 아츠무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괴짜 속공으로 나온다. 카라스노 진영의 수상한 움직임. 오사무가 뒤에서 달려나오자 마자 히나타도 뛴다. 커밋 블록.[* 블로커가 스파이커의 움직임에 맞춰서 뛰는 블록을 뜻한다.] 이 예상 외의 움직임이 먹힌다. 정확하게 괴짜 속공을 셧아웃. 공을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돌려보낸다. 그대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의외의 실적에 카게야마, 츠키시마, 우카이 코치의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가장 놀란건 성공한 히나타 자신.
* 코치의 걱정은 사실화되었다. 키노시타의 두 번째 서브.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여봐란 듯 다시 괴짜 속공을 건다. 이번엔 방금 활약이 무색하게 득점을 허용하는 히나타. 아츠무의 득점으로 19 대 18로 다시 이나리자키가 앞서 간다. 그리고 키노시타의 기용도 종료. 키노시타는 벤치로 돌아가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나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았다. 리시버가 언더로 받게 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두 번째 서브는 조금 더 모서리를 노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과 별개로 그의 투쟁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성과. 그 점은 [[스가와라 코시]]가 본인 보다 먼저 눈치챈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공이 히나타에게 연결되지만 이번 스파이크는 실패. 블록에 막힌다. 다시 공을 가져간 아츠무가 또 괴짜 속공. 이번에는 히나타의 블록이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다행히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 이제 코트 밖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입장이 된 키노시타는 다시 한 번 "기회는 동등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상대도 결국 고교생. 하지만 똑같은 고교생이 아니다. 자신보다 몇 배의 노력과 경험을 쌓은 고교생. 기회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 20 대 18. 다시 점수 차가 벌어진다. 키노시타가 아무리 분해도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시 아츠무와 한 핏줄인지, 오사무의 도발력도 만만치 않다.
- 한용덕 . . . . 15회 일치
'''한용덕'''(韓容悳, [[1965년]] [[6월 2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동아대학교]] 중퇴 이후 병역을 마쳤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 가던 중 [[북일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의 주선으로 [[1987년]] 9월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553 무관의 투수왕 '한용덕'] 《오마이뉴스》, 2006년 9월 27일</ref>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는 힘겨운 [[신고선수]] 시절을 보내고 2년 뒤에서야 비로소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2004년]] [[10월 12일]] [[한화 이글스]] 구단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리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787885& 한화 한용덕, 마운드 떠난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12일 작성</ref>
[[2005년]] [[4월 5일]] 개막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거행했으며 이후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26426 “훌륭한 지도자로 돌아올 것”]《대전일보》, 2005년 4월 5일 작성</ref> [[2005년]] 시즌 종료 후 단행된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 정비에서 2군 [[투수]] 코치로 임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131374& 한화, 1군 투수코치 최동원 임명] 《연합뉴스》, 2005년 10월 25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중반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41623& 한화, 우완 조성민 1군 올리고 최동원 코치 2군행] 《Osen》, 2006년 7월 24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법을 전수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249270 신인 삼총사, '신무기 장착으로 2년차 징크스 넘는다'] 《조이뉴스》, 2007년 2월 21일 작성</ref> [[2007년]] 시즌 중반 [[이상군]]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재활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733318& 한화, 1군 투수코치에 이상군]《연합뉴스》, 2007년 8월 22일 작성</ref>
[[2012년]] [[8월 28일]] [[한대화]]가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경질되자, 감독 대행으로 보직 변경되어 남은 시즌을 치르고 시즌 후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한화 구단에서는 [[류현진]]의 해외 진출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을 것을 제의하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이후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마친 후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로 복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95143 한용덕 코치, 프런트 변신 "한화맨으로 죽겠다"] - OSEN</ref>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KBO 타자|88770}}
|전임자 = [[한대화]]
|후임자 = [[김응용]]
|전임자 = [[이상군]] 감독대행
|후임자 =
- 허위 . . . . 15회 일치
==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
|||| {{{+3 '''허위''' }}} / {{{+2 [[한자]]: 許蔿 }}} ||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가 [[고종(조선)|고종]]이 내밀봉서(內密封書)로 의병 해산 명령을 내리자 해산하였다.
1907년 [[고종(조선)|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 7조약]]으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왕산로]]이다.]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심문을 받던 중 '의병을 일으킨 주동자와 대장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주동자는 [[이토 히로부미|이토]]이며 대장은 나다.'라고 대답하고, 이유를 묻자 '이토가 우리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의병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이토가 곧 주동자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야사가 있다.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 출처. 백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
여담으로 그의 증조카가 [[일제강점기]] 시기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했던 [[허형식]]이다.[[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local=gumi&dataType=01&contents_id=GC01201509|#]] 또한 당조카인 허길의 아들이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직계 제자로는 대한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이 있다. 박상진은 허위가 순국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SBS의 드라마 [[제중원(드라마)|제중원]]에서도 후반부에 중요 조연으로서 등장한다. [[손현주]]가 연기하였고, 외유내강형의 인자한 인물로 그려진다. 총상을 마취 없이 치료하는데도 버텨냈으며 그 대가로 주인공 황정의 호를 지어준다. 주인공이 독립 운동가로 각성하도록 돕는 인물 중 하나.
참고로 이 분의 손자 분들이 구 소련 및 중앙 아시아에서 [[고려인]] 신분으로 힘들게 사시다가 2006년 [[귀화]]하셨다 [[https://www.youtube.com/watch?v=x2lb-2qPOlw&t=1025s|#]]. 3대가 지나온 국권 침탈 - 연해주 - 중앙 아시아의 기나긴 여정과 또 종착점으로서 그들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눈물겹다.
- 홍상수 . . . . 15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조 모 氏 (1985년 ~)
| 자녀 = 1녀
* 2004년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2014년 - 《[[자유의 언덕]]》
* 2016년 -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2016년 - 《[[밤의 해변에서 혼자]]》
* 2014년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자유의 언덕]]》
* 2014년 제36회 낭뜨3대륙영화제 최우수작품상《[[자유의 언덕]]》
* 2015년 제2회 [[들꽃영화상]] 극 영화부문 감독상《[[자유의 언덕]]》
* 2016년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은조개상《[[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2017년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0대 영화상《[[밤의 해변에서 혼자]]》
* 2017년 제1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대상《[[밤의 해변에서 혼자]]》,《[[그 후 (영화)|그 후]]》
{{둘러보기 상자 묶음
- 히나타 쇼요 . . . . 15회 일치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미숙한 세터가 토스미스한 공을 쳐낼 정도의 뛰어난 반사신경에 감탄한다. 하지만 히나타 외엔 누구도 의욕도 실력도 없었던 유키가오카 중은 불과 31분만에 세트포인트 2-0로 키타가와 제1중학교에 참패. 이 때 카게야마는 중학교 3년 동안 무얼 했냐며 히나타를 질책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설욕을 다짐하며 남은 중학교 시간을 여자 배구부, 동네 아줌마 배구팀과 훈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욕을 다짐하며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러나 배구부가 있는 제2 체육관에 있던 건 바로 원수 카게야마였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 여타 다른 소년만화의 열혈계 주인공들과 다르게 의외로 겁이 많다. 특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키 큰 사람 앞에만 서면 잔뜩 위축되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키 큰 사람 뒤에 숨는다.~~모에~~ 그랬던 놈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자신이 겁먹었었던 그 큰 놈들을 상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희번뜩이고 달려드는 것이 포인트. 이 때의 기백과 기세가 굉장해서 상대팀의 강자들조차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런 그를 보고 '워밍업 존에서 갈망을 가득 쌓고 올라 온 작은 짐승'이라 표현하며 잔뜩 의식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 작은 키와 어린애 같은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가끔 정말 상대의 기를 눌러버릴 만큼 위압감을 내보일 때가 있다.~~패기?~~ 평소의 생글거리는 얼굴과 대조되는 정색한 표정, [wiki:"죽은 눈" 동공이 열린 눈], 얼굴에 그늘진 음영 등 [[wiki:"얀데레" 똘기]]가 엿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내어 상대~~와 독자~~로 하여금 오싹한 느낌이 들게 한다. 덕분에 [[wiki:"마나미 산가쿠" 싸이클패스]]에 이은 ~~[[하이패스]]~~하이큐패스 드립까지 나오고 있다(...).
* 경기 시작 전에 화장실을 가면 꼭 화장실 앞에서 중요 인물을 만난다는 [[징크스]]가 있다. 여담으로 이 징크스가 시작된 것은, 중학생 때 대회날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난 것이 시초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복통~~ 사실 히나타 본인도 화장실은 위험인물과 마주치는 장소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봄고 미야기현 대표 결정전 대회 날, 화장실 앞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wiki:"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와 [wiki:"이와이즈미 하지메" 이와이즈미], 시라토리자와학원의 우시와카, [[다테 공업 고교]]의 아오네와 한꺼번에 ~~강제~~[[정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트리플플레이~~ ~~올스타전 총출동~~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14회 일치
* 방에서 혼자 있던 하야시다 타카시는 밖에서 들려오는 폭죽 소리를 듣고 카와모토 아카리를 떠올린다.
* 하야시다는 축제 때 방문했던 시마다 카이가 아카리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감정을 자각한다.
* 시마다에 비하면 당연 자신이 불리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보려 하는 하야시다.
* 큰 용기를 내서 아카리가 일하는 긴자의 가게에 방문하는데 마침 시마다도 같은 생각을 하고 가게를 들르고 있었다.
* 저녁 시간. 방에 혼자 있는 하야시다 타카시.
* 그렇게 자각해 버린 이상 "완전히 글렀다"라고 생각해 버린다.
* 하지만 이런 일에 서툴렀던 하야시다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있었다.
* 슬슬 시마다 9단도 적령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 하필이면 같은 여자에게 꽂히고 말았던 것이다.
* 스스로에게 행한 팩트폭력으로 빈사가 되지만 "아직 시마다 9단이 아카리씨를 노린다고 정해진건 아니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 각오를 굳히고 긴자의 가게에 갈 자금부터 확인해 본다.
* 긴자에 오는건 처음이었던 하야시다는 잔뜩 얼어있다.
* "이 사람 혼자만 문을 열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보단 훨씬 다행이야."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14회 일치
* 출판사에서 미팅 중인 모토바 키리에. 어느덧 팬네임 "키링링"도 생기고 어엿한 예비 작가다. 언제나처럼 스승님(코마루)와 논 이야기를 즐겁게 한다. 듣고 있던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그 얘기를 중단시키며 진짜 미팅을 시작하자고 한다.
*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키리에가 지나치게 "스승님"에 집착하는게 아닌가 우려한다. 그냥 봐도 너무 좋아한다는걸 알 수 있는데다 다른 소재를 그리라고 해도 여전히 스승님을 그려 오질 않나, 편집자로선 속터지는 일 투성이다. 키리에는 편집장도 스승님의 귀여움을 이해하기 바란다면서 꼭 이 소재로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편집장은 너무 몰아쳐도 창작의욕을 꺾을 수 있다 판단, 스승님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 이 만화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터부를 건드린 편집장. 정작 키리에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미팅 후 도마가에서 우마루(코마루모드)와 노는데, 미팅의 일 때문인지 넋이 나간 상태. 편집장은 그림책 상에서 설명할 필욘 없지만 "작가 본인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정론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키리에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 키리에의 상태가 이상한걸 눈치챈 우마루. 키리에는 얼버무리려고 허둥댄다. 그러다 문득 "스승님은 잘하는게 뭔가요"라고 묻는다. 우마루는 FPS에서 헤드샷을 잘 쏘고 맛만 봐서 콜라 브랜드를 구분하고 자려고 하면 언제든 잠드는 것 등을 얘기한다. 키리에는 굉장하다면서 특기를 전수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FPS는 3D 멀미로 입문 불가. 콜라는 탄산 자체를 잘 못 마신다. 잠은 마음을 진정시키는게 요령인데, 옆에 스승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흥분해 진정을 못한다.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자 우마루는 어차피 배울 필요도 없는 기술이라고 위로한다. 키리에는 생각 끝에 자신의 고민을 고백한다. 우마루를 쭉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자신도 의미를 알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제자로 받아달라고 한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자신은 이상하게 오버하게 돼서 민폐를 끼치는 일이 있고, 지금도 스승님에게 민폐가 아닌지 걱정된다고 한다.
* 우마루는 자신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답은 명백하다고 말한다.
놀고 먹고 자는걸 군더더기 없이 해내는게 건어물도. 우마루는 그거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얼마 뒤 귀가한 도마 타이헤이. 집에 돌아오자 마자 대낮부터 건어물도에 매진하는 두 소녀를 발견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14회 일치
* 대인기 RPG 게임 속편 발매. [[도마 우마루]](코마루모드)는 [[콘고 히카리]]에게 같이 하자고 권한다.
* 감각과 경험으로 적당 적당히 헤쳐나가는 우마루와 달리 히카리는 메뉴얼부터 정독하는 프로페셔널한 공략자였다.
* 처음엔 우마루가 앞서갔으나 시간이 흐르자 히카리의 우위, 격차는 계속 커진다.
* [[드래곤 퀘스트]] 틱한 대인기 RPG 신작 발매. 대히트를 기록한다. 게이머인 [[도마 우마루]]가 그냥 넘어갈리 없다. 우마루는 [[콘고 히카리]]를 꼬셔서 같이 게임하자고 부추긴다. 하지만 히카리는 RPG에는 완전히 초보다.
* 드디어 도착한 게임. 히카리는 설명서부터 착실하게 읽으면서 시작하는데 우마루는 적당 적당 감과 경험으로 플레이하는 타입. 우마루는 전사를 택하고 히카리는 마법살를 택한다. 히카리는 그냥 설명서에 추천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유로 마법사를 고르는데, 우마루는 그것을 은근히 얕본다. 실제로 마법사는 초반엔 체력이 낮아 고생하는 직업이므로 우마루는 자비를 베풀어 서포트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히카리는 마을을 꼼꼼하게 돌아보자고 하지만 우마루는 일단 밖에 나가서 보이는대로 몬스터를 잡아댄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레벨이 20대로 성장. 히카리를 크게 앞지른다. 이것만 봐서는 게이머로서는 우마루가 한 수 위... 라는 것 같았지만.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식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반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 막상 다음 플레이 때 합류해 보니 히카리 쪽이 레벨이 더 높다. 게다가 우마루가 고전했던 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약점 속성을 찌르며 수월하게 진행한다. 서포트해주려 했던 상대에게 서포트를 받게 되자 굴욕감을 느낀 우마루. 다음 번에야 말로 역전해주겠다는 각오로 또다시 게임에 매진하지만 오히려 레벨차는 더 벌어져 버린다. 히카리는 기본적으로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만 게임 센스도 있다. 특히 메뉴얼로 시스템을 숙지하고 그 내용을 실전 플레이에서 검토해서 최고로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 방식이라 무작정 닥돌하는 우마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 그래도 우마루는 자신의 경륜을 내세우며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데 히카리는 그렇게 골몰하는 우마루를 보고 시무룩해한다. 같이 게임을 하면 "우마루짱이 별로 즐거운거 같지 않다"고 봤기 때문. 우마루는 이건 "라이벌을 만나서 불타오르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즐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마루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데.
*우마루와 히카리는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게임계를 평정한 2인조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게임폐인이 두 명으로 늘어났을 뿐, 보호자인 타이헤이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 김규철(배우) . . . . 14회 일치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출신이며 [[1993년]] [[서편제(영화)|서편제]]의 주인공 동호 역으로 데뷔하였다. [[1995년]] 《도둑과 시인》의 시인역 이후로는 영화 출연은 거의 없다. [[2006년]] [[장진(영화 감독)|장진]]의 《거룩한 계보》의 한욱 역(악당 조연), [[2007년]] 《바르게 살자》 ... 김선배 역(특별출연) 정도.
배우자는 '빈들', '외로운 날'이라는 노래로 잠깐 활동했던 '유숙'이라는 가수이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에 [[말괄량이 삐삐]]의 주제곡을 부른 적이 있으며 [[투니버스]]에서 만화 주제곡을 부른 적도 있는데 [[캡틴 테일러]]의 주제곡을 불렀다. 당시로도 가창력과 외모가 준수한 편이었다. 결혼 후에는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내조에 주력하는 듯.
데뷔 초에는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가 인기를 끌면서 순한 인상의 소시민 이미지였다. 그런데 의외로 이 시기에 왕 역할도 많이 맡았다. 그러다가 서궁에서 [[광해군]] 역[* 그 [[이영애]]가 그를 모시는 상궁 [[김개시]] 역이었다.]을 맡으면서 [[악역]] 연기를 개척하여[[http://blutom.tistory.com/536|#]] 선악을 오가는 수많은 배역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서궁은 영 망했다-- [[드라마]] [[소설 목민심서(드라마)|소설 목민심서]]의 고뇌하는 지식인이자 외곬수 개혁가인 [[정약전]] 역을 맡기도 했다.
극중 배역은 대체로 두 부류로 갈린다. 선역일 경우 평범한 소시민 샐러리맨이나 순둥이 부모역, 악역일 경우는 더러운 짓을 도맡아 하는 잔머리 모사꾼 등.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찌질하거나 --소심하다는 것--.''' 겉으로 많이 오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별로 튀진 않지만, 연기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으로 자기 배역에 잘 녹아든다. 특히 2005년 미니시리즈 [[부활(드라마)|부활]] 의 최동찬과 06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의 신홍은 훌륭한 악역 연기로 호평받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중요시하는 지금에 와서 다시보면 과한 표정연기가 어색해보인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역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악역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때문에 사양하고 이순신의 친구인 [[임천수]][* 참고로 단역이지만 임천수의 아버지 역할은 배우 [[정진]]이 맡았고, 이 분은 [[조선왕조 500년]]에서 히데요시를 맡기도 했다.] 역을 맡았으나... 임천수가 [[흑화|악역으로 훌륭히 각성하여]] 돈이라면 매국도 서슴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속았다!-- 그 후에도 [[바람의 나라(드라마)|바람의 나라]], [[프레지던트(드라마)|프레지던트]] 등에서 지략이 뛰어난 악역을 연기하여 호평받았다.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의 [[노갑수]] 역시 전형적인 털리는 악역(...) --체념하고 악역에 투신,-- 마침내 2015년에는 징비록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으로 캐스팅 확정! ~~악역을 넘어서 원숭이까지...~~
악역 전문이지만 드라마큐브에서 [[카라(아이돌)|카라]] 출신 [[니콜(가수)|니콜]]과 자신의 불치병에 대한 유전 때문에 딸을 거부했지만 결국 딸을 아끼고 죽은 뒤에도 영혼이 되어 딸 곁에 머물며 오직 딸만을 걱정하는 절절한 부성애의 아버지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 2010년 국권침탈 100년 특별기획 5부작 [[자유인 이회영]] - [[상하이|상해]] 지국장(KBS 대하드라마 6회 출연)
* 2010년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노갑수(특별출연)
* 2009년 KBS 연기대상 특집 문학관 남자 단막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대우전자]] 초간편VTR
- 김운용 . . . . 14회 일치
'''김운용'''(金雲龍, [[1931년]] [[3월 19일]] ~ [[2017년]] [[10월 3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스포츠 행정가이다.<ref name="newsis_2011-04-18_419">{{뉴스 인용 | 저자=배민욱 | 위치=서울 | 뉴스=뉴시스 | 제목="국민이 하야 원해? 그럼 하지"…4·19 생생한 증언 |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3808062 | 날짜=2011-04-18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65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3808062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남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 1962년 : [[동덕여자대학교]] 강사를 역임함.
* 1982년 : [[대한민국 외무부]] 정책 자문 위원으로 위촉됨.
* 1990년 6월 : 대한민국의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함.
== 참고 자료 ==
|전임자 = [[김종열]]
|후임자 = [[이연택]]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14회 일치
* 테러조직 역할을 맡은 갱 오르카에게 대응하며 구조활동도 지속해야 하는 시험자들.
* 그러나 HUC에게 포풍같은 감점을 당하고 마는데. 안전확인도 없이 요구조자를 이동부터 시켰기 때문.
* 요구조자가 깔린 곳은 잔해들끼리 미묘하게 떠받쳐서 밸런스가 유지되는 상황. 어느 것을 치워버리면 그대로 무너져서 요구조자가 다칠 수 있다.
* 이후 우라라카가 잔해를 띄워서 치우면서 전진, 피해자를 구조하는데 성공한다.
* HUC는 이런 대규모 재해에선 구조자는 한없이 부족하기 마련이니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관건이라 평한다.
* A반은 완벽하진 않지만 상당히 잘 적응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 다른 학교라도 자신의 개성과 잘 조합할 수 있는 개성과 함께하는게 채점에 유리하기 때문.
* 가차없이 감점 당할 것 같았는데, HUC는 "우리는 경상자이므로 우선도가 낮다. 그걸 간파하고 스스로 이동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준다.
* 갱 오르카는 카미노구 빌런 연합 토벌에도 참가했던 강자.
* 그는 빌런 역할로 투입되어 부하들을 이끌고 시험자들을 공격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프로 히어로라도 이런 상황은 어렵다며 시험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시한다.
* 갱 오르카도 시험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흥미를 보이는데, 각자 위치에서 상황을 주시하는 요아라시, 도토로키 쇼토, 미도리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14회 일치
* 자신은 히어로의 자질은 커녕 "의협심" 조차 없다고 좌절한 [[키리시마 에지로]]는 웅영고 진학도 포기하려 했다.
* 크림슨 라이오트는 "진짜 무서운건 빌런도 죽음도 아닌 희생자의 마지막 표정과 구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이라 인터뷰했는데 딱 지금 키리시마를 위한 말이었다.
* 히어로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나 외견, 인기가 아니라 "의협심". 동경하는 히어로 "크림슨 라이오트"의 가르침을 따르며 히어로를 지망했던 [[키리시마 에지로]]는 기묘한 사건으로 그 자긍심이 무너지는 일을 겪는다. 히어로는 커녕 사나이도 아니다, 그런 자괴감이 들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저 겉으로만 그럴 듯한 말과 행동을 했고,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시도 미나]]처럼 그런 상황에서도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인간이 진정한 히어로다.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더 옛날의 얘기지만, 개성이 막 발현했을 무렵은 더 한심했다. 개성이 처음 발현했을 때 눈을 비비다 눈을 베어버릴 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 눈 위에 있는 흉터가 그때 생긴 것이다. 거기에 겁을 먹은 어린 키리시마는 한동안 자기 개성이 싫다며 울었다고 한다. 그가 크림슨 라이오트를 동경하게 된 것도 그때 일이 영향을 준 걸지 모른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개성을 가진 히어로였다. 키리시마가 히어로를 지망했던건 단순한 도피행위, 대리만족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부록의 영상은 크림슨 라이오트가 출연한 인터뷰 장면이었다. 자신의 히어로관을 피로하던 대목이다. 키리시마는 이 영상으로 처음 크림슨 라이오트를 만났다.
>죽은 자의 마지막 표정, 구하지 못했다는 괴로움
>자신을 가진다거나 무서워 할 줄 모른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한심한 자신과는 이별이다!
- 남명렬 . . . . 14회 일치
* 《[[제보자 (영화)|제보자]]》 (2014년) - 유종진 교수 역
* 《[[서양 골동 양과자점 앤티크]]》 (2006년) - 천 사장 역
* [[2013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드라마 스페셜 《[[주군의 태양]]》 - 집을 안팔겠다는 남자 역
* 레자 드 웻의 세자매 (2009년)
* 사랑이 없으면 여자도 없다 (2001년)
*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1992년)
* 사자와의 경주 (1980년)
* 신라에 온 페르시아 왕자 (2013년)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양평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경기대학교 동문]]
- 니쿠쟈가 . . . . 14회 일치
고기, 감자, 양파를 재료로 하여, 간장, 설탕, 미림(조리용 일본주)을 조미료로 하여 만든 조림 요리. 감자조림, 고기감자조림 등으로 번역한다.
마이즈루 시는 1901년, 도고 헤이이치로가 처음으로 사령장관으로서 마이즈루 진수부(舞鶴鎮守府)에 부임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마이즈루 해상자위대총감부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니쿠자가 레시피로 알려져 있는 1938년 출판된 『해군주방관교과서(海軍厨業管理教科書)』가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1995년 마이즈루 시는 「니쿠쟈가 발상지(肉じゃが発祥の地)」를 선언했다. 그리고 매년 마이즈루 니쿠쟈가 축제(まいづる肉じゃがまつり)를 열고 있다.
니쿠쟈가 도고 헤이이치로 기원설 자체에 반론도 존재한다.
니쿠쟈가 자체가 특별히 발명할 필요가 없는 요리라는 주장도 있다. 고기를 간장, 설탕 양념으로 끓이는 스키야키 류의 요리는 이미 메이지 시대에 널리 퍼졌고, 감자 역시 에도 시대에 많이 보급된 작물이었기 때문에 감자와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자연발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여담으로 니쿠자가라는 명칭 자체도 굳어진 것은 1965년대 말로서, 그 전 까지는 "감자와 쇠고기 조림(じゃがいもと牛肉の煮物)", "쇠고기와 감자 단조림(牛肉とじゃがいもの甘煮)"등으로 명칭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 돗자리 . . . . 14회 일치
바닥에 앉거나 눕기 위해 까는 도구. 천 돗자리, 대나무 돗자리 등의 재질이 있고, 사람들에게 익숙한 은박 돗자리도 있다. 사각형 돗자리가 보통이나 원형 돗자리 등도 존재.
[[소풍]] 등 야유회의 필수 아이템이나 그냥 골판지 상자나 신문지를 적당히 깔아서 쓰기도 하며 이제는 접을 수 있는 바닥깔개도 나왔다. 그래도 큼지막한 돗자리는 여전히 유용하다.
원래 '자리'라 불렀고, 대나무 재질의 돗자리를 돗자리라 불렀으나 현대에는 돗자리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삼국지]]의 [[유비]]의 이전 생업이 돗자리 장수. 물론 식물을 엮어서 만든 과거의 그 돗자리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14회 일치
| 배우자 =
* [[숙명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학사)
2010년 10월 첫 솔로앨범 《이별 뭐 별거야》를 발표하였다. 인디 밴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2&aid=0002197578 '홍대여신' 레이디제인, 솔로 데뷔 선언], 《세계일보》, 2010년 10월 27일</ref> 2011년 11월 미니앨범 《Jane, another Jane》을 발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복고풍의 경쾌한 댄스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 前 남자친구인 [[사이먼 도미닉]]과 ‘여섯시 반’을 발매했으며, 이어 8월에 [[닥터심슨]]과 ‘Clinic 12.5%’를 합작, 발매하였다. 2013년 1월 9일 ‘Hello’의 발매에 이어 2월 15일 [[원써겐]]과 ‘New Story Part 5’의 발매, 9월 5일에는 싱글 음원 ‘일기 (Diary)’를 발매하였다.
* [[패션N|FashionN]] 《남자처방전 사심연구소》
* [[SBS]] 《스타 VS 국민도전자, 페이스오프》
* [[E채널|E Channel]] 《[[용감한 기자들]]》
* [[KBS 1TV|KBS1]] 《[[시간여행자 K]]》
* [[MBC]] 《[[나 혼자 산다]]》
* [[JTBC]] 《이론상 완벽한 남자》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마기/315화 . . . . 14회 일치
* 홍옥은 귀왜국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어하는데 이들은 수배자인 주제에 관광하러 다니는 통에 자리에 없다.
* 사실 홍옥은 알라딘의 행방을 알고 있었지만 감시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알리바바에게 전하지 못했다.
* 사실 백룡이 퇴위를 전후로 부자연스러운 사건이 많았는데 너무 정확하게 같은 시기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 홍옥은 사실 오빠들을 쫓아가는 것에만 급급해 너무나 힘들었다. 스스로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 알라딘은 그런 이야기를 알리바바에게 했냐고 묻는데 자기는 친구들 앞에선 똑소리나 보이게 있고 싶다며 하지 않았다고 한다.
* 그럼 왜 자신에겐 털어놓느냐고 하니, 왠지 알라딘이라면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 명백히 거절당하자,뻘줌해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하는 알라딘.
* 그래야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자신을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야무라이하, 마스루드는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과 안부인사를 나눈다.
* 샤를르칸은 결혼을 축하한다며 축의금을 듬뿍 주겠다고 하는데, 알리바바는 한술 더 떠서 이번에 "알리바바 상회"를 세우게 됐으니 투자금 좀 대달라고 한다.
* 은근슬쩍 투자금을 떼인 샤를르칸.
- 마기/332화 . . . . 14회 일치
* 알라딘은 성궁 시스템 자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궁을 파괴, 전세계를 암흑대륙처럼 "위대한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만들려 한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에게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타도할 것을 맹세한다. 모르지아나는 모든 사람들이 루프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반박하지만 알리바바는 단호한 태도로 "내가 아는 모르지아나는 그딴 소린 죽어도 안 할 여자"였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 알리바바는 그렇게 된 거니 밥이나 해놓고 기다리라고 하지만 모르지아나는 "알리바바씨가 싸우러 간다면 나도 가는게 맞다"며 오히려 성을 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말로 싸우러 나서지는 못한다. 무언가가, 루프가 그녀를 속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루프 탓이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분해한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신드바드의 세계를 부술 것을 맹세하는 알리바바.
* 그날 밤 알리바바는 [[알라딘(마기)|알라딘]]과 합류해 자신의 결의를 전달한다. 더이상 세상의 정의가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믿겠다는 것이다. 알라딘은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네 마기니까 네 대답을 듣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알리바바에겐 속시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넌 그냥 알라딘! 좀 더... 자기 일처럼 생각해봐!
* 황제국에 아침이 찾아온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상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알리바바가 그랬듯 알라딘도 자신이 생각한 결론을 밝힌다.
지금 처한 상황은 누구 한 사람이 나빠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성궁"이라는 시스템의 한계. 성궁이 관리하기 때문에 "검은 루프"나 "타전"이 구분되는 것이다. 게다가 성궁이 존재한다는건 누군가는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신드바드든, 솔로몬 왕이든, 자신이나 [[우고]]든 합당한 자리가 아니다. 그 누구라도 "평범한 인간"인 이상 완벽한 관리자는 될 수 없으니까.
이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는 두 사람. 하지만 연백룡과 쥬다르는 신드바드의 루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백룡은 자신들은 완전히 타전한 존재라 루프의 흐름에서 벗어났기에, 신드바드의 루프 조작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쥬다르는 역시 타전하길 잘하지 않았냐고 실없는 소릴 해댄다.
쥬다르는 이 기분 나쁜 세상을 부수러 가는거 아니냐며 자기들을 끼워주지 않으면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적어도 자기들 말고 두 명은 같은 생각을 한다는걸 알게 된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14회 일치
* 초자력병기 (超磁力兵器)
인더스트리에서 쓰는 자원. 인더스트리아는 플라스칩을 이용해 석유, 빵이나 의류 등을 가공해낸다. 아마 인더스트리아에 자급자족할 농작물이 없어서인 듯하며 그러다보니 옛날에 생산된 플라스팁을 땅에서 캐내어 쓴다. 커피도 합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빵 이외의 음식물도 플라스칩을 쓰는 드사..
작품상에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며, 최종적으로는 기간트와 싸우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기간트 위에 추락한 끝에 간신히 활강비행으로 삼각탑에 귀환한다. 이후 수리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다가 삼각탑과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인더스트리아의 작업용 [[로봇]]. 로봇이지만 조작원 1명이 탑승해서 조작해야 하는 물건이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며, 3개의 레버와 4개의 스위치로 조작이 가능하다. 형태는 상자 모양의 본체에 양팔과 양다리가 붙은 모양이며, 머리가 있어야 할 지점에는 조작원이 탑승하는 좌석이 오픈형으로 설치된다.
허접한 모양과는 달리 작업용으로도, 전투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양팔의 매니펼레이터(manipulator)는 매우 정밀한 편이라, 삽질은 물론이거니와 기관총 등을 직접 들고 사격이 가능할 지경이다. 그래서 각종 작업장 및 바라쿠다 호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코믹하게 묘사될 때는 로보노이드의 매니펼레이터로 (탑승자의) 머리를 긁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이하버에 한 기의 기체가 숨겨져 있었는데 이 비행정은 선술된 도토리 모양의 기체와 달리 크루저 스타일이며 속도는 750km/h에 앉을 자리에 주방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전투력은 없으며 방탄도 지원되지 않아서 팔코에게 격추되었다.
인더스트리아에서 침몰한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사용하는 선박. 현대의 동종선박과는 달리 자력항해가 불가능하다. 선박에는 크레인과 각종 작업도구가 있으며, [[잠수복]]은 외부에서 인력펌프로 공기를 넣어주는 공기 호스가 달린 구식 물건이다. 작품상에서는 간신히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으며, 해당 여객선은 인더스트리아 주민들의 피난선으로 사용되었다.
대참사 당시 지구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우주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곳으로 여기서 코난이 태어났으며 코난의 부모를 비롯한 코난의 할아버지 동료들이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1화 시점에서는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 두 사람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는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코난의 할아버지가 라나를 잡으러 온 몬스리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군인 2명에게 저항하다가 죽은 뒤, 코난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남겨진 섬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대륙이 되면서 코난이 살던 집은 산 정상에 위치하게 되었는 데 대륙이 된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에 다이스, 몬스리, 류케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피난민과 테라를 비롯한 하이하버의 일부 주민이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은 작 중에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지역이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라나의 고향으로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참사 이전에는 주민들이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대참사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국가의 형태를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오로와 같이 전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는 반항적인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무리를 이룬 경우도 있다. 17화에서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나를 잡아가려는 데 혈안이 된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20화에서는 점령군으로 왔었던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이 하이하버의 주민이 되어 일을 하며 정착한다. 라오박사의 반중력 비행정이 하이하버에 있었는 데 인더스트리아에서 파르코 비행정에 의해 격추된다.
- 박기혁 . . . . 1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2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000년 ~ 2014년)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상]]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상]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2014년 11월 26일 FA 우선 협상 마지막날 [[롯데 자이언츠]]의 3년 10억의 제시액을 거절하면서 팀을 떠났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3126422 롯데, FA 선수 모두 협상 결렬..] - 이데일리</ref>
[[롯데 자이언츠]] 소속 당시 선수들 가운데 가장 체형이 말라 '뼈기혁'이라는 별명을 보유하고 있다.
|2000 ||rowspan="13" style="text-align:center;"|[[롯데 자이언츠|롯데]]||0.333 ||5 ||3 ||1 ||1 ||0 ||0 ||0 ||1 ||1 ||0 ||0 ||0 ||0 ||2 ||0 ||0 ||
* {{KBO 타자|70553}}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칠용 . . . . 14회 일치
| 출생지 = {{KOR}} [[세종특별자치시]]
| 배우자 = 민정애
| 자녀 = 슬하 2남
* [[1988년]] [[KBS2|KBS]] 《[[TV 손자병법]]》
* [[1991년]] [[문화방송|MBC]] 《[[여명의 눈동자]]》
* [[1998년]] [[KBS]] 《[[킬리만자로의 표범]]》
* [[2000년]] [[SBS]] 《[[여자만세 (2000년 드라마)|여자만세]]》
* [[2003년]] [[서울방송|SBS]] 《[[왕의 여자]]》
* [[2015년]]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 보석감정사 역 (특별출연)
* [[1985년]] 《여자의 반란》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9년 데뷔]][[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조치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성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동문]]
- 박희광 . . . . 14회 일치
박희광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일본 영사관 습격,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 암살,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해 활동한 스파이 배정자(裵貞子, 일본식 이름: 다야마 사다코) , 이용구, 최정규 암살임무 등 항일 독립운동단체와 임시정부에 무기와 군자금을 조달 했었다.
박희광은 1924년6월7일 상해임시정부(김구 선생)의 지령으로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봉천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이날 저녁 대서관(大西關)에서 군자금을 탈취하고, 금정관(金井館)에서 다시 군자금 300엔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일본, 중국 경찰과 총격전끝에 현장에서 김병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광추는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 군자금 300엔의 가치 ==
군자금 300엔의 가치를 '한길사'에 나온 자료를 근거로 추정한다면 다음과 같다.
1922년 가을 쯤 300엔이라는 돈의 가치를 추정한다면, 당시 찬거리로 5전(錢)을 내면 푸줏간에서 150g 정도의 작은 쇠고기 덩이를 주었다니까 600g 1근에 20전 정도. 지금의 쇠고기 값 횡성한우 1등급 국거리 600g기준 26,800원으로 잡으면 1전에 1,340원, 그 당시 환율로 100전은 1엔이니 300엔은 40,200,000원정도 추정된다. 당시, 권총 한자루를 구하는데 10개월이 걸렸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의 자금난을 고려한다면 군자금으로는 거금이라 할수 있겠다. (姜東鎭, ‘日帝의 韓國侵略政策史 – 1920년대를 중심으로’, 한길사, 1980, 394~395쪽)
뤼순형무소 수감 독립운동가로써는 최장기 복역중 일본천황 즉위와 황태자 출생 등 두 차례 감형되어 출옥하였다.
2016년 8월1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뤼순감옥 박물관과 다롄외국어대 김월배 교수의 도움으로 안중근, 신채호, 박희광, 백여범, 채세윤 등 이분들의 수감생활을 짐작할수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전시하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박희광의 업적은 증명할 방법이 없어 귀향생활을 하던중, 1924년9월1일자 동아일보 등에 사건과 선고공판 등의 행적이 증명되면서 1968년3월1일자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받았다.
- 배성룡 . . . . 14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자주조선의 지향〉(1949)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64년 죽음]][[분류:청도군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분류: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성주 배씨]]
- 백성현 . . . . 14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조선 덕종|의경세자]] 역, [[조선 성종|성종]] 역
| [[소현세자]]
|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
| 견자
| 신인 남자연기상
| 남자 신인상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수원 백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싸이더스HQ 소속]]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14회 일치
>뭐가 소자화야 젠장.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쓸 돈 있으면 보육원 만들어.
>보육원도 늘리지 않고 아동수당도 수천엔 밖에 주지 않지만 소자화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좋은 이야기 있을 리가 없어 바보.
출산 이후 직장에 복귀하려는 여성이 보육소([[탁아소]])를 이용하려고 해도, 보육을 바라는 아동의 숫자에 비해서 보육소의 숫자가 적어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소를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을 '대기아동'이라고 칭하는데, 이 숫자가 매우 많아서 보육소에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사람이 매우 많다. 보육원의 개설에는 지자체의 인가가 필요한데 이에 관련한 여러 행정적 문제 등이 원인으로 보육원은 쉽게 늘릴 수 없으며, 보육사 역시 대우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보육원은 쉽게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이메일로 블로그 소유자와 연락한 바에 따르면, 블로그 소유자는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초반 여성이라고 자칭했으며, 남편과 1세가 되는 남자아이와 3인 가족이서 생활하고 있고, 사무직 정규직으로 4월에 복직할 예정이었으나 보육소에 아이를 넣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하였다.
2월 29일에는 일본 국회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桜里) 민주당 의원이 이 블로그에 대해서 거론했으나, [[아베 신조]] 총리는 "익명인 이상 실제로 진실인지, 내가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으며, 의원석에서는 "누가 (블로그에) 쓴거야", "(질문자는) 제대로 (쓴) 본인을 내놔."라는 야유가 날아왔다고 한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익명 블로거에게 기자 접촉(아사히 신문) : http://www.asahi.com/articles/ASJ3355J2J33UTIL01N.html
- 블랙 클로버/103화 . . . . 14회 일치
* 공격에 맞고 일행과 떨어진 아스타는 어떤 미인에게 귀족이 추근거리는걸 목격하는데, 아스타가 돕기도 전에 미인이 혼자서 귀족을 제압해버린다.
* 난데없이 더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키아토]]는 멋대로 동생 [[카호노]]가 오빠를 위해 벌이는 이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복심은 따로 있었다. 척봐도 관계 진전이 미적지겋나 [[노엘 실버]]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자극하기 위한 이벤트다. 의도대로 노엘은 카호노가 아스타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스타는 더블 데이트가 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 노엘은 아이를 달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려고 하지만 너무 심하게 울어서 곤란해한다. 아스타는 게임경품으로 탄 공놀이 세트로 간단한 곡예를 펼쳐서 아이의 관심을 돌린다. 카호노와 키아토는 춤과 노래를 더하고 노엘은 여기에 물마법으로 무대효과를 연출해서 그럴 듯한 공연으로 만든다. 덕분에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투덜거리기만 하던 시민들도 공연을 보며 환호한다. 노엘은 드디어 아이에게 물어서 "에마"라는 이름을 확인한다. 카호노는 그 이름을 노래마법에 실어서 축제현장 전체에 울려퍼지게 한다.
어머니는 노엘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는데, 그녀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보고 왕족 "실버가문"의 일원임을 알아본다. 왕족을 귀찮게 했다고 생각했는디 어머니는 크게 당황한다. 주변에서 보고만 있던 시민들도 수군거리며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는게 아닐지 걱정한다.
노엘은 누구를 자신은 왕족이 맞지만 높은 곳에 있는 이가 모든 일에서 손을 뻗는 것은 당연하며 주변을 멸시하는 짓은 "마음이 빈곤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주변의 시민들을 은근히 꾸짖는다. 그리고 에마에게 축제를 즐겨도 된다고 말해주며 모든 사람들에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축제를 즐기라고 선언한다.
* 상황을 지켜본 아스타는 사건의 결말도 노엘의 말도 모두 만족스럽다. 그런데 아까 카호노가 "노엘은 어떤 존재냐"고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스타는 별 뜻없이 당사자에게 바로 말해버린다.
폭탄선언일 수도 있는 얘기는 아무렇게 던지자 반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온다. 순식간에 열이 달아오른 노엘이 당황하며 물마법으로 아스타를 날려버린다. 카호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며 날아간 아스타는 내버려두고 "이번엔 노엘과 데이트"라며 여자들끼리 놀러 간다.
* 거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일행과 동떨어진 아스타. 투덜거리며 돌아오는데 야외 테이블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테이블에 대단한 미인이 홀로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말을 걸어볼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둔감한 아스타도 대단한 미인이라고 생각하며 [[핀랄 룰러케이트]]의 취향이라고 중얼거린다.
미인이 혼자 있으면 불청객이 찾아오는 법. 버밀튼 가문의 바르만 남작이란 자가 나타나 수작을 건다. 취한채로 나타난 바르만 남작은 제멋대로 "오늘밤 상대는 그대로 정했다며" 미인에게 추근거린다. 미인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꽂꽂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무시에 더 흥분한 바르만 남작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팔을 잡아챈다.
그리고 미인의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가 도착하는데 산상수훈에서 잠시 본 적이 있는 들장미단의 [[솔 마론]]이었다. 어딜 다녀오느라 테이블에게 일어난 작은 사건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미인을 "언니"라 부르며 뭘하는 거냐고 묻는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14회 일치
* 유노는 아스타가 자신의 자랑이자 라이벌이라며 장차 마법제가 되자는 약속을 했다고 반박한다.
* 그러자 간단히 수락하는 윌리엄. 서서히 가면을 벗는다.
* 여덟살 때까지는 그렇게 지났지만 귀족의 후계자가 죽고 세계수 마법이란 진귀한 마법을 소유하고 있는 탓에 다시 불려진다.
* 윌리엄이 흉터 때문에 자신없어 하자 손수 가면을 만들어주는데, 그것이 지금 쓰고 있는 가면.
* 야미가 사과하며 기분 나쁘게 한거 같다고 말하자 윌리엄은 사실대로 말하길 잘했다며 오히려 고마워한다.
* 유노에게 저런 녀석들하고 어울리면 창피하지 않냐고 묻는데, 유노는 "그런 생각 해본 적도 없고 아스타는 나의 자랑이자 라이벌"이라고 반박한다.
* 랜길스는 그 말을 빈정거리며 겨루는 거라도 있냐고 묻자 유노는 그렇다고 말한다.
* 랜길스는 웃어버리며 "역시나 서민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는 모양이다"라고 조롱한다.
* 그러자 유노는 "서민이 마법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 마법제가 되기 위해 우선은 "금색의 여명의 단장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14회 일치
* 바네사는 자신이 노예가 되는 조건으로 아스타의 팔을 고치려 했으나 여왕의 노여움만 산 것이다.
* 영 반응이 좋지 않자 농담이고 실은 공짜라고 수습하는 도미나.
* 망토가 두 개 밖에 없는 탓에 남자 팀, 여자 팀으로 나뉘어 딱 달라붙어 망토를 감는다.
* 이것은 경비용 골렘인데 사이즈는 작아도 침입자를 발견하면 마탄을 쏘며 응징하는 무서운 놈들이다.
* 젤은 딱히 잘못한것도 아닌데 제자 마리엘라의 싸늘한 독설까지 듣고 만다.
* 도미나는 이렇게 된거 강행돌파 하자고 막무가내로 돌진, 핀랄 룰러케이트가 공간마법으로 보조하며 어떻게든 골렘군단을 따돌린다.
* 그러나 여왕은 음침한 살기를 드러내며 "침입자 주제에 숲의 여왕이며 모든 여왕의 어미된 존재인 자신에게 그따위 말버릇이라니"라고 대꾸한다.
* 여왕은 아스타에게 "이건 가족 간 문제"라며 참견하지 말 것이며, 이들이 어떻게 되든 자기 자유라고 말한다.
* 아스타는 자신은 말겨도 없고 몸도 성치 않지만 "가족을 짓밟는 녀석 보단 양반"이라 쏘아붙인다.
* 그리고 아스타에게 바네사는 자신이 노예가 되는 조건으로 아스타의 부상을 치유하려 했다고 폭로한다.
* 마녀의 숲 바깥에서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그림자들.
- 블랙 클로버/87화 . . . . 14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87. '''모자란 녀석이 아냐'''
* 노엘이 틈을 만들어서 퇴각하는 검은 폭우. 노엘은 자신만이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주춤댄다.
* 필살기를 쓰겠다고 벼르던 아스타지만 증오의 파나가 퍼붓는 맹공에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명중한 것도 아니지만 열기에서 오는 압력만으로 몸이 밀려날 정도다. 혼자서는 접근이 불가능한데 너무 강한 마력 탓에 마나 역장이 형성되어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 마법이 제대로 형성되질 않는다.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실마법도 실을 내놓는 족족 열기에 타들어가서 무용지물이 된 상태.
* 그것도 잠시. 샐러맨더의 강렬한 열기는 물마법도 증발시킨다. 해룡의 둥지가 약해지자 화염 정령마법 "샐러맨더의 갈퀴손"으로 방어막을 찢어발긴다. 대처는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한 일행은 일단 빗자루로 퇴각한다.
* 노엘은 무지막지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물마법 말고는 대처방안이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언제나 형제들의 비웃음 거리였던 과거. 그들의 비웃음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노엘의 의지가 꺾이려는 찰나, 어디선가 "그렇지 않아. 넌 강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지팡이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 그 목소리는 기분 탓이었을까? 아니면 아스타의 목소리를 착각한 거였을까? 뒤따라 오는 아스타도 시끄러운 목소리로 노엘을 응원하고 있다. 어쨋든 노엘은 다시 각오를 다지고 아스타가 용기를 주는 만큼 만큼 자신도 아스타에게 힘을 불어넣겠다고 다짐한다.
|| 이제 난 모자란 아이가 아냐! ||
* 전세는 다시 역전. 노엘이 자신의 실력을 봤냐고 우쭐거리자 아스타는 칭찬하며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고 외친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14회 일치
* 파나는 본래 죽을 운명이었으나 지닌 마법의 특성 덕에 일시적으로 회생, 마도학자 모리스에게 마석을 부여받았다.
* [[증오의 파나]]의 자폭도 막고 "파나"의 인격도 되살리는데 성공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 마르스는 아스타에게 "너의 덕"이라며 악수를 청한다. 아스타는 던전에선 그토록 무감정하고 차가웠던 인물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아스타도 그의 힘이었다며 소꿉친구를 구한걸 축하한다.
* 파나는 증오의 파나로서 싸운 기억은 없는지 아스타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르스와 악수하는 걸 보고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마르스는 어색하게 친구까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붙임성 좋은 아스타는 "한 번 싸우긴 했지만 친구"라며 마르스의 어깨를 두드려댄다. 그 뒤 파나에 대해서 자세히 물으려고 하는데 달려온 검은 폭우의 동료들이 "왜 맨날 무리하냐"며 아스타를 두들겨팬다.
* [[판젤 크루거]]는 마르스에게 축하 겸 "정말 훌륭한 제자"라고 칭찬한다. 파나도 젤을 알아보고 선생님이라 부른다. 두 제자의 얼굴에서 어린시절의 모습을 발견한 젤은 "둘 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며 끌어안는다.
* 소란이 정돈되자 파나를 둘러놓고 여러가지를 묻는다. 우선 파나는 최종훈련에서 마르스에게 쓰러진 이후론 기억이 거의 없다. 희미하게 나마 기억나는건 자신의 "불사조" 마법 덕에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흥미롭게 여긴 마도학자 모리스가 마석을 부여해줬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마법의 부활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고 마력이 늘어나지도 않자 모리스는 관심을 끊는다. 파나는 다시 죽어갔으나 이번엔 낯선 그림자가 나타나 그녀를 거둬간다.
그 그림자는 "소원대로 멸망시켜 주겠다"는 말과 함께 파나의 목숨을 살려준다. 파나는 누군가에게 지배 당하는 느낌과 격렬한 증오의 감정이 생겼다는 것 말고는 기억을 잃는다.
* 마르스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다며 자책한다. 파나는 그의 탓도 아니고 이젠 이렇게 만났지 않냐고 말하고 마르스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커플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화제를 좋아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격하게 반응하는데, 특히 저런 소꿉친구도 드라마틱한 썸씽도 없는 핀랄은 피눈물을 흘린다. [[노엘 실버]]도 괜히 "나는 전혀 부럽지 않다"며 아스타를 두들겨팬다.
* 바네사는 백야의 마안이 마녀의 숲을 침공한 이유를 묻는다. 파나는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마석을 찾아와라"는 지령이 심어진 걸 떠올린다. 숲에 마석이 있다는걸 알게 된 노엘은 서둘러 마녀의 숲의 여왕에게 가보자고 한다. 젤은 그 전에 부상당한 마녀들을 돕는게 먼저고, 또 "그 아이"를 확인해 둬야 한다는데.
- 서상기 (1946년) . . . . 14회 일치
|정당 = [[자유한국당]]
|배우자 = 정경숙
|자녀 = 슬하 1남 1녀
* [[1976년]] ~ [[1981년]] : 미국 [[포드 자동차 회사]] 선임연구원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2004년]] 5월 ~ [[2008년]] 5월 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17대 4년동안 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이자 전반기 간사를 맡았다.
[[2008년]]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이자, 국회 디지털포럼 회장을 맡았다.
[[2012년]] [[7월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19대 전반기 정보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70918443765916&outlink=1 서상기 국회정보위원장 프로필], 머니투데이, 2012년 7월 9일 변휘 기자</ref>
|전임자 = (대구 북구 갑)[[이명규 (1956년)|이명규]]<br />(대구 북구 을)[[안택수]]
|후임자 = (대구 북구 갑)[[권은희 (1959년)|권은희]]<br />(대구 북구 을)서상기
|전임자 = (대구 북구 갑)[[이명규 (1956년)|이명규]]<br />(대구 북구 을)서상기
|후임자 = (대구 북구 갑)[[정태옥]]<br />(대구 북구 을)[[홍의락]]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호서대학교 교수]][[분류:웨인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드렉셀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달성 서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이]][[분류:친박]]
- 서지석(배우) . . . . 14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김미리 ||
은근히 여자들한테 인기있는 캐릭터. 남자들한테는 농구잘하는 형 이미지.
2017년에서 [[KBS]] [[일일 드라마]] [[이름 없는 여자]]에서 [[김무열(이름 없는 여자)|김무열]] 역으로 출연했는데 엄청난 발연기를 선보인다. '''걸음걸이, 표정연기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어색한 최고의 발연기를 펼쳐서''' 초반에는 욕을 먹었지만 이제는 네티즌 사이에서 엄청난 발연기 때문에 본다는 사람들도 많은 듯...
런닝맨에서 놀랍게도 유재석 닮은꼴로 출전. 실제로 은근히 자세히보면 닮은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유재석의 말로는 신이 유재석 베이스에 눈과 입을 톡톡 넣은 버전이라고(...). 또 하하 말로는 컨디션 좋은 재석이형이라고 할 정도로 뿔태안경을 쓴 서지석은 정말 유재석을 닮았다.
2018년 6월 15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시구자로 나서 포심이 아닌 슬라이더로 시구했다.
* [[이름 없는 여자]] (2017) - [[김무열(이름 없는 여자)|김무열]] 역
*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
* 2012 제46회 납세자의 날 모범납세자상 대통령 표창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81년 출생]][[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대 100 역대 1인]]
- 식극의 소마/167화 . . . . 14회 일치
아자미 정권은 츠카사를 내세워 신체제의 성립을 선언한다.
* 그는 바뀐 진급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본래 이 제도는 대상자의 절반가량이 퇴학당할 정도로 가혹한 제도.
* 하지만 아자미 정권 하에서 바뀌는 진급시험은 평범하게 기존 커리큘럼을 따라오기만 하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게 된다.--요리로 일본정복하겠다는 미친 놈이 이런데서만 상식적이야--
* 히사코는 "잔당사냥을 통과한 반발세력을 시험으로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라 평하면서 결국 시험에서 아자미 정권에 따르지 않는 학생들을 솎아내기 위한 방편이다.
* 아자미는 이름난 미식가와 요식업 관계자들을 초빙해서 토오츠키 학원 중등부 학생들의 실력을 과시한다.
* 평범한 자리 같지만 결국 아자미는 자신의 교육 방침을 홍보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든 것.
* 그 자리에 있던 토오츠키 학원의 강사 샤펠은 요리는 뛰어나지만 무엇을 먹어도 떠오르는 것은 "아자미의 얼굴" 밖에는 없다며 절규한다.
* 사실 아자미 정권이 내놓은 커리큘럼 자체는 극히 상식적. 하지만 일본정복을 꿈꾸는 세력치고는 이상하게 온건하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4회 일치
* 드디어 나온 나키리 일족 특유의 리액션. 소스를 찍은 프라이드 베어는 이전엔 없었던 "풀어헤침"을 유발시킨다. 소우에는 일족의 풀어헤침이 변형된 "터지기"라는 리액션을 구사하는데 문자 그대로 옷이 터져나간다.--그게 뭐야 무서워-- 그 맛을 "공포 조차 느껴지는 맛."이라며 엄청난 완성도를 칭찬한다.
* 프라이드 베어 자체는 야생고기와 케이준 스파이시가 조화된 자극적인 맛과 매운 맛의 조화. 그레이비 소스는 거기에 부드러움과 달달함을 추가시킨다. 자극과 부드러움, 매콤함과 달달함의 환상적인 대비로 굉장히 입체적인 맛이 연출된다. 소우에는 이것이 하야마의 재능과 연구성과가 있기에 낼 수 있는 것이라 격찬하며 그 맛을 철벽같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성벽에 비유한다.
* 대머리 군단은 다시 한 번 하야마의 실력에 경악하며 과연 소마가 대적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하야마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초후각이 있어 가능한 요리라며 다른 사람이 따라해봐야 맛과 향의 밸런스가 붕괴해 자멸하는 방법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니 소마는 절대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우월감에 젖어있는데.
* 이어서 소마의 멘치까스를 재시식한다. 소마 또한 곰고기 육수를 쓴 소스를 제출했는데 자세한건 아직도 불명. 베르타와 실라는 거기서 청주에 절인 오미자, 액센트로 추가된 마늘향을 간파하지만 어떤 "순한향"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가 테루노리는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데.
* 왠지 정말로 벗고 있다. 지금껏 잠자코 있던 도지마 긴은 하라는 음식 설명은 안 하고 왜 저 리액션이 나왔는가 설명하고 앉았다. 이것은 "터지기"의 상위 기술로 나키리의 피에 흐르는 특유의 정신력이 극상의 맛에 의해 공기 중에 해방되어 나키리 가문이 아닌 사람도 풀어헤치기나 터지기가 발동하는 "전수"라는 기술인데 참 쓸데없고 어이없는 설정이다.
* 하야마는 단지 그것만으로 저렇게 극적인 맛이 날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카라멜리제"에 생각이 닿는다. 그것이 정답. 당류를 가열하면 나타나는 산화현상으로 소마는 벌꿀의 카라멜리제를 핵심으로 삼았다. 벌꿀을 카라멜리제 시키고 발사믹 식초를 넣어 점성을 만들고 잘게 썬 마늘과 양파, 오미자를 더해 곰육수를 붓고 간을 맞추는 것으로 소스가 완성. 그 맛은 리액션으로 본대로다. 참고로 이걸 만들고 있을때 쿠가는 옆에서 차나 마시며 빈둥대고 있던 모양.--결국 별 도움은 되지 않는 놈이다.--
* 소우에는 소스까지 맛을 본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감상평을 하는데 튀김 자체의 맛은 하야마 쪽이 압도적이었지만 소스에 한해선 소마의 압승이 틀림없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 최후의 한 표를 쥔 소우에. 소우에는 천천히 이 싸움의 승자를 선언하는데.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4회 일치
* 그때 [[카와시마 우라라]]가 마이크를 씹어먹을 기세로 폭발한다. 그녀는 반역자들이 갇힌 감옥까지 오더니 "건방진 소리만 한다"며 철창을 두드려 댄다. 한 마디로 "감히 사이토 선배를 이길 생각도 하지 마라"는 것. 그녀는 초밥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숙련이 필요한 일인지 역설한 뒤 그저 흉내쟁이일 뿐인 미마사카가 제대로 맛을 냈을리 없다고 폄하했다.
>내 스시를 맛있지 않다 생각할 자신이 있다면
반역자들은 기다리던 희소식에 반색이 된다. 하지만 카와시마 자신은 죽을 맛이다. 여전히 미마사카를 "스토커 자식" 취급하고 있지만 이제는 명백히 수준이 달라졌음을 인정했다. 뱀 같은 주도면밀함 속에 루비처럼 빛나는 정렬.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때까지 카와시마는 "리액션만은 피한다"는 신조가 있었으나 피해갈 수 없었다. 이스트와르의 코멘트 때문인지 오이란의 모습. 미마사카의 뱀같은 솜씨에 꽁꽁 묶인 오이란의 모습이었다.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카와시마가 여러 가지 신조가 깨진 바람에 분노의 포효를 하는 동안 샤름이 그녀를 달래며 미뤄진 심사를 속행하려 한다. 그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또 발생했다. [[코바야시 린도]]가 자신도 요리를 막 완성했다며 식기 전에 맛봐달라고 들이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대결 상대 [[메기시마 토스케]]는 물론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요리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2라운드 참가자 전원의 요리가 완성. 갑자기 심사위원들이 바쁘게 됐다.
* 반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식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연상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식으로 요리했을까?
* 츠카사의 음식은 4종류의 샤베트처럼 보이는 차가운 요리. 뜨거운 중화요리인 쿠가의 요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요리도 은은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이색적인 모습부터가 반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아직도 술이 덜 깬 [[안(식극의 소마)|안]]은 다들 한 꺼번에 달려들었으니 시식도 한 꺼번에 여섯 종류를 다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황당한 소리 같았지만 이스트와르는 안이라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심사가 가능하며, WGO 심사관인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자신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2nd BOUT의 최종 심사. 과연 승부는 어떻게 갈릴 것인가?
- 양예나 . . . . 14회 일치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다. 2000년에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다. 15세라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이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아이유]]와 [[샤이니]]의 [[태민]], [[f(x)]]의 [[설리(배우)|설리]]와 [[크리스탈(f(x))|크리스탈]], [[포미닛]]의 [[권소현]], [[현아(가수)|김현아]][* [[포미닛]]으로 데뷔 전 [[언더걸스]] 멤버였다.], [[유용근밴드리즈15]]의 [[오하영]], [[언더걸스]] [[선미]], 배우 [[안소희]][* [[언더걸스]] 멤버였다.]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막내가 아닌데, 팀에 데뷔 당시 기준으로 [[이진솔|前 대한민국 공식 최연소 여자 아이돌]]이 있기 때문.
개인 소개를 할 때 자신을 [[APRIL]]의 다람쥐라 소개하며 양볼에 주먹을 갖다대는 제스쳐를 곁들인다.[* 유일하게 외형적인 면을 소개 멘트로 쓰는 멤버이며, 말 그대로 다람쥐를 닮아서 이기 때문이며 상황에 맞게 바꿔 부르기도 하다. ex)예람쥐, 날다람쥐]
하지만 포근함과 차가움 두가지 상반된 매력을 자연스럽게 모두 갖춘 캐릭터는 아마 예나가 유일할 것이다.
>'''[[APRIL]]의 자타공인 댄싱머신'''
[[레이첼(APRIL)|레이첼]]이 발레를 전공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춤선을 가진 반면, 예나는 박자감이 두드러지는 칼박스타일로 춤을 추며 주특기가 남자&여자아이돌 [[댄스 커버]]이다. 또 에이프릴 안무담당이기도 하다.
노래 파트는 멤버들 중 적은걸 넘어서 [[병풍|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다.[* 꿈사탕 활동 때는 '''단독 파트가 아예 없었고''' Muah! 활동 때는 '''어머~'''였다. 팅커벨 활동 때는 ''''Make Your Smile.'''', ''''두눈을 감고'''', ''''나는 팅커벨!''''.봄의 나라 이야기에서는 ''''난 그래요'''' 네 글자가 전부.. MAYDAY는 '''Help me help me babe right now, 누가 날 좀 도와줘 내게서 이 마법을 제발 풀어줘'''뿐이다. ~~그나마 이건 글자가 많네~~ 파랑새 에서는 (마법처럼도 있지만) '''"할 말이 있어"''' 부분만 눈에띈다.아무래도 춤에 비해선 가창력이나 라이브 안정감이 많이 부족한게 이유인 듯하다. 때문에 보컬적인 면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예나의 노래 파트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아니 딩고라이브 팅커벨이랑 WOW를 보면 전혀 못하는게 아니던데???~~
* 2016년 7월 21일 MBC <능력자들>에 채원, 나은과 함께 출연했다.
* 2018년 9월 15일 부터 레이첼과 함께 [[OGN]] <정복자들 시즌3 : 파밍웨이 to swc> 에 고정출연 한다.
* 육상 경력 때문인지 댄스와 달리기가 취미라고 한다. 다만 [[APRIL]]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출전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 [[육상]] 60m 예선에 출전했으나 [[광속 탈락|광탈]]했는데, 중계석에서는 예나를 [[이진솔|진솔]]로 착각해서 "[[이진솔|진솔]]! [[이진솔|진솔]]!"로 불렀다.--[[안습]]-- 2년 후 복귀전을 치른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8년|2018 설날 아육대]]에서 [[리듬체조]]에 출전한 [[레이첼(APRIL)|레이첼]]이 난적 [[성소]]를 꺾으며 [[APRIL]]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이자 [[APRIL]] 최초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금메달을 획득했다.
* 온에어프릴에서 [[이나은]]과 함께 이모님 말투를 흉내내며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나은이 노잼 드립을 칠 때, ~~딸기잼! 누텔라잼!!~~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 쇼 챔피언 백스테이지에서는 건방진 기자가 되어 채원 옆에서 깐죽거리기도 했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4회 일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상론, '''SF 창작 설정'''.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이 갖춘 과학적 지식과 따라서 상상한 것을 뜻하므로,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체제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하여 이 문서에서는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을 떄떄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로서 써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SF적으로 창작된 이상론이라고 봐도 좋다.
사회주의자들이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를 '불완전한 공산주의'라고 까면서 제시하는 사회. 일부 사람들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도 한다. 현실 공산주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문서로 설명한다.--공산주의 문서가 없잖...--
카를 마르크스의 '''설정'''에 따르면 공산주의란, '''자본주의를 거쳐서''' 생산력이 극도로 발달하여,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가 없어져서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지속 가능성''' : 이론적인 생산성은 가능하게 된다고 해도, 막대한 생산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무한정한 [[에너지]]를 [[지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생산성'만'을 우선시하다가 환경파괴와 자원고갈로 문명 자체가 붕괴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주로 진출한다고 해도 결국 인류가 에너지 고갈이나 에너지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소련]]은 사회주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소련에 비판적이던 일부 좌파 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외면하며 소련과 같은 형태가 아닌 '완벽한 공산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이 당시는 비주류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일부는 여기서 갑자기 [[설정놀음]]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공산주의(2)의 설정에서 '''자본주의를 거쳐서''' 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소련은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통하여 소련체계가 공산주의임을 부정하는 설정놀음을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1) 망했잖아 그거."에서 공산주의(1)은 당연히 현실의 공산주의를 내세운 소련과 그 위성국들을 뜻한다. 왜냐하면, '망했다'는 발언 자체가 '현실의 체제'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2)는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의 창작물'에 불과하다.
이를 '인증'해줄 카를 마르크스가 죽어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히 비슷한 사회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 때 쯤에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다.
* 스타트렉 시리즈 : 물질재조합장치로 대부분의 생활물자는 거의 무한정으로 해결되었다.
* 자신의 설정을 현실이라고 주장하며 조직을 만들고, 사회에 충격을 준 인물로서, 카를 마르크스와 비슷한 인물로는 '[[사이언톨로지]]'를 만든 SF작가 '론 허버드'가 있다.
- 요시다 세이지 . . . . 14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부장으로 일했다고 주장했으며, 1977년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1983년 '나의 전쟁범죄'라는 책을 저술하여, 이 책에서 자신이 군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의 마을 등에서 200여명의 여성을 강제로 징병하여 위안부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1982년 9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하였다. 1900년대 아시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수의 기사를 작성했고, 이는 일본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널리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소위 '요시다 증언'에는 의혹도 뒤따르게 되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부터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전남, 경남, 제주 등에서 끌고간 한국인 징용자의 숫자는 종군위안부 1000명을 포함하여 6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의 저술에서는 "종군위안부 징용은 한 마디로 노예사냥이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들을 후려갈겨 트럭에 강제로 태우고, 울며 매달리는 젖먹이를 억지로 떼어냈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1989년 8월 14일, 제주도의 향토 사학자는 요시다가 진술한 지역에 가서, 해당 지역 현지 주민들에게 증언을 들었으나 이를 입증할 수 없었으며 이를 제주신문에 발표했다. 주민들은 그러한 사건은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제주일보는 이를 요시다가 "상술"로 엉터리 체험 수기를 출판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제주일보가 마이너 해서 그런지 이 조사는 묻혀버렸다(…).
1992년 일본의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가 제주일보 기사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제주도를 직접 취재하여 이 사실을 [[산케이 신문]]을 통하여 일본에 알리게 되었다.
아사히 신문은 2014년 4~5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70대 후반에서 90대까지 약 40여명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건어물 제조 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사라졌다"고 기록한 제주도 북서부의 마을에서는, 생선을 다루는 공장이 1개 박에 없었고 경영자의 아들은 "통조림 밖에 만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이 사라진 일은 없다."고 증언했으며, 요시다 세이지가 '초가지붕'이라고 썻던 공장의 지붕은 한국에서 당시 수산산업을 연구했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지리학 전공 가와하라 노리후마 교수에 따르면 함석판과 기와로 되어 있었다.[* 원래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고, 벼농사가 되지 않아 초가집이 적었다.]
사실, 요시다 증언의 영향은 한정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증거는 요시다 증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참조하지 않았으며, 이는 1991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내부 문서를 아사히 신문이 공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공개 증언을 하면서, 한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피해자 증언이 잇따르게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위안소 제도를 운영했다는 것 " 자체에 제기되는 인권 문제이며, 강제연행의 유무나 피해자들 증언에 관한 세부 논란은 '각론'에 불과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저지른 위안부 강제연행 날조에 대해, 요시다 가문의 장남으로서, 일본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가능하다면, 전세계에 있는 소녀상을 크레인으로 철거해버리고 싶습니다.(중략) 나 자신도 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는 한 번도 제주도에 간 적이 없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아버지는 제주도 지도를 보면서, '나의 전쟁범죄' 원고를 썼다"고 주장했다.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14회 일치
제4화 잃을 게 없는 남자
원한해결사는 정보원에게 원한대상 '마사토 이치로'의 정보를 찾는다. 하지만 가족[* 부모는 이혼하고 5년 이상 행방불명]도 직업도 없고 빚도 지고 있는, '잃을 게 없는 남자'이므로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상대였다.
원한해결사는 [[만남계 사이트]]를 이용하다는 척 하면서 마사토 이치로에게 접근한다. 마침 돈이 궁하던 그는 쉽게 접근했다가 약을 먹고 기절한다. 깨어난 마사토는 야쿠자 사무실[* 유한회사 '이타우에 무역坂上貿易'이라고 써있다.]에 버려져 있었다.
마사토는 돈문치와 마약봉지를 발견했다가 들어온 야쿠자들에게 걸린다. 마사토의 가방에는 피킹 도구나 면허증이 들어 있고, 게다가 들어오기 전에 원한해결사가 야쿠자의 차에 송곳으로 낙서를 해놔서 완전히 누명을 쓰게 된 것이었다. 야쿠자는 차 수리와 손해배상으로 '3천'을 요구하고, 마사토는 차용증을 쓰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여자가 있다고 말하며 집으로 가게 된다.
집에 간 마사토는 협박용 비디오와 주소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경악한 마사토는 바로 도망치려 하지만 야쿠자들에게 다시 붙잡힌다. 야쿠자는 자신을 죽일 거냐는 마사토에게, 자신의 거래처 '스네이크 헤드'에게 팔아넘겨 남색가들의 파트너로 만들 것이라고 말해준다. '잃을 게 없는 인간'이므로 반대로 '증발해도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는 인간'이므로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테이프를 돌려받고 원한해결사에게 감사하는 의뢰인. 그리고 정보원은 원한해결사에게 100만 이상 경비를 썻으니 적자가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는데, 원한해결사는 마사토는 23명 이상의 여성을 과거 협박했고, 녹화한 고화질 몰카 테이프가 100개 이상 있으므로 이것으로 천만 이상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답변한다.
* 기승전야쿠자(…) 패턴이 처음으로 등장.
- 월하노인 . . . . 14회 일치
그곳에 주머니에 기대어, 섬돌 위에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다. 달빛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을 엿보았는데, 그 긁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위고가 물어보길, "그 책이 무엇입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하여, 모르는 글자가 없습니다. 서국(西国)의 범자(梵字)도, 능히 읽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이 책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노인이 말하길, "네가 오는 것이 빨랐다. 와서는 안될 것은 아니다. 무릇 저승의 벼슬아치(幽吏)는 모두 사람이 사는 다루고 있는데, 어찌 이 세상에 와서는 안되겠는가. 지금 길을 가는 자는, 인귀(人鬼)가 반반. 나눌 수가 없다."
위고가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붉은 끈(赤縄)뿐이다. 이걸로 부부의 발을 묶어서, 태어났을 때 몰래 서로를 이어주도록 되어있다. 비록 원수의 집안이건, 귀천(貴賎)의 격이 다르건, 하늘 끝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건, 오나라와 초나라의 다른 시골에 있건, 한 번 맺어지면 달아날 수 없다. 너의 발에도 이미 맺어져 있는 상대가 있으리라. 다른 곳에서 찾아도 이롭지 않다"
날이 밝았는데,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노인은 책을 보따리에 넣고 가기 시작했다. 위고는 그를 따라 채소 시장(菜市)에 들어갔다. 세살 여자아이를 안고 온 애꾸눈 할머니가 있었다. 모습이 해지고 더럽기가 심하였다.
위고는 작은 칼을 갈아, 종에게 주면서 말하길, "너가 이 일을 해라. 능히 나를 위하여 그 여자애를 죽이면, 너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
다음 날, 소매에 칼을 넣고 채소 가게에 들어가서, 사람들 가운데서 여자아이를 찌르고 달아났다. 시장에서 어지럽고 시끄러워지고, 달아날 수 있었다.
또다시 십사년, 위고는 아버지의 음덕으로 상주의 군인(相州軍)이 되었다. 자사(刺史) 왕태(王泰)는 위고를 사호연(司戸掾)에 앉혀 자신을 보좌하게 하였는데, 위고는 송사일에 유능하였다. 그리하여 왕태는 자신의 딸을 위고의 아내로 삼도록 했다. 나이는 열 여섯, 일곱이고, 용모는 아름다웠다. 위고는 아주 행복하였다.
몇년이 지나, 위고가 그 일을 묻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첩은 군수(郡守)의 조카이며, 딸이 아닙니다. 일찍이 아버지는 송성(宋城)의 현령이었습니다. 첩은 강보(襁褓,포대기)에 있었던 때였는데, 어머니와 오빠가 차례로 죽어, 혼자서 송성의 남쪽의 저택에서 지내게 됐으므로, 유모 진씨(陳氏)와 함께 살았습니다. 점(店)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야채를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진씨는 어리고 불쌍하다고,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위고가 말하길, "찌른 자는 나야." 그리고 기이한 일이었다고, 모든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 서로 공경하기를 더욱 극진이 하였다.
- 유승옥 . . . . 14회 일치
||<:><#ffdae0>'''{{{#white 출생}}}'''||<#ffffff>[[1990년]] [[6월 21일]] [[세종특별자치시]] ||
[[1990년]] [[6월 21일]]에 태어났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이다. [[공주대학교]] 생물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교생으로 수업을 가르친 적이 있다.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2월경 소속사 고소 문제로 인기가 땅에 떨어진 이전의 섹시 심볼이었던 배우 ]의 뒤를 이어 2015년 초에 인터넷상에서 차세대 섹시 심볼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얼굴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딸의 유명세가 단지 몸매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지는 상황 때문에, 유승옥의 아버지는 심적으로 괴롭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7월 15일 모 온라인 매체의 '''기승전유승옥'''이라 불리는 기사 시리즈가 화제가 됐다. 인터넷상의 화제에 대해 서술한 후 유승옥의 반응을 덧붙이는 식으로 기사를 무한 생산한 것이다. [[http://me2.do/xzIctqPl|이런 기사가 뜬 이유]] ~~만물의 전문가 유승옥~~ 소속사는 "기자가 물어오면 코멘트를 전달하는 식으로 응대한 적은 있다"며 홍보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5071516054343015&ca=society|해명기사]]
가슴 성형에 대한 왈가왈부가 계속되자, 소속사에서 가슴 보형물이 없다는 진단서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8610&yy=2015|공개]][[http://www.ajji.net/home/data/file/talent/3542621288_OdPZC6qo_1440746427_201508281515322510_1.jpg|했다.]] 광고주 쪽에서도 진상 확인을 요구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인증하게 됐다고 한다.
2017년 [[소사이어티 게임 2]]에 플레이어로써 참가했다.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순수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 2014년 피트니스 아메리카 위크엔드 모델 여자 커머셜 부문 5위
[[분류: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성 방송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
- 은혼/596화 . . . . 14회 일치
* 하세가와 다이조는 마다오답게 자판기 밑에서 동전이나 긁어 모으며 구차하게 살고 있다.
* 자판기 밑에서 동전을 줍고 있다.
* 불려온 동심(순경)은 마다오가 혹시 자판기 밑에 끼어버린게 아닌가 의심한다.
*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자 정말 끼었다고 판단, 빼주겠다며 하세가와를 잡아당긴다.
* 그 바람에 손에 닿을락 말락했던 동전이 다시 멀어지자 절규하는 마다오.
* 하지만 에도가 멸망하거나 말거나 자기는 언제나 멸망 직전 상태라며 "이제야 겨우 나랑 같은 차원에 온 것"이라며 썩은 미소를 짓는다.
* 침략자의 정체는 "아르타나 해방군". 천도중에 반기를 든 세력이며 우츠로가 획책한 터미널 붕괴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천도중은 오리무중 상태. 막부도 와해되어 무정부 상태가 다름없다.
* 사루토비는 놈들의 목적은 지구 정복도 들어간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츠쿠요는 저놈들도 쫓아내도록 하자고 한다.
* 그런 와중에도 마다오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만 하며 자판기 밑을 긁고 있다.
* "사무라이의 나라를 되찾아 보자. 우리(사무라이)와 함께."
- 하세가와 다이조. 자판기 밑에서 동전을 긁어 모으며. 치졸해 보였던 행동은 모두 대의를 위해서였다.
'''사무라이의 나라를 되찾아 보자. 우리(사무라이)와 함께.''' ||
- 은혼/636화 . . . . 14회 일치
* 노사는 신체를 자유자재로 신축하며 [[가구라]], [[카무이(은혼)|카무이]] 남매를 농락한다.
* "진자 야토"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노사에 대항해 그 야토를 수천년 동안 지켜봐온 어머니 [[쿄우카]]의 피를 가지고 있다 응수하는 [[카무이(은혼)|카무이]]. 카무이가 노사를 막는 동안 쿄우카의 피를 이은 또다른 자식 [[가구라]]가 노사의 뒤를 노린다. 가구라가 노사의 머리를, 카무이가 고간을 걷어차는데.
* 그러나 손맛이 없다. 노사는 어느새 평소의 작은 모습으로 돌아가 공격을 피했다. 자신도 싸우고 있던 [[아부토]]지만 그 황당한 전술에는 정신이 쏠렸다. 노사는 다시 거한으로 돌아와 카무이를 공격, 등 뒤를 노리는 가구라의 공격은 근육만으로 막아낸다. 신축자재의 신체를 100% 활용하는 모습.
* 는 무슨. 바로 패대기로 갚아준다. 적아군 상관없이 황당해하는 가운데 혼자 이제 비긴 거라고 희희낙락한 카무이. 당연히 노사에게 등뒤를 얻어맞고 가구라가 처박힌 위로 충돌, 천장을 뚫고 바깥까지 나가떨어진다.
노사가 엄마 패드립을 치는 마당에도 바보남매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노사가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데도 남매는 오로지 상대를 디스하고 공격을 가하는데 정신이 팔렸다. 카무이가 "네 안에 흐르는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피 때문에 발목을 잡는 것"이라 디스하자 가구라는 "너도 장래에 대머리 확정"이라 뼈아픈 지적을 가한다.
* 노사의 공격에 밀려나면서 남매싸움도 잠시 소강되는가 했다. 카무이가 가구라에게 "너는 적의 움직임을 잘 못 보는 것 같다"며 조언을 하는 척한다. 가구라가 눈으로만 움직임을 쫓는데, 야토는 본래 야토의 피로써 적을 쫓는다. 오랜 새월 축적된 경험, 종 그 자체에 새겨진 전쟁의 기억이야 말로 야토가 적을 보는 방법. 이미 많은 적과 싸워온 가구라라면 그게 가능할 거라며 격려한다.
가구라는 그 말을 받아들여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눈이 아닌 피로 적을 포착하는 방법. 그러나 갑자기 잘 될리는 없고 그저 캄캄할 뿐. 반대로 카무이는 적이 아주 잘 보인다. 구체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가구라의 얼굴이다. 딱밤을 먹이며 "이걸로 비겼다"고 선언하는 카무이. 참 관대한 처사다.
하지만 그냥 남매싸움의 연장만은 아니었다. 가구라가 밀쳐지면서 카무이 혼자 공격을 받는다. 노사는 정신이 딴데 팔렸다면 잡념을 털어주겠다며 오른팔을 부풀려 주먹을 날린다. 이게 카무이가 노린 바였다. 카무이는 적이 큰 공격을 하도록 유도하고 기공이 오른팔에 집중된 동안 무방비해진 다른 곳을 공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 아무리 노사라도 기공없는 금구슬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데다 가구라는 "발이 미끄러졌다!"며 또다시 카무이를 노리고있다. 카무이도 이제는 불의의 일격은 카운트하지 않는다는 규칙에 동의했다. 그래서 박힌 자리에서 빠져나오면서 우연히 위에 있던 금구슬을 박치기해 여동생 쪽으로 날려버려도 불의의 일격, 이라는 논리로 대응한다. 괜한 남매싸움에 끼어 금구슬이 박살나고 있는 노사.
* 그러나 지나치게 방어에 의존한 금구슬의 비대화 때문에 기동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다. 가구라는 그의 절대방어를 가볍게 걷어차 건물 밖으로 날려보낸다. 자유낙하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금구슬. 남매는 긴 싸움 끝에 마지막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강유자재라면 딱딱한 부분도 부드러운 부분도
- 이상정 (1897년) . . . . 14회 일치
| 부모 = 이시우(부), 김신자(모)
| 배우자 = 한문이(초취), [[권기옥]](재혼)<ref>[[권기옥]]과의 재혼은 사실상 중혼이다.</ref>
| 자녀 = 슬하 4남 1녀
| 친척 = 이동진(조부) <br/> 이일우(백부) <br/> 백자화(백모) <br/> 한정원(장인) <br/> 박학남(장모) <br/> 권문각(장인) <br/> 장문명(장모) <br/> [[이상화 (시인)|이상화]](아우) <br /> 서온순(제수) <br/> 이용희(조카) <br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아우) <br/> 이학희(조카) <br/> [[이상오]](아우) <br/> 이겸희(조카딸) <br/>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준희(조카) <br/> 이상악(사촌 형) <br/> 이상무(사촌 남동생)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종조카) <br /> [[박부남 (1932년)|박부남]](5촌 종질부)
그는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 수렵가 [[이상오]](李相旿)의 형이다. 호적상에 등재된 부인은 2년 연상의 한문이(韓文伊, 1895년 5월 7일 ~ 1941년) 여사인데, 우리나라 여성 [[비행사]] 1세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 겸 항공비행사였던 4년 연하의 [[권기옥]](權基玉, 1901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 여사와 [[1928년]], [[내몽골 자치구|중화민국 네이멍구 자치구]] [[후허하오터 시|후허하오터]]에서 다시 결혼하였다.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5633&ipp=1000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이상정 선생 공훈록]
[[분류:1897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장경 . . . . 14회 일치
'''이장경'''(李長庚,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호족으로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 5형제의 아버지이자 [[이인기]], [[이승경]]의 할아버지였다. [[이인임]]의 증조부, [[이숭인]]의 고조부였다. 아들 5형제의 출세로 거듭 증직되고 광산부원군(廣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가 손자 [[이승경]]의 출세로 [[원나라]]로부터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되었다.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본다. [[경상북도]] 출신.
성주의 호족으로 [[신라]] 말의 재상 이순유(李純由)의 12대손이며<ref>순유(純由)→광연(光演)→정신(正身)→견수(堅壽)→범(凡)→정거(廷居)→중경(仲京)→영(瑩)→효삼(孝參)→돈문(敦文)→득희(得禧)→이장경(李長庚)</ref>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태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경은 문창, 태백성의 다른 칭호였다. 그 뒤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반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상,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인 합천이씨에게서 아들 5명이 태어났다.
사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선석산(禪石山)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선석산에 [[조선 세조]]의 태를 묻게 되자 [[세종대왕]]이 특명을 내려 길지를 택해 하사하여 성주의 서쪽 서오치(西梧峙)의 남쪽으로 이장되었다.
그는 [[이조년]]의 아버지이자 [[이인임]]의 증조할아버지이며 [[이숭인]]의 고조할아버지였다. 아들 [[이조년]]의 손자가 [[이인임]], [[이임]], [[이인복]], [[이인립]](李仁立) 형제이다.
[[이백년]]의 아들이자 손자 [[이인기]]는 평양부 부윤이었고, 고손자(아들 이백년의 증손)는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자 [[고려]] 멸망 이후 두문불출한 절신 [[이숭인]]이었다.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자 이장경의 고손자인 이제(李濟)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조선 왕실과도 인척관계가 되었다.
[[이순자]]와 [[이규광]], [[이규동 (1911년)|이규동]]은 아들 [[이백년]]의 후손이었다.
- 이정훈(배우) . . . . 14회 일치
호(號)는 표산(杓山), 산남(山南)이며 신장은 183cm이고 체중은 73kg이며 [[경기도]] [[김포시|김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1981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특채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연극배우]] 데뷔하였으며 1년 후 [[1983년]]에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17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 [[1991년]]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2004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1982년]] 《[[햄릿]]》 ... 햄릿 왕자 역(주인공)
* [[1989년]] 《[[포기와 베스]]》 ... 포기 역(남자 주인공)
* [https://web.archive.org/web/20151121221641/http://people.mygo.co.kr/people.php?cmd=view&pp_no=6540 마이고 인물정보 - 남성 영화배우 겸 연기자 이정훈]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광주 이씨]][[분류:김포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교수]][[분류: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수]]
[[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14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87화. '''멸망하라 사악한 자들아'''
* 순결의 데리엘이 추격하자 여신족의 마법 "아크"로 가두나, 데리엘에겐 통하지 않았고 다른 공격도 먹히지 않는다.
* 그러자 졸렬하게 교섭을 시도하다 데리엘에게 단 한 방으로 사망,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 네로바스타는 무슨 일로 자신을 부활시켰냐고 묻는데,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마신족을 보고 과거 싸움의 잔당인줄로만 안다.
* 데스피어스는 부디 이들을 물리쳐달라고 말하는데, 네로바스타는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자기더러 십계와 싸우라는 거냐고 따진다.
* 마신족이 막으려 들자 여신족 특유의 마법 "아크"로 산산히 분쇄해버린다.
* 몬스피드의 설명으론 "마신족의 어둠과 상반된 빛의 힘"이며 빛의 입자로 대상을 분해해버리는 마법이라고 한다.
* 데리엘이 추격하자 역시 아크를 건다.
*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뜬금없이 그녀가 화낼 법도 하다며 흥분하지 말고 대화를 하자며 구대전의 일을 들먹인다.
* 그 말에 따르면 여신족은 협정을 어기고 마신족 포로였던 여자와 아이들을 학살했다. 그것도 "수장"의 지시에 따른 것. 명령이 그랬다며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 네로바스타를 죽이고 흥분이 조금 누그러지자 몬스피드가 그녀를 위로한다. 그리고 "신병장"급이라 망정이지 "사대천사"급이었다면 사정이 달랐을 거라고 주의를 준다.
* 거창한 등장 과정에 비해서 제대로 싸우기는 커녕 도망이나 치는 등 한심한 모습만 보여주다 끔살 당했다. 특히 데리엘에게 상대가 안 될 것 같자 구대전을 운운하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최악. 본체가 아니라 덴젤의 몸에 임한 것이지 네로바스타 자체가 죽은 건 아니겠지만, 덴젤은 고작 이따위 여신을 부르자고 개죽음을 당했다.
- 일곱개의 대죄/194화 . . . . 14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사라지기 전 잠시 동안 드레퓌스와 핸드릭슨에게 인사하고 길선더에게 항상 지켜보고 있겠다고 전해달라 한 뒤 모습이 사라진다.
* 프라우드린은 큰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의 마력 거대화(풀 사이즈)를 사용해 부활한다.
* 그런데 뜻밖에도 자라트라스가 아직 살아있었다.
* 헤매고 다니던 그리아몰은 우연히 데스 퍼지의 빛을 보고 이 자리에 온 것이다.
* 드레퓌스는 형이 무모한 짓을 했다고 하지만 자라트라스는 본래 이렇게 쓰기 위해 얻은 목숨이라고 대답한다.
* 드레퓌스와 핸드릭스는 서로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 자책한다.
* 그런 두 사람을 자라트라는 어린애처럼 쥐어박으며 훈계한다.
* 둘이 그러고 있으면 자신도 편히 성불할 수 없고, 원통한 일이 있어도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법. 그것이 어른의 책임이라 말한다.
* 하우저는 갑자기 나타난 거대 괴수를 보고 경악하고 멀린은 저것이 프라우드린의 본체라고 설명해준다.
* 드레퓌스는 자신들이 무사하다고 소리쳐서 알리는데 성기사들은 드디어 성기사장이 돌아왔다고 환호한다.
* 프라우드린은 이대로 한 꺼번에 짓뭉개주겠다고 위협하는데 갑자기 날아온 공격에 얼굴을 맞는다.
*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을 의심한다.
*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던 멀린은 이내 걱정을 거둔다.
- 장가용 . . . . 14회 일치
| 배우자 = 윤순자
| 자녀 = 장여구(아들), 장예원(딸)
| 기타 이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외과]] [[의사]], [[의학자]], [[교수|대학 교수]] <br/> [[종교|종교인]], 인도주의자, [[수필|수필가]] <br/>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br/>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보건행정교육특임위원(2002년)
'''장가용'''(張家鏞, [[1935년]] [[9월 20일]] ~ [[2008년]] [[1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외과]] [[의사]], [[의학자]], [[교수|대학 교수]], [[종교|종교인]], [[인도주의|인도주의자]]이자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소령]]이며 [[본관]]은 [[안동 장씨|안동]](安東)이다.
=== 자녀 ===
그는 부인 윤순자 여사와의 사이에 슬하 1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장여구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 [[대위]]도 조부 [[장기려]]와 부친 장가용의 뒤를 이어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안동 장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제주대학교 교수]][[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장강명 . . . . 14회 일치
| 배우자 = 有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4년 PC 통신 하이텔에 SF 소설을 연재하고, 군 복무 중에는 장편소설을 투고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으나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퇴사하였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E%A5%EA%B0%95%EB%AA%85&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4607|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신문기자 관두고 2년만에 소설 6권, 문학賞 휩쓸어… 글만 써 먹고살고 싶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112580|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조선닷컴 인물검색|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200609200038034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YES24 《한국이 싫어서》 소개|url=http://www.yes24.co.kr/24/goods/1797227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
* 《알바생 자르기》
* 제158회 이달의 기자상<ref>2003.12/한국기자협회</ref>
* 2002~2013년 : 동아일보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SF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SF 팬]]
- 장다경 (영화배우) . . . . 14회 일치
| 직업 = [[범죄자]]
| 활동기간 = 자신의토지 보상금에대한불만
| 부모 = [[채종기(범죄자)]]
| 형제자매 =[[김미나 (레이싱모델)]] [[소이 (레이싱 모델)]] [[유진 (레이싱 모델)]] [[이은혜 (레이싱모델)]]
| 배우자 =
| 자녀 =
* [[경기여자고등학교]]
* 《[[더 폰]]》 (2015년) - 머리 긴 여자 역
* 《[[피해자들]]》 (2014년) - 가인 역
* 《[[로맨틱 헤븐]]》 (2011년) - 환자 1 역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수원 . . . . 14회 일치
'''장수원'''(張水院, [[1980년]] [[7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방송인이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댄스그룹 [[젝스키스]]로 활동했으며, 2002년부터 같은 [[젝스키스]]의 멤버인 [[김재덕]]과 함께 결성한 [[제이워크]]로 활동하였다. 2009년 12월 30일 현역으로 [[육군]] 군악대에 입대하여, 2011년 10월 20일 만기전역하였다. 2013년 '[[사랑과 전쟁]]' 아이돌 특집편을 통해 연기자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해당 드라마에서 ‘로봇 연기의 창시자’라는 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2016년부터 [[젝스키스]]로 다시 활동 중이다.
[[장수원]]은 [[경기도|경기]] [[부천시|부천]]에서 출생하였으며를 진학하였으나 연예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자퇴, 검정고시를 치뤘다. 이후 [[경희대학교]]에 진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연예인이 꿈이었던 [[장수원]]은 우연히 [[젝스키스]]의 멤버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오디션을 보러왔다가, 소속사 사장과 멤버 모집 당시 멤버를 같이 고르던 [[강성훈]]에게 특별히 할 줄 아는것이 없다는 솔직한 대답과 깔끔한 외모가 소속사와 멤버 [[강성훈]]의 마음에 들어 혼자 발탁되었다고 한다.
[[젝스키스]] 해체 후 현재 활동하지 않고 있는 멤버인 [[고지용]]과 연락이 되는 유일한 멤버로 방송에서 종종 [[고지용]]의 근황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고지용]]은 본인이 사업가로서 거래처나 직원들이 꺼려할 것을 염려하여 본인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말하였다는 것도 언급하였다.
[[장수원]]은 2013년 드라마 《[[사랑과 전쟁]]》 아이돌특집 3탄에 [[제국의 아이들]] [[문준영]], [[걸스데이]] [[유라]]와 함께 출연하였으나 경직된 제스쳐와 표정, 대사처리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누리꾼들이 이를 ‘로봇 연기’라고 부르고 즐기면서, [[장수원]]은 ‘로봇 연기의 창시자’, ‘로봇 연기의 달인’, ‘장로봇’ 등의 별명을 얻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앞뒤가 안 맞잖아” 등의 유행어도 생겨났다.
* 2015년 [[삼성카드]] 숫자카드V2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천시 출신]][[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젝스키스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14회 일치
| 직업 = [[사회자|방송MC]], [[배우]]
| 학력 = [[숙명여자대학교]] 무용학과 [[학사]] 졸업
| 배우자 = 김상훈
*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1994년 은행원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이혼]]하였고, 그 후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15살 연상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상훈과 [[재혼]]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2976972 미스코리아 장윤정 15년만 영화 '트릭' 으로복귀] 세계일보. 2015년 12월 17일</ref> 장윤정은 2016년 9월 27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는 남편이 미국에 가자고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살다보니까 10년 정도 거주를 하게 됐다"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언제까지 나한테 못되게 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으로 오기로 결혼을 했다”라며 무뚝뚝한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891291 미스코리아 장윤정 “15살 연상 남편 김상훈, 나한테 무심해 매력 느꼈다”] 서울경제. 2016년 09월 28일</ref>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7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진]][[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
- 전숙희 . . . . 14회 일치
'''전숙희'''(田淑禧, [[1919년]] [[3월 15일]] ~ [[2010년]] [[8월 1일]])는 일제 강점기와 군정기, [[대한민국]]의 작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벽강(璧江),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딸이며 기업인 [[전락원]]의 누나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함경남도]] 협곡에서 출생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1938년]] [[단편소설]] 《시골로 가는 노파》를 《[[여성 (잡지)|여성]]》에 발표하여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10월]] [[미군정]]이 주둔하자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1948년]] 미군정이 물러난 뒤 다시 작가, 수필가로 돌아와 [[한국 전쟁]]을 거친 뒤 [[1954년]]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수필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수필의 특징은 다정다한(多情多恨)한 여성심리를 조촐한 필치로 표현하는 데 있었다.
1983-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지낸 고인은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고자 노력해왔으며, 1988년에는 동서 진영의 작가들을 초청해 서울에서 국제펜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동생인 고(故)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함께 1993년 [[계원예술고등학교]],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등 계원학원을 설립했다. 1997년에는 한국 문학 유산의 보존을 목적으로 한국 최초의 현대문학 자료관인 동서문학관(현 한국현대문학관)을 개관했다. 2010년 8월 1일 오전 8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585279 원로 수필가 전숙희씨 별세 (연합뉴스 2010년8월1일자)]</ref>
* 《탕자의 변》
* 아버지 : [[전주부 (목회자)|전주부]](田周富, 목회자, 1898 - 1991)
**** 자녀 : 강영국(재미 사업가), 영진(한국현대문학관 관장)씨, 딸 은엽(미술가), 은영(미술가)
***** 손자 : 이천희
[[분류:1919년 태어남]][[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한국의 군정기]]
- 전장운 . . . . 14회 일치
|직업 = 순교자
전장운은 [[1811년]]에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인도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정장운은 어릴 때부터 [[농사]]와 [[가죽]] [[가방]]을 만들며 가족을 부양했다.
[[1839년]]에 그는 [[체포]]되었지만, 그의 신앙의 깊이가 충분히 깊지 않았기 때문에, 극심한 [[고문]]과 [[박해]]는 그를 배교케 만들었고, 그는 [[석방]]되었다. [[1839년]]의 [[기해박해]] 이후에, 그는 어머니의 격려로 자신의 배교를 뉘우쳤지만, [[고해성사|고해]]를 받아줄 [[사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전장운은 속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845년]]에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으로 귀국하자, 남종삼은 [[고해성사]]를 받았고 동료 교우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는 매우 충실한 [[천주교]]신자로 살았다.
전장운 요한은 [[결혼]]하여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베르뇌]] [[주교]]는 그를 매우 독실한 신자로 인정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풀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최형 베드로]]와 [[임치화 요셉]]과 함께 그를 [[교회]] [[서적]]의 [[출판인]]으로 임명하였다.
새로이 [[박해]]가 시작되자, [[인쇄소]]의 주인 [[임치화]]는 도피하였지만, 전장운은 그곳에 남아서 [[목판 인쇄|목판]]들을 지키려 하였다. 그는 "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이 [[목판 인쇄|목판]]들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도망치기를 재촉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1866년]] [[3월 1일]]에 포졸들이 그 [[인쇄소]]를 급습하여, 전장운은 [[체포]]되었고, [[목판 인쇄|목판]]들은 몰수되었다. 그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예수]]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그는 [[포도청]]에서 1회의 [[심문]]을 받은 후, [[의금부]]에서 9회의 [[심문]]과 2회의 형문을 받고 [[장형]] 32 대를 맞았고, [[1866년]]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어, [[3월 9일]] [[사형]]을 선고받아 그날에 [[서소문]] 밖에서 [[최형]]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는 사형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목]]을 자르는 [[망나니]]가 과거에 자신과 면식이 있는 전(前) 천주교우였음을 알아보았다. [[망나니]]는 전장운의 [[목]]을 자르기를 주저했는데, 남종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왕|임금님]]을 따르십시오. 저는 [[하느님]]을 따르겠습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전장운은 [[참수]]되었고, 사흘 후에 [[장례]]가 치루어졌다. 그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순교]]했들 때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염지은
- 전희숙 . . . . 14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펜싱]]}}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단체전|플뢰레 단체전]]}}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 자카르타-팔렘방]]|[[2018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개인전]]}}
{{동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 자카르타-팔렘방]]|[[2018년 아시안 게임 펜싱|플뢰레 단체전]]}}
[[2009년]]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 부문에서 결승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아이다 샤나예바]]에게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 />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여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남현희]]를 이긴 뒤 결승에서 중국의 리후이린마저 15-6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한겨레2014" /><ref name="연합뉴스2014" />
<ref name="네이버인물검색">{{웹 인용 | 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전희숙&os=202459 | 제목=전희숙 | 저자=네이버 | 웹사이트=네이버 | 날짜=n.d.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08135657/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A0%84%ED%9D%AC%EC%88%99&os=202459 | 보존날짜=2016-11-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웹 인용 | url=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orts/2009/10/136_52967.html | 제목=Jeon Captures Silver in Foil | 저자=Kang Seung-woo | 웹사이트=koreatimes | 날짜=2009-10-05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20907064828/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orts/2009/10/136_52967.html | 보존날짜=2012-09-07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한겨레2014">{{뉴스 인용 | url=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656187.htm | 제목=남현희 넘어선 전희숙…펜싱 4종목 모두 금 찔렀다 | 저자=이재만 | 위치=고양 | 뉴스=한겨레 | 날짜=2014-09-21 | 학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119034345/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656187.html | 보존날짜=2016-01-19 | 확인날짜=2016-01-18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연합뉴스2014">{{웹 인용 | 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7141644 | 제목=-아시안게임-<펜싱> 단체전 여자 플뢰레·남자 사브르 '금'(종합) | 저자=김지헌 | 위치=고양 | 뉴스=연합뉴스 | 날짜=2014-09-24 | 확인날짜=2016-11-08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08141040/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7141644 | 보존날짜=2016-11-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신석초등학교 동문]][[분류:신수중학교 동문]][[분류:중경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14회 일치
* 블랙팬텀의 자객은 위치가 감지되지 않는다.
* 유리는 다중차원 이용자라면 텔레포트 기반의 합성 능력자일 거라고 예측하는데, 마츠카제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텔레포터(아오이)를 어떻게 포획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스러워한다.
* 블랙팬텀의 자객은 길리엄에게 어필해 더 강한 능력을 받으려는 자로 얌전히 있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칠드런을 잡으러 온다.
* 한순간의 방심으로 유리까지 잡혀가자 칠드런 일행은 한층 경계한다.
* 적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인데, 칠드런은 적이 숨어있는 곳 자체를 찾을 수는 없고 자신들의 능력도 약히진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지만 강행한다.
* 엿보고 있던 자객은 들켰다고 생각해서 카오루를 급히 공격하는데 마츠카제는 싸우지 말고 ECM을 기다리도록 한다.
* ECM이 발사되자 적의 정체가 드러났다.
* 사실 적은 힙노 능력자. 텔레포터인 척하면서 아군을 교란한 것이다.
* 자객은 뒤늦게 수류탄을 꺼내며 저항하려 하나 시호가 온갖 살벌한 무기를 꺼내면서 갈아마실 기세다.
* 원래 블랙 팬텀의 자객들은 오타쿠 컨셉이었는데 그냥 변태 컨셉으로 바뀐 듯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4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7th sense. '''무법자들 (12)'''
* 사카키는 친절하게 굴어 방심했지만 곧장 츠보미 후지코를 불러온다. 이후 역사대로 효부는 수감자행.
* 효부는 긴 옛이야기를 끝내며 조직의 2인자 "마기"로 있어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시로"로 돌아오라며 마기의 인격이 돌아오길 기도한다.
* 마기는 자신을 방해하자 카노 모미지까지 다치게하며 효부를 공격한다.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태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그리고 1분 만에 배신 당했다. 번개 같이 츠보미 후지코에게 제보한 사카키. 이후 효부는 수감자 인생을 살게 된다.
* 다시 현재시점. 이야기는 조금 세어나갔지만 효부가 요약한 핵심은 이렇다. 효부가 제멋대로 살 수 있는건 마기가 있기 때문이고 그 마기가 없을 땐 자기가 집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
* 마기는 효부의 힙노를 뿌리친다. 뿐만 아니라 블랙팬텀의 힘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며 찬양한다. 그 중엔 "재능에만 의존하는 이전 세대는 쓸려나갈 거다"는 발언도 있는데, 이미 그에겐 블랙팬텀의 계획 전모가 주입된 모양이다.
* 마기는 효부를 공격한다. 효부가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막겠다고 한 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이라고 절하하며 자신은 효부를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그를 죽일 수 있다며 살의를 드러낸다. 카노 모미지가 효부를 휘감은 탄소섬유를 끊어버리며 말리자 이번엔 모미지를 공격, 손에 관통상을 입힌다. 후지우라 요우는 모미지의 부상에 충격을 받는다.
* 효부일행은 언터쳐블 엠프렌스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론 큰 피해는 없이 끝났지만 이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크다. 특히 요우는 마기가 모미지를 공격한 일로 이를 간다. 한편 치료 중인 모미지는 설득실패를 자기탓으로 돌린다. 효부는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지만 내심 최악의 상황이라 여긴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길리엄과 싸우는건 불가능하다. 효부는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레어메탈 감염자들이 단순히 마음이 일그러져 폭주하는 것에 그친 데 반해 마기는 대놓고 길리엄 측에 붙는다고 선언하여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지인들을 소중히 여기는 효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인 만큼 더욱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효부가 거의 최초로 싸움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평했다. 언제나 "어떻게든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반대.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14회 일치
* 효부는 [[아카시 카오루]]가 스스로 "파괴의 여왕"이라 칭한 것에 기뻐하며 결과적으론 자기가 기다리던 대로 됐다고 쾌재를 부른다.
* 카오루는 미오 일행과 합류하자마자 [[팀 토이]]의 갓 로보를 박살내나 탑승자가 없는 미끼. 강력한 ECM이 펼쳐져 일시적으로 초능력이 봉해진다.
* [[츠쿠시 미오]]가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를 데리고 [[미나모토 코이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단이탈, 그 미오 일행을 쫓아 [[히노 카가리]], [[타마키 카즈라]], [[파티 크루]]도 이탈.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더 칠드런 일행까지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효부 쿄스케]]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념체 형태로 겨우 운신만 하던 효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본체의 인공심폐가 일시 정지한다. 상황을 보고한 것은 [[쿠구츠 타카시]]. [[우츠미 세이시로]]는 효부의 상태에 악영향이 갈 줄 알고 전달을 반대했지만 쿠구츠는 "어떻게 그러겠냐"며 강행한다.
* 효부는 [[아카시 카오루]]가 "아군의 회수가 최우선"이라 말한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쿠구츠가 "자신이 직접 '파괴의 여왕'을 칭했다"고 보고하자 "재미있게 됐다"고 웃음을 터뜨린다. 효부는 이것이 자신이 기대리고 있던 "파괴의 여왕"이 탄생, 혹은 부활하는 과정일 거라고 추측하며 지켜보자고 한다. 우츠미는 이호의 예지가 사라진 이 시공에서 조차 "파괴의 여왕"이 등장한다는건 웃을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효부는 그 말대로 이 세계의 미래도 장미빛은 아니겠지만 설사 어떤 세계가 된다 해도 자신이 평생을 기다린 여왕이 나타나는 거라며 즐거운 기색을 드러낸다.
* 카오루는 도착하자마자 [[팀 토이]]의 갓로봇을 발견하고 곧바로 때려잡는다.
* 미오는 증원군이 도착하자 기다렸다고 기뻐하다가 곧 츤데레 보정이 발동해 "우리들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라며 얼버무린다. 칠드런 일행도 그녀의 츤데레 기질엔 심드렁.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는 알았다고 대충 흘려듣고 [[쿠모이 유리]]는 그보단 일행의 안위를 먼저 확인한다.
나오미는 원래 예정보다 일찍 퇴각했다고 지적한다. 원래 예정은 전투 헬기들이 일대를 완전히 포위할 때까지 일행을 묶어두는 것이었다. 아키라는 만약 그랬다면 블랙 팬텀의 일제사격에 자기들까지 휩쓸렸을 거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한다.
- 정광용 . . . . 14회 일치
* 상위 문서: [[친박]], [[박사모]],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 [[정치깡패]], [[범죄자/목록/한국]]
2017년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허나 얼마 안가 열린 [[19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를 밀지 않고, 대선 막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누리당 내부 분열을 자초했다. 직후 반대파에선 정광용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까지 제기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으로 보인다. 일단 [[박사모]] 내에서는 이전의 정광용을 비난하던 여론을 누르고 [[변희재]], [[정미홍]] 등의 조원진 지지파가 배신자로 몰리며 상황이 역전된 모양새다.[* 정광용은 박사모를 10년 넘게 운영해 사실상 박사모 회원들의 실질적 교주 역할을 하고 있다. 변희재, 정미홍이 바깥세상에선 정광용에 비해 유명인사라 하더라도 박사모 내부에선 철저한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며, 정광용은 카페 매니저라는 시스템적으로도 자신의 생각과 책임회피를 늘어놓는데 있어 둘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박사모 내부에서의 여론전은 정광용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이후 [[조원진]] 지지파는 [[대한애국당]]을 만들고 분리되었다.
5월 31일자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조만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naver.me/xoxNhky9|#]] 6월 15일자로 구속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726379|#]] [[박근혜|님]]이 계신 곳으로 가니 오히려 영광이라고.--아이돌 스타를 영접(?)하는 아이돌 팬클럽 회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6&aid=0001251498|#]] [[http://cafe.daum.net/parkgunhye/U8YZ/862421|박사모에 올라온 원문]] [[독수리 켄|--??? : 역시 우리 팬클럽 회장님이셔. 날 구하러 왔구나!-- --아니야 나도 잡혔어--]]
'''더 나아가 [[친박집회]]와중에 일어난 여러 폭력사태를 일으키게한 총책임자'''[* '''이 사람이 구속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책임들 때문이다.''']
탄핵반대 집회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사모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요구, 폭력집회 선동, 내란 선동, 경찰관 폭행, 기자, 시민 폭행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불법행동을 많이 저질러졌다. 심지어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날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동이 격화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3명이나 나왔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주동자 정광용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임지지 않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885974|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7년 5월 25일 같이 폭력 시위를 선동한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와 함께 구속되었고 2017년 12월 1일 1심 재판에서 손상대와 함께 실형 2년을 선고 받았으나 2018년 5월 31일,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http://naver.me/GGVzj1Wi|#]]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1958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정정아 . . . . 14회 일치
|배우자= 임흥규
|자녀=
|형제자매= 언니 1명, 남동생 2명
'''정정아'''([[1977년]] [[2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희극 배우|희극인]]이다.
* 2014년 <감자> - 복녀 역
* 2013년 <미운 남자> - 과학교사이자 아내 역
* 2011년 <달마야 놀자> - 비구니 역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세종대학교 대학원 동문]]
- 정채진 . . . . 14회 일치
'''정채진'''(鄭埰鎭, [[1932년]] [[4월 27일]] ~ [[2008년]] [[7월 26일]] , [[대구광역시|대구]])은 공무원이자, 시민사회 운동가이다. 검정고시 출신 관료로 일반 공무원 공채에 합격, 공무원 재직 중 다시 보통고시에 합격하였다. [[박정희]] 정권에서 [[대구직할시장]], [[경상북도지사]], [[부산직할시장]]을 역임하였다.
* 1988.05 :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
* 1989.01 : 국책연구소 국책자문위원
|전임자 = [[김무연]]
|후임자 = [[박창규]]
|전임자 = [[장병구]]
|후임자 = [[이상희 (1932년)|이상희]]
|전임자 = [[김성배 (1927년)|김성배]]
|후임자 = [[이상희 (1932년)|이상희]]
|전임자 = [[최종호]]
|후임자 = [[김주호 (1933년)|김주호]]
|전임자 = [[김찬회]]
|후임자 = [[노건일]]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산림청장]][[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존 딜린저 . . . . 14회 일치
대공황 시기 활동했던 [[미국]]의 범죄자. 딜린저 갱이라는 이름의 범죄 조직을 이끌면서 미국 중서부에서 [[은행강도]]를 벌였다. FBI에게 "공공의 적"으로 선포된 인물이기도 하다.
=== 범죄자가 되기 전 ===
1923년, 딜린저는 미 해군에 입대한다. 그는 전함 USS 유타에서 복무하게 되었지만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유타가 보스턴에 정박했을 당시 탈영해버린다. 무어스빌로 돌아온 딜린저는 1924년 베릴 호비어스(Beryl Hovius)라는 3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한다.
=== 범죄자가 되다 ===
결혼까지 했음에도 딜린저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함께 무어스빌의 식료품에서 강도짓을 벌인다. 그리고 빠르게 체포ㅋ. 싱글턴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해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딜린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죄를 고백했다가 징역 2~14년+징역 10~20년[* 미국은 범죄를 여러개 저지르면 형량이 따로 붙는다.]이라는 선고를 받고 큰집에 처박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해리 피어폰트(Harry Pierpont)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1933년 5월 10일, 8년 가까이 빵에서 썩은 딜린저는 오하이오 주립 교도서에서 가석방된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오하이오 주에 있는 은행을 털었다가 9월 22일 체포되었다. 딜린저는 재판에 앞서 오하이오 주 리마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진다. 그러자 피어폰트를 포함한 4명의 동료들[* 해리 피어폰트, 러셀 클라크(Russell Clark), 찰스 마클리(Charles Makley), 헨리 코프랜드(Harry Copeland)]은 감옥을 지키던 보안관을 속여[* 가석방 기간 도중 범죄를 저지른 딜린저를 인계받기 위해 오하이오 주립 교도소에서 왔다고 속인 다음 문을 열어준 보안관을 쏴죽였다.] 딜린저를 탈옥시킨다.
이후 딜린저 갱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인디아나 주의 경찰서 세 곳에서 강도질을 벌여 권총, 소총, 자동화기, 탄약, 방탄조끼를 빼앗았다. 12월 14일에는 딜린저 갱 단원인 존 해밀턴(John Hamilton)이 시카고에서 형사 한 명을 살해하였다. 1934년 1월에는 인디애나 주 이스트시카고의 퍼스트 내셔널 뱅크(First National Bank)를 터는등 인디아나 주, 일리노이 주, 위스콘신 주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한달도 지나지 않아 애리조나 주 투싼에서 묵었던 호텔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피어몬트, 클라크, 마클리와 함께 경찰에게 붙잡힌다.
딜린저는 인디애나 주 크라운포인트의 감옥에 갇힌다. 이스트시카고에서 벌인 은행강도 도중 경찰관을 살해한 죄를 재판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딜린저는 나무를 깎아 총 모형을 만든 다음 그걸로 간수들을 위협해 감방에 가둔 다음 자동화기을 가지고 탈출한다. 그 후에는 보안관의 차를 훔쳐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도망친다. 이로 인해 훔친 차량을 다른 주로 밀수했다는 혐의가 추가로 붙게 되며 FBI가 딜린저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함께 붙잡힌 동료 세명은 딜린저의 탈옥을 도와주며 보안관을 살해한 일로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 결과 피어몬트와 마클리는 사형을, 클라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사형을 선고받은 둘은 탈옥을 시도했으나 마클리는 탈옥 시도 중 사살되고 피어폰트는 부상을 입은채로 붙잡혀 한 달 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친다.
1934년 3월 30일, 세인트폴의 링컨코트 아파트 관리인이 자신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헬만 부부를 수상하다고 신고했다. 헬만 부부가 수상하게 행동하며. 관리인을 집 안으로 들이기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헬만 부부의 정체는 딜린저와 프래쳇이었다. 다음날 FBI는 경찰과 함께 그들의 은신처 문을 두들긴다. 문을 연 프래쳇은 이들을 본 즉시 문을 닫아버렸고, 즉시 증원 경력이 추가로 투입되어 링컨코트 아파트를 포위한다. 하지만 밴 미터가 나타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사이 딜린저와 프래쳇은 뒷문으로 탈출한다. 이들은 그린의 은신처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린 역시 4월 3일 역시 FBI의 습격을 받고 총을 뽑다가 사살된다.
7월 21일, 안나 세이지(Anna Sage)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경찰에게 연락해온다. 그녀의 정체는 인디애나 주 게리에서 포주일을 하던 아나 쿰파나슈(Ana Cumpănaș)였다. 이민 귀화국에서는 이 루마니아 출신 포주를 국외추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쿰파나슈는 보상금을 주고 미국에 남게 해준다면 존 딜린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FBI는 보상금은 약속할 수 있지만 국외추방에 관한건 노동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쿰파나슈는 이를 받아들였다.
쿰파나슈는 자신의 친구인 폴리 해밀턴(Polly Hamilton)이 딜린저의 애인이라고 밝히며, 딜린저가 해밀턴과 함께 시카고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밀고했다. 둘이 갈 가능성이 있는 극장은 바이오그래프 극장(Biograph)과 마르브로 극장(Marbro) 둘 중 하나였다. 그녀는 둘이 갈 극장이 어떤 극장인지를 알리고, 둘을 따라가면서 주황색 드레스를 입겠다고 말하였다.
밤 10시 30분. 영화를 보고 난 딜린저는 두 여자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선다. 극장 문 앞에 서있던 멜빈 퍼비스(Melvin Purvis) 특별 수사관이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이 딜린저에게 접근했다.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은 딜린저는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골목길로 도망갔지만 그곳에는 FBI 요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세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딜린저는 그대로 쓰러졌다. 20분 후, "공공의 적" 존 딜린저가 알렉시안 브라더즈 병원(Aliexian Brothers Hospital)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14회 일치
* 쟝은 이대로는 자신들의 목숨도 인류의 목숨도 모든게 끝이라고 말하면서도, 순순히 전멸 당할 수는 없다고 일갈한다.
* 리바이 조차 패주를 준비해야 한다며 척후를 맡겠다고 자청한다.
* 리바이는 엘빈에게 엘런을 비롯한 소수의 생존자만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권한다.
* 많은 사람이 작전으로 죽을 걸 알았지만 그게 자신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뒤늦게 후회한다.
* 리바이는 생존자들이 일제히 흩어져 공격을 분산시킨 후에 엘런의 거인으로 탈출하라고 권한다.
* 그는 저 신병들에게 사기나 다름없는 설득을 해야하고 그 자신이 선봉에 서야 한다고 하면서 그 대가로 모두가 죽을 거라고 한다.
* 하지만 그에겐 죽은 동료들이 보인다. 그들이 자기들이 바친 심장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있는게 보인다고 한다.
* 모든 것이 자신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던 건지, 엘빈은 자문하지만, 리바이는 "너는 잘 싸웠다"라면서 "꿈을 버리고 죽어줘."라고 말한다.
* 병사들은 "어차피 죽을 거 싸우고 죽으라는 거냐"고 자조적인 발언을 하는데 엘빈은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고 연설하기 시작한다.
* "그렇다면 인생에 의미란 없는 것인가? 애초에 태어난 의미란 없는 것인가? 죽은 동료들도 그런가? 그 병사들도 무의미했던 것인가? 아니다! 죽은 자들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우리들이다!"
* 엘빈은 산 자들에게 다음을 맡기자며 최후의 작전을 지휘한다. 그가 싸우라고 외치는 동안 투석이 그가 탄 말을 관통한다.
- 리바이 병장. 엘빈이 입안한 자살에 가까운 작전의 실행을 요구하며.
- 진선유 . . . . 14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쇼트트랙}}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저자 = 이상준 기자
|저자 = 이동칠 기자
|저자 = 이경택 기자
{{ISU 쇼트트랙 월드컵 여자 종합 우승자}}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여자 종합 우승자}}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금메달리스트}}
- 창작:좀비탈출/0 . . . . 14회 일치
나는 생존자다. 그렇게 적을 수 있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남성이다. 수수하지만 이럭저럭 흠은 없는 외향에 체형도 그리 둔하진 않다. 전문적인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체력관리 차원에서 가벼운 조깅 정도는 꾸준히 했다. 게임, 영화나 만화를 잡식으로 좋아했고 어딜 가나 있을 법한 남자 대학생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Tv는 잘 안 보지만 걸그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지막까지 Tv로 보고 있던게 [[트와이스]]와 [[AOA]]였다.
이 글을 시작한 것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유언이라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자세히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적는 일은 의외로 힘들다. 나만의 특성을 적자고 할 수록 그런 요소는 한없이 희석되고 누구나 그럴 법한, 흔하디 흔한 얘기만 떠오른다. 저런 문장 어디에 '''내'''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마지막이 될,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남긴다. 여기는 우리집이다. 우리집은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단독주택이다. '''그 사태'''가 일어났을 때, 나는 마침 방학이라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출장을 떠난 상태였으며,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그게 어떤 부분을 자극한 건지, 어머니는 결연한 태도로 혼자 사는 외할머니를 데려오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났다.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을 무렵 두 사람이 있는, 그렇게 추정하는 지역이 '''위험구역'''으로 선포되는 뉴스를 봤다. 정부는 이 일대를 통제할 것이고 더이상의 '''사태 확산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은 착실하게 진군해서 그날 저녁 때쯤부터 우리 동네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커튼도 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주로 체리필터였고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끄지 않았다. 나는 조명도 끈 상태에서 혼자 지냈다. 공복과 수면의 사이클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가 열어줘야 했을 사람들이 아니었기만을 빈다.
집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뒤져서, 어떻게 제법 많은 식량과 물자를 모았다. 이 정도라면 얼마 동안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안에 남든, 혹은 여기를 뛰쳐나가든.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다른 가능성은 영영 사라져 버렸을까? 군인들이 탱크를 밀고 와서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리거나 천신만고 끝에 살아있는 부모님이 녀석들의 손길을 피해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까? 그때 내가 이 자리에 없다면?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14회 일치
학교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예상 밖의 것을 발견했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철 울타리 너머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하여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다. 생존자였다.
나 말고 살아있는 누군가를 본 것이 얼마만인가.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가 손짓하는 대로 교문 쪽으로 자전거를 움직였다. 그 사람 역시 교문 앞으로 달려와서 좀비들이 나를 눈치채고 교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교문을 살짝 열어서 자전거가 들어올 수 있을 만한 틈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쏜살같이 그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뒷쪽에서 교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전거를 탄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교문을 닫고 돌아선 녀석은, 약간 초췌하고 더러워진 인상이긴 했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우리 학교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을 중지하기는 커녕 야간자율학습도 그만두지 않았다. 이유는 교감이 "'''이럴 때일수록 더욱 면학에 전념해야 합니다! 6.25 때도 학교는 닫지 않았습니다!"'''라고 열광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걸 눈치챈 가족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등교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교감은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들 까지도 학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교감은 "감독을 쉽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때는 딱 1개 교실에 등교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이 직접 감독을 했다.
그리고 교실을 나가더니 곧 교감의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교문단속에 편집적이던 교감은 교문을 닫아걸고 나갔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학교에는 수십명 가량의 학생만 남겨졌는데, 이 지경이 되서도 야간자율학습에 보내는 부모를 둔 녀석들인 만큼 다들 조금 무기력한 데가 있어서 다음날 대낮이 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걸 깨닫고 하나 둘 무단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도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 얘들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런 공부벌레들이 이런 좀비가 우글거리는 거리를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고, 돌아갔다고 해도 집은 이미 안전한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남아 있던 녀석들 가운데 반 이상이 조용히 학교를 나가기를 선택한 다음,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자 나머지 녀석들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다만 민구는 애초에 나가기를 거부한 쪽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학교 자체는 작년에 야자탈출에 신경질적이었던 교감의 지시로 담벼락이 2미터 가까운 높이의 콘크리트 블록담으로 개수되어 있어 되려 어지간한 주택 보다도 안전했다. 넓은 학교에 평소에도 음울하고 조용한 공부벌레들만 몇명 있다보니까 소음도 크게 나지 않고, 벽이 높고 보안이 튼튼하다보니 피난처로는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14회 일치
|| 작성자 || levans12 ||
작중 기억을 절반이나 잃어버리고 눈을 뜨니 이상한 동굴에서 눈을 뜬 탓에 공허함을 느끼며, 자칭 동굴의 130대 수호용이라는 타츠카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로 맞이했다. 이후 자신의 기억을 찾기로 맹세하며 모험의 길에 오른다. 또한 여러 모험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개인 신상 : 과거의 기억의 절반 정도를 잃어버렸으나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보구인 천경원양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집안에서 물려준 드레스인 홍염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원치않게 라이벌과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고군분투와 파란만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월영천극도(月影天極刀) : 원래는 아스카가 소지하고 있던 보구는 아니었으나, 어째선지 아스카가 소지하게 되면서 아스카가 그 능력을 100% 다 이끌어내 사용중인 보구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뻔 한 전력이 있었던 요도로써 불려왔었고, 그 덕분에 원래 요도를 수호하고 있던 타치바나 가문에서 보관되어있었다가 자의로 그 가문에서 탈출하다시피 나가게 되어 현재는 아스카에게 의탁하고 있다.
홍염의-흑혁형(紅炎衣-黑赫形) : 츠키노 가문의 가보이며 전설급 보구 중 하나, 츠키노 가문의 여성들이 대대로 물려 입는 장착형 보구로써, 사용자가 성장해 나갈수록 사이즈가 사용자에 맞게 점점 커지게 되며 사용자의 기력 증가에 따라 감춰져있는 능력이 하나씩 개방되지만 그 능력을 전부 다 개방한 장착자가 없을 정도로 장착자들의 수명 소모 속도가 유달리 빠르다. 게다가 어째선지 아스카가 입었을때 유달리 색이 완전히 붉었던 색이 흑혁색(黑赫色 : 검고 붉은 색)이 되어버려, 많은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타치바나 이즈미(橘 和泉) : 츠키노 아스카의 라이벌이며, 타치바나 가문의 당주이자 그녀 자신은 순혈 선녀이다, 하지만 과거 기억을 잃기 전의 아스카한테 짝사랑하고 있던 사람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것 때문에 흑화를 하게 되었고, 아스카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공격을 하게 된다.
- 창작:치킨교 . . . . 14회 일치
|| 최초작성자 || 함장 ||
본래 [[미국]]에서 [[노예]]로 착취 당하던 흑인 노동자들에게 평화와 영양을 전하시던 것이, 흑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지자 샌더슨의 입을 통해 증거되시어 [[KFC]]란 교단을 일으켜 한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KFC 교단의 선교를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의 신앙전통에 맞는 형태로 탈바꿈시켰고 이것이 오늘날의 치느님과 치킨교이다.
치킨교의 위상은 매우 높아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장래 치킨교의 사제가 되어 치킨을 튀기는 일에 종사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있다. 치킨과 함께 먹는 것으로는 [[맥주]] 등을 선호하며, 한국에서는 특히 '치킨무'라 불리는 특수한 [[무]] 요리를 함께 먹는다.
치킨교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선지자가 누군지 경전이 없는 치킨교의 특성상 알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근원이 되는 종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치킨교를 믿는지에 상관없이 후라이드 치킨교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치킨교의 근본이 되는 교리를 정립하였기 때문에 그 어떤 치킨종교전쟁이 발생해도 이 파벌만큼은 거의 모든 비난에서 자유로울 뿐더러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의 전쟁도 다른 분파와는 달리 "부위"에 따른 우월성을 논하는 정도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다른 분파에 비해 온건한 성향을 띄는 편이다.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그러던 중에 이름 없는 선지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전능하신 치느님은 그 몸을 나누시어 한 몸에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실현하사 분쟁을 멈추셨다"는 주장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르침은 "양념 치느님을 영접한 혀로 후라이드 치느님의 미묘한 은사를 접할 수 있을리 없다"는 반박이 부딪혔다. 쓰러져가는 반반파를 구제한 것이 성자 무마니였다. 무마니는 치킨무의 묵묵한 헌신을 가르치며 "양념 치느님을 영접했으면 치킨무로 혀를 씻고 후라이드 치느님을 영접하라"는 신묘한 가르침을 창시하였다.
후라이드든 양념이든 상관없이 뼈만 없으면 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매우 급진적이었지만 후라이드교와 양념교 양측의 교도들이 일부 여기에 합세하게 되었고, 그 수가 적지 않자 후라이드 교황과 양념 총대주교는 회합을 갖고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단으로 규정된 사유는,
교촌교회의 선지자들이 전파하기 시작한 종파.
- 최원홍 . . . . 14회 일치
* 2007년 [[SBS]] 《[[그 여자가 무서워]]》 - 지웅 역
* 2008년 [[KBS2]] 《[[바람의 나라]]》 - 어린 [[대무신왕|무휼]] 역 ([[송일국]] 아역) / 호동왕자 역
* 2010년 [[KBS2]] 《[[부자의 탄생]]》 - 부태경 역
* 2011년 [[KBS1]] 《[[우리집 여자들]]》 - 홍진 역
* 2011년 [[MBC]] 《[[계백 (드라마)|계백]]》 - 어린 [[의자왕]] 역
* 2016년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 - 오경환 역
* 2007년 《[[그레꼬로망 러브]]》 - 남자아이 역
* 한국전력 수자원공사
[[분류:200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최은희 . . . . 14회 일치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26년 출생]][[분류:2018년 사망]][[분류:광주시 출신 인물]][[분류:1947년 데뷔]][[분류:납북자]]
|| '''가족''' ||[[배우자]] 故 [[신상옥]], 자녀 1남 1녀[* 둘 다 남편 신상옥家 친척조카를 [[입양]]했다.]||
[[한국]]의 [[배우]] 이자 [[영화감독]]. [[1926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시]] 출생.
1943년 극단 <아랑>의 연구생이 된 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 연기력과 미모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다. 이 때 촬영기사 김학성과 만나서 동거했다.[* 최은희가 언니처럼 잘 따르던 선배의 남동생이었다. 나이차이가 열 살 이상 났고, 김학성 슬하엔 자녀도 있었다. 다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결별. 이 때 최은희는 서울에 있다가''' [[심영(배우)|심영]]'''[* 우리가 아는 그 ~~[[내가 고자라니|고자]]~~심영이 맞다. ]에게 '''1차로 납치된다'''.--[[내가 고자라니|내가 납치범이라니]]-- 하지만 [[청천강]] 인근에서 탈출했는데, 이 때 '[[북한군]]에게 [[윤간]]당했다.'라는 괴소문이 돌게 된다. 문제는 이후 국군을 따라 위문공연을 하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진짜로 [[한국군]]에 의해서 [[성폭행]] 당했다는 것이다. 윤간은 아니지만 머리에 총을 겨누고 성폭행했다니 빼도박도 못한다. 이는 최은희 본인의 증언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신상옥]]을 만났고,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계기로 신상옥 감독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김학성은 둘을 [[간통죄]]로 고소했으나, 김학성과 최은희는 [[사실혼]] 관계에 가까웠지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동거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나온다. 자서전을 보면 당시 최은희는 김학성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결혼 생활중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어서 [[입양]]을 하였다, 신상옥은 이후 자녀를 보았기 때문에, 최은희가 [[불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시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시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시절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2018년 4월 16일에 향년 91세로 사망했다. [[사족]]이지만 사망 전 1년동안은 계속 투병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뒤늦게야 전해졌다. 슬하에 친자녀는 없지만 입양한 자녀 2명(1남 1녀)이 있다.
- 최진순 . . . . 14회 일치
'''최진순'''(崔軫淳, [[1969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기자 (직업)|기자]]이다.<ref>김달아·최승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27&aid=0000024679 중앙, 기어 바꾼 디지털 혁신…구성원 힘 모아 속도 낼까]. 기자협회보. 2017년 4월 5일.</ref>
[[1969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교수신문]]을 거쳐 [[2000년]] [[서울신문]]에서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한국온라인신문협회 기획분과위원, 뉴스분과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4년]]에는 [[한국언론재단]] [[KINDS]] 태스크포스(TF) 팀장,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또 한국언론재단 [[뉴스ML]] 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미국언론연구원(API) [[온라인저널리즘]]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했다.
최진순은 [[1990년]]대 중반 PC통신 천리안에서 정기간행물을 표방한 [[보테저널]]을 발행하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과 1세대 PC통신 논객 대열에 올랐다. [[1999년]] 7월 인터넷 최초의 독립 일간지인 <온라인 뉴스> '뉴스24' 창간을 주도했다. 여기서 최초의 유급기자를 둔 웹진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2005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이직해 [[2016년]] 9월 현재 편집국 기자로 재직 중이며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기조협의회 포털팀(TFT) 등 신문업계 기구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블로그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을 운영 중이다. [[2013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강의 과목은 온라인저널리즘, 디지털스토리텔링, 블로그저널리즘 등이다.
대학 출강 외에도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 국내 대다수 언론사에서 특강과 자문을 맡고 있다. 또 [[MBC]] TV속의TV, 다큐멘터리 [[KBS]] 미디어인사이드 등에 출연하였다. 2013년 [[연합뉴스]]는 뉴미디어를 이끄는 사람들 연재물에서 최진순을 소개했다.
* [[서울신문]]기자(2000년)
* 현재 [[한국경제신문]]기자(2005년~)
*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온라인저널리즘 기여 공로상(2013년)
*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온라인저널리즘 데이터저널리즘 부문 최우수상(2015년)
* [[한국기자협회]]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8220
[[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
- 킹덤/515화 . . . . 14회 일치
* 진군이 조의 왕도권에 진입한 이후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고 진의 수도 함양에선 최전방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던 [[진시황(킹덤)|진왕 정]]과 [[창평군]], [[창문군]] 등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보고가 잇따르자 크게 당혹한다. 열미를 따내는 것까지는 모든 것이 작전대로. 그러나 총사령관 [[왕전(킹덤)|왕전]]은 곧바로 열미를 버린 채 왕도권으로 진입했다. 심지어 왕전이 직접 보낸 보고에는 "열미는 곧 조군이 수복할 것이므로 보급을 보내지 마라"는 황당한 소리가 적혀 있었다.
창평군은 사전에 언질하길, 만약 수뇌부가 사전에 세운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왕전 개인의 독단으로 움직여도 좋다고 허가했다. 즉 왕전이 이렇게 나온다는건 본래 계획을 버리고 왕전 개인의 판단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얘기가 된다. 분명 그들에게 열미를 방어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왜 왕도권으로 진입했을까? 창문군은 그 점을 납득하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게 됐으면 당장 군을 물려서 돌아와야 할 일이다. 연합군의 병량이 떨어질게 불보듯 뻔하니까. 창문군은 어전에도 탁자를 내려칠 정도로 분개해하는데 누구 하나 말리지도 해석을 내놓지도 못한다.
다시 창평군은 진군의 보다 정확한 동향을 묻는다. 보고자는 [[양단화]]의 산민군 5만이 [[공손룡]]군 9만과 대치하면서 본대의 방패역을 하고 있다는 것, 본대는 그대로 진격 중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창면군은 그래서 본대는 업과 얼마나 떨어진 곳에 있냐고 묻는데, 보고자는 머뭇거리며 "업으로 가지 않고 근처 소도시 오다로 갔다"는 뜻밖의 사실을 전한다. 이것은 앞선 보고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병량이 문제라면 서둘러 업으로 갈 일이다. 고로 병량 때문은 아니다. 누구하나 짐작가는 바도 나오지 않는 가운데, 답답해진 진왕이 창평군에게 뭐가 어찌된 일이냐고 대답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 창평군도 지도 위에 놓인 말들을 지그시 쳐다볼 뿐,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광]]은 묵묵히 왕전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으나 왕전이 직접 "흐름"이란 말을 입에 올리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 왕전이 어떤 구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하 장수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아무도 왕전의 면전에서 그 사실을 발설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신(킹덤)|이신]]만은 달랐다. 그가 대놓고 "이딴 짓"을 할게 아니라 당장 업으로 가야 할게 아니냐고 악을 쓰자 장수들은 그의 무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수긍이 갔다. 이신의 말대로 하는게
상식적이다. 특히 지금 양단화군이 본대의 방패막이 되기 위해 공손룡의 9만 병력과 싸우고 있다. 이신은 그들을 봐서라도 빨리 진군하자고 성화다. 낙화대의 [[몽념]]은 저렇게 직설을 퍼붓는게 "바보의 특권"이라면서도 모두가 묻고 싶어하던 말임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저 무시할 줄 알았던 왕전이 움직인다. 성질대로 막말을 해댄 이신이었으나, 막상 대장군이 직접 말머리를 돌려 다가오자 위압감을 느낀다. 왕전의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은 이신을, 그가 든 [[왕의(킹덤)|왕의]] 장군의 창에 가있다. 이신 자신은 몰랐으나 몽념과 [[왕분]]은 놓치지 않았다.
* 지금껏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지시만 내렸던 왕전이지만, 이번엔 그가 그리는 전략을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여전히 어떤 목적 때문에 소도시들을 공략하는지 밝히진 않았으나 [[이목(킹덤)|이목]]의 움직임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 그가 왕도권으로 돌아와 통제력을 갖추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왕전이 보기에 이목이 함단까지 돌아오는데 하루, 그가 왕도권 군단의 통제권을 인수하는데 하루,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업에 도착하기까지를 하루로 잡아서 총 3일의 시간이 있는 걸로 계산했다. 왕전은 이제부터 군을 셋으로 나누기로 한다. 왕전 자신의 본대와 [[환의(킹덤)|환의]]군, [[비신대]]와 [[낙화대]], [[옥봉대]]를 합친 연합군의 세 갈래로 나눠 업 주위에 남은 일곱 성을 한 꺼번에 공략한다는 것이다. 작전 내용은 같다. 점령지의 식량을 빼앗고 백성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그들이 갈 곳은 "동쪽"이다.
뻔한 전개였지만 막상 현실로 일어나자 이신과 장수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정말로 군단의 활로는 "동쪽" 밖에 남지 않았다. 동쪽. 그러고 보니 방금 왕전도 동쪽을 언급했다. 그곳에 뭐가 있는 걸까? 왕전은 거기까진 말하지 않은 채 양단화군에 전령을 보내 본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라 지시한다. 그리고 이미 설명한 대로 다음 성을 함락하기 위해 군단을 움직인다.
* 공손룡군을 막으러 간 양단화군은 마평평야에서 그들과 맞선다. 그러나 진을 펼친 채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룡군이 꾀어낼 요량으로 자극해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격렬하게 반응하긴 했으나 전면적인 접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지 공손룡군의 발을 묶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상황은 반대다. 오히려 공손룡이 그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열미를 막은 시점에서 진군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뭘할 생각이든, 지금부터는 한 시 한 시가 목을 죄어온다. 공손룡은 이런 사실을 들어 곧 생각없이 왕도권에 들어온 걸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 장담한다. 그때 부하가 새로운 보고를 가져온다. 적들이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가? 공손룡은 잠시 헤아려 봤으나 곧 "상황은 변한게 없다"는 답을 내고 그쪽이 조금씩 움직이면 이쪽도 조금씩 따라가면 그뿐이라 여긴다.
* 백성들은 이런 사정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개중에는 북쪽 요양 쪽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으나 그쪽에서 15만 규모의 대전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있다. 결국 그들도 진군을 피해 계속 동으로, 동으로 기약없이 가야만 한다.
- 킹덤/529화 . . . . 14회 일치
* [[순수수]]는 견융족이 시원치 않다면 자신이 양단화를 참할 것이며 이곳 요양과 주해 평원 양쪽에서 압승해 진을 완전히 끝장내려고 한다.
* 양단화는 산민족을 돌아보았다. 일선에서 깨져나가는 그들의 몸뚱이가 보였다. 자신에 전략적 실책 때문에 죽어나가는 동족들. 개전이래 처음, 그녀의 얼굴에 쓰라린 표정이 스쳐갔다. 그러나 잠시 뿐이다. 그녀는 곧 난관을 타개할 무언가를 찾아냈다. 부대의 우측 전방에 있는 산등성이였다. 그 위에 견융의 기마대가 포진해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양단화는 잠깐 고심했다. 방금 떠오른 직관이 전략적으로 타당할까? 고민은 오래지 않았다. 양단화는 용기있는 여자였고 한때의 실책이 그걸 꺾을 수는 없었다. 결단이 섰다. 메라 족, 타라 족, 콘 족을 불러서 저 산을 빼앗으러 가자고 호령했다. 나머지 부대는 벽의 진군 부대와 함께 퇴각을 속행. 벽은 귀를 의심했으나 분명 지시는 내려졌다. 만류해볼 틈도 없이 달려나가는 양단화.
* 양단화가 고지를 취하는 모습은 조군 진영에서도 보였다. 그녀가 고지를 쟁취한 것도 그랬지만 퇴각 중인 군대가 구태여 그 위치를 따내는 것도 상식이 어긋났다. 그래봐야 작은 산. 저런 데로 가봐야 퇴로가 막혀 전멸당하기 십상이다. 조군 장교들이 그렇게 수군대자 견융왕은 조금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로조의 예측대로 진행됐다. 양단화는 퇴각하기 위해 산등성이를 따낸게 아니었다. 이곳은 반격의 거점이었다. 양단화는 직접 콘 족의 군기병을 통솔해 산 아래를 향해 일제오사를 명령했다. 궁사들이 한 번에 화살을 다섯 개씩 죄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밑에서 한창 열을 올리던 견융족은 불현듯이 쏟아지는 궁시로 쓸려나갔다. 당황한 견융족 기마대가 고지를 탈환하고자 달려들었지만 이는 기다렸던 바. 양단화는 다시 선두에 서서 이번엔 산 아래로 들이쳐갔다.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는
하지만 곧 팜에게 일거리가 주어진다. 휘고왕은 양단화가 거점을 마련했으니 자신들도 백보 후퇴 뒤 전선을 새로 정비할 거라고 "평지의 범장"에게 전하라 했다. 팜은 그 말대로 전했다. 백보후퇴 뒤 전선 정비. 팜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설명하려 했지만 벽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잘라 말했다. 이제 전장이 돌아가는 것쯤은 읽을 수 있었다. 저 거점의 등장으로 견융의 추격세는 눈에 띄게 저하됐다. 그 사이 전열을 다시 세워 양단화의 거점과 평지의 산민족이 적에게 협공을 거는 작전. 결코 실패해선 안 되는 작전이었다.
>제법이군 저 여자. 거죽을 벗기는 건 약간 아깝겠군.
로조가 까불지 말라며 양단화는 자신의 먹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순수수는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승리. 조군은 요양에서도 이기고 주해평원에서도 이겨야 한다. 자신과 [[이목(킹덤)|이목]]이 모두 이기면 역사는 바뀔 것이다.
* 그때 언덕의 반대편, 기수군 후미를 요격하는 희고 붉은 깃발의 무리가 보였다.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였다. 몽념은 [[육선]]을 앞세워 우측으로 돌격시켜 기수 본진의 방어를 뚫고자 했다. 낙화대의 진격은 이미 기수군 후방의 2진까지 돌파하고 있었고 기수에게 급보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부하들은 [[마정]]을 불러들여 본군을 사수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기수는 그럴 경우 전방이 무너지는 사태가 일어날 거라 여겨 한사코 거절했다. 대신 기수는 자신이 직접 낙화대를 저지하러 나서는데.
>가자, 비신대!
>기수의 목을 따자!
- 토리코/373화 . . . . 14회 일치
* 아이마루는 소식을 원칙으로 삼는 구르메 나이트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식욕의 악마를 숨기고 있었다며 다른 단원들이 까무라칠 거라고 자조한다.
* 아이마루는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세계의 진실이다.
* 아이마루는 아카시아가 구르메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각국 정상들에게 먹인 일을 언급하며 "과거 GOD를 먹은 자들은 이곳 에리어0으로 이끌리게 된다"고 한다.
* 그런데 정작 GOD가 에리어0이 아닌 "머나먼 땅"이라는 어떤 곳으로 이들을 이끌고 간다면, 자신들은 식욕의 노예가 되어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 나카우메는 이 식기들이 블루 니트로들이 풀코스를 조리하며 썼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GOD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자청한다.
* 그는 자신에겐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것과 이상한 용기가 솟아난다는 것을 말하고 GOD를 요리하겠다고 나선다.
* 제우스는 자신이 우멘을 막겠다고 나서며 텟페이와 나카우메가 GOD가 있는 곳을 갈 시간을 번다.
* 이 세포 분열의 힘을 마스터한 자는 밖에서 보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데 백채널이 그것이다.
* 그러자 토리코는 의외로 순순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얼마가 걸리든 널 쓰러뜨린다"고 선언한다.
* 그리고 한달 동안 자신도 성장했다며 갑자기 네오를 물어 뜯는다.
* 그대로 네오를 뜯어먹은 토리코는 "왜 상대도 안 되는 자신이 덤벼드는지 아냐며" 그것은 바로 "널 먹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 NEO를 자신의 풀코스의 "고기요리"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 하지만 토리코는 코마츠와 함께 얻은 식재를 풀코스에 넣을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네오는 어떻게 봐도 그렇지가 않다.--한 입으로 두 말하는 남자 토리코--
- 토리코/392화 . . . . 14회 일치
* 텟페이는 지구가 붕괴하며 지구의 생명력 그 자체가 용솟음치는걸 목격한다.
* 아카시아는 팔왕을 잡아먹고 더욱 강해졌지만 강해질 수록 그 안의 네오가 아카시아의 자아를 먹어치우고 있다.
* 토리코는 자신의 모든 분노를 담은 공격을 "분노의 풀코스"로 먹여준다.
* 토리코는 이미 "저것"에 아카시아의 자아는 남아있지 않을 거라 추측한다.
* 아카시아가 말한 "진짜 아카시아의 풀코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적합식재를 모으지 못했고 시간이 갈 수록 자신의 식욕 "네오"에게 먹히고 있다.
* 그는 자신의 식욕을 모은 거대한 구르메 펀치로 토리코를 내리찍는다.
* 토리코는 자신의 식운은 스타준이 플로제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것이라 먹어치울 수 없다고 말한다.
* 그 말이 더욱 자극이 되어 아카시아는 쉼없이 식운을 빨아들인다.
* 토리코가 피를 토하자 아카시아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려 하는데.
세 번째 악마는 뜻밖에도 매우 정중한 성격으로 네오는 물론 자기 숙주인 토리코에게도 공손한 존댓말로 일관한다. 웃음소리는 "쿄쿄쿄".
아카시아는 토리코에게 패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네오에게 먹혀 사라질 운명이었다. "진짜 풀코스를 먹으면 된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적합 식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고, 토리코 일행과 싸우며 자아를 먹혀간 걸로 보인다.
그런데 플로제는 진작부터 "적합식재로 구성한 풀코스가 있으면 식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 아카시아는 미식신으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재를 맛 봤다고 공언되고 있다. 그 중에 적합식재가 전혀 없었다는 걸까? 아카시아는 스스로 자신의 적합식재를 판별하지 못했던 걸까?
- 페어리 테일/494화 . . . . 14회 일치
* 라케이드에 대해서도 "이질적인 마력"이라며 경악하는데, 제레프는 자신의 히든 카드이며 아크놀로기아를 이길 수도 있다고 한다.
* 다시 일어난 엘자. 일행은 페어리테일 탈환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 그 첫 번재 조건이 자신의 본체. 그리고 또다른 조건이 있는데 이론상으론 가능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 그때 갑자기 메이비스의 몸이 얼어붙는다.
* 스프리건12 잉벨의 마법. 제레프는 그만두라고 하지만 잉벨은 그녀가 페어리 하트 그 자체이고 그 마력을 쓰는걸 경계한다.
* 제레프는 메이비스는 설사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라도 페어리하트의 마력은 쓰지 않을 것이며 오랫동안 수정 안에 있던 그녀를 다시 구속하는건 마음이 아프다고 설득한다.
* 더이상 틱틱거리지 않을 테니 함께 놈들(페어리테일)을 처치하자고 한다.
* 제레프는 라케이드를 자신의 비밀병기로 소개하며 아크놀로기아도 이길 수 있는 인물이라 한다.
* 제레프는 완벽한 포진이라 자평하며 "너희(페어리 테일)에게 내일은 주지 않겠다"고 장담한다.
* 드디어 깨어난 엘자는 멀리서 변해버린 길드와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 이튿날 아침. 엘자는 마지막 아침이 될지 모른다고 당부한다.
* 그런데 사실 브랜디쉬는 디마리아에 비하면 포로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게다가 반쯤은 페어리 테일의 협력자.
* 어쩌면 아주 유니크한 마법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 라케이드는 평소에도 오거스트의 소집을 무시한 걸로 보이는데 아이린도 어지간해서는 따랐던 걸 보면 엄청나게 방자한 행동이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14회 일치
*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 앞에 나타난 [[아크놀로기아]]는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본질을 깨닫고 시신을 훼손하며 즐거워한다.
*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 앞에 나타난 [[아크놀로기아]]. 인간체의 모습을 처음보는 그녀들이지만 웬디는 본능적으로 그를 두려워한다. 경기를 하는 것처럼 떠는 웬디. 엘자는 그를 처음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지닌 마력은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다고 경계한다.
* 아크놀로기아는 그녀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는 곧장 엘자와 웬디를 지나쳐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시신으로 간다. 그는 아이린의 시신을 우두커니 들여다보더니 그녀가 인류에게 처음으로 멸룡마법사의 힘을 주었던 자라인류에게 처음 멸룡의 힘을 준게 너였냐고 말한다.
아크놀로기아는 아이린의 시신을 짓밟아 훼손한다. 그 행동과 기분 나쁜 웃음은 엘자와 웬디를 공포로 밀어넣는다.
* 제레프는 자신의 생각대로 염룡왕 [[이그닐]]의 힘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 힘이 없으면 자신에게 이길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해피는 그때 나츠를 말렸던 것을 떠올리며 자책한다. 하지만 나츠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불길하고 강렬한 마력의 등장을 감지한다. 아크놀로기아가 내뿜는 마력은 거기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제레프는 아이린이 시간을 꽤 벌어줬는데 낭비하고 말았다며 아쉬워한다.
* 아크놀로기아의 등장은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와 교전하던 [[오거스트]]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다 됐다고 중얼거린다. 길다트와 카나 또한 익숙하고 기분 나쁜 마력을 알아차린다. 오거스트는 그 녀석이 오기 전에 폐하(제레프)가 페어리 하트를 흡수했다면 다른 결말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길다트는 오거스트가 싸움을 포기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냐고 의아해한다. 오거스트는 아크놀로기아는 "인간의 미래를 검게 물들이는 어둠의 날개"라고 표현한다. 길다트는 그런 맥락이라면 댁들도 같은게 아니냐고 쏘아붙이는데 오거스트는 믿기 어려운 대답을 한다.
카나는 헛소리라고 치부하지만 오거스트는 개의치 않는다. 단지 자신만 이해하면 된다고 말하는데.
* 오거스트는 다소 엉뚱한 소리를 꺼낸다. 카나에게 "아버지를 사랑하냐"고 물은 것. 카나는 쑥스러워하며 "딱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길다트는 교전 중이면서도 그런데 일일히 충격을 받는다. 이번엔 길다트에게 "딸을 사랑하냐"고 묻는데 물론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오거스트는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자신은 이 세상의 온갖 마법을 습득했지만 딱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한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부모 자식 간의 애정".
- 페이데이 2 . . . . 14회 일치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 Co-Op이 지원된다. 싱글플레이의 경우 혼자 하는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봇을 데리고 할수도 있지만 봇들이 총쏘는 것 밖에 못하는지라 모든 행동은 자신이 해야한다.
* 플레이어의 체력은 방탄복과 체력으로 나뉜다. 방탄복은 일정 시간 동안 공격받지 않으면 알아서 회복되지만, 체력은 특정한 스킬이나 퍽 덱을 사용하지 않는 한 자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 네번째 다운은 바로 구속으로 이어진다. 세번째로 다운되었을 때 화면이 흑백이 된다. 구급 상자를 사용하던가 하자.
* 일정 조건을 만족한 경찰들은 해당 경찰을 향해 고함을 치는(F) 방법으로 포로로 잡을 수 있다. 포로로 잡은 경찰은 인질로 사용할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포로로 잡고 있는 경찰은 죽이지 말자.
* 플레이어가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은 경찰은 붉고 작은 탄약 상자를 드랍한다. 이 탄약 상자에서 탄약을 획득할 수 있다.
킹갓 DLC. 하이스트 중 획득 가능한 소포 상자들을 모아 전용 무기 부품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주무기인 화염방사기, 6연장 유탄발사기, 전자동 산탄총과 화염병, 고기 찌르개, 뒤집개, 꼬치, 고기 다지는 망치가 들어있는 DLC. 산탄총용 드래곤 브레스 탄과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 소콜과 경장갑 상태에서 자힐할 수 있게 해주는 Grinder 퍽 덱, 돌격소총(Valkyria), 하키스틱이 들어있는 DLC.
전직 야쿠자 지로와 체력이 적을 때 보너스가 들어오는 Yakuza 퍽 덱, 기관단총(Micro Uzi), 일본도가 들어있는 DLC.
자켓, 근접전에 특화된 소시오패스 퍽 덱, 기관단총(Jacket's Piece), 장도리를 준다.
* 스팀을 통해 하고있다면 스팀의 페이데이 2 커뮤니티 구독은 꼭 하자. 여러가지 무기도 쓸 수 있게 해준다.
- 하이큐/228화 . . . . 14회 일치
* 귀가 중 다테 공고 3학년 3인방과 마주치는 카라스노 3학년 3인방. 긴장된 분위기가 감돈다. 특히 아즈마네 아사히는 엄청 굳은 표정. 저쪽도 카마사키 야스시가 만만치 않은 표정이다. 모니와 카나메는 봄고 대회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을 한다. 카라스노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점잖게 "감사합니다"하고 화답하고 돌아서는데 막상 갈라진 뒤에는 각자 일행끼리 실없는 대화나 주고 받는다.
* 그날 저녁. 자율연습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는 주장지시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는 니시노야 유에게 언제나처럼 서브 연습을 청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연습을 청한거 치곤 수십분 만에 페이스를 따라가기 버거워서 헉헉 거린다. 니시노야는 서브 연습은 심박수가 높은 상태에서 하는게 이상적이라며 페이스를 늦추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에선 심박수가 높아진 상태에서 때리기 마련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 이를 갈면서도 서브를 올리는 키노시타. 이번엔 니시노야가 리시브에 실패하는데 자체패널티로 손가락 푸쉬업 10회를 달리며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도중부턴 타나카 류노스케까지 끼어서 연습은 더욱 열기를 띈다. 보고 있던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리시브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데 "공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한다"는 살벌한 표현으로 돌아온다.
* 키노시타는 니시노야에게 "오버로 받는게 약하면 언더로 받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는데, 니시노야도 그런 생각은 하지만 더 수준 높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이상 선택지가 늘어나는데 안 할 수가 없다고 답한다. 키노시타는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실패할 바엔 성공을 포기한다"는 소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서브 때문에 카라스노는 고전하고 있다고 자각한다. 키노시타는 "니시노야가 못 잡을 서브를 치겠다"는 각오로 다시 연습에 임한다.
* 주장 지시도 있고 하니 히나타도 서둘로 귀가하지만 집에 가서도 개인연습을 시작한다. 학교에선 카게야마가 있으니 주로 스파이크 연습을 하지만 리시브는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 집에 있던 여동생이 기웃거리자 여동생에게도 시켜준다. 나츠는 자신만만하게 덤비지만 만만치가 않다.
* 히나타가 하는 연습은 혼자하는 리시브 연습법인데 우선 높이 튕긴 공을 받아 위로 패스하고 공이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지면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면 여러 동작을 중첩해야 해서 만만치 않은 훈련. 당연히 나츠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지만 히나타는 능숙하게 반복한다. 여동생에게 자랑하는데 지나던 어머니는 "허무하지 않냐"고 딴죽을 걸어서 김을 빼버린다.
키노시타는 자신 때문에 카라스노가 전력 공백을 겪고 있다고 자책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스포츠에서 특정 포지션이 부족한건 흔한 일. 게다가 카라스노 정도면 선수층이 두껍지는 않아도 갖출 건 다 갖춘 팀이다.
- 한무숙 . . . . 14회 일치
| 학력 = [[경남여자고등학교|경상남도 부산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 배우자 = 김진흥
| 자녀 = 슬하 2남 2녀 <br /> 장녀 김영기(金榮起) <br /> 장남 김호기(金虎起) <br /> 차녀 김현기(金賢起) <br /> 차남 김용기(金龍起)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2년]]에 장편 《등불 드는 여인》으로 데뷔하고 [[희곡]]도 당선되어 문인으로 등단했다. [[1948년]]에 장편소설 《역사는 흐른다》를 발표하고 다수의 단편을 집필했다. 첫 창작집은 [[1956년]]에 발간된 《월훈》이다. 동생인 [[한말숙]]도 소설가로 데뷔하여 자매 작가로 활동하였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과 [[한국여류문학인회]] 중앙위원 등을 맡았다. [[1958년]]에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자유문학상]]을 수상했고, 신사임당상(1973)과 [[3·1문화상]](1989) , 예술원상(1991) 등을 차례로 수상했다.
|저자=오종택
* 누이동생: [[한말숙]](韓末淑, [[1931년]] [[12월 27일]] ~ . [[소설|소설가]]. [[숙명여자고등학교|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및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언어학과 졸업.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黃秉冀)와 결혼.)
== 참고 자료 ==
|저자=이호규
[[분류:1918년 태어남]][[분류:199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극작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삽화가]][[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경남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한승주 (공무원) . . . . 14회 일치
|배우자=
'''한승주'''(韓昇洲, [[1940년]] [[9월 13일]] [[경기도|경기]] [[경성부|경성]] - )는 대한민국의 교육인, 외교학자, 외교관,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외무부]] 장관, 주미 대사를 지낸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1978년]]부터 교수로 재직한 외교학자이다.
|전임자 = [[이상옥]]
|후임자 = [[공로명]]
|전임자 = [[김정배 (역사학자)|김정배]]
|후임자 = [[어윤대]]
|전임자 = [[양성철]]
|후임자 = [[홍석현]]
|전임자 = [[이필상]]
|후임자 = [[이기수]]
[[분류:194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욱일대수장 수훈자]]
- 한혜령 . . . . 14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하키]]}}
{{금메달|[[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하키|여자 하키]]}}
* [[성주여자중학교]]
* [[성주여자고등학교]]
* [[2008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하키 국가대표
* [[2012년 하계 올림픽]] 여자 하키 국가대표
* [[2014년 아시안 게임]] 여자 하키 국가대표
* [[2014년 아시안 게임]] 여자 하키 금메달
{{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여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하키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
- 홍병주 . . . . 14회 일치
|직업 = 순교자
그의 동생 [[홍영주 바오로]] 역시 [[순교자]]이다. 그들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홍낙민 루카]]의 손자들이며, [[1839년]] 말에 순교한 [[홍재영 프로타시오]]의 조카들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 [[양반]]의 후손이며, 그 가문 사람들 중 여럿이 [[한국 천주교]]에 기여한 바가 크다.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홍병주와 [[홍영주]]는 모두 [[교리]] [[교사]]로 임명되었고,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열의와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비신자를 가르치며 병자들을 돌보는 것과 자선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므로,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그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복하였고, 그들에게 여러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1839년]] [[기해박해|기해년의 박해]] 동안에,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배교자 [[김여상]]이 [[체포]]되어야 할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다.
홍병주 [[홍영주]] 형제는 9월에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형리들은 그 형제에게 동료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할 것과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형제는 결코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형조 [[판서]]가 그들의 친척이었다. 그는 그들을 직접 [[고문]]하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을 시켜 형제가 배교하도록 극심히 고문케 하였다. [[도둑|절도범]]과 [[살인자|살인범]] 등의 다른 수감자들도 형리들을 따라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를 구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절대 꺾이지 않았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홍아름 . . . . 14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고등학교]] 2학년 때 게임회사 광고 모델로 발탁된 것이 계기가 돼 [[FT 아일랜드]]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게 됐고 다시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 출연하여 연기자 데뷔를 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5&aid=0000010871 인기드라마 ‘삼생이’ 의 주역, 경쾌한 스물다섯 홍아름] 레이디경향. 2013년 05월 06일</ref>
| 여자 신인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연속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일일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일일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6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황금촬영상 수상자]]
- 황두성 . . . . 14회 일치
* [[요미우리 자이언츠]] 트레이닝 코치 (2014년)
'''황두성'''(黃斗聖, [[1976년]] [[11월 16일]] ~ )은 전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트레이닝 코치이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하였으나, 1군 1경기에 그쳤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은 상당히 탄탄했었기에 그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못하고 그의 선수 생활은 주로 2군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들이 부진함에 따라 2군에서 선수 생활을 쭉 해오던 황두성은 비로소 1군에 올라와 기회를 잡게 되는데, 처음에는 불펜으로 자주 등판한 것을 시작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마당쇠 같은 역할을 하여 [[2005년]] 1군 60경기 11승 9패에 방어율 3점대 초반의 성적을 거두어 두각을 나타낸다. 데뷔 첫 승도 그 해에 기록했다. 그는 140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와 체인지업 위주로 구사하면서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그는 [[2006년]] 시즌 처음에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2005년]]에 지나치게 등판하여 혹사한 탓에 후유증으로 크게 부진하여 2군에서 재활하게 된다. 그 뒤 시즌 중반에 1군으로 올라와 불펜 투수로 뛰면서하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다. [[2006년]] 시즌 3.91 평균자책을 기록하였다.
[[2007년]] 시즌에는 처음에 불펜에서 활약하다가 6월 즈음에 [[현대 유니콘스]] 선발진들이 난조를 보이자, 선발로 전환하여 활약한다. [[2007년]] [[10월 5일]] [[현대 유니콘스]]의 홈 고별전인 [[수원야구장|수원]] 한화전 9회 초에 등판하여 세이브를 거두었으며 그 세이브가 [[2007년]]의 유일한 세이브였다. 은퇴했을 때 그는 [[현대 유니콘스]]의 고별 경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6064 '은퇴' 황두성, "현대 마지막 경기 잊을 수 없다"] - OSEN</ref> 이 해 그는 4.45 방어율에 7승 9패 1세이브를 기록하였다.
[[2008년]]에는 선발로 활약하다가 시즌 중반에 소속 팀이 마무리 부재로 불펜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진해서 잠시 마무리로 전향했다. 그러다 [[일본]]인 마무리 [[투수]] [[다카쓰 신고|다카쓰]]의 입단으로 선발 보직으로 다시 옮겼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으로 뽑혔지만 컨디션 난조로 중도 하차하여 [[임태훈 (야구 선수)|임태훈]]과 교체되었다.
[[2009년]] 시즌에는 처음에 마무리 [[투수]]로 보직으로 활동하다가 구위 난조로 잠시 2군에 잠시 갔었다. 그 후 시즌 중반에 선발 보직으로 활약하여 3.51 방어율에 40게임 등판, 8승 3패 9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하고 있다가 재활에 실패했고 무릎 부상까지 겹쳐 1군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1년]] [[11월 25일]]에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방출되자마자 곧 은퇴하고 자신이 처음 지명받았던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코치로 옮겼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1316335552729 황두성, 삼성에서 지도자로 변신…잔류군 코치 계약] - 아시아경제</ref>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하였다.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리 !!패전 !!세이브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황인숙 . . . . 14회 일치
*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ref>{{뉴스 인용|성1=백승찬 |제목=김성중 소설가·황인숙 시인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1202144025 |날짜=2017-11-20 |확인날짜=2018-08-09 |뉴스=경향신문}}</ref>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문학과지성사]], 1988) {{ISBN|8932003483}}
*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사]], 2003) {{ISBN|8932014647}}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br/>유심히 보면, 유령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누군가가 '외롭다'고 중얼거린다. 그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어 합쳐지고 변화하고 따뜻해지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이기적인 욕망일까?<br/>바로 지금, 나는 원한다. 어떤 영혼도 제어할 수 없는, 아니 영혼이 주동이 되어 세포·원형질, 그 뭐랄까, 그 엄연한 물질이 되어……. 그런데 별수없이……이것은 치유될 수 없고, 내가 아무도 치유할 수 없고, 이 깨달음은 비통한 노릇이다.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br/>돌아가보자.<br/>'말의 아름답기' '말의 부드럽기' '말의 따뜻하기'<br/>-藝專 문창과「문학개론」첫 장으로. 그러면 '삶의 아름답기' '삶의 부드럽기' '삶의 따뜻하기'가 가까워질 것이다.
* 《자명한 산책》<br/>등단한 지 스무 해가 꽉 차간다. 스무 해, 그러니까 20년! 그동안 써온 시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시에 있어서도 후한 값을 받고 살았다. 그게 다 빚이다. 힘을 내서 빨리 빚을 까자!
[[김현 (문학평론가)|김현]]은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를 비평하면서 시인의 시가 "통과 제의를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시"라면서 "통과 제의의 시"라고 이름 붙였다. 또, 시인이 "통과 제의가 끝나면,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자기의 꿈을 하나둘 슬그머니 드러"내는 점에서 시인의 시를 "애드벌룬의 시"라고도 평했다.<ref>{{서적 인용|제목=김현 문학전집 6|날짜=1992-12-05|출판사=문학과지성사|저자=김현|출판위치=서울|페이지=297|꺾쇠표=예}}</ref>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14회 일치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범인 소년은 키타카와 히카루와는 같은 구마모토 현 출신으로 다른 학교를 나왔다. 평소 친구에게는 "키타카와 씨를 좋아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키타카와 씨에게) 바보취급 당했다."고 경찰에 설명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오빠도 "교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부정하였다.
피해자와 범인은 특별히 관련성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피해자가 스토커 상담 등을 했던 적은 없고, 같은 예비교의 동급생 이상으로는 볼 수 없는 관계였던 것으로 같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학생의 발언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잘 모르지만 예비교에서는 평범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고, 데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평소 폭력적이거나 흉폭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범인과 피해자는 똑같은 [[예비교]]에서 국공립대 문과 코스를 배우던 동급생이었다. 사건 시간은 같은 국립대, 같은 학부의 2차 시험을 마친 직후였다.
범행 현장은 2월 27일 오후 9시, 후쿠오카 시 니시구의 JR 메이노하마(姪浜) 역에서 북쪽으로 800킬로미터 떨어진 주택가이다. 목격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귀가 도중에 뒷쪽에서 습격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비명이 들렸고, 범인이 피해자에게 올라타서 습격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남성들이 범인을 쫓아갔으나 범인은 도주하였다.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얼굴, 목, 머리 등 20곳 이상을 찔렸으며, 병원으로 옮겨지고 사망이 확인됐다. 현장에는 흉기로 보이는 대형 나이프 2개와 작은 [[도끼]]가 떨어져 있었다.
범인 소년은 사립 남자 기숙사에 입주하여, 방향이 키타카와의 집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에 미리 [[흉기]]를 준비하여 계획적으로 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안타깝게도, 3월 9일에 피해자가 제1지망으로 하고 있던 [[오사카 대학]] 법학부의 합격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살해당한 피해자는 법학부에 합격한 것이 밝혀졌다. 또 오사카 외 도쿄와 간사이의 3개 사립대학에도 합격하였다.
피해자의 아버지 키타카와 요우지(洋二)는 2월 29일, 후쿠오카 현경을 통하여 "가족에게 보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매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코멘트를 했다. 딸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고 참을성 많은 딸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솔선하여 공부나 스포츠에 남다른 노력가였습니다. 고집도 부리지 않고 부모와 형제를 소중하게 하는 상냥한 딸이었습니다."라고 자필로 코멘트 하였다.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3회 일치
이 직책에 임명된 이들은 군주에 대해 음모 보너스가 들어간다는 것에 유의하자. 만약 당신을 암살하려는 놈들이 주요 직책에 있는 인물을 영입하면 음모 세력이 확확 늘어난다.
외교를 담당하는 직책. 자신의 외교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재상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파견시켜 명분을 날조하게한다. 성공한 경우에는 군주가 해당 백작령에 대한 소유 명분이 생겨 땅을 내놓으라며 전쟁을 걸 수 있다. 해당 군주에게만 명분이 생기지 그 후계자에게는 안 생긴다는 것에 주의. 운이 나쁜 경우에는 명분을 날조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 해당 지역 영주들이 화를 내거나 암살자를 시켜 재상을 죽여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공작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으며, 만약 군주가 해당 지역의 왕이 되는 야망을 가졌다면 왕국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다.
군사를 담당하는 직책. 자신의 무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세금을 걷고 영지를 관리하는 직책. 자신의 관리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음모와 책략을 담당하는 비공식 직책. 자신의 음모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자신이 알아낸 음모를 주군에게 보고한다. 자기가 주도했거나 엮인 음모는 안 말해주니까 주의.
주군의 종교적 조언자. 자신의 학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 고위 자선가
* 잔 드리는 자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3회 일치
본명은 토마스 알렉산더 스콧(Thomas Alexander Scott).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사장. 밴더빌트의 라이벌이자 카네기의 스승격 쯤 되는 사람.
철강 사업가. 톰 스콧의 제자격 되는 인물이자 존 D. 록펠러의 라이벌. 톰 스콧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존 D. 록펠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효율 향상을 위해 카네기가 영입한 인물. 효율적이지만 냉혹한 정책을 벌인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할 뻔 하기도.
은행가.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인 주니어스 모건에게 금융업과 사업을 배웠지만 아버지와 다른 방식[* 주니어스는 검증되지 않은 사업에 투자하는걸 꺼렸지만 모건은 검증되지 않은 사업인 전기에 투자했다.]을 선택한다. 위기에 처한 기업을 잡아먹는 일을 해온다.
발명가. 연구하고 있던 전구와 직류 전기가 J.P. 모건의 관심을 끌어 지원을 받게 된다. 새로운 경쟁자인 테슬라와 교류를 상대로 "전류 전쟁"을 치른다.
공화당 정치인. 전쟁 영웅. 뉴욕 주지사 시절 기업을 엿먹이는 법안을 내놓는 반 독점론자였다. 이에 기업가들은 잉여로운 자리인 부통령에 앉혀 무력화시켰으나 대통령이었던 매킨리가 무정부주의자에게 총맞고 죽으며 대통령으로 승격. 반 트러스트 법안으로 기업가들을 엿먹인다.
자동차 사업가. 서민들의 경제력에 맞춘 자동차를 개발해 자동차를 사치품에서 일상용품으로 만들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13회 일치
게임 용어들은 전부 자체적으로 번역하였다. 유로파 카페 한글 패치가 안되는데 어쩌라고.
* Liquidation of Assets(자산 청산)
* Capital of Investors(투자자의 자금)
=== Investment Banks(투자 은행) ===
* Industrial R&D Investments(산업 R&D 투자)
* Industrial Production Investments(산업 생산 투자)
* Industrial Distribution Investments(산업 분배 투자)
=== Freedom of Trade(무역의 자유) ===
* Autarky(경제 자립)
* Marketized Smallholder Business(시장화된 자작농 사업)
* Human Resource Development(인적자원개발)
- 강예빈 . . . . 13회 일치
| 직업 = [[배우]], [[사회자|방송인]]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여주여자고등학교]] (2001년 졸업)
* [[동원대학교]] 디자인과 (2004년 휴학)
|2015||SBS||[[너를 사랑한 시간]]||오하나를 질투하는 여자||특별출연
* 《절대남자》 (2011년, XTM)
* 《[[순위 정하는 여자]]》 (2011년, QTV)
[[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주시 출신]][[분류:강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4화 . . . . 13회 일치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밖에 나가자는 우마루. 하지만 그것 조차 신작 게임 포켓햄GO를 위해서였다.
* 타이헤이도 아는 포켓햄 시리즈의 신작. 타이헤이가 자기가 어렸을 때도 있던 게임이라고 말하자 우마루는 초등학생 시절 오빠는 어떤 아이였냐고 궁금해한다.
* 어린시절 기억과 현재의 신사를 비교해보며 감회에 잠기는 타이헤이. 우마루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마루가 먼저 바깥에 나가자고 제안한다.
* 포켓햄 시리즈는 오래된 시리즈여도 타이헤이도 알고 있다. 자기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유행하고 있었다는데.
* 친구들이 포켓햄으로 놀자고 찾아와도 게임기가 없어서 어울리지 못했다.
* 우마루는 혹시 친구가 없는 타입이었냐고 하는데, 그래도 친구 자체는 많았던 듯.
* 꼭 게임이 아니어도, 타이헤이는 친구들이 놀러가자는 제안은 거의 거절하고 있었다.
* 그러다 우마루는 자기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 돌아가는 길. 우마루는 자기도 나중에 가면 포켓햄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될까 생각한다.
* 리뷰에는 작성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을 수 있다.
* 교회 다니자.
- 권은희 (1959년) . . . . 13회 일치
'''권은희'''(權恩嬉, [[대구광역시|대구]], [[1959년]] [[5월 24일]] ~ )는 [[대한민국]]의 컴퓨터공학자이다. 정계에 진출하여 [[2012년]]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대구에서 당선되어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목록|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20대 총선에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컷오프 되었으며,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ref>[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20_0013969591&cID=10301&pID=10300 與권은희 무소속 출마…유승민계 두 번째 탈당] 뉴시스, 2016년 3월 20일</ref>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서 6.85%를 얻어 4위 안에 들지 못했으나, 여성 몫으로 최고위원이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917155|제목=바른미래당, 전당대회…손학규 신임 대표 선출|성=남정민|날짜=2018-09-02|뉴스=SBS NEWS}}</ref>
* 구남여자중학교 졸업
* [[원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 1984년 1월 ~ 1985년 12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데이터통신실 연구원
* 2013년: 2013 자랑스러운 경대인상
* 2013년: 자랑스러운 ETRI인
* 2013년: 유권자 시민행동 국감 우수의정상
== 참고 자료 ==
|전임자 = (대구 북구 갑)[[이명규 (1956년)|이명규]]<br />(대구 북구 을)[[서상기 (1946년)|서상기]]
|후임자 = (대구 북구 갑)[[정태옥]]<br />(대구 북구 을)[[홍의락]]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원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구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정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분류:안동 권씨]]
- 김소혜(1992) . . . . 13회 일치
|| '''데뷔''' || [[2005년]] [[MBC]] 드라마 '자매바다' ||
4살 때 아동복 모델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연예인의 꿈을 키워 왔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김포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일요일마다 서울에 있는 연기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2005년에 MBC 아침드라마 자매바다, 시트콤 논스톱5, 2007년에는 드라마 히트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아역배우로 출발하였지만, 무명배우로서의 시간이 꽤 길었다. 2012년 KBS [[드림 하이 2]]에서는 [[박진영]]에게 친구가 쓰러졌다고 다급히 알리는 학생 역으로, 같은 해 SBS 설특집극 "널 기억해"에서는 [[정연주(배우)|정연주]]의 친구 역을 맡았다. 여담으로, 이 때 활동하면서 사용했던 예명이 "김한니"이다. 2015년 인터뷰에서 어머니도 편찮으셨고 자신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 2~3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다고 한다.
2월에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책을 좋아하고 헌책방에서 알바하는 학생인 한수연 역을 맡았고, 자신의 동급생이자 방송반 아나운서인 박은빈([[강성아]] 분)과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촬영 후 김소혜는 소감을 밝혔는데 자신의 연기가 성소수자에게 행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고 말하였다. 수연의 감정이 애절하게 다가왔다고 평하였다. 수연의 사생활의 누군가에 의해 짓밟히고, 은빈에게 매달리고 울기도 했지만, 은빈을 위해 쓸쓸히 퇴장하는 장면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수연은 은빈을 정말 사랑해서 떠났지만, 김소혜 자신이 수연이라면 사랑하는데 떠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신은 딸기우유를 급우에게 맞은 장면이라고 한다. 날씨도 추웠고 그 장면을 반복 촬영하느라 몸살이 왔다고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43970|TV리포트]]
* 청소년기에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자신에게 일기형식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서 고민을 해결하였다. 어느 순간 창작을 해보고 싶어서 20~23살까지 판타지 소설을 지었는데 자신이 배우 [[지성(배우)|지성]]의 오랜 팬이다 보니 그를 모델로 삼아서 썼다고 한다. 제목은 '더 플레이스'이다. 고등학교 때 내용을 구상하고 20살 때부터 썼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08307|OSEN]]
||<|2> 2005년 ||<|2> MBC || [[자매바다]] ||<|6> 단역 ||
|| 2007년 || MBC || [[히트(2007)|히트]][* Homicide Investigation Team의 약자.] ||
|| 2009년 || tvN || 세 남자 ||
- 김수진(배우) . . . . 13회 일치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자살]]
| 배우자 = 미혼
* CF모델로 활동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후 [[MBC]] [[TV 드라마]] 《[[도전]]》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ref>경향신문, 박신연기자, 1996.03.23 </ref>
2013년 3월 29일 오후 9시쯤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추정했다.
김수진의 자살소식은 이틀이 지난 4월1일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으며 수일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참고로 29일은 [[도시남녀]]에 함께 출연한 故[[최진영]]의 3주기가 되는날이었기에 많은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향년 39세였다.
<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332550 데일리안, 손연지 기자,2013.04.01]</ref>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1994년 데뷔]][[분류:2013년 죽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사생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자살한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목 매달아 자살한 사람]][[분류:독일계 한국인]][[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목포시 출신 인물]]
- 김정태(영화배우) . . . . 13회 일치
||<#66CDAA> '''{{{#ffffff 가족}}}''' ||<(> 배우자 전여진, 아들 김지후, 김시현 ||
[[대한민국]]의 [[배우]]로 [[1973년]] [[1월 17일]]생. 본명은 [[김태욱]]으로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을 통해 [[충무로(은어)|충무로]]에 데뷔하여 [[2001년]]작 영화 [[친구]]까지 본명으로 활동했다가, 영화 [[친구]]로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선배 연예인인 가수 [[김태욱]][* 최근에는 연예인보다 사업가로 유명하며 배우 [[채시라]]의 남편이다.]을 의식했는지, [[2003년]] [[정우성]]과 출연한 "[[똥개]]"부터 지금의 예명인 김정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은 인상으로 실제 조폭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의 남다른 포스를 가진 탓에, 초창기 배역의 거의 80% 정도는 조직폭력배이거나 그거와 연관된 직업군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조폭 연기를 했던 [[친구(영화)|친구]], [[해바라기]], [[똥개]]등의 작품에서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조폭전문배우, 조폭 연기의 스페셜리스트 소리도 자주 들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영화 친구 촬영당시 머리를 짧게 깎은 그의 풍채를 보고 [[유오성]]과 [[곽경택]] 감독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본인 말로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여린 감성의 소유자라는데 글쎄...그를 실제로 봤다는 팬들의 증언을 보면 실제로 직접 보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서운 인상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폭과 어찌보면 상극의 관계에 있는 경찰 역할도 다수 맡았다. 이때는 험악하고 거친 조폭일때와 달리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소인배 형사 캐릭터를 아주 그럴싸하게 소화해 낸다. 그러한 연기의 정점에 있는 작품들이 바로 [[체포왕]]과 [[히트(2007)|히트]]. 볼멘소리로 궁시렁거리는 모습이 과거의 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
현재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연기배역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 터라 과거의 이미지를 많이 벗은 듯하다. [[tvN]]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에서 '홍대 정태'라는 코너를 맡아 코믹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영향인지 오히려 지금은 약간 코믹한 인상으로 여겨지는 듯.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서의 고기태와 같은 [[개그 캐릭터]]도 자주 연기하고 있다.
아내와는 19년간의 연애 끝에 [[2009년]]에 결혼했으며, 2011년에 아들 지후를 얻게 되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장현성]]의 지인으로 방송에 등장 시 아들 지후군의 관심에 힘입어 2014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명 야꿍이로 알려진 지후군과 함께 아빠는 슈퍼맨 티셔츠를 입고 새누리당 [[나동연]] 양산시장 유세를 하여 논란이 되었다. 당초에는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후보 홍보물에 이미 방문 계획이 나와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과 함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하차하게 되었다. 다만 거짓말 논란 이전에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특정 성향 네티즌들의 비난 및 하차요구로 뭇매를 맞고 있었다. 즉, 단순히 거짓말 -> 비난 -> 하차 수순이 아니라 선행된 부당한 비난에 대한 자구적 해명이었다는 걸 참작할 여지가 있다.
|| 2012 || [[남자사용설명서]] || 우성철 ||
|| 2010 || [[SBS]] || [[나쁜 남자]] || 장감독 ||
|| 2014 || KBS2 || 해피 선데이 - 슈퍼맨이 돌아왔다 || [* 선거 유세 논란으로 자진 하차했다.] ||
[[분류:한국 남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연천군 출신 인물]][[분류:1999년 데뷔]][[분류:1973년 출생]][[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13회 일치
* 학생들은 각자 방법을 잡아나가는 가운데 미도리야는 이거다 싶은 방안을 떠올리지 못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실연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며 체육관 감마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다.
* 굳이 공격 형태의 기술일 필요는 없으며, 예를 들어 이이다의 "레시프로 버스트"같은 일시적인 초가속도 가 자체로 강력하므로 필살기라 할 만하다.
* 즉, 자신의 특기,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을 만들라는 것.
* 아이자와는 개성의 성장이나 기술의 특성에 맞게 코스튬을 개선하는 방안도 생각해 두라는 말을 덧붙이며 훈련을 시작한다.
* 하지만 자신의 개성, 원 포 올은 무리할 수가 없는 능력이다 보니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 아이자와의 평으론 앞으로 더 강해질 유망주.
* 아이자와는 그의 뒷주머니에 교육학 자기개발서가 있는걸 발견한다.
* 그렇게 생각한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의 추천으로 코스튬 개량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한다.
* 하지만 미도리야는 갑작스런 자극에 적응하지 못한다.
* 미도리야는 눈동자가 맛이 간 여캐로부터 사랑 받는 빈도가 높은 듯 하다.
* 넘어졌을 뿐인데 여자랑 부비작대는걸 보면 러브코미디 주인공으로서도 소양이 있는 듯.
- 넷카마 . . . . 13회 일치
남자인데 인터넷에서 여자인척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남자가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한 판타지를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에 남성이 많고 여자가 적은경우 많이 일어난다. 여성적인 말투로 조금 더 좋은 아이템이나 쩔을 받기 위해서 주로 여자인척 한다.
또는 여자인데도 인터넷 상에서 성별을 밝히지 않은 채 남성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카마를 적극적으로 남성임을 어필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이런 경우는 적은 편이다. 여자인 걸 밝히면 달라붙는 사람이 많아서 그쪽이 편하다는 게 주 이유로 한다. 참고로 여자가 남자인척 하는 건 넷나베라고 부른다.
인터넷에서 여자인 척 하는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넷+오카마의 약자.
- 마기/335화 . . . . 13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성궁을 조작해 자신이 공략했던 7개의 던전을 본따 "신드바드란 인간"을 일곱개의 던전으로 나누었다.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알라딘]], [[연백룡]], [[쥬다르]]는 게이트를 거쳐 성궁에 다다른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그들을 당황하게 한다.
알라딘은 이곳이 성궁이라고 보증하면서도 자신이 [[우고(마기)|우고]]와 함께 있던 시절은 이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분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침입하던 시점에선 알라딘의 기억대로 서고와 같은 모습이었다. 원래 성궁은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그 말은 곧 지금 성궁의 모습은 신드바드가 창조한 것.
>"위대한 흐름"의 반역자들이여
* 알라딘이 "신드바드 왕의 마법"이 뭐냐고 묻자 진들은 신드바드가 이미 세상을 루프로 환원시킬 성궁의 마법을 시동시켰다고 알려준다. 일행이 당황하자 또다른 목소리가 허공에 나타나 안심하라고 이른다.
그건 정신체 형태로 나타난 신드바드 본인이었다. 그는 일부러 일행이 도전할 시간을 보장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네 사람은 신드바드가 루프를 뒤집어 씌우는데서 벗어난 자들. 그렇다면 이들이 신드바드와 싸우는 것도 "운명"이라는 것이다.
* 알라딘은 그렇다고 해도 신드바드에겐 성궁의 힘이 있어 언제든 이들을 없애버릴 수 있다.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신드바드는 그 미련이란 것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알리바바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예상 밖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언제나 무슨 이유든 달아 신드바드와 대적하는걸 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알리바바는 지금까지와 다르다.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는 아몬의 검을 들어 신드바드를 가리키며 "반드시 쓰러뜨리겠다"고 맹세한다. 신드바드는 만족스럽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화답한 뒤 진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다.
* 그들 앞에는 7개의 던전만 남아 있다. 쥬다르는 신드바드가 한 말을 툴툴거리며 비꼰다. 결국 그가 한 말은 "막을 테면 막아봐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열받아서 한 대 패주고 싶다고 하자 다른 일행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슬쩍 끼어들어서 "그말대로"라며 임금이란 족속들은 어느 시대에나 길이 나쁘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그것은 [[아르바(마기)|아르바]]. 우고에게 사로잡혔을 때는 작은 꼬마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성인의 모습을 회복한 채다. 뒤늦게 그녀를 알아챈 일행. 특히 백룡과 쥬다르가 경계하지만 그녀는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신드바드가 그녀에게 7개의 던전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행에게 경계하지 말라고한다. 그러더니 여행 가이드처럼 앞장서 걸으며 일행을 이끈다. 쥬다르는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고 이 여자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알라비바와 알라딘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따라나선다. 심지어 알라딘은 그녀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까지 하는데.
* 바알의 던전은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고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전쟁터다. 일행이 주변의 잔인한 광경을 살피는 동안 누군가가 그들을 부른다. 피투성이의 소년으로 어딘지 누군가를 닮아있는데.
- 마철준 . . . . 13회 일치
|| 소속팀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 (2003) [br]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4~2012.7) [br] [[상주 상무|광주 상무]] (군 복무) (2007~2008) [br] [[전북 현대 모터스]] (2012.7~2012.12) [br] [[광주 FC]] (2013~2015) ||
|| 지도자 || [[광주 FC]] 플레잉 코치 (2013~2015) [br] [[광주 FC]] 코치 (2016~2017) [br] [[성남 FC]] 코치 (2018~) ||
前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現 [[대한민국]]의 축구코치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포항제철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03년 경희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모 프로 팀과 입단 계약을 조율하였으나 협상이 뜻밖에 결렬되어 미아 신세가 되고 말았고 그렇게 방황하다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여 K2리거로 실업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 ====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김포 할렐루야는 2003년 K2리그 전기 리그에만 참가하고, 후기 리그는 불참하는 등 안정적인 팀이 아니었던터라 마철준은 6개월만에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모색하다 부천 SK의 이동근 선수의 제의로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되었고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정식으로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풀백]]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백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영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상주 상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영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상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를 탈단 후 방황하다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철준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이는 당시 부천 SK 소속의 이동근 선수였다. 이동근은 포항제철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철준과 한솥밥을 먹으며 [[경희대학교]]까지 나란히 진학했던 동기였기에, 마철준에게 자신의 소속 팀인 부천 SK 입단 테스트를 제의했고 이에 마철준은 2개월여간의 입단 테스트 끝에 2004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 박용우(배우) . . . . 13회 일치
|| '''수상''' ||<(> [[2005년]] 제13회 이천 춘사 나운규영화예술제 남자조연상 ||
[[대한민국]]의 탤런트이자 영화 [[배우]]로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KBS 대하드라마|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이 캐스팅은 초기 미스캐스팅이라는 여론[* 심지어 그 친하다는 정우성까지 '''형이 장군이라곸ㅋㅋ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한다.]을 불식시킬 만큼 호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의 호연으로 [[무명]] 시절을 벗게 된 [[케이스]]로는 [[김명민]]이 맡았던 [[이순신]] 역,[* 박용우와 김명민은 2002년 '스턴트맨' 이란 영화의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김명민의 부상과, 치료 후에도 흥행 전망에 비관적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포기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침체기를 겪은 두 배우가 나란히 대하사극 주인공들로 인상 깊은 연기로 재기했다.] [[김남길]]이 맡았던 [[비담]] 역 등이 있겠다.
2년 후인 [[2005년]]에는 영화 [[혈의 누(영화)|혈의 누]]에 [[악역]]으로 출연, 주인공 [[차승원]]마저 능가하는 악마적 연기를 선보여 대대적으로 재조명된다. 그 다음 해인 [[2006년]] [[최강희(배우)|최강희]]와 함께 주연한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혈의 누와는 대비되는 소심하고 코믹한 남자 주인공으로도 어필했다.
2010년 [[SBS]]의 [[드라마]] [[제중원(드라마)|제중원]]에서는 마침내 드라마 원톱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 같은 드라마의 [[연정훈]]과 연기 대결을 벌였다. 사극에 강점을 갖는 배우답게 꽤나 호연이었지만 동시간대의 경쟁작들이 히트작들인 [[공부의 신]]과 [[파스타(드라마)|파스타]]였다는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 더불어서 제중원 자체도 망했다.
* 2018년 [[현재]] [[대한민국]] [[나이]]로 48세이지만 극강 '''[[동안]]'''을 자랑하는 배우 중 한 명.
*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설이 있다. 여친이었던 조안이 박용우의 배바지와 엄청 큰 메이커 버클벨트(...)를 하고 나온 모습에 반했었다는 발언(자기 딴에는 멋부린다고 부린거였다. [[유재석]]이 그 이야기를 듣고 동조했다.)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월드컵]]이 지나도 한참 지난 어느 해, 고깃집에서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는 [[안선영]]의 목격담 때문에. 그런데 [[정장]]을 입은 모습은 제대로 [[간지폭풍]]이다.
상술했듯이 11살 연하인 연기자 [[조안]]과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여배우가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다가[*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기사가 났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이후 둘은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채널A]]의 <[[쇼킹#s-2|김수미의 쇼킹]]> 프로그램에서도 "예전에 [[신현준(배우)|신현준]]과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냐."고 언급했고 박용우는 이에 대해 언급을 꺼린 것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2번 연속으로….
* 베스트극장 <내 남자친구는 아메리칸 스타일> (MBC, 1997)
* 인생추적자 이재구 (SBS, 2015) - 이재구 역
- 박진주 . . . . 13회 일치
| 《[[돼지 같은 여자]]》
| 미자
| 《[[자전차왕 엄복동]]》
| 《[[여자만화 구두]]》
| 《[[나의 유감스러운 남자친구]]》
| 《[[남자친구 (드라마)|남자친구]]》
* 《[[나 혼자 산다]]》 (2016년)
| 여자 조연상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블라디미르 렘 . . . . 13회 일치
맥스와 처음 만난 순간은 맥스가 프랭키 나이아가라를 죽이고 난 후였다. 블라드는 맥스의 차 앞을 자신의 벤츠로 가로막은 후 "[[대부|거부할 수 없는 제안]]"[* an offer you can't refuse]을 한다. 자신의 무기를 운송하다가 펀치넬로 쪽에 붙은 화물선 선장 보리스 다임을 죽이고 화물선을 탈환하면 운송하던 무기를 필요한 대로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제안이었다.
맥스가 다임을 죽이고 화물선을 탈환하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라며, "이게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 될 것 같군,"[* This could b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이라는 대사를 친다.
잭 루피노 소유였던 나이트클럽 "라그나 록"을 사들여 고급 레스토랑 "보드카"로 개조 중. 자신은 보드카가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이 되고, 자신은 부유한 유명인이 될거라며 자신한다. 여전히 범죄조직의 관련자기에 형사인 페인과는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수는 없는 관계. 블라드 曰 "내전의 양편에 선 형제와도 같군,"[* Like brothers caught on the opposite side in a civil war.]
맥스가 사건의 답을 알기 위해 [[알프레드 우든]]을 찾아갔을 때, 블라드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오랜 기간 이너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든이 암에 걸려 권력을 잃기 시작하자 이너 서클 내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 스퀴키 청소 회사 또한 그가 부리던 자들이었다. 맥스는 블라드를 쫓아 보드카를 뒤집어 엎고, 블라드가 노리던 비니의 집에도 찾아가보지만 블라드는 없었다. 단지 블라드의 함정에 빠져 폭탄이 설치된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을 입은 비니가 있었다.
맥스와 비니가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폐 놀이공원에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블라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블라드는 우든이 맥스의 가족이 몰살당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과 모나가 우든을 위해 일한다는걸 말해 준 후 자신의 애인인 윈터슨을 죽은 맥스에게 권총을 쏜다. 그러고는 우든을 죽이기 위해 그의 저택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맥스는 살아남아 모나와 함께 쫓아온다. 블라드는 모나가 본색을 드러내고 둘이 서로를 죽일걸 기대했지만 일이 예상되로 되지 않자 모나를 쏴죽인다. 그러고는 자신을 목졸라 죽이려고 하는 우든을 쏴죽인후,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맥스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폭탄 스위치를 눌러 지하로 떨어진다. 블라드는 맥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도망친다.
맥스가 저택 옥상까지 쫓아오자 블라디미르는 옥상 구조물에 올라가 맥스에게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맥스는 구조물의 지지대를 무너뜨린다. 블라드는 그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돌격소총을 쏴갈기지만 맥스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13회 일치
* 마르스는 자신의 화염 회복마법을 걸어가며 어떻게든 전진을 계속한다.
* 아스타는 파나가 폭주시킨 마력을 베어내는데 성공하지만 파나 자신이 증오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폭주는 계속된다.
* 자폭 모드로 들어간 [[증오의 파나]]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접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폭 주문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파나를 둘러싼 샐러맨더의 마력은 파염구를 토해내며 두 사람의 접근을 방해한다. 아스타와 마르스를 각자 화염구를 베어내며 돌진한다. [[판젤 크루거]]는 저정도 위력의 공격을 능숙하게 베어내는 것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워한다.
그때 마르스가 자신의 불꽃 회복마법 "불사조의 날개옷"으로 화상을 회복시킨다. 그렇다곤 해도 열기를 차단할 방법이 없으므로 상처가 낫기 무섭게 다시 몸이 타들어간다. 마르스는 그래도 갈 수 있겠냐고 묻는데 아스타는 "숯덩이가 돼도 가겠다"고 의지를 꺾지 않는다.
* 마르스는 아스타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우기 전후로 많은 강자들을 상대했지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또한 신기한 인물이기도 한데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상대 조차 설득하고 도우려 하는 인물은 클로버 왕국에서도 아스타 정도였다. 끝없는 이타심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아스타야 말로 "진정한 기사"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 두 사람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폭 마법이 시작될 시점까지 오고 말았다. 젤은 나머지 인원들이라도 대피시키려 하지만 검은 폭우의 동료들은 두 사람의 도전을 믿고 지켜본다. 그들의 결연한 자세를 보고 젤도 생각을 바꿔서 두 사람의 성공을 믿으며 기다리기로 한다.
* 타들어가는 것과 회복되는 것을 반복하며 마침내 한 발 앞까지 다가온 마르스와 아스타. 마르스는 파나를 향해 손을 뻗지만 그 순간 자폭 마법이 완성된다.
소용돌이치던 마력의 열기가 좌우로 갈라지며 흩어진다. 샐러맨더의 마력이 사라지자 [[노엘 실버]]는 그들이 해냈다고 흥분한다.
* 그러나 아직도 끝난게 아니다. 파나의 끝모를 적의처럼 불꽃이 다시 타오른다. 아스타와 마르스를 덮치는 열기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시 자폭마법이 작동할 조짐을 보인다. 그때, 이번엔 마르스가 달려나간다.
>같이 세상을 보러 가자!
- 블랙 클로버/98화 . . . . 13회 일치
* 그때 [[마녀왕]]이 나타나 아스타가 치료를 부탁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마법으로 모든 동료를 구속하고 아스타는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다.
* 라드로스는 반마법에 모든 마력을 빨리고 무리해서 샐러맨더의 마력을 흡수한 반동으로 쪼글쪼글하게 쪼그라든다. 라드로스는 설마 이렇게 당하게 될 줄 몰랐다고 한탄하지만 곧, 역시 자신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던가 하며 자조한다. [[판젤 크루거]]는 한때 제자였던 라드로스의 몰락을 씁쓸해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빙의가 풀리자 전투로 입은 상처가 일제히 고통을 호소한다. 아스타는 급히 회복을 요청하지만 동료들도 널부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나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도 살아는 있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스타는 어쩔 수 없이 마녀의 숲으로 모두 데려가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다.
아스타는 바네사와 달리 적대감이 없어서인지 마녀왕에게 "팔은 치료해준 은혜를 갚았다"며 자랑스래 이야기한다. 마녀왕도 답지 않게 "완벽하진 않지만 훌륭하게 일해주었다"며 치하하는 말을 한다. 분위기가 좋게 풀리는 것 같자 아스타는 굽신 거리며 동료들과 자신을 다시 한 번 치료해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 여왕으로부터 뻗아나온 혈류가 거대한 피의 호수를 만든다. 동료들은 그 호수 위에 솟아난 십자가에 구속된다. 아스타는 반발하지도 못한 채 여왕의 또다른 마법에 걸린다.
* 여왕은 처음부터 아스타를 조종하는게 목적이었다. 여왕이 마법을 발동하자 아스타는 저항할 틈도 없이 몸을 장악 당한다. 반마법의 검은 자신이 쓸 수 없지만, 그걸 쓸 수 있는 자를 조종하면 된다. 여왕은 아스타의 싸움법을 칭찬하며 자신의 검이 되어 평생 싸우라고 말한다.
- 서거정 . . . . 13회 일치
'''서거정'''(徐居正, [[1420년]]~[[1488년]])은 [[조선 문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성종|성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대구 서씨|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며,<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a_A1420_1_0005362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ref>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조선 세종|세종]],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섬겼다.
[[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후에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어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이 되고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함)이 되었으며 [[1466년]] 발영시에 또 장원, 이후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등을 두루 거쳐서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달성군(達城郡)에 봉해졌다.
**** 서자 : 서복경(徐福慶)
|전임자 = [[이석형]]
|후임자 = [[김길도]]
|전임자 = [[어세공]]
|후임자 = [[이숭원 (1428년)|이숭원]]
[[분류:1420년 태어남]][[분류:1488년 죽음]][[분류:대구 서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장원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학자]][[분류:김시습]]
- 서림 . . . . 13회 일치
徐林 / 徐霖[* 석담일기, 성호사설 등에서는 이 한자로 기록된다.]
명종 17년 1월 기사에서 율이(栗伊)라는 도적이 서림이 다시 임꺽정과 연락하였다고 하여, 명종은 서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신들과 논의하게 된다. 대신들은 대체로 서림이 도적으로서 흉악한 자이지만, 체포된 뒤로는 임꺽정 일당을 잡는데 협력을 많이 했고 정보를 제공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서림을 잡지 않았다면 '가짜 임꺽정'에 몇번이나 속아넘어갔을 것이다.]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서림을 포도청에 소속하여 투포사 [[남치근]]의 감시 하에 있도록 하였다.
국조보감에서는 실록의 기록과는 약간 다른데, 서림은 숭례문에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임꺽정 일당이 [[구월산]]에서 포위되자 관군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산을 내려와서 투항한다. 그리고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남치근에게 고해바친다. 여기에서는 서림을 '모주(謀主)'라고 하여, 그가 임꺽정의 모사꾼임을 언급하고 있다.
기재잡기에서 실록과는 달리 국조보감의 기록을 따라서, 관군이 구월산을 포위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하산하여 관군에 투항하여 [[남치근]]에게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알렸다고 한다. 서림의 투항으로 임꺽정 일당은 은신처가 발각되어 토벌당하게 된다. 또 임꺽정을 마지막까지 따르던 5~7명 역시 서림이 유인하였고, 관군에게 체포되어 모두 참살된다.
기재잡기에서 서림은 임꺽정의 마지막 죽음에까지도 관여하는데, 관군의 추격을 받아 궁지에 몰린 임꺽정은 한 노파의 집에 들어간다. 임꺽정이 노파를 위협하여 노파가 "도적이야!"하고 외치면서 달아나게 하고, 자신은 관군인 척 하면서 관군에 뒤섞여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슬쩍 진을 빠져나가 도망치려 하는 임꺽정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기병이 추적한다. 서림이 임꺽정을 보고 "도적이다!"라고 소리치자,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은 임꺽정은 서림이 투항하여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분통하게 여기는 말을 내뱉게 된다.
야사 <연평일기>에 따르면, [[이괄의 난]]에서 패전 뒤 [[이괄]]의 목을 베어 바친 자들에게 대간이 반역죄를 주장할 때, 권신 이귀가 “선왕 때 서림(徐霖)이 대간의 아룀으로 인하여 비록 공훈은 삭탈당하였으나, 특명으로 동지(同知)에 임명되어 녹을 받은 사실이 있었으니 이제 이러한 전례에 따라 익헌 등의 죽음을 용서하여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 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 다른 설화에서는 임꺽정의 살아남은 부하들이 그에게 복수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녀서 결국 거짓으로 자신의 장례식을 치렀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명종 시기의 권신 이량(李樑)이 전횡을 휘두를 때, 이량의 측근이었던 부제학 기대항(奇大恒)이 외척 심강(沈鋼), 심의겸과 협력하여 이량을 탄핵하여 몰아내고 귀양을 보내는데 앞장섯다. 야사 야사 석담일기에서는 사람들이 이 기대항을 '서림 같은 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보아 명종 시대에 서림은 이미 '배신자'라는 이미지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간사한 배신자' 서림은 임꺽정 이야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서림은 원초적인 완력을 강조하는 '[[백정]]' 임꺽정과 대비되어, 몰락양반이나 아전 등 [[지식인]] 계층의 인물로 등장한다.
* 비열하고 간사한 배신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작중에서 '끔살'당하는 경우도 있다.
- 서효림 . . . . 13회 일치
|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천제연로)
| [[밥상 차리는 남자]]
| 〈헤픈 여자〉
| 〈나쁜 여자야〉
| 장편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로맨틱코미디부문 여자 특별연기상
| 주말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밥상 차리는 남자]]
| 일일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07년 데뷔]][[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서귀포시 출신]]
- 소냐(가수) . . . . 13회 일치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주한미군]]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 [[2014년]] [[KBS 2TV]] [[불후의 명곡 2]] - 제144, 145회 [[이미자(가수)|이미자]] 편 우승 '기러기 아빠'
* [[2018년]] [[KBS 2TV]] [[불후의 명곡 2]] - 제363회 [[방미(연예인)|방미]] 편 우승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with [[하휘동]], [[최수진(무용수)|최수진]]
* 2004년 제10회 한국뮤지컬대상 여자신인상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의 12대 복면가왕으로 역대 8번째 여성 가왕이며 최근 6번 엔트리 출신 가왕이다.[* 파일럿 [[자체검열 모자이크]]를 제외하면 7번째.]
3라운드에서는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를 선곡해 [[상남자 터프가이]]를 이긴 뒤, [[네가 가라 하와이]]를 꺾고 새 가왕이 되었다.
그 뒤 13차 경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에게 가왕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번 출연을 통해서 혼혈이라면 이런 음악을 해야한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고 또 다른 혼혈계 사람들에게 혼혈이라는 장벽을 깨는 희망을 주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와는 별개로 하복에서 춘추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딸랑딸랑 종달새|다른]]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역대]] 가왕들처럼 옷을 갈아입으면 그 회에 가왕 자리를 넘겨주는 징크스에 걸렸다. 이 징크스는 연필 이전에도 있었으며 [[신명난다 에헤라디오|어느 가왕]]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tablebordercolor=#1c1a41><rowbgcolor=#1c1a41> '''{{{#96d2da EP.}}}''' || '''{{{#96d2da 방송 날짜}}}''' || '''{{{#96d2da 곡명}}}''' || '''{{{#96d2da 원곡자}}}''' || '''{{{#96d2da VS.}}}''' || '''{{{#96d2da 득표 수}}}''' ||
* 3조 엔트리인 [[딸랑딸랑 종달새]]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60표 이상 득표를 한 번 씩 했으며, 이들 모두 [[황금락카 두통썼네|4번 엔트리에서 2연승한 여자]] [[네가 가라 하와이|가수]]들을 이긴 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4연승을 한]]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나는 가수다]] 출신에게 완패했다는 점이며 새 가왕 모두 예명을 사용했다.
[[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여가수]][[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출생]][[분류:1999년 데뷔]]
- 송진현 . . . . 13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1981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3년 서울형사지방법원, 1985년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지원장, 1987년 [[서울가정법원]], 1988년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1991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1992년 [[대구지방법원]] 1994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1996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1997년 서울지방법원, 2000년 2월 [[대전고등법원]], 2001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를 하였다. 2005년 11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수석 부장판사가 되었으며 2006년 6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서울동부지방법원]], 2008년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하다가 2009년 2월에 사직하고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변호사를 하였다.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 위원장 등을 하면서 변호사를 하고 있을 무렵인 2015년 8월 [[박근혜 정부]]에서 제10대 [[경찰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자문위원을 겸직하였다.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상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반음식점 영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영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월 10일에 성적이 떨어진 학생을 막대기로 뗘 상해죄로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체육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7년 11월 11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식극의 소마/173화 . . . . 13회 일치
* 소마팀의 멤버는 소마, 타도코로 메구미, 나키리 아리스, 쿠로키바 료, 요시노 유키. 대체로 반역자 집단끼리 조를 짰는데 에리나만 센트럴 측에 배정된다.
* 시험 주제는 연어. 아자미 총수의 특별수업에 나온 연어요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당연히 반역자팀에겐 불리한데다 재료까지 형편없는 것이 주어진다.
* 당연히 이들을 떨어뜨리려는 수작인데, 에리나는 "걱정할 요소가 없다"고 자신만만해한다.
* 노골적으로 센트럴의 반역자를 모아놓은 구성으로 다른 기숙사생도 비슷한 조 배정을 받았다.
* 타도코로는 아리스까지 반역자로 몰린 것에 놀란다.
* 에리나만 센트럴 측의 학생들과 한 조인데 이는 반역자들만 걸러내고 에리나는 진급시키기 위한 조치.
* 소마 조가 있는 방의 책임자는 토오츠키 학원의 강사 히로이.
* 하지만 진정한 과제는 그저 맛있는 연어 요리가 아니라 "아자미 총수가 특별 강습할 때 만든 연어요리"를 재현하는 것.
* 하지만 반역자팀에 주어진 연어는 산란을 마치고 품질이 떨어진 최하급품이다.[* 홋챠레. 산란후의 연어를 가리키는 말인데 식용으로 안 쓴다고 한다.]
* 이곳만이 아니라 모든 반역자팀에겐 불리한 조건의 재료가 주어졌다.
* 유키는 호들갑을 떠는데 소마는 침착하게 "이 연어는 야식으로나 먹자"고 딴전을 핀다.
* 그리고 에리나와 쿠로키바에게 "그것을 구할 수 있고 조리시간에 맞출 수 있겠냐"고 묻는데 둘 다 문제 없다고 자신한다.
- 식극의 소마/177화 . . . . 13회 일치
* 열악한 상황임에도 감자와 전분가루로 면을 만들기 시작하는 반역자 군단
* 에리나의 특훈에서 익힌 메뉴 "고세츠 우동". 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홋카이도의 면요리다.
* 소마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면 만들 채비에 들어간다.
* 엔도 감독관은 허세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지만 각 시험장 마다 반역자들이 남아 면을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 그것은 감자.
* 이들이 만드는건 고세츠 우동. 감자전분을 이용한 홋카이도 쿳찬 지방의 가정요리다.
* 무려 95%의 감자전분을 이용해 만드는 면요리로 이런 상황에선 최적.
* 하지만 학생들은 사전에 에리나의 쪽집게 과외로 감자의 특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 감자의 무궁무진한 소재성을 살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한 요리를 만들어낸다.
* 결과는 반역자 전원 생존.
* 에리나는 자신은 감자의 특성에 대해 가르쳤을 뿐, 그걸로 합격을 따낸건 이들의 실력이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79화 . . . . 13회 일치
* 하야마는 센트럴에 들어갔으며 십걸의 9석 자리를 받았다.
* 시오미 세미나는 그냥 "망했다"고 일축. 자신은 정상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며 소마에게 퇴학이 걸린 식극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 반역자의 3차 시험은 "십걸"과 정면승부라는 린도의 선언.
* 에리나는 이 3차 시험이야 말로 아자미가 띄운 승부수라고 판단한다.
* 타쿠미도 비슷하게 눈이 쾡해서 나온다. 세수를 하며 "우리가 십걸 전원을 때려잡는 기분으로 가보자"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 하지만 "최소한 나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자세한 얘기는 오늘 해주겟다고 하는데.
* 이후 히사코와 연락으로 반역자 팀이 4개로 나뉘었다는걸 알게 된다.
* 린도는 그건 시험관들이 멋대로 한 짓이지 자기들하곤 상관없다고 선을 긋는다.
* 승부 자체는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며 원하면 에리나가 참관해도 괜찮다고 한다.
* 하야마는 새로운 십걸의 9석 자리를 차지하고 센트럴의 일원이 되었다.
* 그는 소마와 기숙사생들의 투쟁을 비하하며 소마가 어물대는 사이 자신은 정점에 올랐다고 으스댄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13회 일치
* 안은 당황하는 두 부하들과 달리 태연하게 해설. 소바의 부드러운 목넘김과 벚꽃 새우 카키아게의 풍미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완식하게 되는 것.
* 네네는 이 결과를 [[잇시키 사토시]]에게 과시하듯 하는데 완전히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 먼저 심사를 받는건 [[키노쿠니 네네]]. 적과 아군의 모든 이목이 그녀의 한 그릇으로 모인다. 갇혀있는 반역자들 조차 너무 맛있게 보인다고 혀를 내두르는 소바. [[샤름]]은 면의 윤기와 결을 "우아한 여성의 살결"에 비유하며 [[이스트와르]]는 에도소바의 가계 답게 기술을 멋지게 계승했다고 평한다.
* 그리고 심사의 시작. 안이 젓가락을 들자 부하들도 따라 시식한다. 우선은 면부터. 일반적으로 9할 소바는 찰기가 부족해 퍼석거리는 식감이기도 한데 네네의 소바는 매우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사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메밀의 향. 이들이 먹는 모습에 반역자들도 침을 삼키며 저녁은 꼭 소바로 먹겠다고 다짐할 정도다.
* 허둥대는 두 사람과 달리 안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차근차근 이 음식의 비밀에 대해서 밝혀낸다. 우선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벚꽃 새우 카키아게. 내용을 다 외우고 있단 말이 허풍이 아닌지, 그 많은 교전 더미에서 망설임없이 한 권을 골라낸다. 그리고 서슴없이 펼친 페이지에는 지금 필요한 정보가 정확히 기록돼 있다. 유명한 식당 "무라마치 스나바"는 보리 새우 카키아게로 명성을 떨친 바가 있다. 키노쿠니는 여기서 강한 맛의 보리새우 대신 섬세한 맛의 벚꽃 새우로 대체해 자신이 만든 섬세한 맛의 9할 소바와 궁합을 맞췄다. 이 조합은 서로의 시너지를 이끌어내서 다 먹을 때까지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파괴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맛에 취해서 언제 다 먹었는지도 모르게 만들 정도. [[요시노 유키]]는 그 위력이 차라리 무서울 정도라고 경악한다.
* 비밀은 그것만이 아니다. 샤름은 뭔가 다른게 더 있을 거라 짐작하지만 그게 뭔지는 감을 잡지 못하는데. 이것도 안은 단서가 있다. 그것은 기름. 네네는 그녀의 추론이 맞다며 자신의 마지막 비결을 공개한다. 벚꽃 새우를 튀길 때 "태백 참기름"이란 특수한 참기름을 쓴 것이다.
네네는 간단한 일인 양 말하지만 [[나키리 아리스]]와 [[하야마 아키라]]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녀의 조리 기법은 섬세하고 연한 맛의 재료를 중첩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하되 특정한 한 가지만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맛을 살리는 밸런스를 맞춘다는건 엄청난 실력자라도 애를 먹는 일. 이 음식은 네네 본인이 쌓아올린 연마의 "시간"과 그녀가 계승한 에도 소바의 "전통"이 융합되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드립은 여기까지하고, 아무튼 샤름은 심사의원을 대표해 "일식의 저력을 맛봤다"고 표현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표한다. 적이 이렇게 극찬을 받는다는 것은 반역자 팀의 위기. [[나키리 에리나]],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 네네는 자신이 "소마에게 진다"고 예언했던 [[잇시키 사토시]]에게 보란 듯이 이 결과를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한창 자기 조리에 몰두한 것처럼 보여서 속내를 알기 힘들다.
* 네네의 평가가 끝나자 이번엔 소마가 음식을 내놓을 차례. 그런데 압도적이기까지 한 네네의 평가를 보고도 소마는 전혀 주눅든 기색이 없다. 그는 오히려 이런 말을 꺼내 네네를 도발한다.
* 그가 내놓은 음식은 뜨거운 쇠그릇에 담겨진 야끼소바. 그러나 보기에는 어떤 특징을 갖춘 요리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네네의 소바를 앞지를 수 있을까? 소마는 자신만만하기만 하다.
- 식극의 소마/235화 . . . . 13회 일치
* [[에이잔 에츠야]]가 아티초크, 그 성분인 "시나린"을 앞세워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를 원천적으로 망가뜨린다. 의외로 심사의원의 제지도 받지 않고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내 심사에 영향을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걸로 끝. 그런데 에이잔은 이 불평에 대해선 "괜찮아. 시나린의 성질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받아친다.
* 반역자들은 시나린의 효능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키리 아리스]]가 설명에 나선다. 시나린 성분은 미각수용체, 즉 혀의 미뢰에 직접 작용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 성분이 입안에 들어가면 혀에서 단맛에 대한 반응을 억눌러서 쓴맛이 부각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이라 곧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이때 억눌렸던 미뢰가 예민해져 단맛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즉 시나린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쓴맛을 느꼈다가, 다음에 오는 요리에 대해서는 단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소마는 그것도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 느낀다. 에이잔이 시나린 성분을 노리고 아티초크를 대량으로 썼지만, 그 경우 자기 요리의 맛도 무너지는게 당연지사. 하지만 에이잔의 요리는 완벽한 맛을 연출하고 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잇시키 사토시]]는 그 점에 대해서 "경험치"라고 추측한다. 에이잔의 전공분야는 "프로듀스". 많은 식당을 프로듀스하면서 경쟁업체의 "맛"을 "지우는" 수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쌓인 경험치가 식극에서도 발휘됐을 거라는 것. 실제로 [[나키리 아자미]]가 에이잔을 등용한 것도 그런 점을 높이사서였다.
* 아자미가 갓 신임 총수가 됐을 무렵이었다. 에이잔은 어느 백화점에 입점한 케이크 가게를 프로듀스했다. 본래 경쟁에서 패할 위기에 처해있던 가게는 그와 손을 잡자마자 매출이 수직상승, 위기를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경쟁업체를 말려죽이고 있었다. 이때도 에이잔은 시음용 주스에 경쟁업체 주력상품의 맛을 지우는 성분을 대량으로 함유시켰다. 그렇게 상대방을 몰락시킨 뒤에는 다시 그쪽에 접촉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자신의 고객으로 삼았다. 아자미는 이런 면모를 만족해 그를 포섭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 에이잔이 선보인 마술같은 요리는 그를 이명인 "연금술사"가 납득가는 수준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만족하고 경악하는 가운데 타쿠미의 피자가 완성된다. 에이잔은 심사의원에게 물이라도 줘서 혀를 씻게하면 어떻겠냐고 조롱하는데, 정말로 왕창 퍼먹이라고 외치는 반역자들과 달리 타쿠미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냥 이대로 심사에 들어가도 좋다고 하는데.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확신. 동생 [[이사미 알디니]]만이 뭔가를 직감한 듯 하다. 그렇게 해서 오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타쿠미의 피자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모습이었다.
- 신귀식 . . . . 13회 일치
| 직업 = [[배우|연기자]]
'''신귀식'''([[1941년]] [[2월]] ~ )은 [[대한민국]]의 [[배우|연기자]]이다.
* 《[[가슴 달린 남자]]》
* [[1995년]] [[KBS 1TV|KBS1]] 《[[찬란한 여명]]》 ... [[후쿠자와 유키치]]
* [[1997년]] [[KBS 2TV|KBS2]] 《[[완벽한 남자를 만나는 방법]]》
* [[1998년]] [[KBS 2TV|KBS2]] 《[[킬리만자로의 표범]]》
* [[1999년]] [[문화방송|MBC]] 《[[남자 셋 여자 셋|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문화대학교 중국어학과 신귀식 교수 역으로 단역
* [[2001년]] [[서울방송|SBS]] 《[[여인천하 (드라마)|여인천하]]》... [[허자]] 역
* [[2003년]] [[서울방송|SBS]] 《[[왕의 여자]]》... [[김제남 (1562년)|김제남]] 역
* [[2007년]] [[KBS 2TV|KBS2]] 《[[행복한 여자]]》
- 아테지 . . . . 13회 일치
[[일본어]]에서 [[한자]]의 음과 훈을 그 글자의 뜻과 관계 없이 맞춰놓은 한자 표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한자의 음을 빌려서 일본어를 표기하던 [[만요가나]] 시기에 이미 나타나던 표기이다.
* 외국어나 외래어를 한자음을 빌려서 표기한 사례 : 아시아(亜細亜), 불란서(仏蘭西), 커피(珈琲) 등.
* 일본 고유어를 한자음을 빌려서 표기한 사례 : 스테키(素敵), 토카쿠(とかく) 등.
* 한자의 훈독을 사용해서 외래어를 표기한 사례 : 세비로(背広) 등.
* 한자의 훈독을 사용해서 일본 고유어를 표기한 사례 : 야하리(矢張), 데타라메(出鱈目) 등.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3회 일치
* 가게에 들어갔을 때 암살자들의 살의를 느꼈는데, 그 사이엔 한 순간이지만 아즈사씨의 강렬한 살의도 섞여 있었던 것.
* 살생님은 그녀가 나기사가 자폭 공격을 했을 때와 같은 눈을 하고 있다고 봤다.
* 아즈사씨는 마침내 고백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은 길어야 3년.
* 암살자들은 속여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도 암살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 그녀는 일부러 사채업자를 통해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마리오가 가진 폭탄을 훔쳐냈다.
* 만약 살생님이 구하러 온다면 살생님과, 그렇지 않는다면 사채업자와 서류와 함게 자폭할 생각이었다.
* 얘기를 들은 살생님은 "당신도 어엿한 암살자니 보복을 당해야 한다"면서 아즈사씨의 목을 조른다.
* 살생님은 "당신이 호타루를 위해 죽는다면 호타루는 그걸 본받아 버릴 것. 누굴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면서 교육상 좋지 않다고 일침한다.
* 아즈사씨는 "어떤 여성"과의 약속 때문에 자신을 죽이며 사는건 아니냐고 묻는다
* 얼마 후 살생님은 가게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호타루는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그런 선생의 학생이라면 모두 자기가 있을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독백한다.
- 염재욱 . . . . 13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2003년]] [[MBC]] 수목드라마 《[[남자의 향기 (드라마)|남자의 향기]]》
* [[2004년]] [[MBC]] 수목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
* [[2010년]] [[MBC]] 단막극 《[[MBC 일요 드라마 극장]] - [[주부 김광자의 제3활동]]》
* cf-버터와풀(과자)-의장대대장역 촬영
* 홍신자선생님(전위예술가) "in to the time"-예술의전당공연-99년
* 해외 포르투칼 홍신자선생님 작품"순례'공연-00년
* 해외 일본 무용퍼포먼스3명 공연-홍신자선생님연출-00년
* "문지방" 전위예술 홍신자외4명 촬영-예술의전당10월시사회-00년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오영식 (1967년) . . . . 13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 [[2003년 3월]] ~ [[2003년 10월]] 제16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비례대표) *2003년 3월 6일자 비례대표 의원직 승계, 2003년 10월 26일자 탈당으로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강북구 갑)[[김원길]]<br />(강북구 을)[[조순형]]
|후임자 = (강북구 갑)[[정양석]]<br />(강북구 을)[[최규식 (정치인)|최규식]]
|전임자 = (강북구 갑)[[정양석]]<br />(강북구 을)[[최규식 (정치인)|최규식]]
|후임자 = (강북구 갑)[[정양석]]<br />(강북구 을)[[박용진 (1971년)|박용진]]
|전임자 = [[홍순만]]<br/>[[유재영]](사장 직무대행)
|후임자 = (현직)
[[분류: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관련자]]
- 오카마 . . . . 13회 일치
남성 동성애자, 여장 남자 등을 뜻하는 속어이다.
의미의 범주가 넓어서 「(여성적인)남성동성애자」,「여자같은 말을 쓰는 사람」,「여장 취미를 가진 사람」,「접객업이나 예능업 등의 쇼에서 여장을 하고 연기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개념이 혼동되고 있다.
* 가부키(歌舞伎)의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 「오야마(女形,おやま)」와 연관이 있다는 설.
1950년대~1960년대에는 여장 남창에 대한 멸칭으로 주로 쓰였으며, 1970년대에는 자학적인 용법으로 오카마를 쓰는 표현이 정착되었다. 1980년대에는 부터는 여장남자나 동성애자 이외에도 여성적인 남성을 뜻하는 멸칭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깊어져, 조금만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도 오카마 같다는 멸칭을 다른 남학생이나 여학생, 심지어 어머니로부터 듣고 고통을 받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한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에서 자신을 여자로 포장하는 사람은 넷카마라고 부른다.
- 오현근 . . . . 1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8년 한국프로야구|2008년]] [[9월 30일]] <br /> [[문학야구장|문학]]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 전
* [[롯데 자이언츠]] (2015년 ~ 2016년)
'''오현근'''(吳賢根, [[1985년]] [[9월 12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이다.
2010년 시즌 자신을 처음 지명했던 [[두산 베어스]]와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퓨처스리그에서 29서울 91타석 동안 타율 0.418에 9도루 17타점을 기록하였다. 때마침 부진했던 외야수 [[조홍석]]이 시즌 중 현역으로 입대하자, 정식 선수로 전환됨과 동시에 1군으로 등록되었다. 등번호도 조홍석의 번호를 갖고 왔다.<ref>롯데는 [[백민기]], [[임종혁]], 조홍석을 2015 시즌 중 현역으로 입대시켰다. 롯데 구단에서 선수들의 병역관리 취지로 시즌 중 입대를 희망하는 선수들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들은 모두 외야수인데, 롯데에 외야 자원들이 어느 정도 모였다고 판단하여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미필자인 이들을 군에 보내서 유망주들의 유출을 차단했다.</ref>
8월 21일 [[KIA 타이거즈]]와의 서울에서 선발 2번타자 중견수로 출장하여 2루타 2개를 기록하였다.
5월 12일 1군에 처음 합류하여, 당일 서울 8회말에 대타로 나와 아웃되었다. 5월 13일 서울엔, 8회초 9:8로 앞선 15아웃 만루에서 손용석의 대타로 나와서 [[김대우 (1988년)|김대우]]를 상대로 도망가는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였고, 자기 자신도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과 [[정훈 (야구 선수)|정훈]]의 연속안타로 홈을 밟으며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8회말 수비에서 [[김대륙]]과 교체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2군에만 머물렀고, 결국 9월 4일자로 전날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전역한 [[전준우]], [[김사훈]], [[신본기]]의 등록을 위해 투수 [[이지모]]와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388830]</ref>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서울언북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원피스/829화 . . . . 13회 일치
홀 케이크 아일랜드로 접근하는 밀집모자 일행.
* 루피는 상디를 구하고자 의욕적으로 키를 잡지만 솜씨가 없어서 사고만 친다.
* 페드로는 의외로 이곳 지리에 밝은데, 나미가 이 점에 대해서 묻자 "한 번 온 적이 있다"는 말만 하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 빅맘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데 특정한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 그게 나타날 때까지 마구잡이로 주위를 파괴하고 폭식을 거듭한다.--[[토리코]]냐--
* 이번에 찾는 음식은 "크로캉 부슈". 슈크림을 쌓아올린 과자다.
* 부하들은 수도의 호텔에 "슈크림 단체 손님"[* 문자 그대로 말하는 슈크림들. 자아가 있다.]이 있는걸 떠올리고 그들을 포섭하려 하지만 하필 오전에 체크아웃했다.
* 빅맘은 아예 정신줄을 놔서 말도 통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파괴한다. 그녀가 지나간 곳에는 사망자도 속출.
* 이곳에는 온갖 사물과 식재료, 음식 따위가 모두 자아를 가지고 대화도 나누고 있다. 모두 빅맘의 폭식에 휩쓸려 먹힌다.
* 샬롯가의 16남이자 "젤라또 대신" 샬롯 모스카토가 빅맘을 막아보려고 한다.
* 그러나 이성을 잃은 빅맘은 자기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라이프 오어 트리트"라고 말하며 그의 "수명"을 뽑아내 먹어치워 버린다.
* 그가 빅맘 입안에 음식을 처넣자 미친 것처럼 날뛰던 빅맘이 "맛있어!"라고 외치며 정신을 차린다.
- 원피스/833화 . . . . 13회 일치
* 상디는 어린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전사만을 가치로 여기는 제르마에서는 낙오자 취급을 받고 가족들 조차도 그를 학대한다.
* 상디는 다과회만 마치고 결혼 따윈 연기하고 밀집모자 해적단에 돌아가려 하지만, 저지는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 한다.
* 욘디는 "예전처럼" 아버지에게 대신 말해줬을 뿐인데 이꼴로 만들었다며, 상디를 "낙오자"라 욕한다.
* 저지는 상디가 공격하자 "친아버지에게 발길질을?"이라고 하는데 상디는 "부모라하는 그 발언을 조심해라"고 쏘아붙인다.
* 저지는 상디는 자기 아들이고 돌아왔다고 항변하는데 상디는 부정할 뿐더러 "다과회만 끝나면 돌아가겠다"고 단언한다.
* 그의 과거. 형제들이 상디를 괴롭히고 있다. 그의 옷에는 3이란 숫자가 박혀 있다.
* 형제들은 그가 요리나 하고 강해지려 하지 않는 낙오자라고 비웃고 괴롭힌다.
* 저지는 검을 뽑으라고 하지만, 상디는 자기 손은 요리사의 손이므로 식재도 아닌 이상 손도 칼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저지가 도약하자 병사들은 "가루다"라는 그의 별명을 언급하며 환호.
* 신발에 장비한 기능으로 "전자 크랙" "블래스터"를 쓰며 상디를 수세로 몬다.
* 상디는 "괴로웠지 너"라며 자문하듯 말한다.
* 그런데 달려들던 저지가 "벽"이란 한 마디를 내뱉자 구경하던 병사들이 스스로 달려나와 인간방패가 된다.
* 상디는 발로 공격을 막지만 "전자 샤프트"라는 기술이 발동하면서 나가떨어진다.
- 유병수 . . . . 13회 일치
|로마자 표기=Yoo Byung-Soo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남 FC|경남]]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절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절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상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2011년]] [[7월 23일]], [[알힐랄 (리야드)|알힐랄]]이 유병수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알 힐랄, 유병수와 3년 계약 공식 확인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7250100208830017535&servicedate=20110724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박상경 |날짜=2011년 7월 24일}}</ref> 입단 초반 부상으로 고전하였으나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2011-12 시즌 크라운 프린스 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라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2|2012 ACL]] 16강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2013년]] [[6월 22일]] 알힐랄은 유병수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FC 로스토프]]로 이적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200347.htm |제목=유병수, 사우디에서 러시아 FC 로스토프로 이적 |출판사=스포츠서울 |저자=신원엽 |날짜=2013-06-23}}</ref> 러시아로 이적한 유병수는 리그 득점왕 출신 팀 동료 [[아르템 주바]]에게 밀려 데뷔 시즌 선발 출전 2경기에 그쳤으나 주로 조커로 총 17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였다. 한편 [[러시아 컵]]서도 3경기에 출전하며 팀이 클럽 최초 컵대회에 우승하여 [[유로파리그]] 티켓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였다.
{{K리그 최다 득점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은혼/578화 . . . . 13회 일치
* 우미보즈는 스승이 되길 거절하지만 무츠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엔 너무 분에 넘친다"면서도 새장 속의 새에게 세상에서 본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청한다
* 우츠로와 싸우는 우미보즈. 우츠로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생물이란 아무리 진화해도 피식자와 포식자를 정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며 "생태계의 정점에 선 우리가 이렇게 되는건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말한다.
* 무츠는 "당신보다 강한 자가 있었냐"며 우미보즈에게 묻는데, 우미보즈는 재해 등을 들며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런 데에는 맞설 수 없었다고 대답한다.
* 우미보즈는 어느날 나타나 그 모성의 지배자였던 "오로치"라는 존재를 처리해버렸다
* 우미보즈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친구랑 술내기 했다 져서 벌칙으로 간 것", "거기서 여자 하나 꼬셔 오라는 벌칙"이었다고 밝힌다.
* 오로치랑 싸우게 됐을 땐 자기도 모르게 "서버렸다"
* 유전자 레벨에서 "넌 곧 죽을 테니 얼른 애나 만들라"는 종족 보존 욕구를 느낄 정도로 겁을 먹었던 것
* 그리고 우미보즈는 정말로 모성에서 여자를 헌팅하는데...
* 우츠로가 누굴 얘기하는 거냐고 묻자 우미보즈는 "목숨을 걸고 꼬신 여자얘기"라고 답한다
- 우미보즈. 과거 오로치와 싸울 때, 현재 우츠로와 싸울 때 죽음의 예감 때문에 갑자기 서버린 방울을 진정시키며.
- 이금서 . . . . 13회 일치
|배우자= 신란궁부인 김씨(고려 태조 외손녀, 신라 경순왕 3녀)
|자녀= 이윤홍(1남), 이윤장(2남), 이윤원(3남)
'''이금서'''(李金書)는 [[고려]]초 문신으로, 호는 남계(南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다<ref>[[경주 이씨|경주이씨]](慶州李氏)는 [[신라]](新羅) 개국원훈(開國元勳)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중시조는 [[효공왕]](孝恭王)때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이다</ref>. 경주 이씨(慶州李氏) 중시조 신라 말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의 손자이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사위이다.
일설에는 아버지로 알려진 이금현과 형제 관계라고 전한다. 이금현(李金現), 이금서(李金書) 부자의 이름상의 '금(金)'자가 같이 쓰인 점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의 옛 풍습에 아들의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권행(權幸, 안동권씨 시조)의 아들 인행(仁幸), 공직(龔直, ?~939, 연산공씨 시조)의 아들 직달(直達)이 그 예이다.
[[경주 이씨]] 대종보에 따르면 이금서의 아들은 1남 이윤홍(李潤弘), 2남 이윤원(李潤遠), 3남<ref>[[평창 이씨]] 본원 선계록에 의하면 "금서공은 신라 [[경순왕]] 김부의 셋째 딸 '신란궁부인'을 맞아 부마가 되어 두 아들을 두셨다. 장자는 휘 윤홍이니 [[경주 이씨]]의 선조가 되시고, 둘째 아들은 휘 윤장이니 [[평창 이씨]]의 시조이시다."라고 하여 이윤장을 2남으로 기록하고 있다.</ref> 이윤장(李潤張)이며, 이윤원은 [[가평 이씨]](加平李氏)로 이윤장은 [[평창 이씨]](平昌李氏)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평창 이씨]]는 [[경주 이씨]] 분적종이 아니라고 밝혀져 분적종에서 제외되었고, [[가평 이씨]](加平李氏)는 중국에서 유래되어 본래부터 분적종이 아니다. [[평창 이씨]] 내부적으로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를 근거로 이광(李匡)을 이윤장(李潤張)의 8세 손으로 보아 이윤장(李潤張)을 시조로 보는 분파와 이광(李匡)을 시조로 보는 분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가 위작으로 밝혀져 이광(李匡)을 시조로 확정하고 이윤장과의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3남<ref>[[평창 이씨]] 측 기록에 의하면 2남. 현재는 이윤장과의 관련성 자체를 부인하는 듯하다.</ref> 이윤장은 고려의 대사마 대장군으로 후백제 견훤을 토평하고 개국공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경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윤장의 생모는 신란궁 부인 김씨가 될 수 없다.
대학자인 [[이색]]의 인품과 그가 지은 [[이제현]]의 묘지명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기록 연대가 뒤처지고 위조나 오기가 발생하기 쉬운 족보상의 기록보다는 [[이색]]이 찬한 [[이제현]] 묘지명의 신빙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모순점들을 생각해볼 때, [[경순왕]] 3녀 김씨의 높은 신분을 고려하여 그 소생인 이윤홍을 이복형들인 이윤장, 이윤원에 앞서 1남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신라말' 병정을 역임했다는 부분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고려초'의 오기로 보인다.
=== 증손자 이주좌 논란 ===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이금서(李金書)의 증손자 [[이주좌]](李周佐)를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주좌의 증조부 이금서(李金書)는 중원태수 호부랑중을 역임하고 고려 태조의 외손녀이며 신라 경순왕의 딸인 신란궁부인 김씨와 혼인하였고, 조부 이윤홍은 병정(兵正)을 역임하였는데, 비록 부친 이승훈(李承訓)이 칠품 관직인 정조시랑(正朝侍郞)에 그쳤다고 한미한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 손자 : 이승훈(李承訓)
***** 손자 : 이승겸(李承謙)
- 이하영(강사) . . . . 13회 일치
[[EBSi]]의 수학 영역 강사. 현 [[서초고등학교]] [[수학교사]].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교육과 98학번.
제자 중에 유명한 인물로 '''인피니트 [[엘(인피니트)|엘]]'''이 있다! 담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다고. 인피니트 쇼타임에도 출연하셨다.
5~6등급으로 표시된 강의를 하시는 분답게, 수포자든지 그런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표방하고 있다. 수포자가 아니더라도 어렵거나 딱딱한 개념을 원치 않고 친절한 개념을 원하는 학생이면 들어서 나쁠 건 없다.
[[수능개념]]의 경우 중학교 개념, 고1 개념 등등의 수능 비출제 범위이지만 수능 수학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초반에 강의해 기초가 없는 학생들을 배려한다.이후 [[수능특강]], [[수능완성]]등에서 문풀을 할 때도, 어려운 공식 등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며[* 이 부분에서 최상위~~어차피 걔넨 ebs 무시하지?~~--무시하는게 아니라 자기들 공부커리에서 ebsi가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학생들은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공식을 잘 쓰지 않고 일일히 풀어 쓰는 편.
그 이외에도 연계교재 문제나, 수능 기출문제의 문제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수능 기출도 최근 3개년만 정도를 권하는 등 학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학영역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출제되어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이 더 맞아들어가고 있다.[* 다만 현장강의나 정모 등에서 온 수강생들을 보면 1등급보다는 2, 3등급 학생이 많이 보인다. 물론 대부분 그 이전에는 4~6등급 등 수포 직전까지 갔던 학생들이 이하영 선생님 강의로 성적을 올린 경우이기에 저평가할 수는 절대 없다.][* 다만, EBSi 수학 자체의 문제로, 강사 능력과 별개로 연계교재 위주의 공부로는 신유형이나 등급을 가르는 고난도 문제에 대한 대처는 부족한 건 사실이다.]
주로 문과쪽을 강의하는게 특징. 아마 수포자들의 구원자 이미지에 맞게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문과 중심, 수포자의 구원자, 미녀 수학강사 등의 컨셉은 후배 강사 [[정유빈]]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투스]]에서도 강의하는 카이스트 출신 [[이미지(강사)|이미지]]도 해당된다.
가끔 강의 이벤트나 수강생 정모[* 2013년 1월에 했던 ebsi 탐방 정모 이후에는 개인사정으로 하지 않는다.] 상품으로 스마일[* 스무살 마음껏 날아오르기 위해 1년만 꾹 참자의 약자]마크와 본인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달력, 파일 등을 주기도 한다.
수강생 정모의 경우 2013년 [[수능 끝난 고3]] 대상으로 한번 한 적이 있다. 이 정모 참가자 중 몇몇 학생들의 인터뷰를 찍어 2014 수능특강에 영상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출산+육아 등 개인적 문제로 하시지 않는 듯.
- 이희근 (1929년) . . . . 13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서훈 내역 = 대한민국 공비토벌기장 <br/> 대한민국 6.25종군기장 <br/> 대한민국 대통령수장 <br/> 대한민국 무성을지무공훈장 <br/> UN종군기장 <br > 대한민국 5등 근무공로훈장 <br/> 대한민국 3등 보국훈장 <br/> 베트남 2등 공군근무훈장 <br/> 대한민국 대통령 공로표창장 <br > 대한민국 보국훈장 국선장 <br/> 스페인 공군 대백십자훈장 <br/> 대한민국 충무무공훈장 <br/> 대한민국 보국훈장 통일장
| 기타 이력 = [[대한민국 국방부]] 촉탁위원 <br/> 한국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 <br/> [[신민주공화당]]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보위원 <br/>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 1995년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 1996년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직위 퇴임.
* [http://www.doopedia.co.kr/ Daum 조인스 데이터 사전 -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대장 이희근 前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전임자 = [[윤자중]]
|후임자 = [[김상태 (1930년)|김상태]]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자타라 . . . . 13회 일치
본명은 Giovanni Zatara. [[마법사]]로 [[자타나]]의 아버지.
외형은 전형적인 서양 [[마술사]]. 딸인 자타나와 마찬가지로 단어를 거꾸로 읽어서 마법을 구사한다.
현재 시간대에서는 이미 사망했으며 재커리 자타라(Zachary Zatara)가 히어로 자타라가 되었다. 사망했기에 [[블래키스트 나이트]]에서 블랙랜턴으로 등장.
자타나와 재커리 자타라 외의 관련 인물로 Luigi Zatara가 있다. 자타라의 할아버지이자 자타나의 증조부.
[[배트맨 TAS]]에 등장. 자타나가 등장한 에피소드로 회상 파트에 등장했다. [[영 저스티스]]에서도 등장했는데 여기에선 [[저스티스 리그]]의 일원이고 딸인 자타나가 영 저스티스의 멤버. [[닥터 페이트]] 에피소드에서 자타나를 위해 자신이 닥터 페이트가 된다.
- 장도 (1876년) . . . . 13회 일치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장도는 한국 최초의 형법학자로 꼽히며<ref> {{저널 인용
| 저자 = 배종대
== 참고자료 ==
[[분류:1876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교육인]][[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법조인]] <!-- 1908년 변호사 -->[[분류:대한제국의 학자]]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분류:대한제국의 저술가]]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
[[분류:한국의 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법학자]][[분류:형법학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덕수 장씨]][[분류:실종자]]
- 장문규 . . . . 13회 일치
* 《[[제보자 (영화)|제보자]]》 (2014년) - 대합실 남자 2 역
* 《[[오자룡이 간다]]》 (2012년, MBC) - 손님 역
* 《[[마의 (드라마)|마의]]》 (2012년, MBC) - 병자 역
* 《[[7급 공무원 (드라마)|7급 공무원]]》 (2013년, MBC) - 면접자 역
* 《[[부암동 복수자들]]》 (2017년, tvN)
* 《[[이름 없는 여자]]》 (2017년, KBS2)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장신애 (연극배우) . . . . 13회 일치
| 학력 =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학사
| 형제자매 =
| 배우자 = 최성일
| 자녀 =
*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학사
|[[2008년]] [[1월 1일]] ~ [[2011년]] [[3월 1일]]||머쉬멜로우||부인 안춘자||
|[[2010년]] [[5월 1일]] ~ [[11월 28일]]||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사라||
|[[2010년]] [[12월 3일]] ~ [[2011년]] [[1월 10일]]||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즌2||사라||
|[[2011년]] [[1월 27일]] ~ [[4월 30일]]||교수와 여제자2||부인||
|[[2011년]] [[4월 2일]] ~ [[9월 13일]]||교수와 여제자2||부인||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아프리카TV BJ]]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
- 장호 (1920년) . . . . 13회 일치
당시 [[경성부]]였던 현재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공산주의|공산주의사상]]을 공부하면서 [[1935년]]에 집을 나왔다. 이때부터 토목 노동자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제 강점기]]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
|저자=전용정
10년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5년]]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군정기]]가 시작되자 미군정을 반대하여 곧바로 [[삼팔선]] 이북으로 월북했다. 특수 교육받고 [[강원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남조선로동당]]이 불법화하자 입산하여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평양]]에 정착하고 《[[로동신문]]》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1958년]]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남파되었다. 남파 후 체포되었으나 전향하지 않고 비전향 장기수가 되어 [[대구교도소]]를 위시한 여러 교도소에서 약 30여 년간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91년]]에 30년 이상 수감된 70세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어 석방되었다.
|저자=조성곤
|저자=최종규
|저자=이민숙
== 참고자료 ==
|저자=안영기 외 13인
|제목=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 비전향 장기수들의 수기 3
- 전명운 . . . . 13회 일치
|직업= 독립운동가, 노동자, 상인
|배우자= 조순희
|자녀= 딸 전경숙, 전경영
이곳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대한제국]]의 외부 고문을 맡고 있던 [[더럼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귀국하여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영하고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자, 이 사실에 매우 격분하였다. 스티븐스의 망언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공립협회는 [[대동보국회]]와 공동으로 항의를 위한 4인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스티븐스는 대표들의 항의에도 극언을 계속하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그는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 이틀 후인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의 여객선 선착장에서 [[일본인]] 총영사와 함께 있는 스티븐스를 공격했고, 격투가 벌어지자 같은 목적에서 별도로 대기하던 [[장인환]]이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 이틀 후인 [[3월 25일]] 절명하게 하는 중상을 입혔다. 그는 이때 장인환의 총격에 총상을 입고 장인환과 함께 구속되었으나, 공범 관계가 아님이 드러나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당시 교민들은 성금을 모아 [[네이던 코플란]]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이때 통역은 [[이승만]]에게 요청했으나 자신은 기독교인이라 살인범의 변호를 통역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함에 따라 유학생이던 [[신흥우]]가 맡았다.
그는 장인환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로 잠시 이주했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귀환, 그 곳에서 '''맥 필즈'''(Mack Fields)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1920년 결혼, 귀화하였다. 말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ref>《미국의소리》 (2007.6.18) [http://www.voanews.com/korean/2007-06-18-voa18.cfm 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미국서 독립의거 - 전명운, 장인환 의사]</ref>
* [[독립유공자로 대통령장을 수여받은 사람]]
== 참고자료 ==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33448/http://narasarang.mpva.go.kr/data/downloadFile.asp?filename=monthhero%5C199612.hwp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전명운], 1996년
[[분류:1884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사람]][[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담양 전씨]][[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한국의 암살자]][[분류:국민주의 암살자]][[분류:미국에 거주한 한국인]]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13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0th sense. '''무법자들 (5)'''
* 마기에게 자신의 진정한 힘을 깨우쳐주는 효부 쿄스케
* 마기는 효부의 부하이자 가족으로서 요우와 모미지를 구하고 함께 판도라를 건설하게 된다.
* 머슬 오오카마도 자신은 연사가 안 된다며 모르쇠.
* 하지만 자신처럼 할 필욘 없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보라고 하는데.
* 마기는 자신없어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니 간단하게 성공.
* 마기가 민간인을 공격하던 헬기를 썰어 버린다. 그러면서 여자아이를 구하는데.
* 효부는 마기를 칭찬하며 자신도 어린애를 구해서 데려온다.
* 구해낸 여자애는 모미지, 어린아이는 요우였다.
* 효부는 이 아이들도 자신과 같다며 자신들에겐 집도 나라도 없다고 한다.
* "그러니까 만들자. 너희들에겐 그럴 힘이 있어."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13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1th sense. '''반역자들 (4)'''
* 단 둘이 되자 카오루는 미나모토에 대한 애정과 번뇌 때문에 러브 코미디 모드
* 나오미는 자신의 검진용 ID와 비밀 코드를 사용해 연구시설로 접근시켜준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미지수. 사카키는 곧바로 혈청을 제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사카키는 완전히 잠식된게 아니므로 혼자만 두지 않으면 작업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고 혈청만 잘 만들어지면 [[츠보미 후지코]] 관리관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카키는 오명을 반납하겠다며 사명감에 불탄다.
* 미나모토는 자신이 항상 칠드런을 조력하는 입장이었으나 이번엔 할 일이 없이 가만히 있으면서 조력을 받는 입장. 이러한 입장 변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 [[마츠카제 코우이치]]를 비롯한 칠드런들은 이게 최선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며 대기해줄 것을 부탁했다. 보안을 위해 통신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은 최소화. 필요한 것은 칠드런이 직접 옮기는 걸로 해뒀다. [[아카시 카오루]]는 자기들에게 맡기는게 걱정되냐고 묻는데.
* 자기도 모르게 "너희가 컸다는건 알지만..."이라고 답하는 미나모토. 묘하게 사실감 있는 회상이라고 생각했더니 카오루 본인이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었다.
* 미나모토는 이런 왕래가 당국에 발각되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칠드런이 짜놓은 동선은 의외로 치밀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가미 아오이]]의 텔레포트지만 매번 아오이가 올 수는 없으므로 자택에서 지하의 비밀 통로 등으로 단거리 텔레포트, 이후 이 근처 지하철 역까지 이동해서 감시의 눈을 피한다. 이건 [[산노미야 시호]]가 정해준 원칙에 따라 마츠카제가 구상한 이동방법이다. 텔레포터의 부담도 줄일 수 있어서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 미나모토도 마츠카제를 칭찬한다. 카오루는 자신들도 마츠카제를 신뢰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미나모토가 정한 후임이기 때문이란 말은 접어둔다.
* 카오루는 마츠카제가 준비한 타블렛PC와 미나모토의 옷가지 등도 가지고 왔는데 미나모토는 자취방에 고향에서 짐을 보낸 느낌이라고 말해서 카오루가 당황한다. "어머니나 가족"이 온 느낌이라고 정정하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변한다.
어쨌든 상황이 진정된 이후 미나모토는 간단하게 음식이라도 해주겠다며 외출하자고 한자. 혹시 시간이 늦어지면 곤란하냐고 묻는데, 카오루는 미리 [[스에츠무 하나에]]씨에게 말해뒀다고 하는데.
>오늘 밤은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말했으니까.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13회 일치
* [[후지우라 요우]]는 자신의 진동 제어로 마기의 탄소섬유를 끊어보려 했지만 사전에 인지한 마기가 다중구조로 섬유를 구성해서 통하지 않는다.
* 그때 효부가 자신의 심장을 궤뚫리는 치명상을 감수하면서까지 마기의 공격을 묶고, 그의 중상에 충격을 받은 마기는 세뇌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 탄소섬유는 일행이 있는 [[츠보미 후지코]]의 방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후지우라 요우]]는 대처할 틈도 없이 부상을 당한다. [[효부 쿄스케]]는 이것 또한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사전에 기획한 함정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함정을 치고 있는 당사자는 블랙 팬텀에 세뇌된 [[마기 시로]], 그의 오른팔이다.
* [[산노미야 시호]]는 카본 와이어임을 간파하고 전기충격으로 풀어보려고 하지만 [[미나모토 코이치]]가 급하게 말린다. 시호가 충격기를 들어올리자마자 섬유들이 일제히 충격기를 향해 날아온다. 간발의 차로 시호는 무사했지만 충격기는 산산조각난다.
* 모습을 드러내는 마기시로. 언제나 검정 슈츠 차림이던 것과 달리 몹시 캐쥬얼해진 차림이다. 그는 누구든 0.2초 만에 절단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일행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너무 자유롭고 해방감이 느껴져서 요우는 "쉬는날 같잖아. 대체 얼마나 마기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거냐"고 효부를 탓한다.
* 효부가 그 뒤에 자신을 죽이라고 했냐고 묻자 마기는 효부의 감각을 길리엄에게 전달하는건 맞지만 죽이진 않는다고 대답한다.
* 듣고 있던 요우는 이제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능력을 발동한다. 요우는 자신의 진동제어를 이용하면 레어메탈과 탄소섬유를 한 순간에 일소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렇지만 그건 마기도 알고 있었다. 요우에게 대처하기 위해 탄소섬유를 다중구조로 만들어서 주파수를 찾기 어렵게 만드러놓았다. 요우의 능력은 통하지 않고 오히려 당하게 생겼다. 마기는 능력의 발동 트리거인 목을 부수면 능력을 잃게 될 거라며 정말로 요우를 처리하려 한다.
* 카오루는 자신이 어떻게든 할 테니 쏘라고 소리친다. 미나모토는 더이상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블래스터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때 효부가 제지한다. 그는 마기가 정신을 잃긴 했지만 로봇이 된 건 아니라며 어떤 행동을 저지른다. 그가 저지른 행동에 일행은 물론 마기 조차 한순간 얼어붙는다.
* 마기는 분명 그의 심장이 관통된 걸 확인하고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효부는 자신의 의도대로 되자 짖궂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분명 치명상을 입고 있고, 효부의 치명상에 마기의 세뇌가 흔들린다.
- 정성룡(야구선수) . . . . 13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골키퍼 [[정성룡]]과 이름이 같다.[* '''한자까지''' 똑같다., 심지어 출신고교도 같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1992년 시즌 종료 뒤 ~~왼손 유망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코감독]]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해 해태가 삼성에게 완봉을 당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인 것이 유력하다. 즉 그 시즌 홈런 3개중 2개를 코감독 앞에서 그것도 연타석으로 쳤으니 [[인생경기]]를 한 셈.[* 다음 해에 김성래와 양준혁이 괴물활약을 한 것을 보면.. 프로생활을 3년이나 연장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꼈으니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1993~1995년까지 해태의 몇 안되는 좌타자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원조 10번이었던 [[장효조]]에 대한 올드 삼빠들의 대한 그리움과 그 이후 10번을 단 [[양준혁]]의 인기에 의해 지금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태에서 10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신인이였던 [[장성호]]였지만 1년만에 1번으로 갈아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10번을 단 선수가 [[최훈재]] 그리고 [[양준혁]].
김응용 감독은 정성룡의 스윙을 보고 "저 스윙으로 3할을 못 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큰 기대를 했으며, 1993년 시즌에는 해태 타선의 몇 안 되는 좌타자로서 원포인트 대타나 지명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하여 해태의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타율은 0.246이고 홈런은 10개. 타율은 별로였지만 전반기에는 규정타석만 채우면 [[양준혁]]과 [[강기웅]] 등을 위협할정도로 3할1~2푼 수준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서 까먹은 것. 홈런을 심심찮게 터뜨렸으며[* 1993년이 126경기 체제에서는 가장 적은 18명의 두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한방이 많았다. 프로 데뷔 후 최다 출장인 107경기에 출장했다. 그리하여 당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도 유력했으나 [[김기태(1969)|김기태]]의 지명도에 밀려[* 팀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김기태 본인의 성적이 별로였던 점을 감안하면..] 타지 못했다.
고교 시절 그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 본다면 졸업 후 바로 프로 입단한 게 독이 됐다. 만약 [[류명선]]이나 정윤수 등의 동기들처럼 대학에 진학했었더라면 1980년대 말 삼성 외야진이 세대 교체를 할 즈음에 입단해, 입단하자 마자 많은 기회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당시 정성룡과 같이 포철공고의 타선을 이끌었던 김성범과 염창무는 아예 프로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국가대표 골키퍼를 지낸 동명의 축구선수에 지명도가 가려지고, 간혹 언급될 때에도 고향팀이자 처음 입단한 삼성 선수보다는 유독 해태 선수로 언급되는 일이 많다. 이래저래 비운의 선수였던 셈. 그나마 해태 시절에 우승을 한번 해본 건 다행.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4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분류:해태 타이거즈]]
- 진격의 거인/81화 . . . . 13회 일치
* 결국 노인과 어린애도 전쟁터로 몰려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거라며 혐오감을 피력하다 자기는 아버지와 다르다며 "그냥 최대한 즐기겠다"고 말을 바꾼다.
* 놀랍게도 돌격한 조사병단 중 한 사람이 살아남아 생존자를 찾고 있다.
* 엘렌은 미사카와 나머지 일행은 갑옷 거인을 견제하게 하고 자신은 엘렌과 함께 초대형 거인을 처리하는 작전을 짠다.
* 하지만 엘렌이 "빼앗긴 자유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라고 말했듯 자신은 "바깥 세상을 생각하면 용기가 난다"고 말한다.
* 그는 엘렌을 찔러서 자극하면서 "일어나.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한다.
|| 엘렌 일어나! 바다를 보러 가자. ||
-아르민. "자신이 바다를 볼 수 없게 될" 작전을 구상하고 엘렌을 깨우면서.
* 엘빈이 맞은 자리는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을 빗나갔을 법한 위치지만 확실치 않다.
* 이번 화에서 짐승거인이 한 말이 또다른 떡밥을 양산하고 있다.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도, 늬앙스 상으로는 자기와 자기 아버지를 놓고 한 말 같지만 정확하지 않다.
* 갑자기 늘어난 아르민 사망 플래그
- 진격의 거인/84화 . . . . 13회 일치
* 엘렌은 엘빈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건 전혀 예상 못한거 아니냐고 반박하자 "어쨋든 엘빈이 살아있는 이상 엘빈에게 쓴다"고 번복하지 않는다.
* 그래도 엘렌이 고집을 부리자 단호하게 응징한다.
* 자신에게도 되살리고 싶은 사람은 몇 백이나 있다고 말하는 한지.
* 그는 아르민의 꿈이었던, 바다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말한다. 엘렌 자신은 원망 때문에 진작에 잊고 있던 약속.
* 쟝은 욕지거리를 연발하고 코니는 아르민에게 "다음에 보자"는 작별인사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 윌마리아 탈환작전 직전의 연회자리에서, 바다에 대해서 말하며 생기를 띄던 아르민.
* 아르민의 시체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는 사이, 갑자기 엘빈이 팔을 휘둘러 약을 뿌리친다. 마치 의식이 있는 것처럼.
*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 속에서 환상을 보고 있다.
* 그는 분명 악마였지만, 그에게 악마가 되라고 말했던 것은 자신들이었다며.
* 리바이 자신도 프록처럼 "한 번 지옥에서 해방된 그"를 다시 불러오려고 했다고.
* 최후에 살아남은 것은 아르민. 사실 엘빈의 지휘관 캐릭터는 대신할 자가 있지만 아르민은 대신할 자가 없다는 점에서 생존이 유력했다.
- 창작:왕국 . . . . 13회 일치
|| 최초작성자 || 노숙병아리 ||
여러가지 이유로 국왕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가 소수 존재한다. "반국가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는 과격한 행동 양상을 보이는 자들도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적으로 여겨진다. 그렇기때문에 "반국가주의자"로써의 의견을 내는 자는 방첩기관과 경찰, 국가헌병대에 의해 제재된다.
여러가지 지하자원이 남부의 사막지대에 매장되어 있다. 이를 채굴하는 광산과 이를 가공하는 공장,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주거시설들로 이루어진 도시가 사막 군데군데 위치해있다.
전체적인 외교관계는 왕따. 한때 플라흐란트 왕국과 리자 연방이라는 동맹국이 있었지만 플라흐란트 왕국은 연합에게 합병당했고, 리자 연방과는 점점 서먹서먹해지는 중.
북쪽으로 바다 건너 있는 연합과 관계가 최악이다. 원래부터 자기들보다 못살고 낙후된 국가라고 깔보고 있었는데 연합이 왕국과 친하던 플라흐란트 왕국을 덥썩 집어먹어버렸다.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18세 이상의 남녀가 징집된다. 군복무 기간은 3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면 군복무에서 면제된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외인부대나 용병의 비율이 높다. 사발타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댓가로 사발타 정규군을 대여중이며, 망한세계 사람들 상대로도 여러가지 혜택을 언급하며 외인부대 입대를 권유하고 있다.
- 최란(배우) . . . . 13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배우자 [[이충희]] ||
180억대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연예계의 부동산 부자로도 유명하다.
[[김가연]]과 더불어 연예계 고소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의 아내이기도 하기에 이충희에 대한 악플이 달리는걸 늘 모니터링 한다고 하고 변호사 자문도 구한다고 한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는 이 명성이 워낙 높아 최란이라면 벌벌 떨 정도다. 더불어 경중 안따지고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귀여운 여자
*[[깡순이]] (허풍자 역)
*남자 셋 여자 셋 (철수모 역)
*[[미남이시네요]] (최미자 역)
*밥을 태우는 여자
*신귀공자
*[[여자의 비밀]] ([[박복자]] 역)
*여선생 VS 여제자 (고미남 어머니 역)
- 최성원 (배우) . . . . 13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2014년]] 《[[슬로우 비디오]]》 ... 사채업자 역
* [[2010년]] [[KBS]] 《[[남자의 자격#합창단|남자의 자격 - 합창단]]》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최재성(배우) . . . . 13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878787> '''{{{#EEE156 가족}}}''' ||<(> 3남 1녀 중 차남. 배우자 황세옥[* [[1994년]]에 데뷔해서 "결론" 이란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신세대 가수였다. 이후, 2집 "알라딘의 램프", 3집 "너만의 이유" 를 내며 가수 활동을 이어가다 [[1997년]] 최재성과 결혼했다.] 6촌 동생 [[최진실]], [[최진영]] ||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다. 젊은 시절 잘생기면서도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외모 덕분에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으며 충무로의 대배우로 아직까지도 유명한 [[박중훈]]이 중년 이후에도 젊은 시절 가장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배우로 항상 언급할 정도로 잘나가던 청춘스타였다. 당시 마치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강한 인상의 미소년 외모를 가진 반항기 가득한 고등학생' 이미지로 크게 사랑 받았으며[* 이장호의 외인구단 개봉 당시5살 연상인 [[이보희(배우)|이보희]]와 동갑내기 커플로 나온 최재성을 보고 사람들이 내린 평가가 '최재성은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같은데 이보희는 아무리 봐도 20대 중반은 되어 보여서 둘이 동갑으로 보이지 않는다'였다고 한다.]이 이미지는 80년대 초중반 그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된다.
흔히 [[최민수]]가 터프가이 컨셉 [[허세]]라고 욕먹지만, 당시에 허세가 아닌 진짜 독보적인 연예계 터프가이는 최재성이었다. 실제 연기자로서의 경력 이외에도 어릴때부터 [[복싱]]을 했고 아마추어 복싱 선수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 [[연예인]]들의 무술실력 관련글들에 항상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행이나 폭력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생활]]은 깔끔한 편.
젊은 시절 간지나는 잘생긴 외모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연을 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미모는 죽지 않아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 역으로 호평받았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야인시대에서 마루오카 역으로 다시 슬럼프를 씻어냈다. 이후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의 마오[* 드라마 자체도 큰 호평을 받았고, [[악역]]이면서도 사연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력과 카리스마도 제대로 드러나서 호평을 받았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원균]], [[SBS]] 연개소문에서는 이밀 역을 맡았다. 연개소문부터는 나잇살이 부쩍 많이 붙었다. 2010년 이후에는 재력가, 정치인, 특히 가족의 출생의 비밀을 가진 비운의 아버지 등의 역을 잘 한다.
[[박중훈]]보다는 2살이 많은데 최재성이 그냥 쿨하게 친구로 지냈다. 그렇게 박중훈과 평생 친구로 계속 가게 되자 박중훈은 자기보다 최재성의 나이가 더 많은데도 40살이 넘어가도록 친구로 대해줘서 그걸 엄청나게 고마워했다.[* 박중훈이 실제로 66년 3월 생이나 생일과 나이를 올려 빠른 65년 생으로 속여 친구로 지낸 것인데 사실이 탄로났지만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기에 이왕 이리된 거 그냥 쿨하게 무시하고 친구로 계속 지내자고 했던 것.]
최재성의 아버지는 최상현(KBS 드라마 연출가)이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가 6촌 동생들이다. 혈통이 혈통인지라 최재성, [[최진실]], [[최진영]] 모두 미남미녀들이다.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같은 직업에 종사한 덕에 최재성과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사단"과 [[최진실]]의 어머니, [[최진영]] 이외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슬퍼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최재성과 [[최진실]]이 [[1994년]]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극중 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20500209121002&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2-05&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421&publishType=00010|#]] [[여담]]으로 어린 시절에는 [[최진실]]과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었다. 자라면서 외모의 차이가 생긴 것.
[[2012년]]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으로 캐스팅 되었으나 무릎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그 배역을 [[동이(드라마)|동이]]에서 [[장희재]]로 악명을 떨쳤던 [[김유석]]에게 넘겨주고 부상이 회복되자 극 중반부터 등장하는 계백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 [[1991년]] [[문화방송|MBC]] 창사특별기획 《[[여명의 눈동자]]》 ... 빨치산 대장 최대치 역
- 킹덤/514화 . . . . 13회 일치
* [[사마상]]은 침공한 [[오르도(킹덤)|오르도]]가 "잠자던 대호"라고 평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 [[조박]]과 양동을 벌여 오르도를 패퇴시킨다.
* 조나라를 침공해 벌써 여러 성을 떨어뜨리고 "청가"성으로 향하던 [[오르도(킹덤)|오르도]]는 뜻밖의 적과 마주쳤다. 그야말로 "잠자던 대호"와 같은 인물로 그는 내심 [[이목(킹덤)|이목]]에게 왜 이런 인물이 연나라 전선에 배치돼 있다고 일러주지 않았냐고 농담을 한다. 그 사내는 [[사마상]]. 단 5천의 병력으로 2만 연군의 발을 묶고 있다.
오르도는 단번에 저 사내, 사마상의 전략임을 간파한다. 우둔한 조박이 구사할 만한 책략이 아니다. 사마상 자신이 오르도의 본진을 묶고 있는 사이 조박이 움직여 그들의 퇴로를 끊어버리는 것. 이렇게 되면 오르도가 군대를 물릴 수밖에 없게 됐다. 오르도는 자신이 크게 오판을 했으며 그건 바로 저 사내의 존재였다. 오르도는 이와 양을 탈환하고 조박의 목을 취하기 위해 퇴각을 결정, 그러면서 사마상의 이름을 기억하고 꼭 돌아올 것을 맹세한다.
한편 오르도의 퇴각을 확인한 사마상은 추격은 포기하고 자신의 청가성으로 복귀한다.
* 조의 총사령관 이목은 바람같이 행군을 거듭해 벌써 "난"성까지 도착했다. 예정보다 하루 가량 빠른 속도였다. 그는 여기서도 잠시 쉬기만 할 뿐 곧 출발할 거라며 급히 보급을 행한다. 난성에 도착해 보니 그 앞에 들어온 보고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사마상이 오르도를 격퇴했다는 것. 이로써 연군을 걱정할 필요 없이 진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른 소식은 진군의 동향. 그런데 보고하던 성주는 자신도 미심쩍다는 듯이 양해를 구하며 그 내용을 전달한다.
*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고 난감한 것은 진군의 장수들이다. 오다가 함락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신(킹덤)|이신]]을 비롯한 장수들은 하나같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불평한다. 가뜩이나 시간도 촉박한 판에 전략적 가치도 없는 소성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하료초]]는 복잡한 표정이지만 일단은 입성하자며 이신을 달랜다.
* 오다성에 입성한 [[환의(킹덤)|환의]]병사들은 민가를 털어서 병량을 끌어모은다. 약탈행위를 질색하는 이신이 제지하려 하지만 [[몽념]]은 이번만큼은 저들의 "코"가 도움이 됐다며 이신을 자제시킨다. [[마론(킹덤)|마론]]은 환의에게 순조롭게 식량징발이 끝났다고 보고한다. 이제 이걸로 오다에 남은 식량은 없다.
하료초가 불같이 화를 내자 이신도 할 말을 잊는다. 몽념도 내심은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가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않는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 때문이다.
왕전이 계속해서 하는 말은 더더욱 예상 밖의 것이다. 그는 전쟁인 이상 "마음은 괴롭지만" 그들로부터 식량과 성을 뺏을 수밖에 없다며 식량을 잃은 백성들은 어떻게든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근처 성까지" 이동하길 바란다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까지 말한다.
* 왕전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다. 놓아준 백성들이야 대체로 왕전을 칭송한다. 심지어 그는 무장해제시킨 조나라 병사들까지 피난 행렬에 넣어주었다. 물론 일부는 전사자 가족도 끼어 있으니 왕전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일단 자기들을 죽이지 않은 걸로 충분히 감사하는 모습들이다.
진군의 장수들은 어느 정도 왕전이 그리는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노리는 건 병량이 아니라 저 민간인들이다. 저렇게 바깥으로 내보낸 민간인들 자체가 왕전이 구상한 전략의 핵심임은 분명한데, 그게 정확히 뭘 노리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 킹덤/520화 . . . . 13회 일치
* 기수가 [[황각]]에게 기마대로 요격하게 하자 몽념은 금새 달아나는데 적 대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황각은 뒤를 추격한다.
* 중앙에, 그것도 왕전의 본대 뒤에 배치된 [[비신대]]. 지휘관 [[이신(킹덤)|이신]]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굳이 중앙에 두려면 본대 옆이든 앞이든 둘 것이지, 이런데 처박아서 전장이 보이지도 않는다고 투덜댄다. 무엇보다 이렇게 해서는 자신들이 이목을 두려워 숨은 듯하다는게 제일 큰 불만이었다. 이신의 생각없는 불평이 [[하료초]]에겐 단서가 됐다. 하료초는 왕전이 이런 배치를 한건 이신의 말대로 비신대를 숨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게 뜻하는 것은 한 가지 뿐.
* 진군의 포진은 조군 진영에서도 많은 추측을 낳았다. 우선 중앙의 포진. 비신대를 뒤로 빼서 앞뒤로 긴 배치는 중앙의 전체 병력수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약 5만 이상이라는 애매한 수치가 보고됐다. 그리고 역시나 이해불가한 좌측.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 5천이 있을 뿐이다. 장교들은 잘못된 보고가 아닌지 거듭 확인한다. [[요운]]은 별다른 의심없이 첩보를 믿는다. 그러면서 왕전이 신중한 남자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담하다고 평한다. 이목도 같은 의견이다. 지금 왕전은 명백히 수작을 부리고 있다. 왕전의 의도는 이렇다. 전쟁에서 각자 싸우기 쉬운 국면을 고르는게 필연. 좌익에 고작 5천을 뒀다는건 도발에 가깝다. 즉 "우익으로 여길 치면 된다"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 따라서 이목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 도발에 응해 조군 우익 [[기수]]의 3만 병력으로 진 좌익을 칠 것인가, 아니면 뻔한 함정을 피해서 다른 곳부터 시작할 것인가.
*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려는 몽념에게 할아범이 무운을 빈다. 역시 몽념은 "평소랑 똑같다"고 대답하며 나중에 보자고 답례한다. 당사자가 태평할 지경인데 역시 할아범은 걱정을 떨칠 수 없다. 그가 몽념을 따라나서는 [[육주]]를 불러세운다. 어찌나 다급한지 창까지 들이대서 육주가 기겁한다. 할아범의 당부는 늙은 자신이 주력기마대를 따라갈 도리가 없으니, 힘쎄고 소심하지만 욕심은 없고 화낼 땐 화낼 줄도 아는 육주가 자신을 대신해 달라는 것이다. 마침 육주는 창술이 그 [[왕분]]에 버금갈 정도니 부디 도련님, 몽념의 안위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육주는 자신의 창술이 왕분에 비할 정도는 아니나 할아범의 마음을 익히 이해해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할아범이 몽념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걱정하는건 이제 과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총대장 왕전의 지시를 동요없이 수용한 걸 보면, 이미 그는 대장군과 같은 안목으로 전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언제까지 어린애 대하듯 해선 안 될 일. 할아범도 그 의도는 맞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몽념은 위험한 나무에 올라가 장난이나 치던 "도련님"의 모습 그대로다.
* 몽념의 기마대였다. 몽념은 선두에서 직접 조군 보병대를 친다. 예측하지 못한 기습으로 보병대 상당수가 무방비하게 도륙난다. 기수의 대응은 빨랐다. [[황각]]에게 기마 2천을 줘서 요격하게 보낸다. 조군의 기마대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자 몽념은 공격을 멈추고 미련없이 돌아선다.
* 적이 바로 등을 보이자 황각은 기세가 올라서 추격에 열을 올린다. 몽념은 적이 추격하는 속도를 보면서 서서히 퇴각속도를 올린다. 그때 낙화대의 장려가 슬슬 뒤처지는데 그는 이렇게 투덜댄다.
조군 기마대가 본대에서 멀리 떨어져 나오자 몽념의 진짜 노림수가 드러난다. 육주가 이끄는 별동대가 조군 기마대의 좌측을 찔러들어왔다.
- 타오파이파이 . . . . 13회 일치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살인청부업자. [[학선인]]의 동생으로 무술의 고수. 세계 최고의 살인청부업자이며, 대단한 실력자이다.
잔인하고 비겁한 성격으로, 자신을 거슬리면 별다른 죄도 없는 일반인도 서슴치 않고 살해한다. 자신의 옷을 만들어준 재봉사가 옷 값을 요구하자, 기분에 거슬렸는지 대신 누구든 바라는 사람을 죽여주겠다고 말하고 재봉사가 거부하자 그대로 손가락으로 머리를 꿰뚫어서 살해했다.
등장 당초에 손오공 이상의 강자로서, 손오공을 고전시켰던 블루 대령을 혀만 가지고 살해했다. 또 레드리본군 병사들을 쉽게 제압하던 우파의 아버지 보라를 살해. 손오공과 대결하여 도돔파로 쓰러뜨렸으며, 손오공은 품 속에 넣어둔 드래곤볼이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린탑에서 수행한 손오공에게는 패배하고 만다.
천하제일무도회에 등장했을 때는 사이보그로 개조되면서 스스로 더욱 강해졌다고 자부했으나, [[천진반]]
평소에는 맨손으로 싸우지만,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하면 [[칼]]이나 [[폭탄]] 같은 무기도 서슴치 않고 꺼낸다.
* [[천진반]] - 본래 타오파이파이를 존경해서 살인청부업자가 되려고 했다. 손오공이 자신이 타오파이파이를 이겼다고 말하자, 천진반은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정도. 하지만 학선류에 실망하면서 존경심이 퇴색하게 되며, 천하제일무도회에서 만났을 때는 타오파이파이의 비열한 모습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 탁석산 . . . . 13회 일치
|직업 = 철학자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탁석산'''(卓石山, 1956년 1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철학자]]이다.
탁석산은 1956년 서울 태생이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자연계열에 입학했으나 1년 후 자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 부전공으로 택한 철학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철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흄의 인과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KAIST]] 등에서 강의를 했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사상연구소 박사 후 연수과정을 마쳤다. 주로 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왔는데, <흄의 두 원인 정의의 완전성과 양립가능성> <흄의 초기 단편과 《대화》에서의 악의 문제> <툴리의 인과실재론 비판> <흄의 합리론 비판과 그 역사적 원천>등의 논문을 썼으며, 최근에 『열린지성』에 『언어분석철학의 종언과 한국철학』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등이 있다.<ref>[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laf?authorid=1000033701 교보문서 저자 정보]</ref>
현대 한국 사회, 글쓰기, 직업 등을 주제로 소위 "생활철학"을 다룬 책을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의 철학은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앞의 세가지를 아우르는 방법론이자, 나중에는 그 세 가지를 지배하게 된 '실용주의'다.<ref>{{뉴스 인용|제목=<사람들> 생활철학서 낸 철학자 탁석산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359884|날짜=2008-11-11|뉴스=연합뉴스}}</ref>
* 《철학 읽어주는 남자》
{{토막글|철학자}}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탁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
- 토리코/394화 . . . . 13회 일치
* 토리코가 먹었던 네오의 고기는 사실 네오 자신의 고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완상"이란 고대의 매머드 종류의 고기 인 것이였다.
* 블루 니트로 페어도 이 생물에 대해 알고 있어서 이름과 내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고대 미식가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했던 식재로 맛만을 놓고 보면 미식세계를 평정할 만한 식재. 네오의 안에서 맛이 더욱 숙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청귀는 블루 유니버스의 식재가 아닌 탓인지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데 제 3의 악마는 유심히 쳐다보더니 "저 식재가 토리코의 여정의 마침표가 되진 않을 것 같다"고 평한다.
* 토리코는 엔드 매머드를 풀코스의 고기 요리로 추가하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마지막 자리가 채워지면서 토리코의 풀코스가 완성된다.
* 미도라는 자신의 힘을 속죄하는데 쓰겠다고 말하고 토리코와 스타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사이좋게 같은 식탁에 앉아라"라고 충고해주는데 토리코는 그가 기뻐 보인다고 말하고 미도라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 미도라는 자신의 에너지를 맛으로 바꿔서 지구 전체를 향해 발사한다. "구르메 스파이스". 한때 인간계를 괴멸시켰던 미티어 스파이스에 반대되는 힘이다.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미도라의 에너지는 식재로 전환되고 스파이스가 닿는 곳마자 울창한 숲이 생기고 새로운 식재가 풍족하게 피어난다.
* 제 1대륙에 있는 블루 니트로의 우주선. 우멘과 자우스의 사투가 끝났다. 우멘은 죠아의 세뇌가 풀려서 제정신으로 돌아오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이 불분명해보인다. 자우스는 그가 돌아온걸 보고 싸움은 끝났다고 말한다. 인간계에서도 지구의 위기가 지나가고 재생의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다. 인간계를 지키고 있던 세츠노는 겨우 한숨 돌리는데 이 재생이 미도라의 힘임을 깨닫는다.
* 네오는 그 후에도 끝없이 식재를 분출한다. 우주의 은하수를 수놓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식재. 페어는 그 중 자신의 동포 블루 니트로들이 섞여 있는걸 발견한다. 결국 아카시아와 페어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 그 분출도 드디어 멈추고 네오는 최초의 나약한 가축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완전히 무력해진 네오 앞에 식재를 든 토리코가 나타난다. 토리코는 이제 속이 시원하냐고 물으며 그에게 함께 먹자고 식재를 내민다. 수십억년 동안 뺏고 빼앗기기만 했던 생활. 네오는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와 식재를 나눠먹게 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 네오가 만족해하는걸 확인한 토리코는 동료들을 불러모은다. 센터의 힘으로 재생한 동료들은 건재한 모습으로 토리코를 기다리고 있다. 토리코는 다 함께 밥을 먹자고 말하며 길었던 싸움이 마무리된다.
토리코는 분명 각성 과정에서 센터를 한 번 맛봤을 텐데, 이번화에서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따로 리액션을 하고 있다. 원액 쪽이라 맛이 다르다는 설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부자연스러운 묘사. 또 원래 센터는 GOD를 먹은 자만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 묘사되었지만 그런거 없이 다들 그냥 먹고 소생했다.
- 페어리 테일/487화 . . . . 13회 일치
* 이번엔 브랜디쉬가 갓세레나의 행방을 묻는데, 오거스트는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여기에 있다"고 답한다.
* 오거스트는 그 자체가 배신하는 말이며 폐하(제레프)의 싸움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적일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 블러드맨은 자신에겐 세 가지 인이 있다고 설명해준다.--설명충 블러드맨--
* 첫 번째 인은 마장입자로 마력을 빼앗고, 두 번째 인은 시체의 밭에 황천의 문을 열고, 세 번째 인은 사신이 심판을 내린다.
* 타르타로스의 주법에는 잘 대처하나 블러드맨이 세 번째 인을 해방하고 고유의 주법 "오버 스켈터"를 사용하자 단숨에 상황이 악화된다.
* 레비의 마스크는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다. 마장입자는 피부로도 흡수하기 때문.
* 단지 '''반한 여자를 구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최후의 수단을 쓴다.
* 가질은 마장입자를 흡수하기 시작하는데 그 안에 포함된 미량의 철분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 마장입자를 흡수한 가질은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드디어 블러드맨에게 공격이 먹히게 된다.
* 같은 마장입자의 성분을 이용한 공격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격.
* 눈치 빠른 독자라면 눈치 챘겠지만 소제목으로 카운트 다운 중이다.
* 결국 커플 플래그가 성립했다. 문제는 그러자마자 가질이 명계로 끌려가게 생긴 것.
- 페어리 테일/490화 . . . . 13회 일치
* 메이비스가 "내 마음속"이라고 답하자 "그럼 나는?"이라고 잇달아 묻는다.
* 피오레 대륙이 아이린이 만든 마법의 빛에 휩쌓이고 난 뒤, 메이비스는 혼자 길드 지하에서 눈을 뜬다.
* 메이비스는 제레프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레프는 자신이 한 짓이 아니며 자신 또한 당황스럽다고 말한다.
* 그레이와 쥬비아, 엘자 또한 어딘지 모를 곳으로 이동돼있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교대로 엘자를 돌보며 주변을 탐색한다.
* 카나는 메이비스의 행방을 찾지만 아는 사람은 없고 자세히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제국군이 인근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간다.
* 페어리 테일 길드의 제레프도 메이비스에게 비슷한 설명을 하면서 피오레의 면적 자체도 원래의 20분의 1정도 수준으로 줄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 그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눈 앞에 묘한 형상이 나타나자 경계한다.
* 본편이 뜨기 전 유포된 정보에는 제목이 "어머니와 딸"이어서 아이린과 엘자가 모녀관계라는 설이 확정되는 듯 했지만 가짜 스포였던 걸로 밝혀지면서 다시 유보되었다.
* 아이린이 피오레 왕국 한복판에 나타났는데, 마침 나츠 일행도 왕성 근처에 있어 나츠 일행 vs 아이린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렇게 되면 나츠는 스프리건12의 양대 최강자와 모두 겨뤄본 셈이 된다.
* 문제의 메스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장하지 않는다. 엘프먼도 같이 사라져서 엘프먼과 메스트가 한 자리로 옮겨졌을 거란 추측이 나오는 중.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3회 일치
* 오거스트는 집합을 명하고 아이린은 거부하지만 미라젠을 처리한 뒤 합류하겠다고 하자 오거스트가 단칼에 미라젠을 처리한다.
* 미라젠이 돌아오지 않자 리사나가 찾아오는데 치명상인 것 같았던 미라젠의 상처는 브랜디쉬의 힘으로 경상으로 조절되어 있다.
* 아이린은 자기 "아이들"을 귀여워해준 것 같다며 그녀를 포박한다.
* 오거스트는 스프리건12 전원을 폐하(제레프) 곁으로 소집하는데 아이린은 자기 멋대로 하겠다며 거부한다.
* 아이린이 체면을 세워주겠다며 양보하는데, 그래도 자기 "아이"를 건드린 미라젠은 처치해야겠다고 한다.
* 그러자 단번에 미라젠을 처형하는 오거스트.
* 그러나 언니 소라노(엔젤)는 자신에겐 여동생은 없다며 모른척한다.
* 그러나 엔젤은 네게 죄인인 언니는 없다며 언젠가 자기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면 여동생을 안아주겠다고 말하며 눈물 흘린다.
* 자매의 눈물겨운 상봉을 보며 엘프먼은 미라젠, 리사나에게 살아있어달라고 독백한다.
* 그런데 추격자들은 묘하게 기분 좋아하며 쓰러져 버리는데.
* 제목의 "화이트 드래그닐"은 라케이드 드래그닐을 뜻한다. 디마리아의 추격자들을 처리하면서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는 표현을 쓰는데, 추격자들은 열반에 드는 것처럼 희열을 느끼다 쓰러진다.
- 페어리 테일/499화 . . . . 13회 일치
* 쥬비아는 그레이를 살리기 위해 자결하는 길을 택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레이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모두 쓰러진다.
* 그러나 쥬비아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그레이에게 수혈해주고 희생한다. 쥬비아는 사망?
* 잉벨의 마법은 두 사람의 자아를 철저하게 얽맨다.
* 그의 손에 죽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서는 그레이가 자신을 책망하게 될 테니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 자결을 선택하는 쥬비아.
* 잉벨은 자신의 지배를 거부한 쥬비아를 보고 놀란다.
* 얼음의 검으로 자해한 그레이.
* 잉벨은 자신의 마법이 깨진 것과 두 사람이 한 꺼번에 자해한 것을 보고 "가능할리 없다"고 경악한다.
* 계획이 무산된 그는 결국 END는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려야겠다며 발길을 돌린다.
* 그가 사라지자 전장을 뒤덮었던 눈보라도 사라진다.
* 쥬비아는 워터 메이크 "블러드", 수혈 마법을 써서 자신의 피를 그레이에게 옮긴 것이다.
* 쥬비아는 자신이 하던 말처럼 정말로 그레이에게 목숨을 바치고 숨을 거둔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13회 일치
* 제레프는 자신도 [[아크놀로기아]]는 이길 수 없고, 인류가 멸망하면 그와 메이비스는 영원히 아크놀로기아의 장난감이 된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 비장의 수,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 [[나츠 드래그닐]]. 그것으로 [[제레프 드래그닐]]의 마법은 끊어버릴 수 있었으나 제레프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 지는 미지수다. 제레프 본인은 "그럴로는 역부족"이라며 차라리 나츠도 [[아크놀로기아]]처럼 용화할 수 있엇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나츠는 자신은 인간이고 아크놀로기아처럼 되지 않겠다며 그것이야 말로 아버지 [[이그닐]]의 의지라고 일갈한다. 제레프의 빈정거리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메이비스는 "제레프를 쓰러뜨릴 방법"이 떠올랐다고 설득을 시도한다. 마법의 천재인 그녀가 하는 말인 만큼 제레프도 동요한다. 하지만 결국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이미 자신은 죽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봤고 END 조차도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 그렇다면 왜 아크놀로기아를 두려워하는가? 메이비스가 그렇게 지적하자 "아무리 불사자라도 그를 이길 순 없기 때문"이라 답한다.
>그건 인류의 역사를 끝내는 자.
*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엘자 스칼렛]]에게 자신이 시간을 벌어 보겠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만한 방법이 있을까?
* 나츠는 메이비스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제레프의 눈빛 한 방에 나가 떨어진다. 짧은 틈이 생긴 동안 제레프는 메이비스에게 네오 이클립스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것은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마법". 400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살아가며 불로불사가 되지 않은 채로 죽겠다는 것이다. 그 인생은 메이비스와 만날 일이 없으니 유감이라고 하지만...
페어리 하트가 빠져나가면서 메이비스는 기력과 의식을 잃어간다. 그녀는 실낯같은 의식을 붙잡고 제레프를 만류하는데 사용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만난" 이 세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애원하지만 제레프는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페어리 하트를 적출하며 방출되던 빛이 사라진다. 제레프는 정신을 잃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걸로 이 세계에 남은 미련은 전부 정리했다고 말한다.
그가 흡수한 페어리 하트의 마력을 방출하자 강력한 마력의 빛이 매그놀리아 전역을 휩쓴다.
나츠와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가질 레드폭스]]와 [[레비 맥거딘]],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 [[렉서스 드레아]]와 [[미라젠 스트라우스]], 그리고 엘자와 제라르.
- 페어리 테일/537화 . . . . 13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이 자리를 떠나고 단 둘이 남은 [[메이비스 버밀리온]]과 [[제레프 드래그닐]]
* 메이비스는 과거 제레프의 "모순의 저주"가 그녀를 죽였을 때, 제레프는 죽지 않았던 것을 들어 자신이 제레프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거라 고백한다.
* 그런 끝에 입을 맞추자 비로소 두 사람은 완전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은 모순의 저주가 발동, 길고 길었던 인연을 함께 마무리한다.
메이비스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페어리 테일 길드의 초대 마스터로서 동료들을 괴롭히고 상처입힌 것을 용서할 수 없고 당장 이 세상에서 말소해버리고 싶다고 냉정히 말한다. 제레프가 뜻모를 미소와 함께 "너에게 죽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메이비스 또한 뜻모를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옆에 앉더니 "이제 편히 잠들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잠자코 있던 제레프가 오히려 그녀에게 "마음 쓸 것 없다"고 위로한다. 자신은 어차피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이 없으며 메이비스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정"이라는걸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메이비스는 그 말을 부정한다. 그것은 정이 아니라 "모순"이었다. 제레프와 만났기에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와 만났기에 이 마을을 구했다. 그리고 그가 있었기에 페어리 테일이 탄생했다. 메이비스가 제레프에게 가지는 감정은 숭배에 가까웠다.
* 메이비스가 제레프에게 입을 맞추자, 그들의 주변이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제레프는 메이비스가 있어 행복했노라고 밝힌다.
그는 메이비스의 손을 붙잡고 그녀와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나츠와도 화해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메이비스가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자 그는 정색하며 그녀는 살아야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이기 때문에 메이비스는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조용히 눈물 흘리는 두 사람.
>불사자도 이기지 못하는 힘...
그리고 의연하게 조부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렉서스는 그 조부가 되살아나자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흘린다.
* 깨어난 마카로프는 정말로 자고 있었던 것처럼 의식이 없던 시간 동안 본 "꿈"에 대해 들려준다. 그건 참 이상한 꿈이어서 꾸고 있는 동안 자신의 안에서 따뜻한 생명의 힘이 내달리는 듯 했다. 그리고...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13회 일치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 Co-Op이 지원된다. 싱글플레이의 경우 혼자 하는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봇을 데리고 할수도 있지만 봇들이 총쏘는 것 밖에 못하는지라 모든 행동은 자신이 해야한다.
아머가 다 줄어들고 난 후에는 초상화 뒷배경으로 표시되는 체력이 줄어든다. 이 체력은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으며 이것마저 다 줄어들면 해당 플레이어는 다운되어 권총으로 겨우 저항하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플레이어가 구속되지만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른 플레이어가 구하면 플레이어는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샤프슈터 트리에서 해금되는 7.62mm 반자동소총. 높은 데미지와 중간치의 반동을 가지고있다. 모델은 M1A SOCOM.
서포트 트리에서 해금되는 44구경 리볼버. 똥파워를 자랑한다. 그에 알맞는 고반동은 덤. 모델은 토러스 라이징불.
탄약을 보충할 수 있는 가방. 소모품이니 아껴 쓰자.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가방. 다운 횟수도 초기화된다. 소모품이니 아껴 쓰자. 하이스트 중 평판이 오르면 이걸 한번 사용한 효과가 난다.
적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무인포탑.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설계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갓-인터넷. 설치하면 화력을 대폭 증대시키지만 총알 제한이 있다.
체력이 늘어난다. 범죄자가 되는건 피부를 두껍게 만든다고한다.
흰색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경비원. 권총으로만 무장하고 있는 약한 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수갑차고 꿇어앉는 신세가 되니 주의.
먼 곳에서 겁나 아픈 한방을 먹이는 저격수. 맞는 즉시 아머가 다 깎여나가니 맞으면 무조건 엄폐하자. 붉은색 레이저포인터를 사용하므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방패를 들고 기관권총으로 무장한 특수요원.방패는 무적이니 방패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을 노리자.
우주복 같이 생긴 방호복을 입고 산탄총을 든 특수요원. 얼굴에 총알을 박아주자. 너무 가까이에서 상대하면 두방에 드러눕는 대참사가 일어나니 주의.
- 하이큐/243화 . . . . 13회 일치
* 치열했던 1회전은 [[카라스노 고교]]의 완승으로 끝났다. 인터넷으로 관전하고 이케지리가 컴퓨터로 시청 중에 카라스노의 승리가 확정되자 환호성을 지른다.
* 츠바키하라 고교의 선수들은 응원단 일동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패했지만 선전한 그들에게 응원단이 격려를 보낸다. 객석에 있던 졸업생들도 함께 박수를 친다. 하지만 마지막 봄고 대회를 일찍 마무리하게 된 3학년들은 복잡한 감정의 눈물을 참을 수 없다. 2학년 [[츠키오카 치하루]]와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는 패배를 가슴에 새기고 다음을 기약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밥이나 먹자며 선수들을 다독인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선수들을 이끌고 카라스노 응원단 쪽에 인사하려던 참에 졸업생 타시로와 쿠로카와가 와있는걸 눈치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스기와라 코시]]는 경기 중반 쯤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와무라는 끝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졸업생들도 지금 1학년들에 흥미를 보이는데 특히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괴짜콤비를 궁금해한다.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에 불려갈 정도의 우수한 선수라는걸 듣고 그런 천재가 어째서 자기네 학교에 왔는지 의아해한다. 3학년들은 히나타에 대해선 "활발한 꼬맹이"나 "운동능력 요괴"라고 말하다 사와무라가 "가끔씩 정체모를 녀석"이라고 평한다. 스기와라는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도 경계했던 적이 있다고 말하자 타시로가 깜짝 놀란다.
쿠로카와는 "정체모를 녀석"이란 말을 이어서 다른 학교 입장에선 지금 카라스노 고교 자체가 그런 녀석들로 보일 거라고 말한다.
* 카라스노는 도시락을 먹으며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관전한다. 네코마의 상대는 코치현의 키요카와 고교. 3학년 WS 야마자키 료지가 에이스를 맡고 있다. 신장 183cm의 스파이커. 상당히 활약하며 네코마의 블록을 공략하고 있다. 아즈마네와 스기와라가 굉장하다고 평할 정도의 기량이지만, 사실 봄고 대회까지 오면 굉장하지 않은 팀도, 굉장하지 않은 선수도 없다.
* 네코마는 만만히 물러서는 팀이 아니다.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를 집요하게 방어하며 랠리로 이어간다. 네코마 측에선 결정적인 공격이 나오지 않지만 팀 전원이 끈질기게 수비에 나서고 키요카와 측은 야마자키에게 공격 패턴이 몰리는 상황이 되자 야마자키의 체력도 한계를 보인다. 결국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는 라인 밖으로 나가며 실점한다. 아즈마네는 그 철저한 수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괴로워한다.
- 하이큐/244화 . . . . 13회 일치
* 자기만 냅두고 동료들이 선전하자 보쿠토는 또 풀죽는데 그때 [[아카아시 케이지]]가 말주변과 응원하러 온 히나타와 야마구치를 가지고 기를 살려놓는다.
* 갑자기 맹활약하는 보쿠토. 여세를 몰아 후쿠로다니 학원이 완승을 거둔다.
* 점심을 먹은 [[카라스노 고교]]는 짧은 자유시간을 가진다. [[사와무라 다이치]]의 허락을 받은 [[히나타 쇼요]]는 부리나케 굿즈를 사러 매점으로 달려간다. [[야마구치 타다시]]도 따라온다. 같은 시각 [[카게야마 토비오]]는 개인정비, [[츠키시마 케이]]는 쪽잠을 취한다.
* 보쿠토는 쇼맨십이 강한 성격으로 관중의 상태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가령 지난 전국대회에선 8회전에 비슷하게 난조를 보였는데, 이때도 저녁 시간에 시합이 잡혀 관객이 적었고 보쿠토는 보는 사람이 적다고 풀죽어버렸다. 올해는 낮시간이라서 방심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경기장이 메인 아레나가 아니라 서브 아레나라는 걸로 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방금 전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러 메인 아레나에 갔던게 결정적. 관객 수가 너무 차이가 나는 걸 자각해 버린 것이다.
어쨌든 [[와시오 타츠키]]는 보쿠토에 대한 문제를 접어두자며 이렇게 정리한다.
* 그 말처럼 여기서부터 후쿠로다니의 반격이 시작된다. 보쿠토는 여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지만 다른 동료들이 분발하면서 한 점씩 따라잡기 시작, 어느새 스코어는 15 대 14로 한 점차까지 따라온다. 중계석에선 에이스가 저조한데도 착실하게 점수를 버는 후쿠로다니를 칭찬한다. 반대로 에이와 고교는 에이스가 봉인됐는데도 선전하자 혼란스러운 양상.
* 고르게 활약하는 동료들. 그 와중에 미적거리는 보쿠토는 그걸로 보고 다시 네거티브해지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걸 캐치한 아카아시는 그의 안전부절이 피크에 오를 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15 대 15로 동점. 에이와 고교가 첫 번째 TO를 부르자 아카아시가 움직인다.
>여기는 말하자면 "센터 코트"입니다.
* 이야기가 먹혀든다 싶자 아카아시는 쐐기를 박을 방법을 찾는다. 그때 관중석에 적당한 소재가 눈에 띈다. 그는 보쿠토의 "제자"가 보러왔다며 관중석을 가리킨다.
* 경기는 부활한 보쿠토의 활약으로 여세를 몰아 세트 스코어 2 대 0으로 후쿠로다니의 완승. 카라스노 경기를 보다 넘어온 바보 커플도 후쿠로다니의 활약을 지켜본다. 경기 종료후 아카아시는 [[사루쿠이 야마토]]와 "카라스노의 1학년들이 와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카아시는 설사 그들이 없었더라도 다른 계기를 만들어서 분위기를 띄웠을 거라 장담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가끔은 보쿠토를 아주 무시해버리는게 속편할 거라고 말하는데, 아카아시는 어차피 자신이 끌어내는 보쿠토의 힘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무엇보다 절호조인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사루쿠이는 그걸 본인에게 말해주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코노하는 그러면 괜히 까불게 된다고 말린다.
- 하일권 . . . . 13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2006년 파란 웹툰에서 연재하여 총 조회수 1천만 회를 넘기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외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자괴감에 빠져 ‘외모 바이러스’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고, 이발사 ‘삼봉’이 저마다의 상처를 안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준다는 이야기이다. 하일권의 작품들 중 첫 연극화가 되어 2011년 11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공연하였다. 2012년 5월 2일부터 연극이 다시 열린다. 2012년 3월 네이버에서 재연재되고 있다.
2007년 스포츠 조선에 연재된 만화이다. 14년 전 딸과 헤어진 전직 조폭 두목이 자기의 아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인의 유언으로 집에 같이 살면서 딸을 돌보라는 말에 두목은 조폭 일에 손을 떼고 아버지의 친구라는 설정으로 딸과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9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3단합체 김창남>을 연재하기 전에 기획하였던 수영만화를 조금 수정, 각색하여 준비하였다. 중학교 때 1등과 반장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배수구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수영복을 달라고 하여 변태로 오인받게 된다. 결국 배수구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배수구는 수영복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수구부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눈 감아주는 대신 여장을 하고 수구부에 들어오라고 배수구에게 제안한다. 결국 배수구는 김소녀라는 가상의 이름을 가진 소녀로 수구부에 들게 되고, 수구부에 들어오면서 자기와 같은 갈등과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면서 그 갈등을 견디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WATERCUB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2011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때밀이인 주인공 허세는 우연히 목욕탕 금자탕에 피신하게 되고, 그 곳에서 회장에게 목욕의 신 태미러스의 손을 가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허세는 결국 금자탕의 목욕관리사가 되고, 때밀이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꿈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일권 역대 만화 중 가장 높은 누적수를 기록하였다. 또한, 만화에서 나온 목욕투의 폭발적인 인기의 힘입어 목욕투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었고, 2012년 4월 영화화가 결정되어 2013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화가 결정되었으나, 불발되었다.연출자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지만, 제작사 문와쳐 측에서 제작 중단설을 부인.
관계자는 스케줄상의 이유로 당초 연출자에서 다른 감독으로 대체되었고, 케스팅 또한 감독이 재진행 할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김기두'가 여자친구와 첫날밤을 맞게된 날, 갑작스레 납치가 되고 자신이 '슈퍼정자'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 하쿠다 켄 . . . . 13회 일치
'''하쿠다 켄'''({{llang|ja|白田 健}}, はくだ けん, [[1951년]] ~ )은 [[대한민국]] 출생의 [[일본]] 기업인으로서,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의 큰조카이자 현재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켄 백 하쿠타'''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백남준]]의 큰형이자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섬유 기업 태창방직(방림방적의 전신)의 회장이었던 백남일의 장남으로 '''백건'''(白健)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1960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일가족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태창방직이 [[대한민국]] 정부에 몰수당하게 되자 부모와 일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 귀화하여 이 때 이름을 일본식으로 하쿠다 켄(白田健)으로 개명하고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한 후 그는 [[미국]] [[뉴욕]]의 백남준 스튜디오와 백남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아, 현재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의 이사이자 백남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작품 관리와 기념사업 등을 책임지고 있다.
== 참고 자료 및 출처 ==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218.html ‘백남준’ 유분 들고 온 ‘일본 국적 한국인’ 조카 켄 백 하쿠타], 《[[한겨레]]》 2006년 3월 16일자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248457 기자수첩 : 편히 눈감기 어려운 백남준], 《[[연합뉴스]]》 2006년 3월 19일자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79539 백남준 대리인측 "정부 기념사업 협의없이 진행"], 《[[경인일보]]》 2011년 5월 4일자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1972277 백남준 아트센터 2월 완공...저작권 상속자 하쿠다씨 방문] , 《[[뉴시스]]》, 2008년 2월 22일자
- 허범욱 . . . . 13회 일치
| 순자산 =
| 전임자 =
| 후임자 =
| 배우자 =
| 자녀 =
2009년 첫 단편 애니메이션 《평범한 식사》를 자력으로 제작하였다. 2010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교육과정에 애니메이션연출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며 2011년 12월부터 교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연구과정을 시작하였다. 2015년 《창백한 얼굴들》로 제18회 홀랜드 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민섭 (1983년)|김민섭]]과 유년시절 친구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삽화를 그려주었다.<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필모그래피|url=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41358&v=i|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7%88%EB%B2%94%EC%9A%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94376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40&aid=0000028389|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창백한 얼굴들’, ‘사이비’ 이어 세계 4대 애니 영화제 대상 쾌거|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130704|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 HAFF 그랑프리 수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46193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창백한 얼굴들', 홀랜드애니페스티벌 장편 대상|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482651|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2014년 : 《창백한 얼굴들》<ref>부제 : 나는 왜 이 땅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가?</ref><ref>{{뉴스 인용|제목=《창백한 얼굴들》 소개|url=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405904|출판사=네이버 책|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 홍서범 . . . . 13회 일치
|배우자 = 김건희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영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영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 [[2013년]] [[JTBC]] 《[[유자식 상팔자]]》
* [[2018년]] [[E채널]] 《[[내 딸의 남자들 : 아빠가 보고 있다]]》
* 홍서범 5집 RETURN TO ROCK (그래, 영희야 놀자, 그대 떠난 이밤에)(2008)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13회 일치
[[일본]]의 [[도시전설]]. 화장실에 나온다는 여자아이의 '유령'. 3칸째의 하나코 씨(3番目の花子さん)라는 명칭도 있다.
* 시마네 현 : 화장실의 하나코 씨가 놀자고 부를 때, 거절하면 쫓기게 된다.
* 카나가와 현 : 여자 화장실에 하나코 씨, 남자 화장실에 요스케 씨가 있으며, 부르고 나서 3초 이내에 도망가지 않으면 살해당한다.
* 효고 현 : 여자 화장실 1번째 칸에 하나코 씨의 아버지--아버지 왜--, 2번째 칸에는 어머니, 3번째 칸에는 하나코 씨, 4번째 칸에는 여동생, 5번째 칸에는 남동생이 있으며, 남자 화장실 2번째 칸에는 할아버지가 있고--할아버지만 왜--, 이 유령들에게 말을 걸면 "우리 하나코에게 무슨 용무냐?"라고 말한다.--친절함--
* 도쿄도 : 3층 여자 화장실 안에서 "하나코 씨-"라고 부르면 "뭐-니?"라고 대답하며, 16시 지나서 "하나코 씨, 미안해요"라고 말하면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 사이타마 현 : 화장실 4번째 칸에서 15번 노크하고 "하나코 씨 놀자"고 말하면 "네"하고 대답한다.
1937년, 토오노에서 어느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며, 아내와 아들, 두 딸로서 5인 가족이었다. 이 가족은 토오노 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는 경찰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여자 버릇이 나빠서, 어느날 창녀와 둘이서 온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을 알게 된 아내는 질투한 나머지, 가족동반자살을 하고 말았다. 먼저 아들과 둘째 딸을 교살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이쿠코(いく子)는 무서워서 관사에서 학교로 도망쳐서 체육관 뒤에 있던 공동 화장실에 숨었다.
그런데 그것을 청소부 아저씨가 목격하였고, 어머니가 찾아와서 무서운 얼굴로 딸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자 아저씨는 이쿠코가 화장실 개인실 안쪽 세번째 칸에 있다고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무서워하는 이쿠코를 데려갔는데, 다음날 아침 가족은 동반자살한 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로, 토오노 초등학교 체육관 뒤의 공동 화장실 안쪽 세번째 칸에서, 노크를 하면 아무도 없는데 노크가 3번 되돌아오거나, 있을 리가 없는 여자아이를 목격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12회 일치
기룡전이 끝나고 카와모토 자매는 여행을 마무리한다.
* 후지모토 라이도는 시합 후에 주변 사람들을 챙겨주며 모래찜질 명소도 알려준다. 키리야마 레이와 카와모토 자매는 모래찜질을 하러 갔다
* 라이도는 캬바레 아가씨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반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딸과 아내가 보기엔 '''철저히 호구 잡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아가씨는 라이도의 시합을 다 보지도 않고 사라져서 문자나 보내고 있다
* 후지모토가의 여자들은 시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이런 점들을 조목조목 지적, 라이도가 할 말이 없게 한다'''--무서운 여자들--
* 카와모토 자매는 자신들의 일과 겹쳐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만 '''"어느 쪽을 골랐든 지금 이쪽을 골라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인생을 살자"'''며 생각을 정리한다.
* 객관적으로 보면 라이도가 천하의 개썅놈이지만, 왠지 너무 불쌍하게 차여버린 데다 혼자 좋아라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2ch 막장판에나 있을 법한 인물--
* 후지모토가의 여자들이 너무 카리스마가 강해서 오히려 라이도가 연약해 보일 지경이다.
* 거의 에피소드와 무관할 거 같았던 카와모토 자매는 아버지의 일과 겹쳐서 생각해볼 거리를 남겨주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2회 일치
'''K리그 우승자가 누군지. FA컵 우승자가 누군지 궁금하기보다 승강여부가 더욱 흥행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한 대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K리그의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부터 적용된 공식경기이며 리그 외 대회의 성격을 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나온 기록은 클래식-챌린지 어느 쪽에도 기록되지 않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 승강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는 차기 [[K리그 클래식]]에 등록되고, 패자는 [[K리그 챌린지]]에 등록된다.
클래식 팀은 스플릿 B의 차하위 팀(=11위)이, 챌린지 팀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차기 K리그 클래식 진출을 두고 겨루게 된다.
1. 경기진행은 [[홈 & 어웨이]]를 골자로 한다. 1차전은 챌린지 팀의 홈에서 치루고, 2차전은 클래식 팀의 홈에서 치루게 된다.
1. 승자결정 방식은 누적 득점 방식을 따른다.
2013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승강 플레이오프가 3번 열렸지만 '''단 한번도 K리그 클래식 팀이 승자가 되어 잔류에 성공한 이력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팝콘을 뜯게 만드는 동인이 되며 챌린지 진출팀에게는 희망을, 클래식 진출팀에게는 절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엄밀히 말하자면 대다수의 팀들에게 있어 남일과도 같지만, K리그 팬들에게 있어서는 '''내년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경기'''다. 각종 대회의 우승은 가시권에서 멀어지면 그대로 대다수의 팀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 되지만 이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그 결과에 따라 내년에 함께할 팀이 정해지며, '''승격팀에게는 팀의 부흥'''을 가져다 주고 신흥 강호가 될 가능성을 선사하지만, 패자팀에게는 '''끊임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팀에서 임하는 자세가 라이벌전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해당 팀의 팬들은 물론이고 여타 팀들에게 있어서 팝콘뜯기 아주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셈. 덕택에 K리그 클래식 스플릿 나누기나 FA컵 결승전을 뛰어넘는 흥행 카드가 되는 마술이 펼쳐진다. 팬들에게 있어선 우승에 대한 열망보다 승강이 더욱 중요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2회 일치
역사상 두번째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이며, 사상 최초로 [[K리그 클래식]]에서 시즌을 보낸 적이 없는 팀이 최종 승자가 된 대회이다.
||<|3> 득점선수 || 자파(20) || || 타라바이(33) ||
|| 김영광(55)[* 자책골] || || 전민광(49) ||
|| MOM ||<-3><:>자파||
2015시즌 양 팀의 상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한 수준이었던데다가 무승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한 "무승부시에는 홈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라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무승부가 나왔고, 이에 3위팀(홈)인 수원 FC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광의 실책으로 발생한 자책골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김영광은 전후반 90분동안 21개의 슈팅중에 15개나 유효슈팅이었던 수원 FC의 날카로운 공격을 잘 막아냈을 정도로 활약은 준수했다. 자책골에 묻혀버렸을 뿐.
|| || || 자파(34) ||
|| MOM ||<-3><:> 자파 ||
대구는 [[K리그 챌린지]]에서 후반기 부진으로 [[K리그 클래식]] 자동진출권을 놓쳤기 때문에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2015시즌 대구는 수원을 상대로 1승 1무 2패로 상성마저 최악이었는데다가 대구가 챌린지에 합류했던 2014년부터 수원 FC와의 홈경기는 '''단 1승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을 믿을 수 있는건 무승부로 시합을 종료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자파가 역전골을 넣으며 대구는 급격히 무너졌고, 수원FC는 특유의 적절한 반칙으로 대구의 흐름을 끊는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날 나온 총 반칙수는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 48개였고, 이 중 31개가 수원FC가 저지른 반칙이었다. 오프사이드까지 포함하면 총 50개가 넘는 반칙수를 기록한 경기였다.
* 사상 처음으로 준PO와 PO의 MOM(자파)이 같은 대회였다.
- head to head . . . . 12회 일치
* 이 항목은 [[승자승 원칙]]과 [[헤드 투 헤드]]로도 들어올 수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맞대면, 스포츠용어로는 "직접 경쟁"을 의미한다. 축구에 한정하면 "승자승 원칙"이라는 용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상대전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사전적인 쓰임으론 face to face와 거의 같은 용어로 쓰이지만, 스포츠계로 넘어오면 제1순위결정기준으로 순위를 정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동점간 직접비교를 통한 순위결정방식을 가리키는 단어다. 애초에 이 용어 자체가 상대전적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걸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리그의 순위결정방식이 월드컵과 같이 "승점 - 골득실 - 골득"순으로 정했던 것이 "승점 - 승자승 - 골득실 - 골득"이라는 기준으로 개편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또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도 리그의 최종순위 결정방식에 승자승을 도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승자승 방식에 대한 정보가 축구팬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이 규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대회이며, 매 시즌마다 이 규정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팀이 꼭 생길 정도로 대회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2016시즌만 봐도 A조의 [[알 이티하드]], G조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각조 2위에 비해 골득실이 높았지만 이 원칙에 의해 순위에 밀려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승자승이라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단순히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까지도 고려해 평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난감한 경우이기도 하다. 상대전적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번역하기 까다로우므로 오히려 마케팅이나 라디오처럼 발음 그대로 쓰는 편이 나은 용어로 보인다. 상대전적을 가리키는 헤드 투 헤드일 때는 "상대전적"으로 번역하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한 우위비교일 때는 헤드 투 헤드로 부르는 게 낫다는 이야기.
- 강연재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정당 = [[자유한국당]]
* [[신명여자고등학교]]
* [[2016년 1월]] : 미래창조과학부 전자문서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 위원
* 자유한국당 당대표 법무특보
* ~ [[2018년 9월]] : 자유한국당 노원구 병 당협위원장
{{선거기록/KR/개인 |[[2018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6.13 재보선]] | 20대 | 국회의원 | [[서울 노원구의 국회의원|서울 노원구 병]] | 자유한국당 | 13,297 표 | 14.48 | 3위 | 낙선 | }}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신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안철수]][[분류:홍준표]][[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
- 고준희 . . . . 12회 일치
|형제자매 = [[고아성]].[[아이린(레드벨벳)]].[[시노자키 아이]]
| 《[[일년에 열두남자]]》
| 《[[추적자 THE CHASER]]》
| 구자경
|rowspan=2|2006||[[삼성전자]]||케녹스 (카메라)||[[장동건]]
|rowspan=2|2011||세이브더칠드런, <br />GS홈쇼핑, <br />[[CJ E&M]]||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2015 ~ 2016||쿤룬코리아 ||난투 전장의 지배자 with NAVER (게임)|| [[정우성]]
* [[2012년]] :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 《[[추적자 THE CHASER]]》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1년 데뷔]][[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권민중 . . . . 12회 일치
[[분류: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불타는 청춘의 역대 출연자]][[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 '''학력''' || [[남한강초등학교]][br][[충주북여자중학교]][br][[충주예성여자고등학교]][br][[청주대학교]] 무용학과 ||
||<|4> 1998년 || KBS2 || [[킬리만자로의 표범(드라마)|킬리만자로의 표범]] || 수미 || ||
||<|4> 1999년 || [[MBC]] [[베스트극장]] - 아빠 애인의 남자친구 || || ||
|| SBS || [[여자만세]] || 정아 || ||
||<|3> 2001년 || MBC || [[가을에 만난 남자]] || 미나 || ||
|| [[자카르타(영화)|자카르타]] || || 우정출연 ||
||<|2> 2015년 || [[위선자들]] || 조진아 || ||
* [[2013년]] [[QTV]] 신동엽과 순위 정하는 여자
- 김민서(배우) . . . . 12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2, other1=대한민국의 경매사, other2=프로듀스 48 참가자, rd1=김민서(경매사), rd2=김민서(2002))]
|| '''데뷔''' ||[[1999년]] 민트 1집 "향기"(가수) [br] [[2008년]] [[SBS]] 드라마 '사랑해'(연기자)||
원래는 1999년 12월 9일에 3인조 힙합 걸그룹 민트로 데뷔해 약 10개월 정도 활동했는데 대표곡으로는 'Passion', 'The End'가 있다. 당시 멤버구성은 오지선(1986년 1월 2일 생), 강혜경(1985년 8월 24일 생)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유튜브에 MBC 음악캠프의 Passion의 공연 영상이(2000년 8월 12일자와 10월 28일자의 두개.) 올라와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오랜 공백기를 가진 후 [[2008년]]부터 연기자로 전업했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악역으로 출연했지만, 사실 악역이라기보다 [[짝사랑]] 전문(?) 배우다. '[[동안미녀]]'에서의 디자인 실장,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의 중전 [[윤보경]], [[성균관 스캔들]]의 기녀 [[초선]], '[[7급 공무원(드라마)|7급 공무원]]'의 요원 [[신선미]] 등 대부분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성에 대한 짝사랑을 하다 맺어지지 못하는 캐릭터다. 주인공과 연적 관계라서 관계도상 악역.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여자 [[누드]]까지 그려 봤다고 한다. 동료 배우들과 작품 전시를 한 적도 있다. '[[7급 공무원(드라마)|7급 공무원]]'에서 맡은 신선미가 그린 그림도 모두 김민서가 직접 그린 것이다.
[[아임 쏘리 강남구]]의 종영과 함께 [[FNC엔터테인먼트|FNC]]에서 FA로 풀리자마자 절친인 [[최강희(배우)|최강희]]를 따라 [[2017년]] 6월 30일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 현대자동차
* SBS [[나쁜남자(드라마)|나쁜 남자]] - 여기서는 선한 역.
- 김새해 . . . . 12회 일치
'''김새해''' ([[1986년]] [[12월 11일]] ~ )는 [[대한민국]]의 여자 [[성우]]이다. [[2009년]] [[투니버스]] 7기 공채 성우로 데뷔하였다.
* [[닌자보이 란타로]] - 자라
* [[레터비]] - 여자1
* [[안녕 자두야]] - 이은희
** [[안녕 자두야]] 스페셜 - 은희공주
* [[짱구는 못말려]] - 봉미자, 공회전
* [[테니스의 왕자]] ※2011년 투니버스판 - 류자키 사쿠노
* [[썸머 워즈]] - 이케자와 키요미
* 음양사 - 사쿠라, 흡혈귀, 외눈동자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2009년 데뷔]]
- 김성민 (1994년) . . . . 12회 일치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2014년]] [[2월 26일]] [[대한야구협회]]가 그에 대한 자격 정지를 해제함에 따라 차후 국내에서의 선수 활동이 가능해졌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4&aid=0003103089 KBA, ‘선수등록 규정 위반’ 김성민 자격정지 징계 해제], 《파이낸셜뉴스》, 2014년 2월 26일.</ref>
[[2017년]] [[4월 2일]] [[kt 위즈]]와의 개막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구원 투수로 첫 등판을 하였고 [[4월 1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김민성 (1988년)|김민성]]의 별명이 '김우끼'인데 그의 이름은 김민성의 이름 두 번째 글자와 세 번째 글자를 바꾼 것과 같아 '김끼우'라고 불린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수자 . . . . 12회 일치
| 이름 = 김수자
| 배우자 =
| 자녀 =
'''김수자''' ([[1957년]] ~ )는 [[뉴욕]],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개념 미술|개념 미술가]]이다. 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다.<ref name="biography">Kimsooja Biography: http://www.kimsooja.com/biography.html</ref>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회화적 질문으로부터 예술과 삶의 조건들을 연계하여 다루어 왔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직면해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 밴쿠버 아트 갤러리(2013), 국제 갤러리(2012), 뉴욕PS1/현대미술관(2001)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tndesign&idx=11956&pageNum=3|제목=SPACE Magazine|웹사이트=www.vmspace.com|확인날짜=2016-11-18}}</ref>
김수자(Kimsooja)는 [[웹사이트]] [[도메인 네임]]을 선정할 때 자신의 성과 이름을 하나의 단어로 합쳐 그것이 개념적으로 암시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한 단어로 된 이름은 성과 이름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정체성이나 결혼 여부,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어 원 워드 네임 이스 언 애너키스트스 네임》(''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이라는 개념 미술 작품에서 이 행위를 기념하였다.<ref><span class="citation web" contenteditable="false">[https://www.artsy.net/artist/kimsooja "Kimsooja"]. </span></ref>
김수자는 1957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김수자의 화가로서의 근본은 그녀의 예술 발전에서 중요한 시작점이다.<ref>Arum Sok, Christina,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paper Abstract, in Kimsooja’s official website: http://www.kimsooja.com/texts/sok_2014.html</ref> 김수자의 "꿰매기" 시리즈는 세계의 뒤엉퀸 모습을 수평면과 수직면의 체계에 합성하여 십자형의 구조를 형성하는 천의 아상블라주를 만든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루초 폰타나]]가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를 날이 선 단도로 꽤뚫었던 것과 같이 김수자 또한 작품의 표면을 꿰매어 더 이상 환상의 화면이 이닌 3차원 구조의 예술을 창조하였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행위 예술가]][[분류:설치미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김쌍수 . . . . 12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 부회장[*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윤종용, [[이학수]]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부잘하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로 삼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기업 부회장 자리는 게임으로 따지면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것이다.], 前 [[한국전력공사]] 사장, 現 [[수원 KEPCO45]] 프로배구단 구단주. 졸업 고교는 [[성의고등학교]].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이다.
* LG전자 고문
*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LG전자 사장
*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
* LG전자 부사장
* LG전자 리빙시스템 사업본부장
* LG전자 전무이사
* LG전자 상무이사
* LG전자 냉장고 공장장
- 김주승 . . . . 12회 일치
* 별자리 [[처녀자리]]
[[대한민국]]의 [[배우]]. 1980년에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하였으며, 그 이후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가 되었다. [[1990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5공비리]]의 큰 손 [[장영자]]의 [[사위]]가 되면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2007년]] 초에 [[이혼]]하면서 그 이후로는 장영자와는 남남이 되었다. [[딸]]이 한명 있었으며, 딸은 전 부인이 데려갔다. 그리고 동년 [[여름]], 지병이던 [[췌장암]]이 악화되면서 결국 [[사망]]하였다.
* [[1993년]] [[MBC]] 미니시리즈 《[[여자의 남자]]》 ... 한영민 역
* [[1997년]] [[SBS]] 월화드라마 《[[여자(동음이의어)#s-2|여자]]》
* [[1998년]] [[SBS]] 드라마 스페셜 《옛사랑의 그림자》 ... 현우 역
* [[2001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행복한 남자》
* [[2002년]] [[KBS]] 드라마시티 《AM를 듣는 여자》
- 김준 (배우)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아내
| 자녀 = 슬하 1녀
'''김준'''({{본명|김형준}}, [[1984년]] [[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이다. 2007년 [[티맥스 (음악 그룹)|티맥스]]의 래퍼로 데뷔했으며,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 (대한민국 드라마)|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화학과
| [[꽃보다 남자 (대한민국 드라마)|꽃보다 남자]]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김지혜(1980) . . . . 12회 일치
* 2000 자유선언
* 1998 [[여자 대 여자]]
* 1998 [[남자 셋 여자 셋]]
* [[피자헛]]
* [[토비즈그룹]] 하프플라자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아이돌 가수]][[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양평군 출신 인물]][[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양수초등학교 동문]][[분류:양수중학교 동문]][[분류:양서고등학교 동문]]
- 김청(1962년 6월) . . . . 12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한혜숙]][br](1987) || → ||<#FFFFA1><:> '''김청[br](1988)''' || → ||<:>[[김혜자]][br][[박원숙]][br](1989) ||
||<#878787> '''{{{#EEE156 출생}}}''' ||<(> [[1962년]] [[6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age(1962-06-01)]세) [br] 쌍둥이자리/호랑이띠 ||
김청의 어머니 김도이는 17살 고등학생 때 어느 아저씨(김청의 생부)를 만나 [[임신]]을 해 미혼모인 상태에서 [[사생아]]인 김청을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가 100일도 채 안 되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 뒤 어머니는 홀몸이 되어 김청을 기르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31204/59322090/1|#]]
1998년, 늦은 나이에 중견사업가 배모 씨와 결혼하였으나 3일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5년여간 자숙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00년대 초반에 복귀하여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 중이다.
* [[별별 며느리]] - 나명자
* [[천상여자]] - 우아란
* [[두 여자의 방]] - [[공복자]]
* [[천만번 사랑해]] - 김청자
* [[유리구두]] - 김현자
- 김하은(1984) . . . . 12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1999년]] MBC 문화방송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고 [[2001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2002년]]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고 1년 후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탤런트 20기로 정식 데뷔하였다.
* [[2005년]] [[KBS1]] 《[[별난여자 별난남자]]》
* [[2006년]] 《[[아파트 (영화)|아파트]]》: 자살녀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4년 태어남]][[분류:199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무안군 출신 인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2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04. '''백열! 각자의 실력'''
* 한편 사걸고교의 요아라시 이사나는 문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며 승리를 거머쥔다.
* 혼자 떨어진 미도리야 이즈쿠는 사걸고교의 여학생에게 습격 당한다.
* Ms.조크와 아이자와 쇼타는 언뜻 선제공격이 유리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며, 오히려 성급하게 공격하는 쪽이 먹잇감이 되는 룰이라 설명한다.
* 라이벌 고교의 학생들은 각자의 개성을 조합한 공격으로 웅영고를 밀어붙인다.
* 하지만 상대도 상체를 하체 속으로 접어넣는 기묘한 개성으로 회피, 아직까지 웅영고가 있는 구역엔 탈락자도 합격자도 나오지 않는다.
* 현장에 있던 전원이 순식간에 탈락. 요아라시가 혼자 120명을 탈락시키고 최초 합격자가 된다.
* 지진에 휘말렸던 미도리야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가 된다.
* 어서 친구들과 합류하려 하는데 전국의 강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묘하게 두근거린다.
* 상당히 정교하게 바람을 조작하는데 학생들이 가진 공만 빼앗아 오거나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것 같아도 정확히 탈락자를 만드는걸 보면 보시와 달리 섬세할지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12회 일치
* 따라서 이 임시면허 시험은 이러한 방향의 시험장이자 발판인 셈.
* 이 시험은 HUC에 의한 채점 외에도 각 히어로들이 자기 개성에 적합한 자리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철저한 모니터링이 이루어진다.
* 그의 난입과 인정사정 없는 빌런활동을 보고 아이자와 쇼타와 Ms.죠크 모두 경악한다.
* 채점자들도 제압능력이 높은 두 사람이 빌런을 요격하러 온 것을 높이 평가한다.
* 요아라시는 왜 불을 쓰냐고 따지고 토도로키는 얼음은 그냥 막히니 불꽃을 쓴 거라며 자기도 요아라시 때문에 성가시다고 투덜댄다.
* 하지만 그는 토도로키를 보자마자 엔데버의 자식이며 그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한다.
* 이들에 실망하게 된 요아라시는 이들 부자만큼은 히어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토도로키는 자신이 엔데버와 같다는 말에 혼란을 느낀다.
* 그들의 다툼을 보고 채점자들은 물론 갱 오르카 마저 "빌런을 앞에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빈정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12회 일치
*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그가 곳곳에 배치된 [[올마이트]] 굿즈를 신경쓰느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 걸 알고 웃음을 터뜨린다.
* 너무나 압도적인 [[서 나이트아이]]의 개성 "예지". 아무리 히어로 덕후인 [[미도리야 이즈쿠]]라도 그의 개성의 전모를 알지는 못했다. 다만 어떤 조건으로, 어떤 범위까지 예지되는건 모르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움직임으로 예지를 뛰어넘고자 시도해본다. 미도리야는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의 움직임을 모방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나이트아이의 주위를 분산시킨다.
* 나이트아이는 여전히 그가 실패하고 웅크려앉은 모습이 보인다고 도발한다. 미도리야는 초초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나이트아이에겐 그것도 감정대상. 위에서는 인간은 쉽게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되며 알고있는 자는 언제나 비전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미 말해줬던 이 같은 마음가짐을 지금 실현하지 못하는 거냐면서, 나이트아이는 볼 수록 그가 원 포 올을 계승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빈정거린다.
* 이번엔 미도리야가 사무실의 집기를 마구잡이로 집어던진다. 이런 공격을 맞추려는 의도는 아니다. 만약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대상의 앞으로 행동"을 보는 거라면, 무작위로 날아드는 잡동사니 전부를 예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올마이트]]의 제자야!
* 이미 3분이 지나버렸다고 선언하는 나이트아이. 시험은 실패다. 그는 미도리야가 말한 "제자"라는 표현이 웃기지도 않는다고 매도한다. 게다가 마지막에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 것도 비웃는다. 고작 작전 하나가 통하지 않았다고 넋을 놔버린 거냐고. 하지만 미도리야가 벽에 부딪힌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이트아이의 예지대로 미도리야는 시험에 실패하고 웅크려 앉았다. 그러나 미도리야가 자신의 도발에 격분한 것만이 아니라 냉정하게 상황과 대책을 고민하고 있었던걸 눈치챈다. 나이트아이는 그 점에 왠지 조금 웃고 만다.
원 포 올은 사용자의 의지에 의해서 계승되는 힘. 말하자면 이건 현실을 체감하고 힘을 양도하라는, 포기시키기 위한 채용이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도장을 찍는다.
* 다음날 미도리야는 인턴으로서 첫 일을 받는다. 임무는 패트롤과 "감시". 팀은 나이트아이와 버블걸, 밀리오와 미도리야로 나뉜다. 현재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과거의 야쿠자, 현재의 "지정 빌런 단체"를 비밀조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차기 보스 "치사키", 통칭 [[오버홀]]은 요주의 인물.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가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전달한다.
* 이마에 뿔이 있는 소녀. 소녀는 미도리야와 부딪히고 넘어진다. 미도리야는 아무 생각없이 쓰러진 소녀를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소녀는 이상할 정도로 울상을 짓고 있다. 난처해진 미도리야 앞으로, 소녀의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히어로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소녀에게 말한다.
>돌아가자 에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2회 일치
* [[올마이트]]가 [[미도리야 이즈쿠]]을 후계자로 정했을 때 거기에 반발한 [[서 나이트아이]]는 반발심으로 [[토오가타 밀리오]]를 육성하기 시작한다.
* 미도리야와 올마이트는 미래를, 운명을 바꾸고자 다짐한다.
그랬던 것을 당사자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성을 띄었다. 미도리야는 잠시 넋을 잃는다.
* 올마이트는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미도리야를 후계자로 정했을 때 당연하겠지만 [[서 나이트아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무개성의 중학생이 그 주인공이라고 하자 나이트아이가 크게 반발했다. 그런 아이가 뭘할 수 있냐는 나이트아이에게,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남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마음 만으론 구할 수 없고 달리 적합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을거 아니냐고 정론을 펼친다.
결국 올마이트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한 채 나이트아이는 항의하는 것처럼 후계자 후보였던 [[토오가타 밀리오]]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게 그 둘의 인연이다.
* 그러나 미도리야는 이미 그 이야기에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올마이트가 죽는다는,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더 신경 쓰였다. 그 예지가 언제 일이고 절대로 바뀌지 않는 거냐고 묻자 올마이트는 태연한 태도로 당시 기준으로 6, 7년 후라면서 먼 미래일 수록 오차는 생기긴 하지만 예지로 본 장면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계산해 보니 예지가 실현되는 시기는 올해나 내년 정도. 미도리야는 현실을 부정하며 올마이트에게 살라고 애원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제 때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미도리야가 보여주었던 변화가, 소심한 무개성의 중학생이 자라나는 모습이 그에게 살라고 말했다.
경찰이 긴급히 히어로를 요청하자 파견된 것이 바로 빅3의 일각 [[하도 네지레]]. 이름처럼 "파동"을 사용하는 개성으로 "소용돌이 파동"이란 기술을 써서 거대화한 빌런 둘을 날려버린다. 발로 파동을 조종해 비행도 가능한 만능 개성. 네지레 특유의 수다스럽고 호기심 충만한 말투는 적을 쓰러뜨리면서도 여전하다.
* 네지레가 타깃을 쓰러뜨리자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가 합동기술 "메테오 파프로츠키즈"로 결판을 낸다. 우라라카가 띄운 건물 파편을 아스이가 혀로 쳐서 쏘아보내는 기술. 빌런들은 완전히 제압되고 사건이 종결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12회 일치
* [[쿠로노 하리]]는 싸움이 길어지는데다 방 바깥의 인기척이 수상하자 미심쩍어 하지만 설마 그 [[오버홀]]이 패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가 조직을 위해서 어릴 적부터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 그가 패한다면, 그런 상황을 상정한다면 적어도 완성품과 혈청만큼은 확보해야 한다. 그러자면 [[아이자와 쇼타]]를 묶어둘 여유는 없다. 그는 즉시 아이자와를 처분해버리려고 한다. [[아마지키 타마키]]가 도착한건 그때였다. 경찰과 합류해 [[토오가타 밀리오]]를 구조한 타마키는 때맞춰 나타나 쿠로노의 공격을 제지한다. 이것으로 마지막 멤버인 쿠로노까지 제압된다.
* 오버홀은 의식이 거의 날아간 상태에서도 조직의 부흥과 위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야쿠자가, 두목이 바보나 빌런취급 당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 상황을 끊고 싶다는 일념이 평생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도 그의 팔은 미도리야에게, 에리에게 뻗쳤다. 그러나 에리의 능력은 한도를 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닿은 것만으로 오버홀의 융합이 "되돌려"져서 무방비하게 내쳐진다. 그때 류큐 등과 함께 히어로 연합군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우라라카 오챠코]]가 재빠르게 오버홀을 제압. 하지만 에리의 폭주와 거기에 휘말린 미도리야에겐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도리야가 되감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 [[아스이 츠유]]는 만신창이의 아이자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이자와가 때마침 정신을 찾는다. 아이자와는 곧바로 무효화 개성으로 에리의 폭주를 제압,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인지 미도리야와 함께 에리도 쓰러지고 만다. 이로써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작전은 완전히 종료. 피해자의 확인과 뒷수습으로 이행한다. 우선 본래 목표였던 에리의 구출은 무사히 완료.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무실에 있던 [[키리시마 에지로]], [[패트껌]]도 구조된다. 랏파도 이때 같이 있다가 어이없이 제압. 오버홀이 감추고 있던 두목도 발견된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신을 수습해 에리를 구급반에게 넘기는데 마침 들것에 실려가던 [[서 나이트아이]]와 마주친다. 그는 호흡기를 단 와중에도 미도리야를 불러세우고 그가 자신이 예지한 것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데 성공했음을 인정한다.
미도리야는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올마이트]]의 전언을 전한다. 꼭 살겠다고, 나이트아이를 볼 낯이 없다는 말을. 미도리야는 꼭 셋이서 만나자며 힘내라고 격려한다. 나이트아이는 실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12회 일치
* 올마이트는 올 포 원이 선대 [[원 포 올]] 계승자 "[[시무라 나나]]"의 이름을 입에 담는걸 듣고 극도로 분노한다.
* 올 포 원은 시무라 나나를 일커러 "이상만 앞설 뿐 실력이 되지 않았던 여자"라고 모욕한다.
* 그리고 '''"원 포 올을 만든 자로서 부끄러울 정도"'''라고 폭탄 발언을 한다.
* 올마이트가 격분하자 그 틈을 타 충격파로 하늘 높이 날려보낸다.
* 그러나 프로 히어로들과 웅영고 관계자들은 경악하며 보도를 주시하고 있다.
* 올 포 원은 [[시가라키 토무라]]가 무너뜨려온 "히어로에 대한 신뢰"에 자신이 결정타를 가해도 되겠냐며 너스레를 떤다.
* 약해진 상태에서 정면으로 공격 받은 올마이트는 히어로폼이 완전히 풀려 버리고 이 모습이 전국의 시청자에게 공개돼 버린다.
* '''시가라키 토무라는 시무라 나나의 손자다.'''
* "히어로는 아무리 무서워도 자신은 괜찮다고 웃는 거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분노로 치를 떠는 올마이트.
* 개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건 올 포 원이 [[뇌무]]를 만든 시점부터 추측되던 거지만 원 포 올 자체가 올 포 원이 만든 것이라는 전개는 충격적
* 시가라키 토무라 또한 히어로의 자식일 거라는 추측이 많았는데 심지어 올마이트의 스승 시무라 나나의 손자였다.
- 대한민국 FA컵 . . . . 12회 일치
대한민국 FA컵의 전신은 1921년에 개최한 '전조선축구대회'와 해방 이후 1946년에 열린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본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K리그가 시작된 1983년을 기점으로 관심이 시들해지고 또 출전 자격이 KFA가 자격을 심사한 뒤에 초청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컵과는 거리가 동떨어져 있었다.
FA컵은 KFA에 등록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자격을 갖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명백하기에 토너먼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라운드를 차별 배정받는다.
원스타 시스템이란, 7라운드 대진을 만들면서 적용하는 일종의 특수한 룰이다. 이는 결승전을 중립지역에서 단판승부를 하던 기존의 FA컵이 흥행을 끌어오지 못하자 적용한 결승전 홈구장 결정방식으로 사용된다.
FA컵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모든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FA컵은 상금규모와 대회 진행에 따른 보상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관계로 초창기에는 리그컵 내지는 그보다 못한 대회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대회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AFC에서 차기 ACL티켓을 부여하고부터는 K리그 클래식 다음가는 권위있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단, 이 규정은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된 완전한 프로팀'''이라지만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즉, 아직까지 K리그 이외 팀이 우승한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실업팀과 같은 세미프로나 대학팀 같은 아마추어가 우승하게 되면 우승팀일지라도 ACL 참가는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화를 했다고는 하나 팀이 사업자등록 및 법인화까지는 AFC의 규정에 적합해도 '''"팀의 선수 전부가 본질적으로 군인 내지는 경찰"'''인 상주 상무와 안산 경찰청은 세미프로팀과 마찬가지로 ACL진출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는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의 신분문제로 완전한 프로팀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
4. 클래식 3위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플레이오프 승자가 될 시에는 H조에 편성(0.5장)
과거 포항이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3.5장이 아니라 4장을 부여하였기에 '''어차피 똑같은 1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FA컵 우승팀이 들어가야 할 F조의 자리를 당시 리그 4위였던 서울에게 바로 넘겨줬기 때문에 서울이 F조 자리로 갔었다. 그리고 0.5장이란 개념이 없던 미비했던 동아시아 조추첨의 경우는 각 국가별로 조별단계에서 겹치지 않도록 국가별 조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이루어졌기에 한때는 리그 2위였던 성남이 E조에 들어가고 우승팀인 전북이 F조 들어가는 등의 상황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동아시아 조편성에 0.5장이라는 특수성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편성이 난감해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K리그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3.5장을 부여받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도 비슷한 논리로 조편성을 위한 티켓부여가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이 경우에는 클래식 우승팀 자격이 더 격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F조에 편성될 자격을 양도하게 되며, 양도받는 팀은 FA컵 준우승팀이 아니라 클래식 2위팀이 된다. 따라서 2위팀이 FA컵을 우승할 때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2회 일치
1라운드는 총 28개 팀에게 참가자격을 부여하였으며, 그 상세는 아래와 같다. 참고로 대학이름 앞에 붙은 지역명은 해당 캠퍼스가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 내셔널리그팀: 경주한국수력원자력(주), 강릉시청, 코레일, 용인시청, 부산교통공사
[[K리그 클래식]]에 속한 팀들은 본선 자동진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K리그의 12개 팀과 예선을 통과한 20개팀이 합류하여 32강 대진으로 토너먼트가 이루어진다. 4라운드(32강)~6라운드(8강)까지는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추첨을 통해 대진과 홈팀을 결정하며, 7라운드 대진은 추첨제와 원스타 시스템을 통해 홈팀과 결승 1차전 경기장을 정하게 된다.
|| 54 || 2016년 05월 11일 || [[수원 삼성]] || : || 경주한국수력원자력(주) || 1:0 ||
|| 76 || 2016년 07월 13일 || 71번 경기의 승자 || : || 69번 경기의 승자 || 0:0 ||
|| 77 || 2016년 07월 13일 || 70번 경기의 승자 || : || 73번 경기의 승자 || 0:0 ||
|| 78 || 2016년 07월 13일 || 68번 경기의 승자 || : || 75번 경기의 승자 || 0:0 ||
|| 79 || 2016년 07월 13일 || 74번 경기의 승자 || : || 72번 경기의 승자 || 0:0 ||
- 드라콘 . . . . 12회 일치
나태하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이나 채소나 과일을 훔친 사람도,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나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처벌하였다. 즉, 경범죄도 사형이고 중범죄도 사형이었다. 사람들이 드라콘에게 경범죄와 중범죄의 처벌이 왜 같냐고 묻자, 드라콘은 중범죄는 더 무거운 벌을 주어야 하는데 사형 이상의 벌이 없어서 같은 벌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의 자료나 기록에 따라서 추정하자면, 드라콘 법 이전에는 피살자의 친족들이 살해자에게 '보복'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가해자가 속죄금을 내면 용서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콘 법은 가해자의 의도에 따라서 구별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에페타이(Ephetai)라는 [[배심원]] 법정을 설치했다. 이 법정에서는 피살자의 모든 '유족'(부모 형제가 살아 있을 경우에는 부모나 형제, 그렇지 않을 경우는 사촌이나 친척)이 용서해줄 경우 사면을 내릴 수 있으며, 유족이 없고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판단되면 프라트리아(Phratria)라는 기관[* 씨족과 부족의 중간 단계. 민주정치 이전에 시민의 명단을 관리했다.]에서 사면 여부를 결정한다. 우발적인 살인의 경우, 국가는 살인자가 아테네를 떠나서 국외로 망명할 수 있도록 안전한 이동을 보장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콘이 법률을 제정하기 10여년 전, 기원전 632년에 킬론(Kylon) 일파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하였는데, 이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알크마이온(Alcmaeon) 가문의 사람들이 그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이 같은 사적 복수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드라콘의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여겨진다.
- 로버트 켈리 . . . . 12회 일치
* 강의계획서에는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끄시오.","앞자리가 비어있으면, 뒤에 앉거나 구석에 앉지마시오."같은 부분까지 있으며, 책상 밑에서 몰래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도 안된다고 한다.
* 졸업생 김모씨에 따르면 수업을 듣다가 성적이 잘 안 나올 듯 해서 한달만에 수강철회를 했으며, 과제를 엄청 많이 내주고 학점도 칼같이 매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발언했다.
* 수업 종강 이후에 종종 학생들이 교수의 집에 찾아가서 영화를 보고, 피자를 먹으며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무비 나이트'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 가정적인 성격으로서, 사적인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으나, 부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하며,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시사영어연구회 동아리의 스피치 콘테스트 심사의원을 거절하기도 했다.
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영국 BBC, 중국 CCTV, 알자지라 등 세계 주요 언론에 출연하거나 글을 기고하고 잇다
2017년 초, [[반기문]] 사무총장의 귀국과 대통령 후보 논란에 대하여, "그는 구식 관료이며 그 점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그를 선택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반기문을 변화를 가져올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매우 '대가 약한 사람'(milquetoast)", "올해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한 '격동의 해'(big year)"라는 언급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남겼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2/0200000000AKR20170112199600009.HTML (참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며, 수업중에 흥분하여 비판 발언을 날리고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된 날에는 수업을 잠시 중단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오자, "박근혜 탄핵으로 브렉시트, 트럼프 현사응로 인한 세계적인 민주주의 쇠퇴 현상이 멈춰졌다. 이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트위터]]에서 발언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4/2017031402097.html (참조)]]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BBC]]와 자택에서 [[스카이프]]로 인터뷰를 가졌는데, 인터뷰 도중에 아이들 2명이 방 안에 들어오는 [[방송사고]]가 터졌다. 처음에는 한 명이 들어와서 스카이프 캠 앞으로 다가오길래 교수가 손으로 가로막았는데, 뒤에서 보행기를 탄 동생까지 들어왔다. 곧이어서 아내가 급히 들어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http://www.etnews.com/20170311000021 (참조)]][[http://time.com/money/4697929/kids-interrupt-live-skype-interview-bbc-funny/ (타임지)]]
[[톰 행크스]]도 이 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54955 (참조)]]
"그날 딸이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 무척 신이 났다. 아들까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들어온 것은) 전적으로 문을 잠그지 않은 내 책임"이라고 방송사고에 자신의 책임을 밝혔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수습을 해줬다"고 아내 김정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방송 사고 후) 다시는 출연 요청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했지만 아이들을 혼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심경에 대해서는 "영상을 보면 내가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놀랍고, 당황했고, 즐거웠으며 사랑스러웠다"고 밝혔다.[[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703150203 (참조)]] 또 하의실종 의혹(…)에 대해서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 마기/316화 . . . . 12회 일치
* 그런데 갑자기 다윗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데...
* 그는 자신이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동안은 전쟁도 기아도 일어나지 않게 제어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 힘이 분산되기 시작하면 어찌해야 좋을지 알지 못한다.
* 하지만 목소리는 끈질기게 유혹한다. 그와 신드바드는 "똑같고" 그 자신도 알마트란에선 유일하게 운명을 볼 수 있는 "특이점"이었다고 말한다.
*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다윗. 신드바드는 자기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다.
* 다윗은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하는데.
* 어차피 아르바가 이기지 못했다면 자신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 그리고 신드바드에게 짊어진 것을 나누어 달라며 혼자서는 밝히지 못할 내일에 대해 함께 생각하자고 한다.
* 신드바드는 알리바바가 자신의 예상을 뒤엎고 전송마법진으로 실적을 일궈낸 것을 들며 알라딘의 의견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동조한다.
* 알라딘의 견해를 헛소리로 일축하며 마기인 그 조차 통찰력이 무르기 짝이 없고 오로지 자신만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고 자만한다.
* 그리고 왜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지 씁쓸해한다.
- 마기/333화 . . . . 12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의 계획은 이랬다. 지금부터 성궁으로 가는 게이트를 연다. 게이트를 통해 성궁에 가면 게이트가 열려있는 한은 계속 마고이를 공급받아 싸울 수 있다. 문제는 게이트가 닫히는 경우. 그때는 그들의 루프가 위대한 흐름의 일부로 흡수돼 간단히 전멸 당하게 되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그럼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데, 알라딘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방해받게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 알라딘은 방어마법 보르그를 시전한다. 쥬다르는 그게 [[연옥염]]의 기술이라고 악취미라고 디스한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그 기술은 원래 아르바가 아닌 여왕 [[시바]]의 것이라고 정정해준다. 알라딘은 그의 어머니의 기술 "보르그 알사므"를 펼친다. 알라딘은 분명한 태도로 "아르바도, 신드바드도, 솔로몬 왕도 못 뚫는다"고 자신한다.
쥬다르는 그가 너무 자신만만한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데 [[연백룡]]은 알라딘은 구세계(알마트란)과 신세계의 마법을 전부 통달했으니 현재 실력은 그 솔로몬 왕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불만스러운 듯 하지만 한 마디도 반박을 못한다.
* 알라딘은 성궁에 가기에 앞서 일단 거기에 가면 자신이 [[우고]]와 결판을 내겠다고 말한다. 그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우고는 미쳤다"고 언급한걸 신경쓰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우고가 협조해서 신드바드가 성궁을 주무르고 있을 거라고 보고 꼭 그와 만나겠다고 말한다. 백룡도 신드바드의 힘을 반감하는 일이라면 해볼만하다고 맞장구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게이트를 열어서 성궁에 가는 방식은 누군가 게이트로 계속 마고이를 공급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넷 중 하나는 여기에 남아야 한다는 것. 불편함 침묵이 찾아오고 알라딘은 얼렁뚱땅 쥬다르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성궁에서 날뛰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며 절대로 남지 않겠다고 한다.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은 금속기 사용자도 가능하기 때문에 연백룡이나 알리바바에게 시키려고 해보는데, 이들 역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왕의 그릇 둘과 마기 둘이 답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만 낭비한다.
* 병림픽 끝에 알라딘이 마고이 전송을 담당할 다섯 번째 동료를 영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신드바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이여야 해서 인선이 어려운 문제. 그때 백룡과 쥬다르가 동시에 "짚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가 잠시 자리를 지키고 쥬다르는 혼자, 백룡은 알라딘의 전송마법진으로 각자 동료 후보를 데려오기로 한다.
* 백룡이 간 곳은 황제국.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연백영]]이었다. 분명 그녀는 알라딘의 연금마법으로 재구축된 채 잠들어 있으니 신드바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금마법은 원래 시간이 걸리는 마법이고 언제 깨어나게 될지는 알라딘 자신도 모른다. 백룡은 아쉬워하며 가져왔던 백영의 금속기는 일단 그녀의 품에 안겨준다.
* 한편 혼자 남아있는 알리바바는 전세계가 신드바드의 수중에 떨어진 지금, 같이 싸울 동료가 남아있다면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섯 번째 동료를 기대한다. 그때 쥬다르가 먼저 동료를 데리고 온다. 거만한 목소리로 "힘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어떤 남자. 그를 본 알리바바는 경악한다.
- 문지애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전종환]]
| 자녀 =
'''문지애'''({{small|'''한자'''}}: 文智愛, [[1983년]] [[4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프리랜서]] [[아나운서]]이다.
* [[JTBC]] 《[[99인의 여자를 만족 시키는 남자|99인의 여자를 만족시키는 남자]]》 (2014)
* [[tvN]] 《[[고성국의 빨간 의자 4]]》
* [[JTBC]] 《[[착하게 살자]]》 (2018) - 해설
*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8) - 오페라~♬ 오페라~♬ 오페랄랄랄라~♬ 오페라하우스! (참가자)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 진행 첫 날인 2008년 1월 7일,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를 진행하는 동안 클로징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중징계를 받아 하루 만에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에서 하차했고,<ref>[http://www.dailian.co.kr/news/view/96911 문지애 아나, 뉴스 멘트 후 웃음 터뜨려], 데일리안, 2008년 1월 8일 작성.</ref> 2008년 1월 8일부터 [[하지은]] 前 아나운서가 [[5 MBC 뉴스|MBC 5시 뉴스]]와 [[MBC 뉴스콘서트|MBC 저녁뉴스]]를 진행하게 되었다.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평 문씨]][[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상명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임실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유튜버]]
- 바키도/134화 . . . . 12회 일치
* 모토베는 당연히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자학적인 말을 한다.
* 하지만 바키는 자신들이 완전히 오판했고 무사시에 대해서도 그렇다며 정중하게 사과한다.
* 모토베는 그런 것도 "틀린건 아니었다"며 대수롭게 넘어간다. 오히려 "모토베에겐 무리다, 정상적인 판단"이라고 자학적인 발언을 한다. 10번 싸우면 10번 다 지는 자신이 괴물같은 투사들을 지키겠다고 했으니, 화낼만도 하다는 것이다.
* 바키는 현대의 투사들을 대표해 그간의 저평가가 완전히 오판이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무사시의 역량까지 잘못봤다고 뼈아픈 반성을 한다. 바키는 자신의 식격이 모자랐다고 인정하며 정중한 태도로 고개숙여 사과한다.
* 그는 이어서 "오우거", 한마 유지로는 이 시대의 신이자 질서이며 놓칠 수 없는 존재라 말한다. 시부카와 고키는 "국보"이자 "무형문화", 오로치 돗포는 "근대 가라데의 아버지"이며 "태양"같은 존재, 하나야마 카오루가 가진 자신만의 "긍지"나 오로치 카즈미의 "가라데의 2대 태양"이란 위치, 두말할 필요없는 인류의 재산이자 동료인 피클. 그 외에도 가이아나 시노기 형제 등 수많은 격투가들을 일일히 거명하며 이들이 모두 빠질 것 없는 "시대의 보물"이라고 칭한다.
|| 그 모두가 각자 연결점을 가진 무사시는 어떻지? ||
* 그때 병실문이 열리며 닥터 쿠레하가 들어온다. 밖에서 듣고 있었는지 모토베가 거명한 것 중에 자기도 있어 한시름 놨다고 농담을 던진다. 그는 마침 무사시에 대해 중요한 소식을 가져왔는데, 무슨 일인지 그가 TV에 나오고 있다는데.
- 바키도/135화 . . . . 12회 일치
* 트럼프는 단 한 명의 남자와 미국이 불가침 조약을 채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지 않는다.
* 그러나 실제 유지로를 만나자 단 몇 초만에 태세전환해서 매우 성실한 태도로 조약을 채결한다.
* 전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백악관에 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그는 "오거"라는 이름을 전해듣지만 아는 바는 커녕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와 불가침선언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는데.
* 트럼프는 전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몇 번이나 질문한다. "대국이 일개 개인에게 불가친 선언이라니". 사실 트럼프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비상식적이라 여길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 들은게 아니며 들은 그대로의 내용이라고 확인해준다.
* 트럼프는 그것을 "알랑거린다"는 표현까지 써가벼 거부감을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다 알랑거린다"고 직설적으로 답한다. 트럼프는 혹시 그가 엄청난 부자냐고 묻는데, 어떤 의미론 맞지만 그것과는 무관한 일이라 설명한다. 다시 트럼프는 그를 체포해버리자고 하는데 오바마는 한숨을 쉰다.
* 그로부터 2주일 후 뉴욕의 어느 호텔. 역사적인 트럼프 행정부와 한마 유지로의 "불가침 선언" 채결일. 트럼프는 훗날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다.
격한 흥분 속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이 "개똥같은 관례"를 종결지을 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텔 최상층에 당도한 순간, "그"를 목격한 순간 확신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어떤 무기보다, 어떤 병력보다 자신이 우위라는걸 그는 뒷모습만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 그 자체 같은 모습. 일국의 대통령을 팬티 바람으로 맞은 유지로는 전혀 담배를 문 채로 말한다.
* 트럼프는 태세전환이 빠른 남자다. 바지에 지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만약"의 경우를 위해 달달 외운 선언문을 열정적으로 낭독해간다.
- 바키도/136화 . . . . 12회 일치
* TV에서 아나운서가 흥분된 표정으로 누군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미 많은 유명인을 만나본 사람이지만 이 사람만은 뭐랄까, 엄청난 박력의 소유자다. 그는 게스트를 맹수에 비유하려다 말실수라고 정정하고 "경력이 자아내는 위용"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어쨌든 강해보이며 시청자들도 잘 아는 이 사람.
* 이 방송은 당연히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파된다. 길거리의 대형 스크린에 무사시의 모습이 나타나자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춘다. 막연히 시대극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 무사시가 보도된 뉴스를 보고 "거기 나온 놈"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몇 명이나 "진짜 무사시"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 무사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나운서는 화들짝 놀라며 "맞는 말이긴 하다"고 당황한다. 하지만 거기서 자중하지 않고 경망스런 말투로 "보통은 400년 전 검호라 하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이다. 아나운서의 왼팔이 떨어진다. 무사시의 에어참격이다. 바키와 같은 격투가는 물론이고 문외한인 아나운서조차 "베여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 무사시는 이걸로 "실물"을 받아들였냐고 묻는다. 아나운서는 자신이 당한 참격을 시청자에게 설명하는데 그 순간 또 에어참격이 날아온다. 이번엔 목이다. 아나운서는 식은 땀을 흘린다.
* 무사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그의 허리춤에는 "보이지 않아야할 칼" 한 자루가 매여있다. 바키와 모토베, 시노기 쿠레하는 물론 Tv로 보던 시청자들까지 한결같이 "허리춤에 뭔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명하지만 분명 "그것"이 있다.
* 번뜩이는 에어참격. 아나운서를 일도양단한다. 이 모습은 Tv를 통해 무려 "전세계로 전파된다. 나뒹구는 아나운서를 뒤로하고 무사시는 자신을 데려온 도쿠가와를 불러 돌아가자고 한다.
- 박수영(연극배우) . . . . 12회 일치
|형제자매 =
2011년 SBS 드라마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에서 인기를 모았고, 2011년 영화 《[[완득이 (영화)|완득이]]》에서 완득이([[유아인]] 분) 아빠 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2016년 영화 《[[덕혜옹주 (영화)|덕혜옹주]]》에서 [[의민태자|영친왕]]으로 존재감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 `7호실` 박수영 "옆집 아저씨 같은 배우로 기억됐으면"|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4053239|출판사 = 매일경제 |저자 = |날짜 = 2017년 11월 22일|확인날짜 =}}</ref>
* 《[[드라마 스테이지]] - 마지막 식사를 만드는 여자》 (tvN, 2018년) - 교도소장 역
* 《[[개인주의자 지영씨]]》 (KBS2, 2017년) - 부동산업자 역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MBC, 2017년) - 김자원 역
* [[2006년]] 연극협회 2006남자연기상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장성군 출신 인물]]
- 박주아(1942년) . . . . 12회 일치
| 본명 = 박경자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박주아'''(<small>본명</small>: '''박경자''', [[1942년]] [[9월 20일]] ~ [[2011년]] [[5월 16일]])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62년]]에 [[한국방송공사|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신우암 초기 판정을 받고 [[2011년]] [[4월 17일]] 수술한 후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 [[5월 14일]] 급작스런 다발성 장기 부전에 빠져 투병하다가 16일 오전 향년 68세로 별세했다.
* KBS 《[[세 자매 (2010년 드라마)|세 자매]]》 ([[1983년]])
* [[문화방송|MBC]] 《[[남자를 믿었네]]》 ([[2011년]])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11년 죽음]][[분류:1962년 데뷔]][[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변정수(배우) . . . . 12회 일치
|| '''성좌/지지''' ||<(> [[양자리]]/[[호랑이띠]] ||
|| '''수상''' ||<(> 2002 MBC 연기대상 인기상[br]2004 SBS 연기대상 시트콤부문 연기자상 ||
1994년부터 활동해 온 모델 출신으로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연기력이 출중해서 현재는 드라마 연기자로 안착한 듯. 1~2년에 한 작품 정도 꼬박꼬박 출연한다. 목소리가 굉장히 허스키한데, 큰 키와 모델다운 날카로운 외모 등이 시너지를 일으켜 주로 맡는 역할은 서브여주, 악녀나 최종보스 계열. 다만 남자 주인공의 주책바가지 누나 역에도 특화되어 있다. [[전설의 마녀]]의 경우 두 가지를 조합한 듯한 푼수 악녀 역할로 인기를 얻었다.
2003년에 뜬금없이 교통사고 사망설이 돌았다. 한 여대생의 자작극에 따른 것으로, 범인은 자수했다고 한다. 이후 소위 '찌라시'나 연예인에 대한 악성 루머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자기관리에 굉장히 철저한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 MBC [[위기의 남자]](2002) - 윤나미
* MBC [[앞집 여자]](2003) - 애경
* SBS [[첫사랑]](2003) - 홍영자
*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2004) - 장승리
* MBC [[최고의 연인]](2015) - [[고흥자]]
- 블랙 클로버/70화 . . . . 12회 일치
* 바네사와 핀랄은 마력이 아예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싸우는 아스타를 보고 자신들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는다.
* 노엘 실버는 바네사와 핀랄이 대단한 실력자임을 세삼 깨닫는다.
* 반마법의 검이 자가재생을 촉진하는 마나의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 베토는 현재 자신을 쓰러뜨릴 유일한 수단이 아스타의 반마법 검이라 본다.
* 베토는 따로따로 였으면 쓰레기였을 녀석들이 모여서 자기와 싸울 수 있게 됐다며 "구역질이 난다"고 폭언한다.
* 바네사는 베토가 움직임을 따라잡을 듯 하자 한계 이상으로 스피드를 올린다.
* 고향을 등지고 검은 폭우에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고, 운명의 실은 자신의 손으로 끌어 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 비록 지금은 동생을 이길 방법이 없지만 그런 자신도 받아준 야미 스케히로가 있고 검은 폭우단이 있다.
* 그는 자신이 최강이 되는게 아니라 "검은 폭우를 최강의 기사단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 핀랄은 자신을 믿고 뛰어들라고 소리치고 아스타는 "이미 더할나위 없이 믿고 있다"며 돌격한다.
* 그러나 바네사와 핀랄은 자신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아스타를 절대로 배신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 보조한다.
* 핀랄은 사용하는 마법의 수준 때문에 명문가 자재로 예상되었는데 결국 맞았다.
- 서태화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서지영 (1968년)|서지영]](누이동생)
* 2010년 《[[이웃집 남자 (2010년 영화)|이웃집 남자]]》 ... 민석 역
* 2010년 《[[무적자]]》 ... 조 검사 역
* 2013년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 ... 의상 디자이너 역(특별출연)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포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맨해튼 음악학교 동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유튜버]][[분류:대한민국의 요리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 소진은 . . . . 12회 일치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다시 관계로 돌아와 총독부 군수직을 지냈다. [[평안북도]] 선천군수(1937년 8월 6일), 의주군수(1941년 3월 31일 임명)를 역임했다. 1938년 8월 1일 당시에는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으며, 그밖에 쇼와 대례 기념장(1928년 11월 16일), 훈8등 서보장(1930년 2월 12일), 훈7등 서보장(1933년 9월 4일), 훈6등 서보장(1935년 9월 9일), 훈6등 단광욱일장(1940년 4월 29일), 훈5등 서보장(1941년 8월 9일), 일본적십자사 유공장(1944년 12월) 등을 받았다. 특히 훈6등 단광욱일장은 선천군수 재직 시절 [[중일 전쟁]] 당시에 군대의 숙영 및 급식, 군용물자의 조달, 군대 군인 및 파견 가족의 후원 및 위로, 국채 소화 및 저축 장려,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 국방 사상 보급 및 선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여 받은 것이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경시 부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와 경찰 부문에 수록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5남 3녀의 자녀 중 3남이 대한민국 외무공무원이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낸 [[소상영 (1922년)|소상영]]이다.
== 참고자료 ==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소씨]]
- 슈퍼걸(드라마)/1시즌 1화 . . . . 12회 일치
하지만 클립톤의 파괴로 카라는 [[팬턴존]]에 처박혀서 24년의 시간이 지나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카라는 슈퍼맨이 된 칼엘에게 발견되어, 슈퍼맨의 주선으로 과학자 부부 덴버 가족에게 입양된다.
카라는 자신이 해낸 일에 매우 기뻐하지만, 알렉스는 카라가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출근을 하자 카라는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
카라는 윈을 옥상으로 불러내서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윈은 카라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는 건 줄 오해했다가 사실을 고백해도 믿지 않는다. 카라가 투신했다가 날아올라 보이자 겨우 믿는다.
한편 사실 비행기 추락은 외계인 범죄자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외계인 발톡스는 "장군"의 도착에 대비하라는 지령을 받고, 특히 카라의 어머니 알루라에게 원한이 있어 카라에게 격렬한 증오심을 드러낸다.
카라는 윈이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경찰 무선을 해킹해서 얻은 정보로 여러 범죄와 사건들을 해결한다. 그러다가 카라는 DEO 에이전트에게 붙잡힌다.
에이전트 행크 헨쇼는, 카라가 추락하는 것과 동시에 클립톤의 범죄자들을 모아둔 포트 로즈 역시 지구에 추락했다는걸 알려준다. 행크는 카라의 힘이나 정의의 편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고 카라는 상심한다.
다음날 출근한 카라는 "슈퍼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걸 알게 된다. "슈퍼걸"이라는 이름에 불만을 품은 카라는 그랜트에게 화를 내서 해고당할 뻔 하지만, 제임스가 자신이 가져온 슈퍼걸의 선명한 사진을 카라가 구한 것이라고 하면서 끼어들어서 무사하게 된다.
포트 로즈에서 뛰쳐나온 많은 악당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으며,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걸 느끼게 된 카라는 크게 상심하여 집에 틀어박힌다.
카라는 발톡스와 대결을 벌이며, 알렉스의 작전에 따라서 히트비전으로 발톡스의 도끼를 파괴한다. 중상을 입은 발톡스는 다음에 더 강한 적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며 자결한다.
다음날 제임스는 자신이 슈퍼맨에게 들어서 카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밝혀준다. 제임스는 카라에게 슈퍼맨이 전해준 선물을 준다. 선물은 클립톤에서 칼 엘에게 맡겼던 담요, 부서지지 않는 천으로 카라는 망토를 만들게 된다.
- 스트라테고스 . . . . 12회 일치
스트라테고스란 '군사적 지도자', '군사령관'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그리스어에서 이는 주로 고위 군사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시대별, 국가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장군]]'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스트라테고스는 투표로 선출되는 장군직이었다. 스트라테고스(복수형으로 스트라테고이)는 10인이 선출되었고, 투표로서 전략적 방침을 정했으며, 매일 1명씩 돌아가면서 정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민주정을 채택한 아테네에서 스테라테고스는 실질적으로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이었으며 현대의 내각과 비슷한 위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평시에는 정무를 보며 전쟁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선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다만, 10명의 스트라테고스가 전부 다 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대체로 1,2명 정도가 원정에 나서고 나머지는 정무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후후. 그놈은 우리 10인의 스트라테고스 가운데 최약체지."--
아테네 이외의 다른 그리스 폴리스에서도 스트라테고스라는 말은 쓰였는데, 폴리스의 지도자나 장군을 나타내는 직위로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른 폴리스의 정치구조는 아테네와는 달리 자료가 부족해서 확실하게 어떤 지위였는지 알 수 없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필리포스 2세 이후로 스트라테고스를 특정한 지역에서 왕의 권력을 대리하는 장군-지방장관의 직위명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전례는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어받은 헬레니즘 왕국에서도 이어져서, 스트라테고스는 특정 지역의 군사를 지휘하는 장군이자 지방의 행정을 처리하는 장관의 권한을 가진 직위가 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스트라테고스는 마기스테라 우트리우스 밀리타리에(magister utriusquae militiae)로 불렸으며, 이들은 서로마 제국의 군권을 거의 완전히 통솔하는 직위였으므로 때문에, 황제의 후견인이면서 때때로 사실상 황제를 능가하는 실세 권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제국 말기에는 마기스테르 밀리툼과 황제의 권력관계가 역전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리키메르는 거꾸로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마음대로 죽이고 폐위를 반복하며 농락하였다. 서로마 최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은 [[훈 족]]의 [[왕]] [[아틸라]]를 따르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로서, 그는 자신을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임명한 [[율리우스 네포스]] 황제를 몰아내고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삼았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게르만 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패배하여 사망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면서 서로마 제국은 소멸한다. 이로서 서로마의 마기스테르 밀레툼 역시 사라지게 된다.
근대 그리스 왕국, 현대 그리스 공화국에서 스테라테고스(stratigós)는 4성 장군에 해당하는 군사 계급으로서, 그리스 군의 최고 계급이다. 과거에 그리스 왕국에는 이보다 상위계급인 스트라타체스(Stratarches, '군의 지배자' 라는 의미)가 존재하였다. 이는 [[원수]]에 해당하는 군사 계급으로서 국왕이나 왕실 가족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 주로 부여되었으며, 몇몇 퇴역장성에게 주어지는 명예 지위로 쓰였다. 하지만 그리스 왕정이 폐지된 이후로 이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러독스 인터렉티브의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도 그리스계 문화권 군주가 공작위급 지방관직[* 캐릭터가 죽으면 후계자가 있어도 주군에게 돌려받아지는 직위]을 하사받으면 가지는 작위로 나온다.
- 식극의 소마/169화 . . . . 12회 일치
* 소마가 입학하기 얼마 전, 죠이치로는 센자에몬과 만난다.
* 죠이치로는 아자미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하며 센자에몬은 아자미가 에리나를 손에 넣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한다.
* 센자에몬은 대책을 고심하지만 죠이치로는 자기들이 나서봐야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며 에리나를 구할 수 있는건 바로 동년배의 친구들일 거라고 말한다.
* 히사코가 에리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법썩을 떨고 다니자 타도코로는 "소마의 방에 있다"고 알려준다.
* 하지만 소마는 자기도 죠이치로에게 배운 솜씨라며 유키히라가의 맛을 본다면 뭔가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설득한다.
* "자신작을 먹여주겠다"며 묘한 웃음을 짓는데, 기숙사생들이 보기엔 "엽기요리에 도전할 때의 표정"이다.
* 타도코로는 소마에게 무슨 생각이 있을 테니 믿자고 하는데, 맨날 꽝요리에 희생 당하는 그녀가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다.
* 에리나는 자신도 어려서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는 저런 표정을 지었을 텐데, 어느 새 세상의 떼가 묻으면서 그런 표정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고 씁쓸해한다.
* 아리스와 학원에 입학할 때도 아리스는 의욕에 불타는데 비해 자신은 진심으로 즐겁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우울해했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12회 일치
* 시험은 단순히 아자미의 조리법을 재현하는 걸로 진행되고 학생들은 의미도 모르면서 조리법을 답습하는데 급급하다.
* 시험관은 성공적으로 반역자팀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데 시험종료 30분을 남기고 소마 일행이 돌아온다.
* 시험은 진행되고 하나둘 합격자가 나온다.
* 아자미의 조리법을 그저 재현할 뿐인 요리가 제출된다.
* 학생들은 왜 그런 처치를 하는지 이해도 못하면서 아자미가 했던 대로 따라하는데 급급하다.
* 종료까지 30분 밖에 남지 않자 시험관은 반역자 떨구기가 성공했다고 희희낙락하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브라인 연어를 취급하는 업자를 찾아내 무사히 인수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반역자를 처단한답시고 1학년 베스트8을 한 팀에 몰아놓은 인선 덕에 역관광을 당한다.
* 여름 연어 유안야키. 유자로 만든 양념장을 발라 구워낸 양념구이다.
* 사실 보통 조리사 시험도 주어진 레시피를 그대로 조리하는 거니까, 결국 아자미가 하는 짓은 평범한 조리학원 하나 만드는 것.
* 게다가 문제 유출에 불법과외까지 했으니 교원자격증은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 식극의 소마/175화 . . . . 12회 일치
* 소마팀을 포함 무리없이 시험을 통과한 반역자팀.
* 시험관은 이번에야 말로 반역자를 일소하겟다고 벼르는데
* 시험관은 이들을 떨구지 못해 통탄하는데 다른 방에서도 반역자들은 누구도 탈락하지 않았다.
* 그리고 반역자 전원 통과라는 이변에 술렁거리는 시험관 일행.
* 합격자들은 식사를 마친 후 열차에 탑승, 밤새 달려서 내일 새벽 2회전 시험장에 도착하게 된다.
* 또 마지막엔 소마가 찾아와서 연어껍질 튀김 과자를 권한다.
* 그러자 소마는 타도코로가 한 말 때문이라는데, 타도코로는 기숙사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에리나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소마는 모두가 에리나에게 고마워하는 거라고 하자 그녀는 자신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츤츤댄다.
* 잡목림을 빠져나가자 객실에서도 멋진 밤하늘이 보인다.
* 에리나는 거기에 자연스럽게 딴죽을 걸면서 어울리는데, 전처럼 소마가 거리껴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 다음 시험에선 반역자를 일망타진하겠다고 벼른다.
- 식극의 소마/178화 . . . . 12회 일치
* 다음 시험을 앞두고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긴장을 푸는 기숙사 일행
* 미토 이쿠미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에리나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위로한다.
* 2차시험 합격자들은 새로운 열차 티켓을 배포받는다.
* 제법 시간이 넉넉한데 그동안은 자유시간.
* 사실 에리나는 과거에도 몇 번 홋카이도에 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나키리 가문의 후계자로서 비지니스 차원에서 왔던 것.
*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사업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던게 아닌가 회의감에 젖는다.
* 그런데 이쿠미는 자신도 비슷하게 가문의 후계자로서 중압감에 시달린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 한참 말하다 쑥스러워진 이쿠미는 뭘 좀 사오겠다는 핑계로 일행을 이탈하고 이사미는 그녀를 혼자둘 수 없다며 따라간다.
* 에리나는 한 번 그녀를 내쳤던 일을 반성하고 여전히 자신을 존경해주는 이쿠미에게 감사한다.
* 반역자팀의 3차 시험은 전원 십걸이 상대.
* 객관적으로 십걸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기숙사 인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3차 시험에서 대량으로 탈락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식극의 소마/182화 . . . . 12회 일치
* 하야마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2, 3학년 베테랑들도 물리치고 십걸 자리에 등극. 다른 두 명의 새로운 십걸은 미공개.
* 아자미와 츠바사는 다 학원을 위한 일이라고 달랜다.
* 모처럼 십걸과 아자미가 집결. 아무래도 십걸에 공석이 생긴 것과 관련된 듯 하다.
* 대체로 2, 3학년들이 유력하다는 평이 많은데, 참가자 중에는 어두운 얼굴의 하야마 아키라도 끼어 있었다.
* 사냥꾼이 적당한 지점을 확보 하자 일행은 커피를 마시며 쉬기로 한다.
* 소마가 너무 약한거 아니냐고 디스하자 린도 같은 경우는 아예 파충류처럼 굳어버린다고 한다.
* 소마는 쿠가에게 들었던 "새로운 십걸 자리를 건 싸움"에 대해서 묻는다.
* 아자미는 센트럴 내에서 유망주들을 모아 십걸 쟁탈전을 벌였다.
* 하야마는 그때까지 잠자코 있었지만 이 도발에 응해 식극을 벌인다.
* 패자는 실려나가면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위험한 향"이라고 말하는데.--역시 약을 탔네. 식약청 불러와--
* 그 개인의 기량은 십걸에 들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아자미 총수와 센트럴의 힘까지 더해져 있다는 것이다.
* 그러면서 "네가 한 말(곰고기의 냄새를 살리고 싶다) 자체는 맞다"며 "냄새를 지운다"는 사고방식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86화 . . . . 12회 일치
* 도지마 긴은 하야마 아키라와 소마의 대결을 "자칫하면 자폭할게 뻔한 줄다리기"라 비유한다.
* 유키히라 소마는 선발시합 때의 패배에 "감사"하며 그 패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베르타와 실라는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태격하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금방 친해져서 노닥거리는데, 막상 대결이 시작되자 대결의 긴장감에 끌려가 조용히 관전 중.
* 도지마는 하야마 아키라와 소마의 대결이 "자칙하면 자폭할게 뻔한 줄다리기"라 평하는데 맛과 향의 줄다기리에 있어선 하야마 아키라가 한수 위라고 평한다.
* 하야마는 자신의 케이준 스파이스를 고기에 뿌려두고 소스 준비에 들어간다.
* 하야마가 소스에 노간주 열매 가루를 뿌리자 감미로운 향이 좌중을 사로잡는다.
* 하야마가 만든 그레이비 소스는 통사오가는 다른 복잡하고 입체적인 향을 자랑하는데 베르타와 실라는 여기에 매료된다.
* 무엇보다 곰고기의 중후한 야성미와 노간주열매의 향이 혀를 자극하는데, 그 맛을 "야생동물 고기의 거친 맛이 누구나 반할 만큼 매혹적인 향으로 조교됐다"고 평한다.
* 하야마의 요리에 사로잡혀 있던 베르타와 실라가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이고 현장에 있던 모든 관계자가 주시한다.
* 소마는 이 한 접시를 자신있게 내놓는데.
- 식극의 소마/187화 . . . . 12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자신있게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곰고기 요리"라며 곰고기 멘치까스를 내놓는다.
* 그러나 시식 결과 오미자와 곰고기의 뼈에 가까운 고기를 대담하게 조합해 멋진 멘치까스를 완성했다.
* 소마의 심사가 끝나자 하야마 아키라도 요리를 완성, 황금빛이 나는 접시를 내놓는다.
* 그는 자신의 요리야 말로 "최고의 곰고기 요리"라 자신하는데.
* 소마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지금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곰고기 요리"라 단언한다.
* 그만큼 어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인데, 자칫하면 역겨운 악취가 튀김옷에 가득 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극찬하는 베르타와 실라. 오미자의 맛이 균형감을 줘서 곰고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맛있는 곰고기 멘치까스를 만든데다 아리스를 꺾은 장본인임을 알게 되자 소마를 완전히 다르게 본다.
* 무려 소마를 "소마씨"라 호칭하며 공손히 자기들 논문을 읽어줄 수 있겠냐고 청하기까지 한다.
* 도지마의 말에 따르면 그도 "풀어헤침"을 계승한 인물. 나키리 센자에몬처럼 벗어재낀다.
* 그토록 소마의 요리가 극찬을 받은 직후인데도 자신의 요리를 "최고의 곰고기 요리"라고 지칭한다.
- 씽(마블 코믹스) . . . . 12회 일치
그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트라우마]]로 고생하게 된 불행한 인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원래대로 돌리려고 하지만, 역시 그러면 캐릭터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므로 늘 실패하거나 어떤 계기로 다시 돌아온다.[* 1회성 에피소드라면 모를까, [[평행세계]] 포함이라도 더 씽이 [[인간]]으로 돌아가는 전개는 하단에 언급할 사례를 포함해서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다.]
애니에서는 아동 시청자들의 대변인 역할이라서, 리드가 전문용어로 [[과학]] 이론을 얘기하면, 수전, 조니 등과 함께 "간단하게 얘기해서 그냥 ~란 거잖여"로 정리하는 역할.(…) 사실 전투기부터 우주 로켓까지 각종 기계류를 다루는 재주도 뛰어난 편이다. 그리고 리처즈 집안의 아이들을 맡아주는 [[보모]] 역할도 해주고 있다. 참고로 판타스틱 포 멤버 중 거의 유일하게 군 복무 경험도 있어서, 퓨리를 잘 알고 있으며 [[닉 퓨리]] 역시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하고 있다.[* 《[[시크릿 워]]》에 수록된 퓨리의 S.H.I.E.L.D 개인파일에 보면 그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다만 '''"외모가 문제야 외모가..."'''라는 말 한마디로 마무리 지을 땐 정말 [[안습|안구에서 땀이 찬다.]] 참고로 해당 파일은 라트베리아 잠입 멤버 선별에서 여러 이유로 탈락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즉, 외모가 임무의 성격과 맞지 않아서 탈락된 것.]
*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가장 고생을 하면서도, 팀의 궂은 [[마당쇠]] 역할까지도 맡아주는 등 좋은 이미지 덕에, 국내의 [[제시카 알바]] 하악하악(…)인 형편과 달리 [[미국]]에선 팬들도 상당히 많은 편.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단독 주연극인 [[스핀오프]]들도 가장 많이 제작되고, 그 인기 덕에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프레드와 바니, 싱을 만나다》에서 주역 코너도 별도로 만들어질 정도이며, 특히 여기선 자기 의지로 [[인간]]으로도, 싱으로도 변할 수 있는 등 다 좋은데, 문제는 여기선 더 씽이 [[인간]]일 때는 빈약 고딩으로 나오는 게 안습.(…)
* 의외로 [[말장난]]을 자주 하는 편. 자기 자신을 말할 때에는 '그림 여사의 푸른 눈 소년'이라든지, '피튜니아 고모의 사랑스런 조카' 같이 빙 둘러서 이야기 하는 말이 많고, 주로 하는 'It's clobberin time'을[* 여담으로 WWE소속 프로레슬러 [[CM 펑크]]가 등장 시 외치는 대사도 여기서 따왔다.] 가지고도 말장난을 하며, [[휴먼 토치]] II는 그 말장난에 자주 맞장구를 쳐주고 [[스파이더맨]]과는 서로 자기 유머가 더 잘났다고 싸우고 있다. 《[[월드 워 헐크]]》에서는 [[센트리]]의 힘에 대해 '폭발하는 100만 개의 태양'이라 말장난을 했는데, 여기에 낚여 센트리 최강론을 미는 사람들도 있다(...).
* [[유대인]]이다. [[스탠 리]]는 이 설정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지만, [[잭 커비]]는 유대인이었기에 이 점에 신경을 썼었다. 하지만 별로 부각된 설정은 아니었다. 2002년에 나온 짤막한 단편에서 더 씽이 유대인 전당포 주인을 지키는 얘기에서 더 씽이 유대인이란 점을 어필했었다. 여기서 전당포 주인은 더 씽이 유대인인줄 몰랐다면서 왜 그 사실을 숨겼냐고 묻는데, 더 씽은 자기 같은 괴물이 유대인이란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도, 이미 유대인들은 힘들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헐크]]와는 [[라이벌]] 기믹인지 여러 차례 대결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도 헐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재현된다. 다만 대체로 헐크가 더 [[강캐]]라서 결국 발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묘사를 보면, 헐크는 괴물 취급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는다. 2006년에 나온 애니판에선 똑같은 괴물이니 잘 지내보자는 싱의 말에, 배너 박사가 "당신은 영웅이지만 [[헐크]]는 괴물일 뿐이오."라고 답했다.] 헐크 말고도 다른 괴력 캐릭터에 비하면 힘에 있어서는 뒤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만나면 시험 삼아 처발리고 보는 신세가...(…)
- 오세정 (교수)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홍난실
| 자녀 =
| 경력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원장<br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기반분과 위원<br />[[한국연구재단]] 이사장<br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br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과 교수<br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오세정'''(吳世正, [[1953년]] [[2월 17일]] ~ )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지낸 [[대한민국]]의 물리학자이자 바른미래당 출신 제20대 전 국회의원이다.<ref>{{헌정회|2918}}</ref>
1984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되었다. 이후 국제이론물리학센터 연구원과 미국 미시간대 객원 연구원, 일본 도쿄대 초빙교수 등을 두루 역임하며, 1995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기획연구실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로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이사,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민의당 비례대표 2번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날짜=2016-03-23|뉴스=포커스뉴스|확인날짜=2016-03-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712184756/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보존날짜=2016-07-12|깨진링크=예}}</ref>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 2004.12 ~ 2008.10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회장
* 2004.12 ~ 2008.10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문재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바른미래당 당원]][[분류:안철수]][[분류:박지원 (1942년)]][[분류:이회창]]
- 오승근 (가수)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김자옥]] (1984년 ~ 2014년)(사별)
| '''처녀 뱃사공 (원곡: [[황정자]])'''
| '''하늘의 여자'''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순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순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이후 〈금과 은〉이 공식 해체되고 나서는 [[1980년]] 쯤부터 솔로로 전향하였다. 솔로로 데뷔한 후에도 본인이 직접 작곡, 작사한 《사랑을 미워해》(오승근 작사/ 오승근 작곡)를 부르며 가수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혼의 아픔을 겪었으며 [[1984년]], '눈물의 여왕' 으로 군림하며 드라마에서 주름잡던 배우 [[김자옥]]과의 재혼으로 한동안 스타덤에 올라 화제를 모았으며 건축 인테리어 사업을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활동하였고 [[1990년]]에 《그대가 나를》(박건호 작사/ 김종희 작곡)을 발표하고 나서는 한동안 여행사 업종의 사업가로 변신하여 사업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1997년]],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 구제금융사건]]에 휘말려 몇 년간 해오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에 전념하던 오승근은 지난 [[2001년]], 《있을 때 잘해》(이건우, 김정혜 작사/ 박현진 작곡)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복직하였다. 《있을 때 잘해》는 아이넷TV 성인가요 7주 연속 1위란 기록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오승근은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모든 연령층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방 애창곡, 성인가요 애창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3년]]에 발표한 《장미꽃 한 송이》(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중, 장년층들이 즐겨 부르는 곡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잘 될 거야》, 《사랑하지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최근 [[2012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박무부 작사/ 정기수 작곡)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트로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12 상반기 트로트계 최대 히트곡으로 주목받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대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많이 불렸던 참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성인가요 메들리의 메인 타이틀로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014년]]에는 [[홍진영]]이 리메이크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오승근은 데뷔 때부터 작곡과 작사 능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데 본인이 자작한 곡은〈사랑을 미워해〉,〈행복을 그리네〉가 있다.
* 배우자는 [[1970년]]에 MBC 2기 공채로 데뷔한 배우 [[김자옥]]이며, [[2014년]] [[11월 16일]]에 사별하였다.
- 오준 . . . . 12회 일치
{{공직자 정보
|출생일 = {{출생일과 만나이|1955|10|4}}<ref name="이력서">{{언어링크|ko}} {{인용|chapter-url=https://archive.is/7iEfk |chapter=1056 재외공관장 인사_첨부.hwp |title=재외공관장 인사 〔제10-56호 보도자료〕 |publisher=[[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인사운영팀 |date=2010-01-28 |url=http://archive.is/GjVKV |archiveurl=https://archive.is/7iEfk |archivedate=2018-09-16 |accessdate=2018-09-16}}</ref>
|배우자 =
|자녀 =
'''오준'''(吳俊, [[1955년]] [[10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외무공무원이다. 駐 [[유엔]] 대표부 대사이자 [[UN]]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이다.<ref name="이력서"/>
아버지는 독립 유공자로서 외교부의 창설 멤버인 [[오우홍]] 미국 초대영사이며, 어머니는 건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진인숙]] 여사다.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시|개성]]이고 장인도 함경도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라 평소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저자=정희순|제목=오준 유엔대사 특별 인터뷰|날짜=2015년 2월|출판사=우먼센스|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89&contents_id=82676}}</ref>
1978년 외교부에 입부하여 외교관 생활의 3분의2 이상을 [[UN]] 등 다자외교 분야에서 근무했다.
2014년 12월 22일 북한 인권 상황이 최초로 정식 의제로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연설로 화제를 모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 SNS에서 2030 열광 이끌어낸 오준 대사 '명연설' |url = http://news.joins.com/article/16807880|출판사 = 중앙일보 |저자 = 유지혜 |날짜 = 2014-12-29}}</ref>
* 2008년 3월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정관
|전임자 = [[김중근]]
|후임자 = [[서정하]]
- 오타쿠 혐오 . . . . 12회 일치
오타쿠 혐오 계층에서는 오타쿠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오타쿠들의 상징인 특정한 취미 탐닉, 컬렉션 성향은 곧 사회성 부족의 징후로 여겨진다. 종족 이들의 컬렉션 자체가 반사회적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총기]]와 같은 군장류([[밀덕]]), [[로리콘]]이나 [[도촬]] 등의 성적인 물건이 그러하다.
오타쿠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에게 볼 수 없는) '과도한' 취미 탐닉은, 그들의 수익[* 어떤 형태로든 수익이 있다면]을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 같은 건전한 분야에 사용하지 않고, 취미에 탐닉하여 '낭비'하게 되며, 그에 따라서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에서 정체를 가져온다고 여겨진다. 취미 탐닉은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소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대개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소비 행태'로 보이게 된다.
* 군사적 물건 : 군사적 물건, 즉 밀리터리 매니아(소위 [[밀덕]])의 군사적 물건에 대한 관심은 곧 [[전쟁]]에 대한 관심이며, 이는 일반인들에게 '잠재적 전쟁 범죄자'의 징후로 여겨진다. 이들은 때때로 군사적 저술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일반인들과 동떨어진 수준의 [[우익]] 성향을 가지거나, 몇몇 경우 [[학살]]을 옹호하거나, [[독빠]]의 경우 [[나치]]에 대한 옹호로 [[주화입마]]하는 경우도 있다.
* 철도적 물건 : 철도적 물건, 즉 철도 매니아(소위 [[철덕]])은 철도적 물건에 대한 관심은, 그 자체로 일단 일반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며, 이들은 때때로 철도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정상적인 철도 운행을 방해하는 등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오타쿠들의 취미우선주의는 때때로 자신의 '취미'를 [[인권]]이나 사회적 합의 같은 '보편적 가치'보다 높이 놓기도 하며, 이러한 성향은 매우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된다.
=== 예비 범죄자 ===
예비 범죄자라는 관점에서 오타쿠를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위의 사회성 부족(=반사회적 성격)과 혐오적 외모에서 일반인들의 경계를 받기 때문이다. 또한 [[미야자키 츠토무]] 등 몇몇 오타쿠가 저지른 범죄가 오타쿠를 범죄자 예비군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 원피스/831화 . . . . 12회 일치
홀 케이크 아일랜드에 상륙한 밀집모자 일행은 이상한 숲에 가로막힌다.
* 일행은 거기에 이끌려 이상한 숲으로 진입하는데, 루피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적과 조우한다.
* 이들은 이상한 토끼의 습격을 받고, 나미는 숲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 밀집모자 일행은 홀 케이크 아일랜드 남서쪽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다.
* 상디의 모습을 쫓아 가보니 그곳은 "과자로 된 숲"
* 나미는 셋에게 절대로 자기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탐색을 시작한다.
* 일행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악어가 다리째로 일행을 삼키려 한다.
* 일행이 황급히 피하는데, 정작 그들을 먹으려 했던 악어는 "뭐야, 인간이었나"하며 자기 갈 길을 가버린다.
* 거인은 "자기가 좋아서 파묻혀 있다"면서 "사과쥬스가 먹고 싶다"고 요구한다.
* 나미는 지침도 시계도 이상하게 돌아가는걸 보고 역시 이곳은 이상한 곳이라고 돌아가자고 한다.
* 루피가 상대하는 복제 루피는 단순한 복재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것처럼" 완전히 똑같이 행동한다. 거울거울 열매의 능력자?
- 원피스/869화 . . . . 12회 일치
* 벳지는 내부의 일행에게 작전 실패를 통보하고 빅 파더가 쓰러지면 자신도 죽고 일행도 바깥으로 내몰릴 거라 경고한다.
* 빅맘 [[샬롯 링링]] 암살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탈출 루트조차 차단되어 궁지에 몰린 해적동맹군. [[카포네 갱 벳지]]는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살아있는 거성 "빅 파더"로 변신, 전원을 성 내부로 피신시킨다. 이걸로 당장의 괴멸을 막긴 했지만 이미 빅맘 해적단은 벳지의 배신은 물론 [[시저 크라운]]의 연루까지 알아차렸다.
* 괴총 비트는 밀집모자 일행의 피신을 돕는다. 일행은 비트의 안내에 따라 빅 파더를 향해 열심히 뛰는데, 선장 [[몽키 D. 루피]]가 또 말썽이다. 걸음을 멈춘 채 눈을 빛내고 있는데. 빅 파더가 어지간히 취향에 들어맞았나 보다.
* 구속에서 해방된 빈스모크 일가. 그리고 [[상디]]. 아직 그들이 묶였던 테이블이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이들과 대치. 그는 다시 한 번 모조리 사탕으로 묶어버리려는 모양이다. 상디는 테이블 위에서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내려보며 말 없이 가보라고 손짓 한다.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저지. [[빈스모크 이치디]]는 나미 일행이 갖다 준 레이드 슈츠를 들여다보다 [[빈스모크 니디]]와 고개짓을 주고받는다. 빅맘 해적단이 빈스모크 일가에게 다시 총구를 들이 댈 때, 그들은 레이드 슈츠가 담긴 캡슐을 벨트에 장착한다. 변신.
레이드 슈츠를 장착한 빈스모크 일가에겐 아무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빅맘 해적단의 열매 능력자가 불꽃세례를 퍼부었지만 조금의 타격도 없이 건재. 레이드 슈츠는 제르마 왕국의 과학 기술력 결집체인 형상기억합금 아머. 페로스페로도 그 가공할 방어력에 감탄한다. 더 늦게 전에 사탕으로 굳히려 들지만 속도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 이치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와 반격한다. 니디는 오븐을 요격해 쵸파를 해방, 레이쥬가 스무디에게 독공격을 퍼부어 나미를 놓치게 한다. 욘디는 다이후쿠의 마인을 간단하게 제압, 그 틈에 캐럿도 풀려난다.
* 루 펠드는 난데없는 혼란이 횡재로 이어졌다. 그는 빅맘의 옥갑을 빼돌릴 생각이다. 물론 그냥 가져갈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는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옥갑을 열었다. 내용물을 미리 바꿔치기 한다면 의심 당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화를 불렀다. 빅맘의 패기가 실린 절규가 거기까지 닥쳤던 것이다. 마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날아가는 루 펠드, 그리고 옥갑. 루 펠드가 회수할 틈도 없이 옥갑은 성 바깥으로 떨어진다.
* 빅 파더는 단순한 방어요새가 아니었다. 전신의 화기를 이용해 화력전을 펼칠 수 있고 이동도 가능한 기동요새. 벳지는 일행이 대피를 마치자 빅맘을 향해 포격을 날린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사탕벽, "캔디 월"이 빅맘을 방어한다. 페로스페로였다. 이치디에게 한 방 먹긴 했지만 그대로 쓰러질 인물이 아니었다. 빈스모크 일가도 빅 파더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고 이젠 모두 한 통속이라고 생각한다.
* 빅 파더 안, 해적동맹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인물이 없다. 벳지의 부하 비트 조차도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제르마에 정신이 팔려있다. 루피와 쵸파는 빅 파더에 꽂혀서 환호, 시저는 KX런처의 유폭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하다. 벳지가 보기엔 속이 터진다. 벳지는 빅 파더에 환호하는 루피를 쏘아붙인 뒤 작전은 실패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브룩]]은 "과연 사황은 격이 다르다"고 감탄, 한가하게 차나 홀짝인다. [[징베]]가 앞으로 대책을 붙지만 솔직히 그런건 없다. 벳지는 빅 파더는 자기 자신이며 충분히 튼튼하지만 무적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벳지도 죽고 일행은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 뒤는 그저 학살.
겁많은 나미와 쵸파가 당장 울먹거린다. 상디는 말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전념한다.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시저가 또 자기 탓이 아니라 지루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벳지가 피를 토한다.
* 빅맘이다. 빅맘이 눈을 뜨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빅맘이 제일 먼저 눈 앞의 빅 파더를 깨부수고 있다. 일행에게 전부 성에서 튀어나오라며 공격한다. 그녀는 빅 파더에 달라붙어 설탕세공 부수듯 무너뜨린다. 빅 파더가 무너지자 벳지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친다. 어느새 피투성이. 물론 빅맘은 벳지가 배신한 것도 알고 있었다.
- 원피스/881화 . . . . 12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이 소울을 부여한 거대 파도가 써니호를 덮친다. 파도 위에 파도타기하듯 올라탄 빅맘.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대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거울 조각으로 대화 중이던 [[몽키 D. 루피]]는 당황하나 손쓸 방법이 없다. [[쵸파]]가 쿠 드 버스트를 써보자 제안하나 [[브룩]]이 콜라가 부족해서 무리라고 답한다. [[캐럿(원피스)|캐럿]]은 그대로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모처럼 살려준 목숨이 쓸모없게 됐다며 [[페드로(원피스)|페드로]]에게 용서를 빈다.
* 미러 월드의 빅맘 해적단 병력들도 그 소식을 접했다. [[샬롯 카타쿠리]]의 전보벌레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오자 루피는 믿기지 않는 듯이 거울조각으로 일행을 부른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밀집모자 일당의 전멸이 기정사실화되고 [[샬롯 브륄레]는 새로운 거울로 진군할 필요도 없겠다며 작전을 중지시킨다. 그런데 부하들은 여전히 거울 너머에 아무런 일도 없다고 이상해 하는데, 그때 갑자기 거울이 깨진다. 그리고 미래를 예지하는 카타쿠리 만큼은 페로스페로의 공지에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 물론 써니호는 무사했다. 거울을 깨뜨린건 나미. 브룩과 쵸파는 그러면 루피가 돌아올 길도 끊기지 않냐고 하지만 나미는 "카타쿠리에게 집중하고 싶다"던 루피의 말을 상기하며 "선장명령"이라며 배 안의 모든 거울을 깨뜨리게 한다. 써니호로 이어지는 모든 거울이 하나둘 깨지자 미러월드의 빅맘 해적단이 술렁인다. 브륄레는 역시 살아있는게 아닌가 의심하지만 다른 부하들은 "수압 때문에 깨지고 있다"며 낙관한다. 그때 루피의 거울 조각으로 나미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 루피가 눈치 빠르게 빅맘 해적단의 눈을 피해 응답한다. 곧 일행이 무사하다는 소식과 배의 모든 거울이 깨졌다는 소식을 받는다. 일행은 루피가 귀환할 수 없게 됐다고 하지만 루피는 "어떻게든 하겠다"고 대답한다. 나미가 아무 대책도 없이 잘 되겠냐고 잔소리한 뒤 자신들은 곧 카카오 섬으로 향한다고 알린다. 도착은 약 10시간 뒤. 심야 1시가 될 예정. 나미는 반드시 "그녀석"을 날려버리고 카카오섬으로 이어지는 거울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미는 거기서 만나자고 확인하듯 루피의 대답을 기다리지만, 루피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카타쿠리의 공격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공격의 여파로 루피가 가지고 있던 거울 조각이 부스러진다.
* 카타쿠리는 "버들잎 떡"이란 기술로 루피를 사정없이 두들겨팬다. 루피는 일방적인 당하면서도 일행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입을 틀어막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겨우 몸을 피한 그는 아주 작은 조각이 된 거울에 대고 억지로 웃어 보인다. 그리고 자기는 이미 카카오섬에 도착한 것처럼 연기한다.
자신의 몸 속에서 예리한 삼지창을 꺼내는 카타쿠리. 루피는 지지 않고 오기를 부렸다.
나미가 쓰나미를 보고 다 틀린 것 같다고 말해서 당황하나 무사하다는 응답을 받고 안도한다. 정작 자신 쪽이야 말로 카타쿠리 때문에 대위기. 철저하게 농락 당하면서도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비명을 참고 억지 웃음까지 보이는 등 눈물겨운 상황이다. 일행에게 자신은 벌써 카카오섬에 도착했으니 안심하고 오라고 하기까지 하는데 전황은 좋지 않다. 물론 본인은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고 하지만 카타쿠리는 그걸 "유언"취급하며 비웃는다.
쓰나미가 닥쳤을 때는 절망했지만 징베가 놀라운 솜씨로 파도를 헤쳐나가자 부활. 위기를 돌파한 뒤에는 "카타쿠리에 집중하고 싶다"던 루피의 말에 따라 배의 모든 거울을 깨뜨린다. 어떻게든 하겠다는 루피에게 실제론 아무 대책이 없다는걸 알고 10시간 뒤 카카오섬에 도착할 테니 거기로 연결된 거울을 찾으라고 이른다. 루피가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벌써 도착했다고 말하는데 거짓말이라는걸 눈치채지 못한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12회 일치
주간 스쿠프의 기자 토사쿠라 마나부는 원조교제를 하는 [[OL]] 하나무라 히토미에게 취재를 한다. 현금 21만엔이라는 취재비에 넘어간 히토미는 사진을 찍고 만다. 그런데 1주일 뒤 주간지의 '원조OL버스터즈'라는 기획으로 얼굴 모자이크도 없이 자신과 약혼자의 사진이 올라가버려, 회사와 약혼자, 가족에게 들키고 만다.
수치심을 견디다 못한 히토미는 자살. 토사쿠라 마나부를 죽여달라는 유서와 3백만엔을 남긴다. 이것을 히토미의 오빠가 '정보원'을 통하여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하게 된다. 원한해결사는 살해 의뢰비로서는 싸다고 하지만 정보원이 자신의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하여 결국 의뢰를 받아들인다.
토사쿠라는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돈을 뜯기고 차인 경험이 있어, 남자를 제물로 매춘을 하는 놈들은 누구든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토사쿠라는 갑자기 경찰에게 가택수색을 받는데, 집에서는 속옷이 가득 든 상자가 발견되어 속옷도둑으로 체포되고 만다. 하루 뒤 토사쿠라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지만, 곧바로 매스컴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그의 과거나 원조 OL 버스터즈에서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했던 것이 모두 폭로당한다.
토사쿠라는 저녁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원한해결사와 만나고, 철도길에서 갑자기 쓰러진다. 원한해결사는 스코볼라민 용약을 넣어뒀는데, [[알콜]]과 섞이면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약물[* 과거에는 안약이 [[데이트 강간 약물]]로 쓰였다고 언급된다.]이었다. 결국 토사쿠라는 전철에 치어서 사망하고 만다.
- 유다인 . . . . 12회 일치
모르는 이들에게 2008년에 찍은 [[레쓰비]] 광고의 그 유명한 '''선배. 나 열나는 것 같아'''의 바로 그 주인공. 이 CF로 유다인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다. ~~같은 해에 맨데이트가 개봉했다는 건 잊자.~~
이후 아침드라마와 조연, 광고 쪽을 돌며 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배우로서의 주가를 높여준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2011년 여주인공 혜화 역으로 출연한 [[독립영화]] '혜화, 동'이다. 이 영화를 통해 각종 영화제 신인여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2011년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면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 시리즈인 '보통의 연애'와 SBS 주말연속극인 '[[맛있는 인생]]'에 잇달아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공중파에 안착하였다. ~~문제는 드라마가 망했다는 거..~~ 그래도 보통의 연애 같은 경우는 방영 당시에는 단막극이란 한계와 동시간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에 묻혀 시청률 경쟁에서는 뒤쳐졌지만, 방영 후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 작품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유다인이라는 배우를 확실히 알릴 수 있게 되었고, 결국 2012년 [[KBS 연기대상]]에서 연작/단막극부문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게 된다.
|| [[2013년]] || [[용의자(한국 영화)|용의자]] || 최경희 || ||
||<|2> [[2008년]] || [[그 남자의 책 198쪽]] || 담 소녀 || ||
|| [[맨데이트|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 || 신 기자 || ||
|| [[2014년]] || [[제너럴 모터스]] || 2014 [[쉐보레 크루즈]] - 'CRUZE IS REAL 여자'편(with.[[정은채]]) || [[https://youtu.be/WQO6ZxSEP5Q|영상]] ||
|| [[피자헛]] || 리치골드 || ||
|| [[한국수력원자력]] || 맑은 하늘 이야기 || 공익광고 ||
* 배우 [[곽지민]]과 묘하게 닮았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유다인을 몰랐던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처음 접할때 곽지민인 줄 알았다고 말하곤 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곽지민 쪽이 좀더 날카로운 인상을 지녔다.
||<|2> [[2012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연작 단막극상 || 드라마 스페셜 - 보통의 연애 ||
- 유열 (가수) . . . . 12회 일치
|직업 = [[가수]] <br /> [[작사가]] <br /> [[뮤지컬 배우]] <br /> [[뮤지컬]] [[제작자|감독]] <br /> [[음반]]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배우자 = 배서윤
'''유열'''(柳列, 본명 '''류종렬'''(柳鍾列) 예명 유열로 개명 (2009.11.09), [[1961년]] [[1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뮤지컬|어린이 및 가족 뮤지컬]] [[연출가|프로듀서]]이다. 대표곡으로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을비》, 《이별이래》, 《하늘을 닮은 그대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화려한 날은 가고》, 《어느날 문득》, 《그 여름》, 《사랑의 찬가》 등이 있다.
직접 제작한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는 현재까지 70만명 관객돌파 흥행뮤지컬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2009년에는 [[독일]] [[브레멘]]주정부 초청공연,2011년 8월[[중국 상해]]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前 [[문화방송]] 기자인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이사
* <하늘을 나는 양탄자>
* <바리,잊혀진 자장가>
* [[현대자동차]] 엑센트 - [[이문세]], [[이수만]]과 같이 출연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뮤지컬 감독]][[분류:1986년 데뷔]][[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음악가]]
- 윤용현(1969) . . . . 12회 일치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깡패 "도끼"로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4~5회 정도만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왕초에게 맞는 연기를 하는 도중 후배들 앞에서 맞는 연기를 하기 민망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맞을때마다 "이거 맞아서 그런 거 아니여, 미끄러진 거여"라고 충청도 사투리로 애드립을 쳤는데 이게 시청자들과 제작진에게 어필이 되었는지 고정 캐릭터로 남게 되었다.
주로 파워풀한 배역을 자주 맡는 편이다. 야인시대의 신영균이라든지, 대조영에서 계필사문이라든지, 천추태후에서의 야율적로라든지, 자이언트에서 고재춘이라든지, 제5공화국에서 고문을 잔인하게 하는 준사관이라든지.
하지만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라는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순박한 시골 청년'''을 그야말로 맛깔나게 잘 표현하는 등, 다른 연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배우 본인은 "코믹한 배역이 원래 성격과 맞다. 사람을 웃기는게 좋다"라고.
* KBS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1999) - 만길이네 삼촌
* SBS [[야인시대]](2002) - '''[[신영균(깡패)#s-2|신영균]]'''[* 야인시대 관련 합성물에서 신영균 자체는 출연비중이 많진 않지만, 그가 했던 [[폭☆8|어떤 장면]]은 합성물에서 엄청나게 사용되고 있다(....)]
단 제5공화국 작중에서는, 신동기라는 이름이나 언급은 없다. 다만 실제로 [[10.26 사건]] 당시에 [[김재규]]를 수사한 사람이 신동기 준위라는 기록이 있으며, [[드라마]] 내에서는 수사관이라는 직책에 맞게 보안사, 안기부 등에서 전두환 일당의 공작이나 정책 등의 실무자로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 SBS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2010) - [[고재춘]]
* MBN [[사랑도 돈이 되나요]](2012) - 사채업자 안손희
- 은혼/584화 . . . . 12회 일치
* 자신들이 가구라를 위해 움직이는 데는 '''혈연도 이유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 신파치는 카무이에게 가구라를, 가족을,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건 그만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무이는 자신의 괴로움은 우미보즈가 살아있는 한은 해소되지 않으며, 지금 가구라를 괴롭게하는건 오히려 너희들(해결사)라며, 자신이 가구라의 가족을 또 박살내게 할 참이냐고 한다.
* 신파치는 자기들은 부서지지도, 가구라의 손을 놓지도 않을 거라고 단언한다.
* 그러자 긴토키는...
* '''갑자기 우미보즈에게 박치기 한다.'''
* 이걸로 '''최강을 쓰러뜨린 것은 자신'''이라고 선언한다.
* 어쨌든 긴토키는 최강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인 건 자신이고 최강을 이어받은 것도 자신이라고 말한다.
* 하지만 긴토키는 문자 그대로 "해결사"고 여기저기 오지랖 넓게 끼어들던 캐릭터니까 이상할 건 없다.
- 은혼/597화 . . . . 12회 일치
* 각지에서 천인들에 대항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마침내 해결사 일행 돌아오다.
* 오토세 아줌마 또한 그 자리에 있는데, 그 모습을 "세전함" 같다면서 "그 [[역병신]]들에게 뭘 바라는건지 모르겠다, 결국 내 집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오토세는 자기라면 "집세가 더 많이 들어오길, 같은 의미있는 걸 빌것"이라 농을 치며 의뢰서를 꺼낸다.
* 천인 용병들을 막아선 하세가와는 자신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밝히며 더이상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그리고 그가 지킨 꼬마에게 "사람은 원래 절망 위에서 살아가는 법"이며 자신은 그런 절망의 밑바닥에서 살아왔지만 이 날을 위해서 살아온게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 하세가와는 거듭 보스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천인들은 어째서 그래야 하냐며 상식적으로 대답한다. 하세가와는 다시 자기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말하는데 평범하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없다고 하니 그냥 끌고 간다.
* 하타 황태자 재등장
* 그러나 건물 자체를 날려버리는 천인
* 녀석들은 원래 이런 건물 자체엔 아무 관심도 없었다며 위안부로 쓴다고 여자들을 끌고 가려고 한다.
* 타에는 망연자실하게 폭발한 해결사 사무소를 바라본다.
* 수년만에 하타황태자 원작에 복귀!--진짜 완결각--
- 은혼/609화 . . . . 12회 일치
* 원상 황자는 지구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한 필승의 포진에 들어간다.
* 겐가이는 킨토키, 타마를 데리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만든 최후의 기계를 가동시킨다.
* 3대 용병 부족 다키니, 신라, 야토는 유격대로서 각자 자율적으로 활동하도록 보장한다.
* 겐가이는 "지구의 저력을 보여주자"고 하는데 가부키쵸의 주민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 여전히 찰랑찰랑 엘라스틴 헤어를 자랑하는 킨토키는 긴토키를 "불완전한 주인공씨"라고 디스한다.
* 그러나 원상 황자만은 그것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라고 짐작하는 듯 한데.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가 에도성을 때려부순건 눈축제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내용인데 지나가는 드립이 아니라 정말로 은혼 세계관의 정사. 그래서 그런지 적들도 겐가이포가 나타나자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라고 생각해서 긴장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긴토키는 실제로 완성도 높게 눈조각을 만들었던게 증명됐다.--완성도 높은데 어이!--
겐카이포는 EMP 종류로 보이는데 문명이 몇 배나 진보한 해방군 측이 EMP에 무방비했다는건 의외지만, 반대로 겐가이 영감이 그만큼 고출력 고성능의 EMP를 완성한 걸로 볼 수도 있다. 이래봬도 겐가이 영감은 지구측에선 손꼽히는 기술공학자인데 그런 사람이 평생을 투자해 만들었고 스스로 "천인의 기술을 흡수해 진화시켰다"고 자부할 만한 물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실루엣상으론 좌측부터 텐코, 소코, 긴코, 가구라, 즈라코, 엘리자베스.
- 은혼/619화 . . . . 12회 일치
* 그리고 무사히 일어난 긴토키가 마지막 한 방으로 오우가이가 자랑하던 뿔을 꺾어놓는다.
* 난간 바깥으로 날아간 줄 알았던 가구라와 신파치가 힘을 합쳐 오우가이의 뒤통수를 후린다. 그것 자체로는 큰 타격이 되지 않지만 그가 쓰러지는 바람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계단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오우가이.
*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시무라 타에]]의 지휘로 스마일 아가씨들이 통나무 함정을 몽땅 투하한다. 오우가이는 지면으로 떨어지면서 위로는 통나무 세례를 당한다. 그가 잔해와 통나무 더미에 깔리자 지금껏 걱정없이 지켜보던 부하들이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오우가이는 격분하며 다시 일어서지만 평정을 완전히 잃는다.
>우리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놈이 여자니 어린애니 깔보던 자들이다.
큐베의 말과 함께 가구라와 신파치가 과감히 뛰어내리며 각자 왼팔과 오른다리를 친다. 왼다리가 통나무더미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는 순식간에 사지가 봉쇄된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오우가이.
여기서도 오우가이는 저력을 발휘한다. 뿔로 통나무를 문자 그대로 분쇄하며 파묻혔던 왼다리를 뽑아 긴토키의 머리를 걷어찬다. 긴토키는 피를 뿜으며 날아가는데.
>아니, 여자에 어린애들 손이니.
* 그런데 오우가이의 눈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들어온다. 긴토키를 찬 다리가 수리검으로 꽃꽃이 되어 있다. 건물의 옥상에서 수상한 그림자들이 나타난다.
>여자 어린이는 아직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요시와라의 여자장난은 목숨을 걸어야 할 거다.
* 그렇게 받아치는 긴토키. 여자와 아이들이 개고생하는 사이, 편히 누워있다 일어나던 참이다. 얼굴에 묻은 피는 오우가이의 것이었다. 그는 얼굴을 닦아내며 뻔뻔스런 표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뿔에 걸려있던 수리검을 가볍게 후려친다.
- 이상무(만화가) . . . . 12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유명해 진 계기는 바로 스포츠만화였다. 특히 1970년대 [[고교야구]]붐을 탄 야구만화에서 그는 독보적이었다. 1980년대 [[이현세]]가 나오기 전까지 그는 야구만화의 독보적 일인자였다. 하지만 야구만화만 거의 그리던 허영만이나 이현세랑 달리 [[축구]]도 좋아해서인지 독고탁이 나오는 축구만화도 제법 여럿 그렸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 [[독고탁]]은 그의 이름보다도 더 유명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야말로 [[허영만]]을 콩라인으로 만든 만화가였다. 허영만 스스로도 자신이 늘 편집장에게 이상무 씨에게 밀려요라는 말을 지겹게 들어서 타도 이상무! 라고 그림을 그렸더니만 나중에는 이현세가 나와서 또 2인자 신세더라며 두 이씨(물론 보시다시피 이상무는 필명)에게 진다고 한탄했다고...
이상무는 데뷔작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청춘 개그물이었고 스포츠 만화나 가족 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인 취향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현해탄 너머]]에서 동시대 만화가들처럼 단순히 일본인들의 재일교포 차별만 넣는 대신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2세대 교포의 모습도 다루었다. 독고 탁이 투수로 나오는 한국인 시리즈가 그 극이라 할수 있다. [[비둘기 합창]]에서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버림 받는 여자를 그렸는가 하면, [[달려라 꼴찌]]에서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의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묘사하였다. 밝은 그림에 비해서는 주제가 무거운 편.
화풍은 매우 깔끔하지만 데뷔 시기를 보면 알수 있듯 조금 평면적이다. 간략한 선에 스크린톤이나 펜선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화면이 밝은 편. 당시 야구만화들이 다 그렇듯이 마구나 지옥훈련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거인의 별처럼 황당무계한 설정이나 마구는 아니다.
* 독신주의자의 최후
* 아홉 개의 빨간 모자
*2015년 1월 3일 부터 KBS1TV [[시간여행자 K]]에 출연하였다.
- 이준승 . . . . 12회 일치
'''이준승'''(1934년 ~ 2012년 1월 15일)은 전두환 대통령에 의하여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부인 권영렬과 사이에 4남1녀의 자녀가 있다.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1980년 7월 4일자</ref> 대검찰청 공판부장에 재직할 때 "검사들이 피고인에게 무죄만 선고되면 무조건 상소하는 것은 고질적인 폐단이다"고 하면서 개선책을 마련했다.<ref>동아일보 1983년 7월 23일자</ref>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4년 1월 27일에 불온 유인물 소지로 신고된 사람에 대해 영장없이 압수수색하고 연행하여 6일동안 불법 구금한 진주경찰서 정보계장 김태진(64) 등 3명을 상대로 낸 불법구금 등 불기소처분 기각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 항고심(주심 [[이회창]])에서 인용되어 환송된 사건의 재항고심 주심을 맡아 "경찰의 불법구금 사실은 인정되나 경찰관들이 수사업무에 과잉의욕을 보이다 위법행위를 저질렀고 오랜 정보업무에 종사하며 국가에 공헌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타당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2800209210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28&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099&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7년 1월 28일자]</ref>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7년 5월 8일에 택시회사가 교통사고를 낸 운전기사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단체협약은 근로자의 권익보호와 복리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돼서는 안된다"며 "이 사고는 근로자의 잘잘못을 따질 것이 없이 업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이므로 회사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했다.<ref>매일경제신문 1987년 5월 9일자</ref>
- 이현보 . . . . 12회 일치
'''이현보'''(李賢輔, [[1467년]] [[8월 28일]]([[음력 7월 29일]])~ [[1555년]] [[7월 1일]]([[음력 6월 13일]]))는 조선 연산군,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賓翁), 본관은 [[영천 이씨|영천]](永川)이다.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전사옹(田舍翁)으로 자처하며 집 앞 시냇가에 배를 띄우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니 사람들이 농암을
효성이 지극하여 노나라 [[래자]]에 비견되었고 1519년 안동부사 재직당시 중양절에 화산양로연(花山養老宴)을 열어 부모님을 포함한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이 있는데, 10장으로 전하던 <어부가>를 그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효빈가(效嚬歌)> <농악가> <농암가(聾巖歌)>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聾巖)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ref name="이현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전기 문학/시조 문학#이현보|이현보]]〉</ref>
{{위키자료집|어부사}}
* 주제: 강호 한정(江湖 閑情). 자연에 은거하는 어부의 생활
* 해제: 자연을 벗하며 고기잡이를 하는 한가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가어옹(假漁翁)"으로, 실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어옹"이란 속세를 떠나 강호에서 낚시하면서 시나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양반을 이르는 말로, 작품에서도 실제 어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천심녹수(千尋錄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이 상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관념적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의 어부의 삶이란 곧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5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분류:1467년 태어남]][[분류:155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시인]][[분류:영천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
- 장준영 (축구선수) . . . . 12회 일치
|로마자 표기= Jang Jun Young
|현 소속팀=[[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
|클럽=[[대전 시티즌]]<br>[[성남 FC]]<br>→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임대)
'''장준영'''(張竣營, [[1993년]] [[2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수비수#센터백|센터백]]이다. 현재 [[대한민국]]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6년]] 자유선발로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10월 9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홈경기서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고, 이날 경기의 MOM에 선정되었다.
[[2018년]] [[안상현]]과 트레이드되어 [[성남 FC]]로 이적하였으나, 이적 동시에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임대되었다.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
- 전민제 . . . . 12회 일치
| 직업 = [[화학|화학공학자]], [[대학 교수]], [[저술가]]
| 배우자 = [[나영균]](羅英均)
| 자녀 = 슬하 1남 3녀
'''전민제'''(全民濟, [[1922년]] [[3월 15일]] ~ )는 [[대한민국]]의 [[공학|화학공학자]] 겸 [[저술가]]이다.
신장은 175cm이고 체중은 75kg인 그는 [[1950년]] [[8월 1일]]에 여성 영어영문학자 [[나영균]]과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슬하 1남 3녀를 두었다.
* 1996년 [[자유민주연합]] 고문(1996년 3월 ~ 1996년 12월)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구 전씨]][[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전민희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3부《[[세월의 돌]]》1999-2000년 출간 [자음과모음, 전 10권 완간]
* 1부《[[태양의 탑]]》2000-2001년 출간 [자음과모음 미완], 2009년- 개정판 출간 [제우미디어, 출간중]
◦외전 - 《어린 보호자》: 윈터러 개정판과 함께 출간된 애장판에만 수록되어 있다.
2013년 도쿄 한국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소설이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이라 한다.
*《[[상속자들(상)]]》
*《[[상속자들(하)]]》
또한 '점술'과 '별자리'와 '타로'의 부분이 각각 세월의 돌, 룬의 아이들-데모닉, 태양의 탑에 순서대로 나타난다. 세월의 돌에서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던 점술에 대한 막연한 부분이 태양의 탑과 데모닉을 거치며 점점 구체화된다. 이것이 소설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2013년 FAQ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였다.<ref>{{웹 인용|제목=자주 받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url=http://blog.naver.com/enjolas/150158596660|날짜=2013-02-03}}</ref>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판타지 작가]][[분류:휘경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9년 데뷔]][[분류:인터넷 작가]]
- 전종환 . . . . 12회 일치
|직업 = [[MBC]] [[아나운서]] (전 [[기자 (직업)|기자]])
|배우자 = [[문지애]]
|자녀 =
|순자산 =
'''전종환'''([[1980년]] [[6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자 전(前) 기자이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를 졸업했으며, 2005년에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특히 MBC에선 대학 재학 중에 입사한 최초의 인물이다. 초창기에는 《[[불만제로]]》, 《[[우리말 나들이]]》같은 류의 TV방송에만 출연하였으나, 2009년 4월 13일부터 《[[뮤직스트리트 (MBC)|뮤직스트리트]]》의 진행자로 발탁되는 등, 라디오 방송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2011년 5월 9일까지 진행을 맡고 하차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는 MBC 기자로 활동했다가, 현재 아나운서로 복귀했다.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2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는 자신에게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을 받는다고 긴장한다.
* 이제 후지코와 대결만 남았는데 [[효부 쿄스케]]는 승부를 서두르며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절대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쿠모이 유리]]가 보여준 환상. 이들은 모두 블랙 팬텀 산하의 경비업체에 소속된 용병들이다. [[효부 쿄스케]]는 신념도 뭣도 없이 상황이나 이득에만 관심있는 녀석들은 최면에 걸리기 쉽다고 비아냥 댄다. 그러자 유리는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나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오빠]]도 세력을 키웠다."고 자조한다.
* 카오루가 왠지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카오루는 그걸 "싫은 느낌"이라 표현하는데 자신에겐 예지능력이 없으니 딱히 신용할만한건 아니라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 일행이 잠시 정체된 그때 갑자기 후지코의 방이 열린다. 하지만 거기서 나타난건 관리관이 아니었다. 세뇌된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미나모토의 예상대로 관리관은 이 상황을 예측한 건지 두 사람은 일행을 환영하며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로 국장이 정신을 차린다. 블랙 팬텀의 수장도, 판도라의 2인자 [[마기 시로]]도 바벨의 정점 후지코 조차 이기지 못한 세뇌를 일반인이 풀러낸 것이다.
* 일행은 두 사람을 방 안으로 옮기고 [[산노미야 시호]]가 혈청이 정상적으로 레어 메탈을 정화시키는걸 확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여기에 방치할 수는 없다. 후지코가 오면 다시 감염될 것이기 때문. 하지만 텔레포트도 봉인된 상태라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건 무리다. 효부는 여기서 이대로 후지코와 대결하자고 재촉한다.
* 미나모토는 수긍하지 못하지만 효부는 자신이 리더라며 다그치는 태도로 나온다. 그는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후지코와 처음 싸우는건 자신이라고 결정한다. 카오루는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다 잘 될 거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12회 일치
* 바로 그때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 [[파티 크루]] 일행이 뒤쫓아와 문자 그대로 미오를 밟아버린다. 지성이라곤 없는 그녀의 계획을 대차게 까면서. 미오가 어떻게 알고 따라왔냐고 하자 카즈라는 "설치류 둘이 사라져서 할 법한 일을 추리해봤다"고 당당히 밝힌다. 방금 전까지 설치류의 명예를 걸고 영장류를 뜯어말리던 모모타로는 억울해하며 "설치류에게 사과해라"고 항변한다.
미오는 그럼 어떻게 하냐고 버럭하는데, 카즈라가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는 거다"라고 맞버럭질을 지르자 겨우 상황을 이해한다. 하지만 카즈라 일행이 그저 미오를 말리려고 온 것만은 아니었다. 카즈라 일행은 판도라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탈옥 장비를 몰래 빼돌려서 가져왔다. 판도라는 일단 범죄조직이니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도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뻔히 함정일게 분명해서 장비를 과신하기도 힘들다. 이번은 여왕 [[아카시 카오루]]를 위해 정찰만 하기로 하고 그것도 낌새가 나쁘면 바로 철수하기로 하고 형무소 진입을 시도한다.
이렇게 되자 미오는 츤츤거리며 고맙다고 하려고 하지만 애초에 미오의 성격을 잘 아는 동료들이라 그런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카가리가 곧바로 해킹 장비로 형무소 내의 감시 시스템을 15분 정도 무력화시킨다. ECM은 손댈 수 없었지만 이걸로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가 감금된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파티는 바깥에서 경계하기로 하고 미오, 모모타로, 카가리, 카즈라가 진입한다. 미오와 모모타로는 카가리, 카즈라와 간격을 둔 채로 미나모토와 사카키가 갇힌 감옥으로 접근했다. 미나모토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미나모토의 무사를 확인하고 카오루에게 전할 말은 없냐고 묻는다. 그녀의 등장에 놀란 미나모토는 혼자 온 거냐고 묻는데 모모타로가 고개를 내밀고 자신들과 카가리, 카즈라, 파티가 같이 왔다고 말해버린다. 그게 실수였다. 이들은 진짜가 아니라 디코이. 블랙 팬텀의 함정이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카가리와 카즈라는 모모타로의 텔레파시를 수신하고 작전대로 폭발물을 작동시키고 탈출하려고 한다. 바깥의 파티는 폭발로 안에서 이변이 생겼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카즈라는 모모타로가 무전이 아니라 텔라파시를 보낸 점을 주목한다. 그러고 보니 ECM이 작동하지 않는다. 에스퍼 형무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이제보니 주위에 수형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디코이 만이 아니라, 이 형무소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이다.
* 일행이 진입하기 전부터 블랙 팬텀의 병력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가리와 카즈라가 쓰러지자 숨어있던 에스퍼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벨의 와일드 캣, [[우메가에 나오미]]였다. 그녀도 정신오염 당해 블랙 팬텀의 수하가 되었다.
* 한편 엉겁결에 텔레포트를 하게 된 미오와 모모타로는 형무소 어딘가로 떨어진다. ECM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왜 초능력이 써지는지 당황해한다. 그때 그들 앞에도 블랙 팬텀의 자객이 등장한다. 팀 토이, [[바렛 실버]]와 [[팀 토이]]. 역시 정신오염 당했다. 블랙팬텀의 명령을 받고 "마음껏 싸우러" 왔다.
- 정규수(배우) . . . . 12회 일치
* [[2010년]] [[SBS]] 대하드라마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 이대수 역(특별출연)
* [[2012년]] [[MBC]] [[대장경]]천년특별기획드라마 《[[무신 (드라마)|무신]]》 ... [[최자 (고려)|최자]] 역
* [[2017년]]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 의사 역
*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
* [[1994년]] 《[[49일의 남자]]》
* [[2004년]] 《[[효자동 이발사]]》 ... 만두가게 왕씨 역
* [[2004년]] 《[[아는 여자]]》 ... 노의사 역
* [[2009년]] 《[[그림자 살인]]》 ... 편집장 역
* [[2010년]] 《[[퀴즈왕]]》 ... 남자 역
* [[2007년]]~[[2009년]] 《발자국 안에서》
- 정기고 . . . . 12회 일치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남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반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영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영상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영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016년 - ''소소하게 조금씩'' (KBS 우리집에 사는 남자 OST)
* [[2017년 ]] [[MBC]] [[복면가왕]] 운명의 노래술사 타로맨 (참가자)
* [[2017년 ]] [[MBC]] [[복면가왕]] 운명의 노래술사 타로맨 (참가자)
* {{유튜브 사용자|Junggigo}}
[[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
[[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BC 쇼! 음악중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음악가]][[분류:영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스타쉽 엑스 소속]]
- 정링컨 . . . . 12회 일치
'''정링컨'''({{본명|링컨 폴 램버트}} - <small>(Lincoln Paul Lambert)</small>, [[2007년]] [[10월 1일]] ~ )은 [[미국 시민권]]의 아버지와 [[대한민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계와 한국계 [[혼혈|혼혈인]] 아역 [[연기자]]이다.
* [[QTV (방송)|QTV]] 《죽 쑤는 여자 죽지 않는 남자》
* [[기아자동차]] Human-Driven 홍보영상 (2011)
* 현대자동차 지면광고 (2012)
* [[주니엘]](JUNIEL) 미니3집앨범 '귀여운남자' M/V (2013)
[[분류:200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램버트, 링컨]][[분류:21세기 터키 사람|람베르트, 파울]][[분류:미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한양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침례교도]][[분류:미국계 터키인]][[분류:한국계 터키인]][[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터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브루나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조긍하 . . . . 12회 일치
| 자녀 = 슬하 5남 3녀 <br /> 장남 조동완(1945년 출생) <br /> 차남 [[조동진]]([[싱어송라이터]]) <br /> 4남 [[조동익]]([[베이스 기타|베이시스트]] 겸 [[작곡가]]) <br> 3녀 [[조동희 (가수)|조동희]]([[싱어송라이터]])
| 배우자 = 양예원(재혼)
| 직업 = [[테너]] [[성악가]], [[피아노 연주자]],<br />사진 작가, 영화감독, 영화평론가,<br />음악평론가, [[영화 프로듀서|영화 제작자]],영화기획가, 영화 편집감독, 영화각색가,<br>영화각본가, 소설가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383&mobile&categoryId=1639 조긍하 - 네이버 지식백과]</ref>. 그 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가|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사진작가의 관록으로 조감독 수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었는데, [[1952년]]에 《베일부인》을 감독한 것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등의 영화를 감독하였고,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해왔다. 또한,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300032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30&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81&publishType=00020 故(고) 趙肯夏(조긍하)감독의 人間(인간)과 作品(작품)세계 고지식하면서도 유머풍부 - 1982년 1월 30일 경향신문]</ref>.
* [[1962년]] [[영화]] 《인간만세》를 감독, 이 [[영화]]로 [[영화 프로듀서|영화제작자]] 데뷔.
* [[1968년]] 자작 [[소설]] 《세월이 흘러가면》으로 [[소설|소설가]] 데뷔.
* [[1969년]] 자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세월이 흘러가면》을 [[영화 감독|감독]].
[[분류:일제 강점기의 성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1942년 데뷔]][[분류:투자가]][[분류:자유 연애]][[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구니타치 음악대학 동문]][[분류:1919년 태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풍양 조씨]]
- 차명진 . . . . 12회 일치
|정당 = [[자유한국당]]
|배우자 =
|자녀 =
'''차명진'''(車明進, [[1959년]] [[8월 14일]] ~ )은 [[대한민국]] 정치인이자, 제17, 18대 국회의원이다.
* [[2017년 2월]] ~ [[2018년 9월]] :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부천소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 [[2011년]] [[9월 18일]] 국민일보의 "[정치자금 겉과 속-(4) 정치 후원금은 쌈짓돈] 이발비 12만원·안경 구입비 45만원 쓰고 “의정활동용”"이라는 기사 <ref>{{뉴스 인용|제목=`[정치자금 겉과 속-(4) 정치 후원금은 쌈짓돈] 이발비 12만원·안경 구입비 45만원 쓰고 “의정활동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364841&code=11121100|출판사=국민일보|날짜=2011-09-18}}</ref> 에 의하면 차명진은 2010년 5월 27일 업무용 안경 10만원, 6월 23일 다시 업무용 안경 45만원, 7월 1일에도 업무용 안경 45만원, 9월 8일 진료비 21만 9100원, 11월 28일 목도리 4만5천원, 12월 8일 셔츠 3만9천원을 각각 '의정활동용'으로 신고했다.
|전임자 = [[김문수 (정치인)|김문수]]
|후임자 = 차명진
|전임자 = 차명진
|후임자 = [[김상희 (1954년)|김상희]]
[[분류:민중당의 정치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연안 차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친이]][[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2회 일치
혹시 모르니까 닫아야겠다. 할 수 있을 때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일대가 전멸했다면 그만큼 좀비들의 숫자도 넘쳐날 것이고, 그것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식량을 손에 넣는데 실패하더라도 마당으로 오는 놈들이 줄어든다면 다음 기회도 생길 수 있으니까. 나는 문 너머에 놈들이 있진 않나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닫는 순간에 나는 소리가 행여라도 놈들을 깨우게 되진 않을지 주의하며 움직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 "소리"가 감지되는지는 알 수 없다. 관찰에 따르면 놈들은 개인차가 상당하다. 그야 부패 정도나 생전의 몸 상태가 영향을 줄 거란건 명백하다. 하지만 고막은 어떨까? 안구나 피부는 썩어 버린다. 고막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야 호되게 싸다귀라도 맞으면 터지겠지만 놈들이 그럴 일이 있을까? 설사 고막이 있더라도 자극을 느낄 뇌가 녹아 버린 놈들이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까?
구로자와 아키라는 검객들이 비스듬히 칼을 곧추 세우는 장면을 자주 찍었다. 내가 라쇼몽에 나오던 그 검사처럼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내 희망사항일 뿐이다. 봐줄 사람이 있다면 내 모습은 골프채 뒤에 숨은 얼간이일 것이다.
초조함은 나의 모든 선택에 회의감을 던졌다.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단 다섯걸음이 이렇게 길고 고통스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발씩 옮길 때마다 모퉁이에서 튀어나오는 손톱과 이빨이 3D 입체영상처럼 생생하게 재생됐다. 아직가지 들린 적이 없는 그르렁대는 소리도, 내 머릿 속에서는 정지버튼 없이 자동재생 된다. 모퉁이에 다 도달해서는 갑자기 현관문 쪽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쿵 쿵……'''
이럴 땐 문을 닫아둬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덕분에 그게 환청일 뿐이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엉거주춤 멈춰서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겠지. 아니, 사실 지리는건 상관없어. 지금 이미 '''축축해져 버렸으니까.'''
독을 묻은 자리는 놈들이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그때 이것들을 묻으면서 커다란, 거의 바위에 가까운 돌덩이를 하나씩 올려놨었다. 개나 고양이가 파해치는걸 막으려는 조치였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한두 마리 정도는 여기에 찝적거렸겠지만 그놈들 힘으로 이걸 치우는건 무리였을 거다. 이 고무적인 사실 때문일까? 조금 긴장이 풀렸다. 꽉 졸려있던 기관지가 풀리면서 몇 주만에 맛보는 바깥 공기가 달게 느껴졌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천장호 . . . . 12회 일치
'''천장호'''(千長鎬, [[1948년]] ~ )는 [[대한민국]]의 공학자이자 교육자이다. 현 제9대 [[광운대학교]] 총장이다.
서울고등학교 20회 동기로는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육군사관학교),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서울대),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연세대), 유웅석 전 SK건설 사장(서울대), 이종수 SH공사 사장(서울대)등이 있다. 당시의 서울고등학교는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육군사관학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등 최고 명문 학부에 진학하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 현 광운대학교의 전신인 광운전자공과대학을 수석 입학하였다.
[[광운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연구처장, 중앙도서관장, 대학신문 주간, 학생처장, 부총장 등을 지내고, 2014년 1월 광운대학교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최근 조무성 전 광운학원 이사장의 자녀 조○○씨 이사 추대를 반대하는 광운대 학생과 동문들 시위로 진통을 겪고 있는 광운대가 최근 실시한 교수평의회 소속 전임교수(전임교수 331명 중 313명 응답) 대상 '천장호 총장의 사퇴여부에 대한 찬반'에 대한 설문에서 60.1%가 사퇴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교수대표단(단과대학별 소속교수인원 비례로 선출) 16명중 86%가 천장호 총장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나타냈다. 교수대표단이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고 꼽은 이유는 ▲자주적 대학운영을 하지 못하는 재단의 종속 ▲조무성 전 이사장의 자녀 이사영입 방조 등이었다
2017년 5월, 광운대는 2016년 2학기 전자재료공학과 중간·기말고사에서 부정행위를 한 학생 12명을 F학점 처리하고, 2017년 1학기의 모든 장학금 수여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8/2017050800022.html|제목='정직시험' 서약해놓고… 광운대생 12명 부정행위|언어=ko|확인날짜=2017-06-08}}</ref>
*[[광운대학교]] 전자공학과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광운대학교 총장]][[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광운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티븐스 공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영양 천씨]]
- 최만린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김소원 (배우)|김소원]]
| 자녀 = 최아사(아들), [[최아란]](딸)
| 친척 = 지석모(외조부) <br/> 박희교(손부) <br/> [[김민자]](처제) <br/> [[최불암]](처제부) <br/> 최동녘(이질) <br/> 최동비(이질녀) <br/> [[서승현]](사돈)
[[1935년]] 아버지 최춘빈(崔春彬)과 지석모(池錫模)의 외동딸인 어머니 지명순(池明淳) 사이에 2대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 부친은 [[동아일보]] 만주 지국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친 모두 [[본적]]이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이며 모두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골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외가에서 외조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 배우자 : [[김소원 (배우)|김소원]]([[1935년]]) - [[성우]] 겸 [[배우|연기자]], 슬하 1남 1녀
*** 자부 : 박희교([[1964년]]), 슬하 1남 1녀
* [[2005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2005년 12월).
* [[2006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 직위 퇴임(2006년 1월).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영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창홍 . . . . 12회 일치
[[1937년]] [[2월 20일]] [[평안북도]] 경찰부 보안과 경시로 임명된 뒤부터 군용 자동차 징발 및 운전수 징집, 지하자원 개발 및 공출, 시국 범죄 위반 단속 및 검거, 국내 물자 조사에 관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1938년]] [[3월]] [[평안북도]] 방공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5년]] [[5월 11일]] [[충청북도]] 참여관 겸 광공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5년 8월 광복 때까지 고등관 3등과 정6위에 서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도 참여관 부문,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참고 자료 ==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임자 = -
|후임자 = [[구연직]]<br/>([[충청북도 부지사|충청북도 민정관]])
[[분류:1903년 태어남]][[분류:1951년 죽음]][[분류:대한제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카네다 쇼타로 . . . . 12회 일치
성우는 1기는 [[타카하시 카즈에]], 2기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는 [[야마다 에이코]]/[[최수민]](대영비디오판), 철인 28호 FX는 [[타나카 히데유키]], [[오리카사 아이]](소년시절)/[[김용식]](MBC), 4기는 [[쿠마이 모토코]] 5기는 齋藤智美.
철인 28호를 조종하는 소년 [[탐정]]. 쾌활하고 기민한 행동력과 어른을 압도하는 추리, 발상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철인을 조종하기 이전부터 소년 탐정으로서 명성을 날려왔다. 경시청에도 출입하며 수사에 협력할 정도. 뛰어난 사격실력에 자동차 운전, 제트 전투기 탑승, 헬기 조종 및 잠수 작업 등도 해낸다. 철인 28호를 얻은 후부터 철인과 함께 사건을 해쳐나간다. 집은 서양식 저택으로 혼자서 생활. 부친은 [[카네다 박사]]이며 중요한 동료로는 [[오오츠카 서장]], [[시키시마 박사]]가 있다.
태양의 사자 버전에선 소년탐정이 아닌 평범한 소년 이었다가 철인의 조종사가 되면서 ICPO(인터폴)의 대원이 되었다. 이후 돈 블란치 등 다양한 범죄자들과 싸우며, 최후에는 우주에서 나타난 우주마왕과 싸우게 된다.
여기에서는 자주 조종기를 뺏기는등 어수룩한 면도 보이지만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불살을 행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주인공들([[키라 야마토]]등)과 다르게 로봇에 탑승한 모든 악당들을 처절하게 끔살시키는 프로페셔널로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과장이지만 싸울때를 보면 악당을 생포하든 죽이든 그런건 안중에 없는듯한 쿨한 마인드가 돋보인다.
철인 28호 FX에서는 왕년의 영웅인 중년 탐정.[* 철인 28호 FX의 배경 세계는 초대 철인 28호 이후의 시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인 천재 과학자인 사카키 요코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네다 마사토를 얻었다. 이 마사토가 시리즈 3기인 FX의 주인공. 그런 이유로 주역의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소년 시절부터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지 활약도 많다. 중반부터는 인터폴의 장관이 되며, 그에 따라 카네다 탐정 사무소 전원이 인터폴 소속이 된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재세편]]에 등장해선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쇼타콘의 어원답게 연상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쉬포드 학원 이벤트에서 여고생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악 거린다던가(...).] 나이 대가 비슷한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왓타]]와 [[무적초인 점보트3]]의 [[진 캇페이]]와 친구. 갓마즈의 [[묘진 타케루]]하고도 서로 믿고 지내는 형동생 사이로 나온다. 참고로 왓타 또한 쇼타로처럼 원작에서 악당을 자비심 없이 끔살시켰던 초딩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리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솔레스탈 빙]]이나 [[흑의 기사단]] 같은 전직 테러리스트와 동료로서 같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지만.
[[제3차 슈퍼로봇대전 Z 시옥편]] 원작대로 구라 왕자와의 우정이 묘사되었다. 원작의 철인 자폭도 재현됐지만 타케루가 초능력으로 주워다줘서 이후로도 계속 쓸 수 있다.
태양의 사자의 더빙판인 'The New Adventures of Gigantor'에서의 이름은 'Jimmy Sparks'.[* 다른 캐릭터들도 더빙판에서는 다른 이름이다. 시키시마 박사는 'Bob Brilliant', 오오츠카는 'Inspector Blooper'.]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12회 일치
1942년 9월 12일, [[독일]] 잠수함 U-156이 [[영국]] 병력수송선 라코니아(Laconia)를 격침시킨다. 징발된 민간 여객선이었던 이 선박에는 영국 군인, [[자유 폴란드군]] 군인, 이탈리아군 포로들이 타고있었다. U-156은 구조 지원을 요청한다.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구조를 위해 이동한다. 카펠리니는 15일에 현장에 도착, U-156, U-506, U-507과 함께 생존자들을 주렁주렁 태우고, 구명보트를 끌며 구조작업을 돕는다. 그와중에 [[미육군항공대]] 소속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에게 공격당했고, 이에 잠수함들은 견인하던 구명보트 줄을 끊고 잠항해버린다.
1942년 9월 18일, 프랑스령 [[기니]] 소속 선박 뒤몽 뒤르빌(Dumont d'Urville)을 만나 이탈리아인 6명과 영국인 포로 2명을 제외한 생존자를 넘겨준다.
1943년 2월 20일, 독일 해군 총사령관 [[칼 되니츠]]는 일본에서 전쟁물자를 가져오는 선박들의 손실이 크니 이탈리아의 대형 잠수함을 수송용으로 개장해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이탈리아는 이를 독일 잠수함 7척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 그렇게 개장된 잠수함 중에는 코만단테 카펠리니도 있었다
1943년 5월 11일 [[보르도]], 아퀼라 III는 일본에 보급할 물자를 싣고 [[싱가포르]]로 출항한다. 7월 13일, 두달간의 항해 끝에 아퀼라는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상황이었다. 결국 9월 8일,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항복했다. 그때도 아퀼라 III는 싱가포르에 정박해 있었다.
이탈리아 항복 다음날, [[일본군]]은 아퀼라 III의 승무원들을 포로수용소에 던져넣고 아퀼라 III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아퀼라 III를 UIT-24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협조적인 이탈리아 승무원을 태운 UIT-24는 보르도로 돌아오기 위한 항해를 떠났으나 중간에 연료 보급을 해줄 [[유조선]]이 영국군 구축함에 잡혀 자침당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후 동남아와 일본 본토를 왕복하며 보급 임무를 수행한다.
1946년 4월 16일, I-503은 [[기이 수도]]에서 미군에 의해 자침, 약 7년간의 함생을 마친다.
|| 격침 날짜 || 함명 || 분류 || 국적 || 배수량(단위 통일 안됨) || 사망자 수 || 비고 ||
|| 1942년 5월 31일 || 딘스데일(Dinsdlae) || 유조선 || [[영국]] || 8,214t || 13명 || [[http://www.wrecksite.eu/wreck.aspx?137277|배수량 및 사망자 출처]] ||
이외에 일부는 [[영국]] 상선 미구엘 데 라링가(Miguel de Larringa)를 격침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자료가 맞지 않는다.
일본군으로 활동할 시 코만단테 카펠리니의 승무원 구성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떠돌고 있다. 이탈리아인, 독일인,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의견과 독일인+이탈리아인 승무원만 태웠지 일본인은 태우지 않았다는 의견. 판단은 알아서 하자.
- 킹덤/534화 . . . . 12회 일치
* [[몽념(킹덤)]]은 [[마광]]군의 지휘권을 빠르게 인수하고 사기를 북돋는다. 마정의 부관 [[정양]]은 군이 상승세로 돌아서자 기뻐하나 몽념은 이제 겨우 최저한의 준비가 끝났을 뿐이고 위기는 계속 된다 단언한다. 그는 정양에게 중앙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대를 파악해 좌우거점으로 원군을 보내게 하고 특히 우측 [[비신대]] 진영엔 기마 위주로 편성해 보내라고 지시한다. 몽념은 마정군이 일몰 후에도 살아있을지 어떨지는 전적으로 군략에 달렸다며 지금부터 진정한 본진의 싸움이 시작된다고 선언한다. 한편 조군 최전선에 있던 [[마정]]은 진군의 기세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 사이에 세 무리의 깃발이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 주시한다.
* 비신대는 마정군의 접근을 인지하고 응전할 태세를 취한다. [[이신(킹덤)|이신]]은 자신이 마정을 상대하겠다고 벼르나 [[강외(킹덤)|강외]]가 제지한다. 마정과 정면승부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몽념이 "마정과 맞생다하지 마라"고 지시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비신대의 진짜 역할은 진군의 사기진작이며 지금 전력으로 마정군 본대를 당해낼 수도 없다. 강외는 원군으로 기마대가 온 걸 들어서 이동하면서 마정을 더욱 끌어들이는게 합당하다고 한다. 이신은 그 말에 따른다.
* 비신대가 마정을 끌고 나가자 몽념이 진짜 승부수를 띄운다. 낙화대 본진의 등장이다. 몽념이 신호하자 좌측 숲에 숨어있던 기마대 3천이 일제히 돌격한다. 기마대는 그대로 [[육선]]의 진군 좌측으로 향한다. 육선이 이끄는 마광군과 합류한 낙화대는 그 기세를 몰아 조군 중앙으로 진출한다. 이제 몽념이 있는 중앙의 마광군도 돌격한다. 조군 중앙을 향해서였다. 이것이 몽념의 진짜 포석. 처음부터 마광군 전체를 살리는건 포기하고 있었다. 좌측에 여력을 모아서 반격을 꾀하고 오늘을 버텨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 기수의 본대가 움직이는걸 확인한 몽념은 자신과 낙화대를 방패막으로 세워 기수와 맞상대로 하기로 한다. 여기까진 사전에 예측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과연 이 마지막 힘싸움을 버텨낼지 확신은 여전히 없었다.
* 조군이 물러난 자리. 시체들이 적도 아군도 없이 뒤엉켜 있다. 이신이 그 사이에서 몽념을 찾아냈다. 숨이 붙어있었고 곧 정신을 차렸다. 몽념은 맨 처음 기수군의 동향을 물었고 이신은 방금 전 막 물러났다고 대답했다. 이신은 그밖에 좋은 소식도 가지고 있었다.
마광군을 하드캐리해 전선을 지켜냈다. 중앙에서 회복을 마친 마정군을 비신대를 미끼로 삼아 끌어내고 육선이 점거한 좌측을 기점으로 군을 재정비했다. 하료초는 전장 전체를 꿰뚫어 보고 이 같은 전략을 수립한 것도 대단하지만 한순간에 마광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점이야 말로 진짜 대단한 점이라고 감탄한다. 몽념도 자신의 구상을 간파한 하료초의 재능에 감탄.
후반에는 기수 본대의 역습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과 낙화대를 앞세워 마광군을 보호한다. 여기까지는 다 작전대로 잘됐지만 이 공습을 막아낼지는 확신이 없는 듯했다. 실제로 난전 중에 낙마해 시체들 사이에 쓰러져 있던걸 이신이 발견한다. 다행히 무사히 생환. 전에 장담한 대로 진군 좌익의 싸움의 주역이 되었다.
몽념 옆에 남아서 그가 마광군을 인계하고 대응책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빠른 시점에서 그의 구상을 간파해 몽념이 감탄하기도 했으나 그녀 자신은 간단히 마광군을 인수하고 이런 전략을 펼치는 그에게 경악한다. 새삼스럽게 스승 창평군이 "재능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극찬했던 일을 떠올리며 몽념을 빤히 쳐다보다 "그만 봐라"고 몽념이 한소리한다.
명색히 몽념과 대장군 자리를 겨루는 입장이면서 여전히 몽념의 전술안을 따라가지 못한다. 비신대를 이끌고 진군 우측을 점거한 건 좋았지만 몽념이 내린 지시를 이해 못 해 마정이 처들어왔을 땐 일기토까지 할 작정이었다. 다행히 강외가 작전을 잘 설명해준 덕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후반에 힘겨루기 국면으로 넘어가자 잘 버텼다. 몽념이 기수 본대와 격돌하고 의식을 잃었을 무렵에도 잘 싸우고 있었고 조군이 물러날 때까지 제대로 전선을 지켜냈다. 몽념이 쓰러져 있는걸 발견해 데리고 왔다.
마정이 중앙을 방치했을 때 미심쩍어 했지만 결국 다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마정보단 낫지만 결국 손을 쓰지 않았으니 유명무실하다. 낙화대 본진이 합류하고 우측에서 강한 저항이 일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조금 늦었다. 물론 전세가 기울어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기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승기를 내줬다고 볼 순 없었지만, 결국 진군을 섬멸하지 못한 채 이틀째를 맞이했다.
- 타루 . . . . 12회 일치
| 종교 =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예장합동]])<ref>[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936640&code=61221111&cp=du ‘홍대 여신’ 타루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립니다”…스타인헤븐], 국민일보, 2016년 9월 19일</ref>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음악 그룹]] [[더 멜로디]]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더 멜로디]]의 멤버 [[고운 (가수)|고운]]의 군입대 후 더 멜로디가 해체되면서 [[2008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이다. 타루(墮淚)라는 예명은 ‘눈물을 흘리다’라는 의미의 한자어이며, 현재 소속사는 올드 레코드이다. [[SBS TV|SBS]] [[드라마]]《[[시크릿 가든 (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이색 문자음 "문자 왔숑"의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본 팝밴드 [[스윙잉 팝시클]]이 보너스 트랙 제외 전곡을 프로듀싱했다<ref>{{뉴스 인용|제목=타루, 28일 정규 1집 ‘TARU’ 발매|url=http://www.dipts.com/news/index.html?mode=view&top_id=A&page=1&cate1_id=15&cate2_id=126&issue_id=&number=17282&text=|출판사=DIP 뉴스|저자=류진영 기자|쪽=|날짜=2009-08-28|확인날짜=2009-12-11}}</ref>.
# 여기서 끝내자 (Duet with [[짙은]])
# 여기서 끝내자 (band ver.)
# 여기서 끝내자 (solo ver.)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전자 음악가]][[분류:한양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탈북자 망명정부 . . . . 12회 일치
2016년 일부 [[탈북자]] 단체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망명정부]]. 가칭 '북조선자유민주망명정부'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초에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 설립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주로 [[미국]], [[유럽]] 등지의 대한민국 국외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망명정부의 구상은 탈북자들이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1990년대 부터 이미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장엽]]을 중심으로 하여 망명정부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황장엽 본인의 거부로 무산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탈북자 망명정부 설립운동 측이 '김정남'과 접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정남은 망명정부 수반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자신이 망명정부 수반이 되는 것 역시 3대 세습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김평일'과도 접촉했다는 설[[http://ifreenk.com/87121 (참조)]]이 나오면서, 망명정부가 김씨 일가를 '구심점'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망명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주체로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61006/80664378/1#csidx6390859011994e7a8d6c822b9a35888 (참조)]]
2006년 탈북한 호위사령부 장교 출신 김모 탈북자는 다음 3가지 문제점을 들었다고 한다.[[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480 (참조)]]
* 대한민국의 영토조항, 자유통일을 갈망하는 국민정서로 볼 때, 북한망명정부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 구심점이 없다. 북한 주민들 다수가 인정할 만한, 정부 수반의 자격을 갖춘 인물의 부재.
- 토리코/388화 . . . . 12회 일치
* 아카시아는 토리코도 "식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음을 확인하지만 빈정거리며 평가절하한다.
* 날아간 아카시아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토리코가 있는 자리로 돌아오고 토리코는 이또한 손쉽게 잡는다.
* 부활한 사천왕 코코, 써니, 제브라와 텟페이도 거기에 동감하며 가장 나중에 먹기를 자청한다.
* 그는 자기가 도착했던 시점부터 형세는 이미 역전됐던 거라고 받아친다.
* 이들 중 미도라만이 증오로 성장을 거듭했다면 자신에 근접한 식욕을 가졌을 텐데, 스스로 내던졌다고 말한다.
* 식욕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종의 번영이나 애정 같은건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 미도라는 플로제의 죽음 당시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팠던 자신을 떠올린다.
* 아카시아는 딱 하나 자기가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 그는 모두 부활해서 만반의 태세라고 생각할 테지만, 오히려 준비가 끝난건 자신이라고 말한다.
* 그때 저 앞에서 빛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헤엄쳐가자 뜻밖에도 식재가 산더미 같이 쌓인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 오왕과 사왕은 틀린 걸로 나오는데 아마 그 자리는 키스와 퀸이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 아카시아가 말한 자신의 진정한 풀코스도 이것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다.
- 포스탈 리덕스 . . . . 12회 일치
플레이어는 정해진 구역 안을 돌아다니며 적들(경찰관, 자경단, SWAT, 군인 등등)을 보이는 대로 죽이면된다. 타조를 포함한 [[민간인]]들은 죽이던 말던 상관 없음. 90% 이상의 적이 죽으면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다.
>좋은 목표가 되기 위해서, 축복 받은 자들은 온순하다.
>공기가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의 악취로 숙성된다. 승리의…향기로군
>영광스러운 대학살의 교향곡. 76명의 트럼본 연주자들이 죽음의 행진을 이끈다…
>생명은 값싸고, 죽음은 공짜다! 지금 행동해라! 물자가 한정되어 있다! (애리조나에 공허를 제공해라)
>난 적에게서 빼낸 내장을 파티 모자로 착용하고, 놈들의 조각난 내장을 넥타이로 입고, 오, 이제 춤을 춰야겠군!
* 자동산탄총(3)
가끔씩 상자에서 나오는 무기. 세가지 모양을 하고있지만 셋 다 지뢰의 역할을 한다.
게임 메인 화면이 인간 가죽인 등 상당히 불쾌한 면을 자극한다. 아니, 게임의 주요 요소 자체가 불쾌함을 자극한다.
- 하이큐/229화 . . . . 12회 일치
* 혼자가 아님을 실감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치게 된 사와무라. 어느새 D-day가 다가와 있다.
* 카라스노 3학년들은 함께 신사참배를 하기로 했다. 사와무라는 예정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와버리는데 때마침 아즈마네 아사히와 스가와라 코시도 그 시간에 도착한다. 그로부터 20분 후. 시미즈 키요코가 도착하는데 분명 약속시간보다 일직 나온 거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나와 있어 혹시 자기가 시간을 잘못 알았냐고 묻는다.
* 신사를 나서면서, "원래 신사참배할 때는 소원이 아니라 감사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즈마네는 자기는 그걸 몰라서 시합 결과에 옆집 개의 건강가지 빌어버렸다고 "신령님이 뻔뻔하다고 생각하겠다"고 한탄한다. 이런 실없는 얘기나 하던 중에 시미즈가 "신령님한테 빈다고 시합에서 이기는게 아니다"는 독설을 날린다. 일순 굳어버린 남자들. 스가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 한편 설날에도 런닝을 빼먹지 않는 카게야마 토비오는 히나타 쇼요에게 신사 참배 가지 않겠냐고 문자를 받지만 단호히 거절한다. 부원들은 각자 집에서 설날을 보내고 있다. 히나타는 야마구치 타다시랑 참배하러 가는 길에 카게야마한테도 물어본 거지만 단호한 거절에 짜증을 낸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누나가 주정을 부려서 곤란해하고 있다. 니시노야 유는 전통놀이로 여념이 없다. 츠키시마 케이는 형이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혼자 노느라 신경도 쓰지 않는다.
* 귀갓길에 다른 3학년들과 떨어진 사와무라는 여전히 꿈 때문에 찜찜한 기분이 든다. 가던 길에 잠시 체육관에 들러보는데 왠지 부원들이 체육관에 와있다. 히나타는 참배갔다 오는 길에 그냥 들렀고 왠지 카게야마는 런닝 중이었는데 어쩌다 들렀다고 한다. 타나카는 누나의 주정을 참다 못해 도주, 니시노야는 "강자를 찾아서"라는 해괴한 이유. 사와무라는 "참치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냐"고 핀잔하며 쉬는 날엔 푹 쉬고 괜히 돌아다니다 감기나 들지 말라며 쫓아낸다. 그런데 사실 사와무라도 "체육관을 농구부한테 뺏기지 않았나 확인"하러 왔으니 엉뚱하게 돌아다니긴 마찬가지다.
* 다시 집으로 향하는 사와무라. 그런데 우연찮게 토코나미 고교 3학년 이케지리 하야토와 마주친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공원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사와무라는 다른 팀이라 그런지 팀원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긴장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케지리는 "시라토리자와를 무찌르고 봄고에 가는거 자체가 대단하다"며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다녀오라고 말하는 듯 했지만
* 이케지리는 무지하게 기대해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와무라는 오히려 그 말이 맞다며 "꿈 따위에 너무 쫄았다"고 말한다. 그는 팀원들의 존재는 물론 심지어 달느 팀인 이케지리까지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와무라는 "내가 혼자일리 없어"라고 다짐하며 각오를 다진다.
- 하이큐/254화 . . . . 12회 일치
* 물론 충격은 당사자들이 가장 컸다. 로테이션 때문에 코트 밖에 있던 히나타는 말할 것도 없이 표정이 구겨지고 카게야마는 딱딱하게 굳는다. [[스나 린타로]]는 정말로 한 거냐고 뜨악한 반응. 아츠무는 "토비오군 만큼 정밀하진 않다"고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인 듯 하다.
* 관중석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방금 전 카게야마가 놀라운 페이크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처럼 아츠무의 플레이를 섬뜩하게 여긴다. 상대의 특기를 굳이 따라해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것, 그걸 해내고자 하는 센스와 하고자하는 결단력이 질투심이 들 정도다. 반면 [[보쿠토 코타로]]는 "아아" 정도로 대꾸하고 말 뿐이라서 정말로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무관심한건지 모를 일이다.
* 연거푸 괴짜 속공을 따라하자 오사무는 "기분 나쁘다"고 투덜대지만 아츠무는 그저 좋은 기색. 입장이 난처해진 우카이 코치. 하지만 얻어맞는 선수들만큼 뼈아픈 기분은 아닐 것이다. 코트 바깥의 히나타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그런데 츠키시마는 낌새가 수상한게 뭔가를 느낀거 같은데?
* 이어지는 경기. 이번엔 타나카의 스파이크로 카라스노의 득저. 응원단의 [[타나카 사에코]]가 동생의 활약에 환호한다. 스코어는 12 대 10. 여전히 2점차. 이 시점에서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가 빠지고 히나타가 투입된다. 의욕이 넘쳐서 투입되자마자 오사무 쪽을 노려보는 히나타. 이때 이나리자키 진영은 아츠무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데.
* 츠키시마의 서브로 경기 재개. 아카기가 리시브한다.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이나리자키의 공격진. 오사무가 네트 앞으로 다가오자 히나타가 섣불리 블로킹을 뛰지만 페이크, 아츠무의 세트업은 스나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스나의 스파이크는 사와무라가 받아내고 흔들린다. 불안하게 떠오르는 공. 카게야마가 따라간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몰랐지만, 여기서부터는 아츠무가 시뮬레이션한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진다.
그는 시라토리자와전과 봄고 1회전의 데이터를 근거로 그렇게 분석했다. 그건 카게야마 자신이 대단한 정신력과 높은 기술적 숙련도를 가졌기에 가능한 플레이. 여기서에 아츠무는 두 개의 계산을 끼워넣는다. 하나는 "흐트러졌을 땐 사이드에서 에이스"라는 정석을 벗어난 것, 다른 하나는 "방금 전 우리의 속공을 카게야마가 봤다는 것"이었다.
>이나리자키, 이번엔 "본가"를 막았어요!
- 한보배 . . . . 12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2006년]] [[KBS2]] 월화드라마 《[[봄의 왈츠]]》 ... 어린 홍미정 역 ([[최자혜]] 아역)
* [[2006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반가운 살인자》 ... 정하린 역
* [[2010년]] [[MBC]] 추석특집극 《[[주부 김광자의 제3활동]]》 ... 최윤선 역
* [[2015년]]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 ... 황경아 역
* [[2002년]] 《[[폰 (영화)|폰]]》 ... 아이 환자 역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한석명 . . . . 12회 일치
[[1928년]]에 [[조선총독부]] 군수로 천거되어 관계로 이동하였고, [[사천군]]을 시작으로 [[동래군]]과 [[하동군]] 군수를 지냈다. 하동군수로 재직 중이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는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ref> {{뉴스 인용
|저자=성강현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저자=성강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경찰,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장남 [[한복 (1914년)|한복]]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자매 소설가로 유명한 [[한무숙]]과 [[한말숙]]은 한석명의 딸들이다.
==참고 자료==
[[분류:1890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20세기 한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신자]][[분류:청주 한씨]]
- 한성식 . . . . 12회 일치
|직업 = 연극배우, 영화배우, 뮤지컬 배우,<br />텔레비전 연기자
* [[1998년]] 《[[남자이야기 (영화)|남자이야기]]》 ... 취객 역
* [[1998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 박 기자 역
* [[2003년]] 《[[남남북녀 (2003년 영화)|남남북녀]]》 ... 사회자 역
* [[2010년]] 《[[반가운 살인자]]》 ... 보급소 역
* [[2016년]] 《[[여자의 비밀]]》 ([[한국방송공사|KBS]])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허준영 . . . . 12회 일치
* 2015.02~ 2016.2 :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ref> {{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26/2016022600239.html|저자=곽래건|제목=자유총연맹 회장선거… 親朴 김경재, 허준영 꺾었다|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6-02-26|확인날짜=2016-03-16}} </ref>
=== 불법 정치자금 수수 ===
용산역세권 개발사업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허준영은 현직 코레일 사장으로 재임하던 2011년 11월 용산역세권 개발과 관련해 업무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용산역세권개발 손모 전 고문에게서 뇌물 2000만원을 받고, 이후 3년여 동안 1억 3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 기소되었으며 2017년 3월 16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고심에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 수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317011002&wlog_tag3=naver|제목=‘용산 개발 뒷돈’ 허준영 징역형 확정|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5-26}}</ref>
|전임자 = [[최기문 (1952년)|최기문]]
|후임자 = [[이택순]]
|전임자 = [[심혁윤]] (직무대행)
|후임자 = [[팽정광]] (직무대행)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허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경찰대학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경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홍준표]][[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헤이즈 (가수) . . . . 12회 일치
'''헤이즈'''({{llang|en|Heize}}, {{본명|장다혜}}, [[1991년]] [[8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힙합 가수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ppn&query=%ED%97%A4%EC%9D%B4%EC%A6%88&os=2916098&ie=utf8&key=PeopleService 네이버 인물]</ref> 헤이즈라는 이름은 본인이 외국 여성 래퍼 엔젤 헤이즈(Angel Haze)를 좋아해서 영어 철자만 바꾸고 지은 이름이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08830|제목='V앱' 헤이즈, 이름 뜻 설명 "독일어로 달아오르게 하다"|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16년에 발매한 싱글 《돌아오지마》와 《And July》의 음원 차트 순위권 진입이후 《저 별》이 주요 음원사이트 차트 1위<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217896|제목=[SS차트] 헤이즈 '저 별', 1위 장기집권 예고…新 음원 강자 등극|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를 기록하였다.
학과 내에서 1등을 하면 서울로의 상경을 허락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과 수석을 하게 된 그는<ref>{{뉴스 인용|제목=‘여자 도끼’ 헤이즈, 친오빠 재조명...“세상에서 제일 친한 남자”|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65032&page=1|날짜=2017-06-27|뉴스=MBN 뉴스}}</ref> 대구에서 상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음원깡패★헤이즈, 하루에 알바 3건+종이가방 스타일링...털털4차원 인성甲|url=http://star.mk.co.kr/v2/view.php?sc=40900002&cm=%EC%97%B0%EC%98%88%20%EC%A2%85%ED%95%A9&year=2017&no=428641&relatedcode=|날짜=2017-06-27|뉴스=스타투데이}}</ref>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는 한 번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ref>{{뉴스 인용|제목='최파타' 챈슬러X헤이즈가 밝힌 음악열정·공개연애(종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6599|날짜=2016-11-29|뉴스=JTBC}}</ref> [[언프리티 랩스타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ref name="s" /> [[크루셜스타]]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헤이즈는 라디오방송에서 크루셜스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고 아직 잊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디오쇼' 헤이즈 전 남친 언급, '이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91114132351596|날짜=2016-09-11|뉴스=아시아경제}}</ref> 헤이즈가 겪었던 이별의 경험은 그녀가 미니 앨범 《/// (너 먹구름 비)》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 2015년 1월 16일 - 《내 남자친구가 고맙대》
* 《[[나 혼자 산다]]》 (2016년)
* 2018년 [[삼성전자]] 삼성 노트북 Pen CF
*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베스트 보컬 퍼포먼스 여자 솔로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CJ ENM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무학초등학교 (경남) 동문]][[분류:마산제일여자중학교 동문]]
- 현석문 . . . . 12회 일치
|직업 = 순교자
현석문은 [[1797년]]에 [[한양]]에서 [[중인]] [[신분]]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되던 [[1801년]]에 [[신유박해]]로 [[순교]]하였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1839년]]에 [[기해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누나 [[현경련]] 또한 기해박해로 순교하였다.
현석문은 순교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조선 헌종|헌종]] 2년([[1836년]])에 [[의주]]로 가서 [[앵베르]] 주교를 [[조선]]으로 맞아들였다. [[1837년]]에 [[샤스탕]] [[사제|신부]]가 입국하자, 현석문은 그의 [[복사 (기독교)|복사]]가 되어 신부와 함께 [[선교]] 여행에 동참하는 한편, 교인들의 신앙지도에 힘썼다.
[[1839년]]에 [[기해박해]]가 시작될 때에, 현석문은 [[관아]]에 [[자수]]하기를 원했지만, [[선교사]]들이 그를 말렸고 살아남아서 교우들을 돌보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누이가 순교한 후에 《[[조선]] [[천주교]] [[순교자]] 열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기해박해]]가 끝나자, 그것의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상하이]]까지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최희원]]과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의 [[복사 (기독교)|복사]] [[최형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손자 [[이재의 토마스]] 등의 협조를 받아 [[순교]] 자료를 모아서 확인 및 보충 정리하여 3년 만에 단편의 《[[기해일기]]》를 완성하였고 교우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는 빈번히 [[베이징]]으로 전령을 보내 [[선교사]]들과 연락하였다. [[1845년]] 그는 [[부제 (기독교)|부제]] [[김대건]]과 함께 작은 나무배를 타고 [[상하이]]로 가는 험란한 항해에 동참하였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를 맞아들였다. 현석문은 [[한양]]으로 돌아온 뒤, 위험을 무릅쓰고 김대건 [[사제|신부]]의 집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였다. [[1846년]]에는 [[병오박해]]가 일어났다. 현석문은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새로운 집을 구입하여 교회의 모든 재산을 그곳으로 옮겼으며, 김 신부의 처소에 남아 있던 여성 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다.
며칠 후에 그의 새 집에서 포졸들이 손쉽게 그를 체포하였는데, 이삿짐을 나르던 인부들이 고발하였기 때문이었다. [[7월 11일]] 포졸들이 그 집을 급습할 때, [[김임이 테레사]]와 [[이간난 아가타]], [[정철염 카타리나]] 그리고 [[우술임 수산나]] 등 몇 명의 여성 신도도 있었으므로, 그들도 모두 함께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현석문은 교우 수감자들을 격려하였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황광희 . . . . 12회 일치
| 한자명 =
| 직업 = [[가수]], [[방송인]], [[사회자|MC]]
스타제국 연습생 시절인 [[2009년]]에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피스 리얼리티 - 제국의 아이들》과 《제국의 아이들 리턴즈》에 출연하여 이동식 무대 차량인 윙카로 전국을 순회하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고,<ref>{{뉴스 인용|제목=연예계 뒷얘기 ‘제국의 아이들’… 100% ‘리얼’ 가능할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089654|저자=김보람|출판사=매일경제|날짜=2009-04-06|확인날짜=2012-08-25}}</ref><ref>{{뉴스 인용|제목=제국의 아이들, 거리공연으로 호된 데뷔 준비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000932|저자=이수현|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9-10-01|확인날짜=2012-08-25}}</ref> [[2010년]] [[1월 15일]]에 9인조 [[대한민국]]의 남성 그룹 [[ZE:A]]의 멤버로 데뷔하였다.
|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예언자
* 2015년 [[농심]] 피자비빔면 불고기비빔면
| 쇼/버라이어티 부문 남자신인상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한국어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201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황연대 . . . . 12회 일치
|학력= [[진명여자고등학교]]<br />[[이화여자대학교]]
|배우자= 정은배 (1969년 결혼 ~ 2000년 사별)
|자녀=
3세 시절이던 [[1941년]]에 [[소아마비]] 증세로 인해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1957년]]에는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63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병원 인턴으로 근무했고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소아재활원 당직의사로 근무했다.<ref>{{웹 인용|url=http://whangaward.org/ko/dr-whang-youn-dai/biography|제목=연혁 - 황연대|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재단법인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이사,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재단법인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중앙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2009년]]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 고문, [[2010년]]에는 [[2018년 동계 올림픽|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집행위원으로 위촉되었고 [[2013년]] 2월에는 [[2014년 장애인 아시안 게임|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 조직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hangaward.org/ko/dr-whang-youn-dai/major-accomplishment|제목=주요 업적 - 황연대|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3&aid=0004959559|제목=2014인천장애인AG 조직위, 황연대 박사 고문 위촉|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아펜젤러상 수상
* 2009년 한국YWCA 주관 제7회 한국 여성 지도자상 대상 수상<ref>{{웹 인용|url=http://whangaward.org/ko/dr-whang-youn-dai/main-awards|제목=주요 수상 - 황연대|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진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11회 일치
[[3월의 라이온]] 128화. '''긴자'''
* 하야시다는 긴자의 가게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기서 본 아카리는 자기가 알던 아카리의 모습과 달라 당황한다.
* 여름축제 때 시마다가 아카리를 잡아주다 손자국을 낸게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 얘기로 가게는 화기애애해진다.
* 긴자의 가게를 방문한 하야시다 타카시와 시마다 카이.
* 시마다는 그다지 쑥스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 경험자의 관록인지 이런 가게에서도 능숙하게 주문을 해서 하야시다의 부러움을 산다.
* 완전히 초심자인 하야시다는 우선 요금의 자릿수 자체가 다른 걸로 큰 충격을 받는다.
* 아카리가 팔을 드러내는 옷을 입은 탓에 팔에 희미하게 붉은 손자국이 난게 보인다.
- 강상재 . . . . 11회 일치
| 설명 = 연패를 끊어낸 전자랜드의 에이스 강상재 선수를 만나봤습니다!
| 소속팀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KBL 지명팀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 소속팀1 = {{국기그림|대한민국}}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강상재'''(1994년 12월 31일~ )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포워드이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지명된 동기 이종현과 함께 고려대 3연패를 이끌었다. 201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지명되었다.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시절 ==
* 2013년 제11회 FIBA U19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2012년 제22회 FIBA 아시아 U-18 남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선수 명단}}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곡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강중인 . . . . 11회 일치
[[1943년]]에 대전지방법원 검사로 자리를 옮겨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할 때까지 근무했다.
[[미군정]] 하의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좌익]] 운동에 뛰어들었다. 좌익 법조인 모임인 [[법학자동맹]]과 [[남조선로동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강중인이 남로당에 가입하게 된 동기는 후에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ref> {{뉴스 인용
|저자=정지환,정은성
{{인용문|일정(日政) 당시에는 내가 내 한 몸을 구하기에 여력이 없었습니다. 8·15 해방을 맞이하자 피고는 이때야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닙니다. 내가 어찌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을까 함이었습니다. 해외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투쟁하던 위대한 애국자들이 해방된 조국을 찾아 들어옴을 볼 때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후 피고는 남로당에 가입을 작정하였던 것이며, 법맹에도 초창기부터 가입하였습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저자=민족문제연구소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남조선로동당]][[분류:월북자]]
- 강지섭 . . . . 11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2007년]] [[KBS2]] 주말연속극 《[[행복한 여자 (2007년 드라마)|행복한 여자]]》 ... 장병구 역
* [[2008년]]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 ... 홍은섭 역
* [[2012년]] [[KBS2]]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 신준호 역
* [[2013년]] [[SBS]] 아침연속극 《[[두 여자의 방]]》 ... 한지섭 역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부천시 출신]]
- 강화종실 . . . . 11회 일치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자손. 왕실에 가까운 가족이었으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기에 강화종실이라고 부른다. 후에 이 계보에서 '[[조선 철종|철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음으로서 계보는 끊어진다.
은언군은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숙빈임씨(肅嬪林氏)의 자식이다.
[[정조]] 시기에 권세가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그녀를 원빈이라 하였다. 1980년 원빈이 사망하자, 홍국영은 은언군의 장남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서 장차 정조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려 했으나, 1786년(정조 10년) 담은 모반죄로 유폐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언군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시기에, [[가톨릭]] 탄압인 신유교난(辛酉敎難)이 일어났는데, 은언군의 처 송씨(宋氏)와 며느리 신씨(申氏)가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서, 1801년 은언군, 송씨, 신씨가 모두 사사되었다.(이들은 손자인 철종이 즉위한 뒤에 신원되었다.)
[[조선 헌종|헌종]]이 자식이 없이 사망하자,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덕완군(德完君)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철종이다. 하지만 철종은 후사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강화종실은 대가 끊어졌다.
- 경산시 . . . . 11회 일치
! 읍·면·동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행정지도
자인면''' ||慈仁面 || 2,810 || 6,224 || 22.05
* [[원효]] -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작가, 시인, 정치인이다. 설총의 생부이며, 한국 최초의 대처승으로도 유명
* [[설총]] -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신라 3문장 중 한 사람이다.
* [[동고 서사선]] - [[조선의 유학자]]이다.
* [[윤상직]] - 현 부산 기장군 국회의원,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김성도]] - "어린 음악대"로 유명한 작곡가, 교육자. 와촌면 출신. 하양초등학교 졸업.
* [[박문규 (1906년)|박문규]] - 북한의 농업경제학자, 정치인.
* [[박문현]] - 자인면 출신, 동의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임도헌]] - 전직 배구선수이자 감독.
- 공의존 . . . . 11회 일치
>공의존이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타인의 인정으로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고, 그 때문에 호의를 얻으려고 자기 희생적인 헌신을 무리하게 행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 그 헌신은 결국 타인의 호의, 심지어 그 타인 자신을 컨트롤 하려는 동기와 결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 행동이 자기 중심적이고 계략적인 것이 되어서 점차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된다. - 카토 아츠시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며, 그렇게 인정을 받음으로서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고, 자신의 희생으로서 타인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행위. 연인이나 부부, 부모자식 등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기 쉽다. 자아 존중감이 약한 개인에게 발생하는 일이 많다.
* 환자를 괴롭혀서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자신이 주위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대리 뮌히하우젠 증후군도 공의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 김동한 (1919년) . . . . 11회 일치
| 배우자 = 無(미혼 독신)
| 친척 = 김필수(형) <br/> [[김수환]](아우) <br/> 김보현(친조부) <br/> 강말순(친조모) <br/> 서용서(외조부) <br/> 김병호(조카) <br/> 김병기(조카) <br/> 김병무(조카) <br/> 김정자(조카딸)
| 기타 이력 = 1940년 [[대구가톨릭대학교|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전문학사 출신 <br /> 1956년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출신 <br/> [[성직자]], [[천주교]] [[사제]], [[수필|수필가]], [[군인]] <br/> [[신민당 (1967년)|신민당]] 국가보건행정특보위원(1975년) <br /> [[한국가톨릭결핵시설연합회]] 회장
'''김동한'''(金東漢, [[1919년]] [[6월 25일]] ~ [[1983년]] [[9월 28일]])은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해군|해군]] [[군인]]이며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 [[사제|성직자]] 겸 [[수필|수필가]]이다.
[[1978년]]부터는 결핵환자 요양시설을 설립, 경영하였다. 그의 세례명은 '''가롤로'''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 태생으로 [[추기경]] [[김수환]]의 넷째 형이었다.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光山)]]이며 [[대구광역시]] 출신.
그의 가계는 천주교 순교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은 조선 후기였던 1868년 무진박해 때 체포되어 [[한성부]]에서 순교하였다.<ref name="한경1">[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21957741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나 ] 한국경제 2009-02-20 </ref> 옹기장수인 아버지를 여의고 포목행상으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ref name="한경1"/> 이후 [[대구가톨릭대학교|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사제가 된다. 이후 그의 동생 [[김수환]]도 그의 영향을 받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진학하게 된다.<ref name="한경1"/>
[[1978년]] ‘한국 가톨릭 결핵 시설 연합회’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되어 결핵환자 요양원을 맡았다.<ref name="가톨1"/><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738&yy=2009 영남권 대표 인터넷 신문 "매일신문"<!-- 봇이 붙인 제목 -->]</ref> [[1983년]] [[9월 28일]] 선종하였다.
선종 당시 동생 [[김수환]]은 1983년 9월 말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여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형 김동한 신부의 선종 소식은 당시 로마에 체류중이던 [[장익 (성직자)|장익]] 주교가 직접 전했다.<ref>[http://www.kwnews.co.kr/view.asp?aid=209021900127&s=601 장익·지학순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ref> 형의 임종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김수환]]은 귀국 후 김동한이 임종한 곳에서 며칠을 보냈다고 한다.
[[분류:1919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령]][[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함세웅]][[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구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
- 김연수(작가) . . . . 11회 일치
||<:>[[구효서]][br]명두[br](2006) || → ||<:>'''김연수[br]달로 간 코미디언[br](2007)'''|| → ||<:>수상작 없음(2008)[*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수상할 만한 작품 없음. 독자의 반응을 의식한 편향성이 명확하며 완성도가 수상에 부합할 수준에 못 미침.] ||
* 세계의 끝 여자친구 (2009)[*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world's end girlfriend]]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소설집. 실제로도 팬이라고 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젊은 날의 상실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혹은 <꾿빠이, 이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밤은 노래한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첨가하기도 한다. 굉장히 유려한 문장이 특징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반대로 독자들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역할로도 작용한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고드는 문장을 구사하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편한 글을 구사한다고 하며, 동시에 번역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실 내용도 소설을 가볍게 읽는 사람들이 읽기엔 지나치게 현학적인 데가 있다. 김연수는 문학적 허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작가가 오히려 풍부한 독서를 바탕으로 문학 측면에서 어렵게 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산문집을 읽어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독자인 듯 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원더보이>에서는 청년과 중년 여성의 섹스, 가족이나 연인의 자살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밤낮없이 길을 걸으며 방황하는 주인공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영향을 받은 듯한 소재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작품 모두 격동의 시대를 살며 방황하는 청춘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자살과 섹스, 목적지 없는 도보 여행 등 '방황하는 청춘'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싫어하는 것은 술자리에서 우는 사람, 소문을 알리기 위해 온 전화 등등이 있다고.
[[2013년]] 7월 기준, 최근작은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다.[* 다만 해당 책이 출간된 출판사에서 자사의 여러 책들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와 관련하여 김연수 작가는 해당 책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발매된 지 9개월 만에 본 책을 절판시켜 버렸다. 그리고 [[2015년]], 자신의 단편집 <스무살> 재판과 함께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다.]
*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잘 나가는 영화 감독 역할. [[홍상수]] 감독을 예술가로서 존경한다고 밝힌바 있다. 정작 주변에서는 [[홍상수]]감독 영화에 나오는 남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왜 나갔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 김현성(가수) . . . . 11회 일치
* 'Heaven' - 김현성을 스타덤에 올려준 대표곡으로 인기가요에서는 1위 후보까지 간 곡이다. 그 덕에 슈가맨에서 이 곡을 김현성의 슈가송으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곡 자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데, 그가 이 곡으로 활동하면서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해 성대에 무리가 가는 바람에 원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이 때문에 김현성에게나 팬들에게나 여러모로 애증의 곡. 작곡 단계에서부터 곡 컨셉 자체가 '--타고난 미성으로 기본 음역대가 아주 높은-- 김현성이라는 가수의 한계음역대를 다 보여주자'라는 취지였는데다 계속해서 고음역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스타일이라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한다. 아래서 언급되는 슈가맨 방송에서 '리메이크된 적도 없고 방송에서 후배들이 불러주지도 않더라'라고 말할 정도...[* 실제로 이 곡을 리메이크한 조권은 고음대를 포기했다.] 사실 이 시절 명곡 발라드들은 고음역대가 많은 편인데 Heaven은 특히나 어렵다.
* '이해할께' - 작곡자인 [[조규만]]도 이 곡을 자신의 솔로곡으로도 불렀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유희열팀의 슈가맨으로 출연하였다. 슈가송은 대표곡인 'Heaven'. 여전한 [[외모]]와 [[미성]]을 뽑냈다. 초반부에는 [[30대]]가 가장 많이 알았고 후렴구가 터져나온 직후 [[20대]] 이상에게는 확실히 기억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0대 쪽에선 단 2개의 불이 들어왔다. 또, [[유희열]]의 추천으로 '소원'을 불렀으며 [[10대]] 중에는 [[엔(빅스)|엔]]을 닮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거의 삼촌뻘인데 [[엔(빅스)|엔]]이 김현성을 닮은 거겠지..~~ ~~본인도 자주 들었다고 자화자찬한건 덤~~
[[분류:한국 남가수]][[분류:1978년 출생]][[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진도군 출신 인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1회 일치
* 바쿠고는 폭발을 이용한 부스트로 속공을 이어가며 미도리야가 대응책을 찾는것 자체를 저지한다.
*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분석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태도를 자신을 염탐하고 뭔가 꾸며댄다고 보고 좋아하지 않았다.
*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성장한 만큼 자신도 성장했음을 자각하고 원 포 올을 8%까지 끌어올려 반격에 성공한다.
* 바쿠고는 폭발로 직접 데미지를 주는 전술을 버리고 폭발의 추진력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가속하고 급선회, 급감속을 거는 등 놀라운 응용력을 선보인다. 미도리야가 가드한 후 튕겨지는데 착지하기도 전에 급격히 거리를 좁히고 폭발을 이용해 점프 궤도를 변경, 순식간에 미도리야의 후방을 잡는다.
* 미도리야가 원 포 올 풀카울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같은 변칙적인 움직임엔 따라갈 수가 없다. 뒤에서 내리꽂히는 깨끗한 보디 블로우. 미도리야가 가드레일 쪽으로 몰린다. 충분히 충격을 줬을 텐데 바쿠고는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추격한다. 미도리야는 문자 그대로 숨 쉴 틈도 없다. 코앞까지 따라온 바쿠고. 미도리야는 난간을 붙잡고 뒤로 넘어가려고 하지만 바쿠고가 짐승같은 반응속도로 잡아채서 내동댕이친다. 그러다가 본인도 난간에 몸을 부딪히며 잠깐이나마 공격에 틈이 생긴다.
* 미도리야는 겨우 한숨 돌리며 바쿠고가 상상 이상으로 기술이 향상됐음을 깨닫는다. 바쿠고는 움직임을 보고 바로 대응하는 동물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그건 움직임을 예측해서 싸우는 자신의 방식으론 대응하기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웃고 마는데, 그것이 바쿠고의 눈에 거슬린다.
* 미도리야는 설마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며 자신의 진심도 내보인다. 물론 바쿠고처럼 심하게 대하는 상대는 누구라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미도리야에겐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싫다는 감정과 똑같을 정도로, 바쿠고의 "굉장함"이 강렬했고, 이끌렸다.
* 미도리야는 감정이 고조되고 있음을 느낀다. 평소보다 더욱 빠르고, 컨트롤이 틀어진다. 하지만 좋은 감각이다. 지금까지 그는 풀 카울 상태를 5%로 제한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그 자신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전신 상시 신체 허용 상한 8%. 그 순간 미도리야가 한계를 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11회 일치
* 키리시마도 이 총알에 맞지만 경질화로 총알 자체는 튕겨내서 무사. 키리시마는 그대로 빌런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 시에핫사이카이 본거지에 들어온 빌런연합의 [[시라가키 토무라]]. 그는 살풍경한 장면이라며 첫인상을 밝힌다. 인테리어는 철저하게 [[오버홀]] 치사키의 취향. 사실 시라가키가 불만인 점은 인테리어 보다도 "안내"였다. 그는 이 지하 응접실까지 오기 위해 30분이나 지하를 빙글빙글 돌았다. 개미가 된 기분이라며 야쿠자의 집은 어떻게 돼먹은 거냐고 불평을 쏟아낸다.
시라가키는 자리에 앉으면서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는다. 시라가키는 그건 오버홀 측이 멋대로 해석한 거라고 부정한다. 빌런연합은 세력확장, 시에핫사이카이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로 니즈가 맞는다고 말한다.
시라가키가 제안하는 조건은 두 가지. 우선 그들은 산하로 들어가는게 아니다. 빌런연합은 여전히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단지 오버홀측과는 "제휴"라는 형태로 협력하는 걸로 해두겠다는 것이다. 오버홀이 조건은 그것 뿐이냐고 묻자 당연히 하나를 더 제시한다.
* 시라가키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 여기있는 놈들은 죄다 쓰레기 야쿠자에 일회용 고기방패다. 이런 족속들은 빌런연합의 여장남자, [[마그네]]와 목숨의 가치가 같을리가 없다. 게다가 이쪽은 팔도 한 짝 빚지고 있다. [[Mr. 컴프레스]]의 팔 말이다.
* A반의 인턴은 한 명이 더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관서 지방의 "에스하"시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히어로네임은 "레드 라이오트". BMI히어로 [[패트껌]]의 사무소였다. 이곳은 빅3의 일각 [[아마자키 타마키]]가 인턴활동을 하고 있다. 히어로네임은 "선 이터". 왜소하고 음침한 모습의 타마키와 달리 패트껌은 엄청난 거구에 비만 체형. [[타코야키]]를 판 째로 들고 다니며 먹는 타입이다. 원래 키리시마는 직업체험 때 신세진 [[포스카인드]]에게 인턴 활동을 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걸 마침 무투파의 신인을 찾고 있던 패트껌이 픽업, 먼 관서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타마키의 중계가 있던 모양인데, 타마키는 [[토오가타 밀리오]]에게 떠넘기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나 보다. 키리시마가 너무 댓쉬해와서 무서웠다고 약한 소릴 한다. 패트껌은 "그 멘탈만 어떻게 하면 인재"라며 껄껄 웃는데 그 점이 더욱 타마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타마키는 한도 끝도없이 네거티브해져서 이 스카우트도 자길 괴롭히려고 결정된 거라고 믿고 있다. 키리시마는 패트껌이 나름대로 격려해주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는 어떻게 해도 키리시마나 밀리오처럼 포지티브해질 수가 없다고 한다. 키리시마는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 실력도 경험치도 차이가 생겨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있더라"고 나름대로 공감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메꾸고자 인턴 생활에 뛰어든건 엄청나게 포지티브한 태도이기 때문에 결국 타마키는 도저히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 이것이 타마키의 개성 "재현"이다. 먹은 것을 몸으로 재현할 수 있는 범용성 높은 개성. 키리시마는 선배의 활약은 멋지지만 자신이 나설 차례가 없어 안달한다.
* 패트껌은 자신의 미스를 잘 처리해준 타마키를 대중들 앞에 소개한다. 모여든 시민들을 향해 "기량이라면 프로 이상"이라고 추켜세운다. 그 뒤에 "멘탈은 성장하지 않았다"고 꼬리를 달지만. 시민들의 환호를 받은 타마키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런데 그 군중 사이엔 선량한 시민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진작에 흩어져 있던 빌런조직의 쫄따구가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잡힌 형님들을 구해야 된다며 총을 겨눈다. 패트껌이 수상한 기척을 눈치챘지만 한 발 늦었다. 벌써 총알이 발사되었는데, 그 총알이 아주 수상하다. 이 수상한 총알이 무방비한 상태의 타마키를 맞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11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와 [[미도리야 이즈쿠]]의 대결 여파로 지상의 가옥 네 채가 파손되고 경상자 세 명이 발상. 그 외에는 경미한 피해로 끝났다. [[하도 네지레]]는 미도리야가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싸운 덕이라며 그를 치하한다.
* 병원으로 후송된 히어로들은 중상자가 많지만 대부분 생명에 지장은 없다. 미도리야는 오른팔에 설명하기 어려운 흉터가 남았지만 기능에 이상은 없다. 에리는 고열이 내리지 않은 채로 격리된 상태. [[아이자와 쇼타]]는 "되돌리는" 개성의 특성상 이렇게 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이 개성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동하며 훈련도 제어도 어려운 특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에리의 개성에는 의존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데, 그건 [[서 나이트아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 그때 [[토오가타 밀리오]]가 간호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병실로 들어선다. 밀리오는 자신도 중상인 것도 잊고 나이트아이에게 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나이트아이는 그저 "그릇"으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밀리오가 자신을 믿고 존경해주면서 차츰 자신의 긍지로 변해갔다며 유언을 남긴다.
활기와 유머가 없는 사회엔 "밝은 미래"가 오지 않는단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제자와 스승의 곁에서 나이트아이는 영면에 든다.
- 노영하 . . . . 11회 일치
|제자 =
* 현 [[한국경제신문]] 한경바둑기보 및 바둑 관전기 집필자로 활약하고 있다.
* [[1975년]] TBC 왕좌전 보조 진행자 및 해설
* [[1984년]] 제2기 박카스배 본선,[[KBS 바둑왕전]] 해설자.<ref>노영하는 30년동안 [[KBS 바둑왕전]] 해설자로 활약했다.</ref> <ref> (1984년 1월 14일) 《동아일보》[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11400209205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1-14&officeId=00020&pageNo=5&printNo=19163&publishType=00020 KBS바둑왕전 盧永夏(노영하)씨가解說(해설)] 동아일보 5면 1984년 1월 14일 확인</ref>
* [[2008년]] 제5회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본선(현무왕).
* [[2009년]] 한국경제신문 바둑 관전기 집필자.<ref>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41290041<ype=1&nid=105&sid=8398 한경바둑기보, 노영하 9단이 해설] 한국경제신문 바둑</ref>
* [[2013년]] [[KBS 바둑왕전]] 해설자 은퇴.<ref>노영하 八단 KBS 바둑왕전 30년만에 해설자 은퇴로 퇴장.</ref> <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51906041 "조훈현 우승 중계 때 만세삼창 가장 감동…노영하를 끝으로 바둑해설 1세대 퇴장합니다"] 한국경제신문 바둑 </ref>
*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동양증권배]], [[삼성화재배]]의 국제기전 해설자로 활약했다.
* 부인 임명자 씨와 2남을 둠.
- 노형욱(배우) . . . . 11회 일치
| 배우자 =
| [[남자 셋 여자 셋]]
| [[감자별 2013QR3]]
| [[효자동 이발사]]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양시 출신 인물]][[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
- 니세코이/226화 . . . . 11회 일치
* 오노데라의 고백에, 이치죠는 자신도 중학생 때부터 쭉 좋아했었다고 말하는 이치죠.
* 이치죠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음을 확인한 오노데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쇠를 넘긴다.
* 자신은 누가 약속의 아이인지 생각이 났지만, 더이상 가지고 있을 자격이 없다고 한다.
* 생각보다 슬프지 않다며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오노데라.
* 루리에게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 약속의 장소로 향하던 이치죠는 중턱에서 자물쇠를 열어본다.
* 오노데라의 열쇠로 자물쇠가 열리고, 안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편지와 반지가 나온다.
* 자신은 시간이 지나도 쭉 이치죠를 좋아할 거라는 고백과 함께
* 하지만 치토게를 좋아한다고 자각한 날, 언제나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언제까지나 함께 웃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치토게 쪽이었다.
*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세계나,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던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 마기/338화 . . . . 11회 일치
* 백룡은 자신이라면 신드바드의 신념을 깰 수 있다며 앞으로 나서는데.
* [[쥬다르]]는 14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쓰러뜨린다. 그는 신의 시련치고는 별거 아니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신드바드가 나타나 대답은 잘 들었다고 말한다.
* 쥬다르는 목을 쳤는데도 죽지 않는다고 기겁한다. 그리고 질린다는 말투로, 주위를 가리키며 "이건 너의 14세 무렵의 원망, 내가 저지른 일하고는 관계없다"고 항변한다. 아마 그는 초대 신드리아 왕국 멸망에 일조했던 것 같고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다.
* 신드바드는 해답에 만족하는지 "신드바드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음에도 그런 이상론을 주장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하며 사라진다. 진 바알은 신드바드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그가 사라진 후 제 1 던전은 이것으로 공량이 됐다 선언하고 사라진다.
쥬다르는 예상 외의 전개에 어리둥절하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여기고 과연 자신들에게 무엇을 시키고 싶은 건지 고심한다.
알라딘은 즉답을 피한 채 신드바드는 자기 신념대로 움직이고 자기 힘으로 세상의 정점에 섰는데도 알라딘 일행에게 뭔가 더 얻고 싶은게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보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상황을 보던 아르바는 난데없이 "백룡도 친구 같은데 생겼다"고 말하는데, 백룡은 유독 정색한다. 알라딘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르바는 말 그대로의 의미라며 뭐가 이상하다는 태도다. 백룡은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수상하게 여기며 아르바의 꿍꿍이를 추측한다.
* 그들 앞에 나타난 상상을 초월한 거인. 알리바바가 저게 뭐냐고 중얼거리자 하늘에서 대답이 들린다.
* 처음보는 마장이라 모두가 놀란다. 알리바바는 어떤 능력을 가졌을지 짐작도 못한다. 그런데 백룡은 짚이는 곳이 있는 건지, "의심에 가득찬 왕의 그릇이라"고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알라딘에게, 자신이 이기면 아까 질문에 답을 달라고 하는데.
그는 자신이 신의 신념을 박살내겠다고 장담한다.
- 마터니티 마크 . . . . 11회 일치
일본에서 마터니티 마크는 지자체에서 모자 수첩 등과 함께 교부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에 배포처가 있다.
임신 초기는 아기의 성장은 물론, 엄마의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지만, 외관으로는 초기 임산부를 구분할 수 었기 때문에 다양한 불편함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지하철 같은 곳에서 노약자, 임산부 석을 이용할 때 트러블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스스로 초기 임산부라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마터니티 마크가 제작되었다. 현재 이 마터니티 마크의 디자인의 저작권은 일본 후생노동성에 귀속되어 있으며, 동시에 영리 목적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이 마터니티 마크의 디자인은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1999년에 프리랜서 작가 마츠무라 준코(村松純子)가 임산부임을 어필하는 마크로서 『BABY in ME』를 발표( http://www.baby-in-me.com/ )했다. 이 마크의 디자인과 발표를 계기로 임신 초기 임산부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이 알려져, 다양한 민간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양한 종류의 임산부 어필 마크를 발표했다.
그러나 지자체와 민간단체로서는 광범위한 보급이 어려웠고, 많은 마크가 발표되다보니 혼선이 일어났다. 또한 저작권 문제도 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후생노동성에서 사무국을 맡은 「 건강한 부모와 자식 21(健やか親子21) 」추진검토회에서 마터니티 마크를 디자인 공모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의료 건강계 사이트 플라스알의 조사에 의하면, 마터니티 마크를 사용해서 좋았다는 질문에는 '예'는 43.4 %, '아니오 '는 56.6 %에 달했다. 반면에 마터니티마크를 붙여서 곤란했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는가는 '예'가 9.3 %,'아니오 '가 90.7 %로서 약 10%의 적지 않은 사용자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대답했다.[[http://news.ameba.jp/20140331-108/ (참조)]]
- 문호월 . . . . 11회 일치
|직업 = [[기타 연주자]] <br> [[바이올린 연주자]] <br> [[작곡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는 설과 [[일본]]에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는 설이 있으며, [[1927년]]경부터 [[기타 연주자]]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작곡가로 데뷔한 것은 [[1933년]]에 [[오케레코드]]에서 [[김능인]], [[신불출]]의 가사에 곡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문호월은 3박자 대중가요와 트로트, 신민요에 고루 능하여 다양한 음악을 구사했으나, 신민요 히트작이 많아 초기 신민요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힌다. [[1940년]]에 발표한 〈반달 뜨는 밤〉 이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 활동이 드물어졌고, 사망 시기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저자=[[이동순]]
== 참고자료 ==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토막글|작곡가|기타 연주자}}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192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11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지도층인 [[과학자]]들. 이름이 확인된 사람들은 모우(モウ), 케이(ケイ), 에이(エイ), 준(ジュン). 이중 모우는 위원회에서도 중심 인물이다. 안경을 착용한 순으로 검은 안경을 착용한 자가 에이. 정책 등에서 중요 사항을 결정하며 레프카와는 그다지 맞지 않는 인물들이며 라나에 대한 것은 중립적이다. 일단 레프카는 주요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인물들이라 놔두고는 있으나 결국 레프카의 횡포를 저지하지는 못하는 무력한 자들이다. 최후에는 라오 박사와 인사를 끝내고, 지각 변동 탓에 무너지는 인더스트리아에 남는다.
지하 거주자들의 리더격인 사나이. 라오 박사와도 안면이 있다. 23세. 레프카에게 반대하는 입장이며 그래서 이마에 낙인이 있다. 코난 일행에게 협력. 최후에는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한다.
샐비지선에서 일하는 노동자. 2등 시민이 되려하며 자기 등급 점수를 10점 깍은 샐비지선 리더인 파치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품성에 문제가 있는 인물인 것이 실수를 저질러서 큰 피해가 났는데 파치는 등급 점수를 깍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관대한 처분에 적반하장격으로 굴어서 루카가 한마디 할 정도. 이후 몬스리에게 파치가 라오 박사라는 것을 밀고하나 이외에는 딱히 이용가치가 없다보니 몬스리가 정보만 듣고 가버리면서 무시되었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루카에 의해 사고로 크레인에 깔려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샐비지선의 노동자. 파치처럼 나이 있어보이는 할아버지다. 테리트와 달리 승급에는 무관심하나 그와 달리 품성은 정상이라서 테리트에게 한소리 하기도 하고, 코난과 라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줬다.
하이하버의 촌장. 53세. 지각 변동 이전에는 기술자였다.
메이잘의 남편이자 라나의 삼촌. 31세. 진료소 운영.
풍차 마을의 책임자. 33세. 다이스에게 대장장이 일을 가르쳤다.
건달 패거리들의 우두머리. 17세,. 가족은 여동생인 테라가 있다. 거창하게 구나 대단치는 않은 녀석이며 코난 일행과 충돌한다. 인더스트리아측이 나타나자 덤볐다가 깨지고는 그들에게 붙어서 하이하버를 위협하는 것에 협력했다. 이후 호가호위스럽게 있다가 해일이 왔을 때, 코난에게 패하고는 등장이 없다. 후에 바라쿠다호가 출항할 때에 재등장. 이때는 갱생했는지 가르와 함께 축포를 올렸다.
- 박지일(배우) . . . . 11회 일치
[[1985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6년]] [[연극]] 《죽음의 푸가》를 통해 [[연극배우]]로도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연극배우 데뷔 초기에 같이 활약한 연기자는 [[조영진]]· [[김경룡]] 등이 있다.
* [[2012년]] [[tvN 수목드라마]] 《[[일년에 열두남자]]》 - 찬성 역
* [[2018년]]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 - 노숙자 역, 서인우 아버지
** 《심판》, 《[[자귀모]]》, 《[[해피엔드 (1999년 영화)|해피엔드]]》
* 2002년 《[[남자 태어나다]]》, 《[[취화선]]》
** 《[[동창생 (영화)|동창생]]》, 《[[집으로 가는 길 (2013년 영화)|집으로 가는 길]]》, 《[[용의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양평군 출신 인물]][[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배기철(정치인) . . . . 11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8대 대구광역시 동구청장[br]대구광역시 동구 부구청장[br]여의도 연구원 정책자문위원회 정치발전분과 부위원장[br]상수도사업본부장[br]준공영제혁신추진단장[br]7급공채합격 ||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당적은 [[자유한국당]]이다.
1982년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및 [[인사혁신처]])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하였다. 이후 총무처, [[대구광역시청]]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동구(대구)|동구]]청 부구청장 등을 지냈다. 퇴직 후 자유한국당 부설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회 정치발전분과 부위원장을 지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았고 본선에서 현직 [[구청장]]인 [[바른미래당]] [[강대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 동구청장) || [[자유한국당]] || '''62,891 (37.38%)''' || '''당선 (1위)''' || ||
8월 10일 동구의 한 음식점에서 금연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기자의 불을 꺼달라는 요구에 마지못해 끄면서
[include(틀:대구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장)]
- 백춘희 . . . . 11회 일치
* 대전시 생활체육회 자원봉사단장
* 대전시 장애인체육회 자문위원
* 세우리병원 자문위원장<ref>[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714_0013045216 대전시 정무부시장 백춘희 씨 내정] 뉴시스 2014.07.14.</ref>
* [[2010년]] 지방선거 [[염홍철]] 후보자 캠프 여성위원장
* [[2011년]] [[자유선진당]] 대전시지구당 여성위원장
* 2012년 선진통일당과 새누리당 합당 후 새누리당으로 이동<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71709223235101 백춘희 대전시 정무부시장 내정자, ‘이중행태’ 논란]</ref>
* [[2014년]] 6·4 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후보자 캠프에서 여성총괄본부장
* [[2014년]] [[7월 14일]] ~ [[2016년]] [[6월 30일]]<ref>[http://news1.kr/articles/?2706804 백춘희 "대전 공직자들과 함께한 2년 값지다"]</ref>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
* [[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 [http://news.joins.com/article/16316046 백춘희 부시장 "이명완 사장 자격있다"]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덕대학 동문]]
- 보루토/6화 . . . . 11회 일치
* 우즈마키 보루토는 병원에서 깨어나 아버지는 납치 당하고 어머니는 그걸 막다 적에게 당했다는걸 알고 자괴감에 빠진다.
* 보루토는 나루토가 어린시절 입던 자켓과
* 모모츠키는 자기 몸으로 충격을 다 흡수할 생각이냐며 비웃는다.
* 병실에 있는걸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그러다 바닥에 놓인 구급상자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 보루토는 아직도 팔에 카타스케의 닌자도구가 채워져 있는걸 발견하고 벗어던진다.
* 보루토는 자신의 할아버지(나미카제 미나토)도 호카게였지만 아버지(나루토)가 철들었을 땐 이미 없었다는 얘길 떠올린다.
* 왜 자신이 아버지가 호카게야 하느냐고 폭언을 퍼부었던 일을 떠올리는 보루토.
* 그리고 지금부터 나루토를 구하러 가자고 하는데.
* "너는 나의 첫 제자잖냐."
* 사스케는 보루토가 강한 닌자라며 언젠가는 아버지도 뛰어넘을 거라고 말해준다.
* 보루토가 그 말 뜻을 모르겠다고 하자 "지기 싫어한다는 것"이라 답해준다.
- 브로포스 . . . . 11회 일치
* 자살 무크
* 닌자 무크
3번째 임무인 아스토츠카의 보스. 자살 무크 무리를 발사한다.
추가 생명 1을 얻고 다른 브로를 해금하기 위해 구해야 할 녀석들. 그냥 부딪히면 구해진다. 인질이 죽어도 구할 수 있지만 시체 자체가 으깨지는 상황이 되면 구할 수 없으니 주의.
공격하면 특정 방향으로 날아가다가 터진다. 서있는 가스통은 밀어서 자빠뜨릴 수 있는데 자빠지는 즉시 공격한걸로 처리되어 날아간다.
* 무기상자
성조기가 그려진 상자에 들어있다. 특수공격 소지량을 최대로 채워준다.
알통 포즈를 한 팔이 그려진 상자에 들어있다. 사용하면 일정 시간동안 적들이 브로를 피해다닌다. 획득시 컷신을 보면 아무리봐도 [[스테로이드]]다.
국명은 게임 [[페이퍼 플리즈]]에 나오는 그 나라지만 위치는 수마트라 섬. 자원-솔직히는 나라-를 빼앗기 위한 브로포스의 공격을 받는다.
람브로를 이용해 테러리스트의 소굴을 소탕하고 보급품을 되찾아야한다. 수류탄의 활용 방법을 익힐 수 있다. 클리어하면 무기상자가 해금된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11회 일치
[[백야의 마안]]의 포로를 심문한 결과 배신자는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 [[겔도르 포이조트]]였다.
* 사실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거 외에도 국보급 마도구를 빼돌리고 위험한 마법약을 밀수, 단원을 학대하는 등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 [[마법제]]는 마법기사단 단장이 배신한건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며, 국민의 불안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공표는 하지 않을 테지만 다른 배신자가 없도록 단원들을 확실하게 단속해 달라고 지시한다.
* 배신자건은 이걸로 일단락되는 듯이 보였지만... 해산하던 단장 중에는 [[절망의 베토]]가 변장한 가짜가 있었다. 대체 누구로 변신했던 건지는 밝혀지지 않는데...
* 야미는 자신은 그저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내 힘으로 증명하고 싶다"며 마법제에게 경례한다.
* 나중에 야미는 "왜 그렇게 긴장했냐"며 아스타를 놀리는데, 원채 기대 같은걸 받아본 적이 없었던 아스타는 마법제 같은 높은 사람이 기대하자 긴장했던 것이다. 야미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사단에 넣은 것이니 빠릿빠릿하게 일해라"며 기합을 넣어준다.
* 산드라 수녀는 다행히 회복했다. 고슈 아들레이는 문병을 와서 서로 "죽다만 할망구"니 "전과자시스콤"이니 디스를 주고 받는다.
attachment:승리자.png
* 레베카는 [[노엘 실버]]와 아스타가 티격대는걸 보고 함께 싸워줄 수 없는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첫키스는 받아겠다며 난데없이 아스타에게 키스한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11회 일치
* 본부에 돌아오자 마자 늘어져 버리는 일행.
* 수도에 도착하자 핀랄은 필요가 없는지 "돌아가기 전까지 적당히 놀아라"라고 방치해 버린다. 어쨌든 여자들하고 놀 핑계가 생긴 핀랄은 신나서 사라진다.
* 그런 와중에도 검은 폭우는 사상자 없이 임무를 달성하고 백야의 마안을 격파하는 공적을 세웠다며 크게 칭찬한다.
* 어쨌든 그의 자질을 알아봤던 마법제는 이렇듯 훌륭하게 기사단장 직을 수행하는 야미를 보며 감격한다.
* 그러자 야미는 자기도 벌써 28살이라며 창피한 소리하지 말라고 한다.--엄청난 노안--
* 야미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 방법으로 실적을 보여라"라고 말하며 "당신이 했던 말"이라 말한다.
* 그는 "당신이 옳았다고 증명하고 싶었다"면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건 "이녀석들(검은 폭우 일행)"이 증명해줬다고 한다.
* 일개 부대라지만 상당한 숫자이며 키탄을 지키던 아군은 전멸. 공세로 봐서는 통상적인 시비를 넘어섰다.
- 블랙기업 . . . . 11회 일치
용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는 [[야쿠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세탁기업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일본에서 폭력단 대책법이 1992년 제정된 이후 경찰들이 야쿠자를 잡아들이기가 쉬워지자 야쿠자들이 명목상으로는 "나 야쿠자 아니요"라고 하기 위해 야쿠자들이 차린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존의 야쿠자 조직은 '기업'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결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지은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업 '케이텐 흥업'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케이스. 이를 '프런트 기업'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야쿠자 기업을 돌려서 표현하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명백하게 노동기준법을 위반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거나 불법은 아닐지라도 보편적인 윤리 및 도덕적 시각으로 볼 때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들이 태연히 일어나고 있는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블랙기업이냐 아니냐를 두는 기준은 단 하나, 보편적 가치관에서 본 노동환경 수준이다. 기원을 보면 알겠지만 [[야쿠자]]의 악행에 비견할 만큼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나쁠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한 기업을 가리킨다. 보통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 블리치/696화 . . . . 11회 일치
* 그 순간 천쇄참월이 깨지고 시해 "참월"이 등장, 유하바하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봤던 "미래"임을 깨닫는다.
* 아이젠은 "너에게 경화수월을 걸어두지 않은게 이런 형태로 도움이 됐다"고 자조한다.
* 아이젠은 좀 더 이야기를 하려 하나 갑자기 검은 물질이 덮쳐온다.
* 마치 올마이티 그 자체인 것처럼 변한 유하바하.
* 그는 자신이 죽은 미래 조차 개변하겠다고 발악한다.
* 이 은화살은 아우스발렌 희생자들의 심장에 생기는 "정지의 은"이란 결정으로 만들어진 것.
* 이 물질은 아우스발렌을 발동한 당사자의 피와 접촉하면 "그 자의 능력을 잠깐 동안 봉쇄한다"
* 유하바하가 무장해제되자 이치고는 서둘러 천쇄참월을 주워서 공격한다.
* 그는 하쉬발트가 보여준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거야 말로 자기 자신이 본 미래였다.
- 서유정(배우) . . . . 11회 일치
||학교||부천북초등학교[br][[부천여자중학교]][br][[안양예술고등학교]][br][[숭의여자대학교]] 무용과[br][[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 2003년 SBS 단막극 오픈 드라마 남과 여 - 벽장 속의 남자
* 2006년 KBS2 아침 드라마 그 여자의 선택
* 2007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시티 - 기억 상실증에 걸린 저승 사자
* 2008년 죽이고 싶은 남자
* [[순위 정하는 여자]]
2017년 11월 13일,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사자상 위에 올라탄 채로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본인의 SNS에 올리는 기행을 펼쳐 논란이 되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문화유산을 훼손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행위는 불법이며 심한 경우 처벌받을 수도 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이다.
문제는... 잘못된 행동으로 당시 주변 사람들한테 지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진을 그대로 올려 어그로를 끄니, 아예 자기 과실을 자각하는 능력조차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세종특별자치시 . . . . 11회 일치
{{다른 뜻|[[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선거구]]}}
|이름 = 세종특별자치시
|한자 = 世宗特別自治市
! 읍·면·행정동 ! ! 한자 ! ! 면적<br/>(km²) ! ! 인구 ! ! 세대
세종특별자치시 ! ! 世宗特別自治市 ! ! 465 ! ! 314,126 ! ! 123,762
세종특별자치시 행정지도
세종특별자치시 BRT버스
세종특별자치시 공공 자전거 어울링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세종특별자치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2012년 설치]][[분류:노무현 정부]][[분류:이명박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계획 도시]]
- 송언석 . . . . 11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기획재정부 제2차관[br]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br]자유한국당 경상북도 김천시 당협위원장[br]국민대학교 특임교수[br]제29회 행정고시합격 ||
'''[[2018년 재보궐선거]] 중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현재 [[자유한국당]] [[제20대 국회의원]](경북 [[김천시(선거구)|김천시]]).
계파는 [[친홍]]계로 분류된다.[* 송언석 의원이 [[박근혜정부]] 시절에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일하면서 친박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시다시피 송언석 의원은 [[배현진]], [[길환영]]과 같이 [[홍준표]]에 의해 자유한국당에 영입되면서 친홍 인사로 분류된다.]
[[이철우(1955)|이철우]]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당협위원장직을 사퇴하자 2018년 2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김천시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로 [[공천]]되었다.
|| 2018 || [[2018년 재보궐선거|재보궐선거]] (경북 김천 국회의원) || [[자유한국당]] || '''39,323 (50.32%)''' || '''당선 (1위)''' || '''초선'''[* 전임자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 ||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1회 일치
도시 상공을 비행하던 카라는 자신을 쫓던 비행 드론을 발견하고 격추시킨다.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행크를 추궁하지만 DEO의 것이 아니었다.
캣 그랜트는 시겔 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 카터를 돌볼 수 없게 되어 시상식에 갈 수 없었는 상황이었다. 카라는 자신이 카터를 돌봐주겠다고 나서서 그랜트에게 호감을 산다.
행크와 알렉스는 맥스웰 로드를 추궁하지만 맥스웰은 관계를 부인한다. 카터는 슈퍼걸 뉴스를 보자 엄청나게 흥분하여 슈퍼걸의 팬심을 드러낸다. 카라는 제임스와 대화를 하는데 루시 레인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매우 떨떠름한 상황에 놓인다.
알렉스는 호위를 명목으로 맥스웰 곁에 붙어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맥스웰이 연구소에서 폭탄이 발견되고, 맥스웰은 해체를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오히려 카운트가 더 빨리 돌아간다. 알렉스가 전화를 해오자 카라는 윈에게 카터를 돌보는걸 맡기고 알렉스에게 날아간다. 폭탄을 가지고 날아간 카라는 상공에서 폭발시킨 다음 충격을 받고 바다에 떨어진다.
루시 레인은 자신이 일에 몰두해서 제임스를 버리게 된 것은 제임스가 슈퍼맨에게 지나치게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슈퍼걸에게도 똑같이 빠지는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의 신형 열차 슈퍼레일의 테스트를 감시하는 걸 자청해서 나선다. 루시는 제임스에게 메트로폴리스로 돌아가겠다고 하며 키스를 나누고 헤어진다.
제임스는 공항에서 루시와 재회하여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행크는 알렉스를 내보내고 혼자서 폭탄을 상대한다. 카라는 에단을 쫓아가는데 에단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고도계가 장착되어 있어 열차를 벗어나면 폭발한다고 외친다.
카라는 열차에서 에단을 설득한다. 에단은 이 모든게 딸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 카라의 설득을 듣지 않고, 다른 자들이 있다는걸 암시한다. 그리고 폭탄을 작동시키고 30초 남았다고 말한다. 카라는 에단이 탄 열차칸을 분리시키고 열차를 정지시키며, 에단의 열차칸은 혼자 날려가서 폭발한다.
제임스는 루시와 다시 맺어졌고 카라는 상심한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의 인터뷰를 보고 수상함을 느끼고, 윈에게 조사를 해보라고 한 다음 맥스웰 로드가 에단의 딸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는걸 알려준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를 찾아가서 추궁하고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카라를 감시하고 있었다는걸 밝힌다.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11회 일치
* [[비자로]]
원래 과학자였는데 아들을 성공시키려는 아버지로부터 압박을 받아 혼자서는 무리라고 판단해 삼촌인 할의 상대변환 장치로 자신의 복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면서 표면을 통과할 수 있고, 복제 과정에서 초인 유전자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계 없이 스스로 복제를 만들수 있게 되었으나 얼굴이 해골처럼 되고, 한 사람이 아니게 되면서 잠을 잘수 없게 되어 미쳐버렸다. 결국 아버지에게 쫓겨나고 범죄자 라이엇이 되었다.
슈퍼맨 계열 빌런이나 슈퍼맨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할이 파티장에서 로이스 레인에게 자기 조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이후 슈퍼맨은 라이엇이 합체해서 잘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후 체포. 그후에도 메트로폴리스에 몇번 등장.
능력은 자신의 복제를 만들고 합체할 수 있으며 고체를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과학자이기에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다.
The Hairies의 리더인 Jude와 Lucy Diamond Sky의 딸. 여담으로 창조자는 부모와 더불어 [[잭 커비]].
창조자는 [[잭 커비]].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11회 일치
[[스파이더맨]] 관련 빌런. [[J 조나 제임슨]] 편집장을 비롯한 [[스파이더맨]]의 적들이 사용해왔다. 시리즈가 많아서 마크19까지 나왔다. 개발자는 스펜서 스마이스(Spencer Smythe), 주 조종자는 선술한 제임슨 편집장이며 용도는 이름이 가진 의미 그대로 스파이더맨 엿먹이기(...)
스펜서는 제임슨 편집장의 의뢰로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까발리기 위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점점 미쳐돌아가서 가족도 내팽겨치고 로봇에게만 집착하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이 설치했던 [[방사능]] 함정에 걸려 몸이 소멸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스펜서 사후 그의 아들 앨리스터 스마이드가 자신의 몸에 기계를 심고 스스로를 스파이더 슬레이어라고 칭했다. 아버지에게 로봇 발명을 명령했던 제임슨 편집장을 원흉으로 생각해 스파이더맨과 싸웠다. 결국 싸움 끝에 제임슨 편집장의 아내 마를라 매디슨을 살해하고 래프트 감옥에 갇힌다.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에서 슈피리어 스파이더맨/[[닥터 옥토퍼스]]는 스파이더 슬레이어의 사형일 날 그의 탈옥 계획을 알고 자신의 스파이더봇들을 이용해 탈옥을 막았다. 스파이더 슬레이어는 [[벌처]]와 [[스콜피온]] 등을 감옥에서 빼내 스파이더맨과 제임슨 시장, 감옥 안의 민간인들을 죽이려 보냈지만 각각 실패하고, 오토에게 죽기 직전 마지막 수단으로 서로의 정신교환을 시전하지만(...) 이미 시전을 성공했던 옥박사는 그를 비웃고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오토가 전에 날렸던 일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오토가 사용한 무기는 난투 때 앨리스터의 몸에서 뽑아낸 쇠갈고리 송곳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름과는 달리 마지막으로 싸운 적도 진짜가 아니었다고 평하는 오토의 대사가 걸작.[* 어색하지 않은 것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자칭한 자가 스파이더맨이라 해도 알맹이는 타인인 자에게 끝났으니..]
국내에 방영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스마이시 부자 둘다 등장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만들었는데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큰데다 합체(!)하는 종류도 나왔다.[* 사실 합체라기보단 그냥 위에 올려놓기.] 그리고 앨리스터 스마이시가 변화된 모습인 스파이더 슬레이어도 등장. 그가 성과를 못내는 등 갈등이 생긴 [[킹핀]]에 의해[* 수행은 그의 지시를 받은 학자가 했는데 이전의 [[엑스멘]]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반뮤턴트 주의자다.] 스파이더 슬레이어가 되었다. 이후 킹핀과는 적대 관계가 된다.
- 신동주(야구) . . . . 11회 일치
||<:> '''프로입단''' || 1991년 [[삼성 라이온즈]] 고졸연고 자유계약 ||
||<:> '''지도자''' ||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2014)[br][[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2015~2017)[br] 삼성 라이온즈 3군 타격코치(2017~) ||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태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현역 시절 당대 최고의 좌완투수였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에게 무척 강한 모습을 보였고 불꽃 남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고 찬스에 무척 강했다. 또한 타격 시에 배팅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타격을 하기로 유명했다.
== 지도자 시절 ==
2017년, [[김한수]] 타격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단독으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2011년 류중일 감독 부임 이후 삼성에는 줄곧 1군에 2명의 타격코치를 뒀다.] 삼성 라이온즈가 '''02 롯데''', '''13 한화''' 수준의 막장 경기력을 4월 내내 보여 주자 수비코치 [[이윤효]]와 묶여서 3군으로 강등되었다. 대신 [[김종훈(1972)|김종훈]]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으며, [[박진만]]도 수비코치로 왔다. 그리고 [[강기웅]]이 3군에서 2군으로 이동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72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 신은정 . . . . 11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박성웅]] ([[2008년]] ~ 현재)
| 자녀 = 슬하 1남 (아들 박상우)
'''신은정'''([[1974년]] [[1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배우]]이다.
* [[1999년]] [[MBC]] 일일연속극 《[[날마다 행복해]]》 ... 공문자 역
* [[2003년]] [[SBS]] 대하드라마 《[[왕의 여자]]》 ... 강아 역
* [[2014년]] [[SBS]] 주말 특별기획 《[[끝없는 사랑 (2014년 드라마)|끝없는 사랑]]》 ... 경자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11회 일치
편대장이 된 후 컨트롤러의 십자패드를 통해 편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쇠락하던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벨카 공국은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벨카 공국은 자국 영토에 핵무기를 사용하면서 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 후, 오시아 연방 샌드 섬 공군기지. 종군 기자 알베르 쥬넷은 훈련 교관의 기체에 동승해 조종사 훈련생들이 훈련받는걸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동쪽에서 국적 불명의 전투기가 습격. 쥬넷을 포함해 단 세명의 생존자만을 남겨버린다.
이 게임의 화자. 종군기자. 샌드 섬 비행대의 훈련을 취재하러 왔다가 국적불명 기체의 공격에 휘말린다. 이후 샌드 섬에 억류되어 샌드 섬 비행대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플레이어. 블레이즈는 TAC 네임으로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훈련생이지만 샌드 섬의 인원이 부족해지자 차출된다.
TAC 네임 초퍼. 훈련생이지만 샌드 섬의 인원이 부족해지자 차출된다.
오시아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있는 국가. 오시아와는 15년 전 전쟁 때 동맹이었다. 갑자기 오시아에 선전포고를 해 환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 회색 남자들(Grey Men)
신팍시의 자매함.
- 오창경 . . . . 11회 일치
* 《[[제보자 (영화)|제보자]]》 (2014년) - 택시기사 역
* 《[[이웃집 남자 (2010년 영화)|이웃집 남자]]》 (2010년) - 이 과장 역
* 《[[그림자 (영화)|그림자]]》 (2007년) - 부관 역
* 《[[방문자]]》 (2006년) - 중고차 딜러 역
* 《[[효자동 이발사]]》 (2004년) - 빈소 뒤 경호원 2 역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왝더독/줄거리 . . . . 11회 일치
영화의 시작은 선거 홍보 영상으로 시작된다. 승마장에서 남자 두 명이 다음에는 대화하다가 "달리는 중에는 말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다.그러고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을 주장하는 문구가 나오는 영상. 이 영상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나올 때마다 등장인물들에게 구리다고 까인다.
대통령 선거 2주일 전 밤,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이라는 남자가 [[백악관]]에 찾아온다. 백악관을 방문했던 "반딧불 소녀단"의 단원 중 하나가 대통령과 단 둘이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이후 그 소녀는 대통령이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브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것.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대통령이 희귀병에 걸린걸로 위장해 귀국을 지연시킨다.
다음날, 대통령이 병에 걸려 귀국이 지연되었다는 뉴스와 반딧불 소녀단 단원이 대통령의 성희롱을 고발했다는 뉴스가 연이어 방송된다. 브린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알바니아]]와 [[전쟁]]이 난 것 처럼 꾸미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를 위해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스탠리 모스(더스틴 호프만)를 찾아간다.
하지만 전쟁 발발(뻥) 3일 만에 미국과 알바니아가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뉴스가 올라온다. 속아 넘어간 줄 알았던 CIA가 뒤에서 손을 쓴 것. 이후 사실을 추궁하는 여론이 일자 일행은 망연자실하지만 모스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른 계획을 짠다. 알바니아에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가 있다고 꾸며내는 것. 이들은 펜타곤에서 윌리엄 슈만 상사(우디 해럴슨)를 제공받아 슈만 상사를 전쟁 영웅으로 포장한다.
선거 직전, 일행은 "알바니아의 숲 속에서 찾아낸" 슈만 상사의 귀환식을 열기 위해 군대에서 슈만 상사를 인수받는다. 슈만 상사는 [[수녀]]를 [[강간]]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육군 교도소에 수감된 정신 이상자였다. 귀환식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악천후를 뚫고 비행하던 비행기는 슈만의 난동으로 추락하고, 일행은 멕시코인 [[불법체류자]]가 모는 콤바인을 타고 귀환식장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슈만은 중간에 들른 상점 주인의 딸을 강간하려다 상점 주인의 [[총기|총]]에 맞아 죽는다.
어찌어찌 귀환식장에 도착한 일행. 슈만의 영결식을 진행하는 동안 브린과 모스는 TV를 본다. TV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라갔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며 그 공을 홍보 영상에게 돌린다. 모스는 자신의 업적을 병신같은 홍보 영상 따위에 빼앗긴 것에 분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브린과 말싸움을 하다 자리를 떠난다. 이후 요원들이 모스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며칠이 지난 후, 영화 프로듀서 스탠리 모스가 자택에서 일광욕 중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이후 알바니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와 함께 영화가 끝난다.
- 원피스/830화 . . . . 11회 일치
* 징베는 태양해적단 선원들에게 빅맘을 떠나 루피의 힘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다. 선원들은 당연히 징베가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고 지지한다.
* 페드로는 과거 포네그리프를 모으기 위해 해적생활을 했던 것을 털어놓으며 루피는 분명 해적왕의 자질이 있으니 장차 로드 포네그리프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 그리고 이번 기회에 빅맘의 로드 포네그리프를 확보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그 임무를 맡겨달라고 한다.
* 홀 케이크 아일랜드에 도착하는 밀집모자 일행. 해안가에 누군가 나와있는데?
* 몇 시간 전. 징베는 전 태양해적단 전원을 모아놓고 "루피는 세계를 바꿀 남자"라고 웅변한다.
* 부선장이었던 "알라딘"을 비롯해, 모든 단원이 그렇게 하라고 응원해주며 "선장(징베)은 늘 남을 위해서만 살았다.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격려를 듣는다.
* 다른 부하들은 호들갑을 떨며 떠나지 말라고 매달리는데, 빅맘은 "떠나는 자에게 이유를 묻지 마라. 꼴사납다." 고 물리친다.
* 그러나 "부모자식의 잔을 나눠놓고 돌려받는건 수치"라며 자신은 징베라는 큰 전력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 한편 밀집모자 일행은 아직도 항해 중. 물엿바다에 있다.
* 그래서 이번 작전은 상디의 탈환과 함께 "로드 포네그리프의 탈취"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섬에 도착한 이후 잠시 시간을 준다면 자신이 반드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한다.
- 원피스/842화 . . . . 11회 일치
* 루피의 위장은 한계에 당했고 큰소리 친것과 달리 슬슬 포기하려고 하지만 나미는 "루피야 말로 해적왕이 될 남자"라며 식욕에도 끝이 없다고 부추긴다.
* 상디는 형제들에게 당한 상처를 레이쥬가 치료해주는데, 레이쥬가 그런 "신사도"를 어디서 배웠냐 묻자 제프 밑에서 받은 혹독한 수련을 떠올린다.
* 문자 그대로 탱크처럼 부푼 몸으로 싸우는데 크래커의 공격을 엄청나게 커진 뱃살로 삼켜버린다.
* 크래커는 돌아가면 이 사실을 보고하겠다고 하자 킹바무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 나미는 "네가 사황의 간부 나부랭이라도 루피는 해적왕이 될 남자이며 식욕도 무한대!" 라고 소리치며 또 비를 만들어 뿌린다.
* 하지만 적들이 이 말을 정말로 믿고 비스킷 병사들이 돌격해 오자 눈물을 머금고 푸드파이트 모드로 복귀한다.
* 레이쥬는 출발하기 전에 상디의 상처를 고쳐주는데 마스크 팩 같은 것을 얼굴에 붙이자 짜릿한 충격과 함께 붓기가 싹 빠진다.
* 상디를 비롯해 부하 요리사들은 모두 여성 쉐프를 원했는데, 상디는 제프에게 "여자라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걷어차면 된다"고 했다가 혼구멍이 난다.
* 제프는 "남자는 여자를 때려선 안 돼!"라고 일갈하며 이것은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내려오던 원칙이라 말한다.
* 상디는 왜 제프의 목숨까지 거냐고 묻는데 제프는 그게 "부모의 의무"라며 자기가 싫어하는 인간이 되지말라고 말한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11회 일치
이 이야기의 원한대상은 보험금 살해범 아지야마. 첫번째 아내는 만취하여 욕조에서 이사, 두번째 아내는 자동차 사고, 세번째 아내는 투신자살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세번 모두 유유히 풀려났고, 거액의 보험금을 손에 넣었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된 것을 보고 분개한 딸의 부모가 원한해결사에게 5천만엔으로 '살해'를 의뢰한다. 매스컴의 취재에 쫓기던 아지야마에게, '원한해결사'와 '킬러'를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전화가 걸려오고, 이웃집에 이사왔다는 미노리카와라는 뚱뚱한 남자가 인사를 온다.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미노리카와는 자신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부채 5억엔을 떠앉고 있어 이달 안으로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와 집을 잃고 식구들이 자살해야 할 판이라며, 자신도 '누군가를 죽여서 보험금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기겁한 아지야마는 문을 닫아걸고 미노리카와에게 킬러냐며 화를 낸다. 미노리카와는 '사고는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지야마는 식은땀을 흘린다.
미노리카와는 원한해결사에게 잘 처리했다는 칭찬을 듣고 보수를 받는다. 그날 목욕을 하던 아지야마는 갑자기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바람에 기겁한다. 수리공은 외부에서 주파수 리모컨을 사용해서 조작하는 장난을 친 것 같다고 말하고, 미노리카와가 리모콘을 들고 나와서 음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위협을 가한다. 다음에 차를 타고 나간 아지야마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서 사고를 당하게 되며, 브레이크 오일이 새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비불량으로 감점을 당한다. 미노리카와는 몽키스패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아지야마 앞에 나타나서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순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의뢰인 가족은 원한해결사에게 사실을 듣고 미노리카와란 사람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원한해결사는 미노리카와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원한해결사에게 설득을 받고, 보험을 들어서 가족에게 전하는 대신 '죽어주는 역'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의뢰인 부부는 '악마'라고 경악한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11회 일치
제6화 재수없는 여자
의뢰인은 신혼 새댁 여성 마츠자와. 의뢰 대상은 맨션 관리조합의 '부이사'라는 아줌마. 결혼과 동시에 맨션을 사서 살기 시작한 마츠자와는 지어진지 6년이 된 맨션을, 리폼을 끝내고 2,200만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옆집 아줌마는 6년 전에 새로 지은 맨션을 6천만에 구입했기 때문에, 40이 되서 겨우 가지게 된 '내 집'을 땅값 하락 때문에 젊은 것들이 쉽게 삿다고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주택융자를 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부이사 아줌마는 시댁에게 못살게 굴었는데, 쓰레기를 뒤져서 '콘돔'을 발견하더니 얼굴에 집어던지거나, 우편함에다가 [[개똥]]을 대량으로 집어넣거나, 남편 앞에서 "갈색머리 남자와 놀고 있었다."면서 있지도 않은 불륜 모함을 하는 등. 치사하게 굴었다.
다음날 아줌마는 쓰레기를 뒤져서 우편물 도둑을 잡아내자고 한다. 아줌마는 새댁이 우편물 도둑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수수께끼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도둑맞은 우편물과 접착제, 그리고 부이사 아줌마의 집에서 먹었던 과자 상자가 모두 한 쓰레기 봉투에서 나타난다. 아줌마는 '개똥' 밖에 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모든걸 자백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범인을 조작한 것은 물론 원한해결사. 하지만 접착제 등은 차액 70만엔 분 만큼은 괴롭혀서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참 재수없는 여자라고 하는 새댁에게, 원한핸결사는 보통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돈을 주면서 까지 원한을 풀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당신도 재수없는 여자라고 대답해준다.
- 윤진식(국회의원) . . . . 11회 일치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는 [[관세청]]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관 역임 당시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반대할 정도로 꽤 진보적이었다. 기회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투자유치TF팀 팀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노선을 변경하였다. --[[우디르|윤진식급 태세전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래도 이때 일방적으로 패할 것이란 여론조사 예측을 깨고 이시종과 2% 차의 격전을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이시종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충주시장을 맡았으나, 2003년 돌연 시장직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며, 2004년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다. 이는 2010년에 제대로 참패한 새누리당의 전략적 선택이었는데, 2010년 당시 [[정우택]] 후보는 나름 중진이고 거물임에도 인구가 적은 진천이 출신지여서 '''충주 출신의 이시종'''에게 그야말로 처참히 발렸다. 이때 정우택은 이시종에게 36,267표차로 졌는데 청주권(구 청주시, 청원군)에서 29,606표차, 이시종의 텃밭 '''충주에서 23,963표차'''로 패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같은 충주 출신인 윤진식으로 맞불을 놓은 것.(사실 다른 경선 후보들이 모두 중도하차하면서 후보가 윤진식 혼자밖에 남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충주 지역구는 자신의 후임인 [[이종배]] 의원이 지키고 있어 뺏는 모양새가 안 좋았고, 청주권은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후보들이 많아서 밀고 들어가기 어려웠던 탓이다.~~그런데 청주권에선 정우택 의원 하나 살고 새누리당 모두 낙선~~
현재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상태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는 설도 있으나, [[http://m.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7053|#]]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http://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486308|#]]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이시종]] 지방선거 출마로 국회의원 사퇴] || '''[[한나라당]]''' || '''43,367 (63.65%)''' || '''당선 (1위)''' || ||
- 은혼/585화 . . . . 11회 일치
* 현재의 우미보즈는 긴토키가 가구라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카무이의 적의를 자신에게 돌렸음을 짐작한다.
* 카무이는 설사 "그런 것(바보오빠)이 자기 안에 남아있다해도 지구의 바보오빠(긴토키)와 함께 오늘 죽을 것"이라 말한다.
* 지킬 각오도 잃을 각오도 없는 카무이는 자신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카무이는 자기 자신도 못 지키는 놈이 내게서 무얼 지킬 수 있냐며 비웃는다.
* 우미보즈는 "저남자(긴토키)는 뭐냐"고 중얼거리고, 그걸 들은 신파치는 "카무이와 같다"고 답한다.
* 카무이는 자신보다도 먼저 일어서는 긴토키를 보며 "대체 무엇을 보고있냐"고 묻는다.
* 눈 앞의 적도 최강의 칭호도 바라보지 않고, 누구와 싸웠을 때에도 긴토키만 혼자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다.
* 긴토키는 자신도 카무이처럼 텅 비어 있었다고 답한다.
* 긴토키는 "나의 적은 여기(자신)에 있다"며 "최강같은 대단한 이름도 지구의 바보오빠 같은 허접한 이름도 필요없다"고 말한다.
자신 안에 있는 약함으로부터 등돌리는 녀석이 밖에서 아무리 찾아다녀도 강함을 찾아낼 리 없지.
- 은혼/606화 . . . . 11회 일치
* 야마자키 사가루 조차 각성하여 새로운 힘을 뽐내는데 해결사 일행은 아무래도 뉴 진선조에 적응하지 못한다.
* 마츠다이라와 곤도는 이 나라를 부수는 것도 지키는 것도 자기들 소관이라 일갈하며 혁명군과 교전을 시작한다.
* 그동안 진선조는 전국의 반란분자를 규합하고 구막부의 연줄을 총동원, 이국의 지원까지 받아내 새로운 전력을 확충했다.
* 왠지 모자이크도 벗고 있다.--정장추남저--
* '''모자이크를 밟고 만다'''
* 통한의 일격을 당하고 쓰러지는 곤도. 아무래도 모자이크 안에는 내용물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무라 타에 의문의 과부행
* 하지만 그건 에도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도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라 하는데.
* '''야마자키입니다'''
* 야마자키 사가루, 마운틴자키로 각성
* 야마자키는 선글라스를 획득해서 마다오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 의상 (신라) . . . . 11회 일치
| 제자 ={{개행 금지 시작}}[[오진 (남북국 시대)|오진]](悟眞){{.w}}[[지통]](智通){{.w}}[[표훈]](表訓){{.w}}[[진정 (승려)|진정]](眞定){{.w}}[[진장 (승려)|진장]](眞藏){{.w}}[[도융 (승려)|도융]](道融){{.w}}[[양원 (승려)|양원]](良圓){{.w}}[[상원 (승려)|상원]](相源){{.w}}[[능인 (승려)|능인]](能仁){{.w}}[[의적 (승려)|의적]](義寂) 등{{개행 금지 끝}}
'''의상'''(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승려|고승]]이다.<ref name="글로벌-의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의상|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의상|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당나라]]에 체류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여성 중 그를 사모하는 선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상의 귀국 소식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상이 [[영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집단으로 들고 일어서자 어느 날 사람 수백 명의 머리를 덮고도 남을 크기의 바위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하였고, 의상은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 의상의 귀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당나라]]는 [[삼국 통일]]을 원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여제(麗濟) 양국을 공취한 것에 노하여 신라 승상 [[김흠순]](金欽純)을 잡아 가두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당 고종]](高宗)이 [[신라]]에 대거 출병코자 한 기미를 [[김흠순]] 등에게 들은 의상은 급히 귀국하여 왕께 고하고 [[명랑]](明朗)이 [[문두루법회|밀단법]](密壇法)을 베풀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ref name="글로벌-의상"/>
[[분류:625년 태어남]][[분류:702년 죽음]][[분류:7세기 철학자]][[분류:입당승]][[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작가]][[분류:불교 철학자]][[분류:무속의 신]][[분류:경주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계순 (1927년) . . . . 11회 일치
'''이계순'''(李季順, [[1927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교육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1953년]] [[경남중학교]] 영어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 정무제2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를 다녔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421094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조선인 석주명] 국민일보 2009.09.14</ref> 귀국 후 [[1953년]] [[부산]] [[경남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이후 부산연세실업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6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되었다. [[1977년]]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이 되어 여성단체 활동에 뛰어들었고 교수직과 병행하였다. [[1985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았다. 1990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정무제2장관을 지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그가 직접 나서서 공무원 연수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관련’ 교과목은 ‘국가발전과 여성’ ‘여성문제의 현실과 정책방향’ 등의 과목명으로 1~2시간 특강 형식으로 배정됐다. 그러다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교육훈련점수에도 반영되어 선택과정으로 전환되고 전문과정으로까지 확대됐다. 초창기 교수요원의 확보와 교육자료의 개발 등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담당했다.<ref>[http://www.womennews.co.kr/news/48170#.VNroPaJFBzo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이 제도화되기까지]</ref> 1990년 12월 27일의 개각에서 유임되었으며, [[1991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에 위촉되었다.
|전임자 = [[김영정 (1929년)|김영정]]
|후임자 = 이계순
|전임자 = 이계순
|후임자 = [[김갑현]]
[[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여성주의자]][[분류: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정무제2장관]][[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1회 일치
|로마자 표기=Lee Myung-Joo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4년 12월 22일 발표된 [[2015년 AFC 아시안컵|2015 AFC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정협 깜짝 발탁…슈틸리케호 아시안컵 명단 확정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2/0200000000AKR20141222048300007.HTML?input=1195m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동찬, 장재은 |날짜 = 2014-12-22 }}</ref>이후 인연이 없다가 2017년 5월 22일 재승선 되었다
== 참고 자료 ==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종희 (1942년) . . . . 11회 일치
| 경력 = 前 [[대한항공]] 총괄담당 대표이사 사장 <br /> 前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 사장 <br /> 前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br /> 前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br /> 금탑산업훈장, 프랑스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자랑스런 단국인상 등을 수상
이종희는 [[1969년]] 대한항공 공채 1기로 입사해 말단 직원에서 총괄사장 자리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받는다. 출범 당시 대한항공은 아시아의 작은 지역항공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글로벌 톱10으로 세계적인 대형 항공사로 성장했다. 그동안 이종희는 [[대한항공]]의 성장 과정에서 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 역할을 했다. 그는 경영학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비분야로 입사해 30여년간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항공사의 전문경영인이 되는 데 필요한 업무를 두루 섭렵한 '테크노 경영인'이다. 특히 여객 영업에만 20여년간 몸 담은 여객영업 분야 전문가로서 신규 노선 개척 및 세계 항공사와 제휴 업무를 주도적으로 맡아왔다. [[대한항공]]은 [[2009년]] [[12월]] 말 인사에서 이종희를 대한항공 상임고문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이종희 대한항공 고문과 서용원 부사장 3인의 각자 대표로 변경됐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22517362982441&outlink=1|제목=대한항공, "앞으로 3인 대표이사 체제"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겉보기에는 무척 부드러워 보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강한 추진력을 발휘,매사에 빈틈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대한항공]]이 사업정상화를 위해 제트기를 새로 도입할 당시 신입직원이던 이종희는 영어로 된 부품과 정비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전무한 상황에서 밤을 새워가며 정비매뉴얼을 완벽하게 번역하면서 오너로 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영업부에서 항공기 운항과 정비 등의 운항 종합정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5년간 휴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사무실을 지켰다는 일화는 지금도 사내에 회자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한 · 프랑스 협력에 앞장서고 세계 항공시장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이종희에게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종 드뇌르 슈발리에(La Legion d'honneur Chevalier) 훈장을 수여하였다. 레종 도뇌르 훈장은 ‘영광의 군단’이란 의미를 지닌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데 레종 도뇌르는 일반적으로 코망되르, 오피시에, 슈발리에 등 3개 등급으로 구분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4년]] 이 훈장 가운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인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를 받은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12408021|제목=이종희 대한항공 사장‥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날짜=2009-11-25|출판사=한국경제|확인날짜=2010-04-12}}</ref>
* [[2006년]] 1월 ~ 2006년 2월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 [[2003년]] 자랑스런 단국인상
* [[2003년]] 제23회 연세경영자상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평 (1572년) . . . . 11회 일치
'''이평'''(李坪, 1572년 [[8월 17일]] - 161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자(字)는 여원(汝遠)이고 본관은 우계(羽溪), 도촌 [[이수형]](李秀亨)의 4대손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이며 이잠(李埁)의 형이다.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영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유영경(柳永慶) 등을 추형(追刑)하고, [[광해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공신(功臣)을 녹훈하고, 역당(逆黨)의 흉서(兇書)를 중외에 반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였다.<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일 을미 1번째기사, 이평이 유영경 등의 추형, 존호를 올리는 일, 공신을 녹훈하는 일 등을 상소하다</ref> 이에 그해 [[5월 29일]]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었는데 입계하였다. 광해군은 "임금은 부귀하기는 한 나라를 소유하였고 귀하기는 군왕이니, 그 영화와 높게 드러난 것이 그 이상 더할 수 없다. 저 존호를 올려 찬양하는 일은 하늘 끝의 한 점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해 옛날의 지사(志士)들은 얻고 잃고 가고 오는 것을 역시 개의치 않았으니, 임금에게 헛된 칭호를 가하는 것이 무슨 털끝만한 보탬이라도 있겠는가. 도리어 손상만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과장하지 못하겠으며 명예도 원치 않고, 다만 본분을 지키다 자연을 따라 죽고자 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이평(李坪)의 상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한 애숭이 유자의 망언으로 인하여 경솔하게 당치도 않은 큰 칭호를 받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럴 리는 없으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9일 임술 3번째기사,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숭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ref>" 하였다.
이후 [[이항복]] 등이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그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1일 갑자 4번째기사, 우의정 이항복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릴 것을 재차 청하다</ref>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영경의 추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4일 정묘 5번째기사, 양사에서 시관으로서 시험 출제를 잘못한 김시언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ref>
[[1612년]](광해군 4) 임자(壬子) 증광시(增廣試) 생원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져 그해의 [[9월 9일]]의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발령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다. [[선교랑]] [[홍문관 부수찬]]이 증직으로 추서된다.
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석남마을 후곡 자좌(子坐)에 있고, 그의 부인 파평윤씨는 영주 옥산에 묘가 있다.
[[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우계 이씨]]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11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의 진심과 [[사리엘]], [[타르미엘]]의 조력으로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 디안느는 그의 비겁함을 비난하고 할리퀸은 전쟁은 비정해야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목숨을 건 행동을 짓밟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치뤄진 격전이 막을 내린다.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의 인간형상으로 돌아와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혼신을 다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너무 지쳐서 두 십계의 상태도 확인하지 못한다. [[멜리오다스]]가 대신 그 둘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하며 감사를 표한다.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실신, 멜리오다스가 보호한다.
* 그를 방해한건 바로 [[드롤]]과 [[그로키시니아]]. 그들 안에 들어가 있는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었다. 디안느가 대지를 조종해 뤼드셀을 밀쳐내고 두 십계를 보호한다. 뤼드셀은 뻔뻔하게도 정의를 구현하려는 자신을 왜 방해한 거냐며 두 사람에게 따진다.
* 디안느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그의 비겁함을 비난한다. 할리퀸은 디안느와는 달리 그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전쟁엔 비겁이고 뭐고 없으니까. 뤼드셀은 그가 편들어 준다고 생각해서 반색하지만 결국 그도 뤼드셀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비록 십계라지만 엘리자베스가 목숨을 걸고 구해냈는데, 지금 뤼드셀의 행동은 그걸 짓밟는 것이다. 그 말에 뤼드셀은 반박도 못하고 표정을 구긴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를 안고 드롤과 그로키시니아 옆으로 날아온다. 그는 둘에게 감사를 표한 뒤 상공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리엘]]과 [[타르미엘]]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한다. 두 사대천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리엘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선을 긋는다. 타르미엘은 그저 엘리자베스님의 편을 든 것이라며 그 말을 거든다. 여전히 멜리오다스를 적대하는 건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더이상의 살생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 할리퀸은 멜리오다스에게 한 번 구해줬다고 해도 십계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들이고 언젠가는 멜리오다스를 죽이러 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때는 그때"라며 밝게 웃는다. 슬슬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자코 누워있다. 디안느는 멜리오다스의 태평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할리퀸은 "예전부터 변함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 임백천 . . . . 11회 일치
특유의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데뷔 초창기 때부터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MC도 자주 맡았는데, 아나운서들보다도 진행을 더 잘 해서 그 뒤 MC 섭외 1순위로 등극했다. 그래서 그를 [[가수]]보다 [[아나운서]] 및 전문MC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마치 [[임성훈]]처럼.
참고로 배우자는 1990년대 초반 인기 MC였던 8세 연하의 방송인 [[김연주]]이며, 1993년 3월 27일에 [[결혼]]했다.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1993년도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 TV 연예]]에서의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쇼 코너를 보내주었고, MBC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 무대에서도 멘트를 맡았고, 몇몇 서태지 관련 이벤트 등에서 나와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특집 방송이나 공연의 MC를 맡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도 임백천에 대해 각별히 생각한다고 한다. 서태지의 40대 이후의 외모가 놀랍게도 임백천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 참고로 출연 당시 57세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출연자들 중에선 '''3번째로 최고참이었다.''' 첫번째는 출연 당시 만 63세이던 [[부활한 백투더퓨처]], 두번째는 출연 당시 만 58세이던 [[윙윙윙 고추잠자리]]. 현재는 [[내 노래에 놀랄지도]]가 2016년에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최고령 출연 기록을 경신하면서 5번째 최연장자 출연이다.
지금에 와서는 나이도 있고 해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1980~1990년대에는 MC계의 원탑이었다. 지금 시대에서 그 인기나 인지도를 비교할 만한 대상을 꼽자면 [[유재석]] 정도다.
[[스카이 IM-100]]의 별칭이 임백천이며 IM Back (SKY)에서 하늘 천 자를 본뜬 모양이다. 사실 임백천의 천은 숫자 1,000이다.
* [[삼성전자]] 위너VTR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방송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남가수]][[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1958년 출생]][[분류:1978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전락원 . . . . 11회 일치
'''전락원'''(田樂園, [[1927년]] [[5월 16일]] ~ [[2004년]] [[11월 3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겸 교육가, 관광업자이다. '카지노의 대부'라는 별칭도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1451.html ‘카지노 대부’ 전락원씨 유족, 증여 · 상속세 430억원 신고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봇이 따온 제목 -->]</ref>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아들이며, 수필가 [[전숙희]]의 남동생이었다. [[파라다이스그룹|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주이며, 카지노업과 교육 사업을 하였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우경(宇耕)이며 [[서울특별시]] 출신. 종교는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이다.<ref>[http://news.joins.com/article/2028144 '파라디이스 그룹 창업주' 전락원 회장 별세], [[중앙일보]], 2004년 11월 3일.</ref>
1927년 5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鍾路區) 계동에서 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田周富) 와 계성옥(桂成玉)의 2남 5녀 중 넷째이자, 수필가 [[전숙희]](田叔禧) 의 남동생이었다. 아버지 전주부는 생애중 14곳의 개척 교회를 설립한 목회자이자 기독교 운동가였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후 올림포스 관광호텔 대표이사로 관광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한 그는 [[1973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워커힐 카지노를 인수하며 국내 카지노 사업의 대표주자<ref name="카지노">[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408415 전락원회장 별세… 파라다이스그룹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로 활약하였다. 그는 워커힐 카지노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인맥을 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차례로 부산, 제주, 도고, 인천, 아프리카 케냐 등에 파라다이스 호텔을 설립하고 부산과 제주, 인천에도 카지노를 개장하며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활동하였다.<ref name="카지노"/>
** 누나 : [[전숙희]](田淑禧, 수필가 겸 교육자, [[1919년]] [[3월 15일]] ~ [[2010년]] [[8월 1일]])
* 자녀 : 전필립, 전원미, 전지혜
* [[전주부 (목회자)|전주부]]
[[분류:1927년 태어남]][[분류:200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 사람]][[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학 설립자]][[분류:담양 전씨]]
- 전수지 . . . . 11회 일치
* 《[[제보자 (영화)|제보자]]》 (2014년) - 연구원 1 역
* 《[[더 테러 라이브]]》 (2013년) - 여자경찰 (목소리) 역
*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2012년)
* 《[[두 여자 (영화)|두 여자]]》 (2010년) - 레지던트 역
* 《퀵 서비스》 (2004년) - 4시 여자 역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재용 . . . . 11회 일치
|부모 = [[전두환]](부), [[이순자]](모)
|배우자 = [[연예인 박상아]]
|자녀 = 슬하 1녀
'''전재용'''(全在庸, [[1964년]] [[10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한글 이름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전재용(全載容)이다.
포항제철 명예회장 [[박태준 (1927년)|박태준]]의 넷째 막내딸 [[박경아]]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1992년]]에 공무원 출신의 최성대씨 딸 최정애와 재혼하였으나, [[2007년]] 2월 부인 최씨와 이혼하였다. 연기자 [[박상아]]와 결혼했으며,<ref>{{뉴스 인용
|저자 = 안치용
[[2012년]] 전직 대통령이 묻어둔 비자금의 일부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골프장 회원권 142개(약 355억원)가 매물로 나왔다. 매물로 나온 회원권 142개의 소유자는 에스더블유디씨라는 법인인데, 이 업체 임원으로 전두환의 차남인 전재용, 전재용의 부인 박상아, 전두환의 처남 이창석, 이창석의 부인 홍정녀 등 4명이 있다. 전두환 일가가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한 경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322266 골프장 회원권이 전두환 비자금?] 동아일보 2012년 3월 23일</ref>
** 모: [[이순자]](李順子, [[1939년]] ~)
** 백모: 최수자(崔秀子, [[1931년]] ~)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11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48th sense. '''무법자들 (3)'''
* 마기에게 걸린 최면에 대해 조사하는데 이 최면은 풀려고 하는 자에게도 전염되는 특성이 있다.
* 자신의 불리함이나 약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 것이며 그의 전술 전반이 어린애와 같은 허세로 이루어져 있다.
* "나는 상처받는 일 따위 없다"는 허세로 자기 자신을 세뇌하기 위해서이다.
* 그러자 효부는 "정말로 그것 뿐이냐"며 기억이 변하지 않았다는 발언이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 오염 자체를 어쩔 수는 없는지 효부의 오른손이 감염되기 시작한다.
* 효부는 자신이 감염되기 전까지 할 수 있는건 다 해보려 한다.
* 주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갱 따위를 털어먹고 살은 듯.
* 효부는 헐값이라며 자신을 고용하라 하는데 반문 측은 애송이한테 큰돈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 세일즈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자 효부는 동행한 머슬에게 푸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11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5th sense. '''무법자들 (10)'''
* 효부는 이쯤에서 적당히 잡히는 척하는데, 후지코는 효부가 "잡히는 척한다"고 간파하고 정말로 ECM이 먹히는지 확인한다며 효부의 팔다리를 자르려 한다.
* 효부는 근처에 있던 화물차를 들어올려 공격하려 하는데 갑자기 염동력의 출력이 약해지면서 자기 위로 떨어뜨리고 만다.
* 후지코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며 초딩틱한 디스를 날려댄다.
* 원격조종용 액상 탄환. 이것이 효부의 몸에 맞자 그대로 굳어서 움직임을 막아버린다.
* 효부는 어째서 후지코만 ECM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운지 묻는다.
* 원래 ECM은 고레벨 에스퍼에겐 무력화를 노리기 어려운데 후지코는 아예 의도적으로 주파수에 구멍을 내서 자신만 자유롭게 힘을 쓸수 있게 개량했다.
* 효부는 자신의 염파는 주파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걸 들키진 않은 것 같다고 판단, 그러나 후지코가 너무 진심이다.
* 후지코는 설마 이런 장소에 조력자가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고 방심해 버렸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1회 일치
* [[머슬 오오카마]]가, 로비에트 정부에도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마수가 뻗어와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알린다.
* 그러나 효부는 계획대로 되었다고 말한 뒤 공식적으로는 자신이 '의식불명'인 것으로 해 놓고 PANDRA의 지휘를 [[아카시 카오루]]에게 맡긴다고 한다.
효부는 모미지를 진정시키며 원래부터 자기는 유령같은 존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농담을 던진다. 모미지는 열불이 터져서 그런지 블랙 팬텀이 운영하는 블랙마켓에서 이식용 심장 같은건 당일배송이 없는지 알아본다.
* [[머슬 오오카마]]가 효부의 부상 소식에 사색이 돼서 달려온다. 효부에게 자신의 심장을 바칠 테니 써달라는 참 갸륵한 말을 하지만 역시 머슬이 하는 소리라 그런지 효부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거절한다. 머슬은 로비에트 정부가 블랙팬텀에 넘어갔는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 대사직도 없어진 자신이 조직에 헌신하는건 그런 것 정도라고 말하지만, 효부는 그 제안에 심전도가 떨어질 정도로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결국 보류된다.
길리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효부의 분노를 맛보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무언가"가 남아있는걸 발견하고 미심쩍어한다. 요우가 마기에게 공격당한 것이 바로 그때이고, 효부는 요우를 구할 겸 자신의 심장을 파괴해 링크를 끊었다.
길리엄은 효부의 정신을 흔드는게 목적이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며, 자신은 공식적으로 "의식불명"인 걸로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마기는 당분간은 얌전하게 있을 거라는 조언도 함께한다.
* 잠시 뒤, 모미지로부터 이상의 상황을 전달받은 [[아카시 카오루]]는 어떻게 초조하지 않을 수 있냐고 방방 날뛴다. 그녀와 칠드런 일행은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의 [[도서관]]에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산노미야 시호]]나 [[노가미 아오이]], [[쿠모이 유리]],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비교적 침착한 모습이다. 하지만 카오루는 고함을 치면서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 바벨을 습격하자는 과격한 말을 하다가 시호가 쏜 바람총을 맞고 다운된다. 시호는 그런 결단은 블랙팬텀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라고 정론을 펼친다.
* 그래도 카오루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츠보미 문서와 [[우츠미 세이시로]]의 사념이 그녀를 다독인다. 츠보미 문서는 이럴 때를 대비해 자신이 있는 거라며 카오루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상황이 막막한건 사실이다. 마츠카제는 미나모토가 "판도라의 전력을 써라"고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우츠미는 효부가 이런 상황에서 너무 몸을 사리는게 아닌가 의문스러워한다. 그가 기억하는 효부는 적에게 당하고 얌전히 있을 타입이 아니기 때문. 그러자 츠보미 문서는 길리엄의 정신이 "어떤 의식"에 닿지 않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현재의 효부는 가족이나 원한 이상으로 어떤 존재에 의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효부는 자신과 링크된 길리엄이 그 존재를 눈치채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 존재는 물론 파괴의 여왕, 아카시 카오루의 미래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카오루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그게 누구냐"고 묻고 있다.
- 정기성 . . . . 11회 일치
*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2010년, SBS) - 검사 역
* 《[[동이 (드라마)|동이]]》 (2011년, MBC) - 김환제자 역
* 《[[애자 언니 민자]]》 (2010년, SBS) - 창우 역
* 《도시괴담 데자뷰 시즌3》 (2008년, Super Action) - 정우식 역
* 《[[앞집 여자]]》 (2003년, MBC) - 유승서 역
* [[1997년]] MBC 신인탤런트 선발대회 남자대상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은표 . . . . 11회 일치
|| '''생년월일''' ||<(> [[1966년]] [[3월 27일]] [br] 양자리/붉은말띠 (병오년) ||
|| '''가족''' ||<(> 배우자 김하얀, 아들 정지웅, 정지훤, 딸 정하은 ||
1999년작 영화 '유령'에서 미사일 발사키를 부함장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삼켰다가 [[끔살]][* 삼긴 미사일 키를 찾으려고 즉시 살아 있는 채로 개복수술을 하려는데 마취할 시간도 아깝다며 부함장이 그냥 꺼내라고 시켜서 그만... ]당하는 조리장역[* 그전에 함내 규칙상 금지되어 있는 가족사진을 보다가 주인공인 431에게 들켰으나 처벌없이 자기 방에 라면이나 두 그릇 끓여서 가져다 달라는 것으로 넘어간다. ~~방에 라면을 끓여 들고 오면서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은 꼬들하게 끓여왔습니다." 라고 해주는 센스...는 한 "같이 먹지. 한 그릇은 자네꺼야."라는 정우성의 인자함에 바로 묻힌다.~~ 그렇게 자신을 봐주며 인간적 친분이 쌓인 431을 돕기 위해 미사일 발사키를 삼켰다가 그만...][* 순박한 인상으로 가족을 그리워 하다가 결국엔 그야말로 끔살당하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계속 힘없이 눈치보며 살 수 없다.'며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부함장 202의 행동를 그저 대의를 앞세운 광기로 보일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역할을 훌륭한 연기로 소화해냈다보니 상대적으로 당시에 무명이던 손병호, 설경구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음에도 조연중 가장 주목 받을 만한 역할이었다.]을 맡으면서 영화 관객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아무래도 전체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은건 역시나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품달]]. ~~"전하~~~~ 좋아서 입이 안 다물어지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특별한 이름이라는 이유로 막내 아들의 이름을 지'''훤'''이라고 지었다고 한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317203|##]]
뒤이어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아들이 출연하여 아들도 함께 유명해졌다. 그리고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여 엄청난 탁구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그리고 테니스 편에도 경기도 대표로 나와서 재출연! ~~"호동 씨는 탁구칠 때는 같은 편이라서 안 그랬는데 오늘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본인 조는 에이스 조인 강호동, 신현준 조를 이겼으나 경기도 팀이 예체능 팀에게 졌다.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 정 소장 역
* [[킬리만자로]] - 중사 역
- 짐 브라부라 . . . . 11회 일치
이후 맥스가 [[알렉스 볼더]] 요원의 살해 누명을 쓰고 쫓기는 처지가 되자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맥스를 체포하는데는 실패한다. 제일 근처까지 접근한게 맥스가 루피노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이때는 건물 앞까지 와 항복 요구까지 했었다.
맥스가 모든 사건의 진범이었던 니콜 혼을 살해한 후, 뒤늦게 에이저 플라자에 도착. 맥스를 항복시키고 체포한다.
스쿼키 청소회사에게 집을 습격당한 맥스가 이를 보고하자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어이없어 하며 알약을 집어삼킨다.
맥스가 게이트 상원의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모나 색스]]와 함께 행동하다 붙잡히자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며 맥스를 꾸짖는다. 맥스가 자신이 맡은 사건과 게이트 상원의원 사건이 연관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자, 두 사건 모두 윈터슨이 맡게 한다. 그러고는 맥스의 총을 빼앗고 해당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
윈터슨을 쏴죽인 맥스가 병원에서 깨어난걸 보자마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며 따지려 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병원을 습격한 스쿼키 청소회사의 총격에 쓰러진다. 맥스는 꿈속에서 그가 죽는 장면을 보았지만 다행히 현실의 브라부라는 수술을 받아 살아났다.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맥스 페인 2]]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맥스를 불러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추궁한다. 발레리 윈터슨이 [[블라디미르 렘]]의 애인이었다는 말을 들은 브라부라는 맥스가 뇌물을 받고 윈터슨을 쏜게 아니었다는걸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맥스를 경찰 자리에서 내쫓는다. 그때 맥스에게 계속 만나자는 말을 했고, 실제로도 맥스가 브라부라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창작:좀비탈출/3 . . . . 11회 일치
마당에 놓여 있던 자전거의 바퀴에 걸려 있는 체인에 안방에서 찾은 열쇠를 끼웠다. 조심스럽게 돌리자 철컥 하는 소리가 내며 체인이 풀렸다.
자전거가 무사할지 걱정했지만 바퀴는 부드럽게 움직인다. 잠깐 방치되어 있었지만 아직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에 공기도 아직 충분히 들어있다. 혹시 이걸 사용하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옆집 아저씨는 어째서 이걸로 도망치지 않았던 걸까?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가족을 놔두고 혼자서만 자전거로 도망갈 수는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대문을 열었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좀비들이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좀비들이 가까이 오기 전에 급히 자전거에 올라타서 패달을 받ㄼ고 달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면 좀비들이 팔을 뻗어오고, 비틀거리면서 쫓아온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려가니, 놈들의 손이 뻗어오기 전에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다. 겨우 골목을 빠져나왔다. 쫓아오는 적들과도 조금 거리가 멀어져 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4-1-1 . . . . 11회 일치
이걸로 하자. 제일 손에 익은 물건이니까.
마당이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나왔지만 심장이 요동치는걸 진정시킬 수가 없다. 나는 라마즈 호흡법에 실패하는 산모처럼 엇박자로 헉헉거렸다.
아무래도 불법침입자들은 생각보다는 예의가 바른 건지 그다지 건드려 놓은건 없었다. 한켠에 얼마 전에 보았던 [[창작:좀비탈출/0-1|구덩이]]정도가 눈여겨 볼 것이다.
나는 무기를 단단히 쥐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발을 천천히 옮겼는데 갑자기 닌자 흉내를 내는 기분이 들어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좀비 소굴에 갇힌 닌자.
녀석은 그자리에 그대로 서서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저 모습은 마치…… '''서서 잠들었다'''고 해야 할까? '''좀비가 잠을 잔다고?'''
관자놀이가 빨라진 맥박 때문에 욱신거린다. 팔에 너무 힘을 줬는지 쥐가 날 것만 같다. 입안이 빳빳하게 말라서 혀가 말려넘어갈 것 같다.
허리쪽에서 엉덩이와 등 양쪽으로 바늘 천개가 돌아가며 찌르는 듯한 통증이 퍼져나왔다. 그 통증을 수습할 새도 없이 토트넘이 달려든다. 난 옆으로 누운 자세이고 놈을 뿌리칠 힘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두꺼운 겉옷이 녀석의 이빨을 한 번은 막아줬다. 두 번도 막아줄 수 있을까? 세 번이나 네 번은? 알 수 없다. 얼른 뿌리치고 일어나야 하는데, 이놈의 허리가 말썽이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채이식 . . . . 11회 일치
|직업 = [[법학자]], [[대학 교수]]
|상훈 = 2013 자랑스런 고대법대인상
|배우자 =
|자녀 =
'''채이식'''(蔡利植, [[1949년]] ~ )은 대한민국의 법학자, 대학 교수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이며,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채이식 교수, IMO 법률위 의장 5선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10/09/0200000000AKR20091009091200043.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날짜 = 2009-10-09}}</ref>
고려대학교와 런던대학교 정경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으며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의 한국수석대표 및 집행위 의장,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해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 IMO법률위원회 의장에 채이식 교수 선출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989153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날짜 = 2005-04-28}}</ref>
* 2013 자랑스런 고대법대인상.<ref>{{뉴스 인용 |제목 = 채이식 로스쿨 교수 등 ‘자랑스런 고대법대인상’ |url =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540 |출판사 = 한국대학신문 |저자 = |날짜 = 2013-02-18}}</ref>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 채씨]][[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런던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
- 최동 . . . . 11회 일치
}}</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학자이다. 비주류 역사학자로도 활동했다. 호는 해산(海山).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8년]]에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을 지냈고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을 맡았다. 1941년에 [[동양지광]]이 주최한 '[[미영타도좌담회]]'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자격으로 참석해 [[황인종]]의 시각에서 [[미국]]과 [[영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일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제4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1947년 12월 4일 Severance 의과대학으로 승격시켜 6년제를 만들었고, [[195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 참고자료 ==
| 저자 = 이규식,양정필,여인석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전임자 = [[이영준 (1896년)|이영준]]
|후임자 = [[이용설]]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영이 (종교인) . . . . 11회 일치
|직업 = 순교자
그녀는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한국의 103위 성인]]에 속한 [[순교자]] [[최창흡 베드로]]와 [[손소벽 막달레나]] 부부의 딸이다.
최영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영이는 남편과 함께 피신했지만, [[6월]]에 그녀의 친정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될 때,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감옥은 혼탁한 공기에 어둡고 음식도 부족했으므로, 유아가 지내기에는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 때문에 확고한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염려하였으므로, 최영이는 아들을 밖의 한 친척에게 맡겼다.
포장은 그녀가 배교하고 동료 [[천주교]]인들과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종교]] 물품들의 주인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최영이는 배교치 않았고, 교우들과 알고 지내기에 자신은 너무 젊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는 2 차례의 [[주뢰형]]을 260 여대의 [[태형]]을 받았다. 그녀는 [[형조]]에서도 3 차례의 [[형벌]]과 [[고문]]을 견뎌내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최정원(1981년 4월) . . . . 11회 일치
사진찍히는 것을 무지 좋아하는지 자신의 미니홈피에 거의 화보집 수준의 사진들을 올려놓았다. 가본 곳도 많다. 호주, 야구장, 와인창고 등등...
2016년에는 [[마녀의 성]]으로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비주얼적으로 상당히 소름돋는 역변을 보여주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작년에 용감한 가족 나왔을때도 저정도는 아니였는데~~ 비주얼뿐만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혹평이 대다수.
참고로 동생 최정민은 푸드스타일리스트로 방송에 출연하였다.[* 대표적으로 죽 쑤는 여자 죽지 않는 남자에 출연하였다.] 또한 외모가 언니랑 상당히 닮았고 자매지간이 상당히 사이가 좋다. 또한 언니랑 함께 여행 프로인 Real Mate에 동반 출연하였다.
[[최정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동명이인]]이 꽤 많다. 공통된 점은 모두 [[현재]]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 중 그룹 [[UN(가수)|UN]] 출신의 [[최정원(남자배우)|최정원]]과는 이름뿐만 아니라 [[1981년]] 생으로 [[나이]]도 같고 [[생일]]도 비슷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 [[그녀의 신화]]에 출연할 당시 여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남주인공으로 같이 호흡을 맞춘 상대가 그룹 UN의 다른 멤버인 [[김정훈]]이라는 것이며 [[마녀의 성]]에서도 잠깐이지만 김정훈과 같이 출연했단 거다.
|| 여자 우수연기상 ||
|| 2007년 ||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 스타 어워드 || 여자 스타상 || ||
||<|2> 2008년 ||<|2> [[KBS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2> 바람의 나라 ||
||<|2> 2009년 || 제43회 납세자의 날 || 모범납세자 국무총리 표창 || ||
- 최종원(국회의원) . . . . 11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배우자 - 정영애, 딸 - 최나래, 최남미 ||
||<#878787> '''{{{#EEE156 수상}}}''' ||<(> 1983년 동아 연극상 남자 주연상 ||
수상경력은 1995년 〈[[영원한 제국]]〉으로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 밖에 없지만,[* 정조의 정적인 노론의 수장 심환지역을 맡았는데 당시 쉰도 안된 나이로 칠순 가까운 노인 심환지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게다가 그릇된 노론사관이 짙은 영화임에도 수구세력이 아닌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나온 극중 심환지의 모습이 시너지를 이루었다.] 1993년 영화 [[투캅스]]의 악당 보스 역을 비롯하여, 사실 수많은 영화에 비중있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했다. 단 한컷만 잡혀도 강렬한 마스크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신스틸러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의 활약 이후 [[이문식]], [[이원종(1966)|이원종]], [[유해진]], [[성지루]], [[김응수]] 등의 굵직한 조연급 배우들이 줄지어 그의 뒤를 이어 한국영화계의 신스틸러 소리를 듣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과 가까운데 국회의원 경력도 있다.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7.28 재보궐선거]] 강원도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 민주당 후보로 나서 55.01%(35271표)의 득표율을 기록, 44.98%(28841표)의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2008년)|민주당]], [[민주통합당]])을 역임하였다.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을 맡았던 [[유인촌]]과 마찰을 빚고 대립을 세우곤 했다.[* [[애초에]] 국회 입성을 앞두고 유인촌 장관과 마주치는걸 엄청나게 별렀는데 '''"유인촌 장관은 나랑 만나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라는 막말을 남겼을 정도(...) 실제로 당선 후 두 달 남짓 지난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예상대로 거하게 몰아붙였다.] 다만 [[19대 총선]]엔 출마하지 않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사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주변에서 '''다친다'''고 말렸으며 본인도 발을 빼려 했지만 이미 다 알려졌던지라 '''이민 갈 각오를 하고''' 김대중 캠프에 합류했는데 실제로 연예계 섭외가 싹 다 끊겼다고. (...) 하지만 김대중이 극적으로 당선된 다음날부터 섭외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당대 최고의 [[시트콤]]이었던 [[MBC]] [[남자셋 여자셋]]에 까메오로 출연한게 바로 이 무렵.
모자를 트레이드 마크처럼 쓰고 다닌다. 사실 꽤 [[노안]]인 [[배우]]다. 1990년대초 활발한 활동을 했을때부터 일찍 탈모가 진행되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 편이여서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 게다가 맡은 배역들이 주로 능구렁이 정치9단 노인역이 많아서 노안에 한몫을 하고 있다.
[[흑역사]]로는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2008년 7월 5일 새벽 0시 쯤 혈중알콜농도 0.132로 운전하다 경찰의 단속에 적발되어 불구속 입건되었다. 경찰 조사를 통해 음주운전을 한 사실을 시인했고 모든 조사를 마친 뒤 귀가 조치되었다. 하지만 자숙기간도 갖지 않고 [[드라마]] 촬영 및 방송 활동을 강행해 비난을 받았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상반기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 '''[[민주당(2008년)|민주당]]''' || '''32,661 (55.3%)''' || '''당선 (1위)''' || [* 전임자 [[이광재]] 강원도지사 출마] ||
- 최태원 (야구인) . . . . 11회 일치
'''최태원'''(崔泰元<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869 |날짜=2009-03-10 }}</ref>, [[1970년]] [[8월 19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kt 위즈]]의 작전/벤치코치이다. 그의 아들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의 내야수인 최준서이다.
신인 시절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2루수]] [[송태일]]에 밀려서 주로 [[우익수]]로 활동했으나, [[송태일]]이 이적 2년째인 [[1995년]] 슬럼프에 빠지자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타격을 앞세워 [[1995년]] 최다 안타상을 수상하며 주전 [[2루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1997년]] 겨울부터 그는 시련을 맞이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의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모기업 [[쌍방울 (기업)|쌍방울]]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김현욱 (야구인)|김현욱]], [[조규제]], [[박경완]], [[박성기]], [[김실]] 등의 동료들이 현금 트레이드되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팀의 4번 타자였던 [[외야수]] [[심성보]]는 [[당뇨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장타력을 상실하면서 그는 타선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타 구단 투수들은 그를 타깃으로 두고 [[빈볼]], [[고의 사구]] 작전을 펼쳤고 그는 힘겹게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갔다. [[김원형]], [[오상민]], [[장재중]] 등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의 끝까지 함께하였다.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된 [[2루수]] [[정경배]]에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끈질기게 이어오던 연속 경기 출장 기록도 당시 [[SK 와이번스]] 초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야구인)|강병철]]에 의해 [[2002년]] [[9월 10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을 결장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 후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시절의 은사인 [[조범현]]의 감독 부임 이후 재기를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주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3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3년]] [[10월 5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SK 와이번스]] 주루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팀의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새로 선임되자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804658& KIA, 최태원·장재중 코치 영입] - 연합뉴스</ref>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후 [[2009년]]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2011년]] [[KIA 타이거즈]]가 준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 1승 3패로 패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면서 [[조범현]]이 경질되었고, [[조범현]] 사단의 해체와 동시에 [[선동열]]이 새로 감독에 부임하자 옛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선배였던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감독으로 선임되어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 {{KBO 타자|93807|최태원}}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
- 최항석 . . . . 11회 일치
| 직업 = 연극배우 <br /> 연기자 <br /> 영화배우 <br /> 기업가
'''최항석'''(崔恒碩, [[1961년]] [[5월 31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연기자]] 겸 [[기업가]]이다.
[[198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그 후 [[1986년]] [[영화]] 《입을 연 석류》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이후 [[문화방송|MBC]], [[KBS]], [[SBS]], [[EBS]]의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그는 [[2002년]] [[MBC]] [[텔레비전 드라마]] 《[[리멤버 (드라마)|리멤버]]》의 오 주임 역과 [[2002년]] [[SBS]]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임동호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 (시트콤)|연인들]]》에서는 극중에서 [[연극]] [[배우]]인 [[김형자]]와 함께 [[배우]]와 [[연출가]]들의 사이로서의 호흡을 오래도록 동반한 [[연극]] [[연출가]] 최항석 역, 연극연출가 이주헌 역, 연극연출가 김세호 역으로 각각 몇회간을 단역하였다.
* 《[[남자 셋 여자 셋|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캡틴 아톰 . . . . 11회 일치
찰턴 코믹스 시절 캡틴 아톰은 과학자 앨런 애덤(Allen Adam)으로 로켓 실험 중 사고가 발생해 원폭(...)을 당하고 초능력을 얻게 된다. 괴력과 비행은 기본이고, 신체를 자유롭게 축소 혹은 거대화할 수 있거나 에너지를 방출 할 수 있다.
DC로 오면서 설정이 대폭 바뀌는데 에너지를 방출 및 흡수하는데다 에너지 파장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쓸 수 있다. 이름이 너새니얼 크리스토퍼 애덤(Nathaniel Christopher Adam)으로 바뀌고, 과학자가 아닌 공군이 되었다. 아담은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사면하는 대가로 모종의 군사실험에 참여한다. 그런데 모종의 군사실험이...추락한 외계인 우주선을 핵폭탄으로 날리는 것. 아담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는데, 18년 뒤 외계 금속으로 코딩(?)한 신체와 초능력을 가진 채 등장했다. 이후 사형드립협박을 받아 어용관제 히어로(...)가 된다. 미 정부는 모든 기록을 날조하고 캡틴 아톰을 저스티스 리그에 침투시켰는데, 아담은 보기 좋게 즐 때리고(...) 히어로 길을 걷는다.
그리고 <[[브라이티스트 데이]]>에서 현재 마곡에게 공격당했다. <킹덤 컴> 수준으로 엉망이 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는 [[맥스웰 로드]]로 인해 마곡과 해당 사건의 희생자들의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대체 방사능 슈트의 설정이 어떻게 된건지 몰라도 무언가 폭탄이 터지려 함->캡틴 아톰이 폭발 자체를 몸으로 흡수해 막음->캡틴 아톰 사망한 듯?->하지만 그 폭발 에너지로 인한 다른 차원, 시간 여행중->현실 세계에서 또 폭탄 큰게 하나 터짐->그 속에서 캡틴 아톰이 돌아옴.
[[리부트]] 이후의 [[NEW 52]]부터 개인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능력 때문에 뇌가 버티지 못하고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다. 또한 능력이 '''엄청나게 강화'''되어 거의 전능한 능력을 보여준다. 암을 치료하고 화산 폭발을 막아내며, 탱크의 분자를 수소와 산소로 바꿔서 소멸시키는데다가 방사능을 흡수하여 소멸시킨다. ~~그냥 닥터 맨하탄~~[* 참고로 리붓 이후의 DC 유니버스에도 닥터 맨하탄같은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파란색인 맨하탄과 달리 붉은색.] 하지만 판매량이 나빠서 2012년 9월에 폐간된다. ~~결국 안습.~~ 개인 시리즈가 부활하지 않는한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으면 얼굴 볼 일이 없어지는 상황.
[[그랜트 모리슨]]의 <멀티버시티> 이야기중 하나인 <팍스 아메리카나> 편에서 등장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캐릭터만 DC 코믹스 캐릭터이고 실제로는 왓치맨이나 다름없는 작품인지라 캡틴 아톰은 문자 그대로 닥터 맨하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캡틴 아톰은 유일한 초능력자이자 거의 신급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개를 살리는 것이 가능하며 과거에 있는 상태에서 미래의 인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저스티스]] 프리퀄 32화에선 '''놀랍게도 슈퍼맨을 두들겨 팬다!''' 캡틴 아톰이 유리한 상황이었으나 [[원더우먼]]이 검으로 캡틴 아톰의 목에 흠집을 낸다. 이 때문에 캡틴 아톰은 '''또다시 폭발해야할 운명'''에 처하고(...) 슈퍼맨을 데리고 우주로 가서 자폭한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대활약을 했으니 상당히 취급이 좋았던 셈.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11회 일치
대변동 후, 남겨진 섬(残され島)[* 한국판에서는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12살 소년. 문명이 멸망할 때에 추락한 로켓의 탑승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대변동 끝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지구를 보아온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또한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지혜와 놀라운 강함,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발가락 힘이 인상적이나 코난의 신체능력은 발가락 힘 말고도 '''전체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1화에서 혼자 자기보다 큰 [[상어]]를 잡은데다 이후 곳곳에서 코난이 가진 놀라운 강함을 확인할수 있다. 다만 발가락 힘이 좀 더 자주 나온 트레이드 마크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굉장한 강함을 지녀서 상대가 어른이라도 공평한 상황에서 붙으면 이기며 작살 던지기는 뛰어난 정밀성을 자랑한다.[* 눈에 안보일 정도로 높이 던졌다가 발가락으로 받아냈다.] 머리도 좋으며 정신적으로도 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인 남겨진 자들에선 설정이 달라서 처음 나올때 10대 후반이었다가 섬에서 표류하면서 20대 청년으로 자라났다. 물론 원작에서도 무인도에서 홀로 먹고 살며 지내서 매우 튼튼해 강인한 점이 돋보인다. 다만 발가락 힘은 없다. 코난 특유의 발가락 힘은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것이다.
- 킹덤/513화 . . . . 11회 일치
* [[하료초]]와 [[몽념]]은 [[왕전(킹덤)|왕전]]의 작전을 자살행위라고 여긴다.
* 왕전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그대로 행군하는데, 갑자기 진로를 바꾸서 업과는 무관한 소도시 "오다"를 공략하겠다고 하는데.
* 진의 군대가 열미를 빠져나왔다는 소식은 빠르게 중화 전토로 퍼진다. 위나라의 의자성. 전선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봉명]]은 진나라의 진군 소식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 초의 재상 [[와린]]은 [[이원]]과 함께 그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바뮤와 옥죽이란 남자 하인에게 팔을 주무르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착한 소식을 허투루 들은게 아닌지 "진이 진심으로 조를 치려 한다"며 진지하게 의견을 밝힌다.
* 이원은 전쟁에 조예가 없는 탓에 단순히 "조가 함락 당하는가?" 라고 묻는데 와린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럼 진이 실패한다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와린은 그렇다고 답한다. 바뮤는 눈치없이 끼어들어서 "진이 한단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냐"고 묻는데 와린은 그의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한단이 아니다!"고 호통친다.
* 장소는 다르지만 봉명의 의견도 와린과 일치한다. 그는 주광에게 그러한 견해를 전하며 개맹군을 의자성으로 불러들이게 지시한다. 조에서 진군이 소멸하는 것에 맞춰 대치 중인 [[등(킹덤)|등]]군을 격파하고 진나라를 칠 것이다.
* 열미를 빠져나온 진군은 바쁘게 진격하고 있지만 지휘관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하료초]]는 [[이신(킹덤)|이신]]에게 이 작전이 불길한 예감 밖에 안 든다고 토로한다. [[몽념]], [[왕분]]도 이들과 말머리를 같이하고 달려가고 있다. 하료초는 병참인 열미를 버리고 가지고 있는 병량만 가지고 업을 친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몽념의 의견도 같다. 전략을 아는 사람이 취할 방법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면서 "네가 자살행위라고 했던 그 행동"이라고 왕분을 끌어들인다. 몽념은 [[왕전(킹덤)|왕전]]에게 간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식인 왕분 뿐이라며 은근히 그가 작전을 중단시켜 주길 청한다. 왕분은 말없이 한 발 앞서 가버린다.
* 부하들 간의 설전이 지겨워졌는지 환의가 마론에게 자기가 아는건 한 가지 뿐이니 그걸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그는 사실 백로 밑에서 부장 생활을 할 때부터 왕전과 알던 사이다. 그래서 딱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 아무 말 없이 말을 달릴 뿐이었던 왕전은 마침내 열미에서 출병한 이후 최초의 지시를 내린다. 그는 [[양단화]]의 산민족 군단을 분리했다. 현재 진군의 위치 북동쪽 양토에는 [[공손룡]]이 전선을 펼치고 있다. 왕전은 양단화의 산민군 5만으로 공손룡의 9만 병력을 요격하게 지시한 것이다. 이신은 이게 좋은 판단인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우선 공손룡군이 4만이나 많고 자군 병력은 분단됐기 때문이다. 하료초는 현시점에선 상책이라고 보는데 진군이 업으로 가는데 최대 장애물이 공손룡의 9만 병력이었다. 양단화가 공손룡을 막는 동안 진군은 추격 당할 걱정없이 업까지 도착할 수 있다. 이신은 또 아군을 방패로 삼는 거냐고 달갑지 않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는 하료초에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 킹덤/519화 . . . . 11회 일치
* 왕전은 각각 좌우익에 [[몽념]], [[왕분]]을 두고 [[이신(킹덤)|이신]]의 비신대를 자신의 본대와 함께 중앙에 배치시킨다.
* 환의는 부관 [[마론(킹덤)|마론]]과 함께 기마대의 활약을 지켜본다. 마론은 이옥 기마대의 위력에 만족한다. 아마 흑양전에서는 일대가 수림지라 기마대를 굴릴 기회가 없어서, 그 분풀이를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다. 마론이 보기엔 셋으로 나뉜 진군 중 자기들이 가장 편안한 위치다. 여러 방향에서 조군이 들이닥친다지만, 당장 업성에 접근하는데 급급한 중소부대들 뿐. 이런 부대들을 이옥 기마대가 선회타격하는 걸로 낙승을 딴다. 당분간은 이런 방식으로 여유롭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쾌재를 부른다.
환의는 뇌토 쪽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오기코]]를 데리고 그쪽으로 향한다. 마론은 이 판국에 재미 운운하는 자기네 대장이 질력났다. 이때 또 급보다. 전방 좌측에서 조군의 증원 2천이 다가온다. 마론은 자신의 터무니없는 오판을 인정한다.
* 왕전이 머리 속의 반상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마침내 진군 전원이 도착했다. 왕전은 곧바로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구상을 실현코자 한다.
* 진군의 지휘관들은 총사령관의 기상천외한 명령을 하달받고 안색이 흐려진다. 우선은 포진부터가 이상하다.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 [[하료초]], [[강외(킹덤)|강외]]가 모두 어처구니 없어한다. 정말로 이게 왕전이 지정한 자기들의 위치인가? 그보다 더 기가 막힌건 [[몽념]]의 낙화대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배치. 신은 몽념과 낙화대를 걱정하지만 몽념은 호들갑떨기 보다는 잠자코 포진을 살핀다. 깊이 생각을 마친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알겠습니다"라 대답하고 부대로 돌아간다. 오히려 웃음마저 보이는데. [[왕분]]도 몽념처럼 지도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이렇게 해서 두 진영의 포진이 완성된다. 조군부터 보면 총 전력 12만을 2:1:1 비율로 비교적 균일하게 나눴다. 중앙에 6만, 양익에 3만씩. 장교 또한 중앙의 이목 본진에 카이네, 부저, 금모, [[요운]]으로 다섯. 우익에 마정, 기수로 둘. 좌익에 [[조아룡]], [[마남자]], [[악영]]으로 셋. 비교적 고르게 분배했다.
그에 비해 진군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배치. 총 전력 8만 8천을 중앙와 우익에 몰아넣고 좌익에는 고작 5천을 배정했다. 우선 중앙에 5만 8천 병력에 왕전 자신과 [[마광]], 그리고 비신대의 이신과 강외를 배치. 우익은 옥봉대에 병력을 추가해 총 2만 5천. 왕분과 [[아광]]이 있다. 문제는 좌익. 병력 5천으로 사실상 낙화대 단독 배치다.
몽념은 이신의 우려와는 달리 자신에 차있다. 그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말했다.
- 탁민제 . . . . 11회 일치
| 직업 = [[교수|대학 교수]], 공학자
| 배우자 =
| 자녀 =
'''탁민제'''(卓民濟, 1954년 ~ )은 [[대한민국]]의 [[항공우주공학자]]이다. 현재 [[KAIST]] 공과대학 기계항공시스템학부 항공우주공학 교수이자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이다.<ref>{{뉴스 인용|제목 = 항공우주학회장 KAIST 탁민제 교수|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2196808|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11-11-08}}</ref>
* 국제전기전자기술자학회 항공우주전자시스템 학술지 유도제어분야 편집위원장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과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탁씨]][[분류:항공우주공학자]]
- 태학 . . . . 11회 일치
[[유교]] 경전에서는 고대에 이미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기]]에는 순 임금이 상상(上庠)이라는 --상상력이 증진될듯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하며, [[주나라]] 천자는 벽옹(辟雍)이라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들을 국학(國學), 태학(太學), 대학(大學)으로 총칭했다.
그러나 후한 말기 난세가 닥치자 태학 역시 국가의 후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여 쇠퇴하여 소멸했는데, 위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면서 안정된 정권을 갖추면서 낙양에 다시 태학이 설치됐다. 낙양의 태학은 서진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팔왕의 난]]으로 중원이 초토화 되면서 태학도 깡그리 소멸한다. [[동진]] 정권은 수도 건강(지금의 난징)에 태학을 재설치했다.--건강한 태학--
서진에서는 276년 공경, 대부 등 고위 관료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하여 태학과는 별도로 국자학(國子學)이 설치된다. 국자학과 태학은 당날 때까지 병행하여 지속되었는데, 국자죄주(國子祭酒)가 관리했다. 당나라에서는 국자감(國子監)을 둬서, 국자학, 태학 이외에 사문학(四門學), 율학(律學), 서학(書學), 산학(算學) 등을 관리했다.
고구려에서 소수림왕 때 태학이 설치되었다. 신라에서는 국학을 설치했으며, 고려에서는 국자감을 설치했다. 국자감은 고려말에 [[성균관]]으로 개칭되며, 조선에서는 성균관으로 지속되었다.
베트남에서도 태학-국자감을 두었다.
- 토리코/385화 . . . . 11회 일치
* 아카시아는 구르메 펀치를 날리지만 미도라가 발동한 마이너리티 월드로 되돌려 자신을 때린다.
* 그리고 이 우주에서 네오의 데이터를 가질 수 있는 자는 "아카시아와 서로 잡아먹었던" 페어뿐일 거라고 말한다.
* 당황하는 죠아에게 미도라는 천천히 자신의 풀코스를 말하기 시작한다.
* 이어지는 풀코스의 "스프"는 플로제의 "자애"
* "샐러드"는, 언젠가 자신은 더럽혀진 피가 흐르고 있어서 플로제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고 했을때, 그녀가 해주었던 "격려"
* 미도라가 유일하게 갈망하는 것은 플로제의 요리. 그녀가 죽고 그 갈망을 충족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좌절했고 끝없는 공복을 느끼며 고통에 시달렸다.
* 미도라는 자신의 풀코스는 다시는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 자신의 몸은 플로제의 것이며 이대로 파괴해선 안 된다고 한다.
* 죠아는 마지막까지 자비를 구걸한다. 플로제의 몸은 "너의 모든 기억을 담은 몸"이라고 말한다.
* 죠아의 리타이어. 묘사로 보아 식운이 소진되어 자연소멸되거나, 식운으로 방어를 못해서 헝그리 스페이스에 먹혀지는 느낌이다.
* 미도라의 풀코스로는 여러가지가 점쳐졌지만 "플로제의 추억" 그 자체가 풀코스라는 감동적인 결론.
- 페어리 테일/484화 . . . . 11회 일치
하르지온의 싸움은 생존자들의 승리로 끝이 나고...
* 엘자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눈을 뜬다.
* 하르지온 탈환은 성공하고 생존자들은 전원 무사하다.
* 엘자를 간호하던 카구라는 제라르에게 인공호흡한게 캥겼는지
* '''엘자에게도 키스한다.'''
* 피오레 북방의 영봉 조니아에서는 "최강의 여자" 아이린이 설원을 거닐고 있다.
* 옛날 검은 천녀와 하얀 천녀와 남자를 놓고 다퉜다는 이야기. 결국 하얀 천녀가 승리하여 영원히 눈이 내리는 땅이 되었다 한다.
* 스팅을 비롯한 포로들을 구하는데, 갑자기 내리던 눈이 그치는 기현상을 목격한다.
* 그 말을 들은 가질은 자신만만하게 "이쪽은 괴물이 여섯"이라고 호언한다.
* 엘자에게 미안하다며 사죄의 의미로 키스를 하는데, 그 미안함의 기준을 알 수가 없다.
* 아이린과 엘자으 혈연관계 떡밥은 일단 뒤로 밀렸다.
- 페어리 테일/498화 . . . . 11회 일치
* 나츠는 자력으로 얼음을 깨고 부활. 루시와 쥬비아도 얼음이 풀린다.
* 잉벨은 그레이와 쥬비아를 지배해 서로 싸우게 하고 쥬비아는 자아가 유지되는 동안 자결해서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한다.
* 그레이는 얼음조형 마법이 통하지 않자 멸악마법을 해금한다.
* 그레이는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이미 어둠에 물들고 있다며 흑마술의 원점이자 황제(제레프)의 힘의 증명이라 말한다.
* 그레이가 악역이란 자각은 있다고 비웃자 "어둠엔 선악이 없다"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내재된 힘이며 그레이는 그 힘이 해방되려 한다고 말한다.
* 나츠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력으로 얼음을 녹인다. 나츠의 열기 때문인지 루시와 해피, 쥬비아도 해방된다.
* 쥬비아는 죽어도 그레이를 상처 입힐 수는 없다며 의식이 남아있을 때 자결하려 한다.
* 잉벨은 무엇이든 얼릴 수 있다고 했지만 나츠가 스스로 풀어버린걸 보니 푸는거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은 듯.
- 페어리 테일/502화 . . . . 11회 일치
* 아이린은 자기가 이렇게 애를 먹은 적은 없다고 감탄한다.
* 아이린이 얼빠진 소리라고 하지만 제레프가 거듭해서 요구하자 난처해한다.
* 아이린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제레프는 서둘러 추격을 명령한다.
* 가질은 자신도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잃을 뻔한 목숨 동료를 위해 방패가 되는건 당연"이라 말하며 격사적으로 싸운다.
* 레비가 유감을 표하는데 자신은 어차피 100년 전 죽은 사람이라며 개의치 않는다.
* 메스트가 "어떤 소녀의 목소리가 우리를 불러모았다"라고 설명해주자 메이비스는 제이라의 존재를 깨닫는다.
* 제이라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뒤를 부탁한다.
* 메이비스는 그녀가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다는걸 깨닫는다.
* 팬서 릴리는 승리한 뒤 즐길거리가 늘었다며 초대에게 제라와 모험한 이야기를 듣자고 한다.
* 메이비스는 제이라는 돌아갔고 이젠 자신들이 길드로 돌아갈 차례라고 말하며 전의를 고양시킨다.
* 아이린은 메이비스에게 농락 당한 일로 격분했는데, 사실 메이비스 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최강의 여마도사 자격이 있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11회 일치
* 제랄은 엘자를 떠올리며 "빛을 손에 넣었다"고 답하는데 오거스트는 빛은 정의도 어둠은 악이라는 사고는 어리석다 비웃는다.
* 오거스트는 제랄이 한 때 제레프 드래그닐을 신봉했던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를 져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지 묻는데 제랄은 "내 마음을 비추는 빛을 손에 넣었다"고 말하며 엘자 스칼렛을 떠올린다. 그런데 대답을 들은 오거스트는 빛은 정의고 어둠은 악이라는 사고방식은 어리석다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제레프 드래그닐에겐 "아들"이 한 명 있다고 말을 꺼낸다. 제랄에겐 놀랄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 아이는 강대한 빛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어느 쪽도 아닌 무의 경지에 도달했다. 오거스트는 빛과 어둠에 선악은 무관하다며, 굳이 정의가 있다면 그건 "사랑" 뿐이라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는 사이 제랄은 엘자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다짐하며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라고 시도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과 대치하고 있는 카구라 미카즈치. 제레프의 아들이라는 말에 반문한다. 라케이드는 정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제레프의 아들이라고 강조한다. 유키노 아그리아, 렉터와 프로시는 "드래그닐"이란 성을 듣고 나츠 드래그닐을 떠올린다. 라케이드는 내친 김에 그가 제레프의 동생이며 자신의 숙부에 해당한다고 폭로한다. 충격을 받는 유키노와 카구라. 라케이드는 그들에게 나츠와 만나는걸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 라케이드는 유키노에게 걸었던 것과 같은 쾌락을 주입하는 마법을 사용한다. 카구라는 촉수에 휘감기며 위기에 처하지만 스스로 혀를 깨물면서 정신을 다잡는다. 카구라는 빛의 촉수를 베어버리고 라케이드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어 쾌락을 뿌리치는 정신력에 감탄한다.
* 근접에선 무방비하고 생각했던 라케이드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카구라의 검을 막는다. 라케이드는 스프리건12 중 몇 명을 쓰러뜨렸다고 착각에 빠졌다고 빈정댄다. 카구라가 당황해서 연거푸 검을 휘두르지만 어느 것 하나 라케이드에게 상처를 내지 못한다. 라케이드는 여유롭게 방어하면서 자신과 오거스트, 아이린은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현격한 전력차에 카구라는 패배를 예감한다. 라케이드는 바로 그 표정이 좋다고 도발하는데 카구라가 크게 내리친다.
|| 새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 ||
카구라의 패배로 유키노 일행이 절망하자 "그것 조차 쾌락으로 물들여주겠다"며 촉수 마법을 다시 사용한다.
|| 자, 천국이라는 죽음으로. ||
졸지에 최종보스 후보가 페도필리아가 되게 생겼는데, 잘 생각해 보면 메이비스가 정말로 친모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시열대 상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애가 태어날 법한 타이밍이 없고 어쨌든 본인이 낳은게 맞다면 메이비스 본인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 때문에 에도라스 때처럼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인물이거나 제레프가 마법적으로 두 사람의 유전자를 합쳐 만든 인물이 아닌가 하는 설이 나오고 있다.--그냥 제레프가 사고치고 마법으로 기억을 지운게 아닐까?--
- 피수영 . . . . 11회 일치
| 배우자 = 有
| 자녀 = 피윤범(장남), 피윤성(차남)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1년간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피수영은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대한민국의 신생아 치료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수영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을 떠나 10년 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당신 피 박사 아니냐’고 그래서 ‘날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아이를 불러와서 ‘당신이 살려준 애다’하였다. 그때 의사 하길 잘 했다, 보람이 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피수영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영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2008년 10월 24일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서울아산병원 피수영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서울아산병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http://www.whosaeng.com/sub_read.html?uid=23675 서울아산병원, 피수영 교수 정년 기념 심포지엄], 《후생일보》, 2008년 10월 24일</ref>
* [[피천득]](皮千得)의 1965년 수필 〈피가지변(皮哥之辯)〉에서 "… 피(皮)씨의 직업은 대개가 의원이요, 그 중에는 시의(侍醫, 임금·왕족의 진료를 맡은 의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 의학을 공부하는 우리 아이는 옥관자는 못달더라도 우간다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올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수필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당시 23세로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피천득]]의 차남 피수영이다.
피수영은 부친 [[피천득]] 선생에 대해 '순간의 배부름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 강인한 기상을 자식들에게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또 "꼿꼿함과 선비다움을 가풍으로 물려줬다"고 말했다.
* 피수영 교수는 미국에서 신생아과 전임의(醫)로 자리잡은 38살이 돼서야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두 아들을 얻었다. 장남 피윤범·차남 피윤성이다. 맏아들 피윤범은 [[뉴욕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영화를 공부하였고, 차남 피윤성은 [[미국]] 명문인 [[코넬 대학교]] 법대를 다녔다.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순천향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울산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하이큐/209화 . . . . 11회 일치
[[하이큐]] 209화. '''자기소개'''
* 카라스노고교에선 카게야마가 잘 도착했을지 걱정하는데, 뒤늦게 "후리가나[* 한자 가나로 음을 표기한 주석. 카게야마는 공부를 못해 한자를 잘 읽는 편이 아니기에 그것을 우려하고 있다.]를 썼던가?"하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 이 사태가 카라스노에 전해지자 일동 폭소.
* 히나타는 타케다에게 사과하며 "카라스노의 훈련이 덜 중요한건 아니지만 강자들이 모이는 합숙에서 강한 놈들이 시합 밖에선 어떤지, 어째서 강한지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 시라토리자와 배구부 감독 "와시죠 탄지"
* 한편 체육관에선 갑자기 등장한 히나타를 놓고 설왕설래 중.
* 히나타는 조금 충격 받은 것 같았는데, 체육관으로 슬금슬금 나가더니 "포지션은 볼보이. 잘 부탁합니다."라고 힘차게 자기 소개한다.
*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각자 자신의 합숙장소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 동료들은 카게야마가 "후리가나 없이는 한자를 못 읽을 정도로 바보"라고 여겨지고 있다.
- 하이큐/210화 . . . . 11회 일치
* 이후 우카이는 볼일이 있어서 몇 군데 돌아다녀야 하는데, 시라토리자와에도 잠깐 들러야 한다.
* 시라토리자와 학원에서는 와시죠 감독이 "평소엔 적이지만 여기서는 아니다."라며 선수들에게 서로 훔칠 수 있는 것은 훔치며 서로 키우도록 하라는 훈시를 내린다.
* 초청된 선수들은 대인패스 훈련부터 시작하고 히나타는 시라토리자와의 볼보이들하고 통성명한다.
* 시라토리자와 볼보이들은 소집된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하곤 스타트 지점이 다르다"고 부러워한다.
* 한 코치는 봄대회에서 히나타를 봤다며 자기라면 WS(윙스파이커)로 키우겠다고 하는데 다른 코치는 "올 봄대회를 카라스노에게 뺏긴 앙갚음 아니냐"는 농담을 한다.
*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는데, 훈련에 앞서 전일본 남자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는 "일본, 높이와 파워에 무너지다는 말은 옛날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 모든 것은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는 것"이라며 세계를 향해서 날뛰고 "배구는 더욱 재미있는 것임을 입증하자"며 훈시한다.
* 히나타는 여전히 홀로 연습하고 있는데 중학시절 뒤쳐져 있던 트라우마를 회상하며 "멈춰서면 안 돼"라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 내친 김에 공도 못 만지는건 "자업자득"이라며 "볼보이나 실컷해라"고 비꼰다.
* 그날밤 시라토리자와 기숙사에선 우시와카가 내일부터 합숙에 참가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 하이큐/239화 . . . . 11회 일치
* 2세트 들어 긴장이 누그러진 히메카와는 자신의 특기인 "천장 서브"를 사용해 카라스노의 허를 찌르는데 성공한다.
사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긴장한 연습 때의 성과를 보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사실 2학년의 같은 포지션인 [[츠키오카 치하루]]가 신경쓰이는 점도 있다. 원래는 츠키오카가 이런 타이밍에서 핀치 서버로 기용됐었는데, 하필 봄고에 와서 난데없이 자신이 끌려나온 것이다. 이런 판이니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수밖에. 그래도 "핀치는 기회"라고 자신을 설득하며 플레이에 들어간다.
* 히메카와는 특이하게 "언더핸드 서브"를 구사한다. 초심자들이 많이 쓰는 방식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게 특징. 카라스노에서는 그저 특이하게 친다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다.
츠키오카는 "다음 시합"에선 자신이 나갈 거라며 히메카와에게 적은 기회를 살릴 방법이나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말 뜻을 이해한 히메카와는 츠키오카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한 번 선수 교체를 준비한다.
히메카와는 조금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코트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오사도 감독 자신은 터무니없는 조언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멋진 장면을 따내봐라"니, 그런 큰 무대에서, 이런 긴박한 상황에 투입돼서 실패한다면 그걸 용서하지 않을 사람은 팀원이 아니다.
>자기 자신.
오오사도 감독은 자신의 조언으로 히메카와가 "자기자신"을 다시 신용할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이 없는 것 같다.
- 하이큐/253화 . . . . 11회 일치
* 멋진 페이크로 [[이나리자키 고교]]의 블록을 따돌리며 경기의 균형을 맞춘 [[카게야마 토비오]]. 득점에 솔직하게 환호하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달리 사령탑 카게야마는 생각이 복잡하다. 사실 그가 노린 페이크 상대는 맞은 편의 오미미. [[히나타 쇼요]]가 튀어나가면 당연히 따라붙을 줄 알았는데, 잘도 간파하고 히나테에 붙지 않았다. 오미미도 방금 전 카게야마가 "의도적으로 낚으려 했다"며 눈을 흘긴다.
생각이 복잡한건 코트 바깥의 세터도 그랬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아카아시 케이지]]가 그랬다. 옆의 [[보쿠토 코타로]]는 완전히 히나타한테 올리는 건 줄 알았다며 카게야마를 칭찬하지만, 아카아시는 차라리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미끼를 던져 봐야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세트업은 퍼스트 터치가 코트 중앙으로 올라가서 각도상으로 보면 완전히 히나타한테 가는 흐름이었다. 그걸 교묘하게 라이트로 보낸게 성공의 이유. 이는 카게야마가 시야가 넓기만 한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은 요소는...
>히나타는 자그마한데도 존재감이 세단 말이지!
* 본의 아니게 카게야마의 연기에 어울려준 히나타는 속으로 "완전히 나한테 오는 줄 알았다"고 그를 원망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외부에서 보기는 호흡이 척척 맞은 페이크였다. 응원단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가 이렇게 강했구나"하고 감탄한다. 벤치의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이나리자키가 인터하이 2위에 으리으리한 응원단까지 갖춘 강호이긴 해도 필요이상으로 강대하게 보지 않았나 되짚어 본다. 옅에 앉은 [[시미즈 키요코]]는 열기를 더해가는 [[타나카 사요코]]의 태고팀의 응원을 들으며 담담히 대답한다.
* 다음 플레이는 이나리자키의 득점. 추격에도 흔들리는 기색은 없다. 스코어 9 대 7. 이나리자키의 2점 리드 상황에서는 서브는 다시 [[미야 아츠무]]. 그가 서브 위치에 서는 것만으로도 카라스노 응원단의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이도류"라며 이를 간다. 사요코는 "그건 공을 두 개 쓰기라도 하냐"고 문외한다운 이야기를 하자 시마다가 설명에 들어간다.
이도류란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선수마다 주력 서브는 정해져 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히나타는 스파이크 서브, [[야마구지 타다시]]는 점프 플로터, 이런 식이다. 아츠무는 어느 쪽이든 때릴 수 있어서 서브가 날아오기 전에는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리시브할 위치를 선점하기 어렵다. 거리로는 단 한 걸음이지만, 실제 플레이에선 그 작은 차이가 실점으로 이어진다.
* 우카이 코치의 분석은 헛되지 않았다. 아츠무의 걸음은 정확히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대비한다. 그런데 이 대응법은 공격측인 이나리자키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였다. 특히 [[미야 오사무]]는 설사 아츠무의 버릇을 간파했다고 해도 별 건 아니라고 여긴다.
* 타케다 고문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방금 전 자신이 본 바를 입으로 말해봤다.
- 하이큐/262화 . . . . 11회 일치
* 하지만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이한 봄고 대회 2회전에서는 불운이 잇따른데다 상대팀 에이스 [[스나 린타로]]에게 발목이 잡히며 좋은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 오지츠 중학교 출신으로 막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한 [[타나카 류노스케]]는 인상부터가 존재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1학년인데도 반삭 금발. 제법 험악한 인상에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자기소개 시간엔 옆의 [[엔노시타 치카라]]나 [[나리타 카즈히토]]가 눈에 안 띌 정도였다. 당시 2학년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이 신입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아즈마네는 거의 겁 먹었고 스가와라는 언제나처럼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다음날 나타난 타나카는 단숨에 스가와라의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 그때까지 트레이드 마크였던 반삭 금발을 지금의 빡빡머리로 바꿨기 때문이다. 본인은 "기합을 넣는 차원에서 바꿨다"며 나름대로 의지표명을 했건만 스가와라는 자비없이 만지작 거리며 장난감으로 전락시켰다. 씁쓸한 기억이다.
*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타나카의 의지는, 빡빡머리는 변함이 없다.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이한 봄고 대회 2회전. 스코어는 25 대 24. 카라스노가 1세트를 가져갈 찬스. 아즈마네의 서브. [[야치 히토카]]는 숫제 스코어 보드 옆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1점만 더. 사실 지금 카라스노 선수라면 누구나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관중들도 우승후보를 여기까지 밀어붙인 카라스노의 저력에 감탄한다. 과연 시라토리자와 학워을 쓰러뜨릴 만하다, 잘하면 1세트를 가져가겠다... 하지만 "이렇게 우세할 때 못 가져 가면 다음은 힘들다"는 현실을 퍼붓는 말도 있다. 히토카에게 뻔히 들릴 정도. 히토카가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속으로 외쳐본다.
아즈마네의 서브. 중앙의 아카기에게. 무난하게 받아서 [[미야 아츠무]]에게 보낸다. 그리고 아츠무가 세트업, 그러나 실수다. 괴짜 속공을 노렸지만 [[미야 오사무]]의 위치보다 한참 앞으로 향하는 공. 이나리자키 벤치에서 "멍청아!"라는 일침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오사무가 어떻게든 커버한다.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겼다. 하지만 그 뿐이다. 카라스노에겐 완벽한 찬스볼. [[히바리다 후키]] 감독과 동행한 스텝은 상대의 세트 포인트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괴짜 속공을 또 시도했다는 점에 황당해한다. 히바리다 감독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하고 싶은거 다 해라"라고 말했다.
* 공이 크게 떠서 다시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아츠무가 다시 세트업.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공은 린타로에게. C속공. 이번에는 카라스노의 블록도 빨랐다. 타나카가 일찌감치 달려온다. 적절한 리드블록. 츠키시마도 코트 밖의 히나타도 직감할 수 있었다. 막는다. 블록 두 장이 여유롭게 뛰어오른다. 결과는 실패. 공에 스치지도 못했다. 타나카와 함께 블록을 뛴 츠키시마 케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코스를 틀어막았다. 공이 블록을 통과한 것처럼 뻗아나가 우측 후방의 [[사와무라 다이치]]를 노렸다. 사실 스나 린타로가 노린 건 정확히 그 위치는 아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렷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공은 블록을 돌파했고 카라스노 진영으로 돌아왔다. 사와무라가 엉겁결에 리시브한 바람에 공이 불안하게 떠올랐다. 아즈마네가 사이드라인 밖에서 걷어올리면서 타나카에게 잇는다.
*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세 장. 역시나 더욱 빠르고 견고해지고 있다. 좌측을 꽉 채우는 블록. 열린 길은 둘 중 하나. 극좌익인가, 아니면 우측으로 열린 중앙인가. 타나카는 뛰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좌냐 우냐, 그것보다 과하게 많은 생각. 갓 입부했던 1학년 때부터, 어젯밤 선배들이 베란다에서 나눈 이야기들, 그들의 중압감, 웃음기로 감추던 긴장과 투지, 후배들, 그리고 적. 우카이 코치의 걱정대로 너무 많은 것들과 함께 뛰어오른 타나카.
* 스파이크. 블록을 피했다. 극히 좌측. [[미야 오사무]]의 우측으로 꽂히는 공. 그러나, 라인을 넘겼다. 아웃 판정. 동료 선수들도 관중석도, 탄식이 꼬리를 문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다시 피말리는 시소게임으로. 아츠무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번 플레이가 실점으로 이어졌다면 역전이 될 뻔했다. 사실 오사무는 이미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 이번엔 꼭 세 개 들이 한 세트가 아닌 하나짜리 고급 푸딩을 뜯어낼 작정이다.
* 아츠무가 역전을 면한 대가로, 타나카가 독박을 쓴다. 그의 심정이 누구보다 공감되는지 [[보쿠토 코타로]]가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도 모르지 않았다. 방금 플레이는 딱히 무리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늘 타나카는 실수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나리자키의 집요한 블록과 점수를 벌어야 한다는 부담은 어태커에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는 서브를 계속 받아왔으니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것. 아카아시가 짐작하는 바를, 보쿠토가 한 줄로 요약했다.
- 함화진 . . . . 11회 일치
|직업 =연주자,교육인
함화진은 [[이왕직 아악부]]의 수장인 제2세 아악사장을 역임한 함재운의 장자로 태어나 이병문에게서 거문고를, [[명완벽]]에게서는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국악이론 부문에서도 일인자가 되었다. 10대 시절인 [[1900년]]에 가전악(假典樂)이 된 뒤 [[190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 그 뒤 아악사를 차례로 지냈다. [[1932년]]에는 아버지가 맡았던 자리인 제5세 아악사장에까지 올랐고, [[1939년]]에 은퇴했다.
한편 [[1912년]]부터 조선정악전습소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했고, [[193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 실기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고 [[처용무]]를 재현하는 등 국악 전통의 복구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아악개요》(1915), 《조선악기편》(1933), 《이조악제원류》(1933), 《증보가곡원류》(1938), 《조선음악통론》(1948) 등이 있어 국악 연구에 자주 인용된다. 유고로 《국악50년 회고록》을 남겼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국악계의 대표 격으로 [[조선문예회]],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성이 강한 음악인 단체에서 활동한 일이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에 수록된 국악인은 함화진과 [[김기수 (국악인)|김기수]] 두 사람이다.
== 참고자료 ==
|저자=편집부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핫라인 마이애미 . . . . 11회 일치
1989년 4월 3일, 마이애미에 사는 자켓은 정체불명의 소포를 받는다. 그 소포 안에는 정체불명의 지령문과 수탉 가면이 들어있었다.
매 챕터를 시작하기 전 착용할 수 있는 가면. 가면마다 각자의 특수능력이 있다. 가면은 챕터를 클리어하거나 게임 도중 주울 수 있다.
목을 뜯어 죽인 상대의 무기를 자동으로 빼앗는다.
적들이 자켓을 볼 수 있는 범위가 짧아진다. 개한테는 안 먹히니 주의.
적을 한번에 죽이는 무기. 둔기의 경우 즉사하지 않고 피투성이로 기어다니다 죽는 놈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놈들은 처형시키거나 가만히 냅두면 죽는다. 뚱보한테는 먹히지 않으니 총을 찾자. 모든 근접무기는 처형에 사용할 수 있다.
손쉽게 쓸 수 있는 원거리 무기이자 뚱보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 사용시 총소리를 들은 적이 몰려오므로 무턱대고 쓰다가는 다굴당해 죽는다. 재장전 불가.
13발 짜리 권총. 소음기가 달려 있어서 총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끔씩 적이 한 발에 죽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자.
자켓을 발견하면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물어 죽인다. 주먹이 먹히지 않는다.
챕터 6에서만 나오는 적. 자켓을 보면 우지를 빼들어 쏜다. 유인되지 않는다.
자켓을 발견하면 다가와서 패죽인다. 총기로만 처리 가능. 총알 몇 발 쯤 맞아도 얼마간은 살아있으니 산탄총으로 쏴버리자. 즉사한다.
- 현경련 . . . . 11회 일치
|직업 = 순교자
그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현계흠 바오로]]의 딸이며, 같은 때 [[순교]]한 [[최창현 요한]]의 [[며느리]]이며,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기해일기]]》의 주저자 [[현석문 카롤로]]의 누나이다.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홍병선 . . . . 11회 일치
'''홍병선'''(洪秉璇, [[1888년]] [[11월 6일]] ~ [[1967년]] [[7월 19일]])은 [[한국]]의 [[감리교]] [[목사]]이다. 호는 목양(牧羊). 사학자 [[홍이섭]]의 아버지이다.
홍병선은 신흥우와 함께 [[1927년]] [[덴마크]]와 [[미국]]의 농촌사업을 시찰하고 돌아온 뒤, 농촌 협동조합 및 구락부를 조직하는 사업에 열중했다. 덴마크식 농촌사업을 위해 [[1931년]] 서울 [[신촌]]에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인 고등농민수양소를 세우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홍병선과 농촌진흥운동을 함께 했던 [[윤치호]], 신흥우 등이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전쟁 지원을 빌미로 적극적인 친일파로 돌아서면서, 홍병선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한국 YMCA가 폐쇄되어 일본 YMCA 산하로 흡수 편입될 때 주역이었고, [[1938년]] 기독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전쟁협력 강연에 [[정춘수]], [[박연서]], [[이동욱 (목회자)|이동욱]] 등 감리교 목사들과 함께 연사로 참가했다. 같은 해 YMCA가 발행하는 《청년》에 〈기독교도와 시국〉이라는 글을 발표해, 기독교도의 신사참배는 황국신민으로서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라며 [[신사참배 강요]]에 호응하는 주장을 편 일도 유명하다.<ref>{{서적 인용
|저자=최덕성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개신교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제목=홍병선 - 농촌운동 선구자
|저자=김삼웅
[[분류:1888년 태어남]][[분류:196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도시샤 대학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
- 후예 . . . . 11회 일치
자신의 아들, 딸, 그 손자.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모든 자녀들. 비슷한 말로, 자손(子孫), 후예(後裔) 등이 있다. 반대말을 [[조상]], [[선조]].
후손이라는 말의 범위는 조금 애매한데, 직계자식, 손자는 제외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과학자들은 [[칭기즈 칸]]의 후손이 무려 1,6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 창작작품 등장인물의 후손이 활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 가운데 특히 자식과 손자가 활약하는 경우를 [[2세물]]이라고 한다.
* 대개 창작물의 후손은 선조와 닮았다고 묘사된다. 자신이 조상과 닮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K리그 챌린지 . . . . 10회 일치
K리그 챌린지의 발족은 승강제 도입과 관련한 이슈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 허나 K리그는 선수들의 수준만 보면 아시아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을지언정 리그 자체가 가진 상업성은 아시아 최하위 수준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라서 새로 프로축구구단을 창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2013시즌은 8개 팀이 약 40주 일정에 가깝게 치뤄야 했으므로 [[홈 & 어웨이]] 방식을 쓰되 서로 5번씩 만나는 구조로 운영되었다. 우승팀은 2014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 진출자격을 부여받았다. 상주가 여기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하면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2014시즌부터는 정규시즌이 끝나면 챌린지 우승팀은 K리그 클래식에 자동으로 진출하고, 2위에서 4위팀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거쳐 클래식 11위팀과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체제가 정립된다. 이 신설규정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대전이 클래식으로 승격되었으며, 챌린지 4위였던 광주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 자격으로 당시 클래식 11위팀인 경남과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이김으로써 승격을 이루게 된다.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2위부터 4위팀들끼리 벌어지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 획득을 위한 경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정규시즌의 연장선이 아니므로 별개의 대회로 취급했었으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PO도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함으로써 챌린지 PO의 승자는 챌린지의 최종순위 2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챌린지와 플레이오프 사이에서는 기록이 호환되지 않았다가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항목 참고.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10회 일치
[[상주 상무 프로축구단]] - [[K리그 챌린지/2015시즌|2015시즌 K리그 챌린지]] 우승자격으로 승격
[[수원 FC]]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2015시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의 승자자격으로 승격
|| 경기번호 || 경기일자 || 홈팀 vs 원정팀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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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위결정방식이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에서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으로 다득점이 득실차(=골득실)보다 우선적용되는 변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소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에서 다룬다.
1. 전북의 심판매수 사건으로 인해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사항은 [[2013 K리그 심판매수]] 항목을 참고.
1. 6월 14일에 있었던 14라운드 6경기 중 4경기에 자책골이 기록되는 진기한 상황이 발생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7화 . . . . 10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7화. '''우마루와 보물상자'''
* 우마루(코마루)는 키리에와 서로 보물상자를 보여주며 논다.
* 키리에의 보물상자에서 어린시절 사진이 잔뜩 나오는데 오빠(봄바)와 찍은 사진이 가장 많다.
* 키리에는 예전에는 사이좋은 남매였지만 자라면서 사이가 틀어졌다고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 키리에는 벽장 높은 곳에 있는 상자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 그건 우마루에게 보여줄 보물상자.
* 서로 보물상자를 보여주기로 했던 것이다.
* 우마루의 보물상자는 아마존 박스로 만든 굿즈 저장소나 다름 없다.
* 안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가 있는데 키리에는 [[흑역사]]를 직감하면서도 우마루의 의향대로 열기로 한다.
* 사진은 바로 그때 보물상자에 들어가게 된다.
- 곽성문 . . . . 10회 일치
'''곽성문'''(郭成文, [[1952년]] [[1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7대 [[국회의원]]이자 언론인이다. [[자유선진당]]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는 제2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이다. [[대구광역시]] 출신이며, 본관은 [[현풍 곽씨|현풍]]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임마누엘이다.
* MBC 보도국, 정치부 기자, 워싱턴특파원
* 제17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제18대 총선]]||[[대구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중구]]·[[대구 남구의 국회의원|남구)]]||18대||[[자유선진당]]||{{막대|선진|1|7|3}} 17.3%||11,430표||3위||낙선
|전임자 = [[백승홍]](대구 중구)<br/>[[현승일]](대구 남구)
|후임자 = [[배영식]]
|소속정당 = [[한나라당]] → [[자유선진당]]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선진통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만수(정치인) . . . . 10회 일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기초자치단체장이다.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문수 대 만수'''라는 드립을 쳤다.(...) 원래 시의원일 때도 지역구가 오정구에 속한 원종2동이었지만, 오정구는 자신이 모신 [[원혜영]]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어서 결국 김문수가 지키고 있는 소사 지역구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김문수가 아직 개념잡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성실히 하고 지역구 관리 아주 제대로 하던 때였으니 탄핵풍을 등에 업었음에도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방향을 바꿔,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홍건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본래는 3차례 연속 낙선을 하고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고 당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론의 반전과, 현직 시장이었던 홍건표의 연이은 실정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인해 22%, 7만표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당선되었고, 드디어 선거 첫 승리를 맛봤다.
본인이 보좌관으로 모셨던 분은 부천시의 국회의원 4명 중 [[원혜영|1명]]인데 자신은 시장이 되었다.(...)--그 분도 부천에서 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상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영,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반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2006 || [[2006년 재보궐선거|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부천 소사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 11,712 (30.32%) || 낙선 (2위) || [* 전임자 김문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로 사퇴] ||
- 김문오 . . . . 10회 일치
{{공직자 정보
* 한국기자협회 대구·경북지회장
* 대구광역시산악연맹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4대 | [[지방 관청|군수]] | [[달성군|대구 달성군]] | 무소속 | 31,378 표 | 47.22 | 1위 | 당선_대구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기초자치단체장|초선]], 민선 5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5대 | [[지방 관청|군수]] | [[달성군|대구 달성군]] | 새누리당 | 무투표 | 0 | 단독출마 | 당선_대구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기초자치단체장|재선]], 민선 6기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6대 | [[지방 관청|군수]] | [[달성군|대구 달성군]] | 무소속 | 64,474 표 | 58.0 | 1위 | 당선_대구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기초자치단체장|3선]], 민선 7기 }}
|전임자 = [[이종진 (1950년)|이종진]]
|후임자 = (현직)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김문집 . . . . 10회 일치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이 명단을 정리한 2002년까지 발견된 친일 저작물 수는 [[1939년]] 발표한 〈축하할 죽음〉 등 3편이다.<ref>{{저널 인용
|저자=김재용
== 참고 자료 ==
|저자=임종국
|저자=홍지미
|저자=정영진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일본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일본인]]
- 김범룡 . . . . 10회 일치
| 배우자 = 크리스 강([[미국]] 교포 출신)
[[1982년]] 연포가요제에서 [[보컬]] 듀오 빈 수레의 [[보컬]]리스트로 참가하여 자작곡 《인연》으로 우수상을 수상하여 첫 데뷔하였고 그 후 [[1985년]] 개인 음반 1집에 수록된 자작곡 《바람 바람 바람》으로 솔로 [[가수]] 데뷔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85년]] [[K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에는 [[MBC]]와 [[KBS]]에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잠시 영화배우와 뮤지컬배우로도 활동하였는데 히로뽕과 대마초를 흡입했다는 이유 때문에 [[1995년]] [[2월 21일]] 서울지검 강력부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ref>{{뉴스 인용
| 저자 = 김의겸
| 저자 = 연합
| 저자 =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데뷔]][[분류:과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김성겸(탤런트) . . . . 10회 일치
|| '''본관''' ||[[김해 김씨]] 경파[* [[김해 김씨]] 경파(京派) 25세손, 수로 75세손 '謙'자 항렬이다. [[정치인]]인 [[김부겸]], [[아프리카]] [[BJ]]인 [[김보겸]], [[GOT7]]의 멤버인 [[김유겸]]과 같은 항렬이다. --어째 김X겸이 많다.--]||
|| '''별자리''' ||[[황소자리]]||
|| '''신체''' ||'''183cm, 98kg'''[*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던 당시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중학교 때 키가 다 커서 중학생 때 180을 이미 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이웃 여학생을 찾았는데, 정작 그분은 김성겸을 기억 못했다. [[MC]] [[이상벽]]이 김성겸이 동네에서 제일 체격이 컸다는데 외모라도 기억이 안 나냐고 하자, 그 여성분의 아버지도 키가 180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살면서 키 큰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그녀는 김성겸을 방송에서 본 모습으로만 기억했는데 그가 주로 맡던 역할 때문인지 그냥 좀 무섭다는 인상밖에 없었다고.. --간단히 말해 어렸을때 동네에 살았건 말건 TV에 나오건 말건 별 관심없었다는 이야기(...)-- 몸무게는 90년대 말에 KBS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것.]||
키 183cm인 거구이며, [[태조 왕건]]의 [[아자개]]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규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전문배우]]이다. 실제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외모, 체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4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 [[대한민국 정치비사]] 등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을 연기하였다. 키 183cm면 2018년 기준으로도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큰 수준이다.
2000년대 초반 어린이 시청자들에겐 [[매직키드 마수리]]의 [[마파람]]으로도 기억이 남을 것이다.
사실은 김성겸도 [[MBC 성우극회]] 출신[* [[황일청]], [[최낙천]], [[변희봉]] 등과 같은 MBC 성우극회 2기로 데뷔. 지금은 [[배우]]로 활동이 많아져서 극회 목록에는 지워져 있다.]으로, 명예 [[성우]]이기도 하다. 성우로서는 80년대 초까지 [[존 웨인]]의 전담성우로 자주 활약했다.[* 존 웨인과도 닮았다.]
* [[우리집 여자들]] - 이 회장
* [[달자의 봄(KBS 2TV)]] - 강태봉의 할아버지
* [[태조 왕건]] - [[아자개]]
- 김용국 (야구인) . . . . 10회 일치
'''김용국'''(金用國, [[1962년]] [[6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태평양 돌핀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kt 위즈]]의 2군 야수총괄코치이다.
[[한양대학교]] 졸업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1985년 한국프로야구]]부터 주전 [[3루수]]로 뛰었지만 [[1987년 한국프로야구]]에는 [[류중일]]의 입단으로 설 자리를 잃어 [[유격수]]에서 전향했던 [[오대석]]과 병용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류중일]]이 다음 해인 [[1988년 한국프로야구]] 때 팔꿈치 수술로 출장 입지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류중일]]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1988년 한국프로야구]]부터 [[1993년 한국프로야구]]까지 줄곧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또한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다.<ref name="imaeil" />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그로 이어지는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는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 [[3루수]] [[한대화]]에게 밀려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3루수)|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1993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3 시즌]]이 끝나고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의 3루수 자리를 후배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물려 주었다.
[[1997년]] 그는 무보수 방문 코치로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루키 리그 야구단 [[헬레나 브루어스]] ([[:en:Helena Brewers|Helena Brewers]])에서 코치로 있다가 그해 9월 마이너 리그 내의 교육 리그, [[애리조나 폴 리그]] ([[:en:Arizona Fall League|Arizona Fall League]])에 속해 있던 야구단 [[메사 솔라 삭스|선 시티즈 솔라 삭스]] (Sun Cities Solar Sox; 現 메사 솔라 삭스 [[:en:Mesa Solar Sox|Mesa Solar Sox]])에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55979 <프로야구>김용국, 애리조나 폴리그 코치 영광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한 달간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싱글A 야구단 [[스탁턴 포츠]] ([[:en:Stockton Ports|Stockton Ports]])에서 수비 및 주로 코치로 일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94321 <프로야구> 김용국, 미국 프로야구 지도자로 데뷔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1998년 말, 1년간 그를 지켜본 [[스탁턴 포츠]]는 그에게 연봉 3만 달러를 제안함과 동시에 1999 시즌부터 정규 시즌 코치로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1999 시즌이 끝난 뒤엔 연봉이 3만 5천 달러로 오르면서 트리플A 야구단 [[인디애나 인디언스]] ([[:en:Indianapolis Indians|Indianapolis Indians]])의 코치로 승격되었다. 2000 시즌 도중에는 [[스카우트]] 자격으로 한국에 2주 동안 출장을 오기도 했는데, 그때 한국의 4개 프로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코치에 도전해 볼 생각도 있었으나 [[LG 트윈스]]의 강력한 러브콜로 인해 국내 복귀를 택했다.<ref name="imaeil" />
[[대한민국]]에서 연봉 5천만원에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551908 <프로야구소식> LG, 김대진, 김용국코치 영입]</ref> 그는 추후 자리를 옮겨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부터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9 시즌]]까지 친정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20171 삼성, 김용국·강성우 코치 영입]</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65 [사진]김용국 코치,'아픈 데는 괜찮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76 [사진]김용국,'글러브 가볍고 괜찮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9년]] 친정 팀의 코치 재계약에 실패한 후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엔 [[넥센 히어로즈]]에 자리를 옮겨 2군 수비·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다가<ref>''OSEN'' - 2009년 11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11190106 "히어로즈, 김용국 전 삼성 코치 영입"]</ref>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다.
{{둘러보기 상자 묶음
- 김유현 . . . . 10회 일치
|형제자매 =
|배우자 =
|자녀 =
* [[경일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성악화과
* [[2008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일일드라마 《[[애자 언니 민자]]》 ... 수민 역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
- 김재홍 (1958년) . . . . 10회 일치
'''김재홍'''(金宰弘, [[1958년]] [[5월 23일]] ~ , [[대구광역시|대구]])은 [[대한민국]]의 전직 공무원이다. 2015년 1월 부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 투자정책관
* 2013년 3월 ~ 2014년 7월 :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 2015년 1월 ~ 2018년 2월 : 제19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전임자 = [[윤상직]]<br/>(지식경제부 제1차관)
|후임자 = [[이관섭 (1961년)|이관섭]]
|직책 = 초대 [[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나가 . . . . 10회 일치
인간형의 비늘을 가진 냉혈동물로, 네 선민종족중 하나. 네신중 '물'을 상징하는 '발자국없는 여신'이란 신을 섬기며, 말을 할 수 도 있지만, 대부분 '니름'[* 마음속으로 말하는것. 프로토스의 소통방식을 생각해보면 쉽다.]으로 서로 소통하며,[* 물론 나가가 아닌 다른 종족과는 평범하게 말로 소통한다.] 이때문에 청력이 그리 좋지는 못한 편이다.[* 이때문에 음악을 즐기지 못한다.] 특이하게도 열을 볼 수 있지만 그때문에 그림을 즐기지 못한다. 그외에 냉혈동물이라 그런지 허물을 벗기기도 하고, 일정 수준이상의 온도가 제공되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한계선'이라고 하는데, 가장 짧은 간격이 200km라는듯(...)] '소드락'이란 약물을 투여하는것으로 일정시간동안 엄청난 속력과 민첩성을 보여줄 수 있다.
철저한 모계사회이며, 남자 나가는 성인이 되기전엔 그의 가문에 머물며 성장하며, 성인이 되고 난뒤에는 가문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도시를 방문해 가임기의 여성 나가들이 있는 가문에 씨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외에 미성년 남자 나가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경호역할로 외출한 남자 나가가 다른 가문으로 내빼는경우도 서술하고 있다(...)] 일부 남성 나가들은 '수호자'라 불리며 여신의 '신랑'이 되는데, 원시종교에서 여사제들이 순결을 지키는것과 비슷하게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심장을 적출하는 역할을 한다. 사제로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기에 어지간한 여자 나가들도 이들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모계 사회라 그런건지, 남성 나가는 상당히 여성적인걸로 묘사되는데, 작중에서 남성 나가가 자신의 허물을 벗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것에 수치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행위에서 있어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냉혈동물이란 한계로 인해 자신들이 한계선 이북으로 활동할 수 없는것에 상당히 거부감을 보이며, 이때문에 작중 시도떄도 없이 북쪽으로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야욕으로 인해 멸종된 생물이 흑사자. 작중에서 털을 보온용으로 쓰기 위해 멸종에 이르기까지 사냥했다고...] 결국 작중 시간대에서 상당히 지난 시점에서 [[전령자]]를 이용해서 반쯤은 성공한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10회 일치
* 종료 후, 미도리야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나 토도로키와 요아라시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은데.
* 거기서 미도리야가 날아온다. 갱 오르카를 두 사람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공격한다. 미도리야에 대해선 갱 오르카도 알고 있었던 모양. 토도로키도 기가막힌 타이밍에 나타나자 어디까지 예측한 거냐고 놀란다. 상황은 미도리야 대 갱 오르카로 전개될 듯 한 시점, 이때 시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같은 시각 바쿠고 카즈키 일행이 마지막 HUC를 구하면서 임시면허 시험의 전과정이 종료된다. 이후 정산작업을 거쳐 이 자리에서 바로 합격자 발표에 들어간다. 수험생들은 대기실로 돌아가고 부상자를 챙긴다.
* 시험 종료 후, 갱 오르카의 부하들은 예상보다 저항이 심했던 건지 자기들이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갱 오르카에게 굽실거린다. 사실 이들은 구속용 프로턱터가 착용돼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상황. 하지만 갱 오르카는 그걸 감안해도 최후의 열풍감옥이나 거기서 이어진 미도리야의 기습은 좋은 작전이었고 만약 시험이 계속됐더라면 자기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대기실에서는 학생들이 긴장된 공기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명단이 발표되자 학생들은 자기 이름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 미도리야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0회 일치
1959년 개봉된 영화임에도 흑백 영화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여장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함이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의 시카고, 갱단이 운영하던 비밀 술집에서 연주자로 일하던 조와 제리는 경찰이 습격한 술집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다. 체포는 면했지만 실업자가 된 이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갱단 보스 스패츠가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을 밀고한 다른 갱단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조와 제리 또한 스패츠 일당에게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술집에서 일하던 연주자. 경찰의 습격으로 직장을 잃고 도망친 후, 스패츠가 일으킨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이후 스패츠를 피해 여장을 하고 여성 공연단에 들어간다.
술집에서 일하던 연주자. 경찰의 습격으로 직장을 잃고 도망친 후, 스패츠가 일으킨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이후 스패츠를 피해 여장을 하고 여성 공연단에 들어간다.
재벌. 다프네와 사랑에 빠지지만 다프네가 여장남자라는건 모른다.
갱단 보스. 영화 극초반에 경찰의 습격으로 운영하던 술집 하나를 폐쇄당했다. 이후 밀고자의 갱단을 살해, 그 장면을 목격한 조와 제리가 도망치는 계기가 되었다.
- 리그컵(K리그) . . . . 10회 일치
흥행은 엄청난 대참패라서 2016년에 리뉴얼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혁에서도 이 대회는 전혀 이야기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도 '''"1992년, 정규리그 이외 최초로 별도 컵대회인 아디다스 “컵” 신설"'''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당시 대회는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대회였다.] 연맹에서 K리그의 역사를 논할 때 프로-세미프로로 합동 운영했던 수퍼리그를 K리그의 일부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http://www.kleague.com/kr/sub.asp?avan=1001124800|리뉴얼 이전 자료]에는 남아있다.]
다만, 여기에는 제법 잡음이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엉뚱하게도 [[아디다스]]가 해외상표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해외업체의 이름을 단 대회를 한국에서 치뤄야 하느냐?"라는 [[신토불이]]적 마인드가 표출화 된 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040020921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6-04&officeId=00020&pageNo=17&printNo=21844&publishType=00020|당시 기사]를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기사만 보면 재정자립을 위해 해외업체와의 협력도 꼭 필요하다는 협회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는 있으나 완산 푸마의 7구단 합류 과정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46721|외국 스폰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참가를 못하게 된 사례를 보면 한국축구계가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굴러가는지 수긍된다.]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상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상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상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상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상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백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K리그가 스폰을 받기 시작한 94시즌에는 1년동안 정규리그를 마치고 우승팀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 이때는 우승상금만 보면 아디다스컵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리그컵간에는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하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직후인 95년도에는 최대 획득가능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981096|우승상금이 1억 5천만원으로 책정]되며 리그컵과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1억5천만원을 셋으로 나눠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우승팀(통합챔피언 우승)에게 주었다. 한 팀이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둘 다 차지하면 1억5천을 그 팀 혼자서 갖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다른 팀이라면 5천만원은 준우승자에게 주는 상금이 되는 셈.] 전기나 후기 중 하나만 우승해도 리그컵보다 더 큰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그컵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과 함께 FA컵의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어서게 됨은 물론이고, 이 두 대회의 흥행과 함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리그컵을 구태여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초에 리그컵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한국프로축구의 발족과 함께 늘 대두되었던 부족한 경기수를 채우고 흥행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리그컵이 탄생하고 10여년이 지나니 팀 수가 3배가량 늘어나 경기 수가 부족하지도 않고, 상금은 그다지 오르지도 않아 팀이 리그컵에 참가할 때마다 주전선수를 대폭 기용하지도 않아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오히려 비주전 선수들은 R리그에서 뛰면 되기 때문에 리그컵이 초창기에 갖고 있던 이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리그컵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외면받고 있었던 것도 사라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2011시즌에 발생한 승부조작이 대부분 정규리그보다는 리그컵에서 주로 발생했다는 것도 대회가 사라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K리그 승부조작]]에서 다룬다.
K리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어쨌거나 현재로써는 공식 기록을 찾기가 가장 어려운 대회가 되었다. 리뉴얼 이전 한국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에서도 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찾는건 상당히 어렵다. 비교적 협회보다 자료정리가 더 잘 되어 있고, 일반에 공개하는 자료양이 훨씬 많은 연맹임에도 그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협회쪽은 FA컵의 위상이 상당함에도 경기 관중 수나 카드 이력등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협회가 비판받는 대표적인 부분.]
- 모레아 전제국 . . . . 10회 일치
현재의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국이다. 이 지역은 본래 전통적으로 비잔티움의 유럽 방면 영토였으나, 통치력이 잘 미치지 않아 독립성향이 강했고 [[제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이 지역에 세워진 '아카이아 공국'의 영향으로 비잔티움의 봉신국이 되었다.
전제공(δεσπότης,despótēs,데스포테스,데스포티스)이란 비잔티움 제국의 작위로서, 본래 이 말은 '전제 군주'라는 의미였으며, [[로마 제국]] 시기에 라틴어 '도미누스(주인, 군주)'의 번역어로서 그리스어에서 쓰이게 되었고, 그리스어권에서 [[로마 황제]]의 별칭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이를 군주와 혈연이 있는 고위 귀족, 황족에게 주는 '작위'로서 사용했으며, 제4차 십자군 이후 망명정권의 하나였던 에페이로스의 군주가 황제를 칭하기 이전에 전단계로서 '데스포테스'를 사용하면서 독립 국가 군주의 칭호로 등장하게 되었다. 에페이로스의 '데스포테스'는 니케아 제국에 패배하였으나 니케아 제국은 에페이로스를 봉신으로 삼고 '데스포테스'의 칭호를 쓰는 것을 인정하여, 데스포테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 작위로 여겨지는 관례가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전제공','전제후'로 번역된다.[* 다만 이는 확고하게 널리 쓰이는 번역어는 아니다.]
[[제4차 십자군]] 시기 이 지역에서는 '아카이아 공국'이 세워졌다. 아카이아 공국은 [[니케아 제국]]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붙잡힌 기욤 2세는 콘스탄티노플 탈환 이후 영토를 할양하고 풀려났다. 비잔티움 제국은 펠로포네소스 영토에 케파리(군정관)을 두고 이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방면의 전권을 위임했다. 케파리는 연단위 임명이었지만 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종신 임기가 되었고 팔레올로고스 황족이 부임하게 되었다. 영토가 확장되면서 지역을 다스리는 멜리키 케파리와 전역을 다스리는 카소리키 케파리로 분화된다.
비잔티움 제국의 학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위협을 받고, 종교 세력이 강한 폐쇄적인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모레아로 이주하기도 했는데,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Georgios Gemistos Plethon)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여 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재생과 제국의 복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한 저작을 발표하고 국정 개혁을 주장하였으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국정에 채택되지는 않았고, 너무 급진적이고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는 그의 저작물을 [[분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이 활동할 정도로 제국에서 모레아는 자유로운 기풍을 가진 지역이었다.
이러한 모레아의 국력을 바탕으로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헝가리]] 중심의 [[십자군]]에 호응하여 출병, 오스만에 복속되어 있던 아테네 공국을 복속시켜 아티카를 지배 하에 넣고, 테살리아 남부까지 세력을 확대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십자군이 패퇴하자 다시 반도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1446년 11월에는 오스만의 강렬한 반격을 받게 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모레아는 유일한 비잔티움 제국의 잔존 영토로 남게 된다. 그러나 두 전제공의 대립, 영토 내 토착민과 알바니아 인 등의 대립, [[베제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간섭으로 위태롭게 된다. 1453년 가을에는 알바니아 인이 반란을 일으키고, 1458년에는 오스만 군이 침공을 벌였다. 심지어 토마스가 부하 유력자들에게 떠밀려서 드미트리를 공격하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두 전제공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참사가 발생한다.
- 박정수(배우) . . . . 10회 일치
|| '''학력''' ||<(> [[덕성여자대학교]] [[경영학과|경영학]] 학사 ||
* [[폭풍의 여자]] - 이명애
* [[마마(드라마)|마마]] - 강명자
* [[내 손을 잡아(드라마)|내 손을 잡아]] - 나금자
* [[세자매]] - 박영옥
* [[파일럿(드라마)|파일럿]] - 윤미자
* 주로 부잣집 [[사모님]]을 많이 연기한다. 부잣집 사모님들 중에서도 첩이거나 철없는 푼수끼가 있는 사모님을 주로 하는 편.[* 예외가 있다. [[좋은 사람(2016)|좋은 사람]]] 최근에는 시청자의 발암을 유발하는 답답한 시어머니 역을 많이 맡는다.
* 촬영 도중 NG가 날 때 애드립으로 자연스럽게 NG를 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대사를 잃어버렸을 때 연기톤으로 대사를 까먹었다고 그대로 이어나간다. 이는 과거 작품부터 지금까지 자주 보이는 장면이다.
* [[배우]] [[정경호(1983)|정경호]]의 [[부친]] 정을영 [[PD(방송)|PD]]와 동거 중이다. 정경호와도 모자지간처럼 지내는지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정경호를 '아들'이라고 칭했다. [[라이프 온 마스(OCN)|라이프 온 마스]] 마지막회에 카메오로 출연한 것도 정경호의 부탁이었다고.
- 백남순 (1929년) . . . . 10회 일치
|배우자=
|자녀= 백낙천(1957~) 인민군 소장, 백기천 인민군 소장, [[백룡천]](1962~) 전.조선중앙은행 총재 겸 당 정치국 후보위원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남순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2006년]]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상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상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 [[김영남]]
|후임자= [[강석주]]<br /> (직무대리)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청도 백씨]][[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장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사회주의자]][[분류:공산주의자]][[분류:수원시 출신]][[분류:김일성종합대학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폴란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분류:월북자]][[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브이원 . . . . 10회 일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2006년]] 군 입대를 선언했다.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재입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강현수는 서울 광화문의 병역특례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경영난에 부딪힌 회사가 그를 퇴사조치 했다. 다른 병역특례업체를 찾아보던 중, 때마침 연예인 병역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강현수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회사가 어려워 임금을 받지 못했던 것인데, 상황이 꼬이다보니 ‘무임금을 조건으로 취업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고 재 입대까지 통보 받게 됐다는 강현수의 주장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70147792&cp=nv|제목=‘하고 싶다’ 강현수 “남상미와 연기 하고파”|성=|이름=최은화 기자|날짜=2010-04-01|출판사=쿠키뉴스 국민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 [[2001년]] KBS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 참고 자료 ==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30화 . . . . 10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자해를 감수하며 감행한 작전으로 [[랜길스 보드]]의 공간마법이 반사된다. 반사된 마법은 위력이 배가되어 시전자인 랜길스를 향해 날아가고. 궁지에 몰린 랜길스는 마법제 율리우스 조차 예상치 못한 저력을 발휘한다. 튕겨나온 마법을 모조리 공간마법으로 요격해 버린 것. 마력을 지금까지보다 두 배 이상 순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말이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저력에 경악하는 한편 그의 마력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데.
* 잭스는 비장의 함정을 사용하고 그대로 탈진한다. 랜길스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자신은 특별한 존재며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미친듯이 웃는다. 그는 다시 공간마법을 날리며 "너희 따위가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다"고 외친다.
* 랜길스는 아스타의 블랙 모드를 경계하며 그게 뭐냐고 묻는다. 아스타는 딱히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다만 "랜길스가 바보취급하는 하층민이 발버둥쳐서 된 모습"일 뿐이라 답하는데. 랜길스에겐 그런 것 조차 거슬린다. 아스타에게서 [[핀랄 룰러케이트]]를 겹쳐보며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자신처럼 선택받은 자들과 같은 무대에 서려한다고 독설한다. 아스타는 그런 선택받은 자들의 대단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특별한 자들을 동경해왔다고. 그것은 잭스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나 아스타는 특별한 자들의 호감을 사고 싶은게 아니었다. 평범할지라도 특별한 자들과 함께 사람들을 지키고 함께 강해지고, 싸우기 위해서였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10회 일치
* 대사제는 "방심한 탓이다"라며 이를 갈고 야미 스케히로는 껄껄 웃으며 내기나 하자고 제안한다.
* 아스타를 상대하던 문어 가면은 자신은 연체마법을 사용해서 모든 타격을 흘려보낼 텐데 어째서 당한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 매그너, 고슈, 락은 각자 전의가 충천해서 다음 상대를 찾아 떠난다.
* 챠미는 여기서도 자신의 마법으로 음식 만들어 먹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 그런데 돌고래 가면은 노래마법 "어머니의 자장가"를 사용, 챠미를 한 순간에 재워버린다.
* 대사제는 자는 것도 기절한 걸로 친다고 해서 스코어는 8:5
* 아스타가 그 춤을 칭찬하는데 자신을 키아토라 밝히며 "장차 왕국을 매료시키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힌다.--참 뜬금없다--
* 사실 대사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데, 승부에서 이기면 지상에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 자신으 꿈을 위해 쓰러져 줘야겠다는 키아토.
|| 자신의 꿈을 걸고, 정면승부로 가볼까! ||
- 블랙 클로버/90화 . . . . 10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90 '''배반자와 속죄'''
* 젤은 지금의 마르스라면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거라 판단, 멀리 떨쳐내고 라드로스를 끝내려 한다.
* 라드로스는 원래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소년이었으나 지금은 개조시술로 타인의 마력을 흡수 방출하는 전투병기가 되어버렸다.
* [[도미넌트 코드]]는 라드로스에게 잡히고도 저항을 계속하자 라드로스 젤의 눈 앞에서 처분하려 한다.
그때 후방에서 마르스가 접근한다. 젤은 당시에도 가장 뛰어났던 마르스를 지금의 자신은 막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젤은 맞서는 대신 바람창성마법 "높새바람"으로 멀찍히 밀어내 버린다.
* 마르스를 떨쳐낸 젤은 모든 힘을 쏟아부운 바람창성마법 "참풍황 질풍"으로 라드로스를 집중 공격한다. 라드로스는 본래 마력속성이 없는 특이한 타입으로 본인은 그 점 때문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마력 자체는 대단히 강해서 공격력이 뛰어난 원거리 마법을 익혔다면 가장 성가신 상대라고 생각한다. 젤은 용서를 구하며 라드로스를 끝장냈다고 여기는 찰나, 라드로스가 괴롭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 그의 마법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라드로스에게 퍼붓던 마법은 수챗구멍으로 물이 빨려들어가듯 흡수돼 버렸다. 라드로스는 젤이 사라진 이후 군에서 특수한 개조를 받았다. 그건 "흡수와 방출". 자신이 받는 공격 마법을 흡수해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라드로스는 자기 마법과 경주해 보라고 빈정거리며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한다.
젤은 가까스로 도미나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치명상을 입었다. 그의 바람마법이 지켜줬지만 도미나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라드로스가 젤을 발견하고 내려와 그를 걷어차며 "소중한 사람이 정말 있었는데 당신은 여기 자빠져서 뭘하는 거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젤을 괴롭히기 위해 그의 소중한 사람, 도미나를 잡아 올린다. 라드로스는 도미나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같이 도망쳤던 애인" 이라고 알아본다.
* 그때 거대한 검이 나타나 라드로스의 마법을 막아낸다.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는 도미나를 안전하게 받아서 젤 쪽으로 착지한다.
- 산킨고타이 . . . . 10회 일치
[[에도 시대]]에 시행된 제도. 다이묘들이 에도에 처자를 두고 본래 부임 영지와 에도를 왕복하도록 한 제도이다. 지방의 다이묘들로 하여금 가족들은 에도에 머물게 하는 한편 다이묘 본인도 1년은 에도에, 1년은 본래 번에 있도록 정하고, 반복해서 오가도록 한 제도이다. 각 다이묘들은 에도에 출장소를 만들게 된다.
이는 중세 봉건제도의 관습에 근거하여, 하급자인 사무라이가 상급자인 대귀족[* 후대에는 실권을 사무라이가 쥐게 되었지만, 당초 사무라이는 대귀족을 따르는 호위무사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이나,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막부의 쇼군에게 '참배'하여 그들을 호위함으로서 '병역'을 봉공으로 바치고, 그 댓가로서 영지를 보유할 권리(은상)을 얻는다는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자, 다이묘들은 에도에 처자를 두고 영지와 에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관행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무질서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반포한 간에이령(寛永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의 제2조에 지정되어 공식적인 제도가 되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까닭은 이전까지는 참근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다이묘들이 불편[* 일일이 참근할 것인지, 영지에 돌아갈 것인지를 막부에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하였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법령이 정해짐으로서 다이묘들이 막부에 '인사'를 오는 것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막부와 다이묘의 상하관계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인질 정책 때문에 오히려 다이묘의 가족(본처와 적자)들은 지방 영지에 내려가지는 것이 금기시 됐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지방에 [[첩]]과 [[서자]]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막부 말기에는 이 금제가 해제되었는데, 그 때문에 인질 걱정없이 반란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본래 영지가 지방에 있는 다이묘가 '상경'하는 현대의 관점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본래 수도 출신이었던 다이묘가 지방으로 '하향'하는 이미지에 가깝게 된다. 다이묘들은 대부분 에도에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에도에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적자가 대를 이을 수 없는 경우가 되서 지방에 있던 서자가 대를 이어받게 된 경우라면 '상경'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다이묘들은 서로 체면치례를 하려고 경쟁적으로 행렬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는 규제를 정해서 다이묘들의 [[석고]]에 맞춰서 일정한 수의 인력만을 동원하도록 했다. 당초에는 각 번의 번사(번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행렬에 참가했으나, 후기에 가면 경제적 문제로 다이묘 행렬에만 전문으로 참가하는 일용직을 동원하게 됐다. 이러한 일용직들은 겉치레는 사무라이였지만, 실상 단순한 아르바이트 코스플레이어(…)에 가까웠다. 일설에는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단 10인으로 성공했던 것도 이러한 저질 일용직 행렬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다들 도주했기 때문이라고.
- 서수민 . . . . 10회 일치
||<tablebordercolor=#191970><rowbgcolor=#191970><tablealign=center><-5> ''' 1대 100 '''{{{#FFD700 역대 1인 우승자}}}''' ||
유명 사진작가 조선희와는 같은 [[경상북도]] 출신[* 조선희는 [[칠곡군]] 출신이다.]에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동기라고 하며 연대 입학 후 만난 두 사람은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면서 룸메이트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획을 맡은 KBS2 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포스터를 촬영했다고 한다.
[[1대 100]] 264회 개그 콘서트 특집에서 1인으로 참가했으며 자세한 건 [[1대 100/1인 우승자 #S-4.3|여기 참조.]]
많은 사람들에게는 [[개그 콘서트]]의 PD를 맡았던 당시 과도한 정치 개그, 여성 편향 개그[* 이를테면 여성 편향의 로맨스물과 꽃미남 게스트 출연 등. [[용감한 녀석들]]도 여성 편향적인 노래가 많으며([[용감한 녀석들/노래 가사]] 문서 참조.), [[애정남]]에서도 무조건 여자한테 유리하게 이끌어졌다. 헌데 정작 여성 측도 '재미없다'는 평이 다수.] 및 [[노잼]]화의 최대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어느샌가 게스트를 섭외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일명 '[[게스트]] 콘서트' 혹은 '[[로맨스]] 콘서트' 등으로 변질된 책임을 묻는다.
물론 단발적으로 호응이 좋은 코너를 가지고 성공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호응을 얻기 힘든 것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시청자들이 질리게 만들었으니 매니악한 팬들만 질리게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PD로서의 역량은 높지만 개그를 보는 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그는 본디 "개그맨이 짜고 개그맨이 연기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그를 선별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개그 프로그램 감독으로서의 [[무능력한 상사|역량은 무능하다 보는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미디어 노출이 너무 잦다는 점. 용감한 녀석들에서 매주 박성광이 그녀를 디스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게 딱히 재미있는 드립들도 아니었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 대개 개콘 연출자의 이름은 연말 시상식에서 개그맨들이 수상소감으로 OOO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정도로 듣게 되는데 매주 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나온 비판. 무한도전의 김태호, 1박 2일부터 지금까지의 나영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얼굴이나 목소리가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수민은 그 과정조차 부자연스러웠다.
*[[전국노래자랑]] (CP)
- 서윤아(배우) . . . . 10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2001||KBS2||[[KBS 드라마시티]] - 밀짚모자||||
|2009||MBC드라마넷||[[하자전담반 제로]]||소주리||
|2014||KBS2||[[일편단심 민들레]]||강청자||
|2016||tvN||[[싸우자 귀신아 (드라마)|싸우자 귀신아]]||노현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6년 태어남]][[분류:2001년 데뷔]][[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태백시 출신 인물]]
- 세이와 겐지 . . . . 10회 일치
츠네모토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과 관련이 있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츠네모토의 아들이 미나모토노 미츠나가(源満仲), 미츠나가의 아들이 미나모토노 요리미츠(源頼光)이다. 미나모토노 요리미츠는 '라이코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오오에 산의 오니 [[슈텐동자]]를 퇴치하는 등. 다양한 요괴 퇴치담으로 유명하다.
미나모토노 요시이에의 자손에서 이후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와의 연결이 나타난다.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아들 혹은 손자에 해당(설이 있음) 자가 타메요시(為義)이며, 타메요시의 후손이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이다.
요시이에의 아들 요시쿠니(義国)의 차남 미나모토노 요시야스(源義康)/아시카가 요시야스(足利 義康)는 아시카가 씨의 시조로서 요시이에의 손자이며, 그 후손이 무로마치 막부의 개창자인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이다.
요시쿠니의 장남 요시시게(義重)/닛타 요시시게(新田 義重)는 닛타 씨의 시조이다.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닛타 씨의 분가의 후예를 자칭하였다.
- 송금식 . . . . 10회 일치
| 직업 = [[영화배우]], [[배우|연기자]], [[무술|무예가]]
'''송금식'''(宋金植, [[1960년]] [[1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겸 [[연기자]]이다.
* 1994년 《[[자정 이후]]》 ... 최 반장 역
* 1994년 《[[거꾸로 가는 여자]]》 ... 덕팔 역
* 1992년 《[[자전거를 타고 온 연인]]》
* 2003년 SBS 《[[왕의 여자]]》 ... [[이일]](1538년 ~ 1601년) 역
* 2000년 SBS 《[[줄리엣의 남자]]》 ... 마석철 사장 역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안산시 출신]][[분류:198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
- 송원근(배우) . . . . 10회 일치
[[아이돌]] [[가수]]→[[뮤지컬]] 배우→드라마 연기자라는 상당히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배우.
2000년 그룹 오피피에이([[OPPA]])로 데뷔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무대에서 추락사고를 당하자 팀에서 나왔다. 당시의 이름은 '한글'이었다. --예명만 세 개다.--
그러다 2009년 2월 26일 느닷없이 '사고치고 싶어'라는 댄스곡으로 컴백했다. 곡 자체가 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직설적인 가사'''와 독특한 안무--이리 휙, 저리휙, 굽신굽신--, 예명 때문에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이불신'''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참고로 뮤직비디오에는 [[애프터스쿨]]의 [[가희(가수)|가희]]와 [[이주연|주연]]이 출연했다.
이후에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에 [[나타사]]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하필이면 역할 설정이 '''[[게이]]도 아니고 [[트랜스젠더]]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가 맡은 나타샤 역할이 의외로 시청자들에게 잘 먹혔고, 멀쩡한 모습(...)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며 의외로 잘생겼다(!)[* 오로라 공주 극중 설정에서는 '''긴 머리(사실은 가발)를 뒤로 묶고 나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나름 인상적인 캐릭터였으나, 결국 8월초 이 드라마의 특징인 쳐내기의 희생양이 되었다...인줄 알았지만 '''3주 뒤 다시 출연하였다!''' --오오 부활-- 그러나 대사도 없이 단 두번 모습만 보인 뒤 다시 안 나오나 싶더니... 결국 133회부터 본격적으로 재출연했다. --108배를 했더니 [[게이]]가 [[이성애자]]로 [[무안단물|변했어요!]]--
이후 MBC 예능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7차 경연에서 [[오필승 코리아]]라는 닉네임으로 참가해서 2라운드까지 갔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9표 차로 가면을 벗었으며 일반인 기준으로는 2표 앞섰다.] 과거의 가수 활동에 많은 상처를 받아 다시 무대에 서기가 두려웠는데, 복면덕분에 무대에서 노래부르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공교롭게도 메인 악역을 맡은 [[최필립]] 역시 [[한 꼬마 인디언 보이]]라는 이름으로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결국 [[나홍주|남주인공]]과 [[차선우(내일도 승리)|최종보스]]만 복면가왕에 출연했구만--
* [[2017년]] [[힘쎈여자 도봉순]] - 연극배우 송원근 역(특별출연)
* 2018년 [[용의자 X의 헌신]] - 유카와 역
* [[쓰릴 미]]에서는 그(리차드)가 나(네이슨)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장면이 있다. 2013년 [[쓰릴 미]] 에서 배우 [[정상윤]]과 본페어였는데, 연습을 하기 전 정상윤 배우에게 "형, 연습이지만 막 해봐도 돼요?" 라고 물었고 정상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연습할 때 그는 정상윤의 멱살을 잡아올렸는데 정상윤이 아프다고 했고 ~~그 날 아프다는 소리를 40번을 들었다고.~~ 그는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공연을 하던 [[전성우(배우)|전성우]] 배우가 전에 이렇게 아파한 배우가 있었는데, 병원에 갔더니 연골뼈가 끊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말해주었고 엑스레이로는 안나오고 초음파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정상윤 배우가 병원에 갔고 검사를 해보니 골절이 되었다고(..). 그 길로 백화점에 달려가 칼슘제를 사 먹였는데, 정상윤 배우가 약을 잘 챙겨먹는 편이 아니라서 서운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멱살 잡는 동작을 조심해서 했는데, "자세히 보시면 아직도 제가 잡으려고 할 때 상윤이 형이 살짝 피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분류:한국 남배우]][[분류:한국 남가수]][[분류:1982년 출생]][[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2000년 데뷔]][[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10회 일치
행크(마샨 맨헌터)는 카라와 함께 비행을 하며, 카라에게 비행술을 가르쳐준다. 행크와 카라, 알렉스는 맥스웰 로드를 조사하려 한다. 캣 그랜트는 루시 레인을 법무 자문위원으로 고용하려 하며, 제임스는 매우 기뻐하지만 루시와 제임스의 관계는 틀어진다.
토이맨이 탈옥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그 때문에 토이맨의 아들인 윈에게 수사관들이 찾아온다. 윈은 아버지에 대해서 매우 격하게 화를 낸다. 카라가 물어보자, 윈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디자인을 훔친 상사에게 복수를 하려다가 비서와 5명을 살해했다는 과거를 말해준다. 윈은 토이맨을 체포하는 작전에 협력하기로 한다.
토이맨과 약속장소로 잡은 오락실에서 토이맨을 만난 윈은 자수를 권유한다. 하지만 토이맨은 윈에게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FBI요원들이 들이닥쳐서 토이맨을 쏘지만 그것은 가짜였고, 가스가 뿜어져 나와서 모두 죽이려 한다. 카라가 난입하여 가스를 빨아들여 제거한다.
카라는 윈이 알아낸 정보 대로 토이맨의 은신처로 향한다. 하지만 함정에 빠져서 놓치고 만다. 윈은 자신도 토이맨처럼 악당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카라는 윈을 위로하고, 윈은 순간적으로 카라에게 키스를 하고 만다. 그런데 방에서 나오자 마자 토이맨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윈은 결국 총을 쏘기 직전에 다른 곳을 쏴버리고, FBI에서는 윈을 공격하는데 카라가 나타나 윈을 지켜낸다. 윈이 폭탄이 설치되었다고 소리치자, 카라는 스프링쿨러를 터트린 다음 프리징브레스로 얼음 장벽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지켜낸다. 그리고 토이맨을 붙잡는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2화 . . . . 10회 일치
한편, 화학공장에서 외계인 범죄자가 나타나서 경비원을 살해하는데….
슈퍼걸은 DEO와 함께 조사에 임한다. 카라는 범죄자의 흔적을 보고 헬그램마이트라는 것을 알아낸다.
다음날 카라는 그랜트가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은 것을 보게 된다. 울컥거린 카라는 그랜트에게 슈퍼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는데, 그랜트는 슈퍼걸은 급하게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보다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 말이 마음에 와닿게 된 카라는 윈과 제임스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한다.
카라는 제임스와 대화를 나누고,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때, 행크는 카라에게 알렉스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자신을 빼고 작전을 벌인 것에 분개한 카라는 알렉스를 찾아서 나선다.
알렉스는 아스트라와 대화를 한다. 카라는 그 목소리를 듣고 알렉스를 찾아갔다가 아스트라와 마주치게 된다. 카라는 아스트라가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워한다. 아스트라는 알루라가 자신을 팬텀존으로 추방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인간과의 동맹을 버리고 자신과 협력하라고 강요하지만 카라는 거부하고 대결을 선택한다.
그 때 행크가 아스트라의 등뒤에서 나타나 총을 겨눈다. 아스트라는 행크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려 인간의 무기로는 자신을 상처입힐 수 없다고 자만하는데, 행크는 크립토나이트 단검을 아스트라에게 찔러 부상을 입히고 아스트라는 당황하여 도주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고맙다고 감사를 표한다. 행크는 자신이 슈퍼맨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었다고 겸연적어한다. 그런데 한편, 떠나는 행크의 눈이 수상하게 붉게 빛난다.
아스트라는 크립토니안 나이프에 경악하며, 한동안 침공을 자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0회 일치
카라는 힘의 근원이 되는 지구의 노란 태양 에너지 방사능을 레드 토네이도와의 싸움에서 크게 소진하여, 힘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알렉스는 행크를 불신하고 조사해보려고 한다. 힘을 잃어버린 카라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도 걸려버린다. 그랜트는 세균이 퍼진다고 호들갑을 떨며 카라를 휴직시킨다. 행크는 사이킥을 사용하는 외계인 젬을 심문하는데, 젬은 행크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네가 사랑하는 자들을 죽이겠다는 말도 한다. 행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젠 없다는 말을 내뱉는다.
카라와 제임스는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난다. 제임스는 차에 치일 뻔한 카라를 구해주지만 카라는 땅에 부딪쳐서 팔이 부러지고 만다. 아픔을 느낀 카라는 굉장히 괴로워한다. DEO 기지는 젬이 탈출하여 봉쇄된다. 행크는 정신파 차단기를 가지고 젬을 막으려 하지만, 알렉스는 행크의 조치에 의구심을 느낀다.
지진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맥스웰은 TV인터뷰에서 슈퍼걸이나 정부를 믿을게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렉스는 젬을 상대하러 나가려 하는데, 행크가 돌아와서 알렉스는 상황실에 있으라고 하고 젬을 상대하러 혼자서 다시 떠난다.
카라는 제임스가 찍은 폭도들을 설득하여 진압하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제임스는 영웅이 되는데 능력만은 필요없다고 한다. 윈은 DEO의 슈퍼맨에 대한 파일을 가져와서, 능력이 되돌아올 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카라와 제임스와의 연애 문제에 대해서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 때 가스 폭발이 일어나고 윗층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비밀을 추궁한다. 행크는 자신이 행크 헨쇼가 아니며, 진짜 행크는 알렉스의 아버지가 죽을 때 죽었다고 한다.
알렉스의 아버지는 DEO의 임무로 외계인을 추적하게 되었는데, 외계인은 선량한 자였고 알렉스의 아버지는 외계인을 살리려고 희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진짜 행크 핸쇼 역시 죽었다.
외계인은 행크 헨쇼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DEO를 개조하였으며, 동시에 알렉스를 돕기로 했던 것이다. 알렉스의 요청에 행크는 자신의 본 모습, 존 존즈=[[마샨 맨헌터]]를 드러낸다.
카라는 갑자기 나타난 아스트라와 클립토니안들에게 붙잡힌다.
- 스쿼키 청소회사 . . . . 10회 일치
청소회사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청부살인업자 조직. 처리 대상이 있는 곳을 습격해 그곳에 있는 모두를 쏴죽인다. 이후 피, 체모, 탄피, 시체 등을 제거하는 증거인멸 작업을 벌인다.
의외로 얼빠진 모습이 자주 보인다. 습격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논다던가, 모델 런웨이 워킹을 흉내내며 논다던가, 같은 편이 설치하고 있는 함정을 작동시킨다던가.
맥스가 처음으로 이들을 목격한 것은 [[블라디미르 렘]]의 창고에서 들린 총성을 조사하러 갔을 때였다. 이때는 일반적인 청소회사 직원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맥스가 허점을 등을 보이자마자 공격을 시작했다. 블라드의 애인인 총기 제조업자 애니 핀을 살해한 이들은 경찰이 오자 도망쳤다. 맥스가 해당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블라드를 찾아갔을 때, 블라드는 이들이 펀치넬로 패밀리의 마피아인 [[비니 고그니티]]의 부하들일거라고 주장했다.
[[모나 색스]]가 맥스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오자 둘을 죽이기 위해 아파트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맥스에게서 해당 사건을 보고받은 [[짐 브라부라]]는 "다음엔 뭔가? 가방엔 총을 가득 담고 머리는 비디오 게임으로 가득 찬 아이가 집을 사격장으로 바꿔놓는건가? 가슴이 아프군,"[* What next? A Kid with a bag full of guns and a head full of videogames turns the house into a shooting gallery, breaks my heart.]라는 반응을 보였다.
맥스와 모나가 이너서클의 일원인 코크런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맥스와 모나가 보다 빨리 도착해 코크런을 포함한 아파트 거주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들은 맥스와 모나도 죽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격퇴당하고 간부급 인물이던 카우프만 역시 죽게된다.
경찰에 체포된 모나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자 모나를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한다. 폭약으로 유치장 벽을 무너뜨리고 유치장을 지키던 경찰관들을 죽이는 것은 성공적이었나, 침대 밑에 숨은 모나를 발견하지 못해 죽이는데는 실패한다.
맥스가 발레리 윈터슨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자 병원을 습격한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의 맥스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데까지 성공했지만, 맥스가 병원 경비가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탈출해버려 실패한다.
- 식극의 소마/172화 . . . . 10회 일치
* 센트럴측은 아자미가 직접 나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을 세뇌시킨다.--[[암살교실]]에서 써먹은 전개 같은데--
* 홋카이도에 도착한 기숙사생들은 홋카이도의 자연경관과 잔뜩 쌓인 눈에 흥분한다.
* 한편 센트럴에서는 아자미는 손수 특강까지 열면서 센트럴측 학생을 단련시킨다.
* 에리나는 감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홋카이도에서 재배하는 50여 종의 감자 종류를 몽땅 머리에 우겨넣으라고 스파르타식 학습을 진행한다.
* 감자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에서 생산하는 온갖 식재에 대한 자료를 주입식으로 박아넣는다.--노답 주입식교육--
* 그리고 "이 아이들이라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 소마에게 "함께 2학년이 되자"고 말하고 소마는 당연하다고 답한다.
* 1학년들은 버스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들 옆에는 탈락자들이 타고 갈 또 한 대의 버스가 따라오고 있다.
- 식극의 소마/176화 . . . . 10회 일치
* 시험관 엔도의 농간으로 반역자 일행은 제대로된 재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눈보라에 가로막혀 재료를 구할 갈 수도 없어진다.
* 이번 시험도 조별로 치뤄지는데 학교측은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조부터 순차적으로 출발시킨다.
*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순번이 밀리는 반역자 그룹.
* 엔도는 이번에야 말로 반역자들이 전멸할 거라고 장담한다.
* 소마는 뜬금없이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하는데, 타쿠미는 "걸어갈 생각이지?"라며 질색한다.
* 그는 자기 방에서 득의양양해 있는데, 갑작스런 보고가 들어온다.
* 반역자들이 뭔가 하고 있다는데?
*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어서 엔도가 당황하자, 소마는 "이런 장난같은 괴롭힘보다 100배는 빡센 훈련을 받아왔다"며 여유롭다.
* 소마팀 뿐만 아니라 반역자들은 전혀 아랑곳 않고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 너무 부정시험을 대놓고 저질러서 그냥 퇴학을 종용하는게 법적 하자가 적어 보인다.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10회 일치
2015 [[K리그 클래식]]에서 나온 의도치 않았던 [[방송사고]]이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사자후]].
말이 필요 없다. 그 분노의 일갈을 한번 들어보자.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처음 판정은 공이 터치라인 아웃 상황이었을 때, 주심은 성남의 스로인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부심의 판정을 보고 광주의 스로인으로 번복한 것. 문제는 번복해서 잘못을 바로잡았으면 모를까 번복한게 오심이 되었고, 한 성남팬[* 음성이 켜져있는 중계카메라는 중앙쪽 중계본부석과 1층 및 2층 서포터석에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남 쪽으로 예상된다.]의 비난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1. 심판의 판정에 있어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 판정 번복 자체가 이 일관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득을 본 팀에게는 찝찝함을 주고, 손해를 본 팀에게는 억울함을 주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평할 수 있다.
이 발언 이후 9월에 지난 2013시즌에 경남FC에서 심판을 매수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발언이 '''근거없는 비난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2013 K리그 심판매수]] 항목으로.--축구장에 나타난 [[예언자]]--
* 프로 스포츠 관계자는 [[스포츠 토토]]가 금지되어 있다.
* 아마 이 영상에서 음성 리소스를 추출하면 어떤 경기든지 합성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영상 편집에 일가견이 있다면 시도해보자.
- 알프레드 우든 . . . . 10회 일치
비밀조직 "이너 서클"의 일원인 애꾸눈 영감.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상원의원 자리를 맡고있다. 직위가 이런 만큼 집도 대따 크다.
첫 언급은 의외로 이르다. 매춘부 캔디 던의 일기에서 언급되는 인물인 "외눈박이 알프레드"[* One-eyed Alfred]가 이 인물. 캔디 던은 자신과 그의 성관계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정체불명의 여성에게 팔아넘기고 있었다.
맥스가 BB를 죽인 직후 근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네 적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지금 당장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와라"라고 전한다.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온 맥스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과 함께 있는 우든을 목격한다. 그는 진범은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인 니콜 혼이라는걸 알려주며 혼을 제거하면 모든 책임을 져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 직후 혼의 부하들이 맥스와 이너 서클 회원들이 있는 방을 습격한다. 맥스는 그때 그가 죽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죽은척을 했을 뿐이었다. 맥스가 CCTV로 본 그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은걸 보고 좋아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어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랬던 것. 이를 본 맥스는 우든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판단, 혼이 우든에게 협박용으로 보냈던 캔디 던과의 섹스 테이프를 보험삼아 슬쩍했다.
이후 니콜 혼을 죽인 맥스가 경찰에 체포되는걸 보고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그걸 본 맥스는 "우리 둘이 해낸 승리였다,"[* That made to of us.]라며 함께 미소를 짓는다.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해 맥스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병원에서 탈출한 맥스가 그를 찾아가 이너 서클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우든은 [[블라디미르 렘]]이 범인이라고 지목한다. 몇년간 우든을 위해 더러운 일을 하던 블라드는 우든이 암으로 죽어가며 권력을 잃게되자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블라드는 우든이 모든 것의 흑막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지방 검사를 겁주기 위해 발할라 계획에 대한 정보를 보냈는데, 그걸 어쩌다가 미셸이 보게 된 것. 그 결과 미셸과 그녀의 딸이 증거인멸을 위해 마약중독자의 손에 죽은 것이었다. [[모나 색스]] 또한 우든의 부하로, 블라드의 편을 든 이너 서클 멤버를 죽이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후 블라드에게 저택을 습격당한다. 블라드는 이미 우든의 경호원을 매수해두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 쳐들어온 블라드를 목졸라 죽이려 하지만, 결국 블라드의 반격에 사망한다.
- 오병희 . . . . 10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오병희'''(吳秉熙, [[1953년]] [[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며,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병원장]]을 역임하였다.
오병희는 심장질환과 고혈압 분야의 권위자다. 심부전·고혈압의 다양한 국제 임상시험 연구에 국가대표 연구자로 참여했다. 특히 2005년 국내 연구진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혈압 신약 다국가 3상 임상시험 총괄연구책임자로 선임됐다. 새로운 고혈압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받을 수 있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국내 임상시험 수준의 국제 신뢰도를 높였다.
1994년 3월 국내 첫 원거리 심장이식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심장이식 프로그램 책임자로 심장이식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고혈압·심부전 관련 200여 편 이상의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논문을 발표했다.
* 2014년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의료발전부문
[[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오승근 (1908년) . . . . 10회 일치
|저자=고지훈
|공저자=고경일
|장=3. 절대권력의 조력자 되기 - 해방기 법조인들, 김용무.이인.오제도.선우종원
}}</ref> 이때 오승근은 일본의 사주를 받고 [[미국]]과 조선 사이를 이간질하여 친일 정권을 세우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간첩 사건을 담당했다가 전임 처리되었으며, 김용무가 간첩 혐의자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판사 부문에 포함되었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도 들어 있다.
==참고자료==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오시만 . . . . 10회 일치
[[1680년]](숙종 6년) 이조좌랑을 거쳐 [[경신대출척]]으로 파면되었다가 [[1689년]] [[승지]]에 오르고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중용되면서 1690년 대사헌에 올랐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유배되었다. [[서인]] 인사 일부와도 인척관계였으나 [[허새의 옥사]]를 전후하여 원수가 되었다. 본관은 [[동복 오씨|동복]]이며,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이다.
1647년(인조 25)에 태어났으며 이조참판 만취 오백령(吳百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증오단(吳端)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 오정일(吳挺一)이다. 어머니는 나주 정씨로 사인(舍人) 정호선(丁好善)의 딸이며, 삼촌인 예조판서 오정위(吳挺緯)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양어머니는 박씨로 박유경(朴由慶)의 딸이다.
그의 집안은 당색으로는 [[남인]]의 당원이었으나, 그의 부인은 [[서인]] [[한준겸]]의 4대손이었고, 그의 숙부이자 양아버지인 [[오정위]]는 자신의 서녀를 [[서인]] 당원인 [[김환]]의 첩으로 출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경신환국]] 이후 [[허새의 옥사]]로 [[서인]]과는 원수가 된다.
이때 [[서인]]에서 그의 양아버지이자 삼촌인 [[오정위]]의 서녀를 첩으로 둔 [[서인]]당원 [[김환]]을 사주하여 오정위 등이 역모를 꾸민다고 무고, [[김석주]], [[김익훈]] 등이 날조한 [[허영의 옥사]]에 연루되어 [[서인]]의 공격을 당했으나 [[조선 숙종|숙종]]이 듣지 않아 사형은 모면하였다.
[[1689년]] [[승지]]에 머물렀다. 그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복귀하자 [[1691년]]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2년]] [[좌승지]]가 되었다가 우부승지 이현조가 오정위를 공격하자 피혐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숙종이 반려시켰다.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되자, 바로 삭탈관직되고 유배당하였다. 지조가 깨끗하고 겸허 담백하였으나 [[1694년]] 당화(黨禍)(갑술환국)를 입어 [[전라북도]] [[전주시|전주]], [[전라남도]] [[무안군|무안]] 등지로 10여년간 유배살이를 하였다.
* [[자의대비]]
[[분류:1647년 태어남]][[분류:1700년 죽음]][[분류:음서]][[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동복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병사한 사람]]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10회 일치
그 부모는 수상하게 여겨서 남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하였다. 잠자리 앞에 붉은 흙을 뿌리고, 실타레에 감은 삼실을 바늘에 꿰어, 딸에게 주고 이를 남자의 옷자락에 꿰어두라고 한다.
이 때, 삼실이 세 바퀴 남아 있어 이 땅을 미와(三輪)라고 이름붙였다. 딸의 자손인 오오타타네코(意富多多泥古), 오오모노누시노카미를 모시는, 오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제주가 되었다.
이 황녀는 오오모노노누시와 결혼하였는데, 오오모노노누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황녀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오오모노노누시는 작은 뱀의 모습이 되어 화장품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걸 보고 황녀는 크게 놀랐다.
이에 오오모노노누시는 매우 분노하여, 남자의 모습이 되어 모로야마(御諸山=미와산)으로 올라가버린다. 황녀는 몹시 후회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하필이면 그 곳에 젖가락이 있어서 거기에 음부를 찔려서 죽어버렸다.
오오모노노누시는 히메가 측간에 들어갔을 떄, 붉은 화살(丹塗矢)로 모습을 감춰서 측간의 옆으로 들어가, 히메를 찔렀다. 놀란 히메가 그 화살을 가지고 돌아가서, 바닥에 두자, 화살은 단정한 남자로 변하여, 결국 두 사람은 맺어졌다.
- 오정태 (희극배우) . . . . 10회 일치
| 배우자 = 백아영
| 자녀 = 딸: 오정우, 오채우
[[동신대학교|동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였으며, 연극 《택시 택시》로 데뷔하였고 [[2006년]] [[MBC]] 15기 공채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했다.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 열성 팬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구출을 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ref>김은주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303122527&cp=nv ‘태연’ 구한 오정태, “국민 영웅이요? 진행자로서 할 일 했을 뿐”], 《쿠키뉴스》, 2011년 4월 18일 작성</ref>
* 《[[자체발광]]》(이상 [[MBC TV|MBC]].)
* 《[[샐러리맨 초한지]]》 (SBS) - 피험자 9호 역
* [[2012년]] [[KBS]] 드라마스페셜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 - 자동차운전사 역
* 《[[여왕의 교실 (2013년 드라마)|여왕의 교실]]》 (MBC) - 사회자 역 (특별출연)
* [[박윤경 (가수)|박윤경]] - 도도한여자 (2013년)
*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남자신인상
- 오중기 . . . . 10회 일치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생으로 [age(1967-07-23)]세의 젊은 나이가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경상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는 2남4녀의 육남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상인들이 반겨준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대동중학교(경북)|대동중학교]]와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반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2008년 포항시 북구 지역구에서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처음 출마했지만 첫 여론조사에서 2%대의 참담한 지지율을 받고 낙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병석(정치인)|이병석]] 후보에 밀려 5.8%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쓰라린 패배였지만 이를 발판삼아 경북 지역에서 당세를 키우는 노력부터 다시 시작했다. 예컨대 그가 포항시 북구 지역위원장을 처음 맡았을 때 지역에서 당비 내는 당원이 수십명에 그쳤으나 현재는 자발적 권리당원이 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노력은 2016년까지 총 4번의 도당위원장 당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결과로 돌아왔다. 지역 당원들이 [[민주당(2008년)|민주당]] 경북도당의 성장에 대한 그의 기여를 높게 평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내 선거와는 달리 본선에서는 계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위해 불출마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낙선을 겪었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100% 환급받은 적이 아직 없는데, 특히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15%에 겨우 0.07%포인트가 모자랐다.[* 선거 비용 100% 환급 기준은 15% 이상의 득표율이다.] --안습--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출신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표가 몰려 12.71% 득표에 그쳤다. 이후 2013년엔 [[제18대 대선]] 패배 이후 혼란스러웠던 [[민주통합당]]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경북도당위원장 선거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김현권]] 의원을 누르고 도당위원장 4선에 성공했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중 균형발전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사실 지역 도당위원장 정도를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하는건 격이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균형발전비서관이 일찌감치 사직해 공석인 상황에서 2018년 2월 1일 선포된 국가균형발전 비전 수립을 이끌었다. 직후 사직하여 2018년 2월 5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하기로 [[https://youtu.be/7R_kl03ESn8|선언]]했다.
2018년 4월 3일 경상북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이 확정되었으나[[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8523033|#]] 상대 후보인 [[이철우(1955)|이철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하지만 경북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써는 최선의 결과, 더 나아가서는 최고의 결과를 내었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은 것은 덤-- 이 기록은 역대 민주당계 정당 소속 경북지사 후보가 받은 득표율 최고치를 갱신한 것으로, 직전 기록은 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인 [[박명재]]가 2006년 4대 지선 당시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기록한 23.19%이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우의형 . . . . 10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1남 1녀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4년 5월 17일에 [[상문고등학교]] 교장으로부터 1500만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국립교육평가원장 박병용에게 "유죄는 인정되나 큰 과오없이 30년간 공직생활에 충실했다"며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15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4년 5월 18일자</ref> 1994년 6월 10일에 상무대 사업과 관련하여 공사대금 189억여원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된 청우종합건설 전 회장 조기현에게 [[특가법]] 횡령, 사기죄 등을 적용해 징역5년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4년 6월 11일자</ref> 6월 14일에 접착테이프로 암달러상의 입을 막고 금품을 빼앗으려다 전치2주 상처를 입혀 구속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4년 6월 15일자</ref> 7월 15일에 [[범청학련]] 결성식에서 인공기를 게양하여 구속된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영하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2년 자격정지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4년 7월 16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1월 4일에 연세대 한총련 사태로 1심에서 징역1년6월을 선고받은 전 단국대 총학생회장에게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하면서 30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했다.<ref>한겨레 1997년 11월 5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1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3월 22일에 이우자 [[상문고등학교]] 재단인 동인학원 이사장 등 민선이사 6명이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낸 임원승인 취소처분 취소청구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102350]</ref>
- 원피스/834화 . . . . 10회 일치
* 타마고 남작의 대화에서 밀집모자 일당의 빅맘 측에 노출되어 있는걸 알게 되는데
* 빅맘은 시저 클라운에게 거인화 약을 내놓으라고 닥달하지만 시저는 궁여지책으로 밀집모자 일당 때문에 만들 수 없게 됐다고 속인다.
* 페드로는 "징베 정도 되는 자가 산하라니"하면서 놀라워하는데, 징베를 알고 있는 브룩은 어째서 그가 그답지 않은 일을 했는지 의아해한다.
* 병정들은 다름 아닌 밀집모자 일당에 대해 보고하러 온 것. 쇼콜로 타운에 정박했을 때 이미 그들의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 사실 타마고 남작은 페드로의 옛 콤비. 병정들에게 페콤즈를 찾으라고 지시하고 혼자 차를 마신다.
* 페드로에 대해 "같이 마마에게 잘 말해주려고 했는데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고 하는데...
* 그녀는 많은 연구비를 지원했다며, 자신이 원하는 "거인화 약"을 내놓으라고 닥달한다.
* 시저는 "밀집모자 일행이 연구성과와 연구소를 부숴버렸다"면서 눈물을 짜기 시작한다.
* 캔디 대신이자 빅맘의 맏아들 "샬롯 페로스페로". 할짝할짝 열매(페로페로 열매) 능력자다.
- 은혼/574화 . . . . 10회 일치
* [[우츠로]]는 쇼요의 제자들이 모두 모인걸 보고 "또 나에게 죽임 당하기 위해 모였다"고 비웃는다.
* 가츠라는 제자들의 길이 나뉘게 된 것은 선생님 때문이지만 다시 이어지게 된 것도 선생님 덕분이라며 지금은 다시 한 번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상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순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쇼요의 제자 삼인방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다츠마의 포지션이 절절히 느껴지던 에피소드.
- 은혼/615화 . . . . 10회 일치
하지만 워낙에 대군이라 그정도만 가지고는 완전히 저지하는건 기대할 수 없다. 결국은 요격을 뿌리치고 가부키쵸를 격파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주민들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적이 오니와반슈의 공격을 막아내서 서서히 진격, 가부키쵸의 목전까지 도착했다. 남쪽 제 3문에서 신호가 오자 가부키쵸 측은 투석기를 동원해 요격을 개시, 가부키쵸 공방전이 개막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첫 공격의 희생자는...
* 그때 [[무라타 테츠코]]가 자신이 수비하는 문에서 부른다. 신파치는 살았다고 생각해서 그쪽으로 접근, 테츠코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려고 한다. '''지옥의 문(헬즈 도어)을 말이다.''' 테츠코가 지키는 문은 적을 지옥으로 보내주는 문으로 못 쓰는 칼로 만들었다. 작동시키자 문 사이사이로 날붙이들이 날아가 적을 꼬챙이 신세로 만든다. 신파치는 왜 이런 위험한 입구로 부르냐고, 안 들여보내주냐고 투덜대지만 "지옥의 문은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못 나가는 입구이며 입구가 아닌 병기"라는 핀트가 빗나간 답변이 돌아온다. 테츠코는 대신 다른 입구가 있다며 저쪽으로 가보라고 하는데. '''천국의 입구 말이다.''' 신파치가 발을 내딛자 바닥이 내려앉으며 창이 번쩍거린다. 결국 적을 천국으로 보내는 입구이지만 입구가 아닌 병기.
* 신파치가 테츠코에 의해 사경을 헤매는 사이 긴토키는 아직도 알이나 주우러 다니고 있다. 이번엔 아고미(턱순이)가 자신이 지키는 문으로 긴토키를 부른다. 곧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는데 막상 긴토키가 접근하자 '''굴러들어온 알만 회수하고 긴토키는 그대로 둔다.''
[[사이고 토쿠모리]]의 자비없는 징수. 순식간에 아들을 잃어버린 병사들. 긴토키와 같은 신세가 되어 사이좋게 누워버린다.
* 예상치 못했던 분전. 전황이 고착되려는 양상을 보이자 오우가이가 움직인다. 그를 상대하던 오니와반슈의 닌자들이 초주검이 되어 있다. 그는 날아오는 투석도 벌레잡듯이 쳐내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쏟아지는 공격 사이로 무인지경인듯 걸어온 그는 굳게 잠긴 가부키쵸의 문 앞에 선다.
- 이상오 . . . . 10회 일치
| 소속 = 前 [[자유민족바둑동호회]] 회장 <br/> 前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 부모 = 이시우(부), 김신자(모)
| 자녀 = 이겸희(딸), 이준희(아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이며 독립운동가 [[이상정 (1897년)|이상정]](李相定),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의 아우인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을 지낸 대한민국 육군 준장 출신이자 [[자유월보사]] 사장을 지낸 [[박창암]](朴蒼巖)의 장인이기도 하다.
[[사냥|수렵]]과 [[야생동물|들짐승]]에 관한 저술서도 다수 남겼으며 [[사격]]과 [[바둑]]에도 유단자였다.
* 前 [[자유민족바둑동호회]] 회장(1965년 ~ 1969년)
[[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구]][[분류:한국독립당]][[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호세이 대학 동문]]
- 이정호 (1982년) . . . . 10회 일치
'''이정호'''(李正鎬<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2년]] [[4월 27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현재는 [[대구고등학교]]의 투수코치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이 끝나고 그 해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된 [[박진만]]과 [[심정수]]를 잡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정호가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그는 고향 팀을 떠나게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2545786 히어로즈 이정호 힘찬 부활의 날갯짓] - 뉴시스</ref> 현대에 이적한 후에도 병역을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 등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와 재활을 병행하여 현대에서의 활동은 없었다.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영]]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반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상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상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상태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2014년]] [[12월 16일]] [[한화 이글스]]의 3군 투수코치로 부임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548544&date=20141216&page=1 '비운의 천재' 이정호, 한화 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 개척] - 마이데일리 2014년 12월 16일 확인.</ref> 하지만 2015 시즌 후 사임하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43 그 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1> 고졸 최고 대우, 삼성 이정호] - 이영미 칼럼</ref>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 이종화 (1949년) . . . . 10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자문위원(현)
* (사)대한지방자치학회 부회장(현)
|전임자 = [[이명규 (1956년)|이명규]]
|후임자 = (직무대리)[[노병정]]
|전임자 = (직무대리)[[노병정]]
|후임자 = [[배광식]]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내성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오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이주승(영화배우) . . . . 10회 일치
* 태권도 선수출신이다. 겨루기 선수였던듯. 9살때부터 9년동안 태권도를 했다고. 태권도 관장이 꿈이였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때리고 맞는 게 싫어서 그만 두게 되었다. --나중에 태권도 관장도 생각하고 있다고-- 심심할때 혼자 발차기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메이킹필름에 발차기하는 모습이 종종 잡히곤 한다.
* 영화 셔틀콕은 제대하자마자 --2일만에-- 찍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래도 영화에 나올건데 머리가 좀 길어야겠다는 생각에 행보관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지공사를 하면 허락해 주겠다... 그리하여 작품을 위해서 말년병장이 매일 진지공사를 나갔다. 게다가 로드무비인 특성상 운전하는 씬이 많은지라 휴가 나와서 직접 면허 2종을 땄다고. 하지만 실제 본인은 길치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도 많아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한다.
2008년 --수능을 보자마자-- 독립영화 '청계천의 개'로 데뷔했다. 다수의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주로 참여했다. 필모그래피로 등록되지 않은 독립영화도 많다.
|| 웹드라마 || 썸남썸녀[* [[http://tvpot.daum.net/mypot/Top.do?ownerid=qGQpAAM9X3E0|여기]]에서 시청 가능.] || 남자4호 || 조연 ||
|| 웹드라마 || 출중한 여자[* [[http://tvcast.naver.com/chooljoonghan|여기]]에서 시청 가능.] || 랩퍼 JS || 조연 ||
||<|3> 2013년 || MBC || [[남자가 사랑할 때(드라마)|남자가 사랑할 때]] || [[한태상]] || [[송승헌]] 아역 ||
||<|2> 2014년 || 제23회 부일영화상 || 신인남자연기상 || 셔틀콕 ||
- 인종개량 . . . . 10회 일치
특정한 '인종(人種)'을 유전적으로 '개량(改良)'해야 한다는 [[우생학]]적인 주장을 뜻한다. 특히 인종개량은 특정 인종(주로 자신이 속한 인종이나 민족)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며, 다른 민족과의 혼혈을 통하여 이를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인종개량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19세기 말, 일본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 문명을 도입하던 시기로써, 우생학도 일본에 전해지게 되어 이것이 인종개량론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인종개량이라는 것이 혼혈을 통한 개량은 매우 극소수의 사람이 주장하던 것이였고, 의식주 같은 환경을 개량하여 순혈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자는게 주류고 이게 인종개량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대부분 의견이었다. 근데 그래봤자 인종개량이라는거 자체가 일본에서 주류는 커녕 존재감이 크게 없었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는 인터넷에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인과 서양인과의 잡혼을 통한 인종개량을 주장한 적이 없다. 영문과 일어 어느쪽에서도 관련 근거를 찾을수 없다. 아마 타카하시 요시오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란 점과 모리 아리노리가 극단적인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했다는 점 때문에 루머가 퍼진듯하다. 단, 건강한 일본인끼리의 결혼이나 의식주의 개량을 통한 것은 주장했을 수도 있다.
일본인의 의식주의 개선을 통한 환경개량은 괜찮은 호응을 얻었을지 몰라도 타카하시 요시오가 주장하는 서양여자를 수입해와 잡혼을 통해 혼혈로 일본인종을 개량하자는 주장은''' 당시에도 극단적인 개소리로 취급됐고, 단 한번도 일본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시행된적이 없다.''' 애시당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일본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사실이다.
* 국내에서도 열등감 때문에 인종개량을 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때때로 찾아볼 수 있다.[[http://www.inven.co.kr/board/wow/762/439257 (참조)]]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10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85화. '''오만 VS 자애'''
* 에스카노르는 에스타롯사를 근처의 호수로 처박고 거기에 태양을 던져 호수 자체를 증발시켜 버린다.
* 에스카노르가 마력을 개방하자 주위에 있던 성기사들과 일곱개의 대죄 일행까지 타들어갈 지경이다.
* 반이 그렇다고 하자 에스타롯사를 그 방향으로 날려 보낸다.
* 에스카노르는 날아가는 에스타롯사 위에서 "크루얼 선"(무자비한 태양)을 발사, 에스타롯사를 호수 밑바닥까지 처박는다.
* 에스타롯사는 이제 결판을 내자고 말하고 에스카노르는 "그 의견만은 찬성"이라며 또 크루얼 선을 생성한다.
* 에스카노르는 자기 자신의 어마어마한 힘을 그대로 뒤집어 쓴다.
* 그의 어둠이 태양을 삼킨 걸 보면 마력 면에선 자신이 앞서며 물리력도 풀카운터로 반격할 수 있다.
* 상대의 전투력이 지금까지 이상으로 부풀어 오르자 에스타롯사 조차 경악한다.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10회 일치
* 덴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여신을 강림시키고 그걸 본 델리엘은 극도로 흥분해 전투에 나선다.
* 에스카노르와 젤드리스의 마력이 단숨에 먼 곳으로 사라졌다고 확인하며 데리엘에게 자신들도 에스카노르를 상대하러 갈지 묻는다.
* 데리엘은 자신들의 목표는 리오네스 성 정복이니 딴짓을 하는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
* 하우저는 성 안으로 퇴각하자고 하는데 길선더는 적을 앞에 두고 후퇴할 수는 없다고 맞선다.
* 대세는 하우저 쪽. 슬레이더와 효암의 표효는 자신들이 마을로 파견된 성기사들을 유도할 테니 먼저 성으로 퇴각하라 권한다.
* 드루이드의 주문과 함께 자신의 피를 바치며 원을 그린다.
* 덴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여신을 현현시킨 것이다.
* 덴젤의 두 눈이, 엘리자베스가 여신의 사도가 됐을 때와 같이 변했다.
* 그런데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데리엘이 분노를 표출하며 싸우려 든다.
* 갑자기 튀어나와 미모치 1위를 달성한 여신님(...)--양덕놈들도 네타에 거유 여신님이라고 적어놨다--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10회 일치
* 뜻밖의 헤프닝으로 알몸을 보인 할리퀸과 디안느. 서로 등진 채 사과한다. 할리퀸은 침울한 기색으로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데 조금도 날 기색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자 디안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나지 않아도 부끄러울 건 없다"고 위로하는데 대화에 위화감을 느낀 할리퀸은 "내가 말하는건 날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정정하다가 다시 알몸을 보인다.
* 잠시 뒤. 두 사람은 요정왕의 숲의 높은 나무에 걸터앉아 리오네스 왕국과 멜리오다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안느가 리오네스 왕국에 남은 이들을 걱정하자 할리퀸은 멜리오다스 사후 브리타니아에 만연한 마신족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면서 아마 리오네스도 예외는 없을 거라고 말하는데. 디안느는 아직도 기억을 찾진 못했지만 멜리오다스는 착한 사람이었다며 그렇게 죽어선 안 됐다고 씁쓸해한다. 할리퀸은 여전히 그에 대해 의문이 남은 것 같지만 역시 살아있었으면 했다고 말한다.
* 디안느는 요정왕의 숲에 자신과 마트로나의 가족들을 숨겨준 것을 감사하며 어째서 요정왕의 숲은 안전한 건지 묻는다. 할리퀸이 답하길 원래 요정왕의 숲 전체는 침입자를 선별하는 결계를 치고 있는데 설사 십계라 해도 이걸 뚫는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신족은 그렇다쳐도 선선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 거인의 왕 드롤도 아무런 접근이 없는걸 꺼림직하게 여긴다. 그들이라면 요정왕의 숲을 침입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인데, 멜리오다스의 죽음 이후 이상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 디안느는 지금 자신들로는 승산이 없을 테니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다짐한다.
* 그때 요정 게라이드가 할리퀸에게 "수상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냥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할리퀸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데, 마침 숲의 모든 이가 즐겁게 춤을 추며
놀고 있다. 디안느도 같이 춤추자며 분위기를 돋운다.
* 그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게라이드는 목소리를 곱씹으며 자기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인 것 같은데...
* "눈을 떠", 어디론가 옮겨진 디안느와 할리퀸은 그 목소리에 의식을 되찾는다. 숲에서 춤을 추다가 기억이 끊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때 할리퀸의 투구에 깃든 헬브람이 "최악의 전개"라고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할리퀸은 곧 엄청난 이변을 깨닫는데 바로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을 납치한 것이 바로 이들. 할리퀸은 둘 모두 도망치는건 불가능하다 여기고 자신이 막는 동안 디안느를 도피시치려 한다. 그러나 디안느는 함께 싸우자며 "마지막이 할리퀸과 함께여서 다행"이라 말한다.
- 임효성 . . . . 10회 일치
|| 소속팀 || [[서울 SK 나이츠]](2004~2006) [br]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엘리펀츠]](2006, 2009~2013) [br] [[창원 LG 세이커스]](2006~2009) ||
前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소속의 농구선수. 포지션은 가드.
[[충주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하여 프로에 데뷔했다. 전체 3번이라는 드래프트 순번에서 알 수 있듯이 데뷔 당시에는 제법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데뷔 후 SK에서 ~~벤치워머로~~ 한 시즌을 뛰고, 2번째 시즌 도중 [[문경은]]의 맞트레이드 상대로 지목되어 [[김일두]]와 함께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2번째 경기에서 23득점을 몰아치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그 이후 활약은 미비했다.
그리고 그 시즌 종료 후 다시 [[신선우]] 감독의 유명한 시간차 트레이드의 일원이 되어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며 ~~이적 돌림빵~~ 저니맨 취급을 받다가 06-07시즌 종료 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 다시 [[한정원]]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전자랜드로 컴백. 전자랜드에서도 역할은 주로 백업 가드다. 그것도 [[강혁(농구)|강혁]]이 팀에 합류하고, [[정병국(농구선수)|정병국]]이 제대하면서 제 4의 가드. 2012-2013시즌 도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실상 은퇴했고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은퇴함으로써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 --벤치워머-- 농구선수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선수가 조명을 받은 이유는 '''바로 [[S.E.S]] 멤버였던 [[유진(배우)]]의 남자친구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2010년]] [[4월 11일]]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결혼 당시 이미 유진는 [[임신]] [[속도위반#s-2|5개월이었다.]] 첫 아들을 봤는데, 이름이 임유. 유진의 에서 첫 자를 따온 것이라고 하며 서로에 대한 애칭은 베이비라고 한다. 어찌보면 [[인생의 승리자]]라고 볼 수 있다. ~~부럽다~~
현재 아들 하나와 두 임로희임로린 딸의 아빠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한다. ~~그리고 아내가 넷째를 갖고 싶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밤마다 공포에 떨고 있다~~ [[카더라]]. '''그러다가......''' 아내의 도박 혐의가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인생의 실패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부부간의 이혼, 불화 의혹도 돌았지만 임효성이 아내가 물의를 빚은것에 대해 사과함과 동시에 불화설은 루머임을 밝혔다.]
- 장성집 . . . . 10회 일치
|직업 = [[순교자]]
그는 30세에 [[천주교]]의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성육신]]과 [[동정 (성 문화)|동정]] [[탄생]]의 교리를 믿지 못하였다. 그는 [[하느님]]이 스스로 겸손하게 [[인간]] [[사랑]]을 위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는 천주교의 교리 공부를 단념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에게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설득하였다. 장성집은 과거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 읽기에 빠져 살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마다하고 혼자 지내는 삶을 살았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왜 [[장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속세에서 부유함을 누리고 살기보다는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춥고 배고프게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대답했다. 그는 [[1838년]] [[4월]]의 같은 날에 [[영성체]]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가 용감한 [[순교자]]들의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그는 조정에 직접 항거하려 하였으나, 그의 [[대부모|대부]]는 그의 결단을 말렸다. 마침내 그는 [[5월 18일]]에 체포되었고, 이웃들과 그를 잡아가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의 종교를 부정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기 신앙을 거듭 확고히 다졌다. 그는 "나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한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좋은 사람은 [[천당]]으로, 나쁜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신다."고 말했다.
포도대장은 그를 상급 [[재판소]]로 이송했다. 장성집은 관청의 아치들이 왜 자신을 아무런 [[심문]]이나 [[고문]]도 없이 내버려 두는지 알려달라고 외쳤다. 이미 그는 정신병자로 오해받고 있었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포장은 끊임없이 배교하라고 충고하였으나, 그는 포장의 충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곤봉으로 수차례 맞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결국 그는 [[1839년]] [[5월 26일]], 54세의 나이로 [[한양]]에 있는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장성집 요셉은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장성환 . . . . 10회 일치
1920년 10월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본 기후비행학교를 1942년에 졸업했고 건군기 시절에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 항공대에서 근무하다가 공군이 독립하자 옮겼다.
[[1950년]] 11월에 미 제5공군으로부터 수송기를 인수하자 한국 최초로 공수업무를 담당했다. 참모총장 재임 시절에는 제30방공관제단, 즉 지금의 공군방공관제사령부를 창설했다. 빨간 마후라는 그의 임기 중에 제작되었다. 전역 후에 주 태국 대사, 대한항공공사 사장, 한국관광공사 총재,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1비행단장, 5비행단장 등을 거쳐 1957년에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 올랐다. 그후 1958년 공군참모차장을 거쳐
|전임자 = [[김신]]
|후임자 = [[박원석 (1923년)|박원석]]
|전임자 = [[이동원 (1926년)|이동원]]
|후임자 = [[한표욱]]
|전임자 = [[백선엽]]
|후임자 = [[김신]]
[[분류:1920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태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교통부 장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조선경비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기후 대학 동문]][[분류:도야마 대학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국방연구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장]][[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공군무관]]
- 장세현 (배우) . . . . 10회 일치
《[[성균관 스캔들]]》에서 '성균관 상유 3인방' 중의 하나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서 주목을 받은<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2315234 성스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지" 감초 3인방은 누구?]</ref> 장세현은 《[[내일도 칸타빌레]]》에서 마수민을 맡아 유진([[주원]])에 첫눈에 반한 '유진바라기'로 설내일([[심은경]])과 경쟁관계에 놓이는 역할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532683 신예 장세현, '내일도 칸타빌레' 캐스팅…심은경과 천적관계]</ref>
| [[꽃보다 남자 (2009년 드라마)|꽃보다 남자]]
| 무통증 사채업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백석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7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 장유환 . . . . 10회 일치
** 〈연애능력평가〉진행자 역
** 〈유.전.자 (유행을 전파하는 자)〉
** 〈남자 둘〉
** 〈관심 좀 갖자!〉
* 장구야 우리 oo 하자! (사건의 전말)
* 끼~약!!!!(유전자)
* 앗추!(유전자)
* 아차차차차차(유전자)
* 씹혔다 뽑혔다 뽀래(유전자)
- 장은아 . . . . 10회 일치
| 예명 = 제이스민 ('''J-Smine''') <br/> 자스 ('''JAS''')
| 소속 그룹 = [[러브홀릭스]] <br/> [[W & JAS|더블유 앤 자스]]
'''장은아'''([[1983년]] [[1월 12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제이스민'''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자스'''라는 예명으로 활동중이다.
서울 출신인 자스양은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를 입학한 미술학도였다. 학교 가요제인 청사가요제에 출전했는데 금상을 받은 걸 계기로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ref name="W&JAS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들려드릴게요-줌인">[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30820214806606&srchid=IIM%2Fnews%2F73052764%2F2e8f9831634cedfbb240e7f3039397d2/[세계일보] W&JAS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들려드릴게요"-줌인] 2013년 8월 30일.</ref>
=== [[W & JAS|더블유 앤 자스]] ===
{{더블유 앤 자스}}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전자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보이스 코리아 참가자]][[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장철 (1967년) . . . . 10회 일치
|직업 = [[사회자|MC]]
|배우자 = [[성기영 (아나운서)|성기영]]
|자녀 =
|학력 =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br/> [[한맥투자증권]] 이사
'''장철'''([[1967년]])은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한맥투자증권]] 이사다.
* 한맥투자증권 이사
*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 CJ 투자증권 수석부장
- 전경협 . . . . 10회 일치
|직업 = 순교자
전경협은 [[한양]]의 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래로, 그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안형광]]이라는 이름의 [[궁녀]]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서 전경협의 친오빠가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궁녀 안형광은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녀도 이미 궁녀 명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희순 루치아]]를 비롯한 [[천주교]]인 궁녀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박희순이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출궁한 후에, 전경협도 꽤병을 부려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궁궐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전경협은 박희순과 함께 살며 [[기도]]와 종교서적의 독서 그리고 선행에 전념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복했고, 그녀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극도의 가난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번 없었다. 그녀는 그저 [[체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경협의 친오빠는 이교도였으며, [[조정 (정치)|조정]]의 고위 관리였다. 그는 [[왕|임금]]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그녀를 배교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의 간청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는 독이 든 계란 과자를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던 것이다. 수상스럽게 생각한 전경협은 과자를 비녀로 찔러 보았는데, 그 비녀의 색쌀이 금새 변했으므로 그 과자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오빠는 형리장을 매수하여 그녀를 몽둥이로 때려 죽이도록 시켰다. 하지만 형리장은 여러 차례 그녀를 때리되 죽이지는 않았다. 전경협의 조카 즉 오빠의 딸이 그녀의 상처가 하루만에 다 낫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경협은 그녀의 오빠가 그녀가 감옥에 영원히 갖혀 있도록 요청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위하여 [[참수]]되기를 [[기도]]했고, 마침내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10회 일치
효부는 용의자를 다섯으로 압축한다.
* 효부 쿄스케는 배신용의자를 미나모토 코이치, 사카키 슈지, 마츠카제 코우이치, 키리츠보 타이조, 카시와기 오보로 다섯으로 압축한다
* 효부는 이들을 수갑을 채워버리는데 사카키, 미나모토가 항의하자 "나만은 결백하다"고 믿느냐 묻는다.
* 애초에 블랙팬텀의 세뇌에 걸린 자는 자신이 배신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 효부는 레어메탈을 미량씩 섭취시켜 자신도 모르는 틈에 조종하는 방식을 썼을 거라고 판단, 용의자들의 혈액을 채취해 염파로 반응을 살피는 검사를 한다.
* 미츠카제는 자신부터 하는게 맞지 않겠냐고 하지만 효부는 오히려 가장 늦게 하겠다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10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4th sense. '''무법자들 (9)'''
* 약간 4차원인지 자기에게 반한거냐고 수다를 떠는 소녀. 아카시 카오루의 언니인 아카시 요시미였다.
* 한 번 실패하자 불안해진 후지코가 직접 나설 것을 예상했고 그대로 적중.
* 후지코는 지금 자신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면서 효부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라고 말한다.
* 그 말은 효부의 초능력부대 연루자 연쇄살해를 꼬집은 거지만, 효부는 거기에 어떤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
* 효부가 누나라고 부르며 결판을 내자고 말하자 후지코는 "내 동생은 이미 없다"고 잘라 말하며 텔레포트를 쓴다.
* 앞서 레어메탈이 작용하는 기전과 후지코의 속내를 조합해 보면, 후지코의 경우에는 그러한 과거의 비극을 재현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오히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이들마저 의심하고 배척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10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9th sense. '''반역자들 (2)'''
* 모호츠쿠 관측소에서 대기 중이던 사카키 슈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나모토 코이치 일행의 탈출을 알리려 했다 제지 당한다.
뒤이어 타니자키 이치로와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도 도착. 사카키는 미나모토나 다른 일행이 나타난걸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사카키 자신은 감시 영상을 교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미나모토 일행의 탈출 사실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경악하는 사카키. 나오미와 하츠네의 경계 아래 전에 블랙 팬텀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왼팔을 조사하게 된다.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상황이 정리된 이후 나오미는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리고 도쿄로 향한다. 떠나기 전 타니자키를 때려눕히고 남아있는 더 하운드에게 "주기적으로 두들겨패서 혼수상태로 만들어라"는 지시를 남긴다.
* 미나모토는 사실 자신도 화가 난다며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받은 것 이상으로 길리엄에데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가 행한 무수한 범죄를 일일히 열거하며 이젠 사카키와 관리관까지 이용했다며 조용히 분노한다. 그러나 너무 힘을 줘서 찬장을 망가뜨릴 정도로 속으로 흥분하고 있다. 사카키는 그가 대신 분노해주는 것에 감격.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10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2th sense. '''반역자들 (5)'''
* BABEL의 의료시설에 잠입한 [[사카키 슈지]]는 드디어 완성단계에 이른 혈청을 자신에게 주입한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 시호는 눈에 띄는 반응이 없자 실패가 아니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사카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 모처럼 성과를 거두자 독설만 날리던 시호도 "바보짓은 탕감"이라며 수고했다고 칭찬한다. 아오이는 바로 [[미나모토 코이치]]와 합류해 작전회의에 들어가자고 하는데, 사카키는 급격히 균형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시호.
* 한편 미나모토의 은신처에서 멀지 않은 곳. 뭔가 익숙한 목욕탕이 보인다. 역시 익숙한 주인이 카운터를 보고 있는데 수상한 남자가 목욕탕에 들어간다.
* [[미나모토 코이치]]는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불청객이 찾아온다. [[효부 쿄스케]] 등장. 경계하는 미나모토에게 "다른 손님에게 폐"라며 조용히 있으라고 하는데. 정작 자신은 이런 뜨거운 탕은 간만이라며 못 견뎌서 아우성친다. 찬물을 섞겠다고 하는걸 미나모토가 제지. 조금 시간이 흘러 적응이 되자 옛날 생각을 하며 즐거워한다. 역시 알맹이는 노인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으니까.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0회 일치
* 한때 일본 정부는 "전 에스퍼 등록격리법안"이란 것을 추진했다. 문자 그대로 모든 에스퍼를 등록, 격리해서 관리한다는 방침으로 명목은 비 에스퍼 국민의 안전. 당연히 에스퍼를 보호하는 BABEL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키리츠보 타이조]]는 단숨에 테이블을 엎으려 격분.
* 당연한 반응이지만, 장관은 당혹해하면서도 에스퍼에 의한 범죄나 부정은 엄연한 사실이고 대다수인 노멀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츠보미 후지코]]는 범죄발생률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정론을 펼치며 "에스퍼는 국민도 아니라는 거냐"고 꼬집는다. 물론 장관으로서는 그렇게까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표면적으론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카시와기 오보로]]가 조용히 자료를 제출한다. 정권의 비위를 조사한 자료로 보이는데 반양 격리법안이 상정된다면 이걸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의 제의는 무효화.
* 장관의 퇴장 후 척보기에도 수상한 무리가 나타난다. 더 칠드런 일행과 판도라의 간부들이 작전에 나선 것이다. [[미나모토 코이치]]는 관리관이 상대지만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고 팀원들에게 주의를 준다. [[효부 쿄스케]]가 거기서 리더 인양 굴지 말라고 끼어든다. 미나모토는 판도라는 용병 입장이 아니냐고 따지는데 효부는 자기가 능력, 경험, 기술, 인격 면에서 모두 앞선다고 대꾸한다. 물론 미나모토는 "적어도 인격은 아니다"고 격렬하게 반박.
리더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옆에선 [[후지우라 요우]]가 왠일로 어른스럽게 "리더 따윈 누구든 상관없고 싸움은 리듬을 타고 타닷하고 접근해 파밧하고 이기면 된다"고 말한다. 진지한 말투와는 달리 내용은 대충. [[사카키 슈지]]는 거기에 태클을 걸며 어차피 용병으로 쓸 거면 [[마기 시로]]가 제일 쓸만할 것 같으니 데려 오라고 한다. 요우는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말한다.
현재 판도라의 본거지를 지키고 있는건 [[카노 모미지]]. 효부는 사실 자기 혼자 참가하려고 했는데 요우가 걱정된다고 억지로 온 거라고 설명한다.
* 이런 답도 없는 싸움 끝에 미나모토가 져주는 걸로 일단락. 어쨌든 후지코를 가장 잘 아는건 효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효부는 [[쿠모이 유리]]와 함께 최면염파를 가동하며 작전을 시작한다. [[산노미야 시호]]가 곧바로 바벨의 경비 시스템을 해킹. 악성 코드를 심어 보안시스템을 무력화 한다. 복구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분이며 그 사이 잠입을 마쳐야 한다.
* 입구의 경비병력은 효부와 유리의 최면으로 간단히 통과, 보안키도 미리 준비한 위조ID카드로 무사히 지나간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난관이다. 바벨 보안시스템의 최종 방어라인 더 더블 페이스. 하이 레벨 에스퍼인 [[노와키 호타루]]와 [[토키와 나츠코]]에겐 최면도 통하지 않는다. 일행이 나타나자 마자 더블 페이스는 초감각으로 투사가 안 되는걸 감지하고 경계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10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는 [[츠보미 후지코]]의 자살을 막으려 하지만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ECM의 주파수를 변경해 초능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 효부가 손을 뻗어보지만 자아를 빼앗긴 후지코의 눈동자에는 동요의 기색이 없다. 결국 탄환은 발사되고 마는데. 선혈과 함께 쓰러지는 후지코.
* 그때 마츠카제가 ECCM이 자동재조정되었다며 초능력이 작동한다고 외친다. 길리엄은 너무 늦었다고 비웃으며 말을 이으려하는데 카오루가 길리엄의 영상을 전송하던 프로젝트를 박살내 버린다.
* [[쿠모이 유리]]는 "이게 오빠의 목적인가"라며 당혹해 한다. 효부는 바닥에 떨어진 [[사오토메 에이지]]의 권총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눈 앞에서 후지코를 자살시킨다, 그것도 사오토메의 권총으로. 그게 "목적"인가? 효부는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 그는 곧 카오루와 유리, [[노가미 아오이]]에게 퇴로의 확보를 맡고 자신은 [[산노미야 시호]], 미나모토와 함께 경비 시스템이 침투하겠다고 한다. 칠드런은 과연 그래도 괜찮을지 주저하는데 효부는 냉정한 태도로 "바보녀"의 처치는 "돌팔이"에게 맡기라고 잘라말한다. 그 말을 들은 "돌팔이" 사카키는 그 표현엔 반발하지만 맞는 말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치료에 전념한다.
효부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길리엄이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생각이 정돈되지 않는다. 그는 욕을 내뱉으며 주위를 서성거린다. 그때 [[후지우라 요우]]가 좀 앉아있으라고 말을 건다. 그는 [[카노 모미지]]에게 이런 역할을 부탁 받았다며 효부는 자각하는 것보다 훨씬 동요하고 있으니 진정하고 심호흡부터 하라고 말한다. 효부는 동요따윈 하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리는데 요우는 그의 얼굴을 붙잡으며 강한 어조로 말한다.
>잊지 마. 나도 당신의 자식이야.
- 정대석 . . . . 10회 일치
| 배우자 =
'''정대석'''(鄭大錫, [[1950년]] [[1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국악인으로 거문고 연주자,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정대석은 전통적 기반위에 현재의 감성을 입혀 새로이 재구성하여 거문고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연주자다. 출중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고하게 기품을 유지해 온 거문고를 일반 계층에게 전파시키는데 기여해온 바 크다. 그는 거문고와 더불어 연주자 및 창작자로서의 삶을 일관하여 온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국악인이다. 정대석은 일찍이 거문고의 창작음악에 몰두하여 많은 거문고 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곡들은 거문고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거문고연주자 정대석은 이런 관점에서 면면히 자기완성을 의지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악인으로서의 자태를 유지해온 예술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서울악회 동인, 거문고연구회 동보악회 대표이다. 2003년 KBS국악대상 대상 및 현악상과 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3/11/20070311000979.html 거문고 명인 정대석씨 ''非음대'' 첫 서울음대] 교수세계일보(2007.03.12)</ref>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강사 역임
- 정인선(탤런트) . . . . 10회 일치
||<#B0C4DE> {{{#ffffff '''가족'''}}} ||<(> 부모님, 배우자[[장평도정]] ||
아역 출신 배우로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와 같은 반 친구로 등장했다. 의찬이, 정배 다음으로 비중있는 아역배우였다.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한세은 역으로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수로를 뒤지는 송강호에게 "거기 뭐 있어요?"라고 말을 걸던 여자 초등학생 역을 맡아 단역임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 [[살인의 추억]] || 엔딩 여자아이 || ||
||<|2> [[2014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액자가 된 소녀 || 민세영 || ||
|| [[MBC]] || [[위기의 남자]] || 이여름 || ||
* 한공주에서 주인공의 상황과 대비되는 순수함 그 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연기하여 호평 받았다. 특유의 밝은 표정이 인물의 상징성을 잘 드러냈다는 평.
*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술자리는 좋아하는 편이다. 소주만은 잘 못 마시고 소맥을 마시는 편인데,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마시면 끝까지 지치지 않고 마실 수 있다고 한다.
* [[백종원의 골목식당]] 인천 신포국제시장 청년몰 에피소드에서 [[김민교]]와 연예인 식당 지원군으로 나왔다. 요리 자체는 맛있지만 상업성과 회전률, 김치 국물이 줄줄 흐르는 단점 때문에 김민교가 선보인 '팟 파카오 무 쌉'[* 정확히는 '팟 파카오 무 쌉 __랏 카우__'로, 다진 돼지고기와 [[바질]]을 주재료로 하는 태국식 [[제육덮밥]].]에 밀려 접대와 보조를 맡았으나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김민교와 좋은 호흡을 맞춰 호평을 받았다. [[백종원]]이 찾아와 김민교와 태국 요리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를 나누자 살짝 굳어지면서 경탄하는 귀여운 모습도 보인다.
- 정창영 (공무원) . . . . 10회 일치
| 배우자 =
'''정창영'''(鄭昌永, [[1954년]] [[8월 29일]] ~ , [[대구광역시|대구]])<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81626 국회-감사원 첫 인사 교류] 《동아일보》 2005년 1월 20일 정용관 기자</ref>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A0%95%EC%B0%BD%EC%98%81&os=766969 네이버 인물정보]</ref>
|전임자 = [[유충흔]]
|후임자 = [[김병철 (1958년)|김병철]]
|전임자 = [[유충흔]]
|후임자 = [[김병철 (1958년)|김병철]]
|전임자 = [[성용락]]
|후임자 = [[홍정기]]
|전임자 = [[팽정광]] (직무대행)
|후임자 = [[팽정광]] (직무대행)
- 조선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 . . . . 10회 일치
조선활자본 삼국지연의 역시 2010년 3월, 박재연 교수가 발굴한 것이다.
[[명종]] 년간(1534~1567)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금속활자로 간행되었고, 병자자(丙子字)를 썻다. 드문드문 굵기와 크기가 다른 목활자가 끼어 있어 '후기 병자자'로 추정된다. 활자로 볼 때 1552년 이후 1560년대 초중반 사이에 인출된 것으로 추측된다.
* 조선왕조실록에서 삼국지연의에 대한 기사 가운데 “至於印出”이 있었는데, 임란 이전에 삼국지연의가 조선에 전래되었으나 간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어으며, 활자본이 아니라 조선번각본이나 주왈교본갑본 목판본을 지칭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판본의 발견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삼국지통속연의가 목판본이 아닌 활자본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굳어지게 되었다.
- 주나라 . . . . 10회 일치
기원전 770년 서주는 유왕(幽王) 때 서융(西戎)의 침공을 받아 서주는 멸망한다. 유왕은 미녀 [[포사]](褒姒)에게 빠져, 국정을 그르치다가 서융의 침공을 불러 멸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서융에 점령된 호경 지역에서는 주나라의 한 왕자가 서융의 후원으로 주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이렇게 잔존 서주 정권은 동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만다.
유왕의 태자가 정(鄭)의 후원을 얻어 낙읍(洛邑)에 재건되었다. 낙읍은 후대의 뤄양(洛陽,낙양)이다. 그러나 동주는 재건 당초부터 취약한 정권으로서, 정(鄭)나라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사실상 실권을 상실, 각국의 제후들이 패자(覇者)로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고 주왕조는 천자(天子)로서 명분상의 권위만을 가진 정권이 된다.
춘추시대에는 제후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 이상의 실력이 있었으나, 명분상 주나라의 신하를 자처하였으므로 군주의 지위는 공(公), 후(侯)에 머물렀다. 단지 초(楚), 오(吳), 월(越) 같은 주나라 외부의 국가들만이 왕(王)을 자칭하였다.
* 주공(周公) : 무왕의 동생 주공 단(旦)에서 시작된 지위. 천자(天子)인 주나라의 왕(王)과는 별도로 지속되었는데, 주공 단의 전례에 따라서 재상-섭정 격인 역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 통치에서 주나라는 [[봉건제]]를 실시했다. 무왕은 자신의 형제들을 노(魯), 위(衛), 채(蔡), 조(曹), 등(滕)의 16개국에 봉하였고, 무왕의 아들은 진(晉) 등 4개국에 봉해졌다. 주공 단의 자식들은 형(邢) 등 6개국에 봉해졌다. 강태공의 후손이 봉해진 제(齊) 등, 그 외 약 140개의 제후국이 존재했다.
주나라에서는 청동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였는데,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구정]](九鼎)에 대한 전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나라는 청동기로 만들어진 정(鼎, 솥) 같은 제례도구를 제조하여 제후국에 하사하였는데, 이는 주나라의 높은 기술력과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나라의 청동기에서는 그 연혁을 기록한 금문(金文)이 새겨져 있어, 후대에 역사를 탐색하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 차금봉 . . . . 10회 일치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같은해 3월 [[김명식 (1890년)|김명식]]·[[오상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상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운동 단체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시키기 위해 힘썼다.<ref name="역대"/>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신간회]] 단체가 결성되자, [[1928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았으며,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3·1운동 기념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지시하여 선전전단 20만장을 도쿄의 동성사에서 인쇄했는데, 우송 도중 서울우편국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피신했으나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당한 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1929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했다.
[[분류:1898년 태어남]][[분류:1929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고문 피해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자]][[분류:일제 강점기의 공산주의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
- 차민수 . . . . 10회 일치
|제자 =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 [[루이나이웨이]] 9단이 미국에 망명중일 때 한국 기원행을 권유하며 조훈현에게 소개시켜 준 이가 차민수이다.<ref name="hani">{{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43818.html |제목=‘반상’에서 천국을 쫓다 한국에서 행복을 찾다|저자=김창금 기자 |출판사=한겨레 |날짜=2009-03-12}}</ref>
* 차민수는 [[쿵푸]] 공인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2004년에 회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올인' 실제주인공 차민수씨 미술전|저자=이홍렬 기자|출판사=조선일보|날짜=2004-07-30}}</ref>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미국의 포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미국의 미술가]][[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미국의 불교 신자]][[분류:더 지니어스 참가자]]
- 창작:좀비탈출/0-1-2 . . . . 10회 일치
저 손톱과 이빨을 피해서 달아난다는게 가능할까? 도저히 자신이 없다.
오늘은 그만 쉬자. 머리가… 너무 무겁다.
벼락처럼 의식이 돌아온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구조대인가? 결국 온 건가? 현관으로 향했다. '''쿵 쿵……'''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상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반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영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그때마다 숫자는 들쭉 날쭉했다. 그리고 익숙한 녀석이 돌아다니는가 하면 전혀 처음 보는 행색의 녀석도 있었고 그런 녀석이 금방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그대로 눌러 앉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호기심은 다른 일기상태에 대한 관찰욕구도 자극했다. 가령 눈이나 비같은 것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날씨가 춥거나 더워지는게 영향을 줄지. 하지만 그런걸 관찰할 수 있을 정도면 계절이 바뀌도록 구조되지 못한다는 얘기니까 우울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우선 나는 몇 가지 추론을 세웠다. 첫째, 이 동네는 '''전멸'''하거나 '''거의 전멸'''했다. 아무튼 유의미한 수의 생존자는 없을 것이다. 둘째, 아직 이곳에는 "먹을 것"이 있다. 그게 내가 먹어도 좋을 정도로 신선할지는 모르겠지만. 셋째, 적어도 놈들과 접촉만 하지 않으면 안전할 거라는 점.
둘째는 생존자가 거의 없는데 왜 저렇게 많은 놈들이 돌아다니냐는 점이다. 저놈들이 꼭 사람만 잡아먹으란 법은 없다. 다른 먹을 거리가 있다는 말이겠지. 그걸 나도 먹을 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10회 일치
||<:>→||<:><#008000>'''{{{#white 옆집에 가보자.}}}'''||
내부에서 고갈된 자원은 외부에서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어제의 모험이 나에게 지나친 개척자 정신을 부여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경솔하게 또 한 번의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분명 어제 확인한 사실만으로도 마당까지 나가는 것 정도는 위험할게 없다는걸 확인했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건 그 마당도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나서기 전에 확실한 무기가 하나도 없다는게 못내 아쉽다. 나는 궁여지책으로 아령을 다시 꺼냈다. 무게감 하나만큼은 쩔어주는 녀석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나는 못입게 된 티셔츠를 길게 찢어서 아령에 묶었다. 말하자면 임시 철퇴인 셈이다. 어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꼭 한 방에 죽여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무거운 물건으로 쳐서 날려 보낼 수 있다면, 지가 죽지는 않는다 쳐도 어떻게 되겠는가? 접골이라도 해서 일어날 건가?
출발 전 마지막으로 물자를 체크했다. 가방에 티셔츠와 아령으로 만든 철퇴. 산지 1년 쯤 된 티셔츠와 바지, 아디다스에서 구입한 운동화, 연식이 20년이 좀 넘은 한국남자 하나. 그리고 정오의 햇볕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좋아 완벽하군.
마당을 나서면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어쩌면 모험'''. 어쩌면 모퉁이를 돌아서면 녀석들이 있을지도 몰라. …… 좋아. 아니군. 토트넘이 보인다. 순간 나도 뭔지 모를 감정이 위장을 들쑤신다. 감정…… 보다는 '''구토감'''이라는게 맞을 것이다. 항상 보던 얼굴도 이렇게 눕혀놓고 보니 터무니없이 혐오감을 자극한다. 나는 아예 그쪽을 외면해 버렸다. 어쩌면 모험 정신엔 위배되지만…… 저게 '''다시 일어날 일'''은 없겠지.
나는 양손으로 우습지도 않은 철퇴를 들고 언제든 휘두를 준비를 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어쩌면"의 대책은 대개 이걸 휘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진다. 5kg에 불과한 아령이 생각보다 무겁다. 어쩌면이 '''역시나'''가 되었을 때 원없이 휘둘러 볼 수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채상병 . . . . 10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2년]] [[7월 7일]] <br />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채상병'''(蔡尙秉<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79년]] [[12월 1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배터리코치이다.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상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상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상 공백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상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2009년]]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최승환]], [[용덕한]] 등의 팀 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1군에는 몇 경기에만 나와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는 등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5231651142222&ext=na 두산 채상병-SK 채병용, 부상으로 1군 엔트리 말소] - 마이데일리</ref> 때마침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 [[현재윤]] 등이 잇따라 부상을 입으면서 남아 있는 포수는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신고선수 출신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뿐이라 [[포수]] 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에 놓이자,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상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60125 두산, 삼성 좌완 지승민 영입] 《Osen》, 2009년 7월 16일 작성</ref> 하지만 [[2010년]]에는 [[진갑용]]과 [[현재윤]]의 회복, 그리고 [[이정식 (야구 선수)|이정식]]이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2군으로 밀렸다. [[2011년]]에 포수들이 대거 부상을 입어 주전 자리에 다시 앉게 되어 감각을 찾았고,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그러나 2012년 이후 부터 경쟁에서 밀리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4 시즌 후 구단과의 합의 끝에 은퇴를 결정하였고, 배터리 코치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 최석민 . . . . 10회 일치
| 후임자 = [[최정원 (조선귀족)|최정원]]
| 배우자 =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포상금 형식의 [[은사공채]](恩賜公債) 2만 5천원을 받았다. 조선귀족 중 남작 작위는 본래 전직 관료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칙임관 1등 이상의 현직에 재직 중인 것을 기준으로 이 작위를 수작했다. 최석민의 작위는 양자 [[최정원 (조선귀족)|최정원]]이 습작했다. [[1911년]] [[8월 29일]]에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매일신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6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분류:1858년 태어남]][[분류:191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조선남작]][[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최씨]]
- 최세창 . . . . 10회 일치
|배우자 =
| 저자 = 김의겸, 김창석
|전임자 = [[오자복]]
|후임자 = [[정호근 (군인)|정호근]]
|전임자 = [[이종구 (1935년)|이종구]]
|후임자 = [[권영해]]
{{12·12 반란 주동자}}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10회 일치
|직업 = [[패션]] [[디자이너]]
|배우자 = [[김우정]]
|자녀 =
'''최윤정'''(1974년~)은 [[미누파탈]]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1974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사랑과 성공, 진실, 마지막 전쟁, 가을에 만난 남자, 베스트 극장, 인어아가씨, 앞집여자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영화]] [[선생 김봉두]]에도 출연하였고, LG텔레콤, [[P&G]], PCCW, 여성가족부 등의 [[CF]] 모델로도 활동하였다. [[2013년]] [[최정아]]와 함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미누파탈]]을 설립하였다.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
- 최재만 . . . . 10회 일치
|가족=|배우자=
|소속사=[[플럭서스뮤직]]|관련활동=[[어반자카파]], [[The Nucleus]]
최재만(崔載晩, [[1988년]] [[5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2009년]] 7월 2일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 [[어반 자카파]]의 EP 앨범 '커피를 마시고'로 데뷔하여 [[2010년]] 3월까지 [[어반 자카파]]의 멤버로 활동하였고, [[2014년]]과 [[2015년]]에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 [[The Nucleus]]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4월 25일에 솔로로 데뷔하였다.
* '''[[어반 자카파]]: 커피를 마시고 (EP)''' <2009.07.02 발매> (공동 디렉팅 및 프로듀싱)
* '''[[어반 자카파]]: Sweety You (EP)''' <2009.12.10 발매> (공동 디렉팅 및 프로듀싱)
* '''[[어반 자카파]]: 01 (1집)''' <2011.05.17 발매> (공동 프로듀싱)
* '''[[캐리어를 끄는 여자]] [[OST]] Part.2: 와준다면''' <2016.10.18 발매> (작곡, 편곡)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
- 춘추 . . . . 10회 일치
춘추시대, 각국의 사관이 편찬한 공식적인 기록이다. 『[[맹자]]』에서는 진에 '승', 초에 '도올', 노에 '춘추'(晉之乘, 楚之檮杌, 魯之春秋)가 있다고 하였으며, [[묵자]]에는 주나라, 송나라, 연나라, 제나라에 춘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춘추는 점차 국가 기록이 아닌 개인에 대한 기록에도 쓰이게 됐는데, 여씨춘추, 노씨춘추, 안자춘추 등이 그것이다.
춘추는 역사서이며, 당시 학문을 익히던 사람들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국어(國語)』에는 초어상 진어칠(楚語上 晉語七) 편에서 춘추를 배우고 익혔다는 언급이 있어, 춘추시대에 이미 춘추가 교과서로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춘추는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소박한 용도로만 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공자]]와 연관되면서 복잡한 '춘추학'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맹자]]』에서는 "공자가 노의 춘추를 고쳐써서 춘추경(春秋)을 만들고, 거기에 의(義)를 담았다"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이, 전국시대의 유학자들은 유학자들은 공자가 춘추에 작은 표현(미언微言)으로 큰 뜻(대의大義)을 담는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실천했다고 여기게 된다. 이 춘추경에 담긴 뜻을 '춘추대의'라고 하며, 이를 풀이함으로서 춘추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공자의 뜻을 해석해내는 '춘추학(春秋學)'이 나타나게 된다.
- 토리코/372화 . . . . 10회 일치
* GOD는 움찔거리다가 갑자기 혀를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더니 스타준이 만들었던 화염돔을 싹 치워버렸다.
* GOD는 혀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자기 등에 닿을 정도로 길게 내뻗어서 직선상의 모든 맹수를 깨끗히 먹어치운다.
* 써니는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신들에게도 방법이 있다며 사탄보밋을 사용해 과거 먹은 바 있던 토미로드를 뱉어낸다.[* 300화에선 사탄 보밋으로 과거 먹은 적이 있는 식재를 뱉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 나왔는데 이게 복선.]
* 스타준은 조리장들을 워프 키친으로 끌고 가면서 "요리사답게 주방에서 결판내자"고 말한다.
* 그 위력은 써니도 전부 삼킬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참격이 삼켜진 것에 놀랐는지 잠시 방심한다.
* 제브라가 초음속 보이스 커터를 날리자 신의 도마를 이용해 막는다.
* 시대가 택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토리코였다고 중얼거리는 아카시아.
* 토리코는 "당신은 잘못 알고 있다"며, 자신의 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이며 그 안에는 아카시아도 포함된다.
* 그린패치 등장이 너무 뜬금없고 만화 상의 묘사도 애매해서 코코가 포이즌돌로 그린패치를 만든 것처럼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코코는 단지 중독성이 강력한 독을 내뱉은 거고, 그 냄새를 맡고 중독된 그린패치가 이끌려 왔던 것. 자세히 보면 맹수들 사이로 날아오는 그린패치가 보인다.
* 그런데 막바지에 달해가고 있는데도 코마츠의 친구 우메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쪽도 죠아조차도 하나 밖에 보지 못한 테이스티 로드를 수 십개를 본 식운의 소유자.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0회 일치
일본도를 든 전통주의자 150명. 19라는 근접 공격 수치와 야리 키헤이와 동급의 돌격 보너스를 가지고 있다.
* 반자이!(Banzai!) -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키쇼 닌자(Kisho Ninja) =====
검을 사용하는 닌자 45명. 폭탄을 던지는 원거리 공격을 하지만 그건 보조로 치나보다.
소총을 든 민병 150명. 아이즈 번 전용 유닛으로 징집 민병대를 대체한다. 징집 민병대보다 쪼까 비싸지만 명중률과 재장전 속도가 더 높다. 그래봤자 전열보병 능력치의 절반이다.
소총을 든 병사 150명. 이 게임에서 제일 평범한 보병이자 제일 많이 쓰게 될 보병이다.
* 반자이!(Banzai!) -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상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조자이 번 전용'''
소총을 든 경보병 90명. 조자이번 전용 유닛이다. 일반 저격병보다 비싸지만 그만큼 성능도 좋다.
나무로 만든 허접한 대포 4문과 운용병 30명. 정확도도 딸리고 탄약량도 얼마 없고 전투 중 운반할 수도 없다. 초반기 공성전에서 유미 망루나 성벽, 성문 등을 박살내는데 사용하자.
- 페어리 테일/486화 . . . . 10회 일치
* 가질의 목을 조르며 자신은 "저항할 수 없는 죽음"이라 표현하는 블러드맨.
* 가질은 박치기로 반격하며 "죽을 자리를 찾는 건 지쳤다"고 응수한다.
* 어차피 평범하게 싸웠으면 자신들의 승리였다고 하면서 "게임판이 부숴졌다고 해야 하나, 룰 밖의 인물에 의해서..."
* 블러드맨의 능력은 그 몸에서 나오는 마장입자. 이 마장입자를 마신 마도사는 죽는다.
* 가질이 상성상 우위인 걸로 보였으나 블러드맨은 몸 자체가 마장입자로 되어 있어 가질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 게다가 가질 자신은 무사해도 주변의 아군은 마장입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가질은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고 언급하는데, 본인은 레비에게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명하지만 행보를 생각하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 페이데이 2/적 . . . . 10회 일치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플레이어에게 수갑을 채워 1분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플레이어에게 수갑을 채워 1분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실드 주변을 빙빙 돌다가 등이 보이면 쏴버린다.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실드 주변에 경찰이 있으면 어려워진다.
Sniper. 말 그대로 저격수. 맵 가장자리에 나타나 붉은색 레이저 포인트를 비추며 표적을 수색한다.
플레이어가 저격수의 공격을 받을 시, 소름끼치는 효과음과 함께 모든 아머가 날아간다. 빨리 숨을 곳을 찾자.
감전당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무기를 난사하게 된다. 감전은 테이저가 공격을 받고 휘청거려야만 중지된다. 만약 아무도 감전을 중단시키지 못하면, 감전당한 플레이어는 오랜 시간 동안 지져진 후 다운된다.
Black Bulldozer. IZHMA 12G 자동산탄총으로 무장한 검은색 불도저.
Cloaker. 어두운 옷을 입고 야시경을 장비한 특수 경찰. 유저들 사이에서는 cl이라는 약자로 표시된다.
시야 안에 플레이어가 들어오면 자비없이 쏴갈긴다. 터렛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붉은색 레이저 포인터로 표시된다. 레이저 포인터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터렛이 장전중임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터렛은 "이새끼를 쳐죽이세요"가 아니라 "이새끼를 피해가세요"라는 의미로 배치된다. 터렛이 배치되면 이를 박살내려고 하지 말고 피해갈 방법부터 생각하자. 물론 박살내야 할 경우도 있긴 하다. 빌어처먹을 멜트다운이라던가.
- 페이데이 갱 . . . . 10회 일치
[[스웨덴]]인. 삶의 대부분을 모범시민으로 살아왔으나 2000년대 세계 경제공황으로 경영하던 회사가 망해버렸다. 이후 범죄자가 되었다고.
[[미국]]인. 청소년때부터 사고를 치고 다녀서 양부모의 집과 [[소년원]]을 오갔다. 이후 군대에 들어가 훌룡한 군인이 되었지만 군대를 나온 후 범죄자가 되었다. [[FBI]] DB에 따르면 큰 총과 많은 탄약을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영화 [[존 윅]]과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전직 [[살인청부업자|히트맨]]. 체인스와는 군대에서 알고 지낸 사이다.
* 자켓(Jacket)
[[일본]]인.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 켄토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온 [[야쿠자]].
영화 [[포인트 브레이크]]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전직 대통령(Ex-President) 범죄조직의 창설자로 범죄계의 전설 중 하나.
멕시코 출신의 조직원. 페이데이 갱에 들어가기 전에는 몬테레이의 마약 카르텔 소속 암살자 겸 행동대장이었다. 이후 큰 한탕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페이데이 갱의 무기 공급책인 게이지의 주선으로 페이데이 갱에 입단했다.
범죄 청부 웹사이트인 크라임넷의 운영자. 페이데이 갱의 오퍼레이터. 페이데이 갱 중 누구도 베인을 직접 만나본적은 없다고한다.
* 도살자(The Butcher)
영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기관. 음지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밀 천국.
- 하이큐/232화 . . . . 10회 일치
* [[히나타 쇼요]]의 가방이 역에서 뒤바뀌었다. 다행히 핸드폰을 넣어둬서 바꿔간 당사자가 연락이 닿았다.
* 도쿄 체육관. 카라스노는 생각지도 못한 악재에 직면했다. 역에서 잠시 내려놨던 [[히나타 쇼요]]의 짐이 누군가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유명 브랜드의 체크무늬 가방인데 흔한 디자인이라 누군가 착각해서 가져간 모양이다. 원래 이건 히나타 동생 가방이지만 크고 튼튼해서 적당하다 싶어서 고른게 화근이었다.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우선 선수들을 데리고 코트로 내려간다. 이제 문제는 가방 쪽. 키요코가 직접 다녀오겠다고 나선다. [[야치 히토카]]가 그런 일이라면 자신이 하겟다고 하지만 키요코가 "달리기도 체력도 자신있다"고 하며 납득시킨다.[* [[하이큐/231화|전 회]]에서 히토카는 키요코가 육상부 출신이란걸 알았다.] 키요코는 자신은 금방 돌아오겠지만 혼자 있는 동안 불안할 거라며 히토카의 마음을 읽는다.
2시합이 끝나자 카라스노 고교가 코트로 올라간다.
* 그러는 사이 키요코는 무사히 당사자를 만나 가방을 수령해 돌아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시작했던 일. 자신이 사라지면 그저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 그러나 동료들이 있다. 자신의 일은 누군가가가 이어야 한다. 도맡아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만나게 된 히토카.
- 하이큐/233화 . . . . 10회 일치
* 츠바키하라 학원은 작년 [[시라토리자와]] 학원과 붙어서 1회전에서 참패한 적이 있다.
[[스가와라 코시]]는 긴장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손이 자꾸 식는다며 불평한다. 하지만 [[카게야마 토비오]]는 자신은 긴장이 안 되며 "여기는 통과점에 불과할 뿐"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인다. 스가와라는 얄밉다고 걷어찬다.
* [[츠바키하라 학원]] 측은 2년 연속 출전에 2년차 출전을 맞이했다. 작년 이들은 첫 출전 당시 [[시라토리자와]]와 격돌한 듯 한데, 그때가 첫 전국이었던 마루야마는 "정신차려보니 돌아가는 버스"였다며 같은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츠바키하라 측에선 이들이 시라토리자와를 꺾고 올라왔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주장인 [[에치고 사키에]]는 "시라토리자와랑 붙는게 나았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에치고는 경기 내용상 저들이 시라토리자와를 압도한 것도 아니며 세상엔 "우연"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바꾼다. 마루야마는 좀 팔랑귀인지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우시와카랑 안 붙게 돼서 럭키"라고 태세전환한다. 사실 주장인 에치고는 "이긴건 이긴 것"이니 만큼 카라스노의 실력을 얕보지 않는다. 단지 "작년의 반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격려한 것이다.
오오사도 감독도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올라온 이상 각지의 강호를 꺾고 올라온 학교들이다. 그리고 봄고에선 그런 강자들도 또다른 강자에게 쓰러지며 "이 회장에 먹히는 쪽"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 하이큐/238화 . . . . 10회 일치
* 점수가 세트 포인트에 이르자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핀치서버 [[히메카와 아오이]]를 투입하는데.
탄환처럼 내리 꽂히는 공격. 중계석에서 찬사가 쏟아진다. 이제 빠르기만이 아니라 그 "높이"도 주목받는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깔끔하게 스파이커의 최고 타점까지 공을 전달하고 히나타는 그 자리에 올 줄 "미리 알고" 공중에서 "기다리고" 있다. 츠바키하라도 대응하려고는 하지만 좀처럼 따라잡질 못한다.
점수는 20 대 18로 2점차. 여기서 츠바키하라가 두 번째 TO를 사용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적의 흐름을 끊고 자군 선수들을 격려하려고 하는데 TO에서도 선수들이 신경스는 건 마이너스 템포. 보고 반응은 할 수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늦어버린다.
* 관중석에서도 히나타의 속공이 인기만점. "10번은 공중에서 멈춘 것 같다"고 말해진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TO 때 스기와라가 말한 "후방 마이너스"가 뭐냐고 묻는다. 그건 스가와라가 붙인 괴짜속공의 새로운 이름. 스기와라는 괜찮은 이름 아니냐며 으시댄다. 카게야마는 별로 신경 안 쓰지만 히나타는 엄청나게 감동. [[니시노야 유]]는 뒤에 "썬더"더 붙이자고 제안하지만 그럼 니시노야의 필살기 같아진다며 거절 당한다.
카라스노가 승기를 잡는게 확연해지자 오오사도 감독도 고심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모습을 비춘 적이 없던 14번 선수에게 손짓을 하는데.
* 공방은 이어져 23 대 21로 세트 포인트가 다가온다. 카라스노는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서버 [[키노시타 히사시]]를 기용한다. 하지만 소심한 키노시타에겐 첫 전국대회 무대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 아군의 응원 속에서도 긴장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한다. 플레이가 개시되고 키노시타는 오로지 4번만 노리자는 일념으로 서브를 넣는다.
공은 정확히 노리던 자리로 향하지만 아깝게도 아웃이 된다. 다시 츠키시마와 교대해 벤치로 가면서 "4번 쪽으로 보내긴 했고 나치곤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엔 명백하게 분한 기색이 나타났고 우카이 코치가 노리는 것도 이런 효과였다. "욕심을 내게" 만드는 것.
* 아무튼 이토록 중요한 타이밍에 데뷔하게 된 이와무로. 같은 포지션이라 자연히 키노시타와 [[야마구치 타다시]]의 이목도 쏠린다. 그런데 둘은 이와무로의 얼굴을 보자 마자 한결 같은 반응을 하는데.
- 한준희 . . . . 10회 일치
| 경력 = 축구 웹진 사커라인 운영자
| 학력 =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축구]] 웹진 [[사커라인]] 운영자
* 헬로! 풋볼 팬즈 어워즈 베스트 해설자
* [[KBS 2TV]] : [[남자의 자격]]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현대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함중아 . . . . 10회 일치
* 1978년 03월 함중아와 양키스 《눈 감으면 / 안개속의 두 그림자》
*1980년 08월 함중아와 양키스 골든디럭스 2집 《조용한 이별 / 안개속의 두 그림자》
*1991년 05월 함중아와 무서운아이들 2집 《나는 의사 / 여자의 얼굴》
*2009년 09월 함중아 《어리석은 여자》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식]][[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현재현 . . . . 10회 일치
* '''출생''' 1949년 2월 12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자유시
* '''자녀''' 현정담 현승담 현경담 현행담
* 1998년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 2011년 Van Fleet상 수상. 현재현 회장은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며 한미FTA체결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한미간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 도입 등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2011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밴 플리트 상은 한미 우호증진과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받았고, 미국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대사, 헨리 키신저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이 수상했다.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태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 홍기(영부인) . . . . 10회 일치
[[충청북도]] [[충주시]] 출신이며, [[최규하]]의 아내이다. 영부인 중 유일하게 [[외자]]다.
할아버지가 한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웃어른으로부터 한문을 배우며 교양을 쌓았으나 정규 교육기관에는 다니지 않았다. 다만 남편인 최규하 전대통령이 주일대표부에 근무하던 8년간 일본어를 공부해 능숙하게 구사하였다고 하며, 주말레이시아 대사 부인으로 있을때 영어를 익혔다고 한다.
[[성균관]] 박사인 [[최규하]]의 할아버지인 최재민씨와 한학자인 홍기여사의 할아버지간 교류가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의 중매로 19살 되던 1935년에 연하의 최규하와 결혼하였다. 이후 남편 최규하가 도쿄고등사범학교와 만주 [[대동학원]]에 유학하던 시절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고 시가(媤家)인 [[강원도]] [[원주시]]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생활했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풍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화로 최규하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향후 영부인 활동 구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기여사가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보다 못한 청와대 관계자가 화제를 전환시켜 여사께서 청와대 김장을 직접 모두 담갔다고 소개하자, 그제서야 본인도 '김장 30포기를 직접 담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기자들도 화제를 돌려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TV나 보지요'라고 답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부인치고 너무 생각 없어 보일 수 있으나, 바로 앞 뒤 영부인이 좋든 나쁘든 워낙 말이 많았던지라, 상대적으로 (공무원 아내다운) 홍기 여사의 소박하고 다소곳하며 서민적인 분위기가 당시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으며 2004년 사망하여 고향에 안장되었다가, 2006년 남편인 [[최규하]]가 사망하자 남편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 합장되었다.[* 남편과 더불어 21세기에 사망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부부가 되었다. 후임대통령들의 영부인들은 2018년 현재 모두 생존.]
- 홍예서 . . . . 10회 일치
|형제자매 =
1987년 KBS 한국방송공사 TV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단역을 통하여 아역 연기자 첫 데뷔하였다.
* 《[[우리집에 사는 남자]]》 (2016년, KBS2)
* 《[[응급남녀]]》 (2014년, tvN) - 윤성자 역
* 《[[아내의 자격]]》 (2012년, JTBC) - 민해경 역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헌표 . . . . 10회 일치
[[2002년]] 공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에 포함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도 수록되었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김갑수 (법조인)|김갑수]]
|후임자 = [[홍범희]]
|전임자 = [[김장훈 (1903년)|김장훈]]
|후임자 = [[김홍식 (1909년)|김홍식]]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황부인전 . . . . 10회 일치
[[삼국지]]를 소재로 한 조선시대의 소설. [[제갈공명]]의 부인인 황부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황부인전은 활자본이며, 황처사전(黃處士傳)이라는 표제를 가진 필사본이 있다.
한나라 말기, 효령황제 시절 형주의 구월산에 황승언이라는 처사[* 필사본 황처사전에서는 헌제 때 황경은]가 살았다.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자식이 없다가, 늦게 딸을 낳았는데 용모가 추하고 16세가 되었으나 배필을 정하지 못했다.
제갈량은 운명에 따라 길에서 황소저가 타고 있는 교자를 만나고, 청혼을 하여 성례하게 된다. 하지만 혼례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갈량은 첫날밤에 신부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도망가려 하는데, 황부인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 옷이 찢어진다. 황부인이 옷을 꿰매줄 테니 꿰맨 옷을 입고 가라고 하여 옷을 꿰매게 된다. 바느질 하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바느질 한 옷이 [[천의무봉]]하여 감탄한다. 또 요기나 하고 가라고 해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을 만드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밥을 차린 것을 보니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라 감탄한다.
다시 제갈량이 떠나려고 하는데 문 밖에서 큰 범이 가로막는다. 황부인에게 구원을 바라자 범이 가만히 있어, 길을 떠나 수십리를 갔는데 돌아보니 여전히 황부인의 집 앞이었다. 모든 것이 부인의 신술임을 깨닫고 질책하였는데, 황부인이 슬퍼하며 간곡하게 바라자 제갈량은 가련히 여겨서 하룻밤을 더 묵고 가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나 황부인은 전생의 허물을 용서받아 선관에게 받은 환약을 먹고 경국지색의 미녀로 돌아온 것이다.
이 때, 유비 관우 장비가 서서를 군사로 등용하였는데, 조조가 서서의 어머니의 필적을 위조하여 서서를 데려온다. 서서는 떠나면서 제갈량을 천거하고 조조에게 가는데, 서서의 어머니는 위조편지에 속은 아들을 질책하고 아들의 의기가 꺽이는걸 염려하여 목을 메어 자살한다.
제갈량은 [[삼고초려]]를 받고 뜻을 꺽어 유비 휘하에 들어간다. 조조가 십만 대군을 보내서 신야에 주둔한 유비를 공격하자, 제갈량이 군사로서 계책을 세워 이를 막는다. 조조가 직접 신야를 공격하자, 유비가 신야를 버리고 번성으로 옮기는데 십수만의 백성이 유비를 따른다.
- 황제성(코미디언) . . . . 10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https://www.instagram.com/choeun0606/|박초은]] 슬하 1녀||
|| 종교 ||<(> [[개신교]][* 2016년 9월 13일 [[비밀독서단]] 39회에서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본인이 기독교 신자임을 밝혔다.] ||
[[MBC]] 희극인 중 가장 두각을 보이며 참신하고 진보적인 개그를 선보이던 그였다. 2014년 [[MBC]]에서 돌연 희극인들의 설자리를 올클리어 시킨 뒤 기억 속에 잊혀는 듯 했으나 [[푸른거탑 리턴즈]][* 대한민국 육군 장병(주로 병 위주)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에서 엘리트[* '''의식만 엄청난'''(...)] 소대장으로 열연하며 인지도를 널리 알렸다.
* 2013년 MBC <일자리 창조 프로젝트 드림헌터>
* 2010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 2008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남자신인상
* 2008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신인상 수상자 중 한 명이다.
* 2015년 8월에 오랫동안 연애를 하면서 [[코미디언]] 데뷔 동기이자 현재는 [[배우]]로 전향한 박초은과 [[결혼]]했다.[* 황제성을 본격적으로 뜨게 만들었던 [[그렇지요]] 코너에서 선생님 배역. 출연 당시 이름은 박성아였지만 후에 박초은으로 개명했다.]
[[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1982년 출생]][[분류:2007년 데뷔]][[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황지웅 . . . . 10회 일치
|로마자 표기= Hwang Ji-Woong
|현 소속팀=[[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
|클럽=[[대전 시티즌]]<br/ > → [[안산 무궁화 축구단|안산]] / [[아산 무궁화 축구단|아산 무궁화]] (군 복무) <br>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
'''황지웅'''([[1989년]] [[4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현재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3년 '''황명규'''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2012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여 리그 2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개막전 출전 후 시즌 말미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 다시 기회를 잡기 시작하여 11월 3일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한데 이어 6일 뒤 [[강원 FC]]를 상대로도 골을 성공시키며<ref>{{뉴스 인용 |제목 = 무명 황지웅, 대전 구세주로 |url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20029003 |출판사 = 서울신문 |저자 = 강신 |날짜 = 2013-11-20 }}</ref> 활약하였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하였다. 다만 [[K리그 챌린지 2014|2014 시즌]]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팀의 승격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 팀내 최장수잔류자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팀의 재강등을 막지 못했고, 2015 시즌을 끝으로 군 복무를 위해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FN 에르스탈 . . . . 9회 일치
1890년대에 소유권이 마우저 소총의 특허를 보유한 독일인들에게 넘어갔는데, 이때 [[자전거]]도 만들게 된다. 미국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미국 총기제작자 [[존 브라우닝]]과 관계를 쌓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벨기에 정부는 FN을 독일인들에게서 몰수, 벨기에 기업에 팔아넘긴다. 이때 쯤 FN은 총기와 자전거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30년대 대공황이 닥치며 자동차 사업은 군용차만 생산하는걸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FN도 독일 정부에게 징발당한다. 이 때 경영진들이 제작공구를 빼돌리는 등의 저항을 했다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가 되어 독일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까 싶자마자 독일군의 로켓병기로 보복폭격을 맞았다.
1960년대에는 자동차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땠다. 대신 엔진 제작사들의 엔진을 조립하는 항공우주분야에 손을 뻗쳤다.
- IncludeMacro . . . . 9회 일치
* 두번째 인자는 문서가 삽입되는 위치에 제목줄을 추가해주며, 세번째 인자는 추가될 제목줄의 레벨을 지정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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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 인자 ===
*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문자열 : {{{[a-z][a-z0-9_-]*}}} 예) foo, bar, foo_bar, foo-bar
* 인자 이름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인자이름은 숫자가 된다.
* `3` = 빈 문자열
- 가상 메모리 . . . . 9회 일치
가상 메모리 기능이 없는 OS는 메인 메모리를 그대로 물리적 어드레스에 따라서 액세스(읽고 쓰기)를 지원한다. 그래서 실제 존재하는 메모리 이상의 프로그램은 절대로 돌릴 수 없다. 실제로 DOS에서 메모리가 모자라면 일단 프로그램이 안 올라간다. 게다가 이게 좀 [[복불복]]스러워서 최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는데 잠깐 실행되다가 OS자체가 다운된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은행 순번표 같은 형식[* 이를 페이징(Paging)이라고 한다.]으로 각 메모리 공간마다 순번을 할당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돌려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메모리 공간을 초과한 프로그램을 올려도 '일단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또한, 메모리 단편화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이는 메모리를 일정한 단위로 쪼개어 쓰기 때문이다.
가상 메모리 기능이 있으면 실제 메모리 공간이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해도, OS는 당장 실행중이긴 하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가상 메모리 영역으로 내려보내고 지금 실행중인 프로그램은 실제 메모리 공간으로 올려보낸다. 이렇게 유연하게 사용자의 멀티 태스킹에 맞춰서 대응해주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저가 [[메모장]]을 쓰고 있다가 [[그림판]]과 [[계산기]]를 켠다. 그런데 3개의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돌리기에는 메모리가 부족한 상황. --미친 [[똥컴]]이군--
가상 메모리 기능이 없는 DOS는 이런 상황에서 그냥 그림판과 계산기를 올려주지 않거나, 그림판은 어떻게 돌아갔는데 계산기를 돌리려는 순간 최악의 경우 프로그램과 OS자체가 다운되는 암울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작업물은 사요나라--
윈도우즈는 어쩔 수 없이 그림판과 계산기만 메인 메모리에 올려놓고, 메모장은 가상 메모리로 내려보낸다. 얼마 있으니 계산기도 안쓰게 되서 가상 메모리로 내린다. 1시간 쯤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메모장을 켜고 그림판을 작업 표시줄에 내려놓으면 메모장이 메인 메모리에 올라오고, 그림판은 가상 메모리 영역으로 내려간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예시지만 간단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용자가 하드 디스크에 미리 설정된 가상 메모리 용량마저 초과할 정도로 어플리케이션을 돌려대면 가상 메모리로도 [[노답]]이다. 어떤 소프트웨어 기술도 없는 메모리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다.--얌전하게 리붓해라.--
한세경, 『뇌를 자극하는 프로그래밍 원리: CPU부터 OS까지』(서울: 한빛미디어, 2007).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9회 일치
* 당사자인 우마루는 "내가 게임만 하는 라이트한 오타쿠라고 오해받을 거다"라고 걱정한다.
* 봄바는 자기도 밤샘한 적이 있다며 심야 라디오를 듣던 시절 이야기를 한다.
* 카나우는 자기도 모르게 여동생 히카리의 야행성 습성도 털어놓으며 푸념을 하게 된다.
* 카나우도 자신감을 얻어서 오히려 봄바에게 일찍 사라져서 고맙다고 생각할 정도.
* 얘기를 나누던 중 카나우가 "너희 여동생은 그럴거 같지 않은 인상이었는데"라고 말하자 타이헤이가 그렇지도 않다고 답한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도는데 카나우는 이게 타이헤이가 자신을 의식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 타이헤이는 여동생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마루는 오해 당하면 어쩌냐고 법석을 떤다.
* 우마루는 카나우가 "게임만하는 라이트한 오덕"이라고 오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실제로 자기는 다양한 덕취미를 즐긴다고 강조한다.
타이헤이는 여동생이 저 모양인데도 "내가 놀아주지 못해서 그렇다"고 자책하고 있다.
- 경대수 . . . . 9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가족관계}}}''' ||<(> 배우자 안승화, 슬하 1남 1녀 ||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자신의 출신 지역인 괴산군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선거구로 편입되어 손해를 조금 보았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낙연 아들 군면제 관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장남이 미공개 질병으로 군을 면제 받았음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이후 본인의 아들이 [[간질]]로 군면제를 받고 간질에 대한 사회적 편견때문에 병명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네티즌들은 알리기 힘든 질병임은 이해하지만 정작 비슷한 처지의 이낙연의 아들에 대해선 왜 그런 태도를 보였냐며 질책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09 || [[2009년 재보궐선거|2009년 하반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진천/음성/괴산/증평)[* 전임자 [[김종률]] 피선거권 상실] || [[한나라당]] || 22,077 (29.64%) || 낙선 (2위) || ||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
- 고원희 . . . . 9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2012년 [[니모 (가수)|니모]] - 그런남자
| 일일극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 여자 신인상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11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제주 고씨]]
- 고주원(배우) . . . . 9회 일치
|| '''출생''' ||<(> [[1981년]] [[10월 16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삼무로) ||
* [[별난여자 별난남자]] - 장석현 역
* [[내 여자]] - 김현민 역
* [[달려라 장미]] - 황태자 역
|| 2005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신인연기상 || [[별난여자 별난남자]] ||
||<|2> 2006년 || 대한민국영상대전 || 연기자부문 포토제닉상 ||<|2> [[소문난 칠공주]] ||
- 광해군 . . . . 9회 일치
[[임진왜란]] 이전부터 대신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왜란 때에는 선조가 의주로 도망갔을 때 분조를 이끌고 평안도로 가서 병사들을 독려해서 당시 명군이나 대신들로부터 칭송받았다. 명이 몇 번 선조보고 "야 이제 슬슬 양위하지?"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이에 선조는 자신의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몇번 양위소동까지 일으켰을 정도.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이이첨과 정인홍 등의 [[대북]]을 중용했으며[* 다만 유희분과 박승종 등의 [[소북]]도 이 시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또한 반대로 정치적인 중용과는 별개로 이이첨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강성해가는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강홍립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동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다만 광해군 본인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대동법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다만 세자 시절에 겪었던 전쟁 때문에 PTSD가 걸렸는지 지나치게 많은 궁궐과 성을 쌓아 국고를 탕진시키기도 했으며, 이는 민생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고 현대 연구자들 역시 비판하는 요소이다. 왕권을 강화하는 방도로 한번 반역음모가 생기면 관계자들을 지나치게 국문하기도 했다.
- 규성 진씨 . . . . 9회 일치
* 원씨 : 원(袁), 원(轅), 원(爰) 등. 진나라의 공자 원도도의 자손이다. 특히 원(袁)은 이쪽이 기원이 된다. [[원소]], [[원술]], [[원새개]] 등의 인물이 있다.
* 공씨 : 공(孔). 진나라 대부 공녕의 자손.
* 하씨 : 하(夏). 진나라 대부 하징서의 자손.
춘추시대에 규성 진씨에서 규성 전씨가 분리된다. 진(陳) 나라의 공자 완(完)이 [[제나라]]로 망명하고, 제환공에게 중용되면서 전(田)씨가 시작되었다. 진씨가 전씨로 바뀐 까닭은 몇 가지 설이 있는데 (1) 진완이 전(田)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사기집해》, 응소] (2) 진(陳)과 정(田)이 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 《사기색은》, 사마정] (3) 진완이 본국의 이름을 쓰기를 꺼려했다.[* 《사기정의》, 장수절] 등이 있다.
전완 이후로 전씨는 제나라에 자리를 잡고 점차 제나라의 유력 씨족이 되었으며, 마침내 태공망의 후손인 강성(姜姓) 여씨(呂氏) 왕조를 단절시키고 제나라의 군주가 된다. 제왕 건은 다시 진씨로 복성하며, 제나라 왕실에서 왕씨가 일부 갈라져 나온다.
진나라가 망하자 [[초한전쟁]] 시기에 전씨 가문은 다시 제나라를 재건하려 했으나, [[항우]]의 공격을 받아 피폐해지고 [[유방]]의 부하 [[한신]]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만다.
[[손씨]](孫氏) 역시 전씨에서 갈라져 나오는데, 전완의 5대손이 군공을 세워 손씨(孫氏)를 하사받았고, 그 손자가 [[손자병법]]을 저술한 병법가 [[손무]](孫武)이다. 『신당서(新唐書)』「재상세계삼하(宰相世系三下)」에서는 손무의 아버지를 손빙(孫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손으로 삼국시대에 오나라를 세우는 [[손견]] 등이 있다.
- 김가은(1989년 5월) . . . . 9회 일치
|| [[2004년]] || 여선생 VS 여제자 || 단역 ||
|| [[2012년]] || [[용의자X]] || 석고 반 반장 ||
|| [[2018년]] || [[넷플릭스]] || [[YG전자]] || 김과장 ||
*2008년 KTF SHOW 쇼킹제휴팩 - 피노키오 편 [* 마지막 거짓말한 피노키오 코에 찔리는 여자친구역] [[https://youtu.be/Sc2xUsbPkZk|메이킹필름]]
* 2018년 1월 26일 프로필을 공개하며 실수로 전화번호도 같이 공개했다. 1시간 가량 혼란 상태이상에 빠졌으나 그 다음날까지 시청자의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응원문자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 2018년 1월 28일 저녁, 피자먹방을 하며 '나는 살을 찌우는 식단관리를 해야해' 라고 말했다.
* 2018년 2월 10일 결국 한 시청자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노출된 전화번호 때문이었다. 도착한 메시지는 카카오 게임 하트였다고 한다.
* 트위치 방송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김총무님]]으로
- 김기철 . . . . 9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정치인]], 관료이다.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충주군 청년연맹위원장, 대동청년단 충주군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동청년단]]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무소속 조대연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후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하여 자유당을 탈당하여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홍병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치러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이희승(1913)|이희승]]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중당(1965년)|민중당]]에 몸담았다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재건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다시 신민당에 몸담았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북도 충주군) || [[자유당]] || - || '''당선''' || ||
- 김보정 . . . . 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신대로)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김보정'''([[1988년]] [[12월 1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신대로)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김상희 (가수) . . . . 9회 일치
| 직업 = [[가수]], [[사회자|방송인]]
| 배우자 = 유훈근
'''김상희'''(金相姬, 본명 : 최순강(崔順江), [[1943년]] [[3월 29일]]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ref>김상희는 예명이고, 본명은 최순강이다.</ref>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1년]] 가수로 데뷔, [[1965년]]부터 활동하였다.<ref>처음 리사이틀 갖는 金相姬, 《경향신문》, 1970.1.17.</ref> [[1971년]] [[동양방송|TBC]] 가요대상,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부문, [[1977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을 부르며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의 학장 및 [[한국교통방송]]의 DJ로 활동 중이다.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주 최씨]]
- 김양 (1953년) . . . . 9회 일치
{{공직자 정보
| 배우자 = 이정희
| 자녀 = 김현(딸), 김용만(아들)
* [[2012년 6월]] : 이베스트투자증권 감사위원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백범 김구]]의 손자이며, [[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대한민국 건설교통부|건설교통부]] 장관·[[유신정우회]] [[국회의원]]과 [[중화민국|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대사]] 등을 지낸 [[김신 (1922년)|김신]]의 둘째 아들이고, [[김진 (1949년)|김진]]의 동생이기도 하다. 본관은 [[구 안동 김씨|안동]](安東)이다.
*** 사촌누나: 김효자(金孝子, [[1941년]] ~ )
|전임자 = [[김정복]]
|후임자 = [[박승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동 김씨 (구)]][[분류:김구 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장]][[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문국현]][[분류:창조한국당]][[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국방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김옥이 . . . . 9회 일치
| 기타 이력 = 숙명여자대학교 초빙교수 <br/> 한나라당 특임위원 <br/> 한나라당 행정위원 <br/> 한나라당 경기도 의회 의원 <br/> 한나라당 상임위원 <br /> 한나라당 국회의원 <br /> 새누리당 국회의원 <br/> 새누리당 전임위원 <br/>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br/> [[자유한국당]] 보훈행정위원
'''김옥이'''(金玉伊, [[1947년]] [[12월 2일]] ~ )는 여군 출신의 정치가이자, 준정부기관인이다.
* [[대구일중학교|대구일중학교(구.대구여자중학교)]] 졸업
* 대구여자고등학교 졸업
[[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일중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군 장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대한민국 육군 대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친이]][[분류:친박]]
- 김용준 (1904년) . . . . 9회 일치
'''김용준'''(金瑢俊, [[1904년]] [[2월 3일]] ~ [[1967년]] [[11월 3일]]?)은 [[한국]]의 [[화가]]이며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이다. 수필가로도 알려져 있다. 아호는 근원(近園)이다.
[[1928년]] 귀국한 후로는 [[서울특별시|서울]]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길진섭]]과 함께 [[목일회]]를 창립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작품 활동 뿐 아니라 미술사 연구와 미술 평론계에서도 선구자 격의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본래는 서양화가로 출발하였으나 목일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된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화]]의 기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 그린 말년의 작품들은 조선화가 대다수이다.
전통적인 모더니즘 계열에서 [[정지용]], [[이태준]]과 궤를 같이 하면서 광복 전·후로 좌익 예술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김용준의 월북 동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으로 [[국대안 파동]] 때 [[한국의 군정기|미 군정]]과 충돌해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김진항]]의 추대로 [[한국 전쟁]] 중 얼떨결에 학장이 되었다가 월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설과, [[공산주의자]]였던 부인의 권유로 함께 북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성혜랑]]이 [[2000년]]에 출간한 《등나무집》에서 자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ref>{{저널 인용
|issue=제16호}}</ref> [[성혜랑]]과 김용준은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1967년]] 김용준이 [[김일성]]의 사진이 들어 있는 신문을 그대로 밖에 버린 사실이 드러나 큰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자결했다는 것이다. [[성혜랑]]의 증언 외에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참고자료 ==
|저자=조영복
|장=김용준 - 자살과 초탈 사이에 선 예술가의 표정}}
- 김일엽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 [[롯데 자이언츠]] (2007년 ~ 2012년)
'''김일엽'''(金一燁<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321 |날짜=2009-03-10 }}</ref>, [[1979년]] [[11월 15일]] ~ )은 [[KBO 리그]] 전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다.
== 롯데 자이언츠 시절 ==
귀국 이후 수술을 반복하여 재활하였고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복무하던 중에 [[KBO 리그]] 복귀 유예 기간 규정이 지나 [[대한민국]]에서 활동이 가능해졌고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후 [[2007년]] [[1월 4일]]에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0278662 롯데, 마이너 리그 출신 김일엽과 계약] - 뉴시스</ref> 하였으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군에는 [[2008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2승 1패 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2009년]]에는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 7.36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KIA]]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하여 강판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210116 ‘데뷔 첫 그랜드 슬램’ 김현수 “만루포 처음이야!”], 《동아일보》 [[2009년]] [[6월 21일]]</ref> [[2012년]]에는 1군 1경기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량 실점하여 평균자책 40.50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9회 일치
* 바쿠고는 자신이 동경하던 올마이트가 하찮게 여겼던 미도리야를 선택하자 심한 충격을 받았다.
* 바쿠고는 무개성이었던 미도리야가 갑자기 웅영고에 입학하고 개성이 발현된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한다. 게다가 그 미도리야는 "남에게 물려받았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만들어서 내 힘으로 너를 뛰어넘겠다"같은 뜻모를 말을 했었다. 그러고도 미도리야는 계속 활약해서 위로 올라갔다. 기어코 바쿠고를 앞질러 임시면허까지 손에넣기에 이르렀다.
*미도리야는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한다. 바쿠고는 그저 감으로 찍은게 아니라 나름대로 추리를 했다. 올 포 원이 개성을 뺏거나 부여하는 것을 보았고 올마이트는 녀석과 면식이 있다. 개성을 이동시키는게 가능하며, 그 당사자와 올마이트와 연관돼 있고, 미도리야는 올마이트와 유사한 개성을 "받았다"고 한다. 또 올마이트와 만나서 미도리야가 바뀌었고, 그는 힘을 잃었다.
올마이트가 가정방문했을 때 간접적으로 묻기도 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미도리야에게 묻는 것이다. 미도리야도 대답하지 못하자 자신의 추리가 맞았음을 확신하고 욕지거리를 뱉는다. 미도리야는 엉겁결이지만 원 포 올의 비밀을 누설했던 것을 후회한다.
* 미도리야는 들어서 어쩔 거냐고 반문한다. 바쿠고는 이미 확신에 찬 상태다. 그는 자신도 올마이트를 동경했는데 계속 돌맹이라고 생각했던 미도리야가 모르는 사이에 올마이트에게 인정받았음을 한탄한다.
>싸우자. 지금 여기서.
* 생각지 못한 결론이 나오지 미도리야가 크게 당황한다. 그는 지금 싸워야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는데 바쿠고는 "네놈의 뭐가 올마이트를 움직였는지 확인해주겠다"며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만약 그의 동경이 더 올바른 거라면, 자신의 동경은 잘못됐던 거냐면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9회 일치
* 이리나카는 경찰의 입에서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이름이 나오자 격분, 상태가 급속이 나빠진다.
* [[서 나이트아이]]는 [[빌런 연합]]의 개입은 그 둘만이라고 상정하고 자물회 히어로 "록록"은 모진 말투로 일행을 질타해 추격을 속행시킨다.
* [[아이자와 쇼타]]는 오버홀을 무력화시키며 미도리야와 함께 그를 정리하려 했으나, 그때까지 빈사상태인줄 알았던 크로노가 공격하는 바람에 무산된다.
* 개성은 대상의 시간 조작, 긴 바늘에 찔린 대상의 시간이 느려진다. 미도리야와 아이자와를 동시에 노렸으나 아이자와가 미도리야를 감싸 아이자와만 당했다.
* 아이자와의 무력화가 유지되지 못하게 되자 오버홀은 지면을 재구성하는 공격으로 일행을 견제하면서 시간을 번다.
* 오버홀은 [[네모토 신]]을 희생시켜 그의 육체를 파괴, 자신의 육체와 뒤섞는 "융합" 형태가 되어 히어로 일행을 공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9회 일치
* 처음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깨달은 "에리". 에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미도리야 이즈쿠]]는 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접촉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관통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오버홀]] 치사키가 다시 한 번 흉수를 뻗쳐온다. 미도리야는 아직 공중이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그 순간 [[토오가타 밀리오]]가 물었던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던 물음이 떠오르고 "반드시 이기고 반드시 구하는 히어로"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 오버홀이 변화시킨 지면이 손가락처럼 뻗어오는 순간, 미도리야는 그것들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진다. 어리둥절해하는 오버홀 위로, 천장이 폭발하듯이 무너지고 미도리야는 어느새 지상으로,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있었다. 자신은 그저 오버홀의 공격을 차내려 했을 뿐인데, 힘 조절이 안 돼 여기까지 날아온 것. 그런 거라면 자신의 다리가 멀쩡할리 없다고 서둘러 확인해보는데.
* 한편 지하에서는 [[류큐]]가 드래곤 폼으로 일행을 지킨 덕에 사상자는 생기지 않았다. 오버홀은 쏟아지는 잔해에 휩쓸렸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몸을 재구성해 무사하다. 여전히 에리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며 의식을 잃은 "카츠카메 리키야"를 흡수해 다시 한 번, 이번엔 완전히 미도리야를 죽이려 든다.
* 류큐 팀은 오버홀을 저지해보려고 하지만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때 [[서 나이트아이]]는 류큐팀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고 이 다음 오버홀은 다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미도리야를 쫓아가 그를 죽일 거라고, 그런 미래를 "봤다"고 고백한다. 류큐팀은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나 나이트아이는 어차피 그녀들 몸으로는 무리라고 잠자코 있으라 말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크게 반발하며 "미래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갈하고 나이트아이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래를 비틀겠어"라던 [[올마이트]]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아스이 츠유]]에겐 근처에 있을 밀리오의 구조를 요청하고 류큐, 우라라카에겐 자신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 달라 부탁한다.
* 리키야를 흡수해 괴물이 된 오버홀. 그는 에리의 개성은 "되감기"이고, 쓰기에 따라선 인간을 "원숭이로 퇴행"시키는 것까지 가능하다 말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에리를 안고 있는건 매우 큰 위험. 종국엔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힘이며 그래서 "저주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오버홀은 그런 위험한 힘은 자신의 개성으로 "분해"해서 막을 수밖에 없다며 에리를 넘기라 종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9회 일치
* 최종적으로 학생 40명 중 15명이 의식불명의 중상, 11명의 중경상자, 1명의 행방불명. 무사한건 13명 뿐
* 메스컴에서 연일 비난하고 있고 기존 웅영의 방침인 "굴하지 않는 자세"도 관철할 수 없게 된다. 프로히어로에 대한 신임마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 웅영에서는 "내통자"가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하나 아직 단서는 없다
* [[올마이트]]는 제자를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분노한다.
* 한편 [[츠카우치 나오마사]]는 수사상황을 전하는데 [[다비]]로 추정되는 남자가 출입한 건물을 확인했다. 츠카우치는 극비사항이라며 토벌 작전에 힘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올마이트는 기꺼이 협력한다고 한다.
* 키리시마는 바쿠고를 구하러 가자고 한다
* [[이이다 텐야]]는 "그건 프로 히어로가 맡을 일"이라며 말리지만 키리시마는 "이대로 있으면 남자도 히어로도 아니게 된다"며 "아직 손이 닿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츠카우치가 배신자가 아닐까 하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츠카우치가 합숙처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근거가 약해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9회 일치
* 웅영고의 기자회견 장소에서는 기자들이 인정사정없이 돌직구를 던져대고 있다.
* 어떤 기자가 학생들에게 전투 허가를 내린 부분을 물고 늘어진다. [[아이자와 쇼타|아이자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린 조처"라고 답변하는데, "잡혀간 학생(바쿠고)한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 등 집요하게 도발한다.
* 아이자와는 원래 언론을 싫어하는 성미라 유도심문을 해대는 기자들에게 반발할 것 같았지만, 깨끗하게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인정한다.
* [[빌런 연합]]의 아지트에 있는 바쿠고는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이녀석들(빌런연합)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중요인물. 이녀석들 방침이 바뀌기 전에 두세 명 때려 죽이고 탈출하자."라고 결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9회 일치
* [[빌런 연합]]은 [[마그네]]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자력"을 발동, 자기를 기준으로 일정 범위 안의 남성에겐 S극을, 여자에겐 N극을 부여해 자석처럼 붙이거나 반발시키는 개성이다.
* 자력의 반발력으로 미도리야 일행을 추적하려 하나 그때까지 쓰러져 있던 마운틴 레이디가 기상, 빌런연합을 몸으로 막는다.
* 그는 올마이트를 미워하고 있다. 과거 자신의 동료를 몇 명이나 쓰러뜨리고 그 대가로 "평화의 상징"이라 불리운게 싫은 것이다.
* 올 포 원은 이 혼신의 정권에도 타격을 받지 않았는지, 태연하게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원 포 올 선대 계승자 시무라 나나에게서"라고 말하는데...
* 지금까지 암시만 됐던 선대 [[원 포 올]] 계승자에 대해서 밝혀졌다.
* 바쿠고는 탈환했지만 "배신자"의 존재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9회 일치
* 잡은 뇌무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고 애당초 제조공장 자체도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 그는 병상에서 일어나 자신 안의 원 포 올이 완전히 사라졌고 "평화의 상징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 츠카우치는 올 포 원의 폭로 자체를 의심하는데 사실 그랜토리노와 올마이트 모두 시무라 나나의 가족하고는 교류가 없었다.
* 그 충격으로 시무라는 자기 아이를 히어로 세계에서 멀리 떼어놓으려고 했고 어딘가로 양자로 보냈다.
* 이제 올마이트는 그를 빌런으로 볼 수 없는데다, 어쨌든 시라가키는 빌런. 수색은 자신과 츠카우치가 맡겠다고 한다.
* 탈환에 참가한 다섯은 반나절 뒤에 마을에 도착해 각자 귀가한다.
* 올마이트의 은퇴로 인데버는 자동적으로 No.1 히어로가 되지만, 그는 "이런 형태는 인정 못한다"고 화내고 있다.
* 자신이 옳은 판단을 했는지 의문을 느끼며 잠에 드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9회 일치
* 웅영고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검토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코자 학부모들을 만나기로 한다.
* 지로 쿄카의 집에 방문한 올마이트와 아이자와 쇼타(이레이저 헤드).
* 아이자와는 고개를 숙여가며 설득에 나서는데 그때 쿄카가 나타난다.
* 이동 중 아이자와는 "좀 더 비난 받을 줄 알았다"면서 올마이트에게 "한 잔 쏘겠다"며 그의 공으로 돌린다.
* 어머니는 바쿠고는 이럭저럭 능력이 있는 탓에 모두가 오냐오냐하며 자라온 셈이지만, 그건 겉치레에 불과했다고 한다.
* 하지만 아이자와가 사건 직후 회견하면서 "바쿠고는 누구보다 톱 히어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걸 틈이라고 생각한다면 빌런은 멍청한 것."이라고 말한 것에 크게 감명 받았다.
* 이번엔 올마이트가 아이자와에게 "한 잔 쏠까?"하고 공을 돌린다.
* 다음 행선지는 미도리야인데, 올마이트는 방문할 가정이 많이 남았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미도리야네로 향한다.
* 잔뜩 긴장한 채 올마이트를 맞이하는 미도리야 모자.
- 남명학파 . . . . 9회 일치
기본적으로 이들은 '실천으로 옮기지도 않으면서 이론으로만 떠드는 행위'를 굉장히 혐오했고, 이에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을 책으로 써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보다는 제자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것에 좀더 중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이들이 남긴 저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이들의 시초인 조식의 사상을 그의 애제자인 정인홍이 정리한 남명집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켜야될 '성'으로 보았고, 이것을 공성하려하는 잡념이나 악심들을 막는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학문적 특징때문에, 이들은 군사학 역시 해박하게 공부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시기 이들은 의병장으로써 크게 활약했다.
이들은 전술했듯이 이론만 왈가왈부하면서 정작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혐오했으며, 이때문에 조선 성리학 이론을 집대성하려한 퇴계 이황과 그의 학파와는 앙숙이었다.[* 조식은 이기론에 관한 논쟁을 '입만 나불댈줄 아는 유생놈들이 실천에는 신경쓰지 않고 이론가지고만 키배하는 짓'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이황은 조식을 두고 '오만해 중용이란것을 모르고, 노장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고, 이에 조식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천리를 논한다.'라고 그를 간점적으로 비꼬았을 정도였다.
이러한 논쟁은 둘모두가 죽고난뒤 조식의 제자인 정인홍이 이황과 그의 스승 이언적이 문묘에 모셔진것에 분개해 상소를 올리면서 더더욱 격화된다.
'''...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이 조식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이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상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이상소는 아마 자신의 스승을 깊이 존경했던 정인홍이 자신의 스승이 학문적으로 퇴계에 비해서 전혀 밀리지 않는데 오히려 그가 문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학문적으로 반대방향이었던 퇴계가 모셔진것에 불만을 품어 낸것이지만, 이로 인해 두학파의 사이는 거의 완전히 갈라졌다.
- 노재헌 . . . . 9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슬하 2남 1녀
|기타 이력 = [[민주자유당]] 상임위원 <br/>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 <br /> <br /> [[수원대학교]] 외래교수 <br /> [[강남대학교]] 외부강사
'''노재헌'''(盧載憲, [[1965년]] [[11월 3일]] ~ )은 [[노태우]] 前 대통령의 아들로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미국법자문사이다.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4년-1995년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
*2007년 법무법인바른 미국법 자문사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남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태우 가]][[분류:교하 노씨]]
- 닌자 거북이 . . . . 9회 일치
[[방사능]]에 의해 네마리 [[거북이]]들이 돌연변이화해 사람과 유사한 모습이 되고, [[닌자]]가 되어 악당들과 싸운다는 내용.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시리즈이며 국내에도 80년대의 애니메이션이 방영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애니메이션과 게임, 영화가 만들어졌다.
* 닌자 거북이들과 관련 인물들
거북이들의 리더. 푸른 안대를 쓴다. 무기는 쌍검. 리더이자 맞형이며 성실하다.
거북이들의 스승이자 사실상 양부.
하키마스크를 쓰고, 스포츠 용품으로 싸우는 자경단원.
풋클랜의 우두머리. 닌자 거북이의 대표적인 빌런. 금속제 가면을 쓰고 있다.
악당 과학자. 마우저라는 괴로봇을 만들었다.
풋클랜의 닌자.
* 토카&라자
- 단기선교 . . . . 9회 일치
[[기독교]]의 [[선교]] 활동 가운데 하나. 지원자를 모집하여 짧은 기간 동안 선교지에 투입되어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현실적으로, 단기선교는 말 그대로 '선교'로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선교라고 해도 기껏해야 방학이나 휴가 기간의 몇주 정도인데, 참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아마추어이고 선교 기간이 짧은 만큼, 실질적인 선교로서 효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 기존에 활동하던 단체를 지원하는 경우가 고작인데, 이것도 참가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단기에 그치므로 크게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짐이 안 되면 다행.
[[대한민국]] 교회의 단기해외선교 활동은 1989년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만 1990년대 중반까지 단기선교는 일반 참가자가 아닌 해외 선교사 육성을 위하여 선교사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체험여행에 가까운 형식으로 일반인을 모집하여 단기선교를 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이벤트 사업으로서 대형교회의 재정적 이유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기선교는 현실적으로 현지인에 대한 봉사 보다는 참가자를 위한 체험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기선교는 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배려 없이 마치 관광여행처럼 프로그램 되어 있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참가자들의 자질이나 현지 활동은 현실적으로 관광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관광'이 아닌 '선교'를 목적으로 하며, 관광사업에는 아마추어인 교회 조직이 선교를 추진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유명한 것으로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기선교에 나섰던 분당샘물교회 신도와 인솔자들이 [[탈레반]]에 납치당한 사건이 있다. 해당 일행은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으로 풀려났지만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 두명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되었다.
- 대군 . . . . 9회 일치
중국 중세에는 '''백만''' 정도는 되어야 대군으로 여겨진다. 이름하여 '''백만대군'''. 본래는 과장해서 자칭 백만대군 정도가 많았지만, 중국의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수나라-당나라 이후로는 진짜 백만 규모의 대군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근대에는 국가 총력전 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양차대전을 거쳐서 몇백만~몇천만 규모의 인구가 전투에 투입될 지경에 도달하였다. 역사상 최대의 대군이 투입된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현대전에서는 첨단 병기가 발전하고 총력전이 없어져 제한전에 국한되면서 군 인원 자체의 규모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창작물에서는 대군을 이끌고 가면 패배하는 [[클리셰]]가 있다.(…) 사실 대군으로 소수의 적을 이기는 것보다, 소수의 아군이 대군을 물리치는 것이 더 극적이기 때문에 이런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기본적으로 대군을 이루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숫자가 많은 쪽이 무조건 이기는건 재미 없으니까 창작물에서는 묘사가 적다. ~~[[도즐 자비|싸움은 숫자라고!!]]~~
[[조선왕조]]의 [[작위]]. [[태종]] [[이방원]] 시기에 만들어졌다. [[왕자]], 적손에게 주어진다. 적손이 아닐 경우에는 그냥 군(君).[* 이 '군'이라는 칭호는 그 외에 반정으로 폐출된 왕에게도 붙여진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왕좌를 빼앗긴 뒤 '노산군'으로 격하당한 [[단종]] 등이 그 예.]
외교문서에서 '일본국 대군(日本國 大君)'이라는 칭호를 썼다. 이는 명목상의 왕인 '[[덴노]]'와 실권자인 '쇼군'이 따로 존재하는 일본 정치의 특수성을 외부에 얼버무리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술책이다. 어떻게보면 [[외왕내제]]의 일종.
덴노가 있다는 것은 외부에서도 왠만큼 다 알고 있지만, 덴노에게 실권이 없다는 것도 알만큼 다 알고 있었으므로, "자칭 일본 황제라는 놈이 있대. 근데 이름만 그럴 뿐이지 걔가 다스리는건 아냐."하는 수준으로 인식되고 외부에서는 쇼군이 진짜 통치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 디도(성우) . . . . 9회 일치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바리스타]] ~~[[바리스타몬]]~~ 자격증을 소지했다고 한다.
2014년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정재헌이 처음 시작했던 릴레이 라인과는 별개의 릴레이 라인을 시작했으며, 다음 타자로는 [[이동훈(성우)|이동훈]]과 [[백경훈]], 그리고 자신와 이름이 비슷한(...) 영국 팝 가수 [[다이도]]를 지목했는데 백경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불참의 뜻을 밝혔다.
[[김자연]] 성우가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인해 [[티나(클로저스)|티나]] 배역을 하차한 후 김자연을 위로하는 트윗을 올렸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adio_actor&no=288586&page=5|#]] 하지만, 옹호가 아닌 위로글이기만 해서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 [[도라에몽]] 극장판 [[노비타와 날개의 용자들|진구와 날개의 용사들]] - 크로우
* [[해적전대 고카이저|파워레인저 캡틴포스]] - 유괴범, [[제라싯트|젤라시트]], [[도몬]](타임 옐로), [[아키라(광전대 마스크맨)|박태환(블루 마스크)]][* 비디오판은 [[최수민]]. 선배 성우인 최수민이 똑같이 소화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어 이 인물을 맡았다.], [[구성주의 브라지라]](극장판)[* TV판 [[천장전대 고세이저|파워레인저 미라클포스]]는 선배 [[임하진]]. 성우의 자격 정지 전부터 이 인물을 맡고 있다.]
- 디펜더 2 . . . . 9회 일치
터치한 곳을 향해 [[석궁]]으로 화살을 발사한다. 화면을 누르고 있으면 자동으로 계속 발사하니 손 아프게 계속 두드릴 필요는 없다.
자원은 골드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골드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전투 후의 보상으로 받는다. 보석은 전투 후의 보상으로만 받으며(스테이지 모드에서는 2개, 대전에서는 1개), 업그레이드와 MP 회복에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보석을 쓸 곳은 많은데 비해 얻기는 어려우니 MP 회복보다는 기술 업그레이드용으로 쓰는 것이 훨씬 낫다.
스테이지 모드(단일)와 대결 모드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대결 모드가 플레이어가 사망할때까지 끝나지 않는 무한 전투다. 상대방은 랜덤으로 매치되며 1:1이다. 오래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데, 상대방이 죽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진 않으며 자신이 사망할때까지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우측 상단의 화면으로 상대방의 현황을 볼 수 있으며 몬스터의 출현패턴은 양쪽 다 동일하다. 승리시 살아남은 시간에 비례하는 골드와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며 패배해도 경험치나 골드는 받을 수 있지만(죽인 몬스터 수당 1씩 받는다.) 보석은 받지 못하므로 주의.
덧붙여 상대와 자신의 스펙(정확히 어떤 조건인지는 [[추가바람]])에 따라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3분 이상 버티기가 상당히 힘들다.
스테이지 모드에서 10의 배수 스테이지가 될 때마다 각 웨이브의 마지막에 보스가 등장한다. 보스가 나오는 스테이지에서는 클리어시 보석 3개를 준다. 보스의 패턴을 끊으려면 마법을 명중시켜야 하니 되도록 MP를 아끼도록 하자.
* 힘(스트렝스) - 화살의 기본 대미지 증가. 205레벨이 최고 레벨이다.[* 최고레벨까지 업그레이드 해도 다음 레벨의 증가치가 보여지는데, 그 이유는 활 자체의 업그레이드가 적용될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다.]
* 호성용암 - 성 앞쪽에 용암으로 된 해자를 판다. 용암에 들어간 적은 불이 붙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보석으로 용암의 범위를 늘릴 수 있다. 3레벨이 최고 레벨이다.
* 경십자궁 - 처음부터 주어진 무기.
* 수호자 - 스테이지를 일정 수 이상 클리어하면 획득. 솔로 플레이 시의 경험치량이 많아진다.
- 마기/299화 . . . . 9회 일치
* 노예제를 없애자는 얘기는 셰헤라자드 시절부터 나오던 얘기지만, 워낙에 뿌리깊은 제도나 수십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티토스의 열정적인 웅변으로 노예제도 폐지에 성공한다.
* 뢰엠은 국제연합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는 뢰엠 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 뢰엠은 황제국이었지만, 그 황제는 의회에서 선출해 와서 실질적인 공화정 체제였다. 최근 완전한 왕정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
* 그 우두머리는 "네르바 율리우스 칼루데아스". 전 황제의 아들로 자신을 황태자라 내세우며 국제연맹을 타도하고 왕정을 복고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 그 하늘을 나는 거대한 섬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알리바바의 이름을 부른다.
* 그 곁에는 연백룡, 모르지아나로 추정되는 그림자도 있다.
- 마기/305화 . . . . 9회 일치
* 알라딘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후대의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자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며 알라딘도 "마기"로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냐고 말한다.
* 알라딘은 다시 "운명은 그 자체로 있어야지 누가 조종해선 안 되는 것"이라며 "과거 일 일라가 운명의 고삐를 쥐었지만 솔로몬 왕이 그것을 빼앗아 조각냈다."고 말한다.
* 그러자 신드바드는 흥분하며 "솔로몬왕은 무책임하다"고 반박한다.
* 그 결과가 증오와 전쟁으로 너덜너덜한 세상이라며 유일한 왕이란 필수불가결한데 솔로몬은 무책임하게 굴었고, 자신은 도망치지 않겠다며 의지를 피력한다.
* 알라딘은 "아저씨가 틀리지 않았다는 보장이 어디있냐? 불행이 찾아온 날은 없었냐"고 하는데, 신드바드는 자신있게 "있다"고 말한다.
* 백룡은 자간의 힘으로 모르지아나와 알라딘을 피신 시키고 홀로 아르바와 맞선다.
아저씨 혼자서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틀리고 괴로워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다들 전진할 수만 있다면 됐잖아! ||
- 알라딘. 자신이 겪은 모든 괴로움은 "성공을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는 신드바드에게. 달편으로 일관하던 신드바드도 여기에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 마기/312화 . . . . 9회 일치
* 알라딘은 아르바를 압도하고 제압, "연금마법"으로 백영의 육체를 아르바의 자식이 아닌 새로운 육체로 치환시켜 아르바의 정신을 쫓아낸다.
* 그것은 "제 7형 마법." 물리법칙 자체를 조종하며 손짓 하나로 모든 힘의 법칙을 좌지우지한다.
* 지금까지 방어만 하던 알라딘은 주변에 있는 자갈 따위를 "조르프 루일라"로 날려 보낸다.
* 이 마법으로 가속된 자갈이 알 사멘 마도사들의 몸을 산산히 부수고 이들은 인형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 그녀는 "솔로몬의 오만을 영원히 간하겠다"고 맹세하는데 알라딘은 솔로몬은 죽었고 솔로몬이 만든 세상이라 해서 솔로몬 자신이나 아르바의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 연금마법은 물질을 미립자 레벨에서 재구성하거나 치환하는 초고등 마법.
* 아르바는 자기 아이의 몸만 조종할 수 있으므로 완전히 다른 인체라면 손쓸 수 없다.
* 백룡과 알라딘은 이에 안도하지만 알라딘이 백영의 가슴을 성추행하려고 하자 제지당한다.
* 가슴을 만지는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않은듯(..) 백영의 가슴을 성추행하려고 하자 백룡이 견제한다.
- 마기/323화 . . . . 9회 일치
* 이것이 자기 꿈의 결말임을 깨달은 신드바드는 마지막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루프로 돌아가고 육신은 재만 남는다.
* 우고는 애당초 모든 금속기를 만든건 자신이며 신드바드는 단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라 평한다.
* 신드바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행복을 놓지 않겠다고 절규하듯이 외친다.
* 우고는 경악하고 다윗은 "성궁의 수호자"는 자신이 맡겠다며 우고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 검은 루프가 우고를 휘감으면서 우고는 자신의 의지를 잃고 검게 물든다.
* 그는 자신이 신이 되었다고 선언하며 전지전능한 힘을 얻었다고 선포한다.
- 마기/326화 . . . . 9회 일치
* 천산산맥 상공. 알라딘과 유난이 세계의 구멍을 조사하고 있다. 수상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보기에는 구멍이 확장된 흔적만 있을 뿐, 구체적인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유난은 구멍 자체는 제대로 막혀있고 일 일라가 내려올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 그러다 문득 유난이 잠시 의식을 놓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곧 아무렇지 않다고 알라딘을 안심시킨다. 알라딘은 부상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유난은 자기는 일단 은신처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알라딘도 황제국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조사는 종료.
* 듣고 있던 쥬다르는 자기는 그런 위화감 못 느꼈다고 빈정거리다 연백룡에게 "넌 마법사가 맞긴 하냐"고 디스 당한다. 알리바바는 매그노슈타르 때 같은 이변은 없다는걸 재확인하고 일단 안심한다. 그런데 연홍옥이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알리바바가 말을 걸자 홍옥은 국제동맹을 이탈한 문제로 아직도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파장이 예상한 것 이상이라서 과연 잘한 짓인지, 앞으로 어찌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여러 사람과 토론해서 결정한 일이고 뢰엠과 귀왜국도 동조해준 걸 들어서 자신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쥬다르는 그런 홍옥이 칠칠맞지 못하다며 역시 황제는 백룡이 돼야했다고 투덜거리다 나가버린다.
* 아무튼 세계의 구멍에 대해선 아직도 의심을 지울 수 없는데, 알리바바가 근처에 국제동맹의 본부가 있으니 신드바드에게 연락해보자고 한다. 그런데 신드바드가 정말로 연락을 받는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처럼 상회에서 눈코 뜰 새없이 일하는 중. 알리바바가 낙뢰에 대해서 보고받은게 없냐고 묻자 그런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의 결혼 건을 언급하며 "아무리 바빠도 거기엔 꼭 참석할 거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가 청한 적도 없는데 보호자로서 스피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일전에 알리바바가 "난 신드바드씨의 아들 격"이라고 말했던걸 되갚아준 것이다. 알리바바는 바르카크에게 변명하게 생겼다고 웃으면서 넘긴다.
- 마더콘 . . . . 9회 일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과도하게 강한 것을 나타낸다. 젊은 남자가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처음 나타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1965년대에 이미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1973년에 현대 용어 기초 지식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어머니 애착증"이라고 밖에 언급되저 잇지 않다. 1970년의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 사자에상의 작가)의 4컷 만화에서는 효도를 하는 것이 마더콘으로 여겨진다는 풍자 소재가 있다.
1992년 TBS에서 방송한 드라마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의 등장인물 카츠라다 후유히코(桂田 冬彦, 연기자는 사노 시로우佐野史郎)가 세간이 기피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마더콘 남자를 묘사했다. 이 드라마 때문에 21세기 까지 "후유히코 씨"라는 은어가 마더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다.
일본에서는 한국 남자는 마더콘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진 모양이다.[참조]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라는 드라마는 29세 여성 니시다 미와(西田美和, 연기자는 카쿠 치카코賀来千香子)가 도쿄 대학교 출신 엘리트 은행원 카츠라다 후유히코와 맞선 결혼을 하지만, 같은 시기에 옛 남자친구인 오오이와(大岩)와 재회하여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그다지 마더콘 설정이 아니었으며, 1화에서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고 지적이고 상냥한 좋은 사람으로 감기에 걸린 미와를 배려하여 샐러드와 죽을 만들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미와와 오오이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카나코(加奈子)와 후유히코가 재혼 후에 낳은 소년 마리오(麻里夫)이 성장하여 사랑을 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참고로 사노 시로우는 마리오 역도 맡았으며 이 작품에서는 진성 스토커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9회 일치
스타팅 1성 캐릭을 받아 팀을 편성 -> 초보자도 환영하는 길드(얼라이언스)에 가입 -> PvE시나리오 진행 -> 시나리오 보상으로 주는 2성캐릭을 수집하여 2성캐릭으로 서서히 팀 교체. 이 과정에서 얻는 히어로 포인트는 모두 창고를 키우는데 사용한다. -> 적당히 2성캐릭 만렙(94렙)을 한두개 만들었으면 슬슬 PvP나 이벤트를 참여한다. 2성캐릭은 꽤 안정적으로 얻을수 있으며 3성캐릭도 간간이 얻을수 있다. -> 인벤이 모자라면 사용하지 않는 1/2성 캐릭은 정리하나, 데드풀 일퀘를 위해 2성 1팀, 1성 1캐릭은 남기도록 하자. 소과금을 한다면 이 시기에 창고를 팍 늘려놓으면 좋다. ->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3성/4성 캐릭을 모은다.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후하게 퍼주는 편이지만 (보통 주력으로 삼게되는 3성캐릭의 드랍률이 실버카드로 대략 5%, 골드카드로 25%정도이다. 4성은 골드카드 기준 약 3%) 카드를 한장만 얻어서는 제역할을 하기 힘들고, 최소 3장, 실질적으로는 10장이상 중복으로 얻어야 제대로된 활약을 할수 있다. 이 게임은 각 히어로 카드가 3개의 스킬카드로 드랍되며, 각각의 스킬카드를 중복으로 얻어 스킬레벨을 향상시켜야 스킬 위력도 상승하고 히어로의 레벨도 올릴수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한두명의 만렙 히어로를 구성하려면 상당히 많은 카드를 뜯어야하며, 이동안 온갖 잡스런 히어로를 얻게 되어 인벤이 폭발하게 된다.
일정 이상 3성/4성 캐릭을 보유하게 되면 의외로 이들을 추가로 얻는것 자체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특히 데드풀 일퀘로 확정적으로 특정 3성 카드를 얻을수 있게되었기도 하고.. 그러나 스킬레벨을 올리고 레벨 상한선을 올려도 실제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ISO라는 게임내 화폐가 필요한데, 3성 히어로를 만렙까지 올리는데에 히어로 한명당 대략 10만 가까운 ISO가 필요하다. 각종 일퀘나 이벤트를 수행하면 하루에 3천정도는 얻을수 있으나, 이러한 획득속도보다 보유 히어로의 ISO요구치가 더 빠르게 올라간다.. 따라서 ISO를 생기는대로 투입하기 보다는 어느정도 모아두고 있다가 이벤트시 버프를 받는 캐릭위주로 레벨을 올려주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소비이다.
이 게임은 따로 피로도 게이지 같은 것은 없으나, 히어로들은 전투시 소모된 체력이 바로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매 전투시 피해를 적게 입도록 해야 최대한 많은 전투를 수행할수 있으며, 전투시 회복스킬을 사용해도 소위 트루힐링이라고 불리는 몇몇 회복기를 제외하고는 임시체력만 부여받고 전투가 종료되면 회복스킬로 얻은 체력은 증발한다. 따라서 전투를 일정이상 수행하고 너덜너덜해진 히어로를 빠르게 회복시키려면 헬스팩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여 체력을 채워주게 되는데, PvE에서는 그럭저럭 모자라지 않게 운용할수 있는 반면 상대점수 경쟁제인 PvP이벤트에서는 상당히 모자라게 된다. 헬스팩 갯수가 5개 미만이면 헬스팩도 천천히 충전되지만 본격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면 헬스팩의 부족을 곧잘 느끼게 되며 이는 트루힐링 캐릭으로의 쏠림현상을 만들었다.
* 게임내 이벤트는 크게 2가지가 있으며, 보상도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이벤트는 크게 PvP이벤트와 PvE이벤트로 나뉜다. PvP이벤트는 각자 구성한 팀으로 플레이어간 경쟁을 하는 이벤트이다. 허나 실시간으로 직접대결하는것이 아닌, 방어측은 컴퓨터가 운용하여 다소 공격측이 유리하게 되어있다. PvE 이벤트는 사용자가 보유한 캐릭터 레벨에 비례하여 적의 레벨이 올라가며, 전투를 하면서 짤막한 시나리오를 알게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 맥닐의 법칙 . . . . 9회 일치
한 지역에서는 특별히 영향력을 가지지 않던 질병이, 인구의 이동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다른 지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현상. [[미국]]의 역사학자 맥닐이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맥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이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대항해시대]]이다. 수천년 동안 교류가 거의 없던 구대륙 유라시아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생물학적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1518년, 스페인 이주민이 퍼트린 [[천연두]]가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절반을 살해한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본토에도 상륙하여 1530년대부터 팜파스에서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초토화시킨다. 16세기 멕시코에서는 천연두로만 1800만명이 사망, 의학사가들은 이 시기에 천연두 사망자를 8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무렵 1999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500년대의 인구는 약 5억명으로 추산되므로, 천연두가 세계 인구의 1/5을 죽인 것이다(…).
1529년에는 [[홍역]]이 쿠바에서 들어왔으며, 천연두에서 생존한 주민의 2/3를 죽인다. 홍역은 온두라스와 멕시코를 거쳐, [[잉카 제국]]까지 전염된다. 볼거리,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인플루엔자, 디프테리아, 성홍열 등의 질병이 뒤따랐다. 최악의 추측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90%가 소멸했으며 많은 공동체가 '전멸'하여 파괴된다.
유럽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선전했고, 원주민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타락한 생활을 한 데 따른 징벌이라고 주장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신이 질병 앞에 무력하고 가호를 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치자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언제나 정복자 측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정복자들이 낯선 땅에서 역병에 시달려서 피해를 입고 퇴각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에볼라]] 같은 질병은 군사적, 의학적으로 우수했던 서구 사회에도 역시 큰 피해를 입히고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다.--아프리카의 피해가 더 크긴 한데--
- 박근영 (야구인) . . . . 9회 일치
'''박근영'''(朴根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3년]] [[8월 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소속 [[심판 (스포츠)|심판]]이다.
[[2011년]] [[6월 8일]] [[한화 이글스]] 대 [[LG 트윈스]] 경기에서 박근영 심판이 주심으로 경기를 진행하였다. 9회초 2아웃 주자 3루로 5:6으로 LG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3루 주자가 [[홈스틸]]을 시도하자 당황한 [[투수]] [[임찬규]]는 홈에 송구하여 주자를 아웃시켜 경기를 종료시켰으나 이는 [[보크]]에 해당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보크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근영은 9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는다.
[[2012년]] [[10월 6일]] [[롯데 자이언츠]] 대 [[SK 와이번스]] 경기에선 [[박정권]]이 2루로 [[도루]]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2루심 박근영은 공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웃'을 선언하였다. 박근영은 다시 정정하여 '세이프'를 선언했지만, [[박정권]]은 태그 아웃 처리가 되면서 오심 논란이 재개되었다.
[[2015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9회초 2사 3루 한화 이글스의 공격 상황에서 타자 [[김회성]]이 친 3루 땅볼을 3루수 [[박석민]]이 잡아 홈으로 송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자 [[강경학]]의 발이 홈을 먼저 태그했음에도 아웃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015년]] [[5월 31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말 2사 1루, 3루의 [[LG 트윈스]] 공격 상황에서 4번 타자 [[잭 한나한]]이 3볼 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헛스윙을 하지 않은 것을 스윙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 박윤경(가수) . . . . 9회 일치
| 배우자 = 윤여민
| '''도도한 여자'''
박윤경은 [[1970년]] [[8월 28일]]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모친 [[심영진]]과 친분이 두터웠던 작곡가 [[임종수]]와의 만남으로 4년간 연습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고 그 다음해 [[1990년]]에 제4회 M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하여 가창상과 대상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1991년]]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1996년]] 3집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4집을 거쳐 [[1999년]]에 5집 음반을 발표하였다. 그 음반의 타이틀곡이자 신나는 성향의 트로트곡〈두리두리〉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박윤경은 또 한번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2002년]], 6집 앨범까지 히트시키며 트로트 가수의 맥을 이어나갔다.
끊임없이 꾸준히 활동해오다가 지난 [[2006년]] [[7월 21일]]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당시 박윤경은 암이 많이 전이돼 4시간에 걸쳐 위의 80%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약 3개월 간 휴식을 갖게 되었다. [[2008년]] [[3월 3일]]에 8집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가수로 복직하였다. 8집 타이틀곡〈1,2,3,4〉는 [[추가열]]이 작곡, 작사한 곡으로 한 여성이 일생에 단 한번 만난 사랑에서 느낀 행복을 노래한 내용이다. 최근에는 5년 3개월 만에 9집 앨범《도도한 여자》로 컴백하였다.
*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졸업
* [[2013년]] 9집 - 도도한 여자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분류:군산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대학교 동문]][[분류: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동문]]
- 박정근 (법조인) . . . . 9회 일치
1984년 7월 21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 4월 27일에 연인인 카바레 종업원에게서 사업자금 145만원을 빌렸다가 빚 독촉을 받게 되자 소요산으로 유인해 15미터 바위 아래로 떨어트려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심리 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된 사건에서 "소요산으로 유인해 가는 것을 산 입구에서 보았다는 증인들의 진술만 가지고 강도살인했다는 것에는 잘못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4월 27일자</ref> 8월 8일에 덕성여대 유신숙 살해한 이상균에 대해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환송된 사건을 맡아 강간치사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3년 8월 8일자</ref> 1974년 2월 22일에 고려대학교 NH회를 중심으로 민우지를 발간하여 내란음모를 했다는 사건 항소심에서 김낙중 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게 항소를 기각하면서 징역7년 자격정지7년에서 징역1년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하고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을 선고받은 피고인 2명에게는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4년 2월 22일자</ref>
- 박진옥 . . . . 9회 일치
|| 지도자 || 제주중학교[* 2018년부터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었다.] 코치 (2018~) ||
[[경희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 2005 [[K리그]] 자유선발로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박진옥 선수의 킥력과 수비 센스를 눈여겨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의 수비 전술에서도 항상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2005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였다.
2013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자유 계약(FA) 신분으로 팀 동료인 [[윤원일]], 오봉진과 함께 전격적으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3136080|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대전 시티즌 입단 후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으나 팀의 [[K리그 챌린지]] 강등을 막지 못하였다.
2016 시즌을 마무리로 [[용인시청 축구단]]이 해체되자 2017 시즌부터 [[K3리그]] 소속 클럽인 [[FC 의정부]]에 입단하였으며 '''주장'''으로 선임되어 1년간 활약하고 '''현역 은퇴'''를 하였다.
=== 지도자 경력 ===
현역 은퇴 후 2018년부터 제주중학교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같은 해에 제주중학교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어 '''제주 유나이티드 산하 U-15 팀으로 지정'''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 박홍우 . . . . 9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식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박지원]]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전고등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던 2015년 9월 15일 "법원에서 검찰의 자의적인 불기소처분으로 국민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적극 인용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박홍우 대전고등법원장이 "공감한다"고 하면서 "대전고등법원의 경우 2014년 2.7% 2015년 2.77%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 피의자 및 피고인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6)
* 연차유급휴가권, 재판자료 제39집: 근로관계소송상의 제문제(상), 법원행정처 (1987)
* 재산권 제한의 법리와 그 적용한계, 재판자료 제77집: 헌법문제와 재판(하), 법원도서관 (1997)
* 정리채권 등의 신고·조사·확정에 있어서의 문제점, 재판자료 제86집: 회사정리법·화의법상의 제문제, 법원도서관 (2000)
* 환경권의 법적 성질, 재판자료 제94집: 환경법의 제문제(상), 법원도서관 (2002)
* 공판중심주의적 심리진행 방법, 재판자료 제104집 : 바람직한 민·형사소송 실무운영방안, 법원도서관 (2004)
- 방실이 . . . . 9회 일치
||<#00AAB5> '''{{{#FFFFFF 별자리}}}''' || [[전갈자리]] ||
*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6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리더였던 방실이는 1집 트로트곡《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남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2년 뒤 발표한 3집 〈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 몇 년 뒤 같은 팀원이던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자 서울 시스터즈는 공식 해체되었고 방실이는 데뷔 4년만인 1990년에 솔로로 전향하였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방실이의 솔로 데뷔곡이자 방실이의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탱고〉는 탱고리듬으로 된 가요였다는 점과 그룹 활동 때 갈고 닦은 그녀의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낯선 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한 넋두리를 부질없는 세상사에 연관지어 관조하듯 표현해 특히 중장년층과 기성세대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2집 앨범 〈여자의 마음〉도 유행하여 다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방실이는 1994년에 사업가인 김연국과 결혼하고 한동안 잠정 은퇴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소속사 때문에 강제로 했다고 한다. 당시의 남편은 [[일본인]]이었다고...] 그러던 1997년, 선행 연예인으로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 있다.
* 그 후 2000년에 [[가수]]로 복귀하였고 2003년 발표한 트로트 《뭐야 뭐야》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인가요 분야에서 상위권을 석권하였다. 이 [[노래]]는 전 세대에 널리 알려져 노래방 애창곡으로도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빠른 박자와 댄스 리듬의 트로트 〈아! 사루비아〉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방실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약간의 댄스 비트와 발라드, 블루스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개성있는 창법과 출중한 [[가창력]],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을 섭렵하며 인기를 확보한 실력 있는 가수로 거듭났다. 또한 그녀는 데뷔 때부터 거구한 체중과 단발머리를 주로 선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로 자신의 이미테이션 가수들(밤실이, 방쉬리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 베이식 (가수) . . . . 9회 일치
| 배우자 = 유서연
'''베이식'''(Basick, {{본명|이철주}}, [[1986년]] [[8월 12일]] ~ )은 [[이노베이터]]와 같은 [[더블 트러블]] 멤버이자 힙합 가수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廣州)]]로 베이식은 2007년 2월부터 리드머 스튜디오를 통해 처음 가사를 쓰고 랩을 시작해 꾸준히 활동하다, [[2007년]] 여름 Z-juc 의 앨범을 통해 데뷔를 했다. [[DJ Soulscape]] 창작과 비트 Rap Competition 에서 2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ref>[http://www.openmic.co.kr/bbs/bbs/viewbody.html?code=bbs_3&category=61&page=1&sort=1&number=210813&keyfield=&key= DJ Soulscape 랩컴피티션 발표]</ref>, 2007년 11월, 크루 [[Jiggy Fellaz]]에 영입되었다. [[이노베이터]]와 함께 [[더블 트러블]]을 결성했다. Jiggy Fellaz의 Vasco가 설립한 Independent Record로 거처를 옮겼지만 Vasco의 이혼으로 레이블이 와해되며 현재 [[RBW]]와 계약을 맺었다.
* 《[[Show Me The Money 4]]》 (2015년, [[Mnet]]) - 참가자 (우승)
*2008년 [[Swings]] 믹스테입 《#1》의 <달리자> 참여
*2009년 Verbal Jint - 달리자(Feat. Swings & Basick)/마취중진담
*2009년 비 프리 - All I know(Feat. Basick)/자유의 뮤직
[[분류:남자 래퍼]][[분류:Show Me The Money 참가자]][[분류: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승자]]
- 불심자 . . . . 9회 일치
수상한 사람, 괴한이라는 뜻. 일반적으로 방범 분야에서 쓰인다. [[일본]]의 경우, [[경찰]]과 [[소방서]], [[지자체]] 등에서 이러한 불심자 정보를 수집하여 [[E메일]] 등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서비스가 있다.
불심(不審)이란 확실하지 않아, 수상스럽게 느껴지는 점이 있는 상황을 뜻한다. 방범 분야에서 말하는 불심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을 뜻한다.
2001년,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이 일어났고, 여기에 대한 대응으로 2002년 [[문부과학성]]이 위기관리 매뉴얼을 발행했는데, 여기에서 '불심자'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쓰였다고 한다.
본래 2002년에 문부과학성에서 만들어진 매뉴얼에서 '불심자'는 '침입자'를 뜻하는 말로 쓰였지만, 이후에는 '잠재적 범죄자'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심자에 대한 과도한 경계가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과도하게 조성하여, 지역 커뮤니티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 참고자료 ==
- 블랙 클로버/123화 . . . . 9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하룻밤을 공들인 함정마법을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깨끗히 지워버리자 노발대발한다.
* 아스타는 넉살좋게 웃으며 "그러니 새 작전을 생각해달라"며 자신과 잭스, 그리고 [[미모사 버밀리온]] 모두의 협력으로 이기길 원한다고 항변한다.
* 잭스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을 "조라"라고 불렀던 사람, 마법기사단과 동료를 믿었던 형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스타의 요구를 수락한다.
* 한편 C팀의 [[네르슈 버밀리온]]은 자신의 마법을 삭제한 아스타에 치를 떠는데 [[매그너 스윙]]은 "하층민을 얕보지 말란 얘기"라며 후배의 선전에 기뻐한다.
* 그 말에 매그너도 하층민인걸 눈치챈 네르슈가 질색을 하며 혼자 아스타를 처치하겠다고 선언, 적진으로 돌격한다. 매그너도 그럼 자신도 맘대로 하겠다 하는데.
* 네르슈가 급습해 오자 아스타는 함정 마법을 설치한 곳으로 유인하는데, 마력감지로 눈치챈 네르슈가 간단히 무력화, 그대로 돌진하나 갑자기 시야가 뒤집힌다.
* 아스타는 반마법의 검을 십자로 교차해 함정에 빠진 네르슈에게 처박는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9회 일치
* 비장의 기술을 꺼낸 [[랜길스 보드]]. 공교롭게도 형 [[핀랄 룰러케이트]]이 구사하는 구체형태의 공간마법과 유사한 형태였다. 하지만 한 번에 만들어내는 구체의 숫자가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 흉흉한 기운을 드러내며 공격을 태세를 취한다. 그런데 핀랄 또한 그 기술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랄도 사실 구체의 공간마법을 다수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핀랄은 "어머니는 다르지만 역시 우리는 형제"라며 이대로 두면 랜길스가 랜길스가 아닌 무언가가 될지 모른다며 승부에 나선다.
* 형 대 동생. 공간마법과 공간마법의 격돌. 같은 타입의 기술이 부딪히며 강렬한 후폭풍이 지나간다. 그러나 승부는 한 순간. 승자는 랜길스였다. 크리스탈이 무너지고 핀랄은 벌집처럼 구멍이 나서 쓰러진다. 경기 끝. 랜길스의 G팀이 승리했다. 형을 그런 꼴로 만들어 놓고도 랜길스는 "당신이 날 이길리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 핀랄은 몰랐지만 보드가의 모두 사람이 랜길스를 지지했던건 아니다. 고용인들 사이에선 재능은 뒤쳐져도 상냥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핀랄을 높이 평가하는 여론도 있었다. 랜길스는 그걸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도 형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피네스" 양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식을 떨쳐낼 수도 없던 것이, 누구보다 자신이 핀랄을 상냥한 형이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핀랄은 부모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랜길스를 챙겨주는 좋은 형이었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랜길스를 더욱 자극했고 비뚫어지게 만들어 "내가 우수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므로 무엇 하나 형에게 져선 안 된다"는 아집을 키우고 말았다.
* 핀랄이 치료를 받는 사이, 아스타가 랜길스에게 말했다. 키텐에서 마주쳤을 때도 핀랄은 랜길스를 탓하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랜길스는 본래 상냥한 성격인데 자신의 존재로 인해 압박을 받아 날카로운 성격이 된거라고 자신을 탓했다. 아스타는 그 일을 밝히며 "누구보다 상냥한 핀랄 선배야 말로 진짜 마법기사고 랜길스는 아무리 강해도 진정한 마법기사가 아니다"고 단언한다.
마법제가 냉담하게 내뱉자 랜길스는 그나마 억누르고 있던 호전성을 폭발시킨다. "그 자식", 핀랄과 함께 있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아스타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아스타도 피차 일반.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으르렁거린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9회 일치
* 베토는 양보받을 생각은 없고 여기있는 자들을 모두 절망시키고 유린해서 빼앗겠다고 선언한다.
* 야미는 놀이는 끝이라며 자신도 참전하려고 한다.
* 야미는 대신관에게 부탁해 자신의 말을 신전 전체에 전파한다.
* 백야의 마안과 베토가 침입했음을 알리고 자신은 갈 수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해보라고 전달한다.
* 시간은 무제한. 클리어 조건은 "백야의 마안을 쓰러뜨릴 것". 클리어에 기여한 자는 무엇이든 들어준다.
* 한편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을 해치웠다고 생각한 베토는 이동하려 하는데
* 야미는 각자 알아서 격파하라고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전력이 안 되는 인물이 너무 많다.
* 핀랄을 여전히 의욕이 없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듯 하며 바네사는 그 사이에 술을 더 마셨는지 상태가 좋지 않다. 챠미는 여전히 자는 중. 그레이는 마법의 속성 상 전투에 유리하지 않을 거 같다.
- 블랙 클로버/76화 . . . . 9회 일치
* 유노가 나타나자 키텐의 시민들은 금색의 여명을 칭송하며 환호한다.
* 라가스는 백성의 신망이 두터워보인다며 "백성과 너 자신 모두 지켜봐라"라며 천둥마법을 사용한다.
* 그의 점액에 닿은 자는 마력을 쥐어짜여 약화된다. 현지의 기사단들은 이 마법에 걸려 이미 여럿이 당했다.
* 공간마법의 랜길스. 핀랄 룰러케이트의 동생이자 가문을 이은 엘리트다.
* 그리모어가 펼쳐져 있고 덩쿨이 자라고 있는 걸 보고 마법을 준비 중이라고 짐작하는데.
* 로터스는 곧장 팔휘장에게 보고하지만 각자 전투에 정신이 팔려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 "때는 무르 익었다"는 말과 함께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삽시간에 마을을 뒤덮으며 자란다.
* 나무는 자라면서 다이아몬드 왕국의 마법사들을 휘감아 삼켜버린다.
- 비니 고그니티 . . . . 9회 일치
[[뉴욕]]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 펀치넬로 패밀리의 간부로 매우 예민한 성격을 지닌 찌질이. 맥스는 그를 " 매우 흥분한 정력가 토끼같다,"[* like an overamped energizer bunny]고 평했다. 사업을 벌일만한 머리는 있으나 그걸 유지할 배짱은 없기에 빠르게 실패하며, 그로 인해 생긴 좌절감을 미성년자 마약 중독자나 콜걸을 통해 해소한다.
작중 등장하는 만화/애니메이션인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팬이다. 그의 집 안에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굿즈가 널려있다. 이불도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이불이고, 전화 자동응답기 안내문도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오프닝곡으로 시작한다. 굿즈를 총으로 쏘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희귀한 수집품에 뭘 하는거냐며 화를 낸다. 이것 때문에 부하들의 뒷담화 거리가 되기도 한다.
잠복경찰이라는걸 들킨 맥스가 펀치넬로 마피아를 족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듣자 꼴랑 경찰 한명을 못잡냐며 짜증을 낸다.
맥스가 루피노의 위치를 알기 위해 그를 찾아가자,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며 맥스를 쏘지만 오히려 맥스가 쏜 총에 배를 맞고 도망친다. 달리는 지하철 위로 뛰어내리면서 까지 도망치다가 코너에 몰리자 데저트이글을 들고 맥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맥스에게 패해 쓰러지고, 협박당해 루피노의 위치를 말한다.
맥스가 자기를 죽일 줄 알았던 비니는 체포해달라고 애원하지만, 맥스는 그를 살려둔 채 루피노에게 간다.
[[블라디미르 렘]]이 개장을 준비하던 식당 "보드카"를 습격하며 등장. [[스쿼키 청소회사]] 사건으로 블라드를 찾아왔다가 총격전에 휘말린 맥스를 보고 기겁하며 부하를 보낸다. 부하들이 전부 당하자 블라드를 죽이는걸 포기하고 도망친다. 블라드는 비니가 불법 총기매매사업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처리하고 있다며 그가 스퀴키 청소 회사를 부리는 흑막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맥스의 악몽에 나오는 TV 속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블라드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 기회를 얻는다.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에 관한 문제들을 맞추면 인형탈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해주겠다는 것. 비니는 첫번째 문제인 "캡틴 베이스볼배트 보이의 덩치 큰 악역은 누구인가?"의 답인 "맥스웰의 악마"를 맞춰 폭탄 반쪽을 해체받지만, 두번째 문제인 "현실에서 맥스웰의 악마를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인가?"를 틀려 폭발한다. 비니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작가인 새미 워터스라고 대답했지만 정답은 "맥스웰의 악마"라는 사고실험을 만들어낸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이었다.
- 서영무 . . . . 9회 일치
'''서영무'''(徐永武, [[1934년]] [[5월 18일]] ~ [[1987년]] [[5월 26일]])은 전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삼성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구에 1급 차량 정비공장을 차려 운영하였다. [[1984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은 조건으로 스카웃하여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게 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는 이에 맞서 그 해 [[4월 13일]] 서영무를 자문역 역할인 관리 이사로 영입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을 맡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OB]]의 이사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1984년]] [[5월 11일]] OB와 삼성의 대구 경기를 앞두고 원정 숙소였던 [[수성관광호텔]]에서 선수들의 방을 정하던 도중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식물인간이 되었고, 긴 투병 끝에 [[1987년]] [[5월 26일]] 오전 7시 5분,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경북고등학교|경북고]] 출신의 명 선수인 [[이선희 (야구인)|이선희]], [[황규봉]], [[배대웅]], [[조창수]], [[임신근]], [[강문길]] 등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에 '''대구 야구의 대부'''라고 불리며, 엄격한 훈련과 함께 선수들의 책임과 품위를 철저히 강조한 감독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99354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⑩‘대부’의 쓸쓸한 퇴장, 원년 감독 서영무] - 매일신문</ref>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이충남]]
- 성격 . . . . 9회 일치
창작물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로 올수록 사건이 자연의 변화가 아닌 인물간의 상호작용(주로 대립과 분쟁)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캐릭터가 확고할수록 줄거리를 풀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가 부정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며, 장르에 따라 등장인물들에게 주로 권장(?)되는 성격이 달라진다.
||<:>세상의 소금||<:>수호자||<:>예언자||<:>과학자||
||<:>백과사전||<:>성인군자||<:>잔다르크||<:>아이디어뱅크||
||<:>사업가||<:>친선도모||<:>언변능숙||<:>지도자||
자세한 것은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C%84%B1%EA%B2%A9-%EC%9C%A0%ED%98%95|16Personalities]]를 참고. 단 마이어스-브릭스 검사도 인간의 성격을 16가지로 단정할 수 없다고 비판을 받는데다, 해당 사이트는 이해를 위해 더욱 간략히 작성되어 있으므로 주의할 것.
로버트 플러치크(Robert Flutchik)에 의하면 8가지 기본적인 감정이 있고 그 정도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나뉜다. 자세한 것은 [[https://en.wikipedia.org/wiki/Contrasting_and_categorization_of_emotions|여기]]를 참고. 굵게 쓴 글씨가 기본 감정.
또한 위의 8가지 기본 감정들이 3단계에 걸쳐 간격이 달라질수록 24가지로 달라진다고도 표현했다. 원문(영어)은 각각 단어가 다르지만 번역상 똑같아진 부분들이 있으니, 자세한 것은 위의 링크를 참고.
- 성역 도시 . . . . 9회 일치
성역 도시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들에게 차별 없이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방 이민국의 단속으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한 지자체이다.
성역 도시로 선포되면, 불심 검문이나 기습 단속을 통한 불체자 체포가 금지되어, 불체자들은 추방 염려 없이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젊은이들은 무료 공립대학 같은 공공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본래 미국의 교회에서 1980년대 내전을 피하여 미국으로 피난 왔던 중남미 불법체류자들을 추방 위기에서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6년 11월, 불법 체류자 추방을 공약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미국의 여러 대도시들이 성역 도시 선언을 시작했다. 14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뉴욕]](New York), [[시애틀]](Seattle),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가 성역 도시임을 발표했으며, 14일에는 [[시카고]](Chicago)가 참가했다.
시애틀의 에드 머리 [[시장]]은, “오늘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강제수용 이후 미국 이민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이라면서, 트럼프의 반헌법적 행정명령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시애틀시의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주장, 킹 카운티의 다우 콘스탄틴 수석행정관은 “킹 카운티는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음지로 몰아넣지 않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을 것”, “다른 여러 지자체들과 함께 불법체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대응장치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http://ny.koreatimes.com/article/20170126/1036862 (참조)]]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9회 일치
캣 그랜트는 이메일이 해킹당해서 많은 사생활이 폭로된다. 카라와 윈, 제임스는 그 대응에 분주한다. 아스트라의 부하이자 남편인 라오는 카라에 대하여 아스트라에게 경고를 날린다.
카라는 아스트라와의 과거를 떠올리며 고뇌한다. 자식이 없었던 아스트라는 카라를 매우 아꼈었다.
윈은 더크 암스트롱의 컴퓨터 데이터를 해킹할 방법을 준비한다. 윈이 더크의 스포츠카가 불에 탄다는 가자 정보를 내보내고, 카라가 경계하는 동안 제임스가 직접 들어가서 컴퓨터에 해킹 디바이스를 설치한다. 생각보다 설치에 시간이 더 걸려서 더크가 돌아오자 제임스는 더크에게 캣이 쫓겨날 때를 대비하여 미리 아부하는 척 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감옥에 갇힌 아스트라는 카라를 만나고 싶어하여 카라가 면담을 하게된다. 아스트라는 카라에게 클립톤의 메시지 기계를 보여준다. 아스트라는 알루라와 논쟁을 했던 것을 알려주는데, 그녀는 자신이 클립톤을 종말에서 구하려고 했고 알루라가 카라를 아스트라를 체포하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카라가 아스트라가 신뢰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카라의 메시지로 아스트라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윈은 메일에서 그랜트가 매달 돈을 보내고 있는 아담 포스터라는 남성이 있다고 알려준다. 카라가 물어보자 아담 포스터는 그랜트의 장남으로 숨겨진 아들이었다. 그랜트는 아담을 걱정하여 캣코에서 물러나려고 결심한다.
그랜트는 물러나려는 기자 회견을 준비하는데, 아슬아슬하게 윈과 제임스, 루시가 더크가 해킹을 주도했던 자료를 준비해온다. 모든 것이 탄로난 더크는 체포되어 가버리고 그랜트는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제임스는 윈에게 그가 카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사과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9회 일치
알렉스는 행크가 없어진 상황이라 DEO의 임시 리더로서 움직인다. 카라는 감옥에 갇혀있던 아스트라와 대화를 나누지만 성과가 없다. 넌은 DEO에 통신을 보내서 아스트라와 행크를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 때 군인들과 난입한 레인 장군이 대통령으로부터 DEO의 권한을 받아서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자신이 슈퍼걸이라는걸 부정하지만, 그랜트는 카라가 슈퍼걸이라는걸 의심하길 멈추지 않고, 카라는 좀처럼 말을 돌리지 못한다.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와 대화를 한다.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에게 크립토나이트 자백제를 주사하여 기지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다. 카라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막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카라와 알렉스는 아스트라에게 자백제를 주사하여 얻은 정보로 군부대를 따라서 행크를 찾는 작전에 참가하지만, 넌이 파둔 함정이었으며 폭탄이 터져서 다수의 희생자가 나온다. 카라는 알렉스와 몇몇 군인들만 구하는데 성공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자신이 슈퍼걸임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랜트가 자신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주었다는걸 밝히면서 직장을 포기할 순 없다고 고백한다. 카라는 결국 그만두겠다고 밝히고 나온다. 카라는 제임스가 다친 것을 보고 윈과 제임스가 맥스웰 로드에게 접근했다가 다친걸 알게 되어 격노한다. 분노하며 나가려는 카라를 윈이 가로막으면서 이렇게 하면 아스트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설득한다. 카라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좌절감을 드러낸다. 제임스의 위로를 받는다.
카라는 아스트라를 찾아간다. 카라는 아스트라에게 선함을 되살려 보라고 말하고, 아스트라는 알루라가 자신을 종신형에 처할 때 알루라 역시 아스트라처럼 클립톤이 종말을 맞을 것을 알았지만, 아스트라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법정에서 공정함을 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9회 일치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가 패배하고, 프랑코 독재정부가 세워지자 스페인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한 제2공화국의 주요 인사들이 국외로 탈출하여 세워진 [[망명정부]].
1939년 공화국이 패배하자, 당시 대통령 마누엘 아사냐, 총리 후안 네그린 등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프랑스]]로 피신했고, 많은 공화파 망명자도 프랑스, 멕시코 등 같은 스페인 계열 중남미 국가로 피신하였다.
1940년,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프랑스를 점령했다. 나치는 프랑코 정부와 같은 파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를 지원하여 공화국을 무너뜨린 세력이었다. 당연히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에서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는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서유럽에 망명하고 있던 많은 공화파 망명자는 정치범이 되어 나치 독일에 끌려가 수용소에 갇히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망명정부는 곧바로 [[멕시코]]에서 재건되었다. 이 당시 멕시코는 좌파 정당인 제도혁명당의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스페인과 같이 스페인어가 주로 쓰이는 멕시코에는 다수의 공화파 망명자가 있었고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를 여전히 합법적인 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또 전쟁 중에 총리 후안 네그린은 [[영국]]의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런던에는 나치 독일의 유럽 점령 때문에 이 같은 망명정부가 많이 생겨나서 정말 망명정부 천지였다.
1945년, 유럽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의 길을 걸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보게 되자 공화파 망명자들은 굉장히 기뻐하였는데, 연합국의 승리에 따라서 프랑코 정부가 무너지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시즘 세력에 점령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해방되었고, 나치 독일과 동맹하던 파시즘 정권은 패망하는 나치 독일과 함께 붕괴하였다. 스페인과 같은 처지가 되었던 망명정부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동유럽 지역은 소련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공산화 된 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지속했고,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게릴라가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귀환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페인 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 정권은 전쟁 중에 독일에 의용군을 보내는 등 상당히 친나치 성향을 보이고 있었으나, 명목상은 [[중립국]]이었고 전쟁 말미에는 의용군을 귀국조치 시키며 망해가는 히틀러와 거리를 두었고 연합국과는 협상을 벌였다. 결국 연합국은 스페인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은 전후에도 계속 파시즘 체계를 유지될 수 있었다. 희망이 좌절되자 공화파 망명자와 망명정부는 매우 낙담하였다.
- 식극의 소마/160화 . . . . 9회 일치
쿠로키바 료의 승리를 앞세워 아리스는 아자미 총수에게 할 말을 한다.
* 아자미는 패배한 쿠스노키 렌타로에게 "전부 이기라고 했다"며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 에리나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는데 "걱정하는 거냐"고 묻자 얼버무린다
* 잇시키는 에리나를 탈출시킨 것도 아리스고, 아름다운 우정이 아니냐고 하는데 에리나는 "심한 짓을 많이 해버려서 그쪽에서 우정이라고 여겨줄지 모르겠다"고 자신없어 한다
* 아자미는 "내 딸을 데리고 나간 걸로 모자라 이런 언동을 하는건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데, 아리나는 태연하게 "알바 아니다"라고 쏘아붙인다
* 아리스는 "당신이 저지른 짓을 잊을 수 없다" 면서 회상하는데, 어렸을 적 아리스는 에리나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냈지만 아자미가 중간에서 가로채 찢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 아자미는 잠자코 물러가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쿠스노키를 불러들인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9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가 자신있게 내놓은 메뉴는 "계란 튀김 덮밥"
* 에리나 조차도 생소한 음식인데다 내용물이 흰지가 살짝 굳고 노른자가 반숙 상태인 이상적인 상태라 놀라워한다.
* 소마는 간단하지만 맛있는 음식이라고 자신만만하다.
* 소마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에리나는 이깟 아이디어 요리는 자신의 혀를 만족시킬 수 없다며 고자세를 취한다.
* 소마는 그건 냉동을 통해 노른자의 농후함이 농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계란을 냉동시키면 젤리처럼 탱글하고 쫄깃한 식감이 되고 노른자는 감칠맛이 강해지는 것.
* 에리나는 왜 굳이 달걀을 선택했냐고 하는데, 소마는 "네가 처음 제시한 재료가 달걀"이었다며, 자신들의 인연을 매듭 짓기에 딱 맞는 요리가 아니냐고 답한다.
- 식극의 소마/180화 . . . . 9회 일치
* 에리나는 이번 회에는 배신자 군단과 분리, 린도가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시험을 설명한다는 명목으로 데리고 간다.
* 타도코고로와 알디니도 린도가 따로 설명해준다며 끌고 가버리고 소마는 혼자 남는다.
* 당일 사용할 고기는 도지마 측에서 최상의 상태로 준비하며 그외에 필요한 것은 각자 조달하는 것으로 한다.
* 하야마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는 못하겠지?"라고 도발하자 소마는 "리벤지 매치는 나로서도 환영"이라며 식극에 응한다.
* 도지마는 자신은 중립이라고 말하지만 시오미 세미나가 학원 안에 존재하지 않는건 사실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 소마는 갑자기 바뀐 세력 구도 때문에 갈팡질팡한다. 에이잔이나 나키리가 여전히 십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아우성.
* 소마는 자리를 옮겨서 곰고기를 직접 요리하며 시험한다.
* 소마는 곰고기 자체의 맛을 알기 위해 가볍게 소금구이로 조리하는데, 조리과정에서는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9회 일치
* 메기시마는 그녀가 "파워 플레이"로 대량의 고추를 호쾌하게 조리할 거라 예측, 거기에 맞서기 위해 자신도 대량의 고추를 준비하고 페이스트로 만든다.
* [[유키히라 소마]]를 비롯한 반역자 후배들은 드디어 그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사실 1라운드에서도 기회는 있었지만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격전에 주목하는 사이 볼 것도 없이 끝나있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는 어떤 라면을 보게될지를 놓고 고조된다.
* 그렇게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결정된 메기시마의 2라운드 작품은... '''아프리칸 라면'''. 소마,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자신들이 들은게 맞는지 의심하며 서로 확인해 보지만 틀림없이 "아프리칸 라면"이라 말했다. 그게 대체 뭔가? 아프리카에 라면이 있긴 한가? 하긴 적인 린도는 악어가 주재료다. 이래서야 악어와 코끼리가 자웅을 겨루는 동물의 왕국스런 장면 밖에 연상되지 않는다.
* 후배들의 빈궁한 상상력은 심사의원들이 책임진다.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고추와 아프리카라는 키워드를 조합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라면을 창작할 생각"이라고 추측한다. 메구미가 어떤 요리가 될지 알거 같냐고 묻는데, 그들을 대신해 책임자인 [[안(식극의 소마)|안]]이 나서는데... 형편없이 비틀거린다. 주정을 부린다고 하는게 맞겠다. 헤롱거리면서 쓸데없이 "알려주길 바라냐"며 성가시게 군다. 샤름이 아까 마신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심사의원 주제에 술에 터무니없이 약하다. 다행히 안은 특수체질이라 취할 수록 미각과 신경이 예민해져 심사에는 영향이 없다고... 고 이스트와르가 주장한다. 영 말같지 않은 소리라 소마가 쉽게 믿지 않는다
* 이번엔 린도의 차례다. 손질된 악어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자르고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서 전분을 발라 기름에 튀겼다. 린도는 이때 중화 철냄비로 튀겨내는데 [[쿠가 테루노리]]를 들먹이며 "중화냄비를 쓰는건 쿠가의 특기를 뺏어가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고 너스레를 떤다. 좌우간 진짜 주목할 부분은 이 다음이다. 린도는 악어고기를 처리한 뒤 대량의 고추를 그대로 철냄비에 쏟아붓는다. 저 둘은 매운 맛 내기 경쟁이라도 하는 걸까?
* 소마가 아직 멤버를 모집하고 있던 시점. 제일 먼저 연락이 닿은건 [[잇시키 사토시]]였다. 소마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무리라는 건 알지만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하려는데, 잇시키는 벌써 홋카이도에 와있다며 대답할 필요도 없는 문제로 취급한다.
애초에 그 셋이 작당해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이다. 그는 [[나키리 아자미]] 총수를 낚는 작전이 잘 됐다며 웃는다. 다음으로 연락한 멤버는 쿠가. 이쪽도 잇시키가 손을 써뒀다. 진작부터 잇시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던 그는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이 [[미마사카 스바루]]였다. 이쪽은 잇시키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소마에게 개인적인 빚이 있다고 승락한다. 전화를 받은 시점부터 바로 십걸 타도를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개시.
* 이렇게 모든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얻은 소마와 메구미는 바로 다음 "대어"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게 메기시마였다. 헌데 행운의 쾌진격은 거기서 끝이었다.
- 신기준 . . . . 9회 일치
* 《[[화정 (드라마)|화정]]》 (MBC, 2015년) - 어린 소현세자 역
* 《[[마법 천자문 (드라마)|마법 천자문]]》 (KBS2, 2014년) - 손오공 역
* 《[[남한산성 (영화)|남한산성]]》 (2017년) - [[소현세자]] 역
* 《[[살인자의 기억법]]》 (2017년) - 소년 김병수 역
[[분류:200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담양군 출신 인물]]
- 신동일 (언어학자) . . . . 9회 일치
|직업= 응용언어학자, 교육언어학자, 대학교수
|배우자=
|자녀=
'''신동일'''(申東一, [[1967년]] [[1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응용언어학자]]이다.
호주 ISLPR (International Scale of Language Proficiency Rating, Griffith University, Australia), 영국 ELT and Assessment International Seminar (British Council, UK), Cambridge ESOL YLE (Young Learners of English) Examiner, 미국 ACTFL (American Council of Teachers of Foreign Languages, University of Pennsyvania, USA) 기관 등에서 영어평가 전문가 및 채점자/면접관 훈련 과정을 200시간 이상 이수했다.
숙명여자대학교의 MATE(Multimedia Assisted Test of English), [[YBM-Sisa]]의 [[SEPT]](Spoken Engish Proficiency Test), 크레듀가 참여한 [[OPIc]] (Oral Proficiency Interview computer), 교통부의 Pilot & Air Traffic Controller 대상 영어말하기능력인증평가, 교육부의 국가영어인증시험 등과 같은 학교, 기업, 국가 단위의 다양한 언어시험 개발/시행, 말하기/쓰기교육 콘텐츠개발에 관한 (책임)연구에 참여했다. 2000-2007년에 한국영어평가학회 총무로 일했고, 2007-2009년 동안은 비영리교육단체인 ACTFL((American Councils on the Teaching of Foreign Languages) 한국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2000년]]-[[2005년]])를 거쳐, 2005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8년에 신동일영어평가연구소를 창업해서 영어과 진단교육 콘텐츠를 학교 밖에서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일에 참여했다. 2013년부터 2016년 까지는 [[중앙대학교]]에서 [[BK21 PLUS]] 스토리텔러 교육공동체 사업단장을 맡았다.
[[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신현탁(영화배우) . . . . 9회 일치
* 2015년 《여자전쟁 -떠도는 눈》- 불여우 84 역
* 2006년 《[[구타유발자들]]》- 원룡 역
* 2004년 《[[나두야 간다]]》- 자해 공갈 3역
* 2015년 TV조선 & tvN 《[[위대한 이야기]] - 이산가족 이야기 (TV조선) / 놓지 말자 정신줄 (tvN)》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평산 신씨]][[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9회 일치
* 아기발도는 본명은 불명하며 한 왜구의 장수에 대해서 고려인들이 붙인 별명으로, 아기는 '아이'라는 뜻으로 적이 [[소년]]이라는 것을 뜻하며, 발도는 몽골어 '바토르'를 음차한 것인데 '용사'라는 의미가 있다.[* 고려 말에는 몽골의 영향으로 몽골어가 사회에서 흔히 쓰였다. 바토르라는 말은 몽골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현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볼 수 있다.] 즉, '아기발도'는 그 의미가 '아기장수'와 매우 유사하게 된다.
* 아기발도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대적자이다.
아기발도 자체는 조선시대 초기에 사대부 계층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조선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의 대적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기발도 이야기는 "왜군 장수 아기발도는 강했다. 하지만 장군 이성계가 물리쳤다. 따라서 이성계의 권력에 정당성이 있다."는 줄거리로서, 전형적인 '외부의 위협'(아기발도)에 대항하는 '내부의 영웅'(이성계)을 강조하여 국가의 수호자로서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바탕이 되었다.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조선 왕조의 억압이나 소외자, 패배자들의 '반발 심리'로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인물에 이성계를 투영하고, 조선왕조 중심의 왕권 정당화 설화에서 이성계('체제')의 대적자로 여겨진 아기발도를 '반체제'의 상징으로서 삼게 되었던 것이다는 것이다.
- 애니 일본어 . . . . 9회 일치
이런 특이한 발음을 것은 발음을 과장스럽게 하고, 명확하게 하여, 청취자가 알아 듣기 좋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일상회화의 발음은 성우 목소리에 비하면 조곤조곤 거리고 알아듣기 어렵게 뭉개진게 많다.
남자가 여자 캐릭터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반대로 여자가 남자 캐릭터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하는 경우도 제법 흔하다.
* 배틀물 남캐의 경우, 역시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거친 말투를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배틀물에서 대화 상대방은 대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이거나, 배틀물 남캐 자신이 폭력에 가까운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을 강조하므로 이러한 말투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말투를 함부로 사용하면 매우 무례하게 보인다. 고 [[은혼]]의 작가 소라치 선생이 단행본에 쓰기도 했다.
일본어 같은 경우 남자와 여자가 쓰는단어나 어투가 꽤 나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여자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 야규 슈메 . . . . 9회 일치
야규 가문의 가전 기록인 『옥영습유(玉栄拾遺)』에 따르면, 「전하기를 슈메라는 자 조선국의 종자라 한다(伝に曰く、主馬者朝鮮国の種也)」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기록(야규번구기柳生藩旧記, 수은초袖隠抄 등)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말하길 슈메는 타국인으로 문벌(씨氏)도 모르는 자(然る所主馬は他国人にて氏も不知者)」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어떤 사정[*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柳生新二郎厳勝)의 적남 야규 구사부로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에 갔다가 울산에서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으로 [[일본]]으로 가게 된 인물이거나, 그 자손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결혼은 [[야규 무네노리]]가 이끄는 에도 야규 가문과 야규 토시요시가 이끄는 오와리 야규 가문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토시요시는 여동생을 가문과 출신을 알 수 없는 타국 사람에게 시집 보낸 데다가, 게다가 사전에 오빠인 자신에게 상담없이 숙부 무네노리가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토시요시는 무네노리와 [[절교]]를 선언하였다고 한다.
* 쇼메의 아내는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柳生新二郎厳勝)의 딸로서, 야규 토시요시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이가(伊賀)의 재야 무사 야마자키 소우자에몬(山崎惣左衛門)에게 시집갔으나, [[이혼]]을 하고 야규 가문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다. 1659년 까지 살았다고 한다.
* 적남 야규 하치로우자에몬(八郎左衛門)은 야마자키 이에하루(山崎甲斐守), 치쿠고 국 쿠루메 마을(筑後久留米)의 아리마 가문(有馬家)을 모셨다.
- 오국영 . . . . 9회 일치
경상북도 평의원, 군농회의원, 금융조합장, 연초경작조합장, 관선 도회의원 등 지역 유지들이 맡는 직함을 두루 맡으며 활동했다. 경상북도 도평의원이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353명의 공로자 중 한 명으로 기재되어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 = 성강현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저자 = 성강현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상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남선전기주식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남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오원 (조선) . . . . 9회 일치
|별명= 자 백옥(伯玉)</br> 호 월곡(月谷)</br>[[시호]] 문목(文穆)
|배우자 = [[안동 권씨]](安東權氏) 권정성(權定性)의 딸
|자녀= [[오재순]](吳載純)
'''오원'''(吳瑗, 1700년 ~ 174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 오씨|해주]](海州). 자는 백옥(伯玉), 호는 월곡(月谷)이다.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백부인 [[오태주]](吳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1728년(영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문학(文學)으로 이름이 났고 벼슬은 [[대제학]]에 이르렀다.<ref name="대제학">[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ua_11610010_001 《영조실록》 52권, 16년(1740 경신 / 청 건륭(乾隆) 5년) 10월 10일(정미) 1번째기사]</ref>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va_11712017_002 《정조실록》 38권, 17년(1793 계축 / 청 건륭(乾隆) 58년) 12월 17일(병자) 2번째기사]</ref>
오원은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이고, 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백부인 [[오태주]](泰周)와 조선 제18대 왕 [[조선 현종|현종]]의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양자가 되었다.
[[분류:1700년 태어남]][[분류:17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해주 오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장원 급제자]]
- 오재희 . . . . 9회 일치
|배우자 = 노숙자(盧淑子)
|자녀 = 2남 1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미·주일 공사, 주 파키스탄 대사,<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0700099201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11-07&officeId=00009&pageNo=1&printNo=5439&publishType=00020 | 제목 = 韓國, 파키스탄과 修交 | 날짜 = 1983-11-07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 인용문 = 政府는 7일 파키스탄 정부와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외무부가 발표했다. 外務部는 이날 발표에서 韓․파키스탄 국교수립으로 양국 주재 총영사관이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고 양국 주재 대사 임명에 앞선 잠정조치로서 吳在熙 駐파키스탄총영사와 자베드․마수드 駐韓파키스탄 총영사가 각각 대사대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ref>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차관|외무부 차관]], 주일 대사를 역임하였다.
1991년 2월 19일,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일 대사에 임명되었다. 오재희 대사의 기용은 그의 직업외교관 경력으로 미루어 자연스런 인사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노재봉]] 총리의 매형, [[이상옥]]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외무부 장관]]과는 대학 동기 사이라는 학연, 혈연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성격이 꼼꼼하고 일처리가 치밀하며 빈틈없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오검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첫 주일 대사이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2190032920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2-19&officeId=00032&pageNo=1&printNo=13971&publishType=00020 | 제목 =大使7명 이동 | 날짜 = 1991-02-19 | 출판사 = 경향신문}}</ref>
|전임자 = [[이상옥]]
|후임자 = [[박쌍용]]
|전임자 = [[이원경]]
|후임자 = [[공로명]]
- 온주완 . . . . 9회 일치
|| 2012년 || [[tvN]] || [[일년에 열두남자]] || 차진오 || ||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정태양 || ||
||<|2> 2005년 ||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 종업원 || ||
|| [[시간이탈자]] || 박병두 || ||
|| 2018년 || 제11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남자 우수연기상 || 밥상 차리는 남자 ||
|| 2016년 || [[SBS 연기대상]] || 로맨틱 코미디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 미녀 공심이 ||
* 2017년 5월 15일부터 [[KBS 2FM]] 《[[뮤직쇼]]》 진행자로 발탁되어 처음으로 라디오 DJ에 도전한다.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2002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원피스/837화 . . . . 9회 일치
* 크래커는 상디를 생각한다면 그는 여기서 행복하게 살 테니 냅두라고 말하며, 나중엔 그도 밀집모자 일당 따윈 멀리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 크래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 그는 "비크킷 전사 크래커". 그의 검은 "프레첼"이며 스스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명검"이라 자랑한다.
* 나미는 그가 간부 클래스일 것으로 판단, 대결을 피하자고 하는데 루피는 "싫다"고 단박에 거절한다.
* 크래커가 방패로 튕겨내자 맥없이 밀려나는 루피.
* 그녀는 밀집모자 일당의 목적은 "꿈"같은 얘기라며 나미를 거울 속으로 끌어들인다.
* 파운드는 브릴뤠가 거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미는 자기들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고 사과한다.
* 브릴뤠는 거울 능력이 성가시지만 전투력 자체는 높지 않은 듯. 나미의 썬더볼트 템포로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다.
* 3장성은 원래 4장성이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우르지에게 쓰러진 장성은 격하 당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 자리를 누군가로 대체하지 않은걸 보면 이상한 일.
- 원피스/882화 . . . . 9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는 "모구라"라는 삼지창을 만들어 [[몽키 D. 루피]]를 공격한다. [[샬롯 브륄레]]는 거울 속에 숨어 카타쿠리야 말로 샬롯가가 낳은 걸작이자 "초인"이라 띄워주고 그런 오빠에게 루피 따위가 승부를 거냐며 비웃는다. 화가 난 루피가 브륄레를 공격하려 하자 카타쿠리가 저지. 루피를 내동댕이치고 창으로 공격한다.
* 브륄레는 사실 루피가 [[나미(원피스)|나미]]와 하는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곧바로 오빠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밀집모자 일당이 살아있다는 것과 카카오섬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페로스페로는 아직도 빅맘 [[샬롯 링링]]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중. 써니호가 파도에 삼켜지는 걸 봤기 때문에 브륄레의 정보를 반신반의하나 어차피 [[샬롯 푸딩]]이 카카오섬에서 웨딩케이크를 굽고 있는걸 알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빅맘은 페로스페로의 뜻과 달리 근처에 있는 "너츠섬"으로 향하려고 해서 곤란해진다.
* 카타쿠리와 루피의 결투는 미러월드를 거의 박살내면서 전개된다. 카타쿠리가 시종 공세를 취하고 있으나 루피는 요로조리 피한다. 루피도 피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데 카타쿠리도 이만큼 공격이 빗나간 적은 없다며 "스트레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는 "흐르는 떡"이란 기술로 지면 그 자체를 떡으로 변환한다. 즉 그도 각성 능력자였던 것. 루피는 흐르는 떡에 휘감기는 순간 기어4로 탈출하려 한다. 카타쿠리는 기어4에도 흥미를 보인다.
*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스위트 시티에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전사 소식이 알려진다. 의제인 [[페콤즈]]가 오열하고 숙적이었던 [[타마고 남작]]도 애석해하는 동시에, 그렇게까지 해서 살리려던 밀집모자 일당에게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며 크게 경계한다. [[샬롯 몬도르]]는 단지 여러 우연이 겹쳐 일이 커졌을 뿐이라 단정하나 타마고 남작은 "밀집모자가 온 뒤로는 예상 밖의 사고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만에 하나라도 빅맘의 명성에 흠집이 갈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 하지만 낭보도 도착한다. 샬롯 누스토르테가 1만 병력으로 제르마66을 추격, 그들을 괴멸하고 왕국을 손에 넣었다는 보고였다. 누스토르테는 밀집모자 일당의 추격결과에 대해서도 묻고 몬도르는 의심없이 정보를 공유한다. 그것이 실수. 사실 제르마를 쫓아간 병력은 전멸 당했다. [[빈스모크 니디]]가 누스토르테의 목소리를 흉내내 전화를 건 것. 밀집모자 일당이 서쪽으로 출항했다는 소식을 접수한 제르마66은 곧 그 방향으로 출항한다.
- 원피스/885화 . . . . 9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가 평정을 되찾자 [[몽키 D. 루피]]는 기어4 상태에서도 수세에 몰린다. 그럼에도 루피는 같은 찬스는 반드시 다시 오고 그땐 기어4의 공격이 먹힐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확신과는 달리 루피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기어4의 제한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카타쿠리가 그걸 비꼬자 루피가 그걸 자각한다. 루피는 곧바로 퇴각하며 패기를 재충전할 10분을 벌려고 한다. 카타쿠리는 곧바로 추격에 나서는데 지친데다 기어4까지 풀린 루피로선 떨쳐낼 수가 없다.
* 달아나던 루피는 숨어있던 [[샬롯 브륄레]]를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루피는 브륄레를 붙잡고 무작정 근처 거울로 뛰어드는데 카타쿠리가 주먹을 날려보지만 한 발 늦는다. 그렇게 미러 월드를 탈출한 루피. 하지만 재난의 연속이다. 하필 그곳은 너츠섬. 빅맘 [[샬롯 링링]]이 한창 먹부림을 부리고 있는 섬이었다. [[샬롯 페로스페로]]는 난장판 한 가운데 루피가 나타나자 빅맘의 주위를 그에게 돌린다. 루피는 빅맘이 아직도 써니호를 쫓는 줄 알고 있어서 어리둥절. 빅맘은 루피를 발견하자마자 거대한 너츠 조각상을 집어던지며 공격을 가한다.
* 써니호는 토트랜드 해상에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다 위는 특별한 이상도 위협도 없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결국 관건은 [[상디]] 일행이 만드는 케이크. 그게 없으면 모든게 허사다. 그 우려대로 빅맘해적단의 선단이 총출동해 다시금 추격을 시작했다. 밀집모자 일당과 파이어탱크 해적단, 태양해적단이 그 목표다.
>자 가자! 동료들을 괴롭히는 빅맘을 쓰러뜨리러!
- 육미당기 . . . . 9회 일치
[[조선시대]]의 [[고전소설]]. 논평 가운데 작가의 이름으로 운고(雲皐)라는 아호가 언급되며, 서유영(徐有英)이 유력한 저자로 보인다.
<김태자전(金太子傳)>, <옥소기(玉簫記)>, <보타전기(普陀傳奇)>등의 다른 판본이 있다. 이 가운데 김태자전은 경술국치 이후에 활자본으로 간행된 탓인지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 부분이 삭제되었다.
신라 태자 김소선(金簫仙)이 당나라로 갔다가 고난과 모험을 겪지만, 결국 고난을 헤치고 3처3첩을 얻어 행복하게 살다가 승천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신라국 태자 김소선(金簫仙)은 부왕의 병을 고치려고 남해의 [[보타산]](普陀山)으로 가서 [[죽순]]을 구해 오다가, 이복형 세징(世徵)에게 습격당해 죽순을 빼앗기고 [[실명]]하여 섬에 떠내려간다.
유구국왕(琉球國王) 백문현(白文賢)이 중국으로 가다가 소선을 구출하여 당나라로 데려가고, 인품이 뛰어난 걸 보고 자신의 딸 백소저와 혼인을 서약한다. 하지만 백문현은 간신의 참소를 받아 귀양을 가게 된다. 소선은 집을 나와서 방황하다가 [[퉁소]]를 잘 불어서 임금의 총애를 받고, 옥성공주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 때 소선이 신라에서 기르던 [[기러기]]가 모후의 편지를 전해와서, 소선은 기뻐서 눈을 뜨게 된다. 신분이 밝혀진 소선은 [[한림학사]]가 되고 옥성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다.
한편 소선과 약혼했던 백소저는 남장을 하여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하고 한림학사가 된다. [[토번]]이 침략해오자 소선은 초유사가 되어 적진에 갔다가 감금되고 만다. 백소저는 원수가 되어 출정하여 토번을 물리치고 소선을 구출한다. 백소저는 개선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당나라 황제는 백소저를 금성공주로 책봉하고 소선이 제2부인으로 삼도록 한다.--백소저에게 별로 이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기분탓일까.--
- 윤다훈 . . . . 9회 일치
||<#40E0D0> '''{{{#ffffff 본관}}}''' ||<(> [[남(성씨)|의령 남씨]][* 25세손 '우(祐)'자 항렬] ||
* 1984년 MBC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 - 사건 목격자 역 (단역)
* 1989년 [[KBS]] [[TV 손자병법]]
* 2012년 [[JTBC]] [[무자식 상팔자]]- 안희규 역
* 2000년 [[삼성전자]] [[매직스테이션]]
* 2000년 [[현대자동차]] [[현대 베르나]]
무릎팍 도사에서 본인의 전반생을 회고한 바에 따르면 배우가 너무 되고 싶어 방송국을 기웃거리다가 경비아저씨와 친해져 방송국을 자기 방처럼 들락날락거렸다거나, 엉겁결에 드라마 엑스트라로 캐스팅됐다거나, 그 드라마(반공물)에 인민군으로 폭격당하는 장면에서 각본대로 안하고 오버하다가 감독에게 따귀맞고 잘렸다거나 하는 별의별 에피소드가 많다. 또 한때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정수기 외판원으로 일했는데 본인의 연기와 전략이 잘 먹혀 꽤 수입을 벌었다고. 또한 무릎팍도사의 초기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런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잘 풀어냈는데 당시 윤다훈이 폭행사건을 일으켜 복귀한 참에, 이미지가 엄청 회복이 된 계기가 됐다.
- 은혼/579화 . . . . 9회 일치
* 코우카는 우미보즈를 철저히 무시하니 우미보즈는 코우카를 보자 마자 서버린다
* 코우카가 오로치를 거의 진정시켜 갈 때 쯤 우미보즈도 "나 자신의 오로치를 진정시켰다"면서, 그저 본능으로 들이대기를 그만하고 자신의 말로써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
* 우미보즈는 자신의 이름 칸코우를 밝히며 "다음에 행성의 주인이 허락한다면 네 이름을 들으러 오겠다"며 돌아선다. 코우카는 고작 그런 소리나 하려고 삼일이나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원래 남의 집에 가면 문을 두드리고 이름을 밝히는게 예의였다. 소란을 피워 미안하고 네 가족(오로치)에게도 전해 주라"며 돌아선다.
* 그때까지 우미보즈를 무시하고 이름 조차 대지 않았던 코우카는 "여기는 원래 너희(야토)의 고향. 오로치는 흥분했을 뿐 거부한게 아니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 우미보즈는 왜 이런데서 사냐고 묻지만 코우카는 자신이 황안의 독성분을 마시고도 죽지 않은 최후의 생존자라며, 여기서 말고는 살 곳이 없다고 한다.
* 우미보즈는 우주에서 지구 얘기를 꺼내며 우왕좌왕하다가 간신히 "내 파트너가 되어서 에일리언 헌터를 하지 않겠냐. 지구에 함께 가자"고 말을 꺼낸다.
- 은혼/608화 . . . . 9회 일치
* 모처럼 오니와라번중을 이끌고 전장에 나타난 핫토리 젠조. 그러나 사루토비 아야메와 엮이며 우주보다 자신의 항문이 먼저 멸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 원상 황자는 지구의 전황이 급변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 오니와라번중의 연막으로 공군이 마비되자 상대적으로 허술한 지상군은 곤도 이사오의 지휘 아래 진선조에게 패배한다.
* 해결사와 진선조 일행은 오니와라번중의 닌자들이 참전한 걸 눈치챈다.
* 그 중에서도 사루토비는 닌자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하이텐션으로 날뛰고 다닌다.
* 사루토비가 정색해서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다"고 하자 긴토키도 살짝 감동해서 진지하게 "기다리게 했군"이라고 답해주는데.
* 곤도는 "멸망을 주말까지 막아보겠다는 거냐"며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지만 실현시켜서 자지러지게 웃어보자고 외친다.
* 겐가이 영감은 자기들이 나설 차례라며 "저쪽에서 총공세라면 이쪽도 총출동해서 싸우면 된다"고 말한다.
- 의식 높은 계 . . . . 9회 일치
자신을 "의식이 높은 사람"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어른에게 찾아오는 [[중2병]].
* 자신이 능력 있는 사람이며, 자기계발에 노력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내는데 골몰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분위기일 뿐이지, 실제로는 대단한 노력도 하지 않고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다.
* 출처 불확실한 자기개발서에서 읽은 이야기 같은 것을 자주 이야기 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일처럼 말하기도 한다.
* 자기계발을 어필하는 것을 좋아한다.
* [[인맥]]을 자랑한다. SNS의 인맥 등,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 이동찬(기업인) . . . . 9회 일치
1922년 4월 1일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코오롱그룹]] 창업주이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원만(1904)|이원만]](1904년~1994년)이다. [[와세다대학]] 전문부에 입학하고 1944년 1월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였다.
이 무렵, 이동찬은 코오롱그룹을 기업공개(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주주가 된 장영자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영자와 식사도 자주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였다. 참고로 이동찬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장영자와 친해지면서 1982년 5월경 이동찬은 장영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영자가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바람에 다행히 이동찬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소되는 화를 면하였다.
수상 경력으로는 1984년 제16회 한국의 경영자상, 2003년 제3회 서상돈상 본상 등이 있다.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9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0년]] [[5월 19일]] <br />[[대구시민야구장|대구]] 대 LG 전 (DH2)<br />1이닝 6타자 2피안타 1피홈런 0볼넷 0탈삼진 2실점 1자책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4년]] [[7월 8일]]<br />[[마산야구장|마산]] 대 두산 전<br />1이닝 3타자 1피안타 0피홈런 0볼넷 0탈삼진 0실점 0자책점
* [[롯데 자이언츠]] (2004년)
;지도자 경력
1990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주로 중간 계투로 뛰었다.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포수 [[진갑용]]을 상대로 현금 4억원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408061|제목=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날짜=1999-07-31|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에 70경기 동안 133.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0패 2세이브 6홀드와 93탈삼진 평균자책점 3.91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지만 2003년 기량 하락으로 방출되었다. 이후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만 단 2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신학 . . . . 9회 일치
'''이신학'''(李新學, [[1944년]] [[9월 25일]] ~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달성]])은 전직 지방자치공무원이면서 전직 기업인이자, 전직 대구광역시 남구청장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한이다.
* 남구자율방범연합회 회장
* 자유총연맹 남구지부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구 부회장
|전임자 = [[이재용 (1954년)|이재용]]
|후임자 = [[임병헌 (1953년)|임병헌]]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안 (시인) . . . . 9회 일치
| 소개 =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팟캐스트 진행자
| 배우자 = 송선미(시인)
1999년 『실천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2014년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내면서 시와 동시, 평론을 함께 쓰고 있다.
196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5월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동시 전문 팟캐스트, 이안의 동시 이야기,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ref>http://www.podbbang.com/ch/8204</ref>를 진행하고 있다.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ref>http://cafe.naver.com/kidsmunhak/9566</ref>, 『고양이의 탄생』<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96758</ref>, 『글자동물원』<ref>http://hub.zum.com/munhak/1976</ref>을 냈으며,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ref>http://cafe.naver.com/mhdn/84689</ref>를 냈다.
2015년 『글자동물원』(문학동네)10판인쇄
2014년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문학동네)
- 이영아(배우) . . . . 9회 일치
|| '''출생''' ||<(> [[1984년]] [[10월 23일]] ([age(1984-10-23)]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
또한 베트남이라는 연관 검색어도 뜨는 것이 특이하다. 2007년 [[SBS]] 주말드라마 [[황금신부]]에서 [[베트남]] 신부 역으로 주연을 맡아 유명해지면서 생긴 일. 베트남 신부 역을 실감나게 해서 당시 실제 베트남 사람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도 이영아를 치면 자동적으로 베트남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2011년 10월 20일자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하였을 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애완동물]]을 매우 많이 기른다고 한다. 특히 어류를 많이 키우는데 열대어, 해수어 등 500여 마리의 물고기를 키우며 심지어 '''[[빨판상어]]''' 까지 키운다고. 흠좀무. 어류 외에 개 7마리와 자라, 거북이까지 키운다고 한다. ~~집안이 동물농장~~
* 2011년 tvN [[코미디빅리그]] 시즌 1,2 - MC[* 이 프로그램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시즌1에서는 하위권이 밀가루세례를 당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여 자진해서 자신도 밀가루를 맞은 적도 있다.]
* 이영아를 치면 자동적으로 다이어트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과거는 지금과 같은 몸집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거구였다고 한다.] 보기보다 상당한 글래머다. [[강소라|이 배우]]와 비슷하다.
|| 제18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탤런트부문 여자 우수상 ||
|| 제42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 황금사과 ||
- 이진만 (1675년) . . . . 9회 일치
이진만(李鎭萬, [[1675년]] ~ [[1752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로 자(字)는 맹능(孟能)이고, 호는 백은(白隱), 본관은 우계이다. [[1699년]](숙종 25)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시험 주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파방되었다. 뒤에 [[1702년]](숙종 28) 식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식년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여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였지만 관직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비판하는 상소 외에도 [[단종]] 때의 충신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충절을 설명하며 [[금성대군]]의 사우(祠宇)를 나라에서 창건해 줄 것을 상소하였고, 세종 때의 천문학자인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을 모신 단계서원(丹溪書院)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단계서원의 철폐를 막아달라는 상소문 등을 올리고 낙향하였다.<ref>김담은 그의 외선조인데, 8대조모 이수형의 처 예안김씨의 친정아버지로서 외9대조가 되며, 고조모 이여빈의 처 예안김씨를 통해서는 외10대조가 된다.</ref>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으로 소일하며 창설재 권두경(蒼雪齋 權斗經), 눌은 이광정(訥隱 李光庭) 등과 주로 교류하였다. 이후 그는 [[사서육경]]이나 경전 중에 [[주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 성리대전(性理大全), 당육지(唐陸贄)의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 가공언(賈公彦)의 주례주소(周禮註疏),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의 책을 골라 모아서 한 권으로 편집하여 《대성집설 (大成集說)》이라 이름하고 늘 즐겨 읽었다. 이후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문이나 기행문 등을 남겼다.
만년에는 고조부 [[이여빈]]이 지어 학문연구와 문하생들을 가르치던 [[인수정]] 바로 앞에 정자 백은당(白隱堂)을 짓고, 백은거사(白隱居士)라 자처하며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으로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백은당문집(白隱堂文集)과 대성집설(大成集設) 등이 전한다.
[[분류:1675년 태어남]][[분류:1752년 죽음]][[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진주 (1678년) . . . . 9회 일치
'''이진주'''(李鎭周, [[1678년]] ~ [[1737년]] [[10월 28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문보(文甫), 문주(文周),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취사 [[이여빈]]의 종4대손이 된다.
[[1726년]](영조 2) [[12월 28일]] [[성균관]]박사, 1727년 3월 양현고직장, 8월 7일 전적,1728년(영조 4) [[2월 3일]] [[양현고]]주부, [[6월]] 직강, [[1729년]] [[11월 25일]]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겸춘추(兼春秋)직을 겸하여 입직하였다. [[1730년]] [[2월 10일]] 성균관직강, 3월 25일 사예 등을 역임했다. [[1730년]] [[3월]] 진보현감(眞寶縣監)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조선 영조|영조]] 조정에서 입시한 신하가 아뢰기를, '이진주는 조용히 자신을 지켜 성균관에서 공부한 10여 년 동안 재신(宰臣)과 명사(名士)가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영조가 수령을 선발할 때는 마땅히 조용히 자신을 지키는 자를 취해야 한다 하고, 곧이어 다시 진보현감에 재임명되었으나 얼마 뒤에 사망하였다. 1737년
[[순흥향교]] 활동으로는 1703년 8월 4일 [[순흥향교]] 서무찬인(西廡賛引), 봉작(奉爵), 1705년 2월 3일 봉작(奉爵), 제물유사(祭物有司), 1706년 2월 8일 서종사찬인(西從祀賛引), 8월 2일 봉로(奉爐), 1710년 8월 대축, 1711년 2월 서무헌관(西廡獻官), 8월 찬자(贊者), 1712년 2월 축(祝), 1716년 2월 6일 대축, 1717년 2월 2일 대축 등을 맡았다.<ref>執事案 地:癸未二月春享時, 丁酉八月告由時</ref>
** 외손자 : 서성시(徐聖時)
** 외손자 : 서성훈(徐聖勳)
** 외손자 : 서성철(徐聖喆)
[[분류:1678년 태어남]][[분류:1737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우계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희승(1913) . . . . 9회 일치
[[8.15 광복]] 후 충북자동차주식회사 취체역, 주한미군 제7사단통역관, 경기도청 및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통역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UNKRA 및 KCAC 정치고문,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기술교육원부원장서리, [[미군]] 작전과 포로심사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김기철에 밀려 탈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정상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자유민주당이 [[민정당]]에 흡수되자 민정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한국독립당(1963년)|한국독립당]]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이종근(1923)|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9회 일치
* 그러자 부하들은 "그렇다면 그 빛은 아서님"이라고 답하고 아서는 쑥스러워하며 "빛이라니 건방져. 방금 전엔 나나시공이 없었으면 위험했다"고 겸손해한다.
* 나나시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 고양이가 붙어 있는한 네가 죽을 일은 없다"고 하는데, 자기네 나라말로 한 말이라 아서가 알아듣지 못한다.
* 어깨 위에 있던 고양이 "캬스"가 "냐도 아서가 강해지면 기뻐"라고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 그곳엔 터무니없이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 그리고 누군가가 이들이 주문한 술잔을 들고 나오는데, 바로 엘리자베스
* 술집 "돼지의 모자"를 엘리자베스가 꾸려나가고 있던 것이다.
* 이국의 검사 무명의 본명은 "나나시". 본인은 브리타니아의 언어를 알아듣나 본데 정작 자기네 나라말만 한다.
* 장화신은 고양이는 주인을 위해 마신(오우거)을 때려잡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장화신은 고양이 자체는 영국의 동화는 아니지만, 모티브는 영국의 고양이 요정 "캐트시"로 추정된다. 고로 아서와 엮여서 나와도 크게 어색할건 없는 셈.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9회 일치
* 창천의 육연성은 그를 질타하며 함께 싸우기를 거부하지만, 핸드릭슨 본인이 "이 싸움 뒤엔 자신을 마음대로 해라"라고 나오고 전세가 워낙 좋지 않아 선택지가 없다.
* 그레이로드는 성내의 사람들을 모두 포획, 자신의 몸에서 알처럼 키우고 있다.
* "여왕형"이란 마력이 없는 생물을 숙주로 삼아 알로 만들어 "자신의 아이"를 탄생시키는 것.
* 시전자는 "단순한 얼음"마법이지만 자기가 거둘 때까지 영원히 얼어있는 마법이라고 하는데.
* 원래 계금은 본체를 죽이면 해제되는데, 그레이로드의 "불살" 계금이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지는 미지수. 또 이 계금으로 죽은 사람이 계금이 풀리면 되살아나는지도 미지수다.
* 제리코는 이번에도 마신족화될 위험에 처한다. 팔자사나운 걸로는 작중 최고의 성기사.
* 기라도 동생 질이 마신족화될 위험에 처해서 또 고생을 하게 생겼다.--팔자 사나운 콤비--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9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99화. '''빛이 없는 자들'''
* 할리퀸과 디안느는 각자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상대로 맹공을 펼치지만 어느 것 하나 유효타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가디안이 처박히자 벽이 고무처럼 늘어진다. 이곳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건조물로 탄성이 매우 높다.
* 그러자 드롤이 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것만 보고 공격이 먹혀들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 드롤은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그의 춤이 계속되자 어느 순간 디안느의 마력이 지워지고 대지를 조종할 수 없게 된다. 어느새 접근한 드롤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혹평하며 다시 한 번 장타를 날린다.
*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디안느를 전투불능으로 만든 드롤. 거인 족의 힘은 자기 근육의 힘이 아니라 대지의 힘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설교한다. 그로키시니아도 할리퀸을 상대로 "고작 피라미나 상대할 수 있지 십계 상대로는 무리"라고 혹평한다. 게다가 할리퀸은 날개도 없으니 전대미문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게 바로 진 영창을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하는데.
* 어리둥절해하는 두 사람에게 드롤과 그로키시니아는 그들을 수행시킬 것이고 자기들을 뛰어넘어줘야 겠다고 폭탄선언한다.
둘의 행동의 목적이 "여신족"일 거라는 의견도 있다. 진짜 적이 여신족이라면 개인적으로 멜리오다스나 인간에게 원한이 있어도 자기들의 후예인 할리퀸과 디안느를 수련시켜 협력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9회 일치
* 십계에 점령된 카멜롯을 해방시키기 앞서, 카멜롯을 둘러싼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일곱 개의 대죄는 발생지로 지목된 성채도시 코란도에 먼저 들러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코란도에서 기다리고 있는건 카멜롯에 있어야 할 [[젤드리스]]. 그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생명을 조롱하며 [[멜리오다스]]를 도발했다. 함정임을 직감한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경고하나 멜리오다스는 격분해 뛰쳐나가 단숨에 젤드리스를 베어버린다.
* 메라스큐라와 악연이 깊은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었다. 그는 그 검은 구체가 멜리오다스를 감싸는 걸 보고 메라스큐라의 속셈을 눈치챘다. 다른 일행보다 한 발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멜리오다스를 삼킨 구체가 코란도의 지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반은 간발의 차이로 구체를 놓친다.
* [[디안느]]가 어쩌면 좋겠냐고 묻자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마력감지로 적이 멀리까지 가지 못했고 코란도 중심부에서 마력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때 [[헬브람]]이 할리퀸에게 주위를 보라고 귀띔한다. 근처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체, 다 썩어서 백골만 남은 시체가 가득했다. [[에스카노르]]와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놀라 자빠진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일어난 대학살의 희생장일지 모른다. 고서가 조용히 수를 헤아려 보니 족히 천에 이르렀다.
곧이서 호크와 에스카노르가 졸도할지도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 해골들이 스스로 일어나 원한어린 말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다. 디안느는 이것들이 자신의 골렘과 비슷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고서가 보기엔 이것들은 "적의"라는 자아가 있었다. 멀린이 이것은 죽은 이의 원한을 악용한 술법, "원반혼의 법"임을 간파한다.
* 일어난 해골병들이 대죄 일행을 공격한다. 그러나 단순한 해골일 뿐이라서 지금의 일행에겐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반이 맨 처음 덤벼든 녀석을 깨부수며 딸리 차원의 뒤틀림을 처리하고 단장을 구하러 가자고 목청을 높였다. 단원들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해골병들을 분쇄했다. 그 약해 빠진 호크 조차도 필살 "초지조 스트라이크"라는 필살기로 때려부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멜리오다스는 이따금 드러나는 메라스큐라의 허상을 베었다. 그러나 연기를 베는 것처럼 감촉이 없다. 곧 허상은 희석되는 것처럼 사라진다. 메라스큐라가 모처럼 단둘이니 수수깨끼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지금 멜리오다스의 전신에 충만한 파괴충공, 그가 가진 부의 에너지는 모두 "암담의 고치"로 흡수된다. 이렇게 흡수된 에너지는 무엇으로 바뀔까?
>엘리자베스가 기억을 되찾은 3일 후에 고치에서 꺼내줄게.
- 임기영 . . . . 9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야구]]}}
[[2017년]] [[4월 18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2승이자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했으며<ref>{{뉴스 인용
| 저자 = 김진성
[[2017년]] [[6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7승이자 시즌 두번째 완봉승을 거뒀다<ref>{{뉴스 인용
| 저자 = 강윤기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임현식(배우) . . . . 9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878787> '''{{{#EEE156 가족}}}''' ||<(> [[자식|슬하]] 3녀 ||
[[대한민국]]의 [[배우]]. 대표적인 [[감초]]배우 중 한 분이다. [[1969년]] [[문화방송|MBC]] 1기 탤런트[* 동기가 일용이 [[박은수]]씨, [[조경환]]씨, [[김애경]]씨 등이 있다.][* 최종면접에서 36명 중 한명이었는데 그 당시 MBC사장이 임현식의 얼굴을 보고 “좀 밋밋하지 않아?”라고 하는 말에 떨어질 것 같아 “배우로 제 인생을 완전히 바치고 싶다”는 소신을 강하게 밝혔고 의지가 좋게 보여 합격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첫 출연은 [[포졸]].]로 데뷔한 뒤 [[서민]]적인 외모로 어필하며 여러 [[드라마]]와 [[사극]]에 감초로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여유]]와 [[웃음]]을 선사한 분이다. [[허준(드라마)|허준]]이 대표적. ~~의원밥 10년~~
[[애처가]]였으나 연하의 아내(서동자씨)가 [[2004년]] 대장금 촬영 도중 [[늑막염]]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54세.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아 병세가 위중해지고 나서야 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싱글이 된 이후로는 MBC 일요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부부(각각 순돌이 아버지, 순돌이 어머니)로 같이 호흡을 맞춘 [[박원숙]]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어서 [[JTBC]]에서 재혼 미리보기;; 프로그램인 [[님과 함께]]에서 중년의 로맨스를 연출. ~~은근슬쩍 같은 방에서 자려고 수작을~~ 또한 한편으로는 아내와 사별한 후 [[천주교]]에 귀의했으며, [[세례명]]은 [[바오로]]다.
스스로 "[[이몽룡]]과 [[방자]]" 가운데 방자형 연기자라고 파악하고, 오직 사망하지 않는 전 화 출연을 목표로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앞서 말한 허준의 임오근. 하지만 [[대물(드라마)|대물]] 등에서 결국 사망하는 장면이 나왔다.. --안 그러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되니까.-- [* 사실 예전 작품인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서도 사망한 적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주당]]이라는 점 때문에 흑역사도 있는데 '''[[음주운전]]으로 [[무려]] 7차례'''[[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91537|나 적발되었으며,]] 그 중에 '''무면허 음주운전'''도 여러 건이 된다고 한다.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중상을 입혀''' 재판을 받은지 불과 1년 만에 또 다시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적이 있다. 지금 기준에서는 언론이 발달하고 [[삼진아웃]] 제도가 있으니 턱도 없을 일이지만, 당시 시대 환경이 그랬던 만큼 이런 사실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 장대환 . . . . 9회 일치
장대환은 [[매일경제신문]]의 창업주 [[정진기]]의 사위이자 [[박정희]] 정권 때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장지량 (1924년)|장지량]]의 아들이다.<ref>
* 1992년 12월 : 세계경제포럼 차세대 지도자선정
* 1997년 11월 : 김영삼 대통령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회 위원
* 2003년 3월 :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 2007년 6월 ~ : 자유무역협정 국내대책위원회 위원
* 2008년 10월 ~ :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자문위원
* 2010년 12월 ~ : 세계자연보전총회(WCC) 조직위원회 위원
|전임자 = [[장상]]<br />(서리)
|후임자 = [[김석수]]<br />(서리)
- 장범준 . . . . 9회 일치
| 배우자 = [[송지수]] ([[2014년]] ~ )
'''장범준'''([[1989년]] [[5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리더이다. 그가 속한 그룹 버스커 버스커는 [[2011년]] [[엠넷]] 오디션 《[[슈퍼스타K3]]》에 참가해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그는 편안한 목소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주목받았다. [[2012년]] [[3월 29일]] 첫 번째 앨범 《[[버스커 버스커 1집]]》으로 데뷔했다. '''장범준'''은 버스커 버스커로 데뷔하기 전에 [[다큐 3일]] 청춘의 봄날 홍대거리 편에 출연한 적이 있다. [[2014년]] [[8월 19일]]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 '''어려운 여자'''
# 애태우는 여자
# 자장가를 활용한 신곡
# 귀여운 여자
[[분류:버스커 버스커]][[분류:1989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장씨]]
- 장준휘 . . . . 9회 일치
* 《의자 위 여자》 (2017년) - A/S 기사 팀장 역
* 《물구나무 서는 여자》 (2015년)
* 《[[돌연변이 (영화)|돌연변이]]》 (2015년) - 기자 3 역
*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 3 - 가문의 부활]]》 (2006년) - 취재기자 역
* 화요비 - 남자는 모른다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상우 (1953년) . . . . 9회 일치
* 1975년 : [[서울대학교]] 자원공학 학사
* 1985년 : [[피츠버그 대학교|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 에너지자원 석사
* 1997.01 ~ 1998.03 : 통상산업부 전자부품과장
* 1998.03 ~ 1998 : 산업자원부 반도체전기과장
* 1998 ~ 1998.11 :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 산업기술정책과장
|전임자 = [[정태신]]
|후임자 = [[김열 (1949년)|김열]]
|전임자 = [[김종갑 (1951년)|김종갑]]
|후임자 = [[고정식 (1955년)|고정식]]
- 전혜진(1970) . . . . 9회 일치
||<:> '''학력''' || 김천중앙초등학교[br][[청담중학교(서울)|청담중학교]][br][[진선여자고등학교]][br][[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 학사 ||
[[2010년]] [[놀러와]]에 출연한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자신의 사촌 동생이 전혜진임을 밝혔다.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10040611012458515|#]]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식 예배로 4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 [[1991년]] || [[KBS]] || 여자의 시간 || ||
||<|2> [[1994년]] || SBS || 세 남자 세 여자 || ||
|| [[2000년]] || 눈으로 말해요[* 감우성, 고수, 이정길, 사미자, 김성겸 등 출연] || 허인경 ||
- 절대가련 칠드런/436화 . . . . 9회 일치
* 후지코의 환영은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모두 행복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관자노리를 쏘는데...
* 자신이 깨어나면서 일으킨 사고는 전혀 기억에 없을 뿐더러 자신이 왜 깨어난지도 모른다
* 산노미야 시호는 사카키가 깨우고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사카키는 자신이 스파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 후지코는 자신이 저지른 사고에 대해서 어리둥절해 하며 에스퍼의 미래를 지켜야하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한 건지 의문스러워한다
* 후지코는 자신이 깨어난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이 8호가 예지한 미래가 뒤집혔다고 보는 견해를 "허술하다"고 보고 "하나를 처리하면 또다른 멍청이가 나오는 일에 질렸다"면서 갑자기 미나모토 코이치와 사카키를 더 칠드런 임무에서 배제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9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46th sense. '''무법자들 (1)'''
* 선장이 교섭에 응하자 본색을 드러내 화물을 포함 "빼를 통채로" 받아갈 테니 모두 퇴선해 구명정에 오르라 지시한다. 개인물품에 돈될 만한 것까지 모조리 압수.
* 효부는 배에서 할 일은 자신과 마기가 할 테니 모미지와 요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지시한다.
* 모미지는 왠 일로 잡일을 하려고 하냐고 묻는데 효부는 자기도 가끔은 일을 한다며 "오랜 만에 마기와 둘만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 모미지가 가자마자 마기에게 "남미로 항로 조정, 그곳 조직에 화물을 판매, 감시위성 대책과 GPS 정보 체크, 선명 변경 등등"을 해두라며 결국 다 떠넘긴다.
* 밤이 돼서야 작업이 대충 끝나는데 효부는 "좋은 배"라며 자신들의 새 아지트로 삼아도 되겠다고 말한다.
* 효부가 루피스러운 얼굴로 화물선을 삥뜯고 요우는 루피스러운 밀짚모자 패션을 자랑한다.
- 정도복 (고려) . . . . 9회 일치
'''정도복'''(鄭道復)은 [[고려]]시대 말기,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선, 상시 등을 지내고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으며 밀직제학, 한성부우윤,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으며 형 [[정도전]]이 암살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성주 유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인녕부사윤에 이르렀다.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奉化)이고 자(字)는 내지(來之)이고 호(號)는 일봉(逸峯)이다. 형부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며, [[정도전]](鄭道傳)의 친 아우이다.
고려 충정왕 3년(1351년) 영주 삼판서 고택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선생의 나이 16세에 양친 부모님을 모두 잃고, 큰형인 삼봉 [[정도전]]이 묘막에서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우연히 처음으로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20세 때까지 4년여간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진사시(進士試)에 올랐으며, 우왕 11년에 지공거 염국보(廉國寶)와 동지공거 포은 [[정몽주]]가 주관한 과거에 제11위로 입격하였다.<ref>당시 우현보의 아들 우홍명(禹洪命)이 장원급제하고 함부림(咸傅霖), 변계량(卞季良), 한상덕(韓尙德), 박석명(朴錫命), 권원(權遠), 김자지(金自知), 이맹균(李孟畇) 등 기라성 같은 인물 33인이 급제한 과거에서 그는 제11위였다.</ref>
얼마 아니 되어 밀직제학을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올라 성균관대사성을 겸임 했으며, 태묘공신의 봉호를 받았다. [[1398년]] 왕자 난 때 큰형 삼봉선생이 화를 입은 뒤 문하찬성사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이후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 태종 3년(1403)에 성주 유학교수(星州儒學敎授)에 부임하여 7년여 동안을 교육에 힘쓰다가 동왕 9년(1409) 8월에 인녕부사윤(仁寧府司尹)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다시 유배되는데 태종실록 태종 13년(1413) 7월 12일조에, “사헌부에서 2품 이상으로서 외방(外方)에 있는 자의 죄를 청하는 계청(啓請)에, “2품은 외방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법이 있습니다. 검교(檢校) 한성 윤(漢城尹) 손가흥(孫可興)·박상경(朴尙絅)·박후식(朴厚植)·고도관(高都琯)·윤사혁(尹思奕)·최함(崔咸)·여극해(呂克諧)·정도복(鄭道復)·전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 정과(鄭過) 등은 항상 외방에 거주하니 심히 미편합니다. 청컨대, 고신(告身)을 거두고 다른 도(道)에 이치(移置)하소서.”라고 비난하였다.
* [[제1차 왕자의 난]]
[[분류:과거 급제자]][[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공신]][[분류:조선의 성리학자]]
- 정범균 . . . . 9회 일치
| 배우자 = 박애진
| 자녀 = 슬하1남
**〈추남〉진행자 역
**〈현대 레알 사전〉진행자 역
**〈남자뉴스〉MC 역
**〈고조쇼〉진행자 역
**〈'''이''' '''개'''그맨들이 사는 '''세'''상〉진행자 역
* 《[[더 자이언트]]》 하누만 / 무무(목소리)
* 내가 여자랑 싸워서 진 적이 없어(어른들을 위한 동화)
- 정성주 . . . . 9회 일치
|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 [[학사]]
| 배우자 = [[이승희 (1954년)|이승희]]
| 자녀 =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작곡가 [[이승희 (1954년)|이승희]]와 결혼을 하였고 이승희는 [[2000년]] 3월 사망하였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194850 이승희 작곡가 별세]. 한국경제. 2000년 3월 11일.</ref>
* [[JTBC]] 《[[아내의 자격]]》(2012)
* 2001 자랑스러운 이화언론인상<ref>민태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52103 자랑스런 이화언론인상 임영숙·손지애·정성주씨]. 국민일보. 2001년 4월 24일.</ref>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승우 (1973년) . . . . 9회 일치
|배우자=
|자녀=
* 《[[자유인 이회영]]》 (KBS1, 2010년) - 유기문 역
*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MBC, 2011년) - 손기자 역
* 《[[옥탑방 왕세자]]》 (SBS, 2012년) - 경비업체 직원 역
* 《[[앵그리맘]]》 (MBC, 2015년) - 다캔다 기자 역
* 《[[내 남자의 비밀]]》 (KBS2, 2017년)
- 정진(1941) . . . . 9회 일치
'''정진'''(鄭珍, [[1941년]] [[11월 22일]] ~ [[2016년]] [[6월 2일]])은 [[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배우|텔레비전 연기자]], [[영화 배우]]이다.
그는 [[2000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사극 드라마 《[[태조 왕건 (드라마)|태조 왕건]]》의 [[능환]](能奐) [[장군]] 역과 [[2009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사극 드라마 《[[천추태후 (드라마)|천추태후]]》의 고현(高峴) [[내시|내관]] 역으로도 친숙한 연기자이다.
* [[1983년]] [[MBC]]《[[추동궁 마마|조선 왕조 오백년 - 추동궁 마마]]》 ... [[무학대사|무학대사 박자초]] 역
* [[2003년]] [[SBS]]《[[왕의 여자]]》 ... 우해월 역
* [[2008년]] [[SBS]]《[[식객]]》 ... 자운선생 역
[[분류:1941년 태어남]][[분류:201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정진(1976) . . . . 9회 일치
|형제자매 =
*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SBS, 2005년) - 정성식 역
* 《[[공주의 남자]]》 (KBS2, 2011년) - 칠갑 역
* 《[[임진왜란 1592]]》 (KBS1, 2016년) - 귀선 제작자 나대용 역
* 《[[캐리어를 끄는 여자]]》 (MBC, 2016년)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중앙대학교 동문]]
[[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정환덕 . . . . 9회 일치
'''정환덕'''(鄭煥悳, [[1857년]] ~ [[1944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작가이자 [[대한제국]]의 문신, 작가으로 본관은 연일, 휘는 환덕(煥悳), 호는 퇴산(退山)이다. 시종원 부경으로 궁궐에서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궁 안에서 듣고 본 온갖 일들을 저술하여 "[[남가록]](南柯錄, 남가몽)"이라는 책에 남겨 놓았다.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정종소]](鄭從昭)의 12세손이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자 영월 환고사에 배향된 현령 증 병조판서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의 10세손이며, 대구부의 청호서원(淸湖書院)에 배향된 진주목사 [[정호인]](鄭好仁)의 8세손이다. 증 통훈대부(通訓大夫) 예식원좌장례(禮式院左掌禮) [[정하형]](鄭夏亨)의 증손이며,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감승(秘書監丞) [[정윤휴]](鄭胤休)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행 선전관(宣傳官) 증 가선대부(嘉善大夫) 군부협판(軍部協辦) [[정의채]](鄭義采)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이씨(貞夫人 李氏)와 증 정부인 주씨(貞夫人 周氏)이다.
군부협판 의채의 아들로 [[1857년]] 탄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태을노인(太乙老人)에게 역학을 수학 받았으며, [[경북]] [[영천]]에서 거주하였다. 어느 날 영천 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역학(주역)을 공부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꿈에 하얀 도포를 입고 손에는 청령장을 짚은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자네가 역학을 공부한지 7년이 되었다. 그러나 너는 글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었다. 그러니 말짱 헛공부를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글의 행간을 읽으라.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서 읽도록 하라. 아무리 공부해도 너에게 큰 행운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행운은 있을 것이니 여기서 꾸물댈 것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 가보아라.”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말을 믿고 [[1897년]] 가을, 나이 40세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하였다. 상경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부승지 [[윤명구]](尹鳴九)를 만나 윤명구가 역학을 할 줄 안다고 하여 고종황제의 측근 경운궁 전화과장(電話課長) 이재찬(李在纘)을 소개 해주었다. 이재찬이 [[고종황제]]에게 소개하여 특명으로 [[1901년]](광무 5) 음12월 5일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다가 그 다음날 면직되었다.
[[1903년]](광무 7) 음2월 8일 선온하고 사찬한 공로 가자되었다.
[[1905년]](광무 9) 음9월 20일 대흥군수(大興郡守)에 제수되었다가 음12월 1일 면직하였다. 이해 음12월 29일 양주(楊州) 풍양(豐壤)의 비각을 증건하고 비석을 수립한 공로로 가자되었다.
*손자 : 정부용(鄭富鎔)
[[분류:1857년 태어남]][[분류:19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학자]][[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
- 존 헨리 . . . . 9회 일치
19세기 당시 살았던 흑인으로, 직업은 철도 노동자이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했던 [[노동자]]의 긍지와, 기계문명에 밀려나는 노동자의 비애를 동시에 반영하는 인물이다.
민담에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정된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계와 대결을 벌이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은 공사 현장에서 가장 뛰어난 노동자 존 헨리가 있었는데, 건설 현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게 되자 존 헨리가 동료들을 위하여 기계와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작자 미상: 강철말뚝 박이 조 헨리의 발라드[* 출처: [[시드 마이어의 문명 V]]. 한글판 기준.]
민담에서 비슷한 인물로 벌목꾼의 영웅적인 인물인 '폴 버니언' 같은 것이 있다. 다만 폴 버니언은 미국 서부 개척사를 대변하는 상징인 반면에 존 헨리는 산업화의 여파로 희생당하는 하층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 차희식 . . . . 9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5남 1녀
차희식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에서 성장하였다. [[장안면 (화성시)|장안면]]은 동리마다 서당이 있어 책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또한 일찍이 [[동학]]과 [[기독교]]가 전파되어 민족독립의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을 함양하며 성장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술이 좋고 힘이 장사여서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자질이 뛰어났고, 3·1운동 당시에는 장년층으로서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통솔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정책을 시행하여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고, 간척공사를 비롯해 송충이 잡는데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노동 착취가 심하였다. 또한 1907년 염업조사를 실시하여 한국인 제염업자의 경영 기반을 해체시켰는데 이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경제적 기반이었던 염업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일제의 수탈정책은 다른 지역보다 소작농의 비율이 높고 여건이 열악한 이 지역민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의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이러한 상황으로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서울의 3·1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 지도자들은 구장회의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구체화했다. 차희식은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인근 주민들에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우정면 주곡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4월 3일 군중은 점차 늘어나 1천여 명에 이르렀고 시위 행렬은 인근의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선생은 차병혁, 차인범과 함께 군중들을 인솔하여 우정면사무소, 화수주재소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본 순사가 쏜 총에 주민이 피살되자 차희식을 비롯한 군중들은 격분하여 도망가는 일본 순사 가와바다를 추격하여 처단했으며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화성지역의 3·1운동은 어느 지역보다도 격렬했다. 우정면을 비롯한 장안면, 향남면, 팔탄면에서의 만세시위는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고 이에 일제는 대대적인 검거를 벌이는 한편 계획적인 보복만행을 자행하여 4월 15일 제암리에서 23명, 고주리에서 6명을 학살하였다.
[[분류:1870년 태어남]][[분류:1939년 죽음]][[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안 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창작:좀비탈출/5-1 . . . . 9회 일치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실. '''골프채는 후방 좌측 1m 거리에 눕혀져 있다!'''
토트넘이 다가오는 순간 그 속도와 무기의 위치와 내가 손을 뻗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서 계산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머리를 괴롭히는 사이 몸은 직관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어 손아귀에 싸늘한 손잡이가 잡히는 동안, 토트넘은 '''정확히 2m 앞'''에 있었다.
녀석으로선 기적적으로 느긋하게 움직여준 셈이다. 담장을 넘은 운동능력과 이 늦은 걸음걸이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 것인가? 그런건 생각해 봤자다. 죽은 놈의 머리통을 무슨 수로 알아맞추겠는가. 녀석의 손톱이 살갗에 박히기 전에 휘둘러버리는게 중요하지.
무섭게 부어오른 오른쪽 뺨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상처는 없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처음으로 보는 잡아먹히는 인간이 나 자신이 아닐 수 있게 됐다. 뭐, 기회가 영영 지나간 건 아니겠지만.
하지만 바지에도 티셔츠 일부에도 녀석의 체액으로 추정되는 검고 진득한 무언가가 튀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짜장 먹다 튄 자국으로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공복감. 그렇다, 여기 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뭉쳐있던 뱃속이 풀어지듯 꼬르륵 소리를 냈다. 나는 잠시 토트넘을 쳐다보고 그 앞의 독을 쳐다보았다. 이제 할 일이 두 가지나 생겼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채형석 . . . . 9회 일치
|배우자 = 홍미경
|자녀 = 1남 2녀
|순자산 =
[[2002년]] 1월부터 [[애경그룹]] 부회장이 되었고,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구조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따내며 [[제주항공]]으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1|날짜=2016-01-12|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 배우자 : 홍미경 - AK플라자 문화아카데미 고문
**** 차녀 : 채수연 - 미국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4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손자이자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의 아들인 선동욱과 결혼했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9회 일치
1889년, 이스탄불 제국의과대학의 대학생 4명이 [[술탄]] 통치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되어 대부분의 주동자들이 [[파리]]로 [[망명]]을 떠났다. 망명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술탄을 몰아낼 계획을 꾸몄다.
[[파리]]에서 학생, 청년 사관, 지식인들이 비밀 결사인 '통일진보위원회(Committee of Union and Progress/CUP)'를 조직하여, 헌법의 부활과 전제 정치 폐지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아메드 리자라는 지식인이 이 단체의 주대변인이 되었다. CUP는 [[자유주의]] 사상을 유포하고 고무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마케도니아]]에 주둔하던 제3군단 내의 살로니카 수비 군단 그룹(지금의 [[테살로니카]])의 청년 장교들은 1906년 [[비밀결사]]로서 오스만 제국 자유협회를 결성했다. 파리의 CUP조직과 오스만 제국 자유협회이 협력하였고, CUP는 제3군단의 지휘권을 얻게 되었다.
결국 청년 튀르크 당은 술탄 통치를 무너뜨리고 입헌 정부를 수립했다. CUP는 1913년이 되자 새 지도자들 하에서 오스만 제국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9회 일치
|| '''약력''' ||<(>[[LG화학]] 선임부장[br]고려장학회 이사장[br]한나라당 경북도당 부위원장[br]대구대 겸임교수[br][[자유한국당]] 상임고문 ||
[[자유한국당]] [[이철우(1955)|이철우]] 의원이 경북도지사 출마로 국회의원을 사퇴하게 되자, 해당 지역구인 [[경상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도전했다. 당초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도전을 시도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관계로 자유한국당 [[송언석]] 후보와 맞붙게 되는데, 이로 인해 민주당 및 진보 지지자들의 기권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민주당 도의원 후보의 암묵적인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자유한국당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친여무소속 취급을 받았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8 || [[2018년 재보궐선거|재보궐선거]] (김천 국회의원) || 무소속 || 38,830 (49.68%) || 낙선 (2위) || [* 전임자 [[이철우(1955)|이철우]] 지방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 ||
- 최수범 . . . . 9회 일치
[[2000년]]부터 프로게이머로 활동하였으며, [[2002년]] [[삼성전자 칸]]에 입단하였다.
[[2007년]] [[10월 13일]]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고, [[삼성전자 칸]]의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05년 3월]] 자신의 원래 이름이었던 최우범으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협회에 등록된 이름이 최수범으로 돼 있고, 이름을 변경한 후에도 협회 행정절차를 거쳐 프로게이머 등록 명을 최우범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명을 최수범으로 통일키로 하였다.
최수범은 숫자 3과 유난히 인연이 많았다. 다음은 그가 3과의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 중학교 3학년때 자퇴하였음.
* [[삼성전자 칸|三星電子 칸]] 소속
* [[2000년]] 아자아자 왕중왕전 2위
*[http://www.samsungkhan.co.kr/introduct/profile/int_pro_01.html 최수범 삼성전자 칸 프로필]
- 최운정 . . . . 9회 일치
| US 여자 오픈 = 2011년 : 13위
* [[세화여자중학교]]
* [[세화여자고등학교]]
* 2014년 : LPGA 투어 ISPS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여자 오픈 준우승
|align=left|[[U.S. 여자 오픈]]
|align=left|[[U.S. 여자 오픈]]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LPGA 투어 골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골프 선수]][[분류:세화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원제 . . . . 9회 일치
|수비 위치 = [[1루수]], [[지명타자]], [[투수]](입단 당시)
'''최원제'''(崔元濟<ref> 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 </ref>, [[1989년]] [[2월 4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7년 8월에 열린 제 61회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소속된 [[장충고등학교]]의 우승과 함께 MVP가 되었다.<ref>《SPORTS 2.0》"아직은 1군에 남는 게 목표지만", 2008,3,31, 류한준</ref>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활약이 미미해 [[2014년]] 시즌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2018년]] [[10월 19일]]에 방출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3455015 장원삼·조동찬·배영섭 등 17명, 삼성 떠난다] - 뉴스1</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타자 기록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윤 (소설가) . . . . 9회 일치
'''최윤'''(崔允, 1953년~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번역가, 불문학자이다.
| 저자 = 권영민
| 저자 =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화연구소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어-프랑스어 번역가]][[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9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쇼트 트랙}}
[[세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동계 올림픽|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과 [[한국체육대학교]] 3학년 때인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2회 연속으로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와 [[2004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5년]] [[중국]] [[베이징]]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 [[세화여자고등학교]]
{{ISU 쇼트트랙 월드컵 여자 종합 우승자}}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여자 종합 우승자}}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용지초등학교 동문]][[분류:목일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최재우 . . . . 9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프리스타일 스키]]}}
'''최재우'''(崔載遇<ref>{{웹 인용|url=http://docsplayer.org/20586236-2014%EC%86%8C%EC%B9%98%EB%8F%99%EA%B3%84%EC%98%AC%EB%A6%BC%ED%94%BD_%EA%B2%B0%EA%B3%BC%EB%B3%B4%EA%B3%A0%EC%84%9C-hwp.html|제목=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결과 보고서|출판사=[[대한체육회]]|확인날짜=2017-08-17}}</ref>, [[1994년]] [[2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로 주 종목은 모굴이다. 2009년부터 제명될 때 까지인 2018년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으며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모굴, 듀얼 모굴 모두 4위를 기록했으며, 2012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201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5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올림픽에 두 번 참가하였으며(2014, 2018), 2017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평창 올림픽 이후 대회 도중 음주 및 추행, 폭행을 저질러 [[대한스키협회]]에서 영구제명되었다.
이듬 해인 2010년 1월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생애 첫 [[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월드컵]]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38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2월에 캐나다 퀘벡 주의 발생콤 리조트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캐나다의 [[마르크앙투안 가뇽]]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모굴 부문과 듀얼 모굴 부문에 출전했다. 모굴 부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레이헤르트]]와 일본의 [[우에노 오사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르마쇼프]]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듀얼 모굴 종목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바르마쇼프와 일본의 우에노, [[쓰키타 유고]]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2년에 [[캘거리]], [[나에바]] 등지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손드리오 현|손드리오]]의 마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2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의 [[브래들리 윌슨 (스키 선수)|브래들리 윌슨]], 스웨덴의 [[루드비그 피엘스트룀]]의 뒤를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의 듀얼 모굴 종목은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 8월 16일에는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3년에는 [[노르웨이]] [[보스 (노르웨이)|보스]]에서 열린 [[2013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50.00점을 획득하여 캐나다의 [[미카엘 킹즈버리]], [[알렉상드르 빌로도]], 미국의 [[패트릭 데닌]], 오스트레일리아의 [[맷 그레이엄 (스키 선수)|맷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듀얼 모굴 종목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모굴 부문 29위, 듀얼 모굴 부문 5위를 기록했다.
2018년 3월 12일 [[일본]] [[아키타현]] [[센보쿠시]]의 [[다자와호]]에서 열린 FIS 월드컵 참가 도중 동료 선수 [[김지헌 (스키 선수)|김지헌]]과 함께 음주를 하고 동료 여자 선수들에게 음주 강요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추행 및 폭행을 한 것이 발각되어 [[대한스키협회]]로부터 영구제명 되었다.<ref>{{뉴스 인용 | 제목=모굴 스키 국가대표 최재우·김지헌, 동료 여선수들 성추행 ‘영구제명’ |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57671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윤승민 | 쪽= | 날짜=12018-03-14 | 확인날짜=2018-09-17}}</ref>
- 최창흡 . . . . 9회 일치
|직업 = 순교자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최창현 요한]]의 이복 동생이며 [[1839년]]의 [[기해박해]]로 인해 [[1840년]]에 순교한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의 남편이며, 같은 해에 순교한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의 아버지이다.
최창흡은 [[1786년]] 경에 [[한양]]에 있는 한 [[중인]] 신분의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3살일 때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주교]]의 [[교리]] 수업을 시작했지만, [[세례]]는 받지 않았다. [[박해]]로 인해, 그는 교우들과 멀어진 이래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815년]]에 그는 한 천주교 공동체에 입회하여 교리를 다시 배웠다. 그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신유년의 박해]] 동안에, 그의 집안은 파산하였다. 그러한 곤궁한 상황 속에서, 그는 [[손소벽]]과 결혼하였고,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 중 아홉 명은 어릴때 운명을 달리했다. [[1821년]]에, [[조선]]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최창흡은 그 무렵에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지켰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을 때, 최창흡은 가장 독실한 신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젊어서 저지른 [[죄]]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속죄하고 제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을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그는 [[1839년]] [[6월]]에 체포되었는데, 그때 그의 사위 [[조신철]]이 [[베이징]]에서 가져온 [[성물]]들이 발견되어, 극심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일곱 차례의 극심한 [[주뢰형]]과 주장질을 받고 [[태형]] 150대를 맞으면서도 결코 배교하지도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조]]에서도 세 차례를 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신심으로써 견뎌냈다. 그는 사형장으로 압송되기 직전에, 한 형졸을 불러 수감되어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울지 말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순교]]로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청했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카라스노 고교 . . . . 9회 일치
시합 때 입는 유니폼은 오렌지색과 남색을 배색한 디자인으로 무난하다는 평. 그런데 연습할 때 입는 배구부 트레이닝복이 상하의 모두 칙칙하다 못해 시꺼먼 '''검정색'''이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의 학교 체육복은 팥색.] 여기에 학교의 상징동물인 [[까마귀]]와 [[타나카 류노스케|얼굴만으로]] [[카게야마 토비오|사람을]] [[아즈마네 아사히|쫄게 하는]] 선수들이 더해지면서, 이미지만으로는 매우 살벌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대회장에서 '날지 못하는 까마귀' 운운했다가는 높은 확률로, 이들이 전원 [[죽은 눈]]을 한 채 호러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팀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득점력도 높은 편이지만 에러나 범실이 많다. 한때 [[우카이 케이신]]은 네코마 고교와 비교하면서 카라스노의 팀 스타일에 대해, '들쭉날쭉한 팀을 세터 카게야마가 압도적인 재능으로 잇는 팀'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짜여진 조직력을 자랑하는 라이벌 [[네코마 고교]]나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사실상 상극이어서, 카라스노는 이 두 학교들과 붙으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그렇다고 이 둘 말고 다른 선수들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어째 배구 외적인 일로 더 유명한~~ [[아즈마네 아사히]]와 [[타나카 류노스케]] 등 준수한 공격 자원들이 있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 다재다능한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다. [[히나타 쇼요]]는 봄고 대회에서, 신장이 2m인 상대학교 선수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면서 타교 선수들에게 꽤 이름이 알려진 모양이다. 또 부원수가 적은 팀 치고, 주전과 벤치조 간 전력차가 그리 큰 편이 아닌 것도 장점이다. 1학년들 중 유일하게 벤치 멤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도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존재감 없는 2학년 둘도 속공 없는(즉 카게야마가 없을 때)히나타 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언급이 나온다.
|| 6 || 봄고 || 1차 예선 2회전[* 카라스노는 인터하이 시드배정교로 2차전에 자동진출했다.] || 오기미나미 고교[* 인터하이에서 1차전부터 시라토리자와를 만나 참패했던 팀.] || 승리 || 2 : 0 || 카지 고등학교 || 8월 11일 || 12권 ||
|| 11 || 봄고 || 예선 결승 || 시라토리자와 고교 || 승리 || 3 : 2 || 센다이시 체육관 || || ||
- 카쿠스 . . . . 9회 일치
카쿠스가 등장하는 것은 헤라클레스가 몸통이 셋 달린 괴물 [[게리온]](Geryon)의 소떼를 몰고 [[티베르 강]]에 도착했을 때였다. 헤라클레스는 강가 풀밭에서 쉬면서, 음식과 술을 많이 먹고 잠에 빠졌다. 그 때, 시골 양치기 카쿠스는 강하고 용맹하여 헤라클레스가 거느린 게리온의 소 떼 가운데 가장 좋은 무리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리고 교활하게 발자국을 숨기기 위해서 뒷걸음질을 치면서 소떼를 동굴에 숨겼다.
꺠어난 헤라클레스는 소떼의 흔적을 쫓아가려 했는데, 소 몇 마리가 울기 시작하자 카쿠스가 숨긴 동굴 속의 소떼들이 대답하는 울음 소리를 내서 속임수가 폭로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당장 카쿠스를 쫓아가서 곤봉으로 때려 죽였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드에서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묘사된다.
아이네이아드에서 카쿠스는 인간이 아니며, 아벤티노 언덕있는 동굴에서 살아가는 [[볼카누스]]의 아들로 연기와 불꽃을 토하며 [[인육]]을 먹는 무서운 괴물 인간이다. 인간을 잡아 먹기 때문에 동굴 주변에는 피냄새가 가득하고, 동굴 입구에는 썩어가는 인간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겁쟁이였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쫓아오자 동굴로 달아났다. 카쿠스는 쇠사슬을 잘라서 볼카누스가 설치해둔 거대한 바위를 떨어뜨려서 동굴을 막아버렸다.--그럼 자기는 어떻게 나오려고--
카쿠스가 죽고 에반드로스의 지휘 아래 살던 시골 사람들이 헤라클레스를 기리며 8월 12일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축제를 만들었다. 이 축제는 여자는 누구도 희생제의 고기를 나눠 가질 수 없었고, 다른 신들이 환기될 수 없으며, 개들은 경내에서 추방되어야 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다른 신들이 환기되지 않는 이유는 헤라클레스가 반인반신이기 때문이며, 개가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케르베로스가 시련을 주었기 때문이고, 여자들이 제외되는 이유는 [[카르멘타]]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프로페르티우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선의 여신의 성스러운 신전 안에 있는 샘물에서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여신에 대한 의식은 비밀스럽고 여성에게만 한정되어 있어 여사제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 물을 마셨다. 하지만 여사제에게는 되돌아가서 소떼의 갈증을 없애준 보답으로 제단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의례에는 어떤 여자도 참석할 수 없게 했다.
그나이우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 정복자로 나온다. 티베르 강 근처에 거주했으며, 마르시아스 왕이 프리기아 인 메갈레스와 함께 에트루리아의 [[타르콘]](Tarchon) 왕에게 사절로 보냈다. 타르콘 왕은 그를 감옥에 넣었으나, 카쿠스는 도망쳐서 고국으로 돌아왔고 에트루리아를 공격하여 불투르누스와 캄파니아 지역을 지배했다. 카쿠스는 에트루리아 인이 아르카디아 인(에반드로스 등)에게 양도한 지역도 장악하려 했는데 우연히 그곳에 있던 헤라클레스를 만나 죽게 된다. 메갈레스는 사비니 인에게 점성술을 가르쳤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9회 일치
[[리비아]]의 [[군인]], 정치 지도자. [[카다피]]의 동료였다가, [[차드]]의 포로가 되었다가, [[CIA]]에 포섭되어 [[미국]]에 가고, 카다피 사후에 리비아로 돌아온 기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2014년 부터 리비아 동부 지역의 군사적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 뒤의 행적은 묘연한데, 수년간 차드에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행적은 불분명하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이 시기에 차드에서 카다피 축출, 암살 작전에 투입할 리비아 무장세력을 훈련하는 작전에 CIA가 자금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된 바 있는데, 하프타르가 여기에 참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2년 7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61.58%, 1,764,840명 투표)를 통하여 주로 [[터키]]와 [[카타르]]의 후원을 받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일반 국민회의(the General National Congress)가 성립하여 리비아를 통치하게 되었다.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하프타르는 [[이집트]]와 [[UAE]]의 후원을 받으며 국민군을 이끌고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맞서서 2014년 5월 부터 벵가지와 동부지역의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척결했다.
2015년 12월에, UN의 증재로 동부와 서부의 일부 세력이 합의하여 국민합의 정부가 창설되었다. 하지만 동부지역은 반대파가 많이 합의가 승인되지 못하고 있다. 하프타르의 지지자들은 국민합의 정부에 대하여 하프타르의 지위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리비아 국군의 지휘권을 넘기지 않고 있다. 국민합의 정부는 동부지역 군 사령관 가운데 한 명인 마흐디 이브라힘 알 바르가티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 하프타르를 소외시키는 중.
- 캡틴 코만도 . . . . 9회 일치
캡틴 코만도 코믹스에서는 대기업 사장이라는 배트맨틱한 설정을 가지고 있고, 쇼(닌자 코만도)와는 한대 수행동기였다고 한다.
닌자. 닌자도를 가지고 있으며 대쉬 공격에서도 쓴다. 게다가 진행 중에 습득하는 수리검을 쓸 수 있다.[* 다른 캐릭터가 습득하면 그냥 점수 처리된다.] 메가크래시는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키는 기술.
어디까지나 설정 상의 이야기이나 파이널 파이트에서 등장한 가이의 후손. 즉, 무신류 닌자다. 그래서인지 남코 크로스 캡콤에서 가이과 팀을 이루기도 한다.
미라 모습의 사나이. 두 자루의 나이프를 쓴다. 본 게임의 최고급 캐릭터. 기본 공격력은 약하나 긴 리치와 빠른 공속 덕에 안정감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메가크래시도 남다른데 다른 캐릭터들이 시전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쓰면서 이동이 가능하다.
천재 아기. 아기라서 로봇에 탑승해 싸운다. 메가크래시는 무릎에 자이된 수류탄.
* 주인공인 캡틴 코만도의 이름에서 앞글자 몇개를 이용하면 '캡콤'이 된다.
* 특이하게도 캐릭터들이 지닌 특수기나 무장에 의해 기괴한 사망 모션이 나온다. 캡틴 코만도의 캡틴 파이어에 맞아서 에너지를 전부 잃어버린 적은 불에 타서 재가 되고(...), 닌자도를 쓰는 쇼우의 공격은 적을 절단낸다.(...) 제네티의 경우 상대를 부패(?)시켜 해골만 남긴다.(...) 이러한 모션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서도 나오며 자유로운 것은 적측 여전투원인 캐롤과 브렌다 정도.
- 킹덤/501화 . . . . 9회 일치
* 진의 군단은 금안을 목전에 두고 잠깐 휴식을 가진다. [[왕전(킹덤)|왕전]]은 무슨 수를 썼는지 소나기를 미리 예견하고 피하고자 한 것.
* 그런데 하늘을 쳐다보던 왕전이 갑자기 전군에 휴식을 명한다. 각 지휘관들은 왜 이런 데서 휴식을 하나 의아해하는데 하료초는 이런 시점에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게 좋을거 없을 거라 우려한다. 하지만 [[강외]]만은 왕전이 그랬듯 하늘을 바라보더니 비 때문일 거라고 중얼거린다.
진군의 진짜 목적을 어렴풋이 감지한 순수수. 그는 이목에게 급보를 보내고 자신은 십화에 남아 계속 첩보를 수집한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추측이 사실이라면 진군에 크게 뒤쳐지게 된다.
* 진군의 진짜 의도가 들통나려 할 때, 왕전은 자신이 심은 첩자에게 어떤 첩보를 받는다. 그런데 이 첩자는 조군 진영에서 오는게 아니었다. 첩보를 입수한 왕전은 부하들에게 확인시킨 후 전군의 행군 속도를 올리도록 지시한다.
* "동쪽의 그 남자", 연나라의 [[오르도]]가 돌아왔다. 연합종군 이후 한직으로 밀려난 줄 알았던 그가 진-조의 대립국면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며 대군을 몰고 온 것이다. 물론 조나라가 진군에 대비해 서쪽에 병력을 집중하면 자연 동쪽은 허술해질 거란 계산도 깔려 있었다.
- 킹덤/508화 . . . . 9회 일치
* 비신대의 신병들은 엄청난 긴장감에 시달리다 흥분, 노평이 돌발행동을 하다 죽는다. 이것을 시장으로 사상자가 속출.
* 열미가 기마대를 앞세워 아군에 반격하자 한순간 동요가 심해지나 곧 [[이신(킹덤)|이신]]이 [[왕의(킹덤)|왕의]]의 창을 휘두르며 위엄을 떨친다.
* 바지오 한 사람이 이미 성벽을 도륙내고 있을 무렵 [[이신(킹덤)|이신]]과 [[하료초]]는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단 한 사람의 전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당백의 전투였다. 바지오의 뒤를 따라 산민족 군대가 들이닥치고, 한 번 뚫린 자리에는 사다리가 잇달아 모이면서 더 많은 병력으 성벽으로 오른다.
* 성벽 위를 순식간에 정리한 산민족들은 파죽지세로 성벽 아래로 치닫는다. 바지오는 "지다족"에게 지시해서 성문의 개폐장치를 찾게 한다. 지다족은 후각이 매우 발달한 민족으로 후각을 동원해 숨겨져 있던 개폐장치를 찾아낸다. 성벽 아래 지하실에 있었다. 평범한 바닥으로 위장돼 있었지만 지다족의 후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입구가 열리자 열미병들이 뒤늦게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주위를 산민족이 호위하고 있었다. 지다족은 곧바로 개폐장치를 확보한다. 양단화는 이 개폐장치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지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지다족은 어려움 없이 성문을 연다.
* 성문이 열리고 비신대의 병력이 선두로 나선다. 성 안의 열미군은 당황하지만 화살을 날리며 필사적으로 응전한다. 본대인 [[왕전(킹덤)|왕전]]의 군단에선 벌서 성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왕전은 잠자코 있지만 그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전개에 놀라는 모양이다. [[몽념]]의 낙화대에서도 이 일로 술렁거린다. 몽념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라며 혀를 내두른다.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순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다른 오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노평은 두려움에 미쳐버렸다. 풀린 눈으로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던 그는 오를 이탈해서 적에게 마구잡이로 달려간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칼로 적의 숙련병들을 어쩔 수는 없었고, 적의 방패에 부딪혀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허무할 정도로, 도와달라고 외칠 틈도 없이 목이 떨어진다.
* 노평의 죽음과 함께 그나마 정신을 붙잡고 있던 간두도 겁에 질린다. 주춤거리는 사이 혼자 적을 막던 황오장은 결국 쓰러져서 창을 맞는다. 앗하는 사이에 간두의 분대는 뿔뿔히 흩어졌고 간두 자신도 어느 틈에 그랬는지도 모르게 창을 잃어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황오장을 죽인 적병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주저 앉은 그를 꼬맹이 취급하며 가차없이 창으로 찌르려 할 때, 그는 정말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는가하며 참담한 심정이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9회 일치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할아버지 타이라노 타카모치(平高望)는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손자로서, [[신적강하]]하여 카즈사 국(上総国)[* 지금의 치바현 중부]을 다스리는 쿠니시(国司)였다. 그는 카즈사 국에서 임기를 마친 뒤에도 교토에 귀환하지 않고, 아들들과 토착하여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에서 개간을 거듭하여 방대한 장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방대한 장원은 자식들에게 상속되었는데, 장남 쿠니카(国香)는 히타치(常陸), 차남 요시카네(良兼)는 카즈사(上総), 삼남 요시마사(良将)는 시모우사(下総)의 영지를 나눠받게 된다.
마사카도는 삼남 요시마사의 아들로서, 소년 시절에는 교토에서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 [[후지와라 요시후사]]의 손자)를 가신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요시마사가 사망하자 시모우사로 귀환하였는데, 귀향한 마사카도는 쿠니카와 요시카네가 요시마사가 남긴 장원을 마음대로 분배해서 나눠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니카의 동생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正)는 마사카도를 토벌하려 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당하여 패배, 타카모치의 차남 타이라노 요시카네가 마사카도를 공격했으나 역시 마사카도에게 패배한다. 요시카네 토벌은 조정에서 허가를 얻었으며, 934년에 요시카네는 결국 병사하고 만다.
이 무렵 [[세이와 겐지]]의 시조 미나모토노 츠네모토가 무사시국에 부임한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관동지방을 제압한 마사카도는 신황(新皇)을 자칭하게 된다. 헤이안쿄(平安京)에 있는 조정에서 독립한 독자 정권의 수립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 태미 . . . . 9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초등학교]] 6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하였고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1위를 거머쥔 실력자로서, [[청와대]]에서 [[태권도]] 공연 이후 청와대 [[경호원]] 제안을 받았지만 행복하기 위해 배우를 택했다. 2007년 [[SBS]] 《[[스타킹 (2015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스타킹]]》에 출연한 이후 ‘[[얼짱]] 태권소녀’로 주목을 받았다. 강인한 이미지가 강해서 탈피하고자 2016년 영화 《'''여자 전쟁: 봉천동 혈투'''》에 도전하여 출연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783206 태미 “청와대 경호원 제안 받았지만 배우 택했다”] 매일경제. 2016년 08월 11일</ref>
|2016||여자 전쟁: 봉천동 혈투||해당화||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남양주시 출신]][[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테란 . . . . 9회 일치
인류 컨셉 종족. 과거 [[지구]]에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퇴출된 자들이 지구에서 떨어진 행성계 [[코프룰루 구역]]에 정착하게 된 것이 시초다. 이들은 [[테란 연합]], [[켈 모리안 연합]], [[우모잔 보호령]] 등 여러가지 거대 세력을 만들었지만 스토리 상 비중은 테란 연합과 그 후예(?)들에게 몰려있다.
부패한 독재 국가인 [[테란 연합]]이 등장. [[저그]]와 [[프로토스]]를 비롯한 [[외계인]]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 틈을 타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이끄는 혁명 조직 [[코랄의 아들들]]이 세를 불리고, 마침내 테란 연합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코랄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짐 레이너]]를 포함한 일부는 멩스크가 보였던 끔찍하고 비열한 행위[* 테란 연합의 수도성인 타르소니스로 저그 떼거리를 유인했다. 자신을 따라왔던 [[사라 케리건]]을 저그 떼 사이에 내다버린건 덤.]에 반감을 느껴 코랄의 아들들을 떠난다. 하지만 멩스크는 [[테란 자치령]]을 세우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는다.
지구에서 테란을 내쫓은 거대 세력 [[UED]]의 원정군 [[코프룰루 구역]]을 침공한다. 이들은 [[테란 자치령]]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초월체]]와 [[정신파 분열기]]를 손에 넣어 [[저그]]를 지배하는 등 엄청난 선전을 보인다.
하지만 [[사라 케리건]]이 이끄는 저그 잔당이 [[테란 자치령]], [[레이너 특공대]], [[프로토스]]와 손을 잡고 정신파 분열기를 파괴하며 UED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UED는 케리건에게 토사구팽당한 테란 자치령과 프로토스와 함께 케리건을 공격하지만 결국 전멸한다.
===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
- 토리코/366화 . . . . 9회 일치
* 지로 앞에서 '''황금식기'''를 꺼낸 블루 니트로는 갑자기 자신들은 "구르메 세포의 악마"라며 설명을 시작한다.
* 설명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 갑자기 지로를 묶는다.
* 원래 '''구르메 세포의 악마에겐 "데빌, 오거, 사탄" 등의 형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번성한 것이 자신들 '''"트롤"'''형.
* 지로는 그걸 '''"농담"치부'''하며 자신을 묶은 와이어를 끊어내 버리고 '''블루 니트로들을 일방적으로 박살내 버린다.'''
* 블루 니트로는 숫자를 앞세워서 공격해 오는데, 몇몇은 지로에게도 타격을 주긴 하지만, '''"타임 노킹"'''까지 사용하는 지로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 '''그때 네오가 갑자기 나타나 지로의 머리를 쳐날려 버리고 몸통은 멀리 떨어뜨려 버린다.'''
* 아마 노렸는지 '''시간 자체를 노킹'''해 버리면서 '''"몇 초간 나의 세계"'''라는 대사를 해준다.--시간을 멈춰라 마이 월드야--
* 니트로들이 자신들의 내력을 소개하면서 구르메의 악마는 "트롤", "데빌", "사탄", "오거"등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밝혔다.
- 토리코/377화 . . . . 9회 일치
* 블루 니트로 아톰은 탈출하라고 하지만 그 말에 자극받은 네오는 전력을 다한 공격으로 문을 일시적으로 멈춘다.
* 그는 자신이 블루 니트로의 발을 묶을 테니 토리코에게 어서 GOD를 먹으라고 한다.
* 경왕 문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블루 니트로 아톰은 다급하게 경고한다.
* 밤비나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돌아와 자신이 당한 것이상의 파워로 아카시아를 쳐날린다.
* 그러나 그것이 아카시아의 심기를 건드린다. "신"인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말하는 거냐며 양손을 크게 부풀린다.
* 토리코와 재회한 텟페이는 자질구레한 변명은 생략하고 코마츠의 심장을 터뜨렸던 일은 자신에게도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 텟페이는 "내 명줄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며 토리코에게 자신이 블루 니트로를 막고 있을 테니 어서 GOD로 가라고 한다.
* 밤비나가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때려서 네오의 주가가 다시 올라갈 뻔 했지만 한 페이지 만에 껍질을 벗은 밤비나에게 털려서 도로 제자리.
- 토탈워: 쇼군 2 . . . . 9회 일치
겨울에 적 영토에서 턴을 끝내면 병사들 중 소수가 얼어죽는다. 주의하자. 물론 그정도 피해를 버틸 수 있다면 그냥 씹어도 된다.
적 군대와 아군 군대가 조우하면 전투가 벌어진다. 전투 전 양측의 병력 구성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자동 전투를 벌일 것인지, 수동 전투를 벌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후퇴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 후퇴한 직후 적이 추격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 이렇게되면 꼼짝없이 싸워야한다. 특이한 케이스로 매복이 있는데 보통 숲 속에 숨은 적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동하다가 만나는 경우 벌어진다. 이 경우 처음부터 후퇴가 불가능하다.
자동 전투는 양측 군대의 전투력을 비교해 양측의 피해와 승패여부를 결정한다. 수동 전투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이 진행된다. 전력차가 압도적이라 이길게 뻔한 전투에서는 자동 전투를, 비슷하거나 약간 밀려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전투에서는 수동 전투를 하는게 좋다. 전력차가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열심히 짱돌을 굴려보자.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별로 좋은 결과는 못 내겠지만.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군이 연설하고 병사들이 환호하는 컷신이 나온다. 이 컷신은 스킵할 수 있으며 반란군을 상대할시에는 나오지 않는다. 컷신이 끝나면 자신의 부대를 맵에 배치한다. 대부분의 부대는 자신의 지역에만 배치할 수 있지만 일부 특이한 부대는 중립 지역에도 배치할 수 있다. 방어측은 이 시기에 궁병이나 조총병들로 여러가지 방어용 장애물을 설치할 수 있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전투 시작 징을 클릭해 전투를 시작한다. 인근에 다른 아군 군대가 있었다면 전투가 시작하고나서 지원군의 형식으로 난입한다. 지원군이 오는 방향은 해당 군대가 있던 방향과 같다.
만약 한 가문의 군대가 다른 가문의 성을 공격하면 포위가 시작된다. 포위당한 가문은 그 성에서 부대를 추가적으로 모집하거나 병력 손실을 보충받을 수 없게 되지만 포위당한 성의 주둔군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포위를 건 가문은 성 안의 식량이 떨어질 때 까지 버틸 것인지, 아니면 직접 공격해 점령할 것인지, 정 안되겠으면 포위를 풀고 후퇴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직접 공격하는 선택지는 자동 전투와 수동 전투 두가지가 있다.
전투에 약간의 고어 효과를 추가해 타격감을 늘린다. 고어라고 해봤자 피 철철 나오거나 목이 날아가거나 카메라에 피가 튀는 정도. 이 DLC는 사무라이의 태동과 사무라이의 몰락에도 적용된다.
- 페어리 테일/506화 . . . . 9회 일치
* 그의 손자 렉서스 드레아는 오히려 메이비스를 위로하며 전의를 가다듬는다.
* 엘자 스칼렛과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은 마카로프에게 최후의 인사를 올린다.
* 둘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부딪히려 할때, 엘자가 그 사이를 가로막는다.
* 엘자 스칼렛은 모든 길드원을 대표해 마카로프 앞에 마지막 인사를 올린다.
* 제레프는 과연 자신이 만들고 메이비스가 마카로프에게 전한 마법이라며 감탄한다.
* 둘의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부딪히려는 찰나, 그 사이를 엘자가 끼어든다.
* 엘자의 눈물에 폭주하던 두 사람도 멈춘다.
나츠와 그레이의 싸움을 멈추는게 누구냐는 의견은 분분했는데 루시 하트필리아와 쥬비아 록서가 합심해서 막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엘자.--엘자 진히로인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9회 일치
* 나츠는 어린 시절에 가질, 웬디, 스팅, 로그와 만난 적이 있는데, 이들 멸룡마법사들은 부모 용을 따라서 회합 자리에 동석해씩 때문이다.
* 이번엔 스팅의 모습을 한 존재가 나타나 자신을 따라오면 "당신 안에 있는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거라 말하는데.
* 갑자기 나츠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폴류시카는 그 안의 "덩어리"가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고 본다. 루시가 확인해 보니 연기가 나는데도 몸은 차갑다. 루시는 나츠를 깨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 나츠의 정신은 어딘지 모를 공간에 있다. 나츠는 주변을 살피다가 어떤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제레프 드래그닐. 나츠는 바로 발끈해서 덤비지만 제레프는 여긴 나츠의 마음 속이며 자신은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츠는 앞뒤없이 덤벼드는데 제레프를 뚫고 횡하니 지나가 버린다. 제레프는 여기에서라면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하지만 나츠는 빈정댄다.
* 여기서부터 제레프가 사라지고 스팅의 모습이 나타난다. 스팅은 그 당시 드래곤들은 한 해에 몇 번 정도 회합을 가졌고 그때마다 자기들도 동석해서 서로 알게 됐다고 설명해준다. 단지 이런 기억은 멸룡마도사들은 다 잊어버렸다.
나츠는 갑자기 제레프가 사라져서 어리둥절해한다. 스팅은 이곳이 그의 마음 속이기 때문에 그 스스로 제레프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라 말한다. 나츠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고 하지만 스팅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따라오라고 말한다. 분명 "대답"에 다다를 수 있다면서.
* 그때 거짓말 처럼 나타난 스팅. 라케이드를 걷어차 버린다. 스팅이 도착하자 세이버투스 일행의 사기가 오른다. 스팅은 라케이드를 거침없이 공격하지만 큰 타격은 되지 않는다.
* 라케이드는 그의 공격 따윈 먹히지 않는다며 유키노에게 사용했던 쾌락 주입 마법을 건다. 그런데 스팅은 이 마법을 먹어치워 버린다. 라케이드도 이건 생각 못했는지 동요한다. 스팅은 이상한 맛이라고 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좋다"면서 꾸역꾸역 먹는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하얀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선언.
- 페어리 테일/533화 . . . . 9회 일치
* 다시금 모인 페어리 테일의 생존자들은 아직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동료들의 무사를 빈다.
* "백마도사"로 각성한 제레프는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장할 수 있으며 육체가 별 의미가 없는 초월자에 가까워졌다.
둘이 확인을 위해 길드로 가보기로 했을 때, [[렉서스 드레아]]를 비롯한 길드원들이 나타난다. 렉서스가 기다리라고 말한다. [[프리드 저스틴]]과 [[빅스로]]는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전언을 전한다. 길드 주위로 오지 말라는 것. 무슨 뜻인지는 그들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렉서스는 조부이자 길드장 [[마카로프 드레아]]의 유해를 정중히 수습해 왔다. 렉서스는 당장이라도 길드로 옮겨주고 싶지만 초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길다트는 죽은 마카로프를 연민에 찬 얼굴로 바라본다.
* 한 자리에 모인 길드원들은 각기 정보를 공유한다. [[아크놀로기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누군가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 호를 쫓아가는 걸 봤다고 말한다.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은 그들이 미끼가 되어 준거라 생각한다. [[엘프런 스트라우스]]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길다트는 여기에도 없는 인원에 대해 묻는다. [[나츠 드래그닐]],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록버스터]], [[엘자 스칼렛]], [[웬디 마벨]], [[해피(페어리 테일)|해피]]까지 총 6명. 이들의 행방은 찾고 있지만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남은 인원들은 저 여섯 명이 무사히 있기를 기도한다.
* 저 여섯 중 루시, 그레이, 해피는 멀지 않은 곳에, 비교적 안전하게 있다. 루시 일행은 공원에서 END의 서를 펼쳐보던 동안 제레프가 방출한 힘에 휩쓸려서 쓰러졌지만 부상은 없다.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다. 그런데 책에서 튀어나왔던 방대한 문자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해피가 그 점을 묻자 루시는 책이 덮이면서 책 속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레이가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고 묻는자 루시가 나름대로 추론을 설명한다.
* 나츠는 파괴된 잔해들이 다시 모여드는 것을 목격한다. 잔해들은 되감기되는 영상같이 모여들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복구된 자리에, 빛의 조각들이 모여서 제레프의 형상을 이룬다. 이제 제레프는 부숴지고 어떻고 하는게 아무 의미도 없는 몸이 되었다.
- 하이큐/212화 . . . . 9회 일치
*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플레이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과 다른 선수들의 강점, 그 중에서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판별한다.
* 해야할게 많다는건 히나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조급하게 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언제나 정답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건 "최선을 탐색하는 것".
* 게다가 고민하는 것은 자신들 뿐이 아니라고 조언한다.
* 히나타는 자신은 "코트 위에 있는 그 누구도 아니다"는 점을 깨닫고 공이 아닌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는걸 깨닫는다.
* 보는 "시점"이 달라지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선수들의 자잘한 움직임과 테크닉이 일목요연해진다.
* 하지만 그걸 바로 자신의 플레이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우시지마의 리시브는 훌륭한 것이지만 히나타의 신체조건 상 따라할 수가 없는 것.
* 제목의 시점은 히나타가 플레이를 보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초반부에 나온 우카이 코치와 타케다 고문의 "교육자로서의 관점"이란 의미도 있다.
- 하이큐/267화 . . . . 9회 일치
* 코즈메는 2세트 후반까지도 잘 따라왔으나 체력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고, "뇌"가 흔들린 네코마는 자잘한 실책을 범하며 헛점을 보인다.
* [[네코마 고교]]의 2회전 상대 사루카와 공고는 정면승부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네코마의 뇌" [[코즈메 켄마]]를 자멸시킨다는 전술로 나왔고 의도적으로 코즈메를 혹사시키는 플레이를 펼친다. 경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전술이 효과를 발휘했다. 코즈메의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 네코마 측은 이 작전을 인지했으나 어떠한 동요도 없이 네코마다운 플레이를 펼쳤다.
* 사루카와의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은 코즈메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현역 선수였던 시절 네코마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연습 후 늘어선 선수들 앞에서 네코마타 감독은 자신의 경기론을 펼쳤다. 한 번 셧다운을 먹여주는 것보다 다섯 번의 원터치가, 열 번의 압박이 더 낫다. 한 번 완벽한 A패스를 구현하는 것 보다 반드시 올리는 다섯 번의 B패스[* 세터 정위치에서 1, 2m 이내로 보내는 패스], 열 번의 C패스[* 1st템포 공격이 어려운 리시브]가 훨씬 낫다. 상대가 강할 수록 시합 전체의 흐름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하나같이 지금의 시시오 감독이 있게 한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한 줄로 요약됐다.
코즈메를 거쳐 쿠로오의 스파이크. 시시오 감독의 불안과 달리 사루카와는 빈틈이 없었다. "와쿠라"의 블록에 원터치로 걸린다. "카나자와"와 "후카타니"가 차례로 살려서 다시 떠오른 공. 좌측에서 "시라미네"가 뛰어오른다. 카이, 쿠로오과 블록을 뛰었지만 우측에 치우친 탓에 중앙이 텅 비었다. 놓치지 않고 그 위치로 밀어넣는 시라미네. 후쿠나가가 눈치 빠르게 달려나왔지만 리시브가 불안정했다. 짧고 흔들거리게 떠오르는 공.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시라미네의 조치는 재빠르긴 했지만 적절하진 않았다. 코즈메는 들켰다걸 알았지만 작전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른쪽이었다. 중앙에 멈췄던 시가는 공이 카이에게 넘어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카이가 짐착하게 스파이크. 뒤늦게 시가가 블록에 참가했지만 그의 팔에 맞고 텅빈 사루카와의 좌측에 내리꽂혔다. 완전히 속았다. 중계진은 넓은 레프트를 버리고 좁혀진 라이트를 공략한 의외성에 놀랐다. 그리고 사루카와의 블록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를 감행한 코즈메는 수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번 대회에서 손꼽히는 세터일지 모른다고 호평했다. 정작 당사자는 방금 조금 짧게 올라갔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 24 대 24. 첫 번째 동점은 그럴 수 있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사루카와의 계산이 복잡해졌다. 시라미네가 방금 전 리시브부터 모든게 위장일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모든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블록을 유도하고 있다는건 그럴 듯한 결론이었다. 그러자 또다른, 무서운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 하지영 . . . . 9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과학실험 사이펀]]》 - 사회자
* [[KBS 1]] 《[[황금의 펜타곤 2]]》 - 진행자
* [[YTN]] 《[[엔터 K]]》 - 진행자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한동욱 . . . . 9회 일치
이후 KOR의 개인전 카드로 성장한 한동욱은 소속팀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 우승에 기여하며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4강, 그다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1 우승, 시즌2 24강, 시즌3 4강 등 신한은행 스타리그에서 강한면모가 보였다. [[스타리그#신한은행 05~06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선 4강에 진출, 당대회 우승자인 [[최연성]]([[SK 텔레콤 T1]])과 대등한 공방을 벌인 끝에 2:3으로 석패했다.
바로 다음 시즌,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1]] 결승에 오른 한동욱은 전시즌 [[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자 [[조용호]](당시 [[KTF 매직엔스]])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온게임넷 스파키즈로 재창단된 소속팀에 안긴 첫 개인리그 우승컵이었다.
이후 우승자 징크스로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한동욱은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에서 다시 4강에 올랐다. 비록 [[이윤열]](당시 팬택)에게 패퇴하며 결승 진출엔 실패했지만, 준결승 3경기(리버스 템플)에서 보여준 믿기 힘든 역전승은 한동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속도전의 진수였다.
2008년 8월 22일, 한동욱은 [[박정석]], [[오영종]]과 함께 공군 e스포츠병 모집에 최종 합격하였다. 합격자들은 9월 22일에 진주 공군교육사령부로 입대했으며, 2010년까지 [[공군 ACE]] 소속으로 활동 하였다.
* [[2009년]] [[6월 3일]] vs [[김구현 (프로게이머)|김구현]] (황혼의그림자)
순수 스타리그 우승자 선수들 중에서는 [[김준영 (프로게이머)|김준영]]과 함께 MSL 진출 기록이 전무하다. (마이너리그 진출 기록이 최고 기록)
|내용='''[[스타리그]] 우승자''' <br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한말숙 . . . . 9회 일치
|배우자 = [[황병기]]
|자녀 = 2남 2녀 <br /> 황혜경(장녀) <br /> [[황준묵]](장남) <br /> 황수경(차녀) <br /> 황원묵(차남)
* [[숙명여자고등학교]] 동창인 [[소설|소설가]] [[박완서]]와 절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 [[숙명여자고등학교|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청주 한씨]][[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한병주 . . . . 9회 일치
{{공직자 정보
| 경력 = 前 [[한국독립당]] 행정자치연대위원 <br/> 前 [[한국독립당]] 대표행정위원 <br/> 前 [[한국독립당]] 대표전임위원
| 배우자 = [[한양 조씨]] 부인
| 자녀 = 슬하 5남 3녀
[[한성부]] 출생이며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충청도]] [[청원군|청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886년에서 1892년까지 [[청주시|충청도 청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1892년 [[한성부]]로 귀향하였고 줄곧 [[한성부]]에서 성장한 한병주는 1898년에서 1911년까지 경기도 시흥 양천향교에서 유교 성리학 훈도를 지냈으며 1919년 [[경성부]]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하였고 1920년 2월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성지부 교통국 국장 대리(大韓民國 臨時政府 京城支部 交通局 局長 代理)으로 활동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20년 2월 25일 자택에서 김태규(金泰奎)로부터 김창의(金昌義)가 보내온 인쇄물 100여 장을 받았다. 김창의는 당시 임시정부 산하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내무참사(內務參事)로 국내 [[연통제]] 조직 예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쇄물은 군무부 포고 제1호라는 제목 아래에 '서로 함께 분기하여 일본 제국의 기반을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한병주는 이것을 받고서 1920년 2월 29일, 김순원(金純元), 오정주(吳政柱) 등에게 각 5매씩을 교부하고, 독립 시위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로 인하여 체포된 한병주는 1920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 만기출감하였다. 이후 1922년 3월, 한국독립당 입당하여 이후 조선 광복(1945년)이 지난지가 3년 후인 1948년 3월까지 한국독립당에 당원 직위하였고 1948년 3월, 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낙향을 하였다.
* 前 [[한국독립당]] 행정자치연대위원(1922년 ~ 1933년)
그의 사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추서하였다.
[[분류:1879년 태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청주 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김구]][[분류:의친왕]][[분류:유교 신자]][[분류:한용운]][[분류:김좌진]][[분류:이범석 (1900년)]][[분류:한국독립당]][[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한서진 (1989년) . . . . 9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숙명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수진 (1969년) . . . . 9회 일치
| 학력 = 보성여자고등학교<br />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 배우자 = [[장원준 (기자)|장원준]]
'''한수진'''([[1969년]] [[7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소속의 선임기자이다.
* [[보성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앵커전문요원 공채로 [[SBS]]에 입사하였다. 이후 [[1994년]] [[4월]]부터 [[2002년]] [[4월]]까지 8년간 [[SBS 8 뉴스]]를 진행하였는데, 이 진행 기간은 [[SBS]] 개국 이래 여성 앵커의 최장 진행 기록이기도 하였다. [[2005년]] [[3월 6일]]부터 [[2007년]] [[4월 22일]]까지 [[SBS TV]]의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을 진행하였다. [[2009년]] [[3월 7일]]부터 2009년 [[10월 25일]]까지는 주말 [[SBS 전망대]]를 [[2009년]] [[10월 26일]]부터 [[2011년]] [[4월 1일]]까지 [[한수진의 오늘]]을 진행했고 [[2010년]] [[11월 3일]]부터 [[2011년]] [[3월 9일]]까지 [[SBS 뉴스추적]]을 진행했고 [[2011년]] [[3월 22일]]부터 [[2013년]] [[2월 19일]]까지는 [[SBS 뉴스추적]]의 후작인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을 진행했고 [[2012년]] [[12월 17일]]부터 [[2016년]] [[8월 20일]]까지는 [[한수진의 시사 전망대]]를 진행하다가 국제부장으로 발령나서 중간하차 하였다.
2016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국제부장을 맡았다. 현재는 선임기자로써 평일 오후 5시에 [[SBS 오 뉴스]]를 진행하고 일요일 오전 11시에 라디오 [[만난사람|한수진이 만난사람]] 진행하고 있다.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보성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199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
- 한주완 . . . . 9회 일치
| 배우자 =
| 형제자매 = [[한희정]] (누나)
| 자녀 =
| 수상 = 2013년 KBS 연기대상 남자 신인연기상
* [[2017년]] [[OCN (방송)|OCN]] 월화드라마 《[[멜로홀릭]]》 ... 김선호 / 책방 남자 역
* [[2012년]] 《지난 여름, 갑자기》 ... 이상우 역
* 2013년 [[KBS 연기대상]] 남자 신인상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 한씨]]
- 한필수 . . . . 9회 일치
|직업= 교육자 국회의원
'''한필수'''(韓弼洙, [[태양태음력|음력]] [[1900년]] [[11월 6일]] ~ [[태양태음력|양력]] [[1986년]] [[4월 10일]])는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며 국회의원이었다.
제2대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하여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4월 10일]] 87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1996년]]에는 [[제천고등학교]] 개교50주년을 맞아 교정에 흉상이 세워졌다.
* [http://www.history.go.kr/openUrl.jsp?ID=im_114_20198 한국근현대인물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전임자 = [[유홍렬 (정치인)|유홍렬]]
|후임자 = [[이태용]]
|소속정당 = 무소속 (후에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입당)
- 허가윤 . . . . 9회 일치
* 2010년 [[써니사이드]] 《나쁜남자 착한여자》 (피처링)
* 2010년 [[MBC]]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OST 《One Two Three》 (With 한예지)
* 2012년 [[MBC]]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 유현경 역
* 2013년 2013 설특집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선수권대회 양궁 여자 단체 은메달
[[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2009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K-pop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현재윤 . . . . 9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4년]] [[10월 19일]]<br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해설자 경력'''
'''현재윤'''(玄在潤<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79년]] [[7월 8일]]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포수]]이자, 현재 [[중국야구리그]] [[장쑤 페가수스]]의 배터리코치이다.
[[2004년]]에 기록한 최다 경기 출장(77경기), 타수(210), 안타(45안타)(2할1푼4리) 기록을 [[2009년]](99경기 245타수 53안타, 2할4푼1리)에 경신했다. [[진갑용]]의 시즌 아웃으로 [[2009년]]에는 출장이 더 많았지만, 그도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2년]]에는 백업 경쟁자인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에게 완벽히 밀리며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그 해 [[1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간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이는 양 구단 간 최초의 트레이드이다.
* 1997년 황금사자기 [[타격상]](5할3푼8리)
* 1997년 황금사자기 [[수훈상]]
* {{KBO 타자|72427}}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수유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연주 현씨]]
- 홍소희 . . . . 9회 일치
'''홍소희'''([[1984년]] [[8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다.<ref>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22364 홍소희-다음인물정보]</ref>
* 《미려배후》 (중국 북경BTV, 2014년) - 바자 역
* 《[[사랑한다 말해줘]]》 (MBC, 2004년) - 희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자 역
* 《[[상두야, 학교가자]]》 (KBS2, 2003년)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안성시 출신]]
- 홍예은 . . . . 9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 [[2017년]] 《[[심장박동조작극]]》 ... 남자승빈 역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화정고등학교 동문]][[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2004년 데뷔]]
- 황가히 . . . . 9회 일치
'''황가히'''([[1987년]] [[2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연극 배우]]이자 [[모델]]이다.
황가히는 [[2009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했으며, 연극 및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이며, 또한[[레이싱 모델]]과 활동하고 있다. 2005년 데뷔하여 모터쇼, 레이싱경기, 방송,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바 있다. 황가히라는 이름은 한글의 첫글자인 "가"와 마지막 글자인 "히"를 따서 할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다.
* [[2006년]] [[부산 모터쇼]] [[현대자동차]] 모델
* [[2008년]] [[부산 모터쇼]] [[쌍용자동차]] 모델
* [[2012년]] [[부산 모터쇼]] 쌍용자동차 모델
* [[해태제과]] 자유시간 CF 촬영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8회 일치
*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
*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
즉, 말하자면 실점까지 고려한 골득실차보다 얼마나 많이 넣었느냐에 따라 동점간 우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령 A팀과 B팀이 승점이 같아 리그 1위를 결정하고자 할때 다음 표와 같은 결과가 있다고 하자.
K리그 역사를 살펴보면 승점이 같아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례가 매우 드물 뿐더러 결국에는 매 경기 승점 3점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비를 신경쓰지 않고 경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K리그 말고 유럽의 리그만 봐도 리그 1위팀은 승점을 잘 쌓기 위해 공격도 공격이지만 승리를 굳히기 위해 수비를 신경쓰고, 이에 따라 대량실점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무의미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만약 이로 인해 순위가 갈리더라도 스플릿 라운드의 A/B여부를 가른다거나 승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
[* 자료출처: [http://www.bundesliga.com/en/stats/history/|독일 분데스리가 영문페이지]]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8회 일치
* 점심을 준비하는 카와모토 자매.
* 소면만 먹으면 "야채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츠케멘을 하기로 결정하자 히나도 언제 반대했냐는 듯 대찬성한다.
* 츠케멘을 폭풍처럼 흡입하는 카와모토 자매.
* 나메리카와는 키리야마의 응수에 감탄하며 "최선의 수를 자연스럽게 골라낸다"고 생각한다.
* 미스미는 부담스러워하며 옆 반상에만 신경쓰면 자기가 대국하는 타나카씨에게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 그리고 카와모토 자매는 결국 6인분의 국수를 둘이서 과식하고 드러누워 버린다.
* 분명 장기두는 만화일 텐데 주인공이 어렵게 일전을 치르는건 뒷전이고 카와모토 자매가 배터지게 국수 먹는 내용이 반을 넘는다.--뭐하는 만화인가--
* 요리법 설명이 [[식극의 소마]]보다 자세하다.--음식만화가 아닙니다.--
- 5분의 3 조항 . . . . 8회 일치
하원의원 및 직접세의 배분에 사용되는 인구 계산에 있어, '자유민의 총수'에 '자유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숫자를 5분의 3만큼 더하여 계산한다는 규정이다. 여기서 자유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란 바로 남부에서 노예제 하에 있던 [[흑인]] [[노예]]를 뜻한다.
이는 남부 측에서, 흑인 노예를 인구에 합산하여 자기 주(州)의 인구를 늘려 잡아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의회 의석을 주 마다 분배하는데, 노예 인구가 많은 남부에서는 자유민 만을 인구수에 넣으면 남부의 정치적 세력이 약체화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조항에서는 흑인들의 머릿수를 남부 주의 인구수로 합산함으로서 남부 측이 명백하게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남부의 백인들이 자신들이 노예로 부리는 흑인들의 투표권을 강탈해와서 자기들이 '대리투표'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남부주에서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까지 노예화'''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 FrontPage . . . . 8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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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 작성 참고 자료]]
- NTX . . . . 8회 일치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사이트의 이름. 운영자는 함장.
* 자유토론 : 토론용 게시판. 원래는 일정 기간 동안 [[http://ntx.wiki/bbs/board.php?bo_table=free&wr_id=65610|특정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게시판]]이었다. 현재는 설문조사 게시판과 통합되었다. 싸움이 잦았다.
* 설정 : 자작 설정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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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 자유롭고 싶은 곳. 아무 글이나 올릴 수 있다.
* 운세제비 : 채팅 밑 한줄글에서 할 수 있는 운세제비가 인기를 끌자 만든 곳. 소원, 건강, 금전, 연애, 직업, 학문, 여행, 종합운세를 내놓는다.
* 게임 : 커뮤니티 소속으로 게임 관련 글을 올리던 게시판.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현재는 자유게시판과 통합되었다.
- USS 피닉스 (CL-46) . . . . 8회 일치
USS Phoenix. [[제2차 세계 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동했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해군 함정으로 활동하였으며 전후 [[아르헨티나]]에 넘겨져 ARA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라는 이름으로 취역하였다. 1982년 5월 2일, 영국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의 뇌격으로 격침. 323명의 사망자를 내며 가라앉았다.
이렇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영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1943년 7월,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을 [[카사블랑카]]까지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피닉스는 다시 태평양 전역으로 돌아온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스터 곶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으며, 1944년 1월에는 [[뉴기니]] 섬의 해안시설을 포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에는 [[로스니그로스]] 섬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3월에는 다른 연합군 순양함과 함께 일본군의 해안 포대를 깨부쉈다. 4월 22일에는 홀란디아[* 現 [[자야푸라]].]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는 근처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을 포격, 연합군을 위협할 수 없게 하였다. 5월에는 또다른 상륙작전들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초소를 초토화시켰다. 6월에는 해당 지역에 증원군을 수송하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 쫓아내었다. 7월에는 Numfoor[* Neumfoor라고 읽기도 하는 듯. 갓-구글님께서 한국어 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신다.]의 해안을 포격했다. 9월에는 말루쿠 제도의 [[모로타이]] 섬 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 [[http://www.independent.co.uk/news/uk/politics/margaret-thatcher-showed-no-reaction-after-order-to-sink-belgrano-ship-during-falklands-war-papers-10330282.html|해당 링크]]에서 가져옴. 원 저작자 AP. ||
1982년 5월 2일, 영국 해군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가 헤네랄 벨그라노에게 [[어뢰]]를 발사, 명중시킨다. 영국 국방부는 이에 대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발표하였다. 벨그라노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 수준을 넘어서 가라앉았고, 이로인해 1,042명 중 323명의 승무원이 사망한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8회 일치
게임 용어들은 전부 자체적으로 번역하였다. 유로파 카페 한글 패치가 안되는데 어쩌라고.
* '''Fast Ship Killer(고속함 파괴자)'''
* '''Big Ship Competitor(거함 경쟁자)'''
* '''Steamer Automatic Construction Plants(증기선 자동 건조 공장)'''
* '''Gyrostabilized Fire Control(자이로 안정 화력 통제)'''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3.4|반 자동화]]''' 기술 연구시 '''{{{#green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3.4|반 자동화]]''' 기술 연구시 '''{{{#green +1%}}}'''
* '''Literate NCO's(식자 부사관)'''
- 개돼지 . . . . 8회 일치
* 돈견(豚犬)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가 [[손권]]의 군세를 보고 "자식을 낳는다면 손중모[* 중모는 손권의 자]와 같아야지, 유경승(유표)[* 경승은 유표의 자]의 자식들[* [[유기]]와 [[유종]]을 가리킨다.]은 돼지나 개(豚犬)와 같다."고 감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미흡한 자식을 뜻하는 말로 돈견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개론과 비슷한 느낌. 당시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607082025001&code=|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인용,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발언을 한 것에서 유래한다.
- 거타지 . . . . 8회 일치
'''거타지'''(居陀知)는 9세기 경 [[신라]]의 무신, 외교관, 궁사이다. [[진성 여왕]]의 왕자 [[양패]]의 수행원으로 [[당나라]]에 다녀왔다.
[[진성 여왕]] 때 왕자인 [[양패]]가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성 여왕은 백제의 해적을 염려하여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함께 보냈는데, 거타지도 그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배가 한 섬에 이르렀을 때 풍랑을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 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1명을 섬에 남겨두고 가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이에 거타지가 혼자 남아 있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자기 아들을 죽인 중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거타지가 중을 처치하자, 노인은 자기 딸과 결혼해 주기를 바랐다. 노인은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었다. 거타지는 당으로 가서 양패 일행을 만나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품고 온 꽃을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고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8회 일치
* 여자아이 "파코쨩"과 요리를 한다는 컨셉인데 파코쨩은 1년 정도 주기로 배역이 바뀌고 투입되는 음악과 안무도 인기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등 공들이고 있다.
* 일반인이라면 알 리 없는 자잘한 요소까지 아는걸 보니 어지간히 오덕.
* 전에 출판사에서 편집자랑 스승님(코마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깬다는 반응만 돌아왔던 흑역사가 있는 탓에 키리에는 자중하기로 한다.
* 우마루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거 같다고 말하자 "보통일까"라고 어색하게 대답하고 자학한다.
* 그런데 우마루쪽에서 먼저 "키리에 답다. 키리에랑 같이 부르면 즐겁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용기를 얻는다.
* 우마루가 요리댄스의 안무가 격렬하다고 하자 꼭 그렇지도 않다며 직접 시범을 보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8회 일치
* 그런데 실핀은 귀도 밝은지 앞서 가면서도 "집단에 섞여 있으면 나에게 이길 수 없다"고 도발한다. 키리에는 자기는 딱히 1등을 노리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실핀이 "그럼 나랑 우마루양의 1대1 승부"라고 발언하자 욱해서 우마루양을 재치기 전에 자기를 먼저 재치라고 튀어나간다. 결국 실핀과 키리에의 승부가 돼버린다.
* 에비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바른 자세로 뛰려고 노력한다. 조금 앞서가는 우마루의 폼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금방 마라톤의 요령을 깨우쳤다고 감탄. 그러나 그건 겉모습의 얘기고,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어쩌다 보니 그런 자세가 된 거다. 사실 지금까지 우마루의 운동능력은 임기응변과 벼락치기로 형성된 것. 마라톤처럼 꾸준히 단련해야 하는 종목에는 통용되지 않았다. 고작 3일 연습해 봐야 언 발에 오줌누기. 우마루는 그냥 기권하려 한다.
* 중간에 탈락자들이 모여서 쉬는 포인트가 나온다. 여기서 기권을 하려고 하지만 앞서가기 시작한 에비나가 힘겹지만 포기하지 않는걸 본다. 에비나는 연습기간에도 딱히 좋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힘내겠다고 다짐한다. 도마 타이헤이가 한 말을 듣고 "꼴찌가 창피하다고 생각하는건 나 뿐일지 모르겠다"고 깨달은 것이다.
* 에비나의 모습을 보고 느낀게 있는 우마루는 기권자 탈락자 쉼터를 지나서 열심히 달린다. 에비나도 지지 않고 힘을 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달리낟.
- 길은혜 . . . . 8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2013년]] [[KBS2]] 수목드라마 《[[예쁜 남자 (드라마)|예쁜 남자]]》
* [[2016년]] [[MBC]] 월화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 ... 김유리 역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해평 길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김대휘 . . . . 8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정순미
|자녀 = 2남
2008년 2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법관에서 퇴직하여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면서 동국제강 사외이사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2014년에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위원회 전문가위원에 지명되었으며 2014년부터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를 하였다.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2월 11일에는 민혁당을 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하피고인에 대해 국보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죄 등을 유죄로 인정,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26118]</ref> 6월 15일에 1994년말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추종하는 국제사회주자들이라는 조직에 가입한 뒤 이 조직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노동자연대 등을 소지한 혐의 등으로 4월달에 구속되어 징역 3년이구형된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의 이적단체 가입혐의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것으로 보여 보석을 허가한다"고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44671]</ref>
- 김민수 (1983년) . . . . 8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2012||MBC||[[오자룡이 간다]]||장민우||
|2014||KBS2||[[천상여자]]||허기진||
|2009||[[여자 없는 세상]]||조한철||
| 일일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일일&주말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김민좌 . . . . 8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2016||KBS2||[[여자의 비밀]]||배미수||
|2010||[[무법자 (영화)|무법자]]||희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태백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
- 김상엽 (야구인) . . . . 8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9년]] [[4월 8일]]<br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김상엽'''(金相燁, [[1970년]] [[5월 11일]] ~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현재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재활군 투수코치이다. 부상 이전 촉망받던 고졸 강속구 투수였다. 최고구속 150km대에 근접한 강속구를 뿌렸으며, 당시에는 희귀한 낙차 큰 파워 커브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1990년대에는 당시 보기 드물게 야구 선수로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부인 [[삼성물산|에스에스패션]]의 신사복 빌트모아 TV CF에 출연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99년]] 12월 [[삼성 라이온즈]]가 [[LG 트윈스]] [[포수]] [[김동수 (야구인)|김동수]]를 FA로 영입하면서 보상 선수로 [[LG 트윈스]]로 이적하였으나 부상이 지속되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2경기 동안 6.2이닝, 2패만 기록한 후 [[2001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78승 5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홀수 해에 성적이 좋고 짝수 해에는 성적이 부진한 징크스가 있었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김선길(국회의원)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공무원]], [[정치인]]이다. 호는 선산(宣山)이다. 친형인 김선적은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지도자로 통일광복민족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일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다 중도 사퇴하였다.
이후 [[웨슬리안 대학교]], [[켄터키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하다가 1969년 귀국하여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 연구조정관으로 임명되어 공무원 경력을 시작하였다. 과학기술처,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근무하면서 상공부 [[차관]], 중소[[기업은행]]장, 대한증권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이종근(1923)|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자유당 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99년 [[한일어업협정]]이 문제가 되어 경질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이원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김장섭 . . . . 8회 일치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60 || [[1960년 재보궐선거]] (경상북도 영일군 을) || [[자유당]] || - || '''당선'''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
- 김재권 (철학자) . . . . 8회 일치
'''김재권'''(金在權, 제이슨 킴, Jayson Kim(or Jaegwon Kim), [[1934년]] [[9월 12일]] ~ )은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이다. [[브라운 대학교]] 석좌교수인 그는 [[심신수반론]]을 창시한 이로도 유명하다.
{{토막글|철학자|교육인}}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창숙(배우) . . . . 8회 일치
|| '''수상''' ||[[2000년]] 저축의 날 국무총리표창[br][[1998년]] MBC 연기대상 여자우수상||
* [[천번의 입맞춤]](2011~2012, MBC) - 민애자 역
* [[사랑해, 울지마]](2008~2009, MBC) - 문수자 역
* [[9회말 2아웃]](2007, [[문화방송|MBC]]) - 김신자 역
* [[온달왕자들]](2000, MBC) - 서향옥 역
* [[보고 또 보고]](1998, MBC) - 배정자 역
* [[웨딩드레스]](1997, KBS) - 김완자 역
* [[M(드라마)|M]](1994, MBC) - 성자 역
- 김취경전 . . . . 8회 일치
작자 미상 고전소설. 총 260장에 달하는 장편 소설로서, 2권 2책이다. 국립도서관에 한글 필사본이 있으며 유일본이다.
[[계모]] 안씨(安氏)는 남매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아이 설애(雪愛)를 낳고 나자 시기하고 모함을 한다. 결국 취경은 집에서 쫓겨나고, 선애는 안씨에게 반대하는 이복동생 설애[* 보통 계모 소설에서 계모 자식은 계모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취경전에서는 계모에게 반대하는 역할로 나온다.]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김형국 일가에서는 선애의 시비 채향이 선애가 야반도주하자 안씨를 무서워하여, 어사 서윤택(徐潤擇)에게 집안의 흉사를 고발한다. 서윤택은 김형국과 안씨를 국문하고 취경 남매를 모함한 윤도익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윤도익은 흉계를 꾸며 서윤택은 반대당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과 유배를 당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이 진실을 간파하여 서윤택은 복직되었다.
그런데 이 때, 백제국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구려왕은 백제군에 패배하고 위기에 바진다. 취경과 양공자는 함께 병법과 무술을 고웁하다가, 양공자가 천문을 보고 왕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고, 취경이 전장에 나가서 왕을 구하기로 한다. 취경은 장인의 영혼[* 백제국 태부상서인데 어지간히 백제왕이 싫었나보다(…).]으로부터 삼척보검을 얻고, 도적 천철웅에게 군량미를 지원받으며, 단군에게 갑주와 용마를 받는다.
서울로 돌아와 국왕 앞에서 벼슬을 버린 김취경은 부모와 목부인, 두 여동생, 양공자와 함께 두류산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 김태룡(정치인) . . . . 8회 일치
1934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 법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해금되었으며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서구(대전)|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박충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참여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 탈락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대전직할시]] 서구-[[유성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이재환(정치인)|이재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8회 일치
* 갱 오르카의 부하들이 구호소 쪽으로 접근하자 신도가 어찌어찌 힘을 내서 저지한다.
* 요아라시는 승리를 자축하며 토도로키에게도 굉장한 실력이라 칭찬한다.
* 그는 토도로키에게 말을 붙이려고 혹시 엔데버의 자식이 아니냐고 묻는데.
* 그러는 사이 갱 오르카는 무자비한 공격으로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를 리타이어 시킨다.
* 갱 오르카의 부하들은 곧장 구호소쪽으로 몰려가고 토도로키는 자신의 과거 행적이 이 같은 일을 초례했다며 만회하고자 발버둥친다.
* 신도는 자신이 발을 묶었으니 미도리야에게 부하들의 처리를 맡기고 이 점이 채점자들에게 좋게 평가받는다.
- 남치근 . . . . 8회 일치
토포사가 된 남치근은 임꺽정의 책사로 활약하던 서림을 회유하여, 임꺽정의 본거지 등의 정보를 입수하고 황해도를 집중공격하러 나선다. 임꺽정 일당이 장악하고 있는 황해도에서 남치근은 잔혹한 명령을 내렸는데, 많은 아전과 양민이 임꺽정과 협력하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도적을 숨기는 자, 도적에게 관군의 상황을 알리는 자, 도적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 심지어 '''도적을 보고도 관군에게 알리지 않은 자''' 까지 도적과 한패로 보고 처단하겠다는 엄명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하여, 임꺽정 일당에 협력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임꺽정을 포위한다. 임꺽정이 구월산으로 도주하자 포위망은 더욱 좁혀들어갔으며, [[서림]]을 이용하여 임꺽정 일당을 회유하고 참수하였다. 결국 임꺽정은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체포되어 효수당했다고 소개되지만, 실록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고, 다만 "도적의 괴수를 처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상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절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니세코이/216화 . . . . 8회 일치
* 라쿠는 약속의 아이가 "그 그림책을 읽고 있을 때" 만났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약속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금새 확실한건 아니라고 생각을 고친다.
* 이치죠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만 오노데라는 "좀 더 기다려 보자"면서 설득한다.
* 지금은 그 그림책에 타이틀이 없는데, 원래 타이틀은 "자프셰 인 러브"
* 치토게는 "자프셰"라는 폴란드 어에 "인 러브"라는 영어가 붙어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 이 사랑의 다리에도 자물쇠와 열쇠로 사랑을 맹세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걸 그림책에 넣으면서 제목도 폴란드어로 지으려고 했다.
* 그러나 폴란드어를 못했기 때문에 컴퓨터 번역기로 "사랑을 영원히"라는 말을 폴란드어로 변환했는데, 그 결과 나온게 "자프셰 인 러브"
* 하지만 이치죠의 어머니도 자물쇠와 열쇠에 얽힌 약속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 사실 이치죠 어머니도 상당한 기인.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에게 모든 집안일을 다 맡기다니--아참 야쿠자 마누라였지. 어쩐지--
- 다멘즈 . . . . 8회 일치
몹쓸 남자(ダメな男)라는 뜻. 몹쓸(ダメ)+남자들(Mens)라는 뜻이다.
다멘즈란 몹쓸 남자들, 다멘즈 워커란 남자를 보는 눈이 나쁜 탓에 그런 남자들만 만나서 고생을 하는 여자들을 뜻한다. 다멘즈로 정의되는 요인은 주로 바람을 피우거나, 돈 씀씀이가 헤프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이다.
2000년에서 2013년 까지 연재된 『다멘즈 워커(だめんず・うぉ〜か〜)』라는 만화가 어원. 주로 몹쓸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여자들의 체험담을 소개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드라마화도 되었다. 이 만화의 제목은 카도가와 서점에서 발매하는 잡지 『Men's Walker』를 패러디 한 것이기도 하다.
- 도지한 . . . . 8회 일치
| 형제자매 = 1남 1녀 중 장남
| 배우자 =
| 자녀 =
|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영화부문 남자 인기상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평군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라늬 . . . . 8회 일치
| 배우자 =
*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2012]] ;[[디데이 ]]숨소리조차(남자편)
보고싶다(여자편)뮤직비디오
* [[2012년]] [[디데이]] - 숨소리 조차 (남자편)
*[[2012년]] [디데이] - 보고싶다 (여자편)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라데츠 . . . . 8회 일치
작중에서 등장할 시점에서는 매우 강했다. 작중 최강자였던 손오공과 피콜로를 2:1로도 쉽게 싸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내용이 진행되면서 라데츠는 단순히 하급전사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베지터]]와 [[내퍼]], 그리고 우주최강자 [[프리더]]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파워인플레]]가 가속된다.
해당 시점에서 강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얼빠진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오공과 베지터가 기를 모아서 전투력을 증폭시키자 매우 놀라서 당황하며, 분노한 손오반이 예상외의 파워를 보이는 걸 목격하고도 굉장히 당황한다.
손오공에게 [[사이어인]]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오공은 어린 시절 머리를 부딪치고 기억을 잃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라데츠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라데츠는 손오공에게 동료로 들어오라고 강요하며, 손오공이 거부하자 손오반을 납치해간 다음 지구인을 죽여서 쌓아놓으라고 요구하고 떠난다. 하지만 오공은 라데츠의 사악한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껴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형'이라는 중요한 포지션의 존재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악당이라는 점에서 매우 안습한 캐릭터. 그래도 프리더편 까지는 은근히 언급이 자주 된다. 심지어 프리더도 손오반을 보고 "라데츠의 아들인가?"라는 대사가 있었을 정도니.
* 주인공과 같은 외계인 종족이지만 악당, 주인공과 같은 파워를 가진 강적이라는 점에서 [[슈퍼맨 시리즈]]의 [[조드 장군]]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다만 굳이 말하자면 조드 장군과 비슷한 역할은 [[베지터]]가 아닐까 싶다.
- 랑그릿사(검) . . . . 8회 일치
본래 랑그릿사는 처음부터 성검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 진 무기가 아니라 [[루시리스]]가 가지고 있던 "파사의 검"에 순수하고 정의로운 용사였던 레이몬드 자작, 지크하르트의 혼을 결합시켜 만든 성물이다.
랑그릿사 세계관의 시초가 되는 3의 시작에서는 랑그릿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마검 [[알하자드]]만이 존재하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족과 어둠의 군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알하자드에 필적하는 성검을 벼릴 필요성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그릇인 파사의 검은 루시리스가 보관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없을줄 알았지만...
이 때문에 3의 시기에서 지크하르트와 깊은 인연을 지닌 자들은 랑그릿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후 시대에서 랑그릿사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광휘의 후예]]라 보통 부르게 된다.[* 그러나 랑그릿사3에서는 밸런스 때문인지 조카인 디하르트와 루인만이 사용이 가능하다.]
성검이라 알려져 있지만 랑그릿사의 모태가 되는 파사의 검부터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4~5의 시대에서 알려진 사실로는 파사의 검은 알하자드 원본의 예비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며 랑그릿사가 가진 성스러움은 따지고보면 순수하고도 정의로운 용사라 불린 지크하르트의 혼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예비품이라서 그런지 원본에 비해 손색이 있다는 설정도 함께 있다. 실제 게임에서도 랑그릿사의 성능은 알하자드보다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의 상징인 알하자드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8회 일치
정예 소총수. 반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적국의 반자동소총(SVT-40/G41)이 해금된다.
저격수. 조준경 달린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조준경 달린 반자동소총(Scoped G41/Scoped SVT-40)이 해금된다.
공병. 기관단총, 대전차 수류탄, 휴대용 폭약으로 무장한 병과. Frontline Solder 등급까지 올라가면 권총(C96/TT33)이, Veteran 등급까지 올라가면 반자동소총(G41/SVT-40)이 해금된다.
* 반자동소총
Elite Rifleman의 주무장. 반자동이기에 노리쇠를 당길 필요가 없다.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총검이 해금된다.
Marksman의 주무장. 소총과 반자동 소총에 조준경을 달아놓은거다. 조준 상태에서 6을 눌러 기계식 조준기로 전환할 수 있다. 볼트액션 방식의 경우 클립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한발씩 장전하므로 장전 속도가 느리다.
승무원이 대전차 소총에 피격당해 사망할 경우,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해당 승무원이 맡았던 일도 해야한다.
- 로미오 메일 . . . . 8회 일치
2채널 용어. 가정, 생활판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남자의 경우는 로미오 메일, 여자의 경우는 쥴리엣 메일이라고 부른다. 줄여서 로미 메일, 쥬리 메일.
이혼, 이별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애인, 남편, 아내(「전」도 포함)가 보내 오는 메일을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스스로에게 도취하여,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허세와 도취가 강하게 들어간 문장을 올리고 비웃으면서 노는 것이 이 보고 스레드의 취지로 보인다.
주로 이전까지 갑자기 오만하게 굴고 상대를 얕보고 있던 반려자가 이별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상냥하게 대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웃음 평가가 높다. 스스로 곤란에 처해있는데도 허세를 부리면서 강한 척 하면 더욱 웃음 평가가 높다.
- 마기/296화 . . . . 8회 일치
* 홍명이 도입한 새로운 수송수단은 "전송마법진" 즉 순간이동 장치다. 수송의 일대 혁신을 일으킬 거라고 홍보하자 포도주 상인 부델이 황제국에 포도밭을 만들기로 전격 합의한다
* 바르카크는 알리바바에서 "당신은 바르다르의 왕자"라며 남아줄 것을 권한다
* 하지만 알리바바는 자신은 왕자로서 대의를 논하는 것에 지쳤다며 개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겠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또한 이젠 이 나라엔 왕자는 더이상 필요없다며 현재의 바르바드를 긍정한다
|| 바르다르에 이제 왕자는 필요없어.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
- 알리바바. 왕자로서 돌아와 달라는 바르카크에게
- 마기/307화 . . . . 8회 일치
* 귀왜국이 자리잡고 있는 귀왜도는 원래 알마트란 시대에 마고이가 축정된 지층에 세워진 유적섬
* 알라딘은 암흑대륙처럼 유적 본래의 힘과 자신의 마법을 합쳐서 날게 하고 있다.
* 그러나 알라딘은 "우리들은 이제 지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하다.
* 알라딘은 이제 준비는 끝났다며 "그녀"에게 인사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자고 한다.
* 솔로몬이 다윗을 죽인 것처럼 신드바드란 자를 죽일 수 있겠냐고 묻는다.
* 그러자 알라딘은 "굉장하지 않다는 점이 굉장하다"는 선문답같은 답을 한다.
*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의욕을 가지게 만드는 타입이다.
* 타케루는 잘 모르겠다며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라고 하는데
- 마기/336화 . . . . 8회 일치
* [[쥬다르]]는 동료들을 먼저 가게하며 자신이 14세의 신드바드를 꺾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 [[연백룡]], [[쥬다르]], [[알라딘(마기)|알라딘]]은 주위를 주시하며 보통 던젼이 아니라고 짐작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행과는 무관하게 모래시계만 들여다 보고 있다. 그때 진 "바알"이 나타나 이 던전 바알은 신드바드가 14살 때 공략한 던전인 동시에 현재 그의 "신념"을 나타낸 것이니 신드바드를 이기고자 한다면 일곱 개의 신념을 넘어보라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잠시 수세였으나 제대로 마음 먹고 덤비자 신드바드를 위협적으로 공격한다. 14세의 신체 때문인지 알리바바에게 힘으로 밀리는 신드바드.
알리바바가 "아모르 사이카"로 공격하자 "바라라크 사이카"로 방어한다. 둘의 마법이 부딪혀 시야가 가려지자 신드바드는 원거리에서 참격을 날려 기습을 가한다.
* 신드바드는 자신의 고향이 전쟁을 일삼는 지옥도였고 그걸 바꾸기 위해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솔로몬 왕의 세상은 인간의 선의만으론 바꿀 수 없는 부조리함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힘으로 파괴하는게 옳은지 묻는다. 이것이 바알이 신드바드에게서 본 "분노와 영걸의 신념"이다. 바알은 이것이 단순한 살육전이 아니라 "신을 결정하는 시련"이므로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 일행은 난처해진다. 시간이 촉박한데 그저 힘으로 쓰러뜨리는 것 이상으로 신드바드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패널티가 크다. 그때 쥬다르가 코웃음을 치며 나선다. 그는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뒤 홀로 신드바드를 상대하겠다고 선언한다. 쥬다르는 지금의 신드바드가 "열받아서 정신 못차리는 핏덩이"라며 그 입을 다물게 하는데엔 자신이 제격이라고 하는데.
- 메디나 . . . . 8회 일치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이슬람교도가 아닌 다른 타 종교 신자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무함마드의 [[무덤]]인 예언자 모스크가 있다.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치하에 있으며, '두 성지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2016년 7월 4일 저녁(한국 시간 5일 새벽) 한 남성이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모스크]] 부근에서 자폭하여, 보안요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우디에서는 같은 날 동부 카디프, 서부 제다 항구도시의 미국 총영사관 부근에서도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이는 이슬람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가 [[라마단]] 기간 동안에 테러를 무슬림들에게 호소한 것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예언자 사원을 향하던 남성을 수상하게 여긴 치안 당국자가 제지를 했는데 몸에 두르고 있던 폭발물을 터트려서 테러를 일으켰다고 한다.[[http://www.47news.jp/korean/international_diplomacy/2016/07/141460.html (참조)]]
- 미스터 판타스틱 . . . . 8회 일치
초능력 외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적 지능을 가진 히어로이다. 리드 리처즈는 [[마블 코믹스]]의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중 하나로서 전기,기계 및 항공우주공학,전자공학, 화학, 물리학의 모든 수준,그리고 인간과 외계 생물학에도 숙달한 천재다. [[타임머신]]이나 차원도약장치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과학자이다.
그는 우주여행, [[시간여행]], 이차원여행, 생화학, 로봇 공학, 컴퓨터, 합성 고분자, 통신, [[뮤턴트]], [[교통]], 홀로그래피, 에너지 생성, 스펙트럼 분석등 다양한 분야의 업적을 달성했다.
그가 제작한 판타스틱 포 멤버들의 코스튬에 사용되는 불안정한 분자들은 열, 추위, 압력, 밀도, 먼지, 급격한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등 특정환경에 적응하는 성질을 갖고있는데, 이 분자를 이용하여 착용자의 능력에 맞춘 코스튬을 제작한 것이다.
훗날 정부의 원조로 우주선 발사가 가능해졌을 때 리드는 우주 비행사가 된 벤과 성인이 된 수, 그리고 수의 동생인 자니 스톰(휴먼 토치 II)와 함께 직접 우주선을 타고 시험비행에 나선다. 그러나 리드의 예상치 못한 실수로 네 사람은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고, [[지구]]에 돌아온 뒤 그들의 육체가 변화를 일으킨 것을 알게 된 네 명의 초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판타스틱 포'를 결성하게 된다.
- 미저리 . . . . 8회 일치
전직 간호사. 셀던의 소설인 "미저리"의 추종자로 성격이 심하게 불안정하다.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은 셀던을 구조해 감금한다. 미저리의 결말을 본 이후 셀던을 협박해 새로운 미저리 시리즈를 쓰게 한다.
소설가 폴 셸던은 자신이 새로 쓴 소설을 출판사에게 전해주기 위해 차를 운전한다. 그는 "미저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시리즈 "미저리"[* 작중 묘사에 의하면 근세 배경의 신데렐라 스토리 소설인 것 같다.]로 성공을 거둔 작가지만 폴은 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새로 낸 미저리 시리즈인 "미저리의 아이"의 최후반부에 아이를 낳던 미저리가 사망하는 내용을 넣어 시리즈를 끝내버린 후, 차도둑을 소재로 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한다. 소설을 완성한 폴은 자신이 쓴 소설의 작품성에 흥분하며 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빙판길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다.
폴을 구조한 것은 애니 윌크스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폴 셸던과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이던 그녀는 폴을 발견해 자신이 추종하던 그 작가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데려온다. 전직 간호사였던 애니는 폴을 간호하면서 자신이 미저리와 폴 셸던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녀는 폴의 가방에서 발견한 새로운 소설의 원고를 읽어보지만 재미가 덜하고 언어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때려 치고 자신이 산 신작 "미저리의 아이"나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말까지 전부 읽는다.
미저리가 죽는 결말을 본 애니는 광분한다. 그녀는 폴의 눈 앞에서 신작 원고를 불살라버리고는 미저리를 살려서 새로운 소설인 "미저리의 귀환"을 쓰자고 협박한다. 폴은 살아남기 위해 애니의 검수 아래 "미저리의 귀환"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 바키도/127화 . . . . 8회 일치
* 자기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선전하는 모토베 이조.
* 모토베는 칼을 돌려주는 척하면서 또 한 번 폭발을 일으키고 무사시의 방어가 무너지자 사슬추로 상처난 얼굴을 두드린다.
* 관중석의 한마 바키는 무슨 수를 쓰든 살아만 달라고 기원하고 가이아는 뜻밖의 선전에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 도쿠가와는 자기 몸도 못 추스리겠다고 관중석으로 달아난다.
* 모토베는 무사시의 칼을 뽑으며 분명 칼을 든건 자신인데도 간격은 무사시 쪽이 아득히 높다며 담배 연기를 뱉는다.
* 모토베의 선전을 자기일처럼 기뻐하는 가이아. "그 수밖에 없다고오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거의 닌자 만화에 가까워졌다.
- 박경석 (1960년) . . . . 8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남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영,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이후 5년간 집안에서만 생활하다가 [[1988년]] 서울장애인복지관에 입소, 그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1년]]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으며<ref name=park /> [[200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숭실대학교에 입학할 무렵 논의가 시작된 장애인을 위한 야간학교의 설립에도 참여하여 [[199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구의동]](현 [[광진구]]) 정립회관 일부를 빌려 노들장애인야간학교(현 [[노들야학|노들장애인야학]])를 설립하였다.
* [[2002년]]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와 관련하여 [[서울지하철]] 철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가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ref name=pressian>[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6845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몸…당신은 자유로운가], 《[[프레시안]]》, 2014년 5월 4일</ref>
* [[2012년]] [[10월 26일]] 장애인 당사자 인권운동가 김주영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광화문에서 장례식 노제를 치르다 폴리스라인을 넘어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장애인 활동가 18명에게 총 1500여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박경석은 이를 대신하여 스스로 노역형을 자처, [[서울구치소]]에서 5일간 노역형을 복역하고 출소하였다.<ref name=park /><ref name=pressian />
- 박경석(1937) . . . . 8회 일치
* [[정치인/목록]]. [[기자(직업)/목록]]. [[불교/인물]]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정치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차장, 논설위원, 주일본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상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지적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로 근무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기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박광정 . . . . 8회 일치
[[1992년]]에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로 데뷔하였으며, 같은 해에는 [[연극]] 마술가게를 연출하면서 연극 연출가로도 데뷔하였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드라마]], [[영화]] 등에 고르게 출연하였으며, 특히 드라마에서는 복잡한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하는[* 예) 직장 상사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만년 과장, 구박받는 가장 역할.] [[감초]] 조연을 자주 맡았다.
*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
* 1998년 [[남자 이야기#s-3|남자 이야기]]
* 1999년 자귀모
* 2000년 물고기 자리
- 박승효 . . . . 8회 일치
박승효(朴勝孝, [[1933년]]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전문 경영인이다. [[1969년]] [[선경합섬]]의 창립 초기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상무, 이사, 전무이사와 [[선경그룹]] 계열사인 [[요트]][[제조]]부문 [[선경머린]]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밖에 신풍제지 대표이사, [[동국무역]] 전자사업부문([[동국전자|동국종합전자]]) 대표이사, [[엔씨에스시스템]] 공동대표 등 전문 경영인으로 활동했다.
*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 [[1979년]] [[6월 22일]] [[동국전자|동국종합전자]] 대표이사 사장<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06220009920301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06-22&officeId=00009&pageNo=3&printNo=4089&publishType=00020 ]</ref>
* [[1981년]] [[7월 21일]] [[한국전자진흥회]] 이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72300099208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7-23&officeId=00009&pageNo=8&printNo=4732&publishType=00020 ]</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최고 경영자]][[분류:SK그룹]][[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연우 . . . . 8회 일치
| 경력 = 풀무원 부사장<br>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br>가야 대표이사<br>자유총연맹 과천시 회장
| 순자산 =
| 전임자 =
| 후임자 =
| 배우자 =나경희
| 자녀 = 박상곤, 박혜원
*2014.5 ~ : 제6회 동시지방선거 후보등록자 (새누리당, 경기도의회 의원)
*2015.12 ~ : 자유총연맹 과천시 회장
- 박현진 (음악가) . . . . 8회 일치
| 배우자 =
'''박현진'''([[2005년]] [[5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이자 래퍼이다. 2016년 《[[K팝스타 6]]》에 참가하였으며, [[김종섭]]과 함께 보이프렌드라는 이름으로 듀오를 결성하여 우승하였다.
* 《[[K팝스타 6 파이널]]》 (2016-2017) - 참가자/우승자
[[분류:200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래퍼]][[분류:K팝 스타 참가자]][[분류: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반지닦이 . . . . 8회 일치
2011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이건 한국 개봉 당시 제목이며 원제는 그냥 Green Lantern.)의 오역이 넘치는 팬자막.
정확하게는 그냥 영화 그린 랜턴의 팬자막으로 반지닦이라는 제목이 없었으나 자막중 "모든 랜턴들은 반지를 착용했고, 그중 반지를 닦는 자도 있었다." 라는 오역 때문에 반지닦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원래 자막은 "모든 랜턴들은 반지를 착용했고, 그중 가장 빛나는 자도 있었다."
"괜찮아"를 "괸찮아"라고 쓰는 등 상당히 막장이다. 가장 유명한 대사로는 "일기가 좋은 날, 진흙같이 어두운 밤. 아니다 이 악마야, 내 앞에서 사라지지. 누가 사악한 수도 악마를 숭배하는지 볼까. 나의 힘을 조심하여라, 그린랜턴 빛!" 으로 원래 대사는 "가장 밝은 날에도, 가장 어두운 밤에도. 그 어떠한 악도 내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악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여. 내 힘을 경계하라, 그린 랜턴의 빛을!" 이다.
영화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면 한번 웃고 넘어갈 퀄리티였으나 사실 영화부터가 병맛이며 사실 나올 때부터 망작취급 받았다. 덕분에 이 오역 자막은 한국의 DC 코믹스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망한 영화에는 'OO닦이'라는 별명이 붙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 백남억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에 다섯번 당선되었으며, 민주공화당 의장을 지냈다. 송산 [[박준규(1925)|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자형(姉兄)이 된다. [[종교]]는 [[불교]]이다.
그 후 1971년 6월 김종필이 [[국무총리]]가 된 후에 [[실미도 사건]], [[광주대단지사건]] 등이 일어나자, 야당인 신민당과 협조하여 친김종필계였던 오치성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장관의 해임안 가결을 주도하였다. 야당과 손잡고 박정희가 직접 임명한 장관 해임에 찬성하는 항명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10.2 항명 파동]] 참조.
항명파동으로 박정희의 분노를 사면서 자연스레 4인체제는 무너졌고, 백남억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상주시|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윤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박정수(정치인)|박정수]] 후보와 정휘동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 후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동부화재|동부화재해상보험]]의 전신인 한국자동차보험 회장을, 1991년부터 5년간 (재)성균관대학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법학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보루토/4화 . . . . 8회 일치
* 어쩌면 "닌자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스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나루토.
* 수리검 인술로 유루이 근처의 풍선을 자폭시켜서 승리를 따낸다.
* 보루토의 준결승 상대는 시카다이. 아버지들이 고대하던 자식대결이다.
* 시카다이가 일족의 비전 그림자 인술로 보루토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 보루토는 그림자 분신을 쓰며 회피, 접근에 성공하지만 시카다이는 그림자를 방원 형태로 늘려 분신까지 전부 포착하는데 성공한다.
* 엄청난 수의 환영분신이 나타나자 시카다이는 싱겁게 패배를 선언한다.
* 들킨걸 모르는 보루토는 승리를 자랑하며 주먹을 내민다.
- 보쿠걸/102화 . . . . 8회 일치
* 잠시 후 후지와라는 "이대로 미즈키가 여자애로 남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돌직구를 날린다.
* 타케루는 "여자같은 얼굴로 항상 고민하고 갈등했으니, 차라리 여자애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면서
* 지금은 여자애인 채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 타케루는 또 얼버무리려고 하지만 후지와라는 "결국 여자애인 미즈키가 귀엽다는 말이지?"라며 쐐기를 박는다.
* 타케루는 약간 자기혐오하지만 후지와라는 "미즈키는 내가 봐도 귀엽고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격려한다.
* 갑자기 스토리가 급물쌀을 타고 있다.
- 브와나 비스트 . . . . 8회 일치
이름답게 [[동물]] 관련 초인으로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연결되어 초인적인 힘, 스피드, 감각을 소유한다. 또한 킬리만자로 동굴의 미네랄 워터를 마셔서 마신 양만큼 상해에 대한 저항력을 얻는다. 이 미네랄 워터는 붉은 원숭이 듀바(Djuba)가 병에 담고 다니며 보충해준다.
[[엄친아]]같은 인물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백만장자 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으란 말을 들었지만 거절하고 대학 룸메이트였던 루퍼트 켄보야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잠베시 국의 새로운 동물보존구역 책임자 겸 게임 관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개인 비행기에 탔을 때, 비행기가 벼락이 맞는 사고를 당해 킬리만자로 산꼭대기에 추락해 부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뮤턴트 붉은 원숭이들의 동굴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무기질을 통해 걸러진 빗물을 마신 액스웰은 강하고, 사나워진 것을 느꼈다. 이후 붉은 원숭이들을 공격하여 복종시켰고, 붉은 원숭이들은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고대의 헬멧을 가져와 맥스웰의 머리에 씌웠다. 그를 헬멧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
브와나 비스트는 애니메이션인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 시즌1 'This Little Piggy' 에피소드에 등장했다. [[원더우먼]]이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하자, 수색에 나선 리그 멤버 가운데 한 사람.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 2시즌에서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며, 자신과 비슷하게 동물과 관련된 능력을 가진 빅센을 연인이다. [[틴 타이탄즈]] Go! 에도 짧게 등장한다.
사실 굉장히 마이너한 캐릭터인데 엽기적인 능력 때문에 21세기 들어 애니메이션에 자주 출연하는 홍복을 누리고 있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8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62. '''강자군림'''
* 그래서 노엘이 올 것도 알고 있었고 게임에 이겨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 그러니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데, 노엘은 친구와 어떻게 싸우냐고 반문한다.
* 노래마법 "어머니의 자장가"로 공격하는 카호노.
* 그러자 카호노는 좀 더 강한 노래마법 "파괴의 비트"로 공격한다.
* 키아토는 마법이 아니라 진짜 검으로 상대하면 아스타의 검은 그냥 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비꼬고 자신의 움직임에 무도마법까지 합하면 아스타는 따라올 수 없다고 도발한다.
* 아스타는 기지를 발휘해서 자신도 물처럼 움직이려고 한다.
* 갑자기 천정을 뚫고 고래형상의 무언가가 그를 덮친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8회 일치
* 고슈는 또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만 지난 번 아스타의 일갈을 되새기며 생각을 바꾼다.
* 그리고 "누가 네 밥을 가로채려 한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데, 지금까지 죽은 듯이 자고 있던 챠미가 드디어 깨어난다.
* 적은 급변한 상황에 당황해하고 일어난 챠미는 적이 자신의 고기를 가로채려는 걸로 인식한다.
* 솜 창성마법 "잠자는 양의 일격, 이격, 삼격"
* 드러난 그레이의 모습은 여자아이.
* 그것도 극도의 부끄럼쟁이라 변신이 풀리자마자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변신하고 다녔던 것도 부끄러움 때문.
* 여동생 성애자인 고슈는 별 신경 안 쓰고 "이제 움직일 수가 없으니 마리 사진이나 보면서 회복하겠다"며 정말로 보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8회 일치
* 팔휘장 중 한 명, 선두의 깐깐해 보이는 남자가 반격을 가한다.
* 특히 성격이 나쁘고 친구가 없다고 까는데 그러다 "하지만 안심해. 내가 늘 함께 있을 테니까. 이거 빨리 끝내고 데이트 가자"라고 멋대로 이야길 진행시킨다.--츤데레네--
* 마법제는 찬성하며 자신은 양동에 대비해야 하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한다.
* 아스타도 가겠다고 나서지만 야미가 중상자라며 거부한다.
* 그러자 챠미가 나서서 "내가 선배로서 동행하며 지킬 테니 함께 가자"고 한다.
* 왠일로 챠미가 의욕에 불타자 감격한 야미는 결국 모두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고 핀랄 룰러케이트를 찾는다.
* 바람의 정령은 정석 츤데레. 유노에게 악담을 퍼붓는듯 하지만 결국 그런 유노를 좋아해주는건 자신 뿐이라고 주장한다.
- 블리치/682화 . . . . 8회 일치
* 자라키 켄파치가 제라드를 쓰러뜨렸지만 뱌쿠야와 토시로는 켄파치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 그런데 켄파치가 갑자기 뛰어올라 경계태세를 취한다.
* 제라드의 힘은 '''"아슈토니스"(신의 권능).''' 자신은 죽는 한이 있어도 신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자라며 켄파치에게 칼을 날린다.
* 켄파치는 받아치려고 하지만 '''갑자기 팔이 부러지고 만다.'''
* '''"얼음 꽃이 전부 지고난 다음, 그때야 말로 대홍련 빙륜환이 완성된다"'''며 갑자기 육체가 성장한다.
-토시로. 대홍련 빙륜환의 꽃잎이 지고 갑자기 급성장하면서
* 야치루는 켄파치 눈에만 보이나 본데, 아마 야치루가 곧 만해 자체일 듯 하다.
- 블리치/688화 . . . . 8회 일치
* 이치고는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다.
* 이치고의 새로운 참월이 두 자루인 것은 퀸시의 힘과 사신&호로의 힘이 각각 한 자루씩 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
* 이 상태의 이치고는 오리히메의 육화의 힘 조차 무시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 이치고가 큰 기술을 준비하는데 유하바하는 또 월하천충이 날아오는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걸 안다.--독자도 그런줄 알았다.--
* 왜 부활한 참월이 두 자루인가 떡밥이 해결.
- 블리치/691화 . . . . 8회 일치
* 하쉬발트의 능력은 "더 밸런스". 운이 좋은 자에게 동량의 "불운"을 부여하고 자기 자신에게 오는 불운은 반사시키는 능력
* 세계의 "불운"을 일정한 비율로 운이 좋은 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불운은 "프로인트 실드"로 방어하는 능력.
* 하지만 하쉬발트는 "나와는 상성이 안 좋다"며 더 밸런스를 발동, 자신의 "불운"을 우류에게 되돌린다.
* 우류가 하쉬발트에게 부상을 입히는 "행운"은 동량의 "불운"으로 되돌아가고 거기에 하쉬발트 본인이 받은 불운이 프로인트 실드로 다시 한 번 돌아가므로, 결국 우류는 능력을 쓸 수록 배가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 블리치/693화 . . . . 8회 일치
* 하지만 하쉬발트는 유하바하가 우류에게 힘을 빼앗지 않고 자신의 힘을 빼앗은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정신승리--
* 자신만이 유하바하의 힘이 되었기 때문.
* 우류가 떠나기 전 하쉬발트는 그를 불러서 몸에 난 상처를 자신에게 옮기도록 한다.
* 우류가 망설이자 모든 것을 천칭에 달라고 말한건 "망설임에 몰려서 천칭에 달지도 못하고 정한 일은 후회 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설령 결과가 바뀐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고 행동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후회는 없다는 독백과 함께 숨을 거둔다.
* 츠키시마는 자신의 능력으로 "만해가 부러지지 않은 과거"를 끼워넣음으로서 천쇄참월이 부활할 수 있는 과거를 만든다.
* 오리히메가 다시 쌍천귀순을 시전하자 천쇄참월이 수복된다.
- 서울특별시/인물 . . . . 8회 일치
* [[김명자]] - 종로구
* [[김정균(연기자)|김정균]] - 중구(서울)
* [[소연((여자)아이들)|소연]] - 강남구
* [[소원(여자친구)|소원]] - 은평구
* [[이행자]] - 관악구
* [[은하(여자친구)|은하]] - 금천구
* [[정소영(여자 배우)|정소영]] - 강서구(서울)
* [[최자]] - 강남구
- 서정돈 . . . . 8회 일치
| 직업 = 대학 교수, 교육인, 의학자
| 배우자 =
'''서정돈'''(徐正燉, [[1943년]] [[12월 11일]] ~ , [[대구광역시|대구]])은 [[대한민국]]의 교수이자 의학자이다.
* 1994년 11월 ~ 1996년 10월 : [[대한적십자사]] 의료사업자문위원회 위원
* 2010년 :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총장]][[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
- 선조 . . . . 8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능력도 있고 사람보는 눈은 있으나, 왜란같은 거대사태를 대응해내는 능력은 부족했고, 말년에는 자기 아들에게 허수아비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모든 능력을 정치질에 돌린 양반이라 할 수 있겠다.
- 세미스텔스 . . . . 8회 일치
* IFF 장비에 RCS 저감을 목적으로 상자형 복합재 구조물 설치
* 레이더 전자파를 흡수하는 RAM 페인트 사용
=== 초창기 디자인 된 사례 ===
스텔스 기술 초창기에 디자인 된 사례.
=== 신규 디자인 된 사례 ===
* HAL 테자스
--스텔스 트렌드에 조금이라도 쫓아가려고 기술자들이 피눈물 나게 조금씩 고쳤다.--
세미스텔스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밀덕들은, 결국 실전 상황에서는 다양한 무장을 하면서 RCS가 늘어나고 결국 스텔스기보다는 비스텔스기와 별 차이 없는 RCS 밖에 나오지 않게 되므로, 세미스텔스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세미스텔스 옹호론자들은 그래도 큰 돈 들여서 여러 회사들이 만든 것이니까, 쓸모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런 주장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도박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스텔스만은 못해도 세미스텔스 역시 상당한 전술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 세컨드 오피니언 . . . . 8회 일치
의료 분야에서는 새로운 치료법이 매일 생겨나며, 단 한 명의 의사가 모든 의료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한 명의 의사, 하나의 병원이 제공할 수 있는 의료 방법에는 한계가 있으며, 환자가 받고 싶어하는 의료 역시 다양하다. 세컨드 오피니언은 환자가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의료를 결정하기 위하여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병원을 바꾸거나, 의사를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고, 결과적으로 의사를 바꾸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의사에 따라서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존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의사가 있어, 기존 주치의와 환자의 관계에 지장이 올 수 있다.
세컨드 오피니언이라고 하여도 완전히 반대 되는 말을 하거나, 환자가 오히려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환자의 선택을 지원하는 직업으로 '의료 코디네이터'가 있다.
과거에는 의사에게 모든 의료를 맡겨왔으나, 설명과 동의를 받아 자기 자신도 치료에 관해서 결정하는 의료로 변해왔으며, 이러한 사회 배경의 변화에 따라서 세컨드 오피니언이 나타나게 되었다.
- 소벌도리 . . . . 8회 일치
{{이해당사자|날짜=2014-4-4}}
[[일연]]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고허촌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연합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47848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기원전 69년]]에 6부의 촌장들이 모여 덕(德)이 있는 자를 찾아 왕으로 삼고 수도를 정해 나라를 열 것을 결의하였는데 나정(蘿井)에서 이상한 기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붉은 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박혁거세]]이며,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사로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사기]]》는 나정에서 알과 혁거세를 처음 발견하여 양육한 것이 소벌공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허촌은 [[신라 유리왕|유리왕]] 때 사량부(沙梁部)로 개칭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의 조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진주 소씨]] 족보는 소벌도리의 생애에 대해 다른 기록을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진한의 왕족으로 자(字)는 당운(當雲)이다. 진한의 초대 군주 소백손의 4대손이며 돌산고허촌의 촌장을 지냈다고 한다. 사후 [[신라]]의 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사량부대인(沙梁部大人)이 되었다. [[516년]](법흥왕 3년) 충선(忠宣)의 [[시호]]가 추서되었는데, 뒷날 [[태종무열왕]]에 의해 왕으로 추존되어 문열왕(文烈王)이라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최씨와 소씨는 그를 시조로 하고, 각각 [[최치원]], [[최언위]], [[최준옹]], [[알천]](소경) 등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대 수를 기세(起世)하고 있다.
*** 손자 : 최소벌리(崔小伐利)
*** 손자 : 소부류(蘇扶流)
*** 손자 : 소정동(蘇井同)
진주 소씨 족보의 기록에 따르면 25세손 [[최치원]]은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고<ref name="연합1" /><ref name="syge1">[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71228001731&subctg1=&subctg2= [대한민국통맥풍수] <57·끝>경주 최부잣집과 자기 풍수 - 세계를 밝히는 신문 - 세계일보<!-- 봇이 붙인 제목 -->]</ref>, 24대손 [[소경 (사람)|소경]]은 진주 소씨의 선조가 되었다.<ref name="hom1">[http://www.hometer.com/search/personalcontent.asp?m_bon=%B5%BF%C1%D6%28%F5%CB%29&m_sung=%C3%D6%28%F5%CB%29 족보나라 - 대한민국 대표 족보 사이트 종친회<!--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외에 신라 말, 고려시대 초에 살았던 [[최준옹]](崔俊邕) 도 소벌도리의 25세손이다.<ref name="hom1"/>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67037.html 경주 내남면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한겨레신문 2006년 10월 24일자
- 손치은 . . . . 8회 일치
}}</ref> 존경을 받았으며, [[김창숙]]이 항일 운동 중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압송되었을 때도 김용무와 함께 변론을 자처하였다.<ref>{{서적 인용
|저자=김경재
[[1932년]]에 [[경상북도]] 안동경찰서에서 순사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일본인 경찰관이 살해되고 조선인 청년 5명이 용의자로 체포된 일이 발생했다. 이때 손치은이 무료로 변호를 맡아 이들이 무죄임을 밝혀냈다.<ref>{{저널 인용
|저자=전봉관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송주훈 . . . . 8회 일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된 송주훈은 재활을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뛰게 되었으며, 시즌이 개막한 후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경기 (19경기) 풀 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넣는 등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고, 2016년 [[J2리그]] 선수들 중 공중볼 점유율 1위 선수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국을 앞두고 FC 기후와 가졌던 7월 16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의 경합 도중 새끼발가락 골절상[* 발가락이 완전히 부러져서 수술이 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송주훈 본인도 올림픽 직전에 당한 부상이라 충격이 상당했다고.]을 입어 다시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니가타에서의, 실질적인 데뷔 시즌. 니가타에서도 송주훈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는지 [[등번호]]로 팀의 핵심 [[센터백]]들이 주로 받는 4번을 받았으며, 시즌 초에는 부상 완치에 집중하느라 출장하지 못하다가 완치된 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이 상위 리그에서도 실력이 통하는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소속팀인 니가타가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31795869929652224|강등이 확정되면서]] [[J1리그]] 경험은 1년만에 끝났고, 이전 소속팀이었던 미토와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다음 시즌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니가타와 재계약을 맺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51257265041887232?s=17|#]] [[아시아 쿼터제]] 폐지로 인해 이적해봤자 [[벤치워머]] 신세일 것이 뻔한 [[중국 슈퍼 리그]]로 가느니 일본에서 주전으로 뛰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피지컬이 뛰어나고, 헤딩도 좋고, 빨라요. 수비수로서 갖춰야할 자질은 거의 다 갖췄다고 생각해요."''' - [[박용우(축구선수)|박용우]]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남자축구/조별리그 C조, D조#.s-2.2.4|2016 리우 올림픽 축구 조별 예선 독일전]]에서 [[황희찬]]이 선제골을 넣은 후, 부상으로 불참한 송주훈의 4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올리며 기뻐하는 [[골 세레머니]]를 펼쳤다. 송주훈도 이 골 세레머니를 보면서 매우 뭉클했다고.
* 일본 내에서는 원래 팀인 [[알비렉스 니가타]]보다, 임대로 뛰었던 [[미토 홀리호크]]에서 더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토에서는 임대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자 그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을 '''한국어로 써서''' 걸었을 정도.
- 송하윤 . . . . 8회 일치
||<#CC9966> {{{#ffffff '''데뷔'''}}} ||<(> [[2003년]]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 ||
[[2015년]] 드라마 '내 딸, 금사월'에서 사고로 [[유아퇴행|지능이 퇴행]]된 주오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호불호 갈릴수 있는 배역임에도 개성있는 연기력으로 소화화면서 오히려 많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귀엽게 받아들여졌다.
|| [[2014년]] || [[제보자]] || 이슬 || ||
|| [[2003년]] || [[KBS2]] || 상두야 학교가자 || || ||
|| [[2006년]] || [[MBC]] || [[베스트극장]] - 그 남자의 질투 || 사라 || ||
|| [[2010년]] || [[팀]] || 남자답지 못한 말 ||
|| [[2017년]] ||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여자 우수상 || 쌈, 마이웨이 ||
- 송호창 (1967년) . . . . 8회 일치
'''송호창'''(宋皓彰, [[1967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인권 변호사이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10317 민주당, 송호창·이학영·백혜련 전략공천] 프레시안 2012-02-28</ref>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촛불 정국으로 대변되는 촛불민심을 지지하여, '촛불 변호사' 로 활약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662 '촛불 변호사' 송호창, 안상수 16년 아성 '탈환'] 오마이뉴스 2012.04.12</ref>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로 나선 [[박원순]]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65 ‘박원순 대변인’ 송호창, ‘보온병’ 안상수에 도전장] 미디어오늘 2012-02-06</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의왕·과천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ref>[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깨진 링크|url=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ref>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후보 캠프에 합류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10/09/0502000000AKR20121009183100001.HTML?template=2087 송호창 安캠프행..안철수발 '빅뱅' 시작되나] 연합뉴스 2012-10-09</ref> 2015년 12월 13일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였지만 자신은 탈당하지 않겠다고 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15/0200000000AKR20151215192800001.HTML?input=1195m</ref>
* [[2012년]] [[9월 27일]] [[문화일보]]의 '송 의원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캠프로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기사에 대해 그의 보좌진이 문화일보 기자에게 약 20분 동안 [[안철수]] 캠프로 갈 생각이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했으나 [[10월 9일]] 그는 [[안철수]] 캠프 합류 공식선언.<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2701033623236004안철수, ‘새 정치 하자’ 전문가 의기투합… ‘실험적 리더십'] 문화일보 2012-09-27</ref><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01101070723236002 “安캠프 안간다”던 송호창…] 문화일보 2012-10-11</ref>
* [[2015년]] 《[[남과 여 (2016년 영화)|남과 여]]》 ... 부산 브랜치 회의 참석자 역
* [[2016년]] 《[[춘몽 (2016년 영화)|춘몽]]》 ... 동물원 남자 역
|전임자 = [[안상수 (1946년 2월)|안상수]]
|후임자 = [[신창현 (1953년)|신창현]]
- 스틸오션 . . . . 8회 일치
단단한 갑빠와 강력한 화력으로 딜을 하는 함종. 크고 느리니까 항공모함과 잠수함, 구축함의 어뢰는 조심하자.
혼자서 RTS 하는 놈들. 적당한 항공기를 편성, 출격시켜 전투를 벌인다. 정찰기 덕분에 구축함보다 나은 정찰 성능을 보이지만 항공모함 자체는 별 힘없는 대형 보트니 주의.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보조 무장. [[네이비필드]]와 달리 사용자가 폭발 범위 내에 있어도 데미지를 받지는 않는다. 깊이 잠항한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항공기가 시야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사격하는 무기. 플레이어가 직접 쓸 순 없다.
[[욱일기]]가 사용 가능하다. 반면 나치 독일의 전쟁기는 중앙의 갈고리십자가 철십자로 바뀌어져 있다.
로비의 전체채팅방 놈들이 영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떠든다. 가끔 싸우기도 한다.
- 식극의 소마/161화 . . . . 8회 일치
센트럴의 잔당 사냥 이후, [[나키리 아자미]]는 토오츠키 학원을 완전히 장악해 나가기 시작한다.
* "잔당사냥"이 있은 후 아자미는 본격적으로 토오츠키 학원을 개편한다
* 수업은 원래 정해진 레시피를 조리하는 것과 재료만을 두고 자유롭게 조리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후자를 폐지하고 전자만 남긴다
* 묘하게 기가 약한 사내인 에이시는 학생들 중에서 조수를 뽑아 쓰려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자 의기소침해 한다
* 에이시는 그런 소마를 "쓸모 있는 남자"라 말하며 자신의 심복이 되라고 권유한다. 즉 "센트럴에 들어와라"라고 권하는 것.
- 식극의 소마/188화 . . . . 8회 일치
* 소마는 자신도 시식시켜 주기로 했지 않냐며 자기 몫을 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 소마는 자신이 안중에도 없다는 투라고 비꼬는데 하야마는 "계속 한 얘기"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 바로 시식에 들어가는 심사자들.
* 하야마의 스페셜 케이준 스파이시가 절묘하게 곰고기를 감싸서 복잡하고도 중후한 풍미를 자랑한다.
* 처음 식극이 결정됐을 때, 센트럴은 그에게 최첨단 연구시설과 연구자들을 지원해줬다.
* 그러나 하야마는 이런 것들을 쓸데없는 간섭으로 봤고 시설의 향신료를 순식간에 파악하고 조합해서 자신만의 스파이시를 만들어낸다.
* 그러나 자신에겐 "너희를 쓰러뜨려서라도 지켜야할 장소가 있다"며 가차없이 승부를 내버린다.
- 신성왕후 . . . . 8회 일치
|전임자 = [[신정왕후 (고려)|신정왕후]]
|후임자 = [[정덕왕후]]
|배우자 = [[고려 태조|태조]]
|자녀 =
935년 11월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고려 태조는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왕건은 “지금 왕이 나라를 과인(寡人)에게 주니 그 선물이 크도다. 바라건대 신라의 종실(宗室)과 결혼하여 생구(甥舅)의 친밀함이 오래 가고자 하노라.”라고 하여, 고려의 사신은 경순왕에게 태조가 신라 종실과의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순왕은 “우리 백부(伯父) 김억렴(金億廉)에게 딸이 있어 덕(德)과 용모가 쌍미(雙美)한지라 이가 아니면 내정(內政)을 구비(具備)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냈다.
***** 손자 : 제8대 [[고려 현종|현종]] 원문대왕(顯宗 元文大王, 992~1031 재위: 1009~1031)
- 신적강하 . . . . 8회 일치
사실 신적강하가 이루어진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본 황실의 재정난'''(…)이다. 황족은 방치해두면 자연적으로 번식(…)하면서 그 숫자가 지속적으로 불어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혈통이 먼 황족이라고 해도 황족으로서 품위 유지를 위해서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해줘야 하는데 이런 황족의 숫자가 불어나면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황족을 깔끔하게 신적으로 옮겨서 --호적을 파버린-- 정리해고한 일본의 사례는 비교적 불어나는 황족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재정압박 문제에 잘 대응했다고 볼 수 있는 편. 황족이나 왕족은 특권계급이라서 세월이 가면서 우대해줘야 하는 특권계급의 숫자가 불어나면 재정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의외로 많은 왕조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이와는 극적으로 대조적인 사례가 [[명나라]]이다. 명나라의 경우는 황족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후하고 황족을 정리해고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약 200여년간 황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낳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 재정으로 후한 복지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너무 많이 불어난 황족들 탓에 말기에는 재정 압박이 상당히 심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황족들은 거의 다 복지제도에만 의존하고, 반란을 명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황족의 관직 진출 등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고 있어 사회 문제가 심각했는데 명나라는 법률적으로 이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재정난에 시달리던 [[숭정제]]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역졸을 대대적으로 정리해고했다가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반란군으로 변질되어 [[이자성의 난]]을 일으켜서 멸망했다. 물론 그 많은 명나라 황족들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명]] 정권에서도 유력 황족들이 서로 싸움질이나 할 뿐, 제대로 협력해서 가문을 일으켜보려는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역졸이 아니라 황족을 해고했어야지.-- 그들의 조상 [[주원장]]이 가난하고 빈곤한 떠돌이의 신분이었음에도 가문의 도움 따윈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헝그리 정신'의 차이처럼 보일 정도.
물론 일본과 명나라와는 시대적 차이, 관습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명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섬나라라서 대외 침략의 위험이 적었고, 일본 황족은 관습적으로 친족 내의 근친혼이 권장되었기 때문에 근친결혼으로 황족의 숫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약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황족 문제에 대처가 거의 없으면 고작 200년 만에 국가 재정이 파멸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8회 일치
피해자는 이시카와 현(石川県) 카나자와 시(金沢市)에 거주하는 회사원 데무라 유우키(出村裕樹,23)와 사무원 리사(里沙,23) 부부. 사건 현장은 이시카와 현 카호쿠 시(かほく市 오오사키(大崎)에 있는 오오사키 해안(大崎海岸).
친구들은 일단 자기들 스스로 구조 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는지 나중에야 소방서에 연락했다. 결국 구출할 때까지는 2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구급대원 2명이 끌어내서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미 늦었다. 부검 결과, 부부의 사인은 모래에 묻혔을 때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카나자와 지검은 12년 1월 아내를 피의자 사망으로 불기소, 친구 6명은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불행한 사망자 데무라 유우키의 부모는, 아내 리사의 부모와 구멍을 파는걸 도왔던 친구들 총 8인에게 약 9100만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민사소송을 했다. 2014년 카나자와 지방재판소가 청구의 일부를 인정하여 8명에게 4133만엔의 지불을 명령했다.
판결에서는 발안자였던 아내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인정하고, 아내의 부모가 1030만엔을 지불하며, 나머지 3100만엔은 부모와 친구 6인이 연대하여 지불하게 했다. 다만 친구들도 구두 변론에서 부부가 장난을 치다가 함께 떨어졌다는 증언을 하여, 남편도 구멍의 존재를 인식하고 스스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남편의 과실도 40%로 인정했다.
- 아워맨 . . . . 8회 일치
3명이 존재하며, 각자 1시간 동안의 초능력이란 공통점이 있다. 맨 오브 더 아워(Man of the Hour)라고도 불린다.
히어로가 되기 전엔 화학자였으며 소박, 소심, 순한 성격에 시간에 강박관념을 가진 그는 동료들로부터 "똑딱(영어로 Tick-Tock)"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주로 싸운 적은 유전학자 닥터 톡, 로봇공학자 닥터 다크 등 과학적인 적들.
[[샌드맨 미스테리 씨어터]]에서도 등장. 여기선 그가 쓰는 약이 플라시보 효과를 내는건 아닐까하고 [[웨슬리 도즈]]가 의심한다. 자경단 일을 하며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꼬이게 되었고, 웨슬리와 사건을 해결하다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뒤 아직 활약하기엔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 자신의 약을 더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바쁘다 보니 반항아로 컸으나 결국은 2대 아워맨이 되었다. 자니 퀵과 초대 리버티 벨의 딸인 리버티 벨II와 결혼했다.
- 양시영 (1944년) . . . . 8회 일치
'''양시영'''(楊始榮, [[1944년]] [[1월 2일]](음.[[1943년]] [[12월 7일]]) ~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달성]])은 전직 지방자치공무원이면서,전직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성군수이다.
* 제30대 달성군수(1995년 7월 ~ 1998년 6월,[[무소속]] → [[자유민주연합]]
|[[대한민국 제2회 지방 선거|제2회 지방 선거]]||[[달성군|대구광역시 달성군수]]||31대 (민선 2기)||[[자유민주연합]]||{{막대|자민|4|3|5}} 43.5%||21,371표||2위||낙선
|전임자 = [[이병무]]
|후임자 = [[박경호 (1949년)|박경호]]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오경훈 . . . . 8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정당 = [[자유한국당]]
* 내일신문 정치부 기자
* [[2017년]] [[2월]] ~ 자유한국당
|전임자 = [[김영배 (1932년)|김영배]]
|후임자 = (양천구 갑)[[원희룡]]<br />(양천구 을)[[김낙순]]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
- 원피스/825화 . . . . 8회 일치
* 그래서 비트는 "진짜"를 만나서 흥분하고 있는데, 상디는 그런 얘기는 "당사자"들한테 해주라며 자신은 빼달라고 한다.
* 상디는 비트가 친근하게 굴 때마다 독설을 날리는데 그걸 들은 "고티"라는 살인 청부업자는 화를 낸다.
* 동료애가 강한편인지 "동료를 욕하는 놈은 살려둘 수 없다"면서 덤비는데, 그때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호통친다.
* 스릴러 바크에서 본 "로라"를 닮은 여자인데, 빈모스크가의 아들을 잘못 건드리면 "파파의 목이 떨어진다"고 한다.
* 구역에 들어오자 마자 경고가 울리는데 때마침 맞은편에서 샬롯 패밀리의 정찰선(타르트)가 나타난다.
* 샬롯 패밀리의 배는 특이하게도 배 그 자체나 문짝 등 사물이 "살아있는" 모습이다.
- 원피스/826화 . . . . 8회 일치
난데없이 제르마66의 배와 마주친 밀집모자일당
* 그때 왠 여자가 나타나 "째째하게 굴지 마라"면서 욘디를 걷어찬다.
* 레이라는 루피의 증세를 살펴보고 어떤 독인지 알아맞추는데, 자신은 그 독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최근 밀집모자일당이 재결성하면서 상디의 정보도 다시 얻었고, 아버지는 수배서를 "생포할 것"으로 고치고 현상금도 올려서 재배포했다.
* 나미는 상디는 지금 어디있냐고 묻는데 레이라는 자기들도 마중을 나온 거지만 길이 엇갈려서 모르겠다고 한다.
* 루피는 구해준건 고맙디만 상디는 자신의 동료라며 돌라뎔라고 소리친다.
* 욘디는 페콤즈를 알아보고 "빅맘의 부하가 왜 거기에 있냐"고 따지는데, 페콤즈가 "이쪽대로 사정이 있다"고 잘라 말하자 더는 캐묻지 않는다.
* 레이라는 자기들 배로 돌아가며 "못 본 걸로 해주겠다"고 하고 일행과 제르마66의 배는 갈려진다.
- 윤지숙(배우) . . . . 8회 일치
* [[1997년]] [[KBS1]] 일일연속극 《[[정 때문에]]》 ... 차대자 역
* [[1998년]] [[KBS2]] 미니시리즈 《[[킬리만자로의 표범]]》
* [[2002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시티|드라마시티]] - 아버지의 여자》 ... 소영 역
* [[2005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시티|드라마시티]] - 그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나》 ... 말자 역
* [[2008년]] [[SBS]] 일일드라마 《[[그 여자가 무서워]]》 ... 노승미 역
* [[2009년]] [[KBS2]] 아침드라마 《[[아내와 여자]]》 ... 이자경 역
* [[2010년]] [[EBS1]] 어린이드라마 《어린이 손자병법》 ... 서현 역
- 윤철종 . . . . 8회 일치
권정열과 윤철종 둘 다 [[구미시]] 출신인데, 알고 보니 구미 [[현일고등학교]] 밴드부 매드펄스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밴드 '해령'에서도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권정열은 그대로 보컬이었지만 윤철종은 베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멤버들의 군 입대로[* 이 둘도 그때 같이 군대 갔다 왔다] 밴드가 해체되자, 둘은 '''색다른 밴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 [[대구광역시|대구]]로 [[상경]]하게 된다.
2010년 3월 28일 자체제작해 발매한 [[EP]]앨범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냥 보통의 홍대 인디밴드가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후 2010년 5월 민트 페이퍼 프로젝트 3집 앨범 <Life>의 수록곡인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로 참여. 이 곡이 그럭저럭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가, 2010년 8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아메리카노''''가 제대로 대박을 터뜨려서[* 2010년 [[GMF]]에서는 관중들이 이 곡을 [[떼창]]했다.] 여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열광하는 가수로 급부상하게 된다.[* 사실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앨범화가 되지 않은 노래들이 많다. '''녹음하기 귀찮아서.'''] 이때 아메리카노로 [[뮤직뱅크]] 최고 순위 7위에 든 적도 있다.
1) "이부자리를 치우다 너의 양말 한 짝이 나와서 '''갈아신던''' 네 모습이..."
- '''여자가 남자집에서 양말을 갈아신을 일이 뭐가 있나?'''
3) "늦은 밤 내내 못 자고 '''술이나 마시며''' 운 게 아니고"
2017년 7월 4일 소속사 측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전속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던 6월 말, 멤버 윤철종이 개인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탈퇴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후부턴 권정열의 1인 체제로 10cm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후 윤철종은 19일 소속사와의 연락에서 본인이 대마초를 흡연했던 문제로 인해 권정열과 소속사에 해가 갈 것을 염려하여 급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http://m.huffpost.com/kr/entry/17520376#cb|링크]] 이후 소속사는 10cm를 권정열 1인 팀으로 변경하여 9월 1일 4집 앨범으로 컴백했다.
- 은혼/581화 . . . . 8회 일치
* 우미보즈는 그런 별에서 홀로 살고 있던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지만, "사실 지켜지고 있던건 자신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코우카는 일부러 아무 말도 없이 따라와준 것이며 홀로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기 보단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택한 것이라고.
* 우미보즈는 카무이에게 탓하려면 자신을 탓하라고 하지만, 설사 그때 모든걸 알고 있었어도 코우카와 자신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한다. "죽더라도 아이들(너희들)을 만나기 위해"
* 카무이는 강해진다면 어머니의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정작 자신들이야 말로 고통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 이것은 "강함" 그 자체에 대한 의문과 혼란으로 이어지고 카무이는 강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기 시작한다
* 호우센은 강해지고 싶다면 다시 오라고 하는데, "닮았다"라고 말하는걸로 보아 우미보즈의 자식임을 짐작하고 있는 듯 하다.
* 카무이는 코우카에게 배를 준비해놨다며, 황안으로 떠나자고 한다.
* 코우카는 그런 모습이 "아버지가 아니게 돼도 가족을 지키겠다"는 우미보즈를 꼭 닮았다며 "너도 가버리는 구나"고 자조한다
- 은혼/617화 . . . . 8회 일치
* 큐베는 스마일 아가씨들과 타에를 데리고 다키니의 추격에서 도망친다. 타에는 큐베에게 반드시 와줄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큐베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한때는 그저 타에를 데리고 지구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너만이 아니라 너의 미소도 다른 모두도 데려갈 수 있는 강한 남자, 상냥한 여자가 되자고" 다짐했고 고백한다.
* [[사이고 토쿠모리]]는 여전히 분전 중. 이들이 생각보다 잘 버티자 해방군은 병력을 분산시켜 가부키쵸의 모든 문을 공격하기로 한다. 이렇게 되면 병력이 열세인 가부키쵸 방위군도 병력을 나눠야 하므로 방어벽이 얇아지는 것이다. 수에 의존한 전략이지만 현시점에선 가장 확실하고 치명적인 전략.
* 의용군의 규모는 상당한 수준으로 긴토키가 잘도 이만큼 모아왔다고 야규가의 위광이냐고 하자 큐베는 "망할 바엔 싸우다가 망하는걸 선택한 녀석들이 많을 뿐"이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규모야 어쨌든 면면은 문제가 상당히 많은데 구체적으로 야규 사천왕이 가장 문제다. [[토죠 아유무]]는 여전히 큐베를 도촬하는데 여념이 없고 [[미나미토 스이]]는 계속 여자타령에 [[키타오오지 이츠키]]는 전신 남성기 드립으로 응수한다. 그나마 [[니시노 츠카무]]는 평범하게 열심히 싸우며 "승패야 어떻듯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바른 말을 한다. 그는 긴토키 일행이 야규 일가에 처들어왔던 일을 회상하며 그때 이후로 가장 즐거운 싸움이라 말한다.
* 빈보쿠사이가 그 말을 받아 긴토키에게 "정말 즐거운 싸움 아니었느냐"고 말하자 긴토키는 그때 빈보쿠사이에게 당해 골절 당한 일을 들며 학을 뗀다.
빈보쿠사이는 적진을 누비면서 한탄한다. 야규가가 쇼군가의 검술사범으로 번영한 듯 보이지만 평화의 시대가 오고 심지어 이젠 배가 하늘을 나는 시대가 되면서 검은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조한다. 그렇지만 하늘은 검의 마지막 순간에 빛이 들게 해줬다며, 이기든 지든 이게 검의 마지막 전장일 테지만 곧 이 별을 구할 수 있는건 검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검에 목숨을 바쳐왔던 젊은 검사들에게 "지금까지 단련해온 건 지금을 위해서"라고 격려한다.
- 의심암귀 . . . . 8회 일치
『열자 설부(列子・説符)』에서 어떤 남자가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그는 이웃집의 아들을 의심하였다. 그러자 그 아들이 하는 행동이 모두 수상하게 보였다. 그런데 어느날 계곡에서 자신의 도끼를 찾자, 수상하게 보이던 것이 모두 평범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를 주석하여 "의심, 암귀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의심암귀"라는 사자성어 같은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열자에서는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라고 한다. 현대 일본어에서는 주로 『의심암귀가 되다(疑心暗鬼になる。)』는 식으로 표현한다.
[[분류:일본어]][[분류:사자성어]]
- 이성계 . . . . 8회 일치
이성계는 [[고려]]말의 [[무신]]이자 [[조선]]의 건국자이다. 즉위 후 '이단'으로 개명을 했는데 사람들은 좀처럼 개명한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한국사의 명장 반열에 반드시 낄 정도로 군사적인 역량과 개인의 무용이 후덜덜했던 인물로, 이러한 업적을 통해 정계의 거물로 성장하였고, 그 후 명과의 외교 마찰로 인해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였으나 묵살당하자 최영이 우왕을 달래느라 정벌군을 직접 이끌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국경지대의 하중도(河中島)인 '위화도'에서 군대를 물려 쿠데타를 단행해 최고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 후 정몽주 등의 저항을 뿌리치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한다.
그러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전처 소생의 아들들을 외면하고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고 하여 그들의 불만을 사서, 결국 그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이방원(후의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방번, 정도전 등을 참살하고 이성계를 상왕으로 만들어 실권을 탈취한다.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옛 근거지인 함경도 지역에서 조사의 등과 결탁해 군대를 거병하고 태종을 공격하였으나(조사의의 난) 태종의 친정군에 패배한다. 그 후에는 완전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사냥 등으로 소일하다 서거.
- 이시형 (1934년) . . . . 8회 일치
| 배우자 = 有
| 자녀 = 슬하 1남 1녀
* 한국보육진흥원 ‘아이누리 자문단’
* 헬스조선시니어 자문위원단
*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 여자는모른다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이영욱 (1980년) . . . . 8회 일치
'''이영욱'''(李永旭, [[1980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현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부 감독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2군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본격적으로 1군에 올라온 [[2005년]]에 64.2이닝동안 1승 1홀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주전 중간 계투 자리를 굳히고, [[2007년]]에는 투수 조장에 발탁됐다. [[2008년]]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1년]]에 복귀했다.
[[2013년]] [[11월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로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하였으나, 2군에서 2패 1홀드, 9점대 평균자책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종료 직전에 방출됐다.
그가 데뷔 첫 승을 거둔 경기는 [[2005년]] [[5월 29일]]의 [[두산 베어스|두산]]전인데, 첫 승을 따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회말에 선발 [[헤수스 산체스]]가 1/3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자 1회부터 그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고 3회말에 상대 타자 [[장원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에 [[장원진]]이 그를 구타하면서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4회초 공격에서 1:5로 뒤지던 [[SK 와이번스]]는 무려 6득점하면서 그에게 프로 데뷔 첫 승을 안겨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11178 SK 조범현 감독, "두산 장원진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 조이뉴스24</ref>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재룡(1964) . . . . 8회 일치
||<:><#4C4C4C>'''{{{#FFFFFF 가족}}}'''||<(> [[배우자]] '''[[유호정]]''', [[아들]] 이태연, [[딸]] 이예빈, [[처제]] 유호선 ||
[[대한민국]]의 [[배우]]. [[1963년]]생 배우 [[이재용(배우)|이재용]]과 이름이 유사하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다.[* 게다가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 깔끔한 외모로 젊어서는 하이틴 스타로 인기가 많았고, [[결혼]] 이후에는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에 출연중이다. 부인은 탤런트 [[유호정]]. 결혼 전인 [[1993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산다는 것은'''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불멸의 이순신]], [[제왕의 딸 수백향]] 등의 사극에 출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 2017년 ||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 케빈 밀러 || ||
|| 2007년 || MBC || 나쁜 여자 착한 여자 || 송건우 || ||
|| 자매들 || 재국 || ||
|| [[여자의 방]] || 황보현 || ||
|| 1988년 || MBC || [[전원일기]] || 서울 모 포장마차 커플 남자 손님 || ||
- 이정무 . . . . 8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B5B40><#1B5B40><-5><:> [[자유민주연합|[[파일:jaminmini.png|width=60]]]] [[자유민주연합|{{{#FFFFFF '''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 ''' }}}]] ||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김해석(정치인)|김해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구광역시]] [[남구(대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에 임명되었다. [[DJP연합]]에 따른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 [[연정|공동정부]]의 몫으로 1998년 3월부터 1999년 5월까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현승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 이정훈 (1963년) . . . . 8회 일치
'''이정훈'''(李正勳, [[1963년]] [[8월 28일]] ~ )은 前 [[KBO 리그]]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외야수이자,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 팀장이다.
은퇴 후 도미하여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한화 이글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코치로 활동했고,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5년]] 시즌 후 [[LG 트윈스]]에 영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48264 한화 이정훈 주루코치 LG로] - 대전일보</ref> [[2008년]]까지 [[LG 트윈스]] 코치를 역임한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9년]] 제 6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2009년]] 제39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587634 <고교야구> 이정훈 북일고 감독 "이제 시작이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2일 작성</ref>
* {{KBO 타자|87721|이정훈}}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이차강간 . . . . 8회 일치
성범죄의 피해자가 사건에 관련된 진행에 따라서 정신적으로 더욱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성범죄의 특성상, 사회적으로 입게 되는 2차적 피해를 연구하면서 나타난 용어이다.
* [[경찰]] 등이 성범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등의 말을 한다.
* 언론의 보도. 피해자에게 피해를 상기시키고, 주변에 피해 사실이 알려지게 만들어서 고통을 줄 수 있다.
* 재판의 과정. 피고인의 보호를 위해서 변호인이 하는 주장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 지역, 집단 내의 여론.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을 조성하여 압박한다.
* --피해자를 [[투석형]]에 처한다.--
- 이카르부스 . . . . 8회 일치
[[http://ikarbus.rs/|링크(세르비아 문자)]][* 영문 버전이 있기는 한데, 회사 설명과 AS 부분이 준비중이라며 막혀있다.]
1923년 11월 20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도시 [[노비사드]]에서 코뇨비치 형제[* 디미트리예 코뇨비치(Dimitrije Konjović)와 두산 코뇨비치(Dusan Konjović).]와 밀리보이 코바체비치(Milivoj Kovacevic), 조코 라둘로비치(Djoko Radulovic), 요시프 미클(Josif Mikl)에 의해 항공기 및 자동차 회사로 설립된다. 이때는 이카루스(Ikarus)라는 이름이었다. 최초의 세르비아계 항공기 회사였다고. 설립된지 다음해에 최초의 항공기인 "브란덴부르크"를 만들어낸다.
1954년에는 [[오스트리아]] 회사 [[자우러]][* 총기 회사 SIG 자우어와의 관련은 없다.]의 [[버스]]를 라이센스 생산한다. 이는 현재 이카르부스의 밥줄이 될 버스 제작의 시초가 되었다. 이카루스는 1961년 군사분야의 산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자동차 회사가 된다.
1992년 공산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며 이카루스는 합자회사가 된다. 이후 1993년 이카루스는 현재의 이카르부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이카루스는 [[메르세데스]]와 [[MAN]], [[투쉬노 자동차]]와 협력관계를 맺게 된다.
[[http://ikarbus.rs/index.php/o-nama/istorija-znacajni-datumi|이카르부스 홈페이지의 연혁(세르비아 문자)]]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8회 일치
* 길선더는 자신을 멜리오다스 곁으로 순간이동 시켜달라고 길프로스트를 닥달한다.
* 그리고 "드래퓌스도 헨드릭슨도 인생이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넌 죄많은 남자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 멜리오다스는 마음으로 잠든 드래퓌스의 자아에 말을 걸며 깨어나라고 하는데
* 그리아몰은 저건 자신의 아버지(드래퓌스)가 아니라고 말한다.
* 과거 멜리오다스 한 명의 배신으로 인해 마신족을 패배자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 그런데 이 공격을 한 손으로 막아선 자가 있다.
* 자연스럽게 십계 최강자는 에스타롯사?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8회 일치
* 젤드리스에게 부여된 계금은 "경신". 마신왕의 대리로서 누구라도 등돌리는 자들을 강제로 복종시킨다.
* 그는 마신왕의 대리로서 그에게 등돌리는 자는 "배신"으로 간주하고 강제로 복종시키는 능력이다.
* 에스타롯사는 그가 갈란을 쓰러뜨린 자임을 직감한다.
* 에스카노르는 원망을 품어서 자기 계금에 걸리지 말라고 말한다.
* "아쉽게 됐다"며 여유롭게 도발하는데, 갑자기 시야가 흔들린다.
* 하지만 에스카노르는 그의 능력에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내 힘이라서 아팠던 거구나. 역시 이몸"이라고 자기 자신을 칭찬한다.
* 에스카노르는 야간에 일시적으로 힘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십계 두 명을 떡실신시키는 위엄의 소유자. 인류 최강이란 이름값이 어디가지 않았다.
- 임대윤 . . . . 8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경력 = [[민주당 (대한민국, 1991)|민주당]] 대구동구(갑)지구당 위원장<br/>[[민주당 (대한민국, 1991)|민주당]] 총재비서실 차장<br/>대구·경북지방자치연구소 이사<br/>제일리서치 이사장<br/>제22·23대 [[대구 동구청장|대구광역시 동구청장]]<br/>[[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 1비서관<br/>[[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당 위원장<br/>[[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1977 사회복지를위한참길회 자문위원
* 1994.08 ~ 1996 대구·경북지방자치연구소 이사
|전임자 = [[오기환]]
|후임자 = (권한대행)[[김연수]]<br/>(재보궐)[[이훈 (1941년)|이훈]]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임윤선(법조인) . . . . 8회 일치
||<#d6d6d6> {{{#black '''출신 학교'''}}} ||<(><#ffffff> 충주단월국민학교[br]충주예성여자중학교[br]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br]서울대학교 불어교육학과 학사 ||
2012년에는 [[문화방송|MBC]] <[[최강연승 퀴즈쇼 Q]]> 첫회에서 팀원으로 참여해 예선 광탈했지만, 9회에 다시 참여해서 '''최초이자 유일한 7연승 챔피언이 되면서''' 3억원을 받아 화제가 되었으며 그 상금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후 각종 방송 프로그램 진행 등을 맡으며 변호사와 방송 일을 병행하고 있다.
2013년 12월 7일부터 방영된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 출연해서 5회까지 살아 남았고 2015년 6월 27일부터 방영되었던 <[[더 지니어스:그랜드 파이널]]>에 출연하여 4회까지 살아 남았다. 자세한 내용은 [[임윤선/더 지니어스]] 문서 참조.
2015년 6월 24일 [[TV조선]]의 프로그램 <[[강적들]]> 85회 면세점 전쟁편부터 출연하고 있다. 9월 9일에는 [[KBS]] 드라마 <[[어셈블리(드라마)]]> 17회에 깜짝 출연, 주인공 [[진상필]]을 심문하는 검사로 열연, [[김서형]]에게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2016년 11월 [[TV조선]] <박종진 라이브 쇼>에서 반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며, [[채널A]] <신문 이야기 돌직구쇼>에 매일 아침 9시 고정 패널로, 2017년 7월 KBS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으로 출연 중이며 2018년 1월 [[JTBC]] [[착하게 살자]]에 출연했다.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뒤 재수를 해서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로 갔다고 한다.
*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 범죄 사건에서 "은둔형 외톨이 = 범죄자"로 엮으려는 여론을 비판했다. 해당 사건은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SNS에 게시한 날짜로 볼 때 [[부천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으로 보인다.
* [[2018년]] [[JTBC]] [[착하게 살자]]
- 임효준 . . . . 8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쇼트트랙]]}}
{{금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1500m]]}}
{{동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500m]]}}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절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 잠버릇 . . . . 8회 일치
* [[코골이]] : 잠자면서 코를 고는 증세. 코의 염증이나 [[비만]]이 원인이 될 수 있다.
* 잠꼬대 : 자면서 말을 한다.
* 끌어안고 자기 : 베개나 이불을 끌어 안고 자는 것. 하지초조증인 경우도 있다.
* TV 보면서 자기 : 스트레스가 끊어지지 않는 상태일 때 일어날 수 있다.
* 몽유병, 램수면행동장애 : 자면서 어떤 행동을 취한다.
* 수면중 무호흡증 : 잠자면서 호흡이 멈춘다. 잠을 자고 나도 피로한 경우가 많다.
- 장미화 (희극인) . . . . 8회 일치
|직업 = [[개그우먼]] & [[사회자|MC]]
|배우자 =
|자녀 =
|학력 = [[관동대학교|관동대학교 국어교육학과]]<br/> [[숭덕여자고등학교]] 졸업
* [[숭덕여자고등학교]]
* 《[[그 여자의 선택]]》 - 김창옥 역 (KBS2, 2006년)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1993년 데뷔]][[분류:관동대학교 동문]][[분류:숭덕여자고등학교 동문]]
- 장선이 . . . . 8회 일치
|직업 = [[기자]]
|사이트 = [https://www.twitter.com/lettertou 트위터 SBS 장선이 기자]
'''장선이''' ([[1982년]] ~ )는 [[대한민국]]의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의 기자이다.
* [[2005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보도본부 기자 입사
* [[코리아타임스]] 주니어기자협회 사건기자
* [https://www.twitter.com/lettertou 트위터 SBS 장선이 기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2005년 데뷔]]
- 장진 (영화감독) . . . . 8회 일치
| 배우자 = 차영은
| 자녀 = 슬하2남
'''장진'''(張鎭, [[1971년]] [[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 제작자이다. 영화배우 [[정재영]]과 절친한 사이이며, 정재영이 죽으면 자기도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남다른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 rowspan="2" | 2007 || [[바르게 살자]]
| rowspan="2" | 2004 || [[아는 여자]]
* 2017년 [[JTBC]] 《[[크라임씬|크라임씬 시즌 3]]》 참가자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프로듀서]][[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장혁주 . . . . 8회 일치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저자=김재용
== 참고자료 ==
|저자=권영민
|저자=정영진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9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재일 한국인]]
- 장후영 . . . . 8회 일치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전임자=[[최병석]]
|후임자=[[양대경]]
|전임자=[[신태악]]
|후임자=[[정구영 (1899년)|정구영]]
[[분류:1909년 태어남]][[분류:198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8회 일치
블랙 팬텀의 자객은 한조에게 넘겨진다.
* 상황을 눈치챈 한조가 '조사관 A'의 전언이라 강조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 칠드런 일행은 미나모토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고 큰 위안을 얻는다.
* 유리는 다들 말은 안 해도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위안이 될만한 그림을 만들어주는데
* 합성능력자는 이미지를 투영해서 능력을 만드는데, 왜 그 이미지를 멋있어 보이는걸 선택하지 않았고 문어 같은 걸로 택했냐고 격렬하게 디스한다.
* 한조는 이걸 꼬투리잡아 "개성이란 게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것'인가? '필요에 의해' 갖는 건가?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마음'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라고 충고한다.
* 에이전트는 업그레이드권을 요구하는데, 그는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업그레이드 자격이 없다고 한다.
* 한조의 말대로라면 지금 블랙 팬텀의 에이전트들은 다른 사람이 부여한 개성에 따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된다.--그리고 닌자 취미는 순전히 본인 의향이라는 씁슬한 진실이--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8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47th sense. '''무법자들 (2)'''
* 효부도 지지 않고 반격, 슬슬 탐색전은 끝내고 본게임으로 넘어가자고 한다.
* 마기는 자신의 인격을 되도릴려는 시도는 전부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 효부가 그런 것을 수긍할리 없고 빨리 싸우기나 하자며 여전히 마기를 "시로"라고 부른다.
* 마기는 자신의 무기를 줄일 셈이냐고 외치는데 효부는 폭발에 몸을 숨기고 접근해 "치명타"도 먹인다.
* 마기는 은신한 채로 단분자 결정으로 만든 와이어 커터로 공격한다.
* 효부는 본게임으로 넘어가자며 또 시로라고 부른다.
* 마기는 시로라고 부르는게 기억을 자극해 세뇌를 풀려는 거냐고 묻는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8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6th sense. '''무법자들 (11)'''
* 결국 바벨의 전병력이 현장에 집결하는데 그 자리에 마기 시로와 효부 쿄스케가 나타난다.
* 효부는 마기의 계획을 칭찬하며 조직의 오른팔이자 파트너라는 의미로 "시로"에서 "마기"로 호칭을 바꾼다.
* 현장에 도착한 바벨 요원들. 고렌쟈 분위기가 나는 팀입니다. 리더로 보이는 에스퍼가 자기 소개를 하려고 하지만 인정사정 없는 빅 매그넘이 날아온다. 머슬은 비겁하단 말을 듣지만 요원들을 엑스트라 취급하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래도 이들은 당시 바벨에선 가장 강한 레벨6 에스퍼인데 판도라에겐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 마기의 작전은 이렇다. 장소를 도심지로 옮긴 이상 아무리 츠보미 후지코라도 과격한 조치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적당히 싸우다 안전하게 잡혀주면 되는 것. 그리고 바벨의 전 병력이 이곳에 집중된 동안 나머지 판도라 일행은 박물관 등 돈 될만한 물건이 있을 곳을 털어서 앞으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다. 일단 효부가 잡혀간 동안은 판도라에 대한 감시도 소홀해질 테니 이후 판도라의 활동은 아주 여유로워 지게 되는 것.
* 효부는 이상의 계획을 "머슬이나 스모키도 떠올리지 못한 대담한 계획"이라고 칭찬한다. 효부는 판도라를 마기에게 맡기며 지금까지 "시로"라고 불렀던 호칭을 "마기"로 고친다. 마기는 호칭 같은건 아무래도 좋다고 하지만 이것은 효부가 그를 파트너이자 오른팔로 인정한다는 중요한 증거다. 효부는 그의 성장을 대견해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데 마기는 조직을 맡길 거면 이런 짓 좀 하지 말라고 반발한다. 그러면서도 효부가 호칭을 고쳐준 탓인지 자신도 "효부"라고 부르던 호칭을 "소령"으로 고치고 깍듯한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다.
* 그러는 사이 마기일행은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효부는 헤어지기 전 "네 덕에 내게 집이라 부를 곳이 남아있다"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마기 덕에 안심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반대로 마기가 방황하는 순간이 되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며.
- 정세진 . . . . 8회 일치
|배우자 = 김유겸
|자녀 = 아들 김재현
| 1989~1992 ||[[성심여자고등학교]] 졸업
* 2013년 제25회 [[한국PD대상]] TV진행자부문 출연자상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정충원 . . . . 8회 일치
'''정충원'''(鄭忠源, <small>일본식 이름:</small> 烏川忠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 12일]]<ref>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는 정충원의 출생일이 [[1893년]] [[5월 22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망일은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ref>)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금융인으로 본관은 연일이며 다른 이름으로 '''정종원'''(鄭宗源, 1949년 10월 개명한 이후부터 사용한 이름)이 있다.
평안남도 보안과 경시로 재직 중이던 1937년에 발발한 [[중일 전쟁]] 당시 공습에 대비한 방공 사무를 수행하는 한편 군용 자동차를 징발하고 운전수를 징집하여 [[관동군]]의 군사 작전에 협조했다. 또한 시국 범죄 위반 단속 차원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검거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 을(功勞 乙)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3월 31일 평안남도 성천군수, [[1943년]] [[3월 29일]] 평안남도 순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고 [[1942년]] [[4월 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조흥은행]] 취체역을 역임했으며 [[1956년]] 10월부터 [[1961년]] 4월까지 조흥은행 은행장, [[1958년]] [[금융통화위원회]] 정위원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정씨]]
- 조길형(1962)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 출신 [[정치인]]으로, 현 [[충청북도]] 충주[[시장(공무원)|시장]]([[자유한국당]])이다. 본관은 [[함안 조씨|함안]].
1962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충주예성초등학교, 충주중학교, [[청주신흥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한양대학교]] 지방자치[[대학원]] 지방경찰행정학 [[석사]], [[숭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청장 당선자가 [[동명이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조길형(1957)|조길형]] 후보. 한자도 항렬도 같다.]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접전 끝에 당선된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 충주시장) || '''[[자유한국당]]''' || '''51,282 (50.66%)''' || '''당선 (1위)''' || ||
[include(틀:충청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지소 . . . . 8회 일치
[[2채널]]에서 지소는 지적장애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비하적인 의미가 강하며, 한국의 인터넷 속어로는 '애자'와 비슷한 뜻이다. 물론 이런 속어들이 그렇듯이, 멍청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쓰이는 말이 되었다.
비슷한 단어로는 텐스(てんす)가 있다. 이는 지적장애자의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천사(天使, 착하다는 의미, 텐시)로 부르던 것을 지적장애자의 어눌한 발음을 놀리려고 변형한 것이다.
파워계 지소(パワー系池沼) : 특히 체격이 크고 힘이 세며, 자재력이 없고 난폭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경우를 뜻한다.
지적장애자에서 다음과 같은 변화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 지적장애자(知的障害者, 치테키쇼우가이샤(ちてきしょうがいしゃ)
- 차승재 . . . . 8회 일치
| 직업 = [[영화 제작자]]
| 배우자 =
| 자녀 =
'''차승재'''([[1960년]] [[3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영화 프로듀서|영화 제작자]]이다. 2012년 현재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원장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03년 [[지구를 지켜라!]] - 제작및 공동투자
*2003년 [[살인의 추억]] - 제작및 공동투자
*2006년 제43회 《[[대종상]]》최우수 작품상 - [[왕의 남자]]
[[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창작:말퓨스 스토리 . . . . 8회 일치
|| 작성자 || levans12 ||
츠키노 타카노부 : 현 츠키노 가문 당주 대행이자, 츠키노 아스카의 남동생, 강직한 성격과 올곧은 언행으로 불안한 가문을 위태롭지 않게 하는 대들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타츠카치 : 자기를 한 동굴의 130대 수호용이라고 소개하는 작은 꼬마용, 하지만 그 정체는 (스포일러)이다.
타치바나 이즈미 : 츠키노 아스카의 라이벌이자, 이 작품의 유일한 메인 악역. 아스카를 격렬히 증오하며, 아스카와는 과거부터 악연으로 점철되어있다 못해 아주 길어져버린 사이이다.
츠키노 가문 : 츠키노 아스카의 가문이며, 당주는 츠키노 아스카 본인이다. 하지만 아스카가 모종의 사고에 의해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현재 상황에선 당주의 자리가 공석이며, 아무도 이 자리를 노리지 않고 있다. 츠키노 아스카의 기억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 자리를 비워놓는 중이다.
츠키노 대 수확제 : 츠키노 가문의 연례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로써, 1년 농사를 끝내는 시기에 벌어지는 가장 큰 규모의 축제이다. 츠키노 가문 뿐만 아니라 후노야마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이를 축복하는 이 행사는 후노야마 대륙의 풍물 중 하나로 이미 자라집고 있다.
- 창작:좀비탈출/3-1 . . . . 8회 일치
일단 큰길을 따라서 번화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자전거의 속도 덕분에 골목길의 좀비를 따돌리고 내리막을 따라서 번화가로 내려갔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많은 수의 좀비가 번화가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아마 동네의 좀비들 대부분은 번화가에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잘못 들어왔다. 이 정도로 밀집되어 있으면 골목과는 달리 자전거를 달려서 빠져나가는 것도 무리였다.
나는 좀비들이 눈치채기 전에 골목으로 돌아가려고 황급하게 돌아가려고 급히 자전거를 턴 하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운 나쁘게도 넘어지는 자전거에 깔리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듣고 번화가의 좀비들이 일제히 돌아서서 나를 향하여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일으켜 세울 틈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는 포기하고 일어섯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4-1-2-2 . . . . 8회 일치
나는 무기를 단단히 쥐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발을 천천히 옮겼는데 갑자기 닌자 흉내를 내는 기분이 들어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좀비 소굴에 갇힌 닌자.
녀석은 그자리에 그대로 서서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저 모습은 마치…… '''서서 잠들었다'''고 해야 할까? '''좀비가 잠을 잔다고?'''
관자놀이가 빨라진 맥박 때문에 욱신거린다. 팔에 너무 힘을 줬는지 쥐가 날 것만 같다. 입안이 빳빳하게 말라서 혀가 말려넘어갈 것 같다.
허리쪽에서 엉덩이와 등 양쪽으로 바늘 천개가 돌아가며 찌르는 듯한 통증이 퍼져나왔다. 그 통증을 수습할 새도 없이 토트넘이 달려든다. 난 옆으로 누운 자세이고 놈을 뿌리칠 힘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두꺼운 겉옷이 녀석의 이빨을 한 번은 막아줬다. 두 번도 막아줄 수 있을까? 세 번이나 네 번은? 알 수 없다. 얼른 뿌리치고 일어나야 하는데, 이놈의 허리가 말썽이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8회 일치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진실과 마주하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좀비가 득실거리는 서울시 한 복판에 남겨진 생존자다. 이 이상…… 우울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쳤다. 아마 녀석들이 우리집 앞마당을 활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걸 확인하고 잠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됐다. 나는 오늘의 격무에 대한 '''포상'''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쿵쿵거리는 소리에 대해서, 그 소리를 내는 녀석에 대해서 확인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열기는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고 가물거리는 시야 때문에 한 발짝 떼기에도 부담스러웠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격렬한 구토감이 치고 올라왔다. 나는 이 증세를 몸살감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기침이 나오지 않는다. 기침이 나오지 않는단 말이다.
이제 얼마 안 되는 정신으로 냉정을 흉내내 보자. 아무 일도 없는데 병이 났을 리는 없다. 물론 내 몸이 약해지긴 했겠지만 추위하고는 백만년은 거리가 먼 이런 계절에 감기가 걸렸을 리는 없다. 갑작스런 과로로 인한 몸살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발열까지 설명이 될까?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선은 뭔가 먹어야한다. 다행히 어제 먹고 남은 죽이 있다. 상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주방으로 기어갔다. 아마 식탁위에 그대로 뒀을 것이다. 힘을 내서 다가가 보자…… 좋아. 그릇이 보이는 것 같아.
먹으려면 일어서야 한다. 하지만 일어서기엔 기운이 없다. 젠장, 우슨 엿 같은 역설이야. 아무튼 일어나야 해. 제발, 제발. 조금만. 손이 식탁 위로 올라갔다. 그래 하다 못해 죽 그릇을 당기기라도 하자. 가지고 내려오는 것만이라면…………..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최길성 . . . . 8회 일치
* [[롯데 자이언츠]] (2007년 ~ 2008년)
'''최길성'''(崔吉成<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78년]] [[2월 6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선수이자, 현재 ING 생명 보험설계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시즌 후 방출당하였다. [[2001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였으나 별 다른 행보가 없이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06년]]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였던 83경기에 출장하여 0.25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7년]] 팀 동료인 [[최만호]]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박석진]]과 [[손인호 (야구인)|손인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되었다. 그 해 [[SK 와이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였으나,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재는 ING 생명의 보험 설계사(FC)로 근무하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2786767 국대 출신 30대 야구선수, 보험 영업맨 변신해…] 2012년 8월 19일자, 매일경제</ref>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재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최승환 . . . . 8회 일치
|수비 위치 = [[포수]], [[지명타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3년]] [[4월 30일]] <br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최승환''' (崔承煥<ref>한국야구위원회 저, 2012 가이드북에는 '催'承煥 으로 기재되어있다. 崔의 오기로 보인다.</ref>, [[1978년]] [[2월 25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포수]]이자, 현재는 [[KBO 리그]] [[kt 위즈]]의 배터리코치이다.
[[LG 트윈스]] 시절에는 [[김정민 (1970년)|김정민]], [[조인성 (야구인)|조인성]]에게 밀려 주전이 되지 못하고 8년간 2군을 전전했다. [[2008년]] [[6월 4일]] [[이성열 (야구 선수)|이성열]]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두산 베어스]]에서 [[LG 트윈스]]로 간 선수들은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 [[김용의]] 선수이다. 두산 이적 이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상대 투수인 SK 와이번스의 [[조웅천]]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면서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3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한화에서 방출된다. 이후 [[김수길]] 수석코치의 부름을 받아 지도자 자격을 취득하여 [[경찰 야구단|경찰청]]의 배터리코치로 취임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63953 최승환 “선수 얘기 듣는 지도자 될 것”] - 스포츠동아</ref>
2015 시즌 후 [[kt 위즈]] 배터리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296524 kt, 최승환 배터리·박성기 재활코치 영입] - MK스포츠</ref>
- 최원권 . . . . 8회 일치
|로마자 표기=Choi Won-Kwon
|클럽=[[FC 서울|안양 LG 치타스 / FC 서울]] <br />→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 (군 복무)<br /> [[제주 유나이티드]] <br />→ [[대구 FC]] (임대) <br />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수원]] <br /> [[대구 FC]]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12.22]] 군 복무를 위해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에 입대하여,<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 최성국·최원권, 상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ref> 주 포지션인 [[수비수|풀백]] 역할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며 멀티 플레이어로서 활약하였다.
=== 지도자 생활 ===
* [[2014년]] ~ [[2016년]]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축구 수비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 FC의 코칭스태프]]
- 최원태 . . . . 8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야구]]}}
[[2016년]] [[5월 27일]] 선발 투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이 다실점을 한 뒤 두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3.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6년]] [[6월 14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의 공백을 메꾸는데 [[금민철]]이 실패하여 빈 자리를 메꿀 두 번째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분수|4|2|3}}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하였다. [[2016년]] [[7월 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타선의 지원에 힙입어 {{분수|5|2|3}}이닝 2실점으로 데뷔 이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607012208003&sec_id=510201&pt=nv ‘첫승’ 넥센 최원태 “초심 잃지 않겠다] - 스포츠경향 </ref> 2017 시즌부터는 선발진에 합류하였는데, 지난 시즌에 비해 등판하는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2017년]] [[4월 9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1군 경기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9/0200000000AKR20170409045000007.HTML?input=1195m '7이닝 2실점' 넥센 최원태 "데뷔 후 가장 만족한 투구"] -연합뉴스</ref> [[2017년]] [[4월 27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개인 최다 이닝인 8이닝을 소화하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7&no=287720 ‘시즌 3승’ 최원태, 값졌던 최다 이닝-투구수 경신] -MK스포츠</ref> [[2017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09388 ‘7이닝 1실점’ 최원태, 생애 첫 10승 요건] -OSEN</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최충연 . . . . 8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야구]]}}
2016년 8월 25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선발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4.2이닝 5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77&aid=0000044428 '최고 구속 142km' 최충연, 제구 안 된 빠른 볼-잘 먹힌 커브] - SPOTV</ref> 2016 시즌 3게임에 등판해 2패, 1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2017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 9일]] [[kt 위즈|kt]]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을 기록하였다. 작년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타자들의 26이닝 연속 무득점 침묵 속에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7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백정현]]이 타구에 맞아 5회를 다 막지 못하고 강판되자 그가 구원 등판해서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602000278 ‘최충연 프로 데뷔 첫승’ 삼성 라이온즈 3연승 질주... 김상수 3안타2타점] - 뉴스핌</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최한경 . . . . 8회 일치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시절에는 투타 만능에 빠른 공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졸업 후인 1993년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12경기에 나와 2.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듬해 1994년 리빌딩 중이라 어수선했던 시기에 그야말로 갑툭튀, 151km/h까지 나오는 강속구를 앞세워 삼성의 뒷문을 책임지며 6승 7패 9세이브 평균자책 3.28을 기록했다. 팀은 정규시즌 5위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노장 정리 등 본격적인 리빌딩이 시작된 한편, 150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최한경은 큰 기대를 받았다.
당시 150km대를 던지는 투수는 [[선동열]]하고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 정도로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쌩 고졸신인이 평균 150km의 공을 던진다는 것은 일약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마무리 활동 당시 삼성전 중계 방송에서는 최한경까지만 가면 삼성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이는 그가 94년 한정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음을 입증한다. 공은 가볍다는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속도만큼은 엄청났고, 이 때문에 94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오히려 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5회부터 등판하고, 선발로도 나오는 등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고졸신인에게는 가혹할만치 엄청난 혹사를 당했다.
1995 시즌부터는 방위복무 때문에 홈경기에만 출전했고 게다가 그나마 선발로 키우려고 시도했던 선수들이 죄다 무너지며 최한경을 선발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갑작스런 선발 전향에도 7승 4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그간의 혹사를 버티지 못하고 평균자책이 5.70으로 부진했다. 150km/h의 강속구는 130km/h의 속도로 밋밋해졌고 또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자잘한 부상을 얻어 1996년에는 1승 2패를 거두는데 그쳤다. 그것이 최한경의 마지막 1군에서의 모습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동년배들이 이제 막 프로에 진출할 시기에 자취를 감춘 것.
1997년에는 어깨부상을 당했고, 1999년 타자 전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방출 후 [[LG 트윈스]]에서 다시 타자로 1군 복귀를 시도했으나 1년만에 방출되며 은퇴했다.
- 최호중 . . . . 8회 일치
| 배우자 = 김우명
'''최호중'''(崔浩中<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4250009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4-25&officeId=00009&pageNo=2&printNo=5582&publishType=00020 經濟에 밝은 직업外交官 崔浩中] - 매일경제, 1984년 4월 25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0500329204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2-05&officeId=00032&pageNo=4&printNo=13292&publishType=00020 崔浩中 외무장관 外務部서 잔뼈굵은 正統派] - 경향신문, 1988년 12월 5일</ref>, [[1930년]] [[9월 22일]] ~ [[2015년]] [[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전 외무공무원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 [[북방 정책|북방외교]]의 한 주역이자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시에도 역할을 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주 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상공부 차관을 지낸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 1992년 6월 부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한소 수교의 발판 마련과 역사적인 남북합의서 채택이 공직 생활 중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전임자 = [[최광수 (공무원)|최광수]]
|후임자 = [[이상옥]]
|전임자 =
|후임자 = [[최영철 (1935년)|최영철]]
- 츠키시마 케이 . . . . 8회 일치
|| 최근의 고민 ||||||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또 주위 사람들이 이름을 물어보는 것[* 蛍(반딧불이 형)은 [[wiki:케이]]로도 읽을 수 있지만 [[wiki:호타루]]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둘 다 사람 이름으로 쓰일 수 있다. 단 호타루로 읽을 경우 여자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 ||
독설가에 냉소적이며 남을 비꼬는 데에 꽤나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다. 또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경기에는 매우 냉정하게 임하고 블로킹 실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약하다.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wiki:"히나타 쇼요" 히나타]]의 입부 경기 때 상대팀이었다. 저 둘이 입부 경기를 위해 한창 연습하고 있을 때 나타나, 히나타를 '초등학생', 카게야마를 '제왕'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후 [wiki:"야마구치 타다시" 야마구치]와의 대화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쓸데없이 열 내는 녀석들'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종 카게야마를 '제왕' 혹은 '엘리트'로, 본인을 포함한 평범한 배구부 부원들을 '서민'으로 칭하곤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연습이나 시합 중 카게야마와 자주 부딪치지만 그때마다 [[wiki:"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말린다.
인터하이 3차 예선, 아오바죠사이와의 시합에서 [wiki:"스가와라 코시" 스가] 및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가는 카게야마와 교체되면서 카게야마에게 '츠키시마는 '''정면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조언을 했다. 이 조언을 들은 카게야마가 경기 중 츠키시마 본인에게 방금 토스는 어땠냐고 정면으로 물어오자 처음에는 '닥치고 이 공을 때려, 서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답했다. 이후 카게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생각을 하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으니 균일한 토스를 달라'고 --웬일로 짜증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츠키시마가 본인의 생각대로 공을 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토스를 올려준다. 이 토스를 활용하여 츠키시마는 수준급의 페이크를 여러 번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스파이크로 결국 점수를 따낸다. ~~장하다 츳키~~
인터하이 예선 탈락 후, 코치로부터 히나타와 MB로서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와카도 막을 수 있는 블로커가 되어 달라고 부탁 받았다. 그러나 씩씩하게 대답한 히나타와는 달리 속으로 '우시와카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 한다. 부활동이 끝나고 카게야마와 히나타가 츠키시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에? 싫어(...).' 히나타가 재차 부탁하자, '[wiki:"히나타 쇼요" 작은 쪽]에게만 부탁하게 했다니 비겁하네, 그 쪽의 [wiki:"카게야마 토비오" 큰 쪽].'이라며 카게야마에게도 부탁을 요구했다. 결국 카게야마에게는 엎드려 절 받기로 부탁을 받아 냈다. --공부르으을!! 가르쳐주세요 이 자식아아아!!!-- 이후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성격부터 안 맞다보니 여러모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츠키시마가 '불타오르는 녀석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형[* 츠키시마 아키테루(月島明光). 케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나 아키테루가 빠른년생(3월 8일생)이라 나이차는 6살.] 때문이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8회 일치
게임 내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는 인력, 군수품, 연료가 있다.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자원을 제공하는 지역을 점령하여 얻어야 한다. 모든 지역(본부가 있는 곳 포함)이 인력을 제공하며, 총알 모양이 그려진 지역이 군수품을, 제리콘이 그려진 지역이 연료를 제공한다. 지역을 점령하려면 보병 유닛을 해당 위치의 전략 거점으로 보내 점령 작업을 시켜야 한다. 이렇게 지역을 점령하면 해당 위치에서 자원이 조금씩 들어온다. 이렇게 점령한 지역은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가 빼앗는 걸 어렵게 하고 자원 획득량을 늘릴 수 있다. 확보의 방법은 각 진영마다 다르다. 마지막으로, 점령한 지역이 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해당 지역의 보급이 끊긴 걸로 쳐서 그 지역에서는 자원을 얻을 수 없게된다.
보병 유닛들은 다른 유닛들이 죽으면서 떨어뜨린 지원화기나 중화기를 사용할 수 있다. 지원화기의 경우에는 들고있던 분대가 몰살당할 시 일정 확률로 땅바닥에 떨어뜨리는데, 이를 주우면 분대원 중 하나가 그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중화기의 경우에는 분대원 중 2-3명이 빠져나가 해당 무기를 사용하는 분대가 된다. 이외에도 자원을 소모해 개별 업그레이드나 일괄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으로 지원화기를 들려줄 수 있다.
네개 진영 중 가장 이질적인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진영들은 건물로 된 본부를 가졌지만 영국군은 본부가 지휘트럭이다.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MCV]] 같이 지휘 트럭을 펼치고, 접어서 위치를 바꾸고, 다시 펼치고 하는 방식. 지휘 트럭이 위치한 지역은 확보 판정을 받아 자원 제공량이 증가하고 적이 점령할 수도 없지만 지휘 트럭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모든 지역이 보급이 끊겼다는 판정을 받게된다.
- 키프 . . . . 8회 일치
키프 군이란 여러 남자와 사귈 정도로 인기있는 여성의 관점에서, 진심을 내고 있는 남성 이외에 연인 미만의 교제를 하고 있는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국내속어로 하자면 어장관리의 물고기. 남자친구 예비군 같은 취급.
* 앗시 군 : 자가용으로 바래주는 남자를 뜻한다. 어원은 이동수단으로서 자동차를 다리(아시)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 멧시 군 : 식사를 사주는 남자. 어원은 식사를 밥(메시)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8회 일치
3인 동시플레이까지 가능하며, 주인공은 전사, 마법사, 엘프, 드워프, 성직자 이렇게 5명. 하지만 성직자라고 해서 절대 회복마법같은거 쓰는거 아니다. 전사는 칼질을 하고, 마법사는 지팡이에서 나오는 공격마법을 쓰며, 엘프는 활을 쏘고, 드워프는 도끼질을 하고, 성직자는 메이스질을 한다.
여기서 전사,성직자,드워프 간에는 차이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파이터는 HP 성장이 뛰어나고 성직자는 방어가 조금 더 나은 차이가 있으며 드워프는 D&D TOD,SOM 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창이나 화살을 날리는 적들의 공격을 가만히 있으면 맞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의외로 원거리 공격에 아차 하는 순간 맞는 경우가 있어서 드워프가 살짝 좋은 점도 있었던 셈. 게다가 다른 캐릭터는 슬라임이 점프할때만 타격되지만, 드워프는 그냥 쳐도 슬라임을 타격할 수 있다. 하지만 3인용 시 원거리 캐릭 두명+좀더 멋지게 생긴 파이터를 주로 고른다.
다른 판타지 소재 게임에서 엘프가 여성,금발,긴머리 속성으로 주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이쪽은 정말로 대부분의 액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남자" 엘프다. 그래서 당시 국딩들은 이 게임의 엘프를 일명 [[로빈훗]]이라고 부르곤 했다. (녹색과 황색의 복장 컬러링부터 시작해서 활만을 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마법사와 엘프는 공격을 가하는 텀이 좀 길지만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가능한 안정적인 운용을 할 수 있어서 처음 킹 오브 드래곤즈를 잡아보면 엘프나 위자드를 고르는 것이 편한 것 같이 느껴지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별 써먹기 힘들어서 대부분 엘프와 위자드를 고르는 편이였고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지만, 먼 훗날. 근접 캐릭터들에게는 리치가 딸리는 대신 방패를 이용한 방어.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해서 특정 상황 혹은 가드에 상당히 익숙해지게 되면 원거리 캐릭터들 보다 더 좋은 재미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맛과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원거리 캐릭이 가드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 킹덤/503화 . . . . 8회 일치
* 태행산맥의 조군 봉화대에서 산맥을 넘는 전서구의 무리가 관찰된다. 봉화를 관리하던 병사는 무슨 일이 있길래 이 높은 산맥을 넘어, 저 정도 숫자의 전서구가 날아가는 건지 불길해한다. 그 전서구는 진군이 업을 노리고 있다는 급보를 담은 [[이목(킹덤)|이목]]의 전서구다.
호주는 그들이 서부공략을 빌미로 거병해 급히 진로를 틀어 한단으로 처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수는 20만. 이목이 이 같은 사실을 알려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말을 하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곽개와 도양왕도 조금 듣는 척을 한다. 호주는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여 요지 "열미"를 막아 진군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계책을 올렸다는 것도 전한다. 그런데 도양왕이 또 뜻모를 고집을 부린다. 그는 정예 한단군이 수도를 떠나면 누가 자기를 지키냐는 논리로 그 계책을 거절한다.
곽개는 오히려 호주와 이목을 탓한다. 그는 호주의 목을 조르며 "이목은 자기가 실수를 저질러 놓고 멀리서 왕에게 이러라 저러라 지시한다"고 매도한다. 도양왕이 지저분해진다며 곽개에게 그만두게 하지만, 호주는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나와서 몸도 가누지 못한다.
도양왕은 한단군 대신 주변 지역에서 모은 병사를 움직이자고 하는데 그 또한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이지 않거든"하며 일러둔 차선책. 곽개는 그것마저 트집을 잡으며 대책이 있는데 왜 이제야 말하냐며 호주를 구타한다.
* 호주는 기가 차면서도 차마 욕은 할 수 없고 걱정하지 않아도 이목은 군대와 함께 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목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의 진군을 하고 있다.
* 진군 중에 십화에 있던 [[순수수]]가 합류한다. 그 먼 거리에서 여기까지 합류했다고 이목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놀라워한다. 순수수는 자기가 전방에 있으면서도 눈치채는게 늦었다며 용서를 구하는데 이목은 오히려 빨리 눈치채 전서구를 날릴 수 있었고 이 차이가 승패를 가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 진군은 행군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비신대 내에서는 행군이 너무 빠른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만 [[이신(킹덤)|이신]]은 [[왕전(킹덤)|왕전]], [[환의(킹덤)|환의]]군은 그보다 빠르다며 늦추지 않는다. [[하료초]]는 두 장군의 경우 기마대만 먼저 선행시킨 거고 자기네도 충분히 서두르고 있다고 덧붙인다. 사실 새로 뽑힌 신입들은 원채 강군이라 잘 따라오고 있고 고참급 중에서 낙오가 생길 판이다.
* 이렇게 되면 맞부딪쳐 싸우는 수밖에 없는데, 무슨 속셈인지 왕전 장군은 "그대로 무시하고 돌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당황하는 부하들이 그랬다면 큰일난다고 토를 달자 안심하라며 환의가 그들을 맡을 거라고 하는데.
- 킹덤/506화 . . . . 8회 일치
딱 한 치만 빨랐다면 비마대의 전위가 성문이 닫히기 전에 진입할 뻔 한다. 그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성문이 닫히고 비마족은 내친 김에 자기들끼리 성문을 열려고 해보지만 그것까진 무리였다.
* [[환의(킹덤)|환의]]군, [[왕분]]대에 파발이 온다. 이들은 도중에 마주쳤던 조군을 성공적으로 격멸하고 막 휴식에 들어가던 참이다. 파발은 열미성 공략이 시작되었고 산민족과 [[비신대]]만이 투입되었다고 알린다. 왕분은 예상과 다른 인선에 움찔한다. 부하 장수들은 자기들이 맡은 역할 때문에 비신대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 사이에 왕분은 조용히 자리를 뜬다. 관상이 어딜 가시냐고 묻자 중요한 전투에서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이 이같은 지시를 내린 의도를 물으러 간다며 본대는 부상자 조치를 마친 뒤에 따라 오라고 지시한다. 한모대가 호위를 자청. 관상은 왕분의 핑계가 솔직하지 못하다며 그냥 비신대가 신경쓰여서 간다고 하시면 된다고 하지만 왕분은 대답없이 그대로 출발한다.
* 열미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산민족과 내리찍으려는 열미군이 뒤엉켜 아비규환. 사다리 밑으로 쌓이는 시체를 보며 비신대의 신참들이 몸을 떤다. 이제 문이 열리면 돌입할 테니 그들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투 미경험자인 탓에 어떤 자들은 부담감을 못 이기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그때 [[강외]]가 이들을 진정시키며 긴장을 풀라 한다. 어차피 한동안 성벽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면서.
- 타오팡파 . . . . 8회 일치
[[일본]]의 속어. 타월, 팬츠, 파자마('''タオ'''ル・'''パン'''ツ・'''パ'''ジャマ)를 합쳐서 줄인 말이다.
2ch의 몇몇 판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마더콘]]이 쓰는 말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타오팡파'라는 말을 쓰면서 남자가 목욕을 하고 나오자 마자 여자가 타월, 팬츠, 파자마를 준비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편이 등장한 사연에서, 자기 신변에 대한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라고 말하고, 타월・팬츠・파자마를 예쁘게 접서 3단 겹쳐놓는 것을……
- 토리코/375화 . . . . 8회 일치
각자의 싸움을 시작하는 토리코 일행.
* 마치 거대한 행성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으며 그 표면에는 미지의 동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 죠아는 운명따윈 식운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말이라며 발광균으로 그의 시야를 차단한다.
* 죠아는 그의 운명이란 것이 "젊음"이라면서 근거없는 자신감은 젊은 답지만 자기 손으로 젊은이에게 희망이란 덧없다는 걸 가르쳐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 스타준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의 힘의 원천이라며 "나는 네 생각만큼 젊진 않다"고 받아친다.
* 스타준은 "우리가 누구의 아들인지 아느냐"고 말하고 "운명"에 대해서 말할 땐 "나의 운명"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자신이 아카시아와 죠아를 막고 토리코가 GOD를 포획할 수 있도록 희생하는 운명을 암시하는 거라는 설이 있다.
- 토리코/379화 . . . . 8회 일치
* 치치는 서둘러야겠다며 자신의 조리도구를 꺼내는데, 그것을 본 존게는 뭐하는 짓이냐고 경악한다.
* 그는 백채널을 겹겹히 쌓고 왜곡해서 죠아와 자신 간에 약간의 시간 격차를 만들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 그러자 죠아는 식운이 가진 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 이것은 나무가 아니라 "구르메 플라워" 우주 튤립이다. 우주공간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죠아가 가지고 있던 위험도 S랭크의 초위험한 물건인데 슬쩍 해온 것.
* 아톰의 체내에 뿌리내린 우주 튤립은 아톰도 어쩌지 못할 속도로 자라나며 그의 신체를 갈갈히 찢어버린다.
* 텟페이는 그 식물은 아톰의 모든 양분을 흡수해 꽃이 필 때까지 자랄 것이고, 그대로 두면 지구마저 위험한 물건이라고 한다.
* 그러나 두 마리의 구르메 세포 악마를 꺼내놓은 탓에 극도로 지쳤지만 GOD에 의해 식욕이 자극되어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었다.
* 그런데 말 떨어지기 무섭게 2대륙에 서식하는 모든 배틀울프가 이 자리에 집결한다.
- 페어리 테일/480화 . . . . 8회 일치
* 브랜디쉬는 자신의 의지로 감옥에 들어가 있다.
* 메이비스는 카나를 데리고 자신의 본체가 있는 지하로 향한다.
* 우선은 자신의 본체를 꺼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페어리 글리터로 사념체인 현재의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 전원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희롱당하고 있다.
attachment:엘자일행.jpg
* 제라르와 엘자, 카구라 일행은 어둠마법의 공격을 받는데, 놀랍게도 죽은 줄 알았던 시몬이었다.
* 포로들이 묶여있는 행색이 엄하기 짝이 없는데다 병사들이 희롱하고 있어서 엄한 상상을 하는 독자들이 폭주하고 있다.
- 페어리 테일/492화 . . . . 8회 일치
* 전장에 있던 하이네와 줄리엣(아이린의 두 부하)는 미라젠에게 싸움을 걸고 미라젠은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상대한다.
* 하이네와 줄리엣은 사실 두 자루의 검이었다. 아이린의 하이인첸터 능력으로 인간 모습을 하고 있던 것.
* 미라젠은 혼자 떨어져 버린 엘프먼을 걱정하는데 그때 아이린의 두 부하가 공격한다.
* 미라젠은 리사나를 동료들과 함께 길드로 보내고 혼자 싸운다.
* 둘이 자매라는걸 몰랐던 엘프먼, 렉터, 프로시는 경악.
* 둘은 "처음부터 전력을 보이는 바보가 어딨냐"며 자신을 얕본 미라젠을 비웃는다.
* 그러자 미라젠이 "비장의 수는 위기 상황에 활용하는 것"이라면서 새로운 변신을 한다.
* 미라젠은 "신경은 안 쓰지만 그래도 여자애한테 할 말은 아니다"라며 두 명을 압도적으로 처바른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8회 일치
* 나인하르트는 아이린의 힘으로 강화되어 등장. 브랜디쉬를 배신자로 간주하고 공격하는데 나츠가 한 방에 쓰러뜨린다.
* 그러자 브랜디쉬는 "자신도 마찬가지"라 말하며 보통 사이즈로 돌아온다.
* 자신은 제국의 인간이라며 배신할 생각도 없고 페어리 테일도 전멸시킬 거지만, 둘 만이라면 봐주겠다고 말한다.
* 미라젠도 노출도 때문에 우위를 점했던 것은 잠시. 제이콥이 눈을 감고 싸우자.
* 이때 나인하르트가 등장. 엘자를 찾고 있다.
* 그는 브랜디쉬에게 "엘자의 동료는 즉 적"이라며 나츠 일행을 공격하겠다고 말한다.
* 그러자 잉벨이 "당신의 부모와 스승도 마찬가지."라며 모든 것은 "인과"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 페어리 테일/501화 . . . . 8회 일치
* 브랜디쉬는 자신이 작게 만들어줬던 종양을 원래 크기로 키웠다고 말한다.
* 그러나 그녀는 그런건 자기들 엄마들 때의 얘기라며 선을 긋는다.
* 루시에게 원한이 없는건 사실이고 그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 귀찮아졌으니 끝을 내고 싶다고 말한다.
* 루시는 자신이 이기면 나츠를 회복시키는 조건으로 승부에 임한다.
* 브랜디쉬는 "끝을 낸다"는건 승부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널 죽이고 정에 휩쓸린 자신과 결별"하겠다는 의미라며 적의를 드러낸다.
* 대응이 오히려 성가시자 루시를 원래 크기로 되돌린다.
* 루시가 쓰러지자 나츠는 억지로라도 일어서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 루시는 다시 일어서며 브랜디쉬가 자신보다 강한건 인정하고 그녀와 싸우고 싶지도 않지만 나츠를 지키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 편혜영 . . . . 8회 일치
* 2007년 제5회 자랑스런 문화인상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 2018)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이효석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절강 편씨]][[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핑커톤 . . . . 8회 일치
[[미국]]의 보안회사. 고용인 조사, 수사, 보안, 정보수집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쪽보다는 19세기에 벌였던 범죄자 사냥과 용역깡패 행위로 유명하다.
1850년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 앨런 핑커톤(Allan Pinkerton)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서부를 지나는 열차를 보호하거나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을 했다.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리즈시절(?)인 19세기가 지난 후에도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되돌아가는 [[모나리자]]를 호위한다던가, [[홍콩]]에 지점을 세운다던가 하다가 1999년 스웨덴 보안회사인 세쿠리타스 AB(Securitas AB)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1892년, [[카네기 철강]] 소유 제철소인 홈스티드 제철소의 노조가 [[파업]]하자 진압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10여명의 노동자와 3명의 핑커톤 직원이 사망하였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주방위군]]이 동원되고나서야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할 수 있었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 외에도 여러 파업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였다.
드라마 [[The Pinkertons]]는 핑커톤의 창립자인 앨런 핑커톤과 그의 아들인 윌리엄 핑커톤, 그리고 핑커톤 소속 탐정인 케이트 와르네[* 밑에 있는 여담에 써진 걔.]를 다룬 드라마다.
- 하이큐/213화 . . . . 8회 일치
* 볼보이로서 최선을 다 해 공을 주우며 자신의 당면과제를 철저히 고민한다.
* 갈고 닦은 관찰력으로 공의 코스를 파악하는 눈썰미를 갖추며 스플릿 스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 연습시합이 끝나고 시라토리자와 3학년과 OB가 돌아간다.
* 와시죠 감독은 "부르지 않은 놈에겐 밥도 잠자리도 없다"며 히나타를 홀대한다.
* 자율 연습 시간에는 일부러 볼보이를 자청하며 연습에 섞여 든다.
* 버스, 전철로 1시간을 가고 거기서 다시 자전거로 30분을 달려야 하는 코스다.
* 선수들은 "혼자만 시합하는 것 같다"고 평한다.
- 하이큐/223화 . . . . 8회 일치
* 니시노야는 자기 플레이를 되살펴보고 즉각 수용한다.
* 아무래도 자주 놀러오나 본데.
* 후쿠타치 켄지가 리드를 살려가자고 팀원들을 격려하자 모니와 카나메는 주장다워 졌다고 기뻐한다.
* 그러나 후쿠타치가 "주심에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압박을 가해 기를 꺾어 버리자"는 음흉한 작전을 지시하자 급실망.
* 츠키시마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불에 기름을 끼얹는 말이 됐다.
* 3학년 아즈마네한테까지 이렇게 나오자 카라스노 진영은 얼어붙은 듯이 조용해진다.
- 하이큐/236화 . . . . 8회 일치
* 츠바키하라의 작년 봄고 시합은 엉망진창이었다. 스코어는 25 대 15. 두자릿수로 벌어졌고 고생 끝에 올라간 전국대회에서 테라도마리를 비롯한 당시 2학년들은 긴장으로 변변한 플레이로 펼치지 못한 채 시합이 끝났다. 뭘 해본 것도 없기에 울어볼 자격도 얻지 못한 작년.
10번을 막을 궁리를 하는 거 자체가 카라스노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 꾹 참고 리드 블록으로 정석적으로 대응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해법이다. 오오사도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되던지 "줍고서 공격"하는 단순한 것이 배구라며 늘하던 대로 하라고 격려한다.
주장 에치고는 코트로 돌아가며 "카라스노 이겨라" 분위기를 뒤집어 주자고 팀의 분위기를 돋운다.
우려한 대로 츠키시마는 들어오자 마자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를 막아낸다. 공은 아즈마네의 토스로 [[사와무라 다이치]]의 스파이크로 이어진다. 이것을 마루야마가 리시브. 이번엔 마이코의 스파이크가 작렬하지만 츠키시마가 또 한 번 막아낸다.
그러나 테라도마리도 츠바키하라의 에이스 자리를 거저 얻은게 아니었다. 츠키시마의 예측을 비웃듯 정면 스트레이트로 꽂아넣는다. 그런데.
*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히나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코스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요행으로 그 자리에 있던게 아니라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고 "잡으러 간 것"이라고 평한다.
- 하이큐/271화 . . . . 8회 일치
* [[스나 린타로]]의 비기, 블록을 통과하는 듯한 스파이크의 비결은 상대 블록을 "조종"하는 특기 덕이었다. 린타로는 스파이크 시 타점의 가로 폭이 넓어 보통 선수의 약 두 배 정도가 된다. 이는 스파이크를 상반신 전체를 활용해 때리는 기술 덕. 팔의 움직임만 보고 블로킹을 하면 블로커가 "분명 맞게 블록했는데 통과해버렸다"고 착각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이나리자키 고교]]의 팬이었고, 스나 린타로 개인의 팬이었던 노인 관객은 일행에게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 [[미야 아츠무]]는 여전히 [[니시노야 유]]를 노리고 서브. 하지만 그것도 4회차에서 미스를 범하며 아웃된다. 그런데 완전히 승부욕에 불타던 니시노야는 오히려 그걸 아까워한다. 스코어 17 대 8. 이번엔 [[카라스노 고교]]의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가 서브한다. 서브는 [[마지로 아란]]에게, 마지로가 리시브에 실패하며 득점으로 이어진다. 아즈마네의 서브 에이스. 곧바로 이어지는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마지로를 정확히 노렸다. 이번엔 마지로의 리시브 성공. 공은 아츠무에게. 좌측에서 [[미야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그러나 이는 연막. [[츠키시마 케이]]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중앙에서 한 박자 늦게 달려나오는 린타로를 놓치지 않았다.
* 린타로가 날아오르는 순간, 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정확한 위치에 블록을 펼쳤다. 일반적인 선수의 경우라면 그랬다. 하지만 린타로의 상체 전반을 쓰는 스파이크는 타점이 보통과 다르다.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카게야마의 우측을 크게 빗겨 떨어진다. 그 위치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손을 뻗었지만 팔에 맞고 아웃. [[이나리자키 고교]]의 득점. 아츠무는 수준이 높은 블로커일 수록 린타로에게 유도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다시 18 대 9로 더블 스코어.
* 관전 중인 [[네코마 고교]]의 [[코즈메 켄마]]와 [[쿠로오 테츠로]]도 린타로의 스파이크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쿠로오는 상황을 정확히 봤는데 블로커들이 딱히 문제를 범한 건 없었다. 그의 위치에서는 린타로의 "유도"가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그 원리는 납득하면서도 스파이크의 위력을 전혀 떨어뜨리지 않고 구사하는 것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무렵 린타로의 팬인 노인도 같은 설명을 일행에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보통 MB의 속공은 다른 공격보다 콤팩트하기 마기 마련인데, 린타로는 제대로 토스만 올라오면 언제든 정면승부가 가능하다고 격찬했다.
* 이제 카라스노에겐 미야 아츠무에 더해 린타로의 속공을 봉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추가됐다. 이나리자키의 긴지마 서브. 이번에도 니시노야에게.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공은 츠키시마에게 이어져 스파이크. 린타로가 블록했다. 공은 이나리자키 진영 위로 뜨고 아츠무가 우측으로 빠지는 공을 달려가 살린다. 위치는 레프트. 마지로가 뛰어오른다. 그 앞으로 카게야마, 츠키시마, [[타나카 류노스케]]가 나란히 블록을 깐다. 마지로의 대포같은 스파이크도 세 장의 블록을 뚫진 못한다. 크게 떠오르는 공. 네트 위로 떨어지던 것을 카게야마가 밀어넣는다. 아카기가 네트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커버. 다시 스파이크를 준비하는 마지로. 카라스노는 다시 블록 세 장으로 막는다. 그러나 더 높게 뛰어오른 마지로가 블록을 넘긴 스파이크로 후방을 노린다. 아즈마네가 가까스로 리시브했으나 공은 튕겨나가 네트 앞으로. 놀랍게도 마지로가 세 번째 점프를 뛴다. 그리고 우겨넣는 듯한 스파이크. 카라스노의 블록도 이 세 번째 만은 대응하지 못했다. 카게야마 혼자 뛴 블록 위로 내리 꽂히는 공격. 마지로가 세 번의 스파이크 끝에 1점을 강탈해 간다.
- 한가빈 . . . . 8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형제자매 =
* 2017년 노래방 갈땐 노래방 가자 앱 - Vol.1 “[[노래방 가자]]”
* 2017년 MBC [[밥상 차리는 남자]] OST Part 1 “[[인생연습]]”
* 2012년 제34회 KBS 근로자가요제 대통령상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1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유한대학교 동문]]
- 한소정(1984) . . . . 8회 일치
| 배우자 =
* [[2003년]] [[부산 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06년]] 서울 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 [[니콘]] 부스 포즈모델
* [[2007년]] [[서울 모터쇼]] [[쌍용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07년]] 한국전자전 [[쿠쿠홈시스]] 부스 모델
* [[2008년]] [[부산 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10년]] World IT Show 삼성전자 부스 모델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횡성군 출신 인물]]
- 한운사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남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이 영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특히 아로운 3부작은 작가 자신의 군경험이 녹아있는 자전적 작품으로 아로운(阿魯雲, [[영어]]로 alone) 자체가 한운사 [[본인]]이나 다름 없으며, 13부대 자동차 중대 제6내무반에서의 군생활을 다루었다. 참고로 같은 [[내무반]]의 동료 지하라(千原) [[이등병]]의 경우 실제 모델이 천응렬로 후에 한운사 작가의 자서전 '구름의 역사'에선 실명으로 등장한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모리 지로(森次郞) 일등병도 실존 인물이며 원래 실제 인물의 이름도 모리.
- 함두영 . . . . 8회 일치
*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마포지구당 위원장
{{선거기록/KR/개인|[[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총선]]|6대|[[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서울 마포구의 국회의원|마포구]]|자유당|- |0|-||[[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제11지역구|사퇴]]}}
==참고자료==
|전임자 = [[오성환 (1906년)|오성환]](마포구 갑)<br/> [[이종현 (정치인)|이종현]](마포구 을)
|후임자 = [[김상돈]](마포구)
|소속정당 =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 함신영 . . . . 8회 일치
|배우자 =
* 《[[MBC 베스트극장]] - [[아빠 애인의 남자친구]]》 (MBC, 1999년)
* 《[[남자 셋 여자 셋]]》 (MBC, 1998년)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허협 . . . . 8회 일치
|직업 = 순교자
허협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4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는 것과 등이 전부이다. 그는 [[훈련도감]]의 [[병사 (군인)|병사]]였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러나, 몇 주 후, 허협은 [[고문]]을 견디지 못해 배교하였다. 하지만, 그는 즉시 속죄하고, 포장에게 가서 자신은 오직 입으로만 배교하였고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은 여전히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하였다. 형리들은 그에게 배교를 취소하는 표시로 사람의 [[똥]][[오줌]]을 마시기를 요구하였고, 허협은 주저없이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는 [[십자고상]]에 절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그가 한때 배교했던 것을 뉘우치며 [[예배]]하였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현덕 . . . . 8회 일치
{{다른 뜻 설명|'''현덕'''(玄德)은 [[유비]]의 [[자 (이름)|자]]이기도 하다.}}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참고 자료 ==
* 김영순,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분류:박헌영]][[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주 현씨]]
- 현재덕 . . . . 8회 일치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잡지 《[[신시대]]》에 삽화를 기고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한 기록이 남아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이태호
== 참고 자료 ==
* 김영순,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분류:191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삽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삽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아동미술가]][[분류:박헌영]][[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홍금주 . . . . 8회 일치
|직업 = 순교자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태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남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홍금주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입을 빨간색 옷이 한 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순교자]]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녀는 [[최 필립보]]의 집에서 그의 제수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녀는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으며 배교할 것과 [[천주교]]인들이 숨은 곳들을 누설하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형리는 그녀의 주뢰를 틀고난 뒤,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를 감방의 천장에 매달아 놓고서 그녀에게 매질을 가했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흘 후 그녀는 [[형조]]로 이송되었고 세 차례를 다리에 격심한 매질을 당했지만, 형조 [[판서]]에게도 굴복치 않았다. 그녀는 감옥에서 심한 열병을 앓아 거의 죽을 뻔 하였지만, 매우 빨리 회복되었다. 그녀는 [[사형]]이 집행 때까지 근 6개월을 형조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오직 사랑과 봉사로써 다른 수감자들을 돌보았다. 감옥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큰누이처럼 존경했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홍나영 . . . . 8회 일치
| 배우자 =
'''홍나영'''([[1991년]] [[9월 14일]]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며 2011년 KBS 공채 26기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대표작으로는 KBS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과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등이 있다.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가장자리〉
* 언니, 나 남자친구 좀 소개시켜줘(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 언니, 나 그냥 혼자살래~!(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 홍석형 . . . . 8회 일치
|배우자=
|자녀=
1936년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후 금속공학 학위를 받았다. 성진제강소 기술부기사장, 금속공업부 제1부부장,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기사장, 함북도당 제2비서 겸 김책제철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 국가계획위원장([[1993년]]~[[1998년]]<ref name="ab" />), 함북도당 책임비서([[2001년]]~[[2010년]]<ref name="ab" />),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지냈다.<ref name="tongilnews">{{웹 인용|제목= 당대표자회, 40년대 해방전후 차세대 기수 전면 등장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72 |저자=정명진 |출판사=통일뉴스 |날짜=2010년 9월 29일 |확인날짜=2011년 10월 4일}}</ref> 그리고 2010년 9월부터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계획재정부장으로 있다.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2011년 6월에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직을 포함한 모든 보직에서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ab">장진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117309 홍명희 손자 홍석형 北경제비서 숙청], 뉴시스 2011년 10월 6일</ref> 홍의 이후 행적은 [[2013년]]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증조부 : [[홍범식]](洪範植, 1871 ~ 1910), [[경술국치]] 때 자살
|전임자=
|후임자= [[오수용]]
- 홍화리 . . . . 8회 일치
| 형제자매 = 홍화철(남동생)
[[분류:200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
- 황덕균 . . . . 8회 일치
[[서울 해치]]의 해산 이후 트라이아웃을 통해 [[NC 다이노스]]에 이적했고, [[2013년]] [[9월 5일]]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9월 8일]] [[SK 와이번스|SK]]전을 통해 데뷔 11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피안타 2볼넷으로 2실점(비자책)한 후 [[정진 (야구 선수)|정진]]과 교체되어 마운드를 내려갔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98580 NC 황덕균, 11년 만에 밟은 1군 마운드] - MK 스포츠</ref>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시즌 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현역 연장을 선언하여 방출되었다.<ref>[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063 NC, 황덕균·한윤기·박정훈·김동건 방출] - 경남도민일보</ref>
[[2015]] 시즌 3경기에 등판해 승패 없이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리고 등록된 당일 경기였던 [[KIA 타이거즈|KIA]]전에 구원 등판했고,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단 한 개만 내주면서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2016년 9월 15일, [[kt 위즈]]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박주현 (야구 선수)|박주현]]이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되자 2번째 투수로 올라와 5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대역전승에 기여하였다. 2016년 9월 1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김정인]]이 조기 강판당하자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160920.99002161812 '7전 8기' 넥센 황덕균, 15년 만에 거둔 첫승…4이닝 무실점 '역전'의 호투] -국제신문 </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황석하 . . . . 8회 일치
*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2015년) - 라디오DJ 역
* 《[[선지자의 밤]]》 (2015년) - 갑봉 역
* 《그 여자의 자살 시도》 (2013년) - 배우 역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FastSearchMacro . . . . 7회 일치
1. Berkeley DB나 다른 DB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인 인덱스방식을 사용한다.
1. 한글 및 CJK 문자셋의 경우 단어를 모두 잘라내어서 한개의 문자로 분리해서 인덱싱. -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중국어의 경우 고려.
1. 페이지를 생성할 때에 자동 인덱싱된다. 이와 별도로 `bin/indexer.php` (콘솔용), `lib/exe/indexer.php` (웹용) 인덱서가 따로 있다.
1. 약 1천500 페이지를 가져와서 인덱싱해보니 ~10분 이상 걸린다. 자체적 구현의 인덱싱방식이 너무 느린듯.
$myplugins=array('fullsearch'=>'FastSearch'); # 앞에는 소문자로, 뒤에는 플러그인 파일 이름에 맞게 FastSearch.php 파일을 찾게되므로 대소문자 구분.
- GLA . . . . 7회 일치
도덕적으로 올바르지는 않은 세력. [[UN]]이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지원하던 현장을 습격해 물자를 탈취하거나 도시 한복판에 핵탄두를 터뜨리는 행위를 벌인다.
GLA의 자원채취 겸 건설 유닛. 제국주의자들이 [[불도저|부르도쟈]]를 이용해 건물을 지는것에 비해 [[오함마]]로 건물을 뚝딱뚝딱 짓는 근성 넘치는 친구다. 대사의 늬앙스로 보아 GLA에게 착취당하며 사는 듯.
* 자멘켈
폭탄을 가득 싣고 자폭하는 트럭. 다른 차량으로 변장할 수 있다. 각 유닛마다 서플라이를 소모해 폭탄에 독소 성분을 추가하거나 자폭시 공격력을 늘려줄 수 있다.
- K리그 . . . . 7회 일치
역사적으로 K리그는 1983년 탄생한 [[수퍼리그]]를 전신으로 한다. 이 당시에는 아직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없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이하 KFA)의 주도로 대회가 탄생하였으며 완전한 프로리그는 아니었다. 총 5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에서 완전한 프로팀은 유공(現 제주 유나이티드), 할렐루야 두 팀 뿐이었고, 나머지 세 팀은 실업팀이었던 국민은행, 포항제철(現 포항 스틸러스), 대우(現 부산 아이파크). 물론 이 세미프로팀들도 당시에는 프로전환을 고려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업팀(=세미프로)이 더 많았던 리그임은 사실이다. 또한 참가팀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승강제는 애초에 구성하기도 불가능했다.
* [[고양 자이크로 FC]]
이와 관련하여 당연히 기존 K리그 회원들의 반발이 거셌고, 특히 강등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구단들이 가장 거셌는데 이에 대해 연맹이 내 놓은 해결책은 사실상의 세미프로인 군경팀을 일단 확정적으로 강등시키며, 군경팀을 제외한 최하위 팀을 추가로 강등하는 1+1 강등안을 발표한다. 때문에 군경팀인 상주 상무는 자동으로 강등되었으며, 추가로 상주를 제외한 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한 광주가 사상 첫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2013시즌도 승강구조가 한시적으로 운영된 케이스이다. 클래식 스플릿 B의 최하위 2개팀은 챌린지로 자동강등, 마찬가지로 스플릿 B의 차하위 1개팀은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서 잔류 여부가 결정되었다. K리그 챌린지의 우승팀은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하며, K리그 클래식 스플릿 B의 차하위 팀과 겨뤄 승격 여부가 결정된 시즌이다.
1. 클래식 스플릿 B의 최하위팀은 자동강등
1. 챌린지 우승팀은 K리그 클래식으로 자동승격
= 참고자료 =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7회 일치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정규 라운드가 끝난 이후 챌린지 2위~4위팀에게 참가기회가 부여된다. 상세하게 나눠보면 3위와 4위의 대결은 챌린지 준플레이오프라 칭하고, 챌린지 준플레이오프의 승자와 2위팀의 대결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라 부른다.
플레이오드도 준플레이오프와 마찬가지로 리그 2위팀과 준플레이오프 승자끼리 리그 2위팀의 홈에서 경기를 갖는다. 룰도 똑같이 적용된다.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처음 시행되었던 2014시즌에는 리그 4위였던 [[광주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었고, 또 기세를 이어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2015시즌도 리그 3위였던 [[수원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어 2016시즌에 클래식에 안착하는 등,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안습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2015시즌 2위였던 대구는 마지막 한 경기를 놓치면서 상주 상무에게 1위자리를 놓치며 2위로 내려왔는데 대구는 수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자동승격권을 놓친것과 더불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마저 놓치는 등 2위 징크스를 K리그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게 되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1화 . . . . 7회 일치
* UMR에겐 어떡할 거냐고 묻는데, 막과자집엘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 UMR가 소개한 막과자집은 정말로 오래된 옛날 막과자집--다가시카시--
* 이 집에는 고전 아케이드 게임기가 잔뜩 있어서 UMR가 자주 온다
* UMR와 실핀이 이 게임들에 대해서 아냐고 묻자, 봄바는 지난 번에 15만점 골램 운운하다 창피를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잘하진 못한다"며 겸손을 떤다.
* UMR와 실핀은 골든위크 동안 모든 게임기를 섭렵하자고 결심한다.
* 막과자집을 만끽하는 두 사람을 보고 봄바는 잊고 있던 골든위크의 즐거움을 되살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7회 일치
* 우마루는 그녀야 말로 자신의 (내숭의)이상형이라며 동경하게 된다.
* 자칫하면 트림이 나와버리는 상황. 우마루는 그녀가 초인적인 노력으로 참고 있음을 간파한다.
* 자신도 바깥에선 내숭 모드지만, 카나우는 차원이 다르다고 감탄하는 우마루.
* 이때 히카리가 야채를 썰려고 칼을 들자 카나우가 깜짝 놀라 다가간다.
* 이번에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한 카나우.
* 우마루는 자신의 위기도 해결하면서 동생 히카리까지 챙기는 모습에 크게 감명 받는다.
* 하지만 "봄바도 자주 온다"는 말엔 "그 녀석하곤 같이 있고 싶지 않다"며 가차없는 디스를 날린다.
- 경주시 . . . . 7회 일치
! 이름 !! 한자 !! 면적 !! 세대 !! 인구 !! 행정지도
|align="center"|시인 · 성리학자
|align="center"|문신 · 유학자
|align="center"|영화감독 · 제작자
|align="center"|지방자치공무원
|align="center"|시인 · 교육자
|align="center"|헌법학자
- 공명(배우) . . . . 7회 일치
||<#f9ffff> {{{#6482b9 '''종교'''}}} ||<(> [[개신교]][* 가족 모두 교회를 다닌다 한다. 본인 및 당연히 동생인 도영도 포함. 또한 그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모습이 몇 번 포착이 됐다. 단, 술은 약간 마시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량이 약간 있는 듯하다. 팀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는 걸로 추정된다.] ||
the icon 인터뷰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 부모님이 자신을 연기 학원에 등록해주셨다고 한다.
2015년 MBC 월화 드라마 [[화정]]에서 [[정명공주]]의 호위무사 '자경' 역을 맡았다.
|| 2015년 ||<|2> MBC || [[화정]] || 조연 || 자경[* 같은 그룹 멤버인 [[서강준]], [[이태환]]도 함께 출연했다.] ||
||<|4> 2017년 || KBS2 || [[개인주의자 지영씨]][* 2부작 단막극이다.] || 주연 || 박벽수 ||
* [[https://www.youtube.com/watch?v=rRguYFhrNEk|CF - 메디힐 # 새근새근 편]] [[https://www.youtube.com/watch?v=rImnOCIG6o0|# 푸석푸석 편]] [[https://www.youtube.com/watch?v=TpPHRiVvLPU|# 쓰담쓰담 편]] [[https://www.youtube.com/watch?v=bSTrRtVrQg4|# 우아 편]] [[https://www.youtube.com/watch?v=MpSsp77MCK0|# 내눈엔 너만보여 편]] [[https://www.youtube.com/watch?v=w6gJysNM93s|# 가을인가봐 공원 편]] [[https://www.youtube.com/watch?v=xz9QBEP4hvc|# 그 계절은 길어 공방 편]] [[https://www.youtube.com/watch?v=rd6dUbxv_A4|# 찬바람 나빠요 남자집 편]] [[https://www.youtube.com/watch?v=LUxZqh7hOPU|# 세번만에 편]] [[https://www.youtube.com/watch?v=B3Me8fbnsrs|# 촉촉촉 편]] (with [[지우(배우)|지우]])
|| Reset (with [[이적(가수)|이적]]) || [[https://youtu.be/Ug0M6SFfqQ8|#]][* 내용을 보면 '세 사람' 뮤직비디오의 속편격. 세 사람 뮤직비디오 속에서 결혼한 여자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
- 공주님 안기 . . . . 7회 일치
양 팔로 사람의 몸을 안아서 드는 자세. 한 팔로는 안는 사람의 어깨 쯤, 다른 팔로는 다리나 허벅지 쪽을 받친다.
대중문화에서 묘하게 자주 나오는 자세.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상 이 자세로 상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남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상태가 되지 않는다.
- 곽결호 . . . . 7회 일치
{{공직자 정보
| 자녀 =
* 2005년 :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전임자 = [[이만의]]
|후임자 = [[박선숙]]
|전임자 = [[한명숙]]
|후임자 = [[이재용 (1954년)|이재용]]
- 교조 . . . . 7회 일치
특정한 [[종교]]의 창시자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개조(開祖), 파조(派祖), 조사(祖師) 등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별로 많이 안 쓰이는 단어지만 [[일본어]]에서는 교조가 자주 쓰인다. 한국에서는 대신 [[교주]]가 많이 쓰인다.
특정한 [[종교]]의 창시자, 혹은 해당 교단에서 분파된 특정 종파의 창시자를 뜻한다. 종교만이 아니라 특정한 사상이나 운동의 창시자,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도 교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 참고자료 ==
- 구성재 . . . . 7회 일치
* [[정치인/목록]], [[기자(직업)/목록]]. [[대구광역시/인물]]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선친이 [[구자춘]] 전 [[행정안전부 장관|내무부 장관]]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이후 조선일보를 퇴사하고 대구광역시 검도회 [[회장]] 등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선거구)|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이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선거구)|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추경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기자]][[분류:1960년 출생]]
- 궁가 . . . . 7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일부인 궁실(宮室), 그리고 왕실에서 [[분가]]하여 독립한 가문을 통틀어서 일컷는다. 대원군(大元君), 왕자군(王子君), 그리고 공주(公主), 옹주(翁主)가 사는 집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미야케(宮家)'라 하여, 역시 [[천황가]]의 분가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친왕(親王)이나 이에 준하는 직위를 가진 황실 인물의 가문이 이에 해당하며 주로 왕부(王府)라 하였다.
궁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왕실과의 친밀도에 의하여 [[토지]]와 [[노비]] 등 상당한 재산을 하사받아 보유하였다. 또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 때문에 정치적, 법률적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권계급이었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분쟁에 휘말려서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왕실과 연결이 가까운 시기에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세대수가 지나면서 왕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점차 낙향하고 자산이 분산되면서 지방의 평범한 서민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왕실과 연결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문은 나름대로 사소한 특전은 누릴 수 있었으나, 생활상은 서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궁가인 미야케는, 역사적으로 다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게 된다. 본래 고대에 천황가의 방계후손은 [[신적강하]]라는 절차를 거쳐서 성씨를 받고 천황가에서 이탈하여 신하의 가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후대에는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천황가의 일원으로 남으면서, 천황가의 분가를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는데 이를 미야케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천황가의 분가로서 미야케는, 천황가의 본류 혈통이 단절되면 양자로 입적하는 형식으로 천황가를 계승,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의 미야케는 [[메이지 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천황가의 정통과 너무 멀어진 가문은 궁가의 자격을 잃고 정리하게 되었다. 현재는 소수의 가문만 남아 있으며, 그나마 모두 천황가와 마찬가지로 남성 적손이 부족하여 단절될 위기에 있다.
* [[강화종실]] :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가문이 [[강화도]]로 이주하여 생겨난 분가. 왕실의 인척인 궁가였음에도, [[역적]]의 자손으로 여겨져서 가난하고 한미한 집안으로 전락했으나, 이 가문에서 [[조선 철종]]이 배출되었다.
- 권영해 (1888년) . . . . 7회 일치
| 직업 = 독립운동가, 기독교 목회자
1919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상백(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식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백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466&ipp=1000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권영해 先生 공훈록]
[[분류:1888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안동 권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한국독립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권재진 . . . . 7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전임자 = [[정동기]]
|후임자 = [[정진영 (1959년)|정진영]]
|전임자 = [[이귀남]]
|후임자 = [[황교안]]
- 기동전사 건담 . . . . 7회 일치
당시 유행하는 로봇이 최소 10여가지 이상에서 수십가지에 달하는 무기를 장착하여 걸어다니는 '무기고' 수준으로 설정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건담의 무기는 종류가 매우 적어서 10여가지 이하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쓰이는 무기는 발칸, 빔사벨, 라이플 혹은 바주카 밖에 없다. 해머나 빔 자벨린 같은 무기가 있기는 하나 일회적인 출연에 불과하다.
그러한 반면에 건담은 TV판 40화 이상 혹은 극장판 3편이라는 장기 작품을 사실상 단 세가지 무기만 가지고 밀도 있는 액션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기의 숫자는 줄었지만 오히려 액션은 훨씬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졌다.
적군 유닛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신형 메카들이 일회성으로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초반 적 기체인 '자쿠'의 경우 초반 악역은 일회용 취급당하던 과거의 패턴을 깨고 건담과 함께 건담 시리즈의 대표적인 메카 디자인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마케팅적으로 소수의 주역 메카'만'이 상품성이 있었던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적아군을 모두 합쳐 거의 20여가지 이상의 상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다. 단지 소수의 주역 로봇(많아봤자 2,3체)만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적의 로봇은 1회용으로만 쓰이며 상품화 되지 않고 낭비되다시피 했던 대부분의 다른 로봇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적의 로봇 역시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게 되었으므로 훨씬 다양한 상품을 프라모델로 출시하고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기은세 . . . . 7회 일치
| 배우자 = 12세 연상남
* [[2012년]] [[SBS]] 미니시리즈 《[[신사의 품격]]》1회 ... 카페 여자 역
* [[2009년]] 《[[여자 없는 세상]]》 ... 제니스 역
* [[2016년]] [[올'리브]] 《옥수동 수제자》
* [[2007년]] [[피자헛]]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석대학교 동문]]
- 김기섭 (1939년) . . . . 7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남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상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영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 [[1990년]] [[2월]]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 의전비서
* [[1990년]] [[3월 7일]] [[김영삼]] 민자당총재 소련 방문 수행원
* [[1992년]] [[민주자유당]] 총재 의전, 민정특별보좌역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신정용]]<br/>(권한대행)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영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영삼]][[분류:김영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남조 . . . . 7회 일치
| 배우자 = [[김세중]]
그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하였다.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ref>이은영,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9 예술가 위한 공간 ‘예술의 기쁨’ 개관하는 원로시인 김남조], 서울문화투데이</ref>
* 자유문인협회상(1958년)
{{위키자료집|글쓴이:김남조|김남조}}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시인]]
- 김선영(1976) . . . . 7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이승원, 슬하 1녀 ||
* 아이스케키 (2006) - 춘자
* 음치클리닉 (2012) - 이형자
*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2014)[* 영화 [[국제시장]]에서 오영자 역의 [[김윤진]]과 시장에서 싸우는 아줌마로 나오기도 했다.]
* [[미씽: 사라진 여자]] (2016) - 안마 시술소 주인
* [[이번 생은 처음이라]] (2017, tvN) - 김현자[* 여주인공 윤지호의 어머니이다.]
* 보다 자세한 소개는 [[http://blog.hallym.ac.kr/220576558877|여기를]] 참조
- 김성곤 (1913년) . . . . 7회 일치
|손자 =[[왕재민|김재민]]
|손녀 = [[추자현|김자현]] [[김태희|김석희]]
=== 삼공유지합자회사 설립 ===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태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1958년]]에는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소속으로 달성에서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으로 인해 한때 정계 은퇴하였으며 [[5.16 군사정변]]이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그 이후 [[1959년]] 국민학원(現 [[국민대학교]])를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0년]]에 [[대한유도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1962년]]에 [[쌍용양회]]를 설립한다. 그 이후 [[1963년]]에는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며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이 되었다. [[1965년]]에는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당무위원이 되었으며 성곡언론문화재단, 성곡학술문화재단을 창립하였다. [[1967년]]에 [[쌍용제지]]를 설립하였으며, 제7대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 김재엽 . . . . 7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유도]]}}
'''김재엽'''(金載燁, [[1964년]] [[5월 17일]] - )은 전 [[대한민국]] [[유도]] 선수이자, 현재 대학 [[교수]]이다. [[종교]]는 [[불교]]다.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는 전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여유있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경기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세계 선수권자 김재엽과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소가와 신지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으나 호소가와가 준결승에서 미국의 무명 선수 케빈 아사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손쉽게 판가름났다.
서울 올림픽 직후 은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1992년에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유도 대표팀 코치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현재 [[동서울대학]] 경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올림픽 유도 남자 엑스트라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김정난 . . . . 7회 일치
|| 2011년 || [[위험한 상견례]] || 영자 || ||
|| 2013년 || SBS || [[세 번 결혼하는 여자]] || [[정태희]] || ||
|| 2005년 || SBS || 그 여자 || 하정선 || ||
* [[1991년]] 12월 11일 첫 회가 나간 뒤 시간대가 자주 변경되어 오다가 [[1995년]] 2월 7일부터 화요일 오후 7시 5분으로 고정된 [[SBS]] [[코미디 전망대]]를 같은 달 28일부터 개그맨 [[김병조]] [[이봉원]], 아나운서 [[김성경]]과 공동 MC를 맡았으나 그 해 봄 개편으로 김성경 아나운서와 함께 두 달 만에 하차했다. 사족으로, 코미디 전망대는 김정난 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 활동해 오던 여자 진행자들이 정통 드라마 출연 경력을 가졌다.[* MBC 공채 MC 출신 [[이매리]], KBS - [[MBC]]에서 활동해 온 개그우먼 [[조혜련]]]
*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2018년]] [[10월 31일]]자 589회에 출연하여 환경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 김진향 . . . . 7회 일치
'''김진향'''([[대구광역시]] [[달성군]], [[1969년]] [[3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전문가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3684523 개성공단 4년 실무담당 김진향 교수 "우리 기업들만 죽이는 행위"]. 아시아경제. 2016년 2월 11일.</ref>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노무현 정부]][[분류:북한학자]]
- 김현철(교수) . . . . 7회 일치
|| '''약력''' ||<(> 쓰쿠바 대학 부교수[br]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위원[br]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br]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br]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b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
[[대한민국]] 경제가 당면한 저성장 시대 생존 전략을 중심으로 꾸준히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일본]] 등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다는 평가가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체감한, 이른바 '일본통'으로 불린다. 토요타, 캐논, 후지필름 등 일본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의 기업들에게 자문을 해 왔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의 [[싱크탱크]]였던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추진단장을 맡았다. 당시 경제 핵심 어젠다인 '국민성장론'의 입안자라고 알려졌다.
또 "무작정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으면서 기업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태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자멸의 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보좌관으로서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는 국내용 이슈라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http://news.nate.com/view/20180202n33963?mid=n0201|출처]]
- 김형인(코미디언) . . . . 7회 일치
그 외에도 [[1대 100/100인 우승자 문제 #S-3.6|1대 100]] 254회 방송분에서 100인으로 출연해서 우승한 경험이 있다.
자세한 건 [[웃음을 찾는 사람들/역사]] 참조. 결국 이로 인해 윤택과 김형인 등은 당분간 웃찾사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고, 한참 후에야 웃찾사에 복귀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웃찾사도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결국 [[2010년]] [[가을]]에 1차 종영되었다.
웃찾사에 출연하지 않고 있던 2006년 11월 KBS의 신설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음충전소]]에 출연하면서 KBS로 이적.''' '''대안제국''' 코너에서 조선 시대 대신들 중 한 명으로 등장해서 다른 대신인 박성호와 함께 서로 왜 웃찾사 버리고 건너왔냐며 자학개그를 했다. 박성호는 원래 개콘에 출연하다가 소속사 문제로 웃찾사로 이적한 바 있다.
그 후에는 '''지친다 지쳐'''에서 서성금의 동생 역할, 즉 김준호의 처남 역할로 등장. 여기서 장동민은 '''S 회사'''에서 쫓겨난 거 아니냐고 인신공격을 하자 발끈하는 자학개그를 펼친다. 그 다음에 등장했을 때는 자기가 모시는 사장님이라면서 '''윤택을 KBS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모셔왔다.''' ~~아이고~~ 하지만 다단계 일당이었고 김형인과 윤택 둘 다 도망~~쳐서 웃찾사로 복귀~~
웃음충전소에 출연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웃찾사에 복귀했는데 웃음충전소 당시에는 반삭 머리였다가 웃찾사 복귀 때는 머리가 많이 자란 걸 보니 녹화한 지 꽤 된 것 같다.
- 김형일(배우) . . . . 7회 일치
본관은 [[김녕 김씨]], 생년월일은 1960년 12월 28일 [[경기도]] [[성남시|분당구]] 출신이다. '''장군 [[전문배우]]의 대표 주자.''' 묵직한 목소리, 183cm인 키, 다부진 체격, 외모마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군에 특화되었다.
[[2012년]]에는 간만에 현대극인 [[골든 타임(드라마)|골든 타임]]에서 신경 외과 과장인 김호영을 연기하였었는데... 간만에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를 연기 중이었다. 가끔씩 깐죽대는 대사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그렇지.
* [[부암동 복수자들]]
* 2011년 기준 해도 망원동 ㅅㅇ아파트에 살았다.(지금도 사는지는 불확실)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최종 수정자인 작성자 본인이 목격했을때는 매니저 없이 택시를 자주 타는 모습이 보였는데 매니저 없이 다니는 것인지, 사적인 일로 다니는 것인지는 불명
* 자녀를 늦게 낳았는데, 딸은 44살(2003년생)에, 아들을 46살(2005년생)에 얻었다. 아내는 1965년생으로 5살 차이라고 한다.
- 김형태(정치인) . . . . 7회 일치
* 상위 문서 : [[정치인/목록]]. [[기자(직업)/목록]]
국민대학교 졸업 후인 1979년 [[한국방송공사|KBS]]에 [[기자(직업)|기자]]로 입사하였다. 2003년까지 주로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이상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원|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회 홍보분과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기자]]
- 김혜선(배우) . . . . 7회 일치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69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불타는 청춘의 역대 출연자]][[분류:정읍시 출신 인물]]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발연기]]라기보다 "역할을 탄다"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한마디로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지 못하다는 것. 대체로 선하고 차분한 연기에 특화된 연기자라고 할 수 있다. [[왕꽃 선녀님]]에서의 부용화 역이나 [[소문난 칠공주]]에서의 덕칠 역은 무난하게 잘 소화한 편이다. 밑의 수상내역도 나와 있지만, 연기상도 여러번 수상한 경력이 많은 연기자다. 그러나 괄괄하거나 억척스러운 역할, 또는 악역은 어색한 수준을 넘어서 발연기라는 오명까지 들을 정도이다. [[리즈 시절]]의 외모에 연기 스펙트럼까지 넓었다면 지금보다 더 대성했겠지만.
80년대 후반에 다른 동료 연기자들과 같이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1963902|음반을 낸 적이 있다.]]
2017년 12월 발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랐는데, 사기당한 남편의 빚을 갚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3&aid=0003337011|#]]
* 2000년 [[MBC]] [[온달왕자들]]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7회 일치
2014년 12월 7일, [[나고야 대학]]에 재학중인 여학생이 77세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 범인은 [[나고야 대학]]에 진학중이던 여대생 오오우치 마리아(大内 万里亜)이다. 범인은 평소 얼굴을 알고 지내던 피해자 모리 토모코(森外茂子,77세 여성)를 자신의 아파트에 불러들여서, 방 안에 보관해두던 [[도끼]]로 공격했다. 하지만 몇번을 때려도 피해자가 죽지 않자, 피해자가 하고 있던 [[머플러]]를 빼앗아서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 이후 피해자의 시체를 욕실까지 끌고 가서 세면대에 방치하고, 「마침내 했다.(ついにやった。)」고 [[트위터]]에 보고하며 휴대폰으로 시신을 찍어서 올렸다.
모리 토모코는 [[기독교]] 계열 종교의 신자로서, 종교 권유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본래 모리 토모코와 오오우치 마리아가 만나게 된 계기는 모리 토모코가 종교 권유를 위하여 오오우치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오오우치 마리아는 문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들어주고, 살해되기 얼마 전에는 휴대폰 번호도 가르쳐줄 만큼 가까이 끌어들였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7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01. '''하츠메 메이라는 여자'''
* 서포트과 1학년 하츠메 메이의 완전 자기위주 자기소개.
* 폭발에 휘말리게까지 해놓고 통성명은 했으니 자기할 일 하러 가겠다고 한다.
* 그런데 미도리야가 "코스튬 개량"이란 말을 꺼내자 눈을 번뜩이며 달려든다.
* 자기 개성은 다리라고 울분을 토하는 이이다.
* 소제목은 루팡 시리즈인 "미네 후지코라는 여자"의 패러디로 보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1화 . . . . 7회 일치
* 밀리오는 어떻게 자신의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일갈하나 그는 "나에겐 자식이 없다"고 대꾸하고 통로를 파괴, 재수복하면서 밀리오를 고립시킨다.
* 밀리오가 예상보다 강하자 오버홀은 우선 에리를 파괴해서 제압하려 하는데 그걸 예측한 밀리오는 바로 그를 공격, 그의 패배라고 선언한다.
* 오버홀은 당하는 중에도 밀리오가 자신을 "치사키"라 부르자 그 이름은 버렸다고 과민하게 반응한다. 그의 본래 이름은 "치사키 카이"
* 야쿠자들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오버홀은 진작부터 자신의 계획을 아버지인 두목에게 진언하고 있었지만 그는 인의에서 벗어난 짓이라며 한사코 거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7화 . . . . 7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다비]]라는 빌런을 손쉽게 제압하지만 이쪽도 모든 힘을 드러낸 건 아닌지 포박을 풀고 퇴각한다
* 아이자와는 적들의 목표가 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각자 도주하다 당할 것을 걱정한다.
* 책임은 자신이 지겠으니 각자 자신을 지키며 싸울 것을 지시한다
* 미도리야는 아이자와의 지시를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의 만달레이에게 전달하고, 그녀가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인 텔레파시로 전 학생에게 전파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7회 일치
* [[이이다 텐야]]는 폭력을 써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감시자"로서 동행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한다. [[야오요로즈 모모]]는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교전하지 않고 탈환"한다는건 터무니 없는 임무라고 생각하며 "현장을 체험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고 보고있다.
* 토도로키는 이 작전은 누구의 수긍도 얻지 못한 자신들의 에고라고 못 박는다. 미도리야는 "돌아갈 수는 없다"고 각오를 다진다.
* 카미노구에 도착하자 키리시마는 곧장 적진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야오요로즈는 은밀히 행동해야 한다며 변장을 권한다
* 거리의 대형스크린에서는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 관계자들의 사죄방송이 방영 중이다.
* 현대사회는 목숨을 지키는 것을 돈이나 자기현시욕으로 변환하는 기형적인 것이며 패배자를 격려하긴 커녕 질책하기만 한다며 모순을 꼬집는다. 또 자기들의 싸움은 "질문"이라며 이런 사회가 옳은 것인지 물을 것이며 승리할 거라 단언한다. 시가라키는 "너도 이기는 편이 좋지 않냐"며 바쿠고를 회유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7회 일치
* 바쿠고가 올마이트를 걱정하자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며 다음 작업에 착수한다.
* "당신이 직접 워프 시켜 달라"고 요청하자, 자신은 아직 워프계 능력을 잘 다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 현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건 아주 짧은 거리만 가능하고 자기 곁으로 데려오거나 보내거나 하는 정도의 단순한 것 밖에 안 된다.
*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는 상황을 보고 올마이트가 바쿠고를 구하는 것도, 바쿠고가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도 힘들 거라고 판단한다.
* 개성을 빼앗는다는건 짐작되던 부분이지만, 합성하고 강제로 발동시키는 등, 개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등장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7회 일치
* 한편 이 교도소에는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도 수감되어 있다.
* 하지만 그가 택한 길은 틀렸다. 그는 마지막에 제자에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 올 포 원이 생각하는 스승이란 "제자를 자립시키는 것".
-올마이트. 미도리야를 진정한 원 포 올의 계승자로 지목하며.
-올 포 원. 올마이트에게 패배함을 인정하고 시가라키에게 자신의 의지를 이을 것을 당부하며.
* 단지 아직도 "배신자"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
- 남능미 . . . . 7회 일치
별자리 [[사수자리]]
자녀 슬하 1남 1녀
* 그 여자
* 나비야 청산가자
* [[아내의 자격]]
* [[내가 버린 남자]]
- 노현정 . . . . 7회 일치
| 부모 = [[시노자키 아이]]
| 자매 = [[아이린 (레드벨벳)]] [[손나은]] [[정유미]]
'''노현정'''(盧賢貞,<ref>{{저널 인용 |저자= 李根美|날짜= 2006-02|제목= [화제의 인물] 20, 30代 남성들의 우상 盧賢貞 KBS 아나운서|url=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602100048|저널= 월간조선|출판사= 월간조선사|권= 311|호= |issn= 1228-2197|확인날짜= 2016-02-08}}</ref> [[1979년]] [[1월 14일]] ~ )은 [[KBS]]의 전 아나운서이다.
* [[2005년]] : [[KBS1]] 《[[전국노래자랑]]》 상반기 결선
* [[2003년]] : [[KBS1]] 《[[아침마당]]》 - (박사임 아나운서와 그동기들 출연)출연함. 및 2003 29기 KBS 여자 아나운서 출연
*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TV 진행자상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7회 일치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사안의 실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본래는, 잘못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이 관용구는 [[신약성서]] 『[[사도행전]]』 제9장에서 유래하였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도 바울|사울]]이 어느날 예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사도]] [[아나니야]]가 예수의 지시를 받아 사울을 도우러 찾아간다. 아나니야는 사울을 위해서 기도를 올렸는데, 그러자 사울의 눈이 보이게 되었다. 기적을 겪은 사울은 박해에 앞장섯던 것을 회개하고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가 되어 [[사도 바울]]이 된다.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관용어이다보니, 일본에서 써진 창작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자의 주석이 따로 달려있지 않은 [[라이트 노벨]]이나 설명 자체가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애니메이션]]을 접할 때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는 경우가 많다.
== 참고자료 ==
- 니세코이/221화 . . . . 7회 일치
* 치토게가 이치죠와 결혼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자 마리카가 격하게 반발한다.
* 이유는 머리가 길어서 여자애답다는 것
* 오노데라도 자신도 쭉 이치죠를 좋아했다고 고백하는데, 이치죠는 "그럼 열쇠는 치토게에게 말해서 받아오겠다"--뭐 임마?--고 말해서 오노데라가 "그러면 치토게가 불쌍하다"고 말린다.
* 마리카는 "만약 재회했을 때 오노데라와 결혼한게 아니라면 자신과 결혼하자"고 어거지로 약속하고 유이는 "언젠가 모두 다시 만나 사이좋게 지내자"고 약속한다.
* 생각없이 결혼 약속하는 데다 심지어 거짓말이었다고 뺏어오려고 한다.--이치죠 놈 인성을 꿰뚫어본 현자 클로드--
- 도모세 . . . . 7회 일치
'''도모세'''([[1992년]] [[9월 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다.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B%8F%84%EB%AA%A8%EC%84%B8&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963763 도모세-네이버인물정보]</ref>
* 《내형의 여자친구》 (2018년)
* 《동거 : 친구의 여자친구》 (2017년)
* 《내 여자의 엄마》 (2016년) - 석영오 역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태어남]]
- 돌턴 갱 . . . . 7회 일치
Dalton Gang. [[서부개척시대|미국 서부시대]]에 활동했던 8인조 갱단. 갱단 멤버 중 밥 돌턴(Bob Dalton), 그랫 돌턴(Grat Dalton), 에밋 돌턴(Emmett Dalton) 세명이 형제였기에 돌턴 형제(Dalton Brothers)라고도 불렸다. 이 세명은 연방보안관으로 활동하였으나 1890년경 무법자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돌턴 갱을 이루었고, [[오클라호마]]주와 [[캔자스]]주에서 [[은행강도]]와 [[열차강도]]를 벌였다.
1892년 10월 5일 낮, 돌턴 갱은 캔자스주 커피빌에서 무모한 은행강도를 벌인다. 밥 돌턴과 에밋 돌턴이 퍼스트내셔널은행을 터는 사이에 그랫 돌턴, 딕 브로드웰, 빌 파워 세명이 콘던은행을 턴 것이다. 이들이 은행에서 돈을 쓸어담는 동안 상황을 알아챈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두 은행을 포위했고, 총격전 끝에 돌턴 갱은 제압된다.
이 사건으로 돌턴 갱 네명과 커피빌 주민 네명이 사망하였다. 강도에 참가한 돌턴 갱의 유일한 생존자는 에밋 돌턴으로, 감옥에서 14년간 복역하게 된다. 현재 이 사건은 돌턴갱이 벌인 강도 중 가장 유명한 강도가 되어있다.
* 그래턴 "그랫" 돌턴(Gratton "Grat" Dalton) - 돌턴 가족의 7번째 자식.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로버트 "밥" 돌턴(Robert "Bob" Dalton) - 돌턴 가족의 10번째 자식.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사망.
* 에밋 돌턴(Emmett Dalton) - 돌턴 가족의 11번째 자식. 커피빌 은행강도에서 체포됨. 1937년 사망.
- 동왕부 . . . . 7회 일치
[[서왕모]]와 대응하는 신으로서, 서쪽의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에 대응하여 동쪽의 봉래산에 사는 남신이다. 남자 신선들의 우두머리로서, 서왕모와 부부로 여겨진다. 동방의 수호신이다.
서왕모 자체의 양성구유, 혹은 천상의 천제-지상의 서왕모라는 구도는 한나라 시기에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서왕모가 서쪽을 관장하는 신격이 되면서 동쪽을 관장하는 신격의 필요성이 나타난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로 분리되어 있었던 중국이 하나의 국가([[진제국]], [[한제국]])이 나타나면서 '중앙'(자국)에 대응하는 '사방'(국경,외계)의 개념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왕모와는 달리 동왕부는 독자적으로 숭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왕부를 묘사할 때는 미술 작품(동경, 그림 등) 등에서 서왕모와 나란히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미술적 관점에서 서왕모와 대칭되는 존재로 나타난 것이 동왕부의 시초인 것이다. 동왕부는 서왕모의 부속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디아스포라 . . . . 7회 일치
영어에서 디아스포라는 본래 [[유대인]]과 관련이 밀접하였으며,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가리키는 의미가 강했다. 20세기에는, [[아르메니아인]]이나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나타내는 말로 디아스포라를 인용하면서 디아스포라는 다른 민족에게 대해서도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http://blog.oup.com/2013/06/10-facts-about-diaspora/ 참조]
Diaspora*는 특정한 [[서버]]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에 원한다면 누구나 Diaspora*를 서비스 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자는 Diaspora*의 소스를 서버에 설치하기만 하면 자신의 서버를 가질 수 있다. 이를 Pod라고 부른다.
Diaspora*는 수많은 Pod를 연결하여 Diaspora*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높은 수준의 암호화 기술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Pod의 관리자라도 사용자의 정보를 꺼내기는 어렵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서비스이지만, [[트위터]]에서 퇴출당한 [[이슬람 국가]]가 디아스포라를 조직원에게 지령을 전달하는 정보 소통 통로로 악용하고 있는 문제가 생겨났다. 디아스포라는 보안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룹에 참여한 사람들 끼리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네트워크 관리자도 이에 접근하는 것에 쉽지 않아 테러 단체가 악용하여도 추적이 어렵다고 한다. 디아스포라 개발자들은 이에 우려하고 있으나 통제가 어렵다.[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H11&newsid=01161126606190272&DCD=A00801&OutLnkChk=Y 참조기사] 뭐든지 좋은 뜻으로 만들면 나쁘게 써먹는 놈들이 있는 것 같다.
- 마기/310화 . . . . 7회 일치
* 유난은 그런것 보다 아르바가 "솔로몬의 지혜"를 빼앗아 독자적인 음모를 꾸미려 한다고 경고한다.
* 알라딘은 자신이 유난을 치료하는 동안 모르지아나와 연백룡에게 아르바를 상대해달라고 한다.
* 유난은 아무리 둘이 공격해도 죽지 않는 몸에 무적의 검술까지 겸한 아르바를 이길 순 없다고 하고, 아르바 또한 "알마트란 최강의 검사"는 자신이었다며 둘을 수세로 몰아넣는다.
* 그런데 결정타를 가하려던 그녀의 팔이 과자처럼 부서져 내린다.
* 연백룡의 마법 "자우라 아르아즈라"
* 백룡은 이곳이 암흑대륙이기 때문이며 이곳은 "붉은 사자"(파나리스)보다 빠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 모르지아나는 "당신이 알마트란 최강이었던건 파나리스와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 마기/314화 . . . . 7회 일치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리바바가 갑자기 폭탄 발언을 하는데.
* 그녀와 함께라면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변치 않고 옆에 있을 거 같다고 한다.
* 파나리스 여자는 자신에게 두 번, 죽는 거보다 슬픈 경험을 시킨 남자를 용서하지 않을 거 같다고 하는데.
* 하지만 백룡은 황제국에 가서 그들의 귀환을 보고해달라고 부탁한다. 나중엔 자신도 찾아갈 거라고 하는데.
* 마침내 성사된 알리모르 커플링. 백룡모르 지지자들이 피눈물 쏟는 소리가 들린다.
- 마기/322화 . . . . 7회 일치
* 신드바드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동료나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왔다고 믿었지만 그건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었다.
* 오로지 자기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길 원했고 지금도 단지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다짐한다.
* 자신의 마법을 반사 당해 타격을 입는 신드바드.
*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가 되서 나서야 진정으로 무언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는 혼자인 자신이라도 "저 고지까지" 갈 수 있다며 손을 뻗는다.
- 마누엘 고도이 . . . . 7회 일치
1767년,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평범한 하급 귀족이었으나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마누엘 고도이는 하급 귀족으로스는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의 청년이 스페인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1807년에 고도이는 [[포르투갈]] 정복을 노리는 나폴레옹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점령한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의 영유를 인정받았는데, 고도이는 황태자 페르난도(후의 [[페르난도 7세]])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황태자가 즉위하면 파면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파면 이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알가르브를 영유하는 대신 스페인에 프랑스 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태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상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영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 당시 기준에서 상당히 호색한이었던 모양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작 [[나체의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를 주문제작했던 본래 소유주였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역시 고도이가 주문제작한 작품이다. 본래 종교적으로 엄격했던 스페인에서 나체의 마하 같은 작품은 너무나 선정적이라서 제작되기 어려웠는데, 권력자인 고도이였기 때문에 그 같은 작품을 주문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마치킨 . . . . 7회 일치
[[일본]]의 금융업자.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사채라고 보면 된다.
특정한 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사무소를 개설하고 돈을 빌려주는 소규모 대출업자를 뜻한다.
대출업자의 사무소가 시가지(街 마치)에 있는 일이 많아서, 마치킨(街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샐러리맨을 대상으로 하는 사라킨(サラ金,샐러리맨 금융의 약자)보다 약간 금리가 높다.
2007년 대금업법이 개정되면서, 이자 제한법의 상한 금리 이하로만 대출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많은 업체가 경영난에 빠지거나 폐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합법적인 업체에 국한되었으며 불법적으로 과도한 이자를 물리던 업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불법사채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마치킨은 일단 사업승인허가는 받고 있으나, 이조차도 받지 않은 회사는 야미킨(闇金)이라고 불린다. 마치킨 역시 이자율이 위험하거나 위험한 업체가 섞여 있기도 하지만, 야미킨은 완전히 법의 규제를 벗어나 있어 완벽한 불법사채이다.
- 메탈멘 . . . . 7회 일치
윌리엄 맥스웰 '윌' 매그너스 박사가 창조한 인간 수준의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들로 구성된 팀이라는 설정으로, 이 로봇들은 각자 철이나 구리 등의 금속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쓴다. 이 캐릭터들이 평소 하는 짓을 보면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진짜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좋을 수준.
젊은 천재 박사 '윌 매그너스'는 인간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의 구조 임무를 위한 로봇을 말들어달라는 미 국방부에 명령에 따라 '리스폰스미터'라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 그 인공지능을 각자 다른 액화된 금속 안에 담가 창조해낸 것이 바로 '메탈멘'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그런 로봇을 만드려는 목적은 구조 임무 뿐 아니라 적이 되는 대상을 암살하기 위해서였고, 그 사실을 안 메탈멘은 살인을 거부하며 도망간다.
매그너스 박사는 아파트로 돌아가나, 메탈멘은 사실 갈 곳이 없어 그 곳에 숨어있었다. 그 순간 케모가 매그너스의 집에 들이 닥치지만, 메탈멘이 자신들의 육체를 희생해 케모를 박살낸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인 리스폰스미터는 무사한 상태.
이후 [[포에버 이블]]이 일어나자, [[크라임 신디케이트]]를 막으려는 [[사이보그]]는 플래티넘이 그리드와 연결되지 않은 로봇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매그너스 박사를 찾아가나 매그너스 박사는 메탈멘은 실패작이고 자신은 사이보그를 도울 수 없다고 한다.[* 사실 매그너스 박사는 자기가 봤던 감정을 지닌 존재들 중 메탈멘이 가장 착한 존재들이였기에 또 위험하게 만들기 싫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설득 끝에 매그너스 박사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메탈멘을 다시 가동시킨다.
- 문숙(배우)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2010년대에는 자연치유사로도 활동 중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시험에 교복 차림으로 참가하여 최종 선발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은 너무 어려서 특채라면 몰라도 공채는 뽑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곧바로 엑스트라부터 시작하여 1년 뒤 영화 '태양 닮은 소녀'로 정식 데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외모로 각종 방송과 CF를 섭렵하며 충무로의 샛별이 되었다. 그리고 태양 닮은 소녀의 캐스팅 자리에서 만난 故 [[이만희(영화 감독)|이만희]]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시작하게 된다.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 여배우가 23살 연상의 애딸린 이혼남과 연애한다는 사실은 당시 매우 화제가 되었다. 이만희의 딸인 [[이혜영(1962)|이혜영]]과도 당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이후로 한동안 ~~이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7번 바뀌고 다음 세기가 될 때까지~~ 감감무소식이다가 2007년에 이만희 감독과의 사랑을 담은 회고록인 '마지막 한 해'를 출간했고, 2010년엔 [[하와이]]의 마우이 섬에서 자연치유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웰빙]] 열풍에 발간한 두권의 라이프스타일 책('문숙의 자연치유', '문숙의 자연식')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책에 나온 요리법을 보면 스타푸르츠, 기(Ghee), 심황, 오크라, 병아리콩, 염소치즈 등 우리나라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재료로 하고있어 따라 만들어 보기가 어렵다.
2014년 8월 4일엔 MBN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에 출연하여 미국에 정착하자마자 외국인과 결혼했었음을[* 현재는 이혼함], 이만희 감독을 잃은 슬픔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치유했음을 밝혔다. 2014년에 하와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미스터 하이드 . . . . 7회 일치
본명 칼빈 자보(Calvin Zabo).
원래 뛰어난 의학자였으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실제 이야기라 믿으면서 일이 꼬였다. 재보는 [[인간]] 본성의 짐승 같은 면을 해방시키는 화학 공식을 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고용주들에게서 갈취했고, 이걸 안 도널드 블레이크는 그의 고용을 거절했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도널드 블레이크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연구에 몰두해 몇 달 뒤, 연구에 성공했다. 특수약품을 만든 재보는 이 약품을 써서 사악함과 괴력을 지닌 미스터 하이드가 되었고 자신을 진정한 악의 의인화라 믿으며 도널드 블레이크를 자신의 첫 번재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도널드 블레이크는 [[토르]]의 인간 모습.(...)
능력은 선술했듯이 괴력의 소유자인 미스터 하이드로 변신하는 것이며 약점은 특수용액을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는 것. 또 정신피로나 상해가 변신능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데어데블]]과도 자주 싸웠으며 [[어벤저스]]의 적대 팀인 [[마스터즈 오브 이블]]에 가입하기도 했다.
- 바캇타 . . . . 7회 일치
[[바보]]([[바카|バカ]])+[[트위터]](Twitter). 트위터 자체 혹은 트위터의 이용자를 조롱하는 표현. 비슷한 말로 「바보발견기(馬鹿発見器)」가 있다.
트위터는 쓰는게 쉽고, 동료들 가운데서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느끼는 사용자가 많아, 트윗이 전 세계로 발신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내용이나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문제성이 있는 트윗을 날리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위법 행위에 해당하는 미성년자음주나 무면허운전을 발언하거나, 범죄가 되는 절도나 도촬 행위를 하거나,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고, 이를 자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을 다른 사이트에서 트위터 이용자를 조롱하기 위하여 "또 바캇타냐?"라고 쓴다.
== 참고자료 ==
- 바키도/130화 . . . . 7회 일치
* 모토베는 쇄자갑으로 그대로 두동강 나는건 면했지만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다.
* 무사시는 그가 쇄자갑 말고도 방어구를 철저히 둘렀음을 짐작하는게 그걸 부끄러워하진 말라고 한다.
* 그는 모토베에게 "쇄자갑인가"라고 묻는다.
* 쇄자갑이란 중세 일본에서 사용한 방검복의 일종으로 쇠사슬로 만든 내의다.
* 일본의 시대극 "추신구라"에서 다룬 "아코 낭사 습격사건"에선 낭사들이 이 쇄자갑으로 무장했다.
* 모토베도 그 쇄자갑을 입고 있었던 것.
* 관객석의 잭 해머는 공원에서 특수섬유 옷으로 자신의 "물기"를 방어하고 이까지 뽑아낸 것을 떠올린다.
- 박남현 . . . . 7회 일치
* 《[[슈퍼 홍길동]]》 (1988년) - 쌍절곤 돌리는 중국 닌자 역
* 《여자가 타락하는 이유》 (1996년)
* 《[[싱싱 손자병법]]》 (1998년, KBS2)
* 《[[소풍가는 여자]]》 (2004년, SBS) - 나이트 실장 역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포항시 출신]]
- 박순석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성직자, [[정치인]]이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전시원호대책중앙위원회에서 피난민 구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원내부총무, 경상북도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참의원]] 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61년 [[3.15 부정선거]] 연루를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 박은수 (1956년) . . . . 7회 일치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법관 임용 심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하자, 사법부의 부당한 처사를 언론에 호소했고 마침내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들끓는 여론에 힘입어 1983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서 법조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대구와 마산지방법원에서의 판사생활을 거쳐 1988년 대구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판사 시절, 그가 하는 재판마다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경찰관이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는데, 경찰관 아버지는 재판관 자리에 앉은 박은수 판사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법조계는 물론 롤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1991년 대구 볼런티어센터 소장으로 취임<ref>[http://www.dgvolter.org/ 대구볼런티어넷 센터 소개]</ref> 하면서 장애인 전용버스 운행, 장애인 카풀 운동을 펼치는 등 장애인을 위한 본격적인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노인도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들자는 대구시민단체협의회(노장지협) 사무총장이 되었다. 대구 종합자원봉사센터 소장, 달구벌종합스포츠센터 관장, 대구시 휠체어농구단 단장등을 역임하였다. {{출처|날짜=2010-4-15|2004년 한국장애인고용촉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장애인들에게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박현정 (배우) . . . . 7회 일치
|자녀 = 2녀
* 《[[KBS 드라마 스페셜]] - 드라마 스페셜 - 모퉁이》 (KBS2, 2012년) - 유자영 역
* 《[[그 여자가 무서워]]》 (SBS, 2007년) - 양 회장 아내 역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백이소 . . . . 7회 일치
'''백이소'''(白以昭, [[1557년]] [[경상북도]] [[경주시]]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융원(隆遠), 호는 부암(傅巖)이다. 본관은 [[청도 백씨|청도]](淸道)이나 옛 지명인 오산(鰲山)으로 쓰기도 한다.
고려 때 [[박경순]](朴慶純) 일당의 난을 진압한 [[청도]] 호장 [[백계영]](白桂英)의 후손인 선략장군(宣略將軍) [[백희]](白熹)의 둘째 아들로 [[경주부]] 서면 부산촌(富山村) 출신이다. 풍채가 크고 힘이 출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선조25) 6월 [[경주]]지역 의병장으로 경주부윤 [[윤인함]], 판관 [[박의장]]과 함께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다. 노모와 아내를 산 속에 피신시킨 후 산에서 내려와 가복들을 이끌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무찔렀다. [[1594년]]([[선조]] 27)에는 갑오별시 병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봉사에 특제되었다.<ref>《[[부암실기]]》</ref>
[[1597년]](선조 30)에 왜적이 재차 침입해오자 적을 공격하던 중 탄환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당한 몸으로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출전하자 경주 판관이 만류했으나 '신하된 도리로 죽을 뿐'이라 말하며 [[영천]] [[창암]]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장 [[최봉천]](崔奉天)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ref name="dg">《[[동경잡기]]》</ref>
[[분류:1557년 태어남]][[분류:1597년 죽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의병]][[분류:의병장]][[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 의병장]][[분류:정유재란 참전 중 사망자]][[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정유재란 관련자]][[분류:16세기 한국 사람]].[[분류:백씨]][[분류:청도 백씨]][[분류:문천회맹]][[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 병 속의 악마 . . . . 7회 일치
안에 악마가 들어 있는 마법의 병은 뭐든지 소유자의 소원을 들어주지만, 죽을 때까지 이 병을 소유하고 있으면 소유자는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불타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병을 팔아야 하는데, 소유자가 주고 산 값보다 싼 값에 병을 팔지 않으면 안된다.
하와이의 선언 케아위(Keawe)가 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부유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왠지 슬퍼보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의 모든 재산은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Imp)가 들어있는 마법의 병(magic bottle)으로 얻은 것인데, 이 병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만 죽기 전에 이 병을 팔아버리지 않으면 소유자는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병은 반드시 자신이 삿던 것 보다 싼 값으로 팔아야 한다. 케아위는 50달러를 주고, 노인에게 이 병을 사게 되며….
- 블랙 클로버/132화 . . . . 7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132. '''승자'''
* I팀과 P팀의 사실상 결승전. [[노엘 실버]]와 [[엔 링가드]]는 I팀의 두 명이 공격해 오자 자군의 크리스탈을 수비한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공격을 맡아 돌격. I팀은 [[릴 부아모르티에]]가 크리스탈을 수비하자 유노와 격돌한다.
* 유노는 신입 1위에 걸맞는 공격력으로 몰아붙이나 릴은 그런 공격 조차 재미있어 하며 여유롭게 방어한다. 공격이 릴의 그림으로 번번히 봉인되고 바람의 정령 벨이 짜증을 부리는데, 유노는 공세를 멈추고 "그걸"하자고 제안한다.
* 유노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함께 했던 마나스킨 특훈으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했다. 정령마법의 막대한 마력을 자신의 몸 안에 가두는 일종의 변신. 아스타의 블랙 모드와 비슷한 성질이다. 유노는 본래 아스타와 결승에서 만났을 때 쓰고 싶었지만 기사단 단장을 상대라면 부족함이 없는 상대라며 이 상태를 해방한다. 마치 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유노.
* "스피릿 다이브"라 이름 붙인 이 상태는 좌중을 압도한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자가 이끌어낸 힘이라며 격찬한다. 그러나 가장 놀랍고 기뻐하는 것은 적인 릴. 감탄을 연발하며 "지금이라면 뭐든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최고의 그림을 그려낸다. 유노의 정령마법 "스피릿스톰"과 릴의 그림마법 "환룡 비브르의 외침"이 격돌. 완전한 호각세를 이룬다. 둘은 이토록 전력을 끌어낼 상대가 존재한다는데 기뻐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유노와 겨루고 싶었던 아스타는 부상으로 누워있는 상태. 둘의 싸움을 바라보며 "왜 유노의 상대가 내가 아닌 거냐"며 비통해한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7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52. '''마력이 없는 자'''
* 은익의 참수리의 단장, "노젤 실버". 야미가 머리 모양을 가지고 디스하자 폭발한다
* 마나에게 사랑 받는 자신들이 질리는 없으나 어째서 아스타처럼 마나도 없는 자가 "블랙 클로버의 마도서"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러워하며 회수하겠다고 한다
* 전투의 연기가 자욱한 틈을 타서 측면에서 접근, 마력이 없기 때문에 리히트도 감지할 수가 없었다
* 아스타는 포기하지 않는 거야 말로 자신의 마법이라며 리히트를 쳐날린다
- 야미 스케히로. 자신의 기습을 예측한 리히트에게.
- 블랙 클로버/55화 . . . . 7회 일치
포로에게 배신자의 정체를 추궁하는 마법제.
* 포로가 실토한 배신자의 정체는 자줏빛 범고래의 "겔도르 포이조트"
* 마르크스는 자신의 기억마법이 틀렸을 리가 없다고 단언하는데, 야미 스케히로는 "네가 결백하다면 너도 기억을 공개해라"고 말한다.
* 그의 마법은 "투과마법".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모든 마법을 투과시킨다. 이때는 마력도 지우므로 보통 마법사는 그를 감지할 수가 없다.
* 다른 단장들은 "쓸데없이 손을 댔다"며 자기들이 나설 차례가 사라져 아쉬워하는데, 릴은 "그대로 두면 이 건물이 날아갈 것 아니냐"고 대꾸한다.
* 릴은 아스타가 마음에 들었는지 친구가 되자고 한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7회 일치
* 베토는 자기 흉내를 내는 거냐면서 흥쾌히 공격을 가하는데, 락은 놀라운 센스로 피하고 반격한다.
* 베토는 그 자질을 칭찬하며 놀아주겠다며 둘이 싸운다.
* 락의 선전에 자극을 받고 매그너도 화염 창성마법 "그랜드 슬램"으로 가세한다.
* 예상대로 매그너는 언제나 전력으로 되갚아주러 왔는데 그러는 사이에 최근에 와서야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 베토는 약자는 먹히고 그저 절망할 뿐이라고 도발하는데, 절망하면 "그 자식(아스타) 보기 쪽팔려서 선배로서 들 낯이 없다."며 다시 일어선다.
* 마법으로 신체강화를 하는 베토와 신체 자체가 강화마법이 걸린 수준인 아스타의 대결
- 블랙 클로버/65화 . . . . 7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65. '''포기할 줄 모르는 남자'''
* 키아토는 자신의 아버지까지 당한걸 알게 된다.
* 베토는 해저신전에 있는 자들을 몰살시킨 다음엔 마석을 찾으면서 일반 주민들까지 학살하겠다고 예고한다.
* 아스타는 베토도 기를 읽을 수 있는데 자신은 그의 기를 읽어도 너무 빨라 소용이 없다고 본다.
* 강화마법을 써서 자신보다 높은 신체능력을 가진 상대에게 약하다.
* 마지막으로 "포기할 줄 모른다"는 거 자체가 약점.
* 아스타의 두자루의 검에 대해 알고있는 듯한 베토의 태도로 미루어볼때, 아스타의 힘이 역시 보통의 마력이나 마법과는 다른 힘인듯 보인다.
- 블루 마블 . . . . 7회 일치
한국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해병 출신에 뛰어난 과학자다. 연구하다가 실수로 반물질을 만들어서 네거티브 존에 빠지게 되었고, 그 안의 네거티브 존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슈퍼맨]]과 비슷한 능력에 [[반물질|반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조작할 수 있고, 일반적인 상태의 센트리에게 어느정도 대항하는 초음속의 스피드와 93,000톤 가량의 물체를 감당해내는 힘, [[센트리]]를 지구 밖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초인. 같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하이페리온(마블 코믹스)|히페리온]], 센트리처럼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반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반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상태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위에서도 조금은 언급했지만, 이런 초능력들을 제외하더라도 그 자존심 강하고, 누군가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닥터 옥토퍼스|우월한 스파이더맨]]조차 물리학계의 권위자로서 존중해줄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다.
- 블리치/697화 . . . . 7회 일치
* 켄파치는 야치루가 사라지고 혼자 다닌다. 잇카쿠는 부대장으로 승진. 유미치카도 3석으로 올라갔다.
* 테츠자에몽은 7번대 대장으로 취임. 켄세이, 로쥬로는 의외로 부활. 히사기는 만해를 익혔지만 쓸 겨를이 없었던게 밝혀진다.
* 갑자기 유하바하의 영압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 이바 테츠자에몽은 7번대 대장으로 취임. 코마무라 사진은 결국 죽은 듯하다.
* 비록 대장 지위에 올랐지만 아직 실감이 안 나는지, 매일매일 단련하지 않으면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테츠자에몽.
* 슈헤이는 자신도 만해를 습득했다며 괜한 갈굼이라고 주장하는데, 켄세이를 포함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서 사기치는거 아니냐고 놀림 당한다.
- 비지란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Illegals - . . . . 7회 일치
히어로가 직업이 된 세상에서 면허가 없으면서 자경단원 활동을 하는 넉클 더스터와 그를 따르는 하이마와리 코우이치, 프리 아이돌 팝 스텝이 주역이다. 넉클 더스터가 [[올마이트]], 하이마와리가 [[미도리야 이즈쿠]]의 포지션을 떠올리게 하는데 둘의 관계는 본편쪽 인물들이 스승과 제자인 것과 달리 히어로와 사이드킥 느낌이다.
거구의 남성. 이름에 어울리게 두 손에 넉클을 끼고 있다. 통상적인 히어로와 달리 면허 없이 활동하는 무면허 히어로이나 실력은 확실해서 [[아이자와 쇼타]]와 싸울 정도다. 한편 아이자와와 싸우면서 '''무개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개성을 폭주시키는 약물을 쫓고 있다.
심약하나 타인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 나이는 19세. 본편의 주역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달리 개성 보유자다. 개성인 활주(滑走)는 손발을 땅에 붙이고 슬라이드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며 자전거보다 빠른 속도라고 한다.
프리 아이돌. 다만 자칭이다. 히어로 활동은 안하는 듯 하나 공공 장소에서 개성을 사용해 공연을 한다. 개성은 도약하는 능력인 듯.
- 빈스 맥마흔 . . . . 7회 일치
사실 그는 [[게이]]였다. 특히 덩치크고 근육이 많은 근육맨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게이로서, 이것이 그가 레슬링 산업에 빠진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었는데 이는 그가 보수적인 [[공화당]]의 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빈스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진실이다.
그의 게이 성향은 WWE가 WCW에 밀려서 망할 지경이 되자 본격적으로 드러났는데, 궁지에 몰린 빈스는 자기 스스로 링에 올라가 레슬러들에게 "내 엉덩이에 키스를 해라!"고 소리치는 광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게 됐다. 이는 평소 빈스가 가지고 있었던 게이로서의 성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가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 이런 퍼포먼스가 생각날 리가 없다. 아마도 망하게 생기게 되자 리미터가 풀리면서, 될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숨겨진 욕망을 뿜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광적인 퍼포먼스에 일반 팬들은 그냥 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설마 공개적으로 방송되는 WWE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미친 놈이 있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던 숨은 게이들은 이에 열광하였고, WWE의 매상은 급상승, WCW를 물리치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 사람을 죽여 보고 싶었다 . . . . 7회 일치
* 홋카이도 오토후케정 미용사 살인사건 : 2015년 8월 3일, 홋카이도 오토후케정(北海道音更町)의 아파트에서 회사원 소년(19세)이 피해자 콘노 에리카(金野恵里香, 미용사 31세)를 살해한 사건. 범인은 피해자의 아파트 윗층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피해자와 특별히 교우관계는 없었다. 3일 아침 열쇠가 걸려 있지 않았던 아파트 1층에 있는 피해자의 자택에 침입하여 날붙이로 목과 가슴을 찔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체포된 뒤에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았다."고 진술했다.
== 참고자료 ==
- 사혈 . . . . 7회 일치
대한민국에서는 [[부항]], 사혈침과 함께 21세기에도 [[대체의학]]의 일종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11년에 '심천사혈요법'의 창시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7883 참조]
* 19세기 프랑스의 의학자 브루세(François-Joseph-Victor Broussais, 1772~1838)가 사혈을 위하여 [[거머리]]를 이용하면서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중세를 다룬 매체에도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법이 나오는데[* 심즈 미디벌 등] 사실 상당히 최근에 나타난 것.
* 의사들이 파를 너무 많이 빼다가 혈액이 부족해서 환자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사혈요법을 맹신하던 의사들은 이를 ‘치료과정에서 생긴 불행한 [[의료사고]]’ 혹은 ‘사혈을 과감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판단했다. 사혈 도중에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 당시 사혈 기록을 보면 정말 사람 잡을 정도로 피를 뽑고, 죽으면 사혈이 부족했다고 애도하는 무섭달지 황당하달지, 싶은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 사혈요법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말 그대로 '''잡았으며''', 그냥 내버려둬도 자연치유될 사람이 과도하게 사혈하는 바람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유명인들 가운데도 사혈 때문에 죽은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사실 사망 직전 기록에 나타나는 미친 사혈질(…)을 보면 병이나 부상보다도 오히려 사혈 때문에 죽은 걸로 보이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 당시 비위생적인 의료 환경에서는 사혈질 하다가 세균감염될 수도 있지만, 뭐 사실 애초에 환경 자체가 무척 비위생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큰 문제는 아니다.(…) 의사들이 손 씻게 된게 얼마 안 된다.
- 서도영 . . . . 7회 일치
|형제자매 =
|배우자 =
|자녀 =
'''서도영'''은 [[대한민국]]의 [[모델 (직업)|모델]]이자 [[배우]]이다.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서든어택 2/무기 . . . . 7회 일치
||1962년에 처음 등장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돌격소총이다.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컨셉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돌격소총이었으며, 베트남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후 높은 성과를 올려 이후 서방 세계 돌격소총의 기본 컨셉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자동소총들에 비해 반자동 및 점사 반동 제어가 쉬운 편이지만, 연발에서의 제어는 어렵다.||
||돌격소총으로, 지금까지 2억 정 이상이 생산,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개량형이 등장했음에도 아직 생산이 유지되고 있을 만큼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총이자 서방의 M16과 영원한 라이벌에 속한다. 한발 한발의 위력은 대구경인 만큼 M16에 비해 크게 우세하지만, 그만큼 반동 역시 심하다는 결점이 있다.
하지만 반동이 크다 해도 기관총과 별 차이가 없는 과거의 자동소총에 비해서는 다루기 쉬운 편이었으며, 2~3발씩 끊어 쏠 때만큼은 라이벌이 M16 못잖은 높은 명중률을 보인다.||
||M4A1 소총은 베트남전 때부터 제기된 M16의 카빈(단축형 소총) 소요를 맞추기 위해 등장한 M4 소총의 개량형으로, 총열을 굵게 만들어 연사 능력을 높힌 총이다. 1997년에 제식 채용되어 장갑차량 승무원과 기계화보병, 특수부대 중심으로 보급이 시작되었으며, 2001년 대테러 전쟁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전군에 지급하기 시작, 이제는 미군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릴 정도로 모든 병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착검 기능 등을 부여한 군용 버전을 구입해 사용해 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모듈화 개량이 가해진 개량형을 계속 구입, 사용하고 있다. 강력하고 우수한 반자동 산탄총이 다수 등장한 지금도 여전히 미군이 가장 애용하는 산탄총 중 하나이다,
산탄총답게 근접전에서는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 서현진 (방송인) . . . . 7회 일치
|배우자 =
'''서현진'''([[1980년]] [[12월 13일]] ~ )은 [[2001년 미스코리아]] 선(善) 출신 [[대한민국]] 前 [[아나운서]]이자 방송인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한 그녀는 [[부산광역시|부산]]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무용 학사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미스 월드 참가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손철주 (1954년) . . . . 7회 일치
'''손철주'''(孫哲柱<ref name="김달진">{{웹 인용|제목=인명사전 - 손철주|url=http://www.daljin.com/author/4783|웹사이트=김달진 미술연구소|확인날짜=2017-12-15}}</ref>, 1954년<ref name="다음">[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YZR&t__nil_searchbox=btn&sug=&sugo=&q=%EC%86%90%EC%B2%A0%EC%A3%BC 다음 인물백과-손철주]</ref>~ )는 [[대한민국]]의 미술평론가이다.<ref name="네이버">{{네이버 인물|248289|손철주}}</ref><ref name="중부뉴스">{{뉴스 인용|저자=김석희|제목=‘옛 그림에 나타난 사람의 속마음’ 손철주 평론가를 만나다|url=http://www.jungb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271|날짜=2017-11-07|확인날짜=2017-12-15|뉴스=중부뉴스통신}}</ref> 대구 출신이며,<ref name="김달진"/> 2017년 현재 출판사 학고재의 주간이다.<ref name="네이버"/><ref name="중부뉴스"/>
[[국민일보]] 기자 출신이며,<ref name="다음"/>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국내외 미술 현장을 취재했다.<ref name="중부뉴스"/> 국민일보 문화부 부장과 동아닷컴 인터넷취재본부 본부장으로 일했다.<ref name="네이버"/><ref name="다음"/>
1997년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세상에 내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ref name="다음"/> 이 책은 미술교양서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평가받는다.<ref name="중부뉴스"/><ref>{{뉴스 인용|저자=정은선|제목=손철주 평론가 조선시대 미술 특강|url=http://www.leisur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9|날짜=2017-05-17|확인날짜=2017-12-15|뉴스=제주레저신문}}</ref> 유려한 문체로 전통미술 이해를 돕는다.<ref>{{웹 인용|저자=김유리|제목=미술평론가 손철주 “누구나 취향은 태생의 문화적 DNA로 기운다”|url=http://ch.yes24.com/Article/View/23662|웹사이트=채널예스|출판사=예스이십사(주)|확인날짜=2017-12-15}}</ref>
*《사람 보는 눈》(현암사, 2013) : [[조선일보]]에 2012년 3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연재한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ref>{{뉴스 인용|성1=유석재|제목=옛그림 읽는 남자, 주인공의 마음까지 '스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2/2013112204401.html|날짜=2013-11-23|확인날짜=2017-12-15|뉴스=조선일보}}</ref>
[[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출판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남헌 . . . . 7회 일치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의 패망”을 알리는 [[단파방송 밀청 사건|경성방송국 라디오 단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이후 [[한민당]]에 참여하였으나 [[1946년]] 이후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고 [[김규식]]의 비서가 되었다. 이후 [[좌우합작위원회]]활동과 민족자주연맹 각주인 [[김규식]] 박사의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민중동맹]]의 창당과 [[1946년]] [[12월]] [[민족자주연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1948년]] [[김구]],[[김규식]]등의 발의로 [[남북협상]]이 시작되자 [[김규식]]을 수행하여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참가하고 돌아왔다.
* <송남헌 회고록: 김규식과 함께 한 길,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90800329219001&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9-08&officeId=00032&pageNo=19&printNo=13833&publishType=00020 1990년 9월 8일자 경향신문]
[[분류:1914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슈퍼맨 . . . . 7회 일치
지구인으로 활동할 때는 "클라크 켄트"라는 [[기자]]로 활동한다. 이때 직장 동료로 로이스 레인이 있다.
다양한 능력자들이 판을 치는 현대 배틀물에서도 슈퍼맨은 수위권을 다투는 강자다.[* 이는 단순히 빠심 등 문제있는 편파적 시선이 아니라 중립적 시선에 근거하고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약점 등을 쓰지 않고도 슈퍼맨과 싸움이 되거나, 최소한 유효타를 내는 캐릭터는 그만큼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슈퍼맨 하면 떠오르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힘이다. 그 엄청난 [[괴력]]은 히어로, 빌런을 가리지 않고 최상위급의 파워를 자랑한다.
슈퍼맨과 관련된 스토리 가운데 가장 흔한 패턴. 슈퍼맨이나 그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각종 다양한 이유로 악(惡)의 길에 빠지는 것으로, 대개 자신의 슈퍼파워로 인류를 제멋대로 지배하는 [[독재자]]가 되서 인류의 위협이 된다. 슈퍼맨 관련작 가운데서는 비교적 흔한 패턴(…)이다. 너무 많이 써먹어서 질리는 감도 있다. 뭐 좀 해본다고 하면 악당 슈퍼맨 아니면 독재자 슈퍼맨이니 원.
- 시노자키 아이 . . . . 7회 일치
## 자매이름으로본격적으로활동할예정이다
* [[시노자키 아이]] [[아이린(레드벨벳)]]
*아버지: [[시노자키 아이]]
*장녀:[[아이린(레드벨벳)|시노자키 아이린]]
*차녀:[[고아성|시노자키 고아성]]
*막내:[[고아라|시노자키 고아라]]
*둘째:[[노현정|시노자키 노현정]]
- 식극의 소마/238화 . . . . 7회 일치
* 모모의 과자가 완성. 그 모습은 장미꽃이 가득 잠긴 꽃바구니. 바구니에 담긴 장미꽃들이 그녀가 만든 과자다. 자세히 보면 장미꽃은 타르타 반죽으로 만든 꽃받침 위에 사과로 세공한 장미가 올라가 있다. 즉 이것은 장미꽃 모양으로 만든 사과타르트.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 매료되는 환상적인 과자다.
모모는 우아하고 느긋하게 목욕을 해야 장미의 여왕다운 것이라며 과자의 이름도 "여왕의 사과타르타"라 명명한다. 참고로 바구니 부분도 빵. 먹을 수 있는 바구니라 매우 귀엽다고 한다.
* 이스트와르는 모모가 쉽게 말했지만 이정도로 퓨어한 장미시럽을 만드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한다. 그리고 그걸 소재에 베이게 만드는건 더욱 어려운데, 그것을 해내면서 사과의 풍미도 떨어지지 않게 했다. 장미의 향도 사과 본연의 맛과 풍미가 베이스로 받쳐줬기 때문에 빛을 봤던 것. 그렇게 공들인 과자를 빵으로 만든 바구니에 담는 플레이팅 센스도 좋다. 이런 그녀는 먹는 사람을 동화속 공주님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사 같다고 총평한다.
* 모모의 타르트가 압도적이지만 소마는 그녀를 상대하는 [[타도코로 메구미]]를 걱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것들,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배운걸 전부 쏟아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데. 메구미는 이미 그런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시노미야의 코치를 받은 그녀는 마치 투사와 같은 자세.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되뇌이고 있다.
- 신고은(가수) . . . . 7회 일치
[[2013년]]부터는 특유의 유쾌함과 입담으로 방송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문화방송]]에서 방영한 IT 정보 프로그램 '내일on'에 출연하여 진행자로서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고, 이듬해 ETN 연예채널에서 방영한 뮤직 토크쇼 'MU TALK'의 단독 진행자로 발탁되어 그녀의 음악적 소양과 감각적인 방송 능력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2014년 말부터는 [[섹션TV 연예통신]]의 리포터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발랄하고 유쾌한 모습에 약간은 허당기의 진행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2016년]]까지 리포터로 활동했다.
현재는 [[더퀴즈라이브]]의 진행자, [[국민은행|KB]]차차차 모델을 하고 있다.
[[2014년]] [[7월 19일]]자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뮤지컬 배우 지망생으로 나왔다. 패널들은 아름다운 미모와 가창력을 칭찬했으며, 닮은꼴로 [[한선화]]와 [[고아라]]를 언급했다.
이에 본인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많은 전문가들과 대중 앞에서 한 번 더 인정받는 계기가 된 무대로 자신감을 갖고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는 팬들의 요청이 많다. 이후로도 복면가왕에 계속 연예인 판정단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연예인들을 취재해본 리포터로서의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추리하는 편. 그 뒤 2016년 초중반에 복면가왕 패널로서 종종 참여했다.
[[분류:한국 가수]][[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986년 출생]][[분류:2011년 데뷔]][[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신수항 (배우) . . . . 7회 일치
* [[한양대학교]] 섬유디자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신웅 . . . . 7회 일치
| 배우자 = 한성자
| 형제자매 =
한편, 아들 신유의 노래 중 하나인 "잠자는 공주"는 원래 본인(신웅)이 부를 예정이었으나<ref>{{뉴스 인용
| 저자 = 이춘호
}}</ref>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불발되자 아들(신유)이 부르게 됐다.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칠곡군 출신]][[분류:1985년 데뷔]]
- 신쥬 . . . . 7회 일치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행위로, 남녀가 동반자살하는 것을 이른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는 뜻으로 함께 죽는다는 것인데, 개념을 잘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불륜이라던가 근친상간, 신분차(가난한 무사와 기녀라던가...) 등으로 인한 자살이 많았고, 개중엔 짝사랑하던 상대를 죽인 다음 자기도 죽는 식의 막장스런 행패도 종종 일어났다.
막부에서는 이를 엄금하여, 신쥬를 하여 죽은 이는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였고, 자살 미수자는 처형하거나 또는 천민으로 격하시키고 사적인 제재를 묵인하는 등의 방식으로 처벌하였다.
일가가 동반으로 자살하는 것을 일가심중(一家心中)이라고 한다.
- 십자군 전쟁 . . . . 7회 일치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상황에서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상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는 당시 교황령은 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신성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고,[* 대표적으로 [[카노사의 굴욕]]과 프랑스 왕 [[필리프 1세]]의 파문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십자군을 선포함으로써 세속군주와의 대립으로 위협받고 있던 교황의 권위와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에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도와 성지를 탈환하자고 선포했고, 이에 십자군이 시작하게 된다.
[[군중십자군]]
[[1차 십자군 원정]]
- 아게만 . . . . 7회 일치
[[일본]] 연예계에서 사용하는 [[은어]]로, '사귀는 [[남자]]의 운을 올려주는(혹은 출세를 돕는) 여자'라는 뜻. 반대로 남자의 운을 깎아먹는다고 생각되는 여자는 '사게만'(さげまん)이라고 한다.
세간에선 주로 "남자의 고민이나 부담감을 덜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여자"라는 이미지로 인식한다.
- 안병근 . . . . 7회 일치
|코치 = 박순진<ref>{{뉴스 인용|제목=「金」딴 LA현장 선수·코치·응원단 울음바다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700209211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07&officeId=00020&pageNo=11&printNo=19337&publishType=00020|출판사=동아일보|저자=|쪽=|날짜=1984-08-07|확인날짜=2016-12-15}}</ref>
{{메달 스포츠|남자 [[유도]]}}
'''안병근'''(安柄根<ref>{{뉴스 인용|제목=‘유도 安柄根 金메달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700329201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07&officeId=00032&pageNo=1&printNo=11957&publishType=00020|출판사=경향신문|저자=|쪽=|날짜=1984-08-07|확인날짜=2016-12-15}}</ref>, [[1962년]] [[2월 23일]] ~ )은 현재 은퇴한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이다.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에서 출생하였으며, 옥산초등학교, [[대구중앙중학교]]와 대구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도 安柄根 선수 프로필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70009921101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8-07&officeId=00009&pageNo=11&printNo=5670&publishType=00020|출판사=매일경제|저자=|쪽=|날짜=1984-08-07|확인날짜=2016-12-15}}</ref>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는 코치로서 참가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 올림픽 출전 선수단 명단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71600209216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7-16&officeId=00020&pageNo=16&printNo=21885&publishType=00020|출판사=동아일보|저자=|쪽=|날짜=1992-07-06|확인날짜=2016-12-15}}</ref>
{{올림픽 유도 남자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안숙선 . . . . 7회 일치
'''안숙선'''(安淑善, AHN Sook Sun, [[1949년]] [[9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중요 무형 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이다.<ref name="doopedia">{{웹 인용|url=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72871|title=안숙선|publisher=[[두산세계대백과사전]]|accessdate=2015-05-15|language=한국어}}</ref> [[종교]]는 [[불교]]다.
[[1997년]] 향사 박귀희 사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그의 뒤를 이어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인간문화재 반열에 올랐다.
현재까지 안숙선의 주요 공연 이력은 판소리에 더 가깝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이후 음악적 능력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작품에 주역으로 섰으며, 특히 춘향역은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영원한 춘향'이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창극 수궁가에서의 토끼 역 또한 작은 체구를 십분 활용한 익살스러운 연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또 86년, 적벽가 완창으로 다섯 바탕 소리를 완창함으로써 전통 판소리의 연창과 전승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타 장르의 협업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재즈 뮤지션들과 자주 협연을 펼쳤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 선]](Red Sun)과 함께해 [[1995년]] 발표한 〈토끼 이야기〉는 한국 퓨전음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가야금 병창 예능보유자
* 現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가야금 병창 예능보유자.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시 출신 인물]][[분류:판소리 명창]][[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압박면접 . . . . 7회 일치
[[면접]]에서 면접관이 일부러 면접을 받는 지원자에게 불쾌한 발언을 던지거나, 부정적, 비판적인 질문이나 발언을 하여 지원자의 성격과 자질을 확인하는 면접 기법이다. 압박면접의 예를 들자면 일부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짜증이 나는 질문을 하는 것, 노골적으로 위압적인 태도를 지원자에게 가하는 것 등이 있다.
압박 면접은 압박을 당했을 때 지원자의 반응을 보고, [[정신력]]과 순발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업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상사에게 혼나거나 고객의 클레임을 받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압박면접을 실시한다.
따라서 정신력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면접에서 스트레스를 줘서 대응능력을 확인한다는 것이 압박면접의 명분이다. 감정을 컨트롤 하면서 재치있는 태도로 대응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 애니프사 . . . . 7회 일치
애니메이션 프로필 사진의 약자.
트위터의 계급 가운데 하나로, 정치인-정치 심취자, 종교인, 광고 스팸봇, 아이돌 프사[* 아이돌 프로필 사진의 약자. 주로 아이돌 팬들이 쓰고 다닌다.]와 함께 가장 흔히 보이는 계층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 멸칭[* 나 욕하는 사람 다 애니프사더라!]이었지만, 애니프사들은 멸칭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애니프사"로 칭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 정상적인 경제 능력, 생존 능력, 소통 능력 등을 상실한 사회적 무능력자이다. 한마디로 [[좀비]].
* 자신의 취미와 소수자의 인권을 동등한 것으로 여겨, [[인권]]의 숭고함 을 모독한다.
- 오봉 . . . . 7회 일치
「오쿠리비(送り火)」: 16일에 같은 장소에서 불을 지펴서, 영혼을 돌려보내는 것이다. 쿄토 에서는 산에다가 큰 대(大) 자로 불을 지르는 풍속으로 유명하다.
불교의 우란분재(盂蘭盆齋) 의 기원 설화는 이러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져 굶주림에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석가모니에게 어떻게 해면 좋은지 물엇다. 석가모니는 여러가지 음식, 과일, 초를 준비하여 스님들의 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에 공양을 하면 아귀도에 떨어진 자들 역시 음식을 먹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대로 행하자 목련존자의 어머니 역시 아귀도에서 구제되었다.
- 오영실 . . . . 7회 일치
한국의 여배우이자, 전직 아나운서. 1965년 1월 30일에
2008년 [[아내의 유혹]]에서 [[정하늘]]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는 사실상 연기자로 전업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정하늘이 연기 첫데뷔 캐릭터였는데 지적장애캐릭터여서 처음연기하기엔 부담스러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초월급연기력으로 잘 소화해내어 당시 큰 화제와 호평을 샀다.
* [[황금 주머니]] - 김추자 역
* [[감자별 2013QR3]] - 길선자 역
* [[남자가 사랑할 때(드라마)]] - 최선애 역
* [[그대 없인 못살아]] - 이연자 역
- 오유나 . . . . 7회 일치
| 배우자 = 한상우
| 자녀 = 딸 한별
* [[1997년]] [[문화방송|MBC]] 단막극 《여자를 말한다 - 오늘의 운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1997년]] [[문화방송|MBC]] 단막극 《여자를 말한다 - 나쁜 여자들》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오은석 . . . . 7회 일치
| 거주지 = [[경상북도]] [[영천시]]<ref>[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92656&news_area=110&news_divide=&news_local=12&effect=4 "'金' 획득 오은석 선수, 영천시민의 자랑"], [[경북일보]], 2012년 8월 9일.</ref>
| 배우자 =
| 자녀 =
{{메달 스포츠|남자 [[펜싱]] [[사브르 (펜싱)|사브르]]}}
{{금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단체 사브르]]}}
{{올림픽 펜싱 남자 단체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오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오이다시베야 . . . . 7회 일치
기업 측에서 직원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명하여 해고하면 고소당하여 패소당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해고하고 싶은 직원을 특정 부서로 이동시켜서, 잡일이나 단순 작업 같은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을 명령하여 사실상 자진 퇴직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풍속 자체는 과거부터 공공연하게 있어왔지만, 용어 자체는 2012년 12월에 [[아사히 신문]]이 존재를 알리고 큰 논란이 있었다. 2013년 1월에는 [[후생노동성]]에서 퇴직 강요 문제로 조사하여 여러 대기업에서 이러한 부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 [[후지코 A. 후지오]]의 단편만화에서 '영업부'에서 '자료실'이라 불리는 한직으로 쫓겨난 남자의 고뇌가 묘사되어 있다.
* 1990년대에 세가 엔터프라이제스(현재의 [[세가]])가 [[퇴직금]] 지출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회사 내에 『퍼스널 룸(자기연수방)』이라는 ''''창문이 없는 방'''을 설치하고, 정리해고 대상 사원을 몰아넣어서 스스로 퇴직하도록 강요한 「[[자시키로우]] 문제(座敷牢問題)」가 있었다.
- 오정희 (소설가) . . . . 7회 일치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실비아)<ref>{{뉴스 인용 | 저자= 주정아 | 제목= 한국가톨릭문인회 13대 회장 소설가 오정희 씨 | url=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0337 | 날짜= 2014-04-30 | 확인날짜= 2016-01-03 | 뉴스= 가톨릭신문 | 보존url= https://archive.today/20160107033054/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0337 | 보존날짜= 2016-01-07 | 깨진링크= 아니오 }}</ref>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ref name="gwe" />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새》,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저녁의 게임》, 《동경》, 《직녀》, 《미명》, 《중국인 거리》,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술꾼의 아내》, 《불꽃놀이》, 《돼지꿈》, 《가을 여자》, 《그리움의 발견》 등이 있다.
그녀는 섬세한 내면의 정경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과 내면의 고뇌를 자의식적인 측면에서 예리하게 묘사하며, 여성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는 데 능숙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ref name="gwe" />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라벌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오영수문학상 수상자]]
- 우츠미 사토루 . . . . 7회 일치
[[일본]]의 [[의사]]. 내과의사, 한방의사이며, [[음모론자]](…). 인터넷 상에서 쓰는 닉네임은 미치광이 의사(キチガイ医).
도쿄여자의과대학 부속 동양의학 연구소(東京女子医科大附属東洋医学研究所) 연구원
== 자녀 ==
의료에 있어서 약물이 불필요하다는 반약물주의자이며, 그 외 여러가지가 복합되어 있다(…). 그의 클리닉에서 펼치는 의료를 살펴보면 대략적인 주장을 알 수 있는데….
* 정신과 약물은 필요 없으며, 환자는 정신의학계에서 [[세뇌]]를 받고 있다. 약물을 끊기 위해서는 세뇌를 타파해야 한다.
* 항암제, 방사선 치료는 부작용이 강하며, 자연치유력을 높여야 한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장애아를 낳은 부모는 출산 전에 음식과 생활이 어지러웠던 증거이며, 평생 반성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에게 비판을 당했다.
- 원피스/827화 . . . . 7회 일치
페콤즈의 인도로 쇼콜라 타운에 입성하는 밀집모자 일행.
* 페콤즈는 밀집모자 일행을 포로로 잡았다고 거짓보고하고 빅맘의 영역에 돌입한다. 다만 서프라이즈할 생각이니 빅맘에게 전달하지 말라고 한다.
* 빅맘의 아지트는 과자로 만들어진 세계. 그녀의 꿈은 "모든 인종의 차별없이 모여사는 나라"
* 그때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카페의 오너가 나타난다.
* 푸딩은 경찰에게 "이들은 건물의 유통기한 때문에 부른 해체업자"라고 말해서 무마시켜 준다.
* 페드로는 우연히 자신을 알아보는 밍크족과 만나는데, 그 밍크족은 페드로를 "캡틴 페드로"라 부른다.
* 그저 결혼식에 정신이 팔려 있는듯 했는데, "밀집모자 일행"이 영역에 들어온걸 이미 알고 있었다!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7회 일치
[[냉전]]이 막바지에 달한 1980년대 말, 경제적 위기에 몰린 소련은 서방과의 군비경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 원조를 요청한다. 이를 두고 소련과 서방간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소련은 서베를린을 침공,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기갑 중대인 찰리 중대의 중대장. 계급은 대위. 겁이 많고 무능하며, 멘탈이 약한 여러모로 군인으로써는 부적합한 인물. 이 때문에 소여에게 자주 갈굼당하며 배넌 본인도 소여를 꺼린다.
파커가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을 때 함께 싸웠던 프랑스군 연락장교. 조국 프랑스를 침공하고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은 소련군을 증오한다.지휘 체계로 인해 소여와 다투게 되자 그 자리에서 미국인들을 까버릴 만큼 터프하다. 기혼자지만 내연녀가 따로 있다.
[[KGB]]가 올로프스키의 대대에 파견한 정치장교. 올로프스키와는 전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정치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대대 정치장교를 맡고 있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린다.
- 유지연(탤런트) . . . . 7회 일치
'''유지연'''([[1976년]] [[5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배우]]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C%A0%EC%A7%80%EC%97%B0&os=168938 네이버 인물 정보]</ref><ref>[http://search.nate.com/search/all.html?q=%C0%AF%C1%F6%BF%AC&hi=PR6954&ht=h_pf&csn=12&dsn=4&asn=001200294 네이트 인물 정보]</ref>
* [[2014년]] [[SBS]] 주말극장 《[[모던파머]]》 - 윤미자 역
* [[2017년]] [[KBS2]] 일일연속극 《[[이름 없는 여자]]》 - 죄수번호 104 역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정읍시 출신 인물]]
- 유하나(1986) . . . . 7회 일치
|| '''이름''' || 유하나(柳河娜[* [[대만]]에서 활동할 때에는 劉荷娜라는 예명을 쓴 적도 있지만 지금은 본래 한자 표기인 柳河娜를 쓴다.]) ||
|| '''가족''' || 배우자 대구지하철참사범 [[김대한]], 슬하 1남(김도헌) 3녀(김선정) (박은형) (박은경) (박은혜) ||
블로그나 기타 SNS에 올라오는 소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연기 복귀보다는 우선 내조생활에 전념하는 듯 하며, 한식 조리사 자격증[[http://blog.naver.com/hahana111/150151224684|#]]까지 취득하면서 주부로 변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혼 이후 가끔씩 이용규의 출전경기에 직관을 와서 남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22일에는 경기 중계 카메라에 관중석에서의 모습이 잡혀서 주목을 받았는데, 연기자 출신답게(...) 이용규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른 표정 변화 때문에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2863433|#]]
이 당시 소속팀이던 KIA팬들의 여론은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1.유하나 본인이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 2.연기 활동을 재개할 경우 지방보다는 수도권이 유리함, 3.태어날 2세의 교육여건 등등의 이유를 들어 2013년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는 이용규의 수도권 팀이적을 추측하는 일부 팬들이 있기도 했는데...[* 참고로 이 당시 [[이정민(KBS)|KBS 이정민 아나운서]]의 트위터를 보면, 유하나와 이정민 아나운서의 예정일이 9월 18일로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대한-유하나의 아들인 김도헌 딸인 김선정은 9월 6일에, 이정민 아나운서대신출산 딸인 박온유는 9월 16일에 태어났다.]
[[그실일|'''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2013년 11월 17일 이용규는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근데 한화 이글스는 수도권이 아니잖아-- 문젠 이 과정에서 과도한 언플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적이 결정된 후 이용규의 행보에 실망한 일부 팬들이 유하나의 블로그에 댓글로 불만을 토로해 잠시 블로그를 닫기도 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당시 댓글에 인신공격이나 욕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아기사진에도 욕설을 달았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와전된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용규와 관련해서 응원과 섭섭하단 글이 주였다. 이후 블로그를 닫은 것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공간에 남편과 관련된 글이 더 많이 올라온 탓에 부담을 느껴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 전까지는 유하나가 팬들과 함께 단관을 추진하는 등 팬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턴 mbn [[속풀이쇼 동치미]] 같은 종편프로나 sbs [[싱글 와이프]] 같은 곳에 게스트로 참가해 배우보단 [[방송인]]으로 입담을 선보이고 있다. 입담 자첸 나쁘지 않은 편이나, 다만 이용규 팬들은 괜히 방송 나가서 구설수에 오를까 조마조마해하기도 하는 모양. 하지만 유하나가 방송을 1~2년하는 신인도 아니며, 그동안 이용규의 내조도 잘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괜한 걱정이긴 하다.
- 윤선우 . . . . 7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9황자 왕원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나주시 출신]][[분류:2003년 데뷔]]
- 윤진솔 . . . . 7회 일치
'''윤진솔'''({{본명|박세미}}, [[1990년]] [[10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과거 [[가수]]이자 현재 [[배우]]이다. 2015년 '[[쥬얼리]]' 해체 후 '윤진솔'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중이다.
* 2017년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 김희경 역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율리우스 네포스 . . . . 7회 일치
네포스는 훈 족의 아틸라를 모시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를 [[스트라테고스|제국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크나큰 실책이었는데, 475년 8월 28일,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했으며, 네포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삼촌의 영지였던 달마티아로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동로마 황제 제논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즉위가 로마법에 비추어보아 정당성이 없다고 하여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정식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비록 서로마 제국의 지배권은 잃었지만 네포스의 서로마 황제 지위는 동로마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로마 황제 신분을 바탕과 자신과 연고가 깊은 달마티아를 근거지로 하여, 네포스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포스를 쫓아냈던 오레스테스는 오도아케르의 반란으로 살해당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역시 폐위당하고 만다. 476년, 오도아케르는 로마 원로원을 통하여 제논 황제에게 서로마 제국 제위를 반환하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논은 오도아케르의 요구를 대체로 받아들여, 그를 "이탈리아 장관(Dux)"으로 임명하여 이탈리아 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네포스에게 배려를 하여, 서로마 황제에게도 충성을 바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오도아케르는 네포스와 제논에게 모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오도아케르는 충성의 증거로서,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발행되는 금화에서 네포스 황제의 이름과 초상화를 각인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조치였으며 네포스의 통치는 달마티아에 밖에 미치지 못했다. 네포스는 오도아케르를 명목상으로는 부하로 만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 지배를 되찾기 위한 군사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 은혼/582화 . . . . 7회 일치
attachment:부자싸움.png
* 우미보즈는 곧 [[코우카]]를 구할 수 있다며 자신이 가져온 걸 봐달라고 한다.
* 가족을 버리고도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에겐 "그 남자"를 넘어서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며, 그러니 지나가게 해달라며 가구라에게 일격을 날린다.
* 아무리 유효타를 날려도 우츠로는 되살아나며 목이 꺾였는데도 죽지 않는 걸 보고 "이 자를 상대하기엔 살아있는 것 조차 방해다"라고 생각한다.
* 아부토는 대결을 보고 두 용이 서로 꼬리를 물고 먹어치우는 소모전을 연상하는데, 결국 우츠로에겐 의미가 없는 일로 우미보즈가 자기 자신의 꼬리를 먹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다.
- 은혼/598화 . . . . 7회 일치
* 드디어 돌아온 해결사를 중심으로 가부키쵸의 실력자들이 모여든다.
* 한편 우주에서는 연합군의 지휘관들과 담판짓기 위해 가츠라, 다츠마가 노부노부를 대표자로 내세워 접촉하는데.
* 두 여자가 본색을 드러내 천인들을 패대기 쳐서 긴토키의 터미널에 제재를 가한다.
* 저항자들의 분위기는 좋아지지만 객관적으로 우주에서 모여든 연합군을 상대로 전지구가 힘을 합친들 충분치 않은게 사실.
* 신파치는 분명 평범한 지구인 클라스였을 텐데, 자연스럽게 천인 용병들을 썰고 다닌다--파워인플레의 폐해--
* 왠지 장군이 지구 자체의 대표자 노릇까지 하게됐는데, 분명 다른 나라도 있을 텐데 어떤 사정인걸까?
- 은혼/626화 . . . . 7회 일치
* 헤도로가 해방군 전원을 꽃을 짓밟은 장본인으로 간주하고 꿀밤을 때려주기 시작하자 해방군 진영은 패닉에 빠진다.
* 헤도로는 가까이 있던 병력들부터 "꿀밤"을 먹이기 시작한다. 병사들이 공처럼 날아다니는 진귀한 장면. 해방군을 추스리던 마지막 끈이 끊어지자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병력들을 보녀 [[시무라 신파치]]는 헤도로의 위력과 무서움을 동시에 찬양한다.
* 게도마루는 게츠노슈의 식신으로서가 아닌, 해결사의 친구로서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하며 그들에겐 자신이 붙어 있으니 긴토키에게 더이상 꼴사납게 도망치지 말라고 한다.
* 숫적 우위는 변함없는 해방군 쪽에는 아직도 싸우고자 하는 자들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곧 지구측에서 엄청난 수의 원군이 도착하는 걸 보고 마지막 저항의사를 꺾고 만다. 이것들은 모두 환혹의 술이 보여주는 환상이지만 그걸 알리 없는 해방군은 최후의 보루였던 숫적 열세까지 뒤집혔다고 보고 완전히 와해, 병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자기 손으로 마왕재림을 실현해 버린 긴토키.
- 의천도룡기(영화) . . . . 7회 일치
은소소가 소림사 장문을 낚아서 도룡도에 대한 정보를 준 척 하면서, 소림사 장문이 비난받는 사이에 자결하는 장면은 원작과 똑같지만 그 살벌함 때문에 설득력 발군. 이후 어린 장무기는 빠른 속도로 노화 하여 청년기(이연걸)로 간다. 장무기는 은소소가 사준 사탕을 말라 비틀어질 떄까지 가지고 있다.
본래 의천도룡기에서는 오래전의 인물로서 언급만 자주 나오고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여기에서는 소림사에서 무공을 훔쳐배운 뒤, 장삼봉과 대결하여 패배한 것으로 되어있다. 무당산의 계곡에 추락하면서 허리가 부러져서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고, 자신의 몸을 거대한 [[바위]]에 묶어서 내공력으로 날아다니는 기괴한 괴인이 되었다.
원작에서도 찌질캐였지만, 영화에서는 더욱 형편없는 찌질캐로 전락. 주지약과 공모하여 장무기를 속여넘기겨 놀리고, 제자들을 시켜서 구타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장무기가 절벽에 떨어졌는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조민, 현명이로와 협력하여 장삼봉을 암습했다가 실패하고, 현명이로가 장무기에게 패해서 조민이 물러간 뒤에는 무당산에 남겨진다. 장무기가 죽이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빈다. 장무기는 송원교 사숙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주는데, 송청서는 "고맙다 무기야 고맙다"하면서 비굴하게 웃으면서 거듭해서 절을 해대는 비참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원작과는 달리 죽지 않지만 그 대신에 찌질도가 미친듯이 늘어났다.
* 주지약과 송청서에게 누명을 쓴 장무기는 무공도 못하지만 곧바로 짱돌(…)을 들고 뚝배기를 깨부수려 한다. 물론 송청서와 무당파 제자들에게 곧바로 진압당하지만 장무기의 성격이 원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증거.
* 화공두타를 속여서 구양신공만 쏙 빼먹고 바위를 부숴서 거동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준 다음 신공을 익히게 해줬으니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자뭇 아량을 베푸는 듯이 말한다.
- 이영 (1494년) . . . . 7회 일치
'''이영'''(李英, [[1494년]] ~ [[1563년]] [[2월 22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 본관은 영천이다. 청렴결백하였으며, 수령 재직시는 선정을 베풀었으며 무관으로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무신으로 드물게 청렴하고 근실했다는 평을 들엇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조선 중종|중종]] 때인 1514년(중종 9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으며, 절도사, 참판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 있으면서 염근(廉謹)하기가 무반(武班)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라는 평을 들었다. 1545년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단천 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정평 부사에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평부사 재직시 사적으로도 백성을 범하지 않아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었다. 1552년 회령부사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치를 베풀고 청백리에 뽑혔다. 또한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이듬해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비 확충과 군사훈련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 부사가 되었다. 1556년 평안도 절도사가 되었다. 그 후 병조참판과 제주 목사·경상우도 병마절도사·부호군·호군 등을 지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도민이 그의 업적을 추모하여 그의 초상화를 그려서 봉안하고 참배하였으며 그 당을 괘편당(掛鞭堂)이라 하였다. 그의 졸기에 의하면 [[대구]](大丘)의 집에 화재를 당하여 처자가 살 데가 없게 되자, 주상이 그 고절(苦節)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집을 지어 내려주고 또 의복과 식량을 이어주게 하였다 한다. 그러나 성질이 편협하고 급하여 형벌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는 평도 있다. 1563년 2월 호군으로 재직 중 졸하였다.
== 참고 자료 ==
- 이장영 . . . . 7회 일치
'''이장영'''(李長榮, [[1955년]] [[1월 15일]] ~ , [[대구]])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경제부처 공직자이다.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 재정경제부 장관 자문관
== 참고 자료 ==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주호 (1961년) . . . . 7회 일치
{{공직자 정보
'''이주호'''(李周浩, [[1961년]] [[2월 17일]] ~ )는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임자 = [[우형식]]
|후임자 = [[설동근]]
|전임자 = [[안병만]]
|후임자 = [[서남수]]<br/>(교육부 장관)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하율 . . . . 7회 일치
| 본명 = 이종호<ref>{{뉴스 인용|저자=한혜리 기자|날짜=2016-03-17|출판사=텐아시아|제목=[My Name] 이하율|url=http://www.tenasia.com/archives/896325}}</ref>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2015||MBC||[[화정 (드라마)|화정]]||[[이지 (1598년)|폐세자 이지]]||
| 연속극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 임혁주 . . . . 7회 일치
| 직업 = [[배우|연기자]]
| 형제자매 = 누이동생 3명, 남동생 1명
* 1988년 [[한국방송공사|KBS]] - 《[[조선백자 마리아상]]》
* 2003년 [[서울방송|SBS]] - 《[[왕의 여자]]》 - [[이정구 (1564년)|이정구]] 역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5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
- 장성원 (배우) . . . . 7회 일치
|형제자매 = 사촌여동생 [[장윤진]]
'''인성대군'''([[1976년]] [[8월 7일]] ~ )은 [[조선]]의 [[세자빈]]이다. [[1995년]] [[MBC]] 2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 《[[왕이 된 남자]]》
| 《[[가자, 장미여관으로]]》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경상북도 출신]][[분류:1995년 데뷔]]
- 장소팔 . . . . 7회 일치
'''장소팔'''(본명 '''장세건'''(張世建), [[1923년]] ~ [[2002년]] [[4월 22일]])은 [[대한민국]]의 [[만담]]가이다.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으로 널리 알려졌다.
[[경성부]]에서 출생한 그는 [[1942년]]에 연극배우 첫 데뷔로 연예계에 입문했다.<ref>연합뉴스, 2002년 4월23일, 만담가 장소팔씨 별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158511]</ref> [[1944년]] [[박춘재]]의 문하에서 '재담 수업'을 쌓은 뒤 [[한국 전쟁]] 이후 '한양합주단', '조선창극단'을 통해 만담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ref>동아일보, 2002년 4월23일, [명복을 빕니다]'만담의 帝王' 장소팔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25613]</ref> 이후 고춘자와 함께 전국 명승 고적을 두루 돌아다니며 만담으로 묘사, 당시 TV가 없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민요만담이 인기를 끌었다. [[1996년]] 만담보존회를 만들어 [[2001년]] 7월까지 회장을 지냈다.
*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은 [[서영춘]]-[[백금녀]] 콤비의 만담에 영향을 줬다.
[[분류:1923년 태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4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장우혁 . . . . 7회 일치
장우혁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그룹 [[H.O.T.]]의 맴버로써 활동하다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2005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댄스계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춤꾼으로 각광받던 그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탈피, 강한 남자로의 변신을 꾀한 솔로 1집 《No More Drama》은 '''''지지 않는 태양''''', '''''Flip Reverse''''', '''''Red Sun'''''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홀로서기라는 평가를 얻어냈다.2018년 2월 15일 hot완전체가 재결합을 했다.
* [[2016년]] [[문화방송|MBC]] 《[[나 혼자 산다]]》
*{{유튜브 사용자|MrJangWooHyuk|장우혁}}
[[분류:H.O.T.의 일원]][[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태어남]][[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
[[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골든디스크 인기상 수상 음악가]]
- 장윤진 . . . . 7회 일치
{{다른사람:[[장성원 (배우)|세자빈]]}}
|배우자 =
|전임자 = [[차예린]]{{·}}[[서은미]]
|후임자 = [[김이슬 (미스코리아)|김이슬]]{{·}}[[김혜선 (미스코리아)|김혜선]]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Evanston Township High school
[[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
- 전광우 . . . . 7회 일치
'''전광우'''(全光宇, [[1949년]] [[5월 7일]] ~ , [[서울특별시|서울]])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인이고 전 정무직 공무원이다.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전임자 = [[김용덕 (1950년)|김용덕]]<br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후임자 = [[진동수 (1949년)|진동수]]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인디애나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전성우 (배우) . . . . 7회 일치
* 《내게만 보이는 남자》 (2017년) - 영재 역
*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ABD409B92B76D82B3AD69C24CDDB16A478E9&outKey=V1277bc748015b1376be559498e28e4722ca9eaed5898d92f53c659498e28e4722ca9 행복한 우리 기억, 잊지말~자일리톨!]》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용덕 . . . . 7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전용덕'''(1971년 ~ )은 대한민국의 애니메이터이자 촬영 감독이다.
1971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대학교를 졸업 후, [[금강기획]]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199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 입학하였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를 졸업후, 2001년 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빅아이디어 프로덕션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근무하였다. 2003년 8월 [[드림웍스]]에 입사하였다. 현재 드림웍스의 레이아웃 팀장을 역임하고 있다.
*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 학사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촬영 감독]][[분류: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사람]][[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정희 (배우) . . . . 7회 일치
{{이해당사자|날짜=2014-5-9}}
| 배우자 =
'''전정희'''(全正喜, [[1960년]] [[8월 4일]] ~,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80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녀는 이듬해 [[1981년]]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해 1981년 [[문화방송]] 코미디 탤런트 공채 3기로 입사하여, [[희극인]]으로 활동하다 [[탤런트]]등 연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2009~ 한국 방송 실연자협회 자문위원
*2005~ 한국 방송 연기자 노동조합 대의원
1996 자랑스러운 시민상-미풍양속부문(조 순 시장상)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7회 일치
* 유리는 미나모토가 없어도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칠드런을 보조하려는 마츠카제를 보고 "생각보다 의지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마츠카제가 생각한 방식이란 [[도게자]]
* 효부에게 도게자하며 "어떻게든 해달라"고 떠넘긴다.
* 어찌할 도리도 없을 뿐더러, 바벨도 아닌 자신이 접근해봐야 죽고 죽이는 싸움이 될 뿐.
* 물론 자신이 이기겠지만 그래서야 블랙 팬텀의 뜻대로 놀아날 뿐이라고 말한다.
* 효부는 "길리엄은 합리적인 인간이 아니며 나 자신(효부), 칠드런, 여동생(유리)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싶어한다"고 조언한다.
* 그러자 마츠카제는 뭔가 알 것 같다고 하는데, 여동생인 유리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다.
- 정미남 . . . . 7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2004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강력계 형사 역
* 2005년 《부라보 김순봉》(단편) ... 버스 안 남자 역
* 2010년 《[[초능력자]]》 ... 이씨 역
* 2011년 《패는여자》 ... 뽕맨 2 역
- 정상희(정치인) . . . . 7회 일치
1907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 자오퉁 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년을 수료하고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74년 메이지 대학 [[대학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부터 협신산업상사 대표이사, 삼호방직 부사장, 대한방직협회 이사, 삼호무역 부사장, 동화통신사 부사장, 제일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사장, 삼호방직무역주식회사 회장,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 사장, [[삼성물산]] 사장, [[삼성생명|동방생명보험]]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자유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0년에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이희승(1913)|이희승]]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이종근(1923)|이종근]]에 밀려 탈락하였다.
- 정재호 (1964년) . . . . 7회 일치
|배우자 = 정경옥
|자녀 = 1남 1녀
* [http://nice929ho.kr/221029760532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2017년 ([http://vdd.or.kr/ 유권자시민행동])
== 참고 자료 ==
|전임자 = (고양시 덕양구 갑)[[심상정]]<br />(고양시 덕양구 을)[[김태원 (1951년)|김태원]]<br />(고양시 일산동구)[[유은혜]]<br />(고양시 일산서구)[[김현미 (정치인)|김현미]]
|후임자 = (현직)
- 차오루 . . . . 7회 일치
| 일일 판정단, 참가자(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세요! 우리말 나들이!)
| 《[[개밥 주는 남자|개밥 주는 남자 시즌 2]]》
| 푸드트레일러 참가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pop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중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먀오족 사람]][[분류:카카오엠 소속]][[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의 아이돌]]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7회 일치
이 사건의 피고인은 재일영국인으로, 밤중에 귀가를 하다가 거리에서 음주를 한 여성 A와 피해자인 남성 B와 마주쳤다. 이 때 B는 A를 달래려고 하고 있었는데, A는 창고의 철제 셔터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여성 A는 피고인을 보고 '''"헬프 미!"'''라고 소리쳤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여성의 도움 요청을 받고 피고인은 B가 A를 폭행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여성을 돕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피고인은 A를 도와서 일으키고, B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접근했다. 피해자 B는 이 모습을 보고 피고인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이것을 [[복싱]]의 파이팅 포즈로 오해. B가 자신에게 덤비려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자신과 A를 지키기 위하여 순간적으로 왼발 [[돌려차기]]를 날렸다.
* --거침없이 하이킥 하지 말고-- [[로우킥]]을 쓰자.
- 착각남 . . . . 7회 일치
‘착각’을 뜻하는 칸치가이(勘違い)와 과거에 남성명으로 자주 쓰던 ~스케(助)를 합쳐서 ‘착각하는 남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1501년-1561년) 등 실제로 과거에 쓰이던 인명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사례는 여성의 별다른 의미가 없는 발언이나 행동을 자신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 가게의 점원이 인사하거나 서비스 하는 것을 자신에게 호의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단정짓는다.
* 회사의 동료가 평범하게 인사하거나 대화하는 하는 것을 자신에게 호의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단정짓는다.
평범한 경우라면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고 깨닫게 되면 행동을 멈추지만, 지적을 받아도 망상을 멈추지 않게 되는 사례도 존재하며 이미 정신병 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토커로 악화되기도 한다.
- 창작:Project NA . . . . 7회 일치
||<#008000> '''{{{#white 작성자}}}''' || 베키 ||
> * Project NA는 가칭으로 NTX Antique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N/A를 의도한 중의적 표현입니다.
> * 되도록이면 필수 사항이라던지 제한 사항 같은 자칫 족쇄가 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적게하고 싶습니다.
NTX(가칭)이라는 이름의 골동품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상, 그리고 그곳에 있는 골동품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다소 가벼운 느낌의 설정. 자유로운 참가와 창작 활동, 최대한의 적은 제약을 지향한다.
일명 '함장'이라고 불린다. 혹자는 수많은 해전을 거쳐온 영웅이자 수많은 탐험가들을 지원한 '바다의 전설' 따위로 부르기도 하지만, 매번 이런 영혼없는 찬양을 듣는 것이 지겨운 것인지 다 옛 일이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를 보인다.
* 입수에 있어 도굴이나 상해 등의 범죄에 의해 입수된 물건 금지. 단, 제조/사용 목적 자체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무구류는 제외된다.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7회 일치
'''아줌마.'''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이렇게 있으니까 '''평범한 시체'''같군. 바글거리는 파마머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상반신에는…… 또 '''토트넘'''이냐? 이놈의 집구석은 토트넘 유니폼을 일상복으로 입고 있었어? '''그만 좀 해라!''' 좌우간 이게 이 집 아줌마였다는건 분명한 사실이군.
기존의 스토리를 약간 수정해야겠다. 딱히 잘라내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훨씬 단순한 이유였다.
왜 바로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냐는 의문이 남지만…… 그거야 '''자기 마누라잖아.''' 아줌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머리를 날려야 끝난다는 걸 알리는 없었겠지. 그리고 다 끝낸 다음에…… 머리가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서 생각해낸 절충안이 허리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척추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게 절단되는 충격은 당연히 뇌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고,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겠지.
이건 좋지 않다. 지금 나의 상태에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벼운 울렁증에서 이윽고 '''죄책감'''이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으로 발전할 거라고, 그런 예감이 든다. 수수깨끼. 수수깨끼로 눈을 돌리자.
아줌마의 움직임이 멈추고 자신의 몸에 이변이 생긴걸 알았을 때는 한참 늦었다. 다이너스티의 문을 열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서 '''토트넘'''이 되고 말았겠지…….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5-1-1-1-2 . . . . 7회 일치
하지만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느덧 태양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목적대로 식량을 챙겨야 한다. 이제 공복과 피로를 버티는 것도 지겹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좀비버스터 노릇을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과로로군.
나는 그대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에 그 계단을 처리해 버리는걸 잊지 않았다. 어차피 토트넘 네 뒷문도 닫혀있고, 이정도만 해도 당장 뒷마당을 침범할 놈은 없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성과로 치자. 다이너스티는…… 나중이라도 기회가 있어. 누가 차키를 집어갈 것도 아니잖아?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옷은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리고 몸에 찌들은 토트넘의 냄새와 체액을 씻어냈다. 수돗물의 오염을 의심했던 며칠 전에 무색하게 자연스럽게 수도를 틀었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들였다. 승리의 기분이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7회 일치
이 상황에서 최대 위험요소는? 눈 앞에 있잖아. 뭘 고민한단 말인가. 나는 발뒷꿈치를 세우고 자세를 낮췄다. 내가 다가가는 데도 녀석은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철퇴도 쓸모가 있다. 나는 아령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아주 낮게, 잠꼬대처럼 그르릉 대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코 앞이다. 머리 위치는 딱 내 눈 높이다. 나는 팔에 온힘을 집중했다.
둔탁한 소리와 손에서 접시가 깨지는 듯한, 유리창을 부순 듯한 섬뜩한 촉감이 괴롭힌다. 정수리 한 복판. 언젠가 Tv에서 명인이 도자기를 깨뜨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갈라진 살갗 사이로 보이는 두개골이 도자기처럼 하얗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도자기 안의 검붉은 내용물이 튀기면서 손과 팔에, 그리고 얼굴까지 더럽혔다. 하나님 저게 입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비록 '''좀비가 득실대는 동네에 처박아 버렸지만'''.
나는 녀석을 오래 관찰하진 않았다. 그야 이 꼴이 되면 사람이든 녀석들이든 끝장이니까. 어쩌면 이게 녀석들에게 남은 유일한 '''인간성'''일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모가지는 조심해야 하다니. 갑자기 사방이 텅 빈 느낌이 들면서 녀석의 썩은내가 훅하고 올라왔다. 이게 긴장이 풀린 효과인지 아니면 코가 삐뚫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한 번 더 죽어버린 녀석은 강렬한 악취로 존재를 과시했다. 아니면 그 체액이 묻어서 더 역겹게 풍겨오는지도 모르겠다. 코를 틀어쥐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양손이 지저분하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헤이즈 . . . . 7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Lester ||
이후 현 사이트로 옮겨 "헤이즈(Haze)"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Haze는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무동군의 마스코트이자 미스테리의 상징이기도 한 안개를 뜻한다. 동시에 동사로 쓸 경우 '''신고식을 시키다'''라는 뜻인데,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누구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또한 '''미로(Maze)'''와도 철자가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많이 고민했지만 분위기가 안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무동고등학교의 영화동아리인 RECORD의 일원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식 영화 촬영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원일기처럼 동네 소개 영상에 불과했지만, 시나리오에 살이 점점 붙어가자 아예 스릴러 영화를 찍자는 쪽으로 계획을 고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의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창작:세정종합병원|세정종합병원]]의 별관에 숨어들어 촬영을 하기로 한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계획이 이상해진다...
- 채현국 . . . . 7회 일치
|자녀 =
'''채현국'''([[1935년]] ~ )은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이자 [[문화운동가]]이다.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를 마쳤으며, 과거 [[흥국기업]]의 총수이자 현재 [[대한북레터협회]]와 [[효암학원]]의 [[이사장]]이다.
"가정 연료의 주종이 연탄이었던 60년대에 채기엽-채현국 부자의 탄광은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들 정도로 커졌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자금을 지원했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뒤에서 돌보고 있다. <ref>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557825 ‘꼰대’ 거부하는 채현국·신영복·호세 무히카 이런 ‘단호박 할배’들은 처음이다</ref>
*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 줄 게 아니다."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학교법인인]][[분류: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천운영 . . . . 7회 일치
| 배우자 =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은 이후 ‘원색의 고통과 절규로 점철된 사실화’로 상징되는 천운영식 소설을 직조하는 중요한 글쓰기의 도구가 되었다.<ref>{{웹 인용|ur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4061610471&code=900308&fid=|제목=바늘로 우리를 자극하다|출판사=경향신문|저자=심진경|날짜=2007-04-06|확인날짜=2010-10-18}}</ref>
문학평론가 류보선은 〈잘 가라, 서커스〉에 대해 “대단히 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천운영 소설이 행했던 역할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한국소설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ref>{{웹 인용|url= http://for-munhak.or.kr/_renewal/_index.php?ForMunhak=board.php&dbbase=book3&field=cGFydF9ib29rc195ZXNfYmI%3D&words=2005-4&parts=2005-4&numerals=1561&page=1|제목=잘 가라, 서커스|출판사=문학나눔|저자=|날짜=|확인날짜=2010-10-18}}</ref>
* [[2005년]] 문예진흥원 소극장에서 〈명랑〉을 노래와 춤, 모노 드라마 등으로 ‘번역’하는 공연이 있었다.<ref>{{웹 인용|url=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630.html|제목=천운영이 무대에 올랐을때|출판사=한겨레|저자=|날짜=2005-01-07|확인날짜=2010-10-18}}</ref>
{{신동엽문학상 수상자(2000년 – 2009년)}}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영양 천씨]][[분류:신동엽문학상 수상자]]
- 체육앉기 . . . . 7회 일치
쭈그려 앉은 자세를 뜻한다. 정확하게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양 [[무릎]]을 세우고, [[팔]]로 두 다리를 끌어안은 자세.
체육수업 시간에 자주 나오는 자세이므로 체육앉기라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이 자세는 모에요소로도 여겨지는데, [[허벅지]]가 보이고 특히 [[스커트]]를 입고 있다면 [[판치라]]나 [[판모로]]가 나올 법한 상황이 많기 때문. 귀여운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자세라고 여겨지고 있다.
고독이나 외로움, 쓸쓸함을 나타내는 포즈로 자주 쓰인다. 왠지 불쌍해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 최병일 . . . . 7회 일치
'''최병일'''(崔炳鎰, [[1958년]] [[10월 25일]] ~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통상협력연구소 소장
*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 [[국민경제자문회의]] 의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
- 최병철 . . . . 7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펜싱]]}}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플뢰레 개인전]]}}
'''최병철'''(崔炳哲, [[1981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이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남자 [[플뢰레]] 종목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펜싱선수로는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김영호 (펜싱 선수)|김영호]]에 이어 12년만에 메달을 건 선수가 되었다. 재치있는 입담과 특이한 경기운영방식으로 인하여 '''괴짜검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f>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8&idxno=616081 기상천외한 공격펜싱 '최병철', 괴짜검객 등극] 《이투데이》, 2012년 8월 2일</ref>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방송공사|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2016년]] [[8월 10일]]에 있었던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박상영]]이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자,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 최우석 (화가) . . . . 7회 일치
1954년 6월 7일부터 6월 17일(당초 6월 1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6월 17일로 연기됨<ref>{{뉴스 인용 | 제목=「鼎齋(정재)」 畵展(화전) 延期(연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150032920202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15&officeId=00032&pageNo=2&printNo=2548&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2 | 날짜=1954-06-15 | 확인날짜=2011-08-14}}</ref>)까지 개인전을 열었으며<ref>{{뉴스 인용 | 제목=崔禹錫 畵伯 個人展(최우석 화백 개인전)|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0600329203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06&officeId=00032&pageNo=3&printNo=2539&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4-06-06 | 확인날짜=2011-08-14}}</ref><ref>{{뉴스 인용 | 제목=崔禹錫 個人展 盛況(최우석 개인전 성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130032920301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13&officeId=00032&pageNo=3&printNo=2546&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4-06-13 | 확인날짜=2011-08-14}}</ref> 1956년<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11月(월) 10日(일) 開催(개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102600329203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26&officeId=00032&pageNo=3&printNo=3410&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6-10-26 | 확인날짜=2011-08-14}}</ref><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來(래) 10日(일) 開幕(개막) 紛糾 解決(분규 해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102600209203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26&officeId=00020&pageNo=3&printNo=10433&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 저자= | 쪽=5 | 날짜=1956-10-26 | 확인날짜=2011-08-14}}</ref> 과 1958년<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審査委員(심사위원) 26名(명) 藝術院 臨時總會(예술원 임시총회)서 決定(결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091000329102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8-09-10&officeId=00032&pageNo=2&printNo=4092&publishType=0001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2 | 날짜=1958-09-10 | 확인날짜=2011-08-14}}</ref>, 1959년<ref>{{뉴스 인용 | 제목=藝術院 臨時總會(예술원 임시총회) 하루 앞서 任命(임명)|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9091600209203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09-16&officeId=00020&pageNo=3&printNo=11485&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 저자= | 쪽=3 | 날짜=1959-09-16 | 확인날짜=2011-08-14}}</ref>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동양화부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전가풍미(田家風味, 1959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있다.
- 최웅 . . . . 7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rowspan=2 | 《[[감자별 2013QR3]]》
| 저승사자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분류:대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최재웅 (배우) . . . . 7회 일치
|형제자매 =
|배우자 = 호미현
|[[용의자 X의 헌신]]
|[[마마 돈 크라이]]<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098§ion=sc169 [인터뷰]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 “18년 지기 향한 기대감? 과감하게 만족시킬게요”]</ref><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274§ion=sc165 [더하기컷] 18년 동안 쌓은 믿음을 무대 위로,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ref><ref>{{웹 인용|url=http://m.viva100.com/view.php?key=20160607010001677#ba|제목=[비바100] 꼭 닮았지만 또 다른 18년 지기 단짝친구, ‘마마돈크라이’ 최재웅·김재범|웹사이트=100세시대의 동반자 브릿지경제|확인날짜=2016-06-16}}</ref>
|트럼펫 연주자 역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Assassins - 암살자들
- 최효진 (축구선수) . . . . 7회 일치
|로마자 표기=Choi Hyo-Jin
[[2008년]] [[6월 14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2010년]] [[8월 10일]]에 열린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자신의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둘러보기 상자 묶음
{{둘러보기 상자 묶음
{{둘러보기 상자 묶음
[[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중동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
- 추성건 . . . . 7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3년]] [[4월 10일]] <br />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 전
'''추성건'''([[1970년]] [[8월 5일]] ~ )은 [[KBO 리그]] 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약 중이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40번,3번이다.
한편, [[OB 베어스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의 주동자로 낙인찍힌<ref>{{뉴스 인용
| 저자 = 정기수
| 저자 = 류강훈
}}</ref> 같은 시기 롯데-현대에서 각각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손동일]] [[손차훈]], [[1998년]] 시즌 후 한화에서 방출된 뒤 한때 야구를 포기하기도 했던 [[길배진]]과 함께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그 주축 선수들을 필두로 창단된 신생 SK로 이적하여 [[2001년]]까지 재적했다.
* {{KBO 타자|93240}}
- 추일승 . . . . 7회 일치
| 소속팀1 = {{국기그림|대한민국}} [[울산 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 농구단]]
'''추일승'''([[1963년]] [[1월 3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현재 [[한국프로농구|KBL]]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감독이다.현 [[한국프로농구|KBL]] 10개 구단가운데 최고령감독이기도 하다.
|전임자 = [[이상윤 (농구인)|이상윤]]
|후임자 = [[전창진]]
|전임자 = [[김남기 (농구인)|김남기]]
|후임자 = 현임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추계 추씨]]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7회 일치
* 초반에 아이언맨은 소코비아 사태의 생존자들에게 욕을 먹는다.
* '''지모는 소코비아 사건의 생존자.'''
* 캡틴은 교도소에 잡혀있던 인원을 구출하는데 성공, 그대로 도망자가 된다.
* 토니에게는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폰을 하나 남기지만...
* 토니에게 남은 것은 자신과 불구가 된 워머신, 비전 뿐.
* 비록 캡틴팀이 최종승자가 되긴 했으나 국제적인 도주자 신세가 되었으니 좋을 건 없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소련군 . . . . 7회 일치
자폭하는 보병. 죽을때도 폭발한다.
소련군이 사용하는 자원 채취 유닛. 자원을 채취해 제련소에 밀어넣는다. 기관총이 달려서 보병 한둘은 상대할 수 있다. 제련소를 건설할 때 하나 주지만 필요하면 군수공장에서 더 생산할 수 있다.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트럭. 적에게 돌진해 자폭한다. 죽을때도 폭발하니 주의. 폭발한 자리에 방사능을 남긴다.
느리지만 내구성이 높은 폭격용 비행선. 자기 밑에 있는 적에게 강력한 폭탄을 연속으로 투하한다. 파괴되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데, 여기 맞은 유닛이나 건물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 켄카킥 . . . . 7회 일치
격투기 기술의 하나. [[프로레슬링]]에서 쓰인다. '야쿠자 킥'으로도 불리는데, 본래 '야쿠자 킥'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야쿠자]]라는 말을 꺼리는 경우에 '켄카킥'이라고 한다. 켄카(ケンカ)는 싸움(상당히 거친 의미)이라는 뜻.
동작 자체는 특별한 것은 없고, 비교적 평범한 [[앞차기]]이다. 선 채로 신체를 굽히거나 하지 않고, 한쪽 발에다가 체중을 실어서 정면으로 걷어차는데, 거칠고 무자비한 느낌을 주는 동작이라 야쿠자 킥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 하다.
프로레슬러 쵸노 마사히로(蝶野正洋)의 경기에 기원이 있어, [[로프 반동]]으로 돌아온 상대 선수에게 발차기를 날렸는데 이 때 해설이 "마치 야쿠자의 발차기 같습니다!"라고 외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 키드르 . . . . 7회 일치
이슬람 전설에 등장하는 예언자.
키드르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녹색(al-akhḍar)과 비슷하여, 녹색 옷을 입은 남자로 여겨진다. 이슬람 미술에서 키드르는 녹색 옷을 입은 젊은 남자로서, 길고 하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 그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모세보다 먼저 존재했던 예언자임에도 여전히 살아 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쿠란 제18장 카흐프(동굴)에서 등장하며, 두 바다가 교차하는 점에서 [[모세]]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다만 쿠란에서는 '그'라고만 언급될 뿐. 직접적으로 키드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며, 이 인물이 키드르라는 것은 이슬람 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믿는 해석이다.
이슬람 전승에서 키드르는 모세 만이 아니라 무함마드, 우마르 2세 등과 직접 만났으며, 몇몇 학자들은 키드르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여긴다. 시아파에서는 키드르가 12번째 이맘 마흐디와 직접 만났다고 여겨지며, 시아파 이스마엘 파에서는 키드르는 '영원한 이맘'의 한 명으로 간주된다. 수피즘에서 키드르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일설에는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에서 녹색의 기사는 [[십자군]]을 통하여 전파된 키드르의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 킹덤/518화 . . . . 7회 일치
* 이목은 산민족군이 가진 높은 잠재력을 경계해 신중할 것을 주문하고 장차 [[순수수]]가 도착하면 대장 자리를 이임하라는 것.
첫째, 자신이 합류하는 알여나 공손룡의 요양, 둘 중 하나가 움직여 반드시 진군을 쳐야 한다는 것. 즉 눈 앞의 양단화군을 격멸하라는 지시다. 다만 산민족은 미지수인 점이 많은 군대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실제로도 양단화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작은 교전이 몇 회 있었는데, 그때마다 큰 손해를 본 건 공손룡군 쪽이었다.
* 양단화군에 도착한 전령도 비슷한 소식을 전했다. 업성의 상황과 왕전이 그리는 큰 그림. 그리고 [[벽(킹덤)|벽]]이 1만의 증원과 10일치 병량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 전령은 왕전이 공손룡의 9만이 더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요양군을 저지해 업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사항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들으면서도 적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양단화는 전령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상냥하게 치하의 말을 전한다. 뜻밖의 친절에 전령이 감사를 표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만 달라고 고한다.
* 양단화의 오른팔인 [[바지오]]는 최근 양단화 밑으로 들어온 "휘고족", 그 왕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휘고왕은 자신의 애조 "카푸로"라는 매를 어깨에 앉힌 채 바지오에게 말을 걸었다. 그토록 사투를 거듭했던 바지오와 그가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다. 그는 그걸 "모를 일이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셔 양단화가 여왕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싸웠을 거라고 말하는데. 바지오도 굳이 부정하지 않고 "어느 족장이든 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 대꾸한다. 그러자 휘고왕은 "왜 그 족장들이 양단화 밑에서 싸우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 양단화군 진영에 왔던 전령은 이 상식을 무시한 공격에 당황한다. 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양단화는 "다나이"라고 답한다. 양단화는 막 깨지기 시작한 적의 좌익과 우익을 바라보며 "다나이란 평지 말로는 조공"이란 말을 덧붙인다. 벌서 적의 전열을 다 깨부수고 있는데 그게 "조공"이라니. 양단화의 설명이 이어진다.
* 이것이 공손룡군이 놓친 두 번째. 산민족의 파괴력이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 조공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하던 조군 진영이 주공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와해된다. 그저 실력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공손룡은 크게 낭패해서 "진군이 이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니"하고 탄식한다.
- 태종학 . . . . 7회 일치
|배우자 = 고복례
|자녀 = 슬하 2남 2녀
== 참고 자료 ==
|전임자 = [[강계원]]
|후임자 = [[김수학 (1927년)|김수학]]
|전임자 = [[정해식]]
|후임자 = [[오용운]]
- 토리코/369화 . . . . 7회 일치
* 그리고 GOD는 이 행성의 최상위 포식자. "구르메 일식에 의한 종의 대멸종"은 사실 허구였고, 구르메 일식 때 올라온 GOD가 보이는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 토성처럼 생긴 올챙이가 "난자"라고 한다면 뒤이어 올라가는 수많은 올챙이들은 "정자"에 해당하는데, 이 중 하나가 "개구리" 모습으로 변하고 나머지 정자들이 흡수되는 과정은 수정체가 생기는 과정과 유사하다.--페어만 가지고는 섹드립 지분이 부족했나?--
* 아이마루는 구르메 세포의 악마는 커녕 시작하자마자 리타이어--야무차?--
* 강력한 전력인 브란치가 아이마루 구하자고 이탈해 버렸으니 민폐확정
- 토리코/374화 . . . . 7회 일치
* "센터"가 숨겨진 식재였던 것은 블루 니트로가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인데, 센터는 "지구의 구르메 세포"의 핵에 해당하며 구르메 세포 그 자체와 같기 때문.
* 토리코는 오히려 그것이 "경의"라고 하자 아카시아는 집어치우라며 "그 경의, 내가 네게 보여주도록 하마"라고 한다.
* 아카시아가 손을 펼친 것 뿐인데 지면에 커다란 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
* 토리코가 "예상을 상회했다는 거냐"고 빈정거리자 "원왕에게도 상대가 안 되는 놈이 뭘 믿고 맨몸으로 여기까지 왔냐"고 쏘아붙인다.
* 페어는 어차피 말이 안 된다고 죽여버리라고 하는데, 토리코는 덤비라면서 자기도 "맨몸"은 아니라고 한다.
* 스타준은 여유롭게 "보스에겐 마지막에 정신을 차렸다고 얘기해주마"고 말하는데, 갑자기 토미로드와 그린패치가 녹아내리듯 무너진다.
* 스타준은 뜬금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운운하기 시작했다.
- 토리코/386화 . . . . 7회 일치
* 머나먼 땅으로 갈 자신이 이런 하찮은 별에서 죽을 리 없다고 절규하는데, 토리코는 지구는 작지만 이 별의 식욕은 죠아의 예상보다 훨씬 컸던 거라고 일침한다.
* 자신은 몇 배는 강해졌다며 미도라에게 도움이 되겠냐고 묻는다.
* 미도라는 그런것 보단 "포획레벨 같은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자신의 식욕은 언제나 한계를 돌파해왔으니 제대로 따라오라고 말한다.
* 토리코와 스타준이 미도라를 구하러 가려 하자 "신의 손아귀"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기술을 시전한다.
* 아카시아는 그것까지 계산했다. 미도라가 빈틈을 보이자 하늘에서 또 하나의 손아귀를 구현, 미도라를 내리친다.
* 아카시아는 토리코를 한 번 죽인 줄 알았더니 부활하고, 강해져서 자신의 난타를 맞고도 죽지 않는 걸 보고 놀란다.
* 아카시아는 자신을 얕보고 있다고 말하며 이대로 토리코를 죽이려 한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7회 일치
후속작으로 [[토이 솔져스: 워 체스트]]가 있다. 네개의 오리지널 진영(?)과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우주의 왕자 히맨]], [[G.I. 조]]와 그와 대적하는 악의 무리 [[코브라]] 장난감 진영이 나오는 라이센스비로 얼마를 썼을까 궁금해지는 게임.
플레이어는 포탑을 건설해 적군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적군의 목표는 장난감 상자로, 장난감 상자에 20명의 적이 들어가거나 보스가 들어가면 실패한다. 반대로, 적의 모든 공세를 막아냈다면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충전기 위에 놓여있는 유닛들. 가만히 냅두면 아무것도 못 하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있다. 전작과 달리 배터리 게이지가 있어서 배터리 게이지가 다 떨어지면 자폭한다. 충전기 외의 지역에서 조종을 그만두면 10초 간의 유예기간을 준 후 자폭. 충전기 위에서 조종을 그만두면 배터리가 충전된다. 다시 충전될 때 까지는 쓸 수 없으니 주의.
날아가며 적 보병과 장갑차를 투하하는 적. 투하하는 위치는 붉은색 연막으로 표시된다. 장난감 상자를 노리지는 않지만 격추시킬수는 있기 때문에 격추시켜서 자금 확보용으로 쓸 수 있다. 적 유닛을 투하하기 전까지는 체력이 뻥튀기되어 잘 안죽는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7회 일치
[[위플래쉬]]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마일즈 텔러가 '리드 리차드/[[미스터 판타스틱]]'을, [[케이트 마라]]가 '수잔 스톰/[[인비저블 우먼]]', 크로니클에서 학생 회장이자 초능력자인 스티브로 열연했던 마이클 B. 조던이 '쟈니 스톰/[[휴먼 토치]]'를 맡으며 [[제이미 벨]][*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 역, [[설국열차(영화)]]의 에드가 역.]이'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의 역할을 맡는다. [[닥터 둠]]의 역에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코바]] 역을 맡은 바 있으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듀로탄]] 역을 맡을 예정의 배우 [[토비 캡벨]]이 맡는다.
* 마찬가지로 마블 코믹스 원작에 폭스에서 영화화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멘 실사영화 시리즈]] 세계관과 크로스오버를 얘기하는 팬들도 있는데, 사실 판타스틱 포 영화의 리부트 계획 당시 엑스맨 영화의 세계관과 병합시키고자 하는 '''크로스오버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계획 진행이 예상과 달라지면서 세계관 병합은 무리라고 판단한 20세기 폭스가 독자적인 영화로 만들고자 했는데, 제작자의 현재 입장은 "엑스맨과의 크로스 오버는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판타스틱 4는 그 자체 작품만으로 집중할 것이다. 마블이 그들만의 세계관을 합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엑스맨과 판타스틱 4 역시 그러한 방면에서 융합이 시도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 페어리 테일/483화 . . . . 7회 일치
* 만신창이가 된 엘자를 보고 제라르는 극도로 분노한다.
* 리온은 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레이는 "울은 내가 죽였으니까"라며 부정하고 울을 넘어서자고 리온을 격려한다.
* 나인하르트의 패배로 싸움은 생존자들의 승리.
* 하지만 나츠가 풀어준 브랜디쉬가 정보를 제공하는데, 사실 오거스트 외에도 스프리건12중 최강으로 불리는 자는 또 있다.
* 오거스트는 "최강의 남자"고, 또 하나 "최강의 여자도 있는 것.
* 나인하르트가 "아이린"과 엘자가 닮았다고 생각하는걸 보면 혈연관계가 추측된다.--이 만화에서 이런 적이 한두 번인가--
- 표민수 . . . . 7회 일치
|직업 = 텔레비전 드라마 연출가/제작자
|배우자 = [[전은선]](캘리그래피 작가)
'''표민수'''([[1964년]] ~ )는 [[대한민국]]의 [[연출자]]이다.
* [[1997년]] [[KBS2]] 《드라마게임 - 자매의 뜰》 (극본 : 고선희)
* [[1994년]] [[KBS2]] 《[[느낌 (드라마)|느낌]]》 (연출 : [[윤석호 (연출자)|윤석호]])
* [[2000년]] 방송기자들이 뽑은 2000년 최고의 드라마 《[[바보같은 사랑]]》
* [[2000년]] 경실련 시청자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 《[[바보같은 사랑]]》
- 퓨어킴 . . . . 7회 일치
2017년 6월 퓨어킴이 비정기적으로 강의하는 음악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8주간의 자작곡 세미나 이고 뮤직을 책으로 만든 <이고 뮤직 북>을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의 그림과 함께 출판했다.
|| Mom & Sex || [[EP]][* '''E'''xtended '''P'''lay의 약자로, 싱글과 정규앨범의 중간 정도에 자리한 앨범형태. 그냥 미니앨범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 싶다.] || Puer Tea || 2012.02.02 |||| 퓨어킴 ||||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슴사이즈를 언급했는데, "어려서는 글래머 몸매가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타고난 것을 어쩌겠느냐", "노래보다 몸매만 회자되면 당연히 속상하겠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 사이즈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미국 속옷 가게에서도 찾기 힘든 사이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는 "가슴이 좀 많이 큰데, 예쁘게 큰 게 아니라 좀 특별하게 커요.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거 보면 ‘아유, 웃기네’, ‘음, 별 거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발언들로 미뤄 보아 최소 J컵 이상은 확정이고[* 화성인 바이러스 기준으로 가장 큰 컵사이즈가 I컵녀였다. 다만 해당 인물은 이후 축소수술을 통해 풀B컵 정도로 확 줄였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사이즈 최대치를 한국 기준으로 환산한 [[초유|K~L컵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 독특한 가사센스가 있으며 자신의 가사를 드러낼수 있는 케이팝 아이돌 특히 [[레드벨벳]], [[f(x)]]의 트랙에 작사를 하는게 목표중의 하나라고 한다. IZM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프로라 . . . . 7회 일치
[[나치]]가 집권하던 1936년 당시 "Kraft durch Freude"[* 즐거움을 통한 힘. 기존의 사민당계, 공산당계 노조를 흡수하고 그 자산을 강탈하여 설립한 일종의 어용노조인 '독일노동전선' 산하의 단체로서, 노동자 복지와 레저 분야를 주로 담당하였다.]이라는 기관에 의해 건설을 시작했다. --쓸데없이 커다란걸 좋아하는 나치답게-- 20,000명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로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건설이 중단되었다. 이후 프로라는 군사 시설로 사용되었고, 전쟁 막바지에는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소련군과 동독군의 막사로 사용되었다.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 V]]에서 세계 불가사의[* 게임 상에서 모드나 에디터를 쓰지 않는 이상 1개만 존재가능]로 등장한다. 전제 이념을 채택해야만 건설할 수 있으며 비행 기술을 요구한다.(1.0.3.279 버전 멋진 신세계 DLC 기준) 정책 2개당 1의 전역 행복[* 도시의 인구수 제한을 받지않는 행복]을 제공해주며. 문화력이 강한 문명일수록(또는 직할도시 개수가 적은 문명일수록)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이 불가사의가 지어진 시점에서 최소한 10개 이상의 사회정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최소 5 이상 기대할 수 있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이거 국민 의료보험 사회정책에 + a 를 가져다 주는 성능이다.
이 거대한 휴향시설은 전부 똑같은 구조를 자랑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시설마다 특별한 개성을 찾기 어렵다. 디즈니랜드 같은 시설이 다양한 개성을 가진 어트랙션(놀이기구)를 가진 것에 비해서 많이 대조되는 부분.
또한 이런 휴향시설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생각보다 국민 동원력은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들이 전보다 더 놀고먹지 않는다면 지지율이 아주 노골적으로 떨어지고, 전보다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민주 국가보다 강한 반발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국민의 행복과 복지는 어지간한 국가보다 더 신경써야 했으므로 결국 이런 건물이 만들어지려던 것.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중독재 2권에서. 기억이 애매해가지고 좀 간략히 기술함.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7회 일치
소위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취향. 하지만 하이브리스토필리아로 진단될 정도의 나쁜 남자는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정말로 도저히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악질 흉악 범죄자일수록 하이브리스토필리아가 성행한다.
강간범, 조직폭력배, 연쇄살인범 같은 악질 흉악 범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을 뜻한다. 매우 해괴해보이는 심리지만 의외로 많은 실제 사례가 있어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드러날 때마다 사회문제가 되지만 이제는 워낙 자주 나오니 그러려니(…) 한다.
* 근대적인 연쇄살인범에 적용된 예로는 테드 번디가 있다. 테드 번디는 멀끔하게 생긴 외모, 괜찮은 스펙, 뛰어난 언변에다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그루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쇼를 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결혼을 하였다.
* 일반적으로는 전혀 인기가 없었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남성이라도,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이 사실이 보도되면 엄청난 팬레터를 받는 기묘한 일도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옥중결혼]]을 올리고, 배우자가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하이큐/214화 . . . . 7회 일치
* 그리고 우카이 코치가 "여기가 어디든 항상 똑같은 자세가 나오도록" 훈련하라는 말도 떠올린다.
* 타나카 류노스케는 점프 서브를 구사하게 된 이후 특이한 자세가 습관이 됐는데, 그 폼만은 멋지다.
* 카라스노는 딱히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플라잉[* 체육관을 포복 비슷한 동작으로 횡단하는 훈련] 한 바퀴를 자발적으로 돈다.
* 히나타는 스플릿 스탭의 숙련도는 물론 플레이를 보는 눈 자체가 월등히 밝아진다.
* 우시지마를 비롯한 시라토리자와 멤버들도 체육관에 도착. 우시지마는 한발 먼저 와서 훈련을 견학하고 있다.
* 그러자 합숙 멤버는 "그녀석은 대단하지만 그쪽(유스)에서 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 플레이가 끊겨 버리자 카게야마는 "평소 버릇대로 해버렸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 하이큐/215화 . . . . 7회 일치
* 한편 히나타는 츠키시마에게 "잠깐 같이 하자"는 의외의 제안을 듣는다.
* 치카야는 카라스노의 우승을 부러워하며 자기네 팀은 결승에서 풀세트로 깨졌다고 털어놓는다.
* 갑자기 말을 거는 사쿠사.
* 그는 왜 시라토리자와가 졌냐면서 와카토시가 몸이 안 좋기라도 했냐고 따진다.
* 카게야마가 덤덤히 "펄펄 날았다"고 답하자, 이번엔 무슨 수로 와카토시를 막았냐고 묻는다.
* 한편 시라토리자와에선 여전히 히나타가 합숙에 참여하고 있다.
* 츠키시마가 히나타를 부르는데 뜬금없이 "잠깐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한다.
- 하이큐/216화 . . . . 7회 일치
* 츠키시마는 히나타를 통해 자신을 갈고 닦고자 한다
* 츠시키마는 자율연습 시간엔 괜찮을거 아니냐며 스파이크 연습에 참여하라고 권한다.
* 츠키시마는 장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블로킹이 가장 낮은 점을 자각한다.
* 히나타는 혹시 츠키시마가 자신을 위해 연습을 제안한거 아니냐고 묻는데 단박에 부정한다.
* 주변에선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자 뒷말이 나온다.
- 하이큐/221화 . . . . 7회 일치
* 한층 강해진 다테공고는 새터인 카게야마에겐 시라토리자와보다 까다로울지 모른다는 평을 듣는다.
* 히나타가 이해하지 못하자 다시 설명하는데, 히나타는 기본적으로 "총총거리면서 그 기세로 뛴다"고 말한다.
* 스가와라 코시는 합숙에서 자극 받은걸 감안해도, 자기라면 지금쯤 쉬고 있을 거라며 얼마나 배구를 좋아하는 거냐고 말한다.
* 츠키시마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세터인 카게야마는 이 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데.
* 우카이 코치는 시라토리자와전 때 츠키시마의 활약을 예로 들며 좋은 블록은 스파이커는 물론 세터도 압박한다고 말한다.
* 따라서 지금의 다케공고는 세터 카게야마에게 있어선 시라토리자와 이상으로 까다로운 상대라는 것.
- 하이큐/227화 . . . . 7회 일치
* 종반에 들어선 아즈마네가 완전히 부활. 특유의 파워로 블록을 격파하며 자신감을 회복한다.
* 츠키시마는 자기는 히나타같은 괴물도 기계도 아니라고 짜증을 부리는데 카게야마는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선수 상태를 파악해라"는 조언을 떠올린다.
* 계속 숨으면 다음 번엔 아예 자기 옆 자리에 앉힐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 아즈마네에게 올리는 것 자체는 카게야마의 판단이었지만 히나타의 페이크는 자신의 계산에 없었던 것.
* 아즈마네는 이 플레이로 두려움을 떨쳐내고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 한규식 . . . . 7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2순위([[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1999년 ~ 2001년)
'''한규식'''(韓奎植, [[1976년]] [[9월 14일]] ~ )은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수비/주루코치이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 [[1994년]] [[제4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최우수 선수상
* {{KBO 타자|99554|한규식}}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장안초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한다민 . . . . 7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슬하 2남
* [[2008년]] [[MBC]] 일일드라마 《[[춘자네 경사났네]]》 ... 박정연 역
* [[2010년]]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 (드라마)|자이언트]]》 ... 천수연 역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한성호 . . . . 7회 일치
|배우자 = 김수일(오엔이컴퍼니 [[대표]])
|자녀 = 슬하1남
|종교 = [[개신교]]([[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61993 유재석 FNC와 전속계약, FNC 뜻은?…한성호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ref>
- 자신의 회사(구 F&C뮤직)에 소속되어 있는 FT아일랜드(이홍기), 씨엔블루(정용화)가 출연하고 있는 SBS 《[[미남이시네요]]》 7회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다. 유일하게 버즈에 이어서 아이돌밴드를 만든 FT아일랜드, 씨엔블루를 무서운 신인으로 만들어 각종 1위, 상위권 차트를 휩쓸었다.
* [[2011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KEPA)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공로패
* [[2013년]] 제27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음반]]부문 [[제작자]]상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한이서 . . . . 7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 《[[여자를 울려]]》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
- 허건엽 . . . . 7회 일치
직구 평균 구속이 140km대 후반이고, 볼넷 비율이 낮아 상대 타자의 출루를 막는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65회 [[청룡기]]에서 [[순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군 무대를 밟지 못하고 [[10월 14일]]자로 웨이버 공시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젊은 편에 속하고 1군 경험도 있기 때문에 다른 팀을 구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1월 4일 [[애들레이드 바이트]]전 10회말 4-1로 앞선 승부치기 상황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안타 2개, 볼넷 1개를 내주며 누상 주자를 모두 들여보내고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는데 세 타자를 KKK로 잡아내며 터프 세이브로 경기를 매조지었다. 시즌 3세이브째. 1월 13일 [[퍼스 히트]]전에는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의 극적인 역전승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시즌 최종 13경기에 등판해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9.17을 기록했다. 17.2이닝동안 탈삼진 19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입증했으나 무너지는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등 기복이 심했다. [* 4실점 경기 4번, 2실점 경기 2번] 다만 세이브 성공률이 100%로 세이브 찬스나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귀신같이 호투하며 경기를 날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질롱에서 가장 접전인 상황에 많이 올라온 투수였다. 참고로 2018시즌 본인의 퓨처스리그 기록과 놀랍도록 비슷한 성적을 냈다. [* 12경기 평균자책점 9.28 10.2이닝 8탈삼진. 퓨처스에서는 6실점 경기가 두 번 있었다.]
- 허남성 . . . . 7회 일치
|배우자 =
* 《[[저스트 프렌즈]]》 (2012년) - 은지 남자친구 역
*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2011년, MBC)
* 《[[도망자 플랜 B]]》 (2010년, KBS2)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7회 일치
『예기(禮記)』 곡례상제일(曲禮上第一)에서 [[공자]]의 발언으로 나온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이러한 가혹한 형벌도 사대부 계층에게 까지 미쳤는데, 공자의 제자 [[자로]]가 살해당하고 육젖이 되버린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개념은 [[법가]]에서는 비판의 대상이었는데 유가를 비판하고 [[법가]]를 내세운 [[진나라]]에서는 [[상앙]], [[이사]] 같은 재상들 역시 [[요참]] 같은 혹형에 처해졌다.
예외적으로 형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진나라]]의 [[이사]], [[한경제]] 시기의 조조 등이 저자거리에서 처해지는 혹형에 처해진 것, [[한무제]] 시기에 [[사마천]]이 [[궁형]]에 처해진 것이 그 사례이다. 이사와 조조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치욕을 주려는 뜻에서 형벌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며, 사마천은 본래 이 같은 상황에서는 자결을 해야 하지만 [[사기]]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궁형을 받아들였다.
[[조선왕조]]에서 널리 쓰인 [[사약]]은 형식상으로는 '자결'로서, 형불상대부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 호소키 카즈코 . . . . 7회 일치
2008년, 갑자기 모든 방송에서 하차. 2013년 1월 까지 활동을 하지 않았다.[[http://www.excite.co.jp/News/entertainment_g/20131115/Cyzowoman_201311_post_1299woman.html (참조)]]
방송에서 하차한 원인으로 야쿠자와의 관련설이 있다.[[http://www.ikedahayato.com/20151007/32595427.html (참조)]]
남편과 함께 한국에서 자선활동함.
하늘은 파란색,아프면 아프다,처럼 당연한 이야기를 최대한 신비롭게 이야기하고 사기치는 여자.
* 2008년, 『호소키 카즈코 마녀의 이력서(細木数子 魔女の履歴書)』라는 폭로서적이 출간. 야쿠자와의 관련설이 지적되면서 방송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https://www.amazon.co.jp/exec/obidos/asin/B00HPSTJNO/nubonba0a-22/ 참조]])
* 팬클럽 사이트는 탈퇴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있다. 주의하자. 현재 알츠하이머로 딸이 대신하여 마술과 사기를 치고 있음.[[https://twitter.com/OIympic2020/status/800311150856409088 (참조)]]
== 자녀 ==
- 호준석 . . . . 7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 [[1994년]] : [[YTN]] 보도국 기자
* [[2000년]] ~ [[2003년]] : YTN 청와대 출입기자
* [[2008년]] ~ [[2009년]] : [[한국기자협회]] [[YTN]] 지회장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성유 . . . . 7회 일치
|배우자= 임설자
|자녀= 홍다영(딸)
[[1928년]] [[10월 4일]]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학사 학위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51년 9월 [[갑종장교|육군 갑종사관]] 제10기로 육군 소위 임관하여 [[1951년]] [[대한민국 육군본부|육군본부 헌병사령부]] [[기관지]] 《[[사정보]]》(司正報) 기자·편집장을 지낸 이후, 1952년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1953년]] 국방부 군사잡지 《[[명랑]]》(明朗) [[편집장]]을 거쳐 [[1955년]] [[2월]]에 대한민국 육군 중위 예편하였으며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또한, 식도락가로도 유명해 [[1987년]]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666점]]》에 이어 [[1999년]]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을 발간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수평선에 별 지다]]》《[[비극은 있다]]》《[[정복자]]》《[[홍건적]]》 등이 있다.
[[2002년]] [[11월 24일]] 0시 11분, [[뇌출혈]]후유증으로 사망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장군의 아들》 홍성유 작가 별세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259316|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04-11-25|확인날짜=2009-05-12}}</ref>
[[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한국독립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정일권]][[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남양 홍씨 (당홍)]]
- 홍이주 . . . . 7회 일치
* 《[[그래, 가족]]》 (2017년) - 기자 역 (우정출연)
* 《[[이웃집 남자 (2010년 영화)|이웃집 남자]]》 (2010년) - 미스 김 역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보예 . . . . 7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졸업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
- 황석두 . . . . 7회 일치
|직업 = 순교자
황석두는 20세에 [[과거 제도|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났다. [[한양]]에서 그는 [[주막]]에서 묵던중 한 박식한 [[천주교]]인을 만났다. 황석두는 그에게서 [[천주교]]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고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그 [[천주교]]인에게서 몇 권의 [[천주교]] [[서적]]을 받았다. 그는 그 [[천주교]]인이 떠난 후 사흘 뒤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놀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과거 제도|과거 시험]]에 급제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말은 하늘의 시험에 합격했다는 뜻이었다. 황석두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지만, [[천주교]] 신앙을 공부하는 것을 계속하였다.
황석두는 그의 아내를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한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황석두는 3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온가족은 그의 무언증을 고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그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온가족은 애달퍼했고, 결국 황석두의 권면으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다.
황석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친척들이 그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았다. [[페롱]] [[사제|신부]]는 황석두를 [[한문학]] [[교사]]이자 [[교리]] [[교사]] 및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그는 [[사제]]들의 [[복사 (기독교)|복사직]]도 수행했다. 황석두는 그 의무들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는 마침내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의 복사가 되었다. 그는 [[주교]]들과 함께 여러 권의 [[서적]]을 [[번역]] 및 저술하였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염지은
- 황선희 . . . . 7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피자헛]]
| 드라마스페셜부문 여자 특별연기상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황은진 . . . . 7회 일치
| 배우자 = [[서승현]]
| 자녀 = 황유선(딸)
| 친척 = 최동녘(사위) <br/> [[최불암]](사돈) <br/> [[김민자]](사돈) <br/> [[최만린]](사돈) <br/> [[김소원 (배우)|김소원]](사돈)
[[경성부|일제 강점기 경성부]](지금의 [[서울특별시|대한민국 서울]]) 출생이고 [[본관|본관(관향)]]은 [[평해 황씨|평해(平海)]]이며 배우자는 [[배우|연기자]] [[서승현]]이다.
* [[1994년]] 《[[테너]] [[성악가]] 및 [[친일파|친일]] [[공산주의|공산주의자]] [[김영길 (성악가)|김영길]] [[예비역]] [[조선인민군|조선인민군 지상]][[조선인민군 육군|군]] [[준위]]의 기회주의 행보》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199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195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
- 황정미 . . . . 7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2000년]] [[SBS]] 수목 드라마스페셜 《[[여자만세 (2000년 드라마)|여자만세]]》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경상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태연 . . . . 7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필명 황태연과 황연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외국인 번역가나 대리인 없이 영문 소설을 처녀작으로 직접 집필, 퇴고, 편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현재 [[Lotus]](ISBN-10: 1980979170, ISBN-13: 978-1980979173)라는 소설 작품으로 해외 [[아마존닷컴]]에 등단하여 종이책,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판매 중이며 왕성한 활동 중인 작가는 연이어 한국 수영 이론서인 [[수영 바이블]]을 BOOKK란 출판사와 교보문고 퍼플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 컬러본과 흑백본,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하였다.
[[분류:한국 최초의 영문 소설 처녀작 등단가]][[분류:영문 소설가]][[분류:한글 소설가]][[분류:수영 이론 전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어학자]][[분류: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
- 1986년 에드먼드 우체국 총기난사 . . . . 6회 일치
패트릭 셰릴은 자신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1986년 8월 20일 아침, 그는 우편 가방에 자동권총 3정을 숨기고 직장에 나타난다. 셰릴은 관리자였던 리차드 에서 주니어(Richard Esser Jr.)를 쏴죽인 후 다른 직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로인해 14명이 사망하였다. 이후 출동한 [[SWAT]]과 [[FBI]]가 우체국을 포위하자 셰릴은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6회 일치
여름축제를 준비하는 카와모토 자매와 난적을 만난 키리야마
* 자매는 한 번 부탁해 보기로 한다.
* 나메리카와는 그의 자기를 "올곧은 장기"라고 표현하면서 끌려가 버릴 것 같다고 독백한다.
* 나메리카와는 언제나 그렇듯 대국 중 불쑥 자리를 비운다.
* 키리야마는 상대의 기묘한 행동이나 옷차림은 모두 상대를 겁주기 위한 허세라고 단정하고 어린애가 아닌 자신은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그런데 화장실에 간다던 나메리카와는 장지문 사이로 키리야마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눈치챈 키리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서 주의를 당한다.--결국 어린애네--
- AFC 회원 랭킹 . . . . 6회 일치
[[아시아축구연맹]]에 소속된 협회에서 일정기간동안 거둔 업적을 평가하여 산정한 순위자료다. AFC에서는 AFC MA Ranking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에선 보통 AFC 랭킹으로 표기하고 있다. AFC 회원 순위는 AFC에서 주관하는 각종 클럽대항전 참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말하는 회원이란 특정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축구협회를 가리키며, AFC에서는 특정한 상황이 아닌 한 1국가 1회원이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소 정치적인 문제와 역사 때문에 중국 본토와 마카오, 홍콩에 있는 축구협회는 중국이라는 하나로 보지 않고 별개로 인정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고 보자.
[[UEFA 계수]]와는 달리 국가대표팀의 성과를 클럽의 성과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AFC의 기본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다. 클럽이나 국대나 어차피 종국에는 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므로 이 둘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말하자면 "협회국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측정하여 하나의 지표로 통합"하겠다는 점에서 UEFA 계수와는 차별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대해 동아시아쪽이 서아시아보다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게,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보면 명백히 서아시아는 동아시아보다 ACL 우승횟수가 떨어진다.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ACC)이 ACL로 개편된 이후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서아시아는 2015년까지 4번 우승, 동아시아는 9번 우승이다. 누가봐도 명백히 클럽 성과가 동아시아쪽이 더 치열하고 강한데다가 2013시즌부터는 자꾸 서아시아가 우승을 못해 흥행이 저하될 우려가 보이는지 토너먼트전에서 동서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기존 방식을 결승전에서만 동서끼리 교류가 가능한 구조로 바꿔버린다. 이러다보니 2015시즌 AFC 회원 순위를 보면 1위가 대한민국인 건 그간의 성적을 미뤄 봤을 때 논란이 적을 수 있으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이 사우디, 이란, 아랍에미레이트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UEFA에서는 클럽의 성과를 측정하여 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고, 또 이로 인해 순위에 변동이 생기면 협회가 획득한 순위에 맞는 티켓을 다음 시즌에 부여함이 명료하게 적시되어 있다. 만약 잉글랜드가 뻘짓을 해서 UEFA 계수가 10위에 떨어지면 차기 시즌은 10위에 해당하는 UCL 티켓과 UL티켓을 받게 된다. 만약 리히텐슈타인이 갑자기 엄청 잘해서 UEFA 계수 1위에 올라오면 UL에만 참가가능한 대우가 UCL 4장, UL 3장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엔 별도의 의결이 필요없다.
- HelpOnEditing . . . . 6회 일치
NTX 위키에서 항목의 내용을 수정하는 방법을 확인하는 곳입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리그베다 위키와 달리 지원되는 기능이 많지 않으므로, 미리보기를 자주 눌러서 해당 문법이 지원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글자 효과 ===
글자 색상은 다음과 같이 사용합니다.
이 경우 크게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모니위키 1.2.0 이후로 대소문자를 가리지 않음)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시 : {{{#green 이 글상자는 대사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br]] 개행되지 않았습니다.}}}[[br]]{{{#orange 그러나 녹색 글씨 효과를 끝낸 직후 강제개행을 시도했기 때문에 개행이 되었습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6회 일치
세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이며, 2015 [[K리그 클래식]] 최종 11위였던 [[부산 아이파크]]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의 최종승자였던 [[수원 FC]]가 K리그 클래식 마지막 티켓을 두고 벌인 대회였다.
사상 처음으로 '''각종 기록이 난무한 대회'''였으며,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가 승강전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다지게 된 대회라는 점에서 대회종료 후 많은 이슈를 낳았다.
대회요강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과 동일하였다. 이에 따라 1차전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인 수원 FC의 홈에서, 2차전은 클래식 11위 부산의 홈에서 경기를 가졌다.
|| || || 자파(94) ||
이런 이유로 1차전에서는 수원이 점유율을 가져가는 축구를 했던 반면에, 2차전은 부산이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며 강력하게 압박하는 축구를 구사하였다. 전반만 보면 부산의 점유율은 60%에 슈팅 숫자는 4개(유효슈팅 3)였던 반면에, 수원은 점유율 40%에 슈팅 2(유효 0)뿐이었다.
1. 3회 연속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가 클래식 티켓을 거머쥠으로써 징크스를 확고히 다지게 된 점.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 . . . 6회 일치
육군 부대는 군인 POP로부터 양성된다. 해당 지역에 3,000명의 민족이 같은 POP, 그리고 부대를 훈련시키는데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한개 연대를 만들어 낼 수는 있다. 만약 재료를 구하지 못한다면 연대 훈련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전투나 보급 부족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면, 해당 사상자는 해당 연대가 나온 POP에서 보충된다. 보충이 진행되는 동안은 해당 부대의 아이콘이 노란색으로 빛난다. 만약 해당 POP의 인구수가 연대를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면 붉은색으로 빛나게 된다.
장군이나 제독의 성능은 랜덤이다. 말 그대로 가챠. 아무리 병신같은 똥별이 나오더라도 왠만하면 장군 없는 상태에서 처맞는 디버프보다 낫다. 가능한 모든 군대/함대마다 지휘관을 붙이자.
게임을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지휘관 자동 생성과 자동 임명이 체크되어있다. 군대 늘리려고 연대 대량양성하다가 아까운 지휘 점수 날려먹을 수 있으니 주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6회 일치
게임 용어들은 전부 자체적으로 번역하였다. 유로파 카페 한글 패치가 안되는데 어쩌라고.
* Daimler's Automobile(다임러의 자동차)
* Jacquard Power Loom(자콰드 역직기)
* Hussey & McCormicks Reaping machine(핫세와 맥코믹의 자동수확기)
=== Semi-Automatization(반 자동화) ===
=== Synthetic Polymers(합성고분자) ===
- 강진(가수) . . . . 6회 일치
참고로, 이 [[노래]]는 [[나훈아]][* 고향역의 그 나훈아 맞다.]가 작사/작곡한 노래이며, 원곡도 나훈아의 곡이다. '''이 곡은 [[2007년]] [[9월 2일]]에 [[뮤직뱅크]] 시청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 [[트로트]] 곡이 뮤직뱅크에서 1위를 수상한 곡은 강진의 [[땡벌]]이 유일하다.'''
사실은 [[1986년]]에 발표한 "이별의 신호등"으로 데뷔해 활동을 시작한 중견 트로트 [[가수]]로, 본격적으로 뜨게 되는 시기는 [[1994년]]이다. 이 때 발표한 "남자는 영웅과 삼각관계"(김병걸 작사, 이호섭 작곡)가 히트하여 강진은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유명 가수가 된다. 삼각관계는 이후도 강진이 직접 부르는 곡이다.
참고로, [[주말 드라마]] [[원더풀 마마]]에서 [[박보검]]이 [[노래방]]에서 강진의 "연하의 남자"를 불렀다. ~~나는 나는 연하의 남자!~~
땡벌 외에도 "화장을 지우는 여자", "삼각관계" 등 [[히트곡]]들이 꽤 많다.
부인은 1970~1980년대의 인기 그룹 "희자매" 출신의 김효선이며, [[남편]]의 [[매니저]]를 도맡아했다고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6회 일치
* 타이헤이의 주선으로 도마가의 저녁 식사에 합석, 우마루와 함께 있던 키리에도 자연스럽게 동석한다.
* 봄바는 타이헤이의 조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혼자 귀가하는건 걱정스러우니 같이 가자"라는 말을 꺼낸다.
* 하지만 키리에가 아니라 자기가 위험할거 같다는 헛소리를 해서 츳코미를 당한다.
* 오히려 키리에는 자신이 꼬맹이고 귀여운 동생이 아니라서 오빠가 같이 걷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 괴인 통카라통 . . . . 6회 일치
* 전신에 붕대를 감고, [[일본도]]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통, 통, 통카라통"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
*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통카라통이라고 말해라(トンカラトンと言え)"고 시킨다. 그대로 통카라통이라고 하면 떠나지만, 말하지 않으면 칼에 베어서 살해당한다.
* 통카라통에게 베인 자는 붕대에 전신이 감겨서 통카라통이 되어버린다. 통카라통을 만나면 반드시 통카라통이 되며 집단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통카라통이라고 말해서 살아난 아이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다. 거기에 화가 나서 일부러 통카라통을 만나러 갔는데, 통카라통을 보자 겁이 나서 먼저 통카라통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통카라통은 자신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을 했다며 화를 내고 베어버렸고, 아이는 통카라통이 되어버린다.
- 권오현(배우) . . . . 6회 일치
|배우자 = 최정실
|자녀 = 슬하 1녀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1976년 데뷔]][[분류:안동 권씨]][[분류:평창군 출신 인물]]
- 김근 (고려) . . . . 6회 일치
'''김근'''(金覲,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신라]]왕실의 후예이다. [[김부일]], [[김부필 (고려)|김부필]], [[김부식]](金富軾), [[김부의 (고려)|김부의]]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돈중]], [[김돈시]]의 할아버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경상북도]] 출신.
[[1080년]](문종 34년) [[호부]][[상서]] [[유홍]](柳洪), [[예부]][[시랑]] [[박인량]](朴寅亮) 등과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송나라]]에 갔을 때 그는 [[박인량]]과 함께 시를 지었는데, 그의 시문에 감탄한 송나라 사람들이 직접 그에게 소화집(小華集) 이라는 문집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1086년]](선종 3년) [[예부]][[시랑]]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이자위(李子威)와 함께 [[성균관]]시(成均館試)를 관장했고, 뒤에 [[국자감 (고려)|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左) 겸 좌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올랐다. 네 아들 [[김부필]]·[[김부일]]·[[김부식]]·[[김부의]] 모두가 글을 잘하고 관직에 올라 문벌을 형성하였다.
*** 손자 : [[김돈중]](金敦中, ? ~ [[1170년]], 살해당함)
*** 손자 : [[김돈시]](金敦時, ? ~ [[1170년]], 살해당함)
- 김동석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매암(梅巖)이다. 허주 [[김윤환]]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과 [[김태환(1943)|김태환]] 전 국회의원의 아버지이다.
석방 후에 고향인 선산군 장천면으로 돌아와 양조장을 경영하였다. 한편 장천금융조합장, 김천청년동맹, 금릉학원 등에 몸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송금, 비밀 잡지 근우(槿友)의 간행 등과 같은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선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육홍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우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김우동]] 후보에 밀려 낙선한 것으로 나오자 [[재검표]] 소송을 제기하였다.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뀌어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이후 오상중고교 운영에 전념하였다.
- 김동준(제국의아이들)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9인조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이자 리드보컬이자 막내다. 노래와 퍼포먼스 모두 팀 내에서 비중이 가장 크며, 무대는 물론 데뷔 때부터 방송에서 전방위적 활약을 한 제아의 에이스. 지금도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황광희]], [[임시완]], [[박형식]] 등에 비하면 활동에 비해 [[인기]]가 부족한 편.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멀쩡한 허우대와 뭐든지 자신만만해했던 모습과 달리 [[허당]]스러운 활약상을 보여줘서 [[파트너]]인 [[송지효]]에게 '그냥 [[패기]]만 넘치고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다'는 의미에서 '''김패기'''라는 별명을 있었다.
[[분류:제국의아이들]][[분류:1992년 출생]][[분류:태백시 출신 인물]][[분류:아이돌 막내]][[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대 100 역대 1인]]
- 김만제 . . . . 6회 일치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역시 서강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던 전임 [[남덕우]], 후임 [[이승윤(정치인)|이승윤]] 경제 부총리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종인]] 등과 더불어 서강 학파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82년까지 재임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장 퇴임 후 잠시 [[한미은행]]장을 지내다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였다. 그의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은 소위 3저(低)[* 낮은 물가, 금리, 석유가격을 뜻한다.]로 대표되는 경제 호황기로 수출 증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국내외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후임 [[노태우]] 정부의 출범 후, 이 때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이 문제가 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가안전기획부]]의 흑색선전 공작에 대한 역풍으로 [[민주당(1991년)|민주당]]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포스코|포항종합제철]]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는 역대 포스코 회장 중 유일한 외부인사 영입 사례이다.[[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72|#]]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철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 [[민주자유당]] || - || 낙선 || ||
- 김미경(강사) . . . . 6회 일치
>꿈이라고 말해놓고 건드리지 않으면 계속 꿈이야. 꿈이라고 말해놓고 바로 실행하면 꿈은 뭐다? 더 이상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여러분, '꿈'자를 가슴 속에 오래 두지 마십시오. 바로 현실로 전환시켜 버리세요.
20여 년 강연 경력을 가진 스타 강사. 꿈과 연애, 직장 생활, 경제 문제 등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많은 청중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양장점을 하는 어머니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부모에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음대를 나와서 광고 음악 등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월급을 타는게 미안했다고 한다. 후에 대출금을 받아 피아노 학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였고 여기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29살 때부터 강연을 하고 싶어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을 7년 동안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18년]] [[9월]] 기준 구독자수 33만명 이상을 달성할 정도로 흥했다.
* 파랑새 특강 3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2012)
- 김봉근(배우) . . . . 6회 일치
* 《[[목욕탕집 남자들]]》([[KBS]])
* 《[[여명의 눈동자]]》([[문화방송|MBC]])
* 《[[제3공화국 (드라마)|제3공화국]]》([[MBC]])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이만섭]] 역
* 《[[무자식 상팔자]]》([[JTBC]])
* 《[[집행자]]》
- 김정우(1990) . . . . 6회 일치
|| '''학력''' ||<(> [[부천대학]] 광고디자인과(중퇴) ||
그러나 알고보면 남녀공학의 남자 메인 보컬. 데뷔 초에는 일부러 적은 파트를 맡았다가 --짬밥을 먹어가면서-- 활동을 오래할수록 파트를 늘려가면서 차차 뛰어난 가창실력을 드러내려는 케이스로 보인다. [[f(x)]]의 [[루나(f(x))|루나]]나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지숙]]이 그 예. --그런데 그룹자체가 이래서...-- 현재로서는 노래실력을 라디오에서 가끔 솔로곡을 부르는 것으로밖에 들을 수 없다.
2016년 9월 20일, 목동의 한 미용실을 방문하여 연기자 활동을 준비중이라는 근황을 알렸다.[[http://naver.me/xlZKXZJN|#]]
이후 [[믹스나인]]의 예고편에 포착되었고, 2017년 10월 19일 기획사투어 사진이 공개되며 [[마루기획]] 소속으로 참가했지만[[https://www.instagram.com/p/BabcyCZHroU/|#]] 1차 합격자에 들지 못했다.
* What U 활동 당시 일명 참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본인은 정말로 방송 대기용 식단으로 받는 참치김밥이 싫증나는 심정에 일을 벌였을지 모르나 [[동원참치]]로부터 참치튜브를 선물받고, 결과적으로는 정말 참치왕자가 되어버렸다..[[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36624|#1]] [[http://www.scoopnest.com/kr/user/topstarnews/616167750969479168|#2]]
- 김충섭 . . . . 6회 일치
[[분류:1954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공직을 퇴직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김천시장에 출마하게된다. 김천시장직은 박보생 시장이 3선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할 수 없었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TK지역 여당인 [[자유한국당]] 공천을 바라며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공천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등 여러 문제로 공천 잡음 들이 생겨나게된다. 이러한 문제 들로 인해 이에 불복한 [[최대원|시장 후보 중 한명]]은 아예 탈당하고 체급을 올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 공천 문제로 분열된 자유한국당은 원래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더불어 민주당|친여 세력]]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며 진보층 세력까지 흡수한 김충섭 후보에게 시장직을 내주고 [[이철우(1955)|전직 의원]]이 경북도지사 후보로 영전함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격인 [[송언석]] 후보는 최대원 후보에게 1%정도 차이로 초박빙 승부를 벌이는 모습을 보이며 국회의원직도 겨우 당선되는 등 옆동네인 구미와 함께 자유한국당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6회 일치
* 자격 시험은 매년 6월과 9월에 3곳으로 나눠져 일시에 치뤄진다. 따라서 같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각기 다른 시험장에 배치되는 것.
* 결국 타교학생들과 자격을 놓고 다퉈야 하는 상황.
* 하지만 우라라카는 자신도 모르게 미도리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 아이자와는 학생들을 격려하며 "임시 면허를 따면 너희들은 달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병아라, 세미 프로로 부화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 아이자와는 그를 잘 알고 있는데, 그는 한때 웅영고의 유망주였던 "요아라시 이나사"
* 작년 추천 입시에서 톱의 성적으로 거두고도 입학을 사퇴했던 뜻모를 남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6회 일치
* 미도리야와 마찬가지로 혼자 떨어져 버린 우라라카 오챠코.
* 또다시 얀데레스러운 여자와 엮여버린 미도리야.
* 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선 "자신이 무사해야 한다는 것"
* 미도리야는 그녀에게 "사걸고교 학생인가요"라고 묻는다. 그는 우라라카가 개성 훈련으로 "짧은 시간이라면 자기 자신에게 능력을 써도 패널티가 없도록" 성장한걸 알기 때문.
* 정체가 탄로나자 우라라카의 모습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6회 일치
* [[올 포 원]]은 "창자를 뿌리며 다가오던 모습이 꿈에 나온다"며 두세 방 더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게 좋겠다며 거리를 벌린다.
* 엔데버는 만신창이가 된 올마이트를 보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 나나는 토시노리가 "맛이 갔다"고 표현하면서 "범죄가 줄지 않는건 사람들이 마음을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고 자신이 '기둥'이 되겠다"고 말했다며 웃는다.
* 그리고 확실하게 올마이트를 죽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최대 최고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합성해 일격을 가하겠다고 선언한다.
* 올 포 원은 양도자가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라는 것도 알고 있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보고 젊은 시절 자신을 닮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비슷했다.
- 나폴레옹 빠 . . . . 6회 일치
나폴레옹은 일개 장교의 몸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단신으로 제국을 건설하여, 유럽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업적에 고무되어 나폴레옹을 추종하고, 그 정치적 행동을 따라하려 하는 인물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그런데 나폴레옹 빠들은 대개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두더라도, 나중에는 [[패가망신]](…) 했다. 애초에 나폴레옹 자신도 패가망신 했는데, 나폴레옹 빠들은 왠지 자기는 똑같은 짓을 해도 늙어죽도록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한 [[근자감]]도 나폴레옹과 비슷하다.
* [[박정희]] - [[조갑제]]의 박정희 평전 등의 자료에 따르면, 대구사범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폴레옹 전기를 애독했다고 한다.
* [[보카사 1세]]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재자]]. [[쿠데타]]로 집권하여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다. 국가예산의 2배를 들여서 나폴레옹 1세를 흉내낸 [[대관식]]을 벌이거나, 옥좌는 나폴레옹 독수리를 본떠서 프랑스에서 제작한 2톤 짜리 거대 청동옥좌를 사용했다.
- 남창희(연예인)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방송인. 비공채 출신 개그맨. 전북 진안고 3학년 재학 당시 [[기쁜 우리 토요일]]의 학생이 선생님이 되고 스타들이 학생이 되어 수업을 받는 코너 '스타스쿨' 에 출연하면서 방송에 데뷔하였다. 학생답지 않은 노련한 화술로 단번에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고 재출연 요청까지 빗발쳐서 한번 더 출연했을 정도. 어찌보면 제대로 연예인길을 걷고 있는 지금보다 이때가 더 떴었다(...)[* 진안고 연극부 출신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남창희가 방송에 데뷔한 시점과 비슷한 때 데뷔한 고교생 스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판유걸]]'''이다. 두 사람 다 1982년생 동갑내기이지만 판유걸은 1999년에 데뷔했고 남창희는 2000년에 데뷔했다. [[안습]]한 것은 판유걸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남창희가 뜨고 남창희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판유걸이 뜬다는 점. 다만 데뷔 당시 더 뜬 사람은 판유걸이었고 대중은 남창희를 판유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유재석]]이 국민MC가 되기전부터 심복으로 활동하며 [[유라인]]에 근속한 초창기 멤버 중 한명이다.
분명 웃기는 재주는 탁월하지만 도통 뜨지를 못하는 탓에 토크에 나가면 만년 조세호 서포터 역할이다.라디오스타에서 조세호가 밝히길 이젠 본인도 그게 자신에게 맞는 옷같다며 조세호가 포지션을 한번 바꿔보자 했는데도 거절했다.
* [[미운 우리 새끼]] - 게스트. 윤정수만큼은 아니지만 박수홍편에서 제법 자주 나온다.
* [[남자 태어나다]] - 양아치3 役
* [[주글래 살래]] - 피아자 役
- 니트로글리세린 . . . . 6회 일치
처음 발명한 사람은 폭발 사고를 당했고, 산업화를 시도했던 [[알프레드 노벨]]은 이 물건 위험하다는 소리가 돌아서 어디에도 공장을 세울 수 없어서 [[배]] 위에다가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다는걸 알리려고 니트로글리세린에 뜨거운 쇠를 담그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동생이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에서 날아가는 변을 당했다(…). 결국 연구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다시 돈방석에 올랐다.
대중문화에서는 묘하게 자주 테러범이나 악당이 사용하는 폭약으로 나온다. 사실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하지만 너무 민감해서 사용하기 불편한 화약일 뿐이고, 결국 폭발력 자체는 다이너마이트하고 별 차이도 없으니 생 니트로글리세린을 그대로 쓰는 것은 '''그냥 쓰기 불편한 화약'''(…)을 그대로 쓰는 것 뿐이지만 그 화끈함에 미디어에서 이상하게 이런데서 자주 주목받는 존재.
화약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쓰기 편한 다이너마이트를 내버려두고 생 니트로글리세린을 굳이 써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작업하다가 자기 자신을 날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 단신부임 . . . . 6회 일치
[[일본]]에서 가족이 있는 노동자가 기업의 전근 명령 등을 받아, 단신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근무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가족이 있는 노동자(주로 유부남)가 기업의 전근 명령을 받고, 본인 혼자만 임지에 부임하는 취업, 생활 형태이다. 가족이 모두 이동하지 않는 이유로는 아이의 생활(주로 교육)과 주택 보유 등 경제적 문제, 가족의 질병, 출산 같은 이유가 있다.
이와는 달리 배우자의 전근에 따라서 가족이 모두 [[이사]]를 반복하는 것을 [[전근족]]이라고 한다.
단신부임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별거 수당이나 귀가 교통비 같은 경제적 원조를 해주는 회사도 있다. 1984년에 단신 부임으로 남겨진 처자가 가족동반자살한 사건이 있었으며, 1985년에는 구 국철 간부가 종교적 이유로 단신 부임 명령을 거부하고 퇴직하는 사건이 있어, 단신부임의 문제점이 일본 사회에서 널리 주목받았다.
- 데드 스페이스 . . . . 6회 일치
'''Dead Space'''. [[미국]]의 [[EA 레드우드 쇼어즈]]에서 제작하고 [[일렉트로닉 아츠|EA]]에서 유통한 [[SF]] [[TPS]]. 정체불명의 상황으로 생지옥이 된 우주선 [[USG 이시무라]]를 배경으로 애인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에 자원한 엔지니어 [[아이작 클라크]]의 분투를 다루고 있다.
탄약이 다 떨어졌을 때 저항수단 A. 기물 파손 용도로만 쓰고 그냥 탄약 관리를 잘 하자.
탄약이 다 떨어졌을 때 저항수단 B. 상자 부수는 용도로만 쓰고 그냥 탄약 관리를 잘 하자.
점프할 곳을 조준하고 있을 때 잔탄 표시기 테두리가 붉어진다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가능한 곳을 통해 우회하자.
제일 처음 보게 될 네크로모프. 팔을 만세 자세로 치켜올리고 있고 손 대신 칼날이 나 있다. 팔, 다리, 머리를 절단할 수 있다.
- 도균 . . . . 6회 일치
* 《[[상두야, 학교가자]]》 (2003년, KBS2)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6회 일치
[[잉글랜드]]의 군인, 탐험가, 지질학자. 1896년에 태어나 1990년 사망하였다.
1921년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후 또다시 군대에 입대하였다. [[카이로]]에 배치된 배그놀드는 리비아 사막을 최초로 횡단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여러 탐험을 하다가 1935년에 퇴역하게 된다.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와 자신이 사막을 탐사하면서 얻은 경험을 담은 《리비아의 사막: 죽은 세상에서의 여행》[* Libyan Sands: Travel in a Dead World.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을 집필한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배그놀드는 다시 현역이 된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LRDG|장거리 사막 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한다. LRDG는 기존의 자석을 이용한 [[나침반]]이 대원들이 타고다니는 트럭 등에 교란될 것을 우려해 태양을 이용한 나침반을 사용했는데, 이 나침반 또한 배그놀드가 설계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 도중이었던 1941년에도 또다른 책을 펴내었다. 모래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담은 《바람에 부는 모래와 사막 사구의 물리학》[* The Physics of Blown Sand and Desert Dunes.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이 그것이었다.
- 렉스 루터 . . . . 6회 일치
엄청난 [[부자]]이며 [[브루스 웨인]]과 더불어 DC의 자본가 캐릭터 중 한명. 여기에 뛰어난 두뇌를 지녀서 높은 지략을 구사하거나 고급 기술력을 발휘한다. 두뇌파 캐릭터이나 뒤에서 머리만 굴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 슈트를 착용해 슈퍼맨과 정면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다 무너진 고담시를 재건하고, 미국 대통령도 되본 적이 있다. 이만한 인물이다보니 빌런 세력이 만들어지면 매번 높은 자리에 있다.
슈퍼맨의 주적 답게 슈퍼맨 등장 매체에도 매우 자주 등장.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슈퍼맨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슈퍼맨의 빌런은 렉스 루터라는 점에서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슈퍼맨 자체가 오랜 역사의 캐릭터이기에 무수한 슈퍼 빌런 중에서도 상당한 역사를 지닌 캐릭터.
비자로, 메탈로 등 슈퍼맨계 빌런들과도 안면이 있다.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6회 일치
| 배우자 =
* [[2008년]] 80대 1 경쟁에서 뚫고 최연소 [[나이]] 19세에 [[레이싱 모델]]로 발탁되어 데뷔했다.<ref>{{뉴스 인용|제목=게임하마, 레이싱매니저 모델로 류지혜 선정|url=http://game.donga.com/55253/|저자=김한준|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1-01-31|확인날짜=2012-06-02}}</ref>
* 2016년 영상기자재전 코리아프로덕츠관 포즈모델
* 2011년 서울모터쇼 현대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16년 CTCC 기아(중국)자동차 레이싱팀 전속모델
* [[2011년]] [[XTM]] 남자공감 랭크쇼 M16 진행
- 리얼충 . . . . 6회 일치
「리얼(현실)의 생활에 충실한 사람」의 약자. 읽는 법은 「리아쥬우(リアじゅう)」.
약 2007년 무렵 [[2채널]]의 대학생활판에서 발생하였다. 일본에서는 [[휴대폰]]으로 인터넷 접속이 보급되면서, 현실 생활에 충실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오타쿠]] 위주로 돌아갔으며 채팅이나 게시판 등의 서비스에 참가하는 사람은 현실 생활이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새롭게 침입해오는 '현실 생활에 충실한 인터넷 이용자'를 질투하고, 자신들을 풍자 [[자학]]하는 뜻을 담은 호칭으로 리얼충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 참고자료 ==
- 마기/301화 . . . . 6회 일치
* 황제는 신드바드의 덕으로 그 자리에 있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테니 2주만 기다리라고 한다
* 기자들이 인터뷰를 신청하는데 거기서 "전송마법진을 도입하면 물자와 인원의 이동에 제한이 사라질 것이며 더욱 풍족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한다.
* 교섭이 성사된 분위기 속에 황제국으로 돌아온 알리바바는 무엇보다 큰 결실은 연홍옥에게 "무엇보다 큰 결실은 자기 나라를 자기 손으로 지켜냈다는 자신감"이라며 격려한다
- 마기/308화 . . . . 6회 일치
[[마기]] 308번째 밤. '''수호자'''
* 다른 일행들은 이제 "통신기"[* tv 비슷한 수정구]의 전파가 잡힌다며 잠시 쉬자고 한다.
* 아르바는 알라딘을 받아간다며 왜 자신을 가로막는지 묻는다.
* 유난은 자신은 이 협곡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에 유난은 "나는 인형이 아니고 나 자신의 의지로 신드바드를 골랐다. 그러니까 너에겐 안 져."라며 전의를 불사른다.
- 만쥬 무섭다 . . . . 6회 일치
마을의 젊은이들이 서로 무서워하는게 무엇인가 이야기 했다. 귀신, 뱀, 거미 같은 것이 나오는 가운데, 어떤 남자가 [[만쥬]]가 무섭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그 남자를 놀려주려고 만쥬를 가져다 준다. 그러자 남자는 "아이고 무섭다. 이렇게 무서운건 얼른 먹어버려야지."하면서 만쥬를 먹어버린다.
젊은이들이 화가 나서 "네가 정말로 무서워하는건 뭐냐?"라고 추궁하자, 남자는 "지금은 따듯한 차가 무섭군"이라고 대답한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6회 일치
슬러그를 돌격시킨뒤 내려 슬러그를 자폭시키는 공격인 "슬러그 어택"을 사용할 수 있다. 1~3 까지의 게임에서는 슬러그 어택 입력키가 공격+점프라서 아까운 슬러그를 갈아먹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메탈슬러그 세컨드 미션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김릿"은 암호명이다. 모덴군이 외계인들과 접선한다는 정보를 획득해 사령부에 지원을 요청, 거부당한다. 그러자 단독으로 모덴군 기지를 공격한다.
메탈슬러그 어드밴스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펠그린 팔콘즈"에 지원한 훈련병. 영어 사이트에서는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목표물에 접근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암살자라고 한다.
메탈슬러그 시리즈에 자주 나오는 반란군인 모덴군의 두목.
- 몬스리 . . . . 6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행정국 차장인 28살의 여성. [[레프카]]의 행동대장이자 부관으로, 항상 최전선에 서는 우수한 지휘관이자 여전사. 두뇌가 명석하고 냉정 침착한 성격으로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 추적과 하이하버 급습 같은 중요한 작전의 지휘를 맡았다.
첫등장 시기에는 악역이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를 잡아가기 위해 홀로 남은 섬으로 왔으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코난의 할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이 라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면서 충돌하게 된다. 이 시기 몬스리에게 코난은 적이었고, 코난에게도 아주 고의는 아니었으나 뭐가 됐건 할아버지의 목숨을 빼았은 원수다보니 처음에는 원한도 있었던 듯 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몇번이고 인더스트리아에게 물러서지 않으면서 라나를 구해내는 그 모습에 경탄을 느끼나 자기 일은 계속 이행했다. 그러던 중, 하이하버에서 일에 마음이 흐들리게 되었다.
시기는 아직 그녀가 어렸던 시절에 부모님, 애완견 무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거대한 비행체 다수가 지나가는데 이후 기절해있다가 깨어나니 옆에 있었던 것은 무크 뿐이고, 눈앞에는 대지의 균열 등 참혹한 광경 뿐이었다. 이어서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바다의 장벽을 보고는 무크와 함께 피하려 하나 이미 무크는.. 결국 해일에 휩싸이고, 이후 바다에서 피난선에 발견되게 된다.
회상이 끝나고, 이때의 모습은 그전까지의 냉혹함과 다른 모습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코난이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서로 잠시 침묵하다 코난에게 라나를 구했는지 묻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도 봐주지는 않겠다며 권총을 빼들며, 코난은 도주. 그녀의 총알은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지만 이후 나타난 부하들이 코난을 추적하려 하자 소용없다는 말을 남기고 그냥 가버리는 것을 보면 일부러 코난을 놔준 듯도 하다. 그후 하이하버에 들이닥친 해일 탓에 잡히게 되는데 코난에게 라오 박사 구출에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진심어린 부탁에 당황한다.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6회 일치
무직, 특기, 저축 없이 헌신적인 체질의 유감스러운 여자. 크리스마스에 30줄에 돌입했다.
쿠로자와 아유무의 형. 청년 실업가.
쿠로자와 아유무가 마음을 품고 있던 상대, 쿠로자와 하지메와 결혼하였다.
쿠로자와의 예전 애인. 기가 센 30대 여자.
- 바키도/110화 . . . . 6회 일치
* 그러자 도쿠가와는 "모토베 이조 말고는, 이란 거냐"며 비꼰다.
* "그 시대에게 배운 자로서, 그 시대를 좇는 자로서, 그 시대에서 이어지는 자로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대치는 피할 수 없는 책무"라고 답한다.
* 빌딩이 엄청나게 크다고하면서도, 그저 세로로 클 뿐이라서 네 모서리의 기둥을 베어 버리면 자기 무게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해 버릴 거라고 짐작한다.
* 가이아는 허세라고 생각하냐 눈치채고 있었다는 말이냐고 되묻는데, 그러자 무사시는 "기척을 숨기지 않았으니 당연하다"고 답해 버린다.
- 바키도/133화 . . . . 6회 일치
* 무사시는 깨어나 패배를 인정하는데 모토베는 이것은 "생환"을 전제로한 "연습시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평한다.
* 그 자신은 그 연습에 어울려 승리를 따낸 거라며, "그 이후"를 해보겠냐고 하는데.
* 무사시는 박수 소리에 정신이 든다. 깨어보니 모토베는 홀드를 걸었던 그 자세 그대로, 마치 정좌한 것처럼 기다리고 있다. 무사시는 마주 앉으며 "졌다"고 시인한다.
정작 승자인 모토베의 의견은 다르다. 그렇게되기까지 "몇 번이나 베어졌던가"라고 씁쓸하게 술회한다. 무사시가 한마 유지로와 겨루던 때부터, 그는 몇 번이나 무사시의 무검에 베어졌던 바였다. 무사시는 그런건 그저 "통보"일 뿐이라며 실제 베는 것관 다르다고 단언한다.
* 모토베가 이번엔 "그럼 손대중 한걸 말한 참이냐"고 말한다. 자신이 적일 수는 있어도 "강적"이진 않았다고 말이다. 실제로 무사시의 검은 모토베의 방어구를 아득히 능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게다가 피클에게 한 것처럼 "귀퉁이"를 베어내는 방법도 쓸 수 있었다. 그는 일부러 손대중을 하며 상대의 숨통을 끊지 않은 것이다. 대답이 없는 무사시에게 모토베가 "다 들켰다"고 지적한다.
* 모토베는 무사시의 오륜서에 나오는 "천일의 수행을 단, 만일의 수행을 련이라 한다"는 문구를 인용한다. 무사시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린다. 모토베는 그 인용대로 무사시는 언제나 단련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지금 이 시합, 아니 "연습시합" 중에도 줄곧. 이 승부는 어디까지나 "생환"을 전제로 했던 것. 결코 목숨을 건 진검승부가 아니었던 셈이다. 모토베는 그 "단련"에 편승해 간신히 이긴 거라고, 자학적이기까지 한 발언을 한다.
- 바키도/139화 . . . . 6회 일치
* 경찰들은 총까지 동원하지만 무사시를 막지 못하고 현장책임자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움직이면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 저택을 나서려 드는 [[미야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 [[도쿠가와 미츠나리]]가 그를 붙든다. 그는 이 문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지만 문 밖은 "힘"의 바깥이며 자신의 권력이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 무사시는 그런 도쿠가와를 "자상하다"고 표현한다. 도쿠가와는 무사시는 문 밖에선 살 수 없다고 거듭 저택 안으로 돌아가길 부탁한다. 그 설득 때문인지 무사시는 발걸음을 돌리고 도쿠가와도 한숨 돌린다. 하지만 저택을 간다고 생각했던 무사시는 도쿠가와 앞에서 발길을 멈추더니 그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 현장 책임자인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무사시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도 무사시의 기백을 느낀 것인지 오랜 세월 형사를 했지만 이런 "거물"은 처음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도 얼굴색하나 바꾸지 않고 무사시 앞에서 겁을 먹지도 않는다.
* 오오츠카가 신호하자 무장 경찰들이 포획대형으로 나선다. 마치 맹수를 생포하려는 듯하다. "원거리"도 준비했다며 오오츠카가 경고한다. 칼을 뽑으면 쏜다, 하지만 무사시는 비웃을 뿐이다.
* 전광석화같은 움직임. 무사시가 한 번 휘두르자 진압장비가 우수수 잘려나간다.
- 바키도/141화 . . . . 6회 일치
* 무사시는 그 힘만큼이나 '고고'하지만 고독한 존재. 특히 현대 사회에 갑자기 던져진 그의 고독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
* 무사시는 다리 밑 어딘가에서 혼자 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는 그를 구속하기 위해 다시 나타난다.
아나운서는 그를 "무사시를 칭하는 자"라며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시한다.
모토베는 병석에서 "우리는 모두와 이어져 있다"는 말을 했다. 현대인은 모두 누군가와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사시는 어떨까? 바키는 이제가 돼서의 그의 지적이 얼마나 타당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사시의 고독".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쥔다.
* 바키를 포함한 현세의 투사들은 무사시가 자아내는 아우라, 그 참된 무사도와 차원이 다른 전력에만 눈길을 줬을 뿐이었다. 그탓에 그가 가진 '''고고한 고독'''에 대해선 주목하지 못했다.
* 그때 [[오오츠카 헤이베]] 경보부가 나타난다. 무사시에게 당한 눈에 안대를 찼다. 무사시는 절친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자네인가"라며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오오츠카의 표정은 차갑다.
- 박경호 (1949년) . . . . 6회 일치
{{공직자 정보
* 한국자유총연맹 달성군지부장
== 참고 자료 ==
|전임자 = [[양시영 (1944년)|양시영]]
|후임자 = [[이종진 (1950년)|이종진]]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부남 (1931년) . . . . 6회 일치
* [[경북고등여자보통학교]] 졸업(현 [[경북여자고등학교]])
** 이복 고모 : 박정자(朴政子<ref>"박중양씨 입건 '이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 동아일보 1957년 09월 15일자 3면, 사회면</ref>, [[1936년]] - ?)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내과 의사]][[분류:소아청소년과 의사]][[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중양]]
- 박술희 . . . . 6회 일치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태조|태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상]](朴堤上)과 [[백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신라박씨선원세보]]에 의하면 그는 [[눌지왕]]시대의 문신 [[박제상]]과 [[백결 선생]]의 후손이라 한다. 박제상의 아들 박효원의 후손인데, 박효원이 아들이 없어 삼촌 박지상의 아들 충혼의 아들 등원을 양자로 삼았고, 그로부터 세계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대승 박득의이고 할아버지는 박기원이다.
혜성(현재의 [[당진시|당진]])의 호족 출신으로 18세 때 [[궁예]]의 호위병이 되고, 뒤에 ([[고려 태조|태조]])의 휘하로 들어와 그를 섬겨 많은 공을 세워 두터운 신임을 얻어 대광(大匡)이 되었다. [[고려 혜종|혜종]]을 정윤(왕태자)로 책봉할 때, [[장화왕후]]가 [[왕건]]의 의중을 박술희에게 전달하게 하여 [[왕무]]가 정윤이 되었으므로, 박술희가 [[왕무]]의 후견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35년]]에는 [[견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보이는 나주 탈환 작전에 [[홍유]]와 더불어 지원하였으나 백성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왕건]]은 그들 대신 [[유금필]]을 파견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태조]]가 사망하기 직전에 [[고려 태조|태조]]로부터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부탁받고,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받았으며,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려 혜종|혜종]]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고려 태조|태조]]가 아니면 유지되기 힘들었던 [[고려]] 초기의 불안한 정치 상황은 박술희에게는 불운이었다.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박술희는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그를 지지하는 [[서경 (고려)|서경]] 세력에 의해 [[강화군|강화]] 갑곶으로 귀양을 가게 되어 얼마 후 조정의 밀명을 받은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 박승호(정치인) . . . . 6회 일치
|| '''소속 정당''' ||<(> [[무소속|{{{#808080 '''무소속'''}}}]][*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신청하였다.] ||
용인대학교 졸업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기 공채로 입사하여 [[노태우]] 조직위원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관선 [[봉화군]]수를 지냈다. 이후 내무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경상북도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경상북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경선에서 현직 도지사인 [[김관용]]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때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개칭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7528.html|#]]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김정재]]에 밀렸다.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정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바른정당에 합류하여 2017년 3월 [[바른정당]]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당협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다시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신청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박정철(배우) . . . . 6회 일치
* 1998년 KBS2 [[킬리만자로의 표범(드라마)|킬리만자로의 표범]]
* 2008년 SBS 물병자리 - 김민우
* 2008년 MBC [[내 여자]] - 장태성
* 2014년 KBS2 [[천상여자]] - 장태정
* 2008년 [[신기전(영화)|신기전]] - 세자
- 박종윤 (1993년) . . . . 6회 일치
대구고 시절에 타자들을 상대로 작은 키지만, 좋은 피칭을 보였다.
2015년까지 단 11경기에만 등판하여 10이닝을 투구했다. 2016년 6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웨이버 공시된 [[로버트 코엘로]]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깜짝 카드이자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했다. 경기에서 2이닝 동안 1실점을 하였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방이설화 . . . . 6회 일치
신라시대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 방이는 가난하여 구걸을 했지만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종자를 구걸했는데, 동생은 성격이 심술궃어서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방이는 그걸 모르고 누에와 씨앗을 열심히 가꿨는데, 누에알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난 누에 한 마리가 소처럼 커졌으며, 질투가 난 동생은 누에를 죽였는데 사방에서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만들어줘서 방이은 큰 부자가 됐다.
종자에서 이삭이 하나만 났는데, 새 한 마리가 이삭을 물고 달아나서 방이가 새를 쫓아 산 속에 들어갔다. 거기서 방이는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금방망이를 꺼내서 돌을 두드려 바라는 대로 음식을 꺼내는걸 보게 된다. 방이는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놓고 간 금방망이를 주워가서 돌아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된다.
- 백결 선생 . . . . 6회 일치
'''백결'''(百結, [[414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1971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ref> ~ ?) 또는 '''백결 선생'''(百結 先生)은 [[신라]] 전기의 [[거문고]] 명수이다.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영해 박씨 족보》에 따르면 [[눌지 마립간]]대의 문신 [[박제상]]의 아들이라고 한다. 또한 그의 형 또는 동생인 박효원(朴孝元)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왕건의 측근인 [[박술희]]의 15대 선조가 된다. 다른 이름은 '''문량'''(文良)이다.
《[[삼국사기]]》에는 가문의 이력을 알수가 없다고 나와 있으나 《[[부도지]]》,《영해 박씨 족보》 등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박문량'''(朴文良)이며, 414년(실성마립간 13)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제상]]의 아들이며, [[자비왕]] 때 [[경주시|금성]]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 별다른 기록이 나와있지 않으며, 몹시 가난하여 옷을 백 군데나 끼워 입었기 때문에 백결 선생(百結 先生)이라 불리었다. 영계기를 존경해 거믐고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자 했다고 한다. [[섣달그믐날]] 아내가 이웃집 떡방아 소리를 부러워하자, 떡방아 대신에 아내에게 들려준 떡방아 소리인 〈대악〉(碓樂)이 유명했다고 한다.
** 매제 : [[미사흔]], [[신라]] [[내물 이사금|내물왕]]의 셋째 왕자, [[눌지 마립간]]의 동생
== 참고 자료 ==
- 베스타 . . . . 6회 일치
상위 여사제였던 그녀는 새로 들어온 여사제에게 성화를 돌보도록 맡겼으나, 새 여사제는 그만 불길을 꺼뜨리고 말았다. 사제들은 아이밀리아가 정절을 잃을 행동을 했는지 조사하게 되었는데, 아이밀리아는 제단에 손을 얹고 베스타 여신에게 자신이 30년 동안 성스러운 의무를 다했으니 기적을 일으켜 자신의 정절을 인정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의복의 일부를 찢어서 식은 재에 집어던지자 커다란 불길이 솟아났다.
아이밀리아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의심을 받았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겠다고 한 다음, [[티베르 강]]까지 걸어가서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한 다음, [[체]]로 물을 떠서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고 여신의 옥좌까지 가지고 갔다. 혹은 로마 광장까지 가지고 갔다.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부녀자 . . . . 6회 일치
주로 만화 · 애니메이션 등에서 미소년끼리의 연애를 애호하는 여자를 뜻한다. 이러한 취미를 보이즈 러브 (BL), 야오이(801) 라고도 부른다. 의미가 확장되어 BL 야오이 취미만이 아니라 여성 오타쿠 전반에서 쓰이기도 한다.
「 부녀자(腐女子) 」라는 명칭은 「이런 취미로 흥분하고 있는 우리들은 썩어있다 」고 당사자들이 「부녀자(婦女子)」의 부(婦 아내 부)를 부(腐 썩을 부)를 번경하여 자학적으로 자칭한 것이 시작이다.
- 북두삼형제 . . . . 6회 일치
[[류우켄]]의 제자이자 양자로서, 주인공 [[켄시로]]와 그 형제들. [[북두신권]]을 쓰며 북두신권의 전승자 후보로 올랐던 [[토키(북두의 권)|토키]]와 [[라오우]]를 뜻하는 말이다. 분명히 또 다른 형제로서 '''[[쟈기]]가 있는데 무시당한다.'''
원작 만화에서 사용되던 표현으로서, [[사우저]] 전에서 '''쟈기의 존재가 잊혀지고'''(…) 켄시로, 토키, 라오우를 묶어서 '북두삼형제'라고 칭하게 된 것이 유래이다. [[수라의 나라]] 편에서 켄시로가 북두종가의 혈통, 토키와 라오우가 북두분가의 혈통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세 사람은 사형제일 뿐만 아니라 혈연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나, 이미 존재 자체가 망각되어 있던 '''쟈기는 무시당했다'''.
켄시로에게는 [[효우]]라는 친형이, 라오우와 토키에게는 [[여동생]] [[사야카]]와 형 [[카이오우]]가 있지만 이들은 류우켄의 제자가 아니므로 북두삼형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 북유럽 신화 . . . . 6회 일치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 민족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게르만 전통 종교가 [[악마]] 숭배 등으로 몰려서 박해를 받자 점차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뒤에는 언어, 문화적으로 흔적만 남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근대 [[민족주의]]가 발흥하자, [[독일]], [[스웨덴]] 등의 게르만 계열 민족 국가에서는 민족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서 북유럽 신화를 다시 연구하게 되었다.
* [[오딘]] : [[주신]]이자 만악의 근원(…). 말로는 톱인데 온갖 악행을 저질러서 매우 정떨어지는 신. 기독교 도래 이후에는 [[악마]]라고 여겨졌는데 하는 짓을 보면 당연하다 싶다.
* 에인헤야르 : 오딘이 모은 전사. 오딘은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만,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발키리]]를 보내서 강제로 [[전사]]시켜 버리고 영혼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에인헤야르이다. 발할라라는 [[무간지옥]]에서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싸우다 죽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라그나로크가 오면 순삭당할 운명이지만 자신들은 싸움을 실컷 하고 저녁에 술과 고기와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으며 '[[오늘만 산다|오늘만 사는]]' 가치관의 사람들.
* 니블헤임 : 저승.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다.
- 블랙 클로버/54화 . . . . 6회 일치
* 아스타가 반마법의 검으로 보호 마법을 깨자 마법제가 세뇌 마법을 걸어 자백을 받는다
*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 "겔도르 조이포트". 야미 스케히로의 말로는 햄같은 인상이고 대단한 거상이라 한다
* 산호의 공작 단장 "도로시 앤즈워스". 전형적인 마녀 행색의 여성. 왠지 계속 자고 있다.
* 갑자기 야미가 심사가 뒤틀리는지 보이는 사람한테는 다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 마법제는 그들 앞에서 포로들에게 "다시 한 번 어느 단장이 배신자인지 말해라"는 지시를 내린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6회 일치
* 노래도 대단하지만 사실 마법 실력도 뛰어나서 한 눈에 아스타의 몸상태를 간파하고 노래 회복 마법 "치유의 자장가"를 써서 회복시킨다. 매우 정교한 마력 컨트롤을 사용하는 고급 회복마법.
* 카호노는 자기도 같은 15살이라며 친구가 되기로 한다.
* 카호노는 노엘의 마력 컨트롤에 대해 조언해주는데, 너무 억제하려고 의식하는 것은 마이너스. 편안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집중할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 그리고 보름달 밤. 아스타는 반대로 "아예 마력을 있는대로 방출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폭주하면 자신이 무효화 시켜줄 거라고 하면서.
* 애초에 자신에겐 따뜻한 기억 조차 없는데 집중이 될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 노엘은 자신을 인정해준 동료들을 생각하며 마력을 컨트롤하고 마침내 물 창성 마법 "해룡의 요람"을 성공시킨다.
- 블랙 클로버/60화 . . . . 6회 일치
* 여성진을 상대로 "가슴 주물주물 게임"을 하자고 드립을 치다 노엘에게 쳐맞는다.
* 저건 농담이지만 게임을 하자는건 진짜.
* 성가셔하는 검은 폭우단은 아스타를 제외하고는 대충 뺏어서 튈 생각을 하거나 아예 작전 자체에 관심이 없고 귀찮아 한다.
* 야미는 자신이 직접 상대하겠다며 게임에 참가한다.
* 대결 시의 승패는 기절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쪽. 대전 방식은 자유여서 동료를 찾아 팀을 짜도 좋고 도망만 다녀도 된다.
* 야미는 의욕이 만땅인데 왜 자기만 제외됐냐고 따지는데, 대신관이 "너무 강해서 밸런스가 맞지 않아 뺐다"고 답하니 금세 풀어진다.
- 블랙 클로버/72화 . . . . 6회 일치
* 검은 폭우 일행은 승리를 자축하며 서로를 칭찬한다.
* 리히트는 자신들도 그 새와 같이 별로 강하지도 않은데 그저 난다는 것 때문에 질투를 산다고 말한다.
* 아스타는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며 한 번 더 박살내자고 한다.
* 아스타는 단장의 합류에 흥분해서 빨리 해치워 버리자고 성화를 부린다.
* 그러다가 "그런건 나 혼자 충분"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 야미는 자신이 한계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덕분이라며 새로운 마법을 시전한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6회 일치
* 드디어 팔을 고친 아스타. 기세좋게 "가자!"고 외치지만 그동안 걱정했던 동료들의 질타를 받는다.
* 완전한 상태로 부활한 아스타. 두 팔로 두 개의 검을 휘두르며 결전에 나서자고 외친다. 하지만 그동안 걱정했던 동료들은 너무 뻔뻔하게 외치는 꼬라지를 보고 제재를 가한다. 그런데 부활한 영향인지 너무 튼튼해져서 동료들의 공격이 먹히지도 않는다. 이것은 여왕이 저주를 풀어주면서 걸어준 강화마법인데 온몸이 쇳덩이처럼 단단해졌다.
* 마녀의 숲은 침략자를 상대로 여왕의 거대 골렘까지 꺼내며 항전하지만 증오의 파나는 가볍게 골렘을 날려버린다. 전력 차가 현격해서 마녀들 만으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 부관격으로 보이는 변태 같은 마도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파마의 힘과 미모를 칭송하며 "한 번 상대하고 싶다"고 섹드립이나 날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녀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쓰겠다며 부하들을 출동시킨다. 부하들은 포박 계통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잡아간다. 어린 마녀 하나가 적에게 잡히는데 아스타가 바네사 에노테이커, 핀랄 룰러케이트, 노엘 실버와 함께 현장에 도착, 마녀를 포박한 마법을 베어버리며 구출한다. 하지만 마녀의 숲의 마녀들을 남자를 싫어해서 구해준 아스타를 할퀴고 달아나 버린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원래 그런 나라라며 대신 사과한다.
* 노엘은 파나가 지른 불을 마법으로 끄고 바네사는 자기 고향을 망가뜨리는 다이아몬드 왕국에 적의를 드러낸다. 부관은 여러 마녀를 포획해서 성희롱을 남발하고 있는데 나름 페미니스트인 핀랄이 분노한다. 아스타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날려달라고 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다시 회수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스타는 걱정말고 해달라고 하는데 바네사는 그의 실력을 믿고 날려보낸다.
* 아스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탄을 베어버리며 적들에게 날아간다. 이미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걸로 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적들이 경계하지만 아스타는 적들을 밟고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쓸어버린다. 부관은 어떻게든 아스타를 저지해 보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단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다. 바네사는 그 실력을 칭찬하며 일단 저렇게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6회 일치
* 아스타는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의 "필살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 증오의 파나가 다루는 불의 정령 샐러맨더의 힘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샐러맨더의 갈퀴손이 지나간 자리는 울창했던 숲도 건물도 남아나지 않는다. 정령에 대해 잘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그 위력에는 경악한다. 원래 샐러맨더는 4대 정령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고 일국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 파나는 아스타의 반마법 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지 어째서 샐러맨더가 타격을 입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바네사는 이때를 노려 반격의 고삐를 죄려 하는데 아스타는 갑자기 칼을 내려놓고 대화를 청한다. 바네사는 뭔 짓이냐고, 대화가 안 통하는 상대라고 꾸짖지만 아스타는 아랑곳 없이 말을 건다. 미워죽겠다고 계속 중얼거리는데 대체 뭐가 그리 밉고 클로버왕국을 미워할 이유가 뭔지 묻는다. 맨날 싸우기만 했지 왜 싸우는지, 뭐가 문제인지 서로 너무 모르지 않냐는 얘기.
* 아스타의 외침은 파나의 오래전 기억을 되살린다. 리히트가 백야의 마안을 만들기 이전, 파나는 리히트에게 어떤 자를 가리키며 "인간"이냐고 묻는다. 리히트는 인간이 맞고 자신의 친구라고 말한다. 파나는 그를 신기한 분위기의 사람이라고 여긴다.
- 블리치/689화 . . . . 6회 일치
* "자신의 힘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방심한 지금 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이치고의 마음을 떠들어대며 "그 순간은 지금 끝났다"고 선언한다.
* 그 말이 나오자 마자 이치고는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데미지를 입는다.
* 유하바하는 자신이 보는 미래는 한 가지가 아니며 무수히 많은 가능성으로 분기하는 미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고 말한다.
* 참백도가 두 자루고 호로화와 만해가 따로 각성했듯 "퀸시로서의 힘"인 두 번째 만해 또한 따로 해방한다는 설이 나왔다.
- 사택 . . . . 6회 일치
회사가 직원에게 저렴한 임대로로 대여하는 주택. 가족 지향은 사택, 단신자용은 기숙사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사택은 기업이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와, 일반 임대 주택을 기업이 빌려서 직원에게 임대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후자의 경우, 이를 아웃소싱 해서 처리하는 사택 대행 서비스도 있다.
일본에서 과거의 회계 제도에서는 구입시에 토지, 건물의 가격이 그대로 장부에 남아 있어 사택은 보유하면 그대로 '자산'으로 처리되었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직접 보유하는 사택이 많았다.
하지만 2005년에 회계기준이 바뀌어서, 자산가치가 하락한 부동산은 장부에 시가를 공개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사택의 노후화로 인한 자산이 손실이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보유하던 사택을 매각하고 임대형태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자산가치의 정확한 평가와 법인세 및 소득세의 확장을 위해서인데,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는 건물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장부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을 우려가 크다. 또한 직원 복리후생을 통해 법인세를 공제받음에 있어 일본의 적정임대료 책정 방식은,
- 서정제 . . . . 6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대구고등법원장으로 재직하던 1993년 7월 13일에 대법원이 법관인사위원회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이원배]] 서울민사지방법원장, [[박영식 (법조인)|박영식]] 광주지방법원장과 함께 위원으로 추가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93년 7월 14일자</ref>
* 대구지방법원 형사 단독 판사로 재직하던 1973년 2월 5일에 물 먹인 소를 도살한 피고인 55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가축 보관업자 5명에게 사기죄를 적용해 징역10월을 선고하는 등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20600329207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2-06&officeId=00032&pageNo=7&printNo=8417&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73년 2월 6일자]</ref>
- 서지훈 (1997년) . . . . 6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연작 · 단막극상 남자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
- 스틸오션/독일 . . . . 6회 일치
>7형(Type VII)의 기본 시험형이었던 7A형(Type VIIA)은 독일 해군의 공격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형에 기술적 기반을 둔 VIIA형 유보트는 1933년 설계되었다. 7형은 뛰어난 성능과 빠른 잠항 속도를 자랑했다. 모두 합쳐 11대의 7A형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이중에는 대서양 해전의 첫 희생양인 여객선 아테나(Athena)를 격침시킨 U-30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32는 배수량 42,348톤 정기선 엠프리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을 격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손실된 7A형 잠수함은 U-29와 U-30 단 두척이었다. 살아남은 7A형 잠수함은 모두 자침되었다.
>필라우는 러시아 제국의 주문으로 단치히에서 건조중인 경순양함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이 순양함을 독일에 의해 몰수되어 독일 해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전시에 필라우는 제2 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해와 발트해에서 활동했다. 1915년 리가 만 해전에 참가해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뤘다. 1916년 5월, 필라우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해 대구경탄에 맞아 큰 손상을 입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투순양함 자이들리츠(Seydlitz)가 항구까지 도달하는걸 도왔다. 1917년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도 참가했다. 종전후 전쟁보상함으로 이탈리아에 양도, 바리(Bari)로 개명되었다. 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엠덴은 바이마르 시기 건조된 첫 경순양함이다. 전체적으로는 쾰른(Köln)급과 닮았지만,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계획되었던 어뢰발사관 네문은 연합국의 반대에 부딫혔다. 엠덴만이 건조가 완료된 엠덴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훈련함으로 개장되어 사용되었다. 1940년 4월의 노르웨이 침공에 동원되었으며 그후 어느 전투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독일이 항복한지 2틀 후에 킬에서 자침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3~4척만의 경순양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자 독일은 각각 6,000톤에 달하는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세척을 설계했다. 초도함인 쾨니히스베르크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에서 훈련함으로 활동하다 북해의 기뢰 부설 임무를 맡게되었다. 베저위붕 작전 도중, 베르겐 해안포에 의해 쾨니히스베르크가 피해를 입었고, 다음날 최소 다섯대의 영국 폭격기에 의해 격침되었다.
>P급 장갑함은 D급 장갑함의 후계자로써 도이칠란트급과 같은 설계와 전술을 사용했다. P급은 독일 해군의 Z 계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37년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타국의 8인치 순양함포를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2척이 계획될 예정이었으며, 1940년에 첫번째 P급 장갑함이 건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Z 계획의 변경으로 P급은 O급으로 교체되었고, P급은 마지막까지 완공되지 못했다.
- 스틸오션/일본 . . . . 6회 일치
>순잠 갑형 개2(巡潛甲形 改2, Type AM)는 순잠 갑형 개1(巡潛甲形改1, Type A2)에 기반을 두고있다. 건조가 시작된 후 함재기 두대를 싣기 위해 설계가 변경되었다. I-13은 미해군에 의해 격침되었고 I-14는 전쟁이 끝나자 바다에서 항복했다.
>해대3형(海大三形, Kaidai IIIa) 잠수함은 1922년 당시 워싱턴 해군 조약 하에서 진행되던 8-8 함대 계획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번호는 S26였다. 해대2형(海大二形, Kaidai II)에 기반을 둔 이 함급은 더 깊은 잠수한계와 추가적인 그물 절단기를 가지고 있었다. 해대3형은 제18전대와 제19전대 소속으로 자바해 전역에 배치되어 일곱척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모든 해대3형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일본제국해군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 대형 구축함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8-4 함대 계획과 8-6 함대 계획에 의해 건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낮은 내구력으로 인해 호위함이나 구조임무만을 수행했다. 몇몇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가이텐 모함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후부키급 구축함은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해군이 건조한 구축함급이다. "특형 구축함"으로 설계된 만큼 전에 만들어진 어떤 구축함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초도함인 후부키는 엔다우 전투에서 연합군 구축함 한척을 격침시켰으며, 순다해협 전투에서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후부키는 에스페란스 곶에서 격침되기 전까지 과달카날에서의 몇몇 전투에 참전했다.
>토사급은 1920년대 초반에 88함대의 일각으로 주문된 고속전함이었다. 토사급의 원래 목적은 나가토급 전함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워싱턴 해군 조약에 의해 건조중이던 토사급 두척의 건조가 취소되었다. 카가는 지진으로 파괴된 아마기를 대신하기 위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토사는 장갑 성능 실험용으로 사용된 후 1925년 자침되었다.
- 식극의 소마/159화 . . . . 6회 일치
성장한 쿠로키바는 자신의 기량을 과시한다.
* 에리나는 혼자 기숙사에 있는데 잇시키가 천정을 열고 등장해 당황한다
* 관객 사이에는 아자미 총수의 모습이 보이는데...
*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나키리 아자미가 나타나 좋은 승부였다며 박수를 친다.
* 아리스는 뭔가 아자미에게 할 말이 있는 듯 한데...
- 식극의 소마/162화 . . . . 6회 일치
* 츠카사가 지나치게 시무룩해하자 "마음은 기쁘지만 내 요리를 센트럴에 바치고 싶진 않다"고 말하는데, 츠카사는 "요리쪽은 필요 없다"고 잘라말한다.
* 아자미의 하수인인 강사들은 에리나에게 아첨하기 바쁘다.
*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가르친 대로 따라왔지만 소마나 아리스가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에 찬동하지 않는걸 보고 깨닫게 되었다.
* 여기에 자극받은 츠카사가 "그렇다면 시험해 보자"라며 "십걸의 1석 자리를 걸 테니 네가 지면 내 밑으로 와라."고 제안한다.
- 식극의 소마/166화 . . . . 6회 일치
* 하지만 승자로 선택된 츠카사는 "내가 다루기엔 너무 개성적"이라고 말한다.
* 츠카사는 소마의 요리를 먹어보고 깨달았는데, 소마를 심복으로 제어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 설사 센트럴로 불러와도 써먹기는 커녕 제어가 안 돼 자기가 쓰러질 거라고.
* 이번은 무승부로 하자고 하는데.
* 츠카사가 그 중심에 "소마가 있다"고 하자, 총수는 료에게 패했던 쿠스노키의 일을 떠올린다.
* 오랜만에 니쿠미와 타도코로 등장.--타도코로는 자주 나왔어. 병풍이었지만--
- 식극의 소마/171화 . . . . 6회 일치
* 아자미가 그녀를 세뇌하기 위해 했던 "교육"을 부정하고 "요리와 요리인은 자유롭게 되길 원할 것"이란 결론을 내린다.
* 이 상태라면 어차피 진급시험 결과도 뻔할 테니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게 어떻냐고 극언을 한다.
* 그러나 유키노는 센트럴의 폭거를 거론하며 자신들도 기숙사에 계속 있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 에리나는 자신이 기숙사에 온 뒤로 그들의 요리를 많이 맛 보았고 쓴소리도 했지만 항상 자유로운 요리를 했다고 말한다.
- 신영식(만화가) . . . . 6회 일치
[[1949년]] [[2월 11일]]에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고등학교[* 현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다 중퇴한 뒤 1971년 소년한국일보에 <승리의 그날>을 시작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뒤 주로 반공,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극화만화를 그려오다 1980년에 소년동아일보(현 어린이동아)를 통해 4쪽짜리 만화 <돌배군>을 장기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6월,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식사 도중에 목에 걸린 듯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해 보니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져 [[식도]] 절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에서 방사선 수술을 권했으나 환경운동가인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던 [[강화도]]로 돌아갔다.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암]]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연요법으로 버티며 환경운동 활동과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6년]] [[1월 19일]]에 그간 앓던 식도암과 말라리아 증세로 인해 그토록 어린이들이 원했던 '짱뚱이 시리즈 7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만 56세.
1987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홍보 만화를 그렸는데 지금 보면 꽤나 엉터리다....노태우가 연대장이던 시절, 야간 보초서던 징집병에게 수고한다면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돈주려고 했더니만 지갑을 안가져오자 손목시계를 그 보초병에게 줘서 이거라도 [[전당포]]에 팔아 먹을 거 사먹으라는 게(...) 나온다. 지금 봐도 어이가 없지만 이 만화를 본 당시 어른들도 이건 너무 엉터리라고 어이없어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노태우 홍보만화에서 신영식 만화에서만 이게 나왔다는 것.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만화가]]
- 심학봉 . . . . 6회 일치
196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이공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허청]]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거쳤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런데 성폭행 의혹을 사면서 형사법 위반 여부를 떠나 품위에 맞지 않는 성관계 (기혼이면서 기혼여성과 성관계)로 제명위기에 몰리자 2015년 본회의 표결 당일 자진사퇴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아돌프 히틀러 . . . . 6회 일치
이후 [[독일 제국]]로 건너갔는데, 그 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군에 자원하였다. 이때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적도, 영국군 병사가 히틀러를 쏘지 않고 살려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 제국의 패배로 끝나 왕정이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진 후,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일명 나치당에 가입한다. 이후 그는 나치당의 중심적 인물이 되었다.
1923년, 히틀러는 [[뮌헨]]에서 정권 장악을 위해 [[맥주 홀 폭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하였고, 그 결과 히틀러는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는 자서전(?)인 [[나의 투쟁]]을 집필했다.
1945년 4월 30일.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가 눈 앞에 닥치자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시체는 측근들이 화장했다.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6회 일치
중앙에는 십자가를 그린 빵과 포도주로 채운 성배를 배치하고, 양쪽 옆에는 천사가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이 그림을 그린 야마다 우에몬사쿠는 기독교 신자였으나 당시에는 배교한 상태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이 일으킨 봉기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시마바라의 난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시바마라 성에서 농성하던 중에 내부에서 [[화살 편지]]를 날려 막부의 토벌군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들통나 체포되어 처형당할 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아마쿠사 깃발은 일본에서는 '세계 3대 군기(世界三大軍旗)' 혹은 '세계 3대 성기(世界三大聖旗)'라고 부르고 있다. 나머지 2개는 잔 다르크의 깃발, 십자군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일본에서 제시하는 '세계 3대'가 그렇듯이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은데, 이 3대 부류는 특히 그러하다.
[[십자군]]은 수 세기에 걸쳐서 여러 차례, 여러 형식으로 이루어진 만큼, '십자군 군기'로 분류할 수 있는 깃발은 그 종류도, 형태도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 애초에 '특정한 깃발'이라고 볼 수 없다.
- 안드로니코스 1세 . . . . 6회 일치
'''비잔티움 제국 최악의 암군이자, 인간쓰레기'''
안드로니코스 1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이자, 콤네노스 황가의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마누엘 1세와 사촌의 관계로, 그의 아버지는 [[알렉시오스 1세]]의 아들인 이사키오스이다. 그는 젊은 시절 풍운아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으로 그는 마누엘의 조카딸인 유도키아 콤네나를 건드렸고, 마누엘의 명령으로 킬리키아를 압박할때 예루살렘 왕 보두앵 3세의 동생이자 마누엘 황제의 처제인 필리파와 또 스캔들을 내 마누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마누엘이 그를 소환하려하자, 그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인 아모리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사고를 치는데, 보두앵 3세의 미망인이자 그의 친척인 테오도르 콤네나와 또다시 스캔들을 터뜨린것이다. 이렇게 되자 안드로니코스는 마누엘의 분노를 피해 룸 술탄국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그는 아나톨리아일대에 영지를 하사받고, 인근에 그리스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짓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총대주교로부터 파문까지 받게 되어버린다.
- 안전벨트 . . . . 6회 일치
[[차량]]에 설치된 안전기구의 일종. 사고가 나거나 했을 때 탑승자의 몸이 쏠려 자동차 내부에 박는걸 막기 위한 벨트다.
뒷자리에서는 잘 안한다. 뒷자리라고 몸이 안 쏠리는건 아니니 하자.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착용자를 졸라 죽이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 양윤재 . . . . 6회 일치
| 순자산 =
| 전임자 =
| 후임자 =
| 배우자 =
| 자녀 =
* 2003.08 ~ 2006.08: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집행위원(임기 3년)
- 양진성(배우) . . . . 6회 일치
||<#FFCC33> {{{#ffffff '''학력'''}}} ||<(> 담양중학교[br]담양고등학교 (졸업)[br][[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 (중퇴) ||
|| [[2017년]] || [[tvN]] || [[시카고 타자기(드라마)|시카고 타자기]] || 마방진 || 조연 ||
|| [[SBS]] || [[내 사위의 여자]] || 박수경 || 주연 ||
|| [[2015년]] || [[MBC 드라마넷]] || [[나의 유감스러운 남자친구]] || 유지나 || 주연 ||
|| [[2016년]] || [[SBS 연기대상]] || 뉴스타상 || 내 사위의 여자 ||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6회 일치
일반적으로 무기에 신경을 안 쓴다면 쓰게 될 무기. 헤이덤은 자주 본 듯한 방식으로 검을 잡지만 코너는 한손에 검, 한손에 단검[* 암살검의 날. 분리된다.]으로 운용한다. 장교와 예거가 들고 나온다.
이로쿼이 전통 무기. 킬 모션이 자빠뜨리고 머리를 후려치는게 다수다. 칼에 비해 약간 느리다. 특이하게도 야콥 젠거는 이걸 사용한다.
Snare. 작은 동물을 사냥할 때 사용하는 올가미. 설치에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설치시 올가미에 들어간 동물이 자동적으로 죽는다. 작은 동물만 사냥 가능하니 주의.
Rope Dart. 승표, 혹은 성뱌요라고도 한다. 설정상 샤오 준이라는 암살단원이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다트의 일종으로 밧줄이 달려 있어서 맞은 적을 끌어당길 수 있다. 사용자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적 상대로 사용하면 목을 매달수도 있다. 끌어당기지 않아도 여기 맞은 적은 엎어진다. 예거를 상대할 때, 로프다트로 엎어뜨린 다음 확인 사살 하는 방법으로 쉽게 상대할 수 있다.
Smoke. 화약과 백린을 섞어 만든 연막탄을 자기 발 밑에 던진다. 이로인해 생긴 연기 범위 안에 들어간 적은 한동안 콜록거리며 무력화된다. 카운터킬에 쓸 수는 있지만 연막탄 던지고 끝이므로 상대 때려잡는건 직접해야한다.
20 파운드. 순수 흑단나무로 만든 튼튼한 망치 손잡이. 완벽한 그립감을 자랑한다고 한다. 대번포트 농지 임무인 The Proper Tools 임무 때 사게 된다.
- 여자력 . . . . 6회 일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사는 여성이 가진 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연출하는 힘. 또한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 좋은 센스를 눈에 띄게 하여 존재를 드러내는 힘. - 출처「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일반적으로 메이크업이나 패션 감각 등을 뜻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배려를 하거나, 인품이 좋은 면을 나타낸다. 요리를 잘 하면 여자력이 높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며, 아무튼 매력이 있다면 여자력이 높다고 보기도 하고 등등. 모호한 면이 많은 단어이다.
여기에서 나온 농담으로 「여자력(물리) / 女子力(物理)」라는 표현도 존재한다.
이런 것은 여캐가 주인공을 가볍게 집어던지거나, 대전 액션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상대(주로 남자)를 마구 쓰러뜨리거나, 육탄전이나 심리전에서 여캐의 용의주도함이 나타나는 장면에 다는 코멘트이다.
- 오다 노부나가 . . . . 6회 일치
오와리(지금의 [[나고야]] 인근 지역)의 [[다이묘]]였던 '오다 노부히데'의 적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다른 언행을 보여 '얼간이'라고 취급받았으나 친인척과 가신들의 도전을 모두 물리치고 오와리의 지배권을 확립한다.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당시 기준으로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행보를 보인 인물로, 상공업 촉진을 위해 [[관문]]을 철폐하거나 종교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등 선진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군사적으로 최강은 아니었으나 이를 전략적인 밑그림을 통해 역전시켜 다른 다이묘들을 차근히 압도해 나갔다. 한편 성정이 폭급한 부분이 있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왕]]'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사적인 부분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오히려 자상한 부분도 보인다.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 극적인 모습이나, 인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남아 있어 현대까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창작물에서도 이미지가 극적이라 무슨 마왕 같은 걸로 나오는 빈도가 매우 높다.
- 오정근 (1929년) . . . . 6회 일치
|배우자 = 정애라
|자녀 = 슬하 3남 1녀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김재식]]
|전임자 = [[이낙선]]
|후임자 = [[고재일]]
- 오준영 (1955년) . . . . 6회 일치
|배우자 =
20세 시절이던 [[1974년]]에 [[가수]]이자 [[영화 배우|영화배우]] 겸 [[사회자|방송MC]]인 [[임성훈 (방송인)|임성훈]]의 《시골길》이라는 곡을 써서 [[작사가]]와 [[작곡가]]로 데뷔하였고 [[1978년]] 《오준영 1집》을 발표하여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였으며 [[1983년]] [[영화]] 《사랑만들기》로 [[영화 음악]][[영화 감독|감독]] 데뷔했고 [[1988년]] [[김연숙]]의 《초연》([[이호섭]] 작사)을 작곡 하였고 한때는 [[템페스트 (음악 그룹)|템페스트]]의 《동그란 얼굴》, 《가을비》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명지대학교 동문]]
- 외척 . . . . 6회 일치
외척(外戚)은 본래 단순히 '[[외가집]]'. 그러니까 당사자에서 보기에 어머니 쪽 집안의 친척들을 뜻한다.
동양사에서 '외척'이라는 용어가 나오면 대개는 '군주의 외척'을 뜻한다. 그야 일반인이나 신하의 외척이라고 해봤자 역사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의미가 없으니까.
원칙적으로 군주의 권위는 막강하지만, 전통적으로 높이 여겨지는 [[어머니]]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군주의 어머니인 [[태후]]는 높은 권위를 가졌고, 태후의 친족인 외척들 역시 권세를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군주의 나이가 어리다면 [[수렴청정]] 등으로 실권까지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황후를 배출할 정도면 외척 집안 자체가 원래 권세가 강력한 경우가 많았다.
고려 초기의 '이자겸'은 전형적인 외척 권신이다.
조선 전기에는 [[태종]]이 자기의 처가와 아들의 처가를 도륙내는 등(…) 외척을 억제하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외척의 권위가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윤원형 등의 외척 권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외척의 권세가 아주 강해져서, [[세도정치]] 시기에는 한 가문이 국정을 장악하는 상황까지 갈 만큼 외척의 권세가 강했던 시기로 꼽힌다.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씨, 그 가운데서도 5개의 가문(고노에, 쿠죠, 니죠, 이치죠, 타카츠카사)인 [[고셋케]], 일명 '후지와라 섭관가'가 오랬동안 황후를 배출하면서 외척으로서 권세를 누렸다. 사실상 후지와라 가문이 일본의 지배자였다.
- 우건도 . . . . 6회 일치
2015년 말 더불어민주당 지방자치행정위원으로 임명되었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주시장으로 재도전하나 후술할 미투 운동에 휩쓸렸다. 본인도 강력히 부인했고 흐지부지되었지만 최종적으로 1.33% 차의 격차로 패배했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앞두고 사실상 미투 파문을 시인함으로서 선거 후 소환조사를 받는 등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버렸다.
[[2018년]] [[3월 6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또다시 논란이 발생하였다. 이번엔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나선 우건도 더민주 예비후보에 대한 논란이다. 우건도 예비후보한테 피해를 봤다는 사람이 실명을 공개하며 글을 작성하고, 우건도 예비후보는 완전한 허위라며 [[무고죄]]대응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306_0000243911&cID=10806&pID=10800|"현재 충북도청 공무원이다"…'미투' 작성자 신분 밝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06/0200000000AKR20180306076351064.HTML|미투 논란 우건도 충주시장 예비후보 "음해"vs"13년전 사실"(종합)]]
3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게시글에 ‘2005년 6월 우 후보가 총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라고 했으나 실제 총무과장 근무기간은 2005년 7월 25일부터 그 해 9월 4일까지였다"며 “폭로 글은 악의적으로 날조된 허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게시자가 성추행을 당한 날 모 식당에서 마셨다는 주류도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류 납품 업체가 확인해줬다”고 부연 설명했다. 현재 우 예비후보 관련 미투 폭로 글은 작성자에 의해 민주당 도당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283022|*]]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운제부인 . . . . 6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상)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남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순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 친정아버지<ref>김씨(金氏)라고도 한다.</ref> : 이타(李它)<ref>[[경주 이씨]](慶州李氏) 시조(始祖) [[신라]](新羅) 개국좌명공신(開國佐命公臣) 급량부 대인(及梁部 大人) [[이알평]](李謁平)의 손자</ref>
*** 손자: [[일성 이사금]](逸聖泥師今)
*** 손자: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
*** 손자: 박지인(朴智仁), [[각간]] 역임
- 워저드 . . . . 6회 일치
판타지적인 세계가 배경이며 갑자기 등장한 의문의 적들에 대항한다는 내용.
비슷한 스타일의 게임으로 궁극전대 다단단, 오니 더 닌자 마스터, 건마스터가 있다.
나문 일족의 장이자 오나와반의 두령. 주군의 명에 따라 지팡그에 나타난 4척의 흑선을 파괴하러 나가지만, 주군의 명에 의심을 품고 독자적으로 사태를 조사하러 떠난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오징어 모습을 한 요괴. 성우는 호소이 오사무. 회오리를 날리거나, 자신의 자식을 생산하여 상대에게 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뜻밖에도 캡콤 파이팅 잼에선 타오와 타바사를 제치고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우저와는 달리 제법 할만한 편.
- 원피스/822화 . . . . 6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조우에 남고자 한다. "즈니샤의 의지"와 다시 한 번 대화해보고 싶다는데.
* 네코마무시의 집이 무너졌기 때문에 그 안에 있던 페콤즈는 잔해에 깔려버렸다. 하지만 "거북거북 열매" 능력자인 탓에 죽지 않고 살아있다.
* 페드로는 페콤즈를 잘 아는 자이며 밍크족의 일원으로서 루피에게 조력하기로 하고 일행에 합류한다.
* 우솝이 제작한 물건으로 "팝그린"이란 소재를 사용해서 나미의 조작에 따라 자유자재로 늘어난다.
* 그래도 나미는 신형 크리마텍트가 "자기가 원하던 그대로"라고 말한다.
- 원피스/884화 . . . . 6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의 무장색 패기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무적의 회피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몽키 D. 루피]]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리가 없었다. 그 실체는 "견문색 패기". 패기로 미래를 예지하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신체를 변형해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루피는 그 원리를 간파함과 동시에 "카타쿠리가 냉정을 잃으면 유효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공시킨다. 자신의 본색을 들켜 당황하던 카타쿠리는 루피가 기어4를 앞세워 퍼붓는 공격에 얻어맞으며 밀리는 듯 보였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고 반격, 루피는 기어4 상태에서도 나가떨어진다. 다만 카타쿠리 또한 체력소모가 상당한 듯 보이는데.
* 우연히 [[샬롯 시폰]]과 엇갈렸던 "파운드"는 딸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카카오섬까지 따라왔다. 한창 작업 중인 과자공장에 찾아와 시폰을 만나게 해달라 간청하나 "아무도 안에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던 차라 딸과 만날 수가 없다. 게다가 작업을 살피러 왔던 [[샬롯 오븐]]과 마주치는데, 그는 의붓아버지를 두들겨패서 쫓아내려 든다.
* 시폰과 [[샬롯 푸딩]], [[상디]]는 바깥 사정을 모르는 채로 작업에 열중. 한편 시폰과 푸딩이 상디와 함께있다는걸 모르는 [[샬롯 브륄레]]는 전보벌레로 밀집모자 일당이 곧 카카오섬으로 간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9시간 뒤, 심야 1시에 그들과 그들을 추격하는 [[샬롯 페로스페로]]와 빅맘 [[샬롯 링링]]이 도착할 예정이다. 루피도 그때까지 카카오섬에 가겠다 했지만 카타쿠리에게 패할 테니 어림도 없다고 너스레떠는 브륄레. 살아남은 밀집모자 일당도 추격대가 처리할 거라 안심시키며 꼭 마마를 안심시킬 웨딩 케이크를 완성해달라 당부한다.
>케이크를 만들자. 괜찮아.
* 한편 빅맘 해적단의 수뇌부는 바다를 감시하던 바다소들이 한 마리도 없이 사라진 걸 파악하고 경악한다. 써니호가 추격받지 않고 도주 중인 것도 그 때문. 일행은 이상하게 여기지만 항해를 계속한다. [[징베]]는 자기들 처지도 처지지만 알라딘의 어인해적단이 잘 빠져나갔을지 걱정한다. 사실 바다소가 사라진 건 그들의 덕분이었다. 어인해적단은 인근해역에서 [[샬롯 플라리네]]의 노래로 바다소들을 유인,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6회 일치
이번 의뢰인은 마츠지리 신이치. 식품회사 마츠지리 푸주의 47세 전무이사. 자신의 2살 아래 동생 마츠지리 신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지난달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유언장이 공개되었는데, 동생이 대표이사가 되고 자신은 전문에 그쳐 동생 아래에서 일하게 된 것에 원한을 품었던 것이다. 히트상품을 연달아 내놓던 동생과는 달리, 그는 경리부장으로서 수수한 일만 해왔으며, 맛에는 꽝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 가문은 매우 '다혈질'인 성격이었다.
원한해결사는 5백만으로 동생을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겠다는 의뢰를 받는다.
마츠지리 신지는 개발부의 여직원 우메모토 사유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애인으로 삼으려고 하여 개인적으로 전화번호까지 전해주고 있었다. 도청으로 정보를 획득한 원한해결사는, 사장이 거주하는 맨션 바깥에서 전화박사를 뜯어 사장 방의 회선을 훔쳐내 우메모토 사유리에게 집요하게 남자 신음소리를 흉내내어 장난전화를 건다.
1개월 뒤, 원한해결사는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한 의뢰인 마츠지리 신이치를 불러낸다. 아직 잔금 450만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의뢰인은 동생을 스토커로 꾸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냐며 자신은 돈을 줄 수 없다고 잡아떼지만, 원한해결사는 의뢰를 받았을 때의 대화 녹음과 마츠지리 신이치 사장이 경리부장일 때 빼돌린 뒷돈기록도 발견했다고 말한다. 당황하는 마츠지리 신이치에게 원한해결사는 이미 주간지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려놨다고 통보하고, 주저앉은 사장을 뒤로 하고 떠난다.
- 위의공 . . . . 6회 일치
위의공 사후에 위나라 유민들은 [[제환공]]의 지원을 받아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 제환공이 패자로 올라서게 된 계기가 된 나라.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회맹-제후연합군을 구성하여 이민족과 대항하는 집단안보체계는, 과거 [[주나라]]가 주도하였으나 춘추시대가 개막하고 주나라의 권위가 상실하면서 붕괴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권위로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만들어서 질서를 바로 잡을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국강병 정책을 펼치던 제나라의 [[제환공]]이 주도하여 위나라를 재건해줌으로서, 주 천자의 권위를 대신하여 이러한 집단안보체계를 주도하는 '패자'의 시대가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결국 제환공의 패업의 발판일 뿐이라는 뜻인데 장대하게 썼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공자]]가 [[관중]]을 높이 평가한 배경도 알 수 있게 된다. 위의공의 처참한 죽음은 다른 나라에도 닥쳐올 수 있는 것이고, 관중이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패자의 시대를 열지 않았다면 중화 문명 자체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크게 쇠퇴하였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유로달러 . . . . 6회 일치
1950년대,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무역적자의 형태로 전 세계로 '수출'했다. 그 결과 막대한 달러화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 누적되었다. 1971년 [[닉슨 쇼크]]로 전 세계가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되자, 이러한 막대한 역외달러를 이용한 금융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역외달러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은 당시 경제가 발전한 서유럽 국가였으며,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파리]], [[암스테르담]] 등이 역외달러 금융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독일의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프랑스의 BNP 파리바, 네덜란드의 ABN AMRO 등이 주요한 은행으로 성장하였다.
1986년, [[영국]]은 금융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대규모 금융개방정책을 실시했으며 달러 시장의 중심지가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자산동결을 우려하여 서유럽에 달러 자산을 보관하였다. 이를 '유로뱅크'라고 한다. 이렇게 유로달러의 기세가 강해지자 미국은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찾기 위하여 뉴욕의 국제금융시장을 강화하였다.
- 윤인조 . . . . 6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2015년]] [[KBS2]] 월화드라마 《[[블러드 (드라마)|블러드]]》 - 서기자 역
* [[2019년]] [[KBS2]]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 여자 교도관 역
* [[2017년]] 《[[희생부활자]]》 - 감금녀 역
* 《민자씨의 황금시대》 (2008년)
- 윤태동 . . . . 6회 일치
이후 [[만주]]로 건너가 간도성(間島省) 교육청 학무과장, [[만주국]] 민생부 교육사 독학관, 대신관방 이사관 겸 교학관, 자료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협화회]]의 분회(수도계림분회)에서 참여(參與)로 활동하였으며 협화회 주최 행사에서 '일본국민과 협화정신'이란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간도성 차장을 거쳐 [[1945년]] 4월에 간도성장(間島省長)에 취임했는데 조선인이 성장(省長)에 발탁된 것은 [[이범익]] 이래 두번째이다.
[[충주시]]가 윤태동의 생가를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의 생가에 정부가 돈을 쓴다는 논란이 일었다.[[https://archive.is/VRcc0|#]].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에 위치한 이 [[한옥]]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윤양계(윤태동의 조부)가 1873년 지은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돼 지금까지 3억원 이상의 관리 비용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 담당자는 인물과는 무관하게 건축양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지정됐을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분류:1900년 출생]]
- 은혼/580화 . . . . 6회 일치
* 코우카는 일족의 배신자가 됐다고 자책하지만 오로치는 원망하지 않고 떠나는 그들을 언제까지도 배웅한다
* 그러나 우미보즈는 그때의 자신은 코우카가 했던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고 하는데, 코우카는 [[가구라]]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각혈하고 죽어가기 시작한다
* 카무이는 코우카의 병도, 우미보즈가 자주 집을 비우는 것도 자신이 약해서라도 생각하며 우미보즈처럼 강해질 것만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사소한 싸움이나 괴롭힘은 그냥 넘기기 시작한다
* 카무이는 우미보즈에서 "강함이란게 뭔지 모르겠다. 타인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얻어맞는 것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인가, 아니면 가족도 외면하고 혼자서 싸우러 다니는 것인가?"하고 털어놓는다.
- 은혼/587화 . . . . 6회 일치
* 카무이는 거기서 도망친 것이고 때리는 아픔고 맞는 아픔도 견딜 각오가 없는 놈은 싸울 자격이 없다고 단언한다.
* 도망칠 거라면 주먹을 내리고 싸울 거라면 자신의 주먹으로 싸우라며, "이 부단장의 충언이 들리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 바보 단장에게 휘둘리는건 익숙해."
* 카무이가 호우센에게 한 방 먹인 대가로 자신과 어머니(코우카)를 이 별에서 데리고 나가달라고 했는데, 결국 카무이는 어머니를 데려오지 못했다.
* 어느새 그들을 앞질러서 뻔뻔할 정도로 싸워대는 카무이의 모습은 그들의 자랑이기도 했다.
* 그게 잘못이었다면 그걸 막지 못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독백한다.
* 한편 신파치는 우미보즈(바다돌이)를 사다하루에게 맡겨 이동시키고 자신은 마지막 결의를 다진다.
- 은혼/593화 . . . . 6회 일치
* 약 500년의 세월 동안 살인을 계속해온 끝에 그들을 멈추고자 하는 인격이 태어났는데, 그것이 요시다 쇼요.
* 그는 죽기 전 다카스기에게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
* 우츠로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요시다 쇼요인 동시에 우츠로이기도 하며 둘 다 아니기도 하다고 말한다.
* 마침내 시간이 흘러 그를 가뒀던 자들 조차 사라지고 감옥마저 썩어서 무너져 버리자 그는 세상으로 나온다.
* 새로운 우츠로는 더이상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모든걸 끝내주겠다고 한다.
- 이강덕 . . . . 6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소속 정당}}}''' ||<(>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 ||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포항시장이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5% 안팎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불과 7.7%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 2018 || [[제7회 지방선거]] (경북 포항시장) || [[자유한국당]] || '''127,592 (50.1%)''' || '''당선(1위)''' || '''재선''' ||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이기광 (법조인) . . . . 6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식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태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 이방원 . . . . 6회 일치
[[이성계]]의 5남. 이성계 일파를 숙청하려던 정몽주를 참살하는 등 조선 개국에도 일조했으나, 이성계가 이복동생인 막내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 하자 다른 동복형제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방석과 방번,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뒷배였던 정도전 등을 참살하여 실권을 장악한다(1차 왕자의 난). 그 후 조사의의 난이나 2차 왕자의 난 등의 도전을 제압한 뒤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고려 시절에 과거에도 급제한 등 문재(文材)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훗날 백전노장이던 부친의 군대를 친정하여 제압할 정도로 군사적 재능도 있던 나름 먼치킨으로, 정치적으로 노회한 운영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민씨의 일족이나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진력하였으나, 숙청 대상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 지나친 옥사는 자제하였으며 또한 사관이나 대간의 역할을 긍정하여 균형추를 맞추는 부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민생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개국 초부터 피바람 불었던 조선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말년에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으나 그 후에도 중요한 분야는 여전히 직접 챙겼고[* 대마도 정벌 등을 진두 지휘하였고, 위에서 말한 심씨 일족을 멸문시킨 것도 상왕 시기의 일이었다. (여담으로, 이 때 ~~써킹한답시고~~ 소헌왕후도 폐출하자는 논의가 올라왔으나 태종은 이를 일축하여 이것이 사감이 전혀 없는 정치적 숙청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4년 후 서거한다.
- 이상민 (야구선수) . . . . 6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2015년]]에 2군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피칭과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으나 1군에서는 23경기에 등판해 1패, 10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였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선미 (소설가) . . . . 6회 일치
'''이선미'''([[1971년]] [[6월 4일]] ~ )는 [[대한민국]] [[대구]] 출신의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2007년]] 자신의 소설을 드라마화한 《[[커피프린스 1호점]]》 각본 작업에 '''이정아'''라는 필명으로 참여해 드라마 작가로도 데뷔했다.
* <광란의 귀공자>
경성스캔들의 원작소설 경성애사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성애사의 이선미는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협회 사이트 게시판에서 사과글을 게재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0712270005&md=20100404183309_AN ‘경성스캔들’ 원작자의 표절, 인터넷 퍼오기 문화의 폐해] 헤럴드경제 10-04-04</ref>
== 참고자료 ==
* 김뉘연 기자,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805 언제나 해피엔딩, <커피프린스 1호점> 작가 이선미] 《FILM2.0》 (2007.8.31)
* 남은주 기자,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2007/09/20/200709200500000/200709200500000_1.html <nowiki>[‘커피프린스 1호점’이 궁금하다 | 작가 인터뷰]</nowiki> - 방송계에 로맨스 바람 몰고 온 작가 이선미] 《여성동아》 (2007년 9월호)
- 이승경 (1290년) . . . . 6회 일치
'''이승경'''(李承慶, [[1290년]] ∼ [[1360년]])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선(仲善)이다. 원나라로 유학하여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태자첨사가 되었고, 요양성 참지성사로 승진하였으며 원나라 조정에서 및 그의 부 [[이천년]]과 조부 [[이장경]]에게 특별히 농서군공에 추봉하였다. 공민왕 때, 문하시량평장사가 되었고, 1359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도원수가 되어 적을 물리치고, 서경을 회복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이 되었다. [[이조년]]은 그의 숙부였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5촌 당숙이다.
원나라에 들어가 올과(乙科)에 급제하여 태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고, 어사(御使)를 제수받아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 요양성 참지정사(遼陽省參知政事)로 승진, 많은 공적을 쌓았으므로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그의 아버지 천년(千年)과 조부(祖父) 장경(長庚)에게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追封)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모친상을 당해 귀국, 이듬해 원(元)나라에서 요양성사(遼陽省事) 탑해첩목귀(塔海帖木鬼)를 보내어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이에 공민왕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하였으며, 1359년 홍건적(紅巾賊)이 침범하자 도원수(都元帥)로 나가 서경(西京)을 회복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홍건적을 힘껏 쳐부수지 않았음을 분하게 여겨 음식을 폐한 끝에 병을 얻고 집에 돌아와서는 만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민왕은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그의 노고를 칭찬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忠勤勁節協謀威遠功臣)에 책록하였다. 사후 경상북도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 옥천의 보덕사(報德祠)에 제향되었다.
[[분류:1290년 태어남]][[분류:1360년 죽음]][[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무신]][[분류:원나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이인임]][[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성주 이씨]]
- 이영 (1492년) . . . . 6회 일치
이영(李榮, [[1492년]] [[2월 10일]] ~ [[1583년]] [[10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은자|은사]]이다. 자(字)는 양수(陽臼+又), 호는 북산(北山), 본관은 [[우계 이씨|우계]](羽溪)이다.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녹래리로 이주하였다. 뒤에 노인직으로 통정대부와 가선대부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출신.
[[분류:1492년 태어남]][[분류:1593년 죽음]][[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은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영세 (1947년) . . . . 6회 일치
'''이영세'''([[1947년]] [[6월 15일]] [[경상북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을 지낸 교육자이다.
* 2005.08~ 교육과학기술부 평생교육정책자문위원
* 2000.08~2001.12 세계경제연구원 연구자문위원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6회 일치
{{범죄자정보
|부친 = [[채종기(범죄자)]]
|자녀 = 태명: 토랭이 <br/> (11~12월 낙태할 예정)
'''이은혜'''(본명|채종혜)는 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D%B4%EC%9D%80%ED%98%9C&os=800060 네이버 인물 정보]</ref><ref>[http://search.nate.com/search/all.html?q=%C0%CC%C0%BA%C7%FD&hi=PR377342&ht=h_pf&csn=12&dsn=4&asn=001200294 네이트 인물 정보]</ref>이자 방송인이다.
* 2017년 3월 서울모터쇼 기아자동차 레이싱모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이정명 . . . . 6회 일치
| 직업 = 전직 기자, 작가
| 배우자 =
'''이정명'''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경북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여러 해 일하다 1997년 첫 소설 '천년 후에'를 완성, 1999년 발표했다. 이후 [[뿌리깊은 나무 (2011년 드라마)|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드라마)|바람의 화원]] 등이 드라마화되며 인기를 끌었다.<ref>[http://ch.yes24.com/Article/View/14419 역사소설은 위대하고 재미있는 오답이다 -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YES24, 2008년 10월 10일</ref><ref>[http://webzine.knu.ac.kr/wz3/mobile/pages/02.htm?VOL=159&mode=view 소설가 이정명 동문] 경북대웹진, 159호</ref>
* 1994년: [[경향신문]] 기자
* 1989년: [[여원]] 기자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정우 (1950년) . . . . 6회 일치
'''이정우'''(李廷雨, [[1950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박봉흠]]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제석 . . . . 6회 일치
'''이제석'''([[1982년]] [[10월 1일]]~)은 [[대한민국]]의 광고 제작자로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대표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다. 자칭 '광고천재'라는 수식어를 사용한다.
*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 [[학사]]
* 뉴욕[[스쿨오브비쥬얼아트]] 광고디자인학 학사
* 예일대학교 그래픽디자인 석사
* 2011 서울AP클럽 올해의 광고상<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129029031 서울AP클럽 ‘올해의 광고상’ 이제석·조현민·이의자씨]류지영《서울신문》2011-11-29</ref>
- 이하윤(배우) . . . . 6회 일치
|2011||KBS2||[[공주의 남자]]||소앵 역||
|tvN||[[도깨비 (드라마)|도깨비]]||허영심이 많고 감사할 줄 모르는 여자 역||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가평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이혜숙(영화배우) . . . . 6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87CEFA> '''{{{#ffffff 가족}}}''' ||<(> 배우자 한기은, 딸 한서원 (2남 2녀 중 셋째) ||
* [[우리집 여자들]] - 금화연
*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 [[장영자]]
* [[4월의 키스]] - 오신자
* [[왕의 여자]] - 인빈 김씨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6회 일치
* 에스카노르가 십계를 공격하는 이변으로 대싸움축제 참가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 바로 그때 멜리오다스가 자리를 이탈한다.
* 정면에서 나선다면 반드시 경계하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대싸움축제에 참가자로 들어와 방심을 노렸던 것.
* 고우서는 자신에겐 마음이 없다고 하지만 에스카노르는 "과연 그럴까?"라고 반문한다.
* 드롤은 마법으로 참가자 전원을 인질로 잡으며 멜리오다스를 협박한다.
|| 시작하자고. 진짜 축제를. ||
- 임동규(정치인) . . . . 6회 일치
[[1991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을 지내면서 당시 [[이명박]] [[서울특별시장]]과 인연을 맺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의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경선]]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친이]]계에 속하였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직능정책본부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선거 후에는 제17대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국회의원]] 제20번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지방자치안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강동구청장 후보로 나왔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이정훈(정치인)|이정훈]]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
- 임현준 . . . . 6회 일치
[[2007년]] [[경성대학교]] 진학하여 윤영환 감독으로부터 체계적인 [[투수]] 수업을 받은 뒤 입학하자마자 당시 4학년이었던 [[고창성]]과 함께 [[경성대학교]]의 간판 [[투수]]로 떠올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213906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삼성 새내기 좌완 임현준 "선동열 감독께 눈도장 받고 왔어요"] 《조이뉴스》 2010년 12월 5일</ref>
[[2011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8회 초 타석에 들어선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시도하고 그가 1루 베이스를 커버하려고 가는 순간 갑자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에 정전이 발생하며 순식간에 모든 조명들이 꺼지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었고,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 다음 날([[4월 17일]]) [[정수빈]] 타석부터 경기가 재개됐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4180307382224&ext=na 대구구장 정전 사태는 민폐의 결정판] 《마이데일리》 2011년 4월 1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099786 '정전 등판' 임현준, "선발 등판하는 느낌"]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7일</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자손사고 . . . . 6회 일치
자기 자신의 책임과 과실로 피해를 입은 사고라는 뜻.
[[교통사고]] 등에서 타인의 과실이 아닌 자기 자신의 과실로 사고를 일으키고 피해를 당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부주의나 [[속도위반]] 같은 경우에 사용한다.
== 참고자료 ==
- 장민호 (1962년) . . . . 6회 일치
'''장민호'''(1962 ~ )는 [[일심회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서 이적 단체인 일심회를 결성한 뒤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대법원]] 3부는 징역 7년에 추징금 1900만원,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공안 당국은 북한과 그가 386 인사들과 접촉해 국내 정치 현안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ref name="dd11">[http://www.ytn.co.kr/_ln/0103_200610301602410348 24 HOUR NEWS CHANNEL ::::: YTN (와이티엔)<!-- 봇이 따온 제목 -->]</ref> 5.31지방선거와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과정 등이 포함돼 있고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자의 동향과 6자회담에 대한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의 입장 등도 보고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dd11"/> 이후 대한민국 검찰에 USB 메모리 칩과 이메일이 가압류되었고, 그는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 [[2007년]] [[12월 13일]] 대법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에 추징금 1900만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간첩 사건]][[분류:대한민국의 학생 운동]][[분류:반전 운동]][[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장지영 . . . . 6회 일치
'''장지영'''(張志暎. [[1889년]] [[서울특별시|서울]] ~ [[1976년]] [[3월 15일]]<ref>[http://artscenter.kcaf.or.kr/zine/artspaper97_10/19971032.htm 10월의 문화인물 열운 장지영(張志暎)], [http://www.arko.or.kr/zine/artspaper97_10/index9710.htm 월간 문화예술 통권 219호(1997년 10월호)], 한국문화예술진흥원발행,</ref>)은 한국의 한글학자이다. [[주시경]] 문하에서 [[국어]]를 연구. [[1921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 [[한글]] 운동과 연구에 헌신했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어 철자법 강좌》가 있다.
[[분류:1889년 태어남]][[분류:197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한글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동 장씨]][[분류:조선어학회 사건]]
- 장항준 . . . . 6회 일치
| 배우자 = [[김은희]]
| 자녀 = 1녀
'''장항준'''([[1969년]] [[9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자 드라마 작가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다.
* 2008년 《[[죽이고 싶은 남자]]》
'''장항준'''의 어수선한 영화이야기는 [[윤종신]]이 진행하던 [[MBC FM4U]]의 라디오 프로그램인《[[두시의 데이트]]》에서 매주 목요일에 방송하던 코너로 폭 넓은 영화이야기, 그리고 장항준 특유의 입담으로 많은 청취자로 부터 사랑을 받았다.
*[[2004년]] [[9월 8일]] - [[왕자웨이]] 편
- 재호 (배우) . . . . 6회 일치
《매일개서모도흔우상》에서는 다큐멘터리 촬영 차 중국에 왔다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의 인기 배우 역할을 맡았고, 직접 중국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현지 스태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인간대포》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을 매력적인 남자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군’ 재호, 대륙이 먼저 알아본 라이징★|url=http://sports.donga.com/3/all/20180329/89357445/1|날짜=2018-03-29|뉴스=스포츠동아}}</ref>
또한 중국의 인기 여자 가수 류미린과 함께 음료 광고에도 출연했다.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
- 전가의 보도 . . . . 6회 일치
[[일본]]의 무가([[사무라이]] 가문)에서는 가문 대대로 명검(보도)를 유산으로 전수하는 사례가 많았다. 과거에는 공업 기술이 낮았으며, 칼을 만들려면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 때문에 명장이 만든 보도는 매우 높은 [[부가가치]]와 [[희소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자손 대대로 전수할 만한 자산이었던 것이다.
본래 귀해서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전가의 보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 탓에 평범한 "필살기" 정도로 의미가 약화되었다.
[[야구]] 분야에서는 [[투수]]가 자신있게 사용하는 [[변화구]]에 대하여 전가의 보도라는 말을 사용한다.
헤이세이 24년도 일본 문화청에서 발표한 「국어에 관한 여론조사(国語に関する世論調査)」에 따르면, 전가의 보도(伝家の宝刀)로 쓰는 사람이 54.6%, 그런데 본래 한자가 아닌 천하의 보도(天下の宝刀)[* 일본어로는 발음이 같다.]로 쓰는 사람이 무려 31.7%나 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실 이 말은 굳이 말하자면 '''일본어의 잔재'''. 애초에 대대로 보도를 물려주는 문화가 일본 사무라이 가문에서 나온 것인지라(…).
- 전국 BASARA(애니메이션) . . . . 6회 일치
축제를 좋아하는 남자. 원숭이인 유메키치를 데리고 다닌다. 오다 노부나가를 막기 위해 여러 무장들을 방문한다.
다케다군의 닌자.
* 아자이 나가마사
나가마사의 아내이자 오다의 여동생.
호조가 고용한 전설의 닌자. 다케다 신겐의 말들의 목을 베는 성과를 보였으나 신겐에게 배빵맞고 날아가 누곽에 박혔다. 이후 등장 없음.
* 자비
- 전성인 . . . . 6회 일치
'''전성인'''(全聖寅, [[1959년]] [[11월 28일]] [[서울특별시]]~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대학교수]]이다.
대표적인 개혁성향의 경제학자로서 재벌 개혁 정책을 연구해 왔으며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2012년 [[안철수]]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하여 안후보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 장하성·전성인·이봉의 3인방 앞세워 安, 재벌개혁 선명성 놓고 文과 신경전 |url=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015031206108&type=&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2-10-15 |확인날짜=2013-02-10}} </ref> 향후 진로에 관한 이견 차이로 그만두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전성인 교수도 "안철수 정책 자문 그만하겠다" |ur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112103960&d=2013112103960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3-11-21 |확인날짜=2018-01-17}} </ref>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인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장 청문회 과정에서 김상조를 “우리보다도 더 깨끗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상조의 도덕적이고 청렴한 삶을 증언합니다” |url=http://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666.html?_fr=gg |출판사=한겨레 |날짜= 2017-06-06 |확인날짜=2018-01-17}} </ref>
==참고자료==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동문]]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6회 일치
* 길리엄의 새로운 최면 지배는 내면의 불만과 분노를 표출시켜서 당사자는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
* 어째 테오도르는 "이젠 자유다"라고 하면서 캐릭터가 심하게 망가진다.
* 그러나 그 전에 자신을 방해한자와 배신한자들을 응징하려 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42화 . . . . 6회 일치
* 후지코는 반항하는 것 같다면 "처리하겠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미나모토나 사카키를 죽이려 든다는 것 자체에 위화감을 느낀다.
* 하지만 미나모토의 요리를 즐긴 거 자체는 맞는지, 미나모토가 요리는 관두겠다고 하자 울상이 된다.
* 승선한 인원을 모두 대피시켰지만 사고가 일어나 희생자가 생긴다는 예지는 변경되지 않는다.
* 사고의 원인을 찾아 선내를 순찰하기 시작하는데, 의문의 그림자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6회 일치
칠드런을 공격하는 새로운 블랙팬텀의 자객
* 그때 블랙팬텀의 자객이 말을 걸며 게임을 제안한다.
* 블랙 팬텀은 10분 후 다른 폭탄을 사용하겠다며 그 안에 자신을 잡으면 칠드런의 승리고, 자신이 칠드런 전원을 잡으면 자신의 승리로 하겠다고 말한다.
* 블랙팬텀의 자객은 마츠카제를 견습지휘관이라고 부르면서 전만큼 얼빵하진 않다고 하는데, 이걸로 보아 이전부터 칠드런 팀을 감시하고 있던 걸로 보인다.
- 정경호(1972) . . . . 6회 일치
출생 : 1972년 3월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2001년]] [[와니와 준하]] ... 사고 운전자 역
* [[2006년]] [[구타유발자들]] ... 홍배 역
* [[2009년]] [[집행자]] ... 장 교도 역
* [[2005년]] [[문화방송|MBC]]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한필봉의 운전기사 역(우정출연)
* [[2016년]] [[JTBC]] [[힙합의 민족2]] ... 참가자
- 정다혜(1987) . . . . 6회 일치
|배우자 = 옥철민
|자녀 =
* 2012년 [[tvN]] 수목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 2012년 [[MBC]]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 ... 미림 역
* 2010년 《[[방자전]]》 ... 감자하녀 역
- 정서임 . . . . 6회 일치
| 직업 = [[배우|연기자]], [[가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1988년 KBS2 미니시리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춘자 역. 그외 전설의 고향 주연 다수 출연
* 1983년 KBS2 《[[세자매]]》
- 정선 (화가) . . . . 6회 일치
|그림설명=독서 여가, 정선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정선'''(鄭歚, [[1676년]] ~ [[1759년]])은 [[조선]]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정씨|광주]],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ref>[http://people.aks.ac.kr/front/srchservice/viewSearchPPL.jsp?pItemId=PPL&type=L&pType=P&pSearchSetId=1138&pTotalSearchCount=3&pPosition=2&pRecordId=PPL_6JOc_A1676_1_0012083&pName=정선(鄭歚){3}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 - 정선]</ref>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관직에 나갔다.
20세에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
여행을 즐겨 [[금강산]]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과 함께 삼재(三齋)라고 불렀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主調)로 하여 암벽(岩壁)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일대에 그쳤다. 문재(文才)가 없었던 탓으로 다만 서명과 한두 개의 낙관(落款)만이 화폭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는 것이 이채롭다.
18세기 조선 화단을 이끌었던 [[강세황]]은 겸재 정선이 실제 경치를 잘 그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ref name="강세황평">{{서적 인용|저자=변영섭|제목=1월의 문화인물 미술인 강세황|출판사=문화체육부·한국문화예술진흥원|연도=1995|쪽=15}}</ref> 그러나 강세황은 진경을 그릴 때는 각 장면에서 알맞은 화법을 찾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ref name="강세황평"/>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정선의 산수화를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 정욱(1973) . . . . 6회 일치
동명의 [[정욱(1938)|범죄자]]와 혼동되는걸 피하기 위해 한 때 정의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 1996년 《[[남자대탐험]]》 (SBS)
* 2007년 《[[그 여자가 무서워]]》 (SBS) - 준철 역
* 2014년 《[[청담동 스캔들]]》 (SBS) - 정석현 기자 역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가평군 출신 인물]]
- 정재용(1973) . . . . 6회 일치
그가 합류하자마자 [[1995년]] [[여름]]에 정규 2집을 발매했으며, 타이틀 곡인 '[[머피의 법칙]]'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후 [[1996년]] 3집 및 스페셜 앨범 들을 통해 '[[겨울]] 이야기', '[[미녀와 야수]]', '[[여름]] 이야기' 등의 히트곡들을 배출해내며 인기가도를 달렸다.
다만, 조용하던 편인 그도 한번 폭력사건에 휘말렸는데, [[2010년]] [[1월 27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이혁재]]의 폭행사건의 여파가 아직 가시기도 전에 그가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피소를 당한 것. 이에 대해 정재용 [[본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종업원 간의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은 것이라 해명'''을 했으며, 부다 레코드 측에서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공식사과를 했다. 이미 DJ DOC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던 상황이고 수습이 빠른 편이라 이 때 사고를 친 걸 모르는 사람도 있다. ~~다행인가?~~
[[KBS]] [[승승장구]]에 어머니가 깜짝 출연했는데 늦둥이 외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매번 용돈도 50만원씩 준다고. 참고로 맨위에 [[사진]] 오른쪽이 정재용 [[어머니]], 밑에 사진 2개는 정재용 젊었을 때 시절 사진이라고 한다. 지금과 달리 말랐었다.
* 달콤한 거짓말 (2008년) - 양자강 역.
- 정정용 . . . . 6회 일치
|로마자 표기=
'''정정용''' ([[1969년]] [[4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축구 지도자이다.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을 지냈다.
|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안익수 (축구인)|안익수]]
|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태용]]
|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태용]]
|후임자 = {{국기그림|대한민국}} [[김봉길]]
- 정진호(1956) . . . . 6회 일치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1~1995) [br] [[현대 유니콘스]] 1군 수석코치 (1996~2006)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7~2009) [br] [[연세대학교]] 감독 (2011~2012) ||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야구감독]][[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56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삼성 라이온즈]]
- 주서은 . . . . 6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2016년]]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 ... 비행기 승객 환자 역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질렸다 . . . . 6회 일치
>이것을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질린 사람이나, 자극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입니다.
>다 쓴 종이를 가지고 자고, 다음날에 종이가 없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분위기에 차이가 나거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성공입니다.
>설명하자면, 다음날 가지고 있던 종이가 없어져 있는 것은, 종이가 없어진 것은 아니고, 자신이 다른 세계의 자신과 바뀌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붉은 문자로 쓰면 효과가 오른다든가 위험하다던가…
- 차르 . . . . 6회 일치
슬라브인들의 자신들의 [[제왕]]을 부를때 칭하는 말. 보통 황제로 번역된다. 짜르라고도 부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따온 '카이사르'가 기원이다.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가부장제의 상징적인 '세습'으로서 전승하는 의미에서 역대 로마 황제에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 권위를 '상속'하였던 전례에 따라서, 후대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계승함으로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권위를 상속하는 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로마 황제는 그 권력과 권위를 계승하는데 '카이사르'의 이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기의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칭호화 되어, 공동 황제나 차기 황제(사실상 [[황태자]])가 사용하는 제2위 칭호가 되었다. '카이사르' 칭호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가부장제'의 부자상속에 따라서 계승하는 상속자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황제권'을 세습하게 될 차기 황제의 칭호로서 적합한 것이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로마 황제들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카이사르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 칭호는 드물게 외국의 군주에도 수여되었으며, 슬라브어를 따라서 '차르'라고 쓰게 되었다. 불가리아의 시메온 대제가 비잔티움 황제로부터 해당 칭호를 받은게 그 시초다. 이후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이 해당 칭호를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대공이 해당 칭호를 썼다.[* 그리고 이게 가장 유명하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군주의 칭호를 그냥 서구식의 황제칭호인 임페라토르로 바꿨지만[* 여성의 경우엔 임페라트리자] 전부 그냥 차르라 불렀다(...).
- 차수연 . . . . 6회 일치
|| 훔쳐보기 || TV속 여자 || ||
|| [[집행자(영화)|집행자]] || 은주 || [* 극중 재경([[윤계상]] 분)의 여자친구 역.] ||
|| 결혼식 후에[* 일본의 각본가와 한국의 드라마 PD가 의기투합한 '텔레시네마 7'의 일환. 감독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연출자였던 김윤철 PD.] || 김정희 || ||
* 본인의 출연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2008년에 출연한 [[그들이 사는 세상]]을 꼽았다. 원래는 다른 배역을 할 계획으로 미팅에 나갔는데, 표민수 PD가 극중 남주인공인 정지오([[현빈]] 분)의 옛 여자친구인 연희 역할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배역을 바꾸었다고 한다.
- 창작:바벨 코스트 . . . . 6회 일치
||<#008000> '''{{{#white 작성자}}}''' || 베키 ||
항구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나 공업은 발달하지 않아 도시 성장은 더딘 편이다. 주요 산업은 관광으로, 대공황 시절에 꽃핀 다다이즘과 유사한 성향의 문학과 미술, 연극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고 이러한 문화 수준에 맞게 교육 수준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인구 분포는 주로 동유럽계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의 비중이 많고, 서유럽·영국계 백인들과 북미 원주민들은 그에 비해 적은 편이다.
18세기 경, 제정 러시아가 폴란드를 위협해 오던 상황에서 몇몇 폴란드인이 영국을 거쳐 미대륙으로 건너가 서부 해안의 이름없는 땅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시작이였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모국의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성군인 카지미에시 3세를 떠올렸고, 크라쿠프의 바벨(Wavel) 성에서 이름을 따와 'Nowy Wavel'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영국계 백인들의 영향이 컸던 탓에 바벨(Babel) 코스트로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 굴욕을 겪었다. Wavel을 영어로 읽으면 웨이블에 가까운 발음이 나지만, Babel이라 이름지은 것은 그저 발음나는대로 쓰다보니 이렇게 됐다고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유럽계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와 멸시에서 비롯되어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의 국력이 커져가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에도 유색인종 비율이 많은 탓에 거점 도시로의 역할이 주어지지는 못했다. 공업이 발달하기는 커녕 해군 부대가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업이나 소규모 상업 정도가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재정 수준이 높아지자 고급 주택이 세워지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이 생겨나며 휴양도시로의 이미지가 잠시 생겨났다. 공해도 적고 교통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에서 휴양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지라 수많은 부유층들이 들어오면서 경기가 활성화되었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6회 일치
상상만 했을 뿐인데 이 모양이다. 저 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몸에서 거부한다.
그런게 가능했다면 왜 갇혀있겠는가? 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겠는가? 그래도 한둘은 있을 생존자들이 왜 틀어박혀 있겠는가?
* '''죽은 자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5-1-1-2 . . . . 6회 일치
하지만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느덧 태양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목적대로 식량을 챙겨야 한다. 이제 공복과 피로를 버티는 것도 지겹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내가, 갑자기 좀비버스터 노릇을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과로로군.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옷은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리고 몸에 찌들은 토트넘의 냄새와 체액을 씻어냈다. 수돗물의 오염을 의심했던 며칠 전에 무색하게 자연스럽게 수도를 틀었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들였다. 승리의 기분이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6회 일치
녀석이 뒷문을 닫을 때 쫓아오지 않았던건 못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근거는 없는 단정이다. 하지만 녀석이 듣었고 안 들었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정오고 녀석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거면 된거 아닌가? 구태여 접근하지 말자. 처리할 거면 등뒤를 방비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기껏 녀석의 통수를 찍어버렸는데 내 통수도 어떤 녀석이 물어 뜯게 되는건 사양이니까.
나는 앞마당을 가로질러 차고문으로 갔다. 혹시 바깥 쪽에서 뭔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기척이 느껴지진 않았다. 확정하기엔 부족하지만 아마도 토트넘처럼 정오에도 잘 돌아다니는 녀석은 소수일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차고가 전동문이 아닌 걸 확인했다. 만약 그렇다면 닫을 방법이 없으니까. 다행이 옛날식 도르레가 달린 셔터문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철컹철컹 소리가 나며 문이 내려갔다. 기름칠을 한지 오래됐는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잠깐 아령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겨우 차고문이 닫혔다.
작은 성공을 자축할 겨를도 없이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모험'''. 금방도 까먹었네! 등 뒤에서 그르릉 소리가 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녀석은 물기 보다는 잡아뜯는 타입이었다. 양손 합쳐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안 남은 손이 내 목을 조르려 든다. 나는 바닥에 둔 아령을 집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쓰러지며 녀석의 손목을 잡앗다. 썩은 돼지고기같은 질척한 감촉이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쓰러진 내 위로 썩어가는 얼굴이 덮친다. 녀석은 확실히 공부를 잘 했을 것이다. 손에 맥아리가 없는걸 보니 연필보다 무거운걸 들고 다녔을 법하지 않다. 그래서 그럴까? 녀석의 팔꿈치가 기묘하게 비틀어지며 퍼석 끊어져 버린다. 녀석이 쓰러지면서 허연 이빨이 내 목덜미로 떨어진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철인 28호 . . . . 6회 일치
*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
태양의 사자 부분은 원래 없었으나 이후에 구별하기 쉽게 추가되었다.
* 원작자인 요코야마 미츠테루 선생의 고향인 고베에는 실물 크기의 철인 28호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 [[프라모델]]도 여럿 나왔다. 초대 철인, 태양의 사자의 철인, FX의 철인 모두 나왔으며 초대 철인의 경우에는 자석을 넣은 프라모델도 나왔다. 한편 초대 철인이 총화기나 검과 방패 등의 무기를 장비했거나 전차, 용, 자동차같은 탈것이 추가된 제품도 있었다.
- 최계훈 . . . . 6회 일치
*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2004년 ~ 2005년)
'''최계훈'''(崔桂勳, [[1961년]] [[6월 6일]] ~ )은 前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이자, 현재는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현역으로 복무하여 제대한 이후 [[태평양 돌핀스]]로 복귀했으나 2군에 머무르다 은퇴하였다.
은퇴 후 심판 자격을 취득하여 야구 심판으로 일하다가, [[1996년]] [[현대 유니콘스]]의 2군 [[투수]]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코치를 맡고 있었던 [[박종훈 (1959년)|박종훈]]과 인연을 맺게 된다.
[[2005년]] [[10월 11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영입됐다.<ref>{{뉴스 인용 |저자=|제목=LG, 최계훈 코치 영입|url=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01&aid=0001120091 |뉴스=연합뉴스|출판사= |위치= |날짜= 2005-10-11 |확인날짜= 2016-06-12}}</ref>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교인 [[인천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고, [[2011년]] [[LG 트윈스]]의 [[투수]] 코치로 돌아왔으나, 그 해 [[LG 트윈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박종훈 (1959년)|박종훈]] 감독이 사임했을 때 동반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야인으로 지냈다.
- 최서일 . . . . 6회 일치
'''최서일'''(崔瑞日, [[1906년]] [[9월 27일]] ~ [[1970년]] [[7월 24일]], [[서울특별시|서울]])은 대한민국의 공직자이자 국회의원이다. 본관은 [[통천 최씨|통천(通川)]]이다.
|전임자 = [[황부길]]
|후임자 = (폐지)
|전임자 = [[김선태 (1911년)|김선태]]
|후임자 = [[정간용]]
- 최아라 (모델) . . . . 6회 일치
'''최아라'''([[1993년]] [[1월 14일]] ~)는 [[대한민국]]의 [[모델 (직업)|모델]]이자 [[배우]]이다.
|2017|| [[JTBC]] || [[청춘시대 2]] || 조은<ref>{{뉴스 인용|제목=‘청춘시대2’ 최아라 “시청자 입장에서 시즌2 기다려… 합류하게 돼 영광”|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277401|날짜=2017-08-22|출판사=텐아시아|저자=이은진}}</ref> ||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최재연 . . . . 6회 일치
* 1987 ~ 1990 [[예일여자중학교]] 졸업
* 1990 ~ 1993 [[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 1993 ~ 1997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학사 졸업
== 참고 자료 ==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예일여자중학교 동문]][[분류: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태영 . . . . 6회 일치
'''최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에서 변호사 자격을 인증받은 뒤, [[1946년]]부터 [[부산대학교]] 교수 겸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1947년]] [[12월 16일]]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겸 학장이 되었다.
==참고 자료==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법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백세인]][[분류:상법학자]][[분류:부산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최희준 (가수) . . . . 6회 일치
1974년 앨범 《길》을 발표한 뒤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1982년 영화 《겨울여자 2부》의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전임자 = (안양시 갑)[[이인제]]<br/>(안양시 을)[[이석현]]
|후임자 = (동안구)[[심재철 (1958년)|심재철]]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5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카자미노 시 . . . . 6회 일치
작중에서, 상당히 섬세한 시각 묘사가 나오는 미타키하라와는 달리, 카자미노는 거의 묘사가 없는 도시이다.--드라마CD라서 시각 묘사를 할 수 없다.--
그나마 묘사되는 것도 쿄코의 집과 교회, 거리 정도 밖에 묘사되지 않는다. 그 밖에 언급된 장소라면, 극장판에서 언급한 쿄코가 자주 갔다는 [[라멘]] 가게 정도.
극장판에서 쿄코는 의문을 제기하는 [[아케미 호무라|호무라]]에게 함께 카자미노로 가보자고 하면서 나서지만, 왠지 도로 미타키하라로 돌아오게 되면서 가지 못한다.
[[발푸르기스의 밤]]이 일으킨 슈퍼셀은 미타키하라를 초토화시킬 정도 이므로, 가까이 이웃해있는 카자미노 역시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드라마 CD]]를 몰랐던 사람은 극장판에서 갑자기 쿄코가 사는 도시의 이름이 당연한 듯이 나와서 조금 당황한 모양.[http://detail.chiebukuro.yahoo.co.jp/qa/question_detail/q10116774515 참조]
- 칼렉시트 . . . . 6회 일치
캘리포니아는 전통적으로 [[리버럴]] 가치를 추종하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IT 산업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 산업이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대표할만한 지적, 경제적, 문화적 성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민자가 많고 인종적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다.
*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 - 우버의 개발자이며,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창업자. CNBC에서 "캘렉시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고, 미국을 떠난 캘리포니아를 '뉴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했다.--[[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셜빈 피셔버는 예스 캘리포니아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으며, 스페인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모델로 하여 2019년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국가가 된 뒤에 다시 연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 제이슨 칼라카닛 - 유명 투자자. "브렉시트가 그랬고, 트럼프의 승리가 그랬듯 캘리포니아의 캘렉시트도 단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남북전쟁]]에서 미국은 무력으로 연방을 탈퇴하려는 남부 주들의 연합을 저자한 바 있다.
- 켄카양성패 . . . . 6회 일치
켄카(喧嘩)는 싸움이라는 뜻. 성패(成敗)는 처벌, 징계라는 뜻이다. 이것은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시비곡절에 관계없이 양자를 모두 '싸움 그 자체'를 죄로 보고 처벌한다는 뜻이다.
본래는 사무라이(무사)들의 법도이며, 양자를 모두 처벌하는 것은 사무라이가 무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런 관습이 나타난 이유는 사무라이들은 특정한 가문 아래에서 봉건적으로 조직되어 있어, 무력을 휘둘러서 서로 정당한 이유를 대고 보복전을 벌이면 결국 끝이 없고 이러다보면 다른 세력에게 먹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싸움을 억제할 이유가 있었던 데는 사무라이들의 호전성도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서 [[일본 전국시대]]에 걸쳐서, 사무라이들은 불합리할 정도로 복수심이 강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피해자가 명백하게 자업자득인 경우조차도 집요하게 복수를 했다. 켄카양성패는 이러한 문화에서 전국 다이묘들이 불합리하더라도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법이다.
- 코미디언(왓치맨) . . . . 6회 일치
인성이 쓰레기다. 1940년의 미닛멘 회의 이후 실크 스펙터를 [[강간]]하려하다가 후디드 저스티스에게 저지되었다. 이 일로 미닛멘에서 추방되었으나 그후로도 자신이 임신한 현지처를 버리려다가 공격당하자[* 깨진 병으로 얼굴을 그어버렸다. 이로인해 코미디언의 오른쪽 입가에는 웃는 것 같은 흉터가 남았다.] 그녀를 쏴죽이는 등 개망나니 짓을 벌여왔다.
한편으로는 예상 외의 모습을 보인다. 1966년 캡틴 메트로폴리스가 크라임 버스터즈라는 히어로 조직을 창설하려하자 "늙어서도 카우보이와 인디언 놀이를 하고 싶은"거라고 돌직구를 날리면서 [[냉전|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런건 쓸모 없다고 씹는다. 임신한 현지처를 살해한 후에도 닥터 맨해튼이 이를 비판하자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녀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을 언급하면서 그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역으로 깠다.
코미디언이 살해된 이유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던 그는 무인도에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보고 [[산디니스타]]의 기지라고 추측, 침투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이 진행되던 섬이었고 그의 계획을 알게된 코미디언은 엄청난 공포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은퇴한 빌런 몰라크의 집에 찾아가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말을 늘어놓고 사라지게 된다.[* 오지맨디아스는 몰라크의 집을 찾아간 이유를 끔찍한 계획이었지만 인류를 구원하는 계획이기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인류의 구원을 막을 엄두는 안 났기에 못 알아들을게 뻔한 몰라크에게 갔다는 것.]
이후 오지맨디아스가 목격자 제거를 위해 코미디언의 저택에 침입, 그를 개패듯 팬 다음 창 밖으로 내던저 살해한다.
- 쿄로충 . . . . 6회 일치
항상 눈을 두리번 두리번(キョロキョロ, 쿄로쿄로)거리면서 자신이 소속될 그룹을 찾는다. 자신이 [[리얼충]] 그룹의 일원이라고 느끼면서 대학생활에 충실감을 느끼는 인간.
[[교실]], [[식당]] 등에서 자신의 지인이 있는지 항상 두리번 거리면서 같이 행동을 할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혼자서 학생 식당 등에서 밥을 먹는 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며, 그런 자신을 누군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데 강한 두려움과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 참고자료 ==
- 크리스토퍼 라킨 . . . . 6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코네티컷주 출신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 킹덤/498화 . . . . 6회 일치
* 병력을 증강한 이후 처음으로 전쟁 준비에 나서는 비신대. 갓 입대한 활형제와 간두 등 신병들은 수도 함양으로 소집되면서 수도 함양의 전경과, 몰려드는 무수한 군세와 긴장감으로 정신이 없다. 초수 등 고참들이 이들이 들뜨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작전은 매우 기밀로 취급돼서 병사들도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 다만 여기에 모여든 지휘관들의 면면을 보고 얼마나 위험한 전투가 될지 짐작할 따름이다.
* 그런데 창평군은 곧이어 통솔할 장군은 한 명이 더 있다며 또다른 인물을 단상으로 올린다. 산민족의 여왕 양단화다. 양단화를 보자 마자 벽이 심쿵사할 기세로 말에서 떨어진다. 양단화가 정규군으로서 진군에 편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 당연히 산민족 전사들도 양단화를 따라 합류한다.
* 그런데 자기들 대장이 총대장이 된줄 알았던 환의군은 불만이 폭주한다. 일단 산민족도 맘에 안 드는 모양인데 총대장이 두 명인 경우가 어딨냐고 나름 타당한 불만을 제기한다. 산민족을 반기던 비신대의 고참들도 냉정을 되찾아 환의군과 산민족군이 동시에 나선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처음부터 사정을 알던 신은 그 두 군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 총대장 왕전 장군. 그가 단상에 오르자 고요하던 왕전군단이 일제히 환성을 지른다.
조나라와의 대결이란 부분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환의의 패배, 또는 사망 플래그를 점치는 독자들도 많다.
- 킹덤/507화 . . . . 6회 일치
그런데 설명을 듣던 창인과 창담은 생각보다 "너무 가깝다"는 말을 한다. 이들은 갑자기 좀 더 뒤에서 쏘면 안 되겠냐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들이 옥신각신하는건 뒤에 있던 이신과 하료초에게도 보인다. 양단화는 이때 신이 말했던 "불안한 점"이 뭐냐고 묻는다. 그것은 저들이 "한 번도 사람을 노리고 쏴본 적이 없다"는 것.
* 조가족의 사격이 시작된다. 성벽으로 다가오는 적을 막는데 급급한 열미군은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살을 맞고 성벽 아래로 떨어진다. 성벽 위의 저항이 줄어들자 산민족은 새로운 사다리를 추가로 걸며 공성의 강도를 높여간다. 물론 열미군도 이 사다리를 향해 공격을 가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조가족의 화살이 한 발 빠르다. 성벽은 슬슬 화살에 맞아 죽는 인원이 늘어난다.
* 그때 열미군의 이목이 조가족 쪽으로 향한다. 상급 궁병들은 여전히 사다리를 저격하고 있지만 조가족의 엄호를 허트러뜨리기 위해 일부러 이쪽을 노리는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응사에 창인, 창담은 방패 밑으로 숨는다. 창인은 동생에게 화살비 속에서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아군을 보여준다. 자기들이 망설이는 동안 아군이 저렇게 죽어가고 있다며 그걸 막는게 지금은 전부라고 말한다.
* 각오를 다진 창인은 신들린 것처럼 적을 맞춘다. 화살 한 발에 적 하나. 심지어 지휘관만을 골라서 노리고 있다. 지휘관이 셋이나 화살 한 방에 가버리자 열미군도 저격수의 존재를 눈채지만 늦었다. 벌써 벽 위의 지휘관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성벽 위는 혼란에 빠지고 일단은 조가족 쪽을 향해 응사를 해본다. 그렇지만 워낙에 빠르고 정확한 창인의 솜씨 덕에 성벽 위로 몸을 드러내는 것도 힘들다. 응사를 위해 잠깐 일어서기만 해도 화살이 어김없이 날아와 꽂힌다.
* 활형제를 닥달하던 원각과 이귀는 그 솜씨에 감탄하며 이제는 조금 쉬엄쉬엄 쏘라고 걱정할 정도다. 하지만 창인은 괜찮다며 사격을 계속하고 창담에게도 자신을 따라 쏘라고 말한다. 형만 계속하게 둘 수 없었던 창담도 다시금 활을 든다. 그렇지만 창인은 아직도 동생이 마음을 다잡지 못했음을 어느 정도 아는 것 같다.
- 태의경 . . . . 6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 진선여자중학교
* [[1982년]] ~ [[1985년]] : [[숙명여자고등학교]]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진선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서울여의도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토니 고 . . . . 6회 일치
|출생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ref name="헤럴드">{{뉴스 인용 |저자= |제목= [슈퍼리치]로레알이 인정한 한국계 뷰티갑부 ‘토니 고’ |url= 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60610000882&sec=01-74-03&jeh=0&pos= |뉴스= |출판사= 헤럴드경제 |위치= |날짜= 2016년 6월 12일 |확인날짜= 2016년 9월 23일 }}</ref>
|배우자=
|자녀=
'''토니 고'''(Toni Ko)는 [[대한민국]] 출신 [[미국]]의 사업가로,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와 선글라스 브랜드 퍼버스(Perverse)의 창립자이다. 2억 6천 만 달러 이상 순수입으로,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미국인 여성 60인' 명단에 들었다.<ref name="포브스">[http://www.forbes.com/self-made-women/#2f767e7f4177 AMERICA'S RICHEST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3살이였던 1986년, 부모님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ref name="헤럴드"/> 방과 후에는 부모님이 하시던 미용용품 사업일을 도왔다. 어릴 적부터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의 화장품을 살 형편은 되지 않았고, 저렴한 화장품의 질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스스로 합리적인 가격의 질 좋은 화장품을 만들자 마음 먹고, 25세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를 설립했다. 인기 판매 제품인 립 펜슬은 3.5 달러 정도였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 토리코/364화 . . . . 6회 일치
* 이것이 아사루디의 몸을 써서 낼 수 있는 최대 위력의 기술로, 돈슬라임 자신도 죽겠지만 네오를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사용한다
* 네오는 폭발하는 초신성 자체를 먹어치워서 일대에는 아무 피해도 없다. 돈슬라임을 경악하며 "너의 그 어마어마한 식욕은 대체 어디서 온 거냐"고 묻는다
* 사실 돈슬라임은 '''현세로 오기 전에 이치류의 식혼과 만났었다'''. 그는 부활을 강권하지만 이치류는 "죽은 자는 되살아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한다
* 의외로 아카시아는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 원래 아카시아는 다른 블루 니트로 앞에서는 자아가 붕괴된 척하고 있었는데, 유독 "페어"와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다.
- 토리코/367화 . . . . 6회 일치
* 하지만 네오의 힘은 행성의 자전도 멈추는 그랜드 노킹도 "먹어치워" 버린다.
* 데미지 노킹은 데미지 자체를 없애는게 아니라 몸 어딘가에 순환하는 채로 살려두는 것.
* 아카시아는 완전히 자기 인격을 유지하고 있고 기술도 사용함을 알 수 있다.
* 플로제 무덤에서 눈물 흘린 것도 연기였고 그 전부터 제자들과 지낸 시간 자체도 모두 훼이크.
* 블루 니트로는 자기들의 전체 계획을 네오, 아카시아와 공유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 토리코/368화 . . . . 6회 일치
* 토리코는 자신들이 있는 곳만 기온이 올라가고 있으며 엄청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한다.
* 마침내 GOD가 나타난다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얼굴을 드러낸다.
* 사실 죠아가 퍼뜨린 균은 자기 자신도 버틸 수 없는 강력한 독성물질이지만 정작 죠아에겐 통하지 않고 있다.
* 갑자기 미도라의 몸이 녹아내리는데, 그건 먹어치운 균이 내부에서 부터 몸을 "발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한편 사천왕이 모여있는 자리에는 지면이 갈라지며 어떤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 토리코/382화 . . . . 6회 일치
* 사왕은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경화시킨 채로 경왕 문의 뱃속으로 돌진한다.
* 그런데 갑자기 페어의 움직임이 멈춘다. 어느 새 아카시아가 노킹을 건 것.
* 마침내 네오가 자신의 힘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아카시아.
* 그는 죠아에게 "머나먼 땅", 그들의 이상향으로 출발하자고 한다.
* 페어의 언행으로 볼 때 아카시아 자체도 네오가 먹어야할 "풀코스"의 일부였던 걸로 보인다. 즉 현재 팔왕을 가지고 노는 네오 조차 완전체는 아닌 것.
* 풀코스를 다 먹은 아카시아는 현재의 네오 조차 "강하다"고 인정하고 순순히 잡아먹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전투력 자체는 현재의 네오보다 위로 보인다.
- 토리코/390화 . . . . 6회 일치
* 아카시아가 플로제를 모욕하자 미도라는 분노를 터뜨리며 반격한다.
* 미도라는 토리코 안의 "정체모를 식욕"을 언급하며 자신이 유일하게 전율을 느낀건 오직 그것 뿐이라고 말한다.
* 토리코가 분노의 주먹을 내지르자 아카시아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진다.
* 토리코의 설명을 들은 미도라는 "공포"라면 자신이 "전율"했던 유일한 대상은 토리코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식욕"이라고 말해준다.
* 토리코는 "아카시아의 목적"은 알고 있다며 자신은 꼭 해내겠다고 다짐한다.
* 토리코는 대결을 서두르자며 "어느 쪽이 미식의 꿈을 이룰지!"라고 소리친다.
- 토리코/391화 . . . . 6회 일치
* 토리코는 네오가 맛있게 익어감을 느끼며 희망을 놓치 않고 최후의 결판을 내자고 한다.
* 그는 모두가 희망의 식탁에 앉게 될 거라며 자신과 동료들의 결의를 믿어의심치 않는다.
* 토리코는 날뛰는 아카시아에게 "이젠 끝내자"고 선언하고 이것이 최후의, 혼신의 "분노의 풀코스"라고 소리친다.
갑자기 토리코와 블루 니트로 페어를 제외한 일행 전원이 리타이어. 텟페이는 멀쩡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 도움도 될 거 같지 않다. 네오 레이드 때 갑자기 모습을 감춘 용왕 데로우스와 낭왕 기네스가 갑자기 등장했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필살기 한 번씩 써주고 리타이어. 머리를 먹혀서 부활의 여지도 없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6회 일치
[[전국시대]] 말기, 아쯔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의 [[일본]]의 통치자.
1558년 부터 [[오다 노부나가]]를 모시고, 전공을 쌓아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자, [[아케치 미츠히데]]를 공격하여 쓰러뜨리고 오다 세력을 승계하였으며, 차례차례 정벌하여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
일본의 통치자가 된 히데요시는 야욕이 더욱 강하게 가져, [[명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 말년에 얻은 자식 [[토요토미 히데요리]]를 총애하였다. 어린 나이의 히데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무리수를 썼고, 그 때문에 오히려 토요토미 정권의 기반을 악화시켜 히데요리는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망하고 토요토미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된다. 손녀 [[김혜수]]
- 톰 최 . . . . 6회 일치
|형제자매 =
|배우자 =
|자녀 =
'''톰 최'''({{llang|en|Tom Choi}})는 미국의 배우이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 [[일리노이주]] [[디모인]]으로 이민가 그 곳에서 자랐다.<ref>{{뉴스 인용|url=http://asiansonfilm.com/tom-choi-interview/|title=Tom Choi Interview – Asians on Film|date=4 January 2016|work=Asians on Film|access-date=2017-06-28|language=en-US}}</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디모인 출신]]
- 트로피코 4/외교 . . . . 6회 일치
가끔씩 국제 문제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잘 생각하고 고르자.
* 자본주의 진영과 좋은 관계
* 자본주의 지향
* 높은 자유도
* 높은 자유도
* 낮은 자유도
- 특촬물 . . . . 6회 일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특수촬영물'''(特殊撮影物)의 약자. 넓은 의미로는 특수촬영기법이 사용된 모든 영상물을 말하지만,[* 오죽하면 [[닥터후]]나 [[히어로즈]]와 같이 특수효과로 점철된 [[드라마]]들도 특촬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크게 보자면 틀린말도 아니긴 하다)--한 술 더 떠서 [[텔레토비]]도...--][* 대표적으로 몇 년 전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에서(여기선 특촬물 관련 글도 같이 취급한다) 일부 회원들이 저 두 작품을 두고 '이것도 특촬이다'라며 도배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가 잠시 동안 특촬 관련 게시글이 금지가 됐었다.] 일반적으로 '특촬물'이라고 하면 전대물, [[괴수]]영화 같은 일부 장르의 영상물에 한정된다. 특수효과를 뜻하는 약어인 SFX(Special Effect)가 영상물 전반의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SF]]와 헷갈리지 말자! [[디워]]의 경우가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여러가지로 까이지만-- SF와 SFX를 구별 못한 대표적 사례로, SF영화라고 홍보했다가 엄청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나 알아 둘 것이, 특촬물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어로물이기 때문에 만화와 같은 카테고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 각주에서 언급한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도 그렇고 [[이글루스]]에서도 특촬 포스팅은 대개 [[애니메이션 밸리]]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 등, 유독 애니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 두 장르를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특촬물을 특수 촬영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 특촬물은 엄연히 '''실사이자 드라마'''이다. 특촬물 더빙도 외화 더빙에 해당된다.
- 퍼키 팻의 전성시대 . . . . 6회 일치
핵전쟁이 나고, 생존자들은 쓰레기에서 수집한 물자와 [[화성]]에서 보내오는 생필품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생존자들 가운데 어른들은 생활물자에서 미니어처 하우스를 제작하고, 퍼키 팻(Perky Pat)이라는 인형을 만들어서 전쟁 이전의 삶을 --[[망상]]-- 추억하는 [[인형놀이]], [[롤플레잉 게임]]에 빠져 있다. 퍼키 팻은 이들이 만들어서 롤플레잉 게임에 사용하는 미니어처 인형의 이름이다. 이 게임에서는 핵전쟁 이전의 화려한 문명과 물자를 롤플레잉 하는 것이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퍼키 팻 이외에도 다른 지역의 생존자들은 다른 이름으로 이러한 인형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때때로 서로 인형을 가져가서 롤플레잉 게임으로 교류전을 가지기도 하며, 이러한 대결에서는 규칙 논쟁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 페어리 테일/489화 . . . . 6회 일치
* 아이린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크놀로기아님."이라 말하고, 빛은 전대륙으로 뻗어나간다.
* 제국군과 싸우고 있는 연합군은 물론 항구를 탈환한 엘자, 그레이에게도 보인다.
* 아이린의 정체에 대해서는 크게 엘자의 자매, 엘자의 어머니, 그리고 미래 시간대의 엘자로 의견이 갈린다.
- 페어리 테일/495화 . . . . 6회 일치
* 어마어마한 숫자지만 그 대군을 넘어야 길드에 도착할 수 있다.
* 엘자는 동료들이 올 때까지 한 발짝이라도 전선을 밀어내자고 하고 일행은 투지를 불사른다.
* 갓세레아는 "염옥룡의 염열지옥"을 쏘는데 나츠가 먹어치우자 "해왕룡의 수진방원"이란 수속성 멸룡마법을 동시에 구사한다.
* 거기에 "폭풍룡의 음풍농월"까지 섞여서 날아오자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난다.
* 그리고 나타난 페어리 테일 최강의 남자 길다트.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6회 일치
>목표는 머키워터 수송기야. 그 수송기는 돈을 운반하고 있어. 너희들은 거기 숨어들어갈거야. 돈을 떨어뜨린 다음에 회수하자고.
수송기 제일 뒷부분 구석에 숨어들어간 상태로 시작한다. 빠르게 가면을 쓰고 뛰쳐나와 용병들을 해치우자. 패널을 조작해 수송기 뒷문을 열면 머키 용병들이 막혀있던 곳을 열고 나타난다. 용병들을 쏴죽이며 그대로 직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용병들이 빼곡한 객실이 나온다. 이 객실을 돌파하면 처음 시작했던 곳의 2층이 나오는데 2층에 있는 조작 장치를 건드려서 돈을 사출시키자. 이후 플레이어들도 낙하산 상자에서 낙하산을 하나씩 집은 다음 수송기 뒷문으로 뛰어내린다. 낙하산 없이 뛰어내렸다가는 바로 철장행이니 주의. 착지하고 나면 낙하산은 필요 없으니 내다버리자.
모든 돈을 회수하면 로크가 하수구를 통해 빠져나오라고 지시한다. 표시된 맨홀로 내려간다음 해당 지역에 스폰되는 경찰들과 특수경찰들을 때려잡으며 전진하자. 서마이트 챙기는거 잊지 말고. 중간 중간 철장으로 막힌 곳이 나오는데, 이곳은 서마이트를 불태워서 녹여야 한다. 하수구의 끝에는 보트가 대기하고 있는데, 이 보트에 플레이어 모두가 탑승해서 탈출하면 된다. 누구 한명은 보트를 운전해야하니 주의. 이렇게 경찰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나면 로크의 헬리콥터가 날아오며 종료.
- 하성란 . . . . 6회 일치
*《옆집 여자》(창작과비평사,2005)
*《자전 소설 2(오 아버지)》(강,2010)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오영수문학상 수상자]]
- 하이큐/235화 . . . . 6회 일치
* 적응이 끝난 카게야마는 문자 그대로 "해방"된 듯 신들린 플레이로 점수차를 좁힌다.
* 한발 먼저 경기를 끝낸 네코마 측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츠바키하라고 쉽게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츠키시마의 서브를 잘 받아서 마루야마에게 연결, 바로 점수를 되찾아간다. 마루야마는 1학년 콤비의 속공은 익히 알던 바라며 막아버리자고 동료들을 북돋우지만 정작 동료들은 별로 자신이 없어 보인다. 마루야마는 그대로 서브까지 치는데 어려운 코스였지만 [[사와무라 다이치]]가 가뿐하게 받아낸다.
관중석에서 보고있던 카라스노 출신자들은 사와무라의 실력이 올라갔다며 감격한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페이크 플레이로 자신이 득점을 올린다. 이 플레이로 카라스노 측으로 많이 넘어와 있던 분위기가 한층 기운다.
- 하주석 . . . . 6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4월 8일]]<br>[[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제대를 앞두고 [[타이완]] [[타이중 시]]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제2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이 대회에서 중심 타자로서의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대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여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4차전 일본전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1점차로 지고 있던 9회말에 [[윤영환]] 감독에 의해 [[오선진]]의 대타로 출전해 상대 투수 [[콘도 히로시]]를 상대로 끝내기 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일본전 승리와 함께 대한민국은 드림팀 2기가 활약했던 1999년 제 20회 대회 이후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 자리를 되찾았으며, 그는 이 홈런 한 방으로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 {{KBO 타자|62700|하주석}}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한복 (1914년) . . . . 6회 일치
[[1939년]] [[12월 4일]] 부산지방법원 예비판사, [[1940년]] [[5월 31일]]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각각 임명되었으며 [[1942년]] [[3월 25일]]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1944년]] [[8월 17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까지 평안남도 이사관 겸 평안남도 산업부 산업과장을 역임하면서 고등관 5등에 서위되었고 이러한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사법 부문,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서울특별시]]에서 변호사를 개업했으며 [[1962년]] [[증권거래소]] 자문위원, [[1964년]] [[대한법률구조공단]] 단장, [[1966년]] 대한엽도협회 회장, [[1973년]]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지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참고자료 ==
|저자=민족문제연구소
[[분류:1914년 태어남]][[분류:199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유교 신자]][[분류:도쿄 대학 동문]]
- 한수연(배우) . . . . 6회 일치
||<#ff748c> '''출생''' || [[1983년]] [[4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월성로) [* 성우 [[남도형]]과 생일이 같다. [[남도형]] 성우는 음력 [[3월 12일]]] ||
||<#ff748c> '''성좌/지지''' || [[황소자리]]/[[돼지띠]] ||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드라마)|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야망에 가득찬 악역 중전 김씨를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6년 11월 3일자 KBS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14일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된 tvN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외증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라고 밝혔다.[* [[문제적 남자]]에서 김순오라고 밝혔다.][[http://www.nocutnews.co.kr/news/4681861#csidx7e5eabd14e99dc0bb1abe81b7d22670|기사]]
- 한승혁 (1993년) . . . . 6회 일치
{{다른 뜻|한승혁 (1996년)|KIA 타이거즈의 야구 선수|동명의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 선수}}
팔꿈치 부상으로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어 [[2012년]]이 되어서야 1군에 처음으로 올라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47&aid=0001996776 151km 한승혁, 배구인의 피를 받은 야구 유망주] - 오마이뉴스</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한영이 . . . . 6회 일치
|직업 = 순교자
한영이는 이른 나이에 한 [[양반]] 집안의 권 [[진사]]라는 남성의 후처로 들어갔다. 권 진사는 중년에 들어 [[천주교]]에 입교 하였는데, [[임종]] 직전에 비상 [[세례]]를 받았고, 부인에게 입교하여 영원히 신자로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영이는 딸과 함께 입교하였고, 매우 가난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며 독실한 삶을 살았다.
한영이는 한 배교자의 고발로 [[1839년]] [[7월 17일]]에 그녀의 딸 권진이와 딸의 친구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런데, 한영이만 따로 수감 되었고, 딸 권진이를 포함한 세 명의 여성은 포졸들의 감시 하에 이웃 집에 수감되었다. 배신자 [[김여상]]이 [[권진이]]를 첩으로 들이려 유혹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동정한 포졸들에 의해서 풀려났다. [[조정 (정치)|조정]]에서 그 사건을 알고 김여상에게 협조한 관리 및 포졸들을 처벌했다. 권진이를 포함한 그 세 명의 여성은 나중에 다시 체포되었다.
}}</ref> [[시복|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고,<ref name=blessed>{{뉴스 인용
| 저자 = 이상도
- 한인수(탤런트) . . . . 6회 일치
[[1991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시흥시]]장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현직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윤식(1966)|김윤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프로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신교 신자이며, 교회의 장로라고 한다. 실제 인터넷을 보면 간증 영상같은 교회 영상이 꽤 많이 보인다.
* [[왕의 여자]] - [[이항복]]
* 1984년 이름없는 여자
* 1987년 위기의 여자
* 1988년 필사의 도망자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6회 일치
이시종을 시작으로 맹정섭까지 이어지는 충주시 보수정당 인사의 민주당계 전향자 라인이다.[* 웃긴건, 이시종, 한창희, 맹정섭 3인은 17대 총선에서 각각 다른 소속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넘어온 이시종이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한창희가 한나라당 후보로, 맹정섭은 무소속 후보로.] [* 아울러 한창희나 맹정섭이나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어지간히 섭섭했던 모양인지 그쪽 정당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거의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한창희 본인만 해도 열린우리당으로 갈아탄 이시종에게 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조차 민주당으로 넘어와서 선거를 치뤘다. 그만큼 민주당계 정당이 충주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반증일지도. 현재도 차기 총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군이다.
|| 2004 || [[2004년 재보궐선거|200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민선 3기 충주시장)[* 전임자 이시종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직]
|| 2011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민선 5기 충주시장)[* 전임자 우건도 당선무효] || 무소속 || 9,072 (13.07%) || 낙선 (3위) || ||
|| 2014 ||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직] || [[새정치민주연합]] || 16,4920 (29.60%) || 낙선 (2위) || ||
- 해양군 . . . . 6회 일치
| 별칭 = 자(字)는 자미(子美) <br /> 호(號)는 죽설(竹雪)
| 배우자 = 정부인 [[순흥 안씨]] <br /> 계부인 [[광산 정씨]] <br /> 제2계부인 [[한산 이씨]] <br /> 제3계부인 [[덕수 이씨]]
| 자녀 = 슬하 1남 3녀(모두 요절) <br /> 양자 [[이인 (종실)|이인]](李仁)
[[1625년]] 당시 6세의 나이로 '''명선도정'''(明善都正)에 책봉되었다가 [[1633년]] '''수덕군'''(綏德君)으로 개봉되고, 2년 후 [[1635년]] '''해양군'''(海陽君)에 재개봉되었다. [[1668년]] [[흥안군 (1598년)|흥안군 이제]]의 양자로 출계하였으며, [[1682년]]에 향년 63세로 별세하였다.
- 해원군 . . . . 6회 일치
| 별칭 = 자(字)는 자강(子强) <br /> 호(號)는 규창(葵窓)
| 자녀 = 슬하 4남 3녀 <br /> 3남 [[화춘군|화춘군 이정]](花春君 李瀞)
| 배우자 = [[군부인]] [[해주 최씨]]
[[인성군 이공]]의 3남(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일찍이 [[1619년]] '''해원정'''(海原正)에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핍박 섞인 모함으로 인하여 모반역모 혐의를 받자 [[1628년]]을 기하여 형 해평군 · 해안군, 아우 [[해양군]] 등과 아울러 역신의 후손이라 하여 [[제주도|전라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뒤 [[1635년]] [[제주도|전라도 제주]]에서 [[울진군|경상도 울진]]으로 이배되었고 2년 후 [[1637년]] 석방되었다.
20년 후 [[1657년]] '''해원군'''(海原君)에 진책되었으며 이후 청렴한 성품을 발휘하여 자신의 사저(私邸)에 조그만 서실(書室)을 짓고 그곳에서 [[한시]]와 [[시조]]를 작시와 아울러 [[서예]]와 [[서예|서화]]에 열중하여 당시 사람들이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 허지애 . . . . 6회 일치
| 전임자 =
| 후임자 =
| 배우자 =
| 자녀 =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현제명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음악가, 성악가(테너), 작곡가. 1902년 12월 8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남산동(現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남산동) 출신.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아호는 현석(玄石)이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다.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음악가협회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시국대응전선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에도 가입하면서 친일 행위를 하였던 전적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친일 찬양적인 성향의 '''[[후지산]]을 바라보며'''에 작곡자로 개입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월간 객석에선 음악가들의 친일 행위를 옹호하다가 호되게 까인 바가 있다. 현제명이나 [[홍난파]], [[이흥렬]] 같은 이들은 살고자 그런 것이라고...
[[고향]]인 대구 중구에는 '현제명 나무'라고,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이팝나무]]가 있는데, 대구에서는 친일파인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는 것이 싫어서 없애버리자고 난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494119|관련 보도]]
[[분류:성악가]] [[분류:작곡가]]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분류:중구(대구) 출신 인물]] [[분류:1902년 출생]] [[분류:1960년 사망]]
- 홍현희 . . . . 6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1년 데뷔]][[분류: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홍효의 . . . . 6회 일치
|| 학력 || 포항초-포항중-[[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강릉영동대 ||
신장 190cm인 장신의 사이드암 투수로 고교 시절 [[우동균]]과 더불어 2008년 1차지명자로 꼽혔지만, 오른쪽 엄지발가락 골절상으로 1차지명은 커녕 2차지명 때도 지명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2년제 대학인 강릉영동대로 진학, 대학 시절에는 부상 때문에 타자(우익수/지명타자)로 나섰다.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09 시즌 마무리훈련에도 참가해 [[선동열]] 감독이 칭찬했었지만, 막상 본 시즌에 들어가보니… 21경기 등판해 47⅓이닝 1승 3패 '''72사사구''' 38실점 평균자책 6.08을 기록했다.
- 황상경 . . . . 6회 일치
* [[2017년]] 《[[루시드 드림 (영화)|루시드 드림]]》 - 남기자 역
* [[2015년]] 《[[돌연변이 (영화)|돌연변이]]》 - 기자 2 역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황선필(1939년) . . . . 6회 일치
| 배우자 =
'''황선필'''(黃善必,<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21500329202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2-15&officeId=00032&pageNo=2&printNo=12427&publishType=00020 文化放送 사장에 黃善必씨를 선임] - 경향신문, 1986년 2월 15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60400209201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6-04&officeId=00020&pageNo=1&printNo=18666&publishType=00020 靑瓦臺 대변인에 黃善必씨를 任命] - 동아일보, 1982년 6월 4일</ref> [[1939년]] ~ ,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은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공무원이다.
* [[동아일보]] 사회부·정치부 기자
|전임자 = [[이웅희 (1931년)|이웅희]]
|후임자 = [[김영수 (1935년)|김영수]]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 황옥 (1885년) . . . . 6회 일치
1923년 [[김상옥 (1890년)|김상옥]]이 일으킨 [[종로경찰서 투폭사건]] 이후에 사건 관련자를 색출한다는 구실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서 [[톈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만났고,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수령, 김시현, 김재진, [[권동산]] 등과 함께 물건을 [[단둥]], [[신의주]]를 거쳐 [[경성]]까지 밀수했다.
황옥은 재판정에서 자신이 일본 경찰의 지시를 받고 의열단에 [[프락치]]로 잠입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유죄를 선고받고 1924년 징역 12년형에 처해졌다([[황옥 경부 폭탄사건]]). 1924년 [[김지섭]]이 [[도쿄 어소 투폭사건]] 때 사용한 폭탄도 황옥이 총독부 물건이라는 소인을 붙여 세관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후 [[결핵]]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1925년 12월 가출옥하였다가 1928년 5월 재수감, 1929년 다시 가출옥한 이후 해방될 때까지 행적은 불분명하다. [[일본 제국]]이 패망한 뒤 [[반민특위]], [[조선독립운동사편찬발기인회]]에서 활동하다가 [[1950년]] [[한국 전쟁]] 때 납북되어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
경기도 경찰부장 [[시로가미 유키치]]는 황옥이 자신의 재가를 받은 작전에 따라 활동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원봉과 김시현은 황옥이 의열단원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상호 증언이 엇갈리고 있기에 황옥이 의열단원이었는지, 일본 경찰의 프락치였는지, 또는 양자에 모두 발을 걸친 [[이중간첩]]이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83년 [[서울대학교]] 도서관 건물에서 추락사한 민주화운동가 [[황정하]]가 황옥의 손자이다.
[[분류:1885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의열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납북자]][[분류:이중간첩]]
- 후카다 쿄코 . . . . 6회 일치
|| 별자리 || [[전갈자리]] ||
배우자를모르는상태에서 아기를출산했다 딸 [[김남주]]가태어났다
== 의리자매 ==
*[[정태리|태리정]] : 후카다 쿄코 의여자형제자매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5회 일치
사고 당시 다리 아래에는 가로 10미터, 세로 2미터, 깊이 15미터의 공간에 작업자 10명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작업 중이었으며, 2명은 상부에서 일을 하고, 부상자 2명은 현장 바깥 사무실 근처에 있었다.
현장에서는 부상자와 사망자를 포함하여 모두 1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3명은 다치지 않았다. 작업은 오전 7시에 시작되었는데, 30분도 되지 않아서 참변이 일어났다.
폭발 충격으로 상부에 있던 사망자 1명이 바깥으로 튕견가ㅏ 숨졌으며, 3명은 15미터 아래의 지하에 고립되었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 AliasPageNames . . . . 5회 일치
WindowManager,창관리자
WikiSandBox,위키모래상자,모래상자
# 존재하는 페이지에는 인터위키(자매 페이지) 혹은 URL도 가능합니다.
# 자매 페이지 연결
- DV . . . . 5회 일치
도메스틱 바이올런스('''D'''omestic '''V'''iolence,가정폭력)의 약자. 일본에서는 흔히 DV라고 줄여서 부른다.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압박을 하는 것을 뜻한다.
* 가계 관리를 모두 혼자서 쥐고 있다.
* 혹은 자신은 일하지 않고, 배우자에게만 노동을 강요한다.
- JOY축제 . . . . 5회 일치
2003년, JOY 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성이 인터넷에 올린 일기 때문에 [[2채널]]을 중심으로 하여 [[염상]]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자신이 데려온 아이가 술집에서 손란을 일으키는 [[민폐]]를 입혔는데, 그걸 뒷담하는 점원에게 오히려 폭력을 휘두른 [[DQN]]으로 유명하다.
2003년 5월 18일, JOY 라는 여성은 남편 HIDE와 동생 부부와 함께 [[술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때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갔으며, 아이들은 술집 안을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그걸 가게의 어떤 사람이 "부모의 훈육이 나쁘다."고 발언하고, 딸이 그 사실을 JOY와 HIDE 부부에게 말하자 분노한 HIDE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점원들을 추궁하고, 색출해내서 점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음 가게 점장에게도 소리를 쳤다…라는 내용의 일기를 올렸다.
그리고 JOY가 자신의 일기에 [[자전거]]를 탄 소년과 [[교통사고]]를 냈으나 오히려 자신보다 소년이 나쁘다고 주장하거나, 남편의 회사에 이름만으로 임원으로 올라가서 [[전업주부]]이지만 월급을 받는 상태이거나,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보육원]]에 아이를 집어넣는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 K리그 클래식 . . . . 5회 일치
단적으로 K2리그를 출범하고 리그 우승팀을 프로화시켜 승격을 시키는 방안을 시작으로 실업축구단들의 참가를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프로팀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장기적으로는 K리그의 프로팀 숫자를 늘리고, 늘어난 팀 수를 바탕으로 상위와 하위리그를 나눠 승강제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K2리그라는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본래 K리그의 승강제 구성을 위해 탄생한 2부리그 격 세미프로리그였다. 하지만 2번이나 우승팀들이 승격을 거부함으로써 승강제는 아예 물 건너가게 되었고, K2리그는 내셔널 리그로 이름을 바꿔 완전히 별개의 리그가 되어버린다.
"(클래식12개팀 - 자기자신) * 3"이라는 형태로 홈 앤 어웨이를 치루며, 정규라운드동안 상대팀을 세번씩 만나게 되는 구조다.
정규 라운드에서 획득한 점수는 그대로 이양되고 "자신의 팀이 속한 스플릿의 경쟁자와 한번씩 대결"을 통해 상위 스플릿에선 우승과 차기 ACL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며, 하위 스플릿에서는 강등팀(꼴찌)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팀(꼴찌에서 [[홍진호|2등]])을 정하게 된다.[* 처음 도입되었던 2012시즌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면 정규시즌의 기록이 다 사라지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얻은 기록만을 비교하여 우승팀을 가린다고 착각했던 것. 덕택에 [[샤다라빠]]가 신명나게 까댔다.]
- This is the Police . . . . 5회 일치
화자. 프리버그의 경찰조직인 프리버그 PD의 경찰청장. 한때는 영웅적인 경찰이었으나 지금은 배 나오고 원형 탈모 생긴 60살 아재. 아내는 집을 뛰쳐나갔다. 난데없이 해임을 통보받은 보이드가 노후자금 50만 달러를 모으는 것이 이 게임의 시작이다.
보이드의 부관. 보이드와는 30년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마피아가 FPD 안에 심어넣은 내부자로 활동했지만 게임이 시작되기 얼마 전의 시점에 걸려버렸다. 이후 보이드에게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도와주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쳐 신분 세탁을 하지만 거부하면 가족들과 함께 끔살.
마피아 두목.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다니는 나이에 비해 트렌디한 노인 같지만 실은 굉장히 잔인한 사람. 어떤 무기상들이 샌드의 허가 없이 프리버그에서 사업을 벌이자 그 무기상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죄다 죽여버렸다고 한다. 켄드릭이 도망친/끔살당한 이후 보이드를 협박해. 켄드릭이 하던 일을 대신 하게한다.
- 강기웅 . . . . 5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9년]] [[4월 9일]] <br />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강기웅'''(姜起雄, [[1964년]] [[2월 2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BBArk 타격코치이다.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
- 강원 FC . . . . 5회 일치
2008년 11월 10일에 창단한 구단으로 2009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구단의 법인지배구조는 [[시민구단]]이고, 연고지는 도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야구의 사례와 빗대어 광역연고구단으로 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딱히 광역연고와 도시연고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연고지는 "구단과 협약을 맺은 지자체의 행정지역과 그 범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연고지 협약을 맺은 지역이 강원도 전체를 대표하는 강원도청이기 때문에 강원FC의 전체 이름은 "강원도민프로축구단"으로 정한 바 있다.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허나 이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도의회와의 협조는 특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에 관해서는 다소 논란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강원도축구협회와의 협의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깜짝 쇼는 시민들에게는 이벤트였을지는 모르나 축구 및 도의회 관계자들에게는 뜬금포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강원도청측은 당초 발표한 대로 일정에 맞춰 절차를 밟아 창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5회 일치
개성과 관련된 법률도 당연히 이미 제정되어 있는 상태인데 상세한 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일단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한도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모양.[* 극중에서 뭐가 됐건 억눌린 시대라는 말이 이것과 관련이 잇을 듯하다.]
개개인마다 차이점이 있다보니 매우 강력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맥빠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뭐가 됐건 개성 자체는 단련해서 상승시키는 것이 가능한 듯 하다. 게다가 개성에 따라서는 별도의 단련이 필요하다.
개성 발현 2~3세대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구시대의 악습.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끼리 결혼시켜 더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결혼이다. 사실상 인간 품종 개량이라 봐도 무방한 것. 개성 사회의 씁쓸한 부분이며 현 시대에서는 상술한 대로 구시대의 악습이라 인식되는 듯 하다. 그런데 극중에서 한 히어로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실행했다.
문자 그래도 개성 없이 태어난 초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 주인공인 [[미도리야 이즈쿠]]가 무개성이었으며 세대가 지나면서 적어지는 듯하나 미도리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현 세대에도 존재한다. 다만 극중에서는 100화 넘게 진행되었는데도 등장이나 언급이 매우 적다.
* 개성의 영향 탓인지 보편적인 인간과 다른 이형적인 외모를 볼 수 있는데 조금 특이한 외모인가 하면 아예 이종족으로 보일 정도로 동떨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개성이 일반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별일 아닌 듯하나 이형계를 혐오하는 세력도 나오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런 연합의 스피너가 이런 경우.]
- 거유 . . . . 5회 일치
* 거유(巨儒) : 훌륭한 --거대한-- 유학자(儒學者)라는 뜻. 아래와 혼동하면 매우 곤란하다.
1985년 극장공개 된 미국 성인영화의 일본 타이틀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성인잡지, 비디오의 자막에서 자주 쓰이게 되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AV여배우 마쓰자카 키미코(松坂季実子)의 등장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쓰자카 키미코는 당시 공칭 110.7cm(실제로는 90cm)라는 가슴으로 [[일반인]]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며, 거유라는 단어가 일본 문화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5회 일치
* 봄바는 여전히 UMR가 남자라고 생각하는대다 실핀의 남친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 우마루는 봄바가 보고만 있는걸 보고 "즐겁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면서 함께 하자고 한다.
* 그걸보고 학생시절 [[도마 타이헤이]]가 함께 탁구를 치자고 권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 그때도 친구들이 치는걸 보고만 있었는데, 타이헤이가 먼저 다가와서 함게 치자고 권해서 즐겁게 탁구를 칠 수 있었다.
* 우마루는 UMR변장이 남자 같아 보이는지 신경쓰지만, 그냥 봄바의 안면인식 장애같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4화 . . . . 5회 일치
* 타이헤이의 생일 당일. 우마루는 오전 12시가 되자마자 떠들썩하게 축하하기 시작한다.--민폐야--
* 타이헤이는 게임센터에 가자고 하는데, 우마루는 오빠 취향이 아니라며 거절한다.
* 그러자 이번엔 "복권 사는 걸로 몽땅 써버려야겠다"고 하자 우마루가 "그 돈이면 콜라를 몇 병 산다고 생각하냐"고 뜯어말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1화 . . . . 5회 일치
* 우마루가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실핀이 "그럼 가자"고 말한다.
*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즐겁게 놀게 된다.
* 갑자기 특훈 분위기가 나게 된다.
* 대결 자체는 우마루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 번만에 녹초라 된 우마루와 달리 실핀은 팔팔하다.
* 우마루는 어머니처럼 점프대에 올라가 보자고 하는데 실핀은 "아직 어머니처럼은 안 된다"며 주저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5회 일치
* 거기에 흥미를 느낀 실핀은 무작정 그 거리에 가보자고 하고 정말로 와버린다.
* 실핀은 오빠가 레트로 거리의 풍경을 찍고 있는 거라며 우선은 떨어지자고 한다.
* 우마루가 오빠에게 아는 척하지 않을 거냐고 묻자 실핀이 당황한다.
* 우마루가 그런건 외롭지 않냐고 묻자 실핀도 "외롭다"고 답하는데.
* 우마루는 오라버니라고 부르거나 "이런 데서 만나네"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보라고 하는데, 실핀은 그 조차도 "그 다음엔 뭐라고 해야 하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감을 잡지 못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6화. '''우마루와 삼자면담 1'''
* 우마루네 학급이 삼자면담(학부모면담) 개시.
* 타치바나 실핀포드는 이게 "여자들의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어머니들이 평소 얼마나 미의식이 있는지를 겨루는 시험의 장이라는 것.
* 슬슬 학부모 친목회가 시작되려는데 아직까지 우마루의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 그때 타이헤이가 학부형 자격으로 참석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5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특별편 8화. '''지금과 옛날의 콘고 자매'''
* 반항기가 온건 아닌지, 가정환경이나 혹은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 이때 타이헤이가 인사치례로 굉장하다고 칭찬해줬는데, 카나우는 "엄청나게 칭찬했다"고 자랑해 버린다.
* 카나우는 역시 자신의 동생이라며 기뻐한다.
* 더불어 이젠 나이도 서른이 다 됐다며 자책하는데
- 검은방 시리즈 . . . . 5회 일치
전 시리즈에 개근한 주인공. 과거 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어린아이와 여승아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여승아를 구했다. 이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여승아)과 함께 감금당하게 되지만 하무열의 도움과 자신의 추리력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전 시리즈의 개근하는 조력자. 강력반 형사로, 1편의 사건 당시 허강민의 의도와 상관없이 납치당했다. 어쩌다가 납치당한 하무열로 인해 몰살로 끝나야 했던 허강민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검은방 1편의 범인. 스포일러 틀까지 쓰면서 스포일러 경고했다. 두명의 동생을 두고 있었으나 한명은 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다른 한명은 그 충격에 빠진 상태로 입대했다가 중대장의 갈굼으로 자살. 두 동생의 죽음에 연관된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검은방 1편에서의 사건을 일으켰지만 류태현과 하무열에게 저지당한다.
검은방 1편 이후 범죄 코디네이터로 전직,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을 위해서 죄인들(과 류태현, 하무열)을 납치해 감금한다.
- 고다이고 덴노 . . . . 5회 일치
중세 일본의 덴노. 이 무렵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었으며 덴노의 조정은 거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고다이고 덴노는 [[중국]]에서 전래된 [[주자학]]에 빠져서 덴노에 의한 직접 통치를 목표로 하였으며, 또한 천황가가 분열하여 양대 종통의 교대 계승이 있던 가운데 '''중간 땜빵'''으로 덴노의 지위에 올려진 몸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벗어나서 본인의 혈통이 덴노의 지위를 대대로 물려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특기는 책임 회피와 부하나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평가된다.--이러니까 망하지.--
== 자녀 ==
== 자녀 ==
* [[김혜자]]
- 고종(조선) . . . . 5회 일치
고종은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다. 아명은 이명복[* 가끔씩 고종을 까는 사람들이 시호 대신 이 이름으로 고종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 이후 10여년동안 조선은 청이 주류로, 그리고 일본이 보조로 마지막으로 미국등의 열강이 찔끔찔끔 이권을 뺏어먹는 형편이 되고(...), 결국 이는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동학의 교주였던 최시형의 탄원시도로 시작한 이 운동은 결국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박살내고 전주성을 점령하자 놀란 조정은 청군에게 병력을 급파해주길 요청한다. 그런데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홍계훈의 대포에 밀려 더이상의 북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청과 미리 텐진조약을 맺은 일본은 청이 조선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조선에 병력을 상륙시킨다. 어찌됐든 '''일본이 개입하자''' 놀란 농민군과 조정은 전주화약을 맺어 일단 농민군의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해주는걸로 끝난다.
- 곽희성 . . . . 5회 일치
| 배우자 =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12년 데뷔]][[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광주 FC . . . . 5회 일치
이에 당시 [[상무 축구단]]이 프로화를 고려하고, 이걸 감지한 각 지역은 상무 축구단을 유치하고자 하였는데 여기에 광주광역시도 유치흐름에 참가하여 광주 상무 불사조가 탄생하게 된다. 단, 여기에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시적 연고협약으로 맺어졌고, 광주광역시는 위 대안중에서 2번과 4번을 혼합하는 방안으로 월드컵경기장을 활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10년 5월에 법인을 설립하는 한편, 6월부터 9월까지 시민주 공모를 통해 창단자금을 마련하여 동년 12월에 창단식을 갖음으로써 2012시즌에 참가하는 신생구단 광주 FC가 탄생하게 된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구광본 . . . . 5회 일치
'''구광본'''(具洸本, [[1965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동 대학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056&yy=2007 매일신문 2007-07-04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식구〉]
* [http://www.segye.com/newsView/20160626001441 세계일보 2016-06-26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강〉]
* [http://www.idaegu.com/?c=8&uid=346911 대구일보 2016-08-22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식구〉]
* [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787854 인천일보 2017-11-20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서른 해〉]
- 권수현(배우) . . . . 5회 일치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86|8|18}}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A%B6%8C%EC%88%98%ED%98%8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476469 권수현-네이버인물정보]</ref>
'''권수현''' ([[1986년]] [[8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기타리스트]]이다.<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1263076 권수현-다음인물정보]</ref>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5회 일치
네가 추돌사고를 냈을 때 상대방 차주가 이걸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총 한번 겨눠서 주제를 가르쳐주자.
갱단과 경찰이 자주 쓰는 무기.
던지기 겁나 어렵다. 함부로 던졌다가는 자폭밖에 안되니 조심해서 던지자.
체력을 두배로 뻥튀기해주는 장비. 전투를 벌이는 미션의 경우 웬만하면 끼고 나가는게 좋다. 아직 무기점이 안 열렸다면 CJ 집 뒤 지하도로로 가서 왼쪽 다리 밑을 살펴보자. 방탄복이 입은 피해는 세이브를 해도 복구되지 않는다.
- 김가을 (수영선수)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김가을'''([[1997년]] [[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수영]] 선수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38&aid=0002158762 <nowiki>[라운지] 역대 최연소 수영 국가대표 김가을</nowiki>]</ref>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수영 선수]][[분류:자유형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
- 김성훈(배우) . . . . 5회 일치
* 《[[시카고 타자기 (드라마)|시카고 타자기]]》 (2017년, tvN) - 이정봉 역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수학 (법조인) . . . . 5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정경수
|자녀 = 1남1녀
*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5년 9월 18일에 [[대한민국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를 "돈을 주고 공천을 받았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수 차례 유포한 김천시장 박팔용에 대해 "특별한 전과가 없어 벌금형을 선고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ref>동아일보 1995년 9월 19일자</ref>
- 김숭실 . . . . 5회 일치
'''김숭실'''(金崇實, [[1981년]] [[4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한국마사회]] 소속의 대한민국 여자 [[탁구]] 선수이다.
[[1981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김숭실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대구봉덕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부에 들어가 탁구를 시작했다. [[2000년]] 실업 무대에 데뷔한 이래 6년만인 [[2002년]] 12월 [[SBS 챔피언전]] 여자 단식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182724.html 김창금, <만나봅시다 여자 탁구 샛별 김숭실>, 《[[한겨레신문]]》2007.1.8]</ref>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탁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
- 김종호(1933) . . . . 5회 일치
1952년에 [[해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해 1956년 임관했다. 목성함장과 부산함장을 지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함대사령관을 지냈다. 해당 한국함대는 뒤에 명칭이 바뀌어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었다.[* 해작사의 영어 표기도 Naval Operation Command가 아닌 Korea Fleet Command이다. 일본의 경우 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함대가 [[자위함대]]로 [[함대]]급 부대인 [[잠수함대]], [[호위함대]], [[항공집단]]의 상위기관이다.] 1986년 2월 1일에 한국함대가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자 초대 작전사령관을 지냈다.
게다가 둘 다 '영자'와 결혼했다. 16대 총장 김종호 제독의 부인은 김영자, 17대 총장 김종호 제독의 부인은 신영자.
- 김창규 (작가) . . . . 5회 일치
'''김창규'''([[1954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목회자]]이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창립에 기여했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전국연합회(기청) 수석부회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 저자 = 권혁상
| 저자 = 박현범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분단시대 동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김태연(배우) . . . . 5회 일치
그러나 거짓말에서의 충격적인 노출로 인한 이미지 고정 때문에 그 후에는 섭외를 자주 받지 못했고, 그나마 딱히 히트작도 없어서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중이 없는 역할로만 나왔다. [[2007년]]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것 이후로는 근황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게 없다.
* [[남자가 사랑할 때(SBS 드라마)|남자가 사랑할 때]] - 이진
* 남자의 향기 - 정민숙
* 소풍가는 여자 - 조수미
- 김형렬 (1959년) . . . . 5회 일치
'''김형렬'''(金亨烈, [[1959년]] [[6월 3일]] ~ ,[[대구광역시|대구]])은 전직 지방자치공무원이자, 현직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장 겸 한나라당 당원이기도 하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전임자 = [[김규택 (1936년)|김규택]]
|후임자 = [[이진훈]]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형종(배우) . . . . 5회 일치
|형제자매 =
* 《[[도망자 플랜 B]]》 (KBS2, 2010년) - 김 형사 역
* 《[[누구세요?]]》 (MBC, 2008년) - 사채업자 1 역
* 《[[남자가 사랑할 때 (2004년 드라마)|남자가 사랑할 때]]》 (SBS, 2004년) - 동식 역
- 김호근 . . . . 5회 일치
|배우자=
|자녀=
* [[교육인적자원부]] 산학협력과장
* [[교육인적자원부]] 기획감사담당관(서기관)
* [[교육인적자원부]] 직업교육정책과장
- 날갯죽지 조르기 . . . . 5회 일치
상대의 등뒤에서, 상대의 양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집어넣고, 상대의 후두부 쪽에서 양 손을 단단히 잡아서 조른다. 하가이(羽交い)란, 새의 날갯죽지(좌우 날개가 만나는 부분)나 날개 자체를 뜻하며, 이 기술의 명칭도 거기에서 유래한다.
체포술의 하나이며, 상대를 체포하거나 싸움을 말리는데 사용한다. 반대로 범죄자가 피해자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레슬링에서는 넬슨 홀드(Nelson hold)라고 부른다. 다양한 응용 기술이 존재하며, 아마추어 레슬링에서는 이 자세로 머리를 압박하여 공격하는 것이 기본이다. 프로레슬링에서는 이 자세를 시작하여 상대를 집어던지는 파생 기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 네드 켈리 . . . . 5회 일치
1878년 4월, 피츠패트릭 순경(Constable Fitzpatrick)이라는 [[경찰]]이 켈리 가족에게 찾아온다. 피츠패트릭은 네드의 동생인 댄 켈리(Dan Kelly)를 말도둑 혐의로 체포하려고 했다. 피츠패트릭은 총에 맞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후 피츠패트릭의 주장이 있는걸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켈리 가족의 어머니인 엘렌 켈리(Ellen Kelly)는 이 일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네드와 댄은 도주했다. 훗날 네드의 친구인 조 번(Joe Byrne)과 댄의 친구인 스티브 하트(Steve Hart)가 합류, 켈리 갱(Kelly Gang)이라고 불리는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
1880년 6월 27일, 켈리 갱은 빅토리아 주 글렌로완(Glenrowan)의 한 여관에서 경찰에게 포위당한다. 네드는 근거리에서 총알을 막아낼 수 있는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타났지만 보호되지 않은 두 다리에 총을 맞고 쓰려졌으며, 조 번은 경찰이 불을 지른 여관에서 뛰쳐나오다가 사타구니에 총을 맞고 죽었다. 댄 켈리와 스티브 하트는 여관이 불타 무너진 후 잔해 속에서 소사체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켈리 갱은 괴멸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네드 켈리 뿐이었다.
네드 켈리는 제릴더리(Jerilderie)의 은행을 털며 편지 하나를 남겼다. "제릴더리 편지[* Jerilderie Letter]"라고 불리는 이 편지는 1870년부터의 켈리 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당시 호주의 경찰이 부패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 편지는 경매에 나와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 사들였다. [[http://search.slv.vic.gov.au/primo_library/libweb/action/dlDisplay.do?vid=MAIN&search_scope=default_scope&docId=SLV_VOYAGER1636991&fn=permalink|전자책으로도 보게 해 주는 것 같으니 관심 있으면 클릭.]] 오른쪽의 View Online을 누르면 된다. 흘려쓴 영문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9세기에는 사형된 범죄자의 얼굴로 [[데스마스크]]를 만들었다. [[골상학]]에 근거해 분석하기 위한 용도였는데, 그 이유로 네드 켈리의 데스마스크도 만들어졌다. 현재 이 데스마스크는 [[http://www.nma.gov.au/collections-search/display?app=tlf&irn=76705|국립 호주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https://www.slv.vic.gov.au/search-discover/explore-collections-theme/australian-history/ned-kelly/ned-kelly-fact-sheet|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홈페이지- 네드 켈리 자료표(영어)]]
- 노경주 . . . . 5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5녀 중 첫째
* [[MBC 베스트셀러극장]] 촌남자 (1987년, [[문화방송|MBC]])
* [[TV손자병법]] 현미경 역 (1990년, [[KBS2]])
* [[남자는 외로워]] (1994년, [[KBS2]])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5회 일치
그러나 만약 적이 실수로라도 니나에게 공격을 성공하게 되는 순간 입장을 180도 바꿔서 갑자기 적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니나의 특성을 이용해서 배틀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1. [[아니에스(이노센트 투어)|아니에스]] - 관계는 최악. 상성 자체가 맞지 않는다. 아니에스는 엄청나게 순진해서 니나가 놀려먹어도 반응을 하지 않아 니나 입장에선 최악의 상대.
1. [[티엘(이노센트 투어)|티엘]] - 니나의 동생. 언니와는 다르게 상당히 선하다. 같은 자매인지부터 의심해야 할 정도. 사이는 나쁘지 않지만 니나를 하계로 보낸 것이 티엘일 정도로 티엘은 니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한다.
1. [[얼음여왕(이노센트 투어)|얼음여왕]] - 아스가르드에 신들의 황혼을 불러일으켜서 니나와 대립하지만... 니나가 아스가르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진압당하고 '''호구를 넘어 노예로 전락'''(...). 니나의 엔딩을 보면 리젤 대신에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 니세코이/218화 . . . . 5회 일치
* 유이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수장한 사람을 정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하지 않았던 거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을 골라주길 바라며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 이치죠는 오노데라를 먼저 보내고 혼자 클로드와 대면한다.
* 가짜연인인건 아무래도 좋지만 "다른 여자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다.
* 하지만 이치죠가 "돌아가라면 돌아가겠냐"면서 고집을 부리자 겨누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 아마 다음 화는 츠구미가 클로드에게 여자라는걸 밝히면서 한 화 때울 듯.
- 니세코이/220화 . . . . 5회 일치
* 오노데라는 어린 시절을 거의 완전히 기억해내며 자신과 치토게, 이치죠 외에도 츠구미, 유이, 마리카, 하루가 있던 것도 기억해낸다.
* 그 말을 들은 치토게는 그림책의 왕자와 공주가 약속을 하고 다시 만나게 됐듯 자신들도 그럴 수 있다며 모두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한다.
* 그리고 이치죠와도 약속하고 오겠다고 하는데, "언젠가 꼭 재회해서 결혼하자"고 약속하겠다고 폭탄선언한다.
* 그렇게 길고 긴 의혹이 추억의 장소에 갔다고 갑자기 다 떠올라 버린다.--죄다 치매냐--
- 니세코이/224화 . . . . 5회 일치
* 그러자 마리카는 "꼴사납다"고 매도한다.
* 자기 하나만 사라지면 둘이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냐며, 정말로 그럴 작성이라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학교를 다니던가 모든 것을 이야기한 후 양보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 치토게는 자기는 마리카만큼 엄격할 수 없다며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 거절 당하기 위해서 만나러 가는 짓은 못하겠다고 한다.
* 마리카는 자신이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한걸 해냈으면서 그렇게 시시한 걸로 포기하지 말라며 치토게에게 산 정상으로 가라고 다그친다.
* 혼자 남은 마리카는 씁쓸하게 독백한다.
- 대구광역시 . . . . 5회 일치
|한자 = 大邱廣域市
미국의 대한군사원조(AFAK)를 통한 자재 원조로 지어진 대구시청사 감사식(1955년)
! 자치구·군 ! ! 한자 ! ! 세대 ! ! 인구 (명) ! ! 면적 (km<sup>2</sup>)
2017년 대구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
- 대라신선 . . . . 5회 일치
여러 무협소설에서 한두번은 언급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전혀 별볼일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소설에서 자자 언급되는 이유가 매우 미스테리하다.
사실 언급만 되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언급되는 걸 보면 나와봤자 별로 도움은 안될 것 같다.
어떻게 손을 못 쓰는 환자가 90% 이상. 손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자가 10% 미만이다.
- 대전광역시 . . . . 5회 일치
|한자=大田廣域市
! 자치구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km<sup>2</sup>) || 법정동 || 행정동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대전광역시 공용 자전거 타슈
- 데모데모닷데 . . . . 5회 일치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상담을 원해서 상담을 받아주고,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줘도 「하지만」나한테는 무리. 「하지만」못할 것 같고. 「그래도」 자신 없고. 이런 식의 답변만을 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사람, 혹은 그러한 태도를 뜻한다.
2채널에서는 흔히 데모데모닷테(デモデモダッテ)라고 가타카나로 써서 나타내거나, 데모데모닷테(デモデモダッテ)라고 반각 문자로 나타낸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인기 없는 「그치만그치만그래도(でもでもだって)」쨩의 생태
넷용어 사전 사이트 넷 왕자 데모데모닷데(デモデモダッテ)
- 독친 . . . . 5회 일치
부모와 자식으로서 인연을 끊겠다는 위협을 반복한다.
자식이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서도, 특별히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한다.
자식을 독립시키지 않고, 언제까지나 지배하려 한다. 이에 대해서 일본 사회는 고령화, 만혼화 하면서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지배하는 것이 쉬워졌다는 견해가 있다.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라도,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조건적인 모습을 보인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5회 일치
서울시 강동구 둔촌 1동에 위치한 사립 남자 중고등학교이다.
~~어떤 날라리라도 출입시 지식을 탐구하는 학자가 되는 성역이다~~
학교 내에서 교무실 외에 유일하게 깔끔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마법천자문, 내일은 과학왕 등의 만화책들이 인기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만화책을 보러오거나 공부를 하기위해 도서실에 온다.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초판인 공포의 보수[* 엄밀히 말하면 해적판]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초판 등 의외로 희귀한 도서들이 많다.
* ~~교실의 전자교탁의 스펙이 대단하지 않음에도 몇천만원씩 한다는걸 보아 로비 의혹이 있다~~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5회 일치
라몬 베렝게르 3세 ''대백''은 1097년부터 1127년까지 30년간 바르셀로나 백국을 다스린 통치자다.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백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상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 라오우 . . . . 5회 일치
[[북두신권]]을 사용하는 인물로, [[켄시로]]의 사형. 동생이자 사제로 [[토키]]가 있으며, [[쌍둥이]] 형으로 [[수라국]]을 다스리는 [[카이오우]]가 있다. 후반부에는 라오우의 아들도 등장한다. 그 외의 혈연으로 여동생 [[사야카]]가 있다. 항상 타고 다니는 애마 흑왕호가 있으며, 자신의 사후에 흑왕호는 켄시로에게 물려준다.
세기말의 대지에서 '권왕'을 자처하며, 북두신권의 무력과 공포로서 각지를 제압하여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한다.
생전에는 공포의 패왕이자 최종보스 역할이었지만, 사후 2부에서는 왠지 이상화 되어 영웅적인 풍모가 돋보인다. 다만 공포에 의한 지배는 '필요악'적으로 묘사되는 등 왠지 모르게 악행을 설정으로 둘러치고 실드치는 느낌도 있어서 묘하다.
- 레이나 검랑전설 . . . . 5회 일치
[[켄류]]는 왠지 로봇이라기보다는 파워드 슈츠에 가까운 디자인이 되었다. [[바이캄프]]는 디자인 자체는 거대하고 위압적이라서 괜찮은 편이지만, 3편에서 어둠의 바이캄프로 소환되었다가 켄류도 아닌 그냥 검랑만 든 레이나에게 졌다.[* 사실 이 때 레이나가 검랑을 들면서 일단 '변신 비스무리한 연출'이 있긴 있고, 이 작품의 켄류는 로봇이 아니라 파워드슈츠 같은 것이므로 일단 켄류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을듯.]
어느 행성을 위협하는 발터 자르크라는 악당과 대결하는 내용이다. 자르크와의 대결에서 위기에 처한 롬을 돕기 위해서 레이나와 블루 제트, 로드 드릴, 짐이 나선다는 내용.
- 레이프 . . . . 5회 일치
복자를 써서 レイ○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14세기에는 뭔가를 약탈, 강탈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15세기에는 주로 여성을 성적인 목적으로 유괴한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지금과 비슷하게 강간이라는 의미가 나타나게 되었다. 다만 이때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것만 '레이프'라고 불렸다. 현대는 모든 형태의 강제적 성행위가 레이프로 정의되었다.
* 레이프를 하는 사람은 레이피스트(Rapist) 혹은 레이퍼(Raper) 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는 전자가 널리 쓰인다. 일본에서는 어쩐지 후자를 많이 쓴다.
- 로라 로라 . . . . 5회 일치
[[∀건담]]의 [[진히로인]]이자 작중 최고의 미녀이며, 역대 건담 최고의 미녀를 꼽을때 늘 입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캐릭터이다. 성우는 [[박로미]].
로라는 에이스 파일럿으로써의 자신과 조신한 자신을 구분짓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에이스로써의 로라는 보쿠를 사용하는 보쿠캐릭터이기도 하다.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류명선(야구선수) . . . . 5회 일치
[[류(성씨)|버들 류]](柳)자를 쓰다보니, 현역 시절에는 '''유명선'''으로 등록됐고 마찬가지로 KBO에서 유명선으로 검색해야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류씨 성을 제대로 표기하기 시작한 게 2007년부터고, 류명선이 은퇴한 건 그보다 한참 이전이기 때문이다. [[유명선]]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야구선수)|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태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김상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가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끝에 1991년 이후에는 위력이 크게 저하된 것을, 생각하면 내구성도 좋았던 편.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12><#000000> {{{#FFFFFF 역대 기록(타자)}}} ||
- 류원기 . . . . 5회 일치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된 윤길자의 남편으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검사와 의사에게 뇌물을 수수하는 등 담합 및 횡령 등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유호윤|제목=‘여대생 청부살해범’ 남편에 징역 4년 6개월 구형|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783485|날짜=2014-01-04|확인날짜=2016-02-11|뉴스=KBS}}</ref> 1심 재판부에서 횡령 형의만 적용받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서재근|제목=法, '여대생 청부살해' 영남제분 회장 징역 2년 실형 선고(1보)|url=http://news.tf.co.kr/read/economy/1312481.htm|날짜=2014-02-07|확인날짜=2016-02-11|뉴스=더팩트}}</ref> 2014년 2월 바로 상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여대생 청부살인’ 주치의·남편 모두 항소 네티즌 “뻔뻔의 극치.. 무기징역도 아까워”|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2|날짜=2014-02-11|확인날짜=2016-02-11|뉴스=go발뉴스}}</ref> 구치소에 수감된 채 2심 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선고 공판에 출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여대생 청부살해’ 남편 영남제분 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주치의는 벌금형|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0/2014103002297.html|날짜=2014-10-30|확인날짜=2016-02-11|뉴스=조선일보}}</ref>
- 마기/294화 . . . . 5회 일치
* 알리바바는 마법을 국가경영에 활용하려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나 홍염 정도의 숙련자가 필요하다.
* 알리바바는 홍염과 대화하며 황제국을 살리기 위해 도움을 받고자 한다 밝힌다.
* 알리바바는 황제국의 유일한 자원은 "사람"이라고 항변하며 어떻게든 신드바드를 설득한다.
* 알리바바가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자 "자신에게 맞서려는 거냐"고 묻는데 알리바바는 "답지 않게 작은 얘길 하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 마법병 . . . . 5회 일치
이 이름을 명명한 것은 도쿄제국대학 교수로서, 동물학자이자 어류학자였던 이이지마 하지메(飯島 魁)로 알려져 있다. 다만 명명 과정에서 약간의 착각(!)이 있었는데, 1907년 10월 22일자 도쿄 아사히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이지마 하지메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뭐든지 바라는 대로 나오는 마법의 병(매직 보틀)"에서 따와서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이솝 우화에는 없다(…). 아마 다른 동화를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착각'한 동화는 아마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병 속의 악마]](The Bottle Imp)'로 추측된다..
* 2013년 6월 2일자 오사카 일일신문(링크 안됨) : http://www.nnn.co.jp/dainichi/news/130602/20130602026.html
- 마치콘 . . . . 5회 일치
마치콘(街コン)이란 콘파에서 이름을 따온 이벤트로서, 지역 진흥과 만남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마치콘의 형식은 동성 2인 이상 1조가 되어, 개최 지역의 정해진 음식점을 순회하는 것이다. 각 점포에서 팔찌 등의 참가증을 제시하면, 이벤트 시간 이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식사와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100명 이상, 3000명 가량이 되는 경우도 있다.
마치콘은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과 얽힌 트러블이 많다.
* 마치콘에서 만난 상대가 기혼자였다. → 기혼자가 신체관계만을 목적으로 참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마치콘에서 만난 상대에게 돈을 빌려줬지만 행방을 알 수 없게 됬다. → 상대방에게 경계심이 적어서 금전 트러블도 자주 볼 수 있다.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5회 일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자신의 친구 해리 불리스에게 1953년 5월 26일에 했던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을 공산주의의 주구로 모함하고 다니며 개판을 치다 급기야는 미국 군부까지 공산주의 세력으로 모는 병크를 터뜨렸고, 전쟁영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카시 의원을 버리고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등 매카시를 정치적으로 거세[* 탄핵소추안 자체는 통과되지 않았으나, 명예를 존중하는 상원에서는 탄핵소추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증 당한 것과 같다.]해 버렸다. 위의 발언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종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발언.
* 말장난으로 생각하자면 솔직히 별로 웃기지는 않다. "대통령 각하의 유우머에 무릎을 탁 칩니다~~~" 라고 코멘트를 달아야 할 듯(…).
- 메타 발언 . . . . 5회 일치
창작물의 등장인물이, 스스로가 창작물의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의식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언급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등장인물이 제4의 벽을 깨고 독자나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건내거나, 저자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뜻한다.
- 모죠 . . . . 5회 일치
2ch 용어. 인기없는 여자(もてない女)를 뜻한다.
남자의 경우는 모오토코(喪男)라고 부른다.
인기없는(모테나이) 여자(죠세이)(もてない女性)
(한자를 붙여서)➔모죠(喪女)
또한 「상(喪)」이라는 한자에서 어두운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 무료로 책 읽는 사이트 . . . . 5회 일치
* 각 전자도서관
전자도서관들은 현재 각 도서관의 정책에 따라 일정한 가입절차 및 인증절차에 의해서 자신의 기기에서 전자도서를 대여할 수 있다. 위키러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도 전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을 테니 학교에 문의하면 사용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으니 참고.
- 무법자 . . . . 5회 일치
무법자라는 단어가 흔히 나오는 것은 [[서부개척시대]]인데, 이 무렵 미국 서부는 미국 연방 정부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고, 지방 주 정부는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권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무법자들이 각지에 활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악랄한 범죄자지만 훗날에는 민중영웅이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자들이라고 포장되기도 한다. 퍄.
- 문호근 . . . . 5회 일치
| 직업 = [[오페라]] [[연출가]] <br /> [[수필|수필가]] <br /> 前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
| 친척 = [[문동환 (목회자)|문동환]](숙부) <br/> [[문성근]](아우)
[[경상북도]] [[김천시|김천]] 출생이며 본관은 [[남평 문씨|남평]](南平)이다.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장남이자 [[영화배우]] [[문성근]]의 형이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 첫 데뷔를 한 그는 이후 피아니스트 활동을 접고 1970년대 이래 각종 오페라를 연출하였으며, 진보적인 예술인단체인 민예총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관으로 재직하던 중, [[2001년]] [[5월 17일]]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성1=연합뉴스 |제목=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씨 타계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1/05/009000000200105171428773.html |날짜=2001-05-17 |확인날짜=2018-09-05 |뉴스=한겨레신문}}</ref>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1967년 데뷔]][[분류:오페라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
- 미스터 피어 . . . . 5회 일치
본명 졸탄 드라고. 원래 밀납인형 박물관 경영자였으나 자신의 화학지식으로 인형들을 생명체로 만들어서 부하로 삼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포가스를 얻었다. 공포가스를 이용해 옥스, 일을 부하로 삼아 펠로우쉽 오브 피어라 칭하며 활동을 시작, 그러나 데어데블에게 패했다. 최초의 미스터 피어이나 두번째 미스터 피어은 스타 색슨의 손에 죽었다.
본명 스타 색슨. 자신의 로봇으로 데어데블을 죽이려 했지만 역으로 데어데블이 로봇들을 죄다 쓰러뜨렸고, 이에 자신이 직접 데어데블을 쓰러뜨리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 1대 미스터 피어를 죽이고 공포가스를 비롯한 장비를 빼앗았다. 현재는 사망.
본명 래리 크래스턴. 무려 데어데블의 법학과 동기지만 적이 되었다. 1대, 2대와 달리 마음을 조종하는 마약을 만들어 악당들에게 퍼뜨렸고, 심지어는 데어데블의 아내에게도 마약을 제공헤 정신병자로 만들었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5회 일치
바르나바 복음서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내용적으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고, 대신 [[가롯 유다]]가 십자가에 매달린다. 전반적인 내용은 4대 공관복음서와 유사하나, 이 같은 차이점은 [[기독교]] 전통보다는 오히려 [[이슬람교]]에서 묘사하는 예수와 유사함이 많다. 또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부정하고, 메시아의 이름은 [[무함마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만 정통 이슬람과도 내용 면에서 몇몇 차이가 있는데, 일단 무함마드를 이슬람교에서는 메시아로 보지는 않는다. 또 '하늘의 숫자'에서 이슬람교에서는 하늘은 7단계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바르나바 복음서에서는 9단계의 하늘을 묘사하고 있다.
일설에는 저자는 이슬람교도 출신으로, 스페인의 종교재판 전성기에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하게 되었던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바르나바 복음서는 기독교의 이슬람교 박해에서, 일종의 종교적 '저항문학'으로서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 바키도/112화 . . . . 5회 일치
* 자신이 순식간에 4등분 되는걸 보고 전의를 상실한다.
* 무사시는 계속하겠냐고 묻는데, 가이아는 그렇다고 하면 분명 웃을 거라고 자조한다.
* 가이아는 자신은 실제 무기를 썼는데 무사시는 맨손으로 베일 거라는 "예정"을 똑똑하게 이해시켰다고 말한다.
* 가이아는 싸우는 자로서 격이 너무 다르다고 인정한다.
* 그러면서 "베어서 뼛속 싶이 새긴다. 검도 무사시도."라고 자답한다.
- 바키도/122화 . . . . 5회 일치
* 무사시는 자신은 참격중독자이며 베는게 너무 좋아서 베어도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상대를 꿈꾸왔다 말한다.
* 그런데 피클은 무사시가 자신이 대응할 수 없었던 "곤충"의 모습으로 보이면서 식욕을 잃어 버린다.
* 그는 기회가 생기면 자신도 모르게 베어버리는 참격 중독자. 스스로도 "안 좋은 버릇"이라고 투덜댄다.
- 바키도/124화 . . . . 5회 일치
* 고대하던 싸움을 술을 뿌리며 자축하는 모토베 이조
* 모토베가 대결장소로 들어서자 도쿠가와가 "오늘은 피클의 날"이라며 만류한다.
* 스스로 청주를 뿜어서 자축하는 모토베.
* 그가 나타나자 관람객 일동이 동요한다.
* 모토베는 스스로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고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 바키도/126화 . . . . 5회 일치
* 무사시는 모토베가 태우던 담배를 넘겨받아 피우며 그 연기를 2차전의 봉화로 삼자고 제안한다.
* 무사시는 정좌한 채 잠자코 보고 있다.
* 무사시가 "통하지 않았군"이라 맞장구치자 이번엔 "아니, 내 경력은 지금 세상 빛을 보고 있다"는 말을 한다.
* 그는 이 연기를 2차전 시작의 봉화로 삼자고 한다.
* 완전히 나자빠지는 무사시.
- 박정호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저자 =
|작성일자 =
- 배대윤 . . . . 5회 일치
* 행정자치부 민방위운영과 과장
* 행정자치부 정보화담당 부이사관
|전임자 = [[박종갑]]
|후임자 = [[윤경희]]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진보중학교 동문]][[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배트맨 . . . . 5회 일치
선술되어 있듯이 돈이 매우 많은 부자. 그러나 그 돈을 낭비하거나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고, 배트맨 활동이나 올바른 일에 쓴다.
[[로빈]]이라는 사이드킥이 있는데, 1920년대부터 꾸준히 동성애 관계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갑부가 어린 남자애랑 사는게 뭐가 어때서.
아이언맨 슈트만큼은 아니나 배트맨의 코스튬도 그 자체에 방탄 등 별도의 기능이 있다.
배트맨의 자동차. 그냥 차가 아니라 특수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많은 면에서 [[슈퍼맨]]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슈퍼맨 VS 배트맨은 자주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5회 일치
본명 : 뱌아체슬라브 미하일로비치 스크랴빈(Vyacheslav Mikhailovich Skryabin)[* 대부분의 소련 지도자가 그렇듯이 혁명용 [[가명]]이 사실상 본명화 되었다.]
1906년 부터 [[볼셰비키]] 당의 당원이자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1909년과 1915년 체포되었다. 지방 당조직에서 활동하다가, 1921년 정치국 후보위원 및 중앙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49년 3월, 외무장관직을 사임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하자 다시 복귀, 1956년 6월,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정치적 불화로 해임되었다. 11월에 흐루쇼프 제거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모든 고위 관직을 잃었다.--[[숙청]]!--
이후 몽골대사(1957∼1960년), [[국제원자력기구]] 상임대표(1960∼1961년)을 역임, 1962년 은퇴했다. 1964년 6월에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반당 행위를 비판받아 모든 당적을 박탈당했다고 발표되었다. 이후 조용히 살다가 1984년 명예회복, 복권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알려지게 된 화염병의 생산을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4256a 참조]]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소련의 KS방화수류탄의 별명이 '몰로토프 수류탄'이라서 혼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인용 문헌이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http://ja.wikipedia.org/wiki/%E3%83%A2%E3%83%AD%E3%83%88%E3%83%95%E7%81%AB%E7%82%8E%E6%89%8B%E6%A6%B4%E5%BC%BE 참조]
- 벤 존슨 . . . . 5회 일치
벤 존슨은 자신의 도핑 파문이 음모였다고 주장한다. 벤 존슨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스폰서는 이탈리아의 스포츠 메이커 '디아도라'로서, 당시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하면 작은 기업이었으나 벤 존슨 자신의 활약으로 급성장 하였다. 당시는 유명 선수에 대한 도핑 테스트는 기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누구나 다 하고 있었으며, 반감기를 이용하여 몸을 '클린' 하게 하고 검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벤 존슨은 칼 루이스도 약물을 했는데 걸리지 않았고, 자신만 기습적으로 걸린 것은 자신을 저격하여 디아도라의 성장을 막으려는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변질자 . . . . 5회 일치
성격이나 성질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 그 때문에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 특히 성적으로 이상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흔히 [[변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는데 변태는 특별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폐를 끼치지 않아도 이상한 사람, 변질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한다. 즉, 변태가 범죄나 민폐를 저지르면 변질자로 클래스 체인지 한다.
퇴폐, 변질을 뜻하는 [[프랑스어]] dégénéré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에 [[동성애자]]들이 정상이 아닌, '이상'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기원을 가진다. 성적인 퇴폐, 정신장애를 사회적 병리와 동일시한 [[우생학]]과 연관이 되어 있는 말이다.
* [[신문]] 같은 언론매체 등 비교적 점잖은 매체에서는 '변질자'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다.
* 일본어에서는 길가에서 뭔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변질자가 나타났다(変質者が現れた)」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변태가 나타났다(変態が現れた)」고는 하지 않는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5회 일치
보스턴 북부에 위치한 '퓨리티 디스틸링'이라는 당밀 판매 회사에는 수만 톤의 당밀(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할 때 나오는 시럽 같은 부산물)을 저장하는 거대한 저장 탱크가 있었는데, 1919년 1월 15일 오후 12시 40분경에 이 탱크가 갑자기 붕괴하여 약 1만 4천 톤 가량의 당밀이 쏟아져 보스턴 시내를 덮쳤다.
1만 4천 톤의 시럽 파도라고 하면 마치 만화 속 코믹한 장면이 연상되겠지만, 이 때 발생한 당밀 파도는 해일처럼 인근 주택가와 전철 교량 등을 덮쳐 목조 가옥 14채와 전철 교량이 파손되고 21명의 사망자와 150여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달달한 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시가지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됐고, 당밀이 만들어낸 웅덩이들은 늪처럼 변해 인명 구조에 어려움을 주었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났다. 요약하면, '탱크 부실 시공 + 관리 소홀 + 부실 은폐 시도'. 여기에, 사건 당일에 갑자기 영상으로 상승한 기온으로 인해 부피가 늘어난 당밀 시럽이 가뜩이나 부실한 저장 탱크에 부담을 가중시켜 이와 같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런던 맥주 홍수 사건]]과 유사한 데가 있지만, 이 쪽은 원인이 뚜렷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영국 맥주 홍수 사건을 소개하는 포스팅들 중 상당수가 이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의 자료 사진들을 영국 맥주 홍수 사건의 짤방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 보증 . . . . 5회 일치
일부에서는 보증 제도를 파괴하고자 보증 제도에 대하여 나쁜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양 사회의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서구금융자본의 음모라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현실에서는 보증을 서주는 사람을 생각하여, 보증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돈을 갚기 위하여 노력하기 마련이고, 보증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증 반대론은 극소수의 예외 사례를 과장하여 말하는 것일 뿐이다.
보증에 관련된 문학 가운데 하나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또한 다자이 오사무가 친구에게 술값을 보증서게 해놓고 술집에 친구를 맡겨놓은 다음 자신이 나중에 술값을 가져왔다는 훈훈한 일화에서 따왔다.
- 보쿠걸/104화 . . . . 5회 일치
미즈키는 남자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 미즈키는 남자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면서도 하염없이 운다.
* 자신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슬프다.
* "여자로 사는 것이 무섭다면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며 사귀어달라고 고백한다.
* 후지와라는 음료수를 마시며 미즈키를 기다리고 있는데, 미즈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나타나자 얼른 안아준다.
- 부산광역시 . . . . 5회 일치
|한자 = 釜山廣域市
! 자치구·군 ! ! 한자 ! ! 세대 ! ! 인구 (명) ! ! 면적 (km<sup>2</sup>)
녹산국가산업단지에 있는 르노삼성자동차
자갈치시장
- 부산광역시/인물 . . . . 5회 일치
* [[김혜리(배우)|김혜리]] - 중구(부산) 남포동5가 (자갈치해안로) [[부산자갈치시장]]
* [[자동(스트리머)|자동]] - 중구(부산)
* [[최자혜]] - 해운대구
- 불단 . . . . 5회 일치
자세한 구조나 양식은 종파에 따라서 세세하게 다르다.
네모난 직육면체 상자 같은 형태로 제작되며,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문이 달려 있다. 크기는 장롱 만한 커다란 것에서,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상자 만한 비교적 컴팩트한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주로 나무로 제작된다. 소박한 모양도 있지만, 비싼 불단은 금박으로 장식하거나 옻칠을 하기도 한다.
불단의 내부에는 불상이나 족자, 혹은 만다라 등으로 된 ‘본존’을 모신다. 본존은 신자가 소속된 종파 본산에서 배포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본존의 좌우에는 종파에서 모시는 고승의 초상을 놓는다. 이 본존과 고인을 기리는 ‘위폐’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불단의 구조이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5회 일치
* 시합을 앞두고 주도권 싸움에 들어간 노엘과 유노. 그 앞에 상대팀 소속인 [[솔리드 노엘]]이 찾아와 노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유노는 자군에서 가장 기동력있는 자신이 이탈해 적의 크리스탈을 기습하려 하나 노엘의 강력한 희망으로 자신이 남고 노엘을 돌격시킨다.
* 노엘도 아무 생각없이 공격조를 자원한건 아닌데, 그녀가 치고나가면 반드시 솔리드가 쫓아올 거라는 계산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5회 일치
* 그런데 그 가운데도 해저신전 자체는 마력의 소용돌이로 보호받고 있었다.
* 지상인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흥분상태다. 거의 10년 만에 방문자라고.
* 야미는 단도직입적으로 제일 높은 사람을 찾는데, "대사제"란 사람이 이곳의 총책임자.
* 신전건물 내부로 안내받은 일행이 들어서자마자 --해왕류-- 기이한 바다괴물이 나타난다.
- 블랙 클로버/81화 . . . . 5회 일치
* 고슈 아들레이와 고든 아그리파는 왕립도서관에서 자료 조사 중
* 핀랄과 노엘은 마력도 없는 아스타가 전혀 포기를 모르고 그 모습이 자신들에게 싸울 힘을 준다며 반드시 아스타가 싸울 힘을 되찾아주자고 결의한다.
* 내막을 알게 된 아스타는 조용히 혼자 있는 장소로 가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 비록 마력을 타고 나진 못한 자신이지만 동료복은 타고 났다고 감격한다.
- 블리치/679화 . . . . 5회 일치
유하바하의 친위대 제라드와 교전하던 호정13대 일행은 제라드의 능력 때문에 가로막힌다. [[자라키 켄파치]]는 무모하게 공격을 거듭한다.
* 마다라메 잇카쿠와 아야세가와 유미치카는 제라드가 날뛰는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자라키 켄파치가 앞질러 간 것에 경악한다.
* 켄파치가 자른 제라드의 오른 팔은 금방 재생하는데, 이걸 보고 뱌쿠야와 토시로가 "적의 능력은 거대화가 아니라 더 강하고 크게 재생하는 능력"이라고 간파한다.
* 제라드는 자신의 검 "호프눙"을 뽑는다.
* 켄파치는 호프눙의 일격을 받아쳐내는데, 그 순간 호프눙의 날이 빠지고 갑자기 켄파치의 배가 갈라진다.
- 블리치/690화 . . . . 5회 일치
* 그런데 그의 만해는 해방하자마자 부러져 버린다?
* 천쇄참월이 사상 최초로 해방 자체가 저지된 만해가 됐다.
* 새로운 천쇄참월은 두 자루의 시해를 하나로 합쳐서 전개하는 방식.
* --어째 쓸데없이 자신만만하더라.--
- 빅터 차 . . . . 5회 일치
1959년 출생. 미국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아버지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상품을 백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하고, 2005년 타계했다.
그의 부인은 군인,정치인 김식의 딸이다. 김식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며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동기이다. 군에서 소장으로 전역했으며, 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됐다. 13대에서는 낙선했고, 14대에서는 [[민주자유당]], 15대에서는 [[신한국당]]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http://ko.pokr.kr/person/1933151 (참조)]] 13대에서 낙선한 이후로 농림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 빈병 . . . . 5회 일치
마트나 그런데 가져가면 돈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제도는 시행되고 있지만[*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 2017년자 생산품부터 100원, 130원.] 많은 가게에서 "우린 그런거 안 받아요,"라고 대답한다. 걸리면 과태료를 물게 되는 행동. 신고 보상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니 카운터가 꼴보기 싫었다면 찔러보자.
공병을 팔러 갈 때 이물질이 들어간 병이나 입구가 손상된 병은 가져가지 말자. 재활용의 관점에서 [[재떨이]] 대용으로 쓰는 등, 이물질을 투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형마트]]에는 무인 빈병 회수기라는게 있다고 한다. 어떤 물건인지는 경험자가 추가 바람.
이 페이지에 써지지 않은 내용도 있으니 관심 가면 한번 보자.
- 삼감의 난 . . . . 5회 일치
[[상나라]]의 왕족으로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은 [[주나라]]에 항복하여 옛 상나라 영토에 봉해지고, 이를 [[주문왕]]의 아들들([[주무왕]]의 동생들)이 감시하게 되었다.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을 삼감(三監)이라고 한다. 무경은 덕(德)이 있어 옛 상나라 영토를 부흥시켰고, 본래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은 오히려 무경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반면 주나라는 주무왕이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어린 [[주성왕]]이 즉위하며 [[주공단]]이 섭정을 맡아 보좌하는 상태가 되었다.
본래 주공단의 동생인 삼감은 주공단이 정권을 잡고 섭정을 하는데 반발한다. 삼감 가운데 관숙선(菅叔鮮) 등 2인이 무경을 옹립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명분은 주공단이 주성왕이 어린 것을 이용하여 자의적으로 국정을 운용한다는 것이며, 주나라를 대신하여 상나라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나라 제후로 봉해진 태공망 여상이 토벌에 나섯으나 3년에 걸쳐 싸워도 승리를 얻지 못했다. 이에 주공단은 제후들을 모아 친정에 나서게 된다. 본래 '친정'이라면 천자인 주성왕이 전장에 나서야 하지만, 어린 나이였던 주성왕은 나서지 않고 섭정인 주공단이 사령관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공단이 왕위에 올랐다는 설도 있다.
삼감의 난이 진압된 뒤, 주공단은 상나라 세력을 분할하게 된다. 상나라의 제사는 주왕의 남동생 미자계(微子啓)가 이어받게 되며, 그는 [[송나라]](宋)에 봉해진다.
- 삿시테쨩 . . . . 5회 일치
본심을 숨기면서, 자신의 의견이나 요구를 말하지 않으면서, 타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인물을 뜻한다.
삿시테(察して)의 삿시(察し)는 추찰, 통찰, 이해, 짐작을 뜻하는데, 타인에게 말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미리 자신이 추찰하여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린다는 의미가 있다. "~테(~て)"를 붙여서 뭔가를 해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쨩(ちゃん)은 애칭이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짐작해달라고 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곤란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동료, 친구일 때라도 어려운데, 이러한 특성을 가진 [[상사]]가 되면 더욱 힘들게 된다.
- 서명선 . . . . 5회 일치
| 필명 = [[자 (이름)|자(字)]]는 계중(繼仲) <br /> [[호 (이름)|호(號)]]는 귀천(歸泉), 동원(桐源) <br /> [[시호|시호(諡號)]]는 충헌(忠憲), 충문(忠文)
[[본관|본관(관향)]]은 대구(大丘)이며 [[자 (이름)|자(字)]]는 계중(繼仲)이고 [[호 (이름)|아호(雅號)]]는 귀천(歸泉)·동원(桐源)이며 [[시호|시호(諡號)]]는 충헌(忠憲)·충문(忠文)이다.
[[분류:1728년 태어남]][[분류:179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대구 서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영의정]][[분류:조선의 시인]]
- 서호진 . . . . 5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쇼트트랙}}
서호진이 참가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안현수]]의 역주에 힘입어 우승하였고 이 계주에 같이 참여해 금메달을 획득하게된 서호진은 군면제 혜택을 받았다.
[[2011년]] [[4월 16일]] 쇼트트랙 선수에서 은퇴했다.<ref name=et /> 현재는 동아종합인쇄사의 부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부터 가업을 잇기위한 경영수업을 듣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수]] 선수 폭행 논란 및 금메달 양보 의혹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줄 알고 침묵했다" 라며 부인했고, 관련 루머를 퍼뜨린 유포자에 대해서 경찰 수사의뢰하겠다며 강력한 조치 의사를 밝혔지만, 소식이 없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hi2014&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761293 서호진씨 "안현수 선수 구타한 적 없다…억울하다"], 연합뉴스, 2014년 2월 18일 작성.</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신목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성재(가수) . . . . 5회 일치
|관련활동 = [[비셔스글레어]]<br />[[인조이트립핑]]<br />언리시드앵거<br />맨카인드 디자인<br />[[GMC 레코드]]<br />IX CREW
'''성재'''([[1980년]] [[1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하드코어 밴드 [[비셔스글레어|비셔스글레어(Vicious Glare)]]와 언리시드앵거의 가수, 기타리스트이다. 본명은 '''박해진'''이며,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출신이다. 2008년 부터 ankind-Design'이라는 자신의 개인 디자인 브랜드를 운영, 음악 레코딩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하드코어 메탈 전문 레이블 [[GMC 레코드]]의 [[웹마스터]] /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다가 2014년 중순부터 레이블을 인수 받아서 CEO가 되어 운영중이다.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Straight_edge Straight Edge]라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 소명(가수) . . . . 5회 일치
|배우자 = 한영애
'''소명'''(본명 : 소명호, {{한자|蘇明浩}}, [[1958년]] [[12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 2003년 [[KBS]] [[전국노래자랑]] 애창가요 1위 수상
* 2006년 국무총리 수상 《행정자치부》
* 2014년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공로표창
- 손광업 . . . . 5회 일치
* 《[[기황후 (드라마)|기황후]]》 (2013년, MBC) - 자객 막손 역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슈퍼히어로 팀 . . . . 5회 일치
문자 그대로 다수의 슈퍼[[히어로]]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것이다. 슈퍼히어로가 단체로 등장함으로서 독자들에게 더 큰 흥미를 유발시킨다.
슈퍼히어로 한 명이 등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슈퍼히어로 팀으로서는 실사[[영화화]]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등장 캐릭터가 많고[* 히어로가 한 명이라 해도 그 히어로와 싸울 빌런과 히어로의 주변인물 등이 있다. 그런데 팀이라면 더 많아진다.], 각 캐릭터의 비중[*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캐릭터가 인기파인데 비중이 약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리고 인기는 둘째 치고 등장했으면서 별 비중 없으면 왜 등장시켰냐는 비난을 듣기 쉽다.]과 액션[* 주역이 초능력자라면 그 초능력을 잘 묘사해야 하고 비능력자라도 뛰어난 격투신같이 좋은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주역이라면.]을 신경써야 하기에 그 난이도가 정말 높아진다. 90년대에 먼저 나온 닌자 거북이 실사판 3부작의 성공이 팀 무비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고, [[어벤져스]]의 대박으로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렸다.
- 식극의 소마/164화 . . . . 5회 일치
[[식극의 소마]] 164화. '''스승과 제자'''
* 그리고 자기 요리에 빠질 수 없는게 있다며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온갖 잡동사니가 나온다.
* 그리고 찾아낸게 "맛밤"(밤을 구워서 껍질을 벗긴 과자)
* 에리나는 "숯불구이 자체는 프렌치가 아니지만 이 대결에서 소마만의 새로운 프렌치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고 평한다.
* 어서 자신이 있는 경지까지 올라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시인(문학)|시인]]이자 문학인.
데뷔한 이래로 10여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으나,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절친이었던 [[김관식]]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지라 과거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여러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그 중에서는 [[천상병]]이나 [[김관식]], [[조태일]], [[민병산]], [[황석영]] 등이 있다. 특히 천상병이나 김관식 등은 서로 ~~육두문자~~구수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으며 세 사람이 하나같이 알아주는 주당들이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자신의 시 중 하나인 <파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절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상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 신동호 (아나운서)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MBC 아나운서국의 8월 성명에 따르면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마이크를 잡지 못하게 하고, 다른 부서로 발령시키는 등 동료, 후배 아나운서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탄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ref>{{뉴스 인용|제목=MBC 아나운서들이 직접 밝힌 “우리가 TV에서 사라진 이유”|url=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882|뉴스=PD저널}}</ref> [[2017년]] [[10월 16일]]에는 [[문화방송]] 노조에 소속된 아나운서들이 부당노동행위를 하였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찰을 진행하여 신동호를 고소한다는 성명을 냈다.<ref>{{뉴스 인용|제목=[공식입장 종합] 파업 아나운서들 "MBC 신동호, 부당인사+비상식 사찰..고소"|url=http://www.osen.co.kr/article/G1110752639|뉴스=OSEN}}</ref>
* 2006년 [[MBC 연기대상]] TV 진행자 부문 특별상
- 신현준(군인) . . . . 5회 일치
만주군 복무만으로도 이미 '일제 부역'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가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그 항일조직들을 소탕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부대인 [[간도 특설대]] 간부였고, 그것도 창설 멤버였다는 점이다.[* 신현준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다름아닌 만주군 동기생이자, 훗날 그의 후임으로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김석범의 저작 <만주국군지>다.] 해병대의 창설 지휘관이자 초대 사령관이 간도 특설대의 창설 간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사실은 해병대의 흑역사일수밖에 없다.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
- 아이언맨(영화) . . . . 5회 일치
천재이자 재수없는 부자인 토니 스타크는 텐 링즈라는 조직에 의해 큰 부상을 입은 체, 납치되었다가 의사 호 인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아직 납치된 상황인데다 자길 납치한 텐 링즈측에서 토니에게 무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이에 토니는 인센의 도움을 받아 기계 수트를 만들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구조되어 생환한 토니는 비서인 페퍼 포츠, 친구인 제임스 로즈, 아버지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오베다이아 스테인과 재회하게 되며 피랍 사건을 계기로 자기 인생을 반성하고, 무기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 [[자비스]]
- 아이유 . . . . 5회 일치
| 자신
! scope="row" |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 style="text-align:center;"| <ref>{{뉴스 인용|url=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16886599435440&mediaCodeNo=258|script-title=ko:문화 연예 스포츠 이슈기획 오피니언 포토 스냅타임 검색 아이유, SBS '도롱뇽 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카메오 출연|trans-title=IU has a cameo appearance at SBS' Salamander Guru and The Shadows|work=E-Today|date=February 29, 2012|first=Seo Yoon|last=Jang|accessdate=October 25, 2019|language=ko}}</ref>
! scope="row" | [[예쁜 남자 (드라마)|예쁜 남자]]
- 아토믹 스컬 . . . . 5회 일치
[[스타 연구소]] [[과학자]]였는데 혼란스러운 신경을 치료할 방법을 못찾고 있었다. 그때 범죄조직 스컬이 그에게 원자 블라스트로 신경을 고정시키는 법을 알려줬다.
초능력은 [[원자력]] 블라스트 발사.
이름에 어울리게 머리가 [[해골]]이다. 다만 다른 디자인 중에는 그냥 투구를 쓴 버전도 있다.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도 등장. 지하격투장에서 등장했는데 [[와일드캣]]과 싸웠다가 패했다. 이후 [[고릴라 그로드]]의 대규모 빌런 집단에도 합류해 재등장. 후반부에 [[다크사이드]]의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자 히어로와 빌런들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아포콜립스의 전력에 대항했다.
- 암 . . . . 5회 일치
* 일단 한번 발생하면 주변의 정상 세포들을 침식하여 자신과 같은 암세포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생성된 암세포들은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조직의 활동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 암세포는 폭주하여 증식하는 과정에서 체내의 산소 및 영양분과 같은 자원을 무제한적으로 소모한다. 이는 신체 전체를 축내는 것이다. 암의 증상 중 하나가 “이유없는 체중 감소”인 이유가 이것이다.
* 암이 진행되어 신경을 침식하기 시작하면 극한의 고통이 찾아온다. 이 고통은 [[모르핀]]과 같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에게는 무제한적인 모르핀 사용이 허가된다.
암세포는 지속적으로 세포 분열을 하면서 절대로 노화하여 죽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암환자에게서 떼어낸 샘플의 경우 계속 키워주면 암환자가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있는 경우도 있다. (모든 암세포 샘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 야설록 . . . . 5회 일치
| 주요 작품 = 《[[불꽃처럼 나비처럼]]》<ref>소설《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영화《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원작이기도 하다.</ref><ref>{{뉴스 인용 |제목 = '소설에나 나올 법한' 명성황후의 뜨거운 사랑 「 불꽃처럼 나비처럼」1, 2 (야설록/형설라이프) |url = http://www.unionpress.co.kr/detail.php?number=40521&thread=01r04r02r02 |출판사 = 유니온프레스 |저자 = 방송연예팀 기자 |쪽 = |날짜 = 2009-09-03 |확인날짜 = 2009-09-05}}</ref>
| 배우자 =
| 자녀 =
* [[1998년]] 《소림제일룡》<br />《소십랑》{{ISBN|978-89-8328-137-1}}<br />《명객》{{ISBN|978-89-8051-409-0}}<br />《투귀》<br />《야랑》<br />《자객》{{ISBN|978-89-8328-131-9}}<br />《혈무》<br />《무림신화전기》<br />《소항유사》<br />《풍객》{{ISBN|978-89-8051-397-0}}<br />《무객》{{ISBN|978-89-8328-120-3}}<br />《대무당파》{{ISBN|978-89-8051-473-1}}
- 양키 . . . . 5회 일치
북부 미국인을 뜻하는 양키(Yankee)와의 관계는 애매하지만, 당시 미국인=화려하다 는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7월 21일 발매된 카몬 타츠오(嘉門達夫)의 양키 오빠의 노래(ヤンキーの兄ちゃんのうた)는 ‘나쁜 남자’를 뜻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전후하여 전국에 양키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퍼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 당시의 양키 패션은 특이한 패션 센스가 유행하였다. 양키 남자는 앞머리를 크게 부풀리고 파마를 한 [[리젠트 헤어]]를 하고, 학생복을 입지만 '도캉'이나 '본탄'이라 부르는 폭이 넓게 개조한 바지를 입는다. 화려한 셔츠나 샌들을 입기도 했다. 양키 여자는 1970년대 ‘스케반’이라 불리던 시대의 연장으로서, 교복 사복을 불문하고 꽉 죄이는 롱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이 시대의 스타일을 가리켜서 “클래식 양키”라고 부른다. 만화 등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고전적인 양키 불량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1990년대에 이미 보기 드물게 된 스타일로서, 불량 청소년들의 패션은 1990년대에는 컬러갱 스타일, 2000년대에는 힙합 패션 등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다만 일부 지방도시에는 아직도 이런 스타일이 남아 있다는 괴담(?)도 있다.
*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 미국인에게 집에 가라고 하는 말. 주로 [[반미]] 시위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얼티밋 에콜로지 . . . . 5회 일치
자원 개발의 미명아래 별들의 자원을 고갈시켜, 차례차례로 죽음의 별을 낳고 있는 무서운 악덕 우주 기업.
그 마의 손이, 여기 은하의 변경에 있는, 그 자연의 아름다움은 은하계 제일이라고 알려진 물과 초록의 혹성 「엘 우드」에도 닿기 시작했다.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엘 우드별의 과학자 「드크타모리」는, 고요크 사가 대량으로 투기하고 있는 비행기등의 대형 쓰레기를 개조해 2기의 전투 메카를 완성시킨다.
- 엘디아 인 . . . . 5회 일치
[[유미르 프리츠]]라는 한 [[소녀]]를 [[선조]]로 하는 종족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1820년 전 과거에 시조 유미르가 [[거인]]으로 변신하는 힘을 얻어 그 힘을 바탕으로 [[마레]]라는 대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엘디아 제국]]을 건설하여 1700년 간 번영했다고 한다.
파라디 섬의 엘디아 인은 작중 시점에서는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같은 엘디아 인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거인'과 투쟁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엘디아 제국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지극히 드문 듯 하다.
- 연분홍 . . . . 5회 일치
| 배우자 =
'''연분홍'''({{본명|곽지은}}, [[1992년]] [[8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2015년 5월에 녹화되어 7월5일에 방송된 전국노래자랑 용인시편에서 장윤정의 애가 타를 불러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당일 심사위원이자 초대가수였던 정의송의 눈에 띄어 3개월만인 8월4일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 [[2015년]] [[전국노래자랑]] [[용인시]] 편 최우수상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오늘만 산다 . . . . 5회 일치
내일 일어날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스피노자가 연상되는 철학을 보여주는 말이다. 항상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일을 생각하며 사는 각박한 현대인에게 오늘 하루의 일탈의 자유를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국]] 동진 시기에 역술가가 반란을 일으킨 대장군 [[왕돈]]에게 불려가서, 점을 치게 되었는데 당당하게 '실패한다'는 점괘를 내놓고, 왕돈이 "너는 그럼 얼마나 살겠냐?"고 위협하자 "오늘까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물론 역술가는 왕돈에게 살해당했다. 오늘만 사는 사람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
- 오보카타 하루코 . . . . 5회 일치
일본의 과학자. 치바현 출신.
코단샤를 통하여 자서전 '그날'을 출판하여 자신을 옹호하였다.
STAP세포를 응원하자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https://stap-hope-page.com/ 참조]])
실험실에서 [[앞치마]]를 입고 연구를 하는 등. 이색적인 모습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언론은 오보카타의 동정에 대해서 상세한 보도를 쏟아냈고, 「이과계여자(理系女子)」=「리케죠(リケジョ)」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 오수미 . . . . 5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現 [[제주시]]) ||
|| 가족관계 || 여동생 [[윤영실 실종 사건|윤영실]] [br]배우자 [[신상옥]](이혼), 김중만(이혼)[br]자녀 신상균(아들), 신승리(딸) ||
[[1970년]], 영화 [[어느 소녀의 고백]]으로 데뷔하였다. 그러다 [[1973년]]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이별(영화)|이별]]이 흥행하며 스타가 되었지만, 동시에 감독이었던 [[신상옥]]과 사랑에 빠지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오수미는 신상옥의 아이를 낳지만, 돌연 신상옥이 [[이북]]으로 납치되며 자연스레 신상옥과 이별하게 되었고, 김중만과 사실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신상옥이 돌아오자 김중만과도 [[이혼]]하고,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을 신상옥에게 돌려주고 그 이후로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살다가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 오승훈 (축구선수) . . . . 5회 일치
|로마자 표기=Oh Seung-Hoon
2015년 3월 7일 2015 시즌 대전의 첫 경기였던 [[부산 아이파크]]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자신의 K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1골을 실점하며 1:0 패하였으며 이어진 [[광주 FC]]와의 홈 개막전에도 선발출전하였으나 2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이후에도 3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전 5:0 패, 4월 4일 [[성남 FC]]전 4:1패로 두 경기 동안 총 9골을 실점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이어진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는 [[박주원 (축구 선수)|박주원]]에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박주원에게 잠시 주전을 내주었으나, 시즌 중 후반 [[전북 현대 모터스]], [[전남 드래곤즈]]와의 두 경기서 박주원이 7골을 실점하는 부진하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새로 부임한 [[최문식]] 감독의 신임을 받아 9월 1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하며 다시 주전으로 거듭났고,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무실점으로 선전하며 대전에 2015 시즌 홈 첫승을 이끌었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곧이은 홈경기서도 선전하며 대전의 2:1 승리이자 시즌 첫 연승을 이끌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였고, 2015 시즌을 끝으로 대전 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그 후, 2017 시즌 중 전역하여 남은 기간동안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가 2018년 1월 8일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다.
- 오예설 . . . . 5회 일치
| 배우자 = 정의철
* 《[[지렁이 (영화)|지렁이]]》 (2017년) - 자야 역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오지철 . . . . 5회 일치
* 2009.07 : 전남발전정책자문위운회 문화관광정책고문
|전임자 = [[박문석]]
|후임자 = [[배종신]]
|전임자 = [[김종민 (정치인)|김종민]]
|후임자 = [[이참]]
- 오토메 . . . . 5회 일치
오토메의 '오토'는 남자를 뜻하는 오토코(おとこ)와 같아서, 젊고 활기차다는 뜻의 동사였다. 메(め)는 여자라는 뜻이다.
『[[만연집]]』에서는 미혼 여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만연집이 쓰여졌던 [[헤이안 시대]]의 [[일본 귀족]]들은 1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조혼]] 사회였으므로, 이 시대의 미혼 여성 역시 대략 10대 초반 정도로 정말 어린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 나이를 지나면 [[노처녀]] 취급이었으니까.
파생된 말로 히오토메(非乙女)라는 말이 있는데, [[비처녀]]라는 뜻이 아니고 오토메에서 '사랑을 하는 여자'라는 뜻을 따와서 그와는 반대로 두근거리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 참고자료 ==
- 올마이트 . . . . 5회 일치
평화의 상징이라 불리는 최고의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이 말에 어울리게 혼자서 수많은 빌런들을 퇴치했다. 그의 등장으로 범죄율이 급감했을 정도. 평화의 상징이란 이명도 그에 대한 찬사로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이렇듯 완벽한 히어로 그 자체이나 사실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과거 강적과의 싸움에서 극심한 부상을 입은 나머지 거구의 근육질 체격은 몇시간만 유지할 수 있고, 대부분은 삐쩍 마른 몸집이 되는 것. 은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빌런에 대한 억제력이 되는 입장이기에 미루고 있다. 그의 특유의 표정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도 있지만 마음 속에서 들끓는 중압감과 공포심에서 달아나기 위함이다. 이러한 판에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소년과 만나게 되고, 그를 후계자 삼아 자기가 가진 힘인 [[원 포 올]]을 물려주게 된다. 동시에 그의 스승이 되어 그를 단련시키게 된다.
* 최고의 히어로 답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어려서부터 동경해왔으며, 그 성질 더러운 바쿠고 카츠키도 마찬가지다. 이 둘의 급우이자 No.2 히어로인 엔데버의 아들인 토도로키 쇼토도 올마이트를 동경해왔다.
- 우물가 회의 . . . . 5회 일치
[[여자]]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서 잡담을 나누거나, 소문과 험담을 퍼트리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뜻한다.
과거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의 도시는 공동우물이라는 시설이 있어, 우물가는 여자들이 물을 길러 오거나, 세탁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소문을 퍼트리던 장소였다.
비슷한 시기에 관청이나 회사에서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회의가 정착되기 시작하여, 남자들이 여자들의 수다를 회의에 빗대어 조롱하는 말로서 우물가 회의라는 말이 나타났다.
[[수도]]의 보급으로 공동우물은 사라졌으나, 우물가라는 말은 여자들의 수다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 원피스/886화 . . . . 5회 일치
* [[상디]]와 [[샬롯 시폰]], [[샬롯 푸딩]]은 완성된 재료들을 배로 옮기려 하는데 [[샬롯 오븐]]이 훼방한다. 푸딩은 가도 좋지만 시폰은 배신자이니 처단해야 한다는 것. 상디는 숨어있는 상태라 구해주지 못한다. 시폰은 오픈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 다시 일어선 오븐은 곧바로 일행을 추격해 재료를 옮기던 마차에 올라탄다. 시폰을 다시 사로잡았을 때, 마침 전보벌레가 울리는데 파이어탱크 해적단의 [[카포네 갱 벳지]]가 카카오섬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벳지는 결국 카카오섬으로 시폰을 마중하러 온 것. 오븐은 곧바로 벳지의 배에 연락해서 시폰을 인질로 잡고 카카오섬 항구에 정박할 것을 명령한다. 시폰은 자기 때문에 "진짜 가족"을 희생시킬 수 없고 꼭 살아남아 언젠가 복수해달라고 외치지만 벳지는 끝내 상륙을 받아들인다.
* 마차도 마침 항구 근처에 있어서 벳지의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벳지가 해안으로 들어오자 빅맘의 선단이 해안을 봉쇄해 벳지는 독 안에 든 쥐신세. 벳지는 그렇게 순순히 잡히는가 싶었지만, 배 위에서 마차의 오븐을 저격해 버리고 아들과 아내 앞에서 "이게 내가 살아가는 법"이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이 저격 덕에 오븐이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시폰은 놓여나지만, 결국 항구는 봉쇄되고 일행이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데.
* 텅 빈 바다를 가로질러 써니호도 어느새 카카오섬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작전 돌입으로 분주한데 문득 [[캐럿(원피스)|캐럿]]이 [[쵸파]]에게 뜬금없는 걸 묻는다. 오늘 밤 만월이 되지 않느냐고. 한편 빅맘 [[샬롯 링링]]에게서 도망친 [[몽키 D. 루피]]는 어느 민가에 숨어있다. 붙잡혀있는 [[샬롯 브륄레]]는 도망치고 싶으면 카카오섬으로 가면 될거 아니냐고 묻는데 루피는 다시 한 번 [[샬롯 카타쿠리]]와 승부를 낼 작정이다. 그의 견문색 패기도 패기인 이상 장기전으로 가면 소모될 거란 것. 하지만 루피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만으론 충분한 전략이 못된다. 그는 [[실버즈 레일리]]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패기는 실전의 극한 상황에서 더욱 개화하며 더 강한 적과 싸울 수록 루피도 강해질 거란 것. 루피는 자신에게도 "가까운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중얼거리는데 브륄레는 허세부리지 말라고 일침한다. 루피는 그 말을 듣고 "전력을 내는 카타쿠리에게 이기고 싶다"고 승부욕을 드러낸다.
- 윤철형 . . . . 5회 일치
|| '''형제자매''' ||누나 1명, 형 1명||
* 1994년 : 작은거인, 여자 아리랑
* 1995년 : 여자 일기
* 2010년 : 무법자
* 1991년 : [[여명의 눈동자]](MBC)
- 은혼/575화 . . . . 5회 일치
* 우츠로는 제자들의 실수는 역시 스승이 바로잡아야겠다며 직접 출격할 준비를 한다.
* [[오보로]]는 각혈을 하는 등 위험한 상태지만 우츠로에게 "나도 당신의 제자. 제자들의 일은 제자 선에서 처리하겠다"며 최후의 "충성"을 다하게 해달라 한다.
* 사단장 시시가 직접 상대하러 나오지만, 갑자기 난입한 누군가에게 어이없이 당한다
- 은혼/576화 . . . . 5회 일치
* [[아부토]]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말리려 하지만 이미 우주 최흉의 부자싸움이 시작돼 버렸다.
* 카무이는 오로지 아버지를 목표로 살아왔다고 독백하면서 우미보즈가 다시 한 번 짐승으로 돌아와 남자 대 남자로 겨룰 수 있기를 바란다
* 가구라는 "너희들이 아무리 바보같은 짓을 하려 해도 몇 번이든 멈춰주겠다해. 돌아가자. 평범한 가족으로."고 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바보같은 짓을 하려 해도 몇 번이든 멈춰주겠다해. 돌아가자. 평범한 가족으로."
- 은혼/583화 . . . . 5회 일치
* 결국 우미보즈고 자신을 죽일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우미보즈를 베어버린다.
* 퇴각하기 전, 우츠로는 우미보즈에게 "몇 백년 만에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종말 전의 여흥"이라며 조만간 "그쪽"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 녀석이 사냥감을 그냥 두고 돌아갔으니 결국 자신의 승리이며''' "왼팔은 가족을 잃으면서 잃었지만 오른팔은 가족을 지키면서 잃었다. 나로선 훌륭한 성과다"'''라고 자축한다.
* 본체였던 우츠로 자체는 확실하게 죽은 듯 하니 결국 우미보즈의 예견도 맞긴 했다.
- 은혼/589화 . . . . 5회 일치
*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남자"가, "겁쟁이란 것을 인정 못하고 싸움이란 도주로를 걸어왔던 남자"가,
* "혼자 돼서도 계속 어머니 곁에 있었고 뿔뿔히 흩어진 가족과 같이 싸우고 했던 여동생"에게 질 수는 없다고 중얼거린다.
- 가구라. "오빠"임을 자각한 카무이에게.
* 너무 이미지가 달라서 코우카인 줄 알았던 독자가 부지기수.
- 은혼/604화 . . . . 5회 일치
* "나로서도 선택해야겠네요. 제자를 베어야 하는 괴로움을"
* 노부메 조차 숨을 죽이고 긴토키는 여기엔 스승도 제자도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 노부메는 자신이 오판했다며 도주로를 확보할 테니 도망치라고 말한다.
* 노부메에게 뒤를 맡기고 퇴각하던 가구라와 신파치도, 자아가 사라진 불사신 군단 조차도 행동을 멈추고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 폭격으로 불사신 군단까지 와해되자 노부메는 이틈을 타서 긴토키를 구한다.
- 이경석 (배구인) . . . . 5회 일치
'''이경석'''(李京錫, [[1961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의 세터 출신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모교 [[경기대학교]]에서 감독을 했으며, 2011-12시즌 [[김상우 (배구인)|김상우]] 감독이 경질된 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의 감독에 부임했다. [[2012년]]에는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LIG의 KOVO 주관 대회 첫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2-13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 경질당했다. <ref>{{뉴스 인용
| 저자 = 김진회
|전임자 = [[김상우 (배구인)|김상우]]
|후임자 = [[조세 라이트]]<br />(대행)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 감독]][[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배구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
- 이경영(1958) . . . . 5회 일치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탤런트지부 (전)지부장
* KBS [[왕과 비]] - 권자신 / [[김일손]] 역 (1999년)
* KBS [[남자는 외로워]] - [[최수지]] 애인 역 (1994년)
* SBS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 [[조필연]]의 친구 [[오세광]]역 (2010년)
- 이규환 (영화감독) . . . . 5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나 어릴 때 [[경성부]]로 이주하여 자랐다. [[우미관]]을 드나들며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보며 성장하였다. [[1919년]]에 대구 [[계성고등학교]]의 전신인 계성중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으로 인해 [[밀양시|밀양군]]의 시골 마을에서 2년 동안 피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이규환의 영화 작품에 드러나는 향토적 화면에 영향을 미쳤다.
[[1932년]]에 귀국하여 제작한 작품이 《임자 없는 나룻배》이다. [[나운규]]와 [[문예봉]]이 출연한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고 문예봉을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제작비 문제 등으로 순탄치 않은 영화 작업을 계속했다. [[1937년]]에는 [[성봉영화원]]을 설립하고 로컬리즘 색채가 강한 《나그네》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성봉영화원이 [[조선영화주식회사]]로 통합된 뒤 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만주]]로 떠나, 일제 강점기 말기의 [[군국주의]] 영화 제작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 참고자료 ==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 이동훈 (1996년) . . . . 5회 일치
|수비 위치 = [[중견수]], [[좌익수]], [[우익수]], [[지명타자]]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7월 10일]]<br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대주자
'''이동훈'''([[1996년]] [[7월 24일]] ~ )은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지명타자]]이다.
* {{KBO 타자|66702|이동훈}}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 이득윤 . . . . 5회 일치
'''이득윤'''(李得胤, [[1553년]] ~ [[1630년]])은 [[조선]] 중기(선조-광해군)의 정치가·학자·음악 이론가이다.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년) 진사가 된 뒤, 참봉, 형조좌랑, 괴산(槐山)군수를 지냈다. 서기(徐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역학 (철학)|역학]](易學)에 뛰어났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1620년]](광해군 12년)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엮어서 세상에 내놓아 [[거문고]]의 법도(法道)를 바로 전하게 하였다. 음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여러 금보 및 그 저자와 [[거문고]] 대가에 대하여 다룬 것을 보면, 그가 음악에 조예가 깊고 상당히 박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저서로 〈서계집(西溪集)〉이 남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米院面) 가양리(佳陽里) 인경산(引頸山) 아래에 있다.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청안군|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분류:1553년 태어남]][[분류:1630년 죽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음악가]][[분류:조선의 학자]][[분류:경주 이씨]]
- 이상목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 [[롯데 자이언츠]] (2003년 ~ 2007년)
대표적인 [[포크볼]] 투수이며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지만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3년]] 시즌 중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빙그레에 이적한 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였고 시속 140km대의 직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많은 승수를 얻었으며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했다. [[2003년]]에 15승 7패를 기록하여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6년]]을 제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2007년]]에 방출되었으며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이성구 (1942년) . . . . 5회 일치
'''이성구'''(李聲九, [[1942년]] [[3월 17일]], [[대구광역시]]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이자 전직 서울특별시의원,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민국 제1회 지방 선거|제1회 지방 선거]]||[[서울특별시의회|서울특별시의원(서초구 제1선거구)]]||4대 (민선 1기)||[[민주자유당]]||{{막대|청|5|0|0|3}} 50.03%||13,327표||1위||[[파일:지방의원당선.png|25px|서울특별시의원 당선]]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공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민주자유당의 정치인]][[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영천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이억년 . . . . 5회 일치
'''이억년'''(李億年, ? - ?)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 유학자이다. 자는 인여(仁汝), 호는 요산재(樂山齋)이고 본관은 성주이다. [[이조년]]의 형이자 [[이승경]]의 삼촌이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종조부이며 [[이숭인]]의 종고조부이다. [[경상북도]] 출신. 1285년(충렬왕11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벼슬을 거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부임했다. 개성부 유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는데 당시 원나라가 국정에 간섭, 관여하자 원나라의 개입을 항의하는 시 '천재홍진몽외사(千載紅塵夢外事) 청산하처독엄비(靑山何處獨掩扉)'라는 시를 남기고 치사(致仕), 경상남도 함양군 위성(渭城) 엄천리嚴川里)로 들어가 서당인 도정정사(道正精舍)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공맹의 도를 강론하였다. 사후 성주의 안산서원, 금릉의 상친사에 제향되었다.
[[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성주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이인임]]
- 이은수(육군) . . . . 5회 일치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2014년에 선임 장교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육군 대위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회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80731#cb|관련기사]]
가족관계로는 남편과 딸 하나가 있었으나 남편은 07년에 지병(암)으로 사망하였고, 부친도 이 장군의 전역 3개월 전에 별세하였다.[* 이은수 장군은 자신의 장군 취임식 때 연평도사건으로 인하여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부친을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의 전역식 때는 부친을 꼭 모시고자 마음먹었으나 전역 3개월을 앞두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모친의 병간호로 무리했는지 사망했다.]
- 이장훈(배우) . . . . 5회 일치
| 배우자 =
* 뮤지컬 《[[달고나]]》 삼촌 역 (자유극장/한전아트센터/충무아트센터)
* [[KBS]] 목욕탕집 남자들 -KBS-
* 뮤지컬 《뮤직인마이하트 시즌5》 (자유극장)
* KBS 《목욕탕집 남자들 주제가》
- 이헌일 . . . . 5회 일치
*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1963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하였고 사후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6437&ipp=10000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자 목록]
[[분류:1917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현 (1983년) . . . . 5회 일치
'''이현'''(李賢, [[1983년]] [[11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이다.
* [[2015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상감마마 납시오~! <참가자 - 우승>
[[분류: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효린 . . . . 5회 일치
'''이효린'''(李孝麟, 1540년 - 1622년)은 조선시대의 유학자, 의병장이다. 본관은 우계이고, 도촌 이수형의 증손이며 참봉 이은의 넷째 아들이다. 자는 원서(源瑞),
[[이수형]](李秀亨)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혜민서 참봉 은이고 어머니는 공주이씨 이성의 딸이다.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생으로 수학하였다. 순흥 재향지에 의하면 음사로 관직에 나갔다 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사촌형 [[이흥문]] 등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김개국]] 의병장 휘하에서 왜적에 대항하였다. 그 공로로 [[내자감]] 주부(內資監主簿)와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지냈고, 80세에 수계(壽階)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순흥 재향지에 의하면 수식(水息) 석람(石嵐) 동쪽 산 아래 두 시냇물 사이에 정자 아양루(峨洋樓)를 지었으나 뒷날 소실되었다 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에서 매장되었다.
- 인비저블 우먼 . . . . 5회 일치
인비저블 우먼의 투명화는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물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투명화 능력의 폭이 넓어서 변장도 할 수 있다. 머리카락을 [[모히칸]] 스타일로 보이게 하거나, 복장을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
인비저블 우먼이 사용하는 포스 필드의 경우 자신에게도 투명하다고 한다.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인텔리 야쿠자 . . . . 5회 일치
[[야쿠자]] 가운데서 [[인텔리]]. 주로 전통적인 야쿠자 계열의 사업이 아니라, 현대적인 사업에 종사하며 지능적으로 돈을 버는 타입을 뜻한다.
야쿠자 단속에 따라서 이전처럼 노골적으로 야쿠자가 사무소를 내고 영업하지 못하고, 프런트 기업이라는 위장 기업을 설립하게 되면서 인텔리 야쿠자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 일곱개의 대죄/170화 . . . . 5회 일치
* 이 상태의 '''에스카노르의 전투력은 22800'''. 이 자체로 '''십계의 갈란을 능가하는 전투력'''이라고 그로키니시아가 인증한다.
* 고우서의 공격을 피해 높이 솟아오른 에스카노르는 자신의 신기 '''신부 릿타'''를 소환한다.
* 그가 신기를 해방하자 무서운 마력이 모이고 이 힘은 십계의 에스타롯사와 맞먹는다.
* 결국 승자는 고우서. '''에스카노르를 블랙 아웃트로에 꿰뚫려 쓰러진다.'''
* 고우서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지만 제리코는 에스카노르의 마음을 생각하라며 비난한다.
- 일곱개의 대죄/172화 . . . . 5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는 "한때 마신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함께 싸운 셋이 적대하게 됐다"며 정말로 자신들과 싸울 거냐고 묻는다.
* 그로키시니아는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 당해 목숨보다 귀한 것을 빼앗겼다, 드롤은 최강을 목표로 하는 전사였으나 긍지를 짓밟혔다.
* 싸움의 여파는 인질로 잡힌 이들에게도 전해지고 호크는 나가서 멜리오다스를 돕자고 하지만 반은 "나가봐야 단장의 방해"라고 잘라 말한다.
* 길프로스트는 자신의 힘으로 잡혀있는 전원을 순간이동 시킨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의 생사를 걱정하는데, 길프로스트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수정구슬을 보여준다.
- 임성은(가수) . . . . 5회 일치
||<#eee> '''출생''' || [[1971년]] [[2월 19일]] ([age(1971-02-19)]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그리고 2018년 1월 슈가맨 시즌2에서는 자신이 직접 멤버들과 소속사 사이의 정산 문제를 해결해 보려다, 돈을 밝힌다는 악성 루머가 생겨서 자진 하차했다고 고백했으며 1집 활동 시기 때도 데뷔를 위해 연습 중인 다른 멤버들이 투투 2집 활동 후 맏언니 겸 메인 보컬로 들어온 임성은을 '다된 밥에 숟가락 얹는다'며 은근히 싫어했다고 한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다른 멤버들과의 춤 실력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 2집에서는 힙합 풍을 접합한 'My love'로 활동했으며 영턱스 때 보여준 비보이 댄스 실력을 선보이면서 신나는 무대를 연출했지만 2세대 아이돌로 인기가 넘어가는 시대였던데다가 갑작스럽게 이미지를 급전환해서 그런지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후속곡으로 '짝사랑' 활동을 하였는데 트로트댄스 풍의 곡으로 돌아와 타이틀곡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노래방이나 전국노래자랑에서 이 노래가 많이 불려졌었다.
[[분류:1971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한국 가수]][[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장석조 (판사) . . . . 5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1961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대전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는 등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소 근무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집행절차에 있어서의 채무자 보호, 판결의 편취와 절차적 기본권, 우리 헌법상 절차적 기본권, 조세법상 실질과세원칙의 적용한계, 헌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재판과 헌법적 판단, 재판받을 권리의 헌법상 보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8년에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받았다.
* 대전지방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12월 5일에 1999년 1월 7일과 9일 이종기 변호사가 "판,검사 등에게 대가성 소개비를 지급했다"는 등의 허위 보도로 이종기 변호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4-8월 집행유예 1-2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 등을 선고받은 [[대전MBC]] 기자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1999년 1월 9일 보도내용중 당시 판,검사들이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떡값이나 전별금을 받았지만 뒷거래를 없었던 만큼 미필적이라도 허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이 정확한 사실을 가려내기 힘든 점과 이종기 변호사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없는 점으로 미뤄 비방한 것으로 볼수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하면서 "당시 보도가 법조계의 전관예우라는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고 보도 이후 법조계에서 이같은 관행이 해소된 점과 국민의 알권리 등 언론의 공익적기능 등을 고려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강모씨에게 벌금 500만원과 고모씨, 석모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각각 선고하면서 김모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10361]</ref>
- 장영 (조선) . . . . 5회 일치
'''장영'''(張銢, [[1622년]] ~ [[170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 (이름)|자]](字)는 명세(鳴世), [[호 (이름)|호]](號)는 소매당(訴梅堂)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장응일]](張應一)의 아들로, 할아버지인 [[장현광]](張顯光)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았다.
[[1662년]]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며,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가 되었다. 이후, [[경안찰방]](慶安察訪), [[고령현감]], [[이인찰방]](利仁察訪), [[군자감판관]], [[공조정랑]], [[경흥창주부]], [[세자익위사위수]](世子翊衛司衛率) 등을 거쳤으며, 사후에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분류:1622년 태어남]][[분류:170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저변교 . . . . 5회 일치
번역하자면, 조금 옛날 속어로 하자면 ‘똥통 학교’. 요즘 인터넷 속어로 하자면 ‘막장 학교’ 정도가 될 것이다.
주로 고등학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가 있기 때문에 그 특성상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정한 수의 입시 낙오자가 나타나게 된다. 때때로 재수를 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를 재수하기에는 주변과의 연령차상 다소 곤란하기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저변교를 가는 경우도 있다.
진학을 목적으로 하여 실적을 얻는 학교인 진학교와는 반대로 저변교는 그 자체가 ‘되도록이면 진학하고 싶지 않은 학교’로 취급받는다. 일단 교육환경이 나빠서, 학생들이 대부분 학력이 없어서(고등학생인데 분수 계산을 하지 못한다 등) 교육의 질이 해당 단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다. 물론 비행청소년이 넘쳐나고, 심지어 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다보니 취업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 전병조 . . . . 5회 일치
'''전병조'''(田炳祚, [[1964년]] ~ , [[대구광역시]])는 [[KB투자증권]]의 대표이사 사장인 [[대한민국]]의 기업인, 금융인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1&oid=003&aid=0006279619 KB투자증권 신임 사장에 전병조 부사장 내정] 뉴시스 2014년 12월 30일</ref>
* NH투자증권 IB부문 전무
* KB투자증권 IB부문 대표 부사장
* KB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 전순옥 . . . . 5회 일치
| 배우자 = 크리스 조엘(영국인)
| 자녀 =
| 소속상임위 = [[산업통상자원위원회]]
* 2013.04 ~ 2016.05 : 제19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여자 정치인]][[분류:전태일]][[분류:워릭 대학교 동문]]
- 전자레인지 . . . . 5회 일치
해외에서는 전자레인지에 [[고양이]]를 넣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동물학대로 쇠고랑을 찰 수 있는 행위다.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15/20140315000879.html|키우던 물고기를 고양이가 먹어 전자레인지에 넣은 사례]]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467572|남의 집 고양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도망간 사례]]
[[분류:전자제품]]
- 전자사전 . . . . 5회 일치
과거에 존재했던 전자제품의 일종. 여러가지 사전의 데이터를 쑤셔박은 전자기기다.
사전의 기능 뿐만 아니라 수첩 등의 기능도 가지고 있던 다용도 기기였다. 2000년대 후반 나온 전자사전은 노래를 듣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동영상의 경우 인코딩이 필요했지만 그게 어딘가.
[[아이리버]], [[샤프]], [[카시오]] 등이 대표적인 전자사전 제작사였다.
[[분류:전자제품]]
- 전재국 . . . . 5회 일치
|부모 = [[전두환]](부), [[이순자]](모)
|배우자 = [[정영숙]]
|자녀 = 슬하 1남 1녀
* [[이순자]]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삼육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완산 전씨]]
- 전종화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2순위([[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1987년 ~ 1991년 시즌 중)
'''전종화'''(全鍾和, [[1965년]] [[8월 10일]] - )는 前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의 포수였다.
|1987 ||rowspan="3" style="text-align:center;"|[[롯데 자이언츠|롯데]] ||0.000 ||4 ||3 ||0 ||0 ||0 ||0 ||0 ||0 ||1 ||0 ||0 ||0 ||0 ||0 ||1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5회 일치
* 마기 본인은 자각 없이 그저 "강력한 보안에 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만 기억하고 있다.
* 마기의 눈 주위에 블랙팬텀에 세뇌된 자 특유의 균열이 보인다.
* 아오이와 시호는 키리츠보 국장에게 미나모토의 행방을 캐묻지만 국장인 국장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 카오루가 반발하자 에스퍼 제압용 블래스터를 들이대며 "레벨7은 위험분자고 필요하면 제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한다.
- 정동기 . . . . 5회 일치
* 2010년 12월 : [[감사원장]] 후보 내정(1월 12일 후보직 자진사퇴)
|전임자 = [[김희옥]]
|후임자 = [[정진호 (1954년)|정진호]]
|전임자 = [[이종찬 (1946년)|이종찬]]
|후임자 = [[권재진]]
- 정명환 . . . . 5회 일치
[[1980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후 1982년 6월에서 1985년 6월까지 [[국방의 의무|대한민국 육군 사병 복무]]한 그는 [[1986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1988년]] [[영화]] 《둥지 속의 철새》의 단역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9년]] 영화 《모래성》에 단역 출연하였으며 이후 [[배우|텔레비전 연기자]]로서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한국교육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 ... 강균 역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0년 데뷔]][[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정문성 . . . . 5회 일치
* [[2013년]] [[SBS]] 《[[당신의 여자]]》 - 김태성 역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순천향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소담 . . . . 5회 일치
| 배우자 =
'''정소담'''(1989년 02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프리랜서 [[아나운서]]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주간지 <스쿠프> 경제부 기자
*탈북자영어교육 국제NGO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 Academic Adviser
#[https://brunch.co.kr/@sodamjjj/13 <맥심칼럼> 나쁜남자론, 그 오류가 쓰인 전말]
- 정재안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2013.06 ~ 2014.06 자원재활용연대 정책위원장
*2013.06 ~ 환경부 재활용자원수집업 발전협의회 위원
*2012.11 ~ 2014.06 자원재활용연대 경기도지부 남양주시지회 사무장
- 정재호 (1930년) . . . . 5회 일치
* 세계통신, 민국일보,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상임논설위원
* [[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 겸 대변인
== 참고자료 ==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정차온 . . . . 5회 일치
'''정차온'''(鄭次溫, [[1399년]](정종 1) ~ ?)은 [[조선]]시대 전기의 학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정씨|경주]]이고 자(字)는 공후(孔厚)이다. [[경상북도]] 출신.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상주]][[판관]](尙州判官)에 이르렀다. [[1455년]] [[조선 단종|단종]](端宗)이 강제로 [[조선 세조|세조]](世祖)에게 강제로 선위하고 상왕이 되자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세조가 평양판관(平壤判官)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교육인]][[분류:경주 정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제주특별자치도 . . . . 5회 일치
|이름 = 제주특별자치도
|한자 = 濟州特別自治道
! 이름 ! 한자명 ! 인구 (2018) ! 구획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제주특별자치 출신 인물]][[분류:2006년 설치]]
- 주장환 . . . . 5회 일치
'''주장환'''(1957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신문기자, [[소설가]]이다.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중소기업사랑 청소년글짓기 공모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장애인예술대상 문학부문 심사위원, 충효예실천운동 본부 상임위원,부총재 [[731부대]] 한국인 희생자 진상규명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극동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하버드대학 Literati China 과정 수료. 월간조선 객원기자
소설 '사바카' '그 바닷가 헛간은 따스했다' '겨울새 물살털기' '퇴계 이황' 등이 있으며 시집 '내마음 속에 사랑의 집 한 채' 교양서 '논어와의 대화' '참사랑의 길' '레오나르도다빈치와 함께 하는 논술,NIE' '로즈여사에게 배우는 특별한 자녀양육법 26' '노벨문학상 소프트' 등과 '배짱으로 살아라' '사랑을 주는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 지무시 . . . . 5회 일치
초반에는 자신이 살던 섬에서, 라나를 찾으려는 코난과 어찌어찌 얽혀 그 섬을 떠나게 되어, 코난을 내켜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친 사고에 대한 징벌(나무판으로 볼기 맞기)을 술로 인사불성이 된 자신 대신, 코난이 맞아[* TV판 4화에서, 지무시는 바라쿠다 호에서 다이스 선장의 음식과 술 등을 훔쳐 먹고 주방장을 기절시키는 등 사고를 쳤다. 만취한 지무시를 데리고 코난은 달아났으나, 잡혀서 이전의 로보노이드 파손 등의 죄목과 합쳐져, 교수형과 볼기 맞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게 된다. 볼기 맞기를 견디면 이 배에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두들겨 맞는데, 만취한 지무시는 단 한 대에 기절해버린다. 이에 코난이 대신 맞겠다며 나선다. 지무시가 맞을 몫인 20대까지 떠맡아, 코난은 선원 한 명당 40대씩 맞았는데, 바라쿠다 호의 선원들이 대략 30명이라 쳐도 1,200대, 곤장을 건강한 성인이 맞아도 보통 10대가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이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반전, 코난과 우정을 쌓으면서 코난을 돕게 된다. 모험 이후에는 코난, 라나처럼 신대륙이 된 코난의 고향에 정착한다.
라나가 코난이 처음 본 여자아이라면, 이쪽은 코난에게 처음으로 생긴 비슷한 연배의 친구. 하이하버에서 평화롭게 살수 있음에도 코난이 인더스트리아로 가서 라오 박사를 구하려 하자 처음에는 안간다고 하다 결국은 같이 간다.
- 지박령 . . . . 5회 일치
[[한자]]를 풀이하면 땅(地)에 묶인(縛) 영혼(霊)이라는 의미이다.
* 특정한 장소에 애착을 가진 영혼. 그 장소는 영혼이 생전에 중요한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영혼은 자신의 의사로 이 장소에서 떠나려 하지 않고 남아 있다.
* 갑작스럽게 죽어버려서, 자신이 죽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장소에 묶여버린 영혼. 괴담에서는 자신이 죽을 때의 상황을 반복하기도 한다. 자박령(自縛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진동한 . . . . 5회 일치
|| 지도자 ||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업고등학교]] 감독 (2014~2016년)[br]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 (2017년)||
전성기는 짧아 통산 성적은 그저그런 수준. 그러나 아직까지 이 선수가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 유명한 '''[[해태 버스방화 사건]]'''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버스 방화사건은 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 진시몬 . . . . 5회 일치
||<:>'''출생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별자리'''||<:> [[전갈자리]]||
* 남자이니까 (2004)
* 내 여자 (2010)
- 차재욱 . . . . 5회 일치
| 별명 = 자이언트 킬러
'''[Oops]ClouD'''라는 아이디를 쓰며, 종족은 [[테란]]이다. 대한민국 공군 사병으로 복무한 그는데뷔 초기부터 거물 게이머들을 잡아내면서 '''자이언트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 온게임넷 스파키즈와 [[삼성전자 칸]]이 맞붙게되었는데 대구 전 차재욱이 상대 팀 삼성전자 칸 소속 프로게이머인 [[이성은]]에게 '''x밥'''이라는 발언을 하게된다. 이후 대구에서 승리한 이성은이 상대 팀 부스를 향해 공깃밥을 던지고 빠삐놈 병神 디스코 믹스를 배경음악으로 춤을 추면서 빠삐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연안 차씨]][[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5회 일치
||'''작성자''' || 비잔뽕이 부족합니다 ||
최초 창작자가 동생과 놀아주다보니(....) 짜게 된 기묘한 세계관.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설정변경이 상당히 많았던 편. 기본적으론 설정덕후인(...) 필자가 만든 세계관이기에 세계관만 적당히 짜두고 그걸 통해 스토리를 진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름대로 스토리를 몇개짜두고 있긴 하다만, 언제 연재로 이어질지는 미정.
살고있는 종족들마저 '''마계'''라 표현할정도로 생태계가 그리 좋지는 못한곳. 그나마 농사짓기좋은곳이 남부에 몰려있긴 한데, 여기도 내륙쪽은 '판'이라 불리는 유목민족들이 여행자들을 약탈하러 돌아다니는 곳이라 여러모로 흉흉하다. 농사지으면 작물에선 왠지 모르지만 매운맛이 미친듯이 나며, 길가다가 목이 말라 근처 오아시스에 물을 마셨더만 송곳니가 자라나고 흉포해지는(...) 요상한 대륙이다. 그것때문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거의다 전투민족or매드 사이언티스트(...)
- 창작:좀비탈출/2 . . . . 5회 일치
마당에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 옆집 아저씨가 자랑스럽게 타고 다니던 자전거였다. 상태는 좋은 것 같지만, 체인으로 앞바퀴가 잠겨있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2-1-1 . . . . 5회 일치
옆집 아줌마의 좀비가 벽에 걸린 밧줄 올가미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절망해서 자살한 것일까?
그리고 안방 탁자 위에서, 마운틴 바이크의 열쇠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 [[창작:좀비탈출/3|자전거를 타러 간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3-2 . . . . 5회 일치
생각해보면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괴소문들은 대부분 좀비들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 역시, 집에 돌아갔다가 얼마 뒤에 '습격'을 시작하면서 동네 곳곳에서 피해가 점점 확대되어 갔던 것이겠지. 경찰들이 이런 사태에 쫓기면서 동네 치안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점점 높아지던 댐에서 물꼬가 터지듯이, 늘어나는 좀비들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로 자전거를 움직인 것은 그저 익숙한 길이기 때문일까, 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하다가 생겨난 빌어먹을 습관 때문일까.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4-1 . . . . 5회 일치
목표는 집주변이다. 명심하자. 멀리가지 않는다. 내가 다닐 곳은 담벼락 안이다. 놈들이 햇볕을 피할 때가 되면 행동개시다.
내가 자주보는 녀석 중엔 토트넘이 있다.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녀석'''. 일주일이면 적어도 4,5일은 마당에서 볼 수 있다. 발이 느리고 둔한 녀석이니까 보이지 않을 때도 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얘기겠지. 그래, 예를 들면 거실창문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 뒷마당.
물론 적게 가져오면 금방 또 마당에 나가야 하겠지만. 일단은 눈 앞의 상황만 생각하자.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4-1-2 . . . . 5회 일치
골프채로 하자.
마당이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나왔지만 심장이 요동치는걸 진정시킬 수가 없다. 나는 라마즈 호흡법에 실패하는 산모처럼 엇박자로 헉헉거렸다.
아무래도 불법침입자들은 생각보다는 예의가 바른 건지 그다지 건드려 놓은건 없었다. 한켠에 얼마 전에 보았던 [[창작:좀비탈출/0-1|구덩이]]정도가 눈여겨 볼 것이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5-1-1 . . . . 5회 일치
어짜피 생각이 없는 놈들이니까, 자신들의 동료(?)가 죽거나 죽을 지경이라면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동물의 왕국에 보면 자주 나오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이 토트넘을 미끼로 써서 좀비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시험해 보고 싶진 않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나았다.
체액으로 범벅이 된 몸은 땀까지 나면서 믿을 수 없는 냄새를 자아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씻어내고 싶지만, 내친 김에 이웃집 대문도 닫아놓고 쓸만한 게 있는지 뒤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이 꼴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다시금 불쾌한 딜레마가 시작됐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5회 일치
* 촉각 - 감각 자체는 있을 것 같다. 실험해보진 못했지만.
* 생전에 운동신경이 있었으면 담을 넘을 줄도 안다. (학습능력? 과거의 기억? 나중에 생각하자.)
* 골목 : 자택과 주변 지역.
* 공원 : 자택에서 약간 떨어진 곳.
* 번화가 : 자택에서 약간 이동한 곳. 엄청난 수의 좀비가 밀집되어 있다.
- 최단비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슬하 1남
* [[1997년]] [[은광여자고등학교]] 졸업
* 2007년 ~ 2013년 : 법무법인 충정 기업자문팀 변호사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은광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바른미래당 당원]]
- 최동석 . . . . 5회 일치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78|4|5 사망자 2018 09 24}}
| 배우자 = [[박지윤 (방송인)|박지윤]]
| 자녀 = 딸 최다인, 아들 최이안
* [[KBS1]] 《[[TV비평 시청자데스크]] - 시청자의 눈》([[2013년]])
- 최동익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최동익'''(崔東益, [[1962년]] [[4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국회의원이자, 시각장애인이자 장애인 운동가이다.
- 최석기 . . . . 5회 일치
'''최석기'''(崔錫基, [[1986년]] [[12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이다. 현재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소속의 선수이다.
최석기는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개인기록상 주요 부문인 블로킹 부문에서 5위 안에 들면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세터 (배구)|세터]] [[황동일]]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오를 만큼 활약을 펼쳤으나<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ports/volleyball/2009/0317/20090317101030400000000_6732676814.html 지금은'석기시대' KEPCO45 최석기 신인상 맹추격] 《스포츠서울》2009년 3월 17일 12:23, 2009년 3월 19일 1:42 확인</ref> 전 경기를 소화한 황동일에 밀려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ketball/Article.asp?aid=20090416004415&subctg1=05&subctg2=00 프로배구 정규리그 MVP 박철우?데라크루즈, 공격남녀 최후의 승자] 《스포츠월드》 2009년 4월 16일 22:53, 2009년 4월 19일 23:01 확인</ref> 하지만 그는 팀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NH농협 2008~2009 V-리그 올스타전]]에는 [[한국 배구 연맹]]의 추천으로 [[수원 KEPCO 45]]의 유일한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였다.
[[2015년]] [[12월 23일]] [[강민웅]], [[전진용]]과의 트레이드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로 이적하였으나 2017-18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계약이 결렬되면서 다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으로 이적하였다.
최석기는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처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날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와 [[수원]] 홈경기에서 최석기가 [[로베르틀란디 시몬]] 한테 블로킹을 무려 8개나 잡아내며 시몬 킬러로 등극했다. 득점을 올릴 때마다 자진방아타령이 울려퍼진다. 여기다 그가 세레모니하는 장면은 [[KBS N sports]]의 배구 프로그램 [[스페셜 V]]에서 선정한 주간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에 공격 성공후 자신이 개발한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 최연제 . . . . 5회 일치
| 배우자 = 케빈 고든
'''최연제'''([[1970년]] [[5월 18일]] ~)는 [[대한민국]]의 전 [[가수]]이자 [[미국 한의사]](Licensed acupuncturist)이다.
* Beverly Hills High School 베버리힐즈 붖자구만졸업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자}}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며 전직 [[국가정보원]] 제2차장이다. [[우병우]]의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이자, 우병우의 최측근으로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6년 2월에는 우병우의 추천(?)으로 [[국가정보원]] 제2차장[* 국내 정보 및 공안 부문을 담당하는 국정원 내 핵심 요직이다.]에 발탁되었다. 이때 청와대가 이 자리에 우병우의 측근인 최윤수를 발탁했을 때부터 사정당국 내부에서는 국정원을 통해 본격적인 총선과 대선 관리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게다가 최윤수가 2015년 말 검사장급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정원 2차장으로 전격 발탁된 점도 ‘정치적 인사’라는 뒷말을 낳았다.[* 참고로 최윤수는 전임 김수민 2차장보다 무려 9기수 아래였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 어쨌든 그 후 2017년 6월까지 국정원 제2차장 업무를 수행했다.
국정원 제2차장 시절에 '국정원 문화·예술인 배제 보고서'를 수차례 보고 받고 지시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그러한 이유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2017년 12월 2일 [[오민석(법조인)|오민석]] 부장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가담 정도'를 이유로 기각된 것에 불과하고 범죄 사실 소명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731.html#csidxe6517123a8063c9aaa12e8244fa6d69|#]]
* 前 [[KBS]] [[아나운서]] [[황수경(방송인)|황수경]]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2013년, 이들 부부의 ‘파경설’이 악성루머로 떠돌자 최 전 차장 부부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한 종합일간지 기자가 루머 유포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http://koridol.tistory.com/6471|#]]
- 최진희(가수) . . . . 5회 일치
[[문화방송|MBC]]의 오락 프로그램인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일밤]])의 [[2015년]] [[9월 27일]] 자 방송분에 [[윙윙윙 고추잠자리]]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 동료 가수인 [[어디에서 나타났나 황금박쥐]]에게 승리했으며 2라운드 상대인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에게 밀렸다.
참가 당시에는 복면가왕 여성 출연자 중 최고령 참가자였으며, 그 뒤 최고령은 81차 경연에 나온 [[문어...지지 않아요... 점쟁이 문어]]다.(61세 236일)
[[분류:한국 가수]][[분류:1957년 출생]][[분류:신안군 출신 인물]][[분류:1983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대 100 역대 1인]]
- 최혁 (1992년 3월) . . . . 5회 일치
|형제자매 =
* 《[[내성적인 보스]]》 (tvN, 2017년) - 화장실 남자 3 역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훈재 . . . . 5회 일치
|수비 위치 = [[1루수]], [[우익수]], [[지명타자]]
'''최훈재'''(崔勳載, [[1967년]] [[1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외야수]], [[지명타자]]이자, 현재 [[KBO 리그]] [[kt 위즈]]의 2군 야수코치이다.
* {{KBO 타자|89142}}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영일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중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강릉 최씨]][[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최흥철 . . . . 5회 일치
||<#C0C0C0> 은메달 ||<#ffffff> [[2001 자코파네 동계 유니버시아드|2001 자코파네]] ||<#ffffff> 노멀힐 단체전 ||
||<#C0C0C0> 은메달 ||<#ffffff> [[2001 자코파네 동계 유니버시아드|2001 자코파네]] ||<#ffffff> 노멀힐 개인전 ||
* 영화 [[국가대표(영화)|국가대표]]에서는 마약 복용자로 나오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모든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스키에 관심이 있어서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된거지, [[군면제]]를 이유로 나가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실제로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어 군면제가 되었다.
- 칼 루이스 . . . . 5회 일치
[[미국]] 의 유상선수.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빠른 남자의 대표자. 육상 선수로서 칼 루이스의 명성은 21세기 초의 [[우사인 볼트]]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수로서 활동하며 3장의 싱글을 냈다. "칼 루이스 기금"을 설립하여 자선 사업을 하였다. 유엔 친선 대사로도 활동했다.
* 배우자 [[김성은 (1983년)]]
[[분류:육상선수]] [[분류:채식주의자]] [[분류:미국 인물]]
- 콜 오브 듀티 . . . . 5회 일치
에반스와 프라이스를 티르피츠로 침투시킨 보급선 운전자. 미션 도입부에 시체를 바다에 내다버리는 걸 보니 보급선을 강탈한 걸로 보인다.
>접이식 개머리판이 달린 .30구경 반자동 소총인 M1A1 카빈은 보통 공수부대원들에게 보급됩니다. 대형 소총과 같은 저지력은 없지만 가볍고 정확하고 휴대하기 좋습니다.
>M1 개런드는 강력하고 정확한 반자동 소총입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탄창을 다 쓰기 전에는 장전할 수 없다는 겁니다.
* 브라우닝 자동소총
>브렌은 분대지원용으로 뛰어난 기관총입니다. 큰 크기가 운용성을 깎아먹지만, 포복한 상태에서 정확한 자동사격을 먹여줄 수 있습니다.
- 텐프레 . . . . 5회 일치
[[일본어]]의 템플릿(テンプレート)의 약자. 인터넷 속어.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영어에서의 템플릿(Templet, Templete)은 어떠한 판형을 의미하며, IT쪽에서는 좁게는 플로우차트에서 넓게보면 프로젝트 관리상까지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관습 및 서식화된 표준을, 디자인에서는 일반화된 패턴과 믹스[* 글렌체크라든가 스프라이트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의 속어로는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 [[편지]], [[연하장]]의 서식이나, 디자인 파일의 양식 등을 뜻한다. 어떤 양식이 정해져 있고, 몇가지 단어나 문장만 바꾸는 것. 여기에는 프로그램 오류 제보등을 했을 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같은 [[코피페]]스런 대응도 포함된다. 친절하지만 별로 쓸모없고, 때로는 화까지 돋게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스런 대응까지 포함.
* 애니나 만화에서 상투적인 전개를 뜻한다. 예를 들면 "평범한 남자 앞에 어느날 미소녀가 찾아온다."라든가 [[아침 드라마]]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줄 때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이!"등이 포함된다.[* 특히 도둑고양이 표현은 일본에서 주로 쓰인다.]
* 니코니코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ここまでテンプレ(여기까지 텐프레)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이곤 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가령 [[동방프로젝트]]에서 에린이 나오면 흘러가는 코멘트로는 " ( ゚∀゚)o彡"이 뜨고, 마지막 코멘트로는 "ここまでテンプレ"가 뜨는 식. 일종의 암묵의 룰이 적용되는 걸 알리는 텐프레된(?) 코멘트이다.
- 토리코/363화 . . . . 5회 일치
* 돈슬라임은 자신의 몸을 유성군으로 변화시켜서 맹공을 퍼붓는다. 너무 강한 공격을 해버린 탓인지 그의 몸이 눈에 띄게 쪼그라든다
* 돈슬라임의 공격은 생물 몇 종을 멸종시킬 정도이며 그 위력은 우주에서도 관측될 정도지만 NEO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NEO는 공격 그 자체를 먹어치우며 다가오고 있었고 결국 '''돈슬라임의 머리를 물어 뜯는다'''
* NEO는 돈슬라임의 비명소리가 가까워졌다고 느끼는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지만 그 순간 돈슬라임은 '''"웃기고 자빠졌다"'''며 비명 지르는 방법 따윈 모른다고 쏘아붙인다
* 작중에서 재생능력이 뛰어난 존재는 몇몇 등장했지만 네오처럼 자기 몸을 먹고 재생하는 타입은 처음 나온다.
* 돈슬라임은 자기 세포를 여러가지 물체로 바꾸면서 공격을 퍼붓는다.
- 토리코/381화 . . . . 5회 일치
* 실패해서 둘 다 네오에게 먹힐 경우 둘 모두 부활할 수 없지만 센터라도 자신이 죽여놓으면 부활해 임무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
* 페어는 이것이 "보험"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둘 다 네오에게 죽게 되면 그대로 끝장이지만, 센터라도 자기 손에 죽으면 나중에 부활할 수 있기 때문.
* 말하자면 "구르메 식운도 한계가 있는거 아닌가"라는 것.
* 미도라의 부활. 사실 삼제자 중 유일하게 죽지 않았고 단지 봉인만 됐기 때문에 풀려난다는 설이 많았다. 하지만 자력으로 금관두를 박살낸데다 구르메 식운까지 훔쳐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는 듯
- 페이데이 2/하이스트/베인 . . . . 5회 일치
>베인이 고전적인 보석상 강도를 하길 원한다. 들어가서 물건을 집고 나오자.
하베스트&트러스티 뱅크의 개인 금고들을 터는게 주 목표인 하이스트. 수많은 개인 금고를 일일이 손으로 따는 것은 괴로울 것이다. 누구 한명 정도는 톱과 탄약가방을 챙기자.
> 낡은 부둣가에 머키워터 소유의 보세창고가 있다. 놈들이 재선적하려던게 뭐였는지 확인하자.
>토이어 전시실로 간다. 이번에 노릴 것은 새로나온 고성능 스포츠카다. 그것들을 끌고 나오자. 차에 기스가 나면 안되니 조용히 행동하자.
- 표현명 . . . . 5회 일치
* [[고려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석사/공학박사(Ph.D.)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수료
* [[1983년]]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 [[2012년]] 서비스디자인 이노베이션
* [[2008년]] 서비스 디자인시대
- 하시다 스가코 . . . . 5회 일치
'''하시다 스가코'''({{lang|ja|橋田 壽賀子}}, 1925년 5월 10일 -)는 일본의 [[각본가]]이자 [[극작가]]이다.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오사카부]] [[사카이 시 (오사카 부)|사카이 시]] [[니시 구 (사카이 시)|니시 구]]에서 자랐다. 본명은 이와사키 스가코({{lang|ja|岩崎 壽賀子}})로, 하시다는 결혼 전 성이다.
일본여자대학 국어(일본어)과 졸업
[[분류:192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영화 각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의 텔레비전 각본가]][[분류:기쿠치 간상 수상자]][[분류:일본여자대학 동문]][[분류:사카이시 (오사카부) 출신]]
- 하이큐/208화 . . . . 5회 일치
* 어쨌든 전일본 유스는 세계 무대에 나갈 인원을 뽑는 무대이므로, 거기에 소집 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 히나타는 "나는"이라며 자신에겐 소집이 오지 않았냐고 하는데 당연히 안 왔다.--꿈도 크다--
* 역시 12월 초 미야기현의 유망한 1학년들을 모아 합숙시키자는 이야기가 죠젠지 고교 아나바라 선생에게서 온 것.
* 히나타는 귀가길에 츠키시마, 야마구치와 편의점에 들르는데, 이때 야마구치가 "합숙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츠키시마가 "몰래 가보지?"라고 농담한다.
* 바쁜 나날이 지나가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의 어느날 히나타는 한 밤 중에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 하이큐/220화 . . . . 5회 일치
* 카라스노로 돌아온 괴짜콤비. 돌아오자 마자 티격태격한다.
* 마주치자마자 부실까지 미친듯이 경주한다.
* 둘은 공을 주고 받으며 각자 합숙에서 있었던 일들, 참가선수들의 기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하이큐/226화 . . . . 5회 일치
* 매치 포인트인데도 히나타 쇼요가 움직이지 않자 다테 공고 측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 다른 학교라면 초속공 자체를 의식해서 히나타를 집중 마크하다 틈을 보이기 마련인데, 다테는 오히려 초속공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 물론 4세트까지 그런 동요는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카라스노는 새로운 자극을 가한다.
* 그것 자체로 상대 블록을 희롱하는 무기지만 아주 능숙한 리드 블록이 상대라면 단지 "가능성에서 가장 빨리 배제될 뿐"이라 평한다.
* 이렇게 침묵해 버리자 오히려 다테 측은 히나타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 하이큐/234화 . . . . 5회 일치
다음 플레이에서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배분할 것처럼 하다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공을 돌린다. 아테마는 히나타의 말 때문에 대응이 늦었고 공격은 깔끔하게 성공. 하지만 카게야마는 이번에도 공이 조금 짧게 들어갔다고 투덜댄다. 그리고 히나타는 낚으려고 한게 아니라 진짜 자기가 치려고 하던 참이어서 황당해한다.
* 야마구치는 전국대회 레벨이 되면, 자신은 서버 이외에는 활용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 서버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는 그걸 위해서 이 "첫공"을 수백 번도 넘게 시뮬레이션했다.
* 카라스노가 따라붙으면서 점수차는 더 벌어지지는 않지만 좁혀지지도 않는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그 점을 우려한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에게 세트를 올려 공격에 성공, 이제 그럭저럭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때 히나타가 코트 인. 들어오자마자 치고 싶어 안달난 눈빛을 보낸다. 사와무라는 그들을 보며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겐 "실수하는게 무섭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 하이큐/237화 . . . . 5회 일치
* 수비능력 자체는 장식이나 다름 없었던 [[히나타 쇼요]]가 차츰 한 사람 몫을 하기 시작한다.
* 스파이크를 받아낸 [[히나타 쇼요]]. 하지만 자세가 어설퍼서 공이 애매하게 떠버린다. [[니시노야 유]]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가 제대로 리시브 위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놀라는 것 같지만, 히나타는 너무 앞으로 갔다며 자책한다. 공은 도로 코트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타나카 류노스케]]가 몸을 날리다시피 하며 살린다. 공은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넘어가 침착하게 마무리. 밀어넣기 성공으로 드디어 18:18로 동점을 만든다.
* 긴 랠리가 끝나자 지켜보던 사람들마저 지칠 것 같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방금 히나타의 플레이를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고 평한다. 하지만 옆에 있는 니시노야는 "그건 운이 아니라 정확히 알고 갔던 것"이라며 히나타의 성장을 알아본다.
한편 히나타는 수비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자꾸 몸통으로 공을 받아서 관중석에선 "몸으로 받지 말고 손으로 받아라"고 웃음거리가 된다. 본인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데 사와무라는 전에 "야생의 감"으로 공을 따라가던 것과 달리 상대의 플레이를 보고 공이 올 곳을 예상해서 움직인 점을 좋게 평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조차도 "경쟁심을 발동시킨" 얼굴로 히나타를 주시한다.
- 하현정 . . . . 5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하현정'''(河賢貞, [[1987년]] [[6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2010년 미스코리아]] 미(美)이다. [[2010년]] [[9월 25일]] 미스코리아 미 자격으로 출전한 제18회 2010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널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 미인대회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9/h2010092601182621950.htm|제목=하현정 한국인 최초 국제미인대회 1위|저자=채석원|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0-09-26}}</ref>
* 경력 : 연극 '우리 읍내' & '꽃마차는 달려간다' · 뮤지컬 '페임' & '유린타운' 등 출연, 2010년 한마음혈액원 홍보대사, [[2011년]] 세계 7대 자연경관선정 홍보대사
- 한기웅 . . . . 5회 일치
| 형제자매 = [[한기원]] (쌍둥이 형제)
*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빛과 그림자]]》 (2012년, MBC)
* 《[[밥상 차리는 남자]]》 (2017년, MBC) - 희철 역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201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일란성 쌍둥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
- 한성우 . . . . 5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한성우는 남동생(한진우)이 운동 삼아 발레를 배우게 되자, 곧 자신도 배우기를 희망하면서 발레를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발레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여 이듬해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드나들며 발레의 기초를 배웠다. 선화예술중학교 입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입학하였고, [[선화예술고등학교]]를 2년간 다니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 입학하였다.<ref>{{뉴스 인용
* 2011년 제11회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남자 솔로부문 금상
- 한승엽 (1985년) . . . . 5회 일치
'''한승엽'''([[1985년]] [[3월 23일]] ~ )은 [[한국]]의 남자 [[스타크래프트]] 전 [[프로게이머]] 출신 게임 해설자다. Yooi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종족은 스타크래프트 [[테란]]이다.
'''핵승엽'''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며 [[2007년]] [[5월 31일]] [[STX SouL]]에서 한빛 스타즈(현 [[웅진 스타즈]])로 이적했고 [[2007년]] [[11월 15일]]에 은퇴를 선언한 후 [[MBC게임]]의 해설자로 활동하였다. 그 후 [[2009년]] [[9월 29일]] 현역 입대를 하였다.
*[[2003년 6월]] MBCgame 전자랜드배 아마추어 최강전 준우승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게임 해설자]][[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웅진 스타즈의 선수]]
- 한승원 (만화가) . . . . 5회 일치
| 배우자 = [[김동화 (만화가)|김동화]]
| 자녀 =
| 《노랑방 여자와 파란방 남자》 || || 1996년 대원 전2권 ||
| 《아기자기 색동》 || 《[[파티 (잡지)|파티]]》 || 1998년 학산문화사 전5권 || 〈선녀와 나무꾼〉를 모티브로 함.
- 한재석(1973) . . . . 5회 일치
|| '''가족''' ||배우자 배우 [[박솔미]], 슬하 2녀(한서율, 한서하)||
부친은 [[기아자동차]]에서 부회장을 역임했던 한승준이다. 1995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인 째즈가 그의 데뷔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정식 데뷔작은 1994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마지막 연인이다. 첫 주연 작품인 째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여세를 몰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라는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영화가 흥행과 비평에서 크게 실패하게 되고 연기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하락세 테크를 탔다. 순식간에 주연급에서 서브 조연급으로 확 떨어지고 만다.
2001년 MBC 미니시리즈 《네 자매 이야기》 ... 이영훈
2004년 CTS 대만드라마 《자등련》 ... 조언조
2008년 KBS2 미니시리즈 《[[태양의 여자]]》 ... 김준세
- 한현민(코미디언) . . . . 5회 일치
대학생 때부터 동기들과 개그팀 '''신나'''[* 같이 활동하던 동기로는 [[박규희(코미디언)|박규희]]가 있었다.]로 활동하다가 [[전유성]] 극단에 입단 후 2003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데뷔한다. [[조영빈]], [[이재형(코미디언)|이재형]]과 함께 기글스를 결성해서 삑삑클럽, 희한하네, 황당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진행하며 이름을 알렸다. 희한하네 시절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흉내를 자주 하곤 했는데, 일본 방송에 출연해서 고이즈미를 따라하는 비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기글스가 사실상 해체[* 조영빈이 MBC 개그야로 이적했다.]한 이후에는 [[강성범]]을 쫓아다니는 형사 역할로 등장해서 '''"장남 아니고 막낼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상황인즉 강성범이 한현민에게 장난치냐고 묻자 내뱉은 말. 해당 코너에서 한현민은 말을 엉뚱하게 듣고는 언어유희하면서 화를 내는 캐릭터였다. 예로 들면 강성범이 '''"뭔 소릴 하고 자빠졌어?"'''라고 묻자 한현민이 '''"문소리가 집뜰이를 해?"'''라고 응답.]
* [[MBN]] [[개그공화국]] - 우짜짜 응원단, 달마야 웃자
- 함영준 . . . . 5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함윤식]], [[함연지]]
|순자산 =
'''함영준'''(咸泳俊, [[1959년]] ~ )은 [[오뚜기]]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오뚜기]] 창업자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장남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함영준 오뚜기 회장, 2세 경영체계 시동 |url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188603|출판사 = 한국경제 |저자 = |날짜 = 2010-04-14}}</ref>
- 행맨 . . . . 5회 일치
문제를 내는 사람은 생각한 단어의 글자 수대로 빈칸을 만든다. 문제를 푸는 사람은 그 단어에 있을 것 같은 글자를 말한다. 만약 그 글자가 그 단어에 들어있다면 알맞은 자리에 글자를 적고 들어있지 않다면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을 한획씩 그린다.
- 허일상 . . . . 5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4차 3라운드([[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2002년 ~ 2007년)
'''허일상'''(許一相, [[1979년]] [[12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포수]]이자, 전 [[SK 와이번스]]의 배터리 코치이다.
* {{KBO 타자|72522}}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허씨]]
- 허진(법조인) . . . . 5회 일치
|저자=송기동
정년퇴임한 뒤에는 [[서울]] [[성북구]]에 자신의 호를 따서 명명한 우촌국민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
== 참고자료 ==
[[분류:1894년 태어남]][[분류:김해 허씨]][[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현실문화사 . . . . 5회 일치
1989년 11월 17일[*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영], [[문화공보부]]에 등록하였다.
이후 "현실초점"이라는 이름의 계간지를 발간했다. 해당 잡지는 창간호에서 "우리 사회 내부의 무질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욕구 분출과 과격행동들이 빚어낸 민족의 재난을 경계하고 올바른 국가관·가치관을 뿌리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잡지 창간 목적을 밝혔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영] 해당 잡지의 내용은 재야와 [[운동권]]의 논리를 반박하는게 주를 이루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329215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859&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1990년 10월 9일자 - 정보수집 위해 잡지사 도 운영]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20921100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263&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영]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289115001&ed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28&pageNo=15&printNo=743&publishType=0001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한겨례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서 잡지사도 경영]
- 현재원 . . . . 5회 일치
| 배우자 = [[이연경 (배우)|이연경]]
| 자녀 = 슬하 2남
'''현재원'''(玄在源, [[1965년]] [[1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연극[[평론|평론가]] 겸 문화평론가이자 뮤지컬 연출가 겸 연극[[연출가]]이며 [[기업가]]이다.
* 1996년 《햄릿 왕자》
[[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홍연아 . . . . 5회 일치
* 2005 본오동 통일노래자랑 추진위원장
* (사)안산시 자원봉사협의회 이사
*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 예산자문위원회 위원
* 보건복지공보위원, 행정자치위원
== 참고 자료 ==
- 홍유경 . . . . 5회 일치
'''홍유경'''([[1994년]] [[9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전 멤버이다. [[대한민국]]의 중견 철강 제조업체인 [[DSR제강]] 창업주였던 홍순모의 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으나<ref name=hongyk>{{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1000억대 재력가의 딸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9/2012020902006.html | 저자=한상혁 기자 | 출판사=조선일보 | 날짜=2012-02-09 | 보존url=http://archive.is/CFdQ | 보존날짜=2012-07-23 }}</ref> [[2013년]] 4월 학업 문제로 [[에이핑크]]에서 탈퇴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탈퇴..에이큐브 측 "학업 전념" |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3042315233618713&type=1&outlink=1 | 출판사=스타뉴스 | 저자=윤상근 기자 | 날짜=2013-04-23 | 보존url=http://archive.is/OkU7D | 보존날짜=2013-05-01 }}</ref>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201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가수]][[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에이핑크]][[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은희(배우) . . . . 5회 일치
||<#C69770> {{{#FFFFFF '''가족'''}}} ||<(><#FBFAFB> 남편 [[강호순|강호순]], 자녀 슬하 2남[* 장남 강동우 (2003년 출생), 차남 강민재 (2009년 출생)] ||
* 2010년 [[MBC]] 《여자가 세상을 바꾼다 - 원더우먼》 MC
* 2013년 [[SBS]]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과거에 [[수영장]]을 [[나체]]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그 때 수영장 안에 수경을 놓고 와서 급히 가지러 간다는 게 순간 발가벗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그 상태 그대로 수영장 안에 들어가버렸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제야 나체 상태인 걸 알아차린 홍은희는 몸을 가리자니 손이 3개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얼굴만 가리고 급히 뛰어 나갔다고 한다.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0년 출생]][[분류:1998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분류:정읍시 출신 인물]]
- 홍창선 . . . . 5회 일치
'''홍창선'''(洪昌善, [[1944년]] [[3월 1일]] [[서울특별시|서울]] - )은 대한민국의 과학자이며 정치인이다. 제11대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을 역임했다.
== 참고 자료 ==
|전임자 = [[최덕인]]
|후임자 = [[로버트 러플린]]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화표 . . . . 5회 일치
천안문 화표는 수미좌 형태의 대좌에 세워져 있으며, 대좌 주변에는 네 모퉁이에 각각 작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돌난간으로 보호되고 있다.
화표의 최상단 쯤에는 구름을 새겨넣은 운판(雲板)이 횡으로 설치되어 있고, 맨 꼭대기에는 쟁반같은 원형 석판이 있는데 이를 승로반(承露盤)이라고 한다. 승로반은 본래 [[신선]] 사상의 도구로서, [[이슬]]을 받아서 마시고 장생불사를 기원하는 도가 양생법에 쓰이는 도구이다.[* [[한무제]], 위명제 조예 등이 승로반을 설치하여 이슬을 받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천안문 화표에는 승로반 위에 '후'라는 작은 동물[* [[용생구자]]의 하나이다.]이 올라타고 있다.
화표가 황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렇게 화려하고 거대한 화표를 세우는 것은 보시라이의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6월, 다롄 화표를 디자인한 다롄시의 건설 관계자는 일본의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를 하며, 보시라이가 '''"나는 장래 천자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화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황찬호 . . . . 5회 일치
* 《[[그남자 오수]]》 (OCN, 2018년) - 포장마차 건달 역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ATM . . . . 4회 일치
은행업무 중에서 직원없이 무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자동화기기.
[[은행]]이나 [[편의점]] 등지에 배치되어있는 기계. 예금, 출금, 송금, 그외 등등을 할 수 있는 유용한 기계다. 기본적으로 은행이 담당직원이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이며, 사실상 직원을 대체하기에 서비스 제공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버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식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분류:전자제품]]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4회 일치
이게임시작지점에서 가장 많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높은 총개발도(developement)를 지닌 국가. 상당히 많은 고유시스템을 들고있는데, 고유 팩션인 천조국 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관료, 사원, 환관이 행정, 군사, 외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 팩션의 영향력이 가장 높을경우 그 팩션이 보너스를 주는 형식이다. 그리고 고유 정부체제인 천조국(Celestial Empire)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기술비용과 안정도 비용을 10%줄여주며, 모든 땅의 수입이 반이된다. 천명이란 시스템으로 반란도를 5줄여준다. 만약에 정통성이 70이하이거나 안정도가 음수가 될경우엔, '천명을 잃음'이 뜨면서 천명의 보너스가 사라지고 반란도가 5상승해 최종적으로 반란도 10이 늘어난다(...) 거기다가 중국계 문화권이 엄청 세분화되어 천명한번 터질경우엔 오나라, 촉나라, 연나라, 제나라등 소국들이 죄다 반란일으키고 독립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기도 한다...~~안습~~ 내적 완결성등 명한테 들어있던 수많은 디버프들이 전부 사라져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천명이란 고유시스템덕에 빵빵터지는 반군들을 맛볼 수 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서구화를 하도록 하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뜻을 이루고자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내 이를 가엽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쓰기 편하게 하고자 할 뿐이니라. -훈민정음'''
-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 . . . 4회 일치
편안히 앉아 자기 배나 채우고 있었어
편안히 앉아 자기 배나 채우는걸
편안히 앉아 자기 배나 채우는걸||
== 참고자료 ==
- JK . . . . 4회 일치
여고생을 로마자로 쓰면 JyosiKosei가 되기 때문이다.
JE = 여자원아(유치원아)(女子園児)
JS = 여자소학생(초등학생)(女子小学生)
남자고교생(男子高校生)의 경우도 비슷하게 약칭으로 쓸 수 있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4회 일치
기념할만한 첫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시작이며, 준플레이오프 승자가 승격자격을 획득함으로써 이후 진행된 2015시즌에 모든 K리그 팬들의 관심을 받게 만든 대회이다.
광주는 강원에 밀려 4위였지만 2014시즌에 한정해서 기록을 고려해 보면 두 팀의 상대전적은 강원 기준으로 1승 1무 2패로 다소 광주가 앞서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된다고 생각하면 강원은 1무를 1승으로 충분히 여길 수 있었으므로 두 팀의 경기력은 팽팽하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끝내 "호남의 아들" 김호남이 후반 8분(53분)에 임선영의 어시스트로 골을 넣으면서 광주가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자격을 받게 되었다.
안산은 2014시즌에 광주를 상대로 패배 자체가 없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규정을 생각하면 무승부만 되어도 안산의 진출이 확실했는데 광주의 돌풍이 매서웠다. 여름과 후반 20분경에 교체되어 들어간 파비오가 2골 1어시스트로 3골을 모두 기여함으로써 안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도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 Project:Union . . . . 4회 일치
Project Union은 2200년도의 먼 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스페이스 오페라 설정입니다 . 참여는 자유 마음것 작성해주시길☆
[[초능력자]] / [[초능력 능력 척도]]
[[제노스 입자]]
[[편집자용 개인노트]]
- RecentChangesMacro . . . . 4회 일치
* `allusers` 옵션 추가 : 편집에 참여한 모든 사용자 보여줌
* `editrange` 옵션 추가 : 여러 사용자가 편집에 참여한 경우 각 편집의 편집자를 범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보여줌
{{{config.php}}}에 {{{$show_hosts}}} 옵션을 켜야 RecentChanges에서 수정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UR임대 . . . . 4회 일치
주택이 부족했던 고도성장기에는 공단주택의 건설의미가 있었지만, 임대주택이 많은 현대에는 미분양도 많아 단순히 '적자산업'에 불과하며, 민간 아파트 경영자가 분양하는 소규모 아파트와 경쟁이 붙어 아파트 경영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 UR임대로 난개발이 이루어져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현대에는 주민들의 노령화 문제와, 유럽마냥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으로 슬럼화 문제를 겪고 있는 단지들이 많다.
- Victoria II/디시전 . . . . 4회 일치
==== Kansas-Nebraska Act(캔자스 네브래스카 법) ====
==== Confiscations of Mendizabal(멘디자발의 몰수) ====
* '''Ahmedabad(아마다바드), Bombay(봄베이), Chittagong(치타공), Coimbatore(코임바토르), Delhi(델리), Lahore(라호르), Vizagapatnam(비자가파트남)''' 프로빈스를 소유
==== Gründerzeit' Architecture(그륀더자이츠 건축) ====
-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 . . . . 4회 일치
* [[글록 자동권총|글록19]]
* [[브라우닝 자동소총]]
==== 자동차 ====
* [[사자]]
- 가면부부 . . . . 4회 일치
체면을 중시한 가면 부부는 의사, 공무원, 변호사 등 사회적 지위가 높고, 체면을 생각하는 부부에게 많은 경향. 집안에서는 부부 대호가 거의 없지만 한 걸음 벗어나자 마자 사이가 좋은 부부를 가장하려 한다.
부부나 가족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이미 불륜, 외도를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덮어놓고 있는 경우도 있다.
- 가석방 . . . . 4회 일치
형이 확정된 수형자가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있어 출소하여도 재범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형기보다 일찍 석방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는 제도.
* 신청자들에 대해서 [[법무부]] 가석방심사외원회 회의에서 심사를 한다.
가석방은 형기가 종료되어 풀려나는 석방과는 다르다. 가석방 일에서 형기종료일까지 기간 동안은 관할경찰서나 보호관찰소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된다. 가석방자는 이 떄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은 취소, 혹은 실효된다.--[[한군두|한감두]]-- 물론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하며 당연히 저지른 범죄는 가석방 중에 저지른 것이므로 매우 질이 좋지 않게 본다.
- 강재형 (아나운서) . . . . 4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슬하 1남 1녀
* [[2004년]] :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 간사
* [[2008년]] 《[[울학교 이티]]》 - 화제집중 남자 아나운서 출연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4회 일치
* 실핀이 자기 친구(바깥 우마루)를 불러오면 어떻냐고 해서 UMR는 당황한다.
* 실핀도 게임오버 되지만 우마루 혼자 라스트 보스를 때려잡는다
* 봄바는 UMR 상태의 우마루를 남자애인줄 안다--가지가지한다--
* 남자로 착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초기에 비하면 우마루의 가슴이 줄어들고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2화 . . . . 4회 일치
키리에는 공들인 자작 그림책을 보여주고 우마루(코마루)는 출판사에 가져가 볼 것을 권한다.
* 우마루는 출판을 해보는건 어떻냐고 권하지만 키리에는 혼자서 출판사에 갈 엄두가 안 난다고 한다
* 코마루가 이젠 자연스럽게 우마루를 언니 취급하고 있다.--자아분열하는 건가--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4회 일치
* 가구를 둘러보더 우마루는 전단지의 실내 풍경과 자기들 아파트의 다른 점은 가구의 차이라고 외친다.
* 우마루는 척 보기에도 너무 큰 TV테이블을 사자고 하는데 타이헤이가 반대하지만 우마루는 "나를 못 믿는 거야?"라며 우겨서 결국 산다
* 우마루는 "방을 너무 가꾸지 않은 채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타이헤이는 혼자 쓸쓸히 지내던 시절에 우마루가 살러와서 복닥거리게 된 걸 생각하며 "꼭 그렇진 않다"고 대답한다
* 타이헤이도 혼자 살던 시절엔 은근히 의기소침했던 듯.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7화 . . . . 4회 일치
* 벚꽃이 만개하자 타이헤이는 꽃구경을 제안하지만 우마루는 외출을 싫어한다.
* 막상 나와보니 인파가 몰려서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없다.
* 에비나도 꽃구경을 따라왔지만 걸음이 늦어서 자꾸 뒤쳐진다.
* 결국 자리를 못 구해서 돌아오는데 다른 날을 고르려 해도 내일부터 날씨가 안 좋아져서 무리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4회 일치
* 실핀은 어렸을 적 폭우가 쏟아지던 날 어머니가 늦게 와서 유치원에 혼자 남아있던 적이 있다.
* 그러자 실핀도 이해를 했는지 "이 비 때문에?"라며 꿍짝을 맞춘다. 우마루는 이 비가 좀비가 되는 화학병기라는 설정을 붙여본다.
* 하지만 그러면 우리도 좀비가 된다고 실핀이 지적하자 금방 취소한다.--우디르급 태세전환--
* 실핀은 비가 오면 어렸을 적 비오는 날 혼자 유치원에 남아 있던 일이 생각난다고 고백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4회 일치
* 히카리는 바깥 모드 우마루를 본게 처음이지만 별로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 카나우는 과자를 선물로 사왔는데 "사온 과자를 바로 낸다"는 원칙을 숙지하고 있는 우마루.
* 마침 타이헤이는 차를 가지러 간다고 자리를 뜬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4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7화. '''우마루와 삼자면담 2'''
* 수영만이 인생이 아니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하려 하는데, 어머니가 생각한 수영 외의 자유란 "멋진 캠퍼스 라이프"
* 이상한 남자 말고 도마 타이헤이 같이 건실한 남자가 있는 대학을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
- 건포인트/도전과제 . . . . 4회 일치
경비원이 있는 임무에서 당신을 목격한 생존자가 없게 하십시오.
일반 경비원만 있는 임무를 선택해 들키지 않고 클리어하면 된다. 들킨다면 목격자를 죄다 패죽이면 되고.
경비원이 있는 임무에서 폭력을 쓰지도, 목격자를 만들지도, 소음을 내지도 마십시오.
자신을 범인으로 만들지 않고 경찰서장의 임무를 완수하십시오.
- 게스퍼 . . . . 4회 일치
마치 자신이 예지능력이나 독심술을 쓰는 초능력자(에스퍼)라도 된 것 마냥 아무 근거 없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악의적으로, 천박하거나 음란한 내용으로 억측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사용한다.
* 산책 중에 개에게 "귀여워~"하고 달려가는 젊은 여자에게 "옆의 남자친구에게, 동물을 좋아한다고 어필하는 것인가."
- 계림 . . . . 4회 일치
[[쉔무]] 2의 제6장의 부제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본래 계림에 갈 때까지 다양한 [[떡밥]]이 뿌려졌으나 도착하자마자 게임이 끝나버렸고 이후 쉔무 후속작은 나오지 않는다.(…) --뭐 계림 관광 잘 하면 되겠지--
[http://kr.gxta.gov.cn/guilin.html 광서장족자치구여행국 계림]
- 고도현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7라운드]] ([[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013년 ~ 2015년)
'''고도현'''(高道鉉, [[1990년]] [[10월 13일]] ~ )는 [[KBO 리그]] 전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이다. 2015년 시즌 이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지면서 방출됐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제주 고씨]]
- 고무장갑 . . . . 4회 일치
[[문자]] 그대로 [[고무]]를 써서 만든 장갑. [[설거지]]와 [[김장]] 등 일상 생활에 쓰는 빨강 고무장갑과 실험 및 의료에 사용되는 고무장갑이 있다.
전자인 빨강 고무장갑은 그 용도 탓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그래서 고무장갑하면 대부분 빨강 고무장갑을 떠올린다.
후자의 경우 흔히 라텍스 재질. 다만 라텍스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무라텍스 장갑도 있다.
어느쪽의 고무장갑이건 착용할 때, 벗을 때에 착용자를 힘겹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빨강 고무장갑을 구입할 때에 딱 맞춰서 사지 않고 일부러 조금 큰 사이즈를 사기도 한다.
- 권성욱 . . . . 4회 일치
|배우자=
|자녀=
'''권성욱'''([[1970년]] [[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케이블 방송국 [[KBS N 스포츠]]의 [[스포츠캐스터]]이자 현 KBS N 편성국장으로 [[야구]]중계를 격주 1회정도로 겸하고 있으며, [[농구]]중계도 담당했었다.
* [[세계여자 복싱]]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4회 일치
>오 년 전, Carl Johnson은 갱단 간의 마찰과 마약, 부패로 얼룩진 San Andreas의 Los Santos에서 삶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San Andreas. 그곳은 영화 스타나 백만장자들이 마약 거래상이나 폭력 패거리와 얽히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곳입니다.
Grand Theft Auto: San Andreas. 범죄 샌드박스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의 시리즈 중 하나. [[캘리포니아]]와 [[라스베가스]]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지역 "산 안드레아스"를 배경으로, 갱단원 "칼 존슨"이 무너진 자신의 [[갱단]]을 다시 일으키는 내용을 담고있다.
로스 산토스에서 활동하는 [[히스패닉]] 갱단의 두목. 켄들의 남자친구다.
개발 당시에는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는 [[미니게임]]이 존재했다. 출시 버전에는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없게 했으나, 데이터는 [[더미 데이터]]로 남아 있었기에 모더들이 이를 복원한 "핫 커피 모드"라는걸 만들어버렸다. 이 사건은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왔다.
- 김대호(축구선수) . . . . 4회 일치
그러나 2014 시즌 들어서는 [[박희철]],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가 상대적으로 자주 모습을 보이는 중.
2016년에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아챔]] 조별 경기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르며 포항 팬들의 큰 원성을 샀고 이후로도 자주 나오지 못하는 중... 인데 5월 12일 [[안산 무궁화]]로의 입대가 결정되었다. 사실 김대호가 떠난다 해도 그의 자리에는 다른 풀백 자원들이 있기 때문에 공백은 크지 않을 듯.
- 김민아 (아나운서) . . . . 4회 일치
|설명 = 2015년 SBS 스포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민아
* [[정화여자고등학교]]
* [[2010년]] : [[MBC]] 《[[야구 읽어주는 남자]]》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아나운서]]
- 김보미(1958) . . . . 4회 일치
|align="center"|[[착한여자 백일홍]]
|align="center"|근희(근자)
|align="center"|고교 유단자
|align="center"|고교 고단자
- 김봉수(1953)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키움증권]] 창립자. 키움닷컴 성공신화의 주인공.
[[고대법대]]를 졸업한 후 1976년 한 증권사의 신입직원으로 출발, 증권맨으로 한 우물만을 파왔다. 선경증권에서 자산운용담당 이사를 지냈다.
키움닷컴증권이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영업점이 없어서 저비용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 있다. 물론 이러한 저비용 구조는 수수료를 국내 최저수준으로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온라인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주문의 편리성, 신속한 주문과 체결,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6개월마다 대대적인 시스템 보완을 해온 것도 성공의 원인으로 꼽혔다.
- 김봉환(1921) . . . . 4회 일치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김현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박만원]]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현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3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이후로도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김선재 (아나운서) . . . . 4회 일치
| 학력 = [[대일외고]] 스페인어과 졸업 <br/>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사
| 배우자 =
*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사 (외교학·서어서문학)
* 《열린TV - 시청자 세상》
- 김승환(배우) . . . . 4회 일치
||<bgcolor=#BFFF00> '''가족''' || [[배우자]] [[이지연]] ||
||<|2> [[1996년]] || MBC 일일드라마 [[자반고등어]] || 원준 ||
|| [[2005년]] || SBS 금요드라마 [[꽃보다 여자]] || ||
|| [[1990년]] || [[잠자리에 들 시간]] || 썬그라스 3 ||
- 김우동 . . . . 4회 일치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후기 대구은행(현 [[DGB금융지주]] 산하 [[대구은행]]과는 별개)에 근무하였다. 대구은행이 경남은행(역시 [[BNK금융지주]] 산하 현 [[경남은행]]과는 별개)과 합병하여 1928년 경상합동은행이 되자 계속 경상합동은행에 근무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육홍균 후보에 설욕하였다. 당선 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해당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동석]]이 재검표 소송을 제기하여 재검표 결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102400209103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8-10-24&officeId=00020&pageNo=3&printNo=11159&publishType=00010|당락이 뒤바뀌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 김윤동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 볼질의 대명사 볼질로 주자 채우고 연속안타 맞는건 이제 전매특허가 됐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지훈 (영화감독)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김지훈'''([[1971년]] [[7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자 [[영화 각본|각본가]]이다.
== 참고자료 ==
- 김찬돈 . . . . 4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10월 30일에 영덕 오십천 제방 공사 등과 관련하여 지역 건설업체 이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1600만원의 뇌물을 받은데 이어 지역 건설업자 2명한테 예산확보를 위한 중앙부서 방문 경비 명목으로 모두 13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우연]] 영덕군수에 대하여 징역 2년6월 추징금 16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29917]</ref>
- 김태한 . . . . 4회 일치
'''김태한''' (金泰漢, [[1969년]] [[10월 2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SK와이번스]]의 선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이다.
!연도!!소속!!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승률!!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삼진!!실점!!자책점
- 김형철 (가수) . . . . 4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식]][[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혜영(코미디언)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현재 [[MBC 표준FM]]의 [[싱글벙글쇼]] 진행자 중 한명.
MBC 희극인실(코미디언) 동료이자 선배인 [[강석(코미디언)|강석]]과 함께 1987년부터 MBC 표준FM [[싱글벙글쇼]]의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5공시절 "서울 공화국, 6공 들어서는 "88 돌도사"라는 코너에서 시사풍자를 빵빵 터뜨려 대던 용자짓을 했다....] 현재까지 집안 경조사가 있어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을 하고 있다. 다만 주말과 공휴일은 평일보다 5분 길게 진행한다. 김혜영은 싱글벙글쇼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 결혼식 당일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이후에야 결혼식을 하러 갔다고 한다. 게다가 신혼 여행 때도 지역국(제주)과 본사를 연결해서 방송했다.
- 김효기 . . . . 4회 일치
2010년 드래프트에서 울산 현대에 4순위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드래프트를 1년 미루었다.] 대학 시절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 좋은 집중력으로 골을 뽑아냈던 선수라 울산에서도 활약할 것을 기대받았는데, 데뷔 시즌은 주로 2군에서 시간을 보내며 1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2011년에도 역시 2군을 벗어나지 못하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조민국]] 감독이 [[김호곤]] 당시 울산 감독을 설득해 김효기를 6개월동안 미포조선에 임대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15시즌이 종료되자 FA 자격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지만 좀처럼 출장기회를 잡을 수 없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친선 경기 교체출장, ACL 조별리그 빈 즈엉전 교체로 딱 14분 출장에 그치며 2군경기만 출장하다가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다시 FC 안양으로 이적하였다.
3월 17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K리그1 3라운드 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에 [[김신]]이 오른쪽에서 패스를 찔러 주자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시즌 첫 골을 기록했으며, 4월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1 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팀이 0-2로 지고 있던 후반 16분 중앙 미드필더 [[하성민]]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투입되어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하면서 처진 공격수까지 두 역할을 소화하였으며, 특히 후반 28분 쿠니모토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가로지르기를 받아 그림같은 오른발 오버헤드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 김희정 (펜싱선수) . . . . 4회 일치
{{메달 스포츠|여자 [[펜싱]]}}
'''김희정'''(金熙正<ref>{{뉴스 인용 | 제목=<프로필> 펜싱 에폐 금메달 金熙正 |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013398 | 출판사=연합뉴스 | 저자= | 쪽= | 날짜=1995-04-15 | 확인날짜=2018-09-14}}</ref>, [[1975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의 출전 경험이 있다.<ref name="sports-reference">{{웹 인용|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ki/kim-hui-jeong-1.html |제목=Kim Hui-Jeong Olympic Results |확인날짜=2012년 2월 19일 |웹사이트=sports-reference.com}}</ref> 그녀는 [[2002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154716 펜싱 이승원-김희정 2관왕 찔렀다]</ref>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혜여자중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목원대학교 동문]]
- 나다카 타츠오 . . . . 4회 일치
좋아하는 영화는 [[대부]]. 좋아하는 여배우는 [[오드리 헵번]]이며, 목표로 하는 배우는 [[멜 깁슨]]. 좋아하는 브랜드는 [[랄프로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다.
쿄토부 쿄토시 후시미구(京都府京都市伏見区)에서 출생했다. 카나자와 공업대학 기계공학부(金沢工業大学機械工学部卒業)를 졸업했다.
아내와는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설득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아내와 생일이 같으며, 생일에 청혼을 했다. 아내는 결혼 초기에는 요리가 서툴렀지만 점차 향상되었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4회 일치
* 오버홀은 그땐 못 본척 하지 않았냐며 "에리"에겐 그가 히어로가 아니라 비아냥 대는데. 밀리오가 "그래서 왔다"고 항변하자 그를 처리하려 한다.
* 사카기는 천장에 매달려다니는 주정뱅이.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은 "만취". 근처에 있는 자의 균형감각을 빼앗는다.
* 네모토의 개성은 "진실쟁이". 전직 사기꾼으로 그의 개성은 상대방의 본심을 강제로 끌어내며 때론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진실까지 끌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4회 일치
* 이이다는 왜 자신이 폭주할 때 말려준 두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하려는 거냐며 힐난하는데 미도리야가 반박하려 하자 그를 때리며 "네가 쓰러져 있는 모습에서 형이 떠올랐다"며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어떻게 되겠냐며, 자신의 걱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냐고 묻는다
* 야오료로즈는 "만약의 경우 말리기 위해서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이이다는 여기서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자신도 동행하겠다고 한다
- 나치 . . . . 4회 일치
'나치'라고 하면 [[독일]]을 지배한 독재 정권을 주도한 [[아돌프 히틀러]] 휘하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혹은 히틀러 정권, 혹은 히틀러 정권이 통치하던 시기의 독일, 혹은 나치당의 주요한 구성원이나 지도자, 나치당 추종자[* 예를 들어 '돌격대','친위대' 같은 경우는 나치당의 구성원(당원)이 아니지만, 나치당의 외곽 단체로서 열렬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교적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이다.
* 나치당 :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 난치병 모금사기 . . . . 4회 일치
* 부모가 부유층으로 연수입이 충분한데, 여행 비용 등도 모금으로 충당한다. 집 등, 자산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없다.
* 자신의 아이가 난치병일 경우, 자산을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
* 모금을 사기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 남효온 . . . . 4회 일치
[[조선]] 초기의 학자. 재야 [[사림]] 학자의 일원으로서, [[생육신]]의 일원이다.[* 단, 생육신은 사육신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류한 점이 있는 개념으로, 당대에 세조의 집권에 반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몇 명 더 존재했으며, 특히 남효온은 다른 생육신들에 비해 한두 세대 이후의 인물로 시대 차이가 매우 커서 논란이 있다. (당대에는 '권절'과 같은 인물들의 인지도가 더 컸다.)]
육신전은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고, [[사육신]]의 절개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왕조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실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심각한 '불온 서적'이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불온 서적'은 사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필사]]되어 널리 읽혀졌고, 후대의 사림은 육신전에 근거한 '사육신 사관'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결국 육신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육신이 복권-헌창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낭만 주먹 . . . . 4회 일치
조양은과 관련된 자서전 등의 문헌에서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별다른 검증없이 널리 이야기 되는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사실, 애초에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들이 낭만주먹이었다는 것 자체가 허구로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시기의 조직폭력배는 [[칼]]이나 [[도끼]]는 물론, [[권총]]이나 [[폭탄]] 같은 화기 까지 동원할 정도로 과격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야인시대]]에도 묘사된 심영 습격사건 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이 무렵 치안 상황이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일반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싸우고, 쉬쉬하면서 폭력을 숨기는" 풍토는 5.16 쿠데타 이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조직폭력배를 대대적으로 검거, 소탕하면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말하자면 조폭들이 군대가 무서워서 몸을 사리면서 나타난 [[불문율]]일 뿐이었다. [[이정재]], [[임화수]]를 비롯한 거물급 조폭 두목들이 여럿 잡혀가면서 겁먹은 조폭들이 무서워서 당국의 눈에 뛰는 것을 걱정해서 이러한 불문율이 나타났던 것이다.
- 노행하 . . . . 4회 일치
|배우자 =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 농가 . . . . 4회 일치
* 농가(農家) : [[농업]]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 [[자영농]].
[[시골]]에 있는 오래된 농가(農家)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시대적・봉건적・인권을 무시하는 사고 양식・행동 양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에게도 강제하는 인간, 또는 그 가정이나, 마을 등의 공동체. 농업 종사자로서의 「농가(農家)」, 또는 현대적으로 상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농가(農家)」와는 구별하기 위해서 태어난 말이다. 고름 농(膿)을 사용한다.
농가(農家) 전체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고, 농업 종사자 이외에도, 사고・행동 양식이 그렇다면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민 전체를 싸잡아서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가(膿家)적 사고방식을 상기와 같은 행동 양식을, 절대지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제하는 생각.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농가뇌(農家脳)」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가(膿家)」와 같이, 최저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농업 종사자는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 니세코이/214화 . . . . 4회 일치
* 치토게는 열쇠를 보면서 "만일 자신이 약속의 여자아이였다면 이치죠가 다르게 봐줬을까"하고 의문을 가지는데...
*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대기업 사장 비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다니(...)--과연 금수저--
* 다 잊혀져 가던 약속의 여자아이 떡밥이 부활했다.
- 니세코이/225화 . . . . 4회 일치
* 오노데라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펑펑 울어 버린다.
* 자신이 약속의 아이인 것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다.
* 이치죠는 원인은 자신일 거라며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 이치죠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 니세코이/227화 . . . . 4회 일치
* 계속 좋아했고 1학년 문화제 때 처음 자각했다고 털어놓는다.
* 그리고 이곳에 와서 자신이 약속의 아이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포기할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 자신이 10년 동안 오노데라를 좋아한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달리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말한다.
* 그리고 그 애는 "계속 찾아왔던 여자애"가 아닌 "가짜 사랑"이라고 하는데
- 니세코이/228화 . . . . 4회 일치
*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그러나 각자의 진로를 위해 결국 치토게는 본야리 마을을 떠난다.
* 치토게는 이렇게까지 해놓고 다시 헤어지자고 말하는게 민망한지 우물거린다.
이자식 언제나 반성도 안하고 사람으로서 어떨까 생각한다
이자식 곧 바람필 것 같고 ||
- 다이스(미래소년 코난) . . . . 4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무역국 직원으로 35세. 기범선인 바라쿠다 호의 선장으로 플라스칩을 수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의 이익과 보신을 위해서라면 말 바꾸기와 배신과 변절도 주저하지 않는 천하의 악당.......같지만, 의외로 사람이 좋고 미워할 수 없는 구석도 있고, 배와 바다에 관해서라면 진지한 성격인지라 그의 부하 선원들은 선장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결코 그를 못 본 척 하지 않고 함께 한다.
코난과 지무시를 배에 태운 이후로 인생이 크게 변해, 결국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의 동료가 되어, [[지무시]]와 함께 [[레프카]]를 몰락시키는 데 일조한다. 엔딩에서는 [[몬스리]]와 결혼. 처음에는 자유가 끝난다며 도망치려 했으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몬스리를 보고는 진지하게 결혼에 임한다.
로보노이드의 주된 탑승자.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4회 일치
* 신체 자체가 기본적으로 체온변화에 대응하는 폭이 넓다. 파충류는 인간이라면 쓰러질 정도인 체온에서도 활동할 수 있고, 반대로 인간이라면 얼어죽을 체온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냉혈동물은 주변의 온도에 따라서 활성 상태가 달라진다. 체온이 낮아진 시간대(주로 밤)에는 활동이 크게 둔해지며, 사냥을 하거나 포식자를 피하기 전에는 체온을 먼저 올려야 한다. 체온이 낮은 상태에서는 활동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냉혈동물은 아주 위험해진다.--저 녀석을 잡아. 체온을 낮췄으니 오래가지 못할 거야-- --체온이 없어서.... 힘이 빠진다.--
또한 몸은 일정한 크기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너무 작은 온혈동물은 열을 생성하는 것보다 열을 더 빨리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온혈동물은 큰 온혈동물보다 더 자주 식사를 섭취해야 한다.
냉혈동물은 체온이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감염되는 기생생물들이 살기에 좋지 않다. 냉혈동물은 자연스럽게 온혈동물보다 감염에 강해진다. 파충류의 면역 시스템은 따뜻할 때 효과적이지만, 감염이 되었을 때는 의도적으로 체온을 낮춰서 대응하기도 한다.
- 듀폰 . . . . 4회 일치
* 농산물 종자
* 건축용 자재
== 자회사 ==
* 파이오니어(Pioneer) - 종자 회사.
- 러브라이브! . . . . 4회 일치
* μ's - 국립 오토노키자카 고등학교의 스쿨 아이돌. "뮤즈"라고 읽는다. 2016년 4월 1일 파이널 라이브 이후 해체되었다.
* [[야자와 니코]] (CV : 토쿠이 소라)
* Aquors - 사립 우라노호시 여자 고등학교의 스쿨 아이돌. "아쿠아"라고 읽는다.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주역 인물들.
"타락천사 요하네"라고 자칭하는 중2병.
- 레스터 길리스 . . . . 4회 일치
대공황 시기 활동했던 [[미국]]의 범죄자.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나 베이비 페이스 넬슨(Baby Face Nelson)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다.
1931년 시카고에서 은행 강도를 벌였다가 체포된 길리스는 졸리엣(Joliet)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벌였던 또 다른 은행강도의 재판을 받으러 잠시 이송되었는데, 돌아오던 중 탈출해 캘리포니아 주 소살리토(Sausalito)로 도망친다. 그곳으로 도망친 길리스는 존 폴 체이스(John Paul Chase)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역 갱단원으로 밀주 운반을 돕고 있었다. 길리스는 체이스와 함께 밀주 운반차의 호위를 하게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1934년, 길리스는 아내인 헬렌 길리스(Helen Gillis), 그리고 그의 친구 체이스와 함께 시카고로 가서 딜린저 갱에 들어가 강도짓을 벌인다. 그러다가 4월 말 리틀 보헤미아 산장이라는 곳에서 아내, 다른 갱단원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산장 주인의 신고를 받은 FBI가 들이닥쳤고, 딜린저 갱은 헬레스를 포함한 여자들을 남겨두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서 길리스는 W. 카터 바움(W. Carter Baum) 특별 수사관을 살해한다. 이후로도 길리스를 포함한 딜린저 갱은 활동을 계속한다.
11월 27일, 길리스 일당은 시카고에서 차를 훔쳐 위스콘신 주로 향하던 도중 FBI 차량에게 발각된다. 곧이어 FBI와 길리스 일당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길리스 일당은 FBI를 피해 도망쳤지만 또다른 FBI 차량을 만나게 된다. 새뮤얼 P. 코울리(Samuel P. Cowley) 감찰관과 허먼 E. 홀리스(Herman E. Hollis) 특별 수사관이었다. 첫번째 차량과의 총격전으로 라디에이터가 파손되어 제대로 도망칠 수 없던 길리스 일당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리노이 주 배링턴(Barrington)에서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뒤쫓아 오는 FBI 차량에 자동화기를 난사한다. 배링턴 전투라고 불리는 이 총격전으로 홀리스 특별 수사관은 사망하고, 코울리 감찰관 역시 치명상을 입어 다음날 사망한다. 하지만 길리스 역시 치명상을 입는다. 체이스와 헬렌 길리스는 FBI 요원들이 타고있던 차를 훔쳐 길리스와 무기들을 옮겨 싣은 다음 그 차를 몰고 도망친다.
- 레오(워저드) . . . . 4회 일치
사자의 머리에 육중한 체격의 전사. 원래 사람이며 그리디아의 국왕이었으나 발돌의 침공에 패하고, 마법에 의해 사자가 되버렸다. 그러한 그를 가신이었던 3현자를 포함한 103인이 희생해 인간에 가까운 지금의 모습으로 돌려놓은 것. 다만 완전하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3현자는 정량 마냥 계속에서 그에게 어드바이스를 준다.
- 레프카 . . . . 4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부흥을 위해서 태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라오 박사를 찾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며 사실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야심가. 삼각탑 지하에 잠든 초자력 병기를 탑재한 거대한 우주 비행기 [[기간트]]를 부활시키려 하며, 이에 필요한 태양 에너지를 얻기 위해 라오 박사를 추적하는 것이다.
냉혈한 악당이며 그에 어울리게 극중의 악당들 사이에서도 가장 사악한 모습을 보인다. 인더스트리아의 지하 거주민들을 억압하고, 어린 아이인 라나의 목을 조르는 등 정말 사악하다. 약속을 해도 자기가 유리해지면 휴짓조각처럼 내버리며 지키지 않고, 자신을 거역하면 부하라고 해도 가차없이 제거.
- 류원정 . . . . 4회 일치
| 배우자 = [[김성곤]]
*[[2015년]] [[KBS 2TV|KBS2]] 《트로트 부활 프로젝트 후계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리듬게임 . . . . 4회 일치
비디오 게임의 일종. 재생되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뜻한다.
모바일로 지원되거나 하는 경우 음소거로 진행 할 수도 있지만 박자 맞추기가 아니라 타이밍 맞춰 버튼 누르기 밖에 안 된다. 꼭 그렇게 하고싶다면야.
약칭은 DDR. 박자에 맞춰 발판을 밟는 리듬게임.
박자에 맞춰 북을 두들기는 게임. 닌텐도 DS용으로도 있다.
- 마기/302화 . . . . 4회 일치
* 한때 황제국의 무자비한 침략에 고통 받았던 백성들이 황제국이 군대를 다시 만들어서 전송마법진을 통해 침략하지 않을까 하는 여론이 퍼진 것이다.
* 어떤 지도자도 차마 국민들이 두려우하는 일을 억지로 진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자신은 국제동맹의 이사로서 황제국의 국가적 위기는 도울 수 있지만, 황제국 상회의 일을 도울 수는 없다며 공사를 구분한다.
* 왜 갑자기 저런 공포가 퍼졌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 마블 퍼즐퀘스트/1성 . . . . 4회 일치
=== 자거노트(클래식) ===
적에게 125 피해를 입히고 자신도 63피해를 입는다.
레벨 5: 적에게 1100 피해를 입히고 자신은 550피해를 입는다.
Note: 피해량은 캐릭터 레벨에 비례한다. 25 * 레벨 + 100. 자신이 입는 피해는
- 마약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에서는 불법이니까 하지말자. 했다가 걸려서 경찰서에서 부모님 앉혀놓고 "호기심에 한번 해본거에요ㅜㅜ"같은 소리 지껄이지 말고. 승자는 마약 안한다.
19세기 [[영국]]은 자국 마약상에 대한 처벌을 자국 상인에 대한 박해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 맨씽 . . . . 4회 일치
늪지대의 괴물. 원래 인간 과학자였으며 본명은 시어도어 "테드" 샐리스(Theodore "Ted" Sallis). 슈퍼솔저 혈청을 연구하다가 연인인 [[엘렌 브란트]]가 자신의 연구를 노리는 [[A.I.M]]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도망쳤다가 그녀의 총격을 맞고 [[늪]]에 빠지게 되었다. 늪에서 그는 혈청을 마셨는데 그 혈청만이 아니라 늪 자체가 특수한 늪이라서 맨씽이 되었다.
신체는 식물적인 것으로 보이며 거구에 괴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재생도 가능. 거기다 접촉한 자를 태울 수 있다.
- 먼슬리 맨션 . . . . 4회 일치
* 계약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기간 만큼 살다가 해지하고 이사할 수 있다.
*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침대]] 등의 [[가구]]와 [[가전제품]]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입주하고 당일부터 자신의 방 처럼 지낼 수 있다.
*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 청소기 등의 가전제품과 세제, 비누, 쓰레기 봉투 등의 생활 비품도 갖추어져 있는 물건이 많다.
* 전기, 수도, 가스 등의 [[라이프라인]]을 운영 회사가 담당해주기 때문에 거주자가 직접 계약할 필요가 없다.
- 멀티플맨 . . . . 4회 일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해서 현재와 자신과 동일한 복제를 생성. 각각의 복제들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본체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있으나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 복제를 다시 흡수할 수도 있으며 이때 복제의 지식이나 기술, 기억 등도 흡수. 다만 죽은 복제는 흡수할수 없다.--[[환영분신술]]--
텔레파시로 연결되었다 해도 복제의 사고력이 독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체인 매드록스와 별도의 길을 가게된 복제체도 있다. 그러다보니 복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으며 이런 때에 동일한 능력을 지닌 암살자 클레이(Clay)와 대면하기도 했다.
최초로 복제 능력을 발휘한 것은 그가 태어난 시기였다. 태어났을 때 [[엉덩이]]를 의사가 때렸을 떄 두명이 되었다. 그 뒤에 매드록스 집안의 친구인 [[X 교수]]의 제안에 따라 [[캔자스]]에서 조용히 성장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대니얼 매드록스 박사가 만들어준 운동 에너지 흡수 기능을 지닌 특수복을 착용했다.
[[엑스멘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는데 어째 범죄자로 [[매그니토]]의 부하가 된다. 그러나 뭔가 활약은 없고, 후에 미끼로 나오고는 더 이상 출연이 없다.
- 무선호출기 . . . . 4회 일치
[[이동통신]] 장비. 약칭 호출기. 단방향 통신 장비로서 호출기 쪽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은 할 수 없고, [[전파]]를 받아서 전화번호 숫자나 짧은 문자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만 가지고 있다. 전화번호를 받아오면 [[공중전화]]를 찾은 다음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연락을 할 수 있는 형식이다.[* 일부지만, 제품에 따라서는 수신만이 아니라 문자 송신 정도는 가능한 모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삐삐'라고 불렀다. [[일본]]에서는 포케벨(ポケベル)이라고 불렸다.
[[분류:전자제품]]
- 민생위원 . . . . 4회 일치
민생위원법에 따라서 지역사회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봉사하는 민간 봉사자로서 법률적으로는 무급 비상근 특별직 공무원.
민생위원은 각 지자체의 복지사무소와 연계하여 주민 생활을 파악하고, 생활 지도 등을 하는 활동을 벌인다.
민생위원의 활동이 노인과 장애인, 생활보호자 등 주로 성인에 치우쳐 있다는 실정에 따라 1994년에 아동에 대하여 전담하는 주임아동위원(主任児童委員)을 두었으며 아동위원(민생위원) 가운데서 후생노동대신이 위촉하여 임명한다.
"[[민생위원의 여자]]"라는 야애니가 있다.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4회 일치
15년 전 아버지는 여자와 나가고, 그 어머니도 재혼하여 집을 떠났다. 세 자매를 키워준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장녀 사치, 차녀 욧쨩, 삼녀 치카는 넓고 오래된 [[카마쿠라]]의 집에 남겨져 있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에 나간 그녀들은 다른 여동생 스즈와 만나게 된다.
믿음직하지 못한 양어머니를 떠받치며, 다부지게 행동하는 중학생 스즈를 보고 자매들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카마쿠라의 집에 스즈를 초대한다. 네 자매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데, 할머니의 칠주기에 소식불통이었던 어머니가 나타난다.
- 바리어프리 . . . . 4회 일치
"장애물이나 장벽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물리적, 심리적인 장애, 정보에 관한 장벽 등을 제거하려는 운동 혹은 그러한 사상의 결과로 이루어진 개선책. [[고령자]], [[장애인]]에게 안전하며, 살기 쉬운 사회를 만들자는 개념이다.
1974년 유엔 장애인 생활환경 전문과 회의에서 『바리어프리 디자인』이라는 보고서를 냈으며, 이때부터 나타난 단어이다. [[일본]]에서는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주목받게 된 개념이다.
단차를 제거한 주택이나 도로, [[계단]] 대신에 설치하는 경사로, 공공장소나 도로에 [[점자 블록]]이나 음성 안내 설치, [[보청기]] 보급, 기능을 줄이고 쓰기 쉽게 만들어진 [[가전제품]] 같은 것이 바리어프리의 사례로 꼽힌다.
- 바키도/111화 . . . . 4회 일치
* 가이아는 "사람들 눈에 띈다"고 자리를 옮기길 희망하지만 무사시는 "그럴 정도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능글댄다.
* 가이아는 자위대원으로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역전의 군인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 그러나 그들 중 누구 하나도 무사시에 비견되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자는 없었다.
* 무사시는 그 나이프를 자세히 보여달라며 다가오는데, 가이아는 전투 중에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 바키도/116화 . . . . 4회 일치
* 바키나 오로치돗포, 잭 해머 등 격투가들만 자리하고 있다.
* 바키, 오로치돗포를 비롯해 격투기 관계자들만 자리하고 있다.
* 여기 있는 격투가들은 설사 세간에 살육극이라 지탄받아도 "그 나름대로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신념의 소유자들.
- 바키도/125화 . . . . 4회 일치
* 이름난 강자들이 모두 모토베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 모두가 좋다고 하더라도 결국 결정하는건 당사자인 무사시라는 것.
* 관중 일동은 깨끗하게 기습이 성공하자 감탄한다.
* 그는 정좌한 자세로 고쳐 앉으며 모토베의 이름을 부른다.
- 바키도/129화 . . . . 4회 일치
* 모토베는 과거의 무사도는 주군을 위해 죽는 걸로 완성됐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신과 선량한 이웃의 생존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 과거 주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지금은 자기 자신의 안위와 선량한 이웃의 안전을 위해서 거는 것이라 말한다.
* 모토베는 무사시의 칼솜씨는 100점 만 점에 500점이지만 자신의 창솜씨는 70점이나 될지 말지라고 답한다.
- 바키도/137화 . . . . 4회 일치
* 캡틴 [[스트라이덤]]은 헬기로 누군가를 옮기고 있다. 그는 그 상대에게 "당신 스스로 정한 일"이고 명령이니까 따르는 거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 말렸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고 덧붙이는데. 그 말을 들은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는데 헬기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다.
* 헬기가 호텔 옥상에 착륙한다. 힐너리는 선거에서 패했지만 그 자신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트럼프에게서 미국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다. 그녀는 유지로를 "무력 그 자체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의 방으로 향하는 손엔 성경이 들려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불가침조약"을 "선서"할 때 쓰던 것이다.
당황했던 힐너리는 금방 평정을 되찾는다. 그녀는 의오로 [[한마 바키]]의 어머니이자 유지로의 아내였던 미스 에미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힐너리는 그 친분을 근거로 유지로에게 선서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 박기환(정치인) . . . . 4회 일치
'''지방자치제도 도입 후 [[TK]]에서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기초지방단체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울진군]]수에 당선된 신정 전 군수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된 [[장세용]] 현 시장이 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상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때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허화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후신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에 속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장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장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박상규(정치인) . . . . 4회 일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조진형이 공천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2011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br](민선 5기 충북 충주시장)[* 전임자 [[우건도]] 당선무효] ||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 16,492 (23.77%) || 낙선 (2위) || ||
- 박성우 (정치인) . . . . 4회 일치
** 외손자: [[이승하]](시인, [[중앙대학교]] 교수)
==참고자료==
|전임자 = (상주군 갑)[[한암회]]<br/> (상주군 을)[[전진한]]
|후임자 =
- 박인태 . . . . 4회 일치
* 2013년 제11회 FIBA U19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2012년 제22회 FIBA 아시아 U-18 남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 2012년 제2회 FIBA U17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2011년 제2회 FIBA 아시아 U-16 남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 박종준 . . . . 4회 일치
1964년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서 태어났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봉황중학교,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야 [[무소속]] [[이해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분류:경찰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박태호 (야구인) . . . . 4회 일치
* [[롯데 자이언츠]] (1987 ~ 1992)
'''박태호''' (朴泰浩, [[1963년]] [[5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였다.
{{1992년 롯데 자이언츠}}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발 . . . . 4회 일치
인체의 신체부위중 가장 하단에 위치한 아름다운 부위로써, 다리와 더불어 인간의 몸을 지탱해주는 하반신의 중추이자 미의 정점이다. 동물이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신체부위이고 기본적인 그 골격 구조는 상반신의 손과 같으나 복사뼈, 족저근막 위의 아치형 구조등, 좀 더 충격흡수를 효율적으로 하기위하여 예술적이고 독보적인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땅바닥을 디디고 다니는 신체 특성상 더러워지기 쉬우므로 외출하고나선 꼭 씻자. 잘 씻고 잘 말리기만 잘 한다면 각질 축적은 물론 무좀 등 악성 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하이힐이나 밀폐형 부츠등을 쉬지도 않고 장시간동안 신는다면 비단 발의 피부질병문제가 아니라 근육과 골격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남녀노소 모두 바람직한 생활 습관으로 소중한 발을 잘 지키도록 하자. 발이 건강하다면 그 사람의 건강도 보장된다.
우리 몸의 혈류나 혈맥이 많이 지나다닌다고 하며, 그 때문에 발의 부위마다 각각 자극하는 다른 신체부위가 있어 마사지하면 그곳이 좋아진다는 말도 있다.
- 배상면 . . . . 4회 일치
'''배상면'''(裵商冕, [[1924년]] [[9월 22일]] ~ [[2013년]] [[6월 7일]])은 [[대한민국]]의 기업가이다. 호는 우곡(又麯, 또 누룩을 생각한다는 의미).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대한민국 전통주 시장을 개척했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7/2013060703105.html 전통주 외길 '배상면' 국순당 창업자 별세] 조선비즈, 2013년 6월 7일</ref> 본관은 [[달성 배씨|달성]].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순당 창업자 배상면씨 별세]</ref>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 자서전 ===
* 《도전 없는 삶은 향기 없는 술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5194161 뉴시스, 60년 전통주 외길 '배상면' 국순당 창업자 별세]</ref>
- 백상원 . . . . 4회 일치
[[단국대학교]] 졸업 후 [[2010년]]에 4라운드(전체 28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2010년]] 퓨처스 리그 개막 때부터 4월 말까지 56타수 3안타로 매우 부진해 그 해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력한 끝에 남부 리그 [[수위 타자]]가 되었다.
시즌 후 곧바로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여<ref>조이 뉴스 24 - 2010년 10월 26일 기사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523983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퓨처스 남부 리그 수위 타자 백상원, 삼성 내야의 미래"]</ref> 복무를 마치고 [[2012년]]에 제대했다.
[[2013년]] [[4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그 날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군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 2군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김상수 (1990년)|김상수]]의 부상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와 [[2013년]] [[10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김성배 (야구 선수)|김성배]]를 상대로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29325 '백상원을 아시나요' 삼성의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된다] - OSEN</ref>
* {{KBO 타자|60456}}
- 벚꽃놀이 . . . . 4회 일치
현대의 벚꽃놀이는 벚꽃이 핀 공원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과 음식을 마시면서 노는 것이다. 휴대용 [[가라오케]] 기기를 쓰기도 한다. 벚꽃놀이로 유명한 장소에서는 벚꽃놀이를 할 자리를 잡기 위해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고대에 벚꽃나무는 신(神)이 내려오는 곳으로 보았는데, 벚꽃나무를 뜻하는 사쿠라(サクラ)라는 이름에도 이 같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산]]과 [[밭]]의 신(神)으로 사(サ)라는 신이 있어, 신이 내려오는 자리를 쿠라(クラ)라고 하여, 벚꽃나무에 신이 내려온다고 보아 사쿠라(サクラ)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사이자 놀이로서 즐기는 벚꽃놀이는 [[헤이안 시대]]에 [[일본 귀족]]들이 시작하였다. [[만엽집]]에서 벚꽃에 대해서 읊는 시가 나타나고 있으며,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도 봄의 노래는 벚꽃에 대한 것이 많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연회가 화려하게 묘사된다.
- 베이지 . . . . 4회 일치
||<#F5F5DC> '''성좌/지지''' || [[천칭자리]]/[[호랑이띠]] ||
* 2007년 3월 29일 [[엠넷]] 그림자
* [[SBS]] [[더 뮤지컬]] (내 남자는)
* [[KBS]] [[가시나무새]] (우리 여기까지 하자) (with [[이석훈]])
- 벼랑개 링링 . . . . 4회 일치
11월 17일 발견된 이 개는 약 1주일 간 조난 상태에 있었다. 20일 TV중계가 되는 가운데 구출되었고, 22일 도쿠시마 현 동물애호관리센터에 맡겨졌다. 구출된 이 개를 많은 사람들이 기르고 싶다고 연락했다. 2007년 1월 28일, 동물애호관리센터는 센터에 찾아온 11명의 신청자에게 추첨을 거쳤으며, 66세 여성 마키 카즈코(馬木カズ子)가 인수하게 되었다. 마키 카즈코는 개에게 링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르게 되었다.
2007년 2월 12일, 링링의 자매로 보이는 개 역시 사육 신청자가 나타나 양도되어 유키쨩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 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육되었다.
* 11명의 신청자는 TV에서 보도된 벼랑개에게만 관심을 가졌고, 보호센터에 있는 다른 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보호센터에서는 다수의 개가 안락사 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이 논란이 되었다.
- 보쿠걸 . . . . 4회 일치
여자아이 같은 외모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 미즈키는 남자 중의 남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같은 반의 후지와라를 좋아하고 있지만, 우연히 장난의 신 로키와 얽히면서 진짜 여자애의 몸이 되고 마는데...
- 보쿠걸/106화 . . . . 4회 일치
* 그때 미즈키에게 신사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받는다.
* 미즈키는 자신이 생각한 결과를 말하겠다며 타케루에게 입맞추며 고백한다.
* 원래 언제든 남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걸 타케루 때문에 포기했으니 "책임져줘야 한다"고 말한다.
- 보쿠걸/107화 . . . . 4회 일치
[[보쿠걸]] 107화. 완결. '''나는 여자아이'''
* 미즈키는 새로 생긴 여자 합기도부에서 활동 중.
* 아소는 학생회장 자리에 올랐다.
* 이마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즈키를 잊으려 했는데, 때마침 꽃꽃이부 일동이 커밍아웃&고백을 해봐 할렘상태. 가끔 선배 자격으로 학교에 들른다.
- 보쿠걸/95화 . . . . 4회 일치
혼자 남은 로키에게 토르가 나타난다.
* 로키는 혼자 있게 되는데 뇌신 "토르"가 로키를 신계로 붙잡으러 온다
* 토르는 로키의 유일한 친구이자 라이벌. 로키가 장난을 치면 토르가 붙잡아 가는 일을 반복해왔다
* 애초부터 로키는 북구신화의 신이긴 했지만, 설마 토르까지 나올 줄 예상한 독자는 없었다.
- 보쿠걸/98화 . . . . 4회 일치
* 토르와 함께 나타난 로키는 미즈키에게 자신이 신이라고 밝힌다
* 성별을 바꾼 것도 자신이라고 밝히지만 미즈키는 꿈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믿지 않는다
* 로키는 모래시계를 주면서 "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다이쥬 고교의 거대한 거울 앞에 서서 남자와 여자, 어느 쪽으로 살지 보이면 그대로 고정될 것"이라 한다.
- 브라우닝 하이파워 . . . . 4회 일치
Browning Hi Power. 미국의 총기 제작사 [[브라우닝]]이 생산하는 [[자동권총]].
2016년 12월 기준 신상 하이파워의 소비자가격은 $1,100~1,200 정도. 당신이 미국 시민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정보다.
20세기 초반 [[존 M. 브라우닝]]이 설계를 시작하였다. 브라우닝 사후에는 [[FN 에르스탈]]의 총기 제작자인 [[디외도네 세브]](Dieudonne Saive)가 몇년간 설계해 브라우닝 하이파워의 설계를 끝맞췄다.
* 영국군에서 브라우닝 L9A1라는 이름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제 자동권총인 글록17이 채용된 상태.
- 브레이니악 . . . . 4회 일치
역사가 오래된 캐릭터이다보니 시기에 따라, 매체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초기에는 콜루 행성의 [[외계인]]이었다가 이후 설정이 변경되어 콜루 행성의 [[컴퓨터]]가 만든 기계인간이 되었다. 정신 능력을 지닌 [[천재]] [[과학자]] 브릴 독스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 이후 크라이시스라는 대형 이벤트를 거치면서 재설정되었는데 이 설정에서 브릴 독스는 콜루 행성 정복을 이루려다 행성을 다스리는 대형 컴퓨터에게 반역죄로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남으 새로운 몸을 얻어 브레이니악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애니메이션]] [[슈퍼맨 TAS]]와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는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립톤 행성의 멸망을 알리지 않고 그들이 멸망하게 방치했다는 설정이 생겼으며 이후 렉스 루터를 부려서 자기 몸을 만들게 했다. 이후 JLU에서 재등장했는데 이때 브레이니악은 정말 치밀하기 짝이 없는 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거 슈퍼맨 애니메이션에서 브레이니악은 몸이 만들어지자 렉스를 공격했는데 이때 이 공격은 렉스를 죽이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게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 이때의 공격은 브레이니악의 일부를 렉스에게 옮기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이 일부는 렉스의 안에 잠복하게 된다. 그러면서 렉스라 크립토나이트 오용으로 얻은 암을 치유하고 괴력을 줬는데 렉스가 아마조를 기반으로 한 나노머신 로봇 몸에 의식을 옮기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게 좌절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저스티스 리그의 눈을 피하는 동안 렉스에게 설득되어 이전에 지구를 침공한 외계의 병기를 흡수하고 렉스 루터와 융합되었다. 그러나 플래시의 활약에 의해 패배.
- 브로포스/브로 . . . . 4회 일치
일정 시간동안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반사한다.
일정 시간동안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한다. 타임 브로 혼자만 원래 시간대로 움직일 수 있다.
던지면 짧은 거리를 날다가 제자리에서 멈춰 빙글빙글 돈 후 돌아온다.
짧은 시간동안 투명해진다. 투명화된 동안은 숄더캐논이 자동적으로 적을 공격한다.
- 블랙 클로버/125화 . . . . 4회 일치
* 잭스는 자군 크리스탈 자체에 반사마법을 설치했고 이 마법은 상대의 마법 특성까지 반사하기 때문에 크리스탈을 노린 매그너는 자기 마구에 맞아 당하고 만다.
* 미모사는 솔 마론에게 당한 듯 보였지만 골렘에 자신의 마법 씨앗을 박아서 일정 시간 조종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
- 블랙 클로버/51화 . . . . 4회 일치
* 야미 스케히로가 리히트를 구속하려 할 때 갑자기 새로운 적들이 나타난다.
* 그 정체는 삼마안(서드아이)라 불리는, 전투만으로는 리히트도 능가하는 백야의 마안 최강자들이다.
* 새로운 정령 마법 구사자의 등장. 그러나 네잎 클로버의 마도서의 소유자일지는 미지수.
- 블랙 클로버/57화 . . . . 4회 일치
* 챠미는 수박깨기를 하는데 왠지 자꾸 아스타의 머리통을 내려친다.
* 청동의 셋케가 간만에 재등장. 친구들을 이끌고 헌팅에 나서지만 하필이면 검은 폭우단의 여자들에게 헌팅을 걸어서 험한 꼴을 당한다.
* 아스타는 고자같지만 사실 수영복 입은 여자들을 보고 코피도 흘리는 건전한(?) 청소년. 하지만 노엘에겐 반응이 없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4회 일치
* 먼 옛날 마력을 독점하려는 악마의 백성들이 있었고 이들 중 가장 강한 자가 금단의 마법으로 마신이 되어 인간을 멸망시키려했다.
* 절망의 베토가 그 이야기 속 마족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
* 아스타는 베토를 날려버리고 카호노의 목도 키아토의 다리도 고쳐주자고 한다. 베토의 재생마법을 보고 "그런 마법을 쓸 수 있는 녀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 핀랄은 소인배스럽긴 한데 마법 자체는 뛰어난 편인 듯. 베토에게 인정 받는다.
- 블랙 클로버/71화 . . . . 4회 일치
* 결국 아스타의 무기를 빼앗으려다 자신의 무기도 빼앗긴 격.
* 그러나 베토는 오기를 부리며 자신이 질리가 없다고 발악한다.
* 승세가 기울고 자신의 헛점이 벌어지면서 베토는 오한을 느낀다.
* 그리고 지금까지 무시했던 아스타가 자신과 같은 짐승, 혹은 그 이상의 "절망 조차 삼키는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 블랙 클로버/80화 . . . . 4회 일치
* 오벤도 다른 물마법 사용자와 비슷한 회복마법을 사용하는데 스케일이 남다르다. 방에 해파리 같은 형채가 가득찰 정도.
* 한바탕 왁자지껄 논 뒤, 아스타는 피곤하다고 먼저 숙소로 향한다.
*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핀랄이 충격적인 말을 꺼내는데.
* 일단 뼈 자체도 산산조각 상태라 일반적인 상처였어도 회복은 어려운 상태.
- 블랙 클로버/96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여왕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자 쓰러져 있던 아스타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데.
* 하지만 파나는 기억도 애매할 뿐더러 라드로스에게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라드로스는 빈사의 마르스를 공격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사실 그에겐 마르스를 죽일 정도의 힘은 이미 남지 않았지만, 마르스가 공격 당하는 모습을 보자 파나는 잠재된 샐러맨더의 힘이 분출된다.
하지만 손을 들어 어떤 마법을 사용하며 "네 녀석이 어떤 자인지 보여라"라고 말한다.
- 블리치/673화 . . . . 4회 일치
* 하쉬발트가 다가오자 이시다는 자신이 하쉬발트를 막을 테니 서둘러 태양의 문으로 향하라고 말한다.
* 그러자 하쉬발트는 "태양의 문은 이미 파괴했다"며, 유하바하가 눈 뜨기 전에 처리해주겠다고 한다.
* 차드는 "재미없는 일을 좋아하냐"며 자신들의 일은 "성안을 정리해 이치고가 돌아올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석상들과 싸운다.
- 블리치/676화 . . . . 4회 일치
* 아스킨은 기프트 베라이히를 만들어서 자신과 우라하라 키스케 일행을 가둔다
* 우라하라는 아스킨이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라고 보는데 실제로 아스킨은 "유하바하 가 삼계를 부수고 만드려는 세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로 움직이고 있다. 아스킨은 "너도 같은 타입"이라며 회유하려 하는데 우라하라는 "과학자라면 직접 만들어서 본다"며 거절한다
||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보려면 자기 손으로.
그게 과학자란 겁니다. ||
- 블리치/680화 . . . . 4회 일치
* 켄파치는 자신이 어째서 베인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 토시로는 원호하려 하나 자라키는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며 밀쳐내 버린다
* 야치루는 뭘하고 있냐며, 하던걸 하자고 손을 잡아 끈다.
* 떡밥만 무성했던 야치루의 정체는 켄파치의 참백도 자체였던 것 같다.--스타크랑 리리넷 때랑 똑같은거 아닌가 이거--
- 블리치/681화 . . . . 4회 일치
자라키 켄파치의 만해가 드디어 해방
* 거의 폭주 상태나 다름이 없는데, 이것 자체가 만해인지 다른 영향인지는 불명.
* 제라드는 이번에 당한 것과는 달리 만해 켄파치에게 당한 상처에게 피를 철철 흘린다. 재생 자체가 늦어지고 있다.
* 제라드는 자신의 방패가 베어진 것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방패 쪽도 뭔가 설정이 있는 것 같지만 다뤄지지 않았다.--[[드래곤 시류|88성좌 가운데 최강의 드래곤 방패가!]]--
- 블리치/685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유하바하는 "부자대화"에 힘은 쓰지 않겠다고 이치고를 도발한다.
* 이치고는 부정하며 오히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라고 쏘아붙이는데, 유하바하는 연약하다고 비웃는다.
* 유하바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검은 기만으로 월아천충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 산바람 . . . . 4회 일치
= 자연 현상 =
시드노벨 자유게시판 커뮤니티 출신작가 중 하나이며, 주로 자칭하는 기믹은 슬라임인 듯. 용사 더하기 마왕의 작가의 말에도 슬라임이 그려져 있다고.
*《제 여자친구는 M입니다》
- 살바도르 달리 . . . . 4회 일치
달리는 부인 갈라가 죽고 7년 뒤에 사망했는데, 자식이 없어서 달리의 작품들은 스페인 정부에 유산으로 남겨졌다. 달리의 시신은 피게레스에 있는 극장의 지하실에 묻혔다.
2015년 필라 아벨 이라는 여성이 자신을 달리의 딸이라고 주장하면서 마드리드 법원에 소송을 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4/20/0200000000AKR20150420001000072.HTML 참조]
1988년 스페인의 화가이자 미술사학자 토메우 라모는 1988년 스페인 북부 지로나의 골동품점에서, 2만5천페세타(150유로)에 달리의 작품을 구입했다. 골동품점 주인은 써진 연대가 달리가 태어나기 전엔 1896년이므로 이 작품은 [[위작]]이라고 판단했으나 토메우 라모는 이를 진품이라고 생각해서 구입했고, 결국 2004년에서 2013년에 걸쳐서 감정을 한 결과 결국 달리가 17살 때인 1921년에 그려진 진품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살바도르 달리 재단은 아직 달리의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http://www.huffingtonpost.kr/2014/05/23/story_n_5377257.html 참조]
- 서용주 . . . . 4회 일치
동의대의 주장이자 4번타자였지만 프로지명을 받는 해인 4학년에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 이후 39타수 1안타라는 최악의 ~~대삽질~~부진을 보이면서 결국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8월 23일에 [[김선빈]]과 [[최희섭]]이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윤완주]]와 함께 1군에 콜업,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80944|기사]] 그리고 8월 25일 목동 넥센전에서 9회초 [[이용규]]의 대주자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박기남]]의 적시타로 2루까지 진루하였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우투우타]]
- 서울특별시장 . . . . 4회 일치
수도라는 특성과 국가의 최대도시로서 행정적 특수성을 반영하여, 서울특별시장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1962년 1월 27일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1988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이를 개정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서울특별시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법률적 위상에 더해서, 지방자치제 부활과 민선 이후 서울특별시장의 정치적 위상은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에 더욱 커진다.
* [[서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인구, 경제 측면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서울시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
- 서정윤 . . . . 4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성범죄자]][[분류:대한민국의 교사]]
- 세종 . . . . 4회 일치
그러나 이처럼 정력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직접 일을 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섭식 문제(육식을 너무 좋아했다)와 겹쳐 각종 성인병에 시달려 고생하였다. 이 때문에 만년에는 세자(후의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기도 하였다.
자식으로는 [[문종]], [[세조]], [[안평대군]] 등이 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인지 다들 능력은 걸출했다. ~~(세조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후레자식이지만)~~
- 소격서 . . . . 4회 일치
* 태일전(太一殿) : [[칠성]](七星)을 제사지냈다. 화상이 모두 모두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 삼청전(三淸殿) :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동제군(梓潼帝君) 등 10여 위를 제사하였다. 남자의 화상으로 모셨다.
* 자수궁(慈壽宮) : 여도사가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폐지하였다. 소격서의 근거가 되는 [[도교]]가 [[노자]]를 숭상하는 이단이라는 점, 제후국인 조선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점, 초제를 지내는 비용이 낭비되며, 소격서는 쓸데없는 관리라는 점 등의 이유이다.
- 손병조 . . . . 4회 일치
* 1994년 : 대통령비서실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파견근무
|전임자 = [[박진헌]]
|후임자 = [[이대복]]
- 스파이더맨 . . . . 4회 일치
손발바닥으로 벽이나 천장 등에 달라붙을 수 있다. 이렇게 달라붙어서 기어 이동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가방 같은 것도 붙이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한 기능.
위기를 감지하고, 거기에 맞춰서 몸이 자동적으로 피한다. 스파이더맨의 민첩성과 어우러셔 거리에 따라선 총알도 피할 수 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초자연적인 감각이다.
원작 만화에서는 자신의 애인인 [[그웬 스테이시]]를 추락에서 구하려다가 목을 부러뜨려 죽인 전적이 있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 식극의 소마/154화 . . . . 4회 일치
* 쿠스노키 렌타로는 자신은 "선택받은 요리인"이라 자부하는데 타쿠미는 "왜 남에게 선택받는데 집착하냐"며 비웃는다
* 아리스는 노는 기분으로 참가한 거 같지만 "아자미 숙부가 멋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며 나름대로 각오가 있음을 어필한다.
* 몇몇을 제외하면 십걸은 전원 아자미 총수에게 넘어갔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4회 일치
* [[시노미야 코지로]]의 가르침을 되세기며 파이팅하는 [[타도코로 메구미]]. 그런데 내놓은 요리는 매우 소박한 도라야끼.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안에 백앙금과 함께 깍뚝썰기된 사과가 들어가 있다. 싱싱한 사과의 향기가 강점이지만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선보인 타르트에 비하면 외견도 향기도 미치지 못한다. 샤름은 모모보다 명백히 밑이라고 냉정히 평하는데 이스트와르는 도라야끼라는 과자 자체를 꽤 선호하는 모양. 좋아라 맛을 보는데 생각이상으로 강렬한 리액션이 따라온다.
* 타도코로의 회심의 일격. 부정적이었던 샤름 조차도 사과 도라야끼 자체는 뛰어난 과자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모모의 타르트에 비하면 약간 못 미친다고 선을 긋는다. 그런데 안은 그런 평가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타도코로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아직도 요리에 뭔가 비밀이 있는게 아닌가 짐작하는데, 그 예상이 맞아떨어진다.
- 심양홍 . . . . 4회 일치
현대극에서는 [[김정수(각본가)|김정수]] 작가의 드라마에 단골로 출연하는 편이었다.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 [[민들레 가족]] 등이 해당된다.
*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 - 장세근
- 아데랑스 . . . . 4회 일치
1968년에 설립. 창업자는 네모토 노부오(根本信男).
2009년 5월, 아데랑스에 투자했던 미국계 투자회사 스틸 파트너스는 사외이사로서 오오츠키 타다오(大槻忠男)를 진출시켰다. 그는 일본 펩시콜라 등에서 활동한 전문경영인이다. 그리고 오오츠키 타다오는 2009년 10월 CEO로서 사장 취임, 다양한 새로운 경영 방침을 발표했다. 2010년 10월에는 사명을 "유니헤어(ユニヘアー)"로 변경, 아데랑스는 남성용 브랜드로 남기고, 가발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https://facta.co.jp/article/201109066.html (참조)]]
2011년 2월 17일, 오오츠키 타다오는 해임당하고, 창업자 네모토 회장이 사장을 겸임하게 된다.[[http://toyokeizai.net/articles/-/5993/ (참조)]]
- 아이네이아스 . . . . 4회 일치
[[그리스 신화]]의 [[영웅]]. [[트로이]]의 왕자이며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으며, 트로이가 멸망한 뒤 [[이탈리아]]로 떠나 후에 [[로마 제국]]의 조상이 된다.
아이네이아스와 같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비정하는 신화는 그리스 계 식민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디오메데스]]는 다우니아의 왕 다우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땅을 이어받아 브린디시 등의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하며[* 디오메데스는 똑같이 이탈리아에 표류한 아이네이아스와 대적하던 에트루리아의 투르누스에게 동맹을 요구받지만,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 혹은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절하였다고 한다.], 크레타의 지배자였던 이드메니우스 역시 크레타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남부로 도망쳤고, 살라미스 섬의 테우크로스는 키프로스로 떠나[* 테우크로스는 살라미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가족이었지만, 아이아스의 자살을 말리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아스의 아버지 테라몬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살라미스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었던 필로크테이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에페이오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시온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이탈리아 그리스 계 도시에서 있었던 유행에 로마 역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아카짱가에리 . . . . 4회 일치
환경 변화에 따라서 나타나며, 2세 전후의 아이에게 자주 볼 수 있다. 계기가 되는 원인은 주로 생활 환경에 변화가 되는 것이다. 하는 아이도 있고 안 하는 아이도 있다.
* 여동생, 남동생이 태어나서 언니오빠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된다.
* 자신의 신변 정리나, 인사를 소홀하게 하거나, 어머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 참고자료 ==
- 안동준 . . . . 4회 일치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무소속]] [[연병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원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초에 이승만 정권 때의 행적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 [[김원태]]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용운]] 후보와 신민당 이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4회 일치
[[에도 막부]]의 관료, 정치가, 검술가. 야규 무네토시 세키슈사이(柳生宗厳 石舟斎)의 손자이며,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장남. 야규 가문의 적자이다. 아명은 시치로우(七郎).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를 모셧다.
* 귀무자 2 : [[귀무자]]가 되어 환마 일족과 싸우게 된다. 참고로 쥬베에 적으로 이것은 비교적 평범한 이야기(…).
- 야리만 . . . . 4회 일치
한국 속어에서 비슷한걸 찾자면 '걸레'와 비슷한 등급의 단어이다.
'야리(やり)'는 확실한 어원은 불명. 「하고 싶어한다(やりたがる)」나 「하고 싶다(やりたい)」에서 파생되었다거나, 야리테(やり手, 수완가, 실력자, 뚜쟁이(やりてばば)의 준말)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사세코(サセ子,サセコ,させ子)가 있다. 이쪽은 「부탁하면 해주는 여자애(頼めば○○○させてくれる女の子)」나 「누구와도 해주는 여자애(誰でも○○○させてくれる女の子)」의 줄임말.
- 엉클 샘 . . . . 4회 일치
기원은 미극 민담에 등장하는 브라더 조너선(Brother Jonathan)과 양키 두들을 합친 것이라 한다. 뉴욕의 샘(새뮤얼) 그라고 윌슨이라는 고기납품업자가 [[쇠고기]] [[통조림]]에 United States 라는 뜻으로 U.S. 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했던 것을 납품고기를 검사하던 부대 감독관이 U.S → Uncle Sam으로 알아서 엉클 샘이라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반대로 납품업자가 자기 별명인 엉클 샘의 이니셜인 U.S.를 찍어 보낸 것을 감독관이 United States인 줄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엉클 샘에 대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도 실린 이야기다.]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엉클 샘은 이 캐릭터를 사용한 것. 당연히 [[마블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처럼 애국자 히어로다. 덧붙여 DC의 엉클 샘은 원래 퀄리티 코믹스의 캐릭터였다가 후에 퀄리티가 DC에 흡수되면서 DC의 캐릭터가 되었다. 그의 동료들인 [[프리덤 파이터즈]] 멤버들도 퀄리티 출신. [[배트맨 더 브레이브 앤 더 볼드]]에 등장한 적이 있다.
- 엔자이 . . . . 4회 일치
수사기관의 편견, 피의자에게 밀실에서 [[자백]]을 강요하고, 그러한 자백을 과신하는 것이 엔자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 역린 . . . . 4회 일치
용은 '[[천자]]'([[황제]],[[임금]])을 상징하므로, 용의 분노를 사는 것은 곧 높은 사람의 분노를 사는 것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역린의 출처는 『[[한비자]]』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비자에서는 용의 역린에 대하여 전설을 소개하고, 인주(人主,[[군주]]) 역시 역린이 있으므로 왕을 설득할 때는 역린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참고자료 ==
- 연하장 . . . . 4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세함(歲銜)’이라고 하여, 신년 초에 직접 찾아가 인사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시켜서 서찰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관아에 속한 장교나 병졸은 자기 이름을 적은 쪽지를 상관의 집으로 찾아가서 세합장에 넣었다.--셀프 우편배달-- 양반 집안 여인들은 바깥 출입이 어려워, 친지에게 덕담을 담은 글을 써서 여종을 시켜 배달하게 했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불렀다.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것으로서, [[불로초]]를 짊어진 도동이나 [[노자]]를 그린 그림을 내려주는 ‘세화(歲畫)’라는 풍속이 있었다.
우편제도가 등장하자 우정국에서 연하장을 발매하게 되었다. 최초의 연하장은 1900년에 발매되었으며, 전통의상을 걸친 우정국 관리들의 모습을 컬러 인쇄하고, '신년을 맞이하여 한국 황실과 우정국의 임직원들은 여러분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로 고향에서 떨어져 새해에 일일이 찾아갈 수 없게 되자, 연하장이 유행하게 되었다. 장수나 복을 상징하는 해, 학, 소나무, 십이지, 겨울 풍경 등의 그림을 그린 연하장이 유행했다.
- 영국 . . . . 4회 일치
"영국"이라는 명칭은 잉글랜드의 한자 음차인 영길리(英吉利)에서 따왔다.
19세기 초 [[청나라]]에 [[아편]]을 팔다가 몰수&추방 당한 자국 상인들을 위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사실 아편 몰수는 명분이었고 시장 개방이 목표였다.
19세기 말 [[보어 전쟁]] 도중 [[보어인]]들이 게릴라전을 벌이자 죄다 강제수용소에 처박았다. 강제수용소 발명국 퍄퍄.
20세기 초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방 달라고 빼액거리자 줬다. 우리 시대의 평화 ^^.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을 믿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얼마 못가고 독일에게 완전히 잡아먹혔다.
- 예종 . . . . 4회 일치
세조의 차남. 부친의 찬탈과 형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다소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인물.
그의 치세에는 세조의 쿠데타에 동참해 권신이 된 구공신 세력들과,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세조가 말년에 총애한 신공신파의 대립이 첨예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젊은 나이에 크게 출세했고 혈기도 왕성했던 [[남이]]가 제일 위협적이었는데, 이에 예종은 처음엔 남이의 벼슬을 깎아 견제했고 남이가 이에 불만을 품어 구공신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정황이 포착되자 남이를 역모 혐의로 처단하고 이어서 유자광을 제외한 신공신 세력을 일소하기에 이른다.
세조가 싸지른 똥(권신들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이를 견제할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개인의 카리스마로만 억누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심신을 혹사한 끝에 요절한 왕.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형의 차남인 잘산군(또는 자을산군)이 이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
- 와일드 독 . . . . 4회 일치
본명 Jack Wheeler. 과격한 자경단원. [[기관단총]] 등 총으로 무장했다.
상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총으로 무장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서 과격한 자경단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블 코믹스]]의 [[퍼니셔]]와 비슷하다.
- 요괴:조카몬 . . . . 4회 일치
명절에 쉬고 있으면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괴성을 지르고 뛰어다니거나 욕설을 퍼붓고 사람을 때린다. 사람의 광을 뒤져서 귀중한 물건이나 도서를 찾고, 찾아낸 물건을 제 것으로 삼아 가져가려 한다. 조카몬이 물건을 부수거나 훔쳐가도, 집안 어른들은 허허 웃으면서 허락한다. 물건의 주인이 화를 내면 오히려 조카몬을 소중히 섬기지 않는 불경죄를 묻는다. 그리하여 조카몬이 나타나면 모든 보물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부모부르기:조카몬은 궁지에 처할때 자신의 부모를 부른다. 그리고 조카몬의 부모는 높은 확률로 피해자에게 '이거 얼마야?'나 '애들이 갖고 노는거 가지고 왜그러냐'시전한다. 가끔은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걸 왜 니가 사냐'를 시전해 피해자를 매우 빡치게 만들기도 한다.
- 우라센케 . . . . 4회 일치
[[센노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찰을 빚어 [[할복]]한 뒤, 리큐의 양자 쇼우안(少庵)은 교토에서 재흥을 허락받아 후신안(不審庵) 같은 리큐와 연고가 있는 다실을 재건했다. 또한 불교에 들어가 있던 아들 소우탄(宗旦)을 [[환속]]시켜서 가문을 이어받게 하고 다도를 보급하는 것을 맡겼다. 소우탄은 도쿠가와 가문 등에 자식들을 다두(茶頭)로서 임관시켜 가문을 부흥시켰으며, 소우탄의 자식 대에 센 가문은 셋으로 갈라진다.
* 차남 이치오우 소우슈(一翁宗守) : 칠기 가문에 [[양자]]로 나갔다가 돌아왔다.「무사시노코지 센캐(武者小路千家)」를 일으켰다.
- 우찬양 . . . . 4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은 [[정태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 2016년 7월 3일, 광주전에서 프로 데뷔이자 K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제주전에서 최순호 감독이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시즌 첫 선발출장을 했다. 팀 자체가 2군급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눈에 띌만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 원더우먼 . . . . 4회 일치
완벼한 인물. 아마존이 보통 사람은 상대도 안되는 괴력을 지닌데다 원더우먼은 이들 중에서도 엄청난 강자다. 어쩌면 슈퍼맨보다 강력할 수도 있으며 슈퍼맨과 달리 약점도 없다. 전투실력도 달인.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이템을 장비. 유명한 진실의 올가미는 접촉한 자가 진실만 말하게 만들며 슈퍼맨도 끊지 못할 정도로 튼튼한 무기다. 외모까지 완벽해서 남자 동료들에게 사랑받는다. 정말 완벽한 인물.
관련 캐릭터로는 아마존의 여왕이자 어머니인 히폴리타, 사이드킥인 원더걸이 있다. 주된 빌런은 치타.
- 원피스/819화 . . . . 4회 일치
[[원피스]] 819화. '''코즈키가의 후계자 모모노스케'''
* 밍크족은 몽키 D. 루피에게 동맹이 되어 함께 싸우자고 제안하나 일단 거절한다
* 모모노스케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카이도 일당에게 살해 당했다고 고백하고 복수를 하고 싶으나 자신은 아직 어려 무리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 '''잭은 직접 공격하지 않고 즈니샤 자체를 죽이겠다고 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4회 일치
미국은 M163 VADS, 소련은 ZSU-23-4 실카, NATO는 독일군 게파드. 기관포로 무장한 자주대공포.
미국은 M270 MLRS, 소련은 2S7 피온, NATO는 독일군 LARS 110 SF 2. 미국과 NATO가 장기간을 쏟아붓는 다연장로켓포를 쓴다면, 소련은 한방이 강한 자주포를 사용한다.
미국은 M125, 소련은 2S1 그보즈디카, NATO는 영국군 FV432. 자주박격포.
* 방어능력: 야전수리 - 자신을 수리하도록 한다. 다른 명령이 주어지거나 공격당하면 취소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전술지원 . . . . 4회 일치
항공기가 일자로 네이팜탄을 투하한다. 네이팜이 투하된 곳에는 잠시 동안 화재가 발생한다. 숲속에 숨은 보병들을 처리하기 좋다.
공격기가 날아와 일자로 30mm 기관포와 로켓을 난사한다. 전차와 차량을 잡는데 권장된다. TA 중 싸고 빠르고 강한 편이기에 자주 쓰게된다.
폭격기가 날아와 일자로 대규모 폭격을 가한다. 여러모로 강하고 시원하지만 비싸다.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4회 일치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반대! 대학생행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협상결과를 반대하고 특히 소녀상 철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2015년 12월30일부터 소녀상을 경비하고 있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반대! 대학생행동'은 오후 5시, 소녀상 테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소녀상 테러를 사주한 배후를 철저히 수사해 진실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은 "경찰이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A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동행했던 한 학생은 "경찰 질문에 여성이 '생활지원금을 받기로 했다'고 답했다"며 "경찰은 배후가 누구인지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태공 . . . . 4회 일치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유방은 황제가 되고 나서도 5일에 한 번은 태공을 방문하였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은 서민과 같았기 때문에, 유태공의 가령(家令, 집사)이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유방은 황제, 태공은 신하이니 이런 태도로는 황제의 위엄이 손상된다고 의견을 냈다.
태공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유방을 존경하는 태도를 하여, 유방은 놀라서 태공을 부축했다. 태공이 그 이유를 말하자 유방은 감격하여 태상황(太上皇)의 존호를 올렸다.
서경잡기(西京雑記)에 따르면, 유방이 천하를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공은 한탄을 했는데 자신은 고향 풍(豊)에 있을 때 길에서 술을 마시고 떡을 먹고, 투계(闘鶏)와 축국(蹴鞠)을 즐기는걸 좋아했으나 황제의 아버지가 되어 서민처럼 놀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방은 [[소하]]를 불러 장안 동쪽에 아버지의 고향 풍과 꼭 닮은 거리를 만들게 하고, 풍의 주민들까지 모두 이주시켜서 아버지가 놀 수 있게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방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거나 노는걸 좋아하는 [[한량]] 같은 성품이었던 듯.
- 윤진영(코미디언) . . . . 4회 일치
주로 김필수와 함께 출연하며 '''어쨌든 로보캅'''이나 '''비밀요원 H.I''' 등을 진행하며 인기를 끄는데, 주된 패턴은 김필수의 병신짓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는 패턴이었다. 그렇다고 본인도 안 망가지는 건 아니라서 김필수와 싸운다던가 [[등짝을 보자|서로 부둥켜안고 애정행각을 한다던가]] 등 잘 생긴 외모를 여러 번 망가뜨렸다. 다른 SBS 공채 7기 개그맨이 그렇듯 윤진영 역시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 소속이었지만 박승대의 노예 계약이 발목을 붙잡고 만다. 내용인 즉 박승대가 7기 개그맨들을 무보수로 공연을 시키며 온갖 폭언을 일삼고 방송 출연 기회를 가지고 협박을 했다는 사건. 이때 윤진영은 다른 동기들과 함께 박승대에게 항의를 하며 기자회견을 했고 결국 스마일매니아를 탈퇴해서 다른 동기들과 함께 홍대의 '''개그스테이션''' 기획사에 합류한다.
박승대 사건 이후 예전 같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3일 입대했다.[* 같은 날, 오랜 단짝인 김필수도 입대했다. 하지만 동반 입대는 아니었다. 김필수는 강원도에, 윤진영은 경기도에 입대했기 때문.]8사단 수색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야 무릎 상태가 심각해서 공익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현역 복무를 선택했다는 게 알려진다. 연예병사로서 군 복무를 끝마쳤는데, 선임으로는 [[강타]]가 있었다고 한다. 전역하니 웃찾사가 사라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다가 TVN [[코미디빅리그]]가 신설되자 김필수, [[조우용]], [[박충수]]와 함께 '''따지남'''으로 방송계에 복귀한다.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다가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윤진영(푸른거탑)|고정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배우 활동 중이다.
- 은혼/588화 . . . . 4회 일치
* 코우카는 생전에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우미보즈(바다돌이)가 "우주에는 아직 본 적 없는 정말로 아름다운 푸른 별이 있다"며 언젠가 같이 가보자고 했던 일을 이야기해준다.
* 가구라는 "언젠가 엄마의 병이 나으면 파파와 카무이와 함께 가자"고 하는데, 코우카는 "내 병이 낫는 것과 그 덜떨어진 놈들(우미보즈와 카무이)가 돌아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빠를까"라며 웃는다.
*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가족이 생기더라도 그런 가족이 되어주라며, 언제든 함께 있어주고 옆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들을 찾으라고 말한다.
* 그러니까 자신은 지지 않는다며, 그 녀석들이 곁에서 함께 울고 웃어 준다면
- 이근직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초명은 이수록(李秀錄)이다.
[[8.15 광복]] 이후에도 1949년까지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서울특별시청]]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 제2국장, 1952년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부터 1957년 9월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경상북도지사 재임 중이던 1957년 8월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났다. 1957년 9월부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장관|장관]]을 지내다가 1958년 6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자유당]] 당무위원으로 있다가 1959년 3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임 중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구속 기소되었다.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이사강 . . . . 4회 일치
'''이사강'''([[1980년]] [[10월 7일]] ~ )은 [[대한민국]]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CF 감독이다. 생산 회사 [[쟈니브로스|ZANYBROS (쟈니브로스)]] 소속이다. 2002년 단편 영화 《스푸트니크》 촬영으로 참여.
* 경일여자고등학교
* 2012년 UV - 그 여자랑 살래요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선아 . . . . 4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전의 이씨]]
- 이설주 . . . . 4회 일치
{{다른 뜻|리설주|대한민국의 시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부인}}
광복 이후인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대구여자상업학교(현재의 [[대구제일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문고판형 전집 《설주문학(雪舟文學)》을 비롯한 여러 시집을 출간했다. [[2011년]] [[3월 24일]] [[한국문인협회]]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설주문학상을 제정했다.
* 시집 《잠자리》 (1949년)
- 이원형(1951)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이다. 자는 치언(致彦), 호는 청고(靑顧)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95년까지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창화(정치인)|정창화]]와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철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 이인성 (화가) . . . . 4회 일치
[[1945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1946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으며 [[1949년]]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한국 전쟁|6.25 전쟁]] 중이던 [[1950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수채화에서 날카로운 지적인 특성을 보였으며 독자적인 강한 개성으로 한국의 풍토적인 감각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가을의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등이 있다.
익숙한 색체와 향토색을 잘 드러내었다 여기에 배경을 과거 신라 도읍지였던 경주로 설정했다 자세히 보면 뒤에 첨성대가 그려져 있고 소년의 발아래 깨진 전통 기왓장이 그려져 있어 장소가 경주임을 보여준다 소년들이 윗옷을 벗고 열대지방인 사람인 것 같은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근대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풍경을 표현했다
- 이전환 . . . . 4회 일치
*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 참고 자료 ==
|전임자 = [[박윤준]]
|후임자 = [[김봉래 (공무원)|김봉래]]
- 이종훈(코미디언) . . . . 4회 일치
|| '''별자리''' ||[[처녀자리]] ||
* 이런다! 남자들은 이런다! (교무회의)
{{둘러보기 상자
- 이주현(배우) . . . . 4회 일치
* 가족 배우자 문선경, 아들 이루하
* [[온달왕자들]] - 여시걸
* [[자명고(드라마)|자명고]] - 왕홀
- 이판석 . . . . 4회 일치
1960년 주사보(현 [[7급 공무원]])로 공무원 경력을 시작하였다. 관선 [[춘천시]]장, 관선 [[마산]]시장을 거쳐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재정국장, 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등을 지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한나라당]] 이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이한응 (1849년) . . . . 4회 일치
이한응(李漢應, [[1849년]] [[2월 24일]] ~ [[1905년]] [[4월 23일]])은 [[조선]] 후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공모(公模),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다른 이름은 이한경(李漢景)이다. 비슷한 시기에 [[과거 제도|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나 그 해에 사망한 동명이인 이한응(李漢應), 외교관 [[이한응]](李漢應) 등의 동명이인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다.
[[1879년]](고종 16년) [[6월 23일]] 부사정을 지냈다.<ref>승정원일기 고종 16년 기묘(1879) 6월 23일(을축)자 11번째기사, "병비의 관원 현황"</ref> [[1905년]](광무 8년) [[4월 23일]]에 사망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가장리 장현(長峴) 고개 자좌(子坐)에 있다.
[[분류:조선의 무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육군 군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우계 이씨]]
- 이호재(연극배우) . . . . 4회 일치
* 1992년 《이혼하지 않은 여자》
* 2008년 《어린왕자》 ... 한정태 역
* 2008년 《사랑과 전쟁 : 열두 번째 남자》
* 2017년 늘푸른연극제 - 언덕을 넘어서 가자
- 인천광역시 . . . . 4회 일치
|한자 = 仁川廣域市
! 자치구·군 ! ! 한자 ! ! 인구 (명)<ref name=":0">2019년 2월 말 주민등록 기준</ref>! ! 세대<ref name=":0" />! ! 면적 (km<sup>2</sup>)
송도국제도시, 경제자유구역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4회 일치
* 그래서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이 들어오기 전까지 십계의 두 자리는 공석이었다.
* 엘레인이 "나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하자 그 길로 길프로스트에게 부탁해 순간이동한다.
* 멜리오다스는 "왕바보자식"이라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고, 반은 "바보 끼리 마음이 맞는다"고 응수한다.
* 당시 어린애 정도 크기인 에스타롯사가 지금처럼 자란데 비해, 멜리오다스는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196화 . . . . 4회 일치
* 국왕 바토라는 자신을 봐서라도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마음을 모아달라고 호소한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에게 친구의 얼굴도 보기 두렵다며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다고 토로한다.
* 엘리자베스는 그런 멜리오다스를 위로하며 무슨 일이 생겨도 함께하겠다고 맹세한다.
- 임진숙 . . . . 4회 일치
|배우자=
|자녀=
* [[1979년]] ~ [[1982년]] : [[대구여자고등학교]]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
- 자의식과잉 . . . . 4회 일치
자의식과잉이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하여 자의식이 과도하게 심한 상태를 뜻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보이는가 하는걸, 지나치게 과도하게 생각한다.
- 잘츠부르크 . . . . 4회 일치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랄까 모차르트 말고 유명한 사람도 없다.(…) --우리 동네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났다는게 자랑--
하지만 정작 모차르트 자신은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기만 했지 별로 오래 머물지 않았고, 주로 [[빈]]에서 활동했다.--모차르트가 우리 동네 별로 온 적 없는건 안 자랑--
매년 여름 모차르트를 기리기 위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린다. 아무튼 모차르트 도시라는 컨셉에 걸맞게 구도심 지에서는 거리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고 한다.
- 장갑차 . . . . 4회 일치
장갑을 씌운 [[자동차]]. 통상 차량과 달리 두꺼운 장갑이 사용되어서 높은 방어력을 얻는다.
장갑차가 전쟁터에서 처음 사용된 1910년대에는 "장갑을 씌운 자동차=닥치고 장갑차"로 분류되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고 여러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여러 종류로 나뉘게 되었다.
병력을 수송하는데 중점을 둔 장갑차. "전장의 택시"로써의 능력에만 중점을 뒀기에 자체적인 전투 능력은 보병전투차보다 떨어진다.
병력을 수송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전투 능력에도 중점을 둔 장갑차. 대부분의 APC가 기관총으로 무장한다면 대부분의 IFV는 기관포로 무장한다. 여기에 적지 않은 IFV가 대전차미사일을 달고다닌다.
- 장기범(배우) . . . . 4회 일치
* 《[[6월의 일기]]》 (2005년) - 귀공자 역
* 《[[TV로 보는 원작동화]] - 자전거 도둑》 (EBS, 2003년)
* 《[[내 남자의 여자]]》 (SBS, 2007년) - 허준구 역
- 장수영 (방송인) . . . . 4회 일치
| 배우자 = [[이무영 (영화 감독)|이무영]](본명 송충섭)
| 자녀 = 송기헌(아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경인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
[[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장연주 . . . . 4회 일치
* 잠깐만 놀자 (2011.07.29)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여자대학 동문]][[분류:서문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분류:1978년 태어남]]
- 장우석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2005년]] 7월 25일부터 8월 7일까지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동북아평화를 위한 한일공동 일본열도 도보행진단'<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522 "일본열도 걸으며 동북아 평화 외칠 것"], 《오마이뉴스》, 2005.7.21.</ref>과 함께 일본 오사카, 교토, 우토로, 후코야마, 히로시마 등 8개 도시를 걸으면서 동북아 평화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일련의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대구여성영화제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4회 일치
| 전임자 = [[이진 (아나운서)|이진]]{{·}}[[유지은]]{{·}}[[이재아]] ([[2007년 미스코리아|2007년]])
| 후임자 = [[박예주]]{{·}}[[유수정]]{{·}}[[이슬기 (모델)|이슬기]]{{·}}[[민서연|최지희]] ([[2009년 미스코리아|2009년]])
|배우자= 김정균<ref>[http://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33 김정균 보령그룹 3세, 지난 5월 ‘미코’ 장윤희씨와 결혼]</ref> ([[2014년]] ~ 현재)
|자녀=
- 장은숙 (가수) . . . . 4회 일치
* 《떠나는 남자》([[1985년]])
* 《목요일의 여자 (木曜日の女)》([[2003년]])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197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엔카 가수]]
- 전덕기 . . . . 4회 일치
[[분류:1875년 태어남]][[분류:1914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고문 피해자]][[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동문]][[분류:범죄 피해자]][[분류:한국의 기독교운동가]][[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이회영]][[분류:신민회]]
- 전인환 . . . . 4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8월 31일]]<br>[[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구원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4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49th sense. '''무법자들 (4)'''
* 효부는 수리공이 올 때까지 근처 폐가에서 쉬자며 이동한다.
* 효부는 빅 매그넘을 풀어주며 자신을 소개한다.
* 효부는 세일즈 상의 경쟁자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나라의 내전도 블랙 팬텀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4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53th sense. '''무법자들 (8)'''
* 그는 언제나 다른 에스퍼에게 손을 내밀면서 정작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에스퍼는 거절한다.
* 모미지와 요우는 각자 공격을 방어하고 마기는 이들을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른다.
* 블랙 팬텀의 새로운 세뇌가 숙주의 의지를 억누르는게 아니라 특정한 감정을 자극해 비틀어놓는 거라는 것도 파악한다.
- 정기선 . . . . 4회 일치
| 자녀 =
| 배우자 =
[[1982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일외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에는 언론사([[동아일보]])에서 근무하다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 대학교]]대학원에서 MBA수업을 받았으며 잠시 컨설팅그룹에서 일한 뒤 다시 귀국하였다. [[2013년]]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으로 재입사 후 [[2014년]] 상무 및 [[2016년]] 전무,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 정명재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1979년 데뷔]][[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동고등학교 동문]]
- 정몽근 . . . . 4회 일치
|배우자 = 우경숙
|자녀 = 2남
*** 배우자 : 우경숙 (1951 ~ )
***여동생 : 엘리자베스 정 (1982 ~ )
- 정몽원 . . . . 4회 일치
|배우자 = [[홍인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의 동생이자 한라그룹 명예회장을 지낸 정인영의 2남이다. 고려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19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다. 1985년 만도기계 전무, 1989년 같은 회사 사장, 1992년 한라그룹 부회장을 거친 후 1997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전임자 = [[박갑철]]
|후임자 = 현직
- 정성곤 . . . . 4회 일치
2015 시즌 20경기에 출전하여 2승 6패, 8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그러던 중 [[2016년]] [[8월 25일]] 토종 선발투수진이 부진해 공백이 생기자 다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으로 희망을 보이는 듯했으나 그 다음 경기부터는 다시 부진했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 정수성 (야구인) . . . . 4회 일치
'''정수성'''(鄭守盛, [[1978년]] [[3월 4일]] ~ )은 전 [[KBO 리그]]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의 [[외야수]]([[우익수]])이자 현 [[SK 와이번스]]의 주루코치다. 그의 형은 전 [[야구 선수]] [[정수근]]이다.
현역 시절 대주자로 많이 활약한 것을 바탕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주루코치를 맡고 있으며, 외야수로도 활동하였기에 외야수비코치를 겸해서 맡고 있다.
2016 시즌을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 [[SK 와이번스]]로 자리를 옮겼다.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성동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초당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히어로즈 선수]]
- 정수아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2012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사회봉사발전 공로상 수상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정승빈 . . . . 4회 일치
| 배우자 =
:〈시청자 의견〉
:〈관리자들〉조직관리자 역
- 정좌관심 . . . . 4회 일치
송나라 이후 [[유교]]에서 주장하는 수행법이다. 정좌는 조용히 앉아서(정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관심)으로서, 줄여서 정좌(靜坐)라고 하였다. [[주희]]는 특히 이를 강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안정 상태로 두는 거경(居敬)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독서]]와 함께 수행법으로서 중시되었다.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영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유교]]에서 정좌가 도입된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송]] 시기에 주염계는 자신의 저서 『태극도설』에서 ‘주정입인극(主靜立人極)’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뒤 명도와 이천이 정좌를 가르쳤고, 정좌 수행은 유교의 주류가 되었다.
[[퇴계 이황]]은 정좌를 하는데 있어서 적절한 자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연구한 바 있으며, 주희의 주장에 근거하여 정좌는 불교의 수행과 다르다는 것을 밝히려 했다.
- 정치공학 . . . . 4회 일치
>노무현 "요즘 정치공학 책을 보면 국민을 속이고 자극하는 기술이 수없이 나오는데 그것을 지도자의 제일 조건으로 써놓은 책을 보면 답답하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31758521&code=990326#csidxb914cb4e3f87ea0a4d75944b31219dc (참조)]]
한국정치계에서 쓰이는 관용구로서 '정치공학'은, 공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학문은 아니며, 정치분야에서 마치 공학에서 기계나 사물을 다루는 것처럼 특정한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추종하거나, 정당, 계파 간의 연대와 협력 등의 정략으로 자기 정당의 집권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정치공학에는 국민의 의사나 복리를 무시하고, 정치권의 집권 이득만을 추구한다는 뉘양스가 있으며,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강하다. 또한 계파 간의 연대와 협력 과정에서 어떤 동질적 가치관이나, 이념에 대한 합의 추구가 없이 정권 획득과 권력 추구만을 하여 지조없이 협력하므로 '신념'이 없다는 의미도 있다. 다만 노골적인 협잡, 야합보다는 다소 부드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http://www.newspim.com/news/view/20161213000292 (참조)]]
정치공학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여, 공학전공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상천 영남대학교 총장)]][[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2114015&code=990304&med_id=khan&rccode=lvRc (홍영진 동명대 교수·전기공학과)]]
- 제3의 로마 . . . . 4회 일치
제3의 로마란, 제1의 로마를 [[이탈리아]]에 수도를 둔 로마 제국으로 보고, 제2의 로마를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비잔티움 제국]]으로 보며, 자국 혹은 현재 정권을 제1의 로마와 제2의 로마를 계승한 '제3의 로마'라고 보는 것이다.
제3의 로마라는 구호가 나타난 데는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으로 고대 로마의 직접적인 계승국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로서 서구 문명의 근원인 '로마 제국'의 계승자라는 명분이 각국의 군주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제3의 로마를 제창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러시아 제국]]이다. 러시아는 정교회의 종주국이자 보호자로서 제3의 로마 계승을 내세웠다.
- 제령 . . . . 4회 일치
나쁜 영적 존재를 쫓아낸다는 뜻. 일본 오컬트 계통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며, 한국에서는 그리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신토 의식인 [[오하라이]]가 있다.
* [[구자인법]]을 쓴다.
* 소금을 자신의 몸에 뿌린다. 어깨나 허리, 등 뒤에 뿌린다.
- 젠 멘 . . . . 4회 일치
DC의 경쟁사인 [[마블 코믹스]]의 [[엑스멘]] [[패러디]] 팀. '[[닥터 다이하드]](Dr. Diehard)'가 이끄는 메타휴먼 팀인데 닥터 다이하드는 [[프로페서X]] + [[매그니토]]에 젠 멘 스쿨이란 시설도 있다. 멤버들 중에도 사이클롭스나 울버린을 닮은 캐릭터 등 엑스멘을 알고 있는 독자는 한번쯤 봐봤을 얼굴이 보인다.
어벤저스 패러디인 메타 밀리셔가 닥터 다이하드를 체포하려 하자 대립하는 장면이 있다.
딱히 관련은 없어보이나 New 52 이후에 나온 멀티버시티(The Multiversity)에도 neo-humans의 팀인 G-Men이 등장한다. 전자는 뮤턴트, 후자는 엑스멘이나 선술한 것처럼 일단 젠 멘과 관련성은 없어보인다.
- 주주장 . . . . 4회 일치
|배우자=
|자녀=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언론인]][[분류:미국의 기자]][[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에미상 수상자]][[분류:유대계 미국인]]
- 죽으면 부처님 . . . . 4회 일치
이 격언은 아미타불을 숭배하는 정토교의 가르침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으로서, 정토신앙을 믿는 자는 사망하면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극락정토]]에 [[환생]]하여 불법을 수행하여 해탈에 이르게 되므로 '죽으면 부처님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 따라서 정토교에서는 사망자를 장례지낼 때 '계명'을 부여한다. 정토교 신자는 교리적으로 사후에 내세에서 아미타불의 제자가 되므로, 그를 위한 계명인 것이다.
- 진격의 거인/82화 . . . . 4회 일치
* 아르민은 스스로 "바다를 보러 가기 전까진 안 죽는다"며 정말 위험해질 것 같으면 모두 맡기겠다고 한다. 자신은 그렇게 용감하지 않기 때문에.
* 아르민은 꼭 자신의 작전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하는데, 엘렌은 휘청하더니 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 열풍에 날아가면서 아르민은 자기가 버릴 수 있는 것은 "꿈" 밖에 없고, 그걸 엘렌에게 맡기겠다고 독백한다.
- 아르민. 자신의 꿈을 엘렌에게 맡긴 채 타죽어 가며.
- 진종채 . . . . 4회 일치
1925년 [[경상북도|경북]] [[포항시|포항]]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한 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8기로 졸업했다.[* 진종채를 군내 요직에 중용했던 [[박정희]]도 대구사범과 육사를 함께 졸업했다.] [[김종필]], [[김형욱]] 등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동기다. [[서종철]], [[노재현]], [[윤필용]] 등과 함께 [[전두환]] 등 [[하나회]]의 주요 후원자로 꼽힌다.[* 윤필용 사건으로 중간에 숙청된 윤필용과 달리 진종채, 서종철, 노재현은 [[10.26 사건]] 때까지 군에 영향력을 행사, 영남 군벌 3인방으로 불렸다.]
[[제8보병사단|8사단장]], [[정보사령부|정보사령관]] 등을 맡다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윤필용이 물러나자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하나회를 뿌리뽑으려는 [[강창성]]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육군보안사령관]]을 견제하기 위해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게 육군보안사령부가 [[휘발유]]를 불법으로 판매한다고 보고했다. 이로 인해 강창성을 3관구사령관으로 좌천됐다.
대대장 월북 거짓 보고 사건의 여파로 [[1979년]] [[제2작전사령관|제2군사령관]]으로 보직 이동했다. 보안사령관 후임자로 전두환을 적극 추천하였고, 갓 소장에 진급한 전두환이 핵심 요직인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면서, 이 결정은 나비효과처럼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10.26 사태 후 규정에 의거하여 보안사령관이 대통령 시해 합동수사본부장이 됨으로써 전두환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후원자여서 그런지 12.12 군사 반란 이후 세 명의 야전군 사령관 중 유일하게 유임되었고[* 12.12 군사반란 당시 야전군 사령관은 김학원 제1군사령관(중장), 진종채 제2군사령관(대장), [[이건영]] 제3군사령관(중장)이다. 이 중 반란군에게 호의적이었던 진종채 제2군사령관을 제외한 제1, 3군사령관은 반란 이후 보직 해임되었다. 그리고 제1군사령관에는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갔던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이, 제3군사령관에는 반란군의 핵심 맴버였던 [[유학성]]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가 임명되었다. ] [[1980년]] [[대장(계급)|대장]]에 진급하였다. 제2군사령관 임기 중이던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의 지휘계통 상에 있었지만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유혈 진압에 있어서 진종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 진학교 . . . . 4회 일치
2ch의 속어로는 ‘자칭 진학교(自称進学校)’ 라는 것이 있다. 진학교를 자칭하고 엄격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실적은 진학교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학교를 조롱하는 말이다.
학교란 학교는 모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존재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듯. 굳이 말하자면 명문학교라고 할 수 있겠지만.
- 진헌식 . . . . 4회 일치
1902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이긍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12월부터 1952년 8월까지 관선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충청남도지사 임기 중이던 1952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충남대학교]] [[총장]] [[서리]]를 [[충남대학교/역사|겸직하였다]]. 이어서 1952년 8월부터 1953년 5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가 [[곡물]] 관리상의 문제로 경질되고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차동엽 . . . . 4회 일치
|배우자 = 無(천주교 사제이기 때문에 독신)
|자녀 = 無
|기타 이력 = 가톨릭 성직자 겸 대학 교수 <br /> [[서울대학교|서울대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학사]] 출신 <br /> [[가톨릭대학교|서울가톨릭대학교 신학과]] [[학사]] 출신 <br />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빈 대학교 대학원]] 신학석사·신학박사 출신 <br />[[1991년]] 사제 서품 <br />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위]][[분류: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유한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빈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
- 차선화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2012년]] - 부산국제모터쇼 쌍용자동차 레이싱모델
* [[2010년]] - 르노삼성자동차 레이싱팀 모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차성훈 . . . . 4회 일치
* 《[[얼렁뚱땅 흥신소]]》 (2007년, KBS2) - 연보흥기자 역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차영철 . . . . 4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국제식 사격|사격]]}}
그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 사령부|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 출전한 전력이 있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 남자 소구경 복사(현재는 남자 50 미터 복사) 종목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이래 처음으로 사격부문의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사격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아시안 게임 사격 메달리스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차용학 . . . . 4회 일치
|배우자 =
|형제자매 =
* 《[[그 여자가 무서워]]》 (SBS, 2007년)
* 《너와 함께라면》 (2011년) - 남자친구의 아들 역
- 차정아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2015년]] - [[XTM]] 《남자들의 동영상 랭크쇼 M16》
* [[2015년]] - 홈스토리 《내 남자의 목공 the 톱》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명지전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창작:좀비위키 . . . . 4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 좀비기관차 : 좀비력 5년 전후에 모 생존자 조직에서 제작. 좀비를 수거하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 연료(?) 식 [[증기기관]] 차량. 작동방식은 단순하여, 기관차 위에 있는 화부들이 기관차에 다가오는 좀비를 갈고리로 낚아서 끌어올린 다음, 토막을 내고 말려서 연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한 연료를 보일러에 투입하여 좀비 시체를 보일러에서 불태워서 그 화력으로 증기기관을 돌려서 작동하는 차량이다.
건조 기후에서는 마른 좀비가 잘 타서 이동이 쉽게 되지만, 우기나 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좀비가 물기가 많아서 연료로 쓰기 부적합하여 이동이 어려운 것이 단점. 이 때문에 미리 토막을 내서 좀비를 말려서 연료 보관고에 보관하는 방식을 택한다. 제작자에 따르면 원래는 차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나무로 가는 증기기관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좀비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할 수 없이 좀비를 잡아다가 태우게 되었고 생각보다 효율이 좋아서 여러 생존자 캠프에 보급되었다고(…).
- 채영인 . . . . 4회 일치
[[레드삭스]]의 멤버로 활동했었는데 자세한 사항은 [[레드삭스]] 항목 참조.
* [[2012년]] [[KBS drama]] 자체발광 그녀 ... 서연희 역
채영인은 성형을 굳이 안 했어도 될 정도로 괜찮았는데 굳이 성형을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성형전과 성형후의 갭이 큰 편이다. 2003년 [[다모]] 출연 당시에도 단아한 외모였었는데. 하지만 [[민소희|이 역]]을 맡고 나서 한순간에 이미지가 추락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민소희]] 항목 참조.
[[런닝맨]]을 통해 [[송지효]]와 함께 연기자 동기 사이였음이 밝혀졌다. 덕분에 간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췄다. 이미 결혼해서 딸까지 있는 상황.
- 챈슬러 (음악가) . . . . 4회 일치
'''챈슬러'''({{llang|en|Chancellor}}, [[1986년]] [[10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에 힙합 트리오 '''Oneway'''와 프로듀싱팀 '''이단옆차기'''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 {{ID 없는 유튜브 사용자|UCIcjOmEJRRt0ERWCSxrdgKQ}}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브랜뉴 뮤직 음악가]][[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 챠라남 . . . . 4회 일치
챠라챠라(チャラチャラ)란, 의태어로서 본래는 금속 조각이 짤랑짤랑 거리는 소리를 뜻한 말이다. 여기서 아첨을 부리거나 수다스러운 모습, 혹은 여자가 값싸고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 등을 뜻한다. '찰랑찰랑', '촐랑촐랑' 정도에 대응할 듯.
챠라오(チャラ男)란, '챠라챠라한 남자'를 가리키는 뜻이다.
흔히 챠라남이라 불리는 외모는, 선탠을 하거나 태닝을 해서 햇볕에 그을린 피부, 갈색이나 금발로 염색한 머리, 헌팅이나 소개팅 같은 곳에 자주 나간다는 이미지가 있다. 귀걸이나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많이 쓰고 다니고, 이 점 때문에 '챠라챠라 하다'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번역하자면 [[날라리]]에 가까운 말.
- 천보영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2014년]] - 부산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웨어러블K 시연 및 소개 모델
* [[2012년]] -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 현대기아자동차 모델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4회 일치
눈동자 색 파란색
술을 굉장히 좋아하며 임무가 없을땐 거의 술을 입에 달다시피하고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간이 3배정도 튼튼하다고 병원에서 들었으니 3배는 더 마셔도된다는 괴악한 논리를 펼치고있다. 술뿐만이 아니라 홍차도 주로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이미 다른 발할라 요원이나 관계자들은 주당으로인식하고있으나 본인은 사실이니 신경쓰지않는 모양이다(...)
- 최상열 . . . . 4회 일치
김우종 전 경희대 교수와 소설가 이호철씨 등 [[문인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씨 등이 지난 2003~2008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지정돼 생활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국가의 주장에 대해 "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지급한 보상금이 위자료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며 "국가는 총 6억 96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 최선 (정치인) . . . . 4회 일치
서울시 강북구 기초 의회는 총 14명의 구의원을 위한 2007년 의정활동비를 3천284만원에서 5천495만원으로 67%인상하였다. 이때 반대의 압력과 강북구청정의 재의 요청에 따라 월 10만을 삭감하고 인상안을 기권1, 찬성11표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선은 이를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못하였으며 과도한 금액이라고 주장하고 1월치 의정비 중 인상분을 구청에 반납하였다. 하지만 구청은 수령할 이유가 없다고 수납을 거부하였으며 민주노동당은 이 인상분을 [[법무법인공탁]]처리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2008년 2월 5일 서울시 강북구 의회의 의장 윤영석및 다른 의원들은 의정비 인상이 정당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하고 MBC 라디오등의 인터뷰에서 동료의원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로 임시회 본의회를 열어 최선 의원을 징계하기 위한 윤리특별위 구성결의안을 처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반대의견이 거세어 회의는 무산되었다. 최선은 과다하다는 이유로 서울시 강북구의 재정자립도가 30%이며 서울의 25개 자치구중 22번째로 하위권임을 들고 있다.
== 참고 자료 ==
- 최성조 . . . . 4회 일치
|배우자 = 이은진
* 《간고등어 코치 王자를 부탁해》 (2007)
* [[2017년 ]] [[MBC]] [[복면가왕]] 5월 5일 어린이날 장난감소년 (참가자)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성준 (법조인) . . . . 4회 일치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반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순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2008년 10월 17일에 혜진·예슬양과 정모 여인을 살해한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살인 등으로 기소된 정모(39)씨에게 "극악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라고 하면서 사형을 선고하고<ref>[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43118&kind=AA03]</ref> 12월 19일에는 한총련 의장을 북한에 보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 윤기진씨(33)에게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ref>[http://www.fnnews.com/news/200812191302428387?t=y]</ref>최성준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재직할 때 불공정 방송을 했던 종편 채널에 대해 재승인을 한 것과<ref>[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0048]</ref> 4대 통신사업자에게 부과할 100억 원대 과징금을 덮기 위해 담합한 것에 대해 비판이 있다.<ref>[https://newstapa.org/43625]</ref>
- 최수진 (무용가) . . . . 4회 일치
|배우자 = [[하휘동]]
|자녀 =
|수상 = [[2007년]] 제37회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현대무용 여자부문 은상
[[2007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컨템포러리무용 시니어 여자부문 1위 <br />
- 최수진 (성우) . . . . 4회 일치
* [[생방송 화제집중]] ([[MBC]]) - 여자 내레이션
* [[007 골든아이]] ([[MBC]]) - 나탈랴 시모노바/Natalya Simonova ([[이자벨라 스코럽코]]/Izabella Scorupco)
* [[비포 선셋]]([[SBS]]) - 기자 / 아주머니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우제 . . . . 4회 일치
|배우자 =
* 《[[물고기자리 (영화)|물고기자리]]》 (2000년) - 동석 역
* 《[[발칙한 여자들]]》 (MBC, 2006년) - 조태준 역
- 최재원(배우) . . . . 4회 일치
[[1990년]] [[광고]] [[모델]]로 출발해, [[TV]], [[연극]], [[영화]] 등에 얼굴을 비추다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의 슈퍼탤런트 1기[* 당시 수상자는 대상 [[박상아]], 금상은 [[송윤아]]/임세미/김광필, 은상은 [[차태현]]/정혜정, 동상은 [[이형철]]/이효진이었다.]로 선발되었다. [[SBS]]의 국민 [[시트콤]] [[LA 아리랑]]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 꾸준히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의 '양심추적'이란 코너 진행자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최재원이라는 이름보다 양심맨이라는 별명을 더 잘 떠올릴 것이다.
* [[천상여자]] - 서우현
* [[우리집 여자들]] - 홍규영
- 최재희 . . . . 4회 일치
| 배우자 =
| 가족 = [[최원정]](누나), [[최영철 (기자)|최영철]](자형)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
- 최정원(남자배우) . . . . 4회 일치
|| '''종교''' ||[[개신교]][*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8회에서 [[김정훈(UN)|김정훈]]이 [[UN(가수)|UN]] 활동당시 자신은 노는 걸 좋아했는데 정원이는 기독교 신자라 매일 기도하고 교회에 가곤 했다고 밝혔다.] ||
[[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1년 출생]][[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태백시 출신 인물]]
- 최휘영 . . . . 4회 일치
'''최휘영'''(崔輝永, [[1964년]] [[4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전직 [[언론인]]이다. [[서울특별시|서울]] 태생으로 [[2012년]] 현재 NHN Business Platform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 [[연합뉴스]] 기자
*[[1995년]] [[YTN]] 기자
*[[2005년]] NHN(주) 국내담당 공동대표이사. 각자 대표이사 사장
- 카시오리 . . . . 4회 일치
카시는 과자, 오리는 [[도시락]] 같은걸 담는 나무 상자를 뜻하는 말이다.
카시오리는 선물용 과자 세트를 뜻한다. 손님 댁에 방문, 영업차 방문, 사죄 방문 등에 비교적 필수적인 선물로 여겨진다. [[편의점]] 등에서도 구할 수 있다.
사죄 방문을 할 때는 [[도게자]]와 셋트로 지참하는 것이 일반적.
- 카쿄인 노리아키 . . . . 4회 일치
* 죠죠니움 인터뷰에 따르면 공식 이름은 '노리아키'지만 아라키 자신은 '카쿄인 텐메이'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엔야 할멈과의 대결에서 숙박부에 써진 '카쿄인 텐메이'라는 이름은 이걸 이용한 장난이었다고.
* 작중 카쿄인이 부모님께 이집트로 갔다고 말했다는 언급은 없기에, 카쿄인의 부모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아들이 모흡혈귀에게 끔살당해버린 꼴이 되버렸다. 어찌보면 불효자라 할 수 있을지도...
- 캡틴 아메리카 . . . . 4회 일치
[[애국]] [[슈퍼히어로]]의 대표주자.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진 영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활동해왔으며 이후 세월이 지나 [[어벤저스]]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방패 디자인은 초기에는 히터 쉴드 스타일이었으나 비슷한 애국자 히어로 '쉴드'의 코스튬과 흡사해서 소송이 일어난 후에는 현재의 원형 방패가 되었다. 다만 현재에는 이전의 히터 쉴드 방패도 가끔 보인다.
* 오해받기 쉬우나 서브컬처에서 나오는 비틀린 애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 다만 캡틴 아메리카에 모티브를 둔 캐릭터들 중에는 비틀린 애국자 캐릭터가 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4회 일치
* 광물정제소: 상대의 자금을 일정량 뺏어옴
연합군이 사용하는 자원 채취 유닛. 자원을 채취해 광물정제소에 밀어넣는다. 광물정제소로 돌아올 때는 순간이동으로 돌아온다. 광물정제소를 건설할 때 하나 주지만 필요하면 군수공장에서 더 생산할 수 있다.
보병을 수송할 수 있는 헬리콥터. 기관총으로 무장했지만 전투력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가만히 냅두면 자꾸 착륙하려고한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4회 일치
Command & Conquer. 지금은 망한 회사인 웨스트우드 스튜디오가 만들었던 RTS 게임 시리즈. 한때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다. 보통은 C&C로 줄여 부르며, 국내에서는 CNC를 한영키 변환없이 친 "춫"이라고도 부른다.
외계에서 날아온 자원인 타이베리움을 두고 GDI와 Nod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타이베리움 , 타임머신으로 인해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쟁을 벌이는 레드얼럿 사가, 세계적인 테러조직 [[GLA]]에 맞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다룬 제너럴로 분류된다.
* 같은 RTS 장르지만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와는 상당히 게임의 흐름이 다르다. 자원채취에서는 하베스터 한 대 한 대가 중요하고, 자원수집이 느린 반면 유닛의 생산속도는 무척 빠르다.
- 커피 젤리 . . . . 4회 일치
[[일본]]에서 커피 젤리에 관한 최초 자료는 1914년 4월 3일 [[요미우리 신문]]이며, 가사나 생활을 다루는 '가정' 면에서 커피 젤리의 레시피가 실렸다.
커피 젤리는 일본 태생의 빙과 간주합니다. 커피 젤리에 관한 최초의 자료는 1914 년 (양 3 년 대) 4 월 3 일 요미우리 신문에 등장합니다. 가사 나 생활을 취급하는 "가정면"커피 젤리 레시피가 게재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 커피 젤리를 판매한 것은 미카도커피(ミカドコーヒー)의 창업자라고 한다. 미카도커피는 [[카루이자와]]에서 여름철에만 영업하던 카페로, 1963년 부터 판매하였으며, "먹는 커피"라고 하여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 코난 월드 . . . . 4회 일치
* 살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괴이하게 높다. 대부분 지능범이다. 경찰은 무능해서 ‘자살’로 처리하려고 한다.
* [[모리 란|모 여자 가라데 선수]]는 콘크리트 벽을 주먹으로 쉽게 파괴할 수 있으며, 총구의 방향을 보고 총알을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 모 남자 가라데 선수는 총기를 가진 야쿠자 100명과 싸워서 승리하였다.
- 코타츠 . . . . 4회 일치
코타츠(こたつ, 火燵, 炬燵). 탁자 안쪽에 열원을 넣고, 바깥쪽을 이불 등으로 덮은 난방기구.
본래는 열원을 바닥에 놓고 다리를 아래로 내릴 수 있도록 탁자 아래쪽에 구멍을 파는 형태였다. 1950년대에 적외선을 이용한 전기 코타츠가 나타나고, 열원을 탁자 쪽에 설치하는 디자인이 나타나면서 현재와 같은 코타츠가 생겨났으며 폭발적으로 보급하였다.
- 쿠도회 . . . . 4회 일치
구도카이. [[일본]]의 [[야쿠자]] 조직. [[큐슈]]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
야쿠자들 가운데서도 폭력적이기로 악명 높은, 큐슈 야쿠자 가운데서도 특히 폭력성이 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분류:야쿠자]]
- 쿠와바라 쿠와바라 . . . . 4회 일치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가 [[다자이후]]에 좌천되고 실의에 빠져 죽었을 때, 각지에서 낙뢰가 있었는데 그의 영지에 있는 쿠와바라라는 마을에는 한 번도 번개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낙뢰를 피하는 주문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이즈미 국(和泉国)[* 지금의 [[오사카]] 남부]에 [[뇌신]]이 우물에 떨어졌을 때, 뚜껑을 덮어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 뇌신이 자신은 뽕나무를 싫어하여
- 킹덤/504화 . . . . 4회 일치
* 조군의 기병대는 [[환의(킹덤)|환의]]군단이 발을 묶어 본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숫자는 환의군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조군 또한 4, 5천에 달하는 정예병들. 환의군이라도 아무 희생없이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곧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비신대]]의 신참들은 자기들이 싸우는 것도 아니지만 지척에서 시작된 살육전을 보며 긴장한다.
신은 병사들에게 기합을 넣어주려는 듯 "내일이든 모레든 정신차리고 가자"고 힘차게 외친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강외]]는 "모레가 아니라 내일"이라며 맞장구친다.
- 테헤페로 . . . . 4회 일치
과자체인점 후지야의 마스코트 페코쨩(ペコちゃん)이 비슷하며, 「테헷(てへっ)」이나 「페롯(ペロッ)」같은 의태어는 오래된 만화나 애니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이걸 성우 히카사 요우코가 2000년대 부터 조합하여 개인기로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히카사 요우코 본인이 사용하면 기분나쁘다고 [[츳코미]]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귀엽다고 해주는 것이 예의(?!).
초창기에는 주로 히카사 요우코와 성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당시 [[케이온!]]의 성우 멤버들이 감염되었으며, [[토요사키 아키]]가 자주 썻다고 한다. 이후 성우계를 넘어서 연예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청소년들에게 유행어로 빠르게 퍼져나가서 일반적으로 정착됐다. 히카사 요우코는 야망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 토리코(토리코) . . . . 4회 일치
[[미식가(토리코)|미식가]]이며, 젊은 나이임에도 업계의 [[카리스마]]라 불리는 거물이다. 그만큼 굉장한 실력을 가진 강자. 요리사 [[코마츠]]와 콤비가 되어 다양한 모험을 한다.
이외의 특징은 무지막지한 식사량. 거구이지만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요리도 먹어치우는 대식가다. 또한 경찰견을 능가하는 매우 우수한 후각의 소유자.
큰 체구에 거친 이미지이고, 확실히 그런 면모가 있으나 근본은 선량한 사람인데다 상냥함까지 가지고 있다.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식사 목적이 아닌한 살상을 자제하는지라 그 굉장한 힘을 쓰지 않고 상황을 해결했다.
- 토리코/361화 . . . . 4회 일치
* 스타쥰은 어나더를 먹고 자신이 찾아오던 기억을 되살리는데...
* "새로운 맛의 지평"이란게 문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었다.--의자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인들은 어나더를 먹은 거였나?--
* 각 악마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은 장면에선 아이마루만 악마가 없는 걸로 나왔다. 심지어 코마츠도 나왔는데!
- 토리코/378화 . . . . 4회 일치
[[토리코]] 378화. '''함께 싸우고 요리하자'''
* 브란치가 "죽지 마라"고 말하는데, 아이마루는 죽으러 가는게 아니라 "먹으러 간다"며 살아 남아 다시 한 번 같이 밥을 먹자고 말한다.
* 코마츠가 GOD를 조리하고 있음을 깨달은 오오타케는 혼자 조리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고 사기가 오른다.
* 때마침 나카우메도 합류. 우메도 그 시절부터 함께 밤을 새가며 기술을 연마하던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4회 일치
국제 레이스 우승 경험이 있는 요트 선수 토츠카 히로시(戸塚宏)가 1976년 아이치현에 세운 요트 학원. [[스파르타 교육]]을 내세우며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강력한 교육으로 '갱생'을 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입소자를 받았다. 그리고 [[체벌]]을 명목으로 한 폭행 사건으로 여러 학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를 일으켰다.
과격한 훈련으로 2명의 사망자, 2명의 행방불명자를 일으켰으며, 토츠카 교장 및 코치 15인이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79년에서 82년 까지 훈련생의 사망, 행방불명 사건이 잇다라 교장 이하 15명이 체포, 형사 재판이 벌어지며 이를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라고 한다. 토츠카 교장은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며, 2006년에 출소하여 학교에 복귀하고 운영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4회 일치
원조 방식의 벨트스크롤 액션 시리즈들은 [[게임 오버]]시에 [[컨티뉴]] 화면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묶인 채로 여러 가지 장치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며, 시간이 지날 때까지 발버둥치다 컨티뉴를 안 하면 결국 사망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조금 잔인한 연출이 들어있는 전통의(...) 특징이 있다.
[[모탈 컴뱃]] 시리즈에서나 나올 법한 걸[* 당연히 그 쪽처럼 죽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당연히 검열 크리~~] 이런 물건에 넣는 캡콤도 어찌보면 상당히 용자 집단인듯도 하다..~~3작품이나 용자질을 하는데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 안한 게 더 놀라울지도.~~
-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 . . . 4회 일치
* 작품의 넘버링은 원래 로마숫자로 표기하지만 항목개설의 용이와 검색의 용이를 위해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한다.
* 특이하게 넘버링을 [[로마 숫자]]로 표기한다. 로마 숫자의 문제 때문에 '''점점 시리즈 넘버링을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 페어리 테일/485화 . . . . 4회 일치
* 그런 제이라는 이 사념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거라며, 자신과 제레프를 구하고 싶은 거라면 결단을 내려달라고 한다.
* 자신은 "최악의 과거"가 떠오른다는데
- 가질 레드폭스. 동료들을 책형해서 굴욕을 준 블러드맨을 매달아버리며.--사실 잊고 싶은 흑역사를 자극해서 빡친 거--
- 편의치적 . . . . 4회 일치
편의치적의 목적은 [[절세]]와 선원비용 절감이다. 선박은 국적이 등록된 국가의 법률에 속박되는데, 그 내용은 국가별로 제각각이며 좀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 나라에 편의적으로 선적을 옮겨놓아서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편의치적은 오래된 관행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라이베리아]], [[파나마]], [[소말리아]], [[온두라스]], [[레바논]], [[키프로스]], [[바하마]], [[버뮤다]], [[싱가포르]] 등의 소국이 외국 자본 회사의 설립을 쉽게 하는 회사법을 제정하고, 선박세를 저렴하게 하고 법적 규제를 완화하여 외국의 선박 회사와 선박을 유치하였다. 여기에 [[미국]]이나 [[그리스]]의 선주들이 대거 이들 나라로 옮겨가면서 편의치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대부분 미국의 석유 메이저 회사와 그리스 계 선주(특히 선박왕 오나시스) 였다.
[[파나마 침공]] 당시에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파나마 선적 선박이 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널리 퍼지자, 파나마에서 [[라이베리아]]로 선적을 옮기는 사례가 빈발했다. 하지만 [[파나마 침공]]으로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이 허망하게 무너지자 이러한 움직임은 곧 멈췄다.
- 하석 . . . . 4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하이큐/211화 . . . . 4회 일치
* 합숙에서는 시라토리자와 3학년과 OB군단과 합숙멤버들이 연습시합을 한다.
* 히나타는 자괴감에 몸부림치다가 "여기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 합숙멤버와 시라토리자와 3학년, OB가 연습시합을 하는데 우시지마도 참가한다.
* 히나타는 자괴감에 빠져서 공구실에 쌓인 매트더미에 고개를 처박는다.--타조냐--
- 하이큐/225화 . . . . 4회 일치
* 자신은 남의 마음도 잘 모르고 말주변도 없지만 최고의 세터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카게야마 토비오.
* 사와무라는 "타나카의 체력도 남았으니 이 상황에서 가능한걸 이것저것 실험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 아즈마네가 사과하자 타나카와 카게야마가 입을 모아서 "선배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화내듯 말한다.
* 서로 다투듯 사과하는 웃기는 상황. 사와무라가 스무스하게 풀어주고 각자의 과실을 정확하게 따지고 넘어간다.
- 하이큐/242화 . . . . 4회 일치
* 관객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졸업생들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며 그간 3학년들의 인내와 노력에 감격한다.
스가와라의 분석에 따라 테라도마리의 공격 포인트를 예측, 그 자리에 있던 [[아즈마네 아사히]]가 받아낸다. 하지만 파워 때문인지 리시브가 좀 흔들린다.
* 스가와라는 침착하게 대응을 지시하며 자신이 높이 이어 카게야마에게 전달한다.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 업, 블록을 피해서 핀포인트로 꽂아넣지만 츠바키하라의 카이카게가 파인 플레이로 리시브한다. 타나카는 허접한 스파이크였다고 내심 투덜댄다.
>기회는 준비된 자들에게 찾아온다.
- 하재숙 . . . . 4회 일치
* [[KBS]] [[태양의 여자]](2008) - 박용자
* [[MBC]] [[빛과 그림자]](2011) - 이경숙
* [[국가대표 2]](2016) - 고영자
- 한국영 . . . . 4회 일치
|로마자 표기 = Han Kook-Young
[[2016년]] [[카타르 SC]]가 2부리그로 떨어지자 [[알가라파 SC]]로 이적하였다. [[2017년]] [[7월 5일]] 군문제로 인해 [[K리그1]] [[강원 FC]]로 이적하였다.
2014년 12월 22일 발표된 [[2015년 AFC 아시안컵|2015 AFC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정협 깜짝 발탁…슈틸리케호 아시안컵 명단 확정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2/0200000000AKR20141222048300007.HTML?input=1195m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동찬, 장재은 |날짜 = 2014-12-22 }}</ref>
{{둘러보기 상자 묶음
- 한국진 . . . . 4회 일치
|형제자매 =
* 《[[기술자들]]》 (2014년) - 종배 검거 형사 역
* 《[[꼭두각시 (영화)|꼭두각시]]》 (2013년) - 남자 대학생 역
* 《[[남쪽으로 튀어]]》 (2013년) - 기자 2 역
- 한덕수 (1907년) . . . . 4회 일치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1927년]] 성악가가 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니혼 대학]] 중퇴후 노동운동에 참가했다. [[1934년]] 조선인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었다가 체포됐다. [[1945년]] [[10월 15일]]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참가해 총무부 담당 위원에 선출됐다. [[1955년]] [[5월 25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결성후 의장단 6명에 포함됐다. [[1958년]] 5월 제4회 전체대회에서 의장단이 해체되고 단일 의장, 부의장제가 도입되자 의장에 선출됐다.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있었다. [[196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됐다. [[1972년]]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 기준으로 서열 4위였다.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서만술]]
- 한상훈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한상훈'''(韓尙勳<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878 |날짜=2009-03-10 }}</ref>, [[1980년]] [[6월 3일]] ~ )은 [[KBO 리그]] 전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이다.
2010 시즌 후 소집 해제로 팀에 복귀하였고, [[2011년]] 131경기에 나와 398타수 107안타 타율 2할6푼9리 3홈런 39타점 49득점 16도루로 공격력이 향상되었다. [[안치홍]]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골든 글러브 [[2루수]] 후보에도 올랐다. 시즌 후 [[신경현]]을 이어 주장이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9265 첫 골든 글러브 후보 된 한상훈의 남다른 각오] 《OSEN》</ref>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4년 총액 13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2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9141 한화, 내부 FA 3인방 전원 재계약 '이대수 4년 20억'] - OSEN</ref> 시즌 후 [[강동우 (1974년)|강동우]]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입대하기 전 자신이 썼던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2015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한화에서 방출되었다.
* {{KBO 타자|73703|한상훈}}
- 한승택 . . . . 4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3월 31일]] <br />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잠전초등학교와 잠신중학교를 거쳐 [[덕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덕수고 2학년 때인 [[2008년]] 아시아 3개국 청소년 야구 대회에 [[대한민국]]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ref>[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03962 아시아 고교야구① - 대표팀 배터리, 누가 뽑혔나] 《엑스포츠뉴스》, 2011년 12월 5일</ref> 3학년 때 [[세광고등학교]]의 [[나원탁]]과 함께 고교 리그 최고 [[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05&aid=0000000019 황금사자기에서 주목할 고교야구 스타 Top 15] 《네이버스포츠-배지헌 칼럼》, 2012년 5월 1일</ref>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상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상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반 이후에는 [[엄태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입대가 확정된 후 전역한 뒤 FA를 선언하여 [[한화 이글스]]에 이적한 [[이용규]]의 보상 선수 자격으로 [[KIA 타이거즈]]에 이적하게 되었다.
- 한윤성 . . . . 4회 일치
| 대표작(곡) = 자기야
| style="width:80%;" | '''자기야'''
* 싱글 앨범 《자기야》
[[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천군 출신]]
- 한충 (조선) . . . . 4회 일치
'''한충'''(韓忠, [[1486년]] ~ [[1521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다. 주부(主簿) [[한창유]]의 아들이다.
[[1519년]] 전한(典翰)이 되었으며, 이후 직제학(直提學) · 동부승지(同副承旨) ·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하지만 그 뒤 남곤에 의해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전임되었으며, [[1520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이에 휘말려 [[거제도]]로 유배당했다. [[1521년]] [[신사무옥]] 때 남곤의 흉계도 인해 [[의금부]]에 투옥되었으며, [[조선 중종|중종]]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으나, 남곤의 자객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분류:1486년 태어남]][[분류:152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암살된 사람]]
- 한현준 . . . . 4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순자산 =
'''한현준'''(韓顯濬, [[1960년]] [[4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대구텍]]의 대표이사 사장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최고위직인 사장에 오른 바 있으며, 동시에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사 유일의 한국인 [[CEO]]이기도 하다.<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406/e2014061218432593820.htm 대학생을 위한 CEO 특강 - 한현준 대구텍 사장] 《서울경제》 2014.06.12</ref>
- 해자를 메꾸다 . . . . 4회 일치
소토보리(外堀)는 옛날 [[성]]이나 [[요새]]에서 바깥에 둘러서 파두던 [[해자]]를 뜻한다. 해자가 있는 성은 공략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서, [[성]]을 공략하려면 일단 가장 먼저 해자에 [[흙]]을 쏟아서 메꾸는 공사가 필요했으므로 해자를 메꾸는 것이 목적(성)을 공략하는데 있어 선행 작업이라는 의미가 파생된 것이다.
- 허규옥 . . . . 4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2년]] [[9월 26일]] <br /> [[대구시민야구장|대구]]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롯데 자이언츠]] (1989년 ~ 1990년)
'''허규옥'''(許奎沃, [[1956년]] [[8월 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이다.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김해 허씨]]
- 허드슨 대학교 . . . . 4회 일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대학'''. 미국 창작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왠지 실제로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없다.
현재의 뉴욕 주와 뉴저지 주 사이를 흐르는 허드슨 강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이며, 이름에 걸맞게 흔히 뉴욕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냥 그럴듯하게 있을 법한 이름으로 만든 것이므로 이 명칭 자체에는 저작권이 없는 듯 하다.
미국의 범죄 수사극 드라마 Law and Order와 그 스핀오프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학'''.
하도 자주 등장하다보니까 허드슨 대학은 로 앤 오드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명 높은 장소로 찍혔다. 심지어 제작진도 이걸 알고 있어서, 프로듀서가 "당신이 절대로 배우거나 가르치러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엄청나게 높은 범죄율(It is the one place you never want to go to school or teach at. Very high crime rate.)"라고 발언했을 정도.
- 현동완 . . . . 4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 현민 . . . . 4회 일치
||'''성좌/지지'''||[[게자리]]/[[양띠]]||
||'''별명'''||카리스마 현민, MPM, 우토벤, 감자[* 일본진출 시작했을때의 머리가 일명 '감자머리']||
한국의 5인조 아이돌 그룹 [[대국남아]]의 멤버이자 리드보컬이다.
- 홍광호 . . . . 4회 일치
| 배우자 = [[강예솔]]
* 2008년 《See What I Wanna See》- 강도/기자 役
* 2014년 영국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BWW UK Awards) – 새로운 프러덕션 뮤지컬 조연 남자배우(Best Featured Actor in a New Production of a Musical)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계원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예슬 . . . . 4회 일치
| 배우자 = 有
* [[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덕대학 동문]][[분류:연서중학교 동문]][[분류: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홍은철 . . . . 4회 일치
|배우자=
|자녀= 슬하 1남
* [[1978년]] ~ [[1985년]]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1985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동문]]
- 홍주찬 . . . . 4회 일치
'''홍주찬'''(洪周燦<ref>[http://weibo.com/6246751871/F6J9ju3zw 골든차일드 공식웨이보 홍주찬 한자]</ref>, [[1999년]] [[7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보이 그룹]] [[골든차일드 (음악 그룹)|골든차일드]]의 메인보컬이다.<ref name = "position">[http://woolliment.phps.kr/artists/about_goldenchild.php 울림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프로필]</ref><ref>[http://imgur.com/W3ioHll 홍주찬 메인보컬]</ref>
* [[2018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참가자 (아~ 네모네! 몬드리안!)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201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골든차일드의 일원]][[분류:서울증산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중학교 동문]][[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동문]][[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백석예술대학교 동문]][[분류: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준표(야구선수) . . . . 4회 일치
||<:> '''출신학교''' || 구미도산초 - 구미중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 - [[한민학교]] - [[우석대]]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최후의 프로 선수'''[* 2009년 해체 당시 홍준표가 재학 중이었고 홍준표 외에 구미전자공고 출신 야구선수는 현재 [[KBO 리그]]에 없다.]
- 홍지호 . . . . 4회 일치
| 배우자 = [[이윤성 (배우)|이윤성]]
| 자녀 = 슬하 1남 3녀 <br/> (女 홍주현, 女 홍세라, 子 홍진원, 女 홍세빈)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자유 연애]][[분류:남양 홍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황용식 . . . . 4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 1997 : 대구시 국제관계 자문대사<ref name="사전"/>
- 황정오 . . . . 4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유도]]}}
{{동메달|1981년 자카르타|-65 kg}}
[[1981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일본]]의 [[마쓰오카 요시유키]]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1985년]]에 은퇴한 황정오는 [[1987년]]에 미국의 마린 대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1997년]]에는 테네시 대학교에서는 대학교수로 발탁되었으며 2010년에는 미국태권도고단자회 관장을 맡고 있다.
- 황준국 . . . . 4회 일치
|전임자 = [[임성남 (외교관)|임성남]]
|후임자 = [[김홍균]]
|전임자 = [[임성남 (외교관)|임성남]]
|후임자 = 박은하
- 회맹 . . . . 4회 일치
회맹의 희생 제물은 본래 천자가 참석할 때는 소와 말, 제후들이 모일 때는 개와 돼지, 대부들이 모일 때는 닭의 피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패자가 등장한 뒤에는 제후들의 회맹에서도 소와 말을 쓰게 되었다.
[[춘추시대]], 주나라의 질서가 무너진 뒤 회맹은 유력한 제후, 패자(覇子)를 중심으로 한 제후들이 맺게 되었으며, [[존왕양이]]를 명분으로 삼았다.
춘추시대의 회맹은 제나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682년 가을, 송나라의 권신 남궁장만南宮長萬이 송 민공緡公을 시해, 대부 구목仇牧과 태자 화독華督을 살해했다. 기원전 681년 3월, 제 환공은 주 왕실의 허가를 얻어 북행北杏(지금의 산동성 동아현)에서 제후들을 모았으며, 송나라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 모인 제후들 가운데서는 송 환공이 '공작'으로 가장 작위가 높았으나, 제 환공이 '후작'이었음에도 가장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제 환공이 맹주가 되었다.
- 후지와라 섭관가 . . . . 4회 일치
[[일본]]의 귀족 가문. 후지와라 씨(藤原氏)가 천황가의 [[외척]]이자 [[섭정]]으로서 지위를 세습하여, 이들을 후지와라 섭관가라고 부른다. [[일본 귀족]]의 정점에 서있는 가문이며, 섭가(摂家) 혹은 섭관가(摂関家)라고도 한다. 5개의 가문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에 오섭가(五摂家)라고 불린다.
레이제이 덴노의 5명의 동생들 가운데 가장 평판이 높았던 것은 2남 타메히라 친왕(為平親王)이다. 하지만 타메히라 친왕의 어머니는 후지와라 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지와라 씨의 영향으로 3남 모리히라 친왕(守平親王)이 황태자로 선택된다. 모리히라 친왕은 제64대 엔유 덴노(円融天皇)로 즉위한다.
이 황태자 분쟁을 계기로 하여 후지와라 씨는 아예 후지와라 씨의 딸 이외의 입궁 자체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 2세대주택 . . . . 3회 일치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주택.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을 2세대 주택이라고 한다. 2세대 혹은 손자까지 3세대에 걸쳐서 다른 세대가 하나의 주택을 공유하게 된다.
- 3월의 라이온/119화 . . . . 3회 일치
* 키리야마 레이가 해설을 맡게 되는데 카와모토 자매는 일하는 키리야마가 낯설다
* 관전자들은 체통도 없이 지저분하게 둔다고 힐난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관전한다
* 사실 게임 자체는 도바시의 압도승. 라이도가 준비한 수는 초장부터 의도대로 풀리지 않거나 철저히 파훼당한다.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3회 일치
* 갑자기 천둥번개가 몰아치고 소나기가 내린다.
* 아카리가 얼른 잡으려다가 같이 넘어질 뻔 하는데, 두 남자가 동시에 아카리를 잡는다.
* 묘한 분위기의 두 남자.
- COCOM . . . . 3회 일치
1949년 11월, [[자본주의]] 국가들 측에서 공산권 진영에 대한 수출 통제기구로서 출범한 위원회이다. [[미국]]의 주장에 따라서 설립되었으며, 공산권에 대한 전략 물자와 기술 수출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였다. [[파리]]에 본부를 뒀다.
[[아이슬랜드]]를 제외한 [[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 15개국이 참가했으며, [[일본]]과 [[호주]]가 이에 추가되었다. COCOM위원회에서는 참가국들에 [[소련]]과 공산권 국가 및 공산권 지역에 대하여 전략 물자 수출 기준을 제시하였고, 참가국들은 이에 따라야 했다. 구체적인 목록은 1988년 까지 비공개였다.
- DQN 보복 . . . . 3회 일치
자신이 당했던 일에 대해서 [[DQN]] 같이 과격하고 저열한 수단으로 보복을 가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정당방위]]로서는 지나친 행위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 참고자료 ==
* 넷 왕자 넷 용어사전 : http://netyougo.com/2ch/10422.html
- FootNoteMacro . . . . 3회 일치
== 자동으로 넣기 ==
config.php에 다음과 같은 식의 설정을 넣으면 모든 페이지에 {{{[[FootNote]]}}}매크로가 자동 삽입됩니다.
/!\ 1.1.5부터는 FootNote의 경우 [[$extra_macros]] 설정이 필요없이 자동으로 삽입됩니다.
- IsbnMap . . . . 3회 일치
IsbnMap 에서 map 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 이 경우 출판년도에 따라서 옵션을 달리 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 ISBN 매크로를 고쳐서 (가능하다면 jpg가 없을 때 gif를 찾는 어떤 로직을 넣는 방법이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coding에 능력이 전혀 없는지라, 이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 차원에서는 이게 사용자 정신건강에 이로운 해결책이 아닐까합니다. (제 위키에서 책목록을 관리하는데 수작업으로 바꿔 줄 생각을 하니 조금 끔직합니다. - 스크립트를 돌려도 되기는 하지만 ... )
모니위키 1.1.3에서는 이와 관련된 버그가 고쳐졌고, 알라딘 같은 경우는 확장자가 jpg/gif인 경우를 자동으로 검출합니다. 이 경우 php.ini에 {{{'allow_url_fopen=1}}}같은 식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또, config.php에 {{{$isbn_img_download=1;}}} 와 같이 옵션을 넣으면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게 하여, 일부 referer를 검사하여 이미지를 보이지 않게 하는 사이트에서도 활용하기쉽게 하였습니다. -- WkPark [[DateTime(2009-01-13T07:14:27)]]
- LORAN . . . . 3회 일치
간단히 말하자면, [[전파]]를 이용한 [[등대]]. 기지국에서 발산하는 펄스 전자파를 수신하여 전자파의 위상차, 시간차 등을 사용하여 위치를 측정한다.
- NEC 코퍼레이션 . . . . 3회 일치
자회사로 [[NEC 인터채널]]이 있었다.
본래 [[웨스턴일렉트릭]]과의 합작회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스미토모 재벌이 인수했다. 전쟁 이후에 개편되어 지금과 같은 체계가 되었다.
1995년 10월에 [[NEC]]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부문이 분리되어 NEC인터채널 주식회사로 창립됐다. 2004년 3월에 NEC가 보유하던 주식의 대부분이 양도되어 2004년 7월 1일에 '주식회사 인터채널'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이 회사 전성기는 NEC인터채널 시대로 그냥 '인터채널'로 하면 도무지 적을 정보가 없으니 이걸로 쓰자.
- T.O. 모로우 . . . . 3회 일치
[[천재]] [[과학자]]. 본명은 Tomek Ovadya Morah. [[메탈멘]]을 만든 윌 매그너스의 멘토이기도 했으나 자기 재능을 악용한 악당 과학자이기도 해서 [[슈퍼히어로]]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 V-22 오스프리 . . . . 3회 일치
24명의 병력이나 20,000 파운드(약 9 톤)의 물자를 수송할 수 있으며, 15,000 파운드(약 6.8 톤)의 물자를 매달아서 수송할 수 있다.
미 해병대는 CH-46E 시나이트를 대체하기 위해 MV-22를 채용하였으며, 미 공군 또한 특수 작전 보급과 장거리 침투, 구조를 위해 CV-22를 도입하였다. 또한 일본 육상자위대 역시 V-22 오스프리를 도입하였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3회 일치
게임 용어들은 전부 자체적으로 번역하였다. 유로파 카페 한글 패치가 안되는데 어쩌라고.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3.4|반 자동화]]''' 기술 연구시 +1%
* '''Literate NCO's(식자 부사관)'''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3회 일치
일본어 키보드에서 키보드의 자판을 qawsdeftgyhujikolp 순서로 치면 나타나는 문장.
정확하게 qwert 자판의 2번째 줄과 3번째 줄을 차례차례 치는 것으로 완성할 수 있다.
== 참고자료 ==
- 감정없는 존재 . . . . 3회 일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지적 존재. [[SF]]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대체로 감정이 없기 때문에 냉철한 [[이성]]만을 가지고 있어 매우 우월, 혹은 감정이 없어서 사악하거나, 감정이 없어서 불쌍한 존재로 여겨진다.
1. 합리를 추구하는 "이성"자체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묘사되며, "감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아직 인스톨 되지 않은 경우
[[엔더 위긴 시리즈]]나 [[영원한 전쟁]]같은 고전 SF소설에서는 "지구인이 이해할 수 없는" 특징으로 자주 등장하며, 단일사고체 특성을 가진 종족들의 대다수는 이런 캐릭터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 강호 . . . . 3회 일치
강호는 『장자(荘子)』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말로서,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伝)」에서도 발견된다.
당나라 이후, 송,원,명을 거쳐서 [[수호전]]에서 강호라는 말은 범죄를 저질러 유랑하는 무법자들의 사회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다. [[무협]] 등에서는 주로 수호전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강호와 비슷한 무림(武林)이라는 말은 [[중화민국]] 시기에 나타난다. 강호와 무림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강호가 일반적으로 다양한 무법자의 세계를 가리킨다면 무림은 무술 문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서 좀 더 한정적인 의미가 있다.
- 거대로봇 . . . . 3회 일치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극중 분위기의 차이라 볼 수 있다. [[마징가Z]]는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연상케되는 활극, [[기동전사 건담]]은 진지하고, 무거운 전쟁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 마징가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연출을 볼 수 있고, 건담에서도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와는 다른 요소를 볼 수 있다.[* 리얼로봇보다는 슈퍼로봇에 가까운 활약이라던가. 애초에 2족 보행 거대로봇 자체가 리얼리티나 현실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구분하는 사람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 괜한게 아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3화 . . . . 3회 일치
* 출판사를 나선 후 키리에는 ''' "혼자서는 포기했을 테지만 우마루양이 따라와줘서 말해준게 기쁘고 감동적이다. 우마루양을 만나서 다행이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모토바 키리에. 자신을 변호해준 우마루에게.
* 사실 키리에는 자책하지만 고등학생 신분으로 상업작가로 발탁되는 경우는 희귀한다. 그런데 우마루가 변호해줬다곤 해도 명함을 받게 됐으니 엄청난 재능.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0화 . . . . 3회 일치
* 키리에는 화려한 가게 장식과 친구들의 차림을 보고 왜 자신은 후줄그레한 차림으로 왔는지 부끄러워 한다.
* 케이크 말고도 감자칩 같은 짭짤한 것도 있어서 단 것과 짠 것을 돌아가며 먹는 우마루 에게는 최적의 조건.
* 리뷰에는 작성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을 수 있다.
- 고인범 . . . . 3회 일치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명나라 사신 황엄 역을 맡으면서 유창한 중국어 구사로 시청자들이나 업계들의 눈도장을 받아 이후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180cm 훤칠한 키에 흔히 등장할때마다 백발머리 또는 은발머리이다.[* 단 사극은 제외][* 사실 카리스마 이미지와 부합하여 은발과 백발은 트레이드 마크이자 상징이다. 근데 새치염색하면 사람들은 그를 못 알아본다고...]
* 2010년 KBS 1TV 대하드라마 [[자유인 이회영]]
- 구본홍 . . . . 3회 일치
* 1974년 ~ 1993년 4월 : [[MBC]] 보도국 기자
* 2007년 12월 :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
- 구성윤 . . . . 3회 일치
포항청림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어린 시절에는 필드 플레이어로 축구에 입문했다가 골키퍼로 전향하는 것과 달리 구성윤은 축구를 배울 때부터 골키퍼로 시작했다. 이후 고향 [[포항시]]를 떠나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재현중학교]]를 거쳐 [[재현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입학 후 키가 훌쩍 크면서 신입생임에도 주전 골리로 골문을 지켰는데, 이를 우연히 지켜본 [[세레소 오사카]] 스카우터의 눈에 들면서 재학 중 [[세레소 오사카]]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2012년 세레소 오사카의 U-18팀에 입단하였다. 이후 구성윤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스카우터가 다른 선수를 보러 왔었는데, 운 좋게도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호평을 내렸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47&aid=0002166201|#]]
결국 2015년 출장 기회를 찾기 위해 세레소 오사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J2리그]] 소속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이적 후 삿포로에서 개막전부터 기용[* 여담으로 이는 삿포로의 최연소 골키퍼 데뷔(20세 206일)라고 한다.]되며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였고, 2016년에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J1리그]] 승격, 최소 실점 2위(33실점)에 크게 공헌했다. 또 2017년에도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면서 팀의 [[J1리그]] 잔류에 기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https://twitter.com/Asia_Fball_News/status/937427111991697408|2018년에도 삿포로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삿포로의 붙박이 1선발 골키퍼로 맹활약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꽤 인정을 받는 골키퍼기 때문에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대표팀에 구성윤이 뽑히지 않자 한국의 두터운 골키퍼 층을 부럽다는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도 있었다.[[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sports&wr_id=281364]]
- 국가원수 . . . . 3회 일치
한 [[국가]]의 대표자. [[국제법]] 상에서 해당 국가의 대외적인 대표권을 가진 인물 혹은 직위. 각국의 [[헌법]]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관습법]]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맡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데, [[김일성]]이 '영원한 주석'으로서 헌법상 영구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었으므로, 일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방위원장 지위의 김정일, 국무위원장 지위의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리비아 : 무하마르 알 카다피는 형식상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혁명지도자'라는 비공식적인 직함으로 사실상 국가원수로 활동했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3회 일치
Grand Theft Auto. [[락스타 게임즈]]가 발매하는 범죄 샌드박스 [[게임]] 시리즈. 보통은 GTA라고 줄여부른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범죄자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2001년 발매. 시점이 탑뷰에서 TPS가 되었다. [[은행강도]] 도중 동료에게 배신당한 범죄자 클로드가 리버티 시티에서 겪는 일을 다루고 있다.
2008년 발매. 발칸 반도에서 리버티 시티로 온 밀입국자 니코 벨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근육경련 . . . . 3회 일치
* 잠 자다가(…)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발을 펴거나 수족을 움직이면서 쥐가 날 수 있다.
- 금고 . . . . 3회 일치
[[현금]], 중요 서류, [[귀금속]] 등의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금속]]제 상자. 쉽게 뜯기 힘들도록 튼튼하게, 옮기기 힘들도록 무겁게 만들며 [[자물쇠]]를 달아놓는다. 자물쇠는 열쇠나 다이얼키, 번호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 금잔디 . . . . 3회 일치
* 서울 가 살자 (2016년)
== [[꽃보다 남자(2009년 드라마)|꽃보다 남자]]의 등장인물 ==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3회 일치
코믹스는 사이버 코믹스(CYBER COMIX)[* 반다이에서 발매한 SF 만화 잡지. 건담계열 작품이 많이 연재되었는데, '''온갖 괴작'''이 넘쳐나는 잡지였다. 건담으로 닌자물이 되어버린 G의 인영이나, 마법의 소위 블래스터 마리 등등(…)]와 MS SAGA에서 발표되었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시. 소설은 MJ 지에서 발표되었다.
여담으로, 역습의 샤아, 건담 유니콘 이후로 F91 이후로는 지온계열 세력 자체가 나오지 않아, 지온계 세력의 파일럿으로서는 거의 마지막이 된다. 작중에서 무슨 지온의 한이라도 풀려는 건지, 레이라는 건담 파일럿이 되고 또 다른 악역 건담까지 썰어버리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잔당들을 이끄는 지도자. 사실상 '촌장' 정도.
- 김경식 (1960년) . . . . 3회 일치
* 2012.01 ~ 2013.02 : 국토해양부 건설수자원정책실 실장
|전임자 = [[박기풍]]<br/>(국토교통부 제1차관)
|후임자 = [[김경환]]
- 김경준(축구선수) . . . . 3회 일치
반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영남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남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롤모델이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이다. 인터뷰에서 자주 수아레즈를 닮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도 별명이 신갈고 수아레즈였다.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4,5R에서 연패를 하며 부진에 빠져있다가 6R에서 김구현 자신만의 플레이로 [[차명환]]을 잡아내고 환상적인 셔틀리버 플레이로 상대전적에서 0:6으로 밀리는 [[김명운]]을 잡아내며 부진을 털어내는듯 했으나 그 후 연패는 계속되었고, 김구현은 6강 PO에서까지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며 [[STX Soul]]의 준PO 진출은 다시 좌절되었다.
2011년 9월 22일, 단 한 명만을 모집하는 2011년 8회차 공군 e스포츠병 전형의 최종 합격자로 선정됐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1R 중반부터 [[공군 ACE]]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2008년]]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2008 스타크래프트 부문 4위
- 김덕현 (변호사) . . . . 3회 일치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했을 때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ref>백기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28&aid=0000051186 노무현 - 변호인단 첫 상견례]. 한겨레. 2004년 3월 22일.</ref> 배우 [[최진실]]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을 때 그 변호인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ref>김태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69022 최진실씨 변호인단 매머드급]. 세계일보. 2004년 12월 14일.</ref>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동호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명신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민교 (가수) . . . . 3회 일치
|직업 = [[가수]] <br> [[작사가]] <br> [[뮤지컬 배우]] <br> [[텔레비전]] [[배우|연기자]]
[[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1967년 태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민수 (1992년)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상기 . . . . 3회 일치
* [[김상기 (1901년)|김상기]](金庠基, [[1901년]] ~ [[1977년]])는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이다.
- 김상희 (1951년) . . . . 3회 일치
* 2009.03 ~ LG전자 사외이사
|전임자 = [[정상명]]
|후임자 = [[이귀남]]<br>(직무대리)
- 김석형 (역사학자) . . . . 3회 일치
'''김석형'''(金錫亨 [[1915년]] ~ [[1996년]] [[11월 26일]])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태어나 [[1946년]] 월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다. [[1963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맞서 [[삼한]]의 주민들이 일본에 이주하여 분국을 세웠다는 학설을 주장한 역사학자이다.
김석형은 1963년에 발표한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66년에 발표한 《초기조일관계사》라는 저서에서 칠지도가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바쳤다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오히려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삼국분국설은 현재 많은 부분이 수정되거나 파기되었지만, 백제 왕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학설은 남북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유물의 상감 기법 등으로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되며 가지가 실제로는 7개가 아닌 6개라는 등 칠지도를 《[[일본서기]]》의 내용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 김성조 . . . . 3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동양전자화학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였으나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김소희 (2000년) . . . . 3회 일치
[[분류:200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우식 (1886년) . . . . 3회 일치
== 참고자료 ==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권오훈 (1911년)|권오훈]]
- 김유미(1979) . . . . 3회 일치
|| '''가족''' ||<(> 2남 1녀 중 막내[br]배우자 [[승리(빅뱅)]], 슬하 1녀 ||
|| 2000 || [[SBS 연기대상]] || 여자 신인상 || 경찰특공대, 천사의 분노 ||
|| 2002 || [[KBS 연기대상]] || 여자 신인상 || 태양인 이제마 ||
- 김정호 (1949년) . . . . 3회 일치
* 2009년 : 운산그룹 해외곡물자원개발 부회장
|전임자 = [[안종운]]
|후임자 = [[김주수 (1952년)|김주수]]
- 김진선(군인) . . . . 3회 일치
1998년 당시 공동여당이던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다.이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고향이 포함된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지만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던 자유민주연합 [[정우택]] 후보에 밀려 낙선. 낙선 이후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 김태환(1943)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5선 국회의원과 정무제1장관을 역임한 허주 [[김윤환]]의 친동생으로 아버지 [[김동석]]도 제4대 국회의원(경상북도 선산군. [[무소속]]-[[자유당]])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내 [[친이]]계 수뇌부의 공천학살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하자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그리고 한나라당 경상북도지부 수석부위원장, 경상북도당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0년 12월 5일 일왕 축하파티가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소공동에서 열렸는데 거기에 참석하였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나비야 꽃이야 . . . . 3회 일치
나비나 꽃처럼 아름답고 귀여운 것이라는 뜻에서 지극히 귀여워하는 모습을 뜻하게 되었다. 특히 여자아이에게 스는 말이다. 남자아이에게도 쓰지만.
== 참고자료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3회 일치
[[아이자와 쇼타]]
점프의 신흥 강자. [[원펀맨]], [[블랙 클로버]]와 함께 신 [[원나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 초능력자가 절대다수인 사회와 초능력 없는 보통 사람의 취급이 안좋다는 점에서 마블 코믹스의 [[하우스 오브 M]]을 떠오르게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8화 . . . . 3회 일치
* 빌런연합의 [[마그네]]는 미도리야가 [[머스큘러]]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판단해내고는 죽이려 들지만 그 중 "[[스피너]]"라는 [[도마뱀]] 같은 빌런은 "[[스테인]]이 인정한 자"라며 진정한 히어로이므로 처리하지 않겠다고 나온다
* 이동 중인 미도리야는 정체불명의 그림자에게 공격 당하는 [[쇼지 메조]]를 발견한다
* 그림자는 [[토코야미 후미카게|토코야미]]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 "폭주"한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9화 . . . . 3회 일치
* 토코야미는 자신은 내버려두고 동료들을 구하러 가라고 한다
* [[테츠테츠 테츠테츠|테츠테츠]]와 [[켄도 이츠카|켄도]]는 가스능력자를 상대로 고전한다.
*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토코야미가 빌런을 순식간에 박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3회 일치
* 다비는 "[[올마이트]]와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고]]를 계속 흔들면 결국 사회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겠냐"며 자신들의 활동이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 코우타를 데리고 본부에 도착한 [[아이자와 쇼타]]는 다비가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으로 만든 분신에 불과함을 간파하고 재빨리 정리하고 추적을 재개한다
* 지나가는 캐릭터처럼 보였던 다비가 의외의 비중을 자랑한다.
- 나폴레옹: 토탈워/건물 . . . . 3회 일치
마을 건물은 분야마다 두가지 테크로 나눠진다. 이미 테크를 결정했다고 해도 자금을 소모해 다른 테크로 갈아탈 수 있다.
=== 자원 건물 ===
자원마다 지어줄 수 있는 건물.
- 나폴레옹: 토탈워/유닛의 종류 . . . . 3회 일치
값싸고 빨리 뽑히는 싸구려 보병. 성능도 싸구려다. 전열보병에게 있는 사기충격 저항도 없으므로 전투에 직접 투입하는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치안 유지 보너스가 있으니 후방이나 점령지에 쑤셔넣어 폭동이나 반란을 예방하자. 수성전을 치를 때에는 무장 시민(Armed Citizenry)이라는 유닛들이 무더기로 추가되는데 얘네들은 그냥 아무 총이나 들고 나온 군중들이니 총알받이로 써먹자. 어차피 수성전에만 나타나는 애들이다.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 전투에 참가한 형태. 검을 사용하는 검기병으로 근처 부대에게 사기 보너스를 준다. 부대원 중 장군이 죽으면 주변 부대에게 사기 피해를 입히며 전투가 끝나고 해체된다. 막 굴리지말고 아끼자. 대포알 조심하고.
- 남동훈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참고 자료 ==
[[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근대5종 참가 선수]]
- 노예 . . . . 3회 일치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권리와 자유를 빼앗기고 남의 소유물로써 부려지는 사람들을 뜻한다.
19세기 경에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자, 노예를 부리던 남부 주의 대다수가 "우리의 권리와 이권을 빼앗으려고 한다 빼애액!"을 외치며 미국에서 탈퇴해버렸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반란군들을 철저히 짓밟은 후]]에야 다시 미국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다.
* 대개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자유를 꿈꾸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 노해 . . . . 3회 일치
* 직종의 경우, 신인 육성과 세대 교체가 원활하지 않아 고령자 중심의 체계가 굳어지는 경우.
* 과도한 고령화로 경기력이 저하한 스포츠 팀은 [[리빌딩]]을 거치게 된다. 리빌딩을 할 수 없으면 팀 자체가 멸망할 수 있다.
* 노인이 자기중심적이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
- 뇌내 꽃밭 . . . . 3회 일치
--[[뇌]]에 [[식물]]이 [[기생]]하여 [[꽃]]이 자라나는 무서운 질병.--
과도하게 이상적이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망상, 공상, 환상을 맹신하는 사람을 뜻한다. 멸칭이나 비난에 가까운 표현이다.
뇌내(脳内)는 뇌의 안쪽, 여기서는 [[정신]]을 뜻하며, 오하나바타케(お花畑)는 [[꽃밭]]이라는 뜻으로, 이상적인 사고방식을 뜻한다. 봄의 만발한 꽃밭의 풍경으로 과도하게 이상적인 사고방식을 풍자하는 것이다.
- 뇌파 . . . . 3회 일치
1875년, [[영국]]의 생리학자 R.케이튼은 [[토끼]], [[원숭이]]의 대뇌피질에서 나온느 미약한 전기신호를 검류계로 기록했다. 이것이 최초의 뇌파 보고이다.
인간의 뇌파는 한스 베르거(Hans Berger)가 처음으로 기록했다. 머리에 외상을 입은 환자의 두개골 결손부에 있는 피하에 2개의 [[백금]]으로 된 [[전극]]을 삽입하였다. 나중에는 굳이 피하에 삽입하지 않고 두피에 전극을 얹기만 해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환자:잠깐 그럼 나는 괜히...--
- 니세코이/217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자기가 알려줘도 의미가 없으니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기에 그랬다고 한다.
* 이치죠는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다.
- 니세코이/219화 . . . . 3회 일치
* 이치죠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남자고 정신적으로 강하다며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 마리카는 한 번 더 자신을 골라주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치죠는 결국 미안하다고 답한다.
- 다메다시 . . . . 3회 일치
다메(ダメ)란 "안돼"라는 의미로, 다시(出し)는 뭔가를 내민다는 뜻이다. 안된다는 말을 자꾸 내민다는 의미이므로,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단점을 지적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본래 [[연극]] 같은데서 "컷!"을 외치는 등, 연출자가 연기자에게 지시하는 것을 뜻했다.
- 닥터 시바나 . . . . 3회 일치
캐릭터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표본격. 안경, 대머리, 작은 키, 실험복 등 만화에서 나올법한 미치광이 과학자의 디자인이며 이러한 캐릭터 답게 슈퍼파워 없이 [[과학]]기술을 악용해 샤잠과 싸운다.
블랙 아담이 사라진 후에는 아담이 락 오브 이터니티의 문을 연 곳으로 향하는데 안에 들어가려 해도 보이지 않는 장멱 탓에 그러지를 못했다. 과학은 자기 가족을 구하는데 실패했으니 이젠 마법이라며 들여보내달라 하고, 그런 그에게 방 안에 봉인되어있던 미스터 마인드가 말을 걸어온다.
- 단종 . . . . 3회 일치
문종의 적장자로, 조선 왕조 최초로 원손-세손-세자-왕이 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타고난 왕'''이다. 그러나 문종이 너무 일찍 서거한데다 문종이 일찌기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수렴청정과 같은 왕권 수호책을 펼치기 힘든 등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을 위시한 장성한 숙부들의 정치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종도 일찌기 이러한 우려를 하고는 있었으나, 형제들과 다투며 보위에 오른 태종과 자신의 선례를 의식했는지 과감하게 이들의 힘을 거세하지 못하고 다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원로 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다.
- 담철곤 . . . . 3회 일치
1980년 장인의 회사인 동양그룹에 입사해 동양시멘트 구매부서에서 일했다. 1년 후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1983년 상무, 1984년 전무에 오르고 1985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이 창업주가 타계하자 동양제과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영권을 물려 받았다. 동양제과를 동양그룹과 계열분리하고 사명을 오리온으로 바꾸면서 오리온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제과사업뿐 아니라 유통, 미디어, 영화, 외식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다 2013년 부인 이화경 부회장과 함께 오리온그룹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담철곤은 1991년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일대에 모친의 [[묘|분묘]]를 조성했고, 추가로 1999년 부친의 [[묘]]를 만들어 2기의 합장묘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곳은 [[등기부등본]]상 농지인 '전(田)'으로 규정되어 있어 묘지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며, 묘소 부지는 담철곤 회장이 아닌 [[오리온그룹]] 직원이 등기권자로 돼 있어 토지 차명 보유 의혹을 받았다. 묘소의 총 면적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조성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264m²)의 8배에 달하는 2147m²(649평)으로 장사법에서 규정한 규모를 넘는다.<ref>[http://news.tf.co.kr/read/economy/1668728.htm 담철곤 오리온 회장, 직원 명의로 '호화 분묘' 불법 조성 의혹] 더팩트. 2016년 12월 16일</ref>
- 데일리 야마자키 . . . . 3회 일치
[[야마자키 제빵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프랜차일즈.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 마트 등의 대규모 편의점에 비해서는 보기 드물다.
본래 개인경영 빵집이나, 주점이 가맹점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점포 운영에 소유자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다른 편의점에 비하여 본부의 간섭이 적다. 이 때문에 서비스의 수준, 상품 전개에 격차가 심해서 "싫어하는 편의점 랭킹"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 도예종 . . . . 3회 일치
'''도예종'''(都禮鍾, [[1924년]] [[12월 25일]] [[대구광역시|대구]] ~ [[1975년]] [[4월 9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 기업인이다. 상주고교 교사, 대구대학 경제학과 강사 등으로 활동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여덟 명 중 한 명이다. [[1960년]] 당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여 [[영주군]][[교육감]] 선거에 당선되었지만 [[민주당 (1955년)|민주당]] 정권은 발령을 거부하여 교육감(후에 교육장으로 개정)에 부임하지 못했다.
* 민족자주통일협의회 중앙상무집행위원회조직부책
- 독이 든 성배 . . . . 3회 일치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동시에 책임이 많은 지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유용성이 높지만 위험도가 높은 기술 등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 대한민국 축구감독(…) 등 성공하면 엄청난 찬사를 받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욕설을 얻어먹는 자리에 주로 사용된다. 막장을 달리는 [[프로 스포츠]] 팀의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에도 이런 표현이 사용된다.
- 듄 2 . . . . 3회 일치
스파이스 정제소에서는 하베스터를 써서 스파이스를 채취, 리파이너리에 캐서 모아둔 스파이스를 정제하고 크레딧([[돈]])으로 바꿔서 유닛을 생산한다. 원작소설에서 따온 것이지만 묘하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스파이스는 사막 지형인 땅에서 붉은색으로 보이는 모래 부분이며, 하베스터로 채집을 선택하면 하베스터가 알아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채집하여 스파이스를 가져온다. 하베스터의 채집은 채집지역을 정해두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가끔 하베스터가 엉뚱한 먼 곳에서 채집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베스터 자체는 공격능력이 없지만 보병은 깔아뭉개 죽이는 것을 할 수 있다.
웨스트우드 사에서는 이후에 듄 2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오리지널 시리즈인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로 발전시킨다. 이 때문에 듄 RTS 시리즈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게임 체계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건설소에서 건물 테크트리가 시작하며, 사이드바를 사용하여 건물 생산과 유닛을 조종하는 게임 인터페이스, 그리고 자원 채집도 유사하여 듄에서는 빨간색 지형에서 채집하던 스파이스가 커맨드 앤 컨커에서는 녹색 지형에서 채집하는 [[타이베리움]]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인터페이스 가져다 쓰려고 지구가 타이베리움에 침식당하게 되버렸다(…).]
- 등신대 패널 . . . . 3회 일치
의외로 한국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PC방. 게임 캐릭터나 홍보모델을 본따서 만든 게임 홍보 등신대 패널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편이라 일상에서 자주 접할 가능성이 높다.
- 디텍티브 침프 . . . . 3회 일치
[[DC 코믹스]]의 캐릭터. 문자 그대로 [[침팬지]] [[탐정]]. 본명은 보보(Bobo). 첫등장은 Adventures of Rex the Wonder Dog #4 (July-August 1952).
원래 [[아프리카]]에 살던 침팬지로 프레드 쏘프에게 잡혀 훈련되었다. 다만 쏘프와는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쏘프가 죽으면서 혼자 일했는데 법적으로 자립할수 없어서 돈도 못벌었고, 대중들에게 잊혀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알콜중독]]이 된데다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다.
- 라이징 스톰 . . . . 3회 일치
주축국. [[일본군]]으로 상징은 만세가 써진 [[욱일기]]. 특수 병과로 Assault와 Light Mortar가 있다. 자살시 증원 포인트가 소모되지 않으며, 페널티도 없다는 특이점이 존재. 근접공격키를 누르면서 전력질주하는 것으로 [[반자이 돌격]]이 가능하다.
* 반자동소총
- 랑그릿사 . . . . 3회 일치
랑그릿사가 암흑룡과 빛의 검에 대항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판타지 세계관을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 RPG라는 점만이 아니라, 줄거리 역시 단순히 '빛과 어둠의 대결'이라는 판타지적 선악대결의 관점 만이 아니라, '제국에 대항하는 저항군'이라는 요소를 더해서 국가간의 전쟁이 복합된 전개가 들어가는 등. 양자 간의 유사성이 많다.(물론 넓게 보면 '스타워즈'의 영향이겠지만.)
한국에서는 한글화와 PC판 발매,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 덕분에 훨씬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지만,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인기 측면에서는 하드 자체가 마이너한 하드(메가드라이브, 세가 새턴)을 주로 나왔고 시리즈의 명맥이 아예 끊겨버린 상황이라, 현재는 인지도와 인기가 파이어 엠블렘에 훨씬 뒤쳐진 상황이다.
[[알하자드]]
- 러브라이버 . . . . 3회 일치
|| 그들이 자신을 이상화한 모습 ||
애칭으로 럽폭도 또는 럽쿠자라고 불린다. 참고로 2015년 5월 1일 기준으로 구글 검색 결과 "러브라이버"는 359,000 건, "럽폭도"는 348,000 건, "럽쿠자"는 9,850건이다.--힘내라 럽폭도.--
- 런던 . . . . 3회 일치
런던이 본격적으로 번영한건 중세 말기 한자동맹을 주축으로 북해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때인데, 이때 플랑드르와 뤄벡, 유틀란드, 리가등의 북유럽 도시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19세기에는 [[런던 맥주 홍수 사건|양조장에서 맥주통이 폭발, 몇명의 익사자를 낸 적이 있다.]]
20세기 중반에는 대규모 황산 안개가 발생,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3회 일치
약 147만 리터 가량의 맥주가 일제히 폭발하여 해일처럼 주변을 덮친 이 사건으로 9명이 사망하고 2채의 가옥이 파손되었는데, 사망자 유형을 살펴 보면 1명은 무너진 건물에 압사, 유아 2명을 비롯한 7명은 지하실에 유입된 맥주 때문에 [[익사]](당시 지하실엔 양조장 직원의 가족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맥주에 휩쓸린 사람들 중 1명이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이 있는데, 이 런던 맥주 홍수를 소개하는 글 대부분이 당밀 사건과 혼동해서 당밀 사건 관련 사진을 맥주 홍수 사건 현장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현장에 보인다.)
- 렉스 더 원더독 . . . . 3회 일치
미 육군 K-9 사단에서 큰 흰색 독일 [[셰퍼드]]. 매우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개]]로 복무를 끝낸 후에는 필립 데니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후 필립이 살인누명을 쓰자 이를 해결해줬다. 필립의 동생인 대니와 같이 행동한 적도 있으며 이때 다양한 맹수들의 공격에서 생존했다. 이외에도 과학자 존 레이번과 같이 아원자 세계를 모험했다.
- 로마 숫자 . . . . 3회 일치
[[고대 로마]]에서 쓰였던 숫자.
*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넘버링에서 쓰인다. 덕분에 넘버링 숫자가 점점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분류:고대 로마]][[분류:숫자]]
- 류종원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2001년]] [[SBS]] 일일연속극 《[[소문난 여자]]》
- 류한수 . . . . 3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레슬링]]}}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 자카르타-팔렘방]]|그레코로만형 -67kg}}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마기/295화 . . . . 3회 일치
* 자신은 낙오자를 내버려두진 않겠지만, 황제국은 파탄할 때까지 내버려두겠다는 말을 하는데...
* 홍명은 "마도연구시설"을 공개한다. 황제국의 독자적인 마법연구시설로 그 규모와 수준이 "마그노슈타트"조차 능가한다. 원래 홍명의 지휘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전쟁 이후에도 비밀조직으로 바꿔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 마기/298화 . . . . 3회 일치
[[마기]] 제 298번째 밤. '''위에 서는 자로서'''
* 알리바바는 지금의 신드바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데 여전히 존경하고 "세계를 평화롭게 만든다"는 꿈을 이뤄냈다며 대단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한 편으론 "나라 보다도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더이상 따라가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다
* 사를르칸은 "더이산 신드바드를 못 따라가겠다"는 발언을 하는데, 지향점 자체가 너무 달라져 버린 것 같다.
- 마기/304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하지만 갑자기 연결이 두절돼 버린다.
* 그는 아르바가 이미 알사멘과 인연을 끊었고 자신의 "마기"가 되었다며 알라딘도 마기로서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말한다.
- 마기/311화 . . . . 3회 일치
* 연백룡은 자간의 힘으로 두 마법을 막아내지만 무시무시한 위력이다.
* 유난의 타전의 저주는 멈췄고 백룡이 자간으로 응급처치를 시작한다.
* 아르바는 알 사멘의 전병력을 끌어내 승부를 내고자 한다.
- 마기/313화 . . . . 3회 일치
* 백룡은 이제 자신은 순수하게 연가의 사내이지 홍염과는 무관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더이상 네가 갈아탈 몸은 없다"고 한다.
* 알리바바는 그의 다리를 자른 일을 사과하고 백룡은 그를 한 번 죽였던 일을 사과한다.
- 마로 . . . . 3회 일치
미토 고몬의 문장을 보고서도 "마로는 미카도[* 덴노]로부터 정삼품의 관위를 받은 몸! 도쿠가와 가문의 부하가 아니니라! 마로의 저택에서 이런 난행을 벌이다니! 미카도에게 상주할 것이다!"라면서 버티는 대사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 정삼위는 미토 고몬 자신과도 동급이므로 일단 이 말은 거짓말은 아니다.]
여담으로 에도 시대의 귀족 가문은 자택 내부가 사실상 치외법권인 것을 악용[* 막부 휘하의 관리들은 간섭하기 어려웠기 때문.]하여, 자택 내에 도박장 등을 영업하여 부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었다고 한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3회 일치
파르마 공작 필리프의 딸로서, 1765년 [[황태자]]였던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였다. 아둔하고 무기력하다는 야유를 들은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스페인의 국정을 담당했다.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프란시스코 드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Familia de Carlos IV, 1800-1801)」에서, 제목이 된 국왕을 제치고 중앙에 당당한 포즈로 배치되어 있어 그녀의 정치적 위상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아 루이사 자신도 고야의 초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 마운팅 . . . . 3회 일치
괴롭힘 처럼 명백하게 드러나는 형태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척, 상대를 걱정하는 척, 혹은 자학하는 척 하면서 연애, 외모, 인간관계 등에서 자신을 어필하고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행동을 뜻한다.
공연히 허세, 자랑을 하는 걸 뜻한다고 보면 될 것.
- 마카나이 요리 . . . . 3회 일치
마카나이 요리는 요리인이나 종업원들이 자신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 맞춤 재료로 만드는 요리를 뜻한다. 즉, 가게에서 제공되는 식사. 가게에 따라서 사정은 다르다.
마카나이(賄い)는 식사나 연회의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기숙사 등에서 만들어 내놓는 식사나, 그것을 만드는 요리인을 뜻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마카나이라는 말이 요리인들이 자신들이 먹으려고 만드는 요리를 뜻하게 됐다. 「마카나이 요리」라고 하여, 공이 든 요리를 준비하는 가게도 있다.
== 참고자료 ==
- 마토메야쿠 . . . . 3회 일치
어떤 일을 정리, 통합(まとめる,마토메루) 하는 사람을 뜻한다. 상황에 따라서 수습하는 역할, 주최자, 기획자, 책임자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 맥시멈즈 . . . . 3회 일치
DC의 캐릭터이나 캐릭터들 자체는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의 패러디로 [어벤저스], 혹은 [얼티밋 유니버스]의 어벤저스인 얼티밋을 패러디했다.
* 몬스터 - [헐크] 패러디. 거구의 괴물이나 그 정체는 작은 여자아이.
* 스카이스크래퍼 - [옐로우자켓] 패러디. 빌딩처럼 거대한 거인.
- 머신맨 . . . . 3회 일치
[[로봇]]이라서 강력한 신체를 지니고 있으며 [[아다만티움]] 성분이 들어간 티타늄 합금 탓에 강력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자가수리에 초정밀 계산능력, 굉장한 시력, 비행, 변신에 팔과 다리는 30m까지 늘어난다. 두뇌는 인간과 같은 감정, 창의적 지능, 무한한 자기 동기부여 활동을 할수 있다. 태양열 에너지가 동력이나 필요시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외부 에너지를 이용할수 있다. 손가락은 장비가 장착되어서 총알, 전기, 냉각선, 열선을 발사할수 있으며 가스 분석기, 레이저 관측기, 마이크로 펄스 레이저, 음향 측정기, 지진계, 중력파 검출기, 펄스 코드 변조기, 컴퓨터 입출력 장치, 전파표지, 만능통신기, 레이저 절단 토치 등이 있다. 대형 칼날이나 전기톱 등이 팔에 장착되어 있고 가슴에는 빔 캐논이 있다.
로봇 군인을 원한 [[미군]]의 극비계획에서 탄생한 로봇. 올리버 브로드허스트 박사의 지휘로 51대의 실험 로봇들이 프로그래밍되었고 X-51은 이 로봇들 중 하나였다. 에이블 스택 박사는 로봇이 사람처럼 생각할수 있다면 위협이 될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안전은 무시하고 로봇 중 하나인 X-51을 데려가 아들처럼 교육시켰으며 로봇에게 인간같은 모습을 준비해줬다. 그리고 로봇에게 머신맨이라는 이름을 줬다.
- 메시우마 . . . . 3회 일치
기원은 2채널의 게시판 중 하나인 야구판으로 안티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레드에서 "거인(자이언츠)가 져서 오늘도 밥이 맛있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 시작으로 한다. 2003년 부터 이 발언을 바탕으로 "거인이 지면 밥이 맛있다."는 제목의 스레드가 세워진 것을 계기로 하여, "메시우마"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2008년 부터는 프로 야구 이외의 다른 장르의 판에서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자신이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을 "메시우마 상태"라고 표현하게 된다.
- 멸문지화 . . . . 3회 일치
실제 현실에서는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무협소설]]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역사물에서 비정상적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
다만, 중세유럽때는 위생상태와 의학의 미비로 인한 일족의 전멸, 또는 서자의 가문 계승권이 부정된 것 등으로 인해 단절된 가문이 흔했다
그 외에 투르크계 국가들도 최후가 그리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계승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고, 오로지 능력있는 자만이 계승권을 가졌기 때문. 물론 패배하면 확실하게 죽는다(...)
- 무용전 . . . . 3회 일치
무용(武勇)이 뛰어난 사람의 전기. 혹은 용맹하게 공훈을 세운 이야기를 뜻한다. 후자는 '무용담'과 비슷한 뜻이다.
* 과거 완력을 가지고 폭력적인 사건을 일으켰던 사람에 대해서 '무용전의 소유자'라고 한다.
== 참고자료 ==
- 문연주 . . . . 3회 일치
|[[2009년]] [[10월 1일]]||둘이서 / 짜라자짜||정규
|[[2015년]] [[8월 21일]]||Golden Best (사랑은 만병통치약 / 고향에 가자)||정규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문옥주 . . . . 3회 일치
'''문옥주'''([[1924년]] ~ [[1996년]] [[10월 26일]])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이다.
192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만주와 동남아시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하였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저축한 돈의 반환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위안부 피해자 故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091600073.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1996년 10월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日軍위안부 문옥주할머니 숨져|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184&yy=1996|출판사=매일신문|날짜=1996년 10월 26일|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 문종 . . . . 3회 일치
세종의 적장자로 어린 시절부터 자질이 출중하여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 미도리야 이즈쿠 . . . . 3회 일치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를 동경하는 소년. 초능력이 일상화되어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라 불리고, 만화 속에서나 나오던 히어로가 현실의 직업이 된 세계에서 소수가 된 무개성이다. 비록 무개성인데다 작은 체구에 소심해도 착한데다 위기를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등 히어로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세상은 박하게 대하고, 일단은 소꿉친구라 할 수 있는 [[바쿠고 카츠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보통.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최고의 영웅이자 어려서부터 동경해온 히어로인 [[올마이트]]와 만나 히어로의 길을 걷게 된다.
* 어려서부터 언젠가 히어로가 됐을 때를 대비해 개성 보유자들을 관찰해와서 그런지 분석 실력이 우수하다. 그러다보니 필기도 자주 한다.
- 민도 . . . . 3회 일치
어떤 국가나 지역에서, 국민이나 주민들의 생활 수준, 경제력, 문명 정도를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굳이 따지자면 '시민의식'에 가까운 표현이다.
기원은 '이거다'라고 볼 만큼 확실하게 사용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친일문학가인 김동인의 글에서도 민도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의외로 잘 안쓰는 단어지만 확실하게 과거에는 쓴 적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이 민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의미의 "계몽"과 상통되는 의미로 쓰였다. 이후의 자료에서는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문명수준'을 뜻하는 말로 나오지만, 최근의 인터넷 자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21세기에서 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로 돌아온 느낌으로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 민룡 . . . . 3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쇼트트랙]]}}
'''민룡'''([[1982년]] [[7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남자 [[쇼트트랙]] 선수이다.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남자 종합 금메달리스트}}
- 바나나 공화국 . . . . 3회 일치
20세기 초, 중남미 각국에 미국 자본에 의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들 국가의 재정은 미국의 대규모 농업 기업이 좌지우지 하게 되며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나나 수출을 위하여 [[농장]] 만이 아니라 [[철도]], [[항구]] 까지 미국 기업의 자본으로 개발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다른 산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 자본에 정권이 종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유나이티드 플루츠(United Fruit) 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바키도/108화 . . . . 3회 일치
* 오로치의 자택에서 차를 대접받는 바키
* 바키는 "구해진 동료"끼리 서로 칭찬하고 있다며 "힐링된다"며 자조한다.
* 한편 도쿠가와의 자택에서는 무사시의 칼 카네시게가 무사시에게 전달된다.
- 바키도/115화 . . . . 3회 일치
* 도쿠가와에게 거듭 정말이냐고 묻더니 도쿠가와가 그렇다고 하자 폭소를 터뜨린다.
* 그러다 경찰이 떠나자 다시 담배를 빼무는데.
* 피클은 벌써 엿새째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고 있다.
- 바키도/120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도쿠가와는 자기들은 그저 선언하는 자일 뿐이며 끝인지 어떤지를 정하는건 당사자 둘의 몫
- 바키도/128화 . . . . 3회 일치
* 무사시는 부러진 어금니를 내뱉더니 이가 빠진 자리를 살펴보는데, 입을 벌려서 확인하기 보단 베여지 벌어진 자국으로 손가락을 넣어 확인한다.
* 그리고 무사시가 가볍게 휘두르자 사슬이 끊어져 버리고 모토베가 휘청거린다.
- 바키도/140화 . . . . 3회 일치
* 경쳘병력과 대치하게 된 [[미야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 숫자는 경찰이 많지만 무사시의 범상치 않은 기세에 위축되어 쉽게 달려들지 못한다.
* 총기를 소지한 경찰이 무력화되자 무사시는 주정없이 들어온다. 그는 "지휘관"인 오오츠카를 제일 먼저 노린다.
* 좌우간 그 뒤에도 "포획"은 계속된다. 그러나 건장한 경찰 여섯이 한 꺼번에 덤비는 것도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분명 단단히 포위한 채 사방에서 달려들었는데, 막상 상대하게 되면 아군이 시야를 가리고 장애물이 되어 접근할 수 없고 무사시와 대면하게 되면 언제나 1대1. 오오츠카는 자신이 본 사실과 그들의 증언을 모두 전하며 그것이 당대에서 말하던 "병법"이라고 말한다. 이제 경시청에선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데.
- 박고은 . . . . 3회 일치
'''박고은'''(박채경, [[1988년]] [[1월 1일]] ~ [[전라북도]] [[순창군]])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모델이다.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순창군 출신]]
- 박세웅(1996) . . . . 3회 일치
한 해 선배인 [[황영국]]과 동기인 [[주권(야구선수)|주권]]과 함께 2013년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의 돌풍을 주도하면서 맹활약했다. 비록 창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 대회 결승에 오른 청주고의 돌풍은 협회장기와 전국체전 준우승으로 끝나며 아쉽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당시 2학년이던 주권과 박세웅이 원투펀치를 이룰 청주고는 2014년 강력한 고교야구의 패권자로 꼽혔다. 그런데 주권은 기대대로 잘 했지만, 정작 박세웅이 썩 빼어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청주고의 돌풍은 아쉽게 2013년 한 해의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쨌든 자질은 있다고 평가를 받은 선수이기 때문에 4라운드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계약금 7천만원에 입단했다.
2017년 11월 22일에 열린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박세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롯데 팬들이 깜짝 놀랐다고.
- 박재홍(1941) . . . . 3회 일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시 지역구 공천이 [[박세직]]에게 밀려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위원장을,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초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준홍 대신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박세직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 박제균 (1887년) . . . . 3회 일치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
[[분류:188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지훈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발달장애 . . . . 3회 일치
* 전반적 발달장애 : 자폐스펙트럼장애,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등. 의사소통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으며, 특정한 행동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발달장애를 주위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해나 잘못된 대응을 반복하는 경우. 자신감을 상실하여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이 될 수 있다.
- 방우정 (방송인) . . . . 3회 일치
|배우자=
|자녀=
* {{서적 인용 | 저자=방우정 | 제목=방우정의 맛있는 유머화법 | 출판사=스마트 비즈니스 | 출판날짜=2007-05-23 | ISBN=9788992124201 }}
- 배지환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배지환'''([[1999년]] [[7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내야수]]이다. 여자친구가 폭행혐의로 고소하여 비판을 얻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신입생 시절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아 활약하였다. 3학년이던 2018년에는 [[이영민 타격상]]<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0784 경북고 배지환, 2017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선정] - OSEN</ref>과 도루상을 수상하였다.
- 백낙청 . . . . 3회 일치
| 직업 = 문학평론가, 영문학자
'''백낙청'''(白樂晴, [[1938년]] [[1월 10일]] ~ )은 [[한국]]의 대학교수,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이다. 친일관료 백붕제의 아들로 [[대구]] 출신이다.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자}}
- 변신합체로봇 . . . . 3회 일치
동물을 기반으로 한 변신합체로봇. [[사자]], [[호랑이]] 등의 [[맹수]], [[독수리]] 등의 [[맹금류]]가 대표적이다. [[코끼리]] 역시 메이저한 동물.
탈 것을 기반으로 변신합체를 하는 구조.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이 대표적이다.--그냥 그거 타고 다니면 되지 않냐는 질문을 하면 안된다.--
작은 로봇이 큰 로봇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 숫자가 적은 편인데 [[투사 고디언]], [[머신로보 크로노스의 역습]]에 등장하는 [[바이캄프]] 등이 있다.
- 보스 트롤 . . . . 3회 일치
크고 살찐 몸에 원시인 같은 가죽옷을 입고, 곤봉을 들고 있다. 두꺼운 입술과 쭉 내민 혀가 큐트 포인트(?). 보스로 등장하기도 하며, 통한의 일격과 높은 HP, 자동회복으로 무서운 면모를 보여준다. 묘하게 인기가 좋은 몬스터.
드래곤 퀘스트 3에서는 변화의 지팡이(へんげのつえ)로 [[사만오사의 왕]]으로 변신하여 폭정을 펼치다가, 용사 일행이 [[라의 거울]]로 정체를 폭로하여 보스전을 벌이게 된다. HP가 320으로 높으며, 트롤 답게 자동 회복이 있어서 100의 HP를 재생한다. 공격력이 높으며, 공격->공격->[[통한의 일격]] 순서로 로테이션 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상당히 강적이다. 통상 공격이 오는 타이밍에는 버프를 주로 하고, [[아스트론]]으로 통한의 일격이 올 타이밍에 막아내면서 싸우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
후반부 아레프갈드에서는 일반 조우 몬스터로 등장한다. FC판은 타겟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2마리가 나오면 그룹으로 대미지가 분산되는 것과 막강한 자동회복이 겹쳐서 굉장히 쓰러뜨리기 어렵게 된다.
- 보쿠걸/105화 . . . . 3회 일치
* 사과하는 미즈키에게 후지와라는 그럴 필요 없다며 "남자든 여자든 미즈키를 좋아한다"고 다독인다.
* 사실 로키가 끌려간 거 자체도 훼이크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3회 일치
삼국이 애초에 자주 전쟁을 벌이는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왜곡에 가깝다.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 이에 따라 대 살육작전을 현지에서 조종 지휘할 데 대한 임무를 받은 남조선 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위컴)은 의로운 항쟁자들을 ‘버릇없는 망나니’, 지어는 ‘들쥐’로 모독하면서 ‘공수특전대’ 5개 여단과 보병사단, 기갑부대, 항공대를 비롯한 7만 여명의 방대한 무력과 장갑차, 중포, 군용직승기와 지어는 항공모함전단까지 광주의 평화적 주민들을 살육하는데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 불쑥 표주박 섬 . . . . 3회 일치
[[NHK]]의 [[인형극]] 프로그램.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등대가 있는 작은 섬이었던 표주박 섬(ひょうたん島)이, 어느날 화산 폭발로 바다를 정처없이 방황하는 처지가 되어, 선데이 선생님과 그 제자들, 국제경찰이 비행기로 호송중이던 암살자 댄디, 뗏목으로 표류해온 해적 토라히게, 자칭 표주박 섬의 대통령 돈 가바쵸 등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3회 일치
* 노엘 실버는 푸에고레온이 말한 "부끄러워해야하는건 약한 자신이 아니라 약한 채인 자"라는 말을 떠올리며 마력을 해방한다.
* 자신의 신체에 걸어 육탄전을 벌였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괴수의 머리가 나타나 불길한 마력덩어리를 토해낸다.
- 블랙 클로버/73화 . . . . 3회 일치
* 승부가 나자 일제히 달려드는 검은 폭우.
* 아스타는 그냥 돌아가기 전에 탐험이나 하자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던 모양.
* 베토도 결국 가장 절망한건 그 자신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 블리치/674화 . . . . 3회 일치
* 우라하라는 요루이치에게 "그걸"하자고 제안하는데, 요루이치는 "어중간하고 기분 나쁜 모습"이라며 거절한다.
* 주사를 빙자한 성희롱 특집.
* 표지부터 요루이치의 엉덩이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니까 유독 이 장면을 업로드한건 작성자의 독단이 아니다. 작가의 의지반영이다.--
- 블리치/675화 . . . . 3회 일치
* 이때 요루이치의 움직임은 고양이 그 자체.
* 이 때문에 아스킨 나크 르 바르의 "면역" 능력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
* 우라하라가 주입한 "면역제"는 약 5분 정도 지속. 시간이 흐르자 고양이 상태의 요루이치도 괴로워한다.
- 블리치/678화 . . . . 3회 일치
* 제라드의 한 팔이 크게 썰려 나가는데 "대장이 줄줄이 와서 전멸 당했냐"며 자라키 켄파치가 등장한다.
* 다들 자기 능력 설명하다가 파홰 당해 죽는게 일상인 세계관이라 마치 작가의 자아비판처럼 들린다.
- 블리치/686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그 몸과 힘은 혼자의 것이 아니니 모든 것을 토해놓고 죽으라고 말한다.
* 그러자 "여기엔 너희의 힘이 필요없다는 얘기"라고 말하며 어서 가보라고 하고, 둘은 감사하다고 말하며 영왕궁으로 향한다.
* 자기들은 단지 이치고의 동료지만 저들은 이치고의 벗이 아니냐고 한다.
- 블리치/692화 . . . . 3회 일치
* 제라드는 초거대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힘을 잃고 뼈만 남긴채 쓰러진다.
* 우류는 자신은 그들과 함께 있는걸 골랐지만 거기엔 이해도 정답도 오답도 없다며 "우리는 친구니까"라고 답한다.
* 이제는 너도 슈테른릿터도 필요가 없다며 거기서 현세와 소울소사이어티가 자신에게 짓밟히는걸 보라고 한다.
- 블리치/694화 . . . . 3회 일치
* 그것은 "아우스발렌"의 희생자들이 남긴 것. 아우스발렌에 걸린 퀸시는 심장에 "은의 혈전"이 생겨 죽는데 이 화살은 그 혈전을 모아 만든 것이다.
* 그러자 유하바하는 "네 고뇌를 나에게 투영하지 마라. 이치고에게 패한것은 너"라고 꼬집는다.
* 유하바하는 자신과 싸우는데 아이젠에게 득이 될게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득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려는 것들을 쳐부순다"고 대꾸한다.
- 블리치/695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아이젠은 그가 "보이는 것"이라 말하는데, 갑자기 완전히 회복된 이치고와 천쇄참월이 유하바하의 목을 날린다.
* 유하바하는 렌지를 감싸는걸 보고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건 네가 싫어하는 패자의 습성"이라고 조롱한다.
* 아이젠과 힘을 합친건 잘한 일이지만 그 경화수월조차 자신에겐 미치지 못하며 렌지를 공격하는 여파에 팔이 날아간게 너라고 도발한다.
- 빗치 . . . . 3회 일치
* 성욕이 강하다. 여러 남자와 육체 관계를 가진다.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 쾌락과 금전을 요구하고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진다.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일부에서는 그냥 ‘처녀가 아니다’, ‘남자에게 약간 어필을 한다’는 것 만으로 빗치라고 부르는 극단적인 경우도 보인다.
- 사회 . . . . 3회 일치
한국에서 사회는 주로 후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사회라는 조직은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 거의 모든 범죄에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온갖 흉악범죄에 연관이 되어 있으며, 살인,강도,마약거래 등 온갖 흉악범죄에 사회의 책임이 끼어있어 정말로 사회의 책임이 없는 범죄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빈곤,집단괴롭힘 등 온갖 문제와 도덕에도 사회가 깊이 관여되어 있어 사회의 책임은 매우 크다.
이렇듯 여러 관점에 따르면 정말로 악랄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사회지만, 사회라는 조직은 아직도 자신이 죄악에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 서든어택 2/캐릭터 . . . . 3회 일치
그녀와 한 전장에 설 수 있다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기꺼이 맡겠다고 단언하는 과격한 용병 팬도 많다고 전해지며, 심지어 유명 용병 그룹 네 개가 제각각 그녀의 팬클럽을 자처, 누가 공식 팬클럽인지를 정하자며 소규모 전투를 치렀다는 소문마저 있다.
* 발자국 사운드 볼륨 조절
- 선풍기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에서는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키고 자면 [[저체온증]]이나 호흡곤란으로 죽는다는 [[미신]]이 있다. [[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0315/030020070315.1007112050.html|이를 이용한 자살 시도 사례도 있다.]]
[[분류:전자제품]]
- 성세현 . . . . 3회 일치
[include(틀:평창올림픽 대한민국 남자 컬링 국가대표)]
고등학교 때 컬링을 시작했다. [[의성군]]에 [[경북컬링훈련원]]이 생겼을 당시 의성공고에 부임했던 김양식 교사는 의욕이 없는 학생들에게 자신들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기 위해 컬링 동아리를 만들었다.[[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1951039|#]]
||<#CD7F32> 동메달 ||<#ffffff> 2009 가루이자와 ||<#ffffff> 팀 ||
- 세레브 . . . . 3회 일치
현재 '세레브'라는 단어는 구체적으로 연예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부자로서 우아한 생활을 하면서 명품을 가득 가지는' 등등으로 상당히 추상적인 의미를 뜻하고 있다.
[[셀레브리티]](celebrity)의 약자.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의 유명 인사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이러한 사람들이 쓰는 상품에 대해서 '세레브 납품업자'라는 말이 나타나서 패션 잡지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된다.
- 세조 . . . . 3회 일치
[[세종]]의 차남. 보통 대군 시절의 명칭인 '수양대군'으로도 많이 불린다. 소싯적부터 야심이 많았던 듯 부왕인 세종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고 전한다. 형 [[문종]]이 즉위한 뒤에는 야심을 숨기고 서거할 때까지 문종을 써킹해 가며 비위 맞추기에 바빴다.
민생을 돌보았다고 하나, 한편으로는 정권 탈취에 일조한 자신의 가신들에게 무제한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훗날 훈구파의 횡포를 낳게 된다. 비록 본인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권신들을 제어할 수 있었으나, 세조 서거 이후 왕통상의 혼란 등으로 인해 성종 시기에 들어서면 왕이 신하들에게 쥐여사는 '군약신강' 체제가 만들어지고, 그 반동으로 [[연산군]]이라는 막장 폭군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고 만다.
- 손석우(작곡가) . . . . 3회 일치
| 직업 = [[작사가]] <br /> [[작곡가]] <br /> [[기타 연주자]] <br/> [[영화 음악]]감독 <br /> 前 음반 기업가
손석우는 1920년 [[전라남도]] [[장흥군|장흥]]에서 태어났다. [[목상고등학교|전라남도 목포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목포 호남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41년에 작곡가 [[김해송]](金海松)의 소개로 조선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해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다. 이후 1957년에는 영화 《청실홍실》로 [[영화 음악]]감독 데뷔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2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흥군 출신 인물]][[분류:194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음악 작곡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목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손정혜 . . . . 3회 일치
[[기혼]]자이며 [[자식|슬하]]에 [[아들]] 1명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 자녀는 2명이라고 한다.[* http://yurajun.tistory.com/3740 ]
- 송정현 . . . . 3회 일치
|로마자 표기=Song Jung-Hyun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 쇼쿠오야 . . . . 3회 일치
청소년, 장애인에 대해서 직업을 지도하면서 동시에 보증인으로서 후견인이 되어주는 사람. 청소년이 취직할 때, 가족이 없거나 보호자에게 생활능력이 없는 경우 대신 보증인 역할을 담당했다. 지적장애자의 경우,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하여 장애인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생활이나 직업을 지도해준다.
- 숙녀 . . . . 3회 일치
[[한국어]]에서 '숙녀'라고 하면 '淑女'이지만, [[일본어]]에서 쥬쿠죠(じゅくじょ)라고 하면 '熟女'. 한자음이 둘 다 똑같이 '숙녀'이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 숙녀(淑女) : 교양과 풍격을 갖춘 여자.
[[분류:한자어]][[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스위스 방공호 . . . . 3회 일치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이므로, 대규모 방공호에는 방사능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시설, 취사 시설, 대기-식수 정화 장치, 숙박용 침대, 그 밖에 침대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갖추어져 있다. 좀 특이한 시설로는 비상시에 화장실 대용으로 쓰기 위한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양동이, 그리고 전기와 석유의 공급이 끊겼을 때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전거'''까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8/2007080800710.html 참조]]
2005년 스위스 의회는 건설 의무 조항을 폐기하자는 제안을 제출하였으나, 정부는 테러 집단이 핵무기를 쓸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기존의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자하 방공호이다. 융프라우 길목의 관광도시 루세르네 호수 옆의 소넨베르크 산에 건설되어 있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 . . 3회 일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프랜차이즈. [[워크래프트 시리즈]], [[디아블로 시리즈]]와 더불어 블리자드의 대표적인 게임 시리즈다.
* [[스타크래프트 II: 자유의 날개]]
- 스틸오션/미국 . . . . 3회 일치
>애틀랜타급 순양함은 원래 선도구축함으로 설계된 경순양함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효과적인 대공구축함이라는걸 증명해냈다. 애틀랜타급 순양함 총 네척과 개선형인 오클랜드급 순양함(Oakland-class) 네척이 발주되었다. 애틀랜타는 1942년 11월 13일에 일어난 과달카날 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격침되었다. 주노(Juneau)는 인디스펜서블 해협에서 후퇴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 I-19에게 격침되었다. 이때 사망자에는 설리반 오형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설리반 오형제의 죽음으로 미 전쟁성은 솔서바이버 정책[* Sole Survivor Policy. 형제들 중 전사자가 있을 경우 병역이나 전투병과에서 제외되는 정책.]을 채택한다.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본래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지만 워싱턴 해군 조약으로 인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두척의 렉싱턴급이 항모 전술 훈련에 사용되었다. 초도함인 렉싱턴은 산호해 해전에 참가해 한척의 일본군 항공모함을 격침시켰지만 자신도 피해 수습에 실패해 침몰하였다.
- 스틸오션/영국 . . . . 3회 일치
>왕립해군은 1916년 부터 1917년 까지 55척의 R-클래스 구축함을 건조했다. 이 숫자에는 이중 굴뚝을 장비한 개량형도 포함되어있었다. R-클래스 구축함은 초기 M-클래스 구축함의 개량형이었다. 두척을 제외한 대다수의 R-클래스 구축함이 1930년대 퇴역하였다. 레이디언트(Radiant)는 왕립태국해군에 넘겨져 1957년까지 현역이었으며, 스케이트(Skate)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기뢰부설함으로 개장되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살아남았다. 스케이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호위선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리벤지급 전함은 R급이나 로열 소버린급(Royal Sovereign class)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산 한계로 인해 그 전에 건조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보다 느리고 작았다. 총 여덟척이 계획되었지만 두척은 리나운급(Renown-class) 순양전함으로 변경되었고, 한척은 취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퀸 엘리자베스급이 받았던 대규모 개장을 받지 못하고 장갑과 대공포가 소량 추가되었을 뿐이다. 전시에도 대단한 활약은 하지 못했다. 로열 오크(Royal Oak)는 1939년 10월 스캐퍼플로(Scapa Flow)에서 독일 잠수함 U-47에게 격침되었고, 로열 소버린(Royal Sovereign)은 소련 해군에 공여되어 아르항겔스크(Arkhangelsk)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 스파이 스매셔 . . . . 3회 일치
수중, 지상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비행기인 자이로서브가 있으며 JLU에도 나왔다.
2대 스파이 스매셔. 여성으로 정말 다양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 거만한 성격이며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위험한 면을 지녔다. 1대와는 관계는 불분명하나 별명과 복장은 그에게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배트걸]]이었던 [[오라클]]과는 한때 대학 친구였으나 이상이 달라 갈라섰다. 이후 배트걸이 오라클이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해 일하라 강요하며 [[버즈 오브 프레이]]를 빼았으려 했다. 하지만 대차게 패했다.
- 시바 . . . . 3회 일치
'대자재천'이라고 한역되며, 신중의 하나로 묘사된다.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시장경제지위 . . . . 3회 일치
특정한 국가의 원자재, 제품 가격, 임금, 환율 등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정부의 간섭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성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제 체제를 갖추었다고, 교역 상대국이 인정해주는 지위를 뜻한다.
정부의 간섭으로 제품 가격을 조정하여 저렴한 가격에 수출할 경우, 수입국의 해당 산업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가격 차별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반덤핑 규제를 받기 쉽다.
- 식극의 소마/152화 . . . . 3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에리나]]는 [[나키리 아자미|아자미]]가 "이 변혁은 죠이치로부터 시작된 것"이란 말에 혼란스러워 한다. [[유키히라 소마|소마]]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것만 따른다고 일축
- 식극의 소마/156화 . . . . 3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쿠스노키가 최첨단 조리기구를 잘 다룰지 의문을 표하지만 쿠스노기는 이것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요리한다
* 소마도 쿠스노키의 실력을 인정하고 쿠로키바는 조용히 자신의 요리만을 보고 있다
- 식극의 소마/163화 . . . . 3회 일치
[[식극의 소마]] 163화. '''정점을 노리는 자'''
* 아자미는 요리라고 할 수 없는 "먹이"를 내놓는 식당들은 존재해선 안 되며 일본의 미식을 진보시키기 위해선 꼭 선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한다.
* 밝혀진 아자미의 야망은 묘하게 쪼잔하고 중2스럽다.--[["소년 점프"같은 잡지]]의 [["토리코"옆동네]]에서 지구를 조리하는 스케일 좀 본받아라.--
- 신겐모치 . . . . 3회 일치
야마나시 현의 과자가게 키쿄우야(桔梗屋)에서 만들어진 키쿄우신겐모치(桔梗信玄餅)가 유명하다. 다만 신겐모치(信玄餅) 자체는 킨세이켄(金精軒)이라는 가게의 등록상표이다.
[[분류:일본 과자]]
- 심령 스팟 . . . . 3회 일치
심령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를 뜻한다.
대표적인 심령 스팟으로는 [[런던탑]], [[후지산]]의 [[주카이 숲]]이 있다. [[폐가]], [[흉가]] 등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폐병원, 폐학교, 폐터널, 폐탄광 등도 심령 스팟에 자주 들어간다.
[[심영]] 스팟이 아니다.--가면 고자가 되는 장소-- --이쪽이 더 무섭다.--
- 쌍둥이 . . . . 3회 일치
한 어머니의 탯속에서 두 명 이상의 아이가 한꺼번에 태어나면 그 아이들을 쌍둥이라고 부른다. 세 명 이상이 태어나면 '세 쌍둥이' 하는 식으로 따로 숫자를 덧붙인다. 수정란이 분화 과정에서 각각의 개체로 분열하여 태아가 된 것을 일란성 쌍둥이, 두 개의 난자가 각각 수정하여 태아가 된 것을 이란성 쌍둥이라고 한다.
서브컬쳐에서는 대개 일란성 쌍둥이나 혹은 남녀 쌍둥이 쪽을 주로 다루며, 쌍둥이만의 독특한 기믹(교감능력 등)을 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담으로, 쌍둥이라는 이유로 캐릭터 디자인을 합법적으로 돌려가며 써먹을 수 있다.~~
- 아스팔트 우파 . . . . 3회 일치
이 단어는 제도정치권의 보수 정당들과, 재야 정치단체의 차별화를 노리고 나타났다. 소위 '아스팔트 우파'들은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과 타협하고 투쟁정신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이들을 '웰빙 보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을 아스팔트 우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제도권 정당에 소속된 특정 정치인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에도 대한민국에 우파 정치단체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현존하는 아스팔트 우파와는 크게 관련성이 없다. 제1공화국 시기 [[자유당]]과 연계된 [[이정재]]의 [[화랑동지회]] 등 [[정치깡패]] 부류의 조직이 존재했으나, [[조직폭력배]]로서 처단, 와해되어 현재의 아스팔트 우파들은 이러한 조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군사정권 시기에 정부에서는 우익성향을 가진 관변단체를 만들었으나, 민주화 이후로 이들은 대부분 몰락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고 현재의 조직들은 이러한 단체들과의 연관성이 모호하다.
[[대한민국]]에서 '아스팔트 우파'를 자칭하는 단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주로 조직되고 나타나게 되었다. 주로 사안에 따라서 정부나,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시위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로 위장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정계의 압박에 따라서 [[전경련]] 등에서 지원을 받는 등, 이면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의 지원과 지시를 받고 있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0656.html (참조)]]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정치인]]이다. 현직 경기도 [[의정부시]]장으로 당적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의정부시에서 열리는 행사들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특별 명함을 나눠준다. 5개를 모으면 [[짜장면]]을 사준다고 한다. 평소에 민심을 많이 생각하는지 돌아다니는 빈도수가 많아 5개를 모으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걸 들고 어디로 가냐가 문제지... ~~들고 시청으로 동시에 진격하면.. 기삿거리 생겼다고 좋아한다~~
[include(틀: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안효민 . . . . 3회 일치
* [[달의 요정 세일러문 (애니메이션)|달의 요정 세일러문 R]] - 지배자
* [[변두리 로켓]] ([[채널J]]) - 내레이션 / 자이젠 / 에바라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알 카에다 . . . . 3회 일치
알 카에다는 [[시아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으며, 수뇌부는 시아파 역시 같은 무슬림이므로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고 있다. 이는 알 카에다가 [[이슬람 국가]]와 결별하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인데, 2003년에 이라크 알 카에다(AQI)[* 후일 이슬람 국가의 모태가 된다.]의 수괴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2006년 사망]가 시아파를 노리고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렀을 때, 빈 라덴은 '불량한 두목'이라고 부르며 자르카위를 비판한 사례가 있으며 결국 알 카에다와 이슬람 국가가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04/0200000000AKR20160704184600111.HTML (참조)]]
- 야마토 운수 . . . . 3회 일치
[[일본]]의 택배업체.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가는 부모 고양이를 디자인한 마크로 유명하여, 쿠로네코 택배(クロネコ宅配)라고도 불린다. 1919년에 창립되어 2019년이면 역사가 100년이 되는 장수 기업.
배달원들은 [[자전거]]에 [[리어카]]를 연결해서 만든 배달용 자전거를 사용하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3회 일치
하지만 민족주의, 개혁사상을 배척하는 부르봉 왕조의 통치는 불안정하여, 1820년, 1848년에 부르봉 왕조의 통치에 반발하는 혁명이 일어났으며, 결국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 명의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군에게 승리를 거두자, 이미 불만이 팽배하던 시칠리아 전역에서 호응이 일어나 양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상실한다.
붉은 셔츠 부대는 시칠리아에서 남 이탈리아에 상륙, 나폴리 왕국군과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북쪽에서 사르데냐 왕국군이 남하해오자 결국 나폴리 왕국 마저 항복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은 붕괴하고 만다. 두 지역은 신생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양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레옹 시대의 [[헌법]]을 폐기하고, 나폴리에 있는 중앙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치하에 놓였다. 시칠리아에서는 자치를 요구하는 분리 운동이 시작되었다. 역대 왕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여, 민족주의나 개혁사상을 배척하고 오래된 사회, 정치 구조를 유지하려는 통치를 유지했다.
- 양일환 . . . . 3회 일치
'''양일환'''(梁日煥, [[1961년]] [[6월 10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이다. [[1990년]]부터 잠깐의 휴식기였던 [[1999년]] ~ [[2000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코치로 재임 중이다.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입원하여 시즌을 마감한 [[장효조]] 2군 감독을 대신해 후반기 [[한국 야구 퓨처스리그|퓨처스 리그]]를 이끌었다.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피해자는 40여일 동안 감금되어 처참한 학대를 당했으며, 피해자가 사망하자 범인들은 시신을 드럼통에 담고 콘크리트로 덮어서 유기하려 했다.
- 오석락 . . . . 3회 일치
{{공직자 정보
'''오석락'''(吳錫洛, 1934년 ~ 2014년 3월 25일)은 제20대 [[청주지방법원|청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전 대법원 판사와 동서지간이며, 전 법무장관의 매제다.<ref>[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0962 법률신문 2014년 4월 3일자]</ref>
2002년쯤 수혈을 받다가 C형간염의 보균자가 되었고 이후 간경화가 진행되어 1년정도 투병하다 2014년 3월 25일 사망했다.<ref>[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191]</ref>
- 오소영 (조각가) . . . . 3회 일치
| 자녀 = [[타다빈]](첫째아들), [[타필립 (1991년)|타필립]](둘째아들)
*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학사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타씨]][[분류:살인 조각가]][[분류:1982년 데뷔]][[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오승희 . . . . 3회 일치
'''오승희'''(吳承姬<ref name="hanja">[https://www.facebook.com/Umusic.JKPOP/photos/a.260040747449.141783.251736272449/10154571559607450/?type=3 모닝구 무스메 한자 자필]</ref><ref>[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1/2017082102498.html [더스타프로필] 오승희 "모닝구 무스메만의 리얼리티 찍고 싶다…빅재미 드릴 것"] {{웨이백|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1/2017082102498.html |date=20170912003602 }} 2017-08-25</ref>, [[1995년]] [[10월 10일]] ~ )는 일본의 가수로, [[모닝구 무스메]]의 서브보컬이다.<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aWRTsHtA9zY|title=Debut Greeting at 모닝구 무스메 SHOWCASE|first=|last=보따리 bottari|date=2015-03-25|publisher=|accessdate=2017-08-12|via=YouTube}}</ref><ref>{{웹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now/read?oid=311&aid=0000587211|title=[XP★SHOT] 모닝구 무스메가 궁금해? 안전담당부터 보호본능까지③|publisher=xportsnews|date=2016-03-15|accessdate=2017-08-12}}</ref><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y0Rau6SssxE|title=칯트키 Live - “PRODUSORN” EP02: LIFE AS A GIRL GROUP|first=|last=Cube Ent|date=2017-04-25|publisher=|accessdate=2015-03-18|via=YouTube}}</ref><ref>{{웹 인용|url=https://m.facebook.com/모닝구 무스메.UnitedCube/photos/a.1511382879116331.1073741828.1489401217981164/1558678227720129/?type=3&source=54|title=CLC Facebook:Seunghee|date=2017-03-14}}</ref><ref name=supertv>2018-04-06,XtvN,SUPER TV EP11,「메인래퍼、은지」「센터、은지」「리드보컬、모닝구 무스메」「리더、모닝구 무스메」。</ref>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도쿄도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여자 가수]][[분류:일본의 가수]][[분류:일본의 아이돌]][[분류:1997년 데뷔]][[분류: 충쿠 소속]][[분류:모닝구 무스메의 일원]]
- 오정환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자양중학교]]
* [[자양중학교]] 재학 시절 사촌 형인 [[오지환]]의 경기에 시구를 한 적이 있다.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
- 옥중결혼 . . . . 3회 일치
감옥 내에서 결혼을 하는 행위. 감옥 내에서 수감자들 간에 하는 경우와, 감옥 밖의 이성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 수감자들 간의 결혼 ===
=== 수감자와 일반인의 결혼 ===
- 왓치맨 . . . . 3회 일치
1985년 10월 12일, 에드워드 블레이크라는 남자가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져져 사망한다.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히어로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히어로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을 죽인 자를 찾기위해 과거에 활동하던 히어로와 빌런을 찾아다닌다.
* 에드가 W. 자코비/몰라크
- 왕당파 . . . . 3회 일치
* 귀족, 성직자 등 왕정의 기득권 세력이 핵심 인력풀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다만 왕당파가 곧 기득권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층민들 가운데서도, 공화제 이념에 의식화 되지 않았거나, 봉건적 충성심에 감화되어 왕당파를 지지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영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영국 내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의회파와 왕당파는 수차례 복권과 혁명을 거듭하며 경쟁하였으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절대주의 왕당파는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로 분리되었고, 명예혁명으로 성립된 영국 왕실은 의회를 존중하여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절대주의 왕당파는 더 이상 영국 정계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왕실을 지지하느냐, 영국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느냐에 따라서, 왕당파와 독립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독립전쟁이 미국의 승리와 독립으로 끝나자, 미국 지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도망치게 되었다.
- 왕자 . . . . 3회 일치
왕의 아들. 보통은 정실 소생이나 후궁 소생을 가리지 않고 분류하지만, 문화적으로 적서(嫡庶) 구분이 강한 경우에는 정실 소생만을 왕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왕, 혹은 왕의 자격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 '패자'(覇者)와 비교하면 좀 더 선천적이고 온유한 느낌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 외도 . . . . 3회 일치
본래 불교용어로서, 당대에 불교 이외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을 뜻했다. [[불교]]가 탄생하던 시기는 [[인도]]에서 [[인도철학]]의 발전으로 아리안족의 전통적인 [[바라문교]]에서 벗어난 새로운 종교·사상이 많이 탄생하던 시기였다. 불경에서는 불교 이외에 당대의 신흥 종교나 철학을 육사외도(六師外道), 구십오종외도(九十五種外道) 등으로 언급하였으며, 불경은 불교중심적인 관점으로 쓰여졌으므로 다른 가르침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서술하였다. [[바라문교]], [[자이나교]] 등이 불경에서 언급되는 대표적인 외도이다.
외도(外道)란 본래 불교 외의 다른 사상가를 뜻하는 말이었으므로, 논쟁의 여지는 있어도 외도 자체가 악(惡)하다는 의미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불교가 조직화 되면서 불교 중심적 관점에서 외도라는 단어는 비방하는 뜻이 강하게 담기게 되었으며, 불교를 폭력적으로 공격하거나 모욕적으로 비방하는 자들에게도 외도라는 말을 쓰게 되어 매우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게 됐다.
- 요괴:닭둘기 . . . . 3회 일치
[[공원]] 같은 곳에서 자주 나타나며, 새이면서 걸어다니는 요사한 행동을 벌여서 사람들을 놀래킨다. 달려들거나 돌을 던지면 잠깐 나는 듯 하다가 어느새 다시 내려와 주위를 배회한다. 과자를 뿌려서 소환할 수 있으며, 가끔 닭둘기를 소환하여 사역하는 음양사들이 공원에 출몰한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며, 주변을 지나가면 온갖 먼지를 흩뿌려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또 몸에 붙어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로 각종 질병을 퍼트리기도 하여, 요사하고 무서운 흉조(凶鳥)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욕창 . . . . 3회 일치
압박 때문에 피부에 혈액이 흐르지 않게 되어, 그 부분에 [[궤양]]이 일어나서 손상되는 상태. 스스로 몸의 방향이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자주 생기며, 특히 [[노인]]에게 많이 일어난다. 뼈가 돌출되어 피부에 압박이 가기 쉬운, 허리, 엉덩이, 발 뒷꿈치, 발목, 팔꿈치 등이 욕창이 생기기 쉬우며, 침대, 휠체어, 깁스, 부목 등이 피부에 압박을 가하는 지점에도 발생하기 쉽다.
정상인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중에 몸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욕창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비]] 상태, [[혼수]] 상태에 있거나, 매우 쇠약한 사람, 구속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욕창이 생기기 쉽다. 피부가 당겨지거나, 마찰을 일으키거나, 습기에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도 나타나기 쉽다.
초기 단계에서는 압박을 없애면 자연 치유가 된다. 상처 부위에는 드레싱을 하며,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소독한다. 깊은 욕창은 치료가 어려워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감염이 일어나면 [[항생제]]를 투입한다.
- 우천석 . . . . 3회 일치
[[충렬왕]](忠烈王)조에 전라도안렴부사(全羅道按廉副使)를 거쳐, [[1280년]](충렬왕 6) 감찰잡단(監察雜端) 진척(陳倜)을 비롯한 감찰사(監察司)의 관원들이 유배 또는 파직되자 낭장에서 감찰잡단으로 승진했다.<ref>『고려사』 「충렬왕세가」</ref>
이후 관직이 전리정랑(典理正郞)에 이르렀으며, 후손들이 귀해지자 [[문하시중|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었다.<ref name=a/>
'''※'''근거 자료는 『씨족원류』이다.
- 우치데노코즈치 . . . . 3회 일치
이것은 독립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른 지방을 방문한 사람이 뭐든지 나오는 작은 망치를 선물로 가져와서 --대체 어느 동네냐-- 그걸로 쌀과 창고를 꺼낸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망치를 빌려가서, "쌀, 창고(米코메、倉쿠라)"하고 빠르게 말하면서 빠르게 소리치자, 망치는 코메쿠라라고 인식하여, 작은 장님(小盲, 코메쿠라)이 척척 나오더니, 할아버지를 죽여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집에 돌아와니까 할머니가 먹을게 필요하니 쌀을 달라고 하여, 할아버지는 무심코 「쌀, 한말여덟되. 바바아(米、一斗八升。ばばあ)」라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갑자기 아름다운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둘이서 먹을 것도 부족한데 사람이 하나 더 나오다니 곤란하다. 라고 할아버지가 생각했는데, 그 아주머니의 콧구멍에서 쌀이 좔좔 흘러나오더니 --그로하다-- 아주머니는 쌀에 묻혀서 사라져 버렸다. 그 아주머니도 쌀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바바아, 한말여덟되(ばばあ、一斗八升)』라고 하여 한말여덟되의 쌀이 아주머니에게서 나왔던 것이다.[[http://kanbenosato.com/minwa/kancho_200610.html (참조)]]
- 울산광역시 . . . . 3회 일치
|한자 = 蔚山廣域市
! 자치구·군 ! ! 한자 ! ! 면적 (km<sup>2</sup>)! ! 세대 ! ! 인구 (명)
- 원피스/818화 . . . . 3회 일치
* 니코 로빈이 포네그리프의 해석을 마치자 네코마무시는 이 '''붉은 포네그리프는 "로드 포네그리프"이며 "라프텔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거'''라고 밝힌다.
* 비록 어떤 내용을 남긴 건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그 문자를 읽는 방법은 전해지고 있었다
* '''선대 다이묘 코즈키 오뎅은 해적왕 골 D. 로저와 함께 라프텔에 도달해 "세계의 비밀을 알아낸 자"였다.'''
- 원피스/821화 . . . . 3회 일치
사무라이들과 조우에 도착한 [[밀집모자 해적단]] 일당은 [[카이도]]의 부하 가뭄의 잭의 백수 해적단에게 공격을 받는다.
*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즈니샤 그 자체!'''
* 한편 누군가 전보 벌레로 통화하는데, 상대방은 "잭의 통신이 바다에서 갑자기 단절됐다"며 그를 카이도라고 부른다
- 원피스/823화 . . . . 3회 일치
* 중매자리를 준비하는 등 딸이 얼른 사위를 데려왔으면 싶은가 본데 비비는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 돈칭자오의 나라 웨스트 블루의 "꽃의 나라"는 중국풍.
* 드레스 로자도 참석을 준비하고 있으나, 비올라, 레베카가 참석하려고 한다.
- 원피스/824화 . . . . 3회 일치
* 게다가 루피가 대량으로 조리한답시고 일주일치 싹 써없애서 갑자기 식량난에 시달리게 됐다.
* 상디는 아버지를 "개자식"이라 부른다.
* 빅맘 해적단 따위에게 만들어줄 밥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데, 빅맘 해적단의 "비트"라는 자가 약혼녀 사진을 가져온다.
- 원피스/878화 . . . . 3회 일치
* 페드로는 자폭으로 페로스페로의 사탕 코팅을 벗겨내고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의 발도 묶는다. 죽어가던 [[브룩]]과 [[쵸파]]도 간신히 해방.
* [[몽키 D. 루피]]는 페드로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일댕을 먼저 출발시키고 자신은 카타쿠리와 싸우는데 전념한다.
- 원피스/880화 . . . . 3회 일치
* [[샬롯 브륄레]]는 써니호와 연결된 또다른 거울을 발견하고 습격하려 한다. [[몽키 D. 루피]]가 그 거울을 깨뜨리려 하지만 [[샬롯 카타쿠리]]의 방해로 실패. 루피는 깨뜨렸던 거울의 파편을 발견하고 그걸로 [[나미(원피스)|나미]]에게 "써니호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부숴라"는 지시를 내린다. 루피는 이제 곧 적들이 다시 몰려가기 시작할 거라 경고하고 그렇게 되면 혼자서는 막을 수 없으니 적의 침입을 막고 자신이 카타쿠리와 결전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나미는 루피의 말을 일행에게 전달하고 보이는 거울마다 몽땅 깨뜨리려고 하지만 이변이 닥친다. 빅맘 [[샬롯 링링]]이 바다 자체에 소울을 부여해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켜 써니호를 덮친다. 그 광경을 본 나미는 절망해 거울을 통해 루피에게 "이젠 틀린 것 같다"고 전하는데.
- 원피스/888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갑자기 [[캐럿(원피스)|캐럿]]이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나서는데, 그 이유는 "만월"이기 때문. 캐럿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 [[쵸파]]를 비롯한 밀집모자 일당은 그 모습에 할말을 잃는다.
- 유승민(배우) . . . . 3회 일치
|형제자매 =
|배우자 =
|자녀 =
- 육홍균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북도 선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민주국민당 중앙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우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윤정희(1980) . . . . 3회 일치
* [[2005년]]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 ... 이자경 역
* [[2007년]] [[KBS2]] 주말드라마 《[[행복한 여자 (2007년 드라마)|행복한 여자]]》 ... 이지연 역
- 윤천주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관료, [[정치인]]이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192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가나자와]]의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815해방으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정치학자]]
- 은혼/577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삼자대면.png
* 가구라와 카무이가 혈전을 벌이고 우미보즈는 모든 게 자신이 가족을 떠나서 생긴 일이라 생각하며 망연해 한다
* 자식들의 혈투를 막으려는 우미보즈의 부성애가 인상적.
- 은혼/649화 . . . . 3회 일치
* 우츠로는 용맥의 움직임이 극격히 안정화되는 걸 발견하고 뜻밖의 방해자를 눈치채는데, 바로 용맥의 수호자인 아네 모네 자매와 이누가미였다.
- 음모론 . . . . 3회 일치
* 유대인은 자본을 동원해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이 이들을 막을 수 있다.
* 목성에서 온 랩틸리언이 우리 사이에 뿌리내렸다. 랩틸리언은 권력자로 위장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버락 오바마 등의 인물들이 랩틸리언이다.
- 이광호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이광훈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로마자 표기= Lee Kwang-Hoon
이광훈은 [[포항 스틸러스]] 산하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쳤으며, 2011년 [[K리그 주니어|SBS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는 17경기 13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포철공고의 챌린지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축구 명문 포철공고 ‘고교 최강자 등극’|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314967 |출판사=세계일보 |date={{날짜한글화|2011-10-03}} }}</ref>
{{둘러보기 상자 묶음
- 이국철 . . . . 3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2010년 11월 [[창원지방법원]]은 뇌물 공여와 허위 공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회장 이국철과 이국철의 형인 대표이사 이 아무개를 대상으로 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ref>《뉴스1》(2011.09.21) [http://news1.kr/articles/124759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누구?]</ref>
- 이병석(정치인) . . . . 3회 일치
2013년 2월에는 [[국회의장]] 직무대리로 본회의를 진행하던 도중 [[동남 방언]] 특유의 발음으로 본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덕분에 그 동안 치열하게 치고 받던 여야가 모처럼 [[위 아 더 월드]]를 이루기도. 사실 맨 처음에 쌀 소득을 '''살 소득'''으로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병석 부의장은 [[엄근진]] 모드를 유지했지만 주변에서 웃기 시작하자 '''정작 본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심지어 소 싸움을 '''소 사움'''으로 읽고 나서 본인이 빵 터지는가 하면 아예 '''"난 죽을 때까지 그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라고 [[자폭]]하는건 덤. ~~자세히 들어보면 웃음을 참느라 그런건지 발음을 '''발은'''에 가깝게 발음한다.~~
- 이승현 (1985년 7월) . . . . 3회 일치
|로마자 표기=Lee Seung-Hyun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07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후 슬럼프를 겪기도 하였지만,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7년]] [[터키 수페르리그]]의 [[베식타시 JK]]로부터 이적설이 떠돌기도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41406 박병규-조용형-이승현, 터키 무대서 '러브콜' ]</ref>
- 이예린 (1974년) . . . . 3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1994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원석(1981년) . . . . 3회 일치
*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드라마)|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2010년, MBC) - 자니 킴 역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동구(인천) 출신 인물]]
- 이인민 . . . . 3회 일치
'''이인민'''(李仁敏, [[1330년]] ~ [[1393년]])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호는 모은(慕隱)이며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다. 대제학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인복]], [[이인임]]의 동생이며 [[이숭인]]의 당숙이다. 경상북도 출신.
공민왕 9년(1360년) 문과에 급제, 우왕 9년(1383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고 문하평리 겸 대제학(門下評理兼大提學)에 올랐다. 1388년 최영(崔瑩)ㆍ이성계(李成桂)에 의해 형 [[이인임]](李仁任)이 숙청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1388년 공양왕의 즉위 이후 석방되어 관작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공양왕 2년(1390년) 윤이(尹彛)ㆍ이초(李初)의 옥사(獄事)에 관련,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이듬해 국대비 왕씨(國大妃 王氏)의 생일에 사면령이 내려져 특사, 풀려났다. 그 뒤 경외종사관(京外從使官)이 되었다가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지냈다.
- 이자연(가수) . . . . 3회 일치
[[1986년]]에 [[나훈아]]의 곡인 「내당신」을 개사한 「당신의 의미」로 데뷔하였다. 이후 「여자는 눈물인가봐」, 「구름같은 인생」, 「찰랑찰랑」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 젊은 시절부터 [[가수]] 활동을 하느라 대학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수시 1차 신입생 모집 연기자 전형에 응시, 예술문화대학 예술학부에 합격했다. 이후 언론홍보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여자는 눈물인가봐
- 이장섭 . . . . 3회 일치
'''이장섭'''([[1963년]] ~ )은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 공무원이다. [[1986년]] [[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지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노영민]]의 보좌관, 국회의장 비서실 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 [[이사관]]급 상당)에 임명되었다.
* [[2017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
- 이재율 (1993년)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4월 2일]]<br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KIA 타이거즈|KIA]]전 대주자
[[2016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손시헌]]의 안타 후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 도루는 2016년의 팀 내 첫 도루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권태영|제목= NC 구창모·박준영·이재율 성공적인 데뷔전|url=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76362 |뉴스= 경남신문|출판사= |위치= |날짜= 2016-04-02|확인날짜= 2016-04-09}}</ref>
- 이종근(1923) . . . . 3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주공화당 부총재, 대한민국 국회 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이종원 (1953년) . . . . 3회 일치
'''이종원'''(李鍾元, Lee Jong Wong、[[1953년]] ~ )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정치학자]]이다.
* [http://www.rikkyo.ne.jp/grp/cri/ken/vin/lee_j.html 연구자 정보:lee_j(릿쿄대)]
[[분류:일본의 정치학자]][[분류:일본의 역사가]][[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대학 교수]][[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국제 기독교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교수]][[분류:도호쿠 대학 교수]][[분류:릿쿄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혁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현욱(배우) . . . . 3회 일치
|형제자매 =
|배우자 =
|자녀 =
- 이홍우(1959) . . . . 3회 일치
|| '''경력''' ||[[민주노총]] 사무총장[br][[진보정의당]] 최고위원[br][[정의당]] 노동위원장[br][[현대자동차]]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br][[심상정]] 대통령후보 노동선대본부장[br][[정의당]] 경기도지사 후보 ||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전 노동운동가이다.
현대자동차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 인순이 . . . . 3회 일치
가족 배우자 박경배
데뷔 1978년 희자매 정규 앨범 '희자매 1집'
- 인왕 . . . . 3회 일치
[[금강역사]]의 별칭. [[절]]로 들어가는 문의 좌우에 서있다. 그림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서 세운다. 일본어로는 '니오우'라고 부르는데, 한자를 인왕이 아니라 이왕(二王)으로 쓰기도 한다. 절의 수호신격 같은 위치에 있다.
본래 단지 부속적인 수호신이므로 금강역사 자체가 숭배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본에서는 건강한 모습 때문에 건강을 수호하는 신, 다리가 튼튼해보이므로 '건각의 신'으로서 숭배되기도 한다. 짚신을 공양하여 건강해지거나 다리가 튼튼해지길 기원하거나, 커다란 짚신을 걸어놓고 만지면 다리가 튼튼해진다고 신앙하기도 한다.
분황사지 9층 석탑 같은 경우, 금강역사 한 쌍에 사자 4쌍으로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탑'을 지키는 구조가 되어 있다. 사천왕 등이 나타나면서 금강역사는 점차 밖으로 밀려나서 절의 비교적 바깥 쪽에서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3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를 순간이동시켜 달라고 하지만 그럴 틈을 찾을 수 없다.
* 멜리오다스는 일단 연막을 친 뒤에 도망치려고 하는데 그 자리를 벗어나도 금방 원래 있던 자리로돌아온다.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3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길프로스트에게 부탁해 멜리오다스가 쓰러진 현장에 도착한다.
* 그것을 발견한 엘리자베스는 오열한다.
* 메라스큐라 사망 확정. 에스타롯사가 반이 안 죽였으면 자기가 죽였을 거라고 인증까지 해준다.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3회 일치
일본어는 한국어와 달리 기본적인 자음 구분을 서양 언어들처럼 유성음(voiced)과 무성음(voiceless)으로만 구분한다.
か행, た행, は행이 청음으로 분류되며 그중에서 は행은 원래 그 자체가 /p/소리였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로 순음퇴화 현상을 거치면서 현재의 /h/가 되었다. 현재 /p/음가는 '반탁음'으로 분류하며 は행 위에 고리 모양의 기호를 붙여 표기한다.
음절 위치나 화자의 컨디션에 따라 한국인 귀에는 상당히 변화무쌍하게 들린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어의 청음은 숨소리(aspiration)가 우리말의 평음보다는 약간 높되, 격음보다는 낮은 음가이다. 진짜 일본인들과 같은 느낌으로 발음하는 방법은, '''카, 타를 소리내면서 힘을 살짝 빼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서 어두 청음 표기를 탁음과 구별 없이 무조건 '가, 다'로 정해버린 이유가 이것 때문인 듯 하다(...)
- 일본의 대학서열용어 . . . . 3회 일치
도쿄의 5개 명문 사립대학을 묶은 용어이다. 다음 5개 대학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이다.
한자의 첫 글자를 따서 명청입법중(明青立法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 임신균 . . . . 3회 일치
임신을 한 사람에게 접근하면, 자신도 임신을 하기 쉬워진다는 속설을 뜻한다. 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속설상으로는 '균'이라기보다는 '기운'에 가까운 이미지로 여겨진다.
과거에는 시골에서 [[돌하르방]]이나 각종 문화재(…)를 갈아서 --문화재 파괴-- 그 가루를 자식 혹은 아들을 낳는 약이라고 쓰거나, 자식을 낳는 여러가지 비법이 쓰였다는 점에서 볼 때, 한 때 [[가족계획]]이라는 저출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문화로 위축되었던 이 같은 임신과 관련된 속설과 미신이 [[저출산 고령화]]로 임신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압력이 강해지면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임현성 . . . . 3회 일치
*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 [[마수동]] [[병장]] 역
* 2007년 파란 자전거
* 2012년 자칼이 온다
- 장솜이 . . . . 3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용석 . . . . 3회 일치
'''장용석'''은 1993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최우등<ref>[http://web.yonsei.ac.kr/yongsukjang/Vita.htm ''Vita''], 연세대 행정학과 장용석 교수 홈페이지, 2008년 8월 </ref> 으로 졸업한 뒤, 2001년 [[스탠포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다. 지도교수였던 [[신제도주의]] 이론의 대가 [[존 W. 마이어]](John W. Meyer)와 사회연결망 연구의 권위자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영향 아래, [[거시조직]] 및 [[국가비교]] 연구 등에 주로 관여하였으며,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및 [[투명성]]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대표 연구로는 The Worldwide Founding of Ministries of Science and Technology, 1950-1990 (2000)와 Sources of Rationalized Governance: Cross-National Longitudinal Analyses, 1985-2002 (2006)이 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유타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하였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조교수 및 부교수로 재직하였다.
[[분류:196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행정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
- 장의수 . . . . 3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재훈 . . . . 3회 일치
<ref name="osen 2013-12-23">{{뉴스 인용 |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749316 | 제목=한화, 미래를 기약한 '조기 군입대' 정책 | 저자=이상학 | 뉴스=OSEN | 출판사=머니투데이 | 날짜=2013-12-23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25061604/http://osen.mt.co.kr/article/G1109749316 | 보존날짜=2016-11-25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osen 2012-02-09">{{뉴스 인용 |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50612 | 제목=윤요섭·이지모·전유수 개명, 제2의 손아섭 될까 | 저자=이상학 | 뉴스=OSEN | 출판사=머니투데이 | 날짜=2012-02-09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25060759/http://osen.mt.co.kr/article/G1109350612 | 보존날짜=2016-11-25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sbs sports 2012-05-10">{{뉴스 인용 | 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185373 | 제목=프로야구, 이름 바꾼 선수들의 전성시대 | 저자=정진구 | 뉴스=SBS스포츠 | 날짜=2012-05-1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25061002/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185373 | 보존날짜=2016-11-25 | 깨진링크=아니오 }}</ref>
- 장진용 . . . . 3회 일치
'''장진용'''(張盡榕<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448 |날짜=2009-03-10 }}</ref>, [[1986년]] [[1월 28일]] ~ )은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질롱 코리아]]의 [[투수]]이다. 2군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1군에서는 부진한 모습만 보이기로 유명했다.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 장희진 (1944년) . . . . 3회 일치
* [[2008년]] 《[[땀의 순교자 탁덕 최양업]]》 ([[평화방송]])
* [[계성여자고등학교]]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동문]]
- 전국 BASARA . . . . 3회 일치
상자를 깨거나 특정 킬수[* 게임 내에서는 人斬이라고 표시된다.]를 달성하면 나오는 아이템.
농민 반란의 리더인 여자아이. 여신님이 내려준 거대한 망치를 사용한다. 천하통일 모드에서 승리하면 이제 필요 없다며 망치를 여신님에게 돌려준다.
* 자비
- 전기의자 . . . . 3회 일치
[[사형]] 도구의 일종. 사람을 감전사시키기에 충분한 양의 전기가 통하는 의자다.
[[직류]]를 지지하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교류]]를 지지하는 경쟁자 [[니콜라 테슬라]]를 엿먹이기 위해 발명했다. "여러분 교류가 이렇게 위험합니다!"를 보여주기 위해 교류 발전기를 사용해 만들었다고.
최초의 전기의자형 집행은 엄청 서툴렀다고 한다. 사형수를 한번에 죽이지 못해서 몇번이나 전기를 흘러보내야 했다고.
- 전동휠 . . . . 3회 일치
두발 자전거보다 외바퀴 자전거가 타기 어렵듯이 이 문제는 어쩔 수 없을듯.
* 나인봇: 어딘가의 터릿이 생각나는 매끈한 디자인이 특징. 이전부터 세그웨이 짝퉁들을 의욕적으로 내놓고 있으며 [[http://www.cnet.co.kr/view/131959|최근]] [[러시아식_유머|이 짝퉁 회사가 세그웨이를 잡아먹었다!]]
- 전상렬 . . . . 3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KBO 타자|91465}}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3회 일치
* 효부 쿄스케는 오염물질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도망다니고 있다고 본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마츠카제가 소변보는 틈을 통해 몸에서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 그래서 관련자 전원을 아무리 조사해도 결국 단서는 없을 거라고 추측한다
* 효부는 최종후보 3인 중 배신자가 있을 걸로 확정하고 있는데, 사카키는 그 점을 아니꼬와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35화 . . . . 3회 일치
* 후지코는 깨어나자마자 경보가 시끄럽다며 쉘터를 박살내며 날뛴다.
* 깨어난 후지코는 쉘터를 박살내며 날뛰는데 경보가 더 커지자 "이딴 시설 아무런 의미도 없고 바벨째로 날려 버리면 나아질 거다"라면서 일대를 박살내려 한다
- 정동현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정무식(정치인) . . . . 3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며 [[육군정보학교]] [[교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중앙정보부]]에서 대구[[대공분실]]장, 제3국장, 정보부장 특별보좌역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조규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9년 6월 권오태가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자 해당 지구당위원장직에서 사임하였다. 그리고 원양어업협회 [[회장]]이 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3년 해금되었다.
- 정병희 . . . . 3회 일치
역삼초등학교와 휘문중학교를 거쳐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휘문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1년]], [[우규민]]과 함께 팀 내 주축 [[투수]]로 활약하면서 제 55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에 기여한다.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85963 한화, 정병희와 입단 계약] 《한국일보》, 2001년 7월 13일</ref> [[2005년]] 시즌 후 [[내야수]] [[김민재 (1973년)|김민재]]의 보상 선수로 이적했다. 이후 입대하여 [[2010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었다.
- 정상헌 . . . . 3회 일치
[[2013년]] [[6월 26일]] 자신을 무시하는 처형을 목졸라 살해한 후 3일 뒤인 [[6월 28일]] 밤 10시 사체를 인근 야산에 암매장 해 살인 및 사체를 유기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0544709 '처형 살해' 전 프로농구 선수 징역 20년 확정]</ref>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살인자]][[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
- 정성현 (배구선수) . . . . 3회 일치
'''정성현'''([[1991년]] [[5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이며,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선수이다. 2013-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입단하였다.
신생팀이였던 팀에 데뷔 시즌부터 주전 리베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주로 공격외에 모든 것을 담당한다.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성지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성지고등학교 (부산)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정소희(1969) . . . . 3회 일치
* 《세여자》 (1997년, KBS2)
* 《[[춘자네 경사났네]]》 (2008년, MBC) - 허영옥 역
* 《[[은희]]》 (2013년, KBS2) - 신행자 역
- 정승원 (야구인) . . . . 3회 일치
'''정승원'''(鄭承源, [[1982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다. [[2010년]] 시즌 후 방출되었고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 때 "정승원"으로 개명했다. 아쉽게도 트라이아웃에서 탈락한 그는 2012 시즌부터 예전에 복무하였던 [[상무 피닉스 (야구)|상무]]의 주루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본명은 '''정희상'''(鄭熙相)이다.
[[단국대학교|단국대]] 시절 강타자로 활약하며 에이스 [[오승환]](삼성)과 함께 수차례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끈 주인공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te.com/view/20070501n02649|제목=젊은 독수리들, 언제 날까|이름=노재현 기자|날짜=2007-05-01|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0-05-19}}</ref>
- 정영기(배우) . . . . 3회 일치
* 2011년 《[[오늘(영화)|오늘]]》 ...경찰서 용의자 역
* 2014년 《[[나의 독재자]]》 ...오디션 스탭 역
* 2017년 KBS2 《[[개인주의자 지영씨]]》 ...닫다열쇠 열쇠수리공 역
- 정영삼 . . . . 3회 일치
|소속팀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정영삼'''([[1984년]] [[4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로, 현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소속이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선수 명단}}
- 정홍준 . . . . 3회 일치
'''정홍준'''(鄭弘俊, [[1983년]] [[5월 25일]]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6년]] 2승 1패 평균자책 2.92로 나름 준수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에 다시 1군에 올라와 등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 방출됐다.
!연도!!소속!!평균 자책!!경기!!승리!!패전!!세이브 !!이닝 !!피안타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제주시 . . . . 3회 일치
! 이름 ! ! 한자 ! ! 인구<ref>2017년 3월 말 기준, 등록외국인 포함.</ref> ! ! 면적 (km<sup>2</sup>) ! ! 행정구역
추자면''' || 楸子面 || 1,897 || 7.05
[[분류:제주시 출신|제주시 출신 인물]][[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도시]][[분류:1955년 설치]][[분류:2006년 폐지]][[분류:2006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조동혁(배우) . . . . 3회 일치
* 얼굴 없는 미녀(2004) - 희선의 남자, 파란머리
* [[애인(2005년 영화)|애인]](2005) - 남자
[[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77년 출생]][[분류:1998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분류:광명시 출신 인물]]
- 주아브 . . . . 3회 일치
추가 자료 수집 필요.
이들은 미국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남북전쟁]] 중 남북 양쪽의 몇몇 의용군 부대가 주아브라고 자칭하거나 주아브식 복장을 입었다.
또한 치마의 종류인 주아브 스커트와 상의의 일종인 주아브 자켓은 이들의 복장과 비슷하다고 그런 이름을 얻었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3회 일치
엄밀하게 해석하자면, [[국제연합]]의 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중화민국]]'의 지위를 [[중화민국|장개석 정권]]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국가승계]]를 시킨다는 결의였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은 한큐에 가입국 지위까지 잃어버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반대로 가입은 물론이고 중국의 외교적 정통성, [[상임이사국]]까지 한꺼번에 따먹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줌 밖에 안 되는 대만 밖에 영토가 없는 중화민국과 중국 전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애초에 압도적인 존재감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든 나라들이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6.25 전쟁]]에서 [[적]]으로 여겼던 [[중공]]이 아군으로 여겼던 [[UN군]]에 들어가서 단번에 유엔 상임이사국의 자리까지 차지해버렸기 때문. 대한민국은 애초에 유엔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반대표를 던지지도 못했다.
- 지뢰녀 . . . . 3회 일치
[[일본]]의 속어. [[지뢰]] 같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거나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깊이 사귀게 되자 괴상한 성격이나 집착을 드러내며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이다. [[스토커]] 같은 사례가 포함된다.
[[지뢰]]는 언듯 보기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밟게 되면 커다란 피해를 입힌다. 여기에서 따와서 사귀기 전에는 무해하게 보이다가 사기고 나서 해를 입히는 여자를 뜻하게 되었다.
- 지수원 . . . . 3회 일치
별자리 [[쌍둥이자리]]
* [[2002년]] KBS2 색소폰과 찹쌀떡 ... 박자경 역
- 진격의 거인/78화 . . . . 3회 일치
* 자신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대화에 응했을 뿐이고, 이젠 소중한 동료라도 거리낌없이 처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 베르톨트. 자신을 유인하던 아르민에게.
* 베르톨트는 지금까지 "나약한 자신"을 버리기 위해 일부러 아르민과 이야기에 응하는 걸로 나온다.
- 차내 피난생활 . . . . 3회 일치
[[재난]]이 일어난 상황에서, [[피난소]]에 가지 않고 [[자동차]] 안에서 숙박을 하며 생활하는 것.
* 비상시에 자동차를 타고 빨리 도망칠 수 있다.
* 나쁜 자세로 차내에서 장시간 머물다 보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 창작:악마의 열매 . . . . 3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Lester ||
=== 자연계 ===
- 창작:좀비탈출/1-2 . . . . 3회 일치
나는 어쩔 수 없이 공원 한 가운데 있는 어린이용 놀이기구에 올라가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필사적으로 격퇴했다. 하지만 놈들은 숫자가 많고 지치지도 않았다. 사투를 벌이던 나의 몸은 점점 지쳐서 땀 투성이가 되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2-1-3 . . . . 3회 일치
[[피카추]]가 그려진 파자마. 옆집의 초등학생 아들이었다.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5-2 . . . . 3회 일치
녀석들이 모두 자연채광으로 터져 죽기를 기다리려면 얼마나 버텨야 할까? 한 달? 두 달? 기네스 도전이로군. 누가 측정해줄지는 모르겠지만.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채호기 . . . . 3회 일치
|저자=이만희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시작품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전대학교 동문]][[분류:인천 채씨]][[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천세라 . . . . 3회 일치
| 배우자 = [[이준석(선장)]]
| 자녀 = [[이중선(프로게이머)]]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천안함 침몰사건 . . . . 3회 일치
군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생존자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발언이 많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타났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12028&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SBS뉴스)]]
천안함 사건 당시 생존한 정주현 중사[* 천안함 사건 이후 소말리아 청해 부대로 파병을 자원했다.]는 2015년 6월 전역하여, 청해부대소속 부대 부사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내부 교육 자료에서 "승조원들의 안이한 태도 떄문에 피격을 당했다."고 되어 있었다며 분개하였다.
- 천해성 . . . . 3회 일치
2016년 7월 행시 후배인 김형석 차관이 부임하자 퇴임한 뒤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전임자 = [[김형석]]
|후임자 = (현직)
- 초식계남자 . . . . 3회 일치
연애에 있어서 수동적, 물욕이나 출세욕이 적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남자. 그 소극적인 모습을 [[초식동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반댓말은 육식계(肉食系). 일본에서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으로, 소비욕구가 얕고 이성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세대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원인의 한가지로는 환경 교육이나 젠더 교육의 영향도 있다고 여겨진다.
2006년 니케이 비지니스 온라인(日経ビジネスONLINE)에서 「초식남자(草食男子)」라는 표현이 등장했으며, 2008년에는 여성잡지 등에서 초식계남자의 공략법(草食系男子の攻略法)같은 기사를 내놓고, 일반 매스컴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 최고은 (영화감독) . . . . 3회 일치
| 매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최고은'''([[1979년]] ~ [[2011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 감독]]이다. [[2002년]]에 개봉된 [[영화|단편 영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했다. [[빈곤]] 속에서 [[갑상선암|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암|췌장염]]을 앓다가 2011년 [[1월]]에 사망했다 향년 33세<ref>{{뉴스 인용
|저자 = 김범석
- 최동환 . . . . 3회 일치
[[2009년]] 등번호 1번을 쓰던 [[우규민]]이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자 [[2010년]]에는 최동환이 1번을 썼다. [[2010년]]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에 복귀했다. 원래는 사이드 암스로 투수였으나 오버헨드스로 투수로 전향했다.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 최동희 . . . . 3회 일치
아들인 최동희를 최제우의 후계자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잔치를 열었다 [[서울]] [[종로 (서울)|종로]] 출생이며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 운동을 하다가 [[1922년]] 7월 [[천도교]] 중심인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해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김광희]], [[강도희]]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1926년]] [[중국]]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1927년]] [[상하이]]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했다.
[[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1890년 태어남]][[분류:1927년 죽음]][[분류:고려혁명당]][[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민환 . . . . 3회 일치
| 배우자 = [[율희]] ([[라붐 (음악 그룹)|라붐]] 前 멤버)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은일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7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FT아일랜드의 일원]]
- 최별이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2010년]] - 부산모터쇼 현대자동차 모델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최선영 (희극인)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코미디빅리그]]
- 최성민(1995)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남녀공학(아이돌)|남녀공학]], [[SPEED(보이그룹)|스피드]] 전 멤버.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으나 바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에서 쭉 자랐다. 그 후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가 2년 정도 살던 와중에 서울에 있는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을 하면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 당시 합격한 회사는 현재의 [[MBK엔터테인먼트]]이다.
* [[2018년]] [[8월 31일]] [[프로듀스 48]] [[프로듀스 48/12회|최종회]] 생방송 현장에 부모님과 함께 여동생 [[최예나]]를 응원하기 위해 방청객으로 참석하였다. 그리고 예나가 4위로 데뷔가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 최성재(배우) . . . . 3회 일치
||<|3> 2017년 || KBS2 || [[그 여자의 바다]] || [[김선우(그 여자의 바다)|김선우]] || 주연 ||
* 2007년 《방목된 자들 (저수지의 개들)》
- 최윤동 . . . . 3회 일치
== 참고자료 ==
|전임자 = (초대)
|후임자 = (대구시 갑)[[조경규]]<br />(대구시 을)[[박성하]]<br />(대구시 병)[[이갑성]]
- 최재환(배우) . . . . 3회 일치
|| [[2003년]] || [[KBS2]] || 상두야 학교가자 || || ||
|| 내 생애 최악의 남자 || 일웅 || ||
|| [[2017년]] || [[성판17: 남자들의 17가지 성적 판타지]] || 기하 || ||
- 최태수(가수) . . . . 3회 일치
| 배우자 =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광명시 출신 인물]]
- 캡틴 울트라 . . . . 3회 일치
원래 배관공으로 돈을 못낸 심리학자 노인에게 자신의 흡연습관을 최면으로 치료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심리학자는 사실 외계인이었고, 최면을 통해 잠재된 초능력을 각성해 슈퍼히어로 캡틴 울트라가 되었다. 그러나 [[불]]에 관한 공포증 탓에 불을 보면 기절하게 되었다.
- 캡틴큐 . . . . 3회 일치
제대로 된 럼이 아니라 "주정에 럼 향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만든 제품"[*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4018|코리아데일리-추억의 술 캡틴큐…80년대 가난한 청춘의 양주, 이젠 이주 노동자의 술]]. 원 출처인 롯데주류 홈페이지는 캡틴큐가 단종과 함께 설명이 사라져 확인하지 못함.]이다.
2000년대 들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8/25/20150825004860.html|가짜 양주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소문이 돌자]] 2015년 생산이 중단되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54018|코리아데일리 - 추억의 술 캡틴큐…80년대 가난한 청춘의 양주, 이젠 이주 노동자의 술]]
- 켄시로 . . . . 3회 일치
[[북두신권]]의 전승자로서, 권법의 달인으로 평범한 불량배나 도적은 한 다스로 몰려와도 한 순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 일견 과묵하고 험상궃은 인물로 보이지만 악인에게 무자비하며 약한 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사나이이다.
- 코알라의 마치 . . . . 3회 일치
일본 롯데에서 판매하는 과자. 안에 초콜렛이 들어간 초콜렛 과자로서, 코알라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분류:과자]]
- 크림 전쟁 . . . . 3회 일치
[[러시아]]는 전부터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진해왔다. 그리고 그쪽 [[오스만 제국]]이 있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정교회 신자들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오스만은 이를 부정하였다.
1855년이 되자 [[사르데냐 왕국]]이 연합군의 편으로 참전하였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는 행동이었다.
- 킹덤/500화 . . . . 3회 일치
그 시각 하료초는 오랜만에 만난 양단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으로 펼칠 전략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듣고 있던 양단화는 그런 이야기를 벌써부터 하러 왔냐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하료초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응인데, 양단화는 갑자기 화제를 바꿔버린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진시황(킹덤)|정]], 이신과 셋이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지금 이신과 하료초는 "커졌다"고 말하는데. 하료초도 새삼 추억에 잠기다가 "사실 그때 [[벽(킹덤)|벽]]도 있었다"며 정정해주지만 양단화는 벽의 존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료초는 그때는 지금같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지만 양단화는 그때 이미 정이 중원의 패자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한다. 그때 그의 눈빛이 남달랐기 때문인데.
*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방에 앞서가던 환의군의 후미가 보인다. 하료초는 기겁을 하며 "속도가 생명인 승부가 될 텐데 왜 이리 꾸물거리냐"고 성화를 부린다. 양단화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환의군은 전혀 느린게 아니고 오히려 비신대 쪽이 너무 빠르며 하료초가 지나치게 긴장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긴장은 병사에게, 나아가선 적에게 노출된다.
- 킹덤/532화 . . . . 3회 일치
* 이목은 이신에게 "당신의 칼이 내 목에 닿을 일은 없다"고 자신하지만 이신이 "[[왕의(킹덤)|왕의]] 장군의 창으로 네 목을 취하겠다"고 대꾸하자 흠짓한다.
* 이 때 몽염과 낙화대가 나타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신대에게 함께 좌익 한가운데로 돌격하자고 제안하며 투지를 보인다.
- 토리코/357화 . . . . 3회 일치
* 과거에는 압도적인 포식자를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을 썼는데, "네오"도 그런 용도로 만든 맹수 중 하나
* 네오의 정체 자체는 흥미롭지만 정작 디자인은 모든 팬이 한결같이 까고 있다.
- 토리코/358화 . . . . 3회 일치
* 한편 죠아도 미도라에게 네오의 진실을 알리며 '''"무한한 식의 낙원"을 추구'''하자고 한다. 그러나 미도라는 '''"내 앞에 있는 작은 밥상 하나 외엔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 토리코는 "지구의 풀코스"는 상상도 못하게 맛있을 거라며 흥분한다. 그리고 '''"네오" 그 자체도 엄청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미도라. 자신을 회유하려는 죠아에게.
- 토리코/360화 . . . . 3회 일치
* 코마츠는 자기 시간 기준으론 몇 십만년 만이라고 감격하다 이제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토리코보다 한참 연상이라며 도야가오를 짓는다.
* 스타준은 자신이 보초를 서는 사이 얼른 먹으라고 하는데 코마츠는 "모두 같이 먹기 위해 가져온 것"이라며 함께 먹게 한다
- 토리코/362화 . . . . 3회 일치
* 토리코는 공언한 대로 오가이를 자신의 풀코스 생선요리에 넣는다. 이로써 '''토리코는 고기요리와 메인요리를 제외한 풀코스가 모두 채워졌다.'''
* 스타쥰은 자신도 "오래 전부터 찾아오던 식재"를 찾았다고 얘기하는데 토리코가 뭐냐고 묻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답하지 않는다. '''대신 GOD를 포획할 때가 되었다 한다.'''
* 한편 돈슬라임의 공격으로 NEO가 있던 자리는 지면이 녹아흐를 정도가 됐다.
- 토리코/370화 . . . . 3회 일치
* 아이마루는 자신의 눈엔 "스스로의 식욕조차 잃고 조종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고 한다.
* 죽음의 순간에도 지지는 마지막 책무, GOD의 조리법을 전하는 걸 완수하고자 했으나 네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삼켜지고 만다.
* 이때 죠아도 자리에 나타난다.
- 토시코 막스 . . . . 3회 일치
일본 출생 영국인 학자, 저술가. 본명 시무라 토시코(志村寿子).
## == 배우자 ==
## [[ 김자옥 ]]
- 톤데모 . . . . 3회 일치
1989년, 후지쿠라 산(藤倉珊)이라는 인물이 「톤데모본의 세계(トンデモ本の世界)」라는 에세이를 쓰면서, 여기에서 이러한 기서(奇書) 종류를 톤데모본이라고 지칭하고, 이를 "저자는 진지하게 썻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에서 웃기고 재미있다."고 해설하여 톤데모라는 말이 나타났다.
톤데모라는 말 자체는 '톤데모본' 에서 나왔으며, 1990년대 부터 점차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3회 일치
평가는 전작처럼 안좋다. 갤럭투스 각색도 비판의 대상. 그래도 손익분기점은 넘겨서 이후 리붓되어 2015년에 새로운 판타스틱 포 영화가 나왔으나.. 이 영화의 처참한 실패 탓에 본 영화의 평이 좋아졌다. 그래도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라 어디까지나 2015년판에 비해서다.
가만 보면 좀 어이없는 장면이 있는데, 엄연한 [[러시아]] 영토인 [[시베리아]]에 '''미군'''기지가 있는다거나 [* 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간다면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때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러시아가 동구권 내의 [[친미]]세력을 견제하는 걸 생각해 보자.] 마지막 결판을 치른 데는 [[홍콩]]인데 수잔과 리드의 결혼은 [[자포네스크|일본에서 기모노 입고]] 한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있다.
- 페어리 테일/481화 . . . . 3회 일치
* 나인하르트는 엘자의 마음 속에서 이카루가를 구현해 싸우게 한다.
* 엘자는 이카루가와 싸우지만 아즈마, 쿄우카까지 되살아나 불리하게 된다.
* 카구야의 인공호흡 덕에 엘자가 ntr 당했다는 드립이 많다.
- 페어리 테일/488화 . . . . 3회 일치
* 그래도 레비가 접근하자 가질은 레비를 반대편에 묶어 버린다.
* 사라지기 직전, 레비에게 자신의 몫까지 살아줄 것을 당부하고 리리에겐 레비를 무사히 길드까지 데려가라고 부탁한 뒤 가질은 황천의 문 너머로 사라진다.
* 갑자기 오거스트를 찌르는 브랜디쉬
- 페어리 테일/496화 . . . . 3회 일치
* 눈 앞에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시 갓세레나를 살피는데, "살아있는 자의 마력이 아니다"라면서 그의 정체를 간파한다.
* 윌과 블러드맨 역시 히스토리아임을 알아보고 조종하는 자(나인하르트)를 찾기 위해 유키노에게 부탁한다.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3회 일치
숲에 살고 있던 엘프종족 포리는 어느 날 어떤 남자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먼 포리는 그에게 자신의 『노래』가 담긴 수정을 넘겨주게 되고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하게 된다. 하지만 엘프의 계율은 엘프와 인간과의 사랑을 용납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수옥(水獄)에 갖혀 "달이 세번 뜰때까지" 가둬지는 벌을 받게 된다.
관련신화가 켈트이기 때문에 카드사용에 제약이 좀 있다. 켈트신화는 북유럽 신화나 헤브라이 신화에 비해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카드가 있는 게 아니라서 한방에 역전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 또한 정령력을 충전할 수 있는 카드 역시 켈트 신화에는 없기 때문에 엘프는 이런 면에서 신화보정이 약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배틀 이외의 상황에서는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포항시 . . . . 3회 일치
|한자 = 浦項市
! 행정동 ! ! 한자 ! ! 면적 ! ! 인구<ref name="2015년 9월 말 기준">2015년 9월 말 기준</ref> ! ! 세대
! 행정동 ! ! 한자 ! ! 면적 ! ! 인구<ref name="2015년 9월 말 기준"/> ! ! 세대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3회 일치
아메바 컬쳐 소속으로서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를 발매해 방송에도 꾸준히 나섰다. 엠블랙 지오와 "I'm Back" 곡작업을 같이 한 것을 인연으로 엠블랙 "Sexy Beat"의 타이틀곡 "Smoky Girl"을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본인에 의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한 곡들 중 가장 녹음횟수가 많았다고 할 만큼 작은 추임새 하나까지도 심혈을 기울인 곡이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621000878 "천둥 염색 이유…"팬들과 3년 전 약속 지켰다"", 뉴스핌, 2013-6-24]</ref>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 하규원 . . . . 3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형제자매 =
- 하이큐/219화 . . . . 3회 일치
* 자신의 세트업이 실로 뛰어나기 때문에 "이것조차 치지 못하면 정말 못하는 거다", 즉 "너가 잘해서 친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것. 위에서 코치진이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 전국의 강호들이 자신의 팀으로 돌아간다.
* 킨다이치는 "다음에 보자"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 학동 . . . . 3회 일치
학동보육(学童保育)의 약자. ‘방과후학교’와 비슷한 제도이다.
후생노동성이 소관하며, 지자체나 민간사업체, NPO단체 등을 중심으로 설치된다.
방과후에 보호자가 귀가할 때까지 아동을 맡아서 돌보면서 적절한 놀이와 활동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아동이 감소하여 빈 교실이 늘어난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보육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한길로 (영화감독) . . . . 3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한만정 . . . . 3회 일치
'''한만정'''([[1962년]]~ )는 [[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이다. [[SBS 스포츠]]에서 먼저 해설을 시작하였고, 현재의 [[MBC 스포츠+]]로 이직하여 몇년간 [[KBO 리그]] 해설을 담당하다가 2012년부터 리틀 야구 및 고교 야구 , 아마추어 야구 해설자로만 활동하게 된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한방의학 . . . . 3회 일치
[[일본]]에서 [[한의학]], [[중의학]]을 부르는 명칭이다. 일본에서는 자국의 한방의학이 전래된 중의학과는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별개의 요소가 많다고 주장한다. 한방(漢方)이라는 명칭은 [[에도 시대]] 중엽에 [[네덜란드]]의 의학이 전래되어 이를 란방(蘭方)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와 대조하여 기존의 중국에서 전래된 의학을 '한방'이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일본]]에는 [[금나라]], [[원나라]] 시기에 정립된 금원의학(金元医学)이 전래되었는데, 이러한 의학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부른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 국학 부흥과 복고 열풍이 불어,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락(金匱要略)』을 중시한 고방(古方)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양자를 절충하겠다는 절충파, 더욱 고문헌의 고증에 중점을 두겠다는 고증파가 나타난다.
- 한상원 . . . . 3회 일치
{{토막글|기타 연주자|음악가}}
[[분류:한상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7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펑크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펑크 록 음악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송이 (레이싱모델) . . . . 3회 일치
| 배우자 = [[위샤오광|우효광]] (2021~)
* [[영복여자고등학교]]
* [[2012년]] -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 소니 모델
- 한재석(1991) . . . . 3회 일치
|| '''성좌/지지''' ||[[사자자리]]/[[양띠]] ||
[[SNL 코리아]] 시즌 5부터 합류한 남성 크루이다. [[본인]]의 [[인터뷰]]를 통한 바로는 SNL 코리아에서 맡는 포지션은 "어린 성인". [[나이]] 순으로 따지면 [[막내]]였다가 시즌6에 '''[[1994년]] 생 [[고원희]]'''가 합류하면서 막내를 벗어났으나 휴식기에 고원희가 하차하면서 다시 막내가 되었다가 시즌7에 '''1995년생 [[김혜준]]'''이 합류하면서 다시 막내를 벗어났다. 초기에는 남친 역, 부하 역 등으로 나왔지만 화를 거듭하면서 망가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대표적으로 뷰티박스.~~
- 한지우(배우) . . . . 3회 일치
2011년, MBC 월화극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의자왕의 정비인 백제 황후 연태연 역을 맡았으나 [[국어책 읽기|국어책을 읽는 것만 같은]] [[발연기]]로 폭풍처럼 까였다.
|| KBS || [[이름 없는 여자]] || 한소라 || 조연 ||
* [[라미네이트]]를 한 일이 있을 뿐,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자연미인이라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4&aid=0002617573|#]][[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64499|#]]
- 한지은 (레이싱모델)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2008년]] - 온게임넷 나가자 저그 시즌4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한징 . . . . 3회 일치
'''한징'''(韓澄, [[1886년]] - [[1944년]])은 [[한글]]학자이다. 호는 효창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부터 10년간 <[[시대일보 (1924년)|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의 기자를 지냈다. [[1930년]] [[이윤재]]와 함께 [[조선어학회]] 사전을 편찬하는 데 힘썼으며 이어 [[표준말]] 사정위원이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하던 중 [[1944년]] 함흥 감옥에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분류:1886년 태어남]][[분류:1944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언어학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채이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2012년]] - 부산 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함가연 . . . . 3회 일치
|배우자 =
|자녀 =ᆞ
{{메달 스포츠|여자 댄스스포츠}}
- 합체 구조 . . . . 3회 일치
=== 가슴에 사자 머리 ===
가슴에 사자머리를 떡 하니 박아놓는 구조. 왠지 전통적으로 인기있다.
* [[용자왕 가오가이거]] - [[가오가이가]]
- 해쉬스완 . . . . 3회 일치
|배우자 =
해쉬스완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힙합 음악을 시작하여, 고등학교 2학년 때 [[바스코 (래퍼)|바스코]]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2016년 ⟪[[Show Me The Money 5]]⟫에 출연하여 1대1 배틀에서 [[주노플로]]를 이겼으나, 팀 선택에서 탈락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nocutnews.co.kr/news/4629928|제목=[힙합릴레이⑮] 해쉬스완 "'쇼미5' 최대수혜자? 운이 좋았다"|뉴스=노컷뉴스|확인날짜=2017-07-20}}</ref> 2016년 10월 [[일리네어 레코즈]] 산하의 앰비션 뮤직에 합류하였다.<ref>{{웹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0666052?cloc=rss%257Cnews%257Ctotal_list|제목=김효은·창모·해쉬스완, 도끼·더콰이엇 앰비션뮤직行 '확정'(종합)|날짜=2016-10-02|언어=ko-KR|확인날짜=2016-10-03}}</ref>
* {{ID 없는 유튜브 사용자|UCKZq309YKnWF-atFCL4cOgA}}
- 허미영 . . . . 3회 일치
| 형제자매 =
| 배우자 = 박OO
| 자녀 =
- 허용석 . . . . 3회 일치
* 1998.03 ~ 1991.01 :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장
|전임자 = [[성윤갑]]
|후임자 = [[윤영선 (1956년)|윤영선]]
- 헤소린 가스 . . . . 3회 일치
여러가지 재난에 시달리는 진구를 위해서 도라에몽이 헤소린 스탠드를 꺼내서 헤소린 가스를 주입해준다. 진구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 혼나거나 넘어져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맞거나, 개에게 물리거나 차에 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 효과가 떨어지자 진구는 다시 헤소린 스탠드를 사용한다.
그 결과, 동네 아이들 전체가 헤소린 가스에 중독되어 상황이 상당히 심각해지는데, 서로 방망이로 때리면서 놀거나, 지갑을 훔쳐서 가스를 살 돈을 조달하려 하거나, 가스의 효력으로 아픔이 마비된 탓에 "신칸센 히카리 호에 치여도 괜찮아!" "도쿄 타워에서 점프해도 괜찮아!"라고 호언장담하거나, 여자아이가 가스를 주입받느라 [[팬티]]를 다 보여도 태연하게 구는 등(…) 도덕심까지 완전히 마비된 모습을 보인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남용되어, 제2차 각성제 남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남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남은 히로뽕이 남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헤이안 시대 . . . . 3회 일치
그러나 자신이 개간한 토지를 1대만 소유할 수 있는 것에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반발을 고려하여 3대 까지 소유할 수 있는 삼세일신의 법(三世一身の法)이 만들어진다. 이 역시 불만이 많았으며, 농민들은 개간지를 피해서 유력자에게 도망쳐 숨게 된다. 결국 개간지를 영구 보유할 수 있다는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이 만들어진다.
도주 농민들은 유력자 아래 모이게 되며, 많은 농토를 보유한 호농(豪農)이 나타나게 된다. 호농이 보유하는 영지를 장원(荘園)이라고 부른다.
- 현소환 . . . . 3회 일치
[[1995년 6월]]에서 같은 해 [[1995년 12월]]까지 [[자유민주연합]] 특임촉탁위원 직위를 지낸 그는 [[199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종신회원이 됐고, [[2005년 5월]]에는 본부이사가 됐다.
[[2011년]] 현재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뉴라이트 계열의 뉴스앤뉴스 대표이사, [[국제언론인협회]](IPI) 종신위원<ref>[http://www.freemedia.at/about-us/ipi-executive-board/ 각주 자료 리스트]</ref> 이다.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혐저 . . . . 3회 일치
[[일본]]의 속어. 돈벌이는 나쁘다고 하는 사고방식, 혹은 [[부자]]를 증오하고 질투하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읽는 방식은 「이야쵸(いやちょ)」「이야모우(いやもう)」「켄모우(けんもう)」등 다양하다.
좁은 의미에서는 [[2채널]]에서 스레드를 [[복붙]]하여 이득을 얻는 [[마토메 사이트]]를 증오하는 경향에서 시작된다. 자신들이 쓴 레스를 사용해서, 단지 정리했을 뿐인 타인이 돈을 번다는 것에 불만을 느낀 것이 시작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확대되어, 광고적인 내용을 많이 넣어서 [[스팸]]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 [[블로그]], 2채널에서 인용한 글을 주로 만든 서적류에 대한 불만, 거기에서 더 나가가 동영상 사이트([[니코니코 동화]] 등) 같은 곳에서 공개된 음악([[보컬로이드]] 등)이 상업적으로 전개되는 것, 동영상 사이트에서 게임 플레이 영상 중개,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 인터넷을 통하여 돈을 버는 것 자체"'''에 불만을 느끼는 분위기를 뜻하게 되었다.
- 혼모노 . . . . 3회 일치
* 인터넷 은어에서 '진짜 [[오타쿠]]'라는 의미. 주로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오타쿠라는 것을 강렬한 표현력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뜻한다. 『진짜』라고 강조해서 쓰기도 한다.
* 갑자기 큰 소리로 기괴한 소리를 지른다.
실은 '혼자 모니터 보는 노총각'이란 의미다.
- 홍가람 . . . . 3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2013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우수상
- 홍승규 . . . . 3회 일치
'''홍승규'''(洪勝奎<ref>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42800209205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4-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0174&publishType=00020 "라이온즈 1번타자 자리놓고 張泰洙·洪勝奎 각축"] 동아일보. 1987년 4월 28일.</ref>, [[1960년]] [[6월 2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현재는 대구MBC의 라디오 야구 중계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홍영현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실점 !!자책점
- 홍인영 . . . . 3회 일치
||<#FF0000><:> {{{#FFFFFF '''성좌/지지''' }}} ||<:> [[전갈자리]], [[소띠]] ||
||<#FF0000><:> {{{#FFFFF '''가족''' }}} ||<:>부모님, 1남1녀 중 차녀[br]배우자 [[전승빈]] ||
|| 2010년 || SBS || [[당돌한 여자]] || 한주란 || ||
- 홍종호 (1963년) . . . . 3회 일치
'''홍종호'''([[1963년]] [[9월 7일]]~ ,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대학교수이다. 2012년에 대선주자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여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
- 홍해성 . . . . 3회 일치
[[1935년]]에 상업연극 전문 극장인 [[동양극장]]이 개관하자, 동양극장 연출부로 이동했다. [[1943년]]에 지병으로 사임할 때까지 동양극장에서 총 400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승방비곡》, 《검사와 사형수》, 《어머니의 힘》 등이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로서 한국에 근대극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데 이어, 동양극장 이적 후에는 세련된 상업 연극으로 대중극의 수준을 격상시켰다는 평이 있다.
== 참고자료 ==
|저자=강옥희,이영미,이순진,이승희
- 홍혜경 . . . . 3회 일치
'''홍혜경'''([[1959년]] 7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리릭 레제로 소프라노로 경력을 시작해 현재는 리릭-리릭 스핀토 소프라노까지를 아우르는 영역을 개척하였으며,[[조수미]]와 [[신영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로 손꼽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134148 <2006 신년특집-한국이 낳은 글로벌 리더들>“세계로 뻗는 한국문화 내가 이끈다” 기사 내용중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부분 게재되어 있음 《문화일보》2006-01-02 작성 : 김순환 기자]</ref>
1959년에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984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의 [[세르빌리아]]로 데뷔하여 2004년 메트로폴리탄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신영옥, 조수미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소프라노로 자리잡고 있다.
- 황경태 . . . . 3회 일치
|수비 위치 = [[3루수]], [[유격수]], [[1루수]], [[지명타자]]
'''황경태'''([[1996년]] [[8월 17일]] ~ )는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황교충 . . . . 3회 일치
|로마자 표기= Hwang Kyo-Choong
[[2017년]]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둘러보기 상자 묶음
- 황병승 . . . . 3회 일치
*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개정판 [[문학과지성사]], 2012)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박인환문학상 수상자]][[분류:미당문학상 수상자]][[분류:21세기 시인]]
- 황병하 . . . . 3회 일치
{{공직자 정보
|배우자 =
|자녀 =
- 황수범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황연석 . . . . 3회 일치
|로마자 표기=Hwang Yeon-Seok
'''황연석'''([[1973년]] [[8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며 현재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다. 현재 [[대전 시티즌]] 2군 코치이다. 선수 시절 장신의 키를 이용한 고공 플레이에 능하였으며 후반전에 투입되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특급 조커'로 이름을 날렸다.
=== 지도자 경력 ===
- 황정립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9월 14일]]<BR/>[[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BR/>연속경기 1차전 대수비
* [[2013년]] 퓨처스 올스타전 우수 타자상
[[2012년]] [[KIA 타이거즈]]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확대 엔트리 시행 후 1군에 올라왔고, 2012년 9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 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8:7로 뒤지고 있던 연장 12회말 2아웃 데뷔 첫 타석에서 [[투수]] [[강영식]]을 상대로 3구를 받아 쳐 동점 홈런을 날렸다.
- 히노쿠니 . . . . 3회 일치
이 지역은 아리아케(有明), 시라누이(不知火) 바다에 접한 지역으로서, 고대에는 농업만이 아니라 [[산]]과 [[바다]]의 물산이 풍부한 지역으로서, 히노키미(火君,肥君)라는 호족 군주를 중심으로 하여 대호족이 발전하였다. 지역의 독자적인 장식이 있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한자를 불 화(火)에서 살찔 비(肥)로 바꾼 것은 불을 두려워하고, 풍요를 비는 사상이 투영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2016년 4월 16일에 여배우 [[후지와라 노리카]]가 자신의 [[블로그]]에 쿠마모토의 지진 뉴스에 마음이 아파하면서 이상과 같은 문장을 써서, 쿠마모토 현의 주민들이 [[신]]에게 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냐는 비판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http://www.asagei.com/excerpt/56724 (참조)]]
- 155밀리 롱 톰 . . . . 2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에서 디자인 된 M1917, M1917A1, M1918 GPF (Grande Puissance, Filloux)의 후속작으로 [[미국]]에서 도입했다. GPF를 기반으로 하여 개량하면서 M1 155mm 야포가 개발되었다. 1940년에 디자인이 개선되어 M2 155mm 야포가 만들어졌으며, 이 야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사용하여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하였다. M2를 개량한 모델이 M59 155mm 견인포가 된다.
- 1만 시간의 법칙 . . . . 2회 일치
2009년에 발표된 책, '아웃라이어'에서 나온 이야기.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 재능보다 1만 시간이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선천적 재능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부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노력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게임에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2회 일치
2013시즌은 K리그에서 승강제가 도입된지 두번째 시즌이었고, 경남 FC는 강등될 가능성이 아주 유력했던 팀 중 하나였다. 당시 경남의 사장이었던 안종복은 팀의 강등을 모면하고자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저지르고야 마는데, 바로 심판매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http://sports.news.naver.com/k_league/news/read.nhn?oid=015&aid=0003436896|외국인 선수의 몸값과 관련한 횡령혐의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차후 발표결과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41&aid=0002495741|심판매수]]로 알려져 K리그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또한 검찰의 추가조사 결과 전북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60607.22006223302|경기 하루 전날 심판에게 돈을 건낸것으로 밝혀져] 이 행위가 경기 자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충분히 볼 여지가 생겼다. 참고로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경기에 배정되는 심판은 대외비라고 적시하고 있는데[*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 제4장 심판(2016년 1월 16일 개정판) 제9조 3항에 따르면 '''"K리그 심판의 배정은 대외비로 하며, 위원회는 거점 숙소제 운영 원칙에 따라 해당심판에 게 배정 통보 시기 및 배정 지역을 개별 통보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대외비가 흘러나온 것에서도 연맹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 3월의 라이온/121화 . . . . 2회 일치
* 카와모토 자매와 할아버지는 풋콩을 먹으며 여행지에서 모래찜질한 이야기를 나눈다.
* 하나는 모래찜질을 말린 솜이불을 푹 적셔서 거대 전자렌지에 돌린 다음 그대로 뒤집어 쓴 느낌... 이라고 묘사하는데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는 듯.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2회 일치
키리야마 레이와 나메리카와 이자야의 대국 개시.
* 미스미 타츠유키와 요코미조 오쿠야스는 날씨가 더우니 대국이 일찍 끝나면 맥주나 마시러 가자는 둥 실없는 토크를 한다.
- AT4 . . . . 2회 일치
[[https://news.google.com/newspapers?nid=1955&dat=19961008&id=umUlAAAAIBAJ&sjid=8qYFAAAAIBAJ&pg=2805,4669161&hl=ko|1994년 당시 스칸디나비아 폭주족간 항쟁에 사용된 전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스웨덴 군사시설에서 훔친 AT-4를 상대 폭주족 클럽하우스에 쏴버린 것.
[[http://saab.com/globalassets/commercial/land/weapon-systems/support-weapons/at4-heat/gcs_brochure.pdf|SAAB사의 지상무기체계 광고책자]]
- BBA . . . . 2회 일치
[[일본어]]로 바바아(ばばあ,아줌마,할머니)의 약자. '바바아'를 줄여쓸 때 사용한다.
== 참고자료 ==
- DQN . . . . 2회 일치
* 고학력자나 [[오타쿠]]에 대해서 악의를 가지고 있다.
== 참고자료 ==
- EM 드라이브 . . . . 2회 일치
영국의 로저 쇼어(Roger Shawyer) 박사가 개발한 추진기. 전자기파를 이용한 추진장치로서, 2006년 9월 8일 뉴사이언티스트 커버 스토리에 실렸다.
원불 형태의 밀폐형 챔버에 빛 입자와 극초단파(마이크로웨이브)를 쏘면, 원뿔의 넓은 쪽으로 튕겨 흐르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당초는 [[상온핵융합]] 같은 여러 황당한 가짜 발명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겨졌으나, NASA의 연구 결과, EM 드라이브는 [[진공]]에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Europa Universalis 4 . . . . 2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식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영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 GHQ . . . . 2회 일치
GHQ는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로서, '총사령부'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군]]--[[연합군]][* 소수의 영연방군이 참가하였으나, 대부분은 미군이었으므로 사실상 미군.]이 [[일본]]에 --[[막부]]--[[군정]]을 펼치기 위하여 설치한 사령부를 뜻한다. [[맥아더]]를사령관으로 하였으며, GHQ에서 지시하는 점령정책이 일본 정부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1945년에 설치되어, 1952년에 강화조약이 맺어지면서 폐지되었다.
GHQ 통치 시기는 직접적인 군정이 아니라, GHQ의 지시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는 간접군정 방식이었다. GHQ의 영향력은 경제, 문화, 정치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미쳤는데, 정치적 측면에서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이 개정되었으며, 지방자치와 선거제도가 개혁되었다. 교육, 문화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켰으며, 경제 개혁으로 [[재벌]]이 해체되었고, [[농지개혁]]으로 농촌의 [[지주]] 계급이 해체되었다.
- GodTemplate . . . . 2회 일치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House of the Rising Sun . . . . 2회 일치
여러 가수들이 부른 노래. [[도박사]] 아버지와 [[재단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화자가 [[뉴올리언스]]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되며 부르는 노래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2회 일치
역사상 두번째로 치룬 승강 플레이오프이며,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최종승자가 승격 도전권을 가진 최초의 대회였다.
2014 K리그 클래식 11위였던 경남과 동시즌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최종승자인 광주가 만나 승격이냐 잔류냐를 두고 [[홈 & 어웨이]]로 경기를 치뤘다.
- LDK . . . . 2회 일치
앞에 붙는 숫자는 '방의 갯수'이며, 뒤의 LDK는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 참고자료 ==
- MoniWikiPlugins . . . . 2회 일치
== 사용자 인터페이스 관련 ==
=== 관리자 기능 ===
- NTX위키 . . . . 2회 일치
써진대로 믿으면 곤란한 정보들이 있다. [[주토피아]]라던가. 교차검증을 거치자.
구 NTX 의 창작 위키의 기능은 NTX 위키에 임시로 세들어 살고있다. 창작 위키가 언제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앞에 "창작:"이라고 써져 있는 페이지는 사용자 창작이라고 보면 된다.
- OK 본 . . . . 2회 일치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교육 과정을 밟으며, 1996년부터 랩 메이킹을 시작하며 [[힙합]]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NOMZ 프로젝트, 개놈 프로젝트 등 비정규 음반에 참여했다. 1집 발매 이전에는 [[힙합플레이야]]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곡을 올리며 활동하였으며, 2005년 라디오 프로그램 Open Mic의 선발자로 출연했고, 이어서 구단지 독서실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여러 언더 힙합 앨범에 참여하며, 2008년 구단지 독서실 2집 '라임왕'을 발매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를 졸업하였다.
팀 내에선 대부분의 [[랩]] 파트를 담당하며, 라임을 중시한 그만의 랩 스타일로 취향이 크게 갈리고 있다. 앨범내에서 다소 노골적인 소재도 거침없이 다루었고, '비정규직 MC'라 자칭하기도 하였다.
- ParagraphTemplate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Suicide is Painless . . . . 2회 일치
"자살은 아프지 않아요"라는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 UserPreferences . . . . 2회 일치
'''사용자 등록하기'''
* 비밀번호는 6자 이상이어야 합니다.
- 강대식 . . . . 2회 일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후보로 동구청장 재선에 출마하였으나 [[자유한국당]] [[배기철]], [[더불어민주당]] 서재헌 후보에 이은 3위로 낙선하였다.
[include(틀:대구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장)]
- 강정길 . . . . 2회 일치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냈다.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개미 . . . . 2회 일치
진딧물의 주인이자 달팽이의 원수, 개미집의 주인, 곤충의 일종. 땅속에 [[개미집]]이라는 굴을 파고 무리지어 생활한다. 당신이 개미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개미도 당신을 신경쓰지 않지만 당신이 개미집을 파헤치거나 손으로 잡으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집에 사는 개미는 엄청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거주자를 물어뜯기도 한다.
- 갸루 . . . . 2회 일치
* 코갸루(コギャル), 마고갸루(マゴギャル) : 1990년대 중반-말엽까지 쓰이던 단어. 코갸루는 갸루패션을 하는 여고생, 마고갸루는 역시 갸루패션을 하는 여중생이다. 여담으로 코는 아이, 마고는 손자를 뜻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사장된 용어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Kogal이라는 용어가 아직 쓰인다.
== 참고자료 ==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2화 . . . . 2회 일치
* 키리에는 전골을 한다는 말을 듣고 "어렸을 때 자주했었다"며 좋아하는데 봄바도 같이 온 걸 보고 경기를 일으킨다.
* 바로 그때 봄바가 암흑전골을 하자며 불을 꺼버리고 키리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절규한다.--노답 봄바--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2회 일치
* 에비나는 자기도 오빠를 잘 알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아이디어를 낸다.
* 그밖에도 수제 두건, 도시락 보자기, 수첩커버, 방석 등등도 만들어 버린 모양.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9화 . . . . 2회 일치
* 아무리 해도 레어가 뜨지 않자 단념하는 두 사람. 그러나 레어캐를 얻었다는 인터넷 증언을 보고 다시 늪에 빠져든다.
* 우마루는 경험자의 면모를 과시하며 한 번 과금에 꽝이 뜨는건 당연하다며 10연속 가챠에 도전한다.
- 검은 조직 . . . . 2회 일치
일단 코난의 주요 악역이자 최후의 적으로서, 잡힐듯 말듯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는 중. 얘들이 잡히면 만화가 끝날 것 같다는게 일단 일반적인 의견.
오히려 검은 조직은 상당히 신중하게 처신&보기에도 수상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이 동네의 일반 살인범은 아무리 봐도 멀쩡해보이던 인간이 갑자기 분노하면 트릭을 써서 사람을 쓱싹 해치우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 경기도 . . . . 2회 일치
|한자 = 京畿道
! 시·군 ! ! 구 ! ! 한자 ! ! 세대 ! ! 인구 (명) ! ! 세대당 인구 (명) ! 면적
- 경상북도 . . . . 2회 일치
|한자 = 慶尙北道
! 이름 ! ! 한자 ! ! 면적 ! ! 인구 (명) ! ! 세대
- 고대 그리스 . . . . 2회 일치
서로 싸우다가 쇠퇴한 폴리스들이 북쪽에서 내려온 마케도니아 왕국에 복속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이 헬레니즘 왕국들을 건설한 다음, 각 왕국들의 쇠퇴를 거쳐서 로마에 차례차례 먹힐 때까지의 시기.
폴리스들의 자치는 사라졌지만, '그리스 문명'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인이 가장 널리 지배권을 펼쳤던 시기이다. 마케도니아에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마케도니아도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그리스 인이나 다름없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으로는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인도까지 그리스 계 폴리스와 왕국이 나타난다.
- 고산케 . . . . 2회 일치
고산케의 조상은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쇼군]]의 지위를 계승한 본가와는 별도로 세개의 번에 따로따로 봉해져서 각자 [[다이묘]](대영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산케는 도쿠가와 본가의 혈통이 단절되면 본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혈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8대에서 14대 까지는 키슈 도쿠가와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 곤조야키 . . . . 2회 일치
[[일본]]의 불량배 은어. 우리말로는 [[담배빵]]에 해당. 불 붙은 담배를 손목, 손등 같은 피부에 꽉 눌러서 화상 흉터를 만드는 행위, 혹은 그렇게 생긴 화상 자국. 직접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부 가까이에 가져다 대는 것도 포함한다. 우연히 담배불에
주로 불량배들이 자신의 근성(인내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벌인 행위이다. 주로 선배가 후배의 손목이나 손등에 담배불을 꺼서 후배의 근성과 충성을 얻는 행위였다. 동료의식을 높이고, 집단에 귀속의식을 높이는 목적으로 행해진다. 곤죠야키를 하면 화상 흉터가 눈에 뛰게 남게 되는데, 불량배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흉터는 하나의 훈장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2회 일치
이 공산당 지도 원리는 [[지도자 원리]]로 변형되어 [[파시즘]]에도 유입되었다. [[나치 독일]]에서 나치당의 경우 역시 공산주의 국가의 공산당과 유사한 지도적 정당이었다. 다만 나치 독일의 경우는 법률적 정의보다는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의지'를 우선시하는 성향 탓에, 나치당의 지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비슷한 지위라고 볼 수 있었다.
공산주의의 결정적인 반민주적 요소이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 지도 원리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몇몇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이에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인물로는 [[카를 카우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 --소련에서 쫓겨난 이후의-- [[레프 트로츠키]] 등이 있다.
- 곽승준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방송인이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그의 친누나이다.
[[분류: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방송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1960년 출생]]
- 광언 . . . . 2회 일치
* 위장을 목적으로 거짓으로 펼치는 [[자작극]]. 광언자살(狂言自殺), 광언강도(狂言強盗)
- 교육 마마 . . . . 2회 일치
자식 교육에 열심인 어머니 라는 뜻. 지나치게 교육에만 관심을 쏟고, 과도하게 학원에 보내거나 학대적인 육아를 하여 자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좋지 않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구명환 . . . . 2회 일치
2018년 4월 19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즈]]-[[kt 위즈]]전에서 주심을 맡았을 때 경기 중 일부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고, 판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4월 19일 비교적 정확했던 구명환 심판…어떻게 `괴물`이 됐나|url=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8&no=265344|날짜=2018-04-26|출판사=매일경제|확인날짜=2018-04-30}}</ref>
* {{KBO 타자|74244}}
- 구미시 . . . . 2회 일치
대동여지도의 선산부·인동현 지역. 서측(좌)으로 지금의 김천시의 일부인 개령현이 보이며, 남쪽으로 금오산성을 나타내는 금오(金烏)라는 글자가 보인다. 선산부 옆으로 노란 점이 바로 역참 구미(龜尾)를 말한다.
! 읍면동 ! ! 한자 ! ! 면적 ! ! 인구
- 구천서 (야구인) . . . . 2회 일치
'''구천서'''(具千書, [[1963년]] [[8월 15일]] ~ )는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고양 다이노스]]의 수비 코치이다.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
- 권영준 (1952년) . . . . 2회 일치
'''권영준'''([[1952년]] [[5월 15일]]~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경영학자인 대학교수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과 한국재무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귀적에 들어간다 . . . . 2회 일치
귀적(鬼籍)은 죽은 자의 성명과 사망일시를 기록해두는 장부를 뜻한다. 여기에 이름이 기입되었다는 것은 곧 사망하였다는 뜻이므로, "귀적에 들어간다."를 "사망했다."를 돌려서 표현하는 것으로 쓰인다.
* 귀적(鬼籍)은 [[불교]] [[사원]]에서 사망한 시주자의 이름과 날짜를 기록해두는 장부이다. 이를 과거첩(過去帳)이라고도 부른다.
- 그루베니아 . . . . 2회 일치
자연환경
그루베니아의 요리는 대부분 육류을 사용한 요리가 많지만, 콩과 쌀 등 곡식류도 자주 먹는다. 또한 그루베니아의 조주(造酒) 기술또한 유명하여 고품질의 맥주, 브렌디, 포도주, 보드카 등이 우주 각 은하계로 수출되고있다. 유트뵐리스에서는 긴 겨울을 버티기위해 고열량의 음식이 많으며,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보드카 등의 도수가 높은 술도 많이 즐긴다. 그루베니아에는 예로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이의 생일에 따른 탄생석으로 만든 악세사리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 그린 애로우 . . . . 2회 일치
배트맨과 유사점을 보이는 캐릭터. 초능력이 없고, 전투실력이 뛰어나며, 특이한 장비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체인 인물은 이름 있는 부자. 심지어 이전의 그린 애로우는 배트맨의 박쥐 동굴을 의식한 듯한 기지와 배트모빌을 의식한 듯한 애로우카라는 자동차가 있었다.
- 김경태 (배우) . . . . 2회 일치
* 《패는여자》 (2012년) - 칼자국 역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2004년]] [[1월 1일]], [[최인규(1981)|최인규]]와 함께 [[삼성전자 칸]]으로 [[이적]]했으며, 그 이후 [[스타리그]]에 2회 진출한다.
경기 시작 전 팬들이 외치는 파이팅 콜이 특이했는데, "○○○ 파이팅!" 대신 "김근백 관심있어요!"라고 외쳤다. 이는 한 인터뷰에서 김근백이 [[여자]]에게 듣고 싶은 말로 "관심 있어요"라는 말을 꼽았기 때문.
- 김도연(배우) . . . . 2회 일치
* 1985년 MBC 남자의 계절
* 2012년 SBS [[추적자 더 체이서]]
- 김동재 . . . . 2회 일치
'''김동재'''(金東再, [[1960년]] [[10월 31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였다.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의 코치를 지냈으며,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재직하던 중 [[2010년]] [[6월 21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 경기를 마치고 난 후 자택에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치료 중이다.
- 김무력 . . . . 2회 일치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셋째 아들이며, 그 손자는 그 유명한 '''[[김유신]]'''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80139 가야 마지막 왕자,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오마이뉴스]] 기사)
- 김민수 (1991년)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4년]] [[3월 30일]]<br>[[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 김민희(1972) . . . . 2회 일치
[[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72년 출생]][[분류:아역배우]][[분류:양구군 출신 인물]]
이 인기를 모아서 [[캐럴]] 송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응답하라 1988/삽입곡|크리스마스 폴카]]가 BGM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게 되어서 그랬는지 성인 연기자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간간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나 출연하는 편이며, [[살림 9단의 만물상]] 같은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푼수 스타일의 [[아줌마]]로도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03년~2004년 MBC 사극 [[대장금]]에 내의녀 비선역으로 출연하였다. 장금이 의녀로 입궁했을때 내의녀로 들어왔지만, 8년후에 어의녀로 승진하였다.
- 김병윤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포항 동지교육재단 설립자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호는 일우(日字)이다.
- 김병준 (희극인)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김승목 . . . . 2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부산직할시 [[서구(부산)|서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영삼과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박찬종]]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였다. 1974년 [[정일형]] 등이 화요회라는 계보를 창설하자 화요회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남구(부산)|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김주환(탤런트) . . . . 2회 일치
[[살인자]]
단역 - 뱃놀이 양반 자제놈 4
- 김천시 . . . . 2회 일치
! 읍·면·동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 행정지도
자산동 (김천시)''' || 紫山洞 || 3,870 || 7,949 || 1.34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e/Gimcheonsine-map1.png/401px-Gimcheonsine-map1.png
- 김치볶음밥 . . . . 2회 일치
* 김치와 재료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자른 재료를 넣고 볶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0화 . . . . 2회 일치
* 빌런이 [[리타이어]]하자 [[바쿠고 카츠키]]와 [[토도로키 쇼토]]가 빛을 내서 토코야미를 진정시킨다
* 우라라카가 돌아와 토가를 제압하지만 그녀가 마음을 읽는 듯한 행동을 하자 틈을 보이고 그 사이 피를 빼앗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7화 . . . . 2회 일치
* 그때 난데없이 "피자러 카미노점"에서 배달이 온다.
* 물론 진짜 피자 배달이 아니라 프로 히어로들이 아지트를 급습한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2회 일치
* 베스트 지니스트의 개성은 "파이버 마스터". 섬유를 자유롭게 조작하며 옷을 입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저항할 수 없다.
* 그의 본명 "시무라 텐코". 그런데 분명 "올마이트 이전의 원 포 올 사용자"의 이름도 "시무라"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2회 일치
*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베스트 지니스트]]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사용, 직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반했기 때문.
* 간신히 일어난 베스트 지니스트는 사전에 예상했던 "빌런 연합의 브레인"이 이 자일 거라고 직감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상정 이상의 괴물이다.
- 나이츠 오브 더 라운드 . . . . 2회 일치
아이템 중에서 커다란 아이템은 공격하면 쪼개진다. 이럴 경우 그냥 하나 습득하는 것보다 쪼개서 습득하는 것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이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금화상자는 3개이거나 확률에 따라 4개에서 6개까지 쪼개지기도 하고, 큰 과일 바구니는 과일 하나만 남기도 한다.]
게임 자체는 준수한 게임인데 어째 고증이 이상하게 되어 있다. 어쩌면 고증이 아니라 그냥 판타지적인 감각을 썼을 수도 있지만..
- 나체의 마하 . . . . 2회 일치
* '''[[음모]]를 그렸다'''. 중세의 윤리관으로 체모 등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보아 금기시 되었고, 여성의 음모는 나체라고 해도 순수한 미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체의 마하에서 음모를 그린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례였다.
나체의 마하의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당시 스페인의 권력자였던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설이 있다. 스페인에서는 유해검사까지 했다고 한다.
- 나폴레옹: 토탈워/오스트리아 . . . . 2회 일치
* 키오자(Chioggia): 항구
* '''자그레브(Zagreb)'''
- 남의 집은 남의 집 우리 집은 우리 집 . . . . 2회 일치
각자의 가정에는 각자 방침이 있다는 의미이다.
- 남일해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주란지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 네토라레 . . . . 2회 일치
--이미 마음이 떠난 여친이나 친구가 섹스하고 비디오를 찍어서 자위하라고 보내주는 훈훈한 미담을 다룬 작품들--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을 다른 사람에게 성적으로 빼앗기는 상황
- 노루토끼 . . . . 2회 일치
볼퍼팅어Wolpertinger의 한국어 번역 명칭.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한국 서버에선 '노루토끼'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보이지 않지만, 인게임 계절 이벤트인 '가을 축제'에서 굳이 맥주를 마실 필요 없이 어떤 술이든 취하도록 마시면 이벤트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매일 보고 싶다면 이벤트 중에 수행 가능한 일일 퀘스트를 통해 애완동물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얻어보도록 하자.
- 녹색 종이 . . . . 2회 일치
* 왠지 녹색 종이를 소환(召喚)한다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유희왕]]?
== 참고자료 ==
- 뇌피셜 . . . . 2회 일치
'뇌내 오피셜'의 약자. 그 자신의 뇌내에서만 오피셜(공식적)인 정보라는 것이다. 주로 "내 주변에서" 같이 한정된 사례를 논쟁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니세코이/212화 . . . . 2회 일치
* 다음날 치토게는 라쿠에게 같이 하교하자고 한다
* 치토게는 "정말로 예쁘고 안심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 여자애가 옆에 있다는거에 감사해야 한다. 좀 더 신경써라"고 말한다
- 니세코이/213화 . . . . 2회 일치
* 츠구미는 치토게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을 가져온다.
* 뭔가 아는 것 같은 치토게의 아버지도 자신도 정확한건 모른다며 답하길 거부한다.
- 니세코이/215화 . . . . 2회 일치
* 혼자서 열쇠를 들여다 보다 마침 귀가하던 어머니에게 보인다.
* 사실 대부분의 독자는 이치죠 어머니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 니세코이/222화 . . . . 2회 일치
* 치토게는 포기한 척했지만 사실이 드러나자 "역시 내가 아니잖아"라고 자신은 가짜일 뿐이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 니시키노미하타 . . . . 2회 일치
자신의 행동, 주장 등에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사용하는 명분을 뜻한다.
붉은 [[비단]]에, 일월을 금은으로 자수하거나, 그린 깃발을 뜻한다. [[가마쿠라 시대]] 이래, [[일본]]에서는 조적(朝敵)을 토벌하러 갈 때 쓰는 관군(官軍)의 깃발로 쓰였다. 금기(錦旗,킨키)라고도 한다.
- 단축 도메인 . . . . 2회 일치
일반 도메인 주소를 약 15자 이하로 줄여주는 서비스, 무조건 140자 이하로 글을 작성해야 했던 초기 [[트위터]]에서 많이 쓰였다.
- 닭 . . . . 2회 일치
[[조류]]의 일종.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된다.
[[소]], [[돼지]]와 함께 대표적인 [[가축]] 중 하나다. [[알]]은 [[달걀프라이]]나 [[삶은 달걀]]이 될 수 있고. 몸뚱아리는 [[치킨]]이나 [[백숙]]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새끼인 [[병아리]] 까지도 [[초등학생]]의 [[노리개]]로 바치는 갸륵한 새다. 닭털은 쓸모가 없는 줄 알았더니 [[http://www.sciencetimes.co.kr/?news=%EB%8B%AD%ED%84%B8%EC%9D%80-%EA%B3%A0%ED%9A%A8%EC%9C%A8-%EC%97%B0%EB%A3%8C-%ED%83%B1%ED%81%AC|수소 저장고]]나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96762|플라스틱의 재료]]로 써먹을 가능성이 보인다.
- 대구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구자춘]] - 달성군
* [[추자현]] - 서구(대구)
- 더 선 . . . . 2회 일치
축구 경기 도중 96명의 관중이 압사한 [[힐즈버러 참사]] 당시 리버풀 팬 일부가 사망자의 주머니를 털고, 경찰에게 오줌을 쌌으며 인공호흡을 시도하던 경찰관을 구타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https://www.thesun.co.uk/archives/news/919113/we-are-sorry-for-our-gravest-error/|그리고 23년후 사과 기사를 냈다.]]
[[브렉시트]]에 대한 투표가 있기 전 당시 여왕이던 [[엘리자베스 2세]]가 브렉시트를 지지한다는 기사를 냈다가 버킹엄에게 까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603101203061&code=970205|경향신문 링크]].
- 데부센 . . . . 2회 일치
'''데'''부 전문('''센'''몬)(デブ専門)의 약자. 데부(デブ)는 [[뚱보]]이며, 여기서 '전문'은 본래 풍속점을 뜻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인터넷에서는 '데부센 사이트', AV에서는 '데부센 코너' 라는 것이 생겨났다.
== 참고자료 ==
- 데키콘 . . . . 2회 일치
「생겨버렸다 결혼(できちゃった結婚)」의 약자. 좀 더 멸칭적인 말로 즛콘밧콘(ズッコンバッ婚)이 있다. 2001년에 동명으로 [[후지TV]]의 드라마가 있다.
== 참고자료 ==
- 도나우 강 . . . . 2회 일치
[[카자크는 도나우를 넘었다]]
한국 수자원공사 글로벌 하천관리 탐방 도나우강
- 도야가오 . . . . 2회 일치
《「도야(どや)」는 「어떠냐(どうだ)」는 뜻의 간사이 방언》으로, 도야가오는 '득의양양하게 어떠냐는 듯이 자신을 자랑하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 딴따라 . . . . 2회 일치
과거 유교적 관습이 남아있던 시대에는 연예인이 그리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음악을 팔고 웃음을 파는 직업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수들의 이야기를 보면 노래를 연습하고 있으니 "너 딴따라 될거야?"라면서 부모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연예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중요한 문화활동의 일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칭은 거의 사장되었고 일부 팬덤에서 적대시하는 연예인 등을 비하하기 위해서나 쓰고 있다.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비칭으로서의 의미도 점차 '탈색'되면서 몇몇 가수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로 규정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스스로 딴따라라고 자칭하는 것은 일종의 겸양, [[언더독]] 의식을 드러내는 말이다.
- 떠있는 섬 . . . . 2회 일치
현실에서 물 위에 떠있는 섬은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이 뭉쳐서 떠다니는 것이다. 위에 풀이 자라서 언듯 보기에는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지반이 연약하여 땅과는 다르다.
현대에는 굳이 말하자면 대형 [[바지선]]이 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공적인 구조물로 [[메가플로트]]가 계획되고 있다.
- 라이트노벨 . . . . 2회 일치
문학의 한 장르로, 말 그대로 가볍게 읽고 즐기는 것이 목적인 소비지향적인 [[소설]]을 뜻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라이트노벨은 몰라도 최근에는 주로 오타쿠들이 소비하는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장르의 특성상 러브코메디나 또는 전쟁물 등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내용들이 자주 보인다. 2000년대 중반~2010년대에는 국산 라이트노벨도 만들어졌으나 인기 저하 및 웹소설의 부흥으로 사실상 멸망했다고 보고 있으며, 여전히 시장에선 일본산 라이트노벨의 영향력이 크다. 또한, 작품들 중 인기있는 라이트노벨의 경우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 러시안 룰렛 . . . . 2회 일치
미친 게임으로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리볼버]] 권총의 회전식 탄창에 [[탄환]]을 1개 넣고 장전한다. 탄창을 돌린 다음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은 5/6의 높은 쪽이 아니라, 1/6의 낮은 확률을 맞춘 것인데, 여러 게임의 일반론에서 낮은 확률 쪽을 더 높이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러시안 룰렛을 할 사람은 이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도록 하자.
- 레드 토네이도 . . . . 2회 일치
로봇 [[슈퍼히어로]]. 개발자는 [[T.O. 모로우]]. 적색 컬러링에 망토, 적색 소용돌이가 특징이다. 소속은 [[저스티스 리그]].
공기와 바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소용돌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외에 괴력과 내구력을 지니고 있다. 속도도 뛰어나며 자가 수리가 가능하다.
- 로켓레드 . . . . 2회 일치
이외에 로켓레드 #7인 블라디미르 미코얀이 있으며 관련 캐릭터로 [[파이어스톰]]의 협력자인 [[포자르]]가 있다.
- 루시우스 폭스 . . . . 2회 일치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CEO. 뛰어난 기업가이며 그 실력은 전설이라 불릴 정도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활동을 위한 수련을 하던 시기에 웨인 기업을 맡아 무너지는 회사를 살려냈으며 덕분에 브루스의 배트맨 활동에 필요한 자금도 유지되었다. 알프레드가 배트맨 활동을 포함한 브루스 웨인의 생활을 돕는다면 루시우스 본인은 브루스에게 필요한 자금을 돕는 포지션.
- 류효영 . . . . 2회 일치
| 형제자매 = 쌍둥이 동생 [[류화영]], 동생[[유밴드]]
| 여자 신인상
- 리스트 컷 . . . . 2회 일치
커터칼(혹은 가위나, 면도날 등) 등으로 손목을 베는 자해행위를 뜻한다.
리스트 컷은 주로 사춘기에서 20대 젊은이, 그 중에서도 미혼 여성에게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손목에 2,3회 상처를 입히는 것이며, 손목 이외에 팔다리, 얼굴, 복부 등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리스트 컷은 반복되거나, 습관화 하는 일이 많지만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참조링크(일본어)
- 릭 존스 . . . . 2회 일치
두번 감마선에 노출된 적이 있다. 한번은 직접, 한번은 실수. 전자는 실패해서 암에 걸렸지만 비욘더 덕분에 살았고, 후자에는 실수였지만 성공해서 헐크가 되었다.
- 릴가민 . . . . 2회 일치
* 5편 이전 구작 위저드리 까지 위저드리 최강의 장비 다이아몬드 기사의 장비가 있다. 일명 KOD 시리즈. 돌아버린 성능을 자랑한다.
1편과 4편의 배경도 릴가민 왕국으로 보는 리뷰가 많지만, 사실 1편과 4편은 명확하게 '릴가민'이라고 언급된 바가 없다. 오히려 1편과 4편의 배경 스토리는 릴가민 왕국의 역사와는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 하지만 릴가민이라고 언급하는 자료도 가끔 있어서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상태. 어느 쪽이던 명확한 것은 없어서, 한데 묶는 '1도설'과 별도의 나라라는 '2도설'로 나누어지고 있다.
- 마~앙 . . . . 2회 일치
「마~앙(웃음) / ま~ん(笑)」이란 여성.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바보 취급하고 조롱하는 뜻에서 쓰는 말이다.
본래 「치-잉(ちーん)」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방울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로서, 전자렌지 등이 조리가 종료될 때 울리는 소리이기도 하므로 종료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 마루코메 . . . . 2회 일치
일명 '마루코메쿤'(マルコメ君)이라 부르며, '''동자승처럼 머리를 완전히 민 남자아이'''를 뜻한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2회 일치
*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이기에 마블의 캐릭터와 세력, 설정이 등장하며, 내용 중에는 코믹스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으나 그렇다 해서 코믹스를 100% 반영하지는 않고, 그렇기에 호불호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코믹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에 전혀 상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코믹스에 나온 것을 기본 소재로 두면서 MCU에서 독자적인 전개를 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 각 영화와 드라마들은 슈퍼히어로 장르라는 것을 전제로 각각 개성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은 재수 없는 부자가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
- 마왕이 나타났다 . . . . 2회 일치
* 처음에는 마왕의 ㅁ자도 보이지 않는 작품도 있다. 약간 복선은 있지만 아무래도 떼어다 붙인 느낌이 된다.
*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 처음에는 정치-전쟁물 운운하는 전개가 되더나, 루카비가 나타나고 급속도로 마왕 엔딩으로 돌진한다. 사자 전쟁이란 대체. 다만 이는 철저히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실드쳐줄 여지는 있다.
- 마의 2세아 . . . . 2회 일치
2세가 되면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여,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는 의미. '1차 반항기'라고도 불린다. 아직 언어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든지 싫어(イヤ)라는 말로 대응한다고 하여, 싫어싫어기(イヤイヤ期)라는 표현도 있다.
- 마이클 페이 . . . . 2회 일치
1994년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기행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마이클 페이에게 태형 6대와, 3500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으며, 미 국무부는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 [[빌 클링턴]] 대통령 까지 나서서 "태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6대에서 4대로 [[감형]] 했을 뿐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의 고척동(吳作東) 총리는 "누구든지 싱가포르 땅에서 법을 어기면 싱가포르 법에 따라야 한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친서까지 보낸 점을 감안해 태형을 6대에서 4대로 줄여준다"고 말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22944 (참조)]]
- 맥시 제우스 . . . . 2회 일치
[[그리스 신화]]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를 제우스라 생각하게된 사업가. 번개 무기를 사용하여 고담을 공격하려다 배트맨에게 패하고 붙잡혀 [[아캄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반응이 가관인 것이 갇혀있는 빌런들을 보고는 [[헤르메스]]([[조커(DC 코믹스|조커]]), [[야누스]]([[투페이스]]), [[데메테르]]([[포이즌 아이비]]) 등 그리스 신화의 신들로 보고 자기 방에 오고나서는 자신이 [[올림푸스]]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배트맨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를 [[하데스]]라 불렀다. 여러모로 미친 놈들이 많이 나오는 시리즈지만 독보적으로 현실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미쳤다.
- 머슬봄버 . . . . 2회 일치
게임 자체는 나름 잘 만들어진 완성도의 게임이나 테크노스 재팬의 WWF 레슬페스트보다는 성공하지 못했다.
배경의 관중성을 자세히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류와 춘리가 보인다.
- 메시아 컴플렉스 . . . . 2회 일치
통속심리학 용어. 자신이 '구세주'([[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비정상적인 강박관념을 가지고,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이다.
* 가끔 악당들이 걸리는 클리셰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악당은 자기들을 악이라 생각지 않는다.
- 멸사봉공 . . . . 2회 일치
사자성어. 영어로는 'sacrifice yourself for greater good'.
[[분류:사자성어]]
- 명예백인 . . . . 2회 일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백인 국가에 뒤지지 않게 성장하자, 국책상의 이유로 이들 국적의 아시아인에게 백인과 같은 대우를 주고 '명예백인'으로 취급하였다.
[[나치 독일]]에서는 [[일본]], [[이탈리아]]와 [[추축국]] 동맹을 맺게 되자 일본인은 명예 아리아인으로 대우 받게 되었다.
- 무신 . . . . 2회 일치
본래 고대 중국에서는 문신과 무신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때 그때 맡고 있는 관직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에 불과하였다. 물론 개인적인 적성은 있으니까 문신 성향과 무신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구분이 없다고 봐도 좋다. 장군이나 도독 같은 무관직을 맡다가 문관직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문관직을 맡다가 무관직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양자를 겸직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좀 미묘하게 낮은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무신 역시 국가의 지배층이므로 일반 백성들 입장에서 보자면 꽤나 잘 나가는 신분이다.
- 문맹 . . . . 2회 일치
문맹은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으나, [[문자]]를 판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고대에는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지식인]]으로 여겨져서 문맹인 사람이 아주 많았으나, [[공교육]] 체계가 정착한 나라에서는 문맹이 매우 적게 된다.
- 문서사유화 . . . . 2회 일치
"문서사유화"란, "위키 문서는 다 같이 쓰는 공간이므로, 혼자서 독점하여서는 안된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옛날 [[엔하위키]]에서 특정 문서를 자기 마음에 드는 형태로만 수정되어야 한다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람을 제제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졌던 용어. 생각해보면 위키위키인 이상 당연한 것이다.
- 문석희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문석희'''([[1980년]] [[12월 21일]])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자 [[영화 배우]]이다.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2회 일치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이 일본 전국 무사들의 동경을 받아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봉급을 확실하게 쳐줬기 때문'''이다(…). 전투에 나섰지만, 조정에서 공적인 전쟁이 아닌 '사투'[* 사적인 싸움.]로 처리하여 무사들이 은상을 받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하치만 타로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종군한 무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은상을 지급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가 하치만 타로가 후세에도 명성을 얻게 된 원인이며, 겐지 씨족이 무사의 동량으로 여겨지게 된 기원이다.
== 배우자 ==
- 미스터 아톰 . . . . 2회 일치
찰스 랭글리(Dr. Charles Langley)가 만든 지능있는 [[로봇]]. [[원자력]]으로 가동한다. [[괴력]]을 지니고 있으며 비행 가능. 특수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방어력도 뛰어나다. 손에서 에너지 블라스트를 발사한 적도 있다.
[[샤잠]] 계열 [[슈퍼 빌런]]. 샤잠이 [[캡틴 마블]]이던 시절부터 등장했는데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다 캡틴 마블에게 패했다. 이후로도 캡틴과 싸웠으며 [[슈퍼맨]],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 등 DC 코믹스의 다른 영웅들을 상대로도 싸웠다.
- 밈 . . . . 2회 일치
문화적 요소를 유전자에 비유한 것으로,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를 통하여 유명해졌다. 지금은 기원에 대해서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바-로- . . . . 2회 일치
* 일본어 욕설, 바카야로(馬鹿野郎)의 준말. 뜻은 "바보자식"으로 같지만, 약간은 부드러운 느낌. "멍청이" 정도.
* [[에도가와 코난]]. 이 말을 자주 쓰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쓰지는 않지만 트레이드 마크 취급.
- 바키도/106화 . . . . 2회 일치
* 피클은 자신이 그 시절의 호적수들을 좋아했듯 무사시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 바키도/109화 . . . . 2회 일치
* 점토로 만든 인형에 양복정장을 입힌 것, 경찰관 의상과 방탄복, 방패를 소지한 기동대복, 자위대 복장 등이 준비되어 있다.
* 도쿠가와는 사람의 경추(목)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무사시는 힘도 들이지 않고 두부 자르듯 베어버린다.
- 바키도/113화 . . . . 2회 일치
* 피클도 바키를 알아보고 웅크렸던 자세를 풀고 편히 마주 앉는다.
* 심지어 해설자 노릇을 하는 장면이 더 많아서, 바키도란 아나운서도인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바키도/114화 . . . . 2회 일치
* 그러자 도쿠가와는 "무사시의 칼과 티라노의 이빨 중 어느 쪽이 위라고 생각하나"라고 묻는다.
* 그러나 무사시 또한 요시오카 일문과 대결에서 보여주었듯 악마적인 전투력을 자랑한다.
- 바키도/117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는 벼락같은 발도로 피클을 문자 그대로 양단해 버린다.
* 피클은 잡고 있던 칼을 놓자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 바키도/119화 . . . . 2회 일치
* 어차피 과다출혈이 될 테니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서는 꼴사납다고 말한다.
* 그러더니 자신을 먹으라며 도발하기 시작한다?
- 바키도/131화 . . . . 2회 일치
* 투구를 쓴 무사도 성주도 그때까진 웃는 낯이었으나 대번에 표정이 변하고 특히 무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워한다. 무사시는 자기가 뱉은 말대로 바로 베려고 나선다. 무사는 "살살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는데 무사시는 "전쟁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셈인가?"라며 단숨에 내려친다.
* 한마 바키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승부는 낫어어어! 멈춰어어!" 그러나 모토베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랬다간 지킬 수가 없다"고 독백하고 있다.
- 바키도/132화 . . . . 2회 일치
* 모토베는 망가진 사지로 잘도 슬리퍼 홀드까지 들어간다. 부러진 손목 때문에 왼팔을 목에 휘감고 이로 소매를 끌어 당기는 눈물겨운 슬리퍼 홀드. 그러나 자세는 완벽하다.
자신을... 동료를... 시대를... 그리고 무엇보다
- 바키도/138화 . . . . 2회 일치
* [[도쿠가와 미츠나리]]의 저택 앞을 경찰차가 애워싼다. 우츠미 경시총감이 직접 앞장서서 무사시를 체포하러 간 것이다. 총감은 생중계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도쿠가와는 자기는 현장에서 모든걸 봤다며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고 잘라말한다.
* 총감도 무리라고 여기긴 하는지 용의자가 아니라 "중요참고인"이란 핑계를 대는데, 어쨌든 도쿠가와는 수긍하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는 "본인"이라고 하는데. 그 본인이 동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다.
- 박보생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전직 [[경상북도]] [[김천시]]장으로 당적은 [[자유한국당]]이다.
[include(틀: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박정수(정치인) . . . . 2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공천을 받아 김천시-금릉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역시 김천시-금릉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의 초대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해 5월의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문화 개방 및 '''천황'''의 방한을 원하신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그 해 7월에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원의 강제추방 사건에 맞대응해 서울 주재 러시아대사관원인 올레그 아브람킨 참사관을 강제추방한 것이 화근이 되어 5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경질된다. 이후 1998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 복귀했다.
- 박준홍 . . . . 2회 일치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에서 정치인 생활을 했지만 선거에서는 계속 낙선했다. 특히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선거구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거구에서 사촌 형인 [[박재홍(1941)|박재홍]] [[민주정의당]] 후보와 대결하여 낙선하였다.
2012년 3월 가석방되어 지지자들이 환영식을 열었다. [[http://www.seoulpost.co.kr/paper/news/view.php?newsno=18894]]
- 박진석 (가수) . . . . 2회 일치
캬바레무도장 전자올겐 생음악 총결산
남자라 울지 못했다 정규 앨범
- 박치기 . . . . 2회 일치
자신의 머리통이나 이마로 상대를 들이받는 기술.
이걸 할 때는 시전자의 [[뇌]]가 머리통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두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
- 박태준 (작곡가) . . . . 2회 일치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배경 세계 공유 . . . . 2회 일치
* 위자딩 월드
<[[성방무협 아웃로스타]](星方武侠アウトロースター)>는 <[[성방천사 엔젤링크스]](星方天使エンジェルリンクス)>와 배경 세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Toward Star Worlds>라고 한다. 이 세계는 아웃로스타의 원작자인 이토 타케히코(伊東岳彦)의 출세작 <[[우주 영웅 이야기]](宇宙英雄物語)>와도 연관성이 있다.
- 배소연 . . . . 2회 일치
* [[2014년]]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제14기 문화예술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분류:구례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배영호 . . . . 2회 일치
|전임자 = [[한성수]]
|후임자 = [[박철 (1917년)|박철]]
- 배천석 . . . . 2회 일치
|로마자 표기 = Bae Chun-Suk
{{둘러보기 상자 묶음
- 백운산 물고기 . . . . 2회 일치
번식 자체는 쉽지만 [[알]]을 보면 자기가 먹어버리기 때문에 번식을 시키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 버리는 대사 . . . . 2회 일치
* 가장 흔히 쓰이는 상황은, 헤어지거나 하는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날 때 대답을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뱉고 가는 말을 뜻한다. 이 경우는 악의적으로 경멸이나 협박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기억해둬라!" 같은 말이 있다.
== 참고자료 ==
- 법 없이도 사는 사람 . . . . 2회 일치
--한자로는 [[무법자]]--
- 법테라스 . . . . 2회 일치
법테라스의 업무는 문의내용에 따라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법률이나, 지방공공단체, 변호사회, 사법서사(법무사) 회, 소비자 단체 등을 안내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료 법률 상담이나, 필요에 따라서는 변호사나 법무사 비용을 대행한다. 또 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지원을 주는 범죄 피해자 지원 업무도 하고 있다.
- 벨트스크롤 게임 . . . . 2회 일치
[[스테이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무기]]를 입수하여 공격에 쓰거나, [[드럼통]]이나 [[상자]] 같은 물건을 던져서 공격, 회복 아이템을 주워먹고 체력을 회복 할 수 있다.
* 회복 아이템은 왠지 전통적으로 [[음식]]이라서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고 체력을 회복하는 생각해보면 묘하게 거지같은 꼴(…)을 자주 볼 수 있다. 음식이 아니라도 그렇지만.
- 보쿠걸/100화 . . . . 2회 일치
* 미즈키는 당연히 남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실행하지 못한다.
* 남자로 돌아간다는 말과는 달리 '''미즈키의 가슴은 계속 커지고 있다.'''--입으론 싫다고 해도 몸은 정직하군요--
- 보쿠걸/103화 . . . . 2회 일치
* 기숙사로 돌아온 미즈키는 여자였던 시절 입은 옷이나 인형 따위를 정리하며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 미즈키는 여자를 버리기로 완전히 결심한다.
- 보쿠걸/97화 . . . . 2회 일치
* 미즈키는 타케루를 만나서 처음으로 "남자는 멋있다"고 생각하고 남자답게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다
- 봉화군 . . . . 2회 일치
! 읍면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행정지도
== 출신자 ==
- 부릿코 . . . . 2회 일치
남자 앞에서 내숭을 떨면서 인기를 모으려는 여성을 뜻한다.
'-을 하는 척 하다'는 후리(振る)가 변형하여 부리(ぶり)가 되었고, 여기에 여자를 뜻하는 -코를 붙여서 이러한 단어가 되었다.
- 부시왜커 . . . . 2회 일치
한때 성직자를 꿈꿨던 전직 CIA 요원.[* 이때 팔이 총으로 개조되었다.] 현재는 뮤턴트 사냥꾼인데 그에게 희생된 뮤턴트들은 초인적 힘의 소유자들이 아니라 예술 관련으로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뮤턴트들이며 큰 돈을 받고 활동하는 것은 맞으나 누구에게 고용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그의 행동을 멈추기 위해 [[울버린]]이 추격에 나섰으며 그의 아내에게 부탁받은 맷 머독도 움직였다. 처음엔 부시왜커를 죽이려는 울버린을 맷 머독이 데어데블로서 막았으나 탈출한 부시왜커의 손에 뮤턴트 발레리나가 죽으면서 둘이 연합하게 되었다. 결국은 패배했으며 이때 울버린에게 다시 죽을뻔했으나 데어데블이 또 살려줬다. 이후 데어데블의 손에 의해 뉴욕 경찰서에 넘겨졌다.
- 브레이킹 배드 . . . . 2회 일치
>- 제작 의도 : 미국에 만연한 약물 문제에 대한 경고를 환기하며, 현대 사회에 붕괴되어가는 가정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 드라마 최악의 [[발암]]물질로서, 시청자를 발암하게 만들어서 월터의 심경을 직접 느끼도록 만든다.
- 블랙 블록 . . . . 2회 일치
블랙 블록이란, 검은 옷과 후드, 마스크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시위 현장 등에 나타나서 파괴활동을 하는 아나키즘 성향의 집단 혹은 이러한 운동활동을 뜻한다.
--[[닌자]]에서 유래--
- 블랙 클로버/50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자신은 "나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마법제라는 최대 적이 있으니 야미에게 수고를 들일 수가 없다고 한다.
* 이 마법은 야미 조차도 "위험하다"고 판단. 마력양 자체는 리히트가 터무니없이 높기 때문에 흡수에도 한계가 있는 듯 하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2회 일치
* 노엘은 빗나갈 수 있다는 부담과 자신의 공격이 먹히기는 할지 알 수 없어 주저한다.
* 베토는 그걸을 눈치채고 "패배자는 거기서 지켜봐라"고 폭언한다.
- 블리치/677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슬슬 체감할 때가 됐다고 하는데, 아스킨은 자기 몸이 잘리는 걸 알고 경악한다.
* 우라하라 키스케의 만해는 "고쳐 만드는 능력". 일정한 영역 안에서 무엇이든 고치거나 갈라진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아스킨의 몸을 순식간에 갈라버렸고 자신의 상처는 순식간에 고쳤다. 마치 실로 봉합한 듯한 모양.
- 블리치/683화 . . . . 2회 일치
* 토시로가 '''"너의 '희망'은 기능이 정지됐다"'''며 도발하자 '''제라드는 퀸시의 활을 꺼내든다.'''
* 신의 전사는 얼지 않는다며 그대로 으깨주겠다고 장담하지만 갑자기 쓰러져 버리고
- 블리치/684화 . . . . 2회 일치
* 아침이 밝자 하쉬발트에게 부여됐던 올마이트의 힘이 사라진다.
* 하쉬발트는 그 꼴로 그런 말을 하냐며 비웃고 자신의 본래 힘이 전투에는 더 적합하다며 우류를 공격한다.
- 블리치/687화 . . . . 2회 일치
* 사실 하쉬발트는 그런 것에 흥미가 없을 테고, 자신이 하쉬발트를 유하바하에게 가지 못하게 시간이나 끈다는 것도 알 텐데, 왜 얼른 마무리 짓고 유하바하에게 가지 않는지 묻는다.
* 우류는 "하지만 네가 본 미래는 변하지 않냐"고 비꼬는데, 하쉬발트는 유하바하의 올마이티는 자신과 차원이 다르며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빠른이동 . . . . 2회 일치
일부 게임에서는 빠른이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봤자 모든게 귀찮아지면 모든 이동을 빠른 이동으로 하게 된다.
* [[폴아웃 : 뉴 베가스]]에서는 랜드마크를 통해 빠른 이동을 할 수 있다. 한번 들른 랜드마크는 전투 중이 아닌 한 언제든지 들릴 수 있다. 유일한 이동수단이 발 뿐인 게임이라 자주 쓰게된다.
- 사고물건 . . . . 2회 일치
물건(物件)은 부동산을 뜻한다. 사고(事故)는 말 그대로 사고. 과거에 어떤 '사고'가 있었던 부동산 건물이나 임대주택, 아파트를 뜻한다. 살인사건, 도둑, 강도 등의 범죄사건, 입주자의 [[자살]] 등 여러가지가 있다.
- 사람의 소문도 칠십오일 . . . . 2회 일치
어떤 소문이라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오래 지속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는 뜻이다.
왜 하필 75일인지는 분분한 제설이 있는데, 75는 과거에 '한 계절'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절이 하나 지나갈 정도면 소문이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75일이면 꽤 긴 것 같지만.
- 사축 . . . . 2회 일치
회사가 하라는 대로, 어떤 일에도 불평을 하지 않고, 일하는 직장인을 풍자를 담아서 가리키는 단어로서,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회사인간(会社人間)」이나「기업전사( 企業戦士)」와는 달리 야유가 강하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양심도 버릴 수 있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 삼자면담 . . . . 2회 일치
[[학교]]에서 [[학생]]의 지도를 목적으로 하여 담임교사와 부모, 학생이 면담을 나누는 것. 보호자 면담이라고도 한다. 삼자면담을 하는 경우, 학교에서는 학생의 생활, 학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 생일파티 . . . . 2회 일치
서양에서는 [[케이크]]를 차리고, 나이 수만큼 [[촛불]]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면서 불어서 끄는 관습이 기본. 생일에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거나, 연인과 함께 알콩달콩 거리거나, 아니면 혼자서 쓸쓸하게 지내며 생일에도 만난 사람이 없는 자신의 대인관계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 샤잠 . . . . 2회 일치
이름이 샤잠이 되었다. 정체인 빌리는 이전과 달리 불량소년이 되었으나 근본 자체는 썩지 않았다.
* DC와 포셋의 법정공방 탓에 캡틴 마블 연재에 지장이 오자 영국에선 대체 캐릭터인 마블맨이 나왔다. 이 마블맨은 후에 미라클맨이 되었으며 소속은 마블 코믹스.
- 서귀포시 . . . . 2회 일치
! 행정동 ! ! 한자 ! ! 인구<ref>단위 명, 2018년 5월 기준</ref> ! ! 면적
[[분류:서귀포시 출신|서귀포시 출신 인물]][[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도시]][[분류:1981년 설치]][[분류:2006년 폐지]][[분류:2006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서비스 잔업 . . . . 2회 일치
노동기준법에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과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서비스로 잔업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여 '서비스 잔업'이라고 호칭한다. 서비스업의 잔업이 아니다.
- 서상돈 . . . . 2회 일치
1851년 [[경북]] [[김천시]]에서 출생한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대구시]]로 몸을 피한 뒤 정착하였다. 대구에서 몇몇 천주교인의 도움으로 보부상을 시작한 그는 대구에서 손꼽히는 거상이 되었다.
1907년 서상돈은 담배를 끊어 1300만원 가량의 국채를 갚자고 제안하며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여 전국으로 확산시켰으나 일제의 방해로 무산된다.
- 서태식 . . . . 2회 일치
'''서태식'''(徐泰植, [[1938년]] [[11월 22일]] ~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을 창립하고 30년간 회장직을 맡아온 기업인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47257 |제목= 서태식 회장, '회계업계 살아있는 역사' |출판사= [[머니투데이]] |날짜=2005-06-09 |확인날짜=2013-04-03}}</ref>
== 참고 자료 ==
- 선거인단 . . . . 2회 일치
미국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은 각 주의 [[투표]]로 선출된다. 각 주에 할당되어 있는 선거인의 숫자는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하여 차이가 난다. 현재 미국에서 다수의 주는 주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선거인을 독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출된 선거인단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각 주의 선거에서 선출된 후보와는 별개의 인물에게 투표하는 것이 가능하다. 몇몇 주에서는 이러한 행위에 처벌 규정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관례적으로 선출된 후보를 선택하며 배신 투표는 지극히 드물다.
- 선문답 . . . . 2회 일치
*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찾고자 서로 나누는 문답.
* (일본어) 제 삼자가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한 문답.
- 세속주의 . . . . 2회 일치
세속주의 사상에서는 특정 종교를 가졌다는 신념의 문제 떄문에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이는, 특정 종교의 신자가 특혜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봄과 동시에, 모든 종교의 신자는 물론 [[무신론]] 역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 세이와 덴노 . . . . 2회 일치
* 손자 츠네모토 왕(経基王)을 신적강하하여, 미나모토(源) 성을 내린다. 이 미나모토 츠네모토(源経基)의 자손이 [[세이와 겐지]]이며, 일본 무가정권의 시조가 된다.
- 소학 . . . . 2회 일치
소학은 [[고려]]말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매우 중요시되었다. [[천자문]]과 함께 [[서당]]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교재로 쓰였다.
학자들 가운데서는 [[김광필]], [[조광조]]가 아주 좋아하였다고 한다.
- 손지민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솔 인빅투스 . . . . 2회 일치
## 자식이나 배우자 등 가족이 있는 경우
- 송가인 . . . . 2회 일치
* 2018년 제2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성인가요 여자 신인상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상남도출신 인물]][[분류:2012년 데뷔]][[분류:광주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송종호 (1956년) . . . . 2회 일치
|전임자 = [[김동선 (1955년)|김동선]]
|후임자 = [[한정화 (1954년)|한정화]]
- 시그니처 웨폰 . . . . 2회 일치
제작자가 밀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호응이 없으면 억지 밈이 될 뿐이므로 큰 인상을 줘야한다.
* [[007 시리즈]] - [[제임스 본드]]의 [[발터 PPK]] 자동권총
- 시로우토 동정 . . . . 2회 일치
성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으나, 그 대상이 어디까지나 풍속 여성 등 성매매 업계 종사자이며 일반인(素人)과는 했던 경험이 없다는 것. 즉 성경험은 있으나 연애 경험은 없는 사람을 뜻한다.
시로우토(素人)는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비전문가, 초심자, 풋내기, 아마추어 등을 뜻하는 말이다.
- 시프트제 . . . . 2회 일치
시프트제가 없는 경우는 미리 모집공고를 낼 때 근무시간도 함께 제시하는 반면, 시프트제를 채용하는 직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한달~2주 전에 희망근무시간(시프트)를 제출하고, 점장은 거기에 맞춰서 근무시간표(시프트표)를 작성하여 근무시간을 각자에게 할당한다.
* 일정한 시간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에 맞춰서 어느 정도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 식극의 소마/165화 . . . . 2회 일치
소마는 자신만만하게 메뉴를 내놓는다.
* 맛밤을 까넣은 사슴고기는 황당해 보이지만, 사실 밤과 사슴고기, 밤과 지비에라는 조합은 프랑스 요리에서도 자주 쓰이는 조합.
- 식극의 소마/231화 . . . . 2회 일치
* 소마 일행은 각자의 건투를 빌며 조리를 시작한다. 메구미는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받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언을 상기한다.
- 신선미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신종령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자, 이제 다들 협조 좀 해주셔야 겠습니다.(애정남)
- 실즈 . . . . 2회 일치
일본의 학생운동 단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自由と民主主義のための学生緊急行動)을 뜻하는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의 약자에서 따왔다. 단체 스펠링은 다르지만 일본어 발음은 영어 실즈(SHIELDS)와 비슷하여 영어로 '방패'와 연관을 지어서 지은 이름으로 추측된다.
- 아니키 . . . . 2회 일치
* 직공, 야쿠자 사회에서 젊은이들 중에서 세력이 있고 우두머리 격으로 여겨지는 자.
- 아라포 . . . . 2회 일치
2007년 무렵 이 세대의 특징으로서 남녀고용균등법 하에서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어, 커리어 우먼이나 여성 벤처 기업을 경영하기도 하고, 결혼과 직업 선택이 이전보다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여성이 많다고 여겨진다.
'''아라'''운드 '''포'''티(アラウンドフォーティー, around 40)의 약자이다. 30세 전후의 여성을 뜻하는 아라사(アラサー, around 30)에서 파생된 말이다.
-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 . . . . 2회 일치
America Funniest Home Video. 미국의 TV 프로. 시청자들이 보낸 홈비디오를 모아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영상 대부분에 사회자가 코멘터리인지 나레이션인지 모를 무언가를 하는데 미국식 말장난이 대부분이라 한국인들은 이해 못 한다.
- 아웃워드 작전 . . . . 2회 일치
당시 영국은 독일의 폭격을 방해하기 위해 [[방공기구]]를 띄우고 있었다. 가끔씩 방공기구를 매단 케이블이 끊기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 방공기구가 자기 멋대로 날아다니다가 전선과 같은 시설물에 걸려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들은 가격에 비해 상당한 효과를 냈다. 풍선 중 일부는 [[라이프치히]] 인근 전선망을 합선시켜 발전소를 전소시킬 뻔했다. 가디언지의 기사에 따르면, 발전소 화재로 인한 독일의 피해 금액은 영국이 아웃워드 작전에 사용한 모든 자금의 다섯 배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 악평등 . . . . 2회 일치
사전에도 있는 용어지만 이명과 마찬가지로 그리 자주 쓰이진 않는다. 불평등과의 차이점은 불평등은 조건을 달리 적용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에 악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조건을 제시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적용받는 모두에게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 낼 때 쓰인다.
== 참고자료 ==
- 알렉스 볼더 . . . . 2회 일치
맥스는 그를 똑똑하고 용감하다고 평가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육체적 재능이 있었다고.
뉴욕시 경찰청 소속 형사였던 맥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 올 것을 권유해왔다. 맥스는 아내와 딸이 있었기에 이를 거절해왔지만, 마약 "발키리"에 중독된 자들에게 가족이 몰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 앙주 제국 . . . . 2회 일치
플랜태저넷 왕조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 자식들은 [[리처드 1세]], [[존 왕]]이 다스린 영토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영토는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노르망디]], 그리고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을 거쳐서, [[피레네 산맥]]에 도달하는 방대한 영토였다. 앙주 제국이라는 표현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으며, 근대에 이 시기 플랜태저넷 왕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헨리 2세 시기에 성립. 헨리 2세 사후에는 후계자 분쟁을 겪었으며, 리처드 1세, 존 왕을 거치게 된다. 존 왕이 필리프 2세에게 공격받아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앙주 제국은 해체된다.
- 애니멘 . . . . 2회 일치
본명 Veronica Dultry. 카운트 네파리아에 의해 합류한 여성 빌런. 잠자리 스타일이며 그렇기에 등에 잠자리스러운 날개가 있다.
- 야마우바 . . . . 2회 일치
[[일본]] [[요괴]]의 일종. 산에 들어간 여자가 야마우바가 된다고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옛날 이야기나 노오, 가부키 같은 민속 문학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무서운 할머니라는 외모 때문인지 별로 등장하는 매체가 없다.
- 야차원숭이 . . . . 2회 일치
고대 일본에는 다수의 야차 원숭이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에 확인 된 것은 바키의 친구가 된 야차원숭이와 그 자식 야차원숭이 Jr. 뿐.
야차원숭이 부, 자 모두 주인공 바키와는 친구이다.--왕따 바키의 몇 안되는 친구--
- 양희승 (작가) . . . . 2회 일치
* [[1996]]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 엥겔 지수 . . . . 2회 일치
[[독일]]의 [[통계학|통계학자]] C.L.E.Engel〔1821-1896〕이 당시 [[노동자]]의 소득 수준과 가계 지출을 조사하여 발견한 수치. 가계의 총 소비 지출 가운데서 식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백분율]]로 나타낸다.
- 역적 . . . . 2회 일치
전근대 시절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러한 역적들에 대한 대우는 특히나 가혹했다. 역적으로 지목되는 것 자체만으로 해당 인물과 일족은 혹독한 고문이나 인간 이하의 차별 대우를 받았고, 확정될 경우에는 해당되는 이의 혈통을 끊어버리는 건 기본이고 심할 경우 그 지인이나 살던 지역의 주민들까지 모조리 씨를 말리기도 했다.
- 연규진 . . . . 2회 일치
완전히 며느리바보로 [[며느리]] [[한가인]]에게는 아예 꼼짝을 못한다. 한가인이 [[채식주의자]]인 탓에 그렇게 좋아하는 [[쇠고기]]도 못 먹게 되어 쩔쩔맨 적이 있다.
* 2011년 [[JTBC]] [[여자가 두번 화장할 때]]
- 연설환희불교 . . . . 2회 일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마후라불(摩睺羅佛)이라 자칭한 번승(番僧)이라는 자가 시작하였다고 한다. 번승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그 피를 불상의 입술에 발라 환희불(歡喜佛)이라 칭하고,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서로 끌어안고 음란한 짓을 하는 불상을 만들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그 뼈를 가지고 수주(數珠,염주)와 음기(飮器,음란한 그릇)을 만들었으며, 술과 고기를 먹고 음탕한 짓을 하여 해를 끼쳤다.([[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0&gunchaId=av008&muncheId=01&finId=001 (참조)]])
- 연초아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영생 . . . . 2회 일치
영원한 삶이라는 뜻. 그 자체로는 [[불로불사]]와 같은 뜻이지만, 이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교리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 영혼결혼식 . . . . 2회 일치
죽은 사람과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을 결혼시키는 의식. 과거 죽은 사람들이 미혼으로 죽을 경우 원혼이 되기 쉽다는 관념이 있어서 이를 막고 혼을 달래기 위해 벌어졌다. 주로 고인과 인연이 있던 이성(약혼자 등)이나 혹은 특정한 동일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미혼인 이성들을 임의로 짝지어서 의식을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위나라 열조 조예가 어려서 죽은 자신의 딸과 외사촌의 아들을 영혼 결혼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 예재형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효자동 이발사]]
- 오경태 . . . . 2회 일치
'''오경태'''(吳京泰, [[1959년]] ~ )는 [[대한민국]]의 공무원, 경제학자, 공기업인이다.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심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 오니요메 . . . . 2회 일치
잔혹하고 무자비한 [[며느리]]라는 뜻. [[남편]]이나 [[시어머니]], [[시누이]] 등에게 횡포를 휘두르는 아내를 뜻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놀리는 듯이 말하는 경우도 있다.
* 여자 [[프로레슬러]] 호쿠토 아키라(北斗晶)가 오니요메 캐릭터로서 인기를 얻었다.
- 오미코시 . . . . 2회 일치
* '''덴노''' : 실권을 잃고 과거 약 1천년 이상 오미코시를 해왔던 오미코시 전문 일족(…). 덴노 본인만이 아니라, 그 자손인 황자, [[겐지]], [[헤이지]] 등의 가문도 오미코시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일본의 오미코시 전통은 여기에 유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오싱 . . . . 2회 일치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상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상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남편과 만나고 상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남편과 장남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반발하거나 등등.
- 오철환 . . . . 2회 일치
* 검은 옷을 입은 여자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8대 | [[지방 관청|시의원]] | [[대구광역시의회|대구광역시(수성구제2선거구)]] | 자유한국당| 31,112 표| 49.93 | 2위 |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 대구광역시#광역의원|낙선]] | }}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2회 일치
오타서(オタサー)는 오타쿠 서클의 줄임말이다. 반댓말로는 「오타쿠 서클의 왕자(オタサーの王子)」「공주님 서클의 왕자(姫サーの王子)」 등이 있다.
- 오토코노코 . . . . 2회 일치
'''여자 그려놓고 남자라고 우기기'''를 뜻하는 말이다.
- 오픈베타 . . . . 2회 일치
온라인 게임 등에서 서버를 열어놓고 게임 컨텐츠를 '테스트' 하는 것. 서버를 닫아놓고 한정된 이용자에게만 테스트 하는 것을 클로즈 베타라고 한다.
과거에는 오픈베타로 이용자를 모으고, 정액제 유료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분유료화가 많아진 현재에는 이러한 사례는 없어졌다.
- 오헤야 . . . . 2회 일치
[[쓰레기]] 같은 것으로 가득찬 더러운 방. 가사 같은 것이 능숙하지 못한 사람, 몸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혼자 자취생활을 할 때 발생하기 쉽다.
- 온나코도모 . . . . 2회 일치
'여자(女)'와 '아이들(子供)'을 합쳐서 가리키는 말이다. '여자아이'가 아니다.
- 와가마마 . . . . 2회 일치
* 거만하고 오만방자하다.
* 남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며 제멋대로 군다.
- 와일드캣 . . . . 2회 일치
드라마 [[스몰빌]]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짧게 등장. 이후 드라마 [[애로우]]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카메오 수준인 [[스몰빌(드라마)|스몰빌]]과 달리 확실하게 등장한다. 다만 코스튬은 코믹스와 차이가 많다. 큐트한 고양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일반적인 검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주인공 올리버가 '애로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약하며 악당과 싸우던 가면의 영웅이었으나, 애로우가 등장하기 전에 은퇴한 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이드킥'이었던 자가 악당이 되면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 줄거리로 등장한다.
- 외가집 . . . . 2회 일치
어머니의 친가를 이르는 말. 그런데 알아둬야할 것은, '외가집'이란 표현은 본래 잘못된 말이다. '외가'의 '가'가 '집 가'(家)자이므로, 외가집이라고 하면 '외집집'(...) 같은 표현이 된다. 비슷한 오용 사례로 '역전 앞'('역전'이란 말 자체가 '역 앞') 같은 말이 있다.
- 우동균 . . . . 2회 일치
'''우동균'''(禹東均, [[1989년]] [[1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일본 독립 야구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의 [[외야수]]였다.(5월 1일 퇴단하였다.)
* {{KBO 타자|78454}}
- 우마이봉 . . . . 2회 일치
일본의 과자.
[[분류:과자]]
- 운명의 붉은 실 . . . . 2회 일치
보라색 - 동성애자 끼리 맺어지는 것.
노란 실 - 자신을 향상시켜주는 상대
- 워터보딩 . . . . 2회 일치
Waterboarding. [[물고문]]의 일종. 헝걷이나 비닐로 얼굴을 덮고 짧은 시간 동안 물을 졸졸 부어주는 고문이다. [[관타나모]] 수감자들에게 [[CIA]]가 행한 대표적인 고문으로 알려져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68020|워터보딩을 모티브로 한 놀이기구도 있다.]] Waterboard Thrill Ride라는 놀이기구인데, 1달러에 로봇들이 워터보딩을 하는걸 감상할 수 있는 놀이기구라고 한다. 제작자인 스티븐 파워스는 워터보딩이 어떤 행위인지 쉽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 원피스/820화 . . . . 2회 일치
* 나미는 지금 자신들은 '''기록지침대로 항해하지 않고 있다'''며, 크로커스가 일러준 지식과 로드 포네그리프의 지식이 다르다고 말한다.
* 이누아라시는 '''크로커스도 "모든 것을 아는 자"'''의 한 명이고 너희를 싫어하는게 아닌 이상 거짓말 했을리 없으니 믿고 나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미에게 똑부러진 항해사라고 칭찬한다.
- 원피스/883화 . . . . 2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는 [[몽키 D. 루피]]가 기어4를 쓰기 전에 제압해버린다. 그런데 숨통을 끊지 않고 "티타임이 지체됐다"고 투덜거리며 다과를 대령하게 한다. 떡으로 만든 집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카타쿠리. 사실 위엄있는 척 하고 있지만 빅맘 [[샬롯 링링]] 못지 않게 과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 카타쿠리의 각성 기술에서 탈출한 루피는 카타쿠리를 추격하는데, 티타임 중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의 가려진 입이 드러난다. 카타쿠리는 길고 뾰족한 송곳니가 컴플렉스. 그걸 들키자 본의 아니게 함께 목격한 부하 요리사들까지 척살해 버린다.
- 원피스/887화 . . . . 2회 일치
* 벳지는 [[상디]]에게 케이크를 건네라고 말하고 상디는 그의 작전에 따른다. [[샬롯 오븐]]이 배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능력으로 바닷물의 온도를 올린다. 열이 가해지자 초콜릿이 녹고 크림도 흐물흐물해지는데 그때 파운드가 난입해 오븐을 방해한다.
* 오븐은 방해가 되는 파운드를 기어이 살해하려 하고, 파운드는 막 공격 받으려는 찰나에도 딸과 처음보는 손자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안심하고 마음속으로나마 딸의 결혼을 축하해준다.
- 유언/게임 . . . . 2회 일치
|| 대니얼 클라크 ||아 그래.... 그 숫자들.... 그건 열쇠ㅇ- ||
|| 조셉 보우먼 ||겁 안나. 공산주의자 쓰레기 새끼야! ||
- 윤찬수 . . . . 2회 일치
'''윤찬수'''는 [[KBO 리그]] 전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2009년]] 4분기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원 소속팀인 [[LG 트윈스]]로 복귀하였고 [[2011년]] 가을 방출되었다. [[2012년]] [[5월 26일]] 새벽 [[국군체육부대]] 소속 시절 친분을 쌓은 승부조작의 장본인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함께 [[서울특별시|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부녀자를 납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윤찬수는 공범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2013년]] [[1월 17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같은 날 김동현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45507 `특수강도' 前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 법정구속]</ref>
- 은혼/651화 . . . . 2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와 [[시무라 신파치]], [[가구라]]가 사다하루를 찾아나서고 특히 가구라는 자신의 당부 때문에 사다하루가 사라졌다 여겨 죄책감을 느낀다.
* 노부메는 새로운 조력자를 데리고 전선으로 돌아오는데.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 전선 등장.
- 은혼/652화 . . . . 2회 일치
* 답없는 부자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츠로(은혼)|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가 엄습해오고 [[이마이 노부메]]도 부상당한 몸으로 싸움을 시작한다.
* 잡아먹을 듯 싸웠던 부자지만 몰려오는 적들 때문인지 츤츤거리며 서로를 챙겨주고 가구라 일가의 공투가 펼쳐진다.
- 이규한(배우) . . . . 2회 일치
* [[내성적인 보스]] - 우 기자
[[분류:1980년 출생]][[분류:한국 남배우]][[분류:1998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분류:완도군 출신 인물]]
- 이기백(군인)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31년 출생]]
[[1931년]] [[충청남도]] 연기군(現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전두환]],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
- 이대근 (조선) . . . . 2회 일치
'''이대근'''(李大根, ? ~ ?)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불발(不拔), 본관은 [[우계 이씨|우계]](羽溪)이다.
《순흥읍지(順興邑誌)》에 의하면 그는 선영을 다녀오던 중 순흥 청달리를 지날 때 그가 탄 말이 길을 피하여 비껴가는 곳이 있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겨 하마 후 살펴본 뒤 이곳이 금성대군이 피흘린 곳이라 생각하여 의심을 품은 채 지나갔다. 그날 밤 이대근의 꿈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나타나 그 곳은 자신이 피흘린 곳임을 말함으로써 곧 府事와 함께 사람을 시켜 조사한 후 이 곳을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이를 [[금성단]](錦城壇)이라 부른다.
- 이미라 . . . . 2회 일치
'''이미라'''([[1962년]] [[10월 5일]]<ref>{{서적 인용 |저자= 이미라|제목= 인어공주를 위하여 제1권|쪽= 4|날짜= 1993-04-20|출판사= 북토피아|위치= |id= }}</ref> ~ )는 [[대한민국]]의 [[만화가]]이다. [[1986년]] 《바람의 방향》으로 데뷔했다.
* [[빈 의자]] (1996년)
- 이상휘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대학교수이자 전 정치인이다. 현재 [[세명대학교]] 교수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이선민 (1988년)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애들의 세상을 키우자 (2016.11.30 ~ 2017.03.01)
- 이승효(탤런트) . . . . 2회 일치
아버지 이상문은 [[TV쇼 진품명품]]의 [[도자기]] 감정위원으로 출연 중이다. 이상문은 막내아들 이승효가 자신의 일을 뒤잇기를 바랐으나 이승효가 [[배우]]를 선택하여 한 때는 실망하기도 하였다.
- 이애란(가수) . . . . 2회 일치
서너살때부터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행가를 불렀으며, 이후 어렵사리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1990년 [[KBS 1TV]] 드라마 [[서울 뚝배기]][* 일일드라마로 서울 뚝배기라는 이름의 설렁탕집과 그 주변 인물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오지명, 길용우, 도지원, 최수종, 주현, 김애경 등이 출연하였다.] OST로 데뷔하였다.
- 이준섭(가수) . . . . 2회 일치
출생 1986년 4월 22일 [[세종특별자치시]]
[[분류:한국 가수]][[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2회 일치
1933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인조 . . . . 2회 일치
인조는 [[조선]]의 16대 왕이다. [[인조반정]]을 통해 집권했으며, 명과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비판하면서 존명배금(명을 따르고 후금을 배척한다)를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명이 후금보다 여러모로 딸리는 상황이었기에 애매한 외교정책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청나라한테 굴복한 일 외에도 이괄의 난을 비롯해 권력을 둘러싼 내분을 조정하지 못해 혼란을 야기한 부분이라던가 소현세자를 상대로 보인 졸렬함 등으로 인해 아마도 안티가 가장 많은 조선 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인천광역시/인물 . . . . 2회 일치
* [[예린(여자친구)|예린]] - 계양구
* [[엄지(여자친구)|엄지]] - 연수구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2회 일치
* 킹은 또 "원래 십계랑 아는 사이처럼 보인다"고도 하는데, 반으 그 말을 받아 "십계는 단장이 마신족의 배신자라고 했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 일곱개의 대죄/178화 . . . . 2회 일치
* 절망에 빠진 주민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십계 자체에 현혹되어 "산제물"을 바치며 연명한다.
* 자신들을 잡으려 하는 주민들을 가볍게 내쳐버리는데, 그때 드레퓌스가 나타난다.
- 일념발기 . . . . 2회 일치
== 참고자료 ==
[[분류:일본어]] [[분류:불교 용어]] [[분류:사자성어]]
- 일요목수 . . . . 2회 일치
[[가구]]의 제작이나 집의 리폼 같은 작업을 처리한다. 가구로는 [[개집]], 선반, 의자 등을 만든다.
== 참고자료 ==
- 일장청 호삼랑 . . . . 2회 일치
양산박과의 대결에서 축가장과 호씨 가문이 몰살당한 뒤, 키가 작은데다 [[추남]]에 [[여색]]을 밝히는 왜각호 왕영과 결혼하게 된다(…). 하필 왕영과 결혼하게 된 이유는 [[송강]]이 이전에 왕영이 노리던 여자가 죽었을 때, 나중에 좋은 여자를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복선을 여기서 회수했기 때문.
- 임인배 . . . . 2회 일치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95년 현직 검찰 수사관 신분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12800329116014&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5-01-28&officeId=00032&pageNo=16&printNo=15325&publishType=00010|"조국을 남기고 님은 가셨습니다"라는 소설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따서 덕천장학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임페라토르 . . . . 2회 일치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성립하면서 군단편성권과 같은 군권을 자신에게 독점시켜 황제는 유일한 '임페라토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구멍이 있었는데, 내전기의 로마 전통에 따라서 병사들은 자신의 지휘관을 [[투표]]로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단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지휘관은 언제든지 '임페라토르'로 승격될 수 있었다.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얻게 된 사령관은 사실상 '잠정 황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 [[원로원]]의 동의를 얻으면 진짜 황제가 될 수 있다. 평시에 황제(현임 임페라토르)의 권위가 높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는 정치적 혼란기에는 언제든지 제국 각지에서 임페라토르가 난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는 로마 제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내전과 군인 황제들의 지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장계현 . . . . 2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 장남석 . . . . 2회 일치
|로마자 표기=Jang Nam-Seok
[[2008년]], [[이근호 (1985년)|이근호]], [[에니우 올리베이라 주니오르|에닝요]]와 함께 대구의 공격 축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4월 6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선 40초만에 골을 넣어 2008 시즌 최단시간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구FC 장남석 '40초 번개골' 올시즌 최단시간 골|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4061658272233|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윤신욱|날짜=2008-04-06}}</ref>
- 장동국 (1972년 9월)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장동국'''([[1972년]] [[9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자 [[영화감독]]이다.
- 장슬기 (희극인)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자녀 =
- 장우람 (가수) . . . . 2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우수 . . . . 2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장정희(배우) . . . . 2회 일치
* [[2009년]] [[KBS]] [[결혼 못하는 남자]]
* [[2016년]] [[SBS]] [[내 사위의 여자]]
- 장종덕 . . . . 2회 일치
* [[자양중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장현수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
- 재신 (배우) . . . . 2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 저스디스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저스디스''' ('''JUSTHIS''', {{본명|허승}}, 1991년 5월 7일 ~ )는 [[대한민국]]의 [[래퍼]]이다. 2010년, '''[[시로스카이]]'''의 EP "The Orbit"에 당시 활동명 '''TiMeWiNe'''으로 피쳐링하여 활동을 시작했다.<ref>[http://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030666 곡 정보>멜론]. 멜론.</ref> 2011년, 같은 이름으로 [[믹스테이프]] "A Little Bird Told Me"를 무료로 배포하고,<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7890&keyfield=&key=%ED%8B%B0%EB%AF%B8%EC%9C%84%EB%8B%88 'A Little Bird Told Me' 무료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오케이션]]'''의 믹스테이프 "Preseason #2"에 비트와 랩 피쳐링으로 참여했으며,<ref>[http://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2&sort=&num=7305&keyfield=&key=okasian 오케이샨(Okasian), 하이라이트 레코즈 입단 및 믹스테이프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2년, 이름을 저스디스(JUSTHIS)로 바꾸고 믹스테이프 "QUAL N TITY : True Up"을 무료로 배포 후,<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9627&keyfield=&key=%EC%A0%80%EC%8A%A4%EB%94%94%EC%8A%A4 'QUAL N TITY : True Up'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3년, '''[[매드 클라운]]'''과 '''커먼콜드'''라는 팀을 결성하였다.<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0421&keyfield=&key=%EC%BB%A4%EB%A8%BC%EC%BD%9C%EB%93%9C 매드클라운과 저스디스, 커먼콜드 결성]. 힙합플레이야.</ref> 믹스테이프 "_ u c k!"를 준비중에 있다가<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0482&keyfield=&key=%EC%BB%A4%EB%A8%BC%EC%BD%9C%EB%93%9C 커먼콜드(Mad Clown & justhis) '_ u c k!' 수록곡 선 공개]. 힙합플레이야.</ref> 2014년 5월 7일, 본인의 텀블러를 통해 믹스테이프 "[[Money Vs. Love: Dream (MVLD)]]"를 공개했다.<ref>[http://justhiseung.tumblr.com/post/85002465677 {{웨이백|url=http://justhiseung.tumblr.com/post/85002465677 |date=20140508113407 }} JUSTHIS - Money Vs. Love: Dream (MVLD) [Mixtape]]. Tumblr.</ref> 그 이후에는 크루 '''불한당'''의 프로젝트 앨범 "A Tribe Called Next"와<ref>[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5768 앨범 정보>멜론]. 멜론.</ref> '''매드 클라운'''의 미니 앨범 "Piece Of Mind" 등에서의 피쳐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ref>[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8221 앨범 정보>멜론]. 멜론.</ref> 현재 프로듀서 [[디프라이]](Deepfry), 자코(Jaqo)와 함께 준비 중인<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category2=&mode=&page=1&sort=&num=16028&keyfield=&key=justhis 저스디스(JUSTHIS) | 그런 말장난들론 여기 시스템 못 바꿔]. 힙합플레이야.</ref> 본인의 첫 번째 앨범 [[2 Many Homes 4 1 Kid]]<ref>[https://twitter.com/JUSTHISeung/status/596326033197924352 저스디스의 트윗]. 트위터.</ref>
- 전기밥솥 . . . . 2회 일치
쌀을 씻어서 넣어놓고 버튼을 누르지 않는 실수가 자주 일어난다.
[[분류:전자제품]]
- 전라남도 . . . . 2회 일치
| 한자 = 全羅南道
! 이름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전라북도 . . . . 2회 일치
|한자 = 全羅北道
! 이름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는 후지코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전하며 쿄스케에게 조언을 구하려 하지만 효부는 '''원래 이상한 여자'''라며 신경쓰지 않는다.
* 애초에 판도라와 바벨은 적대관계고 임시적으로 휴전하고 있을 뿐인데, 적의 수장이 위기에 처했다면 자신들에게 나쁠게 없는 상황이라고 비웃는다.
- 정건용 . . . . 2회 일치
|전임자 = [[이정재 (1946년)|이정재]]
|후임자 = [[유지창 (1949년)|유지창]]
- 정병오 . . . . 2회 일치
*《바람의 노래》는 소외된 자아를 회복하고, 중심 찾기를 모티브로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위기의식을 찾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필(筆)동인]][[분류:영랑문학상 수상자]]
- 정승우 (골프선수) . . . . 2회 일치
| 배우자 = [[왕빛나]]
특히 [[2007년]] [[1월 27일]]에 탤런트 왕빛나와 결혼한 정승우는 ‘2006 제 1회 투어스테이지 프로티어 투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ref name="골프">[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9198&pt=nv 프로골퍼 정승우씨와 결혼한 ‘빛나’는 1월의 신부 왕빛나] 김성욱 기자, 레이디경향(2007.02.14) 기사참조</ref>
- 정의동 . . . . 2회 일치
'''정의동'''(鄭義東, [[1948년]] [[4월 25일]] [[대구광역시]] ~ )은 [[대한민국]]의 경제관료이자 [[금융인]], [[기업인]]이다.
==참고자료==
- 정진욱(코미디언) . . . . 2회 일치
1983년 4월 24일 [[세종특별자치시]] 연기군 조치원읍 출생. 그룹 [[졸탄]]의 멤버 중 한 명이다. 나머지 멤버는 [[이재형(코미디언)|이재형]], [[한현민(코미디언)|한현민]].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1983년 출생]]
- 정흥채(배우) . . . . 2회 일치
|| '''배우자''' ||배혜령||
2010년 KBS1 [[자유인 이회영]] 왕정위 역
- 조선 . . . . 2회 일치
* 동조선 : [[일본]]을 뜻한다. 일본이 자학하는 말.
* 서조선 : [[중국]]을 뜻한다. 중국이 자학하는 말.
- 조재윤 (체조선수) . . . . 2회 일치
|배우자 =
|자녀 =
- 존 루터 존스 . . . . 2회 일치
1900년 4월 30일 오전 3시, 존스는 [[미시시피]] 본에서 열차 충돌로 사망한다. 그는 열차가 충돌하기 전까지 경적을 울리며 제동기를 작동시켰다고 전해진다. 이로인해 기관차의 속도가 최대한 감속되었고, 이 사고의 사망자는 존 루터 존스 한 명 뿐이었다.
구글에 Casey Jones를 치면 미국 [[만화]] [[닌자 거북이]]의 캐릭터만 줄창 나온다.
- 종활 . . . . 2회 일치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활동.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한다.
* 엔딩노트 : 자신에게 만약의 일이 있었을 때,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적어놓은 문서.
- 죽는다 죽는다 사기 . . . . 2회 일치
* [[자살]]을 선언하고, 이를 통하여 이득을 얻거나 관심을 받으려는 행위. 관심 받으려는 경우는 [[관심병]]의 일종.
=== 자살 선언 ===
- 지도 . . . . 2회 일치
* 평생 한 번 밟아볼까 말까한 땅을, 지도에 자기 동네랑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만족감을 가지게 하며, 딱히 본인의 인생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지도에 같은 색을 칠하려는 목적 하나로 전쟁을 벌여서라도 빼앗거나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만든 사악한 발명품이다.
- 지훈(TRCNG) . . . . 2회 일치
||<#262626> {{{#FFFFFF '''취미'''}}} ||<#ffffff><(> 자전거 [[라이딩]] ||
||<#262626> {{{#FFFFFF '''좌우명'''}}} ||<#ffffff><(>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하자. ||
- 진격의 거인/99화 . . . . 2회 일치
* [[빌리 타이버]]는 대중들을 상대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거인대전을 끝낸 주역은 타이버가도 마레인도 아닌 "프리츠 왕" 그 자신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반역자는 "엘런 예거"임을 폭로한다.
- 진찰권 . . . . 2회 일치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필요한 표. 플라스틱 카드 같은 것으로 만들어지며, [[병원]]에서 발행하여 [[환자]]들에게 지급한다. 카드에는 환자의 이름과 주소, 연령 등이 기입되어 있다. 병원용 회원증 같은 것.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진료카드]]라고 부른다.
- 집단등하교 . . . . 2회 일치
* 같은 지역에 사고 통학로가 같은 아이들을 모아서 수명~10명 내외 정도의 숫자로 등하교반을 편성하며, 고학년과 저학년을 같은 반으로 묶는다.
* 집합 장소에서 당번 보호자가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는 경우도 있다.
- 집단연구 . . . . 2회 일치
최초 작성자의 주장에 따르면 함장이 어느날 "독자연구"에 대한 삭제 요구를 어떻게 둘러치기 하려고 대충 지어내서 주장한 말인데 규정화 되어서 등재되었다고 하는 단어.
- 차일목 . . . . 2회 일치
'''차일목'''(車一木, [[1981년]] [[1월 26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포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재활군 코치이다.
* {{KBO 타자|73602}}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2회 일치
기본적으로는 자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예라고 생각하며, 대우는 극히 나빠서 매도, 방치, 학대 등을 당하게 된다. '용도'에 어긋나거나 단순히 돈이 아깝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개 부모가 교유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한 탓으로 친구 한 명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언듯 귀여움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자라는 듯 하지만,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고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서 기르는 것으로, 진정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창작:6피트 계획 . . . . 2회 일치
|| 최초작성자 || 노숙병아리 ||
로그라이크 게임 하다가 빡돌아서 총기를 갈망하며 만들었다. 그런데 총이 있어봤자 안될건 안되잖아.
- 창작:좀비탈출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0-1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1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1-1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2-1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창작:좀비탈출/2-1-2 . . . . 2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008080> '''{{{#white 주요기여자}}}''' || ||
- 채상현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5월 7일]]<br/>[[고척스카이돔|고척]] 대 [[SK 와이번스|SK]]전 대주자
2016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5월 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대주자로 출전하며 1군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에서 1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였다. [[2017년]] [[5월 10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였다.
- 천상천하유아독존 . . . . 2회 일치
본래 여기서 '아(我)'는 '우리'라는 뜻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뜻하는 말이다. '아'를 '나'로 오해하여 자기 자신만 잘 난 척 한다는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 초한전쟁 . . . . 2회 일치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백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절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식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총기 . . . . 2회 일치
총기는 [[탄환]]을 발사할 때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하는데, 폐쇄된 관에서 화약이 폭발하면 폭발적인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대량의 가스가 갈 곳을 잃고 고압으로 압축되는 상황이 된다. 이 때 약실이 충분히 튼튼하지 않거나 뭔가 결함이 있다면 약실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여 발사자가 오히려 [[끔살]]당한다. 정상적인 총기에서는 오직 탄환이 있는 곳만이 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므로 연소가스의 압력은 탄환을 밀어내게 되며, 탄환은 초고속으로 총신을 따라서 튕겨나가서 총신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된다. 이렇게 발사과정을 거쳐서 날아오는 탄환은 인간의 신경으로는 포착하거나 반응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명중한다면 대개 '''그대로 죽는 수 밖에 없다.'''
[[20세기]] 중후반의 [[AK-47]], [[M-16]] 등의 대표적인 [[돌격소청]]의 발명 이후로 개인용 총기는 기술적 발전에 정체를 겪게 된다. 개인 화기로서는 이미 위력과 성능이 충분하고, 개인 화기라는 한계 때문에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중량한계, 그리고 [[예산]] 등 다양한 문제로 개량이 지지부진하기 때문. 미래의 총기로는 무탄피소총이나 자력을 이용하는 [[코일건]], [[레일건]] 등이 개발되고 있지만, 개인용으로는 아직 효용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인지 새로운 발명이나 개선은 정체되고 있다.
- 최수환 . . . . 2회 일치
1933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및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91년)|민주당]] [[박기환(정치인)|박기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최지해 . . . . 2회 일치
* 2014년 : [[OBS경인TV]] 《[[OBS 뉴스 & 이슈]][[한마음 노래자랑]]》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2002년 데뷔]][[분류:OBS경인TV의 아나운서]][[분류:대원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
- 최학봉 . . . . 2회 일치
서울 출생으로, 1871년 [[장악원]] 악공에 임명되고, 1913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에 임명되었다. [[함제홍]], [[정약대]], 함재영과 더불어 조선 말기의 손꼽히는 대금의 명인이고, 특히 대금 연주자 김계선(金桂善)을 길러낸 스승이다.<ref name="글로벌_1">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가/정악의 명인/최학봉,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 참고 자료 ==
- 최희령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
- 충완 . . . . 2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백석예술대학 동문]]
- 카를로스 4세 . . . . 2회 일치
황태자 시절에 [[마리아 루이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와 결혼하고, 1788년 스페인 왕위에 올랐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성격으로 마리아 루이사와 그 애인으로서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20대 젊은 나이에 재상으로 임명된 [[마누엘 고도이]]에게 국정을 거의 떠맡기다시피 했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은 모든 함대를 잃었고, 1807년에는 [[퐁텐블로 조약]]으로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 군이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결국 국민들이 분노하여 1808년 3월 황태자 페르난도([[페르난도 7세]])가 이끄는 아란후에스 폭동이 일어나, 페르난도에게 양위하고 퇴위, 망명하였다.
- 카맛테쨩 . . . . 2회 일치
자신을 걱정하고 돌봐주기를 바래서, 이상한 언동을 반복하는 사람. 인터넷에서는 [[SNS]]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힘든 감정을 적극적으로 발신한다. "이젠 싫다.","죽고 싶다."라면서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 말을 쓰며, "무슨 일이야?", "큰일이네"라고 말해주는 것을 기대한다. 주위에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게 할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리스트 컷]] 등의 상처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 칸닌부쿠로 . . . . 2회 일치
칸닌(堪忍)은 참고 견디는 마음, 인내라는 의미이며, 부쿠로(袋)는 주머니라는 의미. 해석하자면 '인내주머니'라는 뜻이다.
[[메이지 시대]]의 극작가 마스다 타로우카쟈(益田太郎冠者 ますだ たろうかじゃ)가 저술한 동명의 [[만자이]]가 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2회 일치
194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타임머신을 만들어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정권을 잡기전에 제거한다. 그러자 [[제2차 세계대전]]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이 유럽을 침공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영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소련군을 물리치고 스탈린을 제거한 후, 러시아 왕족이었던 알렉산더 로마노프를 소련의 서기장으로 세웠다. 로마노프는 공산당원이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처럼 보였고, 연합군에게 협조적인 인물로 보였다.
하지만 로마노프는 다른 생각을 품고있었다. 대서양에서 소련군 함선이 질주하는게 목격되었으며, 미국이 소련에 심어둔 첩보원들은 실종되거나 KGB 요원들과 함께 일하는게 목격되었다. 미국은 로마노프 근처에서 보이던 유리라는 남자가 미국의 첩보망을 와해시킨 장본인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 컬트 종교 . . . . 2회 일치
* 지도자는 [[구세주]]를 자칭하며, [[카리스마]]가 강하다.
- 케모 . . . . 2회 일치
거대한 몸집을 지닌 괴물인데 사실은 화학물질을 담는데 쓰이는 플라스틱 통이었다. 만든 사람은 괴짜 과학자인 램지 노튼. 인간형체의 거대한 통으로 내부에 대량의 화학물질을 담아왔고, 그것의 영향으로 현재의 괴물이 된 것.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된 케모는 날뛰다가 [[메탈멘]]에게 제압되었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괴물인데 그 특성상 고공에서 떨구는 것으로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서 악당 조직인 소사이어티가 블러드헤븐에 떨어뜨려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는데 이때도 케모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재생했다.
- 콜만스코프 . . . . 2회 일치
콜만스코프는 19세기 후반에 [[다이아몬드]] 붐으로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이 지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다이아몬드를 캐려는 광부들과 그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정착한 것. 콜만스코프가 성장하면서 거주민들을 위한 술집, 학교, 병원, 오락 시설 그 외 등등도 만들어지며 큰 마을이 되었다.
사전 허가를 받아야 입장할 수 있으며. 주말에만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는 덤. 성인은 75 나미비아 달러. 얼만지 모르겠으면 구글링하자. 사진 찍는데도 220 나미비아 달러가 따로 필요하다고 하니 주의.
- 콩고릴라 . . . . 2회 일치
과거에 사용했던 마법 반지는 추장이자 주술사이며 그의 친구였던 '카올로(Kawolo)'가 죽기 직전에 건네줬다. 이후 [[지진]] 탓에 동굴에 갇혔으나 반지의 힘으로 모면했다.
남아프리카계 히어로 [[프리덤 비스트]][* [[브와나 비스트]]의 후계자.]와 친구.
- 키라키라 네임 . . . . 2회 일치
* 남성 이름을 여자아이에게, 여성 이름을 남자아이에게 붙인 경우
- 키이치 보우겐 . . . . 2회 일치
요시츠네는 키이치 보우겐에게 육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으나, 키이치 보우겐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요시츠네는 키이치 보우겐의 막내딸을 꼬드겨서 육도삼략을 훔쳐 손에 넣는다.--딸자식 키워봐야...--
키이치 보우겐의 이야기는 조루리, 가부키 등으로도 만들어진다. 가공인물이지만 요시츠네가 유명하다보니, 그와 얽힌 키이치 보우겐도 음양사로 이름이 높아져서 각종 음양도 관련 문헌에 가공의 저자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 킹덤/533화 . . . . 2회 일치
* [[마광]]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진군 좌익의 사기는 크게 꺾인다. 그러나 낙화대의 [[몽념(킹덤)|몽념]]은 상황을 타개하고 조장 [[기수(킹덤)|기수]]를 확실히 제거할 묘안을 들고 나오는데. 그 핵심 역할은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과 자신의 부하 "육주"에게 맡기는데. 몽념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자 주인을 잃은 마광군은 몽념을 중심으로 군세를 정돈해 협조에 나선다.
- 타르콘 . . . . 2회 일치
[[헤라클레스]]의 아들, 혹은 손자라고 한다.
어느날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회색 머리와 아이 얼굴을 한 사람이 쟁기에 걸려 솟아났다. 그의 이름은 타게스(Tages)로서, 타르콘과 에트루리아의 다른 왕들에게 새와 동물의 창자로 점을 치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 타카하타 유우타 . . . . 2회 일치
이 사건으로 어머니 타카하타 준코(高畑淳子)는 26일에 사죄 기자 회견을 가졌다.[[http://www.asahi.com/articles/ASJ8T7D7WJ8TUCLV00M.html (참조-아사히 신문)]]
== 배우자 ==
- 타코베야 . . . . 2회 일치
메이지 시대에 부터 [[일본]]에서 있었던 [[강제노동]] 관행을 뜻한다. 채무 등을 이유로 감금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는 시설. 현대에는 주로 불법 사채 업자들이 채무자들을 기숙사 등에 감금하여 강제노동을 시킨다.
- 태극문 . . . . 2회 일치
주인공이 정작 태극문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기무술(불괴연혼강기 등)로 떡칠을 해서 최강자가 되어놓고 태극문 무술로 최강이 되었다고 구라를 쳐서 제자들을 받아들여 키우는 사기극을 묘사한 소설.
- 토리코/365화 . . . . 2회 일치
* 지로는 자신이 '''"낭왕 기네스"가 주워다 기른 아이'''임을 밝힌다. 어렸을 때부터 '''기네스가 레드 니트로를 잡아다 먹여왔고 그 결과 지금의 지로'''가 되었다.
* 블루 니트로는 팔왕이나 네오에는 못 미쳐도 이 세계 정점에 달한 실력자들이란게 통설이었는데, 100% 상태도 아닌 지로에게 완전히 박살나면서 완전히 체면을 구겼다.
- 토리코/376화 . . . . 2회 일치
* 네오가 상공으로 던져지자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왕 데로우스가 "이차원 레이저"로 공격하려 한다.
* 블루 니트로는 페어편에서 드러났듯 블루 니트로 혼자서는 팔왕급을 상대할 수가 없다.
- 토리코/380화 . . . . 2회 일치
* 이것이야 말로 자기 식욕의 진정한 모습이라 말하는 아카시아.
* 네오가 완전체가 된 이후에 밤비나의 공격을 먹을 수 있게 된 걸로 보아, 원래 공격 에너지 자체를 먹는건 어느 정도 수준이 차이가 나야 가능한 걸로 보인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2회 일치
플레이어는 [[보신 전쟁]] 시기 6(+4, DLC 구매시)개 번 중 하나를 이끈다. 이 번들은 두 세력 중 하나에 속해있다.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는 막부파와 [[덴노]]를 지지하는 존왕파.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일정 이상의 영토를 확보해 보신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번 또한 일정 영토를 확보해 이름을 떨치는게 게임의 목적이다.
- 트레키 . . . . 2회 일치
고도의 경지에 도달하면 발칸족의 손인사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클링온어 같은 작중의 가상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다.[* 좀 웃기는게 높은 확률로 트레키의 상징은 클링온어 상용가능이다. 왜 굳이 클링온어일까….]
- 특별고등경찰 . . . . 2회 일치
* 1910년 (메이지 43), [[사회주의|사회주의자]]들이 메이지 덴노 암살을 시도.
1910년의 통칭 '대역사건'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의식이 심화되어 설치되었다. 당초 사회주의자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특별고등경찰은 점차 조직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강화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는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도 감시가 심해져서 악명을 떨쳤다.
- 틀:공동창작 . . . . 2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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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창작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br />
- 파일 드라이버 . . . . 2회 일치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같은 기술은 이 때문에 언듯 보기에는 정수리를 바닥에 내리찧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허벅지로 상대방의 머리를 잡아서 바닥에 부딯치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
화려한 동작 때문에 액션 게임에서 프로레슬링 기술을 쓰는 캐릭터에게 자주 붙어있는 기술이다.
- 패드립 . . . . 2회 일치
현실이건 인터넷이건 상대와의 관계를 화끈하게 파탄낼 수 있는 행위다. 당사자나 목격자에게 교양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으니 주의.
- 평론을 쉽게 쓰는 법 . . . . 2회 일치
살다보면 한번쯤 평론을 써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머리아픈 평론을 간단히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한 번 평론을 쉽게 쓰는 방법을 알아보자.
참고로 딱히 정신분석을 인용한 비평에서 인용한 정신분석 개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지, 아니면 잘못되었는지는 '''정신분석학 자체의 해석이 워낙 분분하기 때문에''' 대충 막 가져다 써도 별로 흡잡힐게 없다.
- 포렴을 팔로 밀다 . . . . 2회 일치
노렌(暖簾)이란, 상점의 입구 같은 곳에 천을 커텐처럼 쳐둔 포렴(布簾)을 뜻하는 말이다. 포렴을 팔로 밀어봤자, 아무 반응도 없이 곧 원래대로 돌아오니 '포렴을 팔로 밀다'란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 참고자료 ==
- 푸 파이터즈 . . . . 2회 일치
* 죠죠 베라(ジョジョベラー)에 따르면 미생물, 돌연변이, 외계인의 이미지로 디자인했으며, [[카멜레온]] 같은 파충류와 곤충적인 느낌을 넣었다고 한다. 디자인 면에서는 [[하이에로펀트 그린]]의 다른 버전이라고 한다.(말을 듣고 보면 약간 닮았다.)
- 풍계리 . . . . 2회 일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설사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이 지역 주변의 [[탈북자]]들 역시 방사능 피폭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북한 당국이 방사능 피해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은 탓에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야 자신이 피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 프레퍼 . . . . 2회 일치
[[생존주의자]]의 한 부류.
2012년 [[미국]]에 가장 많이 존재하며, 300~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나 [[매스미디어]]를 믿지 않고, 국제 자본가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스미디어보다는 지역 커뮤니티나 라디오, 인터넷 등의 커뮤니티를 선호한다. 극단적인 경우는 이웃도 적으로 간주하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
- 프로페서 아이보 . . . . 2회 일치
[[매드 사이언티스트]]. [[저스티스 리그]]와 싸운 괴로봇인 [[아마조]]를 만든 [[과학자]]다. 죽음을 무서우리만치 두려워하며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아 불명을 원한다.
원래는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이었으나 불멸을 위한 혈청을 마셨다가 파충류 인간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이외에도 화상 환자처럼 얼굴이 망가진 모습도 있다.
- 프릭쇼 . . . . 2회 일치
시간이 흐르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향상됨에 따라서, 점차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이런 프릭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인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들이라고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보여주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제제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 [[사우스 파크]] - [[버터스]]가 [[에릭 카트맨]]의 음모로 '[[턱]]에 볼알이 달린 남자'가 되어서 '나폴레오'이라는 이름으로 프릭쇼에 끼어들게 된다.
- 플래시(드라마) . . . . 2회 일치
드라마의 주인공. 스타 연구소의 입자 가속기 사건에 의해 굉장한 속도가 생겼다. 이 힘을 써서 도시의 악당들과 싸운다.
* 웨더 위자드
- 하나야마 카오루 . . . . 2회 일치
[[야쿠자]]로서 엄청난 거구에, 등에는 문신, 전신에 흉터가 가득한 매우 험악한 인상이 특징인 '''[[소년]]'''. 특별한 [[무술]]은 익히지 않고, 천성적인 완력과 생명력으로만 싸운다. 특기는 완력으로 상대방의 사지를 졸라 터트리는 악격.
특징적인 인상과 전투에서의 눈에 뛰는 활약상[* 하나야마의 배틀은 대부분 바키에서 명전투로 꼽힌다.] 덕분에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캐릭터. 독립된 외전 스카페이스가 있다.
- 하시영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하야시 선생님 . . . . 2회 일치
일단 이러한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하야시 키미카즈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동명의 산부인과 의사는 실존이 확인) 물론 사이트의 운영자가 실제 정신과 의사가 아닐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아무튼 이 사이트에서는 정신과 관련의 질문을 메일로 받아들이고, 그 질문과 답변을 게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답변이 묘하게 친절한가 하면, 너무 단견을 내리거나,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초 전개로 나아가거나 해서, 가끔 엄청 재미있는게 나타난다.
- 하태웅(가수) . . . . 2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안고등학교 동문]][[분류:원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부안군 출신 인물]]
- 한병준 . . . . 2회 일치
| 배우자 =
** 데자뷰 (2014.10.10 ~ 2014.12.28)
- 한소정(1980) . . . . 2회 일치
애정빙자 사기극
연극2012년 애정빙자 사기극
- 한송이 (방송인) . . . . 2회 일치
|배우자=
|자녀=
- 한요한 . . . . 2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14년 데뷔]][[분류:남자 래퍼]][[분류:호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한지유 (모델)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할머니가 기른 아이는 세푼싸다 . . . . 2회 일치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를 기를 떄 응석을 받아주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로 기른 아이는 응석받이로 자라서 커서도 제 구실을 못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 함준호 (교수) . . . . 2회 일치
*2012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상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
- 행복회로 . . . . 2회 일치
실장석은 심장 대신 "위석"이라는 돌을 가슴 속에 가지고 있다. 위석은 실장석의 생명의 근원이자 뇌의 역할을 한다.(일명 '가짜 로자 미스티카') 이것은 고통을 받으면 부서져 버리는데, 완충장치로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행복회로가 발동한다. 행복회로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고 행복한 망상을 보면서 [[현실도피]]를 하게 만드는 기능이다.
- 허만하 . . . . 2회 일치
'''허만하'''(1932년 3월 29일~ )는 [[대한민국]]의 [[시 (문학)|시인]]이자 [[의사]]이다.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195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용래 문학상 수상자]]
- 허민호 . . . . 2회 일치
'''허민호''' (1990년 3월 1일 ~ )는 [[대한민국]]의 [[트라이애슬론]] 선수이다. 그는 [[2012년 하계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남자 개인 종합에서 활약했다.<ref>{{웹 인용|제목=허민호 올림픽 성적|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he/heo-min-ho-1.html|확인날짜=2012년 8월 7일|work=sports-reference.com|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217065439/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he/heo-min-ho-1.html|보존날짜=2012년 12월 17일}}</ref>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트라이애슬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
- 허범산 . . . . 2회 일치
|로마자 표기=Heo Beom-San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동명초등학교 동문]][[분류:재현중학교 동문]][[분류:재현고등학교 동문]][[분류:우석대학교 동문]]
- 호농 . . . . 2회 일치
일본의 호농 계급은 [[에도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서 나타났다. 대규모 토지를 보유하고, [[소작농]]에게 소작을 시키거나 일부를 자작농으로서 경작하였다. 또한 양잠업이나 직조업 같은 [[수공업]]이나, [[상업]]도 겸업하여 부를 쌓았다.
이들은 일본의 무라(농촌 마을) 사회에서 지도자 격인 촌역인(村役人, 무라야쿠닌)을 맡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기 에도 시대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메이지 시대에는 점차 호농형 생산이 줄어들고, 직접 농업이나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는 [[지주]] 계급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 호환성 . . . . 2회 일치
호환성은 생산성 때문에 여러모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자주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일단 아키텍쳐가 바뀌면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동작을 보장하는 [[삽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한 아키텍쳐이라면 큰 문제 없지만 마이너한 아키텍쳐는…. 그래서 [[자바]] 같은 [[가상 머신]]으로 호환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 홍양호 (1955년) . . . . 2회 일치
|전임자 = [[이관세]]
|후임자 = [[엄종식]]
- 홍준표 (1949년) . . . . 2회 일치
* 1986년 ~ 1987년 한국중공업 기술자문위원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도호쿠 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
- 화식 화장실 . . . . 2회 일치
[[의자]] 형태로 걸터앉을 수 있는 좌식(양식)과는 달리, 바닥에 설치된 변기 위에 쪼그려 앉게 되어 있는 형태.
* 쪼그려 앉는 자세 때문에 장이 압박되어 변이 나오기 좋다.
- 화염병 . . . . 2회 일치
[[http://www.nirapadnews.com/english/2015/02/08/news-id:5421/|이미지 출처]]. 원 제공자는 아닌걸로 보임.
2015년 12월 4일, 이집트에서 나이트클럽 입장을 제지당하자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도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06/0200000000AKR20151206054100079.HTML|연합뉴스 링크]].
- 황대봉 . . . . 2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통일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5번)에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이에 합류하였다.
- 황동주(배우) . . . . 2회 일치
아직 '''[[미혼]]'''이라고 한다. 최근엔 20년 짝사랑이 [[이영자]]라고 밝혔다.
* 2010년 SBS 당돌한 여자 - 오동재 역
- 황리아 . . . . 2회 일치
| 배우자 =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황수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 서울자양중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재규 . . . . 2회 일치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황정혜 . . . . 2회 일치
| 배우자 =
:〈관리자들〉
- 황진하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Leader’s Forum(리더스포럼, 현대경제연구원) 진행자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2011년 데뷔]][[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회고록 . . . . 2회 일치
개인이 자신의 삶이나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회고(回顧)하여 기록(録) 한 문서 혹은 서적. 개인적인 기록이므로 개인의 주관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이 말년에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물들의 회고록은 사료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회고록에도 개인의 주관이 반영되어 있어서 [[자서전]]만큼이나 회고록의 기록은 검토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 휴전 . . . . 2회 일치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 정전이라고도 한다. 교전 당사자들이 약국의 합의 하에 적대행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정치적 활동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부상자 구출 등의 사유로 임시적, 일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 히치하이킹 . . . . 2회 일치
여행하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아무 자동차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하여 목적지, 혹은 중간 지점까지 여행을 하는 것을 뜻한다.
2014년 [[중국]]에서 상하이에 사는 한 여성이 [[여자친구]]가 되어주는 대신에 여행경비를 받겠다고 [[웨이보]]를 통하여 홍보하는 방식으로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여 화재가되었다.[http://insight.co.kr/view.php?ArtNo=8219 참조]
- 히키코모리 . . . . 2회 일치
스스로 일이나 공부, 인간 관계 등 일상 생활을 피하면서, 장기간에 걸쳐서 집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서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상태, 혹은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 거의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지만 드물게 외출을 하는 사례는 준 히키코모리(準ひきこもり)라 한다. 줄여서 히키.
집이나 자신의 방이라는 ‘안심할 수 있는 상태’에 집착하는 것이다. 안심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만, 히키코모리는 매우 극단적으로 이것을 추구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있다.
- 히토쯔마 . . . . 2회 일치
[[유부녀]]를 뜻하는 말. 한국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한국 한자음]]으로 읽어서 '인처'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1회 일치
* 키리야마는 "다시 두고 싶지 않다"는 굳은 일념으로 자신의 전략을 진득하게 밀어붙인다.
- DT . . . . 1회 일치
* [[일본어]]로 [[동정]]의 약자. 도우테이(童貞,'''D'''ou'''T'''ei)에서 나온다.
- Daisy Bell(Bicycle Built For Two) . . . . 1회 일치
멋진 결혼식을 할 수 없고 마차를 장만할 수도 없지만 함께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며 청혼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 DateTimeMacro . . . . 1회 일치
@SIG'''''' 혹은 @DATE''''''@ 같은 [[HelpOnVariables|위키변수]]는 페이지가 저장될 때에 다음과 같은 DateTimeMacro로 자동 변환됩니다.
- HMMWV . . . . 1회 일치
[[미군]]이 사용하는 수송차량. HMMWV는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고기동다용도장륜차량)의 약자이다. 보통 "험비"(Humvee)라고 줄여 부른다.
- InterMap . . . . 1회 일치
# * 아래 줄은 자신의 환경에 맞게 바꿔주세요. 최상위 url이 wiki라면 /wiki/pds/ 라고 하셔야 합니다.
- M25 최루탄 . . . . 1회 일치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2/005000000200402251314514.html|전투경찰 출신자가 전경시절 훔쳤던 KM25를 나이트클럽에서 터뜨린 사건이 있다.]]
- NDK . . . . 1회 일치
저기저기 지금 어떤 기분(네에네에 이마 돈나 기모치)의 약자.
- NII 스탈리 . . . . 1회 일치
НИИ стали.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회사]]. [[방탄복]], 군용차량의 장갑 등을 연구하는 회사다. NII 스탈리라는 이름은 철강과학연구소의 약자이다.
- NavigationMacro . . . . 1회 일치
목록문서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지정해주면 문서 상/하단에 Navigation 링크가 자동으로 추가됩니다.
- OrphanedPagesMacro . . . . 1회 일치
위키 페이지를 만들다보면 어디에도 링크 되지 않은 페이지가 생성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사용자가 특정 페이지에 위키 링크를 먼저 만들고 그 링크를 따라가서 페이지를 만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 SORN . . . . 1회 일치
마엘스트롬을 지키는 대마법사 게이트키퍼의 제자로서, 게이트 키퍼를 봉인해버려서 세계를 멸망의 위험에 빠뜨린 대마녀. 마법의 방패 주문을 가지고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미지를 줄 수 없으며, 오직 게이트키퍼만이 이 마법의 방패를 돌파할 주문을 알고 있는데 정작 게이트키퍼를 만나려면 SORN을 돌파해야 한다는 복잡한 난관을 보유하고 있다. 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 같다.
- TPO . . . . 1회 일치
time, place, occasion 의 약자.
- TemplateGeneral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USS 뷰캐넌 . . . . 1회 일치
1942년 3월 28일 새벽, 캠벨타운은 영국군 어뢰정의 호위를 받으며 생나제르 앞바다에 도착한다. 독일군에게 발각된 캠벨타운은 수문에 돌진, 들이박는다. 10시간 후, 캠벨타운에 탑재된 폭뢰가 폭발, 약 300명의 사망자를 내며 수문을 파괴한다. 이로인해 노르망디 독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 U턴 취직 . . . . 1회 일치
지방에서 진학을 위해서 대도시권으로 상경하여 공부를 마친 학생이, 대도시권에서 취직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취직을 하는 것. 자동차 운전에서 [[U턴]]과 비슷하다고 하여 U턴 취직이라고 한다. 고향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취업하는 것은 I턴 취직이라고 한다.--I턴은 턴이 아니잖….--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 . . . . 1회 일치
게임 용어들은 전부 자체적으로 번역하였다. 유로파 카페 한글 패치가 안되는데 어쩌라고.
- WikiSandBox . . . . 1회 일치
#alias 모래상자
- Y2K 버그 . . . . 1회 일치
연도를 두글자로 기억하는 컴퓨터들이 2000년이 되면 연도를 1900년으로 인식,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버그. 당시 1990년대만 해도 컴퓨터가 상당히 많은 곳에 퍼져 있었기에 이 버그는 회사나 국가의 전산 시스템, 병원의 의료기기 등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예상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22900099118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8-12-29&officeId=00009&pageNo=18&printNo=10254&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8년 12월 29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weeaboo . . . . 1회 일치
[[일빠]] + [[덕후]]. [[일본]]이나 일본 문화, 일본 애니에 과도한 집착을 가진 사람. 일상 생활에서 일본어를 가끔 쓰며 일본인처럼 행동한다. 만화 코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와패니즈]](wapanese)가 있다.
- 泥 . . . . 1회 일치
[[분류:한자]] [[분류:일본어]]
- 가치제이 . . . . 1회 일치
인터넷에서 게임에 대한 본연의 자세를 추궁하면서 파벌이 나타나게 되었다.
- 강흠덕 . . . . 1회 일치
'''강흠덕'''(姜欽悳<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58년]] [[8월 15일]] ~ )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포수]]이자, 현 [[경기도 챌린지 리그]] [[성남 블루팬더스]]의 트레니닝 코치이다.
- 개인용 웹페이지 저장 서비스 . . . . 1회 일치
자신이 캡쳐한 것을 id로 로그인해서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구글 아이디로도 로그인이 된다.
- 개표방송 . . . . 1회 일치
과거에는 단순히 숫자만 올라가는 단순한 형식의 개표방송을 했지만, 2010년 들어서는 방송사들끼리 경쟁이 격화되면서 개표방송에도 다양한 컨텐츠가 나타났다.
- 건담 동물원 . . . . 1회 일치
>Mami_Tomoe_TF 제대로 지켜 쓰레기 내가 뒤에서 티로 피날레 하고 있을 때는 제대로 지켜. 이러니까 [[자코]]는 싫어.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5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는 그걸 보고 "둘이 닮았다"고 하는데, 당사자들이 격렬하게 반발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8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는 히카리가 여름을 타는줄 알고 우마루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식히자"고 하지만 저녁 먹고 나서 먹으라고 타이헤이가 말린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1화 . . . . 1회 일치
* 실핀은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UMR와 추억의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해서 플스로 놀게 된다.
- 경비원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물, 범죄물, 수사물에서 은근히 자주 등장하는 직종이지만, 대우가 거의 [[특촬물]]의 [[전투원]]과 같은 수준으로 최악. 가히 '''막 죽어나가는 직업'''이다(…).
- 계력 . . . . 1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남.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태어나자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남 태백(太伯)과 차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남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 고기 . . . . 1회 일치
다른 생명을 먹기 싫다는 생각이나 고기는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해 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 고독사 . . . . 1회 일치
누구에게도 간호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사망하고, 사망한지 몇일 이상의 시일이 지나서 발견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고립사(孤立死)라고도 한다.
- 고독의 요새 . . . . 1회 일치
초창기에는 거창한 [[설정]]은 없고 단순히 슈퍼맨이 내가 이렇게 큰 건물도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자뻑]]으로 만든 기지였다. 그래서 진지한 비밀기지 연구소 같은 [[배트 케이브]]와는 반대로 그냥 슈퍼맨의 신비로운 비밀 요새같은 이미지였다. 요새 안에 표창장 트로피 방도 존재했을 정도.
- 고령군 . . . . 1회 일치
! 읍·면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고릴라 보스 . . . . 1회 일치
갱스터. 가스실에서 사망했으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뒀는데 그 내용은 자기 뇌를 [[고릴라]]에게 이식하는 것. 이렇게 해서 고릴라의 몸을 얻었다.
- 고스트 패트롤 . . . . 1회 일치
[[프랑스]] 외인부터 시절 상관으로부터 프랑스가 통제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기술자 헨리로부터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일단은 참여했는데 주민들을 죽이길 원치 않았던 셋은 안전한 곳에 투하했다. 문제는 헨리가 주민들을 지키려고 셋의 전투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것으로 결국 셋은 사망해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3인은 [[유령]]이 되어 있었고, 이를 나치와 싸울 두번째 기회라 생각했다. 이후 고스트 패트롤이 된 삼인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했다.
- 골든 위크 . . . . 1회 일치
골든 위크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자유학교"라는 영화를 개봉하고 흥행이 정월, 오봉 연휴 이상으로 대성공한 것을 기념하여, 다수의 관객 동원을 목적으로 영화사 다이에이(大映)가 1952년 무렵에 만든 선전 용어였다. 이 용어가 각계에 퍼지게 되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선전 용어라는 이유로 골든 위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 곰보도 보조개 . . . . 1회 일치
일본 속담. 사랑에 빠진 시선으로 보면 마마로 얽은 곰보 자국도 보조개처럼 보인다는 것으로서 '제눈에 안경' 같은 의미.
- 공중분해 . . . . 1회 일치
[[김성모]]가 좋아하는 단어. [[마계대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공후백자남 . . . . 1회 일치
춘추시대에는 위(衛), 진(晋), 제(齊) 역시 공을 칭하게 되었다. 제나라는 태공망의 후손으로, 태공망이 [[삼감의 난]]을 진압한 공적으로 공에 필적하는 권한을 얻었으며, 위나라는 [[주유왕]](周幽王)이 살해되었을 때, 이 복수를 하였기 때문에 공작의 지위를 얻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공'을 칭하는 것은 당대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공을 칭하는 것은 일종의 참칭이었으나 주 왕실의 권위가 저하한 춘추시대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 국제복싱기구 . . . . 1회 일치
1990년에 플로리다에서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에드워드 레빈, 그 아들 제레미가 부회장으로서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이런 단체 세습하든 말든--
- 군위군 . . . . 1회 일치
! 읍면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 지도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권영진'''(權寧珍, [[1984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대구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팀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으나 [[연세대학교]] 입학 후 [[내야수]]겸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연세대학교]] 마운드가 아닌 중심타선에서 맹활약하였다.
- 권혁 (기업인) . . . . 1회 일치
'''권혁'''(1950년생)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출신<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910 탈세범이냐 정상 기업가냐 판정대 오른‘선박왕’]</ref>의 일본 시도상선 회장이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해운]] 출신으로써 국내 해운업계의 독보적인 존재이며, 시도상선은 보유척수 175대, 매출액 2조 1700억원, 자산 5조원의 거대 선박임대회사이다.<ref>[http://news.donga.com/Society/New/3/03/20110412/36340407/1 국세청 4101억 세금 추징 ‘시도상선’ 권혁회장은 누구]</ref> 이는 국내 1위 선박업체로 알려진 [[한진해운]]보다 높은 수치이다. 2011년 4월에는 탈세 혐의로 4101억을 추징당한 바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72718.html 해운업 호황의 ‘대박’ 유령회사에 숨겼나]</ref>[[2012년]] [[11월 29일]], 징역 7년과 벌금 2284억원의 중형이 구형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915172 검찰,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징역 7년 구형]</ref> 그 뒤 2013년 2월 12일엔 징역 4년에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66800 ′횡령 혐의′ 시도상선 권혁 회장, 징역 4년·법정구속]</ref> 그러나 2013년 10월 14일, 보석으로 석방됐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986489 `선박왕` 권혁 회장 보석 석방]</ref> 그리고 2014년 2월 21일 항소심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선고되면서 감형됐다.<ref>[http://news.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120413661939&md=20140221204249_AO 조세포탈 혐의 ‘선박왕’ 권혁 회장, 항소심서 집행유예 감형]</ref>
- 그랜드 테프트 오토 2/무기 . . . . 1회 일치
맞은 사람을 잠시 다운시키는 무기. 이걸로 사람은 못 죽인다. 주변에서 쓸만한 총을 찾자. 경찰놈들의 주먹에 맞아 죽으면 체포된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지역 . . . . 1회 일치
주인공인 칼 존슨의 고향이자 처음 활동하게 되는 곳. 현실의 [[로스 앤젤레스]]를 모티브로 했다.
- 금형 . . . . 1회 일치
취미계에서 금형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 곳은 [[프라모델]] 취미이다. 프라모델 제조는 금형에 플라스틱을 붓고 주조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 김강근 . . . . 1회 일치
|제자 =
- 김대진 (야구인) . . . . 1회 일치
'''김대진'''(金大鎭, [[1955년]] [[12월 22일]] ~ )는 전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 [[OB 베어스]]의 외야수이자, 현재 [[SK 와이번스]]의 3군 루키 책임코치이다.
- 김병준(육상)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남자 [[육상]] 선수이다.
- 김석원 (금융인) . . . . 1회 일치
== 참고 자료 ==
- 김세윤 (1999년)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 Kim Se yoon
- 김영준(1941) . . . . 1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제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춘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에 충청북도 제천군-단양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국회의원 안영기에 밀려 탈락하였다.
- 김영한 (1900년)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김제남 . . . . 1회 일치
광해군 시기에 서자들의 역모 고변에 연루되어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여 했다는 혐의로 사사되었고, [[인조반정]] 이후에 복권되었다.
- 김제철 . . . . 1회 일치
'''김제철'''(金齊喆)은 [[조선시대]]의 [[판소리]] 명창으로 8명창의 한 [[사람]]이다.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더늠은 [[심청가]] 중에서 〈갑자 사월 초파일〉이다. 그의 [[소리|소리제]]는 [[가야금]]과의 병창제인 석화제라고 한다.
- 꽃가루 알레르기 . . . . 1회 일치
흩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콧물, 코막힘, 기침, 눈의 가려움 등의 증세가 발생한다. 꽃가루가 흩날리는 시기에 자주 발생한다.
- 나뭇잎 마을 . . . . 1회 일치
[[만화]] [[나루토]]에 등장하는 [[닌자 마을]].
- 나야 나 사기 . . . . 1회 일치
[[전화]]를 통하여 연락을 넣고, 지인, 친족을 위장하여 입금을 하도록 지시하는 사기 행위. 전화를 걸고 "나야 나(オレオレ)"라고 한다고 해서 "나야 나 사기"라고 부른다. 주로 정신이 혼미한 노약자를 노린다.
- 나용찬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괴산군수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전임자 [[임각수]]의 [[군수]]직 상실로 치러진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8년 4월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한편 집결 장소로 모이는 빌런 일행들. [[토가 히미코|토가]]는 "신경 쓰이는 남자애가 생겼다"며 수선 피우고 있다.
- 나침반 . . . . 1회 일치
이게 없으면 자기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 나폴레옹: 토탈워/등장 국가 . . . . 1회 일치
각 국가는 각자 고유의 유닛과 고유의 건물, 장군 그외 등등을 가지고있다.
- 나폴레옹: 토탈워/러시아 . . . . 1회 일치
=== 카자크 기병(Cossack Cavalry) ===
- 낚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 . . 1회 일치
교제 전에는 상대에게 진지하게 접근해왔는데, 정작 교제를 시작한 뒤에는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왠지 남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 내추럴 하이 . . . . 1회 일치
[[마약]]이나 [[각성제]]를 쓰지 않고, 합법적이며 자연적으로 [[환각상태]]를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 넌센스 . . . . 1회 일치
한국에서는 보통 '헛소리다'라는 말을 젊잖게 돌려서 할 때 사용한다. '그 말은 헛소리다'보다 ;그 말은 넌센스다'가 좀 더 젊잖고 세련되게 느껴지며 후자는 싸움이 날 가능성이 조금 적다. 물론, 실제로는 똑같은 뜻이다.
- 네마와시 . . . . 1회 일치
* 협상, 회의의 사전교섭에서 나온 말로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작활동. 어떤 갈등관계가 예상될 때 주변에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미리 퍼트리거나, 사실을 미리 알려두는 작업이다.
- 네이버 . . . . 1회 일치
폭넓은 기능을 지원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로, 대한민국의 포털 사이트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 네타바라시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노동기준감독서 . . . . 1회 일치
어디까지나 명확한 노동법 위반에 대하여 움직이는 기관으로서, 노동기준법에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명확하지 않으면 실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노동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은 노동기준감독서의 관할이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조건 이나 법적판단이 미묘한 문제에서는 [[상담]]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 노무리쉬어 . . . . 1회 일치
* 캐릭터 디자인의 경우, [[지퍼]]와 실버 액세서리가 많이 붙어 있으며 흑색 기조, 현대적인 패션이 많다.
- 노포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니시노 카나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니트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수입되어 실업자, 프리터도 아닌 인간에게 쓰이게 되었다.
- 다크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 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이 세계에 소속된 영화였으나 현재는 취소되었고, 2017년에 개봉한 미이라가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영화가 되었다. 미이라 개봉 후에 공개된 예정 타이틀을 보면 드라큘라를 다크 유니버스에 등장시키려는 생각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다크 유니버스 자체가 취소되는 일이 있기도 해서 먼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나와봐야 알게 생겼다.
- 다키스트 아워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6주만에 GG치고 연합국 뛰쳐나간 막장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가 되어버린 [[영국]]은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 때까지 존버를 시전해 [[나치 독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자신들의 유구한 혐성질 역사 위에 덧칠...읍읍.
- 단카이 쥬니어 . . . . 1회 일치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의 자녀에 해당하는 세대.
- 대마신 . . . . 1회 일치
[[괴수물]]에 시대극적 요소가 융합된 특이한 [[특촬물]]인데 주역 괴수 대마신의 행동도 다른 괴수가 단순무식한 파괴인 것에 비해 악인에게서 사람들을 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보니 가메라처럼 수호자의 캐릭터성이 있는 편.
- 대잠비행정 . . . . 1회 일치
헬리콥터보다 빨리,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헬리콥터가 닿을 수 없는 외양까지 나가는 배는 애초에 상당한 대비를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배를 구조해야 하는 상황은 사실 별로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정일권]] 장군의 [[영천 전투]] 회고에서 언급된다. [[월튼 워커]] 장군이 자신에게 이런 발언을 했고, 영천 전투에서 잘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이 플랜은 없어졌다는 회고. 이 발언에서 60만을 이주시킨다는 설이 나온다.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1회 일치
전작에 비해 아이템이 다양해졌으며 자세한 아이템 리스트는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아이템|여기에서 확인]]가능하다.
- 데부스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데스 소스 . . . . 1회 일치
[[코스타리카]]의 Blair Laza가 만든 핫소스의 일종으로서, 이름 그대로 죽도록 매운 맛을 자랑한다.
- 도광록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도부스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도서관 . . . . 1회 일치
고대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으니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설이다.
- 도짓코 . . . . 1회 일치
덜렁거리고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
- 독고성 . . . . 1회 일치
가족 아들 독고영재 손자 독고준
- 돈가스 . . . . 1회 일치
국립국어원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밥", "돼지고기 튀김"으로 순화하자고 한다.
- 돈키호테(할인점) . . . . 1회 일치
전자제품, 일용잡화, 식품, 시계, 패션용품, 스포츠 레저용품, DIY 제품 등 별의 별 것을 다 판다. 편의점과 할인점을 겸비한 느낌.
- 돌비 . . . . 1회 일치
돌비는 매우 위험한 현상인데, 끓지 않는 상태의 국물 등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접근하여 조미료 등을 넣다가 갑자기 끓어오르는 액체에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두부 . . . . 1회 일치
두부 [[다이어트]]라는게 있다. 하루 삼끼를 두부+그 외 다이어트 단골 메뉴로 떼우는 버전하고 저녁만 두부로 떼우는 버전이 있는데 효능은 알아서 생각하자.
- 드라이브 스루 . . . . 1회 일치
[[자동차]]를 타고, 직접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아 상품을 구입하는 매장. 햄버거나 커피 등 패스트푸드 가게가 많다.
- 딩크 . . . . 1회 일치
영미권에서 [[맞벌이]]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 수익은 2인분, 아이는 없음을 뜻하는 더블 인컴 노 키즈(Double Income No Kids)의 머리문자에서 따왔다. Dinky라고도 한다.
- 라나(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남겨진 섬'에 떠밀려온 12살 소녀.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그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바닷새인 티키(제비갈매기로 추정)와 교감하는 등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고 태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의 손녀여서 박사를 이용하려는 인더스트리아 때문에 여러번 힘은 일을 겪지만 ~~초인~~미래소년 코난의 도움과 본인의 강인함으로 이겨낸다.
- 램즈혼 달팽이 . . . . 1회 일치
수조에서 사육하여 관상용으로 쓰는 종류는 껍질의 색에 따라서, 레드, 블루, 옐로, 핑크 등을 붙여서 부른다.--모두 모아서 달팽이 [[전대물]]을 찍어보자.--
- 러시안 라이프 . . . . 1회 일치
냉전이 진행중이었던 1956년 처음 발행되었다. 이때의 이름은 "더 USSR"(The USSR). 몇년 후 "소비에트 라이프"로 이름을 바꿨고, [[소련]]이 공중분해되자 현재의 이름으로 이름을 바꿨다.
- 로랑 세아크 . . . . 1회 일치
작중에서의 여장[* 통칭 '[[로라 로라]]'. ∀건담 항목의 사진 중 여성으로 보이는 쪽.] 이벤트 때문에 이 쪽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레이스 출신이면서도 지구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성격으로 역대 건담 시리즈 주인공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신적 완성형 캐릭터이다. 또한, 건담 시리즈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흑인 주인공, 유일하게 여성 성우가 연기한 캐릭터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특징적인 캐릭터.
- 로리타 패션 . . . . 1회 일치
소녀스러움을 강조하는 패션 양식. [[레이스]], [[리본]], [[프릴]] 같은 것을 다용하며, 헤드 드레스 같은 것을 도입하는 등, 중근세 유럽의 패션 디자인을 모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형태이다.
- 로빈 . . . . 1회 일치
배트맨 관련 매체에서 자주 등장해왔으며 국내에서도 방영한 [[배트맨 TAS]]에서도 등장. 이후의 배트맨 NBA에서도 등장했다.
- 로쿠데나시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롤 모델 . . . . 1회 일치
동음이의어로 Role Model이 있다. 자신이 본받고 싶은, 동경하는 대상을 뜻하는 말.
- 롬팩 . . . . 1회 일치
몇몇 ROM 팩은 내부에 보조처리장치를 탑재하는 경우도 있다. 슈퍼패미콤의 몇몇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인 사례. 부족한 게임기의 기능을 보충하는 것으로 롬팩 자체가 일종의 확장 카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
- 루이토모 . . . . 1회 일치
루이(類,류)는 종류, 같은 종류, 닮은 것을 뜻하며 토모(友)는 친구를 뜻한다. [[사자성어]] [[유유상종]]과 비슷한 말인데, 주로 인격이 나쁜 사람 주위에 비슷하게 인격이 나쁜 사람들이 모이는 경우에 사용한다.
- 리모콘 . . . . 1회 일치
[[분류:전자제품]]
- 리얼리즘 FPS . . . . 1회 일치
이런 특성 하나하나가 진입장벽을 크게 높이기 때문에 게임을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기피되는 장르이다. 반대로 [[밀덕]]이나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좋아한다.
- 마기 . . . . 1회 일치
천진한 소년 알라딘과 도적 알리바바는 던전을 공략하며 세상과 자신들의 운명을 건 싸움에 놓인다.
- 마기/297화 . . . . 1회 일치
* 3년 후 야무라이하의 요염한 자태와 '''겁나 큰 뱀'''이 씬스틸러.
- 마기/309화 . . . . 1회 일치
암흑대륙의 끝자락에서 아르바와 싸우는 유난
- 마마토모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우주적인 힘을 지닌 보석. 하나만 있어도 소유자에게 거대한 힘을 준다.
- 마이사카 코우 . . . . 1회 일치
본인이 직접 자신을 소개한 바에 따르면,
- 마터니티 포토 . . . . 1회 일치
* 안정성과 배가 부풀어오른 모습을 확실하게 남기고자 하여, 추천하는 시기는 임신 28주에서 36주 정도.
- 만남계 사이트 . . . . 1회 일치
흔히 만남계(出会い系)로 줄여서 표현한다. 일본어로 만남(出会い, 데아이)는 기본적으로 만난다는 뜻이 있지만, 남녀의 만남이라는 의미도 있다. 만남계 사이트는 인터넷에서 교제 상대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상대를 소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이다.
- 망팔 . . . . 1회 일치
* 인(仁),의(義),예(礼),지(智),신(信),충(忠),효(孝),제(悌) 등 8덕을 잃은 자라는 의미이다. 즉 무뢰한.
- 맨불 . . . . 1회 일치
괴력을 지닌 빌런. 원래 잡범이었는데 미스터 클라인이 특별한 혈청을 얻고, 이 혈청을 실험해볼 사람을 납치차려는 목적에 몇명의 범죄자들과 같이 고용되었으나 [[데어데블]]이 이를 저지. 결국 클라인이 그에게 강제로 혈청을 주사하면서 지금의 황소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버린 것이 데어데블 책임이라며 몇번이고 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 머라이온 . . . . 1회 일치
[[싱가포르]]의 상징물. [[물고기]] 몸과 [[사자]]의 머리를 가진 환상종.
- 메시마즈 . . . . 1회 일치
메시우마와는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보고 밥이 맛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상태를 보고 질투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은 아주 슬픈 소식이 들어왔을 때도 사용한다.
- 메일빙 . . . . 1회 일치
[[야마토 운수]]가 1997년에 우편 사업 민영화를 예상하여, 「쿠로네코 메일빙(クロネコメール便)」을 시작한 것이 첫번째 사례이다. 일본 우정은 2007년 [[민영화]] 되면서 기존의 책자 소포(冊子小包)를 「유우 메일(ゆうメール)」로 이름을 바꿔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 명탐정 코난 에피소드 "ONE" 작아진 명탐정 . . . . 1회 일치
1996년 1월 8일 방송된 제트코스터 살인사건은, 줄거리는 신이치와 란이 놀이공원 트로피컬 랜드에서 데이트 하던 중 제트코스터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신이치가 추리로 범인을 밝혀내지만 용의자 가운데 진과 보드카에게 수상함을 느껴 미행하다가 어둠의 거래 현장을 목격, 검은 조직에 습격당해 독약을 먹고 어린 아이의 모습이 된다는 전개.
- 모닝구 무스메 . . . . 1회 일치
1997년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ASAYAN」에서 개최된 "샤란Q 락 보컬리스트 오디션"에서 낙선자들에서 선발된 5명이 "층쿠♂"의 프로듀스를 받아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메이저에 데뷔하였으며, 멤버를 교체해가면서 장기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 모던 워페어 시리즈 . . . . 1회 일치
* 이므란 자카예프
- 모레츠 사원 . . . . 1회 일치
1969년 마루젠 석유丸善石油(현재의 코스모 속유)의 CM에서, 미니 스커트 차림의 오가와 로자(小川ローザ)가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오는 차가 일으킨 바람에 치마가 올라가면서 동시에 「Oh!맹렬(モーレツ,모레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장면이 있어 여기서 모레츠가 일시적으로 유행어가 됐다. 여기에서 모레츠 사원이라는 단어가 태어나게 됐다.
- 모메사 . . . . 1회 일치
폭언이나 실언, 싸움을 부추기는 유치한 사람으로서, 모메사란 주로 특정한 스레드에 눌러앉아서 싸움을 부추기면서 혼자 즐기는 인물이다. 스레드의 분위기가 나빠지게 되므로 대개 기피당한다.
- 모테루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 이미 쓰이고 있었던 말이라고 한다. 표기는 모테루(持てる)라고 한자로 쓰고 있었으나, [[쇼와]] 중기 떄부터 모테루(モテる)라는 [[가타카나]] 표기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 무과금 . . . . 1회 일치
이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현명한 소비(…), 제작자 입장에서는 흔히 있는 날강도(…).
- 문경시 . . . . 1회 일치
! 읍면동 ! ! 한자 ! ! 세대 ! ! 인구 ! ! 면적 ! !행정지도
- 물에 흘려보내다 . . . . 1회 일치
이 같은 관념 때문에 개인 간의 시시비비나 사회적 정의보다 집단의 화합을 과도하게 중시하여, 명백한 피해자에게 "물에 흘려보내라"는 식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비판이 있다.
- 미네스트로네 . . . . 1회 일치
[[감자]], [[토마토]], [[양파]] 같은 재료를 넣고 끓인 다음, [[파스타]] 혹은 [[쌀]]을 넣어서 만든다.
- 미니게임기 . . . . 1회 일치
[[분류:전자제품]]
- 미생체 . . . . 1회 일치
[[미생]]의 작가 만화가 윤태호가 공개한 무료 폰트. 윤태호 자신의 손글씨를 모델로 했으며, 창작과 상용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 미스터 마인드 . . . . 1회 일치
겉모습은 그냥 벌레. 문자 그대로 보통 애벌레 크기다. 그런 이유로 [[블랙 아담]]이나 [[아이박]]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나 [[닥터 시바나]]처럼 지능형 빌런인데다 정신계 능력을 써서 만만치않은 적이다.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Monster Society of Evil)의 일원이기도 하다.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1회 일치
* 마르반 켄자리
- 미즈코 . . . . 1회 일치
낙태된 아이들에 대한 공양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존재하였는데,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 석상이 바로 이러한 낙태된 아이나 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 아이들을 공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석상이다.
- 미하 . . . . 1회 일치
단어 자체의 발상은 쇼와 초기, 192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널리 쓰이는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어원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 있다.
- 바레브 라인 . . . . 1회 일치
* 바레브 라인의 설치 자체로, 이스라엘 군은 이집트 군을 운하에서 막는데 집착하게 되어, 이집트 군의 기습 공격에 퇴각을 하지 않고 버티면서 많은 희생을 내게 되었다.
- 바루스 . . . . 1회 일치
멸망의 주문.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라퓨타 왕가에 전해지는 멸망의 주문으로서, 라퓨타의 구조를 일격에 붕괴시키는 자폭 스윗치 같은 것.~~왜 이런 기능이 있는 거야.~~
- 바키도/104화 . . . . 1회 일치
* 알버트 박사는 팔목이 부러진 것 보다도 "날붙이도 없는 무사시에게 베어졌다"는 선명한 감각 때문에 망연자실하다.
- 바키도/107화 . . . . 1회 일치
*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도 무사시는 "승부를 무르자"고 제안한다.
- 바키도/118화 . . . . 1회 일치
* 여기서 작가는 이야기를 끊고 자기가 무도가를 인터뷰한 이야기를 말하는데.
- 바키도/121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닌자도 이만한 둔갑은 하지 못했다"며 요괴냐고 놀란다.
- 박노식(1930)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본관 [[밀양시|밀양]](密陽).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이냐시오이다. 1930년, [[전라남도]] [[여수시]] 에서 태어났으며[* 그런데 정작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시]] 출신인 [[해태(응답하라 1994)|해태]]가 여수 아줌마와 고향 대결을 할 때 박노식을 순천 사람이라고 내세운다. --해태 [[의문의 1패]].--],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학교[* 1946년 11월에 설립되었다가 1962년 2월에 폐교되었는데, 뒤이어 순천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67년에 지금의 순천공업고등학교로 재개편되었다.] 체육과를 졸업했다. 1950년에 지금의 여수 소라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종군했다.
- 박성배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Park Sung-Bae
- 박성원 (소설가)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박소희 (만화가) . . . . 1회 일치
* [[2003년]] 독자만화대상 장편부분 1위
- 박수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 Park Soo-Il
- 박은혜 . . . . 1회 일치
* [[박은혜 (1904년)|박은혜]](朴恩惠, 1904년 ~ 1963년)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다.
- 박재현 (야구인) . . . . 1회 일치
'''박재현'''(朴宰賢<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4년]] [[2월 8일]] ~ )은 전 [[한국 실업 야구]]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1루 주루코치이다.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12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삼성전자 칸(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삼성 갤럭시]])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박진수(1985) . . . . 1회 일치
적도의 남자
- 발터 PPK . . . . 1회 일치
Walther PPK. [[독일]]의 총기 제작사 [[발터]]가 생산하는 [[자동권총]].
- 배빵 . . . . 1회 일치
실제로는 내부 장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하지 말자. 살인으로 경찰서간다.
- 배재준 . . . . 1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 백기만 . . . . 1회 일치
| 자녀 = 백용주(장남)
- 백대현 . . . . 1회 일치
|제자 =
- 백현서 . . . . 1회 일치
* [[2009년]] SBS 《[[자명고]]》... 수지련 역
- 버블 시대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변현제 . . . . 1회 일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브루드 워]]에서는 저그전에 강한 프로토스중 한명으로, 2012 스타리그 듀얼토너먼트에서는 자신보다 랭크가 높던 [[박재혁 (프로게이머)|박재혁]]과 [[김성대 (프로게이머)|김성대]]를 꺾고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포스트 김택용'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종목이 스타2로 완전 전환되며 유명무실한 별명이 되고 말았다.
- 병거 . . . . 1회 일치
[[청동기 시대]]의 병거는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2륜 마차가 주로 쓰였다. [[마부]]와는 별도로 [[활]]로 적을 저격하는 [[궁사]]가 탑승하였는데, 대개 이 궁사가 병거가 가진 전투력에서 핵심이자 리더를 맡았으며 병거를 탄 전사들은 청동기 문명에서 [[귀족]] 계급을 차지하였다. 전장에서는 빠른 기동성과 돌파력으로 보병을 이끌었다.
- 보쿠걸/96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타케루가 사진을 찍어간다고 하자 기뻐하다가 남에게 줄 사진이란걸 알고 실망한다
- 보타니 만의 짐 존스 . . . . 1회 일치
Jim Jones at Botany Bay. [[호주]]의 [[민요]]. 죄를 지어 호주로 끌려온[* 과거 영국은 호주를 유형지로 사용했다.] "짐 존스"라는 남자가 사슬을 끊고 탈출해 [[잭 도나휴]]의 부시레인저[* 1번 주석과 같은 일로 호주에 끌려온 죄수들이 탈주, 산적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시레인저(Bushranger)라고 불렸다.] 무리에 들어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 부모교실 . . . . 1회 일치
아버지 학교나 어머니 학교, 혹은 [[일본]]에서는 양친학급(両親学級), 모친학급(母親学級), 부친학급(父親学級)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곧 부모가 될 사람에게 부모로서 자각을 심어주고, 출산, 육아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교실이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주최된다.
- 부사이쿠 . . . . 1회 일치
한자로 불세공(不細工) 혹은 무세공(無細工)이라고 쓴다.
- 분류:무기 . . . . 1회 일치
[[벽돌]]부터 [[베개]]까지 손에 잡히는 왠만한건 무기로 쓸 수 있지만 넘어가자.
- 분류:서귀포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인물]]
-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인물]]
- 불금 . . . . 1회 일치
'''불'''타는 '''금'''요일의 약자.
- 브라이아크 라오 . . . . 1회 일치
[[라나(미래소년 코난)]]의 할아보지. 태양 에너지의 권위자이며 태양 에너지를 전송해주는 발전용 [[인공위성]]의 [[궤도]]를 달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에너지를 원하는 인더스트리아에 의해 쫓기고 있다. 라나가 쫓기는 이유도 이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 블랙 클로버/115화 . . . . 1회 일치
* 그제서야 일어난 잭스가 느긋하게 A팀의 크리스탈을 박살내러 가는데, [[카타스 워른]]이 불손하다고 비난하자 "그딴 인물한테 진 너는 뭐냐"고 독설을 날린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1회 일치
* 원래도 다섯잎 클로버의 마도서는 떡밥 덩어리였으나 "그 분"이라는 다른 사용자가 있는 걸로 언급되어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제이콥 휘트니라는 인물이 운영하는 면 재배지가 있었는데 그곳의 노예들은 모든 노예들의 불행과 눈물에서 창조된 블러드젬을 연마하기 위해 25일 밤 넘게 자신들의 혈액을 이용한 고대의식을 치루었고, 이후 블러드젬은 휘트니를 영원히 가두었다.
- 비국민 . . . . 1회 일치
일본의 욕설. 국민(国民)이 아닌 사람, 혹은 국민(国民)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
- 빅 사이언스 액션 . . . . 1회 일치
정신 능력, 에너지, 방어력 등. 거구의 남성 모습이자 실제로는 젊은 여성이다. JLA #26 (February 1, 1999)에 첫등장.
- 빌리 블랭크스 . . . . 1회 일치
2008년에 부인과 [[이혼]]하고, 2009년에 14세 연하로서 자신의 통역을 담당하던 일본인 여성과 재혼했다. 2008년 11월에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녀를 얻었다.
- 사반세기 . . . . 1회 일치
[[분류:사자성어]]
- 사이곳페 . . . . 1회 일치
해석하자면 마지막(最後) 방귀(屁).
- 사이마 . . . . 1회 일치
[[빚]]을 지고 있는 사람 채무자(債務者)를 뜻한다. 단순히 채무나 대출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불건전하게 빚을 짊어지는 사람으로, 특히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다. 대개 욕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 사쿠라 . . . . 1회 일치
본래 노점상의 은어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일반 사회에 퍼졌다. 한자로는 위객(偽客)이라고 쓰기도 했다.
- 산마이오로시 . . . . 1회 일치
[[생선]]의 [[참수|머리를 자르고]], 중간의 등뼈를 따라서 칼날을 집어넣어, 양쪽 몸을 갈라서 중간의 뼈와 양쪽 몸이 '3장(三枚)'이 되도록 나누는 방법. 가장 기본적인 손질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 삼고 . . . . 1회 일치
버블경제 시대에 유행했던 말. 남자친구로 바라는 남성의 조건으로서, 고학력, 고수익, 고신장을 뜻한다.
- 삼일스님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상주시 . . . . 1회 일치
! 면동 ! ! 한자 ! ! 면적 ! ! 세대 ! ! 인구 ! ! 행정지도
- 샘 윗위키 . . . . 1회 일치
가족으로는 [[아버지]]인 론 윗위키, [[어머니]]인 주디 윗위키, 애완견인 모조가 있다. [[트랜스포머(2007년 영화)|트랜스포머]]의 일로 미카엘라 베인즈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과 [[트랜스포머 3]] 사이에 깨진 것 같다. 이는 미카엘라 베인즈를 연기했던 [[메간 폭스]]가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마이클 베이]]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20601007|히틀러 같다고 발언]]해 퇴출되었기 때문.
- 서영종 . . . . 1회 일치
'''서영종'''([[1952년]] 12월 17일 ~ )은 기아자동차의 前 사장으로 프로야구단 [[KIA 타이거즈]]의 구단주 및 사장으로도 활동하였다.
- 석등보 . . . . 1회 일치
*** 외손자 : [[실성 마립간]]
- 선원 . . . . 1회 일치
과거 영국은 군함의 선원을 강제 징집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극초반에는 미국 선박을 습격, 선원들을 끌고가 자국 군함에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 세븐 솔저스 오브 빅토리 . . . . 1회 일치
* 자타나(Zatanna)
- 세이브 노가다 . . . . 1회 일치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기.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세이브를 한 후,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로드를 반복하는 행위를 뜻한다.
- 섹슈얼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센티멘탈 그래피티 . . . . 1회 일치
어린 시절 이사를 다니면서 전국에 [[소꿉친구]] [[플래그]]를 만들어둔 대단한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찌나 과거의 여자가 많은지 편지가 와도 누가 보냈는지 모를 정도.
- 소금대응 . . . . 1회 일치
AKB48의 시마자키 하루카(島崎遥香)가 AKB 악수회에서 대응이 무성의해 보인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손민수(희극인)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희극인]]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이자, 그는 tvN 코미디빅리그로 데뷔하였다.
- 손요리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손해보고 이득얻다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송상진 . . . . 1회 일치
'''송상진'''(宋相振, [[1928년]] [[10월 30일]] ~ [[1975년]] [[4월 9일]])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민혁명당 사건|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이다.
- 송종익 . . . . 1회 일치
[[분류:1887년 태어남]][[분류:195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야로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숙년이혼 . . . . 1회 일치
이 단어 자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비슷한 나오기 시작하다가, 2005년 10월에 숙년이혼이라는 드라마가 나와서 다른 동의어와 유사어를 통합할 정도로 인기 있는 유행어가 되었다.
- 슈퍼 영 팀 . . . . 1회 일치
초스피드 능력자.
- 슈퍼걸(드라마) . . . . 1회 일치
클립톤 인 범죄자들의 두목. 카라의 어머니 알루라와는 쌍둥이.
- 슈퍼머슬봄버 . . . . 1회 일치
게임자체는 망하기는 했지만, 세계관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파이널 파이트]]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연결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가 [[해거]]와 [[버디]], [[휴고]])
- 스마트폰 . . . . 1회 일치
[[분류:전자제품]]
- 스카이 김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오스트레일리아의 남자 양궁 선수]][[분류:한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분류:오스트레일리아의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
- 스캘러왜그 . . . . 1회 일치
미국사에서는 [[남북전쟁]] 직후 나타난 남부 출신 [[공화당]]원을 뜻하기도 한다. 당시 [[민주당]]이 강세였던 남부에서 배신자 취급을 당했다고.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스타 연구소는 [[과학자]] 개리슨 슬레이트(Garrison Slate)가 설립했으며, '''정부와 기업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국경을 초월한 연구소'''를 목표로 삼았다.
- 스탈리늄 . . . . 1회 일치
이 와중에, 소련 전차&항공기들이 비정상적인 방어력을 뽐내는 상황이 목격되자 유저들은 저것들의 장갑은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라 스탈리늄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었다고 드립을 치기 시작한다.
- 스테미 . . . . 1회 일치
스테(捨て)는 버린다는 뜻, 미(身)는 몸이란 뜻이다. 즉, 자신의 몸을 버린다는 의미가 기원이 된다.
- 스트리트 파이터 . . . . 1회 일치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선술한 1P인 류, 2P인 켄. 그나마 고정되어 있다. 두 캐릭터의 차이점이 없다보니 디자인만 살짝 다른 동일 캐릭터라 할 수 있다.
- 스트리트 파이터 2 . . . . 1회 일치
캡콤의 게임 [[몬스터 헌터 4]]에서, 플레이어의 자기소개 기능 비스무리한 것인 "길드 카드"의 배경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류 스테이지 배경을 사용할 수 있다.
- 스틸오션/아이템 . . . . 1회 일치
* 복합 자이로스코프(Composite Gyroscope)
- 스파이더 . . . . 1회 일치
DYNAMITE의 만화인 MASKS에서도 등장. [[알렉스 로스]]가 1화의 그림을 맡은 이 만화는 스파이더만이 아니라 [[섀도]], [[그린호넷]]과 [[케이토]], [[조로]]같은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이 만화에서 스파이더의 디자인은 영화처럼 거미줄 문양의 복면을 쓰고 있다.
- 스피커 아줌마 . . . . 1회 일치
[[스피커]]처럼 [[소문]]을 듣고 퍼트리는 수다스러운 아줌마를 뜻하는 말이다. 스피커 아줌마 자체는 특별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1회 일치
서로 번갈아 가며 아군 기체들이 어떤 기동을 할지 선택한다.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자동적으로 공격하는데, 적을 공격하게 되는 기동은 초록색으로 표시되며 입힐 수 있는 피해량이 표시된다.
- 시티락 . . . . 1회 일치
관련 캐릭터는 스테그론(Stegron)이 있다. 스테그론은 새비지 랜드에서 일을 낸 록슨(Roxxon)을 저지하려 했고, 이때 헐크와 함께 스테그론을 도운 것. 한편 스테그론의 의도를 안 [[스파이더맨]]와 새비지 랜드의 관련 캐릭터인 [[카자르]](Ka-Zar)와 [[셰나]](Shanna)도 협력했다.
- 식극의 소마 . . . . 1회 일치
[[나키리 아자미]]
- 식극의 소마/155화 . . . . 1회 일치
* 쿠스노키는 쿠로키바의 도발에 넘어 자신의 특기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 식극의 소마/158화 . . . . 1회 일치
* 대망의 리액션 파트지만 평소와는 달리 심사의원 중 여자가 한 명도 없는 데다 리액션으로 벗은 쪽은 어째선지 쿠스노기.--초심을 잃었네--
- 식물인간 . . . . 1회 일치
의식이 없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경 기능만 움직이는 상태의 환자.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1회 일치
연하장의 상품은 매년 조금씩 바뀌었는데, 제1회 신년선물연하장엽서의 상품은 특등상으로 [[재봉틀]], 1등으로는 순모옷감, 2등으로는 학생용 장갑, 3등으로는 학생용 우산이었다. 1966년에 특등상이 폐지되고 1등이 최고상으로 바뀌었으며, 1956년에는 전기세탁기, 1960년에는 발포 고무 매트리스, 1965년 이후로는 휴대용TV나 8밀리 촬영기, 영사기 세트, 1984년에는 전자레인지, 1986년에는 비디오테이프레코더 같이 서민들이 손에 넣기에 약간 어려운 상품들이 주류였다. [[헤이세이]] 이후로는 해외여행, 최신식 TV, PC 등 몇가지 가운데 1가지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 신지훈(배우) . . . . 1회 일치
||성좌/지지||[[황소자리]]/[[용띠]]||
- 신형철 . . . . 1회 일치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등장했다. [[2007년]]부터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14년]]부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으로 제5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으나, 현대문학의 소설 거부 사태로 인해 상을 반려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22015575&code=960100 문학평론가 신형철] 경향신문, 2014-05-02</ref>
- 싱가포르 고릴라 유령 . . . . 1회 일치
[[고릴라]] 유령은 싱가포르 교외에 있는 한 촌락에 출현하였으며,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한다. 주민 다섯명이 고릴라를 목격했으며, 1964년 3월 30일에는 고릴라가 어떤 운전기사의 집에 들어가서 잠자고 있던 운전기사의 부인을 간지럽혀서 깨운 일이 있다고 한다.
- 아귀 . . . . 1회 일치
프레타(Preta)는 본래 [[베다 시대]]의 [[리그 베다]] 등의 경전에서는 [[하늘]]에 거주하는 조상의 영혼으로 여겨졌다. 이는 저승의 신 [[야마]] 역시 비슷하여, 하늘에 살면서 조상의 영혼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과응보와 업보 사상이 발전하면서 이들은 업보를 받아 괴롭게 사는 죽은 자의 영혼으로 여겨져서, 불교 육도의 하나로서 지하세계에 해당하는 [[아귀도]]에 사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아기발도 . . . . 1회 일치
이성계가 고려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한 부분 때문에 [[조선]] 역사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이 회자되었으며, 이 때문에 고려를 멸망시킨 주역인 이성계에 대한 반감을 토벌당한 아기발도에게 투영하여 그를 동정적으로 보는 설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문서 참고.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1회 일치
원작 소설에서는 비교적 출연이 적은데, 1부의 중반에서 후반 정도 까지 [[제르가디스]]와 함께 리나, 가우리와 행동을 함께 했다. 회복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바스퍼링크, [[라틸트]] 같은 정령 마법에도 능숙하여 뛰어난 대마족 전투원으로서 활약. 피브리조의 음모가 구체화된 시점에서는 리나와 헤어져서 제르가디스와 독자적으로 [[사일라그]]를 탐색하기도 한다.
- 아바즈레 . . . . 1회 일치
닳고 닳은 여자라는 뜻. [[화냥년]], [[빗치]], [[걸레]] 같은 의미가 있다. 주로 욕설로 쓰인다.
- 아웃 오브 안중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아이박 . . . . 1회 일치
아이박이라는 이름은 인류 역사의 악인들의 이름 첫글자로 구성된 것. 그 각각은 공포의 이반(Ivan the Terrible), 보르지아(Cesare Borgia), 훈족의 아틸라(Attila the Hun), 칼리귤라(Caligula).
- 아이언맨 . . . . 1회 일치
아이언맨 아머를 자작/코스프레하는 사람도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묘하게 이것도 어디서나 반응이 좋다.
- 아케미 호무라 . . . . 1회 일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대함미사일까지 훔친 중범죄자.
- 아키즈키 리츠코 . . . . 1회 일치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상식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남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태다. 디어리 스타즈가 상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태.
- 아타리야 . . . . 1회 일치
* 아타리에는 부딪친다는 뜻으로 맞는다는 의미도 있어, [[교통사고]]를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자해공갈]]을 뜻하기도 한다.
- 악마성 . . . . 1회 일치
* 매 시리즈 마다 구조가 바뀌며, 다양한 몬스터를 만날 수 있다. 혼돈의 힘으로 자동으로 건설이 되는 것 같다.
- 악마의 대변인 . . . . 1회 일치
악마의 대변인은 논쟁 집단이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하여, 의도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악마의 대변인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다. 토론 문화가 부족하여, 반대 의견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풍토에서는 존속하기 어렵다.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 . 1회 일치
집사의 전형적인 인물. 말이 집사이지 일반적인 집사의 업무에 브루스의 배트맨 활동도 보좌하고, 뒤치닥거리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말솜씨도 뛰어나서 배트맨도 이길 수 있으며 독설적 농담을 쓴다. 딱히 싸움을 잘할 듯한 인상은 아니나 박쥐 동굴에 침입자가 발생하면 샷건을 쏘기도 한다.
- 암금 . . . . 1회 일치
어둠(闇.야미)의 세계에서 나온 돈(金). 불법사채업자에게 빌리는 돈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시지마 같은 사람.
- 애로우버스 . . . . 1회 일치
* [[DC's Legends of Tomorrow]] - 타임마스터 립 헌터를 중심으로 하여, 아톰, 파이어스톰, 화이트 카나리, 호크걸, 호크맨 등 애로우와 플래시에서 출연하던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애로우와 플래시에서 남는 애들을 모아놓은 잡탕 드라마.--
- 야간전투기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더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다. 한국전쟁 이후 레이더가 발달하여 모든 전투기에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시대를 거쳐서 자연히 사라졌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1회 일치
== 자녀 ==
- 야마무라 사다코 . . . . 1회 일치
주로 영화 링에서 나온 하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앞으로 내린 모습이 유명. [[텔레비전]]에서 기어 나오거나, 눈을 부릅뜨고 희생자를 [[심장마비]]로 살해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 야마토 나데시코 . . . . 1회 일치
*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을 '나데시코 재팬'이라고 하며, 축구 리그를 나데시코 리그, 나데시코 슈퍼컵이라고 하여 여기에서 따온 이름을 쓰고 있다.
- 야명주 . . . . 1회 일치
그런데 현실에서 이러한 물건을 본다면 [[방사능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접근하지 말자.
- 얀데레 . . . . 1회 일치
얀데레적인 행동으로는 스토킹이나 감금 같은 것을 한다. 정도를 벗어나면 [[신쥬|동반자살]], [[살인]] 등에 이른다.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1회 일치
그러나 동일한 학교 법인, 혹은 비슷한 계열이나 제휴 관계가 있는 학교 사이에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혹은 고등 전문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 단기대학(전문대학) 등에 입학할 때 입학 시험없이 진학할 수 있는 별도의 선발 제도가 있다. 이를 한 번 타면 자동으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비유하여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라고 부른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 . . . 1회 일치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
- 엔포서스 . . . . 1회 일치
본명 Jackson W. Brice. 첫등장은 The Amazing Spider-Man #10 (March 1964). 특기는 올가미 던지기.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 여정남 . . . . 1회 일치
'''여정남'''(呂正男, [[1944년]] [[5월 7일]] ~ [[1975년]] [[4월 9일]])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다. 유신정권 시기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이다.
- 여태조 . . . . 1회 일치
명나라가 베트남을 점령하면서 제4차 북속시기가 시작되자 세력을 모아서 남산기의를 일으키고 명의 식민지배에 저항하였다. 처음에는 병력의 질과 수적 열세로 명나라군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 역병신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역사 . . . . 1회 일치
>-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 역행 . . . . 1회 일치
창작물 장르에서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판타지, SF 작품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회귀'라고도 부른다.
- 연령=동정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영국 요리 . . . . 1회 일치
영국 요리의 전통은 고대 브리튼의 켈트족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브리튼의 켈트족은 매 계절 마다 요리 축제를 벌이면서 요리 기량을 닦아서 겨루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요리 축제는 [[스톤헨지]]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브리튼을 침공한 고대 로마 제국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영국 요리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남겼으며, 자신이 먹어본 어떤 요리보다 맛있는 요리라고 [[갈리아 전쟁기]]에서 한껏 추켜세웠다.
- 오드아이 . . . . 1회 일치
좌우 [[눈동자]]의 색깔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금은요동'(金銀妖瞳)이라는 일본식 표현을 쓸 때도 있다. 판타지에서 간혹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으로 간혹 쓰이며, 그 특이성 때문에 ~~중2병~~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 선망하기도 한다.
- 오미쿠지 . . . . 1회 일치
뽑은 제비에는 길흉(吉凶)이 적혀있으며, 대길(大吉)에서 대흉(大凶)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흉(凶)은 애초에 생산량이 적어서 자주 나오지 않는다. 금전운, 건강운, 연애운 등 각 분야별로 길흉을 나눠서 뽑아주고, 거기에 맞춰서 경구가 써있는 경우도 많다.
- 오석산 . . . . 1회 일치
부작용으로는 피부병, 감정 혼란, 피해망상, 최악의 경우에는 중독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설로는 자수정, 백석영, 적석지, 종유석, 유황 등의 광물을 성분으로 썻다고 하며, [[중금속 중독]] 증세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 오승원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배우자 =
- 오와콘 . . . . 1회 일치
* 작품 내외적으로 퀄리티가 망가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인해 컨텐츠 소비자가 급격히 외면하게 된다.
- 오유우기 . . . . 1회 일치
접두사 오를 붙여서 오유우기(お遊戯)가 되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나 무용을 뜻하게 된다. 주로 집단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오유우기카이(お遊戯会)는 학예회, 장기자랑을 뜻하는 말이다.
- 오츠보네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오태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오태근은 원래 [[LG 트윈스]]의 1번타자로 기대를 받았지만 [[이대형]]이 입단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 오태영 (1948년)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오태훈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다른 사람|오태훈 (게임 개발자)}}
- 오퍼레이션 발할라 . . . . 1회 일치
전이현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자 기존의 각국의 군대로 대처하던 상황과는 달리 전이 현상으로 넘어오는 존재들에 특화된 전문 요원들을 뽑아 대응한다는것이
- 오하라이 . . . . 1회 일치
* 교통안전(交通安全)이라고 해서 자동차가 안전하게 다니도록 하는 축원의식도 있다.
- 왝더독 . . . . 1회 일치
스캔들을 덮을 만한 각본을 짜기 위해 브린이 찾아간 [[영화 제작자]]. 사실상 진주인공. 스탭롤에서도 맨 위에 나온다.
- 요괴:가면라이더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요괴 '가면라이더'를 소재로 한 TV드라마나 극장 영화가 자주 제작되는데, 대체로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 요괴:니코니코니 . . . . 1회 일치
이 요괴에 홀린 인간은 기괴한 표정과 음성으로 지으며 "니코니코니~"하고 외치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전염성이 있는 요괴로, 다른 인간 역시 동시에 홀려서 "니코니코니~"라고 소리치게 된다. 독특한 추임새가 있어, 요괴에 홀린 자들은 "니코니코니~"만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 요괴:트위터 . . . . 1회 일치
그런데 트위터의 가장 무서운 능력은 단지 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현자 퍼거슨 경에 따르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한다. 즉, 트위터는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는 요괴이다. 아 얼마나 무서운가.
- 요시노야 . . . . 1회 일치
가격이 비교적 싸고, 카운터 석이 많아서 혼자 들어가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패스트푸드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 용융금속형 . . . . 1회 일치
금속은 희귀한 자원이므로 일상적으로 이러한 형벌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매우 특수한 형벌로서, 대개 고위급 전쟁포로에게 상대방의 (과도한) '[[욕심]]'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이런 형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 우라가에시 . . . . 1회 일치
* 자신의 감정 등을 정반대로 나타내는 것.
- 우메즈 카즈오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우미나리 시 . . . . 1회 일치
주인공 타카마치 나노하가 사는 고장으로, 우선 나노하의 가문부터가 무력적으로 범상치 않은데다(나노하의 부친과 오빠가 익힌 '미카미류'가 먼치킨성 고류 무술) 온갖 종류의 괴기 및 초자연적 존재들이 존재하고~~(이 쪽은 원작 '트라이앵글 하트 3'의 설정까지 포함시킨 경우가 많지만)~~, 나노하 시리즈에 이르면 지구와 우주, 차원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전투들(1편 - 페이트와의 항쟁 / 2편 - 어둠의 서와의 전투)이 벌어지는 살벌한 동네이다.
- 우키시마 . . . . 1회 일치
* [[늪]]의 수면에 떠있는, 섬 같은 것으로서,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의 덩어리이다. 위에는 식물이 자란다.
- 운전기사 . . . . 1회 일치
[[자동차]] 등을 [[운전]]하는 사람. 다른 수식어 없이 '운전기사'라고만 하면 보통 승용차 운전기사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 울트라 시리즈 . . . . 1회 일치
[[가면 라이더 시리즈]], [[슈퍼전대 시리즈]]와 함께 특촬물 업계의 대표적인 시리즈. [[울트라 Q]]가 나오고, 이어서 [[울트라맨]]이 등장해 거대 히어로의 대표주자격이 되었다. 그 거대한 인지도는 미국에 [[슈퍼맨]]이 있다면 일본에는 울트라맨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 원피스 . . . . 1회 일치
점프 황금기 이래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점프를 구원한 [[드래곤볼]]의 계승자. 일본에서만 치면 드래곤볼 조차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 원피스/815화 . . . . 1회 일치
[[밀짚모자 일당|루피 일행]]은 제이콥을 통해 [[상디]]의 출생을 알게 된다.
- 위키규정 . . . . 1회 일치
* 개인 사용자를 주제로 한 문서는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 유곽 . . . . 1회 일치
전근대시기에 있었던 매춘업소의 형태. 유곽의 곽(郭)은 성곽이라는 의미로서, 그 말에서 보여주듯이 외부와는 벽이나 도랑으로 차단하여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 ㅊ출입구를 한 곳으로 하여 철저하게 관리되는 형태로 만들어진 매춘업소이다.
- 유니버설 픽처스 . . . . 1회 일치
유명한 메이저 영화사이며 상당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에 어울리게 많은 영화를 내놨으며 지금도 만들고 있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이 유니버설에서 만든 영화 시리즈.
- 유사국가 . . . . 1회 일치
인터넷에서 나라 답지 못한 짓을 하는 나라를 풍자할 때 쓰는 말이다.
- 유재한 (1955년) . . . . 1회 일치
*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2002년 2월 ~ 2003년 1월)
- 윤식 . . . . 1회 일치
*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대학원 자원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 은행강도 . . . . 1회 일치
이에 대응하여 은행에서도 [[경비원]]을 배치하고 [[경찰]]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다각도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은행 강도는 범죄자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대담성이 높으며, [[총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강도가 들어도 은행은 이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어놓는다.
- 은혼/650화 . . . . 1회 일치
* 아네, 모네 자매는 황룡의 무녀로서 이누가미를 데리고 용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동분 서주 중. 그 과정에서 모습을 감췄던 [[사다하루]]와 만나는데.
- 이강철 (1947년) . . . . 1회 일치
* 대구·경북지방자치연구소 소장
- 이기열(배우) . . . . 1회 일치
* 2002년 [[SBS]] 《[[소문난 여자]]》 - 고 사장 역
- 이동춘 . . . . 1회 일치
통산 전적은 57전 45승(26KO) 2무 10패이며, [[1995년]] [[9월 5일]] [[도쿄도]] [[고라쿠엔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가와 세쓰오]]와의 경기에서 판정패한 뒤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쓰러져 4일 후인 [[9월 9일]] 사망했다.<ref>{{뉴스 인용|제목=韓國프로복싱선수,日링서 쓰러져 사망서|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925974|출판사=연합뉴스|저자=|날짜=1995-09-10}}</ref>
- 이름뿐인 관리직 . . . . 1회 일치
* 관리직이지만, 자신의 업무량, 업무시간 등을 재량으로 제어할 수 없다.
- 이명규(국회의원) . . . . 1회 일치
1956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릴 때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자랐다.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별대행업체 . . . . 1회 일치
와카레사세(別れさせ)는 헤어지게 만든다는 뜻, 야(屋)는 특정한 일을 맡는 업자나 가게를 뜻한다. 2001년 니혼테레비에서 동명의 드라마가 방송된 바 있다.
- 이상화(1980) . . . . 1회 일치
200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 구속은 140km 초중반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다. 2006년 무려 121이닝을 소화하며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45경기 121이닝 5승 6패에 평균자책점은 3.87을 기록.], 이 때의 혹사 여파로 인해서인지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당시 [[서정환]]감독시절의 혹사로 [[한기주]], [[신용운]] 등만 거론되지만 어찌보면 이 둘보다도 더 심하게 굴려졌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제대하였다. 하지만 혹사의 여파로 인한 부상으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 이상훈 (1987년) . . . . 1회 일치
'''이상훈'''(李相勳<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7년]] [[5월 4일]] ~ )은 전 [[KBO 리그]] [[kt 위즈]]의 [[외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전력분석원이다.
- 이영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이영수'''(李永守<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1년]] [[5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이다.
- 이영은(1982) . . . . 1회 일치
* [[바르게 살자]] - 전다혜 역
- 이웃집 잔디는 푸르게 보인다 . . . . 1회 일치
영문 경구. 남의 물건이 자신의 것보다 언제나 더 좋아 보인다는 의미이다.
- 이원재(축구선수) . . . . 1회 일치
포철공고 출신으로 2005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포항에서는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2008년 [[전북 현대]]로 이적하였다. 전북에서도 4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9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다. 2009년 울산에서 17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자리를 획득하는 듯 했으나 2010년에 1경기도 출장못했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다. 포항에서도 출장기회는 적었고, 2013년 [[경찰 축구단]]에 입대하였다. 2013년 경찰에서 28경기에 출장하였고, 2014년에는 11경기에 출장하였다. 2015년 1월 7일 [[대구 FC]]로 이적하였다. 2016년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2017년 바레인 리그 소속의 마나마 FC로 이적하였다.
- 이재성(희극인)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이재영 (뮤지컬배우) . . . . 1회 일치
|| 학력 ||<(> 혜화여자고등학교 [br]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br]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이지우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율하초등학교를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좋은 타격성적을 보여주었다. 고교 통산 58경기 타율 0.357 출루율 0.441 장타율 0.464 74안타 1홈런 48타점 25볼넷 21삼진을 기록하였다. [[2013년]] [[8월 26일]]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3라운드 26순위로 지명되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421 왼손 거포의 계보를 이어갈 NC 이지우] - NC 다이노스</ref>
- 이차영 . . . . 1회 일치
[include(틀:충청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13년 3월 15일자로 은퇴했다.
- 이홍열 (바둑기사) . . . . 1회 일치
|제자 =
- 이황근 . . . . 1회 일치
| 자녀 = 7남매 중 장남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사실 크라켄과 거대화 생물들이 날뛰는걸 처리하는 임무였다. 성공수당을 혼자 챙기려다 걸리는 멜리오다스.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 . . 1회 일치
사실 대부분의 단어가 그냥 치면 나온다. 구글을 애용하자.
- 임각수 . . . . 1회 일치
1980년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하였다. 이후 [[강원도청]], [[이북 5도청]],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 임관빈 . . . . 1회 일치
美육군보병학교, 美합동참모대학에서 유학했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방대 안보대학원과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졸업했다.
- 입자가속기 . . . . 1회 일치
[[하전입자]]를 가속시키는 장치의 총칭.
- 장기 . . . . 1회 일치
중국 장기와 일본 장기, 한국 장기는 각자 규칙이 다르다. NTX 위키는 한국 위키니까 한국 장기의 규칙을 설명한다.
- 장두진 . . . . 1회 일치
|제자 =
- 장운호 . . . . 1회 일치
* {{KBO 타자|63700|장운호}}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08년에는 온게임넷 플레이플닷컴에서 게임자키로 활동하였다.
- 쟈이안 . . . . 1회 일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강탈, 폭행, 자신의 리사이틀 티켓 강매(!) 등의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악당으로 등장하지만, 아주 드물게 좋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긴 하다.
- 저그 . . . . 1회 일치
엄청난 물량전이 특기인 우주 괴물들. 다른 종족을 흡수하고, 자기식대로 만들어서 쓴다. [[테란]]과 [[프로토스]] 두 종족에게 피를 보게 만든 포지션.
- 전관 . . . . 1회 일치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새시대참사람연합]]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시 대선 포스터는 '''지키자, 대한민국!'''이라는 로고를 새겨넣고 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보병 제9사단장 및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을 지낸뒤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 전근족 . . . . 1회 일치
직장의 사정으로 전근을 자주 다니는 가정을 뜻하는 말.
- 전근표 . . . . 1회 일치
응원가 가사는 "한화의 섹시가이 전~근표~ 한화의 섹시가이 전~근표~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버려라~ 한화의 섹시가이 전!근표입니다~" 이다.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레전드 응원가로 손꼽힌다.
- 전기안전관리법 . . . . 1회 일치
이전까지는 전기제품만 받던 KC인증(국가통합인증)을 의류나 잡화 등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었는데, KC인증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고 위반시 과태료가 500만원이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은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서 영세상인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 전수희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전쟁 . . . . 1회 일치
학계에서는 [[국가]]간의 무력충돌로 인해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전쟁의 최소조건으로 본다.
- 전형도 . . . . 1회 일치
'''전형도'''(全炯道<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71년]] [[10월 30일]] ~ )는 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1군 주루, 작전코치이다. [[조경택]]과 트레이드된 이후 [[두산 베어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 절대가련 칠드런/437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는 속으로 "결국 미나모토만 격리해 놓는 거니 이득"이라는 시커먼 계산을 한다. 자신은 염동력으로 우주기지까지 방문할 수 있고 우주에 떨어져있는 미나모토를 상대로 이런저런 작업을 할 수 있다며 환호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7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이 이길테지만 카오루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그녀의 의지에 따르기로 한다.
- 접대 . . . . 1회 일치
[[요정]], [[룸싸롱]], [[골프장]] 등이 접대 장소의 대명사이다. 때때로 고위 공직자들의 호화로운 접대나 접대의 내용 등이 사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향응 제공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 정구양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정다혜(1985) . . . . 1회 일치
* [[버즈(한국 밴드)|버즈]] - [[남자를 몰라]], [[My Love (And)]](2006)
- 정대선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 Jung Dae-Sun
- 정득만 . . . . 1회 일치
[[최경식]] [[명창]]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현재 [[무형문화재]] 선소리, 산타령 [[인간문화재|기능보유자]]이다.
- 정력 . . . . 1회 일치
약자: C.C
- 정민아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정복수 . . . . 1회 일치
== 참고 자료 ==
- 정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 정세협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정시제 고등학교 . . . . 1회 일치
통신제 고등학교와 함께, 전일제 고등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을 위한 제도이다. 통신제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은 전일제와 동등하게 얻을 수 있다.
- 정재민(2001) . . . . 1회 일치
|형제자매 =
- 정주관백 . . . . 1회 일치
전국정주관백협회(全国亭主関白協会)라는 단체가 있다. 남편이 폭군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아니며, 정주관백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자는 단체이다.(http://www.zenteikyou.com/zwhat.html)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고등고시(제10회) 사법과 및 행정과에 합격하여 1962년부터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차관]]을,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사법연수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습 차원에서 [[김성기(1935)|김성기]]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법무부 장관|장관]]이 경질되자 후임 [[장관]]으로 임명되어 1988년 12월까지 역임하였다.
- 제303전투비행중대 . . . . 1회 일치
== 참고 자료 ==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캡틴 아메리카]]와 싸운 빌런. 바트록의 협력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AIM과 관련이 있다.
- 조대연(1888) . . . . 1회 일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무소속 [[김기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 . . . . 1회 일치
[[조선인민군]] 차량 정면에 자주 써져있는 [[프로파간다]]성 글귀. 별 가치는 없다.
- 조커 . . . . 1회 일치
플라잉 카드의 패이며 숫자가 있는 다른 카드와 달리 광대가 그려져 있다. 게임의 종류에따라 그 사용법이 달라져서 와일드 카드가 되기도 하고, 안쓰이기도 한다.
- 조현근 . . . . 1회 일치
* {{KBO 타자|75268}}
- 조혜선(탤런트) . . . . 1회 일치
조향자 역
- 조훈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존 웨스트 . . . . 1회 일치
홈페이지에서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하니 참고해보자. 한국인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 주먹 . . . . 1회 일치
인간에게 손이 발달하면서 주먹과 함께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자연계에서 몽둥이나 돌멩이 같은 적당한 [[무기]]가 널려 있으므로 초창기부터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 주상철 . . . . 1회 일치
|| '''가족''' ||배우자, 슬하 2남||
- 주영(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출생]][[분류:한국 남가수]][[분류:2010년 데뷔]][[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지렁이 . . . . 1회 일치
한자로는 토룡이라고 하며, 한약재로도 쓴다.
- 지옥의 미사와 . . . . 1회 일치
일본의 만화가. 눈코입이 몰리고, 왠지 모르게 통통한 독특한 그림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캐릭터가 멋진지 멋지지 않은지 애매한, 왠지 병맛나는 대사를 하는 개그 만화를 주로 그리고 있다. 괴이한 센스 때문에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 지혜주머니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진격의 거인/79화 . . . . 1회 일치
* 장 키르슈타인이 대신해서 판단을 내리는데 아르민은 지금 상태의 자신은 도움이 못 됨을 알고 장에게 지휘를 부탁한다
- 진도희(1971) . . . . 1회 일치
* 1994년 그 여자의 숨소리
- 진유현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집게벌레 . . . . 1회 일치
과거 유럽에서는 집게벌레가 자는 사람의 귓속으로 들어가 [[뇌]]를 먹어 치우거나 알을 낳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 짚라인 . . . . 1회 일치
국내에서 "짚라인"이라는 이름은 [[http://www.ziplinekorea.co.kr/|짚라인코리아]]라는 회사가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자신들 외의 다른 것은 "와이어 비행레포츠"라고 부르는 듯. 겁나 길고 안 외워지는 이름이다. 와이어 비행레포츠.
- 차광렬 . . . . 1회 일치
'''차광렬'''(車光烈, [[1952년]] [[12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이자 [[차병원]]의 연구소장이다.
- 참깨를 빻다 . . . . 1회 일치
다른 사람에게 아첨을 하거나,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
- 창작:마스터즈 . . . . 1회 일치
||최초작성자||Literaly||
- 창작:요괴위키 . . . . 1회 일치
||<#008000> '''{{{#white 최초작성자}}}''' || 함장 ||
- 채기영 . . . . 1회 일치
* {{KBO 타자|64085|채기영}}
- 채우성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채윤아 . . . . 1회 일치
|배우자 =
- 책표지 . . . . 1회 일치
* 색상을 도출하는 방법은 2002년, 미 존슨홉킨스 대 천문학팀이 '우주의 색'을 정하는데 사용한 방식을 본떴다. 이 연구팀은 20만개 이상의 은하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별들이 내는 빛의 색을 평균으로 만들었다. 이 색상의 이름은 ‘코스믹 라떼’(Cosmic Latte)이며, RGB값은 255, 248, 231이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1304.html 기사]
- 챔피언스 오브 앵거 . . . . 1회 일치
* Growing Man - [[자이언트맨]] 혹은 [[골리앗]] 패러디 추정.
- 천제훈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 = Chun Je-Hun
- 철공소 . . . . 1회 일치
소규모 철공소에서는 문, 난간, 계단 같은 철제 건축 자재나, 손수레 같은 것을 제작한다. 소규모 철공소는 주문제작 하는 경우가 많으며, 용접이나 선반가공 등의 작업을 한다. 근래에는 철공소 별로 기술의 전문화, 분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철인의 힘을 노리고 조종기를 노린 경우도 있다. 철인은 자율사고회로가 있으나 애니메이션 오프닝 가사에서도 언급되듯이 조종기에 의해 조종되고, 조종기는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종기 관리에도 주의가 따른다. 게다가 탑승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원격조종이기에 철인이 아무리 파괴되어도 조종사는 무사하지만 반대로 조종사만 해결하면 철인도 무력화된다는 약점이 있다. 이외에도 전파방해 등의 이유에 의해 조종사가 무사해도 철인을 조종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 최기영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최성환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Choi Sung-Hwan
- 최승욱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
- 최우석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 명단}}
- 최유정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최재혁 (음악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인디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
- 최재호 (희극인)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최제훈 . . . . 1회 일치
* 《일곱 개의 고양이 눈》([[자음과모음]], 2011)
- 최현진 (드러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취사율 . . . . 1회 일치
'치사율'을 오타내서, 혹은 잘못 알고 '취사율'이라고 써버리는 사람이 가끔 있다. 지적당하면 쪽팔리니까 잘 보고 쓰도록 하자.
- 취활 . . . . 1회 일치
민간 기업에서 타사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고 취업 활동을 조기화하는 경향이 강하여 취업 활동 기간이 장기화하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에서는 1997년에 윤리헌장을 제정, 2013년에 채용전형지침을 제정하여, 취업 활동 기간에 제한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졸업 전년도 3월 부터 학생 대상 설명회가 해금되고, 이때부터 취업 사이트에 등록할 수 있다. 면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졸업 학년도 8월 1일 부터이다. 그리고 내정은 졸업 학년 10월 1일 이후로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신사협정으로 벌칙 규정은 없다.
- 츤데레 . . . . 1회 일치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 문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종류의 세부적인 유형이 새로이 분류되어 만들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등의 이유로 '새침떼기' 등의 대체어를 권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부적인 개념 차이 등으로 인해 별로 선호되지 않고 있다.
- 칫빠이 . . . . 1회 일치
치이사나(小さな,작은) 옷빠이(おっぱい,가슴) 혹은 칫쨔나(ちっちゃな,자그만한) 옷빠이(おっぱい,가슴)를 줄인 것이다. --사실은 치하야(千早) 옷빠이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 카고메카고메 . . . . 1회 일치
노래를 이상하게 부르면 괴기스러워서, 괴담 등에서 자주 인용된다.
- 카미마치 . . . . 1회 일치
이러한 전문 사이트도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가짜 이용자가 많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카스미가세키 . . . . 1회 일치
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많은 관청이 있다. 외무성을 뜻하는 속칭으로도 쓰인다. 한국으로 치면 "남산"이 [[국정원]]을 뜻하는 것처럼 지명이 특정 기구를 가리키는 은어가 세간에 자리잡은 사례로 볼 수 있다.
- 카타테 . . . . 1회 일치
본래 한 손을 듯하는 말이다. 한쪽 상대나, 여가나 짬, 혹은 '다섯'이 붙는 숫자의 돈에 대한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 캐리 피셔 . . . . 1회 일치
* Postcards from the Edge : 자서전 적인 소설.
- 캡콤 스포츠 클럽 . . . . 1회 일치
또한 [[타임릴리즈]] 방식을 채용해[*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임릴리즈가 아니다. 코인이 1997개 들어가면 해금되는 방식. 성공하면 타이틀 화면에 멜로디와 강아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보스[* 스타(축구), 골든 USA(농구), 멜로디(테니스).]들도 선택이 가능해진다. 보스들의 성능은 그야말로 최강.
- 캥거루 . . . . 1회 일치
[[호주]]의 상징 동물. 호주와 관련된 것에서 자주 등장한다. 콴타스 항공, 호주 공군, 그 외 등등.
- 코미케 . . . . 1회 일치
일본의 동인 이벤트. 코믹마켓의 약자.
- 코스트코 . . . . 1회 일치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원제 도소매 체인점. 식료품에서 전자제품 등 다양한 상품을 폭넓게 취급한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코피페 . . . . 1회 일치
[[클립보드]]에 문자와 데이터를 임시 저장(카피)한 다음, 이를 다른 곳에 붙여 넣는(페이스트) 일련의 동작.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스킬 . . . . 1회 일치
>쌍권총을 든 무법자
- 콩조림 . . . . 1회 일치
콩조림은 소스와 함께 콩을 삶아낸 요리다. 베이크드 빈즈(Baked beans)라고도 부르는데, 'Baked'에서 연상되는 '굽는다'라는 이미지와 달리 조림에 가깝다. 콩이 재배되는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존재하는 요리 방식으로 대한민국에선 콩자반이라고도 부르는 콩조림 요리가 있다.
- 쿨 비즈 . . . . 1회 일치
쿨 비즈란, 여름 실내 온도를 28도로 설정하여 [[냉방]]을 억제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한편, 28도의 온도에서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름에는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활동하자는 비즈니스 모델 제안이다.
- 크리미널 마인드 . . . . 1회 일치
* 패턴이 어느 정도 있어서, 오프닝은 대개 범인의 범행 장면으로 시작, 수사팀의 시퀸스와 범행씬이 교차한다. 마지막 전개는 대개 범인이 (마지막) 피해자를 살해하기 직전에 난입해서 가로막는 장면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범인은 사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살율이 매우 높지만, 때때로 [[체포]]되는 경우도 있다.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산타클로스]]라는 남자가 순록들이 모는 썰매를 타고 다니며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소문이 있다.
- 키모이 . . . . 1회 일치
키모이(きもい)라는 말 자체는 1970년대 후반 부터 있었던 말로서, 1990년대 후반 부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사용빈도가 늘어났다고 여겨진다.
- 타바사 . . . . 1회 일치
[[SVC Chaos]]에서는 기본기와 대공기가 매우 부실하지만 공대공 최강의 비둘기, 잡기거리가 매우 길면서 엄청난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커맨드 잡기, 맞으면 머리가 깨질듯한 심리전을 걸 수 있는 재밍 고스트, 그리고 맞으면 죽었다고 복창해야하는 익시드까지 가지고 [[가일]]과 함께 레귤러 캐릭터 최강자를 차지하고 있다.
- 타타리 . . . . 1회 일치
신불이나 영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 비슷한 저주의 개념으로서 노로이(呪い)가 있다.
- 타히 . . . . 1회 일치
[[일본어]] 속어의 하나. 죽을 사(死)를 [[가타카나]]의 타(タ)와 히(ヒ)로 나눠서 쓴 것이다. 죽을 사 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 탁준석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 Tak Jun-suk
- 테미야게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토르투가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토오리마 . . . . 1회 일치
* 마물의 이름에서 따와서, 무차별 살인마나 묻지마 살인 같이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로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를 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을 토오리마 사건(通り魔事件)이라고 부른다.
- 토죠 노조미 . . . . 1회 일치
[[야자와 니코]]랑은 먹이사슬...이 아니라 커플링이다.
- 토탈워 시리즈 . . . . 1회 일치
턴제 대전략과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을 잘 융합하였다. 플레이어는 세계지도를 보며 턴제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아군 군대와 적군 군대가 조우해 전투가 벌어지면 플레이어는 실시간으로 아군 군대를 지휘하게된다. 자동 전투 방식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 통일주체국민회의 . . . . 1회 일치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 선거에서 거수기 이외의 거의 아무런 역할도 없는, 사실상 [[무직]] 명예직이다. 딱히 '''아무것도 안 하는 거나 다름없는 집단'''을 3천명이나 뽑는데 엄청난 선거비를 소모하고, 게다가 이 위원들이 세비는 없지만 소정의 활동비까지 받았다는걸 생각하면, 상당히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 자체가 '''거대한 낭비'''라는게 모순.
- 트럭 . . . . 1회 일치
[[자동차]]의 한 종류. 화물운반에 최적화된 차종이다.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티타노 . . . . 1회 일치
[[비자로]] 버전도 있는데 이 티타노는 블루 크립토나이트 비전을 쓴다.
- 파리피포 . . . . 1회 일치
클럽이나 라이브 하우스에서 진행자가 관객을 이렇게 불렀던 것이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 파머보이즈 . . . . 1회 일치
1981년, [[키프로스]]인 이민자 형제가 창립했다. 1호점의 위치는 [[캘리포니아]] 주 [[페리스]].
- 파워 해리스먼트 . . . . 1회 일치
사안에 따라서 가해자는 민법상의 불법 행위나 노동계약 위반이 성립할 수 있으며, [[명예훼손]], [[모욕죄]] 같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해리스먼트 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파치카스 . . . . 1회 일치
파칭코(パチンコ)와 카스(カス)를 합쳐서 '파치카스'라고 한다. 풀어쓰자면 파칭코 쓰레기. 즉, '파치레기' 정도의 느낌으로 볼 수 있다.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이 90년대의 영화《판타스틱 포》는 영화화 판권을 쥐고 있던 [[독일]] [[콘스탄틴 필름]]이 기간을 연장하고자 저예산 영화의 대가인 [[로저 코먼]]에게 제작을 맡긴 미공개용 견본이다. 이후 사본 등을 통해 외부에도 알려졌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참고로 국내 개봉하면서 제목을 <판타스틱 4>라 했다. 그러다보니 몇몇 사람들은 저 4를 '4번째 작품'이란 뜻의 4로 착각하여서 이 영화가 전편이 있는 물건인 줄 알고 '''판타스틱 3, 판타스틱 2''' 등을 찾아보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었다. 사실 원제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Fantasrtic Four'라고 표기되니 딱히 헷갈릴 일이 없는데 굳이 4라고 써놔서...
- 팔푼이 . . . . 1회 일치
모자라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 퍼니셔 . . . . 1회 일치
캐릭터가 캐릭터다보니 빌런 등 악인들은 법보다 퍼니셔를 두려워하는 등 악명을 쌓았으나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이라 초능력자에게는 밀리기도 한다.
- 편차치 . . . . 1회 일치
보통 고교입사, 대학입시를 대비한 모의고사 등에서 수험자의 성적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가를 나타내는데 쓰인다.
- 포켓몬 . . . . 1회 일치
포켓몬들은 트레이너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 트레이너의 말을 무시하기도 한다. 포켓몬스터 금이나 포켓몬스터 은을 해본 사람이라면 덜덜이라는 롱스톤을 기억할거다.
- 풍평피해 . . . . 1회 일치
풍평(風評, 뜬소문)으로 일어나는 피해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재해나 사고에 관하여 부적절하거나 허위 보도가 일어났을 경우, 생산물이나 서비스의 질적감퇴, 문제를 염려하여 재해나 사고에 관련된 제품의 소비가 줄어들고, 그로 인하여 본래 재해나 사고의 책임에 관련이 없느 업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 프랑켄슈타인 안드로이드 . . . . 1회 일치
1810년대에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해 평화로운 접촉을 모색했는데 목적 자체는 긍정적인 것이었으나 승무원의 샘영르 염려해 직접 만나기는 꺼렸다. 그래서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그 모습 때문에 인간들이 두려움을 품었다는 것. 설상가상 안드로이드도 오작동을 일으켜 도망쳐버렸고, 나중에는 북극에서 얼어붙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서 1960년대에 인류의 북극 탐험대에게 발견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깨어났다. 이후 엑스멘과 싸웠다가 파괴되었다.
- 프레샤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 프로토스 . . . . 1회 일치
'칼라'라는 것에 의해 종족의 정신이 이어져 있으며 브루드 워에서 등장한 암흑 기사 등은 이러한 칼라를 거부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칼라를 중시하는 프로토스 세력과는 껄끄러운 입장.
- 프리터 . . . . 1회 일치
[[버블 경제]] 시기에 나타난 말. 당시에는 임금이 높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는 이상적인 패턴이라는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경기가 악화되면서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 플래시(DC 코믹스) . . . . 1회 일치
속도 히어로의 대표주자. 유명 [[슈퍼히어로]]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으로 대표되는 트리니티처럼 DC에서 큰 인지도를 지닌 히어로이며 실사 드라마도 만들어져 이전에 국내에서도 방영했다.
- 피너츠 모녀 . . . . 1회 일치
단지 사이가 좋은 모녀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있으나, 인터넷에서 쓰일 때는 부정적인 뉘양스가 강하여 성인으로서 자립하지 못하고, 과잉보호나 [[공의존]] 관계에 있는 모녀관계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 하이큐/222화 . . . . 1회 일치
* 후타쿠지로 페인트로 블록을 넘기자 니시노야가 쏜살같이 달려와 리시브한다.
- 하이큐/269화 . . . . 1회 일치
* [[이나리자키 고교]]와 [[카라스노 고교]]의 2세트는 더욱 치열해지는 중.
- 하이큐/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Vs 이나리자키 고교 ===
- 하트플러스 마크 . . . . 1회 일치
[[일본]]의 비영리재단법인 하트플러스의 모임 이라는 곳에서 배포하는 마크. 외관으로는 알 수 없는 [[내장]]계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신체적 불편함을 주변에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됐다.
- 한냐 가면 . . . . 1회 일치
속어로 단순히 한냐(般若)라고 하여, 한냐 가면에 빗대어 [[질투]]와 [[분노]]에 불타는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뜻으로도 쓰인다.
- 한상권 (방송인) . . . . 1회 일치
|배우자 =
- 한재권 (응원단장) . . . . 1회 일치
* 경희대학교 환경조성디자인과
- 한지호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Han Ji-ho
- 한채경 . . . . 1회 일치
학력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학사
- 한행 . . . . 1회 일치
* 칸자라이(寒復習) : 조루리, 샤미센 등 예능계에서 겨울에 수행을 하던 것. 스승의 집에 모여서 수행을 했다.
- 한현규 . . . . 1회 일치
* 2004년 2월 ~ 4월 4.15 국회의원 총선거 수원 영통에 [[한나라당]] 후보자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 함대 컬렉션 . . . . 1회 일치
군함을 의인화한 미소녀 캐릭터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 이벤트를 뛰어서 얻거나, 심해서함을 잡아서 얻거나, 자원을 쏟아부어 건조하거나 해서 얻는다. 전투 중 굉침시키면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것도 특징. 게임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일본제국 해군의 칸무스 밖에 없었지만 게임이 업데이트 되며 나치독일, 일본제국 육군, 이탈리아왕국, 영국, 미국의 칸무스가 소량 추가되었다.
- 핼로워크 . . . . 1회 일치
공공직업안정소란, 국민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후생노동성에서 설치한 행정기관이다. 약칭은 쇼쿠안(職安, 직안).
- 허민행 . . . . 1회 일치
| 배우자 = 박소율 (10월 27일 예정)
- 허쉬 . . . . 1회 일치
초코우유. [[편의점]]에서 자주 보인다.
- 허용 . . . . 1회 일치
* {{KBO 타자|74169}}
- 허윤희 (방송인)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허준 (1981년) . . . . 1회 일치
* {{KBO 타자|75344|허준}}
- 헤타레 . . . . 1회 일치
본래 연예인 대기실에서 쓰이던 말로서,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연애인을 뜻하며 한자로 헤타레(屁垂れ)라고 썻다. 오줌싸개(小便垂れ)와 비슷하게 아직 어린애라는 의미가 강했다.
- 헥사밀리온 . . . . 1회 일치
헥사밀리온이 마지막으로 활약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11세]](당시는 왕자)가 지금의 그리스 남부 펠로포넨소스 반도에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령 [[모레아 전제국]]을 지배하던 시기에, 모레아 반도의 방어를 위하여 헥사밀리온을 대규모로 수복하였던 것이다.
- 호시즈나 . . . . 1회 일치
남태평양 지역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별]] 모양의 [[모래]]. 사실 모래가 아니라, 유공충(有孔虫)이라는 원생동물의 골격이 [[파도]]에 밀려와서 [[퇴적]]된 것이다. 크기는 1밀리미터 미만으로 아주 작지만 자세히 보면 별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혼활 . . . . 1회 일치
취직활동(就職活動)을 줄인 취활(就活)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일본의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가 고안, 제창한 조어이다.
- 홍준표 (마술사) . . . . 1회 일치
| 배우자 =
- 홍준호 (1971년) . . . . 1회 일치
== 참고 자료 ==
- 홍지운 . . . . 1회 일치
[[경남대학교]] 진학 후 어깨 부상으로 1년 동안 재활했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해 4학년 때에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641 핫코너를 책임질 핫한 신인, 홍지운] - NC 다이노스</ref> 대학 4년간 6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8, 출루율 0.398, 장타율 0.410, 205타수 59안타, 2홈런, 29타점, 32볼넷, 53삼진을 기록하였다.
- 화석연료 . . . . 1회 일치
* 탄소균형 문제 :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자연적으로 축적하는 탄소화합물의 양보다 배출하는 탄소화합물의 양이 훨씬 많아져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쉽게 말해 '지구온난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 화이트워싱 . . . . 1회 일치
* 유색인종 어린이들이 유명한 유색인종을 접하지 못하게 되어, 유색인종 '[[롤 모델]]'을 가지고 자라지 못하게 된다.
- 황문수 (장기 기사) . . . . 1회 일치
|제자 =
- 황산 (삽화가) . . . . 1회 일치
* [[2004년]] [[10월]]~[[2005년]] [[12월]] (주)Ntreev Soft '[[팡야]]' 서브 일러스트, 디자인 원화
- 황성관 . . . . 1회 일치
* {{KBO 타자|97400}}
- 황세하 . . . . 1회 일치
|로마자 표기=Hwang Sea Ha
- 황승민 . . . . 1회 일치
1937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영자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황의종 . . . . 1회 일치
[[1999년]]에 세 번째 작곡집을 내면서 그는 "작곡은 신이 이 세상에 뿌려놓은 음들을 자신의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히게키리 . . . . 1회 일치
전설에 따르면 오오에산에 살던 오니 [[슈텐동자]]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헤이케 이야기에 따르면, 와타나베노 츠나가 미나모토노 요리미츠의 명을 받아 이 칼을 옮기다가 다리에서 오니를 만나 팔을 베었고, 그 이래로 '오니키리'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계속 히게키리로 불린다.
- 히나마츠리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여자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날. 양력 3월 3일에 실시한다. 과거에는 음력 3월 3일에 실시했다. 지방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 히모 . . . . 1회 일치
[[일본어]]에서 히모는 일반적으로는 '끈'이라는 뜻이다. 남녀관계에서 속칭으로 쓰일 때는, 여성을 일하게 하고 자신은 그녀가 주는 돈으로 놀고 먹는 [[정부]]를 뜻한다.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으면 히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농담이나 놀림삼아 불릴 수는 있지만.
- 히토데나시 . . . . 1회 일치
* 인도(人道)에서 벗어난 짓을 하는 자.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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