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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BA
         [[일본어]]로 바바아(ばばあ,아줌마,할머니)의 약자. '바바아'를 줄여쓸 때 사용한다.
         [[분류:일본어]]
  • DQN
         난폭하고 비상식적인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인터넷 은어]] .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DQN 보복
         DQN 보복(DQN返し), 도큥가에시(ドキュンがえし)라고 읽는다. 이른바 「[[DQN]]」같은 과격하고 저열한 수단으로 보복을 한다는 의미의 [[일본어]] [[인터넷 은어]].
         [[분류:일본어]] [[분류:인터넷 은어]]
  • DT
          * [[일본어]]로 [[동정]]의 약자. 도우테이(童貞,'''D'''ou'''T'''ei)에서 나온다.
         [[분류:일본어]]
  • 野良
         [[일본어]]로 '들' 이라는 뜻이다. 동물을 뜻하는 말 앞에 붙으면 들짐승이라는 의미가 된다. 노라이누(野良犬)는 들개, 노라네코(野良猫)는 길고양이라는 뜻이다.
         일본어에서 노라라는 말은 야생(野生)과는 약간 다르다. '야생'은 인간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생물을 뜻하지만, '노라'가 붙는 것은 본래 [[가축]]이지만 야생화 된 것을 뜻한다.
         [[분류:일본어]]
  • 가키
          * [[일본어]]에서 [[어린이]]를 뜻하는 속칭. 그리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인다.
         [[분류:일본어]]
  • 갸루
         [[일본어]]에서 1970년대~2000년대 전후하여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션 경향. [[영어]]에서 젊은 여성을 뜻하는 girl(이건 가루ガール)의 속어인 gal(이게 갸루ギャル)에서 온 외래어. 일종의 문화 코드로 여겨져서, 'Gyaru'라는 표현이 영어에서도도 쓰이게 되었다.
  • 고사기
          * 고사기의 발음은 [[일본어]]로 '코지키'라고 하는데, 이는 [[거지]]를 뜻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일본 인터넷에서는 거지를 고사기(古事記)라고 쓰기도 한다.--거지 같은 역사서--
         [[분류:일본사]][[분류:역사서]][[분류:일본어]]
  • 고아라
         '''고아라'''([[1990년]] [[2월 11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A%B3%A0%EC%95%84%EB%9D%BC&os=160959 고아라-네이버 인물]</ref> 일본에서는 '''Ara'''(아라)라는 예명을 쓰고 있다.<ref>고아라의 이름을 [[일본어]]로 표기하면 {{lang|ja|コ・アラ}}가 되어 [[코알라]](koala, {{llang|ja|コアラ|코아라}})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ref>
         고아라는 [[경상남도]] 진주군(현 [[진주시]])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진주에서 유년기 10여년을 보냈고, 공군 부사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대구광역시]]로 이동했다. 재학 당시 가수가 꿈인 친구를 도와주려 백댄서로 [[SM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우연찮게 참가했다가, 제5회 [[SM 엔터테인먼트|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외모짱 1위, 대상을 거머쥐게 되면서, 연습생 생활을 하며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게 되었다. 또한, 고아라는 춤과 노래, 기타 연주에 능숙하고 [[영어]], [[일본어]]의 외국어 실력도 뛰어나다.
  • 공민지
         * [[중국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
  • 교조
         특정한 [[종교]]의 창시자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개조(開祖), 파조(派祖), 조사(祖師) 등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별로 많이 안 쓰이는 단어지만 [[일본어]]에서는 교조가 자주 쓰인다. 한국에서는 대신 [[교주]]가 많이 쓰인다.
  • 구미
          * 구미(欧米) : [[일본어]]에서 [[유럽]]('''구'''라파)과 '''미'''국.
  • 구성애
          | 언어 = [[한국어]], [[영어]], [[일본어]]
  • 귀적에 들어간다
         [[일본어]]의 관용어로, "죽는다."는걸 돌려서 말한 것이다.
          * 귀(鬼)는 보통 일본에서는 [[오니]]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귀(鬼)를 중국과 똑같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는 뜻으로 쓰는 이 표현은 일본어에서는 꽤 희귀한 사례이다.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길강욱
         '''길강욱'''([[한자]]:吉姜昱, [[영문]]: KANGWOOK KIL, [[일본어]]:[https://ja.wikipedia.org/wiki/キルカンウク キルカンウク] 1988년12월07일 ~ )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이며, 현재 일본을 거점으로 본인의 브랜드 [[네이비팩토리랩 강욱 길]](NAVYFACTORYLAB KANGWOOK KIL)의 컬렉션을 발표 중이다.<ref name="naverkilkangwook">[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A%B8%B8%EA%B0%95%EC%9A%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3474209 프로필 - 네이버인물검색 - 길강욱]</ref><ref name="daumkilkangwook">[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2133676 프로필-daum인물정보 - 길강욱]</ref>
  • 김건 (극작가)
         작품으로 조혼 풍습을 풍자한 [[일본어]] 단막 희곡 〈박〉을 비롯하여, 동양극장 전속작가 사절 발표하여 동양극장의 희극전문 극단인 [[희극좌]]가 공연한 〈쌍둥이 행진곡〉(1936), 광복 후 창작한 〈눈물의 38선〉 등이 있다. 아기자기한 희극성과 대중적인 멜로성이 특징이다.
  • 김근행 (1610년)
         [[1627년]](인조 5년) 왜학(倭學) [[역관]] [[취재]] 시험에 합격하여 [[일본어]] 역관으로 근무하였다.
  • 김기창 (법학자)
         전문 분야 저술과 일상 생활이 가능한 언어로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가 있고 전문 서적 독해가 가능한 언어로 [[라틴어]], [[독어]], [[일본어]]가 있다.
  • 김범부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 김사연 (1896년)
         [[일본어]]로 발행되는 잡지인 《[[조선공론]]》의 사장을 맡았고, 부협의원 등 여러 직책에서 일하며 [[경성부]]의 유지로 활동했다. [[1931년]] 중추원의 주임참의직에 처음 임명되어 [[1941년]]에는 칙임참의에 올랐다. [[최린]]의 [[천도교]] 신파가 [[1934년]]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결성한 [[시중회]]에 발기인으로 가담한 바 있다.
  • 김사영(소설가)
         * [[일본어]] 소설 《형제(兄弟)》 (1942년 [[조선문인협회]] 주최 현상소설 당선작, 1942년 11월부터 1943년 3월까지 잡지 《신시대》에 연재됨)
         * 일본어 소설 《성안(聖顔)》 (1943년 5월 잡지 《국민문학》에 발표함)
         * 일본어 소설 《행불행(幸不幸)》 (1943년 11월 잡지 《국민문학》에 발표함)
         * 일본어 소설 《메아리(こだま)》 (1944년 1월 잡지 《녹기》에 발표함)
         * 일본어 소설 《길(道)》 (1944년 5월 잡지 《국민문학》에 발표함)
         * 일본어 소설 《세류(細流)》 (1944년 7월 잡지 《국민문학》에 발표함)
  • 김상홍 (1964년)
         또한 [[일본어]]를 상용하자는 '국어 사용' 운동에 앞장섰다는 혐의가 있다. 조사관은 일본어를 상용하는 모범 가정으로 "국어의 가(家)"라 하여 표창 받은 사실이나 국방헌금을 독려했다는 혐의도 추궁했으나, 김상홍은 전 가족이 일본어에 능통하여 사용한 것일 뿐 황민화 정책에 협조한 것이 아니라 밝히고, 표창을 받았다거나 국방헌금 납부를 독려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어 처벌은 받지 않았다.
  • 김상홍 (교육인)
         또한 [[일본어]]를 상용하자는 '국어 사용' 운동에 앞장섰다는 혐의가 있다. 조사관은 일본어를 상용하는 모범 가정으로 "국어의 가(家)"라 하여 표창 받은 사실이나 국방헌금을 독려했다는 혐의도 추궁했으나, 김상홍은 전 가족이 일본어에 능통하여 사용한 것일 뿐 황민화 정책에 협조한 것이 아니라 밝히고, 표창을 받았다거나 국방헌금 납부를 독려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반민특위가 해체되어 처벌은 받지 않았다.
  • 김선아
         * [[1993년]]에 홀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볼 주립 대학교|볼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경험이 있어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 김성수 (1891년)
         [[송진우 (정치인)|송진우]](宋鎭禹)와 함께 [[일본]] [[도쿄]]에 도착한 김성수는 [[도쿄]] 시내에 하숙하며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敎)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영어]]와 [[수학]] 등을 배웠는데, [[일본어]] 실력이 다소 부족했던 김성수는 별도의 가정교사를 초빙하여 [[일본어]] 회화를 배웠다. 고향에서 부쳐주는 학비 외에 시내에서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와 함께 점원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과 학비를 조달하였다. [[1909년]] 4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와 함께 [[긴조중등학교]](錦城中等學敎) 5학년에 편입학했다. 이곳에서 영어를 주로 집중해서 배웠으며, [[1910년]] 3월 [[긴조중등학교]]를 졸업하였다.
  • 김수환(추기경)
          * 종교적 측면뿐 아니라 학문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먼치킨]]이었다. [[독일어]], [[라틴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고 [[영어]], [[일본어]] 역시 수준급이라고 하며 신학자로서의 학문적 업적과 성취도 상당한 수준.[* [[독일어]]는 신학교 우수 성적자로 선발되어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어느 정도 배웠고, 나중에 [[독일]]로 박사과정을 위해 유학을 갔을 때 논문을 쓰기 위하여 마스터 했다고 한다. [[영어]]의 경우엔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풀려났을 때 만난 외국인 사제를 통하여 기초를 배우고, 나중에 [[괌]]에서 전범재판 증언하러 들렀을 때 틈틈이 공부하셨단다.] 애시당초 '''최연소 추기경 서임''' 기록을 세울 정도로 능력은 출중한 사람이었다. 특히 당시에는 유색인 출신 사제에 대한 은근한 차별이 꽤나 있었던 시대임을 김안하면 정말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 김승규
         시즌 종료 후 J리그 비셀 고베와 링크가 떴다. 김승규는 울산과의 계약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고, 비셀 고베에서도 울산이 거절하기 힘든 액수의 이적료를 제시하였다고 한다. 정성룡이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고 이범영도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이적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리그 내 수준급 골키퍼들의 연쇄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간 타 포지션에 비해 해외 이적이 적었던 골키퍼인데 국가대표급 선수 3명이 한꺼번에 일본으로 빠졌다.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일본의 골키퍼 기근을 주요 원인으로 잡고 있다.[* 일본 국가대표 골키퍼 계보는 가와구치 요시카츠, 나라자키 세이고, [[가와시마 에이지]]로 이어져 왔는데, 2014년을 기점으로 폼이 많이 하락한 가와시마의 후계자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가와시마가 국대에서 물러난 이후에 주전으로 나서고 있는 니시카와 슈사쿠의 경우 86년생으로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장기적인 대체자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평.] 골키퍼들 입장에서도 중국과 중동은 외국인 골키퍼 영입이 금지되어 있고 유럽은 경쟁이 차원이 다른데다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심하게 걸려서[* 한국어 원어민이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배우는 게 매우 어렵고 유럽인들도 한국어, 일본어 등을 배우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문서 참고. 예외가 있다면 [[권정혁]]이 핀란드 리그에서 활동했었다.] 해외진출을 하려면 일본말고는 답이 없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과 달리 국대급, 준국대급 골키퍼 자원이 풍족한 편이다. 수요와 공급이 잘 맞아떨어졌다 볼 수 있다.
  • 김양호
         |언어 =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 김연경(배구선수)
          * 최근에는 [[일본어]], [[터키어]] 외에도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3006899|#]]
  • 김완섭
          | 언어 = [[한국어]], [[영어]], [[일본어]]
         김창보 판사는 “박두리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6명에게 각 600만원, 징용자 유족 5명과 의병대장 민종식의 손자에게 각 500만원, 이석씨와 [[명성황후]] 유족 민병호씨, 충정공 민영환의 손자 민병덕씨에게 각 1,000만원씩 모두 9,6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ref name="ch22"/><ref name="han22"/> 소송 이후 그의 저서 ‘친일파를 위한 변명’ 일본어판을 발행해 일본에서 40여만부가 팔렸다. 이 변호사는 “손해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일본 출판사로부터 김씨가 받고 있는 인세를 압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f name="ch22"/><ref name="han22"/>
         [[2002년]] 펴낸 그의 저서 《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일본어]]판을 발행, [[일본]]에서 40여 만부가 팔렸다.<ref name="ch22"/><ref name="han22"/> 그가 이 《친일파를 위한 변명》으로 소송을 당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 김응수(배우)
         그 덕에 [[일본]] [[영화]]나 일본인 연기를 자주 맡는 편이고 해당 작품의 [[일본어]] 연기를 지도해 주는 역할도 겸하는 편이다.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서 주사도 일본어로 할 정도라고. 게다가 영화 [[투캅스]] 3에서는 [[중국어]]를 잘 하는 엘리트 조폭으로 등장하여 극중에서 보스의 [[중국어]] 통역을 해주는 연기도 했다. 사실 보스가 원화를 위안화로 환전해서 쓰라고 말하는 부분만 [[중국어]]로 말했고 나머지는 한국어 대사다.
         [[임진왜란 1592]]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어]]로 연기하며 완벽하게 표현해 큰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는 역사왜곡과 고증오류로 심하게 비난 받지만, 김응수의 연기만큼은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 김응수 본인도 도요토미를 연기할 때 전력을 다해 공을 들인 점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평양성 전투]]를 다룬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히데요시 복장을 입고 특별출연했는데, [[벽제관 전투]]가 언급되면서 벽제에 살고 있다고 말하니 옆에 있던 [[신병주]] 교수는 "일본이 이긴 곳에서 산다."라고 농담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5xBGpAvgI0|또한 임진왜란 1592 관련해서 4시 뉴스집중에 특별출연을 통해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열연으로 2016년 그리메상[* 그리메상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1993년부터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에서 제정한 나름 오래된 상이다.]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7&aid=0000026228|#]][* 여담으로 임진왜란 1592는 KBS 드라마국이 아닌 KBS 다큐국에서 만든 작품이라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만약 후보에 올랐다면 반드시 상을 받았을지도..] 또 2017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시상식에서도 방송출연자상을 수상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599257|#]]
          * 2016년 [[임진왜란 1592]] (KBS) -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 흡사 일본인 원어민 같은 일본어 실력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소름끼치는 연기력으로 호평받고 있다. 일명 '응신수길'.] ~~일본인 연기의 정점~~
  • 김재규
          [[박근형]]이 극강의 김재규 포스를 보여주었다. 역대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는 김재규로 차지철을 쏠 때에 '''"이 새끼 너 건방져!"'''는 가히 명대사로서 차지철과의 말싸움과 그 싸움이 끝나고는 "이 [[개새끼]]!"라고 뇌까린 적도 있다. 10.26 사건을 일으키기 전 총을 겨누며 [[일본어]]로 '고로시마스(죽여버리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릴 때의 포스는 압도적이다. 10.26 사건을 다룬 영상 매체에서 김재규가 '고로시마스'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 장면에선 아이러니하게 박정희의 사진이 배경으로 보이면서 총을 겨누니 가히 긴장감을 일으키게 만드는 명장면.[* 그런데 이것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 표절 냄새가 나긴 한다.] 박정희를 저격한 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더 이상 언급이 없다가 [[5.18 민주화운동]] 이후 4공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차지철과 말싸움을 주고받으면서 [[개그 캐릭터]]화가 될 뻔 하였으나 배우의 포스로 그나마 무게를 잡았다.
  • 김준수(JYJ)
          * 이제는 그의 콘서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지니타임'[* 팬들이 "지니타임!"을 외치면서 시작된다. 준수가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어 팬들의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무대 위 준수와 가까이 있는 팬들이 각자 준비해온 물건들과 함께 손을 들면, 그가 팬 3명을 지목해서 소원을 들어준다. 웬만하면 소원을 다 들어주는 편이지만 팬 본인에게만 좋은 소원이라거나 들어주기 곤란한 소원이라면 그가 컷한다. 그가 들어준 소원이 시원찮았거나 해서 팬들이 찡찡대면 가끔은 소원을 4개도 들어준다.]이, 처음에는 일본 콘서트에서 팬들과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워서~~ 몸으로 때우기 위해~~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점점 스케일이 커지더니 이제는 팬들이 기상천외한 것들[* 머리띠 쓰기는 기본이고 거기에 [[https://youtu.be/WnwdDsKi0WI|구연동화하기]], [[https://youtu.be/kCwt_GHUfUw|잘생김 선언서 낭독하기]] 등의 기발한 소원들이 참 많았다. 초창기에는 [[https://youtu.be/RR0mXmDy-Zo|뿌잉뿌잉]], [[https://youtu.be/CgARUiSocQo|엉덩이로 이름쓰기]] 등의 간단한 소원이 주였는데 팬들도 많이 발전했다.]을 많이 준비해와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2015년 연말에는 그의 콘서트에서 지니타임을 없애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제 해외 콘서트에서도 토크를 잘 해 지니타임의 존재 이유가 사라져서 그랬거나, 정말 본인이 부담스러워서 그랬을 듯. 이에 팬들은 절대 안 된다며 몸서리를 쳤다.] 여담으로 2015년 3월 8일에는 [[에픽하이]]가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왔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2015년 연말에 있었던 에픽하이의 콘서트에서도 지니타임 시간을 마련했었다고 한다.
          * 2005년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해와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잘 한다. 하지만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혼용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트윗을 올린다던지, '몸에 나는 털'을 '수염'이라고 한다던지, [[남#s-1|미나미]]를 나미나라고 한다던지, [[증인|쇼닌]]을 쇼진이라고 한다던지, 앙팡맨을 앙펜맨이라고 한다던지, 다수의 [[한본어]]를 시전한다던지(...) 하는 모습들을 가끔 보여 그의 일본어 실력에 약간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떤 팬미팅 자리에서는 일본어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떠올리지 못해서 " '인간들' 말고 또 뭐라 그러죠?"라고 물어봤다가 [[김재중(1986년 1월)|김재중]]이 농담조로 "생각할 수록 너무하네요, 일본어 실력이..."라며 놀린 적도 있었다. [[https://youtu.be/f4g-FA_wjMY|영상]]
          한 팬에 의하면 준수는 말할 때 쉬운 단어를 써서 알아듣기가 쉽다고 한다. 언젠가 콘서트에서는 '연고'라는 단어를 써서 일본 팬들이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준쨩이 그런 단어도 알아?!)-- 가끔 이상한 실수를 하기는 하지만 트위터에 일본어로 글을 올리기도 하고, 통역 없이도 콘서트를 무리 없이 진행해가는 모습을 보면 역시 잘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김재중(1986년 1월)|김재중]]과는 달리, 김준수는 일본인 친구가 없어서 일본어를 쓸 일이 일본에서 콘서트를 할 때 정도 외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군 입대 후 본인 말로는 엉망진창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의사 표현은 다 할 수 있고 콘서트를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하는 걸 들으면 매우 능숙한 편이다. [[https://youtu.be/-Yo67eIjlcU|2018년 6월 21일 15회차 경찰청 라이브 방송 팬 편집본.]] 오랜만에 일본어로 일본 팬들에게 인사하다가 울컥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 김진환(iKON)
          * 외국어에 재능이 있는 듯하다. [[일본어]]를 가장 능숙하게 구사하며 [[중국어]], [[영어]]도 부담없이 한다. ~~정작 학창시절 공부는 잘 못했고 학원에 친구를 만나러 다녔다고 한다~~
          * 어머니께서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이셔서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잘 하신다. 아들이 연습생이 되기 전에 지역 영자신문 인터뷰를 하신적도 있다.
          * 장남지난, 차남지난이라는 말장난(발음이 동음)과 '곤니치와와'라는 인사에 빠져 있다. 일본어로 지난(ジナン)의 뜻이 차남(次男)이나 정작 본인은 팀의 맏형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일본 팬들은 진환을 표기할 때 次男이라고 쓰기도.
  • 김한규 (1877년)
         출신지는 [[한성부]]이다. [[농상공부]] 참서관을 지낸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고, 한문을 수학하다가 [[1995년]]에 [[관립한성일어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898년]]부터 [[일본어]] 교사로 일하면서 [[1907년]]에는 [[학부 (대한제국)|학부]] 서기관을 지내는 등 [[대한제국]] 관료로 근무했다.
  • 남재현 (시인)
         | 언어 = [[한국어]], [[영어]], [[일본어]]
  • 노라
          * [[일본어]] - [[野良]]
  • 도부스
         ドブス. [[일본어]]로 엄청난 [[추녀]]라는 뜻의 은어.
         [[분류:일본어]] [[분류:은어]]
  • 동백기름
         [[동백]]의 씨앗에서 채취한 [[기름]]. 황색이며 독특한 냄새가 난다. 공업용, 화장품, 식품 등으로 사용된다. [[일본어]]로는 '츠바키 아부라'
  • 떠있는 섬
         물 위에 떠있는 섬. [[일본어]]로는 [[우키시마]]라고 한다.
  • 류덕환(배우)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정말 어린 나이에 데뷔한 덕에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소년같은 곱상한 얼굴과 작은 몸집이 특징인 배우. 이로 인해 동갑내기이자 상당한 [[노안]]으로 소문난 '''[[박하선]]'''이 극중에서 류덕환의 누나로 나온 적이 있다.--크헉-- 19살에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주연을 맡아 제27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남우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이 출중하다.[* 그 당시 씨름선수 역할을 맡기 위해 살을 30kg 가까이 찌웠다. 참고로 이 영화에는 [[쿠사나기 츠요시]]가 [[일본어]] 선생님으로 출연한다.] KBS 단막극에서 지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소년 역할을 맡았는데, 중학생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절륜한 연기를 뽑아냈다. 어머니가 뮤지컬 제작자였던 덕에 뮤지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 뮤지컬에서도 활동을 많이 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OCN]]에서 시즌제로 방영 중인 드라마 [[신의 퀴즈]]에서 [[초딩]]스럽지만 어른스러운 [[한진우]] 박사 역할을 맡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 류영모
         15세에는 [[기독교청년회|YMCA]] 한국 초대 총무인 [[김정식 (1862년)|김정식]]의 인도로 [[개신교]]에 입문하여 [[연동교회]]에 다녔다. [[경성일어학당]]에 입학하여 2년간 [[일본어]]를 공부했다. [[1909년]] [[경기도]] [[양평]]의 [[양평학교]]에서 한학기동안 교사로 일하였다. [[1910년]] [[이승훈 (1864년)|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교사로 2년간 근무하였다. [[1912년]]에는 [[기독교]] 사상가요 문인인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를 연구하여 그 영향으로 기성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 만남계 사이트
         흔히 만남계(出会い系)로 줄여서 표현한다. 일본어로 만남(出会い, 데아이)는 기본적으로 만난다는 뜻이 있지만, 남녀의 만남이라는 의미도 있다. 만남계 사이트는 인터넷에서 교제 상대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상대를 소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이다.
          * [[꽃뱀]] 행위, [[일본어]]로는 [[츠츠모타세]]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 무언의 귀가
         [[일본어]] 관용 표현의 하나.
         [[분류:일본어]]
  • 박기환 (1896년)
         [[한성부]] 출신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여 [[1911년]]에를 졸업했다. [[1913년]]에 판임관견습시험에 합격한 뒤에 발령받아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 박보영(탤런트)
         ||<bgcolor=#B38B6E> '''{{{#white 다른 이름}}}''' || 朴宝英([[중국어]] [[간화자|간자체]])[br]パク・ボヨン([[일본어]] [[카타카나]]) ||
  • 박차정 (독립운동가)
         유해는 해방 직후 [[1945년]] [[12월]] 송환, 김원봉의 고향인 [[밀양시|밀양]]의 송산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작품으로는 시 〈개구리 소래〉와 소설 〈철야〉, [[일본어]]로 쓴 수필 〈가을 아침〉 등이 있다.
  • 박태원 (1909년)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 베타보레
         [[일본어]]. ベタボレ라고 [[가타카나]]로도 쓴다.
         [[분류:일본어]]
  • 변동림
         |언어 = [[한국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 변영로
         |언어 =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 보아
         '''보아'''([[1986년]] [[11월 5일]] ~ )는 [[유몽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대한민국]] 그룹 [[가수]] 겸 [[배우]]다. 1998년 [[유몽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참가해 연습생이 되었고 그 동시에 유몽이 제일 공을 들여 만든 최고의 연예인이다. 데뷔 전부터 일본어와 영어를 배워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었고 오랜 연습 기간을 거친 뒤, 2000년 8월 25일 한국 첫 정규 음반 ''[[ID; Peace B]]''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그러던 중 13살(6학년)이었던 [[1998년]],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약 2년 반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쳤다.<ref name="경향신문"/> 나중에 보아는 인터뷰에서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무대에 설 수는 없었습니다. 가수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피나는 훈련을 참아 냈습니다."라며 말했다.<ref name="YHankook20040706"/> SM 엔터테인먼트는 당시 보아를 "세계시장을 겨냥한 여가수"를 준비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NHK]] 아나운서의 집에 머물며 정확한 [[일본어]] 발음을 익혔고, [[구리시]] [[서울삼육중학교]]에 다니던 중 영어회화를 위해서 [[한국켄트외국인학교]]로 전학했다.<ref name="세계일보"/><ref name="경향신문"/> SM 엔터테인먼트는 보아의 데뷔 프로젝트를 "신비 프로젝트"라 이름을 붙이고 보아의 데뷔를 진행해 나갔다.<ref name="경향신문">{{뉴스 인용|제목=5년 전 MX프런트 등장 무명의 보아|url=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505021605561&code=900307|출판사=경향신문|저자=백승찬 기자|날짜=2005-05-02}}</ref> 이는 30억 정도를 들인 프로젝트였으며, SM 엔터테인먼트에서 [[H.O.T.]] 등의 가수들로 벌어들인 돈을 거의 모두 동원한 중대한 프로젝트였다.<ref>{{뉴스 인용|제목=이수만, 보아에게 ‘안티(Anti)’가 없어진 이유는?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19096|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서병기 기자|날짜=2005-10-20}}</ref> 보아의 데뷔가 다가오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바비, 신비라는 소문이 돌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5년사랑 고마워요"; 데뷔5년, 팬들에게 러브레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20516|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승훈 기자|날짜=2005-08-23}}</ref>
         한국에서 데뷔 이후 2001년 3월 7일, 보아는 [[에이벡스]]와 레이블 계약을 체결하며 일본 진출을 선언했고 그동안의 수록곡들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바꿔 부른 스폐셜 앨범 ''[[Jumping into the World|Don't start now - Jumping into the world]]''을 발매했다.<ref>{{웹 인용|제목=이즘 - 보아|저자=임진모|출판사=이즘|날짜=2001-03|확인날짜=2011-12-07|url=http://www.izm.co.kr/artistinfoRead.asp?bigcateidx=&artistidx=123}}</ref> 또한 같은 날, 일본 [[도쿄]]에서 대만, 홍콩, 일본 각국 취재진이 모여 쇼케이스를 취재했으며, 에이벡스는 이 쇼케이스에 7억을 투자했다.<ref name="동아">{{뉴스 인용|제목=보아 "내 무대는 아시아"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05253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날짜=2001-03-12}}</ref> 에이벡스의 회장 요다 다츠미는 "보아는 카리스마와 빼어난 댄스동작, 가창력을 지녀 J-Pop의 여왕 [[아무로 나미에]]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ref name="동아"/> 2001년 5월 30일 보아는 일본에서 데뷔 싱글 "[[ID; Peace B (노래)|ID; Peace B]]"를 발매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했고 오리콘 주간 싱글차트 20위권에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무명스타 K 日안방 공식데뷔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6&aid=0000165383|출판사=[[네이버]]|저자=홍성원|날짜=2005-03-08}}</ref> 7월 25일에 발매한 두 번째 싱글 "[[Amazing Kiss]]"를 발매해 역시 20위권에 진입했다.<ref name="박영사">{{서적 인용|저자링크= |저자= 장세진|제목=한국기업의 글로벌경영 사례문 |연도=2005년 8월 10일|출판사=박영사|쪽= 130|id=8910203242}}</ref> 12월 5일에는 세 번째 싱글 〈[[키모치와 츠타와루]]〉를 발매해 오리콘 싱글차트 최초로 11위에 진입했고, 이어 12월 19일에는 [[코다 쿠미]]와 함께 네 번째 싱글이자 [[9·11 테러]] 추모 싱글인 "[[The Meaning of Peace]]"를 발매해 오리콘 싱글차트 7위에 오르며 이때부터 일본에서 가능성을 보였다.<ref name="박영사"/> 2002년 1월 17일에는 네 번째 싱글 "[[LISTEN TO MY HEART (노래)|LISTEN TO MY HEART]]"를 발매해 처음으로 오리콘 싱글 차트 5위에 올랐고 18만 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솔로 여가수 일본 진출사 ① '강수지부터 아이유까지 12년' (백종모의 K-WAVE)|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1827|출판사=엑스포츠뉴스|저자=백종모|날짜=2012-03-21|확인날짜=2012-08-08}}{{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1827 }}</ref> 보아는 7장의 싱글을 발매한 이후 2002년 3월 13일 첫 일본 정규 앨범 ''[[LISTEN TO MY HEART (음반)|LISTEN TO MY HEART]]''을 발매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오리콘 일간,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10대 댄스가수 보아 앨범 일본 판매 첫날 1위|url=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87757_3841.html|출판사=MBC|저자=양효경 기자|날짜=2002-03-13}}{{깨진 링크|url=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87757_3841.html }}</ref> 이후 100만 장 이상을 판매해 앨범은 밀리언 인증을 받았다.<ref>{{웹 인용| url=http://www.riaj.or.jp/data/others/million_list/2002.html | title= 2002년 일본 밀리언 셀러 앨범 목록| publisher=[[RIAJ]] | accessdate=2008-09-28|언어=일본어}}</ref>
         이후에도 보아는 《[[BEST OF SOUL]]》로 1위에 오른다. 앨범 발매 후 일본에서의 2번째 콘서트 투어도 진행되었는데, '[[보아의 콘서트#《BoA LIVE TOUR 2004 LOVE&HONESTY》 (2004년)|BoA LIVE TOUR 2004 LOVE & HONESTY]]'는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총 9회의 공연을 선보인 콘서트 투어였다. [[3월 19일]]에는 보아가 참여한 [[m-flo]]의 싱글 〈the Love Bug〉가 발매되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이후 m-flo의 VERBAL이 보아의 콘서트 무대를 찾았을 때나, 2004년 연말 m-flo가 내한하여 [[MKMF]]에 참가했을 때 함께 〈the Love Bug〉를 부르기도 했다. [[2월 14일]]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MTV 아시아 어워즈'에 한국과 일본의 공동 대표로 참가하여 '한국 최고 인기 아티스트상'과 특별상인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 때 축하무대에서 보아는 록 밴드와 함께 〈[[Rock With You (보아)|Rock With You]]〉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아시아 대표가수 될래요" |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6&aid=0000126035|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4-02-16}}</ref>
         여름에는 일본에서 여러 행사에 참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ap bank 페스티벌'과 '[[메이지 신궁]] 불꽃놀이 축제'였다. 'ap bank 페스티벌'은 [[Mr.Children]]의 보컬 [[사쿠라이 가즈토시]]와 [[고바야시 다케시]],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모여 만든 환경 단체인 ap bank에서 주최하는 축제로, 대형 가수들이 초대되며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무대에서 보아는 사쿠라이 가즈토시와 함께 앨범 《[[OUTGROW]]》의 수록곡 〈cosmic eyes〉를 불렀다. '메이지 신궁 불꽃놀이 축제'는 매년 [[도쿄]] 메이지 신궁에서 개최되는 불꽃놀이로, 보아는 불꽃놀이 축하무대에 올라 6곡을 공연했다. 이 때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은 채 댄스 곡 공연을 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발목부상에도 日 불꽃놀이 무대 올라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39797|출판사=스타뉴스|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6-08-17}}</ref> 가을부터는 라이브 투어 '[[보아의 콘서트#《BoA THE LIVE 2006 -裏ボア…聴かせ系-》 (2006년)|BoA THE LIVE 2006 -裏ボア…聴かせ系-]]'를 개최했는데, 이 콘서트는 한 곡도 춤추지 않고 오직 노래만으로 공연한 콘서트이다. 댄스 곡도 새롭게 편곡하여 공연하였고, 이전까지와 비교하면 관객과 아주 가까운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했다. 한편 2006년에는 한국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사운드트랙|OST]] 〈[[Sunshine]]〉에 참여했고, 성우로써 목소리 연기에 도전했다. 보아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헷지]]》에서 '헤더' 역을 맡아 [[한국어]]와 [[일본어]]로 목소리 연기했는데, 《헷지》가 제59회 [[칸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목소리 연기를 맡은 보아는 한국 가수로서는 처음이자 최연소로 칸 영화제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았다.<ref>{{뉴스 인용|제목=‘스무살’ 보아, ‘칸’서 성숙미 뽐내다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39797|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길혜성 기자|날짜=2006-05-23}}</ref>
         비슷한 시기, 보아는 2009년 4월 18일 일본에서 두 번째 베스트 음반 ''[[Best & USA]]''를 발매했다. ''Best & USA''는 발매 첫 날 29,433만 장을 팔아 [[오리콘]] 데일리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으나, 위클리 차트에서는 145,000만 장을 팔아 2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BEST&USA' 오리콘 차트 1위 올라 外|url=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9/0319/20090319101040200000000_6742092943.html|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09-03-19|확인날짜=2011-07-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6080106/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9/0319/20090319101040200000000_6742092943.html#|보존날짜=2012-01-26|깨진링크=예}}</ref> 200년 6월 2일 발매한 일본 26번째 싱글 ''[[Vivid]]''는 29,000만 장을 팔아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 5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日 26번째 싱글 오리콘 주간차트 5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8061208091056063&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길혜성|날짜=2008-06-12|확인날짜=2011-07-12}}</ref> 싱글의 수록곡인 "Kissing you", "Sparkling", "Joyful Smile"은 모두 영화와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2009년 2월 18일에는 27번째 싱글인 "[[에이엔/UNIVERSE/Believe in LOVE]]"를 발매했고 22,000만 장의 판매량으로 위클리 싱글 차트 8위에 올랐다. 이후 보아는 일곱 번째 일본 정규 음반 발매에 앞서 2009년 10월 28일 28번째 싱글 "[[BUMP BUMP!]]"을 발매했고, 13,800만 장을 팔아 위클리 싱글 차트 8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열도 휩쓴 ‘한류 파워’|url=http://www.fnn.co.kr/content.asp?aid=9106550a997e44bf80feccfff32b6483|출판사=포커스|저자=김지혜|날짜=2009-11-05|확인날짜=2011-07-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27152553/http://www.fnn.co.kr/content.asp?aid=9106550a997e44bf80feccfff32b6483#|보존날짜=2011-11-27|깨진링크=예}}</ref> 같은 해 12월 9일 29번째 싱글 "[[마모리타이 ~White Wishes~]]"를 발매했고 50,000만 장을 팔아 오리콘 위클리 3위에 올려놓았다.<ref name="뉴스엔">{{뉴스 인용|제목=보아 日싱글, 오리콘주간차트 3위 등극 ‘저력 과시’|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2161107071002|출판사=뉴스엔|저자=차연|날짜=2009-12-16|확인날짜=2011-07-12}}</ref> 한편, "White Wishes"는 2009 도쿄 게임쇼에 출연해 ''Tales of Graces''의 주제곡으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ref name="뉴스엔"/> 2009년 12월 4일부터 5일은 [[도쿄]], 8일에는 [[오사카]]에서 공연하는 크리스마스 콘서트 BoA THE LIVE X'mas 2009를 진행했고, 2010년 3월 3일 공연 실황을 담은 DVD 음반 ''[[BoA THE LIVE 2009 X'mas]]''를 발매했다.<ref name="뉴스엔"/><ref>{{뉴스 인용|제목=보아, 일본 크리스마스 공연 ‘BoA THE LIVE 2009 X'mas’발매|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316110930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but뉴스|저자=박영주|날짜=2010-03-16|확인날짜=2011-07-12}}</ref> 이후 보아가 직접 프로듀싱에 나선 일곱 번째 일본 정규 음반 ''[[Identity]]''를 2010년 2월 10일에 발매했다. 음반은 오리콘 위클리 앨범 차트 4위에 올랐으며, 72,000만 장을 팔아치웠다.<ref>{{웹 인용|url=http://blog.oricon.co.jp/nextstage-rarara/archive/116/0|title=2月22日付 アルバム 週間ランキング:NEXT STAGE - スタ☆ブロ -|accessdate=2010-02-16|date=2010-03-04|work=[[오리콘]]|언어=일본어|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820084010/http://blog.oricon.co.jp/nextstage-rarara/archive/116/0|보존날짜=2010-08-20|깨진링크=예}}</ref> 이외에 타이완 국제 음반 차트 2위를 차지했고, 필리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ref>On the drop down Select 第9週 {{웹 인용|url=http://www.g-music.com.tw/GMusicBillboard3.aspx|title=G-Music 風雲榜 (東洋榜)|work=G-Music|accessdate=2010-03-09|언어=중국어}}</ref><ref>K-POP ROYALTY BoA "IDENTITY" CD ZOOMS TO NUMBER ONE! {{웹 인용|url=http://universalrecph.blogspot.com/2010/04/k-pop-royalty-boa-identity-cd-zooms-to.html |title=Music One Top 25|work=Music One @ Universal Records Blog|accessdate=2010-04-20|언어=영어}}</ref> 2010년 6월 21일에는 한국 컴백에 앞서 30번째 일본 싱글이자 디즈니 온 아이스 일본 공연 25주년을 기념하는 싱글 "[[WOO WEEKEND]]"를 발매해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0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韓서 '옆사람' 공개 보아, 日새싱글도 오리콘 톱10|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7281144307215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0-07-28|확인날짜=2012-06-19}}</ref>
         보아는 Live Tour 2010: Identity를 마치고 난 뒤, 2010년 8월 5일 여섯 번째 한국 정규 음반 ''[[Hurricane Venus]]''를 발매하며 5년만에 컴백했다. 보아는 발매에 앞서 "GAME", 〈옆 사람〉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고, 2011년 8월 2일 타이틀곡 "Hurricane Venus"의 티저도 공개했다. "Hurricane Venus"는 공개되자마자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고, [[가온 디지털 종합 차트]] 3위에 올랐다.<ref>[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Hurricane+Venus 가온 차트> Hurricane Venus] 《[[가온 차트]]》 2011-07-12 확인.</ref> ''Hurricane Venus''는 55,0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ref>[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album/list.gaon 가온 앨범차트 - 2010년 연말] 《가온 차트》 2011-07-12 확인.</ref> 이후 6집의 리패키지 음반인 ''[[Copy & Paste]]''를 2010년 9월 24일 발매했다. 2010년 12월 6일에는 일본에서 디지털 싱글 "I See Me"를 발매하였으며, 이 곡은 보아 자신이 광고모델인 [[오디오 테크니카]]의 CM송으로 사용되었다.<ref>{{웹 인용|title=audio-technica CMソングBoA新曲「I SEE ME」|url=http://www.avexnet.or.jp/boa/mobile_disc/index.html|accessdate=2011-04-11|언어=일본어|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213100920/http://www.avexnet.or.jp/boa/mobile_disc/index.html|보존날짜=2010-02-13|깨진링크=예}}</ref> 보아는 2011년 12월 4일부터 SBS 《[[K팝 스타]]》에 출연했는데, [[YG]]를 대표하는 [[양현석]], [[JYP 엔터테인먼트|JYP]]를 대표하는 [[박진영]]과 함께 [[SM 엔터테인먼트|SM]]을 대표하는 심사위원으로 2012년 4월까지 방송되었다.<ref>{{웹 인용 |제목=K팝 스타 공식홈페이지 - 방송보기|url= 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1_review_list.jsp?vVodId=V0000349627&vProgId=1000714&vMenuId=1016051
         보아의 주요 음악적 영향은 [[힙합]]이지만, [[R&B]]도 즐긴다고 했다. 보아는 데뷔때부터 [[마이클 잭슨]]을 팬이자 롤 모델이라고 말해왔는데, "팝의 황제 잭슨은 내 영웅이고, 영원히 사랑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故마이클잭슨 신곡소식에 "영원한 내 영웅"|저자=길혜성|출판사=한겨레21|날짜=2010-11-10|확인날짜=2011-09-17|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111008360956699&type=1&outlink=1}}</ref> 또한 보아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잭슨의 노래를 공연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2년만에 일본에서 라이브 콘서트…빌리진 도전|저자=김상호|출판사=서울스포츠닷컴|날짜=2010-11-10|확인날짜=2011-09-17|url=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9/1206/20091206101040200000000_7723238703.html|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26080251/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9/1206/20091206101040200000000_7723238703.html#|보존날짜=2012-01-26|깨진링크=예}}</ref> 이 외에도 [[자넷 잭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니퍼 로페즈]], [[제이-지]], [[저스틴 팀버레이크]], [[넬리]]와 같은 [[댄스 팝]], R&B 가수들을 좋아한다고 밝혔다.<ref name="AvexProfile">{{웹 인용 | url=http://www.avexnet.or.jp/boa/profile/index.html | title=보아의 프로필 | publisher=[[에이벡스]] | accessdate=2008-08-30 | 언어=일본어 |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211142254/http://www.avexnet.or.jp/boa/profile/index.html | 보존날짜=2010-02-11 | 깨진링크=예 }}</ref><ref>{{뉴스 인용|제목=전 세계 네티즌들 "보아 영어도 잘하네~"|저자=이재원|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05-05|확인날짜=2011-09-17|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5/h2008050507203191990.htm|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27154437/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5/h2008050507203191990.htm#|보존날짜=2011-11-27|깨진링크=예}}</ref> [[핑크 (가수)|핑크]], [[에이브릴 라빈]]과 같은 [[팝 록]] 장르의 가수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ref name="이즘">임진모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50&bigcateidx=11&subcateidx=13 보아 인터뷰 - 일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웨이백|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50&bigcateidx=11&subcateidx=13# |date=20180418161107 }} 《이즘》. 2003-12 작성. 2011-09-17 확인.</ref> 보아는 이후 많은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씨스타의 [[효린]]은 "그동안 보아를 존경했다. 그런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보아의 "My Name" 무대를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불후2' 효린 "보아 존경한다"..마이네임 완벽 무대|저자=김지이|출판사=스타엔|날짜=2011-09-03|확인날짜=2011-09-20|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27241}}{{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27241 }}</ref> [[f(x)]]의 [[루나 (가수)|루나]]는 "어렸을 적부터 보아가 롤모델이어서 모든 것들을 똑같이 닮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루나 “롤모델 보아, 쌍코피까지 닮고 싶었다 |저자=전원|출판사=뉴스엔|날짜=2011-03-15|확인날짜=2011-09-20|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150052301001}}</ref> 또한 보아는 활동 중인 후배 가수들과 연습생들 사이에서 조사한 "본받고 싶은 롤모델" 1위로 뽑혔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 보아, '한류 BIG3 심사위원' 합류 |저자=이건희|출판사=비즈플레이스|날짜=2011-08-26|확인날짜=2011-09-20|url=http://www.bizplace.co.kr/biz/content/n_view.php?seq_no=41792}}</ref>
  • 비둘기가 콩알총을 맞은 것처럼
         [[일본어]] 관용구 표현. 줄여서 비둘기에 콩알총(鳩に豆鉄砲)이나 하토마메(鳩豆,비둘기콩)이라고도 한다.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산마이오로시
         [[일본어]] 요리용어. 생선을 손질하는 방법을 뜻한다.
         [[분류:일본어]][[분류:요리]]
  • 생리적으로 무리
         [[일본어]]에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표현. 주로 여성이 사용한다.
         [[분류:일본어]]
  • 서태지
         그 후로도 계속 밴드를 알아보거나 직접 멤버를 모집해 밴드 결성을 시도하기도 했고, 한국에 비해 음악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본]] 공연을 하면서 지켜 본 바로는 서태지의 [[일본어]] 실력은 능숙해서 통역 없이 혼자 일본에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 손보승
         개그우먼 겸 연기자 [[이경실]]의 1남 1녀 중 막내인 그는, 2016년 연기자 데뷔를 하였다. 신장은 185cm이고 체중은 102kg인 그는 [[초등학교]] 시절이던 [[2008년 8월]]에서 [[중학교]] 시절이던 [[2012년 5월]]까지 [[캐나다]] 유학을 4년 남짓 한 전력이 있다. [[유도]] 경기 관람에 취미가 있고 [[록 음악]] [[노래]] 부르기, [[랩 (음악)|래핑]], [[기타]]·[[피아노]]·[[키보드 (악기)|전자 키보드]] 연주와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중국어]]·[[일본어]]·[[독일어]] 회화와 [[뮤지컬]] 연기와 [[성악]]에 특기가 있다.
  • 송병주 (1890년)
         이때는 [[조선총독부]] 체제가 출범하여 조선 전국의 행정기관과 경찰 조직이 총독부 휘하로 편입되면서 [[일본어]] 통역 수요가 늘어난 시기였다. 송병주는 귀국 직후 경무부 소속인 당진경찰서에서 통역으로 근무하면서 경찰계에 입문했다.
  • 숙녀
         [[한국어]]에서 '숙녀'라고 하면 '淑女'이지만, [[일본어]]에서 쥬쿠죠(じゅくじょ)라고 하면 '熟女'. 한자음이 둘 다 똑같이 '숙녀'이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분류:한자어]][[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신응희
         [[1883년]](고종 20년) [[5월]] [[김옥균]], [[박영효]] 등의 주선으로 [[서재필]], [[정란교]], [[이규완]] 등 13명과 함께 사관생도의 신분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게이오기주쿠 대학교|게이오의숙]]에서 [[일본어]]를 배웠고, [[1883년]] [[10월 3일]] [[일본 육군]]의 [[부사관]] 양성기관인 [[육군 도야마 하사관학교]]에 입학, [[1884년]] 5월에 졸업하였다.<ref name="hang1">1883년 5월~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 {{서적 인용
  • 아니키
         [[일본어]]. "형님" 정도의 의미.
         [[분류:일본어]]
  • 아테지
         [[일본어]]에서 [[한자]]의 음과 훈을 그 글자의 뜻과 관계 없이 맞춰놓은 한자 표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한자의 음을 빌려서 일본어를 표기하던 [[만요가나]] 시기에 이미 나타나던 표기이다.
         [[분류:일본어]]
  • 안용복
         안용복은 [[한성부]]에 사는 오충추(吳忠秋)의 사노비<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9661&yy=2010#axzz3aAJORimb <nowiki>[경북의 역사·문화 인물]</nowiki><11> 독도 수호 안용복]</ref>였는데, 부산 좌자천 1리 14통 3호(현재의 부산)의 설이 있으며 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동래에는 [[대마도]](쓰시마)와 무역을 할 수 있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들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일본어]]를 배웠으리라고 여겨진다.
         * 안용복이 막부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鬱陵島非日本界)”는 내용의 서계는 17세기 무렵 일본이 울릉도(와 그 부속 도서인 독도)가 자신의 영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중대한 결정을 일개 어부인 안용복이 이끌어낸 것이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안용복에 대해 "조선을 대표하지 않는다", "진술에는 많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있다.<ref>[http://www.mofa.go.jp/mofaj/a_o/na/takeshima/page1w_000022.html#q3 竹島問題に関するQ&A]、일본국 외무성 (일본어)</ref>
  • 안정효
         그의 소설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덴마크어]]로도 번역되었으며, 《하얀전쟁》은 [[베트남어]]로,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폴란드어]]로 번역이 진행 중이다.
  • 애니 일본어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애니로 일본어를 배우고 그대로 쓰면 일본의 실생활에서 격렬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하는 상황은 대개 극단적인 전투나 비일상적인 상황으로서,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애니메이션에서 발언하는 애니메이션 성우들은 애니메이션을 위하여 단련된 '성우 기술'로서 특정한 패턴에 따라서 '연기'를 하는 것이며, 이 역시 일상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특유의 오타쿠 문화 친화성이 더해져서 '애니 일본어'는 일상 일본어와는 동떨어진 특수한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만 일본어를 배운 경우,
         이렇게 되면 일상회화의 발음이나 어투와는 완전히 별세계의 일본어가 되는 것이다.
         굳이 제대로 된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는데 애니메이션을 참조하겠다면 장르나 작품을 잘선정하면 도움이 될수도 있다.
         보통 대학교의 일본어과의 경우 일상물이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그럭저럭 추천하고 있다.
         일본어 같은 경우 남자와 여자가 쓰는단어나 어투가 꽤 나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일본어 학원에서 회화반이라도 다녀보는게 낫다.
         [[분류:일본어]]
  • 애처 도시락
         [[일본어]]. 사랑하는 아내(愛妻)가 만들어준 도시락(弁当). 묘하게 애정의 상징/기혼남의 스테이터스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분류:일본어]]
  • 양진우
         '''양진우'''(楊鎭宇, [[1979년]] [[9월 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호주]]로 이민을 가서 대학교까지 마쳤다. [[퀸즐랜드 공과대학교]] 재학시절, [[일본]] 삿포로 대학에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어 [[영어]] 뿐 아니라 [[일본어]]에도 능통하다. 영어 이름은 '테리(Terry)'이다.
  • 염창섭 (1890년)
         |쪽=130쪽}}</ref> 이때 염창섭은 동생을 오산학교의 [[일본어]] 및 역사 교사로 채용하였는데, 약 1년 동안의 오산학교 교사 생활의 경험이 염상섭의 소설에 녹아들어 "염상섭의 오산학교행의 문학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서적 인용
  • 오토메
         [[일본어]]로 [[소녀]] 혹은 [[처녀]]를 뜻한다.--을녀-- 처녀(処女)라고 쓰고 오토메라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확실하게 처녀라는 뜻이다.
          * 일본어속어사전 : http://zokugo-dict.com/27hi/hiotome.htm
         [[분류:일본어]]
  • 욕창
         [[일본어]]로는 토코즈레(床ずれ)라고 한다.
  • 유완종
         [[한성부]]에서 태어나 [[1894년]]부터 한성부의 사립 학교인 [[을미의숙]]에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을미의숙이 폐교되자 [[관립한성일어학교]]로 전학하여 이 학교를 [[1898년]]에 졸업했다.
  • 유일선
         [[1907년]] [[일본어]]를 가르치는 [[관립한성일어학교]]의 교관으로 부임하였고, [[숙명여자고등학교]]와 [[휘문고등학교]] 전신 학교에서 교무주임과 교장을 지내는 등 개화파 교육인으로 활동했다.
  • 윤치영
         일찍부터 [[영어]](英語)를 배운 그는 영어를 잘 구사하였는데, 유년시절에 배운 [[영어]] 실력은 훗날 [[미국]] 유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윤치영은 [[중앙중학교 (서울)|중앙중학교]] 7회 졸업생이었다. 애교심이 워낙 강한 그는 아들 차남 [[윤인선]](尹仁善, [[국회사무처]] 해외자료과장 역임)과 손주 윤황구가 진학할 때 [[중앙고등학교]]를 선택하도록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윤황구는 중앙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경복을 나왔다. 윤치영은 무시험세대인 손자가 [[중학교]]에 진학할 당시 주소를 옮기기까지 하며 중앙을 권했다고 한다. 차남 윤인선은 [[중앙고등학교]] 57회 동문이다.<ref>이건우 주간부기자. 교육화제, 주간조선. 1993.</ref> 그는 한글 외에도 [[영어]], [[한자]],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해 [[12월 20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朴熙道)가 운영하는 순일본어 잡지 〈동양지광 (東洋之光)〉사에서 주최한 "미영 타도 대좌담회"에서 연설하였는데<ref name=autogenerated3 />, 법률이나 외교를 연구하는 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진주만 공격은 미국의 "간섭 행위"에 대한 일본의 "신성불가침의 자주권, 환언하면 국가 생존권에 관한 최후적 발단"이라고 [[일본]]의 행위를 옹호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3 />
  • 윤태빈
         [[한성부]] 출생이다. 말기에를 졸업하고 곧바로 외국어학교 교관으로 근무했다. [[일본어]]에 능통한 윤태빈은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후부터 [[조선총독부]] 소속 관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도청 내무부에서 일하다가 [[1935년]] 서울도 참여관에 올랐으며, 이후 [[강원도 (남)|강원도]]와 [[충청북도]]의 지사를 지내면서 [[1942년]] 퇴임 때까지 약 22년간 총독부 소속 고위 관료를 역임했다. 퇴임 무렵에는 [[조선귀족]]의 예우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종4위]], [[정4위]]에 서위되기도 했다. 총독부가 [[1935년]]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ref>{{뉴스 인용
  • 이미주(가수)
          * 러블리즈 내에서 [[일본어]]를 잘 구사하는 편이다.
  • 이수민(2001)
          * 취미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며, [[하울]]과 [[하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하쿠]]의 심각한 [[덕후]]라고 한다. 덕분에 자신있는 과목도 [[일본어]]일 정도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같이 출연한 [[성우]] [[서유리]]가 [[염신전대 고온저|파워레인저 엔진포스]]의 [[스토 미우|엔진 실버]]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이승엽
         ‘국민타자’,‘라이언 킹’ 등으로 불린다. 일본 진출 이후에 붙여진 애칭은 ‘승짱’({{llang|ja|スンちゃん}}, 한자 및 [[일본어]] 동시 표기: {{lang|ja|スン様}})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일본]]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의 [[2008년]] [[8월 22일]]자 보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는 별명이 추가됐다.<ref>{{뉴스 인용|제목=승엽은 병역 브로커|url=http://www.donga.com/fbin/moeum?n=sports$e_701&a=v&l=0&id=200808270265|출판사=동아일보|저자=김도헌|날짜=2008-08-27}}</ref> 또한, 국제 대회나 중요한 대구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특히 8회에 결정적 역할을 해 '8회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제 2구장인 [[포항야구장]]의 성적도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 이장희 (시인)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 이혜숙(영화배우)
         1987년 일본 방송계로 진출하여 [[후지 TV]] 드라마 《[[뉴욕]]의 사랑 이야기》에 출연하였고,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일본어]]로 번역한 후지 TV 《JOCX-TV2 - 서울 소울(SEOUL SOUL)》의 진행을 맡았다. 더불어 매주 토요일 밤 12시부터 2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인 《올 나이트 후지》의 MC로 발탁되는 등 80년대 후반에는 예능쪽에서 활약했다.
  • 장혁주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어=일본어
  • 전민제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
  • 전한길
          * ~~"하--잇!!"~~ (시험 예상 질문에 자문자답할 때. [[일본어]] 하이(はい)인데, [[한국사]] 수업이라 이런 일본어에 대해 살짝 거부감을 나타내는 수강생들도 종종 보인다.)
  • 제이 (1983년)
         제이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영어]], [[일본어]]에 능하다. 그는 [[2004년]]에 그룹 [[트랙스]]로 데뷔하였으며 정규 1집 초우(初雨)에서 [[린아]], 강정우와 같이 연기를 했다. 그러나 [[2007년]] 성대 결절로 인해 성대 수술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낭종의 뿌리가 깊어 수술 후 1년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3년의 공백기간 동안 [[트랙스]]의 베이시스트 강정우가 탈퇴하고 그는 [[김정모]]와 함께 트랙스에 남게 되었다. 그는 [[2009년]] 상반기부터 [[하자전담반 제로]]를 통해 연기자로 전향했고 [[김정모]]는 [[2009년]] [[6월]]부터 10월 말까지 [[오빠밴드]] 멤버로 활약하면서 [[트랙스]]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해 [[2009년]] [[12월]]경 음반을 발매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2010년]] [[1월 23일]] 《[[뮤직뱅크]]》에서 '가슴이 차가운 남자 (Let You Go)'라는 곡으로 컴백하게 되었다.
  • 조영철 (축구선수)
         [[일본]]에서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하여 [[일본어]]에 능숙하다.
  • 조용기 (1936년)
         조용기는 20세에 대조동 천막촌에서 최자실 전도사와 공동으로 목회를 시작하여, 교인 약 78만 명에 이르는, 세계 개신교 최대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당회장 목사로 목회하였다. [[일본어|일어]], [[영어]]에 능숙하며, 해외에서의 [[오순절교회]] 선교활동을 통해 [[개신교]] 선교에 공헌했다.
  • 조준호 (유도선수)
         | 언어 = [[한국어]], [[영어]], [[일본어]]
  • 주석 (1978년)
         [[2005년]]에는 'Finest Records'라는 작은 레이블을 세우고,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Mighty Mouth]]라는 그룹을 서포트하던 주석은, 그때까지만 해도 Master Plan의 멤버였으나, [[2007년]] 결국 MP에서 나오게 되었다. 나오기 직전 그는 Finest Records를 정리하고 Mighty Mouth와 함께 101 Entertainment와 계약하였다. 한편 산업기능요원으로 게임 업체에서 군 복무를 한 주석은, 복무 중 [[프리스타일 (게임)|Free Style]] 제작에 음악 담당으로 참여, 타이틀곡 "Neva Lose"를 제작하였으며, 타이틀곡을 [[일본어]]로 다시 작사하여 일본 등지에 게임을 수출하는 데 공헌하기도 하였다.
  • 최남선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1902년 경성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904년 10월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국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갈 때 국비 유학생 중 중학생반의 소년반장(少年班長)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 해 11월 [[도쿄]] 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못가 12월에 중퇴하고 배편으로 귀국했다.
         1925년 일본어로 발표된 〈불함문화론〉은 한·일 문화동원론, [[일선동조론]]을 위한 것으로 동이문화권에 [[발칸반도]], [[카스피해]], [[일본]], [[오키나와 섬|유구]]를 끌어들여 단군의 [[민족주의]]를 [[세계주의]]로 변질시키고 역사인식을 혼란시켰다는 지적이 있다.<ref>박광용, 「대단군 민족주의의 전개와 양면성」, 1992년.</ref><ref>{{서적 인용
  • 최상수 (1918년)
          | 언어 = [[한국어]], [[영어]], [[일본어]] <br/> [[중국어]], [[베트남어]], [[몽골어]]
  • 칫빠이
         납짝하고 작은 가슴을 뜻하는 [[일본어]].
         [[분류:일본어]][[분류:인체]]
  • 카마세이누
         [[일본어]] [[투견]] 용어. 물리는 개라는 의미이다.
         [[분류:일본어]][[분류:개]]
  • 카모
         [[일본어]]로 [[오리]]라는 뜻. [[속어]]로 [[호구]], [[봉]]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분류:일본어]]
  • 타히
         [[일본어]] 속어의 하나. 죽을 사(死)를 [[가타카나]]의 타(タ)와 히(ヒ)로 나눠서 쓴 것이다. 죽을 사 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분류:일본어]]
  • 털이 난 정도
         [[일본어]]의 관용 표현. '조금 나은 정도'라는 뜻.
         [[분류:일본어]] [[분류:관용어]]
  • 텐프레
         [[일본어]]의 템플릿(テンプレート)의 약자. 인터넷 속어.
         [[분류:일본어]]
  • 파치카스
         [[일본어]]로 카스(滓, かす)는 [[앙금]],[[찌꺼기]],[[쓰레기]] 같은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이런 이름의 [[맥주]]가 있다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유머(…).]
         [[분류:일본어]]
  • 포챠포챠
         [[일본어]] [[의태어]]와 [[의성어]], 2가지 의미가 있다.
         [[분류:일본어]]
  • 푼스카
         [[일본어]] [[의태어]]의 하나.
         [[분류:일본어]] [[분류:의태어]]
  • 하마치
         [[일본어]]로 [[방어]]의 새끼, 혹은 양식 방어라는 뜻이다. 현재는 주로 양식 방어라는 뜻으로 쓰인다.
         본래 방어(일본어로는 부리ブリ)를 가리키는 말은 일본에서 그 성장과정이나 지방마다 달랐는데, 하마치는 [[간사이]], [[츄고쿠]] 지방에서 쓰이던 말로서 어린 방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분류:일본어]]
  • 한규복 (1881년)
         그는 어려서 한성에서 신학문인 [[일본어]]와 [[중국어|한어]](漢語), [[영어]]를 공부하다가 [[1893년]] [[3월]] [[을미의숙]](乙未義塾) [[일본어]]학과에 입학, [[1897년]] [[3월]] 을미의숙 일어학과를 마치고 [[관립영어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6일]] 정3품으로 [[중추원 (대한제국)|중추원]] 2등 의관에 선출되었으나 중추원은 곧 해체되었다. [[1899년]](광무 2년) [[3월]]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 현덕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 현진건
         현진건의 집안인 연주 현씨는 [[역관]](譯官) 등의 [[잡과]](雜科) 출신을 많이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에 해당한다. 현진건의 6대조로 왜역(倭譯) 즉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태형(泰衡)부터 한역(漢譯) 즉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5대조 상복(商福), 몽역(蒙譯) 즉 [[몽골어]] 통역관이었던 시석(時錫)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관으로서 활약하였으며(각자의 처가도 또한 역관 집안이었다) 증조부 경민(敬敏)도 왜역으로 [[동래]](東萊)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현진건의 숙부인 현양운이 조민회의 후임으로 주왜공사(住倭公使)가 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영운의 가계를 그의 할아버지(즉 현진건의 증조할아버지)가 왜역으로 오랫동안 동래에 머무르다가 현지 기생과의 사이에서 현양운의 아버지를 얻었고, 현양운 자신도 그 아버지가 첩에게서 본 자식이었다고 적고 있다.<ref>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양진오, 2008, p.26</ref>
  • 혼모노
         일본어로 진짜라는 뜻의 말, 2016년 들어서 인터넷 은어로 진짜 오타쿠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 [[일본어]]에서 '진짜'라는 의미.
          * 애니메이션 말투의 일본어를 부분적으로 사용한다.[* 애니에서 쓰이는 일반적인 일본어 말투와는 사용되는 어휘, 어조가 다른데가 많다.]
         [[분류:일본어]]
  • 히모
         [[일본어]]에서 히모는 일반적으로는 '끈'이라는 뜻이다. 남녀관계에서 속칭으로 쓰일 때는, 여성을 일하게 하고 자신은 그녀가 주는 돈으로 놀고 먹는 [[정부]]를 뜻한다.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으면 히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농담이나 놀림삼아 불릴 수는 있지만.
         [[분류: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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