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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중일 . . . . 33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7년 - 1999년)
* [[삼성 라이온즈]] 주루코치 (2000년 - 2007년)
* [[삼성 라이온즈]] 수비코치 (2008년 - 2010년)
*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11년 - 2016년)
* [[삼성 라이온즈]] 기술 고문 (2017년)
'''류중일'''(柳仲逸, [[1963년]] [[음력 4월 28일|4월 2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감독]]이자, 현재 [[LG 트윈스]]의 감독이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한양대학교]] 체육학과(1983학번) 졸업 후 [[1987년]] 1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계약금 2천만 원, 연봉 1천 2백만 원)하여 견고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 성적에 기여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 [[유격수]]로 주로 출장했고 골든 글러브([[유격수]] 부문)를 2번 받았다. 현역 시절에는 [[2루수]] [[강기웅]]과 함께하였던 키스톤 콤비가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고, 코치로 활동하면서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 [[삼성 라이온즈]] 코치 & 감독 시절 ===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 '1' (1987년 ~ 1999년, [[삼성 라이온즈]])
* '75' (2000년 ~ 2016년, [[삼성 라이온즈]] / 2018년 ~ 현재, [[LG 트윈스]])
|1987 || rowspan="13" style="text-align:center;" | [[삼성 라이온즈|삼성]]
|직책 = [[삼성 라이온즈]] 감독
|제목 =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삼성 라이온즈|(2011년 ~ 2016년)}}
{{삼성 라이온즈 명단}}
{{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5년 삼성 라이온즈}}
- 이승엽 . . . . 29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5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리그|KBO]] / [[1995년]] [[4월 15일]] <br /> [[LG 트윈스|LG]]전 <br /> [[일본 야구 기구|NPB]] / [[2004년]] [[3월 27일]] <br /> [[세이부 돔]]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전
|마지막 경기 = [[KBO 리그|KBO]] / [[2017년]] [[10월 3일]] <br />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대구]]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br /> [[일본 야구 기구|NPB]] / [[2011년]] [[10월 18일]] <br /> [[오사카 돔]]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전
* [[삼성 라이온즈]] (1995년 ~ 2003년)
* [[삼성 라이온즈]] (2012년 ~ 2017년)
'''이승엽'''(李承燁, [[1976년]] [[10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야구]] 선수로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이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 [[2002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벌여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LG 트윈스|LG]] 투수 [[이상훈 (1971년생 좌완 투수)|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 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곧 [[마해영]]의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이어져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게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FA 자격을 취득한 후 [[2003년]] 12월에 계약했다. 연봉은 2억엔이었는데, 당시 팀 멤버 중 그를 제외하고 2억엔이 넘는 선수는 마무리 투수인 [[고바야시 마사히데]]밖에 없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런 파격 대우 때문에 팀 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팀이 타 선수들의 대우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진정됐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27일]] 개막전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의 에이스 투수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마쓰자카]]로부터 2루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좋았던 첫 시작과 달리 시즌 후 14홈런, 2할대 타율, 50타점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2005년]] 시즌 후 열린 [[2005년 아시아 시리즈|아시아 시리즈]]에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에 각각 3번과 6번 타자로 출전했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 [[삼성 라이온즈]] 복귀 ====
* [[2016년]] [[2월 25일]]에 팀의 새로운 홈 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준공돼 그 기념으로 [[대구도시철도공사]] 홍보대사로 뽑혀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 (대구)|대공원역]]의 특별 안내방송을 맡게 됐다.<ref>현재는 팀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방송되지 않는다.</ref>
{{인용문|안녕하세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입니다. 이번 역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는 대공원, 대공원역입니다. 내리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야구장에 오셔서 힘찬 함성과 뜨거운 열정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 '36' (1995년 ~ 2003년, 2012년 ~ 2017년, [[삼성 라이온즈]](영구 결번)
‘국민타자’,‘라이언 킹’ 등으로 불린다. 일본 진출 이후에 붙여진 애칭은 ‘승짱’({{llang|ja|スンちゃん}}, 한자 및 [[일본어]] 동시 표기: {{lang|ja|スン様}})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일본]]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의 [[2008년]] [[8월 22일]]자 보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는 별명이 추가됐다.<ref>{{뉴스 인용|제목=승엽은 병역 브로커|url=http://www.donga.com/fbin/moeum?n=sports$e_701&a=v&l=0&id=200808270265|출판사=동아일보|저자=김도헌|날짜=2008-08-27}}</ref> 또한, 국제 대회나 중요한 대구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특히 8회에 결정적 역할을 해 '8회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제 2구장인 [[포항야구장]]의 성적도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rowspan="9"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rowspan="6"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삼성 라이온즈|삼성]]
- 김태한 . . . . 23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3년 한국프로야구|2003년]] [[6월 20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구원 투수|구원]]
* [[삼성 라이온즈]] (1992년 ~ 2001년)
* [[삼성 라이온즈]] 1군 불펜 투수코치 (2007년 ~ 2008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09년)
* [[삼성 라이온즈]] 1군 불펜 투수코치 (2010년 ~ 2012년)
* [[삼성 라이온즈]] 1군 메인 투수코치 (2013년 ~ 2016년)
*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17년 ~ 현재)
*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05년 ~ 2006년)
'''김태한''' (金泰漢, [[1969년]] [[10월 2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SK와이번스]]의 선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이다.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 중 드물게 [[1993년]] ~ [[1994년]] 2년 연속 10승대를 기록하였다.
| rowspan="8" style="text-align:center;" | [[삼성 라이온즈|삼성]]
* [http://www.samsunglions.com/roster/roster_1.asp?pcode=92401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명단}}
{{2011년 삼성 라이온즈}}
{{2011년 삼성 라이온즈 아시아 시리즈}}
{{2012년 삼성 라이온즈}}
{{2013년 삼성 라이온즈}}
{{2014년 삼성 라이온즈}}
- 김승관 . . . . 22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5~2004) [br] 롯데 자이언츠 (2004~2007) ||
|| 최찬욱[br]박규대([[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광현(1971)|김광현]](삼성 라이온즈 2군) ||
|| 최찬욱(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훈(삼성 라이온즈 2군) ||
|| [[김광현(1971)|김광현]](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br]김무성·이동욱([[롯데 자이언츠 2군]]) || → || [[조효상]] [br] 이상현([[한화 이글스 2군]]) ||
|| 이상현(한화 이글스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 || → || 곽용섭(삼성 라이온즈 2군) ||
|| [[이재주]](KIA 타이거즈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 || → || 곽용섭(삼성 라이온즈 2군) ||
|| 곽용섭(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롯데 자이언츠 2군) || → || 권희석([[KIA 타이거즈 2군]]) ||
|| 권희석([[KIA 타이거즈 2군]]) || → || '''김승관'''(롯데 자이언츠 2군) || → || [[모상기]](삼성 라이온즈 2군)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8번(1995)'''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1996 ~ 2004)''' ||
前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내야수.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대구상고 시절에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상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삼성 라이온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본즈|2군 홈런왕]]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해 온 팀이자 고향 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2004년 7월 12일 투수 [[노장진]]과 함께 외야수 [[김대익]], 투수 [[박석진]]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16일에는 친정 팀 삼성을 상대로 [[투수]] [[임동규(야구)|임동규]]에게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롯데의 스코어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 1995 ||<|9> [[삼성 라이온즈]] || 6 || 4 || .000 || 0 || 0 || 0 || 0 || 0 || 0 || 0 ||
|| 2004 || [[삼성 라이온즈|삼성]] / [[롯데 자이언츠|롯데]] || 59 || 126 || .222 || 28 || 4 || 0 || 2 || 14 || 13 || 0 ||
- 안지만 . . . . 2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6차 5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02년 ~ 2016년)
'''안지만'''(安志晩<ref>{{웹 인용|url= http://www.koreabaseball.com/file/ebook/pdf/2009KBO_guide.pdf|제목= KBO 프로야구 가이드북 2009|출판사=[[KBO (단체)|한국야구위원회]]|확인날짜=2017-01-10}}</ref>, [[1983년]] [[10월 1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전체 4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10월 15일]]에 팀의 [[스타]]급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간판투수 3명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즐겼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 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팀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통합 5연패가 좌절되었다. 검찰 조사가 늦어지면서 같이 거론된 [[윤성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전지훈련에 참가하였다. [[2016년]] [[4월 3일]] 1군에 재합류했다. 경찰은 "도박 혐의로 수사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중요 참고인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들이) 외국에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수사는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수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6월 초에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510793 '원정도박 혐의' 안지만-윤성환, 수사보류 가능성↑.. 복귀?] - 스타뉴스</ref> 이후 7월 중순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에 [[삼성 라이온즈]]는 [[KBO (야구)|KBO]]에 계약 해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상 퇴출됨으로써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01 삼성라이온즈 안지만,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상 은퇴 수순’] -이뉴스투데이</ref>
|rowspan="13"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제목 = 삼성 라이온즈
{{2005년 삼성 라이온즈}}
{{2011년 삼성 라이온즈}}
{{2012년 삼성 라이온즈}}
{{2013년 삼성 라이온즈}}
{{2014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김용국 (야구인) . . . . 21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5년]] 1차 5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5년 ~ 1993년)
* [[삼성 라이온즈]] 수비코치 (2005년 ~ 2009년)
* [[삼성 라이온즈]] 수비코치 (2011년 ~ 2016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한양대학교]] 졸업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1985년 한국프로야구]]부터 주전 [[3루수]]로 뛰었지만 [[1987년 한국프로야구]]에는 [[류중일]]의 입단으로 설 자리를 잃어 [[유격수]]에서 전향했던 [[오대석]]과 병용으로 출전했다.
[[대한민국]]에서 연봉 5천만원에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551908 <프로야구소식> LG, 김대진, 김용국코치 영입]</ref> 그는 추후 자리를 옮겨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부터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9 시즌]]까지 친정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20171 삼성, 김용국·강성우 코치 영입]</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65 [사진]김용국 코치,'아픈 데는 괜찮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76 [사진]김용국,'글러브 가볍고 괜찮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9년]] 친정 팀의 코치 재계약에 실패한 후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엔 [[넥센 히어로즈]]에 자리를 옮겨 2군 수비·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다가<ref>''OSEN'' - 2009년 11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11190106 "히어로즈, 김용국 전 삼성 코치 영입"]</ref>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다.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그가 레전드 [[3루수]]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옛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
2016 시즌 후 [[류중일]]이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서 물러난 후에 [[삼성 라이온즈]]과 재계약이 불발된 후 [[김진욱]]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고 [[kt 위즈]]로 팀을 옮겼다.
* '7' - [[삼성 라이온즈]]
|1985 ||rowspan="9"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239 ||99 ||306 ||46 ||73 ||14 ||1 ||7 ||110 ||37 ||3 ||4 ||34 ||2 ||42 ||10 ||9
|제목 = 삼성 라이온즈
{{1985년 삼성 라이온즈}}
{{2011년 삼성 라이온즈}}
{{2011년 삼성 라이온즈 아시아 시리즈}}
{{2012년 삼성 라이온즈}}
{{2013년 삼성 라이온즈}}
{{2014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신동주(야구) . . . . 20회 일치
||||<#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0}}} ||
||<:> '''프로입단''' || 1991년 [[삼성 라이온즈]] 고졸연고 자유계약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1~2000) [br] [[KIA 타이거즈]] (2001~2003) [br] [[삼성 라이온즈]] (2004~2005) [br] [[KIA 타이거즈]] (2005~2006) ||
||<:> '''지도자''' ||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2014)[br][[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2015~2017)[br] 삼성 라이온즈 3군 타격코치(2017~)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0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7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0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4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7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0번''' ||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태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2||<|9><:>[[삼성 라이온즈]] || 9 || 5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2004|| [[삼성 라이온즈]] || 73 || 105 || .219 || 23 || 5 || 1 || 2 || 9 || 11 || 1 || 11 || .343 || .291 ||
||2005|| [[삼성 라이온즈|삼성]] / [[KIA 타이거즈|KIA]] || 23 || 32 || .094 || 3 || 0 || 0 || 0 || 0 || 2 || 0 || 3 || .094 || .171 ||
2017년, [[김한수]] 타격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단독으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2011년 류중일 감독 부임 이후 삼성에는 줄곧 1군에 2명의 타격코치를 뒀다.] 삼성 라이온즈가 '''02 롯데''', '''13 한화''' 수준의 막장 경기력을 4월 내내 보여 주자 수비코치 [[이윤효]]와 묶여서 3군으로 강등되었다. 대신 [[김종훈(1972)|김종훈]]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으며, [[박진만]]도 수비코치로 왔다. 그리고 [[강기웅]]이 3군에서 2군으로 이동했다.
- 박석민 . . . . 18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2004~2015)'''[br][[NC 다이노스]] (2016~현재) ||
|| [[김선우(야구선수)|김선우]]([[두산 베어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 || → || [[박용택]]([[LG 트윈스]]) ||
|| [[최정]]([[SK 와이번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 2015년 성적은 삼성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에 NC로 FA 이적하는 바람에 공식 기록에는 NC로 되어 있다.]) || → || [[최정]]([[SK 와이번스]])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5번'''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 [[삼성 라이온즈]] ===
'''영광의 시절이었던 [[삼성 라이온즈]] 시절'''
오른쪽은 [[강민호|지금 푸른 피가 흐르는 분]] [* 공교롭게도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로 소속이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3299542&date=20150712&page=1|기사]]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05년 시즌 종료 후 군복무를 위해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 입대했으며 2007 시즌 종료 뒤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하였다.
개그 본능은 여전했다. 5월 6일 LG 트윈스 전에서 상대 투수 [[한희]]의 공에 맞자 배트 들고 한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문제는 '''박석민이 해서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 사실 화가 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다소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오려는 작전이었다. 더불어 한희에게 전화로 직접 사과까지 했다. 해당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제구가 안되던 한희는 직후 영점이 잡혔다.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 메이커 박속닌!~~[[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06885|박석민 인터뷰]]
5월 25일 팀(삼성 라이온즈) 통산 3600번째의 홈런을 기록했다.
[[팩트폭력|펑퍼짐한 몸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민첩한 수비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해설위원 [[이순철]]과 [[허구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히 공수를 가리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 내야의 코어라고 부를 만 했으나 NC 이적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상과 노쇠화가 겹치며 수비는 크게 망가져, 2018년 기준으로는 더이상 수비를 잘 한다고 불러주긴 힘들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 2004 ||<|12> [[삼성 라이온즈]] || 23 || 29 || .103 || 3 || 1 || 0 || 1 || 3 || 2 || 0 || 3 || .188 || .241 ||
- 양일환 . . . . 17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3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3년 ~ 1989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1990년 ~ 1998년)
* [[삼성 라이온즈]] 불펜코치 (2001년 ~ 2004년)
*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2005년 ~ 2008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10년 ~ 2016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대행 (2011년)
'''양일환'''(梁日煥, [[1961년]] [[6월 10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이다. [[1990년]]부터 잠깐의 휴식기였던 [[1999년]] ~ [[2000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코치로 재임 중이다.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입원하여 시즌을 마감한 [[장효조]] 2군 감독을 대신해 후반기 [[한국 야구 퓨처스리그|퓨처스 리그]]를 이끌었다.
[[1983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포지션은 당시에 드문 사이드암 [[투수]]였으며 [[1989년]]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였다. [[양준혁]] 선수의 사촌 형으로 알려져 있다.
|1983 ||rowspan="7"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3.22||32||9||7||1||0||4||0||176 1/3||155||12||74||63||82||63
{{1985년 삼성 라이온즈}}
{{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5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 양씨 (梁)]]
- 권혁 . . . . 16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02~2014)[br][[한화 이글스]] (2015~현재) ||
||<-5><tablealign=right><:>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7번''' ||
[[한화 이글스]]의 [[투수]]. 포철공고 출신이며 2002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만큼 큰 키에 힘이 좋고 투구 동작도 내리찍는 파워풀한 스타일이라 포텐셜을 뒤늦게 폭발시키고, 2002년에 누구나 1차 지명을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구고등학교의 [[윤길현]][* 현 [[롯데 자이언츠]]]을 제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8월 2일 넥센전까지 38경기 11홀드 1블론 ERA 2.70 WHIP 1.33 30이닝 23피안타(1피홈런) 18사사구 15K를 기록 중이다. 뭐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름값과 1억 9천만 원이라는 연봉을 생각하면 기대에 많이 못미친다. 보면 알겠지만, 경기당 1이닝이 안되는 수치로서 이는 당초 기대되던 강력한 셋업맨이 아니라 LOOGY, 즉 [[원 포인트 릴리프]]다.[* 물론 예전과 달리 선발 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6이닝 이상까지 올라갔으며 8회에는 [[안지만|힙합전사]]가, 9회에는 [[오승환|인간투석기]]가 풀가동 중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6~7회의 아웃카운트 4~6개를 [[정현욱]], [[권오준]]과 나눠 소화하게 되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할 변화도 아니다. [[권오준]]만 해도 경기당 1이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LOOGY들에게 가장 금물이라 할 수 있는 '''볼질'''이 심해졌다. 작년만 해도 73K/19BB였고 통산 K/BB도 2를 넘는데 올해는 어째... 물론 [[삼성 라이온즈]]나 국내 야구판에 권혁만한 레프티 릴리버가 있어도 얼마나 더 있겠냐마는, 이전에 비해 좀 안습인건 사실이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7월 24일 경기에서도 등판하였는데, 2이닝동안 전성기 수준의 피칭을 보여 삼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유일하게 맞은 안타 하나가 [[전준우]]의 홈런인 것도 고무적, 그리고 7회초, 메가라이온즈포가 터지며 시즌 2승째를 챙겼다. 팬들은 이러한 활약에 후반기 삼성 불펜의 핵으로 재강림하기를 기대하는 중.
더군다나 2015년 삼성의 계투진에서 [[임창용]], [[안지만]], [[심창민]]을 빼면 제대로 된 투수가 없었기에 아쉬울 따름이다.[* 2016년 8월 현재 이 셋 중 임창용은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논란|도박 사건]]에 연루된 뒤 방출되어 [[KIA 타이거즈|고향팀]]으로 이적하였고, 안지만 역시 도박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불법 도박 싸이트 개설 혐의로 계약해지당하며 셋 중에 심창민만 삼성에 남아있게 되었다.]
이로써 한화는 20인 명단에서 빠져 [[KT 위즈]]로 이적한 [[윤근영]]이라는 좌완 불펜의 누수를 그 이상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로 대체하였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등번호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화 관련 커뮤니티에선 [[한화 이글스|주황색]] [[잉어킹]]이 [[삼성 라이온즈|푸른색]] [[갸라도스]]로 진화했다(...)는 식의 [[http://gall.dcinside.com/hanwhaeagles/5325218|드립]]이 인기를 끌었다.] 좌완 불펜이 부족한 한화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이며, 출장 기회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좌완 투수 조련에 매우 능하며 권혁과 같은 와일드 씽 유형의 불펜자원을 정말 잘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수 본인도 계약을 체결하며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고 싶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오랜 감독 생활 중 처음으로 외부 FA 선수를 선물받은[* FA제도가 시행된 후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구단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외부 FA를 잡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준혁]](LG), [[이진영]](SK) 등 내부 FA를 타팀에 내주는 등 김성근 감독에게 FA는 연이 없었다.] 김성근 감독의 기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5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친정팀을 맞아 불끄러 나왔다가 되려 1이닝 1실점으로 부진하였다.시즌 ERA는 4.70
* 여담으로 대구 팔공산 정상에 올라가면 '[[삼성 라이온즈]] 권혁 파이팅!'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혁이 경기에서 보이지 않던 시절인 것을 보아 2012년 5월 초 쯤으로 추정된다.
* 2015년 시즌 전반기 시점에서 한화의 최고 인기 선수 중 한명. 6월까지 '''중위권'''을 유지해 본게 너무 오랜만(...)인 한화인데[* 근데 [[삼성 라이온즈|원래 있던 팀]]은 오히려 중위권에 위치해있으면 이상한 팀이다(...)--는 [[삼성 라이온즈/2016년|2016년]] 미칠듯한 너프--] 그를 위해 [[박정진]],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과 함께 눈물나는 투혼을 보여준 중간계투의 핵이기 때문이다. 대전 구장에서 권혁의 등판 순간 제일 환호가 커지며, 유니폼도 권혁 마킹이 제일 잘나간다. 4종류 유니폼 권혁 마킹이 죄다 동이 나는바람에 예약까지 받는데, 예약조차 몰려서 대기자도 엄청 많다는 구단 프런트의 얘기가 있을 정도. [[한화 이글스 갤러리]]엔 이미 그의 [[등짝]]에 하악(...)대는 팬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한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불꽃 투혼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한화 이글스 갤러리의 애칭은 '''권따'''. [[야민정음]]이 아니라, 2015년 청주 경기에서 '권혁 따랑해'라는 아재들의 응원 문구가 중계 영상에 잡혔는데, 이 표현이 너무 찰지게 입에 붙은 나머지 권따로 줄여 부른다. 특히 권혁이 불꽃 투구를 펼친 날에는 온갖 [[짤방]]과 [[움짤]]이 올라오고 권따 뒤에 하트를 몇개씩 붙인다(...). ~~다들 그렇게 [[게이]]가 되는거야~~
|| 2002 ||<|13><:>[[삼성 라이온즈|삼성]] || 2 || 4 || 0 || 1 || 0 || 0 || 0.000 || 13.50 || 11 || 2 || 0 || 1 || 6 || 6 || 2.75 ||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 . 15회 일치
[[3월의 라이온]] 에피소드 목록
[[3월의 라이온/119화]]
[[3월의 라이온/120화]]
[[3월의 라이온/121화]]
[[3월의 라이온/122화]]
[[3월의 라이온/123화]]
[[3월의 라이온/124화]]
[[3월의 라이온/125화]]
[[3월의 라이온/126화]]
[[3월의 라이온/127화]]
[[3월의 라이온/128화]]
[[3월의 라이온/129화]]
[[3월의 라이온/130화]]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김시진 . . . . 15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3년 ~ 1988년)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 [[태평양 돌핀스]]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시즌 후 [[김재박]]의 후임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9년]]부터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감독직을 맡아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았으나 2014년 10월 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ref name="ohmynews">[[오마이뉴스]] - 2008년 4월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2861 "최동원 · 선동렬에 가려진 위대한 투수"]</ref>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육군중앙경리단에서 병역을 마치고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입단 첫 해에 17승(14선발승으로 [[장명부]](28선발승)에 이어 선발승 2위)(그 뒤 1986년 16선발승으로 [[선동열]](17선발승)에 이어 선발승 2위)을 올리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6월 15일]] 롯데전(대구)에서 완봉승을 거둔 후<ref>{{뉴스 인용
}}</ref> 순수신인 최초 2완봉승 도달 투수가 됐고 결국 그 해 5완봉승으로 마감했는데(당시 전구단 상대 완봉승) 이 기록은 아직까지 순수신인 최다 완봉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프로 데뷔 이후 5년 만에 [[KBO 리그]]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올렸다. [[1985년]] 25승(21선발승으로 최다 선발승이었는데 전년도(15선발승)에 이어 2년 연속 최다 선발승 1위)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으로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111승을 올렸다.<ref name="ohmynews" />
[[삼성 라이온즈]]에서 거둔 111승은 최다 승리 기록이였으나 2013년 8월 8일 [[배영수]]가 112승을 거두면서 최다승 기록이 경신되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에서는 [[이광환]]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단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감독 취임식을 가졌다.<ref>《한겨레》, 2008, 10, 11.</ref> [[2009년]]에 6위를 기록하였지만, 시즌 후반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시즌 초반에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특히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와 [[강정호]], [[황재균]] 등의 젊은 선수들은 [[이택근]],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의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트레이드 파동]] 때 "트레이드 불가"로 못박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2009년]] [[8월 6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감독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 '29' - [[삼성 라이온즈]] (선수)
|rowspan="6"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1985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키움 히어로즈 감독]][[분류:현대 유니콘스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감독]][[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백정현 . . . . 15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46번}}}'''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29번}}}''' ||
||||<#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29}}}'''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07 ~ 현재) ||
[[삼성 라이온즈]] 소속 좌완 투수.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윤성환|윤태자]]와 함께 명실상부 2017 라이온즈 원투펀치'''
여담으로 유급자의 1차지명 불가 조항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3 시절에 백정현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것으로 인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로 유급했는데 하필이면 발표 시점이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2006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때라 다른 구단에서 유망주 빼돌리기가 아니냐며 태클을 걸었다. 즉 백정현이 유급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음 해에 백정현을 1차지명하지 않겠냐는 뜻. 당시 백정현은 2차지명 1라운드 상위 지명이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결국 회의 끝에 이후로 유급자의 1차지명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백정현은 그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고~~ 십자 인대 파열이라 선수로서 재기가 힘들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에서 백정현을 지명했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진 것으로 평가된다.
인스타를 하고 있는데 여행가며 찍은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는 듯. [[https://www.instagram.com/baek_junghyun/|보러가기]] 그 사진이 굉장히 높은 퀄리티라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선 야구 선수가 안 됐으면 사진작가가 됐을 거란 얘기가 종종 나올 정도. 아예 '백작가'라고 부르며, 그가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이 종종 개념글로 올라온다. 일부는 반농담으로 [[라팍]]에서 백정현이 찍은 사진을 넣은 달력이나 엽서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2007 ||<|12> [[삼성 라이온즈]] || 11 || 4⅔ || 0 || 0 || 0 || 1 || 7.71 || 7 || 3 || 5 ||
|| 2014 || [[삼성 라이온즈]]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 강동우 . . . . 14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8년/신인드래프트|1998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8~2006) [br] [[두산 베어스]] (2006~2007) [br] [[KIA 타이거즈]] (2008) [br] [[한화 이글스]] (2009~2013) ||
||<-5><table 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번''' ||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단국대학교|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야구)|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상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투수)|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이미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 팬들에게 [[강기웅]], [[박충식]]과 함께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가슴에 남는 선수다.[*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까였던 적도 있다.] 강동우와 관련된 신문기사의 리플을 보면 '''[[한화 이글스|한화]] 팬들보다 삼성 팬들의 응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는 간간히 '은퇴식만큼은 삼성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미 [[마해영]]의 사례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절)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백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 1998 ||<|8> [[삼성 라이온즈|삼성]] || 123 || 414 || '''.300''' [br] || 124 || 23 || '''8'''[br](2위) || 10 || 30 || 74 || 22 || 43 || .466 || .355 ||
선수시절 등번호는 20-1-24-31-2-3번 순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1번 라인인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중 한 명. '''불사조같은 선수시절을 보낸 선수.'''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었다. 은근히 1990년대 중후반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저니맨들이 많다. 그의 전임 1번타자였던 [[최익성]]과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신동주(야구)|신동주]] 등.
잘 알려져 있듯이 2015년 전까지 무려 '''17년간''' 마지막 신인 정규타석 3할 타자였으나, 15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 [[구자욱]]이 .349를 기록하면서 갱신되었다. 다만 구자욱의 경우 '''2012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데뷔'''시즌 마지막 3할타자 기록은 아직도 강동우가 가지고 있는 셈. 하지만 2017년 고졸 신인 '''[[이정후]]'''가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하면서 최후의 데뷔시즌 3할타자 타이틀도 물려주게 됐다.[* 여담으로 강동우의 데뷔 시즌인 1998년은 이정후가 태어난 해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북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74년 출생]][[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좌투좌타]][[분류:삼성 라이온즈 은퇴/이적]][[분류:두산 베어스 은퇴/이적]][[KIA 타이거즈 은퇴/이적]][[분류:한화 이글스 은퇴/이적]]
- 서정환 . . . . 14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1982년)
* [[삼성 라이온즈]] 타격 코치 (1996년 ~ 1997년)
*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8년 ~ 1999년)
'''서정환'''(徐定煥, [[1955년]] [[7월 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의 [[유격수]]였다. 현재는 [[KBO (야구)|KBO]]의 대구 감독관이다.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직책 =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삼성 라이온즈|(1998년 ~ 1999년)}}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이수진(치어리더) . . . . 14회 일치
||||<width=250px><#074ca1> {{{#ffffff 타이거 라이온즈 치어리더 }}} ||
||<:> '''소속사''' |||| 놀레벤트[* 삼성 구단의 이벤트 대행사. 이곳 치어리더 팀장이 바로 예전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노숙희.] ||
||<:> '''응원팀''' |||| '''[[타이거라이온즈]]'''(2021~) [br]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2013~2017) ||
프로야구 2013 시즌 중반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치어리더팀인 블루팅커스에 합류해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프로배구 2013-14 시즌부터 2016-17 시즌까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도 치어리더 활동을 했다. 보통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김연정]] 등과 함께 손꼽히는 치어리더.
[[2013 아시아 시리즈]]가 열린 대만 현지에 파견된 삼성 라이온즈의 치어리더 멤버 중 한명이였으며, 현지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2013년 말에, [[TBC]]에서 제작한 '공간다큐 그 안에'의 '라이온즈의 역전드라마 2013 한국시리즈''에서 잠깐 잠깐씩 출연도 하고 인터뷰도 하였다. 한국시리즈 응원이 처음이냐고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엄청 떨린다고 대답하였으며, 이어 "기대도 많이 되고 한 마음으로 응원해서 우승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qEFx8TF21nA|여기]].
2014년 1월 31일에 [[SBS]] 설특집 프로그램, '스타VS국민도전자, 페이스오프'에 치어리더 연합팀[* [[삼성 라이온즈]]의 이수진,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SK 와이번스]]의 오지연, [[LG 트윈스]]의 [[강윤이]].]으로 출연하여 걸그룹 [[걸스데이]]와 댄스 대결을 펼쳤다. [[걸스데이]]는 '[[엄정화]]의 초대', 치어리더 연합팀은 상대편 '[[걸스데이]]의 기대해'와 '[[미쓰에이]]의 허쉬(HUSH)' 춤을 췄다.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영상에 출연했다.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2014년 12월 6일에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치어리더 특집편[* 타이틀은 '야구여신 최강전'][*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기아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의 치어리더들만 출연.]에서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 3인[* [[이연주(치어리더)|이연주]], 이수진, 장혜원.] 중 한 명으로 출연하여, '셰어 로이드의 Swagger Jagger, [[트랜스픽션]]의 Get Show, [[크레용팝]]의 어이(Uh-ee)'에 맞추어 치어리딩을 선보였다.[* 치어리더 네 팀의 단체곡은 '[[타카피]]의 치고 달려라 2014', [[현아(가수)|현아]]의 '빨개요', [[갓세븐]]의 '하지하지마'.]
2014 포스트시즌부터 적용된 [[KBO]] SAFE 캠페인 홍보 영상에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로 출연하였다.[* [[KIA 타이거즈]]의 최미진, [[SK 와이번스]]의 [[배수현]], [[한화 이글스]]의 [[금보아]],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LG 트윈스]]의 [[강윤이]], [[넥센 히어로즈]]의 임경미,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두산 베어스]]의 김다정 치어리더들과 함께 출연함.]
* 9월 1일자 기사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이수진, 레벨 U로 하루 컨디션 Up) [[http://samsungtomorrow.com/NRJ9h|기사 링크]]
* 9월 29일자 기사 ('야구장 여신'의 변함없는 인기 비결은?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이수진과의 데이트) [[http://samsungtomorrow.com/8Tm1q|기사 링크]]
*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다보니 [[한화 이글스]]의 [[김연정]],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과 더불어 야구장을 대표하는 치어리더로 불린다. 그리고 [[1992년|92년]]생으로 가장 어리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위에 서술했던 대로 인기투표에서 3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오오 이수진 오오.
- 김정혁 . . . . 13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2><#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
|| '''프로입단''' || [[2011년]] [[육성선수|신고선수]] 입단 ([[삼성 라이온즈|삼성]]) ||
|| '''소속팀''' ||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2008 ~ 2010)[br][[삼성 라이온즈]] (2011~2017) ||
|| '''프런트''' ||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18~) ||
||<-5><table 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3번'''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절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상기]]와 포지션이 겹쳤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와 [[동국대학교|동국대]]를 졸업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삼성 라이온즈]]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18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으로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94710|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 [[강민호]]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때 친구로, 김정혁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하는 바람에 동기는 아니다. 고교 때의 유급으로 1살 어린 [[배영섭]]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또한 김정혁도 [[배영섭]] 못지 않게 타격폼이 특이하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린다.
|| 2011 ||<|7> [[삼성 라이온즈|삼성]] || 3 || 2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이수민(야구선수) . . . . 13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분류:1995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좌완 투수]] [[분류:좌투좌타]] / [[삼성 라이온즈/선수단]]
||||<#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61}}} ||
||<:> '''프로입단''' || 201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14~현재)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4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1번'''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신인 [[투수]]. 2009년 이후 5년만에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의 대상자이면서, 같은 년도에 [[kt wiz]]에 1차 지명된 [[박세웅(1995)|박세웅]]과 함께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고교 시절 별명은 [[이계인|모팔모]].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프로필상 180cm, 82kg의 투수치고는 다소 작은 체격에,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10이닝 완투 경기 이외에도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선발 투수로 나서서 거의 모든 경기를 책임지며 2013년 5월 21일 당시 7경기에 나서서 평균 139개의 공을 던지는 등 혹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으나, 경기를 마치고 난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지정 병원'''인 세명 병원에서 마사지 및 회복 치료를 받는 등[[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39640|#]], 상원고 및 삼성에서도 관리를 해 주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삼성이 이수민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얼마나 큰 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며, 많은 삼성팬 역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81|지명 이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이수민의 각오를 보고 난 이후 많은 관심과 활약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중이다.--뭐 그래도 불안하면 우리에겐 [[삼성 트레이닝 센터]]가 있잖아?--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상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상원고 감독인 [[박영진(야구)|박영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28230025367&gid=11034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2014||<|4> [[삼성 라이온즈]] || 5 || 7⅓ || 1 || 0 || 0 || 1 || 2.45 || 7 || 11 || 7 ||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채상병 . . . . 13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09년 ~ 2014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배터리코치 (2015년 ~ 현재)
'''채상병'''(蔡尙秉<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79년]] [[12월 1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배터리코치이다.
[[2009년]]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최승환]], [[용덕한]] 등의 팀 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1군에는 몇 경기에만 나와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는 등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5231651142222&ext=na 두산 채상병-SK 채병용, 부상으로 1군 엔트리 말소] - 마이데일리</ref> 때마침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 [[현재윤]] 등이 잇따라 부상을 입으면서 남아 있는 포수는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신고선수 출신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뿐이라 [[포수]] 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에 놓이자,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상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60125 두산, 삼성 좌완 지승민 영입] 《Osen》, 2009년 7월 16일 작성</ref> 하지만 [[2010년]]에는 [[진갑용]]과 [[현재윤]]의 회복, 그리고 [[이정식 (야구 선수)|이정식]]이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2군으로 밀렸다. [[2011년]]에 포수들이 대거 부상을 입어 주전 자리에 다시 앉게 되어 감각을 찾았고,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그러나 2012년 이후 부터 경쟁에서 밀리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4 시즌 후 구단과의 합의 끝에 은퇴를 결정하였고, 배터리 코치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2009]]|| rowspan="6" style="text-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삼성]]||.192||49||104||8||20||3||0||2||29||9||0||0||4||0||17||2||2
{{삼성 라이온즈 명단}}
{{2011년 삼성 라이온즈}}
{{2011년 삼성 라이온즈 아시아 시리즈}}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효제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평강 채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채흥 . . . . 13회 일치
[include(틀:삼성 라이온즈/간략(투수))]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19번}}}''' ||
||<-5><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56번}}}''' ||
||||<#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56}}}''' ||
||<:> '''프로 입단''' ||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2018년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18~ ) ||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2018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계약금 3억 5천만원[* 역대 삼성 신인선수 중 2001년 [[이정호]](5억 300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계약금이다. 원래는 박한이가 2위였으나 밀어냈다.], 연봉 2700만원의 조건으로 1차 지명을 받았고 2018 시즌부터는 삼성에서 뛰게 된다.
10월 3일 대구에서 열린 기아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양창섭]]이 피안타가 늘어나면서 3이닝만에 강판되고, 4회부터 중간계투로 올라왔다. 이미 3회말이 끝난 시점에 5:3으로 경기가 역전된 상황에서 올라왔기에 잘만 던진다면 승리를 추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는 2이닝 3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였다. 팀은 작년의 [[삼성 라이온즈/2017년/6월/29일|629 대첩]]을 완벽하게 복수하는 '''20:5'''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이기면서 시즌 3승을 기록했다.
5선발 경쟁을 한 셈인 [[최충연]]은 2경기 만에 실패로 돌아갔고 4월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KIA 타이거즈]] 홈경기에 출전해 4이닝 93투구수 (S:52, B:41) 7피안타 2사사구 3삼진 2실점 1자책을 기록하였다.
|| 2018 || [[삼성 라이온즈|삼성]] || 8 || 28 || 4 || 1 || 0 || 0 || 0.800 || 3.21 || 30 || 5 || 9 || 25 || 11 || 10 || 1.36 ||
최채흥이라는 이름이 어려워서인지 가끔씩 최재흥이라고 잘못된 표기가 된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서는 때때흥이라고 한다~~ ~~[[최채박]]과는 관련이 없다 카더라~~
- 강기웅 . . . . 12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1차 3순위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9년 ~ 1996년)
* [[삼성 라이온즈]] 타격코치 (2011년 ~ 2012년)
*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타격코치 (2013년 ~ 2014년)
* [[삼성 라이온즈]] BBArk 타격코치 (2015년 ~ 현재)
'''강기웅'''(姜起雄, [[1964년]] [[2월 2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BBArk 타격코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89 ||rowspan="8"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322 ||95 ||351 ||48 ||113 ||12 ||4 ||1 ||136 ||33 ||26 ||6 ||17 ||3 ||34 ||2 ||6 ||2루수 골든글러브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
- 구자욱 . . . . 12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2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2년 ~ 현재)
'''구자욱'''(具滋昱<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2월 1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이승엽]]이 '포스트 [[이승엽]]'으로 지목한 선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초기에는 주로 2군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시즌 후 곧바로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요청이 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태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고 3루수 연습도 했다. 포지션은 주로 1루수, 3루수, 좌익수이다. 0.357의 타율로 남부리그 타율 1위를 했다.
==[[삼성 라이온즈]] 복귀==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2015 ||rowspan="3"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349 ||116 ||410 ||97 ||143 ||33 ||5 ||11 ||219 ||57 ||17 ||7 ||45 ||6 ||79 ||3 ||13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박승호 (야구인) . . . . 1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3년 ~ 1992년)
* [[삼성 라이온즈]] 타격 코치 (1993년 ~ 1999년)
'''박승호'''(朴承昊, [[1958년]] [[2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자, 전 [[NC 다이노스]]의 1군 타격코치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한국 프로 야구 2010 시즌 7월, 올스타전]]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에서 치뤄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박승호가 레전드 [[지명타자]]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고전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ref>엑스포츠 뉴스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489 "이만수, 김성래… 삼성 레전드 등장에 대구 야구 팬 열광"]</ref>
|1983 ||rowspan="11"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237 ||88 ||241 ||26 ||57 ||9 ||0 ||7 ||87 ||39 ||0 ||3 ||26 ||9 ||29 ||4 ||3 ||
{{1985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
- 서영무 . . . . 11회 일치
'''서영무'''(徐永武, [[1934년]] [[5월 18일]] ~ [[1987년]] [[5월 26일]])은 전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당시에는 전·후기 리그로 연간 리그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전기리그는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후기리그는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우승하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은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2번째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겼으나 이후 내리 게임을 내주면서 4승 1무 1패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3년]]에는 조감독으로 영입된 [[재일 한국인]] 출신 [[이충남]]과의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생일을 일 주일 지난 그 해 [[5월 25일]]에 감독직에서 전격 사임하고 팀을 떠났다.
삼성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구에 1급 차량 정비공장을 차려 운영하였다. [[1984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은 조건으로 스카웃하여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게 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는 이에 맞서 그 해 [[4월 13일]] 서영무를 자문역 역할인 관리 이사로 영입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을 맡기기도 하였다.
[[경북고등학교|경북고]] 출신의 명 선수인 [[이선희 (야구인)|이선희]], [[황규봉]], [[배대웅]], [[조창수]], [[임신근]], [[강문길]] 등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에 '''대구 야구의 대부'''라고 불리며, 엄격한 훈련과 함께 선수들의 책임과 품위를 철저히 강조한 감독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99354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⑩‘대부’의 쓸쓸한 퇴장, 원년 감독 서영무] - 매일신문</ref>
|직책 =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삼성 라이온즈|(1982년 ~ 1983년)}}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태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이영수 (야구인) . . . . 11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2년 ~ 2013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8년)
* [[삼성 라이온즈]] 타격코치 (2018년 ~ 현재)
'''이영수'''(李永守<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1년]] [[5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방출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상무 야구단]]에서 타격코치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활동했다.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광산 이씨]]
- 이정호 (1982년) . . . . 11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마지막 경기 = [[KBO (단체)|KBO]] / [[2010년 한국프로야구|2010년]] [[5월 14일]] <br /> [[목동야구장|목동]]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구원 투수|구원]] <br /> (3이닝 1홀드)
* [[삼성 라이온즈]] (2001년 ~ 2004년)
'''이정호'''(李正鎬<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2년]] [[4월 27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현재는 [[대구고등학교]]의 투수코치이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이 끝나고 그 해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된 [[박진만]]과 [[심정수]]를 잡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정호가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그는 고향 팀을 떠나게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2545786 히어로즈 이정호 힘찬 부활의 날갯짓] - 뉴시스</ref> 현대에 이적한 후에도 병역을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 등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와 재활을 병행하여 현대에서의 활동은 없었다.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영]]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반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상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상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상태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2001 ||rowspan="3"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4.66||8||0||0||0||0||1||0||0.000||45||9 2/3||8||0||10||1||2||5||5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
- 황두성 . . . . 11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2차 3순위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97년 ~ 1998년)
* [[삼성 라이온즈]] 트레이닝 코치 (2012년 ~ 2013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 코치 (2015년 ~ 현재)
'''황두성'''(黃斗聖, [[1976년]] [[11월 16일]] ~ )은 전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트레이닝 코치이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97년]] [[포수]]로 [[삼성 라이온즈|삼성]]에 입단했다가 시력이 좋지 않아 당시 [[장호연]] 코치의 제안으로 [[투수]]로 전향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712347 황두성, "장례식장에서 받은 방출 통보 서러웠다"] - 아시아경제</ref> 그러나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1999년]]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에 3:1 현금 트레이드([[양준혁]]·[[곽채진]]·황두성↔[[임창용]])되었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300034 황두성-이재우, '늦깎이의 성공시대' 열 것인가] 《Osen》 2008년 12월 30일</ref>
[[2009년]] 시즌에는 처음에 마무리 [[투수]]로 보직으로 활동하다가 구위 난조로 잠시 2군에 잠시 갔었다. 그 후 시즌 중반에 선발 보직으로 활약하여 3.51 방어율에 40게임 등판, 8승 3패 9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하고 있다가 재활에 실패했고 무릎 부상까지 겹쳐 1군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1년]] [[11월 25일]]에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방출되자마자 곧 은퇴하고 자신이 처음 지명받았던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코치로 옮겼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1316335552729 황두성, 삼성에서 지도자로 변신…잔류군 코치 계약] - 아시아경제</ref>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하였다.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김인철 . . . . 10회 일치
|| '''선수 경력''' || [[삼성 라이온즈]](1990~2001) [br] [[롯데 자이언츠]](2002) [br] [[KIA 타이거즈]](2002~2004) [br] [[한화 이글스]](2005~2007) ||
||<-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7번(1990~1994)''' ||
||<-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3번(1995~2001)'''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이자 2017년 11월 현재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 등번호는 67번(1991~1994) - 13번(삼성) - 40번(KIA, 한화)
* 현역 시절에는 항상 익살스러운 행동이 주특기. 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삼성 라이온즈|삼성]] 시절 '''삭발을 한 적이 있다.''' 우승경력은 없으며 [[1993년]], [[2001년]], [[2006년]] 준우승으로 [[콩라인]] 가입.
*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71년생 동갑내기이자 2017년 현재 삼성 감독을 맡고 있는 [[김한수]]와도 얼굴형이 조금 닮은 편이다.
*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포항 출신이나, 선수 생활 마지막 3년을 보내게 해 준 구단, 선수를 그만 둔 뒤에도 원정 젼력분석원으로 불러 준 구단 또한 한화이기에 본인 또한 한화 구단의 연고지인 대전, 충청 지역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 1990 ||<|8> [[삼성 라이온즈]] || 3 || 3⅓ || 0 || 0 || 0 || 0.00 || 2 || 1 || 1 ||
|| 2000 ||<|2> [[삼성 라이온즈]] || 43 || 87 || .218 || 19 || 1 || 2 || 3 || 13 || 20 || 5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출생]][[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삼성 라이온즈]][[분류:KIA 타이거즈]][[분류:한화 이글스]]
- 배영수 . . . . 10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2000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2000~2014)'''[br][[한화 이글스]] (2015~) ||
||<tablealign=right><-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LG 트윈스|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상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 2000 ||<|15><:> [[삼성 라이온즈|삼성]] || 25 || 45⅓ || 0 || 2 || 0 || 0 || 0.000 || 6.75 || 59 || 9 || 24 || 32 || 36 || 34 || 1.77 ||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임현준 . . . . 10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1년 ~ 현재)
'''임현준'''(林玄埈, [[1988년]] [[12월 21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KBO (야구)|KBO]]에서 정말 희귀한 좌완 언더핸드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2011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KIA]]와의 개막전에서 데뷔 첫 구원 등판하여 첫 구원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20266 '채태인 역전 만루포' 삼성 첫 승…KIA, 개막전 7연패] 《OSEN》</ref>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11 ||rowspan="5" style="text-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삼성]]||3.12 ||29 ||0 ||0 ||2 ||0 ||0 ||2 ||1.000 ||80 ||17.1 ||20 ||1 ||12 ||0 ||9 ||8 ||6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최충연 . . . . 10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6년 ~ 현재)
'''최충연'''([[1997년]] [[3월 5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6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그러나 2016 시즌을 앞두고 옆구리 부상으로 재활군에 머물렀고, [[2016년]] [[8월 25일]]이 되어서야 1군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2017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백정현]]이 타구에 맞아 5회를 다 막지 못하고 강판되자 그가 구원 등판해서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602000278 ‘최충연 프로 데뷔 첫승’ 삼성 라이온즈 3연승 질주... 김상수 3안타2타점] - 뉴스핌</ref>
|2016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삼성]]||12.91 ||3 ||0 ||0 ||0 ||2 ||0 ||0 ||0.000 ||45 ||7.2 ||11 ||2 ||11 ||0 ||6 ||11 ||11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김상엽 (야구인) . . . . 9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9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9년 ~ 1999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3년]] 시즌 170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올랐으며, [[김시진]]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로 기록한 탈삼진 1위였다. [[1995년]]에는 17승을 거둬 199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대적으로 투수진이 열악하였던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의 특성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했으며, 어깨 및 허리 부상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1999년]] 12월 [[삼성 라이온즈]]가 [[LG 트윈스]] [[포수]] [[김동수 (야구인)|김동수]]를 FA로 영입하면서 보상 선수로 [[LG 트윈스]]로 이적하였으나 부상이 지속되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2경기 동안 6.2이닝, 2패만 기록한 후 [[2001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78승 5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홀수 해에 성적이 좋고 짝수 해에는 성적이 부진한 징크스가 있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영남대학교]] [[권영호]]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투수]]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77 오릭스 김상엽 코치 “박찬호야말로 진정한 위너다”] - 이영미 칼럼</ref>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1989 ||rowspan="10"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4.40 ||24 ||0 ||0 ||2 ||5 ||0 ||0 ||0.286 ||280 ||57 1/3 ||58 ||3 ||57 ||2 ||31 ||37 ||28 ||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백상원 . . . . 9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0년]]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0년 ~ 현재)
'''백상원'''(白相元, [[1988년]] [[1월 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13 ||rowspan="5"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500 ||5 ||4 ||1 ||2 ||1 ||0 ||0 ||3 ||1 ||0 ||0 ||0 ||0 ||1 ||0 ||0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우동균 . . . . 9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8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08년 ~ 2017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절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08 ||rowspan="8"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225 ||63 ||138 ||21 ||31 ||9 ||2 ||2 ||50 ||19 ||2 ||3 ||22 ||1 ||41 ||0 ||0
{{2013년 삼성 라이온즈}}
{{2014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황병일(1960) . . . . 9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3~1985) [br] [[빙그레 이글스]] (1986~1990) ||
|| '''지도자''' ||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1990~2002) [br]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br]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 [br]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8~2009) [br]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br]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br]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br]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br] [[kt wiz]] 2군 감독 (2015) [br]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 [br]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1983 ~ 1985)'''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2012)''' ||
전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전 [[kt 위즈]] 1군 수석코치.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 무엇보다도 [[김상현(1980)|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 때 황붕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야구)|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
===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
||1983||<|3><:>[[삼성 라이온즈]] || 39 || 64 || .250 || 16 || 6 || 2 || 0 || 12 || 8 || 0 || 3 ||
- 3월의 라이온/119화 . . . . 8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18화]] |||| '''3월의 라이온/119화''' |||| [[3월의 라이온/120화]] ||
[[3월의 라이온]] 119화. '''사츠마편 3'''
* [["3월의 라이온/118화"지난 회]]에서 그렇게 숨기려고 애썼던 불륜 문제는 결국 들통난 모양이다.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김동호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4월 1일]] <br />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 [[삼성 라이온즈]] (2015년 ~ 현재)
'''김동호'''(金東昊<ref> 한국야구위원회, 2015 가이드북 </ref>, [[1985년]] [[9월 10일]] ~ )는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6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삼성]]||7.64 ||33 ||0 ||0 ||0 ||1 ||0 ||2 ||0.000 ||154 ||33 ||46 ||5 ||14 ||3 ||21 ||28 ||28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
- 류명선(야구선수) . . . . 8회 일치
||<:> '''프로입단''' || 1988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89~1995) [br] [[쌍방울 레이더스]](1995~1996)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1989~1995)'''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 투수진을 지켰던 투수.
삼성 라이온즈 최초로 데뷔전 선발승을 기록한 선수이다.
|| 1989 ||<|6> [[삼성 라이온즈]] || 34 || '''170⅔''' [br] (10위) || '''14''' [br] (7위) || 8 || 1 || 3.85 || 152 || 93 || '''102''' [br] (7위) ||
|| 1995 || [[삼성 라이온즈|삼성]] /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 25 || 58 || 1 || 4 || 0 || 6.36 || 71 || 37 || 34 ||
|| 1993 || [[삼성 라이온즈]] || 1 || 2 || .000 || 0 || 0 || 0 || 0 || 0 || 0 || 0 ||
- 박근영 (야구인) . . . . 8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18순위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97년)
'''박근영'''(朴根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3년]] [[8월 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소속 [[심판 (스포츠)|심판]]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6년]]에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8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고작 1군 3경기에 그쳐 거의 2군에서만 머무르다가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1998년]]부터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2015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9회초 2사 3루 한화 이글스의 공격 상황에서 타자 [[김회성]]이 친 3루 땅볼을 3루수 [[박석민]]이 잡아 홈으로 송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자 [[강경학]]의 발이 홈을 먼저 태그했음에도 아웃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015년]] [[5월 31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말 2사 1루, 3루의 [[LG 트윈스]] 공격 상황에서 4번 타자 [[잭 한나한]]이 3볼 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헛스윙을 하지 않은 것을 스윙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백승민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10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6월 21일]]<br>[[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 [[삼성 라이온즈]] (2014년 ~ 현재)
'''백승민'''(白承珉, [[1990년]] [[7월 9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이상목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0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90년 ~ 1993년)
* [[삼성 라이온즈]] (2008년)
'''이상목'''(李相睦, [[1971년]] [[4월 2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대표적인 [[포크볼]] 투수이며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지만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3년]] 시즌 중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빙그레에 이적한 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였고 시속 140km대의 직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많은 승수를 얻었으며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했다. [[2003년]]에 15승 7패를 기록하여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6년]]을 제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2007년]]에 방출되었으며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목동 경기에서 승리,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승리였다. [[2008년]] 10월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정성룡(야구선수) . . . . 8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4년/신인드래프트|198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84~1992) [br] [[해태 타이거즈]](1993~1995)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1984)'''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1985~1986)'''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4번(1987~1988)'''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1989~1992)''' ||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골키퍼 [[정성룡]]과 이름이 같다.[* '''한자까지''' 똑같다., 심지어 출신고교도 같다!]~~
||1984||<|9><:>[[삼성 라이온즈]] || 21 || 33 || .273 || 9 || 0 || 0 || 0 || 2 || 3 || 0 ||
- 최원제 . . . . 8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2차 1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08년 ~ 현재)
'''최원제'''(崔元濟<ref> 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 </ref>, [[1989년]] [[2월 4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08 ||rowspan="4" style="text-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삼성]]||21.00 ||3 ||0 ||0 ||0 ||0 ||0 ||0 ||- ||19 ||3 ||8 ||1 ||2 ||0 ||2 ||7 ||7
|2008 ||rowspan="4"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현재윤 . . . . 8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5차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02년 ~ 2012년)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 입단 대신 [[성균관대학교]](1998학번)에 입학한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2004년 한국 프로 야구 병역 비리 사건|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였고 [[2007년]] 소속 팀인 삼성으로 복귀했다.
[[2012년]]에는 백업 경쟁자인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에게 완벽히 밀리며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그 해 [[1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간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이는 양 구단 간 최초의 트레이드이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수유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연주 현씨]]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19화]] |||| '''3월의 라이온/120화''' |||| [[3월의 라이온/121화]] ||
[[3월의 라이온]] 120화. '''사츠마편 4'''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1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0화]] |||| '''3월의 라이온/121화''' |||| [[3월의 라이온/122화]] ||
[[3월의 라이온]] 121화. '''등롱이 빛나는 길'''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1화]] |||| '''3월의 라이온/122화''' |||| [[3월의 라이온/123화]] ||
[[3월의 라이온]] 122화. '''등롱이 빛나는 길 2'''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2화]] |||| '''3월의 라이온/123화''' |||| [[3월의 라이온/124화]] ||
[[3월의 라이온]] 123화. '''등롱이 빛나는 길 3'''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3화]] |||| '''3월의 라이온/124화''' |||| [[3월의 라이온/125화]] ||
[[3월의 라이온]] 124화. '''등롱이 빛나는 길 4'''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4화]] |||| '''3월의 라이온/125화''' |||| [[3월의 라이온/126화]] ||
[[3월의 라이온]] 125화. '''등롱이 빛나는 길 5'''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5화]] |||| '''3월의 라이온/126화''' |||| [[3월의 라이온/127화]] ||
[[3월의 라이온]] 126화.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6화]] |||| '''3월의 라이온/127화''' |||| [[3월의 라이온/128화]] ||
[[3월의 라이온]] 127화.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7화]] |||| '''3월의 라이온/128화''' |||| [[3월의 라이온/129화]] ||
[[3월의 라이온]] 128화. '''긴자'''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7회 일치
||||||||||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 [[3월의 라이온/128화]] |||| '''3월의 라이온/129화''' |||| [[3월의 라이온/130화]] ||
[[3월의 라이온]] 129화. '''바람의 2만 마일'''
[[분류:3월의 라이온]] [[분류: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 강영식 . . . . 7회 일치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2000) [br] [[삼성 라이온즈]] (2001~2006) [br] [[롯데 자이언츠]] (2007~2017)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7번(2001)'''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6번(2002~2006)''' ||
===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시절 ===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KS 우승이자, 드라마틱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 투수가 바로 강영식이다. 삼성에서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투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9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4로 앞선 9회 1아웃에서 [[박한이]]와 [[박찬도]]를 유격수 땅볼과 좌익수 플라이로 아웃시켜 2013년 4월 19일 이후 2년 4개월만에 [[세이브(야구)|세이브]]를 기록하였다.
|| 2001 ||<|6> [[삼성 라이온즈]] || 7 || 4⅔ || 0 || 0 || 0 || 0 || 0.000 || 0.00 || 6 || 0 || 3 || 1 || 2 || 1.93 ||
- 김민수 (1991년) . . . . 7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5년 ~ 현재)
'''김민수'''(金珉秀<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91년]] [[3월 2일]] ~ )는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7 ||rowspan="1"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143 ||13 ||21 ||2 ||3 ||1 ||0 ||0 ||4 ||3 ||0 ||0 ||1 ||0 ||8 ||0 ||1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박세웅(1996) . . . . 7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삼성 라이온즈/선수단]]
||||<#074CA1><tablealign=left><:>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 ||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15~2017) [br] [[삼성 라이온즈]] (2018~)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6번''' ||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좌완 투수.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2017년 11월 22일에 열린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박세웅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롯데 팬들이 깜짝 놀랐다고.
- 박재현 (야구인) . . . . 7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수비코치 (2017년)
* [[삼성 라이온즈]] 주루코치 (2018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1루 주루코치 (2018년 ~ 현재)
'''박재현'''(朴宰賢<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4년]] [[2월 8일]] ~ )은 전 [[한국 실업 야구]]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1루 주루코치이다.
[[경상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계명대학교]] 등 야구부 코치를 거쳐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삼성 라이온즈 명단}}
- 홍정우 . . . . 7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2차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5년 ~ 현재)
'''홍정우'''(洪正雨, [[1996년]] [[3월 16일]] ~ )는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김동재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3년 ~ 1988년)
* [[삼성 라이온즈]] 수비코치(1996년 ~ 2001년)
'''김동재'''(金東再, [[1960년]] [[10월 31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였다.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의 코치를 지냈으며,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재직하던 중 [[2010년]] [[6월 21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 경기를 마치고 난 후 자택에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치료 중이다.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이영욱 (1980년) . . . . 6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5년]] [[4월 16일]]<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 [[삼성 라이온즈]] (2014년)
'''이영욱'''(李永旭, [[1980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현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부 감독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3년]] [[11월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로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하였으나, 2군에서 2패 1홀드, 9점대 평균자책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종료 직전에 방출됐다.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전상렬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92년 ~ 1996년)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1992 ||rowspan="4"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111 ||9 ||9 ||2 ||1 ||0 ||0 ||0 ||1 ||0 ||2 ||0 ||0 ||0 ||1 ||0 ||1
{{삼성 라이온즈}}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정광운 . . . . 6회 일치
|소속 구단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6년 ~ 현재)
'''정광운'''(鄭光雲<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91년]] [[4월 21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 정홍준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2년]] 6차 9라운드([[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06년 ~ 2010년)
'''정홍준'''(鄭弘俊, [[1983년]] [[5월 25일]]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6년]] 2승 1패 평균자책 2.92로 나름 준수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에 다시 1군에 올라와 등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 방출됐다.
|2006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2.92 ||24 ||2 ||1 ||0 ||52 1/3 ||44 ||34 ||40 ||17 ||17||
[[분류:KT 위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조현근 . . . . 6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2006년 ~ 2016년)
'''조현근'''(趙賢根<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5년]] [[11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하며, [[2005년]]에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홀드를 기록했다. [[2006년]] [[7월 12일]] [[두산 베어스]]에서 [[김덕윤]]<ref>[[2008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 을 상대로 1:1로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고 [[2007년]]에 첫 승을 기록했다.
== [[삼성 라이온즈]] 복귀 ==
{{2013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평양 조씨]][[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한경 . . . . 6회 일치
||<:> '''프로입단''' || 1993년 삼성 라이온즈 고졸연고지명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93~1999) [br] [[LG 트윈스]](2000)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5번(1993~1995)'''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9번(1996~1999)'''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에서 활동했다. 1993년 삼성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로 침체기였던 때에 홀연히 등장했다 사라진 비운의 투수. 별명은 '그라운드의 흑곰', '제2의 [[김상엽|만딩고]]'. 특히 만딩고라는 별명을 가졌던 팀 선배 [[김상엽]]과는 까무잡잡했던 얼굴과 속구를 던지던 것 때문에 많이 매치가 되곤 했었다.
||1993||<|4><:>[[삼성 라이온즈]] || 12 || 15⅔ || 0 || 0 || 0 || 2.87 || 12 || 6 || 16 ||
- 허규옥 . . . . 6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1982년 ~ 1988년)
* [[삼성 라이온즈]] (1991년 ~ 1992년)
'''허규옥'''(許奎沃, [[1956년]] [[8월 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이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김해 허씨]]
- 홍승규 . . . . 6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5순위([[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83년 ~ 1990년)
'''홍승규'''(洪勝奎<ref>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42800209205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4-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0174&publishType=00020 "라이온즈 1번타자 자리놓고 張泰洙·洪勝奎 각축"] 동아일보. 1987년 4월 28일.</ref>, [[1960년]] [[6월 2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현재는 대구MBC의 라디오 야구 중계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김준희 (1960년) . . . . 5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1985년 ~ 1987년)
'''김준희'''(金濬禧<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15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1-15&officeId=00032&pageNo=8&printNo=11733&publishType=00020 "겨울放學 프로野球 場外훈련"] 경향신문. 1983년 11월 15일.</ref>, [[1960년]] [[5월 16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이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지훈(1993) . . . . 5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드래프트 3라운드]]([[삼성 라이온즈|삼성]])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12 ~ 2015[*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2013년까지.])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0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4번''' ||
前 [[삼성 라이온즈]] 소속 [[투수]].
- 오대석 . . . . 5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2~1989) [br] [[롯데 자이언츠]] (1990~1991) ||
|| '''오대석'''([[삼성 라이온즈]]) || → || [[김재박]]([[MBC 청룡]])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등번호는 삼성에서 16번.[* 많은 사람들이 16번하면 김원형, 김종국, 박정태를 떠올리게 하지만 원조 16번이었던 오대석도 무시할 수 없다.], 롯데에서는 6번을 달았다.
|| 1982 ||<|7> [[삼성 라이온즈]] || 72 || 258 || .283 || 73 || 15 || 1 || 4 || 30 || 48 || 14 ||
- 이강돈 . . . . 5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br]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지명권 양도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
|| [[이광은]]([[MBC 청룡]]) [br]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br]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 → ||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 → || [[김일권]]([[태평양 돌핀스]])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 → ||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br]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br]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 → ||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br] [[이정훈(1963년생)|이정훈]]([[빙그레 이글스]]) [br]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
당시 드래프트 제도상 대구 지역의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선권을 가졌는데, 여기서 삼성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지명해 놓고서는 이강돈에게 먼저 군대를 갔다 오면 입단시켜 주겠다고 한 것. 다른 선수에게는 관대하게 입단 조건을 걸고서, 유독 자신만 군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화가 난 이강돈은 전격적으로 빙그레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의 질서를 해치는 이 행동은 '''그냥 넘어갔다.'''[* 그렇긴 한데, MLB에서 [[스캇 보라스]]의 유명세를 알린 loop hole FA사건 원인이 드래프트 지명 후 15일 안에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의무 불이행이므로 계약 무효를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서인 만큼, 삼성 측이 계약하지 않고 군입대를 제안한 것이 의무 불이행으로 해석될 가능성 때문에 법적 공방 들어가도 이강돈에게 승산이 있는 사안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이 사건의 전말은 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개되었는데, 군대부터 다녀오라는 [[삼성 라이온즈]]의 요구를 거부한 이강돈이 다른 팀으로 보내 주기를 희망했고 놀랍게도 [[삼성 라이온즈]]가 신생 팀에 대한 예우 차원인지 [[빙그레 이글스]]에 조건 없이 지명권을 양도하여 보내 주는 [[대인배]]스러운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강돈뿐만 아니라 중장거리형 1루수 [[강정길]]도 삼성의 지명권 양도로 빙그레에 입단했다.
- 이상훈 (1987년) . . . . 5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2013년 ~ 2017년)
2010년에 입단하였다. [[2013년]] [[3월 1일]] [[투수]] [[길태곤]]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3 ||rowspan="4"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0.357 ||15 ||28 ||7 ||10 ||1 ||0 ||2 ||17 ||2 ||0 ||0 ||3 ||3 ||6 ||1 ||0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 이정훈 (1963년) . . . . 5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1995년 ~ 1996년)
'''이정훈'''(李正勳, [[1963년]] [[8월 28일]] ~ )은 前 [[KBO 리그]]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외야수이자,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 팀장이다.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신인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내야수]] [[강기웅]]과 [[류중일]]을 1차 지명해, 연고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신인 첫 해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냈고,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삼성 라이온즈|삼성]]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정진호(1956) . . . . 5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83~1986) [br]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1987~1990) ||
||<-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번(1983~1986)''' ||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 1983 ||<|4> [[삼성 라이온즈]] || 41 || 65 || .215 || 14 || 3 || 0 || 1 || 6 || 6 || 2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야구감독]][[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56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삼성 라이온즈]]
- 최태원 (야구인) . . . . 5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3년]] [[4월 10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3년]] [[10월 5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된 [[2루수]] [[정경배]]에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끈질기게 이어오던 연속 경기 출장 기록도 당시 [[SK 와이번스]] 초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야구인)|강병철]]에 의해 [[2002년]] [[9월 10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을 결장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 후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시절의 은사인 [[조범현]]의 감독 부임 이후 재기를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주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3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3년]] [[10월 5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삼성 라이온즈|삼성]]
- 홍효의 . . . . 5회 일치
|| 프로입단 || 2010년 삼성 라이온즈 신고선수 입단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2010~2013)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5번(2010)'''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0번(2013)''' ||
前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투수]].
- 황성관 . . . . 5회 일치
|프로 입단 연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1997년~2001년)
'''황성관'''(黃成寬,[[1974년]] [[1월 15일]] ~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 황수범 . . . . 5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2011년 ~ 2018년)
'''황수범'''(黃守凡<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6년]] [[11월 17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7 ||rowspan="2" style="text-align:center;" |[[삼성 라이온즈|삼성]]||8.04 ||10 ||0 ||0 ||1 ||2 ||0 ||0 ||0.333 ||155 ||31.1 ||45 ||7 ||19 ||2 ||26 ||34 ||28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황씨]][[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김근석 . . . . 4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1983년 ~ 1986년)
'''김근석'''(金瑾錫<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60200209208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6-02&officeId=00020&pageNo=8&printNo=18664&publishType=00020 "金瑾錫 4게임 연속홈런"] 동아일보. 1982년 6월 2일.</ref>, [[1960년]] [[6월 18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이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청보 핀토스 선수]][[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박화랑 . . . . 4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2010년 ~ 2015년)
'''박화랑'''(朴華郞<ref>[http://www.cyworld.com/phr0618 박화랑 싸이월드 미니홈피]</ref>, [[1991년]] [[6월 18일]] ~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이다.
{{삼성 라이온즈 명단}}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손형준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10라운드]]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 (2012년 ~ 2016년)
'''손형준'''(孫亨埈<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9년]] [[7월 1일]] ~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4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0년]] 고졸우선지명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1990년 ~ 1999년)
1990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주로 중간 계투로 뛰었다.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포수 [[진갑용]]을 상대로 현금 4억원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408061|제목=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날짜=1999-07-31|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에 70경기 동안 133.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0패 2세이브 6홀드와 93탈삼진 평균자책점 3.91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지만 2003년 기량 하락으로 방출되었다. 이후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만 단 2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진동한 . . . . 4회 일치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4~1989) [br] [[쌍방울 레이더스]] (1990~1992)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3번(1984~1989)'''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언더핸드 투수로 [[양일환]] - '''[[이태일]] - [[박충식]]'''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잠수함 투수 중 하나.
||1984||<|6><:>[[삼성 라이온즈]] || 2 || 5 || 0 || 0 || 0 || 1.80 || 1 || 5 || 0 ||
- 류영수 . . . . 3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1989년)
*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 (1990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1991년)
- 배슬기(배우) . . . . 3회 일치
* [[아이온]] 폐인인 것이 유명하다(...). pc방에서 아이온을 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한때 레기온 정모까지 참석해서 찍은 사진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레기온 이름이 '''슬기로운 생활'''이고 배슬기 본인이 군단장이었다고 한다. 아이온 캐릭터명은 o배슬배슬o. 캐릭터 자체도 서버에서 꽤나 유명한 수준이라고.
- 슈가(방탄소년단) . . . . 3회 일치
* 대구 출신이라 그런지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다. 트위터 등에 올라오는 작업실 사진을 보면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 또한 '수혈 받기엔 좀 힘들어 몸 속의 파란 피' 등의 가사로 삼성 라이온즈의 팬임을 인증했다.
- 3월의 라이온 . . . . 2회 일치
[[3월의 라이온/에피소드]]
[[분류:3월의 라이온]]
- 강정길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5년]] 1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지냈다.
- 김성민 (1994년) . . . . 2회 일치
[[2017년]] [[4월 2일]] [[kt 위즈]]와의 개막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구원 투수로 첫 등판을 하였고 [[4월 1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5월 18일]]에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김택형]]과의 1:1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이에 관해 [[고형욱]] 단장은 이전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고 밝히면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컨디션과 실전 감각이 대학 시절만큼 회복된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01214 <nowiki>[배지헌의 브러시백]</nowiki> 넥센은 왜 김택형 대신 김성민을 택했나], 《엠스플뉴스》, 2017년 5월 18일.</ref> [[2017년]] [[5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7년]] [[7월 2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고, 6회에도 올라왔으나 경기가 강우 콜드로 끝나면서 완투승으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1.kr/articles/?3036995 '김성민 데뷔 첫 승' 넥센, kt에 6회 강우콜드 승리] 《뉴스1》, 2017년 7월 2일.</ref>
- 김일엽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드래프트 순위 =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고졸우선지명<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7260007 해외파들, 어떤 절차로 한국 팀에 입단했나?] - OSEN</ref> 을 받았으나 [[단국대학교]] (1998학번)에 진학했고 [[투수]] [[이승학]]과 함께 [[2001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1년]] 외에는 제대로 뛰지 못했고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2003년]] 5월에 방출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89169 김일엽 메이저 리그 꿈과 좌절] - 한국일보</ref>
- 박화요비 . . . . 2회 일치
|| '''소속사''' ||<(> 음악권력[* 신촌뮤직과 S&b Ent, [[라이온미디어]], 호기심스튜디오레이블,주니힐 엔터테인먼트를 거쳤다] ||
한동안 고정출연한 예능 출연은 없다가 2013년 2월 22일,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의 출연자로 참가했다. 평소 요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던 터라 팬들의 이목 집중. 발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나오는 투혼을 발휘. ~~근데 이거 [[윤하|누구]]한테서 많이 본거 같은데? [[라이온미디어|소속사]]가 문제라고!~~
- 송병구 . . . . 2회 일치
* 2004년 12월 10일 사이온 2004 3차 챌린지 D조 9강 1경기 송병구 승
* 2004년 12월 10일 사이온 2004 3차 챌린지 D조 9강 2경기 송병구 승
- 오태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리그|KBO]] / [[2003년 한국프로야구|2003년]] [[9월 20일]] <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광주]]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마지막 경기 = [[KBO 리그|KBO]] / [[2009년 한국프로야구|2009년]] [[5월 8일]] <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 이상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6월 15일]]<br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구원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 이재학 . . . . 2회 일치
7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구원으로 등판하여 [[야마이코 나바로]]와 [[박석민]]에게 각각 홈런을 맞았다.
2017년 2월 14일, 드디어 검찰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무혐의'''.[* 법적으로 죄를 입증할 만한 요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재판을 청구조차 못한다는 뜻이다.]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032683|기사]]. 심지어 그동안 공소시효가 지나 죄가 입증되지 않는 것이라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화살을 날렸으나, 오히려 '공소권 없음' 판결을 받은 것은 진야곱이다. 결국 공소시효가 성립할 만한 법적 구성요소조차 없었다는 것. 이것 덕택에 이재학은 논란에서 벗어났다. 이런 덕분에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윤성환|해외 도박 의혹을]] [[안지만|받은 핵심]] [[임창용|투수 셋을]] [[삼성 라이온즈|제외한 팀]]을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음에도 [[진야곱|불법 스포츠도박 의혹이 있는 투수]]를 제외시키지 않은 두산은 더 심각하게 까였다.[* 결국 두산은 2017 시즌 후 [[진야곱]]을 방출했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4년]] [[4월 4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구원
* 프로 2년차이던 [[2005년]] [[7월 26일]] [[KIA 타이거즈|KIA]]전 9회말에 [[이종범]]의 깊은 타구를 당시 [[1루수]]였던 [[라이언 잭슨|라이온]]이 잡았지만, 그의 1루 베이스 커버가 늦으면서 내야 안타를 허용해 안타깝게 [[노히트노런]]을 기록하지 못하였다.
- 전종화 . . . . 2회 일치
*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코치 (2002년 ~ 2006년)
{{2005년 삼성 라이온즈}}
- 채상현 . . . . 2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7년]] [[5월 13일]]<br/>[[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 최우석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4월 20일]] <br /> [[청주야구장|청주]]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장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3라운드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중간계투로 등판했고, [[2012년]] [[5월 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는 [[오승환]]을 상대로 대타 타석에 들어선 적도 있었으나, 3루수 앞 땅볼로 아웃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9&article_id=0002708974 ‘완벽부활’ 오승환, 2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 - 매일경제</ref>
- 최준석 . . . . 2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0타수 4안타 3볼넷 3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400, 출루율 .53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 한 시즌 최다 [[병살타]] || 24개[* [[2017년]] [[9월 29일]] SK전에서 기록. 종전 기록은 2004년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의 23개. 2017년 [[윤석민(타자)|윤석민]]과 타이.] ||
- 최훈재 . . . . 2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10월 3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끝내기 만루홈런 ||1993.7.22 ||[[LG 트윈스|LG]] ||[[삼성 라이온즈|삼성]]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 9회말 1사 만루 3-3 ||[[김상엽 (야구인)|김상엽]] || [[김영직]] ||역대 5번째 기록 ||<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3671447 LG,최훈재 끝내기만루홈런] - 연합뉴스</ref>
- 테헤페로 . . . . 2회 일치
초창기에는 주로 히카사 요우코와 성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당시 [[케이온!]]의 성우 멤버들이 감염되었으며, [[토요사키 아키]]가 자주 썻다고 한다. 이후 성우계를 넘어서 연예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청소년들에게 유행어로 빠르게 퍼져나가서 일반적으로 정착됐다. 히카사 요우코는 야망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케이온!]]에서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1회 일치
* Rayon(레이온)
- 김대륙 . . . . 1회 일치
9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4로 앞선 9회말 1아웃에서 [[박한이]]의 땅볼 타구를 멋진 수비로 잡아내 아웃시켜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다.
- 김부식 . . . . 1회 일치
이후 [[고려 인종|인종]]의 명을 받들어 [[정습명]], [[김효충]](金孝忠) 등 10인과 함께 [[삼국사기]]의 편찬을 지휘하였으며, 최산보(崔山甫)·이온문(李溫文)·허홍재(許洪材)·서안정(徐安貞)·박동계(朴東桂)·이황중(李黃中)·최우보(崔祐甫)·김영온(金永溫) 등이 편수에 참여하였다. 그 후 집현전 태학사·태자태사(太子太師)의 벼슬과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의 칭호를 더하였다.
- 김성현 (1989년) . . . . 1회 일치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상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 김재박 . . . . 1회 일치
*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이 [[FA 제도|FA]]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김재박의 재임기간 중 삼성도 [[선동렬]]감독이 이른바 멍게강점기라 불리는 삼성 역사상 두 번째 암흑기를 열어 4,4,5[*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수근|야만없]](...)]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는 바람에 양 팀이 나란히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 따라서 따지고보면 라이벌은 라이벌인데 '''삽질 라이벌'''(...)
- 대구광역시 . . . . 1회 일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드라콘 . . . . 1회 일치
드라콘이 법률을 제정하기 10여년 전, 기원전 632년에 킬론(Kylon) 일파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하였는데, 이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알크마이온(Alcmaeon) 가문의 사람들이 그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이 같은 사적 복수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드라콘의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여겨진다.
- 머라이온 . . . . 1회 일치
* 머라이온 석상은 입에서 물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토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어로 쓰인다.
- 박상원(배우) . . . . 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2, other1=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선수, rd1=박상원(야구선수), other2=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前 야구선수, rd2=박상원(전 야구선수))]
- 박승욱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6월 28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대타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4월 12일]]<br>[[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구원
- 블랙 클로버/110화 . . . . 1회 일치
이미 정상에 도착해서 그들의 행태를 목격한 야미는 "저 바이올런스 암컷 라이온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라며 공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냐고 질색한다. 그 옆의 [[샬롯 로즈레이]]는 오히려 그녀의 모습이야 말로 자신의 이상형인 듯 하다.
- 안효민 . . . . 1회 일치
* [[리그 오브 레전드]] - 킨드레드 (늑대), 워윅 (리메이크), 메카 제로 사이온 스킨, 요릭 (리메이크), 갈리오 (리메이크)
- 양예나 . . . . 1회 일치
* 2017년 7월 2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 앞서 시구를 선보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87286|기사]] --고향 팀 앞에서.....--
- 영덕군 . . . . 1회 일치
* [[류중일]] :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전 야구선수. 강구면 출신.
- 영주시 . . . . 1회 일치
풍기[[인삼]], 영주사과, 영주고구마빵, [[한우]], 인견, --이불-- 등이 유명하다. 특히 풍기인삼은 영주는 몰라도 이 둘은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매년 나름 큰 축제인 풍기인삼축제를 개최한다. 인견은 비스코스 레이온. [[펄프]]로 만든 재생섬유로 풍기읍 쪽에서 밀고 있다.
- 영천시 . . . . 1회 일치
참고로 야구단은 연고지가 [[대구광역시]]인 [[삼성라이온즈]]를 대부분 응원하는 편이다.
- 윤보라 . . . . 1회 일치
*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 삼성-두산의 경기에서 시구를 한 보라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운동신경을 보면 저 허벅지는 역시 장식이 아니다. 여담으로 보라는 [[삼성 라이온즈|삼성]] 팬이라고 한다.
- 윤주상 . . . . 1회 일치
* [[KBS1]] 《[[다큐공감]] 290회 : 해빙, 시래기가 마르면 봄이온다》 (2019년) 내레이션
- 은지원 . . . . 1회 일치
* 1박 2일에서 [[KBO 리그|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모자를 쓰고 나온다. 1박 2일 촬영 중에서 [[넥센 히어로즈|넥센]]을 제외한 [[LG 트윈스|7]][[두산 베어스|개]] [[SK 와이번스|구]][[한화 이글스|단]] [[KIA 타이거즈|모]][[삼성 라이온즈|자]][[롯데 자이언츠|를]] 다 한 번씩 쓰고 나왔다. 2008년 [[1박 2일/사건사고|사직 구장 사건]] 촬영분에서 본인이 [[두산 베어스]] 팬이라고 말한 적 있지만 진짜 야구 팬인지는 알 수 없고, 그냥 코디해준 대로 쓰고 나온 게 아니라 한국프로야구단 야구모자의 모델로 활동했었다. 또한 [[퍼니셔]], [[수퍼맨]], [[배트맨]] 심볼이 그려진 윗옷을 입고 나오는 게 가끔씩 보인다. --미국 슈퍼 히어로 팬인가?--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7월 10일]]<br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대주자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10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 [[차우찬]]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977238 NC 이상호, 차우찬에게서 데뷔 첫 홈런] - OSEN</ref>
- 이소선 . . . . 1회 일치
이소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수 많은 사람들의 장례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가 분신 사망하였을 때에도 장례위원을 지냈고<ref>[http://news.hankyung.com/article/2003031462508 분신 고 배달호씨 전국노동자葬 거행], 한국경제, 2003년 3월 13일</ref>,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에도 장례위원을 지냈다. 이소선은 [[원진레이온]] 사태 때부터 노무현과 인연을 맺었고, [[이석규 장례투쟁]]에서는 함께 장례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71756105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61) -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경향신문, 2009년 5월 27일 </ref>
- 이신학 . . . . 1회 일치
* 대구 통일라이온스클럽 회장(1992년 6월)
- 이준(배우) . . . . 1회 일치
[[화폐|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장부를 쓰고 있다. 백원까지도 다 받아내려 하지만 팀의 리더인 [[승호]]는 갚는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돈을 재테크로 불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안쓰고 모아서''' 잠실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은 [[이온음료]].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자신은 [[체크카드]]로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래들보다 수입이 많다고 자칫 그것이 평생 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님이 편찮으셔서 간병도 하고 치료비 일부를 지원한 바 있는데 그 일이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훨씬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 이채영(fromis_9) . . . . 1회 일치
*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었다. 종목은 오래달리기. 달리기 외에도 [[축구]], [[야구]]를 좋아한다. ~~하긴 포항에서 [[삼성 라이온즈|두]] [[포항 스틸러스|팀]]이 경기를 하니~~
- 전예용 . . . . 1회 일치
* 1961년 : [[국제라이온스클럽]] 한국지구 총재
- 전형도 . . . . 1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1년]] [[6월 6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 전효성 . . . . 1회 일치
2012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도 시구를 하였다.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6년]] [[6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프로데뷔전에서 첫 승리를 안았다. 이는 고교 신인선수 선발데뷔전으로 승리를 챙긴 6번째 기록이며 팀내에서는 [[김진우 (1983년 3월)|김진우]]에 이어 2번째였다.
- 지소 . . . . 1회 일치
* [[케이온!]] - [[히라사와 유이]] : 하는 짓이 멍청해서 까는 의미로 지소라고 부른다(…). 유이를 아예 지소로 보고 희화화 시켜 만든 '지소유이'라는 악질적인 패러디 사이트가 있다.
- 청송군 . . . . 1회 일치
* [[정병곤]] : [[삼성 라이온즈]] 야구선수
- 최동환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9년]] [[4월 4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구원
- 키라키라 네임 . . . . 1회 일치
* 물건이나 음식의 이름을 붙인 이름…티아라(千秋楽,涙愛,星愛麗,姫愛蘭), 판다(大熊猫), 라이온(獣王), 바나나(束生夏)
- 한복 (1914년) . . . . 1회 일치
광복 이후인 [[1946년]] [[서울특별시]]에서 변호사를 개업했으며 [[1962년]] [[증권거래소]] 자문위원, [[1964년]] [[대한법률구조공단]] 단장, [[1966년]] 대한엽도협회 회장, [[1973년]]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지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3년]] [[4월 11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 황덕균 . . . . 1회 일치
[[2016년]] [[6월 3일]] [[KIA 타이거즈|KIA]]전을 앞두고 전날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 매우 부진했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을 대신하여 1군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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