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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호(1969)
         수비도 꽤 괜찮은 선수였으나, 두산의 팬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종범]]이나 [[유지현]]에게 기억이 밀리는 편. 하지만 이종범과 유지현이 둘 다 방위병 근무를 하던 1995년엔 .288의 타율과 47도루를 기록하며 웬만한 스타 유격수 못지않은 활약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해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시리즈 MVP를 차지하고,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하는 등 선수로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 [[이종범]][br]([[해태 타이거즈]]) || → || '''김민호'''[br]([[OB 베어스]]) || → || [[이종범]][br]([[해태 타이거즈]]) ||
  • 김상진(1970)
          * [[노안]]이다. 선수 시절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20대 중후반에도 금테 안경을 쓰고 수염이 덥수룩했던 선수였던지라 본의 아니게 [[양준혁]], [[이종범]],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등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들의 얼굴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였던 편이었다. 은퇴 후 [[2017년]] 현재도 같은 팀의 감독인 [[김한수]]보다 한 살 많은데 비해 얼굴은 서로 상당히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 김재박
         '''[[MBC 청룡]]-[[LG 트윈스]]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김재박]] - [[이종범]] - [[박진만]] - [[강정호]]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야구 간판 유격수 계보의 원조'''
          * 그 외 [[박재홍(야구)|박재홍]] 사건,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 사건 등 사인 훔치기 논란에는 항상 ~~[[김성근]]과~~ 김재박 감독이 있었음. [* 기존본엔 ~~이종범의 사자후로 유명한~~ [[이대형]]사건도 있었는데 편집됨.]
  • 김재호 (1985년)
         [[2016년]] 시즌 후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김재박]], [[이종범]], [[유지현 (야구인)|유지현]], [[박진만]], [[강정호]] 이후 6번째로 유격수 연속 2년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2017년]] 부상으로 인해 말소되면서 주장직을 [[김재환 (야구 선수)|김재환]]에게 넘겨주었고, 복귀해서 타격감이 돌아왔으나, [[2017년]] [[8월 2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수비 도중 [[김재환 (야구 선수)|김재환]]과 충돌하여 어깨 부상을 당해 다시 말소되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708292110988210&ext=na 두산 김재호, 어깨 관절 인대 손상 의심…30일 정밀 검진] -마이데일리</ref>
  • 김종국 (야구인)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1992학번)를 졸업하고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으며, [[2루수]]와 [[유격수]]를 주로 맡으나 [[3루수|3루 수비]]를 맡은 적도 있다. 통산 타율 0.247로 타격 능력은 좋은 편이 아니나, 리그 정상급의 빠른 발과 노련미 넘치는 견고한 수비가 인상적인 선수로,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팀의 고참 선수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냈다. 또한 [[2008년]] [[6월 3일]]에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한 공로로 [[이종범]]과 함께 공로패를 받았다.
         그는 [[2009년]]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벌어진 [[서재응]]과 [[정근우]]의 [[벤치 클리어링]]에서 [[정근우]]를 꾸짖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2009년]] [[KIA 타이거즈]] 시절 마지막 우승 멤버 4인방([[장성호 (야구 선수)|장성호]], 김종국, [[이종범]], [[이재주]]) 중에서 가장 먼저 은퇴를 하게 되었고 2군에서 플레잉 코치 역할을 하다가 1군 작전 및 주루고치를 현재까지 하고 있다.
  • 김창희(야구)
         해태 시절 신인 때부터 .263의 타율과 9홈런을 기록하며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냥 저냥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당시 [[이순철]]의 부진으로 인해 [[이호성|그 분]], [[최훈재]], [[이호준|로또]]와 더불어 해태 외야의 한 축을 담당했다.[* 결국 1997 시즌이 끝난 후 김창희가 해태의 주전 외야수가 되었고, 이순철은 방출되어 삼성으로 이적했다.] 1998년에는 약간 성장하여 .267에 12홈런 64타점으로 팀내 홈런 4위, 타점 3위를 기록했으며, [[이종범]]이 나간 자리를 메워 줄 외야수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의 성적이 그의 커리어하이였으며, 타고투저가 극심한 1999년에도 비슷한 성적을 내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다 2000년부터는 점점 성적이 떨어지더니 벤치선수로 전락하였다. 급기야 2002 시즌 후 그는 [[진필중]]의 트레이드 맞상대가 되고 만다.
  • 김태완 (1984년)
         시즌 개막 직전 주전 1루수인 [[김태균 (1982년)|김태균]]의 부상으로 개막전부터 1루수 겸 4번 타자로 출장했다. [[김태균 (1982년)|김태균]]의 복귀 후에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7월 10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이범석 (1985년)|이범석]]의 142 km 직구에 아랫 입술과 턱 밑을 강타당했고, 이후 [[이종범]], [[심정수]]가 쓴 보호대 달린 이른바 검투사 헬멧을 착용하기 시작했다.<ref>[http://osen.stoo.com/news/html/001/004/373.html 김태완, 검투사 헬멧 쓰고 20홈런 돌파] {{웨이백|url=http://osen.stoo.com/news/html/001/004/373.html |date=20160304101618 }} 《Osen》, 2008년 7월 29일</ref> 시즌 124서울에 출장하여 2할대 타율, 102안타, 23홈런, 73타점으로 장타자의 면모를 발휘했다.<ref>[http://spn.edaily.co.kr/sports/newsRead.asp?sub_cd=EB21&newsid=01141446586643440&DirCode=0020201 단점에서 진정한 최고의 길을 찾다 ⑧ - 한화 김태완]{{깨진 링크|url=http://spn.edaily.co.kr/sports/newsRead.asp?sub_cd=EB21&newsid=01141446586643440&DirCode=0020201 }}《이데일리》, 2008년 12월 29일</ref>
  • 배영수
          *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서건창
         [[2014년 아시안 게임]]에는 승선하지 못했지만 종전 기록인 [[이종범]]의 196안타, [[이승엽]]의 128득점, 시즌 최다 안타, 최다 득점, [[이종운 (1966년)|이종운]]의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의 넓은 수비 범위에 추가해 송구와 강습 타구 처리 능력이 향상돼 리그 최고의 수비를 보여줬다. 장타력이 개선되면서도 주력이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리그 최고 수준의 주자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최초 2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196번째 안타는 [[이종범]]과 같은 124경기째에 기록했으며, [[2014년]] [[10월 13일]]에 [[KIA 타이거즈]]의 [[김병현]]을 상대로 197번째 안타를 쳐 내며 최다 안타 기록을 20년 만에 경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2841861 197안타 서건창, 200안타 달성 눈앞…"이종범은 이미 넘었다"] - 조선일보</ref> 그는 [[2014년]] [[10월 17일]], [[SK 와이번스]]의 [[채병용]]을 상대로 [[KBO 리그]]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를 돌파했으며,<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195697 서건창, 꿈을 현실로…역사적 200안타 때렸다] - MK 스포츠</ref> 같은 날 [[SK 와이번스]]의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을 상대로 안타를 추가해 시즌 최종 201안타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397120 서건창, 이재영 상대로 201번째 안타 추가] - 엑스포츠 뉴스</ref> 시즌 후, 비록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최다 안타에 이어 타격왕, 득점왕을 차지해 2014년 정규 리그 MVP로 선정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57&article_id=0000507407 '넥센 히어로즈' 서건창, MVP 선정…트로피 4개 획득] - MBN</ref> 이에 힘입어 [[야마이코 나바로]]를 제치고 생애 2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개인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210000615326 서건창 겹경사, 골든글러브 수상·3억원 연봉 계약 두마리 토끼 잡았다] - 아시아투데이</ref> 시즌 후 연봉 3억원에 계약을 마쳤다. 2015년 시즌 중 [[고영민]]의 수비 미숙으로 인해 십자인대가 파열돼 전력에서 이탈했고, 결국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 선동열
         그는 [[1994년]] 같은 팀 선수였던 [[이종범]]과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하여 앨범을 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저자=김진|제목='특급 쌕쌕이' 이종범, 과자-앨범 제작 에피소드 공개!|url=http://artsnews.media.paran.com/news/49844|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9-11-26|확인날짜=2009-11-28}}{{깨진 링크|url=http://artsnews.media.paran.com/news/49844 }}</ref>
  • 신동주(야구)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 유지현 (야구인)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유격수로서 두각을 나타내 [[서울개봉초등학교|서울개봉초]] 시절 리틀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혔고, 서울개봉초 시절 5학년때 1981년 소년동아일보 주최로 리틀야구에 참가하여 당시 충암구락부 감독이었던 곽성열의 권유로 전학, 야구선수의 입문을 걷게 됐다를 거쳐 1990년 [[한양대학교|한양대]] 시절 4년동안 태극마크의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에 진학하여 시절 4년동안 태극마크의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이종범]]과 함께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 윤대영
         '''윤대영'''(尹大瑛<ref>한국야구위원회, 2013 가이드북</ref>, [[1994년]] [[1월 31일]]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그의 외삼촌은 전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이자 현 [[LG 트윈스]]의 2군 총괄/타격코치인 [[이종범]]이고, 외사촌동생은 [[KBO 리그]] [[키움 히어로즈]]의 [[외야수]], [[지명타자]]인 [[이정후]]이다.
         * [[이종범]]
  • 이대진
         <ref>"최근 [[KIA 타이거즈]]에 관한 책을 쓰느라고 [[이종범]], 그와 [[김성한 (1958년)|김성한]] 전 감독님 등을 인터뷰하던 중에 그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더니,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표정으로, 그리고 자신이 그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전혀 번트가 아니었고, 스윙이었다. 내야 땅볼이었다'고 확인을 해주신 것이죠."
  • 이종범 (동음이의)
         '''이종범'''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 '''[[이종범 (1952년)|이종범]]'''([[1952년]]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울산광역시의원이다.
         * '''[[이종범]]'''([[1970년]] ~ )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다.
         * '''[[이종범 (작가, 기업가)]]'''
         * '''[[이종범 (만화가)]]'''
         * '''[[이종범 (프로게이머)]]'''
         * '''이종범''': 음악가 [[전자양]]([[1980년]] ~ )의 본명.
  • 이창명
          * [[이종범]]의 [[장나라]] 시구 강타사건의 조연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시구 사회를 했던 이창명이 이종범을 부추겨서 상황이 벌어졌다고 당시 KBS 관계자가 언급했다.[* 그렇지만 이종범이 이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하거나 반성하는 모습보다 '잘못됐으면 이미 결혼한 내가 데리고 살았어야했나.' 같은 발언을 태연히 했기에 가장 비판받을 장본인이다.]
  • 이휘재
         * 2012년 5월 26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이종범 선수 은퇴식의 사회를 맡았다.
         * [[심재학]], [[이종범]], [[이숭용]], [[박진만]], [[양준혁]], [[조범현]], [[이병훈]], [[김성갑]] 외 많은 선수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 장원준 (야구선수)
         * 프로 2년차이던 [[2005년]] [[7월 26일]] [[KIA 타이거즈|KIA]]전 9회말에 [[이종범]]의 깊은 타구를 당시 [[1루수]]였던 [[라이언 잭슨|라이온]]이 잡았지만, 그의 1루 베이스 커버가 늦으면서 내야 안타를 허용해 안타깝게 [[노히트노런]]을 기록하지 못하였다.
  • 전준호(1969)
         그리고 [[한국프로야구/1993년|다음해]] '''[[이종범|전]][[양준혁|설]][[구대성|들]][[이상훈(좌완투수)|이]]''' 데뷔하는 시기엔 시즌 최다도루 기록을 경신했다. 이 시즌 기록한 '''75개'''의 도루는 역대 한 시즌 최다 외야수 기록이다. 두번째는 69개[* 이 기록도 95년도 전준호의 기록이다.]. 3번째는 이에 근접하는게 ~~하위버전~~ [[이대형]]의 60개. 물론 1위는 이종범의 '''84개'''다.[* 이 시절에는 [[유격수]]를 봤다. 외야로 나중에 전업해서 50개를 기록.]
         1991 시즌부터 2009 시즌까지 모두 19시즌(!)이나 뛰었으며, 통산 타율 0.291, 2,018안타, 42홈런, 577타점, 550도루[* 통산 1위로, 2위는 505개인 [[이종범]]], OPS 0.745를 기록. 3루타 통산 100개로 이 부문 1위 기록도 가지고 있다. 2위가 61개인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깨지기는 쉽지 않은 기록. 또한 롯데 시절 활약이 워낙 인상에 깊어서 그렇지 결과적으로는 현대에서 가장 오래 뛰었고, 현대를 거쳐간 선수들 중 [[이숭용]]에 이어 현대 재적기간 2위에 랭크되어있다. 참고로 3위는 [[김수경]].
         그리고 KBO 역사상 [[양준혁]]에 이어 2,000안타를 2번째로 달성한 선수이자, 2,000경기 출전 & 2,000안타를 최초로 달성하였으며, 단일 시즌 최다 도루 2위[* 1993년 75개, 1위는 1994년도 84개를 기록한 [[이종범]]], 그리고 3차례의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3년, 1995년, 2004년]. 통산 득점도 1,171점으로 양준혁, [[이승엽]]에 이어 3위에 랭크되어있다. 이쯤되면 [[양준혁]], [[송진우(야구)|송진우]] 등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릴만하다.
         특히 '''대도'''라고 불릴 정도로 도루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선수. [[이종범]]과 비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종범은 전성기 시절 도루를 확실히 점수로 연결하여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선수였다. 그래서 이종범은 매해 wSB가 높았는데 역대 1~5위를 거의 혼자 독식하는 수준. 반면 전준호는 이종범처럼 도루로 경기를 뒤집는 타입은 아니였지만 꾸준한 적립으로 통산 도루 기록을 쌓은 케이스다. 실제로 도루왕을 3차례밖에 하지못했고, 역대 매년 wSB 세이버수치를 찾아보면 그렇게 특출난 편은 아니다. 도루성공률 역시 통산 71.7%로 나쁘진 않지만 도루계를 양분하던 이종범의 81.9%에는 상당히 뒤쳐지는 편이다.
  • 정민철
         [[선동열]]은 자신의 후계자로 그를 지목하였으며, [[이종범]]은 본인이 경험한 최고의 공으로 그의 직구를 꼽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42062 당신이 경험한 '최강의 직구'는 무엇입니까?] 《스포츠경향》, 2014년 4월 22일 안승호 기자</ref>
  • 정성훈 (1980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졸 신인 전체 1순위로 1차 지명을 받아 1억 5,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당시에 팀이 상당히 기대를 하고 지명해 입단 첫 해부터 주전으로 발탁됐다. 광주일고 출신의 호타준족 유격수로서 [[이종범]]과 유사한 스타일이라 제 2의 [[이종범]]이라 불리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초기에는 유격수이자 상위 타순으로 출장했는데,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으로 인해 공격력이 떨어졌고 또한 유격수였던 [[홍세완]] 때문에 포지션과 타순을 옮겨 3루수이자 하위 타순으로서 준수한 수비와 상위 타순에 공격 기회를 이어가는 역할로 제 역할을 해냈다.
  • 채종범
         [[KIA 타이거즈|KIA]]로 이적한 후 당시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전병두]]와 내야 유틸이었던 [[김연훈]]을 거의 조공격으로 넘긴 것 때문에 이적하자마자 엄청나게 까였다. 게다가 소집해제 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성적까지 점점 하락하는 와중에 [[조범현]] 감독은 우익수 자리에 계속 넣어주면서 '''양아들'''소리까지 듣는 등 평생 먹을 욕을 거의 다 먹게 된다.--[[지못미]]-- 당시 [[조범현]] 감독이 주전 우익수 기회를 계속 준 탓에,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이종범]] 선수의 아들인 [[이정후]] 군은 [[이종범|아버지]]에게 '''아빠, 아빠 이름이 잘못 나와 있어'''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
         2010 시즌엔 주로 [[지명타자]]--외야는 누가 보고?--로 출전하고 있는데[* 10기아의 외야진을 보면 41살의 이종범, 이용규, 나지완, 채종범, 장성호, 김원섭, 신종길 정도였다. 하지만 나지완은 무릎 상태가 시원찮아서 지명타자 고정이고 김원섭은 만성간염 때문에 풀시즌을 못뛴다. 장성호는 감독과 싸우고 한화로 가버렸고(...). 결국 이용규, 이종범이 고정이고, 나지완, 김원섭이 돌아가면서 나오나 싶었지만, 강동우 주고 받아온 신종길이 안착하면서 그럭저럭 굴러가게 된다.]시즌 초반에는 무릎이 완전하지 않았는지 부진하다가 2군에 내려갔다. 위에서 얘기한 트레이드 논란과 신통찮은 성적 때문에 KIA 팬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으나, 2010 시즌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삽질도 모자라 포크레인질을 하는 [[나지완]]을 대신해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7경기 연속 타점과 최근 5경기에서 홈런 3방을 몰아치며 대 폭발했다. 애초에 [[조범현]] 감독은 채종범이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외야 슬롯 하나를 채종범에게 주려고 했다고 한다니, 뒤늦게나마 터진 게 그나마 다행.
         별명으로는 '''짭종범'''[* 순전히 [[이종범]] 때문에 붙은 별명. 이 둘을 통틀어서 더블종범이라고도 한다. 이 둘은 이름의 한자도 같다. [[이종범]]처럼 외야수이기도 했고.], [[조범현]]의 양아들이라고 해서 '''조종범''' 등이 있다.[* 참고로 채종범은 [[강병철의 양아들]](...) 리스트에도 있다... 확실히 타격 재능은 있나 보다. 그리고 결국 '''코치로써도 조범현 아래에서 지내게 되었다'''!!] 2010년 7월에 좋은 활약을 보여, 종범甲의 뒤를잇는 종범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7월 22일 삼성전에서 6회말 [[정현욱]]에게 투런 홈런을 쳐내고 8회말에는 [[차우찬]]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으나 정작 팀은 [[중간계투|불펜]]진들의 퐈이아로 패배. 7월 27일 롯데전에서는 6회와 8회 담장을 때리는 장타를 날렸다. 오오 역시 종범乙.
          * [[이종범]]이 2001년 [[일본]] 생활을 마치고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을 때 복귀전에서 맹활약하며 [[KIA 타이거즈]]에 패배를 안겨 주기도 했다.
          * 2010년[* 날짜와 상대 팀은 불명] 덕아웃에 있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는데 [[이용규]]-[[최용규]]-[[이종범]]-[[채종범]] 순서대로 서 있었다(...)
  • 홍현우
         해태 타이거즈가 4회 우승(91.93.96.97)하는 동안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던, 그는 [[1990년]] [[4월 16일]]부터 [[6월 18일]]까지 역대 최연소 1000안타 기록을 세웠다. 또한 그해 데이비스와 이병규와 함께 타율 3할에 30홈런 30도루를 달성해 최고의 호타준족으로 인정받았다.또한 해태의 해결사 [[한대화]]를 대신한 3루수로 공격, 수비, 주루에 모두 뛰어난 흠잡을 곳 없는 플레이어였으며, 타이거즈의 4번의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가 없었다면 [[이종범]]이 100대의 득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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