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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네포스

목차

1. 소개
2. 생애
3. 활동
3.1.마 황제 즉위
3.2.마 황제 폐위
3.3. 망명 황제
3.4. 암살
4. 평가
5. 여담
5.1. 누가 진짜 '마지막 황제'?
6. 참조
7. 분류

1. 소개

Julius Nepos



2. 생애

네포스의 출신은 일치하지 않는 사료가 많아서 확실하지 않은데, 달마티아 지역의 마 귀족 출신으 추측되고 있다. 그의 삼촌은 달마티아 총독 마르케리누스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마 제국의 군사장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하서 아에티우스가 발렌티아누스 3세에게 암살된 뒤 반란을 일으켜, 달마티아 지방[1]을 영지 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마르케리누스의 통치는 여러 황제들에게 승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네포스는 동마 황제 레오 1세의 조카와 결혼하여, 동마 제국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3. 활동

3.1. 마 황제 즉위

474년, 레오 1세에게 서마 황제 추대받았다. 레오 1세는 조카 사위인 네포스를 서마 황제 올려서 일족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던 것으 보인다. 이 때문에 네포스는 동마 레오 왕조에 속하는 것으 여겨지기도 한다.

당시 서마는 부르군트 족에게 추대된 글리케리우스(Glycerius)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레오 1세와는 대립하고 있었다. 서마 황제 추대된 네포스는 글리케리우스를 공격하였으며, 부르군트 족이 전투를 거부했기 때문에 글리케리우스는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항복했다. 항복한 글리케리우스는 달마티아에 유배당해 주교서 살았다.

네포스는 서마 제국과 대립하던 여러 게르만 부족들과 화해 조치를 하고, 나름대 제국 서부에서 기반을 다지려고 애썻다. 그러나 마 원은 동마의 간섭을 싫어하여 네포스와 대립하게 된 것으 보인다.

3.2. 마 황제 폐위

네포스는 훈 족의 아틸라를 모시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제국의 군사령관 임명하였다. 이는 크나큰 실책이었는데, 475년 8월 28일,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린 아들 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마 황제 옹립했으며, 네포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삼촌의 영지였던 달마티아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3.3. 망명 황제

마 황제 제논은 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즉위가 마법에 비추어보아 정당성이 없다고 하여 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정식 황제 인정하지 않았으며, 비록 서마 제국의 지배권은 잃었지만 네포스의 서마 황제 지위는 동마에서는 공식적으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마 황제 신분을 바탕과 자신과 연고가 깊은 달마티아를 근거지 하여, 네포스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포스를 쫓아냈던 오레스테스는 오도아케르의 반란으 살해당하고, 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역시 폐위당하고 만다. 476년, 오도아케르는 마 원원을 통하여 제논 황제에게 서마 제국 제위를 반환하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논은 오도아케르의 요구를 대체 받아들여, 그를 "이탈리아 장관(Dux)"으 임명하여 이탈리아 통치권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네포스에게 배려를 하여, 서마 황제에게도 충성을 바칠 것을 요구했고 결국 오도아케르는 네포스와 제논에게 모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오도아케르는 충성의 증거서,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발행되는 금화에서 네포스 황제의 이름과 초상화를 각인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조치였으며 네포스의 통치는 달마티아에 밖에 미치지 못했다. 네포스는 오도아케르를 명목상으는 부하 만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 지배를 되찾기 위한 군사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3.4. 암살

480년, 네포스는 궁전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당시 사료에서 이 사건은 네포스의 장군 오비다가 배신했거나, 네포스의 신하가 되어 있던 글리케리우스(Glycerius)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오도아케르에게는 희소식으서,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주군인 네포스가 '다른 부하'에게 시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도아케르는 이를 명분으 하여 달마티아를 공격하고, 달마티아를 지배하던 오비다는 패배하고 사망했다. 달마티아 지역은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당한다. 여담으 글리케리우스는 이후도 오도아케르의 신하서 살아서 음모론의 소재가 됐다.

네포스의 사망 이후 동마는 서마 제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고 폐지하였다.





4. 평가


5. 여담

5.1. 누가 진짜 '마지막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 재위 474년-480년, 실질지배 474년-475년 8월 / 명목상 475년-480년
물루스 아우구스투스 재위 475년 10월-476년9월

재미있는 것은 흔히 '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알려진 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와, 율리우스 네포스 사이에서는 서 '마지막 서마 황제'서 어느 쪽이 정당성이 강하냐는 논쟁이 있다는 것이다.쓸데없는 경쟁을

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 간주했다. 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 인정한 것은 마 원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2] 정도였다. 그리고 물루스 폐위 이후는 당대에는 동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물루스[3]보다는 동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물루스는 일단 난장판이긴 해도 즉위가 마 원원에서 인정을 받았으며, 네포스는 결국 이탈리아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사망했다는 점[4]에서 감점. 이런 관점에서 보면 474년 이후의 네포스는 서마 황제의 지위를 명목상으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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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탈리아 반대편에 있는 아드리아 해 해안 북부.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일대.
  • [2]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 봤다는 것이다.
  • [3]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
  • [4] 다만 말기에는 마 황제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탈리아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즉위하고 활동한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6. 참조


7.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