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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조선일보
|날짜=1966-08-09
|쪽=7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날짜=1966-08-09
|쪽=7면
}}</ref>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옮겨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부터 [[경남대학교]] 학장을 지내다가 [[1982년]]에 총장에 올랐다.
}}</ref>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옮겨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부터 학장을 지내다가 [[1982년]]에 총장에 올랐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생애 ¶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하여 법조인으로 잠시 활동하였고, 1952년부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교에서 1965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한국인의 성격》이다.
5·16 군사정변 후 김종필이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면서 최규하 등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정책연구팀을 운영했을 때 여기에 합류하여 제3공화국 정권을 준비하였다. 1963년에 문교부 차관으로 발탁되어 재임하였다.
1965년에는 숙명여자대학교 총장직을 맡았다. 숙명여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중에는 학내 분규로 인해 횡령죄로 고발된 일이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尹泰林 숙명여대총장 해임을 요청. 「횡령혐의」로 고발
|출판사=조선일보
|날짜=1966-08-09
|쪽=7면
}}</ref>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옮겨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부터 학장을 지내다가 1982년에 총장에 올랐다.
|제목=尹泰林 숙명여대총장 해임을 요청. 「횡령혐의」로 고발
|출판사=조선일보
|날짜=1966-08-09
|쪽=7면
}}</ref>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옮겨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부터 학장을 지내다가 1982년에 총장에 올랐다.
각주 ¶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