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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한(야구선수)
         2011년 8월 4일에는 2007년 7월 21일 광주 삼성전 이후 1,484일만에 5이닝동안 3피안타 무실점하여 [[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804n27740|선발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이 날 경기는 KIA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주전 키스톤 콤비인 [[안치홍]]-[[이현곤]]이 빠지게 되자 3루수 [[박기남]]-'''유격수 [[이범호]]'''-2루수 [[홍재호]]-1루수 [[김주형]]이라는 괴랄한 수비 포지션을 선보였던 경기였다. 특히나 [[이범호]]는 7년만의 유격수 선발 수비였던 것.] ~~엉엉 형님 앞으로 자주 봅시다~~ 8월 9일 LG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무실점으로 2연승을 거뒀다.
  • 김태완 (1984년)
         [[김태균 (1982년)|김태균]]과 [[이범호]]의 [[일본]] 진출 공백으로 인해 [[외야수]] [[최진행]]과 함께 중심 타선에서 1루수 수비를 맡기 시작했다. [[4월 1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8번 출루하여 개인 최다, 프로야구 최다 출루 기록을 수립했다. [[4월 1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서울에서 기습 번트 타구 수비 도중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해 [[4월 21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5월 11일]] 1군 엔트리에 다시 등록됐다. 6월 이후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 [[KIA 타이거즈]]에서 3:3 트레이드된 [[장성호 (야구 선수)|장성호]]가 입단하여 수비 위치가 다시 [[지명타자]]로 변경되었다.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팀에 60인 예상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여 결국 팀 내 [[류현진]] 혼자만이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차출됐다. 2010 시즌 종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대전고등학교]]에서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되었다.
  • 박석민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미치 탈보트|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주원|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697613&cpage=1&mbsW=&select=&opt=&keyword |#]]~~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 박찬호 (1995년)
         [[2014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1월 31일]]부터 일반병으로 복무했다. [[2019년]] [[4월 17일]]에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중간에 [[이범호]]가 은퇴를 하며 등번호 25번을 물려주었다.
  • 박흥식(야구)
         개막 초 평가는 상당히 미묘했다. 기아 타선의 비율스탯이 최하위 kt를 제외하면 확실히 바닥에서 놀고 있는 것은 사실. 하지만 기존의 고액연봉자들이 부진과 부상으로 삽질중인 반면 신인과 하위타선 타자들이 공을 오래 보고 출루를 해서 팀 승리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대로 김주찬-신종길 등이 병원에 계속 임대되고 나지완-최희섭-이범호가 삽질을 거듭한다면 김기아 시즌 2를 찍을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아직은 평가가 유보되고 있다.
         기아 안티로 의심된다는 [[장강훈]] 기자가 박흥식의 잔류를 암시하는 기사를 올렸다. 대다수 기아 팬들의 반응은 매우 좋지 않다. 우려했던 몸야구형 타자인 [[신종길]]을 제외하면 박흥식이 확실하게 망쳐놓은 타자는 없다는 것[* 타격이 답이 없는 건 군대로 안치홍과 김선빈이 이탈한 탓이 크다. 주축 타자 중 자기관리 실패로 완전히 망해버린 나지완을 제외하면 적어도 2014 시즌보다 못하는 타자는 없다. 라고 하면 2013 롯데의 상황과 꽤 비슷해지긴 한다만 박흥식 코치의 취향에 맞는 타선을 구축할 수 있었던 넥센, 롯데와 달리 기아에서는 1년 더 해도 나아질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흥식 코치에 호의적이었던 타팀 팬들도 기아 팬들에게 유임 권유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과, 넥센에서나 롯데에서나 미국 연수 이후의 박흥식은 2년차에 타선 성적을 많이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1년 더 두고 보자는 기아 팬들도 아주 소수 있지만 일단 대다수의 기아 팬들은 눈에 보이는 팀 타격지표가 답이 없는 수준인데 고액연봉 타격코치가 닥치고 책임을 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FA 시장에서 [[박석민]]조차 못 잡고[* 정우람이나 손승락은 오버페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박석민은 야수였고 게다가 WAR 측면에서 봐도 특급이었다.~~그런데 2018년 현재는 박석민이 먹튀짓으로 폭망해버렸고 정우람과 손승락이 제대로 돈값을 해주고 있다~~][* 다만 김기태 감독은 박석민보다는 뒷문 강화를 위해 손승락을 FA로 잡아주길 구단에 요청했다고 한다. 박석민이야 뭐 이범호가 건재했으니까.] 별 성과 없이 철수하면서 타격코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박흥식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2016년 KIA 불빠따의 이유가 김주찬, 이범호, 나지완의 커리어하이가 크긴 하지만, 박흥식이 이홍구, 백용환, 김호령, 노수광 같은 유망주를 사람 구실 해놓게 만들어놓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롯데시절 좋게 말해 중장거리 타자지 중거리 타자에 가까웠던 김주찬이 20홈런 타자로 변신한데도 기아 타격코치진의 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짐짝 김주형이 화려하게 다시 폭망하고 김주찬의 부진, 이범호의 부상 등이 겹치면서 그냥 최형우 영입빨, 키스톤 제대빨이라는 비판아닌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기, 김선빈 등 컨택형 교타자들에게 공을 오래 보도록 유도하면서 안정적 타격을 만들어내고 시즌 초반 부진하던 용병타자 버나디나의 폼을 수정하는데 성공한 것을 보면 할 일은 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년도까지 한화 이글스 소속이었던 [[쇼다 코우조]] 코치도 새로운 타격코치로 합세하면서 서로의 시너지가 제대로 터졌다는 것이 주 요인으로 보고 있다.
         7월 5일에는 기아 타선이 8경기 연속 두자릿수 득점 11타자 연속 안타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면서 쇼다 코치와 함께 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최형우 나지완 이범호급의 이름값 있는 선수들 외에도 거의다 잘 치는것을 보면 코치의 능력을 인정 안 할수가 없다.
         이렇게 2군 나이 어린 유망주들에게 일단 기회를 준다고 선언한 것은 기아 야수들의 노쇠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구단 세대 교체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 [[정성훈]]이 39세, [[이범호]], [[김주찬]]이 38세, [[최형우]]가 36세, [[나지완]]이 34세로 팀 내 중심타자들이 모두 30대 중후반이 되었고, 당장 이 선수들이 노쇠화가 와서 대체할 선수가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육성을 시작하겠다는 것. 게다가 구단의 운영도 신인들이 입단하면 3년 이내에 웬만하면 군대에 다 보내버려서 병역문제도 딱히 걸릴 것이 없기 때문. 장기적 강팀 만들기와 세대교체를 목표로 잡은 2군이 기대가 되는 시즌이다.
  • 신재웅(1982)
         6월 27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 초 선두타자 [[이범호]]에게 볼넷을 내주었지만 다음 타자 [[이명기]]의 뜬 번트 타구를 플라잉 캐치로 잡아내며 1루 주자까지 잡아냈다!!!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vod/index.nhn?id=445998&category=kbo&gameId=20180627HTSK02018&date=20180627&listType=game|영상]] 후속 플레이도 깔끔하게 성공. 그후 [[정성훈]]과 대타 [[나지완]]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또다른 대타 [[김주찬]]을 잡아내며 세이브를 거뒀다.
  • 우규민
          * 배우 [[윤은혜]]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예전에 윤은혜가 모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4학년 2반 반장을 찾는 걸 보며 동창인 걸 알았다고 한다. 우규민 본인은 1학기 반장이었는데 찾지 않아 섭섭했다고 한다(…). 우규민이 2학기 때 야구부로 유명한 성동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스포츠 신문의 꼭지에서 윤은혜에게 보내는 편지[* 어느 한 선수가 편지를 쓰면 답장이 오는 꼭지였다. 이를테면 [[이범호]]가 절친인 농구선수 [[양동근(농구선수)|양동근]]에게 편지를 쓴다든지, [[이택근]]이 한 팀에 같이 있었던 [[박진만]]에게 편지를 쓴다든지. --근데 저들이 쓴 편지도 은근 안습한 내용들이 있었다.--]를 썼으나.... ~~아… 눈물 좀 닦고…~~ 그 스포츠 신문 꼭지에서 우규민이 유일하게 답장을 못 받았다.
  • 의성군
          * [[이범호]] : 야구선수
  • 이여상
         [[2011년]]에는 [[송광민]]을 6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시켰고, 일본에서 복귀한 [[이범호]]가 [[KIA 타이거즈]]로 이적해 구단이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리고 [[한상훈 (야구인)|한상훈]]도 [[공익근무요원]] 소집이 해제돼 2루수로 복귀했다. 원래 3루수를 맡기려 했던 [[정원석]]마저도 어깨가 약해 마땅한 3루수를 구하지 못하자 그에게 3루를 맡겼다. 이 해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그는 3루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고 타격도 원래의 기대치를 뛰어넘으며 주전 3루수로 많이 출장했다.
  • 하현우
         ||<:><bgcolor=#353535>'''{{{#white 출생}}}'''||<(>[[1981년]] [[11월 25일]][* 야구선수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와 생년월일이 같다.] ([age(1981-11-25)]세)[br][[전라북도]] [[장수군]]||
          * 생년월일이 같은 [[이범호|꽃보다 아름다운 야구선수]]가 있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553702&memberNo=21496782&vType=VERTICAL|야구선수 본인도 이 사실을 알았던 듯 하다.]]
  • 황병일(1960)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 시절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 중평.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 ~~[[최경환(야구)|하긴 당시 KIA 1군 타격코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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