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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미(가수)
         || 9라운드 2차 경연 || 거미 || 김신영 || 또 - [[인순이]] || 7위 ||
  • 공지영
         공지영은 "TV채널을 돌리다 보니 종편개국 축하쇼에 [[인순이]]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우리 사회가, 우리 모두의 노력이 유명 연예인들에게 개념 연예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약간의 무리로 다가온다"라는 한 트위터러의 말에 "인순이님 개념 없는 거죠 머"라고 멘션을 달았고, "[[김연아]]가 그냥 인터뷰가 아니라 TV조선 9뉴스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소개한다"라는 한 트위터러의 말에 "연아, 아줌마가 너 참 예뻐했는데 네가 성년이니 네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다, 연아 근데 안녕"이라는 멘션을 달았다.<ref name="김현">김현아.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1120416258232721&outlink=1 '종편 출연 비판' 공지영·진중권, 무엇이 다른가?].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4일.</ref>
         이 발언으로 인해 공지영은 네티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공지영 또한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에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에 공지영은 "나 욕참고 말할게 비슷 알바 다 꺼져라 응? 노무현 때였다"라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08251.html 공지영, 종편 출연 인순이·김연아에 “안녕”]. 한겨레신문. 2011년 12월 2일.</ref><ref>[http://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804829 공지영 "나 욕참고 말할께..꺼져라" ]{{깨진 링크|url=http://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804829 }} 한국경제TV 2011년 12월 2일</ref> 중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논설위원의 칼럼을 통해서 "그녀의 언론활동을 보면 그녀는 '중앙일보의 친구'였으며, 중앙일보는 '노무현 정권의 가혹한 비판자'였다."라는 표현을 쓴바 있다.<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819041 공지영, 혼돈에 빠진 영혼]{{깨진 링크|url=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819041 }} - [[중앙일보]]</ref>
         2011년 12월 2일, 공지영은 자신의 발언과 관련한 논란을 정리하고자 트위터에 "내 딸이 거기 나갔어도 똑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내가 내 사설 의견 공간인 SNS에 내 후배와 인순이를 이야기하면서 그녀(인순이)가 그렇게 노래하는 건 개념 없는 거니 너무 슬퍼마, 한 취지였고 연아는 아줌마와 의견이 다르니 내가 슬프다 하는 거였다. 나는 오늘 반성을 깊이 했다. 내가 당신들의 공격성을 이토록 이끌어낸 것을. 하루 종일 힘들었다. 두려워서는 아니다. 슬퍼서였다"라고 글을 남겼다.<ref name="김현"/>
  • 김광수 (1961년)
         [[1985년]] [[가수]] [[인순이]]의 로드매니저로 매니지먼트에 첫 입문하였다.
  • 김완선
         김완선은 아버지 김성남<ref name="CNB뉴스"/> 과 어머니 한수자<ref>{{뉴스 인용|제목 =무릎팍도사 김완선. 보고도 믿지 못할 파란만장 인생|url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29|출판사 =미디어스신문사|저자 =탁발|날짜 = 2011-04-14|확인날짜 =2012-01-26}}</ref> 사이에서 1969년 5월 16일 5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의 친이모이자 [[인순이]]의 매니저였던 [[한백희]]에게 발탁되어<ref>{{뉴스 인용|제목 =가족 공개 김완선...'폭풍' 눈물 왜?|url =http://www.vop.co.kr/A00000395731.html|출판사 =민중의 소리|저자 =ENS 뉴스팀 |날짜 = 2011-05-19|확인날짜 =2016-03-11}}</ref>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으며 인순이의 백댄서팀인 리듬터치의 일원으로 무대 경험을 쌓았고, 발레와 기계 체조를 비롯한 각종 춤과 함께 작곡가 신병하로부터 화성학과 오케스트라 편곡도 배우는 등<ref name="동아일보">{{뉴스 인용|제목=‘차고도녀’ 김완선 다시 뛴다|url=http://news.donga.com/3/all/20120925/49648801/1|저자=임희윤|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2-09-25|확인날짜=2012-09-27}}</ref> 가수 데뷔를 위한 3년여의 준비 과정을 밟았다. 김완선의 부모는 딸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는데, 아버지는 “괘씸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연예인을 한다니깐 마음에 안 들었다. 나중에 TV에 나와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이후엔 곧잘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라고 후에 밝혔다.<ref name="CNB뉴스">{{뉴스 인용|제목=김완선 부모, 방송 최초출연…"딸 괘씸했다"|url=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51171|저자=성세경|출판사=CNB뉴스|날짜=2011-05-21|확인날짜=2011-05-21}}{{깨진 링크|url=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51171 }}</ref>
  • 나르샤
         [[1981년]] [[12월 28일]] [[광주광역시|광주]]에서 태어났다. 원래 나르샤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으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TV에서 "아껴둔 우리 사랑을 위해"라는 노래를 수화와 함께 부르던 가수 [[인순이]]의 모습을 보고 전율을 느껴, 진로를 대중 가수로 바꾸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후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한 후 여러 기획사의 오디션을 통해서 가수로서 데뷔하려 수차례 노력하였으나, 번번이 좌절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던 와중에 실용음악학원에서 만난 적이 있던 제아로부터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제안을 받게 되어 내가 네트워크 오디션을 통해 브아걸의 멤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20577541 생생인터뷰`브아걸` 멤버 나르샤, "카페 서빙·옷집 점원·결혼식 반주…무명시절 안 해본 일 없죠" ] 한국경제, 2010년 2월 5일 작성.</ref>
  • 딘딘
         * 《[[인순이]] - 18집 Umbrella》 (2013년)
  • 리사(한국 가수)
         || '''52-3''' || 아버지 || [[인순이]] || [[구자명]] || 35 ||
  • 박문영
         * 《아름다운 우리 나라》 (1984년, 노래: [[인순이]])
         * 《흔들리는 갈대》 (1984년, 노래: 인순이)
         * 《여기가 어디냐》 (1984년, 노래: 인순이)
         * 《야속한 내님》 (1984년, 노래: 인순이)
         * 《너와 나》 (1984년, 노래: 인순이)
         * 《이별의 눈동자》 (1984년, 노래: 인순이)
         * 《길섶에 핀 꽃》 (1984년, 노래: 인순이)
  • 박인호 (음악평론가)
         * 《아름다운 우리 나라》 (1984년, 노래: [[인순이]])
  • 유현상(가수)
         그 또래 음악인들이 대개 그러했듯 미8군 그리고 밤무대 출신이다. 방송에 같이 출연해서 밝힌 내용으로 [[인순이]]와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인데 미 8군 무대에도 같이 섰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그룹 '라스트 찬스' (후기) 로 무대 데뷔를 했었으며, 76년 사계절이라는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음반 데뷔 .[* 당시 같은 팀에 있던 가수가 윤시내.] [[사랑과 평화]]가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이 금지되어 [[나이트클럽]]을 뛰던 시기의 멤버였으며[* 이 시기의 사랑과 평화는 유현상 말고도 수많은 멤버들이 거쳐갔다.], [[문화방송]] 전속 관현악단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다. 물론 80년대 테크닉의 절정을 보여줬던 기타리스트들 과의 비교는 힘들지만, 그 전세대의 기타 리스트로서 유현상의 커리어도 상당한 편이다. 오히려 보컬 유현상보다는 기타리스트 유현상으로서의 평가가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싱어송라이터]]로 대 히트한 트로트 곡 '''여자야'''는 물론이고, 갈테면 가라지 그리고 백두산 곡의 상당수도 그와 [[김도균]]의 합작품이다.
  • 인순이 (음반)
         | 음반명 = 인순이
         | 가수명 = [[인순이]]
         | 현앨범 = '''인순이'''<br />(2009)
         | 후앨범 = [[Umbrella (인순이의 음반)|Umbrella]]<br />(2013)
         《'''인순이'''》는 대한민국의 가수 인순이의 열일곱 번째 정규 음반이다. 2009년 5월 8일 발매되었다
  • 조PD
         [[2001년]] 그는 새로운 회사명인 [[퓨처 플로우|Future Flow]] 사옥을 준공하고 작업실과 스튜디오 숙소를 겸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자신의 4집을 발표하고 처음으로 TV 라이브 무대에 나가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90734 "조PD 첫 방송출연…m·net ‘쇼킹 m’서 얼굴공개", 국민일보, 2002년 2월 1일]</ref> 이외에도 제작자로써 '''Ra.D''', [[DNS (그룹)|DNS]] 등의 음반을 제작하며 경영에 전념하였으나, 돌연 대표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조PD는 대주주로서의 지분과 경영권은 유지하였으나 운영은 [[정원관]]에게 맡긴 후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이러한 결과로 발표된 타이틀곡 〈친구여〉는 [[인순이]]와 함께 작업한 곡으로,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으며 선후배 간의 공동 작업 신드롬을 낳기도 하였다. [[2005년]] 그는 클럽 Brooklyn을 잠시 운영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998308 "래퍼 조PD, 힙합클럽 사장된다", 이은정 기자, 연합뉴스, 2005년 5월 10일]</ref> [[<!---영문명만 입력해도 그 링크를 통해서 접속할 수 있으므로, 걸어놓을 필요가 없음.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의 디지털 싱글 '''Hold The Line''' 참여 이후 노출을 자제하면서 사실상 은퇴 행보를 보였다.
  • 주현미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 황치열
         * 2015년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특집에서 [[인순이]]의 '아버지'를 불러 첫 우승을 차지함. 이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2015년 슈퍼루키특집'에서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부르며 공식적인 '2015년 슈퍼루키' 타이틀과 함께 우승을 거머 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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