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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 . . . 177회 일치
|혐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뇌물수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기밀누설 등<br>----<br>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뇌물수수·국고손실)<br>----<br>공직선거법 위반(공천개입)
|죄값 = 2심 징역 25년·벌금 200억 원, 검찰 단독 항소·상고로 상고심 진행중(최순실 및 블랙리스트 관련)<br>----<br>1심 징역 6년, 검찰 단독 항소로 항소심 진행중. (국고손실 유죄. 뇌물수수 무죄.)<br>----<br>징역 2년 확정<ref>https://news.joins.com/article/23164465</ref>(공직선거법 위반,공천개입)
|현황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구속영장에 따라 2019년 4월까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감 후 상고심이 완료되지 않아 공천개입 실형 2년 집행 중<ref>http://www.nocutnews.co.kr/news/5073073</ref>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영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상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2011년 12월부터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지휘하였고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 득표율 51.6%로 48.0%를 득표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ref>[18대 대통령 박근혜] 박근혜 득표율 51.6%, 조선일보 2012.12.21</ref>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 독신 대통령, 최초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4347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신기록들] 아시아투데이 (2012년 12월 20일)</ref>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영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영재·허남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반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이때 [[전두환]]에게서 아버지 박정희가 남긴 통치 자금 6억 원을 수령하였는데 이 사실은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0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이 '역풍 위기'에 처했을때, 착실하게 당 내에서 입지를 쌓고 있던 박근혜가 그의 뒤를 이어 [[3월 23일]] 당 대표가 되었다.<ref>대한민국에서 여성 정당 대표 중 [[박순천]]에 이어 두 번째다.</ref> 기존의 다선 의원, 중진 의원, [[운동권]]에서 포섭해 온 세력 등과 다르게 박근혜는 여러 차례 기자 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했다. 이후 [[대한민국 제17대 총선|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 외의 선전을 하였다. '탄핵 역풍 위기'에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구해낸 것이다. 이때부터 박근혜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잠재적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71934& 2004 정치권 뜬별진별]</ref>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하였지만,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에게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표의 등가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으나, 박근혜는 깨끗이 승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명박,박근혜에 2452표차 승리…경선결과 집계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0/2007082000855.html |출판사 = 조선닷컴 |저자 = |쪽 = |날짜 = 2007-08-20 |확인날짜 = 2009-07-07}}</ref> 하지만, 논란의 연장선상으로 이후에 대선 후보 자리를 박근혜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5336 세상을 보는 다른 눈 "뷰스앤뉴스" - 이동복 "이명박, 박근혜에게 후보 양보하라"<!-- 봇이 따온 제목 -->]</ref>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었고, 이재오, 이방호는 낙선하였으며,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 전국구 8석이라는 예상 외의 높은 지지율을 달성하였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총 12명이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박근혜는 꾸준히 친박연대 및 무소속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을 요구하였다. 친박 측과 앙금이 남아있던 [[강재섭]]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고 [[박희태]] 전 의원이 대표로 부임한 뒤 마침내 친박무소속연대 소속 의원과 친박연대의 지역구 의원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여 한나라당 내 친박의원 의석수는 6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의원 5명은 당명 개정, 독자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양정례]], [[서청원]], [[김노식]]은 당선무효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한편 경선 8일 뒤인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반대로 무산되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구 [[민주통합당]]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전순옥]]은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28/0200000000AKR20120828048951001.HTML?did=1179m 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 연합뉴스, 2012년 8월 28일</ref> 그러나 [[이상일]] 대변인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12월 13일]], 해당 요원은 경찰청에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제출하였지만<ref>노현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0092711 '비방 댓글' 의혹 국정원 여직원, 경찰에 자료 임의제출], 뉴스원, 2012년 12월 13일</ref>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의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 제출요청은 거부하였다.<ref>김동현, [http://www.yonhapnews.co.kr/vote2012/2012/12/13/2901010000AKR20121213161051004.HTML '국정원 女직원, 컴퓨터 등 증거자료 경찰에 제출(종합)], 연합뉴스 2012년 12월 13일</ref> 한편 민주통합당은 해당 조직의 실체와 업무 내용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ref>정찬,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4054 민주 "국정원 심리정보국 70여명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폴리뉴스, 2012년 12월 12일</ref>
{{인용문|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박근혜<ref name="ReferenceA"/>}}
방미 기간 중 청와대 윤창중 대변인이 여성 인턴에 대한 성추행을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급히 귀국 조치되었고, 이후 이 사건은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논란이 되었다. 윤창중은 귀국 직후 해임되었다.
박근혜는 4월 3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경제활력회복과 세입정상화를 위하여 빠른 시일 내에 추경예산안을 편성하고 이것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ref name="news.naver.com"/> 또한 주택시장 정상화 대책에 관련해 입법의 마무리와 수출·투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중소기업을 위한 '엔저' 대책도 주문했다.<ref name="news.naver.com"/> 그러면서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서민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민행복기금에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ref name="news.naver.com"/>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2014년 3월 28일 독일 통일의 상징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해결, 남북한 공동 인프라 구축, 남북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북한에 제시하는 '[[드레스덴 선언]]'을 천명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32888471 朴대통령 '드레스덴 선언'이산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核 버리면 經協 확대]</ref> 이어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준비는 시대적 소명"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하천·산림 관리 공동 협력 사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문화사업 준비 등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으로 옮기자는 작은 통일론을 제안하였다.<ref>[http://www.fnnews.com/news/201408151515276744 박 대통령 8.15 경축사 행간에 담긴 의미]</ref> 2015년에 들어와서는 박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광복·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제목=[박근혜 대통령 신년사로 본 새해 구상] 경제회복 최우선… 남북관계 개선 통해 통일기반 구축 |확인날짜=2015-02-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214093238/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보존날짜=2015-02-14 |깨진링크=예 }}</ref>
[[2008년]] [[2월]] [[숭례문 방화사건|방화 사건]]으로 소실된 숭례문이 복원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원 기념식이 열렸다.<ref name="news.chosun.com">{{웹 인용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4/2013050400736.html|제목 = 숭례문 다시 우뚝…박근혜 대통령 "희망의 문, 새 시대의 문"|저자 = 이지은|날짜 = 2013-05-04|확인날짜 = 2013-05-04}}</ref> 박근혜는 이 행사에 참석해 "숭례문 복구가 우리 문화의 저력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연설했으며 "한류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새로운 지구촌 문화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뿌리인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f name="news.chosun.com"/> 또"기와 한 장, 단청 하나에도 혼신의 노력을 담아 땀 흘려주신 수많은 장인 여러분의 노고와 대를 이어 길러온 소나무를 아낌없이 기증해주시고 7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며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ref name="news.chosun.com"/>
2013년 5월 7일 밤(미국 기준시) 홍보수석비서관실의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미국 방문 중 술을 마시고, 주 미국 한국대사관에서 지원한 인턴 여성의 둔부 근처에 손을 댄 행동과 다음 날 새벽 호텔에서 과도하게 노출된 상태로 해당 여성을 마주했다는 의혹이 발생, [[윤창중]]은 바로 성추행으로 미국 경찰에 신고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이 윗선에 보고되어 경질되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유포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5/12/0501000000AKR20130512057900001.HTML "윤창중, 靑진술서 '엉덩이 터치·본인 노팬티' 시인"]《연합뉴스》2013년 5월 12일 신지홍 기자</ref><ref>[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33 윤창중의 출국 누가 도와줬나?]《시사인》2013년 5월 11일 김영미 국제문제전문 편집위원</ref> 이 사건으로 직속 상급자인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차관급)이 사과발표를 하였으며, 사의를 표명하였다. [[이남기]]의 사직서는 5월 중순 수리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1129691 靑 "윤창중 사건, 美측에 조속한 수사 진행 요청"]《뉴스1》2013년 5월 12일 장용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586998.html 이남기 홍보수석 사의…허태열 "책임 피하지 않을 것"]《한겨레》2013년 5월 12일</ref> 또한,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과 윤창중 전 수석대변인 간의 진술 차이, 대통령에 대한 사과 표현 등이 문제시되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장관급)이 공식사과를 발표하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ewsflash/3281506_7612.html 靑 허태열 공식 사과…이남기 홍보수석 사의]《MBC》2013년 5월 12일</ref>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직원들을 동원해 [[문재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쓰는 등 박근혜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국가정보원]] 사건'이 불거져 수사를 진행 중이던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토론 중 당해 사건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이었음에도, 해당 사건의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발언하였다. 토론회 직후 대선 3일 전인 [[12월 16일]] 일요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사전 발표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인 2013년 6월, 검찰은 경찰의 발표와 달리 국정원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댓글을 단 사실이 있다고 상반된 발표를 했다.<ref>성혜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013643 원세훈 '선거법' 적용키로...영장은?],뉴스와이,2013년 6월 7일</ref> 더구나 서울지방경찰청이 거짓 발표를 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댓글을 단 사실이 있는 것을 이미 확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ref>이윤상,[http://news1.kr/articles/1175796 김용판, 100여페이지 분석자료 폐기…수사방해 분석결과 나오기도 전 보도자료 작성],뉴스1, 2013년 6월 14일</ref>
- 희빈 장씨 . . . . 110회 일치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ref>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 기사</ref> [[11월 3일]] ([[음력 9월 19일]])<ref>승정원일기 숙종 15년~19년</ref> ~ [[1701년]] [[11월 7일]] ([[음력 10월 8일]])), '''장희빈'''(張禧嬪) 또는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는 조선의 제19대 왕 [[조선 숙종|숙종]]의 [[빈 (지위)|빈(嬪)]]으로,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의 어머니이다. [[조선 숙종|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상이다. 본명은 '''장옥정'''(張玉貞)<ref>[http://yoksa.aks.ac.kr/jsp/aa/ImageView.jsp?aa10up=kh2_je_a_vsu_30613_000&aa10no=kh2_je_a_vsu_30613_001&aa15no=&aa20no=&pageno=&imgnum=JE_A_30613_001_000042&imgsize= 《단암만록》]/[[민진원]] 著</ref>,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 (조선)|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인 윤씨이다. 역관(驛官) [[장현 (조선)|장현]](張炫)의 [[종질녀]]이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의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조선 숙종|숙종]]에게 자진을 명받았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메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조선 영조|영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 [[인현왕후|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
희빈 장씨는 [[사역원]] 봉사(종8품)를 지냈던 [[장형 (조선)|장형]](張烱)<ref group="주">장형(張烱)의 형(烱)은 경으로도 읽을 수 있다.</ref>(1623~1669)과 그의 후처인 [[파평 윤씨]](1626~1698)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동기로는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전처였던 [[제주 고씨]](?~1645)의 소생인 이복 오빠 장희식(1640~?)과 윤씨 소생의 동복 언니<ref group="주">[[장희재 (조선)|장희재]]의 누나이다. 따라서 1650년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ref> 한 명, 동복 오빠인 [[장희재 (조선)|장희재]](1651<ref group="주">《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년) 11월 2일 기록에 장희재의 나이가 당 51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651년 생임을 알 수 있다.</ref>~1701)가 있다. 최근까지 그녀의 생년에 대해 흔히 미상이거나 [[조선 숙종|숙종]]의 2세 연하, 혹은 5살 연상 등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수록된 국청죄인 자근례의 공초 내용 중에 희빈 장씨가 기해생(1659년 생)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인용문|오례가 신사를 행할 때에 숙정 등 여러 사람들이 또 같이 참석하여 축원하기를, ‘기해생(己亥生)【장씨(張氏)가 기해년에 났다.】을 몰래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지난해 6월에 오례가 숙정에게 ‘10월에 마땅히 뇌동(雷動)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원컨대 상사(賞賜)를 받게 해 주소서.’라고 하니, 숙정이 ‘만약 그와 같이 된다면 마땅히 중한 상을 받을 것이니, 반드시 세자와 기해생을 몰래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기사}}
외할머니 변씨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으로 유명했던 [[변승업]]의 당고모로, [[변승업]]의 아버지이자 소설 《허생전》에 변부자로 등장했던 변응성의 사촌누이(백부의 딸)이다. 외삼촌 윤정석은 조선의 부를 장악했던 [[육의전]]의 면포 상인이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1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9일(갑진) 4번째기사</ref><ref group="주">윤정석의 본래 출신이 기록된 《숙종실록》에는 "시인(市人)으로 면포(綿布)를 파는 자"로 기록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한성에서 면포를 팔 수 있는 건 오직 [[육의전]] 상인 뿐이다.</ref>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공초되었을 때의 기록에 따르면 1680년 장씨가 출궁되어 은평구 친정에서 머물 당시에 담 하나를 두고 이웃에 살았던 만큼 누이인 윤씨와 관계가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언니는 관상감 관원인 김지중에게 출가하여 1691년 당시 관직이 종7품 직장이었다. 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희빈 장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후궁이 되기 7년 전인 경신년(1680년)에 키가 크고 외모와 무술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만으로 구성된 [[내금위]]에 재직<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ref> 하였으며 1683년에는 좌포청 부장으로 있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인 [[장현 (조선)|장현]]은 [[조선 효종|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고 숙종 1년에는 이미 종1품 숭록대부에 올라 공을 세워도 더이상 품계가 올라갈 수 없어<ref group="주">생전에 정1품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문관]]에게 한정된다. 《동의보감》의 저자이기도 한 명의관 [[허준]]은 [[광해군]]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다가 문관의 반발에 의해 취소되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추증됐다.</ref> 자식과 조카가 대신 승봉되어야 했던 거물 역관으로 재산은 국중거부의 명성을 얻을 정도였으며, [[장현 (조선)|장현]] 형제의 자식들은 무관 및 역관, 혹은 의관으로 고위직에 있었다. 그녀의 일족이 비록 문신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손 꼽히는 대부호였으며 사회적 위치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희빈 장씨의 입궁 시기는 불분명하다. 그가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비 [[장형 (조선)|장형]]을 잃고 생계가 어려웠던 탓에 궁녀가 되었다는 주장과 [[장형 (조선)|장형]]이 사망하기 전에 역시 궁녀였던 딸이 있는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 [[장현 (조선)|장현]]의 권고를 받아 막내 딸인 장씨를 입궁시켰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생부 [[장형 (조선)|장형]](張炯)의 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에 따르면 희빈 장씨가 어린 나이에 간택되어 입궁해 성장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숙종 실록에도 머리를 스스로 땋아 올리기 전에 입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숙종실록 15년 5월 6일 2번째 기사</ref>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조사석의 도움으로 대왕대비전의 궁녀였던 장씨는 [[조선 인조|인조]]의 [[계비]]이자 [[조선 숙종|숙종]]의 증조모 뻘인 [[장렬왕후|자의대비]] 조씨를 웃전으로 모셨다. 장씨가 출궁되었을 때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친필로 서신을 써서 법적 며느리이자 친정 외질녀인 [[숭선군]]의 부인 신씨에게 장씨를 돌보게 한 것이나 장씨의 재입궁을 주선했던 것, 조씨가 내전([[인현왕후]])과 소원하고 장씨를 치우치게 사랑했다는 기록<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ref> 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장씨가 [[장렬왕후|자의대비]]의 각별한 애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680년 10월 26일, [[조선 숙종|숙종]]의 초비(初妃) [[인경왕후]] 김씨가 천연두로 요절했다. 장씨가 숙종을 모시게 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숙종실록에 [[인경왕후]]가 죽고난 후에야 비로소 숙종을 모셨다는 기록이 여럿 존재하며, 11월 이후 혜성이 나타났는데 장씨가 숙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무렵이 이때라는 기록이 존재하니 그녀가 숙종의 승은을 입은 시기가 [[인경왕후]]의 죽음 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1680년 겨울, 장씨가 출궁되자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숭선군저에 친필서찰을 넣어 [[장렬왕후|자의대비]]의 친정 질녀이자 숭선군의 부인인 신씨의 보호를 받도록 하였다. 출궁된 장씨는 가장이 된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 부부의 집에서 어머니 윤씨와 함께 지냈다. 1701년 공초 당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처 작은아기는 출궁된 당시에도 장씨가 무속에 기대었다는 사실을 발고한 바 있다.
라는 [[사간원]] 헌납 [[윤빈]]의 비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683년에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직위가 포도부장이었던 기록이 존재하며<ref>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장씨의 동복 언니는 [[관상감]] 직장이었던 김지중에게 출가한 상태였는데 1701년 [[김지중]]의 증언으로 미루어 김지중이 처가에 왕래하며 장희재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는 만큼 생계가 어렵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장씨의 외삼촌 윤정석은 면포를 팔던 시전상인이었는데, 면포(무명)가 국법 상 [[육의전]]만이 매매가 가능한 독점 상품이었던만큼 윤정석이 일개 장삿꾼이 아닌 [[육의전]] 상인이었음을 뜻하며 이는 윤정석이 상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윤정석은 장희재의 집과 담을 하나 두고 살았을 만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상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궁으로 돌아온 장씨를 향한 숙종의 총애가 지극하자 [[서인]]과 [[인현왕후]] 민씨의 반발이 격렬했다. [[인현왕후]]는 장씨를 견제하기 위해 서인과 합세해 1686년 3월, 서인 영수 [[김수항]]의 종손녀인 [[영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입궐시켰다. 숙종 12년인 1686년 2월 27일 기사에 [[인현왕후]]가 여러차례 간택후궁을 들일 것을 종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장씨가 재입궁 한 것을 [[인현왕후]]가 후회하였거나 애초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1683년에는 [[인현왕후]]의 큰아버지인 좌의정 [[민정중]]이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정명공주]]의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첩 안숙정<ref group="주">안숙정은 숭선군저의 가비(歌婢)로서 노래 실력이 장안 최고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측실이지만 이미 출가를 한 지 4년이나 지난 그녀가 정명공주의 잔치에 노래를 부른 것은 그녀의 명성이나 주인이었던 [[숭선군]]의 주선 때문이었을 것이다.</ref> 을 취객의 희롱에서 도망치게 하였다고 호된 매질을 가한 바 있는데, 좌의정이 포도부장에게 직접 벌을 내린 것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엄연한 무관의 아내를 희롱한 취객에게 죄를 묻지 않고 그녀를 도망치게 한 남편에게 벌을 내린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정이야 어찌됐던 [[민정중]]이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매질을 한 것은 사실이니 [[인현왕후]]로선 장씨의 입궁이 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는 궁녀 장씨의 교만함을 훈계하겠다며 아랫사람에게 장씨를 매질토록 시키기도 하였다.<ref group="주">인현왕후전에는 [[인현왕후]]가 장씨를 교화하기 위해 직접 회초리질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f>
김씨의 간택을 전후로 [[서인]]은 천재지변의 원인으로 장씨를 지목<ref group="주">[[인현왕후]]의 가례일에는 지진이 있었으며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초여름에 서리와 눈이 내린 것, 장씨에게 자진의 명이 내린 후부터 여러 달 심각한 천재지변이 계속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ref> 하거나 제왕은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장씨를 궁 밖으로 쫓아낼 것을 수차례 종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김창협]]은 "후궁으로서 가까이 사랑할 사람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관어(貫魚: 궁인들의 순서)를 순서대로 할 수 있게 하여 종사(螽斯)의 경사가 있게 하고 미색(美色)에 마음이 현혹될 근심과 치우치게 사랑에 빠져 은총을 열어 준다는 비난을 없게 한다. (중략)"<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9월 13일(갑오) 1번째 기사</ref> 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는데, 이는 장씨의 미색에 현혹되지 말고 궁인의 지위 순서로 성총을 내려 후사를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서 승은궁녀인 장씨보다 정궁인 [[인현왕후]]와 당시 유일하게 후궁의 지위를 갖고 있던 [[영빈 김씨|숙의 김씨]]([[김창협]]의 5촌 당질녀이다)에게 사랑을 주어 그들에게서 후사를 보아야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ref group="주">1689년 2월에 [[김창협]]의 아비 [[김수항]]이 [[송시열]]의 상소를 막지 못했다는 죄로 삭탈관직이 된 것에 대해 사관은 [[김창협]]이 장씨를 지목하여 간한 이 발언으로 [[조선 숙종|숙종]]의 노여움을 얻어 보복받은 것이라고 기록했다.</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상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상]]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상]]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상]]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상]]의 아들이 [[홍치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상]]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1688년]] 소의(昭儀 ; 내명부 정2품)로 승격한 장씨는<ref group="주">승정원일기 기록상 1688년 3월까지 장씨의 품작은 숙원이었다. 시기 상 숙원 장씨가 소의로 진봉된 것은 회임을 한 이유임을 알 수 있다.</ref> 같은 해 10월 28일, 드디어 왕실이 그토록 고대하던 [[조선 숙종|숙종]]의 장남‘균’(昀)<ref group="주">실록에선 윤으로 읽기도 하고, 균으로 읽기도 한다. 균이라 번역된 기록에도 한자는 윤(昀)으로 쓰여있다. 숙종의 세 아들(昀, 昑, 昍)은 모두 '日'자를 부수로 썼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왕들의 이름은 현재의 독음과 다르게 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고종 대에 편찬된 《열성어휘(列聖御諱)》에 경종의 휘는 "균'으로 읽는다[音勻]"고 명시되어 있다.</ref> 을 낳았고 이 왕자가 후에 조선 왕조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에 오르게 된다.
{{인용문|장 소의의 어미는 곧 당하관(堂下官)인 역관(譯官)의 처(妻)이니, 교자(轎子)를 타는 것도 이미 참람하다고 할 것인데, 교자에 뚜껑이 있는 것은 더욱 <br />참람한 것이니, 법을 지키는 관원이 이를 알면 마땅히 금지할 것입니다.|『숙종실록 14년(1688 무진 / 청 강희(康熙) 27년) 11월 13일(임오) 3번째기사』}}
- 김재규 . . . . 95회 일치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태]]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절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반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군단장]] 시절 [[한계령]] 도로 건설을 지휘했으며, 이 때문에 한계령에 건설 중 사망한 장병 위령비에 이름이 들어가 있었으나 현재 위령비에는 그 부분이 삭제당했다 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안동댐 건축 기념탑에도 원래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지만 [[10.26 사건]] 직후 그 이름 부분이 뜯겨나가 있다. 여담이지만 인트라넷 3군단 역대 군단장과 그가 복무했던 모든 부대에도 김재규 [[장군]]은 삭제되어 있다. 한편 이때 그의 [[전속부관]]이었던 [[박흥주]] [[포병]][[대령]]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재규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 되고, [[10.26 사건]]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부장 수행비서 자리에 있었고, 결국 박정희 암살에도 가담한다. 정말로 장래가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5.16 군사정변]]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총무과장([[준장]])으로 있었는데 다른 국방부 장성들과 마찬가지로 쿠데타에는 가담하지 않았고 혁명군사령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에도 불구하고 부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석방되었고, 석방 후 현역 장군으로서 호남비료 사장에 파견 임명되었다.[* 이 당시 국군 장성들이 하던 비리들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김재규가 비리가 없었다는 것은 그가 참군인이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최태민]]의 조사를 지시했고, [[10.26 사태]]가 발생하기 3일 전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었다. 이 보고서엔 최태민과 [[박근혜]] 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최태민의 문란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언론에서 공개한 시점이 2012년 말, 즉 [[18대 대통령 선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직전]]이였기 때문에 당시엔 [[찌라시]] 취급을 받으며 묻혀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위 항소이유서에서 보다시피 '''현재 [[최순실]]이 [[박근혜]]와 함께 기업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40년전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박근혜와 함께 부정한 방법으로 여기저기서 돋을 뜯어내었다. 1970년대 아버지가 했던 사기행각을 딸년이 그대로 2016년까지 써먹은 셈이다. 당연히 [[최태민]]의 범죄행각을 비판하는 민원이 빗발쳤으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에게 직언을 할 용기를 가진 관료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수만이 직언을 했다 핍박받는 실정이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영수의 분신이었고,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영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거기다가 김재규의 말이 아예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 최태민을 대질시켜놓고 친국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당시 김재규는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으로 의전상 부총리였다. 대통령의 왼팔이 '''일개 사이비 종교인을 고자질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체면을 구긴 일이다. 2017년 기준으로 보자면 [[검찰총장]]이 사이비 교주 하나 기소했다고 대통령에게 친국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이다. 거기다가 김재규가 최태민이 저지른 온갖 부정의 입증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오히려 최태민(정확히는 박근혜)을 신뢰하는 꼴을 보였다. 이는 김재규 입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모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인 자신보다 어디서 굴러와 영애를 홀린 사이비 종교인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있던 충성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즉, [[10.26 사태]]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 [[박근혜]]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겼다. 김재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기며 최후의 순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5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5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BSqOsrVdY3Y?t=12m31s|당시 실제 육성]]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인맥]]의 영향력이 더 컸다. [[박정희]]와 고향 후배이며 육사 동기라는 2중의 인맥인 김재규는 그야말로 심복이었다. 하지만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을 [[발터 PPK]] [[권총]]으로 저격하여 [[암살]]했다.[* 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박정희 암살에 성공한 총기는 [[M36 치프 스페셜]]이다.] 이것이 이른바 [[10.26 사건]]이다.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이 경호원들과 함께 현장에 동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저격할 줄 생각 못한 경호팀은 무력했고 그들 모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제압당한다. 경호실 요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 당시 경호계장이던 [[박상범]]이고, 그는 나중에 [[김영삼]] 정부에서, 민간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 경호실장을 맡게 된다.
어쨌든 거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김재규가 이동한 곳은, 엉뚱하게도 중정이 아닌 [[육군본부]]였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암살장소인 안가는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부장인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이 박정희를 죽인 사실을 은폐하고 불순세력의 소행으로 몰아가 국무위원과 장성들을 깨끗하게 속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사태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특히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평소 차지철은 대통령 경호라는 미명으로 온갖 월권행위와 [[경거망동]]을 서슴치 않았고, 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주동자 1순위는 단연 차지철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실제로 사건이 터진 후 청와대로 들어와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들은 김치열 당시 법무장관은 "그 새끼가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하고 호통을 쳤는데, 그 새끼는 물론 차지철을 지칭한 것이었다.
* ①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뿐 대통령 사망 후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특권을 휘두르는 군부의 협조가 절실하므로 이를 얻기 위해 육군본부로 갔을 거라는 설.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김재규와 원만한 관계였으므로, 그에게 자신의 [[박정희]] 저격을 알리고도 그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으리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박정희 암살자에게 협조하여 그의 정권 획득을 도울 장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당시 군에 자기 인맥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 ② 김재규가 [[박정희]]를 순전히 우발적으로 저격했으므로 거사 후 사태장악에 대한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설. 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거사 후 김재규는 [[정승화]]와 승용차에 동행하여 사건현장을 떠나 이동하던 중,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에게 "정보부와 육본 중 어디로 가는게 좋겠느냐"고 묻자 정승화가 말을 가로채어 "육군본부로 가는게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김재규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기사에게 육군본부 행을 지시했다. 이때 정승화는 안가 본관(연회장은 나동)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사건을 저지른 김재규와 차에 동승한 것이었는데, 그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가 육본으로 갈 때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박흥주 대령의 구두를 빌려 신을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행동을 볼 때, 이 견해도 설득력은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판[* 옹호든 비판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등은 김재규 부장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당시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와 말년의 박정희는 대한민국은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이 있었기에 김재규가 10. 26 사태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박정희 역시도 여타 독재자처럼 말년이 비참했을 것이고 후세의 평가도 좋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쪽에서는, '''그 또한 과거 유신정권하에서 한자리를 해먹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며, 박정희를 암살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를 국민의 손으로 정당하게 심판할 기회를 빼앗았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갖은 압제와 고문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해오던 자신들보다, 단순히 박정희 한 명 암살했다고 김재규가 포커스를 더 받는 건, 몇십 년을 민주화 투쟁한 사람들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의해 투쟁해온 이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게 애초 김재규는 박정희와 친형제 같은 사이였고 중정부정이라는 대통령 다음가는 2인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10.26 단행 이전의 행보를 보더라도 정보수집과정에서 유신정권도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박정희도 말년에는 20년 절대 권력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10.26 단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는 차지철, 이후락 같은 다른 유신인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근데 전두환 노태우꼴을 보면 심판도 안받았을 확률이 높다---
다만, 소극적인 국민들의 성격과 견고한 기득권의 힘 때문인지 몰라도 근·현대사를 통틀어 당사자 개인에게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진 사례는 실제로 흔치 않다. 또한 [[박정희]] 본인은 [[이승만]]이나 [[전두환]], [[노태우]]와는 달리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해도 결코 자리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또, 국민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게 잡아도 수천, 많으면 수만에서 수십만의 애꿎은 목숨이 필요할 터인데 그것을 대신 이루어준 것이 과연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실제로 [[장준하]]가 긴급조치로 구속되었을 당시 감방동기였던 이해학 목사는 "당시 장준하가 '이제 민중투쟁으로는 안 된다. 양심적인 군인을 포섭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수 말고는 박정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절망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요약: "비록 김재규가 박정희 정권에 충성하며 부역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재규가 아니었다면 민주화는 10년, 20년 미루어지거나 심지어 아직도 박정희의 [[차지철|후]][[전두환|계]][[노태우|자]][[박근혜|들]]이 [[북한|북쪽]]마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주장.'''
* 실제로 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 내의 시민들이 대거 경찰서로 끌려가거나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또 [[김영삼]] 당시 [[신민당(1967년)|신민당]]총재 외에도 [[김대중]], [[이철승]] 등 호남인사가 신민당에 있었고 [[여촌야도]] 현상이 강하여 수도권 민심이 야당에 있었으므로 단순히 부마에만 그치지 않고 '''호남, 수도권까지 퍼져 전국적으로 경찰,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규모 충돌'''이 생겨 엄청난 희생자가 났을 것이다.
- 배영수 . . . . 81회 일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우려가 현실이 되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053607|2009 시즌 말 구속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내용으로 다시 한번 설렘을 줬다.]][* 정말 구속회복만 된다면 삼성은 선발 걱정할 문제가 없으니...]
3월 31일 무등에서 펼쳐진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등판을 한 배영수는 5이닝동안 1실점만 하며 무난한 출발을 알렸다. 당시 무등구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경기가 모두 우천순연 되었으며, 무등구장 역시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가 이어졌으나 1회와 4회를 제외하면 큰 위기 없이 첫 등판을 치룬 모습에서 팬들에게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다소 높이게 했다.
그리고 4월 7일 대구에서 펼쳐진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구를 보이며 344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2009시즌의 악몽을 떨쳐내는 정말 눈물의 감격투 그 자체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4월 13일 잠실에서 펼쳐진 LG와의 원정경기에서도 7이닝 무실점 또 한번의 완벽투구를 보이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 때 당시 평균자책점은 무려 '''0.47'''! 하지만 이 후 문학 SK전과 대구 두산전에서 각각 5이닝 6실점(4자책), 5이닝 3실점의 내용을 보이며 다소 아쉽게 4월을 마무리 했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계투진에서도 다소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또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지는게 아닌가 했던 배영수였지만, 여름이 되면서 구속이 오르자 반등하기 시작했다. 6월 11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장원삼이 3이닝만에 5실점하며 조기강판되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8회까지 이닝을 책임지며 5이닝 동안 3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당시 등판에서 비록 8피안타(1피홈런)를 허용하기는 했으나, 사사구가 하나도 없으며 어느정도 살아난 구위와 날카로운 변화구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 효율적인 투구수로 5이닝을 책임져 준 것이 위안 삼을만한 부분이었다. 이어 6월 16일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이우선]]이 3이닝만에 6실점으로 무너지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3⅓이닝 동안 3탈삼진 무실점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이 후 삼성으로 경기를 가져오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역시 [[로나쌩 클럽]] 회원-- 이 경기로 인해 배영수는 3일 뒤인 6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등판했는데 5이닝 2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이며 괜찮은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3일만의 등판이었기 때문에 4회, 5회에 피안타가 늘어난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선발진 복귀 이 후 4선발 정도의 역할로써 다소 퐁당퐁당하는 피칭을 보여주다가, 7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타자)|김상수]]가 5회에만 악송구와 쉬운 땅볼타구를 잡지 못하는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yujwfjfTcX4|'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3실점(1자책)의 투구를 보이며 시즌 5승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두산전 투구보다 훨씬 양호한 내용을 보여주었기에 남은 시즌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일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8:7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17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 을 기록했고, 한 점차를 지키는 퍼펙트한 피칭을 보여준 배영수는 시리즈 전적 2승 2패를 만드는 중요한 세이브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거의 전성기급 구속인 최고 구속 '''147km/h''', 포크볼은 '''140km/h'''까지 찍어서 삼성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배영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 #s-3|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8⅓이닝 5피안타 5사사구 5K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3.24, 1패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경기 4⅔이닝 4피안타 3사사구 3K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3.86,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배영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13이닝 9피안타 8사사구 8K 5실점 5자책점 평균자책점 3.46, 2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5월 1일 한화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 [[장성호]]에게 맞은 투런홈런도 실투가 아니었을 정도로 좋은 볼을 던졌다.] 팀 타선이 1점 밖에 내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삼성타자들이 부진한데다가, 한화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는지라... [[지못미]]. 본인은 최선을 다해 던졌기 때문에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204747|#]]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철저히 투수전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5시에 시작해 7시반에 끝나는 기염을 토했다. 타 구장엔 5회말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5월 말까지 벌써 5승이나 올리면서 좋은성적으로 선발진에 큰 힘을 보태주고 있었으나, 6월부터 슬슬 부진하기 시작하더니 7월 말까지 이 기간에만 승리 없이 3패를 떠안게 된다. 평균자책점도 3점대 중반에서 5점대 중반까지 상승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간 중에 QS도 2번을 기록 했으나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 된 경기 또한 4번이나 되었기에 본인 입장으로서도 매우 아쉬웠을 듯 하다.
그렇게 계속된 부진에 늪에서 헤매이다가 8월 7일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QS+를 기록하며 77일만에 승수를 추가하였고, 명투구를 선보여 팀을 위닝 시리즈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후 8월 13일 대구 기아전과 8월 23일 [[청주야구장|청주]] 한화전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부진하면서 작년에 이어 시즌 말미에 다시 불펜으로 이동하게 된다. 8월 말 부터 시즌 종료까지 구원등판의 기록은 7경기 등판 11⅓동안 9탈삼진을 얻으면서 단 3실점(ERA 2.38)했으며, 홀드는 1개를 추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선 2011년 10월 28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팀이 1:2로 뒤진 8회말에 등판하여 [[정근우]]에게 안타, [[박재상#s-2|박재상]]에게 희생번트, [[최정]]에게 유격수 땅볼 진루타를 허용, 2사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권혁]]이 [[임훈]]을 운 좋게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어 이닝을 끝낸 덕분에 배영수의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터를 기록했던 선수가 세월이 흘러 지고 있는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3타자만 상대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배영수의 이날 성적은 ⅔이닝 15투구수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이날 경기가 배영수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준수한 5선발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 [[FA 제도|FA]] 협상장에서 삼성으로부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40018|최초 2년, 최종 2+2년을 제시받고 우선협상이 결렬됐다.]] 무옵션에 바로 가치를 보장받은 동갑 윤성환이나 백업인 '''[[조동찬]]보다도 못한''' 대우에 실망하고 "기회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FA시장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던 팬들은 지역 신문에 배영수를 위한 광고를 걸기도 했다.
- 몽키 D. 루피 . . . . 73회 일치
||<#DCDCDC> '''캡틴''' ||<#DCDCDC> '''밀짚모자''' ||<#DCDCDC> '''마술사''' ||<#DCDCDC> '''붉은 깃발''' ||<#DCDCDC> '''죽음의 외과의''' ||<#DCDCDC> '''바다천둥''' ||<#DCDCDC> '''살육무인''' ||<#DCDCDC> '''대식가''' ||<#DCDCDC> '''갱''' ||<#DCDCDC> '''해적 사냥꾼''' ||<#DCDCDC> '''괴승''' ||
작중 최고 개념인이지만 평상시에 했던 기행들 때문에 이런 점이 많이 묻히기도 하는 약간 안습한 인물이기도 하다. 불의를 보면, 묵인하지 않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행동에 나서는데, 작가는 이를 보고 현실 속 가상 국적을 '''[[브라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상결전|없는 상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상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상식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상식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앞서 말한 그 특유의 무모함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루피의 감은 그만큼 잘 맞는다'''. 분명히 루피가 무모해서 온갖 사선을 넘으면서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모두 살아남은 것은 루피의 감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패기 설정이 두드러진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연결된 떡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mr.3 전때 같은 것만 봐도 작가가 구상정도는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독자들도 있다.]
물론 '''일반적인 루피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냉철한 구석도 있다는 뜻이지, 루피라는 인물 자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물러설 때를 알기는 하지만 당장 동료나 친구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에니에스 로비|상]][[정상결전|황]]이면 몇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달려든다.
2부 시점에서는 날카로운 면모가 거의 보이지 않는 말도 종종 나오는데, 사실 2부 시점에선 루피가 감을 발휘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한편, [[실버즈 레일리]]의 회상 장면에서 [[골 D. 로저]]와의 첫 만남이 나오는데, 당시 로저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샹크스가 루피에게 모자를 맡길 때 '이 모자는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내 보물이다.'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레일리가 루피를 보며 '그 모자에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므로, '''[[http://mypi.ruliweb.daum.net/mypi.htm?id=ky352729&num=12504&cut=1 루피의 밀짚모자는 본래 로저의 것이었다]]'''는 얘기가 된다.~~모자 하나를 몇십년동안 쓰고있는거냐~~~~최강 내구도 밀짚모자~~
해적사냥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단 둘뿐이었다. 루피가 계속되는 동료를 찾다가, 소규모 ~~[[어선]]~~해적단이란 소리를 들을 쪽수는 채웠다. 그런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며[* [[러시아식 유머|순록을 닮은]] [[토니토니 쵸파|너구리]](절대 오타가 아니다.), [[프랑키|로봇]]도 있는데 왜 또 [[브룩(원피스)|해골]]까지 동료에 추가하려 드냐고 상디한테 한 소리 들은바 있다.] 특히 [[위대한 항로]] 진입 이후에 들어온 동료는 전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조로, 나미, 우솝, 상디는 '''일단은'''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쵸파는 순록 + 악마의 열매 능력자, 프랑키는 사이보그, 브룩도 해골 -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그나마 외모로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인 로빈도 악마의 열매 능력자. 사실 나머지 멤버도 조로, 상디는 초인급 싸움을 보여주고 나미는 위대한 항로에서 관측할 수 없는 사이클론을 감으로 예측하며 우솝은 사법의 탑 꼭대기에서 저 멀리 떨어진 다리에 있는 해군들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등 나머지 네명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반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식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식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식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식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반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식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반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식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동인 쪽에서는 원작에서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하렘]]마스터 기믹으로 나오고 있다. [[주인공 보정|루피와 인연이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커플링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사실 동인계 쪽에서는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루피와 인연이 있는 '''남성'''들과도 커플링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니(…) 마성의 페로몬에 더해 만인의 연인에 가까운 기믹이 있다고 보면 된다.
조로를 완력에 기교, 상디를 순발력에 기교라 친다면 루피는 완력과 순발력[* 원래 미친듯이 빠르다기 보다는 몸날림이 가볍다는 수준의 묘사가 많았다. 그런데 체 습득 후에는 실상 스피드탑. 같은 체 사용자가 상대가 아니고서야 속도에서는 질 일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에 내구이다. 기술 자체는 많지만 대부분이 이름만 붙인 평타에 가까워(…) 실상 기술적인 전투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야 할 듯. 가끔 고무의 특성을 이용해 상황을 타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술적인 전투라기 보다는 전투 감각 자체에서 앞서고 있기에 내보이는 임기응변이라고 봐야 한다.
여타 배틀만화 주인공 캐릭터의 전투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럭저럭한 내구에 위력적인 필살기를 주로 한 강력한 한방 공격력을 행사하는 경향을 주로 보이지만 루피의 경우는 사실 단타 기술 중에서 자신의 완력 이상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은 고무고무 '총탄'과 '라이플' 정도.[* 자신의 완력에 되돌아오는 고무의 탄성력이 더해진다. 라이플의 경우 회전력도.] 다른 위력적이라 할 수 있는 기술들은 전부 '''도핑''' 기술이다.[* 기어 3의 경우도 단타에 가깝게 사용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도핑기술이다.] 롤 플레잉 식으로 따지자면 쓸만한 공격 스킬이 없는 대신 기본 스테이터스와 셀프 버프 스킬이 개깡패라고 생각하면 된다.
완력에 있어서는 사실 극초반에는 고무의 특성을 위시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는 듯한 연출이 많았지만, 알라바스타와 하늘섬을 거치면서 완력이 점점 '''이상할 정도로''' 강해진다. 아론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피스톨을 아론에게 잡힌 적이 있고 철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오는 장면의 임팩트가 강한 정도였다. 그리고 피날레에서는 고무고무 도끼로 전력을 다해 두들겨서 아론 파크를 내려앉게 한 정도인데, 에니에스 로비 시점에서는 손이나 발 어디든지 대충 뻗으면 '''석조 건물'''들(…)이 스티로폼이라도 된 듯이 우르르 무너질 정도니 초반과 위대한 항로 중반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전투 스타일은 조로나 상디에 비해 기술 자체의 임팩트가 적어보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미친 듯한 완력에 더해 패기와 기어 2,3 까지 더해지면서 실상 하자가 없어졌다. 대표적으로 한 방 임팩트가 강한 엘리펀트 건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버프 두개 걸고 쏘는 단순한 평타'''이다.(…) 그러나 작중 스케일이 공성포나 마찬가지라 위력이나 연출 면에서 한방 필살기로써 하자가 없다.
주인공이 크는 건지 필살기가 크는 건지 모를 괴이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상인 배틀만화에서 필살기를 부각시키지 않고도 화려한 전투 씬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은 많은 액션 마니아들에게 작품의 매력의 하나로써 어필된 바가 크다. 보통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들에게는 [[사카타 긴토키|간판 기술의 부재]]라는 부담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인기가 있는 기술은 굉장히 많고[* 고무고무 바주카나 고무고무 도끼의 경우는 사실 많이 쓰는 편도 아닌데 인기가 좋고 폭풍우도 따지고 보면 두세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인기와 지명도는 굉장히 높다.][* 사실 초반의 강력한 필살기가 후반에서 인플레를 맞고 쩌리가 되는 상황도 배틀만화에서 많이 보여지는 경향인데, 루피같은 경우는 되려 초반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후반에 사용하던 기술이고 취급이 비슷하기 때문에 되려 잊혀지는 기술이 없다. 정상결전 직전인 에니에스 로비 편에 가서 대미를 장식한 기술이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쓸 줄 알던 고무고무 개틀링인 셈이니 정말로 잊혀지는 기술이 없는 셈.] 실제로 격투 게임 등에서의 취급이 손쉽다는 결과는 그야말로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미들네임이 D라서 [[해적왕]] [[골 D. 로저]]가 [[할아버지]]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해군본부(원피스)|해군본부]] [[해군 중장(원피스)|중장]]인 [[몽키 D. 가프]]가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아버지]]는 [[세계구]]급 [[혁명가]]로 '세계의 적' 취급을 받는 [[몽키 D. 드래곤]]. [[형]]들은 [[흰 수염 해적단]]의 2번대 대장 [[포트거스 D. 에이스]]와 [[혁명군(원피스)|혁명군]] 참모총장 [[사보(원피스)|사보]].[* 단, 둘 다 친형은 아니고 의형이다.]
다만 해적의 위험도를 반영하는 게 현상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상 최악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현상금이 언급된 적이 없는 사황이나 [[쥬라큘 미호크]]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적 시작한지 3년도 안돼서 4억베리까지 찍었다는 것부터 현시점에서 최악은 확실한 듯.
가족 인맥 덕을 본 사례는 쿠잔에게 패배하고도 살해당하지 않은 것과 반란군의 간부인 쿠마와 이완코브에게 받은 도움. 아오키지의 경우는 첫 싸움에서는 확실히 가프 덕에 살려준 것이 맞지만 최종적으로 에니에스 로비 전이 끝난 이후에 밀짚모자 일당을 내버려두고 떠난 것은 루피가 수틀리면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로빈을 맡겨둬도 될 만한 인물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반코프의 경우도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기는 했지만 사실상 루피가 보여줄 수 있는 증거는 자신이 이스트블루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밖에 없었으며 나머지는 이완코브가 임펠다운에서 루피가 벌인 행적을 보아 루피가 드래곤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납득한 것이다.[* 게다가 버기와 루피 탓에 서내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비된 상태에서 징베나 크로커다일 같은 거물까지 섭외했는 데도 똥줄타면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루피와 함께 탈옥한 것은 이반코브에게 있어서도 좀처럼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결국 아버지 이름만으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샤본디 제도에서 쿠마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일밖에 없다.
그리고 임펠다운 탈옥에서부터 예전에 싸웠던 적들이 대거 재출연하면서 꽤 우호적인 관계로 나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크로커다일, 버기, Mr3 등이 있다. 특이 케이스로 인성 자체가 변한 베라미, 이 경우는 루피가 베라미를 끌어들였다기 보다는 베라미가 스스로 변한 것이지만. 또 같은 초신성으로 명백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물들과도 얽혔다 하면 친분을 만들고 인맥을 쌓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팔가 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루피를 정상결전에서 피신시키고 치료해주며 현재는 동맹[* 사실 이것도 루피를 이용해 스마일 공장을 박살낼 의도가 컸지만 아무래도 루피는 로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듯 하며, 실제로 로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알게모르게 루피를 위해 움직일 때가 많다. ]을 맺은 상태이다. 물론 이들은 엄밀히 말해 징베나 행콕과 비슷할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전, 현직 칠무해이며 적이 될 사람들까지도 어느 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루피의 [[패기(원피스)|'사람을 이끄는 자질']]을 보여주는 케이스이다.
더불어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알 만한 전설적인 인물들과도 인맥이 있다. 징베나 행콕 같은 인물들과 다른 점이라 한다면 대부분이 루피 이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만렙에 달해있는 인물들이다. 이 경우는 루피가 도움을 주고 말고 할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상대방 쪽에서 일방적으로 마음에 들어하고 일방적으로 도움을 준다. 물론 그 수가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루피, 인맥, 거물 세 키워드만 넣어도 떠오르는 인물인 [[실버즈 레일리]]. 나머지는 사황 샹크스와, 가족관계인 가프와 드래곤 정도밖에 없다. 가프와 드래곤에게는 이러저러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드래곤은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 자체를 하지 않았고 가프도 군인이어서 나름 철저한 면도 있는 사람이라 가프 본인과 그 지인들에게는 진심으로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 정도밖에 없다. 물론 이것만으로 정상결전 생존률은 대폭 상승했겠지만(…) ~~내 손자가 아니라 나대는 새내기 해적 A였으면 공중에서 고무폭죽이 되어서 산화했다.~~ 가족 덕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71회 일치
* 온도 조절기 - $1,000, 2MW 소모. 실내에 온도 조절기를 설치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합니다. 주거 환경이 15 상승합니다.
* 온도 조절기 - $1,000, 2MW 소모. 실내에 온도 조절기를 설치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합니다. 주거 환경이 15 상승합니다.
||가엾은 백만장자들은 돈이 너무나도 넘쳐나는 나머지 그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킬만한 주거지를 못 찾는군요. 콘도를 건설하신다면 그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다시금 밝은 얼굴로 되돌려주실 수 있습니다.||
||은행은 외국인 관광객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각하께선 이곳에서 국가 예산을 횡령하거나 건물들의 건설 비용을 삭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곳은 사실 정치적인 풍자, 희극, 익살스러운 연극, 심지어는 셰익스피어의 정신적 고향입니다! 요즘 대통령 각하께서 공연장에 변장하고 들어와 페눌티모에 관한 농담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낭만적인 밤을 영화와 함께 보내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이곳에선 그레타 가르보, 험프리 보가트, 마릴린 먼로를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영화관은 오락을 제공하며 시민들을 깨우치게 해줍니다. 커플들에겐 손을 마주잡고 영차영차할 장소도 제공하지요.||
||각하께서 트로피코에 세우신 위대한 이념에 반발하는 자들은 실로 눈엣가시지요. 그런 놈들이 두번 다시 각하를 거역할 수 있는지 두고 봅시다!
* 정신교육: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재교육을 실시합니다. "난 대통령 각하가 너무 좋아요"라는 수업도 이수해야 하지요. 모든 죄수들의 존경심이 20% 증가합니다.
||무기 없는 혁명은 하릴없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무기고들을 확보하신다면 저렴한 경계 초소를 건설할 수도 있고, 정부의 통제력을 확충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경계 초소엔 장교가 한 명은 필요하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싶으시다면 그만큼 무기고를 많이 건설하시면 된답니다.||
||코쟁이들과 불곰 놈들은 트로피코를 경외하며 이 핵 무기 프로그램을 탐합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선 자력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수밖엔 없지요. 뭔가 모순이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15킬로톤짜리 핵 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건 적들뿐만이 아니라는 이 사실은,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고슨 아이드레게 글을 가르치는 고심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메바보다 못한 IQ의 저능아이지만, 초등학교를 통해서 트로피코의 미래를 일궈나갈 수 있는 지성을 함양할 수 있습니다. 밝은 내일을 이끌어갈 아이들을 위해 길을 닦으실 것인지, 아니면 멍청한 꼬마 좀비들로 자라게 할 것인지는 각하의 몫입니다. 교육은 지루한 거라고 그 누가 그러던가요?
||대중들에게 뻔한 거짓말이나 가짜 정보를 퍼트리는 수단으로서 뉴스만한게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하죠. '신문에 나와있으니까 사실일 거야'. 어리석은 영혼들 같으니라고!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더불어 해외로부터 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 쓰일 지출을 절약해줍니다. 대졸자들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를 확보하셔서 트로피코의 밝은 미래들이 청년 실업에 불만을 품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겠습니다.||
||과학 연구소는 단 한채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하는 다르지요. 이게 다 우리의 인간 복제 기술 덕택입니다. 이제 각하께선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는 동시에 반란군들과 싸우실 수 있습니다! 만일 각하의 복제인간이 불상사를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냥 한 명 더 만들면 되는 일입니다.||
* 이론 연구: 이론연구는 값이 싸면서도 훌룡한 연구 수단입니다. 그냥 게으르고 실속은 없는 교수들에게 칠판과 분필을 주기만 하면 되지요. 나머지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할겁니다. 이 운영 계획에서는 기본 운영비만 소비됩니다.
||화성인들에게 납치당하여 끔찍한 생체실험을 당하실 뻔한 각하께선 외계의 지적 생명체 탐색 연구에 매진하셨습니다. 미국 라디오를 감청하는 것밖엔 할 수 없었지만, 어떤 연속극에서 피터가 노르마랑 바람을 피운다는 결말을 알아낼 수 있었지요.||
* 훈연실 - $2,000 소모. 이 건물이 있으면 일반 쇠고기 대신 더욱 고가의 훈제 쇠고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 원예용 설비실 - $1,500 소모. 나무들이 2배 더 빨리 자랍니다
||기름덩어리 음식, 맛 없는 음식, 혹은 건강식품. 모두 슈퍼마켓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트로피코의 순진한 시민들만을 위한 음식이랍니다.
||전나무부터 옥수수까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식물에 대해 모든 것을 꿰고 있으며, 또 알고자 합니다. 실험 대상이었던 파파야가 도망간 이후로는 그들은 실험을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지요.
- 슈가(방탄소년단) . . . . 70회 일치
||<:><#00CED1>{{{#fff '''별명'''}}} ||<(> 설탕, 민슈가[* 본명인 민윤기와 예명인 슈가를 합친 것. 자매품으로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이 있다. ~~feat.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아 울지마라~~], 민피디[* 슈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슙기력[* 슈가 + 무기력], 민가마니, 슙슙이, 고유슈가, 민빠답, 윤기선배, 양꼬치 듀오[*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 함께. 둘이 양꼬치를 자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옥수수 국수도.], 사탕[* 중국 팬 한정. [[중국어]]로 "탕탕" 이라고 발음된다. 설탕(슈가) 또는 사탕을 뜻하는 '탕(糖, táng)' 자를 두 번 연이어 쓴 것. 한글로 독음할 경우 '당당(糖糖)'], [[Agust D]][* 솔로 활동명. 2016년 8월 동명의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Agust D]] 항목 참고.],[br]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V앱 스타캐스트 참고.], 민윤지[* V앱 달려라 방탄 11화에서 여장을 했다.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같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826697453105606656|셀카]]를 찍고 SNS에 민윤지(하트)라고 올렸다.], 슙디[* 꿀FM에서 슈가슈가슙디... 라고 DJ를 맡았었다.], 송월[* 트리비아 항목 참고.], [[메타몽]], 미늉기, 민다가오지마[* [[LOVE YOURSELF 承 'Her']]의 컨셉포토 사진 때문에 생긴 별명.], 슈왜노잘[*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후 김영대 음악평론가가 올린 트윗에서 유래된 말이다. [[https://twitter.com/toojazzy25/status/909994408468029440|슈가 왜 노래 잘하지?]]], 민덩방아[* [[RM]]이 준 의자를 받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아픔을 호소했는데, 이를 [[RM]]이 민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A.R.M.Y|아미들]]은 슈가 놀리려고 실시간 트렌딩에 올려놨다.--] , 민형[* 민윤기 형을 줄인 말. 데뷔 전부터 민형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슈가[* 각설탕(...)], 민설탕,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흔하게 민 씨들은 민달팽이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지은 별명이라 한다.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한 별명 맞히기에서 밝혀진 사실인데, 예명인 슈가와 관련된 별명을 내면 빠르게 들킬까 봐 민달팽이를 적어서 낸 것 같다.] ||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어쩌면 나는 너의 진실이자 거짓일지 몰라'''
'''13세 때부터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 편곡을 익혔고, 그 덕분에 녹음 장비와 음향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39&contents_id=122930|링크]] 고등학생 때는 학교 교가를 편곡하여 용돈벌이를 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루하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반면에, 학창 시절 음악 과목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음악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게 싫었다고. 그래서 교과서로는 음악 공부는 하지 않고 방과후에 음악을 했다고 한다. 피아노 실력 또한 본인이 독학으로 공부한 것.
[[LOVE YOURSELF 承 'Her']] 컴백 기념 [[엠넷]]의 특집 방송 BTS COMBACK SHOW에서 본인이 천재인 걸 인정하냐는 말에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며 부끄러워했지만, Agust D 믹스테이프로 공개된 슈가의 개인 작업실 이름은 '''Genius Lab'''으로 천재 연구소라는 뜻이다. [[https://youtu.be/7uSf-b9x7N8|4:25~ 작업실 작명 일화]] 솔직히 본인도 천재임을 아는 듯하다. --민슈가, 천재. 뭐 이 두 마디면 될 것 같아요--
두 번째 미니 앨범인 <[[SKOOL LUV AFFAIR]]> 때부터 본인이 프로듀싱한 곡을 꾸준히 트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본래 진로를 [[프로듀서]], [[작곡가]]로 잡은 적도 있었던 만큼 [[싱어송라이터]]가 많은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작사, 작곡에 많은 공을 들이는 멤버 중 하나이다.[* 3년 전 방시혁 프로듀서의 [[https://youtu.be/8XKDXHdj95s|'상대방의 기썬을 제압해']]라는 홍보 영상으로 알려진 오디션에 참가하여 2등 수상, 그 후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아이돌이 되는 줄 모르고 참가했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서 작곡가 등으로 활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이 말을 들은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말한다.] 연습생 시절 '1DAY 1VERSE'라 하여 하루에 한 곡씩을 꼬박꼬박 쓰며 실력을 쌓는 등의 작업도 했었고, 데뷔 후인 현재에도 음악 작업을 즐기고 또 열심히 한다. 1년에 한 200곡은 만드는 것 같다고.
평소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메모해 두었다가 곡 작업에 반영한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으로서 음악 작업을 할 때는 각자 따로 작업하지만, 서로의 작업물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함께 모여 의논한다고 한다. [[http://www.marieclairekorea.com/2016/08/celebrity/%EA%BF%88%EA%BE%B8%EB%8A%94-%EC%8A%88%EA%B0%80/|인터뷰]] 2018년 [[시즌 그리팅]] DVD 영상에서 하루에 한 곡씩은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것인데 무언가를 창작해 본 자라면 알겠지만 하루에 하나의 창작물은 커녕 일주일, 한 달에 하나를 만들기에도 빠듯하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부분.]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상반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남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상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하얀 피부로 인해 주로 톤다운 메이크업[* 무대 위 조명이 강하기 때문에, 피부가 너무 하얗다면 화면 상에서 이목구비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톤다운 메이크업을 한다.]을 하기 때문에 간간히 실제 피부색과 차이나는 얼굴색을 발견할 수 있다. [[https://twitter.com/rolminsugaex/status/870401381546561536?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참고하자]] 뿐만 아니라 화보집에서 얼굴, 손과 차이나는 피부 색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https://twitter.com/helloygya/status/899626631307812865|본격 피부색 #FFFFFF 확인]]
가는 다리 탓에 슈가의 체격 또한 왜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탄소년단]] 안에서 가장 마른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어깨는 꽤나 다부진 편.[* 방탄소년단에서 어깨가 넓은 멤버 하면 [[진(방탄소년단)|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 진이 너무나도 넓은 탓에 가려져서 그렇지 슈가도 꽤나 넓은 편이다.] 덕분에 마른 하체임에도 넓은 어깨로 인해 그닥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 [* 허나, 실물을 본 팬에 따르면 너무 말라서 걱정된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 슈가는 연습생 시절 멤버 피셜로 가장 덩치가 있는 멤버였다. 때문에 슈가는 자신의 키가 180까지 클 줄 알았다고. 허나 데뷔 전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어깨를 다치면서 운동을 하지 못해 근육이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 등치가 어디 가지는 않는다고 현재 어깨는 물론이며 흉통도 꽤 도톰한 편. 또한 승모근도 거의 없어 시원시원하게 떡 벌어지는 직각 어깨이기에 옷핏도 좋다.
같은 멤버 [[진(방탄소년단)|진]] 다음으로 넓은 어깨로 인해, 그 사이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아직까지 확실한 어깨 사이즈가 공개된 적은 없다.
동생들이 잘못을 하면 잔소리와 훈육은 본인의 몫이라고. --[[진(방탄소년단)|맏내]]는... 다들 아시잖아요-- 멤버들 또한 실제 성격도 무뚝뚝하고 쿨한 데다 제법 무심한 편이라고 증언했다. 실제 지금까지의 성장 환경 자체도 남자들 사이에서만 커 왔기에 남자를 잘 다룬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 특히 팬들 앞에서는 밝은 미소와 [[https://twitter.com/lqyoongi/status/874689569815498757|애교]]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인터뷰에서 팬들 앞에만 가면 자꾸 애교를 부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팬들은 '팬들 앞에만 서면 엄청난 조련 실력을 보여준다'라고 평가. 예를 들어... [[http://www.youtube.com/watch?v=mASFNt7etK8|더듬이를 찾는 꿀벌 슈가]] [[http://www.youtube.com/watch?v=jNs7q-3IvnA|고소당할 위기의 민윤기 씨(...)]] [[http://www.youtube.com/watch?v=BVOFEBh8PVg|밥으로 팬 조련하는 슈가]] [[https://twitter.com/sugaonthebeat39/status/914831884424667137|텍스트 애교 슈가]]
그리고 멤버들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RM|]]을 '''준이'''라는 [[https://youtu.be/6CHNUAO0eZQ|애칭으로]] [[https://youtu.be/kuxNKfi8_P8|부르거나]], [[정국(방탄소년단)|밥 안 먹는 멤버]]한테 [[https://youtu.be/5M9ruwJIaXs|왜 안 먹냐고 챙겨준다거나(1분 55초부터)]] 등등... 휴대폰에 멤버들을 저장해 놓은 이름도 --예상 외로-- 귀엽다. [[RM|랩몬킴이야]], [[제이홉|호옵]], [[진(방탄소년단)|찐형]] 식이다. 말 그대로 [[갭 모에]]. 툴툴거리면서도 멤버가 해 달라는 걸 다 해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http://www.vlive.tv/video/5999?channelCode=FE619|14분 16초부터]] --[[츤데레]]--[* 충수염에 걸렸을 때 혼자 병실에서 [[SBS 가요대전]]을 보다가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넘어진 것을 보고 TV 채널을 바로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고... --흥! 널 딱히 좋아하는거 아냐!-- --츤츤-- '못 보겠더라고' 라고 말했다. 어투를 보면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츤데레]]보단 [[다루데레]]에 가깝다--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단연 [[제이홉]]에게 치킨을 사다준 사연.[* 제이홉 [[제이홉#s-2|트리비아]] 항목 참고.] 달려라 방탄 ep.9에서 번지점프를 뛰는 [[지민(방탄소년단)|지민]][* 지민은 [[방탄소년단]]에서 겁이 두 번째로 많은 멤버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제이홉.]을 보고 "뛰었어? 뛰었네. 아이고" 라고 말하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면모가 많다. 때문에 슈가를 두고 '''무관심 속 유관심'''이라 일컫기도 한다. 제이홉 왈 그룹에서 슈가만큼 멤버들을 신경쓰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한다.
가끔 매우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 보인다. --정말 소시민 같다-- <[[O!RUL8,2?]]>에 수록된 If I Ruled The World 슈가 파트가 대표적인 예. --세계가 자기 건데도 참... 소박하다 이 남자-- '주식과 도박 그딴 건 안 하고파' 라는 가사처럼 작은 내기 --도박--도 꺼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BON VOYAGE2 5회에서 멤버들의 내기 경기가 끝난 후 슈가가 한 말은 "여러분들 현실에 만족하세요! 여러분들 한방은 없습니다! 제 인생의 지론이에요!"
나아가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시점부터 기어다닌다고 한다. 스케줄이 없는 날은 아예 침대 위의 산송장. 본인은 '오래 많이 자는 게 아니라 새벽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짧게 많이 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멤버들은 슈가가 워커홀릭인 건 다 컨셉이라고 디스 하기도 한다. 애초에 외출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작업실, 숙소, 방송국 빼고는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소한 게으르진 않으며,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DVD에서 본인피셜 하루에 한 곡씩은 쓰고 있다고. 물론 쉬는 날도 종종 있다고 한다.] 실제 BTS COMBACK SHOW에서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슈가의 모습이 공개되었으며, 작업실 내부에 샴푸를 비롯한 생필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정말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슙기력한 면모와는 달리 의외로 외향적인 모습도 보이는데, 멤버들 중 절대적 친화력을 자랑하는 [[뷔|김스치면인연]] 다음으로 연예인 친분이 많은 축에 속한다. [[슈퍼주니어]]의 [[희철]][[https://www.youtube.com/watch?v=VDLOJUoZuHQ|#]], [[슈퍼주니어 M]]의 [[조미(슈퍼주니어-M)|조미]][[https://www.youtube.com/watch?v=9pp52q-TSAQ|#]], [[GOT7]]의 [[JB]][[http://www.vlive.tv/video/38334?channelCode=ECDF|27분]], [[SURAN|수란]][[https://www.youtube.com/watch?v=4kXopVVKo1A|#]], 같은 [[대구광역시]] 출신 [[김신영]][[https://youtu.be/jr43w98yPOE|#]] [[에픽하이]]의 [[타블로]] [[https://www.youtube.com/watch?v=fLjsOTe8Y6E|#]], [[워너원]]의 [[강다니엘]][[https://youtu.be/K0piUcRvIq8|#]], 등.
[[방탄소년단]] 꿀FM[* 방탄소년단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실제 라디오 방송은 아니며 데뷔 n주년, 크리스마스 등 불규칙한 시기에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업로드된다. 여담으로 6.13mhz라고 한다.]에서 '슙디(슈가+DJ)'로 DJ를 맡기도 했다. 라디오식 방송의 특성상 차분한 저음과 능숙한 진행 능력 때문에 지목된 듯. 신인왕 때도 MC다래[* 당시 다래끼가 나 있었다.]로 발탁돼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준 바 있다.
슈가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 Agust D가 2016년 8월 16일 [[https://soundcloud.com/bangtan/sets/agust-d|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데뷔 3년 만에 공개되었다. Agust D는 그가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으로써는 표현할 수 없었던 얘기들을 할 때 사용하는 이름으로, D-Town SUGA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여기서 D-Town은 그가 데뷔하기 전 [[대구광역시|대구]] 언더에서 활동하던 힙합 크루의 이름이다. 어거스트 디는 믹스테이프 발표 이전 Cypher pt.3 Killer의 슈가 파트 중에서 'SUGA a.k.a Agust D 두 번째 이름'이라는 가사에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믹스테이프를 발표한 후 한 인터뷰에서 어거스트 디의 뜻에 대해 언급하며 확실시되었다.[[http://m.star.naver.com/bts/news/end?id=8096001|#]]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총 두 편이며, 10번 트랙 "so far away" 뮤직비디오도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이는 [[http://blogfiles6.naver.net/20160816_85/dbsrldudwo_14713584110624YQm2_PNG/2016-8-16_23%3B39%3B36.PNG|오보]]에 의한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자가 Agust D 뮤직비디오 설명란에 쓰여진 글 "Agust D’s ‘Agust D’, the first mixtape album, featuring ‘Agust D’, ‘give it to me’ and ‘so far away' is out now."를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so far away" 뮤직비디오에 관한 긴 기다림과 궁금증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61017_276/yang020215_1476716271498ISk0H_JPEG/Screenshot_2016-10-17-23-47-53.jpg?type=w2|이 사진]]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 믹스테이프에서는 예명으로 SUGA가 아닌 위의 '''Agust D'''를 사용한다.[* Cyper pt.3 Killer에서 슈가 본인이 발음한 것에 기준하여 '어거스트 디' 라고 발음된다. 그러나 사실 영미권에서 이렇게 발음하려면 첫 글자 A 다음에 H를 넣어 묵음 처리를 하거나, 아니면 U를 넣어 (영어로 8월을 뜻하는) 'August' 라고 써야 하기 때문에 믹스테이프 공개 후 해외 유튜버들이 줄줄이 멘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슈가의 발음대로 어거스트 디로 통일되는 듯. 하지만 일부 영미권 팬들은 여전히 '에이-거스트 디' 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역겨움'을 뜻하는 'Disgust(디스-거스트)'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믹스테이프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타이틀도 동명의 Agust D이며 트랙은 총 10곡. 아이돌인 래퍼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며, 데뷔 이전부터 음악을 시작했던 13살 이후의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비롯하여[* 특히 7번 트랙 <마지막>]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선 가사가 와닿는다는 반응이, 해외 팬들 사이에선 랩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뮤직비디오의 컨셉은 방황하는 청춘으로 무너진 집에 갇혀 있던 슈가가 사투 끝에 탈출, 마침내 어거스트 디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해당 곡 또한 어거스트 디의 등장을 알리는 곡으로, 당차고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비트와 래핑 실력이 돋보인다.
- 권혁 . . . . 69회 일치
삼성의 쌍권총, 그리고 2015 시즌 한화의 불꽃남자. 몇 년간 삼성의 철벽 불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실력이 하락해 이제 잊혀가는 선수가 되는 듯 했으나, 한화로의 이적 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주목받던 시절은 있었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 했던 선수에서 2015 시즌의 [[투혼|긍정적]]으로도 [[살려조|부정적]]으로도 주인공이 된 선수.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오승환]]이 뻗어버려서[* 이는 삼성의 2009년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로 직결된다.] [[정현욱]]과 번갈아가면 마무리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인지 갈수록 성적이 처참해져서 시즌 후반에는 심심하면 털리는 야라레 투수가 되어 버렸다. [[지못미]]. 그래도 어찌어찌 21홀드를 기록함으로서 홀드왕 타이틀은 차지하였다.
덕분에 실제로도 [[선동열]] 감독도 2010 포스트시즌에 그런 그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 : 4타자 상대하여 0.1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희비 1실점(1자책) '''ERA 27.00'''.
플레이오프 3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 볼넷 1실점(1자책) [[한기주|'''ERA 99.99''']].
권혁은 2010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⅔이닝 1홀드 2피안타 4볼넷 2실점(2자책) '''ERA 27.0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오승환]]이 [[김재현]]에게 [[분식회계(야구)|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46015=|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상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상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2010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0.2이닝 1패 1피안타(1피홈런) 2볼넷 1K 2실점(2자책) '''ERA 27.0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종합''', 2010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1.1이닝 1홀드 1패 3피안타 (1피홈런) 6볼넷 1K 4실점 4자책점 '''ERA 27.00''',[*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을 모두 '''27.00'''을 찍는 위엄을 달성.] 1패를 기록했다.
그 이후로 자신감을 급격히 상실, 2011년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2010년 포스트시즌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떨쳐버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오죽했으면 충격으로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체중이 6kg나 빠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4월 16일 1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까]]라인~~[* [[정현욱]]-[[오승환]]-권-[[권오준]]-[[안지만]]의 이니셜 앞글자를 따면 JOKKA다. 자세한건 조까항목 참고. ~~선수들 욕하는 아니다. 타자들 조까라는 뜻~~]...이 아니라 [[안정권KO]] 라인이 완성되었다.[* 사실 조까보단 안정권KO가 등판순서에 더 어울린다. 그리고 2011년엔 안지만이 선발로 나오면서 진짜 안정권KO 순서대로 등판할 뻔 했다!]
8월 2일 넥센전까지 38경기 11홀드 1블론 ERA 2.70 WHIP 1.33 30이닝 23피안타(1피홈런) 18사사구 15K를 기록 중이다. 뭐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름값과 1억 9천만 원이라는 연봉을 생각하면 기대에 많이 못미친다. 보면 알겠지만, 경기당 1이닝이 안되는 수치로서 이는 당초 기대되던 강력한 셋업맨이 아니라 LOOGY, 즉 [[원 포인트 릴리프]]다.[* 물론 예전과 달리 선발 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6이닝 이상까지 올라갔으며 8회에는 [[안지만|힙합전사]]가, 9회에는 [[오승환|인간투석기]]가 풀가동 중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6~7회의 아웃카운트 4~6개를 [[정현욱]], [[권오준]]과 나눠 소화하게 되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할 변화도 아니다. [[권오준]]만 해도 경기당 1이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LOOGY들에게 가장 금물이라 할 수 있는 '''볼질'''이 심해졌다. 작년만 해도 73K/19BB였고 통산 K/BB도 2를 넘는데 올해는 어째... 물론 [[삼성 라이온즈]]나 국내 야구판에 권혁만한 레프티 릴리버가 있어도 얼마나 더 있겠냐마는, 이전에 비해 좀 안습인건 사실이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
8월 6일 한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8월 8일 롯데전에선 한 타자도 못잡고 1자책을 허용했으나, 끝내기 홈런은 [[임창용]]의 블론 이후 나온 것이라 삼성팬들은 임창용을 까기 바빴고, 롯데전에선 좌우놀이에 휘말려 1타자를 출루시킨 뒤 심창민의 깔끔한 분식으로 실점한 것이라 권혁에겐 비판의 화살이 거의 없었다. ~~이듬해 이 팀으로 적을 옮긴 후, [[정근우]]가 이때 맞은 홈런을 가지고 권혁을 놀린다는 얘기가 있다~~
'''확실한 휴식을 부여받으니 어느 정도 살아나나 싶었으나...'''
- 신화용 . . . . 66회 일치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상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백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2008년 정성룡이 성남으로 갔지만 같은 해 김지혁이 이적해오면서 리그 경기 대부분을 김지혁에게 내줬지만 ACL에서만큼은 6경기 전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다가. 2009년 초부터 김지혁을 밀어내고 신화용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K리그]]는 물론[[AFC 챔피언스 리그]] 에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 팬 한정으로 골머리를 앓던 수비[* 이 때 포항의 주력 수비수가 [[황재원]], 김형일. 타 팀 팬들은 군침 흘리며 탐을 냈지만 매주 포항의 경기를 지켜보는 포항 팬들은 가끔씩 벌이는 정줄 놓는 수비에 그냥 뒷목만 잡았다.]문제를 혼자서 다 커버했다. 2009년 포항은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에게 패배하여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이러한 선방쇼 덕에 신화용은 다른 쟁쟁한 골키퍼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뽑힌다.'''[* 당시 경쟁자들이 모두 실점률 1점대를 찍을 때 홀로 0점대(0.95) 실점률을 기록했다.]
김지혁이 상무 입대를 하고 상주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영구제명 상황까지 가게된 현재 부동의 주전 골키퍼. 다만, 2010 시즌에는 실점이 꽤 많은 편이고 팀 성적도 좋지않아 여전히 좋은 평가를 못받았다. [* 실제로 2009 플레이오프 성남전에서는 몰리나에게 통한의 프리킥골을 내주며 팀이 결승 진출 실패.]~~[[호세 마누엘 레이나|레이나]]?~~
하지만 2011 시즌, 드디어 포텐이 폭발. 시즌 개막후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어째 원정만 가면 안정감이 없어진다. 그래도 엄청난 '''슈퍼세이브'''들을 보여주며 역시 포항의 문제는 '''골리가 아니라 수비진'''이었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2011 시즌 전체 팀 중 포항이 최소 실점 3위로 끝난 건 사실 수비진의 역할 보단 신화용의 세이브 덕분(...)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이 리그 최소 실점을 달리게 만들었다. [[전북 현대]]와의 2013 FA컵 결승전에서는 레오나르도의 결정적인 슛팅을 '''한 손'''으로 막아내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1,2번 키커의 슛을 연달아 막는 활약 속에 포항의 FA컵 2연패 및 최다 우승에 일조하면서 FA컵 결승전 MVP로 뽑혔다.
약점이던 수비 리딩도 발전하여 포항은 2013 시즌 리그 실점 순위에서 2위(38실점)를 달성했고 신화용 본인도 경기당 실점율 0.93을 달성했다. 하지만 신화용 보다 더 낮은 실점률을 기록한 [[울산 현대]]의 [[김승규]]가 시즌 베스트11의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고 [[신화용]]은 우승팀 골키퍼 에도 불구하고 생애 두 번째 베스트11에 실패했다.
2014 시즌에도 맹활약 중인데, 2014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부리람 원정에서는 신화용 답지 않은 실수로 1골을 내줬으나 팀이 승리하여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시즌 초반 [[황지수]]의 부상 결장으로 매 경기 실점을 내주고 있는 포항 수비진의 삽질을 혼자서 다 커버하는 등 이러한 활약 속에 5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미친 선방쇼로 4:2의 스코어와 상관없이 이 날 MOM에 선정되었다.
2014년 3월 29일 '''포항소속으로 200번째 출장'''을 맞이하였다. ~~포항에서 200경기를 뛴 최초의 골키퍼~~ 이날 [[스틸야드]]에서 200경기 기념 머플러를 뿌렸으며--신화용이 쏜거다!-- 이날 자신의 200경기 출장을 축하하듯 들어간거나 다름없는 김현의 헤딩슛을 막아내는--역시 포항 최후방수비수--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며 시즌 두번째 무실점을 달성했다.
사실 후반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영입들보다 더 반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상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백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이후에도 꾸준히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포항의 수문장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나, 김태수, 황지수의 노쇠화와 김광석의 초반 부상. 김원일의 삽질(...)로 15시즌 포항 수비진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지라 신화용으로서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경기당 실점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김광석의 복귀 이후 김원일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으면서(...) 수비가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레 클린시트도 늘어나고 있다.
9월 말 기준 14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하였고 제주전에서는 PK까지 막아내는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등, 포항 공격진이 여전히 득점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혼자서 팀의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10월 현재 경기당 0.82 실점으로 실점률 1위. 무실점경기 1위, 유효슈팅 선방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36라운드 기준으로 17경기 클린 시트(무실점 경기)를 달성하며 클린시트 2위인 박준혁,권순태(13경기)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시즌 클린시트 1위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상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상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영플레이어상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상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상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15시즌이 끝나고 다른 한국 골키퍼들이 연달아 J리그로 떠나자, 해마다 포항 팬들에게 주목 받던 '''신화용의 거취문제가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전남 드래곤즈와 [[김병지]]의 결별, 성남 FC의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의 현역 입대,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으로 클래식 팀들의 구애를 받게 된 [[이범영]]까지 골키퍼 연쇄이동이 점쳐지는 가운데 '''언급된 모든 키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화용이 재정감축위기에 빠진 포항을 떠날까 포항팬들이 걱정했으나...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부상 이후 폼이 하락해 결국 16시즌 후반부에는 후임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김진영이 포항의 새로운 수문장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었으나...팀의 운명이 걸린 후반부 하위 스플릿에서 김진영이 연달아 실수를 범하며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하자 막판에 주전으로 복귀. 포항의 잔류에 힘을 보태었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살펴보면 요근래 시즌 중에서는 가장 나쁜 시즌을 보내었다.
2016년 12월 우선 협상기간 동안 신화용의 거취에 관심이 쏠렸다. [[http://news.donga.com/View?gid=82057389&date=20161227|기사]]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3일수원과 이적 협상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이미 [[문창진]], [[김원일(축구선수)|김원일]], [[신광훈]] 등 신예 베테랑 가리지 않고 핵심 멤버들을 보낸 마당에 마지막 프렌차이즈 스타마저 떠난다는 소식에 포항팬들은 [[멘붕]] 중. 게다가 팀을 떠나는 이유도 '''16시즌 종료 이후 구단이 직접 나서 신화용을 팔기 위해 여러 구단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포항 프런트와 수뇌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부상복귀후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9월 20일 제주 상대로 웃긴 실수로 해 팀이 패배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정원 감독과 이운재 코치의 표정이 압권. 하지만 바로 극복해 9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인천]]과의 경기에서 [[한석종]]의 페널티킥을 막아냈지만 세컨볼 상황에서 하창래에게 골을 먹고 말았다.
시즌 총평은 부상과 가끔씩 터지는 대형 실수가 불안요소이긴 했지만 선방들을 보면 충분히 성공적인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전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포항에서의 활약을 조금 보여주고 있다.
- 실업팀 . . . . 66회 일치
[[스포츠]] 팀의 구성 구조. 영어로는 Works team 혹은 factory team이라 불리는 형태. 일본어로는 실업단(実業団)이라고 부른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한 형태[* 대한민국의 경우, [[세미프로]]까지는 아마추어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아마추어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종목을 불문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여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실업팀은 기업, 군부대, 공공기관, 지자체 등의 구성원, 종업원으로 구성된 팀이다, 실업팀은 원칙적으로 종업원의 "사내 스포츠 클럽"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스포츠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상부 조직의 특정한 '부서'로서 운영된다. 따라서 팀의 운영은 전적으로 해당 상부 조직의 관리 하에 놓여져 있다.
실업팀의 운영 실태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근대 팀 스포츠는 노동자의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개인 스포츠는 귀족적인 여가 생활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은 주로 소속된 공장, 회사 단위로 스포츠 클럽을 조직하였는데, 이런 형식의 스포츠 클럽이 훗날 실업팀의 모체가 되었다. 공장 단위로 조직된 것은 서로 스케쥴이 맞고 연락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가 흔적으로 남은 유명한 사례로,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날 FC]]가 있다. 아스날은 영국 육군 조병창의 실업팀에서 유래하였으며, [[클럽팀]]으로 전환한 뒤에도 아스날(조병창)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군부대나 공공기관 단위로 실업팀이 조직되었으며, 이 같은 실업팀들이 높은 명성을 누렸다. 일본에서는 쇼와 초기에 실업단이라는 명칭으로 실업팀을 창설하였으며, 일본 만이 아니라 한국, 대만에도 이러한 문화가 퍼져서 실업팀 중심의 스포츠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프로 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각국에서 실업팀은 문제점이 드러나서 쇠퇴하는 추세에 있다.
== 한국의 실업팀 ==
[[한국]]에서는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서 지자체,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운동경기부(실업팀)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지자체는 실업팀을 '1팀 이상'을 두도록 되어 있으며, 공공기관의 경우는 상시 근무하는 직장인이 1천명 이상인 경우에 설치하여 운용하도록 한다. 이 의무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신청을 거쳐서 면제될 수 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상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상태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태이다.
지자체 실업팀(운동경기부)는 주로 [[전국체전]]과 그에 이은 [[올림픽]]을 목표로 육성되고 있다. 프로화가 활성되지 않은 종목에서는 지자체 팀은 사실상 예비 [[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다.
실업팀을 운영하는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종업원의 실업팀 활동을 통하여 조직의 단합력을 향상시키고, 조직 생활에 적응한 인재를 육성시킨다.
실업대회 출전과 실업팀의 성과는 조직을 홍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지역 공헌 차원에서 실업팀이 운용되기도 하는데, 주민에게 스포츠 시설을 개방, 대회를 개최하여 지역에 공헌하는 것이다.
자전거 경기, 모터 스포츠 같은 경우는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목적에서 실업팀 활동이 이루어진다. 실업팀을 위한 레이스 차량 개발이 일반 제품 개발에 연결이 되며, 대회의 성과는 회사의 홍보와 상당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그냥 경영진이 해당 스포츠를 좋아해서 실업팀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농담인 것 같지만 진짜다.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의 경우 원래 럭비를 좋아해서 럭비 실업팀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축구팀 성남은 아예 일화가 운영하던 시절, 일화가 창단한 이유중 하나가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취미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팀도 취미로 운영할 수 있는데 실업팀 쯤이야(...)]
프로 스포츠가 없는 곳에서는 지자체가 실업팀을 운영하여 경기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여가활동을 제공하거나, 지자체의 명예와 시민의 고양을 위해 전국체전에서의 활약을 노리고 실업팀을 운영하거나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국체전의 활약은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실업팀 체계에서는 스포츠 팀이 전적으로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 팀은 독립된 법인격이 아니며, 선수의 신분은 기본적으로 '사원'인 경우[* 실업팀이라고 해서 계약 선수를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가 많고, 팀의 운영과 활동은 선수 개인이나 팀 자체 보다는 기업 차원의 이득을 위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러한 구조에서는 팀의 성적과는 무관하게, 기업의 실적에 따라서 팀의 향방이 정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팀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꼼짝없이 실업팀이 정리해고 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불황기에는 눈에 뛰게 직접적인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실업팀이 가장 먼저 해체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삼성의 경우는 이건희가 실질적으로 경영활동에서 물러난 것과 동시에 럭비팀을 운영하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10506333771780|삼성중공업의 경영실적이 악화되자 지체없이 짤렸다.]
독립된 조직이 아닌, 상부 조직의 일개 부서이기 때문에 실업팀은 외부 압력에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약하다. 이는 지자체 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한국에서 여러 지자체는 실업팀을 너무 쉽게 해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55회 일치
이런 무모함이 흰 수염의 마음에는 제법 들었고 또한 에이스를 구출하려는 공동의 목적이 있기에 에이스 처형을 앞당기려는 해군의 계획을 흰 수염에게 말해주기도 한다. 어쨌든 흰 수염 해적단의 엄호와 함께 적진으로 돌진해 나간다. 루피가 전장에 나서자 [[센고쿠(원피스)|센고쿠]]는 루피가 혁명가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그도 위험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이어서 전세계에 생중계된다.
에이스를 구출해내고, 함께 놀라운 호흡으로 해군을 쓰러뜨리며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도망 도중 추격해 온 [[사카즈키]]의 도발하자, 에이스는 방향을 돌려 사카즈키와 싸우기 시작한다. 이 때 루피가 흘린 비브르 카드를 주우려 할 때 그 틈을 노린 아카이누의 공격을 에이스가 대신 맞아 죽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red 에이스 구출실패.}}}'''에이스의 사망을 목격한 루피는 정신을 놔버린다.[* 여담으로 PS3으로 나온 원피스 해적무쌍에선 이 장면에서 루피가 패기를 사용, 사카즈키를 두들겨 패버린 후 기절한 것으로 나왔다.왜?] 에이스가 죽자 전황은 해군전체의 타겟이 된 루피를 흰 수염 해적단과 임펠 다운의 탈주자들이 어찌해서든 지키는 형태로 바뀌었고, [[징베]]가 루피를 업고 탈출을 시작한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상태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상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순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정상결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심지어는 뭐가 해적왕이냐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사실 에이스랑 동료들을 못 지키고, 봉쿠레를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희생시켰다. 심지어 에이스는 마린포드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친할아버지인 가프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루피가 정말 처절하게 절망했다. 이런 사실은 샤본디에서 동료를 모두 잃은 일이 첫 번째 좌절이다. 다만 샤본디에서 동료들과 흩어지고, 잠시도 못 쉬고 정상결전까지 겪었다. 결국 좌절을 곱씹을 겨를도 없지만, 이때는 모두가 살아남았으니까 본인이 겪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에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몸을 해치는 일을 말리려는 징베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실 징베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속이 상할 만한 상황이다. 흰수염 본인과 에이스 외에도 흰수염 해적단의 수많은 해적들이 루피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정작 그 본인은 상처가 벌어지는데도 날뛰어 대서 혼자 개죽음을 겪으려 하는 상황이니 징베까지 덩달아 격동해서 루피를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불안정한 상태였다. 징베가 '''"잃은 것만 보지말고 남아 있는 것도 봐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자 울며 날뛰던 루피도 '''[[밀짚모자 일당|사랑스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기 해적단'을 남아있는 것 한 가지로 세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일일히 하나씩 꼽아가며 세고는 남아 있는 것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이 참으로 루피다운 모습.
이후 동료를 찾으려 섬을 떠날 때, [[실버즈 레일리]]를 만난다. 레일리는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변한다고 충고하고, 루피에게 무슨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마린 포드'를 '또 다시' 습격하는 것으로 해군과 초신성은 이를 마린 포드에 있는 '옥스벨'[* 이 종은 옛날에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이며 그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이라는 종으로 '신시대의 16타종'[* 해군 관습으로 옛날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인 옥스벨로 한 해의 끝과 시작에 한 해의 감사에 종을 8번을 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아 종을 8번을 울린다. 합쳐서 16번을 울리는 관습으로 시대의 끝과 시작의 선언을 알리는 선언식이다.]을 행해 울렸다는 것과 꽃다발을 던지며 묵도를 한 행동으로 미루어 이번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의형제인 에이스를 개인적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흰 수염이 죽어서 구시대는 끝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의지 표시인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해적왕]]이 목표라서 본래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루피답지 않은 사건을 일으켜 위화감을 느낀 동료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묵도하는 루피의 오른쪽 팔에 3D2Y 문신(혹은 그림)이 있는데 3D에 X자가 그려져 있다. 사실 그 내용은 3 Day(X) 2 Year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의 코팅을 맡기고 3일 뒤에 만나자고 한 것을, 2년 뒤에 만나자고 정정하는 것으로 신문을 본 동료들이 루피가 보낸 메시지를 알아채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S에 X자를 치고 AS(X)CE라고 적혀있는 에이스 문신과 위치가 같고 모양새가 흡사하다. 덕분에 에이스를 애도하는 장식처럼 보인다. 3D2Y라는 단어를 괜히 감추려는 레일리의 지혜로 보인다. 그 후 행보는 2년 간 각자 수련한다고 추측된다(현 전개로는 신세계는 완전한 지옥으로 나오며, 또한 지금 동료들은 각자 누구나 한명씩은 스승,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므로 가능성이 꽤 높다.).
그리고 마린 포드에서 일을 마치고 쿠쟈 해적단 배를 타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 상처가 남았는지, 누워있다. 행콕이 명령한 것 때문에/ 루피가 얌전히 있도록 쿠쟈해적단 여인들이 누워있는 루피를 뻔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실버즈 레일리와 같이 동물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한 섬[* 이 당시의 루피보다 더욱 강한 생물들이 어림잡아 500구 이상이나 살고 있는 섬.]에서 2년간 수행에 들어가기로 하고 그 섬에 가장 안전한 곳에 동료들의 비브르 카드를 꽂아 놓은 밀짚모자를 걸어놓으면서 수행에 들어간다. 여담으로 극장판 10기 특전인 0권에서 "이번 모험이 루피의 17세 마지막 모험이다."라는 발언도 있었고 4주 휴재를 선언하면서 2년후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크라켄의 도움으로 어인섬에 도착하게 된다. 어인섬 앞을 가로막는 신어인해적단 전투원 [[하몬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 부하가 되라는 협박을 받지만 당연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어인섬에 어찌어찌 진입한 후 하몬드와 다시 조우하게 되는데 이 때 하몬드와 그 일당들을 박살냈다. 이 때 하몬드와 같이 다니는 [[효조]]라는 독문어 인어에게 공격당했으나 [[독독열매]]의 능력자 [[마젤란(원피스)|마젤란]]에게 당한 것 때문에 독에 면역이 생겨 상처가 좀 생기고 만 수준이었다.[[흠좀무]] 루피도 누가 공격한 건지 대충 알아챘지만 별 신경 안 쓰는 듯. 참고로 이걸로 루피가 모든 극독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여기는 듯한데 쵸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마젤란과 다시 만난다면 죽는다고 이반코프가 경고한 것을 보면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면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그 일정수준 이상의 독이라는게 마젤란이 쓰는 독 기준이니 실상 마젤란이 상대인 경우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듯. 실제로 자기보다 월등히 강한 적을 상대로 생채기를 낸 것 만으로 효조가 승기를 따냈다 확신했을 정도니, 효조가 칼에 발라둔 독도 굉장히 강한 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루피는 죽기는 커녕 붓지도 않았다.(…)
634화에서는 패왕색 패기로 10만명의 [[신 어인 해적단]] 중 5만 명을 단방에 쓰러트려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줬다. --역시 패왕색 패기는 [[양민학살]]용-- --드래곤:그러라고준 패기가 아닐텐데--636화에선 [[크라켄(원피스)|크라켄]]에게 형제를 인질로 잡았다며 찌질한 명령을 내리는 호디 존스를 보고 되려 크라켄에게 너도 형제도 지켜준다며 미소를 보여주어 크라켄을 멈춰서게 한 다음, 열불난 얼굴로 묵묵히 호디 존스에게 다가가 폭발한 얼굴로 '''뭔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라면서 발길질을 괜히 [[해적왕]]드립치던 호디 존스 얼굴에 먹여줬다. 그렇게 호디를 압도하던 중 [[반더 덱켄 9세]]가 노아를 날려서 어인섬을 파괴하려 하자 공기방울을 타고 노아를 막기 위해 돌입하던 중 이미 덱켄을 처리한 호디와의 수중전에서 방울이 터질 뻔해 위기에 처하지만 공기 주입 후 털어버린다. 그리고 어인섬의 대물림된 증오를 없애기 위해 어인섬을 원점으로 돌려달라는 [[후카보시]] 왕자에게 걱정 말라고 답한다. 그리고 무장색+기어2의 조합으로 신기술 '''고무고무 레드호크([[포트거스 D. 에이스|불주먹]] 총)'''이라는 폭발하는 펀치를 호디에게 선사. --형님 불주먹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JET개틀링까지 합하면 [[아침공작]]완성-- 이어서 기어3+무장색의 엘리펀트 건으로 호디를 작살내고, 엘리펀트 개틀링으로 어인섬에 떨어지기 전에 노아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임에도 어인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루피에게서 어인섬의 한 주민은 '''[[에드워드 뉴게이트|넵튠과 우정의 술잔을 나누고 어인섬을 목숨을 걸고 지켜내 모든 어인들을 감동시킨 위대한 해적]]'''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라호시가 불러낸 해왕류 덕분에 노아는 어인섬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고, 루피는 노아를 파괴하는 걸 중단하는 동시에 호디 존스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로 인한 출혈로 실신.[* 그런데 상처가 커서 출혈이 심했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상처가 나 피가 밖으로 흐르는 상태에서 기어 세컨드나 서드 같은 혈류를 빠르게 하거나 움직이는 기술을 사용했기에 출혈이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루피의 혈액형인 F를 밀짚모자 해적단에게서 구할 수 없는 데다가 어인섬의 규율인 '인간에게 수혈할 수 없다.' 탓에 한 때 피를 못 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나 [[징베]] 덕에 위기를 넘겼다. 이후 징베에게 동료가 되라고 제의했다.
단 어인섬에서의 싸움은 아론파크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론파크에서는 루피 본인의 삽질로 물에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어인섬에서는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 전투가 가능했고 후카보시의 서포트까지 받았다. 게다가 호디는 각성 전에 이미 물 속에서 조로에게 패배한지라 포스가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그러나 별개로 감안해야 하는 점이 있는 것이, 조로에게 패배한 호디는 ES를 고작 한 알 먹은 상태였고 루피와 싸웠을 때는 ES를 병째로 털어먹고 각성해서 거의 다른 생물이나 진배없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실상 VS호디가 아니라 VS에너지 스테로이드다.~~]
그리고 상황을 디테일하게 보면 비눗방울이 있어서 전투가 가능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전투가 '가능했다' 뿐이지 지상과 같은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었던 상황은 절대로 아니다. 작중 묘사를 보면 비눗방울 속에서 짱박혀있으면 몰라도 밖으로 팔을 빼서 공격할 때마다 물에 빠졌을때와 같이 힘이 빠져나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호디가 비눗방울 속으로 얌전히 머리를 넣어주지 않는 한 루피는 공격할 때마다 지속적인 체력감소를 감당해야 한다. 더불어 수중이기 때문에 당연히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체는 물론이고 제대로 공격을 회피하는 동작마저 취하기 어려운데 상디같은 경우 블루 워크[* 물속에서 사용하는 월보]를 사용하기 위해 비눗방울 속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 어찌어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너무 빨리 움직이면 비눗방울이 제대로 못 따라온다.(…) 게다가 큰 공격을 할 때마다 비눗방울 내부의 공기도 감소하고, 루피 피통이 아무리 커도 비눗방울이 터지면 게임 끝이라는 간접적인 패널티까지 있어 심리적 압박도 상당하다.
반면 어인은 수중에서는 오히려 이동범위에 있어 부자유가 없어지고 속도와 힘도 더 붙고 기술폭까지 늘어나 전체적인 컨디션이 대폭 상승한다. 이건 '''ES를 과다복용한 호디를 기준으로 해도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지 않고서야''' 이기기 힘든 게임이다. 그런데 루피는 이걸 이긴다음에 체력이 남아서 노아를 때려부순다. 사실 따지면 따질수록 이 상황에서 못 이긴 호디가 보스로써 수준미달 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용과 대화를 나눈 루피는 그 용이 [[킨에몬]]의 아들인 [[모모노스케]]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특유의 머리로 "그 이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정도로 넘어간다. 어쨌건 모모노스케에게서 시저가 아이들을 죽일 것이며 다른 아이들을 대려와 같은 실험을 반복할 것이라는 것을 들은 루피는 열받아 탈출하려 한다. 그런 루피의 모습에 모모노스케는 안심하다가 갑자기 도플라밍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겁에 질려 하늘을 날아오르고 덕분에 루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저의 횡포를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탓에 그만 시저를 납치하기로 한 [[트라팔가 로]]와의 계획을 깜빡 하고 날려 버리고 만다. 결국 도플라밍고가 보낸 수하들이 먼저 시저를 찾아내 버려 납치 작전이 실패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연히도 시저 클라운이 날아가 박혀버린 배에 프랑키장군이 타고 있어서 다행히 시저는 빼앗기지 않았다.
696화에서는 로의 회상에서 자신이 사황을 모두 무찌르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 때문인지 로는 누가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또한 로가 카이도를 먼저 무너뜨리자라는 말에 샹크스도 쓰러뜨리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패륜]]이니 뭐니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그러나 루피는 해적왕이 되는 것이 목적이며, 그를 위해서는 사황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니 당연한 선택이다.[* 루피는 이미 알라바스타 시점에서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는 에이스와도 싸우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샹크스를 쓰러뜨린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샹크스를 이김으로서 그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함일 뿐이고, 사황인 빅맘, 카이도, 검은수염은 루피가 쓰러뜨려야 할 이유가 있는 상대다. 빅맘은 어인섬 문제, 카이도는 로와의 동맹 때문에, 그리고 검은 수염은 말할 필요도 없는 악연의 적.[* 이게 아니라 해도 해적왕이 목표인 루피이고, 이들이 조용히 루피가 해적왕이 되도록 보고 있을 인물들도 아니니 어떤 형태로든 결국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 샹크스는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정신적인 스승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니 만큼 루피가 넘어야 할 진정한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루피의 사상의 중심점은 자유에 맞춰져 있고 사황은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로에게 전해들은 신세계의 상황은 루피의 기대와는 달리, 이전까지와 같이 자유롭게 모험을 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라 사황의 밑에 들어가 통제를 받으며 항해하느냐 사황을 적대하느냐로 예상 외로 갑갑한 환경이 되어있었는데, 루피가 이것을 탐탁찮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황 격파 발언은 신세계의 얘기를 듣자마자 갑툭튀로 내뱉은 말.] 루피의 사황 격파는 누구에게 원한이나 감정이 있고 없고 이전에 신세계 전체를 자유로운 바다로 만드려는 의도일 확률이 크다. 실제로 사황을 전부 쓰러뜨리겠다는 말이야 했지만 자신이 사황이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애시당초 루피가 현상금 올라가면 단순하게 기뻐할 지언정 자기한테 붙는 소문이나 명성을 기뻐하는 타입은 아니다.], 샹크스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사황의 일각으로써 신세계를 속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샹크스가 스스로 사황 타이틀을 내려놓지 않고서야 결국은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독자들은 전부 둘이 붙는걸 한번 보고싶을거 아냐? 어떻게든 싸우게 할거야 아마~~
702화에서 드레스 로사로 오게 되었을 때 도플라밍고의 졸개에게서 도플라밍고가 [[이글이글 열매]]를 [[코리다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우승 상품으로 내걸었다는 정보를 듣자 루피는 도플라밍고의 예측대로 '''"자신은 이미 고무고무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못 먹지만 타인에게 에이스의 열매를 뺏기는 건 싫다."'''고 하면서 이글이글 열매를 얻기 위해 '''"루시"'''라는 가명으로 코리다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시비거는 검투사 한명을 K.O시켰다.
하이루딘을 쓰러트린 후, 떨어진 무기를 수집해 총알처럼 사용하는 참가자 "강도 쟝"[* 현상금 사냥꾼으로 현재 목표가 루피의 임펠다운 사건 당시 탈옥했던 죄수 전원을 잡아서 현상금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중 ~~쩌리들~~몇십 명은 잡아서 현상금을 받은 듯.] 이 루피의 정체를 눈치채고 투구를 빼앗은 뒤 공격하지만 루피는 견문색으로 날아오는 무기들을 여유있게 피하며 접근해 투구를 되찾는다.[* 그리고 강도 쟝은 루피를 발견하고 뒤쫒아온 돈 칭자오가, '''하필 루피가 피한 무기들을 죄다 배에 맞는 바람에''' 아프다며 날린 박치기를 맞고 그대로 리타이어.] 뒤이어 계속 루피를 노려온 돈 칭자오와 서로 무장색 주먹을 부딪히며 마침내 맞붙는다. 둘은 실로 대등한 결투를 펼치나 늙은 돈 칭자오가 조금 밀리기 시작한다. 이후 돈 칭자오에게 '''늙은 자신과 호각을 이루는 정도라면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겨우 이런 수준의 인간을 레일리가 선택했다면 레일리도 눈이 썩었다, 오히려 에이스를 죽인 해군의 판단이 옳았다 등등 여러가지로 화나게하는 말을 듣고 하늘높이 날아올라 칭자오에게 '''핵꿀밤'''(정확히는 고무고무 토르 엘리펀트 건)을 날려준다. 루피의 공격을 머리통에 직격으로 맞은 칭자오는 과거 가프에게 얻어맞아 찌그러졌던 두상이 다시 솟아오른다. [* 원피스 세계관의 골격변화는 참 경이롭다. 한데 젊은 시절의 가프가 특훈까지 해서 주저앉힌 두개골이 고작 루피의 펀치 정도로(?) 복구시킨 걸 보면 칭자오도 노화로 뼈가 약해진 것이 아닐까….] 그와 동시에 칭자오는 정신을 잃은 건지 경기장으로 곤두박질 치는데 뾰족해진 두개골에 경기장 바닥이 말 그대로 '''두동강'''나고 칭자오는 물에 빠져 장외 판정을 받는다. 이로써 루피는 C블록의 우승자가 된다.
머리 모양이 돌아온 돈 칭자오는 루피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며 자기 휘하의 팔보수군을 루피 산하에 넣어줄 생각까지 하게 되지만 피로 탓에 감사 인사를 한다고 고개 숙인 게 땅을 갈라버려 공격으로 오인한 루피가 도주해 버린다. 이 때 슬그머니 B블록의 우승자인 바르톨로메오가 루피의 극렬한 추종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일이 잘 풀리면 루피는 이 드레스 로자 편에서 산하에 팔보수군과 바르톨로메오의 바르토 클럽 해적단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징베나 보아 행콕과의 관계로 인해 어인 해적단과 구사 해적단과는 암묵적인 동맹 관계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는 큰 플러스.
이후 피카에 의해 조로, 로, 리쿠 드루드 3세, 퀴로스, 비올라와 함께 궁전 정원으로 떨어지고 도플라밍고가 새장을 펼치며 시작한 게임[* 도플라밍고를 먼저 죽이느냐, 그가 지목한 12인을 먼저 죽이느냐.]에서 별 3개[* 별 하나당 1억과 동급]를 배정받았다.[* 같은 입장으로 리쿠 드루드 3세와 트라팔가 로, 사보가 있다. 하지만 우솝은 입장을 떠나 도플라밍고를 제일 열받게 해서 별이 5개가 걸렸다.] 그리고 로빈에게 걸려온 전보벌레로 레베카에게 퀴로스의 정체를 알림과 동시에 도플라밍고를 작살내놓겠다 선언한다. 로는 동맹의 본래 목적을 다시 말하며 카이도와의 연전도 각오한 거냐고 물어보지만, 그에 대한 입막음으로 말한 루피의 대사가 실로 압권. 그리고 조로, 로를 끌어안고 도플라밍고의 궁전으로 직행하였고 도플라밍고를 포함한 돈키호테 패밀리앞에 등장하였다. 루피의 발을 잡고 [[마하바이스]]와 [[델린저(원피스)|델린저]]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마하바이스의 무게공격은 피했고 델린저는 조로가 뒤에서 차버려서 델린저와 마하바이스를 쌍방으로 데미지를 입히게 한다. 그리고 돈키호테 패밀리사이에 일반인이 끼여있자 그들을 패왕색으로 기절시키려는 찰나에 [[후지토라]]가 나타났고 조로가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피카]]의 고음을 듣고 미친듯이 웃는바람에(...)[[어그로|그것이 피카를 도발한 꼴이 되어]]. 그래서 빡친 피카의 주먹에 의해 조로, 로와 함께 멀리 날아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51회 일치
* 그냥 간단한 [[튜토리얼]]. 비동기화(임무 실패)가 불가능하니 여유롭게 하자. 실수로 떨어져도 근처 위치에서 재시작한다.
항해 둘째 날, 바람을 쐬기 위해 갑판으로 나온 헤이덤은 선원들과 시비가 붙는다. 선원들과 싸우던 헤이덤은 그 광경을 프로비던스호의 선장에게 들키게 된다. 선장은 헤이덤을 디스한 후 선장실로 끌고간다. 둘 밖에 없는 선장실에서, 선장은 함상 반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헤이덤은 선장의 부탁을 수락하고는 "다시 한번 나를 모욕했다가는 망설임 없이 목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선장실을 나간다.
이후 헤이덤은 뒷쪽 갑판을 조사하다 선실에 있는 누군가가 나무통을 바다로 던지는걸 목격한다. 이후 선실로 내려간 헤이덤은 몇몇 나무통에는 표시가 되어있으며, 바다로 던져진 나무통도 표시가 된 나무통이라는걸 알아낸다.
항해 33일 째 날. 의문의 선박이 프로비던스를 쫓아온다. 프로비던스가 맞서 싸우는 동안, 프로비던스의 선장은 헤이덤이 아무 도움도 못될 것이라 판단해 헤이덤을 선실 밑으로 내려보낸다. 선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건 루이스 밀즈. 밀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은 명예는 지켜주겠다는 밀즈의 말에 차라리 검을 달라고 대꾸, 밀즈에게서 검을 넘겨받고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이후 헤이덤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와 의문의 선박이 노리는건 자신임을 밝힌 후, 선장을 암살검으로 협박해 폭풍 속으로 프로비던스를 몰게 한다. 폭풍 속에서 헤이덤은 돛를 고정시키고, 돛을 펴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중 제임스가 돛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도 한다. 제임스를 돕고 난 후, 헤이덤은 쫓아오던 선박의 돛대가 폭풍에 부러져 더이상 쫓아오지 못하는걸 확인한다.
* 체력 손실 10% 이하
* 도청에 실패하지 않음
렉싱턴에서 만난 헤이덤과 찰스 리. 여인은 렉싱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야영중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야영지로 가지만 여인은 간발의 차로 사라진 상황. 두 사람이 눈에 난 자국을 따라 여인을 쫓아가지만, 찰스 리의 실수로 인해 또다시 여인을 놓치게 된다. 헤이덤은 찰스 리를 브래독[* 핏케언을 빼앗기면서 화가 단단히났다.]에게 돌려보내고 다시 여인을 추격한다.
이들에게 접근하는 브래독의 군대. 브래독은 헤이덤과 카니에티오가 자신들을 보는지도 모르고 옆에 있던 워싱턴에게 이번 원정을 하는 이유[* 앞으로 더 많은 영토가 필요해지겠지만 프랑스가 이를 막고있다.]를 말한다. 카니에티오는 지금 기습해 부대를 와해시키자고 하지만 헤이덤은 브래독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영국군 군복을 훔치기로 한다.
* 실수 없이 아이들을 모두 찾아냄
세번째 환영이 보이는 곳을 주의할 것. 동굴인지라 여기서 한번 박으면 무조건 완전 동기화 실패다. 시이발.
아킬레스가 이곳에 온 이유를 묻자 라둔하게둔은 자신이 본 문양을 보여준다. 아킬레스는 해당 문양, 암살단의 상징을 모르는 라둔하게둔에게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에 대해 얘기해준 후, 템플기사단이 승리하면 유노가 보여준 환상이 사실이 될거라는걸 말해준다. 라둔하게둔이 자기가 템플기사단을 막을 것이라고 말하자 아킬레스는 그를 데리고 지하에 위치한 비밀 장소로 데려간다.
* 체력 손실 50% 미만
1770년 보스턴, 라둔하게둔은 커다란 도시인 보스턴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킬레스는 그런 라둔하게둔에게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보낸다. 그러고는 미국 원주민의 이름이 아닌, 활동하기 편한 이름인 "코너"라는 가명을 준다. 라둔하게둔은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킬레스는 '''진실'''과 무엇'''인지'''가 항상 같은건 아니라고 한다.
코너는 헤이덤의 부하에게 템플기사단의 계략은 실패했다고 선언하지만, 건너편 건물에서 찰스 리가 총을 쏴버린다. 이로인해 공격받고 있다고 착각한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발포, 코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헤이덤이 병사에게 코너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코너는 [[보스턴 학살]]을 유발한 주범으로 몰려 군인들에게 쫓기게 된다.
대번포트 농지로 돌아온 코너는 아킬레스에게 왜 자신을 버리고 갔는지 따진다. 이에 아킬레스는 실전보다 좋은 훈련은 없다고 한다. 코너는 헤이덤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아킬레스는 그가 헤이덤을 찾아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라고 하고는 템플기사단에 맞설 기회라도 주기 위해 암살검을 준다.
>코너: 고통을 확실히 끝내줘요.
이후 코너와 샤페우는 지붕 위에서 대화를 나눈다. 코너가 샤페우에게 아까 전에 사람들이 호응했던 이유를 묻자, 샤페우는 자신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샤페우는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을 떠올리며 술을 사는 것 대신에 충성을 주겠다고 한다. 코너는 이에 감사를 표한 후, 애덤스를 찾아나선다.
* 샤페우의 체력 손실 33% 미만
코너는 아킬레스에게 돌아가 끝났다고 말한다. 이에 아킬레스는 존슨을 죽였냐고 물어본다. 차를 파괴했다는 대답을 들은 아킬레스는 또다른 계략을 꾸밀 뿐이니 죽였어야 했다고 대답한다. 코너는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하지만 아킬레스는 그게 사실이라면 시간이 말해줄거라 한다.
>코너: 너의 계략을 확실히 끊어버렸다. 템플기사단을 위해 이 땅을 가지려 한거지….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48회 일치
조금 더 과거로 가서 그날 아침. 맥스는 다수의 총상과 뇌진탕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온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그는 살아난다. 맥스는 손목에 꽃힌 링거를 빼내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는 "그녀는 죽었다"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맥스는 자신의 옷을 차려 입고 병원에서 도망가기로 한다.
맥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과 자신이 모나와 사랑을 나누는 환각에 시달리며 수술실에 도착한다. 수술실에는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이를 본 맥스는 베레타를 뽑아들고 남자를 조사하지만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때, 무장한 남성 하나가 맥스는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말을 하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온다. 맥스는 그와 싸움을 벌여 쏴 죽인다.
수술실 밖으로 나간 맥스는 모나가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는 환청을 듣는다. 이때, 윈터슨이라는 여성이 맥스를 제지하며 나타나 총을 겨눈다. 맥스도 윈터슨에게 총을 겨누지만 그건 환각이었다.
추락한 엘리베이터에서 기어나온 맥스는 영안실에 도착한다. 영안실 침대에는 윈터슨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 수술실 밖으로 나가서 아동실 창문에 붙어있는 그림을 보면 왠지 이야기가 된다. [[맥스 페인|아빠가 경찰인데, 어떤 자들이 아이와 엄마를 죽여서 아빠가 슬퍼하는 이야기]]…. 음?
* 수술실 밖을 나가서 보이는 대기실 TV에서 드라마인 "주소지 불명"을 방영 중이다. 애인을 죽인연쇄살인범인 '존 미라"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방영되는 분량에서는 정신병원에 끌려간 주인공이 의사들에게 애인을 살해한 정신병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
청소부는 맥스를 데리고 가 셔터를 올려 주지만, 맥스가 셔터 너머로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있던 동료와 함께 공격해온다. 맥스는 이들을 처리하고 청소부들을 죽이면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는 청소부들이 카우프만이라는 자가 차를 대기해놓고 있으니 모든 증거를 처리해야한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제로 총기 작업장 입구에 있는 총기 보관소는 텅텅 비어있었다.
계단 끝의 문 너머에는 검시실이 있었다. 모나 색스가 나타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블라디미르 렘]]이 그의 애인에게 남긴 메시지였다. 순간 사이렌이 울린다. 윈터슨과 모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맥스는 취조실에 앉아있다. 윈터슨과 브라부라가 모나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맥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털어놓으라고 요구한다. 맥스의 가족이 죽은건 맥스 탓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맥스는 전화를 받겠다며 일어난 후, 책상에 놓여있던 권총을 집어든다. 그러고는 브라부라와 윈터슨을 쏴죽인다.
맥스는 지하실로 내려간다. 에드는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지우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맥스는 그에게 총을 겨누고 뉴욕 경찰이라는걸 밝혀 비밀번호가 667이라는걸 알아낸다.
* B동 301호의 할머니는 의사가 약을 줬는데 필요 없으니 줄 수 있다고 하신다. 할머니한테 상호작용키로 말을 걸면 진통제 3통이 들어있는 화장실 문을 열어주신다.
둘은 1층으로 내려가는데는 성공했지만, 아파트에서 나가는 문은 잠겨있었다. 먼저 와있던 바이올렛이라는 여자는 3층에 난 불을 끌수만 있다면 창문을 통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맥스는 노숙자, 바이올렛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 가스 밸브를 잠근다.
철장이 도착한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맥스는 놓여있는 길을 따라 가며 정신이상자들의 모형과 그것에게 드릴을 들이대는 의사들의 모형, 분홍 플라밍고, 붉은 액체로 차오르는 샤워실 등을 보게된다. 맥스는 그것들을 지나 또다른 철장 안으로 들어간다. 철장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맥스는 샤워실에서 모나를 찾아낸다. 모나는 샤워를 하고있었다. 모나는 샤워실에서 나와 옷을 입으며 맥스와 대화를 나눈다. 모나는 이너 서클 내의 인물과 계약을 했었다. 맥스는 그 인물이 [[알프레드 우든]]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니었다.
맥스는 자기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게이트 상원의원의 죽음, [[스쿼키 청소회사]], [[비니 고그니티]], 이너 서클의 관계를 윈터슨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이때, 윈터슨의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맥스는 부재중인 윈터슨 대신 전화를 받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걸 본 경찰 한명이 윈터슨은 전화에 대해 까칠하니 취조실에 있는 윈터슨에게 가보는게 좋을 거라고 말한다.
취조실에서는 윈터슨이 모나를 포함한 용의자들을 세워놓고 목격자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목격자는 회색 점프슈트 입은 남자들에 대해 물어보지만 윈터슨은 그건 보기에 없다며 묵살. 남자는 모나를 현장에서 봤다고 말한다. 윈터슨은 맥스에게 자신은 맥스를 도우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며 가버린다. 맥스가 서류 작업을 기다리던 목격자에게 다른거 본 적 있냐고 물어보자, 목격자는 현장이 회색 점프슈트를 입은 청소부들로 가득했는데 청소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며, 점프슈트 입은 남자들과 여자가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증언을 한다.
취조실에서 나오던 맥스는 윈터슨이 전화에 대고 모나가 체포될 때 페인이 함께 있었다고 말하는 걸 보게된다. 맥스가 누구랑 통화하는거냐고 물어보자 윈터슨은 관계자랑 통화하는 중이라며 자기 일에 신경쓰지 말라는 말을 하며 브라부라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이를 본 맥스는 윈터슨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 2층에 있는 rec room(recreation room, 오락실) TV에서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남주인공 발렌타인의 형 잭이 발렌타인을 비천한 신분의 여주인공과 만나는 걸 막지 못했다고 어머니께 보고한다. 어머니는 잭에게 여주인공의 집을 습격해 그녀를 죽이라고 지시한다.
* 취조실에서 나와 윈터슨과 대화한 후 경찰 테이블을 살펴보면 발키리에 중독된 상태에서 자신의 아내와 불륜관계의 우편배달부를 총으로 쏘고 그 중 하나는 전기톱으로 토막내 욕조에 담아둔 혐의로 구속된 남자가 있다. 자기가 너무 알았기에 그들이 날 제거하려고 모함한거다, 그들이 날 죽이려고 했기에 정당방위였다, 이 일 뒤에는 뭔가 커다란게 있다라고 횡설수설.
차고로 나온 맥스는 청소 밴들이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는걸 본다. 맥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어있는 밴 짐칸으로 뛰어든다. 밴은 맥스가 탔다는 것도 모르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열려있던 밴 문을 닫고 그 안에 숨은 맥스는 모나가 무전기를 통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모나에게 청소부들의 차에 탔다고 말하고는 권총을 들고 밴에 실려 갔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46회 일치
>인생은 좋았다. 달콤한 여름 날의 해넘이, 깔끔하게 깎인 잔디밭의 싱싱한 냄새,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뉴저지의 강 너머 집.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딸.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었다. 하지만 꿈이라는건 보고 있지 않으면 무너지는 나쁜 습관이 있다.
맥스는 권총을 뽑아들고 2층으로 향한다. 2층에서는 미셸의 비명소리와 아기가 우는 소리,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맥스는 아기방에서 튀어나온 남자들을 쏴죽이고는 아기방으로 들어갔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맥스는 미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침실로 달려갔지만 모든게 늦은 후였다. 맥스는 미셸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한다.
로스코 거리 역에서 내린 맥스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진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곳에는 교통경찰 하나가 죽어 널부러져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맥스는 권총을 뽑아 든 후 수색을 계속한다. 역 안에는 정체모를 일당들이 들이닥쳐 교통경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맥스는 교통경찰관 한명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교통경찰관은 자신을 지하철 통제실로 데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맥스가 교통경찰관을 지하철 통제실 앞까지 데려다 주자 교통경찰관은 통제실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문을 연다. 하지만 통제실은 이미 괴한들에게 점령당해 있었고, 교통경찰관은 괴한의 산탄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맥스는 통제실 안에 있는 괴한들을 모두 처리하고는 전력이 끊겨있던 2호선에 전력을 공급한다.
업무용 승강기가 도착한 곳은 호텔 지하였다. 그곳에 켜져있던 TV에서는 우빙과 폭설로 인해 많은 도로가 폐쇄되었으며, 되도록이면 실내에 머무라는 조치가 내려졌다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를 본 맥스는 싸움에 무고한 행인이 말려들 가능성이 적어졌다는걸 다행으로 여겼다.
맥스는 보일러실에서 의자에 묶인채로 죽은 남자와 그 옆에 버려진 피묻은 야구방망이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가 실린 신문지가 놓여져 있었다.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정문은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루피노의 사무실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앙 홀에 있는 공중전화서 [[알프레드 우든]]이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들이 오고 있고, 맥스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몇분 뒤, [[짐 브라부라]] 반장이 이끄는 경찰들이 루피노의 본거지를 포위하고 SWAT을 진입시킨다. 맥스는 SWAT과 벽 하나를 놓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가지만 결국 경찰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이후 맥스는 5층으로 올라가 파이프를 타고 옆 건물로 건너간 후, 또다시 파이프를 타고 루피노의 본거지로 건너간다. 블라드의 폭탄 테러가 끝나지 않았는지 아직도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맥스는 마피아들을 처리하며 루피노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맥스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나온 것은 [[비니 고그니티]]였다. 비니는 자길 잡을 수 있을 거냐는 투의 말을 하며 맥스에게 총을 쏘지만 오히려 맥스의 총에 배를 맞게 된다. 비니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맥스를 처리하도록 한 후 배를 움켜쥐고 도망간다.
라그나록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있었다. 네크로노미콘, 실낙원,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어둠의 왕국으로 가는 아홉개의 문 등등…. 루피노는 그 책에 쓰인 것들을 진지하게 믿고 있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루피노는 신과 악마들의 이름을 늘어놓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맥스는 루피노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어떤 방에 들어선다. 맥스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아낸 루피노는 종을 울려 부하들을 불러모은다.
기절한 맥스는 가족들이 몰살당한 날의 악몽을 꾼다. 언제나 그렇듯이. 맥스는 뉴저지에 있던 집에 들어왔다. 딸의 울음과 아내의 애원이 들리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었다. 맥스가 2층으로 올라가 아기 방 문을 열었을 때, 오르골 소리와 울음 소리만 들릴 뿐 아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뻗어나간 핏줄기가 있을 뿐이었다. 맥스는 핏줄기를 타고 아기한테 갔을때, 아기는 핏투성이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아기는 사라지고, 옆에 놓인 알파벳 블록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여 D3AD(죽었음)라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맥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한다. 침실 문을 열고 권총을 쏜다.
차고문으로 나간 맥스는 호텔 정문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의 전화 통화를 엿듣게 된 맥스는 [[모나 색스]]가 안젤로 펀치넬로를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이 듣고 있던 라디오를 통해 자신이 라그나록에서 죽은걸로 알려졌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맥스는 안젤로가 그런 정보를 퍼뜨렸다고 추측했다. 함께 발견된 편지에 따르면 안젤로는 프랭키에게 맥스를 개처럼 죽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맥스는 카론이 정박해있는 브루클린 강가로 간다. 하역장은 이미 펀치넬로 마피아들이 장악한 상황이었다. 맥스는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컨테이너 사이를 누빈다. 마피아들은 기중기를 이용해 맥스를 깔아뭉개려고까지 하지만 실패한다.
카론의 선교에 도착한 맥스는 누군가 카론에게 무전을 보내는걸 발견한다. 안젤로 펀치넬로였다. 무전기를 든 맥스는 펀치넬로가 이성을 잃도록 도발한 후 무전을 끊어버린다. 그러고는 보리스 다임과 무기를 찾기 위해 선실로 내려간다.
맥스는 침실에 있다. 그곳에는 3년 전의 맥스가 권총을 들고 있었다. 미셸은 침대에 누워 죽어있었다. 맥스는 3년 전에 맥스가 미셸을 죽였다고 울부짖으며 그를 쏴죽인다.
맥스는 미셸은 포옹한다. 미셸은 사무실에서 바이킹에 관한 이상한 메모를 봤다고 말한다. 맥스는 미셸에게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으니 저녁에 얘기하자고 말한다. 포옹을 나누는 둘 뒤에서 또다른 맥스가 나타나 "타락천사의 살"[* The flesh of fallen angel. 작중 극중국인 주소불명(Address Unknown)에서 등장하는 분홍색 플라밍고의 대사. 잭 루피노를 비롯한 발키리 중독자들이 읊조리는 소리이기도 하다.]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콜드 스틸을 탐사하던 도중 맥스는 놈들의 무전기를 획득한다. 용병들은 모든 증거를 파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무전을 들은 맥스는 곧 진실을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 2장: Hidden Truths (숨겨진 진실) ===
맥스는 콜드 스틸의 조사를 계속 진행한다. 그러던 도중 발키리 제조사 하나가 제조중이던 발키리를 꿍쳤다가 실험 시설 감방에 수감되었다는 등의 서류 역시 발견한다.
- 스틸오션/일본 . . . . 46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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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키히라 소마 . . . . 46회 일치
붉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으로 작은 대중식당인 '유키히라'을 경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1화에서 얼굴이 햇빛에 가려진 사진에 나왔었던 것 외에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 나이는 15살으로 요리 경력은 12년. 3살 때부터 부엌칼을 잡았다고 한다.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이 일생의 목표로[* 1권 시점에서 0승 489패] 그런 소마의 꿈을 눈치챈 조이치로에 의해서[* '유키히라'를 몇년간 휴업시키고 본인은 소마와 통화했을 때 '''뉴옥 맨해튼 로열 호텔 VIP 전용 리셉션 홀'''에 가서 요리하는 중이었다. 조이치로는 예전에도 세계를 돌며 요리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럴 셈이었던 것.] 상위 3%만이 들어간다는 초일류 요리학원 토오츠키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소마 본인은 고등학교에 가지않고 가게에서 요리 수련을 할 생각이였다.] 이후 고등부 편입생으로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방은 303호실. 우연히도 아버지 조이치로가 썼던 방이다.]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 때 단상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식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식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식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식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태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식]]의 영역이며 그걸 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절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상의 경치를 보는 것.
주로 요리하는 건 정식집 요리이며, 다른 캐릭터들이 양식으로 승부할 때도 혼자만 정식집 요리로 승부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정식집 요리만 배워서 그렇다.[* 이는 아버지인 사이바가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소마는 작업의 속도와 정확성 등은 졸업생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 수준은 매우 얕다. 조식 뷔페 메뉴 대결에서 뷔페 메뉴에서 중요한 맛의 지속성과 겉보기에서 최악인 수플레 오믈렛을 선택한다거나, 113화에서 아벨이 프렌치의 기초도 모른다고 하는건 다 이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식집 요리 특성상 누구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정 문구는 "御粗末! / 변변찮았습니다!" 이 말을 외치며 머리띠를 푼다. 이 외에도 요리를 만들어서 상대에게 권할때는 "잡숴봐." 라고 말한다. 사실 저 괴상한 요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억지로 먹이는 것도, 결정 문구도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경우 '건멸치 딸기잼 무침'이라는 처절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를 만든 적이 있다.]
특히 최근 연재분을 보면 나오지만,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즐기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모습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저 정도 인재가 현실에 있다면 정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할 수준.
시험이 끝나고, 쿄쿠세이 기숙사로 향하며, 기숙사 입사 테스트때해 남은 재료를 사용한 고등어 버그 정식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합격하여 소마는 303호실을 배정받는다. 이때 목욕을 하기 위해 탕으로 갔다가 메구미와 서로 알몸을 보여주었다(…). 목욕 후 [[잇시키 사토시]]와 만나며 환영회에 초대받는다. 처음에는 괴짜들인 쿄쿠세이 기숙사 맴버에 당황하지만 얼마 안 가 익숙해져서는 같이 괴짜 짓을 한다(…).[* 요리를 선보인다면서 실패작 요리를 건네주었다.]
이때 [[잇시키 사토시]]와 (식극이 아닌 평범한)요리대결을 펼치게 되며 그가 '''토오츠키 학원 십걸(十傑) 평의회 7위'''의 실력자임을 알게 된다. 이때 선보인 요리는 유키히라 비밀 메뉴 20번인 연어 주먹밥 차밥을 개조해서 만든 삼치 주먹밥 차밥. 승부는 무승부로 판정된다. 다만 이때 잇시키는 제대로 실력을 내지 않은 듯 하다.[* 이부사키 슌이 그의 요리를 보고 '''본 실력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구미는 상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상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상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도지마는 메구미가 메인으로 요리할 것을 요구한다.[* 원래 식극은 1대1이지만 이번은 소마와 메구미 페어 vs 시노미야의 형태였다.] 소마는 반발하지만 도지마는 '유키히라.. 네 요리로 이겨서 타도코로가 살아남았다고 치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남의 뒤나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결국 다른 과제에서 떨어져 버리겠지. 그때도 네녀석이나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건가? 토오츠키에선 자신의 가치는 그 팔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타도로코가 토오츠키에 남아야 하는 인재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요리에 들어간 메구미는 혼자서 요리할 때보다 몇배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며 소마의 서포트에 감탄하고 심사위원인 강사들도 소마의 실력을 '학생의 레벨을 아득히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메구미와 소마의 요리는 일곱 가지의 야채를 사용한 '무지개 테린[* 테린은 잘게 썬 고기, 생선 등을 그릇에 담아 단단히 다져지게 한 뒤 차게 식힌 다음 얇게 썰어 내는 전채요리이다.]으로 소스는 스다치[* 유자의 한 품종으로 과실은 유자보다 작으며 푸를 때 따서 향미료로 이용한다.]로 만든 젤리와 차조기를 중심으로 한 허브로 만든 페스토 두 종류를 내었다.
1학년을 대상으로 60명을 선발해서 요리 경연을 펼치게 하는 요리대회에서도 무사히 선발된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인 죠이치로가 기숙사를 방문. 아버지가 이 학원의 학생이었으며 그것도 십걸 제2석에 있었던 초 앨리트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된다. 다음날 아침, 승부를 해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호응. 조식 매뉴 대결로 사과 리소또를 선보이지만 아버지의 진하지만 아침에 먹을 수 있는 야채 라멘에 만장일치로 패배. 하지만 이는 죠이치로 나름대로 소마를 격려한 것으로 이후 요리대회 예선 주제가 카레 요리 라는게 정해지자 아버지가 소개해준 예전 자신 후배였다는 시오미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면서 또 한명의 라이벌 하야마 아키라와 만나게 된다.
무수한 미식 경험으로 엄청나게 깐깐한 심사위원[* 이들 중 대표는 센다와라 쌍둥이 자매로 각각 A,B블록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 자매는 작중 대기업인 카레를 주로 생산하는 하우비 식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언니인 나츠메는 CEO, 동생인 오리에는 COO를 맡고 있다. 둘 다 '''고금동서의 카레를 전부 다 알고 있어서''' 예선 주제인 '''카레'''로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도 전세계의 요리들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일류 미식가들이다.]에 좌절하는 사람[* 심사위원들의 기준이 어찌나 높은지 자신들의 말로는 '''50점 이상''' 받으면 훌륭한 요리라고 하는 데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40점도 못 넘었다.(...)''' 특히 A블록 심사위원장인 나츠메는 [쿠로키바 료|료]의 프렌치 왕새우 카레를 먹기 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단 1점도 주지 않았다.''' [흠좀무].]과 그럼에도 감탄사를 끌어내는 실력자들[* 앞서 얘기한 각 블록 TOP8에 든 16명으로 전부 이 까다로운 심사위원들한테서 '''80점 이상'''을 받았다.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A블록은 '''아키라''', '''소마''', '''료''', '''스바루''', 슌, 젠지, 니쿠미, 료코 / B블록은 '''아리스''', '''히사코''', '''타쿠미''', '''메구미''', 미요코, 이사미, 유우키, 나오이다. 강조처리한 애들은 본선 진출자들.]이 등장하는 예선에서 후반부에 드디어 요리를 완성. 직접 만든 망고 처트니를 숨김 맛으로 쓴 카레 리조또 오므라이스로 심사위원의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하야마가 날카로운 창이라면 소마는 맛의 파상공격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아키라의 홀리 바질 카레에 1점 못미치는[* 단 하야마보다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이 심사위원 5인 중 3명이었다. 즉 이게 점수 합산 방식이 아닌 식극처럼 다수결 방식이라면 오히려 소마가 이겼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93점으로 [쿠로키바 료|료]와 함께 공동 2위로 본선 진출 성공.
그 뒤로는 결승전의 주제인 제철 꽁치를 연구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어시장에 나가서 자기만의 감대로 꽁치를 골라보나 거기서 만난 료와 아키라의 생선 감정 실력이 자기보다 [넘사벽]이라는 걸 알고는 잠시 고민하지만, 숙성이라는 다른 방법을 알고 니쿠미, 슌, 료코, 메구미와 같이 숙성 생선 연구에 들어갔다.
1화에서 등장. 소마의 실패작인 요리 중 하나로, 소마 본인이 말하길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맛없다'''고 한다. 먹었을 때의 리액션은 오징어 촉수물(…). 여담으로 시식자인 쿠라세 마유리는 오징어다리의 풍미가 아주 살짝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살짝이다 살짝.~~
1화에서 등장. 고기가 전부 짓밞혀 못쓰게 만든 상황에서 보여준 요리로, 옛날에 세팅을 잘못해서 다른 요리의 육즙이 감자에 스며든 실패작으로 부터 생각한 요리다. 이 때 사용한 재료는 아침밥 용으로 사왔던 '두툼한 베이컨'과 '감자'. 그리고 버섯인듯 하다.
5화에서 등장. 메구미와 콤비로 실습을 하는 중, 다른 조원의 방해로 고기가 소금범벅이 되어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소마가 벌꿀을 사용해 만들어낸 요리. 벌꿀을 제외하고 이때 쓴 재료는 샹피뇽(양송이), 마늘, 소금후추, 부케가르니(향신료 다발) 등.
이걸 먹으신 롤랑 샤페르 선생님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면서 A점수를 주었다. 그 후 본인이 말하길 "'''A보다 더 위를 줄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없다는 사실이 유감이구나…!'''" 여담으로 요리를 방해한 조원은 그 상황이 넋이 나가서 허둥대다 요리에 소금통을 떨궜고 E를 맞았다[* "야 소스 타잖아." "우왓..." 치이이이이익(요리에 소금 부어지는 소리) "꽤애애애애애액" (E)] 자업자득.
- 유승민(정치인) . . . . 45회 일치
||<width=30%><:>제17대[br][[박창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 상실]||<width=5%><:>{{{+1 →}}}||<width=30%><bgcolor=#FFFFA0><:>'''제17~20대[br]유승민'''||<width=5%><:>{{{+1 →}}}||<width=30%><:>''[[유]]''||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근혜]]와는 2005년 1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같은 해 10월까지 10개월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친박계]]와 [[비박#s-4|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범[[여권]] 진영의 [[열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현재는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식]]을 잘 챙겨주세요.
'''모 언론사에서 실시한 2015년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평가. '중간, 최종평가 모두 1등 최우수' 로 평가되었다'''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상을 대선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남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였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회 내 대표적인 [[THAAD]] 도입론자이며, "국내 예산으로 [[THAAD]]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2013년부터 [[THAAD]]도입을 주장했는데 정작 그땐 [[친박]]계에서 반대했다고(...) [[http://defense.na.go.kr/servlet/Download?committeeId=2005110000006&boardId=2006011000274&recordId=2014010040549&fileId=01|2014년 1월에 실시한 북핵방어관련 세미나 자료 -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유승민 당시 국방위원장은, 북핵대응 강화를 위해 기존의 종말단계 하층방어에서 중 고고도를 포함한 다층방어 체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북핵(미사일) 방어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며, 현재 저고도 방공을 담당하는 대한민국의 PAC-2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1980년대 연식에 원래는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된 체계이기때문에 효용성이 낮다.
|| ▲ 유승민 의원실 집무실에 있는 군사장비 모형들.[* 잘 보면 시중에서 파는 [[프라모델]]이 아니라, 해군이 증여한 것으로 보인다.] || ▲ '''KFX 사업'''관련 공군본부 [[국정감사]]를 준비 중인 유승민 의원. 빼곡하게 공부한 흔적이 보인다. ||
반면 [[대한민국 공군|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태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 ▲ 김훈 중위 미사예배에 참석한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 뒤로 함께 참석한 유승민의 실루엣이 보인다 || ▲ 김오랑 중령 기념사업회에서 유승민 국방위원장에게 증정한 감사패 ||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발의 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태를 보고 국방부 종합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남생도로 바뀐 사태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백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남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2017년 현재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으로 화제되고 있는 UAE와의 군사협약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도 유승민이었다. [[http://www.nocutnews.co.kr/news/772179|''UAE 파병'' 결정, 문서없이 구두로만 이뤄져]] 구두협약으로 파병이 결정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MOU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 유사시 군사개입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며 당시 2급비밀로 분류된 4건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김태영 장관은 UAE가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고 파병과 상관없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MOU와 파병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후 인정했다.
'이미 돈을 미국이 대기로 합의를 하고 끝난 사안이라서, 우겨도 돈을 줄 이유가 없다. 트럼프는 사업(비지니스)을 한 사람이라, 속칭 '지르는' 데 굉장히 능한 사람이다. '''즉,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방위비 분담 쪽으로 얘기가 올 듯하다.''' 내가 대통령 되면 이거 협상해서 잘 해결할 거다." 라는 것. 실제로 이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한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방위비분담금 재협상을 시사하였다. 실제로 한미 FTA 개정협상과 각종 통상압박에 맞물려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업자끼리 불공평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것''' 이라는 주장으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대선토론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도, 유승민 후보는 일관되게 사드배치 조기완료와 추가도입을 주장했고, 전략성 모호성이라는 개념과 국회비준 운운하는 문재인정부를 '''사드배치를 왜그리 머뭇거리냐''' '''운동권식 사고로는 국정 망친다''' 고 거세게 비난하였다. 그 이후 북한의 잇다른 ICBM도발과 6차 핵실험이 발생하자 결국 9월 7일 사드배치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 자체는 찬성' 의 입장이였다. 2016년 당시 야당이였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배신한 밀약''' 이라고 거세게 비난하였고, 당시 문재인 전 대표도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으나, 2017년 8월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연장되었다.
>우리나라 현실에 굉장히 맞는 이야기인데, 이 말은 200년전에 [[이탈리아]]에서 독립 운동을[* '통일 운동'이 맞는데 말 실수를 했다(...) 직후에는 통일이라고 제대로 말 함.] 하던 유명한 공화주의자였던 [[주세페 마치니]]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마치니의 조국에 대한 이 개념을 읽어보면서, 저는 이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 정인숙 (1945년) . . . . 40회 일치
모델,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상대했던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이것이 불문에 붙여졌다. 이는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조되어 확산되었다.<ref>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ref> 아들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느니, 정 전 총리라느니,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느니 하는 소문들도 무성<ref name="ilyo01">[http://www.i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889 <nowiki>[</nowiki>미스터리 추적<nowiki>]</nowiki> 정인숙과 그아들, 진실은 이것] 일요신문 2007년 04월 08일자</ref> 하기도 했다.
가정 환경이 넉넉했던 정인숙은 개인교사를 둘만큼 유복하게 자랐다. 예쁘고 천성이 명랑했던 그녀는 붙임성이 좋아 남녀 친구가 많았고, 학업은 중간 정도였지만 [[영어]] 실력은 빼어났다고 한다.<ref name="hp103">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3페이지</ref>
정인숙은 대구 S여중에 진학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가정형편이 넉넉했다. 그러나 S여중 3학년에 올라갔을 때 [[4·19 혁명]]이 발생했고,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아버지 정도환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아버지 정도환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대구 남산동 집을 팔고 삼덕동으로 이사하는 등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정인숙의 성격도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그는 방황하였고 [[대구]] [[신명고등학교|신명여고]]에 재학 중에 정인숙의 학교성적은 중위권 이하로 추락하였다. 그러나 영어실력만은 뛰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영어회화를 잘했는데, 정인숙이 영어를 잘 했던 것은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당시 일본에서 전기 부속품상을 하거나 무역회사 등을 하던 오빠들은 모두 [[영어]]에 능통했다. 정인숙은 결혼하여 분가한 오빠들의 집에 종종 출입했고, 이런 오빠들 밑에서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영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태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인숙은 장사공과의 동거 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밀요정을 경영하던 마담 김씨를 만난다. 그리고 김마담의 소개로 패션모델로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김마담이 경영하는 서울 한남동 고급 요정에 접대부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겼다.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얼마 뒤 선운각의 인기 있는 1급 접대부가 되었다.
[[국무총리]]였던 정일권을 만난 뒤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데, 유독 정인숙을 좋아했던 정일권은 그녀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다가 주민들의 눈에 목격되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 뒤 그녀가 임신사실을 알리자 정일권은 낙태를 권유하려다가 대신 애를 낳으라고 하였다. 정인숙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산하였다.
그녀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소문이 확산되었다. 당시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는 정일권 혹은 박정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ref name="kyung0101">[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1003191712273&sec_id=560101 정인숙 미스테리···최대 권력 섹스스캔들] 스포츠경향 2010년 03월 19일자</ref> 정인숙은 정일권이 자신을 서운하게 할 때마다 자신이 정일권 총리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녀 정일권을 난처하게 한다. 이 사실이 야당 인사들과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게 될까봐 정일권은 불안해했고, 서둘러 불법 여권 두 개를 만들어 정인숙을 해외로 내보내고 생활비를 풍족하게 줄테니 아이를 키우며 해외에서 조용하게 살라고 당부한다.
신원조회는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의 비서<ref name="hp104"/> 실장인 [[문학림]]이 맡았고, 고위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회수여권은 정일권의 비서관 [[신성재]]가 주선하였다.<ref name="hp105">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5페이지</ref> 여권 발급 날짜는 [[1968년]] [[12월 30일]]이고, 이후 정인숙은 [[1969년]] [[3월]] 큰오빠를 만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0월]]에는 [[워싱턴 D.C.]] 한인회장 [[노진환]]의 안내로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다가 [[1970년]] 1월 21일 귀국했다.<ref name="hp105"/>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말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ref>1970년 3월~: 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테리〉《신동아》(1983.9.) 166~167쪽</ref> 그러나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정부 고위층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였다. [[정인숙 살해 사건]] 이후 의혹이 거세지자 박정희 대통령은 관련자를 색출하였으나, 정일권 총리의 해임 선에서 사건을 종결시켰다.
정종욱은 사건 직후 "당시 셋째, 넷째 가라면 분해할 정도의 권력을 휘둘렀던 P씨"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4페이지</ref> 그러나 그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수감과 출소 이후에도 정종욱은 억울함을 하소연하였고, 정일권과 여러 번 만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정종욱에 대해선 '권세가들에게 희생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설이 떠돌았다.<ref>윤재걸, 《청와대 밀명: 윤재걸 르포집》(한겨레, 1987년) 14쪽.</ref> 한편 정계의 유력자가 은폐하려 했다는 설과 정적관계에 있던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2010년]] [[3월 20일]]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는 20일 오후 11시10분 '나는 여동생을 쏘지 않았다 -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라는 주제로 오래전 정인숙 사건의 실체를 다시 추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15&nid=78947 정인숙·정일권 누구?…40년 전 미궁의 살인사건, 경과부터 의혹까지] SSTV 2010-03-21</ref>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정인숙의 자택에서 발견된 포켓용 수첩과 장부에 적힌 이름과 일시, 장소, 명단 때문에 희대의 정치스캔들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시 경찰과 검찰 직원의 부주의로 언론에 드러난 정인숙의 수첩에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김형욱]]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장관, 차관급 인사들, [[대한민국 국군]] 장성, 5대 재벌그룹 회장,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27명을 포함한 권력 실세들 수십여 명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ref>[[이제는 말할 수 있다]]'땅에 묻은 스캔들-정인숙 피살사건' 2000년 10월 8일 26회</ref>
당시 한 청와대 인사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어디서인지 변조된 가사 전문을 입수, 박 전 대통령에게 따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은 “내 아내한테까지 오해를 받고 재떨이까지 날아왔지만 참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는 ‘피살된 정인숙이 박 전 대통령의 여자였다’는 시중의 소문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고 한다.<ref name="ilsa01"/> 이 때문에 [[나훈아]]의 노래 [[눈물의 씨앗]]은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술자리 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정 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위의 건의에 “남자가 여자 만나는 것은 예사”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후문이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민당]]의 정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정일권은 박정희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고, 바로 해임을 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정일권을 불러 자진 사퇴를 권고한 뒤, 정종욱이 구속된 이후 잠잠해질 무렵 정일권을 해임하고 바로 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 문제로 박정희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한 정일권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당시 정치 주요인사 수십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지도층의 부도덕성은 여론과 시민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세간에는 '육박전' 이란 화두가 나돌았다. 정인숙 문제 때문에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실여부를 추궁했고, 이것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박정희는 육영수에게 재떨이를 던졌는데 이것이 얼굴에 맞았고, 얼마 뒤 육영수의 눈에 푸른 멍이 든 것을 각료들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목격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진 것을 회화화되어 육박전이라는 풍자용어가 확산되었다. 사건 확산과 자신이 동침한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점 등 여러가지 문제로 박정희의 호출에 무릎을 꿇은 정일권은 자신은 정인숙과 사귀긴 했으나 죽이지는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70년 [[5월 12일]] 열린 첫 본회의에서 법무장관 이호는 정인숙 사건을 자세하고 비중 있게 취급해 보고를 했다. 국회 속기록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정인숙 관련 기록이 4쪽인 것에 비해 와우아파트와 관련된 기록은 3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호 장관이 이렇게 자세하게 정인숙 사건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룬 것은, 정인숙 사건을 자신의 발언 선에서 마무리 짓자는 일종의 호소였다.<ref name="kim99"/> 정인숙 사건을 야당이 더 이상 키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 박진성(시인) . . . . 38회 일치
[[2017년]]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성폭력 피해자라고 허위 폭로한 여성에 대해선 무고 및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인정되었으나, 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의식을 회복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태]]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보였던 [[이자혜]] 작가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있었다. 하단에 서술된 성폭행 무고사건에 휩쓸린 후, 2017년 12월부터 [[웃긴대학]] 커뮤니티를 시작하였는데, 이 때 한 유저의 이자혜 작가 옹호발언에 대한 해명글을 요구하였고, 이에 답하였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28608|해명글]]을 요약하자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이자혜 작가는 명실상부 '''촉망받고 있는 작가'''였으며, 본인이 알고 있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이자혜 작가가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는 입장. (덧붙여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수도 없을 뿐더러, 메갈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과거 쓴 트위터에 대한 답변으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을 때는 침묵하거나 사과드리는 게 맞겠지요. 죄송합니다.' 였다. 성폭행 무혐의 사건 이후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관점이 바뀐 듯 하다. 다만, 본인도 메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혜 작가가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됨을 인지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70조 2항 허위 사실 유포의 죄'''||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박진성 시인이 이후에 공개한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익명으로 폭로한 최초 폭로자는 박진성 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그럼 본명 말해도 돼요?"라고 실명 폭로할 것임을 협박하며, "주실려면 저는 돈이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37|#]] 전형적인 [[꽃뱀]]의 수법으로 보인다.[* 이후 사건 전개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본인이 그 트윗 내용을 스스로 삭제했다. 이는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폭로자가 한 말과 [[탁수정]]이 한 말이 비슷한 내용이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박진성 시인은 2018년 2월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7662925585432576|최초 폭로자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계정을 폭파했다]]고 했고 7월 22일엔 이 사람이 김○○이라고 밝혔다(이름을 밝히게 된 것은 7월 19일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사과를 했는데 이 트위터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 중 하나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의혹에 대한 자세한 건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을 참조.).]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http://www.hankookilbo.com/v/0564032fc2164032b7c5c3af3f668c50|이 기사]]([[https://archive.is/uTwCo|@]])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상의 규모 정도만이 남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895731627474944|#]]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6&aid=0000092780|#]]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로 결론이 난 내용을 주장한 2명을 각각 무고 및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두 명 다 그 죄가 인정되었으나 초범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기소유예, 벌금 30만원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83930&plink=ORI&cooper=|해당 기사 링크]] [[https://imgur.com/pmqT0ao|뒤늦게 거짓임을 고백하는 고발자의 카톡 내용]]
이후 박진성 시인은 2016년에 나온 기사들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는데 한국일보만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의 [[https://blog.naver.com/poetone/221149485970|블로그]]와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378037782216704|트위터]]를 통해 황수현 기자를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9082|해당 기사 출처]][*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2018년 3월 21일에 [[https://blog.naver.com/poetone/221233628914|문제의 출판사와는 결국 계약을 해지]]했으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7월에 박 시인이 밝히기를,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상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힐 때 박 시인이 여러 시집의 계약을 이행하라는 언급도 한 것과 2016년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산문집의 글은 2018년 3월 계약해지를 알린 후에 산문집 '이후의 삶'에 포함되어 출간된 걸 보면, 기존의 시집과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시집과 관련된 계약을 해지하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15546|#]]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그리고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5282180711837697|ㅁㅊ]]([[https://archive.is/GZrdp|@]])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947768753299457|글]][[https://archive.is/uk1hs|@]]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과 [[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고 있다.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5280720691437568|#]][[https://archive.is/nKyFQ|@]][*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태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436470416334849|#]] [[https://archive.is/9IZbK|@]] 여담으로 [[http://www.hankookilbo.com/v/59c63886250945728a1b52d81920104c|이 기사]][[https://archive.is/eNOrA|@]]에 나온 비공식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https://tumblbug.com/baumealame4|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사실 박진성 시인도 소송을 건 사람 중 한 명이나, 아래의 자살 시도 이후 부질없이 느껴져서 취하했다. 2018년 4월 11일에 박 시인이 [[탁수정]]에게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23802202488832|메인 트윗에 올린 자신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내리라고 요구]]했을 때, 이때 몇몇 트위터리안들이 대화의 전문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을 건의하자, 박진성 시인은 진실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해당 건의를 거절하면서 그 대화록은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월 19일엔 메인 트윗을 내려줄 것을 다시 요청했는데, 이 때는 '오늘까지 기다린다'는 말([[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6803521419755520|#]])까지 한 걸로 보아 당시엔 탁수정과의 소송전 재개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대신, 한국일보와 황 기자와의 정정보도 요구 소송의 1심 판결문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315951638564865|해당 대화를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부분을 7월 20일에 공개했다.
* 2017년 12월 2일, 오전 1시 29분 '''자살을 암시하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6633260062285824|트윗]]을 작성하여 우려가 이어졌다. 오전 1시 31분에 박진성 시인의 블로그에 '굿바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이후 블로그 갱신은 멈춘다. [[http://blog.naver.com/poetone/221153390296|해당 블로그 링크]] 이후 약을 먹고 쓰러진 박진성 시인을 박 시인의 어머니가 발견하여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가 14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는 내용을 박진성 시인의 아버지라고 밝힌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다. [[https://twitter.com/home_awaytwo/status/936878516280311809|해당 트위터 내용]] [[http://www.huffingtonpost.kr/2017/12/03/story_n_18712984.html|해당 기사 자료]]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 2018년 2월 초에도 [[트페미|어떤]] [[위근우#s-3.8|사람]][[페미니스트|들]]이 열심히 박진성 시인의 트위터로 계속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길 멈추지 않고 있다([[http://archive.is/Di77O|@]] [[http://archive.is/4nRQ2|@2-1]] [[http://archive.is/zevjR|@2-2]]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isa&no=1019438|#3]][[http://archive.is/UwWpI|@3]]). 결국 박진성 시인이 다시 고소 예고([[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59747957577850880|#]][[http://archive.is/4fn3p|@]][[http://down.humoruniv.org//hwiparambbs/data/editor/pdswait/e_4874374550_17a4b38c35c9327bb9b850b6f454c7fcb0b6aeae.png|#2]][[http://archive.is/WcO2d|@2]])를 하였고, 우선 자신의 해명 요청을 여러 차례 묵살했던 [[위근우]]에게 먼저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0171592985624576|선전포고를 날렸다.]] 그러나 위근우는 이에 대해서 여전히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74513|#]])을 보고 격분,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1266038443659264|그동안 거절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http://kingshandle.tistory.com/488|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 이 글은 설전 초반의 상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상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http://naver.me/FdNCVQm4|#]]
위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박진성 시인이 [[미투 운동]]을 반대하고 [[무고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와전되어 있다.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다른 문인들의 성범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박 시인은 [[탁수정]]이나 [[위근우]]처럼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비판할 뿐, 미투 운동을 지지함은 물론 '''[[고은(시인)|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등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백정현 . . . . 38회 일치
비록 1군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9월 11일까지 2군에서 40경기에 등판해 1.69의 평균자책점과 42⅔이닝 동안 5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전에 비해 월등히 성장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동안 백정현은 2군에서 1점대는 커녕 3점대 평균자책점도 기록한 적이 없었다. 2007, 2011 시즌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두 시즌 모두 재활로 인해 등판한 건 각각 5경기 뿐.] 9월 12일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간 [[권오준]]을 대신해 1군으로 올라왔다.
3월 31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다. 3회까지 1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4회부터 제구가 흔들렸고, 2점을 더 내주고 1사 만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3과 ⅓이닝 동안 4피안타 5사사구 5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였다.
6월 16일 아침에 목욕탕을 갔다온 후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가 올라왔다. [[이병훈(야구)|이병훈]] 해설위원 말로는 이날 목욕탕에서 자빠졌다고 한다. 6월 26일 1군에 복귀했다. 그러나 허리 부상의 여파로 밸런스가 무너진 모습을 보이면서 7월 1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7월 30일 1군에 복귀했다. 7월 31일 두산전에서 1이닝 2실점, 8월 10일 넥센전에서 0⅓이닝 2실점 등 2경기 연속 부진했다. 8월 13일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권오준]]이 대신 올라왔다.
이후 [[류중일]] 감독의 지시로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와 함께 BB아크행. 하지만 한화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도 부진했다. 퓨처스리그 일정이 끝난 후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9월 29일 1군에 올라왔다. 30일 한화전에서 1이닝 3실점을 했고, 10월 2일 [[알프레도 피가로]]가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7월 21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7회에 또 등판. 선두타자 김재환을 김상수의 실책으로 내보냈고, 이어 폭투로 김재환을 2루에 보내며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았다. 허나 민병헌-오재일-양의지에게 '''147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며 세 타자 모두를 뜬공으로 잡아내고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6번째 홀드를 기록해 냈다. 이후 꾸준히 필승조로 나오다 팀내 선발진 붕괴로 인해 9월 들어 선발진에 편입되었다.
9월 10일 대구 NC전에서 선발 땜빵으로 등판했다. 3.1이닝동안 3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를 기록하며 1실점으로 막아냈고 신용운과 교체되었다. 팀은 후속 투수 신용운, 장원삼, 장필준, 심창민이 모두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1:4로 승리.
9월 16일 SK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2⅓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지만 팀은 역전승을 거뒀다. 이후 선발진이 개편될 예정이라 다시 계투로 복귀했다가 복귀하는 선수는 없이 [[윤성환]]이 어깨 염증으로 보호 차원에서 시즌 아웃되면서 다시 선발로 복귀했다.
9월 27일 NC전에서 5⅔이닝 2피안타 3탈삼진 3사사구 1실점을 기록하면서 '''프로 데뷔 10년만에 첫 선발승'''을 거뒀다.
10월 4일 [[LG 트윈스|LG]]전에서 84구 5이닝 1실점 5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1자책으로 두번째 선발승을 기록했다.
'''[[윤성환|윤태자]]와 함께 명실상부 2017 라이온즈 원투펀치'''
코칭 스텝의 상의 끝에 불펜으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팀내 믿음직한 좌완 불펜이 사실상 전무하다 시피 한점 때문에 내린 결정 같은데, 하지만 작년에 선발로써 보여준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이러한 결정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다. 비판을 의식했는지 확정 의견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팔꿈치가 생각보다 안좋은 듯 하다. 사실상 작년이 프로 첫 선발 시즌이었던지라 [[버두치 리스트|향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듯]].
3월 23일 금요일에 영남대 상대로 선발로 나와 5이닝 0실점으로 잘 던졌다.
4월 5일 NC전에서 6.1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였으나 타자들의 타점 지원이 없어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9회초 타선이 상대 실책 덕에 간신히 역전하면서 패전은 면했다.
4월 29일 LG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2⅔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팀이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5선발 체제였다면 화요일 선발로 등판했던 백정현이 이날 선발 등판하는 게 맞지만 삼성 선발은 6선발 체제라서 뜬금 없는 등판이었는데, 당일 해설위원이었던 [[양준혁]]은 백정현이 계투로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3일만에 김한수는 이를 뒤집어 [[김대우(1988)|김대우]]를 대신해 백정현이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44&aid=0000550269|선발진에 합류한다고 말했다.]]
5월 25일 '''두산전에서 8이닝 5k 무실점'''[* 무려 2018시즌 크보를 지배했던 두산을 두산의 홈인 '''잠실'''에서 완벽투를 선보였다.]으로 본인 야구인생 최고의 투구를 펼치며 2승을 수확, 2015년 9월 이후 32개월 만의 팀 5연승을 이끌었다. 위력적인 공을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 꽂아넣는 완벽한 투구내용을 보여줬다. 완봉도 가능했지만 100구를 넘기는 등 많이 던졌기에 관리차원에서 8이닝만 던지게한듯. 이날의 호투로 본인의 평균자책점을 3.86으로 끌어내렸다.
6월 1일[* 원래 로테이션 상으로는 아델만이 나오고 백정현은 그 전날 나와야 하지만 백정현이 nc전에 강한것과 더불어 아델만이 홈에서 극강이고 kt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기에 순서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전날 아델만 역시 승리투수가 되면서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nc전에서 7.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승을 챙겼다. 또한 nc 킬러다운 면모를 이어나갔다.
6월 6일 기준으로 WAR 1.51을 기록하며 삼성 투수진들 중 WAR 1위를 마크하고있다. [[리살베르토 보니야]]가 5월들어 각성하며 1선발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기록으로 보면 실질적인 에이스는 [[백정현]]이라고 봐도 좋을 수준.
6월 7일 SK전에서 4이닝 1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하다가 허리 결림 증세로 5회말에 [[장필준]]으로 교체됐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8일 1군에서 제외됐다.
6월 21일 SK전에 선발등판 하여 6이닝 4실점 3자책점으로 퀄스를 달성했지만 타선 침묵과 수비실책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 정찬성 . . . . 37회 일치
* '''[[조제 알도]]''' - 4라운드 '''[[어깨]] [[탈골]]으로 인한 TKO패.''' 이 경기는 '''한국인 최초의 UFC 타이틀전'''이다. 1, 2라운드를 알도에 내준 정찬성이 3라운드에 기세를 잡으면서 한국 팬들의 기대를 받는 순간 어깨가 빠져버리며 한국인 첫 UFC 타이틀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 경기 후 정찬성은 군복무를 하며 고질적인 어깨 문제를 치료하고 부족한 근력 강화에 집중하게 된다.
2007년 6월 SSF로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 2007년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와 2008년 5월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전적을 쌓아갔다.[* 다만 현 시점에 와서 SSF에 대한 기록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Q채널에서 방영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 라는 격투기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2007년 6월경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SSF는 그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 당시 토너먼트 규칙은 3인 1팀으로 팀전이었는데, 정찬성 선수는 계속 이기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합기도 선수에게 판정패당한다.][* 참고로 정찬성 선수는 해당 토너먼트에 킥복서 베이스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대회 룰 자체가 연속니킥 금지에 링도 없어서 펀치 러쉬가 이어지질 못하는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괴랄한 대회였다.]
2008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DEEP에서 오미가와 미치히로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오미가와는 유도가 출신으로 [[UFC]]와 [[PRIDE]]를 모두 경험했던 베테랑 파이터였으나 정찬성의 공세에 밀려 패배하고 말았다. 훗날 오미가와는 Dream 15회 대회 이후 인터뷰에서 이 경기를 회상하며 '그 때는 정찬성의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붙으면 꼭 이기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정찬성 선수는 블로그에 '오미가와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 다시 붙는다면 그 때는 변명을 대지 못 하게 이기겠다.'며 재대결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이후 오미가와는 센고쿠 토너먼트에서 수많은 페더급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TOP 10급 파이터로 부상하게 된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2011년 12월 UFC 140에서 마크 호미닉을 '''7초'''만에 초살 KO시키며 타이틀 컨텐더로서의 가능성을 확실히 했다. 글러브 터치 직후 초살을 노리면서 크게 휘두른 호미닉의 왼손 훅을 피하면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적중, 다운된 호미닉에 파운딩 세례를 퍼부으며 [[충격과 공포]]의 TKO승을 거뒀다. 이 기록은 UFC 102에서 있었던 [[토드 듀피]]의 UFC 최단시간 KO 타이기록이라고 한다! 리플레이를 돌려보면 레프리 스탑이 이루어진 시기는 4분 54초로 실제로는 6초라는 얘기인데, 6초로 정정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7초로 확정됐다.
간혹 '레프리 스탑이 너무 일렀다' 라며 까는 여론도 있는데 위의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호미닉은 다운 된 뒤 턱에 정타를 대 여섯대나 맞았다. 의식이 혼미해 가드도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던 상황. 저 때 스탑 안 걸면 '''진짜 죽는다.''' 호미닉도 인정했듯이 레프리 스탑의 타이밍은 전혀 문제가 없다. '정찬성이 잘한 게 아니라 호미닉이 바보짓을 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페더급 뿐만이 아니라 MMA 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복싱 테크닉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호미닉이 본인의 특기를 버리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붕붕훅을 날린 것은 확실히 변명할 수 없는 바보짓. 하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고, 무엇보다 그 짧은 타이밍을 잡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또 호미닉이 한 행동부터가 매너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호미닉은 경기가 시작하고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공격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고 확실한 반격에 성공한 것은 정찬성의 실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경기 승리는 정찬성에게 의미가 큰데, 흔히들 말하는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기회를 움켜잡은 셈이다. 그 때문인지 경기에 이긴 뒤 눈물을 흘리며 호미닉을 포옹했다.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상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상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상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영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상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상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국내 격투기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정찬성이 도전 기회를 잃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깨가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추진했다면 그나마 없는 승산이 더욱 적어졌을 것이고, 만일 본래 계획대로 프랭키 에드가가 12월 페더급 데뷔전을 치르고 승리하게 되면 정찬성이 에드가와 타이틀 도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알도와 에드가가 먼저 맞붙기 때문에 정찬성이 타이틀전을 앞두고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이 내년 복귀시기에 맞춰 바로 타이틀전 직행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개최예정인 'UFC 162' 에서 [[리카르도 라마스]]와 격돌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 매치는 페더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일 확률이 높은 상태...였는데 [[앤소니 페티스]]가 무릎부상으로 결장하게 되면서 '''[[조제 알도]]와 타이틀전이 확정되었다!!'''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식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반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태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남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다만 [[댄 핸더슨]]같이 상대가 한 방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파워가 있거나 [[앤더슨 실바]], [[코너 맥그리거]], 한국 선수 중에서는 [[최두호]]처럼 상대를 정확하게 요격하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진 않다. 콤비네이션은 다소 엉성하고, 핸드스피드도 빠른 편이 아니며 [[니킥]]의 활용은 좋지만 킥의 활용도 뛰어나지 않다. 하지만 버뮤데즈나 호미닉같이 방심한 상대를 마무리할 정도의 결정력과 한방은 가지고 있다.
레슬링은 버뮤데즈가 지적했듯이 강점은 아니다. 하지만 버뮤데즈가 지적한 알도 전은 어깨 부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으로 정찬성의 레슬링이 약하다고 할 순 없으며, 무엇보다 이런 지적을 한 버뮤데즈부터가 정작 경기에서는 정찬성을 테이크다운하지 못했다. 버뮤데즈가 페더급에서도 상당한 레슬러라는 걸 감안하면 정찬성의 레슬링 실력은 테이크 다운 방어를 중심으로, 레슬러에게 그라운드 및 그래플링 주도권을 쉽게 내주지 않을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센스'''. 위에서 말한 장점들을 보면 알겠지만 정찬성은 명확한 하나의 출신 무술이나 백본 무술이 없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삼보, [[다니엘 코미어]]의 레슬링처럼 자신이 극한까지 익힌 하나의 무술과 그 무술의 강점을 바탕으로 다른 위험에 대한 대처를 익힌 격투가라기보다, 최대한 자신의 무기 가짓수를 늘리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는 해법을 '''센스'''로 골라내는 격투가에 가깝다.
조지 루프 전 이전의 정찬성은 그 '''센스'''의 위치를 본능이 대신하고 있었다면, 조지 루프 전 이후의 정찬성은 명백히 센스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합한 해법을 그때마다 내놓고 있다. 정찬성의 센스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떤 방법을 썼을 때 상대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 지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또는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지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이는 타격에서도 그래플링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트위스터라는 MMA 역사상 나온 적 없는 서브미션을 활용해서 상대를 끝낼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한 점, 포이리에 전에서 테이크 다운을 당하고 이를 순간적으로 스윕한 것, 알도에게 플라잉 니킥이 실패한 후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테이크 다운을 건 것, 버뮤데즈에게 타격으로 밀리다가 레프트 타이밍에 어퍼컷을 정확하게 넣은 것 등 남이라면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기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포착해 이기거나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게 뛰어나다. '''다만 그 중에서도 서브미션, 특히 주짓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현대 MMA 에서 가장 비슷한 존재를 꼽아보라면 그나마 [[토니 퍼거슨]] 정도. 둘 다 좋은 신체조건임에도 인파이팅을 즐기고, 뛰어난 맷집을 가지고 있으며 서브미션 승이 더 많으며 주짓수가 돋보인다. 물론 토니 퍼거슨이 성적이나 완성도나 더 뛰어나다. 정찬성이 3년의 공백을 가지는 동안 퍼거슨이 쉼없이 실전을 겪으며 훨씬 발전한 것도 있고, 퍼거슨은 명확한 레슬링 백본이 있다는 점도 있고, 타격 기본기도 더 뛰어나다는 점도 있고.
한국과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한국의 [[반달레이 실바]]라고 불릴 정도로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합기도]]를 배웠고 18세에 [[킥복싱]]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만큼, 타격으로 격투기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 좀비 스타일이 가장 돋보인 경기는 역시 레오나드 가르시아와의 미친 듯한 타격전. 맷집이 좋은 선수끼리 붙은 이 경기는 확실히 MMA 라기 보다는 싸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고 이 광기어리기까지 한 경기에 북미 팬들이 열광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좋은 한국 MMA 선수에 등극했다.
하지만 이 '좀비 스타일'은 불과 다음 경기 루프전의 뼈아픈 KO패로 그 한계를 확실히 드러냈다. 이 때 얻은 교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찬성의 회고가 '나는 싸움을 하러 들어갔는데 루프는 스포츠를 하려고 나와 있더라' 라는 말이 있다. 한때는 정말로 낙담해서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지만, 다시 심기일전하여 '좀비 스타일을 버리겠다'며 새로운 각오를 보였다. 유라이아 페이버의 알파 메일로 캠프를 옮겨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것이 가르시아 2차전에서 결실을 거두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UFC 첫승을 거두게 된 것. 가르시아와의 경기 이후 호미닉 전은 6초만에끝나서 뭐 달리 보여줄 것도 없었지만 포이리에와의 경기에서는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계속해서 성장중인 파이터라는 것을 어필했다.
경기마다 명장면을 만들어 내는 초특급 슈퍼스타다. WEC 48의 난타전, UFN 24의 트위스터에 이어 UFC 140에는 최단시간 KO까지 만들어내는 등 그가 싸우는 곳에는 언제나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경량급에는 스타가 확실히 적은걸 보면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 마치 BJ 펜이 라이트급의 서막을 열었듯이. 이미 한국 안에서 뿐 아니라 Zuffa 페더급의 흥행을 책임지는 스타 플레이어. 한국에서의 MMA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북미에서의 인기가 더 높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연이은 명경기로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급상승했지만 북미의 찌를듯한 인기에 비하면 아직은 국내인기는 약한 편이다. 실제로 코리안 좀비 티셔츠는 2010년 MMA 티셔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36회 일치
바실레이오스 1세 '마케도니아인'[* 참고로 그는 혈통상 마케도니아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데도 이렇게 불린 이유는 후술.], Βασίλειος Α΄ο Μακεδών[* 현대 그리스어로는 '바실리오스'라 읽는다.], Basil I 'the macedonian'
'''나는 여우를 내쫓았으나 그 대신 우리 모두를 잡아먹을 사자를 불러들이고 말았다.'''-바르다스[* 바실레이오스의 전임 황제인 미카엘 3세의의 외사촌으로, 쿠로팔라테스라는 황제에게 후사가 없을때 제위계승권도 주장할 수 있는 직위에 있었다.], 다미아누스 시종장을 해고한뒤.
바실레이오스는 본래 아르메니아 혈통이었는데, 여느 아르메니아인이 그렇듯이 그의 가족도 트라키아 지방으로 이주해서 거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던걸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 불가리아의 칸 크롬이 트라키아를 침략하면서 그의 가족들과 그를 납치했고, '마케도니아'라는 곳으로 끌려가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아마 포로로 잡혀간 이들중 대부분이 마케도니아 출신이라 그런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의 왕조를 '마케도니아'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전술했듯이, 그는 거의 완전한 아르메니아인이었으며, 어렸을때는 아예 아르메니아어만 사용했고, 커서 그가 사용한 그리스어도 아르메니아 억양이 잔뜩 묻어났다고 한다. 거기다가 글은 아예 하나도 모르는 문맹이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평민출신이던 바실레이오스가 글을 모르는건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나마 그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힘과 말을 다루는 뛰어난 솜씨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쩌다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는데, 이 신임을 받는 경위는 사서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레슬링 경기에서 여러차례 챔피언을 차지한 불가르족 거한과 맞붙어 한번에 매다꽂아버려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하며, 또다른 설은 미카엘 3세가 성질이 사나운 말을 한마리 얻어냈는데, 아무도 그 말을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바실레이오스만이 말의 귀를 쓰다듬는 것으로 그 말을 고분고분히 다룰 수 있었고, 이를 본 미카엘이 그를 자기밑에서 일하게 했다는것이다.
아무튼간에 그는 미카엘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안가서 시종장 디미아누스가 해임되고 난뒤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서 그와 미카엘사이에 살짝 사이에 금이 가는 조치가 내려진다. 바실레이오스는 그의 전처인 마리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미카엘의 정부였던 에우도키아와 재혼하게 된것이다. 이는 유도키아를 다시 황궁안에 들여놓기 위해 미카엘이 취한걸로 보이며, 이걸로 인해 상당한 논란을 낳게 되나, 이는 후술하도록 한다. 이후로 황제는 에우도키아의 보상으로 자신의 누나 테클라를 바실레이오스의 정부로 주기 까지 한다.
이후 바실레이오스가 미카엘과 절친해지면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 당시 실권자였으며 사실상 후계자로 점찍혔던 황제의 외삼촌 바르다스와 바실레이오스와의 관계는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르다스는 바실레이오스를 그저 변방 촌뜨기로 보고 무시했었으나, 점차 그가 미카엘과 친해지자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실레이오스도 바르다스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밀려나리란것도 예상하고 있었고, 이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남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그러나 이후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과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데, 미카엘이 국정에 흥미를 읽고 전차 경주나 술에 열중해 있었고, 에우도키아 문제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건 바실레이오스의 야망이 단순한 공동황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을것이다. 결국 867년에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을 암살하고 단독 황위에 오른다
단독 황위에 오른 바실레이오스는 적극적으로 제국의 고토를 되찾으려 했는데, 그 중 하나인 남이탈리아의 장악을 위해서는 교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걸 위해서 그는 우선 서방과 사이가 좋지못했던 포티우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해임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새로운 대주교로 임명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열며, 포티우스를 해임했다는 소식을 교황에게 전하는데, 당시 교황이던 히드리아누스 2세는 황제의 해당 행위를 회개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포티우스 분열]]을 일으켜 동방과 서방교회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든 포티우스를 처벌하게 만들기 위해 사절을 보낸다.
그러나 황제는 제국의 서방 속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당 행위를 한거지 회개할 생각은 딱히 없었기에, 교황의 사절이 보낸 요구[* 공의회의 교황의 사절 주도]를 무시하고, 포티우스를 파문시키는데 그치게 한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나기 직전인 870년 2월에, 불가리아 왕인 보리스 1세가 사절을 보낸다. 당시 그는 포티우스 분열때 자신을 무시한 포티우스에 대항해 가톨릭을 불가리아에 퍼뜨리고 있었는데, 이게 그리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총대주교구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총대주교를 누구 휘하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교황휘하인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휘하인가? 그리고 바실레이오스는 불가리아에 자기 세력을 키울 기회를 놓칠 위인이 아니었고, 즉각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안티오크와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대표를 불러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는 누구 휘하에 두어야 되는지를 물었다. 이들의 답은 뻔했고, 교황청에서 온 사절들이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되어서 불가리아는 정교회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정교회국가로 남아있다. [* 어찌보면, 이때의 공의회가 한나라의 종교를 결정한셈.]
같은해 2월, 제국은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그는 2년전에 사라센이 장악하고 있던 남이탈리아의 바리를 공격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바실레이오스는 그에게 해군함대를 보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와 딸 헤르밍가르데의 결혼도 제의한다. 루트비히는 우호적인 답신을 보냈고, 869년에 니케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한 제국의 함대가 바리를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니케타스는 프랑크군이 군기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경멸을 감추지 못했고, 루트비히에게 '프랑크 왕'이라고 한단계 낮춰부르기까지 했다. 결국 두사람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니케타스는 함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사절을 보낸것이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루트비히가 베네벤토를 공격하다가 그곳 공작의 포로가 되어 베네벤토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복음서에 맹세를 한 굴욕을 당해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이후 루트비히가 브레시아에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해당문제는 끝이 났으며, 이후 제국은 서진과 동진을 꾸준히 시도해서 아나톨리아에 진출한 바울파를 쳐부수고 그들의 지도자인 크리소케이루스를 살해했으며, 유프라테스 연안을 거의다 수복하고 달마티아를 수복했으며, 남이탈리아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크레타 수복은 실패하고 시라쿠사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섬을 완전히 사라센에게 내주었지만, 이로써 서방과 교황이 제국의 우월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순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성상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식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식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식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상이 구비된 식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식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썬 낙제점중에 낙제점이었는데, 차남 레온이야 그의 아들이 아니란 의혹이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에우도키아의 탯줄에서 난(자신의 아들이 확실한) 두아들들까지 미워하고 싫어했고, 오로지 전처인 마리아 사이에서 난 콘스탄티노스만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후 레온 다음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데르의 막장짓은 어찌보면 어릴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게 컸을것이다.
- 박석민 . . . . 36회 일치
|| '''포지션''' || [[지명타자]][* 2017년부터는 잔부상과 대상포진 등으로 사실상 지명타자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3루수]], [[1루수]][* 2017 WBC에서 1루수를 잠시 맡았고, 삼성 시절이였던 2008~2011 시즌에도 잠깐이나마 1루수를 본적이 있다.] ||
||<-5> '''[[NC 다이노스]] 등번호 18번'''[* 홍성용의 kt 위즈 이적 이후 [[배재환]]이 18번을 달려고 하였으나 박석민이 [[배재환]]의 동의를 얻어 18번을 달게 됨. --사실 배재환이 선동열을 닮아서 배동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18번을 달려고 했지만, 박석민의 영입으로 실패(?)하게 된 것--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363216|관련기사]]]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팀내에서 [[최형우]]와 함께 단 둘만이 전 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9, [[홈런]] 14, [[타점]] 64를 기록하였다. 실질적인 첫 1군 풀타임 출장인 걸 감안하면 좋은 성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18개의 [[실책#s-2|실책]]으로 인해 [[박기혁]]과 함께 실책 공동 1위에 오른 것은 안습.
5월 6일까지 .277의 타율을 기록했다. 타율은 다소 아쉽지만 볼넷을 많이 얻어낸 점은 고무적. 그러나 장타율이 다소 낮고 홈런이 2개 밖에 없으며 실책이 벌써 3개째이다.
개그 본능은 여전했다. 5월 6일 LG 트윈스 전에서 상대 투수 [[한희]]의 공에 맞자 배트 들고 한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문제는 '''박석민이 해서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 사실 화가 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다소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오려는 작전이었다. 더불어 한희에게 전화로 직접 사과까지 했다. 해당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제구가 안되던 한희는 직후 영점이 잡혔다.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 메이커 박속닌!~~[[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06885|박석민 인터뷰]]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미치 탈보트|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8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 홈경기를 결장할 예정이었다. 이유는 [[나고야]]에 있는 어느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간다는 이유로(...)...[* 그러고는 19시경에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그 날 [[홍성흔]]에게 홈런 2개와 5실점을 내준 상태에서 9회말 '''3-5'''까지 따라잡은 이후, [[류중일]] 감독은 2아웃 2루에서 박석민을 '''대타'''로 내서 그냥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고 말았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타율 0.071)로 지독한 부진을 겪었다. 더군다나 5차전부터는 6번 타순으로 밀려나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석민의 타격이 부진했던 이유는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타격 밸런스가 깨져 타격감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압박 수비로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는 활약을 하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정말 제몫을 다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선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스코어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며 부진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여러모로 2002년의 [[이승엽]]과 비견되었다.[* 반면 이 해의 [[이승엽]]은 2002년의 [[마해영]]+[[양준혁]] 포지션.] 이 홈런은 근소하게 앞서던 삼성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삼성은 여세를 몰아 '''볼넷 3개+ 적시타 2방 4타점'''을 묶어 '''시리즈 세 번째 1이닝 6득점'''으로 SK를 완전히 도륙내며 스코어 7:0으로 승리했다. 이날 박석민은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격전지인 3루수 부문에서 [[최정]]과 2년 연속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율과 홈런 등에서 앞서고 [[20-20]]을 달성한 최정에게 아쉽게 밀렸다.~~사실 최정도 박석민 이상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기에 받을 만했다.~~ 아무튼 최정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3루수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자석남~~ 이를 위로라도 하듯(?)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잘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개그 본능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는 눈야구를 기반으로 한 OPS형 타자이다. 2009년이후 갑자기 OPS 1.0을 기록하며 타격에 소질을 보였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으며, 풀 시즌을 소화했을 때 20홈런 이상은 보장되는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컨택 또한 뛰어나 통산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비율 스텟을 자랑한다.[[WAR]]도 거의 KBO 탑급이여서 공헌도가 가장 높다. 다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비롯해 잔부상이 많기 때문인지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이로 인해 누적에서는 비율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방망이를 돌리고 몸을 터는 등 유독 요란한 [[루틴]]동작 역시 몸의 고질적인 부상들 때문에 통증을 털어내는 과정일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편. 그럼에도 매시즌 3-4-5를 찍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외에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도 얼핏보기엔 기괴한 폼이지만 오히려 타격의 정석을 충실히 지킨다며 이종열이 극찬한 바가 있다.
[[팩트폭력|펑퍼짐한 몸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민첩한 수비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해설위원 [[이순철]]과 [[허구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히 공수를 가리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 내야의 코어라고 부를 만 했으나 NC 이적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상과 노쇠화가 겹치며 수비는 크게 망가져, 2018년 기준으로는 더이상 수비를 잘 한다고 불러주긴 힘들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몸개그, 홈런타자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차세대 [[김별명|별명의 신]]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다.
* 퇘가놈, [[정현욱|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이호준|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노리타(야구)|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홍성흔|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 물론 여전히 온라인 반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반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주원|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697613&cpage=1&mbsW=&select=&opt=&keyword |#]]~~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한화 이글스]]에게 유달리 강하다. 한화 상대 타율이 자신의 통산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3할대 후반이다. 2009년에는 9개나 침으로서 한화 마운드 방어율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실 한화 상대로 어느 타자가 약하겠냐만은~~ 특히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에게는 크보에서 가장 강한 타자이다. 2008~2009 2년간 對 류현진 성적이 '''15타수 5안타 4홈런 6타점 4볼넷'''이다. --박석민을 메이저로!-- 2009년에는 류현진한테 홈런 3개를 빼앗았을뿐만 아니라 그 중 2개는 한 경기에 친 것이었다. 그래서 한화 팬들은 다른 어떤 강타자보다도 박석민을 제일 무서워한다(…) [[디시인사이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한나쌩(한화 나오면 쌩큐) 혹은 칰나쌩 선수로 대부분 박석민을 지목했다. ~~[[김성근|???]]: ㅂㄷㅂㄷ~~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의 손을 잡고 난 날 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화 감독은 박석민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단다. 그런데 뛰는 한대화 위에 박석민이 있다고, 어느 날은 박석민이 안보여서 안심하고 대구구장 원정 감독실로 쓰는 임원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박석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박석민은 얼른 한대화 감독의 손을 잡고 도망갔고, 그 날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때가 2012년 6월 13일. 이 날 박석민은 1회 좌전안타와 2번의 사구를 기록, 4타수에서 3번 출루했다. 이 징크스 일화가 실린 기사가 난 6월 14일에도 손을 잡는데 성공했는지 그날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고교 때부터 등번호 18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2010년에 18번을 달려고 했으나 군대에 입대 예정이었던 정홍준이 안 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2010 시즌 후 정홍준이 방출되면서 18번을 달게 되었다. NC로 이적 후 기존에 18번을 달던 신인투수 [[배재환]]에게 동의를 구한 후 [[http://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wsview?newsId=20151216165212618|18번을 계속 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본인의 차에 18번을 단 피규어가 다수 자리잡고 있고, 핸드폰 번호도 0018, 집도 18층에 살고 있다. 2017년 시즌 시작과 동시에 1년밖에 타지 않은 차를 바꾸면서 차량 번호도 18이 3번이나 들어가는 번호를 타고 있다. ~~2018년에는 커리어 하이로 2017 시즌 부진을 털 수 있을까~~
- 전태일 . . . . 36회 일치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상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남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인용문|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원으론 어림도 없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태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태일의 노동자로서의 반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순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태를 조사하였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영래, 《전태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 노동실태 설문조사와 노동자 집회 ====
그는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아 암기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불이익에 저항하였다. 그는 [[동대문구청]]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 대해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상의 감독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갔지만, 근로감독관은 평화 시장의 참혹한 얘기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f name="chungg">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2권》 (녹두, 1993) 265페이지</ref> 가뜩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전태일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노동이나 근로 기준법조차 사업주들의 편이라는 현실은 그를 한동안 허탈 상태로 몰아 넣었다.<ref name="chungg"/> 그는 청계천 일대의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 설문하여 이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멸과 비웃음 뿐이었다. 처음에 약간 말투가 어눌했던 그는 부랑자로 몰리거나, [[노동청]] 공무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동자 권리 청원은 언론들도 외면했고, [[경향신문]] 등에만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 정부 탄원 실패 ====
[[1970년]] [[9월]] 전태일은 [[한미사]]의 재단사가 되었다가, 같은 [[9월]] [[왕성사]]의 재단사가 되었다. 재봉사보다 지위가 높은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 뒤 다시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진정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내용이 [[경향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자, 전태일 등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임금, 노동 시간,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 조합]] 결성 등을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일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약속 위반으로 인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으며, [[자본가]]들도 삼동회는 [[사회주의]] 조직이라고 헐뜯음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해 [[10월]]부터 그는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시위를 주관하였다.
그는 언론사들을 찾아다니면서도 노동자들의 참상을 전달했다. [[1970년]] [[10월 7일]] 마침내 시내 각 석간신문에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의 참상에 관한 보도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1970년]] [[10월 8일]] 그는 [[삼동회]] 대표들을 이끌고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노동자 [[숙소]] 다락방 철폐, 정식 기숙사 설치, [[노동조합|노조]] 결성 지원, 위생 환경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 8개 항의 요구를 제출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도 탄원서를 보냈지만 [[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간에 소거되었다. [[10월 24일]] 그는 [[서울]] 도심에서 근로 조건 개선 거리시위를 기도했으나, 오후 1시 사전에 경비원의 신고로 정보를 입수하여 출동한 [[대한민국의 경찰|경찰]]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ref>〈이소선:아,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여성사 1》 163~4p, 여성신문사, 2000</ref> 쓰러졌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치료를 받은 전태일은 온몸이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앞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의사에게 갔다. 1만 5천 원짜리 주사 두 대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ref name="chock289">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때 평화시장 담당 [[서울시청]]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전태일을 따라 병원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가 무엇 때문에 보증을 서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오후 4시경 그는 그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다시 후송되었지만, [[11월 13일]]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그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날 저녁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11월 13일]]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는 그날 오후 10시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산)에 안장되었다.
회사의 [[착취]]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단결하여 투쟁할 생각을 못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를 보면서 각성한 것이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8월 [[신진자동차]] 노조 조합원과 가족 1900여명의 [[파업]]투쟁,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 빌딩 옥상 방화 농성 등이 주요한 사건들이었다. [[1971년]]의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1600여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가 넘는 규모였다.<ref>지명관,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98~ 101쪽, 다섯수레, 1996년;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정치사》 352~ 353쪽, 백산서당, 1990년;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347쪽, 풀빛, 1995년</ref>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에 후송되었으나, 그는 3~4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그는 치료다운 치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응급실 한 구석에 방치되었다.<ref>대구사학회 편,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 (푸른역사, 2005) 430페이지</ref> 그는 병원 도착 직전까지 사망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전태일은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후송되었다가 다시 서울 성모병원으로 후송된 뒤에도 3~4시간 정도 방치되었다고 한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의사는 전태일에게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3~4시간 가량 그를 진료하지 않았다.
입원실에서도 별다른 치료없이 환자를 거의 방치해두다시피 하였다.<ref name="chock289"/> 어머니 이소선은 목이 마르다면서 물을 달라고 수없이 졸라대며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물을 마시면 화기가 입 속으로 들어가서 영영 살릴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물을 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갈증이라도 면하게 해주려고 물을 적셔서 입에 축여주었다.<ref name="chock289"/> 저녁이 되면서부터 전태일은 기력이 탈진해 가는 듯 잠잠히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그리고 누구도 전태일의 진료비를 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李少線)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 유가족 8명이 [[12월 3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보상금 지급을 현실화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재심을 청구했다.<ref name="hjaeshims">[http://www4.hankooki.com//nation/200212/h2002123116132714510.htm "민주화운동 보상금 현실화" 전태일씨 유족등 재심청구] 한국일보 2002/12/31</ref> 어머니 이소선은 "태일이가 보상금으로 930만원으로 받는데 비해 [[1991년]] 분신 자살한 [[윤용하]]씨는 2억 3천만원을 받는다"며 "이는 태일이의 보상금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 임금만을 단순 반영한 [[호프만식 계산법]]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ref name="hjaeshims"/> 재심청구를 주선한 전국민주민족유가족협의회(유가협)도 보상금심의위원회가 당시 전문 기술자였던 전씨를 [[단순일용직 근로자]]로 분류해 [[보상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ref name="hjaeshims"/>
한편 이후 노동운동과 반정부 운동의 상징이 되면서 대단히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인물인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졌다<ref name="sangcahm">함규진, 《역사법정:한국사 인물논쟁》 (포럼, 2006) 330페이지</ref> 는 시각도 있다. 역사학자 함규진에 의하면 "노동운동과 반정부 운동의 상징이 되면서 대단히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인물인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어졌지만, 그가 쓴 글은 아주 소박하고 온건하다. '대통령 전상서'의 내용을 보면 골자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악덕 기업주들을 단속해 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렇게 맺고 있다. '각하께서는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이 아버님이십니다. 소자 된 도리로서 아픈 곳을 알려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주십시오. 아픈 것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ref name="sangcahm"/>"라는 것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면, 전태일은 급진적이거나 생각이 편향된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양심으로써 노동인권운동에 헌신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전태일 평전에 전태일이 쓴 일기가 실려있는데, [[십계명]]으로써 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셨으니 [[노동자]]들은 휴식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 [[실비아 플래스]]
* 김종찬, 《불의 기록, 피의 기록, 죽음의 기록》 (실천문학사, 1988)
- 한명회 . . . . 36회 일치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경덕궁]]직이 되었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15페이지</ref> [[1456년]] [[사육신]]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적발하여 좌절시키고, 사육신과 관련자들의 처벌에 가담하였다. [[조선 세조|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세조로부터 나의 [[장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이 되고,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기여하여 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토벌과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1466년]]~[[1467년]], [[1469년]] 두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후일 [[종묘]] 세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글을 읽어서 성취한 바 있었으나 번번히 과거에 실패하여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떨어지자 주변에서는 그를 위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궁달(窮達)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사군자(士君子)가 되어서 어찌 부유(腐儒), 속사(俗士)들의 말 한마디에 실망하고 비통하기를 즐겨 하겠는가?'라며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같이 불우한 처지였던 [[권람]](權擥)과 친하게 지냈는데, 둘이 함께 오랫동안 마차에 책과 술을 싣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유람을 다녀오기도 했다. 관례를 치룬 뒤에도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권람]]과 더불어 전국을 떠돌며 산천을 주유했다.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케 했고, 다시 [[권람]]에 의해 천거되어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5페이지</ref>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金宗瑞), [[황보 인]] 등 대신이 집권하자, 친구인 교리(校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자주 만나며 집권 계획을 역설, 무사 [[홍달손]](洪達孫) 등 추천하여 그의 심복을 삼게 하였다.
[[수양대군]]은 세력과 사람이 없어서 실패할 것을 염려하였다. '형세(形勢)가 고단(孤單)하고, 세력은 미약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하며 묻자 한명회는 당위성을 역설하며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독려하였다.
{{인용문2|주군께서는 종실의 버금으로서 사직(社稷)을 위하여 난적(亂賊)을 치는 것이니 이는 명분도 바르고 말도 사리에 맞는 말인바, 성공하지 못할 리가 만무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결단해야 할 때 바로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입는다.' 하였으니, 바라건대 주군께서는 익히 생각해보소서.}}
그해 [[10월]]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의병(義兵)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김종서]]와 [[황보 인]]을 제거한다고 하자 실패를 걱정하고 군사들은 우왕좌왕하였다. 그러자 그는 칼을 빼어 들고 큰 소리로 말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6월 1일]] [[명나라]]의 사신이 [[한성부]]에 도착하자 운검(雲劒)들이 출입하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미구의 사태를 대비해,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광연루]]에 사신이 많아서 자리가 좁다는 이유로 세자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 것과, [[홍달손]]과 [[홍윤성]]을 시켜서 병력을 동원할 것이니 운검의 제장(諸將)들도 입시하지 못하게 하기를 주청하여 [[조선 세조|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윤허하였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이 운검을 차고 곧장 들어오려 하기에 운검은 안 들어와도 된다며 제지하였다. 이에 거사의 실패를 우려한 운검의 병력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민첩하게 피하였다.
또한 [[병조]][[판서]] 재직 중 [[평안도]]와 [[함경도]]에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여 변방을 출몰하는 [[여진족]]과 야인 부락을 토벌하고, 북변을 수습한 뒤, 북방에 축성하여 방어를 확실히 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 황해·평안·함길·강원도 도체찰사 등을 역임했다. 그해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고, [[1458년]](세조 3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승진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순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1467년]](세조 13년) [[함경북도]] 일대에서 [[이시애]]가 [[이시애의 난|병란]]을 일으켜 명회와 [[신숙주]]가 일찍이 성삼문과 반란을 모의하려 했다고 모함하자 투옥되었다. 그는 이시애의 계략에 말려 신숙주와 함께 투옥당한다. 또한 그들이 함길도 절제사 [[강효문]]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었다.<ref name="park116">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6페이지</ref> 그는 [[신숙주]]와 함께 반역을 꾀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의금부]]에 투옥, 신문을 당했으나 뚜렷한 혐의가 없었다. 즉위 이후 줄곧 왕위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세조는 [[이시애]]의 보고문을 믿고 일단 신숙주와 한명회를 옥에 가두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시작했다.<ref name="park116"/> 한명회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나라 사람들은 모두 통쾌히 여겼다.<ref name="deok252">이덕일,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2005) 252페이지</ref> 그러나 [[이시애]]의 장계가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그는 [[신숙주]]와 함께 석방되었다.
이때 그는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자 자신의 넷째 사위인 [[조선 성종|자을산군 혈]]을 적극 지지하여 차기 왕으로 즉위시킨다. [[1469년]] [[조선 성종|성종]]이 즉위하자 [[이조판서|판이조사]]와 [[병조판서|판병조사]]를 겸했고 성종의 즉위를 지지한 공로로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洪弘佐理功臣) 1등의 공신호를 받았다. 이어 그해 [[춘추관]]영사로서 [[최항 (1409년)|최항]](崔恒),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2년]] 영[[춘추관]]사로서 최항(崔恒)·신숙주 등과 함께 참여한 《세조실록》을 완성시켰으며, 그해 [[조선 성종|성종]]에게 학문을 진작, 장려할 것을 건의하였고, 서적이 부족한 [[성균관]]의 장서확충을 위하여 경사(經史)관계의 서적을 많이 구하여 [[성균관]]에 기증, 비치하게 하였다. 또한 명륜당(明倫堂) 북쪽에 새 전각을 마련하고 추가로 장서를 마련할 공간을 만들 것을 건의하고 직접 이를 감독하였다.
야사에는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한다. [[유자광]]의 사주를 받은 언관들에 의해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자 분을 이기지 못한 그는 도끼로 자신의 정강이 또는 자신의 집 대들보를 내리찍었다고 한다. 그는 왕실과 이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했는데, 그의 큰딸은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아들 윤반과 혼인을, 그의 작은딸은 [[신숙주]]의 맏아들 신주와 혼인하였고 셋째 딸은 [[조선 예종|예종]]의 정비([[장순왕후]])가, 막내딸은 [[조선 성종|성종]]의 정비([[공혜왕후]])가 되어 영화를 누렸으나, 이 딸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정실 부인 민씨와 여러 첩이 있었으나, 첩실의 존재는 네 명이 확인되고 있다. 이 중 정종화(鄭宗和)의 딸 연일 정씨와 전주 이씨는 [[조선 세조|세조]]가 특별히 [[신애라]]에 봉작하였으므로, 이후 정식 부인으로 대우하게 되었다.
* 정실: 황려부부인(黃驪府夫人) 여흥 [[신애라|황려부부인]] - [[증직|증]][[의정부]][[우의정]] 민대생(閔大生)의 딸. (? ~ [[1490년]]) [[조선 단종|단종]]비 [[정순왕후]]의 모친 여흥부부인과 친사촌지간이다. 민중립의 아들 민소생, 민대생
* 측실: 연일 정씨, 정종화(鄭宗和)의 딸, 포은 [[정몽주]]의 서손녀(庶孫女)
* 측실: 전주 이씨, 선천 공조의 딸
- 조응천 . . . . 34회 일치
|| '''약력''' ||<(> 대전지방검찰청 검사[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br][[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br]부산고등검찰청 검사[br]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br][[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br][[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br][[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br]~~별주부짱 매니저~~[* 공직을 맡은 것이 아니라 취소선을 쳤지만, 이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직기강비서관에서 잘린 뒤에 그는 아내와 같이 해물전문점을 운영했었기 때문이다. 즉, 당선될 당시 그는 자영업자였다. 이는 그의 총선 포스터에도 당당하게 적어 놓은 약력이다.][br][[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대경권|TK]] 출신 엘리트 검사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요직을 맡아 성장했고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대경권|TK]] 성골 엘리트급의 보수 인재 루트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적당히 끊고 청와대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구 새누리당에서 요직을 맡아 보수층의 중심에 올랐을테고, 계속 해서 청와대에서 자리를 맡았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축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돼 '''별주부짱'''이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며 중앙 정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을 갖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는 검사 신분을 유지하면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가 2005년 검사직을 사임하고 [[김앤장]] [[변호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후기인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법무부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원장|원장]] 특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변호사]]로 돌아갔다.
2013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으로 [[박근혜정부]]에서 일하였다. 같은 해부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요약하자면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실용정부|이명박 정부]], [[박근혜정부]]까지 4개의 정권에서 요직을 맡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4개의 정권은 이념과 성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본인이 선거 홍보물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중용될 정도로 능력과 도덕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기소되었는데 그때 유출된 그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보좌해왔던 [[정윤회]]가, 야인이 된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서 특별히 더 신뢰받는 비서관들에게 여전히 지시를 내리며,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문건 내용이 사실임을 의심케하는 대목이 있었음에도 사건 수사를 맡았던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이 문건을 작성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s-4|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였던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그의 부하 직원이었던 [[박관천]] 경정 등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대충 마무리해 버렸다.
'''그리고 1년 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은 [[박근혜 게이트|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로 기소를 당했던 조응천 의원 본인도 나중에 1,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본인 말로는 식당의 매니저, 셔터맨을 도맡았다고 한다. 실제 총선 후보 시절 직업란에 '''별주부짱 매니저'''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 [[기독교방송|CBS]] 변상욱 기자가 김용민의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http://www.podbbang.com/ch/9954?e=21859559|조응천 씨가 횟집 이름]]을 '''[[정윤회|정윤횟집]]'''으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주위에서 '''"그러다 너 죽는다"'''라고 뜯어말렸다 전해진다--
인터넷상에서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대한민국 검찰청]]과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근무했던 50대 아저씨가 맞나 싶을 정도. [[https://www.facebook.com/chopros|페이스북]]과 [[https://twitter.com/chopros|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늘의유머]]에 인증을 했는데 닉네임이 무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278460#memoWrapper75166001|뽀오통령]]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후 나온 출연 모습에서 [[뽀로로]]를 닮았다는 평이 꽤 올라왔고, 이게 본인에게도 마음에 들어서 정한 닉네임인 듯. 그리고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실제로 뽀로로 탈인형이 줄곧 등장했다. 그래서 나무위키에 '''뽀응천'''을 쳐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그렇다고 의정활동 안 하시고 노는 것만 제일 좋아하시면 안 됩니다--
[[https://m.facebook.com/chopros/posts/pcb.1688422898123332/?photo_id=1688422108123411&mds=%2Fphotos%2Fviewer%2F%3Fphotoset_token%3Dpcb.1688422898123332%26photo%3D1688422108123411%26profileid%3D100007381444694%26source%3D48%26refid%3D28%26_ft_%3Dqid.6394930683270115473%253Amf_story_key.-4909687308524448939%253Atop_level_post_id.1688422898123332%26cached_data%3Dfalse%26ftid%3Du_9_3&mdf=1|이제 손녀까지 보셨단다(...)]] 실제로는 손녀가 아니라 아기[[고양이]]를 입양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전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반정부 성향이 강해진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이러한 조응천의 드립은 다시금 주목받았고, [[주갤]]에서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4508912|통쾌하고 호감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애초에 더민주에서 이 사람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가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다는 이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수년 전부터 접했던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공직상 기밀 누설 혐의로 형사소추 당하지 않는 선에서 청와대, 검찰의 대응 플랜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분석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서[* 특히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에 대한 반감이 글에서 드러난다. 아무래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 때문이다.]]] 현재 정국에서 관심도가 매우 높은 의원 중 하나.
* [[2016년]] [[7월 1일]] 조응천 의원은 국회 상임위원회 감사에서 [[MBC]] 출신의 대법원 양형위원이 성추행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김장겸|당사자의 실명]]'''까지 거론해 가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보도 자료까지 배포해 일부 언론에서는 "양형위원이 성추행 전력이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문제의 [[MBC]] 간부는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0876|조 의원이 지목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MBC]] 보도국 부장이라고 한다.
조응천 의원은 상임위 발언이나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사실 관계를 확실히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한편, [[MBC]]는 명예훼손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214&aid=0000638302&date=20160701&type=2&rankingSeq=1&rankingSectionId=100|MBC의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기사.]]
7월 4일, 조응천 의원은 사실 관계를 똑바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죄하였다. 그는 '당사자가 해외에 있고 연락이 안 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당사자를 만나 용서를 구할 것이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모든 비난을 달게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김종인]] 대표도 조응천 의원에게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고 강력히 경고하였고 조응천 의원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10월 26일 "조응천 의원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최순실]]이 주[[이탈리아]] [[대사]]에 [[통일교]] [[유럽]] 총책이자 [[세계일보]] 사장이었던 S씨를 밀었지만, 조응천 당시 비서관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대사 취임을 무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조응천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발설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저촉될 수 있다"며 사실여부에 대해 함구하는 중이다. ~~사실 논란거리는 아니긴 한데~~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의 보좌진들을 의원실 보좌관으로 채용했는데, 그중에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연관된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조응천 의원이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국정원]]의 [[국정원 댓글 사건|범죄]]를 수사하다 피해를 봤던 인물이라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에 수사 총책을 맡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던 발언이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다스 뵈이다]]에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과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오히려 증인 보호 차원에서 이들을 채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 강영식 . . . . 32회 일치
140km/h 중반대의 빠른 공을 던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제구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주무기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인 사실상 투피치 투수. 커브나 체인지업도 장착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인지 좌완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좌타자한테 약점'''을 보였다. 덕분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위장좌완'''이라고까지 불렸다(…).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2008 준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에는 신명철이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포스트 시즌용'이라는 첨부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시에 강영식에게는 '페넌트레이스용'이라는 첨부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함께 밝혀졌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외국인이라 한글로 쓰인 설명서를 읽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실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도 시즌 중 과다한 등판에 의한 체력소진이 주 원인이였다.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 [[김유신(1986)|김유신]], [[하준호]] 등을 비상식적으로 투입--'''세 선수 합계 이닝이 30이닝 미만이라는건 함정'''--하여 계투진을 운용[* 로이스터는 좌완 원포인트로 써야할 선수인 김이슬을 좌타, 우타 가리지 않고 상대시켜서 --'''무려 13경기에 내보내서 8이닝씩이나 소화하게 하는 엄청난 혹사를 한 끝에'''-- --'''결코 80이닝이 아니다'''-- 망가뜨렸고 신인 하준호를 위급한 상황에 아무렇게나 투입하는 운용으로 난타당하게 만들었다.]하기보다는 [[이정훈(투수)|이정훈]] -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 [[김일엽(야구)|김일엽]] - [[임경완]] 등을 돌려가며 탄력적으로 필승계투조를 꾸려갔으면 훨씬 나았겠지만 [[로이스터]]의 투수 운용은 무조건 한놈만 팬다는 식으로 특정 투수 한명만 주구장창 기용한 다음 그 선수가 혹사로 나가 떨어지면 다시 다른 선수로 옮겨가는 식이라...[*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롯데의 좌완 불펜이 거의 전무했던 문제도 있다. 사실 [[로이스터]]의 불펜 운용방식은 로테이션을 돌리는 식으로 불펜투수들에게 여유를 주는 운용방식이었다. 다만 좌완투수의 경우 심각한 부족을 겪어서 이 방식이 지켜지지 않았는데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 [[김유신(1986)|김유신]], [[하준호]]는 좌완투수의 부재로 어거지로 1군에 올려서 기용하였을 뿐 수준미달의 투수들로 잠시 1군에 기용된 이후 대부분 2군에 머물러 있는 선수들이었다. 심지어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은 구속이 130km대에서 상승하지 못해 결국 방출되기까지 하였다. 앞에서 이야기 한 [[이정훈(투수)|이정훈]],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김일엽(야구)|김일엽]], [[임경완]] 이 넷은 모두 우완투수로 당시 롯데 내에 쓸만한 좌완투수로는 사실상 강영식이 유일한 상황이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5경기 모두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팀내 유일한 좌완 불펜이다 보니 경기 출장은 잦은 편이었지만 2010시즌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초에는 필승계투조에 포함될것이라 여겼지만, 시즌 초 성적은 실망스러워 승리조가 아닌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만 뛰었다.
10월 6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 [[장성호]]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 후반기 첫 실점을 기록했다. 롯데팬들은 별 반응이 없는데 저 홈런 때문에 내년에 또 3번 장성호 보게 생겼다고 한화팬들한테 까였다(…). ~~아아 까임은 운명~~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4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6.2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후반기엔 잘 하더니...???~~
6월에 이르도록 불안불안한 투구내용을 이어갔는데, 팬들은 3억 연봉을 잘하는 다른 선수에게 나눠주라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6월 중순이 넘어가자 불안하긴 해도 꾸역꾸역 막는 쪽으로 상태가 좋아졌다.6월 SK전에서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한 [[용덕한]][* 박기혁, 강영식, 용덕한은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다. 이날 경기 전 강영식은 용덕한에게 '내 공을 받으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잘 던져 용덕한이 경기 후 공이 나무랄 데 없이 좋아져 놀랐다고 대답했다.] 과 호흡을 맞추어 2이닝동안 깔끔하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이 오기는 온 모양.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남과 동시에 부상으로(왼 어깨 건초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추가바람) 2군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동안 짐은 고스란히 [[이명우]]가 떠안아야 했다. 다행히도 8월 중순 2군 경기에 등판해서 멀쩡히 던지는 모습이 포착, 다음 텀에 올라오지 않을까 하던 팬들의 예상대로 돌아와서는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후반기로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졌다(…).
강영식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4.50,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2년 10월 19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4:1로 앞선 8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⅓이닝동안 탈삼진 2개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스코어 1:4 승리를 지켜내고 [[세이브(야구)|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강영식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5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⅓이닝 1피안타 2볼넷 6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2.70,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하였다.
강영식은 2012 포스트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5⅓이닝 4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3.38, 1승 1세이브를 기록했다.
4월 4일 9회초에 팀이 4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정대현을 뒤이어 등판하였다. 채태인에게 2루타를 맞고 최형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그 후에 난타당하면서 (물론 정훈과 손아섭의 콜 플레이 미스도 있었지만)0.1이닝 2실점하고 강판되었다. ~~이로써 자기보다 비싼 선수들 삼진잡겠다고 말한 것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6월 첫날에 복귀전을 치룬 이후 --1년에 딱 1달만 찾아온다는--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itcherDetail2.aspx?pcode=70615|미친 랜디 영식 모드]]로 돌입, 올라올때마다 시원시원하게 던지는 뚝 떨어지는 공으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삼진과 무실점을 밥먹듯이 기록했다. 특히 6월 25일 한화전에서 7회말 무사 1루에 올라와 정근우와 이용규, 김경언~~140억 듀오+덤~~을 삼진 3개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1:4로 앞선 8회 2사후에 등판하여 9회 2사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세이브를 눈앞에 두었지만 [[에릭 테임즈]]와 [[이호준]]에게 연속안타를 맞아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정대현(1978)|정대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8회 올라오자마자 병살타를 잡아내 이닝을 끝냈기에 그리 까이지는 않다. 다행히 정대현은 대타로 나선 [[조영훈]]을 투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 세이브를 올렸다.
이렇게 기어이 6월은 10이닝 '''무실점'''으로 끝내며 그야 말로 랜디영식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6윌이 지나자마자 실점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평균자책점이 4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정말 딱 한달만 언터쳐블 이었다--
- 상디 . . . . 32회 일치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 겸 전투원. ~~그리고 일당 내 변태1~~ ~~[듀발|성형외과 의사].~~ 일명 '''검은 다리 상디'''. 여자들한테~~만~~ 굉장히 매너가 좋고 여자를 굉장히 밝히는 색골이면서 실력 좋은 요리사. 상디가 오기 전까지의 밀짚모자 일당의 식생활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루피는 출항하자마자 식량과 식수를 동내고 버섯을 뜯어먹으며 살았고 조로는 루피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계획성 없는 것은 똑같기에 식량이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바다 괴수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괴수 없으면 아사~~. 우솝은 자그마한 낚시는 곧잘 하곤 했으며 나미는 그럭저럭 요리를 잘 했지만 '''유료''' 였다(…).]전투력이 상위권이기 때문에 [[몽키 D. 루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일당 3대 주력 전투원. 그의 애칭은 검은 다리로 명성이 나 있다.
요리 실력이 매우 뛰어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맛, 영양, 시각 모두 만족시키는 멋진 음식을 만들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재료도 금방 파악해 뛰어난 요리로 승화시키며, 이 와중에도 쓸데없이 재료를 낭비하거나 그냥 버리는 일이 없다. 칼질 솜씨 또한 수준급. 상디의 요리를 먹고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작중에선 한 명도 없으며, 상디 또한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상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상 수 십,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상태는 '''늑골골절에 타박상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늘 검은 수트를 입고 있고 전투에서는 오로지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이는 전투에서 요리사의 도구인 손이나 식칼을 쓰지 않으려는 신념의 발로로, 은인이자 스승인 붉은 발 [[wiki:"제프(원피스)" 제프]]에게 배운 것이다. 다만 '[[매드매드 완제|라면 면발을 갑옷으로 입은 상대]]'처럼 상대방이 식재료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드물게 식칼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완제가 입었던 라면 면발 갑옷 한정으로, 갑옷을 해체한 뒤에는 식칼을 집어넣고 완제 본인은 원래대로 발차기만으로 상대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게 보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담배를 피우다 결국 골초가 됐는데도 미각이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면 손에 담배 냄새가 흥건히 묻어서 요리에도 냄새가 베일 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의 프로필에서 쵸파가 상디에게 느껴진느 향기는 담배와 해산물 냄새라고 되어있는데, 수트에는 담배 냄새가 베어있어도 요리전 손의 위생 관리에는 철저한 모양] 또한 담배는 해상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항상 항해생활을 해야되사 시중에서 구입하기 보단 직접 제작하는듯 하다.[* 클리크와의 전투후 루피를 간호하느라 상디의 방이 나왔는데 담배를 직접 제작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샤키]처럼 담배를 피는 또 다른 캐릭터들의 담배와 비교해봐도 형태가 좀 다르다. 일반 담배와 달리 만드는 담배 특유의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묘하게 리얼하다.] 더불어 수영의 달인으로서 [[어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폐활량까지 갖추고 있으니 필시 원피스의 담배 자체가 현실의 담배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상디의 과거회상에서 담배를 처음 피우는 상디를 보고 제프가 "관둬. 담배 같을걸 피우면 혀가 돌아버린다."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거참. ~~아니면 상디의 미각과 폐활량이 패기를 쓸 줄 알거나~~]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상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상태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원작에서의 이름은 '산지'이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실제 의도한 이름은 상디가 맞다.[* 아마도 프랑스식 발음인 '상디'에 일본어로 3,2를 읽는 방식인 산,지를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나미(원피스)|나미]]나 [[니코 로빈]]과는 다르게 지식량이나 정보 수집 능력 면에선 떨어지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를 바꿔 버리는 전략안'''이 특출해 해적단 내에서 비공식적인 참모 역을 맡고 있다.[http://blog.naver.com/zt777/20175605172 일단 밀짚모자 멤버 중 조커 겸 히든카드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해당 링크의 인터뷰 내용은 루머일 가능성이 있다. 상디가 조커 포지션인건 사실이지만 결말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활약이 있을거라고 보장할수는 없다는 것.] 루피와 조로와 함께 해적단의 주 전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면서도 완력에 의존하는 [몽키 D 루피|이] [롤로노아 조로|둘]과는 달리[* 그런데 조로는 무조건 완력에 의존하는게 아니고 적어도 전투에 관한한 머리만큼은 밀짚모자 일당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더구나 루피 부재시 자신이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전략이나 작전을 지시하는 등 상디와는 다른 방향의 두뇌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루피야말로 순수하게 완력과 본능에 의존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 일행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전황 자체를 유리하게 바꿔버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등, 밀짚모자 해적단에서는 전술전략 양쪽을 모두 갖춘 유일한 멤버이다. 쉽게 말하자면 루피와 조로가 [[람보]]같은 케릭터라면 상디는 [[007]] 같은 스파이 스타일. 예를 들면 [[바로크 워크스]]의 꼬리를 잡거나, [[갓 에넬]]의 비행선을 망가뜨리거나, 정의의 문을 닫아 해류를 만들어 탈출을 쉽게 만들어 낸 장면들은 그의 임기응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한 최고의 두뇌플레이. 말하자면 지략과 완력을 모두 겸비한 밀짚모자 해적단의 '''조커'''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그의 또 하나의 염원은 [[투명투명 열매]]를 얻어 여탕을 실컷 엿보는 것 이었는데, [[압살롬(원피스)|압살롬]]이 이미 그것을 먹어버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꿈이 깨지자]] 여러 가지 의미로 분노해 압살롬을 끔살낸다. 참고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상상해왔던 덕분에 투명투명 열매와 관련된 모든 전술을 파악하고 있어서 꽤 선전했는데, 위에 서술한 밀짚모자 일당 내 '히든카드'로서 첩보원 포지션에 덧대어 생각해보면 투명해진다는 능력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열매일지도. ~~당사자는 순전히 음흉한 마음에서 원했던 것 뿐이지만(...)~~ --두번째로 먹길 원했던 열매는 [[또록또록 열매]]이다.이유는....알 것이라고 믿겠다.(드레드로자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662화의 신문기사에 '밀짚모자 일당 부활'이라는 기사와 함께 2년 후 일당의 사진이 모두 새로 실렸는데 또 제대로된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솝마저 저격왕이 아니라 맨얼굴로 실렸는데 혼자서만 뒷모습(...) 점점 더 히든카드로서의 입지가 굳어져 가는 느낌 ~~당사자는 또 "내 핸섬한 얼굴을 전 세계 미녀들에게...!!" 라며 울겠지만~~ ~~발라티에가 이 기사를 좋아합니다.~~
* [[wiki:"카리브(원피스)" 카리브]] - 보물을 얻기 위해 조로, 루피와 함께 발라버린다.[* 그 이전에 카리브가 상디를 두려워 하는 것을 보면 굳이 단체로 싸우지 않아도 상디>카리브일 가능성이 높다.패기도 확실히 사용하는만큼]
* [[빈즈]] - 극장판 12기 한정.[* 극장판 11기는 실력자 전무. 그냥 생략한다.] 덩굴덩굴능력을 스카이 워크로 피한뒤 디아블 잠브로 표창과 칼을 받아 쳐내고 역시 나미씨는 섹시한게 좋다며(...) 불타올라라 섹시 파이어!로 온몸을 불로 뒤덮은 뒤 사랑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로 마무리. 그리고 끝난뒤에 "우리 나미씨, 반할만 하지?"라고 한다. ~~나미는 몰라도 여성팬들은 확실히 반한 것 같다.~~
* [[아론(원피스)|아론]] - 미호크에게 당한 상처로 인해 고전하던 조로와 함께 덤비지만 아론의 아부사메 한 방에 무릎을 꿇고 패배. 사실 이 전투 때에도 이미 그 전에 벌어진 쿠로오비와의 수중전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인 상태였다.
* ~~[[칼리파(원피스)|칼리파]]~~ -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계속 얻어터지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 후 나미와 교체. 실력으로 패한 게 절대 아니다. 전투력은 압도적으로 상디가 우위라, '''떄리지 못한다'''는 핸디캡을 안고도 몇 번이나 칼리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단지 실력으로 제압은 했으면서도 마지막 일격은 매번 날리지 못한 탓에 오히려 반격을 연달아 얻어맞고 결국 악마의 열매 능력에까지 당해버려 리타이어한 것 뿐.
* 현상금이 걸리고부터 굉장히 안습한 행보를 걷고 있는데, 그 첫째가 발라티에 종업원들이 포스터를 보고 대폭소하고는 손님들한테 어마어마하게 뿌리고 있다는 것이요, 그 둘째가 우연히 포스터 사진과 같은 얼굴을 한 [듀발]한테 처음 보는데도 엄청나게 미움 받은 것이요, 그 셋째가 여자를 좋아하는데 2년 간 오카마만 넘쳐나는 뉴하프만 왕국에 쳐박혔던 것이다. ~~사실 이게 제일 불쌍해~~ ~~[[몽키 D 루피|선장]]은 [[보아 행콕|해적 여제]]와 그 여전사들이랑 알콩달콩 잘 지냈는데...~~
* 상디가 직접 저술한 요리책이라는 컨셉으로 현실에서 요리책이 발매되었다고 한다. 제목은 '''바다의 일류 요리인 상디의 만복 요리책'''
* 작가가 SBS에서 밝히길, 상디는 익힌 패기중 견문색 패기가 가장 강하다고 한다.[* 루피는 패왕색, 조로는 무장색이 각각 특기라고 한다.] ~~그래서 여자의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나보다.~~ 사실 작중 전체적인 전황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 상디에겐 확실히 어울린다. ~~실은 오카마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함일수도~~ ~~여자 옷 갈아입는 소리도 들릴려나...???~~
- 울릉군 . . . . 32회 일치
사실상 [[울릉도]]가 울릉군의 본토라 볼 수 있다. 면적은 72.87㎢. 육지에서 130km 떨어져 있다. 중심지는 울릉읍이며 관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오징어, 호박엿, 울릉약소(울릉한우고기) 등이 유명하다. 독도도 울릉읍에 속해 있다.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러일전쟁]] 때는 울릉도 역사 상 드물게 주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함대는 울릉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여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물론 대한제국 정부의 승인 따윈 없고, 일본이 자의적으로 울릉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인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은 군자금으로 실린 막대한 금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765525|관련기사]]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지역이 되면서 남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남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남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백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역사적으로 줄곧 그래왔듯이 한국 본토에서 어떤 급변상황이 터지더라도 일단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다만 러시아나 일본과 시비가 붙는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위치이다. 실제로 과거 일본이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도 자국땅으로 삼으려 하기도 했고...자세한 것은 [[울릉군/역사]]를 참조.
[[대한민국|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서 [[제주특별자치도]]처럼 광역자치단체는 되지 못했다. 전 군수인 최수일 군수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 울릉도 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특별자치군"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기는 했다. 물론 실현되지 못했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울릉군 육지 치안은 울릉경찰서가 관장하고 있으며 소방서는 없지만 포항 남구를 관할하는 포항남부소방서[* 포항시청에서 관할하는 게 아니고 경상북도청의 경북소방본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는 형태이다.] 휘하의 울릉119안전센터가 사실상 울릉도 소방을 책임지고 있다. 보건소의 경우 울릉보건의료원이 관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강점기]] 때 도동이 일본인 마을로 통했다면 저동은 조선인 마을로 통했다는 점. 실제로 도동에는 아직도 일본식 건축물이 약간 남아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울릉도를 방문했을때[* 이후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다.], 묵고 갔다던 당시 울릉군수 관사도 일본식 건물이다.
그 외 [[대한민국 공군]]의 319 관제대대와 [[777사령부|보안상 소속을 밝힐 수 없는 부대]] 등이 있다. 실제로 북면 북동쪽에 SEC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자유한국당]]의 텃밭[* 사실 강원도도 군인 인구가 많고, 높은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그들과 접하기 쉬운 환경특성상 ~~안보팔이가 잘 먹혀서~~ 준텃밭에 해당한다. 다만, 도지사나 교육감 등 도 단위 선거에서는 영서와 영동간 갈등, 강릉,춘천,원주의 자존심싸움 등으로 변수가 만들어진다.]인 [[경북]] 및 다수의 영남지역의 특성상 이 곳에서도 예외없이 자유한국당의 텃밭에 포함되어 있다. 경북 본토도 그렇지만 이 지역도 경북 지역에 속하는 영향 때문에 국회의원 출신정당이 대부분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선거구가 [[포항]] 남구와 묶여서 포항 남, 울릉 선거구에 속하기 때문에 포항 남구 지역과 함께 자유한국당의 밭으로 불리고 있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유세도 못 한다~~
사실 후보 유세를 한 사례는 있긴 있다. 2013년 9월 쯤 새누리당 소속 박명재 당시 후보도 배를 타고 울릉도에 장정 3시간 30분에 걸쳐 도착해 선거유세를 했다고 한다. 그 후보 등이 배 안에서 피곤한 나머지 잠을 잔 적도 있다고 한다(...) 결국 그 선거유세가 먹혔는지 울릉군에서 89%의 득표율을 보였고 결국 당선되었다.
한편, [[독도]]에는 선거 당일에는 별도의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고, 주민인 [[김성도]]씨 부부와 독도경비대원들을 위한 [[거소투표]]용 임시 투표소가 매 선거마다 개설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선거에 참여하는 인원은 40명 안팎. 김성도씨 부부 말고는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타 시군구민일 가능성이 높은) 독도경비대원들이라, 울릉군에서 집계되는 위의 개표 결과와는 사실 별 상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6&aid=0001233450|기사(19대 대선)]]
||<|2> [[이상득]]/초선[br][[민주정의당]] ||<|2> 이상득/재선[br][[민주자유당]] ||<|2> 이상득/3선 [br] 신한국당 ||<|2> 이상득/4선 [br] 한나라당 ||<|2> 이상득/5선 [br] 한나라당 ||<|2> 이상득/6선 [br] 한나라당 || --[[김형태(정치인)|김형태]]/초선--[* 13.7.25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새누리당-- ||<|2> [[박명재]]/재선 [br] 새누리당 ||
섬 중에서 기독교 교세가 강한 점은 역시 섬이면서 [[천주교]]가 강세인 [[백령도]]와 비슷하다. 이 백령도는 실제로 지역 유지에 해병대 6여단 소속 해군 [[군종 신부]]가 들어갈 정도이다. 단, 울릉도의 천주교 교세는 개신교와 불교에 많이 밀린다. 본당도 도동에 있는 도동성당과 북쪽 북면소재지에 있는 천부성당 2개밖에 없다. 신자는 1천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 독도-울릉도 도동항에서 독도로 가는 배가 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가는 썬플라워호는 배수량이 2,000톤이 넘지만 독도행 배는 600톤에 불과하다. 배멀미에 약하다면 왕복하는 내내 파도 2m에 고문을 당한다! 이렇게 멀미를 하면서 왕복 6시간 걸려서 가게 되지만. 독도 부두 안에서만 15분 내지 30분 구경하는 게 다이기 때문에 내심 실망하는 사람도 꽤 있을 듯. 기상 상황이 대부분 접안 불가일 정도로 파도가 거세다. 현지 사람들은 '3대가 덕을 쌓은 사람들이 많이 놀러 와야 접안 가능하다'고까지 한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대략 1/6 정도 된다고 한다. 1년중 겨우 61일. --심지어 기상 악화로 배 자체가 뜨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 울릉SEC연구소-안용복기념관 근처에 있으며 말이 연구소지 실제로는 777사령부의 지부이다.
당연히 [[대학교]]는 없다. 따라서 여기서 대학으로 진학하려면 무조건 고향을 떠나 본토로 나와야 한다. [[방송통신대]][* 방송대의 경우 출석수업이야 포항이나 대구까지 가야 되니 당연히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출석대체시험과 기말시험을 울릉고에서도 실시하므로 출석수업 전과목을 대체로 신청하면 외지로 안나가도 다닐 수는 있다.]나 [[사이버대학교]]로 진학하는게 아니라면. 우스갯소리로 울릉대 오징어심리학과가 있다는 말은 있지만... --울릉공대--
그래서인지 이곳 출신 인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면 지역신문은 물론이고 중앙일간지에서도 실어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CE부문 [[대표이사]])[* 원래는 고2때까지 울릉수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더 큰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대구에 있는 [[대륜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해 총 5년이나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남한권 [[예비역]] [[준장]]([[대한민국 육군]] 인사행정처장),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천주교]]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장 겸 [[덕원자치수도원]]장 서리) 등이 있다.
- 전인범 . . . . 31회 일치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5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와 [[:en:United States Army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 미 통합특전사령관 [[:en:Joseph Votel|조셉 보텔]] [[:en:General (United States)|대장]]과 미 육군 특전사령관 찰스 클리브렌드 [[:en:Lieutenant general (United States)|중장]]을 만나 한·미 연합 특수작전에 대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저격용 소총과 미군 주력 소총인 [[:en:M4 carbine|M4]], 권총, 산탄총, 박격포, 방탄복 등을 점검하고 체험하는 등 미군 특전사의 장비와 무기를 현장 견학하고 실제 사격도 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3010008491 미군 주력 소총 M4 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3일</ref> 이와 함께 방미 기간 동안 [[시애틀]]에 있는 6·25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ZIB7y0ZvFJs 한미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시애틀 방문 6·25 참전용사비 헌화식], 《KOAM-TV》, 2015년 4월 10일</ref>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영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상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상,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상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상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상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2018년 6월 예비역 신분인 그의 주도로 국회의원회관에서 특수작전 전술 및 장비 현대화를 위한 세미나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간 국가 안보전략과 국방 관련 정책 토론회는 많았으나, 일선 전투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술 및 장비 관련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개최된 적은 없었기에 눈길을 끌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4045225 창끝 전투원들을 위한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 큰 호응], 《파이낸셜뉴스》, 2018년 6월 24일</ref> 세미나에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효율적인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육군의 특전사를 비롯해 수색·특공부대, 해군 및 해병대, 공군의 지상작전 부대의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해외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면서 “실전에 맞지 않는 전술 및 장비소요(구매 요청 및 구매)는 과감하게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중장은 세미나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형식과 틀을 깬 어법과 행동으로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해당 세미나는 특수·지상작전연구회, 군사전문지 플래툰 등 민간이 주도한 최초의 개방형 군사 세미나로, 세미나 준비를 해온 특수·지상작전연구회 소속 정진만 아세아항공전문학교 교수는 “당초 100명 미만의 규모로 세미나를 준비했는데 150여 명 이상이 참석했고 상당수 인원이 참석을 원했는데 장소가 비좁아서 받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같은 달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에 임명, 9월에는 그를 단장으로 하는 자유총연맹 대표단이 [[:en:West Potomac Park|웨스트 포토맥 공원]] 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들어 설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 추모벽 건립에 1만 달러를 기증했다.<ref>[http://dckoreannews.com/featured/%ED%95%9C%EA%B5%AD%EC%9E%90%EC%9C%A0%EC%B4%9D%EC%97%B0%EB%A7%B9-%EB%AF%B8%EA%B5%AD-%EC%9B%8C%EC%8B%B1%ED%84%B4%EC%97%90%EC%84%9C-%EB%8F%99%ED%8F%AC%EA%B0%84%EB%8B%B4%ED%9A%8C-%EA%B0%9C%EC%B5%9C/ [한국자유총연맹] 미국 워싱턴에서 동포간담회 개최], 《워싱턴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2일</ref><ref>[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2597 한국자유총연맹,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지원금 1만 달러 기탁], 《월드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3일</ref> 그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추모의 벽이 설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차원에서 1만 달러를 즉석에서 마련, 기탁하게 됐다”면서 “한국자유총연맹은 특정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 중립을 지키면서 국가에 이익이 되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국리민복을 기본 가치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ref>[http://www.koreatimes.com/article/1202198 한국전 참전 ‘추모의 벽 건립’ 1만달러 기증], 《미주한국일보》, 2018년 9월 11일</ref>
* 1992. 육본 참모총장실 정책장교
* 1993. 육본 참모총장실 군사외교협력장교
* 2005.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대미(對美)정책과장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ref>[http://news.donga.com/People/3/06/20110512/37149041/1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ref>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0/2013042000200.html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ref> 주한미군사령관 [[:en:Curtis Scaparrotti|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116010009522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ref> 미 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208010005247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ref>
2009년 11월 27사단장 취임식 때 부인 심화진이 총장으로 재임 중인 성신여자대학교의 직원들이 동원됐음이 논란이 되었다. 대법원은 그가 문재인 지지 선언 5일 뒤인 2017년 2월 9일 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성신여대 조모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조 교수의 의혹 제기가 일부 사실이라고 본 항소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선 2016년 11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은 고소인(전인범)의 사단장 취임식에 성신여대 ‘학생’이 동원된 사실이 없는 점 및 위 보도에는 ‘강제’로 직원과 학생을 동원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피고인(조 교수)은 어떻게 직원과 학생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인지 전혀 밝히고 있지 못한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이 부분 제보 내용 및 보도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였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727066 전인범 예비역 중장 명예훼손한 성신여대 교수 벌금형], 《머니투데이》, 2016년 8월 16일</ref>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 피고인의 제보 내용 및 언론 보도 내용은 그 중요한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검사 제출 증거들만으로는 위 내용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2025125 [단독] 전인범 '갑질' 논란, 본인 취임 행사에 부인 학교 직원 동원], 《프레시안》, 2017년 2월 9일</ref> 한편 아내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일 때 그는 자신의 SNS에 심 총장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우리 집사람이 비리가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라고 자문한 뒤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라고 자답해 일부 누리꾼들에게 비판 받았다. 후일 심 총장에게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자 “무죄를 확신해서 경솔한 표현을 했다”며 해명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17871 전인범 "아내 무죄 확신해 경솔한 표현… 文 계속 돕는다"], 《연합뉴스》, 2017년 2월 8일</ref>
2014년 9월 특전사 13공수여단에서 포로체험 훈련 도중 부사관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훈련의 도입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던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었다. 2017년 2월 [[국민의당]] [[김영환 (1955년)|김영환]] 최고위원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그에 대해 “이분은 취임 후인 2014년 9월 공수여단에 포로처럼 고문훈련을 시켜 두 명의 군인을 사망시킨 전력이 있다”며 “문재인 전 대표는 왜 ‘특전사 코스프레’를 포기하지 않고 집착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52597 김영환 "文캠프 전인범, 고문훈련으로 군인 두 명 죽었는데…"], 《뉴시스》, 2017년 2월 6일</ref>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가 전역 직후인 2016년 9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포로체험 훈련 중 사망한) 조용준·이유성 하사. 나는 당시 부대 지휘관으로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죽을 때까지 새기고 가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며 지휘관으로서 도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ref name="a"/> 문재인 지지 선언 직후인 2017년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당시 사고의 핵심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감독 부실이다. 그리고 당시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보도됐는데, 군 생활 당시 매뉴얼이란 표현을 쓰던가. 에프엠([[FM]], filed manual, 야전교범)이란 표현을 쓴다. 사고 직후 장교가 기자에게 ‘매뉴얼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고 ‘못 봤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만약 ‘에프엠이 있었나’라고 물어봤으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가 책 만들 때 초고가 있잖나. 그때 (엄지와 검지를 4cm 정도 떨어뜨린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두꺼운 초고가 있었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런 사고가 나선 절대로 안 되지만, 어처구니 없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책임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이해해줬으면 한다. 2017년 1월에 제가 특전동지회 총재로 취임했는데, 취임식 때 희생된 두 부하의 아버지가 축하해주러 오셨더라. 그러면서 ‘사령관님이 무슨 죄가 있겠나. (일반순직이 아닌 특수직무순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잘 처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더라. 제 마음이 어땠겠나”라고 덧붙였다.<ref name="b"/> 이에 대하여 특전사 관계자는 “그들은 아들들이 비록 희생됐지만 포로체험 훈련의 취지에는 공감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전인범 전 중장의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식에 참석이 가능했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763911 [단독] “포로체험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특전사 비밀리에 계속 실시], 《경향신문》, 2017년 2월 12일</ref>
{{인용문|한편 드라마에서처럼 부하를 아끼는 사령관도 실재한다. 전인범 사령관(2013~2015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이 그런 사례다. 보급품 확충, 수당 인상, 사제품 허용, 간결한 훈시 등 여러 면에서 부하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 박주영 . . . . 30회 일치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 이후, 떨어진 폼을 전성기 시절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고 끝내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모두 승선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대표팀 은퇴나 다름 없다.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은 몸싸움. FC서울 시절 당시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골 결정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데뷔 당시의 전반기 시즌뿐으로,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면서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들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왔고 실제로 박주영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상대팀이 거친 몸싸움으로 대응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시즌 말고는 스탯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활약상을 쭉 돌이켜보면 들쭉날쭉 극심한 널뛰기를 뛴 것 같지만, 사실 뜯어보면 의외로 일관성이 있다. 실력에 비해 활약상이 저조했을 때는 예외없이 '''팀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지 못할 때'''였다. 일종의 멘탈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본인 위주로 팀이 돌아가야만 플레이가 온전히 살아난다. 이것을 한때 설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모나코를 제외한 아스널 셀타비고랑 비교해 2016년 4월 현재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FC서울과 박주영을 보았을때 확실해 보인다. ~~왓포드랑 알샤밥은 판단이 힘들다~~
확실히 왕자병 기질만을 멘탈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한데, 박주영의 문제는 이 왕자병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투지나 집중력 부족도 동시에 지적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팀 페이스가 어떻게 흘러가건 항상 내 페이스는 유지하지만, 또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또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렇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는 없는 대단히 드문 케이스.
어쨌든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비교적 현대적이고, 또 축구적으로 멘탈, 피지컬, 스킬을 통틀어 대단히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동국]]과 달리 [[FIFA 월드컵]]이나 [[올림픽/축구|올림픽 축구]]처럼 큰 경기에서 결정적 한 방을 잘 터뜨려 주었기에''' 박주영이 비난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쉴드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논거도 충분히 합리적이긴 하다. 더군다나 박주영은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3대[* [[AFC 아시안컵]]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그렇게 높은 비중을 두는 대회가 아니다.] 메이저 축구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어본 단 3명[* 나머지 2명은 [[구자철]]과 [[손흥민]]으로 이 2명의 경우는 아시안컵 골도 있다.]뿐인 대한민국 축구선수.
아니, 그런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준다는 것 자체가 축구선수의 중요한 실력이니만큼 박주영은 실력없는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한 위치는 절대로 아니다. 이동국이 성실한 국가대표(내신에 강하고 수능에 약한 학생)였다면 박주영은 좀 많이 뺀질거리지만(?) 현대축구에 요구하는 장점을 확실하게 갖췄고 필요할 때 뻥뻥 잘 터뜨려줘서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던(내신은 바닥인데 수능은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학생) 캐릭터다. 박주영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양쪽에서 모두 멘탈이 매우 강한 편이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태도문제나 일관성 없는 행보 등으로 인한 논란이 좀 많은 것이 문제.
* 도주영 : 이 별명은 도주영 30년 축구 인생의 모토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행위의 결과는 이미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일부 철학 학파의 시선으로 볼 때 도주영 별명 석 자는 포항에서 서울로 달아날 때부터 예고되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릴로 이적하려다 벵거의 전화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하며 도주영 3글자는 거의 수면 가까이까지 부상하였으나, 축구선수의 전격적 이적은 왕왕 있어온 일이라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은 시종 무시하면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은 덜컥 받아들여 병역에서마저 성공적으로 도주하는 기이한 솜씨가 아니고서야 도주영 세 글자 별명은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박주영은 표홀히 아스날, 왓포드, 알 샤밥 등지를 방랑하며 주급만은 쏙쏙 챙겨먹는 솜씨로 도주영 세 글자 이름을 드높였다.
* 박힐러, 프리스트 박 :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
* 박XX : 일부 입이 거친 사람들이 지나친 비속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잠시잠깐 불렀다. 당연히 평소에는 한국 축구에 관심 없고 앞으로도 없을 월드컵 냄비들이다. 왜냐면 2014년 발효된 별명인데 그 전까지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월드컵에서 똥 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병역기피 등등의 행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실 어찌 보면 일반명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특정인물을 호칭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박씨가 너무 많다.
* 밥줘,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것이다.]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그냥 쓰는 팬도 많으며 사실상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로 정착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절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혐오도 9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독자연구|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반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반영해 70대 초반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
* [[고려대]] 졸업 당시 서울 동북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동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박주영이 나와서 학생들 공을 뺏고 드리볼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마는데... 당황한 박주영은 다시 공을 빼앗아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837061|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박주영키우기 게임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관계자의 요청에 의해 현재는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태. 군복무 중 다른 게임으로 고소크리 맞고 그때까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덕분에 영창도 다녀왔다. 참고로 [[지만원|고소한 사람]]은 [[엔하위키]] 시절에 작성금지 되었다가 이 [[나무위키]]에서는 해금이 되었다.
* 2012년 즈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까들의 활동이 부쩍 늘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다음]] 해축게에서 공개적으로 타 사이트 [[공대]]를 모집하고 있을 정도.[[http://bbs.sports.media.daum.net/gaia/do/sports/read?articleId=329103&&bbsId=F004&searchKey=subjectNcontent&sortKey=depth&searchValue=%EA%B0%9C%EC%86%8C%EB%AC%B8%EB%8B%B7%EC%BB%B4&pageIndex=1|참고]]. 이런 무개념 박까들의 난입으로 [[개소문닷컴]]의 청정지대(?)[* 사실 여기도 파고들어 보면 문제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로간에 심한 욕은 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청정지대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소문닷컴에는 이것도 안 되는 지대가 많다] 중 한 곳이었던 축구 게시판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김진규(축구인)|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신민아 . . . . 30회 일치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식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절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아래 항목에서 볼 수 있는 절친들인 [[공효진]]과 [[임수정]]은 패셔니스타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력 또한 선보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연기력 및 연기의 폭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듯 보인다. 더구나 두 절친 못지않게 드라마나 영화 출연도 많았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건 확실히 아쉬운 부분. 물론 신민아 뿐 아니라 영화 쪽에서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는 [[김태희]]나, [[엽기적인 그녀]] 이후 [[도둑들]]이 성공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연기에서 좋지 못한 평을 들었던 [[전지현]]도 CF만 찍는다고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었다.
처음에는 [[발연기|연기를 못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조정석과 합을 맞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하자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멜로 연기에 능숙한 편. MBC 수목 드라마 [[아랑 사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오마이 비너스], [내일 그대와]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은 선보여 주었다. 근데 폭망했다. 부족한 작품성 때문인 듯...--못 해도 망 잘해도 망-- 국내에서는 비록 망했을지라도 해외에서는 [오마이비너스],[내여자친구는구미호]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특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중국에서도 1등을 차지했을 정도...
* 2014년 10월에 개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비수기임에도 비슷한 시기에 대형 경쟁작이 적어서 그런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흥행을 하고 있기에 '''드디어''' 잠수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사실상 신민아의 영화계 데뷔 이후 첫 흥행작이라고 할 수 있다. 최종 214만 명 달성.
* 2015년 10월 15일 약 7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온 사실이 기사로 나왔다. 새터민들을 돕는 단체 및 사랑의 열매를 통한 매달 200만원, 연말에는 5천만원에서 1억정도의 액수를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싱글맘들을 위해 분유를 기부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 그동안 기부한 액수가 약 10억 원 정도라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78574|관련 기사]] 특히 새터민들을 돕는 행사는 몇 년전 공개 행사를 할때 참석하였는데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불교 단체를 통해 기부한 적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신민아는 개신교 신자. 이따금 절에서 목격담이 있기도 하고,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가 봉은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타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 --드라마 고사장에서 절을 하지는 않는 정도--
||2014||[[경주(영화)|경주]]||주연||공윤희 役||장률||6만 명||실패||
||2009||[[10억]]||주연||조유진 役||조민호||43만 명||실패||
||2009||키친||주연||안모래 役||홍지영||14만 명||실패||
||2008||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주연||명은 役||부지영||2만 명||실패||
||2008||[[고고70]][* 이 작품으로 춘사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주연||미미 役||최호||59만 명||실패||
||2008||무림여대생||주연||소휘/옥순 役||[[곽재용]]||3만 명||실패||
||2005||야수와 미녀||주연||장해주 役||이계벽||134만 명||실패||
||2005||새드 무비||주연||안수은 役||권종관||90만 명||실패||
||2005||[[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주연||희수 役||[[김지운]] ||127만 명||실패||
||2003||마들렌||주연||이희진 役||박광춘||36만 명||실패||
||2001||[[화산고]]||주연||유채이 役||김태균||170만 명[* 공식기록 58만 명은 서울관객수이다. ] ||실패[* 사실 실패라고 보기 묘한게 국내에서 10억 정도 적자가 발생한건 맞지만, 수출로 메꾸고 오히려 더 남아서 2005년 속편 기획에 돌입했다가 회사 합병 등의 사정으로 엎어졌다. ] ||
--이 쯤 되면 좀 무섭다-- --실패가 많다--그래도 단편영화, 독립영화에 계속 출연하는 것을 보면 CF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꾸준히 영화 필모를 쌓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려 이후의 첫 작품 [[이 죽일놈의 사랑]]. [[공효진]]과 상두야 학교가자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키고, [[송혜교]]와 [[풀하우스(드라마)|풀하우스]]등을 통해 최고의 반열에 오를 뻔하였던 [[비(연예인)|비]]와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명필을 휘날린 [[이경희]] 작가와 함께한 [[이 죽일놈의 사랑]]은 사상 최대의 폭망은 아니지만 시작도 하기 전 엄청났던 기대치를 단숨에 잠재우며 조용히 와서 조용히 떠나갔다. 사실 [[소지섭]]과 [[임수정]]을 톱스타 반열에 올려 놓은 미사의 위용을 이을 거라 생각했던 시작 전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망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마왕(드라마)|마왕]]의 경우도 [[엄태웅]]을 엄포스로 만들었던 부활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작품. [[부활(드라마)|부활]]이 나름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드라마 막판에는 어느 정도 시청률이 올라기에 이 작품 또한 이죽사처럼 엄청난 기대를 가졌던 작품이다. 부활의 엄태웅마저 다시 합치고 또 궁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주지훈]]까지 합류한 이 작품. 역시 망했다. 완전 폭망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드라마 크게 뜨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신민아의 연기력이다. 사실 연기력이 남다른 남주 두 명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연기력은 드라마의 몰입도 자체를 떨어뜨렸고 이상하게도 부활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성이 더해져 역시 조용히 종영했다.
때려를 제외한 이후의 두 개의 드라마가 기대치에 비해 신민아를 제외한 작품 내적인 결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방송사 및 언론의 푸쉬를 제대로 받았고 아주 망작들은 아니었기에 어찌보면 둘 중 하나는 뜰 법도 한데 망했다. 강한 푸쉬를 받은 두 작품을 둘다 말아먹기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임에 신민아가 아주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 허화평 . . . . 30회 일치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자 최측근 중 하나였고, 5공 초기 허삼수, 허문도 등과 함께 쓰리허 라는 실세로 잘 나갔으나 도중에 전두환의 눈밖에 나 좌천되었다. 박정희 인사로 빗대어 보면 쿠데타의 공신으로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다가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김형욱]]과 비슷한 사례.
육군사관학교 동기 [[김진영(군인)|김진영]], [[허삼수]]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허삼수와는 단짝이었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대령]])이었다. 말하자면 개국 공신 중의 공신인 셈이다. 1980년 9월 [[준장]] 진급 및 동시 예편하였다.
1980년 9월 [[전두환]]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직함은 없었다. 말하자면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비서실보좌관이라는 없던 직제를 일부러 만들어서 허화평을 임명한 셈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청와대 핵심 기획자 역할을 했고 차관급 관료임에도 유일하게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근무했다. 명칭만 비서실 보좌관이었지 실질적으로 부총리급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안사 시절부터 비서실장이었으니~~ [[허삼수]], [[허문도]] 등과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활동했다.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실은 구 [[청와대]] 본관에 속해 있어서 전두환 대통령과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방증하였다. 그러나 허화평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에 1981년 12월 대통령비서실 산하 정무제1[[수석비서관]]으로 좌천되었다.[* 이후로 청와대 비서실장은 1982년 1월부터 [[이범석(1925)|이범석]]이 새로 도맡기도 하였다.]
좌천된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상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김영삼]] 지지를 선언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95년 김영삼의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법처리 조치로 기소되었다. 이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유죄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사면되었다.
하지만 암호지령이 급증한 게 사실이라 해도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당연히 북한 간첩을 통해 남한 상황을 체크해 볼 것이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북한 개입이 사실이라면 왜 본인이 재판받을 때는 말하지 않다 2012년에서야 말한 것인가라는 점에서 그 회고의 신빙성은 없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요동치는 판에 허화평은 TV조선의 단독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허화평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의 정신적 포로라고 증언하면서, 이 같은 사건으로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0&cid=1051768&iid=1139394&oid=448&aid=0000186191|#]]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상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2005년 방영된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드라마]]에서는 [[이진우]]가 허화평을 연기했는데, '''허화평 본인이 실제 자신보다 더 멋지게 나왔다면서 극찬했다고 한다.''' 단 이것과는 별개로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작중에서 허화평이 [[금융실명제]]에 반대하자, [[이학봉]]이 [[김재익]]에게 "우습네요. 그렇게 개혁 개혁 노래 부르더니."라며 뒷담화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5공시절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적은 데 반해 허화평은 방송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쾌도난마(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윤선]]이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자 "정무수석쯤 되면 대통령이 안 만나 주더라도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 된다."고 일갈했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앞장서서 이 정국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기만 하면 안 된다."며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문고리 3인방|권력의 문고리만 잡으면]] 출세할 수 있는 나라라며 ~~문고리 잡아본 사람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5공 정치인답지 않게 나름의 정치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구속기소되었을 때 이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법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허화평만은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96년 총선에서 무려 '''옥중 당선'''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물론 당선 여부와는 별개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에도 보수성향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종편채널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데 말빨이 기가 막혀서 진보성향 PD들이 애를 먹는다는 후문도 존재한다.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북) || '''무소속''' || '''48,251 (44.2%)''' || '''당선 (1위)''' || '''옥중출마 당선'''[br]1997년 의원직 상실[br](12.12 군사반란 재판) ||
- 김보름 . . . . 28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학교]], [[성화중학교]], [[정화여자고등학교]]를 거치며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0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여 장거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이후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강원도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11년 시즌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주목받았다. 2011-12 시즌에도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종합 3위에 올랐고, 팀추월에서는 우승하였다.
2003년 8월 2일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7회 대구시장기빙상대회 여초등 5-6학년부 1000m에서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의 김보름은 1위로 결승라인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030804.00000009.000180|제목=계성초등 종합 우승, 대구시장기 빙상대회|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2007년 1월 4일 춘천의암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22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중학부 1500m 준결승 2조에서 김보름(성화중 2학년)은 2분27초20으로 5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01&detailClassCd=04&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000m 준결승 2조에서는 김보름이 5분38초25로 6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01&detailClassCd=05&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07년 2월 22일 고양어울림누리에서 열린 제8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 준결승 3조에서 김보름은 3분05초02로 5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4&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 준결승 1조에서는 김보름이 경기중 포기를 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5&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4일 열린 2000m계주에서는 김보름, 신아름, 김보라, 박연정으로 구성된 대구선발이 3분04초88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7&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2000M%EA%B3%84%EC%A3%BC&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T&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0년 2월 2일 탄천종합운동장빙상장에서 열린 제9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 준결승에서 김보름(정화여고 2학년)은 실격을 당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1001&detailClassCd=04&rhCd=5&page=16&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6분00초10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1001&detailClassCd=05&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실내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서 펼쳐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10초54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3000m 결승전에서 3조로 출발해서 앞서 출발한 1,2조 선수들에 비해 기록차를 크게 벌리며 1위에 섰지만 곧바로 4조 일본의 호조미 마사코에 2.72초 뒤졌다. 3위에 오른 중국의 왕페이는 4분19초77을 기록했다. 함께 경기에 나선 박도영(17, 덕정고)은 컨디션 난조로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1013118485662311&code=column91&vgb=column|제목=[동계AG]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女3000m '깜짝'銀 - 머니투데이 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2월 5일 열린 5000m에서는 한국의 박도영(18, 덕정고)이 3번째 조로 일본의 호즈미 마사코와 함께 레이스를 펼쳐 6초40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으나, 전체 2위(7분15초63)를 차지했다. 김보름은 7분22초92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ref>{{웹 인용|url=http://m.cnbnews.com/m/m_article.html?no=128516|제목=[동계아시안게임] 박도영,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은메달|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아시아종목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실격을 받았다.<ref name=":13">{{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SKATER-STORY-%EA%B9%80%EB%B3%B4%EB%A6%84-%ED%8E%B8-%EC%87%BC%ED%8A%B8%ED%8A%B8%EB%9E%99-%EC%A1%B0%EC%97%B0%EC%97%90%EC%84%9C-%EC%8A%A4%ED%94%BC%EB%93%9C-%EC%A3%BC%EC%97%B0%EC%9C%BC%EB%A1%9C%E2%91%A1|제목=[SKATER STORY] 김보름 편 쇼트트랙 조연에서 스피드 주연으로②|날짜=2012-12-21|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2012년 11월 16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0초81로 1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41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 부문에서는 김보름이 4위를 차지했다.<ref name=":8" /> 18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3분03초13으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2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김보름은 8분40초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박도영(20-한국체대)은 8분41초26으로 5위, 노선영은 8분41초82로 10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05로 전체 선수 20명 중 5위를 기록하며 한국 여자 장거리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0초74로 5위, 박도영이 2분02초34로 15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도 김보름은 4분06초13의 기록으로 7위에 오르는 등 장거리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박도영은 4분12초3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30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4분13초51로 16위를 차지했다.<ref name=":9">{{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EC%9B%94%EB%93%9C%EC%BB%B5-%EB%A7%A4%EC%8A%A4%EC%8A%A4%ED%83%80%ED%8A%B8-1%EC%9C%84|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매스스타트 1위|날짜=2012-11-26|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2012년 12월 1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11초19의 기록으로 전체 12명의 선수 중 5위를 기록,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5000m 디비전B에서는 박도영이 7분30초18로 16위, 노선영(23, 한국체대)이 7분35초47로 19위, 임정수가 7분39초23으로 2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38의 기록으로 17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2초47로 9위, 박도영이 2분03초10으로 11위를 차지했다.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은 3분00초5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14">{{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C%9B%94%EB%93%9C%EC%BB%B5-10000m%EC%84%9C-%E9%8A%85|제목=이승훈, 월드컵 10,000m서 銅|날짜=2012-12-0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2월 9일 독일 인첼에서 열린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13초80만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대회에서 김보름은 월드컵 포인트 100점을 추가, 총점 260점으로 네덜란드의 마리스카 휘스먼(240점)을 제치고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로 올라섰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박도영(8분16초82)과 노선영(8분17초64)은 각각 10위, 15위에 그쳤다. 1500m 디비전A에도 김보름은 출전했으나 1분58초43의 기록으로 10위에 머물렀다.<ref name=":10">{{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2306875|제목=김보름, 빙속월드컵 매스스타트서 두 번째 金... 이승훈 부진|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3초04로 13위에 머물렀다. 2013년 3월 1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41초22로 1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80으로 18위를 차지했다. 2013년 3월 9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51로 8위를 차지하며 185점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10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58로 16위를 차지하며 133점 1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3위로 골인했지만 앞서 치른 2차와 7차 월드컵에서 1위를 한 바 있어 총점 365점으로, 330점에 그친 마리스카 후이스만(네덜란드)을 제치고 종합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ref name=":12">{{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김보름은 월드컵을 거르며 소치 동계올림픽을 대비했으나 스피드와 체력 등에서의 네덜란드-캐나다등 서양 선수에 대한 역부족,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인한 페이스 조절 실패, 그리고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주종목인 5000m를 포기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좌절을 겪었다.<ref name=":15" />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4분14초43으로 3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전예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15초39로 9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3분39로 6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5초05 6위로 마쳤으나<ref name=":26">{{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88/112286|제목=[스피드 스케이팅] 김보름, 전예진 여자 매스 스타트|성=daum.net|이름=|날짜=11/16/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ref name=":24" /> 2014년 11월 21일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7분26초63을 기록, 9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0|제목=[포토Q]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김보름 '아쉬운 9위' - 스포츠Q(큐)|날짜=2014-11-21|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2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 04초0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전예진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김보름은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5984206|제목=[영상] '전예진, 김보름 출전'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여자 매스스타트|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3초78로 10위에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6/2014120600407.html|제목='질주 재가동' 이상화, 빙속WC 3차대회 500m 1차레이스 金|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6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전예진이 3분08초49로 7위를 차지했다. 7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24로 20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3초56 4위로 마쳤으나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 2014년 12월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실내빙상장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4분13초61로 13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m.nocutnews.co.kr/news/4340083|제목=이상화, WC 4연속 金…男 팀추월, 사상 첫 金 - 노컷뉴스|확인날짜=2017-03-22}}</ref> 1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8초33으로 6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43으로 18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이바니 블론딘(캐나다, 8분24초01)과 불과 0.02 차이나는 8분24초03의 기록으로<ref name=":27">{{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87|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전예진, 김보름 출전)|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28">{{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9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시상식(김보름 은)|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김보름은 이날 월드컵포인트 80점을 추가, 총점 168점으로 클라우디아 페흐스타인(독일), 다카기 미호(일본) 등을 제치고 블론딘(350점), 이리네 슈텐(네덜란드, 320점),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 255점), 다카기 나나(일본, 200점)에 이어 5위로 뛰어올랐다.<ref name=":16">{{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121509490760404|제목=이승훈-김보름, 간발의 차로 은메달 거둬…“외모만큼 실력도 훈훈”|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31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15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2분00초99의 기록으로 13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노선영(강원도청)은 2분01초39로 16위에 올랐다. 우승은 헤더 리처더슨(미국-1분56초30)이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9237&code=61161111&cp=nv|제목=[빙상 월드컵] 이승훈 부진한 출발… 스피드스케이팅 5차 월드컵 5000m 9위|확인날짜=2017-03-17}}</ref> 2월 1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2초38로 11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2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5년 10월 28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벌어진 제50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대구일반)은 4분18초88로 박도영(동두천시청-4분22초97)에 여유있게 앞서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720|제목=이상화 빙속여제답지 않은 실수 '실격', 추천으로 구제되나|날짜=2015-10-28|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1500m에서도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22">{{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234|제목=장거리 에이스 이승훈 1만m 우승, 종목별선수권 5년 연속 2관왕|날짜=2016-10-28|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2016년 3월 2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6 한국실업빙상경기연맹회장배스핃스케이팅대회 500m에서 김보름은 40초97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527&detailClassCd=01&rhCd=19&page=4&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69&kindNm=%EC%97%AC%EC%9E%90%EC%8B%A4%EC%97%85%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2016년 11월 11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2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2일 열린 팀추월에서 이승훈과 김보름이 힘을 보탠 남녀 팀추월 대표팀이 동메달을 나란히 수확했다. 1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이승훈이 남자부 금메달, 김보름이 여자부 동메달을 목에 걸며 메달 사냥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ref>{{뉴스 인용|url=http://d.kbs.co.kr/news/view.do?ncd=3380743|제목=이승훈·김보름, 매스스타트서 ‘맹활약’|뉴스=KBS 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6년 11월 18일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5초91로 16명 가운데 6위에 올랐다. 자신의 최고 기록(4분04초6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16년 11월 11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 디비전B에서 세운 4분12초21보다 6초30 빨랐다. 우승은 체코의 마르티나 사블리코바가 4분03초56으로 차지했다. 그 뒤는 안토이네트 데 용(네덜란드-4분04초53), 안나 유라코바(러시아-4분05초24)가 이었다. 3000m 디비전B의 박지우(의정부여고)는 4분18초88로 20명 가운데 16위에 자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msn.com/ko-kr/news/sports/%EB%B9%99%EC%83%81-%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2%EC%B0%A8-%EC%9B%94%EB%93%9C%EC%BB%B5-%EF%A6%81-3000m-6%EC%9C%84/ar-AAkrY2E|제목=[빙상]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2차 월드컵 女 3000m 6위|확인날짜=2017-03-27}}</ref> 19일 열린 팀추월 결승에서는 대한민국(노선영, 김보름, 박지우)이 3분05초01로 5위를 차지했다. 20일 김보름은 박지우와 함께 23명이 출전한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8분15초02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골인하면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박지우는 8분22초85로 18위를 기록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9초65로 2위에 올랐고 박지우는 2분01초89로 16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ufo5405/220866296406|제목=김보름 매스스타트 금메달(2016~2017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2차 대회)|뉴스=네이버 블로그 {{!}} 자유 평화 사랑|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6년 12월 2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0초61로 14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박지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4초62로 6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5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29초51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2차 대회 우승자인 캐나다의 이바니 블롱댕(8분29초28)과 일본의 다카기 나나(8분29초46)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랭킹 포인트 70점을 획득한 김보름은 총점 240점으로 블롱댕(랭킹포인트 280점)에 이어 월드컵 랭킹 2위를 유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n.kbs.co.kr/news/view.do?ncd=3388523|제목=이승훈·김보름, 3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뉴스=KBS 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6년 12월 9일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벌어진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서 박지우, 노선영, 김보름은 3분06초42로 7위를 차지했다. 10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71로 19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0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31초73의 기록으로 이린 쇼우텐(네덜란드)을 0.09초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김보름은 일본 나가노에서 열렸던 2차 대회에 이어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두번째 금메달을 차지하며 월드컵 랭킹 점수에서도 340점을 확보, 이바니 블롱댕(캐나다, 308점)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1차 대회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3차 대회에서 금메달, 2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던 블롱댕은 8분33초59로 10위로 밀려나면서 4회 연속 메달 사냥에 실패하고 김보름에게 월드컵 랭킹 선두 자리를 내줬다. 함께 김보름과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박지우(의정부여고)는 8분41초67의 기록으로 14위에 올랐다. 박지우는 3차 대회 13위에 이어 4차 대회에서도 줄곧 중위권을 유지하며 월드컵랭킹 52점으로 18위로 올라섰다.<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576|제목=김보름 매스스타트 '동-금-동-금 행진', 이젠 당당한 평창 우승 후보|날짜=2016-12-11|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11일 열린 5000m 디비전A에서 7분17초89로 12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7년 3월 12일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45초7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네덜란드의 이린 쇼우턴(8분45초69)에 단 0.06초 뒤지는 2위에 그쳤다. 3위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카 롤로브리기다(8분45초78)가 차지했다. 매스스타트 랭킹 포인트 120점을 획득한 김보름은 합계 460점으로 364점의 롤로브리기다를 여유 있게 제치고 시즌 1위 자리를 지켜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934262|제목=[빙속] ISU 월드컵 파이널 매스스타트 이승훈金-김보름銀|날짜=2017-03-13|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년 1월 1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일반부 매스스타트에 김보름이 출전했지만 선두에 한 바퀴 뒤지면 실격 당하는 규정에 따라 실격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diodeo.com/news/view/2024706|제목=[동계체전] '실격' 김보름|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8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70으로 결승선을 통과, 1위에 올랐다. 17일 열린 3000m에서 대회신기록(4분14초54)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김보름은 이날 1500m에서도 대회기록을 갈아치웠다. 김보름은 이주연이 보유하고 있던 대회기록(2분3초63)을 1.93초 단축했다. 노선영(28-강원도청)도 종전 대회기록보다 빠른 2분02초92의 기록을 냈지만 김보름을 넘지 못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박도영(24-동두천시청)이 2분05초36으로 뒤를 이었다. 김보름은 노선영, 임정수(24)와 함께 강원도청 대표로 여자 일반부 팀추월에 나서 금메달을 일궜다. 김보름은 강원도청이 3분23초97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하는데 앞장섰다.<ref>{{뉴스 인용|url=http://m.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595|제목=김보름, 전국동계 3관왕 등극|날짜=2017-01-19|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팀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2초66으로 5위에 올랐다. 다카기 미호, 다카기 나나, 사토 아야노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은 2분55초7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 김보름은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2차대회에 김보름은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보름은 1차대회 1일차 매스스타트 준결승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스키이트 날에 걸려 넘어 졌으며, 경기 후 허리에 통증을 느껴 1차대회 다른 경기 출전도 포기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xn--q20b51t9le1sh.com/sub_read.html?uid=19371§ion=sc51|제목=[전남방송] 스피드 김보름 선수, 월드컵 2차대회 출전 포기|뉴스=전남방송|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대회 여자 3,0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김보름은 4분06초4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4위를 차지했다. 3,000m에서는 다카기 미호(일본)가 3분57초09의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2/0200000000AKR20171202034500007.HTML|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3,000m 14위|성=이영호|날짜=2017-12-0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4일 열린 여자부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은 11위에 그치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김보름은 경기 초반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6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먼저 치고 나간 선두 그룹을 다라잡지 못했다. 하위권에서 막판 스퍼트를 노렸지만 이미 선두권과 격차가 너무 벌여져 결국 11위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편, 독일의 백전노장인 45세의 플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은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49929a51806c4912ad5ee75e37e3b0d5|제목=이승훈ㆍ김보름,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동반 부진|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4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9분00초72의 기록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치감치 선두그룹을 만들어 질주한 프란테스카 롤로브리지다(이탈리아)가 8분 53초49로 금메달, 중국의 궈단이 8분57초54로 은베달을 목에 걸었다.<ref>{{웹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712110100073520005174&ServiceDate=20171210|제목='컨디션 회복'김보름 월드컵 4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 스포츠조선|확인날짜=2017-12-12}}</ref>
- 스틸오션/영국 . . . . 28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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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허미즈는 원래 장갑순양함으로 건조되었으나, 1942년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적은 배수량과 지나친 무장으로 내항성은 보잘것 없었으며 대형기를 탑재하지도 못했다. 1939년, HMS 허미즈는 영국해안에 배치되었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 허미즈는 다카르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전함 리슐리외(Richelieu)를 공격했다. 1942년, HMS 허미즈는 아시아의 일본 육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동양함대에 배치되었다. 1942년 4월 9일, 실론 섬의 트링코말리 항 근처에서 일본군에게 발견된 허미즈는 함재기 85대의 공격을 받았다. 15분 만에 37발의 직격탄을 맞고 격침된 허미즈는 함재기에 의해 격침된 최초의 항공모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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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유니콘은 정비실이 설치된 항공기 수리함 겸 경항공모함이었다. 1943년 3월에 건조된 후, 대잠임무와 훈련임무에 주력해왔다. 1943년 12월, HMS 유니콘과 다른 호위항모 4척으로 구성된 V기동함대는 아발란체 작전(Operation Avalanche)에 투입되었다. 1944년, 태평양으로 보내져 MONAB(Mobile Naval Air Bases)의 창설을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예비역으로 있다 싱가포르에 배치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기 수송과 영연방 항모 보급 임무를 맡았다. 1953년에는 북한 해안에서 포격 당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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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 . . . . 28회 일치
일제 지배하의 민족의 수난적 운명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 묘사를 지향한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현진건의 집안인 연주 현씨는 [[역관]](譯官) 등의 [[잡과]](雜科) 출신을 많이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에 해당한다. 현진건의 6대조로 왜역(倭譯) 즉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태형(泰衡)부터 한역(漢譯) 즉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5대조 상복(商福), 몽역(蒙譯) 즉 [[몽골어]] 통역관이었던 시석(時錫)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관으로서 활약하였으며(각자의 처가도 또한 역관 집안이었다) 증조부 경민(敬敏)도 왜역으로 [[동래]](東萊)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현진건의 숙부인 현양운이 조민회의 후임으로 주왜공사(住倭公使)가 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영운의 가계를 그의 할아버지(즉 현진건의 증조할아버지)가 왜역으로 오랫동안 동래에 머무르다가 현지 기생과의 사이에서 현양운의 아버지를 얻었고, 현양운 자신도 그 아버지가 첩에게서 본 자식이었다고 적고 있다.<ref>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양진오, 2008, p.26</ref>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상하이에까지 커져 상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영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27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문단』에 중편 「해 뜨는 지평선」을 기고하였다. 같은 해 1월 2일자 「동아일보」는 현진건을 "산뜻한 표현의 미를 가진 단편작가"로, "표현에 노력을 빼앗긴 반면에 그 내용적 가치가 너무도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노력을 높이 사면서, "그의 자연주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그의 제재 방면도 분명히 향토로, 민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끝맺고 있다. [[1928년]]에는 드디어 「동아일보」 입사 3년만에 사회부장이 되었다(~1936년). 사회부장 시절의 현진건에 대해 당시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명성이 나돌았다고 한다.<ref>방인근도 그의 제목 붙이는 '민활하고도 묘미있게 붙이는 재주'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빙허회고기」, 『현대문학』 1962년 11월호.) 제목을 붙이는 것뿐 아니라 휘하의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지면에 적절히 배치하여,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기사는 신속하게 취하는 언론계의 명인같은 존재였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러나 이 해 1월, 상하이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형 현정건이 체포되어 본국으로 이송되어 복역하였다.<ref>"원래 불면증이 있는 까닭에 어떤 때에는 무리하게 오전 삼시까지도 독서를 한다"(현진건, 「각 방면 명사의 일일생활」, 『별건곤』 17호, 1928. 12.)는 현진건 자신의 말에서 이때의 현진건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찾아볼 수 있다.</ref>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인용문|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그 창작가는 제2의 경우를 더욱 중시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주제를 작정한 다음에 그 소재를 취하는데 현재와 과거를 가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작품상에는 현재라고 더 현실적이오 과거라고 비현실적이란 관념은 도무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압니다. 더구나 제2의 경우에는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등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ref>「역사소설문제」, 『문장』 1939년 12월. p.126~129.</ref>}}
원고료에 양계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던 현진건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방인근은 "박씨 성을 가진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했다) 기미(期米) 사업을 시작하지만, [[1940년]]에 당시 명동에 있던 증권회사에 미두를 투자했다가 그것이 모두 실패하면서<ref>이재민, 「새 자료로 본 빙허의 생애」, 『문학사상』 1973년 4월. p.355.</ref> 양계장이나 다른 재산, 부암동에 있던 집도 처분하고 신설동 고려대학교 정문 앞의 조그만 초가집(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 137번지 61호)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 실패로 현진건은 더욱 술에 빠져 살게 되었고 결국 '혈압' 때문에 쓰러져 눕게 되었다(이 해에 현진건의 단편소설과 역사소설 「무영탑」이 박문서관에서 「현진건 단편집」과 「무영탑」으로 발간되었다). 현진건은 『동아일보』 기자였던 양재하가 만든 친일잡지인 『춘추』 4월호에 소설 「선화공주」를 연재하지만 9월호에서 중단하였다(미완).
* [[이광수]] - 박종화의 일기에 보면, [[1922년]]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백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시 「악부(樂府)」가 실리게 되었을 때, 상해에서 《백조》를 받아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백조》지에, '귀순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백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광수는 이미 당시 춘원은 허윤숙이라는 여인과 동거하면서 일제에 이른바 '귀순장'이라는 것을 써서 독립지사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변절한 상태였던 것이다.<ref>윤병로 「박종화의 삶과 문학」1998, 신효정「문학산책」2000, 역사문제연구소 편찬「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2003.</ref>
* [[이무영 (소설가)|이무영]] - [[1955년]] 8월 30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된 이무영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1932년]] 처음 중편소설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을 때 별다른 반응이 없이 문단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와중에 "오직 빙허(현진건) 선생이 꾸준히 읽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먼동이 틀 때」를 연재할 수 있도록 서항석과 더불어 힘을 써준 것도 현진건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다만 이무영이 친일로 돌아선 것을 현진건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후 이무영과 현진건이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 [[1932년]] 7월 1일자 『삼천리』기사에서, '만일 금주법이 실시된다면'이라는 질문에 현진건은 "돈이 없어서 못 먹으니 차라리 끊어 버리는 것도 나을 듯 싶어서 벌써부터 끊으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날 보고 애주가로 인증하니 참 딱한 일입니다. 우선 귀사에서도 많은 인사를 제쳐 놓고 나에게 물어 보시는 것은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구태여 물어보시는 줄 암니다. 혹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배운 재주라 그렇케 쉽게 버릴까 하는 것도 의문은 됩니다. 정, 먹고 싶으면 [[카포네]] 노릇이나 해야 먹게 될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남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남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생가는 주소만 남아있을 뿐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인왕산]] 밑의 부암동 자택은 종로구에서 공용주차장을 짓기 위해 2003년에 헐어버려서 지금은 터와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이 남아 있다. 당시 그 생가의 철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행정당국은 '민간인 소유자와 부지 매입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0618342324420.htm#none 편집국에서-사라지는 문학의 고향, 한국일보 2007년 11월 6일자 기사]</ref> 2012년 10월 4일에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유언에 따라<ref name="cho"/> 화장되고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장리에 매장됐었으나 그 후 남서울 개발관계로 묘소가 사라져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
- 김재박 . . . . 27회 일치
|| '''소속팀'''[* 실업야구 시절 포함.] || [[한국화장품 야구단|한국화장품]] (1977~1981) [br] '''[[MBC 청룡]]-[[LG 트윈스]] (1982~1991)''' [br] [[태평양 돌핀스]] (1992) ||
~~DTD 몸소 실현~~ [[LG 트윈스]] 감독 시절 ~~위대한 용안~~
하도 여론이 안좋아서 김재박이 술을 즐겨 술자리에 참석하기 위헤 우천취소를 시켰다거나, 강제우취시키고 관계자들과 회식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야알못이 간다에서 자신은 술을 못하고 술자리 회식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상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http://news.donga.com/Sports/3/05/20150707/72336135/1|규정상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LG가 이기고 있고 삼성이 오심으로 져도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양반아.~~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영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 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우승 못하고 [[556]]만든 [[김성근|이 사람]]은 뭐여~~ ~~자아비판에 가장 가깝다. FA 영입만 없다 뿐이지 강탈급 현금 트레이드들로 모았던 막강한 초기전력을 생각하면...~~
* 2009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펜스거리 단축을 제안하고 구단 [[프런트]]가 이 요청을 들어주어 LG가 홈경기를 할 시에는 구장의 크기를 줄이는 [[X-존]]이 만들어졌다. 팬들 사이에서의 이름은 '''[[재박존]]''' 혹은 재박산성... 재빡존이라고도 언급한다. 근데 줄여도 웬만한 구장 사이즈 이상일 정도로 잠실이 넓긴 하다.
*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이 [[FA 제도|FA]]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김재박의 재임기간 중 삼성도 [[선동렬]]감독이 이른바 멍게강점기라 불리는 삼성 역사상 두 번째 암흑기를 열어 4,4,5[*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수근|야만없]](...)]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는 바람에 양 팀이 나란히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 따라서 따지고보면 라이벌은 라이벌인데 '''삽질 라이벌'''(...)
* 역대 [[LG 트윈스]]의 감독 중에서도 매우 나쁜 성적~~[[666858766|587]]~~을 거뒀지만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스타라서 그런지 경질론과 재계약론이 비등비등했던 뭔가 희한한 감독이다. ~~사실 재임 기간 동안 승률은 이순철보다 낮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이순철이 말아먹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대면 된다. 지금까지도.~~ 결국 2009년 9월 26일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되어 감독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엘지 팬...아니, 대한민국 야구 팬들한테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고 있다.'''
그 내용이 걸작인데, 정리하자면 '''난 잘했는데 [[프런트]]가 못했고, 선수들이 잘 안따라줬고, 구단이 안밀어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issue&mod=read&issue_id=438&issue_item_id=8531&office_id=295&article_id=0000000306|이런 인터뷰]]. LG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팬들은 김재박이 앞으로 프로구단 감독을 맡기는 힘들다고 단언할 정도로 치를 떨었다. 이 와중에 묻힌 사실 중 하나는 [[이광은]] 전 감독 때부터 이어지던 LG 감독 임기 중 하차를 끝낸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후임 [[박종훈(1959)|박종훈]] 감독 역시 빵빵한 지원을 받고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는데 실패하고, 선수들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다는 것을 말하는 기사가 늘어나면서 과연 LG가 부진한 것이 감독의 문제인가에 대해서 재고의 목소리가 늘어났다.
두 글자를 확대해서 봐도 많이 비슷해 보인다. 여기서는 글씨체가 정자체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지만 아마도 흘려서 쓴 것을 보고 착각했던 듯 하다. 여담으로, [[하카타역]]의 한자도 博을 쓰는데, 가끔 가다 傳多역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보일 지경. 사실상 국한혼용체가 '''사장된 이유'''다. 김재박 본인도 이 김재전 드립을 [[https://news.joins.com/article/3580192|써먹기도 했다.]]
* 2012년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감독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현장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구장]]과 한화 2군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김재박으로 결정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한화 프런트는 김재박을 감독 단수 후보로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감중이던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경영 총괄하던 장남이 무조건 최고를 데려오라면서 김재박 대신 [[김응용]]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퍼졌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김응룡]]을, [[넥센 히어로즈]]는 [[염경엽]]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지었다.
* 2012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박재홍은 김재박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고[* 이는 그럴만한게 박재홍이 신인 시절부터 김재박 감독이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며 주전 1번타자로 키웠기 때문이다.], 2013 시즌후 은퇴한 [[박경완]]도 김재박과 함께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의외로 김재박 감독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다.[* 물론 박경완의 경우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조범현]]을 호명했다.박재홍의 경우는 김재박을 제일 처음 호명.]
* 1998년 5월 14일 해태전,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야구)|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11번째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 번트였다면 유격수 땅볼아웃이 될 리가 없다.],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식]]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 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이미 10타자 연속 삼진을 당했는데 11타자 연속 삼진 막는다고 얻을 것도 없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다. 매경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신기록을 체크하며 경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태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 2003년 8월 15일 삼성전, [[박종호]]가 홈런, '''3루타''', 2루타를 기록해 [[사이클링 히트]]를 눈 앞에 뒀는데, 4번째 타석에서 '''번트 지시, 유격수 땅볼'''로 물러남. ~~야 아까 위에서 이대진 삼진기록때는 번트로 유격수 땅볼이 나올일 없대며~~ 결국 대기록 달성 실패. 이건 사실로 보인다. [[http://news.joins.com/article/2984741|박종호-박용택 ‘아! 사이클링 히트’]]
이 기사에 나온 내용이라면 원래 김재박은 9회에 장종훈을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1사 1·2루였던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면 그냥 경기가 끝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은 사실.
* 2008년 5월 29일, [[이재우]]가 [[야맹증]] 때문에 항상 쓰고 나오는 [[고글]]을 지적하였다.[* 고글 착용은 규정상으로 위반이나, 어쩔 수 없거나 별 이상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 이 일로 흔들렸는지 그 해 [[방어율]] 1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필승계투 이재우는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고, LG는 이와 같은 "감독님의 활약" 덕에 [[잠실시리즈|잠실 라이벌]]인 두산전 5연패를 그날 끊었다.(...)
* 2009년 [[박용택]] 타격왕 시켜주려고 출전 안 시키고 타격왕 경쟁상대인 [[홍성흔]]을 '''4볼넷'''으로 보내버리는 진상짓을 벌이고 말았다. 1984년 당시 타격왕이었던 삼성 [[이만수]]의 타율을 지키기 위한 [[홍문종(야구)|홍문종]]의 [[고의사구]] 사건이 25년만에 다시 벌어진 셈. 지상파 스포츠 프로그램들은 이를 두고 '''졸렬'''한 플레이라고 하나같이 비난했으며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졸렬쥐' '졸렬택'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http://ggoltebba.tistory.com/33|졸렬택 플레이어 ~~만든 사람이 롯데팬이라는 사실은 넘어가자~~]]
- 표창원 . . . . 27회 일치
[[대한민국]]의 [[형사]] 출신[* 1989년 임용.] 경찰학자[*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자로 흔히 알려져있으나 일선에서 범죄심리분석관으로 근무한 적은 없다. 주 전공은 사회학이고 그걸로 학위를 받은 [[경찰학]] [[박사]]이다. 실제 일선에서 근무했던 범죄심리분석관들의 여러 인터뷰에서도 범죄학자이지 프로파일러는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의 주 전공은 경찰학이다. "Doctor of Philosophy in Police Studies in the Faculty of Social Studies" [[RISS]]에서 검색하는 내용을 봐도 경찰학 전문가가 맞으며 표창원이 낸 교양책을 봐도 경찰학 중심이다.], 정치인.
1966년 [[경상북도]] [[포항시]] 동빈동에서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 아버지를 둔 실향민 2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절망해 학창시절 툭하면 주먹 싸움을 벌이고 패싸움에 휘말려 양호실에 실려가고 형이랑 싸우다가 칼을 휘두르는 등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응?~~중학생때 전국일제고사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생때는 암기식 교육이 싫어서 상습적으로 야자에서 도망갔지만 성적을 늘 상위권이었다.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에 대한 오해를 하는데, 사실 영국에서는 박사 과정은 특정 주제를 공부한다고 학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연구방법론에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학교를 찾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몇 단계의 심사를 거쳐 학위를 최종 승인받는다. 수년간의 연구(보통 5년 가량) 끝에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면 소속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위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현재까지 성취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 기록한 뒤 평가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는 것이다.]
이 당시 나온 대중성 있는 저서로는 [[http://www.yes24.com/24/Goods/1506195?Acode=101|한국의 연쇄살인(2005年)]]이 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무척 흥미진진하다. 초심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독성 좋고 간결하면서 유려한 문체[* 이는 글 쓰기, 잘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 현장 용어나 한자말을 피하고 중학생 정도 학력이면 이해할수 있을만큼 정말 쉼게 썼다.] 로 한국 근 현대사에서 유명한 여러 연쇄살인 사례들을 다루었다. 단 유혈이 낭자한 당시 현장 사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고 (다행히 컬러 사진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되어 있어 19세 미만 구입 불가 딱지를 붙여놓은 곳이 많다. 경찰 출신이다 보니 비슷하게 여러 사건 사례를 자세히 다루는 법의학 책과는 다른 시각으로 글을 써서, 보기에도 신선한 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유제설 교수와 공저한 [[http://www.yes24.com/24/goods/6103472?scode=032&OzSrank=1|한국의 CSI(2011年)]] 또한 과학 수사에 대한 교양 서적으로 읽기 매우 좋은 책이다. 그의 책은 어디까지나 교양 서적이다 전문 서적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를 추구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실제 살인 사례이다 보니...
일부에선 '흉악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게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전부터 논쟁의 중점에 있던 인물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데, 모든 형법이론들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형법학자들은 전부 저것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범죄론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행위론, 구성요건론에서 위법성론, 책임론까지 모두 구이론인 객관주의와 신이론인 주관주의를 따라 견해가 나뉘며, 현대 형법은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있는 형법 저서 하나 없는 사람이 저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관점에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러한 논쟁을 '''일반 대중에게 던져준 사람'''으로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러한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실은 국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그 범죄자 개인의 인성보다 자라온 환경, 못 가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냉혹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튀는 것이다.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남성이 문 대표의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반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영상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수사의 90%이상은 경찰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검사 한 명 당 하루에 11.4건의 사건을 배당받고 있는데, '''잔업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도 거의 한시간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상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가 영장 집행시에만 지휘하는게 일반적이다. 즉 사실 이미 경찰이 수사 개시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2011년 때 법안 개정을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증거를 모아서, 용의자를 잡아서, 검사한테 주면 검사가 이를 확인한 뒤 "OK" 외치고 끝나는 상황인데, 이것을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즉 경찰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수사/기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수사지휘권이 없어도 검찰의 기소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일선 경찰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장 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점에서[* 강제수사의 핵심은 영장이다. [[영장주의]]참조.] 검사의 권한은 해당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막강하다.[* 실제로 표 의원보좌관의 SNS를 보면 해당 개정 내용을 접한 일선 경찰들이 표 의원의 보좌관(보좌관도 경찰출신이다.)에게 연락해서 "영장청구권를 왜 검찰에 남겼냐."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에 있을 제7회 지방선거 때 같이 치뤄질 개헌 안을 살펴보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폐지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으므로 경찰에게도 영장청구권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개헌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시 검사는 법리적인 내용만 검토하게 하거나 혹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을 특별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해 이들에게 영장청구권을 허용하게끔 하는 방안, 검사에 의해 영장이 반려되었을 때 법원에 항고를 할 수 있는 항고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의 경우 발의한 법안과의 균형을 고려해 경찰의 항고권 보유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8년 6월 21일 KBS 라디오에 전화로 출연해 다시 한 번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다. 현재는 경할은 수사는 하지만 종결권이 없다. 이는 한 번 한 수사 결과를 검찰이 받아서 다시 검토하는 두 번 일이 되므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피해자/피의자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종결까지 할수 있게 될 경우에는 이를 해소할수 있으며, 문제가 없으면 바로 기소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나 보완을 지시할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경찰 내에서 종결권이 있다면, 경찰이 껄끄러운 사건을 묻어버리면 어쩌냐" 하는 반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 의원은 "검찰에서 묻어버리면 이미 대민 창구인 경찰의 손을 떠난 후라 사람들이 알수 없지만, 경찰에서 그러면 사건 관련된 사람들이 언론과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고, 수사 지휘권이 있는 검찰도 알게 되므로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2018년 6월 22일, [[조국]] 민정수석에 의해 검경 수사권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표 의원이 주장한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고, 검찰은 금융 비리, 정재계 사건 특검 등 일부만 직접 맡고 다른 것은 모두 경찰에 맡긴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 업무 중에서도 중하지 않은 사건, 즉 민생 관련 건은 자치경찰로 넘기게 되며, 이를 위해 현재 제주도에만 있는 자치경찰을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하고, 차후 확대한다고 한다.
범죄학자라는 직업 상 다큐멘터리에 주로 나오는데 가끔 예능에 나오면 묘하게 굴욕을 당한다. 크라임씬2에 탐정으로 캐스팅 됐을 때도 실제 현장과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홀로 진범 지목에 실패하여 [[장동민|출연]][[하니(EXID)|자들]]에게 놀림받고 런닝맨 최강자전에서는 미션 도우미로 [[개리(리쌍)|개리]], [[지석진]]과 함께 도둑잡기를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개리 손에 있던 도둑 카드를 바로 집어가고 그대로 패배. 비정상회담에 출연 당시엔 나이지리아 부자(父子)이야기를 하면서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이니까, 사자가 자주 나타나잖아요.'라고 말했다가 아프리카라고 사자를 항상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며 [[샘 오취리]]에게 팩트폭력을 당했다.
* 장기간 [[그것이 알고싶다]] 출연을 통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차분하고 침착한 이미지로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화를 안 내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단, 화를 내기 힘든 공적인 자리에서는 화가 나도 참다가, 끝나고 혼자 있을 때 '''욕(?)'''을 해서 스트레스 해소를 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대신 현역 경찰 시절에는 취조 중 일부러 경찰을 놀리는 듯이 행동하는 무례한 범죄자에게 대놓고 화를 낸 적도 꽤 있다고 한다. --근데 이 정도면 화 잘 안 낸다는 이미지가 실제랑 꽤 맞는 거 같은데, 준석이만 보면 화가 난다 카드라.--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도 있다. 2013년 1월에 [[경향신문]]에 올린 한 칼럼에서 표창원은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버렸고 무능하고 무력하다고 지적하면서 국정원이 위기라고 썼는데, 이 내용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4년 뒤의 실상을 보면 팩트폭행이었다-- 이 건은 1년이 지나서 '''무혐의가 명백하기 때문에''' 각하되었다. 애초에 판례 상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헌법에 나와있는 내용인데?!~~[* 해당 판례가 밝히는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관은 당연히 국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며, 비판으로 인해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욕한다고 [[고소미]]를 먹진 않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제1공화국|옛]][[대한민국 제4공화국|날]][[대한민국 제5공화국|에]]는 [[코렁탕|어떻게]] 했더라?~~]
* 서울 고려고등학교(現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 흡연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245|*]]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특집 : 경찰지방자치의 방향 ; 우리나라 지방경찰행정의 현실, 2003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1화 . . . . 26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1화. '''우마루와 실내수영장'''
* 더위를 피해 실핀네 "전세수영장"에 놀러간 우마루(UMR모드)
* 실핀의 어머니를 만나는데, 그야말로 완벽초인. 실핀에게 엄격하게 지도한다.
* 실핀은 어머니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우마루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실핀은 실핀대로 즐겁게 사는게 좋다고 조언한다.
* 우마루와 즐겁게 노는 실핀을 보고 어머니도 만족해한다.
* 실핀과 UMR는 더위에 지쳐서 게임센터도 가고싶지 않은 정도다.
* 우마루가 수영장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실핀이 "그럼 가자"고 말한다.
*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실핀네의 전세 수영장.
* 마침 실핀의 어머니도 수영을 즐기고 있다.
* 대결 자체는 우마루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 번만에 녹초라 된 우마루와 달리 실핀은 팔팔하다.
* 어머니는 실핀에겐 엄격한 태도로 조금 더 향상시키라고 조언한다.
* 우마루와 실핀은 쉬면서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실핀은 어머니가 언제나 1등을 노린다고 말하는데, 그걸 듣고 우마루가 "실핀이 언제나 1등을 노리는건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 그때 어머니가 점프대에서 다이빙을 하는데, 수면에 뛰어드는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실력.
* 실핀은 어머니가 "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 우마루는 어머니처럼 점프대에 올라가 보자고 하는데 실핀은 "아직 어머니처럼은 안 된다"며 주저한다.
* 우마루는 "어머니와 달라도 괜찮다"며 실핀 나름대로 즐겁게 사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 우마루의 설득으로 즐겁게 점프대로 노는 실핀.
* 어머니는 그걸 보고 멋진 점프였다며,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게 실핀 답다고 칭찬한다.
* 환하게 웃는 실핀
- 이경영(1960) . . . . 26회 일치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다. 이경영 본인도 "그나마 [[안성기]]나 [[박중훈]]은 충무로나 언론에서 보호해주는 패턴이 강했다면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안성기나 박중훈이 어느 정도 자기 이미지와 고유의 연기색을 바탕으로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코믹연기나 진지한 연기를 구축했다면, 이경영은 (최소한 영화작품 기준으로는) 자기만의 연기톤을 고집하려 들지 않고 당시 기준에서 극도로 19금적인 코믹연기도 하고 완벽하게 정석적으로 진지한 연기도 소화하는 등 팔색조처럼 넓은 연기폭을 시도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사례가 많아서 흥행은 거의 망하곤 했다 [[안습]]-- 1994년에 [[문성근]]과 같이 출연했던 '세상 밖으로'라는 영화는 주인공들이 탈옥수라는 설정답게 쌍욕이 들어간 대사가 영화 내내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 영화였다. (그전까지는 불량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 할 지라도 욕설의 정도가 심한 대사들이 주연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부 중요한 폭력적인 장면 한둘에서 나오는 정도) 그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연기변신에 대해 그렇게 힘든 요구를 항상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부분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고 합격점을 항상 받아왔다는 데서 이경영의 그 뛰어난 연기력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장르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1996년에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하여[* 원래는 심승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 했으나 사정으로 이경영에게 넘어갔다. 여주인공 교체 등 다사다난에 시달렸고 흥행성적도 안습이었다.] 제작한 《귀천도》가 실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는 40대의 나이에도 주요시간대 드라마의 멜로 주인공을 잘 소화하며 멜로 전문 = 이경영이라는 공식을 어느 정도 유지할 만큼 잘 나갔었고, 당시 드라마 좋아하던 세대인 30~40대 여성시청자 팬들도 굉장히 많았다.
90년대 후반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절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영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이때 이경영은 당대 최고 젠틀맨 이미지를 가진 스타답게 연륜있는 유머로 넘겼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유정현은 당황한 감정에 --시킨다고 욕을 하냐-- 살짝 화가 겹쳐 나있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소라도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김민종 본인도 자꾸 시키니까 욱하는 마음에 실제 대사를 질렀다가 "시키시니까 했는데요.. 아 [[방송사고]]다, 어떡하지.."이러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 했는데, 이경영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웃으며 "제가 앞으로 김민종 씨 언어순화 교육까지 책임지며 살겠습니다."라며 적절하게 마무리시키고 넘어갔었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으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유죄판결 받았던 부분은 숨겼고]] [[언론플레이|단순히 무죄판결'''만'''을 받은 듯이 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적잖은 기사에는 잘못된 정보(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실려 있는 상황이다.
||1심 재판결과 이경영이 미성년자인 L모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인정되었는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정확하게 표현하면,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무죄,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이었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1심 판결에 대해 이경영은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하지 않은 사실은 2심 판결문 상에 검찰의 항소에 대한 판단만이 담겨있을 뿐, 이경영의 항소에 대한 판단은 없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만약 이경영도 항소하였다면, 판결문에 이경영의 항소에 대한 판단도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하였다. 검찰의 항소 이유는 '이경영은 첫 번째 성관계 때도 L양이 미성년자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첫 번째 성관계도 유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법원과 똑같은 판결을 하였다. 아래는 당시 판결을 보도한 기사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성룡ㆍ李性龍 부장판사)는 25일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화배우겸 감독 이경영(41)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대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모(18)양과의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를 맺을 때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보여 검사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57848|#]]
||2심 재판 후, 검찰과 이경영은 대법원에 [[상고(법률)|상고]]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이 사건 재판은 2심에서 종료됐다.[* 대법원에 상고하였다는 기사도 없고, 대법원 판결을 보도한 기사도 전혀 없다. 또한 2002년 10월 25일에 2심 판결이 있었고, 곧바로 2002년 11월에 형이 집행(사회봉사명령 이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2심 판결대로 형이 확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의 형이 확정되었고, 곧이어 2002년 11월, 12월에 형의 집행(사회봉사명령 160시간 이행)이 이루어졌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5784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4&aid=0000052234|#]]||
위 인터뷰를 보면 이경영은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기사들 때문에 이경영이 무죄판결을 받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경영의 말은 1/3만 진실이고, 2/3는 거짓이다.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만 무죄고, 나머지 두 번의 성관계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니까.
※ 여성중앙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위 대화 부분은 2015년 1월 15일부로 온라인판에서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종이로 출판된 여성중앙 2015년 1월호 책자에는 위 내용이 여전히 실려있다. 해당 인터뷰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메일로 문의하였는데, '무죄판결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온라인판에서 삭제하였다고 답변해왔다.
그리고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2009년 2월에 이경영의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출연이 유죄판결 전력 때문에 무산되었다는 사실과 어긋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2444043|#]][[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1975786|#]]
법원은 이경영이 L양(당시 18세)과 가진 3차례 성관계 중 첫 번째 성관계는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설령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성매매한 사실만으로 첫 번째 성관계 역시 유죄(일반 성매매죄) 아닌가?'라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에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는 출연금지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블 빼면 영화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송영창]]이 있다. 다만 이분은 영화 대신 주로 연극과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거의 충무로 이경영급으로 다작 중이다. 이유도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쪽에선 어느 정도 입체감이 있는 중년 역할을 맡을 배우가 그리 많지 않고, 진중한 역부터 코믹 역까지 폭이 넓기 때문.],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 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너무 가볍지 않고 개그 캐릭터가 아닌 격조가 있는 [[중간보스]]급의 위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주연급이라면 몰라도 조연급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다. 그런데 이경영은 이미 90년대부터 격조 있는 주연으로 다작을 하면서도 연기력이 좋다는 평가를 꾸준히 유지했던, 그야말로 탁월한 실력이 있는 배우라서 그런 상황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연급은 아니어도 조연급으로는 여기저기서 캐스팅되고 있다. 또한, 이경영이 선역부터 악역을 비롯한 개그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맡을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도 이유이다. 특히 2010년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정계나 재벌의 부정부패를 다룬 느와르, 스릴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서 반드시 나오는 '부패한 높으신 분들' 연기로는 이경영이 연기력이나 이미지 면에서 매우 적합하다.
||[[은실이]]||장낙도|| ||
- 진격의 거인/97화 . . . . 26회 일치
* 그 병사는 기억 상실을 핑계로 대고 수용구에 남아 있었지만, 사실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껄끄러워 그렇게 속이고 있던 것. 팔코는 그 사실을 숨겨 주기로 한다.
* 놀랍게도 빌리는 타이버가가 "흑막"이라 인정하며 그들이 실제 마레를 지배하고 있지만 "속죄"를 위해 권력과 자유를 나눠준 것이라 고백한다.
* 빌리는 예정된 "축사"에서 이 같은 진실을 공개하고 마레를 회생시키려 한다. 그가 마가트를 방문한건 그를 협력자로 얻기 위해서.
* 오늘 임무는 진작부터 실패했던게 분명하다. 반성할 시간은 없다.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애니가 먼저 택한 방법은 드라마였다. 그녀는 여인숙에서 태어난 소녀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건 단 하룻밤 뿐.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해줬고 그래서 한 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그 이야기는 목 베는 케니도 감동시킬 만한 했다. 케니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허그가 필요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애니는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확신하냐고 물었다. 케니의 대답은 "할 수 있다"였다. 그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농담이었으니까. 이제 확실히 포기할 시점이다. 죽이지 않고 상황을 모면하는 걸.
회심의 돌려차기는 남자의 관자노리를 정확히 노렸다. 애니가 아는 한 그런 일격이 빗아갈 일은 드물었다. 그게 하필 미행이 실패하고 뒤를 잡힌 순간에 일어날 가능성은 더더욱. 케니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고 발차기는 벽에 박히며 벽돌을 박살냈다. 케니로선 그녀가 늘어놓은 드라마보다 이 발차기 쪽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케니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진 순간 애니는 몸을 날렸다. 지나온 골목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케니가 뒤쫓아오며 "벌써 아빠가 싫어지는 시기냐고"고 도발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애니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케니는 뚜껑이 열린 배수구를 발견했지만 그의 몸집으로는 통과할 수 없었다. 그가 혀를 찼다.
* 식당에선 또다른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너의 옆 테이블에서 [[엘런 예거]]와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 아커만]]이 식사 중이었다. 엘런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라이너가 유독 살기등등하다고 말을 걸자 맞은 편에 앉은 [[장 키르슈타인]]이 어제 훈련 탓이라고 참견했다. 입체기동장치 실습. 자기 와이어에 얽혀 죽을 뻔한 엘런. 장이 꼴사납다고 빈정거리자 엘런은 "거인한테서 도망치는 훈련을 하는게 더 꼴사납다"며 말상자식이라고 받아쳤다. 장은 다시 엘런은 용감하게 돌격하자 와이어가 엉켜 죽을 거고 거인이 그걸 보고 미친 듯이 웃을 거라고 빈정거렸다. 슬슬 때가 됐다. 어김없이 멱살잡이가 이어진다. 그걸 막는 것도 라이너의 일과. 병단에 들어온 뒤 항상 하는 일이다. 달라진건 없다. 저쪽,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애니가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것 외에는. 애니는 [[미나 캐롤라이나]]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식사에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식당의 전원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는데 애니는 촛점 없는 시선을 정면에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베르톨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 검은 코트 남자는 실력자였다. 잡힐 뻔 한데다 이미 얼굴이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앙헌병에 들어가는 것도 죽으러 들어가는 셈이다. 애니는 한계를 선언했다. 이제 여기서 모은 정보를 가지고 마레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때로부터 약 5년. 이정도 정보라면 당국도 납득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라이너의 생각은 달랐다.
>이 5년의 성과를 가지고 돌아가면... 마레는 실망하겠지.
* 라이너는 그 모든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나 입체기동장치 훈련만큼 기억에 남는건 없었다. 엘런은 입체기동장치를 장비하게 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애를 먹었다. 착지에 실패한 엘런이 나뭇잎처럼 굴러다녔다. 뒤따라 착지하던 라이너가 그를 쫓아가 너무 무리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 과장도 없는 경고였다. 엘런바닥에 뒹구는 채로 라이너에게 말했다.
그의 병명은 기억상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둘러대는 말이었다. 지금은 가족하고 얼굴을 마주보기 껄끄럽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파르코는 그의 잘려나간 왼발을 바라봤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병사가 병원에 이걸 말할 거냐고 묻자 파르코는 전혀 아니라고 대답했다. 다시 대화가 끊겼다.
마가트는 곧바로 응접실로 호출됐다. 응접실 바깥 복도는 병사들이 진치고 있었다. 낯선 군복. 마레의 병사가 아니다. 타이버 가의 근위병들. 부관이 그 사실을 귀띔해줬다. 응접실 안에서 맞이하는 것도 타이버의 근위병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병사가 문을 열어줬다. 마치 남의 집에 온 기분이다. 그 다음 마가트를 호출한 사람이 나타났다. 타이버가의 현당주 [[빌리 타이버]]였다. 장발을 뒤로 쓸어넘긴 젊은 남자였다. 그는 갑작스런 방문에 양해를 구하며 악수를 청했다. 마카트는 공손한 태도로 관등성명을 댔다. 빌리의 태도는 격의가 없는데다 이 방문만큼이나 난데없었다.
* 타이버가 끌고온 그의 일가족은 군의 응접실을 자기집 거실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어린 것들이 배워먹지 못한 짐승들처럼 싸우고 엉겨붙고 지저분하게 먹어대고 있었다. 그런 꼬마들이 넷. 그보다 조금 나이를 먹은 소녀도 있었다. 싸움이 붙은 둘을 뜯어말리는데 애를 먹었다. 그 소녀 외에는 아무도 이 어린 난동꾼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고용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둘. 한 명은 방의 구석에, 한 명은 가운데에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쪽은 나이를 좀 먹은 듯 했으며 마가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외에는 그대로 죽은게 아닌가 싶은 노부부 한 쌍. 이상이 빌리가 소개한 자신의 일가족이다.
마가트는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마레인의 전쟁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마레의 전쟁은 활자의 전쟁이었다. 마레인이 아는 전쟁은 신문 지면에서 활자 위로 묘사된 것이 전부다.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영토는 넓어지고 국력이 신장된다. 실제로 전쟁에 나가서 총알을 맞는 건 조련된 악마의 후예들이다. 이보다 좋은 전쟁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마레인들은 실제로 총알이 귓가를 스쳐가는 날이 오더라도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사 마레가 붕괴하는 날이 오더라도. 여기까지 말한 마가트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부터 덧붙일 말은 조금 위험했다.
아무리 마가트라도 조금은 놀랐다. 빌리의 실토, 혹은 변명은 이어졌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지금의 군국주의 국가 마레는 그들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속죄라고 했다. 흑막 뒤에서 노예로 삼은데 대한 속죄. 선대 전추의 거인은 힘과 자유를 마레인에게 허락했다. 빌리는 그걸 곁에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말해서 마가트가 그 점을 지적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전추의 거인과 함께 "기억"을 물려받으니까. 빌리는 그게 타이버가의 책무라고 표현했다. 그 책무에 따라 자유를 얻은 마레인들이 엘디아인을 감옥에 처넣고 세계를 유린하는 걸 그저 지켜봤다. 그 결과 마레인과 엘디아인이 사이좋게 시커먼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든 책임이 타이버가에 있다. 그의 실토는 그걸로 마무리됐다.
거인의 힘이 시대에 뒤처지고 팔라디섬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빌리는 그 현실을 씁쓸하게 곱씹은 뒤에 예정된 "축사"에서 모든걸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겠다고. 헤로스 상을 보러 온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에게 절실한 증표였으니까.
- 진격의 거인/98화 . . . . 26회 일치
* 마레의 전사들은 작전실에서 쫓겨나 연병장을 바라보며 조국과 엘디아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데, 마침 연병장에선 전사 후보생들이 훈련 중이었다. [[가비 브라운]],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완전군장 상태로 구보를 하던 중인데 잘 보니 뒤쳐져 있던 파르코가 기어이 가비를 추월해 1등으로 골인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긴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훈련생들은 엄청나게 환호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형인 [[콜트 그라이스]]는 문득 "한 번 정도 이긴 걸로 가비의 우위가 흔들리진 않는다"며 미심쩍은 발언을 한다. 자신이 짐승 거인의 계승자인 이상 동생까지 굳이 갑옷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는데, 듣고 있던 [[지크 예거]]가 "명예를 업신 여기는 거냐"고 꾸중한 뒤 "하긴 그게 형의 마음이다"고 다독이며 콜트를 데리고 캐치볼을 하러 간다. 포르코는 "그런게 형"이라는 지크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상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상태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 파르코는 자신을 "크루거"라 밝힌 남자와 매일 만나고 있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길 일을 말하며 "크루거의 덕"이라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몇 번이나 편지 배달을 부탁한 자신이 감사할 일이라고 사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야구공과 글러브를 받았는데, 자신도 그걸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보고 파르코는 자리를 뜨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군의 진료의로 일하는 "예거"씨였다. 크루거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본다. 노인이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크루거가 허락하고 둘은 통성명을 한다. 크루거는 "크루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댄다. 노인은 크루거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나, 파르코가 자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화 상대를 찾아온 거란 말과는 달리, 파르코의 상세한 내력에 대해서 읊기 시작한다. 파르코의 숙부가 엘디아 복권파 조직의 간부였다 숙청 당한 것, 연좌를 당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콜트가 마레의 전사가 된 걸로 겨우 그라이스가에도 안정이 왔다는 설명 뒤에 아마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을 만나기 껄끄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의는 이랬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상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상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 축제의 전야제 격으로 전세계에서 모인 요인들이 본부에 모여 파티가 열렸다. 전사 후보생들은 급사로 차출되는데 주변에선 "더럽혀진 피가 급사를 하고 있다"고 투덜거린다. 우도는 그 험담에 신경쓰다 실수를 범하는데,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의 옷에 흘리고 만다. 그런데 그 여성은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도가 실수한게 알려지면 그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옷을 버렸다고 조용히 얼버무린다. 그녀는 심지어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도 문제삼지 않았는데. 가비는 그녀가 동양의 "히즐"국에서 온 사람인걸 알아본다.
* 축제의 클라이막스인 빌리의 연설 시간. 전사대도 자리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는데 파르코는 "아는 사람"을 만났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다. 돌아온 파르코는 라이너에게 잠깐 어딜 가자고 하는데 지크고 개막까지 시간이 남았다며 허락해준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외딴 지하실로 안내한다. 대체 뭐냐고 묻는 라이너에게 파르코가 "가보면 안다"고 대답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르는 라이너. 그리고 지하실 문을 연 라이너 앞에 나타난 것은, 4년 만에 만나는 104기 동기. 파르코가 "크루거"라 알고 있는 남자. [[엘런 예거]]였다.
크루거의 조언을 받으며 훈련에 매진해 마침내 가비를 이기는 기염을 달성한다. 가비에게 "너를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고 싶다"고 고백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좋아하는건 수용구 출입구를 통제하는 병사들 조차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 안습. 크루거를 계속 방문하고 있었으며 그의 편지배달도 계속했다. 축제가 시작되자 즐겁게 즐기다가 빌리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그를 크루거에게 안내한다.
예거 박사의 입을 통해서 그의 숙부뻘 되는 인물이 엘디아 복권파의 간부였고 그 바람에 일족 전체가 연좌제로 고생한 사실이 밝혀진다. 정황으로 보면 그 숙부가 그리샤 예거를 가담시킨 "그라이스"란 인물.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게 된 덕에 겨우 사정이 나아졌는데 반대로 현 짐승의 거인 계승자인 지크의 가족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가 된 모양이다.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상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파르코가 가비를 처음으로 이기자 조피아와 함께 기뻐해준다. 수용구에서 축제 준비와 무대 건설이 한창인 걸 보게 되는데, 가비가 희망적인 발언을 하자 일이 쉽게 풀릴리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반응한다. 이때 원래는 국외의 엘디아인 수용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외국의 반엘디아인 감정은 더 심한데다 수용구에서의 처우도 열악하다고 한다. 그렇게 악감정이 심한 세계인들이 빌리 타이버의 연설 한 번으로 협조해줄리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축제 전야에 파티가 시작되자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큰 실수를 한다. 주변에서 "엘디아인이 급사다"고 험담을 하자 거기에 신경쓰자 서빙하던 와인을 어떤 부인에게 흘리는데, 그 부인이 뜻밖에 너그럽게 처리해준다. 부인은 우도가 엘디아인인 것을 문제삼지 않는데가 그가 이 일로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실수로 감싸주기까지 한다. 조금 후에 가비가 "그녀는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다음날엔 가비 등과 함께 즐겁게 축제를 즐긴다.
속셈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밝혀진다. 한 달 전 빌리 타이버의 방문 때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내통하는 관계가 된 것. 부패한 군당국을 "집의 증축 건"으로 비유해서 "대대적인 해체공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빌리는 만족스러워하며 그에게 군의 전권을 맡기고 "원수"로 승격시킨다. 이때 빌리가 "군은 네 것"이라 말하자 "군은 나라의 것이며 나라는 빌리의 것"이라고 대답하는데, 사실 빌리는 그렇게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시키듯이 "집안이 무너질 판이지만 쓸만한 기둥도 있다"며 그들이 보고한 집안에 든 생쥐에 대해서 전달한다.
역시나 그 정체는 엘런 예거. 파르코에겐 여전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여러번 심부름을 시켰다. 개인적인 조언도 해준 모양인데 파르코는 그 덕분에 가비를 이겼다고 굉장히 고마워한다. 그런데 파르코와 만나는 자리에 야구공과 글러브를 가지고 나왔는데, 일단 가족에게서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파르코가 돌아간 뒤에는 병원을 방문한 예거 박사와 만나는데,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모습을 보인다. 예거박사가 파르코에게 심부름 시키는 거나 사실 그가 멀쩡하다는 걸 간파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라 권하자 "혹시 가족에게 후회할 짓을 했냐"고 떠본다. 예상대로 예거 박사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늘어놓으며 오열하게 되고, 착잡한 표정이 된다.
그리샤 예거의 부친이자 지크 예거의 할아버지인 그 예거 박사. 병원을 방문했다가 크루거에게 동석하기를 청한다. 사실 그가 파르코에게 수상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실제론 병이 없는걸 눈치채고 경고하러 왔던 것. 그라이스가의 속사정이나 콜트가 짐승거인을 계승하게 된 이후 예거가 사람을 불편하게 대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다. 자신이 대화하는 크루거가 실제론 손자라는걸 눈치채진 못한 듯 하다. 처음에는 자신을 군의이며 가끔 이 병원을 방문한다고 밝혔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크루거에게 "슬슬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경고하는데, 크루거가 "당신은 가족에게 후회할 만한 일을 했는가"라고 반문하자 상태가 안 좋아진다. 그리샤가 여동생과 벽을 넘어간 날, 딸이 죽은 날로부터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토로하고 그리샤 가족의 운명도 다 자신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기어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무너지는데, 직후에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병실로 데려가는걸 보면 오래 전부터 입원 상태였던 듯 하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걸 아는 크루거는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 풍운 . . . . 26회 일치
두 주인공,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이 주된 줄거리. 였다가 중간에 중원 정복을 노리는 동영 무사들이 끼어들면서 동영과의 대결이 중심이 된다. 절무신, 천황 등을 쓰러뜨리고 동영세력은 궤멸된다. 그러나 섭풍은 마도(魔刀)를 익혔다가 그만 마인(魔人)이 되어버려서 마도에 빠진 섭풍 때문에 천하가 멸망할 위기가 오고, 이를 막기 위해서 보경운이 나서게 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보경운은 섭풍의 마인 상태를 풀어주는데 성공하지만, 절벽에 떨어져서 실종되면서 마무리 된다.
천황은 절무신이 쓰러지자 풍운과 무명을 배신하고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 천황도 사실 중원을 침공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천황 휘하의 무사들이 중원을 공격해오고, 중원의 용맥을 수호하는 황제(黃帝)의 등뼈를 가져오려 한다. 한편 과거에 실종되었던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단랑의 아버지 남림검수 단수는 이 비밀을 알고서 황제의 등뼈를 지키고 있었다. 섭풍은 천황에게 [[세뇌]] 당하여 황제의 등뼈를 빼앗아서 달아나게 되는데.
천황은 패망하였지만, 섭풍은 아직 세뇌당한 상태로 떠돌고 있었다. 황제는 섭풍으로부터 황제(黃帝)의 등뼈를 되찾으려 하고, 보경운은 섭풍을 정상으로 되돌라려고 한다.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마인이 된 섭풍은 보경운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보경운과 섭풍은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보경운은 섭풍을 구출하고 자신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고 만다.
보경운을 찾는 회공, 회멸 형제의 등장으로 시작. 보경운은 기억상실에 빠져 있다가 복귀하며, 불사신 제석천과 천문과의 싸움이 주된 줄거리다가, 제석천이 살해당하고 단랑이 최종보스로 등극. 풍운은 단랑과의 대결 끝에 단랑을 쓰러뜨리지만, 보경운은 섭풍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얼음 속에 파묻어 버리고 냉동인간 상태로 10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다.
10년의 시간이 흘러 풍운의 자손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정의한이었다가 정파의 위선에 실망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는 보경운의 아들 보천, 섭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도에 빠진 역풍 등.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다소 스토리가 어지러운 것이 문제.
보경운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소에는' 착한 인물로 보이며, 실제로 이 만화에서 독보적인 인성갑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살육충동이 있어서 빙심결을 사용하여 억제하고 있다는 설정도 있으며 1부 막판에는 마도에 빠져서 거하게 폭주하는 등. 여러모로 복잡한 캐릭터. 선풍퇴를 통하여 경공술이 뛰어나다는 것이 부각되어 후반부에는 '바람의 신'으로 불리게 된다.
제석천에게 낚여서(…) 천문에 들어가지만, 천문의 문도로서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과 회공과의 우정에 갈등을 느낀다. 결국 회공을 돕기로 하고 천문을 배신한다. 최후의 순간에는 제석천의 공격에 받아 얼음에 갇힌 회공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부딪쳐서 얼음을 부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장렬하게 사망. 그러나 그의 피가 얼음의 틈새로 뚫고 들어가 회공의 몸에 닿는 순간, 무이의 죽음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 회공은 연철수의 공력이 극한을 넘어서 얼음을 뚫고 나와 제석천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활약을 하게 된다.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다'라는 예언자 니보살의 예언 때문에 자신이 천하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심복 제자 보경운과 섭풍에게 편집적인 경계심을 품고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사용한 '마가무량'의 위력에 패배. 이후 천하회의 내분으로 도리어 이전의 부하와 협력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평범한 촌 늙은이가 되어서 딸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만 생각하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던 딸이 보경운의 검에 실수로 살해. 절망에 빠져서 보경운의 절세호검에 스스로 몸을 찔러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보경운이 무쌍검을 훔치려고 천하제일루에 잠입했을 때 갑자기 천지12살과 함께 등장. 이들은 사실 웅패와 협력하는 관계였다. 천하제일루에 숨어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이들의 악행을 보다못한 검성에 의해서 천지가 박살나버렸고 간부였던 천지12살과 도주했는데 도중에 웅패를 만나서 그와 협력하는 대신에 검성으로부터 숨겨주기로 했기 때문.
이후 어찌어찌 흘러가서 '천문'에 가담. 그러나 이미 풍운과의 실력차가 어마어마하게 나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은근슬쩍 퇴장한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변장을 하여 음모를 꾸미는 것이 특기지만, 대체로 독자들은 갈수록 절심 패턴에 익숙해져서 중반을 넘어가면 '이새끼 절심이네'라고 직감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좋은 싸움 친구(…)였던 남림검수 단수의 아들. 나이는 섭풍보다 조금 어리다. 섭풍과 함께 섭인왕,단수가 실종된 뒤에 천하회에 거두어졌지만, 이름이 풍운이 아니라서 그런지 웅패는 단랑을 자신의 직전 제자로 들이지 않고 그냥 일반 제자로 만들었으며, 단랑은 열등감에 점점 삐뚤어지게 된다. 결국 천하회를 배신하고 무쌍성 일당과 협력하게 되며, 본래 친구였던 섭풍과 길이 갈려서 대립하는 입장이 된다.
검성이라 불리는 만큼, 본래 검술 뿐만 아니라 인품으로도 존경받던 인물. 하지만 초반부터 상당히 깨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냉정하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일은 많이 하고 다녔지만, 실제 인성은 거의 레기(…)에 가깝다.
사실 강호에 나오던 시점에서 이미 수명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천하회에 나타나서 무쌍검을 꽂아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떠나는데, 이후에 자신이 평생동안 검술에만 몰두했으나 사실 이룬 것이 거의 없다고 자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웅패를 쓰러뜨리고자 하지만, 수명이 3일 밖에 남지 않은 몸이었기 때문.
자신이 검술에 몰두하느라 버렸던 여인을 죽여버리거나(…), 무명과 억지대결을 하고 그만 다 내려놓으라는 무명의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 등. 고집센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웅패와의 결전에 나서지만, 결전장에 들어오기 전에 계단에서 이미 수명이 다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육체가 죽었음에도 오직 의지만으로 자신의 무공 인생을 모두 담은 '성령검법 검입삼'을 구현. 웅패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지만, 보경운이 방해로 실패하고 눈도 못 감고 죽고 만다. 이후 사체는 --아직 깨끗한 몸이었던-- 검신이 회수하여 조촐한 '검성지묘'에 묻힌다.
천하회의 하녀. 보경운과 섭풍, 진상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여성. 요약하자면 진상과 결혼하고, 보경운과 관계하고, 섭풍을 사랑한 여자. 웅패의 명령으로 진상과 결혼했지만, 보경운의 대쉬에 밀려서 육체관계를 맺는 간통을 하고 있었고, 또 사실 가장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섭풍이었다. 보경운이 가장 미친듯이 사랑했던 여인으로서, 공자의 사후에 한참 동안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도 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그래도 여자는 자꾸 꼬이고 결혼도 몇번이나.--
진상의 사후에 웅패가 약간 쓰는걸 제외하면 묻혀 있었으나, 사실 진상이 자신의 무공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고향 마을에 천상권보를 보내 두었다. 그걸 부여국 성왕이 습득하여 사용한다. 여기서 본래 배운장,풍신퇴와 함께 동방창룡의 동료가 만든 무공으로서, 사실 배운장,풍신퇴 이후에 천상권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천상권이 가장 우위에 있다는 설정이 밝혀졌으나. 진상도 성왕도 쩌리스럽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천상권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었다.
'''성령검법 검입삼''' : 웅패와의 대결에 나서던 검성이 노령으로 기력이 다하여 미처 대련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에 완성한 성령검법의 궁극형태. 검성이 죽음을 맞는 순간의 의지로서 구현된 검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양기와 생명의 표상인 무명의 '천검'에 대응하는 죽음의 검법. 무림의 신화, 검성을 능가하는 실력을 지닌 영웅 무명 조차도 검입삼은 천하무적의 무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 그 설명에 걸맞게 위압감은 엄청나다.
그 실체는 검법인지 무공인지도 불확실한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멈추고''' 자기 혼자만이 움직이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적에게 일격을 날리는 검법이다.--[[더 월드]]-- 단순히 혈도를 찌르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지를 검기로 억압'해서 시간이 멈춘 상태로 다가가면서 걸리는건 전부다 죽음을 맞게 하는 무차별 살상기술이다. 시간을 멈추는 공격이므로 당연히 검입삼은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듯. 엄청난 사기성에 웅패도 죽음을 각오했으나, 검성이 웅패도 같이 하늘로 데려가기 직전에 보경운이 검성의 시체에 발길질을 날려서 계단에서 날려버린 탓에(…) 검입삼이 깨지고 검성의 영혼이 그대로 승천하면서 웅패는 살아남는다.(다만 검성의 영혼이 찌른 손가락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
너무 사기라서 그런지 오랫동안 묻혀 있었으나, 이후 소검성이 성령검법을 습득하여 검이십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노검성의 검이십삼과는 뭔가 다르다고 하고, 실제로 노검성 만한 포스는 나지 않는다.
- 김상조 . . . . 25회 일치
훗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영수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는 특검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조언을 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 등에 대해 특검에 '''족집게 강의'''를 함으로써, 제2차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2090.html|#]] 2016년 12월에 열린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http://v.media.daum.net/v/20170315111345502|#]]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상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언론에서 흔히 이력이나 일부 발언들을 인용하여 '재벌 저격수' 등의 별명을 붙여 강경한 반(反)재벌주의자 내지는 좌파(?)로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김 교수의 학문적 베이스부터가 주류경제학이고 그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운동을 하며 내놓은 주장이나 연구자료를 봐도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도입을 주장하는 정책도 해외 [[선진국]]의 선례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 편.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스탠스의 경제학자인 것은 맞으나 그 바탕이 주류경제학이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 내지는 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2017년을 1917년(...)으로 읽는 실수를 저질렀다.
김상조 후보자의 청문회에 참여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당에서 시킨 일이라면서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432.html?_ns=t0|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사과를 표했다.]][* 그러나 이 기사 내용은 다분히 정치 공세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한다. 원래 상임위장에서는 막말과 고성이 오가더라도 마칠 때에는 의례적으로 서로 악수하며 덕담을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을, 자극적인 기사로 내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상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국무총리 청문회에 이은, 사실상 2번째로 청문회를 겪은 인물이기 때문에 야당의 집중공세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마치 김상조가 '논란이 무척 많은'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상조 임명을 강행하고 이뤄진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83%를 기록했을 정도로 국민여론은 오히려 김상조 임명을 환영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김상조가 가장 먼저 청문회에 나서서 야당의 혹독한 의혹공세를 버텨냄으로써, 이후 청문회에서 실제로 무시못할 수준의 의혹을 지닌 다른 후보들의 흠결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아. 이번에도 야당이 별것도 아닌 걸로 트집잡나 보네."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넘어간 경향이 있다.
김 후보자 측은 “당시 중학교 교사였던 김 후보자 부인이 지방 전근 발령 난 상태에서 건너편 친척집에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주소지를 옮겼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 친척집에 살지는 않고 2주 만에 서울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사 갔다. 김 후보자 측은 “그런 식으로는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부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했다”고 설명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260204001&code=210100|관련기사]]
부동산 정보 업체에 따르면 당시 해당 아파트의 평균 시세는 1억 7천만 원에서 1억 9천만 원 정도였으며, 따라서 계약서는 실제 거래가로 작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구청을 통해 국토부에 신고된 가격은 5000만 원이었기에 신고가 축소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부동산 실거래 가격 신고제도가 시행된 2006년 이전에 이루어진 거래이기에 불법행위는 아니지만 후보자의 도덕성에 흠결이 갈 수도 있다. 김 후보자 측은 해당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의혹제기에는 좀 문제가 있다. 기사와는 달리 실제 외국계 기업이나 금융권에서 1개월 수준의 체험형 단기 인턴 과정에서 학점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않으며, 게다가 일반적으로 같은 학교 기준에서 이과 전공 학점은 문과 전공 학점보다 크게는 +1.0~+1.5 정도를 더 높게 쳐주는 경우도 있다. 만약 하단의 경우처럼 조건 자체에 학점 몇 이상이 제시되어 있었다면 논란의 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논란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가 그리 없는 분야라는 의견 또한 있다.
현재 김상조 후보자 측에서는 지원자가 1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채용되었다고 해명하였다.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19766|#]] 이코노미 뉴스에서는 당시 조 씨의 이력서를 공개하였는데, 주장대로 토익 점수가 1점 미달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외 능력에서는 TESOL과 TEFL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였으며, 해외 거주 기간이 2년이 넘는다. 때문에 옹호하는 네티즌 측에서는 당연히 다른 후보가 있으면 모르되, 이 정도 자격증 및 경험 보유자는 학원을 가도 3천 이상의 연봉을 받는 수준이며, 사실상 취업 비리가 아니라 하향 지원 내지는 재능 기부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학교 입장에서도 학기 시작 전에 강사를 구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아내는 자기 입으로 자기 재벌 저격수의 별명을 가진 남편 이름을 남들에게 제대로 말하고 다니지 못한다면서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김상조 후보자는 현재 나무위키에도 계속 표기되었던 것처럼 '케임브리지 초빙교수'를 주요 이력을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문연구원 자격에 불과하고 이를 초빙교수로 기재한 것은 허위표기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792924|관련기사]]
다만 당시를 기억하는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네 보고서 공개하기 어렵거나 혹은 연구자 업적에라도 도움이 되게 해준다고 따로 논문 내도 된다고 하던 시절이었고, 그것을 조건으로 액수를 적게 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기사 내용에도 2000년 3월부터 8월까지 총 5개월간 3명이 공동 연구비로 받은 비용이 700만 원으로, 월당 1인 비용으로 치면 50만 원이 채 안 되는 비용이기는 하다. 자료 수집 비용조차 제대로 안 주던 시절의 이야기. 게다가 학계의 관행에 비추어 봐도 2000년 당시에는 자기표절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건의 경우 악의적인 표절이라기 보다는 한 보고서 가지고 두 번(용역보고서+연구논문) 활용했다는 것이 문제인데, 당시에는 이러한 경우가 흔히 용인되었다. 지금도 레퍼런스만 달면 용인해 주는 경우가 많다. 연구용역 발주기관에서 이를 용인해주지 않는다면, 미리 계약서에 연구논문 출판 불허를 명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용역비를 주던가 한다.
=== 실화죄 ===
한성대 교수 시절인 2011년, 담뱃불로 인해 쓰레기통에 불을 낸 적이 있었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학교에 사과의 뜻으로 발전기금도 낸 것을 보면 재산피해에 대한 보상까지 마무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실화죄는 특별히 걸리는 것 없이 잘 넘어갔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한 유일한 주체다. 그 힘을 오남용하는 삼성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다.[* [[최순실 특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이재용·박상진·최지성·장충기·황성수|공판]]에서 이 말을 인용했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25회 일치
||<:><#FE3E5F>'''{{{#white 별명}}}''' ||<#FFFFFF>'''배추'''[* 아이린의 본명인 배주현의 '배주'가 변형된 것. 학창시절부터 쓰였다고 한다.], '''현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애칭이라고 한다.], 우리현[* 우리+배주현], 배토끼[* 외모가 [[토끼]]를 닮았다. 그러나 아이린은 이 별명을 싫어하는 듯 하다.~~변형된 것은 배추토끼.~~ [[http://i.imgur.com/TtHvNRy.jpg|배토끼]]], 배주디[* [[주토피아]]의 [[주디 홉스]]라는 캐릭터를 닮았다. [[2016년]] [[9월 25일]] 분당 서현에서 진행된 공개 팬싸인회에서 한 팬이 아이린에게 주디 모자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게 아이린의 [[레전드]]가 되면서 확실하게 별명으로 굳혀졌다.], 다리미 요정[* 다리미질을 좋아하고 잘한다. 숙소에서 예리의 교복을 직접 다려~~준다~~줬다.], 배프로디테[* 본명 '배주현'+[[아프로디테]]], 동안리더, 선녀언니[* 중국에서의 애칭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https://twitter.com/Joekim0614/status/1000671256813780995?s=19|여기로]]]--, 무통배선생--, --배들짝--,~~조장선생님~~ ||
[[겁]]이 많은 편이다. 예리가 레드벨벳에 합류하기 전에 혼자 방을 쓸 때 불을 켜놓고 잤을 정도.[* 그러다 방을 바꿔서 조이와 예리가 한 방을, 언니 셋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 레드벨벳은 활동 시기마다 일부러 방을 새로 배정한다고 한다. 7월 7일 활동 시기에는 웬디, 예리와 함께 썼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놀라는 모습이 포착된다. 또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계단 같은 걸 내려갈 때 멤버들이 손을 잡아주며--이게 약간..?--[* 최근 리얼리티에서는 손잡이를 잡으면서 혼자 내려오긴 했다.] SM 유리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도 밑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롤러코스터]]는 잘 탄다는 것. 순간 무서운 것만 넘기면 스릴을 느껴서 좋다고 한다.
잘 울지 않는 성격이며, 눈물을 흘린다 하더라도 본인 감정을 잘 컨트롤한다. 음악방송 등에서 멤버들이 울 때 항상 멤버들을 진정시켜준다. 이런 행동에서 보아, 이끌어 나가는 것 보다도 다른 멤버들과 소통을 자주하는 리더로, 실제로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다른 멤버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는 대신 최대한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공유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지만 멤버들이 혼란을 겪고 있거나 중구난방한 상황이 되는 경우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편이다.
다만 보컬 위주의 '''{{{#a562a2 벨벳}}}''' 컨셉의 곡에서 파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아이린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본인의 파트를 자주 담당하지 못한다기보다는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미니 앨범 1집 수록곡 <Take It Slow>와 정규 1집 [[The Red]]의 수록곡 <Cool World>와 <Don't U Wait No More>에서는 개인파트를 포함한 후렴구 부분도 맡아서 다른 보컬 위주의 수록곡보다 파트가 많은 편.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이전보다 나아진 기량을 보인다.
랩은 전형적인 SM 스타일이며 Ice Cream Cake의 공개 당시 멜론 리뷰창에 랩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Dumb Dumb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곡 제목들[* You need to 'Beat It' / That boy Michael Jackson 'Bad' / 난 너의 'Billie Jean'이 아냐 / Don't you 'Leave Me Alone' / 하지만 애매한 반응 난 원해 'Black Or White' / 포기 못 해 나의 'Man In The Mirror'. Ice Cream Cake와 Dumb Dumb의 랩은 [[XXX(가수)|XXX]]의 [[김심야]]가 작사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RrojDCT9ZIM|#]]을 활용해 인상적인 랩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레드컨셉의 곡에선 꾸준히 메인래퍼로서 랩 파트를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도 안정적인 랩 실력을 보여주는 편이다. 최근에 컴백한 빨간 맛에서는 빠른 랩으로 다시 한번 메인래퍼의 실력을 검증하였다.
[[예리]]의 영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상 공식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다른 닮은꼴로는 가수 [[투야]]의 [[김지혜#s-3]], 배우 [[서지혜(배우)|서지혜]][* 라디오 스타에서 만남이 성사 되었다!], [[이선빈]]과 가수 겸 배우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박한별]]을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레드벨벳을 본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아이린과 슬기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사실 파고들어보면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별로 없다.]--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은 곱게 나이 들면 [[노현정]], [[이휘향]]과 닮았다고 한다.--
* 닭을 전혀 못 먹는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일주일 동안 계속 간장치킨만 먹다 질려서 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닭과 관련된 음식을 전혀 못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린 어머니는 왜 그 때 일주일 내내 치킨만 시켜 먹었는지 기억을 못 하신다고(...). 때문에 [[주간 아이돌]]에 출연했을 당시, 랜덤플레이댄스에 실패 해 상품으로 걸린 치킨과 피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때 웬디가 아이린을 배려해 치킨을 포기했다. --착한 여자 웬디--
*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맥주]]를 싫어한다고.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같다고 말할 정도. 본인이 [[소주(술)|소주]]파라고 밝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 대신 마인드 맵으로 정리하면서 푼다고 한다.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레드벨벳]] 멤버들 중 술이 가장 세다고 한다. 실제로 레벨업프로젝트2에서 남해독일마을에서 예리를 제외한 맴버들이 독일 맥주를 마실때 아이린만 마시지않았다.
*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주간 아이돌]]에서 체전굴로 유연성을 측정했는데 1차 시도에서 35cm로 2위였던 [[AOA(아이돌)|AOA]] [[초아(AOA)|박초아]]의 기록(34cm)을 깨고 2차 시도에서는 40cm로 1위였던 [[원더걸스]] [[혜림]](37cm)까지 제쳐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박초아, 혜림과 마찬가지로 [[정형돈]]이 신기록을 위해 억지로 한 손만 당겨서 나온 것이다. 순위와 상관없이 아이린의 정확한 체전굴 기록은 원칙대로 측정한 1차 시도의 35cm 정도이며 이는 현 체대입시 실기에서 만점을 받는 기록이다.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생각하면 굉장한 유연성이다.
* 2016년 4월 1일. [[만우절]] 장난으로 [[뮤직뱅크]]를 진행하다 실신하는 연기를 해 시청자들을 다른 의미로 심멎시켰다(...). 이 영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15만개 이상 받았을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wyv6cWkkc|#]]
* 2017년 2월 21일, [[중국]] 사람들이 보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마무리 하던 중 특유의 놀라는(?) 소리로 국내 팬들에게 심쿵을 선사했다.[[https://youtu.be/nwg61zpWd-8|영상]] 거기에다가 아이린이 출연하는 모바일 게임 광고에서 재활용되면서 그 귀여움의 파급력이 입증됐다.~~끼윱! 이이잉ㅠㅠ~~
우선 이제까지 아이린을 가까이서 많이 보아 온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라디오 스타 MC인 규현이 [[http://i.imgur.com/WkOZlpk.jpg|녹화 당시 한 말]]처럼 최대한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남자쇼에서의 모습과 대비된 이유는 양남자쇼는 레드벨벳 멤버들이 함께 출연했던 만큼 아이린이 어울릴 사람이 있었지만 라디오 스타에서는 레드벨벳 멤버 중 혼자서 게스트로 출연한 첫 토크쇼였고, 아이린이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둘째치더라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직속이자 아이돌 가수 세계에서 하늘같은 대선배였고 SM 서열 순위 1위 강타와 친하고 같은 동료였던 문희준과 토니안, 그리고 SM 선배인 규현과 대선배가수 윤종신과 김구라, 김국진[* 더군나나 김국진은 아이린이 어렸을 때인 1990년대 중후반에 인기대스타였다! 위축되는게 당연한것이다!!!] 그리고 배우로 오래 활동했던 서지혜 사이에서 있었던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서지혜와 서유리는 80년대 중반 생으로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토니 부인, 칠현 부인이라고 자칭했다.'고 할 정도로 과거 H.O.T.의 열렬한 팬이었고, 문희준과 토니는 H.O.T. 멤버였던 만큼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되는 네 사람 사이에서 91년생인 아이린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나 토크에 참여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이린이 신인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해도 데뷔한 지 2년은 된 상황이었고,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해도 연예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을 정도라면 SM이라는 국내 최대 대형 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이 되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라디오스타 논란은, 아이린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린을 제외한 다른 라디오스타 출연 게스트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서) 스케줄을 잡은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말만 적었을 뿐 아이린은 방송 내내 [[http://cfile23.uf.tistory.com/image/2645454E584906A32885C5|90도로 허리를 펴고 앉은 채로 박수를 치거나 잘 웃는 등 리액션을 계속하였고]] 다른 게스트의 과거 사진에 놀라고 비웃는 와중에도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타팬들의 의견마저도 말주변이 없었을 뿐 오히려 태도가 좋았다는 의견도 있다.
2018년 3월 18일 [[레벨업 프로젝트#s-2|레벨 업 프로젝트 시즌 2]] 1000만 뷰 돌파 기념 팬미팅 현장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말했는데, 이걸 가지고 [[레드벨벳 갤러리]][* 현재 [[레드벨벳 갤러리]]는 사실상 [[국내야구 갤러리]]와 다르지 않은 상태로([[레드벨벳 갤러리#s-3.4|참조]]), 온라인 상에서 포토카드를 불태우는 등의 반응은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즉 진짜 팬이라고 하기 어려운 어그로들이 많은 곳.]와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남혐]]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며, 아이린의 굿즈 등을 훼손하는 사진을 올리는 등 비난했다. [[http://naver.me/5MT1aJQV|기사]][[https://youtu.be/2aCMpZhC4tw|영상]].
'''특정 성향의 서적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특정 성향으로 단정짓고 비난하는 행동은 매우 잘못되었다.''' 또한 어떤 책을 한 집단에서 많이 사용하거나 상징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반드시' 그 집단의 일원인 것도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페미니스트라고 단정짓는다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사람은 공산주의자고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은 사람은 메갈이 된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일베가 되진 않는 것과 같다. 또 '이 책을 읽었다=무조건 페미'라는 그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서 혹평한 사람들, 처음부터 심층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탐독한 독자들도 '''전부 다'''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된다. 왜냐?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문화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한 사람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명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해당 발언(레벨업프로젝트2 생방송 팬미팅)이 나올 때, 아이린은 책 제목을 말할 때도 "그... 82년생... 그거 읽었고..."라며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했다. 읽었다는 다른 책들도 대다수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책들로, 제목을 기억하지 못했던 주황색 표지의 책도 시/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인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이란 책이다. 사실상 아이린의 취미가 독서이고 과거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인터넷 상의 남녀갈등과는 별개로 그저 휴가를 가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읽었고, '그중에 우연히' 82년생 김지영이 포함된 것이었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을 구실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것은 그냥 생트집일 뿐이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30/2018033001538.html|조선일보]]에서는 "남성 청년층의 반페미니즘이 점점 도를 넘는다"라 평가하며, "소비자 지위를 악용해 사실상 사상 검증을 벌이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3/2018041303076.html|오피니언]]에서는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물론이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가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노출되는 상황"이라는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못한 채 언제나 방긋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박제된 인형'이나 마찬가지"라 평가했다.
2000년 이후 실업 등 청년 문제가 심각한 저성장 시대에 자란 청년층은 사회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다.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을 때 그 의견이 가장 잘 수용되는 분야가 바로 서브컬처 업계이기 때문에 갑질이 계속된다는 것이 주류 언론들의 일관된 견해이다. 이들은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바탕으로 을의 사적 영역인 SNS 등을 사찰하며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 공격한다. 비록 이러한 사적 영역이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세태에도 문제가 있으나 그것이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아이린은 같은 레드벨벳 멤버들과 함께 출연하지 않는 방송(즉, 단독 게스트)로서의 활약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린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많이 가리게 되면서 친해지게 되면 말이 많아지는 성격상 친한 멤버들과 함께 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에 단독으로 출연하게 되면 아이린에게서 빵빵 터지는 분량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레드벨벳 멤버들과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선 오히려 아이린의 매력이 보여지게 되면서 빵빵 터지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주간 아이돌]], [[양남자쇼]], [[공조7]], [[아는 형님]], [[오빠생각(예능)|오빠생각]]을 보게 되면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의 논란은 기억되지 않을 만큼 캐릭터가 확보되면서 매력이 잘 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린이 다른 레드벨벳 멤버들 없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활약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뮤직뱅크]]에서 박보검과 커플 케미를 선보이며 역대 뮤직뱅크 MC 라인 중 가장 최고의 조합이었다고 평을 받을 정도면, 적어도 MC 역할을 하는 것에서 만큼은 확실한 화제성과 캐릭터를 보장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런드리 데이]]에서도 처음엔 낯을 가리고 쑥쓰러워 했지만, MC로서의 역량은 부족하지 않았고 자신의 밥값을 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이 세탁 토크쇼라는 다소 색다른 포맷임에도 자신이 취미삼아 하는 빨래 및 다림질로 인하여 나름 확실한 정보로 인하여 분량도 제대로 나오기도 하였다.
- 운명의 붉은 실 . . . . 25회 일치
일본에서는 운명의 연인들은 서로의 새끼 손가락 끝이 가느다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전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붉은지 아느냐고 하면….
일반적으로 중국 고전인 『태평광기(太平広記)』 159권, 『속유괴록(続幽怪録)』에서 인용된 「정혼점(定婚店)」이라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붉은 끈으로 남녀를 묶어서 맺어주는 신비한 신령인 월하노인(月下老人)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타이완, 타이페이에 있는 용산사(龍山寺)에서는 월하노인(月下老人)을 모시고 있다. 이 사당에서는 월하노인에게 인연을 맺어줄 것을 빌거나, 나무 조각을 던져서 좋은 인연이 있을지 점을 치거나, 부적으로서 쓸 수 있는 붉은 실을 팔고 있다고 한다.
참조…【타이완】연애 파워스팟!「강력한 인연 맺기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 용산사(龍山寺)에서 운명의 붉은 실을 입수
붉은 실의 전승(赤い糸の伝承) 미카도만게츠의 음앙점술(土御門萬月の陰陽占術)이라는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붉은 실 이외에도 다양한 색상의 실이 있다고 주장한 듯 하다.
붉은색 -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어지는 것. 3개 있으며, 인연이 강한 사람과의 실이 가장 굵다.
오행사주추명술(五行四柱推命術)이라는 점술 사이트에서는 운명을 잇는 다섯 개의 색의 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료로 생년월일을 받아 상대와 점술을 쳐주고 있다.
붉은 실 - 운명의 사랑의 상대
파란 실 - 마음을 치유해주는 상대
노란 실 - 자신을 향상시켜주는 상대
녹색 실 - 트윈소울인 상대(트윈소울?)
검은 실 - 나쁜 인연이 있는 상대
- 추경호 . . . . 25회 일치
|경력 = 제6대 [[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br/>제4대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기획재정부 제1차관]]<br/>제2대 [[대한민국의 국무조정실장|국무조정실장]]
1987년부터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물가정책국,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을 거쳤고 1993년부터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회개발계획과, 경제홍보과, 지역과에서 일했다.
1996년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 서기관에도 몸을 담았다. 그 뒤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파견나갔다가 2002년 다시 재정경제부로 돌아와 기획관리실에서 8개월 일했다. 이후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과 금융정책과장 등 금융분야 핵심보직을 섭렵했다.
2013년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기획재정부 제1차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4년 7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됐다.
* 1987년 9월: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물가정책국,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
* 1998년 3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과장
* 1998년 3월: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실 과장
* 2002년 7월: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 행정법무담당관
* 2010년 5월: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비상경제상황실장
* 2014년 7월 ~ 2016년 1월: [[국무조정실]] 실장
* 2019년 3월 ~ 2019년 5월 : 자유한국당 文정권 경제실정백서특별위원회 위원
2014년12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우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교우상’을 받았다. 이 상은 1980년부터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가 각 부문 특성에 맞춰 뛰어난 동문에게 수여하고 있는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품성과 덕망도 함께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각 기관에서 공공, 민생, 경제·금융 분야 등 3대 분야에서 우선 추진할 과제를 선정하고,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마련해달라.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척결해가되 비리의 환부만을 정확히 찾아 제거함으로써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유념해달라. "(2015/03/20 서울청사에서 추 실장의 주재로 열린 부정부채 척결 관계 차관회의에서)
물가와 경제, 금융정책 부문에서 오래 근무한 덕에 실물경제와 금융 양 부문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뛰어나다. 꼼꼼하고 업무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2005년 은행제도과장으로 재직할 때 재정부 직원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 선정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실물경제와 금융 모두 정통한 경제관료|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7|날짜=2015-04-07|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직책 = [[대한민국의 국무조정실장|국무조정실장]]
- 스틸오션/독일 . . . . 24회 일치
||<bgcolor=#cccccc> '''가격''' || 8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Exp. ||
||<bgcolor=#cccccc> '''가격''' ||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Exp. ||
>7형(Type VII)의 기본 시험형이었던 7A형(Type VIIA)은 독일 해군의 공격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형에 기술적 기반을 둔 VIIA형 유보트는 1933년 설계되었다. 7형은 뛰어난 성능과 빠른 잠항 속도를 자랑했다. 모두 합쳐 11대의 7A형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이중에는 대서양 해전의 첫 희생양인 여객선 아테나(Athena)를 격침시킨 U-30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32는 배수량 42,348톤 정기선 엠프리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을 격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손실된 7A형 잠수함은 U-29와 U-30 단 두척이었다. 살아남은 7A형 잠수함은 모두 자침되었다.
||<bgcolor=#cccccc> '''가격''' || 145,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11,4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499,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8,3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1,10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50,8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2,13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101,000 Exp. ||
>9C형(Type IXC)은 연료 저장량을 43톤 늘려 항속거리를 증가시킨 추가 개량형이다. 지휘실 잠망경이 사라졌다. 기뢰 부설 작전을 위해 기뢰실을 증설했다. 총 54척의 9C형이 생산되었다. U-505는 시카고 과학 산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U-511은 전쟁 당시 일본에 넘겨져 RO-500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bgcolor=#cccccc> '''가격''' || 4,31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143,0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5,51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35,0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3,5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30 Exp. ||
||<bgcolor=#cccccc> '''가격''' || 13,9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1,500 Ex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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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cccccc> '''가격''' || 448,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4,1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974,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43,3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1,91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87,900 Ex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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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cccccc> '''가격''' || 4,93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04,0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8,680,0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330,000 Exp. ||
||<bgcolor=#cccccc> '''가격''' || 3,1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70 Exp. ||
- 완벽한 공산주의 . . . . 24회 일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상론, '''SF 창작 설정'''.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이 갖춘 과학적 지식과 따라서 상상한 것을 뜻하므로,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체제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하여 이 문서에서는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을 떄떄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로서 써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SF적으로 창작된 이상론이라고 봐도 좋다.
사회주의자들이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를 '불완전한 공산주의'라고 까면서 제시하는 사회. 일부 사람들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도 한다. 현실 공산주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문서로 설명한다.--공산주의 문서가 없잖...--
[[소련]]은 사회주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소련에 비판적이던 일부 좌파 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외면하며 소련과 같은 형태가 아닌 '완벽한 공산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이 당시는 비주류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소련]]을 시작으로 하여 냉전 시기에 역사상 나타났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대부분 정권교체로 공산주의가 폐기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소련을 추종하던 각국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러한 '현실'에 대응해야 하는 문제점을 실감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망했잖아. 그거"에 대항하기 위한 "완벽한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완벽한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1) 망했잖아 그거"라는 사람을 일단 "무식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소련은 사실 공산주의(2)'''가 아니고''', 공산주의란 내가 말하는 '완벽한 공산주의'가 맞는 거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상대방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활동이 아니라, 단지 언어의 개념정의에서 오는 혼란에 불과하다.
"공산주의(1) 망했잖아 그거."에서 공산주의(1)은 당연히 현실의 공산주의를 내세운 소련과 그 위성국들을 뜻한다. 왜냐하면, '망했다'는 발언 자체가 '현실의 체제'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2)는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의 창작물'에 불과하다.
* 공산주의(1) : 공산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걸었던, 소련과 그 위성국들. 혹은 그들이 실제 현실에서 실천했던 공산주의 체제.
"머릿 속에서만 구상하는 이상적인 체계"가 "망했다"고 표현되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기 어렵다. 왜냐하면 '''망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실존하는 체제'''에만 쓰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실존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도 않는 것'''은 망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 완벽한 공산주의는 현실에 나타날 수 있는가? ===
문제는 애초에 이것이 창작설정이라는 점에 있다. 만일 비슷한 체계가 실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게 창작설정과 100%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지금 이 현실의 체계가 100% 공산주의 체계가 맞는가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설사 99%의 인간이 이 체제는 공산주의가 맞다고 주장해도, 아마 그때도 누군가, 삐딱한 사람 한둘은 해당 정의에 반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두가 동의하는 완벽한 공산주의 체계가 실존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인증'해줄 카를 마르크스가 죽어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히 비슷한 사회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 때 쯤에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다.
사실상 현실에서 사례가 존재하지 않고, SF장르에나 나올 법한 개념에 가깝다. 일부 SF장르에서 제시되기는 했다. 원래부터 창작컨텐츠이므로, 창작물에서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 자신의 설정을 현실이라고 주장하며 조직을 만들고, 사회에 충격을 준 인물로서, 카를 마르크스와 비슷한 인물로는 '[[사이언톨로지]]'를 만든 SF작가 '론 허버드'가 있다.
- 우현(배우) . . . . 24회 일치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상]][*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상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상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상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사진 왼쪽에 [[태극기]]를 들고있는 사람이 우현이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여담으로 가운데에 [[이한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청년이 정치인 [[우상호]]이다. 우상호 의원 회고에 따르면 저 당시 [[4.13 호헌조치]]로 투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행부가 단식이냐 삭발이냐 선택하기로 했는데, 우현은 머리를 밀고, 본인은 단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상호 의원이 우현의 머리칼을 직접 밀어줬다고. 참고로 우측에 안경을 쓴 채로 고개를 숙인 사람이 [[안내상]]으로 오인받고 있는데, 안내상이 아니다.[* 우상호의원의 말에 의하면 안내상은 당시 집행부가 아니라 지하에서 암약하던 실행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황산벌(영화)|황산벌]]에도 출연한다. 2004년 [[시실리 2km]]의 해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일반인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관심도 받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ChRUT0rck9A|니가 94야 그럼?]] 흥행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제일 늙은 막내 조폭'이라는 역할 설정의 매력으로 영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도 그 장면이 나오는 등, 출연자 중 우현만큼은 대중에게 얼굴을 꽤 알린다.
시트콤을 하면 노총각 역을 맡는다. 거기다가 특유의 노안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10살 넘는 역할을 맡는다. 40대 시절에도 60살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각본가 중 김석윤 PD, 이남규 작가와 인연이 깊다. 사실 데뷔작인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이 두 사람의 작품이니..
또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참가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등장만으로도 많은 참가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엄청난 [[노안]]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봉주]] 등장 전까지 많은 참가자들이 못생긴 순위 1위로 찍었으며[* [[이천수]]는 우현을 '''레전드급이라고 평했다'''.] 이봉주가 등장하기만을 고대했다. 시즌1의 [[고창석]][* 배우, 노안, 참가자들의 경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과 유사한 역할일 듯. 등장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결국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의 최고의 매력남으로 뽑혔다.[* 정작 우현과 절친한 사이인 우상호 의원은 그가 못친소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외였다고 한다. 그는 한번도 우현이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2011,TV조선) - 천만금 역
* [[시실리 2km]](2004) - 해주 역
* 우리의 여자들 - 시몽역. 라이어 이후로 17년 만에 서는 연극무대. 출연 계기가 표면적으로는 친구인 [[안내상]]의 권유지만 실제로는 [[쇼미더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에 도전하는 래퍼들을 보고 출연하기로 결심했다고..
평생 가난은 몰랐고, 술집을 운영할 때도 연극을 할 때도 사실 치명적 경제 사정이나 배고픔의 경험은 없었다고 한다. 후일 [[안내상]]은 우현을 가리켜 '최고의 반전남'이라고 표현하였다.
상기했듯이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그것도 연세대 수석입학자에다 총학생회 사회부장직까지 맡은 수재였으니.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외모에 놀 수도 없고 운동도 싫어해서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집안 환경이 공부 잘하는 가족들도 많고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였다고. 그에 반해 아들 준서는 공부에는 영 관심 없고 게임에 너무 빠져서 고민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는 게임도 있지만, 우현 부부 자체가 공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키운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배우 [[조련(배우)|조련]]으로, 남편과 다르게 상당한 미인이다.[* 아들 준서도 ~~다행히도~~ 엄마를 닮아 상당히 훈남이다.] 또한 배우로서는 아내가 훨씬 선배다. 첫 만남은 연극 제작자와[* 사실은 당시 우현도 배우가 아닐 뿐 연극 제작자로 참여했었다.] 배우의 관계로 만났고, 우현이 연극 연기를 시작한 뒤 본격 대쉬,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데 친구 [[안내상]]이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오히려 안내상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련이가 너무 예쁘니까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어디다가 들이대느냐. 들이댈 곳에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우현이 장기간 아내에게 호감을 표시하였으나 아내가 알면서 적잖이 모른 척하거나 거부했고, 그걸 그전부터 조련과도 친분이 꽤 있던 안내상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내상과 조련 두 사람이 같이 부부 역할로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당시 조련이 상당히 미인이라서, 주변 남자 배우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상은 우현이 상처만 크게 받고 끝날까 걱정되어, 어떻게든 일찍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적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남편 우현이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내가 더 좋아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렇게 다정다감하거나 로맨틱하지 않지만, 아들과의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을 만큼 바른생활 사나이다. 실수해도 타박하거나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술버릇도 없어서 좋다."고 한다.
장모님은 유명 소설가인 故 곽의진 씨로, 백년손님에 함께 출연했다.[* 곽의진 씨는 103세의 아버지와 함께 [[인간극장]]-세월이 가면편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또한 우현 가족도 아주 잠깐 출연했었다.] 또한 장모님이 실제로 워낙 [[동안]]이고 우현이 워낙 노안인 데다가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아, 장모-사위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로 종종 오해를 받았았었다.[* 사실 처가 자체가 동안인 인물들이 많으며, 아내와 아들도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편] 실제로도 <백년손님 자기야>에 출연 당시에도 오해하는 장면이 잠깐 나왔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또한 현재 사는 아파트 말고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에서도 주택이 있으며, 실제로 가족들과 3여 년간 살았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김천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밝혀졌는데, 주유소들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해서 장모님의 추천으로 아들의 정신 건강을 치료할 겸 진도에 내려와 집을 지었다고. 가족들은 김천에서 지냈고, 본인은 일 때문에 [[대구]]과 진도를 오가면서 살았었다.[* 때문에 몇 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했고, 주변에서는 "이혼한 거 아니냐"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그 진도 집은 [[동물농장]] 견스테이와 유자식 상팔자 특집 코너[* 대표적으로 아빠, 삼시세끼를 부탁해! 코너. [[홍서범]] 과 함께 코너를 진행했다]를 진행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셀프카메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송일국]]의 차남 민국이와 상당히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민국이가 후에 우현이 되는 게 아니냐"며 드립이 성행하는 중. 또한 아들의 아기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상당히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사실 <유자식 상팔자>에서도 공개된 내용인데, 당시 우준서는 사진을 공개한 내내 상당히 좌절했고, 본인은 조기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당돌하게 발언하였다. 이때 밝혀진 것인데, 아기일 적의 엄마와도 닮았다고 한다.]
- 이철희(1964) . . . . 24회 일치
|| '''약력''' ||<(> [[대통령비서실]] 정책2행정관[br]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br]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실제로 번듯한 정치 연구소 소장이라기보다는 전화 받고 사무실 지키는 직원 하나 둔 개인 사무실에 간판 하나 달아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썰전]]에 출연하기 시작한 후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연구소에 부소장도 생겼다. [[서양호]] 씨인데 2011 통합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정당인 출신이다. 이철희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장직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서양호 소장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중구청장으로 당선.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노무현]] 대선 캠프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는데, 언제부터 일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2000년대 중반에는 확실히 의원 보좌관이었다. 2008년 전후로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는데, 정작 이후에도 대학 출강을 한다든지, 여론조사 기관에서 일한다든지, 민주당 당내 정책연구소에서 부원장을 지낸다든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정치 스펙을 쌓았다. 본인의 말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끝내 공천되지 못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593920|서류심사에서 탈락해서]] 면접도 못 봤다. [[http://mnews.joins.com/article/7703750|공천 과정에 대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들의 코멘트]]] 2016년 기준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썰전을 하면서도 그 이외의 언론 인터뷰,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성향이 달라 오히려 방송을 할 때의 상호 대화패턴의 호흡은 맞지만, 일상생활의 호흡은 맞지 않는다.", "방송을 1년 넘게 같이 했으면 친해질 만도 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와 나는 그렇지 않고, 주기적으로 사적인 만남과 친분을 가지는 사이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 거리감이 있다.", "살아온 길,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었다.
E.E. 샤트슈나이더라는 학자를 좋아해서 그의 책과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보통 샤'''츠'''슈나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 발전은 다양한 정당들의 공정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당 정치에 깊이 관심 있는 사람치고 샤트슈나이더 영향 안 받은 사람은 드물다. 이철희는 샤트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참고로 샤트슈나이더는 대의제 민주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인데, 현 새정련 주류인 친노계가 직접, 참여적 민주정 강화를 지향하는 입장임을 보면 애초에 정당 운영 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 갖고 까는 건 아니지만~~][[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28769|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또한 학부 시절 [[최장집]] 교수에게 배운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 교수 역시 저서에서나 강연에서 대의제 민주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해 그는 본인의 가장 큰 목표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지역구 사안도 챙겨야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보다는 전략 수립에 몰두할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사실 다선을 노리려면 처음부터 지역구에 나가는 것이 수월할 만큼, 다선보다는 정권 교체를 1차적인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http://gosunggo.com/693|박영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5001.html|'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영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 유시민 작가는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을 하긴 하였으나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인지라 더민주 내부 상황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의문스럽고 또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확실한 상황 증거는 내놓은 게 없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당 발언의 사실성을 떠나서 민주당을 떠난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인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영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3월 15일, 이러한 루머들에 대해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90562&CMPT_CD=Mnew#cb|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신은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박영선]] 문서에 적혀 있기도 한 녹취록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며 그 당시 이야기한 내용은 외부 상황의 심각함과 기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후에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청산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크게 경시한 것이기에 이후 자신이 지지하던 안희정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물론 이철희 본인이 이기는 곳에 가는 것에 연연했다기 보다 본인에게 맞는 쪽으로 간 것이기에 이철희 본인도 이후 경선결과에 토를 달지 않고 승복, 이후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적 표현에서 대통령다운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국민의당의 김경진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 대표 사례.
이후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MB 정부 시절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문건을 결제한 사실을 공개하는 등 여당의 공격수로 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해 치며 정력적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KEPD 350]] 도입이나 [[중고 치누크 도입 논란]]을 지적했는데 잘못 짚으면서 이미지를 좀 까먹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같은 당 출신인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전 의원이 반박하기도 했다.
2017년 경실련 선정 국정감사 우수 의원에 선정되었다.
*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가진 편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정확한 발음이나 발성, 톤 조절 등 기초적 발언 능력이 상당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토론에서의 치고 빠지는 타이밍(?)[* 평론가 시절 방송 토론에서 --노답-- 상대가 억지 논리로 나올 때도 이철희는 처음엔 참고 있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큰 헛점이 표출될 때)에 치고 나오며, 막판에 상대와 같이 깽판을 치더라도 상대 빈틈을 파고들 타이밍을 안 놓치고 맹공격하곤 했으며, 상대의 억지 논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받아치는 것도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왔고, 역으로 소위 막가는(?) 언쟁을 끝낼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칼같이 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 봐도 상대가 먼저 깽판을 쳤고, 이철희는 그에 잘 맞섰다는 인상을 주었다. --상대는 콧김만 씩씩, 사회자는 그냥 멘붕--] 설정 능력, 짧은 시간에 상대 논리의 빈틈을 찾아내는 능력, 상대와 상황에 맞춰서 발언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탁월하여, 농담으로 '말 못하는 사람도 토론은 잘 한다'[* 말투가 어눌하거나 목소리 톤이 별로거나 하는 등 대화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조차도 상대의 뜻을 빠르고 정확히 찾아내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고, 그 상황에 맞는 비언어적 표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뜻이다. 즉, 언어라는 요소만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에는 그 사람만의 [[포스]]나 [[카리스마]]도 포함된다. 한국 근대 민주화의 뿌리였던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 연예인들이 그 말투를 흉내내어 당대에 가장 유행한 개그 패러디 소재가 되었을 정도로, 발음이나 말투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평생 수많은 진보 인사들을 연설과 대화로 매료시켰던, 한국 정치사 최고의 웅변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대한민국사 최초의 [[필리버스터]]도 김대중이 했다.) 그와 대화했던 정치인들의 경험담들을 보면 짧은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우리 박동지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라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말을 못해도 말을 잘한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물론 이런건 김대중처럼 정치인생의 험난한 경험과 그런 고난들을 수없이 극복한 뒤에만 얻어지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많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초선의원 이철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원래 말 잘하는 사람은 그냥 말 잘하면 된다--]는 소리도 있는 스피킹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인 집단들 중에서도 정상급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그를 '전략가'로서 영입했으나 사실 그 이전까지 이철희 자신을 대중적 인지도 높은 스타로 키운 건 그의 발언 및 토론 능력이다. 침착하게 말하다가도 상대의 공격에는 바로 강하게 맞설 수 있고, 강하게 말하다가도 이내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이 굉장하다. 그러나 전략가라는 분야는 말을 잘해서 특정 상황을 잘 넘기거나 옳은 말로 물러나지 않고 맞서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전체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는 설계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데, 연륜과 언변으로 인한 기대치에 비해서 전략 측면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전략가가, 합리적으로 상대가 잘못했고 자기 진영이 잘못이 없더라도, 정의와 논리로 이기기만 할 뿐이고 상대를 협상의 장으로 흡인력있게 끌어들이는 판을 만드는 설계 능력은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정치에서 항상 떠넘기기식 상황 전개를 유지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실질 이득을 얻을 수 없어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기 쉽다.
* 썰전에 출연할 당시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말을 잘 했으나, 경제적인 의제와 관련해서는 식견 부족으로 그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강용석과 복지를 주장한 이철희의 성향차이라고 보면 된다. 썰전에서 차라리 정치적 부분은 양자가 타협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문제를 보는 인식 차이는 완벽한 평행선이었다. 썰전에서 즐겨 인용한 말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였으니.
* 썰전 출연 당시 [[강용석]]을 확실하게 압도한 적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메르스]] 사태 관련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적절히 들어가며 메르스 발병 당시 공직자들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것. 이때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말을 아주 후련하게 잘 했다 하여 '사이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10580|관련글 참조]]
* [[맥심(잡지)|맥심]] 2016년 2월호에 (뒤)표지모델로 나왔다. [[http://i63.tinypic.com/2evdy07.png|사진 참조]] 그 후 맥심 2016년 2월호가 완판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이건 이철희 사진이 멋있게 잘 나와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순전히 [[시노자키 아이|(앞)표지모델로 나온 사람]]덕분이었다는 게 정설이다.[[http://i67.tinypic.com/24yp6qg.jpg|사진 참조]] ~~의문의 완판남~~
- 최채흥 . . . . 24회 일치
이렇듯 엄청난 퍼포먼스로 뛰어난 커리어를 쌓으면서, 대졸 선수들의 연속된 실패로 대학 졸업반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여론이 굉장히 부정적임에도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신인드래프트]]에 참가 예정인 투수 중에서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안우진]]과 함께 전체 1번을 겨룰만한 선수로 거론되었다. 거기에 삼성이 이 해 1차지명 후보로 최채흥 외에 강력한 후보가 없었던 만큼, 지명 전부터 최채흥의 1차 지명은 기정 사실 수준의 평가를 받았고 2017년 6월 26일, 2018년 1차 지명에서 고향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2017년 8월 20일 신베이 신창 야구장에서 열린 체코와의 타이페이 하계유니버시아드 A조 예선에서 7.1이닝 3실점의 퀄리티스타트와 탈삼진 9개를 기록했다.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69&aid=0000000033|해당기사]]
8월 23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3.2이닝 1실점(1자책)으로 탈삼진 1개를 잡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이틀전 7이닝 이상 소화한 후 이날 불펜으로 3.2이닝을 투구했다는 점이...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투수로 나온 경기만] || 이닝 || 투구수 || 승 || 패 || 승률 || ERA || 피안타[br](피홈런) || 4구+사구 || 탈삼진 || 실점(자책점) || WHIP || 피안타율 || K/9 ||
2월 17일 라쿠텐과의 연습경기에서 3이닝 2피안타 2볼넷 1사구 3실점을 기록했다. 최채흥은 0-3으로 뒤진 4회 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직구 최고 142km까지 스피드건에 찍혔다.
자체 청백전에서의 두번째 등판에서 3이닝 91투구 11피안타(2피홈런) 3볼넷 1탈삼진 11실점하면서 무너지면서 아직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듯 하다.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 첫 경기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시즌 중반 이후 선발진에 가세 가능한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외국인은 차치하고라도 믿을 만한 선발이었던 윤성환마저 노쇠화의 징후를 드러내는 시점에서 양창섭과 최채흥의 가세는 큰 도움이 될 전망.
퓨쳐스 호투에 힘입어 5월 19일 토요일 넥센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선발로 등판했고 3⅔이닝 8피안타 2실점(1자책) 81구를 기록했다. 수비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기록은 신인 치고는 기대 이상이였으나 최대 구속이 140으로 대학 시절보다 떨어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날 선발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주전급 대부분이 빠져있었다.[* [[이정후]], [[서건창]], [[김하성]], [[박병호]] 대신에 들어와있는 상황.] 2:2 동점 상황에서 강판되어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3:6으로 패배했다. 21일 1군에서 제외됐다.
6월 2일 1군에 등록돼 당일 [[NC 다이노스]] 원정전에서 5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3탈삼진 2자책(2피홈런)으로 호투를 펼치며 데뷔 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 포심구속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날 경기에는 140대 중반에 형성이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 비록 실투가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2피홈런으로 이어졌지만, 삼성은 [[양창섭]]과 함께 미래를 이끌 좋은 선발 자원을 얻었고, 2018시즌 [[백정현]]-[[장원삼]]-[[최채흥]]으로 이어지는 좌완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면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마운드를 갖출수 있게 되었다. 장원삼이 노쇠화가 오며 10일 로테나 계투 강등이 필요해진만큼 양창섭까지 돌아온다면 선발진은 정말 무적일 듯.
6월 8일 대구에서 열린 LG전에서 선발등판 했으나 2⅔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면서 9일 1군에서 제외됐다.
이후 부상 때문에 2군에서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1달 가량을 결장했고 이후로도 띄엄띄엄 등판하면서 사실상 그대로 시즌 아웃되는가 싶었는데, [[윤성환]]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9월 25일 한화전 선발로 내정됐다. 그리고 '''7이닝''' 5피안타 1피홈런[* vs이성열]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와 함께 시즌 2승을 기록하였다.
10월 3일 대구에서 열린 기아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양창섭]]이 피안타가 늘어나면서 3이닝만에 강판되고, 4회부터 중간계투로 올라왔다. 이미 3회말이 끝난 시점에 5:3으로 경기가 역전된 상황에서 올라왔기에 잘만 던진다면 승리를 추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는 2이닝 3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였다. 팀은 작년의 [[삼성 라이온즈/2017년/6월/29일|629 대첩]]을 완벽하게 복수하는 '''20:5'''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이기면서 시즌 3승을 기록했다.
10월 6일 수원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선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4회 1사 이후 강판당하면서, 추격조로 또 등판했다. 기록은 1⅔이닝 동안 3탈삼진의 퍼펙트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5회에는 [[유한준]]과 [[박경수]]를 상대로 삼진을 뽑아내면서 투구폼 교정 후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다.
10월 13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또 다시 3회 2사만에 강판되면서 분위기가 이번 시즌 넥센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우려했으나, 중간계투로 올라온 양창섭이 4회에는 [[김혜성(야구선수)|김혜성]]과 [[김재현(1993)|김재현]]을 연속 탈삼진까지 잡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7회에는 [[이정후]]에게 3루타를 허용했고, 후속타자인 [[임병욱]]을 상대로는 투수 땅볼을 유도했으나 비디오판독 결과 [[임병욱]]의 발이 조금 더 빠른 것으로 판정되어 내야안타로 바뀌면서 1타점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기록은 3⅔이닝 동안 3탈삼진 4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충분히 잘 던져주면서 2018 시즌을 마무리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9월 25일 복귀한 이후 시즌 끝날 때 까지 선발 1번, 구원 4번하여 총 5번의 등판에서 --분식회계를 빼고-- 총 16⅔이닝동안 단 2자책만 했으며, '''방어율이 무려 1.08'''로 6월 8일 LG전까지[* 1군 엔트리 말소 이전] 6.35였던 방어율과 0.365였던 피안타율을 각각 3.21과 0.270으로 낮춘 점을 봤을때 [[양창섭]]보다도 내년이 더 기대케 되는 피칭을 보였다. ~~최채흥은 대졸인데 당연하지~~ 그리고 후반기 탈삼진은 무려 16개를 뽑는 동안 볼넷은 단 3개만 내주었다는 부분에서 내년을 확실히 기대하게끔 하는 투구를 보였다. 특히 투구폼을 교체한 이후 확실히 진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년 2019 시즌에는 큰 부상이 없는 한 [[양창섭]]과 함께 나란히 선발 로테이션에 들 가능성도 충분히 보인 9~10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상으로 빠진 [[양창섭]], 그리고 [[윤성환]]을 대신해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3월 28일 [[사직야구장]]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96투구수 (S:60, B:36) 4피안타 2사사구 8삼진 4실점 3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 경기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5선발 경쟁을 한 셈인 [[최충연]]은 2경기 만에 실패로 돌아갔고 4월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KIA 타이거즈]] 홈경기에 출전해 4이닝 93투구수 (S:52, B:41) 7피안타 2사사구 3삼진 2실점 1자책을 기록하였다.
4월 14일 역시 [[kt wiz]]를 상대로 홈경기에 출전, '''7이닝 104투구 (S:71,B:33) 6피안타 1피홈런 (1회 유한준 3점) 1볼넷 7삼진 3실점 3자책'''을 기록해 [[QS+]]를 기록했다. 타선이 간만에 터지며 3:14까지 점수를 벌렸으나 이후 올라온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 [[김대우(1988)|김대우]], 최충연을 상대로 [[kt 위즈]] 타선이 9점씩이나 뽑아내며 12:14까지 좁혀져 승을 날려 먹을 위기에 놓였었다. 역전 주자까지 내보낸 상황에서 [[장필준]]이 두 명을 삼진으로 잡으며 어찌어찌 2승에 성공. 이때 덕아웃을 비춘 카메라에 잡혔는데, 볼 카운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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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절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23회 일치
K리그는 2011시즌까지 상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남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연맹은 2012시즌부터 연맹의 경기감독관 뿐만 아니라 관중의 실 집계를 위한 검표관리자까지 각 경기장에 파견하게 되며, 이 검표관리자는 경기장 입장구역에서 검표를 수행하게 되며, 계수가 된 인원(시즌권 바코드 체크, 경기 표 바코드 체크 등이 완료된 인원들)만이 여기에 실 집계인원으로 잡히게 되었다.
실 집계를 시작하고 나서 가져온 파장이 엄청났는데, 2012시즌 348경기가 종료되자 2011시즌 246경기동안 300만명이 넘었다는 관중이 250만명으로 50만명이나 줄었다. 단순계산만으로도 평균관중이 1만 1천~2천여명 정도였던 2011시즌 성과와는 달리 2012시즌은 7천여명으로 경기당 근 4~5천명이나 차이가 나는 것.[*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382&aid=0000079171|스포츠동아, "-33.2%…거품 빠진 관중수 각 팀 마케팅 강화 긍정효과"]]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상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상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 관중 집계를 통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정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지표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축구팬들 사이에선 아주 높은 평가가 다수를 이룬다.
실 관중 집계가 구단의 [http://news.tf.co.kr/read/soccer/1467594.htm|투자를 저하시켰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 관중 공개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는게, 실 관중 수 집계와는 달리 구단은 명백하게 각 경기마다 들어오는 관중 수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입장이라서 설득력이 없다. 되려 각 선수들의 연봉공개가 이적시장을 달궜으면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
사실 허수로 부풀린 관객수로 투자를 받아 봤자 투자자는 관객수에 비해서 수익이 적다는걸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된다. 차후에 실제로 관중이 발표한 만큼 늘어나도 축구=수익이 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에 가로막힐 수 있기 때문. 부풀린 데이터를 제시하는건 일종의 '투자 사기'이며,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투자에 필요한 신뢰를 얻는데는 기본적인 사안이다.
- 김영환(1955) . . . . 23회 일치
||<width=30%> ''선거구 개편''[br][[장경우]][* [[안산시]]·[[옹진군]]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 의원직 사퇴.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보궐선거 미실시.] ||<width=5%> → ||<width=30%> '''제15·16대[br]김영환''' ||<width=5%> → ||<width=30%> ''선거구 개편''[br][[장경수]][*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br][[임종인]][*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 ||
|| 제18대[br][[홍장표(정치인)|홍장표]][* 의원직 상실.] || → || '''제18·19대[br]김영환''' || → || 제20대[br][[김철민(정치인)|김철민]] ||}}}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에 임명되었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에 재산신고를 -8.2억으로 해서 보유재산 국회 최하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부채액이 많아서 -8.2억인 것이고, 이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해서 1억원 정도로 신고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를 거하게 망해서 수십억대의 부채가 추가~~][* 2008년 기준으로 최하위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대선자금을 선관위에서 환급받기 이전이어서 -120억원을 신고했다. 이후 선거비용을 환급받으면서 30억대로 재산이 다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1억 438만원, 2010년에 김영환 의원이 -8억원, 2011년에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 1억 500만원을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3파전 속에서 [[홍장표(정치인)|홍장표]] 전 의원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게 중론이었으나, 실제로는 김영환 후보가 33.5%를 얻어 새누리당 홍장표의 32.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당선된 건 34%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의 [[김철민(정치인)|김철민]] 전 안산시장으로, 당선인과 김영환의 득표수 차이는 399표 차이(...)'''.
2016년 11월 1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야 3당이 촛불 집회 참여를 밝히자 창당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6/11/10/0505000000AKR20161110156000001.HTML?template=8275|사무총장 사의를 밝혔다.]]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토론회 마무리 발언으로 [[JTBC]]와 [[손석희]]사장을 자신에게 갑질을 한다고 [[http://www.edaily.co.kr/election/view.asp?newsId=01161126619214168|비판하며]], JTBC 본사 앞에서 농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JTBC가 6월 2일과 3일 개최할 경기지사와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내실 있는 검증을 이유로 지지율 5%이상 후보에게만 토론회 참가를 제안했는데, 김영환 본인의 지지율은 2.5%에 불과해 자신에게 참가 요청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에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신청했고, JTBC측은 이를 받아들여 지지율이 낮은 후보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이번엔 다른 후보의 캠프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자 토론회 자체가 무산되었다. 하지만 김영환 본인은 1년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의 미디어본부장을 맡았을 당시 유력후보간 양자토론을 주장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지지율이 낮은 것을 JTBC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531211335605?f=m|JTBC '경기지사·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무산..배경은]]
[[2018년]] [[6월 5일]]에 진행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2차 토론회([[KBS]], [[MBC]], [[SBS]] 공동주최)에 참석하였다. 기조연설에선 지난 토론회에서의 네거티브를 사과하면서도, 여전히 [[이재명(1964)|이재명]]의 해명을 거짓말로 규정했고, 이재명과 본인 중 한명만이 진실이라며 끝장승부를 예고했다. 1대1 정책토론에선 다른 후보들과 정책검증을 이어갔으나, 주도권 토론에선 자신의 차례가 오자 이재명에게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를 걸었고 시간이 없다며 해명을 무시하고 예/아니오로만 대답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가 사회자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재명도 이것을 문재인에게 했다가 크게 비판받은 적이 있다. 토론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단대 [[푸르지오]] 아파트 주민 고발과 이른바 "김사랑" 정신병원 감금 의혹을 제기하며 이재명에게 왜 그렇게 고발과 정신병원을 좋아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토론회 이후 또다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HKCLdvVbh8s|토론회 전체 장면]]
결국 김영환은 큰 승부수를 던진 셈인데 네거티브 선거를 유발한 노회한 정치인이 되느냐? 사회 고발의 산 정치인이 되느냐? 기로에 선 셈이다. 이재명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영환이 얻을 몫과 유명세는 엄청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된 증거 제시도 없이 흐지부지 되버리면 이미지에 큰 타격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6월 7일 오후, 뜻밖의 [[공지영|원군(?)]]이 [[https://namu.wiki/w/%EA%B3%B5%EC%A7%80%EC%98%81#s-3.3.4|등장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어느쪽이 옳다고 판단하긴 이른 단계. 애초부터 공지영은 과거 논란들로 신뢰성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고[*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보수 일각에서는 현재 이재명에 대한 반발로 인해 과거부터 줄곧 공지영에 대해 그렇게 비난해대면서 정작 이재명 의혹에서는 공지영의 말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보수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지영의 발언을 섣불리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추가적인 증거들이 나와야만"''' 공지영의 말이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공지영 본인이 무슨 새로운 증거들을 거론한 것도 아니다.[* 관련자의 말을 자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날 김영환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 네이버 실검 순위에 "이재명은 사퇴하라"가 1위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재명과 악연을 가진 친 문재인 성향의 맘카페 [[레몬테라스]]에서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826819|게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것이 네거티브 선거전이냐 사회고발이냐에 대해 아직까지 판단이 보류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증거 제시도 없이 흐지부지 되면 빼도박도 못하는 네거티브 선거이지만 확실한 증거들이 공개되고 당사자들의 증언이 사실로 판명날 경우 논란이 많다 하더라도 이것이 사회 고발이 될 수 있기 때문. 김영환 본인도 주진우, 김어준, 정봉주가 증언하면 된다고 하며 관련자들의 진술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정작 의혹을 제기한 김영환 본인에게는 원래부터 관련 증거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사진을 제시하긴 했는데 이 사진은 증거로 볼 수도 없는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8161|사진]]이였기 때문에 사진을 거론하며 이재명을 비난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보통 정치인들은 상대 후보에 대해 후폭풍이 엄청난 스캔들을 무기로 선거에서 공세를 할 때 당연히 관련 증거들과 당사자의 증언을 미리 확보하고 이것이 확실한지 확인을 하고 나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고 독특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김부선에게 자신의 허락 없이 스캔들을 언급해 2차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사실 확인을 안한 정도가 아니라 김부선과 사전 합의조차 없이 논란을 제기했던 것. 짬도 꽤 찬 중견 정치인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대책없는 행동을 했는지 의심이 가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김부선이 단 하나의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증거 조작이나 하고 있어 자신과 김부선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진 상황인데 고소까지 당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 2009 || [[2009년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을]])[* 전임자 홍장표 의원직 상실] || '''[[민주당(2008년)|민주당]]''' || '''14,176 (41.17%)''' || '''당선 (1위)''' || ||
2008년 1월 민주당 탈당 당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217696|한나라당 입당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입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2009년 민주당으로 복당한다.[*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당시 "정당투표는 [[한나라당]]에 해달라"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3919|발언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진지하게 한나라당행을 고려한듯 하다.]
- 김처선 . . . . 23회 일치
사실 김처선은 젊었을 때만 해도 상당히 '''노는''' 내시였던 모양으로, 세종 때 내시가 된 이후 [[문종(조선)|문종]] 때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1453년(단종 1년) 귀양이 풀리고 이듬해 직첩이 되돌려졌으나, 1455년(단종 3년) 금성 대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삭탈 관직 당하고 유배되어 본향의 관노가 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1457년(세조 3년)에 다시 복직되어 1460년(세조 6년)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록되었으나, 이후 세조로부터 시종이 근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아 자주 [[곤장]]을 맞았다. 사실 공신이 아니었으면 진작 노비로 다시 떨어졌을지 모를 정도로 놀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성종(조선)|성종]] 때에 이르어서는 의술이 능하여 [[대비]]를 치료한 일로 다시 인생 역전하여 자헌대부에 올라갔다.
연산군은 이로 인하여 화를 내곤 했지만 김처선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언제나 쉽게 용서해주곤 하였다. 실제로 실록에 김처선이 죄를 지어 연산군의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하루 만에 그를 복직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연산군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은 하고 있었던 모양.
>김처선 :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격분한 [[연산군]]이 김처선의 [[혀]]를 잘라버렸다.[*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은 김처선이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시점을 김처선의 혀가 걸레짝이 된 상태라고 설명 했는데, 사람은 혀가 잘린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지만 혀가 잘리면 자음을 제외한 공명음만 낼 수 있으므로 이런 상태에서 말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설민석이 자신의 여타 강의에서도 그러하듯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러한 표현을 대동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 김처선의 발언이 은근히 [[연산군]]을 비꼬는 듯이 들리지만, '다리'를 임금의 신하라고 해석하면서, '''"충직한 신하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데, 어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본다면 뼈대가 있는 일침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세간에 알려진 김처선의 최후는 대부분 야사에 의존한 것이다. 일단 실록에는 연산군이 죽였다 정도로 살해 당일의 기록이 간략하다. 활에 맞아 죽었다는 것도 의문인데 중종 때 베어 죽었다는(주살) 구절이 나오고, 한참 시간이 흘러 200년 뒤 영조가 김처선을 복권하면서 그제서야 활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이 바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다시 복권되기에 이르지만 [[중종(조선)|중종]]은 그를 썩 좋게 보지 않았던 듯 싶다. "김처선은 술처먹고 주정부리다가 죽은 건데 무슨 놈의 [[공신]]?"이라고 반문했다는 기록이 있어서인지 중종은 김처선의 행적을 기리고자 하는 사림들의 상소를 모두 무시한다. [* 《중종 실록》 권17 7년 12월 4일 갑진 2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712004_002]] ]
중종은 연산군처럼 막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왕자이며 임금이 된 만큼 왕실의 권위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중종의 생각으로는 연산군이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일개 내시'''가 감히 왕에게 폭언을 퍼부은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듯 하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반부에 반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했고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BS]] [[사극]]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선 연산군의 광기어린 행보를 다룬 1화 광풍에 등장한다. 월산 대군의 처 박씨와 강제로 동침한 연산군을 보고 연산군을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하늘이 두렵지 않냐며 직언 하다 가슴에 화살을 맞는다. 칼을 빼든 연산군이 남자 구실 못하는 놈이 입만 살았다며 분노하자 소인 남자 구실 못하는거 생각말고 임금 구실이나 잘하라고 맞받아치고 칼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반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절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대중 매체에서 이렇듯 제법 자주 나온 이유인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실록 홈페이지 '''개설 때'''부터 누적된 것이라고 한다) 인기 검색어 검색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참고로 실록 홈페이지의 전체 누적 인기 검색어 1위는 [[이순신]].
마마께오서 임금 노릇 오래 못하실까 그것이 두렵나이다
- 이지아(배우) . . . . 22회 일치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 '정리된 것'을 클릭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순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형 카페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되기도 했고,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해 게시 중단된 사실이 있다. [[http://nila.tistory.com/133|*]]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5025394|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식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웬만한 스캔들에는 반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15년 전의 복수~~ '믿을 수 없어''서태지와 이지아라니!'말부터 '애도 2명이나 낳았대'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소송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 모 재벌의 황혼이혼사건에서는 1000억 청구해서 50억, 즉 5% 받았다.] 설령 다 받아낼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을 숨겨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상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신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고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태지가 빠른 속도로 재혼을 하면서 서태지가 재혼을 위해 먼저 이지아에게 정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설이 신빙성있게 돌고있는 상태. 이지아에게도 한국에서의 연기생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털어내야할 문제이기도 했고...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뒷말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 라든가 '비공식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
97년 결혼 이후 "서태지의 비공식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00년에 이미 별거(서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생활보다 소송기간이 더 길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서태지의 행동이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며~~[* 하술된 기사 내용에 이 부분은 사실상 거짓] 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 [* 서태지 측에서 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하니.
그러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결혼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디스패치]]의 [[http://www.dispatch.co.kr/107147|반박 기사]]가 나왔다. 디스패치가 네바다 등기소까지 뒤져서 취재한 결과 결혼식의 증인이 다름아닌 이지아의 이복 언니였다는 것. 이는 “양 측이 동의를 했고 많은 지인들은 두 사람의 교제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태지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확인된 이지아의 교통법규 위반 사실이나 쇼핑, 가족 왕래 증언 등으로 볼 때, 결혼생활에 자유가 없었다는 이지아 측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파리에서 이지아가 "과거에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과 교제 한 적이 있다"고 말하자 오히려 이지아에 대한 수많은 루머들이 거짓이라는 것에 안도했고, 결혼 사실 보다 오히려 자기 때문에 더 난처한 상황이 올까 걱정되어, "자신은 신경쓰지 말고 지금 처해진 상황 현명하게 잘 대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15년 전(1996년 11월 20일) [[스포츠서울]][* 그런데 15년 후에 이혼기사를 가장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도 '''스포츠서울'''이었다.--15년을 벼르고 별렀다-- --15년? [[JTBC]]는 [[언론통폐합|30년을]] [[동양방송|별렀는데]]--]에서 이 진실을 보도한 적이 있으나, 당시는 오보취급 당하고 묻혔다. ~~15년 묵은 성지~~ --[[맨 인 블랙]]-- --[[서태지|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 식으로 본의 아니게 정의구현을 당하고 있는 [[신은경(배우)|신은경]]--
[[디아블로 3]] 공식 홈페이지에 [[리쌍]],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http://kr.battle.net/d3/ko/blog/1468860/회상_디아블로를_추억하며-2012_05_03#blog/|"회상: 디아블로를 추억하며..."]]. 실제로 [[왕십리역]]에서 발매기념 사인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근데 서태지의 자동차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디아블로]]였다--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 산하의 최고급 스포츠 승용차 브랜드인 '''[[마세라티]]'''가 이지아 때문에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지아는 [[마세라티]]의 플래그쉽 [[FR(자동차)|후륜구동]] 대형 세단인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5세대의 오너(사실은 리스차량)인데, [[2013년]] 4월의 어느 날에 음주한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이동하다가 논현동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현대 쏘나타|쏘나타]] [[경찰차]]와 접촉 사고를 내는 바람에 [[마세라티]]가 더 알려졌다.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실제로 [[마세라티]]/[[페라리]] 수입사인 FMK 측에서는 이지아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접촉사고 때문에 [[마세라티]]의 인지도 상승에 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본의아닌 노이즈가 있고 난 후 출시되었던 [[마세라티 기블리|기블리]],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판매량이 늘어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고마워요 이지아~~
SBS [[힐링캠프]] (2014.8.11) ~~ 여기서 '''[[서태지|전 남편]]'''을 디스 했다.~~ 출연 전부터 광복절 앞두고 친일파 후손을 부르다니 제정신이냐며 힐링캠프의 섭외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반대로 이지아의 팬들은 방송 전부터 문제없다고 주장하며 포털 사이트를 옹호 댓글로 도배했다. 방송 후 댓글란에선 같은 여자로서 동정한다는 등 주로 여성층이 이지아의 불운한 결혼생활을 동정한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네이트, 다음 등 댓글란만 보면 매력적이라며 감탄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대다수 남초 성향 커뮤니티들과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선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더 많았다. [*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비판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실체를 알린 글이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 2016년 || [[무수단(영화)|무수단]] || 신유화 중위 || [* 실질적 첫 스크린 작품.] ||
2016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유창한 영어실력를 발휘하기도 했다.
- 최준석 . . . . 22회 일치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태)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기존 1루수 [[장원진]]의 노쇠화가 보이는 상황에서 1루수 및 지명타자로 본격적으로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고영민]]에 밀려 1루에서 자주 출전하던 [[안경현]]과 나누어 출전했으며[* 다만 이때까지는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더 많이 출전했다.], 2006년에는 이적 이후 .264 .343 .404의 슬래시 라인과 10개의 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2007년에는 .244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121경기에서 1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장타툴 하나는 확실함을 보녀줬다.
2011년에는 타율 .271 15홈런 75타점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또 신체조건으로 인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2루타 3위에 올랐다.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으며 11월 16일까지의 두산과의 우선 협상에 실패하여 [[손시헌]],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과 함께 시장에 나왔다.나중에 롯데NC의 무상트레이드로 NC로 이적됬다.
주루 플레이나 수비가 안되는 [[지명타자]]를 35억원이나 주고 영입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관리 실패로 인해 체중이 점점 불어나서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안고 있다는 점이 염려스런 부분이다. 최준석이 두산으로 트레이드되기 전이었던 2005년 말 [[이대호]]가 체중 감량을 목표로 통도사로 들어갔을 때 일각에서 '최준석은 왜 안 가냐'라고 반응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롯데 구단이나 감독은 최준석 영입으로 인한 우산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기존의 1루수인 [[박종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굴욕인 것이, 누적 스탯을 보고 따질 것이 아니라 출루율을 비교하면 최준석은 커리어 .351, 13시즌 .376을 기록했다. 박종윤은 커리어 .294, 13시즌 .298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NC의 대졸신인 [[권희동]]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이다. 거포라고는 불릴 수 없지만 [[대타]]로서는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박종윤이 1루수로는 노답이라고 평가되는 이유가 선구안임을 감안하면 둘의 타격은 레벨이 다르다. 한편 [[1루수]], [[좌익수]], [[지명타자]] 자리에 구멍이 뻥뻥 뚫린 롯데의 상황상 지명타자 자리 고정이 큰 문제는 아니므로 수비능력 또한 무조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최준석의 통산 스탯이 거포라고 하기에 부족한 것은 최준석이 파워툴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늘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건강한 최준석이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거포임을 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최준석 영입이 상당히 비판받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체중관리와 부상이다. '''분명히 건강하면 팀에 도움이 될 선수이지만 부상 위험이 정말로 큰 선수'''를 '''포스트시즌 반짝 성적'''과 '''FA시장의 과열'''로 인해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아파도 경기에 나올 수만 있으면 타자로서의 생산력은 박종윤보다 나았고 FA 계약 선수 중에 [[이대형]]'''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박종윤이 2012년과 2013년에 주전으로 보여준 모습을 감안할 때 최준석이 다이어트로 모범 FA가 되는 것이 박종윤의 선구안 개안보다 현실적이었다.
감독만이 아니라 팀으로서도 이 정도로 답이 없을 줄은 몰랐는지 2018년 1월 23일 롯데가 최준석을 '''무상 트레이드'''[* 대표적인 사례로는 FA 계약에 실패 후 보상권리 포기로 SK와 계약한 투수코치 [[최영필]]이 있다. 이 방법으로 은퇴 위기에 있었던 최영필은 2017년 KIA 타이거즈에서 은퇴할 때까지 6년이나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5939|해당기사]]
컨택이 약간 아쉽지만 좋은 [[선구안]]과 강력한 장타율로 만회를 하고 있다. 실제로 15년 프로 생활 동안 타율이 3할을 넘었던 적이 3시즌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공에 배트가 잘 안나가기 때문에 삼진도 많이 당하지만 볼넷의 비율이 높고, 덩치에 맞게 장타율 역시 타율에 비하면 높아 순출루율이 1할을 넘나들고, 순장타율 역시 2할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쉽다는 컨택도 보통 최준석이 위치하는 클린업 타순 기준으로 리그최상급 클린업들에 비해 아쉬운 것이지 보통 타자들에 비하면 월등히 뛰어나다. 3할은 몰라도 2할 8푼은 기대할 수 있는 좋은 타자.
타격에서의 단점은 바깥쪽 변화구에 취약하다는 것. 실제로 타석에서 가장 멀리 서서 타격을 하는 타자 중 한명이기도 하고, 지금은 꽤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바깥쪽 [[슬라이더]]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상당히 좁게 가져가는 타격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술했듯이 볼넷을 많이 얻어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멀뚱하니 서서 삼진을 당하는 모습도 적잖이 나와 중심타자다운 적극적인 타격을 못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 정도야 [[이병규|초구부터]] [[송광민|냅다]] [[김주찬|배트를]] [[이지영(야구선수)|내미는]] 대신 [[이병규(1983)|신중하게 볼을 골라내며]] [[김태균|타격을 하는]] 유형의 타자인만큼 감수할 수 있는 장점이겠으나...
최준석의 가장 큰 단점은 '''[[똥차(야구)|발이 엄청나게 느리다는 것]].''' 주자로써 평균은 커녕 압도적 꼴찌 수준의 주력을 자랑해서 타격으로 벌어놓은 점수의 반쯤은 베이스 러닝으로 날려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빠른 타구속도 덕에 넓은 [[잠실 야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장에서 '''담장 맞추는 1루타''' 같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마디로 '''주루에서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타자다.''' 2017 시즌 종료 기준 통산 [[병살타]]도 162개로 은퇴선수까지 포함하면 10위, 현역선수 중에서는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통산 1위는 ~~당연히~~ [[홍성흔]]의 230개, 현역 1위는 [[정성훈]]의 211개.] 단순히 주루가 느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것이, 대타 출장시나 경기후반에는 이 느린 발과 수비포지션이 없는 것 때문에 거의 반드시 [[대주자]]나 [[대수비]]를 대동해야 하는데, 보통 대수비를 겸하는 대주자까지 2명, 어쩌다 수틀리면 대주자 대수비 따로 해서 3명까지 한번에 쓰게 된다. 조원우 감독이 최준석의 기용을 꺼리고 결국 FA에서 잡지 않은 데에는 단순히 발이 느려서 점수 덜 먹는다는 것이나 병살 잘 치는 생산성 문제도 있지만 이 로스터 낭비 문제가 더 크다. 알다시피 프로야구 로스터는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최준석 때문에 좌완이나 사이드 원포인트 혹은 패전조급 릴리프를 타팀보다 한명 덜 써야 한다고 하면 확 와 닿을 것이다. 최준석의 타석에서의 생산성이야 전성기 때는 그걸 감안하고도 쓸 만큼 좋았고 노쇠화가 진행된 지금도 꽤 좋은 편이지만 릴리프 한명 덜 쓰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특급까진 아닌지라.
스타팅으로 쓰겠다면야 최소한 딱 한 타석을 위해 선수 3명 투입하는 대참사는 피할 수 있고 실제로 여태까지는 주로 스타팅멤버로 썼고, 또한 전성기 최준석의 방망이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최준석은 해가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 노쇠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는 백업 내지는 대타요원으로서 주로 기용될 것인데, 백업요원에게 이런 로스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원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두산 베어스 이적 후 [[1루수]]나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고 있다. 그래도 타격 스킬에 기대를 걸었던 롯데에서는 외야수 수비 연습까지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수비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며 군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던 무릎 부상 탓에 1루 수비 범위도 대단히 좁다. 이 때문에 타격 생산력에 비해 WAR이 높은 타자는 아니다. 특히 수비기여도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스탯티즈]] WAR이 처참하다. 선수 본인이야 지금도 포수로 뛸 수 있다고 하지만 안되도 된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인만큼 진지하게 믿어선 곤란하다. 과체중으로 인한 무릎 문제로 9회말 대수비로 출장하는 것조차 힘들다. 1년에 한두번, 포수가 없는 비상사태 때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1루 수비도 9회 대수비 정도 아니면 1주일에 두어번 정도만 가능하고, 사실상 풀 타임 지명타자이다.
'''장[[돼지|돈]]건'''이란 별명도 있다. 말그대로 살찐 장동건. 얼굴로 인정받는다는 소리다. 몸무게를 30kg~~그래도 초등학생 한 명분이다~~만 줄여도 지금 먹는 욕의 80%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최준석은 실력으론 까일게 없고[* 병살타도 비대한 몸에서 기인한다.] [[나지완|나]][[비만|비]]처럼 [[인성|비]][[병역면제|호]][[팬서비스|감]]도 아니고 [[최형우|부적절한 언행]]도 없었으며 [[김동주(야구선수)|불륜]], [[박기혁|음주운전]], [[최진행|약물스캔들]], [[김상수(타자)|SNS 추문]] 하나 없는 클린한 선수다. 단지 '돼지같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바로 위에 팬서비스 거지같다고 되어있는데? 무슨--
* 그 별명에 맞게 야심한 밤에 항상 야식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롯데 1기 시절에 [[이대호]]와 [[룸메이트]]였고 [[이대호]]가 살찐 이유는 최준석과 같이 야식을 먹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사실 최준석도 포철공고 때는 100M를 11초에 끊는~~실화?~~ 호타준족 포수였다. 그래서인지 두산에 간 이후 이대호에게 장갑을 빌려줄 정도이며, 실제로 롯데 락커룸에 자주 놀러가서 이대호 배트를 많이 받아온다고 한다. 롯데 출신이다보니 롯데 고참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서 라커룸에 가는 것도 거리낌없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두산 시절에는 [[이대호]]와는 등번호도 10번으로 똑같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따르면, 롯데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될 때 일부러 이대호와 같은 등번호를 택했다고 한다.
* 예전에는 [[정수빈]]과 한방을 쓰며 정수빈을 시켜서 야식을 먹었다고 한다. 정수빈과 동갑인 신인 투수였던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서 코치들이 일부러 방을 최준석과 같이 쓰게 했다고 한다. 둘이서 야식도 많이 시켜 먹고 그랬는데 현실은...
* 생김새만 보면 한 성질할 것 같지만 실제론 정반대이며 목소리도 나긋나긋하다. 인터뷰한 것을 보면 덩치와 목소리가 매치가 안 될 정도다.
* 《[[2015년|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미디어데이&팬페스트('15. 3. 23.)》행사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s-1|주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배지현|사회자]]의 "[[홈런]] 세리머니[* 각 루를 차례로 돌고난 뒤 홈 베이스를 밟을 때 하늘을 향하여 두 번 손짓.]의 의미가 혹시 경기 끝나고 [[족발]] 2인분?"이라는 질문에...[*스포일러 "[[중학교|중]]1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이 [[홈런]]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하여 빵터졌던 장내를 일시에 숙연하게 하였다.] [[https://youtu.be/11ez9dbOz94|백문이 불여일견(유튜브 링크)]] ...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 세리머니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407001&redirect=false|홍성흔과의 합작품.]] 원래는 홈런친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외부에 드러냄으로서 동료의 사기를 높이고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고... 이후 세리머니 논란을 의식했는지 대외적으로는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2016년부터는 세리머니를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2&id=2203353|안 하기로 결정했다.]]
- 김태우(god) . . . . 21회 일치
라기보다 아이돌답지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 특히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의 메인보컬들이었던 [[강타]], [[강성훈]], [[신혜성]]은 미소년들이었는데 반해 god의 메인보컬인 이쪽만 유독 튀는(...)외모를 지녔다. 또다른 유명한 [[NRG]]를 봐도 이쪽은 메인보컬이 리더이자 맏형인 [[이성진]]인데 이 쪽도 나이가 당시 아이돌 멤버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충분히 잘 생긴 외모다.] 여러 가지로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보통 아이돌은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보컬 멤버라고 해도 키가 190이 넘어버리면 주변 멤버랑 밸런스가 안 맞아서 뽑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박진영은 김태우를 메인보컬로 선택했다. 심지어 김태우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네 멤버와 같이 연습하던 두 명의 연습생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중의 한 명이 배우 [[김선아]]다. 초창기에는 김선아의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god 멤버인 데니 안부터 부인했었으나 박준형이 1박2일에 출연해 사실임을 인증했다.]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04년 윤계상이 연기자로 전업(정확히는 그만두려 했다)해서 탈퇴하고 6집, 7집을 4인 구도로 활동하다가 2005년을 마지막으로 god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솔로로 나섰다. 베이스가 탄탄하다보니 솔로 활동도 잘 했고, 여러 가수의 피처링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피처링해준 곡이 본인 곡보다 잘 나간 느낌이 좀 있다. 심지어 [[MC몽]]의 'I love U, Oh Thank U' 같은 곡은 많은 사람이 김태우의 노래로 알고 있다.[* 다만, MC몽보다 수록이 늦긴 해도 김태우의 개인 앨범 1집 '하고 싶은 말'에도 이 곡이 실려 있으니...]
어찌되었건 현역 복무(그것도 '''이기자부대''') + 연예병과 고사(固辭)를 한 덕에 [[까임방지권]]을 제대로 득템한 연예인. 사실 원래는 복무 중 연예병사에 지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포기했다. 당시 연예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일종의 면접으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갔는데, 먼저 근무하던 나이 어린 연예인 후배 선임이 군대식으로 서열을 잡는답시고 한 깐깐한 행동들로 인해 열받아서 연예병사를 고사하고 말았다고. 금방 몇몇 동료들이 진상을 털어놓긴 했으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훗날 김태우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갔을 때 그 후배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연예계 활동 중에 내 눈에 띄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정작 이 말을 한 본인은 이후 그 행동을 되돌아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후배와 또 만났는데 그 후배가 '미안해요. 그때는 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저희가 총대 멘 겁니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며 김태우는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질이 문제다--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백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영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태우 본인도 "군대에 남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상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반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염천교 리턴즈]] 방송에서 짱세가 자신의 군생활 이야기를 하면서 밝힌 바로는 이기자 부대 수색대대 소속은 맞는데 보직은 전투병과가 아니라 PX병이었다고 한다. 그 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진짜사나이]] 출연 당시 자신이 PX 병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2중대 1소대 유탄사수다라고 밝혔다.[[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090900184#Redyho|#]]
실제로 2009년에 출연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스티비 원더며 세상에서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세계 최고 보컬 TOP 10에 자신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 예능에서 직접 세상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선 그마저도 철회. [[문희준]]과 [[은지원]]이 그 발언을 가지고 놀리자, 그때는 자기가 군대에서 나온지 얼마 안돼서 군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라는 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 당시에도 여기저기 예능 프로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얼굴도 여기저기 내밀었는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KBS2 [[청춘불패 시즌1|청춘불패]]. 당시 잘 나가는 여자 아이돌 7명과 함께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공동 MC가 [[노주현]], [[남희석]]이었던 터라 사실상 청일점이었는데, 금방 제대해서 군인 냄새가 풀풀 나는 거한에게 아이돌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한 발상이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
청춘불패 출연으로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추진력을 얻은 건지]] SBS 2011년 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스타맞선-유쾌한 스캔들>에서는 [[아이유]]와 러브라인을 만들었다...이와 같은 일 때문에 남자들에게 ''''해방 이래 [[연정훈]] 이후 제일 나쁜 놈''''이라며 지탄의 대상이 된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아는 듯, [[상상플러스]]에서 청춘불패 출연 이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옛날옛적 god 시절 그 레드썬 교수의 전생 체험에서 밝혀졌던 전생이 '[[관우]]'. 다만 최근에 [[삼국지]]를 읽어서 최면이 잘못 들어갔다는 분위기이긴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식이 뚜렷한 편은 아닌데다 이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푸는 실력은 좋은 편이다. 194회 전반전에 참가했을 때는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두번째 도전인 287회 후반전 방송분에선 [[1대 100/최고 단계 문제 #s-4.4|정규 최종 단계(당시 11단계)에서 6명과 대결을 펼쳤다.]](두 대결 모두 각각 8, 12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불후의 명곡 2]]에는 반고정으로 나와 총 7번 우승했으며 2018년 5월 19일부터 [[불후의 명곡 2]] 대기실 고정 mc로 활동하고 있다.
[[청춘불패 시즌1]]에서 [[구하라]]가 다리찢기를 하고 있는데 "넌 어려서 골반이 안 벌이지네"라고 말한 게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신영]]이 잠깐 발끈하기도 했고... 이걸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안 벌어진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으로 해석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었으나 크게 불거지는 일 없이 금새 묻혔다. 이것을 두고 성실한 군복무로 인한 실드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추가적으로 골반이 성장하지 않으며 골반이 벌어지는 문제와 성경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G7과 참여한 상상더하기에서는 참여한 여성 멤버 모두에게 변태라는 소리를 들을 적도 있으며, 상기 언급한 바대로 구하라에게 "가슴이 없어서 목이 돌아간 줄 알았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실제 청춘불패가 편집이 유연하지 못한 것이 그의 이러한 섹드립 때문이라고 상상더하기에서 멤버들이 말할 정도. 당시 회를 거듭하면서 군대식 말투를 지나치게 쓴다든가 부적절한 멘트를 쓰는 것들을 지적받은 바가 있다.
연예계에선 꽤 무서운 선배로 통하는 듯. 일단 본인부터 이제 경력이 꽤 되는 데다 잘못된 걸 못 참는 특유의 성격과 190이 넘는 거구 덕분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후배 입장에선 상당한 박력이 느껴진다고. [[본인]]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자기 딴엔 점잖게 타이른다고 하는 게 상대가 알아서 쫄아버리기 일쑤라고 밝혔다.
의견은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똥군기]]냐'라는 의견과 '그래도 인사는 예의다'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상태. 전자의 경우 지나가다 마주친 것도 아니고 각자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럼 당연히 모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고 후자는 큐시트 보면 그래도 누구누구 나오는지 다 알 수 있는 상황인데 서로간의 인사를 하는건 사회생활의 기본 아니냐며 지지하는 입장. 하지만 설령 인사를 안 한 것이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저런 행동이 옳은가는 별개의 문제다. 넌지시 지적을 해보거나, 언제 한 번 허심탄회하게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대화를 시도하면 되고, 그래도 말을 안 듣는다면? 당연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체중]] 관리 실패 사건 ===
- 막부 . . . . 21회 일치
고대 중국에서 [[장군]]이 전쟁에 출전할 때, 막(幕)을 치고 부(府, 관서)를 설치하여 군사 행정 업무를 실시했는데 이를 '막부'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막부 체계를 근거로 하여 [[사무라이]]가 중심이 된 정권이 들어서게 되어, 이 역시 막부라고 부른다.
고대 중국에서 장군은 [[황제]]에게 여러 권한을 위임받게 되는데, 실질적으로 독자적인 군사행정조직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부(府)를 설치하게 되면 독자적으로 장군의 부(府)에서 근무하게 될 속관을 뽑아서 임명할 수 있고, 부(府)를 통하여 군사, 사법, 행정을 처리할 수 있었으며, 이를 상징하는 부월(생살여탈권) 같은 상징물을 받았다. 막부는 현대로 치면 [[계엄령]] 하의 '계엄사령부'처럼 일정 지역, 시기 동안 제한적으로 전권 통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러한 부의 개설은 반란의 평정이나 대외 원정 등. 중대한 군사 작전 사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일반적인 행정조직으로서는 대응하기 어려워, 장군이 전권을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설치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전장에서 평시 행정조직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중앙 정부에 모든 사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이 중국에서 들여온 [[율령제]] 체계에서 [[조정]]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막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상설 통치 조직으로 바꿔서 운용하였던 것이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정부가 있기는 한데 계엄령이 내려져 있고, 계엄령은 무기한이고 범위는 전국(…)이라서 계엄사령관이 사실상 국가의 실권자인 상태가 된 것과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일본 국내에서 '거의' 유일[* 사무라이와 다른 경우로는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승병]] 같은 사례가 있다.]하게 무력을 보유하게 된 사무라이들이 점차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결국 이 사무라이들 가운데 유력해진 겐지(原氏) 일족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케|헤이지(平氏) 일족]]과의 항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덴노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면서 조정을 제치고 일본 전역에 할거하고 있던 무사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막부라는 체계는 일본 특유의 독특한 '정권'이 되었는데, 명목상으로는 천황의 조정이 일본의 주권자였으나 막부는 '정이대장군'으로서 사무라이들을 통솔하면서 사법권과 지방의 치안 유지, 재산권 분쟁에 대한 해결 등 실질적인 통치권을 발휘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조정과 막부가 분리되어 있으나, 당시 일본의 지방 호족들은 대부분 사무라이 신분이었으며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었으니 전국의 인구 가운데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천황가와 귀족을 제외하면 일본 전체가 막부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은 당초에는 동일본 지방이 중심이었으나 [[고토바 덴노]]가 토벌을 시도하였다가 대실패(…)하여 서일본 지방까지 완전히 막부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일본 전국이 막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로 조정은 거의 귀족들이 놀고 먹는 상태가 되었는데, 원래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조정에는 별다른 실질적인 업무는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마쿠라 막부에 귀찮은 실무를 맡기면서 조정은 거의 완전히 실무능력을 상실하며, 이후 조정이 실권을 되찾는 [[겐무 신정]] 시기가 되었을 때 무능함을 드러내며 정권을 도로 무로마치 막부에 빼앗기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일본 귀족이란 태어날 때부터의 혈통으로만 앞으로의 출세가 모두 결정되며, 귀족 이하는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폐기물 급 인성(^^)에다가, 실무는 천하게 보고 시나 서예 같은 예술 활동만을 고상하게 보는 좋게 말해서 문화적, 나쁘게 말해서 놀자판인 놈들이었으므로 이런 놈들에게 실권을 맡겨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 가마쿠라 막부는 겐지 일족이 단절되고 불과 3대만에 외척인 호죠 씨에게 실권을 빼앗긴다. 이후에 [[겐무 신정]] 시기에 [[고다이고 덴노]]에게 호죠 씨 정권 가마쿠라 막부는 무너지고 말았으나, 이러한 사례가 선례가 되어 훗날 호죠 씨 정권이 무너진 뒤 조정까지 제압하고 새로운 덴노를 옹립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도 자신을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던 겐지(源氏) 일족임을 자처하며 교토 인근에 막부를 세우고 군사와 정치를 장악하였으니 이것이 '무로마치 막부'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와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막부도 전국의 무사들을 통솔한다고는 해도 그 장악력은 비교적 느슨하였다.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태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백]]'과 '태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히데요시 사후에 권력투쟁 끝에 일본의 실력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 지역인 에도에 막부를 세운다. 이 [[에도 막부]]는 이전과는 달리 간토 지역을 독립적으로 장악하고, [[산킨고타이]] 제도를 비롯한 대책을 사용한 덕에 이전의 막부들에 비해 통제력이 매우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조차도 각 번의 다이묘들은 해당 지역의 군사와 사법, 행정을 독립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등 여전히 지역분권이 강했다.
- 이재학 . . . . 21회 일치
두산 시절에도 순박한 얼굴과 특유의 빨간 볼[* [[http://youtu.be/8iTg4pqyDDQ|XTM 담벼락토크]]에서 투구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영상이 2013년 시즌 8월 7일 LG전에서 9실점했을 때(...)]로 신인 중 귀요미 소리를 들었다. 빨간 볼과 여드름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능금', '[[딸기]]'. NC 이적 후부터는 아예 딸기가 공식 별명이 되었고, 활약하는 날이면 Strong+Strawberry='''STRONGBERRY'''가 된다. 이 문구는 이재학의 개인 첫 완봉승 기념 티셔츠에 적혀있다. 한때 [[마산 야구장]]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아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88568|딸기주스 '''이재학''']]을 판매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그 자리엔 '더리터'로 입주 업체가 바뀌었다. 이재학을 팔지 않는 대신 [[박민우(야구선수)|민우에게 바나나]]를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2340520109998&id=241899065820824|팔고 있다.]]]
[[스프링캠프]] 때 [[김경문]] 감독이 눈도장을 찍어 기대되는 신인으로 주목받았지만, 경험 부족과 긴장으로 인해 제구가 흔들리며 사사구를 많이 남발했다. 그래도 2010년 6월 15일 잠실 [[LG 트윈스|LG]]전에서 4번째 투수로 나와 2⅓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데뷔전 이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2012년 퓨처스리그 4월 경기에 3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선배이기도 한 [[김상엽]] 투수코치에게[[http://osen.mt.co.kr/article/G1109390480|커터를 전수받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2년 2군에서 15승 2패로 남부리그 다승왕을 수상했고, 방어율 1.55, 탈삼진 100개로 남북부 통틀어서 퓨처스 리그를 씹어먹었다. 팀이 막 창단한 시기라서 투수 뎁스가 얇고 보직이 확실하지 않던 상황이기에 1군에서도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선발진에 충분히 들어갈 거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6월 20일 한화전에서 5이닝 무실점 9K 호투를 벌이며 3승을 따냈다.
8월 4일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해 1회부터 7점을 뽑아낸 타선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중간중간 뜬금없는 볼질을 제외하고는~~ 나름 무난하게 상대 타선을 막아내며 6이닝 1실점(6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QS를 기록, 시즌 5승째를 따냈다.
하지만 8월달에 4승 1패로 승수를 끌어올리더니, 이후에 9월 28일 마산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 '''10K''' 무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3년 연속 10승에 성공했다. 거기다 이 승리로 [[NC 다이노스]]는 최소 창단 첫 PO 직행을 확정지으며 NC의 토종 에이스임을 증명하였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무혐의일 가능성이 생겨서 8월 13일 1군에 합류했으나 10월 7일 경찰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과 동시에 구단에서 축소은폐한 정황을 포착(검찰이 직접 밝힌 사실이 아니라, 기사에서 소개한 '정통한 소식통' 이 검찰이 이재학 승부조작을 포착했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하자), NC 다이노스 프런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어 압수수색이 실시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08577|#]].
만약 승부조작에 가담한 게 사실이면 제2의 [[박현준]]이 될지도 모를 상황. 여기에 더해 예술·체육요원인 이재학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 특례는 34개월간 선수나 지도자 활동을 해야 유효한 상황인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부터 24개월 지난 2016년 10월 시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병역특례가 박탈되어 도로 군 복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11월 7일 승부조작 수사 발표에서 이재학의 승부조작건은 무혐의로 발표가 났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바로 2011년 [[두산 베어스]] 시절에 불법스포츠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도박 처별 규정이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반 형법상 단순도박죄 혐의가 적용되었고, 이 법에 대한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일단 불법 스포츠도박은 KBO 조항상 제명까지 가능한 상황. 정확히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진야곱]]에게 160만원을 건네 대리 베팅을 한 것. 진야곱은 이미 베팅 사실을 시인한 상황이나 이재학은 단순히 돈을 빌려준 것 일뿐 도박에 쓰일 줄은 몰랐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승부조작 건은 대신 같은 팀 동료였던 [[이성민(야구선수)|사람]]이 연루되었다. 또한 [[NC 다이노스]] 프런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는 이재학이 아닌 이성민 승부조작 혐의 은폐 시도건으로 수사를 한 것이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경찰 수사 결과는 승부조작은 무혐의, 불법스포츠 베팅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 되었다. 따라서 검찰 수사나 더이상의 사실 관계 확인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승부조작은 무혐의로 어떻게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상당 수준의 증거나 정황, 증언 등이 드러난 불법 베팅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 중에 있어 KBO의 징계도 복잡한 관계에 얽혀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계좌 내역이나 스스로 자백을 한 진야곱이 이재학과의 공모 관계를 경찰 조사에서도 진술했기에 이재학이 원하는 결백은 그리 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후 2017년 1월 [[창원 LG 세이커스]]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창원실내체육관]]을 찾은 근황[* MBC SPORTS+와의 인터뷰에서는 개인 훈련으로 2017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것을 봐서는 2017년 시즌에는 정상적으로 시즌을 소화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서더라도 결백이 완벽히 증명되기 전까지는 이 때의 이미지는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듯.
2014년 현재 사실상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투피치 투수.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769934|하지만 이재학 본인은 투피치 투수가 아니라 슬라이더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어쨌든 브레이킹볼이 없다~~ --슬라이더도 브레이킹볼인데??--
허나 [[최일언]] 투수 코치는 다른 지적을 했는데, 투피치보단 몸의 중심 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트볼]]의 구위도 저하되고 [[체인지업]]의 떨어지는 각도도 무뎌졌다는 게 부진의 원인이라 했다.[[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77&aid=0000083591&redirect=false|#]]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는데 ''''이재학은 직구 없으면 안되는 선수''''. 즉, 어정쩡하게 새로운 구종을 쓴답시고 밸런스 무너질 바에는 확실한 투피치가 더 낫다는 것. 이 인터뷰가 나온 2017 시즌 후반기부터 이재학이 연일 호투를 하고 그동안의 부진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하던 [[엔갤]]에서도 이 인터뷰 하나로 투피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일언|일언갑]]이 그렇다 하면 그런거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rowbgcolor=#13123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선발}}}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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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배우) . . . . 21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대구동평초등학교 [br] [[대구동평중학교]] [br][[영진고등학교]] [[무용]]과 (졸업) [br]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중퇴) [br] [[경희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과 (학사) [br] [[http://mba.ssu.ac.kr|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콘텐츠경영학과 (석사과정 재학) ||
2014년 10월 13일, 소속사 제이튠캠프와 계약이 종료되어 팀을 탈퇴 후 연기자 활동에 집중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소속사 측에서는 확실히 결정된 부분은 없다며 우선 부인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16일 두 멤버의 탈퇴가 공식으로 보도된다.
어머니가 [[명지전문대학]] 실용음악과 (작곡 전공) 손방나 교수다. 2012년 4월 14일, 두드림에 출연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털어놓았다. 방송에서 거의 언급한 일이 없는 누나가 1명이 있다.
현대 무용수 출신이다. 국내 최고 예술대학인 [[영진고등학교]] 무용과 출신이다. 중3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진고등학교]] 졸업 후 [[영진고등학교]] 무용과를 입학하였으나, 이 학교는 졸업전까지는 방송 및 연예활동이 금지 되기 때문에 도중에 자퇴했다.[* 장동건이 한예종에 있던 과거에는 완전불가였으나 현재 연기과는 1학년은 여전히 불가, 2학년 교내작품은 가능(영화과 작품 출연 등) 3학년 교외활동도 가능하다. 무용·음악원은 여전히 금지. 영상·전통·미술원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신경쓰지 않는다.] 워낙 들어가기 힘든 것으로 잘 알려진 한예종을 자퇴했다는 사실이 잊을만하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아예 '''한예종의 위엄'''이라는 유명한 짤방 시리즈가 존재한다. 당초엔 수석입학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일반입학이었다고 정정했다. "왜 그동안 정정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가 낸 소문도 아니고, 좋은 얘긴데 굳이 제가 나서서 정정할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반박할 수가 없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무한도전]]에서는 조정 특집 당시 제 8, 9, 10의 멤버를 뽑는 자리에 박명수의 전화를 받고는 '''뭐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무한도전이라는 말에 덥석 낚여서''' 참여하게 되었다. 제 8의 멤버로 낙점된 진운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게스트들에 비해서는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나 멀쩡해보이는 비주얼과, 완주 할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는 달리 10분도 못 버티는 조루 체력으로 선방.
그리고 역시 같은해 8월 26일 방영분에서도 허리부상으로 고생하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 대신에 대타로 출연했다. 2012년 들어 런닝맨 출연만 4번째. 고정으로 합류했다가 얼마 안가 하차한 리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출연한 게스트이다. 비록 승률은 4전 4패급이지만, 아이돌 치고는 예능적으로는 상당한 선방인 셈.
2012년 1월 24일 MBC 설 특집 프로그램 [[두근두근 흔들려]]에 출연해 [[애프터스쿨]] [[박수아|리지]]와 커플이 되어 고난이도의 [[에어로빅]] 체조 공연을 펼쳤다. 처음부터 리지를 파트너로 지목했고, 극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둘이 모여 꽁기꽁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로 상대방이 자기에게 실망할까봐 걱정하는 소심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상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상황.
[[김기덕]] 감독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감독의 오랜 팬이었으며 무명시절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던 등의 이야기를 하였고, 김기덕 감독도 호의를 보여서 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신연식 감독의 [[배우는 배우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사실상 이준이 모두 이끌어가는 원탑 주연의 영화로 기자시사회 후에도 이준의 연기에 호평이 꽤 이어졌다.
웃을 때 팔자주름이 생기는 것이 특징. 사막여우를 닮았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듯한 솔직한 발언과 백치미스러움, [[정신줄|정줄]] 놓고 망가지는 모습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은 매우 소심하다. 막내인 [[미르(엠블랙)|미르]]가 [[천둥(가수)|천둥]]과만 논다고 삐져있다던지... 방송에서는 밝고 명랑한 천연 & 백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면면을 살펴보면 속이 깊고 생각도 많으며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송에선 [[비글]]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는 스타일. 하지만 의외로 애교도 많다 ~~반오십이후로는 애교부리는것이 민망해졌다고 한다~~ 쉴 때면 거의 잠만 자고 조용해서 멤버들 사이에서 별명이 식물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하다. ~~멤버들이 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화폐|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장부를 쓰고 있다. 백원까지도 다 받아내려 하지만 팀의 리더인 [[승호]]는 갚는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돈을 재테크로 불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안쓰고 모아서''' 잠실에 집을 샀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많이 돈을 쓰는 품목은 [[이온음료]]. 부모님께 번 돈을 다 드리고 자신은 [[체크카드]]로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래들보다 수입이 많다고 자칫 그것이 평생 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모님이 편찮으셔서 간병도 하고 치료비 일부를 지원한 바 있는데 그 일이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훨씬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임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듯, 아이돌계 최강 짠돌이라고 알려진 이준이 아이돌 중 최초로 세월호 기부를 해 많은 칭찬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03857|기부 기사에 댓글이 만 개 가까이 달리기도 했다. 놀랍게도 거의 다 선플.]] 그것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고 혼자 본명으로 몰래 했다가 기부처 측 확인 절차 중에 알려진 거라고.. ~~왠지 기부도 이준답게 한다~~
[[디스패치]]가 [[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new1&no=3540943|털지 못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따라다녔지만 라디오스타에서 밝힌대로 정말 김밥천국에서 김치볶음밥만 먹고 나오는 것만 포착했다고. ~~돈 안쓴다더니 사실이었구나?~~ 후에 한 번 더 따라 붙었지만 새우 튀김을 먹고 길거리에서 턴하는 모습만 찍혀 끝판왕 다운 면모를 보였다. [[디스패치]]에서 열애설 특종이 나올 때 마다 그의 김치볶음밥 썰은 전설처럼 다시금 언급된다. 그만큼 화제의 인물로 올랐으나 2018년 1월 1일 새해 첫 날, 해당지에서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정소민]]과 열애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http://www.dispatch.co.kr/1057864|관련 기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소속사에서 열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엠블랙 탈퇴하자마자 일반인 동창과 연애설이 났으나, 사진한장없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제레기짓이 아닌가 싶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마치 [[싸이월드]]처럼 사용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퍼가실땐 퍼가요 물결 하트를 남기라고 한다~~ 일단 프로필부터가 사이좋은 사람들 이준월드...
2018년 2월 12일, 난데없이 군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그린캠프]]로 보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892694|#]] 하지만 이 기사가 나온 후 소속사는 자살 시도는 물론 [[그린캠프]]로 간 것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으며, 신병위로휴가 당시 연인이었던 정소민씨와의 오붓한 데이트 등의 모습이 나오며 팬들을 안심시킨 한편, 오보를 접한 가족들은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2018년 3월 23일 부로 공황장애를 이유로 현부심을 받아서 현역에서 [[사회복무요원]](보충역)으로 전환하여 잔여 기간 동안 복무한다는 보도기사가 나왔다.
- 진격의 거인/85화 . . . . 21회 일치
[[진격의 거인]] 85화. '''지하실'''
* 아르민은 어째서 자신을 선택한 거냐고 원망하듯 말하지만 리바이는 결국 자신의 판단이었고 너는 너대로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 된다고 격려한다.
* 윌 마리아 탈환이 확실시되고 엘런 예거, 미사카 아커만, 리바이, 한지 조에는 그리샤 예거의 지하실로 향한다.
* 언뜻 평범해 보이는 지하실은 생각지도 못한 진실을 숨기고 있는데.
* 이 모든 사실을 듣고 아르민은 구역질이 올라오는걸 참는다.
* 그러나 아르민에겐 "남에겐 없는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말을 잇는다.
* "그리샤 예거의 지하실"을 조사하는 것.
* 자신과 리바이, 엘런과 미카사가 한조가 되어 지하실로 향한다. 나머지 인원은 벽 위에서 경계한다.
* 엘런은 아버지에게 "언제 지하실을 보여줄 거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리샤는 "네가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달았을 때"라는 선문답 같은 답을 했다.
* 그리고 그리샤가 떠나던 그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돌아오면 지하실을 보여주마"라고 그 열쇠를 보여주었다.
* 그리고 지금. 옐런은 지하실 문 앞에 서 있다. 열쇠를 들고.
* 마침내 지하실에 입성.
* 보기엔 평범한 가정의 지하실이다.
* 나일은 그때는 그냥 비약적인 생각이라 웃어 넘겼지만, 레이스 왕가의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 최대의 핵심 떡밥으로 거론되었던 "지하실"의 진실이 공개되었다.
* 레이스 왕가가 마지막까지 진실된 역사와 벽 바깥에 대해서 함구하려 했던 걸로 볼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 사실 벽 안의 인류는 "거인"이 아닌 "벽 밖의 인류"에게 쫓겨서 벽 안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다.
*벽 안이 실험도시라는 설도 돌고있다.
- 헌터X헌터/369화 . . . . 21회 일치
* 왕비는 그가 개인적인 득실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렸다 보지만, 크라피카는 와블 왕자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항변하며 신뢰해줄 것을 부탁한다.
* 즉 오이토 왕비는 이미 넨능력의 소양이 개화된 상태인 것. 그런 사실이 밝혀진 채 아침이 다가오고, 약속한 오전 9시의 넨 습득 교습이 시작된다.
* 왕위계승전의 무대가 되어버린 BW호. 그러나 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바다 위에 떠있었다. 목적지는 암흑대륙. 출항 2일 째. 항구를 떠난지 18시간이 되는 시점이었다. [[크라피카]]가 눈을 뜬 시각이었다. 끔직한 파열음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던 크라피카. 그는 여전히 [[오이토]] 왕비의 주침실에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빌"이었다. 그는 크라피카가 의식을 되찾은 걸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리스크를 감수해더라도 의사를 불러야 되나 망설이던 참이었다. 크라피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몇 시냐고 물었다. 빌은 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크라피카가 실신했던 사실을 함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호원들은 그가 임무 수행 중인줄 알고 있다. 크라피카가 안달하지 않아도 빌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가 쓰러진지는 약 9시간. 크라피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나 지났을 줄이야. 크라피카는 왕비의 안위도 확인했다. 그리고 빌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 다소 무례한 일이 될지 모르지만,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곧바로 다음 수색을 부탁했다. 왕비는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크라피카 못지 않게 초췌해 보였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가 12왕자 모모제의 거처부터 재개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크라피카는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스틸 체인은 무리를 해서는 안 되는 능력이었고 이번 실신도 분명 그것 때문이었다. 따라서 수색 순서를 바꾼다. 이번엔 제 4왕자의 거처부터 시작한다.
* BW가 이틀째 새벽을 맞이할 무렵 왕비의 수색이 재개됐다. 바퀴벌레는 통풍구를 따라 1004호실로 향했다. 왕비는 설계도를 짚어가며 신중히 진행했다. 길을 헤매서도 지체가 돼서도 안 됐다. 그만큼 크라피카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도 없이 목적지가 가까웠다. 이제 모퉁이 하나만 돌면 체리드니히의 거실. 그렇게 순조롭게 잠입이 성공하는 것 같았는데, 암초에 부딪혔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여자의 얼굴. 아니다 그것이 여자일리 없다. 통풍구 속의 여자라니. 그 여자가 입을 멀리자 그 안에서 또다른 얼굴이, 그리고 달팽이 같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모든 게 한 순간. 왕비에겐 바퀴벌레를 회수할 겨를도 없었다. 그 무언가가 바퀴벌레를, 그녀를 통채로 집어삼켰다.
오이토 왕비의 비명이 세어나갔다. [[바비마이나]]를 포함해 경호원 전원이 달려온 걸 보면 꽤 먼 곳까지 들린게 틀림없었다. 바비마이나가 설명을 요구하자 크라피카는 "왕비님이 악몽을 꾸셨다"고 둘러댔다. 마침 그녀는 침대에 있었으니까. 바비마이나는 납득한 것같진 않았지만 트집을 잡을 구실도 없었다. 결국 경호원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왕비는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상황을 설명했다. 통풍구에 나타난 여자. 아마도 바퀴벌레는 먹혔을 것이다. 마침 왕비 곁의 돌핀이 "리틀아이가 강제 해제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오이토가 그 사실도 전달하자 크라피카는 이제 해제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엠퍼러 타임은 종료. 장장 12시간, 그 중 9시간이나 허비한 결과 아무 수확도 없는 헛수고를 했다. 왕비가 발견한 통풍구 속의 여자가 수확이라면 수확일까? 보안상 통풍구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넨수, 체리드니히의 넨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크라피카는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감에 몸이 휘청거렸다. 아무리 제약을 둔 넨이라도 몸에 아무런 반동도 없을 순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라지만, 정말 성가신 능력이다.
>아주 조그마한 실수가 목숨을 앗아가는... 맹독이 묻은 양날의 검.
적어도 그것 하나는 실감했다.
>제게도... 넨 능력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 제 9왕자 할겐부르그는 사설병 둘을 보냈다. "세쥬르"라는 안경잽이 남자와 검은 머리의 "유히라이"라는 남자. 할겐부르그는 계승전에서 빠지기로 했지만 자신을 비롯해 소속병 전원의 손등에 "깃털문양"이 나타나자 예사일로 느끼지 않았다. 분명 "넨수"가 관련되었다, 그렇게 직감했다. 그 정보를 유포한 와블 왕자측과 접촉해 이 깃털문양의 실체를 밝히는게 목표. 그걸 위해서라면 이쪽의 정보를 전부 공개하는 것도 상관없다. 세쥬르는 알아볼 필요도 없이 할겐부르그의 넨수일 거라고 짐작한다. 유히라이도 동감한다. 이 문양은 왕자가 말하는 "각오의 각인" 그 자체다.
* 8왕자 사레사레는 쉰코쉰코 왕비 소속병 대장 "무샤호"를 보냈다. 짧은 머리에 이마가 돌출된 독특한 인상. 그는 약간 씁쓸해하고 있다. 왕자가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내쫓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전 내용 자체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최중요 임무".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 5왕자 츠베파는 철저하게 실리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접촉시켰던 사설병 대장 "마올"을 다시 파견하고 "롱기"라는 머리가 긴 남자를 딸려보냈다. 그 역시 츠베파의 사설병. 그들의 목표는 "크라피카의 두뇌". 그를 동료로 확보하는 것이다. 와블 왕자까지 포함해도 좋으니 꼭 동료가 될 수있도록 설득하라는게 진짜 목표였다. 넨 습득은 오히려 구실. 마올은 다른 진영 경호병의 눈을 의식해 은밀하게 처리하려면 편지를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롱기도 같은 생각이다. 부호를 쓰거나 동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노출된 우려가 컸다.
* 장레이가 파견한 "텐후토리"는 장레이의 사설병이다. 주먹코에 안경이라는 볼품없는 행색. 그도 실제로 명령받은건 정찰과 감시였다. 목표는 크라피카. 그에게 접촉을 시도하는 인물들이었다. 장레이는 크라피카가 앞으로 키맨 노릇을 할거라 내다봤다. 텐후토리가 보기엔 제 1왕자, 4왕자, 5왕자가 요주의다.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몹시 음험해 보이는 남자였다. 일단은 텐후토리처럼 정찰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다. 설마 와블 측에서 먼저 초대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좋은 기회다. 적의 넨능력을 파악할 수단은 많다. 외견, 수업방식,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계통이나 능력 자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건 휴리코프만의 기술이었다. 넨능력이 아닌, 경험에 의한 노하우. 어찌보면 이거야 말로 그의 생명선이었으며, 그런만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수였다. 가령 능력자와 비능력자는 안구의 움직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옆에서 안구를 봤을 때 그 주변의 흔들림을 보는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구분법이었다. 지금도 그는 1014호실 거실에 모인 안구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 현이와 덕이 . . . . 21회 일치
* 1978년 : 캐럴 - [[디스코 크리스마스 (음반)|디스코 크리스마스]] (7곡) - 대표곡 : 징글 벨, 루돌프 사슴코, 실버벨, 싼타할아버지 오시네 등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1976년) 장덕은 어머니에게 [[안양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처음엔 1년을 더 다녀야 된다며 말렸지만 하도 졸라대서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찾아갔고 다행히도 현이와 덕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라서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입학을 허락받는다. 그 해 4월 장현 · 장덕 남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해 11월 개봉된 [[김응천]] [[감독]], [[임예진]] · [[이덕화]] · [[전영록]] [[주연]]의 [[영화]] [푸른교실]에서 현이와 덕이는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된다.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명[[감독]] [[김응천]] · [[석래명]] ·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 음악을 전공하는 청순한 여고생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팬들에게 다섯 번씩이나 납치를 당했을 정도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 그 해 7월 장덕은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된다. 이 시기 오빠 장현은 오라오라에 출연했을 때 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였던 천봉의 딸 천인실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장덕은 결혼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8년 [[현이와덕이]] 정규1집 <[[순진한 아이]]>가 발표 되었다.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일기장>, <[[소녀와 가로등]]>, <정말>, <작은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11곡+경음악1곡 수록, 같은 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발표)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 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한인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한국의 샘터에서 MC로도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장덕은 리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이승언과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해 달라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결혼은 감옥 같은 것 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대학 졸업 후 결혼하라고 충고했지만 10월 17일 미국에 온지 1년만에 장덕은 자신을 아껴주는 이승언과 [[내쉬빌]]에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리 패밀리의 일원으로서(밴드에서 장덕은 음악적 리더 역할을 하였고 퍼스트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한인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점점 그녀는 서울에서의 화려했던 가수 생활의 추억을 점점 그리워 하게 된다.
1985년 6월 [[장현]] · 장덕 남매는 7년만에 재결합,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며 타이틀곡 <너너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비롯 <이젠 안녕>, <그대의 투정>, <해바라기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의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가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었고 장덕에게 막힌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이 앨범에서는 장현 또한 작사/작곡에 많은 참여를 하였다. 현이와 덕이의 정규 1집 《순진한 아이》에서는 모든 곡들을 장덕이 작사/작곡했지만 이 앨범에서는 B면 3번 트랙 <그댄 없지만>과 그들의 정규 1집 《순진한 아이》에 실린 버전들의 재편곡 버전인 B면 4번 트랙 <소녀와 가로등>, B면 5번 트랙 <순진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을 [[장현]] · 장덕 남매가 함께 만들었다.
1987년 7월 장덕은 타이틀곡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비롯 <이별인줄 알았어요>, <이 노래를 들을때면>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4집《[[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두봉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재킷에 <골든앨범1집>이란 타이틀이 표기되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이별인줄 알았어요>가 가요톱10 등 가요 순위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시기 장덕의 오빠 장현도 타이틀곡 <마지막 진실>을 비롯 <연민>, <어느날>, <만날 수 없는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솔로 데뷔 음반 《마지막 진실》을 발표하게 된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장덕 작사/작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어 장덕이 오빠 장현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도 여겨진다.) 9월 장덕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 3회 [[ABU]](아시아 태평양 방송연합) 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당시 불렀던 노래 <너를 기다릴거야>는 1989년 발매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에 재편곡되어 수록되게 된다.
1989년 2월 오빠 장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일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장덕의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여의도 사무실에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이 때 훈이와 슈퍼스타, [[박혜성]] 등의 가수들도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장현은 혓바닥에 혓바늘 것이 돋아 났지만 피로 때문에 생긴 것으로 여기고 넘어 갔는데, 장덕의 새 앨범《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막바지 이르고 있었을 때였다(6월 18일). 혓바늘로만 여겼던 것이 자꾸만 커져가고 통증도 심해져 장현은 다니던 작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걸 중단하고 국립의료원에 찾아 갔더니 설암 3기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앨범 작업 중 다가와 사실을 털어놓는 오빠에게 장덕은 곧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병원에서는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병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장덕은 자신의 일에 신경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채찍하였다. 당시 장현은 혀의 절반을 자르면 5년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1년 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하면 말을 할 수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고 자가요법을 택하게 된다. 얼마 후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를 비롯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니>, <슬픈 약속>, <수레>, <나의 공주님> 등의 곡들이 수록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발표된다. 그리고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게 되자 결국 장덕은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오빠의 병간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1990년 1월) 장덕은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KBS]] 신년 특집극 [[드라마]] <[[구리반지]]>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장덕은 비중있는 역을 맡아 억척스럽고 발랄한 스무살 여성 역을 연기했다.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 그리고 참여 음반 《푸른교실 · 선생님 안녕 (OST)》은 장덕 또는 장현이 참여한 곡에 한한다.<br>
* [[푸른교실 · 선생님 안녕 (OST)]] (1978)
- That 70's show . . . . 20회 일치
키티, 레드, 에릭, 로리의 집. 왠지 에릭의 친구들은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 거린다. 하이드가 지하실에 세들어 살거나 재키나 페즈가 몰래 살기도 했다.--공유지의 비극--
'''지하실'''
포먼 일가의 집 지하실. 에릭과 친구들이 아지트처럼 삼아서 매일 같이 모여서 노는 장소이다. 지하실 안쪽에 작은 방이 있으며, 하이드는 이 방에서 살고 있다.
레드는 이 기회에 제럴드 포드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려고 결심하지만, 마을 유지들 협의회에서는 레드에게 미리 할 질문을 정해주었다. 자동차 공장이 묻을 닫아가면서 거의 실직한 상태에 놓여있던 레드는 경제가 이 모양인데 이제는 자기 할 말도 못하게 하는거냐고 크게 상심한다.
주인공. 1970년대를 살아가는 방황하는 청춘. 스포츠에 약하고 빈약하지만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는 지하실이 포먼네 집에 있어 에릭이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 인물이 된다.
여주인공2.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미모에 자신감이 넘치고 [[공주병]]이 강하다. 도나와 친구, 켈소와 연인 관계라서 그룹에 끼어들었지만 사실 초반에는 아무도 재키를 좋아하진 않았다(…). 시즌이 갈수록 우정으로 그룹의 일원이 되어간다. 작중 내내 켈소, 하이드, 페즈를 오가다가 8시즌 최종화에서 페즈와 맺어진다.
아버지는 잘나가는 변호사였지만,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잡혀가고 어머니[* 나중에 게스트 등장하는데 배우가 '브룩 쉴즈'다.]는 멕시코로 도주(…)하여, 에릭네 지하실에서 하이드와 같이 얹혀 살거나 도나네 집에서 얹혀살게 되는 고난을 겪기도 한다.
에릭의 베프. 반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상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백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반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반대편이고, 영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에릭과 로리의 어머니. 요리와 가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주부이며,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알콜 중독]] 기미가 약간 있다. 정이 깊은 성격이라 지하실에서 어슬렁거리는 방황하는 청춘들(…)을 언제나 챙겨주고 있다. 에릭에게 과도하게 애정을 쏟아서 [[마마보이]] 스럽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에릭과 서로 과거 폭로전을 벌이다가, 사실 태어났을 때는 [[꼬리]]가 있었다(…)는 비밀이 밝혀지기도 했다. 카드놀이를 하다가 666을 연속으로 뽑는 등 악마(…) 기믹이 들어가기도.
본래 마을에서 전자제품 상점 '바겐 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지만, 프라이스 마트가 들어서면서 폐업하게 된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발명품과 몇가지 사업에 성공하면서 다시 부자가 된다. 8시즌에서는 [[플로리다]]로 이주하고 낙시용품점을 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사진관 체인점 포토헛(Foto Hut)을 경영하는 [[히피]]로 등장. 과도한 대마초 사용으로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으며,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그런데 8시즌에서 사실 과거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퍼플하트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수송병으로 참가했지만 수송 트럭으로 독일군 탱크 부대를 뚫고 들어가서 소대원을 구출한 경력이 있다고. 귀국하고 차를 타는데 대마 연기를 풍풍 풍기는 수상한 재즈 뮤직션의 차를 얻어탓다가 그 이래로 히피화 된 것으로 보인다.
6시즌 31에피소드 '밴스탁(Vanstock)'에서 잠깐 언급되지만, 드라마 패러디에서 나레이션으로 언급되는 것이므로 실제로 등장한다기보다는 농담에 가깝다.
- 안종범 . . . . 20회 일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에 지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용되어 일하다가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대통령]]이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2016년 10월 30일 사임하였고 제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강석훈]]이 그 직을 임시 대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69333 靑 수석비서관들 일괄 사표제출…朴대통령 인적쇄신 가능할까]. 서울신문. 2016년 10월 30일.</ref>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8904 민정수석·청와대 비서관… 도대체 뭐 하는 자린고?]. 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ref> <ref>이상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74512 靑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대행]. 머니투데이. 2016년 11월 16일.</ref>
== 범죄 사실 ==
2016년 11월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 강요,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ref>{{보고서 인용|저자=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pdfdownload.jsp?attach_no=175537|제목=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수사결과발표|출판사=검찰 특별수사본부|날짜=2016년 11월 20일}}</ref>
박근혜 대통령 등과 공모해 삼성 등 15개 전경련 회원사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조력한 혐의로 2018년 2월 13일 1심에서 징역 6년, 벌금 1억원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국정농단 연루' 안종범, 1심에서 징역 6년·벌금 1억원|url=http://news.joins.com/article/22369620|날짜=2018-02-13|출판사=중앙일보}}</ref> 이후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는 징역 5년, 벌금 6000만원을 선고받아, 징역 1년, 벌금 4000만원이 줄어들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4/2018082401286.html|제목=[속보] 국정농단 2심 최순실 징역 20년, 안종범 5년…崔 벌금 늘고, 安은 감형|성=|이름=|날짜=2018-08-24|뉴스=|출판사=}}</ref>
2018년 3월 29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안종범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재직 당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를 위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대통령 조사’ 안건 부결 기획안 마련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ref>{{보고서 인용|저자=공보담당관 차장검사 문찬석|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download.jsp?attach_no=193667|제목=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 수사결과|출판사=서울동부지방검찰청|날짜=2018년 3월 29일}}</ref>
* 2000 . 12 ~ 2002 . 02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정세제위원회 위원장
* 2014 . 06 ~ 2016 . 05 :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 2016 . 05 ~ 2016 . 10 :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직책 =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직책 =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최순실 게이트}}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20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반도] 내륙을 영구상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상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반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오스만은 몇번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여 제국의 숨통을 완전히 끊으려고 시도해봤지만, 바예지드 1세가 티무르에게 패배하여 후계자 분쟁으로 오스만이 여러 세력으로 분열하면서 실패하였다. 오스만의 혼란을 앞에 두고 비잔티움은 오스만의 후계자 분쟁에 개입하여 오스만 술탄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만족했다. 이후 무라트 2세 시기 시행된 공세도 실패했다.
1451년 무라트 2세가 죽고 새로이 술탄으로 오른 이는 메흐메트 2세였다. 사실, 그는 1444년에 이미 즉위한바가 있으나 동쪽에서 카라만이 반란을 일으키고, 발칸에선 비잔티움의 사주를 받은 무라트의 동생 오르한이 폭동을 일으키고, 헝가리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자 재상 할랄 파샤의 주도로 무라트 2세가 복위돼 퇴위되버린(..) 굴욕을 간직한 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럽군주들은 그를 애송이취급하면서 무시해버렸고, 이때문에 오스만이 실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때도 느릿느릿 관망만 하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실제론 자기들 이권다툼이나 나라 내실다지기가 더중요했던게 크다. 바로옆에서 초거대세력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하던 제국을 무시한 이탈리아 중견국들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로저 크롤리의 표현대로 '동방의 알렉산드로스'를 노린 이였고, 이는 말년의 나폴리 침공에서도 잘 드러나는 일면이다. 아무튼, 그의 두번째 즉위당시 아무도 그의 야망을 모르거나 무시했고, 이는 유럽군주들의 가장 큰 실수로 남는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이건 사실상 술탄의 심기를 대폭 건드는 발언이었고, 여전히 재상이었으며. 무라트 2세부터 지속된 평화주의의 대표적인 자였던 할랄 파샤는 이것때문에 사절 면전앞에서 폭언을 하기에 이른다.
사실 당시 비잔티움의 궁정에는 오스만의 내부사정을 잘알고 있었던 자들이 많았고, 이들이 이러한 요구가 술탄의 화만 돋울거란걸 모르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요구를 한걸까? 아마 재정상의 이유일 가능성이 클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건 알 수 없다.
오히려 국가적인 지원보단 개인적인 지원이 더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스티야의 귀족인 톨레도의 돈 프란시스코[* 자신을 콤네소스 황가의 자손이라 칭하며 황제를 사촌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콤네노스가 아닌 팔레올로고스 왕조였고, 오히려 [[트레비존드 제국]]이 콤네노스 왕조의 후손이다. 팔레올로고스 왕조도 콤네노스 왕조와 인척관계이긴 하지만.]와 제노바의 군인 주스티니아니 롱고였는데, 특히 주스티니아니는 공성전전문가로 상당히 이름난 군인이었기에 황제가 직접 방어를 성공해낸다면 림노스 섬의 통치권을 나눠준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국가 이상으로 높았으며, 통제력이 미약한 세속 국가보다는 종교에 대하여 애착을 강하게 가졌다. 특히 말기의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모든 면에서 오스만 제국의 간섭을 받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며, 오스만 투르크 영토 한 가운데 고립된 '콘스탄티노플'은 모든 면에서 비잔티움 황제보다 오스만 술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세속국가로서 비잔티움은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약화되었고, 제국은 과거와는 달리 '교회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서대통합이 '확실하게' 정교회 전통을 단절시키는 반면 별다른 군사적 보호는 제공하지 않고, 이슬람의 정복은 아직 술탄의 관용에 호소하여 정교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가망이 더 크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교황의 삼중관보다 차라리 터키인의 터번을 택하겠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제국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국가는 백년전쟁의 틈을 타 저지대를 차지하며 프랑스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부르고뉴 공국이었으나, 그곳의 지배자였던 '선량공'필리프는 아버지인 '대담공'장이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여해서 어떤 치욕을 봤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제국의 문제에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건 본토와 저지대의 영토를 연결하는것과 라인강 인근의 아헨 등의 영토를 확보하는것이었다.
* 사실 이 당시 제국의 본령은 [[모레아 전제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콘스탄티노플보다는 모레아의 비중이 더 컷다. 콘스탄티노플은 여전히 대도시였지만, 제국의 전체 국력에서 보자면 단지 적진에 포위된 위요지 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수도라는 정치적 상징, 총대주교좌가 놓여 있다는 종교적 상징으로서 가치는 모레아 영토와는 비교할 수 없었고, 이 사건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다는 인식이 강하게 세워졌다.
오스만 제국에 주변 영토가 포위되어 현실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콘스탄티노플에 집착하는 것은 안 그래도 쇠퇴기에 들어간 제국에 있어서 발목을 크게 잡는 요소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의 상징적 가치는 비잔티움 제국, 그리고 콘스탄틴노플 탈환이라는 공적으로 제국의 복원을 선언했던 팔레올로고스 가문에 있어서는 너무나 큰 것이었고, 이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대외적으로도 곧 제국의 멸망으로 여겨진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20회 일치
자신들이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이들로, 실제 역사에서는 시코쿠 전체로 세력권을 넓혔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굴복해야 했다. 이후 [[큐슈]]와 [[조선]]에 원정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세력 다툼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지지했다가 도쿠가와가 승리하며 모든 권력을 잃게된다.
* 진실의 주인
일본의 명문 가문 중 하나였던 미나모토 가문에 뿌리를 둔 가문. 미나모토 가문 만큼은 아니었지만 시마즈 가문 또한 이름있는 가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센고쿠 시대에서 살아남아 임진왜란에도 참전하고, 메이지 유신이 벌어지기 전까지 본거지인 사츠마를 지배했다. 그러니까 사무라이의 몰락에 나오는 사츠마의 번주들이 얘네 후손들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후 호조"나 "고호조"로 불리는 가문. 가마쿠라 시대에 있었던 호조 가문과 별개의 가문이라서 이렇게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군대에게 패배해 멸망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상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영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영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전국 통일에 거의 성공할 뻔했으나, 오다 가문의 가신이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다이묘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하는 [[혼노지의 변]]을 일으키며 좆ㅋ망ㅋ. 이후 오다 가문의 또다른 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츠히데와 다른 경쟁자들을 진압하고 오다 가문을 계승(?)하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도쿠가와 연합에 의해 멸망당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일본 통일을 이루고 에도 막부를 세우게 되는 가문. 그런데 NPC 가문일 경우 100% 망한다.
혼슈의 미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오다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사이토 도산.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큐슈 북서쪽의 히젠, 쓰쿠시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오토모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쇼니 스케모토. 실제 역사에서는 오우치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의 이와미, 이즈미, 호키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야마코 가문과 동맹 중이며 모리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아마코 아키히사. 실제 역사에서는 모리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의 오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원래 "아자이"라고 읽지만 어째선지 아사이로 번역되었다.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아사이 히사마사.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에게 패배해 멸망했다.
혼슈의 후쿠시마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사타케 가문과 전쟁 중. 다이묘는 아시나 모리키요. 실제 역사에서는 다테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 서쪽 끝의 스오, 나가토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백제]]가 멸망할 때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 왕족들에 뿌리를 두고있다. 모리 가문과 동맹중이며 오토모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오우치 요시오키. 실제 역사에서는 모리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의 도토미, 스루가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이마가와 요시모토. 다케다 가문과 동맹 중이며 오다 가문과 전쟁 중.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과의 전쟁에서 요시모토가 전사하고, 이후 다케다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에게 흡수당했다.
큐슈의 오스미를 거점으로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이토 요시스케. 시마즈 가문과 전쟁 중. 실제 역사에서는 시마즈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시코쿠의 이요를 거점으로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코노 미치나오. 실제 역사에서는 초소카베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혼슈 북쪽 섬인 사도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하타케야마 가문과 동맹 중이며 모가미 가문과 전쟁 중. 실제 역사에서는 우에스기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19회 일치
* 우마루(UMR모드)는 실핀과 레트로한 도쿄 거리를 보다가 직전 현장으로 와버린다.
* 즐겁게 거리를 산책하다가 알렉스와 마주치는데, 실핀은 당황하며 몸을 숨긴다.
* 사실 실핀은 무려 10년 간이나 오빠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 실핀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우마루에게 물어온다.
* 도마 우마루(UMR모드)는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레트로한 도쿄 거리를 산책하는 Tv프로를 보고 있었다.
* 거기에 흥미를 느낀 실핀은 무작정 그 거리에 가보자고 하고 정말로 와버린다.
* 실핀이 먼저 흥미를 보인 곳은 정육점.
* 그런데 실핀은 거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더니 황급히 몸을 숨긴다.
* 실핀은 오빠가 레트로 거리의 풍경을 찍고 있는 거라며 우선은 떨어지자고 한다.
* 우마루가 오빠에게 아는 척하지 않을 거냐고 묻자 실핀이 당황한다.
* 우마루는 믿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실핀과 알렉스가 대화나누는걸 본 적이 없다.
* 그제서야 실핀의 말이 과장없는 사실임을 알게 된다.
* 우마루가 그런건 외롭지 않냐고 묻자 실핀도 "외롭다"고 답하는데.
* 실핀은 너무 오랜만에 말을 붙여보는 거라 "오빠(오니짱)"이라 부른 것 조차 어색해 한다.
* 우마루는 오라버니라고 부르거나 "이런 데서 만나네"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보라고 하는데, 실핀은 그 조차도 "그 다음엔 뭐라고 해야 하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감을 잡지 못한다.
* 실핀이 초 브라콘이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실 모토베 남매 이상으로 어색한 사이였다.
- 블랙 클로버/100화 . . . . 19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100. '''운명의 붉은 실'''
*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각성한 "운명의 붉은 실"은 이미 일어난 사건 조차도 운명을 조종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대체할 수 있다.
* [[마녀왕]]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조종해 [[노엘 실버]], [[핀랄 룰러케이트]]를 죽이나 그때마다 운명은 바네사의 의사대로 대체된다.
* 마녀왕은 드디어 바네사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바네사 자체를 조종하려고 들지만 그 조차 실패하고 만다.
* [[바네사 에노테이커]]로부터 뿜어져 나온 "운명의 붉은 실"은 한데 뭉쳐 고양이의 형상으로 변한다. 바네사는 이런 형태로 이미지하지 않았는데 고양이가 나타나자 의아해한다.
* [[마녀왕]]은 바네사에게 기대하고 있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각성한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걸 시험하기 위해 조종하던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노엘 실버]]를 죽이게 한다. 바네사가 안 된다고 외치자 고양이는 그 목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뛰어올라 아스타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아스타를 만진 것 뿐, 어떤 영향을 준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몇 초 전으로 되돌아간다. 마녀왕이 봤던 장면은 환상처럼 사라져버린다. 아스타는 노엘을 찌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의식으로 마녀왕의 조종에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마녀왕이 [[핀랄 룰러케이트]]를 공격하게 하지만 마찬가지 결과였다. 마녀왕은 한 번 그가 죽임 당하는걸 보지만 그 현실은 금방 사라지고 공격이 실패한 장면으로 대체된다.
* 마녀왕은 이번엔 고양이 본체를 공격하게 하지만 실처럼 풀어지면서 공격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고양이가 또 아스타에게 닿자, 흘려보낸 검이 아스타의 몸에 닿으면서 "꼭두각시의 혈조"가 풀려져 버린다.
마녀왕은 자신이 있을 수 없는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을 깨닫고 이거야 말로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각성한 거라고 깨닫는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마법의 능력은 "고양이가 닿은 인물의 운명을 술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 바네사에겐 동료가 죽거나 아스타가 조종 당하는 현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공격이 운좋게 빚나가는 결과만이 보여졌을 것이다.
여왕은 혈액을 모아 거대한 낫을 만들며 바네사의 운명의 힘을 수확하기 위해 다가온다.
* 그녀의 우위는 한 순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고양이가 여왕의 이마를 건드린다. 그러자 꼭두각시의 혈조는 물론 그녀가 전개하고 있던 모든 마법이 해체되어 버린다. 그건 저항할 수 있는 성질의 힘이 아니다. 마녀왕은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의 완벽한 마법이 조종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여기지만, 결과는 분명하다.
- 하이큐!! . . . . 19회 일치
2013년 골든 위크에 신쥬쿠 역사에 대형 브로마이드 전시를 하기도 했으며, 2013년 [[7월 22일]], 7권 발매 및 누계 250만부 판매 기념으로 슈에이샤 본사 1층 전시회실에서 하이큐!! 전을 개최, 예상 외의 호평에 9월 20일까지 연장되기도 했으며 2013년 10월에는 하이큐!! 점프샵 페어가 열렸다.
기존의 배구 만화들이 에이스 스파이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반면, 하이큐!!는 세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배구에서는 흔히 하는 말로,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 한다면 [[배구]]는 세터 놀음' 이라 한다. 그만큼 배구에서 세터란 포지션이 중요하며, 이는 작중에서 [[코즈메 켄마]]가 '세터는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이 하는 포지션' 이란 대사로도 언급된다. 이처럼 현실 배구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임에도 그 특성상 화려함은 떨어지는 포지션[* 아예 [[히나타 쇼요]]는 세터에 대해서 '수수하고 어려운 포지션'이라고 말한다.]이라, (시각 매체인) 만화에서 세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이큐!!는 이 세터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작중 등장하는 세터들은 유독 [[사기캐]]와 [[먼치킨]]들이 많은데, 그 정점에 본작의 투탑 주인공 중 하나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다.
본작의 원안이 되는 최초 단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는 세터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사실상 주인공이었으며 비중도 [[히나타 쇼요]] 보다 더 컸다. 후에 연재된 두번째 단편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정식 연재분과 가장 흡사해졌고 둘의 비중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정식 연재에 와서는 지금처럼 되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로는, 대체적으로 '''평작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이전에 연재를 한 경험이 있어 그림체가 호불호가 갈린다곤 해도 상당히 안정된 편이고, 캐릭터가 주연 조연 모두 매력적이며 구성도 탄탄하다. 뿐만 아니라 만화 특유의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칸 연출에 상당히 능숙한 편. <하이큐!!>의 최대의 강점은 그 연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허무맹랑한 필살기나 기술명이 난무하지 않고, 스포츠를 가장한 특수 [[능력자 배틀물]]의 성격을 띄는 경우[* 대표적인 만화가 테니스의 왕자다. 필살기 난무, 특수능력 난무로 만화 자체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후 이작품은 매너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를 모욕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테니스 한 번 치면 사람이 다치고 인사불성~~]가 많은 점프계치고는 [[주인공 보정]]이나 만화적 연출을 제외하면 상당히 현실성 넘치는 경기 묘사[* 많은 [[덕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스포츠물]]에서 진짜 100% 현실적인 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100% 현실적인 묘사로만 이루어진다해도 정말 ~~[[암]]을 유발할 것 같은~~ 답답한 전개가 펼쳐지기때문에 그야말로 독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는 현실의 스포츠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그나마 현실적인 묘사를 하더라도 약간의 판타지는 섞여있을 수 밖에 없다. 리얼계 스포츠물의 [[레전설]]로 불리는 <[[슬램덩크]]>도 사실 100% 현실적인 건 아니다. 비슷하게 현실적이라는 호평을 듣는 스포츠물인 <[[크게 휘두르며]]>도 100% 현실적이진 않다.]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호감을 사는 면도 있다.
[[카라스노 고교]]의 모델은 이와테현 구노헤 군 가루마이마치의 현립 가루마이 고교이다. 실제로 까마득한 산골로, 하이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광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http://blogs.yahoo.co.jp/yosicosmic 블로그(일본어)] 작품의 배경은 미야기현이면서 카라스노 고교의 배경은 이와테현이 된 셈인데, 이는 작가가 미야기 출신이지만 이와테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정식 연재 이전의 단편은 주간소년점프 넥스트 2011년도 WINTER호, 주간 소년점프 2011년도 20,21 합본호 각각 두 번 게재되었었다. 점프 넥스트에 실렸던 단편에서의 본교는 카라스노가 아닌 히아시(日脚) 고교였으며, 본지 단편에서부터 카라스노라는 이름이 되었다.
* 2014년 9월 22일부터 소년 점프+에서 れっつ!ハイキュー!?(렛츠! 하이큐!?)가 연재되고 있다. [http://plus.shonenjump.com/rensai_detail.html?item_cd=SHSA_JP01PLUS00000087_57 소년 점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카게야마가 대놓고 왕관을 쓰고 백마를 끌고 다니고 킨다이치는 진짜 머리에 락교를 쓰고 있는 등, 본편 내용을 개그로 바꾼 내용이다. 때문에 [[캐붕]]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정상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사실 그것보다는 본편과 개그 코드가 상당히 달라서 안 맞는 사람들은 정말 안 맞다. --그러나 고양이인간 쿠로오와 켄마가 정말 귀여운 데는 이견이 없을 듯--
* 배구계에서도 작품의 인기와 영향력을 의식하였는지 [https://twitter.com/ALan_twt_/status/507780608991322112/ 실제 일본 봄고 배구대회 포스터]까지 장식하는 쾌거를 누린다.
* 어떤 [덕후]가 [오이카와 토오루]의 방을 실제로 재현했다. 베스트 세터 상 상패까지(...) [https://www.facebook.com/haikyuu.fans/posts/591001484368357 위대한 덕후]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19회 일치
[[일본]]의 [[도시전설]]. 화장실에 나온다는 여자아이의 '유령'. 3칸째의 하나코 씨(3番目の花子さん)라는 명칭도 있다.
화장실의 하나코 씨란, 학교의 화장실에서 '특정한 행동'을 했을 경우, 하나코 씨라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지역,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 아마가타 현 : 화장실에서 나올 때 "하나코 씨-"하고 부르면 대답이 돌아온다. 기분나쁜 소리가 돌아올 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 이와테 현 : 화장실의 3번째 칸에 들어가서 "3칸째의 하나코 씨"라고 부르면, 변기 안에서 하얀 손이 나온다.
* 시마네 현 : 화장실의 하나코 씨가 놀자고 부를 때, 거절하면 쫓기게 된다.
* 카나가와 현 : 여자 화장실에 하나코 씨, 남자 화장실에 요스케 씨가 있으며, 부르고 나서 3초 이내에 도망가지 않으면 살해당한다.
* 효고 현 : 여자 화장실 1번째 칸에 하나코 씨의 아버지--아버지 왜--, 2번째 칸에는 어머니, 3번째 칸에는 하나코 씨, 4번째 칸에는 여동생, 5번째 칸에는 남동생이 있으며, 남자 화장실 2번째 칸에는 할아버지가 있고--할아버지만 왜--, 이 유령들에게 말을 걸면 "우리 하나코에게 무슨 용무냐?"라고 말한다.--친절함--
* 오사카 부 : 하나코 씨라고 부르면서 화장실을 노크하면, 표준어로 「위험하잖아, 그만두세요(危ないわね、やめなさいよ)」라고 말한다.--간사이 방언으로 하면 이상한가보다.--
* 도쿄도 : 3층 여자 화장실 안에서 "하나코 씨-"라고 부르면 "뭐-니?"라고 대답하며, 16시 지나서 "하나코 씨, 미안해요"라고 말하면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 기후 현 ; 화장실 3번째 칸에서 "하나코 씨-"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한다.
* 사이타마 현 : 화장실 4번째 칸에서 15번 노크하고 "하나코 씨 놀자"고 말하면 "네"하고 대답한다.
1937년, 토오노에서 어느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며, 아내와 아들, 두 딸로서 5인 가족이었다. 이 가족은 토오노 초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는 경찰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경찰관인 아버지는 여자 버릇이 나빠서, 어느날 창녀와 둘이서 온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을 알게 된 아내는 질투한 나머지, 가족동반자살을 하고 말았다. 먼저 아들과 둘째 딸을 교살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이었던 이쿠코(いく子)는 무서워서 관사에서 학교로 도망쳐서 체육관 뒤에 있던 공동 화장실에 숨었다.
그런데 그것을 청소부 아저씨가 목격하였고, 어머니가 찾아와서 무서운 얼굴로 딸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자 아저씨는 이쿠코가 화장실 개인실 안쪽 세번째 칸에 있다고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무서워하는 이쿠코를 데려갔는데, 다음날 아침 가족은 동반자살한 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이 사건 이후로, 토오노 초등학교 체육관 뒤의 공동 화장실 안쪽 세번째 칸에서, 노크를 하면 아무도 없는데 노크가 3번 되돌아오거나, 있을 리가 없는 여자아이를 목격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학교의 무서운 이야기 하나코 씨가 왔다』는 단편 연작 애니메이션이 있다. 하나코 씨가 괴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이야기지만, 사실 도와주지 않기도 한다.--일해라--
- 김형준(배우,가수) . . . . 18회 일치
||<#00BFFF> '''별명''' ||자라, 거북[* 목이 길어서 붙었다.], 김오피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성씨를 합친 별명, 데뷔 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여 붙여졌다.], [br]인형준[* 인형+형준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뻐서 붙여졌다. 비슷한 별명으로 프랑스 인형이 있다.] ,아카짱[* 아카(애기)+짱(친애를 뜻하는 일본의 경칭) 일본 활동 때 일본 현지 스텝이 붙여준 게 시초로 멤버들과 팬들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별명. 행동이나 얼굴, 성격이 애기같아서 붙였다고 한다.], 김자라[* 성+자라. 목이 길어서 자라 같다고 붙여졌다.], [br]기명준, 막내온바닥[* 막내온탑의 반대말, 동시대 아이돌들이 다 막내온탑, 실세를 맡고 있을 때 --심지어 그룹 내 동갑 멤버는 서열 1위-- 거의 혼자 막내둥이 취급을 받았다. 서열순위 꼴지. 형준에게 하극상은 없다. 그저 막내일 뿐...], 깐준[* 앞머리를 깐 형준], [br]쪼꼬쭌[* 럽라디 때 베이비펌을 하고 나오자 팬들이 본인이 키우는 푸들인 쪼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쭌디제이[* 쭌+DJ. SBS 라디오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 디제이를 맡으면서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 [br]쭌[* 멤버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스에꼬[* 일본어로 막내라는 의미. 이름이 비슷한 김현중과 구분하기위해 쓰였다. 반대로 김현중은 리다], --인왕--[* 인자한왕자 줄임말로 본인은 시키면 무조건 다한다고 그래서 인왕]||
* 어릴 적 압구정에서 SM 실장에게 길거리 캐스팅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SM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다음날 2차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DSP 연습생을 중2때 시작했으니 그 전에 캐스팅 된 듯 하다.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절친이다.
김현중, 김규종에 비해 기본적으로 랩 실력이 좋은 편 이다. 그래서 앨범에서도 주로 랩을 많이 담당하고 있다. 김현중과 김규종은 랩을 천천히 하는 편 이지만 김형준은 빠른 랩도 소화가 가능하다.
* 1월 20일 SS501 전원과 함께 [[진실게임]]에 출연했다.
* 2월 4일 허영생과 함께 60년대 교복을 입고 도전천곡에 출연했다. 전람회 '취중진담'를 불렀다. 결승전까지 올라 갔지만 가사 실수로 패배했다.
* 4월 5일 허영생, 김형준과 함께 스펀지에 출연했다. 김형준은 마술로 몸이 뜷리는 실험을 당했다.(?)
* 4월 19일 김현중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과 스펀지 2.0에 출연했다. 디지털치매 실험에서 다른 멤버들은 114에 전화번호를 물은후 그대로 외우지 못했는데 김형준만 잘 맞추었다.
* 1월 20일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다. 툭하면 자주 실수하는 멤버를 박정민 이라고 폭로했다.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6월 18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쇼! 음악중심]] 대기실 라인업 live에 출연했다.
* 12월 10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했다. 오프닝 멘트에서 자기 목소리가 저음 이라고 하자 어떨결에 성악가랑 바이톤 대결을 했는데 성악가도 김형준의 실력을 인정했다. 허영생이 [[김현성(가수)|김현성]]과 [[김경호]]의 성대모사를 보여주자 뒤이여 자신도 [[이정재]]가 출연한 영화 [[암살(영화)|암살]] 명대사 재판장님 성대모사로 출연진 들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서 [[하동균]] 성대모사도 할줄 안다고 하자 했는데 [[문희준]]한테 이정재씨 잖아요 하고 디스 당했다. [[http://tvcast.naver.com/v/1298762|영상]]
* 12월 12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해요TV K-COOK STAR에 출연했다. 삼행시도 짓고 철가방속에 있는 글씨를 맞춰야 요리을 먹을수 있는데 철가방을 순식간에 열고 닫아서 맞추기도 어러웠는데 찜닭 이라고 외쳐 정답을 맞춰서 맛있는 찜닭을 먹었다. 닭 CF도 찍고 김규종이랑 막춤까지 추며 요리 대회에서 [[모일봉]]이랑 닭갈비랑 치즈 과일꼬치 요리를 했는데 팬들은 김형준의 [[요리치|요리실력]]을 잘 알기 때문에 당연하듯 허영생, 김규종 팀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주었고 김형준은 요리 대회에서 져서 벌을 받았는데 허영생이 싸이팬으로 김형준 얼굴에 그림(...)을 그렸고 김형준은 해요TV 시청자 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 2006년 영화 파이스토리 파이 목소리를 더빙을했다.[* 원래 파이역은 김현중만 제안되어 있었는데 김현중을 응원하기 위해 녹음실로 방문했는데 감독님이 멤버들을 보고 목소리 연기를 시켰는데 주인공 파이역은 리더 김현중이 아닌 막내 김형준으로 캐스팅 되었다는 후문]
* 2009년 6월 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시작 전 시구를 선보였다.
* 2013년 3월 9일 솔로 데뷔 2주년을 맞이해 잠실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 2017년 3월 11일, 12일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남점 이벤트 존, 영풍문고 종각종로본점 지하 2층 이벤트존에서 세번째 미니앨범 AM to PM 5-11-3 발매기념 팬사인회를 개최했다. 이번 팬사인회는 4월 6일 군입대 전 마지막 팬사인회으로서 국내팬은 물론 수많은 해외 팬들도 찾아와 글로버한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악수를 나누는 등 팬 서비스를 선사해 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 2011년 2월 27일 트위터에 여성 사진을 올렸다가 바로 삭제해서 실시간 검색어 오르며 팬들의 궁금증을 유발 했는데 알고보니 솔로곡 'girl'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모델 양윤영으로 밝혀졌다.
- 영창대군 . . . . 18회 일치
[[선조]]와 [[김희정 (1992년)]] 사이에서 태어난 [[선조]]의 적장자. '''왕실에 태어난 것이 죄였던 아이'''.
광해군 3년(1611 신해 / 명 만력(萬曆) 39년) 12월 26일(신묘)에 영창대군(永昌大君)으로 책봉되었다. 실록에는 이 때의 나이가 6세라고 주석이 달려 있다.
흔히 영창대군은 8살 나이에 유배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어 강화부사 정항이 불로 쪄서 죽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영창대군의 죽음은 실록 내에서도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는 탓에 정황이 상당히 불확실하다.
똑같은 책의 기사에서 역시 증살설이 언급된다. 이쪽에서는 확실한 사실 기사로서 쓰고 있다.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은 계축년에 대질 심문할 적에 말을 만든 것이 망령되이 착오되어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인용하여 흉도(兇徒)가 구실삼을 거리를 제공하였으니,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에 출송할 것을 명하소서. 정항(鄭沆)은 강화 부사(江華府使)로서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핍살(逼殺)하였고, 이정표(李廷彪)는 교동 별장(喬桐別將)으로서 임해군(臨海君)을 핍살하였으므로 여정이 분노하는 것이 극에 달했습니다. 관작을 추탈하소서. 그리고 두 사람의 여러 아들들은 모두 정배함으로써 악을 징계하는 터전으로 삼으소서.”
>>“일에는 선후가 있고 율에는 경중이 있습니다. 지금 이이첨의 심복들을 모두 죄주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정항(鄭沆)과 이정표(李廷彪)를 죄주도록 청한 것은, 진실로 왕자 두 분의 죽음이야말로 천하에 다시 없이 원통하고 동시에 당시 핍살(逼殺)했던 흔적이 사람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당사자가 이미 죽었다고 해서 그냥 덮어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살아 있는 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죽은 자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는 하교가 있으셨습니다. 신들이 일을 논하면서 잘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실행자로 지목된 정항은 인조반정 이후 관직을 빼았겼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독살설은 인조실록 8권에 나오는 영창대군의 비문 기사에서 나온다. 여기서는 실행자가 별장 이정표이다. 증살설과는 반대로 오히려 불을 때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고, 음식에 잿물을 먹여서 죽였다고 되어 있다.
>“전에 대간이 ‘이후선(李厚先)의 양조(養祖) 이정표(李廷彪)는 정항(鄭沆)과 악한 짓을 같이하였다.’는 이유로 이후선을 논핵하여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시켰습니다. 그러나 정표는 실로 악한 짓을 같이한 자취가 없고 또 그때는 후선이 아직 양손(養孫)이 되기 전인데 지금까지 금고(禁錮)시키는 것은 혹 지나치게 무거운 듯합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창성군(昌城君) 이필(李珌)의 셋째 아들인 유천군(儒川君) 이정(李濎)이 후사(後嗣)가 되었으며, 당대의 사손은 이도진(李道振)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야사에서는 구들장에 쪄죽였다고 알려져있으나, 실제로 실록에서도 정항이 영창대군을 쪄죽였다고 하는데, 나중에 인조실록에 가면 이정표가 양잿물을 먹여 죽였다고 나온다(...)~~사망전대~~
거기다가 정말로 정항이 죽였는지도 확실치 않다. 나중에 정항을 죽이라는 상소가 왔을때 인조가 씹었기 때문(...)
if 시나리오로, 만일 영창대군이 인조반정이 성공할 때까지 살아 남았다고 해도 역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창대군은 '선조의 적장자'이며, '왕실의 큰어른인 인목대비의 아들'이다. 이러한 영창대군의 지위는 고작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손자 능양군'에 불과한 인조보다 훨씬 정통성이 강하다.
- 원피스/852화 . . . . 18회 일치
[[원피스]] 852화. '''제르마의 실패작'''
* [[빈스모크 레이쥬]]는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리나 기억이 혼란한 상태. [[상디]]가 경비를 때려잡고 침입해 레이쥬를 확보하고 사정을 설명한다.
* 레이쥬는 상디에게 출생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빈스모크 저지]]의 계획에 반대했고 아이들이 감정없는 병기로 태어나길 원치 않았다.
* 레이쥬는 어머니가 바랬던 "감정"을 가진 아이인 상디가 "실패작"일리 없다며 살인자 집단인 제르마를 버리고 도망치라고 말한다.
* 사실 상디에게 채워진 수갑은 레이쥬가 바꿔치기 한 것. 폭발하지 않는다.
* 홀 케이크 성의 의료실에서는 의사가 [[빈스모크 레이쥬]]를 치료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개조인간이라 괴물같은 자연치유력으로 벌써 상처가 아물고 있다. 의사는 안정을 취하면 내일 "다과회"에도 참석할 수 있겠다며 안심한다. 의사는 이 방은 경비에도 맡기고 자신은 4층의 또다른 의료실로 발길을 옮긴다. 경비가 혼자 남자 바깥에선 수상한 그림자가 접근하는데. 얼마 후 레이쥬가 병상에서 눈을 뜬다.
* 죄수도서실은 때아닌 화재 발생. "몬도르의 책"은 태워야지만 해제가 되기 때문에 [[징베]]가 불을 지른 것이다. 안에 있던 죄수들이 불 붙은 채로 책에서 튀어나온다. 징베는 미리 물을 준비하고 있다가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나오길 기다려 불을 꺼준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태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상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 의료실에선 상디가 레이쥬에게 모든 걸 전한다. 레이쥬는 상디의 말을 순순히 믿는다. 본래 그녀도 푸딩이 너무 착해서 수상했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것이고, 그러다 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그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상디는 빅맘이 결혼하지 않고 제르마를 몰살시킬 작정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희생해 밀집모자 일행을 살리는건 택도 없는 일이었다고 자책한다. 그런데 레이쥬는 태연한 태도로 말한다.
그녀는 이대로 모든 사실을 함구하면 빅맘이 그걸 저절로 이뤄줄 거라고 말한다. 상디는 "너도 죽는데 무슨 소리냐"고 소리치는데 레이쥬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상디와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반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 상디가 인간으로서 자라나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졌다. 상디는 자신이 봤던 어머니의 투병이, 결국 자신 때문이었던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레이쥬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어머니는 상디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저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도 상디의 탓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네가 "실패작"일리 없어.
* 한편 루피는 죄수도서실이 있는 지하를 돌파해 성의 2층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간다. 루피는 팔을 끊으려다 난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지만, 빅맘의 부하들은 그런 상태의 루피도 막아내지 못한다.
보물전 앞에서 경비를 총괄하고 있는 [[샬롯 스무디]]는 이 또다른 난동을 접하고 골치 아파한다. 그녀는 징베의 모반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정한다. 기분파인 빅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고 내일의 "계획"도 장담할 수 없다. 스무디는 보물전이 있는 4층을 철저히 봉쇄하고 3층 이하에서 루피 일행을 몰살하는 걸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18회 일치
|| '''소속팀''' ||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청]][*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겉과 달리 '''실질은 대학 팀이었다.'''] (1986~1990) [br]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1990~1998) [br] 바이어 04 부퍼탈 (독일) (1998~2000) [br]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 (2000~2002) ||
||<width=30%><:> [[이희완(배구)|이희완]][* 시즌 중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사임.] [BR] (2006~2008) ||<:> {{{+1 →}}} ||<width=30%><#2c3d47><:> '''{{{#e8581b 이성희[* 다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2007-08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8년 1월부터 위암 발병으로 자리를 비운 이희완 감독을 대신하여 팀을 이끈 상황이었다.]}}}'''[BR]'''{{{#e8581b (2008~2010)}}}''' ||<:> {{{+1 →}}} ||<width=30%><:> [[조혜정(배구인)|조혜정]] [BR] (2010~2011) ||
의림공고와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를 거쳤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시절에는 절친인 [[서남원]], 한 해 후배인 [[박삼용]], [[어창선]]과 함께 활약하면서 실업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는데 일조했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졸업 후에는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에 입단하여 활약하였으며, 고려증권의 황혼기를 장식했다. 현역 시절엔 세터였고 생김새와 포지션만 보면 착각하기 쉽지만...
2013-2014 시즌에는 새 외국인 선수 조이스의 활약에 힘입어 14승 16패(3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진출[* 인삼의 홀수해 시작 시즌의 무조건 봄배구행 진리도 있었지만, 사실은 잘해서가 아니라 밑의 3팀이 못했던 게 [[이유]]. [[져주기 게임|옛 버릇]] 버리긴 커녕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대놓고 핵노답이었던 팀]], [[602 대첩|주장이 시구]]했더만 [[타어강]] 옮아서 [[김연견|병원 차릴 정도로]] [[김주하(배구선수)|부상 선수가]] [[정미선(배구선수)|속출해서]] [[수원 현대건설|강제 탱킹한 팀]],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이상의 [[경북 김천 하이패스|최악의 트레이드로 탱킹한 팀]]들 덕분에 거둔 3위였다. 즉, 이성희의 역량 발휘로 3위를 한 건 절대로 아니라는 소리다.]하였으나,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 스윕당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영입, 보상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영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트라이아웃 시행 이후 V리그 데뷔전을 치른 [[헤일리 스펠만]]에게 점유율 59%[* 마지막 5세트에서는 80% 이상까지 치솟았다.], 득점 51점, 공격시도 118타라는 악몽같은 [[몰빵배구]]를 지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으로 풀세트 끝에 패배했다. 이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끝난 이후에도 배구 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해설진들이 탄식을 내뱉을 정도로 경기 내내 헤일리에게 모든 공이 올라갔고, 마지막 5세트의 마지막 공격까지도 헤일리의 범실로 종료되었다. 몰빵배구와 외국인 선수 점유율을 줄이기 위한 [[KOVO]]의 궁리 끝에 나온 트라이아웃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몰빵하는 감독은 몰빵을 못 버린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는 인삼공사 팬들은 [[뒷목잡기|뒷목잡고]] 쓰러질 지경.
이후에도 [[2015년]] [[11월 4일]] 화성에서 열린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도 헤일리에게 몰빵을 시켜놓고 헤일리는 열심히 이를 소화했지만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작전타임을 불러 --자기 [[무능]]함은 안중에도 없고-- 헤일리를 집중적으로 갈구는 모습을 보여 인삼팬들은 물론이고 타팀 팬들까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혈압을 올려 놓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감독이란 작자가 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 경기의 패인을 헤일리 탓으로 돌리는 등 툭하면 헤일리를 디스하는 기사거리들이 수시로 올라오면서 다시금 그의 무능함을 확실하게 인증하고 있다.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리고 12월 29일 [[수원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는 아예 3세트 때 헤일리를 빼 버리기도 했다. 이날도 당연한 소리같지만 '''패했다'''. 사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헤일리를 위해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려는 의미에서 뺐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감독부터가 아예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헤일리가 빠진 3세트는 그야말로 경기력이 처참한 수준. 이것만 봐도 감독이란 인간이 3년동안 부임 이래로 국내 선수들을 전혀 키우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냥 이렇게 지면 지워버리기라도 하면 되지만 2세트나 15점 이하의 득점도 모자라 현대건설의 16경기 연속 기록까지 갈아 치워주는 굴욕까지 당하며 1229 대첩을 발발하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이성희가 그만큼 국내 선수들을 보는 안목이 전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volleyball&no=1478772&page=1&exception_mode=recommend|예전 용병 조이스를 깠던 적이 있는 인터뷰까지 발굴되면서]] 가뜩이나 안 좋은 이런 상황은 더욱 이성희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중. --그래도 안 짤렸던 것이 [[함정]].--
더구나 2015-16 시즌 진행 중에도 최하위에서 올라올 기미가 없는 등 당최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이자 인삼공사 팬들에겐 항명 파동으로 물러나게 된 도로공사의 [[이호(배구선수)|이호]] 전 감독과 함께 사실상 '''감독 취급도 못 받는 [[금지어]] 신세로 전락했다'''. 심지어는 대놓고 탱킹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의견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인삼팬들을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 부임 후 '''시즌 대대로[* 2013-14 시즌 제외.] 팬들을 우롱하는 [[시궁창]] 성적을 내고도 [[사퇴]] 혹은 [[경질]]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헤일리가 복귀한 2월 16일부터 20일까지 2연승 행진을 하긴 했지만, 나머지 3경기를 모두 내주며 결국 '''7승 23패, 승점 22점'''으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헤일리 복귀 후 여전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성희의 질책은 계속되었고, 문제의 3월 2일 경기에서는 2세트 범실에 [[빡]]쳤는지 3세트에선 헤일리를 아예 빼버리기까지 했다. 그 사이 헤일리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방송에 포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진정시키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웜업존에 처박아두는 비정함을 보인 이성희는 더 이상 그를 코트에 출전시키지 않았고 팀은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헤일리의 어머니까지 직관을 왔는데도''' 말이다. 진짜 이건 '''사람이 아니라 [[백정]]이다'''. 얼마나 감독의 질책이 누적되었으면 저렇게까지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되었을까? 평소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성실한 선수에게 저런 되도 않는 [[군기]]를 시전하는 행동은 어떻게 봐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자팀팬들에게는 물론이고 타팀 팬들에게까지도 대차게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인삼공사와 계약이 만료됐는데, 4년 동안 최하위만 3차례(6위 - 3위 - 6위 - 6위)나 세우는 무능함을 보여주며 프로 팀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말도 안되는 개[[막장]]스런 성적을 낸 탓에 재계약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저런 한심한 성적까지 낸 주제에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용병을 갈구는 고질병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인삼공사를 거쳤던 역대 감독들이 모두 금지어에 등극되어 있긴 하나, '''이 KGC란 팀 자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비박산내어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그래 외국인 선수에게까지도 폭언을 일삼는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감독은 이성희밖에 없다'''.
인삼공사와의 재계약 [[실패]]로 물러난 후에는 [[원곡고등학교]] 배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저렇게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이성희에게도 유일한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디오 판독]]을 의외로 잘 활용한다는 것.[* 실제로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챌린지]]로 두 차례나 오심을 이끌어냈다.][* 이와 180도 대조되는 사람으로는 [[박미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심판]]의 오심을 잘 캐치해 낸다는 것이다. 오심을 이끌어서 오심의 달인으로 등극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영입되기 전에 실제 2010년 KOVO컵 대회부터 2010-2011 V리그 대회까지 재직한 경기감독관 경력에도 한 몫 하는 듯.
- 이수민(야구선수) . . . . 18회 일치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상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상원고 감독인 [[박영진(야구)|박영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28230025367&gid=11034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2014년 전지훈련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2013년에 많이 던진 탓에 관리 차원에서 입소한 것이지 부상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한 후 곧바로 실전에 많이 투입하면 그것도 혹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배려인 듯.
2014년 BB아크에 선발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BB아크에 선발된 다른 선수들과 달리 4월 중순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선발로 등판하다가 6월 15일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장원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에 등판해 1군에 데뷔했다. 1이닝 동안 피안타 3개를 맞으면서 실점을 했지만 정타는 1개 뿐이었고, 볼질도 안 하면서 1군 첫 경기치고는 잘 던졌다.
6월 2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2루에서 [[김건한]]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박민우(야구선수)|박민우]]에게 볼넷을 주었으나 후속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플라이로 처리하였고 7회말 타선이 대폭발하며 상대 구원 [[이민호(야구선수)|이민호]]를 박살내버리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류중일]] 감독은 이수민이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게 하였고 이수민은 9회 1실점하긴 했으나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경기를 마무리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기록은 3.1이닝 1피안타 6볼넷 1사구 1탈삼진 1실점. 볼넷이 많긴 했으나 그 유명한 [[김풍기]] 주심의 괴악한 스트라이크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어지간한 베테랑 투수도 멘탈이 붕괴될 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공을 던지며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상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15일 2일 휴식 후 삼성전에 갑자기 선발로 나서 7이닝 135구를 소화한 뒤부터 부진에 빠졌다. 14년 말에 팔 스윙을 수정한 뒤로 제구력이 안정화되지 않았는지 볼넷이 급증한 상태였는데, 이 갑작스런 선발 등판 이후 삼진이 급감하고 볼넷이 늘면서 실점 또한 많이 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피홈런까지 늘어난 상황인데, 들리는 바로는 투구폼의 교정을 진행중이라고 하니 이로 인한 과도기라고 참작할 수는 있다.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식하고 선발로 나온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순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상 안식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상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3이닝 3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날 최고구속은 136km가 나왔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하며 호투하였다. 히로시마의 1군 멤버가 대거 포함된 상황의 호투라 고무적이다.
정규시즌은 2군에서 시작했다가, 4월 20일 전날 경기 중 타구에 맞은 [[우규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하지만 4월 22일 시즌 첫 등판에서 속구 최고 구속이 130km/h 중반대를 겨우 기록할 정도로 구속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고, 2⅔이닝 3실점으로 경기 내용도 별로였다. 결국 2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그 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군에서 주로 계투로 등판하며 2군 성적은 21경기 27⅓이닝 1패 ERA 9.88로 부진이 이어졌다. 시즌 내내 삼진=사사구 수준으로 제구력에 기복이 있었으나 그나마 9월 들어서 3경기 동안 7⅓이닝 2실점(0자책점)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순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식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식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상태.]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 이유리(배우) . . . . 18회 일치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1년 KBS 일일극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최강희(배우)|최강희]]의 동생이자 한차례 대입 실패로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재수생 '오윤아'역으로 분했으며 2003년 한 해에만 KBS 드라마 《아내》에서는 '상호([[김승수]])'의 연인 '김윤주'역으로, SBS 일일 드라마 《스무살》에서는 '준([[공유(배우)|공유]])'과 사랑에 빠지는 꿈많은 대학생 '한채리'역으로, KBS 드라마 《노란손수건》에서는 '나미령'역으로 MBC 국방 홍보원 공동 제작드라마인 《[[아르곤]]》에서는 특전사 중사 '강강희'역으로 총 4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 때에 《스무살》의 주연 제의를 받으면서 《아내》에서 중도하차하게 되자 방송사에 미운털이 박혀 KBS에서 출연정지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스무살》은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후 2004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안성미'역으로 분한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복하고 바람잘날 없는 대가족의 막내딸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하는 젊은이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위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며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이 후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유리는 이에 대해 후일 "《부모님전상서》 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기자 분들이 김수현 사단이라고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제게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고 연기를 통해 배워갈 수 있게끔 해 준 연기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연기자가 한 작가로 인해 이렇게 많은 기회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행운아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같은 해에 공포 영화 《분신사바》에서 '김인숙'역으로 출연했다. 촬영 당시 특수렌즈를 끼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리에게 감독이 갯지렁이를 산낙지라고 속여 갯지렁이를 먹이고 이 사실을 뒤늦게 기사로 알게 되는 등 많은 고생을 하며 찍은 작품이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2011년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란'으로 본격적으로 독보적인 악녀연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사실 깍쟁이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는 종종 맡은 적이 있어도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2002년 《러빙유》이후 9년만이었다. 극 중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뒤바뀌는 바람에 가난하기 그지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살아가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정원([[김현주]])'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정원을 향해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로 열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생의 밝혀지기 전 초라한 모습과 정반대로 부잣집에 입성하면서 매 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유리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 2004년 8월 21일 ||<|2> SBS || 실제상황 토요일 - [[X맨을 찾아라]] || ||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반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남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남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2006년 인기리에 연재된 박소희 작가의 동명의 순정만화가 드라마 《[[궁(드라마)|궁]]》으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으로부터 주인공 '신채경'역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준수한 연기력과 만화 원작의 신채경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여주인공으로는 [[윤은혜]]가 낙점됐다. 이유리는 인터뷰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연기자로서 차근차근 한 발을 내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궁(드라마)|궁]]》의 전작이 바로 이유리가 출연한 《영재의 전성시대》였는데 바로 다음 작품을 출연하는게 말이 안된다.', '제작사는 이유리에게 캐스팅 제의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등을 근거로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이유리는 주인공도 아니였을 뿐더러 전작을 했다고 다음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견에 불과하고 제작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이유리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캐스팅 제의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던것과는 달리 출처가 불분명 하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 데뷔 후 개신교에 귀의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인터넷에서 간증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9월 6일]] [[띠동갑]] [[연상]]의 당시 [[전도사]]였던 조계현씨와 결혼했다.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군소 교단 소속 [[목사]]이다. 남편이 없었다면 연예계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아침마다 남편에게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기도 한다고. 목회자의 사모는 삶의 운신에 제약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 남편이 연예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한다.
* 드라마 《[[슈퍼대디 열]]》 과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각각 폭탄주와 소맥을 제조하는 장면의 생활 연기가 주목받았다. 실제로 이유리는 주당이었으나 술을 끊었다고 한다. 이유는 깨작깨작 마시기 싫어서.
- 태종무열왕 . . . . 18회 일치
[[선덕여왕|선덕]](善德) · [[진덕여왕|진덕]](眞德)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반,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진덕여왕]] 때는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飡)에 이르게 되고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으로써 국인의 추대를 받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그렇게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된 [[김춘추]]는 아들 [[김문왕|문왕]](文王),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각각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湌)으로 관등을 올려줌으로써 자기의 권력기반을 강화시켰다. 이후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태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순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ref>
김유신의 주도와 김춘추의 동조로 이루어진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 혼인을 통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간에 정치 · 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 · 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 · 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의 중고(中古) 왕실의 진골 귀족 내에서 하나의 신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聖骨)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반발을 받았다. 무열왕은 부계가 진지왕의 자손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자손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를 상징적인 진골 최초의 임금으로 평가한다.{{출처|날짜=2018-06-29}}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백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상남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남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반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상">《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ref>
[[7월 9일]]에 김유신 등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황산벌]]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도 백제군의 저지를 뚫고 [[기벌포 해전|기벌포]]로 상륙하여, [[7월 13일]]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7월 18일]]에는 웅진성으로 도망쳤던 [[의자왕]]도 항복하여 백제는 멸망하였다.<ref name="신라-660"/> 사비성을 함락했을 때 [[김법민]]은 백제의 왕자 [[부여융]](扶餘隆)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예전에 네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었고 그 일 때문에 내가 20년 동안 마음 아프고 골치를 앓았었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라고 꾸짖었다.<ref name="신라-660"/> 의자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29일에 금돌성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온 무열왕은 제감(弟監) 천복(天福)을 당에 보내 승리한 사실을 고하였다. 8월 2일에는 앞서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될 때 신라측에서 내응했던 모척(毛尺)과 검일(黔日)을 잡아 처형하고, 주연(酒宴)을 베풀어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을 마룻바닥에 앉혀 놓고 때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여러 신하들 중 목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ref name="신라-660"/>
《삼국사기》는 태종 무열왕의 무덤이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지금의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소재한 서악리 고분군의 다섯 고분 가운데 가장 아래에 위치한 원형봉토분이 태종 무열왕의 능으로 비정되고 있다. 봉분의 면적은 14,169m<sup>2</sup>로, 신라의 왕릉 가운데 피장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덤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었고, [[1972년]]부터 [[1973년]]에 걸쳐 주변 정비가 이루어졌다.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다른 왕릉에 비해 봉분 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무덤 앞 동북쪽에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비석의 몸돌 부분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 부분만 남아있었으며,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묘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는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에 건립되었고, 비문의 글씨는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ref>이은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C%B4%EC%97%B4%EC%99%95%EB%A6%89&ridx=1&tot=16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태종 무열왕의 생애와 몇가지 사실에 대해서 통설과 전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
*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12대 풍월주 보리공(菩利公)의 딸 보룡(寶龍)과의 사이에서 아들 당원전군(幢元殿君)과 딸 여씨(呂氏)를 두었고, 문명왕후와의 사이에서도 선원전군(仙元殿君)이라는 아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열왕은 문희와 혼인하기 이전에 이미 [[보종]]과 양명공주의 딸 [[보라궁주]](寶羅宮主) 설씨와 결혼했으며, 처음 문희는 측실로 혼인하였으나 보라궁주의 요절로 문희가 정실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문희의 언니인 보희와의 사이에도 지원(知元)이라는 왕자가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들 왕자의 실존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태종 무열왕에 대한 당대 신라인들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이는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라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ref group="주">그러나 고구려의 [[태조왕]]의 경우에는 묘호로 봐야 되는가, 시호로 봐야 되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그 밖에 태조의 묘호를 받은 [[태조 성한왕]]이나, 국조의 묘호를 받은 [[박혁거세]]도 존재한다.</ref> 이에 대해 [[당 고종]]<ref group="주">《삼국사기》에는 [[당 중종]]이라 표기됨</ref>이 “당 태종이 위징(魏徵)·이순풍(李淳風) 등을 얻어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을 이루었기에 태종이라 하였지만, 너희 신라는 바다 밖에 있는 조그만 나라임에도 태종의 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칭호를 참칭하니 그 뜻이 불충하므로” 이를 고칠 것을 요구하자,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당 태종처럼) 무열왕도 김유신이라는 성신(聖臣)을 얻어서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는 답서를 보냈다. 이 답서를 받은 고종은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이르기를 “33천(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가 유신이 되었다.”고 한 일이 있어서 이를 기록한 바가 있는데, 이 기록을 찾아 확인해보고서는 놀랍고 두려워서, 태종의 묘호를 허락했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훗날 [[조선]](朝鮮)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高麗)의 [[왕건|태조]](太祖) 이래 역대 군주들의 묘호를 시호로 대체하고자 하는 [[조선 성종|성종]](成宗)에게 태종 무열왕의 선례를 들며 굳이 기록된 묘호를 뺄 필요는 없음을 주장하였다.<ref>《성종실록》 성종 18년 정미(1487년) 2월 경진(10일)조</ref>
[[성덕왕]](聖德王)은 태종 무열왕의 명복을 빌고자 [[봉덕사]](奉德寺)를 지었으며,<ref name="유사-성덕왕">《삼국유사》 권제2 기이 성덕왕</ref> [[혜공왕]](惠恭王)은 오묘(五廟)를 정하면서 김씨로서 처음으로 왕이 된 [[미추왕]](味鄒王)과 더불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대대로 헐지 않는 신주(世世不毁之宗)로 삼았고,<ref>《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祭祀)</ref> 이것은 [[애장왕]] 2년([[801년]])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만 따로 떼어 모시는 사당을 지어 신주를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ref>《삼국사기》 권제10 신라본기 제10 애장왕 2년(801)</ref> 9세기 중엽 신라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郞慧和尙白月普光塔碑)』([[890년]]경 건립)에서 무열왕의 8세 손으로 당에 유학하여 불법을 배우고 돌아온 승려 [[낭혜화상]]의 행적과 무열왕의 업적을 교차대비시켜 "이때(태종 무열왕의 입당 후 귀국)부터 우리는 한 번 변하여 [[노나라]]가 되었다(自玆吾土一變至於魯)",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문명에 접하게 하여 주셨다(平二敵國俾人變外飭)"고 하여 태종 무열왕이 신라 국내의 제도를 당풍으로 개편하여 '문명화'시키고, 당시 신라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적국으로 여겨지던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여 평화를 가져왔다고 찬양하였으며, 또한 [[진성여왕]] 7년([[893년]])에 당의 태사시중에게 보내는 글에서 옛날 고구려와 백제의 강성함과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그 직후 무열왕이 당으로 들어가 수교를 맺고 원병을 청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과 이후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발해]]와 당, 신라의 충돌 등의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3백여 년 동안 한쪽 지방은 무사하고 넓은 바다가 편안한 것은 곧 우리 무열대왕의 공로"라고까지 평가하였다. [[고려]]나 [[조선]]의 유학자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인식이었다.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남]]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남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남)|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식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사방의 적에 둘러싸여 궁지에 몰리자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 정책에 편승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전쟁의 결과로 당시 신라인들은 수백년간 지속된 전쟁 상태의 종식, [[백제]] 영토의 흡수, [[당나라|중국]] 신문물의 수입에 의한 [[중화]]식 개혁 등 신라의 국가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 영토 역시 근·현대의 [[민족주의]]적 관점과 같은 인식이 없었던 고대의 신라 지배층에게 있어서는 땅을 상실하기는 커녕 [[대동강]] 이남 지역(현재의 [[황해도]])을 신라가 획득함으로써 영토를 확장하는 성과를 낸 것이었고, 당대 최강 국가인 [[당나라]]를 상대로 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다만, 이러한 냉정한 평가는 김춘추가 [[한민족]]사의 영웅이라기보다 중요 인물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본질과 한계를 재확인시켜 준다.
- 고유민 . . . . 17회 일치
이 대회의 활약으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이 주목하게 되고 1라운드에서 지명된다. 이때 배구팬들은 키 큰 [[황윤정]][* 기업은행 센터였으나 현재 실업 수원시청 소속.]이나 리시브 되는 최지유[* 기업은행에 2라운드 지명되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다.]나 뽑지, 리시브를 프로에서 배워야할 선수를 왜 1라운드에서 뽑을 필요가 있는가? 라며 황현주 전 감독을 깠다.
프로 첫 선발 출장은 2013년 12월 29일 GS칼텍스 전이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황연주를 대신해 라이트로 출장했다. 이때 팀이 0:3으로 패했는데 마지막 3세트는 10:25으로 대패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수비가 망해버린 팀에서 그나마 리시브를 적절히 받아낸 축에 속해서 욕을 먹진 않았다. 한편, 고유민은 실수했을 때 쟤 실수하고 왜 웃냐고 재밌다고 컬트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교체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30일 시즌 두번째 경기에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황연주]]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지자 교체로 3,4,5세트를 뛰고 4득점을 하면서 64.29%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풀세트 승리에 기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의 전위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되거나 [[황연주]]가 부진할때 간간히 교체되어 나왔다. 다만 전자의 역할은 선배 [[한유미]]가 주로 맡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코칭스테프가 황연주를 교체하는 것에 별로 마뜩치 않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때에도 코트에 황연주를 남겨놓을때가 많았다. --차라리 폴리를 뺀다는 마음가짐--] 출장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것보다는 보통 지는 경기에 교체출장하는데 리시브 범실, 공격범실로 감독 화돋구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19경기, 39세트 출장 13득점 공격성공률 28.26% 리시브 성공률 22.5%을 기록했다. 좋게말하면 작년과 비슷한 기록을 냈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 [[고예림|전 시즌 신인왕]]은 폭망했고 나머지들도 그닥이었다.--
이렇게 시즌이 허무하게 끝나나 했는데 플레이오프 1차전 1세트 0득점을 기록하며 극도에 부진에 빠진 황연주[* 사실 황연주 팬들 사이에서도 마지막 몇경기는 빼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올정도로 점프력이나 스윙스피드가 완연히 떨어졌었다. 코칭스태프는 그녀의 경험을 믿었으나...]를 대신해 2세트 부터 선발출장해 --리시브는 역시나 였지만--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었다. 7득점을 하며 감독이 "예상치도 못하게 아주 훌륭한 활약을 했다. 몸상태를 봐서 2차전에 출전시킬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인상적이었지만 무너져가는 팀을 구할수는 없었다.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컵대회 후반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절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컵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컵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1월 4일 4라운드 첫 경기였던 계양체육관 흥국생명 전에서 범실을 너무 많이 해서[* 팀 범실 19개 중에 무려 '''12개'''가 모두 고유민의 범실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철호 감독은 한유미가 빠진 자리에 고유민을 꽤나 오랫동안 기용했다. 심지어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는 3세트 22:22에서 지고있다가 팀의 추격조라 할 수 있는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와 [[이다영]]을 다시 고유민과 [[염혜선]]으로 교체하며 결국 자멸했다.
경기장 안에서 잘 웃는다. 실수해도 웃는다. 처음에 경기를 본 사람이 "쟤 왜 저러냐"며 현대건설 팬들에게 물어봤는데 "나도 모르겠다."가 나왔다.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17회 일치
||<#732788> {{{#FFFFFF '''학력'''}}} ||<(> 범물중학교[br][[수성고등학교(대구)|수성고등학교]][br][[계명대학교]] 실용음악과 ||
[[아프리카TV]] 생방송인 데일리나뮤를 보면 실제 성격은 장난끼가 많은 것을 알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1G-Tnv6z38Y|소진이 밝히는 금조의 첫인상]]
사실 알고보면 나름 험난한 연습생 생활을 보낸 멤버이다. 20세에 [[계명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상경하여 가수준비생 생활을 시작했으며[* 나뮤캐스트 6회 신입생 환영회편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 전 소속사인 아이맥스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중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을 비롯한 다른 연습생들과 잘 맞아서 이번에 데뷔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한번 엎어진 후 회사에서 나와 [[스타제국]]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 어느 날 [[이유애린]]과 [[성아]]가 지하 연습실에 찾아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희 힘들지"라는 한마디에 고맙다며 울음을 터트렸고 이를 보던 [[이유애린]]과 [[성아]] 또한 같이 펑펑 울었다고, 이에 용기를 얻고 계속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마침내 4년 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나인뮤지스]]의 새로운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닛인 [[나인뮤지스A]]에서 드디어 '''메인보컬'''을 맡았다! 같은 유닛 멤버인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은 랩, [[경리(나인뮤지스)|경리]]는 센터, [[혜미]]는 리더--이자 최장신--을 맡았기 때문에 드디어 금조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래 [[나인뮤지스]]에서 메인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혜미]]와 [[경리(나인뮤지스)|경리]]의 파트 분량과 나름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메인보컬이라 보컬분량이 많기보다는 '고음셔틀담당'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코러스]]라고 불리는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실제 앨범에는 "백그라운드 보컬"이라고 표기된다.] 실제로 [[http://www.fkmp.kr/|한국실연자협회]]에 금조가 참여한 곡을 검색하면 실연정보에 '''<부실연 : 금조 [BACKGROUND VOCAL]>''' 이라고 나오는걸 볼 수 있다. 데뷔 전부터 참여해온 활동인데 데뷔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중. --참여한 곡들만 모아도 이미 정규앨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015년]] [[5월 26일]] 발표 된 [[카라(아이돌)|카라]]의 [[IN LOVE|미니 7집]] 타이틀곡 '[[CUPID]]' 에서 코러스를 맡은 듯 하다. 앨범 크레딧에 본명인 '이금조'가 명시되어 있고, 이 곡의 작곡가가 같은 [[스타제국]] 소속이었던 [[V.O.S]]의 멤버 [[최현준]]이 속한 작곡팀 [[e.one]]인 점 등 여러모로 봐도 확실한 듯. 또 [[은정(티아라)|엘시]]의 '눈물비' 와 [[구하라]]의 [[ALOHARA|미니 1집]] 중 '하라구' 와 '어때?',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SNOWFLAKE|사랑별 (Luv Star)]]', [[에이프릴(아이돌)|에이프릴]]의 '[[Spring|미니 2집]] 중 '팅커벨'과 'JELLY'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이후 여자친구 [[LOL(여자친구)|정규 1집]]에 수록되어 있는 e.one 작곡의 노래들인 '나의 일기장' 과 '바람에 날려' 도 마찬가지로 참여했으며, [[우주소녀]]의 미니 2집 타이틀곡인 '비밀이야'에서도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여기서는 금조라 표기하고 있다. 현역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 노래에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CUPID]]'와 '눈물비'는 연습생 시절 참여한 곡들이라 특별히 더 애착이 간다고.
*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함께 영입되며 2013년 [[Wild|WILD]] 당시만 해도 개성이 강하던 [[나인뮤지스]]가 주류 [[걸그룹]]과 컨셉이 같아져서 아쉽다는 평이 있다.--영원히 고통받는 소금라인-- 그러나, 이 둘의 영입 후 친근함과는 벽이 있었던 모델돌[* 너무 키가 커서 기가 쌔보인다거나, 섹시하기만 한 아이돌 등.]이라는 이미지에 환기를 준 건 사실이다. 일반적인 걸그룹 색을 더하여 [[나인뮤지스]]의 [[마인(나인뮤지스)|팬덤]]이 상승세를 겪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제로 LOST의 초동 판매량이 [[나인뮤지스]] 커리어 상 최대치를 찍기도 하였다. 또한 이 둘이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공룡 로봇과 능청 변태 막내-- 등의 모습이 팬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금조의 영입 후 곡과 컨셉 스타일도 변화했다. 둘의 영입 전에는 [[PRIMA DONNA|GUN]]과 [[Wild|WILD]]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돌의 곡들을 들고 나왔으나 새 멤버 영입 후에 발표한 [[DRAMA]]나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자신이 먼저 이별은 선언했지만 후회하는 여성의 모습 등 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곡은 아니다.
* [[오버워치]] 경쟁전 점수 2800점 정도로, 오버워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육군의 지상군 페스티벌 오버워치 경기의 번외 이벤트에서 [[파라]]로 그 실력을 보여주었다.
- 마니교 . . . . 17회 일치
내세에 성직자는 [[천국]]에 올라가게 되며, 일반 신도는 영혼은 해방되지 않지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행실이 좋으면 선행을 쌓기 쉬운 성직자로 태어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다만 행실이 나쁘면 동식물로 태어나서, 선행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이교도는 [[지옥]]에 떨어진다.
마니는 사푸르 1세로부터 제국 내에서 포교 허가를 얻게 된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사푸르 1세로부터 3번에 걸친 초빙을 받고, 황제는 마니의 [[후광]]에 압도되어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병든 딸이 있고 마니가 의술로 완쾌시켰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다만 시대배경으로 보면 사푸르 1세는 이 무렵 여러 종교가 번창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종교 관용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이며, 니시비스의 유대교 공동체의 지도자 사무엘을 불러들여 알현을 허락했다는 일화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마니는 단순히 포교 허가를 얻었을 뿐. 특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고.
272년, 마니의 포교를 용인하던 사푸르 1세가 사망, 마니와 인연이 있던 아르메니아 왕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페르시아 왕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사푸르 1세의 차남, 바흐람 1세가 즉위하였다. 이와 함께 우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 때부터 조로아스터교의 대신관 킬데르가 대두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 국교화 정책이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여졌다. 마니는 궁정의사에서 해임되어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종속국 코라살의 시의로 좌천되는데, 몇몇 문헌에서는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를 실패한 것을 질책받았다는 언급이 있어 이 역시 신망을 잃은 원인으로 추측된다.
좌천되었지만 마니는 선교를 멈추지 않고 바트 왕을 개종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바흐람 1세와 킬데르의 노여움을 불러, 바트 왕은 출두명령을 받게 되고 마니는 미프르 샤에게 도망쳐서 보호를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실각한 상태였다. 마니는 마니교의 세력이 강한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려 하지만, 이미 출국이 금지되어 있어 감시당하는 몸이 된다. 마니는 제자 아브자크야와 함께 바흐람 1세를 찾아가서 탄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흐람 1세는 듣지 않고, 마니에게 무허가로 궁정에 찾아온 죄,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에 실패한 죄, 신흥 종교를 포교한 죄를 물어 쇠사슬로 묶어서 감금한다.
>마니는 마술서를 도작하여 60세 까지 제자를 기른다. 페르시아 왕의 아들이 병이 들자 마니는 병을 치료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체포되고, 옥중에서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가르침이 기독교와 닮았다고 주장하며 성령을 사칭하여 사악한 교설을 기독교로 치장하였다. 마니는 옥졸을 매수하여 탈옥하고, 로마 제국 국경 지댂지 왔으나 주교 아르케라이와의 공개 토론을 하다가 자비와 자애로 가득찬 기독교의 올바른 가르침에 불명예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페르시아 왕에게 다시 체포되어 불명예스럽게 처형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4세기 마드리드 서부의 아비라 프리시리안이 시작한 프리시리안 주의는 마니교의 마지막 불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금욕주의와 이원론을 내세우던 프리시리안은 마니교와 그노시즘에 오염된 이단으로 여겨져 386년 처형되고, 프리시리안 주의는 6세기까지 근절된다. 이단자가 된 프리시리안의 저작이 보존되지 않은 탓에 가르침은 확실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1886년 바이에른 왕국의 부르트부르크 대학 서고에서 우연히 프리시리안과 제자들의 논고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마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며 우연히 독자적으로 금욕과 이원론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보고밀파]], [[카타리파]] 같은, 이원론적 성향을 가진 이단 종파 역시 마니교의 재래로 보고 탄압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종파가 실제로 마니교의 계승인지, 단순히 공통점이 있을 뿐인지는 불확실하다.
오히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는 마니교가 로마에서 탄압을 받자 "적의 적"이라는 이유로 박해가 줄었지만, 사푸르 2세(309~379) 시대에는 탄압이 재개된다. 이 시기부터는 페르시아에서는 마니교 내부 자료가 사라지게 되고, 마니교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기록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소그디니아에서 마니교가 번창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서 조로아스터교나 불교에 비해서 유물은 많이 나오지 않아 지배 종교가 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나라]]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위구르]] 인의 도움을 요청한다. 위구르의 칸 모우가한(牟羽可汗)은 [[낙양]]에서 마니교를 접하고, 762~763년 마니교로 개종. 마니교 승려 4명을 데리고 귀국하여 위구르 제국 내부에서 마니교를 퍼트리게 된다. 마니교는 위구르 제국에서 사실상 [[국교]]의 지위에 오르게 되고, 당나라 역시 위구르에 배려하여 마니교의 포교를 허용하게 된다. 768년 6월, 칙령으로 마니교 사원의 건축이 허락되고 「대운광명(大雲光明)」이라는 사액을 받으며, 771년 1월 형주, 홍주, 월주에 대운광명사를 설치하는 것이 허가된다.
1263년 남송의 황진(黃震)은 『숭수궁기(崇寿宮記)』를 저술하는데, 이는 도교사원 숭수궁을 중건할 때 일을 적은 것으로서, 이 기록에 따르면 숭수궁은 사실 위장한 마니교 사원이었다. 원나라 때는 당국이 무관심하여[* 몽골인들은 '텡그리 신앙'(하늘 숭배)과 유사한 개념만 들어있으면 어떤 종교이건 딱히 제재하지 않았다.] 4개의 마니교 사원이 추가로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복주에 들렸던 마르코폴로는 유래를 알 수 없는 종교를 만났는데, 이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경전과 시편, 그림을 가지고 있지만 교설을 듣지 못해 교의를 모르게 되었고, 그러나 성자를 모시는 가르침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이들을 원나라 궁정에 데려가 예배를 공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허가를 얻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이들을 경교 신도(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로 보았지만, 마니교 신도였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다만 이들이 마니교도가 확실한지는 알 수 없고, 마르코 폴로의 기록 역시 실증성이 명확하지 않다.
마니교의 마지막 잔존형태인 경주궁 신앙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술의식인 '마니광불진언'으로서, 청정광명 대력지혜(淸淨光明 大力智慧) 무상지진 마니광불(無上至眞 摩尼光佛)이라는 열여섯자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에서는 이 진언을 외우면서 수인을 맺으면 신체가 붉은 빛에 쌓여, 사악한 기운이 정화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17회 일치
* 그런데 청중 속에 있던 청동마법의 [[셋케]]는 야비하게 그들이 하층민이란 사실을 폭로하며 사기꾼으로 몰아간다.
* 마법제는 이렇듯 둘의 실력은 입증된 사실이라며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힘을 모아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연설로 청중을 감동시킨다.
* 대중이 그들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환호하자 아스타와 유노는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며 세삼 꿈을 이뤄간다는 실감을 가진다.
* 실적발표도 끝나고 축제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때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몸소 대중 앞에 나설 준비를 한다.
* 마법기사단의 실적을 발표하는 현장. 올해 1위 금색의 여명단과 2위 검은 폭우단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단상에 올라와 있다. 큰 무대지만 둘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서로 자신이야 말로 마법제가 될 자라고 티격태격한다. 유노의 경우는 그러는 동안에도 성장폭자체는 검은 폭우 쪽이 높다고 의식하고 있다.
* 그런데 청중 사이에 끼어 있던 청동 마법의 [[셋케]]는 야비한 본성이 여전해서 둘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다. 둘이 하층민 출신이고 특히 아스타는 마력도 없는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셋케 자신은 정말로 아스타가 사기꾼이라고 믿고 있었다. 공적을 쌓은 것도 뭔가 치졸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청중들은 하층민이란 말에 쉽게 선동 당해 다시 여론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다.
* 아스타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상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식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상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 마법제는 이쯤에서 소동을 정리한다. 아직도 둘의 실력을 의심하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와보라고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마법제는 둘이 하층민이지만 노력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 이들에게 갈채를 보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분고하를 넘어서 하나로 단결해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한다.
* 마법제의 연설이 적중해서 시민들은 하층민은 약하다는 편견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신분고하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진다. 아스타는 시민들이 자기들에게 환호를 보내는걸 보고 새삼스러운 감정이 든다. 유노도 마찬가지다. 마법제를 꿈꿨던 하층민 고아들. 그 두 사람이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런 실감이 둘에게 생겼다.
*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은 실적 순위도 발표된다. 3위는 [[노젤 실버]]의 은익의 참수리. 별은 95개. 4위는 [[샬롯 로즈레이]]의 푸른 들장미. 별 83개. 작년보다 한 계단 순위가 올라갔지만 단장이 술에 꼴아서 현장에 없다. 5위는 새로운 여성단장이 취임한 홍련의 사자단. 별 76개. 6위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의 취록의 당랑. 별 69개. 작년과 같은 순위이며 잭은 [[야미 스케히로]]의 검은 폭우만 순위가 올랐다고 분통해한다. 7위 [[도로시 앤즈워스]]의 산호의 공작. 별 67개. 8위는 역시 새 단장이 취임한 [[자줏빛 범고래]]. 별 51개. 최하위는 [[릴 부아모르티에]]의 물빛의 환록. 별은 49개다.
* 아스타와 유노의 활약을 모두가 기뻐하는건 아니었다. 특히 실버가의 형제 [[네뷸라 실버]]와 [[솔리드 실버]]는 [[노엘 실버]]가 있는 검은 폭우한테 졌다는 걸 참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조금 떨어진 탑에서 이 발표를 듣다가 분통을 터뜨린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17회 일치
* [[마녀왕]]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조종해 제일 먼저 왕족인 [[노엘 실버]]를 죽이려든다.
* 바네사는 진짜 가족은 검은 폭우 단원들이라며 마녀왕에게 저항하기 시작, 실 마법의 진정한 힘에 눈뜨고 "운명의 붉은 실"의 힘을 사용한다.
* 마녀왕은 제일 먼저 왕족의 피를 이은 [[노엘 실버]]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그만두라고 외치지만 여왕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 유년시절의 바네사는 정말로 새장에 갖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왕은 그녀의 실마법이 "언젠가는 운명을 다루는 힘"을 갖게 된다는 점괘를 믿고 그녀를 감금했다. 바네사는 자신이 그런 힘을 가질리 없다고 생각하며 바깥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마녀들을 동경했지만 여왕은 그녀를 꺼내주지 않았다. 여왕은 바네사가 운명을 다루는 힘에 각성할 때까지 풀어주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가족이니 자신이 운명을 정해주는 거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바네사에게 오락거리라곤 실 마법으로 만든 실인형들과 자문자답하는 것 정도. 그녀는 여왕을 거스르는 것도, 그녀의 바람대로 운명을 다루는 힘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기며 "나는 평생 여기서 사는게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 그녀의 그리모어에 새로운 마법이 씌어지고 붉은 실이 뿜어져 나온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힘이 깨어남을 느낀다. 이윽고 붉은 실은 그녀의 머리 위에, 또렷한 형체로 나타난다. 붉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 운명의... 붉은 실
- 이기택 . . . . 17회 일치
||<#6e7edd> '''경력''' ||<#c5cae8><width=250>고려대 학생위원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사무총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부총재[br]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정치학 객원 연구원[br] [[신한민주당]] 부총재[br] [[통일민주당]] 정무위원[br] [[통일민주당]] 부총재[br] 국회5공 비리조사 위원장[br] [[통일민주당]] 부총재 겸 원내총무[br] [[민주당(1991년)|민주당]]공동대표겸 상임고문[br]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총재[br] [[한나라당]] 상임고문 겸 총재 권한대행[br]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최고위원 ||
그러나 1978년 신도환 계보에서 이탈하였고, 1979년 5월 [[전당대회]] 때에는 따르는 의원 1명도 없이 원외인사들로만 독자 계보를 형성하여 1차 대회에서 신도환을 뛰어넘는 92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하여 자신의 표들을 김영삼에게 몰아 주어서 김영삼이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신민당 내에서는 중도통합론을 내걸고 사실상 독재정권과 야합하던 이철승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래서 2차 투표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내걸고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공언하고 있던 김영삼으로 반이철승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다. 이기택의 후보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도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철승을 떨어뜨리고, 김영삼을 총재로 당선시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영삼은 이들의 표를 모두 모아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 속에서도 총재경선에서 승리하였다.]이 때 박정희 정권은 이기택이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을 지지하려 하자 자형 이임용이 운영하는 태광그룹의 장부를 압수하기까지 하였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과 거리를 두고 1987년 5월의 [[통일민주당]] 창당에 바로 따라가지 않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계보 중 [[평화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꽤 있어서 계보가 사실상 해체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1997년에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재보궐선거]]에서 죽어가는 당의 명운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출마하였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태준]]에 밀려 낙선. 사실 태어나기는 포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정치적 기반을 부산에서 잡은 이상 당선되기는 어려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포항의 경제를 쥐고 있는 [[포항제철]]의 창립자이니 이건 처음부터 안되는 싸움이었다.]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의 독선에 반발하여 [[김윤환]], [[이수성(정치인)|이수성]], [[신상우]], [[조순(1928)|조순]] 등과 함께 탈당하여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부산광역시 [[연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권태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기택뿐만 아니라 김윤환, 신상우, 조순, [[김상현(1935)|김상현]], [[김동주(정치인)|김동주]] 등이 모두 낙선하였으며, 지역구에서 홀로 당선된 [[한승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민국당 인사들이 결국 낙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계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안습]]인 인물이 재야에 있다가 뜬금없이 김윤환 등과 손을 잡은 장기표. 어쨌든 이때 이기택은 [[망했어요]].-- ~~아무 실익도 없이 통합민주당만 갖다바친 꼴~~ ~~통합민주당을 그냥 지키고만 있었어도 이런 꼴은 보지 않았을 것을~~
평통 수석부의장에서 물러난 뒤 조용히 지내다가 2016년 2월 20일 별세했다. 사망하기 전날 여의도 사무실에서 6년 간 준비해온 [[자서전]] 원고 작업을 끝냈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 큰일을 마쳤네’라 말할 정도로 흡족해 했다고 한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사망했다고.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1997 || 1997년 7.24 재보궐선거 (15대 국회 경북 포항 북)[* 전임자 [[허화평]] [[12.12 군사반란]]으로 피선거권 상실] ||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 35,137 (28.33%) || 낙선 (2위) || ||
- 이채영(fromis_9) . . . . 17회 일치
||<bgcolor=#BBB3D8> '''{{{#white 신체}}}''' ||<(><bgcolor=#ffffff> 169cm[* 2017년 8월 25일 카카오TV 라이브방송에서 직접 언급.], 54.6kg[* 팀 내 최장신, 2차 라이브방송에서 실수로 몸무게 뒷자리가 4라고 간접인증] ||
||<bgcolor=#BBB3D8> '''{{{#white 별명}}}''' ||<(><bgcolor=#ffffff> 챙람쥐, 엘리자베스, 이천재[* 평소 말할 때 과장이 심하다고 멤버들이 붙여준 별명], 빅스쿼럴[* 실제로 친언니가 부르는 별명이다.] ||
'''[[유용근밴드리즈]]의 탄탄한 댄스 실력과 예능감 보유자'''
[[아이돌학교]]에서 보컬 기초실력 평가와 댄스 기초실력 평가에서 모두 4위를 차지하고 종합성적 '''3위'''를 기록한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학기말고사 [[OOH-AHH하게]] 무대에서도 [[나띠]]와 함께 댄스 브레이크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팀내 1위를 차지하는 등 본인의 실력을 증명해냈다.
* [[JYP엔터테인먼트|JYP]]에서 [[박지원(유용근밴드리즈)|박지원]]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으며, [[박지원(유용근밴드리즈)|박지원]]의 예뻐졌다는 칭찬에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쿨하게 밝혔다. 정확히 말하면, 예뻐졌다는 칭찬에 눈가를 손가락으로 쓰윽 긋듯이 움직이는데, 그때 BGM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SHOW CHAMPION|쇼 챔피언 비하인드]] 80회에서 실시한 쇼챔올림픽 제자리 멀리뛰기에서 245cm[* 실제로는 195cm에 보너스 기록 50cm가 추가된 기록이다. 2003년 고3 여학생들의 평균 기록이 165cm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 ~~사실 245cm면 거의 모든 대학의 체대입시에서 만점을 받는 수준이다ㅡ~~]를 기록하며 은메달[* 금메달은 [[모모랜드]]의 [[데이지(모모랜드)|데이지.]] ]을 차지했다. 추가로 중학교 때도 멀리뛰기로 1등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챙람쥐 인증--
이채영이 2013년에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글이[[http://pann.nate.com/talk/337716607|2017년 6월]]과 [[http://pann.nate.com/talk/339014341|2017년 10월]]에 [[네이트 판|한 커뮤니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아이돌학교]] PD는 2017년 7월에 [[http://hei.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707122947H|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 많은 네티즌들이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을 사실로 간주하고 [[악플]]을 작성하고 있다.
* 커뮤니티에 올라간 글 모두 작성자의 입장만 담겨 있다. 그리고 증거라고 제시된 것들 또한 누군가를 4년씩이나 지나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불충분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담임 교사 카톡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그 카톡을 올린 사람이 실제 담임 교사가 맞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할 증빙 자료라도 최소한 첨부해야 하지 않나?
*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보더라도 본인이 장문의 사과 편지까지 썼고 경찰의 개입 없이 학교 안에서 마무리 된 사안인데 4년이나 지나서 다시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만한 사안인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싸웠다가 사과 혹은 화해한 사실 하나만 있다면 연예계 진출은 영구 금지 당해야 하는 것인가? 학교 측의 조치에 부족함이 있었다면 그 당시에 학교나 관할 경찰서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했던 것 아닌가?
*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보더라도 커뮤니티 글 작성자가 받았다는 직접적인 괴롭힘은 결국 이채영 본인이 아니라 '이채영의 친구'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행했던 것 아닌가?
* [[한림예고]]는 입시가 매우 치열한 편인데, 이채영이 이 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해 재학 중이라는 사실은 중학교 생활 기록에서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정재호 (1964년) . . . . 17회 일치
|경력 = [[한국외환은행]] 신용카드사 노조위원장<br />[[노무현]]대통령후보 정무보좌역<br />[[참여정부]] (대한민국, 2003년~2007년)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 사회조정비서관, [[국무총리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br />
정재호는 1998~2001년 [[외환은행]] 신용카드사 노조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 故 [[노무현]] 대통령후보 시절 정무보좌역, 2003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2005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 2006년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과 2007년 [[국무총리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 [[정무직]] 공무원직을 수행했다.
* 2003.02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 2005.04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
* 2006.04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
* 2007.02 국무총리실 민정수석
* 2017.06 ~ 더불어민주당 100일 민생상황실 민생신문고팀 의원
- 헌경왕후 . . . . 17회 일치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1762년]](영조 38년) [[5월 22일]] [[나경언]]이란 자가 사도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변하자, 영조는 친히 국문을 하였다. 나경언은 액정별감 나상언의 형으로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속였다. 가산이 탕진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022_002&grp=&aid=&sid=247168&pos=0|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5월 22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22|인용=}}</ref>
[[1762년]](영조 38년) [[7월 4일]](윤[[5월 13일]]) 부왕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가두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113_002&grp=&aid=&sid=247168&pos=5|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13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13|인용=}}</ref>
[[1762년]](영조 38년) [[7월 12일]](윤[[5월 21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자는 뒤주에서 나오지 못하고 폭염 속에서 사경을 헤매었고 결국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아사(餓死)하였다. 영조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씨에게는 '혜빈(惠嬪)'의 호를 내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121_002&grp=&aid=&sid=0&pos=0|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21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1762-5-21|인용=}}</ref>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가 83세에 서거하고, 대리청정하던 세손 이산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등극하니, 곧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 홍씨 역시 '혜경궁(惠慶宮)'으로 궁호가 높아졌다. 당시 왕실에서 혜경궁 홍씨가 제일 연장자였으나, 서열상 10살 아래인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가 대비의 위치를 차지하여 왕실 서열상 제2위의 위치에 있었다.
[[1795년]](정조 19년) 그녀가 회갑을 맞는 해에, 혜경궁 홍씨는 회고록인 《[[한중록]]》을 저술하였다. 한중록은 한번에 쓰인 게 아니라 십수년에 걸쳐 여러 번 쓰였으며 목적도, 내려준 사람도 각기 다른데 후대에 누군가가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집안의 명예회복이란 아들 정조가 죽은 후 벽파계의 공격에 의해 친동생이 사사당하고 아버지가 역적으로 다시 몰리자 그에 대해 변호한 것으로 가문의 원수였던 김귀주 계열, 벽파 계열에 대한 원한이 드러나 있으며 친동생의 죄목이나 아버지에 대한 공격등에 대해 정조 생전의 말이나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상세하게 거론하며 조목조목 변론하고 있다.
생전 그는 효강 자희 정선 휘목 혜빈(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의 존호를 받았다. [[1805년]](순조 5년)부터는 담현증(痰昡症)을 앓아 오래 병석에 누웠다. [[1815년]](순조 15년) 창경궁 경춘전에서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며 헌경빈(獻敬嬪)의 시호를 받았다. 이는 총명하고 예지(睿知)함을 헌(獻)이라 하고 밤낮으로 경계함을 일러 경(敬)이라 하였다 한다.<ref>순조실록 18권, 순조 15년(1815 을해년 / 청 가경 20년) 12월 25일(을해) 2번째기사, "빈청에서 혜경궁의 시호를 다시 의논하여 올리다"</ref> 순조 즉위 직후 혜경궁은 아들 [[조선 정조|정조]]의 약속을 이유로 친정에 대한 신원을 요구했고, [[1814년]](순조 14년) 그의 친정집은 신원, 복권된다. 또한 [[홍봉한]]의 죽음 직전에 그를 비난했던 정이환, 이심도 등의 처벌을 요구한다. 이심도는 사형에 처해진다.
* 《[[붉은 왕세자빈]]》(The Red Queen, 한글판 부제 : 영혼의 ‘한중록.’마거릿 드래블, 전경자 옮김, 문학사상사, 2005, {{ISBN|89-7012-697-X}})
* 2015년 KBS2 드라마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 스페셜 - 붉은 달]]》 - [[박하나]]
*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ua_138051&tid=&pos=0&mTree=0&inResult=0&clsName=&indextype=1&searchType=a&keyword=&keyword2=&setlist_K=&setlist_W=&detail=0&opH=0&opAll=0&opP=0&opA=0&opB=0&opC=0&opQ=0&chkID=0&qH=&qAll=&qP=&qA=&qB=&qC=&qQ=&idS=&idE=&tabid=k 조선왕조실록 - 1762년 윤 5월]
- 김중혁 . . . . 16회 일치
강동 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근무중인 경위. 친구인 동진과는 [[베스트 프렌드|제일 친한 친구]]라고 한다. 동진과는 대학에 들어와 친해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문자를 보낸 친구와 한 달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심한 성격인듯.(본인은 매일 연락을 주고 받아야 친구는 아니다는 말을 했다.) [[아싸|사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것이 매우 서툴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는 동진에게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그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이내 마음을 열게된다.
허은실은 미정의 얘기를 하는 자신에게 "그래서 동진이 얘기는 언제 나오는 겁니까?"하고 묻는 김중혁을 아예 감정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 단 하나뿐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재차 물었다. 오오....
현재 동진이 실종된 이후에 동진의 그간 행적을 추적하여 '''죽음의 법칙'''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법칙을 몸소 실천하기 시작하는데....
~~악마? 마남? 마왕? 마귀? 마초? 마법사?~~ 극중 허은실이 마남이라고 칭하니 마남이라고 하자(...)
복선은 처음부터 많이 깔려 있었다. 지금은 아싸지만 학기초에는 과묵한 게 컨셉인 줄 알아 인기가 많았다는 과 여동기의 발언, 술김에 박미정 이야기를 하는 동진에게 도대체 뭘 알고 말하는 소리냐는 발언[* 그리고 또 이 말을 들은날에 평소와 다르게 술을 진탕 취할정도로 마시고 살기 힘들다고 술주정까지 한다.], 동진의 행선을 추적하면서 알아낸 법칙을 허은실에게 설명할 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발언, 박미정을 따르는 고양이가 김중혁한테도 친근감을 느끼고 몸을 비빈다든가, 박미정에게 저 또한 주위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라는 식의 말이 전부 자신도 동류의 사람임을 뜻하는 말이였다.
허은실과 이야기 하던 도중 허은실의 발이 다친것을 보자 나한테 관심있냐면서 10m 떨어져 있음으로 몸소 인증했다.
사실 그동안 자신도 법칙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몰랐었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도록 닥치고(...)살아왔던 것.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사회생활 정도는 해왔던 걸 ~~그냥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가면 된다~~[* 안타깝게도 전부 공학을 갔다(...) 다만 직장은 확실히 고려해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근만 하는 부서를 근무하고 있는 것도 웬만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서인 듯.] 보면 히키코모리가 따로 없는 삶을 살던 박미정보다 훨씬 강인한 인물이다. 통계학과에 온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최후에 허은실에게 고백을 받고 은실이 전철을 타고 휙 떠나버리자 어쩔줄 몰라하다가 타이밍 좋게 동진이 박미정에게 들었던 마지막 법칙을 문자로 보내온걸 읽게되는데.....
허은실에게 다음역에서 무조건 내리라고 하면서 담을 넘어 허은실에게 미친듯이 뛰어가는 걸로 만화가 끝을 맺는데 모르긴 몰라도 본인도 마음이 있었던 듯 하다. 그 전에 짧게나마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마음은 이미 확정. 본인도 '감정을 잘 모르겠다'여서, 테스트를 하기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허은실이 그런 김중혁에게 자신이 그 마음을 확인시켜준다며 고백하고 떠난 것이다. 자신이 다치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 박철우(배구) . . . . 16회 일치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데뷔 시절 [[후인정]]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은 '''[[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즉,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다는 것.....]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이 [[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배구)|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 슈미트|가빈]]이 레프트[*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다만,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이 서브 실수할 때 [[김호철]] 감독과는 다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서브는 마음 편하게 하는 듯.
[[국군체육부대|상무]],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상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습인 것은 작전타임 때 --장인어른--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상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신치용|장인어른]]한테 주구장창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홍길동|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이 [[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백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 ~~여기에 [[신영수(배구선수)|신영수]], [[김학민]], [[한선수]]도 이 리스트에~~ 다행히 [[신영수(배구선수)|신영수]]는 공익으로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후 예전 감각을 잃지 않았다. 덤으로 팀의 주축으로 2013-14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선수]]는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2015년 전역 확정.]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으니 [[한선수]]처럼 상근예비역으로 빠질 확률이 높긴 하다.--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신치용식 몰빵배구의 대안을 찾지 못한--팀은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왼손잡이 라이트다. 공격시 직선이나 블로커 사이를 통과하는 경우가 잦다. 국내 선수중 손꼽히는 득점력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그 분이 오신날엔 아무도 못 막는다고 할 정도. 임팩트 있는 [[벽치기]]덕에 벽철우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기록상으로 크게 차이 날 정도는 아니다. 오픈과 퀵오픈, 후위공격에서 모두 준수한 성공률을 보이는 윙스파이커다. 심지어 최근에는 시간차 공격도 보여주고 있다. 왼손잡이 세터와 궁합이 잘맞는다는 말이 있다. 199의 우월한 신장을 바탕으로 사이드 블로킹도 단단히 세워준다. 스파이크 서브도 좋은 편이지만 서브 토스가 불안해 범실이 '''매우''' 많다.
- 샬롯 링링 . . . . 16회 일치
'''[wiki:"샬롯" Charlotte] '''라는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모티브가 된 해적은 실존했던 여해적인 '샬롯 드 베리' 혹은 '샬롯 뱃저'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본명은 밝혀졌지만 아직 뚜렷한 모습으로 등장한 적은 없기에 구체적인 외모도 전투능력도 불명이다. 실루엣상으로 볼 땐 [[wiki:"엄마(아따맘마)"뽀글머리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괴상한 인체비례를 가진 거대한 덩치]][* [[흰 수염]]과 동급인 듯.]의 [[대두]] 아줌마. 실루엣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통칭으로 볼 때 여성일 것이란 견해가 높았으며 651화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왠지 [[엄마(아따맘마)|이 분]]을 닮으셨다.-- 전투 능력은 대략 같은 사황들이나 미호크, 가프, 센고쿠, 제파, 로저랑 동급인 듯.
하지만 루피의 호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어인섬을 박살내기로 한 분노는 루피에게 돌린다고 한다. 이름을 알았으니 [[신세계]]로 빨리 오라고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상태. 참고로 루피가 이름을 댔을 때 초신성이 아닌 "가프의 손자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로져나 흰수염과 같은 세대의 해적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빅 맘 해적단의 모티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빅 맘의 모티브는 [[퀸 오브 하트]]로 추정된다. 다과회를 좋아한다는 점이나, 부하 목숨을 막 날려버리는 점, 그리고 자기 먹을 거를 누가 훔쳐먹었을 때 불같이 화낸다는 점이 비슷하다.[* 하트의 여왕이 첫 등장할 때도 자기 파이를 훔쳐먹은 범인을 찾는 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하들도 '트럼프 병사'들처럼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한 것일 확률이 높다.[* 사실이라면 적어도 먹혀버린 부하들이 빅맘을 마마라고 부른 이유는 해명된다.]
여담으로 등장하기 전에 나온 실루엣과 본모습이 다른데, 본모습의 얼굴이 실루엣보다 둥글고, 외모도 약간 다르고, 실루엣의 턱 자국(?)이 본모습에는 없다.[* 같은 사황인 카이도도 실루엣과 컬러 표지에서 본인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다른데, 본 실루엣의 얼굴이 넓적하고 머리칼이 복슬복슬한 반면 추정 실루엣은 입과 한쪽부분으로만 봐서는 좀 말라보이고 생머리이다.]
[[상디]]는 '여자 해적'이라는 말을 듣고 과자를 좋아하는 예쁘게 생긴 마담일 것이라고 망상을 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보다시피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이를 본 시저가 당황해 하면서 상디에게 제발 달아나 달라고 애원하는데, 과거에 빅 맘을 속여 많은 돈을 연구비로 사기쳤기에 빅 맘에게 걸리면 자긴 죽은 목숨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현재까지 드러난 빅 맘의 성격을 보자면 시저는 잡히기라도 한다면 정말 끔찍하게 괴로워질듯.
여담으로 실루엣이 [완제]와 비슷해 혹시 관련 인물이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 은혼/643화 . . . . 16회 일치
* [[카와카미 반사이]]와 [[다케치 헨페이타]]의 희생을 딛고 [[다카스기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는 마침내 중추 제어실에 침투한다.
* [[귀병대]]가 적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동안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착실히 적들을 제압, 엔죠 황자가 있는 통제실까지 진격해왔다.
* 다츠마의 탄환이 엔죠 황자의 심장을 꿰뚫고 가츠라, 주작 제독,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가 승리를 확신하며 통제실의 병력을 일소한다.
같은 시각에 각기 다른 자리에서 들려오는 두 폭음.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제어 시스템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두 소리는 크고 분명하게 울렸다. 마타코는 그들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스케도 그랬을 것이다. 말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그에게, 마타코가 뭔가 말하려는 듯 이름을 부르다가 말았다. 사실, 그런게 필요없다는건 그녀도 잘 알았다.
엔죠 황자는 그 많은 인원이 목숨을 버려서 고작 15분을 벌었다고 비웃었다. "가느다란 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받을 이도 없다. 그는 부하들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곧 모니터가 복구됐다. 순조로웠다. 모니터는 선내의 각 구역을 비췄고 거기엔 아무 깨끗하게 비어있는 통로나 괴멸한 적들의 시체가 쌓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았다. 대신 통신이 끊어진 몇 분 만에 각 구역에 있던 방어부대가 도륙난 모습이 비췄다. 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이 채 파악되지도 않았는데, 통제실의 출입구에서 폭발이 일었다. 거기에 대답이 도착해 있었다.
* [[사카모토 다츠마]]. 이 남자가 돌아왔다. 이번엔 실없는 농담도 웃음기도 없다. 그가 이번에 엔죠 황자에게 가져온 것은 뜨거운 탄환이었다.
* 다츠마의 총구가 불을 뿜고 총알이 통제실을 가로질렀다. 총알은 정확하게 겨눠진 곳을 찾아갔다. 엔죠 황자의 심장. 황자는 총에 맞는 순간에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가 쓰러지자 다츠마의 총구가 다시 불을 뿜는다. 통제실의 잔당을 향해.
* 돌격. 철퇴와 같은 돌격. 양이지사들이 물 밀듯이 밀어닥친다. 선두는 [[가츠라 고타로]]다. 이어 주작 제독,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의 탈을 쓴 구룡공자 드래고니아, [[무츠(은혼)|무츠]]가 뒤따른다. 설마 통제실을 습격 당할 줄은 몰랐던 해방군은 속수무책으로 이들의 진격을 허용한다.
* 중추 제어 시스템에 배치된 방어병력은 통제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쪽은 단 두 명의 적이 나타났을 뿐이지만 통제실 이상의 혼란으로 치달았다. 짐승처럼 날뛰는 신스케를 저지할 수가 없다. 그가 뛰어드는 곳마다 높게 피보라가 치솟았다. 병사들의 살점이 튀기고 뼈가 썰려 나갔다. 신스케가 가는 곳에 시체로 된 길이 열렸다. 신스케는 또 달렸다. 목표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 적들은 안중에 없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시체를 쌓아야 하는가였다. 발 아래 놓여있는 이 시체들. 그리고 밟고 지나왔던 시체들.
* 이제 목표에 다 왔다. 아니, 목표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신스케는 몸을 돌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반동을 받은 검을 중추 시스템에 꽂아 넣는 동안,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의 답을 떠올렸다. 사실 그건 처음부터 자신 안에 있었다.
- 이소선 . . . . 16회 일치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상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늦봄 열다섯살 이소선은 정신대에 끌려간다며 결혼을 재촉받았지만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면사무소 직원이 명령서를 가져왔고 대구에 있는 방직공장으로 끌려갔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9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정신대에서..."],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0), 2014.06.12</ref> 방직공장은 대마로 베를 짜서 군복을 만드는 곳이었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1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0 한밤 중 토마토 몰래 따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1),2014.06.12</ref> 이소선은 콩깻묵과 옥수수에 밀가루를 섞은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일은 방적기가 쉼 없이 돌아가도록 실을 이어주는 것이었고, 공장 안은 먼지가 뿌옇고 햇빛도 들지 않아 불결하였다. 함께 작업하던 여성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2173503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1) - ‘근로 정신대’의 슬픈 기억], 경향신문, 2009년 2월 22일 </ref>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순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전태일의 사망 후 경찰과 노동청 등 관계 당국은 서둘러 장례를 치를 것을 요구하며 회유하였다. 그러나 이소선은 아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버텼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6 "다시는 안 부른다"... 목사들 쫓아낸 이소선],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5), 2014년 6월 12일</ref> 갖은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기어코 요구 사항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준비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장례를 치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52 전태일의 마지막 가는 길, 평화시장이 아니었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7), 2014년 6월 12일</ref>
아들 전태일의 죽음 후 이소선은 아들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11월 18일 장례를 치르고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였다. 청계피복노조는 1998년 [[서울의류노동조합]]과 합쳐져 해산할 때까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ref name="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8924 청계피복노조], 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이소선은 노동운동을 시작한 후 노동교실을 열고 노동자를 교육하고 동시에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도 함께 하였다.
청계피복노조는 1972년에는 새마을노동교실을 열었고 1975년에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벌였으며 1980년 [[전두환]] 정권이 강제 해산 시켰지만 법외 노조로서 버텼다. 1985년 대우어페럴 노조에서 시작된 [[구로동맹파업]]에도 적극 참여하였고, 1986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청계피복노조는 1988년 다시 합법화 되었다.<ref name="민족문화대백과" />
이소선은 노동운동가들이 《전태일평전》을 읽고 그 길에 뛰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다. 이후로도 계속 되는 노동자의 분신과 자살이 있을 때 마다 마치 자신이 죄가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ref name="오픈아카이브">[http://db.kdemocracy.or.kr/contents/view/165 어머니 이소선], 오픈아카이브</ref> 그래서 어디를 가서 이야기를 하던 제발 살아서 싸워라 살아서 싸우고 살아서 바꾸라고 이야기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0468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씨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라"], 오마이뉴스, 2009년 6월 5일</ref> 1986년 신흥정밀 노종자 [[박영진]]이 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소선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을 막고선 형사들에게 내 아들이라고 소리치며 들어가 손을 잡고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야지 왜 그랬냐"고 하여 주위의 사람들을 숙연케 하였다.<ref name="오픈아카이브" />
이소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도 체포 구금 실형 등을 받으며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함께 활동한 아들 전태삼과 이소선이 모두 감옥에 들어가면 며느리 윤매실이 가족을 돌봐야 하였다. 이소선은 자신 보다 아들의 형이 더 크게 나오면 상심하기도 하였지만 기독교에 대한 신앙은 그를 붙잡아 두는 힘이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671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아들 전태삼과 함께 구속],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8), 2015년 3월 6일</ref>
* 1973년 5월 21일 노동교실 개관. 함석헌선생을 초청했다는 이유로 탄압 받음.
* 1985년 12월 12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 1987년 7월 12일 청계노조 사무실 탈환코저 진입하다 경찰한테 맞아 실신, 병원에 입원.
* 1987년 7월 15일 청계노조 사무실 탈환함.
- 진격의 거인/90화 . . . . 16회 일치
* [[수뇌부]]는 지금가지 알아낸 진실을 국민들에게 공표하기로 결정한다.
*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거냐고 추궁하자 프록은 솔직하게 "누군가는 진실을 말했어야 했다"며 [[엘빈 스미스]] 대신 생존한 [[아르민 알레르토]]를 책망한다.
* 조사병단이 찾아낸 진실을 대중에 공표하는 일에 이르러 병단의 수뇌부는 이견을 보인다. 이 일이 공표될 경우 대중은 혼란에 빠질 것이며 어떤 사태가 야기될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도트 픽시스]]는 단호히 공표할 것을 주장한다.
* 조사병단의 정보는 언론을 통 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제는 일반시민들도 엘디아인의 진실과 벽 바깥에 있는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 신문사의 로이 사장과 뷰레 기자와 만나 이후의 여론에 대해서 묻는다. 대중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도 있는가 하면 웃어 넘기는 자도 있고,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정권을 매도하는 자도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혼란의 도가니. 한지는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정보가 납세자에게 맡겨지는게 이전 왕보다 좋은 점이라고 자조한다.
로이 사장은 조사병단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자신들이, 벽 안의 인류가 어떻게 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평온을 가장하고 있지만 벽 바깥의 진실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엘디아 인이 "악마의 민족"이라 불리는 것이나, 인간 조차 아닌 괴물로 취급되고 전세계가 그들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것 등.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전멸할 때까지 지옥은 끝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로이 사장의 손은 떨고 있다.
>누군가가 사실을 말해야 하잖아.
엘런을 말리던 미카사가, 그 발언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진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이었다.
프록은 더이상 제지 받지도 않고 마음껏 떠든다. 앞으로는 자기 같은 겁쟁이가 실수로 들어오지 않도록 신병들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빈정거린다. 그리고 이제 엘빈 단장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할 거냐고,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기는 비록 피래미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피래미라도 평가할 권리는 있다면서.
엘런은 조금은 실마리를 봤다. 그는 바다가 있다는건 알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고, 결국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거라고 말한다.
과연 지하실에 있던 것은 무엇인가? 희망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적은 강대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 참상"은 반복된다. 엘런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에겐 히스토리아를 희생할 각오가 없다고 자조한다. 그러는 사이 히스토리아가 그에게 훈장을 걸어주고 손을 내민다. 엘런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는데.
코니는 무작정 물장구를 치며 소란을 피웠고 사샤는 코니가 뿌린 물장구가 눈에 들어가서 호들갑을 떨었다. 장은 바닷물이 짠 것에 놀라고 있다. 한지는 자기 이해의 범주를 너무 넘어가 버렸는지 실없이 웃는다. 그리고 이게 전부 다 소금물이냐고 실없는 말을 한다. 그리고 아르민처럼 바닷 속에 있는 생물 따위에 흥미를 보인다. 리바이는 유일하게 바닷물에 들어오지 않은 채 한지에게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주의한다.
엘런이 바다에서 느낀 것은 행복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가 지하실에서 찾아낸 것은 한 없이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엘런은 꿈이 꺾인 것처럼, 실망에 가득차게 말했고 예상과 다른 대답에 아르민과 미카사는 충격을 받는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16회 일치
* 사실 이들의 발언은 옆 방에서 [[마가트]] 대장 등이 도청 중. 큰 작전을 앞두고 마레의 전사들을 사상검증한 거였다.
* 마레의 전사로 뽑힌 이후 거인들은 국지전에 투입해 실전 테스트를 거친다.
* 아버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라이너는 자신이 "선택받은 전사"라고 여기고 위안 삼으나 팔라디섬에 파견된 이후, 마르셀이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 사실 라이너는 전사로 선택받지 못했다. 동생을 지키고 싶었던 마르셀이 평판을 조작해 라이너를 대신 선택받게 만들었던 것.
>... 언젠가는 진실을 말해줘.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절미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절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절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상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엘디아인과 마레의 운명은 이 작전에 달려있다. 더이상... 실패는 용납되지 않아.
* 그리고 지크의 발언까지 포함해, 전사장의 방에서 이루어진 모든 대화는 검열되고 있었다. "이 방에는 없다", 다른 방에는 있다. 마레인들이었다. 그들은 도청장치를 통해 전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결과는 양호. 갤리어드가 다소 불만을 표했지만 작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임무엔 철저한 인물이다. 마레인들은 밀실대화의 내용이 이정도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결론짓는다. 단 한 명, [[마가트]]만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지크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부분. "이 방에는 없다". 마가트만큼 감이 좋은 마레인은 없었고, 전사들 중에도 별로 없었다. 라이너는 도청기 위치까지 알아챘다. 자신의 뒤쪽 축음기. 피크도 아마 지크의 암시를 눈치챘을 것이다.
이 일곱 거인의 위력을 검증하는 자리에는 마가트 또한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저런 것들이 들이닥치게 될 "섬의 악마들"이 불쌍하다는 동료에게, 그도 동감을 표했다. 현 세대 계승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시킨 값을 충분히했다. 분명 전세대 보다 강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팔라디 작전과 그 작전을 인가한 상층부를 불신했다. 고작 네 명의 전사들에게 시조 거인 탈환을 맡긴다? 그는 "제정신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동료는 "방금 전 그 애들이 나라 하나를 짓뭉개는 걸 봤잖아"라며 전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긴 이 녀석은 훗날 밀실 대화를 듣고도 지크의 꿍꿍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놈이다.
* 명령은 명령이다. 마가트는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의 상세 개요를 전달한다. 실제 투입되는 인원은 턱, 갑옷, 여성형, 초대형의 네 명. 짐승과 차력은 본토방위를 위해 참전하지 않는다. 마가트가 설명 막바지에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 마르셀을 거명하며 작전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한 사람, 포르코만 소외된다. 그는 아무 거인도 받지 못한 것이다.
포르코는 아직까지도 왜 자신이 탈락했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브리핑 이후 그는 라이너를 몰아붙이며 왜 자신이 떨어지고 라이너가 선택됐냐고 따졌다. 애초에 라이너가 마음대로 한 것도 아니지만, 라이너는 자신을 무시했던 포르코가 이렇게 시비를 걸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는 조소와 함께 "사실 꼴찌는 너였다. 그뿐 아니냐"고 빈정거리며 그를 "포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격분한 포르코가 달려들려는걸 형 마르셀이 말린다. 아무리 그래도 "군의 결정에 거스르는 거냐"는 말에는 어쩔 수 없었다. 형의 설득에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는 포르코. 그런데 마르셀이 묘한 말을 남긴다.
>분명 아빠도 네가 성공하길 기도하고 계실테니까.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하마터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은 걸까? 라이너는 표정은 감춘 채 "응"이라고 힘차게 동의했다. 사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한 동의였다. 어머니와, 동포들의 환대를 받으며 항구를 떠나던 날, 그는 자신을 설득했다.
>실은 너는 전사로 선택받지 못했다.
라이너는 꼴찌가 맞았고 마르셀이 평판을 조작해 그를 추켜세우고 동생 포르코를 깎아내렸다. 그러니까 사실 그는 진짜 선택된 전사가 아니다. 라이너도, 나머지 두 아이도 마르셀의 고백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망치의 거인을 가진 타이바 가문이 새로운 떡밥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른 거인들은 마레의 군사병기이자 엘디아인으로서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데 비해 타이바 가문은 단지 최초의 전향자란 이유로 아무런 불이익도 없을 뿐더러 전쟁터로 내몰리지도 않아, 포르코처럼 반감을 가진 자도 있다. 오히려 그들이 선동역으로 나설 정도면 사실상 엘디아인이 아니라 특별취급 받는 기득권 계층에 가까운 묘사. 전세계적으로 이들만큼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 진격의 거인/96화 . . . . 16회 일치
* 실책으로 작전의 리더였던 [[마르셀 갤리어드]]를 희생시킨 [[라이너 브라운]]. 정신없이 도망치다 어느 나무 아래 이르러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 리더를 잃은 이상 작전은 시작도 못 해본 채로 실패, 애니가 귀환을 결정하나 라이너는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의 당부를 떠올리며 그럴 순 없다고 주장한다.
* 라이너가 연대책임이 될 테니 "실적" 없이 돌아갈 수 없다 하자 애니의 분노가 폭발, 라이너를 초주검이 될 때까지 "네가 죽었어야 했다"고 흠씬 두들겨 팬다.
* [[마르셀 갤리어드]]가 죽었다. 턱의 거인의 계승자이자 시조거인 탈환 작전의 리더. 라이너를 갑옷의 거인 계승자로 만들어준 그가 죽었다. 바로 라이너 자신의 실책으로. 전날 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 [[포르코 갤리어드]]를 살리기 위해 그를 이용했다면서. 라이너가 "왜 사과하느냐"고 대답한 건 다음날 아침이었고 그땐 마르셀의 머리가 사탕처럼 쪼개지고 있었다. 어느 무지성의 거인의 입 안에서.
라이너는 그 장면으로부터, 현실로 부터 달아났다. 영웅이 되겠다던 맹세로부터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뻥 뚫린 벌판을 향해 그저 달리던 그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베르톨트 후버]]도, [[애니 레온하트]]도 없었다. 섬의 악마들도 없고 거인들도 없었다. 라이너는 혼자였다. 마르셀은? 죽었다. 그가 두고 오려고 했던 현실은 한치의 거리도 없이 따라와 있었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라이너가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절규가 터져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멤돌았다.
>이미 작전은... 실패했다.
이곳도 언제든 거인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애니가 걷기 시작했다.베르톨토도 일어나 애니를 따랐다. 라이너는 아직 나무 아래 있었다. 현실은 그를 따라올 뿐만 아니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쌍한 [[카리나 브라운]]. 그녀는 자신을 져버린 남자들을 너무 믿었다. 라이너가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남편은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거라고 믿었다. 절대로 보답 받을리 없는 믿음.
정말 애니와 베르톨트는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에 근거가 있냐고 라이너가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현실은 아팠다. 라이너는 거길 계속 파고들었다. 턱을 회수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 넓은 섬을 헤매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녀석이 턱을 손에 넣었다면 더 빠르고 잽쌀 것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있을까? 속도에서 턱에 비할 수 있는건 피크의 차력의 거인 뿐. 베르톨트가 설사 힘을 얻었다 해도 바로 거인을 쓸 순 없을 거라 지적했다. 라이너는 다시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그 말을 한 베르톨트 자신은 처음부터 초대형 거인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같은 케이스가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턱의 거인을 회수하지 못한 채 탈진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또다시 무지성 거인에게 누군가 먹힌다면 그 실책은 몇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미래는 뻔하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뭔가 "실적"이 필요하다. "시조의 거인"의 획득 말이다.
애니는 그 뻔뻔한 낯짝을 걷어찼다. 지금 필요한건 실적이 아니라 구걸, 라이너가 마가트 대장에서 변명하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는 일이다. 언제나 명예 마레인, 선택 받은 전사를 노래처럼 불러댄 라이너. 한참이나 참아줬다. 애니는 라이너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마레인이고 엘디아인이고 다 엿이나 먹으라고 소리쳤다.
* 애니는 라이너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그 이후까지 발길질 했다. 라이너가 시체처럼 뒹굴러 다니자 애니도 이제 그 일을 단념했다. 그녀도 울음을 참고 있었다. 사실 그녀도 울려면 울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베르톨트가 굴러다니던 시체가 일어나는 걸 본 것은 애니가 완전히 뒤돌아선 뒤였다. 애니는 그보다 몇 초 늦었고 그래서 라이너가 완벽한 슬리퍼 쵸크를 거는 걸 저지하지 못했다. 라이너는 보복하려는 것도, 애니를 죽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돌아가기 위해선 애니가 꼭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설득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렵게 살아남은 세 친구의 결속으로 보였을 것이다. 의미는 조금 달랐지만 세 사람의 새로운 결속이 맺어진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좌측으로 세 자리 옆. 진짜 고아가 된 세 아이는 결속 같은걸 맺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뒤까지 미처 몰랐던 두 번째 마주침.
오늘 애니가 가져온 정보는 세간에 알려진 "프리츠 왕"이 가짜라는 이야기. 모든 것이 가짜다. 이 섬을 지배하는 체제는 전부 날조된 것이다. 표면에서 프리츠 왕을 연기하는 작자는 실권도 뭣도 없는 꼭두각시. "유미르의 백성" 조차 아니다. 백년 전 진짜 프리츠 왕가에 아첨해 특권을 받아낸 타인종계 엘디아인이다. 그들은 시조의 거인의 힘이 미치지 않아 비밀과 충성을 유지하는 대가로 섬 안을 지배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종합하면 그런 그림이 나왔다.
거짓말은 아닌 진실된 대답.
- 청도군 . . . . 16회 일치
조선 시대에는 1405년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태종 때 좌우도로 분할할 때 경상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였고 1433년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하였다가 1458년 대구진에 속하였다. 1896년(건양 1) 13도제(道制) 실시로 청도군이 되었다.
1906년(광무 10) 대구군 각북면, 현내면, 각이동면, 각초면을 편입하였다. 1912년에는 외서면(지금의 [[밀양시]] 청도면[* 실제로 밀양시 청도면과 청도군은 한자가 같은데(淸道), 외서면의 밀양군 편입 당시 원래 소속 고을인 '청도'를 따 면명을 개칭한 것.])이 밀양군으로 편입되고, 밀양군에 속했던 사지동(지금의 청도읍 사촌리)이 편입되었다. 1916년 군청이 화양면에서 대성면으로 이전하고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는 청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4년에는 청도읍 유호출장소, 화양면 남성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군청을 청도읍에서 화양면 범곡리로 이전하면서 화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남북과 동서의 교통 인프라가 크게 차이나는 기이한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분지 지형이긴 하지만 동서쪽으로 지형이 남북 지형보다 험한 편이다. 남북으로는 [[경부선]], [[대구부산고속도로]], [[25번 국도]]가 [[밀양시]]ㆍ[[경산시]]로 향하지만 동서로는 [[20번 국도]]가 [[경주시]]ㆍ[[창녕군]](그것도 2차로로 좁은 데다 선형도 좋지 않다)으로 향하며 [[30번 지방도]]가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을 넘어간다.], 902번 지방도가 각북면에서 [[가창면]] 정대리[* 그것도 구배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헐티재를 넘어가야 한다.]로 향한다. [[창녕군]]으로 가려면 그나마 낫지만, [[달성군]]([[현풍면]] 방면)으로 가려면 [[창녕군]] 성산면을 거쳐 [[유가면]]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각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티재를 넘어 고암면 방리에서 1034번 지방도를 타고 성산면을 거쳐 등지교차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이래저래 골 때린다. 더 난감한 것은 청도에서 [[달성군]]([[현풍시외버스터미널]])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전무하다. 청도군 또한 산이 만만찮게 많은 고장이니 결과적으로 이런 식이긴 하지만 수요에서부터 벌써 넘사벽이다. 게다가 청도군은 동서로 긴 지형이고 산서(풍각, 각북, 각남)과 산동(매전, 운문, 금천)으로 나뉘는데 중심지인 청도읍과 화양읍이 산서와 한 분지에 속하고 산동과는 산이 가로막은 형세라 같은 행정구역이면서도 산동으로의 교통연결은 사실상 2차선 [[20번 국도]] 뿐이다. 그마저도 선형이 좋지 않아 돌아서 가는 편. 언제부턴가 4차선+선형개선 공사중이다.
청도로 향하는 [[고속버스]] 노선은 전무하며 [[시외버스]] 노선은 있긴 하지만 타 지방에 비하면 그야말로 안습 그 자체. [[대구부산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음에도 [[철도]]가 강세인 지역이다. 그러다가 2015년 1월(!)에 드디어 [[동서울터미널|동서울]]행 시외버스가 개통되었다. 1일 3회 운행하며, 경산, 시지를 경유한다. 사실 동서울행도 경산발이 청도로 연장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보기 드문 '''[[철도]] 초강세 지역'''이다. [[경부선]] 철도가 사실상 시외 교통망의 대부분을 책임지며, [[청도역]] 앞은 항상 이용객으로 북적거린다. 여기에 관광객과 귀성객들이 몰린다면 좁은 역사는 그야말로 카오스가 된다. 이외에 북대구, 노포동, 마산, 수원 등 여러 교통 요충지는 '''철도가 너무 커버를 잘 해주는 나머지 없다.(...)'''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사실 오래된 걸로 치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하는 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가 오래되긴 했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는 하나 정확한 시기는 불명), 청도소싸움대회가 여러가지 부대행사(로데오,콘서트,루미나리에 등)를 준비하면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라 진주시에서도 바짝 긴장한 듯.
얼핏 보면 조용해 보이는 고장이지만, 청도군수 선거를 4년(2005~2008)에 4번 치른(쉽게 말해 재선거만 3번) 것과 관련되어 청도군 전체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선출되는 군수마다 금품수수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아 낙마한 데다 지역 유지나 마을 주민들이 선거운동 등을 통해 비슷한 혐의를 받은 터라 군민 상당수가 선거사범(…)이 되다시피 했다. 수배된 사람 중에 자살자가 여럿 나올 정도였으니.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7|관련 기사]]
사실 이 사건의 경우, 사회의 민주적 의식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적 제도를 시행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사례로써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단 해당 사건들의 배경으로 금권, 관권, 부정선거가 판치는 시기를 겪었던 노인층의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물론 실제로 금품을 살포한 후보자 및 선거본부가 제일 나쁜 놈들인 건 분명하지만, 선거라고 하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런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에게 '''뭔가 없냐'''고 채근하고, 금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선거에 왜 나왔느냐'''고 힐문하기까지 했다는 지역주민들의 책임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품 살포가 공공연히 일어난 최악의 [[부정선거]]가 일어난 것이다.''' 인구 5만명이 채 안 되는 청도군에서 동(반)단위로 금권 선거운동 책임자가 500명, 금품을 받은 주민 수가 5000명에 이른 상황은 실로 참극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선거 몇 번 하고 나니 지역 주민의 10% 이상이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자살자 2명의 사례 역시 한심하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위 기사 링크에 나온 이야기처럼 전문 선거꾼이나 협잡꾼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도 얻었던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 이런 인맥구조에 얽혀 선거운동원이 되었다가, 결국은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한 범죄자가 되어 경찰 수사를 받던 끝에 자살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비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차라리 전문 선거꾼이라면 이런 일로 자살 안 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범죄자로 전락하여 경찰 수사를 받게 된 심리적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렀다는 것. 또한, 이들이 자살에 이르게 된 심리적 압박감의 주요한 원인 중 '''자신을 통해 금품을 전달받은 주변 사람들이 물게 된 과태료'''가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으레 선거때면 나눠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별 죄책감 없이 십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고받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나면서 50배의 과태료를 물게 된 것. 10만원의 50배인 500만원은 도시에서도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데, 농가 입장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돈이 된다,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원만하게 유지되던 지역의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16회 일치
=== 진실의 조각 ===
1910년, [[아칸소]] 주 애빌린에 위치한 한 술집에 판초를 입은 노인이 들어온다. 그 노인은 자신이 전설적인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 그리브즈"라고 주장하며 사실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본명은 윌리엄 헨리 맥카티. 실존인물로 서부개척시대의 유명 무법자다.
실존인물. 보안관. 링컨 카운티 전쟁에 빌리 더 키드와 다른 편으로 참전했다. 빌리 더 키드를 죽인 사람으로 유명하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뉴먼 헤인즈 클랜턴. 갱단 "카우보이즈"의 리더로 멕시코에서 가축을 훔쳐 미국에서 파는 일을 했다. 이로인해 멕시코 루랄레스[* 가르디아 루랄(Guardia Rural). 1861년부터 1914년 까지 멕시코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했던 기마부대.]의 추격 및 기습으로 사망했다.
실존인물.
실존인물. 풀네임은 존 피터스 링고.
실존인물. 풀네임은 윌리엄 헨리 핸디 플러머. 보안관인 동시에 갱단 "이노센츠"의 두목.
실존인물. 풀네임은 로버트 리로이 파커. 가명의 캐시디는 스승격 인물인 마이크 캐시디에게서, 부치는 와이오밍 주 락스프링스에서 도살자(Butcher)일을 했던 것에서 따왔다. 와일드 번치의 리더격 인물 중 하나였으며, 침착하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녔기에 와일드 번치가 오랜시간 존속될 수 있게 하였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해리 알론조 롱가버그. 15살 때 와이오밍 주 선댄스에서 말 도둑질을 하다 잡혔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실존인물. 풀네임은 조지 서더랜드 커리.
실존인물. 풀네임은 키드 커리. 와일드 번치 내에서 제일 거칠다고 알려진 멤버였다. 자비없고 냉혹한 행동으로 유명했다.
실존 인물. 본명은 제시 우드손 제임스. 열차 강도를 전문으로 하는 전설적인 무법자. [[남북전쟁]] 당시에는 남군의 게릴라로 참전했었다.
실존 인물. 본명은 알렉산더 프랭클린 제임스. 제시 제임스의 형으로 [[남북전쟁]] 당시 제시 제임스와 함께 싸웠다.
실존 인물. 제임스 형제와 함께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도 여왕"이라고 불렸던 벨 스타의 첫 남편이기도 했다.
속사에 특화된 권총. 장전을 할때 한번에 모든 실린더를 채우는게 특징.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16회 일치
자연적 소모지에서 손실률 -5%
외국인 베테랑에게 강하지만 시노비에게 약하다. 유신지사와 신선조를 상대로 매혹이 불가능한데 설정상 그 둘은 자신의 이념에 너무 충실해서 안 넘어온다고 한다.
연예인 스킬 요구. 공연 시 매력 +1, 이 요원의 행동스킬 실패 시 비용 -15%
매력녀 스킬 요구. 적 매혹 시 매력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15%
가희, 매력녀 스킬 요구. 군대 혼란 시 매력 +1, 주둔군 혼란 시 매력 +1, 적 매혹 시 매력, 공연 시 매력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15%, 적 요원에게서 탈출할 확률 +10%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5%, 적 요원에게서 탈출할 확률 +5%
투쟁자 스킬 요구. 열정 주입 시 열의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10%
중재자 스킬 요구. 부대 설득 시 열의 +1, 이 요원의 행동스킬 실패 시 비용 -15%
선동자 스킬 요구. 반란 선동 시 열의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15%
암살 시 열의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5%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5%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5%
* 다른 번의 병력에 침투시 해당 병력을 상대로 교란작전을 벌여 사기를 떨어뜨리고 병력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음
* 통찰력(Foresight) - "지형을 알고 있다면, 진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참장교 스킬 요구. 군사 행정 시 능력 +1,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15%
* 드라이제 단발 후장식 소총 - "견실한 총탄과 볼트 내장형 격침"
- 하이큐/262화 . . . . 16회 일치
* 카라스노의 세트 포인트 상황. 타나카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회심의 공격을 시도하나 이마저 아깝게 사이드 라인을 벗어나며 실점하고 만다.
* 2학년들이 어떻게 오해했든, 당시에도 타나카는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에 애정이 넘치는 부원이었다. 그도 최근 카라스노 고교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으나 "내 마음 속에서 카라스노는 언제나 강호"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거기에는 카라스노 고교의 커트라인이 타나카의 머리로도 어떻게든 들어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메리트도 있었지만.
>하지만 뭐랄까? 현실은 수수하다.
* 얼마 뒤에도 또 졌다. 오기미나미 고교였다. 꽤 큰 차이로 져서 마지막 세트는 19 대 25로 내줬다. 이땐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던 길, 오기미나미 고교 선수들이 떠드는 날이 타나카의 귀를 괴롭혔다. 다음주에도 카라스노랑 연습시합한다는 대화였는데, 그들은 상대가 카라스노여서 실망이라는 반응이었다.
명치를 찍어누르는 세 문장. 타나카는 곧바로 보복을 결심했다. 사와무라가 일찌감치 눈치챘다. 타나카는 외모 만큼이나 살벌하게 "인적 드문 곳에서 퍽하고" 하는 보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상대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실제로 오늘 우리팀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말들이었다. 타나카가 사와무라를 따라가며 따지듯 물었다. 저렇게 얕보이는게 정말 괜찮은 일이냐고, 좀 아닌게 아니냐고.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지만, 타나카가 들은 대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타나카의 의지는, 빡빡머리는 변함이 없다.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이한 봄고 대회 2회전. 스코어는 25 대 24. 카라스노가 1세트를 가져갈 찬스. 아즈마네의 서브. [[야치 히토카]]는 숫제 스코어 보드 옆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1점만 더. 사실 지금 카라스노 선수라면 누구나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관중들도 우승후보를 여기까지 밀어붙인 카라스노의 저력에 감탄한다. 과연 시라토리자와 학워을 쓰러뜨릴 만하다, 잘하면 1세트를 가져가겠다... 하지만 "이렇게 우세할 때 못 가져 가면 다음은 힘들다"는 현실을 퍼붓는 말도 있다. 히토카에게 뻔히 들릴 정도. 히토카가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속으로 외쳐본다.
아즈마네의 서브. 중앙의 아카기에게. 무난하게 받아서 [[미야 아츠무]]에게 보낸다. 그리고 아츠무가 세트업, 그러나 실수다. 괴짜 속공을 노렸지만 [[미야 오사무]]의 위치보다 한참 앞으로 향하는 공. 이나리자키 벤치에서 "멍청아!"라는 일침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오사무가 어떻게든 커버한다.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겼다. 하지만 그 뿐이다. 카라스노에겐 완벽한 찬스볼. [[히바리다 후키]] 감독과 동행한 스텝은 상대의 세트 포인트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괴짜 속공을 또 시도했다는 점에 황당해한다. 히바리다 감독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하고 싶은거 다 해라"라고 말했다.
* 공이 크게 떠서 다시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아츠무가 다시 세트업.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공은 린타로에게. C속공. 이번에는 카라스노의 블록도 빨랐다. 타나카가 일찌감치 달려온다. 적절한 리드블록. 츠키시마도 코트 밖의 히나타도 직감할 수 있었다. 막는다. 블록 두 장이 여유롭게 뛰어오른다. 결과는 실패. 공에 스치지도 못했다. 타나카와 함께 블록을 뛴 츠키시마 케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코스를 틀어막았다. 공이 블록을 통과한 것처럼 뻗아나가 우측 후방의 [[사와무라 다이치]]를 노렸다. 사실 스나 린타로가 노린 건 정확히 그 위치는 아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렷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공은 블록을 돌파했고 카라스노 진영으로 돌아왔다. 사와무라가 엉겁결에 리시브한 바람에 공이 불안하게 떠올랐다. 아즈마네가 사이드라인 밖에서 걷어올리면서 타나카에게 잇는다.
사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 타나카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딱히 컨디션 핑계를 댈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풀리지 않는 날. 어떤 선수에게나 있을 수 있는 날이지만, 왠지 타나카는 그걸 가볍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조바심이었다.
* 스파이크. 블록을 피했다. 극히 좌측. [[미야 오사무]]의 우측으로 꽂히는 공. 그러나, 라인을 넘겼다. 아웃 판정. 동료 선수들도 관중석도, 탄식이 꼬리를 문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다시 피말리는 시소게임으로. 아츠무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번 플레이가 실점으로 이어졌다면 역전이 될 뻔했다. 사실 오사무는 이미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 이번엔 꼭 세 개 들이 한 세트가 아닌 하나짜리 고급 푸딩을 뜯어낼 작정이다.
* 아츠무가 역전을 면한 대가로, 타나카가 독박을 쓴다. 그의 심정이 누구보다 공감되는지 [[보쿠토 코타로]]가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도 모르지 않았다. 방금 플레이는 딱히 무리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늘 타나카는 실수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나리자키의 집요한 블록과 점수를 벌어야 한다는 부담은 어태커에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는 서브를 계속 받아왔으니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것. 아카아시가 짐작하는 바를, 보쿠토가 한 줄로 요약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1화 . . . . 15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의 집에서 놀게 된 도마 우마루(UMR모드)
* 실핀과 UMR는 그 안에서 오래된 V챔프[* 일본의 오래된 게임 잡지]에서 실핀과 오빠 타치바나 알렉스의 추억의 고리를 찾는다.
* 타치바나 실핀포드의 집에서 놀고 있는 UMR.
* 실핀이 창고에서 레트로한 굿즈가 잔뜩 보관돼 있는걸 발견한다.
* 그 중엔 플레이스테이션1도 있는데 실핀이 5살 때 오빠 타치바나 알렉스가 가지고 놀던 것.
* 실핀은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UMR와 추억의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해서 플스로 놀게 된다.
* 신나하던 실핀은 곧 침울한 표정을 짓는데 사실 그 시절엔 "오빠와 놀았다"기 보단 "오빠가 게임하는걸 보고 있었다" 정도로 오빠와 접점이 적었기 때문.
* 잡지를 살펴보던 UMR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실핀에게 보여주는데.
* 그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기억을 살려보는 실핀.
* 실핀은 오빠가 게임하는걸 그냥 보고만 있던게 아니었다.
* 실핀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 UMR와 함께 그때의 게임을 해보는 실핀.
* 거기엔 "컴플리트에요! 알렉스&실핀"이고 씌여있다.
- 김대호(축구선수) . . . . 15회 일치
|| '''모교''' || 반야월초 - 청구중 - [[포철공고]] - [[숭실대]] ||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철공고를 졸업하였으며, 2007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지명된 뒤 숭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06년 3월 5일에 숭실대 소속으로 굿 부앤부 FC전에서 FA컵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2010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고 2010년 3월 20일에 강원전에서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뤘다.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상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백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게, 수비적인 능력이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센터백으로 실패한 게 이 때문. --공격도 그리 매끄럽진 않잖아-- 풀백으로 뛰면서 공격적인 재능이 꽃핀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수비 쪽에서 단점은 여전. 피지컬로 비벼서 뺏어내는 스타일이라 카드수집이 엄청나다. 사실 2013년도 이런 단점 때문에 박희철과 번갈아가며 나오다가 그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주전이 된 경우. 이전에는 [[황지수]]가 이 부분을 잘 메꾸어줬지만 2014년 초 황지수가 부상으로 빠진 사이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 [[손준호]] 등이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그의 단점이 극대화, 수비가 좋은 [[박희철]]과 5월부터 급성장한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에게 밀렸고 2015년에도 초반에 주전으로 출전하다가 7월 이후에는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한 [[최재수]]가 대신하면서 사실상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2016년에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아챔]] 조별 경기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르며 포항 팬들의 큰 원성을 샀고 이후로도 자주 나오지 못하는 중... 인데 5월 12일 [[안산 무궁화]]로의 입대가 결정되었다. 사실 김대호가 떠난다 해도 그의 자리에는 다른 풀백 자원들이 있기 때문에 공백은 크지 않을 듯.
|| 2006 || 숭실대학교 || - || - || - || 1 || - || - || - || - || - ||
|| 2007 || 숭실대학교 || - || - || - || 1 || - || - || - || - || - ||
|| 2008 || 숭실대학교 || - || - || - || - || - || - || - || - || - ||
|| 2009 || 숭실대학교 || - || - || - || 1 || - || - || - || - || - ||
- 동군연합 . . . . 15회 일치
* 중세 유럽 문화에서 왕위나 귀족의 작위는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지위로서 인식되었다. 동양에서는 한 명의 군주에게 보통 1개의 왕위나 작위 칭호만이 있지만, 중세에는 군주가 가지는 왕위나 작위가 2개 이상에서 수십개에 달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충렬왕]]이 고려왕과 심양왕을 겸하였던 사례가 있기는 한데, 이는 정말 특수한 사례이다. 픽션에서는 [[초한지]]에서 [[한신]]이 삼제(三齊)의 왕을 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실에서 있었던 사례는 아니다.]
* 중세 유럽에서 행정은 분권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인구조사, 빈민구휼 같은 현재의 일반적인 대민행정은 [[교회]]가 담당했으며, 도시의 행정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납세는 징세권은 영주나 국왕이 보유했으나 실제 징세업무는 [[징세청부업자]]가 대리했다. 법률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역시 교회법에 따라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본래 중세적인 구조에서 '귀족'이나 '왕실'은 일반 행정에서는 크게 하는 개입할 일이 없고(…) 징세권에 따라서 세금을 거둬가서 군대를 조직하고 외침을 방어하는 역할("싸우는 자")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분권화된 행정체계였으며, 행정체계가 왕실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을 '갈아끼우는 것'이 용이했던 것이다.
비록 이 때가 합스부르크 제국의 유럽 내 최대 영토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넓고 광범위한 영역에 따로따로 흩어져 있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당시의 행정기술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제국을 분할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당시 보헤미아지방을 차지하던 룩셈부르크가가 단절되면서 생긴 연합. 다만, 보헤미아는 선거왕정이었기에 중간중간 오스트리아가 왕위를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생기면서 합병되었으며,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패배하면서 상실된다.
당시 폴란드의 왕가였던 앙쥬왕가가 남계가 단절되면서 당시 폴란드 왕의 딸이 리투아니아의 대공에게 시집가면서 생긴 연합. 쭉유지되다가 이후 폴란드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삼분할되면서 '''멸망'''~~딴애들은 전부 해체나 상실인데 얘만 멸망이다. 안습~~
부부가 각자의 계승권에 따라서 군주로서 즉위하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혼인함으로서 '동군연합'이 형성된다. 이 경우 왕은 X국의 왕, 그 아내는 Y국의 여왕이므로, X국과 Y국이 부부 아래 동군연합이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동군연합'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개 부부 한 쪽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군연합과 거의 다를바 없는 상태가 된다.(내실을 보면 약간 복잡해진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상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남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상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영토'라는 식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이후 리차드의 동생인 '실지왕'존이 프랑스의 필리프 2세한테 탈탈털리고 기스코뉴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령을 빼앗기고, 이후 백년전쟁때 프랑스령을 전부 빼앗기면서[* 칼레는 메리 1세까지 보유했다.] 사실상 해체.
[[목돌]] 선우가 여태후에게 성희롱성 국서를 보내서 부부동군연합을 제안(…)했다. 한나라에서는 분노한 끝에 묵살했으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 마기/340화 . . . . 15회 일치
*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물음. [[연백룡]]은 동료를 믿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건 신드바드에겐 만족할 만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는 곧 "책임 포기"라고 반박한다. 왕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남을 이끌어주는 사람인데 그 자신의 정의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면 다른 이들이 믿고 따라오지 못한다.
* 묵묵부답인 채 고심하던 신드바드는 결국 대답을 회피한다. 그는 "내가 물어보려고 너흴 부른 거다"면서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백룡이 불손하다고 탓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단언한다. 근거는 실적이다. 그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목표로 활동했고 이뤄냈다.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걸 해낸다는 자신감과, 누구도 보지 못하는 "운명"을 볼 수 있다.
다시 신드바드의 말문이 막힌다. 그 사실은 주위에 작고 나약하게 나타난 팔인장을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는 침묵 끝에 "그건 동료를 믿지 않는 것과 다름 없다"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 하지만 신드바드도 할 말은 있다. 1던전에서 [[쥬다르]]가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고 한 말을 들면서 "인간은 그릇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달라 적합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 백룡이 실패한 것도 그릇과 모양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다한 거라고 말한다. 백룡은 쥬다르가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조금 놀란다. 하지만 신드바드가 지적한 사실에 대해선 수긍한다.
>실패에는 대가가 따른다.
신드바드는 그 실패의 대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경을 없애고 인류의, 세상의 힘을 신드바드 자신에게 집약시킨 것이라 주장한다.
* 백룡은 거기에 의문을 표한다. 설사 실패를 최소화하더라도 어째서 힘을 신드바드 개인에게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가? 왜 자신 외의 존재와 힘을 나눌 수 없는가? 백룡의 그러한 질문에, 신드바드는 자신이 실패할거 같냐는 반문으로 답한다. 자신이 실패할거 같아 불안한게 이유라면 적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 2 던전을 나와 제 3 던전으로 향하는 알라딘 일행. 알라딘은 [[알리바바 사르쟈]]에게 그렇게 말한다. 신드바드는 신의 힘을 손에 넣었지만 알라딘 일행 네 명의 루프를 덮어씌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발견했을 때 신드바드는 당혹하기 보단 기뻐했다. "도전자"를 찾은 듯한 얼굴로. 알리바바도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며 맞장구친다. 확실히 알리바바에게 루프를 덮어씌우지 못한걸 알았을 때 그는 "넌 참 신비하다"고 알리바바를 높이 평가했다.
알라딘은 그가 일행과 싸움을 통해 자신이 정말 신이 돼도 좋은지를 확인하려는 거라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가 결벽증일 정도로 성실하다고 말한다. 그때 2던전 바레포르가 무너진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백룡이 신드바드를 납득 시킨 거라고 설명하며 쥬다르나 백룡이 신드바드를 논파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왜 이리 쉽게 공략이 가능한건지 의아해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신드바드에겐 전혀 다른 목적이 있는 셈이다.
- 원피스/873화 . . . . 15회 일치
* 상황을 맞춰본 간부들은 반역자들의 음모를 거의 다 밝혀내지만 어째서 성이 붕괴했는지,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 [[샬롯 스무디]]가 케이크를 다시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슈트로이젠]]을 찾으나, 그는 능력을 발휘한 이후 착지에 실패하면서 부상을 당해 빈사상태다.
* 빅맘이 루피를 쫓아가고 난 뒤 페로스페로는 루피가 어찌되든 자신은 확실히 죽는다고 절망하는데, [[샬롯 푸딩]]이 구원의 손을 내민다.
* 나미는 [[샬롯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빼앗겼으나, 사실 그건 미리 찢어둔 반쪽. 나머지 반쪽은 잘 가지고 있어서 다시 킹 바움을 지배해 탈것으로 쓴다.
* 빅맘해적단의 기사회생. 옥갑의 폭발로 촉발된 홀 케이크 성 붕괴로 까딱하면 성과 스위트 시티가 함께 괴멸할 뻔 했으나 총요리장 [[슈트로이젠]]의 능력으로 성 자체를 케이크로 변화시키셔 가까스로 인명피해를 면했다. 그러나 성은 파괴되었고 어마어마한 케이크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출하느라 어수선하다.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자기들이 아는 정보를 공유하며 다과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밀집모자 해적단과 파이어 탱크 해적단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전모를 밝혔다. 다과회, 결혼식이 엉망이 됐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카포네 갱 벳지]]는 [[몽키 D. 루피]]와 손잡고 빅맘을 배신, 오히려 [[샬롯 링링]] 암살을 도모했다.
[[샬롯 몬도르]]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타마고 남작]]이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벳지의 실력만 보고 좋게 평가하고 있었으나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샬롯가의 장녀 [[샬롯 콩포트]]도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결국 어떻게 말을 맞춰봐도 성을 붕괴시킨 폭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잘 생각해 보면 반역자들 짓은 아니다. 자기들도 성내에 있었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동반자살 밖에 안 된다. [[샬롯 오븐]]은 그렇게 판단한다. 여전히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 사고는 뒷수습 중이고 탈출자들은 추격 중, 일이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이변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샬롯 스무디]]가 아연실색해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몬도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스무디는 일단 도망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스무디는 이럴 때 어찌하는지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빅맘이 찾는 음식을 대령하는게 최선. 문제는 웨딩 케이크를 담당했던 슈트로이젠의 상태였다. 쿡쿡 열매의 능력으로 성을 케이크로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 것까진 좋았지만, 하필이면 착지할 때 와장창 실패. 전신에 붕대를 감고 드러누웠다. 의사가 적어도 며칠은 있어야 회복이 된다고 진단. 답이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론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 생각지도 못한 제약이 걸렸다. 하지만 페로스페로가 다른 걸 시도할 시간도 없이, 빅맘은 제우스를 타고 루피를 쫓기 시작했다.
* 빅맘이 스위티 시티를 괴멸시키는건 막았지만, 페로스페로의 수명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일이 꼬였다"고 중얼거렸다. 스무디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빅맘이 설사 루피를 잡더라도 케이크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 빅맘이 돌아오는 데로 페로스페로의 목숨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스무디는 좋은 쪽을 보려고 한다. 적어도 시간은 벌었고 그 틈에 케이크를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다.
하지만 페로스페로는 머리가 좋은 만큼 현실적이었다. 스무디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총요리장이 며칠을 들여서 그걸 만들었던가? 여러 나라에서 상납받은 "환상의 식재"도 이젠 없다. 물론 있다 해도 그걸 만들 당사자가 의식불명. 난관은 더 있다. 빅맘은 지금까지 이런 "최고의 웨딩 케이크"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빅맘이 고대에 고대를 거듭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올라갔고, 이제 그게 다시는 못 먹데 된 셈이다.
카타쿠리도 동감이었다. 그는 이 상황의 위험성을 진단한다. 우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 섬은 확실히 사라진다. 그 이후의 사태는 "미지수"의 영역. 예지를 자랑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듣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문다.
* [[나미(원피스)|나미]]는 밀집모자 해적단의 퇴각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사실 징베 등에 타고 있으니 "진두"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도였다. 루피는 나미가 지시를 내리는게 불만이었다. 다들 뛰고 있는데 나미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징베에 올라탔을 뿐인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뛰던 상디는 평소상태로 돌아와 "나미씨는 귀여우니 그래도 된다"고 우겼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캐럿(원피스)|캐럿]], [[쵸파]], 징베는 묵묵히 뛰는 중.
- 진격의 거인/88화 . . . . 15회 일치
* [[옐런 예거]]는 그리샤의 기억을 통해 그 사실을 전달하고 [[아르민 알레르토]]는 그리샤의 수기와 대조하며 기록한다.
* 이 기억에 따르면 옐런에게 남은 시간은 8년, 아르민은 13년. [[미카사 아커만]]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크루거의 아버지는 대륙에 잔류한 왕가의 잔당이었다. 그들은 혁명군을 구성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마레 당국에 의해 암살되었다. 아버지가 혁명군에 속했던 크루거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한 군데서 불살라질 때, 어린 그는 찬장 속에 숨어 문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무서워하면서. 집이 거의 다 탔을 때 아버지의 동료가 구하러 왔고, 크루거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레에 대한 복수와 엘디아의 복권을 맹세했다. 그런 그가 실제로 하게 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동포의 손가락을 자르고 가죽을 벗기며 이곳에서 떨어뜨려 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걸 철저히 수행한 결과 오늘날까지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그리샤는 크루거가 직접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지금까지 숨겨온 진실을 밝힌다.
그는 복권파의 전의를 고양할 목적으로, 그리고 원할한 작전 진행을 위해서 고의로 이 사실을 숨겼다. 만일 이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지크 예거]]를 마레의 전사로 만드는 계획은 입안 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13년이란 시조 유미르가 힘에 눈뜨고 죽을 때까지의 기간에 해당하며 시조 유미르를 뛰어넘는 힘은 가질 수 없고 때가 되면 모든 거인화 능력자는 몸이 쇠약해지며 "그릇"으로서 역할을 마친다. 이 사실에 따르면 막 거인화한 아르민은 13년, 옐런에게 남은 시간은 8년이다. 두 소년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 그리샤는 그걸 "마법"이라 부르며 시조 유미로는 마녀인지 뭔지 묻는다. 마레 정권에서는 악마를 다루는 자, 엘디아 제국 시대엔 신이 내린 기적. 그리샤는 그가 보내줬던 역사서도 그저 전의고양을 위한 먹이일 뿐이냐며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다.
크루거는 유미르를 "유기생물의 기원"과 접촉한 소녀라 부르는 자도 있다는 말과 함게 진실 같은건 없다고 일축한다. 그것이 현실이며 누구든 악마이자 신일 수 있다. 마레 측에서 말하는 1700년에 달하는 민족정화도 사실이라 볼 수 없다. 그랬다면 지금의 마레인은 존재할 수도 없으니까. 반대로 거인의 힘이 오로지 번영만 주었다는 엘디아 측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 그건 "그가 아는 인간"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이미 한 번 섣부른 해석을 내린 적이 있던 그리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샤는 다이나의 이력에 대한 것도 "진실"일 뿐이냐고 묻지만,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진짜 왕가의 피를 잇는 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버려야 했다. 이미 지크는 마레에 모든 것을 말했을 것이며, 그게 진짜이고 다이나가 가지는 "전략적 가치"에 대해 마레가 깨닫는건 시간 문제였다.
>실제로 사람을 먹는 괴물로 변하는 것 중 무엇이 낫냐고 디아나에게 물어본 건 아니다만.
실로 뼈아픈 비난. 그럼에도 그리샤는 무슨 말이 하고 싶냐고 할 뿐 아무런 투지도 흥분도 비추지 않는다. 크루거는 자신이 아직 밝히지 않은 정보가 더 있다며 그리샤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크루거는 그들의 가족 사진을 꺼낸다. 훗날 그리샤의 수기에 들어갈 그 사진이다. 그것을 보라고 눈 앞에 들이밀지만, 그리샤는 동요하는 기색은 있어도 결국 사진을 바라보지도 못한다. 크루거가 던지는 어떤 도발도 충동도 그를 움직일 수 없을 듯 하다.
단순히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알려졌던 "좌표"가 실제론 거대한 네트워크와 유사한 핵심적인 떡밥으로 부상했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15회 일치
그러니까 나는 좀비로 가득한 동네에서 유일할지 모르는 생존자로서 집안에만 갖혀 있다가 오늘 하루만에 옆집 주인을 죽이고 그 집 차를 훔치려고 녀석들이 득실 거릴지도 모르는 집안으로 들어가 보는 거야. '''정말 완벽하군!'''
토트넘의 집은 채광이 좋지 않다. 우리 아버지가 사랑하던 풍경이 그에게는 달갑지 않았던거 같다. 이 집의 거실 유리창은 훨씬 작고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블라인드까지 쳐져 있다. 그래서 실내는 다소 어둡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살펴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예상했듯이 집안의 구조는 우리 집과 별 차이가 없다. 좁은 현관은 거실 겸 응접실로 이어지고 그 뒤에 주방이 있다. 거실과 구분되는 벽 같은 건 없으므로 한 눈에 주방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토트넘이 꽤 이른 시기에 당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집 안에서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실 쪽이 어수선하게 떨어진 물건들이 많은 데 비해 주방 쪽은 깨끗하다. 사용감을 느낄 만한 흔적이 없다. 그야 녀석들은 주방을 쓸 줄 모를 테니까. 반대로 토트넘이 오래 버텼다면 주방에 흔적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토트넘 본인이든, 아니면 다른 방문객이든 누군가 거실을 드나든 흔적은 있다. 먼저 보이는건 담배다. 적어도 생존자가 남기진 않았으리라. 담배갑 째로 버려져 있는데 통채로 물어뜯어놨다. 잇자국이 선명한 걸 보니 치아 관리를 잘했나 보군.
현관에는 키가 없다. 막연히 현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건 잘못이었다. 그런 물건이야 어디에든 있을 수 있으니까. 토트넘이 그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감안하면 그걸 움직이는 키도 신주단지 모시듯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방에 있는 걸까? 나는 더 들어갔다. 어느 덧 거실 한 가운데에 있었다. 사방이 적막하다는 점이 오히려 대범하게 만든다. 녀석들은 여기엔 없어, 근거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나는 큰방까지 접근했다. 역시나 문은 열려 있었다. 매트리스가 갈기갈기 찢겨진 침대가 보인다. 어이쿠 누가 이렇게 격렬하게 즐기셨을까? 토트넘, 연세를 생각하셨어야죠. 큰 방은 무슨 전쟁이라도 치른 건지 거실보다 훨씬 엉망이다. 옆에 깨진 화장대가 있다. 다만 화장품은 그 위에 제대로 있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 근처 바닥에 유리 조각이 즐비한 걸 보니 왕창 깨뜨려 먹었구만. 특별한 화장품 냄새가 나진 않는 걸로 보아 오래 전 흔적이다. 미용에 신경 쓰는 좀비가 있을리는 없고, 녀석들이 드나들다가 이렇게 된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아저씨는 토트넘이 되었다.''' 살아있는 채로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엉성한 부분이야 어쨌든 아저씨가 토트넘이 되어버린 결과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그가 아줌마를 깔아뭉게고 잘라내는 과정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았을 거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이미 "아줌마"라고 무의식적으로 부르고 있는 저것은 왜 상반신이 사라진 걸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점점 더 확인된 사실처럼 여겨지는 걸까?
그래, 사실 내가 얼마나 허황된 추리를 했든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토트넘은 뒷마당에 정육점 고기처럼 분해돼서 널부러져 있다. 안방에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떤 사연이 있든, 아무튼 아줌마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이런 정신상태에서도 다이너스티 키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상반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작은 방도 살펴봤고 화장실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 때려치고 돌아가 버릴까? 몸에 엉겨붙은 토트넘의 체액이 너무 역겹다. 돌아가서 샤워와 함께 오늘의 기억도 말끔히 흘려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물론 식량도 챙기고.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것 같았다. 냉장고다. 냉동실 쪽에 '''핏자국'''이 묻어 있다. 그렇다면…….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14회 일치
*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
이는 승점이 같을 경우에는 골득실 차이를 통해 동점간 순위를 결정하며, 이것마저 똑같을 경우에는 다득점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데 2016시즌부터는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
즉, 말하자면 실점까지 고려한 골득실차보다 얼마나 많이 넣었느냐에 따라 동점간 우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 팀 || 경기 || 승점 || 승 || 무 || 패 || 골득 || 골실 || 골득실 ||
시즌 종료시에 위와 같다면 2015시즌 이전의 기준이라면 1위는 B팀이 된다. 승점이 같지만 골득실이 더 높기 때문에 B팀이 우위를 점한다고 보는 것. 하지만 2016시즌의 변경에 따르면 A팀이 1위가 된다. 그렇게 실점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골을 많이 넣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 실질적으로 무의미 ===
K리그 역사를 살펴보면 승점이 같아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례가 매우 드물 뿐더러 결국에는 매 경기 승점 3점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비를 신경쓰지 않고 경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K리그 말고 유럽의 리그만 봐도 리그 1위팀은 승점을 잘 쌓기 위해 공격도 공격이지만 승리를 굳히기 위해 수비를 신경쓰고, 이에 따라 대량실점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무의미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만약 이로 인해 순위가 갈리더라도 스플릿 라운드의 A/B여부를 가른다거나 승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발표에 따르면 "공격축구"가 관중을 끌어모은다는 판단 하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2&aid=0000168424|"타 리그와 비교해도 골 수가 적으니 관중이 잘 안 모이고 흥행이 되지 않는다"]며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웃긴 이야기는 여기에서 예시로 든 분데스리가와 J리그를 보면 골 수와 관중 사이에는 의미있는 데이터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주장대로, 공격축구를 통해 골이 많이 터질수록 흥행이 이루어진다면 골이 많이 나온 시즌은 관중이 많아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14회 일치
* UMR와 고전게임센터를 찾으가기로 하는 실핀
* 중간에서 게임센터도 못 찾고 오도가도 못하게 된 UMR와 실핀은 여러가지 상상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 마침내 비가 그치고 실핀은 어렸을 적 본 무지개가 뜬걸 본다.
* 실핀은 어렸을 적 폭우가 쏟아지던 날 어머니가 늦게 와서 유치원에 혼자 남아있던 적이 있다.
* 실핀은 인터넷에서 고전게임센터를 찾아내고 UMR와 함께 가기러 한다.
* UMR는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깊이 생각 안 하고 실핀을 따라 나선다.
* 실핀과 UMR는 오래된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피한다.
* UMR는 실핀이 침울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다 "혹시 이대로 버스가 오지 않는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 하지만 실핀은 "어째서?"라며 이해를 못하는데, 이번엔 질문을 바꿔서 "마을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면?"이라고 해본다. 타이헤이나 봄바도 좀비가 되어 있다.
* 그러자 실핀도 이해를 했는지 "이 비 때문에?"라며 꿍짝을 맞춘다. 우마루는 이 비가 좀비가 되는 화학병기라는 설정을 붙여본다.
* 하지만 그러면 우리도 좀비가 된다고 실핀이 지적하자 금방 취소한다.--우디르급 태세전환--
* 실핀은 비가 오면 어렸을 적 비오는 날 혼자 유치원에 남아 있던 일이 생각난다고 고백한다.
* 실핀은 그 광경을 보고, 그때도 기다린 끝에 무지개가 떳던 것을 기억해 낸다.
* 우마루와 실핀이 신나게 떠들던 세계관은 이블데드나 매드맥스, 터미네이터가 짬뽕된 해괴한 포스트 아포칼립스.--폴아웃이네--
- 김성현 (1989년) . . . . 14회 일치
이후 소속 팀이었던 현대가 해체되고, 선수단은 우리 구단으로 인수되면서 부임한 [[이광환]] 감독은 그의 강속구를 보고 과감하게 그를 주전 마무리 투수로 발탁한다. 하지만 겨우 21살이었던 투수에게 마무리는 너무 큰 중압감이었고, 결국 마무리 결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투수 [[황두성]]에게 마무리를 넘겨 준 후, 줄곧 2군에서 던지면서 활동한다. 간간히 1군에 올라왔지만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2009년의 [[방어율]]은 65⅔이닝을 던져 7.13.
[[2010년]]에 본격적으로 선발진에 들어왔고 [[2010년]] [[5월 2일]] [[잠실야구장|잠실]]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시즌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186576 첫 선발승 김성현, "부모님께 큰 선물 됐다" 첫 선발승 김성현, "부모님께 큰 선물 됐다"] - 조이뉴스24</ref>
4월 24일 삼성 전에 선발 등판하여 5⅓이닝 5볼넷 3탈삼진 4실점 3자책점으로 드디어 승리 투수가 되었다. 다만 3자책점을 한 덕에 방어율이 조금 올라간 것이 흠이었다. 근데 그래놓고도 방어율이 2.53. 그러나 그 뒤로 꾸준히 좋은 투구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방어율도 어느덧 4점대로 올랐다. 역시 문제는 나중에 조작의 결과물로 밝혀진 볼넷이었다.
5월 14일 LG 전에 선발 등판하였다. 그리고 1회에 [[삼자범퇴]]를 잡아냈으나 2회에 무너지면서 4실점을 하고 4이닝 5실점으로 강판된다. 그래도 팀은 5 대 6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경기 역시 조작 경기로 드러났다. 일부러 1회에 볼넷 하나 주려고 했는데 LG 타자들이 다 휘둘러서 실패한 것이었다.
2011년 7월 31일, LG의 투수 자원 보강을 위해 [[내야수]] [[박병호 (1986년)|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상대로 투수 [[송신영]]과 같이 트레이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성현은 [[KIA 타이거즈]] 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을 챙겨서 MVP로 인터뷰까지 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서자마자 트레이드 사실을 통보받았다.
2011년 8월 6일 [[한화 이글스]] 전에 드디어 LG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였다. 한화 전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서 기대되는 대목이었지만 5⅓이닝 동안 4실점하면서 그날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김성현보다 [[박경수 (야구 선수)|박경수]], [[김태완 (1981년)|김태완]] [[키스톤 콤비]]의 생각은 수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실책을 줘도 할 말 없는 게 두 개나 있었지만 웬일인지 실책으로 기록이 안 되고 고스란히 그의 자책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스포츠동아]]에서 영구 제명된 김성현의 사진을 승부 조작과 전혀 관련이 없는 [[SK 와이번스]] 내야수 [[김성현 (1987년)|김성현]]의 사진으로 잘못 게재하는 바람에 비난을 받았다. 다만 지적을 받고 바로 진짜 김성현의 사진으로 교체한 걸 보면 편집 과정에서의 실수인 듯하다.<ref>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439632</ref>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4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와 [[미도리야 이즈쿠]]가 [[오버홀]]과 접촉한 사실을 듣고 낭패로 여긴다.
* 올마이트는 자신의 팬인 미도리야에게 이런 참혹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숨겼던 거고, 진실을 알게 된 미도리야는 아연해지고 마는데.
* 서둘로 시내로 복귀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 [[미도리야 이즈쿠]]와 합류한다. 밀리오는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며 사과하는데 나이트는 아이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보지 못한게" 문제였다며 자신의 실태였다고 말한다. 그가 적어도 모든걸 예지할 수 있는건 아닌가 보다. 어쨌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의심을 샀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속사포같이 설교하고 둘을 사무실로 돌려보내는 나이트아이. 버블걸만 데리고 다시금 첩보활동에 복귀한다. 쏟아지는 비와 함께 큰 응어리만 남기고 미도리야의 첫 인턴활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 [[미네타 미노루]]는 미도리야에게 인턴활동이 어땠냐고 물으며 야한 여성 히어로는 없었냐는 흑심 가득한 질문을 던진다. [[아시도 미나]]가 은근슬쩍 끼어든다. 바쿠고는 자기가 뒤떨어진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는걸 병적으로 기피한다. 반은 언제나처럼 부산스럽지만 미도리야는 붕 뜬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수업 중에도 초조함이 더해져 집중이 되지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연발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자와 쇼타]]에게 쓴소릴 듣기도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결심한 미도리야는 교무실로 찾아간다. [[올마이트]]를 찾아서. 하지만 그는 조깅을 나가서 자리에 없다. [[미드나잇]]이 알려주기론 가정방문을 마친 후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상당히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인데.
* 미도리야는 전부 알고 있었냐고 묻는다. 나이트가 아이가 원 포 올에 대해 아는 것, 밀리오가 사실은 후계자 후보였다는 것. 그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왜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궁금한 건 전부 거침없이 묻는다. 거기에 돌아오는 올마이트의 대답은 뜻밖에 차갑다.
>새로운 사실들 뿐이고
* 이 이상 감출 수는 없다, 올마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진상은 미도리야에게 정말로 알 필요가 없는 것이라 숨겼을 뿐이라며, 진실을 알고 후회해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미도리야는 모르는 채로 있는 것 보다 낫다며 대답을 요구한다.
우선 올마이트는 나이트아이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본래 올마이트는 사이트킥을 두지 않는 주의였다. 나이트아이는 광적인 올마이트의 팬이었고 그 열의에 꺾여서 그를 사이드킥으로 삼았다. 그렇게 지낸게 5년. 신체능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팀의 브레인으로서 귀중한 조력자였다. 여기까지는 미도리야도 아는 사실이다.
나이트아이는 올마이트를 돕기 위해 여기있는 거라 강변한다. 하지만 올마이트는 "나는 세상을 위해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받아치며 끝끝내 발걸음을 병실로 돌리지 않는다. 결국 나이트아이는 자신이 본 끔찍한 미래에 대해 털어놓고 만다.
이것이 나이트아이가 본 "예지"였다.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100% 실현되는 예지.
- 블랙 클로버/122화 . . . . 14회 일치
* [[알렉드라 산드라]]와 [[솔리드 실버]]는 패배에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에게 "엘리트는 막다른 길에 약하다"는 독설을 듣는다.
* [[노엘 실버]]는 솔리드를 격파한데다 아직도 여력을 남기고 있어 자신감이 충만, [[엔 링가드]]는 버섯이 해제되자 비실거리는 본래 성격으로 돌아온다.
* 잭스가 의욕을 보이는건 좋으나, 아스타는 그가 1회전 당시 스테이지 곳곳에 함정을 설치해놓은 걸 간파했다. 그는 사전에 답사해 함정을 설치했다 실토한다.
* 로얄나이트 선발시험 1회전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알렉드라 산드라]]와 [[솔리드 실버]]는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에게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솔리드 쪽은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 양쪽이 격파, 진행요원들에게 회수 돼 치료 받는 중이다. 여전히 노엘에게 질리가 없다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에 비하면 알렉드라는 몸쪽은 무사했지만 정신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는 고작 하층민에게 완패했다. 단지 정령 마법에 선택받은 운좋은 애송이. 그러나 그 운좋은 애송이가 정령 마법도 쓰지 않은 채 알렉드라의 최강마법을 가볍게 분쇄했고 [[윌리엄 벤전스]]의 꿈을 이뤄준다는 그의 바람까지 꼴사나운 것으로 전락시켰다. 패배한 그 자리에서 떠나지 조차 못하는 알렉드라.
한팀인 [[엔 링가드]]는 다른 팀보다도 한 발 늦게 축하를 건넸다. 그는 시합 전에 봤던 비실이로 돌아가 있었다. 말투 마저 어딘지 비굴해 보이는게 아예 인격 자체가 변한 느낌. 노엘이 그 점을 지적해도 적당히 어설프게 얼버무릴 정도로 소극적이 됐다.
*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양한 마법의 각축전을 보며 대만족했다. 더 만족스러운건 아직도 2회전이 남아있다는 것.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2회전 시작을 선언하려 했으나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실행요원들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시합 스테이지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중앙의 폐허 지역에서 융기가 시작되더니 어느새 상당한 높이의 언덕 지형이 새로 생겼다. 양팀 크리스탈의 위치는 평원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거리가 줄었고 전체적으로 스테이지가 좁아졌다. 이같은 변화는 다양한 지형에서 싸우는 편이 모든 역량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마법제의 방침 탓이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2회전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클로버 국왕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좀 더 짐을 즐겁게"해라는 기분 나쁜 말이나 궁시렁대고 있었다. 아스타는 스테이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지만 [[잭스 류그너]]가 작은 동요를 보이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다른 함정도 설치했었다는 것. 정확한 추론이었다. 잭스는 새삼 아스타가 "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며 성가셔했다. 하지만 여기서 숨기거나 얼버무리는 건 무리수. 그는 깔끔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전에 정보를 긁어모아서 이 장소를 찾아냈고 어제 미리 함정을 설치해놨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거기서 또다른 의문점을 찾아냈다. 로얄 나이츠 시합 장소는 극비 중의 극비. 어떻게 잭스가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추궁할 기회를 놓쳤다. 아스타가 "그건 반칙"이라며 반발했던 것이다. 잭스는 정보전도 실력의 일부라 우기며 비난을 일축했다. 애초에 그런게 안 된다는 룰이 있지도 않고 실제로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는 논리. 궤변이지만 아스타에게 반박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미모사는 순식간에 논파되고 분개하는 아스타가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미모사는 오빠를 지독하게 싫어하긴 했지만 실력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장 이 마법을 타개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잭스도 그건 마찬가지. 함정 마법은 스테이지가 바뀐 이후에도 유효했지만 그것 뿐이다. 여기서는 적이 함정을 밟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동료 둘이 발이 묶인 동안 아스타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냈다.
* 아스타가 반마법 모드를 풀었을 땐 대부분의 벚꽃 마법이 지워진 뒤였다. 그리고 잭스의 함정마법도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의 두꺼운 마스크로도 더이상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숨길 생각도 없어보였다.
- 송병구 . . . . 14회 일치
둘의 첫 만남은 2007년 5월 14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이지만, 실질적인 라이벌 관계는 두 번째로 만난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까지 동일한 종족 간의 결승은 왠만해선 흥행이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두 선수는 5경기까지 가는 모든 경기를 명승부로 만들며 우승자 [[김택용]]도, 준우승자 송병구도 박수를 받는다. 이후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이루면서 역대 [[스타크래프트]] 리그 판도에 전혀 없던 [[프로토스]]의 전성기를 만들고, [[김택용]]과 송병구의 '택뱅시대'를 만들게 된다.
[[MBC 게임]]의 프로그램인 [[유저의 취향]]에 2011년 8월부터 추석특집까지 출연하였다. MBC 게임의 중계진인 [[박상현 (1981년)|박상현]], [[유대현]]과 함께 진행을 맡았으며, 멋진 스타 실력과,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예능왕 송병구답다.' 라고 평가 받고 있다.
2012년 SK플래닛이 주최하는 프로리그에서 통합 26승 11패로 전체 다승 3위, 프로토스중 1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고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큰 기여를 해내며 여전히 정상급 선수라는걸 증명했다.
하지만 자유의 날개로 전환한 옥션 스타리그에서는 14연속 연속 진출 대기록 달성에 실패함으로써 그 기록을 이영호에게 넘겨줘야 했다.
송병구는 자유의 날개와 병행한 첫 프로리그에서는 좋은 출발을 보여줬지만 스타리그에서는 14연속 진출 대기록에 실패를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오래 끌고가지는 못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리그에서 13연패까지 하는 등 송병구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송병구는 2014 GSL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조 배치에는 이신형, 김준호, 주성욱 등 강력한 상대들이 다소 포진되어 있었으나, 김준호를 2:1로 제압한 뒤 승자전에 진출하였고, 승자전에서는 주성욱의 한 수위 실력에 2:0으로 패하여 최종전으로 떨어졌다. 최종전에서 이신형을 이기고 올라온 김준호와 다시 맞붙었으나, 아쉽게 2:1로 패배하여 GSL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맹활약을 보여준 송병구에게는 아직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2014년의 시작이었다.
송병구는 택뱅리쌍중 김택용선수에게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며 공식전에 15:7로 크게 앞서고 있으며 비공식전까지 포함해도 19:17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매번 결승 경기에 접전 끝에 패배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쪽은 김택용이었고 큰 경기에 약한 송병구는 우승 기부천사라는 다소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송병구 선수는 김택용 선수에게 공식전 기준으로 7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다. 김택용 선수의 은퇴로 이기록은 불변이다.
뛰어난 테란전 실력을 선보이는 송병구는 여러 테란 선수들에게 강세를 보이는데, 그중에는 한동욱이 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3:0으로 강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5:0으로 더 강세다. 한동욱이 은퇴하면서 이제 둘은 더이상 만날 일이 없다.
송병구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던 염보성은 2008년 9월 6일 신한은행 올스타전경기에서 마침내 자신의 천적 송병구를 물리치며 승리소감으로 "엄마 나 병구형 이겼어!" 라고 인터뷰하며 그동안의 한을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ref>실제 인터뷰에서 말한게아니라 채팅으로 말했다</ref> 그 경기는 송병구와의 천적관계를 조금은 극복하는 발판이 되면서 이후 계속된 대결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게 됐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공식전에서 14:6, 비공식전 포함 전적으로는 18:7로 여전히 송병구가 크게 이기고 있다. 현재 염보성은 은퇴를 했고 둘의 대결은 볼 수 없게 됐다.
송병구에게 강한 프로토스는 [[박세정]] 외에 진영화도 대표적이다. 진영화에게 상대전적에서 2:4로 밀려 있는데, 한때는 전패를 기록하다가 내리 2연승을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또 다시 프로리그에서 패하였다. 진영화가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 전적은 변함없게 되었다.
박수범에는 매우 강세이다. 상대전적 3:0 전승중. 박수범의 사실상 은퇴로 이 전적은 그대로 간다.
* [[2013년]] 제4회 인천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스타2 부문 국가대표 선발전 32강
*공룡토스 : e스포츠 주간 잡지인 esFORCE에 실린 공룡 분장에서 유래되었으며, 규모가 큰 송병구의 경기 스타일과도 조화를 이룬다. 공변뱅(공룡으로 변신한 뱅구)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해변김(해설로 변신한 [[김정민 (프로게이머)|김정민]]), 코변김(코치로 변신한 [[김현진]]) 등의 축약형 별명과 유사하다. 2008 시즌 중반부터 프로토스의 ‘육룡’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면서 더욱 굳어진 별명
- 은혼/654화 . . . . 14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영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 아네는 줄어든 동생의 두뇌를 탓하다가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살기를 느낀다. 위쪽. 아네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사다하루와 모네를 밀어냈다. 하늘로부터 장대비처럼 석장이 내린다. 모네와 사다하루는 무사했지만, 아네는 그렇지 못했다. 석장이 아네의 옆구리를 찢어놨다. 아네는 뒤늦게 실수를 깨닫는다. 용맥을 진정시키는데 정신이 팔려 진정한 적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츠로(은혼)|우츠로]]가 시생인 부대를 이끌고 자매를 처리하러 왔던 것이다. 건물 위로부터 시생인 부대가 쏟아지는 순간, 아네는 모네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뛰어"라고 소리쳤다.
* 자작 제독은 이제 함 내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확정했다. 이미 히노카쿠츠치의 에너지가 역류하면서 배를 파괴하고 있다. 배는 곧 컨트롤이 안 되는 거대한 에너지 덩이가 될 것이고, 인력에 이끌려 확실하게 지구에 때려박을 것이다. 그 충격의 여파는 지구는 커녕 은하가 무사할지 걱정해야 할 판. 그러므로 지금으로선 배의 외부에서 모선을 공격, 추락하기 전에 우주공간에서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선내의 인원을 대피시킬 시간적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전은하의 생명과 저울질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이 배를 외부에서 파괴하는게 가능한 병력을 가진 건 한 군데 뿐. 자작 제독은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접근한 하타황태자에게 전달했다.
* 모네는 아네를 스쿠터에 태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터미널에서 용이 튀어나온 뒤 시생인의 추적은 사라졌지만 상황은 좋아진게 없었다. 중상을 입은 아네는 그 시끄러운 입이 조용했다. 모네가 정신 차리라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시끄럽다"고 대꾸하는 정도였다. 아네는 괜찮다며 어서 터미널로 가길 원했지만 모네는 무리라고 대꾸했다. 이미 검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문이 파괴된 이상 그걸 멈출 수 있는건 자신들 뿐. 모네는 자기가 아네 몫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아네는 그것도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랬다간 모네는 그렇다쳐도 두 이누카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만다. 그게 문제였다. 이누카미는 영성을 띄면서 동시에 육체도 지닌다. 하지만 그 육체는 영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 대량의 검력을 써버린 지금의 이누카미들은 육체를 유지할 힘도 부족했고 그래서 몸이 작아진 것이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게 된다면, 몸이 작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는다. 코마코와 사다하루는 확실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다하루를 찾기 위해 뛰는 중이지만 막상 어딜 가서 찾을지 감은 못 잡고 있다. 다시 용맥이 폭주하는 기미를 보이자 가구라가 제일 먼저 사다하루 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직감하고 그게 사실이었다. 노부메는 용혈에 대해서 잡지식이 많아서인지 지진을 보고 곧 용혈을 컨트롤하는 문 그 자체가 붕괴할 지경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 직감대로 터미널은 붕괴하고 아르타나는 "용"이 되어 우주로 뿜어진다.
아네 모네 자매를 제거하기 위해 등장. 그런 것과 별개로 사명을 다하는 자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문이 붕괴하도록 한 것도 원래는 우츠로의 복안인 듯. 현장에서 조작하던 부하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의 붕괴와 함께 이들도 깨긋하게 사망. 우츠로는 우주를 향해 솟구치는 아르타나를 "용"이라 부르고, 실제로 우주의 자작 제독도 그 모습을 용에 비유했다.
가츠라, 다츠마, 신스케가 동시에 리타이어 하면서 제일 바쁜 사람. 우주의 전쟁은 끝났지만 해방군 모선은 여전히 폭주 중이며 제어도 불가능해서 지구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동생 하타 황태자에게 방아쇠를 맡기는 것. 어차피 함내에서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지구와 함께 죽는게 기정사실이라면, 그 전에 모선이라도 파괴해서 지구와 이 우주는 살려보자는 계산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병력은 현시점에선 하타황태자의 함대가 유일. 동생에게 가혹한 선택지를 주는게 거리껴졌는지 "강요는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영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태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태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그런데 해방군 모선이 지구로 향하는 걸 보고 돌입했던 일행이 전리품을 들고 튄다고 오해해서 접근했다고 우주의 운명을 건 선택지를 받고 만다. 그의 형인 자작 제독이 모선을 도저히 멈출 수 없고 차라리 자기들이 탄 채로 우주공간에서 날려버리는게 낫다고 판단, 그 날리는 역할을 하타황태자에게 맡긴 것이다. 하타 황태자는 "나더러 사람을 살리라는 거냐 죽이라는 거냐"고 반문했지만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힘든 선택이 눈 앞에 놓였다.
- 임대윤 . . . . 14회 일치
|경력 = [[민주당 (대한민국, 1991)|민주당]] 대구동구(갑)지구당 위원장<br/>[[민주당 (대한민국, 1991)|민주당]] 총재비서실 차장<br/>대구·경북지방자치연구소 이사<br/>제일리서치 이사장<br/>제22·23대 [[대구 동구청장|대구광역시 동구청장]]<br/>[[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 1비서관<br/>[[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당 위원장<br/>[[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1987.09 ~ 1990.01 박찬종의원 정책기획실 실장
* 1990.01 ~ 1990.03 [[민주당 (대한민국, 1990)|민주당]] 창당기획실 실장
* 1990.10 ~ 1992.03 [[민주당 (대한민국, 1990)|민주당]] 정책연구실 실장
* 1991 대구 경실련 집행위원
* 1992.06 ~ 1994.02 민주당 총재비서실 차장
* 1994 ~ 1995 경실련 대구지부 집행위원
*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1비서관
- 장세용 . . . . 14회 일치
'''보수의 중심에서 [[더불어민주당|푸른 깃발]]을 휘날리다[* 실제로 당시 [[북유게]]에선 [[베를린 전투]]의 깃발 꽂는 사진을 패러디하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드립을 쳤다(...)][* [[대경권]] 전체로 보면 [[수성구 갑]]에 민주당 깃발을 꽂은 [[김부겸]] 의원에 이어 두번째이다.].'''
상술하였듯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개]]가 보수 정당 후보로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실제로 [[김관용]], 전임 시장이었던 [[남유진]]이 모두 내리 3선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때 [[자유한국당]] 이양호 후보와 초접전 박빙 대결을 펼치며 "구미시장" 검색어가 [[네이버]], [[다음]] 두 곳에서 실시간 검색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고, 근접하긴 했으나 단 한 번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40.8%의 득표율로 38.7%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양호 후보를 끝내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실업자에게 기본소득 제공 추진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 조원진 . . . . 14회 일치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2016년]] 20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같은 당 소속인 신상진 의원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1년씩 나눠서 맡기로 했다. 그러나 조원진 의원이 중도에 탈당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9일]]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박사모]], [[영남]] 표심을 긁어모아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 했으나... 초유의 5자구도에서 유의미한 득표 실패'''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53080|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519|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남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온건친박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19대 대선 선거송으로 유명 동요인 [[곰 세마리]]를 각색하여 쓰고있다. 그 외에도 실제로 곰을 닮은 ~~닮긴 뭘 닮어...~~ 외모를 의식해서인지 19대 대선 후보중 유일하게 캐릭터를 내세우면서 홍보를 했다.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함께 [[박근혜]] 호위무사를 자처한 국회의원. 국민보다 박근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으로는 박근혜에게 인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친박이라는 것 외에 딱히 정치적 자산이 없고 본인에게 특출난 능력, 우러러 볼 업적도 없기 때문에 박근혜를 놓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조원진은 태극기 집회 연설이나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극단적인 언행을 전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현재 그가 박근혜 석방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뭔지 떠올려 보면 딱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달서 병 당협위원장직을 [[홍준표]]의 측근이자 비서실장이었던 [[강효상]]에게 헌납했기 때문에[* 홍준표는 북구 을 당협위원장이 되었다가 현재 사퇴하였다.] 다음 총선에서는 낙선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달서구]] 인구가 [[2014년]]부터 감소하는 바람에 [[달서구 병]] 지역구가 [[21대 총선]]에서는 없어질 수도 있다.~~선거구 조정으로 변수가 있지만~~ [[월배]] 등 신시가지는 인구가 소폭 늘고 있지만 그의 지역구는 [[달서구]] 동북쪽 지역으로 구 시가지가 대부분이다.
[[김진태(정치인)|김진태]]와 [[김태흠]]이 친박의 돌격대장이라면 조원진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사실 광신도인 척을 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는 국민들의 표를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해나가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른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81608|#]]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4월 30일 퇴진을 주장했고, 최순실 특검법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게다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넷 중 4위라는 처참한(...) 경선 결과로 인해 다음 지선에서 대구시장 공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신당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로 정당 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이 무소속 후보가 내야 하는 공탁금보다 적다.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조원진에게 전라도 출신[* 일베에서 전라도 출신은 거진 불가촉천민 수준으로 취급받으며, 극우세력에서는 전라도=민주당의 이미지가 강하다.]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일베 회원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2953099|#]] ~~극우끼리 팀킬~~
단식투쟁~~을 핑계로 다이어트~~ 중 이다. 2017년 10월 23일 단식 투쟁 11일만에 단식을 포기하고 휠체어에 앉아 실려나갔다.
새누리당 시절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6359|광주 망월동 묘지에 들러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이 [[https://youtu.be/uE7vfDI2jLU|있다.]] 다른 친박들은 잘 따라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재 모습을 보면 참 웃긴 부분이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14회 일치
* 마침내 밝혀지는 그리샤 예거의 진실.
* 어른이 된 그리샤에게 반체제 조직 "엘디아 복권파"가 접촉해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고 그를 동지로 영입한다.
* 그리샤는 진실을 이야기 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언급해야 했다고 쓰고 있는데, 그의 어린시절은 평범해 보이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 아버지가 들려주는 "엘디아인의 진실"은 그들의 선조 "유미르 프리츠" 시대까지 올라간다.
* 올빼미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무기나 자금을 융통해주고 엘디아인이 모르는 역사서나 경전 따위를 제공해서 사실상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 마레가 일으킨 내전 자체가 사실이 아니며, 원래 여덟 거인의 힘을 가진 가문들은 대립하고 자주 전쟁을 하던 사이라고 한다.
* 결국 왕이 백성을 버린 결과라는 것으로, 엘디아 제국이야 말로 이상향이었던 이들에겐 암담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 마레 측은 파라디섬에서 선전포고가 있었다고 했지만 거짓. 실제론 "자원쟁탈"을 위한 선제조치였다.
* 이것을 두려워한 마레 당국은 정면에서 전쟁을 하기 보단 엘디아인을 벽 안에 침투시켜 시조 거인의 힘을 빼앗는 작전을 실행하려는 것이다.
* 유일한 희망이자 확실한 승리의 카드였던 시조 거인을 마레에 빼앗기게 된 상황.
=== 엘디아 복권파의 역사는 진실인가? ===
엄밀히 말하면 그리샤 예거가 멋대로 추정한 역사. 올빼미라는 정부 측 인물이 빼돌린 자료를 기반으로 구성한 것인데, 정작 그리샤 본인도 고대어는 전혀 할 줄 몰랐고 몇 가지 삽화와 자신들의 망상을 기반으로 꾸며낸 것이다. 일단 다이나 프리츠가 가져온 자료와 대조해 볼대 대체로 맞았던 걸로 보이는데, 사실 다이나 프리츠의 정체에 대해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며 자료와 다이나 모두 올빼미가 보냈다는 점에서 사전에 조작된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그는 엘디아인에게 금지된 고대의 역사서 따위를 제공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 스스로 번역한 자료를 보내지 않는 것일까? 혹은 그 자신 조차 읽을 수 없는 자료라면 어째서 그런 불확실한 자료를 골라서 보내는 것일까?
올빼미가 제공한 정보 상에선 벽 안의 거인들이 대략 천만 정도나 있고, 프리츠 왕가는 마레가 그들을 건드리면 이 거인들을 깨워 반격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벽의 규모를 생각하면 과연 천만이나 되는 거인이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14회 일치
* [[엘런 크루거]]는 그리샤가 시조의 거인을 탈환하는거 말고 방법은 없다며 그렇지 않으면 "같은 역사, 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라고 말한다.
* 아버지 [[그리샤 예거]]의 기억을 되읊던 [[엘런 예거]]는 갑자기 방문한 [[리바이 아커만]]과 [[한지 조에]]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만다. 한지는 그가 "진격의 거인"이라 한 것을 듣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캐묻는다. 엘런은 본능적으로 별거 아니라며 얼버무리려 들지만 한지는 집요하다. 한지는 리바이나 [[아르민 알레르토]]에게도 같이 듣지 않았냐며 추궁하는데 리바이는 못 들은 척하고 아르민은 엘런을 따라 얼버무리려 든다. 한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격의 거인"이 무엇이고 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지 묻는데 리바이가 그만두라며 15살이 돼서 "그런 시기"가 온거라고 일축해 버린다. 갑자기 중2병으로 몰렸지만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엘런은 괴로워 할 뿐 항변할 수도 없다.
* 아무튼 억울해진 엘런이 대체 뭐하러 왔냐고 소리치자 리바이는 감옥 문을 열어준다. 사실 그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리바이와 한지가 [[다리스 작클레]]와 협상해서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을 쓰러뜨린 영웅들을 처벌하는건 말도 안 된다"는 명분으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거역한 지휘관은 결과적으론 갑옷과 짐승거인을 놓친 실책을 범한 점도 고려되었다.
* 리바이가 엘런 일행을 데려온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절을 지켜서 고개를 숙이지만 크리스타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의전은 필요없다며 평소처럼 대한다. 크리스타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며, 그저 자신을 편히 앉아 남쪽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엘런 일행은 그녀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타는 생각한 것보다 이들이 그모습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엘런 일행은 말하지 못한다.
* 당사자가 전부 모이자 한지는 이들을 데리고 수뇌부의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는 그리샤의 지하실에서 얻은 모든 정보에 대한 보고였다. 작클레는 회의를 주제하며 생존자 9명과 전사자 199명을 추모한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면서 한지에게 할 말은 없냐고 의견을 묻는다.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백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상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순히 살육을 반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상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 한지는 그리샤가 사명을 완수했으며 지금은 시조의 거인이 엘런에게 계승되었다고 말한다. 한지가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엘런은 아버지의 기억이 정돈되면서 무서운 사실을 깨닫는다.
엘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회의장의 모든 이목이 그에게 쏠린다. 하지만 엘런은 방금 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 그 무서운 사실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자리에 앉는다. 한지는 그의 태도를 의심스럽게 생각하지만 엘런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그런가"라며 의미심장하게 화제를 전환한다.
엘런은 만약 이 사실을 병단이 알게 되면, 과연 그들이 히스토리아를 "어떻게 취급할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은 기억이 어긋나거나 불분명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엘런은 일단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는 함구할 것을 다짐한다.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루프설이 강력하게 재등장. 엘런 크루거가 미사카나 아르민을 언급함하면서 사실상 확정됐다.
미카사는 엘런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혹은 다른 점 때문인지 갑자기 수척해졌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14회 일치
* 전쟁은 끝났지만 마레의 군사적 우위는 끝났고 [[지크 예거]]는 지금에야 말로 시조 거인 탈환을 실현시킬 때라고 강변, 승인을 받아낸다.
* 4년을 허비한 전쟁은 끝났지만 승전국 마레의 사정은 좋지 않다. [[지크 예거]]가 적의 마지막 함대를 섬멸한 건 좋았으나 그 대가로 갑옷 거인 [[라이너 브라운]]을 희생시켰다. 비록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지만 "마레의 갑옷"이라 일커러지는 그가 빈사에 처했다는 사실,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어찌보면 마레의 승리가 초라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승리"를 대서특필, 소식을 접한 나라들은 패전국인 중동연합을 칭송하는 기현상이 일고 있다.
승전 이후의 회의라기엔 너무나 삭막한 분위기. 원수는 최후의 작전이나 실태가 드러난 스라가 요새 공략 전의 책임자 "마가트"에게 직접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해명을 요구한다. 호명된 마가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무겁고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다.
예를 들어 이 회의실, 폭격에 맞아 천정이 뻥 뚫려 버린 이 장소야 말로 좋은 본보기다. 일동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푸르게 드러난 하늘로 향한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모두 하늘을 보고 있다. 원수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다시 시선은 그에게. 마가트는 자신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가 싶어 좀 더 직설적인 말을 하려 하지만 원수는 넋두리를 했을 뿐이다. 사실 그는 마가트보다 더 뼈져리게 현실을 직시했다. 마레는 전쟁의 주도권을 잃었다. 아예 뒤쳐져 버렸다. 원수는 한때 악마 엘디아인을 쳐부순 "영웅의 나라" 마레가 지금 이 꼴이 된 것을 씁쓸하게 여긴다.
지크는 대답없이 연기만 내뿜는다. 그러다 거인학회 놈들도 모르고 자신도 죽을 때까지 모를 거라며 화제를 회피한다. 그런데 지크는 잊고 있던게 떠올랐다. 콜트는 자신의 다음 계승자라는 사실. 기억을 계승할 그는 결국 지크의 비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안도가 된 것인지 지크는 그냥 자신의 비밀을 말해 버리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겐 절대 말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서.
마가트가 이번엔 지난 3년 동안의 일을 거론한다. 마레는 4년 전의 실패 이후 팔라디섬을 방치해놓은게 아니었다. 전쟁 중 3년 가량은 구축함을 포함한 32척의 조사선을 보냈지만 단 한 척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지크에게 이걸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 지크도 이 질문 만큼은 농담으로 피할 수 없었다.
콜트가 끼어들어서 "라이너의 보고에 따르면 적들은 그럴 만한 기술이 없다"고 지적한다. 지크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 보고의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다. 라이너가 섬의 모든 비밀을 파악한 것은 아니며 단지 가능성이라고 상정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가정이 가능해진다. 이 일은 22년 전 "올빼미"라 불리는 혁명군 잔당이 그리샤를 섬에 보내면서 시작됐다. 프리츠 왕가는 레이스 왕가로 이름을 바꾸고 무저항 원칙을 천명했으나 그리샤에게 시조의 거인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겼다. 분명 현재의 적들은 보다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는 조사선의 행방. 32척의 배가 도망 치지도 못하고 전멸 당했다면 거인 하나의 힘이 아니다. 분명 적은 진격의 거인을 포함, 두 마리 이상의 거인을 보유했다.
간식을 다 먹은 갤리어드는 라이너의 감사를 거절한다. 그가 구한건 라이너가 아닌, "네가 갑옷을 잃어 버리는 실수에서 조국 마레를 구한 것"이라면서. 라이너가 아무 대답도 없자 갤리어드는 조금 더 전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9년 전, 팔라디섬 작전에서 자신이 갑옷 거인을 계승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술주정이나 다름없는 연설이었지만 청중의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이미 한 전씩들 꺾은 듯하고, 어린 동포가 헌신한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감동적이었다. 엘디아인 전사대는 모두 흥분해서 함성을 내지르고 가비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런 소란은 마가트 대장과 마레 장교들이 있는 일반객실에도 들렸다. 지크와 피크, 갤리어드도 여기에 있다. 부관은 소리를 듣고 그만두게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마가트는 "오늘밤만 눈감아 주자"고 넘어간다. 이 조치는 마레의 전사들에게도 만족스러운 것 같다.
* 엘디아인의 객실은 흥분의 도가니. 모두가 가비의 이름을 연호하며 고맙다고 외친다. 가비는 크게 감동하는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이제는 분위기에 취해서 술에 취한 녀석들과 아무 차이도 없다.
- 최남선 . . . . 14회 일치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반복하다가 1907년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귀국했다. 1907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당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아이들 보이》,《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 (잡지)|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02년 경성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904년 10월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국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갈 때 국비 유학생 중 중학생반의 소년반장(少年班長)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 해 11월 [[도쿄]] 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못가 12월에 중퇴하고 배편으로 귀국했다.
1907년 5월, 귀국한 뒤 한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7년 11월 [[이광수]] 등과 함께 잡지 [[소년]]지를 창간한다. 소년지에서 그는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고, 이광수는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발행한 잡지 《소년》지는 근대적 종합잡지의 대표적인 잡지이며 어린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중 초기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소년 잡지를 창간한 11월 1일이 잡지의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최남선은 인쇄시설을 추가로 구비하여 1908년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였다. 처음 건물과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자택에 [[신문관]]을 설립하고 인쇄와 출판을 겸하였으며 후일 사세를 확장하여 [[경성]]시내로 사무실을 옮겼다. 여기서 그는 《대한역사》, 《대한지지》 《외국지지》 등 중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새 시대의 주인공을 위하여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 (잡지)|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1909년에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결성하였다. 1910년 3월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내면서 청년학우회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잡지 창간을 계속해왔지만, 1911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년》이 폐간되었다. 이듬해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이》, 《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폐간되었다.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 제18호에 [[일연]]의 《[[삼국유사]]》 전체를 게재하게 하였다.<ref>《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스토리텔링 삼국유사 1) (현암사, 2009) 24~25쪽. {{ISBN|978-89-323-1536-2}}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에다 일연(一然)의『삼국유사(三國遺事)』 를 실은 것이었다.” </ref> 같은 해 총독부가 집과 연구 비용을 지원한다고 회유하자 그해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거쳐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다.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총독부의 조선사 편수회에 가담한 일로 [[이광수]]와 절교하고, [[한용운]]과 [[홍명희]] 등도 연이어 그와 결별 선언을 했다. [[한용운]]은 그의 나무 위패를 새기고 장례식을 거행하여 그를 조롱하려고 시도했다.
[[장준하]]는 [[사상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에서 그의 친일 협력이 본심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한때 선생의 지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요, 항간에 떠도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과는 전면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는 것이다. 그의 협력은 어쩔수 없는 것으로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ref name="changs"/>'라는 것이며, 그가 악의를 품고 친일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장준하]]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이라며 일축하였다.
이어 [[장준하]]는 '사람을 사赦하는 법이 없고 인재를 자기 눈동자와 같이 아낄 줄 모르고 사물을 널리 생각하지 못하는 옳지 못한 풍조 때문에 우리는 해방된 후에도 선생에게 영광을 돌린 일이 없고 그 노고를 치하한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욕된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실로 온 민족의 이름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를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것을 비난 하였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곧 바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투옥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5월에 공판을 받았다. 수감 중에 그는 자신은 민족을 위해서, 나의 연구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협력하였다고 항변하였으며, 특별재판부에 참회의 뜻을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를 기소한 [[반민특위]]는 [[친일파]] 출신 정치인들이 친일 인사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감싸면서 탄압받았고 1949년 2월 병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석방, 그의 친일행각은 사실상 처벌되지 않았다.
*사후 [[장준하]] 등은 추도사를 통해 그가 자의에 의해 친일하지 않았다며 그를 '우리의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라며 그의 업적을 치하하였다. [[장준하]]는 그가 죽자 장례식과 빈소를 방문하였고, [[사상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이라는 추도사를 실어 그의 업적과 공적을 추모하였다.
[[장준하]]는 '그를 경애하는 스승이며 민족 사상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였다.<ref name="changs"/> 장준하는 '선생은 약관 18세에 이미 궤란을 기도에서 구하려는 큰 뜻을 품고 우선 민족의 명영을 영원히 부지하려는 원대한 의도 밑에 문화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이래 종시일관하여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민족의 재흥을 위하여 발분망식하였다. 선생이 우리 역사학에 전심하여 마침내 사학의 태두로 일세의 숭앙을 받기까지에 이른 근본 연유도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가 한국 역사학 연구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장준하]]는 이어 '그뿐 아니라 선생은 상아탑의 일개 학구로 그치지 않고 실實에 즉하고 의義에 나아가 항상 민족사상의 고취에 힘썼고 3.1혁명에 가담하여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이어서 장시일의 옥고를 치른 후에도 한 길을 더듬어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육당 선생은 이 민족이 가장 암담한 절망의 골짜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항상 우리와 더불어 있었고 우리의 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었다. 그러 하여 민족의 생명은 싹을 부지하고 겨레는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갖추어 광복에 이른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ref name="changs"/>'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 흥친왕 . . . . 14회 일치
[[1874년]] [[11월]] 이후 [[흥선대원군]]은 그의 아들 [[이준용 (1870년)|이준용]]을 [[조선 고종|고종]]과 [[민비]]를 몰아내고 추대하려 했고, 4회의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그는 고종의 냉대를 받았고 [[1899년]](광무 2) [[조선 장조|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된 뒤에도, 당시 황제의 친형이었음에도 4대 승습에 따른 작위를 받지 못했다. [[1907년]](융희 1) 완흥군에 책봉되었고, [[1910년]](융희 4) [[8월]] 흥친왕으로 진봉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공작]]으로 강등되어 이희 공이 되었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고,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이고 나중에 개명하여 이희(李熹)로도 알려져 있다. 첫 작위가 완흥군이었으므로 '''완흥군 이재면'''으로도 부른다.
흥친왕 이재면은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한성부]] 사동(寺洞) 사저에서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이었다가 뒤에 재면으로 고쳤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이희공실록]]에 의하면 그가 태어나자마자 지어진 이름은 재록이었다 한다. [[조선]] [[조선 헌종|헌종]]과 [[조선 철종|철종]]이 연이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이재면 역시 유력 왕위계승권자로 지목되었으나, [[조선 철종|철종]]이 사망할 무렵 그는 성인이었기에 왕위계승권 서열에서 밀리게 되었다.
철종 치세기간 중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아들 이재면의 관직을 청탁하기도 했다. [[윤효정]]은 [[흥선군]]이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그의 과거 합격 청탁을 했다 한다. [[흥선군]]은 일부러 김병기를 찾아가 아들 [[이재면]]의 [[문과]] 합격을 청탁했는데, [[김병기 (1818년)|김병기]]는 마음 속으로는 몰지각함과 비열함을 비웃으며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다.<ref name="riss167">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167페이지</ref> 흥선군은 똑같이 김병기의 외조카 남병철에게도 똑같이 아들의 등과 합격을 청탁하니, 남병철은 몹시 분개했다. 왕실의 금지옥엽인데, 이렇게 초라해진 형편으로 아들의 등과를 청탁하니 이렇게 어리석을 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었다.<ref name="riss167"/> 그런데 [[박제형]]의 [[근세조선정감]]에는 흥선군을 대놓고 멸시하던 인물의 한 사람으로 남병철을 지목했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인과 문인들의 굴욕과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비밀리에 국내에 편지 서신을 보내 자신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는 [[1973년]] [[10월 4일]] [[대한민국]] 월간 문학사상 자료 조사연구실에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ref name="문사1">경향신문 1973년 10월 4일자 기사 7면</ref>
[[1885년]] 민씨 정권이 친러, 친일 등의 성향을 보이며 [[청나라]]를 견제하려 하자,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청나라 정부와 [[위안스카이]] 등의 정치적 계산으로 4년여 만에 귀국하게 되었다.<ref name="daum1">[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25h3642b daum 사전]</ref> 대원군은 [[1887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와 결탁하여 [[조선 고종|고종]]을 폐위시키고 큰 아들 이재면을 옹립하여 재집권하려다가 실패하였다.<ref name="daum1"/>
[[이재선]]과 이재면을 옹립하려던 추대기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흥선대원군]]은 장손인 [[이준용]]을 추대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준용]] 추대 시도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이러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진 이후 흥친왕과 고종간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 갑신정변의 실패와 은거 ====
[[1893년]] 그는 동학 농민군이 상경하여 [[경복궁]] 앞에서 복합상소운동을 벌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정교]]는 1893년 [[2월 11일]]부터 [[2월 13일]]까지 3일간 박광호를 소두로 하는 약 50명의 동학교도들이 상경하여 궁궐 앞에서 교조 신원을 탄원하며 연좌시위를 벌인 사건을 대원군이 시킨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때 [[정교]]는 대원군이 은밀히 동학당 수만 명을 서울로 불러 모임을 갖고 장차 불궤를 도모하여 그의 손자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하였다.<ref name="p316">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2007.4, 경인문화사) 315~316쪽.</ref>
이재면의 거처는 운현궁의 영로당이었다. 그가 거처하던 [[운현궁]]의 영로당은 [[1917년]] 그의 아들 [[영선군]] [[이준용]]이 오랜 병치레 끝에 사망하자, 이준용의 계실 광산 김씨가 그의 주치의에게 사례로 주었다 한다. 이 주치의는 김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김영무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아버지이다. 두 번째 부인 여주이씨는 29세에 남편을 잃고 종친회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가다 [[1978년]] [[1월 8일]]에 운현궁에서 사망했다.
한편 그의 아들 [[이준용 (1870년)|영선군 이준용]]은 아버지 흥친왕 이재면이 사망한 뒤에도 그는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저씨뻘 되는 [[이재완]] 등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국왕]]의 친형인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신원을 요청하지 못하고 자객들의 [[일본]]행도 막지 못한 점, [[일본]] 망명 중에 아버지이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못했고 집안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ref name="p342">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42쪽.</ref>
* 둘째 부인(계실) : 흥친왕비 여주 이씨(驪州 李氏, [[1883년]] [[6월 7일]] ~ [[1978년]] [[1월 8일]]), 참봉(參奉) 여주인(驪州人) [[이인구]](李麟九)의 딸.
* 첩실 : [[채시라|중대부인]]
* 고종실록
* 순종실록
- 김대환 (법조인) . . . . 13회 일치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성폭행한 남자를 보복 상해한 피고인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면서 집행유예와 치료감호를 선고한 원심대로 선고하자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남여성회 등이 재판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재판장실을 점거 농성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경찰에 강제연행됐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100209215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12-2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85&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91년 12월 21일</ref>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10월 2일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살포하다 1심에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를 선고받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소속 한기용(37세) 사무관과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재규(29세) 김일환(32세) 전우경(27세) 등 4명에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대공 수사관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성실히 일해온 모범 공무원인데다 유죄판결로 공무원 자격 박탈되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원심대로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2년 10월 2일자</ref> 1993년 2월 26일 [[5공화국]] 비리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은 전 치안본부 정보1과 분실장 서정희(48세 당시 청와대 정부수석 비서관실 파견)에 대해 혐의사실 중에 일부만 유죄를 인정하여 선고유예 판결했으며<ref>동아일보 1993년 2월 26일자</ref>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은폐, 조작하여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65세)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1심대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일자</ref> 12월 1일에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열어서 1심에서 징역2년이 선고된 윤홍준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하면서 같은 혐의를 받은 전 안기부 해외조사실장 이대성도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8년
뇌물을 받아 1심에서 징역2년6월이 선고된 이강우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공직생활 중에 성실히 근무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실형은 과중하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12월 9일자</ref> 12월 24일에 대학원 연구과정을 수료한 뒤 선거 인쇄물에 대학원 총동문회 이사라고 기재하여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벌금80만원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8년 12월 25일자</ref> 1999년 1월 22일에 윤홍준 기자회견, 오익제 편지사건 등 [[안기부]] 북풍공작을 주도한 [[권영해]]에 대해 원심대로 징역5년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영식]]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남시 지하상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남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3회 일치
|| [[암살교실/180화]]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암살교실]] 번외편 1화. '''자택의 시간'''
지난 겨울 방학 중의 에피소드. 실패했던 프로 암살자들이 살생님의 거처를 찾아나선다.
* 살생님 암살에 실패한 시카가 살생님의 아지트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 가끔 별실로 들어가는데, 이 별실은 살생님에겐 가장 중요한 방이며 전세계에서 모은 "무언가"가 있다.
attachment:별실.png
* 듣고 있던 여주인 아즈사씨는 "그 주인공인 문어씨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사실 암살자들은 모두 아즈사를 노리고 있다.
* 그런데 사실 문제의 "문어씨"도 이 식당 단골. 마침 방문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분류:암살교실]], [[분류:암살교실/에피소드]]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13회 일치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노루 가죽+재봉실. 총알 소지량이 8 늘어난다.
엘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여우 가죽+재봉실. 총알 소지량이 16 늘어난다.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비버 가죽+산토끼 가죽+재봉실. 독다트 소지량이 2 늘어난다.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산토끼 가죽+재봉실. 올가미 소지량이 10 늘어난다. (?)
UPlay에서 MP로 패키지를 구매해야 사용 가능.빅 데이브 레벨4, 엘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재봉실+구리 광석. 말에게서 총알 같은걸 보급할 수 있게 된다.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늑대 가죽+재봉실. 올가미 소지량이 5 늘어난다.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소 가죽+재봉실. 연막탄 소지량이 2 늘어난다.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소 가죽+여우 가죽+재봉실. 트립마인 소지량이 2 늘어난다.
* 재봉실(Sewing Threads)
존스타운 마을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라쿤 가죽+재봉실.
존스타운 마을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여우 꼬리+재봉실.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면모교직물+재봉실+염료.
보스턴 중부 상자-경비견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엘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양모+염료+재봉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13회 일치
4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종현과 함께 트윈타워를 형성하며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고려대의 2013년 농구대잔치, MBC배, 프로-아마 최강전, [[한국대학농구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2014년 MBC배,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 전승 및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활약으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 예비 엔트리에도 진입하였으며 [[유재학]] 감독이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볼 때 발탁 가능성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 진입에는 실패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진수, 장재석과 함께 동부 공격의 중심인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의 멘탈을 뒤흔드는 압박을 선보였고, 시즌 중 매우 떨어졌던 외곽 성공률 때문에 수비를 등한시했던 동부 수비수들에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1,2차전 합계 5개나 성공시키면서 홈 2연승의 주축으로 평가받았다. 3차전에서는 2쿼터 중반 무릎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서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승부에 쐐기를 박는 4쿼터 3점슛 2방으로 동부를 스윕하고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3차전 기록은 3점슛 4개 포함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인 20점을 득점하였다. ~~이승현 3점 갯수의 절반밖에 못 넣은 동부 선수들은 반성해야된다. 25개 던져서 2개가 뭐냐?~~
'''매년마다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이지만 [[오세근|외적 요소들]] 때문에 기묘한 저평가를 받는 시즌'''
한편 올해 신인들인 최준용, 강상재와 함께 기존에 대결구도를 형성했던 김종규, 김준일 등 젊은 선수들에게서 항상 두목을 넘어보겠다고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럴때마다 왜 본인이 KBL의 두목인지를 증명하면서 매번 참교육을 시전해주고 있다.(김종규는 부상여파로 컨디션 기복이 심해 논외) ~~어째 신인 선수들의 실력 판독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원표|YOU ARE BIG 3]]~~
헌데 오세근이 11-12시즌에 가장 근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5-16시즌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과도한 언플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안티팬들이 대거 양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암투병 소식을 접한 이후 오리온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매번 아버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영 좋지는 못하다. 이런 와중에 동료 포워드들의 활약으로 이승현이 없이도 승수를 착실하게 쌓는 장면이 연출되자 안티팬들은 '''스탯도 오세근보다 낮으면서 고평가를 하는데 [[종범(인터넷 속어)|이승현한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도 있냐?]]''' 라면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5라운드부터는 헤인즈의 컨디션이 예전같지 않자 공격옵션 확장을 위해 본인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검증된 수비실력이야 말할것도 없고, 공격력까지 좋아지면서 본인이 왜 대학 최고의 빅맨으로 불렸는지를 클라스를 입증하고 있다. 부상 이후 외곽슛이 더 정교해졌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레바논에서도 열린 2017 FIBA 아시아컵에서도 대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오세근과 함께 내외곽을 넘나드는 스트레치 포워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이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용병 수비가 가능하다는 점. 용병을 상대로 압도하진 못하더라도 버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팀의 수비옵션이 더 늘어난다. 더불어 수비의 마무리라는 리바운드도 2년차때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또한 상당히 성실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이드에서 자리를 잡다가도 상대 앞선에 가드가 막히는 것 같으면 하이로 와서 스크린을 서주는 등 높은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상당히 좋은 편. 2m가 안되는 신장에 비교적 평범한 윙스팬, 낮은 점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리바운드를 비롯한 볼 경합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낙구지점 파악 능력이 굉장히 좋으며, 볼 없는 움직임도 우수하며 BQ까지 높기 때문에 탭아웃이나 박스아웃에 의한 타 선수들의 리바운드 가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안티들은 빅맨인데 리바 스탯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면서 깐다~~
* 이승현에 이어 2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한 [[김준일]]과는 선의의 라이벌 관계이자 오랜 친구사이이다. 1년차때는 실제 신인왕 경쟁을 치열하게 다퉜는데 마지막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이승현이 신인왕을 차지했다. 팀 성적 역시 이승현이 더 좋은것도 컸다. 다만 김준일이 끝까지 경쟁력이 있었던건 용병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공격해 득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신인왕 평가 기준이 전에 비해 팀 성적을 덜 보는 풍토가 시작된 점도 컸다. 둘 다 상당히 힘이 좋은 선수들인데 이승현의 말로는 순수 힘에서는 [[김준일]]이 본인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2년차 이후 완전히 변하게 되었는데, 1년차에는 비교적 비교가 가능했다면 2년차에는 김준일이 PO에서 보여준 삽질과 비교되어 이승현에게 미안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2010년대 초반 고려대학교 왕조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가 누구였냐는 문제로 농갤이 시끌벅적해지는 때가 많다. 2013~17년 드래프트까지 [[박재현|지명된]] [[김지후(농구선수)|가드]] [[이동엽|선수들이]] [[믿고 거르는 고대가드|프로에서 제 기량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종현마저도 대학교에서 4년간 뭘 배웠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함께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사실 고대왕조의 핵심은 이승현이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79&aid=0002923366|평소 스파링 상대를 해왔던 김준일의 증언]]~~
- 정난정 . . . . 13회 일치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태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다. 훗날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위하려 한 음모가 발각되자 김안로가 사사되고 김안로의 질녀였던 윤원형의 부인 김씨를 윤원형과 문정왕후의 묵인하에 몰아내고 실질적인 안방 주인이 되었다. 그 후 명종8년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적처로 올리라는 전교를 내려, 정난정은 윤원형의 정실이 되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의 슬하에 4남 2녀를 남겼는데, 정난정이 정실부인이 됨에 따라 그 자녀들도 적자가 되었다. 양반가에서는 그녀의 권세에 힘입으려고 사돈이 되자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많은 재산을 모으며 부귀를 누렸고 문정왕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적극 추천하여 그를 총애받게 한다. 정난정은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병조판서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ref name="park207">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207페이지</ref>
* 《[[여인천하 (드라마)|여인천하]]》 ([[SBS]], [[2001년]]~[[2002년]], 배우: [[수혜 (배우)|장수혜]], [[강수연]])<ref>해당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단, 해당 드라마에서는 정난정을 왕실의 인물인 파릉군의 서녀로 나타내고 있으나 파릉군이라는 인물은 해당 드라마만의 가공의 인물로, 실제와는 다르게 그려졌다. 그 외에도 사실과 다른 여러 가지 내용이 등장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065244 인기 상승 <여인천하> 어디까지 사실인가?] 《동아일보》, 2001년 5월 21일 작성, 2012년 10월 31일 읽음</ref>
* 뒤에 나타난 전설에는 그와 정난정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정난정이 체포되어 노비가 된 뒤에 죽었다는 전설이 나타났다. 이는 사실은 아니나 정난정 및 윤원형에 대한 사림의 원한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 선조시대에 판중추부사로 지냈던 [[정종영]]은 정윤겸의 손자이자 정난정에게는 서조카였다. 원형이 상변(上變)하여 옥사를 일으킬 적에 논의에 참여하도록 넌지시 일깨워주었으나 종영은 거짓 모르는 체하고 응하지 않았다. 난정이 참람하게 정실(正室)이 되어 부인(夫人)에 봉해져서 외명부(外命婦)의 우두머리에 있게 되자 사람들이 감히 항변하지 못하였으나 종영은 오히려 얼척(孼戚)으로 대우하였다. 이 때문에 원형이 크게 유감을 품어 매양 죄를 얽어 해치려 하였다. 난정의 어머니가 난정을 경계하기를 "너는 종손을 해치지 말라. 내가 맹세코 죽음으로써 당하겠다”하였으므로 화를 면하게 되고 예전처럼 현달(顯達)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 정난정의 4촌인 [[정준]]이 명종7년 6월 18일 사헌주 집의에 임명되었다. 실록에 의하면 정준은 음험하고 경박한 성품으로 윤원형의 위엄을 빌어 대관이 되어 마음내키는 대로 인물들을 공격하였고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욕을 당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정종원 . . . . 13회 일치
1918년 일본 니혼대학 법학과 전문부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식민지 시절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에 잠시 몸담았다. 당시 그는 가업인 은행업을 염두에 두고 성실히 근무했다. 후일 조흥은행 임원을 거쳐 행장에 오르게 된다.
행장 퇴임 직후 6개월 동안 록펠러재단의 초대를 받아 미국 유럽 시찰에 나섰다.<ref><<법시 제1호>>,(사단법인 법시사,1967) p.3</ref> 귀국 후 사단법인 [[법시사]] 운영에 최선을 다했다. 1977년 3월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4</ref>
정종원은 구한말 경기여고와 서울 사범대 출신의 교사였던 부인 신양정(신양숙)과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두 사람 다 재혼이고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 신양정은 정종원 사후 [[법시사]] 이사장과 법시 발행인을 역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3</ref> 장남 [[정운철]]은 하와이 최연소 부영사와 일본 고베 총영사를 역임했다. 정운철은 두산그룹 [[박용성]]과 동서 지간이다. 정운철과 박용성의 장인은 삼성물산 대표를 역임한 [[김선필]]이다.
정종원은 1914~1918년 일본 유학 시절 [[송진우 (정치인)|송진우]]([[동아일보]] 3대 사장), [[최두선]] (8대 국무총리), [[장덕수]] ( 보성전문 교수, 동아일보 이사), [[신익희]](독립운동가), [[김연수 (1896년)|김연수]](경성방직 삼양사 사장), [[이광수]] (소설가) 등과 교류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5</ref> 이 같은 인맥을 바탕으로 정종원은 동아일보 경상북도 지역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당시 그는 정충원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창간특집기사 '동아일보 발기인 명단'에 대구지역 발기인 정충원으로 기록됐다.<ref>동아일보 1920년 4월1일 2면 하단 발기인 명부</ref><ref>동아일보 1977년 3월 14일 "본보 창간발기인 정종원 씨 별세 "</ref>
대구로 내려온 그에게 [[조병옥]] 경무부장이 경북경찰국장 자리를 권유했으나 부인의 완강한 반대로 공무원 복직을 단념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6</ref>
1949년 상무 승진 후 1950년에는 전무 자리에 올랐다. 1956년 10월 23일 드디어 조흥은행 5대 행장에 선임됐다. 그가 선임된 해인 1956년 3월3일 개장된 증권거래소에서 [[조흥은행]]은 종목번호 '00001'을 부여받으며 대한민국 최고령 기업이자 최초의 상장사가 됐다. 명실 공히 당시 국가를 대표하는 초우량기업이었다.<ref>경향신문 1996년 11월 5일 9면 "상장사 평균 30세 조흥은행 최고령-증권거래소 분석 "</ref>
[[조흥은행]]은 [[동일은행]] [[한성은행]]의 통합으로 1943년 출범했고 앞서 1941년 [[경상합동은행]]은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바 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6</ref><ref>국가문화유산 포털 조흥은행 역대은행장 사진첩 제1권</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창조사,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대구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남)과 [[정운용]](맏손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 씨 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상합동은행]](전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 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봉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 씨 가문은 [[민덕기]](조선맥주)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 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 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 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됐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 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한 바 있다.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
이병철은 정재학의 3남이자 조흥은행장인 정종원과 다각도로 교류하고 있었고 언론을 통해 정씨 가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ref>동아일보 1957년 6월20일 1면 이병철씨 조은주 양도 거부</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21일 3면 은행주 불하 경위와 금후 문제점</ref> 이병철은 1956~1957년 진행된 은행 [[귀속주]] 불하과정에서 민 씨가문과 정씨가문 간 지분경쟁에서 정씨측에 힘을 실어줬다.
정종원 행장이 5.16쿠데타 직전 은행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박정희 정부는 은행을 정부 경제성장전략의 들러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심사권을 통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 은행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은 철저히 통제됐고, 사실상 제대로 된 경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ref>경향신문 1965년 3월 11일 시은경영태세 대전환 필요</ref><ref>매일경제 1970년 11월 3일 3면 금융은 정상화될까</ref><ref>매일경제 1979년 5월 1일 1면 관치에 밀리는 자율화</ref>
- 창원시 . . . . 13회 일치
[[경상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상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되었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미루고 있어 결정이 안 나고 있다. 한때 창원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355831|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 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된 상태.[[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47176&ctg=1213|#]]
[[마산]] 및 [[진해]]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생긴 매립지들.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2013년]]''' 현재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혹자는 지하 5층의 대우백화점이 없었다면 물탱크 역할을 할 구심점이 없어져 피해가 더 커졌을 거라고 한다.~~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창원은 야자수가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온난한 지역이다. 따뜻한 지역이기에 고구마가 한국에 제일 처음 도입 되었을 때도 기후가 맞는 곳을 찾아 현 진해구(옛이름 웅천)에서 실험재배했을 정도다. 그래서 아열대과일도 잘 자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개발된 상업지구는 [[상남동(창원 성산)|상남동]]이다. 상남동은 창원 중앙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안되고 빈 땅으로 남아있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개발이 시작되었다. 현재 상남동 상업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원래 꽤나 큰 시장이 들어서던 곳이었는데, 시장을 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상업건물을 지어버렸다. 과거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들어서고 있어, 장날이 되면 네온사인으로 도배된 번쩍번쩍한 건물 앞에서 시장장인이 쪼그리고 앉아 과일이며 채소를 파는 기묘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상남동 상업지구는 유흥가 그 자체이다. [[노래방]]과 술집이 극도로 밀집해 있어 한강 이남 최대의 유흥지역이라는 별명도 있다. 주로 10대~30대의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이 곳에는 학원도 군데군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낮이 되면 중고등학생들의 건전한 교육의 장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실제로, 12시에 학원 마치고 나오면 좌우앞뒤 모두 네온사인이 있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산업체들이 몰려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다음 폭격 지역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전쟁나면 일단 창원을 뜨라고들 말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박살나게 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본진 군수공장이나 관문을 장악당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으로 옮겨, [[독일]]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비상시 수도 역할을 하기 위한 활주로 대용이다. 지금은 중앙분리대와 지하차도로 인해 활주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상황에서 비상활주로 역할이니만큼 창원은 [[계룡시]] 못지 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13회 일치
*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을 인챈트하려는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아이린은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 아이를 버린다.
사실 그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걸 아는 듯 하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장군은 칼을 꺼내더니 직접 배를 갈라 확인해보겠다며 달려든다. 그때 아이린의 배에 상처가 남게 되는데.
* 그녀는 산 속에 틀어박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의 천재와 우연히 만난다. 바로 [[제레프 드래그닐]]. 한 눈에 그녀가 인간이었다는 걸 알아본 제레프는 아이린이 수백 년이나 연구하고도 실패한 드래곤의 인간화를 한순간에 성공한다.
아이린은 이 무서운 생각을 기어이 실행에 옮긴다.
* 패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실험. 엘자와 [[웬디 마벨]]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아이린은 아주 태연한 태도로 실패했고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아이린이 위악하는 것이고 실제론 차마 자기 아이를 이용할 수 없어 실험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페어리 테일에는 막장부모가 워낙에 많이 나오고 그 중엔 진짜로 사악한 인물도 있었던 만큼 어떻게 될지 아직은 미지수.
제목이 나는 너, 너는 나이기 때문에 인챈트가 실패한게 아니라 각각 아이린의 사악한 면과 선한 면이 나뉘어지는 형태가 된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현재 아이린은 멸룡마도사의 능력을 잃지 않았을 텐데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떡밥이 되고 있다. 또 실제론 엘자에게 멸룡마도사의 능력이 유전된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 하이큐/263화 . . . . 13회 일치
* 히나타의 응원 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 플레이에서 [[미야 오사무]]의 스파이크를 블록하던 히나타에 힘을 보태며 실점을 막는 타나카.
* 타나카는 자신은 천재는 못 되고 실의에도 빠지는 평범한 선수지만 "그래서 바닥을 보고 있을 틈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플레이할 기력을 얻는다.
* 꼭 넣어야 했던 1점. [[타나카 류노스케]]가 혼신을 담은 스파이크는 [[이나리자키 고교]]의 빈틈없는 블록을 넘지 못하고 사이드 라인을 넘긴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흐름이 끊기는 듯한 실점. 동료 선수들의 얼굴도 관중들도 타나카를 응원하는 [[아마나이 카노카]]도 낭패한 빛이 떠오른다.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방금 플레이가 단지 동점을 허용한게 아니라 더 위험한게 있다고 봤다. 그것은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순조롭게 압박을 쌓고 있다"는 것. 그점이 노출된 것이다. 이는 양팀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준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아쉬운 기색 없이 좋은 코스였다고 타나카의 등을 두드려 준다. 타나카도 힘차게 대답하며 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굴었으나, 역시 뼈아프다. 통한의 실책. 한편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는 타나카의 스파이크가 나름대로 깔끔하게 스트레이트를 잡으려 했던 거라고 평가한다. [[츠키시마 케이]]는 타나카의 실수 보단 아까 [[스나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여전히 신경 쓰였다. 확실히 막는 코스였다. 못해도 건드린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스파이크는 통과하는 것처럼 지나갔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가?
* 이나리자키의 공격. 긴지마의 서브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실수. 잘못 맞은 서브가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긴다. 네트 인 서브. 오늘 이나리자키는 뭘해도 잘
타나카의 시점. 방금 전 실수는 떨쳐냈을까? 언젠가 그는 히나타와 니시노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꼴사나운 건 승부에 졌을 때보다 승부에 "겁먹는" 것. 그 말대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힘차게 외친다.
* 아즈마네의 백어택은 정석을 무시했지만 한 점을 벌어들인다. 이번에도 오사무, 린타로, 긴지마의 3중 블록. 스파이크는 오사무의 팔에 맞으면서 그대로 뚝 떨어졌다. 블록과 네트 사이로 떨어지는 공. 카라스노의 득점, 26 대 25로 카라스노가 달아난다. 타나카는 이 공격에서 들러리 밖에 서지 못했다. 그래도 아즈마네의 득점을 기뻐하며 적어도 팀원들 앞에서 실망을 내색하진 않는다.
* 그런 쓰라림을 아는건 역시 선수들. 아까까지 타나카의 플레이를 비웃던 선수들이 누구보다 절박하게 그를 응원했다. 물론 개인적로서도, 선수로서도 응원하는 카노카의 절심함에 비할 수는 없었다. 카노카의 동료는 방금 전 플레이가 "류 쨩"에겐 아쉽지만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타나카는 계속 블록에 잡히기도 했고 잔실수도 있었다. 나쁜 흐름을 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안경"의 판단은 잘못된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류 쨩"에게 괴로운 것이다.
* 한 바퀴 돈 로테이션. 니시노야가 나가고 [[히나타 쇼요]]가 들어온다. 츠키시마는 서브 위치로. 히나타는 들어오자 마자 타나카를 찾는다. 히나타는 "방금 그" 플레이에 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한 스파이크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스파이크를 말하는게 아니었다. 그가 "이나리자키의 10번"을 압박한 블록을 말하는 거였다. 린타로가 중앙에서 솟아올랐을 때 히나타 혼자 블록을 뛰었던 상황. 그때 잽싸게 타나카가 따라붙었다. 히나타가 그게 엄청 멋진 플레이였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 타나카가 확실하게 기운을 차렸다. 숨기는 것과는 다르다. 츠키시마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히나타가 "천연 띄우기 왕"이든 타나카가 "천연 띄워지기 왕"이든 어느 쪽이든 "무섭다"고 드라이하게 평한다. 그리고 왠지 타오르는 건 다시 벤치. [[스가와라 코시]]와 니시노야가 합세해 "죽을 각오로 넣어라!"고 폭주한다. 근처에 있던 진행요원들이 얌전해 보였던 카라스노 2번의 돌변에 혀를 내두른다.
문득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카노카, 한 사람은 [[시미즈 키요코]]. 타나카 입장에선 둘 다 차인 상대. 왜 지금 떠오를까? 어쨌든 그는 평범하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절감하게 된다.
- 한확 . . . . 13회 일치
[[1425년]] 전감무(前監務) 김성정(金成鼎)의 첩의 딸 고미(古未)와 간통하였다가 [[사헌부]]집의(執義) 정연(鄭淵)·헌납 윤맹겸(尹孟謙)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하였으나 [[조선 세종|세종대왕]]은 주저하다가 윤허하지 않았다.<ref name="se29">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9월 28일(갑자) 2번째기사 "장군 절제사 한확이 간통했다고 갈아 임명하게 하다"</ref>
그뒤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또 한영정의 막내딸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명나라]]에 고하자 그의 막내 누이도 명나라로 뽑혀 가게 되었다.<ref name="han01">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5월 1일(무자) 4번째기사 "진헌할 처녀로 간택된 한영정의 막내딸이 혼수로 준비했던 재물을 나눠주다"</ref> 병이 나게 되어 한확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1427년]]에는 그를 공격했던 좌군 도사(左軍都事) 최징(崔澄)이 역으로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다.<ref>세종실록 38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12월 5일(무오) 2번째기사 "한확과 홍인을 무고한 죄로 좌군 도사 최징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다"</ref> [[142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는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진 내관 백언(白彦)이 그의 어머니에게 주는 단초(段綃)와 성(成)·차(車)·정(鄭)·노(盧)·안(安)·오(吳)·최(崔)씨 등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여인들이 쓴 편지를 고국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중국어]]와 [[한자]]에 능통했는데,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마다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어 접대하였다.
[[1438년]](세종 21년) 중추원사가 되었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겼는데 [[수문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탄핵을 받고 파면당했다.<ref>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0월 19일(경오) 1번째기사 "성문 출입에 문제가 있던 한확·연경·이연기·남계영을 벌주다"</ref> 그해 복직하여 정헌대부 중추원사를 거쳐, 1439년 판한성부사, 경기도관찰사, 판병조사,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경기도감사로 나갔다가 복귀, 1440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병조 판서, 판병조사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때 그는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함길도]]로 부임해갔다. [[1442년]](세종 25년) 동지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1456년]]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분배할 때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 등을 노비로 하사받았다.<ref>세조 실록 5권, 세조 2년(1456 병자 / 명 경태(景泰) 7년) 9월 7일(갑술) 4번째기사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ref>
한확은 세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다. 그는 그의 누나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의 벼슬을 받고 외교채널이 된다.<ref name="ky">[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02 <nowiki>[</nowiki>王을 만나다·16<nowiki>]</nowiki>서오릉-경릉 ( 추존 덕종·소혜왕후) : 남존여비 '女訓'과 상반된 '여성상위능'] 경인일보 2010.01.14</ref> 그리고 누이동생 또한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택돼 더욱 외교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사실 한확의 두 누이이자 인수대비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가슴 아픈 사연을 지녔다. 한확은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 1등에도 올랐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을 승인하지 않던 명나라에 들어가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양위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한확은 골치 아픈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ref name="ky"/>
한확의 저술은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차원부]] 치제문"이 있다고 주장되어 왔으나 실제와 다르고, 《차원부설원기》의 이본인 《차운암설원록》에 실려 있는 응제시 1편이 있으나 그의 저술이 아님이 논증되었다.<ref>[http://cafe.daum.net/moonwharyu/Gh3E/111 양성지와 한확의 차원부관련 글에 대한 고찰]</ref>
넓은 도량과 온간(溫簡)한 성품으로 상하의 신망이 있었으며, 명나라 황실과의 유대와 공정하고 결단성 있는 정사로 외교와 내치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아우 참의공 전이 일찍 죽자 아버지 없는 어린 조카들을 데려다가 내 자식과 같이 양육하였다.
* 태종실록
* 세종실록
* 세조실록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12회 일치
* Backroom Backstabber(밀실 모략가)
>밀실 모략가는 몇년간 원내 총무로 일해온 베테랑 정치인이자 당의 중역이다. 어떤 모의도 그를 몰아낼 수 없으며, 어떤 외국 정부도 그를 실각시킬 수 없다. 외국 정부는 이 인물을 상대할 때 엄청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운좋은 아마추어는 지금의 자리를 오로지 운 덕택에 얻었으며 정치나 정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집무실을 충격에 몰아넣는 일이 있어도, 그의 변함없는 미소는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그에게는 다행인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가 엄청 무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미소짓는 석유기업가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전에는 대형 석유 회사의 CEO를 했었다. 그의 경험(그리고 몇몇이 말하기를 그의 돈)이 그를 집무실에 앉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기술이 부족하며, 국제 무대에서는 아직 햇병아리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그는 쉽게 동요하지 않으며, 빨리 배우고 유능한 인물이다.
* Pragmatic Patriot(실용적인 애국자) - 중화민국의 장제스(장개석)
>음울한 수수께끼는 비밀에 싸인 인물이다. 그가 가끔씩 "최고의 정보"를 내놓지 못했더라면 한참 전에 실직했을 것이다.
주요 인물: 소련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클리멘트 Y. 보로실로프]]
>이 참모총장[* 실제로 Chief of Staff라고 되어있다. 복붙 하다가 실수 한 듯.]은 자율성 교리를 믿는다. 작전 사령관들에게 지휘의 자유를 주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요소라는 것이다.
- 강구열 . . . . 12회 일치
MSL에는 8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그 특징을 살린 별명, 문구를 붙여주는 관행이 있다. 당시 강구열에겐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BLADE TERRAN'이란 수식이 붙었는데, 이는 기본기나 운영보다는 초반 빌드에 집중하는 강구열의 플레이 스타일에 착안한 것이었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8강에서 강구열은 예의 그 '날카로운 빌드'를 시전했으나 송병구의 탄탄한 운영에 모두 막히면서 0: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혹시모를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에 크게 실망했고, 시드를 획득한 강구열이 곰TV MSL 시즌 3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 (1988년)|김윤환]] (KTF)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맥없이 탈락하자 "거품이다", "천운 8강이다"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같은 강구열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한 선수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CJ 엔투스의 [[주현준]],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 등이 '시드 확보→졸전→광속 탈락'의 전례를 밟은 것. 팬들은 이들을 한데묶어 '강라인'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이는 커뮤니티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본래 '강라인'이란 호칭은 실력보다 부풀려진 성적을 낸 선수들을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수장'으로 불린 강구열의 유쾌한 성격, 그리고 매체 인터뷰에서 보인 겸손한 모습에 팬들은 점차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DC 인사이드엔 '강구열 갤러리(일명 날갤)'가 생기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많은 팬들은 날갤 등을 통해 '강수장'과 활발히 교류하며 '충성'을 다하고 있다.
* [[신희승]]([[이스트로]]) : 2010년 6월 영구제명. 신희승의 강라인 가입은 험난(?)했다. [[EVER 스타리그 2007]] 4강 2007에서 [[이제동]]([[르까프 오즈]])에게 0-3으로 완패, 3,4위전에서 김택용과의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했지만 시드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타 챌린지를 통과한 선수가 D조의 시드권을 잡았기 때문에 신희승은 시드를 잡지 못했다. (스타챌린지가 없어지면서 시드권은 박카스 이후 공동 3위에게 넘어감)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마침내 시드를 딴 이후 [[허영무]](삼성전자 칸)에게 0-3으로 완패하는 '삼고초려' 끝에 강라인의 일원이 되었다. 항간엔 "신희승의 네임밸류는 기존의 강라인과 다르다"는 반론이 일어 논쟁에 휩싸였으나, 신희승 본인이 "나는 강라인이다"고 인정하면서 '공인' 강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략가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와룡희승'이란 애칭을 붙였다. 이 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선 [[안기효]], [[김민제 (프로게이머)|김민제]]에게, 아레나 MSL에서 고인규, [[박찬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최종전에서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와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는 각각 16강에 진출하였다.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1승 2패로 탈락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패로 탈락했다.
* [[손찬웅]] (현 [[화승 OZ]]) : 2011년 7월 은퇴. 손찬웅의 행보는 강라인이 되는 데 정말 완벽했다. 2007 스타챌린지 S2에서 손찬웅은 [[변길섭]]과의 최종전에서 변길섭을 꺾고 박카스 [[스타리그]]에 올라가 김동건, 박명수, 박영민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그 다음 시즌 [[에버 스타리그 2008]] R1에서 [[이제동]]과 [[한동욱]]을 떨어트리는 충격적인 대진으로 2R에 진출했다. 그 후 R2에서 [[김택용]], [[박성균]], [[박영민 (1984년)|박영민]]과 같은 조가 되어 김택용과 박영민을 이기고 박영민과 8강에 진출하며 김택용과 박성균의 진출을 기대하였던 관계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 8강에서는 강력했던 로얄로더 후보 [[허영무]]를 2:1로 역전시키며 4강에 진출하여 시드를 얻었다. 하지만 4강에서 [[프로토스]]전을 제일 잘 하기로 유명한 [[박성준 (1986년)|박성준]]에게 3:1로 패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하였으며, 끝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도 [[송병구]], [[염보성]],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전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강라인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인크루트 스타리그 3패 탈락의 영향으로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김택용, 박영민에게 2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이 후에도 서바이버 시즌 3에서도 [[박태민]]과 STX의 저그 신예 [[조일장]]에게 연패하며 탈락, 강라인의 일원임을 입증했다.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박태민]]과 [[서기수]]를 이기고 16강에 진출은 하나 [[문성진]], [[송병구]],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무난한 3패로 광탈하며 강라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차기 시즌에서는 36강에서 탈락하며 본선 진출 실패. 그 뒤로는 스타리그에도 MSL에도 복귀하질 못하였고, 계속 탈락만 하다가 2011년 7월 은퇴.
* [[조일장]] ([[STX SouL]]) : 2012년 12월 사실상 은퇴. [[바투 스타리그 08-09]]에서 4강에 오르며 충격적인 개인리그 데뷔를 하지만 시드를 확보한 다음 시즌인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에서 1승 2패로 16강에서 탈락, 강라인에 가입하게 됐다. 그 뒤로 [[에버 스타리그 2009]]는 36강에서 탈락,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도 결과 마찬가지, 그 뒤로는 본선 진출에 실패하거나 계속 조기탈락. MSL에서도 본선 진출 실패, 혹은 조기탈락하거나 16강에만 머묾.
* [[박세정]] ([[위메이드 폭스]]) : 2010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1]] 16강에서 김윤환, 정명훈과의 재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하였다. 8강에서 전대회 준우승자인 진영화를 2: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하였지만 이영호에게 3:0으로 패배하게된다. 이후에 열린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2]] 16강에서 3패로 탈락, [[박카스 스타리그 2010]] 36강마저 탈락하며 강라인에 가입했다. 그 뒤로는 개인리그 본선 진출 계속 실패.
* 그밖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8]] 4강에서 완패한 [[박찬수]]([[KTF 매직엔스]], 현재 영구제명), [[네이트 MSL 2009]] 8강에서 셧아웃당한 [[김대엽]]([[KT 롤스터]]), [[빅파일 MSL 2010]] 8강에서 [[김택용]]에 1대3으로 패해 탈락한 [[염보성]]([[제8게임단]]) 역시 강라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네임밸류가 높다는 이유로 인해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박찬수는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우승함) 최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박찬수에게 셧아웃당한 [[김명운]]([[웅진 스타즈]])등이 신규 멤버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8강에 진출하면서 광속 탈락을 피해가 가입 실패하고 말았다. 이중 1명은 영구제명, 1명은 사실상 은퇴. 또한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에서 [[송병구]]에 셧아웃당한 [[김현우 (프로게이머)|김현우]]([[STX 소울]])도 차기 [[진에어 스타리그 2011]] 8강에 진출해 강라인 가입에 실패했다. [[유병준 (1993년)|유병준]]([[삼성전자 칸]])도 [[ABC마트 MSL 2011]] 8강에서 [[이제동]]에게 3대1로다가 패하면서 다음 MSL에서 광탈하면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MSL이 없어지면서 유병준도 강라인 가입은 면했다. 유병준도 2012년 6월 은퇴. [[진에어 스타리그 2011]] 4강에서 [[허영무]]에 셧아웃당한 [[어윤수]]([[SK Telecom T1]])도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티빙 스타리그 2012]] 8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 가입은 면했으며, [[김정우 (프로게이머)|김정우]]도 본래 강라인이었으나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에서 우승하면서 탈퇴가 확정됐고, 영구제명된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임의탈퇴한 [[한상봉 (프로게이머)|한상봉]]도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이영한]]도 8강에 3전전승으로 진출하면서 강라인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12회 일치
작품명은 '실루엣 포뮬러 F91'이 아니다. 연재 당시는 기동전사 건담 0123 실루엣 포뮬러 91이라는 제목이었지만, 단행본이 되면서 0123이 떨어져 나갔고 이후로는 단행본 제목으로 표기되고 있다.
건담 F91을 개발한 사나리의 포뮬러 계획을 따라잡기 위하여 [[애너하임 일렉트로닉스]]에서 벌이는 실루엣 포뮬러 계획과 그에 얽힌 전투를 다루고 있다.
=== 애너하임 일렉트로닉스 실루엣 포뮬러 팀 ===
주인공. 탑승기는 실루엣 건담→네오 건담 2호기.
가렘슨과의 사건으로 군에서 좇겨나 실루엣 포뮬러 팀에 들어가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다. 실력은 뛰어나다.
실루엣 건담의 담당 엔지니어. 아버지는 연방군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고인이 되었다는 설정이다.
네오지온 잔당의 소녀. 탑승기는 [[기라도가]]→실루엣 건담.
나이는 18세. 12세 부터 모빌슈츠에 탑승하고 있어서 실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6년 전에 가렘슨의 학살 때문에 부모를 잃었다. 가렘슨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다.
처음에는 토키오 일행을 연방군으로 오해하여 교전을 벌였으나, 나중에는 협력하는 관계가 된다. 후반에는 실루엣 건담을 타고 토키오와 협력하여 가렘슨을 쓰러뜨려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
잔당들을 이끄는 지도자. 사실상 '촌장' 정도.
- 김윤환 . . . . 12회 일치
|| '''약력''' || [[조선일보]] 기자[br][[영남일보]] 기자[br][[대구일보]] 기자[br][[문화공보부]] [[차관]][br]제13대 [[대통령비서실장]][br]제1정무장관[* 1988년, 1990년, 1994~1995년 무려 3번이나 제1정무장관직을 역임하였다.][br][[민주정의당]] 원내총무[br][[민주자유당]] 대표 ||
고등학교 동창인 노태우의 권유로[* 사석에선 [[전두환]], [[노태우]]와 서로 반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갔다.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1986년 8월 개각 때 [[허문도]]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 정무제1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87년 7월 [[김정렬(1917)|김정렬]] 내각이 출범하자 [[박영수(정치인)|박영수]]의 뒤를 이어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퇴임한 뒤 민주정의당으로 복귀했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군위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개원한 뒤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에 임명되었고,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김원기(1937)|김원기]], [[통일민주당]] 원내총무 [[최형우(정치인)|최형우]],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 [[김용채]]와 함께 4당 체제를 이끌어가는 원내 사령탑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쳤다. [[3당 합당]] 이후에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무제1장관을 맡으며 정계의 중심에서 활약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 이후 김윤환은 정치권에 몰아친 사정의 태풍을 피해 해외에서 체류하다시피 했다. TK민정계의 동료였던 [[박준규(1925)|박준규]]와 [[박철언]] 등이 대거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상황에서 김윤환은 대통령을 만들어낸 2인자임에도 오히려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1995년 2월 [[김종필]]이 민자당을 떠나고 6월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자 김영삼은 김윤환을 통해 당과 범여권을 안정시킬 필요를 느낀다. 이에 김윤환은 다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복귀했고 얼마 뒤에는 민자당 대표위원에 취임하여 명실상부하게 여당의 2인자가 되었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뒤에도 김윤환은 대표위원으로 유임되었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신한국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139명 중 그의 계보로 꼽힌 당선자는 무려 26명으로 전체의 5분의 1에 육박했다.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남후보를 세워서 영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영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12회 일치
* 패트껌은 그가 막 사무소에 왔을 때를 돌이켜 보며 키리시마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실감한다.
* 패트껌은 그의 협조로 지하시설의 의무실에서 치료를 하며 랏파가 왜 이런 조직에 가담했는지, 그리고 오버홀이 뭘하려는지에 대해 캐묻는다.
* 그는 "어떤 물건"을 대량으로 시장에 풀기 위해 계획하고 있으며 자금이 모이는 데로 실행될 것이다. 그것은 "완성품"과 "혈청"이라는 약물이다.
바보취급하는 건가? 패트껌은 함정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랏파는 자기가 그런걸 설치할 법한 남자냐고 반문한다. 확실히 그럴 만한 두뇌는 아니다.
* 텐가이도 입을 놀릴 정도의 기력은 돌아왔다. 그 기력이라도 배리어라도 치면 좋았겠지만, 그는 설교를 선택했다. 랏파에게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설교. [[오버홀]]이 그와 짝지은 것도 그런 안배였다. 그저 폭력을 휘두를 뿐인 짐승을 텐가이가 제어하라는 것. 텐가이는 그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상처를 치료해! 다음에는 확실히 죽여주마!
* 패트껌은 반박할 기분도 별로 나지 않았다. 일단은 이제 랏파는 체포될 거고, 감옥행이 될 테니 재시합이고 뭐고 그냥 진거라고 말해 본다. 랏파는 그것도 알바가 아니다. "아무도 죽지 않으면 무승부", 그런 지론이었다. 그는 패트껌이 움직이지 않자 먼저 문으로 향한다. 그쪽이 의무실인 모양이다. 랏파는 기인이긴 하지만 기인 나름의 방식을 지키는 부류였다. 욕구에 충실한 인간인 만큼 하는 말이 딱히 숨기는게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나 키리시마가 이 몸으로 일행과 합류하기는 글렀다. 패트껌은 키리시마를 안아든 채로 랏파의 뒤를 따랐다.
* 랏파가 안내한 의무실은 거의 창고나 다를 게 없었지만 응급조치 정도는 할 수 있다던 딱 그정도였다. 패트껌의 조치로 키리시마의 출혈은 멎었지만 한동안 누워있어야 하는건 마찬가지. 패트껌 자신도 치료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보고 랏파가 어슬렁거리다 "나앗냐, 죽인다"고 내뱉는다. 패트껌은 "나았겠냐, 살려"라고 대꾸한다.
* 패트껌에겐 소름이 돋는 얘기였다. 랏파의 승부욕 쪽이 아니었다. 오버홀의 실력. 이 랏파의 위력과 스피드를 간단히 요리할 만한 힘이 오버홀에게 있다는 것.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일선에 나서지 않고 부하를 내세운다.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왜 자신이 사태를 처리하지 않고 도망치는가? 그런 의문들은 보다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랏파는 텐가이의 만류도 아랑곳 없이 아는 사실을 하나도 남김 없이 털어놨다. 그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들은 바로는 "뭔가"를 대량으로 뿌릴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자금 문제가 해결되면 "실행의 날"은 금방, 그런 이야기였다. "소재"는 확보하고 있으니까. "에리쨩.
- 리그컵(K리그) . . . . 12회 일치
프로축구사에서 운영을 위한 타이틀 스폰서가 붙은 건 공식적으로 리그컵이 최초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92' 아디다스컵은 대회 스폰서인 제우교역의 요구에 의해 붙여진 명칭이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축구에 있어 스폰서가 붙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스포츠사에서 해외업체의 이름을 대회명에 붙인 최초의 사례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말이 많았다.
=== 지나친 실험정신 ===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영방식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식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상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상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상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상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상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백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상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상황. 물론 이건 총 상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상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상이 바뀌게 되었다.
== 리그컵의 존재 이유 상실 ==
특히 관중과 관련된 부분은 믿기가 좀 곤란한게 이 대회는 단 한번도 실 관중 집계가 단 한번도 이루어 진 적이 없어서 관중 동원력도 사실 언급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 마재윤 . . . . 12회 일치
한편, MSL에서의 눈부신 활약과 달리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예선 탈락도 여러차례 하는 등<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2276&c_no=1&control=view 안상원 듀얼토너먼트 본선 진출 등 오전 1조 종료] [[파이터포럼]], 2006년 6월 28일. 온게임넷 예선에서 안상원에게 패배한 모습)</ref>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5번째 MSL 결승전을 앞두고 벌어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결승에서 [[이윤열]](현 [[위메이드 폭스]])을 3:1로 꺾고 로열로더로써 우승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6484&c_no=1&control=view CJ 마재윤V, 3대1로 이윤열 꺾고 현역 최고 선수 등극!] [[파이터포럼]], 2007년 2월 24일)</ref> 당시 [[엄재경]] 해설위원의 '사람이 신을 어떻게 이깁니까!' 발언과 인상적인 퀸 사용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당시 마재윤의 실력과 기세는 모든 이들을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9-10|신한은행 위너스리그 08-09]]에서 마재윤은 2번 연속 3킬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어 마삼킬이란 별명과 함께 팬들에게 기대를 안겨주었고 로스트사가 MSL 2009 16강에서도 신희승에게 압승을 거두며 부활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09년 7월에는 e스타즈 스타크래프트 헤리티지 대회에서 이윤열을 2:1로 꺾고 우승까지 하였으나 위너스리그 종료 이후 점차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스타리그 예선을 계속 뚫지 못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며, 저그전에서는 기량 난조를 보였다. 그러나 10월 29일 서바이버 토너먼트를 뛰어난 경기력으로 전승 통과하며 13시즌 연속 MSL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어지는 [[NATE MSL 2009]]에서 32강 2패로 초반 탈락하며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 양대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였고, 프로리그에서도 출전할 때마다 어이없는 졸전을 펼치며 전부 다 연패하는 등 데뷔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3월에는 로스터에서 말소 되는 등 최악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2010년 3월 프로리그 로스터에서 말소되며 사실상 팀 전력에서 배제되었던 마재윤은 4월 프로게이머 승부조작 의혹이 일면서 선수 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많은 네티즌은 그가 유난히 전성기 이후인 2007년부터 빠른 추락을 거듭했다는 점, 또한 비슷한 시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작스런 졸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 무엇보다 포모스 측에서 승부조작 의혹 기사에 올린 흑색 처리된 사진이 마재윤의 사진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의심하였다. 이에 마재윤은 자신의 승부조작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CJ 엔투스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승부조작을 의심하지 말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5월 검찰의 수사 결과 마 모 프로게이머가 원 모 프로게이머와 함께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을 공식 선언했는데, 프로게이머 중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 하나 뿐인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승부조작 혐의가 있음이 확실시되었다. CJ 엔투스는 검찰 발표 하루 전 마재윤을 선수 명단에서 제명했고, 마재윤을 임의 탈퇴 처리했음을 기사를 통해 밝혔다. 마재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공판이 진행 되었고, 6월 7일 케스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영구제명을 당하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ref>[http://esports.dailygame.co.kr/news/view.daily?idx=27900 불법 베팅 가담 프로게이머 11명 영구제명]</ref>
이미 마재윤은 [[MBC게임 스타리그|MSL]] 우승으로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최연성의 천적이었다. 최연성은 첫 맞대결인 WEF 2005 결승에서도 2:0으로 완패했으며, CYON배 [[MBC게임 스타리그|MSL]] 승자조 4강에서도 2:0으로 완패를 당하고 패자조로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비공식전을 포함한 상대 전적 (WEF는 비공식전으로 침)에서 4:0로 뒤쳐지던 최연성은 [[2005년]] LG Cyon 배 [[MBC게임 스타리그|MSL]] 패자조 결승에서 마재윤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면서 패배, 결국 3:0으로 전패하며 결승전 진출에 실패하고 전적도 7:0으로 벌어졌다.
10번째 대결에서 패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마재윤이 '이성은 선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는 것을 인정한다,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당분간은 이성은 선수를 만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하면서 이성은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전 팀 동료였던 [[변형태]]와는 8차례나 만났었는데, 모두 팽팽했다.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에서만 만난 기록들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4강 B조 경기에서 마재윤이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 A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서 2:1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2007년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2:1 승리.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4:4로 무승부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5로 앞선다.
[[고인규]]와는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SKT전 4세트에서 패했으며, 2007 3차 듀얼토너먼트 E조 1경기에선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아발론 온라인 MSL 2009]] 32강 G조 경기에서는 1경기와 최종전에서만 모두 패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상대전적 1:3로 열세.
2010년 4월 몇몇 팬들로부터 [[2010년 스타크래프트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 사건|승부 조작]]에 마재윤이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면서 '마재윤 vs 이신형'전의 배팅 사건 등등이 제기되었지만, e스포츠 팬들의 반응은 마재윤이 맞다고 주장하는 쪽과 확실하진 않으니 검찰 조사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면서 서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마 모 프로게이머가 연루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실제 케스파에 등록된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이 유일한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마재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이 밝혀졌다. CJ 엔투스는 검찰 수사 공식 확인 하루 전 마재윤을 팀 선수 명단에서 제명하였고, 한국 e스포츠 협회는 그를 다른 승부조작을 꾸민 [[진영수]], [[원종서]], [[최가람]],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 [[신희승]], [[김성기 (프로게이머)|김성기]], [[문성진]], [[박찬수]],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 [[정진현]]을 모두 영구제명 조치하였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MBC게임 해설진은 경기 중계 도중 과거 경기를 언급하며 마재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마재윤은 승부 조작 혐의로 인하여 벌어진 재판 당시 재판장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마재윤은 프로게이머라고 답하여 무직이라고 대답했던 [[원종서]]와 대조를 보였다. 마재윤은 e스포츠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하여 고의적으로 경기를 패배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박정민(배우) . . . . 12회 일치
이후,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합격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례가 없는 영화과 -> 연기과로의 전과가 성공한 것.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한예종 연기과는 그 경쟁률이 매해 상상을 초월하는데, 신입학보다 전과가 까다롭다고 한다. 20대가 될 때까지 거의 공부만 하던 학생이라 필모그래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연기자로의 전과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서퍼트 중후군을 가진 진태역을 맡았다. 연기를 위해 장애 아동들을 찾아가 행동을 배우고, 건드려 본 적도 없다던 피아노를 배워 촬영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등 열정이 돋보이며, 이 덕에 [[이병헌]]에게 찬사를 받았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동작은 실제 연기가 맞지만 연주 자체는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입힌 것이다. 영화 내에서 나오는 곡들은 초보자가 몇 개월 연습한다고 칠 수 있는 곡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염력의 경우 흥행에 실패했을 뿐더러 맡은 배역 또한 혹평을 받았다.
|| [[염력(영화)|염력]] || 조연 || 김정현 || 98만 명 || 실패 ||
|| [[변산(영화)|변산]] || 주연 || 학수 || 49만 명 || 실패 ||
|| [[임금님의 사건수첩]] || 특별출연 || [[의경세자]] || 163만 명 || 실패 ||
|| [[순정(영화)|순정]] || 조연 || 용수 || 23만 명 || 실패 ||
|| [[무서운 이야기 3|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 || 주연 || 동근 || 9만 명 || 실패 ||
|| 2015년 || [[오피스(영화)|오피스]] || 조연 || 이원석 || 44만 명 || 실패 ||
|| 태양을 쏴라 || 조연 || 첸 || 1만 명 || 실패 ||
|| [[전설의 주먹(영화)|전설의 주먹]] || 조연 || 어린 임덕규[* 황정민의 아역으로 출연.] || 174만 명 || 실패 ||
||<|6> 2011년 || 붉은 손 || 주연 || 리철오 || ||<|2>단편영화||
- 식극의 소마/209화 . . . . 12회 일치
*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똑같이 1회전 멤버인 [[잇시키 사토시]]가 아예 이쪽 조리대에 와서 관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마가 자기 요리는 어쨌냐고 묻자 어차피 숯불을 달구고 있는 중이라 한가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태평하다. 그는 소마의 요리를 흥미롭고 기특하게 바라본다. 그는 아군을 고무시키는 것도 팀워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 고무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십걸인 [[메기시마 토스케]]는 반대로 아주 성실하고 묵묵히 조리를 하고 있다가, 이쪽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후추 뿌리기 장인은 꽤나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잇시키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작 상대방은 그를 모르고 있다. 같은 학년일 텐데 이름 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다. 그 사실에 충격에 빠진 후추 뿌리기. 그러는 동안 이들의 대결 주제가 공개된다. 주제는 "장어".
* 실의에 빠진 인물은 2학년 [[시라츠 쥬리오]]. 십걸의 빈 자리를 메운 뉴 페이스다. 관객들은 엄청난 환호를 퍼부어주지만 쥬리오는 "잇시키가 나를 모른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츠카사 에이지]]는 왠지 그 기분에 공감하며 자기가 저런 처지였다면 삼일은 잤을 거라고 실없는 소릴한다. [[코바야시 린도]]는 "동급생 이름도 모르면 어떡하냐"고 야단치는데 잇시키가 친근하게 "머리 바꾼게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자 좋아라 웃는다. 결국 누구한테도 이해받지 못한 쥬리오는 이 승부로 잇시키에게 자신의 존재를 새기겠다는 패배 플래그 같은 대사를 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쥬리오가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라고 소개한다. 쥬리오는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조리에 들어간다. 큼직하게 자른 장어에 소금을 쳐서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양파와 마늘,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볶는다. 이때 와인을 뱅뱅 돌리면서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넣는게 포인트. 꼴은 우스꽝스럽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나카리 에리나]]도 그의 내력과 실력에 대해선 자세히 안다. 에리나는 시라츠 일가는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를 했던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실력은 일본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소문이 자자하고 특히 선대는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키노쿠니는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명가의 낙오자"라는 것은 후배들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꽤 폭탄발언인 셈인데, 잇시키는 "사실이라 반박도 못하겠다"며 웃고만 있다. 한 번 독설이 시작되자 더는 주체할 수 없는지, 쥬리오는 이어서 자존심도 없냐, 수업 빼먹고 밭만 만지니까 칠석 자리를 뺏긴 거다라고 수위를 높여간다. 결국은 해선 안 될 말까지 한다.
소마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예전에 그와 식극을 한 잇시키는 진짜 실력의 절반도 채 발휘하지 않았었다는 걸.
>괴물같은 실력이야. 정체가 뭐가 이 사람?
- 진격의 거인/91화 . . . . 12회 일치
* 월마리아 최종 탈환 작전 개시 이후 4년 뒤의 세계. 마레는 "시조탈환 계획"에 실패, [[애니 레온하트|여성형 거인]]과 [[베르톨트 후버|초대형 거인]]을 잃고 군사력이 약화된다.
* 아군 참호로 돌아온 형제. 소년의 이름은 "파르코", 형은 "콜트"였다. 참호엔 비슷한 또래의 소년소녀들이 파르코의 생환을 반긴다. 파르코는 뇌진탕으로 일시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고 있다. 친구들은 기억하지만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 그때 관측병이 "놈"이 나타났다고 알린다. 그것은 "장갑열차"다. 거기에 달려있는 열차포는 "대거인포"라 불리는 연합의 신병기다. 장갑열차에 총 4문이 장착돼있다. 100mm짜리 철갑포로 보통 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거인"이라 해도 한 방이면 처리할 수 있는 괴물. 마가트가 우려한 것이 저것이었다. 콜트는 턱과 차력은 재빠른 거인이므로 목덜미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마가트는 도박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 당하면 어쩔거냐는 반문에, 콜트는 거인의 힘과 전사를 잃고 거인의 힘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가트 대장은 거기에 9년 전 있었던 "시조탈환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덧붙인다. "여성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와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은 실패 말이다. 이 전력의 상실이 지금의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 마레의 군사력이 저하됐다고 본 주변국들과 분쟁으로 전쟁이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팔라디섬 공략은 한없이 뒤로 밀렸다.
거인의 힘은 절대적이다. 지금껏 마레를 초대국으로 만들어준 것도 거인의 힘이었다. 그러니 이 이상 상실할 경우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 마가트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전사대"에 돌격준비를 지시한다. 콜트는 반발한다. 하지만 마가트는 코웃음을 친다.
참호에 정적이 감돈다. 마가트 대장은 "너흰 훈련시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아냐"며 각하한다. 그래도 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처럼 유능하고 예쁜 전사는 두 번 다시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이 성공하면 800명의 전사대를 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가트는 콜트에게 한 것처럼 "실패하면?"이라고 반문해본다. 가비는 콜트와 달리 거기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었다.
* 열차포가 부대에 가까워진다. 그 말은 방금 전까지 총알을 퍼붓던 그 기관총 진지에도 가까워진다는 말이었다. 가비는 투항하는 척, 두 손을 들고 진지로 다가간다. 수류탄 다발은 줄로 오른발이 묶어서 질질 끌고 간다. 적이 보기엔 투항자가 다리를 절며 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투항자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격하지 않는다. 적도 상대가 엘디아인일 가능성을 상정하지만 소녀이고 투항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주저한다. 게다가 가비의 계산이 대충 들어맞아서 다리에 건 수류탄을 족쇄라고 잘못 관측한다.
가비는 작전성공의 쾌감 때문인지 폭소를 터뜨리며 마구 달린다. 하지만 적의 기관총 진지는 완전히 무너진게 아니었다. 살아남은 소총수가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한다. 미처 참호에 다다르지 못한 가비는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참호 연장에 실패한, 유탄이 떨어져 깊게 패인 자리를 향해 무작정 달리지만 총알을 피할 것 같지 않다. 지켜보고 있던 파르코가 뛰쳐나간다. 콜트가 말려볼 틈도 없었다. 그는 가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창작:티겔 왕국 . . . . 12회 일치
동부대룩의 중남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상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상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상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상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상속법을 장자상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상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삼촌인 달준의 사망이후 실권자가 된 달건의 맏아들인 달제는 황폐화된 국토의 재개발에 힘쓰면서 한편으론 남쪽에 여전히 자릴 잡고 있던 사냥꾼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달구의 악행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접촉을 성공하고 그들에게서부터 남부쪽에 개척자들을 보낼때 어느정도의 개간을 허용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위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용 사냥꾼들까지 보내오겠단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그러나 상티겔 왕국은 달휴의 사후 점점 기울어져 갔는데, 우선 달휴가 죽고 그의 맏아들 '불운한' 달계가 즉위했으나, 그는 한달도 안되서 의문사하고(...) 그의 둘째 '천벌의' 달연이 왕위에 오른다.[* 호칭을 보면 알겠지만, 달계 암살의 유력 용의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왕위에 오르고 약 이틀도 안되어 그의 동생 달혜가 그를 암살하고(....) 또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나흘이후 그의 제수의 명을 받은 암살자에게 죽을뻔 한다(...) 그에겐 다행히, 암기가 급소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하가서 살았고, 얼마 안돼 제수는 교수형, 그리고 그의 여동생은 가택연금을 시키는걸로 마무리시킨다. 달혜는 상티겔 왕국의 왕들중 최악의 왕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그전까지 충실한 우방이었던 하이엔 왕국을 괜히 외교적으로 도발해 적대관계로 가게 하고, 북쪽의 라이엘기스 대공국[* 레잉 왕국이 멸망하기전 마지막 왕의 동생(적자가 아닌 서자였다.)이 세운 국가.]에겐 지속적으로 병력을 갈리면서(...) 국력을 낭비했으며, 그나마 우방이었던 츄프왕국과는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이 벌어지는 상태인 불안한 동맹관계였다.[* 상티겔 왕국이 메롱한대도 츄프왕국이 굳이 티겔과의 관계를 끊지않은 이유는 북쪽의 숙적 크누고 공국과 그들을 지원하던 하이엔왕국 때문이었다. 즉, 크누고 공국을 제압하면 얼마든지 티겔과의 관계도 끊을 수 있었다는 애기.] 이렇게 외교적으로 불한한 상태에서 내정을 잘한 편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사자족 토벌이라면서 상당한 량의 세금을 걷어갔고, 이는 지속적인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사서에만 기록된 반란의 횟수는 약 20여회정도이다... 사서가 훼손되어서 기록되지 못한 반란까지 포함하면 이횟수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달계의 아들이었던[* 달계가 죽었을당시 아직 태어나지 못해 계승받지 못했다.] 달유가 귀족들에 도움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식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식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상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상티겔왕국은 멸망한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동부 대륙 남부에선 [거인족(창작: 세대륙 이야기)|거인족], 혹은 '야만인'이라고 흔히 부르는 종족들이살고 있었다.[* 사실 남부말고도 중동부 산맥, 북부산맥쪽에도 살고 있다.] 이들은 본래 대부분 남부쪽에서 수렵과 약간의 농경생활을 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으나, 같이 남부에 살고있던 '거수인'이란 종족들중 일부가 '불꽃의 여자'부족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자 그들에게 밀려나 북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던것이다.
밀려난 거인족들은 대부분 다이잔 강 인근에 정착했고, 곧 그곳에서 대대로 살고있던 사냥꾼들과 충돌하게 된다. 갈등의 원인은 사료가 제각각이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각집단의 젊은이들이 사냥감의 소유권문제로 다툰것이 시작인건 확실해 보인다. 아무튼 이 갈등은 점차 종족들간의 갈등과 충돌, 혐오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갈등의 시작이었던 '물소사건'의 일원이었던 '라가트렁'를 중심으로 집합한 거인족들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된다.
- 추미애 . . . . 12회 일치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7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159849|#]]
* [[2001년]]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당시 당 총재 겸 현직대통령)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남편인 서성환 씨는 아내와는 달리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해서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행하며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내인 추미애에 대한 기본적인 외조나 선거 캠프 등에서 실무 작업으로 참여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대한민국 불교계의 대원로였던 [[성철]] 스님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것도 2번씩이나.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뭔가 하면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000배를 했기 때문. 참고로 [[박정희]]도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성철 스님이 같은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만남을 포기했었다.
* 2000년 7월 5일, 동료 의원들 및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X같은 [[조선일보]]', '[[이회창]]이 이놈' 등의 발언을 했고, [[동아일보]] 기자와 싸움이 번져 '사주같은 놈', '누구의 지시를 받아 기사를 썼느냐'는 등의 불호령을 내렸다. [[정동영]] 등 동료 의원들이 말리면서 데리고 나오자 '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데 왜 이러느냐' 하고 마당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추미애의 'X같은 조선일보'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곤욕을 치렀는데, 오프 더 레코드로 사석에서 나온 말을 기사화한 것은 업계 상도의에 어긋나는데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보복성 보도였다는 평가가 주론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47095|그날 추미애 의원에게 일어난 일들]]
*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힌 삼성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추미애 의원을 가리켜 '돈 안 받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미애는 본의 아니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돈 안 받는 정치인' 인증(?)을 받았고, 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추미애 의문의 1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http://mlbpark.donga.com/mp/b.php?id=201707200006465394|#]]
* 2016년 9월 22일, 추 의원에 대해 허위 기사를 쓴 지역 매체 기자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다. 법원은 "기자로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허위 기사를 작성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도 피해자의 고소가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해 범행 이후의 정황도 좋지 않아 징역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60919_0014394041|#]]
*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는 [[아재개그|줌마개그]]를 선보였다. 호남권 경선 대회 때 개표 발표를 맡았던 [[홍재형]]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의 이름이나 총 득표율을 잘못 말하는 실수를 여러번 하였다. 이에 이름이 잘못 불리워진 후보 측에서 반발이 생기자 이후 충청권 경선 대회 때 자신의 말 실수를 공식 사과했다. 이후 추미애는 홍재형 위원장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말하며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 판타스틱 포 . . . . 12회 일치
557호에서 휴먼 토치가 사망하고 2월 23일[* 이 날짜는 이슈 558의 발표일. 실제로 발매된 건 4월이다.] 588호로 시리즈가 마감되고 후속작인 FF(퓨처 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으로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하였다가, 휴먼 토치가 다시 복귀하고 2013년 마블 나우부터 다시 판타스픽 포 시리즈의 연재가 시작됬다.
사실 판타스틱 포의 탄생 배경(당시 1961년)이 다소 엉뚱한데, 모든 것은 당시 타임리 코믹스([[마블 코믹스]]의 전신)의 출판인이었던 마틴 굿맨이 경쟁사인 [[DC 코믹스]]의 대표 잭 리보위츠와 골프를 치면서 시작되었다.
리보위츠는 굿맨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시 DC의 호황이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덕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작품은 그 때까지 독립된 타이틀에서만 활약하던 DC의 여러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이 한데 모여 집단으로 싸운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이야기에 ~~열이 뻗치게~~ 자극을 받은 굿맨은 '자기 회사에서도 집단 히어로물을 발표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스토리 작가 [[스탠 리]]를 찾아가 "우리도 저스티스 리그 같은 히어로팀 만화 만들자"라며 그 임무를 맡기고, 그 결과 나온 것이 판타스틱 포이다.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또한 판타스틱 포는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코스튬도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으며 자경단보다는 [[자원봉사]]단에 가깝다[* 실제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에서 스파이더맨에게 "우린 자원봉사야"라고 얘기한다].
* 연재 시작할 때만 해도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이 성공할지 회의적이었기에 [[스탠 리]]는 [[잭 커비]]에게 부탁해서 판타스틱 포를 슈퍼히어로물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판타스틱 포 1, 2화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들은 다 평상복을 입고 있으며 표지의 중심은 괴물들이기에 슈퍼 히어로보단 호러/괴수물처럼 보이게 디자인되어 있다. 3화쯤 돼서 판타스틱 포가 인기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제서야 코스튬을 입히게 된다.
* [[실버 서퍼]]
=== 실사영화 ===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하동부대부인 . . . . 12회 일치
하동부대부인은 영의정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증손녀이며, 판중추부사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정세호]]의 딸로 1522년(중종 17) [[9월 23일(음력 9월 4일)]]에 태어났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ref>창빈 안씨 소생으로 중종의 서9남</ref> [[덕흥대원군|덕흥군]]과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로는 3남 1녀를 두었고, [[1567년]](명종 22) [[6월 24일(음력 5월 18일)]]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하니 [[왕비]] 부모를 장사지내는 예로 장사지냈으며, 같은 해 [[8월 9일]] 신주를 대원군 옆 이실(異室)에 모셨다.
[[조선 명종|명종]] 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으로 즉위한 [[조선 선조|선조]]는 [[조선 예종|예종]]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하였다가 즉위 직후 스스로를 파양하고 친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한 [[조선 성종|성종]]과는 달리 강력한 배경도 없었으며 생부 [[덕흥군]]이 후궁 소생 왕자에 불과하여 부모를 왕과 왕후로 격상할 수 없었다. 이에 절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작위가 공신 정1품의 작위로 왕비의 아버지의 작위로도 쓰여진 부원군(府院君)의 부(府)를 대(大)로 교체한 대원군(大院君)이다. [[조선 선조|선조]]는 생부 덕흥군을 조선 최초의 대원군인 [[덕흥대원군]]으로 추증하였고, 생모 군부인(郡夫人) 정씨는 외명부 소속 왕실 여성의 최고 품작인 부부인으로 추증하였다.
{{인용문|중종 공희 대왕의 손자이며,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岧)의 셋째 아드님이다. 어머니은 하동 부부인 정씨(河東府夫人鄭氏)로 증 영의정 정세호(鄭世虎)의 따님이다.|《조선왕조실록》선조 총서}}
{{인용문|선묘(宣廟) 때에도 국장(國葬)이 세 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궐문 안에서 곡송만 하였다고 사람들이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동 부부인(河東府夫人) 발인 때에는 선조께서 궐문 밖에서 곡송하려고 하였으나 예조가 아뢰어 대내의 뜰 아래에서 망곡(望哭)만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인조 12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3월 2일(을사) 1번째기사}}
{{인용문|옛적에 우리 선조 대왕께서 즉위하신 지 3년째 되는 기사년에 덕흥군을 추승하여 덕흥 대원군으로 하였고, 부인 정씨(鄭氏)를 봉하여 하동 부부인(河東府夫人)으로 하였으며, 자손이 습직(襲職)하여 계속 대군(大君)의 예에 따랐습니다.|《조선왕조실록》인조 13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7월 27일(정유) 1번째기사}}
하동부부인이 하동부대부인으로 오인된 것은 [[조선 영조|영조]] 즉위년에 [[조선 영조|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추보를 논의할 때 예조판서 [[이진검]]이 "선조(宣祖) 때에 덕흥군(德興君)을 높여서 ‘대원군(大院君)’이라고 하였고, 군부인(群夫人)을 ‘부대부인(府大夫人)’이라고 하였다."고 잘못 진달하였기 때문인데<ref>《조선왕조실록》영조 1권, 즉위년(1724 갑진 / 청 옹정(雍正) 2년) 9월 21일(신유) 2번째기사</ref>, 사실 이는 [[이진검]]의 잘못이라기보다 [[조선 경종|경종]]2년에 부제학 이명헌이 [[조선 경종|경종]]의 사친인 [[희빈 장씨]]를 추보할 것을 상소하며 "선조조(宣祖朝)에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을 추숭(追崇)하였을 때에 선정신(先正臣) 이황(李滉)의 의논을 인용하여, 빈(嬪)자 위에 특별히 하나의 대(大)자를 더하고, 이어서 본관(本貫)을 취하여 모부대빈(某府大嬪)으로 삼을 것"을 시초로 한다.<ref>《조선왕조실록》경종 9권, 2년(1722 임인 / 청 강희(康熙) 61년) 7월 17일(경자) 1번째기사</ref> 당시 동석했던 [[이진검]]이 이명헌의 말을 잘못 기억하여 영조 즉위년에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예조판서인 [[이진검]]이 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않고 진달하였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조선 경종|경종]]의 각별한 충신이었던 [[이진검]]이 부대빈(府大嬪) 작호의 유지를 위해 고의적으로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로 인해 이후 정씨의 작위는 다시 본래의 작호인 하동부부인으로 정정되어 불리기도 하다가 하동부대부인·하동부인·대원군부인으로 섞여서 일컬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아들의 지위에 따라 어머니의 작호에 대(大)를 더할 수 있다는 세종14년 때의 법령과 이미 부대부인의 작호를 쓴 여성이 있었던 전례에 의거해 마땅히 부대부인으로 삼았어야 할 정씨를 부부인으로 삼은 것은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탓으로 짐작된다.<ref>《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B%E4%BA%BA&set_id=-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7%E5%A4%AB%E4%BA%BA&set_id=59642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E5%A4%A7%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insp_result_s.jsp?M=0&oflag=0&set_id=596427&selK=1&selT=1&query=%E5%A4%A7%E9%99%A2%E5%90%9B%E5%A4%AB%E4%BA%BA&query_Result=&sinfo=&list_per_page=10&chkID=0&opAll=0&opP=0&opA=0&opB=0&opR=0&opT=0&opG=0&opW=0&qAll=&qP=&qA=&qB=&qR=&qT=&qG=&qW=&idS=&idE=&tc=2&pc=2&cp=1&startpos=0&pos=0 대원군부인]</ref><ref>《조선왕조실록》영조 117권, 47년(1771 신묘 / 청 건륭(乾隆) 36년) 8월 9일(정축) 1번째기사 中 "그 사체에 있어서 창빈(昌嬪)·대원군(大院君)·하동 부인(河東夫人)을 대진한 후에 어떻게 합제(合祭)할 수 있겠는가?"</ref>
이를 바탕으로 [[조선 철종|철종]] 즉위 후 [[조선 철종|철종]]의 생부로서 대원군으로 추증된 [[전계대원군]]의 세 부인이 부대부인으로 봉해졌으며<ref>《조선왕조실록》철종 1권, 즉위년(1849 기유 / 청 도광(道光) 29년) 6월 17일(계미) 1번째기사</ref>, 이후 [[조선 고종|고종]]의 생모 여흥민씨 역시 부대부인으로 봉해져 왕족부인으로서 왕의 사친이 된 여성은 부대부인으로 봉작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현대 국어사전에는 부대부인을 왕의 사친의 작위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하동부부인은 본래 작위인 하동부부인이 아닌 하동부대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 [[덕릉재실]]
- 하이큐/239화 . . . . 12회 일치
* 약간 도박성으로 기용됐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서브를 테라도마리 뒤통수에 맞추는 성대한 실수를 한다.
*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심정으로 핀치 히터를 기용한다. 그것도 실전 경험이 전혀 없고 공식전 첫 데뷔인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비슷한 포지션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 히사시]]가 보기엔 지나치게 긴장했다.
사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긴장한 연습 때의 성과를 보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사실 2학년의 같은 포지션인 [[츠키오카 치하루]]가 신경쓰이는 점도 있다. 원래는 츠키오카가 이런 타이밍에서 핀치 서버로 기용됐었는데, 하필 봄고에 와서 난데없이 자신이 끌려나온 것이다. 이런 판이니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수밖에. 그래도 "핀치는 기회"라고 자신을 설득하며 플레이에 들어간다.
* 그런데 치는 손맛이 이상하더니, 공은 엉뚱하게 같은 팀의 테라도마리의 뒤통수에 작렬한다. 적아군 모두 표정이 얼어붙을 정도로 황당한 실책. 게다가 이 실수로 1세트를 카라스노에게 넘겨주고 만다. 좀 황당하지만 어쨌든 선취는 선취. 카라스노의 응원단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관중석에서는 히메카와의 실수가 입방아에 오르며 "평생 꿈에 나오겠다"는 말이 본인에게 들릴 정도였다.
* 실책을 저지른 히메카와는 사색이 된 표정이다. 하필이면 또 3학년 에이스 테라도마리를 건드렸으니.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주장 에치고가 풀어준다.
테라도마리도 "맞추려면 나 빼고 맞춰라"고 웃어넘긴다. 히메카와가 가장 의식했던 2학년 츠키오카도 3학년 마루야마에게 "종반부터 서브가 어설펐다"고 쓴소리를 퍼부울 뿐, 아무도 히메카와의 실책을 문제삼지 않는다. 히메카와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어리둥절하다.
* 오오사도 감독도 재등판하는 히메카와에게 조언을 한다. 원래 핀치 서버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적어도 츠바키하라에겐 핀치 서버가 실패해도 탓할 녀석이 없다. 고작 1점 잃었을 뿐이니 되찾아오면 그만.
히메카와는 조금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코트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오사도 감독 자신은 터무니없는 조언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멋진 장면을 따내봐라"니, 그런 큰 무대에서, 이런 긴박한 상황에 투입돼서 실패한다면 그걸 용서하지 않을 사람은 팀원이 아니다.
- MC메타 . . . . 11회 일치
2013년 6월 MC 메타는 [[SHOW ME THE MONEY 2]]에 메타크루의 수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서 시즌 1에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 1에 나왔던 래퍼들이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일단 ~~이현도와 비교되면서~~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나 심사평에 대한 반응은 좋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라이브에서 박자를 약간씩 저는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2집 이후 곡들중엔 목에 힘주고 숨쉴 틈도 없이 몇마디를 불러야 하는 곡들이 좀 있어서 그런 듯 하다(특히, 2집 최고의 인기곡이던 [[영순위]]가 그렇다). 힘빼고 부르는 곡들은 굉장히 라이브를 잘한다.
가리온의 앨범이 워낙 긴 주기로 발매되는데--1집 7년, 2집 6년--, 1집 전까지 피처링 참여가 드물었던 나찰에 비해 MC 메타의 경우 여러 피처링 작업으로 입지를 다진 면이 있다. 때문에 2000년대 중반에 MC 메타의 피처링 트랙들을 모은 앨범이 그 당시의 한량사에서 추진된 적이 있으나, 각 소속사에서의 판권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실제 발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실제 한국힙합씬에서 MC메타가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타이거 JK]]는 가장 존경하는 래퍼로 mc메타를 꼽고 있으며, [[허클베리피]]는 mc메타의 프리스타일 영상을 보고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더 콰이엇]]역시 엄청난 MC 메타의 추종자(?)로, 그가 속해 있던 레이블 소울컴퍼니의 멤버들 역시 메타를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
2016년 11월 17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박근혜정권을 비판하는 벙개곡을 냈다.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7340&m=view&s=news|MC 메타 - 퇴진의 영순위와 도둑놈패]][* 영순위와 '불한당가' mc 메타 파트의 비트를 썼다.]
* '''청와대에 입성했다.''' 8월 20일에 실시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음악 관련 불공정 사항들을 고쳐달라고 말하였다. ’문재인 시계’는 못 받았다고 한다. [[http://m.ulsan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84820|#]]
== 실력 및 가사 ==
실력은 공식 데뷔로는 14년차 블렉스시절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동안 랩을 하고 있지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준급 스토리텔링과 시적인 가사, 특유의 한국어 라임 구성, [[붐뱁]] 비트, 재지(Jazzy)한 비트, [[트랩]] 비트 등에서도 랩을 할 수 있는 넓은 비트 스펙트럼. 플로우는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엇박을 잘 타는 것도 아니지만 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포스가 그 모든 걸 덮는다. 2018년 현재 48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가리온 2집의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에서 아직 본인의 랩 실력이 꺾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1세대 래퍼들이 현재 랩을 안 하거나 퇴물 취급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 마스터플랜 멤버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랩 작업물을 내는 건 메타와 나찰 정도 밖에 없다.--더럽게 안내지만--]
프리스타일에서도 일가견이 있다. [[허클베리피]]가 티비에서 MC 메타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래퍼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도 한다. [* 여담으로 [[마이크 스웨거]]에서 한 헉피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올티]]가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 마스터플랜 클럽 시절 당시, 예정공연이 전부 끝나고 MC 메타의 프리스타일 타임이 관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2014년 총 세 편의 [[싸이퍼]]를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하였다.--[[치타]] 학살-- 그리고 프리스타일을 할 때마다 '연결고리'를 많이 외치기로 유명하다. [[https://youtu.be/r4h1cHTOCJI|증거자료]] 일리네어레코즈에서 본인이 피쳐링한 '연결고리'라는 곡의 유래도 엄밀히 따지면 저 멘트이다.
- 궁가 . . . . 11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일부인 궁실(宮室), 그리고 왕실에서 [[분가]]하여 독립한 가문을 통틀어서 일컷는다. 대원군(大元君), 왕자군(王子君), 그리고 공주(公主), 옹주(翁主)가 사는 집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미야케(宮家)'라 하여, 역시 [[천황가]]의 분가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친왕(親王)이나 이에 준하는 직위를 가진 황실 인물의 가문이 이에 해당하며 주로 왕부(王府)라 하였다.
궁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왕실과의 친밀도에 의하여 [[토지]]와 [[노비]] 등 상당한 재산을 하사받아 보유하였다. 또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 때문에 정치적, 법률적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권계급이었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분쟁에 휘말려서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왕실과 연결이 가까운 시기에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세대수가 지나면서 왕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점차 낙향하고 자산이 분산되면서 지방의 평범한 서민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왕실과 연결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문은 나름대로 사소한 특전은 누릴 수 있었으나, 생활상은 서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강화종실]] :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가문이 [[강화도]]로 이주하여 생겨난 분가. 왕실의 인척인 궁가였음에도, [[역적]]의 자손으로 여겨져서 가난하고 한미한 집안으로 전락했으나, 이 가문에서 [[조선 철종]]이 배출되었다.
- 김성주(축구선수) . . . . 11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중학교]] - [[동래고등학교]] - [[숭실대학교]](중퇴) ||
[[포항시]]에서 축구를 시작해 [[포항제철중학교]]까지 진학했지만 [[포항제철고등학교]]로는 진학하지 못했고, 대신 [[동래고등학교]]를 거쳐서 [[숭실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리고 숭실대학교 재학중이던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까지 발탁되었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다.
[[숭실대학교]] 3학년 때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을 하지만 여기서 기회를 얻지 못하며 올림픽 대표팀과도 멀어졌다. 이후 [[J2리그]] 카탈레 도야마로 임대 이후 이적까지 하면서 60경기를 뛰었으나 팀은 [[J3리그]]로 강등되었고, 이후 국내 복귀를 추진하였다.
연장 24분에 라이언 존슨과 교체되며 나갔다. 팀은 1:1 무승부를 거두고 승부차기에서 5:6으로 석패, 16강전 진출에 실패했다.
7월 1일 [[대구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후반 종료직전 조나탄에게 실점하며 0:1 패배를 당했다. 이번 패배로 원정 연승기록은 7연승에서 끝나게 되었다. 9승 4무 4패, 리그 3위로 한계단 하락.
7월 4일 [[강원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전반 15분만에 헤난에게 2실점한 후 [[조원희]]가 1골을 따라붙었으나 경기 종료직전 벨루소에게 쐐기골을 실점하며 1:3으로 패하여 창단이후 첫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9승 4무 5패, 리그 3위 유지.
7월 12일 [[경남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전반 초반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바로 동점골을 실점한 이후 양팀 키퍼들의 동반 선방쇼로 서로 수많은 찬스들을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영광(축구선수)|김영광]]이 MOM 선정. 10승 5무 5패, 리그 3위 유지.
2016년 [[상주 상무]]에 입대하여 11경기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21경기 1도움을 기록하였고, 9월에 전역하여 [[서울 이랜드 FC]]로 복귀하여 5경기를 뛰었다. [[K리그]] 데뷔를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했기 때문에 실력에 의문을 갖는 팬들이 많았지만, 2년 연속으로 [[상주 상무]]의 클래식 잔류를 도왔다는 점에서 클래식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11회 일치
*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 사실을 예측하고 카운터를 노린다. 밀리오는 미도리야가 기척을 감지하기도 전에 반격을 준비하는 걸 보고 감이 좋은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측"한 결과임을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정도로 밀리오에게 카운터를 먹일 수는 없었다. 밀리오는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을 통과하더니 핀 포인트로 미도리야의 눈을 찌른다. 미도리야가 자세를 무너뜨리자 그는 명치를 쳐서 제압, 사실 대부분 카운터를 노리는 적들은 그런 방식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카운터에 대응한 역 카운터.
밀리오의 개성은 사실 엄청난 패널티가 있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개성을 발동하는 중에는 모든 감각이 차단된다. 우선 공기도 그의 몸을 그저 통과하므로 "호흡이 불가능"하다는 엄청난 패널티가 생기고, 빛이 망막을 그냥 통과해서 시야도 차단된다. 물론 소리나 냄새도 마찬가지.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로 허공을 허우적대며, 그저 "추락"할 뿐인 감각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말로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이 능력으로 사물을 통과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가령 벽을 통과한다고 하면 한쪽 발을 제외한 전신에 개성을 발동해서 벽을 통과하고, 반대쪽으로 빠져나간 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개성을 유지하면서 마저 빠져나온다. 세세한 컨트롤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엔 매우 까다롭다. [[카미나리 덴키]]는 자신도 실전에선 자꾸 실수를 한다고 공감하고 [[미네타 미노루]]는 아무 것도 못 느끼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얘기지만, 대련을 거치고 나서 들어보니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미도리야는 그가 알려준 교훈을 무겁게 생각한다. 실전에서 응용하게 어려운 디메리트가 있더라도 "갖고 있는 힘을 살린다"는 원칙. 그리고 그걸 경험과 예측으로 실제로 바꾼다. 미도리야는 설명을 마치고 떠나는 밀리오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강한 사람이 톱을 따는게 아니라 "노력하는 자"가 톱을 딴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 밀리오가 "서"라고 불렀던 인물은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용의자"의 정보를 물어온다. 그 용의자란 신흥 빌런 조직의 두목 [[오버홀]]. 그가 [[빌런 연합]]과 접촉한다는 정보다.
* 그 정보대로 오버홀은 빌런연합의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와 대면하고 있다. 그를 소개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얘기해 보니 의외로 좋은 녀석"이라며 오버홀을 추천한다. 사실 시라가키를 만나게 해달라고 자청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11회 일치
*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의 움직임을 본따고 기물을 던져 [[시야]]를 방해해보지만 결국 시험에 실패한다.
* 나이트아이는 여전히 그가 실패하고 웅크려앉은 모습이 보인다고 도발한다. 미도리야는 초초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나이트아이에겐 그것도 감정대상. 위에서는 인간은 쉽게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되며 알고있는 자는 언제나 비전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미 말해줬던 이 같은 마음가짐을 지금 실현하지 못하는 거냐면서, 나이트아이는 볼 수록 그가 원 포 올을 계승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빈정거린다.
* 이번엔 미도리야가 사무실의 집기를 마구잡이로 집어던진다. 이런 공격을 맞추려는 의도는 아니다. 만약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대상의 앞으로 행동"을 보는 거라면, 무작위로 날아드는 잡동사니 전부를 예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 이미 3분이 지나버렸다고 선언하는 나이트아이. 시험은 실패다. 그는 미도리야가 말한 "제자"라는 표현이 웃기지도 않는다고 매도한다. 게다가 마지막에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 것도 비웃는다. 고작 작전 하나가 통하지 않았다고 넋을 놔버린 거냐고. 하지만 미도리야가 벽에 부딪힌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이트아이의 예지대로 미도리야는 시험에 실패하고 웅크려 앉았다. 그러나 미도리야가 자신의 도발에 격분한 것만이 아니라 냉정하게 상황과 대책을 고민하고 있었던걸 눈치챈다. 나이트아이는 그 점에 왠지 조금 웃고 만다.
* [[토오가타 밀리오]]와 [[버블걸]]이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에게 미도리야의 채용결정을 통보한다. 시험에 실패했기 때문에 완전히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도리야는 난데없는 전개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실패하면 채용하지 않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의 이런 감각에 따라가질 못하지만 밀리오는 어렴풋이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무실에 들어올 때 그가 웃고 있는걸 봤기 때문이다. 나이트아이는 미도리야에게 인감과 서류를 넘기며 말한다.
원 포 올은 사용자의 의지에 의해서 계승되는 힘. 말하자면 이건 현실을 체감하고 힘을 양도하라는, 포기시키기 위한 채용이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도장을 찍는다.
- 문문 . . . . 11회 일치
||<:><#ace5ee> '''SNS''' ||<rowbgcolor=#ffffff><(> --[[https://www.facebook.com/moonmoon0|페이스북]]-- --[[https://www.instagram.com/mooon.moooon/|인스타그램]]--[* 화장실 몰카 사건이 밝혀진 이후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모든 SNS 계정을 폐쇄하였다.'''] ||
'''한때 '비행운', 'Mom', '결혼' 등 여러 명곡과 매력적인 음색으로 촉망 받으며 미래가 기대되던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였으나 [[디스패치|한 언론의 기사]]에 의해 과거 성범죄 사실이 드러나며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 인물.'''
음악 활동 이전엔 본래 [[직업군인]]이었으며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하다가, 20대 중반에 음악에 대한 꿈 때문에 전역을 하고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에 '저수지의 딸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계에 진입했으나 밴드 활동이 잘 되지 않자 잠정 해체되고, 그 후 2016년 7월에 싱글 앨범 [Moon, Moon]으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 '''물감'''과, [[비행운(노래)|비행운]] 등이 있다.
'비행운'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을 하며 인기를 얻게 되면서 2017년 12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하우스 오브 뮤직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화장실]] [[몰카]]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의 명성에 먹칠을 하면서 경력이 사실상 끝났으며 소속사인 하우스 오브 뮤직과도 계약 해지되었다.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절된 것은 아니고 한 소절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절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 [[화장실]] [[몰카]] 사건 ===
디스패치 취재 결과 지난 2016년 8월 몰카 촬영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확인되었다. 강남의 한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 되었으며, 혐의를 일부 인정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하우스오브뮤직과의 전속 계약 당시 이 사실을 숨기고 계약을 맺었으며, 소속사는 2018년 5월 24일 문문과의 전속 계약을 해지했음을 밝혔다. [[https://www.dispatch.co.kr/1314350|기사]]
기존의 팬들조차 대다수가 ‘실망이다,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문문의 팬카페 또한 폐쇄된 상황이다.
사실상의 은퇴곡 이름이 에덴인데 얼마 뒤 몰카 사건이 터지면서 음악인생이 정말 에덴동산으로 갔다.
- 박경석(1933) . . . . 11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이후, 전장에서 더 많은 위관장교 자원을 필요로 하자 정부는 이들을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12.12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동 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고 갑종 전우회 대부였던 [[하소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두환]]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오자복]] 예비역 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예비역 대장, [[박정희]] 정부에서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 예비역 중령 등이 육군 종합학교 출신이다.]에 입교시켜 단기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켰다. 박경석 소위도 이 때 임관된 초임장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생도 2기 출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새로 신설된 제9사단[* 사단장 [[장도영]],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얼굴마담, 핫바지 노릇했던 그 때 그 사람-- 사단 참모장은 [[박정희]] --5.16 군사정변에서 대통령에 오른 그 분--]의 소대장으로 갔다. 그 1명은 당시 권력자였던,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였다. 원창희 소위는 임관과 동시 후방의 육군본부로 배속받았다.[* [[원용덕]] 장군도 최종 보직이 헌병 총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아들 [[원창희]] 장군도 헌병의 꽃 헌병감 보직을 마지막으로 육군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그후 박경석 소위는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한 번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사실 박경석 소위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내에서는 박경석 소위를 비롯한 많은 한국군 장교포로들을 해방군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고, 포로 생활도 도망가든 말든 자유로웠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은 포로 시절을 회고하며, 포로로 잡힌 북한군 사단의 사단장이 적이었지만, 그의 리더쉽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함께 굶는 등의 리더쉽에 영향을 받아 뒷날 한국군내 정치군인이 판을 칠때도 그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군인으로써 군인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블랙 클로버/70화 . . . . 11회 일치
* 바네사의 실 마법과 핀랄의 공간마법, 그리고 아스타의 반마법의 콤비네이션으로 절망의 베토를 수세로 몰아간다.
* 노엘 실버는 바네사와 핀랄이 대단한 실력자임을 세삼 깨닫는다.
* 그리고 바네사와 핀랄이 기동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공간마법은 그렇다치고 바네사의 실마법이 특히 성가시다.
* 그녀의 실마법이 공간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어디에 있어도 간섭한다.
* 베토를 직접 속박하거나 공격하기는 역부족이지만 실에서 마력이 거의 감지되지 않고, 그 실로 아스타를 보조해서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다.
* 고향을 등지고 검은 폭우에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고, 운명의 실은 자신의 손으로 끌어 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 핀랄이 지금껏 노는데 바쁘고 도망만 쳐왔던 것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베토는 굉장한 집중력이나 평하면서도 어차피 한계에 가깝다며, 누구하나만 실수해도 끝이고 곧 마력도 바닥날 텐데 언제까지 할 수 있겠냐고 도발한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1회 일치
* 사이토는 의외로 미마사카를 높이 평가하지만 자신은 "소생"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꼬집으나, 동료들은 모두 "실제론 쓴다"고 입을 모아 당황한다.
* 그런 기질 탓인지 미마사카가 자신의 실력을 트레이스해도 정작 애도 "이사나키리"를 못 쓴다면 공정한 승부가 아니라며 자신의 애도를 넘겨주기까지 한다.
* 한 번 발동이 걸리자 미마사카의 트레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잠시 손이 쉬는 동안에도 "소생 사이토 소메이, 자신이 믿는 요리도를 걷는자"라며 사이토의 입버릇을 흉내낸다. 의외로 사이토는 미마사카의 존재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카피라곤 하지만, 찰나의 관찰로 자신의 실력을 재현할 수 있는 미마사카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자신은 스스로를 "소생"이라고 칭하지 않는데, 미마사카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 [[카와시마 우라라]]는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자 미마사카를 "스토커"라 성토하고 "1대1이면 절대 십걸이 질리가 없다"고 현실도피를 해댄다. 1라운드에서 [[키노쿠니 네네]]가 소마에게 졌던걸 잊었나 보다.
정작 사이토는 미마사카를 "정말이지 재미있는 남자"로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애도 "이사나키리"을 뽑아 남은 참치 해체를 단숨에 마친다. 그러고는 칼을 잘 닦아낸 뒤에, 놀랍게도 미마사카에게 건네준다. 이걸로 남은 해체를 마치라는 소리였다. [[타쿠미 알디니]]는 처음에는 무슨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대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 미마사카가 설령 같은 수준의 기술을 구사해도 도구에서 수준 차이가 난다면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사도"에 어긋난다는게 사이토의 생각이었다. 린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메기시마도 "귀찮은 버릇"이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사이토는 진지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온갖 만사에 무사도를 들이대며 별 것도 아닌데서 무사도를 발견하고 집착하는 성미.
미마사카의 비꼬기를 재하더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얕잡아 보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반역자팀에선 잘난척이라고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막상 권유를 받은 미마사카는 망설이지 않고 이사나키리를 받아든다.
* 둘의 조리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붉은 살을 간장, 미림, 레드와인을 섞은 양념에 재우고 볼살 부분은 한쪽 면만 버터향을 입혀가며 굽는다. 사이토는 부위마다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걸 따라갔다. 이번엔 사이토가 짚을 준비한다. 처음엔 장식에 쓰려는 줄 알았으나, 그 정체는 볏짚구이. 참치살을 짚불에 올려 호쾌하게 구웠다.
*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솜씨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연대식극에 멤버로 지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월영 열차 식당칸. 미마사카는 거기서 연대식극에 대비한 "십걸 전원 트레이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던 그도 무릎에 힘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연대식극에서 누구와 상대할지 모르는 만큼 십걸 전원 트레이스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요리사에 대해 동시에 트레이스를 진행하는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연습단계에서 이정도라면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 훈련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열차를 통제하는 진행요원이 소등시간을 한참 지났는데도 조리실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안에 있는 사람을 서둘러 객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문을 여는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십걸 전원 분의 코스프레를 시도하고 있는 미마사카가. 린도나 츠카사, [[에이잔 에츠야]]와 키노쿠니, [[아카네가쿠보 모모]] 조차 재현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기가죽은 진행요원은 차마 아무 말도 못한 채 동상같이 굳었다.
- 안기효 . . . . 11회 일치
또한 [[이영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식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남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절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상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투신 [[박성준]]에게 천적 관계[* 사실 [[박성준]]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프로토스]]는 '''아무도 없다.''' [[박성준]]은 '''대 [[프로토스]]전 5전 3선승제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걸 넘어서, 5전제를 치를 때 2패째를 허용한 적도 없다.'''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났다고 평가 받던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도 당시에 잘나갔던 [[도재욱]]을 상대로 3:0 떡실신을 먹였을 정도. 전무후무한 저그전 최강이라던 [[김택용]]에게도 3대3의 상대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준을 상대로 전적이 앞서는 프로토스는 비공식 포함 7승6패의 [[송병구]] '''뿐.''' 이도 호각세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공식 전적만 볼 때는 오히려 2승 5패로 송병구가 [[김준영]]만큼 고배를 마신 저그가 박성준이다. 안기효가 유난히 자주 만났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즉, '''그냥 재수없는 거다.'''(...)]이며, 두 번의 16강, 두 번의 8강, 그리고 [[WCG]] 대표선발전에서 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유명한 미니맵 [[관광]]을 당한다. 실은 안기효가 첫 온겜 [[스타리그]] 데뷔전 당시 꺾었던 상대가 다름아닌 전대회 우승자였던 [[박성준]]이었다. 리버+캐논으로 인한 조이기 라인으로 체면이 팍 깎인 [[박성준]]이 그 후 안기효만 보면 잡아먹으려 든다는 이야기.(...) 아무튼 안기효의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 진출은 번번이 [[박성준]]에게 막혔다. 전략성을 감안하면 개인리그에서도 4강 한 번쯤은 노려볼 수 있는 선수였기에 매우 아쉬운 일.
사람들이 안기효가 엄청 못했던선수로 알고있는사람이 꽤 있는데 그건 2008년 이후 실력이 급 막장화된 탓이 크지 그 전에 팬택시절에는 이윤열 다음으로 믿을만한 카드에다 위메이드 창단 초창기시절엔 [[에결]]에도 자주 나가서 꽤 많이 이겼다. 그리고 안기효만큼 스타리그 16강 8강 많이 찍어본 프로토스선수는 명예의전당에 들어간 프로토스 선수들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당시 경기력이 너무 좋지 않다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경험많은 게이머이고 전략 짜는 능력이 탁월하여 공군의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찹교를 지켜보자. 사실상 [[박대경]] 감독 및 팀원들은 운영 및 빌드를 위해서 플레잉코치를 뽑은 것 같다... 라고 할 수 있을 듯. 선수로서는 최근 트렌드를 볼때 경기가 굉장히 복잡한 데다가 다양한 유닛들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손 느리고 컨트롤이 별로 좋지 않은 안기효가 트렌드를 따라가기에는 힘들 듯 하다.
2014년 9월쯤부터 아프리카 방송을 시작했다. 토스계의 지영훈의 포지션이 되었다. 초창기 실력은 처참한 수준이였으며 [[하늘(1994)|하늘]]의 저그에게도 지는 모습을 보인다. [[전태규]]와 [[김봉준]]의 라이벌 포지션이며 회사도 그만두고 방송에 전념하고있다.
2014년 10월에는 아프리카 스타판에 불을 지폈다. [[박지호]]와의 스폰 매치중 박지호의 방플을 의심하며 그를 세차게 디스했다. ~~현재는 화해~~ 그런 어그로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뒤 주로 WWE 레슬러를 흉내내는 리액션과 심심하면 블랙리스트를 거는 컨텐츠로 별풍을 팔고있다. 방송중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는데 꽤 잘하는 편이다. 임창정스러운 감성에 연규성과 비슷한 창법, 목소리를 구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SbUITb5-M|슬픈 혼잣말]] [[https://www.youtube.com/watch?v=o049dPIyACM|또 다시 사랑]] 등등 임창정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RzK0KUku0|내가 저지른 사랑]]. 노래를 부를 땐 방금 실연을 당한듯한 리얼한 표정을 보여주며 임창정 특유의 창법을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한다. 철구같은 억지 뇌성이 아니라[* 말이 좋아 뇌성이지 완전 목을 긁어내는 발성이라 성대가 남아나질 않는다. 철구는 성대 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프로 가수들도 샤우팅을 자제하는 이유가 구사하기도 어렵지만 목을 긁어내지 않으면서 발성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음과 정확한 샤우팅을 구사했다. 다만 콧소리가 상당히 들어간걸로 보아 발성을 따로 배우진 않은듯 하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면성이라는 새로운 창법을 창조해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현재 배틀그라운드도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1부 2부로 나누어 방송하고 있으며 석궁만으로 2등을 하고 불과 4일차 만에 1등을 하는 기염!을 토하며 싸움을 회피하는 메이웨더 아웃복싱같은 게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무분별한 전투 배그보다 실제로 저 상황에 떨어져 있을때 나올법한 두려움과 신중함(실제로 온갖 화기로 중무장한 생면부지의 아흔몇명의 사람들과 외딴섬에 떨어져 한사람만 생존 가능하다고 할때 생존하기 위해 가질 당연한 소심함)으로 숨을 죽이는 멘트와 함께 시청자들의 큰 호응과 공감을 얻는 듯 보인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1회 일치
|||||||||| [[암살교실/에피소드]] ||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암살교실]] 번외편 3화. '''정체의 시간'''
* 사실 암살자들은 원래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어떤 사정에 의해 이 "업계"로 들어오고 만 것이다.
* 사실 암살자들은 살생님이 사신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주시하던 실력자들이었다.
* 호타루도 사실 암살자일 가능성이 높다.
[[분류:암살교실]] [[분류:암살교실/에피소드]]
- 애로우 . . . . 11회 일치
시즌 내내 올리버의 과거편과 현대편을 오가면서 활약하는데, 리안 유에서 있었다더니 사실 거기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홍콩에 납치되어 오거나, 심지어 말도 없이 집에 왔다가거나 하는 파란만장한 과거사 라이프를 보내게 된다.
무기는 [[활]]과 [[화살]]이며 화살의 경우 통상의 화살 외에도 코믹스에서만큼은 아니나 트릭 화살을 쓴다. 궁술 외에도 전투실력이 뛰어나다.
올리버의 여동생. 올리버와 아버지가 실종된 뒤, 미성년이면서도 음주와 마약에 빠져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으며 올리버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사고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나이트 클럽 경영을 시작하고, 점차 철들고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사실 올리버와는 씨다른 남매로서 그 아버지는 무려 말콤 멀린(…). 3시즌에서 말콤에게 단련을 받게 되며, 올리버의 정체를 알게 되고, 팀에 들어오게 된다.
티아 퀸의 남자친구. 이러니 저러니 해서 올리버와 팀을 이루게 된다. 과묵한 편이며,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다. 티아의 잠자리 반응을 보면 정력도 출중한듯(…). 올리버와 같은 디자인에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악당들에게 플래시와 혼동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3시즌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 올리버를 대신해서 자신이 애로우라고 하면서 자수, 구치소에 갇혔다가 디글이 동료 인맥을 이용해서 죽음을 가장하여 빼낸다. 이로서 '애로우'는 사망한 것이 되고, 다음 시즌부터 올리버는 그린 애로우로서 활동하게 된다.
랜스 형사의 딸. 올리버의 여자친구. …인데 올리버가 여동생 사라와 바람피우고 또 물에 빠져 실종당하는 파란만장한 과거를 겪었다. 본래 올리버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올리버의 배신과 사라의 죽음 때문에 올리버에 대한 감정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로스쿨을 나오고 [[검사]]로서 활동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로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등 문제를 겪기도 한다.
로럴의 여동생. 올리버와 함께 요트 타고 여행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참고로 올리버는 실종되기 직전까지 로럴과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죽은게 아니었고, 왠 악당들에게 잡혀서 리안 유에서 굴려먹히다가 또 빠져 죽은 걸로 나왔다가, 또 사실은 그때 죽은게 아니었고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구출해서 어쌔신이 되어서 돌아오는 등. 파란만장하게 죽었다 되살아나는 라이프를 보내고 있다. 리그 오브 어쌔신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레즈비언이 됐다.
2시즌 최종보스. 과거 리안유에서 올리버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호주군 특수부대 대원, 그러나 리안유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올리버를 증오하게 되었으며, 구일본군이 개발한 슈퍼솔저 제조약물(…) '미라쿠루'를 맞아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미라쿠루를 남용하여 대량의 용병들을 만들어 스타 시티를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그린 애로우]] 주연 드라마이나 사실 내용 자체는 그린 애로우 스킨을 쓴 [[배트맨]]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배트맨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가 많이 나오기 때문. 당장 라스 알 굴이 등장했다는 점 부터가... 다만 초기의 애로우는 [[퍼니셔]]적인 느낌도 있었다.
- 원피스/854화 . . . . 11회 일치
* 성안의 탈주자들 문제를 의논하는 간부들. [[샬롯 오페라]]는 [[몽키 D. 루피]]와 나미를 고문하다 실수로 태워죽였다고 거짓 보고한다.
* 쵸파 일행과 합류한 나미와 징베는 함께 미러월드로 진입한다. [[샬롯 브륄레]]는 징베가 이들과 함께 있는걸 보고 배신했다고 직감한다. 그녀는 징베가 빅맘 [[샬롯 링링]]이 제안한 "룰렛"에 겁먹고 내빼지 않았냐고 성토한다. 징베는 빅맘이 어인섬을 지켜준 만큼 인의를 다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룰렛에는 "죽음과 악의"의 냄새 밖에 나지 않아 거부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잘한 선택이라며 과거 그 룰렛을 돌렸던 자신의 파트너가 목숨을 일은 사실을 전해준다. 브륄레는 그게 자랑스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누구든 빅맘을 떠나가려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신나게 떠들다 얻어맞는다.
*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상디가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다. 체스병사가 방 안을 확인해보는데 누군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다. 병사는 별 의심없이 "상디가 방에서 자고 있다"고 보고하는데, 사실 그는 상디가 아니라 방을 감시하던 감시병이었다.
회의실에서는 침입자들에 대해서 최종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페콤즈]]의 인도로 밀집모자 일당이 토트랜드에 도착한 시점부터 브룩이 잡히고 페드로가 [[타마고 남작]] 앞에서 자폭하기까지. 브룩이 빅맘에게 잡힌거 말고는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포돼 있다. 쵸파와 캐럿은 브륄레가 잡은 걸로 되어 있는데, 이후에 역으로 당해서 잡혀 있는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타마고 남작은 의외로 무사히 회의에 참석 중. "백작"으로 파워업해서 완전히 닭의 모습이 되었다. 페드로가 "자폭"했다고 확인해주지만, 사실 그가 도망친 것은 그도 알지 못했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남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식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반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태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 레이쥬는 아직도 의무실에 있는데 루피가 뛰쳐나간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루피는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약속"했던 장소로 가고 있다.
* 복도 어딘가에선 상디가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는 자신이 푸딩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던 도시락이 실수로 "평소대로", 그것도 "루피에게 주기 위한" 레시피로 만들어버린걸 깨닫는다. 하지만 상디는 스스로 "뭐하고 있는 거냐"고 자문하며 그런 미련들을 잊기 위해서 발버둥친다.
- 이중환(법조인) . . . . 11회 일치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 프로젝트=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프로젝트)]
[Include(틀: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탄핵이 결국 인용되어 대통령이 파면된 후에 나름 이중환 변호사의 고충이 상당히 컸다는 것이 알려졌다. 일단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내내 의뢰인 박근혜와 거의 만나지 못했으며 의뢰인의 입장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던 탓에 변론의 방향 설정에 어려움이 매우 컸다고 한다. 대리인단이 헌법 재판관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증인 신문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단지 대리인단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중요한 사건을 맡았는데도 수임료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 정도 사건의 경우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03/story_n_15772380.html|수임료가 2억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기사에서 보듯이 대리인단은 사실상 무료 변론을 했다.
* 2009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예금보험공사 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 본부장 파견)
||<tablewidth=100%><-6><#3F51B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white {{{+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white {{{+1 관련 인물 및 단체}}}}}} ||
||<#5c6bc0><-2> [[최순실|{{{#white __최순실__}}}]] {{{#white 측근 / 변호인}}} ||<-3> ^^故^^[[최태민]] · ^^故^^[[임선이]] · [[최순득]] · __[[정윤회]]__ · __[[정유라]]__ · __[[장시호]]__ [br] ''[[최재석]]'' · ^^故^^''[[조순제]]'' · __''[[고영태]]''__ · __[[차은택]]__ · [[윤영식]] / [[이경재(법조인)|이경재]] ||
||<#ddd><-2>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 · [[삼성그룹/경영승계 문제|삼성그룹]] · 승마협회 관련 || __[[문형표]]__ · [[홍완선]][br]__[[이재용]]__ · [[김재열]][br][[최지성]] · [[장충기]] · [[박상진(기업인)|박상진]] ||<#ddd>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료 관련 논란|의료 논란]] || __[[김영재]]__ · [[김상만(의사)|김상만]] · [[주사 아줌마]][br] [[이선우(군인)|이선우]] · [[조여옥]] · [[신보라(군인)|신보라]] · [[이슬비(군인)|이슬비]][br][[이임순]] · [[서창석]] · [[박채윤]] ||
||<#5c6bc0><-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특검|{{{#white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3> [[박영수(법조인)|박영수]] · [[이규철]] · [[박충근]] · [[이용복(법조인)|이용복]] · [[양재식]] · [[윤석열]] · [[어방용]] ||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 [[분류:1959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정운용 . . . . 11회 일치
정운용은 대구 부호이자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인 [[정재학]]의 장손으로 태어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ref> 그의 모친 김인아는 정운용이 중학생이었던 1918년 타계했고 부친인 정응원마저 1933년 서거한 뒤 정재학 조부 밑에서 자랐다. 정재학은 3남인 [[정종원]]과 장손인 정운용을 각별히 여겨 니혼대학 법학과, 메이지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보낸 뒤 3남에게는 관료로 활동하도록 했고 맏손자에게는 은행경영 노하우를 전수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11</ref>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상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영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식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상공은행을 운영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대구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남)과 정운용(장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씨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상합동은행]] -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씨 가문은 [[민덕기]]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갔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했다. 그러나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ref name="ReferenceA"/>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첫 아내와 사별한 뒤 김분조와 재혼했다.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7면</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도피하다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상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상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 정재학 (1856년) . . . . 11회 일치
'''정재학''' (鄭在學, 1858~1940)은 [[대한민국]] [[금융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은행산업의 대부다 .<ref name="ReferenceA">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에서는 [[은행]] 경영진들이 [[관료]]나 [[왕실]] 지방 토호 가운데에서 배출됐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주먹으로 일군 자금으로 55세 무렵 [[은행장]]에 오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ref name="ReferenceB">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667~670</ref>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로 꼽히는 [[고승제]] 박사는 "한일합방 이후 수많은 민족자본은행이 설립됐지만 정재학처럼 30년 가까이 시종 은행경영의 실권을 장악한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는 [[대구은행]]의 자본금을 7년 만에 4배나 증액하는 등 경영자로서의 총력을 다 바쳤다"고 밝혔다. 아울러 "다른 부호들이 한 우물을 파지 않고 다방면으로 사업을 넓혀가는 데 비해 정재학은 오로지 [[대구은행]]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4~215</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 name="ReferenceB"/>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상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ref>경향신문 1966년 9월 28일 3면</ref><ref>경향신문 1967년 8월 17일 8면</ref>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10일 7면</ref>
그는 일본인들의 경영권찬탈 시도가 이어지자 경찰 출신의 일본인 지배인을 선임하는 등 경영권 방어전략으로 맞섰다. 또한 총독부와 일제강점기 중앙 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자신을 행장 자리에서 줄기차게 몰아내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주주총회에서 한국인 주주들이 정재학 행장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경제인록 = 금융계 일제하의 금융인</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7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7편</ref> 31년간 민간은행장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 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치하에 설립된 수많은 [[민족계은행]]이 있었지만 일제의 강제합병 과정에서 사라져갔지만 정재학 행장은 생의 마감 직전까지 저항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창조사, 1970) P.674 "조흥은행 되기까지"</ref>
== 황실외척과 대결 ==
앞서 두 가문은 1930년대 말 [[경상합동은행]]의 경영권 공방전에서 극한 대립상황에 놓였었다.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찬탈시도과정에서 정재학 가문을 돕기로 했던 민영휘 가문이 돌연 오구라에 지분을 넘김으로써 정재학가문에 크나큰 상처를 안겼다.<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 오구라는 다른 여러 주주들의 주식까지 매수 한 뒤, 경상합동은행 주식 4500주 가운데 39.4%를 차지하면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
[[조흥은행]] 100년사에서 [[대구은행]], [[경상합동은행]], [[한성은행]], [[조흥은행]] 등으로 명칭이 변경될 때에도 [[정재학]], [[정종원]],[[정운용]]이라는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대구를 대표적인 근대적 자본가였다. 특히, 가난한 상민의 아들에서 시중 은행의 최고경영자가 된 정재학은 말 그대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게다가 조흥은행에 아들과 손자가 행장을 역임했다.<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
대구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서광운, <<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
정재학은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었다. 1922년 경북 고아구제회를 설립, 운영자금을 부담했다. 고아수가 260명으로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정재학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거액의 재산보다 '어머니 없는 손자'들을 가진 것이 기쁘지 짝이 없는 일"이라고 주변에 널리 알렸다. 그러면서 고아들 전원에게 자신의 정씨 성을 붙여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0</ref> 또한 대구지역에서는 정재학에 대해 세 가지 재주를 겸비한 기인이란 평가가 돌았다고 한다. 우선 돈 버는 재주, 다음으로 아이 낳는 재주,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호식 등이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22</ref>
- 정칠성 . . . . 11회 일치
그러나 기량이 뛰어나 [[기녀]]로서는 특별히 [[일본]]으로 유학, [[일본]]의 [[동경여자기예학교]](東京女子技藝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춤과 무용 수업을 빠지다가 선생에게 혼나기가 일수였다 한다. 시를 잘 지었고,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그림도 잘 그렸으며, [[바둑]]과 [[장기]]를 잘 두었다고 한다. 기예로는 남중잡가, 가야금산조, 병창, 입창, 좌창, 정재 12종무 등의 실력에도 탁월하였다.
[[1922년]] [[부산]]에서 배편으로 [[일본]]에 다시 건너가, [[동경]]의 [[도쿄영어강습소]]에서 영어를 수강하였다. 그러나 비용 마련의 실패로 [[미국]] 유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중에서도 정칠성은 유독 원리 원칙에 충실했다. 그는 평소 이론을 떠난 개인적 경험담은 가급적 자제하며, 동지들에게는 [[사회]] 운동과 여성의 해방이 더 중요하므로 가정을 뛰쳐나오라고 권유하였다.<ref name="mungongs">[http://culturedic.daum.net/dictionary_content.asp?dirView=no&Dictionary_Id=10028184 정칠성]</ref> 그는 일찍부터 노동여성의 고통에 공감하며 계급해방을 당당히 외쳤지만 당대 사회가 지닌 제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조선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테니 성과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ref name="mungongs"/> 그는 여성이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여성이 해방되어야 하고, 여성이 해방되는 길은 결혼과 가족,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했다.
[[1927년]]에 조직된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정칠성은 '적연비판, 콜론타이의 성도덕에 대하여 (삼천리, 1929.9)에서 기자가 '콜론타이의 "연애와 성욕은 별문제"이며, 사회운동을 하느라 연애하기 힘든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성욕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의견을 물었을 때, 정칠성은 "현실을 잘 본 말이외다. 성욕과 연애는 당연히 갈라져야 하겠지요. 그러고 결혼의 자유, 이혼의 자유가 아주 완전하게 없는 곳에서는 그렇게밖에 더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ref name="seoji193">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3페이지</ref>
또한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의 해방과 [[붉은 사랑]]의 여주인공<ref name="seoji193"/> 왓시릿샤(바실리샤)의 해방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반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이라 대답한다.<ref name="seoji194">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4페이지</ref> 이렇게 당시 사회주의 조선 신여성들에게 콜론타이는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성적, 경제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ref name="seoji194"/>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수용, 조선에 소개시킨 여성운동가로는 정칠성 외에도 [[허정숙]], [[정종명]] 등이 있었다.
그녀에게 진정한 신여성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부인하는 강렬한 계급 의식을 가진 무산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은 계급 해방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ref name="propp"/> 남성과 사회로부터 여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여자의 자립심, 자립 의지, 그리고 경제적 독립이라 하였다.
정칠성은 여성의 자유를 넘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그는 [[입센]]의 소설에 나오는 [[노라]]보다는 [[콜론타이]]가 말하는 남성과 가정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을 높이 평가했다.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남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반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ref name="seoji194"/>'이라 평가 하였다.
- 진격의 거인/87화 . . . . 11회 일치
* 당국에 잡혀간 그리샤에겐 혹독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안당국은 그에게 올빼미의 정체를 캐지만 그는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걸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당국의 고문기술자들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끈질기게 심문을 반복한다. 이미 그리샤의 남은 손가락은 세 개 뿐이다. 그리샤가 아는건 전부 말했다고 애원하는데도 관리들은 또 하나 손가락을 자른다.
* 그때 고문실에 낯익은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그리샤의 여동생을 죽이는데 일조한 남자, "클루거"였다. 하지만 그리샤는 낯이 익다고 생각했을 뿐,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기억을 뒤져보는 사이 클루거는 관리들에게 상황을 보고받는다.
* 그의 동료, 처음으로 그리샤와 접촉했던 복권파인 그라이스가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끌려온다. 그리샤가 무심코 그를 부르자 그라이스는 곧 그리샤를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왜 지크가 자신들을 밀고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그리샤가 아무 말도 못하는게 더 화를 돋궜는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파냐고, 그리샤의 교육이 잘못됐던게 아니냐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리샤는 깐죽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는 놈이 아니었다며, 다이나와 복권파를 이런 놈에게 맡긴게 실수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가 얼 빠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절망을 부채질할 뿐인지 힘없이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며 엘디아는 끝이라고 내뱉는다.
* 일제히 거인으로 변한다. 인간의 자아는 남지 않은 이들은 본능에 따라 그라이스를 감지하고 잡아먹으려고 쫓아간다. 그리샤는 그라이스를 못 알아보는 거냐고 절규하지만 그들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글로스는 그리샤가 시끄러우니 얼른 거인화시키라고 서두른다. 하지만 클루거는 심문하고 싶은게 남아있다며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새로운 처형대상이 끌려온다. 그리샤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아내인 다이나 프리츠였다. 하지만 그는 다이나가 왕가의 핏줄이란 것을 실토했다. 프리츠 왕가의 혈통은 마레 측에서도 중요한 인물일 것이므로, 그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도 보통의 죄수로 취급됐다.
엘런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는데 아주 긴 꿈을 보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다. "기억"이다. 지하실에서 책을 읽고 여기에 오기까지 상황을 전부 떠올린다. 엘런은 역시 그 책 내용이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꿈은 아버지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거인. 어머니 카를라 예거를 잡아먹었던 바로 그 거인은...
* 아버지의 기억. 다이나가 변한 직후 글로스는 그리샤를 조롱한다. 다이나의 거인이 보통 거인들처럼 그라이스를 쫓아가 버리자 "사실은 저 남자에게 마음이 있었다"고 빈정거린다. 분노한 그리샤는 닥치라고 욕하며 15년 전 여동생을 죽인게 바로 너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혀를 찰 뿐 동요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마지막 죄수를 인계 받아 자신이 처리할 테니 부하들은 배로 돌아가라 지시한다. 부하들은 관련되는걸 꺼리며 그 지시에 따른다. 이미 글로스의 "취미생활"은 유명한 듯한데 지금도 글로스가 "취미생활"을 할 생각이라고 여긴다. 부하들도 그리샤의 폭로를 들었는데 "아무리 엘디아인이라도 어린 소녀까지 손을 대다니"라고 진저리를 치지만 특별히 다른 반응은 없다.
* 그리샤는 그가 하는 짓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이해했다. 하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글로스에게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묻자 어이없에도 "재밌으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단지 인간이 괴물에게 먹히는게 재미있어서 이런 "취미생활"을 즐긴다. 인간이 잔혹한걸 보고 싶어하는건 본성이고 평화란 좋은 거긴 하지만 "아쉬운 일"이다. 삶의 실감이 희박해지기 때문에.
글로스는 거인화 약물을 주사하며 계속 말한다. 본래 생물은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걸 실감하고 사는게 정상인데 평화로운 세상이 당연하다 느끼는 녀석들은 이상한 거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인간은 언젠간 죽고 자신은 그 날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항상 잔혹한 세계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 "취미생활"로. 그가 여동생을 개에게 던져준던 "교육"으로 그걸 본 아들들이 어엿하게 자랐다고 자평한다.
지크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부모를 버렸지만 결국 마레의 전사가 되어 마레 측에 이용되는 입장이 되었다. 단지 자신은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하다. 아이러니하지만 지크 본인이 "자신을 위험에 내몬다"고 느낀 건 사실이긴 하다. 아버지는 그를 스파이로 보내려고 했고 자신은 아버지를 밀고하는 걸로 갚아준 것이다. 그리샤 측의 서술이라 충격적인 배신으로 비춰지지만 고작 7살짜리를 조직의 스파이로 만들고 심지어 위험한 임무에 투입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샤도 충분히 막장스러운 부모다.
그라이스는 지난 화에선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공개되자 마자 죽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컷에선 꽤 멀리까지 달아난 걸로 보이지만 섬에는 더 많은 거인들이 있으니 살아서 벽까지 가는건 불가능할 걸로 보인다. 그라이스는 그리샤를 가담시키고 조직의 주도권을 넘겨준 당사자지만 마지막엔 그를 원망하고 매도한다. 다이나를 언급하는데 딱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또 "왜 이런 녀석에게"라고 중얼거리는데, 다이나가 그를 선택한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읽힌다.
- 창작:IDF . . . . 11회 일치
IDF는 수만명의 상비군 병력을 갖추고 있는 모병제 군대이다. IDF 모병에 응하는 데 특별한 국적 제한은 없으며, 비가맹국 출신이라도 IDF의 모병에 참가할 수 있으며, 실제로 상당수의 비가맹국 출신이 IDF에서 복무하고 있다. 다만 모병 사무소는 가맹국에만 설치되어 있다.
* 사무국 : IDF에서 자체적으로 고용된 사무 직원으로 구성된다. IDF의 운용 업무와 행정 실무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조직에서 '국방부'에 해당한다. 관료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사령부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군인으로 구성된다. 파견 주둔지에서 적대 세력에 대하여 침투, 암살, 파괴 공작 등을 담당한다. 대원들 가운데는 각국의 특수부대 출신이 많으며, 각국의 특수부대와 협력하여 다양한 특수작전훈련을 받으면서 특수작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창설 이후 다양한 실전 투입 경험이 있어 각국의 일류 특수부대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러 작전에 투입되어 IDF의 명성을 높였다.
경호훈련을 받은 경호요원들로 구성된다. 파견 주둔지에서 요인의 경호를 담당한다. 경호원이므로 다른 군사 부문과는 달리 사복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경호원으로서의 실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http://blog.naver.com/jjy0501/220463509531|L-ATV]] : 1,240대[* 현재까지도 손실분이 가장 많은 차량이고, 집계한 이후 무력화된 차량도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측정 불능]
*자체적인 인터넷 검열부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실체는 미확인
IDF 군의 전력은 상당히 미묘한 수준으로 '억제'되어 있다. 분명히 IDF는 훈련이 잘 된 군대이고 실전 경험이 풍부하지만, 정보자산이나 공군, 해군이 빈약하고 강대국 군대와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강대국의 협력이 없는 '독자적인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IDF는 원칙적으로 가맹국 간의 합의로 활동하는 국제기구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IDF의 이사국으로 활동하는 주요 강대국의 입김에 따라서 움직이는 군대로 여겨진다.
경제적 측면에서 IDF는 여러 나라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IDF의 가맹으로 메겨지는 분담금은 실제로 각 국이 자국의 주도로 '쓸만한 군대'를 IDF와 같은 규모로 키우는 비용과 기간을 고려하면 IDF 가맹은 싸고 간편하게 적절한 군사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IDF는 비교적 저렴한 군사비로 비상시에 "훈련도가 높은 군대"에게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각 국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경제적인 '군사 보험'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평화-반전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에서는 국제기구의 탈을 쓴 현대판 용병, 사실상 [[PMC]]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IDF는 전쟁에 투입되는 자국민의 '희생'을 제3세계에 전가함으로서, 선진국의 분쟁 개입 빈도를 늘리고 이에 따라 세계의 전쟁을 오히려 더욱 가속화 한다는 것이다.
- 천해성 . . . . 11회 일치
1986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정책기획과장과 회담기획부장, 교수부장, 인도협력국장, 대변인, 남북회담본부장, 정책실장 등 통일부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통일부로 돌아와서는 회담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수의 남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다.
*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실 행정관
* [[대한민국 통일부|통일부]] 통일정책실 정책기획과장
*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
* [[대한민국 통일부|통일부]] 통일정책실 실장
* [[대한민국 통일부|통일부]] 통일정책실 실장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11회 일치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며 전직 [[국가정보원]] 제2차장이다. [[우병우]]의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이자, 우병우의 최측근으로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1993년 [[사법연수원]]을 22기로 수료하였다. 그 후 잠깐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검찰에 들어갔으며, 서울지검, [[법무부]] 감찰관실 검사로 근무하다가 2009년 [[대검찰청]] 조직범죄부장으로 승진하였다.
국정원 제2차장으로 일하면서 2016년 6월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받았다. 서울지검 제3차장 시절이던 2015년 2월경 [[홍만표]] 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정운호의 무혐의 처분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실제로 2016년 6월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는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홍만표 변호사에게 사건 청탁 명목으로 3억원을 건넸고, 홍 변호사가 당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윤수 3차장 검사에게 청탁하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2015년 2월 당시 최윤수 차장검사가 홍만표 변호사의 청탁 알선을 받고 정운호의 뒤를 봐줬기 때문인지 정운호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 후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의 통화추적 등을 통해 홍 변호사가 최윤수 차장을 두 차례 찾아갔고, 최윤수와 무려 20여 차례나 통화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결국 최윤수 국정원 제2차장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당시에도 최윤수와 우병우 간의 관계가 입길에 올랐다. 우병우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이듬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기용될 때까지 1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 기간에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사실상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정식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정운호 대표 등의 ‘몰래 변론’을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홍만표와 우병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수사기획관과 1과장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우병우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 사무실을 연 곳이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로, 홍만표의 사무실(1010호)과 같은 건물 아래 위층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홍만표와 최윤수 차장 간의 연결 고리가 우병우 아니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de4c88fecae9760b9b6c86f97f5e042|#]]]
국정원 제2차장 시절에 '국정원 문화·예술인 배제 보고서'를 수차례 보고 받고 지시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그러한 이유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2017년 12월 2일 [[오민석(법조인)|오민석]] 부장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 차장의 구속영장이 '가담 정도'를 이유로 기각된 것에 불과하고 범죄 사실 소명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731.html#csidxe6517123a8063c9aaa12e8244fa6d69|#]]
검찰은 최윤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 상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최윤수]]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법무부 감찰관실 검사 2005.2.
- 크립토나이트 . . . . 11회 일치
[[슈퍼맨]]의 대표적인 약점. 본래는 1943년도 슈퍼맨의 라디오 드라마 '슈퍼맨의 모험(The Adventures of Superman)'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슈퍼맨을 맡은 배우가 쉬고 싶을때를 위해 만든 물질로 배우가 휴가를 간 사이엔 대역이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슈퍼맨이 끙끙대는 것만 연기하면 되었기 때문. 사실 원작자인 제리 시겔이 K-메탈이라는 이름으로 속성이 완전히 같은 물질이 나오는 이야기를 썼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기각되고 시겔이 아이디어를 라디오에 대신 썼다.
붉은 크립토나이트. 그린 크립토나이트 다음으로 자주 나온다. 발생의 원인도 다양하다. 효과는 작품마다 다양하지만, 대체로 슈퍼맨의 이성을 약화시켜 난폭하게 만들고 그 힘을 폭주하게 만든다.~~아마도 크립톤인을 [[버서커]]화시키는것같은데. 아니 능력강화일지도~~
팬텀존에 갇혀있던 크립톤 범죄자들이 지구를 침공했을때, [[메탈로]]가 크립톤 범죄자에게 붉은 크립토나이트 광선을 쏘였고, 그 광선을 쏘인 크립톤인은 개미 비슷한 괴물로 변해 '''밟혀 죽었다'''.(...)
영화 슈퍼맨 3에서 이 레드 크립토나이트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인조 크립토나이트가 나왔는데 정작 원래 노린건 그린 크립토나이트의 슈퍼맨 약화였는데 그대신 이성 상실&난폭화가 돼서 슈퍼맨이 한참동안 날뛰게 되었다.[* 만들어진 계기가 걸작인데 슈퍼맨을 제거하려던 재벌 회장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크립토나이트의 성분을 분석해 재현하려고 했는데 얼간이 컴퓨터 --천재-- 거스 골먼이 "슈퍼맨은 [[담배]]는 안 필 테니까"라며 (아무도 모르게) 분석 데이터에 '성분 불명'이라고 돼있는 것을 '''[[타르]]'''로 바꿔 버렸다. 그 데이터 그대로 만든 인조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정신줄 놓은 슈퍼맨은 여기저기 다니며 깽판...;]
그린 크립토나이트나 레드 크립토나이트에 핵 방사능을 쬐어서 만든다. 슈퍼맨의 초능력을 영구히 없앤다고 한다. 그런데 [[메탈로]]는 '[[루터]]의 이론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능력을 없앤다더군'이라고 했다. 아마 코믹스 버전에 따라서 다르던가 [[루터]]가 약간 잘못 해석한듯. 아무튼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확실하고, 메탈로는 황금색 크립토나이트를 이용해 빌딩 옥상으로 날아오는 크립톤 범죄자들에게 비췄다. 그리고 날개가 없는 크립톤 범죄자들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검은색 크립토나이트. 슈퍼걸과 함께 발견된 새로운 크립토나이트로 렉스 루터가 직접 슈퍼걸에게 실험해본 결과 슈퍼걸은 두 명으로 나뉘어진다. 검은색 코스츔에 사악한 슈퍼걸의 인격과 본래의 슈퍼걸의 인격으로 분리되었는데 슈퍼맨의 경우에는 악하고 겁 많은 캐릭터로 변하면서 약해진다.
=== '''실버 크립토나이트''' ===
* 그 대단한 슈퍼맨을 위협하는 유명한 물질이다보니 약점의 대명사로도 인용된다. [[AMD]]의 CPU 이름들이 한때 K6, K7...이런 식이었는데, 그 K가 크립토나이트에서 따온 것이다. [[인텔]]은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슈퍼맨이지만 AMD는 그것을 이기는 크립토나이트가 될 것이라고 CPU 이름을 저런 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테그라#s-3.3|사실 슈퍼맨은 nVIDIA에 존재하는 것이 함정]]--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크립토나이트에 의해 슈퍼맨이 인간처럼 변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있는 것. 일단 약해지는 건 맞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상태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으며 맞을 경우 피해를 배 이상 입기는 하지만 몸의 피부, 근육의 단단함이라던가는 그대로이다. 쉽게 말해서 크립토 나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개기며 슈퍼맨을 때릴 경우에는 슈퍼맨도 피해를 입지만 자기 손도 '''박살'''난다는 것. 실제로 배트맨도 슈퍼맨과 싸울때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고 약화시켜서 일방적으로 때린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이유는 더이상 때리면 오히려 자기 손이 박살날것 같아서...
* 참고로 크립토나이트는 실존하는 물질이다. DC설정에서 크립토나이트에 가상의 화학식을 붙여놨는데, 똑같은 화학식을 가진 물건이 발견된 것. 상상력이 현실을 때려맞춘격.
- 폐비 윤씨 . . . . 11회 일치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달|윤]] [[6월 1일]])<ref name="tae">폐비 윤씨 태실의 태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현재 폐비 윤씨]] 태실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관련 내용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자료 [http://www.museum.go.kr/NMK_DATA/redfish/cutator/2011/cu-253/book.html] 에서 일부 확인 가능하다.</ref><ref name="ja">{{서적 인용
|제목= 제253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폐비 윤씨의 태실·태항아리·태지〉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날짜=2009-03-14|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남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위되었다.
흔히 생년이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폐비 윤씨 태실의 태지에는 그녀가 [[1455년]] [[음력 6월 1일]]에 태어난 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ref name="tae"/><ref name="ja"/>.
일부 현대극이나 야사 등에서 그녀의 아버지 [[윤기견]]의 죽음으로 인해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궁녀로 입궁했다고 하지만<ref>[[2011년]] 방영된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 (드라마)|인수대비]]》 등에서는 폐비 윤씨가 궁녀로 입궁한 것으로 그렸다.</ref>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희왕후]](자성대왕대비)가 그녀를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윤호]]의 딸과 함께 입궁시켜 숙의(淑儀)의 첩지를 내린 사실이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조선 성종|성종]]이 자신의 처소인 [[교태전]]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는데, 남편과 말싸움 중 남편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이 있고, 다른 설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왕실의 사후 예우를 본다면 왕실의 눈밖에 나 폐위된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에 의해 제헌왕후(齊獻王后)에 추숭되고, [[회묘]]는 회릉(懷陵)으로 격상되었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39977 김처선과 폐비 윤씨, 실제 관계는 어땠을까? - 오마이뉴스]
- 하이큐/268화 . . . . 11회 일치
* [[야쿠 모리스케]]는 코즈메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걸 우려했지만 코즈메는 일축하며 동료들 모두 "근성있는 실력자들"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표적이 된 코즈메는 "비책이 떠올라 전혀 안 피곤하게 이기고 싶다"는 택도 없는 말을 했다. [[쿠로오 테츠로]]와 야마모토가 "멍청한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상대가 끈기와 인내를 무기로 나온다면 이쪽도 그렇게 나가야 한다는 것. 정공법. 주장의 견해도 같았다.
네코마타 감독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오랜동안 가르쳐온 원칙이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코즈메가 내놓은 또다른 책략은 그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들 근성 있는 실력자니까.
그는 주위를 환기시켰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잘 먹혀들고 있다. 코즈메가 진이 빠진 지경이 된건 변함없다. 상대는 전통의 강호 네코마. 어려운 적인게 확실하지만 비등한 상황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새삼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잡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 시시오 감독의 정론이 먹혀들었다.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루카와 진영을 곁눈질하며, 코즈메는 매우 성가셔했다.
* 시합재개. 돌아온 사루카와 선수들은 "시합이 길어질 수록 힘든 건 네코마 쪽"이란 대전제를 확실히 되새긴 상태였다. 코즈메가 굳이 이 시점에 "흔들었"던 건 모두가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지는 시점, 그리고 사루카와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성급해지는 시점을 동시에 노린 것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연속 득점하는 걸로 게임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시시오 감독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 야마모토의 리시브는 언제나 한 가지 원칙에 출실했다. 반걸음 빨리 공에 도달하는 것. 그 반걸음 만큼 공을 조작할 여유가 늘어난다. 그 차이는 코트 바깥의, 다른 학교 선수들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저런 정성스런 리시브가 가능한지 감탄했다. 코즈메의 주문 대로다. 높게 네트 앞으로 띄워진 공. 정확히 코즈메의 머리 위. 상대는 코즈메의 유도와 양 사이드의 공격에 모두 유의하고 있었다. 들어갈 구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중앙. 심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쿠로오가 스파이크. 이것이 허를 찔렀다. 네코마의 득점. 스코어 29 대 28. 네코마가 마침내 역전.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다.
* 그러나 거기서도 경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제 추격자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플레이는 변함이 없었다. 사루카와는 31 대 30까지 끈질기게 따라왔다. 코즈메는 짜증이 치밀었다. 야마모토는 첫 번째 TO때 코즈메가 "다들 근성있는 실력자"라고 말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자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겠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악도 깡도 없고 금방 요령 피울 방법만 궁리하니까.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비실비실하든 불평불만이 가득하든 선생님, 선배님이 보든말든
- 한규복 (1881년) . . . . 11회 일치
[[1935년]] [[2월 6일]]에는 [[경성부]]에서 [[윤치호]] 등이 조직한 [[계명구락부]][[재단]](啓明俱樂部財團) 위원의 한 사람에 위촉되었다.<ref>"啓明俱樂部財團組織 十萬圓으로 會館新築", 동아일보 1935년 02월 06일자 2면, 사회면</ref> [[1930년]]대 중반 이후 그는 각종 계몽, 강연회를 다니면서 근검 절약의 필요성, 불필요한 사치품과 물건 강매, 사재기 등을 하지 말 것, 저축을 하여 가사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것, 도박과 노름, 사행성 복권 등 헛된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여 대가를 취할 것을 강조하였다.
==== 참정권 획득 계획과 실패 ====
[[1938년]] [[8월]] 설치된 총독부내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 97명 가운데 한규복은 [[김연수 (1896년)|김연수]](金秊洙), 박영철(朴榮喆), [[박중양]], [[박흥식 (1903년)|박흥식]], [[윤덕영]], 이기린(李基燐), [[이승우]](李升雨), [[최린]](崔麟), [[한상룡]](韓相龍), [[현준호]](玄俊鎬) 등과 함께 조선인 위원 11명 가운데 1명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해 [[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 시행되자 한규복은 윤치호, 이승우, 조병상, 조성근 등과 함께 지원병제 축하회 구성을 위한 타협발기인회를 열고 실행위원진을 구성하였다. [[7월 8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0월 7일]]에는 [[중일전쟁]] 등 부상병을 위문하기 위해 [[용산육군병원]]을 방문하고 [[금일봉]]을 지급하였다.<ref>"中樞院參議 傷病兵慰問", 동아일보 1938년 10월 07일자 2면, 사회면</ref>
[[1942년]]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고 [[조선인]] [[참정권]] 허용 문제가 [[일본]] 의회 [[중의원]]과 [[귀족원]]에 상정되자, 그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부단장 자격으로 일본 수상과 참모총장에게 감사 전보문을 타전하고, 그해 [[5월 15일]] [[경성부|경성]] YMCA에서 [[이광수]](李光洙) 등 명사들을 초청해 연설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42년]] [[9월]]에는 [[조선국자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으나 [[1943년]] [[6월]] 사퇴하였다. [[1943년]] [[국민총력연맹]] 징병기념사업실행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피선되었다.
[[1949년]] [[8월 12일]] [[반민특위]]에 편지를 보낸 뒤 그는 [[서울]]에 있는 [[반민특위]] 사무실로 자수, 스스로 찾아갔다. 그는 자수한 점이 감안되어 구속되지 않고, 출두 형식으로 조사를 받았다.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을 당시 한규복은 일제 치하에서 관리를 지냈을 뿐 “양심에 비추어 민족정신을 망각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관비로 유학을 마치고 대한제국 관리로 일하다가 “한일합병과 동시에 다시 왜인에게 아부하여 조선총독정치에 헌신한 유일한 친일분자”로 평가했다.<ref name="neftkin"/> 당시 그를 심문한 이는 위원장 [[이인]] [[변호사]]였다.
[[1949년]] [[8월 31일]]의 [[반민특위]] 최종 심리에서 그는 반민법(제4조 2항, 3항) 위반의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사실及이유 본건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의 의견서 기재 범죄사실에 관하여 수사한 바, 피의자는 한일합방 전부터 일제시대까지 30여년 간에 亘하여 관리생활을 계속하고 최후에 [[중추원]] [[참의]]까지 임명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평소 그가 악질적으로 민족에게 해를 끼쳤다는 현저한 증거가 없음으로 주문과 如히 결정함'이라고 결정되었다. 그는 순순히 수사에 협조, 진술하여 정상참작이 되었다. [[1950년]] 초 한규복은 [[김시권]](金時權) 등과 함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제목=실록 친일파
- 홍국영 . . . . 11회 일치
'''홍국영'''(洪國榮, [[1748년]] ~ [[1781년]] [[4월 28일]]([[음력 4월 5일]])<ref>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4월 5일 세 번째 기사</ref>)은 [[조선]] 영조,정조대의 [[세도]] 정치가.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豊山)이며, [[자 (이름)|자]]는 덕로(德老)이다. 세손궁의 궁료(宮僚) 시절 때부터 [[조선 정조|정조]](正祖)의 총애를 얻고, 정조 즉위 후 부홍파(扶洪派)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세간에는 흔히 권력을 잡은 후 세도를 부리다가 축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축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 풍산 홍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상의 8대손,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영안위 홍주원의 6대손으로서, 역시 영안위 후손인 [[혜경궁 홍씨]]와 11촌의 동문이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 대해 "광증이 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 홍낙춘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부 홍창한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고 백부인 [[홍낙순]]은 대과에 급제했고 숙부인 홍낙빈도 진사였으나, 홍낙춘은 원빈이 후궁이 되기 전에는 관직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영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영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영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영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영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영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정조 초기의 가장 주요한 사업이라면 규장각 설치가 꼽히는데, 정조의 최측신이었던 홍국영 역시 규장각과 관련이 깊다. 그는 제일 처음으로 규장각 직제학(直提學)에 임명된 관료였으며, 유명한 규장각 서얼 사검서관의 서용 역시 홍국영의 천거와 설득으로 이뤄졌다. 다만 홍국영 축출 후 규장각 내각일기에서 그에 관한 기록을 삭제하여 새로 작성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홍국영이 규장각에서 실제 이행했던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1778년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영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영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영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식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순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영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상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홍국영의 누이 [[원빈 홍씨]](元嬪 洪氏)는 가례를 올린 지 1년이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한중록》에는 홍국영이 원빈의 죽음을 독살로 여기고 그 배후로 [[효의왕후]]를 의심하여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그 죄를 성토하는 대목이 있다<ref>순조실록에서 같은 건으로 탄핵당하는 대상자는 [[정민시]]이다.</ref>.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후일 홍국영이 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 완풍군(完豊君) 준(濬)은 홍국영의 몰락 후, 상계군(常溪君) 담(湛)으로 개명(改名) 개봉(改封)되며 왕실 세력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결국 5년 후인 정조10년([[1786년]])에 생을 마감했다.
[[1779년]] [[음력 9월 26일]] 홍국영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상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이때 정조는 불과 32세의 홍국영에게 [[봉조하]] 직함을 내려주는데, 일찍이 백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 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영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정설로 통하나, 이와 같이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 홍명희 . . . . 11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문제는 할아버지 홍승목으로 이 인간은 [[친일파]][* 사실 홍승목의 시절에 친일파라 함은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를 의미한다기 보단 외교적 파트너로써의 친러, 친청, 친일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 홍명희도 친일의혹이 없는것은 아니다. 일제 연간에 임전협의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는 의혹이 있다. 사실 이건 당시 지도층 인사들의 인칭 도용 때문인데 이런 사례는 조만식,안재홍이나 여운형 같은 사람들도 이같은 일을 당한 바 있다.]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했고 여운형 암살 후 지도자가 되기도 했으나 환경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실패했다. 결국 이후 월북했다. 월북 계기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한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김구]]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그의 월북 동기에는 '친일파들과 결탁하여 단독정부 수립운동을 강행추진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견해가 있다. ~~근데 [[김일성]] 정권도 핵심 실무인력에서는 친일 청산 안했잖아?~~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그의 아들 홍기문은 [[조선왕조실록]]을 완역[* 북한에서는이를 “리조실록”이라고 부른다.]한 사람이자 북한 [[향가]] 연구의 대가인[* 북한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향가 전체를 해독한 사람이다. 어찌나 해독을 잘 했는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향가를 해독한 [[양주동]] 선생도 홍기문의 향가 해독을 칭찬했었다고.]유명 국학자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 조평통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손자인 석형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함경북도당 책임비서를 역임하다 2011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형의 동생 석중은 <[[황진이]]>를 쓴 유명 소설가다.
- 화완옹주 . . . . 11회 일치
친오빠 사도세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화완옹주는 사도세자의 비행과 실수를 그대로 부왕 영조에게 고해바쳤다. 인원왕후의 상 때 인원왕후전 나인이었던 빙애를 후궁으로 취한 뒤, 영조의 추궁이 있자 사도세자는 빙애를 화완옹주의 처소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빙애의 존재가 영조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인용문|“병신년 이후 24년 동안 이 대궐에 와서 이 날을 지날 때마다 어느 것을 보든지 부모님을 추모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라 어떻게 억누를 수가 없다. 병신년의 처분은 바로 선왕의 뜻을 밝힌 것이었고, 오늘 용서해 석방하려고 하는 것도 선왕의 뜻을 몸받아 하는 것이다. 만약 선조(先朝)의 성심(聖心)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 이때에 이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면 이 일에 대해 조정의 신하들도 반드시 알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니, 어찌 혹 다른 말이 있겠는가. 서울 집에 둔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진위 여부가 애매 모호한데 죄안(罪案)은 아직도 있기 때문에 오늘 반드시 사유(赦宥)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치달 처(鄭致達妻)의 죄명을 없애고 특별히 완전히 용서하여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펴는 방도로 삼겠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1권, 1799년(정조 23) 3월 4일}}
화완옹주는 영조의 여러 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영조는 옹주가 시집간 후에도 자주 그의 집에 거둥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89권, 112권 등. 영조가 해산을 앞둔 화완옹주의 집을 방문하거나, 환궁 도중에 옹주의 집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ref> 또한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한 정치달의 형 [[정원달]]에게도 많은 특혜를 하사하였으며<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8권, 1756년 10월 2일</ref>, [[1757년]](영조 33) 정치달이 세상을 떠나자 곡반을 하였고 이를 말리는 신하들을 파직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89권, 1757년 2월 15일</ref>
순조실록에는 1808년 5월 17일 삼사에서 올린 글에서 정치달의 처가 죽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옹주의 사망일은 그 이전으로 사료되나 정확한 몰일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왕가의 전통상 졸기가 없고 무덤이 경기도 파주 유배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보아 죽을 당시 죄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완옹주 및 정치달 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 스페셜 - 붉은 달]]》 ([[KBS2]], [[2015년]]), 배우 : [[박소담]]
- 히나타 쇼요 . . . . 11회 일치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미숙한 세터가 토스미스한 공을 쳐낼 정도의 뛰어난 반사신경에 감탄한다. 하지만 히나타 외엔 누구도 의욕도 실력도 없었던 유키가오카 중은 불과 31분만에 세트포인트 2-0로 키타가와 제1중학교에 참패. 이 때 카게야마는 중학교 3년 동안 무얼 했냐며 히나타를 질책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설욕을 다짐하며 남은 중학교 시간을 여자 배구부, 동네 아줌마 배구팀과 훈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욕을 다짐하며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러나 배구부가 있는 제2 체육관에 있던 건 바로 원수 카게야마였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네코마 고교]]와의 연습 시합에서 [[코즈메 켄마]]의 예측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네코마 고교에서 가장 민첩한 [[이누오카 소우]]에 의해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의 속공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된 것. 그러나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믿고 계속 공을 올려 보내주나, 히나타가 평소와 달리 토스를 보고 스윙함으로써 공격은 실패한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다이렉트 딜리버리로 올려 주었던 공을 인 다이렉트 딜리버리[* 원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바닥 핀 포인트에 맞춰서 바로 토스를 보내줬다. 왜냐하면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 이걸 약간이나마 시간차가 생기도록 토스해서 히나타가 스스로 판단해서 스파이크 할 수 있도록 한 것. 이걸 계기로 히나타는 보통의 속공과 괴짜속공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로 주어 다른 공격 방법을 찾아내었다.
* 경기 시작 전에 화장실을 가면 꼭 화장실 앞에서 중요 인물을 만난다는 [[징크스]]가 있다. 여담으로 이 징크스가 시작된 것은, 중학생 때 대회날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난 것이 시초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복통~~ 사실 히나타 본인도 화장실은 위험인물과 마주치는 장소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봄고 미야기현 대표 결정전 대회 날, 화장실 앞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wiki:"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와 [wiki:"이와이즈미 하지메" 이와이즈미], 시라토리자와학원의 우시와카, [[다테 공업 고교]]의 아오네와 한꺼번에 ~~강제~~[[정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트리플플레이~~ ~~올스타전 총출동~~
* 살면서 본 가장 무서운 장면이 '''뒤통수를 맞은 카게야마의 얼굴'''이다. [[아오바죠사이 고교]]와의 연습시합에서, 히나타가 서브 미스로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때린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카게야마의 표정이 [[충격과 공포]]. ~~이 만화가 왜 호러배구라고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인하이 시합 직전 긴장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있었던 가장 무서운 일을 생각할 때, 히나타는 그 날의 카게야마를 떠올리더니 바로 [[해탈]]했다. ~~카게야마가 [[사다코]]를 이겼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10회 일치
1933년 3월 4일 시작하는 시나리오. 3월 4일에 독일에서 선거가 치뤄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때 히틀러가 당선되어 권력을 잡는다. 기본적으로 1936년에서 시작하는 HOI2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선지 이 시나리오 전용 이벤트/디시전이 꽤 많다. 이 시나리오로 할 경우 인공지능 독일이 실제 역사보다 더욱 강해지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원자 관련 연구 속도를 가속시켜주는 건물. 핵무기 관련 연구가 완료되고, 충분한 크기의 원자로가 있으면 핵무기를 자동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다. 핵무기 생산 속도는 원자로의 크기에 비례한다. 에너지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매뉴얼에 따르면 "핵 실험 시설"이라고 하는게 더 나았을 거란다. 미리 생산하고 원하는 프로빈스에 배치할 수 있지만, 한 프로빈스 밖에 지을 수 없다. 병신같은 곳에 배치해서 뺏기거나 하지 않게 하자. 적국에게 빼앗기면 그 즉시 파괴된다.
* Rocket Test Facility(로켓 실험 시설)
동원령 1단계. 군대가 없고 경찰이나 민병대 같은 준군사조직이 전부인 상태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예시는 현대의 [[코스타리카]].
동원령 2단계. 모병제. 현실의 예시로는 현대의 [[중국]]과 [[일본]].
동원령 5단계. 2년간을 복무하는 징병제다. 현실의 예시로는 현대의 대한민국을 들 수 있다.
육군은 부실하지만 해군력은 상당히 빠방하다. 그리고 1936년 시작시 추가적으로 함대를 찍어내는 중이다.
실제 역사를 따라가려고 할 경우 일본의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 디시전 발동→"난징 대학살", "파나이 사건" 이벤트→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 발동→일본의 "진주만 공습" 디시전 발동과 같은 절차를 걸쳐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보통 이렇게 되면 똑같이 일본에게 선전포고 당한 연합군 세력이 동맹에 초대한다.
연합국의 우두머리. 섬나라라는 특성상 본토에 병력을 배치한 후 배에 태워 대륙으로 수송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같은 섬나라인 일본은 세력권이 동아시아로 한정되어 있지만 영국은 사실상 세계 전역에 깃발을 꽂고 있어서 더더욱 골치아프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0회 일치
디시전이 왜 발동 안되는지 모르겠다면 해당 디시전에 표시된 붉은 X자에 마우스를 올리고 기다려보자.
시장 경제를 채택할 시 가끔씩 나오는 "뱅크 런" 이벤트의 해결책. 국가 자금을 부어 공업력 효율을 3% 증가시키고 불만도를 3% 낮춘다. 뱅크런 이벤트의 효과가 공업력 효율 -3%, 불만도 +3%라는걸 보면 사실상 "뱅크 런"으로 인한 손실을 메꾸는 디시전.
* 독일이 소유한 로켓 실험 시설의 크기가 최소 2 이상
* 발동 조건: 1933년 시나리오. "실업률 15% 미만으로 감소" 이벤트 발생,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금 1,000
자금 1,500를 소모해 지금까지의 고립주의를 버리고 연합국에 붙자는 연설을 한다. 이후 랜덤으로 결과가 나오는데, 실패할경우 불만도 4%가 추가된다.
독일의 야욕으로부터 폴란드를 지킬지의 여부를 선택하는 디시전. 실제 역사대로 폴란드에게 동맹을 제의해 폴란드와 프랑스의 관계도를 쌓고 간섭주의 +1 찍던지, 아니면 폴란드를 무시하고 폴란드 관계도 -5를 찍을지 선택할 수 있다. AI는 무조건 폴란드에게 동맹을 제의한다. 폴란드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실제 동맹이 되지는 않지만 폴란드에게 독립보장을 걸게된다.
독일의 철광석 수입줄을 막기 위해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디시전.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보급품 300을 소모하며 미국과 소련에게 큰 어그로를 끌게된다. 간섭주의로 슬라이더가 한칸 이동하며 국민들의 거부감으로 불만도가 10% 증가한다. 이 디시전을 발동시킨 후 나르비크, 베르겐, 트론헤임을 점령할 경우 노르웨이를 강제로 아군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한다.
체임벌린이 실각하고 처칠이 총리가 된다. 정부수반으로 윈스턴 처칠이 임명되며 외무장관에는 앤서니 이든이 오른다. 민주주의 +1, 보수주의 +1, 간섭주의 +1, 강경파 +2, 불만도 -2%, 자금 +500.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10회 일치
* 현실기준으론 게임폐인이 하나 늘어난 셈이라 [[도마 타이헤이]]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 사실 우마루의 속셈은 오빠 [[도마 타이헤이]]에게 게임을 조르기 위한 구실. 히카리도 사기로 했다는 핑계로 기어이 게임을 사게 한다.
* 드디어 도착한 게임. 히카리는 설명서부터 착실하게 읽으면서 시작하는데 우마루는 적당 적당 감과 경험으로 플레이하는 타입. 우마루는 전사를 택하고 히카리는 마법살를 택한다. 히카리는 그냥 설명서에 추천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이유로 마법사를 고르는데, 우마루는 그것을 은근히 얕본다. 실제로 마법사는 초반엔 체력이 낮아 고생하는 직업이므로 우마루는 자비를 베풀어 서포트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히카리는 마을을 꼼꼼하게 돌아보자고 하지만 우마루는 일단 밖에 나가서 보이는대로 몬스터를 잡아댄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레벨이 20대로 성장. 히카리를 크게 앞지른다. 이것만 봐서는 게이머로서는 우마루가 한 수 위... 라는 것 같았지만.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식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반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 막상 다음 플레이 때 합류해 보니 히카리 쪽이 레벨이 더 높다. 게다가 우마루가 고전했던 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약점 속성을 찌르며 수월하게 진행한다. 서포트해주려 했던 상대에게 서포트를 받게 되자 굴욕감을 느낀 우마루. 다음 번에야 말로 역전해주겠다는 각오로 또다시 게임에 매진하지만 오히려 레벨차는 더 벌어져 버린다. 히카리는 기본적으로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만 게임 센스도 있다. 특히 메뉴얼로 시스템을 숙지하고 그 내용을 실전 플레이에서 검토해서 최고로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 방식이라 무작정 닥돌하는 우마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 그래도 우마루는 자신의 경륜을 내세우며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데 히카리는 그렇게 골몰하는 우마루를 보고 시무룩해한다. 같이 게임을 하면 "우마루짱이 별로 즐거운거 같지 않다"고 봤기 때문. 우마루는 이건 "라이벌을 만나서 불타오르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즐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마루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데.
*우마루와 히카리는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게임계를 평정한 2인조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게임폐인이 두 명으로 늘어났을 뿐, 보호자인 타이헤이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 김진향 . . . . 10회 일치
'''김진향'''([[대구광역시]] [[달성군]], [[1969년]] [[3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전문가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3684523 개성공단 4년 실무담당 김진향 교수 "우리 기업들만 죽이는 행위"]. 아시아경제. 2016년 2월 11일.</ref>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 2004년 2월 ~ [[2005년]] 5월:[[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 행정관
* 2005년 5월 ~ [[2008년]] 2월: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실 인사비서관
*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 전략기획실 국장
- 김태희 . . . . 10회 일치
'''김태희'''(金泰希<ref>{{뉴스 인용|저자1=장주영|제목=[인터뷰①] ‘그랑프리’ 김태희, “서른은 나를 당당해지게 했다”|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315791|날짜=2010-09-03|확인날짜=2018-07-05|뉴스=매일경제}}</ref>, [[1980년]] [[3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00년 "화이트"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 [[이영애]]의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2002년 독립 영화 《[[신도시인]]》에 출연했다. 이후 시트콤 《[[해변으로가요]]》(2004), 《[[스크린 (드라마)|스크린]]》, 《[[천국의나무]]》(2006)와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3년에는 《[[천국의 계단]]》에서 악역 한유리 역할로 얼굴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로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드라마 《[[작은아씨들]]》과 《[[목련꽃아래서]]》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중천 (영화)|중천]]》(2006), 《[[싸움 (영화)|싸움]]》(2007)에 출연했으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최승희 역할을 연기해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드라마 《[[마이프린세스]]》(2011), 《[[나와 스타의 99일]]》(2012),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에서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5년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로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자리를 확고히 한 김태희는, 2006년 제작비 130억,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중천 (영화)|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공연하며 소화 역할로 첫 장편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ref name="김태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ref>최지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1410 '국내' '이 상을 <하얀거탑> 폐인 분들께 바칩니다'] 매거진t 2007년 10월 4일</ref> [[대종상영화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0063392 ‘가족의 탄생’최우수작품·시나리오상…대종상 이변] 국민일보 2007년 6월 9일</ref> 그녀는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ref>{{웹 인용|url=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sca=28|제목=제28회 청룡영화상|출판사=청룡영화상|확인날짜=2014-02-27}}</ref> 하지만 연기력에서 “대사 소화가 부족하고 표정연기가 풍부하지 못했다”, “평면적 연기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ref name="김태은"/> 《[[중천]]》은 관객수 15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중천' 참패, CJ 주가 폭락|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319790|출판사=뉴시스|저자=김용호|날짜=2007-02-19|확인날짜=2014-03-05}}</ref> 2007년에는 영화 《[[싸움 (영화)|싸움]]》의 윤진아 역할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공연하며 연기력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보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으나,<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기력과의 싸움에서 '웃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99002|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정명화|날짜=2007-12-05|확인날짜=2014-03-05}}</ref> 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톱스타 마케팅, 더 이상 안 통한다!|url=http://osen.mt.co.kr/article/G1010070161|출판사=OSEN|저자=이명주|날짜=2010-10-07|확인날짜=2014-03-05}}</ref>
김태희는 2009년 4년 만에 첩보액션 드라마 《[[아이리스 (드라마)|아이리스]]》의 여주인공 최승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아이리스`, 가장 진지하게 준비한 작품"|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273866|출판사=MK 뉴스|저자=진향희|날짜=2009-05-12|확인날짜=2014-03-05}}</ref>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9.9%,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아이리스’ 실체 추적하는 감성적 액션 주목하세요…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27557&cp=nv|출판사=국민일보|저자=진정희|날짜=2012-11-14|확인날짜=2014-03-05}}</ref> 연기력에 있어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에서는 첩보원 역할에 걸맞지 않다는 평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멍때리는' 김태희? 연기논란 재점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02914300874627&type=1&outlink=1 |출판사=머니투데이 |날짜=2009-10-29 |확인날짜=2010-01-02}}</ref> 그 해 [[KBS 연기대상]]에서 처음으로 연기력으로 우수연기상을 받았는데,<ref>[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김태희, '아이리스'로 연기력 논란 극복하고 상도 받고 눈물 '펑펑']{{깨진 링크|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 리뷰스타 2010년 1월 1일</ref> 이에 대해 “우수연기상은 인기로 받은 인기상이 아닌 연기자로 인정받은 최초의 상이었다. 연기로 인정 못 받고 있다고 그간 생각했다.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저자1=김지연|제목=김태희 "연기력 논란, 항상 마음의 무거운 짐"|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91500362265489&type=1&outlink=1|날짜=2010-09-15|확인날짜=2015-12-14|뉴스=머니투데이}}</ref> 2010년 1월 김태희는 소속사를 [[나무엑터스]]에서 자신의 형부가 설립한 루아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1인 기획사 대열 합류… 전 소속사와 협업관계 유지 |url=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05720 |출판사=[[일간스포츠]] |날짜=2010-01-11 |확인날짜=2010-01-11}}</ref> 9월 16일에는 영화 《[[그랑프리 (영화)|그랑프리]]》에서 서주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추석영화열전⑥]'그랑프리' 김태희, 연기논란 잠재우고 흥행퀸 '찜'|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1608154987413|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조범자 |날짜=2010-09-16|확인날짜=2015-07-17}}</ref> 김태희의 연기력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으나, 16만 명의 관객수를 끝으로 상업적 실패를 거뒀다.<ref>{{뉴스 인용|제목=[울림과스밈] ‘그랑프리 실패’ 김태희에게는 ‘약'|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42216.html|출판사=한겨레|저자=김진철|날짜=2010-10-05|확인날짜=2015-07-17}}</ref> 11월 22일에는 몇몇 내용을 편집해 만든 《[[아이리스: 더 무비]]》가 개봉했다.<ref>{{웹 인용|제목=씨네21 - 아이리스 더 무비|url=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출판사=[[씨네21]]|날짜=2010|확인날짜=2012-02-2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525/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예}}</ref> 12월 13일에는 《[[아이리스]]》의 스핀오프작 《[[아테나: 전쟁의 여신]]》 1회에 회상신으로 특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짧아서 아쉬워"..이병헌·김태희 `아테나` 깜짝 등장|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138166593198520&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 |날짜=2010-12-14|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영…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상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영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영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상,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상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상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영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영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영|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영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영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영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92306|출판사= enews24|저자=전수미|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ref> 2017년 1월 17일, 이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올려 "이제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훌륭한 [[남편]]이자 [[남자]]가 되려 한다. 그녀는 제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나 변치 않고 늘 제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다"에 이어 "이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커져 결실을 맺게 됐다"며 "결혼식과 시간은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결혼 소식을 알렸다. 두 사람은 2011년 한 소셜커머스 광고에 함께 출연하며 친분을 쌓았고, 2012년 가을부터 교제를 시작했고 2013년 1월 1일 열애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둘은 결별설 한번 없이 [[잉꼬]] 커플로 주목 받아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김태희, 교제 5년만에 결혼…빅스타 부부 탄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8965318|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은정|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 손편지로 직접 결혼 발표 "김태희, 최고의 선물"[공식입장 전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039239|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이유나|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
- 니세코이/216화 . . . . 10회 일치
어머니에게서 듣는 사건의 진실?
* 치토게는 어머니 하루에게 그림책과 열쇠에 대한 진실은 이치죠 라쿠의 어머니가 쥐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사실 하루와 이치죠의 어머니, 코사키의 어머니와 마리카의 어머니도 모두 고교 동창. 심지어 한 반이었다.
* 라쿠는 약속의 아이가 "그 그림책을 읽고 있을 때" 만났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약속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금새 확실한건 아니라고 생각을 고친다.
* 설사 둘 중 하나가 맺어진다고 해도 확실히 납득한 채로 되고 싶었던 것이다.
* 사실 그건 번역상의 실수였는데, 처음 그림책을 구상할 때 폴란드의 "사랑의 다리"라는 연인들의 명소를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 나중에 하루에게 들어서 실수임을 알게 되고 부끄러워서 타이틀을 지워 버린 것.
* 이치죠 어머니는 "혹시 실망했느냐"고 묻는데, 치토게는 오히려 멋진 이야기였다고 기뻐한다.
* 사실 이치죠 어머니도 상당한 기인.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에게 모든 집안일을 다 맡기다니--아참 야쿠자 마누라였지. 어쩐지--
- 리얼충 . . . . 10회 일치
「리얼(현실)의 생활에 충실한 사람」의 약자. 읽는 법은 「리아쥬우(リアじゅう)」.
리얼에 충실하다는 뜻은, 남녀관계나 친구 등 인간관게 측면에서 충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약 2007년 무렵 [[2채널]]의 대학생활판에서 발생하였다. 일본에서는 [[휴대폰]]으로 인터넷 접속이 보급되면서, 현실 생활에 충실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오타쿠]] 위주로 돌아갔으며 채팅이나 게시판 등의 서비스에 참가하는 사람은 현실 생활이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새롭게 침입해오는 '현실 생활에 충실한 인터넷 이용자'를 질투하고, 자신들을 풍자 [[자학]]하는 뜻을 담은 호칭으로 리얼충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 블랙 클로버/108화 . . . . 10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는 자비없는 안면 스트레이트로 응징하며 "실력으로 입증해라!"고 호통을 치고 헤이해진 기사단을 훈련시키기 위해 "온천합숙"을 단행한다.
* [[샬롯 로즈레이]]와 야미와 같은 이유로, 그냥 우연히 마주친 [[노엘 실버]]은 아무 이유도 없이 합숙 참가 결정.
* 새 단장의 매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단원들 꼬라지를 보니 푸에고레온이 어지간히 무능한 단장이었고 이런 녀석들을 남겨놓고 드러누웠으니 단장 실격이라고 무자비하게 비난한다. 게다가 그를 지칭하는 단어도 "멍청한 자식, 바보" 따위니 그를 믿고 따르던 단원들과 특히 동생인 레오폴트는 참기 어려웠다. 결국 레오폴트가 제일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다.
>네놈 실력으로 보이지 못하겠냐아아아!!
* 새 단장은 정말로 최고의 단장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은 최고의 기사단이라면 실력으로 입증하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그 멍청이"는 단원들과 나라를 내버려두고는 죽지 않을 테니 돌아올 때까지 긍지 높은 홍련의 사자단의 힘을 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자신이 아우 대신 그들을 이끌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말한 새단장이 "대답이 없다"고 하자 레오폴트와 단원들은 수련회 끌려온 중딩들 마냥 목청껏 대답을 내지른다.
* 한편 성과발표회를 땡땡이 쳐버린 [[야미 스케히로]]는 단장들이 모여있는 장사에 희희낙락한 면상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행사를 날려먹었다는 죄책감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같이 땡땡이를 친 [[샬롯 로즈레이]]는 숙취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비실거리면서 따라들어온다.
야미는 들어오자마자 "검은 폭우보다 밑에 있는 단장들"이라고 어그로를 시전한다. 올해는 검은 폭우가 2위를 했으니 사실상 금색의 여명의 [[윌리엄 벤전스]] 외에는 전원이 대상. 은익의 참수리의 [[노젤 실버]], 자줏빛 범고래의 새 단장, 취록의 당랑의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는 유독 아니꼬와한다. 잭이 "만년 꼴찌 주제에"라고 받아쳐보지만 "그 꼴찌한테 졌다"는 반격엔 할 말이 없다.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은 그보단 지각한 것을 지적해 보지만 딱히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 결국 다른 단장들은 씁쓸하게 돌아가고 야미만 남들을 실컷 놀려먹었다. 야미는 혼자서 급상승 기념주를 마셔야겠다고 히죽거리는데 바라지 않던 불청객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다. 막 아스타와 유노를 포획한 레오나가 야미한테까지 온 것이다. 야미는 그녀와도 구면이어서 "누님레온"이라 부르는데, 레오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야미는 붙잡힌 아스타를 보고 낄낄거리는데 곧 같은 신세가 된다. 레오나가 "공적 발표에 지각은 커녕 아예 결석을 했으니 기합을 넣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도 온천합숙에 강제합류시킨다. 야미는 "이제 나는 단장이다. 부끄러우니 그만둬라"고 저항해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하는 말로 보면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숙취를 떨쳐내지 못한 샬롯은 야미가 곤란해하자 "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 또한 같은 명분으로 강제합류 당한다. 뒤이어 아스타에게 [[키아토]]와 [[카호노]]의 송별을 전하러 온 [[노엘 실버]]까지 잡혔다. 노엘의 경우는 정말 아무 이유 없는 납치.
- 블랙 클로버/117화 . . . . 10회 일치
* 사람 속을 뒤집어놓긴 하지만 [[키르슈 버밀리온]]의 실력은 진짜배기.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 [[키르슈 버밀리온]]은 밥맛 떨어지는 나르시시스트였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키르슈의 지휘에 따라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이 활약한 결과 C팀이 무난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점을 지적하면서 과연 산호의 공작의 차기 단장감이라고 평했다. [[잭스 류그너]] 또한 그를 묘하게 쳐다보지만 딱히 쓴소리를 하진 않았다. 그 실력을 인정해서일까?
핀랄의 활약은 그간 평가절하 당했던 검은 폭우에 대한 인상마저 뒤바꿔놓았다. 앞선 두 시합에서 아스타, 매그너가 연이어 활약한 이후여서 올해의 검은 폭우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가가 늘었다. 지극히 온당한 여론이었지만 금색의 여명 소속인 어떤 마법기사에겐 신경에 거슬렸다.
* 이제 시합은 4시합으로 넘어간다. H팀과 G팀의 대결. G팀에는 아스타하곤 악연으로 얽힌 청동 마법의 [[셋케 브론자차]]가 있었다. 취록의 당랑 소속 5등 하급 마법기사. 대부분 튀고 싶어서 안달난 기사들 가운데, 셋케만은 여기에 와서 대후회, 못 올 곳에 왔다는 기분이다. 시합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들이 난무하자 자신감을 상실해 버린 것. 그가 참가한 것도 단장인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가 권한 걸 넙죽 받은 탓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물빛의 환록 소속 [[프라길 토르멘타]]란 여기사와 한팀이었던 것이다. 3등 중급 마법기사. 조용해 보이는 여성으로 검은 폭우의 하급 기사들이 저토록 활약했으니, 같은 하급인 셋케도 사실은 강한 축이이지 않냐며 지레 짐작을 해왔다. 여자라면 물불 안 가리는 셋케가 언제 쫄았냐는 듯 허세를 떤다. 그런 것치곤 내놓는 전술이 허무맹랑하다. 자신의 마법인 "셋케 슈팅스타"로 폭주를 감행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전술. 그런데 여기서 세 번재 인물, 금색의 여명 1등 상급 마법기사 [[란길스 포드]]가 괜찮은 전략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 H팀은 제법 건실한 작전으로 나왔다. 방어계가 뛰어난 마법기사가 크리스탈을 철통같이 감싸고 함정 마법 전문가가 근처에 함정을 깔아놓는다. 정석적인 작전. 그에 비해 G팀은 셋케가 셋케 슈팅스타로 란길스를 태우고 무작정 달려오는게 전부다. 주행도 방향을 바꾸거나 페이크를 넣는 것도 없이 그저 일직선.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 그러나 H팀의 한 사람이 "위험하다"고 외쳤다. 그는 란길스를 알고 있었다. 그에겐 딱 몇 초면 충분했다. 적당한 거리가 죄다 손 한 번 휘둘러서 공간째로, 적의 마법도 지형도 크리스탈도 지워버렸다. 공간을 깎아내는 마법. 키르슈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이게 보드가의 주력 마법인 듯 하다. 확실히 핀랄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스타도 저 마법 만큼은 자신의 검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 서림 . . . . 10회 일치
=== 조선왕조실록 ===
명종 17년 1월 기사에서 율이(栗伊)라는 도적이 서림이 다시 임꺽정과 연락하였다고 하여, 명종은 서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신들과 논의하게 된다. 대신들은 대체로 서림이 도적으로서 흉악한 자이지만, 체포된 뒤로는 임꺽정 일당을 잡는데 협력을 많이 했고 정보를 제공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서림을 잡지 않았다면 '가짜 임꺽정'에 몇번이나 속아넘어갔을 것이다.]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서림을 포도청에 소속하여 투포사 [[남치근]]의 감시 하에 있도록 하였다.
국조보감에서는 실록의 기록과는 약간 다른데, 서림은 숭례문에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임꺽정 일당이 [[구월산]]에서 포위되자 관군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산을 내려와서 투항한다. 그리고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남치근에게 고해바친다. 여기에서는 서림을 '모주(謀主)'라고 하여, 그가 임꺽정의 모사꾼임을 언급하고 있다.
조선 인종 때 문신 박동량(朴東亮)이 저술한 기재잡기(寄齋雜記)에서도 임꺽정의 죽음과 관련되어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실록의 기록과는 상당히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며, 기록된 시기가 명종 시기와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설화적인 측면이 강한 기록으로 볼 수 있을듯 하다.
기재잡기에서 실록과는 달리 국조보감의 기록을 따라서, 관군이 구월산을 포위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하산하여 관군에 투항하여 [[남치근]]에게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알렸다고 한다. 서림의 투항으로 임꺽정 일당은 은신처가 발각되어 토벌당하게 된다. 또 임꺽정을 마지막까지 따르던 5~7명 역시 서림이 유인하였고, 관군에게 체포되어 모두 참살된다.
야사 <연평일기>에 따르면, [[이괄의 난]]에서 패전 뒤 [[이괄]]의 목을 베어 바친 자들에게 대간이 반역죄를 주장할 때, 권신 이귀가 “선왕 때 서림(徐霖)이 대간의 아룀으로 인하여 비록 공훈은 삭탈당하였으나, 특명으로 동지(同知)에 임명되어 녹을 받은 사실이 있었으니 이제 이러한 전례에 따라 익헌 등의 죽음을 용서하여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 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림은 공훈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특례로서 관직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서림산 서림장군 전설 : 충남 천안에 서림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서림장군'이라는 장군이 있었다는 곳이라 한다. 이를 서림의 이름과 연관하여 보기도 하는데, 단순히 이름의 일치에 불과한 전설이라 그리 확실한 건 아니다.[[http://www.oneclick.or.kr/bbs/boardView.do?id=81&bIdx=60757&page=1&menuId=134&bc=0 (참조)]]
* 실록과 국조보감에서 서림의 체포/투항 시기나 정황이 다르다.(남대문 밖/구월산) 실록에서는 서림이 도적과 다시 연락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한 번 체포된 뒤에 남치근에게 포섭되어 한동안 [[이중스파이]]로서 활동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남대문 밖에서 체포되어 남치근의 관리하에 있다가, 구월산으로 돌아가서 정보를 다시 빼내고 재투항 했다고 상상할 수 있을지도.
- 송주훈 . . . . 10회 일치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니가타에서의, 실질적인 데뷔 시즌. 니가타에서도 송주훈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는지 [[등번호]]로 팀의 핵심 [[센터백]]들이 주로 받는 4번을 받았으며, 시즌 초에는 부상 완치에 집중하느라 출장하지 못하다가 완치된 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이 상위 리그에서도 실력이 통하는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소속팀인 니가타가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31795869929652224|강등이 확정되면서]] [[J1리그]] 경험은 1년만에 끝났고, 이전 소속팀이었던 미토와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다음 시즌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니가타와 재계약을 맺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51257265041887232?s=17|#]] [[아시아 쿼터제]] 폐지로 인해 이적해봤자 [[벤치워머]] 신세일 것이 뻔한 [[중국 슈퍼 리그]]로 가느니 일본에서 주전으로 뛰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헤딩을 정말 잘해요. 헤딩을 하기 위한 피지컬을 타고난 선수에요. 샤워할 때 맨몸을 보면 몸이 정말 좋아요. 몸싸움도 능하고 공중볼에 대한 확실한 강점이 있는 센터백이에요.”''' - [[구성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10회 일치
* 일찍이 [[사이바 죠이치로]]는 그 천재성으로 높게 평가되었으나 워낙 기행과 임무방기가 판쳐서 실력에도 불구하고 십걸의 2석에 머물렀다.
* 그러나 그것과는 무관하게 동세대 2인자 [[도지마 긴]]이 동경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대외적으로도 토오츠키 학원의 1인자로 이름을 날렸다.
* 우리세대 최강의 요리사는 [[사이바 죠이치로]]였다, [[도지마 긴]]의 폭탄발언에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분명 그들이 아는 당시의 십걸 1석은 도지마였고 죠이치로는 2석. 도지마는 십걸 서열은 요리실력도 보지만 학업과 공헌도 등을 두루두루 평가해 결정된다며 요리실력이야 죠이치로가 최강이었지만 정작 하는 행동거지가 막장이고 지금의 [[유키히라 소마]]를 좀 더 사악하게 업그레이드한 듯한 기행가였다. 소마의 기행을 익히 아는 두 사람은 "역시 부자는 닮는다"고 쓴웃음을 짓는데 도지마는 그 말을 듣고 "닮았다... 이건가..."라며 중얼거린다.
사실 그날은 죠이치로의 십걸평의회 가입 최종심사와 임명식이 있는 날. 그렇게 자리 비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 모양이냐고 멱살을 잡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태연한 태도로 "네가 내 몫까지 듣고 나중에 알려줘"라고 대충대충 넘어간다.
[[다이미도 후미오]] 여사는 이들이야 말로 쿄쿠세이 기숙사의 황금기가 도래할 징조라며 높이 평가한다. 그런 그녀는 "나카무라", 후일 [[나키리 아자미]]를 언급하며 그 또한 둘에 못지 않게 성장하고 있다고 칭찬한다. 마침 아자미가 나타나는데, 그는 왠지 십걸 등극 보단 콩쿠르에서 우승한 쪽을 더 신경쓰고 있다. 그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음식은 어떤 음식이었냐고 묻고 조리법을 세세하게 따져묻는데 그게 다 자신의 노하우로 흡수해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때부터 검은 아우라를 풀풀 날려대는 속이 검은 타입이었다.
어쨌든 이 셋이 쿄쿠세이 기숙사의 유망주 삼인이자 여학생들의 인기도도 가장 높은 삼인조. 셋은 일과가 끝나면 따로 모여 식극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론 죠이치로가 언제나 우위.
* 그날 밤. 죠이치로가 신작을 시험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생들은 너도 나도 조리실로 몰려간다. 그들은 이번엔 또 어떤 발상을 가미했을지 기대하며 죠이치로의 신작을 맛 보는데, 그 리액션이 뜻밖이다.
* 우렁찬 구토소리 때문인지 도지마와 아자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끼고 조리실로 달려온다. 그 사이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내놓은 황당무계한 요리를 놓고 당혹한 표정이다. 마치 도마뱀 말린 것을 태워서 플레이팅한 듯한 비쥬얼. 하지만 당황하던 학생들 사이에 웃음이 번져간다.
그때까지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죠이치로가 함께 웃으며 "실패해버렸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학생들은 그가 또 괴짜요리를 만든 거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죠이치로는 거기에 동조하듯 "더 먹지 않겠냐"고 들이대고 다닌다.
- 식극의 소마/228화 . . . . 10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는 출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굳이 약한 선수를 강한 상대에게 부딪혀 나중에 확실한 승리를 따내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 [[메기시마 토스케]]와 [[코바야시 린도]]는 박빙이었으나 결국 린도의 승리. 반역자들은 십걸 상위 멤버의 실력을 새삼 실감한다.
* 2rd Bout를 앞두고 출전자를 선발하면서 [[나키리 에리나]]는 "버리는 대장 작전은 의미없다"는 전제를 세웠다. 오히려 상위 실력자에게 맞먹는 실력자를 붙여서 이겨나가지 않으면 최종적인 승리는 불가능. 전략안이 결여된 [[유키히라 소마]]로선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는 슬쩍 [[타쿠미 알디니]]에게 에리나가 한 "버리는 대장"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우선 전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타쿠미가 "강한 적에게 약한 적을 붙여 버리는 패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해줬지만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그때 에리나는 퍽 냉정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 그야말로 압도적. 반역자들은 센트럴의 힘을, 십걸 상위 멤버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rd Bout 이후 침체돼 있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카와시마가 그만한 전력을 보내놓고 전멸 당했다며 꼴좋다고 조롱했으나 에리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만일 먼저 대전자가 강적의 전력을 충분히 소진시켰다면 바톤을 이어받는 대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통상적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것도 연대식극의 전술. 패배는 사실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희망을 남겼고 그걸 남은 사람들이 확실히 이어받게 될 것이다.
* 에리나의 예측대로 츠카사, 린도, 사이토의 소모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이토와 츠카사가 논의한 바로는 오늘은 확실히 무리고 내일 대전도 하루를 쭉 쉬어야 할지 몰랐다. 린도는 그보다도 더 걸릴지도 몰랐다. 전 십걸 3석인 메기시마가 상대였으니 셋 중 가장 소모가 심했을 것이다. 린도 본인은 키노쿠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주제에 여전히 "이정도는 금방 회복한다"고 떠들고 있었지만 지금도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 [[잇시키 사토시]]는 냉정하게 승부를 관망하는 에리나를 보고 대장으로 풍격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흐뭇해했다. 한편 결국엔 지고 만 쿠가는 돌아오자 마자 벌렁 드러누워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리나가 충분히 공헌했다고 말해줘도 "위로는 됐다"며 생떼를 부렸다. 결국 투정을 감당하는건 소마의 몫이었다. 어깨를 주무르라는 둥, 땀을 닦으라는 둥, 차를 내오라는 둥 실컷 소마를 부려먹고 나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하지만 소마가 기껏 차라고 가져온게 츠카사가 우려놓은 거여서 다시 발끈. 한동안 그 차를 들여다 보던 쿠가는 냉큼 들이켜 버렸다. 그는 츠카사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말하던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그의 목적은 거의 완수된 거나 다름 없었다. 츠카사에게 자신을 각인시킨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말이다. 쿠가는 츠카사의 곤란한 표정을 본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오늘에 한해서는.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0회 일치
코너는 미리암의 캠프 근처에서 어슬러거리던 노리스를 발견한다. 노리스는 미리암에게 칼을 선물하려 하는데, 자기가 여자에게 칼을 선물하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초조함을 느끼던 것. 노리스는 코너에게 같이 가달라고 한다.
코너는 먼저 라일에게 사실을 알려준 배달부를 찾아간다. 라일에게 다리를 치료받은 적 있던 배달부는 라일을 비난하는 팜플렛이 신문팔이들에 의해 뿌려진다고 말해준다. 코너는 신문팔이들에게 뇌물을 줘서 팜플렛의 배포를 멈춘 다음 신문팔이들에게 팜플렛을 뿌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 적당히 처리한다.
>이곳이 큰 의미를 무언가가 되었다는걸 네가 알거라고 믿는다. 이 공동체는 이 국가가 되려는 곳이 어떻게 될 수 있는가의 예시가 된단다. 하지만 커지고 강해질수록, 부서지기 쉽고 지키기도 어렵게 되지. 이 어린 나라를 탄생시려키는 네 친구들이 이 진실을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너의 변함없는 고집과 정직함이 너에게 너무 큰 책임을 지게 했단다. 하지만 넌 해낼 수 있단다. 늙은이에게 모든걸 잃지 않았다는 희망을 줘서 고맙다. 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묻어줬으면 좋겠구나. 세상 다른곳 보다 그곳에 묻히고 싶어.
전투가 끝나고 난 후, 코너는 폴크너에게 사실을 말해주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코너가 망원경으로 확인해본 결과, 그건 랜돌프와 그 갑판 위에서 아퀼라를 보고 있는 비들이었다. 폴크너는 랜돌프를 쫓으려고 하지만, 코너는 움직일 수 없는 라 벨라도나를 지키기 위해 추격을 포기한다.
코너는 비들과 일기토를 벌여 비들을 쓰러뜨린다. 비들은 근처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 코너를 쏘지만 총알은 코너를 맞추지 못하고 탄약고를 맞춰 폭발을 일으킨다. 이로인해 두 사람은 밑 선실로 떨어진다. 이후 코너는 비들과 또 한번 전투를 벌여 그를 쓰러뜨린다.
>비들: 고통. 난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반대자들을 제거하고 애국자들에게 힘을 주었지. 내가 제독의 자리에 올랐으면 어째서. 이 혁명은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거기 알맞는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알맞는 사람. 내가 아니었으면 대륙 해군은 땟목 한줌으로 남았을거다. 네놈의 선견지명에도 불구하고, 너희 암살단이 진실을 가리는군.
* 헨더슨의 체력 손실 50% 미만
* 체력 손실 50% 미만
* 아군 선박 손실 4척 미만
코너는 부두에 있던 갱단 두목을 제거하고는 그가 템플기사단원이었다는걸 밝힌다. 던컨은 그 사실에 놀라워하면서도, 코너에게 감사를 표하며 사람이 필요하면 부르라고 한다.
- 요괴:냉장고 . . . . 10회 일치
얘기를 좀 바꿔야겠는데, 나는 첫남친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겼어요. 이거 우리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엠바고에요 엠바고. 내가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남친이래 봐야 둘이서 자전거타고 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사이 정도였죠.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니까 만든 거지 그 이상 관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진지하게 나온건 그쪽이었죠. 점심시간에 부르더니 그러더군요. "오늘 우리 집에 엄마아빠 없어"라고요.
"목 마르니까 마실 거나 줘. 콜라 있어?"
"아니. 콜라는 없어. 쥬스 있는데 마실래?"
나는 이상한 예감을 느끼면서 방 밖을 쳐다봤어요. 달라질 만한건 당연히 없었죠. 우리는 줄곧 그 애 방에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찜찜한 이물감 같은게 공기 속을 날아 다니고 있었어요. 방에서 나와봤죠. 마찬가지였어요. 거실이 보이고, 그 옆에는 주방이... 그런데 거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죠. 평소라면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거에요. 그 애는 장이 약했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서 그 냉장고가 딱 마주 보이더군요. 그때 이미 양문으로 벌어지는 커다란 냉장고가 유행하고 있었어요. 우리 집도 그런걸 썼죠. 그런데 그 애 집의 냉장고는 위 아래로 열리는 탱크처럼 생겼었어요. 꽃무늬도 없고 와인 컬러도 안 들어간 회색 물탱크처럼 냉장고.
냉장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나는 속지 않았어요. 내가 처음 냉장고를 보고 생각한 것, 그애가 화장실에 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건 근거가 있었어요.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 소음이었죠. 누가 음악이라도 틀었더라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에요. 누가 기침만 해도 들리지 않았을 거라구요. 영문을 몰라하는 동생을 데리고 나는 냉장고로 갔어요. 한 발짝 씩 다가갈 때마다 그 소리는 더 뚜렷하게 들려왔죠. 콩콩콩콩. 규칙적인 네 박자.
냉장고 손잡이로 향하는 내 손이 독한 감기약에 취한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어요. 그리고 현실을 비집어 넣는 싸늘한 플라스틱의 감촉. 머릿 속에서 안 된다고 되뇌이는데도 손은 멈추지 않았어요. 텅하고 열리는 문짝이 아주 서서히, 서서히. 그러는 사이에도 콩콩콩콩 규칙적인 네 박자는 멈출 줄을 몰랐죠. 냉장고 안에 주황색 등이 켜지고 나는 냉장고 안이 보이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혔죠. 그리고...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결국 햄스터는 사주지 않은 것과, 그 애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거에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길에서도. 그 애가 잘 다니던 어디에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죠. 걔네 부모님들은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죠. 나는 차라리 나타나지 않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돌아온다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무엇을 하다 온 걸까요? 그 애가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건 물어볼 일이 없는 편이 나았죠.
경찰이 우리 집에 온 건 딱 한 번이에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나랑 내 동생이 찍혔더라고요. 그때 두세 살만 많았어도 용의자로 분류될 뻔 했다는걸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요. 경찰이 특이한 점은 없었냐고 묻길래 초대 받아 갔다가 동생을 데리고 왔다고 화내서 그냥 집에 왔다고 했죠. 약간 생략한 부분이 있을 뿐 대체로 진실이었으니까요.
- 원피스/859화 . . . . 10회 일치
* 루피는 사실상 총알받이 역할을 강요받았지만 빈스모크 일가를 구하기 위해 흔쾌히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등장할 방법"도 있다고 즐거워한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그 말에 동감한다. 암살이라면 순식간에 처리할 필요가 있고 그게 실패하면 포위 당해 죽을 뿐이다. [[몽키 D. 루피]]는 역시 사황은 그정도로 대단한 거냐고 묻는데 [[브룩]]을 구할 때 직접 대면했던 [[나미(원피스)|나미]]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치를 떤다.
* 벳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암살계획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건 [[시저 클라운]]의 포획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저... 현재명 "가스티노"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지 말라며 반발한다. 행여나 빅맘 앞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며 암살만 잘 끝나면 심장을 돌려받을 것이고 그럼 제일 먼저 벳지를 죽이겠다고 아우성친다. [[샬롯 시폰]]은 "걱정하지 마 가스히코"라며 벳지는 약속을 지킬 거라고 반박한다. 또 이름이 잘못 불리자 반발하는 가스히코. 하지만 나미는 "쓰레기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냐"고 해서 쓰레기를 닥치게 한다.
빅맘의 다과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다과회의 주역들이 원탁에 둘러 앉을 때 빅맘의 맞은 편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놓인다. 이것은 빅맘이 가장 아끼는 보물로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사진은 액자에 담겨 정중히 자리에 놓이며 사진이 놓인 자리엔 누구도 앉거나 건드려선 안 된다. "마더 카르멜"은 미지의 인물로 가족들 조차도 "빅맘의 은인"이란 것만 알 뿐,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폰은 이 인물이 실종됐다고 하는데.
* 거기서부터 시폰이 이어서 말한다. 한 번은 급사가 다과회 준비 중 실수로 사진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때 빅맘은 평상시의 발작과도 다른, 아주 극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얼굴이 새파래진 빅맘이 들어본 적도 없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것이다. 먹을게 없을 때 일으키는 발작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도 못하고 귀를 감싸고 있는게 고작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리기도 했다. 벳지는 괴성에 섞어 패왕색 패기를 은연 중에 방출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저 사진이 떨어진 것 뿐인데 말이다.
중요한 건 이때 쇼크로 쓰러진 빅맘. 그녀는 이때 무릎을 꿇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렸다. 벳지는 빅맘도 과연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고 놀랐다고 한다. 이 상태의 빅맘이 평소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잃는건 자명하다.
* 이것으로 작전회의는 종료. 각자의 위치에서 실행을 준비하기로 한다. 현재 시각은 다과회 개시로부터 2시간 반 전. 상디는 신랑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벳지 해적단도 호위 준비에 들어간다. 루피는 등장할 때를 위해 뭔가 부탁할게 있다고 하다가 벳지가 "재미에 집착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 제르마 왕국 쪽도 비슷한 양상이다. 병사들은 결혼식 같은거에 호위가 필요하겠냐며 답지 않게 풀어진 모습이다. 홀 케이크 성의 제르마 일가는 정장으로 갈아입는 중. [[빈스모크 저지]]는 [[빈스모크 레이쥬]]가 없어진걸 눈치채지만 깊게 신경쓰진 않는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별실에서 준비를 끝냈을 거라 여기며 역시 신경쓰지 않는다.
* 9층 빅맘의 침실에선 빅맘이 가벼운 발작을 일으킨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해서 가보니 브룩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걸 눈치 못채고 "해골이 죽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가 "오늘은 다과회"라고 달래자 웨딩케이크를 떠올리곤 급빵긋한다. 병사들은 온 김에 "모건즈"란 사람이 손님으로 도착했다는 소식과 다른 내빈들의 도착을 알린다.
- 은혼/600화 . . . . 10회 일치
* 사무라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비장한 일침 뒤에 화장실을 빌리려는 노부노부. 그러나 가츠라와 다츠마가 허락하지 않는다.
* 화장실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나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협상 테이블. 결국 노부노부는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두 지도자는 비밀을 가슴에 품은 채 평화로 향하는 교섭에 한 발 내딛는다.
* '''화장실을 빌린다.'''
* 그러나 피도 눈물도 인권존중도 없는 가츠라와 다츠마는 교섭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를 화장실에 보낼 마음이 없다.
* '''원할 때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 어쨋든 노부노부는 할 일은 다 했다며 화장실로 향하지만 아직도 가츠라와 다츠마는 허락하지 않는다.
* 가츠라와 다츠마는 일일히 "똥이잖수"라고 독백하지만 결코 진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
* 그때 나타난 가츠라와 다츠마. 그들은 노부노부보다 먼저 화장실을 요구하며 그를 해방시켜 준다.
- 은혼/634화 . . . . 10회 일치
* 겐가이가 겐가이포 무력화 실린더라도 알려준 것은 사실은 폭발물. 아주 민감한 물건이라 금방 폭발을 일으키고 겐가이와 야토족들이 폭염에 휩쌓인다.
* "겐가이 포를 무력화시킬 방법을 알려주면 [[엔죠]] 황자의 목을 따주겠다." 야토족 용병부대의 대장 "노사"는 그런 조건으로 [[히라가 겐가이]]의 협조를 받아낸다. 그가 일러준 하천 근처를 파해쳐 보니 케이스가 나왔고 그 안엔 냉각된 실린더가 있었다. 보고를 들은 노사는 "무슨 방법이 있다"던 겐가이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 역시 해방군을 상대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상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식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사실 가구라는 그저 감에 의해서 달려가던게 아니었다. 그녀는 전장에 난무하는 살기 속에서 유독 이질적인 살기를 감지했다.
* 이제 지구의 봉쇄도 끝이다, 노사는 그렇게 말했다. 겐가이가 제공한 실린더에는 나노머신 "벌"을 멈출 물건이 들어있다. 이것은 "벌"을 파괴하는 나노머신. 겐가이의 말대로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부수는 유일한 창"이다. 이 녀석을 뿌리면 에도를 장악한 나노머신이 멈추지만, 이걸 뿌릴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모순된 상황.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량의 폭약이다. 폭발을 이용해 이 안티나노머신을 연쇄적으로 확산시켜서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 거기를 기반으로 에도에서 벌을 지워버린다. 시간이 들더라도 이 방법이 최선이다.
노사는 기계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폭약을 통해 벌을 억제할 수단을 만든 겐가기의 발상에 감탄한다. 그는 안티나노머신이 든 실린더를 들고 신기한 듯 들여다 본다. 그리고 겐가이 영감에게 "잘도 협력할 생각을 해줬다"는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을 한다.
지금 해준 협조 정도라면 엉덩이나 좀 걷어차였더라도 충분히 해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협조에 대해서 말이지만, 안티나노머신을 퍼뜨리는데 쓰는 폭약은 좀 특수한 것이다. 온도변화에 민감해서 사람이 좀 만지는 찰라의 온도변화로도 폭발을 일으키는 놈이다. 가령, 노사가 잠시 실린더를 들고 있는 정도만으로도.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노사가 당황한 나머지 실린더를 떨어뜨린다. 겐가이가 속였다. 그가 알려준건 안티나노머신이 아니라 폭약 쪽이었다. 곧 실린더들이 대폭발을 일으킨다.
- 장헌식 . . . . 10회 일치
'''장헌식'''(張憲植, [[1869년]] [[음력 9월 21일]] ~ [[1950년]] 양력 [[8월 20일]])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관료를 지냈다. [[경기도]] [[용인시|용인]] 출신.<ref name="실록친일파">{{서적 인용
|제목=실록 친일파|날짜=1991-02-01
1895년 일본 관비 유학생에 선발되어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하며 [[게이오 의숙]]의 보통과와 고등과 과정, 도쿄 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서 수학했으며, 일본 사법성과 요코하마항 지방재판소의 사무견습, 대장성의 사무견습으로 재직했다. 귀국 후 궁내부 주사로 임용되어 학부에서 근무하다가 한성부윤을 역임했다. [[1910년]] [[10월]]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평안남도 참여관, [[1917년]]에 [[충청북도]] 장관(도지사)으로 승진한 뒤 충청북도 도장관, 조선총독부 사무관, 총독부 관방실 계원, 1924년 전라남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8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03년]] [[3월]] 학부의 훈령으로 귀국한 뒤로는 대한제국의 [[궁내부]]에서 주사로 관직을 시작했다. [[1904년]] [[8월]] 궁내부 어홍원 주사(宮內府御供院主事), [[10월]] [[궁내부]] 제실제도정리국 비서관(帝室制度整釐局祕書官)을 거쳐 [[1905년]] [[7월 13일]] [[일본]] 시찰 수행원의 한사람으로 선발되어 일본을 다녀왔다.
[[1921년]] [[2월 12일]] [[조선총독부]] 사무관(朝鮮總督府 事務官)이 되고, 3월 10일 종4위(從四位)로 승급하였다. [[1921년]] [[3월 18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실(總督官房室) 행정관이 되었다. 1921년 3월 20일 칙임사무관(勅任事務官) 민정시찰관에 임명되어 4월 7일부터 6월 19일 [[평안남도]], [[평안북도]] 일대를 민정시찰하였고, [[10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는 민정시찰관으로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민정시찰을 다녀왔다. 이때 그는 관용 차량이 주어졌지만 거부하고 열차와 대중교통으로 시찰을 다녔다. [[1922년]] [[2월 15일]]에는 [[전라남도]]를 [[3월 5일]]부터는 [[전라북도]]를, [[7월]]에는 [[강원도]]를 시찰다닌 뒤 [[7월 22일]] 귀환하였다. [[9월 4일]]에는 [[황해도]] 수해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ref> [[1921년]] [[2월]] [[조선총독부]] [[사무관]](朝鮮總督府 事務官)으로 전임되고, [[고등관]] 1등(高等官一等)에 서임었다. [[1921년]] [[3월 18일]] 총독부 총독 관방실에 발령되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 자본가 단체인 [[동민회]]에 가담했으며, 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또다른 친일 단체 [[대화동맹]] 결성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있다.<ref>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 반민특위 조병상 공판조서 (제1회) 중 조병상의 수기 (1949).</ref> [[1924년]] [[12월 1일]] [[전라남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전남 지사직에서 물러난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중추원 칙임참의를 7회에 걸쳐 중임하였다.<ref name="실록친일파" />
장헌식은 관직에서 퇴임한 뒤로도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37년에는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을 후원한 활동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육군대신 명의의 표창을 받은 바 있고,<ref name="실록친일파" /> 37년 8월 21일에는 애국금차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로는 시국강연반에 가담하여 전쟁 지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뒤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과 [[조선 임전 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이때는 이미 70대의 노구였으나, 학병 지원을 독려한다며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8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 칙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었다.
[[1926년]]부터 [[1945년]] 광복 시점까지 19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으며, [[1945년]] [[5월]] [[이왕직]] 장관으로 관직에 복귀해 있었다. 광복 당시 그는 이왕직 장관이었고, 11월 8일 구황실사무청이 설치될 때까지 계속 재직하였다.
|제목=실록 친일파|날짜=1991-02-01
- 정용화 . . . . 10회 일치
* [[2011년]] [[3월 21일]], 첫 정규 음반 발매 및 게릴라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컴백 씨엔블루 오늘(21일) 앨범발매→쇼케이스→게릴라콘서트 3단콤보|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3211126181002|출판사 = 뉴스엔 |날짜 = [[2011년]] [[3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과 함께 게릴라 콘서트…팬들 “역시 실력파 밴드는 달라”|url = 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출판사 = 마이스타뉴스|날짜 = [[2011년]] [[3월 21일]]}}{{깨진 링크|url=http://mystar.mdtoday.co.kr/mystar/index.html?no=479272 }}</ref> 선주문 10만장이 넘은 이 앨범은 발매 직 후 실시간차트와 일간차트 등에서 1위를 하였고, 컴백 일주일 후 [[3월 3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시작으로 하여 공중파인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컴백 1주 만에 '엠카' 1위··"초심 잃지 않겠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3115421314776|출판사 = 아시아경제 |날짜 = [[2011년]] [[3월 3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직감' 잇따른 1위, 'FIRST STEP'의 놀라운 '직감'|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402140007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날짜 = [[2011년]] [[4월 2일]]}}</ref> 데뷔 후 처음으로 [[Mnet]] 《[[엠카운트다운]]》과 [[KBS]]《[[뮤직뱅크]]》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 [[2011년]] [[12월 4일]]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겨울투어를 실시하여, [[12월 4일]] 센다이, [[12월 6일]] 나고야, [[12월 14일]] 오사카, 그리고 [[12월 16일]] 도쿄에서 일본 전국 투어를 실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전국투어 마지막 공연 13000명 동원 ‘1분 만에 티켓 매진'|url=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01&c2=01&c3=00&nkey=201112191637321&mode=sub_view|출판사 = 한국경제연예|날짜 = [[2011년]] [[12월 19일]]}}</ref>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상 반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반응 폭발…컴백 기상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같은 소속사 가수 [[주니엘]]의 데뷔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고 듀엣곡과 뮤직비디오 출연소식이 연이어 들리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으며, 직접 출연한 선공개곡 ‘바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티저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팔에 키운 완두콩, 주니엘 뮤비서 공개 |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275926599530232|출판사 = 이데일리|날짜 = [[2012년]] [[5월 18일]]}}</ref> [[2012년]] [[5월 22일]]에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와 주니엘의 듀엣곡 ‘바보’ 22일 선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521022078&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5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주니엘-정용화 듀엣곡 '바보', 실시간 차트 2위로 기분좋은 출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5월 22일]]}}</ref>
* [[2012년]] [[7월]]부터 [[2011년]] [[6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문화방송 수목 미니시리즈|MBC 수목 미니시리즈]] 《[[넌 내게 반했어]]》가 일본 공중파 후지TV에 방영을 시작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일본 인기 파워 실감- ‘넌 내게 반했어’ 일본 공중파 입성 |url=http://nanumnews.com/sub_read.html?uid=42246§ion=sc208|출판사 = 나눔뉴스|날짜 = [[2012년]] [[5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출연작 '넌 내게 반했어' 日 후지TV 진출 '경사났네' |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26944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TV리포트 |날짜 = [[2012년]] [[5월 16일]]}}</ref> 또한, 공중파 방영 전에 [[2012년]] [[7월 16일]]에 일본에서 공식적인 팬미팅을 개최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박신혜, 日 '넌 내게 반했어' 방영 앞두고 팬미팅 개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95980|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6월 13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성료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출판사= 조선일보 |날짜= [[2012년]] [[7월 17일]] }}{{깨진 링크|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ref> 티켓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반했어′ 日팬미팅 1만석 매진 ″현지 열기 후끈″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67085|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7월 11일]]}}</ref>
* [[2012년]] [[7월 30일]]에 같은 소속사 가수 AOA의 데뷔앨범에 자작곡 'Love is only you'를 선물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AOA (음악 그룹)|AOA]]에 자작곡 'Love is only you' 선물…'종횡무진 활약'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45461 |출판사= 엑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7월 27일]] |확인날짜= 2012-11-2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30129230835/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45461 |보존날짜= 2013-01-29 |깨진링크= 예 }}</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걸그룹 AOA 지원사격..자작곡 선물로 '실력 입증'|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48643|출판사 = TV리포트|날짜 = [[2012년]] [[7월 28일]]}}</ref>
* [[2012년]] [[10월 2일]]부터 [[10월 21일]]까지 일본 전국 6개지역을 돌며 아레나 투어《Arena Tour 2012 Come On~》를 실시하여 10만명을 동원하였으며, 마지막은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마무리지었다.
* [[2012년]] [[11월 2일]]에 KBS에서 진행된 《MUSIC BANK IN CHILE》에서 본인의 솔로로 무대에 올라 기타 연주와 함께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스페셜 무대를 꾸몄는데, 이 곡 편곡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 출연자가 무대에서 부른 ‘아리랑’의 편곡도 맡아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편곡자로 실어 눈길을 끌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소식에 네티즌 호평 "진정한 싱어송라이터"|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239010§ion=sc4|출판사 = 브레이크뉴스|날짜 = [[2012년]] [[11월 18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 아리랑 편곡, 전 출연진 열창 순서에 자막 ‘편곡:정용화’ |url=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출판사= 파이낸셜뉴스 |날짜= [[2012년]] [[10월 23일]] }}{{깨진 링크|url=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4038 }}</ref>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10회 일치
'''아줌마.'''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이렇게 있으니까 '''평범한 시체'''같군. 바글거리는 파마머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상반신에는…… 또 '''토트넘'''이냐? 이놈의 집구석은 토트넘 유니폼을 일상복으로 입고 있었어? '''그만 좀 해라!''' 좌우간 이게 이 집 아줌마였다는건 분명한 사실이군.
아줌마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타입이 아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아줌마니까. 내가 어디에서 살든 어떤 거리를 걷든 한 명 정도를 보일 정도로 흔한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도 냉동실에서 보기에되면 꽤나 인상적이군.
냉기는 없었다. 식재료를 담은 봉지가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문이 열리면서 몇 가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철퍽하는 소리가 듣기에도 부패의 느낌이 났다. 다만 아줌마의 상태는 상체만 남은 걸 빼면 양호했다. 그야 부패의 기미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지만 매일 햇볕에 노출되었던 토트넘에 비하면야. 잘 됐군요 아줌마. 처음으로 아저씨보다 동안이란 말을 듣게 됐어요. 냉동실에서 들은 거긴 하지만.
죽은 아내를 냉동실에 처박아야 했던건…… 글쎄?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정식 장례를 밟으려면 십중팔구 아저씨가 감옥에 가야 했다. 뭐, 그래도 이감되기 전에 녀석들이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테니까 누명은 벗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때쯤이면 교도소 안이 '''사회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에 내버려 둘 수야 있나? 그 썩는 냄새를 어쩌려고.
나는 잠시 동안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부질없는 퍼즐 맞추기를 계속한 결과, 한때나마 원래는 인간이었고 이웃이었고, 내가 말을 주고 받던 대상이었음이 떠오르고 말았다. 한 명은 내가 마무리를 지어줬는데 어떤 면으론 장례식을 치뤄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내는 지금 냉동실에서 썩은 고기가 되어 있는걸 발굴해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썩어빠진 인간관계'''가 돼버렸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냉동실로 눈을 돌렸고, 그때
마누라가 좀비가 됐다고 머리를 날리고 싶지 않을리 없다. 그러고 싶지 않았던게 아니라 못했던 거야! 머리를 쪼개기엔 저항이 너무 심했으니까! 그래서 옆에서 허리를 잘라내야 했던 거겠지. 하지만 녀석들에겐 그런건 통하지 않고 두 팔로 활개치고 다니도록 해줬을 뿐이야. 결국 아저씨는 주방까지 쫓겨왔을 거고 사투는 거실과 주방으로 이어졌다. 엉망이 된 거실은 그때의 흔적이다. 마참내 도끼까지 놓친 아저씨는 구사일생으로 냉동실에 아줌마를 처박아버리고 문을 꼭 닫아버린 거야. 그대로 얼어버릴 때까지 냉동실 문을 꼭 막고 있었겠지. 아직 전기가 쌩쌩하게 돌던 때니까 아줌마를 얼리는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동안 아저씨 본인도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 최광수 (공무원) . . . . 10회 일치
| 경력 = 국방부 차관 <br/> 대통령 비서실 실장 <br/> 체신부 장관 <br/>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 <br/> 외무부 장관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1956년]] [[2월]]을 기하여 외무부에 입부되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의 [[외교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주미 3등서기관, 주일 2등서기관, 동북아주과장, 주미 참사관, 통상진흥관, 아주국장, 국방부 차관, 대통령비서실장, 제1무임소장관, 체신부장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주유엔 대사, 외무부장관, [[하버드 대학]] 아시아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1992년]]-[[1993년]])을 역임하였다.
|직책 =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 서리]]
|직책 =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비서실장]]
|직책 = [[대한민국 제1무임소장관실|제1무임소 장관]]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창신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주 최씨]]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10회 일치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캡콤]]의 [[아케이드]] 게임으로, 제목의 캐딜락은 원작에서 주인공 잭이 몰고 다니는 캐딜락 자동차(1952 Cadillac Series 62)를 뜻하며, 디노사우르스는 말 그대로 공룡. 즉 현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와 중생대 생명체인 공룡을 붙여서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 6스테이지(광기의 개조 실험) - 폐광산→정글→늪→정글
* 8스테이지(최후의 싸움) - 유전자 보관실→하수구→동굴→최종 연구소
캐딜락을 타고 돌진하며 적들을 깔아 뭉개는 재미가 쏠쏠하다. ~~[wiki:"무스카" 우하하!! 사람이 쓰레기와도 같아!!!]~~ 더구나 이 판에서는 총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총 좋아하는 유저는 실컷 총질도 할 수 있다. 잘하면 주먹은 딱 한 번만 쓰고 스테이지 클리어가 가능하다. 단 스코어링을 노릴시 차를 타면 그대로 [[망했어요]] 신세가 되니까 스코어링시에는 차는 거뜰떠 봐서도 안 된다. 정확히 말해서 가끔 나오는 안테나 달린 라디오 아이템을 먹으면 안된다. 먹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자동차 호출...
불타는 마을에서 모건이 공룡으로 변해버린 걸 본 주인공 일행은 그 바로 윗동네인 광산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센덴 박사가 개발한 3단변신 괴물을 보고, 이에 따라 단순한 껄렁이 조직인줄 알았던 블랙 마켓은 알고보니 천재 과학자 시몬 페센덴이 거느린 거대 조직임이 드러났고 페센덴의 진짜 목적인 '모든 이들에게 공룡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공룡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이 시작된 해상 도시로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치며 지하의 기지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박사가 없었고 거기에는 슬라이스를 개조한 슬라이사우르스 2마리(혹은 3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주인공 일행은 더욱 깊숙이 내려가서 동굴 끝에 있는 페센덴 박사의 숨겨진 연구실에서 공룡으로 변한 페센덴 박사와 대결해 이기게 되었으나 박사는 자기 몸에 공룡 머리 두 개가 붙은 무려 삼두룡으로 진화하며, "세계는 내 것이다!"라며 공격해온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의 다구리(…)를 못 이기고 패배한다. 이 때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있다고 외치며 저항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연구실과 자폭하여 온 몸이 터진다. ~~수류탄과 바주카 맞아서 흩어진 애들은?~~.
이후 연구실이 무너지자 주인공 일행은 수류탄으로 비상구를 부수고 도망간다. 통로를 따라 뛰어가던 도중 한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잭이 그녀를 구하느라 뒤에 남자 무스타파와 메스만 탈출하게 된다. 그 둘은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연구실은 이미 폭파된 뒤였고, 그들은 쓸쓸히 스테이지3의 데스 밸리를 걸어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잭은 이제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고~~[[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가 "이제 집으로 가자!(Let's go Home!)"라고 말하면서 속력을 높이자 무스타파와 메스가 ~~태워달라고~~ 함께 뛰면서 캡콤 로고가 나오며 게임이 끝난다.
- 페어리 테일/545화 . . . . 10회 일치
* 나츠는 "됐으니까 일하러 가자"고 데려가는데, 사실 그 날은 엘자, 웬디, 그레이, [[샤를(페어리 테일)|샤를]]과 함께 "100년 퀘스트"를 떠나는 첫날이다.
"이리스의 모험"은 그녀가 자신을 모델로 만든 주인공 "이리스"의 모험을 다룬 소설이었다. 출판관계자들과 작가들이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몰려온다. 그들은 인기 소설의 원작자가 이런 미인일 줄은 몰랐다고 공치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녀는 사실 페어리 테일 길드 소속"이란 말을 꺼낸다. 그 말이 퍼져나가자 이 경사스런 자리에 왜 저런 이색적인 집단이 참석했는지 이해가 갔다.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상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상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나츠는 둘이 모여있는 걸 보고 새삼 "둘의 냄새가 같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차분해지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가질은 어린 시절 기억이 돌아온 건지 "나츠는 옛날에 안나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작 나츠는 그래서 어쨋냐는 식이라 오히려 가질이 당황한다.
그레이는 자기가 원조 노출광인 주제에 쥬비아가 벗어대자 질색하며 바깥으로 끌고 나간다. "무슨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사실 모든 길드원이 그레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문득 그레이의 시선이 쥬비아의 허리 쯤에 남은 흉터에 닿는다. 그 전쟁의 흉터가. 서로 자신을 찌러서 생겼던 상처. 그레이가 웬디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레이도 자기가 찌른 자국이 그대로다. 쥬비아가 그걸 말하자 어쩐지 당황하며 "남자와 여자의 몸은 다르다"고 허둥댄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저런 식으로 결론이 난 셈이지만 그 말고도 신경쓰이는 관계는 더 있다.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한 때는 그런 관계였지만 지금은 공인된 관계가 돼서 논외. 의외로 [[렉서스 드레아]]도 혐의가 짙다. [[미라젠 스트라우스]]와는 전부터 그런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요즘은 또 잠잠한 모양. 그래도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여동생 [[리사나 스트라우스]]와도 제법 친한 관계. [[카나 알베로나]]도 의외로 같이 마시는 사이로 소문을 뿌린 적이 있다. 이렇듯 염문설은 잔뜩 뿌리고 다녔으나 정작 어디까지 진실이고 루머인지 알 수 없는, 렉서스의 여자관계.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스테리의 영역인 데다가 신경쓰이는 방향이 다르다.
* 엘자는 루시의 수상을 축하하는 한편 자신의 글재주 없음을 한탄한다. 사실 재능 여부를 떠나서, 한 번은 신세를 진 길드에 감사장을 보냈더니 중무장한 녀석들이 결투하러 왔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세상이 소화하기엔 너무 이른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그러던 루시가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뜬다. 마치 시간이 잘려나간 것처럼, 아니면 그 모든게 꿈이었던 것처럼. 일어난 루시가 서둘러 주위를 둘러본다. 틀림없이 자기 방인데... 나츠가 인사를 건네고 있다. 또 그녀의 방을 맘대로 점거 중. 이젠 놀라지 않을 때도 됐건만 루시는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다. 어제 트로피를 받은 것도 분명히 현실. 해피가 닦는답시고 건드려서 온통 스크레치를 내놨다. 여기까지 보면 평소와 같은 폭거로 보이지만, 사실 루시가 어제 파티 중에 너무 마시고 쓰러져서 나츠와 해피가 데려다 준거였다. 돌아가지 못한 것도 루시의 책임. 주사가 엄청났다. 계속 나츠나 해피한테 달라붙는 데다 엎어달라질 않나 옷을 갈아입혀달라질 않나 끝끝내 둘을 잘 때 안는 인형마냥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해피가 이같은 일들을 들려주자 기억이 플래시백 하면서 "이제 시집가긴 틀렸다"고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지금가지 여정 중에 이정도 일이 비일비재했던 걸 보면 새삼스러운 생각이다.
- 하이큐/220화 . . . . 10회 일치
* 마주치자마자 부실까지 미친듯이 경주한다.
* 하지만 쓸데없이 진을 빼서 둘 다 부실 앞에 널부러진다.
* 신나게 달려온건 좋았으나 정작 부실키도 체육관키도 없는 두 사람
* 히나타의 공을 가지고 부실 앞에서 몸울 푼다.
* 히나타는 고시키 등에 대해서 실컷 얘기하다가 유스 쪽은 어땠냐고 묻는다.
* 그가 말하는건 호시우미. 신장이 170cm에 불과하고 월간 배구에 실린 적도 없지만 합숙 멤버 중에서도 탑클래스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 그때 도착한 타나카 류노스케. 이쪽은 부실키도 확실하게 가지고 왔다.
* 타나카를 따라 부실로 향하는 계단에서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너는 훨씬 뛸 수 있다"는 말을 건진다.
* 이 훈련 덕에 선수들의 서브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 현아 . . . . 10회 일치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백'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반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현아]]의 댄스 실력은 이미 [[원더걸스]] 시절부터 인정받았는데, 비걸 출신 여가수 [[김소리]]는 "[[김현아]]는 어린데도 느낌 있게 춤을 춰요.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내기 힘든 섹시한 느낌이 잘 살죠"라며 춤을 잘추는 아이돌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소리 “포미닛 김현아-2NE1 공민지 춤실력 인정”(인터뷰)|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9-16|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이준 (배우)|이준]]역시 현아를 걸 그룹 중 최고의 춤실력이라고 극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엠블랙 이준 “김현아, 걸그룹 최고 춤실력…섹시하고 뇌쇄적”|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nid=88656&cid=24|출판사=SSTV|저자=황예린|날짜=2010-07-23|확인날짜=2010-11-25}}</ref> 가수 [[이주노]]도 “솔로곡 "Change"에서 춤추는 모습을 봤는데 춤이 아무 맛깔스럽게 추더라”며 “그 노래에서 그 표정, 동작, 노래가 나오는 것은 아주 연습을 많이 했거나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이다”라고 [[현아]]를 최고의 춤꾼으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선견지명’ 이주노 “현재 최고의 춤꾼은 포미닛 김현아” 극찬|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120180131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but뉴스|저자=이정현 기자|날짜=2011-01-20|확인날짜=2011-01-22}}</ref> 하지만, 주로 섹시하고 파워풀한 춤을 추는 [[현아]]는 어린 나이에 너무 선정적인 춤을 춘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되는 등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 name="아시아경제">{{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연습생의 마음으로 준비한 첫 정규, 설레고 신기해"(인터뷰)|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41309374724881|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강경록|날짜=2011-04-15|확인날짜=2011-04-15}}</ref>
- Crusader Kings 2/특성 . . . . 9회 일치
* 실수투성이 전사(Misguided Warrior)
''실수투성이 전사는 전쟁과 전투 기술을 익혔습니다. 슬프게도 재능은 떨어집니다.''
* 독실(Zealous) 특성과 상극
* 독실(Zealous) 특성에 대한 의견 -5
* 독실(Zealous)
''진실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인물에게 거짓말은 쉽지 않습니다. 첩보관과 음모를 꾸미는데 좋지 않은 특성이지만 외교 업무에서는 존중 받습니다."
''착실하고 근면합니다. "근면"은 일곱가지 미덕의 네 번째입니다.''
''모든 일에서 질서와 효율성을 최우선하는 성실한 행정가입니다.''
* 독실(Zealous) 특성과 상극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9회 일치
그리고 독일계 문화권국가[* 그러니깐 신롬안에서 보헤미아,실레지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들은 특정한 프로빈스들 [* 뮌헨, 프랑크푸르트, 아우구스부르크, 헤센, 브라운슈바이크, 함부르크, 록스톡, 베를린, 작센, 쾰른, 팔츠, 알자스혹은 쾨니히스베르그]에 코어가 박혀있으면 독일제국을 형성할 수 있다. [* 다만, 이경우엔 신롬에서 탈퇴된다. 주의.]
엄밀히 말해서 프로이센은 독일민족의 땅이 원래 아니었기에 신성로마제국 소속이 아니었지만, 영역이 제 1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여기에 서술한다.[* 사실 본래 '독일 민족의 땅'으로 한정한다면 메클렌부르크나 포메른일대도 신성로마제국 영역이 아니긴 하다. 독일 동방원정과 관련되어 복속된 경우.]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플레이어의 국가의 주문화권이 이탈리아 지방 문화권에 속해있을경우, 필요 프로빈스를 다먹었을때 이탈리아를 형성할 수 있다.[* 단, 교황령은 불가능. 실제 역사에서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이 교황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독립을 추진한 적이 있었으나, 교황청은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거부하여 무산되고 사보이 왕국을 중심으로 독립을 추진한 것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을듯.] 추천되는 국가는 사보이,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나폴리 정도. 본래 나폴리나 교황령등의 비 신롬소속 이탈리아 국가들은 확장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1.12패치이후 그림자 왕국(shadow kingdom)이벤트로 1490년이 지나면 이탈리아지방 국가들은 신롬에서 탈퇴하니 조금 나아졌다.
'''하나님은 세계지도가 더 영국령 색으로 칠해진 것을 원하신다. 가능하다면 나는 밤 하늘조차도 영국령으로 병합하고 싶다. -세실 로즈'''
1.19 패치 이후에 '메인 할양'이벤트가 생겼다. 헨리 6세가 앙쥬의 샤를로트와 혼인하는 대신 메인을 프랑스에 할양하는 실제 역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벤트로, 이를 거절하면 프랑스에 잉글랜드가 '왕위주장'명분으로 공격하게 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건 프랑스가 방어측이기에 프랑스는 동맹들 다끌고 올 수 있지만 잉글랜드는 공격측이기에 못그런다는거(...) 1대1로도 못이기는걸 1대다로 싸우면 절대로 못이기니 얌전히 주거나 아니면 프로방스에 팔아버리거나(...)하자.
이게임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 플레이어가 오스만이 아닐경우] '''중간보스''' 시작시부터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게임 최고의 꿀땅인 콘스탄티노플을 먹을 수 있어서 상당히 강력하다. 또다른 특이점으론 콘스탄티노플노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서 사실상 자금력에서도 최강급. 거기다가 콘스탄티노플이 자동적으로 터키 문화권+ 수니파로 개종하는 이벤트, 예니체리 이벤트 [* 타락 이벤트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고증에 충실.~~]등 자기만의 이벤트나 전용 미션도 더럽게 많이 들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좋다고 초반부터 헝가리같은 동유럽쪽으로 확장하려들다간 반국가연합걸려서 망할 수 있으니(...) 우선은 유럽쪽은 발칸반도정도만 먹어두고 맘루크와 카라 코윤루를 패면서 서아시아+ 이집트지방부터 먹는걸 추천. 아니면 정교회로 개종하는 방법도 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먹어두면 발칸지방은 콘스탄티노플빼면 전부 정교회이므로 개종이야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경우엔 동군연합을 노릴 수 있으며 결혼이 되어서 외교가 훨씬 편하단게 장점. 몇몇사람들은 라구사까지 먹어둬서 가톨릭 개종후 신롬황제를 노리기도 한다. ~~진정한 카이세리 룸!~~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9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5.1|실험적인 철로]]''' 기술 연구시 '''{{{#green +2%}}}'''
* '''Tank Experiments(전차 실험)'''
* '''전차 실험''' 발명을 발견한 국가와 전쟁 중일시 '''{{{#green +2%}}}'''
* '''전차 실험''' 발명을 발견하지 않았을 시 '''{{{#red -5%}}}'''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3.3.1|실용주의]]''' 발명 발견시 '''{{{#green +1%}}}'''
* '''Empirical Combat Efficiency Matrix(실증적인 전투 효율 행렬)'''
* '''Combat Loss Evaluation Schemata(전투 손실 계산 도식)'''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2.3|현실주의]]'''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4.2|실증주의]]''' 기술 연구시 '''{{{#green +2%}}}'''
- 가상 메모리 . . . . 9회 일치
가상 메모리 기능이 없는 OS는 메인 메모리를 그대로 물리적 어드레스에 따라서 액세스(읽고 쓰기)를 지원한다. 그래서 실제 존재하는 메모리 이상의 프로그램은 절대로 돌릴 수 없다. 실제로 DOS에서 메모리가 모자라면 일단 프로그램이 안 올라간다. 게다가 이게 좀 [[복불복]]스러워서 최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는데 잠깐 실행되다가 OS자체가 다운된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은행 순번표 같은 형식[* 이를 페이징(Paging)이라고 한다.]으로 각 메모리 공간마다 순번을 할당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돌려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메모리 공간을 초과한 프로그램을 올려도 '일단은'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또한, 메모리 단편화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이는 메모리를 일정한 단위로 쪼개어 쓰기 때문이다.
가상 메모리 기능이 있으면 실제 메모리 공간이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해도, OS는 당장 실행중이긴 하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가상 메모리 영역으로 내려보내고 지금 실행중인 프로그램은 실제 메모리 공간으로 올려보낸다. 이렇게 유연하게 사용자의 멀티 태스킹에 맞춰서 대응해주는 것이다.
윈도우즈는 어쩔 수 없이 그림판과 계산기만 메인 메모리에 올려놓고, 메모장은 가상 메모리로 내려보낸다. 얼마 있으니 계산기도 안쓰게 되서 가상 메모리로 내린다. 1시간 쯤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메모장을 켜고 그림판을 작업 표시줄에 내려놓으면 메모장이 메인 메모리에 올라오고, 그림판은 가상 메모리 영역으로 내려간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예시지만 간단하게 받아들이자.--
- 강동우 . . . . 9회 일치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부상을 당한 후 들것에 실려나가는 강동우. 부상을 당한 후 그 충격 때문에 '''괴로워하는 표정'''을 주목하라.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2010시즌에 문제가 참 많아졌는데 일단 [[외야수]]로서 생명인 수비범위가 무진장 좁아졌다. 게다가 백업 플레이에 소홀하고[* 2010년 9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다원]]이 [[우익수]] [[이양기]]쪽으로 안타를 쳤고 [[이양기]]는 이 공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뒤 스텝이 꼬여서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 황당한 장면에 한화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리고 [[김다원]]은 그대로 누를 돌고 돌아 홈으로.''' 이는 [[김다원]]의 '''데뷔 홈런'''이었다.(…) ~~크보 역사상 데뷔 홈런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인 것은 사상 최초.(……)~~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김다원]]항목 참조][* 그러나 강동우가 백업을 게을리 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강동우는 분명 뛰고 있었고, [[오선진]]이 간 것은 애매한 뜬공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선진]]이 가는 게 더 나은 위치여서 간 것이다. 강동우를 깔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모든 게 작년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수비범위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지나친 비난이다.] 텍사스 안타성 타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라면 한화표 노장 선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듯하다는 둥 팬들의 비난을 샀다.
5월 24일, [[SK 와이번스]]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이승호(1981)|이승호]]의 높은 직구를 그대로 때려 2:2 피말리는 접전 끝에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팬과 칰갤러들은 [[야왕]]의 작전지시를 충실히 수행한 강동우에게 '''[[공작]]'''의 칭호를 내려야 한다며 강동우 공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불암콩콩코믹스]] '''<추두: 도망두산을 쫓다>''' 편에서는 '''야또나리'''가 되었다!!
후반기에 타율을 많이 끌어올린 덕분에 타율 0.288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 내 '''타자 고과 1위(!!)'''에 홈런 개수로 커리어 하이고, 타점도 순도높은 타점들이 상당히 많아 38살 나이임에도 차기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한편 [[FA 제도|FA]] 대상자였지만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봉은 고작 5천만원이 올랐는데, 강동우의 생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인상액이 너무 적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노장선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시기 한화 프런트진의 연봉 인상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강동우는 물론이고 [[이대수]], [[박정진]] 등 A+급 활약을 보인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똑같이 5천이었다. 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실패로 이어졌고, 2012년 한화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한다.
이후 꾸준히 제몫을 해냈으나 허리 미세통증으로 인해 6월 26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회복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복귀. 한화는 강동우가 2군에 내려가 있는 동안 [[고동진(야구선수)|고동진]], [[양성우(야구선수)|양성우]] 등을 1번 타자 자리에 기용하였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실제로 강동우가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한화는 2승 7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에는 '''[[장성호]]가 1번 타자'''로 기용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1군으로 올라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8월 2일 이후로 다시 2군행. 다행히 1번 구멍은 [[오선진]]이 각성하면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9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도마 우마루(UMR 모드)는 신작 게임을 하러 게임센터에 갔다
* 실핀이 자기 친구(바깥 우마루)를 불러오면 어떻냐고 해서 UMR는 당황한다.
* 그때. 봄바가 신작 빠칭코 기계에 붙어있는걸 발견한다. 의외로 실핀과 봄바는 아는 사이여서 셋이 합류해 게임을 즐긴다.
* 실핀은 봄바를 "아프로"라고 부른다. 알렉스를 통해 아는 사이.
* 실핀도 게임오버 되지만 우마루 혼자 라스트 보스를 때려잡는다
* 봄바가 알렉스와 실핀이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친구가 되어준 사실이 밝혀진다
* 그래도 실핀과 알렉스에게 친구가 되어 준 걸 보면 인성은 좋은 놈인데...
* 남자로 착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초기에 비하면 우마루의 가슴이 줄어들고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9회 일치
[[도마 우마루]]는 UMR상태로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타케시"봄바]]를 만나 논다
* UMR 상태로 실핀과 봄바를 만난 우마루
* 봄바는 여전히 UMR가 남자라고 생각하는대다 실핀의 남친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 봄바는 실핀과 우마루가 사귀는걸 숨기기 위해 고글을 쓰고 다닌다고 생각한다.
attachment:우마루.jpg attachment:실핀.jpg attachment:봄바.jpg
* 실핀과 봄바 모두 탁구를 치고 싶다고 해서 탁구장에 간다.
* 하지만 실제론 잘하지 못해서 중학교 때도 매번 지고 친구들이 하는걸 보기만 했다.
* 우마루와 실핀이 치고 있는걸 보면서 왠지 누구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우마루가 말을 걸어서 넘어가 버린다.
* 사실 이때 일을 계기로 친해지게 된 것. 봄바라는 별명도 이때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 경순왕 . . . . 9회 일치
|배우자 = [[죽방부인]](정실 왕후) <br/> 낙랑공주 왕씨(제1후비) <br/> [[개성 왕씨|왕씨]] 부인(제2후비)
경순왕은 이름이 부(傅)이며,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대아찬]](大阿飡)을 지낸 [[김효종 (신라)|김효종]]이고, 어머니는 [[신라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이다.<ref>성은 김(金)씨이다. 출처: 한국고대인명사전 - 헌강왕(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73670&cid=42953&categoryId=42953)</ref>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가계는 [[신라 문성왕]](文聖王)-상대등 '김안'(金安)-각간 '김민공'(金敏恭)-추존 의흥왕 '김실홍'(金實虹. 일명 仁慶)-추존 신흥왕 [[김효종 (신라)|김효종]](金孝宗)-경순왕(敬順王)으로 이어진다.
그는 즉위 초 아버지 [[대아찬]](大阿飡)을 신흥왕(神興王)으로, 할아버지 각간(角干) 김실홍을 의흥왕(懿興王)으로 각각 추존하였다. 재위시에 국력이 쇠퇴하고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후백제]]의 침공과 약탈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따라서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ref name="nate01">[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128 경순왕:네이트 한국학]</ref>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을 다른 [[신라]]의 왕릉이 있는 [[경주]]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영구는 도성 밖 100리를 넘을 수 없다고 하며 반대함으로써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현재의 묘자리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묘소는 [[임진왜란]] 이후 실전되었다가 [[1747년]](영조 23) 다시 되찾아 정비하였다.<ref name="dk01"/> 경북 경주 황남동의 숭혜전, 하동 청암면의 경천묘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746년]](영조 22) 10월 14일 [[경기도]](京畿道) 장단(長湍. 현 연천군 장남면)에서 경순왕의 지석(誌石) 및 신도비(神道碑)가 나왔음을 아뢰는 동지(同知) 김응호(金應豪)의 상소가 있고, 그 후속 조치로 [[1747년]] 4월 20일 경순왕의 묘를 수치(修治)하고 묘비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1748년]](영조 24) 1월 29일에 고려 왕릉의 예에 준하여 경순왕릉에도 수총군(守塚軍) 5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현재의 경순왕릉 모습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ref name="dk01"/>
***첫째왕자: 사실명(史失名), 문헌에 [[마의태자|태자]](太子), [또는 김일(金鎰)], [[부안 김씨]] 시조
***둘째왕자: 사실명(史失名), 문헌에 김황(굉,나주김씨), 승명 범공, 나주김씨
경순왕 가계에 대해 《[[삼국사기]]》·《[[삼국유사]]》·《동국여지승람》에 왕비는 [[죽방부인]]으로 슬하에 두왕자를 두었는데 이름은 사실명(史失名)이라 한다. 이들 왕자는 [[935년]] 10월 신라의 고려 항복에 대해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 권희동 . . . . 9회 일치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순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절 모교인 경남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순도 어느새 5번까지 상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영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NC가영입함에 따라, 2014 시즌은 주로 백업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성범 역시 중견수 이외 포지션의 수비는 미숙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택근, 전준우 등 예외적인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중견수의 코너 외야수 전향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 나성범도 이들처럼 외야수 전향 경력이 짧은 피지컬에 의존하는 중견수라는 점 또한 사실이긴 했지만...] 이종욱이나 김종호가 코너 외야로 갈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 이후 언론에서 나성범이 우익수로 전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김종호 이종욱 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외야 라인에서 백업으로 뛸 가능성이 커졌다. 2014시즌에 선수 본인의 분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9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선발 좌익수로 나와 5타수 3안타 1홈런 5타점의 미친 활약을 펼쳤다. 3회 2사 1,3루 상황에서는 좌전 안타를 쳐내며 복귀 첫 타점을 기록했고, 6회 2사 1,2루 상황에서는 7-6의 스코어를 뒤집는 쓰리런 홈런을 쳐냈다. 두 경기만에 복귀 첫 홈런. 그리고 7회 2사 2루 상황에서는 쐐기를 박는 중전 적시타를 쳐내며 대망의 5타점 경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최훈]] 카툰에 실렸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23&aid=0000000982|[최훈 카툰] 제대하면 아저씨]]
4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 2삼진(!!) 을 기록했다 !!! 솔로홈런을 친 LG의 4번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에 반해 [[김경문]] 감독의 완벽한 선수기용 실패가 되어버릴 뻔 했지만 다행히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안타를 뽑아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루키 시즌(2013년 시즌)때는 타율과 출루율은 심각하게 낮았지만 장타력은 여전히 좋았던 타자였다. 1군 데뷔 시즌 맞이한 397타석에서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을 정도로 힘이 있는 선수. 특히 2사 후 타점이 [[http://sports.donga.com/3/all/20130913/57652988/1|많고]], 홈런 상당수가 2점차 이내의 접전에서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599691.html|나오는]] 등, 타점의 영양가가 높아 [[공갈포]] 논란이 거의 없다. 이런 장점을 갖고 있기에 2013 시즌은 뎁스가 얇은 신생 팀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즌 내내 주전으로 뛰었었다.[* 사실 2013년의 타격이 공갈성이 있긴 했지만 [[BABIP]]이 0.214에 불과할 정도로 운도 따라주지 않던 시즌이었다. 이는 압도적인 리그 꼴지의 기록. 그 이후에는 3할 초중반 대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에서는 1할 타율을 가지고 있던 당시 공포의 1할 타자, 숫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32146|타자로 소개했다.]] 힘있는 타자는 상당히 귀하고 귀하기 때문. 2013 시즌에는 팀의 뎁스가 워냑 얇았고, 일발 장타력이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낮은 타율과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출장 기회를 부여받았다.
수비는 코너 외야수로서는 좋은 편. [[경남대학교|경남대]] 시절 외야 수비 능력은 낮다고 평가받았었지만 프로에 와서는 집중력이 있고 실책이 적어 오히려 수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호수비가 아주 인상적이다. 코너 외야수뿐만 아니라 [[중견수]]로도 상당히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정말 급할 때는 [[포수]]도 가능하다. 주력/송구 능력은 보통.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9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는 매우 엄격하고 사무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기운과 유머가 없는 세계엔 미래가 없다"고 여기는, 유머 애호가.
* 밀리오가 미도리야를 데리고 사무실에 방문했을 땐 뜬금없이 사이드킥 [[버블걸]]이 "유머가 없었다"는 이유 간지럽히는 벌을 내리고 있었다.
그동안 인턴제도에 관심을 보였던 학생들은 모두 실망하고 혼자 근신 받느라 뒤쳐져 있던 [[바쿠고 카츠키]]는 "꼴좋다"고 웃어재낀다. 그러나 아이자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호만 해서는 강한 히어로를 키울 수 없다"는 반대의견이 나왔고 결과적으론 이런 방침이 되었다.
>인턴 채용 실적이 풍부한 사무소에 한해서 1학년의 실시를 허가한다.
올마이트는 즐겁게 대화하는 미도리야와 밀리오를 보며, 사실 미도리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가 후계자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건물로 들어서는 두 사람. 밀리오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고, 결국 결정권을 가진 것은 서. 미도리야 스스로의 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도리야는 어째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느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딱히 잘해주는건 아니라면서도 그가 "엉망진창인 목표를 실현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 답한다.
* 한편 사무실에서는 나이트아이가 사이드킥 [[버블걸]]에게 사건을 보고받고 있다. 그 보고는 [[빌런연합]]과 [[오버홀]]의 접촉에 대한 것. 버블걸은 전모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교섭의 결렬과 유혈사태 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지만, 문득 이런 말을 꺼낸다.
그리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나이트아이는 매우 거창한 형틀에 버블걸을 묶어 놓고 자비없는 간지럼 태우기 형벌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로라 로라 . . . . 9회 일치
그녀가 대중에 첫 소개되었을 때는 구엔과 [디아나 소렐]과의 첫 파티때였으며, 지구측 최강 파일럿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적인 문레이스는 물론이고 지구인들조차 놀랐다고 한다.
지구의 에이스였기에 당연히 지구인이라 여겨졌지만, 사실은 달에서 진행하고 있던 귀환계획 당시 파견되었던 문레이스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나서 그녀는 지구와 달 모두에게 백안시 당하는데, 지구인-문레이스 양측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원칙은 "지구와 달이 싸우지 않는" 미래를 도출하기 위해 지구인을 위해 싸우는 것 뿐이었다. 또한 이미 그녀에게 콩깍지가 겹겹히 씌인 구엔은 배신감은 고사하고 어찌되든 '''"로라와 함께있다"'''는 사실에 만족함은 물론이고 에이스 파일럿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현실적 상황과 맞물려 그녀는 구엔의 지지하에 밀리샤에 남게 된다.
스스로가 화이트돌에 탑승하고 "나는 달에서 왔습니다"고 진실을 밝혔을 때와 디아나 소렐과의 만찬에서 "당신이 오셨슴에도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당시의 언행이 구분된다. 작중에서 조신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딱 두번밖에 없었기에 로라의 진짜 모습은 보쿠녀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건담 히로인들은 세이라를 시작으로 미친듯이 까이는 것이 대부분임을 생각해 봤을 때, 로라에 대한 안티팬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건덕들에게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건담의 히로인들은 까야 제맛~~
사실은 주인공인 [로랑 셰아크]가 구엔 서드 라인포드의 계략 때문에 [여장]한 모습이다.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로힝야 . . . . 9회 일치
2012년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로힝야 문제에 대하여 해법을 제시하였는데,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하는 난민캠프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로 보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추방' 선언이었다. 미얀마 정부는 여성이 한 번 출산하면 아이를 3년 동안 갖지 못하며, 무슬림과 불교도의 결혼을 제한하는 법률을 발표했다. 이 법률은 로힝야를 겨냥한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2014년 미얀마 정부는 "라카인 행동계획"이라는 정책을 제시했는데, 로힝야 주민이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8년 이전부터 미얀마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스스로를 '벵갈리'라고 등록하면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힝야 가운데 상당수는 1948년 이전부터 거주했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 추방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타이 정부가 인신매매 단속을 강화하자, 인신매매범들은 이번에는 로힝야를 태운 난민선을 그냥 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정부는 서로 난민선을 쫓아내다가 일단 구조하기로 하고 3천명 가량의 난민이 구조되었으나, 많은 로힝야 난민들이 사망하거나 바다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측된다.
라카인 폭동 이후 로힝야족은 10만명 이상이 별도의 캠프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다른 마을을 방문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라카인 주 당국은 로힝야 인구 증가를 막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2명 이상 낳지 못하게 하는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민간인 학살과 인종청소를 부인하였으며, 저 타이 미얀마 대통령실 대변인은 유엔의 주장을 부정하고, 확실한 증거에 기반하여 발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군부와 정부는 민가 방화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는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사실상 미얀마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 겸 외교장관에 대해서 비판이 쏟아졌다. 2016년 무장공격과 이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보복에 대해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던 그녀가 군사작전이 시작되고 6주가 지나도록 언론을 피하고 "법치에 근거하여 군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원론적인 해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에서 아웅산 수치는 집중 포화를 맞게 되었다. 수치는 로힝야를 '벵갈리'라고 부르며 이방인 취급을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지만, 아직 군부 세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 로힝야 탄압은 반 수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군부와 그에 유사한 성향을 가진 극렬 버마 민족주의자, 종교인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수치가 억제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 문무왕 . . . . 9회 일치
{{출처|[[661년]]부터 [[68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61년부터 [[678년]]까지 친정하였고 [[676년]] 아우 [[김인문]](金仁問)이 잠시 [[권력|실권]] 탈취 기도를 한 바 있으며 678년부터 681년 붕어할 때까지 아들 [[신라 신문왕|김정명]](훗날 [[신라 신문왕|신문왕]])이 [[왕태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날짜=2018-06-28}}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남생]]이 아우 [[연남건|남건]]과 [[연남산|남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식,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1년([[671년]])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침공하였다. 당의 지휘를 받던 말갈병이 설구성(舌口城)을 포위했다가 물러가는 것을 후방에서 쳐서 3백 명을 죽이고, 당군이 백제를 구원하러 올 것에 대비해 대아찬 진공(眞功) 등을 시켜 수군으로 옹포(甕浦)를 지키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또한 6월에 장군인 화랑 죽지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했으며, 당병과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죽이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의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거두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7월에 당은 행군총관 설인귀를 신라에 파견했는데, 왕은 사신을 맞아 위로하는 대신 강가의 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에 군사를 숨기고 강 어귀에는 무기를 감춰둔 채, 수풀 사이를 오가며 틈을 노려 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인귀는 26일에 당이 신라를 도와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해주었는데 신라가 그 은혜를 잊고, 고구려를 도와 당을 치고 있다며 항의하는 내용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당이 신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은근히 협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법사 임윤(琳潤)을 시켜 왕에게 보냈다.<ref name="삼국사기-671"/> 문무왕은 설인귀에게 신라가 선왕 때로부터 당에 협조하고 여러 번 신라의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지경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고를 내어 번번이 당군을 지원했던 사실과 당이 처음 신라와 했던 약속들을 어기고 신라가 점령하여 지배하던 땅을 무단으로 거둬들인 일을 비난하며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날, 백제 수도였던 사비성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고 아찬 진왕(眞王)을 도독으로 삼았다. [[10월 6일]] 당의 조운선(漕運船)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郞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1"/>
14년([[674년]]) 1월 당에서 숙위하다 귀국한 대나마 덕복(德福)이 가져온 신력(新曆)을 반포했다.<ref name="삼국사기-674">《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4년(674)</ref> 같은 달 문무왕이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고 백제령을 지배하에 두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고종은 조서(詔書)로 문무왕의 관작을 깎아 없애려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4"/> 왕의 동생으로 당에 머무르고 있던 우효위원외장군(右驍衛員外大將軍) 임해군공(臨海郡公) 김인문을 신라왕에 봉하면서, 그를 귀국시키는 편에 많은 군사를 딸려보내 대규모로 신라를 치려 했다.<ref name="삼국사기-674"/>{{refn|group=주|인문은 이를 간곡히 사양했으나 고종이 들어주지 않았다.<ref name="김인문">《삼국사기》 권제44 열전 제4 김인문</ref>}} 문무왕은 8월에 서형산(西兄山) 아래에서 대규모 사열식을 벌이고, 9월에는 영묘사(靈廟寺) 앞길에서 다시 대규모 사열식과 함께 아찬 설수진(薛秀眞)의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관람하는 등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이 달에 고구려왕 안승을 다시 [[보덕국|보덕왕]]으로 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4"/>
15년([[675년]]) 봄 정월에 구리로 각 관청 및 주·군의 인장(印章)을 만들어 지급했다.<ref name="삼국사기-675">《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5년(675)</ref> 2월에 당의 장수 유인궤가 칠중성(七重城)에서 우리 군사를 깨뜨린 뒤 돌아가고, 이근행이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임명되었다. 문무왕은 다시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유감을 표명했고, 당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서 깎아 없앴던 문무왕의 관작을 회복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75"/> 이때에는 대부분의 백제령이 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고구려 남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주와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에 문무왕은 당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아홉 부대의 병사를 내보내 막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5"/> 과연 가을 9월, 당은 설인귀를 대장으로 하는 군사를 신라에 보내 천성(泉城)을 치게 했는데, 이때 당에 숙위하고 있던 풍훈(風訓)<ref group="주">앞서 문무왕에 의해 처형당한 김진주(金眞珠)의 아들이다.</ref>이 향도(鄕導)로서 당을 도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그러나 신라의 장군 문훈(文訓) 등의 선전으로 당병 1,400명을 죽이고 그 병선 40척을 빼앗았으며,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치면서 내버리고 간 전마 1천 필까지 신라의 손에 들어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9월 29일]]에는 이근행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매초성(買肖城)에 진을 쳤다. 신라군이 이를 공격하자 당군은 말 30,380필과 무수한 병기를 남겨 놓고 도망갔다.<ref name="삼국사기-675"/>{{refn|group=주|다만 이러한 전쟁 와중에도 신라는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있었다.<ref name="삼국사기-675"/>}} 나아가 안북하(安北河)를 따라 관(關)과 성을 설치하고 또 철관성(鐵關城)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해에 신라와 당이 벌인 크고 작은 싸움이 18번인데, 모두 신라가 이겨서 당병 6,047명을 죽이고 말 200필을 얻었다고 한다.<ref group="주">하지만 아달성(阿達城)이나 적목성(赤木城)에서는 성을 침공한 말갈병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약탈당했으며, 아달성주 소나(素那)나 적목현령 탈기(脫起)가 이때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석현성(石峴城)이 당병에게 함락되었을 때는 현령 선백(仙伯)과 실모(悉毛) 등이 전사했고, 칠중성은 당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간신히 함락은 면했지만 소수(小守) 유동(儒冬)이 전사하는 등, 신라측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에도 당은 다시 도림성(道臨城)을 함락시켰다.</ref>
* 후궁 : [[신광부인]]([[김유신]]의 둘째딸, [[무열왕]]은 맏아들 [[김법민 (신라)|김법민]]([[김법민 (신라)|문무왕]]) 의 태자비로 세우려 했으나 이미 [[자의왕후 김씨]]와 혼인한 상태라 그녀를 [[김법민 (신라)|김법민]]([[김법민 (신라)|문무왕]])의 후실로 맞이 하였다고 하며 [[문명왕후 김씨]] 또한 그녀를 무척이나 아끼고 총애 하였다 한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9회 일치
범인 미즈우치 타카시는 신장 183센티미터, 체중 89킬로그램의 훤칠한 체격에 샤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미즈우치는 학생 시절부터 [[검도]]를 단련하여 [[검도]] 5단의 유단자였으며, 고교 졸업 후 2006년 4월에 경찰에 채용되었다. 근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은 매우 불성실한 남자로서, 2014년 8월 아내와 입적하기 전후의 기간에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 이외에 센다이에서 3명, 오사카에서 3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즈우치의 사생활은 주변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듯 하며, 주변에는 성실한 경찰관 청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즈우치의 동급생이었던 여성은 "'검도 성적이 좋아서 부경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기뻐했었다. 믿을 수 없다."고 발언했으며, 지인인 여성은 "예의바르고 정의감이 강한 아이가 어째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검도를 지도했던 은사는 인터뷰에서 "바보야! 라고 말하고 싶다(アホや! と言いたい)"고 발언했다. 미즈우치의 3살 연하인 동생 역시 검도를 시작하여 [[인터하이]]에 선수로 출전했고, 경찰의 길로 나아갔다고 한다.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는 야마가타 현 출신으로, 친가는 니시카와쵸(西川町内)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부]]로 활동하여,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네자와 시(米沢市)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구부]]로 활동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고교 졸업 이후 미야기 현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론을 배웠으며, 2014년 4월 부터 오사카 시내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평소 업무 시작 30분 전에 출근하고 무단 결근도 한 번 없었던 성실한 사원으로서,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의료 사무원이었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경찰관 신분이나 오사카에서 온 것을 밝혔으나, 후에 아내가 될 여성과 간사이에서 이미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즈우치는 반년도 되지 않아 시라타 히카루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이 해 가을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친구에게 미즈우치가 연락을 무시하고 데이트도 자주 취소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라타 히카루는 "어차피 나는 '센다이의 여자'일까", "(미즈우치가) 스노 보드만 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걸까."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미즈우치는 교제에 불성실해져서 시라타 히카루는 12월에 생일을 맞았지만, 미즈우치는 생일인데도 만나주지 않고, 놀아주거나 선물을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시라타 히카루는 "괴롭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2014년 10월, 시라타 히카루는 미즈우치 피고와 헤어지려고 했다. 사실 미즈우치는 이 때 이미 아내가 있어,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시라타 히카루와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그럼에도 미즈우치는 "나를 좋아하잖아. 헤어질 수 없잖아."라고 말하여 시라타는 눈물로 헤어지는걸 포기했다고 한다. 시라타 히카루의 친구가 한 이 증언에 미즈우치는 "기억이 없다."고 부정하였다.
이후 미즈우치는 오사카에 있는 단골 술집에 시라타를 데려가서, 후배 경찰관 A와 만나게 하여 셋이서 식사를 가졌다. A는 미즈우치가 기혼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즈우치의 의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시라타는 후배 경찰관 A를 소개받은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애인'으로 승인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2014년 크리스마스에도 시라타를 만나주지 않았다.
사실 결혼식 뒷풀이 때, 미즈우치 타카시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도록 간사를 맡은 A에게 부탁을 했으며, 그 이유로 "아직 끊어내지 않은 여자가 있다."고 댔다. 그러나 주위에 모두 세심하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참석자 한 명이 페이스북에 올리고 시라타가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시라타는 1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혼을 눈치챈 것을 암시하는 "사정이 나쁜 건 눈치채지 못한 척 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올렸다. 또 시라타 히카루는 "몰랏다. 결혼을 알았다고 그에게 말조차도 할 수 없다."고 심하게 우울해졌다고 그녀의 지인들이 말했다.
>미즈우치 : 실패했구나. 아니 존재잊고 있었어(失敗したな。てか存在忘れてたわ)
미즈우치 타카시는 당초에는 의심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 북유럽 신화 . . . . 9회 일치
[[북유럽]] 일대에서 [[게르만 민족]]을 중심으로 전해진 신화를 뜻한다. 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독일]] 등 게르만 계열 민족이 활동했던 영역에 전파되었다. 북구신화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북구'는 '북 [[구라파]](=유럽)'의 준말이다. 사실 북유럽에는 게르만 민족 말고도 다른 민족도 살았지만 게르만 계열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체계적인 내용이라 '북유럽 신화'라고 하면 곧 게르만 계열의 신화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 [[토르]] : 가장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주인공]]. 영웅적인 업적을 가장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
* 에인헤야르 : 오딘이 모은 전사. 오딘은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만,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발키리]]를 보내서 강제로 [[전사]]시켜 버리고 영혼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에인헤야르이다. 발할라라는 [[무간지옥]]에서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싸우다 죽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라그나로크가 오면 순삭당할 운명이지만 자신들은 싸움을 실컷 하고 저녁에 술과 고기와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으며 '[[오늘만 산다|오늘만 사는]]' 가치관의 사람들.
* 위그드라실 : 유그드라실, 이그드라실 등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나무로 온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고 한다. 라그나로크에서 불타버린다.
* 궁그닐 : 오딘이 쓰는 [[창]].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오딘이 이 창을 던지면서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수수께끼의 무기. 거의 실적도 없는 주제에 창 계통이 무기가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대중문화에서 최강의 창으로 우대받는 불합리를 보여준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9회 일치
* 아버지는 마법기사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전사했다. 조라는 크게 낙심했다. 어느날 아버지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가던 중 자줏빛 범고래단의 마법기사들이 아버지 묘를 찾은 걸 발견한다. 처음엔 성묘인 줄 알았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비웃으러 왔던 것이다. 그들은 하층민 주제에 마법기사인 척 전장에서 어물대니까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는 거다"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들은 하층민 출신이 귀족인 자신들과 동료가 됐다고 여기는 것 자체를 불쾌했으며 아버지가 전장에 방치된 국민을 구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눈에 거슬려했다. 모든 사실을 들은 조라는 귀족들에게, 마법기사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어린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상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상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랜길스를 상대로 마법진을 펼치나 랜길스는 간단하게 우회, 잭스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나 그것 자체가 페이크. 진짜 함정마법진은 자기 몸에 설치해놨다. 마르크스는 그런 짓을 하는건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경악해 하는데 이런 독한 짓을 하는건 그 말고는 없었는지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악한다. 함정마법은 반사 마법이었고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몇 배로 커져서 반사된다. 랜길스의 공간마법에 맞았을 땐 "오늘 처음 나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며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히 2회전에서 구덩이 파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공격에 맞은건 처음.
억울하게 죽었지만 사실 굉장한 사람. 작중에서 "최초의 하층민 출신 마법기사"로 명시되어 있다. 마법기사는 귀족만 되는게 당연한 시절에 편견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는 말이니 상당한 실력자였을 걸로 보인다.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반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식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블랙 클로버/84화 . . . . 9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침략군을 막기 위해 자신들에게 협조해달라고 여왕을 설득한다.
* 정신을 잃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꿈처럼 야미 스케히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자신이 "운명"에 묶인 몸이라고 말하지만 야미는 "그 녀석이 싫다"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말하는데. 서서히 눈 뜨는 바네사의 시야에 그 야미의 등과 닮은 아스타의 등이 보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스타만이 아니라 노엘 실버, 핀랄, 게다가 젤 일행까지 있는걸 보고 당황한다.
* 아스타는 팔에 감았던 붕대도 풀어버리고 입으로 숙마의 검을 끄집어낸다. 그러더니 검으로 저주에 걸린 팔을 내리찍는다. 저주를 풀기 위해 시도한 것 같지만 풀리기는 커녕 부러진 팔에 충격만 주고 실패한다. 바네사는 무슨 짓이냐며 혼자 힘으로 아둥바둥대 봐야 운명의 힘 앞에선 안 통할 때도 있다고 꾸짖는다. 하지만 아스타는 동료를 희생시키는게 자기 운명이겠냐며 "그딴 놈" 말은 듣지 않을 거고 운명을 박살내서라도 이 팔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바네사는 또 한 번 야미의 모습을 떠올린다.
* 아스타는 또 무모한 짓을 되풀이하려 하는데 바네사는 칼을 붙들며 "그렇기에 동료가 있는 것"이라며 사실 여왕을 이용해 저주를 풀고 나면 그 반마법의 검으로 영왕을 따돌리고 도망치려 했다고 고백한다. 바네사는 뒤늦게 여왕이 바로 옆에 있는 걸 떠올리고 뜨끔해하는데, 마침 여왕은 그런 말보다는 아스타가 가진 반마법의 검에 흥미를 보이느라 제대로 듣지 않았다.
* 노엘 실버는 우두커니 있는 여왕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다이아몬드의 침략군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 그녀는 아스타는 강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니 저주를 풀어달라고 말한다. 게다가 아스타가 침략군과 싸운다면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도 힘을 빌려줄 테니 전력보강이 될 거라고 설득한다. "여왕이라면 이 숲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해." 여왕은 그것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순순히 아스타의 저주를 풀어주고 전보다 튼튼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 여왕의 마법은 클로버 왕국에선 아무도 고치지 못했던 저주를 치료한다. 같은 회복마법 구사자인 노엘도 그 실력에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 실로 오랜만에 두 팔로 검을 잡은 아스타. 감격하는 동료들과 함께 다이아몬드 왕국의 침략군과 싸우러 간다.
여왕이 쓰는 마법은 "혈액 마법"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용할 때의 모습을 보면 혈액만이 아니라 "혈관" 자체가 생성되어 거기서 혈액이 방출되는 모습이다. 아스타의 상처에도 핏줄이 접촉하는 듯한 모습인걸 보면 본체는 이 혈관쪽이라 해도 좋을 듯. 바네사의 실 마법과 연관점일지도 모른다.
- 식극의 소마/208화 . . . . 9회 일치
*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간 연대식극. 펑키하게 세뇌된 [[카와시마 우라라]]지만 진행 자체는 성실하게 하고 있다. 연대식극의 룰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스스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라는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경험을 쌓고 실력을 갈고 닦는 일이 즐거웠고 그걸 과시하는 것 역시 그랬다. 이런 경향은 요리에도 이어져서 특히 "소바"에 관해서라곤 누구를 상대로라도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나키리 아자미]]는 그녀의 뛰어난 손반죽 실력에 대해 절찬을 늘어놓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의해 부드러운 흐름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메밀가루 입자 하나하나에 수분이 적절하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반죽이 생기기 시작해 콩알만한 크기가 됐을 때 이것들을 뭉치는 치대기 작업에 들어간다.
* 키노쿠니가 힘을 더해 반죽을 치대기 시작하자 낱알처럼 흩어져 있던 반죽들이 커다란 덩어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반죽에 순식간에 점성이 더해지는 것과, 가는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힘으로 반죽을 해나가는 것에 놀란다. [[나키리 에리나]]는 완벽한 자세를 이룬 그녀의 하체가 비결이라고 간파한다. 다리와 허리의 힘을 충분히 실어서 반죽하기 때문에 힘이 낭비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자미는 여기에 아주 섬세한 반죽 실력 덕분에 쓸데없는 물을 더할 필요도 없어서 필요최저한의 윤기를 머금은 "진짜 소바"가 되는 거라고 설명한다.
* 소마에겐 엄청난 야유가 퍼부어진다. 사실 동료들까지 그의 주제 선택과 메뉴 선정에 쓴소리를 하는 판이니, 여기에 그의 아군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소마는 특훈 기간 동안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그건 소마 자신도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다. 그저 "어떤 주제가 나오든 그때 떠오른걸 척"하고 내놓는다는, 실로 주먹구구식의 해법이었다. 죠이치로는 그저 "그래서 선발 꽁치 대결 때 졌다"고 아픈 데를 찌른다.
에리나는 면을 만들 때 "수타"를 칭송하긴 하지만, 수타가 딱히 맛있는 면을 만드는 비법은 아니다. 수타로 유명한 집들은 그냥 수타를 해서 맛있는게 아니라 "뛰어난 수타"를 구사해서 맛있는 것이다. 사실 유명 가게 중에도 제면을 기계에 맡기는 집도 적지 않다. 이미 매니아들 사이에선 어중간한 수타일 바엔 제면기를 쓰는게 낫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니 수타 기술이 없는 소마가 제면기를 택한건 잘한 선택이다.
키노쿠니는 그의 반죽 비율도 눈여겨 본다. 키노쿠니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1 대 9로 섞은 "9할 소바"를 만들었다. 하지만 소마는 밀가루가 2, 메밀가루가 8인 "28소바". 세간에는 메밀 비중이 높은 걸 좋다고 여겨 100% 메밀가루 소바도 팔지만, 냉정하게 맛으로 보면 밀가루를 충분히 섞는게 훨씬 맛있다. 물론 100%에 가까울 수록 메밀향은 좋아지지만, 원래 메밀은 특성상 반죽이 퍼석해서 면을 뽑아도 밀가루 면처럼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밀가루를 섞으면 향은 좀 덜해도 면으로서 쫄깃하고 맛있는 국수가 되는 것. 실제 메밀 장인들도 "맛의 밸런스는 28소바가 최고"라는 말이 정설이다. 키노쿠니는 소마가 그저 대항심만으로 10할 소바에 도전하지 않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며 그 점에 대해서는 감탄한다.
- 식극의 소마/217화 . . . . 9회 일치
* 이쪽은 벌써 대결이 끝나서, 사치코가 메기시마의 요리를 한 조각 맛봤을 뿐인데 뿅간 표정으로 실신, 그대로 대결이 종료된다.
* 1라운드 이후 1시간 휴식. 양측은 각기 대기실에서 다음 대전자를 선발하는데 메기시마다 한 번 더 나가겠다 나서도 [[미마사카 스바루]]도 승부욕을 어필한다.
* 그런데 대기실 밖에선 [[쿠가 테루노리]]가 십걸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접촉 중. 다음 라운드에서 "승부를 보자"고 제의하는데.
* 십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상태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남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반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허세력을 뽐낸 아자미 총수가 객석에서 일어나 1라운드의 종료와 1시간의 휴식을 선언한다. 그 동안 양 진영은 대합실에서 다음 시합에 나올 인원을 협의해야 한다. 잠시 뒤 대합실로 자리를 옮긴 반역자들. [[나키리 에리나]]가 아버지의 말이 맞다며 "전승했다고 기뻐할게 아니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못박는다.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가 십걸 측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히사코의 분석으로는 1라운드 결과로 적도 초조해할 테니 갑자기 1석 츠카사나 2석 린도가 나오는 것도 상정할 법하다. 그 말에 얼굴이 파래지는 유키와 료코.
그런데 이 자리에 소마가 보이지 않자 잇시키가 의아해한다. [[타쿠미 알디니]]의 말로는 삐져서 화장실에 갔다. 이번에도 "내가 또 나갈래"라고 떼를 쓰다 알타쿠미와 에리나한테 이중으로 갈굼 당하자 뾰로퉁해져서 도망친 것이다. 마침 메구미가 쿠가도 없는걸 발견하지만 잇시키는 짚이는게 있어서인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 소마는 아직도 꽁한 상태. 그런데 막 모퉁이를 돌려는데 복도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쿠가였다. 그가 대화하는 상대는 적의 대장 츠카사 에이시. 쿠가가 츠카사에게 "다음 라운드에 나올 생각 아니냐"고 떠보는 중이다. 츠카사는 애매하게 "그렇다면?"이라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쿠가가 그런 태도가 심술궂다며 자기는 쭉 이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찌된 일인지 츠카사는 푼수같은 평소 모습이 간데 없이 진지하고 말이 적다. 쿠가의 드립에도 "확실히 그랬지"라고 짧게 대꾸하는데. 쿠가는 여전히 까불거리는 태도로 "귀여운 후배의 부탁"이라며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쿠가는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소마는 얼핏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걸 발견하는데.
- 신혜진 . . . . 9회 일치
[[2010년]] [[12월]]에 [[W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멤버들 중 제일 긴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했다.[* [[2010년]] [[12월]]이면 [[선배]]인 [[B1A4]]가 [[데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연습생]]이었을 당시 [[고향]]인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평일에는 [[버스]]를 타고 다시 [[포항]]에 내려가 [[학교]]를 다녔다.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작 [[본인]]을 힘들게 했던 건 혹독한 [[다이어트]]였다고.[* [[연습생]] 당시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었을 때마다 자신을 힐링시켜 주었던 [[노래]]는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그리고 이는 [[데뷔]] 후 1년이 지난 [[2016년]]에 '''실제로 안 좋은 일로 이어졌으며''', 1년이 더 지난 [[2017년]]에 '''갈 길이 갈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마이걸]]의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5px #7bdefb;color:#000000"> 러블리}}}''' [[보컬]] ,,[[진이]]입니다!`,,[* 실제로는 말끝이 흐려지는 게 [[함정]].]
물론 진이 역시 활동을 거듭하며 [[데뷔]]곡 '[[OH MY GIRL#s-2.2|CUPID]]'보다 괄목할 정도의 파트를 분배받고 있으며 [[보컬]] 역량 또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실제로 [[데뷔]]곡 '[[OH MY GIRL#s-2.2|CUPID]]'의 [[비중]]과 [[2016년]] '[[내 얘길 들어봐]]'의 [[비중]]을 비교해보자. 확연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리드보컬]]인 [[유아(오마이걸)|유아]]와 [[비중]]이 비슷해졌고 중간중간 높은 음들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 ~~사실 후렴구 뒷소절을 모두 부르게 된 [[지호]] 때문에 [[유아(오마이걸)|유아]]와 진이의 [[비중]]이 비슷해진 거다~~
이외에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안무]] 등 퍼포먼스적인 면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돋보이는 멤버는 아니지만, 자상한 [[성격]]을 가진 '''팀의 둘째로서 팀을 융화하고 지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오마이걸]]의 멤버였다.'''[* 실제로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쉬는 기간에도 [[오마이걸]]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으로 [[콘셉트|컨셉]]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큰 [[역할]]을 했던 멤버는 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상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상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상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지금 [[미라클]] 여러분도 저와 같이 많이 속상하실 걸 알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오마이걸]]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라클]]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평생 그 때 그 자리에서 잊지 못한 소중한 [[추억]],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미라클]] 여러분께도 [[오마이걸]]의 둘째, [[CCTV]], [[러블리]] [[보컬]] [[진이]]는 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도전에도 여러분의 [[응원]]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 <[[OH MY GIRL#s-2.2|CUPID]]> 활동을 [[시작]]하면서 [[앞머리]][* 사실은 헤어커프, 즉 [[가발]]이다.]를 내렸는데 이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대개 [[앞머리]]가 답답해 보여 [[눈썹]] 내놓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앞머리]]를 내려서 더 예뻐졌다는 [[사람]]들, 즉 깐진파와 덮진파로 나뉜다. 가끔 묶진파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덕후]] [[눈]]에는 뭔들~~ 모 [[팬]]이 [[팬사인회]]에서 진이에게 직접 [[앞머리]] 다시 없앨 [[생각]] 없냐니까 아직은 없다고 한다.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9회 일치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암살교실]] 번외편 2화. '''선술집의 시간'''
* 호타루는 나기사와 닮은 "초등학생"인데, 사실은 여학생이 아니라 "남학생"하고 닮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 사실 이런거 보다는 학생들의 후일담을 원하는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분류:암살교실]] [[분류:암살교실/에피소드]]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9회 일치
|||||| [[암살교실/에피소드]] ||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암살교실/번외편 4화 완결''' ||
[[암살교실]] 번외편 4화. '''고마워의 시간'''
* 사실 불의의 일격이라면 대응하지 못하겠지만, 이번은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 암살자들은 속여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도 암살자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 사실 허그했을 때 이미 아즈사씨의 몸상태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살생님은 이제 겨울 방학이 끝나면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그 교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어떤 졸업을 맞이해도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 영양군 . . . . 9회 일치
--영양만점-- --현실은...--
[[경상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남쪽은 [[청송군]], 동쪽은 [[영덕|영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상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영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상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영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전국에서 제일 낙후된 지역인데 볼 것도, 놀 것도 많이 없다. 즉 관광지로서도 많이 미약한 지역(...) 일단 관내에 있는 관광지로는 일월산, 수하 계곡 정도. 그 외에 일월면 주곡리 주실 마을 및 조지훈 생가가 나름 볼 만하다.
* [[구멍가게]]에서 [[오란씨]] 하나 샀더니 '''[[유통기한]]이 지난 지 4년이나 된 물건'''이었다는 믿기 힘든 경험담이 있다. 사실 이건 영양이 아니라도 [[오지(지리)|오지]] 지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만...
* 이미 발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한 곳으로, 과거 실행되었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서는 완전히 소외받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TK]] 정권이라고 불리었던 과거 정권에서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대로다.
* [[공무원]] 경쟁률은 3:1밖에 되지 않는다. [[경상북도|같은 도]]인 [[포항]]의 23:1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수준. 그만큼 공무원들도 가장 기피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공무원에 합격해서 영양군에 배치가 됐는데 영양군의 실태를 보고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이재오]] - 프로필에는 [[강원도]] [[동해시]]라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태어난 것뿐이고 실제 어려서부터 영양에서 살았고, 심지어 영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프로필 바꾼것도 TK이미지 벗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매일신문]]이 이재오가 네이버 프로필 출생지를 영양에서 동해로 바꾼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2인자였으니 영양 출신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간 사람이다.
- 영천시 . . . . 9회 일치
[[경상북도]] 남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10만명을 간신히 넘기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인구 변동폭이 워낙 작아서 2013년 8월 '''100,999명'''으로 인구가 10만 명대로 하락한 이후 4년 가까이 10만 명선에서 정체되어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인구가 늘고 있다!!'''] 행정구역면적은 920.29㎢ 에 1개 읍(금호읍), 10개 면(청통, 신녕, 화산, 화북, 화남, 자양, 임고, 고경, 북안, 대창), 행정동 5개 동(동부, 중앙, 서부, 완산, 남부), 법정동 30개 동(망정, 야사, 도남, 도동, 조교, 녹전, 오수, 조교, 대전, 매산, 신기, 문내, 문외, 언하, 괴연, 채신, 성내, 화룡, 오미, 과전, 창구, 봉동, 완산[*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완산구]] 완산동과는 전혀 상관없다.], 금노, 본촌, 서산, 쌍계, 범어, 작산, 교촌)이 있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도시인 만큼 대구 생활권에 대체로 속하고, 다만 [[포항시]]와 접하는 고경면은 포항 생활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차타고 넉넉잡아 1시간 정도의 거리라(...) 그냥 독자 생활권이라고 보면 편하다. 굳이 대도시에 볼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
2010년대 들어 --대구를 제치고[* 사실 대구는 가로수길 조성 등 적극적인 수목정책에 힘입어 예전만큼의 혹독한 더위를 자랑(?)하진 않고 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덥긴 하다.--]-- 더위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심지어 2016년 8월 13일 최고기온 '''39.6도'''[* 기상관측소가 있는 망정동 쪽은 원래 시원한편인데도 이정도라면 시내인 완산동이나 인구가 많은 야사동이나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망정동 쪽은 40도를 넘겼을 수도 있다.]를 기록하면서 '''해방 이후 공식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다만 1년만인 2017년 7월 13일 '''[[경주시]]에 39.7도로 역전당했다.''' 인근의 경주, 포항, 울산, 경산과 함께 최근 '''[[대프리카]]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지역특성으로 [[경상북도]] 동남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철도]]([[대구선]], [[중앙선]]),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라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구미 - 대구 - 포항 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이용할 때 반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위로는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라는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탈바꿈...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나서 국도 주변의 기사식당과 휴게소들 태반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주영천고속도로]]도 열렸다.
이외에 2014년에 시민회관옆에서 영천중학교 근처[* 영천중학교는 참고로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하지만 시립도서관이 원래 있던 곳에서는 많이 떨어진 곳은 아니다.]로 이전한 시립도서관에서 대출증으로 책을 대출해주고 한번씩 시청각실이나 강의실에서 공연이나 수업을 한번씩 하는 정도.
청소년 수련관은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는 실내체육관 옆에 있다[* 둘다 서문육거리에서 바로 통한다.].
||<|2> [[정동윤(정치인)|정동윤]]/재선[br][[민주정의당]] ||<|2> [[박헌기]]/초선[br][[민주자유당]] ||<|2> 박헌기/재선 [br] 신한국당 ||<|2> 박헌기/3선 [br] 한나라당 || --이덕모/초선--[* 05.2.1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한나라당-- ||<|2> 정희수/재선 [br] 새누리당 ||<|2> 정희수/3선 [br] 새누리당 ||<|2> [[이만희(정치인)|이만희]]/초선 [br] 새누리당 ||
•서문통 : 서문오거리[* 총 육거리인데 동네로 들어가는길을 취급하지 않은탓인지 정식명칭은 '''서문오거리'''이다.] 가 있는 일대를 말한다[* 서문육거리쪽이 옛 영천성의 서쪽문이 있던곳이라서 그렇게 불리는것 같다 이외에 남문통과 북문통도 있다.] 영천에서 서문오거리는 가장 큰 교차로이며 과거에는 로타리방식으로 영천에 맞닿아 있는 다른지역이나 그지역 주변의 큰도시로 가는길이 거의 한방에 갈라지는 교차로 역할[* ([[대구광역시|대구]],[[경산]]) 금호, ([[울산]],[[경주]]) 북안 및 [[영천IC]], ([[안동]],[[의성]],[[군위]]) 화산•신녕•청통, ([[포항]],[[청송]])오미동•화남 및 [[북영천IC]], 영천시내, 영천실내체육관, 주거지역 등.][* 이 때문인지 서문육거리에서 시내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서문통이라 불리오고 있다. 그래서 주로 서문오거리에 있는 아파트(스카이아파트, 녹원맨션등)에 사는 사람들도 주로 서문통에 산다고 한다. 이렇게 교통의 요지이나 발전이 수십년간 되지않고 원래있던 조그마한 상권마저 죽어버리는 등 영좋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남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울진군 . . . . 9회 일치
||<bgcolor=#F0F8FF> ▲ 나곡 해수욕장 (북면 나실길 20-19)[* 울진군의 최북단 지역의 해수욕장이다.] ||
외딴 [[섬]]이나 [[반도]] 지형이 아니면서도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과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 구]](정확히는 금강송면 서부지역에 200m가량 영동선철도가 지나긴 한다. 하지만, 정차역은 없다.) 에 모두 이름을 올린 얼마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는 [[승부역]]이 울진군에 속해 있었다. [[양원역(영동선)|양원역]]이 군 경계에서 가깝기는 하나, 교통 오지의 역이므로 그 마을에서만 이용하는 실정, 그나마 울진군 이용객이 있는 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있는 [[분천역]]이기는 하다. [[분천역]] 서쪽으로는 [[영동선]]보다 [[36번 국도]]가 좀더 나은 관계로 울진군의 철도 이용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남서쪽으로 117km, 포항이 남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상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실제로 원자력발전소와 사택을 제외하면 두 시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그냥 평범한 동해안의 [[어촌]]. 울진까지 나가봐야 별 다를 게 없으니 교통을 떠나 무지 심심할 수 밖에 없다.
온정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온천물 온도는 53℃로 충분히 뜨겁다. 데울 필요가 없을 정도. 약알칼리성을 띄는 방사능 온천인데 방사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지 울진군 측에서는 실리카 온천으로 홍보한다. 물론 해가 될 정도의 방사능을 함유한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말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온천관광지로 개발이 되었고, 1970년대에 현대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꽤 큰 온천관광지이다. 온천호텔도 여러 곳이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위쪽에 있는 백암관광호텔이 원탕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거기서 끌어오는 곳인데, 어차피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다. 취향껏 선택하자.
이름의 유래가 된 불영사는 이 계곡 안쪽에 있다. 신라시대부터 있던 역사가 오래된 사찰로, 응진전과 대웅보전, 영산회상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삼층석탑과 불패 등도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등 사찰 자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내 풍경도 좋은 편이다. 의상전의 경우는 그 유래가 불확실하다가 2010년 수리할 때 유래를 적은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인현왕후]]가 환궁하면서 부처의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곳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실상 잡는곳은 둘다 크게 차이가 없으나 과거 울진이 교통이 너무 안좋아서 잡은 대게들을 대부분 영덕에서 출하를 했다. 이때문에 영덕대게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교통도 괜찮아져서 울진 대게 홍보도 만만치 않게 하는중이다. [[SBS]]의 목요일 심야 예능프로인 [[자기야 - 백년손님]]의 남재현과 그의 장인부부의 활약으로 울진 대게의 홍보를 제대로 해서 요즈음 들어서 [[영덕군]] 부럽지 않게 효과를 보고있다고 한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진은 경상북도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 지역적 성향 탓도 있지만 [[김중권]]이라는 지역 유명 정치인 때문이다. 1981년부터 3선을 달리고 이후 20년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6번이나 연이어 낙선했으나 매우 높은 득표를 보였다.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공천탈락 - "무당파국민연합" - [[김대중]]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 [[새천년민주당]] 대표 - 무소속의 길을 밟았으며,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먼저 "영남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김중권 후보가 이런 테크를 타게 된데에는 3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의 낙선이 크게 작용했는데, 당시 지역 발전을 위해 유치한 원전에 반대하여 울진 지지층 상당수가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울진의 주변지역에 비해 상대적 번영을 생각하면 역설인 셈이다. 그래도 밑에서 보이듯 이탈한 표는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탄핵 역풍이나 다른 지역의 새누리 지지로 끝내 당선은 늘 실패했다.
- 은혼/629화 . . . . 9회 일치
* [[히라가 겐가이]]가 [[야토]] 용병부대 손에 떨어지고 [[히지카타 토시로]]와 진선조 부대가 이 사실을 가부키쵸에 전파한다.
* [[히자카타 토시로]]와 [[진선조]]는 겐가이 영감의 실종, 잠정적으론 적에게 납치 당한 걸로 보인다는 소식을 각지에 전한다. 히지카타는 이제 가부키쵸 병력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타 긴토키]]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연다.
소요 공주는 해결사가 두고 간 보디가드, [[사다하루]]가 있어 괜찮다며 그녀에게 취침을 권한다. 그런데 문제의 보디가드가 공주의 잠자리를 척하니 차지하고 꿀잠을 때리고 있다. 노부메가 그 꼴을 보고 발끈하는가 싶더니 한술 더 떠서 사다하루의 폭신폭신 모피 위에 걸쳐서 꿈나라로 출발해 버린다. 온실 속 화초인 공주님은 이런 하드한 보케질 난무에 영 적응이 어렵다.
공주의 씁쓸한 되새김. 노부메는 공주를, 그들 남매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것은 자신들 히토츠바시파라고 털어놓는다.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실각과 암살, 그 배후엔 견회조가 연루돼 있다. 노부메는 자신들이 한 짓이 없었더라면 시게시게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은 그녀 앞에 있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말한다.
* 같은 시각 해방군도 통신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분석 결과로는 나노머신 병기는 정말로 모든 기계를 파괴하는게 아니라 중추 시스템을 장악해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 따라서 장악된 시스템을 우회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서 통신을 복구할 수 있었다. 부하들이 기쁘게 이 사실을 보고하지만 원상 황자는 전혀 만족한 모습이 아니다.
히지카타는 전시에 토할 정도로 퍼마시는 놈이 어딨냐고 깐다. 사실 긴토키도 라스트 보스 직전의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푹 쉬고 풀회복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독늪에서 뒹굴거리다 상태창이 녹색으로 물들어버린 판이었다.
* 사라져 버린 실마리. 하지만 히지카타가 새로운 단서를 포착한다. 길에 혈흔이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겐가이가 남긴 표식은 이쪽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당한 양의 피가 계속 흘러나온 걸 볼때 이미 위험한 상황, 어쩌면 늦었을지 모른다. 히지카타가 그렇게 추리하자 아까 헨젤과 그레텔 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오키타가 "곱창의 이름을 거는 겁니까"라고 물고 늘어진다. 히지카타도 할아버지 이름을 걸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는다.
* 누가 봐도 치사량에 가까운 출혈의 양. 불안한 예감이 들게하는 검붉은 표식의 끝에는....
- 은혼/639화 . . . . 9회 일치
*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모선에 돌입. 데이터로 남은 [[한카이]] 또한 해킹에 동원되는데, 사실 이전에 시도했던 해킹도 한카이의 카피였다.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태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혹시 실수로라도 하늘로 가신 바보가 있다면
다시금 시작된 귀병대의 진격. 신스케가 선두로 나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끝없이 베어넘기는, 문자 그대로 지옥. 하지만 신스케는 지옥이야 말로 귀병대에게 어울리는 무대라고 단언한다. 반사이는 참모인 헨페이타가 "희망"이란 불확실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마타코는 맨날 로리만 입에 달고 사는 변태 보단 방금 전 그게 훨씬 정상이라고 대꾸한다. "평소답지 않다". 그런 거라면 헨페이타가 문제가 아니다. 헨페이타는 사실 자기도 그들과 함께 진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답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한카이는 승락도 거부도 하지 않은 상태로 시큐리티에 접근하다 실패한 흔적을 찾아낸다. 이게 "지구인의 한계"라며 비웃는데, 사실 그는 그럴 처지가 못됐다.
그동안 귀병대가 시도했던 접촉은 모두 한카이의 카피를 이용한 것이었다. 총 12개의 카피가 동원됐고 헨페이타는 그때마다 같은 설득으로 협조를 얻어냈다. 그러나 모두 실패. 하지만 무의미한 시도는 아니었다. 12개의 카피 한카이가 조금씩이나마 시큐리티에 구멍을 낸 덕에 그 벽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폭음과 연기가 뒤따랐다. 바토우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던 사루가쿠는 폭발음과 함께 바토우의 무전이 끊기자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도 한 발 늦기는 마찬가지였다. 바토우가 그랬던 것처럼 눈부신 빛이 뒤따른다. 그의 무전도 소실. 헨페이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설마, 한 가지 해석이 떠올랐다.
- 은혼/647화 . . . . 9회 일치
* 지구의 [[우츠로(은혼)|우츠로]]는 해방군이 결국 실패했음을 직감하나 그들이 태운 불꽃을 빨아들여 자신의 불꽃을 태우겠다고 자신한다.
* [[사루가쿠]]는 난전 속에서도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신스케를 좇고 있었다. 그는 신스케가 엔쇼의 사격을 피해 앞으로 몸을 날리는 걸 보았다. 그 몸을 지탱해야 할 무릎이 힘없이 꺾이는 것도 보았다. 그가 무릎 꿇은 자리 위로 파문처럼 넓어지는 검붉은 핏방울, 그 웅덩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걸 보았다. 그 너머의 뜻밖의 호재를 잡은 엔쇼의 표정도.
그는 시체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다른 폐품들처럼 시설물 잔해에 간신히 걸려있던 그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흘린 피만 봐도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그게 문제였다. 무전으로 화상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으로 보면 자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헨페이타가 절망하지 않을 형태로. 그게 어려웠다. 그때 신스케가 손을 들어 어려움을 끝내준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가 통신으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도.
>나나 네가 살아남은 걸 보니 나쁜 놈일 수록 오래 산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군.
* 사루가쿠는 아직도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그는 적들을 쓰러뜨리면서 신스케의 대답을 곱씹었다. 알려줄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 존재만으로 전장을 바꾸는 영웅이 실은 이미 서있을 수도 없는 중상인데 알 필요가 없다. 신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몸으로라도 여전히 서있는, 서있으려는 영웅들이 그렇게 말했다. 가츠라, 다츠마, 그리고 신스케. 그 자신들은 실제로는 영웅도 뭣도 아닌 보통 사람에 불과하면서. 단지 그들을 믿고 싸워주는 이들을 위해 영웅으로서 다시 일어나야만 했던 자들.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영웅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우츠로(은혼)|우츠로]]는 폐허가 된 가부키쵸의 지표에서 명멸하는 점처럼 보이는 히노카구츠치를 보았다. 그 속의 해방군의 운명을 보았다. 그는 해방군의 실패를 직감했지만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그가 이 자리에 있는건 사라져 가는 것들을 향한 조문이었다.
- 이갑성 . . . . 9회 일치
이후 독립운동을 실행함에 있어 학생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경성부]]의 학생들이 시국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학생들과 자주 만나 [[손병희]] 등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한다며 독립운동 계획을 알려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비밀리에 [[경성부]]내 각 고등학교, 전문학교 학생들의 동정을 주시하였다. 이에 [[고종 황제]]가 갑자기 죽자 그해 [[2월]]을 만세 거사 기일로 정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병원 제약부 담당으로 재직 중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원로격인 33인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0일]] 밤 [[서울]] [[남대문로]]5가의 함태영 집에서 [[함태영]], [[현순]](玄楯), [[안세환]], 오상근(吳尙根) 등과 만나,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2월 22일]]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2월 27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 [[함태영]](咸臺永),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오화영]](吳華英), 이인한(李寅煥),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박동완(朴東完) 등과 함께 이필주의 집에 모여, [[함태영]]이 [[최남선]](崔南善)이 기초한 여러 가지 문서의 초안을 [[천도교]]계 인사 [[최린]](崔隣)으로부터 받아와, 그 취지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2월 28일]]에는 목사 [[김창준 (1890년)|김창준]]에게 [[함태영]]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900매 중 약 600매를 받은 뒤 이를 다시 인쇄하고, 그날 5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설(李容卨)에게 교부하여 인쇄하게 한 뒤 학생들에게 돌리게 하였다. [[3월 1일]] 아침 일찍 이갑성은 독립선언서를 수천 장 인쇄하여 400여매를 병원 사무실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상]](李容祥)에게 주어, 그중 200매는 대구의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보내고 나머지 200매를 [[마산]]의 독립운동 동조자 임학찬(任學瓚)에게 보내도록 한다. 또한 학생 [[김병수]](金屏沫)에게는 [[전라북도]] [[옥구군]]에 있는 [[박연세]](朴淵世) 등에게 보내기 위해 200매를 주었으며, [[충청남도]] [[천안]]에서 올라온 [[임영신]]에게도 일부 배포하고, [[경성부]] 강기덕(姜基德)에게 천500매를 주어 배포케 한다. [[2월 28일]] 밤 [[경성부]] 재동(齋洞)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 등의 민족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으로 정하였다.
}}</ref> 하지만 밀정 혐의의 특성상 세월이 흐른 뒤 근거를 찾기 힘들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가 되어 버린데다,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의혹만 남았을 뿐 명확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갑성의 논란은 [[민족문제연구소]]나 한겨레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다. 2005년 3.1절 특집 SBS 뉴스추적 "누가 변절자인가" 편에서는 이갑성의 친일의혹을 면밀히 검증한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민문연에서 제시한 것들도 근거가 희박한 것들이 많고, 이갑성이 광복 이후 우익계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좌익단체로부터 집단적인 음해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f>{{뉴스 인용
[[1951년]] [[5월 16일]] [[이시영]] [[부통령]]의 사퇴로, [[부산 피난지]]에서 열린 [[제2대 국회]]에서 실시한 제2대 부통령선거에서 여당격인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 소속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재적 국회의원 210명 중 재석의원 151명에 의해 선출된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소속 [[김성수 (1891년)|김성수]]와 경합했는데,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당선표수 미달, 3차 투표에서 73표를 얻어 낙선, 78표를 얻은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으로부터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國務總理)에 임명되기도 했다.<ref>[https://search.i815.or.kr/Indeman/Indeman.jsp?tid=ma&c1=%ED%9B%88%EA%B2%A9 ::: 독립기념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봇이 따온 제목 -->]</ref> [[11월]]에는 정식 [[국무총리]]로 국회에 인준하였으나 부결되었다.<ref>대통령비서실,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역사비평사, 2008) 74페이지</ref>
[[1953년]] 집권당이던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의 최고위원과 당 정무부장이 되었고, 정·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다. [[1953년]] [[3.1 운동]] 관련 단체인 민족대표 33인유족회의 회장이 되고, 국산부흥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족청계가 숙청된 뒤 [[이승만]]의 특별 부탁으로, 혼란에 휩싸인 자유당을 재건하기 위한 8인 재건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이 되어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무부장(政務部長)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기붕]] 계열과 주도권을 두고 암투를 벌이던 중 [[이기붕]]계열에 의해 숙청되어 당의 실세에서 밀려나게 된다.
|직책 = 전시 내각의 [[대한민국 무임소장관실|무임소장관]]
- 정광용 . . . . 9회 일치
[Include(틀: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7년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허나 얼마 안가 열린 [[19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를 밀지 않고, 대선 막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누리당 내부 분열을 자초했다. 직후 반대파에선 정광용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까지 제기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으로 보인다. 일단 [[박사모]] 내에서는 이전의 정광용을 비난하던 여론을 누르고 [[변희재]], [[정미홍]] 등의 조원진 지지파가 배신자로 몰리며 상황이 역전된 모양새다.[* 정광용은 박사모를 10년 넘게 운영해 사실상 박사모 회원들의 실질적 교주 역할을 하고 있다. 변희재, 정미홍이 바깥세상에선 정광용에 비해 유명인사라 하더라도 박사모 내부에선 철저한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며, 정광용은 카페 매니저라는 시스템적으로도 자신의 생각과 책임회피를 늘어놓는데 있어 둘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박사모 내부에서의 여론전은 정광용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이후 [[조원진]] 지지파는 [[대한애국당]]을 만들고 분리되었다.
탄핵반대 집회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사모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요구, 폭력집회 선동, 내란 선동, 경찰관 폭행, 기자, 시민 폭행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불법행동을 많이 저질러졌다. 심지어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날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동이 격화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3명이나 나왔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주동자 정광용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임지지 않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885974|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7년 5월 25일 같이 폭력 시위를 선동한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와 함께 구속되었고 2017년 12월 1일 1심 재판에서 손상대와 함께 실형 2년을 선고 받았으나 2018년 5월 31일,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http://naver.me/GGVzj1Wi|#]]
* 독도의 진실[[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4742299|#]]
놀랍게도 그는 과거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박사모 회장인데 왜 이런 책을 쓰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그동안 책을 몇 권 쓴 작가다. 박사모 회장이라는 직책과 작가라는 직업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박사모 회장으로서 이런 책을 편 것은 절대 아니다. 작가는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는 진실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걸 아는 양반이~~ 물론 기독교에서는 난리가 났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3&oid=003&aid=0003583796|#]]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1958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9회 일치
그리고 어디에 써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콘크리트 못 한 세트도 찾았다. 못이라…… 살고자 하는 이상엔 어딘가엔 쓰게 될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챙겨두자. 그런데 못은 있으면서 망치는 없다는게 황당하다. 못이 들어있던 서랍에서 전동드릴도 찾긴 했지만, 정작 날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 결정적으로 지금은 전기가 끊긴 상태다. 이거야 말로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군. 대신이랄까, 전에 찾았던 아령의 사용처가 생겼다. 실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못을 박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뭐에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밖에도 톱과 펜치같이 유용한 공구를 찾아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간단한 목공일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부자였다니,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일이다. '''고마워요 좀비 아포칼립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무기가 없이 돌아다닐 방법은 없다. 사실 무기가 있다고 해서 돌아다닐 맘이 나는건 아니지만, 안전면에서 차원이 달라져 버린다. 토트넘의 습격을 막을 수 있었던건 허접하게나마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나는 두 가지를 배웠는데, 하나는 녀석들이 썩은 채로 걸어다니는 그냥 인간이지 캡틴 아메리카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놈들이라도 때려눕히려면 뭔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기는 녀석들 이빨이 내 목덜미에 닿기 전에 막을 수 있도록 충분히 길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건 많다. 당구대, 야구방망이, 삽, 곡괭이, 죽창 등등.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토록 쉽게 줍는 물건이 내게는 하나도 없다. 나는 배란다 문을 닫아놓고 거실에 주저 앉았다. 어느덧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당은 태풍의 한 가운데처럼 한산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놓고 여전히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조금 시끄러운 행인들이라고 생각하면 5분 정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머리를 식혔다.
비닐 시트는 일반적으로 하우스에 치는 것만큼 얇고 약한 소재가 아니었다. 다루면서 보니 그보다는 방수포에 가까운 두꺼운 물건이었다. 실험 삼아서 손으로 당겨서 찢어보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녀석을 다듬는 역할은 방금 찾은 전지가위에 맡겼다. 하지만 재활용도 염두해야 하고 나는 재단 일에도 문외한이다. 최대한 길고 네모낳게 잘라냈다. 잘라낸 비닐을 팔다리에 둘둘 감고 그 위에 철사를 감아서 고정시켰다. 몸통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했고 그 외에 비닐로 감을 수 있는 곳은 전부 감았다. 제일 얼려운건 머리였다.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적당한 크기의 패트병이 있었고 주인공은 디자이너였다. 어떻게 해도 방도면같은 형태는 되지 못했고 그냥 머리에 둘둘 감은 후 눈구멍과 숨구멍만 뚫었다. 숨쉬는게 다소 불편했지만 어쨌든 호흡이 가능하고 앞도 보였다.
결국 대비해야 하는건 감염이다. 어떤 경우가 됐든 녀석들 무리에 섞여서 돌아다니게 되는 운명은 사양이다. 이 간이 방치복이 녀석들의 공격에서 고통을 덜어주진 않겠지만 이빨에 직접 닿는 것만 피한다면 감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나에겐 기회가 더 생기는 셈이다. 비록 선제공격은 못하더라도 말이다. 실험해본 결과 비닐 시트는 어지간해서는 이로 찢어내거나 손으로 잡아 뜯는게 불가능했다. 적어도 녀석들의 썩어가는 턱과 팔로는 무리일 것이다.
이제 마지막 고민이 남아 있다. 애당초 집 밖에서 활동하는건 상정한 바였다. 문제는 지금이 적절한 때이냐는 것. 이미 각오한 바지만 그렇다고 개죽음할 생각은 없다. 거실에서 보이는 앞마당은 고요하고 새로 만든 방치복은 그럴듯해 보인다. 지금이야 말로 적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의 한편에선 보이지 않는 뒷마당과 그 너머 토트넘의 집안 풍경이 그려진다. 담장을 막 넘는 녀석들과 토트넘의 다시 한 번 죽은 시체를 목도하는 11명의 조기 축구 회원들. 죽어서도 함께하는 그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알고 있다. 어느 쪽도 확실한건 없다. 지금 어느 쪽의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진다는건 순전히 내 심리가 얼마나 낙천성을 회복하고 있는지에 따를 뿐 객관적인 어떤 지표도 반영하고 있지 않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1|실험을 해보자.]]
- 최원태 . . . . 9회 일치
[[2016년]] [[5월 27일]] 선발 투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이 다실점을 한 뒤 두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3.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6년]] [[6월 14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의 공백을 메꾸는데 [[금민철]]이 실패하여 빈 자리를 메꿀 두 번째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분수|4|2|3}}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하였다. [[2016년]] [[7월 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타선의 지원에 힙입어 {{분수|5|2|3}}이닝 2실점으로 데뷔 이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607012208003&sec_id=510201&pt=nv ‘첫승’ 넥센 최원태 “초심 잃지 않겠다] - 스포츠경향 </ref> 2017 시즌부터는 선발진에 합류하였는데, 지난 시즌에 비해 등판하는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2017년]] [[4월 9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1군 경기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9/0200000000AKR20170409045000007.HTML?input=1195m '7이닝 2실점' 넥센 최원태 "데뷔 후 가장 만족한 투구"] -연합뉴스</ref> [[2017년]] [[4월 27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개인 최다 이닝인 8이닝을 소화하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7&no=287720 ‘시즌 3승’ 최원태, 값졌던 최다 이닝-투구수 경신] -MK스포츠</ref> [[2017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09388 ‘7이닝 1실점’ 최원태, 생애 첫 10승 요건] -OSEN</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캡틴 아톰 . . . . 9회 일치
찰턴 코믹스 시절 캡틴 아톰은 과학자 앨런 애덤(Allen Adam)으로 로켓 실험 중 사고가 발생해 원폭(...)을 당하고 초능력을 얻게 된다. 괴력과 비행은 기본이고, 신체를 자유롭게 축소 혹은 거대화할 수 있거나 에너지를 방출 할 수 있다.
DC로 오면서 설정이 대폭 바뀌는데 에너지를 방출 및 흡수하는데다 에너지 파장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쓸 수 있다. 이름이 너새니얼 크리스토퍼 애덤(Nathaniel Christopher Adam)으로 바뀌고, 과학자가 아닌 공군이 되었다. 아담은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사면하는 대가로 모종의 군사실험에 참여한다. 그런데 모종의 군사실험이...추락한 외계인 우주선을 핵폭탄으로 날리는 것. 아담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는데, 18년 뒤 외계 금속으로 코딩(?)한 신체와 초능력을 가진 채 등장했다. 이후 사형드립협박을 받아 어용관제 히어로(...)가 된다. 미 정부는 모든 기록을 날조하고 캡틴 아톰을 저스티스 리그에 침투시켰는데, 아담은 보기 좋게 즐 때리고(...) 히어로 길을 걷는다.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 애니메이션에서 슈퍼맨과 붙어서 슈퍼맨의 약점인 붉은 태양광선을 손에 두르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며 '''[[나름]]대로''' 잘 싸우나 상대가...강강캐인 것은 분명한데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일이 적다.
여담이지만 대체 방사능 슈트의 설정이 어떻게 된건지 몰라도 무언가 폭탄이 터지려 함->캡틴 아톰이 폭발 자체를 몸으로 흡수해 막음->캡틴 아톰 사망한 듯?->하지만 그 폭발 에너지로 인한 다른 차원, 시간 여행중->현실 세계에서 또 폭탄 큰게 하나 터짐->그 속에서 캡틴 아톰이 돌아옴.
참고로 열기나 냉기를 느끼지 못하고 먹거나 잠을 안 잔다고 한다. 확실한 지 확인되지 않았고 비관적인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죽지도 않을 것 같다고 본인이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파워걸]]과의 전투에서 [[부스터 골드]]의 말에 의하면 그가 높은 수준의 힘을 쓰면 [[방사능]]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대접은 이렇지만 [[wiki:"먼치킨(양판소)" 먼치킨]] 반열에 들어간다.
[[리부트]] 이후의 [[NEW 52]]부터 개인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능력 때문에 뇌가 버티지 못하고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다. 또한 능력이 '''엄청나게 강화'''되어 거의 전능한 능력을 보여준다. 암을 치료하고 화산 폭발을 막아내며, 탱크의 분자를 수소와 산소로 바꿔서 소멸시키는데다가 방사능을 흡수하여 소멸시킨다. ~~그냥 닥터 맨하탄~~[* 참고로 리붓 이후의 DC 유니버스에도 닥터 맨하탄같은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파란색인 맨하탄과 달리 붉은색.] 하지만 판매량이 나빠서 2012년 9월에 폐간된다. ~~결국 안습.~~ 개인 시리즈가 부활하지 않는한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으면 얼굴 볼 일이 없어지는 상황.
[[그랜트 모리슨]]의 <멀티버시티> 이야기중 하나인 <팍스 아메리카나> 편에서 등장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캐릭터만 DC 코믹스 캐릭터이고 실제로는 왓치맨이나 다름없는 작품인지라 캡틴 아톰은 문자 그대로 닥터 맨하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캡틴 아톰은 유일한 초능력자이자 거의 신급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개를 살리는 것이 가능하며 과거에 있는 상태에서 미래의 인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9회 일치
* 조궁장이 - "정성 들여 제작하는 활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진실을 향해 쏘아질 것이다."
암살 시 속임수 +1, 행동 스킬 실패 시 성공할 확률 +5%
* 수사관(Investigator) - "진실과 거짓은 물 위에 떠 있는 낙엽과 같다."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2%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4%
행동스킬 실패 시 탈출할 확률 +8%
* 실각한 야쿠자 - "자신의 배경에 등을 돌린 자는 장차 때가 올 때 최고의 사냥꾼이 된다."
* 성유물함 - "이러한 작은 것도 많은 기독교인의 선행을 꾸준히 실천하기 위함이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9회 일치
[[미국]] [[영화]].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 실사영화다. 2015년에 개봉했으며 개봉일은 8월 7일(미국기준). 국내 개봉은 8월 20일.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와 크로스오버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으나 영화 개봉 이후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본 영화의 참패가 많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측된다만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영화도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감독도, 폭스도 영 아니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각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지금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고 하며 이에 호의적인 반응도 있지만 저건 저거대로 좀 그렇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더불어서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도 거짓말이거나 부풀려졌다는 추측도 있는 듯 한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영화가 망했다는 현재의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이 영화의 실패로 서구에서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예시로 들며 이 기회에 판타스틱 포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겼다며 전화위복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일단 두고봐야 할 것이 먼저 어메이징 스파 시리즈가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 격이 떨어지고, 어메이징 스파2가 그렇게 되긴 했지만 스파이더맨의 MCU 참가는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데다 완전히 돌아왔다고 보기 뭐해서 이를 예시로 들어야 할지는 뭐하다. 결국 폭스는 판타스틱 포의 판권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속편도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감독은 교체하고 배우들은 그대로라 하는데 2015년판의 오명을 떨쳐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그러나 결국 이 속편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사실 폭스의 의향이 어떻건 마블 스튜디오가 폭스를 상대로 판포 판권을 회수할 가능성은 뭐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애초에 판타스틱 포의 판권은 폭스가 아니라 독일의 콘스탄틴 필름이 가지고 있어서다. 그리고 이 콘스탄틴 필름이 판권 소유 기간 연장을 위해 로저 코먼에게 만들게 한 영화가 90년대에 나온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 실사영화]]다.
* 마찬가지로 마블 코믹스 원작에 폭스에서 영화화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멘 실사영화 시리즈]] 세계관과 크로스오버를 얘기하는 팬들도 있는데, 사실 판타스틱 포 영화의 리부트 계획 당시 엑스맨 영화의 세계관과 병합시키고자 하는 '''크로스오버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계획 진행이 예상과 달라지면서 세계관 병합은 무리라고 판단한 20세기 폭스가 독자적인 영화로 만들고자 했는데, 제작자의 현재 입장은 "엑스맨과의 크로스 오버는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판타스틱 4는 그 자체 작품만으로 집중할 것이다. 마블이 그들만의 세계관을 합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엑스맨과 판타스틱 4 역시 그러한 방면에서 융합이 시도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9회 일치
은행 내에 있는 공범의 협조를 받을 계획이었지만 공범이 서버실 복사기에 드릴과 테르밋을 숨기는 것까지만 하고 빠져버렸다. 카드키를 얻기 위해 은행으로 들어간다.
2층으로 올라가 서버실 문에 카드키를 꽃고 들어간다. 서버실 구석에 놓인 복사기에서 드릴과 테르밋을 챙기자. 테르밋은 두 통 있는데 한번에 하나씩만 챙길 수 있으니 멀티플레이시에는 두명이 분담해서 들자.
C4가 폭발해 벽에 구멍을 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 카운트다운 내에 탈출 구역까지 가야한다. 구멍으로 들어가 화장실, 사무실을 거쳐 계단으로 내려가자. 노말 난이도부터 사무실에 특수 경찰이 있으니 조심하자. 이후 지하실 통로를 통해 주차장까지 가는데 테이저나 불도저가 양 옆에 있는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후 주차장에 온 쓰레기차에 올라타면 하이스트 성공.
헬리콥터가 패닉룸을 매달고 빠져나갔다. 이제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탈출할 시간. 제한 시간 내에 건물 뒷쪽에 있는 지하실 문을 폭파시키고 들어가자. 지하실에는 갱단원들이 있으니 주의. 탈출 구역에 도착하면 하이스트 완료.
- 하이큐/247화 . . . . 9회 일치
* 이나리자키 고교에서도 특히 요주의는 [[미야 아츠무]]. 그는 단순한 세터 이상의 존재로 세터로서도 놀랍지만 서버로서도 대단한 실력자다.
* 그리고 봄고 1일차가 끝난 밤. 2회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카이 코치는 잠시 집에 연락해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다. 사실 그는 할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레기장 결전을 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진 잇케 감독은 도저히 도쿄까지 올 상태가 아니었다. 우카이 코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가올 2회전 대책에 골몰한다.
쓰레기장 결전은 카라스노와 네코마가 3회전까지 올라가야 성립한다. 그러기엔 2회전 상대가 워낙에 난관이다. 선수들을 불러모은 우카이 코치가 "이제와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내일의 상대 "이나리자키 고교"를 정식으로 소개한다.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이 대회 시드교이자 우승 후보다. 말이 필요없는 강호.
우카이 코치는 우선 팀의 주력 두 명을 소개한다. 우측에서 두 번째, 미야 아츠무 좌측에 있는 인물이 4번 [[마지로 알랭]]. 팀의 득점왕이다. 높이와 파워를 겸비한 스파이커로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마찬가지로 "전국 세 손가락"에 가까운 우수한 선수. 사실 컨디션이 좋을 때라면 그 이상가는 기량을 보여준다. 리시버들에게 우시와카 때랑 마찬가지로 "막는 것"과 "줍는 것"을 구분하지 말고 토탈 디펜스로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이미 구면인 카게야마가 "스파이커가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치기 쉬운 세트를 올리고 흔들림 조차 없다고 극찬한다. 워낙 약점이 없어서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카게야마가 그렇게 말할 정도냐며 새삼 놀란다.
리시버인 [[니시노야 유]]가 바로 눈치챈다. 실제로 어떻게 칠지는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타나카도 리시브 진형 짜기 힘들겠다고 투덜댄다. 여기에 카게야마는 중학생 때, 인터하이 때 모두 베스트 서버 상을 탔다고 정보를 추가한다. 아즈마네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좌절한다.
* 1월 6일. 2회전 당일이다. 체육관이 문을 여는건 8시. 시합 개시는 8시 30분이다. 그 사이의 30분은 2회전 제 2 시합 팀들이 워밍업으로 사용한다. 카라스노가 제 2시합. 그런데 이건 개장과 동시에 카운트 된다. 첫 출전인 팀들은 이 사이에 짐을 옮기는 등 잡일을 하다 날려먹기 십상이다. 물론 시드교에 베테랑인 이나리자키가 그러리라고 바랄 수도 없다. 30분을 귀중하게 쓰기 위해 카라스노는 7시 20분 부터 구보로 이동을 개시, 동선과 역할 분달을 스무스하게 배치해 시간 손실을 최소화했다.
실제 눈으로 이들 형제를 본 스가와라는 "미야 아츠무 스펙 과다 문제"라고 투덜거린다. 그걸 들은 아즈마네는 "쌍둥이가 스펙에 들어가냐"며 실없는 소리로 답한다.
- 하이큐/267화 . . . . 9회 일치
* 코즈메는 2세트 후반까지도 잘 따라왔으나 체력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고, "뇌"가 흔들린 네코마는 자잘한 실책을 범하며 헛점을 보인다.
* 하지만 깨닫는게 늦어 코즈메는 사루카와의 블록을 농락하며 득점을 성공. 사루카와 측은 어쩌면 네코마의 실책까지 함정일 가능성이 제시되며 동요한다.
* 사루카와의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은 코즈메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현역 선수였던 시절 네코마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착실히 쌓여가는 법이다.
* "후카타니"의 서브. 사루카와 측은 이 여세를 몰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브가 좌측으로 너무 빠지면서 아웃라인을 벗어났다. 네코마의 득점.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한숨 돌린 네코마.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여전히 흐름은 사루카와 측에 있었고 이번 세트를 확실하게 받아갈 작정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공방. 사루카와어ㅢ "시라미네"가 때린 스파이크가 블록을 뚫는다. 후방에서 야쿠가 정면에서 받는다. 높이 뜨는 공. 시시오 감독은 그 순간에 무슨 불안을 느낀 걸까? 문득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시라미네의 조치는 재빠르긴 했지만 적절하진 않았다. 코즈메는 들켰다걸 알았지만 작전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른쪽이었다. 중앙에 멈췄던 시가는 공이 카이에게 넘어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카이가 짐착하게 스파이크. 뒤늦게 시가가 블록에 참가했지만 그의 팔에 맞고 텅빈 사루카와의 좌측에 내리꽂혔다. 완전히 속았다. 중계진은 넓은 레프트를 버리고 좁혀진 라이트를 공략한 의외성에 놀랐다. 그리고 사루카와의 블록도 그럴 거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를 감행한 코즈메는 수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번 대회에서 손꼽히는 세터일지 모른다고 호평했다. 정작 당사자는 방금 조금 짧게 올라갔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 현주엽 . . . . 9회 일치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휘문고 시절부터 초고교급으로 분류되던 현주엽은 고려대와 연세대 양교 관계자들의 치열한 경쟁속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오다 고3때인 1993년 3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 진학을 발표한다.<ref>한겨레 1993년 4월1일 “휘문 현주엽 고려대 간다”</ref> 이후 현주엽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93년 3월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가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목격하고 고려대 진학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미 대학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고대에 줄곧 승리를 거두던 연대에 들어가기보다는 연대와의 대결에서 열세에 있던 고대에 들어가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보이고 싶어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영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상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상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트레이드 소식을 최인선 감독이 아닌 신문기자에게서 처음 듣게 된 현주엽은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인선 감독에게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 매체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ref>스포츠투데이 1999년 12월 27일 [http://blog.naver.com/einer6623/50015480828 “현주엽 트레이드 진짜 이유 .. 현주엽 항명과 최감독의 단죄”]</ref> 이에 따르면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고 난후 최인선은 패배의 책임이 현주엽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부상을 핑계로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보이콧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경기인 19일 신세기전에서 다시 현주엽은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엔 최인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였던 23일 동양전은 현주엽에게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또한 이 매체에 따르면,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전 삼성과 먼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현주엽은 SK의 지명을 받기전 삼성으로의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역시 현주엽의 영입을 간절히 원해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을 딸 목적으로 전년도 시즌 막판 경기에서 고의 패배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7일 “삼성 ‘부끄러운 져주기”</ref> 그러나 실상 SK는 우승 가능권에 있던 삼성의 전력증가를 원하지 않아 삼성에 대한 현주엽 트레이드 타진은 시늉내기로만 끝났다.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장애가 되지않는 약체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된다.
골드뱅크는 현주엽 영입효과를 톡톡히 보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이듬해인 2000년 현주엽은 무릎을 크게 다쳤고, 수술과 재활로 인해 00-01년 시즌에는 코트에 나서지 못한 경기가 더 많았다. 평균 득점이 16.70으로 떨어졌고 팀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8회 일치
* 파랑색-붉은색 바탕
* 붉은색 바탕
대부분의 연구진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일부 연구진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정 년도가 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는 실제 역사상에서 해당 연구진이 사망/해체/파산된 것을 구현한 것이다. 반대로 새로 생겨나는 연구진도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어거지로 되어있어서 1950년대 일본 제국은 겨우겨우 살아서 제국주의짓 해도 일본군 관련 연구진들은 싹 쓸려나가고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그 자리를 메꾼다.
* K. E. Voroshilov RKKF Naval Academy(K. E. 보로실로프 RKKF 해군 사관학교)
* Alexander Vasilevsky(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 Room 40(40호실)
* Basil Liddell Hart(바실 리델 하트)
* Atelier de Construction de Puteaux(퓌토 기계작업실)
- head to head . . . . 8회 일치
이 방식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리그의 순위결정방식이 월드컵과 같이 "승점 - 골득실 - 골득"순으로 정했던 것이 "승점 - 승자승 - 골득실 - 골득"이라는 기준으로 개편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또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도 리그의 최종순위 결정방식에 승자승을 도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승자승 방식에 대한 정보가 축구팬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 2팀과 붙었던 전적은 철저히 배제하고 평가하는 셈. 사실상 토너먼트의 [[누적득점 집계방식]]과 동일하다.
이 여섯 경기를 바탕으로 평가하게 된다. 누적득점 집계방식에선 사실상 승무패로 갈리기보다는 득점과 원정골 여부만 생각하면 되는 반면에 3팀 이상을 고려해야 하는 헤드 투 헤드는 득점과 원정골보다 원정승의 여부가 정말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규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대회이며, 매 시즌마다 이 규정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팀이 꼭 생길 정도로 대회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2016시즌만 봐도 A조의 [[알 이티하드]], G조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각조 2위에 비해 골득실이 높았지만 이 원칙에 의해 순위에 밀려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이 룰이 도입된 리그에서는 [[골득실]]의 가치를 낮추며, 소위 '[[양민학살]]'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다른 약팀을 많이 잡는 소위 '양민학살'을 잘 하는 것이나, 골득실은 팀의 실력과 직결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운]]'이 따르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개선인 셈이다.
- 강원 FC . . . . 8회 일치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민들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창단한 [[대구 FC]]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전부터 몇번 창단 준비를 했었는데[* 2005년도에 잠깐 논의는 있었으나 실제 참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01&aid=0001156686|참고기사]] 딱히 성과가 나지 않았으나 대구에 이어서 인천, 경남이 차례대로 창단과정을 거듭함은 물론이고, 컨소시엄의 붕괴로 팀이 해체할 뻔한 대전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장면까지 본 강원도는 '''"오려는 축구단이 없으면 시민구단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 창단의 시발점은 2008년 4월 28일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2064010|"강원도민프로축구단 창단추진"]을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몽준 前 축협회장이 참가하여 "창단을 축하한다"는 발언을 생각하면 이 시기를 구단 역사의 첫 페이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33646|참고기사]]] 당시 도지사였던 김진선 이외에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이광재(태백, 영월, 평창, 정선), 최욱철(강릉)도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여야를 막론한 창단의 동의는 사실상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강원의 초기 돌풍을 일으켰던 공격수 [[김영후]]는 [[MBC]]에서 방영했던 [[맨땅에 헤딩]]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내셔널 리그의 공격수에서 K리그의 득점왕 후보에 이르기까지 그 활약이 상당히 인상깊었기에 그 이야기가 모티브를 제공했던 건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드라마의 흥행은 망했다고 전해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8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키리에는 초반부터 치고 나가며 경쟁한다.
* 도마 우마루가 그토록 싫어하던 마라톤 대최 개최. 우마루와 친구들은 맨 앞줄에 서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의욕이 넘치는건 타치바나 실핀포드 뿐이고 모토바 키리에는 옆에 우마루가 있는걸 더 신경쓰고 있다.
* 총성과 함께 "이에요!"라 외치며 전력질주하는 실핀. 일단은 1위로 달리게 된다. 에비나 나나는 빠르다고 감탄하고 우마루는 초반부터 저렇게 달려서 괜찮을지 걱정한다. 키리에는 마라톤을 모른다며, 저래서는 중반에 지쳐버릴 거라고 디스한다.
* 그런데 실핀은 귀도 밝은지 앞서 가면서도 "집단에 섞여 있으면 나에게 이길 수 없다"고 도발한다. 키리에는 자기는 딱히 1등을 노리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실핀이 "그럼 나랑 우마루양의 1대1 승부"라고 발언하자 욱해서 우마루양을 재치기 전에 자기를 먼저 재치라고 튀어나간다. 결국 실핀과 키리에의 승부가 돼버린다.
* 에비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바른 자세로 뛰려고 노력한다. 조금 앞서가는 우마루의 폼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금방 마라톤의 요령을 깨우쳤다고 감탄. 그러나 그건 겉모습의 얘기고,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어쩌다 보니 그런 자세가 된 거다. 사실 지금까지 우마루의 운동능력은 임기응변과 벼락치기로 형성된 것. 마라톤처럼 꾸준히 단련해야 하는 종목에는 통용되지 않았다. 고작 3일 연습해 봐야 언 발에 오줌누기. 우마루는 그냥 기권하려 한다.
- 고성국 . . . . 8회 일치
이후에는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4년]]에는 서울경찰청의 민간인 사찰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1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10-11&officeId=00028&pageNo=1&printNo=2034&publishType=00010</ref> 같은 해 5월에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던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에서 《[[월간조선]]》과 논쟁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2600289114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26&officeId=00028&pageNo=14&printNo=1907&publishType=00010</ref> 1995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2-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153&publishType=00010</ref>
1997년 5월 17일, 고성국은 추적 60분에서 하차했는데, 이는 KBS 노조 측에서 고성국을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 (1959년)|김현철]]의 인맥이라고 사측에 교체를 요구했고, 사측이 이를 수용한 결과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000289121003&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5-20&officeId=00028&pageNo=21&printNo=2883&publishType=00010</ref> 2012년 5월 고성국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1997년 추적 60분 하차에 대해 "김현철과 (내가) 친구인 것은 사실이고, 당시에도 숨기지 않았다. KBS 노조가 저를 낙하산 인사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KBS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말했다.<ref name="mediatoday.co.kr">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142</ref>
1998년 10월 서울지검 공안1부는 고성국이 [[총풍 사건]]의 관련자인 오정은 전 청와대 행정관, 윤만석 전 [[이명박]] 의원 보좌관, 조청래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과 제[[15대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당선을 위한 '비선 참모 조직'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5</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0270020911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0-27&officeId=00020&pageNo=12&printNo=24023&publishType=00010</ref>
당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에 따르면, 고성국 등 4명의 이회창 비선참모조직은 1997년 11월 초에 서울 평창동의 한 사무실에서의 회의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전달할 보고서에 대해 논의하다가, 총풍 사건 3인방 중 하나인 한성기로부터 이회창의 친동생 [[이회성]]을 통해 이 보고서를 이회창에게 직보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이후 한성기는 비선참모조직이 작성한 총 18건의 보고서를 이회창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고성국과 총풍 사건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중간수사발표를 내놓았다.
[[1998년]] 이후 고성국은 정치평론 무대에 나타나지 않다가, 2000년 10월 [[스카이러브]]의 논술강사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고성국은 "시사토픽 특강"과 "실전 교과문제 적용" 강의를 했다.<ref>http://www.mediagaon.or.kr/jsp/search/popup/newsviewpopup.jsp?newsId=01100101.20001005000003903&print=Y&highlight=%B0%ED%BC%BA%B1%B9%20%B3%ED%BC%FA</ref>
* 《대중정당: 민족민주대중정당의 이론과 현실》(공저), 한국사회연구소, 1989<ref>http://books.google.com/books?id=E4vSAAAAMAAJ&q=inauthor:%22%EA%B3%A0%EC%84%B1%EA%B5%AD%22&dq=inauthor:%22%EA%B3%A0%EC%84%B1%EA%B5%AD%22&hl=ko&ei=EUDaTsvKCeHJmQXis-H0Cw&sa=X&oi=book_result&ct=result&resnum=2&ved=0CDAQ6AEwAQ</ref>
* 《한국정치의 구조와 진로》(공저), 실천문학사, 1990<ref>http://books.google.com/books/about/%ED%95%9C%EA%B5%AD%EC%A0%95%EC%B9%98%EC%9D%98%EA%B5%AC%EC%A1%B0%EC%99%80%EC%A7%84%EB%A1%9C.html?id=NRQhHAAACAAJ</ref>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금춘수 . . . . 8회 일치
*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 경영지원실 실장, 전무
* 대한생명보험 경영지원실 실장, 부사장
*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실장, 사장
*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실장, 부회장
- 기간트 . . . . 8회 일치
원래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에서 플라잉 머신이 추락하면서 죽은 줄 알았던 레프카는 살아남은 상태였다. 이들은 기간트의 격납고에 숨어있었다가 [[삼각탑]]의 주조종실을 기습해서 기간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지하 격납고의 문을 열고 기간트를 출격시킨다. 이때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 방어력 및 장갑도 충실하다. 동체와 날개는 기본적으로 [[기관포]]이하는 아예 튕겨내버리며, 자신의 총탑으로 집중사격해도 표면만 좀 긁히고 마는 수준의 단단함을 자랑한다. 물론 대포를 장비한 선회포탑의 사격으로는 손상을 입지만 비행에는 지장이 없는 국부적인 손상만 입으며, 레이저 포탑으로는 큰 손상을 입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발 맞는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대단한 스펙과는 달리 안습한 처지에 놓인지라 절반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추락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레프카가 권좌에서 쫒겨난 상황이었고, 아직 자신을 따르는 얼마안되는 부하[* 애니에서 나온 부하들 수는 많아도 10명이 넘을까 말까 정말이지 수가 적었다! 게다가 이 가운데 항복하여 같이 공존하자고 충고하는 부하 1명을 레프카는 군말없이 쏴죽여버렸다.]들만 이끌고 삼각탑에서 탈출하는 방식으로 출격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비나 인원보충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코난 일행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장기간 기간트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일부 지역을 점령해서 레프카가 왕국을 세울수는 있겠지만...
* 인원 부족 및 숙련도 저하 : 레프카의 심복들은 숫자가 적은데다가 기간트가 원래 1급 비밀에 가까운 물건이라서 해당 기체의 성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간신히 조종블록에서 다른 곳을 원격조종하는 수준만 가능했기 때문에 엔진실등 중요 부위에 인원을 하나도 배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코난 일행이 파괴공작을 쉽게 한 것이다.
* 모든 기능에 승무원이 필요 : 첨단기기답지 않게 총탑의 사격부터 비행의 유지등 여러 분야에 다수의 승무원이 필요하다. 즉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사격장치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총탑은 [[B-29]]처럼 총탑을 담당한 승무원이 별도의 감시탑에서 총탑들을 조종해서 사격하는 형태를 취한다.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렇게 승무원이 많이 필요해지니 엔진실같은 중요 지역에 승무원을 1명도 배치하지 못한 것이다.
* 코난 일행의 활약과 레프카의 대응 실수 : 원래 코난 일행은 이런 파괴공작에는 이골이 난 정도로 달인인데다가, 레프카는 성질이 급한 편이다. 이런 요인이 시너지를 이루자 파괴공작 + 레프카의 오사등으로 인해 기간트가 비행능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의 손상을 입게 된다.
- 김성민 (1994년) . . . . 8회 일치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2017년]] [[4월 2일]] [[kt 위즈]]와의 개막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구원 투수로 첫 등판을 하였고 [[4월 1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한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5월 18일]]에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김택형]]과의 1:1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이에 관해 [[고형욱]] 단장은 이전부터 그를 지켜봐 왔다고 밝히면서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컨디션과 실전 감각이 대학 시절만큼 회복된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01214 <nowiki>[배지헌의 브러시백]</nowiki> 넥센은 왜 김택형 대신 김성민을 택했나], 《엠스플뉴스》, 2017년 5월 18일.</ref> [[2017년]] [[5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7년]] [[7월 2일]]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고, 6회에도 올라왔으나 경기가 강우 콜드로 끝나면서 완투승으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1.kr/articles/?3036995 '김성민 데뷔 첫 승' 넥센, kt에 6회 강우콜드 승리] 《뉴스1》, 2017년 7월 2일.</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8회 일치
* 미도리야가 빠르게 사무실을 체크해보니 사실 눈 돌리는 곳마다 올마이트 관련 굿즈가 가득하다. 나이트아이도 중증의 올마이트 팬이었던 것이다.
비록 미도리야가 웃기는데는 실패했지만 대화를 잘 풀어나가자 [[토오가타 밀리오]]도 한숨 돌리며 나름대로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간지럼 형벌을 당하던 버블걸을 풀어준다.
* 나이트아이는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 미도리야가 방문한 목적, "인턴 채용" 건에 대해서 듣는다. 미도리야가 가져온 서류에 나이트아이가 도장을 찍음으로 성립한다는데, 나이트아이는 일반적인 기업에서 하는 인턴과는 다르다며 학교 수업에도 영향을 미쳐 출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도리야는 "발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론 톱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당당히 서류를 제출한다.
* 나이트아이는 그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라며 채용시험을 제안한다. 그는 3분을 주면서 자신의 손에 있는 인감도장을 빼앗아 직접 서류에 찍어 보라고 제시한다. 그러면서 버블걸과 밀리오를 퇴실시킨다.
* 사무실에서 쫓겨난 버블걸은 밀리오 때는 이런 시험은 없지 않았냐고 묻는다. 밀리오는 자신인 애초부터 지명을 받았으니까 그런 거라고 대답하면서도, 미도리야의 앞길이 캄캄하다고 걱정한다. 나이트아이의 "개성"이 있는한 달성하기 불가능한 퀘스트라는데.
미도리야는 원래 밀리오가 후계자 후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나이트아이는 지금도 올마이트를 경애하지만 후계자 건에 대해서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미도리야는 갑자기 듣게된 사실 때문에 혼란을 겪고 그 사이 시간을 흘러간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오래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있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8회 일치
그랬던 것을 당사자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성을 띄었다. 미도리야는 잠시 넋을 잃는다.
* 그러나 미도리야는 이미 그 이야기에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올마이트가 죽는다는,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더 신경 쓰였다. 그 예지가 언제 일이고 절대로 바뀌지 않는 거냐고 묻자 올마이트는 태연한 태도로 당시 기준으로 6, 7년 후라면서 먼 미래일 수록 오차는 생기긴 하지만 예지로 본 장면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계산해 보니 예지가 실현되는 시기는 올해나 내년 정도. 미도리야는 현실을 부정하며 올마이트에게 살라고 애원한다. 미도리야는 웅영제 때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 미도리야가 올마이트에게 진실을 확인할 무렵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이 얽힌 사건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에스퍼 거리에서는 빌런단체들 간의 항쟁으로 거대화 빌런 둘이 싸우고 있다.
* 우라라카와 아스이는 네지레의 소개로 No.9 히어로 "드라군 히어로" [[류큐]] 밑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류큐는 우라라카와 아스이의 실력을 호평하며 네지레의 추천을 받길 잘했다고 말한다. 원래 두 사람은 직장 체험했던 사무소에서 인턴을 신청할 예정이었으나 1학년은 실적이 풍부한 사무소가 아니면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최종적으론 이쪽으로 낙찰됐다. 이런 사실도 네지레가 한도 끝도 없이 떠벌거린다.
* 한편 문제의 오버홀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응접실에서 기다리도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8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에선 시에핫사이카이와 젊은 두목 [[오버홀]]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다.
* 공교롭게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 생각했더니 [[미도리야 이즈쿠]]와 친구들은 모두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 이곳에 현역에서 뛰고 있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엔 [[아이자와 쇼타]]와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처럼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미도리야와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참석대상이다. 물론 그들의 사무소 책임자들도 참석.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착석을 요청한다. 미도리야는 히어로 덕후 기질을 발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참석한 히어로들의 면면을 빠르게 살핀다. 랭킹에 올라간 유명인사들도 있지만 지방에서 활동하는 마이너 히어로들도 있다. 오챠코와 츠유는 담임인 아이자와에게 먼저 다가간다.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 측에서 협력 요청이 있어서 왔다가 밝히고 자신도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키리시마는 선배 [[아마지키 타마키]]와 함께 [[패트껌]]에게 다가간다. 키리시마에겐 시에핫사이카이도 금시초문. 패트껌은 그 녀석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몰라서 모인 것이며, 사실 그들도 이미 엮여 있다고 하는데.
"개성을 망가뜨린다"는 말은 회의장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밀리오는 우선 타마키의 몸 걱정을 하는데, 다행히도 자고 일어나니 완전히 괜찮아졌다. 타마키는 건재를 과시하듯이 개성을 발동하는데 아침 메뉴가 규동이었는지 소발굽을 만들어낸다. 그정도라면 별거 아닌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이자와가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모두 정황이며 "이으려 하면 이어진다"는 정도의 정보일 뿐. 히어로들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여기서 나이트아이는 좀 더 구체적인 단서를 제시한다. 그것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젊은 두목 치사키, [[오버홀]]에 대한 정보다.
* 나이트아이는 "치사키에겐 딸이 있다"는 정보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신의 인턴들, 밀리오와 미도리야와 접촉했다는 사실도. 그때 확인한 바로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프로 히어로들은 이것만 가지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키리시마 같은 학생들은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동안 불평 일색이던 레게풍의 히어로가 적나라하게 대답해준다.
여전히 증거는 없다. 실제로 판매하는지 어떤지 증명할 수 없다. 총알은 현 단계에서는 매우 어중간한 성능. 하지만 이게 단지 시제품이고, 최근 사건들을 프레젠테이션 삼아 동료를 모으고 있는 거라면? 전국에서 동료를 모으고, 자금을 모으고, 총알의 완성형이 개성을 "완전히" 파괴한다면? 악행의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떠오른다.
* 패트껌이 다혈질스럽게 "당장 처들어가자"고 말하는 동안 레게풍 히어로는 화살을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돌린다. 그 둘이 접촉했던 당시에 소녀를 보호했다면 끝났을 얘기 아니냐는 것. 나이트아이는 자기 책임이라며 둘을 감싼다. 그러는 동안 두 학생은 무거운 자책감에 시달린다. 비록 미도리야가 소녀를 보호하려 했고, 밀리오는 앞일을 생각해 보다 확실한 보호가 가능한 때를 노렸을 지라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8회 일치
* 사실 이 기숙사 전환은 교사는 물론 학생들 중에 배신자가 있을 것을 염려한 조치이기도 하다.
* 이레이저 헤드는 미도리야 일행이 바쿠고 탈환에 개입했임을 통지하고 사실은 재적처리돼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해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 실제로는 학생 중에 있을지 모르는 "배신자"를 색출하고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 아이자와는 이들의 반응으로 사실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다는걸 간파한다.
* 어찌되었든 이들이 교사들의 신뢰를 배반한 건 사실이기 때문.
* 방은 1인 1실이 기본. 자체 화장실에 베란다까지 딸린 호화로운 구성이다.
* 사실 남학생들은 대체로 별 관심이 없다.
- 마기/347화 . . . . 8회 일치
* 알리바바의 통찰력에 놀라던 신드바드는 "대안"을 묻지만 그가 여전히 "먼 미래에 예정된 파멸보단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되풀이하지 실망한다.
* 알리바바가 그렇게 나오자 신드바드는 지금이라도 "대화"란 것에 응하겠다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가 보는 이 싸움의 진상은 "운명의 지배", 나아가서는 "운명을 가지고 노는 신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전쟁이다. [[일 일라]]는 한때 이 세상의 신이었으나 그 뒤에 더 강한 신이 있었다. 이런 신들의 변덕과 독선이 인간의 운명을 뒤흔든다. [[우고(마기)|우고]]는 자신의 마법으로 일 일라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신드바드는 "누군가 내 운명을 쥐고 있다"는 절망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알마트란의 사례를 끌어들인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운명의 노예"라는 자괴감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운명"의 실체를 봤고 자유의지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붕괴했다. 이 허무감, 절망감이 운명과 그것이 지배하는 세상 자체를 부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알리바바는 분쟁의 본질은 "뭔가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란 점을, 인간의 습성이 그렇다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신드바드가 깨달은 바와 일치하며 알라딘도 놓치고 있던 세상의 진실이다. 그것을 한수 아래라고 여겼던 알리바바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신드바드는 그것만은 거절한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솔로몬이 만든 세상의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다. 언젠가 인류는 운명을 이해하고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뻔한 결말을 보고도 모른척해야 한단 말인가?
신드바드는 실망한다. 그토록 통찰을 보여줘놓고, 결국 아무런 안일하게 안주하는 것 밖에 없다니. 무심한 척 지켜보고 있던 아르바도 "것봐라"라는 듯이 실망한다.
- 박창달 . . . . 8회 일치
||<width=30%><:>''선거구 통합''[br][[강신성일]][* [[동구(대구)|동구]]]||<width=5%><:>→||<width=30%><:>'''제17대[br]박창달'''[* 의원직 상실]||<width=5%><:>→||<width=30%><:>제17~20대[br][[유승민]]||
미래실버청년연구원 이사장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26번으로 출마하였지만 너무 순번이 뒤쪽에 있어서 당연히 낙선...했는데 임기 다 끝나가는 2000년 3월에 현역 [[윤원중]]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승계, 3달짜리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물론 15대 국회 막바지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문제는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2004년 5월'''에 사퇴하여 '''임기가 1달도 안되는 의원'''이 탄생하여 다시 문제제기되었고, 이후 잔여임기가 얼마 안남은 비례대표 의원이 자격을 상실 혹은 사퇴할 경우에는 승계하지 않도록 법이 바뀐다.] 대신 16대 총선에서 안정권인 15번을 받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탄핵역풍 속에서도 자신이 영입한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텃밭 대구 동 을 지역구 공천을 받아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 반여만에 의원직 상실 크리.(...) 그리고 그의 지역구는 바로 [[유승민]]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지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났다.(...) 사면복권되기 전에는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후보 및 유세단 경호 등에 참여했다.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3선 의원이지만 실제 수행임기는 6년이 채 안된다. 온전히 4년 임기를 수행한건 16대뿐이고, 15대는 3개월, 17대는 1년 3개월이다.(...) 그나마 17대는 공직선거법으로 당선 자체가 무효된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자면 선수로 쳐줄수도 없다.[* 물론 언론 등에선 정치인들이 당선무효가 된 선수도 그냥 포함시켜 카운팅해주기는 한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한나라당]]'''~~ || ~~'''45,245 (55.09%)'''~~ || ~~'''당선 (1위)'''~~ || 2005.9.15 의원직 상실[BR](공직선거법 위반) ||
- 백승주(정치인) . . . . 8회 일치
||<width=30%><:>제19대[br][[심학봉]][* 의원직 사퇴.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보궐선거 미실시.]||<width=5%><:>→||<width=30%><bgcolor=#FFFFA0><:>'''제20대[br]백승주'''||<width=5%><:>→||<width=30%><:>''현직''||
[[1961년]] [[3월 20일]]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2016년 국감에서 [[김제동]]이 7월경 방송에서 "사모님을 아주머니 불러 13일 영창을 갔다왔다"라는 말을 했다며 "군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해 증인 요청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라는 좀 더 시급한 문제를 다뤄야 하는 곳에서 이런 말을 한 것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최순실 청문회]]의 새로운 X맨으로 등극 중이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우병우 증인 등 변호하는 듯한 답변 유도와 태블릿PC에 집중하고 야당 의원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 백미는 왜 최순실의 PC를 조사했냐는 것. 그리고 [[노승일]]이 멋대로 문서를 복사해 갔다고 범죄행위로 몰았다. --노승일은 쿨하게 처벌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승일에게 무슨 의도로 문서를 복사했냐는 등 어떻게든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의도와 정 반대로 답변이 나와서 모두 실패했다. 박근혜와 친족관계임이 밝혀지면서 '친박 이완용을 넘어서는 친족 백승주가 왔다' 는 평이 나왔다.
사실 무난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2위 후보자였던 남수정 후보가[* 그것도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창당한 원외 진보정당인 [[민중연합당]]의 후보였다.] 38.1%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미시에서도 친박이라는 브랜드가 그리 잘 먹히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장세용|이변이 일어났다]].
- 블랙 클로버/105화 . . . . 8회 일치
*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단장 [[야미 스케히로]]를 비롯해 글러먹은 사람들의 모임인 검은 폭우는 전원이 노는데 정신이 팔려 단상에 올라가기는 커녕 뒤쳐져서 시민들보다 먼 곳으로 밀려나있다. 아스타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보려 하지만 인파에 밀려서 발만 동동 구른다. 야미는 딴짓하다가 지각한데다 동행한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꽐라가 되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푸른 들장미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까지 이들에 휘말려 역시 꽐라가 되어 누워있고 동행한 [[솔 마론]]이 안절부절하지만 깨어날 줄을 모른다.
마법제는 곧 본론인 실적발표를 진행한다. 근처에 있던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군중들은 당연히 금색의 여명이 1위를 할 걸로 예상하는데, 매그너는 어차피 꼴찌는 자기네들일 거라며 관계없다고 자학적인 개그를 한다.
* 예상대로 1위는 금색의 여명이 가져갔다. [[윌리엄 벤전스]]는 마법제의 발표를 들으며 자신있는 미소를 짓는다. 은익의 참수리의 단장 [[노젤 실버]]는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눈길로 그를 흘깃 바라본다. 올해 금색의 여명은 작년 스코어인 별 96개를 크게 상회하는 별 125개를 기록.
* 마법제는 여기서 실적에 기여한 MVP도 발표한다. 다름아닌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다. 바람의 정령 실프를 다룰 수 있게 된 그는 금색의 여명 안에서도 독보적인 신인으로 부각됐다.
* 이어서 2위의 발표. 이번 2위는 경쟁자가 많다. 작년엔 홍련의 사자단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전단장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이 사고를 당하면서 기세가 주춤했다. 대신 은익의 참수리가 푸른 들장미단이 언급되는데 쉽게 누구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핀랄 룰러케이스]]는 단원 중에서도 가장 프리하게, 정말로 실적발표엔 1g의 신경도 안 쓰고 헌팅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폭우인데 너무 쉽게 들통나서 영 실적이 오르질 않는다.
* 매그너와 락도 주위에서 검은 폭우인걸 알아보고 대답하라고 찌르는데 매그너는 "나가기에 빌어먹게 딱 맞는 녀석"이 있다며 사양한다. 역시 검은 폭우의 신인인 [[노엘 실버]]는 이번은 양보할 테니 얼른 나가보라고 츤츤거리는데, 정작 그가 어디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8회 일치
* 젤은 실제로 죽은 파나와 증오의 파나가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운 일을 기점으로 따뜻한 마음을 되찾았던 마르스는 파나에 대한 속죄로 전투 중 생기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몰래 구하며 지내고 있었다. 지금 다이아몬드 왕국은 마도학자 모리스가 뒤에서 --비선실세--실세로 행세하며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 그가 다이아몬드 왕국을 배신한 것도 그런 이유로, 이미 파나가 사랑했던 다이아몬드 왕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던 마르스는 눈 앞에 파나와 닮은 소녀 "증오의 파나"가 나타나자 이성을 상실한다. 친구인 파나가 어쨌든 살아있다고 생각해 버린 마르스는 앞뒤 보지도 않고 일단 파나에게 달려가려다 아스타에게 제지 당한다. 사정을 모르는 아스타는 마르스가 황당한 짓을 한다고 여기다 둘이 아는 사이인 듯 하자 또 놀란다. 그러나 정작 파나는 마르스는 모른다며 공격을 가한다.
* [[노엘 실버]]는 자신의 물마법으로 파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핀랄의 공간 마법도, 바네스의 실 마법도 파나의 근처에는 접근할 수가 없고, 노엘의 물 마법으로 직접 공격을 가하면 반발 때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노엘은 역시 아스타의 반마법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 때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실패를 거듭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르스는 반드시 파나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 서상일 . . . . 8회 일치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 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한때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장덕수]]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설하고, 사실상 집단지도체제하의 정당의 최고위원이라 할 수있는 8총무단의 일원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950년 5월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말았다.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영중이던 국립영화제작소의 촬영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상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상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상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영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결국 1954년 이승만의 3선저지를 위해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던 서상일은 [[박기출]], [[장택상]] 등과 함께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반대하는 [[조병옥]], [[김준연]], [[장면]], [[박순천]] 등에게 항의하고[[호헌동지회]]를 탈퇴했다.그런데 그후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봉암이 원래 서상일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던 두 사람간의 밀약을 깨고 조봉암 자신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려하자 이때문에 심기가 상한 서상일은 조봉암과 사실상 결별의 수순에 들어가 후일자신을 당 대표로 한 민주혁신당을 창당하였다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상을 갖게 되었는데 협상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영수 신익희와 신파의 영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남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상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때 서상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상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상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상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상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상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상 힘을 쓰지 못하자 서상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 손담비 . . . . 8회 일치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백 환영.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싱글 "[[Cry Eye]]"로 데뷔했을 당시 안무중 [[크럼핑]]이라는 고난도 댄스를 이용해 아시아의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 받았고, 이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seg1"/> 마돈나의 안무를 담당했던 미스 프리시는 손담비의 춤을 보고 "흑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느낌과 동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실력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돈나 안무가 손담비 춤 '극찬'|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10204|출판사=노컷뉴스|저자=이지현|날짜=2008-04-24|확인날짜=2012-05-12}}</ref> 그러나, 손담비는 데뷔 때부터 가창력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2010년 "queen"의 MR 제거 영상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ref name="아츠"/> 《[[티브이데일리]]》의 유진모는 "손담비의 가창력은 형편 없다. 온통 이펙터로 치장한 보컬은 도대체 사람이 부르는지 기계로 만든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토요일밤에〉에는 가창력 때문에 키를 내려 노래의 맛이 더 떨어졌다. 아이비의 폭발력마저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 "아이비와 손담비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손담비 아이비 서인영 '섹시 여가수' 성적표|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유진모|날짜=2010-06-28|확인날짜=2012-05-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52125/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손담비는 연습생 시절, 비의 어록들을 연습실에 붙여놓고 활동했다고 한다. 또한 "퍼포먼스 할 때 동작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어떤 걸 표현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과감한 몸짓,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표정 등 많은 부분에서 닮고 싶다"고 말하며 [[비욘세 놀스]]를 존경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비 어록, 연습실에 붙여놨다"|출판사=조이뉴스24|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68832|저자=박재덕|날짜=2007-06-27 |확인날짜=2011-02-01}}</ref> 또한 손담비는 "배우의 색깔과 가수의 색깔이 공존하는 분이다. 배우로서도 훌륭하고 가수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스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며 [[엄정화]]를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출판사=뉴스엔|날짜= 2009-04-17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ref> 이 외에 [[김완선]]과 [[마돈나]]에게 영향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집에서 혼자 춤춰요”(인터뷰①)
- 스틸오션/미국 . . . . 8회 일치
>1930년대 발생한 경제 위기는 미국의 조선 공업을 사실상 정지시켰다. 1934의 뉴딜 계획에 따라, 신형 디젤-전기식 고속 잠수함인 P급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기술의 발전에더 불구하고 P급 잠수함은 뇌격 능력이 부족했다. 훗날 설계된 많은 잠수함이 P급의 설계에 기반을 두고있다. 10척의 P급 잠수함이 세개의 배치(batch)를 거쳐 건조되었다. 각각의 배치는 이전 배치보다 근소한 성능 향상을 보였다.
||<bgcolor=#cccccc> '''가격''' || 3,400 실버 ||<bgcolor=#cccccc> '''연구 경험치''' || 220 Exp. ||
>영국 구축함에 기반을 두어 건조된 패러것급 구축함은 전간기 설계를 사용한 첫 미국 구축함이다. 대형 선실과 연돌 두개를 장비한 패러것급 구축함은 5인치 함포와 Mk.37 사격통제장치로 무장하였다. 초기 패러것급은 다섯개의 포탑을 장비했다. 모너핸(Monaghan)은 진주만 공습 당시 폭뢰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켰다.
||<bgcolor=#cccccc> '''가격''' || 6,000 실버 ||<bgcolor=#cccccc> '''연구 경험치''' || Exp. ||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본래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지만 워싱턴 해군 조약으로 인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두척의 렉싱턴급이 항모 전술 훈련에 사용되었다. 초도함인 렉싱턴은 산호해 해전에 참가해 한척의 일본군 항공모함을 격침시켰지만 자신도 피해 수습에 실패해 침몰하였다.
||<bgcolor=#cccccc> '''가격''' || 3,5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270 Exp. ||
||<bgcolor=#cccccc> '''가격''' || 15,600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1,740 Exp. ||
||<bgcolor=#cccccc> '''가격''' || 실버 ||<bgcolor=#cccccc> '''필요 경험치''' || Exp. ||
- 식극의 소마/210화 . . . . 8회 일치
* [[잇시키 사토시]]가 펼친 놀라운 실력은 적들 조차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 잇시키의 솜씨에 놀란건 카와시마만이 아니다. 적 십걸들 조차도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으며 에이잔 같은 경우는 저 실력만 잘 활용하면 돈을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왜 센트럴에 반역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다. [[코바야시 린도]]는 [[시라츠 쥬리오]]에게 지지말고 실력을 보여주라고 응원하는데, 정작 시라츠는 잇시키의 본실력에 감동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다. 이 위험분자는 잇시키의 기술이 아름답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자기 조리까지 잊어버린다. 어쨌든 린도는 쥬리오가 기죽지 않고 의욕이 생긴거 같다고 잘됐다고 생각한다.
잇시키는 죽은 생선을 손질하듯이 너무 간단히 배가르기를 해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도 히사토의 해설을 듣고 보니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난다고 감탄한다. 그러는 한편 평소의 알몸 에이프런 차림에선 상상도 못했다고 수군거리는데, 그 말을 들은 [[나키리 아리스]]가 비서코, 니쿠미라는 별명을 부르며 "알몸 에이프런"이 뭐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둘 다 별명을 부른 점에만 투덜대고 정작 "알몸 에이프런"에 대해선 노코맨트를 고수한다.
* 아버지의 당부도 있어서 네네는 처음부터 잇시키와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려고 한다. 처음 키노쿠니가에 왔을 때, 잇시키는 어딘지 멍해보이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네네는 실뜨기나 공기놀이를 가르쳐주며 함께 놀았다. 그런데 잇시키는 류테키나 비파같은 악기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네네는 당연히 다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뜻밖에도 잇시키는 무엇을 가르쳐주든 금방 따라해서 능숙해졌다. 곧 악기 뿐이 아니게됐다. 잇시키는 네네와 함께 다양한 교양을 습득하게 되는데 무엇을 하든 네네가 고생해서 익힌 솜씨를 손쉽게 따라잡았다. 네네는 곧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그를 경쟁자로 적대시한다.
네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잇시키의 습성. 그건 무엇을 하든 그녀가 이룬 경지를 쉽게 따라잡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여력을 남기고 있다. 그것이야 말로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 참을 수가 없으니 자신들 91기생 중에 누가 최강의 요리사인지 자신의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며 투지를 드러낸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8회 일치
*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비장의 재료로 사용한 "붉은 식초"까지 간파해 사용, 그 맛은 틀림없는 십걸 상위멤버의 솜씨다.
* 초밥을 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 카와시마. 그리고, 거센 맛의 폭풍이 몰아친다. 편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식견이 한꺼풀 벗겨진다. 첫 번째 초밥은 감칠맛 넘치는 중뱃살. 표면에 간장을 가공한 "니키리" 양념을 발라 살의 맛을 끌어냈다. 다음은 붉은 살. 다시마 절임해서 미묘한 맛들이 입안에서 얽힌다. 세 번째는 희소부위인 카마토로. 폭력적일 정도로 넘치는 기름 맛을 산뜻한 밥알이 감싼다. 단 세 점을 먹었을 뿐이지만 미마사카의 초밥은 참치의 각 부위의 특징과 맛을 십분 활용한 절품.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반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단지 그거에 그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붉은 식초는 일반 식초에 비해 단맛이 적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있다. 밥알이 딱딱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는 덤. 하지만 붉은 식초로 간을 하면 재료간의 하모니나 깔끔한 맛을 살리려 할 땐 매우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마사카는 그런 기술을 카피하는 영역까지 성장한 걸까?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안지만 . . . . 8회 일치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뒤진 7회말 [[양현종]]으로부터 무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했으나 삼진 1개를 잡아낸 후 뒤따른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냈고, 8회에도 등판하여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이때 위기 상황에서 등판할 시 자주 나오는 기합소리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고, 이 경기를 통해 팬들로부터 '안순신'이라는 별명을 받았으며, 결승전 MVP로 선정되었다.
* 안순신 -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결승전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7회말 무사 1, 3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우승에 기여하자 나라를 구했다며 [[이순신]] 장군에게 빗대어 지어진 별명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10월 15일]]에 팀의 [[스타]]급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간판투수 3명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즐겼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 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팀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통합 5연패가 좌절되었다. 검찰 조사가 늦어지면서 같이 거론된 [[윤성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전지훈련에 참가하였다. [[2016년]] [[4월 3일]] 1군에 재합류했다. 경찰은 "도박 혐의로 수사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중요 참고인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들이) 외국에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수사는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수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6월 초에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510793 '원정도박 혐의' 안지만-윤성환, 수사보류 가능성↑.. 복귀?] - 스타뉴스</ref> 이후 7월 중순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에 [[삼성 라이온즈]]는 [[KBO (야구)|KBO]]에 계약 해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상 퇴출됨으로써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01 삼성라이온즈 안지만,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상 은퇴 수순’] -이뉴스투데이</ref>
4월 17일, 안지만 소유의 [[수성구]] [[파동 (대구)|파동]]에 있는 5층짜리 다세대 주택과 [[청도군]]에 있는 토지가 법원 경매에 올라왔다는 기사<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3857893</ref>가 나왔다. 스포츠 뉴스가 아닌 경제 뉴스로 올라왔으며, 이 과정에서 해당 부동산들에 대해 삼성 구단이 21억 원의 가압류를 걸어둔 사실도 밝혀졌다. 가압류를 했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구단에서는 계약금의 일부인 21억 원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가압류를 한 것으로 보인다.
5월 24일, KBO는 안지만에게 유기 실격 1년의 징계를 내렸다. 따라서 1년 동안은 어떻게 팀을 구해서 복귀하더라도 활동이 불가능하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승리 투수|승<br /><br />리]]!![[패전 투수|패<br /><br />전]]!![[승률|승<br /><br />률]]!![[평균 자책점|평<br />자<br />책]]!!출<br /><br />장!![[선발투수|선<br /><br />발]]!![[완투|완<br /><br />투]]!![[완봉|완<br /><br />봉]]!![[세이브 (야구)|세<br />이<br />브]]!![[홀드 (야구)|홀<br /><br />드]]!![[이닝|이<br /><br />닝]]!![[안타|피<br />안<br />타]]!![[홈런|피<br />홈<br />런]]!![[볼넷|볼<br /><br />넷]]!![[고의 사구|고<br /><br />4]]!![[삼진 (야구)|탈<br />삼<br />진]]!![[몸에 맞는 볼|몸<br /><br />맞]]!![[보크|보<br /><br />크]]!![[폭투|폭<br /><br />투]]!![[실점|실<br /><br />점]]!![[자책점|자<br /><br />책]]!![[타자 (야구)|타<br />자<br />수]]!![[WHIP|W<br />H<br />I<br />P]]
- 양시칠리아 왕국 . . . . 8회 일치
하지만 민족주의, 개혁사상을 배척하는 부르봉 왕조의 통치는 불안정하여, 1820년, 1848년에 부르봉 왕조의 통치에 반발하는 혁명이 일어났으며, 결국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 명의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에 상륙한 것을 시작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군에게 승리를 거두자, 이미 불만이 팽배하던 시칠리아 전역에서 호응이 일어나 양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상실한다.
붉은 셔츠 부대는 시칠리아에서 남 이탈리아에 상륙, 나폴리 왕국군과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북쪽에서 사르데냐 왕국군이 남하해오자 결국 나폴리 왕국 마저 항복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은 붕괴하고 만다. 두 지역은 신생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구시대적 체계를 유지한 양시칠리아 왕국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낙후되었는데, 사실 북부의 사르데냐-피에몬타 왕국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남부에 대한 병합을 망설일 정도였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틸 볼 런]]에 등장하는 네아폴리스 왕국(ネアポリス王国)은 명칭이나 통치 지역 면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에 해당하는 듯 하지만, 작중 시기인 1890년 시점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은 이미 멸망하고 이탈리아 통일이 완료된지 오래되었으므로 현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상당히 구시대적이고 불합리하게 보이는 국가 정세나, 결국 혁명으로 왕정이 전복되버린 것은 양시칠리아 왕국과 유사점이 있을지도?
어떻게 보면 천명 밖에 안 되는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 부대에 불꽃같이 맹렬하게 개털리고 망한 나라(…)가 되겠다. 물론 민족주의의 부흥과 낙후된 양시칠리아 왕국의 현실, 그리고 국제정세면에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개입 없이는 최종적 승리는 어려웠다고 봐야 하겠으나 그래도 워낙 화려하게 털려서….
- 원피스/840화 . . . . 8회 일치
* 상디는 제르마의 현실을 알고 구역질이 난다고 하는데 그때 이치디와 니디가 나타난다.
* 저지는 상디를 실패작으로 간주, 죽었다고 공표해서 사회적으로 지워버린다.
* 하지만 지금 제르마 왕국에서 일하고 있는 병사들도 그 사실은 모르고 있다.
* 상디는 이러한 진실을 듣고 "구역질이 난다"고 악평한 후 맥이 풀린 듯이 주저앉는다.
* 그는 상디를 "실패작"이라 부른다.
* 하지만 상디는 "실패". 분명 혈통인자의 조작은 성공했으나 상디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 그리고 상디에게 "넌 형제들과 달리 재능이 없다. 그렇다면 열 배 백 배로 노력해라. 너희는 제르마 부활 계획의 일부다. 실망시키지 마라."라고 강요한다.
* 제르마의 과학기술 때문에 베가펑크와 연관성이 점쳐지고 있었는데 사실로 드러났다.
- 원피스/851화 . . . . 8회 일치
* 미러 월드에선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아직도 탈출방법을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다. 그들은 포박한 [[샐롯 브륄레]]를 간지럼태우며 성으로 연결된 거울의 소재를 캐묻는다. 견디다 못한 브륄레가 결국엔 실토하는데, 사실 그런 거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워낙에 거울이 많으니 일일히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울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하는데. 거울들은 모두 자신이 비추고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 다시 푸딩의 방 앞. 푸딩은 레이쥬에게 다가서며 지금 안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나, 이대로 과다출혈로 죽는 것도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레이쥬의 머리로 손을 가져가는데. 그 손은 마치 생크림 속을 휘젓는 것처럼 거침없이 레이쥬의 머릿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더니 마치 영화필름 같은 것을 끄집어 낸다.
푸딩은 [[메모리메모리 열매]] 능력자. 사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필름 형태로 끄집어 낼 수 있으며 마음대로 편집할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레이쥬를 저격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잘라내고 대신 "유탄"에 맞은 병사의 기억을 덧붙인다. 이것으로 레이쥬는 지금 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을 잃게 된다. 푸딩은 의식을 잃은 레이쥬를 의료실로 옮기게 한다.
* 죄수도서실에선 [[몽키 D. 루피]]가 여전히 팔을 끊어 버리겠다고 몸부림. [[나미(원피스)|나미]]가 아무리 애원해도 그 고집은 꺾을 수 없다. 그때 간수노릇을 하던 [[샬롯 오페라]]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그는 마마의 명령이라며 나미가 [[샬롯 로라]]의 소재를 불지 않으면 고문하겠다고 말한다. 5초에 한 번씩 석궁을 쏘겠다고 하는데. 루피가 웃기지 말라며 5초 안에 팔을 끊고 구해줄 테니 안심하라고 하지만, 사실 나미는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다.
* 그때 누군가가 죄수도서실을 방문한다. 그는 오페라와도 구면. 오페라는 지금 그가 성안에 들어올 수 없는 입장이라며 손사레를 치는데 징베는 여기저기서 난투가 벌어지는 이 시국에 그런 소리 말라며 성큼성큼 들어선다. 그리고 그는 오페라에게 대뜸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데.
* 그의 정체는 [[징베]].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그가 루피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일단 거기서 나오겠냐고 묻는다. 루피는 기쁘게, 나미는 절실하게 나가겠다고 소리친다.
- 원피스/869화 . . . . 8회 일치
* 벳지는 빅 파더 상태에서도 대포를 쏘며 빅맘을 노리나 [[샬롯 페로스페로]]가 만든 사탕 배리어에 막혀 실패.
* 벳지는 내부의 일행에게 작전 실패를 통보하고 빅 파더가 쓰러지면 자신도 죽고 일행도 바깥으로 내몰릴 거라 경고한다.
* 빅맘 [[샬롯 링링]] 암살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탈출 루트조차 차단되어 궁지에 몰린 해적동맹군. [[카포네 갱 벳지]]는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살아있는 거성 "빅 파더"로 변신, 전원을 성 내부로 피신시킨다. 이걸로 당장의 괴멸을 막긴 했지만 이미 빅맘 해적단은 벳지의 배신은 물론 [[시저 크라운]]의 연루까지 알아차렸다.
빅맘은 여전히 패기가 실린 절규를 내뿜고 다과회장은 아수라장. 암금왕 [[루 펠드]]도 간신히 귀를 막은 채 버티고 있었다.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뿌린 떡 귀마개가 그의 앞까지 굴러온다. 그걸로 괴성을 막고 한숨 돌린 루 펠드. 그런데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하나 더 나타난다. 빅맘이 결혼식 후 열어보기로 했던 넵튠왕의 옥갑이었다.
* 시저는 도망치는데 급급해 실수를 저지른다. [[샬롯 브륄레]]를 처박은 가방을 빼앗긴 것이다. 카타쿠리가 팔을 늘려서 간단히 브륄레를 탈환했다. 그리고 완전히 전력을 회복한 샬롯가의 형제들. 빅 파더로 피신하는 일행의 뒤를 압박한다.
* 루 펠드는 난데없는 혼란이 횡재로 이어졌다. 그는 빅맘의 옥갑을 빼돌릴 생각이다. 물론 그냥 가져갈 만큼 바보는 아니다. 그는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옥갑을 열었다. 내용물을 미리 바꿔치기 한다면 의심 당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화를 불렀다. 빅맘의 패기가 실린 절규가 거기까지 닥쳤던 것이다. 마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날아가는 루 펠드, 그리고 옥갑. 루 펠드가 회수할 틈도 없이 옥갑은 성 바깥으로 떨어진다.
벳지가 캔디 월을 우회해서 사격하려 하지만 이번엔 대포가 말썽이다. 발사되지 않고 폭발하는데. 또 카타쿠리의 짓이었다. 각 위치의 부하들이 대포가 떡으로 틀어막혔다고 보고한다. 낭패한 벳지. 나쁜 소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빅 파더의 다리가 사탕으로 묶였다. 페로스페로가 그 사실을 마이크로 떠벌렸다. 사면초가.
* 빅 파더 안, 해적동맹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인물이 없다. 벳지의 부하 비트 조차도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제르마에 정신이 팔려있다. 루피와 쵸파는 빅 파더에 꽂혀서 환호, 시저는 KX런처의 유폭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하다. 벳지가 보기엔 속이 터진다. 벳지는 빅 파더에 환호하는 루피를 쏘아붙인 뒤 작전은 실패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브룩]]은 "과연 사황은 격이 다르다"고 감탄, 한가하게 차나 홀짝인다. [[징베]]가 앞으로 대책을 붙지만 솔직히 그런건 없다. 벳지는 빅 파더는 자기 자신이며 충분히 튼튼하지만 무적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벳지도 죽고 일행은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 뒤는 그저 학살.
- 원피스/870화 . . . . 8회 일치
* [[샬롯 쉬폰]]이 빅맘 [[샬롯 링링]]을 진정시키려 시도하나 [[샬롯 로라]]와 닮은 얼굴로 실패, 더욱 날뛰게 만든다.
* 저지는 상디의 말대로 하겠다며 "이스트 블루"에도 손대지 않겠다 약속한다. 그리고 제르마66이 호위를 할 테니 벳지의 탈출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 본래 목표는 아니지만 뜻밖의 부수입도 있었다. "가족을 구하고 싶다"는 상디의 의지도 이루어진 것이다. 나미가 큰소리로 루피를 꾸짖으며 그렇게 말한다.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들릴 정도로.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빈스모크 레이쥬]]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빈스모크 저지]], 그리고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 조차도 벌레 씹은 표정이다. 상디는 자기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상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영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반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순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상디는 [[원피스/841화|저지가 원했던 대로]] "빈스모크 상디"는 13년 전 바다에서 한 번 죽었다고 말한다. 상디는 그날 도망치려 했지만, 사실 그건 저지에게 버림 받은 거였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허락하지도, 자기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게 했던 그날. 돌이킬 수 없는 부자가 같은 기억을 회상한다. 상디는 빈스모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당긴다.
* 이윽고 저지는 돌아서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이스트 블루"의 발라티에도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 레이쥬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었는지 작게 미소짓는다. 그러는 동안 탈출방법에 대한 논쟁은 답도 없이 치열해졌다. 무조건 성공확률 0%라고 주장하는 시저, 어차피 이대로도 죽는다는 벳지의 의견이 평행선이었다.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저지. 그는 제르마가 호위가 될 테니 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시저는 왜 너희 맘대로 하냐고 반발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벳지는 듣고 보니 제르마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며, 다만 그럴 경우 제르마를 두고 가게 될 텐데 괜찮겠냐고 반문한다.
* 이제 작전에 반대하는건 시저 뿐이다. 하지만 벳지는 그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지긋이 눌러주는 것만으로 시저의 반발을 억눌렀다. 그리고 작전 실행. 빅파더가 사라지고 벳지와 시저, 그리고 빈스모크 일가가 바깥으로 나왔다. 시저의 말이 맞았다. 기다리다 지쳐가던 샬롯가의 형제들이 일제사격으로 반겨준다. 빅맘의 즐거운 웃음 속에 쏟아지는 총알 세례. 시저가 눈물콧물을 쏟으며 움츠러들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빈스모크 형제들이 단 한 발의 총알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 원피스/879화 . . . . 8회 일치
* 카타쿠리는 능력의 특성 상 루피가 되는 걸 자신이 못할 리 없고 실력도 한 수 위라 자신한다. 그 자신대로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며 불리한 싸움을 계속한다.
[[징베]]에게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의지를 가장 잘 이해했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 회에선 루피가 생각없이 미러월드로 뛰어든 것 같았지만 사실 페드로가 보여준 것처럼 일행을 나아가게 하려고 힘든 짐을 떠맡은 거였다.
지난 회에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자폭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실 무사히 견디진 못했다. 오른팔을 잃어버려서 사탕으로 대체 중. 자신은 팔 정도는 사탕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뜨거운 홍차를 마실 때마다 손이 찐득하게 녹아내리는걸 봐야 한다"고 말하는걸 보면 엄청 분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젠 웨딩 케이크고 뭐고 그냥 밀집모자 일당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서 추격하는 거라고 단언. 빅맘의 모자 나폴레옹에 타고 있는데 나폴레옹 상대로 "평생 페드로의 얼굴이 떠오를 거다"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아직도 쇼콜라 타운으로 가는 중. [[샬롯 푸딩]]하고 관계가 완전히 역전돼서 상디는 평범하게 대하는게 푸딩이 전전긍긍한다. 가정 도중 [[샬롯 시폰]]이 원래 [[샬롯 로라]]가 초콜릿 대신이었고 푸딩이 후임이지만, 푸딩이 거부해서 초콜릿 대신 자리는 비어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래서 스릴러 바크에서 로라가 뛰어난 초콜릿 만들기 실력을 보였던걸 납득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겨우 쇼콜라 타운에 도착. 작업을 시작한다.
정상 결전이래 오랜만에 상하관계 드립이 나왔다. 카타쿠리가 모치모치 열매가 루피의 고무고무 열매의 상위호환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루피가 쓰는 기술은 대부분 카타쿠리가 쓸 수 있었다. 심지어 루피의 무장색 패기 기술도 똑같이 구사하는데 카타쿠리는 견문색만이 아니라 무장색 또한 루피 이상으로 구사하는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카타쿠리가 루피를 너무 압도하면서 다시 밸런스 붕괴 논란도 생겼다. 현재의 루피는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와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최소 칠무해급으로 평가되는데 그 루피가 빅맘의 삼장성에게 확연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황이 거느린 간부급이 칠무해 이상의 실력자인 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흰수염 해적단의 [[죠즈]]나 [[마르코(원피스)|마르코]], [[에이스(원피스)|에이스]] 등도 칠무해와 비슷한 등급이긴 했지만 그 이상이라고 평가되지는 않았다. 빅맘 자체의 강함도 흰수염을 능가하는 걸로 묘사되기 때문에 사황과 칠무해, 해군간의 밸런스는 물론 사황 안에서의 밸런스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8회 일치
미군 장교인 마크 배넌 대위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애틀을 험비를 몰며 질주한다. 무전기를 사용하며 험비를 운전하던 배넌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가 험비를 전복시킨다. 배넌은 험비에서 기어나와 해당 지역의 미군을 지휘하던 파커 중위를 찾아간다. 둘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자기 부대를 찾아가려던 주방위군 병사 마이클 톰슨과 안톤 로드리게스를 즉석에서 편입시킨 배넌은 시애틀은 사실상 함락되었다며 파커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한편, 시애틀에서 후퇴한 미군 부대는 서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들을 지휘하는건 배넌 대위였지만 파커는 배넌과 가려는 방향이 같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이 침공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군 방어선에 도착한 소여는 제임스 웹 대위를 두 사람에게 소개한다. 웹 대위는 파커와 배넌이 유럽 전선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둘에게 인사한다. 소여는 다리의 후방 지역으로 파커의 담당구역을 바꾼 후 로드리게스를 자신의 곁에 있도록한다.
소련의 선전 방송은 소련군이 미국 서해안 대부분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시애틀 외부로 빠져나가는데도 미군의 저항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 소련 군인들이 미국 땅을 밟으며 느꼈던 환상적인 감정은 빠르게 사라졌고, 자신들이 적지에 있다는 불안감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파인밸리 전투로 큰 피해를 입은 소련군은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직전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으로 진군하며 짧은 소강 상태는 끝나게 된다.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에 있는 미군 기지 포트텔러를 노리고 있었다. 포트텔러는 소련군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 일명 "스타워즈"를 지휘하는 사령부였다. 하지만 전략방위구상은 단지 허세에 불과했다. 미군은 소련군이 포트텔러를 점령해 전략방위구상의 실체를 보게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윌킨스 대대가 포트텔러에서 방어전을 준비하는 동안, 소여 대대는 소련군을 지연하는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선전 방송은 미국에 상륙한 소련군이 북미의 서쪽 절반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소련군은 워싱턴 주의 민병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네개 대대를 캐스케이드폴스라는 마을로 투입하였다. 그곳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련군 지휘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올로프스키 대령 마저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몰랐지만, 소련군 장병들은 그 무언가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대대들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올로프스키 대대는 시골에서 민병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날 오후 1시, 민병대가 이튼빌 근교를 지나던 말라셴코의 중대를 습격해 14명의 사망자와 9명의 부상자를 낸다. 올로프스키에 이 사실을 보고하던 말라셴코는 민간인 처형을 다시 한번 제안하지만 올로프스키는 사전에 세워 둔 계획대로 민병대를 진압할 것이라면서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이에 말라셴코가 자기 부하들이 저기 널부러져있다면서 화를 내자, 올로프스키는 자기 부하들이기도 하다면서 받아치고는 말라셴코를 쫓아내버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의 제안이 일리는 있지 않냐고 말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는 단지 복수의 대상이 필요한 것 뿐이라면서 이를 부정한다.
몇번의 전투 후에 연합군은 남프랑스 소련군 사령부의 위치를 알아냈다. 소여 대위는 소련군 사령부를 괴멸시키기 위해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진격해 들어갔다. 성공한다면 남프랑스 소련군을 와해시킬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그대로 포위당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대대원들은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배넌 대위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8회 일치
[[2010년]] [[남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영]])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상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아나운서로 KBS에 입사 전, 2010년 춘향선발대회 선에 뽑혔다. 그 후로 [[1대 100]]에 선 자격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사실 무용과 출신으로, 4살 때부터 무용을 하기 시작해서 [[2012년]]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 서빙알바하던 시절 소개팅하던 남녀 손님이 있었는데,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남자가 계산을 하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스춘향의 위엄--
>[[윤태진]] : '''사실 가슴이라는게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사실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쁘냐, 모양이 중요하지.''' [[http://www.podbbang.com/ch/4918?e=21367765|해당 방송 48:00부터.]]
>--따지고 보면 서형욱은 '가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답변 이후 다른 모든 출연자들이 웃으면서도 당황했고, 서형욱은 '저는 글래머라고만 했지, 가슴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라고 말했다. 이에 윤태진은 '글래머가 가슴 아닌가요? 그럼 엉덩이인가?' 라고 말하였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낀 서형욱은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에 화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지만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틈이 조금만 나면 시청자들의 각종 드립이 올라올 정도.[* 다른 여자 게스트인 [[소혜]]도 가끔 배성재에게 드립을 날린다. 윤태진과 자기 중에 고르라는 둥, 고백은 하는 게 맞다고 하는 둥, 짝사랑 중이지 않냐는 둥.][* 윤태진 본인은 2018년 3월에 bnt와의 인터뷰에서 배성재와의 러브라인에 대한 질문에,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게다가 케미와는 별개로 윤태진 본인이 가진 끼가 여기서 막힘없이(...) 발산되는 경우가 매우 자주 나오는 편이라 사실상 베텐의 마스코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 은혼/599화 . . . . 8회 일치
*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노부노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쇼군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
* '''화장실 좀 빌려줘'''
* 사실 원인은 가구라가 마구 뿌려댄 소스 때문. 벌써 3일째 속이 안 좋았다고 한다.
* 적의 본거지에서 화장실이나 빌리고 끝이냐는 츳코미에 당당하게 "의복도 빌렸다"고 답하는 가츠라. '''노부노부는 결국 지려버리고 만 것이다.'''
* 이상의 사실을 전하며 결코 지지않겠다는 의지를 해방군에게 전해달라고 말하는 신파치.
* '''그리고 또 화장실을 빌린다.'''
* 노부노부의 모델은 도쿠가와 요시노부. 실제 역사상으로도 도쿠가와 정권을 끝내고 메이지 정부로 권력을 이양한 인물이다. 대세를 잘 읽은 인물이라는 평과 정권을 말아먹은 인물이라는 평이 혼재된 편.
* 가구라가 노부노부 식판에 뿌린 타바스코와 마요네즈도 진선조 복귀의 복선이라는 설이 있다.--사실 지금 아니면 나올 타이밍이 없어--
- 은혼/601화 . . . . 8회 일치
* 신파치와 가구라는 하루빨리 우츠로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그들의 리더는 은혼 실사화 소식에 정신이 팔려있다.
* 타에는 이미 스스로 답을 찾았을 거라며 아버지는 언제나 "너의 옆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 답한다.
* 점프에 실린 은혼 실사화 소식에 경악 중
* 긴토키는 여전히 정신줄을 못 잡고 실사화 떡밥으로 술렁거린다.
* 이렇게 실사화로 개드립이나 치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어느 새 주민들이 그들을 둘러싼다.
* 실사화로 자학인지 뭔지 모를 디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 진격의 거인 드립이 나오는걸 보니 작가 본인도 실사화의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는 듯?
- 은혼/613화 . . . . 8회 일치
* 씁쓸하고 하드보일드한 과거의 사건. 하타 황태자는 형님의 기억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더럽게 한심한 현실이지만. 가츠라 고타로에게 인실로 잡힌 현실의 하타 황태자.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가츠라는 다음엔 기절로 안 끝난다고 협박하며 이쪽으로 향한 총구를 치우라고 한다. 가츠라는 이런 난세에도 지구의 동물을 지키려고 방주까지 가져온 점에 감탄한다. 하지만 지구엔 그가 감당 못할 맹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라며 그의 목숨을 담보로한 교섭을 시작한다.
>개 사료를 씹어 먹고 개처럼 기어올라 여기까지 왔으니... 자아 가보실까 주인나으리? '''산보 갈 시간이다.'''
사실 자작 제독이 정체를 드러내며 한 대사는 패러디로 천원돌파 그랜라간의 시몬이 한 명대사다. 조금 형태는 달라졌지만.
하세가와 타이조는 사실 등장부터 하타 황태자랑 엮여서 피곤한 상황이었고 결국 하타 황태자의 민폐를 철권제재한 대가로 관직에서 짤려 마다오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로는 딱히 둘이 엮인 적은 없지만 일단 원한관계는 아직도 살아있는 듯. 결과적으론 하세가와가 또 하타 황태자에게 한 방 먹인 셈이 됐다.
가츠라가 주장한 동맹론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사실 현재 지구측에서는 달리 대안도 없다. 또 가츠라의 원본 카츠라 코타로는 일본의 개항과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인물로, 지구가 최초로 외계 행성과 동맹을 맺게 된다면 나름대로 역사재현이 되는 셈이다.
- 은혼/645화 . . . . 8회 일치
* 초연의 황자 [[엔쇼]]는 다 끝장난 것 같았던 해방군의 전세를 회복시킨다. 뿐만 아니라 양이지사들의 두 축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에 역공을 가해 [[무츠(은혼)|무츠]]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라는 두 동료를 희생시킨다. 병력은 대부분 소실, 히노카구츠치 발사 저지,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는 침몰 중, 자신은 양이지사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그의 안에서 타들어가는 불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양이지사들이 치른 희생이야 말로 무의미하다고 평가절하했다.
* 자작은 정말로 죽어간 동지들이, 그의 아내가 이런 결말을 원하는 것 같냐고 일갈하며 창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엔쇼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모선을 휩쓸고 있는 유폭 현상이 통제실까지 들이닥쳤다. 자작이 본 것은 폭발 사이로 모습을 감추는 엔쇼의 등이었다.
* 엔쇼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통제실을 빠져나간다. 이미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준비는 끝났다. 그는 자작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입장은 밝혔다. 그리고 남겨질 양이지사들에겐 선심도 썼다.
그는 추격을 막으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자작에게 라이트 세이버로 광탄을 날렸다. 통제실이 폭발에 휩쌓인다. 그는 부하들을 선행시키며 이미 이 배는 지구를 향하고 있으니 배에서 탈출하라고 지시한다. 그것이 그 나름의 인정인 걸까?
* 개방된 공간이었던 통제실과 달리 좁은 통로에서는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가 더욱 유리했다. 신축자재에 광탄으로 전환까지 가능했기에 다츠마와 가츠라에겐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다츠마가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며 총을 갈겼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으로 변환해서 대응사격한다. 치명상은 주지 못했지만 왼쪽 허벅지에 부상을 입힌다. 가츠라는 엔쇼가 다츠마를 공격하는 동안 도약해 있었다. 엔쇼는 머리로 떨어지는 가츠라의 내려치기를 오른손 라이트 세이버로 막았지만 무기를 놓친다. 엔쇼가 주춤했다. 가츠라에겐 더할나위 없는 기회였다. 엔쇼의 우측에 착지한 가츠라는 재빨리 우상단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무너진 자세로 무방비해진 엔쇼의 목으로 곧바로 칼날이 닿았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엔쇼의 왼손에는 여전히 라이트 세이버가 들려있었다. 엔쇼는 그 라이트 세이버로 가츠라의 칼날을 쏘아맞춘다. 방해가 되는 자기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빛의 경로가 꺽어지게 해서 겨우 가츠라의 칼날을 저지한다. 부러지는 가츠라의 칼. 엔쇼는 그대로 가츠라의 왼쪽 어깨를 찔러 반대편으로 밀어낸다.
* 마타코를 지탱했던 철근은 끝모를 바닥을 향해 떨어졌지만 마타코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떠있는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마타코는 실감이 나지 않는 듯 한참 지나서야 "원조"가 와준 모양이라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정말로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타코는 어떻게 헨페이타가 무사할 수 있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간단한 문제였다.
- 의성군 . . . . 8회 일치
컬링 이전에는 [[씨름]] 스타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 의성이다. 의성초등학교-의성중학교-의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씨름의 계보가 탄탄하며 의성군청에서도 씨름단을 운영하고 있다. 의성에 연고가 있는 유명 씨름인으로는 5대, 8대, 13대 [[씨름/체급|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1980년대 씨름스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과 32대, 38대, 40대 [[씨름/체급|천하장사]] 출신이자 1990년대 씨름스타 [[이태현]] 용인대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출생지는 모두 의성이 아니지만 의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씨름을 배웠다.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상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 [[정창화(정치인)|정창화]]/3선[br][[민주정의당]] ||<|2> 김동권/초선[br][[민주자유당]] || --[[김화남]]/초선--[* 97.12.26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자유민주연합-- ||<|2> 정창화/5선 [br] 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 [br] 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 [br] 무소속 ||<|2> 김재원/재선 [br] 새누리당 || --[[김종태(1949)|김종태]]/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br]--새누리당-- ||
TK 안에서도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생활권이 비슷한 이웃 [[군위군]], [[영덕군]]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성향이 강한 TOP3''' 지역으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86.1%를 득표하여 군위, 영덕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최순실 게이트를 일으키고 결국 탄핵이 된 이후에 치뤄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 후보가 63.3%를 득표하여 군위 다음으로 전국 2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선 한 달전에 있었던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도 의성 출신+강성친박 성향의 김재원 후보 역시 67.13%의 몰표로 가볍게 당선되는 데에 일조했을 정도로,[* 합산 득표율은 47.5%]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외의 다른 정당은 발을 붙이지 못할 수준이었다.
* [[류성룡]] : [[하회마을]]에 종가가 있어서 안동 출신으로 알려진 편인데, 사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의성이다. 점곡면 사촌마을 출생.
- 이관섭 (1961년) . . . . 8회 일치
* 1996년 4월 ~ 2000년 10월 : 총괄조정관실, 교육문화수석실,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서기관)
* 2008년 3월 ~ 2009년 9월 : 대통령실 실장 선임행정관
* 2012년 1월 ~ 2013년 3월 :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 2013년 3월 ~ 2013년 4월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 2013년 4월 ~ 2014년 7월 :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 이열희 (1924년) . . . . 8회 일치
[[1946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대]] [[치과]]대학 조교가 되었으며, [[1947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치과학교실 조교가 되었다. 그해 [[3월]]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육군병원]]의 외과, 치과 의사로 근무하였다. 육군병원에 근무할 당시 구강외과를 설립하고 60년대초 구강외과내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신설하였다.<ref name="imails">[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5733&yy=1999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 대구매일신문 1999년 06월 08일자</ref> [[구강외과]]를 전공한 그는 구강성형 분야의 완전한 의술확립을 위해 다시 경북대의대에 입학, 다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녔다. 경북대 의대 재학 중에는 외과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ref name="imails"/> 그 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상이나 상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군의관으로 재직 중 최영보 중령(국군제1병원 외과부장겸 수련부장), 오상근 대위(국군제1병원 정형외과 과장), 허경발 대위(주한미군의무관실 연락장교) 등의 주선과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 [[한국]]의 치과 군의관 신분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의 [[성형외과]] 수련 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하였다.
[[1956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 전임강사가 되고, 그해 동 대학 조교수가 되었다. [[1956년]] [[4월]]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가 신설되자 동년 [[8월]]에 이열희는 조교수에서 경북대 치의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하였다.<ref>[http://www.denfol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9&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학과교실] 덴포라인 2006.04.05</ref> 그러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치의학과는 [[1957년]] [[3월]] 폐지됐다.
경북대 재직 초기 당시 그는 "치과대 설립을 허가해 주고는 예산을 제때 배정해주지 않아 교실없이 신입생을 모집, 강의실을 구하기 위해 우왕좌왕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ref name="imails"/> [[1957년]]부터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를 상대로 치과 관련 대학의 별도 단설을 주장, 설득한 끝에 [[1979년]] 경북대학교 치과 대학외 7개 대학교의 치과대학을 시범으로 설립하여 성과가 나타나자 각 대학의 치과대학 별도 설치를 허가받았다.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안면외과학 교실 명예교수로 활동했고, 그밖에 대한치과의사회 경북도회장, 대한악안면성형외과 부회장, 대한구강외과학회 부회장,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 무의촌대책위 치과회장,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경북치대 초대 및 제2대 학장을 역임하며 경북치대 설립과 구강악안면외과학교실의 발전에 공헌하였다.<ref name="pisots"/> 치과의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악안면 성형외과의 권위자로 불리고 있다<ref name="imails"/>는 평도 있다.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nowiki>'</nowiki>'이라는 평가도 있다.<ref name="imails"/>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8회 일치
* 사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아서 펜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펜드래곤]]을 찾다가 젤드리스에 당한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 시가 무시당하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니 곧 털어버리는 에스카노르. 그런데 이 경사로운 자리에 한 사람이 빠져있다. 연회가 시작한지 꽤 됐는데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자리만 비어있다. [[멜리오다스]]는 "수상한 실험"이라도 하느라 틀어박혔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에스카노르는 걱정된다며 보고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에스카노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빈 의자로 순간이동해 나타나는 멀린.
>아마 수상한 실험에 몰두해서 늦는거 아닐까 생각했나?
이중 고서만은 분명히 진실을 알고 있겠지만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서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이야기해도 납득해줄지 모르겠다"는 묘한 꼬릿말을 다는데. 어찌됐건 고서의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침울해서 디안느가 질문을 철회하고 사과한다. 답변은 나중에 때가 되면 해줘도 좋다면서.
반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건지 "그것대신 여장벽이 어디서 생겼는지나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의외로 이건 또 간단히 답해준다. 예전에 [[바트라 리오네스]]가 고서를 [[나쟈 리오네스]]의 하녀로 위장취업 시킬 때 여장을 강요한게 계기였다. 근데 당시의 뒷사정은 생략한 채 "바트라가 여장을 강요한게 계기였다"는 사실만 전달해서 엄청난 오해를 야기한다.
* 아버지가 미소년을 여장시키는 성벽이 있었다, 이 불편한 진실이 공개되자 호크는 우선 엘리자베스가 받을 충격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버지의 치부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디안느가 성전시대의 이야기를 꺼낸 시점부터 그녀는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디안느가 지난 번 한 이야기, 성전 시대에 엘리자베스와 꼭 닮은 또다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고보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케인이 말했었다. 과거 멜리오다스에게 "리즈"라는 애인이 있었고 그녀의 본명 또한 "엘리자베스"였다는 이야기였다.
* 에스카노르는 멀린에게 자작시를 들려주려고 기회를 보지만 멀린은 "취한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려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 멜리오다스에 필적하는 주당이라 그걸로 취할리가 없다. 그런 점을 들어 반이 농담조로 트집을 잡는데 멀린은 "술만 들어가면 트집을 잡는다"고 꽤 날 선 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연회가 못마땅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십계를 다 토벌한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 남은 십계는 "경신"의 [[젤드리스]]. 카멜롯을 비롯한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한 얘기다.
* 호크가 평소 성격대로 "그래도 대죄가 다 모였고 이 호크님도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허세를 떠는데 멀린은 위협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생각없이 손을 대면 확실히 당한다"고 경고한다. 호크가 기겁할 정도로 멀린의 반응이 날카롭다. 연회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성전 시대에서 젤드리스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는 디안느도 멀린의 말에 동조한다. 성전 시대에서 만난 젤드리스는 자신을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 행사하는 자"라 표현했다. 직함은 "마신왕의 대리". 멀린의 말대로 무서운 상대다. 디안느까지 이렇게 나오자 다른 멤버들도 겁을 먹는다. 언제나 뺀질거리던 반이 "거의 최강의 마신"이라는 소리냐겨 긴장된 모습이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8회 일치
우리집은 여느 단독주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구조다. 방 세 개짜리에 모든 공간이 거실로 이어진다.
사실 주방 겸 식당은 거실하고 구분도 없이 이어져 있으니까 한 공간이다.
거실은 마당을 향해 탁 트인 미닫이 창문이 있다. 덧문이 달린 2중창이라 닫아 버리면 보온성이 탁월하다.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상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반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영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저 커다란 유리창도 아버지의 연구의 산물이다. 처음엔 벽으로 막아버릴 생각이었지만 아버지는 도난에 대한 두려움 만큼 거실에서 바라다 보는 탁트인 전경 또한 사랑했다. 비록 별볼일 없는 동네지만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밝아 오는 아침해가 마을에 드리우면 잘 만든 드라마 세트처럼 사랑스러워 보였다.
일정한 간격의 스테인레스 철창살은 심미안과 실용의 대토론 끝에 간신히 합의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그야 저게 없는 쪽이 나았겠지만, 경치 때문에 전재산이 다 털리는 것 보단 낫잖아.
셋째는 저놈들이 마당에서 득실거리고 있어도 거기서 들어오는 공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로 입증할 수 있을 거 같다.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8회 일치
성격 : 뭔가 맹해보이지만 나름 착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속은 굉장히 여리고 따뜻한 편이다.
개인 신상 : 과거의 기억의 절반 정도를 잃어버렸으나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보구인 천경원양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집안에서 물려준 드레스인 홍염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원치않게 라이벌과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고군분투와 파란만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본인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다.
생김새는 긴 붉은색 머리카락과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백금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홍염의-흑혁형(紅炎衣-黑赫形) : 츠키노 가문의 가보이며 전설급 보구 중 하나, 츠키노 가문의 여성들이 대대로 물려 입는 장착형 보구로써, 사용자가 성장해 나갈수록 사이즈가 사용자에 맞게 점점 커지게 되며 사용자의 기력 증가에 따라 감춰져있는 능력이 하나씩 개방되지만 그 능력을 전부 다 개방한 장착자가 없을 정도로 장착자들의 수명 소모 속도가 유달리 빠르다. 게다가 어째선지 아스카가 입었을때 유달리 색이 완전히 붉었던 색이 흑혁색(黑赫色 : 검고 붉은 색)이 되어버려, 많은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천경원양포-홍금(天傾元禳布-紅金) : 츠키노 아스카가 잃어버렸던 과거의 일부 기억을 찾아 제 1각성 형태로 돌입하면서, 천경원양포의 속성이 바뀌어 홍적(紅赤)의 형태로 변화된 버전이다. 기존의 보호 능력 말고도 새롭게 적이 다가올때 불꽃 조각을 내보내 적을 태워버리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형태는 천경원양포에서 색이 붉은색으로 바뀌고, 테두리에 금색 줄이 생긴 형태.
- 토리코/375화 . . . . 8회 일치
* "빨리 GOD와 센터를 먹어야 본 실력을 낼 수 있다"고 말하는데
* 블루 니트로 아톰과 싸우고 있는 청귀는 상대를 확실히 앞서는 듯 하다.
* 적귀는 GOD와 센터를 먹어야 본 실력이 나온다고 하는데, 실제로 적귀는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먹을 때마다 강해져왔다.
* 청귀는 블루 니트로와 마찬가지로 블루 유니버스에서 왔을 거란 설이 대세였는데 사실로 확인됐다.
* 청귀는 지금까지 적귀와는 달리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탐내거나 먹고 강해지는 묘사가 없었는데, 어쩌면 청귀는 이미 블루 유니버스에서 그 우주의 풀코스를 먹고 강해진 상태일지 모른다. 실제로 블루 니트로를 상대로 훨씬 선전하고 있다.
* 두 악마가 빠져나간 뒤 토리코의 머리가 스타준처럼 검은 색으로 바뀐다. 사실 이전에 토리코는 "원래 푸른 색이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바뀐 거"라고 밝힌 적이 있다.
* 기존엔 네오가 팔왕을 능가하거나 엇비슷할거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실제론 팔왕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 토리코/393화 . . . . 8회 일치
* 괴멸해가는 네오 안에서 아카시아의 얼굴이 나타나 자신은 어리석은 자라 말하며 토리코에게 진실을 고백한다.
* 하지만 그가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한 것에 블루 니트로 페어는 수긍하지 못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시절. 아카시아와 동행하던 페어는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동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카시아 안에 있는 네오의 존재와 블루 니트로가 세운 봉인 계획을 설명하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카시아가 자세히 묻자 페어는 실언이었다며 그런거 보다 봉인 계획에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표정이다.
* 페어에겐 무시 당했지만 아카시아의 의문은 씻겨지지 않는다. 그는 달을 바라보며 네오가 왜 자신에게 깃들었는지 자문해 본다. 네오는 이미 수십억년을 먹고 먹기를 반복했다.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그저 먹고만 있는 것이다. 생각을 거듭하던 아카시아는 마침내 "네오는 사실 이미 배가 부른게 아닌가?"라는 발상에 도달한다.
* 플로제의 동의가 있은 후에도 아카시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스스로에게 "정말로 네오가 만복인 것인지"를 끝없이 묻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머나먼 땅"으로 가는거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실행하려는 계획이 정말 옳은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 실패한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며 자신의 식욕에게서 답을 구하려 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 그 길고 길었던 고뇌의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시아는 식욕과 맞서고 자신의 사명, "네오에 갇힌 식혼들을 구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 페어는 그런 아카시아가 어떻게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냐고 소리친다. 아카시아는 과거 7대륙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 그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며 이렇게 끝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한다. 페어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아카시아는 의식이 희미해지는걸 느낀다.
* 그 순간 의식이 사라지던 것이 멈춘다. 그것은 미도라의 노킹이었다. 아카시아는 마지막 공방에서 미도라가 노킹을 걸었음을 짐작한다. 그가 언제 자신의 진의를 알아챘냐고 묻자 미도라는 죠아를 쓰러뜨렸을 때라고 답한다. 아카시아는 죠아의 최후의 순간에 노킹을 건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건 "결정타"였던 것이다. 아무리 분노를 끌어내려고 했다지만 플로제의 몸을 마지막으로 부수는게 미도라가 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페어의 선역화와 함께 어느 정도 가능성이 생겼던 아카시아의 선역화가 기어이 완성. 사실 아카시아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위악하고 있을 거라는 설은 꾸준히 있었지만 지로를 죽이던 시점에서 완전히 폐기되다시피했다. 아카시아의 계획은 네오 안에 갇힌 식혼들을 구하고 블루 니트로들이 잃어버린 동포와 식재들을 복구한다는 것. 우주적인 입장에서 보면 네오에게서 동맥경화 일으키듯 막혀버린 맛의 순환이 재개되는 것이니 블루 니트로들이 세운 봉인 계획에 비해 훨씬 이로운 것이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8회 일치
* 스팅은 "백영룡의 아시기누"(명주실)로 라케이드를 패배시킨다.
* 현실에선 폴류시카가 돌보고 있으나 나츠의 상태는 계속 나빠진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루시와 [[그레이 풀버스터]].
* '''백영룡의 아시기누'''(명주실)
* 로그는 발걸음을 멈춘 김에 나츠의 머플러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그 머플러는 이그닐의 비늘로 만들어진 건데 어째서 하얀 색인가? 나츠는 지금까지 실컷 이그닐의 비늘로 만든 거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정작 색이 다르다는 건 지금에야 깨달았다. 로그는 용의 비늘이란 몸에서 떨어지면 색이 바래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과연 이 머플러를 "누가" 짰느냔 것. 나츠는 막연히 이그닐이 만들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용인 그가 인간 사이즈의 머플러를 짤 수 있을리 없다.
* 나츠가 정신세계에서 헤매는 동안 현실의 나츠는 점점 체온이 떨어지면서 죽어가고 있다. 폴류시카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겠다며 루시에게 옷을 벗으라고 말한다. 요컨대 몸과 몸을 맡대서라도 체온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
나츠의 정신세계에 나오는 제레프는 실제 본인이 맞는 걸로 보이는데 제레프가 생각에 잠긴 모습 다음 나츠의 정신세계로 배경이 바뀌고 제레프도 나타난다. 제레프는 그 자신이 나츠의 정신세계에 개입하고 있는 것 같다.
"안나"라는 여성이 등장했는데 생김새가 루시와 닮아있는걸 보면 그녀의 조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루시의 어머니도 용들이 사라진 떡밥과 관련인물이므로 여러모로 루시가 얽힐 떡밥이 많다.
- 페이데이 2/적 . . . . 8회 일치
GenSec Security. 일부 하이스트에서 스크립트 상으로만 등장하는 적들. 붉은 옷과 베레모를 착용하고 있다. 별로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 실드 ===
실드 주변을 빙빙 돌다가 등이 보이면 쏴버린다.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실드 주변에 경찰이 있으면 어려워진다.
Enforcer의 Shock and Awe 에이스, Technician의 Heavy Impcat 스킬은 일정 확률로 적이 휘청거리게 한다. 이 스킬을 찍은 후 휘청거리는 실드의 몸뚱아리에 총알을 박아주면 5K.
Sniper. 말 그대로 저격수. 맵 가장자리에 나타나 붉은색 레이저 포인트를 비추며 표적을 수색한다.
시야 안에 플레이어가 들어오면 자비없이 쏴갈긴다. 터렛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붉은색 레이저 포인터로 표시된다. 레이저 포인터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터렛이 장전중임을 나타낸다.
멀티플레이 하이스트에서 일정 확률로 등장하는 무리. 네빌 윈터스 대장과 정예 실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 하이큐/224화 . . . . 8회 일치
* 스파이크를 실패한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폭언을 하는 카게야마.
* 타나카는 사실 자기한테 하는 말은 대체로 그냥 넘기지만 팀원에게 예의없이 하는건 엄하게 군다.
* 과연 다른 선수들이 실력이 출중한 카게야마에게 어떻게 불만을 표할지 걱정스럽다는 것.
*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가 즉석에서 분석해서 "확실히 오늘은 적다"고 직격탄을 날려서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든다.
* 스코어는 4대5. 다테 측은 그저 실수한 거라고 치부해 버린다.
* 공격은 실패했지만 카게야마는 "뛰었구만"이라며 츠키시마에게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 히나타는 큰 공헌을 한 셈인데 자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도 확 와닿는 별명이 있음 좋겠다"같은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다.
* 권두 컬러는 사토리가 나와서 "애니 3기 1화는 와카토시는 실은 30대 후반, 와시죠 감독과 우카이 감독의 게이트볼 승부, 히나타 공중부양 습득의 3부작"이란 개드립을 치고 들어간다.--귀중한 컬러로 뭐하는 짓이야--
- 하이큐/264화 . . . . 8회 일치
[[하이큐]] 264화. '''실연'''
* 한편 [[아마나이 카노카]]는 새삼스럽게 그의 기질을 실감하고 역시 자신은 실연 당한게 맞는거 같다고 담담히 인정한다.
언제나처럼 체육관으로 달려오던 키요코. 교복에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화는 두 손에 들고 있었다. 항상 제일 먼저 체육관에 도착하는게 그녀의 일과였고 그날도 그런 줄로만 알고 멋지게 체육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타나카와 처음 마주친 순간이었다. 약간 민망해하는 키요코에게, 타나카는 인상적인 첫마디를 던졌다.
>뭐야? 쟤 사실 재밌는 얜가?
처음 배구를 권한 그날 부터 타나카는 쭉 그런 사람이었다. 되건 안 되건. 배구 자체도 그랬지만 한참 전부터, 봄고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줄창 실패해온 플레이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계속 했다. 그리고 오늘도 했다.
* 타나카는 눈 앞으로 뻗어오는 손들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항상 실패했지만, 어쩐지 겁이 나지 않았다.
>나, 역시 실연 당했나봐.
- 하이큐/266화 . . . . 8회 일치
* 하지만 팀으로써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서로의 장단점이 눈에 들어왔고 피차 큰 실적을 내게 되자 더는 티격태격할 필요도 없어졌다.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그런 노력이 실적으로 나오느냐 하면, 또다른 문제였다. 코즈메가 일찌감치 에이스 세터로 낙점된 데 비하면 야마모토는 낙제점이었다. 1학년들이 첫 실전에 나선 네코마 대 마루구치 연습시합. 코즈메는 안정적이고 치기 쉬운 세트를 올린다고 호평을 받으며 팀 승리에 조력했다. 반면 야마모토는 네트아웃을 남발한 데다 플레이 중 우측의 쿠로오와 부딪히기까지 하는 등 최악이었다. 쿠로오는 "첫 시합이란 그런 것"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야마모토의 조바심까지 지워주진 못했다.
* 그날 저녁. 체육관 정리 중. 코즈메는 쿠로오, 야마모토와 비품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쿠로오가 교사의 호출로 불려가면서 둘만 남게 된다. 코즈메가 문득 쿠로오의 조언을 떠올렸다. "조금은 협력할 생각도 해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언에 따라보기로 했다. 용구실을 나서던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말을 걸었다. 어깨에서 힘을 조금 빼면 좋지 않겠냐고. 그게 상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일 거라곤 생각지 못한 채.
* 상대를 달리보기 시작한건 야마모토 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투자한 근성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예선이 시작될 쯤에는 스파이커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세터인 코즈메와 함께 "네코마의 1학년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코즈메는 단순한 세터가 아니라 팀의 사령탑, 네코마의 뇌로써 소질을 보였다. 둘의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해소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차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둘의 두 번째 실갱이도 후쿠나가의 물세례로 종결됐다.
*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봄고 2일차. 코즈메는 결국 야마모토를 "토라"라고 불렀다. 사루카와의 스파이크가 쿠로오를 맞고 좌측으로 빠졌다. 코즈메의 신호에 맞춰 야마모토가 커버했다. 공은 다시 코즈메에게. 코즈메는 다시 야마모토에게 세트업. 그러나 사루카와의 블록이 빨랐다. 사루카와의 득점. 하지만 네코마 벤치에서 지적한 건 코즈메 쪽이었다. 방금 또 "귀찮음"이 발동한 걸 들킨 것이다. 오버로 올릴 수 있는 공을 언더로 올렸기 때문이다. 올리는 입장에선 오버 쪽이 조금 더 공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버로 높은 지점에서 올리는 쪽이 언더에 비해 안정적이고 정확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 하이큐/272화 . . . . 8회 일치
* [[사나타 사에코]]는 응원도 멈추고 [[이나리자키 고교]]의 4번, 오지로를 "시라토리자와 고교"의 "우시카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다 마코토]]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비슷하긴 해도 우시와카랑 다르게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서브로 공략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오지로를 상대로 제법 서브 에이스를 따기도 했다. 이는 오지로로서도 꽤 스트레스였을 테고, 저렇게 훨훨 나는 것 같아도 계속 어려운 공이 올라온 데다 블로킹도 성가시게 따라붙으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으리라 추측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 긴지마의 2회차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의 리시브로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업. 타나카는 좌측에서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 [[스나 린타로]]의 블로킹을 따돌리며 우측으로 꽂아넣는다. 네트에 바짝 붙은 스파이크. 한동안의 침채를 씻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1세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평. [[츠키시마 케이]]의 서브 순서에서 선수교체. 츠키시마가 빠지고 [[스가와라 코시]]가 투입된다.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 유]]가 빠지고 히나타가 진입. 스가와라는 실컷 두들겨 맞은 니시노야에게 "원수를 갚아준다"고 농담했지만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스가와라가 빠르게 투입된 이상 [[키노시타 히사시]]가 나갈 차롄 없겠다며 내심 아쉬워했으나 정작 키노시타는 머릿속으로 25 번째 서브 에이스를 따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투입 여부와 상관없이 준비는 완료.
당연히 이나리자키의 싸늘한 시선이 꽂혀온다. 하지만 이것도 전날 우카이 코치가 지시한 내용이다. 오지로에게 계속 압박을 주라는 것. 블로킹이나 서브를 활용해야 한다. 서브 에이스를 내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건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 스가와라는 최대한 실행해볼 생각이다.
* [[오오미 타로]]는 오지로에게 "천천히 가자"고 지시한다. 이나리자키의 서브. [[스나 린타로]]와 교대해 1학년 서버 리세키가 투입된다. 이나리자키에선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중학교 시절엔 만년 벤치 신세에 딱 한 번 핀치 서버로 기용됐다가 서브 미스로 경기를 말아먹은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에선 강호 이나리자키에 들어온 건 좋으나 여전히 기회는 적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도 있다. 미스하면 본전도 없다, 이런 부담을 안고 "일단 들어가는 서브"라는 안전빵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됐다. 우선 자군 벤치에서부터가 시들한 반응. 무난하게 아사히에게 떨어지는 것을 안전하게 리시브, 히나타의 스파이크로 이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게 리세키가 있는 위치로 떨어지면서 리시브까지 실패하고 만다. 간만에 손맛을 본 히나타가 기뻐날뛰려는데, 이나리자키 관중석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뻘쭘해진다.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자군 서버의 실수를 "볼보이는 안 불렀다"고 극언해가며 까대는 소리였다. 대부분 관중들은 딱히 실수한 것도 없는 자기편 선수를 디스하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단숨에 알아챘다. 이른바 "이나리자키 도깨비 응원단". 소심한 플레이를 인정사정없이 욕하는 묘한 기질이 있다. 사실 프로도 아닌 고교 선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외플레이. 적이라도 같은 서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마저 기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한 야유였다. 그리고 이 야유는 의외의 인물도 자극하는데, 바로 카게야마였다.
중간부터 설명서처럼 돼버린 설명 끝. 좌우간 빠릿빠릿해진다는 말은 틀림없었다. 실제로 카게야마는 "분위기가 짜릿짜릿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 국가원수 . . . . 7회 일치
의원내각제 국가의 의례적인 국가원수는, 총리나 내각 각료에 대한 임명권[* 사실상 의회의 선출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형식적.], 외국 사절에 대한 신임장 및 소환장을 발행, 접수 등의 의례를 실시한다.
[[소련]]의 경우, '최고 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주석'이 국가원수로서 지위를 가졌다. 하지만 이는 의전상의 지위에 불과하며, 실권은 거의 없었다. 실권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쥐고 있었으며, 1977 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겸임하게 된 이후로는 서기장이 겸임하는 지위로 전락했다. 1990년에 고르바초프가 대통령 직위를 만들고 대통령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소련은 멸망했다.'''
북한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데, [[김일성]]이 '영원한 주석'으로서 헌법상 영구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었으므로, 일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방위원장 지위의 김정일, 국무위원장 지위의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리비아 : 무하마르 알 카다피는 형식상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혁명지도자'라는 비공식적인 직함으로 사실상 국가원수로 활동했다.
- 김만수(정치인) . . . . 7회 일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문수 대 만수'''라는 드립을 쳤다.(...) 원래 시의원일 때도 지역구가 오정구에 속한 원종2동이었지만, 오정구는 자신이 모신 [[원혜영]]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어서 결국 김문수가 지키고 있는 소사 지역구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김문수가 아직 개념잡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성실히 하고 지역구 관리 아주 제대로 하던 때였으니 탄핵풍을 등에 업었음에도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다.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방향을 바꿔,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홍건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본래는 3차례 연속 낙선을 하고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고 당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론의 반전과, 현직 시장이었던 홍건표의 연이은 실정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인해 22%, 7만표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당선되었고, 드디어 선거 첫 승리를 맛봤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상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영,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반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김승대 . . . . 7회 일치
같은 포지션인 황진성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어서 주전자리를 꿰차나 했지만,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이 팀에 복귀하면서 주전경쟁은 계속 될 듯 했다. 그런데 자신의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이명주에게 넘겨주고 원톱으로 올라갔다. 전 시즌에는 가짜 9번(False 9)으로 뛰면서 제로톱의 역할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아예 포처로 뛰고 있는 것. 그래서 다들 실험적인 전술이라며 반신반의 하던 상황이었다.
폼이 어찌나 좋았는지 [[원투펀치]]에서 [[한준희]], [[장지현]] 두 해설위원이 입을 모아 [[홍명보호]] 발탁을 추천했을 정도였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502133605970&gid=110282|#]] --하지만 현실은 이명주조차도 안 뽑은 홍명보가 김승대를 뽑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6월 19일 오전 이명주가 서울을 택했다는 공식발표가 나온데 이어 같은 날 오후 연변 FC가 새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실패해 김승대의 임대가 불발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역시 같은 날 포항 유스이자 U-20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였던 이진현의 오스트리아 리그 진출이 임박했다는 기사까지 나와 '''포항 팬들은 19일 하루 동안 뒤통수를 3번 맞았다.''' 기대했던 이명주, 김승대 영입이 모두 물거품되면서 이대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짐을 싸는가 '''했으나...'''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 당초 발탁이 유력시됐던 [[손흥민]]과 이명주 차출이 불발로 끝나면서, [[김신욱]]과 함께 공격진을 이끄는 중책을 짊어지게 되었다.~~하지만 현실은 김승규, 이재성과 함께 하드캐리...~~
이처럼 김승대가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이광종호는 김신욱의 고공 플레이와 김승대의 라인 깨기라는 두 가지 옵션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활동량이 많고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만큼 포항이 제로톱을 가동할 때 가짜 9번 위치에는 무조건 김승대가 뛴다. 2014 시즌에 포처 원톱으로도 효율성이 높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경기 중에도 변칙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안 그래도 공격수 부족에 시달리던 포항으로서는 매력적인 카드가 되었다.
- 김시진 . . . . 7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12년]]에는 시즌 초반 상위권에 있었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경질되었다.
부임 첫 해에 감독 커리어 최고 순위인 5위와 동시에 최고승률 .532를 달성했으나 가을 야구에는 실패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승률 포스트시즌 탈락이다.[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180100150040009307]
2014 시즌 들어 수비진의 안정화로 리그 최소 실책 부문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나 [[강민호]]와 [[전준우]]를 필두로 하는 타선의 부침과 [[송승준]]의 부진이 겹쳐 6월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했다. 한편, 9구단 체제로 인한 휴식일에 팀 내부 사정으로 인해 [[권두조]]가 수석코치에서 중도 사임하였다. 이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사퇴하였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승리 투수|승<br /><br />리]]!![[패전 투수|패<br /><br />전]]!![[승률|승<br /><br />률]]!![[평균 자책점|평<br />자<br />책]]!!출<br /><br />장!![[선발투수|선<br /><br />발]]!![[완투|완<br /><br />투]]!![[완봉|완<br /><br />봉]]!![[세이브 (야구)|세<br />이<br />브]]!![[홀드 (야구)|홀<br /><br />드]]!![[이닝|이<br /><br />닝]]!![[안타|피<br />안<br />타]]!![[홈런|피<br />홈<br />런]]!![[볼넷|볼<br /><br />넷]]!![[고의 사구|고<br /><br />4]]!![[삼진 (야구)|탈<br />삼<br />진]]!![[몸에 맞는 볼|몸<br /><br />맞]]!![[보크|보<br /><br />크]]!![[폭투|폭<br /><br />투]]!![[실점|실<br /><br />점]]!![[자책점|자<br /><br />책]]!![[타자 (야구)|타<br />자<br />수]]!![[WHIP|W<br />H<br />I<br />P]]
!연<br/>도 !!팀 !!순<br/>위 !!경<br/>기 !!승 !!무 !!패 !!승<br/>률 !!타<br/>율 !!안<br/>타 !!홈<br/>런 !!도<br/>루 !!득<br/>점 !!실<br/>점 !!평<br/>균<br/>자<br/>책 !!비<br/>고
- 김용국 (야구인) . . . . 7회 일치
그러나, [[류중일]]이 다음 해인 [[1988년 한국프로야구]] 때 팔꿈치 수술로 출장 입지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류중일]]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1988년 한국프로야구]]부터 [[1993년 한국프로야구]]까지 줄곧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또한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다.<ref name="imaeil" />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그로 이어지는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는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 [[3루수]] [[한대화]]에게 밀려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3루수)|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는 은퇴하면서 [[현대그룹]]의 [[대한민국의 실업 야구|실업 야구단]] [[현대 피닉스]]에서 [[1996년]]부터 바로 수비 코치를 맡았다. 1년 뒤엔 프로 구단 [[현대 유니콘스]]로 발령나기를 기다렸으나 도리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고, 실망감을 안은 채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ref name="imaeil" />
[[대한민국]]에서 연봉 5천만원에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551908 <프로야구소식> LG, 김대진, 김용국코치 영입]</ref> 그는 추후 자리를 옮겨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부터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9 시즌]]까지 친정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20171 삼성, 김용국·강성우 코치 영입]</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65 [사진]김용국 코치,'아픈 데는 괜찮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76 [사진]김용국,'글러브 가볍고 괜찮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9년]] 친정 팀의 코치 재계약에 실패한 후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엔 [[넥센 히어로즈]]에 자리를 옮겨 2군 수비·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다가<ref>''OSEN'' - 2009년 11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11190106 "히어로즈, 김용국 전 삼성 코치 영입"]</ref>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다.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김우중 . . . . 7회 일치
=== 대우실업 설립 ===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 구제금융]]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지만 [[일본]] 노무라 증권이 [[1998년]] [[10월 25일]]에 발표한 '[[대우인터내셔널|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 1장으로 사실상 [[대우그룹]]이 위기를 맞게 된다. 후에 계열사를 41개에서 4개업종 10개 회사로 구조조정 단행과 [[삼성그룹]]과의 빅딜도 추진하나 둘다 실패했다. [[1999년]] [[8월 26일]] 이미 구조조정으로 회사 41개중 16개가 매각되었고 남은 25개 회사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당시 [[대우그룹]]은 금융부문을 중점으로두고 사업확장을 하여 내부적으로 부채가 많았다. 사실상의 그룹 해체였다. [[1999년]] [[11월 1일]] 김우중은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들과 함께 경영포기 및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주장과, 반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으로 탄압했다는 설과 단순한 [[구조조정]] 실패라는 의혹이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7회 일치
* 어쨌든 실력은 확실하다며 꼭 마크해두라는 이레이저 헤드.
* 과거엔 사무소가 가까워서 자주 만나다가 인연이 생긴 듯한데, 그녀가 설명하면서 "기정사실"인 관계처럼 말하려고 할 때마다 아이자와가 커트한다.--죽이 척척 맞네--
* 그는 다짜고짜 "여기있는 1540명 전원 승자진출 방식의 연습을 실시"한다고 선언한다.
* 그러나 스테인이 주창한 히어로 관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가혹. 어찌됐든 히어로 사회의 성립 이후 사건 처리가 놀랄 정도로 신속해진게 사실이다.
* 사실상 학교 단위 대항전 성격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개성은 물론 약점, 스타일까지 알려진 톱학교"가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7회 일치
* 에리는 오버홀이 준비하고 있는 "계획"의 "핵"으로 수상한 실험실 같은 곳에 갇힌다.
* [[토오가타 밀리오]]는 패트롤에 들어가기 앞서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원래 패트롤은 직장체험에서도 실습하는데 미도리야는 [[빌런연합]]의 개입으로 그럴 기회가 없었다. 밀리오는 [[서 나이트아이]]가 오버홀에 대해서 경고하긴 했지만 실제 용의자를 추적하는건 나이트아이의 몫이고 그들은 통상 패트롤 활동만 하는 거라며 긴장을 풀어준다.
* 아지트로 돌아온 오버홀은 "최근 젊은이"들은 한층 더 병들었다고 투덜거리며 쿠로노라는 부하에게 목욕 준비를 부탁한다. 본래 에리의 감시를 맡았던 부하가 따라와서 실책에 대해 사죄하는데 오버홀은 듣지도 않고 부하를 처분해 버린다. 그가 손을 휘두른 것만으로 부하는 커다란 핏자국으로 변한다. 이것의 청소도 쿠로노의 몫이다.
* 에리는 기분 나쁜 "시설"로 돌려보내진다. 음산한 치과의자처럼 생긴 의자가 있는 실험실이다. 쿠로노는 에리에게 감겨진 붕대를 풀어준다. 오버홀이 에리에게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7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한 수사에서 "에리쨩 구출작전"으로 변경된 [[서 나이트아이]]의 수사. [[미도리야 이즈쿠]]를 비롯한 웅영고 1학년 A반의 인턴 히어로들 또한 참가가 결정, 구체적인 작전이 실행되기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대외적으론 극비. 작전에 참가하는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는 겉으로는 평범하게 수업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태도가 달랐다. 이는 학업 성적에도 영향을 줘서 다른 학생들이 "인턴조는 뭔가 다르다"고 감탄할 정도였고 질투가 심한 [[바쿠고 카츠키]]는 "인턴에서 뭘 알아낸거 아니냐"고 그 비결을 알려달라 닥달하지만, 이미 "극비"처리된지라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다.
* [[아이자와 쇼타]]가 교사이자 선배 히어로로서 미도리야의 각오를 확인한 그날, 다른 학생들도 거기서 참가가 결정되었다. 아이자와는 그들의 참가를 일단 허가하지만 "어차피 너희에겐 별로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물론 빅3, [[토오가타 밀리오]]와 [[하도 네지레]], [[아마지키 타마키]]는 다를 것이다. 이들은 이미 프로와 동등 이상의 평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1학년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러면서 미도리야는 어쨌든 나머지 셋은 자기들 의지로 여기 있는게 아니냐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타마키는 "회의에 참가한 이상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이들의 발언에 힘을 보탠다. 쓸데없이 "나같은 거 보다 1학년이 더 눈부시다"는 네거티브를 하다 네지레에게 츳코미 당하지만.
* 지난 회의에서 불평만 늘어놓다 끝난 레게풍 히어로는 일단 임무는 충실히 이행했다. 미도리야가 학교에 있는 동안 어느 도심지. 그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연루된 시설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거점이 될만한 포인트"를 염두하며 원탑 형태의 어떤 건물을 조사했다.
밀리오는 불가사의한 움직임으로 투지를 불사른다. 미도리야는 그 움직임엔 난색을 표하지만 선배의 분위기가 돌아온 것을 확신한다. 나이트아이도 같은 걸 느꼈다. 그는 속마음으로 밀리오가 꺽이지 않기를 기원한다. 밀리오는 실수라고 자책하고 있었지만, 나이트아이 입장에선 그가 제지한 덕에 지금과 같은 만전의 체제를 갖추는게 가능했다. 이처럼 후회나 실패는 그 자체로 중요하기 보단, 이후에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7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의 네거티브한 성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타마키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는데 첫날부터 자기소개에 실패한다. 이름을 말하긴 커녕 우물거리다 "히..."라고 중얼거리고 끝났다. 모처럼 시업식에 맞춰 간 전학이었지만, "스타트부터 실패했다"는 자기혐오 때문에 다른 애들이 친구를 만들어 갈때 끼어들지 못했다. 그렇게 또 우울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려 할때, 구원이 내려왔다. 타마키는 거기서 [[토오가타 밀리오]]와 만났다. 풀죽은 타마키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구. 그는 "히"라는 말이 혹시 "히어로"를 말하는 거였냐며 어떤 히어로를 좋아하느냐 묻는다.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상태로도 웅영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세츠노는 본래 자신들이 인생을 버린 종자들이라 말한다. 오히려 히어로에게 구해졌을 땐 살아남은 것에 절망했던 패배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재활용"해준 것이 오버홀, 시에핫사이카이의 차기 두목 치사키다. 호죠가 그런 사실을 밝히며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 귀갓길. 타마키는 밀리오의 그런 강인함을 부러워한다. 반면 자신은 실패할 걸 생각하면 머리 속이 새하애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며 "나는 틀렸다"고 자학한다.
>넌 사실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걸.
>네가 사실은, 엄청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걸.
- 남명학파 . . . . 7회 일치
기본적으로 이들은 '실천으로 옮기지도 않으면서 이론으로만 떠드는 행위'를 굉장히 혐오했고, 이에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을 책으로 써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보다는 제자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것에 좀더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전술했듯이 이론만 왈가왈부하면서 정작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혐오했으며, 이때문에 조선 성리학 이론을 집대성하려한 퇴계 이황과 그의 학파와는 앙숙이었다.[* 조식은 이기론에 관한 논쟁을 '입만 나불댈줄 아는 유생놈들이 실천에는 신경쓰지 않고 이론가지고만 키배하는 짓'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이황은 조식을 두고 '오만해 중용이란것을 모르고, 노장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고, 이에 조식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천리를 논한다.'라고 그를 간점적으로 비꼬았을 정도였다.
'''...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이 조식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이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상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 랑그릿사 . . . . 7회 일치
첫 시리즈가 나왔던 시기에는 당시 [[메가드라이브]]를 이끌어가는 [[킬러 타이틀]]이었으며, 이 인기는 2에서 절정을 맞게 된다. 이 시점부터 사실상 랑그릿사라는 타이틀이 메사이어를 먹여 살리는 중심 소프트가 되었으며 각종 기기로 컨버전되어 발매하게 되는 등 최고의 절정을 맞게 된다.
또한 정규 넘버링은 우루시하라 사토시의 꼴릿한(...) 그림체 덕에 인기가 더욱 가속화되는 한 요소가 된다. 오죽하면 우루시하라 사토시가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밀레니엄의 실패 사유 중 하나로 꼽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3에서 기존의 2와는 상당한 괴리감을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최초 개발 기기였던 세가새턴의 몰락과 함께 랑그릿사라는 브랜드는 크나큰 위기를 겪게 되고, 4와 5의 흥행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사실상 시리즈의 종언을 고하게 된다.
랑그릿사의 실패는 사실상 메사이어의 운명과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리즈의 종언과 함께 메사이어도 천천히 사라지면서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회사가 되었다.
사실, 랑그릿사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닌텐도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에 대항하는 메가드라이브 시장에서의 '대항마'라는 위치가 강하다.
- 마기/319화 . . . . 7회 일치
* 신드바드는 황제국의 막대한 빚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묻지만 홍옥은 그것도 대책이 있고 확실히 갚을 거라고 장담한다.
* 홍옥은 알라딘 일행이 몇 번이나 아르바의 실체를 고발하고 설득했고 그도 함께 노력하자고 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고 말한다.
* 하지만 곧 신드바드는 실토하고 만다.
* 그에겐 더이상 운명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파도에 실려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
* 지금까지는 그가 생각한대로 실현시켰고 많은 이들이 동참해주었다.
* 자신이 선택받은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드바드가 사실 자신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함을 자각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세계관이 붕괴하는걸 감당하지 못한다.
* 항상 다윗의 목소리 따윈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의존하고 있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 마기/342화 . . . . 7회 일치
* 신드바드는 자신이 성궁에 오기 직전에, 사실 자신이 없어도 전란이 와도 다들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말한다.
* 그러나 그는 "혁신가"였던 동료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이룩한 것에 집착하고 지키려하는 모습에 큰 실망을 느끼고 루프를 뒤바꿀 결심을 했다.
* 마침내 입을 연 신드바드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그는 성궁에 오기 직전 알라딘과 같은 걸 느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전란이 계속되더라도 다들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 [[아르바(마기)|아르바]]가 성궁으로 가는 문을 열기 직전 그걸 깨달았다. 알라딘은 그렇다면 왜 세상을 바꾸려 하냐고 묻는다.
알라딘이 했던 말, "아무 데도 못가고 아무 것도 변치 않는 것만큼 괴로운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드바드는 누구보다도 그걸 견딜 수 없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사람들은 아무도 현실이 바뀌길 바라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의 동료였던 인물들 조차도 그가 더이상 혁신가로 살길 바라지 않았다.
* 알라딘은 슬픈 사실이라고 조용히 동의한다. 그리고 신드바드의 진짜 마음은 아주 슬프다는것도 알게 됐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이상 전쟁과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루프를 다시 쓰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
- 마기/344화 . . . . 7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가 털어놓은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 일종의 사후세계의 진실.
* 그런 모습을 보고 [[와히드]]와 [[셋타]]는 그가 보통 인간을 초월한 "운명의 구현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 알리바바는 유명인을 만난 팬처럼 "난 당신들을 안다"며 들뜬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와히드는 "공처가"에 셋타는 [[이스난]]의 동생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당사자들은 꽤 불쾌해하지만. 그리고 테스에 이르러서는 그 불행한 최후에 대해 알기에 말을 아끼지만 테스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 알리바바는 아까 셋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역시 난 죽은 것이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와히드는 냉담하게 "사실이고 다시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알리바바는 자신이 정말로 죽었다는 충격에 휩쌓인다. 설마 이런 어중간한 시점에. 뒤늦은 주마등이 펼쳐진다. 현세의 사람들. 그가 사랑하고 소중히했던 이들의 모습. 이제 볼 수 없게 된 그리운 모습.
* 그들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흉악할 뿐 그저 쾌락 범죄자, 광신자라고 무시했던 다윗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른 인종이었다. 알리바바가 어떻게 다른 거냐고 묻는다. 와히드는 그를 "더 거대한 사명을 짊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 무한한 시간과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야망을 간직하는 것은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하다. 실제로 셋타와 와히드 같은 인물도 여기서는 순식간에 삶을 포기했다. 셋타는 그가 무시무시한 인물이라며 이렇게 평한다.
>녀석이 확신한건 반드시 실현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중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와 일체화해서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다. 와히드와 셋타는 그게 말 그대로의 의미, 신드바드에서 "씌인다"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실감을 못하는데 셋타는 "너희 세상은 알마트란처럼 다윗에 의해 멸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 맥스 페인 . . . . 7회 일치
Candy Dawn. 펀치넬로 패밀리의 매춘부. 고객과의 행위를 비밀리에 찍어 최고입찰자에게 파는걸 부업삼아 하고있다. 실제로 캔디 돈 방의 옷장을 열면 카메라가 숨겨진 방이 나온다. 바에서 무에르테에게 펠라치오를 해주던 중, 바에 들어온 맥스를 보고 맞서 싸우지만 맥스에게 죽는다. 맥스가 들어오기 전 무에르테의 살인 자랑에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걸 보면 제정신은 아니다. 네임드인지라 체력이 높은 편. 주 무장은 듀얼 베레타.
Michelle Payne. 맥스 페인의 아내.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집에 쳐들어 온 발키리 중독자들에 의해 사망. 나중에 니콜 혼이 중독자들을 고의적으로 풀어놓았음이 밝혀진다. 지방 검사의 사무실에서 발키리에 대한 자료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한 것.
* 키라 실버
미 육군이 연구한 "발할라 계획"의 산물로, 1991년 처음 만들어졌다. 제작 목적은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내 1995년에 발할라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니콜 혼을 비롯한 몇몇은 허가 없이 실험을 계속했으며, 정량의 두배를 투여한 실험체들을 도시에 풀어 맥스의 가족들을 죽이기도 했다.
Cold Steel. 뉴욕 외곽에 위치한 제철소. 지하에는 미 육군의 벙커가 위치해 있으며, 해당 시설에서 "발할라 계획"을 진행하였었다. 인체실험도 했는지 사람들을 가두는 감옥도 있다. 맥스가 침입한 것을 안 에이저 코퍼레이션이 증거 인멸을 위해 자폭시켜버렸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7회 일치
국왕은 당당한 걸음 걸이에 한 눈에 봐도 남을 내려다 보는 눈빛을 가진... 뭔가 모자라게 생긴 아저씨다. 별 건 없는데 오만한 낯짝이 기분 나쁜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A 킬러 클로버 13세". 명실상부한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맞지만 어딘지 격이 떨어지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마법제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가 곁에 서있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긴 키 차이가 머리 하나 정도로 나니 더욱 그럴 것이다.
초딩만한 못한 땡깡. 그는 자신의 "위대한 마나"를 마구 과시한다. 확실히 왕족인 만큼 눈으로 오오라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나는 마법제보다도 위대하다!"같은 소리나 하면서 과시해 봐야 볼성사나울 따름이다.
그는 자기가 기획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사실 백야의 마안의 아지트를 조사하고 작전을 구상한건 마법제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부분만 홀랑 먹어치운 셈.
>'''이럴 때에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고.'''
* 약이 오를 데로 오른 국왕은 성미대로 두 사람을 당장 처형히라고 길길이 날뛴다. 따지고 보면 이럴게 될게 뻔했지만 아스타는 막상 닥치자 뜨악한 표정으로 당황한다. 민중들은 동요하고 그 사이의 청동마법의 [[셋케]]는 아스타를 비웃는다. 상황은 마법제가 나서면서 정리된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국왕을 달래고 자신을 봐서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은근히 "이런 걸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국왕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말투만 정중하지 위압감 마저 느껴지는 일침을 곁들인다. 열폭이나 해대는 국왕으로서는 거스를 도리가 없다.
* 마법제는 다시 민중들을 향해 "로열 나이츠는 나도 기대하고 있다!"며 화제를 돌린다. 청중들은 어느 새 마법제를 연호하며 마치 처음부터 그가 발표를 한 것처럼 따른다. 국왕이 나섰을 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던 기사단장들이 눈빛을 빛낸다. [[노젤 실버]]나 잭처럼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둔 단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최하위의 오명을 쓴 [[릴 부아모르티에]] 설욕을 다짐하며 의욕을 낸다. 국왕도 이런 상황을 뻔히 보고 있으니 속이 터져도 어쩔 수 없다.
* 잠시 뒤 마법제는 아스타와 유노, 두 사람을 잠시 뒤쪽으로 불러낸다. 아스타는 방금 전에 있었던 꽁트 같은 사건에 대해 힘차게 사과하지만 마법제는 애당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로열 나이츠 건에 대해 조언한다. 이건 지금까지 이상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찬스다. 그는 두 사람을 격려하면서 아울러 "그래도 아직 신인"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음주 선발시합에선 많은 강자들이 나올 터.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라며 자신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7회 일치
*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마론은 어렵지 않게 이 기술을 따라하고 [[노엘 실버]]도 서툰대로 따라해서 메레오레오나의 인정을 받는다.
* 원래 사자단 외에 끌려온 사람은 아스타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 [[노엘 실버]], [[샬롯 로즈레이]], [[야미 스케히로]] 등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운 없는 사람들 뿐이지만, 왠지 [[솔 마론]]도 얼굴을 비춘다. 샬롯이 간다길래 그냥 따라왔는데 도착해 보니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최종적으로 샬롯과 온천을 할 수 있으면 다 좋다고 나름대로 의욕을 불태운다.
* 아스타와 레오폴트가 1등으로 등산로에 뛰어든다. 그런데 발을 내딛고 나서야 이 지역의 가혹함이 실감됐다. 일행은 "마법으로 어떻게든 된다"고 믿었지만 천만에 말씀. 대기에 열기를 머금은 마나가 날뛰고 있었다. 땀샘이 폭발할 지경이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아 호흡도 어렵다. 사방에선 마그마가 펑펑 터져나오는, 문자 그대로 지옥도. 이런 곳을 돌파해 정상까지 가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곳으로 달려드는 대책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검은 폭우단 단장 야미와 푸른 들장미단 단장 샬롯이었다.
* 하지만 레오폴트는 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비결을 파악했다. 단장들은 마력을 상시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강마지대라 마나가 안정되지 않는 곳임에도 일사분란하게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사실 마법기사들에겐 기본기와 같은 마법이다. 이른바 "마나 스킨". 어떤 타입이든 간에 조금씩은 마나를 방출, 몸에 둘러서 여러가지로 응용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며 이런 험난한 환경에서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원들은 레오폴트의 분석에 감탄하면서도 그렇게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조금씩 감각을 익혀가면서 마나를 순응시킨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레오폴트가 먼저 마나스킨을 방출하며 의욕을 표출한다. 그의를 따라서 단원들도 의욕을 보이며 각자 마나스킨을 펼친다.
이런 전개는 한참 앞에 가는 야미도 짐작하는 바였다. "땡땡이 친 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두 단장이 구사하는 고급 기술을 자기네 단원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려는게 목적이었다. 특히 샬롯은 이 장소에서 상성상 최악이므로 마나스킨 활용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딱 좋은 교보제인 셈이다. 그리고 넘버 1 루키인 "금색의 쿨" 녀석도 동세대의 신인들을 고무시키기엔 안성맞춤. 보기보다 빈틈없는 누님이다.
메레오레오나는 "신입 2위"라고 해서 뭔가 있을까 했는데 실망이라며 지금까지 활약도 "그저 운"이었다고 잘라말한다. 그리고 "그정도의 물건"을 지니고 있다면 운만으로 마법제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빈정거리며 얼른 돌아가버리라고 말한다.
* 메레오레오나의 도발을 당한 아스타가 이를 악물고 일어난다. 그저 "운"이라는 말에 반박하듯이 마법제는 결코 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메레오레오나가 "그렇다면 올라가봐라. 바보에겐 무리겟지만."이라고 재차 도발한다. 아스타는 반드시 올라가보이겠다며 "우리들의 꿈은 실적 위에 있다"고 일갈한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7회 일치
* 이렇게 변변찮은 인물같지만, 실제론 단장이 부재 상태나 다름 없는 산호의 공작의 부단장을 맡아 실질적으로 마법기사단을 운용 중인 재원이었다.
* 이렇게 실컷 디스하는 동안, 여동생의 심기가 어떻게 됐는지는 미처 몰랐던 키르슈였다. 미모사는 갑자기 오라버니에게 꼭 이기라고 당부했다.
* 이렇게 개판으로 시작된 2회전. 매그너, 마론, 키르슈의 C팀 대 D팀의 대결이다. 키르슈의 튀는 언행은 시합이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저 별종에 대해서 묻자 [[노엘 실버]]가 "미모사의 오빠인 기분 나쁜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의외로 [[클라우스 류넷]]이 그를 변호한다. 저래봬도 산호의 공작에서 부단장을 맡고 있는 강자라는 것. 거기 단장이 맨날 잠들어 있는 상황이라 실질적으로 기사단을 이끄는 실무자는 키르슈였다.
* 그러나 그의 과도한 자신감이 화를 부른 건 아닐까? 수면 속에서 잠복하고 있던 적의 세 번째 마법기사가 나타났다. 그는 정확하게 C팀의 크리스탈을 노리고 물 창조마법 "크라이밍 실러"로 저격했다. 분명 잘 지키고 있다던 장담과 달리 키르슈는 크리스탈에서 한참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이대로 제대로된 싸움도 못 해보고 끝나는 걸까?
- 식극의 소마/187화 . . . . 7회 일치
* 도지마 긴은 그의 "도박"이 성공했을지 기대하고 베르타와 실라는 악취가 나지 않을까 망설이며 쉽게 시식하지 못한다.
* 베르타와 실라는 소마가 나키리 아리스를 꺾은 인물임을 알고 다시 보게 된다.
* 베르타와 실라는 그 표면만 보고도 딱 알맞게 튀겨졌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 그 점 때문에 베르타와 실라는 잘 튀겨졌다고 하면서도 선뜻 먹기를 주저한다.
* 그를 따라 베르타와 실라도 시식.
* 극찬하는 베르타와 실라. 오미자의 맛이 균형감을 줘서 곰고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그들은 소우에의 부하인 만큼 아리스와 쿠로키바 료와 친하게 지냈고 실력도 잘 알고 있었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7회 일치
* 최종심사 국면에서 베르타와 실라는 각각 의견이 갈려 소마와 하야마가 한 표씩 득표.
* 하야마 아키라의 압승으로 끝나려던 식극은 "소스를 찍은 맛"을 아직 보지 않아서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나키리 소우에는 이 점을 지적했지만 베르타와 실라는 아무 생각없이 --처묵--먹기만 해서 정말로 승부가 끝나버릴 지도 몰랐던 상황. 아무튼 유키히라 소마의 투지는 아직도 꺾이지 않았다.
* 대머리 군단은 다시 한 번 하야마의 실력에 경악하며 과연 소마가 대적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하야마는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초후각이 있어 가능한 요리라며 다른 사람이 따라해봐야 맛과 향의 밸런스가 붕괴해 자멸하는 방법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니 소마는 절대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우월감에 젖어있는데.
* 이어서 소마의 멘치까스를 재시식한다. 소마 또한 곰고기 육수를 쓴 소스를 제출했는데 자세한건 아직도 불명. 베르타와 실라는 거기서 청주에 절인 오미자, 액센트로 추가된 마늘향을 간파하지만 어떤 "순한향"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쿠가 테루노리는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데.
* 베르타와 실라가 다시 소스를 찍은 멘치까스를 시식하는 순간, 소스를 더했을 뿐인데 맛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소마의 소스 또한 요리의 맛을 끌어 올리는데 단순히 완성도를 더한다기 보단 전혀 다른,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향상이다. 매우 복잡미묘하면서도 곰고기의 달콤한 풍미를 배가시키는 신기한 소스다. 베르타와 실라는 소스를 다루는 것만큼은 소마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식을 마치는데
* 이제 최종심사. 튀김과 소스의 맛을 다 본 총점을 내는 시간이다. 베르타와 실라는 고민 끝에 마지막에 의견이 갈려서 각각 소마와 하야마에게 1표씩 낸다.
- 식극의 소마/190화 . . . . 7회 일치
* 이 같은 상황은 당연히 시오미 준에게도 전해진다. 시오미는 당장 센트럴에서 나오라며 하야마를 타이른다. 하야마는 이 방법 말고는 프로젝트를 존속시킬 방법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시오미는 어차피 아자미가 그런 걸 허용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세미나를 유지하고 준을 지키고자 하는 하야마는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다그치던 시오미는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고까지 말하는데, 거기에 상처를 입은 하야마는 어떻게든 세미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
* 다시 식극의 장소. 소우에는 판정에 앞서 자신의 판정기준에 대해서 설명에 들어간다. 일단 요리사로서 실력을 호각이며 이는 베르타와 실라의 표가 갈린 걸로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그가 승부를 가르는 요소로 제시한 것은 "요리사의 집념". 그는 소마가 소스에 쓴 꿀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걸 간파한다. 하야마도 승부에 집착해서 놓치고 있었지만 그 꿀은 보통 것과 다른 묘한 향기를 품고 있다. 뭔가 "떨떠름한 맛"의 향인데.
* 대머리 군단은 그제서야 이 꿀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수군대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엔 황벽나무 꿀을 쓴다는 발상도 없었던 모양. 무작정 산을 뒤지며 소재가 될만한건 뭐든 채집하는 하드코어한 수색을 펼쳤다. 쿠가 테루노리는 처음부터 황벽나무 꿀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자칭 "쉽게 알려주면 소마가 성장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며 그냥 차만 먹고 놀고 있었던 모양. 산에서 고생한건 소마와 대머리 군단이다.
* 그렇게 오전엔 닥치는대로 소재를 끌어모아 오후에 실험작을 만들기를 반복. 이런 과정 속에서 단맛을 내는 소재와 떪은 맛, 혹은 쓴맛을 내는 소재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해봤다. 그 결과 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시 "쓴맛을 가진 꿀"인 황벽나무 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정말로 아슬아슬할 정도로 시간을 쓴 결과물이었다.
*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원점. 시작은 순수하게 시오미를 위한 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시오미의 조리실에 들락거렸는데 어린 그의 요리를 시오미는 진지하게 시식해주고 칭찬도 해주었다. 하야마는 자연스럽게 토오츠키 학원의 정점을 목표로 하게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식극을 위해 준비하던 요 며칠 간. 그는 요리에 쓸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무심코 시오미의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에 있던 시오미는 없다. 그는 그것 조차 잊은 채 혼자만의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 도지마는 그의 실력과 요리의 완성도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이 정열을 담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완성했다고는 할 수 없고 결정적으로 "누군가에게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그 정신이 빠져있다고 평가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7회 일치
* [[메기시마 토스케]]를 포섭하는데 실패했으나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권유하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다.
그들이 건네준 신문에는 척봐도 [[나키리 아자미]]가 흉계를 펼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진정한 미식가를 표방하는 그 원칙을 대외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진급시험이 진행됐던 홋카이도가 그 시작점이었다.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대고 실제로는 각 식당들을 센트럴이 정한 원칙에 따라 요리하게 시키고 있다. 거부할 경우엔 유통루트에 손을 대서 식자재를 납품 받는 것 조차 막는다. 이런 횡포로 인해 벌써 폐점의 위기에 처한 점포가 부지기수. 듣고보니 소마도 짚이는 구석이 있다. 전에 [[츠카사 에이시]]가 그렇게 말했다.
감격으로 넘치는 장인들. 메구미와 소마는 그의 초고교급 인망을 실감하는 한편 덮밥연의 얼굴만 겉늙은 누구와는 참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다. 헌데 장인들 사이에서 메구미와 소마를 발견한 메기시마의 표정이 굳는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메구미가 듣기에도 그랬다. 애초에 실력면에서 보면 연대식극에 승리했을 때 제 1석은 메기시마의 차지였다. 그렇게 지적하자 소마는 "그럼 그때는 메기시마 선배도 쓰러뜨린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메기시마는 이제 불쾌해졌는지 식극도 싫지만 "입만 산 녀석"은 더 싫다며 등을 돌려버린다. 그가 이정도로 의사를 드러내는데 소마는 돌아갈 의향이 없다. 그가 자신의 힘을 실제 시험해 보지 않으면 입만 산 건지, 진짜배기인지 모르지 않겠냐며 승부를 청한다. 자신이 메기시마보다 맛있는 라면을 만들면 그 증명이 될 거라면서. 물론 이것도 메기시마에겐 "입만 산 녀석이란 증거"나 다름 없었다.
* 그리고 당연한 듯 패배가 이어진다. 메기시마는 소마가 뭘해도 이기지 못한다고 단언할 정도로 차이가 완연했다. 소마는 숫제 억제를 쓴다. 한 판 가지고는 실력을 알 수 없다, 그런 핑계로 대결은 재전, 삼전으로 이어진다. 그때마다 난타에 가까운 일방적인 패배. 보는 이는 누구라도 무의미한 객기라고 여겼다. 아무리 연전을 거듭해도 메기시마의 집중력이 떨어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승부를 거듭해, 마침내 날이 바뀌었다. 소마는 또다시 패배했다. 계속된 승부로 체력은 바닥났다. 반면 메기시마는 분명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나, "이젠 충분하지 않냐"고 말하게 됐다. 그는 소마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무의미한 승부를 받아들인 자신도. 소마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버리고 만다. 메기시마는 그 점을 곱씹으며, 아무리 동료를 구하고 싶어도 이런다고 실력차가 뒤집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마가 이렇게 나오는건 동료들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 애니 일본어 . . . . 7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애니로 일본어를 배우고 그대로 쓰면 일본의 실생활에서 격렬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이런 특이한 발음을 것은 발음을 과장스럽게 하고, 명확하게 하여, 청취자가 알아 듣기 좋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일상회화의 발음은 성우 목소리에 비하면 조곤조곤 거리고 알아듣기 어렵게 뭉개진게 많다.
이는 한국 성우들도 마찬가지. 성우 발성훈련을 받은 목소리는 일상회화에 비해서 청취하기는 좋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
* "키사마!" "테메에!" : 애니에서는 들을 수 있는 빈도가 높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 맞부딪치는 상대에게 사용할 필요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당하는 작품의 캐릭터가 여캐인가 남캐인가도 중요하고, 작품의 배경이나 이런것도 가능한 현대와 현실에 가까운것을 추천한다.
또한 그 캐릭터가 특이한 말투를 쓰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예를 들어서 아가씨 캐릭터가 와타쿠시같은 말투로 말하면 현실에서 그렇게 말하는,
일본 여자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7회 일치
플레이어를 보면 도망치는 전령. 지도에서 느낌표가 그려진 붉은 주머니로 표시된다. 쫓아가서 태클하거나 죽이면 십단위의 돈과 아이템 몇개를 준다.
플레이어를 보면 달려든다. QTE에 실패하면 목을 물어뜯는다.
플레이어를 보면 달려든다. QTE에 실패하면 목을 물어뜯는다.
플레이어를 보면 달려든다. QTE에 실패하면 목을 물어뜯는다.
* 워싱턴 요새 - 뉴욕 서부 해안가에 위치함. 정면돌파로 들어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측면의 말뚝을 징검다리 삼아 들어가야 한다. 안에 대륙군들이 묶인 형틀이 있는데 대륙군들을 풀어줘 아군으로 써먹을 수 있다. 별 도움은 안되지만.
영입한 암살단원들을 식민지 각지로 보내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기능. 성공하면 여러가지 보상을 받고 임무를 보냈던 암살단원의 경험치도 오른다. 실패하면 임무를 보낸 암살단원들이 부상당해 한동안 뭔가를 시킬 수 없게된다.
* 펜실베이니아 - 난이도 ★★★
- 영주시 . . . . 7회 일치
[[동남방언]] 중에서도 안동, 봉화,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 방언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나마 평야가 많은 안동, 예천 등과 달리 산악에 걸터앉은 지형인지라 영주-봉화 사투리는 안동과도 미묘하게 다르다. 때문에 경상북도에서도 사투리가 조금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 지역에서는 사투리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가장 먼 부산보다 그나마 수도권과 가까운 영주의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강원도 남부지방과 충청북도 동부([[제천시]], [[단양군]]) 이들 지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있기 때문. [[부산]]을 비롯한 경남 해안가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하면서 어설프다고 놀리기도 한다. 가끔 수도권 사람들이 사투리 별로 안 쓴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은 영주 사투리의 예문이다.
> 아래께(=며칠 전에) 한데서(=바깥에서) 다릐가(=다른 이가) 마케(=전부/죄다. 사실 이건 강원도 사투리 '마카'의 변형이다) 시스맘(=각자/제각기) 선낱씩(=하나 둘/적은 수/조금씩) 주께는데(=지껄이는데) 메란도 없었(=매우 많다/정신 없다/난장판이다)니더(=경북 북부지방 종결어미. [[동남방언]] 문서에서 유홍준이 능교형과 니껴형으로 구분한 문단 참조할 것).
사실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예전처럼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층의 경우 억양에서는 어느 정도 어른 세대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지만 그 정도가 매우 약하며 어휘는 대부분 표준어와 별 차이가 없다.
* [[선비]] 명칭 사용 때문에 --양반-- [[안동시]]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안동시와 영주시 간의 [[지역감정]]이 꽤 있는 편이다.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74|이런]][[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59|저런]]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61|내용]][[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21|의]] 시사만평이 지역언론에 실리는 것을 보면[* 이 시사만평의 작가는 영주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2015년 기준 같은 재단의 모 여고 교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선비 명칭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안동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듯. ~~[[우리의 주적은 간부|우리의 주적은 안동]]~~
* 2016년 11월 15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전국 유림 중 최초로 영주 지역 유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격문을 발표했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56736|#]]
* [[김계원]] : 전 [[육군참모총장]], 전 [[대통령비서실장]]
* [[최교일]] : 변호사, 국회의원. 탄핵문제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 시내 최교일의 사무실 앞에서 촛불집회가 자주 일어났다(...).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7회 일치
그 부모는 수상하게 여겨서 남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하였다. 잠자리 앞에 붉은 흙을 뿌리고, 실타레에 감은 삼실을 바늘에 꿰어, 딸에게 주고 이를 남자의 옷자락에 꿰어두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보니 삼실은 문열쇠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실타레는 3바퀴만 남아 있었다. 더듬어가서 찾아보니 미와산(三輪山)의 오오모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의 사당이었다. 이로서 뱃 속의 아이가 산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삼실이 세 바퀴 남아 있어 이 땅을 미와(三輪)라고 이름붙였다. 딸의 자손인 오오타타네코(意富多多泥古), 오오모노누시노카미를 모시는, 오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제주가 되었다.
오오모노노누시는 히메가 측간에 들어갔을 떄, 붉은 화살(丹塗矢)로 모습을 감춰서 측간의 옆으로 들어가, 히메를 찔렀다. 놀란 히메가 그 화살을 가지고 돌아가서, 바닥에 두자, 화살은 단정한 남자로 변하여, 결국 두 사람은 맺어졌다.
- 우건도 . . . . 7회 일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김호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허위사실 유포([[공직선거법]] 위반)로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2011년 시장직을 상실하였다.
2015년 말 더불어민주당 지방자치행정위원으로 임명되었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주시장으로 재도전하나 후술할 미투 운동에 휩쓸렸다. 본인도 강력히 부인했고 흐지부지되었지만 최종적으로 1.33% 차의 격차로 패배했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앞두고 사실상 미투 파문을 시인함으로서 선거 후 소환조사를 받는 등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버렸다.
[[2018년]] [[3월 6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또다시 논란이 발생하였다. 이번엔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나선 우건도 더민주 예비후보에 대한 논란이다. 우건도 예비후보한테 피해를 봤다는 사람이 실명을 공개하며 글을 작성하고, 우건도 예비후보는 완전한 허위라며 [[무고죄]]대응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306_0000243911&cID=10806&pID=10800|"현재 충북도청 공무원이다"…'미투' 작성자 신분 밝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06/0200000000AKR20180306076351064.HTML|미투 논란 우건도 충주시장 예비후보 "음해"vs"13년전 사실"(종합)]]
3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게시글에 ‘2005년 6월 우 후보가 총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라고 했으나 실제 총무과장 근무기간은 2005년 7월 25일부터 그 해 9월 4일까지였다"며 “폭로 글은 악의적으로 날조된 허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게시자가 성추행을 당한 날 모 식당에서 마셨다는 주류도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류 납품 업체가 확인해줬다”고 부연 설명했다. 현재 우 예비후보 관련 미투 폭로 글은 작성자에 의해 민주당 도당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283022|*]]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7회 일치
1946년, 나치 독일은 우월한 과학 기술로 연합군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이는 나치 독일의 과학자이자 장군인 빌헬름 슈트라세, 일명 데스헤드의 업적이었다. 이에 연합군은 데스헤드를 제거하기 위한 특공대를 조직해 데스헤드의 본거지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특공대원이었던 B. J. 블라즈코윅즈는 두명의 동료를 데리고 데스헤드의 본거지에 탈출하지만, 탈출 중 머리에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는다.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대신 전쟁에 참전한 미군 공수부대원. 그의 아버지는 그의 행동에 실망하였다고 한다.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일명 데스헤드. 재능있는 과학자이자 장군. 친위대 특수계획부서의 수장이다. 양심의 가책 없이 신기술로 실험을 하는 인물이며 그 실험들은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막대형 수류탄. EMP를 일으킨다. 폭발 범위 내의 메카닉은 정지한다. 폭발 범위 내에 들어가 있으면 데미지+에너지 무기 충전량 소실 콤보를 먹으니 주의.
거치되어 있는 기관총. 거치된 그대로 쓰거나 잠시 떼어내서 쓸 수 있다. 영원히 가지고 다니는건 불가능. 거치될 시에는 무한탄창이지만 떼어내면 장탄수에 제한이 생긴다. 장탄수가 소진된 기관총은 거치대에 거치하는걸로 장탄수를 채울 수 있다. 실탄을 발사하는 1946년 버전과 레이저를 발사하는 1960년 버전이 있는데 1960년 버전은 얇은 철판을 뚫을 수 있다.
제국우주해병대의 병사. 오랜 기간 실전에서 경험을 쌓은 병사들만이 될 수 있다. 지정사수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레이저 모드만 사용한다.
- 원피스/853화 . . . . 7회 일치
* 페드로는 변신이 끝나기 전에 다이너마이트로 자폭하는데 사실 미러 월드에서 나타난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을 보고 위장한 것이다.
* 그가 의무실 근처에 도착했을 때 [[빈스모크 레이쥬]]가 방 안으로 데려간다.
* 3층의 안뜰에서는 [[타마고 남작]]과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결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타마고 남작은 지난 번 참격에 당하고도 죽지 않았을 뿐더러 모습이 바뀌어 병아리같은 모습이다. 사실 그건 타마고 남작이 가진 열매의 능력이었다.
* 페드로는 자폭한게 아니었다.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거울을 통해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실 자폭하려고 했던건 진심이었지만 그 직전에 쵸파 일행이 미러월드를 통해 그를 발견했고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그를 빼돌릴 수 있었다. 쵸파와 캐럿이 "무리 좀 하지 마라"고 타박하자 페드로는 "거울에서 나타나다니, 놀란 건 이쪽"이라 받아친다. 한 번 빅맘의 영역을 침범했던 그도 [[샬롯 브륄레]]의 능력에 대해선 몰랐던 모양이다.
* 한편 [[몽키 D. 루피]]는 [[상디]]를 찾아 헤매며 성안의 적들을 족족 쓰러뜨리고 있다. 벌서 3층 바움까지 진격했는데 부상을 입은 몸인데도 그를 쓰러뜨릴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루피는 일단 상디를 부르며 마구잡이로 돌격하고 다니는데 그가 의무실 앞을 지나칠 때 문에서 나온 손이 그의 팔을 잡아 끈다. 이때 루피의 팔에 난 상처가 또 벌어진다.
그건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는 의무실을 떠났지만 그녀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었다. 레이쥬가 루피를 불러들이고 방문을 잠그자 루피를 추적하는 병사들이 문 앞을 지나간다. 일단 루피를 숨겨준 셈이지만 상디를 빨리 찾아야 하는 루피는 성가셔 한다. 하지만 그녀가 상디의 누나라는 건 기억하고 있다.
레이쥬는 상디를 찾고 있지 않냐고 말을 꺼내며 그가 방금 전에 의무실을 떠났다고 알려준다. 루피는 빨리 상디를 찾아서 푸딩에게 모두 속았고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뒤늦게 레이쥬의 부상을 발견하고 괜찮냐고 묻는다. 레이쥬는 그 대답 대신 "상디는 이미 푸딩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녀는 상디에게 도망치라고 계속 설득했지만 그는 밀집모자 일행과 이스트 블루의 인질을 계속 걱정해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해준다. 루피는 이스트 블루의 인질이 발라티에의 제프 일행이란걸 알아차린다. 루피는 그들이 정말로 위험하다면 이스트 블루에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서 싸우겠다고 외친다.
- 원피스/868화 . . . . 7회 일치
* 작전이 실패하고 [[시저 크라운]]이 탈출용 거울을 준비하나 역시 빅맘의 패기와 풍압 때문에 깨지고 퇴로가 차단된다.
* 빅맘 [[샬롯 링링]]의 트라우마가 시작된 63년 전의 "양의 집" 실종 사건. 그녀가 소중하게 여겼던 [[마더 카르멜]]도 양의 집 친구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녀 자신만 모르는 곳으로. [[몽키 D. 루피]]가 깨어진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보여주자 빅맘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대로 과거에 사로잡혔다. 이때를 노리고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카포네 갱 벳지]]. 그리고 본래 이 자리에서 죽기로 되어 있었던 [[상디]]는 역전된 입장으로 그녀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 명실상부한 사황 세력의 개국공신인 슈트로이젠. 이제 나이를 먹고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요리장으로서 빅맘 곁에 있었다. 웨딩케이크가 망가졌을 땐 빅맘이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지만, 그의 충성심에는 영향이 없었다. 빅맘의 괴성으로 꼼짝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카포네 갱 벳지]]가 부하들과 함께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걸 놓치지 않고 빅맘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빅맘은 63년 전 세상으로 돌아가서 주위를 볼 정신이 아니었다. 경계심도 없고 더이상 무적도 아닌 약 5초간의 간격. 벳지는 그 간격을 놓치지 않고 비장의 무기 KX런처를 조준한다. 모든게 그의 계획대로다. 마침내 발사되는 맹독의 탄두.
날카로운 바늘이 번뜩이는 탄두가 그녀에게 향할 때, 빅맘의 울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녀가 뿜어내던 패기와 풍압도 최고조에 달했다. 그 어마어마한 압력이 탄두가 미처 목표에 명중하기도 전에 폭발시켜 버렸다. 아연실색하는 벳지와 부하들.
상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절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상태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회장 안을 들여다 보고 음흉하게 웃던 [[시저 크라운]]. 그러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작전이 어찌됐건 자신의 차례는 변하지 않는다. 일행을 탈출시켜야 한다. 설마 탄두를 파괴할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리며 탈출용 대형 거울을 챙겨서 날아오른다. 그가 날아오자 회장에 흩어져 있던 연합군이 재빠르게 집합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탄두를 파괴할 정도로 무식한 압력이 그대로 몰아쳐서 거울까지 깨뜨렸다.
* 사색, 그 태평한 루피 조차도 절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미는 물론 [[쵸파]]나 [[징베]] 조차 이 참담한 실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끝이다. 여기는 홀케이크 성 옥상. 도망칠 곳도 없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
- 월하노인 . . . . 7회 일치
중국의 고전 『태평광기(太平広記)』 159권, 『속유괴록(続幽怪録)』에서 인용된 「정혼점(定婚店)」에서 등장하는 신령. 인간이 태어나면 한 쌍의 발에다가 붉은 끈을 묶어서 정혼을 시킨다고 한다. 이 효과는 엄청나서 서로 원수지간이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건 결국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타이완, 타이페이에 있는 용산사(龍山寺)--가면 휴대폰을 바꿔야 할 것 같다.--에서는 월하노인(月下老人)을 모시고 있다. 이 사당에서는 월하노인에게 인연을 맺어줄 것을 빌거나, 나무 조각을 던져서 좋은 인연이 있을지 점을 치거나, 부적으로서 쓸 수 있는 붉은 실을 팔고 있다고 한다.
참조…【타이완】연애 파워스팟!「강력한 인연 맺기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 용산사(龍山寺)에서 운명의 붉은 실을 입수 http://getnews.jp/archives/700234
위고가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붉은 끈(赤縄)뿐이다. 이걸로 부부의 발을 묶어서, 태어났을 때 몰래 서로를 이어주도록 되어있다. 비록 원수의 집안이건, 귀천(貴賎)의 격이 다르건, 하늘 끝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건, 오나라와 초나라의 다른 시골에 있건, 한 번 맺어지면 달아날 수 없다. 너의 발에도 이미 맺어져 있는 상대가 있으리라. 다른 곳에서 찾아도 이롭지 않다"
- 은혼/628화 . . . . 7회 일치
* [[야규 빈보쿠사이]]의 야규진음류 일가는 그 의견에 동감한다. 빈보쿠사이는 이 승리가 기적적인 것이었다는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야규진음류는 확실히 가장 큰 출혈을 본 파벌이라 할 수 있다. [[니시노 츠카무]]가 한 팔을 잃고 빈사, 후계자인 [[야규 큐베]]도 [[오우가이]]에게 당해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빈보쿠사이는 기적같은 승리 뒤에는 그만한 대가도 있는 거라 말하며 이 이상을 바라면 반드시 잃는 것도 더 나올 거라고 경고한다.
* 백화의 리더 [[츠쿠요]]도 일단은 신중론파. 그녀는 사실 이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들의 목적은 더이상의 싸움을 막기 위해 싸운 것. 그런데 그 싸움을 다시 확전시키고 피해를 키운다면 해방군이 하는 짓과 다를게 뭐냐고 지적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워주고 있다는 사실에
신파치가 츳코미를 한 건데 여기에도 또 츳코미가 날아온다. 긴토키의 짓이다. 긴토키는 "보케질은 엉뚱하거나 바보같은 말 전부"를 칭하는 거라며 아무튼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츳코미를 넣겠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실로 악마 위에 악마가 타고 있는 상황.
* 신파치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 아무튼 쉬어야 한다고 강권한다. 사실 긴토키는 요 얼마간은 싸움과 싸움으로 연속된 생활이었다. 언제나 너덜너덜해지도록 싸우고 기합으로 어떻게든 해왔지만 이미 지친게 사실.
- 은혼/630화 . . . . 7회 일치
* 다츠마는 노부노부가 소요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가신들과 연락하려던가 아니었나"라고 재촉한다. 노부노부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무전기를 다츠마에게 넘긴다. 다츠마는 노부노부를 대신해 소요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그들이 협상 실패로 [[엔죠 황자]]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나 상황이 급변해 풀려나게 되었다는 것, 해방군 간부 자작 제독과 제독의 모국 오오고쿠성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사실도 전한다.
같은 시각 자작 제독 또한 다츠마 일행에게 정확히 같은 사실을 전달한다. 겐가이 영감은 엔죠의 말이 "협박치곤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허세를 부려본다. 이미 전쟁으로 치른 희생이 크다. 지구엔 해방군의 동지도 있다. 그 전부를 이제와서 다 지워버린다?
[[천도중]]으로부터 사람과 별을 해방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그들의 대외와 전혀 달랐다. 병사들 조차 그걸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싸우는 대상은 천도중이 아니다. 그런 싸움을 위해서 동료들을 희생한다니? 그것은 천도중이 한 짓과 같은 짓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총구를 겨눈 자든, 그저 당황한 자들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언제 망할지 확실해진 것 뿐이야.
사실은 전부 드라고니아 황자의 지시사항이었다. 어째 이 인간 드라고니아한테 완전히 말려버렸다.
- 이상호 (1989년) . . . . 7회 일치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상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상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2경기에 대주자로 출장하였으나 도루실패를 2회 기록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c=v&m=n&i=126252 준플레이오프 2차전, NC 이상호 뼈아픈 도루 실패] - 스포츠서울</ref>
! 타율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도실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 !! 실책 !! 비고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이승엽 . . . . 7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1995년]]에 2할대 타율, 13홈런, 73타점을 기록해 장거리 타자로서 자질을 보였고,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백인천]]에게‘인천 부두 타법’을 전수받은 뒤 본격적인 홈런 타자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ref name="sword">스포츠 춘추 - 2010년 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65 "외다리 타법의 창시자, ‘야구는 도(道)이고, 타격은 검(劍)’"]</ref>
재팬 시리즈에서 처음 맞붙은 [[센트럴 리그]] 소속의 [[한신 타이거스]] 투수들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1차전에서 만난 [[한신 타이거스]]의 에이스인 [[이가와 게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에구사 히로타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3차전은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됐지만 4차전에서는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선제 홈런을 쳐 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이 재팬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마에 도시아키]]에게 밀려 제팬 시리즈 MVP 수상에 실패했다.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출<br /><br />장!![[타석|타<br /><br />석]]!![[타수|타<br /><br />수]]!![[득점 (야구)|득<br /><br />점]]!![[안타|안<br /><br />타]]!![[2루타|2<br />루<br />타]]!![[3루타|3<br />루<br />타]]!![[홈런|홈<br /><br />런]]!![[타점|타<br /><br />점]]!![[도루|도<br /><br />루]]!![[도루|도<br /><br />실]]!![[볼넷|볼<br /><br />넷]]!![[삼진|삼<br /><br />진]]!![[타율|타<br /><br />율]]!![[출루율|출<br />루<br />율]]!![[장타율|장<br />타<br />율]]!![[OPS|O<br />P<br />S]]!![[누타수|루<br /><br />타]]!![[병살타|병<br />살<br />타]]!![[몸에 맞는 볼|몸<br /><br />맞]]!![[희생 번트|희<br /><br />타]]!![[희생 플라이|희<br /><br />플]]!![[고의 사구|고<br /><br />4]]
- 이장섭 . . . . 7회 일치
'''이장섭'''([[1963년]] ~ )은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 공무원이다. [[1986년]] [[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지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노영민]]의 보좌관, 국회의장 비서실 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 [[이사관]]급 상당)에 임명되었다.
* [[대한민국 국회|국회의장 비서실]] 비서관
* [[2017년]] [[6월 10일]]<ref>[http://news.joins.com/article/21653324 충북 출신 이장섭·유행렬 청와대 비서실 '입성'] 중앙일보 2017.06.10.</ref> ~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사관]]급)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7회 일치
>[사무실] 현관 홀 [1-남][1-서][1-동][2-남][2-서][2-동] 계단
>교실의 배치도
9월 14일에 살인죄, 살인미수죄 등으로 오사카 지방 법원에 기소되었으며, 12월 27일에는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타쿠마는 재판에서도 기행을 반복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읽어주고 시작했을 때 "여어, 앉으면 안됩니까"라고 말하여 재판관은 엄격하게 서서 들으라고 말하면, 노려보기도 했다. 첫 공판에서 혐의사실을 인정하고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으나, 나중에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추궁당하자 "신문기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라서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2003년 5월에 검찰은 "이 사건의 피해 참상과 많은 가족의 비통한 모습을 볼 때, 사형폐지론이 피해자나 유족의 입장과 심정을 무시하는 공허한 것인지 실감할 수 밖에 없다."고 사형을 구형했다. 변호인단은 정신이상과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타쿠마는 최종변론 후에는 "죽는들 전혀 겁먹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실컷 불쾌한 경험을 겪었습니다.","어쩔 수 없는 가난뱅이 인생이었으니, 이런 패턴 쪽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사건 직후에 오사카 교육대학, 오사카 대학, 부립 마음의 건강 종합센터, 오사카 피해자 상담실 등 전문가로 구성된 '멘탈 지원 팀'이 발족하였다. 교장은 기자 회견에서 대학부속 초등학교의 합동 장례식을 할 의향임을 밝혔다. 2002년 정신지원팀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 680명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가진 아동이 2학년을 중심으로 10명에서 20명 정도였으며, 학부모와 교직원 가운데도 고통 받는 사람이 있었다. 무서워서 교실에 들어갈 수 없고, 원인 불명의 두통을 일으키는 아동이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7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의 고위 인사로 보이는지만 그녀를 제외한 실권자들은 모두 마신족 근절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멜리오다스가 그렇게 말하자 로우도 맞는 말이라고 수긍한다. 그러면서 어찌되었든 확실한건 그들이 동료라는 것이라 말하고 멜리오다스도 맞장구친다.
* [[디안느]], 지금의 [[드롤]]은 거인족 남녀의 수행에 어울려주고 있다.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덤비지만 디안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둘의 체술공격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가볍게 반격하자 둘이 나가떨어진다. 이번엔 대지를 조종하는 술법으로 도전하는데 이또한 디안느의 실력에는 따를 수도 없다. 디안느가 대지를 움직이자 두 거인족의 술법을 집어삼키고 간단히 승리를 거둔다.
* 디안느는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에게 승리를 자랑하듯 어떻게 봤냐고 의견을 구한다. 킹은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실은 방금 전에 본 뤼드셀이란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 마력은 십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숲 깊숙한 곳에서도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 기색은 뤼드셀과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킹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디안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지만 디안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이곳 생활에 적응한 건지 거인족들을 따라다니며 "한 번 더 승부하자"고 조르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킹의 표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게라이드는 오빠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킹은 얼버무리기 바쁘다. 킹은 생각해 보니 그녀가 초대 요정왕 때부터 섬겨왔단 얘기를 해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설마 자신과 [[엘레인]]처럼 남매 관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모습과 분위기는 그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현대의 게라이드는 속이 검고 요정왕의 안위만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 킹은 화제도 돌릴 겸 숲에서 감지되는 마력에 대해서 게라이드에게 묻는다. 그러자 게라이드가 잊어버린 거냐면서 그것의 정체를 알려준다. 그것은 요정왕의 마력으로 보호받는 숲을 한 번 더 보호하기 위해 그로키니시아가 없는 사이 뤼드셀이 펼친 결계이다. 이런 사실이야 킹이 알리 없으니 그는 "그랬던가"하고 적당히 대꾸한다. 하지만 비밀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게라이드는 좀 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는데.
- 장태영(야구선수) . . . . 7회 일치
||<#eeeeee><:> '''포지션''' || [[투수]][* 고교야구 시절], [[외야수]][* 실업야구 시절] ||
어이없는 실책들로 결국 장태영이 이끄는 경남고는 통한의 패배를 안게 된다. 이후 장태영은 1974년에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사실, 그 누구도 경남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평범한 에러로 우리는 3연패를 저지당하고 통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라며 회상하기도 했다.
=== 실업무대에서의 활약 ===
경남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1957년에는 제5회 군-실업야구쟁패전[* 훗날 대학팀과 실업팀 토너먼트인 백호기의 전신인 대회.]에서 11타수 9안타, 타율 .818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이 기록은 1993년 [[홍익대학교]]의 문희성이 대학선수권대회에서 7타수 7안타 1.000을 기록하기 전까지 단일대회 최고 타율이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7회 일치
* 실행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미나모토 코이치와 우메가에 나오미가 나타나 급하게 제지한다. 워낙 급하게 막은 탓에 실행 버튼을 누르려던 사카키의 손이 비틀려버린다.
사카키 자신은 감시 영상을 교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미나모토 일행의 탈출 사실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경악하는 사카키. 나오미와 하츠네의 경계 아래 전에 블랙 팬텀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왼팔을 조사하게 된다.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상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도쿄로 돌아온 미나모토. 그러나 이들이 마련한 반격의 전초기지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연립주택. 너무 초라한 아지트에 조금 실망한다.
* 미나모토는 사실 자신도 화가 난다며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받은 것 이상으로 길리엄에데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가 행한 무수한 범죄를 일일히 열거하며 이젠 사카키와 관리관까지 이용했다며 조용히 분노한다. 그러나 너무 힘을 줘서 찬장을 망가뜨릴 정도로 속으로 흥분하고 있다. 사카키는 그가 대신 분노해주는 것에 감격.
- 정창영 (공무원) . . . . 7회 일치
| 경력 = [[한국철도공사]] 사장<br />[[대한민국 감사원|감사원]] 사무총장<br />감사원 제1사무차장<br />감사원 제2사무차장<br />감사원 국장<br />[[대한민국 국회|국회]] 예결위 입법심의관<br />[[대통령비서실|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br />감사원 과장<br />감사원 감사관<br />청와대 [[대통령경호실|경호실]] 감사담당관<br />감사원 부감사관<br />경북도 / 대구시 / 서울시 행정사무관<br />행정고시 24회
* 대통령경호실 감사담당관
*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행정관
- 조진호 (축구인) . . . . 7회 일치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의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안영규]], [[정석민]], [[임창우]] 등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져나가는 등 악재를 겪었고 시즌 개막 후 11라운드까지 1승을 거두는데 그치자 계약조건을 토대로 사임, 사실상 경질되었다.<ref> [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5/sp2015052110281493650.htm/ 대전 조진호 감독, 성적부진으로 사의 표명] </ref>
[[11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정협]]을 비롯한 공격 자원을 앞세워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FA컵 2016|FA컵]]에서는 [[FC 서울]]과 [[전남 드래곤즈]] 등의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진출하였지만,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전에서 패하면서 사실상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한편 이번 조진호 감독의 사망을 통해 감독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재조명받으며 감독이라는 자리가 선수들보다 더 힘든 직업인지를 깨우쳐 주고 선수들과는 달리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개선과, 건강검진 의무화 및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리그는 2018년부터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의 건강검진을 의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주나라 . . . . 7회 일치
유왕의 태자가 정(鄭)의 후원을 얻어 낙읍(洛邑)에 재건되었다. 낙읍은 후대의 뤄양(洛陽,낙양)이다. 그러나 동주는 재건 당초부터 취약한 정권으로서, 정(鄭)나라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사실상 실권을 상실, 각국의 제후들이 패자(覇者)로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고 주왕조는 천자(天子)로서 명분상의 권위만을 가진 정권이 된다.
춘추시대에는 제후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 이상의 실력이 있었으나, 명분상 주나라의 신하를 자처하였으므로 군주의 지위는 공(公), 후(侯)에 머물렀다. 단지 초(楚), 오(吳), 월(越) 같은 주나라 외부의 국가들만이 왕(王)을 자칭하였다.
지방 통치에서 주나라는 [[봉건제]]를 실시했다. 무왕은 자신의 형제들을 노(魯), 위(衛), 채(蔡), 조(曹), 등(滕)의 16개국에 봉하였고, 무왕의 아들은 진(晉) 등 4개국에 봉해졌다. 주공 단의 자식들은 형(邢) 등 6개국에 봉해졌다. 강태공의 후손이 봉해진 제(齊) 등, 그 외 약 140개의 제후국이 존재했다.
- 진격의 거인/94화 . . . . 7회 일치
* 하지만 당시에도 라이너를 멸시했던 [[포르코 갤리어드]]가 "너는 이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데 될 턱이 있냐"고 도발해 다투게 된다.
파르코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형의 한심한 숙취도 둘째 문제였다. 그는 어젯단 라이너에게 [[진격의 거인/93화|"가비를 구해라"]]고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새삼 라이너의 이력을 돌아봤다. 4년 전 팔라디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모든 책임은 라이너에게 돌아갔다. 까딱하면 "임기"를 채우기 전에 갑옷을 박탈 당한 뻔했으나 라이너는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위험한 전장을 누구보다 앞장 섰으며 목숨을 걸고 여러 전과를 올려 마레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고 자신의 임기도 지켰다. "다른 어떤 전사보다도 높은 충성심". 그거야 말로 라이너가 높이 평가받는 배경이었다.
* 가비는 카리나에게 "전사대가 섬의 악마들로부터 엘디아인을 지킬 거야"라고 안심시킨다. 팔라디섬에 대한 의견은 엘디아인 전반에서 공통적이다. 그들은 마레에서 가르친 대로 섬의 악마들이 언제든 대륙으로 돌아와 모든 걸 멸망시킬 거라고 믿고 있다. 이 식탁에 모인 사람들도 그랬다. 엘디아인이 멸시 당하는 것도 바로 그들 때문이라 생각했다. 화제가 이렇게 돌아가자 자연히 그 섬에서 5년이나 생활했던 라이너에게 화살이 쏠린다. 은연 중에 그 섬에 대해서 묻는데, 가비가 그런 걸 물으면 안 된다며 가족들을 말렸다. 애초에 팔라디섬에 대한 정보는 기밀인데다, 그 지옥 같은 섬에서 잠복했던 경험을 누가 말하고 싶겠냐는 것이다. 가비의 아버지가 조카의 입장을 생각 못했다며 사과하지만, 사실 라이너가 난처한 것은 가비의 발언 쪽이었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상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반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절반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반대로 남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 백병전시험은 더 형편 없었다. 상대인 [[애니 레온하트]]는 "아주 좋다"는 격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그녀는 그때이미 완성된 투사였고 그녀의 실력에 라이너가 공중에서 완벽하게 한 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른 시험에서도 그건 마찬가지. 뭐하나 쉬운게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는 언제나 "제길"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필기시험에서도, 옆자리의 [[포르코 갤리어드]]가 여유로운 얼굴로 답안지를 채워가는데 자신은 사색이다.
이런 절실함이 낳은 결과일까? 그는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전사 후보생" 자격을 얻었다. 후보생 완장을 어머니에게 보이는 날, 카리나는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명예 마레인까지 한 발짝이다". 어머니는 더 가혹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었지만 아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목표를 누구보다 바랬다.
- 창작:좀비탈출/5-1-2 . . . . 7회 일치
…… 아니다. 지금은 과학실험을 할 때가 아니다. 불확실한 추측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않던가. 이 말이 이렇게 뼈에 사무칠 때가 다 있군.
식량을 옮긴 뒤 깨끗히 몸을 씻었다. 물리진 않았지만 잠깐이나마 녀석들과 접촉했던 것은 찜찜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라디오 정보에선 녀석들에게 물리거나 체액이 혈관에 들어가지 않는 한은 안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 진실일까? 혼란을 막아보려는 질병관리국의 정보조작이 아니란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가 내가 씻는 그 물이 며칠 동안 찜찜해서 쓰지 않았던 "수돗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뭐가 어떤가? 왠지 이젠 신경쓰이지 않는다. 체약이 묻었던 옷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렸다. 세탁을 하기엔 물이 아깝고 시간도 아깝다.
관찰 결과 하룻밤이 다 가도록 마당으로 침입하는 녀석은 없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며 나는 묘한 행복감에 젖었고, 오래간만에 거실에서 보는 동네 풍경은 아버지가 사랑했던 바로 그 세트장이었다. 어슬렁거리는 출연자들 따윈 없는 셈 쳐주지.
어제 남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식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식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기대와는 달리 욕구는 강렬하진 않았다. 조금씩 고개를 들려고 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그라든다. 그 벽이라는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만큼 가깝진 않지만 귀를 막지 않고는 피할 도리가 없는 녀석들의 울부짖는 소리. '''그르렁'''
- 최동수 (야구인) . . . . 7회 일치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후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 팀 [[LG 트윈스]]로 1년여 만에 복귀했다. 1차 드래프트인 신인 지명회의와 2차 드래프트를 통틀어 최연장자로 지명된 선수였다. [[2013년]] 개막전 명단에 올라 시즌 개막전을 통해 2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무안타에 그친 후, [[SK 와이번스]]와의 2연전이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사실상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3년]] [[10월 5일]] [[두산 베어스]]전이 끝난 후 공식 은퇴식을 가졌으며, 이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 2위를 확정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의미있는 경기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30892 '은퇴' 최동수,'정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 OSEN</ref>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남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영]]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연도 !!소속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삼진 !!볼넷 !!사구 !!병살 !!실책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 최문식 . . . . 7회 일치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전은 홈경기에 비해서 원정 경기에서는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2016시즌동안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단 4경기였고, 그중 3경기는 최하위였던 [[충주 험멜]]과 [[고양 자이크로 FC]]와의 경기였다. 이러한 한계로 끝내 승강플레이오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권 진입이 좌절되었고, [[10월 29일]] 성적부진과 승강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구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사임하였고,<ref>박찬준 (2016.10.29)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 최문식 감독, 자진사퇴 "성적부진 책임지겠다"]{{깨진 링크|url=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007711%2F }} 스포츠조선</ref> 2017시즌을 앞두고 [[옌볜 푸더]]의 수석 코치로 취임하였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335/ 최문식 전 대전 감독, 중국 옌볜 ‘박태하 사단’ 합류]</ref>
==== 구단의 현실 외면 ====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의 감독 당시 현실과 이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대전 감독을 역임하면서 대전 구단의 사정을 전혀 모르채 현실을 외면하였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가난한 시민 구단인 대전의 현실을 외면하고 2014년의 우승 및 승격 주역들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내보내고 영입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반복하며 팀의 조직력을 약화시키였으며, 특히 그는 대전은 당시 강등 위기에 몰려있었던 터라 당장의 성적과 승리에 신경써야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위권에 있는 팀이 경기력에 신경쓰는 듯한 행보를 선보였으며 지금 당장의 경기의 승리를 위해 수비 위주의 역습 위주의 경기보다는 당장의 성적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자신 특유의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축구철학만을 고집하며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펼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만을 채우려 했었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츠라츠라 와라지 . . . . 7회 일치
* 쿠마다 하루타카 : 오카야마 번 5대 번주. 대대로 검약을 기풍으로 삼던 쿠마다 가에서 유독 풍류와 호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도를 넘는 사치는 하지 않는다. 막부의 검약정책을 지나치다고 여겨 우회적으로 비꼬곤 했기 때문에[* 사치를 막기 위해 은 제품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오자 일부러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 직후 금 제품 또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도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막부의 실력자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와 사이가 나쁘다. 여러가지 일화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속이 깊고 대범해서, 이 때문에 행렬 중간중간마다 과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려고 줄을 잇곤 한다. ~~전국시대 시절이었다면 천하통일은 무리라도 관서 제패는 해냈을 것 같은 포스다~~
* 이기 나가토 : 수석 가로. 원래는 제2가로였으나 새로 가로가 된 이즈미가 수석 가로 자리에 앉는 것은 맞지 않다고 여긴 하루타카가 서로 위치를 바꾸게 하였다. 가로 경력 17년의 베테랑으로 영민하고 빈틈이 없어 영지의 일을 실수없이 이끌어 왔으며 다도에도 능하다. 이즈미의 성장을 위해 매우 신경을 써 주고 있으나, 이즈미는 수석 가로 자리를 '빼앗겼다'고 여겨 그를 시기한다.
* 마츠다이라 사다노부 : 막부의 수석 로쥬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통 관직명인 '엣츄노카미'로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 전 시대인 '타누마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을 백지화하고 검약을 강요하던 '칸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굽힘없는 완고한 성격 때문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냈으며 급기야는 쇼군에게도 노여움을 샀다. 자신의 정책에 우회적으로 비판을 던져오는 하루타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 능력은 인정하고 있다.
* 키쿠히메 : 하루타카의 정실부인. 에도 상저택에서 기거하고 있다. 기품있고 현명한 인물.
* 오스미노카타 : 하루타카의 측실. 역시 에도 상저택에서 기거하고 있다. 키쿠히메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 '호노이케' 젠자에몬 : 오사카 상인으로 환전상이자 오카야마 번의 전속 상인. '호노이케 상단'의 우두머리라서 평소에는 호노이케라고 불리고 있다. 번의 재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점잖은 성품을 지녔다. 수완좋은 상인으로 주변의 다른 상인들도 앞다투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있으며, 칸세이 개혁의 한계를 궤뚫어보고 일시적인 정책에 그칠 것이라 내다보며 느긋하게 관망한다. 하루타카에 대해서 돈의 흐름을 알고 있다고 하며 높게 보고 있다.
- 킹덤/502화 . . . . 7회 일치
* 가보니 이신이 맨 마지막이었다. 왜 이리 꾸물대냐는 질타가 쏟아지는데 "본진을 찾다 길을 잃었다"고 대꾸해서 [[토문]] 장군에게 얻어맞는다. 어쨌든 이걸로 지휘관 전원이 모였다. 왕전은 이제부터 중대한 사실을 전할 것이다. 그는 서두도 없이 "곧바로 출발한다"는 말을 꺼낸다.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듣는다.
드디어 연합종군의 진짜 목적이 하달된다. 지휘관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인다. 하지만 [[몽념]]과 [[왕분]]은 이미 아는 사실이니 동요하지 않는다. 신은 이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드디어 왔다"고 웃는다.
* 이신, 왕분, 몽념은 셋이 모여서 조금 늦게 천막을 빠져나간다. 이신은 비신대에 이 사실을 전하면 노발대발하며 꿈지럭거릴 거라고 투덜댄다. 몽념은 어차피 밤이라 목적지를 밝히지 않으면 잘 모를 테니 끝까지 말 안 할 거라고 한다. 그런 문제와 별개로, 이들은 진짜 작전의 시작을 즐거워한다.
몽념은 밤 중이라도 지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목(킹덤)|이목]]이 알아차릴 거라 본다. 그렇게 되면 양군 중 누가 먼저 왕도에 입성하냐는 경주가 되고 돌이킬 수도 없다. 이신은 첨부터 돌이킨다는 선택지 따윈 없었다며 웃는데 조용히 있던 왕분은 아직 왕도권 돌입이 실현된 것도 아니니 들뜨지 말라고 일침한다. 몽념은 잘 알고 있다며 "그러니 밤새 행군해서 이목을 뿌리치자는 얘기"라고 받아친다. 이신은 이목의 깜짝 놀란 얼굴을 기대하며 또 웃는다.
*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마남자]]는 오르도의 진로를 확인하는데 오르도는 무슨 일인지 남쪽의 중도시 "청가"를 향해 진군 중이라 한다. 이목과 마남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부하들은 어리둥절한다. 이목은 청가엔 "사마상"이 있다며 반색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사마상의 이름도 잘 모른다. 한 사람이 "청가성 성주로 병이 있어서 은둔하고 있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며 말하는데 이목은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건강하며 그저 중앙에서 오는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그런 명분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남자는 충격적인 말도 더한다.
그가 삼대천에 천거된 인물이란 것, 그럼에도 그걸 거절했다는 것에서 파문이 인다. 설마 세 번때 삼대천이 될 법한 인물이, 그것도 그런 변경에 은둔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카이네는 그럼 그 사마상이 어느 정도 인물이냐고 묻는데 이목은 자기 자신이 그를 천거햇던 장본인이라 밝힌다. 그는 자신의 청가성이 연관되지 않는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성미로, 그를 삼대천으로 만들면 좀 더 큰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물론 실력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 여기에서 등장한 '사마상'은 실제로 기원전 243년에 연나라 군대를 대파한 인물이다.
- 킹덤/510화 . . . . 7회 일치
그러나 돈각과 돈고 형제는 나름대로 공을 세웠다. 그들은 첫 출진에서 적 다섯을 죽이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간두 같은 "입만 산 쓰레기"를 같은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조롱한다. 간두가 발끈하지만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럴 수록 돈 형제는 기가 살아서 "입만 산 간두"라며 간두를 도발한다.
[[이신(킹덤)|이신]]은 원래 삼천장 이상 급에게만 나가는 술을 따로 빼돌려 신병들에게 하사했다. 송좌는 이 사실을 알려주며 손수 술을 따라준다. 간두는 좋은 술이 있어도 이 첫 출진에서 죽고 다친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마실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송좌는 그럴 수록 마시면서 "나는 살아남았다"고 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건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첫 출진 날 밤의 술이다. 무슨 맛인지 확실히 봐두라는 말에 신병들은 하나 둘 술잔을 집어든다.
* 술이 돌면서 딱딱했던 분위기도 풀린다. 간두는 숭원에게 낮에 신세진 일이 감사했다고 말한다. 숭원은 고마우면 강해지라며 "입만 산 간두"라는 별명을 부르며 쏘아붙인다. 그러자 송좌가 신병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며 그의 과거사를 운운한다. 사실 검의 달인인 숭원도 첫 출진때는 쫄아서 오줌을 지린데다 누구 하나 베지 못했던 것이다. 신병들은 물론 미평 같은 고참들도 몰랐던 일이라 왁자지껄하게 놀림거리가 된다. 송좌도 그때 옆 부대에 있다가 우연히 들은 일이었다. 숭원은 다소 민망해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숭원이 17살이었고 오줌을 참고 있다가 적에게 기습을 당했었다. 그 뒤 한 동안 "오줌싸개 숭원"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미평은 드디어 숭원의 약점을 잡았다며 좋아라한다. 심지어 자기 첫 출진 때보다 심하다고 마구 놀려대는데 숭원이 살짝 열받아서 "놀린 놈은 죄다 반쯤 죽여놨다"고 날을 새우자 조용히 찌그러진다.
하료초는 첫 출진부터 중임을 떠맡겨 미안하다고 위로하는데 창인은 그 점은 오히려 기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게 문제였다. 하료초는 그가 아직도 손을 떠는걸 발견한다. 창인은 그저 너무 세게 연사를 한 탓이라고 말하다가 "게다가 처음으로 사람을 쐈다"고 덧붙인다. 하료초는 후자 쪽이 떨림의 진짜 원인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게 사실이었다. 창인은 이런 나약한 자가 부대에 들어와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료초는 이번 전투에서 비신대의 제 1공은 창인이라며 격려한다.
- 킹덤/511화 . . . . 7회 일치
*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왕전의 실종은 군 수뇌부만 아는 극비로 처리됐고 일선 병사들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이틀의 휴식이 다음 진격을 위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환의는 호출을 받고 회의실로 들어선다. 이미 [[양단화]], [[몽념]], [[이신(킹덤)|이신]], [[하료초]], [[왕분]]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이 회의를 소집한건 몽념이었다. 하지만 몽념이 부른다고 올 환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부른던 양단화의 몫이었다. 환의는 다른 얼굴들이 있는걸 보자마자 양단화에게 속였다고 탓하지만 양단화는 "혼자 있는다고 하진 않았다"고 넘긴다. 양단화는 용건이 있는건 사실이라며 회의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지금 신이 앉아 있는 자리는 사실 환의가 앉으라고 준비한 것. 양단화가 비키라고 하자 신이 왕분더러 양보하라고 하지만 그가 따를리가 없다. 결국 하료초에게 끌려나오는 신.
몽념은 신을 진정시킨다. 자신도 비신대와 산민족이 강하다고 여기긴 하나 성의 설계 자체가 위화감을 준다. 몽념은 이틀간 성을 돌아본 뒤 확신을 얻었다. 열미성은 묘하게 동선이 흐트러져있고 성벽의 높이도 미묘하다. 이곳은 분명 의도적으로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진 성이다. 왕전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기 때문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신은 그렇다쳐도 왜 총대장이 사라지는 거냐고 묻지만 몽념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며 설명을 마친다.
몽념이 그 이야기를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왕전이 없는 지금 이야기하는건 부적절하지만, 진군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예정보다 많은 병력을 열미에 남긴 채로 왕도권에 진입하는 방법이다. 약하더라도 성은 성이니 충분한 병력이 있다면 수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만큼 왕도권 진입에는 병력 수가 적어지고 그 병력만 가지고 업을 공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합종군 같은건 필요도 없었을 테니 사실상 불가능한 걸로 봐야한다.
- 킹덤/522화 . . . . 7회 일치
* 사실 기수는 눈 앞의 마광군보다 낙화대를 더 위협적으로 여기는데 마광군을 맞서는 동안은 언제든 배후를 노릴 수 있는 유격군으로 전환되기 때문.
* 마광군의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부관이 그 명성 높은 기수군 치고는 너무 쉽게 처리됐다며 오히려 실망한 기색이다. 마광은 그게 "양동의 공"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수군의 이목을 끌어준 낙화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설마 기수군을 이렇게까지 희롱할 줄은 몰랐다며 그 지휘관인 몽념 또한 입만 산 녀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 솔직히 말하면 마광은 몽념을 우습게 봤다. 그가 가문의 위광을 등에 엎은 애송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왕전이 작전에 앞서 몽념을 따로 불러냈을 때도 그런 태도였다. 그는 왕전을 대신해 이 "양동작전"의 개요를 상세히 설명했다. 몽념의 낙화대는 미끼로서 중대한 역할이라 추켜세웠지만, 실은 그들이 실패해도 마광군이 지는 일은 없을 거라며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 말뜻 때문이었는지 몽념은 유독 독기가 서린 눈으로 마광과 눈을 마주쳤다. 마광은 그런 눈빛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본인 면전임에도 "집안 명성 밖에 내세울게 없는 애송"이라 부르며 왕전에게 달리 미끼가 될 책략이나 내려주는게 어떻겠내고 건의하려 했다.
* 그의 입에서 "파상공세"란 말이 나올 줄은 왕전도 마광도 몰랐다. 그런 언질을 내린 적이 없고 달리 암시한 사실도 없었다. 그렇다면 몽념은 자군의 배치만을 가지고 왕전의 전략을 간파했다는 말이 됐다. 마광이 위협하듯이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지만 몽념은 그저 미소 지을 뿐. 그리곤 "최고의 형태"를 만들고 기다릴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만 남긴다. 그리고 꾸물대면 자기들이 "주역" 자리를 뺏어갈지 모른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러나 두 장군 중 그걸 농담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 마광군의 2파가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기수군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게다가 그 뒤에는 3파, 4파까지 다가오고 있으니 누가봐도 조군 우익이 괴멸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대장인 기수가 손놓고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기수는 전의를 잃으려는 부대를 질타하고 발빠른 대처로 추스렀다. 우선 [[여극]]의 기마 1천을 좌측으로 보내고 이미 전선에서 벌어진 난전은 무시했다. 노려야 할 것은 뒤따라 오는 적의 3파의 좌전방. [[마정]]을 구하러 간 1만은 그대로 속행하게 하고, 마정을 구해내면 그대로 마정의 지휘 아래 적 3파의 우전방을 치게 했다.
부관들은 여기서는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 때라고 진언하나 단칼에 거절한다. 물러난다면 적은 그만큼 철저하게 뒤따라올 것이다. 기수는 이 자리에서 결사항전할 것을 지시하며 적이 소수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달하게 한다. 적이 부대를 나눠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천 씩 4파로 나눈 총 2만 병력. 기수군이 총 3만이니 병력면에서 압도하고 남는다는 논리였다. 계산 자체는 맞았다. 부관들 눈빛에 희망이 돌아온다.
- 토리코/384화 . . . . 7회 일치
* 미도라는 플로제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캐묻는다. 그는 플로제를 죽인 장본인이 아카시아라 생각한다.
* 아카시아는 "거기까지 이치류에게 들었냐"고 말하며 사실상 인정한다.
*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다르다"며 새로운 사실을 폭로한다.
* 그 말을 들은 아카시아는 "내 아이는 결국 태어나지 않았던 건가"라며 실망하는 듯한 말을 하는데
* 이렇게 되면 스타준과 토리코도 엄청나게 고령이 되는데, 실제로 스타준은 "나는 보기와는 달리 젊지 않다"고 한 적이 있다. 복선이었던 셈.
* 팬덤에서는 거의 확실시하는 분위기인데, 이 때문에 네오를 풀코스로 선언한 토리코는 패륜아라고 욕을 먹고 있다.--아버지가 주신 고기 요리--
- 프로 스포츠 . . . . 7회 일치
[[냉전]] 시기에는 [[국가]]의 개입으로 아마추어리즘이 퇴색하게 되었는데, 공산권을 중심으로 사실상 국가에서 아마추어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생계까지 책임져주면서 국위선양을 위하여 아마추어 스포츠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스포츠 선수 군단'을 육성함으로서 '프로나 다름없는 아마추어'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 이러한 전략으로 [[동독]] 등은 많은 메달을 따냈고 [[국위선양]]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이 같은 흐름은 크게 퇴색하였다.
소련의 CSKA 모스크바는 당시 소련군이 육성하던 엘리트 스포츠의 한 단면으로 평가될 수 있었으며, 소련군 소속이지만 이는 소련의 대외적인 체육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한 장으로써 사실상 세미프로 스포츠클럽으로 봐도 무방하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이후 공산권이 무너지고 스포츠 시장이 구 공산권에 뻗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스포츠 마케팅]]이 극도로 발전하며 아마추어리즘을 퇴색시켰는데, 아마추어 선수라도 기업에서 막대한 스폰싱을 받으면서 사실상 '전업 아마추어 선수'로서 활약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고색창연한 아마추어리즘 보다는 '최고의 선수들의 최고의 경기'를 보는 것을 바랬고, 그것이 아마추어 대회를 유지하는 입장에서도 나았기 때문이다. 결국 1974년에 [[올림픽]]에서 아마추어 규정이 사라지면서 '아마추어'라는 틀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또한 아마추어 리그인 K3도 K리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적어도 인기 종목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경계는 사실상 전통적인 방식으론 더 이상 경계를 가르기가 어려워 졌다고 볼 수 있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영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 하이큐/232화 . . . . 7회 일치
* 왕년의 육상실력으로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한 키요코. 히토카를 통해 짐을 전달한다.
*이것의 [[시미즈 키요코]]의 기억. 육상에 실패했던 그때의 기억이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그때 짐을 맡고 있었는데 [[나리타 카즈히토]]에게 남기면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런 것 같다. 야마구치가 죄송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히나타도 야마구치 탓이 아니라며 시끄럽게 군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서둘러 역의 분실물 센터로 연락한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사러 가야한다. 그때 [[카게야마 토비오]가 폰은 어디에 뒀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니 그 가방 안에 있었던 것. 서둘러 전화를 해보니 가방을 바꿔간 사람이 받는다. 어린애로 착각해서 바꿔갔던 것 같다.
* 달리면서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할 때를 회상하는 키요코. 시작은 [[사와무라 다이치]]의 권유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줄곧 해온 육상을 그만두었다. 연습을 거듭해 쌓아온 것은 상상보다 훨씬 허무하게 끝난다. 그 상실감과 허무함을 잊기 위해 시작한 일. 그녀는 육상을 잊기 위해 배구부 매니저일에 몰두한다.
*한편 체육관에선 실전에 서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우카이 코치는 도쿄 체육관의 코트 특성에 대해 보통보다 덜 미끄러지는 재질이나 평소처럼 뛰어다니다간 큰 일이 난다고 주의준다. 그리고 최대한 땀을 빼서 그걸로 마찰을 줄이라는 요령을 전달한다.
* 공식 워밍업 타임이 끝나는 휘슬이 들린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착했다. 키요코는 관중석에서 코트 위의 히토카에게 짐을 넘긴다. 짐은 확실히,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키요코는 코트 위의 3학년들과 승리의 제스쳐를 교환한다.
키요코의 중학시절, 고교1학년 시절도 잠깐 나오는데 중학교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던것 같다. 1학년 땐 트윈테일에 안경이라는 실로 반장스러운 속성.
- 하이큐/248화 . . . . 7회 일치
카노카는 그렇게 단순한 말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했다. 그녀는 타나카를 남겨두고 팀으로 달려간다. 타나카는 "잘하게 됐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확실히 그녀는 최근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 히나타의 실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옆에서 연습 중인 선수들도 듣고 그 강호다운 과시를 질색한다. 이때 카게야마가 두말없이 "미안하게 됐다"고 하자 히나타가 버럭한다.
* 스가와라는 관중석에서 미야 아츠무의 극성팬을 본 일을 이야기한다. 부채에 커다랗게 아츠무의 이름을 써서 가지고 다니는게 마치 아이돌 팬덤같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실제로 그들은 아이돌 같다며 1위팀 이타치야마하곤 다른 의미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실력과 화려함을 겸비한 "최강의 도전자"라는 캐릭터. TV에서도 이걸 살려서 자주 취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그렇게 음침한 소릴 하자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는 그가 실성한 줄 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그런 엄청난 "격차"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 관중석은 아직 1시합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기분 나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음악단은 물론이고 치어리더의 안무와 시라토리자와 학교를 연상시키는 전교 응원. 엄청난 규모의 "대악단" 응원단이다. 카라스노의 보통 규모 응원단은 소리가 파묻힐 지경이다. 사실 이나리자키는 배구 말고 취주악부로도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그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그게 낭비가 아닌지 야마구치처럼 기가 약한 선수들은 응원전 만으로 벌써 위가 쑤시다며 위축된다. 히나타같은 단세포는 "커다란 나팔이 멋지다"며 정작 응원에는 무신경하다.
- 허건엽 . . . . 7회 일치
드디어, 2014년 7월 10일에 부진했던 [[엄정욱]]을 대신해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1군에 올라와서는 단 5이닝만 던지고 실점은 하지 않은 채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6월 11일, 의 뒤를 이어 2회에 올라와서 아웃 하나 잡고 2회를 끝낸 후 3회에 안타 안타 안타 플라이 볼넷 안타라는 최악의 투구를 보여주면서 0.2이닝 5실점으로 먼지나게 두들겨맞고 강판당했다.
...으로 보였으나 불펜으로 등장해 팀의 창단 첫 세이브를 따냈다. 이후 질롱의 사실상 마무리투수로 뛰고 있으나 팀의 부진으로 세이브 기회가 거의 오지 않는 상황. 주축 불펜 투수로 등판 중이나 7라운드 종료 시점 8경기 2세이브 8.71로 영 부진하다. 다만 원래부터 구위가 빼어난 투수였던지라 10.1이닝동안 삼진 10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여전하다.
1월 4일 [[애들레이드 바이트]]전 10회말 4-1로 앞선 승부치기 상황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안타 2개, 볼넷 1개를 내주며 누상 주자를 모두 들여보내고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는데 세 타자를 KKK로 잡아내며 터프 세이브로 경기를 매조지었다. 시즌 3세이브째. 1월 13일 [[퍼스 히트]]전에는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의 극적인 역전승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시즌 최종 13경기에 등판해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9.17을 기록했다. 17.2이닝동안 탈삼진 19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입증했으나 무너지는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등 기복이 심했다. [* 4실점 경기 4번, 2실점 경기 2번] 다만 세이브 성공률이 100%로 세이브 찬스나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귀신같이 호투하며 경기를 날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질롱에서 가장 접전인 상황에 많이 올라온 투수였다. 참고로 2018시즌 본인의 퓨처스리그 기록과 놀랍도록 비슷한 성적을 냈다. [* 12경기 평균자책점 9.28 10.2이닝 8탈삼진. 퓨처스에서는 6실점 경기가 두 번 있었다.]
- 허근욱 . . . . 7회 일치
'''허근욱'''(許槿旭, [[1930년]] [[3월 28일]] ~ [[2017년]] [[3월 25일]])은 [[대한민국]]의 작가, 소설가, 문인, 방송인이다. 1959년 KBS 방송국 작가실 집필이 되고, [[1960년]] 문단에 등단하였다. [[1984년]] KBS 방송국 전문위원이 되었다가 1989년 말에 정년퇴임하였다. 대표작은 내가 설 땅은 어디냐(1961), 흰 벽 검은 벽(1963), 멩가나무 열재 이야기(1976), 끝나지 않는 겨울(1982) 등이 있다.
그 뒤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고초를 겪은 후 글쓰기에 전념하면서 1959년 KBS 방송국 작가실 집필이 되었으며, [[1960년]]에는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뒤 KBS 방송국의 집필담당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1989년]] [[정년 퇴임]]하였다. [[2001년]]에는 아버지 허헌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을 담은 전기문 《민족변호사 허헌(許憲)》을 출간하였으며, 딸의 시선에서 바라본 허헌의 삶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 돋보이는 저작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 《운명의 숲:선비소설문학선 1》 (도서출판 선비, 1988)
그의 작품 중에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문학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남한 쪽에서의 모종의 제약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데올로기나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평도 있다. 또한 일찍이 이념과 삶의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버지 및 가족과 결별하고 월남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 분단과 가족공동체의 회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있다는 작품평도 있다.
* [[1959년]] [[한국방송공사|KBS]] [[방송국]] 작가실 집필
* 허근욱, 《운명의 숲》 (선비, 1988)
- 허드슨 대학교 . . . . 7회 일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대학'''. 미국 창작물에서 자주 나타난다. 왠지 실제로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없다.
허드슨 대학이 언제 처음으로 가상 매체에 언급되었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런 취급을 받는 이유는 허드슨 대학이라는 명칭이 주로 '''범죄수사물'''에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 대학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묘사하면 실존하는 대학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착각 될 수 있으므로 허드슨 대학이라는 가공의 대학명을 선택한 듯 한데, 미국 범죄수사물 드라마가 워낙 강력한 사건을 소재로 다루다보니 '''천하의 개막장 대학'''(…)이 되어버렸다.
사실 허드슨 대학에 얽힌 대부분의 악명을 로 앤 오더가 만들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대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범죄를 보여줬다.(…)
- 헤소린 가스 . . . . 7회 일치
여러가지 재난에 시달리는 진구를 위해서 도라에몽이 헤소린 스탠드를 꺼내서 헤소린 가스를 주입해준다. 진구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 혼나거나 넘어져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맞거나, 개에게 물리거나 차에 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 효과가 떨어지자 진구는 다시 헤소린 스탠드를 사용한다.
여기서 진구가 헤소린 가스를 남용하는 것을 보고 퉁퉁이와 비실이는 헤소린 스탠드를 강탈해간다. 진구는 가스의 영향 때문에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진구는 이렇게 좋은 가스는 모두가 나눠야 한다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가스를 주입해주고, 이걸 본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를 가져다가 유료로 제공한다.
진구와 도라에몽은 어른들을 불러와서 사태를 해결하려 한다.[* 퉁퉁이 어머니, 비실이 어머니, 선생님. 보통 어른들이 나서면 대체로 해결 구도로 흘러가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무서움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에 매달려서 의존을 버리지 못한다. 가스가 다 떨어진 뒤 도라에몽이 일부러 역효과(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상태)를 내는 가스를 주입해줘서 겨우 헤소린 가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남용되어, 제2차 각성제 남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남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남은 히로뽕이 남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비슷한 것으로 [[소기 가스]]가 있다. 효과는 소기 가스와 각성제를 참조한듯.
- 현실문화사 . . . . 7회 일치
이후 "현실초점"이라는 이름의 계간지를 발간했다. 해당 잡지는 창간호에서 "우리 사회 내부의 무질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욕구 분출과 과격행동들이 빚어낸 민족의 재난을 경계하고 올바른 국가관·가치관을 뿌리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잡지 창간 목적을 밝혔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영] 해당 잡지의 내용은 재야와 [[운동권]]의 논리를 반박하는게 주를 이루었다.
이후 1990년 10월, 보안사에서 탈영한 윤석양 이병(당시 24세)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보안사가 현실문화사를 운영하던게 드러난다.
이 이후의 현실문화사에 대한 정보는 추가 바람.
현재 현실초점 1권을 국회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http://academic.naver.com/search.nhn?field=3&_id=1&query=%27%EA%B6%8C%ED%98%B8:%ED%98%84%EC%8B%A4%EC%B4%88%EC%A0%90%201%EA%B6%8C%27|네이버 전문정보의 검색결과]]도 참조할 것.
현재도 "현실문화"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존재하고 있지만, 해당 출판사는 본 페이지에서 설명되는 잡지 회사와 다른 것으로 보인다.
[[http://news.joins.com/article/2502319|중앙일보 - 보안사서 잡지사도 경영/「현실초점」/재야ㆍ운동권논리 비난]]
- 현정건 . . . . 7회 일치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高宗)]] 24년([[1887년]])에 [[대구광역시|대구(大邱)]]에서 현경운(玄炅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0년]]에 중국으로 유학, [[상하이 시|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임시의정원|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이규홍(李奎洪) 등과 함께 1919년 9월 17일 경상도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20년]]에 상하이 주재 [[고려공산당|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입당하였고 [[1922년]] 10월 20일에 열린 베르프네우딘스크(Verkhneudinsk) 회의<ref group="설명">이동휘의 상하이 고려공산당과 김철훈ㆍ안병찬의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경쟁을 완화하고 두 세력을 합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그들에게 베르프네우딘스크에서 연합대회를 갖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한인 공산주의 운동 계열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정재달, [[조봉암]] 등도 여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대표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탄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철수, 코민테른 당국이 각파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조정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코민테른은 양파 모두 해산하고 단일당을 조선 안에 세울 것을 지시함으로써 상하이파도 이르쿠츠크파도 없어지게 된다. 김학준 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2005, 민음사.</ref>에 윤자영(尹滋英)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에 상하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는 윤해(尹海)ㆍ신숙(申肅) 등과 더불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왕삼덕(王三德) 등과 참여하였고 2월 5일에 [[여운형|여운형(呂運亨)]]과 더불어 외교분과위원으로 지명되었으나, 창조파가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과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결정인데 출석원(員)의 2/3나 되는 개조안을 무시하고 사신 5인이 퇴석 통고를 하고 불착한 대로 국호를 조선공화국로 정하여 새 국가를 만든 것을 성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ref>「創造派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東亞日報)』 1923년 6월 25일자.</ref> 7월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한국독립촉진회에도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 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 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였다. 8월에 조선의 관서([[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상하이교민단(上海僑民團)이 내지동포수재구제회(內地同胞水災求濟會)를 조직해 9월 26일에 수재의연금 110원을 동아일보사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ref>「同胞의 ㅁ愛! 해외각디동포의열렬한동정 가련한수재당한형뎨들에게」 『동아일보』1923년 10월 4일자 기사.</ref> 여기에 현정건의 이름이 실려 있다.
[[1924년]] 6월,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해 오는 조선인 학생들의 중국 사회 적응과 그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김규식|김규식(金奎植)]]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하이에서 [[1917년]] 여운형이 세웠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내에 개설된 조선인 학생을 위한 예비교(豫備校, 예비강습소)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영어 과목을 맡아 가르쳤고<ref>이는 국내에도 알려져 신문에 「上海에 豫備講習」(『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자), 「豫備校 設立」(『시대일보』 1924년 6월 9일자) 등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ref>, 그 뒤 상하이 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된 뒤에도 여운형, 김종상(金鍾商) 등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9월에는 상하이교민단에서는 실시한 의사원(議事員) 총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ref> 재상해일본영사관경찰부(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46년, 동문사서점(東文社書店)</ref> 11월에는 상하이에서 윤자영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 상하이한인청년동맹)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고 『횃불』, 『새길』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영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영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1925년]] 5월 9일에는 상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영ㆍ김상덕(金尙德)ㆍ최창식(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상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상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1일 기사에는 1월 3일 오후 1시에 현정건의 발인이 이루어질 것이고 영결식이 가회동 177번지의 자택에서, 묘소는 동소문 밖의 미아리에 마련되었다고 적고 있다. 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은 남편이 죽은 뒤 이레, 달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조금 밝은 모습을 보이는 듯 싶더니, 끝내 2월 10일에 "(남편이 없이) 아무래도 살 수가 없다", "죽은 몸이라도 형님(현정건)과 한 자리에서 썩고 싶으니 (남편 옆에) 같이 묻어달라"는 요지의 유서를 시동생 현진건에게 남기고 현정건의 영전 앞에서 음독자살하였다.<ref>「玄鼎健氏未亡人 尹德卿女史殉從」 『중앙일보』 1933년 2월 12일자. 「結緣卄年에 同居는 半世」 『동아일보』 1933년 2월 12일자. 유서의 전문도 함께 실려 있다.</ref> 남편이 죽은지 41일만의 일이었다. 다른 자식은 없었다.
[[1922년]] 동생 현진건이 [[홍사용]] · [[박종화]] 등의 문인들과 함께 동인으로 참여한 문예지 《[[백조 (잡지)|백조]]》 창간호에 [[이광수]]의 악부(樂府)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현진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한국의 꽃봉오리 같은 젊은 청년들이 발표하는 깨끗한 《백조》지에, '귀순장'을 쓰고 항복해 들어간 이광수가 동인이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빨리 동인에서 제거하라"며 항의했고, 결국 《백조》 동인에서 이광수는 빠지게 되었다.
- 홍순언 (1530년) . . . . 7회 일치
그의 가계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이다.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다. 출신지는 한성부라는 설과 [[경기도]] [[광주군]]이라는 설이 있다. 1899년에 편찬된 [[경기도]] [[광주군]]의 향토지인 광주군지 인물편에 그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할아버지 홍경창(洪慶昌)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안동부사(安東府使)등을 역임했고, 큰아버지 홍신(洪愼)은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 양주목사(楊州牧使), 형조참의(刑曹參議), 공조참의(工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1539년]](중종 34년)에는 [[명나라]]에 진하사(進賀使)로 다녀오기도 했다. 아버지 홍겸은 [[1531년]] 역과에 급제하여 [[명나라]]에 두 번 역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동료 역관들은 홍순언이 [[명나라]]에서 소녀를 구한 사실을 물었으나 그는 덮어두라며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종계변무]]란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백여 년간 명(明)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잘못 기록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하였던 사건이다. 태조때부터 시정을 위해 사신을 15회나 파견하였지만 전부 거절당하였다. 지속적으로 거부당하자 조선 14대임금인 선조는 “종계변무를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목을 쳐버릴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역관들은 겁에 질려 선뜻 나서지 못했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 생모 : 미상, 홍겸의 소실
* 선조실록
* 선조수정실록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6회 일치
2013시즌 K리그에서 벌어진 심판매수 사건으로 이 사실이 대중에 밝혀진 건 2015년 9월 21일에 벌어진 안종복 전 [[경남 FC]] 사장이 한강에 투신하면서부터였다.
웃긴 사실은 매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남은 강등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는 동년 11월에 검찰이 공식으로 발표함으로써 경남은 매수구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연맹은 2016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경남 FC에게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1&aid=0001794783|승점 -10점과 벌금 7000만원을 부과]]함으로써 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연맹차원의 제재까지 가해지게 되었다. 당시 경남팬들은 말도못할 [[멘붕]]을 겪음은 물론이고, 구단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정도. 그리고 이 사건은 잊혀지나 했는데...
이 사실을 접한 전북팬들은 2015년 경남팬들이 겪었던 멘붕을 그대로 겪게 되었으며, K리그 팬들은 약팀이었던 경남부터 강팀인 전북에 이르기까지 심판 매수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전북의 스카우터 C모씨는 직위로만 보면 일개 직원처럼 보여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611035|전북의 발표처럼 개인의 잘못으로만 비춰질 수 있으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고 있는 저 C모씨는 전북 프론트 유일 15년 경력 최고참으로 전북 내부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경남과 마찬가지로 전북도 고위급 인사가 저지른 범죄인데다가 전북 역시 "단순한 도의적 책임"만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6년 6월 16일에 검찰의 추가조사결과 이미 조사를 받고 있던 심판들이 2013시즌 당시 경기배정을 담당하던 심판위원장에게 금품을 주어 경기에 배정받는 행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2014시즌까지는 심판위원장에게 심판배정의 권한을 줬을 시기다. 컴퓨터로 심판을 랜덤으로 배정하기 시작한 건 2015시즌부터이므로 적어도 2014시즌까지는 조사대상이 확실히 되고 있다.]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6회 일치
* 나메리카와는 그가 천일수를 피해서 실망하지만 이 강렬한 반격을 보고 "얌전하게 생겨서 엄청난 새디스트"라며 더 즐거워한다.
* 중요한 국면에서 나메리카와가 수를 아끼다 실수를 저지른다.
* 이 통한의 실책을 함정으로 만들어서 키리야마를 끌어들이려 한다.
* 최후의 속임수가 실패하고 승기가 넘어간 걸로 본 나메리카와는 패배를 시인한다.
* 중계실에선 끝까지 이 대국을 관찰하고 있다.
* 그는 택시를 잡아놓고 "대국이 길어져 중계실 같은 곳에 묶어둬서 미안하다"며 택시에 타길 권한다.
- Crusader Kings 2/DLC . . . . 6회 일치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특징 중 하나인 매우 많은 양의 DLC를 실천하고 있다.
이외에도 조공 시스템, 실크로드 시스템 등이 추가되었다.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상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6회 일치
하프트랙에 올라탄 보병 사단. 사실 기갑 사단으로 취급된다. 차량화보병보다 강하지만 생산하는데 공업력이 많이 든다.
공격력은 볍진같은데 내구성은 높은 놈들. 사실 전투용이 아니라 기능성 사단이다. 근처 부대의 보급 효율을 높이고 소속된 부대의 지휘관이 대장(General)이나 원수(Field Marshal)이라면 지휘 패널티 한도도 올려준다.
>이 화포들은 글라이더에 실려 공수부대와 함께 공수될 수 있습니다.
>이 전차들은 글라이더에 실려 공수부대와 함께 공수될 수 있습니다.
주둔한 공군 기지가 적 육군에게 점령되면 주둔하고 있던 공군 부대들은 몰살당한다. 위험한 것 같으면 미리 대피시켜두자. 공군 부대의 대다수가 생산에 무지막지한 공업력을 퍼먹으므로 실수로 날려먹었다면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이 온다.
실제 역사에서는 일본군이 애용했던 대형 잠수함들. 일반 잠수함의 두배 정도 되는 작전반경을 가지고 있다. 대상선 공격에 특화된 일반 잠수함과 달리 대함 공격에 특화되었다.
- Victoria II/개혁 . . . . 6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s-5.1|실험적인 철로 기술]] 획득
* 실업급여
* 실업수당 +25%
* 실업수당 +50%
* 실업수당 +75%
* 실업수당 +100%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0화 . . . . 6회 일치
우마루와 친구들은 실핀의 지인이 운영하는 케이크 뷔페에 초대받는다.
* 케이크뷔페에 초대 받은 우마루와 친구들.(에비나, 키리에, 실핀)
* 오픈 준비 중인 가게로 주인 아주머니는 실핀과 아는 사이라 초대 받았다.
* 실핀은 초콜릿 분수를 정복하려 한다.
* 키리에는 당황하다가, 실핀에게 스틸 당하고 만다.--그런거 스틸하지 마라.-- --금수저 인성하고는--
* 에비나는 더 먹고 싶다고 해서 실핀이 경악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1화 . . . . 6회 일치
골든위크에 할 일이 없는 봄바는 UMR와 실핀과 어울려 논다.
* UMR, 실핀은 골든위크라 신나하는데 봄바는 "어른이 되면 딱히 즐겁지 않고 뒹굴거리다 끝난다"고 한탄한다.
* 하지만 고전 게임의 감각은 요즘 게임과 달라 UMR와 실핀도 애를 먹고 있다.
* UMR와 실핀이 이 게임들에 대해서 아냐고 묻자, 봄바는 지난 번에 15만점 골램 운운하다 창피를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잘하진 못한다"며 겸손을 떤다.
* 간만에 UMR와 실핀에게 존경의 눈빛을 받은 봄바는 대만족.--고갤러를 바라보는 뉴비의 모습--
* UMR와 실핀은 골든위크 동안 모든 게임기를 섭렵하자고 결심한다.
- 긴나라 . . . . 6회 일치
긴나라는 기원이 불확실하다. 산스크리트어 킴나라 자체도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뜻하는 말로서, 이들의 불확실한 정체를 가리키는 의문사가 곧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불교경전이 써질 당시에 이미 긴나라의 정체는 불확실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일설로는, 옛날 인도의 히마찰 프라데시의 킨나우르(Kinnaur)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인도-티베트 종족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이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며 대승불교에 경도되면서 불교 경전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칠레가 아니었다니 실망이야...--
돌아온 수다나는 어머니에게 마노하라가 새로 변신하여 달아났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수다나 왕자는 사랑하는 부인을 찾아서 온 천지를 헤메고 기나긴 모험 끝에 긴나라의 나라에 찾아간다. 마노하라와 다시 맺어진 수다나 왕자는 다시 왕국으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천룡팔부 자체가 아수라, 야차 등 몇가지를 제외하면 사실 크게 관심을 못 받지만 긴나라는 독보적이다.
- 김경식 (1960년) . . . . 6회 일치
* 2004.03 ~ 2005.07 :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
* 2012.01 ~ 2013.02 : 국토해양부 건설수자원정책실 실장
* 2013.02 ~ 2014.02 :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국토교통환경비서관
- 김미경(강사) . . . . 6회 일치
>꿈이라고 말해놓고 건드리지 않으면 계속 꿈이야. 꿈이라고 말해놓고 바로 실행하면 꿈은 뭐다? 더 이상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여러분, '꿈'자를 가슴 속에 오래 두지 마십시오. 바로 현실로 전환시켜 버리세요.
>독창성을 인정해줬다는 점에 대해 이화여대에 고마워요. 그럼에도 사실 잘못은 잘못이고 표절은 표절이지. 제가 무지했어요. 잘못한 건 확실해요.
2013년 3월 석사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논란이 일었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본인도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40309/61519891/3|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 김정우(1990) . . . . 6회 일치
[[FNC엔터테인먼트]] 오디션 1등 출신. 실제로 어느정도 연습생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며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남녀공학의 남자 메인 보컬. 데뷔 초에는 일부러 적은 파트를 맡았다가 --짬밥을 먹어가면서-- 활동을 오래할수록 파트를 늘려가면서 차차 뛰어난 가창실력을 드러내려는 케이스로 보인다. [[f(x)]]의 [[루나(f(x))|루나]]나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지숙]]이 그 예. --그런데 그룹자체가 이래서...-- 현재로서는 노래실력을 라디오에서 가끔 솔로곡을 부르는 것으로밖에 들을 수 없다.
일부 멤버의 계약 만료로 스피드가 사실상 해체된 이후로는 계약 해지 사실이 멤버 중 가장 먼저 알려졌다. 이후 SNS로 근황을 알렸으나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전부 삭제하고 다시 시작하는 등 마음정리가 필요했던 걸로 보인다.
2016년 9월 20일, 목동의 한 미용실을 방문하여 연기자 활동을 준비중이라는 근황을 알렸다.[[http://naver.me/xlZKXZJN|#]]
- 김필곤 . . . . 6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7월 29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을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태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98906]</ref>11월 28일에 [[한총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계명대]] 총학생회장에 대해 "11기 [[한총련]]은 10기 한총련의 기본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집행부를 장악해 [[범청학련]]의 기본 대오로 활동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1기 한총련이 범청학련을 통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상 지휘·조정을 받아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을 수용하고 있고, 북한 쪽과 빈번하게 불법 접촉 및 서신교환을 하면서 하달받은 투쟁지침에 따라 11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했다"며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2년6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6082]</ref> 2004년 2월 6일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당선되면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원, 아들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박진규]] 영천시장에 대해 "시장에 당선된 후에 받은 1천만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서도 2000만원에 대해서는 "범죄 입증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뢰액이 1천만원이상 5천만원 미만 일 때는 5년이상 징역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추징금10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26584]</ref>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상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영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 김형렬 (1959년) . . . . 6회 일치
* 제15대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경북종합상황실 실장(1997년)
* 제16대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경북종합상황실 실장(2002년)
* 한나라당 대변인실 행정실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6회 일치
* 걸물학원 신도 요우는 막무가네로 보였지만 실은 책략가.
* 미도리야 이즈쿠 일행과 바쿠고 카즈키 일행, 모두 무사히 통과해 대기실에서 만나는데, 바쿠고가 미도리야의 비밀을 아는 듯한 말을 한다.
* 통과자 대기실로 향하는 바쿠고 카즈키 일행. 카미나리 덴키는 비슷한 시기에 통과한 미도리야 이즈쿠 일행을 발견한다.
* 대기실에서는 먼저 통과한 A반 학생들이 이들을 맞이한다.
* 대기실의 A반 학생들도 이젠 9자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전원은 무리였나 하고 낙심한다.
* 대기실에 모인 A반. 전원 통과를 자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6회 일치
* 근신이 풀리고 등교한 미도리야. 교실에 이 학교의 톱 유망주들 "빅3"가 방문하는데 그 중 하나가 벽에 나타난 그 얼굴이었다.
* 조회가 끝나고 3학년부터 교실로 돌아가는 길. 한 여학생이 앞에 있는 남학생에게 "어제 싸운 1학년들"에 대해서 말을 건다. 그런데 아주 무례하게 머리를 툭툭 건드리는데, 정작 남학생은 별다른 대꾸도 없이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듯 하다.
*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자와 쇼타]]는 본격적으로 반별 조회시간을 통해 본격적인 신학기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아시도 미나]]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잡담을 한다. 대담하게도 [[아스이 츠유]]를 돌아보며 "그 얘기"가 없다고 소근거린다. 아이자와가 그걸 놓칠리 없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럼 웅영제 때 고생한건 의미가 없는거 아니냐고 아우성친다. 너무 격한 반응이라 [[사토 리키도]]가 진정시킨다. [[이이다 텐야]]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웅영제 때 스카웃을 받기 위해 아득바득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자와의 설명으론 바로 그 웅영제에게 쌓은 인맥에 기반한게 인턴제도다. 게다가 이건 수업도 직업 체험도 아니라 "진짜 히어로 활동"이기 때문에 미리 지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인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본래 사무실 별로 인턴을 모집하는 제도였지만 웅영고 학생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소 편법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아이자와의 설명을 들은 우라라카는 흥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앉는다.
* 그런 일과 초조함을 품은 채로, 바쿠고보다 한 발 먼저 교실에 복귀한다. 미도리야는 3일의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마침 아이자와는 미도리야도 돌아왔으니 인턴 제도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한다.
* 오늘은 인턴 제도가 직업 체험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현재 참가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아이자와는 바쁜 사람들을 일부러 초청했다며 새겨들으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불려온 선배들은 현 웅영고 내에서 "톱3"로 군림하고 있는 유망주들. 이른바 "빅3"다. 아이자와가 부르자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세 명의 선배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6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는 반드시 에리를 구하겠다고 다짐하나 현실적인 여건은 좋지 않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처한 고난이 만만치 않다. 불평만 늘어놓던 레게풍의 히어로는 이번에도 둘의 의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둘을 "꼬마"라 부르며 아무리 열을 올려봤자 쉽지 않은 일이라 강조한다. 우선 그 에리라는 소녀가 적의 핵심적인 자원이라면 당연히 꼭꼭 숨길 것이다. 하물며 소녀가 예기치 않은 트러블로 외부로 노출, 히어로 둘에게 보여져 버렸다면 더욱 방비를 두텁게 할 것이다. 레게풍 히어로는 자신이라면 더이상 아지트에 두지도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에핫사이카이의 본거지를 틀어봤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을게 분명하다. 하려면 적어도 소녀가 어디에 있는지 특정할 필요가 있다.
* 나이트아이도 그 부분을 난점으로 지목한다. 아직은 전체 계획도 목적도 불분명. 한 번에 확실히 노리지 않으면 반격의 기회를 허용한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현재 시에핫사이카이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조직들의 영역을 전부 리스트로 만들었다. 거의 전국적인 규모의 리스트. 각지의 마이너 히어로들까지 소집한 건 이 때문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토박이들이 조사에 유리할 터. 나이트아이는 각자 할당된 지역을 살피고 거점이 될 만한 곳을 지목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올마이트의 죽음을 봤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것이다.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자신의 예지는 그 자체로 쓰기 보단 작전의 성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거라고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나름대로 대답이 됐겠지만, 레게풍 히어로는 납득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도 정보이며 그걸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나이트아이의 예지는 점이 아니다. 100% 실현되는 예지. 계획으로 회피할 수 있는게 아니다. 레게풍 히어로는 그럼에도 "얼마든지 회피해줄 테니 날 봐봐라"고 허세를 부린다. 나이트아이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숙인다.
* 그때 휴게실로 아이자와가 들어온다. 츠유가 무심코 "선생님"이라 부르자 바깥에선 "이레이저 헤드"라고 부르라며 핀잔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레이저 헤드가 온 건 "교사"로서 볼일 이 있어서였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젊은 두목이 한 말은 듣기엔 별거 아니지만, 사실 소름끼치는 지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6회 일치
* 사무소 책임자인 패트껌 역시 이들의 걱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확실히 타마키는 네거티브를 입에 달고사는 지라 후배들의 걱정을 사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런 거야 어쨌든 "동료를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패트껌이 "등을 맡겼으면 믿고 맡겨두는게 남자!"라고 일갈하자 키리시마가 바로 태세전환한다. "선배라면 괜찮아!"라고. 미도리야는 참 잘 휩쓸리는 사람이라 평한다.
* 1층에선 [[버블걸]]과 [[센티피더]]가 경찰과 협조해 시에핫사이카이 조직원을 거의 체포했다. 버블걸은 설마 전원이 방해하러 올 줄은 몰랐다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한다. 이래서는 잡히러 온 것 밖에 안 되니까. 조직원들은 "제정신이라 잡히러 왔다"고 반박한다. 얌전히 있으면 오버홀에게 반드시 죽었을 거라며. 그들은 오버홀, 아니 치사키가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게 변했다고 털어놨다. 원래 지금의 두목은 야쿠자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에핫사이카이도 빌런집단과 선을 긋고 어디까지나 "협객"으로서 양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그런 두목의 뜻을 따랐다. 반기를 든 것은 두목의 아들이었던 치사키. 그가 오버홀이란 이름을 걸고 조직을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는 빌런 같은 이름을 대고 행동을 했으며 빌런과 힘을 합쳤다. 개성 관련 금지 약품을 유통한 것도 치사키. 반항은 할 수 없었다. 조직원들은 현두목이 와병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분명 오버홀의 짓이라고 수군댔다. 버블걸은 그렇게 치사키를 싫어하면서도 그가 잡힐 거라고, 실패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 거냐고 반문한다. 조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아이자와를 덮친다. 이리나카다. 아이자와도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난데없는 기습에 손을 쓰지 못했다. 분명 이리나카는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두려워해 제일 먼저 처리하려 든 것이다. 이리나카는 그 셋이 당했을 정도라면 한 명씩 떨어뜨려 확실하게 제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변형된 벽면이 그를 떠밀어서 컴컴한 구멍으로 밀어붙인다. 꼼짝없이 함정에 빠진 아이자와.
* 그렇게 뜻대로 두진 않는다. 패트껌이 몸을 던졌다. 타마키가 만들어준 시간을 쓸모없게 할 순 없고 아이자와가 이리나카의 개성을 확실하게 지워주길 바라고 한 행동이다. 아이자와가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패트껌이 대신 구멍으로 빠진다. 제법 긴 터널을 굴러 어두운 방으로 빠져나온 패트껌. 그런데 언제 따라붙었는지 키리시마가 패트껌 밑에 깔렸다. 사실 키리시마도 아이자와를 구하려고 왔던 건데 타이밍이 안 좋아 패트껌하고 겹쳐버린 것이다. 패트껌이 어쩔 수 없다면서 우선은 긴장하라고 말한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어둠을 뚫고 뭔가가 나타난다.
이번에도 패트껌이 눈치가 빨랐다. 그가 "마음이 꺾이는게 진짜 지는 것"이라 호통쳤다. 오사카에서 말했던 대로 "빌런 퇴치는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인데 이쪽이 먼저 꺾여서 어쩌자는 거냐고 야단혔다. 남자가 다시 배리어를 친다. 그러면서 "저쪽은 아직 이길 생각"이라 말하자 랏파가 참 갸륵하게 여긴다.
- 남유진 . . . . 6회 일치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이상 현 [[행정자치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태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상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 15 ~ 17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박정희]] 향수에 젖어 정작 공공화장실에 휴지 하나도 예산 부족으로 못 내놓게 만든 원흉''' --[[니콜라스 마두로|니콜라스 남유진]]----구미는 구미다 망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다--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반감도 상당해진 상태였다.
현역 시장 시절 그의 어이없는 기행과 실정으로 인해 경북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구미 시민들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비록 보수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를 선택하면서 투표로써 제대로 응징했다.
그리고 시장뿐만 아니라 제반 정치 환경까지 새로 바뀌었다. 경북 도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비해 앞섰으며, 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천한 모든 후보가 1위 혹은 2위로 모두 당선되었다. 남유진 시장의 아스트랄한 실정에 지친 구미 시민들이 시장과 시의회를 통째를 바꾸게 된, 즉 위 아 더 월드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남치근 . . . . 6회 일치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하여, 임꺽정 일당에 협력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임꺽정을 포위한다. 임꺽정이 구월산으로 도주하자 포위망은 더욱 좁혀들어갔으며, [[서림]]을 이용하여 임꺽정 일당을 회유하고 참수하였다. 결국 임꺽정은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체포되어 효수당했다고 소개되지만, 실록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고, 다만 "도적의 괴수를 처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상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절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6회 일치
중앙문과 좌우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좌측문 또는 중앙문에 따라 1학년 6~10반 교실 복도와 1~5 반 교실 복도가 분리되있어 신입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 도서실 ===
학교 내에서 교무실 외에 유일하게 깔끔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마법천자문, 내일은 과학왕 등의 만화책들이 인기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만화책을 보러오거나 공부를 하기위해 도서실에 온다.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초판인 공포의 보수[* 엄밀히 말하면 해적판]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초판 등 의외로 희귀한 도서들이 많다.
* ~~교실의 전자교탁의 스펙이 대단하지 않음에도 몇천만원씩 한다는걸 보아 로비 의혹이 있다~~
- 둠 패트롤 . . . . 6회 일치
본명 래리 트레이너(Larry Trainor). 비행기 테스트를 하다가 대기중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초능력을 얻었다. 자신의 몸에서 음전하로 충전된 빛에 둘러쌓인 그림자 같은 [[분신]]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분신을 분리한 상태에서는 매우 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분신을 꺼내는 것은 60초 동안만 가능하다. 또한 사고의 영향으로 [[투명인간]]이 되버려서 평소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능력 때문에 이런 이름인 것 같지만 사실 이름 그대로 네거티브한 성격이기도 하다.
기존에 속했던 몇몇 멤버들이나 다른 인물들중 둠 패트롤의 진실을 아는 인물들은 치프를 피해 은신 중.
나일스 콜더. 현 매드 사이언티스트. 볼툼의 반지의 새 숙주가 된 제시카 크루즈의 앞에 둠 패트롤을 이끌고 등장했다. 루터가 말하길 새로운 파워 링이 된 제시카 크루즈 또한 실험체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확보대상에 속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치프는 루터의 모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팀원들에게 휘말린 민간인들 냅두고, 볼툼의 반지에 집중하라 하면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자기가 준 생명을 다시 거둬갈거라 위협하고, 제시카가 반지에 지배 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뇌에 손을 대는거라 주장하며 이 막장 선택지를 실행하려 한 막장 인물. 이를 보아 루터의 언급의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현재의 그가 막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한편 폭주하는 제시카를 배트맨이 저지한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영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루터와는 무슨 인연인지 이전에 자기 전 아내와 어떤 참전용사에게 막장 실험을 했고 그게 루터에게 걸린적이 있다. 또한 코스빌에 신종 바이러스를 풀었다가 루터에게 걸리자 치료약을 풀었다.
- 레프카 . . . . 6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부흥을 위해서 태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라오 박사를 찾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며 사실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야심가. 삼각탑 지하에 잠든 초자력 병기를 탑재한 거대한 우주 비행기 [[기간트]]를 부활시키려 하며, 이에 필요한 태양 에너지를 얻기 위해 라오 박사를 추적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라오 박사를 확보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최고위원회를 위협해 이용하는데 결국 코난 일행의 대활약으로 실패하며 몸이 망가진 라오 박사와 대화할수 있는 라나를 끌고 도망치려 하나 역시 코난에 의해 실패하고 추락한다. 그러나 사실은 살아있어서 최후의 부하들[* 이중에 한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사살했다.]과 같이 기간트를 움직이는데 이것조차 코난 일행에 의해 실패한다. 최후에는 기간트 선두 쪽의 소형 탈출선으로 탈출하려 하나 이것조차 실패하고 결국 기간트와 같이 바다에 침몰한다.[* 코난이 손을 잡아주기는 했으나 이때 다른 부하들이 몰려와 매달렸고, 이에 손을 놓쳐버렸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6회 일치
실제로 그는 당시 소렌토의 공작으로써 살레르노 공작과 대립중이던 그의 동생인 기욤[* 앞에서 설명된 '강철팔' 기욤과는 다른 인물이다.]을 격파하는데 힘을 보태주는 대신, 살레르노 공작의 땅을 잠식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멜피 공의회 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더더욱 치고 올라, 그해 겨울이 끝나기전 레조를 제외한 칼리브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타란토와 브란덴시에 있던 비잔티움 요새들도 모두 박살냈다. 이후 동생인 로제르와 함께 레조까지 힘락한 기스카르는 콘스탄티노스 10세가 남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보낸 군대까지 격파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우세를 확실히 한다. 이후 그는 1061년에 로제르와 함께 메시나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1071년에는 바리를 함락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듬해 초에는 팔레르모를 함락하면서 시칠리아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1075년에 살레르노 공국을 정복하면서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그의 야심은 남이탈리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건 동방제국의 제위를 차지 하는것이었다.
사실, 기스카르와 비잔티움은 이미 그가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기전에 군사동맹의 체결이 논의 된적이 있었다. 1073년에 미하일 7세는 기스카르에게 군사동맹과 함께 로베르의 딸중 가장 아름다운 딸과 황실에서 태어난 황제의 동생[* '제국의 조각상'이라 불릴정도로 아름다운 자였다고 한다.]을 제안한다. 기스카르가 별다른 답을 보이지 않자 미하일은 거기서 더 강화한 제안을 하는데, 미하일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기스카르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비잔티움의 훈장 44개를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매년 금 2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식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남이탈리아에 반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상황이 없었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백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상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백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남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상륙해 있던 상황이었다.]
- 마기/305화 . . . . 6회 일치
* 알라딘은 "신드바드 아저씨를 좋아하는건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단지 그가 이루려는 세상에 동의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 신드바드는 "나만이 운명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말하며 "세상이 어떤 이치로 흘러가는지 아는 것은 나뿐이니 내가 이끌어야 맞다"고 주장한다.
* 알라딘은 다시 "운명은 그 자체로 있어야지 누가 조종해선 안 되는 것"이라며 "과거 일 일라가 운명의 고삐를 쥐었지만 솔로몬 왕이 그것을 빼앗아 조각냈다."고 말한다.
* 하지만 알라딘은 "그건 아저씨가 실패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바로 "아저씨도 틀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
|| 그건 아저씨가 실패한 결과야. 아저씨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던 거야.
- 마기/350화 . . . . 6회 일치
* 사실 [[알라비바 사르쟈]]의 "대마법"은에는 문제가 있는데, 그는 그것도 지금 모인 사람들이라면 해결 가능하고 그게 "운명"이란 말로 납득시킨다.
* 신드바드는 일행을 향해서 "동맹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지만 실현 가능한지는 별개"라고 지적한다. [[우고(마기)우고]]가 분명 "차원을 연결하는 대마법"은 불가능하며 엄청난 마고이를 소모해야만 겨우 되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 문제가 해결된건 아니다.
그런데 우고는 이제와서 세삼 발언을 번복한다.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가 불가능하다고 했던건 규모 때문이었다. 알리바바가 주장한대로 모든 벽을 부수고 세상을 통합하려면 엄청난 마고이가 필요한게 필연. 그러나 작은 구멍을 뚫어서 교류하는 정도라면 적은 마고이만 가지고도 그럭저럭 가능할지도 모른다. 알라딘 일행은 깜짝 놀라며 "그럼 왜 지금껏 하지 않았었냐"고 묻는다. 우고로선 억울한 지적이다. 생각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일 일라 같은 존재와 대화를 시도하는걸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방법은 지금껏 실험해본 적도 없으니,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의 영역일 따름이다.
* 알라딘은 들뜬 목소리로 알리바바에게 어서 "차원을 연결하는 대마법"을 사용해 보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멋쩍은 태도로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털어놓는다. 우선 그는 마법사가 아니고, 그 대마법은 살아있는 몸으로 쓸만한게 아니라고 [[셋타]]가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우고는 "그럼 글렀잖아!"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경악해서 그만두라고 외치는데 사실 이건 세상이 루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태양은 먼 산 위에 걸린 채로 멈춘다. 신드바드가 알리바바의 제안을 타당하다 여기고 작동시키고 있던 세상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정지시킨 것이다.
>해보도록 하지. 실현 불가능한 대사업이란 걸.
- 무라하치부 . . . . 6회 일치
무라하치부 자체는 법률로서 처벌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범죄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실을 통보하는 행위는 협박죄라는 판례가 존재한다. 또한 이로 인한 손해는 민사소송에서 배상 대상이 될 수 있다.
무라는 인간의 생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행사를 공동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실시하는 공동체였다. 하지만 이 무라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처벌이 뒤따랐는데, 그 가운데 특이한 것이 무라하치부이다.
전국시대에 자검단은 전국 다이묘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소멸, 감소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겉으로만 폐지되었을 뿐, 영주로서는 무라에 과도하게 간섭해서 반발을 부르는 것보다 회유하여 연공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었다. 에도 시대에도 무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검단은 거의 묵인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검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상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상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이 당시 이 마을에 거주하던 중학생 소녀 이시카와 사츠키(石川皐月, 1935년 5월11일 생)는 1952년 부정선거의 풍조에 의문을 느껴 학내 신문인 우에노 중학교 신문에 이 사실을 고발하는 글을 개제하였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모든 학생에게 배포된 신문을 회수하여 소각 처리했다. 1952년 5월 6일 열린 참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부정이 실행된 것을 알게 된 이시카와(당시 고교생으로 진학)는 아사히 신문에 이를 투고하여 고발하였다. 아사히 신문사의 기자는 5월 8일 이시카와를 방문하였고, 몇일 뒤에는 사건이 기사화 되었으며 사건 관계자 수십명이 경찰에 출두하게 되었다.
- 바키도/136화 . . . . 6회 일치
* 아나운서는 실없는 질문만 늘어놓아 무사시의 화를 사고 에어참격으로 베어진다.
* TV에서 아나운서가 흥분된 표정으로 누군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미 많은 유명인을 만나본 사람이지만 이 사람만은 뭐랄까, 엄청난 박력의 소유자다. 그는 게스트를 맹수에 비유하려다 말실수라고 정정하고 "경력이 자아내는 위용"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어쨌든 강해보이며 시청자들도 잘 아는 이 사람.
* 모토베의 병실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한마 바키]]는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모토베와 [[시노기 쿠레하]] 박사는 조용히 시청한다.
* 아나운서는 긴장감 때문인지 천성인지 촐랑대는 태도를 보인다. 어딘지 허둥대고 안정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무사시씨가 맞으시냐"는 실없는 질문이나 던진다. 보고 있던 바키는 그런건 당연히 심기를 거스를거라고 생각한다.
* 무사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아나운서는 화들짝 놀라며 "맞는 말이긴 하다"고 당황한다. 하지만 거기서 자중하지 않고 경망스런 말투로 "보통은 400년 전 검호라 하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이다. 아나운서의 왼팔이 떨어진다. 무사시의 에어참격이다. 바키와 같은 격투가는 물론이고 문외한인 아나운서조차 "베여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는다.
* 무사시는 이걸로 "실물"을 받아들였냐고 묻는다. 아나운서는 자신이 당한 참격을 시청자에게 설명하는데 그 순간 또 에어참격이 날아온다. 이번엔 목이다. 아나운서는 식은 땀을 흘린다.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6회 일치
본명 : 뱌아체슬라브 미하일로비치 스크랴빈(Vyacheslav Mikhailovich Skryabin)[* 대부분의 소련 지도자가 그렇듯이 혁명용 [[가명]]이 사실상 본명화 되었다.]
정치가로서 인민위원회 의장(총리), 외무인민위원(외교장관) 등을 지냈다. 소련의 대표적인 [[외교관]]으로서, 20세기 역사를 조사하다보면 여기저기서 이름을 내민다. --스탈린의 충실한 외교용 딸랑이--
1924년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 [[이오시프 스탈린]]을 지지했다. 1926년 정치국 정의원으로 승진, 모스크바 당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 1930년 인민위원회 의장(소련의 총리)에 올랐으며, 1941년 까지 지위를 유지했다. 물론 스탈린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1947년에는 [[미국]]의 [[마셜 플랜]]에 대항하는 동구권 국가들의 경제 협력 강화 계획인 몰로토프 플랜을 입안하였고, 1949년 1월부터 이것이 실행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알려지게 된 화염병의 생산을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4256a 참조]]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소련의 KS방화수류탄의 별명이 '몰로토프 수류탄'이라서 혼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인용 문헌이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http://ja.wikipedia.org/wiki/%E3%83%A2%E3%83%AD%E3%83%88%E3%83%95%E7%81%AB%E7%82%8E%E6%89%8B%E6%A6%B4%E5%BC%BE 참조]
아무튼 본인은 딱히 화염병을 만들었는지 불확실하지만, 화염병 이야기만 나오면 몰로토프가 언급되면서 화염병의 대명사(…)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우리 문명이 멸망한 뒤에는 화염병의 신으로 추앙될지도 모른다.
- 봉준호 . . . . 6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09-8-31}}
* [[잠실고등학교]] 졸업
1993년 6mm 단편 영화 《백색인》을 연출하여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2번째 단편《지리멸렬》은 큰 화제가 되었다. [[배두나]]가 출연하였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송강호]]와 김상경이 출연한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였는데 크게 흥행하였고,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6년 7월에 3번째 장편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을 개봉했다. 2008년 그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도|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도쿄!]]》에 참여하였다. 3편의 영화 중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를 통해 멜로적 감수성 또한 인정 받았다.
2009년 5월 4번째 장편 《[[마더 (2009년 영화)|마더]]》를 개봉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며, [[김혜자]]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소를 배경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을 포착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난감한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도록 유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서늘한 풍자를 심어 놓는 특유의 영화 감각을 가지고 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5071055411120 봉준호 감독 '무(無)평에 상처받은 적 있다'], 마이 데일리, 2008년 5월</ref>
[[프랑스]] 만화를 각색한 《[[설국열차]]》를 준비한후,<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0627 네이버 책 '설국열차'], 뱅자맹 르그랑, 장 마르크 로셰트, 자크 로브 저, 김예숙 역, 현실문화, 2009년 8월 5일</ref> 2012년 초 크랭크인하여 2013년 7월 31일에 개봉하였다.<ref name="설국열차">[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cid=307165&iid=364668&oid=020&aid=0002268463&ptype=011 프랑스 만화 각색한 ‘설국열차’ 400억대작 이끄는 봉준호 감독], 동아일보, 2011년 8월 16일</ref>
[[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잠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음 봉씨]]
- 블랙 클로버/101화 . . . . 6회 일치
*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무사히 풀려나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도 조종에서 벗어난다.
충격에 빠져있는 여왕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때는 아직 바네사도 어린아이였고 그녀 자신도 지금처럼 맹목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바네사는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실로 만든 인형을 그녀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의 여왕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잘 만들었다"고 평범하게 칭찬해줄 수 있는 어머니였다.
* 마녀왕은 패배를 실감했다. 그리고 바네사가 자신의 곁에 있었다면 절대로 운명의 힘에 눈뜨지 못했을 거라고 인정한다. 그녀는 완벽한 마법을 추구해왔지만 그런 나머지 소중한 무언가를 잊어버렸다. 불완전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기에 깃드는 힘도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불완전한 바네사의 마법.
여왕은 의외로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하며 등을 보인다. [[노엘 실버]]는 믿기지 않는 승리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 마녀왕은 이뿐만 아니라 아스타에게 중요한 정보도 제공한다. 아스타가 사용하는 "단마의 검"과 "숙마의 검"은 바로 그 엘프의 장이 사용했던 마법검이 변형된 물건이었다. 아스타는 엄청난 사실을 들었지만 정보량을 감당하기 못하고 머리가 폭발한다. 여왕은 한심하게 쳐다보며 아무튼 그놈들과 계속 싸우다 보면 더 많은 수수깨끼가 풀릴 거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6회 일치
* 메레오레오나는 입욕 중 술을 마시고 [[샬롯 로즈레이]]에게도 강권한다. [[솔 마론]]은 [[노엘 실버]]를 꼬셔서 푸른 들장미단에 스카웃하려고 시도.
* 메레오레오나는 노엘에게 그녀의 어머니 [[아시에 실버]] 이야기를 해주며 그녀와 다른 방식으로 강해지길 기원해준다.
* 샬롯이 메레오레오나에게 잡힌 사이 마론은 [[노엘 실버]]의 머리를 감겨주며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노엘의 근성을 높이 사면서 푸른 들장미단으로 이적하기를 권하는데 푸른 들장미단은 성비가 좀 비정상이라 대부분 여성 단원이고 남자는 극소수. 대체로 비실거리는 놈들이라 잡일꾼이다. 마론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끌어들여 잡일꾼으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생각외로 강해졌다고 아쉬워한다. 노엘은 자기는 검은 폭우단이라고 사양하지만 그래도 남자들이 잡일꾼이란 말에 "나쁘지 않겠다"고 솔깃해한다.
* 노엘은 워낙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탓에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 주위에서도 그녀에게 어머니에 대한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메레오레오나는 생각 끝에 조금 이야기를 해주는데, 뜻밖에도 대단히 강한 여전사였다 한다. 메레오레오나와 자주 대련하기도 했는데 전장에선 무패를 자랑했던 그녀가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시에 실버]]. 강철의 전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노엘이 어머니가 그런 강자였다는 사실에 놀라는 동안, 메레오레오나는 노엘의 마력조작이 너무 엉망진창이라 아시에의 딸이라곤 생각도 못하겠다고 쓴소리를 퍼붓는다.
- 블랙 클로버/119화 . . . . 6회 일치
* K팀은 푸리가 크리스탈을 지키고 락과 클라우스가 돌격하는 전술을 채택, 둘 모두 이전보다 확연히 강해진 실력으로 적진을 농락한다.
* [[릴 부아모르티에]]는 어리숙한 첫인상과 달리 분명 단장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팀의 총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대측의 두 마법기사를 간단히 제압, 손쉽게 I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동료들도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이 없어졌지만, 정작 그는 방금 전 "한 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회화 마법은 시합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으나 그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며 반성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시합에 집중해주질 바랐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집사 "발터"는 이런 태도 조차도 "도련님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거다"고 이 또한 그의 재능이라고 포장한다. 어리숙한 걸론 안 빠지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었다.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태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백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 같은 기수의 클라우스도 그의 성장에 신경이 쓰였다. 락은 원래도 등급만 낮을 뿐 실제론 중급 마도사에 해당하는 실력이었다.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아는 클라우스. 그렇기에 그도 노력을 했다. 아스타와 만나고 나서 새롭게 마음 먹은 그는 정신도 육체도 마법도 철저하게 단련했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6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제 3의 눈을 뜬 절망의 베토를 보고 전설상의 마족을 연상한다.
* 그때 나타나 마신을 물리친 것이 초대 마법제. 노엘 실버는 이 전설을 떠올린다.
* 베토는 그런 무기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가르쳐주겠다며 리타이어한 동료들을 헤치려한다.
* 그때 여러 가닥의 실이 나타나 베토를 묶고 쓰러진 동료들을 회수한다.
* 잠시 묶여이었던 베토는 금세 실을 끊어 버리며 일행을 공격한다.
* 아스타가 반격 당하기 직전 바네사가 실을 조작해 공격을 피한다.
- 사혈 . . . . 6회 일치
치료 목적으로 [[피]]를 뽑아버리는 것. 역사적으로 매우 오랫동안 실행되었으나, 현대 의학에서는 치료 효과를 의문시하고 있으며 특수한 몇몇 질병의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실행되지 않는다.
사실 무려 20세기 초 까지도 사혈은 상당히 흔히 있는 치료법이었다.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우는데 공헌한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가 “사혈은 폐렴 치료에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 사용을 적게 했다.”는 기술을 남겼을 정도.
* 19세기 프랑스의 의학자 브루세(François-Joseph-Victor Broussais, 1772~1838)가 사혈을 위하여 [[거머리]]를 이용하면서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중세를 다룬 매체에도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법이 나오는데[* 심즈 미디벌 등] 사실 상당히 최근에 나타난 것.
* 사혈요법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말 그대로 '''잡았으며''', 그냥 내버려둬도 자연치유될 사람이 과도하게 사혈하는 바람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유명인들 가운데도 사혈 때문에 죽은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사실 사망 직전 기록에 나타나는 미친 사혈질(…)을 보면 병이나 부상보다도 오히려 사혈 때문에 죽은 걸로 보이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 당시 비위생적인 의료 환경에서는 사혈질 하다가 세균감염될 수도 있지만, 뭐 사실 애초에 환경 자체가 무척 비위생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큰 문제는 아니다.(…) 의사들이 손 씻게 된게 얼마 안 된다.
- 스위스 방공호 . . . . 6회 일치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이므로, 대규모 방공호에는 방사능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시설, 취사 시설, 대기-식수 정화 장치, 숙박용 침대, 그 밖에 침대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갖추어져 있다. 좀 특이한 시설로는 비상시에 화장실 대용으로 쓰기 위한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양동이, 그리고 전기와 석유의 공급이 끊겼을 때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전거'''까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8/2007080800710.html 참조]]
1959년 3월 24일, 국민투표를 거쳐서 시민방위조항이 헌법에 추가되었다. 이 헌법에 의거하여, 62년에 연방정부가 방공호 대량건설을 법률로 제정하고, 63년 부터 범국민적으로 방공호 건설에 착수하였다. 1963년 10월 4일, 민방위법에 따라서 새 건물을 지을때는 핵 방공호 건축이 의무화 되어 있고, 방공호를 짓지 않는 경우에는, 행정 당국에 1.5실당 약 1300달러를 납부하고 대신 공용 방공호 시설을 할당 받도록 되어 있다.
소넨베르크 방공호는 직경 16미터, 깊이 37미터의 지하건물로서, 2만 1천개의 침대, 병원, 회의실, 오락실, 은행, 감옥, 공동묘지가 갖추어져 있으며, 4개의 입구에는 9기압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3백 50톤의 석문이 있다. 루세르네 방공호는 2시간 이내에 2만 여명을 피난시킬 수 있으며, 이는 루세르네의 7만 5천명의 시민들 가운데 30%에 해당한다.
벙커에는 5개의 보안실이 갖추어져 있으며, 센터에 입장하려면 보안실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경비원은 페퍼 스프레이와 경비봉을 사용하는데, 총기는 서버에 충격을 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스트라테고스 . . . . 6회 일치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스트라테고스는 투표로 선출되는 장군직이었다. 스트라테고스(복수형으로 스트라테고이)는 10인이 선출되었고, 투표로서 전략적 방침을 정했으며, 매일 1명씩 돌아가면서 정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민주정을 채택한 아테네에서 스테라테고스는 실질적으로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이었으며 현대의 내각과 비슷한 위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평시에는 정무를 보며 전쟁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선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다만, 10명의 스트라테고스가 전부 다 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대체로 1,2명 정도가 원정에 나서고 나머지는 정무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후후. 그놈은 우리 10인의 스트라테고스 가운데 최약체지."--
아테네 이외의 다른 그리스 폴리스에서도 스트라테고스라는 말은 쓰였는데, 폴리스의 지도자나 장군을 나타내는 직위로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른 폴리스의 정치구조는 아테네와는 달리 자료가 부족해서 확실하게 어떤 지위였는지 알 수 없다.
서로마 제국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스트라테고스는 마기스테라 우트리우스 밀리타리에(magister utriusquae militiae)로 불렸으며, 이들은 서로마 제국의 군권을 거의 완전히 통솔하는 직위였으므로 때문에, 황제의 후견인이면서 때때로 사실상 황제를 능가하는 실세 권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지방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는 지방 방위에 필수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황제의 권위에 가장 큰 위협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야심만만했던 스트라테고스들이 황위찬탈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킨적이 잦았다.
근대 그리스 왕국, 현대 그리스 공화국에서 스테라테고스(stratigós)는 4성 장군에 해당하는 군사 계급으로서, 그리스 군의 최고 계급이다. 과거에 그리스 왕국에는 이보다 상위계급인 스트라타체스(Stratarches, '군의 지배자' 라는 의미)가 존재하였다. 이는 [[원수]]에 해당하는 군사 계급으로서 국왕이나 왕실 가족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 주로 부여되었으며, 몇몇 퇴역장성에게 주어지는 명예 지위로 쓰였다. 하지만 그리스 왕정이 폐지된 이후로 이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 식극의 소마/165화 . . . . 6회 일치
* 맛밤을 까넣은 사슴고기는 황당해 보이지만, 사실 밤과 사슴고기, 밤과 지비에라는 조합은 프랑스 요리에서도 자주 쓰이는 조합.
* 에리나는 엉망으로 만든듯 보이지만 사실 프랑스 요리의 기본기를 충실히 빠른 음식이라며 "소마 치곤 프렌치로서 인정할 만하다"고 평한다.
* 사슴 등뼈로 만든 소스와 그걸 베이스로 과실을 더해서 상큼한 맛을 낸 소스.
* 에리나는 거기에 들어간 다양한 과실과 재료를 전부 알아맞추는데, 조금만 어긋나도 잡맛이 되고 마는 조합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며, 인간이 아닌 듯한 실력이라고 평한다.
- 식극의 소마/182화 . . . . 6회 일치
* 하야마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2, 3학년 베테랑들도 물리치고 십걸 자리에 등극. 다른 두 명의 새로운 십걸은 미공개.
* 소마는 산에 있는 "어떤 나무"를 보고 곰고기의 냄새를 잡을 실마리를 얻는다.
* 린도나 츠바사가 깜짝 놀랄 정도의 실력이었다.
* 쿠가는 하야마에게 진 베테랑들의 증언도 확보하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녀석들 바닥에 누워있는데다 들것에 실려나간다--독을 탔구만--
* 패자는 실려나가면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위험한 향"이라고 말하는데.--역시 약을 탔네. 식약청 불러와--
* 리액션으로 폭발하는 건 평범한 축이었지만, 왠지 진짜로 쓰러진데다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정말로 음식을 먹인 건가--
- 식극의 소마/185화 . . . . 6회 일치
* 심사의원은 나키리 아리스의 아버지 나키리 소우에와 그가 스카웃한 베르타&실라라는 소녀들
* 소마는 그쪽도 십걸이 나왔는지 확인하는데 예상대로 사실이었다. 아리스와 쿠로키바 료도 곧 대결장소로 가야한다는데.
* 그리고 함께 심사의원을 맡은 베르타와 실라. 이들도 나키리 인터네셔널의 연구 스탭으로 일하고 있다.
* 냉정한 말투 때문에 차가운 사람인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딸바보에 애처가.
* 소마는 선발시합 때 처럼 서로 먹어서 비교해보자고 제안하고 하야마는 뭘하든 실력차이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잘라말한다.
* 쿠가는 성공만 하면 곰고기의 감칠맛을 튀김옷에 응축한 최고급 요리가 되겠지만 냄새 빼는데 실패한다면 튀김옷에 냄새가 배는 참사가 일어날 거라 분석한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6회 일치
* 그러나 압도적인 실력으로 죠이치로는 연승을 거둬가고 [[도지마 긴]]과 [[나키리 아자미]]는 경탄하는 눈으로 지켜본다.
그러나 막상 식극을 해봤더니 공연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죠이치로는 콩쿠르를 격파하고 나서도 여전히 쌩쌩해서 도지마와 아자미를 연거푸 패배시킨다. 도지마는 그 놀라운 체력과 무엇보다 뛰어난 발상력으로 만들어낸 요리에 경탄하며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죠이치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기숙사가 최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자미도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며 눈물을 훔치는데 죠이치로는 실컷 놀려먹으며 즐거워한다. 이렇듯 표면상으론 크게 이상할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듯 했다.
* 함께 있던 도지마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죠이치로를 데려가려 하지만 의외로 그가 흥미를 보인다. 그는 그쪽에서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쪽은 머릿수가 많으니 "연대식극" 룰로 승부하는게 어떻냐고 한다. 하지만 연대식극은 보통 집단 대 집단의 싸움. 그런데 놀랍게도 죠이치로는
혼자서 불만자 50명을 상대로 연대식극을 벌이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도지마가 보기엔 무모할 뿐더러 의미도 없는 싸움. 죠이치로는 실력을 보여주면 잠잠해 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지만, 도지마는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식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상대 진영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상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상가는 발상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영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있다.
* 흥분한 죠이치로는 사와츠바시의 멱살을 끌어당겨서 위협한다. 그는 끝없이 "앞"을 개척하는 괴로움을 알기나 하면서 천재타령이냐고 비난한다. 그런 되먹지 못한 각오로 "진심으로 정진"같은 그럴듯한 말을 떠들지 말고 요리 만들 생각이 없다면 때려치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 신랄한 모습에 학생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라며 두려워한다. 독설만이 아니라 그가 승리한 자리엔 망연자실한 패배자들이 널려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정상적인 승리도 아니고 평소의 죠이치로와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 식극의 소마/220화 . . . . 6회 일치
* 그러나 메기시마는 묵묵히 자신의 찻슈를 준비하며 실력을 드러낸다.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식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식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태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가령 토오츠키 학원의 축제인 "월향제"에서도 그 탐구심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매해 참가하는 연구회 중에는 "곤충식 연구회"라는 끔찍하게 매니악한 동호회도 있었다. 소마 같은 괴식 마니아 조차 "어떤 별종이 관심을 가질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이너. 그런 동호외의 단골손님이 린도였다. 그녀는 언제나 "120점포 올 클리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물론 곤충식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목표나 달성하자고 억지로 먹는게 아닌, 정말로 즐겁게 "귀뚜라미 풀코스" 같은걸 먹어치우곤 했다.
굳이 츠카사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실체는 지금 대회장의 전원이 목격하고 있다. 소마는 츠카사 앞을 저런 대단한 요리사가 가로막고 있을 줄 몰랐다고 감탄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녀와 함께 또다른 괴식 연구가 사다츠카를 포섭해 "암흑 별종 삼두회"라는 정체불명의 결사를 조직할 야욕을 품는다.
* 그녀가 본 것은 찻슈. 라면의 필수요소인 그 찻슈다. 메기시마는 지금껏 찻슈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평범해 보이는데. 그 밖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착실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수는 물론 면을 삶을 준비까지. 메기시마 또한 임전태세를 갖췄다. 후배들은 린도가 희소식재료 마스터라면 메기시마는 "라면 마스터"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
* 그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메기시마는 실제로 "라면 마스터"라는 직함을 가진 요리사. 바깥의 시끄러운 지저귐 따위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 식극의 소마/221화 . . . . 6회 일치
* 안은 메기시마의 요리를 물흐르듯 설명하는데 우선 수프. 완숙 토마토, 마늘, 양파, 붉은 피망 등을 잘게 썰어 잘 만들어진 닭육수에 넣고 끓인다.
* 전 십걸 3석. 라면 마스터 [[메기시마 토스케]]. [[코바야시 린도]]가 화려한 이력과 실력을 과시하며 이목을 모아가는 동안 묵묵히 조리 준비를 마치고 실력발휘를 시작했다.
* [[유키히라 소마]]를 비롯한 반역자 후배들은 드디어 그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사실 1라운드에서도 기회는 있었지만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격전에 주목하는 사이 볼 것도 없이 끝나있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는 어떤 라면을 보게될지를 놓고 고조된다.
>사실 [[사이바 죠이치로|죠이치로]]씨와 [[도지마 긴|도지마]] 셰프하곤 나도 한패였거든.
- 식극의 소마/230화 . . . . 6회 일치
* 연대식극 2일차. 3rd Bout의 시작. 대결 제 3카드 메구미 vs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대결주제를 선정한다. 메구미가 추첨용지를 집었다. 결정된 주제는 "사과". 반역자 팀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본래 사과라면 요리에도 많이 쓰는 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초일류 파티셰 모모. 사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특기 중의 특기 분야. 하다못해 채소였더라면 메구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실망이 우세했다.
* 요리를 시작한 모모의 기백은 십걸다웠고 메구미는 단숨에 위축될 뻔했다.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메구미는 다시 시노미야 셰프에게 가르침 받았던 그때를 떠올렸다. 고양이와 쥐, 뱀과 개구리, 사자와 토끼 같은 조합의 특훈조. 둘은 개인 주방에 들어섰지만 그저 서로 쳐다보는 채로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옆 방에선 소마와 죠이치로, 타쿠미와 도지마도 개별 훈련을 시작해야 했지만 메구미조가 어떻게 하는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나키리 에리나]] 조차도. 전원이 유리창 너머로 메구미 조의 주방만 기웃거리고 있자 도지마가 각자 훈련을 시작하라고 한소리 했지만 죠이치로가 "넌 메구미가 걱정도 안 되냐"고 일갈하자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특훈에 돌입한 것은 메구미조. 시노미야는 일단 뭔가 만들어서 현재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메구미는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상 조리를 시작하자 실수연발. 소금과 설탕을 헛갈리고 재료를 태워먹는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원래 풍부하지도 않은 시노미야의 인내심이 삽시간에 바닥났다.
소마는 마침내 메구미가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받게 되자, 자신과 메구미가 "선후배 사이"가 된 셈이고 메구미가 후배가 됐다며 감동한다. 시노미야는 여전히 소마의 "사부"드립을 질색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씽(마블 코믹스) . . . . 6회 일치
그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트라우마]]로 고생하게 된 불행한 인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원래대로 돌리려고 하지만, 역시 그러면 캐릭터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므로 늘 실패하거나 어떤 계기로 다시 돌아온다.[* 1회성 에피소드라면 모를까, [[평행세계]] 포함이라도 더 씽이 [[인간]]으로 돌아가는 전개는 하단에 언급할 사례를 포함해서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다.]
애니에서는 아동 시청자들의 대변인 역할이라서, 리드가 전문용어로 [[과학]] 이론을 얘기하면, 수전, 조니 등과 함께 "간단하게 얘기해서 그냥 ~란 거잖여"로 정리하는 역할.(…) 사실 전투기부터 우주 로켓까지 각종 기계류를 다루는 재주도 뛰어난 편이다. 그리고 리처즈 집안의 아이들을 맡아주는 [[보모]] 역할도 해주고 있다. 참고로 판타스틱 포 멤버 중 거의 유일하게 군 복무 경험도 있어서, 퓨리를 잘 알고 있으며 [[닉 퓨리]] 역시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하고 있다.[* 《[[시크릿 워]]》에 수록된 퓨리의 S.H.I.E.L.D 개인파일에 보면 그에 대한 찬사로 가득하다. 다만 '''"외모가 문제야 외모가..."'''라는 말 한마디로 마무리 지을 땐 정말 [[안습|안구에서 땀이 찬다.]] 참고로 해당 파일은 라트베리아 잠입 멤버 선별에서 여러 이유로 탈락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즉, 외모가 임무의 성격과 맞지 않아서 탈락된 것.]
* [[유대인]]이다. [[스탠 리]]는 이 설정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지만, [[잭 커비]]는 유대인이었기에 이 점에 신경을 썼었다. 하지만 별로 부각된 설정은 아니었다. 2002년에 나온 짤막한 단편에서 더 씽이 유대인 전당포 주인을 지키는 얘기에서 더 씽이 유대인이란 점을 어필했었다. 여기서 전당포 주인은 더 씽이 유대인인줄 몰랐다면서 왜 그 사실을 숨겼냐고 묻는데, 더 씽은 자기 같은 괴물이 유대인이란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도, 이미 유대인들은 힘들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 [[피어 잇 셀프]]에선 [[워디]]의 일원이 되어 같은 힘캐인 [[헐크]]와 나란히 조종당하는 신세가 됐다.[* 다른 워디 멤버들과 다른 점이라면, 씽은 양 어깨에 입이 달린 촉수가 생겼는데, 입이 계속 나불대며 씽에게 악당 짓을 하도록 부추긴다.] 물론 발 구르기로 시가지의 건물 여러 채와 차를 박살낼 정도로 강해진 모습도 보였다. 결국 토르와 맞붙게 되지만, [[묠니르]]에 등짝을 뚫리고 죽기 직전이 된다. 그러나 운 좋게도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 덕에 겨우 목숨도 건지고, 프랭클린의 [[현실 조작]]능력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6회 일치
작고 붉은 나무통. 이걸로 상대를 공격할 수는 없고 운반할 수만 있다. 총으로 쏘면 폭발한다. 보통 요새의 화약고를 파괴할 때 사용한다.
1,0000 파운드. 검은 톤에 붉은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2,500 파운드. 농갈색 톤에 붉은색 포인트와 흰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500 파운드. 갈색 톤에 붉은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1,500 파운드. 흰색 톤에 붉은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2,000 파운드. 담청색 톤에 붉은 포인트와 감색 포인트가 들어갔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6회 일치
임무를 플레이 할 때, 노란색으로 표시된 타겟을 볼 수 있다. 이 타겟들은 중립 타겟이다. 전투 능력을 상실하고 도망가는 적기, 적이 보급품을 보관한 창고 등이 중립 타겟으로 표시된다.
벨카 공군 제2항공사단 5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유로파이터 타이푼]]으로 이루어진 로트 편대의 편대장으로 "붉은 [[제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비행 실력과 처신으로 인해 벨카군의 선전탑 역할을 하였다.
벨카 공군 제7항공사단 51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사브 그리펜]]으로 이루어진 인디고 편대의 편대장. [[기사]] 가문의 후손이다. 정확한 실력과 품위있는 비행으로 "[[왜가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시아 방공군[* 사실상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식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YF-23]]과 [[F-16|F-16XL]]로 이루어진 위자드 편대의 편대장.
오시아 방공군[* 사실상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식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15|F-15S/MTD]]로 이루어진 소서러 편대의 편대장. 적에게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자.
- 오경태 . . . . 6회 일치
* [[농림부]] 법무담당관실
* [[농림부]] 기획예산담당관실
* [[농림부]] 농어촌복지담당관실
* [[농림부]] 농업협력통상관실 통상협력과
* [[대통령비서실]] 농수산식품담당 비서관
* [[2013년]] [[4월 18일]]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 왕당파 . . . . 6회 일치
[[영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영국 내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의회파와 왕당파는 수차례 복권과 혁명을 거듭하며 경쟁하였으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절대주의 왕당파는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로 분리되었고, 명예혁명으로 성립된 영국 왕실은 의회를 존중하여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절대주의 왕당파는 더 이상 영국 정계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 왕실을 지지하느냐, 영국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느냐에 따라서, 왕당파와 독립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독립전쟁이 미국의 승리와 독립으로 끝나자, 미국 지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도망치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하여 공화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왕당파는 [[부르봉 왕조]]의 복권을 주장하였으며, 혁명을 일으킨 공화파와 피를 피로 씻는 혈투를 벌였다. [[부르봉 왕조]]는 군주의 지위를 상실했지만, 수백년간 프랑스를 다스린 왕조였기 때문에 부르봉 왕조의 권위는 여전히 상당히 높아서 주로 보수적인 농촌을 중심으로 막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국]]을 건설하였다가 실각한 이후, [[보나파르트 왕조]]를 추종하는 왕당파도 나타나는데 이들은 보나파르트 주의라고 한다. 부르봉 왕조는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다시 프랑스 왕위에 얻어 복고왕정을 시작했으나, 재차 혁명으로 타도되면서 왕당파는 몰락하게 되고 유의미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다. 보나파르트 주의는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을 거쳐서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하면서 실현되었으나, 역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보나파르트 주의도 침몰하게 된다.
- 원피스/841화 . . . . 6회 일치
* 어머니는 상디가 실패한 요리를 가져와도 언제나 기쁘게 먹어주었으며 웃어주었다.
* 현실로 돌아와 레이쥬는 얻어맞아 엉망이 된 상디에게 다가와 "그깟 오너 무시해 버리지 왜 이런 곳으로 돌아왔냐"고 쓴소릴한다.
* 사실 에포니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도시락을 버렸는데, 왕비는 에포니를 혼내고 도시락을 가져오게 한다.
* 상디는 실패한 요리라며 먹지 말라고 하지만 왕비는 아무렇지 않게 먹으며 정말로 맛있다고 칭찬해준다.
* "내가 네 아비라는 사실은 절대 남들 앞에서 밝히지 말아다오.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오점이다."
* 형제들은 어린 시절처럼 그를 실컷 두들겨패고 돌아간다.
- 원피스/847화 . . . . 6회 일치
* 사실 이들이 잡힌건 작전의 일환이다. 쵸파는 일부러 "해비 포인트"로 거대화된 상태로 잡혔는데 변신만 풀으면 바로 쇠사슬을 풀 수 있다. 게다가 어제로부터 시간도 많이 지나서 "몬스터 포인트"를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잘만되면 브륄레를 때려잡을 수도 있는 것. 쵸파는 침착한 태도로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
* 빅맘 샬롯 링링은 성의 도서실에서 자신의 "컬랙션"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의 컬렉션은 아들 샬롯 몬도르의 작품. 그의 능력으로 살아있는 생물을 "책" 속에 봉한 것이다. 그는 여러 페이지를 펼쳐서 수집한 생물을 보여준다. "검은 수염"이 임펠다운을 습격했을 때 유출된 "만티코어"나 "유니콘" "그리폰" 같은 전설적인 생물도 있다. 마치 표본처럼 못이 박혀 있는데 하나같이 살아서 몸부림친다. 심지어 사람도 들어가 있는데 펑크 하자드에 있던 "켄타우로스"나 수장족과 족장족의 혼혈인 "수족장인간" 같은 희귀한 인간도 들어가 있다.
* [[몽키 D. 루피]]와 [[나미]]는 몬도르의 책 속에 갇혀 있다. 이곳은 "죄수 도서실". 몬도르의 능력을 이용한 감옥이다. 컬랙션용과 달리 책의 페이지는 감옥처럼 되어 있고 그 안에 루피와 나미가 잡혀있다. 그들을 잡아온 빅맘의 군단이 페이지를 넘겨 샬롯가 장남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루피와 나미를 보여준다. 나미는 비교적 기운이 넘쳐서 물엿비에 젖어서 끈적거리니 샤워실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페로스페로는 나미가 마음에 들었는지 추파를 던진다.
빅맘은 공포에 떠는 나미에게 로라의 위치를 실토하라고 종용한다.
* 객실에선 상디가 초조한 기색으로 일행이 무사히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 원피스/871화 . . . . 6회 일치
* 사실 그 자리엔 특종을 노리고 모간즈고 숨어 있었으나 스튜시에게 발각, 정보조작에 협조하는 대가로 함께 옥갑의 내용물을 보기로 한다.
* 빅맘 [[샬롯 링링]] 암살작전 대실패. 해적동맹이 퇴각하기 시작한다. 빈스모크 일가가 호위하는 동안 일행 전원이 [[카포네 갱 벳지]]의 체내에 탑승, [[시저 클라운]]이 하늘로 날아 도망치는 퇴각작전. 그러나 적들의 추격기세가 무섭고 [[몽키 D. 루피]]와 [[상디]]가 [[빈스모크 레이쥬]]의 위기를 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등 넘어야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그 옥갑이다. 루 펠드는 저격으로 확실히 죽은 것 같지만 위치가 좋지 않았다. 그 비대한 몸이 쓰러지면서 옥갑을 떠밀었다. 모건즈와 스튜시가 눈치챘을 땐, 옥갑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 그렇지만 산 너머 산. 이번엔 시저 자기 자신이 앞을 막는다. 공중에서 자기 자신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저. "나 일리 없다"고 허둥대는데 확실히 그가 아니다. 일행에게 실컷 이용 당한 [[샬롯 브륄레]]. 그녀가 시저의 모습으로 변해 막으러 온 것이다. 그때 벳지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위험한 단계를 훨씬 지나 버렸다.
- 원피스/872화 . . . . 6회 일치
* 이런 사실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옥갑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개봉, 폭발을 일으켜 홀케이크 성을 붕괴시킨다.
* 무사히 성을 벗어난 해적동맹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출발. 사실상 이제부터가 진짜 탈출극이다.
* 그렇게해서 현재. 다과회와 암금왕 루 펠드와 스튜시 등이 얽혀서 복잡한 경로로 개봉된 옥갑은 재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깨지면서 기폭장치가 작동, 홀 케이크 성 절반을 날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크 아일랜드 바깥에서 관측될 정도의 대폭발. 성 안은 난데없는 폭발음과 성 일부의 소실, 이어지는 기울음으로 아비규환이다. [[타마고 남작]]이 상황을 종합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라 버렸다.
누가봐도 끝장인 것 같은 이 상황. 그러나 돌파구는 있었다. 총요리장인 미식기사 [[슈트로이젠]]이 실력을 발휘한다.
폼이야 어떻든 절박한건 사실이다. 비트와 [[샬롯 시폰]]이 밀집모자 일행과 제대로 작별인사하고 싶었다고 징징거린다. 벳지는 괜히 친해지지 말라며 지금부터가 "탈출 본편"이라고 윽박질렀다.
- 원피스/874화 . . . . 6회 일치
* 다과회와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고대해 마지 않았던 웨딩 케이크까지 엉망이 되어 먹을 수 없다. 숨가쁘게 이어진 기막힌 사건들 때문에 빅맘 [[샬롯 링링]]의 식탐이 폭주한다. 한때를 모면하기 위해 [[샬롯 페로스페로]]는 웨딩 케이크는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빅맘은 그 말에 따라 직접 밀집모자 일당을 뒤쫓는다. 뇌운 "제우스"에 탄 빅맘은 놀라운 속도로 돌아와 "킹밤"을 타고 도주하던 밀집모자 일당을 따라잡았다. 역시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 해적단의 병력들은 빅맘이 하늘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앞질러가자 이상하게 여기나 곧 그녀의 먹부림이 도진 것임을 알아차린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태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상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식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반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상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상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태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태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순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인다.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수도 스위트 시티는 사고의 수습과 함께 배신자 추격대의 지휘통제실이 꾸려졌다. 통제관은 [[샬롯 몬도르]]. 통제실을 통해 두 갈래로 갈린 배신자들, 밀집모자 일당과 [[카포네 갱 벳지]]의 파이어 탱크 해적단을 추격할 두 부대가 교신했다. 벳지는 거의 따라잡았고 방금 전 유혹의 숲에서 목격된 화재는 빅맘의 전투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제의 남서쪽 해안. 사실 써니호는 진작부터 [[샬롯 카타쿠리]]가 점거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배를 손에 넣고 만약을 위한 "매복"을 하는 중이었다. 써니호 내부에서, 부하가 그에게 왜 이런 매복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미 빅맘이 직접 추격하고 있으니 그들이 이곳에 도착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카타쿠리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래도 매복을 풀지 않았다. 부하가 까닭을 묻자, 그는 지극히 애매한 답변만 했다.
- 윤진식(국회의원) . . . . 6회 일치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는 [[관세청]]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관 역임 당시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반대할 정도로 꽤 진보적이었다. 기회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투자유치TF팀 팀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노선을 변경하였다. --[[우디르|윤진식급 태세전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래도 이때 일방적으로 패할 것이란 여론조사 예측을 깨고 이시종과 2% 차의 격전을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이시종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충주시장을 맡았으나, 2003년 돌연 시장직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며, 2004년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다. 이는 2010년에 제대로 참패한 새누리당의 전략적 선택이었는데, 2010년 당시 [[정우택]] 후보는 나름 중진이고 거물임에도 인구가 적은 진천이 출신지여서 '''충주 출신의 이시종'''에게 그야말로 처참히 발렸다. 이때 정우택은 이시종에게 36,267표차로 졌는데 청주권(구 청주시, 청원군)에서 29,606표차, 이시종의 텃밭 '''충주에서 23,963표차'''로 패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같은 충주 출신인 윤진식으로 맞불을 놓은 것.(사실 다른 경선 후보들이 모두 중도하차하면서 후보가 윤진식 혼자밖에 남지 않았던 탓도 있다)
- 은혼/578화 . . . . 6회 일치
현실
* 우미보즈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친구랑 술내기 했다 져서 벌칙으로 간 것", "거기서 여자 하나 꼬셔 오라는 벌칙"이었다고 밝힌다.
현실
현실
* 생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불현듯 서버리는건 생물학적인 사실이다.
* 무츠와 우미보즈가 사실 아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은혼/593화 . . . . 6회 일치
밝혀지는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
* 오보로는 마지막으로 다카스기를 통해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을 전한다.
* 어느날 속박에서 풀려난 우츠로는 복수하듯 살육을 반복해온 끝에 그 실력을 높이산 텐쇼인 나락으로 거두어지게 된다.
* 그는 죽기 전 다카스기에게 우츠로와 쇼요의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
* 다카스기는 오보로의 진실을 다시 헨페이타를 통해 긴토키 일행에게 전달한다.
* 오보로가 "결국 하늘에 닿은 까마귀"라고 언급한 것은 이 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 우츠로가 천도중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 은혼/644화 . . . . 6회 일치
*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통제실을 제압하고 남은 적 병력에 최후통첩을 날리며 항복을 종용한다.
*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에 칼을 꽂았다. 낙하하는 힘을 그대로 실어 유닛에 세로로 거대한 자상을 새긴다. 시스템이 파괴되자 히노카구츠치의 막대한 에너지는 갈 곳을 잃고 열려진 틈새로 뿜어어져 나갔다. 그 빛을 방어병력들과 마타코도 볼 수 있었다. 그 빛에 감싸지면서.
이미 양이지사 일행의 습격으로 괴멸 지경에 이른 모선의 통제실에서는 뜻밖의 대폭발마저 감지되면서 공황상태에 빠졌다. 히노카구츠치에 있던 에너지가 폭주, 역류를 거듭하면서 함 전체의 구석구석을 파괴했다. 이미 함내는 파악할 수도 없이 많은 유폭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게 뜻하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 보고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의 귀에도 들렸다. 신스케의 성공을 뜻하는 낭보. 그러나 동시에 비보이기도 했다. 다츠마는 아무리 악운이 강한 그들이라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각오가 없인 베지 못할 상대였기에, 신스케는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해방군의 사령부를 겸했던 통제실은 이제 양이지사 일행의 수중에 떨어졌다. 히노카구츠치는 파괴, 해방군을 조종하던 맹주 [[엔쇼]] 황자는 사망. 그들이 졌다. 이제 모선마저 온전하지 못하게 됐으니 해방군의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항복인가 죽음인가. 다츠마는 최후의 선택을 종용하면서 무엇을 택하든 이해한다고 말했다. 설사 그들이 무익하게 죽어나가기를 택해도, 동지들의 뒤를 따르기를 택해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기분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다츠마에게선 승리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체를 쌓고 올라온 것은 신스케 만이 아니었다. 말이 없는 가츠라나 [[도쿠가와 노부노부]]도 다를바 없었다.
* 엔쇼가 무기를 숨기고 있다. 양이지사들의 통한의 실수였다. 엔쇼의 라이트세이버는 사정거리가 상당했고 고지를 잡고 있는 다츠마를 저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너무 방심했을까? 엔쇼의 기습이 너무 유효적절했던 걸까? 그의 칼날이 다츠마를 꿰뚫는다. 가츠라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한 사람이 희생된 후였다.
- 이보림 . . . . 6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포지션 배틀]] 중 댄스 부문에 가장 먼저 [[http://tv.naver.com/v/2366699|참가]]해서 43부트를 받았는데, 뒤에 나온 [[박지원(1997)|박지원]]이 48부트를 받아 밀려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RESTART 미션]]에서는 빨강팀에서 'Gee'를 공연했는데, 막내 [[한비(립버블)|한비]]에게 안무를 배우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초보자인지라 안무 중간 점검에서는 김화영에게 주시당했는데, 팀원들의 커버를 잘 받아서 '팀복은 타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도 많이 늘었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네가 틀리면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본 경연 도입부분에서 혼자 틀리는 실수를 범해 무대가 끝난 다음에는 이에 대한 자책감에 눈물을 보였고 이에 [[우희(달샤벳)|우희]]와 팀원들이 첫 실수 이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무대를 마친 것을 칭찬해 주며 격려했다. 현장 투표에서는 113표로 7위를 기록했다. 첫 미션에서 보여 준 [[의진(소나무)|의진]]과의 케미와 성장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방송 종료 후 공개된 중간 개인 순위에서는 무려 19계단이나 상승해 25위에 올랐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7~18회|셀프 프로듀싱 미션]]에서는 검정팀으로 참가해 또 다시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다. 중간 평가에서 갑자기 코피가 터진 의진을 리더인 [[세리(달샤벳)|세리]]와, 의진과 친한 보림이 화장실로 데려다 주었다. 그 외의 방송 분량은 별로 없었지만 본 경연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냈고 현장 투표에서 팀 내에서 딱 중간인 5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상 지적만 해왔던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영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영상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영상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남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식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 이선희 . . . . 6회 일치
그녀는 대학 시절이던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출전하여 《J에게》를 불렀다. 애초에 2학년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작곡가 [[장욱조]]의 음악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이세건]])가 말하기를 "아직도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아니 불러 준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 악보 뭉치를 주우면서 차라리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지 물어 보아 결국 허락을 받았고, 그 더미 속에 있던 노래가 바로 <J에게>였다. 3년이 지난 이후 1984년, 이 노래로 참가를 하여 MBC 강변가요제 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언니 부대’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 등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1991년 [[서울시의회]] 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제3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로 접어 들면서 고비가 왔다. 7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이전만큼은 아니었고 상업적으로도 제일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1992년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대응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8집 《조각배》를 발표하였다. 타이틀곡 <조각배>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한 실험적인 앨범으로서 색다른 변화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인연>은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장미>와 <왜?> 등은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 1987년 MBC 《[[푸른교실 (1987년 드라마)|푸른교실]]》
* [[4월 6일]] [13집 앨범] '사춘기 (四春基)' 출반 (EMI), 20주년 기념콘서트 실황앨범 출반
- 이인 . . . . 6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달동의숙(達東義塾)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경북실업보습학교(慶北實業補習學校)로 진학하였다. [[1912년]] 경북실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1912년]] [[일본]]에 건너가서 세이소쿠 중학교(正則中學校)를 다니다가 [[1914년]] 졸업하였다. 그해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과 야간부에 입학했고, [[1916년]]에는 수료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과에 편입했다.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에는 대학원과정인 일본대학 고등전공과(高等專攻科)에 진학, 공부하였다.
1963년 [[민정당]](民政黨) 창당에 참여하고 최고위원이 되었으나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1965년]] 이인은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서울특별시|서울]] 정의여고 강당에서 그의 장례식을 집행, 주관하였다. 당시 [[안재홍]]은 자진월북자라는 오해와 편견으로 금기시되었고, 꺼려했다. 그러나 이인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과 함께 [[안재홍]]의 시신없는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군사정권은 그의 의도가 불순함을 의심하여 내사하였으나 혐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를 결성했으며 [[국토통일원]] 고문에 선임되었다. [[1974년]]에는 [[국토통일원|통일원]] 고문에 재선임되었다.
*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페이지</ref>
* 반민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그러나 반민특위 강제해산으로 실패하였다.
* [[대륜고등학교|경상북도 대구 경북고등실업학교]] 수료
- 이인영(정치인) . . . . 6회 일치
이에 대해 박미숙 기자가 "운동권 시절의 가치를 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좀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라고 하자,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나보고 이라크 파병을, 한미FTA를 찬성하라는 건가? 내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옛날에는 각목 들고 바꾸려 했던 것을 지금은 표로 바꾸려 하는 것 정도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답하였다. 이로 인해 '화석화된 진보'라느니 '민중에게 권력을 주긴커녕 고립을 안겨주는 원리주의자'라느니 '약자심리, 피해자심리, 방어심리로만 가득한 운동권 출신'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당하였다.
참고로 이때 20대 총선에서 이인영이 고향인 충북 충주로 사실상 '''하방'''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2016년 당시 충북 충주는 민주당에게 사지(死地)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시종]]이 충북지사로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을 사퇴한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64% 이상의 득표를 했던 것. [* 다만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34.4% vs [[홍준표]] 30.4%로 문재인이 약 4%차로 승리했다.] 이인영이 아무리 야당 당대표 경선까지 출마한 나름 거물일지라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 갑에 그대로 출마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경쟁자로 불린 새누리당의 [[이범래]] 역시 20대 총선에서 타 지역구로 옮길 것을 주문 받았는데, 이범래는 실제로 지역구를 옮겼고 낙천했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이 지급되는 대상 사업의 범위와 기준보조율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중앙 및 지방정부의 예산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인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범위와 각 사업별 국고 보조율은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임. 한편, 양로시설을 제외한 노인시설 운영사업은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음. 그런데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일부 지원하여 종교시설 유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인복지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 주요내용 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 지급 제외 사업, 각 사업별 기준보조율을 법률로 상향규정함(안 제9조제2항?별표 1?별표 2 신설). 나.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 운영사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 사업에 포함함(안 별표 1 제122호 신설)]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반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상·재정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이장희 (시인) . . . . 6회 일치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1924년]] 《[[금성 (잡지)|금성]]》 3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 〈새한마리〉, 〈불놀이〉, 〈무대〉,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 작품과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신민》,《생장》,《여명》,《신여성》,《조선문단》등 잡지에 〈동경〉, 〈석양구〉, 〈청천의 유방〉, 〈하일소경〉,〈봄철의 바다〉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요절하였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으며, 사후 [[1951년]] 백기만이 청구출판사에서 펴낸 《상화와 고월》에 시 11편만 실려 전해지다가 제해만 편 《이장희전집》(문장사, 1982)과 김재홍 편 《이장희전집평전》(문학세계사, 1983)등 두 권의 전집에 유작이 모두 실렸다.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정우택은 비속한 현실에 맞서 절대 자유, 절대 자아의 순전함을 추구했던 이장희의 삶은 곧 그의 시라면서 그의 미적 태도를 '미적 근대성의 자기 파괴적인 양상'으로 명명하였다. 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장희는 근대적 주체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절대적인 지점까지 추구했던 시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ref>정우택, 〈고월 이장희 시 연구〉, 《민족문학사연구》21권, 민족문학사학회, 2002, 216쪽</ref>
- 이하영(강사) . . . . 6회 일치
2016년 2월 5일 공지사항을 통해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혔다.[* 사실 그 전에 [[강봉균]] 선생님이 강의에서 이하영 선생님의 임신 사실을 먼저 말했었다.] 이로 인해 2017 [[수능특강]]과 [[수능완성]] 강의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2016년 11월 '고2 학평기출의 7대 함정' 강의로 돌아왔다.
그 이외에도 연계교재 문제나, 수능 기출문제의 문제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수능 기출도 최근 3개년만 정도를 권하는 등 학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학영역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출제되어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이 더 맞아들어가고 있다.[* 다만 현장강의나 정모 등에서 온 수강생들을 보면 1등급보다는 2, 3등급 학생이 많이 보인다. 물론 대부분 그 이전에는 4~6등급 등 수포 직전까지 갔던 학생들이 이하영 선생님 강의로 성적을 올린 경우이기에 저평가할 수는 절대 없다.][* 다만, EBSi 수학 자체의 문제로, 강사 능력과 별개로 연계교재 위주의 공부로는 신유형이나 등급을 가르는 고난도 문제에 대한 대처는 부족한 건 사실이다.]
영어영역 [[이아영]] 강사와 공통점이 많다. 두분 다 미인 강사로 유명한데다 이름부터가...[* 실제로 이름을 크게 말하지 않으면 둘이 헷갈린다고 과거 강의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출신에, 해당 영역의 중하위권 학생에 포커스를 두고 친절하게 풀어가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라는 과거 강의에서의 언급도 있다.~~그런데 이'아'영 선생님 항목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하'영 선생님 항목은 2016년에야...~~
ebsi의 사회탐구 영역 담당의 모 피디[* 진리 피디라고 불린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실제로 지리과의 [[강봉균(강사)|강봉균]] 선생님 라이브 클래스에 둘이 같이 나온 적이 있다!!! 단 2013년 라클이라 지금은 아쉽게도 지워져 볼 수 없다. 강봉균 강사와 상당히 친하다.
- 인종개량 . . . . 6회 일치
정치가 카토 히로유키(加藤弘之)는 1886년 「인종개량의 변(人種改良ノ弁)」이라는 주장으로 타카하시 요시오의 인종개량론에 반박하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의식주]] 등의 환경을 개량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종 생산을 통한 인종개량의 비현실성도 지적하였다. (1) 어떤 조합으로 인종을 개량해 나가야 할지, 그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하다. (2) 많은 세월이 걸려서 비현실적이다. (3) 몇대나 잡종을 반복하다보면 일본인의 피가 멸종해버린다.
일본인의 의식주의 개선을 통한 환경개량은 괜찮은 호응을 얻었을지 몰라도 타카하시 요시오가 주장하는 서양여자를 수입해와 잡혼을 통해 혼혈로 일본인종을 개량하자는 주장은''' 당시에도 극단적인 개소리로 취급됐고, 단 한번도 일본정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시행된적이 없다.''' 애시당초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일본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사실이다.
* 혼혈을 통한 인종개량 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사실 근대 일본에서도 그리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이었고, 실제로 정책적으로 옮겨진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가 와전되었는지 한국 인터넷에서는 일본인들이 개화기에 '혼혈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는 펼쳤다는 루머가 퍼져 있다.[[http://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363548&rtn=%2Fmycommunity%3Fcid%3Db3BocWlvcGhyM29waHFnb3BocW5vcGhxb29waHFxb3Boc2ZvcGhza29waHNmb3Boc2g%3D (참조)]][[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073574 (참조)]]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6회 일치
* 과거 핸디가 지배당하고 있을 때 한 실험과 비슷하지만 전혀 실패하지 않고 순도 높은 "진짜 마신족"을 만드는 차이가 있다.
* 반은 폭스 헌트로 구근을 제거하려 하지만, 갓 태어난 마신족의 구근은 깨알처럼 작아서 실패.
* "실험"에 빠져있었지만 결국 만족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하는 그녀.
* 정체가 비비안이란건 길프로스트가 차고 있는 반지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사실. 하지만 전혀 갱생한 면모가 없고 또 길선더만 살리겠다고 도망쳐버리는 졸렬함을 보인다.
* 멀린의 부활. 갈란이 죽었으니 멀린의 부활도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멀린은 전력감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십계 중 중위권인 갈란에게도 대책없이 당했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6회 일치
* 그레이로드는 겁 먹고 도망치려 하지만 멀린이 "엔들리스 월"이라는 바람의 마법을 사용, 그대로 실험관에 가둬버린다.
* 무슨 조화인지 파이브 로스트의 마력이 지워져 버렸다. 멀린은 "실험대가 되어준 답례"라고 말한다.
* 그녀는 뜬금없이 "실험"에는 시간이 들어간다는 설명을 시작한다. 시간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고 그동안에 지식에 대한 "탐구욕"은 충족되긴 커녕 더욱 굶주리게 된다.
* 이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태연하게 늘어놓는 멀린.
* 그레이로드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남김없이 실험관으로 빨려들어간다.
* 한순간에 성이 통채로 날아간 바토라 왕은 망연자실해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6회 일치
* 이번에도 밀리면 정말로 기회가 없다, 절실함에 사무친 바트라가 "내가 말하겠다!"며 나타난다. 사실 멜리오다스는 이미 그가 와있는걸 눈치챘던 모양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고서는 기억해냈다. 소중한 약속과 [[나자 리오네스]].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고서의 다음 행동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고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버렸다. 바트라가 기다리라고 말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일행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반은 오줌이나 똥이 아닐까 하는 한심한 추리나 하고 있었다. 디안느는 바트라가 보여준 물건이 그를 도망치게 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건 고서 자신의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일곱 개의 대죄/고서 외전|그가 바트라의 누나 나자에게 주었던 물건]]. 원래 고서의 가슴 속에 있어서 마법의 마음을 주었던 물건이다. 에스카노르는 "마법의 마음"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상을 떠올린다. 멀린은 그보다는 실용적인 착상이 떠올랐는지 바트라에게 그 물건을 잠시 보여달라 한다.
* 멜리오다스와 반은 같은 방향을 수색했다. 반은 가던 중 과일장수의 사과를 하나 슬쩍하며 단장에게 "고서가 인형이란걸 알았냐"고 묻는다. 물론 멜리오다스는 알고 있었고 진짜 십계 고서와도 아는 사이였다. 십계 고서는 마신왕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실력으로 "무욕"의 계금을 받고 십계로 발탁됐다. 무욕의 계금은 욕심을 품는 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빼앗는다. 이걸 부여해준 마신왕도 예외는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자신의 분신인 인형 고서를 만들었다. 그 용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쏙 빼닮게 만들었지만... 정욕을 품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남자로 만든 것이다.
실로 다이나믹하게 고서의 마법을 캔슬해 버리는 디안느.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6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모르는 척 얼버무리기만 하고 엘리자베스는 의기소침해진 채 돌아간다. 멜리오다스는 사실 아직은 그걸 고백할 각오가 안 됐다고 씁쓸해한다.
* 멀린이 걸린 저주와 접촉한 엘리자베스는 저주의 마력을 통해 젤드리스와 만나는데, 그는 엘리자베스가 구면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진실을 알고 있었는데.
* 한동안 조용했던 리오네스 성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하녀들이 절절매며 리오네스 왕가의 장녀 [[마가렛 리오네스]]를 쫓아다닌다. 하녀들이 지금 마가렛이 하려는 행동은 "[[바트라 리오네스|폐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고 설득하지만 마가렛은 "아버지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보다 일전에 내린 명령에 대해 확인한다. 납치된 성기사 [[길선더]]의 수색과 구출. 그리고 그를 범인 마녀 [[비비안]]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하녀들이 주저하며 밝힐 바로는 진전이 없다. 리오네스 왕국은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나 아직 십계 토벌이 완료되지 않았고 언제 재차 침공당할지 모르는 상황.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명령으로 현역 성기사들은 모두 성의 수비로 투입되어 도저히 차출할 병력이 없었다. 마가렛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엘리자베스가 조심스럽게 오늘의 진짜 용건을 꺼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라트라스]]가 드루이드의 주술로 보여준 16년 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가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첫 만남. 그런데 무슨 우연인지 그의 연인이었던 [[리즈(일곱 개의 대죄)|리즈]]가 죽은 것도 16년 전이다. 그녀는 [[케인(일곱 개의 대죄)|케인]]이 알려준 사실이라며 리즈의 본명이 엘리자베스인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그저 아이러니인 것처럼 웃어넘긴다.
* 멜리오다스가 숨기고 있다. 아니, 속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실망한다. 그녀는 힘없이 돌아서며 전부 "바보같은 이야기"있다고 사과한다. 멜리오다스를 두고 돌아가기 전, 그녀가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말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남자. 엘리자베스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십계의 [[젤드리스]]. 분명 멜리오다스를 죽이는데 일조했던 남자. 자신의 마력에 개입하는 존재를 느끼고 나타난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손님이라 부르더니 정말로 반갑다는 양 "오랜만이다"라고 인사한다. 엘리자베스는 십계가 나타난 것도 그랬지만 그가 구면인 것처럼 구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반응을 보더니 젤드리스가 "소문은 사실이었다"며 불쌍한 여자라고 빈정거린다. 무엇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스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달라 소리치자 젤드리스의 태도가 험상궂게 바뀐다. 그리고 그의 발설하는 엘리자베스의 비밀.
- 정승화(육군) . . . . 6회 일치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상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그래서 [[10.26 사건]] 후 계엄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에게 약점을 잡혔고, 전두환의 월권행위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당하고 말았다. 모진 [[고문(범죄)|고문]] 후 결국은 석방되었지만 이미 모든 실권은 전두환에게 넘어간 뒤였다. [[장태완]](당시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당시 특전사령관)가 정 총장의 연행사건에 대해 크게 분노를 하고 신군부를 제압하려고 계획을 세우지만, 그들만으로 신군부 세력들을 막을 수 없었고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마저 믿었던 부하들에게 잡히고 만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후 기소되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반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으며, 그간 받은 장교 급여분도 이병으로 동일 기간을 복무할 시 받을 [[화폐|돈]]을 제외하고 전부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혜 권리도 박탈되어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수감기간 중 [[한미연합사|한미연합]][[사령관]] [[존 위컴]] [[장군]]이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 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남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세간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그것이 87년 대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직선제로 치러지게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김영삼]]-[[김대중]]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재야 진보진영에서 [[백기완]]까지 출마하면서 야당표의 분산으로 노태우 당선(당시 김영삼과 김대중 등 두명이 하나로 단일화됬어도 노태우가 대선에 당선될일은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노태우는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무혈입성)이 유력하였다. 정승화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김영삼]]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정웅인 . . . . 6회 일치
|제목= 첫딸 공개한 정웅인 “코미디는 피같은 존재다” 연기열정 고백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7100023121001 |출판사=뉴스엔|날짜= 2008-07-10 }}</ref> 이후, 정웅인이 본격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으로 [[1998년]] 38.5%의 시청률을 기록한 《은실이》에 의리 있는 깡패 춘식 역할에 이어, [[1999년]] 53.1%의 시청률을 기록한 《국희》에서 강하고 신념있는 자본가 김상훈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align="center"| [[미생 (550년)|미생]] (미실의 동생) 역
|align="center"| 월화 드라마 《[[은실이]]》
|제목= [방송]<세친구>올 한해 최고의 스타 산실로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040443 |출판사=동아일보|날짜= 2000-12-24 }}</ref>
| [[1999년]] || || 《신용협동조합연합회》 || 금융 이미지 광고 || 드라마 《은실이》 출연진
| [[은실이]]
- 정형돈 . . . . 6회 일치
이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2001년까지 생산직으로 근무하였으며, 퇴사 후 곧바로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개그맨 [[박준형 (희극인)|박준형]]과 [[정종철]]로 대변되는 '갈갈이 패밀리' 극단에 입단하여 예비 개그맨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키워나가던 중, 2002년 실시한 제17회 [[KBS]] '신인 개그맨 선발대회'에 응시하여 동상으로 입상, KBS 1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동기는 [[김병만]], [[김다래 (희극인)|김다래]], [[권진영]], [[이정수 (희극인)|이정수]], [[김민정 (희극인)|김민정]], [[이경우]] 등이 있다.
* [[SBS]] 《즐겨찾기 68회 (8월 23일) : 실험카메라 - 게스트》
* [[SBS]] 《진실게임 372, 373회 (6월 5일, 12일) : 문제 출제자》
* [[MBC]] 《웃고 또 웃고 16회 (6월 3일) : 꽁트 - 취조실 1, 2》
* 2014년 8월 28일 [https://www.youtube.com/watch?v=RI-WMARJkXM 《확실하네》] - 형돈이와 대준이
* 1편 - 무한 상상이 현실로!
- 진격의 거인/81화 . . . . 6회 일치
* 짐승 거인은 "과거의 실수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비웃으며 투석을 거듭한다.
* 짐승거인의 인간체는 "이 시점에서 넌 실패한 것. 아주 위험했지만 우린 이겼다"고 리바이를 조롱한다.
* 망연해 있는 리바이는 "널 죽이겠다고 그와 약속했다"고 중얼거리며 달려드는 거인들을 향해 입체기동을 실시한다.
* 아르민은 과거 엘렌으로 했던 실험을 예로 들면서 "거인화는 무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떠올린다.
* 엘빈이 맞은 자리는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을 빗나갔을 법한 위치지만 확실치 않다.
* 리바이는 오랜만에 거인무쌍을 펼치고 압도적으로 짐승거인을 유린해 버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이는데는 실패한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6회 일치
* 실제로 거인 측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희망을 만들어낸 전략은 모두 아르민이 입안한 것.
* 모두 죽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때 엘빈은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 한지에게 안긴 채 현실을 받아들이는 미카사.
* 그리고 엘빈의 꿈. "지하실에 가고 싶다." 리바이는 "너의 꿈이 이뤄지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었다.
* 다소 허무한 엘빈의 대답. 그러나 그는 최후의 옥쇄작전 직전까지도 "지하실에 가고 싶다"는 꿈을 몇 번이나 말한다.
* 최후에 살아남은 것은 아르민. 사실 엘빈의 지휘관 캐릭터는 대신할 자가 있지만 아르민은 대신할 자가 없다는 점에서 생존이 유력했다.
- 채동욱 . . . . 6회 일치
* 2009년 : 법무부 법무실장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상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상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상태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 [[운명의 인간]] - 유미나리 료타
- 최영미 (시인) . . . . 6회 일치
[[서울대학교]]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에 가담하여 [[서울관악경찰서|관악경찰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반독재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 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했다. 십 여명이 번역과 교열작업에 매달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해방 이후 최초로 현대 한국어로 옮긴 《자본 1》이 1987년 이론과실천사에서 김영민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역자로 내세워 출판되었고, 출판사 대표는 사회주의 원전을 출판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영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최영미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수문학상 심사위원 유종호교수는 “최영미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이유를 구현한다”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돼지들에게》의 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라고 썼으며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라며 심사평을 전했다.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미국의 계관 시인이자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2009년 버클리에서 열린 시 낭송회 런치 포임(lunch poem)에서 " 최영미의 시는 추상표현주의 회화같다."라고 평했다. 2005년 일본의 청수사(靑樹社)에서 출간된 최영미의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문화면 머릿기사로 다루며 《아사히신문》은 "다의성(多意性)이 풍부한 명석한 언어"라며 "시에 의해서 잉태된 언어를 이만큼 신중하게, 고독하게 기르고 있는 시인이 가장 이웃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라는 사사키 미키로 시인의 평을 실었다.
세 명의 한국 작곡가- 이건용, 김대성 그리고 안치환이 최영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울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이 작곡하고 전경옥이 노래한 아트 팝 겸 클래식 음반 《혼자사랑》 (1998년)에 최영미의 시 4편을 노랫말로 삼은 〈선운사에서〉,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슬픈 카페의 노래〉, 〈북한산에 첫눈 오는 날〉의 4곡이 포함되었다. 무형문화재인 국악인 강권순의 창작 가곡집 《첫마음》(2007년)에 김대성이 작곡한 노래 '선운사에서'가 수록되었고, 안치환의 10집 앨범인 《오늘이 좋다》(2010년)에 안치환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 〈선운사에서〉가 실렸다.
*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 2005) {{ISBN|8939205286}}
* 《이미 뜨거운 것들》 (실천문학사, 2013)
- 카치구미 . . . . 6회 일치
사실 신도연맹이 탄생하기 이전, 1944년 부터 브라질 일본인 사회는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이 당시 '박하국적론'이라는 괴문서가 브라질의 일본인들 사이에 나돌고 있었는데, 이것의 내용이 이상과 같이 황당무계한 것이었으나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믿어지고 있었다.
1946년 3월 7일, 산업조합 이사 키요베 이쿠타(清部幾太)가 상파울로에서 460킬로미터 떨어진 바스토스 마을에서 살해되었다. 키요베 이쿠타는 일본의 패배를 인정하는 '마케구미'였기 때문에 카치구미의 과격파에게 습격을 받아, 한밤중에 화장실을 갔다가 살해당했던 것이다. 키요베 이쿠타를 시작으로 하여 총 23명의 마케구미로 지목된 인사가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 경찰은 신도연맹(臣道連盟) 회원을 닥치는대로 검거하고, 일부는 감옥에 보냈으며, 추방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8월 27일에는 브라질 연방헌법 제정회의에서 "일본인 이민을 금지하는 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을 심의하기도 했다. 가부동수를 이뤘다가 의장이 반대표를 던져서 부결되었는데, 반대 이유는 일본인 이민 금지에 찬성이지만 이런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브라질의 신문,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보는 점점 일본인 사회에도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를 알아도 카치구미는 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카치구미를 내버려두면 브라질에서 일본인은 서로 죽이거나, 사기를 거듭하며 일본인 사회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일본인, 일본계 브라질인 가운데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카치구미를 설득하고자 했는데, 이를 '인식파'라고 불렀다.
6월 3일 스웨덴 공사관 일본인 권익부는 요시다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상파울루 주 집정관이 관저에 카치구미 600명을 모아서 진실을 알리고 설득했다. 심지어 일본에서 직접 정치인이 브라질까지 와서 향후에 대한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카치구미는 믿지 않았다.'''
- 킹덤/499화 . . . . 6회 일치
* 조 서부 공략군으로 지칭된, 실제론 "업 공략"을 위한 연합군이 출병한다. 수도의 병사들은 함양이 떠나갈 듯이 성원을 보낸다. 꺼림직하게 여겨지던 산민족이나 환의군 조차 엄청나게 응원을 받는다. 비신대의 활형제를 비롯한 신병들은 긴장으로 위축. 반대로 연을 비롯한 고참들은 자기들이 출세하긴 한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떤다.
그 말은 사실이다. 하료초는 모른척 맞장구를 쳤지만 진짜로 전모는 철저하게 기밀이었고 그들만 아는 사실이라는 점을 실감한다.
* 과거 육대장군의 일각이자 군사로서 "지력 하나만으로 육장에 올랐다"고 평해지던 호양. 다른 육장들이 무용을 자랑할 때 그는 오로지 군략만으로 싸웠고 전쟁의 자유를 받가 각개전투했다는 인상이 강한 육장들이 실제론 그가 그려놓은 큰 그림 하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창평군과 왕전은 한가로워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자리엔 [[창문군]]을 비롯한 참모진이 전부 자리하고 있었는데, 창평군은 이들을 대포하는 입장이면서도 "업 공략이 전황 상 여의치 않으면 포기해도 좋다"는 발언을 한다. 업 공략이야 말로 작전의 진짜 목표이며 이것이 좌절되었을 땐 진나라의 명운도 좌절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언. 창문군은 그렇기 때문에 창평군의 발언에 내심 경악한다. 하지만 개억은 진짜 버리란 것이 아니라 그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며 그만큼 업공략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전장이라 그렇다고 이해한다.
- 킹덤/500화 . . . . 6회 일치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진시황(킹덤)|정]], 이신과 셋이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지금 이신과 하료초는 "커졌다"고 말하는데. 하료초도 새삼 추억에 잠기다가 "사실 그때 [[벽(킹덤)|벽]]도 있었다"며 정정해주지만 양단화는 벽의 존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료초는 그때는 지금같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지만 양단화는 그때 이미 정이 중원의 패자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한다. 그때 그의 눈빛이 남달랐기 때문인데.
이번 작전은 고소의 기만전술. 흑양으로 출병하지만 실제 노리는건 업이다. 중간에 진로를 바꿔 단숨에 업으로 처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세를 흘리거나해서 적이 알아차린다면 시작해볼 수도 없는 작전이다. 이목은 분명 진군 내부에도 밀정을 심어놨을 것이며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면 분명 그 사실이 이목에게 전달될 것이다. 양단화는 그렇게 말하며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충고한다. 그 의미를 이해한 하료초는 감사를 표한다.
이들이 파악한 정보는 속속 순수수에게 전달된다. 약 50만석의 군량이 금양을 통해 흑양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보고. 순수수는 그만하면 흑양 침공은 사실이라고 파악한다.
* 그런데 문제의 금안. 군량이 금안으로 모여드는 건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군량은 그대로 흑양으로 가고 있는게 아니다. 금안 내부의 비밀공간에선 조군을 속이기 위한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흑양으로 보내는 군량은 거의 다 가짜 군량. 이곳은 벌써 3개월 전부터 준비된 공간이며 금안에 들어온 군량을 흙과 목재 따위로 무게만 맞춘 가짜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진짜 군량은 모조히 금안에 축적되어 수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왕전의 조치.
* 여기에서 이목이 호출한 호첩이 '왕도의 수호신'이란 별칭을 갖고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 호첩은 10만 군사를 이끌었다가 환의에게 격파당한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6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의 실사영화. 90년대에 나온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 이후에 나온 두번째 영화화다. 제작은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를 만든 [[20세기 폭스]]이며 이후 2007년에 속편인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국내 개봉하면서 제목을 <판타스틱 4>라 했다. 그러다보니 몇몇 사람들은 저 4를 '4번째 작품'이란 뜻의 4로 착각하여서 이 영화가 전편이 있는 물건인 줄 알고 '''판타스틱 3, 판타스틱 2''' 등을 찾아보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었다. 사실 원제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Fantasrtic Four'라고 표기되니 딱히 헷갈릴 일이 없는데 굳이 4라고 써놔서...
상술한 대로 그리 좋은 소리 못듣는 판이나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2015년에 나온 판타스틱 포 영화]]가 매우 심각한 상태라서 재평가(?) 받았다.
- 페어리 테일/510화 . . . . 6회 일치
* 한편 현실의 스팅 유클리프는 전장으로 복귀하던 도중 라케이드 드래그닐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다.
* 아이린으로부터 달아난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은 정신을 잃은 나츠 드래그닐, 그레이 풀버스터, 쥬비아 록서를 데리고 디마리아가 포박돼 있는 지하실로 돌아온다. 그레이와 쥬비아는 외상은 심하지만 그레이는 브랜디쉬가 상처를 작게 만들고 쥬비아는 웬디 마벨의 치료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다. 문제는 나츠. 그의 안에 있는 END의 힘은 폴류시카도 브랜디쉬가 어찌할 수 없다. 해피는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나츠의 정신은 어딘지 모를 공간에 있다. 나츠는 주변을 살피다가 어떤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제레프 드래그닐. 나츠는 바로 발끈해서 덤비지만 제레프는 여긴 나츠의 마음 속이며 자신은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츠는 앞뒤없이 덤벼드는데 제레프를 뚫고 횡하니 지나가 버린다. 제레프는 여기에서라면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하지만 나츠는 빈정댄다.
그가 나츠를 이그닐에게 맡긴 이후의 기억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혼룡 의식의 영향으로 매우 훼손된 기억. 사실 이그닐과 함께 있던 시절부터 나츠와 다른 멸룡마도사들은 인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질 레드폭스는 항상 티격태격하던 사이. 웬디는 둘을 말리러 오곤 했는데 항상 울고 있었다. 제레프는 잠시 "그 애"도 곧 웬디랑 만나게 될 거라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하는데.
* 한편 현실의 진짜 스팅은 프리드 저스틴의 도움으로 전장으로 복귀 중. 중간에 프리드는 렉서스 드레아를 찾으러 갈라졌다. 스팅은 세이버투스의 동료들을 찾아 정신없이 달리는데 문득 이상한 냄새를 맡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6회 일치
해골 없음. 나오는 특수경찰은 실드가 끝이다.
은밀하게 침투해 목적을 이루고 탈출하는 방식. 솔직히 말해서 신고만 안 들어가면 된다. 이 과정에서 들키면 플랜 B로 넘어가지만[* 스텔스 전용 하이스트의 경우에는 탈출할 시간을 준 다음에 그 전에 탈출하지 못하면 실패 처리. 탈출 지역의 경우 목적을 완수해야지만 표시된다.] 보통은 게임을 리스타트한다.
최대 네명까지의 경비원을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으며, 그 후에는 관제실에서 해당 경비원을 호출하는 것에 응답해야 한다. 관제실에서 이상을 감지하고 상황을 물어보는걸 경비원인 척 하며 속여넘긴다는 설정. 일정시간 내에 페이저 응답을 하지 않거나 페이저 응답을 하던 중 중단하면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시체를 볼 만한 위치인가 아닌가 판단한 다음, 볼 만한 위치라면 바디백에 넣어서 못 볼만한 위치(쓰레기통, 숲 속, 방구석 어딘가 등등)로 옮기자.
감시 카메라는 바로 밑에 있거나 ECM으로 잠시 마비시키거나 아예 박살내는-당연히 소음무기로-방식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면 경비원이 무슨 일이 생겼나 보러 와서 신고해버리니 주의. 맵 어딘가 있는 경비실 문을 따고 들어가서 그곳의 경비원을 무력화시키면 모든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3일에 한번 등장하는 하이스트. 안전가옥을 습격한 경찰들이 안전가옥 어딘가에 쌓아둔 돈더미를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하이스트이다. 경찰들이 일정량 이상 현금 가방을 가져가면 실패. 일정량의 수준은 선택한 난이도 마다 달라진다. 반면 현금을 뺏기지 않고 경찰의 어썰트를 세번 막아내면 성공한다.
- 하이큐/225화 . . . . 6회 일치
* 스가와라 코시는 "성장했다"고 감탄하는데 히나타는 츠키시마를 두고 한 말인 줄 알았지만 사실 히나타를 두고 말한 것.
* 사와무라는 "타나카의 체력도 남았으니 이 상황에서 가능한걸 이것저것 실험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 아즈마네는 그것도 잘 받아서 힘껏 때리지만 다테의 블록에 막혀 실점한다.
* 서로 다투듯 사과하는 웃기는 상황. 사와무라가 스무스하게 풀어주고 각자의 과실을 정확하게 따지고 넘어간다.
* 그리고 왠지 아즈마네도 "뭐 하나 실수할 때마다 세상 멸망한 듯한 표정 짓지마라"는 디스를 듣는다.
* 하지만 살짝 짧게 올라간 데다 다테의 튼튼한 벽에 맞혀 히나타도 공격에 실패한다.
- 하이큐/228화 . . . . 6회 일치
* 귀가 중 다테 공고 3학년 3인방과 마주치는 카라스노 3학년 3인방. 긴장된 분위기가 감돈다. 특히 아즈마네 아사히는 엄청 굳은 표정. 저쪽도 카마사키 야스시가 만만치 않은 표정이다. 모니와 카나메는 봄고 대회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을 한다. 카라스노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점잖게 "감사합니다"하고 화답하고 돌아서는데 막상 갈라진 뒤에는 각자 일행끼리 실없는 대화나 주고 받는다.
* 그날 저녁. 자율연습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는 주장지시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는 니시노야 유에게 언제나처럼 서브 연습을 청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연습을 청한거 치곤 수십분 만에 페이스를 따라가기 버거워서 헉헉 거린다. 니시노야는 서브 연습은 심박수가 높은 상태에서 하는게 이상적이라며 페이스를 늦추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에선 심박수가 높아진 상태에서 때리기 마련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 이를 갈면서도 서브를 올리는 키노시타. 이번엔 니시노야가 리시브에 실패하는데 자체패널티로 손가락 푸쉬업 10회를 달리며 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도중부턴 타나카 류노스케까지 끼어서 연습은 더욱 열기를 띈다. 보고 있던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리시브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데 "공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한다"는 살벌한 표현으로 돌아온다.
* 키노시타는 니시노야에게 "오버로 받는게 약하면 언더로 받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는데, 니시노야도 그런 생각은 하지만 더 수준 높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이상 선택지가 늘어나는데 안 할 수가 없다고 답한다. 키노시타는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실패할 바엔 성공을 포기한다"는 소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서브 때문에 카라스노는 고전하고 있다고 자각한다. 키노시타는 "니시노야가 못 잡을 서브를 치겠다"는 각오로 다시 연습에 임한다.
* 히나타가 하는 연습은 혼자하는 리시브 연습법인데 우선 높이 튕긴 공을 받아 위로 패스하고 공이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지면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면 여러 동작을 중첩해야 해서 만만치 않은 훈련. 당연히 나츠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지만 히나타는 능숙하게 반복한다. 여동생에게 자랑하는데 지나던 어머니는 "허무하지 않냐"고 딴죽을 걸어서 김을 빼버린다.
키노시타는 자신 때문에 카라스노가 전력 공백을 겪고 있다고 자책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스포츠에서 특정 포지션이 부족한건 흔한 일. 게다가 카라스노 정도면 선수층이 두껍지는 않아도 갖출 건 다 갖춘 팀이다.
- 하이큐/250화 . . . . 6회 일치
* 스파이크에 실패한 [[히나타 쇼요]]는 안 어울리게 미안해하며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치를 보나 가차없이 야단 맞는다.
* 그런데 카라스노의 사기를 올린 문제의 페이크 콤비네이션은 히나타가 실수해서 호흡이 틀리는 바람에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이었다.
* 절호의 속공 찬스를 어이없이 놓친 [[히나타 쇼요]]. 중계석에서는 [[카라스노 고교]]의 경기 초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그런데 히나타가 답지 않게 죽을 만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물론 상대편 [[미야 아츠무]] 조차 "너무 풀죽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코트 바깥의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실수했다고 저렇게까지 좌절한 적이 있던가? 의문을 표시한다.
* 아니나 다를까, 미안하긴 커녕 그냥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치를 본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적당히 넘어가 주지 않을까하는 얄팍한 잔머리.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가차없는 독설이 응징을 가한다.
* 모두를 놀라게 한 속공. 그런데 카게야마는 나름 아찔한 경험이었다. 히나타가 친 페이크에 같이 넘어가서 잘못 올릴 뻔 했기 때문. 그런데 히나타도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진 마찬가지다. 정면의 "무서운 얼굴", 오미미를 피하려다 엉겁결에 그런 플레이가 나왔기 때문. 이러한 사실을 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조용히 묻힌다.
연재 5주년 기념 센터 컬러는 모처럼 등장한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차지. 원래 히나타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텐도 사토리]]가 히나타에게 사기를 쳐서 엉뚱한 곳으로 보내고 카메라를 스틸했다... 라는 설정. 텐션이 오른 텐도가 "이번 에피소드는 전편 실사화"라는 개드립을 쳐대서 후배들이 말리는 내용이다.--이딴 걸로 귀중한 컬러를 날려먹는 거냐--
- 하이큐/257화 . . . . 6회 일치
* 승부의 관건은 미야 형제가 후위로 내려갈 때까지 얼마나 실점을 막는다. 여기서 히나타가 적극적인 리드 블록 가담을 승부수로 삼는다.
츠키시마의 지적처럼 우카이 코치도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이상적인 블록은 [[다테 공업 고교]]의 그것처럼 어떤 공격이든 두 장 이상의 리드 블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카라스노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미야 형제의 속공에 휘말려 블록이 분산되는 것. 즉 이 작전은 미야 아츠무가 후위로 내려갈 때까지 최대한 실점을 줄이는데 역점을 두었다.
* 그리고 이 작전의 첫 시험대. 아츠무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괴짜 속공으로 나온다. 카라스노 진영의 수상한 움직임. 오사무가 뒤에서 달려나오자 마자 히나타도 뛴다. 커밋 블록.[* 블로커가 스파이커의 움직임에 맞춰서 뛰는 블록을 뜻한다.] 이 예상 외의 움직임이 먹힌다. 정확하게 괴짜 속공을 셧아웃. 공을 이나리자키 진영으로 돌려보낸다. 그대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의외의 실적에 카게야마, 츠키시마, 우카이 코치의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가장 놀란건 성공한 히나타 자신.
* 코치의 걱정은 사실화되었다. 키노시타의 두 번째 서브.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여봐란 듯 다시 괴짜 속공을 건다. 이번엔 방금 활약이 무색하게 득점을 허용하는 히나타. 아츠무의 득점으로 19 대 18로 다시 이나리자키가 앞서 간다. 그리고 키노시타의 기용도 종료. 키노시타는 벤치로 돌아가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나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았다. 리시버가 언더로 받게 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두 번째 서브는 조금 더 모서리를 노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과 별개로 그의 투쟁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성과. 그 점은 [[스가와라 코시]]가 본인 보다 먼저 눈치챈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공이 히나타에게 연결되지만 이번 스파이크는 실패. 블록에 막힌다. 다시 공을 가져간 아츠무가 또 괴짜 속공. 이번에는 히나타의 블록이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다행히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 이제 코트 밖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입장이 된 키노시타는 다시 한 번 "기회는 동등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상대도 결국 고교생. 하지만 똑같은 고교생이 아니다. 자신보다 몇 배의 노력과 경험을 쌓은 고교생. 기회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 하이큐/260화 . . . . 6회 일치
* 스코어는 다시 동점이 된 상황에서 또다시 카라스노의 리시브 실패, 공이 이나리자키 측 관중석으로 날아간다.
* 봄고 대회 첫날.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바키하라전에서 원포인트 서버로 기용돼 좋은 활약을 했다. 야마구치의 개인코치였던 [[시마다 마코토]]가 그를 찾았다. 야마구치는 자랑스럽게 3층 비상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았다고 말하고 시마다는 내일도 그렇게만 하라고 격려해줬다. 그게 복선이었던 걸까? 오늘도 그 비상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으려뎐 야마구치의 예정은 뜻밖의 적재물이 비상등을 가리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은 그 사실을 응원석에 있던 시마다가 알아차렸다는 것. 그런 사소한 차이 조차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아는 그는 필사적으로 3층 비상등을 향해 뛴다.
* 지금 플레이가 봄고 참가 이래 최고의 서브다. 야마구치의 폼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이 깨끗한 반원을 그리며 [[마지로 알렝]]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리시브 실패. 바로 옆을 스쳐가는 공에 손을 뻗어보지만 닿는게 어설펐다. 빗맞은 공이 그대로 코트에 닿는다. 야마구치의 서브 에이스. 카라스노 득점 성공. 22 대 23. 경기 시작 후 최초의 역전. 더불어 끈질기게 이어졌던 추격전이 뒤집혔다. 동료들의 환호. 지금은 카라스노냐 이나리자키냐를 놓고 티격태격했던 바보 커플도 대동단결해서 환호한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투토 코타로]]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서브의 일등공신이었던 시마다는 적진 한가운데인 것도 잊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쏟아지는 눈총에 곧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나리자키 진영. [[미야 아츠무]]가 촐싹 맞게 "당했다!"고 탄식한다. 그 소리에 리시브를 실수한 오지로가 급 시무룩해졌다. 긴지마가 거 보라며 아츠무를 쪼아댄다.
* 카라스노의 역전으로 경기의 흐름이 반전됐다. 과연 카라스노는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야마구치에게 달렸다. 야마구치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공은 오지로에게. 하지만 그도 두 번은 실패하지 않는다. 정확힌 리시브. 아츠무가 방금 전 무안준 것을 보상하듯 "나이스 리시브!"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와 동시에 세트업, 강렬한 스파이크로 카라스노 진영에 돌아온다. 이번엔 야마구치의 리시브. 공인 야마구치를 날려보내다 시피하며 멀리 튕겨나간다.
거기서 공을 받는 카게야마. 이게 이어진다. 공이 무사히 카라스노 진영으로 돌아온다. 미카가 당황해서 이런 플레이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 물론 가능하다. 공도 선수도 상대측 코트를 밟은 게 아니기 때문에. 스구루는 당황하는 미카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성실하게 이런 해설을 해준다.
- 하이큐/265화 . . . . 6회 일치
*야쿠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돌이켜 보니 코즈메는 확실히 체력은 없지만 실제 연습에선 어지간하면 다 따라왔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정도로. 마침 쿠로오가 전에 했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빨리 일어나기 사건. 코즈메는 게임 때문에 맨날 늦게 잤는데, 쿠로오가 런닝하려고 일찍 일어나 보면 그때도 코즈메 방에 불이 들어와 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가 대략 오전 5시 경. 처음엔 철야로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철야가 아니라 "일찍 일어난" 거였다. 무려 오전 2시 기상. 철야를 하면 부모님이 게임을 죄다 버려버리니까, 반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서 게임하는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러나 카이는 코즈메가 최근 더 의욕이 생긴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카라스노 고교]]과 연습시합을 하면서부터다. 야쿠도 "거기 꼬맹이"랑 죽이 맞아서 같이 다니더라고 맞장구 쳤다. [[히나타 쇼요]]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둘이서 완전 정반대 타입이면서 잘도 죽이 맞는다고 했다. 쿠로오는 희안하게 생긴 친구라 그렇다 했다. 코즈메 입장에선 "실존하는, 귀중한 공략 대상"일 거라고 추측했다. 히나타도 코즈메는 꼭 쓰러뜨리고 싶은 라이벌 중에 하나일 테고. 비록 야쿠는 "켄마는 져도 신경 안 쓰니 이겨도 보람이 없을 거다"고 반쯤 빈정거리긴 했지만, 히나타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것이다.
* [[애마모토 타케토라]]와 야쿠의 중간. 둘이 동시에 리시브를 뻗는다. 받은 건 야쿠 쪽. 떠오른 공을 코즈메에게, 코즈메가 쿠로오에게 연결해 스파이크. 그러나 사루카와 9번이 리시브한다. 다시 사루카와의 공격. 이번에도 그쪽 4번이다. 또 스파이크로 나올까? 아니었다. 코즈메와 쿠로오의 블록을 살짝 넘기도록 밀어넣는 페이크. 그 바로 뒤에 있던 카이가 재빨리 눈치채서 커버한다. 탄탄한 수비. 중계진이 "수비의 네코마"를 연호하며 칭찬했다. 카이가 살린 공을 받으려고 코즈메가 다시 후방으로 향한다. 코즈메가 왕복하는 패턴이 계속된다. 이번엔 후쿠나가 쇼헤이에게 보내서 좌측을 공략해 보는데. 하지만 실패. 사루카와도 네코마 못지 않게 끈질긴 수비를 펼친다.
네코마 측이 얼마나 자각했는진 모르지만, 이미 그들의 뇌는 착실하게 피로를 쌓고 있었다.
- 하이큐/273화 . . . . 6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온화 모드" 발동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스코어는 20 대 12. 카게야마의 노 터치 서브 에이스 달성을 기점으로 [[이나리자키 고교]]가 첫 번째 TO를 쓴다. 중계진은 경기가 서브 경쟁으로 흐름이 바뀌는 걸로 보고 있고 과연 카게야마의 서브로 [[카라스모 고교]]의 반격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완벽한 서브. [[미야 오사무]]가 손을 뻗었지만 리시브 실패. 연속 서브 에이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게야마는 세 번째 서브에 임한다. 이번엔 긴지마 쪽. 리시브에는 성공했지만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공은 [[오지로 아란]]에게 연결. 2세트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오지로.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의도도 그것이다. 아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 피로감이 평소 플레이를 조금씩 뒤흔든다. 그리고 지금 미스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오지로의 스파이크엔 블록 세 장이 따라붙었다. [[사와무라 다이치]], [[히나타 쇼요]], [[타나카 류노스케]]. 오지로는 우카이 코치가 노린대로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블록을 의식하게 됐고 우측으로 길게 찌른 스파이크가 라인을 벗어난다.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0 대 14. 우카이 코치는 이것이 전환의 1점임을 단언한다. 관중석의 [[다이쇼 스그루]]와 여친 미카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그 아웃은 오지로에겐 "꺼림직한 아웃"이다.
* 카게야마의 4회차 서브. 이번에도 역시 강력하다. 긴지마가 받은 공은 크게 떠올라 다시 카라스노 진영이로. 여기서 카게야마가 또 묘기를 부린다. 서브 이후 "직결 셋업".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카라스노의 9번 카게야마를 보면서 "봄이 한 번에 돌아왔다"는게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10번, 히나타도 그랬다. 카게야마의 신속한 세트업 만큼이나 히나타가 날아오른 것도 빨랐다. 이나리자키 블록은 미처 따라붙지 못했고 완전 노마크로 스파이크. 하지만 득점하지 못한다. [[미야 아츠무]]가 귀신같이 루트를 꿰뚫어보고 리시브해낸다. 공은 오사무를 거쳐서 다시 오지로에게. 오지로는 방금 전 꺼림직함을 떨쳐내려는 듯 강렬한 스파이크로 1점을 되찾아 간다. 카게야마의 득점 행진은 여기서 멈췄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변했다.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와 미야 아츠무 간의 신경전. 그대로 고조된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오사무의 차례. 아츠무는 카게야마를 의식했는지 신경질스럽다. 오사무를 상대로 2세트를 마무리 지으라고 말하면서 왠지 또 "오늘 서브 에이스는 내 압승"이라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오사무도 그못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그게 영향을 줬는지 오사무의 서브는 크게 뜨면서 아웃. 코트를 한참 벗어나 스코어보드를 맞추는 홈런이다. 옆에 있던 [[야치 히토카]]가 화들짝 놀란다. 중계진은 원래 이나리자키는 가끔 이런게 나온다며 웃어넘긴다. 아츠무에게 "누가 홈런 경쟁을 하랬냐"고 갈구다가 "네가 쓸데없는 소릴해서 그렇다"며 오지로에게 쥐어박힌다. 사실 오사무는 대범한 척해도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 [[스나 린타로]]는 자기랑 동류라고 표현한다.
* [[쿠로오 테츠로]]는 크게 앞서서 안심했던 이나리자키가 카게야마가 불을 지핀 추격세로 흔들렸다고 봤다. 지록 오지로는 실책을 만회하긴 했지만 대신 팀 전체가 "꺼림직한 분위기"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코즈메 켄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정도의 작은 흔들림도 평소의 플레이를 조금은 흔들리게 하고 그 다음 약간의 미스가 겹쳐서 실점으로 이어진다. 그걸 결국 흐름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는다. 그 말처럼 이나리자키의 플레이는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긴지마의 스파이크가 카라스노의 블록에 막혀서 자군 코트를 때렸다. 다행이 이 플레이는 블록에 참가한 [[아즈마네 아사히]]의 터치네트로 실점이 되진 않았지만 팀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이젠 초조하기까지 하다.
- 한현규 . . . . 6회 일치
* 1989년 ~ 1993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실 행정관
*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실 이사관
* 대통령비서실 건설교통비서관실 비서관
- 한호문 . . . . 6회 일치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1598년]](선조 31년) 선전관(宣傳官)<ref>황여일 (黃汝一), 《해월집 권9》, 사신일기, 1598년 무술 11월 13일 갑오(甲午) </ref>, [[1599년]](선조 32년) 하양 현감(河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ref>선조실록 113권, 1599년(선조 32년, 명 만력 27년) 5월 3일 경술 6번째기사, "조정·조희보·변이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1602년]] [[9월 14일]] 군기판관(軍器判官)을 거쳐<ref>竹溪日記卷之六, 九月初十日戊辰</ref>, [[12월 16일]] 영흥판관으로 나갔다.<ref>竹溪日記卷之六, 十二月十六日</ref> [[1603년]](선조 36년) [[11월 29일]] 서산(瑞山)으로 부임하였고<ref>조익(趙翊), 《가휴선생문집권 10》, 공산일기(公山日記), 계묘 1603년 11월 29일자</ref>, 그가 서산군수로 부임한 내용은 서산군읍지(충청남도)(瑞山郡邑誌(忠淸南道))의 선생안에도 수록되었다. [[1607년]] [[9월 4일]] 도총경력에 임명되었다.<ref>竹溪日記卷之十, 九月初四日</ref> [[1615년]](광해군 7년) [[화기도감]]에 낭청으로 참여한 공로로, 그해 [[12월 29일]] 화기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을 시상할 때 승급되었다.<ref> 광해군일기 98권, 1615년(광해군 7년, 명 만력 43년) 12월 29일 신미 3번째기사 1615년 명 만력(萬曆) 43년 화기 도감 도제조·제조 유근 등에게 포상하다</ref>
이후 좌우포장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637년]](인조 15) 정축 정시무과(丁丑庭試武科)의 시험관을 맡아보았고<ref>정축정시문무과방목 (丁丑庭試文武科榜目, 1637)</ref>, [[1638년]] [[12월 17일]] 장령 안시현(安時賢), 이여익(李汝翊), 지평 박수문(朴守文) 등이 훈련 도정은 무관의 극선(極選)인데 도정 한호문은 평소 이렇다 할 명성도 없고 나이도 늙어 기력이 쇠한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과, 일을 처리할 때 거칠고 비루한 행동을 많이하여 위인이 용렬하다며, [[훈련원]]의 장(長) 자리를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가 거부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7일(을사)자 7번째기사, "훈련 도정 한호문을 파직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2월 19일]] 장령 안시현(安時賢)ㆍ이여익(李汝翊), 지평 이운재(李雲栽) 등이 다시 그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는 유시를 내렸다며 돌려보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9일(정미)자 14번째기사, "예장하라는 명을 속히 정지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644년]] 무렵 자헌대부(資憲大夫) 서원군(西原君)이 되고, [[1645년]] 포도대장이 되었다. [[1645년]] [[12월 25일]] [[사간원]]이 그의 추고를 청하여 논계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3년 을유(1645) 12월 25일(계묘)자 3번째기사, "사간원이 포도대장 한호문의 일을 청하였다"</ref> 추고를 청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1646년]] [[1월]] [[소현세자]]빈 [[강빈]]이 인조 등을 저주했다는 [[강빈 옥사]]가 발생, 좌포장으로 궐내에 대기하였다. [[1월 5일]] 인조는 좌우포장 한호문(韓好問)ㆍ신경진(申景珍)을 명하여 불러서 전교하기를“지금은 기밀(機密)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야금(夜禁)을 십분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경도 또한 옛 전례에 따라 친히 순찰하여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왕래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ref>연려실기술 제27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빈(姜嬪)의 옥사"</ref> [[1646년]] [[2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패초를 받았으나, 도착이 늦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때 출발하였다는 승지 여이재의 보고로 그는 문제되지 않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2월 5일(임오)자 7번째기사, "우변포도대장 신경진은 집이 멀어 조금 늦는 것이라는 여이재의 계"</ref> [[1648년]](인조 26년) [[10월]] 무과(武科)의 일소(一所)의 시관(試官)이었으나 병을 이유로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가 그해 [[10월 14일]] [[승정원]]의 탄핵을 받고 추고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4일(을사)자 13번째기사, "무과 일소 시관인 서원군 한호문이 칭병하며 패초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추고할 것을 청하는 본원의 계"</ref> 최종 관직은 정헌(正憲)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에 이르렀다.
그의 동생 한의문의 부인이 도적에게 살해당한 일이 인조실록에 등장한다.<ref>인조실록 47권, 1646년(인조 24년, 청 순치 3년) 7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대신 및 비국 당상과 양사 장관을 인견하다</ref>
** 제수 : ?(? ~ [[1646년]] [[7월 3일]]<ref>인조실록 47권, 1646년(인조 24년, 청 순치 3년) 7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대신 및 비국 당상과 양사 장관을 인견하다</ref>)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 행복회로 . . . . 6회 일치
[[실장석]](국내명 속칭 '참피') 관련의 창작물에서 나온 설정.
실장석은 심장 대신 "위석"이라는 돌을 가슴 속에 가지고 있다. 위석은 실장석의 생명의 근원이자 뇌의 역할을 한다.(일명 '가짜 로자 미스티카') 이것은 고통을 받으면 부서져 버리는데, 완충장치로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행복회로가 발동한다. 행복회로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고 행복한 망상을 보면서 [[현실도피]]를 하게 만드는 기능이다.
* 기독교 교리가 행복회로 같다고 억지로 행복회로 돌리며 한 루리웹 실장석이 짖어댄 글(루리웹) -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30528779
[[분류:인터넷 은어]][[분류:실장석]]
- 홍인한 . . . . 6회 일치
과거 급제 후 청요직을 거쳐 1757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했으며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남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성대중]]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승지, 사간, 대사헌, 호조와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이조, 병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774년 의정부우의정, 1775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55년 헌납을 거쳐 당상관으로 특진하여 [[1757년]] [[전라]]감사로 부임했다.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남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대중]]이 이를 듣고 청성잡기에 기술하였다.
그밖에도 왕조실록에 의하면 전라도에서 그가 탐학하게 굴어서 호번 사람들이 그 고기를 먹으려 한다는 말이 돌았는데, 이것이 실록에 실렸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탐학한 짓을 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권력남용을 하고는 자기쪽 무리들과 야합하여 말을 퍼뜨리기를, "홍씨(洪氏)를 공격하면 이는 동궁(東宮)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면서 그것을 구실로 온 세상의 입을 막으며 위협을 가했다고도 한다.
- 홍지호 . . . . 6회 일치
| 학력 = {{USA}}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 학사 <br /> {{국기나라|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원 치의학 석사·치의학 박사
19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외래교수와 [[삼성의료원|삼성의료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치과 과장을 역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90605 <nowiki>[인물 포커스]</nowiki> 연예스타 꿈꾸는 치과의사 3인방] 2003년 6월 3일 동아일보</ref>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학사|사]]
*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치과대학원 [[치의학]] [[석사]]·[[치의학]] [[박사]]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자유 연애]][[분류:남양 홍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황덕균 . . . . 6회 일치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친 그는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이적에 실패했고, 2011년 [[서울 해치]]에 입단했다.
[[서울 해치]]의 해산 이후 트라이아웃을 통해 [[NC 다이노스]]에 이적했고, [[2013년]] [[9월 5일]]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9월 8일]] [[SK 와이번스|SK]]전을 통해 데뷔 11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피안타 2볼넷으로 2실점(비자책)한 후 [[정진 (야구 선수)|정진]]과 교체되어 마운드를 내려갔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98580 NC 황덕균, 11년 만에 밟은 1군 마운드] - MK 스포츠</ref>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시즌 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현역 연장을 선언하여 방출되었다.<ref>[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063 NC, 황덕균·한윤기·박정훈·김동건 방출] - 경남도민일보</ref>
그리고 등록된 당일 경기였던 [[KIA 타이거즈|KIA]]전에 구원 등판했고,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단 한 개만 내주면서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2016년 9월 15일, [[kt 위즈]]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박주현 (야구 선수)|박주현]]이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되자 2번째 투수로 올라와 5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대역전승에 기여하였다. 2016년 9월 1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김정인]]이 조기 강판당하자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160920.99002161812 '7전 8기' 넥센 황덕균, 15년 만에 거둔 첫승…4이닝 무실점 '역전'의 호투] -국제신문 </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황재규 . . . . 6회 일치
[[청원고등학교 (서울)|서울청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동기인 [[허유강]] 선수와 함께 팀의 주축 선발 [[투수]]로 활약하였다. 제 4회 세계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 대표팀으로 참가하여,<ref>[http://isplus.joins.com/sports/kbo/200806/12/200806122017013276010700000107020001070201.html 세계 대학야구 선수권 대표팀 명단 발표] 《일간스포츠》, 2008년 6월 12일 작성</ref> [[일본]]전에서 좋은 투구를 보여 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067& 세계 대학야구 결산 - 협회의 외면 속에서도 유망주는 큰다] 《박동희칼럼》, 2008년 7월 29일 작성</ref> 제 1회 KBO 총재기 대학 야구 결승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정태승]]에 이어 팀의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8.1 이닝 3안타 6탈삼진 1실점의 호투로 [[성균관대학교]]의 우승에 기여하였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48816 성균관대, 연세대 꺾고 제 1회 KBO 총재기 우승] 《조이뉴스》, 2008년 8월 8일 작성</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075& 대학야구 취재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박동희칼럼》, 2008년 8월 9일 작성</ref>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81205 한화 신인 황재규, '젊은 마운드의 중심이 되고 싶다'] 《조이뉴스》, 2008년 12월 23일</ref> [[2009년]] [[4월 17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SK 와이번스|SK]]전에서 프로 첫 출장을 갖는다. [[2009년]] [[5월 8일]] [[잠실야구장|잠실]]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프로 통산 첫 선발 [[투수]]로 나와 3.2이닝 동안 6피안타 4실점을 허용하면서 통산 첫 패전을 기록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5080245 '첫 선발' 황재규, 아쉬움 속 희망을 쏘다] 《Osen》, 2009년 5월 8일 작성</ref><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413573 한화 황재규, 데뷔 첫 선발 '실책 2개에 울다'] 《조이뉴스》, 2009년 5월 8일 작성</ref> 1군 9경기에 그친 [[2010년]] 시즌 종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고, 소집 해제 후 [[2013년]]에 복귀하여 [[2013년]] [[5월 7일]] 마산 NC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2015년 4월 개인적인 사유로 임의탈퇴되었고, 사용하던 등번호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이적해 온 [[허도환]]이 달았다.<ref>[http://www.sportsseoul.com/?c=v&m=n&i=196506 한화의 충격적인 트레이드 단행, 도대체 왜?] 《스포츠서울》, 2015년 4월 9일 작성</ref>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황희두 . . . . 6회 일치
2016년 7월, 서울시가 주최한 [['광장은 시장실']]에 참석하여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e스포츠]]의 발전과 게임 문화의 인식 개선을 제안하였고 체택되었다. 학부모들과 청소년들에게 게임 문화가 마냥 안좋은게 아니란걸 알리기 위한 목적과 또한 중국 시장에 밀려 뒤쳐진 대한민국 e스포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실제 2014년도 기준으로 중국은 약 4조원대의 금액을 [[e스포츠]]에 투자하며 세계 e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였으며, 정작 e스포츠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점차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현직 프로게이머, 게임단 관계자, 지자체, 정부 등과 협력하여 '대한민국 e스포츠 시장 살리기'를 추진중이다. <ref>http://www.sportsseoul.com/news/read/417966|턱 밑까지 쫓아온 중국...한국 e스포츠는 어디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정치 검찰의 비정상적인 판단을 보며 현직 대통령을 고발한 내용이다. 청년문화포럼 민주참여위원회 김민성 위원장과 함께 국회 앞에서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더불어“국회탄핵무효“ “계엄을 선포하라” “촛불시민을 다 죽이라”는 등의 선동과 내란 유발도 서슴지 않는 반국가적 장소에 나가고, 국회의 기정사실인 탄핵입장을 반대해온 국회의원까지 국회 윤리위제소 및 징계를 요구한 사건이다. <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긴급> 모두행복실천단 국회 앞 기자회견</ref>
*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무척 아쉽다. 공부 외의 게임의 길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으며, 선수 시절 게임에 더 미치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쳤던 경험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고 생각하여 무척이나 행복하다." - 《Global Leaders Club 게임 관련 특강 中》<ref>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358096|프로게이머 출신 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Global Leaders Club 포럼에서 게임관련 특강 실시</ref>
- 효령대군 . . . . 6회 일치
|배우자 = [[클라라(배우)|본부인]](본부인) <br /> 평해 손씨(측실)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세조|세조]]의 백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 (조선)|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조선 명종|명종]]<ref>그의 종6대손이기도 하다.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ref> 의 부인인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 첩실 : 평해 손씨(平海 孫氏)
또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이 편집한 『조야휘언』필사본에는 '세종이 태평관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여 잔치를 하는데 효령대군이 술을 권하자 일어나 받았다. 이를 보고 사신이 말하길 "임금이 형을 우대하는 것이 이와 같구나"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당시 왕실의 형제간 우애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의 아들 중 [[보성군]]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역대 주요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보성군]]의 사위 [[임사홍]]은 [[조선 성종|성종]]과 [[조선 연산군|연산군]] 대의 문신이며, 그의 아들(효령대군에게는 외증손) [[임광재]]는 [[조선 예종|예종]]의 딸 [[현숙공주]]와 혼인하고, 다른 아들 [[임숭재]]는 [[조선 성종|성종]]의 딸 [[휘숙옹주]]와 혼인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 휴먼 토치 . . . . 6회 일치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어서 온도를 거의 초신성([[슈퍼노바]])수준까지 올릴 수 있고, 자신은 화염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다. 불타는 인간 형태로 변하여 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화염인간을 조종할수도 있어서 매애애애애우 초창기에 정체 숨기고 다닐 적엔 불을 조작해서 연기 피운뒤 휴먼토치로 변해서 나간다거나 연기속으로 돌아와 화염 인간을 보내놓고 내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물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하기도...(...) 실제로 한창 날뛰다가 물 한번 맞고 뻗기도 했다.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네거티브 존에서 몇번이나 죽으며 고생하다가 훗날 크리의 대규모 침공으로 지구가 위험에 빠졌을 때, 어나힐레이션의 부하들을 조종하는 장비를 강탈해 그들의 지배자가 되어 돌아왔다. 돌아오고나서 스파이더맨과 감동의 재회를 하고[* 다만 복장이 왜 그모양이냐고 놀리긴 했다.] 하늘에 [[4]]를 그리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 크리들의 공격에 떡실신되던 멤버들도 그걸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회복되었다.
* 옛날에 나온 애니메이션 판에선 혼자 짤리고 허비(H.E.R.B.I.E)라는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먼 토치를 보고 아이들이 자기 몸에 불을 붙힐까봐-라고 짐작했고 80년대의 판타스틱 포 만화에선 이를 의식한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은 마블이 [[헐크]]처럼 실사화를 위해 휴먼 토치를 판권을 다른 회사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판권은 넘겼지만 당시 기술론 휴먼 토치를 재현해낼수가 없어서 결국 실사화는 안되었다.
- K리그 클래식 . . . . 5회 일치
K리그는 [[수퍼리그]] 시절부터 승강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승강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팀이 창설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것이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약간의 축구붐이 조성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업팀의 프로화를 통한 K리그 참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상황.
단적으로 K2리그를 출범하고 리그 우승팀을 프로화시켜 승격을 시키는 방안을 시작으로 실업축구단들의 참가를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프로팀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장기적으로는 K리그의 프로팀 숫자를 늘리고, 늘어난 팀 수를 바탕으로 상위와 하위리그를 나눠 승강제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K2리그라는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본래 K리그의 승강제 구성을 위해 탄생한 2부리그 격 세미프로리그였다. 하지만 2번이나 우승팀들이 승격을 거부함으로써 승강제는 아예 물 건너가게 되었고, K2리그는 내셔널 리그로 이름을 바꿔 완전히 별개의 리그가 되어버린다.
이후 함맘은 2009년에 '''승강제가 없는 리그는 ACL참가 불가'''라는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http://www.hani.co.kr/arti/sports/soccer/390028.html]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여기에 낚여 2012년까지 승강제를 마련하겠노라는 계획서를 제출하게 되고, 이 계획에 따라 진행하여 K리그는 2012년에 승강제 도입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현실이 되었다.]].[* 이런 연맹의 노력이 무색하게 2016년 현재 ACL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승강제가 없는 [[A-리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ACL에 참가하고 있는 걸로 봐선... 안습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5회 일치
== 무실점 기록 ==
1. 순위결정방식이 "승점➡득실차➡'''다득점'''➡다승➡승자승➡벌점➡추첨"에서 "승점➡'''다득점'''➡득실차➡다승➡승자승➡벌점➡추첨"으로 다득점이 득실차(=골득실)보다 우선적용되는 변경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소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에서 다룬다.
- OK 본 . . . . 5회 일치
'''오케이 본'''(케본)은 [[대한민국]]의 랩퍼다. [[서울]] [[목동 (서울)|목동]]에 거주하며, 친구 [[O.D]]와 함께 힙합 팀 '[[구단지 독서실]]'의 멤버이다. 음악적으론 [[라임]]을 중시한 [[랩]] 스타일이 특이하다. 그리고 이센스와의 디스전이 있었고, 이센스가 랩 정상으로 갈 수 있는데 든든한 발 받침대가 되주었다.현재는 모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교육 과정을 밟으며, 1996년부터 랩 메이킹을 시작하며 [[힙합]]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NOMZ 프로젝트, 개놈 프로젝트 등 비정규 음반에 참여했다. 1집 발매 이전에는 [[힙합플레이야]]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곡을 올리며 활동하였으며, 2005년 라디오 프로그램 Open Mic의 선발자로 출연했고, 이어서 구단지 독서실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여러 언더 힙합 앨범에 참여하며, 2008년 구단지 독서실 2집 '라임왕'을 발매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를 졸업하였다.
=== 구단지 독서실 ===
* [http://okbone.cyworld.com 구단지 독서실 싸이 클럽]
- Victoria II . . . . 5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회사 [[Paradox Interactive]]에서 제작한 실시간 [[대전략]] 게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혁명]]의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1836년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멕시코는 독립을 선언한 텍사스를 상대로 전쟁 중이며,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독립 국가였던 트리폴리를 다시 복속시키기 위해 전쟁 중이다. 아직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분할"이라고 불릴 유럽 국가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으며 동아시아 역시 아편 전쟁으로 시작될 서양과의 불쾌한 접촉을 아직 겪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현재의 오리건 주, 워싱턴 주가 될 자리와 사할린,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 태평양의 많은 섬들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가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다.
이들 중 1~8위는 주요 열강(Great Power)으로 분류되며, 식민지를 피거나 다른 나라를 자신의 영향권 내로 편입시킬 수 있는 등 사실상 세계를 마음대로 쪼개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다른 주요 열강의 견제만 어떻게 한다면야 말이다. 만약 기존의 주요 열강이 아닌 국가가 8위권 내로 들어오면 1년간의 유예 기간 이후 제일 순위가 낮은 주요 열강을 탈락시키고 주요 열강에 올라서게 된다.
* Prussian Constitutionalism(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정) : 입헌군주제이긴 한데 사실상 국왕이 다 해먹는 유사 민주주의. 전제 군주정 국가에서 투표를 허가하면 이게 된다. 여당을 플레이어가 바꿀 수 있지만 일정 주기마다 치뤄지는 총선에 따라서도 바뀐다. 무정부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스트는 여당이 될 수 없다. 자코뱅 반란으로 뒤집어지면 민주정이 된다.
POP들의 투쟁성이 높아지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반란의 원인은 다양하다. 특정 민족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 전쟁을 벌인 걸수도 있고, 특정 사상의 지지자들이 정권 정복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걸수도 있다. [[태평천국 운동]]이나 [[붉은 셔츠단]] 처럼 이벤트로 발생하는 반란도 있다. 이념 반란의 경우에는 수도를 점령하면 정부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이 경우 모든 외교관계가 초기화되니 주의. 당신 땅을 탐내고 있었지만 동맹국 때문에 침략하지 못하던 적국이 전쟁을 벌일 수 있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5회 일치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날 새벽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을 이용하던 23세 여성이 34세 남성 피의자 김모씨에 의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남자친구에 의해 발견되어 오전 1시 25분 경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같은 날 오전 10시 김모씨는 긴급 체포되었으며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상자가 비정상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상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사건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의견으로 사건 자체가 여혐사건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사건 자체는 여혐으로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 전반이 여혐적인 사회인가, 혹은 여성범죄에 취약한 사회인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실제로 일부 통계에서는 강력범죄의 피해자 90%가 여성이라는 결과도 있는 반면, 통계를 왜곡했고 실질적으로는 의미있는 성차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사건 자체는 빠른 신고로 당일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여혐사건으로 전파되면서 뜻밖에 논란이 큰 사건이 되어버렸다.
- 거대로봇 . . . . 5회 일치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한 대중매체 장르 중 하나인 [[거대로봇물]]이 대표적. [[슈퍼전대 시리즈]] 등 [[특촬물]]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해왔고, [[퍼시픽 림]] 등 실사영화에서도 등장한다.
거대로봇물이 진행되면서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의 구분이 이어져오나 사실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하면 할수록 지치게 만드는 일. 안 그런 경우도 있으나 슈퍼로봇물이라 할만한 것들도 흔히 말하는 리얼로봇물에 나올법한 묘사가 나오고, 리얼로봇물에서도 아무리 봐도 슈퍼로봇물적인 요소가 나온다. 즉, 차이점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극중 분위기의 차이라 볼 수 있다. [[마징가Z]]는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연상케되는 활극, [[기동전사 건담]]은 진지하고, 무거운 전쟁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 마징가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연출을 볼 수 있고, 건담에서도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와는 다른 요소를 볼 수 있다.[* 리얼로봇보다는 슈퍼로봇에 가까운 활약이라던가. 애초에 2족 보행 거대로봇 자체가 리얼리티나 현실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구분하는 사람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 괜한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나 거대로봇은 만들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단골요소인 거대한 인간형 2족 보행 로봇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거대로봇물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단순 취향 차이도 있으나 거대로봇물에 대한 과한 추종심이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상매체에서의 일인데 뭐 어떻냐는 사람들도 있고, 이러한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된 시점에서도 양질의 작품이 나오니 팬이라면 과하게 생각지 말고, 즐기길 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5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베 키리에의 어머니는 한껏 꾸미고 나타나 신경전을 벌인다.
* 타치바나 실핀포드는 이게 "여자들의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어머니들이 평소 얼마나 미의식이 있는지를 겨루는 시험의 장이라는 것.
* 이 묘하게 빗나간 인식은 바로 실핀의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다.
* 그 지론 때문인지 실핀의 어머니 "타치바나 미키" 여사는 기모노로 한껏 치장하고 나타나 이목을 모은다.
* 그녀는 실핀에게 창피를 주지 않으려면 "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 일 것"이란 묘한 승부욕에 불타고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5회 일치
* 사실 타이헤이는 너무 여동생의 프라이버시를 발설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카나우는 완전히 설레이고 만다.
* 별일이다 싶었는데 사실 일찍 일어난게 아니라 아예 밤샘을 한 것.
* 과장이 나타났다고 당황한 봄바는 알렉스를 데리고 휴게실을 떠난다.
* 타이헤이는 아무렇지 않게 우마루의 건어물 모드의 실상을 말해주려고 하는데 순간 멈칫한다.
* 우마루는 카나우가 "게임만하는 라이트한 오덕"이라고 오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실제로 자기는 다양한 덕취미를 즐긴다고 강조한다.
- 건포인트 . . . . 5회 일치
$130. 회로 상자를 해킹해 붉은 색 외의 전선을 해킹할 수 있게 한다,
이스트포인트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스파이인 리처드 콘웨이는 자신이 주문한 장비인 하이퍼트라우저를 받게된다. 실내에서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하이퍼트라우저를 실험해 본 콘웨이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있는 총기 회사인 루크 파이어암즈 건물안에 처박힌다. 이때 콘웨이는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인 셀레나 델가도의 연락을 받게된다. 델가도는 콘웨이에게 일거리가 있으니 윗쪽에서 만나자고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친 콘웨이는 감시 카메라 기록에 의해 델다고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되게 된다.
루크 파이어암즈의 분석가. 루크의 의뢰에 따라 델가도 살인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전부 지우면 연락해온다. 루크의 남편인 잭슨이 델가도 살인 현장에서 그녀를 보았다고 증언하며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거기 없었다는 증거를 대려고 해도 누가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워버려서 증거도 없는 상황. 콘웨이에게 잭슨의 사무실로 잠입해 단서를 찾아낼 것을 의뢰한다.
이스트포인트 경찰서장. 이스트포인트의 엄청난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전근왔다. 이전까지의 경찰서장들은 실종되거나 의심스러운 총기사고로 죽었다고. 정체를 숨긴 채로 콘웨이와 접선, 부패하고 게으른 자신의 부하들 대신 델가도 살인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의뢰한다.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5회 일치
1936년, 소련에서 헌법이 제정되면서 공산당(볼셰비키)의 지도적 역할이 헌법에 명시되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이 같은 체제를 도입했으며, 다른 정당이 존재한다고 해도 [[위성정당]]으로 전락하여 사실상 [[일당독재]]로 변질되었다.
현재에도 북한, 베트남, 쿠바, 라오스 등의 헌법에는 공산당의 지도 원리가 명시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는 헌법에는 '노농연맹'으로 되어 있어, 공산당이 아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가 지도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공산당이 지도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마찬가지이다.
아랍 사회주의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는데, 시리아의 경우 시리아 바트당이 2012년 까지 헌법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2012년에 삭제되면서 다당제가 용인된다.--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터져서 유명무실--
이 공산당 지도 원리는 [[지도자 원리]]로 변형되어 [[파시즘]]에도 유입되었다. [[나치 독일]]에서 나치당의 경우 역시 공산주의 국가의 공산당과 유사한 지도적 정당이었다. 다만 나치 독일의 경우는 법률적 정의보다는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의지'를 우선시하는 성향 탓에, 나치당의 지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비슷한 지위라고 볼 수 있었다.
공산주의의 결정적인 반민주적 요소이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 지도 원리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몇몇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이에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인물로는 [[카를 카우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 --소련에서 쫓겨난 이후의-- [[레프 트로츠키]] 등이 있다.
- 권재진 . . . . 5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3-2-6}}
2011년 8월 8일 오전 청문회에서 큰아들이 경기도 포천의 국제나이론이라는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지난 2003년 8월 12일부터 2004년 12월 29일까지 포천 농협에서 이뤄진 38번의 입출금 내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들의 산업기능요원 근무 시기가 2002년 9월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좌 내역은 2003년 8월부터 제출한 것을 두고도 의혹이 증폭됐다.
|직책 =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안동 권씨]][[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LS그룹]]
- 김륵 . . . . 5회 일치
[[1589년]](선조 22) 김륵은 내직으로 홍문관 교리에 임명되고 사헌부 집의(~[[1591년]] [[음력 6월 23일]]<ref>[[#선조실록 1616|선조실록 1616]]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406023_003 25권, 선조 24년 6월 23일 병진 3번째기사]</ref>)를 거쳐 당상관으로 승진, [[승정원]] 우부승지·좌부승지가 되었다. 그 뒤 경상좌도 초유사, 경상우도 [[관찰사]], [[이조]] [[참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위키인용 |ref="선조실록 1616"| reference ={{서적 인용 |저자=춘추관 관원들 |연도=1616 |제목=[[선조실록]] |ref={{sfnRef|선조실록 1616}} }} }}
- 김부식 . . . . 5회 일치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인 김위영을 [[고려 태조]]가 경주(慶州)의 주장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ref>《[[고려사]]》 권97, 열전10, 김부일전.</ref> 부친 김근이 좌간의대부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지위가 높은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부식과 그의 형제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반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식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순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영(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상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상]]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1140년]](인종 18년) 이후 그의 세력이 약화되고 윤언이가 정계에 복귀하자 위기를 느낀 김부식은 [[1142년]](인종 20년)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김부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인 [[1145년]](인종 23년)에 《삼국사기》 50권의 편찬이 완료되었다. 의종이 즉위하자 낙랑국 개국후(樂浪國開國候)로 봉했고, 그 뒤 김부식은 《인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송나라의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 관반사(館伴使)로서 그를 맞아들였고, 같이 왔던 [[서긍]](徐兢)이 그의 《[[고려도경]]》에 김부식의 집안을 실어 송나라 황제에게 진상함으로써 김부식의 이름은 송나라에도 유명하였다.
- 김숙자 (1389년) . . . . 5회 일치
[[1422년]](세종 4) [[5월]] 종사랑으로 승진, 성균관학록이 되었다. 아들 김종직에 의하면 [[1423년]] 김주가 한성으로 간 뒤, 장인 한변(韓變)을 불러서 [[사헌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사헌부]]에 소환된 그는 대질심문을 받았으며 낙직(落職)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한다.<ref name="ginyon"/> 고령현감을 거쳐, [[1423년]](세종 5) [[7월]] 성균 직학(成均直學)이 되었을때, [[사헌부]]가 [[세종대왕]]에게 그가 자식이 있는 조강지처를 망령되이 서얼(庶孽)이라 일컬어 아무 까닭도 없이 버려 이별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80대를 치라는 계를 올렸다.<ref>세종실록 21권, 1423년(세종 5년, 명 영락 21년) 7월 4일 임오 3번째기사, "성균 직학 김숙자를 처벌하다"</ref> [[1431년]] [[7월]] 모친 유씨가 죽어 밀양에서 분상했는데, 8월 아버지도 사망하였다. 그는 할머니 김씨부인 묘소 하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이후 3년간 복상하였다. [[1433년]] 가을 상복을 벗고 [[밀양]]으로 돌아왔다.<ref name="ginyon"/>
[[1438년]](세종 20) [[10월]] 내자 주부(內資主簿)로 재직 중 서연 정자(書筵正字) 직에 겸임되었다. 이때 사간원 좌정언 이예장(李禮長)으로부터 전에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고 죄를 얻어 침체되었다가, 이제 죄를 용서 받고 다시 벼슬길이 열렸사오나 잘못을 뉘우치는 행적을 듣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ref>세종실록 83권, 1438년(세종 20년, 명 정통 3년) 10월 26일 정축 2번째기사, "음사는 본궁의 은밀한 곳에서 행하도록 하다"</ref> 이후 집현전 주부(注簿)로 있다가 [[1439년]](세종 21) [[4월]] [[이조]]에서 그를 동부 교수관(東部敎授官)으로 발령하였다. 그러나 [[사헌부]]에서 탄핵 상주를 올려, 왕명으로 사유록(師儒錄)에서 삭제당하였다.<ref>세종실록 85권, 1439년(세종 21년, 명 정통 4년) 4월 14일 신묘 8번째기사, "김숙자를 사유록에서 삭제하다"</ref>
가르칠 때에는 처음에 『동몽수지(童蒙須知)』 유학자설정속편(幼學子說正俗篇)을 모두 암송시킨 다음 『소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효경]]』·『[[사서오경]]』·『[[자치통감]]』 및 제자백가의 순을 밟았다.『소학』을 앞세우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자세는 [[고려]]의 유학자 [[길재]]에게서 물려받았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김숙자는 스승 길재의 가르침에 확신했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지켰다. 어릴 때부터 책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순서대로 읽는 습관을 따랐다고 한다. ‘소학’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실천 강조 학풍은 김숙자-[[김종직]]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될 정도로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뒤에 영남사림파의 큰 학자로 드러난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지칭하면서 30세까지 ‘소학’에만 천착했을 정도였다. [[길재]]에서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에 이르는 [[정주학]](程朱學)의 학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 김숭실 . . . . 5회 일치
'''김숭실'''(金崇實, [[1981년]] [[4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한국마사회]] 소속의 대한민국 여자 [[탁구]] 선수이다.
[[1981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김숭실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대구봉덕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부에 들어가 탁구를 시작했다. [[2000년]] 실업 무대에 데뷔한 이래 6년만인 [[2002년]] 12월 [[SBS 챔피언전]] 여자 단식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182724.html 김창금, <만나봅시다 여자 탁구 샛별 김숭실>, 《[[한겨레신문]]》2007.1.8]</ref>
* 2001 회장기 전국실업탁구연맹전 단식 3위
- 김정혁 . . . . 5회 일치
삼성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 후 2군에서 대타나 대수비로 출장하다가 5월부터 선발로 출장하기 시작했는데… 무려 '''4할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성실해 자정까지 연습할 정도의 노력파라 다른 2군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10월 8일 최종전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는데 1회와 5회 실책을 범하는 OME를 보여줬다. 1회엔 [[성의준]]의 송구를 놓쳤고 5회엔 송구를 잘못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실책을 범했다.
6일 잠실 두산전에서 선발 9번 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4안타 1타점 2득점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대역전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9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 6번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날 압권은 9회 초였는데, 1사 만루 상황에서 팀이 4-5로 한점 뒤진 가운데 [[정우람]]과 상대하게 된 김정혁은 정우람의 6구를 타격해서 좌중간쪽의 기적의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내면서 팀의 승리를 이끈 히어로가 되었다. 그 날 수훈선수가 되었는데 본인 프로 데뷔 첫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정새미나 리포터가 한화 김정혁이라고 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김정혁 본인은 넘어갔다.
- 김충공 . . . . 5회 일치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였고, [[823년]] [[김헌창의 난]] 진압에 참여하였다. [[흥덕왕]]의 아들이 [[당나라]]를 다녀오다가 사고로 죽자 그가 [[태자]]로 임명되었지만 그도 [[흥덕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 아들 [[김명]]은 [[838년]](희강왕 3) [[1월]] 정변을 일으켜 [[희강왕]]을 죽이고 자립하여 민애왕이 되었다. 딸 정교(貞矯)는 희강왕비 문목부인(文穆夫人)이 되었다. 아들인 민애왕이 즉위하면서 선강대왕(宣康大王) 또는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헌덕왕]]과 [[흥덕왕]] 때의 실권자로 헌덕왕 때는 정사당(政事堂)에서 내외관(內外官)의 전주(銓注)를 맡아보면서 인사문제의 실권을 맡는 등 당시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또한 가계도 불분명한데, 정사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그가 혜충태자 인겸의 넷째 아들이라 하지만 경주김씨 족보에는 그가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이설이 같이 실려있다.
- 김혜옥 . . . . 5회 일치
* [[2006년]] [[MBC]] 주말연속극 《[[진짜 진짜 좋아해 (드라마)|진짜 진짜 좋아해]]》 ... 영부인 오영실 역
* [[2006년]] [[MBC]] 미니시리즈 《[[늑대 (드라마)|늑대]]》 ... 한경실 여사 역
* [[2011년]] [[TV조선]] 주말연속극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 박원숙 역
* [[2012년]] [[MBC]]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 ... 고성실 역
* [[2016년]] [[MBC]] 주말특별기획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 문정애 역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5회 일치
실상은 이미 독일은 11월 혁명으로 거의 국가 체계가 붕괴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빌헬름 2세]]는 방금 전까지 전쟁하던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내빼버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무렵 독일 내의 정당들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군부에 의하여 패전과 혁명이 겹쳐 거의 다 망하게 생긴 나라에 등떠밀리듯이 올려가서 수습하게 된 거나 다름 없는 상황(…)[* 물론 독일 사회민주당 역시 애국주의에 따라서 1차 대전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책임이 없는건 아니다.]이었다. 사실상 '''군부가 싸놓은 똥을 치우는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군부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이 국가적 위기를 사민당과 좌파 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국가'와 '헌법'에 대하여, 히틀러가 수상이 되자 '민족'과 '조국'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했으나, 독일국방군으로 개편되기 직전에 있었던 이 충성 맹세는 '독일 민족의 지도자', '국방군 최고사령관'인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맹세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독일국방군은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 국가의 군대'라기보다는 (이론적으로는)'히틀러 개인의 군대'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시대가 기독교적 윤리가 아직 강하던 사회였고,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독일군에서는 '충성 맹세'가 지닌 사회적 가치는 매우 컷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가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냉전]]이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 [[동독]]에 맞서서 [[서독]]을 재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을 전쟁범죄로 단죄하면 독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또한 실용적 관점에서도 독일군이 해체하는 것은 공산 세력과 맞서는데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독일국방군 출신의 장성들 역시 자신들이 전쟁범죄자로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여, 모든 죄과를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 [[나치 친위대]]에게 몰아놓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영향은 [[소련군]]에 대한 폄하로도 나타난다. 독일군 장성들은 패전 이후에도 슬라브인을 멸시하는 인종주의를 버리지 못하여,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단지 물량을 바탕으로 한 막무가내 [[우랴돌격]]에만 의존한 군대였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같은 관점을 전쟁사 계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소련군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독소전쟁 역사에서 뿌리깊게 남게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측 역시 실증이 될만한 자료 공개를 하지 않고 [[프로파간다]]에만 집중하여 냉전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관점이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못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5회 일치
* 올마이트는 다소 선문답 같은 조언을 남기지만 그래도 미도리야에겐 실마리가 된다.
* 필살기 수업에 술렁이는 교실.
* 아이자와 쇼타는 실연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며 체육관 감마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다.
* 다른 학생들도 개성을 강화시키며 필살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 폭발의 원인이고 파워 로더가 투덜댄 대상인 누군가가 연기속을 걸어나오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5회 일치
* 요아라시는 합격자들이 모이는 대기실에서 신나게 사교활동 중.
* 따라서 A반 전원 합격이 가능한 상대 인원을 미리 포획해서 확실하게 패널에 볼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
* 설명을 들은 세로는 "확실히 그저 맞출 뿐이라면 투척 능력 밖에 보지 못한다"며 원래 이렇게 풀어가는 시험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 우라라카는 미도리야아겐 그럴 만한 실적이 있다며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 바쿠고는 적당히 "눈이 가늘어서 상대의 실력도 못 본다는 소리다"라고 드립을 치는데 본인이 콤플렉스인지 "내 눈은 잘 보이고 크다"고 반발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5회 일치
* 거기서 미도리야가 날아온다. 갱 오르카를 두 사람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공격한다. 미도리야에 대해선 갱 오르카도 알고 있었던 모양. 토도로키도 기가막힌 타이밍에 나타나자 어디까지 예측한 거냐고 놀란다. 상황은 미도리야 대 갱 오르카로 전개될 듯 한 시점, 이때 시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같은 시각 바쿠고 카즈키 일행이 마지막 HUC를 구하면서 임시면허 시험의 전과정이 종료된다. 이후 정산작업을 거쳐 이 자리에서 바로 합격자 발표에 들어간다. 수험생들은 대기실로 돌아가고 부상자를 챙긴다.
* 시험 종료 후, 갱 오르카의 부하들은 예상보다 저항이 심했던 건지 자기들이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갱 오르카에게 굽실거린다. 사실 이들은 구속용 프로턱터가 착용돼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상황. 하지만 갱 오르카는 그걸 감안해도 최후의 열풍감옥이나 거기서 이어진 미도리야의 기습은 좋은 작전이었고 만약 시험이 계속됐더라면 자기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대기실에서는 학생들이 긴장된 공기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명단이 발표되자 학생들은 자기 이름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5회 일치
* 올마이트에겐 사실 후계자를 찾던 시절 또다른 후보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웅영고의 재학생.
* 그리고 잠시 뒤. 담인 [[아이자와 쇼타]]의 호된 훈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자와는 둘을 꽁꽁 포박해서 압박한다. 사실 둘의 싸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호출받았을 때 나타난건 올마이트였기 때문. 이번에도 올마이트는 아이자와를 진정시키며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쿠고의 심리 상태를 언급하며 자신이 교사들이 멘탈 케어를 맡아줘야 했던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그 말을 듣고 아이자와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화해는 한 거냐고 하는데 사실 화해인지 아닌지 애매한 무언가라서 미도리야가 대충 얼버린다. [[이이다 텐야]]는 어쨌든 둘은 시업식에 빠질 수밖에 없겠다며 나머지 학생들을 인솔해 기숙사를 나선다. 나가면서 [[토도로키 쇼토]]는 임시면허 보충수업 어쩔 거냐고 하는데 바쿠고는 퉁명스럽게 상관하지 말라고 대꾸할 뿐이다.
* 사실 B반 학생 중에 시비를 거는건 모노마 뿐이다. [[츠노토리 포니]]는 일본어가 서툰데도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모노마가 이상한 일본어를 가르쳐줘서 실언을 하고 만다. [[켄도 이츠카]]가 모노마를 제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5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 본거지에 들어온 빌런연합의 [[시라가키 토무라]]. 그는 살풍경한 장면이라며 첫인상을 밝힌다. 인테리어는 철저하게 [[오버홀]] 치사키의 취향. 사실 시라가키가 불만인 점은 인테리어 보다도 "안내"였다. 그는 이 지하 응접실까지 오기 위해 30분이나 지하를 빙글빙글 돌았다. 개미가 된 기분이라며 야쿠자의 집은 어떻게 돼먹은 거냐고 불평을 쏟아낸다.
오버홀은 보안을 위해서 한 조치이고 이 지하엔 그런 식으로 구성된 루트와 방이 몇개나 있다고 말한다. 오버홀 옆의 작은 복면이 그런 괴팍함 덕분에 아직까지 생존하는 거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시라가키에게 지난번 전화로 한 말, "조건에 따라 가담하겠다"고 한 말은 사실이냐고 묻는데.
* A반의 인턴은 한 명이 더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관서 지방의 "에스하"시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히어로네임은 "레드 라이오트". BMI히어로 [[패트껌]]의 사무소였다. 이곳은 빅3의 일각 [[아마자키 타마키]]가 인턴활동을 하고 있다. 히어로네임은 "선 이터". 왜소하고 음침한 모습의 타마키와 달리 패트껌은 엄청난 거구에 비만 체형. [[타코야키]]를 판 째로 들고 다니며 먹는 타입이다. 원래 키리시마는 직업체험 때 신세진 [[포스카인드]]에게 인턴 활동을 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걸 마침 무투파의 신인을 찾고 있던 패트껌이 픽업, 먼 관서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타마키의 중계가 있던 모양인데, 타마키는 [[토오가타 밀리오]]에게 떠넘기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나 보다. 키리시마가 너무 댓쉬해와서 무서웠다고 약한 소릴 한다. 패트껌은 "그 멘탈만 어떻게 하면 인재"라며 껄껄 웃는데 그 점이 더욱 타마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타마키는 한도 끝도없이 네거티브해져서 이 스카우트도 자길 괴롭히려고 결정된 거라고 믿고 있다. 키리시마는 패트껌이 나름대로 격려해주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는 어떻게 해도 키리시마나 밀리오처럼 포지티브해질 수가 없다고 한다. 키리시마는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 실력도 경험치도 차이가 생겨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있더라"고 나름대로 공감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메꾸고자 인턴 생활에 뛰어든건 엄청나게 포지티브한 태도이기 때문에 결국 타마키는 도저히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5회 일치
* 사방이 막힌 채 압사당할 처지. [[서 나이트아이]]가 발 빠르게 자물쇠 히어로 [[록록]]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는 나이트아이에게 이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트아이의 실책이니 리더인 척 굴지 말라고 툴툴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잠금"을 발동한다. "데드볼트"란 기술을 사용하자 사방에서 밀려들던 벽이 "잠금"된다. "잠금"은 접촉한 대상을 문자 그대로 잠가놓는 기술. 편리한 개성이지만 "살아있는 것에는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고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하거나 면적이 너무 넓다면 한계가 있다. 일단 이것으로 다소의 안전지대는 확보. 그러나 방심할 틈이 없다. 록록이 잠글 수 있는 범위 바깥에서 벽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미도리야 이즈쿠]]가 벽이 다가올 때마다 원 포 올로 강화된 킥으로 분쇄했다.
* 아이러니하지만 록록의 불평은 이리나카의 입장에도 적용됐다. 그도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었다. 진작부터 압살 작전을 쓰지 않은건 그만큼 방대한 체력을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숙련된 히어로 집단. 만일 압박한 보람도 없이, 일행이 더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길을 양보해준 거나 다름없다. 본래 이리나카는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본부장의 지위를 얻은 것도 그 성격 덕이다. 그런 그가 압살작전처럼 불확실한 패를 사용하는 건 상당히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가 복용하는 "강화약"의 약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다 히어로 연합군은 지연은 될 지언정 착실하게 진격하고 있다. 더이상 보내서는 안 된다, 실패할 수는 없다는 초조함이 그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 수시간 전. 빌런 연합의 수장 [[시라가키 토무라]]는 오버홀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위태로운 협상 끝에 성립된 동맹. 여전히 딱딱하고 날선 분위기 속에서 오버홀, 치사키는 뜬금없이 장기판을 펼쳤다. 장기를 둬본 적이 있냐고 묻는 치사키. 시라가키는 그런건 두지도 않고 룰도 모른다고 치우라고 말했다. 치사키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즐겨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국면을 내다볼 수 있게"된다면서. 그러자 시라가키도 조금은 흥미를 보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5회 일치
* 어쨌거나 [[시가라키 토무라]]의 결단에 따른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신고하러 온다.
* [[시가라키 토무라]]가 진심을 보였다.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가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시가라키의 결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갔다. 토가는 시가라키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트와이스는 용서 못한다, 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개성넘치게 입단인사를 마쳤다. 어차피 핫사이카이측에서도 랏파 정도나 이들을 환영하고 환영인사로 싸우려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시큰둥.
* 트와이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그런지 "이건 진짜 내가 아니다"고 자괴감에 떤다. 기껏 거절했던 토가는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궁시렁 거렸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토가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순순히 개성을 설명하는 토가. 피를 섭취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때 섭취한 피는 곧 에너지. 섭취량이 변신을 유지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대략 컵 한 잔 분량이라면 하루종일 변신하는 것도 가능. 한 번에 여러 사람의 피를 마시면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변신에는 옷도 포함되는데, 문제는 기존에 입고 있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부끄럽다는 여고생 틱한 설명까지 붙여서 PR 완료. 트와이스 못지 않은 성실한 자기소개였다.
* 이리나카가 이제 원망해봐야 늦은 일. 쉽게 도발에 넘어간 자신의 실책이다. 그의 비통한 외침은 [[서 나이트아이]]가 던진 특제 날인이 끊었다. 날인이 정확히 턱을 강타하자 이라나카가 정신을 잃었다. 미도리야는 그를 낚아채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 상황을 종결시킨다.
>잠깐 이야기 좀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5회 일치
* 그때 무슨 우연인지 루밀리오의 망토가 날아다니다 낙석에 휘감겨 스쳐 지나간다. 오버홀은 단지 기분 나빠하고 마는데, 에리가 문득 망토를 붙잡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오버홀은 에리의 뿔에서 기이한 빛이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과 함께 에리에 내력에 대해서 떠올랐다. 에리는 두목의 딸이 낳은 딸. 즉 두목의 손녀였다. 두목의 딸은 "남편이 저주받은 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 어느날 남편이 에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 조사 결과 에리는 양측 가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돌연변이. 저주도 뭣도 아닌,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리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자신의 개성을 자각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했다. 두목은 "접촉한 상대가 소멸했다"는 점이 오버홀의 개성과 닮았다고 여겨 에리를 보살피고 그 개성의 실체에 대해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오버홀의 "사업"의 시작이었다. 조사에 착수한 오버홀은 곧 해답을 찾아냈다. 에리의 개성은 "되감는 것". 두목은 오버홀과 에리의 개성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버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 에리의 되감는 개성은 오버홀과 [[네모토 신]]의 융합을 "되감아" 분리시킨다. 에리는 지금껏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오버홀에게 실험실의 쥐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딱 한 번 스스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실패.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저주받은 것이 숙명이라 여기고 살았다. [[토오가타 밀리오]]와 나이트아이, 그리고 미도리야가 그걸 바꿨다. 오버홀이 죽어도 에리를 놓아주지 않듯 이들도 죽어도 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그녀는 전에 없던 마음을 각성했다.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 에리는 손에 잡은 망토를 미도리야를 향해 뻗었다. 원래 닿지 않았을 미도리야의 도약은 그 망토를 잡음으로써 목표에 정확히 닿았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상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5회 일치
* 그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흑막은 미네타 미노루. 왠지 자존심 상해있는 남성진을 대변하는 척 민의를 핑계로 여자방을 들쑤실 작정이다.
* 키리시마는 애초에 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공언하고 실제로 "남친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인테리어 2위"를 거머쥔다.
* 여성진의 열화와 같은 찬사. 사실 본인 개성이 "단걸 먹으면 파워업"이라 훈련을 겸하는 건데 대호평이다.
* 사실 츠유는 일부러 심한 말을 했던 것이다. 결행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한 거였는데, 막상 탈환팀이 결행을 했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 미도리야는 이제야 "히어로를 목표로 하는"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한다.
- 단종 . . . . 5회 일치
즉위 초에는 주로 의정부의 보좌를 받아 정치를 행했는데, 단종실록 초기에는 의정부의 논의를 그대로 따르는 기록이 무척 많다. 하지만 즉위년 후반에는 점차 스스로 하는 정치가 많아지며 즉위 1년 쯤에는 이미 의정부의 의견에도 반론하고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즉위한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실권을 잡으면서 사실상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고, 그 후 금성대군과 손잡고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다 실패하고 나머지 친위세력이 모조리 거세된 뒤 이 일을 빌미삼은 수양대군 일파의 압력에 밀려 결국 즉위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밀려난다.
'금지옥엽'이란 말이 어울리는 월등한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숙부에게 찬탈당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은 부분 때문에 민간에서는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강했다. 또한, 보위에 오른 뒤 딱히 실정을 저지른 것도 없었기에 '역사적 재평가'의 대상이 될 일이 없기도 했다.
- 대잠비행정 . . . . 5회 일치
'''단점''' : 수상직접이착륙은 사실 비행정에 상당히 큰 부담으로 작용하며, 다양한 기계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아무리 대잠비행정이 크고 성능이 좋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수상기나 함재기와 비교한 것이지 육상발진 대잠초계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항공모함이 충실하여 대형 대잠초계기를 안정적으로 함재기로 쓸 수 있다면 굳이 대잠비행정을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대잠헬기가 개발되고 이를 구축함에서도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잠비행정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구조 분야에서도 대잠비행정은 착수하지 않고 구조할 수 있는 헬리콥터에 비해서, 착수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파도의 높이나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오히려 불리하다. 예를 들어 헬리콥터는 높이 12미터의 격렬한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도 구조를 해낸 실적[* http://articles.latimes.com/1986-12-19/local/me-3602_1_coast-guard]이 있지만, 대잠비행정은 이렇게 결렬한 파도를 버텨낼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개발된 US-2 같은 경우는 높이 3 m~4 m 이상의 파도가 치면 착수가 어렵게 된다.
헬리콥터보다 빨리,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헬리콥터가 닿을 수 없는 외양까지 나가는 배는 애초에 상당한 대비를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배를 구조해야 하는 상황은 사실 별로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미군에서 운용한 P3Y, PBM, 영국의 쇼트 선더랜드(Short Sunderland), 소련제 Be-6와 Be-12 등이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력이 충실하여 대잠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주력하게 되면서, 1960년대 대잠비행정에서는 손을 뗐다. 미국이 여기에서 손을 뗀 뒤로 서구권에서는 특별히 눈에 뛰는 대잠비행정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
- 듄 2 . . . . 5회 일치
Dune II: The Building Of A Dynasty. [[웨스트우드]]에서 개발한 실시간 전략 [[게임]]. SF소설 [[듄 시리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트레이트, 오르도스, 하코넨의 3가문 가운데 1곳을 선택하여 미션을 플레이하여 듄 행성을 정복하는 전개를 가지고 있다.
스파이스 정제소에서는 하베스터를 써서 스파이스를 채취, 리파이너리에 캐서 모아둔 스파이스를 정제하고 크레딧([[돈]])으로 바꿔서 유닛을 생산한다. 원작소설에서 따온 것이지만 묘하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스파이스는 사막 지형인 땅에서 붉은색으로 보이는 모래 부분이며, 하베스터로 채집을 선택하면 하베스터가 알아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채집하여 스파이스를 가져온다. 하베스터의 채집은 채집지역을 정해두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가끔 하베스터가 엉뚱한 먼 곳에서 채집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베스터 자체는 공격능력이 없지만 보병은 깔아뭉개 죽이는 것을 할 수 있다.
유닛을 클릭하고 '후퇴'명령을 내리면 '이동'하기 전의 위치로 되돌아간다.--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이거.-- 최근 RTS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이지만, 다수 유닛 선택이 안되고 컨트롤이 뻑뻑한 게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실제 플레이에서는 나름 쓸만한 명령이다.
상징색은 푸른색. 열대 행성 칼라단을 본거지로 하는 가문으로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잘 알려져있다. 듄의 토착민인 프레멘과 우호적인 관계이므로 이들이 적의 기지를 공격하게 유도할 수 있다.
상징색은 붉은색. 기에디 프라임을 본거지로 하는 잔악하고 포악한 가문. 경보병(Light Infantry)을 사용하지 않는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5회 일치
* 동방 변경주 : 제국의 동북방에 위치한 변경주로 제국의 최전선 중 한 곳. 북동쪽에 웅거한 30만 명에 달하는 야만족을 1개 군단 5천 명(실제로는 전사자 등으로 인해 4천 명 수준)만으로 막아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높다. 이 때문에 주의 주요 인물들도 중앙에서 좌천된 인물이거나 사고뭉치, 혹은 출신이 확실치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 사이파카르 : 주인공. 6황자. 바보같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야심가이면서도 신중하고 인내심이 많은 성격. 그 재능 때문에 오히려 황제에게 경계심을 사서 변경으로 쫓겨간다. 주변의 여성 가신들에게 하나같이 사랑받고 있는 게 특징.
* 제피 : 소피의 동생으로 여장남자. 그 존재 때문에 사이파카르는 실은 남색 취향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귀여워서 다른 여자들에게 성희롱당하기도 했다. ~~외모와 달리,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지녔다.~~ 누나를 매우 잘 따르는 시스콘.
* 레프라프티 : 수군사령관. 실제로는 내륙 지역인 변경주엔 수군이 없지만, 변경주로 좌천된 신분이라 임시로 달게 된 직함.
- 마기/345화 . . . . 5회 일치
* [[셋타]]와 [[와히드]]는 "누가 바라지 않아도 내 의지로 살겠다"고 말하는 알리바바가 "그 녀석"을 닮았다고 느끼나 실없는 생각으로 여긴다.
그는 돌쌓기 놀이에 쓰는 돌을 가리킨다. 이 돌들은 "차원의 구멍"이 올렸을 때 거기서 떨어진 것이다. 다윗이 현세로 돌아갈 때 열린 구멍. 거기서 나온 것이니 이건 현세에서 온 물건이다. 셋타는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구멍 저쪽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보였고 "검은 거인"도 봤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매그노슈탓트 전쟁에서 나타난 "매개체"였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 문제가 아니다. 차원의 구멍에서 나왔다는 이 돌. 이것만은 환상이 아니라 현세에서 온 실제 물질, 루프와 연결된 물체다. 알리바바는 떨리는 손으로 돌맹이를 집어들면서 엄청난 수확이라고 말한다. 이게 현세의 물질이고 마고이가 깃들어 있다면 이걸 써서 마법을 사용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그동안은 모르고 있었던 사실. 셋타와 와히드가 탄성을 내뱉는다. 오로지 무력하게 시간을 보냈던 그들에겐 그런걸 생각해볼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일깨워주자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사실이란걸 실감한다. 이들만이 아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하나둘 관심을 나타낸다. 무력하게 돌맹이만 쳐다보고 있던 공간에 활기가 퍼진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5회 일치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파르마 공작 필리프의 딸로서, 1765년 [[황태자]]였던 [[카를로스 4세]]와 결혼하였다. 아둔하고 무기력하다는 야유를 들은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스페인의 국정을 담당했다.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을 앞두고 무능한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국정의 전권을 맡기고, 결국 국민 폭동과 나폴레옹 침공을 부르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스페인이 몰락하는 단초가 되었다는 악평을 받는다.
- 박경석 (1960년) . . . . 5회 일치
| 학력 =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이후 5년간 집안에서만 생활하다가 [[1988년]] 서울장애인복지관에 입소, 그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1년]]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으며<ref name=park /> [[200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숭실대학교에 입학할 무렵 논의가 시작된 장애인을 위한 야간학교의 설립에도 참여하여 [[199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구의동]](현 [[광진구]]) 정립회관 일부를 빌려 노들장애인야간학교(현 [[노들야학|노들장애인야학]])를 설립하였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 초청되어 대통령에게 장애인 인권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다가 경호실 직원들에 의해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다.<ref name=khan />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지체 장애인]][[분류:밀양 박씨]]
- 박두을 . . . . 5회 일치
박두을은 [[1907년]] [[11월 8일]]에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 박기동의 4녀로 태어났다. [[박팽년]]의 후손답게 선비였던 아버지 박씨와 '교동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손에서 박두을은 엄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굴이 예쁘고 인심이 좋아 평소 '두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15세 되던 무렵 어느 날 절에서 시주를 나온 한 스님으로부터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갑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라는 말을 하였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스님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이후 박두을은 [[1926년]] 20세에 [[이병철]]과 결혼하였다.
{{인용문|아버지 집안이 [[의령군|의령]] 일대에서는 부자라고 했지만 굳이 비교해보자면 당시 [[달성군|달성]]에 있었던 외가 쪽이 더 부농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시집이라고 왔더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수가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집안 어른들에 따르면 친가 쪽도 물론 3000석 지기에 가까울 정도의 부를 지닌 집안이었고 서원을 세울 정도의 성리학자셨지만 외가 쪽 지체가 워낙 높아서 '한쪽으로 기우는 혼사'였다는 말들이 있었다. 실제 어머니는 시집 올 적에도 몸종을 비롯하여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고향에서 쉬면서 곧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병철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들과 노름에 빠졌다. 노름은 늘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고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하여 이 무렵 호암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26세였던 [[이병철]]은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허송세월을 했다는 자책이 컸다. '뜻을 세워야 한다. 독립운동도 좋고 관리가 되어도 좋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을 빈곤에서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병철]]은 사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하였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용문|'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 가느냐에 있다.'(호암 평전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 박상원(배우) . . . . 5회 일치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스키 실력이 수준급이며 스키 패트롤 자격을 가지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행사에 모습을 보이기도.
* 1998년 [[그대 그리고 나]] (MBC)[* <마포 무지개>의 실패 후 친정인 MBC를 떠난 뒤 한동안 타 방송사 위주로 활동해 오다가 해당 작품을 통해 MBC 복귀를 했다.]
* 공개수사 실종 ([[KBS]]) ([[2004년]] [[11월 6일]] ~ [[2005년]] [[3월 26일]])
- 박신혜 . . . . 5회 일치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영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영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영화 《[[도마뱀 (영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영화 《[[전설의 고향 (2007년 영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절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4년 11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에 캐스팅 되어 《[[천국의 나무]]》 PD였던 조수원 감독과 9년만에 재회하게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피노키오' 박신혜 "작품 기다리는 배우, 취준생의 심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04814|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승현 |날짜 = 2014-11-06 |확인날짜 =2014-11-10 }}</ref> 이 작품은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의 삶과 24시간을 함께 하며 전쟁같이 보내는 이들이 설레는 관계로 발전해가는 풋풋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로 박신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최인하 역을 연기하였고,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실상이나 문화를 현실적으로 잘 반영해 호평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904000373|title=Park Shin-hye confirmed to star in ‘Pinocchio’|publisher=The Korea Herald|accessdate=2014-09-08}}</ref><ref>{{웹 인용|title=Cultural Exports to Surpass 1 Trillion Won This Year|url=http://www.businesskorea.co.kr/english/news/lifestyle/8231-culture-trade-balance-cultural-exports-surpass-1-trillion-won-year|work=Business Korea|accessdate=2015-10-24|date=2014-12-26}}</ref><ref>{{웹 인용|title=‘Pinocchio’ sells distribution rights to China for record price|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411241750324868840_2|work=Kpop Herald|accessdate=2015-10-24|date=2014-11-24}}</ref> 박신혜는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또한 제5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5년 연속 인기상 수상…대세 여배우 입증 [51th 백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208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이은지 |날짜 = 2015-05-26 |확인날짜 =2017-09-20 }}</ref> 같은 해 12월, 개봉 된 사극 영화 《[[상의원]]》에 왕비 역을 연기하였다.
박신혜의 가족은 5대째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주최하는 해비타트 집 짓기 봉사에도 자주 참석해왔고,<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5대째 기독교’… 부모도 교회서 만나 결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772/20160801/%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C%99%B8%EB%AA%A8%EB%A7%8C%ED%81%BC-%ED%9B%88%ED%9B%88%ED%95%9C-%EB%B4%89%EC%82%AC%ED%99%9C%EB%8F%99-%ED%99%94%EC%A0%9C.htm|출판사 = |저자 = |날짜 = 2016-08-01 |확인날짜 =2013-09-01 }}</ref> 성인이 된 후에는 생일이 돌아오면 가족과 함께 '밥퍼'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최일도 목사 “조용한 하늘나라의 심부름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011/20160704/%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2%80%A6-%EC%B5%9C%EC%9D%BC%EB%8F%84-%EB%AA%A9%EC%82%AC-%EC%A1%B0%EC%9A%A9%ED%95%9C-%ED%95%98%EB%8A%98%EB%82%98%EB%9D%BC%EC%9D%98-%EC%8B%AC%EB%B6%80%EB%A6%84%EA%BE%BC.htm|출판사 =크리스천투데이 |저자 =김진영 |날짜 = 2016-07-04 |확인날짜 =2013-09-01 }}</ref>
- 박홍 (신부) . . . . 5회 일치
[[1991년]] [[예수회]]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ref name=gg/><ref>{{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6968.html|제목=영안실서 김귀정 주검 지키며 경찰 침탈 맞서 / 박정기|출판사=한겨레|저자=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구술작가 송기역|날짜=2012-04-05|확인날짜=2012-04-29}}</ref> 박홍 신부의 기자회견 이후 부터 김기설 학생의 분신 자살에 배후가 있다는 보도가 언론에 도배질을 하기 시작했고,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검찰과 경찰은 합동으로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공안몰이 수사를 벌여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며 강 씨를 구속기소했다.
강기훈은 법원으로부터 목격자 등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와 정황에 따라 자살방조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고 [[1994년]] [[8월 17일]] 만기 출소했으나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58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ref name=gg>{{웹 인용|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제목=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출판사=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저자=정책홍보팀|날짜=2007-11-13|확인날짜=2012-04-29}}{{깨진 링크|url=http://www.jinsil.go.kr/Information_Notice/article2/readnum.asp?num=84&pageno=1&stype=&sval=&data_years=2007&data_month }}</ref> 이에 따라 2012년 대법원의 재심이 개시되었으며, 2014년 2월 13일 재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혐의·무죄로 재판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137599</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41789</ref>
- 배경 세계 공유 . . . . 5회 일치
* [[엑스멘 실사영화 시리즈]]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와 신비한 동물사전 실사영화 시리즈가 소속되어 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하이브리드 스타일이 될 것이라 한다.
*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
- 배천석 . . . . 5회 일치
|청소년 클럽 =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br />[[숭실대학교]]
배천석은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 팀 산하의 포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쳤으며,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지명되었다. 이후 [[숭실대학교]]에 진학하였다가, [[2013년]]에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2011년 7월, 숭실대를 중퇴하고 일본 [[J리그]] [[비셀 고베]]에 입단하였으나, 리그 3경기, 컵대회 1경기 출장에 그친 뒤,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고 9개월간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일본에서 시련, 강한 정신력 가져”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805|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4-02}} }}</ref><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대학 후배 앞에서 체면 차렸죠"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251282|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13-05-09}} }}</ref>
2014 시즌 첫 경기였던 [[AFC 챔피언스리그 2014]] [[세레소 오사카]]와의 홈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전반기를 넘기지 못하고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게 됨에 따라 사실상 시즌아웃 되었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포항제철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보루토/2화 . . . . 5회 일치
* 사실 사스케가 보고한 사항 중엔 보다 중대한 것도 있었다.
* "하지만"하면서 사스케가 말을 이으려는데 성격 급한 보루토는 작은 나선환을 내던져 버리고 실망해서 돌아가 버린다.
* 잘 보니 보루토가 던져 버린 나선환은 맞은편 나무에 상처를 낼 정도로 확실히 위력은 있다.
* 실망한 채 거리를 걷던 보루토는 카타스케를 만난다.
* 보루토는 시치미를 떼며 "확실히 너는 나루토랑 다른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이라고 말한다.
- 보루토/3화 . . . . 5회 일치
* 2차시험은 깃발 뺏기. 보루토는 깃발을 지키는 역을 수행하다가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카타스케가 준 닌자도구를 사용한다.
* 사이는 정답을 발표하면서 오답자는 까맣게 되어 실격할 거라고 하는데.
* 닌자 군사 기록첩 5권 같은 책은 처음부터 없었다. 문제는 훼이크였으며 진짜 실격은 먹물풀에 떨어져 "새까맣게"되는 것.
* 메탈 리가 깃발을 수비하며 신키를 상대로 선전하는데 싸우는데 정신이 팔려 신키의 양동작전에 당해 실격된다.
* 사실 따지자면 우치하의 특기는 수리검술이 아니다.
- 보에몽 1세 . . . . 5회 일치
물론 그가 아버지가 못다한걸 이루겠다는 야심을 버린것으로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행동은 원정을 요청했던 알렉시오스에게 인정을 받아 십자군의 '종교적' 지도자였던 아데마르 주교와 배치되는 '세속적' 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시오스에게 제국의 아나톨리아군 총사령관직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티오크 공작으로서 보에몽은 명목상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독자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립 관계였다. 주변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여 영토를 늘려나갔는데, 이렇게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다가 결국 이슬람 셀주크계 다니슈메드 왕조(Dânişmendliler)에 포로로 잡히고, 당시 그와 대립하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이송될뻔했기도 했으나, 군사적 협약을 미끼로 풀려나 다시 공작위를 되찾는다.
결국 보에몽은 알렉시오스에게 패배했고, 그에게 안티오크의 비잔티움 속국화와 안티오크의 확장을 사실상 저지하는 조약을 맺게 됀뒤, 1111년 실의속에 죽는다
알렉시오스 1세의 딸 안나 콤네나가 그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연대기에 '그는 그의 아버지만큼이나 교활하고 위험한 인물이다.'라고 적었듯이, 그의 군사적 능력은 출중한게 확실하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를 닮아 알렉시오스 1세가 십자군의 봉신서약을 요청했을때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이를 뒤통수쳐서 안티오크 공국을 독자적으로 형성한 교활함까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매우 안타깝게도 그의 목표이자 야망이었던 비잔티움 제국과 그곳의 지도자인 알렉시오스 1세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고, 결국 그가 그의 야망을 충족시킬만한 상황이 되지못했다.
- 브와나 비스트 . . . . 5회 일치
이름답게 [[동물]] 관련 초인으로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연결되어 초인적인 힘, 스피드, 감각을 소유한다. 또한 킬리만자로 동굴의 미네랄 워터를 마셔서 마신 양만큼 상해에 대한 저항력을 얻는다. 이 미네랄 워터는 붉은 원숭이 듀바(Djuba)가 병에 담고 다니며 보충해준다.
개인 비행기에 탔을 때, 비행기가 벼락이 맞는 사고를 당해 킬리만자로 산꼭대기에 추락해 부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뮤턴트 붉은 원숭이들의 동굴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무기질을 통해 걸러진 빗물을 마신 액스웰은 강하고, 사나워진 것을 느꼈다. 이후 붉은 원숭이들을 공격하여 복종시켰고, 붉은 원숭이들은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고대의 헬멧을 가져와 맥스웰의 머리에 씌웠다. 그를 헬멧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
사실 굉장히 마이너한 캐릭터인데 엽기적인 능력 때문에 21세기 들어 애니메이션에 자주 출연하는 홍복을 누리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2화 . . . . 5회 일치
* 야미가 아스타를 쉬게한 것도 사실 한껏 기대하는 "성과제" 때문이었다. 마법기사단의 성과를 보고하고 즐기는 축제다.
*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카호노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아스타와 [[노엘 실버]], 자기 오빠랑 합쳐서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다.
* 대충 개판이 정돈되자 야미는 핀랄이 소개하려고 했던 "시간 때우기 적당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축제다. 신참인 아스타와 [[노엘 실버]]는 모르는 일이다. 마법기사단은 공적에 따라 별을 받고 경쟁한다. 1년에 한 번씩 이 별의 숫자를 발표하고 1위 기사단을 정하는 축제를 벌인다. 그게 "성과제". 클로버 왕국에서 가장 큰 축제기간이며 모든 클로버 국민들이 즐긴다. 뜻밖에도 야미도 이 축제를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입으로는 "의욕은 없다"고 하지만 차려입은 것부터가 의욕 만빵이다. 고슈처럼 답없는 시스콘은 틀어박혀있겠다고 하지만 핀랄처럼 헌팅 매니아는 한껏 설레고 있다.
* 사실 아스타가 굳이 이들을 부른 것은 선물이 있어서였다. 그는 키아토에게 잘린 다리를 잘 가져오라고 했는데 키아토는 그 말대로 물마법으로 보존해 잘 간수하고 있었다. 아스타는 [[마녀왕]]의 마법 "멸주의 피고치"를 병에 담아 왔다. 마법을 풀어놓자 순식간에 키아토와 카호노의 상처를 치료해 버린다.
최고의 기분이 된 카호노는 1년에 한 번 뿐인 축제를 즐기자며 노엘과 아스타, 오빠 키아토에게 더블 데이트를 제안한다. 경악하는 노엘과 사실 그게 뭔지도 모르는 아스타.
- 블랙 클로버/104화 . . . . 5회 일치
* 샬롯이 이런 꼴은 다른 단장들에겐 못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소란이 일어난 걸 듣고 [[야미 스케히로]]가 찾아온다. 일전에 드러났다시피 사실 야미에게 반해있는 샬롯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쓴다. 야미는 샬롯이 평소에 안 하던 드레스 차림을 한 걸 보고 "반짝거리는걸 다 입었다"라며 웃는데 샬롯은 가까스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야미 쪽이야 말로 묘한 의상이라고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냥 훈도시 차림이다.
솔은 자기네 단장의 실태에 대해선 잘 모르므로 야미를 "누추하고 쉰내나는 남자 중 No.1"이라 질시하며 샬롯 근처에도 못가게 한다.
* 승부 시작. 샬롯은 척보기에도 주당으로 보이는 바네사를 경계한다. 하지만 승부가 시작하자마자 바네사가 골아 떨어지면서 승세는 샬롯 쪽으로 기운다. 이미 어디서 마실 만큼 마시고 온 참이기 때문에 버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 샬롯은 야미를 의식해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탄한다. 자신이 뭘하고 있는 건지 한심해하던 그녀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저주"에 관해 회상한다.
이후 그 말대로 샬롯은 끊임없이 강해져서 푸른 들장미단에 들어갔을 땐 이미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그 강함과 미모 때문에 구혼자가 줄을 이었지만 샬롯은 자기를 이길 수도 없는 구혼자 따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기도 이길 수 없는데 앞으로 발동할 저주를 이겨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해 빠진 구혼자들에게 실망한 샬롯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결심한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5회 일치
잭스가 혼자 고생한 척은 다 했지만 사실 함정은 아스타가 판 거였다. 반마법의 검은 삽 대신으로도 훌륭했다. 아스타가 유인하던 동굴 입구 쯤이 함정의 위치였다. 잭스는 초장부터 그렇게 설친데다 이런 함정까지 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는 아스타를 "체력 괴물 꼬마"라고 불렀다. 정작 잭스가 바쁜 건 지금부터다. 네르슈가 다시 일어나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 그는 함정이 있는 동굴 입구에 새로운 함정마법을 걸었다. 누가 그를 구하러 접근하면 꽈광. 아스타도 알 수 있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예방 조치였다.
매그너가 그의 훌륭한 헛스윙을 비웃었다. 이것이 매그너의 새로운 마법 "궁극소멸마구". 문자 그대로 사라지는 마구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눈 앞에서 사라지는 공격은 어쩔 수 없다. 아스타는 새삼 선배의 실력에 놀랐다. 놀란 것은 클로버 국왕과 [[마법제]]도 마찬가지. 국왕이 하층민 주제에 자신을 놀라게 했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마법제는 "외견과 다르게 손재주가 있다"는 디테일한 평까지 남겼다.
네르슈가 그 시절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상태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태여 남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 그렇게 일방적이었던 싸움이 마침내 끝났다. 아스타가 사라지는 마구를 쳐냈다. 마구가 사라지는 순간 나타날 위치를 고려해 따라잡은 것이다. 이제 싸움은 백중세. 매그너는 역시나 한 방 먹여주는게 있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공세를 높였다. 아스타는 거의 막아내고 있었지만 5발 중에 1발 꼴로 실패했다. 검을 더 빠르게 휘둘렀다.
*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공방전. 지켜보던 [[락 볼티어]]가 그 치열한 접전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매그너는 새삼 아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실감했다. 이런 후배가 있어서 얼마나 자극이 됐던가. 지금 자신을, 검은 폭우단을 강하게 만들어준 건 분명 아스타였다. 매그너는 그게 빌어처먹을 정도로 고맙다고 생각했다.
- 블랙 클로버/133화 . . . . 5회 일치
*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릴 부아모르티에]]의 승부를 끝으로 로얄 나이츠 선발 시합 종료. 최종 승자는 유노, [[노엘 실버]], [[엔 링가드]]의 I팀. [[잭스 류그너]]는 대회 종료 후 조용히 사라지려 했지만 마법제 율리우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마법제는 잭스의 재능이 필요하고 분명 선발에 합격할 것이니 부디 로얄 나이츠에서 힘써 달라 당부하는데, 잭스는 자신은 잭스 본인도 뭣도 아니라고 거절하려 한다. 하지만 마법제는 "자네도 원래는 마법기사"임을 지적하며 그의 아버지의 일을 언급한다. 마법제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층민이지만 뛰어난 마법기사였고 그 같은 인물이 좀 더 평가받을 수 있도록 별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그런 사실을 언급하면서 지도자들의 불찰로 그가 다른 길을 걷게되긴 했지만, 이쯤에서 자기 단의 로브를 걸치고 복귀함이 어떻냐고 묻는다. 잭스는 마법제의 말대로 어떤 "맛이 간 단장"에게 로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그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제의 권유에 대해서도 "나는 지나가던 되다만 슈퍼 마도사일 뿐"이라며 사라진다.
* 한편 불완전연소로 대회를 마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멍한 상태로 검은 폭우단 아지트에 방치돼 있다. 유노가 새로운 힘에 각성한 것이나 잭스가 실제론 사칭이었던 것, [[핀랄 룰러케이트]]의 용태 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챠미 퍼밋슨]]도 유노에 대한 상사병이 도져서 멍하지만 밥은 잘 먹고 있다. 노엘이나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는 서로 자기야 말로 로얄 나이츠로 선발될 거라며 티격태격한다. 핀랄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중환자.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랜길드 보드]]는 연행. 노엘은 그가 막판에 발휘했던 수상한 마력을 찜찜해한다.
* 그리고 잠시 뒤. 로얄 나이츠 합격자가 전원 왕도에 모였다. 유노, [[미모사 버밀리온]], [[클라우스 류넷]], 링가드, [[푸리 엔젤]] 등이 합격자로 얼굴을 비췄다. 메레오레오나는 로얄 나이츠 단장으로써 단원들 앞에서 취임사를 했다. 그런데 전원 집합을 걸엇는데도 여전히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며, 얕보는 거냐고 중얼거리는데. 그때 누군가가 "늦었다"며 뛰어든다. 메레오레오나는 다짜고짜 공격마법으로 제재를 가하는데 그 단원은 간단하게 그걸 막아낸다. 마지막 합격자는 자로 잭스 류그너, 아니 [[조라 이데아레]]. 그는 경악하는 아스타, 노엘, 락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과 "검은 폭우 선배"라는 사실을 밝힌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5회 일치
* 맨날 술에 쩔어서 실력 발휘를 안 하던 바네사가 무슨 일인지 제정신으로 적을 처리했다.
* 대신관은 보기보다 실력이 좋은 녀석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나의 아들, 손주들이 본실력만 발휘하면 역전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 카호노는 사실 해저신전을 찾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이 오면 할아버지(대신관)가 게임을 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 보고 있던 야미는 "(키아토의 실력은 대단하지만) 우리 꼬마의 흡수력은 더 뛰어나다"며 흥분한다.
- 블랙 클로버/78화 . . . . 5회 일치
* 실프는 유노의 관심을 끄는 모든 것에 질투하는 골치 아픈 성격
* 실프는 유노와 친한 아스타가 나타나자 질투를 감추지 못한다.
* 실프는 챠미는 무시하려고 하다가 유노가 "그때 (구해주다가)덮쳐 버려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자 오해하고 질투를 폭발시킨다.
* 솜 창성마법 "양의 뭉실뭉실 쿠션"
- 블랙 클로버/79화 . . . . 5회 일치
* 야미는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마법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그외 체형이나 목소리, 기의 느낌이 모두 일치한다는 것.
* 사실 야미는 그를 의심하는 한편 비슷한 경력을 가진 그에게 동질감도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혹을 털어버리고 가려는 것이다.
* 그는 외모가 아닌 실력을 보아준 유일한 인물로 윌리엄의 재능과 따뜻한 마음을 높이 사 마법기사단으로 스카웃한다.
* 야미가 사과하며 기분 나쁘게 한거 같다고 말하자 윌리엄은 사실대로 말하길 잘했다며 오히려 고마워한다.
* 유노와 아스타는 헤어지면서도 디스를 주고 받는다. 챠미 퍼밋슨도 실프와 티격태격하느라 수선스럽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5회 일치
* 본실력을 발휘하는 아스타는 단신으로 적진을 유린하고 파나의 마법까지 받아치며 실력을 과시한다.
* 부관격으로 보이는 변태 같은 마도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파마의 힘과 미모를 칭송하며 "한 번 상대하고 싶다"고 섹드립이나 날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녀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쓰겠다며 부하들을 출동시킨다. 부하들은 포박 계통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잡아간다. 어린 마녀 하나가 적에게 잡히는데 아스타가 바네사 에노테이커, 핀랄 룰러케이트, 노엘 실버와 함께 현장에 도착, 마녀를 포박한 마법을 베어버리며 구출한다. 하지만 마녀의 숲의 마녀들을 남자를 싫어해서 구해준 아스타를 할퀴고 달아나 버린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원래 그런 나라라며 대신 사과한다.
* 노엘은 파나가 지른 불을 마법으로 끄고 바네사는 자기 고향을 망가뜨리는 다이아몬드 왕국에 적의를 드러낸다. 부관은 여러 마녀를 포획해서 성희롱을 남발하고 있는데 나름 페미니스트인 핀랄이 분노한다. 아스타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날려달라고 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다시 회수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스타는 걱정말고 해달라고 하는데 바네사는 그의 실력을 믿고 날려보낸다.
* 아스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탄을 베어버리며 적들에게 날아간다. 이미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걸로 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적들이 경계하지만 아스타는 적들을 밟고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쓸어버린다. 부관은 어떻게든 아스타를 저지해 보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단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다. 바네사는 그 실력을 칭찬하며 일단 저렇게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87화 . . . . 5회 일치
* 숲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노엘 실버가 합류. 그녀의 물마법은 샐러맨더의 불이라도 끌 수 있었다.
* 필살기를 쓰겠다고 벼르던 아스타지만 증오의 파나가 퍼붓는 맹공에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명중한 것도 아니지만 열기에서 오는 압력만으로 몸이 밀려날 정도다. 혼자서는 접근이 불가능한데 너무 강한 마력 탓에 마나 역장이 형성되어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 마법이 제대로 형성되질 않는다.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실마법도 실을 내놓는 족족 열기에 타들어가서 무용지물이 된 상태.
* 물 창성마법 "해룡의 둥지". 물의 방어마법이 펼쳐지며 샐러맨더의 열기를 식힌다. 숲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노엘 실버가 아무리 불길을 잡아도 끝이 나질 않아 전투현장까지 온 것이다. 노엘은 샐러맨더를 보고 겁을 먹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는다. 동료들은 물마법을 구사하는 노엘이라면 화염의 샐러맨더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전세는 다시 역전. 노엘이 자신의 실력을 봤냐고 우쭐거리자 아스타는 칭찬하며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고 외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5회 일치
* 이 과정을 지켜보던 마녀의 여왕은 "녀석"의 후예일 줄 알았다며 실망하는 기색이다.
* 그러나 아스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항상 생각없어 보이는 아스타지만 라드로스가 강하며 혹시라도 뺐다가 반격 당하면 승산이 없을 테니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물론 라드로스는 이대로는 죽을 거라며 징징대는데 아스타는 "그정도로는 안 죽는다"고 확실하게 못박는다. 라드로스는 감정에 호소하면 먹힐 거라고 여겼지만 그게 완전히 오산. 아스타는 여러 수라장을 헤쳐오면서 단련돼서 그정도 심리전은 먹히지 않았다.
* 하지만 파나는 기억도 애매할 뿐더러 라드로스에게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라드로스는 빈사의 마르스를 공격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사실 그에겐 마르스를 죽일 정도의 힘은 이미 남지 않았지만, 마르스가 공격 당하는 모습을 보자 파나는 잠재된 샐러맨더의 힘이 분출된다.
* 아스타가 뒤따라 가봤지만 한발 늦었다. 강한 빛과 함께 샐러맨더의 흡수가 시작된다.거기서 내뿜어지는 강력한 힘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때의 강렬한 빛 때문인지 [[노엘 실버]]가 의식을 되찾는다.
* 마녀의 여왕은 수정구슬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열세에 처한 아스타를 보고 실망하는 것 같다.
- 블리치/674화 . . . . 5회 일치
* 요루치이는 "죽지도 살지도 않게 조절"하는 솜씨가 절묘하다고 비꼬는데, 사실 충분히 죽일 작정으로 조절하는데 요루이치가 잘도 버티는 거다.
* 사실 "면역제"를 주사하느라 그런 거였다. 요루이치는 잠시 동안이나마 움직임을 회복한다.
* 우라하라는 사실 유하바하가 경계한 특기전력 5인 중 하나. 선정 기준은 "미지수"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 확실히 치명적인 엉덩이 먹음이네요. 요루이치씨. ||
* 결국 유시로도 참백도를 꺼내는데 실패. 시호인 가문은 참백도를 못 뽑는 저주라도 걸렸나?
- 산킨고타이 . . . . 5회 일치
이는 중세 봉건제도의 관습에 근거하여, 하급자인 사무라이가 상급자인 대귀족[* 후대에는 실권을 사무라이가 쥐게 되었지만, 당초 사무라이는 대귀족을 따르는 호위무사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이나,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막부의 쇼군에게 '참배'하여 그들을 호위함으로서 '병역'을 봉공으로 바치고, 그 댓가로서 영지를 보유할 권리(은상)을 얻는다는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행렬을 통해 각 번의 경제력을 소모시켜 반란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결과론적인 얘기로, 실제 모반 방지는 다이묘의 가족들이 에도에 머무르는 것으로 충분했고, 다만 다이묘들이 체면을 중시하여 행렬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집착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과도한 지출로 이어진 것이다.
다이묘들은 서로 체면치례를 하려고 경쟁적으로 행렬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는 규제를 정해서 다이묘들의 [[석고]]에 맞춰서 일정한 수의 인력만을 동원하도록 했다. 당초에는 각 번의 번사(번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행렬에 참가했으나, 후기에 가면 경제적 문제로 다이묘 행렬에만 전문으로 참가하는 일용직을 동원하게 됐다. 이러한 일용직들은 겉치레는 사무라이였지만, 실상 단순한 아르바이트 코스플레이어(…)에 가까웠다. 일설에는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단 10인으로 성공했던 것도 이러한 저질 일용직 행렬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다들 도주했기 때문이라고.
- 송창현 . . . . 5회 일치
어쨌든 [[장성호]]와 1:1로 트레이드 할만큼 [[김응용|코끼리 감독]]의 기대를 받고 전지훈련 명단에 들어갔으나, 이후 드러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자체 청백전을 제외하고 2월 21일 기준 연습경기에 나와 2이닝 동안 12실점, 볼넷 5개, 사구 1개, 폭투 1개, 삼진 1개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한화팬들로서는 미치기 딱 좋을 수준이었다. 이후 2군에서도 방어율 7점대의 성적을 찍으면서 한화 팬들이 [[김응용|코감독]]을 씹을 때나 쓰는 안주거리화가 되나 했는데 1군 콜업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2014 시즌 이후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지만 부상으로 도중에 낙마했다. 이후 11월 19일 요코하마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좌측 어깨 전관절 와순 부분 파열로 접합 수술을 받았다. 26일에 퇴원해서 귀국한 이후 서산에서 재활훈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단계적으로 내년 2월쯤에 캐치볼을, 5월달쯤에 실전 피칭에 들어간다고 한다.
데뷔 초에는 속구와 슬라이더 두 개의 구종만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즌 후반에 체인지업과 커브를 장착한 것으로 보아 구질 습득도 빠른 편인듯 하다.[* 체인지업은 [[송진우(야구)|송진우]], 커브는 [[정민철]] 혹은 [[이대진]] 코치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한화 이글스의 팟캐스트 방송 이글스캔들에서 본인이 밝힌 바로는 체인지업은 송진우 코치가 그립만 가르쳐준 것을 실전에서 사용했더니 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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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걸(드라마)/1시즌 2화 . . . . 5회 일치
뉴스에서는 맥스웰 로드가 비난하는 사람으로 등장, 그랜트는 슈퍼걸과 인터뷰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카라에게 제임스는 인터뷰를 해보라고 권유하며, 실패하여 상심해있는 카라를 격려해준다.
알렉스는 카라에게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약한 크립토나이트 광선을 방출하는 방으로 카라를 데려와서 때려눕힌다. 알렉스는 외계인 적들은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전투실력을 갈고 닦았다며, 카라 역시 단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카라는 몇번이나 알렉스에게 제압당한다. 카라는 화가 나서 DEO와 일하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리며 떠난다.
다음날 카라는 그랜트가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은 것을 보게 된다. 울컥거린 카라는 그랜트에게 슈퍼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는데, 그랜트는 슈퍼걸은 급하게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보다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 말이 마음에 와닿게 된 카라는 윈과 제임스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한다.
카라는 제임스와 윈과 협력하여, 작은 임무부터 착실하게 해가면서 다시 슈퍼걸의 명성을 회복한다.
DEO는 대량의 DDT를 수송하여 헬그램마이트를 유인한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하고 알렉스가 헬그램마이트에게 납치, 헬그램마이트는 아스트라 장군에게 알렉스를 끌고가서 넘긴다.
- 스쿼키 청소회사 . . . . 5회 일치
청소회사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청부살인업자 조직. 처리 대상이 있는 곳을 습격해 그곳에 있는 모두를 쏴죽인다. 이후 피, 체모, 탄피, 시체 등을 제거하는 증거인멸 작업을 벌인다.
[[모나 색스]]가 맥스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오자 둘을 죽이기 위해 아파트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맥스에게서 해당 사건을 보고받은 [[짐 브라부라]]는 "다음엔 뭔가? 가방엔 총을 가득 담고 머리는 비디오 게임으로 가득 찬 아이가 집을 사격장으로 바꿔놓는건가? 가슴이 아프군,"[* What next? A Kid with a bag full of guns and a head full of videogames turns the house into a shooting gallery, breaks my heart.]라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에 체포된 모나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자 모나를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습격한다. 폭약으로 유치장 벽을 무너뜨리고 유치장을 지키던 경찰관들을 죽이는 것은 성공적이었나, 침대 밑에 숨은 모나를 발견하지 못해 죽이는데는 실패한다.
맥스가 발레리 윈터슨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자 병원을 습격한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의 맥스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데까지 성공했지만, 맥스가 병원 경비가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탈출해버려 실패한다.
- 식극의 소마/200화 . . . . 5회 일치
* 센자에몬이 실격을 선언, 죠이치로 팀의 특훈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
*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싸움은 에리나의 방까지 이어졌고 이게 간밤에 3 vs 3 홍백전을 치르는 이유였다. 타도코로는 쉬고 있는 에리나에게 미안하게 됐다며 그래도 동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하자고 한다. 에리나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키리 아자미]]에게 위축되고 있는 사실에 거듭 심란해 한다. 그런 손녀의 심리를 간파한 [[나키리 센자에몬]]은 더이상 인솔자들이 개판을 치고 있으면 안 되겠어서 결단을 내린다. 몸소 심판으로 홍백전을 주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센자에몬의 진행으로 팀부터 정해진다. 죠이치로, 소마, 에리나의 사이바 팀. 도지마, 타쿠미, 타도코로의 도지마 팀. 각각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리더다. 시합 장소는 소마 부자가 대결한 열차 내의 조리실. 차장이 대결장소도 빌려줄 겸 대결을 관전한다. 시작이 치졸한 자존심 싸움이라 그런지 대결이 시작하기 전에 리더들의 신경전이 첨예하다.
학생들이 황당해할 틈도 없이 대결은 시작된다. 말도 안 되는 규칙같지만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리를 시작한다. 사전에 역할을 조율할 틈도 없었는데 본래 조리실의 주인인 열차의 셰프와 스텝들은 도저히 될만한 시합이 아니라고 여긴다. 차장도 이 방면에 경험이 있는지 "급조된 팀으로는 어려운 과제"라고 잘라말한다.
* 결국 글러먹었다 싶었는지 센자에몬은 그냥 실격을 선언한다. 에리나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5회 일치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그렇게 외쳤다. [[유키히라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대결. 양측 소바의 심사까지 끝난 상황에서 그는 한쪽 요리가 현저히 향이 뛰어나다고 발언한다. 반역자들이 술렁거린다. [[아라토 히사코]]와 [[이사미 알디니]]는 어느 쪽을 지칭한 건지 몰라 혼란스럽다. [[사카키 료코]]는 "소바를 더 잘 다루는 쪽은 네네 선배"라며 [[키노쿠니 네네]]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사실 그녀의 9할소바가 이끌어낸 리액션이 워낙 뛰어났다. 아직도 정신없이 먹던 심사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센트럴을 찬양하기 바빴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얼굴에 아연함과 당혹함이 얼룩진다. 네네는 그제서야 소마의 소바를 맛보고 확실히 자신의 것 보다 풍미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조리에 실수는 하나도 없었는데!
>실온이야. 유키히라 군은 실온에 의한 영향을 알아차린 거야.
- 식극의 소마/216화 . . . . 5회 일치
* 덮밥엔 치즈 말고도 마늘까지 사용됐는데, 일식에서 본격적으로 마늘을 쓰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실로 이단아적인 일식.
* 그의 방식에 반발하던 쥬리오지만 맛을 보고 나니 도저히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과 함께 사죄를 밝힌다.
* 때는 진급시험이 있기 몇 달 전. 쿄쿠세이 기숙사에선 [[요시노 유키]]가 [[미토 이쿠미]]를 꼬셔서 오리지널 내츄럴 치즈 만들기에 도전한다. 유키에게 설득당한 이쿠미는 "확실히 집에 얘기하면 좋은 원유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만드는 노하우. 그 문제도 유키 나름대로 생각한게 있는데, 바로 발효의 전문가 [[사카키 료코]]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요키가 "언니"라고까지 부르며 달라붙지만 료코도 자기 프로젝트가 있어서 정신없이 바쁘다. 새로운 일본주 만들기에 도전 중인데 [[마루이 젠지]]까지 참가 중이라 파리한 몰골로 돌아다니고 있다. 료코는 포기하고 둘이서 어떻게 해보자고 제안하는 유키.
* 잇시키가 내민 그릇을 받아든 쥬리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맛을 본다. 한 입 먹자마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장어, 육수에서 풍기는 산뜻한 감칠맛, 치즈와 산초와 마늘칩이 조화된 풍미와 식감.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 지고의 맛을 연출한다. 잇시키는 그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동안 마저 설명을 마친다. 료코가 만든 시험품 정종은 향이 아주 강한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장어향이 지지 않는 육수를 낼 수 있었다. 단맛도 적어서 올리브유와 매치도 좋았는데 보통의 정종으론 노릴 수 없는 효과다.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던 료코의 표정이 풀어진다. 한편 안은 재료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완벽한 조리에 감탄하며 그가 아직도 학생이란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평한다. 이미 승기는 넘어온 상황. 잇시키는 한층 더 쥬리오를 압박해 사과를 종용한다. 쥬리오는 심술궂다고 투덜대면서도 그의 강요에도, 요리에도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다. 결국 굴복하는 쥬리오. 장어에 휘감긴 채 리액션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5회 일치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반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상관없는 수식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순식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상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 논쟁은 평행선. 쿠로키바가 슬며시 [[나키리 에리나]]에게 결정권을 넘긴다.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대식극은 승자가 계속 싸우는 구조이므로 "버리는 패"같은건 큰 의미가 없다. 몇 승을 거둔들 상대측의 강자가 온전하다면 혼자서 연승을 거둬 역전을 거두는 것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강한 카드를 상대로도 과감하게 덤벼볼 필요가 있다. 뭣보다 1라운드에 전승하지 않았나?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카드가 있을지? 에리나가 곧 결정을 내린다.
* 동료들이 수읽기로 골몰하는 동안 쿠가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유키히라 소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의 행동을 목격한다. 쿠가는 적측에 개인적으로 식극 신청을 하고 있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자신과 싸우자고. 그 상대는 [[츠카사 에이시]]. 십걸의 제 1석. 상대방은 물론 현재 연대식극 참가자 중 최강자다. 쿠가는 방금 전까지 촐랑거리고 있더니 승부를 신청하는 이 순간, 전에 없이 진지하다. 그걸 받은 츠카사 또한 푼수떼기같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 소마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본다.
* 아무튼 쿠가는 그런건 전부 거절하고 등을 돌려버린다. 그러면서 확실히 말해둔다. 아무리 "귀여운" 소마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 쿠가의 심통은 소마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그때 츠카사가 소마를 서포터로 스카웃하기 위한 비공식 식극이었다고 설명하자 쿠가는 신난 똥강아지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소마는 그저 서포터 자질을 보기 위한 거였고, 쿠가 자신은 "요리사로서"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소마에게 "풀 죽을 필요 없다"고 여유까지 부리는 마당이다. 너무 텐션이 올랐다. 소마는 쿠가가 츠카사에게 질 경우 자기가 복수하겠다고 장담하는데 쿠가는 소마가 그렇게 나오면 자신은 오기로라도 더 집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둘은 대기실로 향하며 다음 대결에 꼭 츠카사가 나오길 바라는데, 만약 나오지 않을 경우 쿠가가 츠카사를 끌어낼 때까지 다 때려잡겠다고 선언한다.
- 식극의 소마/219화 . . . . 5회 일치
* 그런 김에 츠카사에게 리벤지 매치를 신청하러 가는데, 거기서 츠카사가 다른 2학년과 대화하던 중 사실은 "쿠가"가 누구인지 조차 모른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된다.
* 그런데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엔 적의 것도 있었다. 대결 상대인 츠카사다. 뜻밖에도 그는 쿠가의 실력과 중화요리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빠른 출발도 "방대한 조리법을 구사하는 중화요리인에게만 가능한 센스"라며 칭찬한 뒤 역시 십걸에서 물러나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적이지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데, 쿠가는 차가운 비아냥으로 받아쳤다.
* 2학년 선배가 츠카사에게 "하급생과 식극한 일"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쿠가의 일이었다. 이 또한 "상급생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쭐거리는 쿠가. 실제 그 선배의 생각이 어쨌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츠카사에게 쿠가에 대해 물은건 사실이다. 그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쿠가가의 장남이랑 식극했냐고 묻는데. 그의 대답은 쿠가에게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숨어있던 1학년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물어봤던 2학년도 당황해서 며칠 전 식극했던 1학년이라고 오히려 설명을 한다. 그제서야 츠카사는 "사천요리하는 애"라고 떠올리고 이름이 쿠가였다는 것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달리 할 말도 없다. 2학년은 "요리 밖에 머리에 없는 녀석"이라고 놀리고 웃으면서 그 자리가 끝났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쿠가는 츠카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뼈져리게 실감했다.
- 영덕군 . . . . 5회 일치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동해선]]([[동해중부선]]) 계획이 있었고 노반까지 남아있을 정도였으나 해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70년이 넘는 세월을 걸려서 [[동해선]]이 개통되어 영덕군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KTX]]가 정차하는 [[포항역]]을 출발해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에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영해역]]을 지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역]]까지의 공사가 진행중인데 영덕역 북쪽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부터 영덕을 지나 [[강릉시]]까지 동해선 철도가 쭉 이어질 예정이다. 남쪽으로도 [[모량역]]부터 [[신경주역]]을 지나 [[태화강역]]까지 이어져서 최종적으로는 동해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부전역(동해선)|부전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량중이다. 2018년 2월 기준으로는 중간 일부 구간들이 미완성이다. 동해선 외에 김천에서 의성을 거쳐 영덕을 이어주는 [[경북내륙선]]이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 이다.
영덕[[대게]]가 가장 유명하다. 주로 영덕군 앞바다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게껍질이 얇고 게살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지역주민을 비롯해 외지에서도 영덕대게를 먹으러 원정방문을 하기도 한다. 철은 11월~5월 사이이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맛있다. 이 시기를 맞춰 3월 초에 영덕에서는 대게축제를 개최한다.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한 강구항이 가장 유명하고, 대게축제도 이곳을 중심으로 개최한다. 대게집도 이쪽에 가장 많이 몰려있다. 강구항을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작은 포구에도 대게집이 종종 있는 편이고, 북쪽의 축산항도 작지만 유명한 편. 1998년부터 현재까지 영덕군청 주최로 영덕대게축제가 열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게축제시기에는 강구항쪽 교통에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실제 한번 밀리기시작하면 걸어가야할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해진다]--
최근 새누리 계열 정당에서 여러 악재와 논란이 터지며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있는 와중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꿋꿋이 새누리당 계열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성격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깃발만 꽂아도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된다는 수준, 민주계열 정당에 있어서는 완전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파탄에 이른 뒤 치뤄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홍준표]]가 62.96%'''를 득표해 군위, 의성에 이은 전국 3위를 기록했다. 2위 [[문재인]]과는 무려 '''48.35% 차이'''가 날 만큼 압도적인 1위를 수성했다. 2012년 대선에 비해 득표율이 다소 깎였다고는 하지만, 깎인 득표율이 60% 이상으로 5자대결 + 보수정당의 국가적 재앙 사태라는 전례없는 대선이었음에도 꿋꿋한 민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대선은 5자대결 구도 속에 치뤄졌기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득표율 전국 1위 문재인 후보조차 4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할 만큼 표 분산이 많이 되었던 선거였다.]. 여러모로 보수정당이 압도적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군위, 의성과 묶어 보수정당 최고의 텃밭 중 텃밭'''이라 하겠다.
* [[강석호]] : 영덕군을 비롯해 [[영양군]], [[봉화군]], [[울진군]] 지역구의 국회의원이지만 실제로는 아랫동네 [[포항시]] 출신이다.
- 예천군 . . . . 5회 일치
||4||용문초등학교|| 용문면 금당실길 51-20 ||
||<|2> [[유학성]]/재선[br][[민주정의당]] || 유학성/3선[* 93.3.31 의원직 사퇴][br][[민주자유당]] || [[황병태]]/재선[* 97.12.26 의원직 상실(뇌물수수)] [br] 신한국당 ||<|2> 신영국/3선 [br] 한나라당 ||<|2> [[신국환]]/초선 [br] 무소속 ||<|2> [[이한성]]/초선 [br] 무소속 ||<|2> 이한성/재선 [br] 새누리당 ||<|2> [[최교일]]/초선 [br] 새누리당 ||
예천초등학교[* 2016년에는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59665|기사]].], 예천동부초등학교, 예천여자중학교 양궁부에서 선수들을 양성하고 있다. 예천군청 양궁 실업팀도 있다.
* [[배명진]] : 숭실대학교 교수
- 오중기 . . . . 5회 일치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중 균형발전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사실 지역 도당위원장 정도를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하는건 격이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균형발전비서관이 일찌감치 사직해 공석인 상황에서 2018년 2월 1일 선포된 국가균형발전 비전 수립을 이끌었다. 직후 사직하여 2018년 2월 5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하기로 [[https://youtu.be/7R_kl03ESn8|선언]]했다.
* 2017년: [[문재인정부]]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상당 음식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반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6/0200000000AKR20170216180200053.HTML|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상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려깊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 외척 . . . . 5회 일치
원칙적으로 군주의 권위는 막강하지만, 전통적으로 높이 여겨지는 [[어머니]]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군주의 어머니인 [[태후]]는 높은 권위를 가졌고, 태후의 친족인 외척들 역시 권세를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군주의 나이가 어리다면 [[수렴청정]] 등으로 실권까지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황후를 배출할 정도면 외척 집안 자체가 원래 권세가 강력한 경우가 많았다.
외척 세력으로 [[안동 김씨]][* 정확히는 '장동 김씨'로 재분류되는 한양 장동 일대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 일문으로, 실제 안동 등 영남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는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며, 당색에 있어서도 장동 김씨는 노론 계열이었던 데 비해 안동 김씨는 남인 색채가 짙었다.],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이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씨, 그 가운데서도 5개의 가문(고노에, 쿠죠, 니죠, 이치죠, 타카츠카사)인 [[고셋케]], 일명 '후지와라 섭관가'가 오랬동안 황후를 배출하면서 외척으로서 권세를 누렸다. 사실상 후지와라 가문이 일본의 지배자였다.
일본 귀족 정치가 몰락하고 무가(武家) 정치가 대세가 되면서 섭관가는 물론 덴노가 까지 쩌리가 되고 실권은 [[쇼군]]이 차지하게 되어 섭관가 역시 실권을 잃었으나, 그래도 덴노의 외척이라는 권위는 근세까지 이어질 정도로 독보적이었으며 덴노가의 황후를 배출하는 것은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 섭관가 출신으로 한정되었다. 관습적으로 후지와라 섭관가가 '왕비족'의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 요괴:선풍기 . . . . 5회 일치
머리에서 바람을 뿜어서, 여름에 더위를 타는 사람을 시원하게 만든다. 언듯 좋은 요괴로 보이지만, 사실 또 다른 무서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요괴로 여겨지고 있다.
|| "그거"야 현장에 언제나 있는 거죠. 여름철이지 않습니까? 거실이나 안방할 거 없이 사람이 누워있는데면 하나씩은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가보면 방마다 하나씩이 아니라 사람 수대로 하나씩 있어요. 이거 없이 열대야를 넘기라면 못할 짓입니다. 부엌에 식칼이 있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듯이 현장에 이게 놓여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죠. 그 여관방에서만 세 명이 죽어나갔습니다. 하나같이 밀실이었고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누가 침입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딱 하나 수상한 점이 있다면 방에 있는 창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았다는 거 뿐인데, 그야 그렇게 낡은 여관이니까 수상하다고 할 것도 못 되죠.
감식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찝찝했어요. 현장은 내집보다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먹고 자는건 아니니까요. 화장실에서 밥먹고 식당에서 세수하는건 어색하잖아요. 현장은 아직도 우리가 그어 놓은 표시가 남아있었어요. 며칠 내로 치워줘야겠지만 그때까진 살인현장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죠.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그저 사무적으로 바라봤던 그 공간이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그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느낌... 비유가 이상했군요. 그건 일종의 냄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데 내가 뛰지 않은 방귀를 맡는 기분. 이것도 이상한 비유군요. 어쨌든 그랬어요. 이상한 긴장감 속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죠.
지금도 왜 눈을 떴는지, 얼마만에 의식을 찾은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뜨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요. 바로 그 바람. 그게 눈 앞에 있었죠. 이상했어요. 분명히 꽤 떨어진 자리에 그게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정확히 닿는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더군요. 게다가 회전시켜봤던 목이 똑바로 나를 향해 고정돼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가까워졌다는 표현... 이건 정확하지 않군요. 가까이 왔다고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건 가까이 와있었어요. 실내 온도는 더 올라간 것 같았고 그놈이 토해놓는 바람은 이제 드라이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한 가운데에도 그걸 꺼야겠다는 생각만은 또렷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었죠.
- 원 포 올 . . . . 5회 일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체능력을 쓸 수 있는 증강계 개성. 한손으로 냉장고를 짜부로 만들고,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를 낼 수 있으며 [[헐크|하늘을 나는 것을 방불케 하는 점프]]를 하는데다가 고유 기술인 힘의 충격파 '''"SMAASH!!"'''의 위력은 주먹을 땅에 매다꽂아서 '''상승기류로 맑은 하늘에 비가 오게 만들 수 있다.''' 특성 하나하나가 능력자 배틀물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사기적인 개성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명실상부한 최강의 육체강화 개성.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은 페이크고]] 실제로는 '''「개성」을 양도하는 「개성」.''' 사람의 사람을 거쳐 성화처럼 내려온 힘과 가능성. 즉 한 사람의 몸에 여러 사람 몫의 힘이 담겨져 있는 개성이다. 그리고 발휘되는 힘 자체는 사실.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상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상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상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 올마이트 스승인 시무라 나나의 맹우이자 웅영고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재직한 [[그랜 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 토리노]][* 그의 경우 훈련도 시켜줬다. 다만 올마이트는 실습 일로 지명이 오고나서야 알려줬는데 오래 전에 은거해서 카운트 안했다고.]
- 원피스/817화 . . . . 5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사실 킨에몬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쿠즈키 일족의 후계자 "쿠즈키 오뎅"의 자식 "쿠즈키 모모노스케". 지금까지는 신분을 속이고 있었다. 쿠즈키 일족은 "와노쿠니"의 대 다이묘다.
* 루피 일행은 라이조가 멋진 닌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 실망한다. 라이조는 일행이 생각하는 닌자상은 실제와는 다르고 인술은 구경감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행이 시무룩해 하자 할 수 없이 인술 몇 가지를 선보였다. 일행은 금세 환호한다
* 코즈키가 실은 높은 분의 자식이라는건 알라바스타 에피소드의 재탕이다.
* 사실 네코마무시와 이누아라시는 사이가 좋았는데 티격태격하는 것 같다.
- 원피스/849화 . . . . 5회 일치
* [[캐럿(원피스)|캐럿]]은 삶아질 위기에 처해있지만 실은 가짜. [[샬롯 브륄레]]의 능력을 이용해 캐럿 모습으로 바꾼 개구리다.
* 객실의 빈스모크 일가는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빈스모크 레이쥬]]가 보이지 않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빈스모크 욘디]]가 [[빈스모크 저지]]에게 결혼 후 [[상디]] 부부가 어디서 지낼 거냐고 묻자, 저지는 당연히 제르마 왕국이라고 답한다. 그는 [[샬롯 푸딩]]을 볼모로 잡을 생각이며 그래야지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 미러월드의 [[샬롯 브륄레]]의 집. 아직도 [[캐럿(원피스)|캐럿]]을 요리하고 있다. 캐럿은 부글부글 끓는 솥 위에 매달려 있는 상태. 브륄레가 솥을 젓고 있고 학기사 랜돌프를 비롯한 부하들이 솥 주위에 모여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잡힌 척하고 있는 [[쵸파]는 캐럿을 죽이지 말라고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잡혀있는 캐럿은 진짜가 아니다. 그건 브륄레가 만든 가짜. 자신의 능력으로 개구리를 캐럿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아마 쵸파를 혼란시키려고 한 짓같지만 이번엔 자기 무덤을 판 짓이 됐다.
*요리가 무르익으면서 이제 캐럿을 삶을 차례다. 랜돌프가 칼을 들어올려 가짜 캐럿이 매달려 있는 줄을 끊으려 한다. 캐럿은 돌팔매로 랜돌프를 제압하고 재빨리 뛰쳐나가 가짜 캐럿에 매달린다. 디젤은 이런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한 발 늦었다. 브륄레도 토끼가 두 마리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캐럿이 솥을 뒤집어 엎는데 휘말려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다.
* 보물전 바깥에서 대기하던 [[샬롯 스무디]]는 "어머니"의 행차를 보고 자기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확실히 화가 나있다. 빅맘 [[샬롯 링링]] 등장. 빅맘은 그냥 문을 부수고 보물전에 들어선다.
- 위의공 . . . . 5회 일치
위(衛)는 [[삼감의 난]] 이후 구 상나라 영토를 반분하여, 송(宋)과 함께 은의 유민을 나눠서 지배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본래 상나라의 수도였던 조가(朝歌)를 수도로 하였으며, 주 무왕의 동생 당숙(康叔)이 백(伯)으로 봉해져 유력 희성 제후국[* 주 왕실의 인물이 분봉된 국가. 주왕실의 성이 희(姬)였기 때문에 희성(姬性)의 제후국이라 한다.]으로 출발하였다.
건국부터가 구 상나라+주왕실 유력왕족으로서, 상당히 권위가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실제로 위는 춘추시대 초기는 주요 유력국가로서 공(公)을 칭할 정도[* 후대에는 아무나 공을 칭하지만, 본래는 공(公)도 매우 권위 있는 칭호였다.]의 강국이었다. 비록 위의공 시대에는 그 위세가 좀 쇠퇴하였으나, 그렇다고 해도 제후국들 가운데서 중상급, 상급 이상의 국력[* 춘추시대 초기에는 100개가 넘는 제후국이 있어 후대에는 이름도 모르고 역사도 불명한 작은 제후국도 많았다. 이 당시는 위나라는 크고 강력한 국가 축에 들었음은 분명하다.]을 가진 유력 제후국이었던 위나라가 '''이민족에게 갈려나가버리고 군주가 시체도 못 챙길 정도'''로 처참하게 패망했다는 것은 당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회맹-제후연합군을 구성하여 이민족과 대항하는 집단안보체계는, 과거 [[주나라]]가 주도하였으나 춘추시대가 개막하고 주나라의 권위가 상실하면서 붕괴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권위로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만들어서 질서를 바로 잡을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국강병 정책을 펼치던 제나라의 [[제환공]]이 주도하여 위나라를 재건해줌으로서, 주 천자의 권위를 대신하여 이러한 집단안보체계를 주도하는 '패자'의 시대가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결국 제환공의 패업의 발판일 뿐이라는 뜻인데 장대하게 썼다.--
- 율리우스 네포스 . . . . 5회 일치
네포스의 출신은 일치하지 않는 사료가 많아서 확실하지 않은데, 달마티아 지역의 로마 귀족 출신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의 삼촌은 달마티아 총독 마르케리누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스트라테고스|서로마 제국의 군사장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하로서 아에티우스가 발렌티아누스 3세에게 암살된 뒤 반란을 일으켜, 달마티아 지방[* 이탈리아 반대편에 있는 아드리아 해 해안 북부.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일대.]을 영지로 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마르케리누스의 통치는 여러 황제들에게 승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네포스는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의 조카와 결혼하여, 동로마 제국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네포스는 훈 족의 아틸라를 모시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를 [[스트라테고스|제국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크나큰 실책이었는데, 475년 8월 28일,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했으며, 네포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삼촌의 영지였던 달마티아로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 율리우스 네포스 || 재위 474년-480년, 실질지배 474년-475년 8월 / 명목상 475년-480년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상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영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 은혼/594화 . . . . 5회 일치
* 이러한 사실을 담담히 듣고 있는 쇼요의 제자들.
* 이 각인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르타나를 독점으로 관리할 수 있었고, 이걸 받지 못한 우츠로는 실질적으로 아르타나를 다룰 힘을 얻지 못한 것이다.
* 그들은 우츠로가 반란분자 숙청을 위해 원정을 갔음을 지적하며 사실상 원정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 우츠로는 그제서야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
- 은혼/605화 . . . . 5회 일치
*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하는 에도. 그 모습에는 긴토키 조차 전의를 상실할 지경.
* 항구는 실로 처참한 광경. 신파치와 가구라는 일대를 둘러본다.
* 해방군을 따라가며 긴토키는 우츠로를 놓친 사실을 일행에게 알린다.
* 에도가 부서지는걸 보면서 긴토키 일행은 망연자실하게 서있는다.
* 소요 공주는 에도성이 폭격 당할 때 그 안에 있었는데 사망여부는 불확실. 핫토리 젠조가 한 말도 있어서 어떻게든 구해낸거 아닌가 생각된다.
- 이계순 (1927년) . . . . 5회 일치
일본으로 유학,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를 다녔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421094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조선인 석주명] 국민일보 2009.09.14</ref> 귀국 후 [[1953년]] [[부산]] [[경남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이후 부산연세실업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6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되었다. [[1977년]]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이 되어 여성단체 활동에 뛰어들었고 교수직과 병행하였다. [[1985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았다. 1990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정무제2장관을 지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그가 직접 나서서 공무원 연수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관련’ 교과목은 ‘국가발전과 여성’ ‘여성문제의 현실과 정책방향’ 등의 과목명으로 1~2시간 특강 형식으로 배정됐다. 그러다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교육훈련점수에도 반영되어 선택과정으로 전환되고 전문과정으로까지 확대됐다. 초창기 교수요원의 확보와 교육자료의 개발 등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담당했다.<ref>[http://www.womennews.co.kr/news/48170#.VNroPaJFBzo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이 제도화되기까지]</ref> 1990년 12월 27일의 개각에서 유임되었으며, [[1991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에 위촉되었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8&aid=0000043100 1988년 정무 제2장관실 '최초']
|직책 = [[대한민국 정무장관(제2)실|정무제2장관]]
|직책 = [[대한민국 정무장관(제2)실|정무제2장관]]
- 이노센트 투어 . . . . 5회 일치
이 게임에서는 체력이 0이 된다고 게임이 종료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 게임종료라 할 수 있을만한 패널티가 주어지는데, 어떠한 경우에라도 체력이 0이 된다면 그 캐릭터는 '''해당 보드의 스타팅 포인트로 되돌아간다'''. 이는 결투에 의해서든, 혹은 적의 방해마법이나 트랩에 의한 결과든지 상관없다. 따라서 HP의 관리는 여타 게임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1. 바람의 정령력 - 바람의 마법(실피드)에 의해 이동할 수 있는 추가 이동칸이 늘어난다.
정령들의 종류는 사라만다(불), 님프(물), 실피드(바람), 노움(땅)이며 일정 이상의 정령력을 보유하게 되면 속성에 해당하는 정령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각 속성마다 사용가능한 정령마법의 필요 정령력은 상이하며, 상대방을 방해하는 용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정령마법을 막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
정령마법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축적한 정령력을 통해 사용가능한 마법으로 사실상 공통마법으로 봐도 무방하다. 공통이기 때문에 신화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위에서 언급한 정령 능력치에 따라 효율이 달라진다. 단, 회복마법은 정령능력치에 상관없이 투자한 정령력만큼 정비례하여 HP가 회복된다.
위의 정령 능력치에서 설명했듯이 각 정령력을 일정 포인트 이상 모으면 그 정령의 속성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턴에서 사용하는 마법은 실피드를 제외하고 공격마법이며, 반대로 타 캐릭터가 쓴 마법은 방어마법으로 대응 가능하다.
- 이상백 (1904년) . . . . 5회 일치
그는 [[1915년]] [[경북고등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19년]] [[3·1 만세 운동]]의 여파로 대구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에 참여하려다가 실패하고 잠시 은신하였다. 그 뒤 [[부산항]]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유학, 일본 와세다제일고등학원(早稻田第一高等學院)을 거쳐, [[1923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에 입학했다.
[[1924년]] 일본의 [[일본 대학농구연맹]]을 결성하고 [[와세다 대학]] 농구팀 대표로 [[일본 대학농구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대학농구연맹 농구부 주장으로 [[미국]]에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 축구, 야구에도 주전 선수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7년]]에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 동양사상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인 '서얼차대(庶孽差待)의 연원에 대한 일문제'를 [[진단학회]]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와 건국 초기 분야에 대한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 이조 태조의 사전개혁운동(私田改革運動)과 건국 후의 실적, 위화도회군고(威化島回軍考),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 '[[고려]]말 이조초에 있어서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운동(田制改革運動)과 그 실적' 등 고려 말, 조선 건국, 조선 전기 분야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였다.
*《지도 농구의 이론과 실제》
- 이시종 . . . . 5회 일치
* [[대통령비서실]] 건설교통행정관
* [[충청남도청]] 기획관리실장
* [[충청북도청]] 기획관리실장
* [[국무총리실|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심의관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5회 일치
* 예상보다 얼빠진 성격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한다.
* 자라트라스와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주술"의 힘으로 멜리오다스의 기억의 세계로 들어간다.
* 하지만 그냥 장난이고 사실은 친구들을 농락한 프라우드린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한심함에 대한 미련 때문에 되살아난 것.
* 은근히 얼빠지고 장난기가 많은 성미인데 특히 성기사장 살인사건의 진실이 "피쉬파이에 낚인" 한심한 것이었다는건 충격적이다.
* 182화 제목은 "확실한 온기"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5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82화. '''확실한 온기'''
* 엘리자베스는 멜리오다스가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고 현실로 돌아온다.
* 자라트라스는 멜리오다스가 그 사실에 대해서만은 전혀 입을 연게 없다고 한다.
* 그게 사실이라면 자살하던가 누군가한테 죽여달라고 할거라고 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전부 해봤다"고 답한다.
* 엘리자베스는 현실로 돌아온 이후 "반드시 돌아온다고 약속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5회 일치
* 멀린은 포획한 그레이로드를 실험실로 가져가고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은 도주를 시도한다.
* 핸드릭슨은 정화를 시도하나 실패하고 열세에 처한다.
* 그레이로드를 포획한 멀린은 기뻐하며 실험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 살짝 짜증이 났는지 핸드릭슨을 꼬집어서 현실이라고 가르쳐 주며 지금은 드레퓌스를 구하는게 먼저라고 질타한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5회 일치
* 그리고 다음 순간, 디안느는 방어할 틈도 없이 젤드리스의 일격을 허용한다. 젤드리스는 화살처럼 날아와서 드롤의 가슴을 과녘처럼 파고든다. 디안느는 쓰러지면서도 지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일곱개의 대죄/201화|십계의 공격에도 끄떡 없던]] 드롤의 몸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렇게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우선은 방어다. 쓰러진 채로 "가이아폼"을 사용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에서 마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젤드리스가 그를 쓰러뜨리면서 마력까지 봉해서 아무런 기술도 쓸 수 없는 것이다. 디안느는 그가 다른 십계와도 다른, 믿기지 않는 강자라는 걸 실감한다.
디안느는 이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전설의 거인왕이, 자신이 같은 처지였다니. 디안느도 전투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동족의 따돌림을 당했다. 거인족들은 전사종족으로 그런 기질을 인정하지 않고 그녀 자체를 "이물"로 규정했다.
* 현세에서 무서운 사실을 확인한 할리퀸은 차라리 디안느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게 예정된 죽음을 회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잠든 디안느에게 아무 것도 선택하지 말라고 외친다.
도저히 드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상. 마력까지 봉인된 몸으로 어떻게 했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그녀가 드롤의 선택을 초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가 살아난 거야 말로 그 증거다.
* 할리퀸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디안느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돌아온 디안느는 매우 행복하고 즐거워보이기까지 하는데, 그녀는 울먹거리는 할리퀸을 두 손으로 감싸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벌인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5회 일치
* 이래저래 빈정 상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반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반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반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반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남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반.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반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그런데 엘레인의 질문이 디안느가 깜빡하고 잊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디안느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자신이 성전시대에서 봤던, 아직 단원들에게 밝히지 않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이렇게 해서 술집의 평화는 상처를 남긴 채 돌아왔다. 사실 옆 테이블에서 [[그리아몰]]과 [[하우저(일곱 개의 대죄)|하우저]]가 마시던 중이었는데 무섭기도 하고 "시끄러운 손님들"취급을 받는 그들이 창피하기도 해서 모른척해버렸다.
* 단원들이 각자 한가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 일행의 책사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다급한 용무를 처리 중이었다. 그는 수정 너머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십계가 정복한 영역에 돌입한 사역마 올론디였다. 올론디는 "왕에 걸맞는 마력"을 찾으란 분부를 받고 십계가 정복한 구역에 잠입했다. 하지만 보이는건 마신족 졸개나 세뇌된 인간 뿐.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고 불평하던 올론디는 갑자기 멀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5회 일치
* 하지만 지금의 메라스큐라는 심장을 몸 어디로든 옮길 수 있어 실패, 오히려 "데들리 포이즌"이란 맹독에 당해 불사의 육체 조차 녹아내린다.
* 메라스큐라는 약체로 여긴 둘이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와 같은 힘을 내자 당황하나 멜리오다스가 말한 "운명의 동료"라는 말을 떠올리고 납득한다.
멜리오다스에게 접근한 에스카노르가 멀린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녀가 큰 규모의 퍼펙트 큐브를 그들 주위에 생성한다. 암담의 고치에서 나와 퍼펙트 큐브에 갇힌 멜리오다스. 그리고 그 앞의 에스카노르. 멀린은 멜리오다스가 일단 암담의 고치를 부수려고 내면의 마신왕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결과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위험한 도박의 대가가 크다. 자신이 마신왕의 저주로 감정을 상실한 상태였던 걸 간과한 것이다. 멀린은 새삼 그를 "바보 녀석"이라며 탓한다.
* 메라스큐라는 이미 전투능력을 상실했지만 상황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고작해야 요정이나 거인에게 자신이 당하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십계의 프라이드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멜리오다스의 말이 떠올랐다.
>"일곱 개의 대죄"는 "십계"를 쓰러뜨리기 위해 모인 운명의 동료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5회 일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서가 보여준 "마법의 심장"을 봐버린 나자. 하지만 그건 끔찍한 장면이었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자는 갑자기 숨이 가빠지더니 그대로 실신하고 만다. 고서는 그녀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소스라친다.
고서는 멜도르의 대사를 흉내낸다. 둘은 바트라의 배려로 살짝 성을 나가 말을 탄다. 고서는 사실 말에 타본 적이 없지만 어찌된 일인지 능숙한 승마 솜씨를 펼쳤다. 고서는 말을 타면서도 멜도르처럼 기사다운 말투를 사용한다. 나자가 어째서 그런 거냐고 묻는다.
* 고서의 "이식"은 실패했다. 자신에게 마음과 인간성을 준 심장은 그녀의 안에서 아무 작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경비병이 온 것도 모른 채로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린다.
* 던젤은 누나의 원수를 갚겠다며 이를 갈지만 바트라가 제지한다. 그가 얼마만큼 진실을 아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고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설사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나가 그를 사랑했다.
- 임은정(법조인) . . . . 5회 일치
|| '''경력''' || 인천지방검찰청 검사[br]광주지방검찰청 검사[br]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br]의정부지방검찰청 검사 ||
2015년 이후부터는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2월 3일 검사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아 심층적격심사[* 2004년 법무부는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검사'를 골라내겠다며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적격심사 대상은 검찰 내 특정 기수 전체이며, 법무부는 이 가운데 심층심사를 할 사람을 걸러내 특정사무감사를 진행한 다음 적격심사위원회를 연다. 여기서 최종 탈락한 인물은 강제로 퇴직당한다. [[검찰청법]] 제39조 참조.]를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 상부가 '[[보복|찍어내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격분하였다. 무죄 구형 후 법무부의 한 간부가 ‘임은정이 적격심사 얼마 남았냐’고 묻더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적격심사를 계기로 자르려는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전 실제로 ‘(검찰 상부에서) 자르기로 했으니 마음의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의 귀띔을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때는 돌아버리겠더라. 누가 볼까 싶어 집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닫고 주저앉아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까지 나와 연락하길 주저한다고 느껴질 때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임 검사의 퇴직 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법무부는 지난해 1월8일 결국 ‘적격’ 판정을 내렸다.[* 사실 이 적격심사제도로 잘린 사람은 매우 적다. 자세한 것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240998|기사]] 참조. 그리고 이런 방식의 찍어내기는 오히려 법관이 훨씬 더 심하다. 저 기사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정작 검사적격심사제도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임은정 검사의 경우도 열리긴 열렸지만 저렇게까지 찍힌 임은정 검사도 문제가 없어서 적격 판정 받아 문제없게 되었다. 물론 이후 승진이 느려지긴 했으나 적어도 이 적격심사제도로 강제퇴직 당하진 않았다. 그러나 판사의 경우, 판사의 임기가 10년이므로 판사 본인이 직을 더 유지하고 싶어한다면, 10년마다 무조건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이 있다.]
* 2009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더 킹(영화)|더 킹]]의 안희연 검사의 실제 모델로 알려졌다. 여러모로 영화와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 장익 (1933년) . . . . 5회 일치
* [[1976년]]에는 서울대교구 비서실장 겸 공보실장을 지냈다.
* [[1986년]]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 실장과 [[1988년]] 서울대교구 세종로 성당 주임을 거쳐 [[1990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여 계속 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 여동생 : 장명자 (張明子, 데레사, [[1941년]] [[10월 3일]] ~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빌라노바대학교]] 도서관학 석사)
- 장평도정 . . . . 5회 일치
아버지는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의 아들 [[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이고, 어머니는 이름 미상의 첩이다. 그의 출생년도와 생일에 대한 기록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선원보략에는 그가 1438년생으로 나타나나 [[세종실록]]에는 1437년 정윤에 봉해진 기록이 나타난다.
그의 초기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1437년]](세종 19년) [[2월 21일]] 정윤(正尹)에 제수되고<ref>세종실록 76권, 1437년(세종 19년, 명 정통 2년) 2월 21일 신사 2번째기사, "권전·윤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나중에 작위 개정으로 장평부정(長平副正)에 봉해졌다. [[1454년]](단종 2) 승작하여 장평정(長平正)에 봉해졌다가<ref>단종실록 11권, 1454년(단종 2년, 명 경태 5년) 5월 21일 신미 1번째기사, "세조가 경회루에서 풍정을 올리다"</ref> 뒤에 도정으로 승진했고, 품계는 [[명선대부]]에 이르렀다.
*** 손자 : 실천부령 이자의(失川副令 李自義)
- 장혁주 . . . . 5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문단에서 활동하던 장혁주는 [[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도 선을 보였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지개》도 초기의 사실주의적 작풍이 살아 있는 작품이나, 이후 남녀간의 복잡하게 얽힌 애정 관계가 묘사된 《삼곡선(三曲線)》(1934~1935) 등 점차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무렵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저널 = 실천문학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5회 일치
* 강한 감지능력을 가진 둘에겐 유리의 최면도 통하지 않았지만 왕년의 팬텀 도터였던 실력을 발휘, 두 사람의 마음의 틈을 공략한다.
* 당연한 반응이지만, 장관은 당혹해하면서도 에스퍼에 의한 범죄나 부정은 엄연한 사실이고 대다수인 노멀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츠보미 후지코]]는 범죄발생률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정론을 펼치며 "에스퍼는 국민도 아니라는 거냐"고 꼬집는다. 물론 장관으로서는 그렇게까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표면적으론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카시와기 오보로]]가 조용히 자료를 제출한다. 정권의 비위를 조사한 자료로 보이는데 반양 격리법안이 상정된다면 이걸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의 제의는 무효화.
* 장관의 퇴장 후 척보기에도 수상한 무리가 나타난다. 더 칠드런 일행과 판도라의 간부들이 작전에 나선 것이다. [[미나모토 코이치]]는 관리관이 상대지만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고 팀원들에게 주의를 준다. [[효부 쿄스케]]가 거기서 리더 인양 굴지 말라고 끼어든다. 미나모토는 판도라는 용병 입장이 아니냐고 따지는데 효부는 자기가 능력, 경험, 기술, 인격 면에서 모두 앞선다고 대꾸한다. 물론 미나모토는 "적어도 인격은 아니다"고 격렬하게 반박.
현재 판도라의 본거지를 지키고 있는건 [[카노 모미지]]. 효부는 사실 자기 혼자 참가하려고 했는데 요우가 걱정된다고 억지로 온 거라고 설명한다.
* 챕터 제목인 '카타스트로피'는 고대 비극(悲劇)에서의 '전환, 파국, 대단원'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일행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5회 일치
* 미오는 엉겁결에 쓴 텔레포트로 형무소 외곽으로 이동하고 당황하는데, 그녀도 역시 오염된 [[바렛 실버]]와 [[팀 토이]]와 조우한다.
* [[미나모토 코이치]]가 테러리스트 혐의로 에스퍼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츠쿠시 미오]]는 격분해서 판도라의 거처에서 뛰쳐나온다. 그러나 기세 좋게 나온 것 치곤 아무런 계획도 전략도 없는 상황. 미오는 일단 형무소 담벼락은 초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걸 알고 희희낙락한다. 차라리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쪽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외벽 쯤에서는 초능력이 통해도 형무소 내부는 ECM으로 무장하고 있을 거라며 무작정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설치류도 알 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미오는 "그런건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른다"며 ECCM도 가져왔으니 어떻게든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 파티는 바깥에서 경계하기로 하고 미오, 모모타로, 카가리, 카즈라가 진입한다. 미오와 모모타로는 카가리, 카즈라와 간격을 둔 채로 미나모토와 사카키가 갇힌 감옥으로 접근했다. 미나모토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미나모토의 무사를 확인하고 카오루에게 전할 말은 없냐고 묻는다. 그녀의 등장에 놀란 미나모토는 혼자 온 거냐고 묻는데 모모타로가 고개를 내밀고 자신들과 카가리, 카즈라, 파티가 같이 왔다고 말해버린다. 그게 실수였다. 이들은 진짜가 아니라 디코이. 블랙 팬텀의 함정이다.
* 한편 엉겁결에 텔레포트를 하게 된 미오와 모모타로는 형무소 어딘가로 떨어진다. ECM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왜 초능력이 써지는지 당황해한다. 그때 그들 앞에도 블랙 팬텀의 자객이 등장한다. 팀 토이, [[바렛 실버]]와 [[팀 토이]]. 역시 정신오염 당했다. 블랙팬텀의 명령을 받고 "마음껏 싸우러" 왔다.
*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잠들어 있던 칠드런 일행. [[아카시 카오루]]는 이상한 예감을 받고 깨어난다. 그 바람에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도 눈을 뜬다. 카오루는 잘 모르겠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뭔가를 감지한 듯 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5회 일치
* [[블랙 팬텀]]의 정신 오염으로 적이 되어 돌아온 [[우메가에 나오미 ]]와 [[바렛 실버]], [[팀 토이]].
* [[미나모토 코이치]]가 에스퍼 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은 함정이었다. 그 대신 일행의 앞을 막아선 자들은 동료였던 [[팀 토이]], [[바렛 실버]]와 [[우메가에 나오미]]였다.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오염에 당했다.
* 미오는 "여왕을 위해 미나모토 일행을 정찰하러 왔다"고 하자 두 사람의 마음에 빈틈이 생긴다. 망각에서 깨어난 것처럼 미나모토 일행이 억류된 직후의 일들을 떠올리는데, 직후 두 사람이 대기하던 장소에도 특수부대가 덮쳤으며 인질들을 죽인다는 협박 때문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오는 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듯 보이자 더욱 강하게 나간다. 다시 블랙 팬텀의 부하가 되어선 안 된다고. 효과가 있는 건지 팀은 미나모토가 대기하라고 직접 지시했던 사실도 떠올린다. 미오는 그게 둘을 블랙 팬텀에 접촉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 참견하는데, 역효과를 내고 만다.
둘은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들이 칠드런에게 구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이 둘의 강박관념을 자극해서 "칠드런을 지켜야 한다", "반대로 지켜지는건 싫다", "모두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선 블랙 팬텀에 의탁하는게 최고다"라는 비약적인 사고로 돌아간다. 평소 바보로 일가견 있는 미오가 보기에도 앞뒤가 엉망진창인 전개.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블랙 팬텀이 그들의 "마음의 틈"에 세뇌를 집어넣은 거라고 본다. 미오는 떨어져 버린 카즈라 일행도 염려하는데 모모타로는 텔레파시로 그들도 교전 중임을 알린다.
* 당연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블랙 팬텀의 복병은 저들만이 아니었다.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 페어도 대기 중이었다. 역시 정신 오염이 완료. 아키라 카가리의 몸과 바꿔치기를 해서 발화, 파티의 입자로 분진폭발을 유발한 것이다. 하츠네는 밖에서 아키라의 몸에 들어온 카가리를 제압. 하츠네는 정신오염에 덤으로 팀과 바렛의 중2 취미까지 옮은 건지 "위기에 몰린 주인공이 역전할 땐 분진 폭발이 단골소재"라며 실없는 소릴한다.
- 진격의 거인/80화 . . . . 5회 일치
* 사실 리바이는 전멸을 생각하고 있으며 운이 좋아야 탈출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 엘빈은 사실 엘런 집의 "지하실"에 정말로 가고 싶었다.
* 지금도 모든 걸 내팽개치고 지하실로 달려가고 싶다.
- 리바이 병장. 엘빈이 입안한 자살에 가까운 작전의 실행을 요구하며.
- 진학교 . . . . 5회 일치
진학교(進学校,しんがっこう)란, 대학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많고, 학교 측에서는 그에 대한 준비가 갖추어진 학교, 대학입시 분야에서 실적이 좋은 학교(명문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는 것)를 뜻한다. 고등학교 입시가 있으므로 중학교에 대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속어이므로 정의가 엄격한 말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는 실적을 근거로 만든 랭킹 사이트 같은 것이 운영되기도 했다.
2ch의 속어로는 ‘자칭 진학교(自称進学校)’ 라는 것이 있다. 진학교를 자칭하고 엄격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실적은 진학교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학교를 조롱하는 말이다.
사실상 반댓말은 저변교(底辺校)이다.
- 창작:맹수인 . . . . 5회 일치
맹수인은 동부대륙 북부~중남부까지 넓은 영역을 지배하는, 사실상 동부대륙 거의 전체를 지배하는 종족이다.
사자족은 맹수인들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현실의 사자와 비슷하게 수컷들은 수북한 갈기를 자랑하며, 이 갈기가 수북하고 아름다울수록 미인으로 취급된다. 사용하는 언어는 레잉어이며,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북부와 그곳에 연결된 지방인 아프반 반도.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늑대족은 보통 다른 종족에게 도적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크게 두개의 부류로 나뉘는데, 북극인근의 '눈늑대섬'과 아프반반도 북부, 대륙 북부일부에 서식하는 '눈늑대족', 그리고 대륙 중부 '메말사막'과 대륙 중북부를 나누는 '등퍼산맥' 인근에 사는 '늑대족'으로 나뉜다. 메말사막에 사는 이들은 메말사막 북쪽 초원에서 말을 공급받아 그 말들로 노략질을 하는것으로 유명한데, 츄프의 몇몇 대귀족들까지 연관되있어 뿌리뽑기 매우 힘들다. 츄프 왕국은 티겔 왕국과 동맹관계기에 이 부정한 동맹을 뿌리뽑으려 노력했지만 현재까지도 잘 근절되지가 않는 실정이다.
하이에나족은 '하이엔'지방에 서식하는 족속들로, 등에 갈기가 있다. 이들은 한때 중북부에 '하이엔 왕국'이란 상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레이먼 제국의 창시자인 샤를 대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레이먼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있게된다. 이후 이들은 수많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황제'샤를이 아라스 제국에 패배하면서 하이엔등 '상 하이엔'지방은 아라스 제국에게, 그외 ''하 하이엔'지방은 레이먼 제국에게로 분열된다.
- 창작:좀비탈출/5-1-1-1 . . . . 5회 일치
나는 치워버린 장독을 다시 담벼락에 대면서 부러진 골프채가 정말 다시 쓸 수 있을 물건인지 자문했다. 그리고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면서 그럼 저게 필요한지를 자문했다. 모르겠다. 정신나간 소리지만 버리긴 아깝다. 솔직히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첫 실적을 올린 무기였다. 계속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군인은 처음 쏴본 탄피를 평생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 군인은 2차대전에서 살아남았고 베트남에도 갔지만 역시 살아남았고 훈장을 받았다. 그 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군.
나는 방금 전에 되찾은 골프채를 앞으로 겨누고 뒷마당을 가로질렀다. 사실 토트넘을 절단하는데 쓴 공구를 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데, 어쨋든 이건 행운의 탄피니까.
나에게는 전선을 딱딱 튕겨서 시동을 걸 재주는 없다. 그러니 다이너스티는 쓸모가 없다. 그런데 차키가 있다면? 당연히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어떤 계획을 현실화 시킬지도 모르는 엄청난 일이다.
이 모든 문제가 차의 존재로 달라진다. 단순한 망상이 매우 현실적인 탈출 플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나는 차창으로 운전석을 확인했다. 아날로그식 계기판은 분명 휘발유가 만땅으로 차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좋았어! 정말 좋은 징조다.
단 한 발 앞에, 망상에서 현실을 끄집어낼 열쇠가 존재한다. 토트넘은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토트넘은 아끼는 차키를 어디에 흘리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설사 죽어서도 걷는 몸이 되었다 해도. 그러니 키는 집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건 아주아주아주 설득력이 있고 이성적인 결론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5회 일치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진실과 마주하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좀비가 득실거리는 서울시 한 복판에 남겨진 생존자다. 이 이상…… 우울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토트넘이 죽기 전에, 아니 녀석이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다이너스티의 키는 구하지 못했고 나는 지쳐가고 있으며 은혜로운 햇볕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햇볕. 해가 넘어가고 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녀석들이 벽 하나 사이로 득실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체험하게 되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
간신히 거실로 나와서 햇볕을 받으니 약간은 증세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눈도 뜰 수 없는 상태에서 눈은 떠지는 상태로 호전이다. 눈물 나게 좋은 징조군.
병이 나는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예상을 따라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그 예상이란건 해열제나 소화제로 처리되는 병에 대한 것이고 이토록 격렬한 발열과 의식의 끈이 끊기는 상황을 상정한게 아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손발이 남의 것 같고 신체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움직이는게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우연히 그게 전멸한 도시 한 복판에서다.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있나!
- 철인 28호 . . . . 5회 일치
첫등장한 철인 28호는 사실 악당 로봇이었으며 최후에는 용광로에 녹아버리는 것이 끝이었으나 예정이 바뀌어 주인공인 쇼타로가 [[카네다 박사]]에게 물려받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비행능력이 없었으나 S국에서 로켓을 장착하게 되어 현재의 철인 28호가 되었다.
=== 실사 ===
흑백 시절에 실사화되었다.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철인의 모습이.....
2005년이 되면서 실사영화가 개봉. 연기력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고,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나 아쉽게도 평가는 좋지못했다. 이후 오시이 버전인 연극판도 비슷한 평.
* 원작자인 요코야마 미츠테루 선생의 고향인 고베에는 실물 크기의 철인 28호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 청송군 . . . . 5회 일치
유명한 관광지로 [[주왕산]]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외지 사람들은 "[[청송]]"이라는 동네 이름이 나오면 맨 먼저 '''[[청송교도소]]'''와 '''청송감호소'''부터 떠올린다. 이 지역에는 [[교도소]]가 무려 네 군데나 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에 [[흉악범]]과 [[정치범]]을 [[감금]]하기 위해 이런 외진 곳에 [[교도소]]와 [[감호소]]를 왕창 지어논 것. 사실 교도소가 있는 곳은 청송읍이 아닌 [[영양군]]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진보면이다. 청송이란 고장의 이미지를 깎는다고 [[대한민국 법무부]]에 지속적으로 진정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이름이 경북북부교도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교도소가 들어서면 [[교정직 공무원]]들 및 면회객들도 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청송군민들은 '''교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5817&plink=ORI&cooper=NAVER|#]] 근데 이것을 역으로 보면 교도소 이외에는 지역경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낙후가 심각하다는 거다.
한때 [[호랑이]]가 21세기에도 사는 동네라 알려져 유명했다. 그 이유는 2001년 [[대구 MBC]]에서 취재한 보도기사였는데, 무인 카메라에 의문의 대형 [[고양이]]과 동물[* 몸길이 120cm에 꼬리가 [[호랑이]], [[표범]]과처럼 긴꼬리의 짐승이었다고 한다.]이 찍힌뒤로, 주변에서도 인근주민들의 호랑이 목격담을 취재하며, 호랑이가 맞다고 연일 보도를 해댔었다. 그 당시 MBC는 사활을 걸고 특별 취재팀까지 동원해서 이 사건을 계속 수사했고, 진짜 호랑이가 맞다 vs 아니다의 결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도 이후 6개월만에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이건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송에서 취재된 사진이 [[호랑이]]가 아니다 뿐이지 뭔가 고양이과 야생동물이란것은 확실했고[* [[담비]]라는 설도 있으나 담비치고는 꽤 큰 덩치라 의견이 분분한 상태.], 아직까지도 이게 무슨 동물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중 가장 작은 [[삵]]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인 한국에선 지금의 청송이 희귀 야생동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일듯. 참고로 이 야산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1895년]]에 [[23부제]]에 의해 안동부 청송군이 되었다. 이듬해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경상북도]] 청송군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진보군의 대부분을 합하여 8개 면으로 개편하였다. 진보군의 영역 중 청송군에 편입되지 않은 곳은 [[영양군]]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청송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영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식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2> [[황병우]]/3선[br][[민주정의당]] ||<|2> [[김찬우(1933)|김찬우]]/재선[br][[통일국민당]] ||<|2> 김찬우/3선[br][[신한국당]] ||<|2> 김찬우/4선[br][[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br]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br]무소속 ||<|2> 김재원/재선[br][[새누리당]] || --[[김종태(1949)|김종태]]/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br]--새누리당-- ||
- 최민호(유도선수) . . . . 5회 일치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상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반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남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최훈재 . . . . 5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10월 3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은퇴 후 [[두산 베어스]]에서 2군 타격코치로 활동하다가 [[2010년]] 시즌 후 재계약 실패로 물러났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9&aid=0002196308 두산, 지승민·이원희·박종섭 방출] - 노컷뉴스</ref> 그 후 휴식기를 갖다가 [[2011년]]에 창단을 결정한 [[NC 다이노스]]에 합류했다.<ref>[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111021617111&mode=sub_view 한문연-최훈재 코치, NC 다이노스 합류] - 한국경제</ref> 이후 잔류군을 맡다가 [[2014년 NC 다이노스 시즌|2014년]]부터 2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ref>[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373 NC 다이노스 내년 코치진큰 변화 없을 듯] - 경남도민일보</ref>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끝내기 만루홈런 ||1993.7.22 ||[[LG 트윈스|LG]] ||[[삼성 라이온즈|삼성]]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 9회말 1사 만루 3-3 ||[[김상엽 (야구인)|김상엽]] || [[김영직]] ||역대 5번째 기록 ||<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3671447 LG,최훈재 끝내기만루홈런] - 연합뉴스</ref>
- 킹덤/503화 . . . . 5회 일치
호주는 그들이 서부공략을 빌미로 거병해 급히 진로를 틀어 한단으로 처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수는 20만. 이목이 이 같은 사실을 알려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말을 하니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곽개와 도양왕도 조금 듣는 척을 한다. 호주는 이목이 한단군을 움직여 요지 "열미"를 막아 진군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계책을 올렸다는 것도 전한다. 그런데 도양왕이 또 뜻모를 고집을 부린다. 그는 정예 한단군이 수도를 떠나면 누가 자기를 지키냐는 논리로 그 계책을 거절한다.
곽개는 오히려 호주와 이목을 탓한다. 그는 호주의 목을 조르며 "이목은 자기가 실수를 저질러 놓고 멀리서 왕에게 이러라 저러라 지시한다"고 매도한다. 도양왕이 지저분해진다며 곽개에게 그만두게 하지만, 호주는 숨이 막히고 기침이 나와서 몸도 가누지 못한다.
>참수 수준의 실태를 벌인 이목 본인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느냐?
* 진군은 행군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비신대 내에서는 행군이 너무 빠른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만 [[이신(킹덤)|이신]]은 [[왕전(킹덤)|왕전]], [[환의(킹덤)|환의]]군은 그보다 빠르다며 늦추지 않는다. [[하료초]]는 두 장군의 경우 기마대만 먼저 선행시킨 거고 자기네도 충분히 서두르고 있다고 덧붙인다. 사실 새로 뽑힌 신입들은 원채 강군이라 잘 따라오고 있고 고참급 중에서 낙오가 생길 판이다.
곽개는 조나라 멸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간신으로 [[염파]], [[사마상]]의 실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목을 모함해 살해한 그야말로 최종보스.
- 킹덤/512화 . . . . 5회 일치
기가 찰 정도로 담백한 패배선언.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았다. 부하 장수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방금 왕전이 한 말은 이번 원정이 실패했다는 자평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하릴 없이 열미성에 주둔하던 진군은 총사령관의 복귀를 확인한다. 아광을 비롯한 부하들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왕전은 상처 하나 없다. 열미로 돌아온 왕전은 휘하의 지휘관들을 불러모은다. [[환의(킹덤)|환의]]와 [[양단화]] 양대 장군들을 비롯해 [[이신(킹덤)|이신]]을 포함한 장교 전원이 집결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그대로 왕전은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교시한다.
>창평군이 내린 업 공략책은 이 열미에서 이미 실패했다.
[[창평군]]이 구상한 "열미를 교두보로 업을 친다"는 책략은 열미성 자체의 취약점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 이 같은 사실은 [[벽(킹덤)|벽]] 등 하급 지휘관들은 금시초문이었으나 이신, [[몽념]], [[왕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다. 하기야 하급 지휘관들은 이 작전의 진짜 목표를 아직가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황당한 얼굴로 왕전의 교시를 듣는다.
* 이목은 방금 전의 첩보가 진짜라면 조와 진, 양국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시작된 거라고 말한다. 이미 확인했듯 진의 목표는 업이다. 여기에 떨어진다면 왕도 한단의 목전까지 진의 칼날이 들어온다. 조나라는 진에 의해 분단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반대로 진 연합군이 실패한다면. 업을 함락하지 못하고 궤멸한다면 진은 20만 병력과 대장군 왕전, 환의, 양단화에 유능한 장군과 참모들을 일거에 잃는다.
- 킹덤/515화 . . . . 5회 일치
다시 창평군은 진군의 보다 정확한 동향을 묻는다. 보고자는 [[양단화]]의 산민군 5만이 [[공손룡]]군 9만과 대치하면서 본대의 방패역을 하고 있다는 것, 본대는 그대로 진격 중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창면군은 그래서 본대는 업과 얼마나 떨어진 곳에 있냐고 묻는데, 보고자는 머뭇거리며 "업으로 가지 않고 근처 소도시 오다로 갔다"는 뜻밖의 사실을 전한다. 이것은 앞선 보고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병량이 문제라면 서둘러 업으로 갈 일이다. 고로 병량 때문은 아니다. 누구하나 짐작가는 바도 나오지 않는 가운데, 답답해진 진왕이 창평군에게 뭐가 어찌된 일이냐고 대답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 창평군도 지도 위에 놓인 말들을 지그시 쳐다볼 뿐,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 왕전이 어떤 구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하 장수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아무도 왕전의 면전에서 그 사실을 발설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신(킹덤)|이신]]만은 달랐다. 그가 대놓고 "이딴 짓"을 할게 아니라 당장 업으로 가야 할게 아니냐고 악을 쓰자 장수들은 그의 무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수긍이 갔다. 이신의 말대로 하는게
뻔한 전개였지만 막상 현실로 일어나자 이신과 장수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정말로 군단의 활로는 "동쪽" 밖에 남지 않았다. 동쪽. 그러고 보니 방금 왕전도 동쪽을 언급했다. 그곳에 뭐가 있는 걸까? 왕전은 거기까진 말하지 않은 채 양단화군에 전령을 보내 본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라 지시한다. 그리고 이미 설명한 대로 다음 성을 함락하기 위해 군단을 움직인다.
* 공손룡군을 막으러 간 양단화군은 마평평야에서 그들과 맞선다. 그러나 진을 펼친 채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룡군이 꾀어낼 요량으로 자극해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격렬하게 반응하긴 했으나 전면적인 접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지 공손룡군의 발을 묶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상황은 반대다. 오히려 공손룡이 그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열미를 막은 시점에서 진군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뭘할 생각이든, 지금부터는 한 시 한 시가 목을 죄어온다. 공손룡은 이런 사실을 들어 곧 생각없이 왕도권에 들어온 걸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 장담한다. 그때 부하가 새로운 보고를 가져온다. 적들이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가? 공손룡은 잠시 헤아려 봤으나 곧 "상황은 변한게 없다"는 답을 내고 그쪽이 조금씩 움직이면 이쪽도 조금씩 따라가면 그뿐이라 여긴다.
- 킹덤/517화 . . . . 5회 일치
* 실제로 업으로 오는 병력 중 진군을 저지할 전력은 "알여"성과 "요양"성에서 오는 두 군대 뿐. 이들만 미리 요격하면 업공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런 조나라에도 한줄기 희망은 있었다. 이목의 앞에 나타난 조나라 태자 "가". 그는 이목의 발빠른 행보가 이미 수 천의 조나라 백성을 구했다고 치하한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되도록 한단군을 움직이지 않는 자기 아버지 도양왕의 실책도 알고 있어 그를 대신에 이목에게 사과한다.
태자는 도양왕에 비하면 정치적 식견도 대국을 보는 눈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곧 진나라도 여기까지 온 이상 침공이 실패하면 국운이 흔들릴 거라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진왕 [[진시황(킹덤)|정]]이 "최"성에서 그랬듯 직접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사기를 북돋으면 어떻겠냐고 이목의 의견을 묻는다. 이목은 명심해두겠다면서도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하지만 태자 가는 "지금이 그 필요한 시기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목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한다.
* 드디어 업을 포위한 진군. 총사령관 [[왕전(킹덤)|왕전]]은 마지막 작전을 실행하기 앞서 장교들을 불러놓고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이신(킹덤)|이신]]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귀를 기울인다. 우선 왕전이 가장 처음 정의한 전황은 진군이 포위한 업을 중심으로 왕도권의 모든 조군이 진군을 요격하러 온다는 것이다. 듣기에도 진땀이 나는 설명이지만, 왕전은 그 중에서 진정으로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병력은 단 둘 뿐이라 일축한다. 바로 북서의 대도시 "알여"와 태향산맥 일대의 세력을 규합한 "요양"이다. 오직 이 두 군만이 업에 당도해 진군을 격멸할 힘이 있다.
다음은 요양군. 요양군은 이미 대처하고 있다. [[양단화]]군 5만이 대치하고 있는 [[공손룡]]군이 바로 그 요양군이다. 지금은 견제만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알려졌을 테니 곧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공손룡이 요양성에서 본격적으로 병력을 끌어오면 그 군세는 약 10만에 달할 걸로 보인다. [[벽(킹덤)|벽]]이 기겁하며 "지금 양단화군은 5만 밖에 없다"고 발언한다. 물론 왕전은 그것도 계산하고 있다. 그는 벽에게 그가 이끄는 8천 병력에 환의군에서 2천을 빌려 총 1만의 원군을 이끌고 가라고 지시한다. 벽은 자신이 일만장이 되어서 양단화를 구하러 가게 됐다는 사실에 들뜬다. 그런데 은근슬쩍 병력 2천을 떼어먹히게 된 환의군의 [[마론(킹덤)|마론]]은 속이 쓰리다.
- 킹덤/518화 . . . . 5회 일치
이목이 우선 업성이 넘쳐나는 난민들고 어렵게된 사실과 뜻밖에도 군량전으로 가게 된 바를 전한다. 그리고 내리는 지시는 크게 세 가지.
첫째, 자신이 합류하는 알여나 공손룡의 요양, 둘 중 하나가 움직여 반드시 진군을 쳐야 한다는 것. 즉 눈 앞의 양단화군을 격멸하라는 지시다. 다만 산민족은 미지수인 점이 많은 군대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실제로도 양단화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작은 교전이 몇 회 있었는데, 그때마다 큰 손해를 본 건 공손룡군 쪽이었다.
셋째, 필요하다면 요양에 "틀어박힌" 주력 부대를 끌어다 쓰라는 것. 이 또한 부관들은 의문을 표시한다. "틀어박혔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지금도 공손룡군은 9만, 양단화군이 5만으로 숫적으로 우세하다. 그런데 증원을 부르라는건 숫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불리할 거라 봤다는 것인데. 공손룡은 이목을 대신해 "이목님은 순식간에 최를 해방시켰던 산민족 군세의 실제 역량을 가늠하려 하시는 것"이라 설명해 부하들을 납득시킨다.
* 양단화군에 도착한 전령도 비슷한 소식을 전했다. 업성의 상황과 왕전이 그리는 큰 그림. 그리고 [[벽(킹덤)|벽]]이 1만의 증원과 10일치 병량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 전령은 왕전이 공손룡의 9만이 더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요양군을 저지해 업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사항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들으면서도 적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양단화는 전령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상냥하게 치하의 말을 전한다. 뜻밖의 친절에 전령이 감사를 표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만 달라고 고한다.
* 이것이 공손룡군이 놓친 두 번째. 산민족의 파괴력이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 조공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하던 조군 진영이 주공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와해된다. 그저 실력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공손룡은 크게 낭패해서 "진군이 이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니"하고 탄식한다.
- 킹덤/530화 . . . . 5회 일치
새로 나타난 적의 정체는 비신대. 그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전령이 도착했다. 비신대의 1진 돌파. 기수와 그 부관들은 모두 흑양에서 비신대의 위력을 실감했고 그래서 신의 조치는 큰 효과를 봤다. 부관들은 하나같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술렁거렸지만 누구하나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채 기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기수도 기수대로 고민에 빠졌다. 흑양의 악연이 필살의 기동대가 되어 자기 목을 치러 오고 있다. 모두 [[왕전(킹덤)|왕전]]의 포석이다. 그러나 이 치가 떨리는 함정 속에서도 이점은 있었다. 적어도 적의 힘을 오판할 여지는 없다는 것.
기수는 후방의 진을 풀고 최종방진까지 후퇴하도록 지시했다. 부장들은 난색을 표했다. 퇴로를 버리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후방을 그대로 두고 전방의 [[마정]]을 불러들여 본진을 방어함이 시급했다. 하지만 기수는 단호했다. 지금 국면에서 어떤 곳을 다른 곳보다 우선할 순 없다. 정면도 바늘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명이 무너지면 그거야말로 끝. 부장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현실의 다급함을 지적했다. 지금 최종방진으로 물러난다 해도 채비를 다하기 전에 비신대가 들이닥친다. 기수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그때 유동장군의 친위대 200기가 기수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들이 비신대를 저지하기를 자청했다. 아니, 반드시 비신대 대장 이신과 부장 [[강외]]의 목을 따오겠다고 자청했다. 기수는 그 결의를 만류하지 못했다.
* 정면의 마광군도 비신대의 출현은 뜻밖이었다. 부관들은 왕전의 안배가 비신대였던 것가하고 반쯤 실망했다. 마광이 그런 부하들을 달랬다.
* 기수의 뜻모를 말은 마광군 후방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낀 마광이 고개를 돌렸다.거기에 필살의 기동대가 있었다. [[이목(킹덤)|이목]]. 마광이 그 이름을 부를 틈도 없이 이목의 칼이 목을 찔렀다.
- 킹덤/534화 . . . . 5회 일치
>"실패"랍니다.
후반에는 기수 본대의 역습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과 낙화대를 앞세워 마광군을 보호한다. 여기까지는 다 작전대로 잘됐지만 이 공습을 막아낼지는 확신이 없는 듯했다. 실제로 난전 중에 낙마해 시체들 사이에 쓰러져 있던걸 이신이 발견한다. 다행히 무사히 생환. 전에 장담한 대로 진군 좌익의 싸움의 주역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진군의 전선을 살려놓긴 했지만 전력이 크게 저하된 건 사실이므로 이틀째를 넘길지는 미지수. 하지만 조군으로서는 한 시라도 빨리 업으로 가야할 판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고 실제 이목도 첫날에 진군 좌익을 정리한 걸로 생각하고 있다 통수를 맞게 됐으니 충분히 성과를 올렸다.
마정이 중앙을 방치했을 때 미심쩍어 했지만 결국 다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마정보단 낫지만 결국 손을 쓰지 않았으니 유명무실하다. 낙화대 본진이 합류하고 우측에서 강한 저항이 일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조금 늦었다. 물론 전세가 기울어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기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승기를 내줬다고 볼 순 없었지만, 결국 진군을 섬멸하지 못한 채 이틀째를 맞이했다.
- 토리코/358화 . . . . 5회 일치
시공을 넘나드는 네오와 블루 니트로의 진실.
* 한편 죠아도 미도라에게 네오의 진실을 알리며 '''"무한한 식의 낙원"을 추구'''하자고 한다. 그러나 미도라는 '''"내 앞에 있는 작은 밥상 하나 외엔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 지로와 대치 중인 블루 니트로는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구르메 세포가 형성된 생물은 구르메 에너지를 가지며 육신이 죽더라도 언젠가는 부활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네오에게 먹힐 경우엔 완전히 소멸하며 부활하지 못한다.''' 이것이 네오의 진정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 네오의 정체에 대해서 전모가 드러났다. 네오에게 먹힌 구르메 세포가 완전히 소멸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 네오는 사실 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였다. 블루 니트로들은 그 네오를 추적해서 이 우주로 온 것이다.
- 토리코/383화 . . . . 5회 일치
* 사실 GOD를 비롯한 "지구의 풀코스" 외에, 아카시아의 "진짜 풀코스"가 따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진짜 풀코스.
* 치치의 힘은 사실 구르메 피라미드에 잠들어 있는 "동족"의 몸을 먹어서 얻었던 것.
* 하지만 100% 구르메 세포인 니트로를 먹이는건 도박인 다름이 없다. 회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아직 사천왕들은 깨어나지 못했다.
* 블루 니트로 페어과 독자적으로 아카시아와 협력관계를 맺은건 사실이었다. 이전에도 묘하게 단독으로 아카시아와 만나는 장면이 많아서 의심되던 부분인데 확인되었다.
* 사실 페어가 너무 멍청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결국 통조림 시켜버릴 거라는 말을 해준 건데 순순히 동조해줄리가 없다.
- 토리코/392화 . . . . 5회 일치
* 토리코 뿐만이 아니다. 당한 것처럼 보였던 코마츠 일행도 실은 강력한 식운으로 보호받고 있었는데 아카시아는 그 식운마저 삼키고 있다.
* 세 번째 악마가 실체화할 수 있는 건 아주 잠시 동안. 세 번째 악마는 분노의 풀코스가 들어간 시점에서 승부는 났고 당장이라도 "토해"낼 거라고 말한다.
세 번째 악마의 실체화. 세 번째 악마가 네오의 "검은 세포"의 천적일 거라는 팬덤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네오가 완전히 패배한 걸로 묘사되는데 정작 기대를 모았던 청귀, 세 번째 악마의 실체화와 흡수는 없었고 세 번째 악마가 잠깐 등장해서 네오를 끝장내는 정도로 지나가게 됐다.
지난 회에서 팔왕들은 확실히 사망한 것 같지만 코마츠 일행은 식운의 가호로 무사했던 걸로 밝혀졌다. 브란치도 옆에 있었으니 아마도 무사할 듯. 하지만 사천왕들도 식운의 보호를 받은 건지는 미지수.
- 페어리 테일/504화 . . . . 5회 일치
* 마침내 나츠 드래그닐의 진실을 알게 된 그레이 풀버스터.
* 그레이는 쓰러뜨린 잉벨에게 END의 진실과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 지하실에서는 폴류시카가 브랜디쉬의 상처를 다시 한 번 진찰하는데 생각보다 경상인 듯.
* 루시는 해피와 함께 나츠를 찾기 위해 지하실을 떠난다.
* 나츠는 지하실에 잡혀 있을 때의 기억이 불분명한 걸로 보인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5회 일치
* 길다트는 자폭할 듯 보였지만 실은 오거스트의 마법의 원리를 간파하고 그를 몰아붙이기 위해 연극한 것.
*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집착했돈 오거스트. 사실 그 이름을 붙여준 것은 제레프였다.
* 오거스트는 아직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지만 싸우는데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따위"라고 중얼거리며 카나를 지팡이로 찌른다. 길다트가 몸을 던져서 그 앞을 막지만 이전 아크놀로기아가 뜯어먹은 왼팔의 의수 부분을 관통 당한다. 카나는 무리하지 말라고 염려하는데 오히려 길다트는 딸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투지를 끌어올린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만 생각하고 살았지만 애가 생기니 그게 전부 아이를 위한게 되더라며 신기하다고 말한다. 카나는 전투 중인 것도 잊었는지 지금도 실컷 싸돌아다니지 않냐고 핀잔을 주는데, 그것도 카나가 아버지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 같아서 한 행동이다. 만약 카나가 같이 있어주길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겠다고 하는데 역시 카나는 그런건 싫다고 질색한다.
라케이드는 제레프의 자식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나츠 드래그닐]]을 END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실험체일 뿐이다. 단지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기에 "드래그닐"이란 성을 부여한 것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인 주제에 자신과 나츠의 싸움을 방해하다니, 그는 라케이드를 "덜 떨어진 놈"이라 부르며 걷어찬다. 너무 심한 처우에 보고 있던 나츠 조차 그만두라고 끼어든다. 오로지 나츠와 대결에 정신이 팔린 제레프는 라케이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 드디어 아버지를 만난 제레프의 아이.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제레프는 자신의 아이인 것도 모르는 채 그를 거두고 자신의 부하로서 나라를 만드는 일을 돕게 한다. 그리고 그는 아이에게 이름도 부여한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5회 일치
* [[루시 하트필리아]]는 나츠가 처한 비극적인 현실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 포격은 정확하게 명중하지만 아크놀로기아는 마법을 먹는 마룡. 조금의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곧 실탄병기로 바꿔서 공격을 가해보지만 기관총 정도로는 맞추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크놀로기아는 자잘한 공격 따위는 비웃으며 총알을 피해 속도를 높여온다. 크리스티나호 측은 공격을 멈추고 속도를 올려 더욱더 목표를 끌어들인다.
>확실하게 말하라고 형!!
안나는 멸룡마도사들을 찾아내는 동안 새로운 성과도 얻었다. 엄청난 발견이었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계획을 일거에 뒤집을 수도 있었다. 안나가 지금까지 표면에 나서지 않은 건 "그것"의 연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떠면 그것은 문의 사고를 유발한 요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게 매우 위험하고 강대한 힘이며, 사실 힘보다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5회 일치
해킹이 끝나고 나면 옥상으로 올라가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면 된다. 옥상은 경찰 저격수들의 사격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니 저격수를 주의하자. 중간에 길이 끊겨서 점프해야 하는 구간이 있는데, 전력질주를 하며 점프하면 된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팀원들은 짜증나겠지만.
플레이어는 갱단들을 쓸어버리며 3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신고가 들어갔지만 지금 경찰이 오지는 않으므로 여유롭게 메스암페타민과 현금, 거대 칫솔 등을 확보하자. 3층의 붉은 철문을 조사하고 나면 "차베스"라는 갱단원에게서 열쇠를 빼앗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차베스는 아파트 방 어딘가에 다른 갱단원들과 함께 있다. 방탄조끼를 입고 쌍권총을 들고 있는 이가 차베스. 그를 찾아내서 죽이면 열쇠를 드랍한다. 차베스가 죽는 순간부터 경찰이 도착한다.
C4가 폭발하면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을 처리하자. 이후 바일의 헬리콥터가 다시 와서 자석을 옥상에 생긴 구멍 안으로 서서히 집어넣는다. 이때 누군가가 4층으로 내려가 패닉룸 윗부분에 자석을 붙여줘야하니 주의. 이후 헬리콥터가 패닉룸을 매달고 날아갈 때 까지 옥상을 지킨 다음, 1층으로 내려가 지하실로 탈출하면 클리어.
팀원 모두가 옥상에 있는 상태에서 탈출 개시 20초 내에 지하실 문 개방
>아파트 단지의 건물이 대규모 총격전의 현장이 되었다. 출동한 지역 경찰이 대혼란과 페이데이 갱을 목격하였다. 사건 이후 수사관들의 현장 분석에 따르면, 건물 전체를 완전히 박살낸 것은 폭발물로 보인다. 무언가 큰 것이 있었던게 확실한다.
- 하이큐/240화 . . . . 5회 일치
* 히메카와는 카라스노의 저력을 보며 이것이 전국이라고 새삼 실감한다.
* 카라스노 진영에선 동점으로 따라잡히자 TO를 걸어서 견제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천장서브에 대한 대처법을 신속하게 전달하지만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계석에선 우카이 코치를 소개하며 그의 할아버지이며 명장이었던 [[우카이 잇케츠]] 감독에 대해 언급한다. 얼굴만큼은 할아버지와 확실히 닮았다는 듯.
* 두 번째 TO. 카게야마는 리시브를 좀 더 높게 올려줄 것을 주문한다. 리시브에 계속 실패하는 사와무라와 아즈마네는 눈치가 보인다.
* 히메카와의 4회차 서브. 서브가 자기 쪽으로 떨어지자 니시노야는 오길 기다렸다는 듯 "왔다!"고 외친다. 만회할 생각으로 가득했던 사와무라는 내심 실망, 그리고 아즈마네는 자기 쪽으로 안 와서 안심한다.
* 누구보다 체육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던 히메카와, 그리고 그 히메카와의 주무기를 능숙하게 받아낸 니시노야. 히메카와는 새삼 "이것이 바로 전국"임을 실감한다.
- 하이큐/244화 . . . . 5회 일치
어차피 보쿠토가 항상 컨디션이 좋은 적은 거의 없다. 사실 이런 풀죽음도 그의 배구에 대한 열정, 성실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반대로 긴장이나 압박감 때문에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일은 없다.
* 그 말처럼 여기서부터 후쿠로다니의 반격이 시작된다. 보쿠토는 여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지만 다른 동료들이 분발하면서 한 점씩 따라잡기 시작, 어느새 스코어는 15 대 14로 한 점차까지 따라온다. 중계석에선 에이스가 저조한데도 착실하게 점수를 버는 후쿠로다니를 칭찬한다. 반대로 에이와 고교는 에이스가 봉인됐는데도 선전하자 혼란스러운 양상.
센터 코트란 준결승 이상부터 특설 코트. 메인 아레나의 가운데 한 면만 설치되는 코트다. 국제시합 등이 이 규격에서 시행된다. 아카아시는 메인 아레나가 더 크고 사람도 많지만 그래봐야 그 중에서 보쿠토를 봐줄 사람은 4분의 1이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곳 서브 아레나는 후쿠로다니가 독점하고 있으니 모든 관객이 보쿠토를 주목하고 있다. 즉, 실질 봐주는 관객이 더 많다는 얘기.
* 경기를 보고 돌아가는 히나타와 야마구치. 후쿠로다니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매점 앞을 지나갈 때, 누군가 히나타와 같은 티셔츠를 S사이즈로 주문하고 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히나타. 그는 전일본 유스에서 카게야마와 한솥밥을 먹었던 [[호시우미 코라이]]였다. 카게야마가 "작은 거인"이라 생각했던 그 선수.
- 하이큐/246화 . . . . 5회 일치
* 마침 나타난 카노카의 지인 남성 때문에 김칫국을 마셨다고 착각, 현실을 외면하며 민박집에 틀어박힌다.
* 그런데 사실 그는 카노카의 사촌오빠였고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는데... 타나카의 씁쓸한 썸을 뒤로하고 봄고 2일차 돌입. 시드교가 참전한다.
그때까지, 공식적으로 [[시미즈 카요코]]에게 어택하던 걸로 돼있던 타나카는 처절한 퇴짜의 나날을 떠올린다. 동시에 썸이란, 자신에게 그런 장밋빛 무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달으며 멘붕으로 접어든다.
* 역시 혈기왕성한 쪽이지만, 타나카는 왠지 잠들지 못하고 바깥을 서성거리고 있다. 사실 타나카는 사와무라와 아즈마네가 배란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괜히 싱숭생숭해진 채 바깥을 기웃거리던 타나카. 그런데 그때 카노카가 또 다시 방문한다.
* 사실 그 청년은 카노카의 사촌오빠인 테라다 코지였다. 날도 추워서 내키지도 않는데 어머니의 성화 때문에 사촌동생에게 부적을 전달하러 왔다가 참상을 목격하고 말았다. 눈치가 없었던 죄로 카노카의 원망을 듣게 되었으나 카노카는 곧 극복한다. 여기에 온건 연애하러 온게 아니니까.
- 하이큐/249화 . . . . 5회 일치
이나리자키 고교 정도는 아니지만 [[카라스노 고교]]도 관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콤비는 카라스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주목할 정도로 별나 보인다. 특히 히나타의 점프력은 이나리자키도 체크하는 요소. 이나리자키의 [[오지로 알랭]]은 특히 눈여겨 본다. [[스나 린타로]]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실 히나타의 점프는 어제를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연상하며 자세를 바꿔보고 있다. 히나타는 방금 전 점프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흘러가는 느낌"이 난다고 아쉬워한다. 다시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팀이 서브 연습으로 바꾸면서 기회를 놓친다.
다소 뒤숭숭한 채로 들어가는 2회차 서브. 이 작은 소동이 영향을 준 탓일까? 서브는 여전히 카라스노의 반응보다 한 박자 빨랐지만 라인을 벗어난다. 서브 실패. [[스가와라 코시]], [[야마구치 타다시]] 등은 안도의 한숨. 아츠무가 낙담하며 "이런"이라고 고함친다. 오사무가 "허접하다"고 디스하자 아츠무가 신경질을 낸다.
이것이 효과를 봤는지 아즈마네의 서브는 네트에 걸리며 실패. 아즈마네가 사과하는데 이 조차도 응원단이 내지르는 소리에 묻힌다.
* 멍청한 실수지만 아츠무에겐 조금 다르게 보였다. 지금까지 히나타가 뛰던 점프가 최고점이 아니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옆에 있던 오사무도 마찬가지. 그는 또다른 이유로 기막혀한다.
>우승후보인 우릴 상대로 "실험"했단 말이야?
- 하이큐/253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그건 단지 "스타트라인"에 지나지 않았고 [[니시노야 유]] 조차 그의 강력한 서브에 빌려 리시브에 실패한다.
* 멋진 페이크로 [[이나리자키 고교]]의 블록을 따돌리며 경기의 균형을 맞춘 [[카게야마 토비오]]. 득점에 솔직하게 환호하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달리 사령탑 카게야마는 생각이 복잡하다. 사실 그가 노린 페이크 상대는 맞은 편의 오미미. [[히나타 쇼요]]가 튀어나가면 당연히 따라붙을 줄 알았는데, 잘도 간파하고 히나테에 붙지 않았다. 오미미도 방금 전 카게야마가 "의도적으로 낚으려 했다"며 눈을 흘긴다.
이도류란 스파이크 서브와 점프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선수마다 주력 서브는 정해져 있다. [[아즈마네 아사히]]나 히나타는 스파이크 서브, [[야마구지 타다시]]는 점프 플로터, 이런 식이다. 아츠무는 어느 쪽이든 때릴 수 있어서 서브가 날아오기 전에는 구분할 수 없고, 그래서 리시브할 위치를 선점하기 어렵다. 거리로는 단 한 걸음이지만, 실제 플레이에선 그 작은 차이가 실점으로 이어진다.
* 스코어는 10 대 7. 아츠무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층 긴장한다. 이번에도 서브는 니시노야에게. 그렇지만 니시노야는 두 번 실패하지 않았다. 상당히 버거운 공이었지만 잘 받아낸 니시노야. 공은 카게야마에게. 카게야마가 아즈마네에게 올려서 스파이크, 하지만 아카기가 받는다. 그 순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달려나가는 오사무. 그리고 이어지는 플레이에서, 카게야마는 눈을 의심한다.
- 한상대 (검사) . . . . 5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1-8-5}}
* 법무부 법무실장
한 후보자의 부인과 두 자녀는 각각 1998년 5월, 2002년 9월에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용산구 이촌동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8181.html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 ‘재산 25억’]《한겨레》2011년 7월 19일 석진환 기자</ref> 위장전입 덕에 큰 딸은 이촌1동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모 외고에 진학한 뒤 아버지와 같은 고려대를 나왔다. 둘째 딸은 그러나 성악을 희망, 일반중학교가 아닌 예술계중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위장전입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주소를 다시 서빙고동으로 옮겼다. 한 내정자는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며 "딸이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은 이웃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이전했던 것"이라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그는 그러나 "부동산 투기 등 다른 사유는 전혀 없다"며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위장전입을 한 것이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7147 "딸이 친구와 학교 다니고 싶어해", MB지명 총장 '전원 불법']《뷰스앤뉴스》2011년 7월 18일 김동현 기자</ref>
김학재 의원은 한 후보자가 서울 행당동 대지를 2006년 공시지가의 4분의 1 수준으로 매각한 것을 두고 ‘다운 계약서’ 의혹을 제기했다. 한 후보자는 “모친이 관리한 땅이라 계약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고교 동창이 운영하는 벤처회사의 비상장주식 1000주를 500만원에 매입했다가 2000만원에 팔아 수익을 냈다는 주장에 대해선 “실제론 주식을 2000만원에 구입했다. 500만원에 산 것으로 돼 있는 것은 해당 회사에서 회계편의상 액면가로 세무신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땅 매도 당시 부동산 매매계약서, 토지측량 도면, 토지 매수자의 사실확인서를 공개했다.<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55222 인사청문회 앞둔 한상대·권재진 '의혹 백화점']《SBS》2011년 7월 22일 정혜진 기자</ref>
- 2세대주택 . . . . 4회 일치
* 같은 건물이지만, 부엌, 욕실, 화장실, 현관 등이 별도로 되어 있어 완전히 분리된 다세대구조. 좌우분리형과 상하분리형이 있다.
* 현관,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을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구조.
- Crusader Kings 2 . . . . 4회 일치
샤를마뉴와 그의 동생 카를로만이 주요 인물인데, 이게임에서 샤를마뉴는 미친듯한 사기능력치와 함께 12기사들이 속속들이 합류하는 이벤트, 카를로만의 아들이 망명하는 곳[* 보통 롬바르디아, 가끔 아스투리아(...)]에 클레임이 생기는 이벤트, 작센을 정복하는 이벤트까지 겹쳐 사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힘을 보여준다. 반면 그의 동생인 카를로만은 어머니가 찾아와 독약을 건네주는 이벤트등 온갖 디버프가 쏟아지는 안습인물. 그래도 가~끔 샤를마뉴가 전쟁에 선봉으로 나섰다가 전사하거나(...) 수행불능이 되버리거나 해서 카를로만이 실권을 잡는경우가 있기는 하다.
주요인물들은 류리크, 독일인 루트비히, 대머리왕 샤를, 그리고 [[바실레이오스 1세]]와 흰셔츠의 할프단.
2. 선택한 인물의 나이와 [[위키피디아]] 링크. 여성의 경우 45세 이상은 임신을 할 수 없으니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주의하자. 위키피디아 링크의 경우 해당 인물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면 작동하지 않는다.
6. 인물의 문화, 야망, 관심사, 능력치. 야망과 관심사는 Way of the Life DLC를 구매해야 나오는 기능이다. 예시의 무르하는 아일랜드인이며 전체적으로 암담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괄호 안의 능력치는 국가 능력치로, 이것이 실질적인 능력치이다. 국가 능력치는 군주 능력치+군주의 배우자 능력치+해당 능력치와 관련된 주요 직책의 능력치이다. 각 능력치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 K리그 . . . . 4회 일치
역사적으로 K리그는 1983년 탄생한 [[수퍼리그]]를 전신으로 한다. 이 당시에는 아직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없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이하 KFA)의 주도로 대회가 탄생하였으며 완전한 프로리그는 아니었다. 총 5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에서 완전한 프로팀은 유공(現 제주 유나이티드), 할렐루야 두 팀 뿐이었고, 나머지 세 팀은 실업팀이었던 국민은행, 포항제철(現 포항 스틸러스), 대우(現 부산 아이파크). 물론 이 세미프로팀들도 당시에는 프로전환을 고려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업팀(=세미프로)이 더 많았던 리그임은 사실이다. 또한 참가팀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승강제는 애초에 구성하기도 불가능했다.
이와 관련하여 당연히 기존 K리그 회원들의 반발이 거셌고, 특히 강등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구단들이 가장 거셌는데 이에 대해 연맹이 내 놓은 해결책은 사실상의 세미프로인 군경팀을 일단 확정적으로 강등시키며, 군경팀을 제외한 최하위 팀을 추가로 강등하는 1+1 강등안을 발표한다. 때문에 군경팀인 상주 상무는 자동으로 강등되었으며, 추가로 상주를 제외한 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한 광주가 사상 첫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 Q.E.D. 증명종료 . . . . 4회 일치
[[일본]]의 작가 [[카토 모토히로]]가 [[코단샤]]의 [[계간]]지 '월간 소년 매거진 플러스'[* 원래는 매거진 GREAT라는 이름이었으나, 2009년 매거진 Z라는 잡지가 폐간, GREAT에 흡수되면서 '매거진 이노'라는 잡지가 되었다가 이마저도 2011년에 폐간. 이노에서의 연재작들을 모아 새로 창간한 잡지가 매거진 플러스.]에 연재 중인 [[추리]]만화. 작가는 전에 일하던 출판사([[에닉스]])에서 정리해고당하고 이 만화까지 망하면 만화가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왕창 팔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판매 부수는 권당 4만부 정도. 잡지가 워낙 마이너하다 보니... ] 97년부터 2015년까지 장장 18년 동안 장수하며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격월간지 장기연재 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돼있는 상태로, 실시간 갱신중이다.] [[date]] 기준으로 48권까지 정발되었다.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상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남기는 해결도 상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인물설정 때문인지 오일러의 공식이라든지 초끈이론이라든지 일반인으로서는 머리아픈 수학, 과학적 이론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는 건축과 출신으로 과학은 취미로서 좋아한다고 한다.[* 현학적이라 장점이자 단점. 팬들은 좋아하지만 골치아프다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화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타 추리물처럼 오류가 있다. 이를테면 4권에서 클란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공격한다는 장면에서 '''MIT'''출신자인 토마와 로키가 원자력 발전소, 미사일 사일로 등을 걱정하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 기술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어지간한 중요 시설은 '''물리적'''으로 일반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다.[* 즉 아예 물리적인 서버 자체가 따로 구축되어 있다. 은행권의 경우 인터넷 뱅킹 등으로 외부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틈을 노릴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개 전산망에 이어지는 회선 자체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폐쇄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한 [[스턱스넷]]과 같은 공격기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약정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뿐으로 외부에서 원격 조종하는 개념은 아니다.] 즉 직접 가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일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반인의 통념이라면 모르겠는데 '''MIT''' 현역이 저런 소리를 하니..
* [[NHK]]에서 드라마로 제작, 2009년 01월부터 방영되어서 10화로 완결. 여주인공 가나역에는 모닝구무스메의 멤버([[다카하시 아이]])가 캐스팅되어 화제...였다고는 하지만...아~[[망했어요]][* CMB 14권에 따르면 작가의 부인이 이 드라마 덕분에 다카하시의 팬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과연...] 다행히 실사판의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만화는 계속 사랑받고 있다.
- 강기웅 . . . . 4회 일치
* 한국화장품 (실업야구단)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비고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4회 일치
* 타치바나 실핀포드는 의외로 단대 진학을 희망.
* 실핀의 성적을 생각하면 아까운 얘기인데 정작 어머니 타치바나 미키는 훌륭한 장래설계라고 기뻐한다.
* 이상한 남자 말고 도마 타이헤이 같이 건실한 남자가 있는 대학을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
* 학생 별로 출석 번호가 공개. 에비나는 2번, 실핀은 10번, 키리에는 21번, 우마루가 15번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9화 . . . . 4회 일치
* 염원하던 울트라 레어가 뜨지만 얼마나 긁었는지도 모를 만큼 과금한 뒤. 인생의 쓴맛을 실감하게 된다.
* 그러나 가챠로 나오기 때문에 과금한 보람도 없이 평범한 냥이만 튀어나와 쓰러질 정도로 실망한다.
* 거짓말처럼 한 번의 성공도 없는 실패.
* 우마루도 혼이 빠질 만큼 실망한다.
- 구광본 . . . . 4회 일치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056&yy=2007 매일신문 2007-07-04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식구〉]
* [http://www.segye.com/newsView/20160626001441 세계일보 2016-06-26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강〉]
* [http://www.idaegu.com/?c=8&uid=346911 대구일보 2016-08-22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식구〉]
* [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787854 인천일보 2017-11-20자에 실린, 구광본의 시 〈서른 해〉]
- 구성윤 . . . . 4회 일치
2013년 성인 팀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반기를 날렸고, 여름에 재활을 마친 후 다시 엔트리에 복귀했으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당일에 또 부상을 당하며 다시 [[벤치워머]]가 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부터 꾸준히 [[세레소 오사카]]의 골대를 지키고 있던 선배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에게 밀리면서 2014년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이후 삿포로로 이적한 장면을 보고, 세레소팬들은 구단한테 [[김진현]]선수의 후임이라고 했으면서 육성을 실패한다는게 말이되냐면서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2015년 출장 기회를 찾기 위해 세레소 오사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J2리그]] 소속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이적 후 삿포로에서 개막전부터 기용[* 여담으로 이는 삿포로의 최연소 골키퍼 데뷔(20세 206일)라고 한다.]되며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였고, 2016년에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J1리그]] 승격, 최소 실점 2위(33실점)에 크게 공헌했다. 또 2017년에도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면서 팀의 [[J1리그]] 잔류에 기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https://twitter.com/Asia_Fball_News/status/937427111991697408|2018년에도 삿포로에서 뛰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삿포로의 붙박이 1선발 골키퍼로 맹활약하고 있다.
2015년 [[동아시안컵]]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7월 20일 [[슈틸리케호/2015년 EAFF 동아시안컵|슈틸리케호]]의 최종 엔트리에 처음 포함되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 권영준 (1952년) . . . . 4회 일치
'''권영준'''([[1952년]] [[5월 15일]]~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경영학자인 대학교수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과 한국재무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대학원 경영학 박사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김기창 (법학자) . . . . 4회 일치
영국 유학 시절 [[리눅스]] [[운영 체제]]를 사용하면서 [[오픈 소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국내 독점에 대항하는 [[오픈웹]]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모든 운영 체제에서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 한다며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2007년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제1심과 항소심에서 패소하고<ref>[http://m.ddaily.co.kr/view.php?uid=48223 오픈웹, 금결원과의 민사소송 2심서 패소]{{깨진 링크|url=http://m.ddaily.co.kr/view.php?uid=48223 }}</ref>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2009년에 기각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0&oid=001&aid=0002906855 대법 "익스플로러만 공인인증 위법 아니다"]</ref> 2009년에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서적을 저술하였다. 오픈웹은 2013년에 [[사단법인]] [[오픈넷]]에 통합되었고 현재는 오픈넷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영국의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 개관, 한국법학교육과 법조실무의 국제경쟁력: 도전과 대응, 한국법학교수회, 2004.12
*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 고대 법대 100년의 학문적 성과와 미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기념논문집 발간위원회, 2005.12
* 로스쿨 변호사 실무수습방안,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로스쿨 도입에 따른 변호사 업무의 선진화 방안' 심포지엄, 2008.12.15
- 김연수(작가) . . . . 4회 일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2009)[*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world's end girlfriend]]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소설집. 실제로도 팬이라고 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젊은 날의 상실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혹은 <꾿빠이, 이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밤은 노래한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첨가하기도 한다. 굉장히 유려한 문장이 특징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반대로 독자들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역할로도 작용한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고드는 문장을 구사하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편한 글을 구사한다고 하며, 동시에 번역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실 내용도 소설을 가볍게 읽는 사람들이 읽기엔 지나치게 현학적인 데가 있다. 김연수는 문학적 허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작가가 오히려 풍부한 독서를 바탕으로 문학 측면에서 어렵게 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 김재홍 (1958년) . . . . 4회 일치
*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 투자정책관
* 지식경제부 국무조정실 산업심의관
* 2011년 6월 ~ 2013년 3월 :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4회 일치
[[2008년]] [[10월 29일]], 친정팀이었던 웅진 스타즈로 다시 이적하였다. 그 이후 프로리그에서 자주 승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9년부터 다시 조금씩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손목 부상까지 생기며 거의 출전 기회를 상실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06년 9월 15일 변형태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일전은 많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온갖 화제를 낳았다. 이 경기에서 김준영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확보한 변형태를 상대로 전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막대한 자원 수급량을 확보했고(총 8개의 멀티 보유), 처음 택한 공격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저글링 드랍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배포를 보였다. 이후 공중유닛에 매우 강한 발키리, 골리앗 조합으로 진군하는 테란 병력을 소위 새떼라 불리는 뮤탈리스크 대부대로 무난히 격파하고, 전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상대의 본진을 싹쓸이하면서 최고의 관광 경기를 연출했다. 이 경기가 펼쳐진 16분 동안 김준영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채취했을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뽐내며 당시 최고조에 다다랐던 테란전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대인배스러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기였다. 또한 훗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의 호적수, 이후에는 팀동료로 계속 이어진 변형태와의 인연이 시작된 경기이기도 했다.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영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영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영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영수]](당시 [[STX SouL]], 영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영호 (1992년)|이영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상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상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김현철(교수) . . . . 4회 일치
[include(틀:대통령비서실)]
|| '''현직''' ||<(>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 ||
[[대한민국]]의 정무직공무원.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첫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에 임명되었다.
- 김형기 (법조인) . . . . 4회 일치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소속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6월에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피고인에 대해 2회까지 구속만기 연기할 수 있는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3번째 구속 만기를 연기하는 등 5명의 구속 피고인에 대해 3번째 구속만기를 연장한 사실이 드러났다.<ref>경향신문 1971년 6월 4일</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영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1월 19일에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때 선거 거부를 주장하다 기소된 전 서울대 학생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1월 19일자</ref> 2월 9일에 통혁당 재건과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15년 자격정지15년을 선고받은 [[지정관]]에게 징역7년 자격정지7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박현채]]와 [[양정규]]에게 각각 징역2년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과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9일자</ref> 2월 22일에 '옛 석굴암'이라는 상호로 공예품 판매업을 하면서 문공부 장관의 허가없이 자신의 소장품인 유형문화재 청자 등 이조 자기류 10점을 점포에 진열하거나 매매 목적으로 진열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22일자</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4회 일치
* 우라라카는 실수를 하고 미도리야가 도와주는데, 어쩐지 미도리야의 패널을 노린다.
* 그리고 다리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그 누구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더라면 임간학교 사건 때도 실패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그는 그 실패를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다. 우선 한 가지는 "다리를 중심으로 단련해 조금 더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것"
* 우라라카는 실수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미도리야는 "그런 것보다"라며 뭔가 다른 용건이 있는 것 같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4회 일치
* 텐가이는 키리시마가 이것을 노리고 특공을 한 거라 여기나 사실 키리시마는 그저 "어떤 상황"이 두려워서 한 일일 뿐이다.
* 전의를 상실한 줄 알았던 [[키리시마 에지로]]가 랏파의 난타에도 불구하고 그를 몰아붙였다. 비록 텐가이의 배리어에 막혀 마지막 한 발을 꽂아넣진 못했으나 랏파가 크게 호응할 정도로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무리한 탓에 금새 쓰러지는 키리시마. 그러나 그 사이 [[패트껌]]이 자신이 축적한 에너지를 끌어모은 최강의 "창"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위력을 직감한 텐가이. 랏파가 배리어를 풀라고 아우성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금 키리시마의 분전이 이 한 방을 위한 특공이었다며 자신의 오판을 후회한다.
그러나 키리시마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가 잘못 본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패트껌의 회심의 수 같은건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를 움직였던 건, 과거의 어떤 기억.
* 키리시마는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신경은 쓰고 있었다. 누구나 "히어로에 어울린다"고 인정하는 미나와 달리, 자신 쪽은 그렇지가 못하다. "경화"는 누가봐도 밋밋한 개성이다. 비록 라이오트의 가르침에 따라 몸을 단련하고 부족한 개성을 마음으로 커버한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시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4회 일치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상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상태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 에리는 이미 길고 긴 "실험"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면 부숴지고 수복되길 반복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 에리의 마음엔 일말의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 상황 속에서 완전히 절망했다. 결국 에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버홀 앞에 나타난다.
원 포 올을 20%까지 끌어올렸지만 오버홀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오버홀의 에리를 말로 농락해 돌아오게 만들었지만 그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압박해도 굴하지 않고 반드시 아무도 죽지 않게 에리를 구하겠다고 응수한다.
쿠로노의 말로는 오버홀의 딸이 아니라 "두목"의 딸. 토오가타 밀리오를 따라 도피하고 있었으나 오버홀이 "너 때문에 또 누군가가 죽는다"고 협박하자 발길을 돌린다. 이때 회상으로 체력이 다할 때마다 오버홀이 분해와 수복을 거듭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에리는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복구해달라고 애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4회 일치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 일행은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에 실패하고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영]]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 학생 대부분은 대피하나 끝내 바쿠고 카츠키 탈환에 실패한다
* 프로히어로도 6명 중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한 명이 크게 다치고 한 명]]이 대량의 혈흔을 남기고 실종
* [[이이다 텐야]]는 "그건 프로 히어로가 맡을 일"이라며 말리지만 키리시마는 "이대로 있으면 남자도 히어로도 아니게 된다"며 "아직 손이 닿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4회 일치
* 도망친 빌런연합의 개인정보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 때문에 원흉인 올 포 원을 잡았다 한들 실행범을 전부 놓쳐서 잘쳐줘 봐야 무승부인거 같다고 얘기한다.
* 하지만 한 경찰간부는 "평화의 상징을 내주었다"는 말로 사실상 패배했음을 피력한다.
* 간부는 연합은 실패할 때마다 세력을 늘리고 있다며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게 세력 확대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지 의문시한다.
* 츠카우치는 올 포 원의 폭로 자체를 의심하는데 사실 그랜토리노와 올마이트 모두 시무라 나나의 가족하고는 교류가 없었다.
- 남효온 . . . . 4회 일치
남효온의 여러 저술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이 돋보이는 것은 역시 육신전이다. 육신전은 사실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러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또한 남효온의 연령이나 행적으로 보아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림파 내부에서 전해지던 단종복위운동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남기는데 의의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신전은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고, [[사육신]]의 절개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왕조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실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심각한 '불온 서적'이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불온 서적'은 사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필사]]되어 널리 읽혀졌고, 후대의 사림은 육신전에 근거한 '사육신 사관'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결국 육신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육신이 복권-헌창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니세코이/218화 . . . . 4회 일치
* 유이는 그 말을 듣고 팬던트와 열쇠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는데
* 부러진 열쇠는 사실 어렸을 때 이치죠의 친구가 장난삼아 팬던트에 끼워보다 부러진 것. 그 파편이 끼어 있었다.
* 사실 클로드는 츠구미가 물러터지게 일을 처리할 줄 알고 따로 조사를 해서 전모를 알고 있었다.
* 저런 이치죠가 치토게와 어울릴 리 없다고 여겨서 그를 쳐내려는 것.--사실 맞는 말이다--
- 단기선교 . . . . 4회 일치
현실적으로, 단기선교는 말 그대로 '선교'로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선교라고 해도 기껏해야 방학이나 휴가 기간의 몇주 정도인데, 참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아마추어이고 선교 기간이 짧은 만큼, 실질적인 선교로서 효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 기존에 활동하던 단체를 지원하는 경우가 고작인데, 이것도 참가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단기에 그치므로 크게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짐이 안 되면 다행.
단기선교는 현실적으로 현지인에 대한 봉사 보다는 참가자를 위한 체험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기선교는 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배려 없이 마치 관광여행처럼 프로그램 되어 있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참가자들의 자질이나 현지 활동은 현실적으로 관광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관광'이 아닌 '선교'를 목적으로 하며, 관광사업에는 아마추어인 교회 조직이 선교를 추진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 대군 . . . . 4회 일치
창작물에서는 대군을 이끌고 가면 패배하는 [[클리셰]]가 있다.(…) 사실 대군으로 소수의 적을 이기는 것보다, 소수의 아군이 대군을 물리치는 것이 더 극적이기 때문에 이런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기본적으로 대군을 이루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숫자가 많은 쪽이 무조건 이기는건 재미 없으니까 창작물에서는 묘사가 적다. ~~[[도즐 자비|싸움은 숫자라고!!]]~~
외교문서에서 '일본국 대군(日本國 大君)'이라는 칭호를 썼다. 이는 명목상의 왕인 '[[덴노]]'와 실권자인 '쇼군'이 따로 존재하는 일본 정치의 특수성을 외부에 얼버무리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술책이다. 어떻게보면 [[외왕내제]]의 일종.
덴노가 있다는 것은 외부에서도 왠만큼 다 알고 있지만, 덴노에게 실권이 없다는 것도 알만큼 다 알고 있었으므로, "자칭 일본 황제라는 놈이 있대. 근데 이름만 그럴 뿐이지 걔가 다스리는건 아냐."하는 수준으로 인식되고 외부에서는 쇼군이 진짜 통치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 대한민국 FA컵 . . . . 4회 일치
물론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는 프로팀도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컵으로 규정할 수도 있으나 실제 운영에서 프로팀이 별로 신경도 안 쓸 뿐더러 구단의 역사에 특별히 기록하지도 않을 정도로 권위가 없는 대회이기도 했다. 또한 FA컵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별도로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었다는 점은 사실 전신이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한 부분이 있다.
FA컵은 KFA에 등록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자격을 갖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명백하기에 토너먼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라운드를 차별 배정받는다.
단, 이 규정은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된 완전한 프로팀'''이라지만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즉, 아직까지 K리그 이외 팀이 우승한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실업팀과 같은 세미프로나 대학팀 같은 아마추어가 우승하게 되면 우승팀일지라도 ACL 참가는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화를 했다고는 하나 팀이 사업자등록 및 법인화까지는 AFC의 규정에 적합해도 '''"팀의 선수 전부가 본질적으로 군인 내지는 경찰"'''인 상주 상무와 안산 경찰청은 세미프로팀과 마찬가지로 ACL진출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는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의 신분문제로 완전한 프로팀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
- 데미안(드라마) . . . . 4회 일치
머리에 666 자국이 있는 우리의 [[적 그리스도]] [[주인공]]. 직업은 [[종군기자]]. 어린 시절의 일은 --후속 시리즈가 [[흑역사]]가 되서-- [[기억상실]]이 되었다가 1편에서 각성하게 된다.
데미안의 친구. 데미안의 실력이나 인성을 매우 좋게 평가하고 있다. 데미안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고 평범하게 훈훈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악마숭배자 조직 아미티지 재단의 우두머리'''(…). 데미안 앞에서는 훈훈한 모습만 보이지만 뒤에서 앤 러틀리지와 데미안을 놓고 마찰을 빚거나, 협상을 하거나, 온갖 능구렁이 짓을 벌이고 있다.
1시즌 10화에서 자신에게 협조하길 거부하는 아마니 골카르를 쏴죽이고, 그 사실을 러틀리지에게 전해들은 데미안이 분노하여 검은 개들을 불러 물어죽인다.--허셸!--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4회 일치
~~사실 책 뒷표지의 개요는 너무 에로해서 차마 실을 수 없었다.~~
* 나가 : 주인공. 용신이 산다는 호수를 들여다보다 물에 빠진 뒤 이세계인 해리건 일족이 목욕중이던 [[온천]](...)에 떨어졌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으나 단편적인 기억은 이따금 떠오른다. 이 세계의 마녀들의 외모 때문에 지나치게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는 못미더운 모습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에 임해 냉철한 판단력과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주는 범상치 않은 인물. '나가'란 이름은 자신의 이름 중 일부밖에 기억나지 않아 쓰게 된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이것이 마녀들 사이에선 '전설의 용왕'의 이름이라 마녀들이 이것을 매우 흥미로워 한다. 2권에서 그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 정체는 [[오다 노부나가|짐작하다시피]]...[* 작가는 후기에서 한 동료작가가 "뒷이름만 비슷한 다른 인물은 아니겠죠?" 하고 물어본 것 때문에 이걸 써먹을까 했다가 '''실패하면 뒷감당이 안될, 작가 인생을 건 한방 개그'''가 될 것이라서 포기했다고 한다.]
* 라이바하 란티에스 : 검은 숲에 은둔중인 해리건 일족을 토벌하기 위해 편성된 카산드라 제국군의 일원. 노부나가의 책략으로 인해 원정군이 궤멸당하고 오히려 요새를 빼앗기는 참패를 겪은 뒤 후임 지휘관에 의해 최전방에 배치되었다가 우연한 기회로 마녀들에게 생포당했다. 마녀들이 이제껏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젊은 여자들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데다, 그녀들(특히 유우키)를 보고 과거 도적들에게 살해당한 딸이 생각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결국 노부나가의 부하가 된다.
- 로버트 켈리 . . . . 4회 일치
로버트 켈리 교수는 3월 14일 가족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 응해서 당시 상황을 밝혔다. 인터뷰를 하는 중 실수로 문을 잠궈놓지 않았는데, 딸이 유치원 생일 파티를 해서 무척 신이 나서 들어왔고, 아들까지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아내 김정아는 당시 휴대전화로 방송을 촬영하고 있다가 아이들이 방송에 출연한 것을 보고 놀라서 달려가서 제지했다고 한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그날 딸이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 무척 신이 났다. 아들까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들어온 것은) 전적으로 문을 잠그지 않은 내 책임"이라고 방송사고에 자신의 책임을 밝혔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수습을 해줬다"고 아내 김정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방송 사고 후) 다시는 출연 요청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했지만 아이들을 혼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심경에 대해서는 "영상을 보면 내가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놀랍고, 당황했고, 즐거웠으며 사랑스러웠다"고 밝혔다.[[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703150203 (참조)]] 또 하의실종 의혹(…)에 대해서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3월 14일 로버트 켈리 인터뷰에서 아내 김정아는 "내가 보모가 아닌 것은 사실"이라며 "사람들이 논란을 벌이지 말고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703150203 (참조)]]
- 류명선(야구선수) . . . . 4회 일치
계명대 재학 중인 1988 신인지명 때 삼성에 1차 지명을 받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인 [[세일통상 야구단]]에 입단해 1989년에 삼성에 입단했다.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다 결국 1995년 5월 [[김현욱(야구)|김현욱]]과 같이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다.(류명선+김현욱↔[[최한림]]+윤혁) 쌍방울에서도 재기에 실패해 1996년 은퇴했다.
- 마기/306화 . . . . 4회 일치
* 신드바드는 이 사실을 모르며 아르바는 의도적으로 은폐 중
* 아르바는 이제 그런걸 신경써 봐야 소용이 없다며, 결국 넌 복수밖에 모르는 유치한 어린애이며 그래서 복수에 실패했다고 조롱한다.
* 백룡은 아르바의 진의와 신드바드의 진실을 알기 위해 일부러 연극을 했던 것.
* 결국 백룡에게 놀아나 신드바드에게까지 숨기던 사실까지 까발리고 말았다.
- 마기/315화 . . . . 4회 일치
* 사실 홍옥은 알라딘의 행방을 알고 있었지만 감시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알리바바에게 전하지 못했다.
* 사실 백룡이 퇴위를 전후로 부자연스러운 사건이 많았는데 너무 정확하게 같은 시기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 홍옥은 이런 사실을 숨겼다며 사과하지만 알리바바는 진상을 홀로 짊어지고 황제국을 지탱해왔다며 굉장하다고 칭찬한다.
* 홍옥은 사실 오빠들을 쫓아가는 것에만 급급해 너무나 힘들었다. 스스로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 마기/321화 . . . . 4회 일치
* 아르바는 실패하면 죽는 의식을 진행하는데 신드바드가 너무 평온하고 심지어 웃을 수 있는 걸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
* 아르바는 의식의 성공 확률은 100분의 1도 안 된다며 실패하면 죽는다고 경고한다.
* 그는 무심코 "오늘 죽을 것 같진 않다"고 중얼거리는데,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깨우친다.
* 아르바는 그가 길에 잡아먹혔다고 생각해서 망연자실하다.
- 마누엘 고도이 . . . . 4회 일치
[[스페인]]의 정치가, 재상. 하급 귀족 출신으로 근위병이 되었다가,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고 그 뒷빽으로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무능하고 실정을 거듭하여 평가는 매우 나쁘다.
1767년,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평범한 하급 귀족이었으나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마누엘 고도이는 하급 귀족으로스는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의 청년이 스페인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이후에는 유럽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프랑스 제국에 접근하였고, 스페인 해외 식민지를 노리는 영국과 대립하게 된다. 1801년에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영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805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전멸하고 만다. 이로서 스페인은 18세기에 걸쳐서 건설한 함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중남미 교역 항로를 영국에게 빼앗겨서 제해권을 상실한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태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상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영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4회 일치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후하게 퍼주는 편이지만 (보통 주력으로 삼게되는 3성캐릭의 드랍률이 실버카드로 대략 5%, 골드카드로 25%정도이다. 4성은 골드카드 기준 약 3%) 카드를 한장만 얻어서는 제역할을 하기 힘들고, 최소 3장, 실질적으로는 10장이상 중복으로 얻어야 제대로된 활약을 할수 있다. 이 게임은 각 히어로 카드가 3개의 스킬카드로 드랍되며, 각각의 스킬카드를 중복으로 얻어 스킬레벨을 향상시켜야 스킬 위력도 상승하고 히어로의 레벨도 올릴수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한두명의 만렙 히어로를 구성하려면 상당히 많은 카드를 뜯어야하며, 이동안 온갖 잡스런 히어로를 얻게 되어 인벤이 폭발하게 된다.
일정 이상 3성/4성 캐릭을 보유하게 되면 의외로 이들을 추가로 얻는것 자체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특히 데드풀 일퀘로 확정적으로 특정 3성 카드를 얻을수 있게되었기도 하고.. 그러나 스킬레벨을 올리고 레벨 상한선을 올려도 실제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ISO라는 게임내 화폐가 필요한데, 3성 히어로를 만렙까지 올리는데에 히어로 한명당 대략 10만 가까운 ISO가 필요하다. 각종 일퀘나 이벤트를 수행하면 하루에 3천정도는 얻을수 있으나, 이러한 획득속도보다 보유 히어로의 ISO요구치가 더 빠르게 올라간다.. 따라서 ISO를 생기는대로 투입하기 보다는 어느정도 모아두고 있다가 이벤트시 버프를 받는 캐릭위주로 레벨을 올려주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소비이다.
* 게임내 이벤트는 크게 2가지가 있으며, 보상도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이벤트는 크게 PvP이벤트와 PvE이벤트로 나뉜다. PvP이벤트는 각자 구성한 팀으로 플레이어간 경쟁을 하는 이벤트이다. 허나 실시간으로 직접대결하는것이 아닌, 방어측은 컴퓨터가 운용하여 다소 공격측이 유리하게 되어있다. PvE 이벤트는 사용자가 보유한 캐릭터 레벨에 비례하여 적의 레벨이 올라가며, 전투를 하면서 짤막한 시나리오를 알게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 메탈멘 . . . . 4회 일치
젊은 천재 박사 '윌 매그너스'는 인간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의 구조 임무를 위한 로봇을 말들어달라는 미 국방부에 명령에 따라 '리스폰스미터'라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 그 인공지능을 각자 다른 액화된 금속 안에 담가 창조해낸 것이 바로 '메탈멘'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그런 로봇을 만드려는 목적은 구조 임무 뿐 아니라 적이 되는 대상을 암살하기 위해서였고, 그 사실을 안 메탈멘은 살인을 거부하며 도망간다.
매그너스 박사는 아파트로 돌아가나, 메탈멘은 사실 갈 곳이 없어 그 곳에 숨어있었다. 그 순간 케모가 매그너스의 집에 들이 닥치지만, 메탈멘이 자신들의 육체를 희생해 케모를 박살낸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인 리스폰스미터는 무사한 상태.
이후 [[포에버 이블]]이 일어나자, [[크라임 신디케이트]]를 막으려는 [[사이보그]]는 플래티넘이 그리드와 연결되지 않은 로봇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매그너스 박사를 찾아가나 매그너스 박사는 메탈멘은 실패작이고 자신은 사이보그를 도울 수 없다고 한다.[* 사실 매그너스 박사는 자기가 봤던 감정을 지닌 존재들 중 메탈멘이 가장 착한 존재들이였기에 또 위험하게 만들기 싫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설득 끝에 매그너스 박사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메탈멘을 다시 가동시킨다.
- 멸문지화 . . . . 4회 일치
실제 현실에서는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무협소설]]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역사물에서 비정상적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
그 외에 투르크계 국가들도 최후가 그리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계승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고, 오로지 능력있는 자만이 계승권을 가졌기 때문. 물론 패배하면 확실하게 죽는다(...)
- 미스터 판타스틱 . . . . 4회 일치
즉, 리드 리처즈라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이 이미 국가차원의 기술력을 압도한다. 리드 개인의 기술력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포털]]이나 다른우주를 관측하는 장비까지 만드는 수준으로 과학의 새로운 미래로 그들을 이끌어나갈 수준이라고 보면된다. 실재로 [[마블 유니버스/평행세계|멀티버스]] 중에는 리드에 의해 인류의 과학수준이 올라간 세계도있다.--그럼 이 인간보다 더 똑똑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는 [[발레리아 리처즈|딸]]은 대체..--
리드 리처즈는 '''브리지'''라는 기계도 만들었는데, 무한한 가능성들 가운데 특정 가능성이 실현된 [[마블 유니버스/평행세계|멀티버스]]의 다른 우주를 관측하는 '대체현실 뷰어'다.
훗날 정부의 원조로 우주선 발사가 가능해졌을 때 리드는 우주 비행사가 된 벤과 성인이 된 수, 그리고 수의 동생인 자니 스톰(휴먼 토치 II)와 함께 직접 우주선을 타고 시험비행에 나선다. 그러나 리드의 예상치 못한 실수로 네 사람은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고, [[지구]]에 돌아온 뒤 그들의 육체가 변화를 일으킨 것을 알게 된 네 명의 초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판타스틱 포'를 결성하게 된다.
- 민생위원 . . . . 4회 일치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도도부현지사의 추천을 받아 후생노동대신(후생노동성의 장관)에게 위촉되어 임명된다. 민생위원은 후생노동성의 기준에 따라서 교육 훈련을 받는다.
민생위원의 활동이 노인과 장애인, 생활보호자 등 주로 성인에 치우쳐 있다는 실정에 따라 1994년에 아동에 대하여 전담하는 주임아동위원(主任児童委員)을 두었으며 아동위원(민생위원) 가운데서 후생노동대신이 위촉하여 임명한다.
민생위원제도 이전에는 1917년에 오카야마 현에 제세고문(済世顧問), 도쿄에 구제위원(救済委員), 오사카에 방면위원(方面委員)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제도는 지역의 상인, 공장주, 의사, 스님 등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을 명예직 위원으로 위촉하여, 생활상담, 생활지도, 호적 정리, 구제품 급부 등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1936년에 방면위원제도로 전국에 통일되어 실시되었다.
- 바키도/135화 . . . . 4회 일치
* 실명으로 등장해버린 도널드 트럼프. 전임 미 대통령에게 오거 한마 유지로의 존재를 듣게 된다.
* 그러나 실제 유지로를 만나자 단 몇 초만에 태세전환해서 매우 성실한 태도로 조약을 채결한다.
* 트럼프는 전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몇 번이나 질문한다. "대국이 일개 개인에게 불가친 선언이라니". 사실 트럼프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비상식적이라 여길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 들은게 아니며 들은 그대로의 내용이라고 확인해준다.
- 바키도/138화 . . . . 4회 일치
*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에어참격" 방송이 나간지 얼마 뒤. 경시청엔 당시의 아나운서가 참고인으로 불려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그는 "베어졌다고 느꼈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그 뒤에 실신해서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는 "베인 뒤의 뒷일"은 어떻게 됐냐 질문에 조금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 강력범죄반의 두 형사는 이 영상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타쿠 켄이치는 "역시 무리"라고 고개를 젓고 반장인 히키키 에이이치로는 "쓰러진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다 제 3의 의견을 구한다.
* 검사 우오호리 마나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한다. "위죄"라는 것. 지금 그들의 목적은 죄를 만들어내서 구속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실제 행위가 온당하냐 아니냐, 위법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체포할 명분을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 박기혁 . . . . 4회 일치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상]]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상]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비고
|2008 ||0.291 ||113 ||351 ||47 ||102 ||13 ||1 ||1 ||120 ||36 ||16 ||7 ||40 ||2 ||47 ||6 ||18 ||실책1위(18개)/골든글러브
- 박상돈(정치인) . . . . 4회 일치
이후 [[유신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지방행정국 지방기획과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충청남도 [[아산시|아산]][[군수]], 대천시장, [[서산시]]장, 충청남[[도청(행정)|도청]] 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또 다른 천안시의 국회의원인 [[양승조]] 의원과 함께 국무총리실 관리관 출신의 [[구본영]]을 열린우리당으로 영입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현재 자신은 [[자유한국당]]에 있지만, 남은 두 사람은 각각 충남도지사 후보를 노리고 있고, [[천안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어쩌면 천안시를 민주당의 텃밭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육사2기수 절친후배인 [[구본영]] 현직시장과 대결하게 되었다. --[[구본영]]의 선거책자 뒷면에는 ''[[문재인]] [[양승조]] 구본영 VS [[홍준표]] [[이인제]] 박상돈' 이라고 적혀있다(...)--
선거기간 중에 재보궐 발생비용을 부담하라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한 양승조를 공격했다가, 그럼 8년 전 재보궐비용부터 물어내라는 반박에 데꿀멍했다.(...) 8년 전에는 역으로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했던 터라. 사실 이건 양승조를 공격하기보단 시장 경쟁자인 구본영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는데, 구본영이 비리혐의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 낙마할 경우 천안시장 재보궐을 치룬다!로 연결하려 했던 것.
- 박성배 . . . . 4회 일치
|청소년 클럽=[[숭실대학교]]
'''박성배'''(朴成培, [[1975년]] [[1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청주대성고등학교|청주상업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11 AFC 아시안컵]] 당시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98년]] [[11월 13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베이징 시|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 슈퍼리그|중국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는데<ref>{{뉴스 인용 |제목=한중친선축구|url=http://www.imaeil.com/sub_news/news_print.php?news_id=33673&yy=1998|출판사=매일신문 |date={{날짜한글화|1998-11-14}}}}</ref> 이 경기는 사실상 대표팀 간의 경기였지만 프로 선발 팀 명목으로 출전하였기 때문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골 골 골 '공한증' 중국 완파|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11400329120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1-14&officeId=00032&pageNo=20&printNo=16591&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 |date={{날짜한글화|1998-11-14}}}}</ref> 그 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였다.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뉴질랜드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보루토/1화 . . . . 4회 일치
* 자신의 속성이나 비전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고, 사실 닌자가 아니라도 쓸 수 있다.
* 그러자 "아버지는 당신 실력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충돌질을 하는데...
* 사라다는 쑥스러운지 호카게가 겸손하게 한 말일 거라고 하는데, 미즈키는 "내 부모님"도 그게 사실이라고 했다고 말한다.
* 사스케는 나루토를 찾아왔지만 집에 없어서 집무실로 향한다.
- 보루토/5화 . . . . 4회 일치
* 나루토에게 부정을 적발당한 보루토. 꾸중과 함께 실격처리 된다.
* 나루토는 심지어 "닌자실격"이란 말까지 하며 나중에 설교한다고 하는데 보루토는 "제대로 설교할 시간이나 있냐. 그리 해줬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 나루토는 이 과학닌구를 "금지라고 분명히 말했다"며, 보루토를 실격처리한다.
* 나루토는 직접 보루토의 서클렛을 압수하며 "닌자 실격"이란 뼈아픈 말을 한다.
- 보루토/6화 . . . . 4회 일치
* 우치하 사스케는 우즈마키 보루토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
* 병실에 있는걸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그러다 바닥에 놓인 구급상자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 시무룩해진 보루토는 어디론가 향하는데 그곳은 호카게 집무실
* 보루토는 빈 집무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불금 . . . . 4회 일치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불타지 않는다.
[[주5일제]]가 실행되는 직장에서 [[금요일]]은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노는 날이며, 그 다음 날도 [[일요일]]이라 금요일 저녁에 열심히 놀면 이틀간 회복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열렬하게 논다는 의미로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한다.
주5일제의 실행이 기원이 되었다.
주5일제 실행 이전에는 [[토요일]]이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4회 일치
* [[카호노]]는 [[노엘 실버]]를 부추기기 위해 더블데이트를 제안,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친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 난데없이 더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키아토]]는 멋대로 동생 [[카호노]]가 오빠를 위해 벌이는 이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복심은 따로 있었다. 척봐도 관계 진전이 미적지겋나 [[노엘 실버]]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를 자극하기 위한 이벤트다. 의도대로 노엘은 카호노가 아스타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스타는 더블 데이트가 뭔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 노엘은 아이를 달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려고 하지만 너무 심하게 울어서 곤란해한다. 아스타는 게임경품으로 탄 공놀이 세트로 간단한 곡예를 펼쳐서 아이의 관심을 돌린다. 카호노와 키아토는 춤과 노래를 더하고 노엘은 여기에 물마법으로 무대효과를 연출해서 그럴 듯한 공연으로 만든다. 덕분에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투덜거리기만 하던 시민들도 공연을 보며 환호한다. 노엘은 드디어 아이에게 물어서 "에마"라는 이름을 확인한다. 카호노는 그 이름을 노래마법에 실어서 축제현장 전체에 울려퍼지게 한다.
어머니는 노엘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는데, 그녀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보고 왕족 "실버가문"의 일원임을 알아본다. 왕족을 귀찮게 했다고 생각했는디 어머니는 크게 당황한다. 주변에서 보고만 있던 시민들도 수군거리며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는게 아닐지 걱정한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4회 일치
* 자줏빛 범고래의 부단장은 인격자로 평판이 좋은 인물. 사람들은 그 소문과 다른 실물을 마주하자 정말로 그가 잭스가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래도 잭스는 국경지대에 틀어박혀서 왕도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인물. 당연히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마법제는 진상을 간파한 것 같지만 무슨 생각인지 입을 다문다.
이어서 발표된 팀 별로 인원이 나눠진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가 P팀으로 묶였다. 헌데 피차 첫인상이 좋지 않은 입장이다. 유노는 노엘을 "아스타를 따라다니는 촐랑대는 여자"로 생각하고, 노엘은 유노를 "아스타의 소꿉친구라는 점잔떠는 인간" 정도로 치부한다. 이외에 "엔 린가드"라는 인물이 한 팀.
O팀은 [[알렉드라 산드라]], [[솔리드 실버]], "데미트리 브린트"의 조합. 일단 솔리드와 알렉드라가 서로 경멸하는 관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하다.
* 아스타의 B팀과 A팀의 대결. A팀은 오만불손하고 마법제를 모욕했던 잭스에게 이를 갈고 있다. 그 분노로 일치단결한 A팀과 달리 B팀은 시작부터 개판. 우선 아스타가 텐션을 높이고 있으려나 어김없이 잭스가 빈정거리며 실제 승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부터 찾으라고 정론으로 공격한다. 팩트폭력에 부들거리는 아스타. 미모사는 콩깍지 모드라 부들거리는 꼬락서니에도 헤롱거린다. 그래도 일단 이 중에선 제일 자기 할 일을 찾아한다. 그녀는 곧 자군의 전력을 파악하자며 각자의 능력을 확인한다. 미모사는 회복, 서포트, 원호 등이 가능한 식물마법사. 아스타는 반마법을 사용하는 근거리 검사다. 잭스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그녀가 잭스에게 어떤 마법을 사용하냐고 묻는데 공교롭게도 그 대답을 들을 기회를 놓친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4회 일치
* A팀은 불성실한 잭스의 태도를 보고 더더욱 응징할 것을 결의, 보다 거세게 공격한다.
* 이미 [[마법제]] 율리우스를 우롱한 걸로 불경죄 혐의가 짙던 잭스였다. "홍련의 사자왕" 단 사등 중급 마법기사 [[포르티 그리스]]는 화살에 화염 마법 "버스트 쟈벨린"을 부여하며 분개했다. 무례한 데다 불성실. 딱 홍련의 사자왕 단원들이 싫어할 만한 유형이다.
* 이같은 임기응변은 갤러리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전술적인 조예가 없어서인지 별 생각없이 아스타가 첫시합에서 지지나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 [[노엘 실버]]는 미모사와 아스타의 호흡이 잘 들어맞자 신경쓴다. 이 팀에서 순수하게 B팀의 선전을 응원하는건 [[클라우스 류넷]] 뿐이다.
* 미모사는 일단 아스타를 불러들이려 하나 적의 함정에 빠진다. 아스타의 발 밑에서 마법진이 발동, 폭발을 일으켜 아스타를 마비시킨다. 이런 변수까지는 미처 예측하지 못햇던 미모사는 새삼 로열 나이츠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 싸움인지 실감한다.
- 블랙 클로버/121화 . . . . 4회 일치
* 전장에 남아있는 지도 몰랐던 [[엔 링가드]]는 균마법으로 버섯을 조종하는 묘한 마도사. 그러나 의외의 수완을 발휘하며 [[노엘 실버]]의 진로를 돕는다.
* 노엘은 적진의 크리스탈에 도달하는데 성공하나 그 앞은 오빠 [[솔리드 실버]]가 막고 있는 상황. 링가드는 마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해 노엘을 격려한다.
* 유노의 서포트로 적의 크리스탈을 파괴하러 가는 [[노엘 실버]]. 그러나 악연 중의 악연, 오빠인 [[솔리드 실버]]가 그녀를 추격하고 있었다. 해룡의 둥지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솔리드가 끈질기게 따라오며 공격마법을 가했다. 아주 즐겁다는 듯이 "방어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는 설교까지 늘어놓았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4회 일치
저 시시한 여자가 나를 형보다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랜길스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때까지 경쟁 상대 조차 못 된다고 생각했던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이 확실히 짓밟아야할 상대로 재인식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핀랄이 끝내 가문을 등지고 나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핀랄이 속한 E팀은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세 명이 밀집해 있었다. G팀은 1회전에서 써먹은 전법을 다시 들고 나왔다. 랜길스가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 탈것에 타고 맹렬한 속도로 접근 중. [[레오폴드 버밀리온]]이 전방에서 나타난 적을 확인했다. 레오폴드는 1회전에서 보여준 랜길스의 공격형 공격마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대처를 핀랄에게 일임했다. 작전이 있었다. 랜길스는 1회전에서 했듯 크리스탈이 적당한 거리에 들어오자 공간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핀랄이 작전의 1단계를 실행했다. 랜길스가 던진 공간마법이 핀랄이 펼친 공간마법과 부딪혀 사라졌다. 한 방에 게임을 끝내겠다 자신했던 랜길스가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방금 전 상황은 속임수도 요행도 아니었다. 핀랄은 고브를 통해서 "공간마법과 공간마법이 부딪히면 소멸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핀랄이 있는 한, 멀리서 공간마법으로 쉽게 이기는 일은 없다.
* 시합장에서 사라진 셋케는 지옥보다 조금 못한 곳에 떨어졌다. 검은 폭우의 아지트. 구체적으로는 그곳의 남자화장실. 단장 [[야미 스케히로]]가 이용 중인 화장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받은 야미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4회 일치
* 비장의 기술을 꺼낸 [[랜길스 보드]]. 공교롭게도 형 [[핀랄 룰러케이트]]이 구사하는 구체형태의 공간마법과 유사한 형태였다. 하지만 한 번에 만들어내는 구체의 숫자가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 흉흉한 기운을 드러내며 공격을 태세를 취한다. 그런데 핀랄 또한 그 기술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랄도 사실 구체의 공간마법을 다수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핀랄은 "어머니는 다르지만 역시 우리는 형제"라며 이대로 두면 랜길스가 랜길스가 아닌 무언가가 될지 모른다며 승부에 나선다.
*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랜길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핀랄이 사라져야 한다며 의식도 차리지 못하는 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가 저지하고 나선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어느 새 날아와 랜길스의 목을 겨눴다. 비록 대회장에 난입하진 않았지만 [[챠미 퍼밋슨]]도 그리모어를 펼쳐들고 요격할 태세였으며 [[노엘 실버]]는 제일 먼저 핀랄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 아스타, 매그너, 락은 더이상 손을 대면 시합이고 뭐고 날려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나 랜길스는 "검은 폭우가 금색의 여명 부단장에게 무슨 소리냐"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때 마법제 율리우스까지 개입하면서 랜길스도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마법제는 동료에게 실력을 숨기는 사람을 신용할 수 없긴 하지만, 동료를 죽이려 드는 녀석은 신용 이전의 문제라고 비난했다.
>실전에서 "중지"도 "시작"도 말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 블랙 클로버/56화 . . . . 4회 일치
* 사실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거 외에도 국보급 마도구를 빼돌리고 위험한 마법약을 밀수, 단원을 학대하는 등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 [[마법제]]는 마법기사단 단장이 배신한건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며, 국민의 불안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공표는 하지 않을 테지만 다른 배신자가 없도록 단원들을 확실하게 단속해 달라고 지시한다.
* 푸에고레온을 공격한 것도 이 힘을 얻기 위해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백야의 마안은 남은 세 개의 마석을 노리고 또 음모를 꾸밀 것이다.
* 레베카는 [[노엘 실버]]와 아스타가 티격대는걸 보고 함께 싸워줄 수 없는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첫키스는 받아겠다며 난데없이 아스타에게 키스한다.
- 블랙 클로버/80화 . . . . 4회 일치
* 야미의 막돼먹은 설명과는 달리 실력이 있는 사람. 잘려나간 팔도 붙여본 베테랑이다.
* 야미하고는 친구처럼 대하고 있는데 사실 야미보다 이쪽이 연상. 야미의 막돼먹은 부분 덕에 친구가 된거 같다.
* 핀랄 룰러케이트는 포로 처리를 하고 막 키텐에서 오는 참인데, 일행이 있을 줄 알고 회복실로 바로 온다.
* 노엘 실버는 아스타가 팔을 못 쓰니 먹여주겠다고 용기를 내서 말해보는데 아스타는 눈치없이 발로 먹으면 된다며 정말로 발로 고기를 먹는다.
- 블랙 클로버/97화 . . . . 4회 일치
>뭐든 좋아. 내가 현세에 실체를 지닐 찬스인 것은 변함 없으니...
* [[라드로스]]는 기이한 형태로 다시 일어난 아스타를 보고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노엘 실버]]는 지금 아스타가 휘감고 있는게 "마력이 아닌" 무언가라고 느낀다. 마녀의 여왕은 여전히 수정구슬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의 각성을 매우 흥미롭게 여긴다.
* 여왕은 사실 그가 "녀석"의 혈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게 아니었다. 아스타는 "돌연변이". 몸에 마나가 깃들지 않은 "단순한 결함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마의 검을 쥐고 그 힘을 끌어내는게 가능했다.
* 경악하는 라드로스. 여왕은 이미 이 상태의 아스타에겐 어떠한 마법도 소용없다고 단언한다. 라드로스는 무적이 된 자신의 마법이 질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힘을 퍼부울 수록 아스타는 그 힘을 가르며 다가온다.
- 블리치/678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우라하라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해서 데려왔을 뿐, 실제로 어떨지는 몰랐다.
* 뱌쿠야와 토시로는 "신장차"를 가지고 옥신각신 실 없는 소릴 주고 받는다.
* 우라하라는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준비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세계관에서 그런 준비를 하는건 우라하라 뿐이다.--성실한게 얘 하나냐--
- 선거인단 . . . . 4회 일치
[[간접선거]] 제도에서 최종 선거를 실행하는 집단.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제도가 유명하다.
선거인단 제도는 과거 미국의 영토가 매우 넓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안된 제도이다. 대통령은 각 주가 아닌 '연방'의 대표라는 측면도 반영하고 있다.
현대에는 선거인단 제도로 인하여 실제 투표수와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 이러한 측면에서 논란이 있다. 실제 투표수는 더 많이 받은 후보가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밀려서 패배하는 사례가 21세기에 몇 차례 나타나고 있으며,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직접 투표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선거인단 제도의 개혁론이 제기되고 있다.
- 성격 . . . . 4회 일치
각 개인이 지닌 특유한 성질이나 품성. 현실에서건 가상에서건 '그 인물(경우에 따라서는 생물)'을 규정짓기 때문에 각 인물(생물)이 반드시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해당 없다 카더라.~~ 개성(Character)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사회적 영향이나 입장 등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변형되는 것과 달리 개성은 선천적인 것이라서 그러한 경우가 거의 없다([[http://wp.chch.kr/marry1219/?p=4637|참고]]).
=== 현실 ===
~~사실 이 문서를 생성한 진짜 이유라 카더라.~~
사실 성격의 분류라는 것은 심리학적인 측면이 크지만 인간에 대한 탐구란 끝이 없기 때문에 쉽게 정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편의상 간단히 다루기로 한다.
- 세이와 겐지 . . . . 4회 일치
츠네모토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과 관련이 있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이런 놈이 조상이다.-- 그러나 다행히 곧 마사카도가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허위 밀고가 현실이 되어 풀려나게 된다.
- 송언석 . . . . 4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기획재정부 제2차관[br]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br]자유한국당 경상북도 김천시 당협위원장[br]국민대학교 특임교수[br]제29회 행정고시합격 ||
제29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박근혜 정부]] 때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실 실장, 제2[[차관]]을 지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4회 일치
알렉스는 카라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윈에게 DEO 메인프레임을 해킹해서 아버지에 대한걸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윈은 위험한 일이라 거절하려 하지만, 결국 승락하게 된다.
그랜트 사장은 어머니가 자신과의 저녁 약속을 빼먹고, 작가들과의 담화에 나서서 실망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또 카라에게 쏟아진다.--[[내리갈굼]]-- 카라와 윈, 제임스와 루시는 노는 밤을 보내게 된다. 슈퍼걸 이야기가 나오자 루시는 자신이 직접 봤는데 별로 였다고 말하고, 카라는 거기에도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레인 장군은 레드 토네이도에게 군대를 출동시킬 것을 예고하고, 레드 토네이도를 개발하던 모로 박사에게 레드 토네이도는 실패작이라고 비난하며 해고를 선언한다.
윈은 카라와 알렉스에게 자신이 조사한 것을 알려준다.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남미로 어떤 외계인을 잡으러 갔었고, 거기서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실종되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4회 일치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와 대화를 한다. 레인 장군은 아스트라에게 크립토나이트 자백제를 주사하여 기지의 위치를 알아내려 하다. 카라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막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슈퍼걸이 그랜트의 사무실에 나타나고, 곧바로 카라도 함께 나타나고, 슈퍼걸과 카라가 함께 있는걸 본 그랜트는 카라가 슈퍼걸이란 추측을 부정하게 된다. 사실 이 슈퍼걸은 변신능력을 사용한 행크였으며, 카라는 행크에게 고맙다고 한다.
한편, 맥스웰 로드는 연구실에서 신원불명의 소녀를 바라보는데.
- 스틸오션/사령관 . . . . 4회 일치
* 교활함(Cunning) - 함포 사격시 55%의 확률로 위장 손실을 15% 감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장교. [[USS 뷰캐넌|폭발물을 실은 구축함]]으로 생나제르의 항구 시설을 들이받아 파괴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 교활함(Cunning) - 함포 사격시 55%의 확률로 위장 손실을 15% 감소.
* 교활함(Cunning) - 함포 사격시 55%의 확률로 위장 손실을 15% 감소.
- 식극의 소마/167화 . . . . 4회 일치
* 츠카사는 사실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등떠밀려서 연단에 오른다.
* 아자미는 이름난 미식가와 요식업 관계자들을 초빙해서 토오츠키 학원 중등부 학생들의 실력을 과시한다.
* 한편 기숙사에서는 이미 퇴학을 기정사실로 해놓고 음침한 분위기.
* 사실 아자미 정권이 내놓은 커리큘럼 자체는 극히 상식적. 하지만 일본정복을 꿈꾸는 세력치고는 이상하게 온건하다.
- 식극의 소마/186화 . . . . 4회 일치
* 베르타와 실라는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태격하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금방 친해져서 노닥거리는데, 막상 대결이 시작되자 대결의 긴장감에 끌려가 조용히 관전 중.
* 베르타와 실라는 하야마가 쓰는 향신료에서 "노송나무 향기"를 포착하는데 쿠가는 그걸 "주니에브르"라고 말한다.
* 하야마가 만든 그레이비 소스는 통사오가는 다른 복잡하고 입체적인 향을 자랑하는데 베르타와 실라는 여기에 매료된다.
* 하야마의 요리에 사로잡혀 있던 베르타와 실라가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이고 현장에 있던 모든 관계자가 주시한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4회 일치
* 죠이치로는 그 자리에서 바로 특훈에 들어간다고 선언한다. 그는 타쿠미에게 "기개는 좋지만 적의 실력은 진짜"라며, 이대로는 완패 당할 거라고 평가한다. 그러니 현 십걸을 쓰러뜨리기 위한 수행을 내일부터 개시한다.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식극 소식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반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상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 타쿠미와 타도코로는 대체 그들의 학생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한다. 이미 그들을 말려들게 한 탓인지 도지마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사진은 3학년일 때의 자신과 죠이치로, 그리고 1학년이던 아자미가 찍혀 있다. 도지마는 이 사진을 보이며 "우리 세대의 주역은 죠이치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대의 십걸 1석은 도지마. 타쿠미는 그 점을 들어 도지마야 말로 그 세대의 정점이 아니었냐고 묻는다. 그런데 도지마가 놀라운 사실을 공개한다.
- 식극의 소마/199화 . . . . 4회 일치
* 아자미의 대두와 토오츠키의 위기는 도지마 긴이 사전에 감지한 바였다. 그는 죠이치로에게 이런 사실을 상담했으며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죠이치로임에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그런 야망이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다고 보고 만약 아자미가 내세운 명분의 발단인 죠이치로가 자신을 걸고 식극을 청하면 반드시 넘어올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이러한 합의에 대해서 각각 털어놓고 있다. 죠이치로는 아들 [[유키히라 소마]]에게 상관도 없는 그들 세대의 승부를 이용하게 된 점을 사과한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문득 소마를 쳐다보니, 코방울까지 달고 신나게 졸고 있다. 물론 아들에게 "적당히 흘려들어라"곤 했지만 너무 흘려들어 버렸다. 그래도 핵심은 전달됐다. 소마는 자기 아버지가 아자미에게 지독한 짓을 한게 원인이지 않나 우려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마는 그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 같은 시각, [[나키리 에리나]]는 자기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조부 [[나키리 센자에몬]]이 방문하는데 손녀를 걱정한 듯 하다. 그 걱정대로 에리나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아니, 확실히 두려움에 경직돼 있다.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고 식은땀을 흘릴 지경이다. 센자에몬은 손녀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몰려온다. 죠이치로는 훈련에 대한 공지사항이 있다며 가볍게 말하는데 도지마는 "그렇게 가볍게 할 말이 아니다"라며 버럭한다. 학생 때랑 달라진게 없는 모습이다. 에리나는 이들이 왜 티격태격하는지, 자신이 혼자 있는 사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실 같이 있던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애들처럼 구는 어른들 모습에 기가 질려하고 있다. 소마만 낄낄거리며 즐기고 있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4회 일치
* 연대식극의 진행되면서 바깥의 날씨도 더 춥고 가혹하게 변했다. 실내에 있던 반역자들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차가워졌다.
설명해놓고 보면 간단하지만,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발상이다. 반역자팀은 환호하고 센트럴측 학생들은 풀이 죽는다. 십걸이지만 [[코바야시 린도]]는 소마의 선전에 솔직하게 감탄한다.
사실 그는 특훈 기간 동안 소마를 방문했었다. 소마가 착안한 "정식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조언을 해줬다. 잇시키가 보기에 그건 현 십걸에게도 없는, 매일매일 손님을 상대해본 소마만이 가지는 특기였다. 그런 점에서 [[사이바 죠이치로]]가 좋은 조언을 했다고 말한다. 잇시키는 여기에 "십걸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기분야가 있다"고 귀띔해주며 거기에 대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권한다. 설사 적의 특기가 나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게 말이다. 이때 처음으로 네네의 특기가 소바라는 걸 알려주는데, 그때만 해도 설마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 적의 특기에 딱 걸릴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 소마가 내놓은 스파이스는 한 종류가 아니었고 생강이나 산초가 들어간 것도 있어서 양념을 여러가지로 바꿔가며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잇시키는 동료들과 맛을 바꿔가고 실험해보면서 먹는 걸로 "유대"가 생겨나고 이것이 어린시절 축제에서 친구들과 야키소바를 나눠먹는 추억을 자극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리액션도 동료들과 여름 축제를 즐긴 추억과 비슷한, 그런 소마의 향기.
- 식극의 소마/223화 . . . . 4회 일치
* 사실 미마사카는 [[사이토 소메이]]가 아니라 쿠가를 퍼펙트 트레이스해 어떤 식재료를 준비해준 것이었다.
* 하지만 녹차에 조예가 부족한 후배들은 "그렇다고 찻잎을 여러가지 섞어도 괜찮은가?"라며 츠카사의 조리법에 의문을 표한다. 저래서는 마구잡이로 섞어서 서로 향을 죽일 것 같다는 소감이었다. 하지만 소마는 츠카사가 "대화쪽은 확실"한 것 같다며 과연 1석이라 감탄한다.
츠카사는 매우 섬세하고 능숙하게 네 가지 차의 향을 끌어냈다. 우선 엽차는 뜨거운 물에 30초 간 담궈 떪은 맛 성분 카테킨을 끌어냈다. 옥로는 60도 물로 2분. 저온에서 맛을 확실하게 뽑아내는게 포인트. 현미차는 떪은 맛 등 녹차의 특성이 적고 95도에서 30초 간 담그는게 가장 향이 잘 난다. 오래 찐 엽차는 성분이 잘 우러나서 80도 물에서 단기간에 맛을 뽑아낸다.
* [[타도코로 메구미]]를 비롯한 후배들은 단지 찻잎을 우리는 작업 만으로도 츠카사의 실력을 절감했다. 이 완벽한 어떻게 대항하는게 좋을까?
- 식극의 소마/224화 . . . . 4회 일치
* 이렇게 해서 [[츠카사 에이시]]는 실질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적과 싸우는 셈. 쿠가는 이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츠카사를 떨구겠다 선언한다.
* 소마는 허둥대는 반역자 동료들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미마사카의 얼굴을 보라면서 "뭔가 저지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마사카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도 대단히 여유로운 웃음을 띄고 있다.
* 그리고 굳이 말하면, 이게 쿠가의 목적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도 없다. 뭐니뭐니해도 그의 목적은 츠카사 에이시를 타도하는 것이니까. 사실 그것도 너무 얌전한 표현이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쿠가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4회 일치
* 소마 등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놀지만 [[잇시키 사토시]]는 그게 사실 "완전히 얕보는 상대"에게 하는 태도인 걸 알기 때문에 긴장한다.
그 자리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잇시키는 그 별명 붙이기 놀이가 달갑지 않았다. 사실 오싹했다. 그는 이 별명 놀이의 또 하나의 원칙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식극의 소마/232화 . . . . 4회 일치
* 한편 장외의 반역자들은 [[유키히라 소마]]가 맡은 "버터요리"에 대해서 우려하는데 [[나키리 에리나]]는 특훈 기간 중에 전문가급 지식을 쌓았을 테니 안심이라 하지만, 사실 같이 특훈을 들은 동료들은 수업 중 잠이나 자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사이토와 비슷한 타이밍에 버터를 팬에 녹이기 시작해서 본격적인 승부로 돌입한 듯 보였지만 실제론 설명하지 않고 따로 끓이고 있는 냄비가 있어서 여전히 모든 수를 다 쓴건 아니다. 조림 뚜껑으로 덮어서 뭔가를 삶는 듯 한데, 사이토는 그걸 간파하고 그거야 말로 소마의 승부수임을 직감한다.
시합이 이루어지는 동안 일절 관여도 관전도 하지 않고 있다. 근처 여관에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자미가 방문한다. 아자미가 떠보는 말에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어서 관전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하는데 아자미가 그걸 비웃으며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반역자들의 주축인 토오츠키 92기생들이 사실 센자에몬이 직접 모은 "옥의 세대"라는 것을.
- 식극의 소마/234화 . . . . 4회 일치
* 반역자진영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에이잔의 상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식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 에이잔이 그렇게 장담한 이유는 자신의 크림소스 때문이다. 에이잔은 모든 공정을 끝낸 뒤, 방금 전 시점에 한 가지 재료를 추가했다. 아티초크. 특별할건 없는 재료다. 여기에 에이잔이 설명을 더한다. 그가 노린 것은 아티초크에 들어있는 "시나린". 쓴맛을 내는 성분인데 사람의 미각을 저하해 맛을 착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티초크를 먹은 뒤에 다른 음식을 먹으면 정상보다 훨씬 달게 느껴진다. 관중들 중에선 정말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키리 아리스]]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단언한다. 실제로 아티초크를 디저트 전에 내서 디저트의 단맛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많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다.
- 신동주(야구) . . . . 4회 일치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4년부터 정식 코치가 되어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결정됐는데, 실제로는 1군 선수단과 동행 중이다. 2015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김한수]]와 같이 타격코치를 맡게 됐다.
- 신성왕후 . . . . 4회 일치
935년 11월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고려 태조는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왕건은 “지금 왕이 나라를 과인(寡人)에게 주니 그 선물이 크도다. 바라건대 신라의 종실(宗室)과 결혼하여 생구(甥舅)의 친밀함이 오래 가고자 하노라.”라고 하여, 고려의 사신은 경순왕에게 태조가 신라 종실과의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순왕은 “우리 백부(伯父) 김억렴(金億廉)에게 딸이 있어 덕(德)과 용모가 쌍미(雙美)한지라 이가 아니면 내정(內政)을 구비(具備)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냈다.
* 조부 : 신라 추존 의흥대왕 김실홍(懿興大王 金實虹)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4회 일치
주인공. 붉은 머리. 신비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동생 아푸루와 공명하고 있어 아푸루가 고통을 겪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붉은 모래 폭풍의 날에 태어난 아이가 태양왕이 되어 사람들의 구세주가 된다'는 전설의 인물로서, 저항군들에게 태양왕으로 불린다.
--만악의 근원-- 오래전 멸망한 행성 뮤라토의 자손. 사실 기계군단을 만들어낸 근원으로서, 기계들을 조종하는 마더 머신을 만들어 "인간을 행복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마더 머신은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을 모두 기계로 개조하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정신만을 행복한 가상세계에서 살도록 만들게 된다. 이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 파괴하도록 되어 있어 지금까지 몇개의 문명을 멸망시켜 왔다.
* 운명의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가 [[사막]]으로 도피하는 묘사 등은 [[듄]]의 영향이 느껴진다.
- 안석환 . . . . 4회 일치
* 2004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타블로이드 朴 / Episode 1 / J양의 진실》
* 1995년 《[[총잡이 (영화)|총잡이]]》 ... 희영의 실장 역
* 1998년 《[[실락원 (1998년 영화)|실락원]]》 ... 은교의 남편 역
- 안영준 . . . . 4회 일치
삼광초-용산중-경복고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저학년 시절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3학년 시절에는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하였으며, 4학년 시절에는 주장인 [[허훈]]과 팀의 챔피언결정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허재]]감독의 아들이자 [[허웅]]의 동생인 주장 [[허훈]]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선수이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원주 DB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신인답지않은 레이업을 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차전 4쿼터 막바지, 버튼의 팔꿈치에 얼굴이 접촉된 후 몸이 뒤로 넘어진 것이 플라핑이라고 지적받으며 성숙하지 못한 플레이라고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슬로우로 봤을 때 버튼의 팔꿈치가 명백하게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의 강도가 약했음 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과했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정규리그 동안 안영준이 이러한 플레이를 한 적은 없었고, 플라핑은 본래 근절되어야하는 플레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1년 선배인 최준용에 비해 돌파라는 '확실한 득점 루트'가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운동능력을 이용해 미리 떠서 상대의 블락을 피하는 경우가 많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볼 핸들링이 나쁘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외곽에서 헤지테이션에 이은 크로스 오버 돌파를 자주 시도하는 편이다. 데뷔시즌 4강 플레이오프 때부터 챔피언결정전 6차전까지 내내 터졌던 3점슛은 SK 나이츠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 앙주 제국 . . . . 4회 일치
앙주 제국은 잉글랜드 왕령과 프랑스 내의 여러 공작령, 백작령이 상속과 혼인을 통하여 [[동군연합]]을 이룬 것으로서, 각 지역의 통치체계는 상당히 달랐고 한 명의 군주 아래 동군연합일 뿐, 실제로 하나의 '제국'이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고 '제국'이기는 커녕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앙주 제국은 한 명의 군주 아래에서 통치되었으나, 각 영토의 정치나 행정은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 양상은 지방에 따라서 여러모로 다르게 나타났다. 군주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높고 대표적인 지위는 '잉글랜드 왕'이었지만, 실제로 왕실에는 문화적으로 영국화된 측면은 거의 없어 여러모로 '잉글랜드 왕'이라기 보다는 '프랑스 귀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앙주 제국의 군주들은 왕실 용어로서 [[프랑스어]]를 썻으며, 통치시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프랑스]]에 주로 머물렀고, [[영국]]을 방문한 기간은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 오병희 . . . . 4회 일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강남센터 원장,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료부원장 등 병원 경영과 관련된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포커스] 신임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박수 받는 이유|URL = http://jhealthmedia.join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86|출판사 = 중앙일보|날짜 = 2013-06-10}}</ref>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교수
*1998년 ~ 2002년 :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 실장
- 오보카타 하루코 . . . . 4회 일치
실험실에서 [[앞치마]]를 입고 연구를 하는 등. 이색적인 모습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언론은 오보카타의 동정에 대해서 상세한 보도를 쏟아냈고, 「이과계여자(理系女子)」=「리케죠(リケジョ)」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2014년 발표한 STAP 세포 논문은 조작이 드러나, 와세다 대학에서 학위 취소 처분을 받았으며, STAP 세포 재현을 위한 검증 실험에서도 실패. 2014년 12월 이화학연구소에서 퇴직한다.
- 왝더독/줄거리 . . . . 4회 일치
하지만 전쟁 발발(뻥) 3일 만에 미국과 알바니아가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뉴스가 올라온다. 속아 넘어간 줄 알았던 CIA가 뒤에서 손을 쓴 것. 이후 사실을 추궁하는 여론이 일자 일행은 망연자실하지만 모스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른 계획을 짠다. 알바니아에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가 있다고 꾸며내는 것. 이들은 펜타곤에서 윌리엄 슈만 상사(우디 해럴슨)를 제공받아 슈만 상사를 전쟁 영웅으로 포장한다.
어찌어찌 귀환식장에 도착한 일행. 슈만의 영결식을 진행하는 동안 브린과 모스는 TV를 본다. TV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라갔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며 그 공을 홍보 영상에게 돌린다. 모스는 자신의 업적을 병신같은 홍보 영상 따위에 빼앗긴 것에 분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브린과 말싸움을 하다 자리를 떠난다. 이후 요원들이 모스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대통령이 반딧불 소녀단 단원을 성희롱한게 사실인지의 여부는 영화 끝날 때 까지 안 나온다.
- 용융금속형 . . . . 4회 일치
고대에 매우 드물게 실행되었다.
사인은 의학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녹인 금속의 온도 때문에 부은 부위에 중화상을 입게 되고, 목구멍에 부으면 금속의 연기로 호흡기가 파괴되거나, [[금속]]이 굳어지면서 기도를 막게 되어 [[끔살]] 당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매우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금속은 희귀한 자원이므로 일상적으로 이러한 형벌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매우 특수한 형벌로서, 대개 고위급 전쟁포로에게 상대방의 (과도한) '[[욕심]]'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이런 형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카즈]]를 화산에 빠뜨려서 죽이려고 했으나, 궁극생물의 능력으로 벗어나면서 실패.
- 원더우먼 . . . . 4회 일치
완벼한 인물. 아마존이 보통 사람은 상대도 안되는 괴력을 지닌데다 원더우먼은 이들 중에서도 엄청난 강자다. 어쩌면 슈퍼맨보다 강력할 수도 있으며 슈퍼맨과 달리 약점도 없다. 전투실력도 달인.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이템을 장비. 유명한 진실의 올가미는 접촉한 자가 진실만 말하게 만들며 슈퍼맨도 끊지 못할 정도로 튼튼한 무기다. 외모까지 완벽해서 남자 동료들에게 사랑받는다. 정말 완벽한 인물.
진실의 올가미 외에도 특징적인 장비는 손목의 팔찌. 이 팔찌를 이용해 총알을 튕겨내는 묘사가 나온다. 이외에 투명 제트기도 보유. 매체에 따라서는 검을 쓴다.
- 원피스/856화 . . . . 4회 일치
쵸파는 그 장소 보다는 둘이 싸웠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린다. [[징베]]는 상디가 빈스모크 일가로서 온 이상 매우 복잡한 처리에 놓였을 것이고 간단히 돌아갈 수는 없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지만 상디를 정말 데려갈 거라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징베는 이미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두가 모인 다음에 밝힐 생각이었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냥 말한다. 사실 그는 [[페콤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음모"에 휘말려 바다에 떨어져 상어밥이 될 처지였던 걸 징베가 구해준 것. 페콤즈는 빅맘의 다과회가 실제로는 상디를 포함한 빈스모크 일가의 학살극이라는 걸 전한다.
* 방 안의 호미즈들은 물론 방 밖에서 "경비"라는 핑계로 감시하고 있는 체스병들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부들에게 보고한다. 이들이 완전히 방심한 채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미 [[빈스모크 레이쥬]]가 있는 의무실에도 병력을 배치해놨다. 이런 사정은 꿈에도 모른 채 빈스모크 일가는 잠에 든다. 표면적으로는 아주 평온한 밤. 진실을 알고 있는 레이쥬는 생각에 잠겨 뜬눈으로 잠을 지샌다.
- 원피스/857화 . . . . 4회 일치
* 루피가 동의하자 징베는 사실 이미 얘기를 진행해 놨다고 밝힌다.
루피는 질색하는 것 같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해 "그도 그렇다"며 징베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징베는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는데, 사실 사전에 나머지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일행은 4대2로 이 동맹에 반대했다. 상디 조차도 제정신이냐고 반발, 징베와 나미, 루피를 제외한 일행은 이 해적동맹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실 징베는 이미 자리까지 주선해 놨는데 루피는 당장 만나겠다고 나선다. 징베는 정 싫다면 거절해도 좋다며 일을 진행시킨다.
부하들은 정말로 밀집모자 측이 동맹에 응할지 반신반의하지만 벳지는 징베를 신용해서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밀집모자측과 마찬가지로 빅맘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또다른 적을 만들기도 꺼려진다. 다만 정말로 이 동맹이 성사될지 어떨지는 지금부터 루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고,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없애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 원피스/858화 . . . . 4회 일치
* [[페콤즈]]는 태양 해적단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사실 [[징베]]의 지시를 받고 그가 빅맘 [[샬롯 링링]]에게 전말을 보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동쪽 하구에선 태양 해적단이 주둔하고 있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페콤즈]]를 돌보고 있는데, 사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징베]]는 그를 구하긴 했지만 그가 [[카포네 갱 벳지]]의 배신을 빅맘 [[샬롯 링링]]에게 보고하게 두지 않았다. 태양 해적단은 그를 치료한다는 구실로 성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시폰은 벳지가 빅맘을 암살할 거라고 말했을 때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게 사실이라며 씁쓸하게 말한다.
- 원피스/875화 . . . . 4회 일치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빅맘 해적단만 있는게 아니었다. 잠수정으로 일행을 앞질러온 브룩과 쵸파도 그 광경을 보았다. 잠수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써니호 앞에서 부상했다가 매복한 페로스페로 일당과 딱 마주쳤던 참이었다. 그런 순간에 유혹의 숲에서 일어난 이변. 둘은 숲에 있을 일행을 걱정했다. 빅맘이 한 짓이기 아니긴 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범위의 벼락이라 과연 일행이 무사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페로스페로는 아예 그들이 들으란 듯이 "일행이 죽은 모야이다"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둘에게 이제 어쩔 테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배를 탈취하게 되더라도, 그 배에 태울 일행은 이제 없다. 페로스페로는 큰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지금 그 잠수정으로 달아난다면 둘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휘하의 체스병사들은 활로 브룩과 쵸파를 겨누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원피스/884화 . . . . 4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의 무장색 패기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무적의 회피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몽키 D. 루피]]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리가 없었다. 그 실체는 "견문색 패기". 패기로 미래를 예지하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신체를 변형해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루피는 그 원리를 간파함과 동시에 "카타쿠리가 냉정을 잃으면 유효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공시킨다. 자신의 본색을 들켜 당황하던 카타쿠리는 루피가 기어4를 앞세워 퍼붓는 공격에 얻어맞으며 밀리는 듯 보였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고 반격, 루피는 기어4 상태에서도 나가떨어진다. 다만 카타쿠리 또한 체력소모가 상당한 듯 보이는데.
* 연락을 마침 푸딩은 루피에게 큰일이 났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녀도 카타쿠리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레 루피가 무조건 질거라고 생각한다. "오빠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다"는 푸딩에게, 상디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 한편 빅맘 해적단의 수뇌부는 바다를 감시하던 바다소들이 한 마리도 없이 사라진 걸 파악하고 경악한다. 써니호가 추격받지 않고 도주 중인 것도 그 때문. 일행은 이상하게 여기지만 항해를 계속한다. [[징베]]는 자기들 처지도 처지지만 알라딘의 어인해적단이 잘 빠져나갔을지 걱정한다. 사실 바다소가 사라진 건 그들의 덕분이었다. 어인해적단은 인근해역에서 [[샬롯 플라리네]]의 노래로 바다소들을 유인,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 윤석용 . . . . 4회 일치
[[2008년]] [[7월 29일]] 국회 민생안정대책특위에서, 민주노동당 당사에 인공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된 모습의 조작사진을 사실 확인 없이 들고 나와 물의를 일으켰다.<ref>{{웹 인용|제목=국회에서 '인공기' 꺼내 든 윤석용..논란에 휘말려|url=http://www.vop.co.kr/A00000217256.html|저자=[[Voiceofpeople]]|확인날짜=2008-08-07}}</ref><ref>{{웹 인용|제목=윤석용 의원 “민노당사에 인공기” 합성사진으로 밝혀 망신|url=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301644.html|저자=[[한겨레]]|확인날짜=2008-08-07}}</ref>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2010년 5월 장애인체육회 회장실에서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직원을 지팡이로 때린 공소사실에 대해 1심 유죄가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아 문체부로부터 2013년 1월 22일 대한장애인체육회장직을 직무정지당했으나, 법원 가처분 판결을 통해 복직되었다.<ref>{{웹 인용|제목='직원 폭행'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 직무정지(종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1/22/0200000000AKR20130122199251007.HTML?did=1179m|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3-01-22}}</ref>
- 은혼/592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병실에서 눈을 뜨는 우미보즈.
* 정작 다져야 했던 각오는 가족의 연을 끊을 각오가 아니라 어찌해도 끊을 수 없는 그 "실"에 묶여 괴로울 지라도 계속 끌어 당겨 가족 옆에 있고자 하는, 그런 각오였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 그걸 가르쳐준 것은 그 실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가구라.
* 그리고 그런 딸과 계속 이어져 있었던 기묘한 실(해결사 일행)이었다.
- 은혼/598화 . . . . 4회 일치
* 드디어 돌아온 해결사를 중심으로 가부키쵸의 실력자들이 모여든다.
* 긴토키는 해결사 사무실 앞을 점거한 천인 부대를 상대로 선전포고한다.
* 저항자들의 분위기는 좋아지지만 객관적으로 우주에서 모여든 연합군을 상대로 전지구가 힘을 합친들 충분치 않은게 사실.
* 사무라이들의 봉기에 대해서 보고를 받는데 천도중을 제거하고 지구까지 손에 넣을 구실을 얻었다고 만족해한다.
- 은혼/609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이후. 겐가이는 실로 많은 일이 있었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가 에도성을 때려부순건 눈축제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내용인데 지나가는 드립이 아니라 정말로 은혼 세계관의 정사. 그래서 그런지 적들도 겐가이포가 나타나자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라고 생각해서 긴장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긴토키는 실제로 완성도 높게 눈조각을 만들었던게 증명됐다.--완성도 높은데 어이!--
지난 번 초중대발표로 실사화, 애니메이션4기 등을 발표했는데 이번 주도 중대발표가 있었다. 일본의 의류업체 earth와 콜라보 소식.
실루엣상으론 좌측부터 텐코, 소코, 긴코, 가구라, 즈라코, 엘리자베스.
- 은혼/614화 . . . . 4회 일치
* 연재 이래 가장 황당한 진실. '''엘리자베스는 행방불명됐던 오우고우의 제 1 황자 드라고니아였다.'''
* 단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아니 드라고니아를 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드라고니아는 구두룡섬이란 필살기를 사용해 이들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아홉개의 귀두--결국 귀두했어 지금?--를 가진 구룡의 이름에 걸맞는 기술. 네스의 이같은 해설에도 하타 황태자는 구룡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술 아니냐고, 그냥 쓰레기 용섬이 아니냐고 의심한다.--귀두룡섬이겠지--
실제 역사에서도 가츠라 고타로의 모델 가츠라 고고로는 외교관으로 활약한 부분이 있어 이런 동맹 성립에 기여한 점은 현실고증이다. 그런데... 이건 엘리자베스의 활약이 아닐지?
- 은혼/623화 . . . . 4회 일치
* 타츠고로는 오토세가 일하는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던 놈들을 정리하던 참이다. 녀석들은 지로쵸의 이름을 팔던 조무라기들인데, 그래서 지로쵸의 부하인줄 알고 마침 나타난 지로쵸에게 "부하관리 똑바로 해라."고 경고한다. 오토세가 쓰러진 놈들은 멋대로 그의 이름을 팔 뿐, 실제로는 부하도 뭣도 아닌 건달들이라 해명한다.
>영혼을 부딪히면서 알게되는 것도, 이어지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토세는 자신의 꿈을 이룬다. "야쿠자도 경찰도 신분을 잊고 바보처럼 마시는 가게". 그런 가게를 열 때가 온 것이다. 하루는 하천에서 지로쵸를 타츠고로가 그 얘길 꺼낸다. 지로쵸는 모르는 척 하지만 사실 오토세가 이렇게 빨리 자기 가게를 갖게 된 건 지로쵸가 뒤에서 조력한 덕이었고, 타츠고로도 내막을 알고 있었다.
>야주카도 경찰도 그냥 바보가돼서 어깨동무하고 마실 수 있는 가게라면,
- 은혼/626화 . . . . 4회 일치
*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해방군은 전면 후퇴, 가부키쵸는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 하지만 악귀가 날뛰는 와중에 도망치던 긴토키가 우연히 헤도로와 부딪히면서, 그 머리에 피어있던 파라파헤븐 꽃을 꺾고 마왕재림을 실현시켜버리는데.
* 게츠노 아나운서의 오빠 [[게츠노 세이메이]]와 전남편 [[시리노 도만]]도 건물 옥상에서 준비를 마쳤다. 둘은 서로 사기꾼이라고 디스하면서도 이 사기꾼들의 힘이라도 보탤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리고 함께 거대한 규모의 환혹의 술을 실행하는데.
자기 손으로 마왕재림을 실현해 버린 긴토키.
- 은혼/631화 . . . . 4회 일치
* 그때 레이더에 이상한 정보가 잡힌다. 상당한 수의 함대가 해방군 모함의 후방을 잡고 있다. 부하는 고장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건 [[하타 황태자]]가 고국 오우고쿠성에서 소집한 병력이었다. 하타 황태자는 무전을 통해 해방군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들의 행위가 해방이란 이름의 침략 행위에 지나지 않고 이 이상의 만행은 우주가 용서해도 자신들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실로 그럴 듯한 선전포고를 하는 사람은
하타 황태자는 옆의 [[네스(은혼)|네스]]가 주모자인양 빠져나가려 하지만 주군에 대한 충성은 밥말아먹은 네스가 그냥 뒤집어 쓸리가 없었다. 둘은 엔죠 황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이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떠미는 추태를 부린다. 급기야 이들은 누가 선전포고의 주체인지 해방군에게 맡기기로 한다. 하타 황태자는 눈을 감고 있을 테니 그런 말 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시킨다. 그러면 해방군은 보고 그렇게 알게 될 거라면서. 네스는 실눈 뜨지 말라면서 "절대 안 볼 테니 급식비 훔친 애는 손을 들어라"고 개드립을 첨가한다.
* 히지카타는 무슨 수가 없겠냐고 묻는데 마츠다이라는 태연하게 "아직 캬바레 하는데 없을까"같은 실없는 소리나 던진다. 히지카타가 포기한 거냐고 츳코미하자 자기는 포기하지 않았고 분명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캬바레 아가씨가 있을 거란 덧없는 희망을 불사르고 있다. 그는 작은 튜브에 연연하다간 옆에 있는 큰 튜브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며 "포기하는게 꼭 나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지구는 대충 냅두고 겐가이 영감부터 찾으라고 조언하는데, 제일 냅두면 안 되는걸 왜 냅두라는 거야 이 아저씨.
>아직 남아 있는건 확실해.
- 이강덕 . . . . 4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2대 해양경찰청장[br]서울지방경찰청장[br]경기지방경찰청장[br]청와대 대통령실 치안비서관[br]부산지방경찰청장 ||
경찰대학 졸업 이후 [[대한민국 경찰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포항남부경찰서장, 구미경찰서장, 서울남대문[[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대통령실]] 치안비서관, 부산[[지방경찰청장]], 경기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5% 안팎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불과 7.7%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 이동흡 . . . . 4회 일치
부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배석 판사로 재직하던 1980년 11월 24일 결심 공판에서 배석으로 관여했다가 선고 공판에 서명 날인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62700329211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6-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0997&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1년 6월 27일자]</ref>
* [[대전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7월 30일에 1994년 2월부터 1998년 2월까지 퇴출된 [[충청은행]] 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영이 부실한 서우주택건영에 368억원, 경원건설에 40억원을 부당하게 대출하고 대지 200평과 현금 2000만원 등 1억 6천여만원을 사례금으로 받아 구속된 전 충청은행 은행장 윤은중에 대해 징역 3년 추징금 6천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2년 6월 추징금 60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7월 31일자</ref>
* [[대전고등법원]] 특별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12월 13일에 시영아파트를 분양받고 3년이 넘도록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아 과징금을 부과받은 이모씨 사건에서 1995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부동산 실명제법 제10조 제1항에 대해 "법률은 탈세 행위를 막아 부동산 거래를 정상화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음에도 탈법의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까지 과중한 금전적 부담을 주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21400329126006&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12-14&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930&publishType=00010 경향신문 1999년 12월 14일자</ref>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1년 5월 31일에 합헌 결정했다.(99헌가18)
*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7일에 무학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대선주조 지분에 대한 매도를 요구하는 시정조치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7702]</ref> 10월 28일에 돈을 주고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신상공개 처분을 받은 정모씨(29)가 "범죄사실이 알려지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신상공개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91305]</ref> 2005년 1월 5일에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 직전에 대북정보를 지나치게 변형 보고하고 "기무사가 표적 조사했다"고 주장하여 비밀누설과 명예훼손, 품위유지위반 등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린 것이 부당하다"며 한철용 소장(예비역)이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정직처분취소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4&aid=0000015524]</ref>
- 이병욱(스트리머) . . . . 4회 일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자신을 팩트로 까려는 사람을 메갈리아 유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한 유저에 따르면 무작정 메갈이라며 활동정지를 당한 경력이 있다. 사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신태일, 푸워 등등은 칭찬하고 좋아한다면서 이병욱은 어떠냐고 그 사람의 지인이 묻자 [[구안와사|"그 안면마비 장애인새끼"]]라며 여러가지 욕설을 한것을 이병욱이 알게되자 심각하게 화를 낸적이 있다. 헌데 그 사람이 여자라 이 일이 있는 이후로 그냥 까기만 하면 무시하는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프로필이 여자거나 하면 메갈이라며 싫어한다.]]
그 악명높은 '''느금마엔터 민폐 [[신태일(유튜버)|4]][[김윤태|대]][[푸워|천]][[남구(범죄자)|왕]]'''에 임팩트가 가려저서 그렇지, 사실상 현재 느금마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지가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한다.''' 트위치에서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보면 '''[[유신(스트리머)|유신]]과 투탑'''이었다.
'''이병욱이 트위치에서 환영받지 못하게 된 사건이자 사실상 이미지 추락에 큰 일조를 한 사건'''
* 2018.01.12 기준으로 계속해서 담배 리뷰를 하고 있다. 10대가 주 연령층인 유튜버가 성인물 제재 없이 콘텐츠를 계속 내놓고 있는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담배 종류들도 10대들이 호기심 가지고 좋아할 만한 맛 담배들 뿐이다.
- 이석훈 . . . . 4회 일치
||<#0D3EA3> {{{#ffffff 종교}}} ||<(><rowbgcolor=#ffffff> [[개신교]][* 6집 앨범 끝부분에서 성경구절을 언급함과 동시에 감사함을 드러냈으며 실제로 2009년 10월에는 줄라이 프로젝트라는 그룹의 CCM앨범에도 참여했다.] ||
5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6집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안티들의 말을 듣고 연습을 했는지 고음역대가 상당히 깔끔해졌다.[* 사실 5집의 이석훈 파트를 2주만에 녹음하는 바람에 성대결절이 걸렸었다. 최상의 목상태로 데뷔를 한 건 아닌 셈.]
여성에게 어필이 가능한 목소리와 외모인지라 노래도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곡들이 많은 편이다.[* 이석훈 솔로 미니앨범 [[인사]]의 선공개곡이었던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가 대표적.~~10가지 이유를 다 들으면 노래가 끝나지만 높은 항마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곡의 경우, 발표하자마자 싸이월드 뮤직 1위, TJ나 금영 등의 노래방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흔한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석훈이 부르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아 평소에도 안경을 착용하지만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에는 렌즈+알 없는 안경을 쓴다.(진짜 자기 안경을 착용한 이석훈은 '원나잇 푸드트립'에서 볼 수 있다.)
결혼식 날짜는 2016년 1월 17일로 결정되었다. 이 사실을 직접 팬카페에 손편지로 남겼다.~~글씨체가 둥글둥글하다. 귀...귀엽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4회 일치
== 치어리더로서의 실력과 평가 ==
춤을 한번도 배워본적이 없는 박기량, 김연정과 달리 전문적으로 댄스 교육을 받아본 치어리더라서, 확실히 여러 댄스 동작에서 정석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안무들도 원본에 가깝게 소화를 잘 하는 경우가 있다. 단점이 있다면, 춤을 정석적으로 많이 배운지라 즉흥적인 프리 댄스 같은 건 잘 하지 못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이 그녀의 프리댄스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동작이 상당히 어색해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1년차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위에 서술한 것처럼 즉흥적인 프리 댄스는 상당히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 유연성이 상당히 뛰어난데, 실제로 춤을 출 때 유연성이 요구되는 동작들을 자주 선보이기도 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에서는 고난이도의 다리 찢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으나 의외로 엄청난 [[대식가]]다. 2017년 12월 8일자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짜장면을 무려 3그릇이나 해치웠다.~~ㄷㄷ~~ ~~같이 방송했던 안지성 치어리더도 2그릇을 해치운건 덤~~ 사실 치어리더는 직업상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기에 그만큼 잘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 이안 (시인) . . . . 4회 일치
1999년 『실천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2014년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내면서 시와 동시, 평론을 함께 쓰고 있다.
아트 앤 스터디<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tnstudy&logNo=220082052975</ref>, 현대시학 동시 창작 교실, 한겨레문화센터 신촌<ref>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0001&lessclass=0001&subj=F91698&gryear=2016&subjseq=0001&booking=&moptNo</ref> 등에서 동시 창작을 가르치며,
2002년 『목마른 우물의 날들』<ref>http://blog.daum.net/silcheon/7701324</ref>(실천문학사)
2007년 『치워라, 꽃!』<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8&aid=0002131645</ref>(실천문학사)
- 이철우(1955) . . . . 4회 일치
2018년 1월 31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경선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계획을 돌연 철회했는데, 당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강력히 만류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사퇴로 인해 다른 광역단체장 출마를 희망하는 국회의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경북지사 선거 경쟁 후보자들이 국회의원 사퇴에 대해서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 김천당협위원장을 사퇴했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셈이다. 4월 9일 경선에서 32%로 1위를 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선은 결선투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경북도지사 후보로 확정됐다. 당원 투표에서는 김광림 후보에 밀렸지만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1위가 됐다.
2018년 8월 13일 경북도청을 방문한 권영진 대구광역시장과 함께 대구-경북경제공동체를 적극 실현하기로 했다. 산하 간부급 공무원 교류부터 여러 현안에 이르기까지 같은 광역경제권 발전계획을 세우고 협력한다고 하였다.
2018년 8월 14일 전우헌 전 삼성전자 전무를 경제부지사로 임용하였다. 앞서 13일날 있었던 대구-경북경제공동체를 실현하는데 고교동창인 이승호 대구광역시 경제부시장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8월 28일 경산소방서 회의실에서 세쌍둥이를 출산한 이기찬 소방관을 찾아 격려하고 육아용품을 전달하였다. 세쌍둥이를 낳았다고 도지사가 찾아서 직접 격려해주는 것은 지자체의 발전을 위해 아이낳기 좋은 경북을 만드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 이현보 . . . . 4회 일치
[[명종실록]]이현보의 졸기에서는 만년의 지조가 완전하여 으뜸으로 친다고 하였다.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이 있는데, 10장으로 전하던 <어부가>를 그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효빈가(效嚬歌)> <농악가> <농암가(聾巖歌)>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聾巖)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ref name="이현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전기 문학/시조 문학#이현보|이현보]]〉</ref>
* 해제: 자연을 벗하며 고기잡이를 하는 한가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가어옹(假漁翁)"으로, 실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어옹"이란 속세를 떠나 강호에서 낚시하면서 시나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양반을 이르는 말로, 작품에서도 실제 어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천심녹수(千尋錄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이 상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관념적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의 어부의 삶이란 곧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5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4회 일치
* 프라우드린은 실패를 직감했는지 드레퓌스에게 "너만은 마지막까지 어울려줘야겠다"고 말한다.
프라우드린의 죽음. 이로써 리오네스를 침공했던 십계는 전원 재기불능이나 생사불명에 처했다. 특히 프라우드린은 완전히 소멸된 것 같고 멀린에게 포획된 그레이로드도 해방될 일은 없을 듯. 현재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건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정도다. 당초 십계 측의 총전력이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론 십계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한 수준. 아군측 주전력이라 할 수 있는 십계나 성기사 측에선 대단히 경미한 희생만 치렀을 뿐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십계는 멜리오다스와 에스카노르 두 사람에게 철저하게 당한 셈인데 십계 중 누구도 1대1로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멜리오다스가 한 번 죽은 것 조차 2대1로 멜리오다스에게 지다가 십계 전원이 모여서 다구리를 놓은 것이니...
프라우드린은 불쌍한 형태로 죽었지만 십계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인물이고 전과도 대단하다. 우선 핸드릭슨과 드래퓌스를 철저히 농락했고 지상에 마신족과 십계를 부활시킨 일등공신. 인류로서는 최흉의 십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리오다스 사후에 인간들에게 제물로 쓰일 인간을 잡아 바치게 한 것도 드래퓌스가 낸 아이디어로 보이는데 확실히 인간과 오래 살아서 인간의 특성을 이용하는데도 도가 튼 것 같다.
고우서와 비슷한 모습의 십계도 재등장. [[일곱개의 대죄/176화]]에서 십계 시절 멜리오다스를 묘사하며 등장했었다. 프라우드린은 사실 정식 십계가 아니라 "무욕의 십계"의 대리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자가 진짜 무욕의 십계일 가능성이 높다. 고우서와 거의 비슷한 외향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는 듯한 태도 또한 유사하다.--이제 곧 진(眞) 십계 가 나올 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4회 일치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상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상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하우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믿지 못한다. 스스로 평민이고 머리도 나쁜데 괜찮냐고 묻는데 바토라는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되묻는다. 바토라는 절망적인 싸움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동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타인의 방패가 되길 마다하지 않았다. 바토라는 그런 점을 높이 사서 그를 임명한 것. 그러나 미숙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아직은 "성기사장 대리"라는 꼬리표를 단다.
멀린은 십계가 전멸한게 아니라고 강조하는데 에스타롯사 등 확실하게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십계는 대부분 복귀할 걸로 보인다.
고서는 그냥 있을 때도 상태가 이상한데 갑자기 무욕의 고서라고 십계의 이름을 댄다. 고서가 멜리오다스의 과거 시절 나오던 무욕의 십계라는건 팬덤에서도 추측하고 있던 내용인데, 이번 화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다만 고서는 멀린이 조작하는 인형이었으며 멜리오다스의 십계 시절 동료인 "무욕의 고서" 그대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4회 일치
그때 프라우드린이 병사들에게 확인한 사실을 전달한다. 어제 인간 마을을 습격했을 때 병사들을 돌려보낸 존재가 바로 저 엘리자베스라는 것. 병사들은 자신들도 왜 도망치게 됐는진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싸울 맘이 사라진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데리엘은 적어도 교섭의 여지는 있다고 여겼는지 "믿기를 바란다면 동포를 해방하라"고 요구한다. 엘리자베스는 확인해서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답하는데 데리엘이 만약 뤼드셀이 거절한다면 어쩔거냐고 묻자 "그가 거부해도 자신이 어떻게든 한다"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아크 안에는 실종됐던 마신족의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 비전투원. 아크 안의 마신족들은 몸과 마력을 잠식 당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갇혀 있다. 그 안에는 데리엘의 언니도 보이는데.
엘리자베스는 사대천사보다 직위 상 높은게 확실해 보이고 데리엘 또한 십계 내에선 리더격으로 보인다.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교섭을 하고 멋대로 교섭 성립을 결정했는데 다른 십계가 전혀 이론을 펼치지 않는걸 보면 그렇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4회 일치
>겉으론 아닌 척 해도 실은 분한 거지?
* 할리퀸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는 더이상 3000년 전 성전 시대에 있지 않았다. [[디안느]]와 그로키시니아, [[드롤]]에게 끌려온 나무 속이었다. 할리퀸은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몸을 만져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그때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말을 건다.
드롤과 그로키시니아는 말 없이 그를 바라본다. 그로키시니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너무 물러터져서 앞으로 싸움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고 빈정거린다. 그리고 확고한 태도로 "진짜 악이란 실존한다"고 강조한다. 할리퀸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 디안느에게 시선을 옮기며 답한다.
킹은 새삼 무서운 선택지를 골랐다는게 실감나는지 침을 삼킨다. 그로키시니아는 그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당신은 내가 못한 길을 골라 돌아왔다. 이건 분명 큰 성장을 줄 것이다"라고 격려한다. 그 탓인지 할리퀸도 따라 웃으며 편안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자질구레하게 따지는 성미가 변하진 않았는지, 자신이 성전시대에서 배운건 그로키시니아의 몸으로 한 것이라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온게 아닌지 의심하며 전전긍긍해한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4회 일치
*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가 충격을 받고 절망할 거라 여겼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기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과 접촉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놀랍게도 그 마력을 통해 저주를 건 당사자와 연결된다.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듯 한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을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여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 뿐. 젤드리스는 "저주는 진짜였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얽혀있는 진실을 폭로한다. 성전 시대로부터 3천년 간, 엘리자베스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며 멜리오다스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거 같다고 예감한다. 그녀는 긴장하면서 성전시대에 멜리오다스와 함께 있던 또다른 엘리자베스에 대해 묻는데, 젤드리스는 그것도 당연히 "너 자신"이라 대답한다. 그리고 뜻밖의 기쁜 얼굴을 하는 엘리자베스. 젤드리스는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날을 세웠다. 엘리자베스는 꿈같은 일이 실현됐다며, 아주 오래 전부터 멜리오다스와 함께였다는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한다.
* [[에스카노르]]와 [[핸드릭슨(일곱 개의 대죄)|핸드릭슨]]의 놀라운 시선을 받으며 엘리자베스의 정화의식이 끝난다. 그녀가 젤드리스와 접촉한 일이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저주에서 풀려난 멀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건강해진 모습에 에스카노르가 감격. 그때 멜리오다스 일행도 들어온다. 깨어난 멀린은 자신은 젤드리스의 마력에 사로잡혀 잠드는 저주에 걸렸었다고 말한다. 이런 추태를 보인 것에 사과하고 저주를 풀어준 엘리자베스에게 감사한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젤드리스의 마력을 풀어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 멀린은 간호해준 에스카노르에게도 감사를 전하는데, 그는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못 됐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실 그는 멀린이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팬드래곤]]을 "그는 내 희망 자체"라고 했던 일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4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4일 뒤면 죽을 거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에게 얽힌 3천 년의 진실이 공개된다. 이야기는 다시 성전시대로 거슬러 간다. 두 사람은 각각의 종족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이면서 여신족과 손잡고 동족을 학살한 죄.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이면서도 마신족 남성과 사랑하고 적인 십계를 구한 죄. 이 죄로 인해 둘은 어떤 벌을 받게 된다.
*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어떤 저주를 받은 건지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말하기 앞서 멜리오다스에게 맹세를 요구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설사 자신이 다시 죽더라도 언젠간 이 저주를 풀겠다는 맹세를. 멜리오다스는 영문도 모르는 채 간절한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주를 풀 것을 약속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눈물 맺힌 웃음과 함께 모든 진실을 밝혔다. 그리고 3일 뒤. 엘리자베스가 죽었다. 멜리오다스의 눈 앞에서. 무너진 축대에 찔리는 사고였다.
눈물과 함께 두 번째로 엘리자베스를 매장한 멜리오다스. 또다시 길을 떠난다. 저주를 풀기 위한 정처없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유언처럼 남긴 말들이 진실임을 입증하듯, 그는 세 번째 엘리자베스와 재회한다.
* 그들의 진실을 알게 된 단원들은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소리를 죽여가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지난 3천년 동안 107명의 엘리자베스를 만나 106번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봤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안으로 107번 째의 마지막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몇 번을 반복해도 이것 만큼은 적응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이 고통을 끊어야 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마신왕이나 최고신에 필적하는 힘이 필요하다. 앞으로 상대할 [[젤드리스]]가 마신왕에게 빌린 힘도 적당하겠다. [[바트라 리오네스]]가 예견했던 십계의 부활과 대죄의 집결도, 멜리오다스의 입장에서는 이 저주를 끊기 위한 포석들의 하나였다. 그게 결과적으로 단원들을 속이는 게 돼버렸다며 그가 사과했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4회 일치
멀린하고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엘리자베스의 증언에서 튀어나왔다. 동료들이 수군거리고 십계가 부활했을 때조차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멀린이 사색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거침없이 자신이 아는 멀린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자신을 진짜 언니처럼 따랐던 12살 시절의 멀린이었다. 멀린이 당황해서 "언제적 얘기냐"고 하는 걸 보면 거짓 없는 사실. 할리퀸과 디안느는 저 멀린이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에스카노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엘리자베스에게 요구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멀린은 더이상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쓸데없는 캐묻기라고 정색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 그 결의를 실행해 보일 기회는 지금 밖에 없었다. 그러한 절실함을 안고 날아가는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사냥감을 어이없이 빼앗긴 메라스큐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는 건 이제부터다. 코란도 중심부에 있던 거대한 건물이 알 수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메라스큐라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멜리오다스를 암담의 고치에 가둬 숨겨놓은 곳.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거대하고도 사악한 파동. 그 기는 분명 그 사람의 힘이었다. 이젠 일곱 개의 대죄 일행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멜리오다스. 그가 결국 자력으로 암담의 고치를 파괴했다. 메라스큐라만이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암담의 고치는 십계 중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술법이었다. [[젤드리스]] 조차도 마신왕의 마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멜리오다스는 흉흉한 기운을 날개의 형상으로 뻗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마신왕의 마력 없이는 젤드리스도 깨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멜리오다스에 내뿜은 사악한 힘의 정체는 분명했다. 마신왕의 힘. 그는 그 힘에 잠식된 듯 보였다.
- 장남교 . . . . 4회 일치
이 시기 가독이 상속되면 장남(상속자)은 새로운 호주가 되고,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이 재편되며, 가문의 전 재산과 조상을 모실 권리를 얻도록 되어 있었다.
또 호주의 사망 만이 아니라, 남성의 경우 60세, 여성의 경우 자신이 바라는 언제든지 호주가 '은거'를 결정하고 상속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사망, 은거 이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호주가 국적을 상실하는 상황에도 가독승계가 발생한다.
정처 입장에서는 가독상속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지고 호주 사망시에 가독을 확실하게 상속해줄 '적출자 장남'이 없으면 한 순간에 거의 인생 게임오버(…)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사망시에 비적출자이 나타나면 한 순간에 모든 가산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호주의 각종 처분권까지 비적출자에게 가게 되므로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진다.
1947년 5월 3일, 평등상속 제도가 실행되면서, 이러한 가독상속 제도는 없어지게 되었지만 사회적 관습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장은숙 (가수) . . . . 4회 일치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활동 후 1995년 일본 [[토라스레코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일본 무대로 진출하였고, 그 후부터 '장수(チャン・スー)'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 일본 유선 방송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 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20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5년 5월에 발표한 "눈물의 공항 대합실"을 포함해 총 14곡이 유선방송 1위에 랭크되었다.
* 《운명의 주인공 (運命の主人公)》([[2000년]])
* 《눈물의 공항대합실=나리타발18시50분 (涙のエアターミナル~成田発18時50分~)》([[2015년]])
- 절대가련 칠드런/433화 . . . . 4회 일치
* 이유는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것
* 이차저차해서 화장실에 데려다 주는데 오래된 열차의 화장실이라 오물이 선로에 그대로 버려지는 구조였고, 바깥에서 칠드런이 대기하고 있던 탓에 마츠카제의 사회적 입장이 끝장날 뻔 했다.
* 그래도 미나모토는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며 앞으로 싸워나가기 위해선 효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4회 일치
블랙 팬텀의 화물이 실린 배를 급습하는 효부 쿄스케
* 배를 점거한 효부는 실려있는 화물이 블랙팬텀의 "상품"인 에스퍼라는걸 확인한다.
* 효부는마기의 공격을 피해 갑판까지 물러난다. 그러면서 "후지코가 오염되었을 거라고 확신한건 좋았지만 정찰을 너희들에게 맡긴 것은 실수"라고 인정한다.
* 마기는 다른 인물들을 감염시키지 못한 걸로 나오는데 실제일지는 더 두고봐야할 일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4회 일치
* 무사히 BABEL의 의료연구실에 잠입한 [[사카키 슈지]]와 [[쿠모이 유리]], [[우메가에 나오미]]
* 슈지는 기밀실험중으로 속여 레어메탈을 배출시키기 위한 혈청을 제조한다.
* [[우메가에 나오미]]는 화물 속에 [[사카키 슈지]]와 [[쿠모이 유리]]를 숨겨 BABEL의 의료연구실에 반입한다. 유리의 위장 최면은 감시카메라까지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
* 자기도 모르게 "너희가 컸다는건 알지만..."이라고 답하는 미나모토. 묘하게 사실감 있는 회상이라고 생각했더니 카오루 본인이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4회 일치
* [[사카키 슈지]]는 [[츠보미 후지코]]의 처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다. 그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대신 효부를 진찰하라고 하는데 시호는 사카키에게 지시 받는 것이 불만이지만 위급 순간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확인해본 효부의 상태는 '''심장이 망가져서 정상기능을 하지 않는 상황'''. 효부는 시로를 동요시키기 위한 좋은 구실일 뿐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시호가 바보멍청이 취급한다.
* [[노가미 아오이]]는 다른 대책은 없는 건지 묻지만 미나모토로서는 투항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쪽은 초능력을 온전히 운용할 수 없는 데다 부상자까지 끼고 있다. 부딪히게 되면 저쪽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려 할 테니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투항해서 효부와 후지코를 의무실로 보내는 것이 최선. 요우는 자기들더러 돼지우리에 들어가라는 말이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미나모토의 계산으로는 일단 후지코의 세뇌를 제거했으니 제정신만 돌아오면 금방 내보내 줄 거라 본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칠드런에게 있어서 미나모토의 존재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길리엄이 미나모토를 상대로도 모종의 조작을 걸 여지가 있고, 그럴 경우 과거 보여졌던 미래의 파국(미나모토가 카오루에게 총을 쏘는 미래)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4회 일치
* [[카노 모미지]]는 [[효부 쿄스케]]가 [[마기 시로]]의 탈환에 실패하고 중상까지 입은 것 때문에 [[후지우라 요우]]에게 화풀이를 하려다 소령에게 제지당한다.
특히 효부는 생각보다 큰 부상을 입어 여전히 심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의 의무실에서 제세동기를 끼고 누워있는 상황.
* 그래도 카오루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츠보미 문서와 [[우츠미 세이시로]]의 사념이 그녀를 다독인다. 츠보미 문서는 이럴 때를 대비해 자신이 있는 거라며 카오루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상황이 막막한건 사실이다. 마츠카제는 미나모토가 "판도라의 전력을 써라"고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우츠미는 효부가 이런 상황에서 너무 몸을 사리는게 아닌가 의문스러워한다. 그가 기억하는 효부는 적에게 당하고 얌전히 있을 타입이 아니기 때문. 그러자 츠보미 문서는 길리엄의 정신이 "어떤 의식"에 닿지 않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현재의 효부는 가족이나 원한 이상으로 어떤 존재에 의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효부는 자신과 링크된 길리엄이 그 존재를 눈치채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 존재는 물론 파괴의 여왕, 아카시 카오루의 미래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카오루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그게 누구냐"고 묻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4회 일치
* 문제는 블랙 팬텀 측도 분진폭발에 휘말렸다는 것. [[우메가에 나오미]]는 중파지만 [[팀 토이]]와 [[바렛 실버]]는 대파 상태. 나오미는 이런 상태로도 "벌써 승부가 났다"며 자신하지만 그리 좋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헌데 애초에 아키라가 노린건 전력의 우열이 아니다. 그가 카가리의 파이로키네시스에 서툰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라플레이스"에는 스페셜리스트. 그가 판단했을 때 일행 중 가장 성가시며 전략적으로 중요한게 카가리였다. 카가리를 제압함으로 성가신 파이로키네시스를 봉인, 게다가 파티의 입자화 능력도 분진폭발의 위험으로 억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 아오이는 단숨에 부스트해서 전부 되찾자고 제안한다. 유리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마츠카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특무 에스퍼 상대로 현실성 없는 작전이라며 만류한다. 게다가 헬기 부대까지 고려하면 부스트는 비장의 수로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호가 주축이 돼서 "그걸 어떻게든 하는게 지휘관"이라며 아오이와 유리까지 가세해서 "되는 작전을 짜내라"고 스킨십 공격으로 농락한다. 마츠카제는 갈 수록 M에 개화하는지 "좀 더 부탁받고 싶어진다!"며 곤란해한다.
* 일행이 만담을 하는 동안 상황은 블랙 팬텀에게 착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인근의 카메라가 일행의 모습을 담는다.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카오루가 말한 "판도라의 대리"나 "파괴의 여왕"이란 이름을 듣고 뭔가 마음에 걸리는 모습이다.
- 정동기 . . . . 4회 일치
* 2008년 6월 ~ 2009년 7월 : 대통령실 [[청와대 민정수석|민정수석비서관]]
|직책 =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위]][[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전주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원광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동 정씨]]
- 정종 . . . . 4회 일치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상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절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바로 다음 순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 지증왕 . . . . 4회 일치
즉위 초부터 그는 제도와 체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504년]] 음력 4월 상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秋九月 徵役夫築波里 彌實 珍德 骨火等十二城(5년(504) 여름 4월에 상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가을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ref>
또한 처음으로 지방에 군주(軍主)를 두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6년(505) 봄 2월에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512년]] 실직주(悉直州)의 군주이자 [[이찬 (신라의 관직)|이찬]]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복속시켜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게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13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ref>
- 진격의 거인/82화 . . . . 4회 일치
필사의 작전을 실행하는 아르민.
* 그러나 베르톨트는 아르민의 작전에 실망한다. 고작 그대로 달라붙어서 타버리는 것이 작전인 것이다.
* 아르민은 거의 타죽은 시체같은 상태.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 한다.
* 하지만 아르민을 살릴 거라는 의견도 있는데, 지하실에 있는 거인화 용액을 주사하는 방법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이럴 경우 거인화된 아르민이 "누구"를 먹고 정신을 차리냐도 문제가 될 듯.
- 짐 브라부라 . . . . 4회 일치
이후 맥스가 [[알렉스 볼더]] 요원의 살해 누명을 쓰고 쫓기는 처지가 되자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맥스를 체포하는데는 실패한다. 제일 근처까지 접근한게 맥스가 루피노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이때는 건물 앞까지 와 항복 요구까지 했었다.
윈터슨을 쏴죽인 맥스가 병원에서 깨어난걸 보자마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며 따지려 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병원을 습격한 스쿼키 청소회사의 총격에 쓰러진다. 맥스는 꿈속에서 그가 죽는 장면을 보았지만 다행히 현실의 브라부라는 수술을 받아 살아났다.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맥스 페인 2]]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맥스를 불러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추궁한다. 발레리 윈터슨이 [[블라디미르 렘]]의 애인이었다는 말을 들은 브라부라는 맥스가 뇌물을 받고 윈터슨을 쏜게 아니었다는걸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맥스를 경찰 자리에서 내쫓는다. 그때 맥스에게 계속 만나자는 말을 했고, 실제로도 맥스가 브라부라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 차민수 . . . . 4회 일치
[[서울방송|SBS]]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며, 미국 바둑 보급에 공헌하였다.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 차민수는 [[쿵푸]] 공인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2004년에 회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올인' 실제주인공 차민수씨 미술전|저자=이홍렬 기자|출판사=조선일보|날짜=2004-07-30}}</ref>
- 창작:좀비탈출/0-1 . . . . 4회 일치
세상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 식량은 착실하게 사라져 갔다.
분명 거기는 수도관이 지나는 길목이다. 놈들이 물에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면… 이건 마실 수 없다.
사실 확인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도 아니지만, 몇 번을 세어봐도 현실감이 없어서 세기를 반복한다.
- 창작:좀비탈출/4-1-2-1 . . . . 4회 일치
혹시 모르니까 닫아야겠다. 할 수 있을 때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일대가 전멸했다면 그만큼 좀비들의 숫자도 넘쳐날 것이고, 그것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식량을 손에 넣는데 실패하더라도 마당으로 오는 놈들이 줄어든다면 다음 기회도 생길 수 있으니까. 나는 문 너머에 놈들이 있진 않나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닫는 순간에 나는 소리가 행여라도 놈들을 깨우게 되진 않을지 주의하며 움직였다.
이럴 땐 문을 닫아둬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덕분에 그게 환청일 뿐이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엉거주춤 멈춰서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겠지. 아니, 사실 지리는건 상관없어. 지금 이미 '''축축해져 버렸으니까.'''
먹통이 된 기억을 더듬어 가며 뒷마당으로 진입했다. 시야에는 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토트넘이 있을 거라는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행복한 예상실패.
독을 묻은 자리는 놈들이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그때 이것들을 묻으면서 커다란, 거의 바위에 가까운 돌덩이를 하나씩 올려놨었다. 개나 고양이가 파해치는걸 막으려는 조치였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한두 마리 정도는 여기에 찝적거렸겠지만 그놈들 힘으로 이걸 치우는건 무리였을 거다. 이 고무적인 사실 때문일까? 조금 긴장이 풀렸다. 꽉 졸려있던 기관지가 풀리면서 몇 주만에 맛보는 바깥 공기가 달게 느껴졌다.
- 최다빈 . . . . 4회 일치
2015-2016 시즌에 마지막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생애 처음으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보였다. 처음 출전한 라트비아 리가 그랑프리에서 3위, 이어 출전한 오스트리아 린츠 그랑프리에서 역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4차 대회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선수가 많아 메달 입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정신력, 안정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시니어 첫 데뷔 무대에선 극심한 긴장감으로 8위(탈린 트로피)를 차지했으나 회장배 랭킹전에서 다시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고 2016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8위, 그리고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보스턴)에서 14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니어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최다빈은 2차 대회인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선전했으나 종합 7위에 머물렀고 6차 대회인 [[NHK 트로피]]에서는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종합 9위에 그쳤다. 이후 랭킹전에선 [[박소연]]에 이어 5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티켓을 놓쳤다. 또한 2017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서도 동료 선수인 [[김나현]]에 밀려 종합 4위를 차지해 메달 획득 및 피겨 세계선수권 티켓 역시 놓치고 말았다. 시즌 초중반 잇따른 악재로 실망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절치부심하여 이어 출전한 동계체전 고등부 피겨 여자싱글 1위를 차지했다.
최다빈은 [[4대륙 선수권]]을 앞두고 쇼트프로그램 음악 변경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는데, 기존의 음악 '맘보'를 스티븐 유니버스 ost 'It's over, isn't it?'과 '라라랜드 ost 中 Someone in the crowd'로 바꾸고 경기에 출전했다. 그 결과 4대륙 쇼트에서 자신의 개인 최고점을 경신(61.62)하는 성과를 보였고, '닥터 지바고'에 맞춰 선보인 프리 경기에서도 약간의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개인 최고점(120.79)을 내며 종합 점수 기록도 갈아치웠다. (182.41) 특히나 이때 프리스케이팅의 기록은 [[김연아]] 선수 이후 대한민국 피겨 선수 프리스케이팅 최고점이기도 했다.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상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상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 최란(배우) . . . . 4회 일치
[[김가연]]과 더불어 연예계 고소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의 아내이기도 하기에 이충희에 대한 악플이 달리는걸 늘 모니터링 한다고 하고 변호사 자문도 구한다고 한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는 이 명성이 워낙 높아 최란이라면 벌벌 떨 정도다. 더불어 경중 안따지고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 감독을 하던 이충희 전 감독에 대해 공홈에서 당시 오리온스의 엄청난 부진에 악플러들이 많았는데 며칠만에 최란에게 전원 고소당해서 처벌받은 실사례도 있었다. [[원주 DB 프로미]]의 전신인 원주 동부 프로미 공홈에서도 실명임에도 성적 부진에 성난 팬들이 이충희에 대한 악플을 남기다가 고소당한 사람들이 나왔고 이후 농구팬들은 최란이라면 벌벌 떨 수준이 되었다.(...)
*신석기 블루스 (박 실장 역)
- 최충연 . . . . 4회 일치
2016년 8월 25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선발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4.2이닝 5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77&aid=0000044428 '최고 구속 142km' 최충연, 제구 안 된 빠른 볼-잘 먹힌 커브] - SPOTV</ref> 2016 시즌 3게임에 등판해 2패, 1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2017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 9일]] [[kt 위즈|kt]]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을 기록하였다. 작년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타자들의 26이닝 연속 무득점 침묵 속에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7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백정현]]이 타구에 맞아 5회를 다 막지 못하고 강판되자 그가 구원 등판해서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602000278 ‘최충연 프로 데뷔 첫승’ 삼성 라이온즈 3연승 질주... 김상수 3안타2타점] - 뉴스핌</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츠키시마 케이 . . . . 4회 일치
독설가에 냉소적이며 남을 비꼬는 데에 꽤나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다. 또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경기에는 매우 냉정하게 임하고 블로킹 실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약하다.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wiki:"히나타 쇼요" 히나타]]의 입부 경기 때 상대팀이었다. 저 둘이 입부 경기를 위해 한창 연습하고 있을 때 나타나, 히나타를 '초등학생', 카게야마를 '제왕'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후 [wiki:"야마구치 타다시" 야마구치]와의 대화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쓸데없이 열 내는 녀석들'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종 카게야마를 '제왕' 혹은 '엘리트'로, 본인을 포함한 평범한 배구부 부원들을 '서민'으로 칭하곤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연습이나 시합 중 카게야마와 자주 부딪치지만 그때마다 [[wiki:"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말린다.
여담으로 은혼의 [이토 카모타로]를 닮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았다. 사실은 이토가 환생한 거라 카더라~~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킹덤/501화 . . . . 4회 일치
* 진군은 적련성 근처를 지난다. 적련성의 백성들은 조 서부 지대를 공략하러 가는 군대라 여기며 열렬히 환호한다. [[하료초]]는 [[이신(킹덤)|이신]]과 함께 그 모습을 보며 금안이 이틀 거리 앞이라고 새삼 생각한다. 하료초에게 전달된 사실은 아니었지만 금안이 진로변경지점이 될 거라 예측하고 있었으며 거기가 [[이목(킹덤)|이목]]이 진짜 작전을 인지하는 시점이 될 거라고 여긴다.
* 사실 그 직후에는 얘기가 간단해진다. 조나라가 먼저 수세를 굳히느나, 진나라가 돌파하느냐의 문제. 현재 진군엔 그런 사실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군단이 갑작스런 진로변경에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면 그만큼 이목에게 시간을 벌어주는게 된다. 결국 이 지점에서 댜장군 [[왕전(킹덤)|왕전]]이 얼마나 수완을 발휘하느냐에 승패가 달린 것.
진군의 진짜 목적을 어렴풋이 감지한 순수수. 그는 이목에게 급보를 보내고 자신은 십화에 남아 계속 첩보를 수집한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추측이 사실이라면 진군에 크게 뒤쳐지게 된다.
- 킹덤/509화 . . . . 4회 일치
* [[이신(킹덤)|이신]]은 [[왕의(킹덤)|왕의]]장군의 창으로 무쌍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전히 창에 휘둘려 자잘한 상처를 입고 있다.
* [[하료초]]는 다시 바빠졌다. 중상자 치료를 지시하고 다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신, 강외, 초수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다. 곧바로 실행하라고 지시하자 미평이 막 싸움이 끝났는데 그럴 필요 있냐고 투덜댄다. 하지만 하료초는 진짜 바빠지는건 "지금부터"라면서 정색한다. 미평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한다.
* 그 말은 한점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아직 성안의 진군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총대장 왕전만은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성벽 위에서 성을 내려다 보며 이목이 열미성에 심은 계책을 눈치챈다. 이 사실에 왕전은 [[창평군]]이 세웠던 전략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끼고 만다.
- 킹덤/516화 . . . . 4회 일치
* 이목의 도착 소식을 접한 [[호주(킹덤)|호주]]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진작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목은 그동안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에 감사를 표하는데 호주에겐 그보다 다급한 용건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알현 뒤엔 그를 찾아가려 했던 이목이었다. 호주는 지금 왕도권에서 속속 들어오는 최신첩보를 정리해왔다. 진군은 병력을 세 가래로 나눠 왕도권의 소도시 아홉을 정복하고 업으로 향하고 있다. [[공손룡]] 장군의 9만 병력은 [[양단화]]군의 산민족 5만과 대치하느라 발이 묶인 상황. 그런데 그 전선이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왕도권 남부로 방출된 난민 무리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쫓기듯 동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난민, 그 말이 호주의 입에서 나오자 이목의 안색이 변한다. 이목이 거기에 대해 자세히 묻고 호주는 그런걸 묻는 의도를 의아해하면서도 "진군이 정복한 성의 백성들을 성 바깥으로 쫓고 다른 성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왕도권 남부에는 산더미 같은 난민 무리가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단 말인가? 이목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다.
* 한단의 이목 진영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고 고심 중이다. [[순수수]]는 지금이라도 업성에 전서구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목은 벌써 늦었을 걸로 본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카이네]]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묻는데 이목은 지금이라면 [[왕전(킹덤)|왕전]]이 그린 그림을 알아볼 것 같았다. 분명 그는 열미성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 업성에 갔다. 곧 업성은 난공불락의 성임을 깨닫고 곧장 업을 치기 보다는 업성을 무너뜨린 "함락의 무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아홉 소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이제 카이네도 왕전의 속셈을 눈치챘다.
- 킹덤/528화 . . . . 4회 일치
* 순수수는 견융족에게 협조를 당부하며 그 대가는 "전년처럼 이목님이 스스로 베푸실 맛있는 양고기"라고 하는데, 견융왕은 그걸 마음에 들어하며 협력한다.
* 우습지만 그들의 존재가 뜨악한 것은 조군도 마찬가지였다. 일선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었고 장수들 또한 "견융족"이란 이름만 알 뿐, 왜 그들이 이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견융족은 500년 전 주나라를 멸망시킨 대기마민족으로 역사서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중화대륙에선 사라진 종족. 그들이 어째서 조나라에, 그것도 왕도권인 요양에 있단 말인가? 술렁거리는 장교들을 향해 순수수가 입을 열었다. 견융족은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사라진게 아니었다. 처음엔 그들도 대륙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대부분의 무리는 북쪽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에 "흉노"라는 형태로 변해 조나라와 지겹게 싸워왔다. 하지만 모든 견융족이 흉노가 된 것은 아니다. 일부는 태행산맥을 근거지로 잔류했으며 훗날 조나라가 태행산맥을 끼고 생겨나면서 그들과 충돌했다. 조나라는 이들과 다투기보다는 회유하는 정책을 펴 요양성을 내주고 왕도권에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편입시켰다는 건 조나라의 입장일 뿐.
* 거기서부터는 [[공손룡]]이 설명을 잇는다. 그도 왕도권을 지켜온 장수인만큼 견융족의 내력에 대해서는 밝았다. 조나라가 견융족을 포용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는데다 자치권까지 가지고 있어 치외법권으로 다뤄지고 있다. 아무리 조나라의 요인이라도 이 성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타국만도 못한 곳이다.
>보상은 내년 이후에도 이목님께서 스스로 베푸실 맛있는 양고기다.
- 킹덤/529화 . . . . 4회 일치
* 양단화는 산민족을 돌아보았다. 일선에서 깨져나가는 그들의 몸뚱이가 보였다. 자신에 전략적 실책 때문에 죽어나가는 동족들. 개전이래 처음, 그녀의 얼굴에 쓰라린 표정이 스쳐갔다. 그러나 잠시 뿐이다. 그녀는 곧 난관을 타개할 무언가를 찾아냈다. 부대의 우측 전방에 있는 산등성이였다. 그 위에 견융의 기마대가 포진해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양단화는 잠깐 고심했다. 방금 떠오른 직관이 전략적으로 타당할까? 고민은 오래지 않았다. 양단화는 용기있는 여자였고 한때의 실책이 그걸 꺾을 수는 없었다. 결단이 섰다. 메라 족, 타라 족, 콘 족을 불러서 저 산을 빼앗으러 가자고 호령했다. 나머지 부대는 벽의 진군 부대와 함께 퇴각을 속행. 벽은 귀를 의심했으나 분명 지시는 내려졌다. 만류해볼 틈도 없이 달려나가는 양단화.
하지만 곧 팜에게 일거리가 주어진다. 휘고왕은 양단화가 거점을 마련했으니 자신들도 백보 후퇴 뒤 전선을 새로 정비할 거라고 "평지의 범장"에게 전하라 했다. 팜은 그 말대로 전했다. 백보후퇴 뒤 전선 정비. 팜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설명하려 했지만 벽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잘라 말했다. 이제 전장이 돌아가는 것쯤은 읽을 수 있었다. 저 거점의 등장으로 견융의 추격세는 눈에 띄게 저하됐다. 그 사이 전열을 다시 세워 양단화의 거점과 평지의 산민족이 적에게 협공을 거는 작전. 결코 실패해선 안 되는 작전이었다.
* 그때 언덕의 반대편, 기수군 후미를 요격하는 희고 붉은 깃발의 무리가 보였다.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였다. 몽념은 [[육선]]을 앞세워 우측으로 돌격시켜 기수 본진의 방어를 뚫고자 했다. 낙화대의 진격은 이미 기수군 후방의 2진까지 돌파하고 있었고 기수에게 급보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부하들은 [[마정]]을 불러들여 본군을 사수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기수는 그럴 경우 전방이 무너지는 사태가 일어날 거라 여겨 한사코 거절했다. 대신 기수는 자신이 직접 낙화대를 저지하러 나서는데.
- 테란 . . . . 4회 일치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짐 레이너]]도 테란이란 점에서 스토리 상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다른 종족에게 얕잡아보이는 느낌이 강한데 사실 얕잡아볼만 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면과 그 규모에서 [[저그]]에게 밀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프로토스]]에게 뭐...
체력의 경우 붉은색 표시에 가까워질 수록 각 부위의 색상도 바뀌다 붉은 색이 된다. 건물의 경우 체력 표시가 붉은색에 도달하면 체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 토리코/362화 . . . . 4회 일치
브란치는 미도라가 미식회를 비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토리코 일행은 금관두 안에 든 음식을 확인하는데...
* 미식회에 들른 브란치는 오오타케에게 "미도라는 이미 이 곳에 없다"는 사실을 듣고 당황한다(미도라는 페어 입수 후에 NEO의 본거지를 공격하러 갔고 죠아와 싸우고 있다.)
* 오가이는 고대의 해양생물로 고동과 비슷한 종류다. 토리코 일행의 구르메 세포 악마들 조차 멸종된 줄 알았던 초고대의 생물. 겉보기엔 작지만 실은 내부에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 있다. 고대 바다의 모든 생물을 먹어봤다고 전해지며 악귀, 도깨비와 같은 식욕을 지녔다고 한다.
* 브란치는 왠지 미도라가 죽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사실 죠아를 압도 중이다.
- 토리코/371화 . . . . 4회 일치
* 아카시아는 죠아에게 "나는 나름 존경받는 몸인 것 같다"고 실없는 소릴하고 죠아는 "뭐가 그렇게 화를 내지?"라며 토리코에게 묻는다.
* 그는 단지 "나는 누구인가"가 알고 싶은 것이라며, 지로의 죽음도 운명이었고 자신의 운명의 곁에서 GOD가 빛나고 있다고 말한다.
* '''사실 지지는 GOD의 조리법을 전하는데 성공했다!'''
* 아카시아는 죠아를 "죠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일본판을 보면 죠아라고 부름. 번역 실수. 두번째 컷 번역도 '큰 놈 한마리'가 아니라 '큰 놈 두마리'임.)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4회 일치
* 고수(Stand and Fight): 보병 지휘관(Infantry Leader) 스킬 필요. 토글 기능. 장군 호위대 전부가 말에서 내려 부대를 지휘한다. 고수 상태로 있는 동안 장군 호위대 주변 아군 부대의 근접 공격력, 장전 실력, 사기가 크게 상승한다. 고수 상태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농민 반란군이라 사무라이가 없는 잇코 잇키만이 생산 가능. 잇코 잇키 전용 유닛이라고는 안 적혀 있지만 잇코 잇키 전용 건물을 요구하니 사실상 잇코 잇키 전용이다.
폭탄을 발사하는 투석기. 20라는 암담하기 짝이없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써보면 더 암담하다.
나기나타를 든 승병. 빠르게 이동하며 피로도 저항이 있다. 대신 나기나타 승병보다 능력이 약간 딸린다. 사실 일반 나기나타 승병보다 능력이 월등하지만 사용하는 세력 두 곳 다 나기나타 승병에 특화가 붙어있다.
- 퇴계 이황 . . . . 4회 일치
40세 이후로는 어렵게 부탁해야 겨우 벼슬에 나가고, 벼슬에 물러나는 것을 자주 하여, 명종실록(13년 8월 5일 년 기사)에 따르면 [[명종]]이 요청이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이황과 사림을 후원하던 고관 이준경 역시 이황이 산금야수(山禽野獸)처럼 툭 치면 고향으로 물러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이 같이 조정에서 처신한 것은 조정에 아직 훈구대신의 세력이 강하였으며, [[기묘사화]], [[을사사회]]처럼 과거 [[사림]]이 입었던 피해가 컷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조 즉위 초까지만 해도 [[윤원형]], [[이량]] 등은 이황을 ‘소기묘(小己卯, [[조광조]]의 아류)’로 부르면서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선조수정실록 2년 6월 1일] 신중하게 처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사현'이라고 했지만 이황 자신은 이 4명 가운데 이언적을 제외하면 부족함이 있다고 봤다. [[김종직]]은 도학 보다는 사장학(詞章學)에 뛰어난 인물로 봤고, 김굉필과 조광조는 저술이 없어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봤으며, 이언적의 경우에는 회재집(晦齋集)을 보고서 이를 명확히 알려서 올바른 학문을 퍼트렸기 때문에 널리 알릴 가치가 있다고 봤다. [* 퇴계선생 언행록 중 ‘인물을 논하다(論人物)’,]
- 트로피코 4/인물 . . . . 4회 일치
Penultiomo. 대통령 각하의 충실한 보좌관. 아틀란티스 대학에서 페눌티모를 전공했다……고 주장한다.
Antonio Lopez. 실크햇을 쓰고 연미복을 입은 남자.
각하에게 미국 대통령 암살 혐의를 뒤집어씌워 몰락시킨 흑막. 누명을 벗으려는 각하를 저지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튜토리얼에서 대통령 각하에게 통치 방법을 가르쳤다. 이후 대통령 각하를 몰락시킨 음모에 가담해 대통령 각하가 통치하던 나라를 빼앗는다. 다시 돌아온 대통령 각하에게 이런저런 협박을 하며 가지고 놀았지만 대통령 각하는 미끼였을 뿐이고, 그 사이 각하에게 감화된 모레노에 의해 푸에르토 가토를 빼앗긴다. 이후 자신들의 지지자를 데리고 게릴라 활동을 벌이지만 그것마저 실패하자 각하한테 항복한다.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 . . . . 4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실사 [[영화]]. 1994년에 나왔다. 제작은 저예산 영화의 대가인 [[로저 코먼]]의 [[콩고드 픽처스]].
당시 웬만한 드라마 1회 제작비보다도 적은 예산인 100만 달러에 3주 촬영이란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존의 1분 길이의 짧은 견본이 아닌 장편 영화로 완성시켜냈다. 초저예산 영화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저예산 영화 제작 경험이 풍부한 코먼 사단답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져 오히려 다른 초대예산을 들인 영화들 이상의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극장 개봉은 못했다. 이후 콘스탄틴 필름은 2000년대 실사영화 2편의 제작에 관여하고 독일 내 배급권도 쥐고 있었는데, 2015년 리부트 제작사 명단에서 빠진 걸 보면... 그래도 2015년판의 독일 배급도 콘스탄틴에서 맡았다.
2015년에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가 나오고, 영화 평에 종종 언급되었다. 이러면서 90년대판에 대한 평가가 어긋나기도 하나 어찌되었건 결론은 2015년판은 구리다는 것이다.(...) 확실히 평이 어떻건 판타스틱 포를 원작에 가깝게 그려낸 점은 90년대판이 압도적이라 봐도 좋다.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4회 일치
영화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의 속편. 감독은 전작과 동일하게 팀 스토리.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배우도 전작과 동일하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실버 서퍼]]가 등장하며 배우는 더그 존스가 맡았다. 다만 목소리는 로렌스 피시번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갤럭투스]]가 등장했다. 스탠 리도 등장.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명단에 없다고 거절당한다.(...) ~~내가 이 만화 그린 스탠 리라니까!~~
평가는 전작처럼 안좋다. 갤럭투스 각색도 비판의 대상. 그래도 손익분기점은 넘겨서 이후 리붓되어 2015년에 새로운 판타스틱 포 영화가 나왔으나.. 이 영화의 처참한 실패 탓에 본 영화의 평이 좋아졌다. 그래도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라 어디까지나 2015년판에 비해서다.
- 페어리 테일/502화 . . . . 4회 일치
* 아이린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제레프는 서둘러 추격을 명령한다.
* 지하실에 루시가 결박당해있다.
* 지하실에서, 디마리아는 나츠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 아이린은 메이비스에게 농락 당한 일로 격분했는데, 사실 메이비스 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최강의 여마도사 자격이 있다.
- 페어리 테일/507화 . . . . 4회 일치
* 오거스트는 그 어떤 마법으로 공격 당해도 상대와 같지만 더 강력한 마법으로 되받아치며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는데.
* 그 시각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어떻게 된 일인지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이 널부러져 있다. 핫아이, 레이서가 쓰러져 있고 코브라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다. 미드나잇은 멀쩡히 서있지만 상당히 타격을 받은 상태다. 그리고 이들을 통솔하는 제라르 페르난데스 조차 고전을 금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스프리건 12 최강의 마도사 오거스트를 상대하고 있었다. 제라르 조차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차.
엘자가 두 사람을 타이르면서 끌어안는 장면 때문에 가슴만질래 드립을 떠올리는 사람도 꽤 있다. 사실 기존에는 쥬비아와 루시가 나타나서 두 사람이 무사한걸 보고 싸움을 멈춘다는 설이 대부분이었는데, 결국 두 사람이 나타나긴 했지만 싸움을 말린건 어디까지나 엘자.--다시 고개드는 엘자 진히로인설-- 엘자가 나온게 의외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나츠와 그레이가 길드 안에서 가장 가깝고 깊은 관계가 있는 상대는 바로 엘자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자란데다 엘자는 언제나 누나역할을 해왔기 때문. 특히 둘은 길드=가족이라는 관념이 가장 강한 멤버들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싸울 때 말린다면 엘자가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
오거스트는 상대방의 마법을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데 위력이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오거스트의 마법이 사실은 반사&배가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떡밥이 나온다.
- 페어리 테일/508화 . . . . 4회 일치
* 상처투성이가 된 로그 체니와 미네르바 올랜드. 블러드맨과 윌이 쓰러져 있다. 미네르바는 해치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들이 쓰러뜨린 건지 술자(나인하르트)가 쓰러져서 사라지는 건지는 불분명. 상태로 봐선 후자에 가까운 듯 하다.
작가의 트위터에 "논란이 많을 테지만 중요한 화"라고 예고했던 그 에피소드. 확실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고수위의 전개다. 애니화될 때 가장 문제가 많을 거 같은 에피소드가 됐다.
라케이드의 마법의 발동 조건은 누가 봐도 "그거"지만 소년지의 한계상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독자들은 음란마귀가 잔뜩 껴서 그거 말고 다른 예측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 아무튼 이번 화 때문에 메이비스까지 비처녀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보기에만 저렇지 사실 마카로프보다 할머니--
그럼 결국 동정 캐릭터가 하드 카운터가 아니냐는 설이 나오지만 유키노처럼 강제로 쾌락을 느끼게 해서 발동하면 되므로 거의 무적이나 다름 없는 마법--사실상 동인계 제패를 위한 마시마의 포석--
- 페어리 테일/541화 . . . . 4회 일치
* 이어서 스팅과 로그가 뛰어드나 아크놀로기아의 손짓 한 번으로 낙엽처럼 휘날린다. [[렉서스 드레아]]와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의 2파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다. 코브라는 마음의 소리를 읽는 능력을 시도해보니 실패. [[나츠 드래그닐]]의 시선이 렉서스와 코브라에게 향하자 아크놀로기아는 그럼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폭발성의 마법이 나츠에게 작렬, 방어한다.
* 아직 일행이 큰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아크놀로기아는 그 이상이다.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반격하는데 고작 손가락 하나 까딱했을 뿐이다. 일행이 새삼 그 위력을 실감하는 동안 마룡은 오만함을 드러낸다.
* 매그놀리아에는 페어리 테일을 중심으로 생존한 전력들이 속속 집결한다. [[엘자 스칼렛]]에게 지금 상황이 전모를 들은 [[마카로프 드레아]]는 병력을 모아놓고 절망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체가 지상에서 날뛰고 있고, 대항할 수단인 멸룡마도사들은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가 버렸다고.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없다.
* 이제 시간이 없다. [[카나 알베로나]]가 루시가 말한 방법에 대해 묻는다. 루시는 먼저 몇 명이서 할지온 항구로 가서 큰 배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그건 멸룡마도사 공통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탈 것에 약하다", 그 멀미 체질을 이용하는 거다. 하지만 [[엔젤(페어리 테일)|엔젤]]은 실효성을 의심한다. 기껏 성공한들 잠깐 주춤하게 하는 정도 아니겠는가?
- 페어리 테일/542화 . . . . 4회 일치
* 마침내 페어리 스피어 발동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나 아크놀로기아의 "본능"이 위험을 직감하고 선제공격, 항구의 배를 모조리 파괴해 실행이 불가능해진다.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상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상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 것인가? 망연자실해진 마도사들. 시간의 틈새에 있는 정신체가 그랬듯, 마룡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린다. 이 또한 마룡의 본능. 미네르바는 마룡이 자신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인식해서 먼저 파괴해 버렸음을 깨닫는다.
- 프로그램 규정설 . . . . 4회 일치
[[헌법]]의 규정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현실에서 법적 효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실현에 노력해야 하는 정치적, 도의적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이다.
프로그램 규정설의 탄생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마르 헌법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이상적인 조항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경제적인 실태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헌법의 이념과 현실의 격차를 처리하기 위하여 프로그램 규정이라는 이론이 도입되었다.
- 하이큐/229화 . . . . 4회 일치
* 혼자가 아님을 실감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치게 된 사와무라. 어느새 D-day가 다가와 있다.
* 신사를 나서면서, "원래 신사참배할 때는 소원이 아니라 감사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즈마네는 자기는 그걸 몰라서 시합 결과에 옆집 개의 건강가지 빌어버렸다고 "신령님이 뻔뻔하다고 생각하겠다"고 한탄한다. 이런 실없는 얘기나 하던 중에 시미즈가 "신령님한테 빈다고 시합에서 이기는게 아니다"는 독설을 날린다. 일순 굳어버린 남자들. 스가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 당연하고도 분명한 진실. 3인조는 새삼 깨닫고 새로운 파워를 얻은 것처럼 기운을 낸다.
* 귀갓길에 다른 3학년들과 떨어진 사와무라는 여전히 꿈 때문에 찜찜한 기분이 든다. 가던 길에 잠시 체육관에 들러보는데 왠지 부원들이 체육관에 와있다. 히나타는 참배갔다 오는 길에 그냥 들렀고 왠지 카게야마는 런닝 중이었는데 어쩌다 들렀다고 한다. 타나카는 누나의 주정을 참다 못해 도주, 니시노야는 "강자를 찾아서"라는 해괴한 이유. 사와무라는 "참치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냐"고 핀잔하며 쉬는 날엔 푹 쉬고 괜히 돌아다니다 감기나 들지 말라며 쫓아낸다. 그런데 사실 사와무라도 "체육관을 농구부한테 뺏기지 않았나 확인"하러 왔으니 엉뚱하게 돌아다니긴 마찬가지다.
- 하이큐/230화 . . . . 4회 일치
* 잠시 뒤 카라스노는 현지의 체육관에서 마지막 연습에 돌입한다. 평범하게 적응하는 멤버도 있지만 히나타는 잔실수가 늘었고 아즈마네 아사히는 평지인데도 산소가 부족하다며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소심이들이 제실력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다. 타케다 고문은 히나타는 긴장하는 편은 아니지만 첫 전국대회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팀 전체가 경직된 분위기라 매니저인 야치 히토카 조차 호흡곤란을 호소할 지경이다.
* 여성 멤버 끼리 목욕 중인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 히토카는 둘만 있으면 긴장돼서 아무 이야기나 꺼내보는데 시미즈가 항상 검정 스타킹을 신는것에 대해 묻는다. 사실 그건 다리에 남은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 육상을 했던 시미즈는 주종목이 허들이었는데 심하게 넘어지면서 다리에 흉터가 남아버린다.
- 하이큐/231화 . . . . 4회 일치
* 개막식을 앞두고 선수들이 대기실에 모여든다. 카라스노 고교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네코마 고교의 쿠로오 테츠로는 서로 긴장했냐고 디스하며 압박감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쿠로오가 "너네 10번(히나타 쇼요) 미아같은 상태인데 괜찮냐"고 하는데 정말로 상태가 좋지 않다. 완전 길잃은 고양이 모드. 위축돼서 서성거리다 다른 선수에게 부딪혀서 비틀거린다.
* 이번엔 지하철이 복구돼서 역으로 향하는데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히나타와 타나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자리 비운 인원의 짐을 맡는데 나리타 카즈히토가 나눠 맡아준다.
* 무사히 체육관에 도착한 카라스노. 사와무라는 평상심을 중얼거리고 있고 스가와라는 그걸 지적하며 놀린다. 시미즈는 아즈마네 아사히가 출입증을 놓고 간걸 챙겨준다. 우카이 코치는 다들 딱딱해 보이지만 상정한 범위라며 오히려 자신이 긴장을 떨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히나타가 시합 직전 짐을 뒤적거리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모양은 같지만 자기 가방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다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한동안 잊혀져 있었던 히나타의 "칠칠맞음"이 대폭발. 첫 전국대회부터 대형사고를 쳐줬다. 그런데 가방이 바뀐 건지 처음부터 안 챙겨온 건지 아직 불명. 하지만 위의 히나타가 야마구치에게 가방을 맡기고 화장실에 가는 장면에서 뒤에 작게 한 인물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히나타의 가방과 똑같이 생긴 가방을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관련성이 있는듯 싶다.
- 하이큐/241화 . . . . 4회 일치
* 다시 주고받는 랠리가 이어지고 카라스노의 결정적인 득점 찬스. 그런데 여기서 실수가 일어난다. 카게야마가 올린 공이 츠키시마의 타점을 빗나간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가 지쳤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잘못 올렸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타점이 빗나간 것은 사실. 이대로 실점한다면 2세트는 끝난다. 바로 그 순간.
꼭 이 세트를 가져오고 말겠다는 3학년의 의지. 스코어는 24 대 23로 카라스노의 매치포인트에 도달한다. 니시노야가 나이스 뒷처리라고 코멘트하는데 사와무라는 사실 "슬슬 안 맞을 타이밍"이라고 계산하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 하이큐/261화 . . . . 4회 일치
* 코사쿠가 벤치로 돌아오면서 원래는 5번 타나카를 노리고 있었는데 1번 사와무라 쪽으로 잘못 갔다고 한탄한다. 이나리자키가 분위기를 정돈한다. 비록 첫 세트 포인트를 내줬어도 한 번만 버티면 서브 순서는 다시 [[미야 아츠무]]에게 돌아간다. 해설자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카라스노로서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여기서 1점을 따서 끝내고 싶을 거라고 분석한다. 그 말이 사실이다.
아쉽게도 [[스나 린타로]]의 눈치가 빨랐다. 여지없는 셧다운. 공이 카라스노 진영의 코트를 찍는다. 카게야마가 세트업이 살짝 짧았다고 사과하지만 타나카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도 될 줄 알았던 스파이크였다. 오늘 타나카는 묘하게 풀리지 않는다. 반면 번번히 타나카를 방해하는 스나 린타로는 이제 발동이 걸린 것처럼 펄펄 뛴다. 반면 타나카는 실책이든 불운이든 좋은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관중석에선 그럴 "활발 빡빡이"라 칭하고 구멍 취급이다. 어떤 선수든 안 풀리는 날이 있기 마련이지만...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열 받아서 로우 텐션 모드가 됐다"고 중얼거린다. 옆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걸 본인이 알긴 알았던 건가 하며 충격을 받는다.
이번에 아츠무의 목표는 분명하다. 사실 이나리자키 측에선 진작부터 5번, 타나카를 집중 공략했다. 오늘 두드러진 활약도 없고 컨디션도 어정쩡해 보이는 타나카를 두들겨서 카라스노를 끌어내릴 참이었다. 지난 TO에서도 그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그 뒤로 나오는 서버마다 줄줄이 타나카를 노렸다. 아츠무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그가 서브 위치에 서자마자 타나카가 감을 잡았다.
* 전위에는 카게야마. 이나리자키 측은 투 어택도 대비했다. 카게야마의 세트업에 맞춰서 모이는 이나리자키 블록. 카게야마도 공격자원 전원이 네트 앞으로 뛰어오르며 블록을 모아놓는다. 츠키시마, 타나카, 아즈마네가 각각 중앙, 좌측, 우측에서 뛴다. 그러나 이들 중에 진짜는 츠키시마 뒤에서 튀어나온 사와무라. 실전에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와무라의 백어택이다. 그것도 자신이 별로 자신없어 하는 공격.
- 학동 . . . . 4회 일치
명칭으로는 「학동 클럽(学童クラブ)」「방과후 아동 클럽(放課後児童クラブ)」「학동보육소(学童保育所)」「부재중가정아동회/실(留守家庭児童会/室)」「아동육성회/실(児童育成会/室)」등이 있다. 학동(学童)으로 줄여서 쓰는 경우가 많다.
방과후에 보호자가 귀가할 때까지 아동을 맡아서 돌보면서 적절한 놀이와 활동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아동이 감소하여 빈 교실이 늘어난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보육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한상권 (방송인) . . . . 4회 일치
|소속 =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아나운서
* 2014년 8월 ~ 2015년 12월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아나운서2부장
* 2017년 8월 ~ 아나운서실 한국어 연구부장
- 한상훈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하였다. 민첩한 풋워크와 손놀림, 타구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때론 메이저 리그급 [[2루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f>《스포츠 2.0》 2007년 프로야구 Complete Guide</ref>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여 주지만, 타격이 약한 편이다. [[2004년 한국 프로 야구 병역 비리 사건|2004년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8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101 '한상훈 입대' 한화, '2루수 고민' 해소할까] 《Osen》, 2008년 12월 7일</ref>
2010 시즌 후 소집 해제로 팀에 복귀하였고, [[2011년]] 131경기에 나와 398타수 107안타 타율 2할6푼9리 3홈런 39타점 49득점 16도루로 공격력이 향상되었다. [[안치홍]]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골든 글러브 [[2루수]] 후보에도 올랐다. 시즌 후 [[신경현]]을 이어 주장이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9265 첫 골든 글러브 후보 된 한상훈의 남다른 각오] 《OSEN》</ref>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4년 총액 13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2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9141 한화, 내부 FA 3인방 전원 재계약 '이대수 4년 20억'] - OSEN</ref> 시즌 후 [[강동우 (1974년)|강동우]]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입대하기 전 자신이 썼던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2015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한화에서 방출되었다.
하지만 [[이양기]],[[지성준]]과 같이 [[신고선수]]로 복귀하였다. 선수등록 마감일인 2016년 1월 31일까지 타 구단의 영입제의를 받지 못했고 소속구단과의 협상도 결렬됨으로써 사실상 팀에서 방출되었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60219/76546617/1 한상훈, 13년간 몸담았던 한화 떠난다] -스포츠동아</ref>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출<br /><br />장!![[타석|타<br /><br />석]]!![[타수|타<br /><br />수]]!![[득점 (야구)|득<br /><br />점]]!![[안타|안<br /><br />타]]!![[2루타|2<br />루<br />타]]!![[3루타|3<br />루<br />타]]!![[홈런|홈<br /><br />런]]!![[타점|타<br /><br />점]]!![[도루|도<br /><br />루]]!![[도루|도<br /><br />실]]!![[볼넷|볼<br /><br />넷]]!![[삼진|삼<br /><br />진]]!![[타율|타<br /><br />율]]!![[출루율|출<br />루<br />율]]!![[장타율|장<br />타<br />율]]!![[OPS|O<br />P<br />S]]!![[누타수|루<br /><br />타]]!![[병살타|병<br />살<br />타]]!![[몸에 맞는 볼|몸<br /><br />맞]]!![[희생 번트|희<br /><br />타]]!![[희생 플라이|희<br /><br />플]]!![[고의 사구|고<br /><br />4]]
- 한운사 . . . . 4회 일치
특히 아로운 3부작은 작가 자신의 군경험이 녹아있는 자전적 작품으로 아로운(阿魯雲, [[영어]]로 alone) 자체가 한운사 [[본인]]이나 다름 없으며, 13부대 자동차 중대 제6내무반에서의 군생활을 다루었다. 참고로 같은 [[내무반]]의 동료 지하라(千原) [[이등병]]의 경우 실제 모델이 천응렬로 후에 한운사 작가의 자서전 '구름의 역사'에선 실명으로 등장한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모리 지로(森次郞) 일등병도 실존 인물이며 원래 실제 인물의 이름도 모리.
- 해원군 . . . . 4회 일치
| 직업 = [[왕족|왕족 종실]], 문신, 무관, 정치가
'''해원군 이건'''(海原君 李健, [[1614년]] ∼ [[1662년]])은 [[조선]]의 [[왕족|왕족 종실]]이다.
20년 후 [[1657년]] '''해원군'''(海原君)에 진책되었으며 이후 청렴한 성품을 발휘하여 자신의 사저(私邸)에 조그만 서실(書室)을 짓고 그곳에서 [[한시]]와 [[시조]]를 작시와 아울러 [[서예]]와 [[서예|서화]]에 열중하여 당시 사람들이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 [http://www.rfo.co.kr/view_party.php?list_mode=people1&refnum=090&party_name= 대한제국 조선 황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 해원군 이건]
- 허위 . . . . 4회 일치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민 것 등을 뜻한다.
1907년 [[고종(조선)|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 7조약]]으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왕산로]]이다.]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참고로 이 분의 손자 분들이 구 소련 및 중앙 아시아에서 [[고려인]] 신분으로 힘들게 사시다가 2006년 [[귀화]]하셨다 [[https://www.youtube.com/watch?v=x2lb-2qPOlw&t=1025s|#]]. 3대가 지나온 국권 침탈 - 연해주 - 중앙 아시아의 기나긴 여정과 또 종착점으로서 그들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눈물겹다.
- 현석문 . . . . 4회 일치
현석문은 [[1797년]]에 [[한양]]에서 [[중인]] [[신분]]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되던 [[1801년]]에 [[신유박해]]로 [[순교]]하였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1839년]]에 [[기해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누나 [[현경련]] 또한 기해박해로 순교하였다.
현석문은 순교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조선 헌종|헌종]] 2년([[1836년]])에 [[의주]]로 가서 [[앵베르]] 주교를 [[조선]]으로 맞아들였다. [[1837년]]에 [[샤스탕]] [[사제|신부]]가 입국하자, 현석문은 그의 [[복사 (기독교)|복사]]가 되어 신부와 함께 [[선교]] 여행에 동참하는 한편, 교인들의 신앙지도에 힘썼다.
[[앵베르]] [[주교]]와 [[선교사]]들이 체포될 때, 현석문은 [[한양]]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주교는 [[순교]] 전에 [[조선]]의 [[교회]]를 맡겼다. 이 사실은 주교와 교우들이 그를 얼마나 크게 존경했는지를 보여준다. 현석문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재영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새로 입교한 교우들을 격려했고 여러 [[선교]]지들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아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뒷바라지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현석문이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고문을 면제 받았다고 하였다. 어쨌든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관찬 기록(《[[헌종실록]]》)에 따르면, 현석문은 [[1846년]] [[9월 19일]]([[음력 7월 20일]])에 [[참수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관찬 기록(《[[승정원일기]]》)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는 [[군문효수형]]도 선고받았다고 전한다.
- 홍경인 . . . . 4회 일치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2016년 12월 11,18일에 방송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참가해 모처럼 시청자들을 찾았다. [[동네방네 스피커]]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내 안에 첫눈 있다 스노우볼]]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조율하고 가실게요! 바이올린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를 가수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데꿀멍...... 뭐 정식 앨범을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가 매너리즘이 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연기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우 숫자 뒤에 K가 안 붙는다며 이번을 계기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 홍명찬 . . . . 4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6년]] [[5월 25일]] <br /> [[잠실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5년]] [[6월 5일]] <br /> [[잠실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 홍주찬 . . . . 4회 일치
* [[숭실중학교]] (졸업)
* [[리라아트고등학교]] 디지털사운드콘텐츠과 (전학) →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실용음악과 (졸업)
*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 (재학) <ref>[https://www.youtube.com/watch?v=K66_cnUupYQ 골든차일드 Golden Child _ 인사 멘트 ment _ 전체직캠 _ 백석예대 OT _올림픽홀], 유튜브.</ref>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201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골든차일드의 일원]][[분류:서울증산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중학교 동문]][[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동문]][[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백석예술대학교 동문]][[분류: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황두진 . . . . 4회 일치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모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을 설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마당과 툇마루, 방을 오밀조밀하게 누비는 한옥의 동선을 전시실에 적용했다"며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은은하게 살렸다"고 했다. <ref name=":0">{{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3/2012021300208.html|제목=[오늘의 세상] 스웨덴 왕가의 代이은 한국사랑|저자=채민기 기자|날짜=2012년 2월 13일|뉴스=|출판사=}}</ref>
전층이 단일용도로 되어있는 건축물을 시루떡에 비유한다면 층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갖는 건축물은 무지개떡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5층 내외로 상층부에 주거가 들어가는 유형을 황두진건축에서는 특별히 무지개떡건축이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길과 면한 저층부에는 외부계단과 상가가, 중간층에는 사무실이, 상층부의 주거에는 옥상마당 등이 들어간다. 무지개떡건축은 도시의 밀도를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거리의 활력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조망 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탁월한 도시건축의 유형이다. 사회적으로는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서 도시재생에도 유리하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rca/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홈페이지|제목=무지개떡 건축 rainbow cake architecture|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51347501&code=960205 |뉴스=경향신문|제목=무지개떡 건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저자=백승찬 기자|날짜=2015-12-25|출판사=|확인날짜=}}</ref>
* 2008-2009 한강교량 보행자시설 (잠실대교, 한남대교, 동작대교)<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00210/26065472/1 |뉴스=동아일보|제목=[나의 건축을 말한다]황두진의 '한강다리 카페들'|저자=손택균 기자|날짜=2010-02-10|출판사=|확인날짜=}}</ref>
- 황석두 . . . . 4회 일치
|매장지 = [[절두산 순교성지]]<ref name=jeoldusan>[http://www.jeoldusan.or.kr/renew/introduce5.php?ptype=&page=2&code=contents09 한국 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 성인유해실]</ref>
황석두는 20세에 [[과거 제도|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났다. [[한양]]에서 그는 [[주막]]에서 묵던중 한 박식한 [[천주교]]인을 만났다. 황석두는 그에게서 [[천주교]]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고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그 [[천주교]]인에게서 몇 권의 [[천주교]] [[서적]]을 받았다. 그는 그 [[천주교]]인이 떠난 후 사흘 뒤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놀란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과거 제도|과거 시험]]에 급제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말은 하늘의 시험에 합격했다는 뜻이었다. 황석두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지만, [[천주교]] 신앙을 공부하는 것을 계속하였다.
황석두는 그의 아내를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한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황석두는 3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온가족은 그의 무언증을 고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그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온가족은 애달퍼했고, 결국 황석두의 권면으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다.
비천주교인들까지도 황석두의 헌신과 충실함 그리고 훌륭한 성품에 감복하였다. [[페레올]] [[주교]]가 [[조선]]에 입국 했을 때, 황석두는 여생을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절제와 [[금욕]]을 위해 페레올 [[주교]]에게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 받고 독신으로 살았다. 주교는 황석두를 [[사제]]로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교황청]]에서는 [[조선]]에 황석두의 아내가 입회할 [[수녀회]]가 없다는 이유로 주교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 황치열 . . . . 4회 일치
* 2015년 명실상부한 대세남으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남성미 넘치는 춤, 구수한 경상도 억양을 담은 사투리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종횡무진 출연 중이며, 2015년 9월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인턴 MC로도 자리매김 함. 그 외 각종 음악 행사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가수로써도 인지도를 높이며 활약 중임.
* 2015년 9월 6일 스페셜 뮤직 페스티벌 with [[노을]], [[하동균]], [[이정]] 잠실실내체육관
| 올해의 최고 실력있는 가수상(年度最具实力歌手)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3회 일치
* 확실히 시마다는 하야시다가 부러워하는 모든 요소를 갖춘 인물.
* 그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깨닫는데, "아무 것도 안 하면 누구한테든 뺏긴다는 것"
- EM 드라이브 . . . . 3회 일치
영국의 로저 쇼어(Roger Shawyer) 박사가 개발한 추진기. 전자기파를 이용한 추진장치로서, 2006년 9월 8일 뉴사이언티스트 커버 스토리에 실렸다.
EM 드라이브를 사용하면 기존의 로켓과는 달리 반작용에 필요한 연료 없이 반영구적으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으나, 그 원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2006년 처음 개념이 등장해서 일단 실험 결과 실현 가능성은 나타났으나, 구체적인 원리는 수수께끼인 부분이 많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3회 일치
2015시즌 양 팀의 상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한 수준이었던데다가 무승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한 "무승부시에는 홈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라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무승부가 나왔고, 이에 3위팀(홈)인 수원 FC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광의 실책으로 발생한 자책골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김영광은 전후반 90분동안 21개의 슈팅중에 15개나 유효슈팅이었던 수원 FC의 날카로운 공격을 잘 막아냈을 정도로 활약은 준수했다. 자책골에 묻혀버렸을 뿐.
- Victoria II/POP . . . . 3회 일치
* Unemployment(실업률): 해당 POP 중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의 양. 예시의 POP는 실업률이 거의 없다.
모든 욕구를 충족한 POP는 문제를 일으키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남아나는 돈을 모으거나, 예금하거나, 국립 은행에 투자한다. 이런 이들 중 의식도가 높은 POP는 좀 더 상위 등급의 POP로 승진하기까지 한다. 반면 오랜 기간 불만족한 POP들은 (실업자일 경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주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직업을 바꾸게 된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 . . . . 3회 일치
=== Realism(현실주의) ===
=== Positivism(실증주의) ===
=== Experimental Psychology(실험적 심리학) ===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3회 일치
=== Practical Steam Engine(실용적인 증기기관) ===
=== Experimental Railroad(실험적인 철로) ===
* Pressure Chambers for Thorax Surgery(흉곽 수술을 위한 여압실)
- 강화종실 . . . . 3회 일치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자손. 왕실에 가까운 가족이었으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기에 강화종실이라고 부른다. 후에 이 계보에서 '[[조선 철종|철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음으로서 계보는 끊어진다.
[[조선 헌종|헌종]]이 자식이 없이 사망하자,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덕완군(德完君)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철종이다. 하지만 철종은 후사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강화종실은 대가 끊어졌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3회 일치
* 가구를 둘러보더 우마루는 전단지의 실내 풍경과 자기들 아파트의 다른 점은 가구의 차이라고 외친다.
* 사실 타이헤이는 우아한 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우마루가 바닥을 더럽히는 건 TV가 바닥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해서 마음이 바뀐다.--그게 아닐 거야 아마--
* 사실 타이헤이는 가구점 회원카드도 가지고 있었는데 거의 쓴 적이 없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3회 일치
* 사실 오빠의 상사가 온다고 들은 우마루는 "접대"를 해서 오빠의 사내 지위가 올라가는데 일조하려는 속셈이다.
* 음료 선택은 실패했지만 나름대로 화기애애해진다.
* 확실히 저 상황에서 콜라 원샷은 묘기에 가깝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3회 일치
* 사실 우연히 데려오게 된 거라 카나우는 당황한다.
* 히카리는 "언니랑 같은 학교가 아니냐"고 묻는데, 사실 이 시절 카나우는 타이헤이와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 카나우는 직장에서 타이헤이를 초대하려고 시도하지만 어떻게 권유해야 할지 몰라 "그런건 특진 클래스에서도 못 배웠다"며 우왕좌왕하다 실패한다.
- 경대수 . . . . 3회 일치
[[2009년 재보궐선거]] 당시 김종률의 피선거권 상실로 치뤄진 고향 충북 진천, 음성, 괴산, 증평 선거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정범구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하였다. 정범구 후보는 음성 출신이라 음성쪽의 지원을 받았고, 경대수는 괴산 출신이라 괴산의 지원을 받았는데 그만 공천에 탈락한 진천군수 출신 김경회가 무소속 출마하여 진천쪽의 표심을 잠식하고 나아가 여권 성향의 표를 분산한 것이 원인이었다.
새누리당에서는 비박으로 분류되었다. [[2016년]]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새누리당/비상시국위원회|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다만 [[바른정당]] 창당에는 합류하지 않은 상태.
|| 2009 || [[2009년 재보궐선거|2009년 하반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진천/음성/괴산/증평)[* 전임자 [[김종률]] 피선거권 상실] || [[한나라당]] || 22,077 (29.64%) || 낙선 (2위) || ||
- 고대 그리스 . . . . 3회 일치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고전기 그리스에서 폴리스 전성기, 헬레니즘 시대를 뜻한다. 이후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그리스가 정치적 주체성을 상실할 때까지를 고대 그리스로 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폴리스들의 자치는 사라졌지만, '그리스 문명'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인이 가장 널리 지배권을 펼쳤던 시기이다. 마케도니아에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마케도니아도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그리스 인이나 다름없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으로는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인도까지 그리스 계 폴리스와 왕국이 나타난다.
지중해 세계의 왕국들은 차례차례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파르티아와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거치면서, 박트리아 왕국과 같은 정치적 실체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리스 본토와 단절된 탓에 서서히 현지인들에게 동화되어 소멸하게 된다.
- 구자욱 . . . . 3회 일치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구천서 (야구인) . . . . 3회 일치
구천서는 1981년 대통령배 실업 연맹전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쌍둥이 동생 [[구재서]]와 함께 1981년부터 상업은행에서 활약했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동생과 함께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그루베니아 . . . . 3회 일치
그루베니아의 교육의 과정은 초급학교, 상급학교, 대학교로 구성되어있다. 초급학교의 교육기간은 6년으로 기초 학문을 가르친다. 상급학교는 인문학교, 일반학교, 실업학교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교육기간은 인문학교는 6년이고 일반학교 실업학교는 4년 이수이다. 인문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 할 수있으며 ,일반학교, 실업학교의 경우도 졸업 이후 합격시험을 거치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 김광석 . . . . 3회 일치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2017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딸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사인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이에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중이다.<ref>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28</ref>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 별명 = (붉은 셔틀의) 곡예사, 김구, 구질라, 김구열
처음으로 진출한 개인리그인 곰TV MSL 시즌4에서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가며 선보인 아찔한 셔틀리버 플레이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구현의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셔틀곡예 플레이는 그에게 '붉은 셔틀의 곡예사'라는 별명을 얻어주었다. 붉은 셔틀이란 체력이 빨간색으로 매우 낮은 상태인, 곧 터져버릴 것 같아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셔틀을 의미한다. 김구현은 세 종족전에서 고른 승률을 보이는 만능 플레이어이나 뛰어난 셔틀리버 플레이로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특히 저그전에 특화된 선수로 평가된다.
- 김기섭 (1939년) . . . . 3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남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상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영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 [[1993년]] [[3월 5일]]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 [[1997년]] [[3월]] 안기부 운영차장 겸 기조실장에서 면직
- 김대휘 . . . . 3회 일치
법관 재직 중에 민·형사법 주석서와 ‘형사실무제요’ ‘양형실무’등 각종 법원 실무지침서와 40여편의 논문을 썼다.
- 김덕현 (변호사) . . . . 3회 일치
김덕현은 판사 출신으로 [[1986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여성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여성문제연구실무위원장,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다.<ref>김효섭.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11071 전원위원회 구성 어떻게]. 서울신문. 2004년 8월 25일.</ref> <ref>강충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33227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한양대]. 서울신문. 2005년 2월 28일.</ref> <ref>심규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323957 <헌법재판관 5인 교체 앞두고 하마평 무성>(종합)]. 연합뉴스. 2006년 6월 11일.</ref> <ref>이하나. [http://www.womennews.co.kr/news/54417 네 번째 여성 대법관 탄생하나]. 여성신문. 2012년 8월 17일.</ref>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했을 때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ref>백기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28&aid=0000051186 노무현 - 변호인단 첫 상견례]. 한겨레. 2004년 3월 22일.</ref> 배우 [[최진실]]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을 때 그 변호인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ref>김태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69022 최진실씨 변호인단 매머드급]. 세계일보. 2004년 12월 14일.</ref>
- 김운용 . . . . 3회 일치
김운용은 연희전문대(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으며, 경찰의 실탄 요청을 송요찬이 거부하였다고 증언하였다.<ref>이문영,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473.html “4·19때 경찰이 계엄사령관에 총탄 10만발 빌려달라 요청”], 한겨레신문</ref>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김지석(배우) . . . . 3회 일치
||<#595959><:> {{{#FFFFFF '''데뷔''' }}} ||<(> [[2004년]] [[김형중]] 뮤직비디오 '그녀가 웃잖아'[* 다만 실질적 데뷔는 2001년 5인조 보이그룹 [[리오(아이돌)|리오]]로 데뷔했다.] ||
예능에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소녀시대 티파니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받았다는 영상이 여초 사이트에 돌았으나, 사실 여자친구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는 컨셉의 김지석이 사위에 적합한지 외가 역할 패널들이 하나하나 트집잡는 과정의 꽁트였다. 티파니 뿐만 아니라 정형돈이 김지석보고 배를 내밀며 내가 너보다 더 몸매 좋다(...)고 놀리는데 당연히 진심이 아닌 예능상 컨셉. 김지석 본인도 연출이었다고 밝혔다. 애초에 미국인이 영국 영어를 못알아들을 리 없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tar&no=283285|해명글]]
상기했듯이 형이 한 명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김지석이 출연하는 [[문제적 남자]]에 나와서 밝혔고 그 출연료는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지원을 했었고 실제 입학시험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이해 못해서 케임브리지에 상당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고 왜 거기서 떨어졌는지 깨달핬다고 한다.[* 그냥 수학 테크닉만 좋은 학생의 한계를 느꼈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 김창규 (작가) . . . . 3회 일치
| 제목 = 민주화보상법 범위ㆍ대상 넓혀야 - 판정근거, 피해내용과 함께 실질적 행위도 고려해야
{{출처|날짜=2012-04-03|[[1975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해 구금, 구속, 연행 등의 고난을 겪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때 입은 부상으로 한쪽 청각을 상실하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출처|날짜=2012-04-03|1981년에는 납치되어 대전 안기부, 경찰서 보안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1987년 [[6월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구속당하기도 했다.}} {{출처|날짜=2012-04-03|[[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감시대상 1호임을 알게 되었다.}} 2008년에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ref>{{뉴스 인용
- 김효원 . . . . 3회 일치
그의 친구 중 [[조선 명종|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尹元衡)의 사위로, 장인 [[윤원형]]의 집에 처가살이하던 [[이조민]](李肇敏)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윤원형]]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의 다른 친구들은 [[이조민]]을 멀리할 것을 권고했으나 그는 [[이조민]]의 사람됨됨이를 보고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인순왕후]]의 친정 남동생으로 역시 왕실의 인척이던 [[심의겸]]이 집안 어른들과 함께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다가 그를 보게 된다.
그 뒤 병조좌랑·[[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 중 김효원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척신계]]가 정계에서 몰락하면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전랑으로 있던 오건(吳健)이 자리를 옮기면서 이조전랑으로 [[오건]]이 그를 추천하였으나<ref>1575년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이조 전랑의 임명은 전임자의 후임자 천거로 임명되었다.</ref> 과거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沈義謙)이 강하게 반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는 외척도 아니고 [[이황]]과 [[조식]]의 문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심의겸]]의 반대를 견뎌내고 [[이조]][[전랑]]이 되었다. 또한 그는 [[심의겸]]이 외척으로 그의 집안이 [[윤원형]]의 집안과 인척이고 가까이 왕래한 것과, [[심통원]]의 부패, 비리를 지적하며 공격하였다.
한편 [[심의겸]]과의 대립은 사림의 분열로 이어지고 점차 심해지자 우의정 [[노사신]]과 부제학 [[이이]] 등은 분쟁 완화의 조정안으로 두 사람을 한성을 떠나 외직으로 보낼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여 김효원은 [[경흥부사]]로, 심의겸은 [[개성부유수]]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김효원이 더 먼곳의 외직에 배치되었다는 [[동인 (정치)|동인]]의 반발로 그 조정안은 실패로 끝났다.<ref name=autogenerated1 /> 김효원을 지지하던 측에서는 일부러 배경이 없던 그를 더 먼곳으로 축출한 것이라 반발하여 다시 부령부사로 전보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부령이 변방이라 하여 반발하므로 다시 [[삼척]][[부사]]로 옮기게 되었다.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2014년 12월 7일, [[나고야 대학]]에 재학중인 여학생이 77세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 범인은 [[나고야 대학]]에 진학중이던 여대생 오오우치 마리아(大内 万里亜)이다. 범인은 평소 얼굴을 알고 지내던 피해자 모리 토모코(森外茂子,77세 여성)를 자신의 아파트에 불러들여서, 방 안에 보관해두던 [[도끼]]로 공격했다. 하지만 몇번을 때려도 피해자가 죽지 않자, 피해자가 하고 있던 [[머플러]]를 빼앗아서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 이후 피해자의 시체를 욕실까지 끌고 가서 세면대에 방치하고, 「마침내 했다.(ついにやった。)」고 [[트위터]]에 보고하며 휴대폰으로 시신을 찍어서 올렸다.
함께 노래방에 갔던 중학생 시절 동급생에게 탈륨을 투여했다. 이 때 소녀를 문병하러 방문했는데, 진술에서 병문안은 탈륨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했을 뿐이며, "의외로 건강해서 실망했다."고 밝혔다.
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황산탈륨]]을 [[쥬스]]에 넣어서 동급생 남학생을 살해하려 했다. 이 남학생은 거의 실명에 이를 뻔 했으나 원인 불명의 건강 이상으로 처리되었다. 교내에서는 범행을 의심하는 소문이 퍼졌고, 병원에서도 학교 측에 특수한 약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통보했으나, 학교에서는 입시철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요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안이하게 처리하였다.
- 나용찬 . . . . 3회 일치
괴산고등학교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하였다. 이후 숭실사이버대학교 경찰교정학과 겸임교수, [[중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괴산군수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전임자 [[임각수]]의 [[군수]]직 상실로 치러진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8년 4월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3회 일치
* 올마이트는 이제 "지키는 입장"에서 "지켜지는 입장"을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 사실상 실력만으론 토도로키 이상이라고 할 만큼 강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실전과 같은 시험을 표방하는 주최측은 구조활동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이변"을 "연출"한다.
* 현장에서는 착실하게 구조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까다로운 채점기준에도 불구하고 매우 순조로운 흐름.
갱 오르카는 히어로 랭킹 10위. 참고로 "빌런 같이 생긴 히어로 3위".--이 위로 2명이나 있다-- 작가의 전작에서 실제로 빌런으로 나왔던 캐릭터인데 어째 그때보다 더 빌런 같은 면상으로 돌아왔다. 바쿠고 탈환전에서도 모습을 보였는데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3회 일치
* 요아라시는 토도로키 쇼토와 함께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된다.
* 요아라시는 시험 중 토도로키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비록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요아라시는 승리를 자축하며 토도로키에게도 굉장한 실력이라 칭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불합격자들을 계속 남겨둔 이유도 설명되는데, 이들은 이대로 탈락하고 끝나는게 아니다. 불합격자들은 3개월 동안 특별강습을 거쳐 재시험이 준비되어 있다. 장래에 "질 높은" 히어로가 더 많이 필요한 현실에서 1차 시험을 클리어한 100명을 최대한 활용하는게 이들의 목적. 탈락자들도 채점 결과 싹수가 없는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준비를 시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는 4월 시험이 재도전의 기회. 바쿠고, 토도로키, 요아라시 3인은 당연히 도전할 거라고 벼른다.
예상대로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는 탈락. 바쿠고도 점수를 따는 듯 하더니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재시험이 있으니 재시험에서 당락이 확실히될 듯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3회 일치
* 미디어에서는 연일 히어로 사회의 위기를 떠든다. 드물게 미야기 캐스터처럼 진지한 의견을 내놓는 언론인도 있다. 아저씨도 그만은 인정하는데, 한편으론 또 인정 못한다. 언론에서 말하는건 결국 "올마이트란 존재가 너무 큰 존재"였다는 것. 그의 존재로 인해 가려져 있던 것들이 은퇴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엔데버가 그렇다. 지금은 명실상부 No.1 히어로지만 적어도 일반시민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민들은 엔데버로 딱히 안 되는건 아니지만 올마이트와 비교된다고 말하한다. 아저씨가 보기엔 너무 거친 인물이며 범인이 초인인척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를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는 불가항력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올랐다. 그건 그의 불행이다.
* 그는 미야기 캐스터가 말하는 부분은 파워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파워를 말하는 거라고 모순되게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상반된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닥치고 있으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올마이트의 존재가 성실한 사람들에겐 든든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겐 저주에 불과하고 그 저주가 풀린 지금은 폭주하게 된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그가 외출하자마자 한 무리의 빌런이 상가를 약탈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중인격 성향이 드러나는데 상당히 중증. 평소에도 또다른 자아가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는 걸로 자아를 확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간학교편 당시에도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등, 본인이 괜찮다고 여길 뿐 전혀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원래 캐릭터 모델이 데드풀로 추정되는데 실제 데드풀도 다중인격 성향이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3회 일치
* 올 포 원은 타르타로스의 이름에 빗대서 "아무리 나라도 신에게 반역하는건 고생스럽다"고 푸념투로 말하는데 [[올마이트]]는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정해준다. 올 포 원은 그래서 뭘 원하냐고 묻는다. 이 면회가 그란토리노의 판단인지, 아니면 올마이트의 독단인지 묻고 또 왜 원 포 올을 쓰지 못하는 지금도 히어로 코스튬을 걸치고 있냐고 빈정거린다. 올마이트가 잘도 지껄인다고 쏘아붙이자 "오랜만의 대화"라며 기분이 들뜬 척 한다. 실제로 그는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어 "인간"과의 대화는 오랜만인 듯 하다.
* 올 포 원은 "확실해 해두러 왔다"는건 그거였냐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친다. 때마침 퇴실 시간이 임박한다. 올마이트는 올 포 원의 미래는 몇 번이든 부술 거라며 "네놈이야 말로 손가락이나 빨며 지켜보고 있어라"라고 경고한다. 그런 그가 나가는 길을, 그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올 포 원은 기괴하게 웃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3회 일치
* [[마그네]]는 시가라키에게 오버홀이 유명인인 거냐고 묻는다. 사실 그는 "선생님" [[올 포 원]]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의 인물이다. 과거 뒷세계를 지배했던 "야쿠자"의 잔존세력인 "극도". 그 중 "시에핫사이카이"란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생각보다 오버홀은 아주 현실적인 지적을 늘어놓는다. 세력을 늘린다면 다음은? "어떤 조직"을 만들 건지 비전은 있는 것인가? 일찍히 빌런연합은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 쾌락살인 [[머스큘러]], 탈옥사형수 [[문 피시]], 이렇게 쟁쟁한 인물들을 섭외했다가 간단하게 잃었다. 그런 마당에 정신병자들을 늘리는 걸로 세력확대를 논한다는건 언어도단. "컨트롤 할 수 없는 힘을 늘려서 어쩌자는 거냐"라고 할 수 있다.
*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그네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오버홀을 공격한다. 그는 자신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려고 모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빌런연합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또한 마그네와 마찬가지로 오카마였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그네와 달리, 그녀는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상식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녀는 마그네는 거기서 뛰쳐나갈 용기가 있엇지만 자신에겐 없었다고 부러워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3회 일치
* 평화로운 저녁시간이던 "에스하"시. 빌런의 난동과 함께 평화가 깨진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인턴활동으로 이곳에 파견돼 있었다. 웅영고 선배이자 사무실 선배인 "선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놀라운 실력으로 빌런을 제압했지만 군중 속에 숨어있던 빌런의 쫄따구가 저격, 총격에 당해 쓰러진다. 대활약하던 히어로가 쓰러지자 군중은 경악한다. 시민들이 총성이 울린 곳으로부터 일제히 몸을 피한다. 그 한 가운데 총을 들고 있는 빌런 쫄따구가 보인다. 키리시마도 총격을 당했지만 자신의 개성으로 방어, 타격을 입지 않았다.
빌런은 딱히 이런 생활을 할 정도로 강력한 개성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길이 10cm 이하의 칼날이 나온다"는, 뭔가 커터칼스러운 능력. 빌런은 그런 사실을 털어놓으며 키리시마가 "치사하다"고 어린애처럼 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빌런은 키리시마의 동정심 많은 부분을 이용해 도망치려 하는데 그때 [[패트껌]]이 나타나 확실히 제압한다.
하지만 키리시마를 뒤쫓아온 [[패트껌]]과 맞주쳤다. 패트껌은 곧바로 빌런을 포획한다. 그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은 "지방흡착". 몸에 뭐든지 흡착시키고 집어넣을 수 없다. 키리시마의 경화도 뚫었던 칼날이지만 그의 두터운 몸에는 무용하다. 패트껌은 빌런의 승리조건은 "살해", "도주", "쓰러뜨린다" 등등 다양하지만 히어로는 "피해자 없이 붙잡는다" 단 한 가지이며 빌런을 얼마나 빨리 전의상실 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 이튿날 키리시마가 등교했을 땐 화제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카미나리 덴키]]가 키리시마의 활약이 매스컴을 탔다고 호들갑을 떤다. [[바쿠고 카츠키]]는 자격지심을 느껴서인지 이를 간다. [[아시도 미나]]도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의 활약을 기사로 읽었다. 이들은 반친구들의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 [[이이다 텐야]]는 그래도 학업엔 충실해야 한다며 졸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고 반장같이 설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3회 일치
밀리오는 이런 함정이 있다는건, 저쪽도 시간 싸움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의중을 읽은 나이트아이와 미도리야가 말리지만 그는 혼자서라도 먼저 가보겠다며 일렁거리는 복도를 "통과"해 나간다. 확실히 그의 통과는 이리나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리나카로서도 밀리오 혼자 가봐야 아무 소용 없을 거란 계산이 있었다.
타마키가 사라지는 밀리오를 보며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데. 그때 바닥이 사라지면서 일행은 밑으로 떨어진다.
*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웅영고 No. 2, 타마키가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3회 일치
* 조개껍질로 경화된 문어다리가 거대화. 크라켄에 비견될 만한 위력이다. 세츠노는 "나 혼자서 충분하다"던 타마키의 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확실히 셋이든 넷이든 문제가 없겠지. 경화를 자랑했던 호죠도 막는데 급급하다. 세츠노가 다급히 타베를 깨운다. [[아이자와 쇼타]]가 무력화 시킨 후 쭉 누워있었다.
* 그대로 넋 놓고 쓰러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타베가 문어다리를 밑동만 남기고 먹어치웠다. 놀라운 속도다. 여기서 타마키는 생각을 바꾼다. 그렇게 먹고 싶다면 놔두기로. 문어의 타액엔 신경독이 있다. 신경독이 듬뿍들어간 문어다리를 먹인다면... 타마키는 문어다리에 신경독을 재현하고 물어뜯기를 기다렸다. 먹으면 그대로 끝. 하지만 이마저 실패. 또 세츠노다. 문어다리가 작아진 만큼 그가 "절도"하기엔 충분한 사이즈였다. 작전은 실패하고 호죠가 거대하게 경화시킨 팔로 타마키를 벽에 처박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3회 일치
* 키리시마는 "경화가 깨지자 마자 다시 경화"하는 대항책으로 랏파의 러쉬를 버텨내고 반격까지 시도하나 텐가이의 개입으로 실패한다.
>하지 않음 확실히 죽음 뿐이야!
>설마 역으로 보호받을 줄이야... 라고 하믄 실례겠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3회 일치
* [[아스이 츠유]]는 만신창이의 아이자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이자와가 때마침 정신을 찾는다. 아이자와는 곧바로 무효화 개성으로 에리의 폭주를 제압,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인지 미도리야와 함께 에리도 쓰러지고 만다. 이로써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작전은 완전히 종료. 피해자의 확인과 뒷수습으로 이행한다. 우선 본래 목표였던 에리의 구출은 무사히 완료.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무실에 있던 [[키리시마 에지로]], [[패트껌]]도 구조된다. 랏파도 이때 같이 있다가 어이없이 제압. 오버홀이 감추고 있던 두목도 발견된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신을 수습해 에리를 구급반에게 넘기는데 마침 들것에 실려가던 [[서 나이트아이]]와 마주친다. 그는 호흡기를 단 와중에도 미도리야를 불러세우고 그가 자신이 예지한 것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데 성공했음을 인정한다.
미도리야는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올마이트]]의 전언을 전한다. 꼭 살겠다고, 나이트아이를 볼 낯이 없다는 말을. 미도리야는 꼭 셋이서 만나자며 힘내라고 격려한다. 나이트아이는 실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3회 일치
* [[츠카우치 나오마사|츠카우치]]는 뇌무공장을 급습한 팀은 실패했을 거라고 직감한다.
* 올 포 원은 [[시가라키 토무라]]에게 "또 실패했다"고 하면서도,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 또 실패했구나 토무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3회 일치
* 웅영고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검토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코자 학부모들을 만나기로 한다.
* 사실 프린트가 전달된 시점에서 결론은 나와 있었는데, 아버지는 올마이트의 싸움을 보고 "이런 록한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니 우리 딸은 브라이언 더 선이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 확실하게 말할게요.
- 나폴레옹 빠 . . . . 3회 일치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사상과 제국 부활을 주장했던 정치사상은 [[보나파르티즘]]이라고 부른다. 나폴레옹 사후로도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다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2제정]]을 만들고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하면서 실현했지만 [[보불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현실의 정치사상에서는 폐기처분 당했다.
=== 현실 ===
- 난치병 모금사기 . . . . 3회 일치
[[난치병]]에 걸린 아이를 위하여 모금을 하지만, 그 내역이 불확실하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 [[죽는다 죽는다 사기]]를 참조.
* 현실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야유를 한다.
* 실제로 필요한 총액을 매우 낮게 계산하여, 모금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 닌자 거북이 . . . . 3회 일치
거북이들의 리더. 푸른 안대를 쓴다. 무기는 쌍검. 리더이자 맞형이며 성실하다.
붉은 안대를 쓰며 무기는 쌍차. 성질이 급하고, 거칠어서 레오나르도와 충돌하기도 한다.
거북이들의 스승이자 사실상 양부.
- 당질 . . . . 3회 일치
2ch 용어. [[통합실조증]]의 은어. 통합실조증이 줄임말인 '통실'과 일본어 발음이 같다.
- 디펜더 2 . . . . 3회 일치
[[중국]]의 Droidhen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디펜스]] [[모바일 게임]].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디펜더의 후속작이다. 사실 기술 몇개, 몬스터 1종류가 추가된것 이외에는 디펜더1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심지어 배경과 음악, 몬스터 이미지까지 다 똑같다!!
전작과는 달리 한글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이 상당히 엉망이다. 'Strength'를 힘이 아닌 발음인 '스트렝스'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Final Judgement'를 '말일심판'이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Life'를 '생활'이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Kills'를 '죽이기'라고 번역하거나 'Final Fantasy'를 직역해서 '최종환상'이라 번역하는 등.... 위의 몇 오역된 표현들이 중국식이고, 이 게임이 [[중국]]에서도 서비스가 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중국 번역을 중역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사실 Droidhen이 중국 회사인걸 생각해보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스킬특성상 투석기와 보스1말고는 쓸일이 없고 그마저도 보스1에게는 강력일격으로 타격을 방지하는게 대부분이라 사실상 강력일격과 성벽을 올리는게 이득이다
- 떠있는 섬 . . . . 3회 일치
현실에서 물 위에 떠있는 섬은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이 뭉쳐서 떠다니는 것이다. 위에 풀이 자라서 언듯 보기에는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지반이 연약하여 땅과는 다르다.
- 랑그릿사(검) . . . . 3회 일치
= 랑그릿사의 진실 =
성검이라 알려져 있지만 랑그릿사의 모태가 되는 파사의 검부터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4~5의 시대에서 알려진 사실로는 파사의 검은 알하자드 원본의 예비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며 랑그릿사가 가진 성스러움은 따지고보면 순수하고도 정의로운 용사라 불린 지크하르트의 혼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예비품이라서 그런지 원본에 비해 손색이 있다는 설정도 함께 있다. 실제 게임에서도 랑그릿사의 성능은 알하자드보다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의 상징인 알하자드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다.
- 로어셰크 . . . . 3회 일치
왓치맨 1권 후반부에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붙잡힌다. 이후 [[싱싱 교도소]]에 수감. 본명은 월터 조셉 코백스(Walter Joseph Kovacs). 작중 중간중간에 "THE END IS NIGH"[* 종말이 머지 않았다.]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나타나던 붉은머리 남자다.
아버지 없이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그는 10살 때 자신에게 패드립을 친 소년의 눈을 실명시켰다. 이 일로 집안이 경찰 조사를 받으며 보호소행. 어머니에게 쌓인게 많은지라 6년 후 어머니가 끔찍하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잘됐군요,"라는 말 만을 남겼다. 반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교도소 점심 시간 때, 로어셰크는 송곳으로 자신을 협박하던 다른 수감자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끼얹어 심한 화상을 입힌다. 그 죄수가 죽으면서 대규모의 죄수 폭동이 일어나고, 이 틈을 타 로어셰크가 집어넣었던 악당 "빅 피겨"의 습격을 받지만 로어셰크는 그를 죽여버린다. 이후 로어셰크는 2대 나이트 아울과 2대 실크 스펙터의 도움으로 교도소를 탈출한다.
- 류중일 . . . . 3회 일치
[[1982년]] 3학년 재학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와의 우수 고교 초청 대회 결승전에서 [[투수]] [[김종석 (1964년)|김종석]]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11188 류중일 감독, 손주인-강명구에게 특별한 선물] - 매일경제</ref> 1981년 봉황대기 미기상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상, 대붕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하고. [[한양대학교|한양대]] 체육학과(1983학번) 시절 1985년 ~ 1986년에 3학년, 4학년 때 대학야구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되었다.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 릭 존스 . . . . 3회 일치
두번 감마선에 노출된 적이 있다. 한번은 직접, 한번은 실수. 전자는 실패해서 암에 걸렸지만 비욘더 덕분에 살았고, 후자에는 실수였지만 성공해서 헐크가 되었다.
- 마기/303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장사치의 세상은 냉혹한 것이며 자신은 한 번의 실패로 노예신분까지 떨어져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 그 자리에 일던 일동은 자신들이 불과 3년 전 침략국으로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은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국들의 반응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 "수건돌리기 게임"이란 표현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를 잘 나타낸 비유다.
- 마기/310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알라딘은 가볍게 괜찮다고 대꾸하며 연백룡은 그 사실을 신드바드에게 알려줘야겠고 할 뿐 동요하지 않는다.
* 백룡은 이곳이 암흑대륙이기 때문이며 이곳은 "붉은 사자"(파나리스)보다 빠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 연백룡은 여전히 검술로는 아르바에 미치지 못하나 마법과 병행하면 아르바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 된다.
- 마기/314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떠나는 백룡에게 실연당했다고 놀린다.
* 벌써 한 번 죽어서 실망시킨 만큼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알리바바.
* 무슨 얘길하나 했더니 실연 확정 당한걸 놀리는 거였다.--이 색히가--
- 마기/316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표면적으론 알라딘 일행과 우호관계를 되살리는 듯 했지만 실상 그들의 의견을 폄하하고 있다.
* 알라딘이 실종된 내막을 몰랐던 피피리카는 알라딘과 모르지아나를 크게 반긴다.
* 신드바드는 알리바바가 자신의 예상을 뒤엎고 전송마법진으로 실적을 일궈낸 것을 들며 알라딘의 의견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동조한다.
- 마기/328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는 한번 실패한 세계의 마기인 알라딘이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거야 말로 오만이 아니냐고 역공한다.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게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실상은 수사학적으로 우회했을 뿐이다. 타전을 예로 든 것도 궤변에 지나지 않는데 현실에서도 각자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행동이 자유의 이름으로 합리화되진 않는다. 마기에서 타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솔로몬이 전제한 최소한의 한도를 어겼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그런데 신드바드는 아예 사람들이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우러르고 칭송하게 세상을 조작했다.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도 폭력이니 자신이 연쇄살인을 해도 경찰과 똑같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 마기/329화 . . . . 3회 일치
*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사이, 신드바드의 손에 들려있던 한 자루의 펜이 기괴하게 변한다. 펜은 소용돌이치더니 우고의 수족관에 들어있던 일 일라의 그가 창조한 세상으로 바뀌고 다시 신드바드의 손아귀에서 깨어져 한 자루의 돌아간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그 모습에서 신드바드가 손에 넣은 힘을 실감한다.
그는 우고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광기에 휘말리고 있는 듯 하며 우고와 마찬가지로 그를 중심으로 사물이 일그러지는 묘사가 있다. 현실 상으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 성궁에서 루프를 다시 쓰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한 번 죽어서 루프에 환원되기도 했다. 모두 정신적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우고 조차 정신줄을 놓게 만든 강대한 힘이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알리바바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알라딘과 신드바드를 화해시키려고 나름대로 설득했으나 신드바드가 너무 글러먹어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알리바바가 신에게 "신이 돼버린 거냐"고 하는 장면에선 알리바바가 부모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어정쩡한 관계 밖에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신드바드는 친구이자 아버지인 존재이며 그 점은 상단을 꾸릴 당시 "신드바드씨는 나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 한 데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에서 알리바바가 한 말은 설득하기 위해서 짜낸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의 속내를 드러낸 걸로 보이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신드바드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마기/332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는 [[알라딘(마기)|알라딘]]에게도 "마기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라고 일갈하고 알라딘은 왜 그를 왕의 그릇으로 골랐는지 실감한다.
실제로 알라딘은 알리바바에게 "마기"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알리바바는 그 말처럼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이 노예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똑같은 인간으로 대했으며 누구든 똑같은 마음으로 포용했다.
이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는 두 사람. 하지만 연백룡과 쥬다르는 신드바드의 루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백룡은 자신들은 완전히 타전한 존재라 루프의 흐름에서 벗어났기에, 신드바드의 루프 조작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쥬다르는 역시 타전하길 잘하지 않았냐고 실없는 소릴 해댄다.
- 마기/341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신드바드는 그가 실제론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뜻대로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누구보다 "자신의 의지"로 살라고 말하는 알라딘은 철저하게 남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신드바드가 는 소리마법으로 그 사실을 신랄하게 전달한다. 알라딘은 소리마법에, 신드바드의 허를 찌르는 지적에 찍어눌러진다.
>아저씨는 사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마기/343화 . . . . 3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 솔로몬 왕의 의지라고 주장한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없이 성궁에 가는 것이나 한 번 루프로 환원되고도 살아돌아온 일을 들어 자신이야 말로 솔로몬의 의지가 택한 자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다윗이나 [[아르바(마기)|아르바]], [[우고(마기)|우고]] 조차 그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생겨났을까? 그거야 말로 솔로몬의 의지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아르바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혼자만 돌아올 수 있었냐고 묻는다. 알리바바는 그게 "여러가지 사정"이 있다고 얼버무리는데 그때 아르바가 버럭한다. "그 분"이 뭐라고 한 말이 없느냐고. 자신이나 그 밖에 뭣에 대해서든 한 말이 없냐고 묻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알리바바의 팔을 잡는데 그 손은 타들어가는 것처럼 까맣게 변해간다.
* 알리바바는 그때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백룡과 싸우다 패해서 망연자실했던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기묘한 공간에 있었다. 우두커니 정좌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윽고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기록영상처럼 보게 되었다. 그건 거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몇 십, 몇 백 번이나 그 영상을 보면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좌절감과, "나는 죽었다"는 자각이 자라났다. 그는 다른 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좌절감을 삭히고 있었다.
- 마기/349화 . . . . 3회 일치
* 여기서 알라딘은 과거 솔로몬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해 본다. 혹시 그는 "운명"을 "산산조각" 냈던건 아닐까? 말하자면 신에게 대항하는게 아니라 세상을 신에게서 완전히 독립, 분리 시켜서 간섭을 막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알리바바가 부정한다. 세상을 완전히 독립시키는 건 무리다. 우선은 솔로몬 그 자신이 실패했고 다윗이 이용한 "암흑점"처럼 바깥 세상의 신들이 간섭할 수도 있다. 이걸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러니 신드바드의 생각대로 벽은 부숴야 한다고 말한다.
* 분명 합리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알라딘은 본래 루프를 환원시켜 세로의 벽을 다 파괴하자던 그가 너무나 다른 의견을 내놔서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다 여기지만, 그들의 논쟁을 보다보니 너무 극단적인 의견만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한다. 아르바도 "모든걸 뒤집으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시점에서 낸 미숙한 답"이었다며 순순히 실수를 인정한다. 아르바는 툴툴거리며 "이렇게 쉽게 의견을 바꿀지 몰랐다"고 빈정거리고 우고는 거기에 수긍하며 "왜 이렇게 됐었지?"하고 어리둥절해한다. 확실히 신드바드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극적인 변화였다.
- 마로 . . . . 3회 일치
이치조 가문이 인물로 삼위(三位)의 관위를 받고 있다. 딱히 별거 없는 3류 악당이지만,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둥근 눈썹, 붉은 입술이라는 전위적인 화장[* 일본 귀족의 전통 화장이다.], 그 3류 스러운 행동거지에 비해서 미토 고몬이 문장을 내밀고 정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관위를 내세우면서 버티는 과감한 클리셰 파괴(!)로 인지도가 높다.
여담으로 에도 시대의 귀족 가문은 자택 내부가 사실상 치외법권인 것을 악용[* 막부 휘하의 관리들은 간섭하기 어려웠기 때문.]하여, 자택 내에 도박장 등을 영업하여 부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었다고 한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3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해도 판권의 문제 탓에 모든 캐릭터의 등장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엑스멘 시리즈의 경우가 그런 경우. 판타스틱 포도 마블의 전통 캐릭터들임에도 영화 판권 문제 탓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퀵실버와 스칼렛 위치의 경우에는 설정을 각색했고, 스파이더맨의 경우 영화 판건이 소니에 있으나 협상 덕에 등장이 가능해졌다.
몇몇 캐릭터들은 판권이 판매된 상황이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판권을 회수해내 등장이 실현되었다. 다만 헐크의 경우 영화 배급권이 유니버설 픽처스에 있어서 단독 주연 영화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3회 일치
* 상대가 트집잡아서 해오는 요구를 액면 그대로 파악하지 말고, 상대가 실제로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파악하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단어가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존재한다. 학부모와 학교가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공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학부모와 학교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김으로서 협력 관계가 무너져 올바른 교육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몬스터 페어런트라는 단어의 등장이 보호자의 과도한 주장을 옹호하고 학교와 교원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언론의 풍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정당한 클레임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몬스터 페어런트로 싸잡혀서 비난을 받게 되는 풍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3회 일치
현대의 시각에서 본다면, 무장을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저속으로 항행(航行)하는 연안 순시선 정도에 불과하지만, 작품상 시기에서는 사실상 [[전함]] 취급을 받는 당당한 1급 전력이다. 당장 인더스트리아에서도 운항 시 다량의 석유가 필요한 이유 등으로 인해, 원로위원회의 허가가 없으면 출격할 수 없는 물건이며, 이 배의 침공을 받은 하이하버에서는 코난이 결사적으로 폭탄을 설치하는 개고생을 한 끝에야 격침이 가능했다.
배를 타고 남겨진 섬을 떠난 코난이 거칠고 험악한 바다를 넘어서 도착한 섬. 이곳에서 [[포비(미래소년 코난)|포비(지무시)]]를 만나게 된다. 포비 외에도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다들 늙고 연약한 사람들 뿐이다.[* 포비의 말에 의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다들 바라쿠다 호에 실려갔다고.] 오래되서 무너진 집들이 있는 지역, [[플라스틱]] 채굴장 등의 장소가 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 바키도/112화 . . . . 3회 일치
* 자신이 순식간에 4등분 되는걸 보고 전의를 상실한다.
* 가이아는 자신은 실제 무기를 썼는데 무사시는 맨손으로 베일 거라는 "예정"을 똑똑하게 이해시켰다고 말한다.
* 원래 이 만화는 손발이 잘리고 팔다리가 꺾여도 투쟁심 하나로 계속 싸우는걸 칭송하는 만화였는데, 어느 새 실제 칼도 아닌 살기로 베어버렸다며 드립이나 치는 만화가 됐다.
- 바키도/131화 . . . . 3회 일치
* 무사시는 생전 구마모토 성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여흥에 어울린 일이 있다. 세키의 도공이 만든 뛰어난 "강철투구"를 쓴 무사를 벨 수 있겠냐는 것. 성주는 이미 같은 실험을 해서 진검 조차 이가 나간다는걸 확인했기 때문에, 다분히 무사시를 곤란하게 하려고 장난을 치는 듯 했다.
* 가이아는 이것을 보는 순간 속으로 더는 무리라고 외친다. 아무리 방검복을 입고 있어도 상대가 곡괭이로 내리 찍는다면 어떨까? 설사 방검복은 뚫리지 않더라도 그걸 입은 사람은 확실히 목숨을 잃을 것이다. 가이아는 "상대는 칼이나 든 폭한이 아니다"며 모토베의 결정적 실책을 직감한다.
- 박세직 . . . . 3회 일치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채명신]] 초대 파월사령관이 미군들과 파병 관련 한국 지원 및 작전 구역 설정, 그리고 지휘체계 설정 협상하는 과정을 지원하며 활약하였다. 이후 1976년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1979년 군사정보 참모를 지냈다. 박희도나 박준병과는 달리 하나회였음에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지 않아서 [[김영삼]] 정권 때 화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상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본의 아니게 2017년 10월 10일, 다시 큰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박세직의 손녀와 수영선수 [[박태환]]의 교제 사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 축하한다는 반응도 많지만 교제 상대의 조부가 [[하나회]] 출신 주요인사라는 것이 주목받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 박종윤 (1993년)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6월 21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2015년까지 단 11경기에만 등판하여 10이닝을 투구했다. 2016년 6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웨이버 공시된 [[로버트 코엘로]]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깜짝 카드이자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했다. 경기에서 2이닝 동안 1실점을 하였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박종준 . . . . 3회 일치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평창군|평창]][[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마포구|마포]]경찰서장, 충남[[지방경찰청]] [[지방경찰청장|청장]],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수현(정치인)|박수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13년 6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차장을 역임하였다.
- 백운산 물고기 . . . . 3회 일치
[[열대어]]로 [[관상어]]의 일종. 학명은 Tanichthys. [[일본]]에서는 붉은 지느러미를 특징으로 보아 붉은 지느러미라는 뜻으로, 아카히레(アカヒレ)라고 부른다.
본래는 열대어지만, 관상어로 유통되는 종은 오래 전에 채집되어 양식된 종으로서, 수온 변화나 오염에 강한 변이를 거쳤기 때문에 [[겨울]]에도 기온 10도 정도 온도의 실내라면 버틸 수 있어 사육이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베트남에서 채집된 종류는 변이가 없는 열대어라서 쉽게 얼어죽는다.
- 백일섭 . . . . 3회 일치
* [[1980년]] [[TBC]] 어린이드라마 《[[바람돌이 장영실]]》
* [[1983년]] [[KBS2]] 실화극장 《[[지금 평양에선]]》
* [[1989년]] [[KBS2]] 미니시리즈 《[[절반의 실패]]》
- 변신합체로봇 . . . . 3회 일치
현실에서 비슷한 사례로는 우주선의 [[도킹]] 등이 있다.
'''분실'''
일부 부품을 분실하면 로봇이 [[병신]]이 되버린다(…).
- 변현제 . . . . 3회 일치
2010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STX SouL]]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Tving 스타리그 8강 진출로 2012년 6월 Kespa 랭킹이 대폭 상승하였다. 그러나 스타2에서 부족한 실력과 약점을 많이 보여 한때 KeSPA랭킹이 가장 높았을 때에 비해 10계단 정도 낮았다. 변현제는 패배만 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때문에 '패배왕 변현제'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브루드 워]]에서는 저그전에 강한 프로토스중 한명으로, 2012 스타리그 듀얼토너먼트에서는 자신보다 랭크가 높던 [[박재혁 (프로게이머)|박재혁]]과 [[김성대 (프로게이머)|김성대]]를 꺾고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포스트 김택용'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종목이 스타2로 완전 전환되며 유명무실한 별명이 되고 말았다.
2012년 10월, GSL 예선을 통과한 뒤 1라운드에서 '나니와' 요한 루세시를, 2라운드에서 [[이영호 (1992년)|이영호]]를 꺾고 3라운드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이원표에게 패했고, 승강전에서도 패해 코드S 진출은 실패했다. 그리고 변현제는 이어진 시즌 코드A 1라운드에서 최용화에게 패해 다시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졌다.
- 병거 . . . . 3회 일치
전투용으로 쓰이는 [[마차]]를 뜻하는 말. 좁은 의미의 병거는 고대의 청동기 문명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기병]]에 밀려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용성을 거의 상실했다.
그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과 속도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보병이 여러 마리의 말이 끌고 고속으로 이동하는 병거에는 근접하기 어려웠다. 병거에 탑승한 귀족 전사는 노련한 솜씨로 [[활]]을 쏘며 보병을 저격할 수 있고, 설사 보병이 병거에 근접한다고 해도 병거에 탑승한 전사는 병거의 높은 위치와 빠른 속도를 활용하면 유리한 위치에서 폴암류의 장병기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위력적인 병거의 개발과 생산, 운용에는 많은 수의 말의 보유, 마차의 제조와 유지, 전사의 육성 같은 과제가 필요하여 고등한 문명 지역에서만 대규모로 운용될 수 있었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3회 일치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났다. 요약하면, '탱크 부실 시공 + 관리 소홀 + 부실 은폐 시도'. 여기에, 사건 당일에 갑자기 영상으로 상승한 기온으로 인해 부피가 늘어난 당밀 시럽이 가뜩이나 부실한 저장 탱크에 부담을 가중시켜 이와 같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 보쿠걸/95화 . . . . 3회 일치
* 토르는 성실하지만 멍청하다는 원전에 충실한 설정.
* 로키는 사실 미즈키를 좋아하는 것 같다.
- 부모교실 . . . . 3회 일치
아버지 학교나 어머니 학교, 혹은 [[일본]]에서는 양친학급(両親学級), 모친학급(母親学級), 부친학급(父親学級)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곧 부모가 될 사람에게 부모로서 자각을 심어주고, 출산, 육아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교실이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주최된다.
교육으로는 출산의 순서, 임신 체조나 호흡법을 실기 교육, 영양이나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법에 대한 지도 등이 있다. 아버지의 경우, [[임산부]]의 배와 같은 무게의 덩어리를 배에 매달고 활동하여 임산부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교육 등이 실시되기도 한다.
- 북두삼형제 . . . . 3회 일치
분명히 쟈기가 있기 때문에 사실 '북두사형제'라고 하는 것이 올바르지만, 굳이 쟈기를 잊지 않으려는 팬들이나 쓰는 말이고, 원작에서는 '북두삼형제'라고만 표현한다.
여담으로 사실 원작에서는 켄시로, 토키, 라오우가 셋이서 모여서 등장하는 장면은 라오우와의 첫 대결에서 사우저 편, 토키의 최후편에 걸쳐서 비교적 길게 있고 명장면도 많지만, 쟈기는 [[아미바]] 전 이전에 나왔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원작에서 3명이 모인 적은 있어도 쟈기까지 합쳐서 4명이 모인 적은 없다. 회상씬에서도 쟈기와 켄시로, 쟈기와 토키, 라오우가 만나는 장면은 있지만 4명이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쟈기도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구TV판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회상씬, 신 극장판 애니메이션 유리아 전, 외전 코믹스인 쟈기 외전이나 류우켄 외전에 있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3회 일치
* "올라가주겠다"고 외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지만 사실 마땅히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한 상태.
* 이때 메레오레오나가 호쾌한 안면 훅으로 바깥으로 쳐내 위기에서 구해주고 실력을 인정해주나, 온천에 넣어줄 테니 옷을 벗으라는 폭언을 퍼붓는다.
* 한편 아스타를 앞서간 일행들은 의외의 변수에 발목이 잡혔다. 유트림 화산에 자생하는 마법생물의 존재였다. 마그마로 만든 골렘같은 존재였는데 상당히 강해서 적당히 공격해선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레오폴드 버버밀리온]]는 이정도는 쓰러뜨려야 마법기사라며 포지티브한 소릴 하지만 [[노엘 실버]]가 "그러니 빨리 해치워라"고 부추기자 "물속성인 넌 뭐하고 있냐"고 쏘아붙인다. 노엘은 물속성이긴 해도 마나스킨을 유지하는 데만도 고생하고 있어서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3회 일치
* 같은 금색의 여명단의 선배 [[클라우스 류넷]]도 자리에 있었다. 그는 미모사가 쓸데없이 다른 참가자와 트러블을 만든다고 지적하는데 괜한 지적질을 했다가 "괜히 진지하고 걱정많고 안경이다"는 반격을 당한다. 그 역시 최근 실력이 급상승한데다 무슨 이유인지 근육단련까지 해서 인지도를 쌓았다.
* [[노엘 실버]]도 물론 참가. 하지만 시끄럽게 구는 단원들이 부끄럽다며 좀 떨어진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 근처에는 자신의 오빠, 은익의 참수리의 [[솔리드 실버]]가 있었다. 노엘을 혹독하게 대했던 남매 중 하나. 노엘이 그를 발견하고 겁을 먹지만 곧 떨쳐낸다. 유트림 화산에서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그러니 뛰어넘어라"고 했던 격려를 상기한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이미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3회 일치
* 그때 [[노엘 실버]]가 익숙한 솜뭉치가 떠다니는걸 발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탐이라면 빠지지 않는 [[챠미 퍼밋슨]]이 등장한다. 왠지 [[네로(블랙 클로버)|네로]]까지 끼어왔다. 나오자마자 넉살좋게 하몬에게 음식을 요구하는 챠미. 하몬은 의외로 쉽게 음식을 나눠준다. 노엘이 여긴 왜 왔냐고 묻자 우물쭈물 대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하러 왔다"고 하는데 그 대상인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무슨 말인지 눈치채지 못한다.
* X가 빛을 발하더니 가면이 부서지면서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물빛의 환록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회화마법을 구사한다는 역대 최연소 단장. X의 정체가 릴이라는데 놀라는 것도 잠시, 로열 나이츠 선발 시합에 단장이 직접 나왔다는데 도마에 오른다. 정말로 단장이 기사단도 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건가? 적어도 마법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론 "단장을 쓰러뜨리고 이름을 떨칠 찬스"를 준다는 거지만 실상 릴의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덕후기질 발동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명목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럭절거 설득된다. 하긴 굳이 그를 쓰러뜨려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만한 싸움일 것 같기도 하다.
* 모든 이가 물빛의 환록 단장의 실력에 주목했던 제 5시합은 시작과 동시에 어이없는 헤프닝으로 끝날 위기였다. 쓸데없이 적진에 얼쩡거리던 릴이 덩쿨마법에 단숨에 잡혔다. 오히려 잡은 상대팀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한심하긴 해도 단장은 단장. 그를 재빨리 해치우는게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이 그를 잡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이 각자의 최강 마법으로 릴을 공격한다. 불과 얼음의 속성 마법들. 강한 마법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걸 본 순간, 릴은 잠들어 있던 영감이 깨어났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3회 일치
* 클로버 국왕은 눈 앞에서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파악할 역량 조차 없는지 "짐 앞에서 무슨 짓들이냐"고 아우성칠 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마법제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당장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랜길스 보드]]의 요청을 허가한다. 하지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붙으려 하자 시간 구속마법 "크로노 스테이시스"로 정지시킨다. 실전같이 싸워주면 좋긴 한데 어쨌든 이건 "시합"이라는 것. 하지만 둘의 열이 식기 전에 준비를 마치겠다고 말한다.
* 그래서 흩어져 있는 양팀 인원들이 소환된다. 검은 폭우의 아지트로 날려졌던 [[셋케 브론자차]]는 [[야미 스케히로]]의 고독한 화장실 타임을 방해한 죄로 잔뜩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백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식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상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식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식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3회 일치
* 푸른 들장미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 야미에게 독설을 퍼붓지만 사실 츤데레. 야미에게 반했지만 기사단 내의 입장 때문에 고백을 못하고 있다
* 은익의 참수리의 단장, "노젤 실버". 야미가 머리 모양을 가지고 디스하자 폭발한다
* 세 단장이 삼마안과 싸우기 시작하는데 리히트는 "확실히 강하지만 삼마안에 미치진 못한다"고 호언한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3회 일치
* 노엘 실버는 레베카와 함께 있다.
* 확실히 "그 분"은 당연히 리히터일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사실상 폐기.
- 블랙 클로버/55화 . . . . 3회 일치
* 포로가 실토한 배신자의 정체는 자줏빛 범고래의 "겔도르 포이조트"
* 겔도르가 더러운 방법을 쓰던 것은 사실인 듯 하며 도망쳐서 새출발하겠다고 생각한다.
* 겔도르의 투과마법은 "반마법"까지는 투과하지 못했다. 즉 아스타의 반마법은 사실 "마법의 범주에서 벗어난 무언가"일 가능성이 있다.
- 블랙 클로버/57화 . . . . 3회 일치
* 야미는 일행이 노는 동안에도 착실하게 정보를 수집했다.
* 아스타는 고자같지만 사실 수영복 입은 여자들을 보고 코피도 흘리는 건전한(?) 청소년. 하지만 노엘에겐 반응이 없다.
* 팽팽 놀던 단원들이 야미만은 일을 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3회 일치
* 노래도 대단하지만 사실 마법 실력도 뛰어나서 한 눈에 아스타의 몸상태를 간파하고 노래 회복 마법 "치유의 자장가"를 써서 회복시킨다. 매우 정교한 마력 컨트롤을 사용하는 고급 회복마법.
* 특히 노젤 실버의 반감이 강한 편.
- 블랙 클로버/59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사실 아스타는 맥주병이었다.
* 사실 바다괴물은 그가 마법으로 만든 가짜.
* 바네사와 핀랄은 이만한 크기의 괴물을 마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3회 일치
* 특히 그중 셋은 상급 마법기사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졌다는데.
* 사실 대사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데, 승부에서 이기면 지상에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 노엘 실버 또한 적과 마주치는데, 입으로는 왕족임을 내세우며 허세를 떨지만 속으론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3회 일치
* 사실 해저신전의 배틀은 주민들에게도 방송되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 있는 주민들은 크게 두려워한다.
* 베토는 둘의 실력을 평가절하하면서 쓰래기와 찌끄레기라고 비하한다.
* 노엘 실버와 카호노는 "짐승 귀에는 안 들리는 모양이다"라고 비꼬며 "포기한다고 뭘 지킬 수 있냐고 했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3회 일치
아스타와 키리토를 구하는 카호노와 노엘 실버
* 아스타와 키아토를 쓰러뜨린 절망의 베토는 도착한 노엘 실버와 카호노를 바라보며 "조금은 즐겁게 해봐라"며 도발한다.
* 베토는 카호노의 머리채를 잡아올리며 "너희의 꿈을 부숴줬다. 확실히 맛 봤나? 절망을?"이라고 빈정거린다.
- 블랙 클로버/68화 . . . . 3회 일치
* 절망의 베토는 노엘 실버의 마력을 보고 왕족임을 알고 "가장 증오스러운 일족"이라 부르며 공격해보라고 도발한다.
* 노엘 실버는 푸에고레온이 말한 "부끄러워해야하는건 약한 자신이 아니라 약한 채인 자"라는 말을 떠올리며 마력을 해방한다.
* 베토는 그 마력을 보고 왕족이냐고 묻는데 노엘은 "그런건 지금 상관없어. 난 검은 폭우의 노엘 실버!"라고 받아친다.
- 블랙 클로버/81화 . . . . 3회 일치
* 아스타는 왜 동료들ㅇ 땡땡이라도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창 밖에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오는게 보인다.
* 검은 폭우 전원이 다양한 분야에서 실마리를 얻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
* 동료들이 일부러 숨은 거라고 생각한 아스타는 창으로 몰래 엿보는데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어딘가를 다녀오고 있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3회 일치
* 핀랄 룰러케이트와 노엘 실버는 아스타의 팔을 고칠 방법을 찾아 과거에 인연이 있던 판젤 크루거 일행을 찾는다.
* 노엘 실버와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스타의 팔을 고치기 위해 어떤 폐가를 찾는다.
* 바네사의 실 마법은 계속 연마하면 운명 조차 조종하는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3회 일치
* 마녀의 숲에 잠입한 아스타 일행은 판젤 크루거가 은신 망토까지 벗겨지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 영 반응이 좋지 않자 농담이고 실은 공짜라고 수습하는 도미나.
* 노엘 실버가 묘한 것이 날아다니는걸 발견한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3회 일치
* 노엘 실버의 일격으로 샐러맨더가 일시적으로 소멸한다. 그러나 증오의 파나는 두 가지 속성의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며 저력을 과시한다.
* 노엘 실버가 혼신의 힘을 담은 해룡의 포효가 샐러맨더를 산산조각낸다. 증오의 파나가 빈틈을 보이자 아스타는 지금이야 말로 필살기를 써주겠다고 투지를 불태운다.
* 바네사는 무식한 발상이라면서도 최대한 돕기로 한다. 자신의 실 마법을 두 빗자루에 걸쳐 팽팽하게 당긴 후 활처럼 아스타를 쏘아보낸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3회 일치
하지만 젤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바람 마법이 다이아몬드 병사들의 마법을 상쇄, 자신은 놀라운 속도로 적진을 헤집어 놓는다. 사실 그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절 지휘관이자 교관으로 유명한 인물.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배신했다고 해서 배신자 취급이다. 그의 목에는 현상금도 걸려있는지 막대한 포상금이 나올 거라며 죽이려 든다.
* 젤이 무모하게 달려든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작전이다. 아군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는 쉽게 반격하기 어려운 법. 마르스와 라드로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젤의 예상대로 둘은 상황을 관망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혼자서 이 대병력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의 반려자와 제자에게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부응하듯 다이아몬드 측이 전열을 재정비하려 할 때, 아래 쪽 숲에서 일제히 마법의 사격이 가해진다.
마리엘라는 적의 지휘관에게 사실 자신은 다이아몬드 왕국의 암살부대에 있었으며, 지금 이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고 밝힌다. 마리엘라는 한때 자신의 삶을 위해 남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하든 그 죄는 씻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이아몬드의 횡포를 막는 것, 그게 자신의 속죄라고 생각한다. 다이아몬드의 지휘관은 그녀를 배반자라 욕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 블랙 클로버/98화 . . . . 3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아스타가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우려하지만 폭주하는 일 없이 아스타 본래의 심성을 유지하고 있다.
* 아스타는 라드로스에게 다가간다. [[노엘 실버]]는 방금 전 보여줬던 강함, 전투방식이 도저히 평소 아스타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여긴다. 현재의 모습도 마치 악마와 같은게, 폭주해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라드로스는 다가오는 아스타에게 각오는 됐다며 죽이라고 말한다.
* 아스타를 휘감고 있던 반마법 빙의는 곧 풀린다. 아스타는 그 상태가 무엇인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고 방금 전 싸움도 "꿈 속에서 싸운 듯" 뭔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신기한 힘을 얻었다는 감각은 있으며 언젠가는 그 힘을 완벽하게 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 블리치/691화 . . . . 3회 일치
* 세계의 "불운"을 일정한 비율로 운이 좋은 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불운은 "프로인트 실드"로 방어하는 능력.
* 우류가 하쉬발트에게 부상을 입히는 "행운"은 동량의 "불운"으로 되돌아가고 거기에 하쉬발트 본인이 받은 불운이 프로인트 실드로 다시 한 번 돌아가므로, 결국 우류는 능력을 쓸 수록 배가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 이치고는 전의를 상실하고 유하바하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
- 블리치/697화 . . . . 3회 일치
* 비록 대장 지위에 올랐지만 아직 실감이 안 나는지, 매일매일 단련하지 않으면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테츠자에몽.
* 코테츠 이사네가 4번대 대장으로 취임. 짬이 안 되는 대장이라 그런지 별 파워는 없다. 부대장인 동생이 굽실대지 말라고 할 정도.
* 중대발표를 예고했는데 극장판, 실사화, 애니화, 2부 연재 등으로 예측되고 있다.
- 비니 고그니티 . . . . 3회 일치
[[뉴욕]]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 펀치넬로 패밀리의 간부로 매우 예민한 성격을 지닌 찌질이. 맥스는 그를 " 매우 흥분한 정력가 토끼같다,"[* like an overamped energizer bunny]고 평했다. 사업을 벌일만한 머리는 있으나 그걸 유지할 배짱은 없기에 빠르게 실패하며, 그로 인해 생긴 좌절감을 미성년자 마약 중독자나 콜걸을 통해 해소한다.
이후 맥스의 악몽에 나오는 TV 속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블라드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 기회를 얻는다.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에 관한 문제들을 맞추면 인형탈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해주겠다는 것. 비니는 첫번째 문제인 "캡틴 베이스볼배트 보이의 덩치 큰 악역은 누구인가?"의 답인 "맥스웰의 악마"를 맞춰 폭탄 반쪽을 해체받지만, 두번째 문제인 "현실에서 맥스웰의 악마를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인가?"를 틀려 폭발한다. 비니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작가인 새미 워터스라고 대답했지만 정답은 "맥스웰의 악마"라는 사고실험을 만들어낸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이었다.
- 살바도르 달리 . . . . 3회 일치
[[스페인]]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초현실주의 화가 답게 정말 수염이 특이하게 생겼다.
달리는 부인 갈라가 죽고 7년 뒤에 사망했는데, 자식이 없어서 달리의 작품들은 스페인 정부에 유산으로 남겨졌다. 달리의 시신은 피게레스에 있는 극장의 지하실에 묻혔다.
- 삼류무공 . . . . 3회 일치
* 삼류무공 한계설 : 삼류무공은 익혀도 결국 삼류 수준의 실력 밖에 가지지 못한다. 반드시 상승무공을 익혀야 한다. 사실 가장 흔한 삼류설이다.
* 육합권(六合拳) : 현실의 '심의육합권'은 훌륭한 권법이지만, 왜일까 무협지에서는 삼류무공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병신육갑(…)이 연상되어서일까?
- 서든어택 2/무기 . . . . 3회 일치
||1962년에 처음 등장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돌격소총이다.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컨셉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돌격소총이었으며, 베트남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후 높은 성과를 올려 이후 서방 세계 돌격소총의 기본 컨셉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자동소총들에 비해 반자동 및 점사 반동 제어가 쉬운 편이지만, 연발에서의 제어는 어렵다.||
||1951년에 등장한 펌프액션식 산탄총이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근접전 및 실내전에 산탄총을 즐겨 써 온 미군과 각국의 군 기지경비대, 경찰들이 대량으로 사용해 온 베스트셀러로, 총 생산량은 민간 사냥용을 포함해서 1천만 정을 넘는다.
- 서수민 . . . . 3회 일치
하지만 [[시청률]] 추이로만 보면 서수민이 PD를 맡은 기간의 순위가 개콘의 최전성기인 2003~2004년을 제외한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실제 시청률은 조금 높아진 수준이지만 그 동안 [[지상파]] 시청률이 하락하다 보니 시청률 순위만으로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CP를 맡은 이후 [[해피 선데이]]도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명한]] PD처럼 매니악한 팬들 성향에 맞지 않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 서수민이 2012년 11월에 승진할 수 있었던 근원이 개그 콘서트 덕분이기도 했고.--그리고 말아먹은 근원까지 제공해버렸지..--
또 라디오 스타에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라는 제안을 받은 김대희에게 출연을 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 어디가?는 2013년 1월에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사실 해당 방송과 개콘의 방송시간을 감안하면 경쟁 프로그램도 아닌데 막은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전통의 개콘 녹화일인 수요일에 녹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수민이건 다른 PD건 막을 명분이 없는데 전후사정을 떠나 김대희는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을 듯.
- 서정환 . . . . 3회 일치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 석등보 . . . . 3회 일치
석등보(昔登保, 생몰년 미상) 또는 석등야(昔登也)는 [[신라]] 초기의 귀족이다. [[실성 마립간]]의 어머니인 [[이리부인 김씨]]가 그의 딸이라 한다. 그러나 다른 설에는 [[벌휴 이사금]]의 딸 또는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 외손자 : [[실성 마립간]]
* [[실성 마립간]]
- 선조 . . . . 3회 일치
조선의 인재풀의 포텐이 폭발할 때 재위에 올랐으며[* 이순신, 권율, 류성룡, 이이, 정인홍, 이덕형, 이항복, 이원익 등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라고 칭송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 모두 이 시기 사람들이다!'''] 본인의 인재 보는 안목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왠 하급 군관을 10계급 특진시키냐면서 말이 많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 군관 이름이 이순신'''.] ~~그러나 본인의 인성이 문제여서...~~ '기축옥사' 같은 경우에는 다소 수단이 음습했으나, 이 때만 해도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이라고 실드칠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소냐(가수) . . . . 3회 일치
그 뒤 13차 경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에게 가왕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번 출연을 통해서 혼혈이라면 이런 음악을 해야한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고 또 다른 혼혈계 사람들에게 혼혈이라는 장벽을 깨는 희망을 주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와는 별개로 하복에서 춘추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딸랑딸랑 종달새|다른]]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역대]] 가왕들처럼 옷을 갈아입으면 그 회에 가왕 자리를 넘겨주는 징크스에 걸렸다. 이 징크스는 연필 이전에도 있었으며 [[신명난다 에헤라디오|어느 가왕]]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 3조 엔트리인 [[딸랑딸랑 종달새]]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60표 이상 득표를 한 번 씩 했으며, 이들 모두 [[황금락카 두통썼네|4번 엔트리에서 2연승한 여자]] [[네가 가라 하와이|가수]]들을 이긴 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4연승을 한]]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나는 가수다]] 출신에게 완패했다는 점이며 새 가왕 모두 예명을 사용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3회 일치
토이맨과 약속장소로 잡은 오락실에서 토이맨을 만난 윈은 자수를 권유한다. 하지만 토이맨은 윈에게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FBI요원들이 들이닥쳐서 토이맨을 쏘지만 그것은 가짜였고, 가스가 뿜어져 나와서 모두 죽이려 한다. 카라가 난입하여 가스를 빨아들여 제거한다.
알렉스는 행크와 함께 맥스웰 로드를 조사하려 한다. 알렉스는 맥스와 데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끈다. 행크는 맥스웰 로드의 실험실에서 레드 토네이도의 일부와, 코드 피닉스라고 불리는 소녀를 찾게 된다. 그리고 경비원과 마주쳐서 그의 기억을 완전히 제거해버린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3회 일치
반 인간, 반 기계로 된 --짝퉁 아이언맨 같은-- 적이 나타나, 슈퍼맨에게 상실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다고 소리치며 카라에게 도전을 한다. 카라와 대결하던 적은 아머가 손상되자 도주한다.
윈은 같은 빌딩의 한 방[* 심장마비로 죽은 보험설계사가 쓰던 곳]에다가 사무실을 차리고,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여 슈퍼걸 서포트를 위한 사무실을 만든걸 카라와 제임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방사능을 추적해서 리액트론을 잡을 방법을 알려준다.
- 슈퍼히어로 . . . . 3회 일치
히어로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데 [[슈퍼맨]]은 얼굴을 가리는 코스튬이 아니지만 이 비밀 신분은 확실하게 만들었다. [[판타스틱 포]]의 경우 없다. 그냥 자신들에 관해 다 공개했다. [[헐크]]의 경우에는 딱히 숨기고, 뭐고 할 상황이 아니다.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실사영상물은 상당히 역사가 깊다.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 1944년에 최초의 영화가 나왔으며 소위 말하는 펄프 히어로들도 흑백영상 시절에 영화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의 영화화는 1930년대.
이런 실사영상매체에서 히어로들의 힘에 대한 묘사력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초능력에 대한 묘사만이 아니라 격투같은 액션도 마찬가지. 다만 딱히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 슈퍼히어로 팀 . . . . 3회 일치
슈퍼히어로 한 명이 등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슈퍼히어로 팀으로서는 실사[[영화화]]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등장 캐릭터가 많고[* 히어로가 한 명이라 해도 그 히어로와 싸울 빌런과 히어로의 주변인물 등이 있다. 그런데 팀이라면 더 많아진다.], 각 캐릭터의 비중[*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캐릭터가 인기파인데 비중이 약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리고 인기는 둘째 치고 등장했으면서 별 비중 없으면 왜 등장시켰냐는 비난을 듣기 쉽다.]과 액션[* 주역이 초능력자라면 그 초능력을 잘 묘사해야 하고 비능력자라도 뛰어난 격투신같이 좋은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주역이라면.]을 신경써야 하기에 그 난이도가 정말 높아진다. 90년대에 먼저 나온 닌자 거북이 실사판 3부작의 성공이 팀 무비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고, [[어벤져스]]의 대박으로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렸다.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3회 일치
슈피리어 스파이더맨에서 슈피리어 스파이더맨/[[닥터 옥토퍼스]]는 스파이더 슬레이어의 사형일 날 그의 탈옥 계획을 알고 자신의 스파이더봇들을 이용해 탈옥을 막았다. 스파이더 슬레이어는 [[벌처]]와 [[스콜피온]] 등을 감옥에서 빼내 스파이더맨과 제임슨 시장, 감옥 안의 민간인들을 죽이려 보냈지만 각각 실패하고, 오토에게 죽기 직전 마지막 수단으로 서로의 정신교환을 시전하지만(...) 이미 시전을 성공했던 옥박사는 그를 비웃고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오토가 전에 날렸던 일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오토가 사용한 무기는 난투 때 앨리스터의 몸에서 뽑아낸 쇠갈고리 송곳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름과는 달리 마지막으로 싸운 적도 진짜가 아니었다고 평하는 오토의 대사가 걸작.[* 어색하지 않은 것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자칭한 자가 스파이더맨이라 해도 알맹이는 타인인 자에게 끝났으니..]
국내에 방영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스마이시 부자 둘다 등장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만들었는데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큰데다 합체(!)하는 종류도 나왔다.[* 사실 합체라기보단 그냥 위에 올려놓기.] 그리고 앨리스터 스마이시가 변화된 모습인 스파이더 슬레이어도 등장. 그가 성과를 못내는 등 갈등이 생긴 [[킹핀]]에 의해[* 수행은 그의 지시를 받은 학자가 했는데 이전의 [[엑스멘]]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반뮤턴트 주의자다.] 스파이더 슬레이어가 되었다. 이후 킹핀과는 적대 관계가 된다.
- 식객 . . . . 3회 일치
춘추전국시대에는 식객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사람을 주인이 보호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식객은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의 분쟁에서 주요한 전력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뛰어난 실력을 살려서 일종의 [[사병]](私兵)이 되거나 주인의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주인이 살해되면 식객이 [[복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서양 유력자들이 평민이나 해방노예들을 거느리고 세력을 형성하던 것과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느슨한 관계라서 주인이 실각하여 힘을 잃거나 하면 미련없이 떠나거나 다른 집에 식객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많았다.
식객이 복수를 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초기에 조양자[* 위씨, 한씨와 함께 진(晉)나라를 3등분하여 '조, 위, 한' 중 조나라를 건국한 인물.]에게 패사(敗死)한 지백의 식객 '예양'의 사례[* 조양자를 시해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붙잡히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길 원한다고 말해 원을 풀고 자결한다. 공교롭게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조양자는 병이 들어 죽고 만다.]와,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 [[허공]]을 죽이자, 그 식객들 가운데 몇몇이 손책을 암살한 사건이 있다.
- 식극의 소마/163화 . . . . 3회 일치
* 소마는 "누구의 방해도 없는 1석과의 식극"이라며 들떠하는데 사실 복도에서 에리나와 히사코가 숨어있는건 눈치채고 있다.
* 그 실력은 먹지 않고 조리하는 것만 봐도 "먹여지는" 수준.
* 사실 소마나 에리나도 황당하긴 마찬가진지 표정이 압권이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3회 일치
* 죠이치로는 새로운 요리를 할 때는 언제나 반쯤만 확신이고 반쯤은 도박이라며 확실한건 없다고 한다.
* 그런데 사실 "계란 후라이"도 "프라이드 에그"라는 "튀긴 달걀" 요리. 명색히 요리학원 학생이란 놈들이 아무도 그걸 모르고 있는게 이상하다.
* 물론 일본에서는 튀김옷을 입힌 것이 튀김이란 인상이 강하겠지만, 계란 후라이가 사실은 튀긴 달걀이라는건 대선배격인 만화 "맛의 달인"에서도 언급한 부분. 게다가 전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취급하는 학원에서 "계란을 기름으로 튀겨서 조리하는" 프라이드 에그를 모른다는건 이해할 수 없는 일.(아마 모양이 동그래서 그런거 같은데......)
- 식극의 소마/192화 . . . . 3회 일치
* 어쨌든 친구들 대부분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 상황. 고작 소마일행 넷만 남아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없다.
* 그런 이들에게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난다. 다른 루트 애들이나 걱정하고 있어도 되겠냐며,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상대는 자신이라고 무서운 얼굴을 한다. 에리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둘러 시험장소로 달려가는데, 왠지 두 사람은 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리나가 결과를 묻자 둘은 어이없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 방금 전 시식 상황. 린도는 뱀처럼 사악한 얼굴로 타쿠미의 요리를 시식하는데... 의외로 간단히 "맛있다"고 해준다. 이어서 타도코로의 음식도 먹더니 적당히 맛있다고 해주고 합격을 선언한다. 원래 시험 과제 자체가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이었고 대결도 딱히 요리실력을 대결하는건 아니었다. 십걸 상대로 빡쎄게 싸우고 깨져나간 다른 루트 학생들관 달리 완전 날림 시험.
- 식극의 소마/193화 . . . . 3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는 과반의 십걸 자리를 따내자고 제안하지만 타쿠미 알디니는 현실성이 없고 뭣보다 센트럴에게 아무 메리트도 없는 제안이라 일축한다.
* 에리나는 애초부터 소마의 구상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디스하며 이렇게 된 이상 자존심 같은건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혹시 자신이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애원하면 퇴학이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려하는데 정작 어디있는지 모른다. 린도는 무슨 생각인지 사실 아자미 총수가 여기 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진급시험장을 돌면서 상황을 시찰하고 다니는데, 때마침 이 회장에 들른 상태이며 꾸물거리면 다음 장소로 갈 테니 빨리 헬기 착륙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3회 일치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식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 도지마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실감한다. 요리인의 삶이란 가혹한 것이다. 폭풍이 이는 황야를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인 삶. 그들은 죠이치로를 "수라"라 불렀지만 그 또한 요리인이기 앞서 평범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그런 그를 그저 추앙하고 떠밀며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도지마는 죠이치로를 망가뜨린건 "우리들"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 그때 또다른 인물이 죠이치로의 뒤를 따라온다. 토오츠키 학원의 총수 [[나키리 센자에몬]]이다. 그는 죠이치로가 "폭풍에 삼켜진" 것이라 평하며 사실 가을선발 때부터 조짐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3회 일치
* 팀 사이바는 간신히 실격을 면하고 [[나키리 에리나]]는 [[유키히라 소마]]에게 자신들이 잘 서포트해보자고 제안하지만 소마는 폭소를 터뜨린다.
* 홍백전이 한창인 조리실. 팀 [[도지마 긴|도지마]]는 정말로 무언인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조리를 이어나간다.
* 하지만 상대편인 팀 [[사이바 죠이치로|사이바]]는 개판 오분 전. 실격 당할 뻔해서 센자에몬에게 설교듣는다. 죠이치로와 [[유키히라 소마]]가 싸우다 "대화하지 않는다"는 룰을 어긴데다 죠이치로는 그걸 "조리도구를 손에놓고 있었으니 조리 중이 아니었다"는 궤변으로 때우려 한다. 물론 [[나키리 센자에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3회 일치
안은 "교전에 실리지 않으면 가게도 아니다"란 말이 있다면서 "맞는 말이긴 하지만 뭐 어떠냐? 앞으로 실리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설교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교전에 없어도 앞으로 당신은 살아갈 것이다. 부모님한테 감사하라"는 돌려까기 가득한 말까지 한다. 뜻밖의 동정을 받은 소마는 동료들에게 "이런 놈들로 심사의원해도 되겠냐"고 묻는데, 소마야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만 동료들에겐 큰일 날 소리로 들린다. 유키노가 "실례되는 소리하지 마라"고 꾸짖자 관중들고 편승해서 야유를 퍼붓는다. B급 그루메 주제에 나대지 말라던가 그런 막 만든 요리로 센트럴에게 대항하지 말라는 둥 폭언을 퍼붓는데 그때 안이 나선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3회 일치
* 심사의원 안은 과거 WGO의 모든 교전을 쌓아가지고 다니는데, 사실 본인이 전부 외우고 있어서 상징적으로 가지고 다닐 뿐이다.
* 그리고 뒤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유키히라 소마]]의 야끼소바. 과연 잇시키의 예언은 실현될 것인가?
네네는 간단한 일인 양 말하지만 [[나키리 아리스]]와 [[하야마 아키라]]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녀의 조리 기법은 섬세하고 연한 맛의 재료를 중첩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하되 특정한 한 가지만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맛을 살리는 밸런스를 맞춘다는건 엄청난 실력자라도 애를 먹는 일. 이 음식은 네네 본인이 쌓아올린 연마의 "시간"과 그녀가 계승한 에도 소바의 "전통"이 융합되어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츠카사는 "지금까지 쿠가와 다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론 3학년들을 이길 수 없다 자신하고, 실제로 센트럴의 시식이 시작되자 전세를 급변한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이번엔 메기시마의 아프리칸 라면. 겉 보기엔 면에도 스프에도 주제인 고추의 요소는 커녕, 이름은 아프리카의 요소가 어디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짐작하자면 가운데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붉은 조미료. 과연 저것이 주제를 살리는 키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메기시마는 그렇다고 자신했다. 그 조미료는 "하리사"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조미료였다. 그가 직접 나서서 설명하길, 그 재료는 파프리카 파우더, 캐러웨이씨, 레몬 즙과 마늘 등 자극적이고 강렬한 소재들. 그리고 여기에 중심이 되는 것이 "대량의 고추"를 휘저어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나자 소마도 짚이는 데가 있었다. 분명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가 쿄쿠세이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조리묘"라고 짤막하게 설명했을 뿐이지만.
- 식극의 소마/236화 . . . . 3회 일치
* 에이잔은 그같은 설명을 헛소리로 일축하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장면들 뿐이다. 가령 자재창고에서 마주쳤을 때, 타쿠미가 노려보고 있다, 복수심을 불사르고 있다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그를 면밀히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3rd ABOUT이 시작된 내내 계속됐다. 그는 타쿠미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기 요리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타쿠미는 에이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자신의 유도에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 심사위원들은 상대의 함정을 역이용한 타쿠미의 수완을 격찬하며 "탈출불가의 일루전"이란 표현으로 에이잔과 동급 이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부를 이걸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도 극상의 맛이긴 마찬가지. 이스트와르는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거기서 타쿠미의 다음 비장의 수, "제 3의 요리"가 공개된다. 사실 [[유키히라 소마]]는 그의 피자를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것 같다. [[타도고로 메구미]]에게 타쿠미의 피자가 "반달 두 개를 겹쳐놓은 듯한 모습"이라 하는데. "메짜루나"(반달). 타쿠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요리, "도피오 메짜루나 피자"(두 개의 달이 빛나는 피자"를 소개하며 진정한 맛을 보라고 하는데.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3회 일치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K리그는 다른 리그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오심]]이 많은 건 아니다.''' 당장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전체적으로는 준수한 경기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칼카나마의 쑥덕축덕만 봐도 라 리가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오심으로 [https://twitter.com/Kalkanama/status/727232395842187265|강등을 당하는 팀도 있고], 소위 [http://www.kfa.or.kr/news/news_column_view.asp?BoardNo=1086&Page=1&Query=|유령골이라고 불리는 옆그물 골]이 발생한 경우도 있으며, [http://http://www.teamtalk.com/news/ref-review-the-incorrect-decisions-from-week-31|한국인 선수가 뛰는 리그]도 예외없이 이런 이슈에 대해 아주 잘 소개된 바 있다. 농담 안 하고 세계 어디를 가든 심판의 수준은 사실상 도찐개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 '''EPL, 분데스리가, 라 리가, 세리에 등과 달리 K리그는 팬들의 희망과는 달리 심판의 징계에 대해 대대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지만, 연맹과 KFA의 반응은 사실 팬들의 기준으론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발언 이후 9월에 지난 2013시즌에 경남FC에서 심판을 매수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발언이 '''근거없는 비난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2013 K리그 심판매수]] 항목으로.--축구장에 나타난 [[예언자]]--
- 아동관 . . . . 3회 일치
[[놀이]]를 통하여 아동 교육을 실천하는 아동교육, 복지시설.
아동관은 실내형 놀이시설로서, 놀이를 통하여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놀이를 통한 교육을 실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3회 일치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원작에서 아멜리아의 성격 묘사는, 사실 왕녀로서 이지적이고, 무녀로서 신비함이 있으며, 거기에 약간 4차원 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원작의 아멜리아 묘사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정의를 외치면서 추락하거나 하는 것은 사실 부분적인 묘사. 그러니까 본래 아멜리아는 "전체적으로 멀쩡한 인간인데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원작에서 아멜리아는, 전형적인 판타지에서 나오는 "신비롭고 이지적인 왕녀"에다가 가끔 뭔가 좀 이상한 짓을 하는 "약간의 개그"를 넣어놓은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다.
- 안내상 . . . . 3회 일치
* 2000년 《[[불후의 명작]]》 ... 민실장 역
* 2004년 《[[시실리 2km]]》 ... 똥개 역
* 2005년 《[[강력3반]]》 ... 박실장 역
- 애니프사 . . . . 3회 일치
* 정상적인 경제 능력, 생존 능력, 소통 능력 등을 상실한 사회적 무능력자이다. 한마디로 [[좀비]].
* [[성차별]] 적인 일본 애니 문화에 미쳐있으며, 이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한다.
애니프사들이 현실의 여성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사례
- 엔자이 . . . . 3회 일치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벌을 받게 된 것. [[누명]]과 같은 의미지만, 단순히 억울하게 하지 않은 죄를 덮어쓴 것만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형사 판결을 받아 실형을 당하게 된 경우에 사용한다. 원(冤)은 원통할 원(寃)을 쓴다.
수사기관의 편견, 피의자에게 밀실에서 [[자백]]을 강요하고, 그러한 자백을 과신하는 것이 엔자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데 대해 다룬 영화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작품이 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2329|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유죄확률 99.9%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한번 열린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될 가능성은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암담한 현실을 다룬다. 영화의 결말도 99.9%의 확률을 이기지 못한다.
- 연경흠 . . . . 3회 일치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한화 이글스 2차 12라운드]](전체 90순위) 지명[* 대학 진학으로 인해 실제 입단은 2006년.] ||
시즌 성적은 96경기 '''9홈런 20타점 타율 .203, 출루율 .277, 장타율 .390, OPS .667'''을 기록. 장타는 확실했으나 선구안이 지옥이었다. --신성현?--
* 야수로써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으며 외야수이긴 했지만 '''[[좌익수]]'''밖에 못 본다는 게 흠이었다. '''게다가 리그 전체로 볼 땐 평균 이하의 수비력'''이었다. 빠른 뱃스피드로 공을 날려버리는 스타일이었으며 실제 그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로 자주 날아갔다. 2009년 당시 SK전에서 [[정대현(1978)|정대현]]을 상대하기 위해 대타로 나왔을때 --상대전적 1타수 1안타 1홈런-- 중계하던 캐스터가 배트 스피드를 [[김재현(1975)|김재현]]에 이은 2위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타석에서 폭풍삼진--진정한 선풍기가 아닐까 싶다.
- 오미코시 . . . . 3회 일치
이 말은 정치, 군사 활동에서 (실권을 가지지 않는) '상징적 인물'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오미코시처럼 여러 사람들이 받들어 올려 상징으로서 사용하지만, 특별히 실권은 가지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 '''덴노''' : 실권을 잃고 과거 약 1천년 이상 오미코시를 해왔던 오미코시 전문 일족(…). 덴노 본인만이 아니라, 그 자손인 황자, [[겐지]], [[헤이지]] 등의 가문도 오미코시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일본의 오미코시 전통은 여기에 유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오방낭 . . . . 3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쓰였는데, 궁중에서 가례시에 부적으로 만들어 졌으며, 만들어진 주머니는 종친이나 나인들에게 하사되었다. 특히 정월 첫날에는 볶은 콩을 한 알씩 붉은 종이에 싸넣은 오방낭을 왕실 종친에게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 와일드 독 . . . . 3회 일치
상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복장은 대학 셔츠, 군복 바지, 하키마스크이며 셔츠에는 붉은 개가 그려져있다.
실사화의 경우 [[드라마]] [[애로우]] 5시즌에서 등장. 주인공의 동료다.
- 왓치맨 . . . . 3회 일치
* 로리 저스페직/2대 실크 스펙터
* 샐리 주피터/초대 실크 스펙터
* 더 실루엣
- 요시다 세이지 . . . . 3회 일치
1992년 일본의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가 제주일보 기사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제주도를 직접 취재하여 이 사실을 [[산케이 신문]]을 통하여 일본에 알리게 되었다.
요시다는 1943년 5월 당시 제주도에 '육군부대본부'가 '군정을 펼치고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일본근현대사를 전공한 나가이 카즈 교토대 교수는 제주도로 육군 대부대가 집결한 것은 1945년 4월 이후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기술이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요시다 증언의 영향은 한정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증거는 요시다 증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참조하지 않았으며, 이는 1991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내부 문서를 아사히 신문이 공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공개 증언을 하면서, 한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피해자 증언이 잇따르게 되었다.
- 운제부인 . . . . 3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상)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남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순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 가계<ref>일부 가계는 [[밀양 박씨]] 족보, [[경주 이씨]] 족보 35대 실전세계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고, 정사의 내용이 아님을 밝힌다.</ref> ==
- 워저드 . . . . 3회 일치
특이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루안을 클리어 했을 경우 플레이어중 루안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이며[* 레오와 타오의 경우는 서로 대화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타바사의 경우는 타바사가 찾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말하며 타바사도 거기에 대답을 한다. 하지만 무쿠로의 경우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무쿠로가 대화하는 상대는 주군의 또다른 부하.] 두번째로 특수 피니쉬 연출 3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 세로 쪼개기는 레오, 타바사도 있지만 가로 쪼개기와 심장 뽑기는 무쿠로 전용 피니쉬이다. 반대로 타오는 특수 피니쉬가 존재하지 않는다.]
파동 승룡계에 충실하며 신발에 불을 점화하여 그것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스타일이 주가 된다.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게는 추천한다.
워저드의 [[중간보스]]. 성우는 키시노 유키마사. 발돌의 부하. 하야 갑옷과 [[에아]]와 유사한 3단 원통검[* 원통검에 대포가 내장되어 있어서 탄환도 나간다.]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발돌의 성 앞에서 플레이어를 가로막는다. 처음에는 망토를 입고 있지만, HP가 줄어들면 망토를 벗어던지면서 제실력을 발휘한다. 원래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레오와도 안면이 있다. 그 정체는 레오가 왕이던 시절의 직속 기사단장. 그러나 발돌에게 패하고 그에 의해 세뇌당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이때문에 레오가 절단 피니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해 진 것.
- 원피스/819화 . . . . 3회 일치
* 일행은 코즈키 오뎅이 해적왕의 선원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 모모노스케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저 울고만 있다.
* 오뎅은 마지막까지 라프텔에서 확인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와노쿠니의 개국"'''이라는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 원피스/832화 . . . . 3회 일치
* 나미는 뒤늦게 길은 처음부터 없었음을 깨닫는데, 지금까지 루피인줄 알았던 녀석이 사실은 분신이었다.
* 저지가 "꽤 강하다"고 하는걸 보면 제르마66 중 꽤 상위의 실력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욘디를 두들겨 팬 상디는 상처 조차 없으니, 제르마66 개개인의 실력은 밀집모자 일행보다 떨어질지도 모른다.
- 원피스/834화 . . . . 3회 일치
* 이것을 보고 푸딩이 루피 일행과 합류하지 못한 것, 상디에게 사실을 전하지 못한 것을 짐작한다.
* 사실 타마고 남작은 페드로의 옛 콤비. 병정들에게 페콤즈를 찾으라고 지시하고 혼자 차를 마신다.
* 사실 시저는 그런 연구 따윈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연구라고 생각했던 것.
- 원피스/835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자신은 원래 빅맘의 "전 남편"이고 두 딸 로라와 쉬퐁을 낳은 이후 버려졌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 빅맘은 일행이 멋대로 하게 둬도 좋지만 "상디와는 만나게하지 말 것. 그리고 반기를 든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지시했다.
* 로라가 빅맘의 딸이라는 설은 유력한 추측이었는데 사실로 확인.
- 원피스/842화 . . . . 3회 일치
* 크래커는 돌아가면 이 사실을 보고하겠다고 하자 킹바무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항변한다.
* 이건 붓기를 빠르게 빼는 팩인데 몸의 정상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방식. 따라서 실제로 상처가 낫는건 아니고 오히려 몸에 나쁘다.
캐럿은 아직도 쵸파를 "쵸빠"라 부르는데 쵸파가 얘기한 "좋은 아이디어"는 아직 실행 중?
- 원피스/846화 . . . . 3회 일치
* "서사" 샬롯 몬도르는 별명대로 책을 무기로 쓴다. 책들이 허공을 날아디는데 그걸 밟고 돌아다닌다. 남자는 루피가 삼장성 중 하나인 크래커와 하룻밤 내내 싸웠는데 선전하고 있다고 감탄한다. 실제로 결코 약하지 않다고 평가한 체스병들이 무수히 널부러져 있다. 모두 루피가 쓰러뜨린 것.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 덕에 상황은 좋지 않다.
* 홀케이크성 안의 "보물전"에선 타마고 남작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있다. 그는 이 방에 모아놓은 "포네그리프"가 무엇인지 일장설명을 늘어놓는다. 전세계에 있는 30개의 돌비석의 문헌. 그 중에서 "정보"를 가진 것은 고작 9개. 세간에서 말하는 "리오 포네그리프"다. 그것들을 최후의 섬 "라프텔"에 인도했을 때 돌은 세상의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프텔에 가는 정보를 적은 문헌이 4개의 "로드 포네그리프". 얼마 전 징베가 하나를 진상하면서 현재 빅맘 해적단이 소장하고 있는 건 "포네그리프" 2개와 "로드 포네그리프" 하나. 총 세개다.
|| 브룩 : 페드로씨. 미끼가 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원피스/848화 . . . . 3회 일치
* 푸딩은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갇혀 있는 죄수도서실을 찾아 사과한다.
* 한편 죄수도서실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푸딩이다. 푸딩은 루피의 감옥을 지키고 있던 형제들에게 루피와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청한다. 의외로 형제들은 순순히 루피의 감옥을 열어준다. "책갈피"를 감옥 사이에 끼우자 엿가락처럼 옆으로 휘어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푸딩. 루피는 푸딩을 반가워하며 해안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미는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푸딩이 곤란해지니 그만하라고 진정시킨다.
푸딩이 말하는 "결심"이란 로라처럼 결혼식을 거부하고 떠나는 걸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되면 더이상 상디를 속박할 명분도 없어지고 빅맘이 밀집모자일당을 적대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 원피스/850화 . . . . 3회 일치
* 죄수 도서실은 루피의 발악과 그걸 말리는 [[나미(원피스)|나미]]의 목소리로 소란하다. 루피는 늘어나는 팔을 몸에 휘감아 가며 당겨대고 있다. 나미는 팔을 끊을 생각이냐고 말리는데 루피는 정말로 팔을 끊어버릴 생각이다. 루피는 그 외엔 나갈 방법이 없고 죽는 것보단 양팔을 끊는게 낫다고 주장한다.
* 죄수 도서실에선 루피가 푸딩을 용서할 수 없다고 아우성친다. 선량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하던 푸딩은 사실 이런 말을 한 것이다.
- 원피스/855화 . . . . 3회 일치
* 한 사람씩 시도해 보는데 그때마다 빅맘이나 무기들이 잠결에 공격해서 실패.
* 작전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가 간발의 차이로 브룩을 빼오는데 성공.
* 브룩은 사실 자신의 두개골 속에 탁본을 숨겨오는데 성공했다. 빅맘이 들이닥친 시점은 그가 막 탁본을 숨긴 직후.
- 원피스/860화 . . . . 3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다과회 장소로 이동 중. 진실을 아는 [[빈스모크 레이쥬]]는 [[상디]]가 도망치지 않은 걸 알고 내심 당황한다.
* 홀 케이크 아일랜드의 동쪽 하구에서 [[페콤즈]]를 돌보던 어인 해적단은 그를 해변에 묶어둔 채 토트랜드를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페콤즈는 이들이 떠나려 하자 빅맘 [[샬롯 링링]]도 이 사실을 아는 거냐고 묻는다. [[알라딘(원피스)|알라딘]]은 "떠나는 자는 죽인다"는게 이 나라 절칙이니 오히려 알면 안 된다고 응수한다. 페콤즈를 버리는 모양세가 됐지만 그가 굶지 않게 식량을 준비해놨고 금방 그를 발견할 사람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징베]]는 페콤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어인 해적단의 배가 출항한다.
* 한편 다과회장 정문에서는 실갱이가 벌어졌다. 경비 총책임자 [[카포네 갱 벳지]]는 난감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데 장기매매업자 지그라다. 그는 다짜고짜 문을 열라면서 몸수색에도 응하지 않는다. 초대장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상대는 거물이자 빅맘의 손님. 벳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지그라는 자신은 지난번에도 초대장을 받았었다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허세라도 부리려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의 방향이 이상하게 흐른다.
- 원피스/876화 . . . . 3회 일치
달리는 동안 자길 죽이려 한 여자라는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푸딩의 상태도 비슷비슷했다. 상디와 눈이 마주치자 세 개의 눈이 하트를 띄우며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때 빅맘이 완전히 땅 위로 올아오지 않고 시폰이 옆에서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챙긴 푸딩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다. 아주 사악한 얼굴로.
브룩과 쵸파는 단 둘이서 한없이 밀려오는 빅맘 해적단의 병력을 쓸어버렸다. 체스병 대부분이 널부러져 있었고 일부 간부도 당해서 누워있다. 카타쿠리는 둘의 실력에, 특히 브룩 쪽에 감탄했다. 브룩은 자신은 소울킹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허세를 부렸지만, 슬슬 체력이 한계였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적이 줄질 않았다. 나미의 방에 있는 거울에서 증원이 쏟아지고 있다. [[샬롯 브륄레]]의 짓이 틀림없다. 쵸파는 그런 사실을 말하며 "깨뜨리면 혼날까" 걱정했다. 브룩은 기회가 되면 깨뜨리고 나중에 사과하자고 받아쳤다.
- 원피스/881화 . . . . 3회 일치
* 미러 월드의 빅맘 해적단 병력들도 그 소식을 접했다. [[샬롯 카타쿠리]]의 전보벌레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오자 루피는 믿기지 않는 듯이 거울조각으로 일행을 부른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밀집모자 일당의 전멸이 기정사실화되고 [[샬롯 브륄레]는 새로운 거울로 진군할 필요도 없겠다며 작전을 중지시킨다. 그런데 부하들은 여전히 거울 너머에 아무런 일도 없다고 이상해 하는데, 그때 갑자기 거울이 깨진다. 그리고 미래를 예지하는 카타쿠리 만큼은 페로스페로의 공지에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쓰나미가 닥쳤을 때는 절망했지만 징베가 놀라운 솜씨로 파도를 헤쳐나가자 부활. 위기를 돌파한 뒤에는 "카타쿠리에 집중하고 싶다"던 루피의 말에 따라 배의 모든 거울을 깨뜨린다. 어떻게든 하겠다는 루피에게 실제론 아무 대책이 없다는걸 알고 10시간 뒤 카카오섬에 도착할 테니 거기로 연결된 거울을 찾으라고 이른다. 루피가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벌써 도착했다고 말하는데 거짓말이라는걸 눈치채지 못한다.
거대한 파도가 칠때 생기는 공백지대 "그린 룸"을 찾아내서 일행을 구원했다. 이때 한 손으론 키를 잡고 다른 손으론 돛에 연결된 밧줄로 돛까지 컨트롤하는 놀라운 실력을 선보였다. 항해사로 베테랑인 나미 조차도 "그런건 듣도 보도 못했다"며 경탄할 정도. 루피가 일행을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했을 땐 역시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안도했다.
- 원피스/882화 . . . . 3회 일치
* 브륄레는 사실 루피가 [[나미(원피스)|나미]]와 하는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 곧바로 오빠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밀집모자 일당이 살아있다는 것과 카카오섬으로 향할 거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페로스페로는 아직도 빅맘 [[샬롯 링링]]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중. 써니호가 파도에 삼켜지는 걸 봤기 때문에 브륄레의 정보를 반신반의하나 어차피 [[샬롯 푸딩]]이 카카오섬에서 웨딩케이크를 굽고 있는걸 알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하지만 빅맘은 페로스페로의 뜻과 달리 근처에 있는 "너츠섬"으로 향하려고 해서 곤란해진다.
* 하지만 낭보도 도착한다. 샬롯 누스토르테가 1만 병력으로 제르마66을 추격, 그들을 괴멸하고 왕국을 손에 넣었다는 보고였다. 누스토르테는 밀집모자 일당의 추격결과에 대해서도 묻고 몬도르는 의심없이 정보를 공유한다. 그것이 실수. 사실 제르마를 쫓아간 병력은 전멸 당했다. [[빈스모크 니디]]가 누스토르테의 목소리를 흉내내 전화를 건 것. 밀집모자 일당이 서쪽으로 출항했다는 소식을 접수한 제르마66은 곧 그 방향으로 출항한다.
- 윤덕주 (농구인) . . . . 3회 일치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3층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6시에 거행되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507/h2005070818102324180.htm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별세]</ref> 2005. 7. 12(화) 오전 6시 대한농구협회장(장례위원장, 이종걸)으로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연화리 선영에 안장되었다.<ref>[http://www.jumpball.co.kr/cont/cont_view.php?cont_cd=02&cont_seq=2785 한국농구 대모 윤덕주 명예회장 별세]</ref>
** 오빠 : 윤중기, [[6.25 전쟁]] 때 실종
** 남동생 : 윤병기, [[6.25 전쟁]] 때 실종
- 윤철종 . . . . 3회 일치
||<#eee> '''학력''' ||<(> 현일고 - [[대구예술대학교|대구예술대]] 실용음악 ||
그 후 2010년 5월 민트 페이퍼 프로젝트 3집 앨범 <Life>의 수록곡인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로 참여. 이 곡이 그럭저럭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가, 2010년 8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아메리카노''''가 제대로 대박을 터뜨려서[* 2010년 [[GMF]]에서는 관중들이 이 곡을 [[떼창]]했다.] 여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열광하는 가수로 급부상하게 된다.[* 사실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앨범화가 되지 않은 노래들이 많다. '''녹음하기 귀찮아서.'''] 이때 아메리카노로 [[뮤직뱅크]] 최고 순위 7위에 든 적도 있다.
- '술'이 들어갔으므로.[* 사실 이 때만 해도 술, 담배가 가사에 들어간 노래는 싸그리 청유물을 먹이는 관행이 있었다.]
- 은혼/579화 . . . . 3회 일치
* 이 죽음의 행성에선 오로치 조차 소중한 생명이며 사실 오로치는 우미보즈가 나타나 흥분한 것 뿐이었다.
* 우미보즈는 삼일 밤낮을 바쳐가며 작업을 걸려고 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 오로치는 사실 별을 수호하는 존재인데, [[사다하루]]도 원래는 용맥을 수호하는 존재인 만큼 접점이 있을 듯하다.
- 은혼/580화 . . . . 3회 일치
[[황안]]을 떠나는 [[우미보즈]]와 [[코우카]]. 그러나 힘든 현실이 닥쳐온다.
* 절벽 밑으로 떨어진 [[카무이]]는 가구라에게 코우카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
* 지금까지는 카무이와 우미보즈의 대립이 "부모 죽이기"라는 야토의 옛풍습에 따른 걸로만 알려졌었는데, 실제로는 코우카에 얽힌 애증 때문이었다.
- 은혼/581화 . . . . 3회 일치
[[카무이]]는 [[우미보즈]]와 [[코우카]]의 진실을 알게 되고 [[야왕 호우센]]에게 도전하며 비뚫어진다.
* 카무이는 전회에 이어 어머니 코우카의 진실에 대해서 말한다
* 우미보즈는 그런 별에서 홀로 살고 있던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지만, "사실 지켜지고 있던건 자신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코우카는 일부러 아무 말도 없이 따라와준 것이며 홀로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기 보단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택한 것이라고.
- 은혼/587화 . . . . 3회 일치
* 사실 아부토는 과거 카무이가 가족을 버리던 시절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 하지만 카무이는 "어린애 하나 납치하지 못하는걸 보니 악당 실격"이라고 대꾸한다.
* 아부토는 "사실 아버지가 말려주길 바라고 그때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 은혼/590화 . . . . 3회 일치
* 단지 땅을 기는 벌레(양이지사)의 생사여부 같은 자잘한 사실은 그의 큰 계획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라는 것.
* 오보로는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츠로가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다. 단지 오보로 덕에 결심할 수 있었던 것.
* 오보로는 그래서 조직에 쫓기게 되엇다고 하는데, 우츠로는 "당신도 이쪽 일원인건 확실"하다고 하면서 "약속했었죠. 당신이 첫 제자라고"라고 말한다.
- 은혼/597화 . . . . 3회 일치
* 시무라 타에는 해결사 사무실에 방문해 하세가와 다이조가 놓고 간 의뢰서를 발견한다.
* 천인들은 하세가와를 실컷 두들겨패더니 감옥에 처넣으러 끌고 간다.
* 타에는 망연자실하게 폭발한 해결사 사무소를 바라본다.
- 은혼/602화 . . . . 3회 일치
* 그것은 실험물로 전락한 천도중들. 원상은 자작보다 이 전쟁의 실체를 먼저 파악했으며 그럼에도 자신들의 갈 곳 없어진 증오에 눈이 멀어 전쟁을 확대하고자 한다.
* 처참한 몰골로 실험체로 전락한 천도중들. 단순한 육편에 지나지 않게 됐다.
- 은혼/607화 . . . . 3회 일치
* 그는 야마자키가 스스로를 내던지는 "무치"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높이 평가하는데, 사실 자신도 그 경지에 도달했다 한다.
* 히지카타는 뭘 실실 웃고 자빠졌냐며 상황 파악이 됐냐고 갈군다.
- 은혼/616화 . . . . 3회 일치
* 건물 옥상에서 투석기를 담당하던 캬바쿠라 "스마이루"의 아가씨들은 다키니의 투석에 밀려서 피신한다. 이들의 리더인 [[시무라 타에]]는 [[료우(은혼)|료우]]와 [[하나코(은혼)|하나코]]와 합류한다. 하나코와 료우 쪽도 투석기가 박살나면서 급히 피신했는데, 아직도 저항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에는 이들을 피신시키도록 한다. 료우와 하나코는 "힘을 합쳐 마을을 지키기로 했다"고 반발하지만 타에는 다키니의 힘을 체감하고 냉엄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타에는 자신이 척후를 맡고 동료들을 먼저 피신시키려 하는데 료우는 타에와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남자 주민이 그녀의 팔을 이끌며 데려가려고 실갱이가 벌어지는데, 그때 쿵소리와 함께 료우의 팔을 잡았던 손만 덩그라니 남는다. 무자비한 다키니의 공격. 그들이 벌써 옥상까지 추격해온 것이다.
* 가부키쵸의 문 앞에선 [[사이고 토쿠모리]]가 다키니 병사를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 그러나 다키니도 힘으로는 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이고의 손을 맞잡고 찍어누르는데 힘에서 밀린 사이고가 머리로 들이받는데도 꿈쩍도 없다. 한계까지 밀리던 사이고의 왼팔 쪽에서 검붉은 핏줄기가 뿜어지는 듯 했으나...
- 은혼/618화 . . . . 3회 일치
* 반격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던 가부키쵸 방위군. 그러나 [[오우가이]]의 무력 앞에선 속수무책
* 하지만 오우가이만큼은 이들의 합동 작전도 별다른 실효를 보이지 못하는데.
* 오우가이는 그런 잔꾀로 이 일격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엄포를 놓지만 긴토키는 그런건 상정한 바고 "네놈의 일격을 막진 못해도 네놈한테 일격을 먹여줄 방법은 있다"고 받아친다. 해결사 일행은 세 방향에서 오우가이를 동시에 덮치지만 오우가이는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모든 공격을 차단한다. 사실 이쪽으로 유인을 걸었을 때 이미 그 계책은 짐작한 바였다. 이곳이라면 기동성을 무기로 다방면에서 공격을 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정도로는 오우가이의 철통같은 가드를 뚫어낼 수 없었다.
- 은혼/624화 . . . . 3회 일치
* 그때 소타츠의 칼날이 깨진다. 완전히 묶였다고 생각했을 지로쵸의 사지가,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지로쵸는 달려드는 신라 대원 둘을 찔러 죽인다. 지로쵸를 묶고 있는 시체 사이에서 뻗어나온 팔이, 목검으로 시체들을 꿰뚫고 소타츠의 칼을 깨뜨린다. 신라 부대 사이엔 [[사카타 긴토키]]가 끼어들어 있었고 둘은 힘을 합쳐 포위를 풀고 소타츠에게 중상까지 입힌다.
질질 늘어질게 뻔한 회상을 단칼에 쳐낸 지로쵸. 회상 속에서 회상을 잘라내는 신기술을 보여준다. 카츠오는 지난 주에 두목은 잔뜩 회상해 놓고 너무하다고 투덜댄다. 아무튼 그가 그날부터 지로쵸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그의 부재기간 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것이 사실인데 부두목 자리를 양보하라는 거냐고 반발한다. 그러자 지로쵸도 "애초에 그런 약속 안 했다"고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피라코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언젠가 지로쵸가 "너라면 부두목 노릇도 충분히 한다"고 한 말을 끄집어 내서 물고 늘어진다. 지로쵸는 딸을 야쿠자 시키는 아버지가 어딨냐며 만약에 그렇다는 말이었다고 발뺌한다.
- 은혼/627화 . . . . 3회 일치
* [[헤도로]], 요괴 군단 등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적들이 속속 등장하자 해방군은 대오도 없이 도주하기 시작한다. 힘겹게 싸웠던 가부키쵸 주민들은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해방군을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들의 승리를 실감한다. 해는 지평선에 걸려있고, 승리를 자축하는 주민들의 환호성이 에도에 울려퍼진다. [[가구라]]와 [[시무라 신파치]]는 대장이자 선봉장이었던 [[사카타 긴토키]]를 찾아 승리의 기쁨을 나누려 하는데...
* 그들이 찾아낸 긴토키는 [[헤도로]]에게 고목에 달라붙은 매미처럼 붙어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소년처럼 재앙을 홀로 막고 있지만 애초에 재앙을 불러온 것도 자신이라 도움도 청할 수 없다. 그래서 긴토키는 자신이 꺾어버린 헤도로 머리 위의 꽃, "파라파헤븐"을 필사적으로 붙여놓고 있다.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헤도로는 태연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미 해방군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면서.
* 누나 [[시무라 타에]]는 태클과 인외연애에 여념없는 신파치를 염려해서 쉬라고 권한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사실 게도마루는 신파치를 심란하게 하는 것 말고도 부상자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물론 아까도 부상자들을 도우며 태클 말고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신파치보단 훨씬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도마루와 음양사들은 늦게 온 만큼 조금 더 컷에 나와서 분량을 뽑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가부키쵸 주민군에 늘러앉았다.
- 이강돈 . . . . 3회 일치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시절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당시 드래프트 제도상 대구 지역의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선권을 가졌는데, 여기서 삼성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지명해 놓고서는 이강돈에게 먼저 군대를 갔다 오면 입단시켜 주겠다고 한 것. 다른 선수에게는 관대하게 입단 조건을 걸고서, 유독 자신만 군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화가 난 이강돈은 전격적으로 빙그레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의 질서를 해치는 이 행동은 '''그냥 넘어갔다.'''[* 그렇긴 한데, MLB에서 [[스캇 보라스]]의 유명세를 알린 loop hole FA사건 원인이 드래프트 지명 후 15일 안에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의무 불이행이므로 계약 무효를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서인 만큼, 삼성 측이 계약하지 않고 군입대를 제안한 것이 의무 불이행으로 해석될 가능성 때문에 법적 공방 들어가도 이강돈에게 승산이 있는 사안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2014 시즌 중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936782|정수근과의 인터뷰]]에서 한화의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표시했다. 한화의 약점으로 마무리의 부재를 꼽았는데, 당시 한화는 [[마무리 투수|마무리]]를 정하지 못하고 [[박정진]], [[윤규진]] 등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 이민호(1987) . . . . 3회 일치
연기 실력이 탄탄하지 않은 채 많은 작품을 소화하는 몇몇 배우들과 달리 신중하게 자신의 작품을 고르고,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왔고 무명 시절부터 다양한 배역을 경험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우주소녀]]의 [[성소]]가 [[아는 형님]]에서 [[김수로(배우)|김수로]]에게 이민호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성소]]는 이민호의 팬이며,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이상형도 이민호라고 밝힐 정도여서 이민호 닮은꼴에 대해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 이병규 (1983년)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6년]] [[7월 7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이병석(정치인) . . . . 3회 일치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옥중 출마한 [[무소속]] [[허화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허화평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박태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3년 2월에는 [[국회의장]] 직무대리로 본회의를 진행하던 도중 [[동남 방언]] 특유의 발음으로 본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덕분에 그 동안 치열하게 치고 받던 여야가 모처럼 [[위 아 더 월드]]를 이루기도. 사실 맨 처음에 쌀 소득을 '''살 소득'''으로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병석 부의장은 [[엄근진]] 모드를 유지했지만 주변에서 웃기 시작하자 '''정작 본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심지어 소 싸움을 '''소 사움'''으로 읽고 나서 본인이 빵 터지는가 하면 아예 '''"난 죽을 때까지 그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라고 [[자폭]]하는건 덤. ~~자세히 들어보면 웃음을 참느라 그런건지 발음을 '''발은'''에 가깝게 발음한다.~~
- 이상무(만화가) . . . . 3회 일치
이현세 만화의 마동탁에 해당하는 악역 주인공은 김준 또는 옥기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형제로 나올 땐 독고 준, 일본을 무대로 했을 경우에는 악역은 십중팔구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 이름을 쓴다. 안경을 쓰고 나올 때도 많아서 캐릭터 이미지가 마동탁과 매우 비슷하다. 다만 성격은 원래 나쁜 놈으로 나올 때가 많은 마동탁과 달리 처음엔 주인공 독고탁과 친했지만 재일 한국인 차별이나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열해진 인간일 때가 많다.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골프]] 전문 만화를 많이 그리면서 [[박세리]]를 만화로 그린 바 있다. 실제로도 골프광이았다고 한다.
* 운명의 라스트 홀
- 이성민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7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구원 등판해 1 2/3이닝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애덤 윌크|아담]]이 선발진에서 부진하고 부상과 팀 내 융화 문제까지 겹쳐 C팀 강등 후 [[트위터]]에 불만을 표시하자, [[김경문]] 감독은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해 그를 선발진에 넣었고 [[애덤 윌크|아담]]을 퇴출했다. [[2013년]] [[8월 3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0496 ‘1피안타’ NC 이성민, 선발 데뷔전에서 깜짝 승리] - 마이데일리</ref>
8개월이 지난 2018년 8월 오랜만에 그의 근황이 올라왔는데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ref>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68&aid=0000415673</ref> 사실상 선수 커리어는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 년도 !! 소속팀 !! 평균자책점 !! 경기수 !!승 !!패 !!세 !!홀 !!이닝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시영 (1882년) . . . . 3회 일치
이시영은 [[1882년]] [[1월 10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성리학자 만당(晩堂) [[이관준]](李寬俊)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이관준]]으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몸이 건장하여 무인(武人)의 기상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詩)과 글씨(書), 그림(畵)에 모두 능하였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런 성격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과 과단성 있는 추진력 때문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는 그를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칭찬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koreastory.co.kr/daegustory/human/leesiyoung.htm 대구의 인물<!-- 봇이 붙인 제목 -->]</ref>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남의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을 무찌르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중국]]으로 망명,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베이징]], [[만주]]일대 그리고 국내의 각지를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처럼 다녔다. 괄괄한 성격의 그는 실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윤상태]](尹相泰), [[서상호]](徐相鎬), [[정운일]](鄭雲馹) 등과 [[애국단]]이란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애국단을 조직한 그들은 우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모라는 당시 대구부호의 지원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서부자는 이름난 구두쇠인데다 민족의식이 없어 말로 해서는 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더욱 서는 우재의 사돈(族兄의 妻家)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는 서부자의 아들을 애국단에 가입시켜 그가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희사하기를 원하였으나, 서부자는 끝내 외면했다. 군자금은 마련해야겠고 저쪽에서는 응할 기미가 없자 최후 수단으로 하루밤 그의 아들을 앞세우고 그 집에 침범했다가 정체만 드러낸 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일경에 체포되어 강도죄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뒤 다시 [[최준]](崔俊), [[안희제]](安熙濟), [[서상일]](徐相日) 등 동지를 규합하여 [[광복단]]을 조직했다. 광복단은 무기를 구하고 병사를 길러 일본 세력에 무력으로 겨루자는 목적으로 조직된 무장단체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 이시형 (1934년) . . . . 3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0-7-12}}
'''이시형'''(李時炯, [[1934년]] [[4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교수|의과대학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사]]·前 [[군의관]]이다. [[경북대학교]]·[[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하였으나 사실상 [[서울대학교]]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고문
- 이영 (1494년) . . . . 3회 일치
'''이영'''(李英, [[1494년]] ~ [[1563년]] [[2월 22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 본관은 영천이다. 청렴결백하였으며, 수령 재직시는 선정을 베풀었으며 무관으로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무신으로 드물게 청렴하고 근실했다는 평을 들엇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저서로는 시와 글을 모은 《괘편당실기 (掛鞭堂實紀)》가 있는데, [[1902년]](광무 5) 그의 외후손 곽종철(郭鍾澈) 등에 의해 편집, 간행하였다.
* 《괘편당실기 (掛鞭堂實紀)》
- 이정호 (1982년) . . . . 3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 이종희 (1942년) . . . . 3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0-5-12}}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겉보기에는 무척 부드러워 보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강한 추진력을 발휘,매사에 빈틈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대한항공]]이 사업정상화를 위해 제트기를 새로 도입할 당시 신입직원이던 이종희는 영어로 된 부품과 정비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전무한 상황에서 밤을 새워가며 정비매뉴얼을 완벽하게 번역하면서 오너로 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영업부에서 항공기 운항과 정비 등의 운항 종합정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5년간 휴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사무실을 지켰다는 일화는 지금도 사내에 회자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한 · 프랑스 협력에 앞장서고 세계 항공시장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이종희에게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종 드뇌르 슈발리에(La Legion d'honneur Chevalier) 훈장을 수여하였다. 레종 도뇌르 훈장은 ‘영광의 군단’이란 의미를 지닌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데 레종 도뇌르는 일반적으로 코망되르, 오피시에, 슈발리에 등 3개 등급으로 구분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4년]] 이 훈장 가운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인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를 받은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12408021|제목=이종희 대한항공 사장‥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날짜=2009-11-25|출판사=한국경제|확인날짜=2010-04-12}}</ref>
- 이준승 . . . . 3회 일치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4년 1월 27일에 불온 유인물 소지로 신고된 사람에 대해 영장없이 압수수색하고 연행하여 6일동안 불법 구금한 진주경찰서 정보계장 김태진(64) 등 3명을 상대로 낸 불법구금 등 불기소처분 기각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 항고심(주심 [[이회창]])에서 인용되어 환송된 사건의 재항고심 주심을 맡아 "경찰의 불법구금 사실은 인정되나 경찰관들이 수사업무에 과잉의욕을 보이다 위법행위를 저질렀고 오랜 정보업무에 종사하며 국가에 공헌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타당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2800209210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28&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099&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7년 1월 28일자]</ref>
- 이평 (1572년) . . . . 3회 일치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영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유영경(柳永慶) 등을 추형(追刑)하고, [[광해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공신(功臣)을 녹훈하고, 역당(逆黨)의 흉서(兇書)를 중외에 반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였다.<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일 을미 1번째기사, 이평이 유영경 등의 추형, 존호를 올리는 일, 공신을 녹훈하는 일 등을 상소하다</ref> 이에 그해 [[5월 29일]]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었는데 입계하였다. 광해군은 "임금은 부귀하기는 한 나라를 소유하였고 귀하기는 군왕이니, 그 영화와 높게 드러난 것이 그 이상 더할 수 없다. 저 존호를 올려 찬양하는 일은 하늘 끝의 한 점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해 옛날의 지사(志士)들은 얻고 잃고 가고 오는 것을 역시 개의치 않았으니, 임금에게 헛된 칭호를 가하는 것이 무슨 털끝만한 보탬이라도 있겠는가. 도리어 손상만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과장하지 못하겠으며 명예도 원치 않고, 다만 본분을 지키다 자연을 따라 죽고자 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이평(李坪)의 상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한 애숭이 유자의 망언으로 인하여 경솔하게 당치도 않은 큰 칭호를 받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럴 리는 없으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9일 임술 3번째기사,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숭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ref>" 하였다.
* 연려실기술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3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처음부터 "두 십계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찬스"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정면에서 나선다면 반드시 경계하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대싸움축제에 참가자로 들어와 방심을 노렸던 것.
* 드롤의 마안을 우려해서 동료 누구에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3회 일치
* 사실 둘은 고르기우스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 실수연발에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귀여운 외모와 상냥함으로 손님들을 휘어잡는다.
* 사실 호크는 냄새로 사람을 구별하고 한 번 맡은 냄새는 잊지도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르기우스를 알고 있었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3회 일치
* 에스카노르는 야간에 일시적으로 힘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십계 두 명을 떡실신시키는 위엄의 소유자. 인류 최강이란 이름값이 어디가지 않았다.
* "경신"의 계금은 젤드리스의 것. 사실 멜리오다스가 십계에 포위됐을 때 이게 발동했다면 그가 십계로 넘어가는 상황이 됐을지도 모른다.
* 사실 일곱개의 대죄 중에서도 에스카노르가 너무 강해서, 나머지는 멜리오다스랑 에스카노르 탱만 해주면 될 것도 같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3회 일치
* 리오네스 방위전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고 길선더 등은 국왕 바트라를 피신시키려 하나 그때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이 나타난다.
* 여신족이 흑막이고 최종보스라는 설이 강하게 대두되는데 네로바스타가 졸렬한 짓만 한데다 전반적인 묘사가 썩 좋지 않다. 사실 이전에도 멜리오다스를 죽이겠다고 반에게 엘레인의 목숨을 담보로 암살을 사주하거나 구대전에서 마신족의 통수를 치고 나머지 세 종족을 규합, 마신족을 봉인해 버리는 등 비겁해 보이는 일을 마구 해댔던게 이미지가 좋지 않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3회 일치
* 사실상 리오네스 왕국의 함락.
* 자라트라스는 붉은 마신족을 가볍게 제압한다.
* 지난 화에서 데리엘이 아크에 걸렸을 땐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는데, 엘리자베스의 아크는 데리엘의 오른손을 확실히 파괴했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3회 일치
* 한편 은총의 빛으로 서둘러 돌아간 할리퀸 앞에는 끔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로우의 손에 끔찍하게 유린당한 [[게라이드]].
쑥스러워하던 디안느는 조심스럽게 궁금한 점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성전을 끝낸다"는 고서의 말이 신경 쓰였다. 정말로 그런게 가능할까? 고서는 그렇다고 자신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확실히 그렇다. 그는 디안느에게 미래 세계에도 성전이 계속되고 있냐고 묻는다. 디안느는 자신의 시간 감각으로 "3000년 전에 끝났다"고 답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성전시대가 바로 자기 시간에서 3000년 전이니, 이곳 시간으로 얼마 안 가서 끝난다는 말이 된다.
고서는 인형 고서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마치 자식을 어루만지는 부모같다. 인형 고서의 지능은 자신과 다를 바 없지만, 감정은 막 태어난 아기나 다름 없다. 사실 고서는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것만은 이루지 못하는 꿈이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3회 일치
바트라는 그녀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고서가 바트라의 누나 나쟈와 나눈 시간들과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녀를 살려보려 했던 고서의 시도까지. 그러나 자신의 심장으로 나쟈의 심장을 대체해주려던 계획은 실패했고 고서는 충격과 절망 속에서 심장은 고성의 지하에 버리고 자신의 기억을 지웠던 것이다.
* 멀린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밝힌다. 지금까지 "마음의 마법"이 담겨있다고 여겼던 마음의 심장은, 사실 빈 상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전에 "마음의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단언하자 할리퀸이 "그럼 고서의 마음은 어디에 있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멀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3회 일치
* 일행은 다시 성채도시 코란도로 향하나, [[멜리오다스]]가 고백한 자신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진실이 무겁게 그들을 짓누른다.
마침 잘 나타난 화풀이감이다. 그렇다면 죽어, 그렇게 말하며 하급 마신이 주먹을 휘둘렀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그런 주먹이라도 실컷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까 했지 했지만 하급 마신의 주먹은 너무 시시껄렁했고 자신이 친구에게 저지른 짓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뭐라고 했던가?
* 돼지의 모자정이 이동하는 내내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침대에 누운 그대로였다. 가장 죄책감을 느끼는 단원은 [[디안느]]였다. 그녀는 자신이 자극한 바람에 엘리자베스의 기억이 돌아온 거라고 자책했다. [[에스카노르]]도 그녀 못지 않았다. 자신이 괜실히 멀린이 걸린 저주를 봐달라고 한게 화근이었다고 믿었다. 둘은 그렇게 하면 다른 단원의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할 듯이, 서로 자기가 잘못했고 다른 사람들의 탓이 아니라고 다퉜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3회 일치
* 해골병들의 힘이 보통을 넘게 되자 실제로 일행은 당황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강해질 데로 강해진 일행의 적수는 아니었다.
* 자신하던 수법이 연달아 실패하고 멜리오다스의 비웃음을 사게 되자 메라스큐라는 디안느의 정신을 조종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일곱 개의 대죄"는 "십계"를 쓰러뜨리기 위해 모인 운명의 동료야.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3회 일치
* 멀린은 "다소 죽일 생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반은 거부감을 느꼈지만 디안느의 힘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결국 "나쁘게 생각마라 디안느"라며 멀린의 지시에 따른다. 할리퀸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디안느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일행과 디안느 사이를 가로막았다. 헬브람은 원념에겐 물리적 공격은 물론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그 말대로라면 설사 디안느를 다치게 해도 원념을 쓰러뜨릴 순 없다. 킹은 그런 말을 하며 일행을 말리고 디안느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원념에게 삼켜지지 말라고. 그러나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측정해 보니 디안느의 전투력은 점점 올라 4만 8천에 육박했다. 킹이 위험했다. 고서의 경고는 애타는 할리퀸에겐 들리지 않았다. 헬브람의 경고도 마찬가지. 그러나 디안느는 아랑곳 없이 무자비한 발길질을 보냈다.
* 디안느는 재미있는 장난이 성공해서 흡족했다. 깔깔거리는 여유를 보였지만 [[에스카노르]]의 접근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디안느의 상태를 보고 "다소 난폭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작렬하는 "다소 난폭한" 치료. 거인족의 허리가 꺾이는 강렬한 보디 블로우. 그렇지만 "여성인 점을 고려해 얼굴만은 피하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위력 자체는 디안느의 갑옷이 터져나갈 정도였지만, 지금의 디안느에겐 정말로 "다정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주먹으로 되갚아주는 디안느. 에스카노르 또한 아무 상처도 입진 않았지만 자신의 다정함이 무시 당한게 아쉬운 모양이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주먹으로 대화를 하려고 드는 에스카노르.
* 원념이 일행을 괴롭히는 방법이 직접 공격만은 아니었다. 고서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소중한 동료의 멋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말하자 원념은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흉악한 크기의 전투망치는 쓸모가 많다. 가령 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사용자의 머리를 찍는다던가. 원념은 그걸 실행에 옮겼다. 일행은 기겁하면서도 쉽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반이 "스내치"를 사용해 보지만 힘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할리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그것도 할리퀸 밖에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 자손사고 . . . . 3회 일치
자기 자신의 책임과 과실로 피해를 입은 사고라는 뜻.
[[교통사고]] 등에서 타인의 과실이 아닌 자기 자신의 과실로 사고를 일으키고 피해를 당하는 것을 뜻한다.
- 장대환 . . . . 3회 일치
1988년 매일경제신문 사장 겸 발행인이 되었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으나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2080970403|제목=<nowiki>[張大煥서리 임명]</nowiki> 50세 總理… 평균59세 長官들|확인날짜=2015-10-10|날짜=2002-08-09|출판사=[[조선일보]]|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23224243/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2080970403|보존날짜=2015-09-23|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2/08/003000000200208281839318.html|제목= "'실정법 위반' 명쾌하게 해명못해"|확인날짜=2007-10-28|날짜=2002-08-28|출판사=[[한겨레]]}}
* 1986년 4월 : 매일경제신문사 기획실장, 이사, 상무이사, 전무이사
* 2008년 12월 ~ : 국무총리실 재외동포정책위원회 민간위원
- 전가의 보도 . . . . 3회 일치
그러나 이렇게 귀한 가치가 있는 반면, 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전가의 보도였다. 가문 대대로 물려줄 정도의 보도라면 가치가 매우 높지만, [[일본도]]는 관리하기가 어렵고 실전에서 사용하면 손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에는 높은 가치가 있는 만큼 실제로 사용하다가 손상을 입히면 그만큼 깍여나가는 피해액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사실 이 말은 굳이 말하자면 '''일본어의 잔재'''. 애초에 대대로 보도를 물려주는 문화가 일본 사무라이 가문에서 나온 것인지라(…).
- 전광우 . . . . 3회 일치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인디애나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전장운 . . . . 3회 일치
전장운은 [[1811년]]에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인도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정장운은 어릴 때부터 [[농사]]와 [[가죽]] [[가방]]을 만들며 가족을 부양했다.
[[1845년]]에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으로 귀국하자, 남종삼은 [[고해성사]]를 받았고 동료 교우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는 매우 충실한 [[천주교]]신자로 살았다.
전장운 요한은 [[결혼]]하여 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베르뇌]] [[주교]]는 그를 매우 독실한 신자로 인정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풀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최형 베드로]]와 [[임치화 요셉]]과 함께 그를 [[교회]] [[서적]]의 [[출판인]]으로 임명하였다.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회장실.png
* 효부가 비협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후지코의 이상을 제일 먼저 감지한 것도 효부였고 마기를 잠입하게 한 것도 있다. 실제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는 듯.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3회 일치
* 미나모토는 단지 소문일 뿐이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데, 모호츠쿠 관측소는 문짝이 낡아서 손잡이가 뽑혀나올 정도로 방치된 기지였다.
* 사실 설치 목적이 우주기지 쪽하고 겹친다는 것도 문제인데, 이쪽의 존재가 너무 부각되면 우주기지 쪽 예산이 줄어들 우려도 있다.
* 타니자키는 드디어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 나오미는 "그래도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라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신선한 위치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인사이동을 권유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3회 일치
* 정보가 없다지만, 시호의 능력으로 조차 정보를 투시하는게 실패했다.
* 사실 비행기는 테오도르(블랙 팬텀) 일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 한조의 말대로라면 지금 블랙 팬텀의 에이전트들은 다른 사람이 부여한 개성에 따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된다.--그리고 닌자 취미는 순전히 본인 의향이라는 씁슬한 진실이--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3회 일치
* 두 사람은 견해차를 여실히 드러내며 혈투를 벌인다.
* 한 번 실패하자 불안해진 후지코가 직접 나설 것을 예상했고 그대로 적중.
* 전개로 볼 때 예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부러 바벨에 잡히는 모양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3회 일치
* BABEL의 의료시설에 잠입한 [[사카키 슈지]]는 드디어 완성단계에 이른 혈청을 자신에게 주입한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산노미야 시호]와 [[노가미 아오이]]. 시호는 눈에 띄는 반응이 없자 실패가 아니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사카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잠잠한 것 같았지만 정신오염물질(레어메탈)이 잠복하고 있던 사카키의 팔에서 뛰쳐나온다. 분출된 레어 메탈은 마치 블랙팬텀의 망령 같은 모습으로 괴로워하다 흩어져 버린다. 혈청은 성공. 사카키는 기뻐하며 "블랙 팬텀에 의한 정신오염물질 해독 혈청"을 줄여서 STAP라 명명한다.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사실 진짜 의미는 "스팟하고 해결"에서 따온 것. 그 밖에도 "사카키"나 "사이코", "안티도핑"같은 이름도 제시했지만 모두 구리다가 거절. 그냥 "혈청"으로 끝난다.
* 효부라면 이를 가는 미나모토지만 마츠카제의 동의를 받은 거라면 따르겠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효부는 본론을 말하지도 않았지만 판도라 내부에도 블랙팬텀의 오염물질이 침투했고 한 번 제거에 실패했을 거라고 날카로운 추측을 내놓는다. 효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3회 일치
그것은 "육군초능특무부대" 시절 군복이었다. 가장 동요할 것 같은 효부는 아직까진 태연하다. 그는 "할머니의 코스프레를 보는 취미는 없다"라며 권태기 대책이냐고 비꼰다. 후지코는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며 받아친다.
* 왜곡돼 버린 후지코의 목표는 사실 판도라의 이상과 큰 차이는 없기 때문에 "에스퍼 주도의 재건"이란 부분에선 적당히 찬성한다. 게다가 가만히 있던 [[사카키 슈지]] 조차 "기분은 이해하겠다"며 편승하고 나선다. 하지만 그가 하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추구하는게 당신 아닌가"라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걸 넘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잖아?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3회 일치
* [[사카키 슈지]]가 효부를 대신해 조치를 취한다. 그의 진단으론 중상이긴 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진 않다. 효부가 총알을 막았기 때문에 피질의 손상은 아주 작고 이대로 응급처치를 하면 충분히 살 수 있다. 여전히 텔레포트는 쓸 수 없지만 마츠카제가 최단거리로 도달할 수 있는 의무실을 확보한다. 하지만 응급처치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옮길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 아무튼 효부는 방금 전보단 이성을 되찾았다. 그는 차분해진 머리로 상황을 정리한다. 후지코는 즉사를 면했으며, 사실 이렇게 될 건 길리엄도 알았을 것이다. 그의 앞에서 실행하면 막힐 수 밖에 없을 테니. 따라서 이건 단지 효부를 동요시키고 모욕하기 위한 시위다. 후지코를 볼모로 그의 "과거"를 모욕했으니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3회 일치
* 작전 실패 후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에서 은둔하고 있는 칠드런 일행. Tv에선 에스터 규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일본도 국제적인 반 에스퍼 흐름을 이어받아 에스퍼에 대한 관리 및 규제 강화 법안이 통과됐다. 바벨의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는 다시 세뇌됐는지 넉살 좋으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효부는 지금부터 작전 회의에 참가하자며 칠드런 일행을 데리고 도서실로 향한다. 그곳에선 [[쿠모이 유리]]의 정보를 기반으로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우츠미 세이시로]]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작전이 정해지면 곧 판도라의 젊은 에스퍼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 우츠미는 유리의 능력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고 칠드런 일행에게 말한다. 유리는 이미 오염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돼서 정면 승부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반대로 정신오염 네트워크를 이용한 반격이 가능하다. 정신오염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블랙 팬텀의 정신 감응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포탈을 몇 군데 점거하는 식으로 전체 정신오염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자면 포탈의 절반, 적어도 3분의 1을 점거할 필요가 있다. 그 숫자는 약 10개 안팍. 문제는 아직 그 위치가 불분명해 정보를 더 모아야 한다. 카오루는 그 말을 기대 반 아쉬움 반으로 여기며 마음 속에서 미나모토에게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 정광조 (1883년) . . . . 3회 일치
[[한성부]] 출신으로 [[손병희]]의 딸과 결혼했다.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운동을 주도한 손병희의 측근으로서 사전 모의 과정부터 깊숙이 가담했다. [[권동진]], [[오세창]], [[최린]], [[박인호 (1854년)|박인호]] 등과 함께 실무를 맡았으며, 사후 수습을 위해 [[민족대표 33인]]에서는 빠졌다. 당시 맡고 있던 직책은 천도교 대종사장(大宗司長)이었다.<ref>{{독립유공자|3124|박인호}}</ref>
3·1 운동을 사실상 주도한 뒤 곧바로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나왔으나, 이듬해에도 천도교인 [[신숙]]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계속했다.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발행에도 천도교 교무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손병희 사후 [[최린]] 주도의 신파가 교권 및 사회운동의 방향을 놓고 분파되면서 천도교단은 오랜 내분 사태에 돌입했다. 손병희의 사위로서 교단 내 상당한 실력자이던 정광조는 이론가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광조가 천도교 대령에 선임되었다가 구파에 의해 출교 처분되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 정기고 . . . . 3회 일치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남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반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영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영상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영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017년 ]] [[MBC]] [[복면가왕]] 운명의 노래술사 타로맨 (참가자)
* [[2017년 ]] [[MBC]] [[복면가왕]] 운명의 노래술사 타로맨 (참가자)
- 정명훈 (지휘자) . . . . 3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남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 정좌관심 . . . . 3회 일치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영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지만,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유교]]에서 정좌가 도입된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송]] 시기에 주염계는 자신의 저서 『태극도설』에서 ‘주정입인극(主靜立人極)’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 뒤 명도와 이천이 정좌를 가르쳤고, 정좌 수행은 유교의 주류가 되었다.
- 정주관백 . . . . 3회 일치
이 단체가 새롭게 해석한 정주관백의 정의는 이러하다. 사실 관백은 조정에서 두번째 지위이며 덴노를 보좌하는 지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집 안에서 덴노란 곧 아내이다. 그리고 정주는 차를 내오는 사람을 뜻하므로, ‘정주관백’이란 사실 아내를 보좌하고 떠받들어 주는 남편을 뜻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하여 집안의 폭군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관백(간파쿠)은 일본 헤이안 시대에서 부터 덴노를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한 지위이다. [[후지와라 섭관가]]에서 대대로 이어받았으며 덴노가 어릴 때는 섭정(摂政)이 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관백(関白)이 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이를 섭관정치(摂関政治)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 권력이 쇠퇴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오툐미 가문이 일시적으로 관백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정치공학 . . . . 3회 일치
정치학의 한 분야, 혹은 한국 정계의 관용어. 때때로 쓰이는 단어지만 그 의미가 확실하지는 않다.
한국정치계에서 쓰이는 관용구로서 '정치공학'은, 공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학문은 아니며, 정치분야에서 마치 공학에서 기계나 사물을 다루는 것처럼 특정한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추종하거나, 정당, 계파 간의 연대와 협력 등의 정략으로 자기 정당의 집권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정치공학에는 국민의 의사나 복리를 무시하고, 정치권의 집권 이득만을 추구한다는 뉘양스가 있으며,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강하다. 또한 계파 간의 연대와 협력 과정에서 어떤 동질적 가치관이나, 이념에 대한 합의 추구가 없이 정권 획득과 권력 추구만을 하여 지조없이 협력하므로 '신념'이 없다는 의미도 있다. 다만 노골적인 협잡, 야합보다는 다소 부드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http://www.newspim.com/news/view/20161213000292 (참조)]]
* 비교적 '젊잖은 말'이고, 어떤 어젠다 추구나 정략 활용에는 모두 써먹을 수 있다보니 정치권에서 별 생각 없이 거의 '상습적인 비판용 단어'가 되어버려서 별다른 충격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 "정치공학이다!"라는 말이 나오면 다들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다(…).
- 제령 . . . . 3회 일치
다음과 같은 순서로 실행한다.
* 물을 배수구에 버린다. 물에는 악령이 녹아 있기 때문에, 방치하거나 집 앞에서 뿌리면 위험하다. 한 번 본인에게 쒸었던 영이므로, 가까이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배수구나 화장실에 흘려버려야 한다.--하수구로 흘러가는 불쌍한 유령--
테크모의 게임 령 제로 붉은 나비에서 유래한, 스탭이 유령에 시달리다가 패브리즈로 제령을 했다는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방법은 페브리즈를 뿌리면 된다(…).
- 조선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 . . . . 3회 일치
* 조선왕조실록에서 삼국지연의에 대한 기사 가운데 “至於印出”이 있었는데, 임란 이전에 삼국지연의가 조선에 전래되었으나 간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어으며, 활자본이 아니라 조선번각본이나 주왈교본갑본 목판본을 지칭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판본의 발견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삼국지통속연의가 목판본이 아닌 활자본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굳어지게 되었다.
- 주상욱 . . . . 3회 일치
주상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08년 [[KBS2]] 《[[드라마시티]] - 실연 복수 전문가 Miss 조》 - 이기현 역
- 진격의 거인/92화 . . . . 3회 일치
공수부대를 실은 마레의 비행선이 스라바 요새 상공에 도착한다. 주력은 물론 마레의 전사 [[라이너 베르너]]와 [[지크 예거]]다. 하지만 마레의 전사는 그들만이 아니다. 비행선의 공간 대부분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특이한 적재물이 차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약에 취한 것 처럼 눈에 초점이 없고 입가가 침으로 번들거린다. 이들도 "마레의 전사"다. 자아를 잃었음이 틀림없는 엘디아인들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려서 도하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전사 후보생 파르코는 낙오된 적의 병사를 자군 참호로 끌어들인다. 총에 맞아서 전투능력을 상실한 병사다. 옷을 입던 가비는 그 짓을 보고 뭔 짓이냐고 묻는다. 파르코는 "보는대로 전투능력이 없는 포로를 잡았다"고 대답한다. 그의 지혈이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그들 바로 옆에선 마레인 장교가 총상을 입고 투덜거린다. 원래 최전선은 엘디아인의 몫인데, 왜 마레인인 자신이 다쳐야 하냐는 얘기였다.
* 지크를 향해 집중된 포격을 라이너가 대신 맞는 동안, 연합함대가 괴멸한다. 함대의 괴멸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갑옷 거인의 반신이 날아가는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레의 병사들은 작전의 성공도 전쟁도 끝도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갑옷 거인이 쓰러지는 걸 바라본다. 가비는 망연자실하게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린다.
- 진창현(음악인) . . . . 3회 일치
1970년대에는 자작 현악기들로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악기상들의 관심을 모았고, 1974년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진창현: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아마티]], [[과르네리]] 등 전설의 명기가 가진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이 악기들을 소유한 수많은 명연주가들이 내일 공연을 했을 때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악기의 본을 뜨거나 직접 켜보거나 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훗날 일본 언론에 연재되었고, 한국에 출간된 구술 자서전 후반에도 나온다.
* 바이올린 도색에 필요한 염료를 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오징어]] 먹물이나 [[지렁이]]까지 쓰는 등 온갖 실험을 했다. 심지어 집에서 [[알코올]]로 염료를 추출하고 [[니스]]에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니스가 폭발하면서 [[화상(질병)|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와 [[적군파]]를 비롯한 극좌 세력의 무장 투쟁이 강성하던 시기여서 [[의사]]가 그 쪽 사람이 사제 폭발물을 제조하다가 사고를 친 것으로 여기고는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차명진 . . . . 3회 일치
* [[2006년]] : 김문수 한나라당 경기도지사후보 선대위원실 총괄실장
* [[2010년]] [[7월 23일]] 에서 24일까지 참여연대가 실시한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에 참여한 이후 후기가 논란이 됐다. 이 후기에서 차명진 의원은 "나는 왜 단돈 6300원<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00727034204810 “6300원짜리 황제의 삶” 차명진 의원 최저생계비 체험 수기 논란]</ref> 으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물가에 대한 좋은 정보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글을 써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응하여 민주노총은 개드립(개+애드립(ad lib))과 오버질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차명진 의원은 결국 물의를 빚어서 죄송하다는 말로써 사과했다.
- 창작:좀비탈출/5-1 . . . . 3회 일치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실. '''골프채는 후방 좌측 1m 거리에 눕혀져 있다!'''
토트넘은 죽었다. 이미 죽어있었지만 '''거듭 죽은 것이다'''. 거무죽죽한 살갗에 주둥이부터 꿰어들어간 꼬챙이. 분장에 실패한 프랑켄슈타인 같은 꼴이다. 순전히 행운이다. 찌른 부위가 좋지 않았던게 틀림없다. 약간만 각도가 틀어졌어도 녀석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채로 호박처럼 굴러들어오는 먹이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무려 30초나 멍청히 누워있는 먹잇감을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녀석은 죽은 채로 죽었다.'''
하지만 바지에도 티셔츠 일부에도 녀석의 체액으로 추정되는 검고 진득한 무언가가 튀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짜장 먹다 튄 자국으로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공복감. 그렇다, 여기 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뭉쳐있던 뱃속이 풀어지듯 꼬르륵 소리를 냈다. 나는 잠시 토트넘을 쳐다보고 그 앞의 독을 쳐다보았다. 이제 할 일이 두 가지나 생겼다..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3회 일치
민구는 더듬거리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박민구. 이녀석은 나와 1년 전에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다. 조용하고 말이 없고, 사실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얘는 누구하고도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은걸 눈치챈 가족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등교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교감은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들 까지도 학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교감은 "감독을 쉽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때는 딱 1개 교실에 등교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이 직접 감독을 했다.
그리고 교실을 나가더니 곧 교감의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교문단속에 편집적이던 교감은 교문을 닫아걸고 나갔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 창작:치킨교 . . . . 3회 일치
이 후라이드 치킨교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바탕으로 "가장 오소독스하다"는 걸 표방하며 어마어마한 신도를 거느리고 있었다. 사실 치킨교의 대다수 교도들은 이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던 중에 이름 없는 선지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전능하신 치느님은 그 몸을 나누시어 한 몸에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실현하사 분쟁을 멈추셨다"는 주장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르침은 "양념 치느님을 영접한 혀로 후라이드 치느님의 미묘한 은사를 접할 수 있을리 없다"는 반박이 부딪혔다. 쓰러져가는 반반파를 구제한 것이 성자 무마니였다. 무마니는 치킨무의 묵묵한 헌신을 가르치며 "양념 치느님을 영접했으면 치킨무로 혀를 씻고 후라이드 치느님을 영접하라"는 신묘한 가르침을 창시하였다.
양념치킨교가 후라이드 종파의 내부 세력중 "소스 총대주교"의 성향에서 출발하여 "가장 완벽한 치킨은 양념을 두른 치느님"이라는 교리를 제시하였고, 이는 후라이드 치킨의 강력한 내부 분파중 하나였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이다. 즉, "치느님은 강력하시나 무기를 든 치느님은 더욱 강력하시다"는 걸 바탕으로 "치느님은 강력하시나 양념이란 무기를 온몸에 두른 치느님은 더욱 강력하시다"는 기존의 교리를 재해석하였기에 사실 큰 반발 없이 치킨교도로 인정받는 것이 가능했었다.
- 창작:헤이즈 . . . . 3회 일치
그러나 구NTX 시절에 연재되었던 "담력시험"을 계속하지 않고 '''리부트'''되었다. 먼저 "담력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할 경우 초점이 어디까지나 '학생, 담력시험, 청소년물' 등으로 소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 대략적인 세계관 설정이 없이 무작정 연재되었기 때문에, 선택지마다 내용이 상충되거나 진행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담력시험"의 경우 주인공급 캐릭터만 5명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하나하나 행동과 대사를 부여하고 주인공들간의 대화를 마련해야 했다. 차라리 아래에서 언급한 "언틸 던"처럼 2명씩 다니는 걸로 설정해 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뚜렷한 핵심 없이 선택지가 양산되기도 했다. 결국 수습이 되지 못한 채 말이 방치지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후 현 사이트로 옮겨 "헤이즈(Haze)"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Haze는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무동군의 마스코트이자 미스테리의 상징이기도 한 안개를 뜻한다. 동시에 동사로 쓸 경우 '''신고식을 시키다'''라는 뜻인데,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누구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또한 '''미로(Maze)'''와도 철자가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많이 고민했지만 분위기가 안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red ※ 항목의 폭주와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에피소드 하나씩만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3회 일치
입헌 정부를 주도한 청년 튀르크 당은 각종 행정 개혁을 실시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는 한편, 여성 교육과 의무교육 제도를 개선하였고, 공업화 추진 등의 [[근대화]] 개혁을 추진했다.
내정면에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정책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동맹국으로 참가하는 실책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오스만 제국이 무드로스 휴전협정에 조인하기 1개월 전, CUP 내각은 1918년 10월 9일 총사퇴, 청년 튀르크 당은 소멸했다.
- 최덕희 . . . . 3회 일치
[[1986년]]부터 [[1987년]]까지 [[CBS (대한민국의 방송사)|CBS]] 15기 공채 성우로 입사하여 활동하였다가 [[1988년]] [[KBS]] 21기 공채 성우로 재데뷔하였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애니메이션]]을 위주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2003년]] 자녀 교육을 이유로 [[캐나다]]로 이민하면서 실질적으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그러다가 11년 만인 [[2014년]] 12월에 복귀를 선언했다.
* [[네이비 실]] ([[SBS]]) - 클레어 ([[조앤 웰리]])
* [[바이 바이 러브]] ([[KBS]]) - 루실 ([[저닌 거로펄로]])
- 최두호 . . . . 3회 일치
|종합_실격승 =
|종합_실격패 =
| {{국기그림|미국}} [[샘 시실리아]]
- 최민창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리그]] / [[2017년]] [[9월 16일]]<BR>[[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한화 이글스|한화]]전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최석기 . . . . 3회 일치
최석기는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개인기록상 주요 부문인 블로킹 부문에서 5위 안에 들면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세터 (배구)|세터]] [[황동일]]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오를 만큼 활약을 펼쳤으나<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ports/volleyball/2009/0317/20090317101030400000000_6732676814.html 지금은'석기시대' KEPCO45 최석기 신인상 맹추격] 《스포츠서울》2009년 3월 17일 12:23, 2009년 3월 19일 1:42 확인</ref> 전 경기를 소화한 황동일에 밀려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ketball/Article.asp?aid=20090416004415&subctg1=05&subctg2=00 프로배구 정규리그 MVP 박철우?데라크루즈, 공격남녀 최후의 승자] 《스포츠월드》 2009년 4월 16일 22:53, 2009년 4월 19일 23:01 확인</ref> 하지만 그는 팀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NH농협 2008~2009 V-리그 올스타전]]에는 [[한국 배구 연맹]]의 추천으로 [[수원 KEPCO 45]]의 유일한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였다.
최석기는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처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날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와 [[수원]] 홈경기에서 최석기가 [[로베르틀란디 시몬]] 한테 블로킹을 무려 8개나 잡아내며 시몬 킬러로 등극했다. 득점을 올릴 때마다 자진방아타령이 울려퍼진다. 여기다 그가 세레모니하는 장면은 [[KBS N sports]]의 배구 프로그램 [[스페셜 V]]에서 선정한 주간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에 공격 성공후 자신이 개발한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 최영이 (종교인) . . . . 3회 일치
최영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 최원제 . . . . 3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최태원 (야구인) . . . . 3회 일치
하지만 [[1997년]] 겨울부터 그는 시련을 맞이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의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모기업 [[쌍방울 (기업)|쌍방울]]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김현욱 (야구인)|김현욱]], [[조규제]], [[박경완]], [[박성기]], [[김실]] 등의 동료들이 현금 트레이드되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팀의 4번 타자였던 [[외야수]] [[심성보]]는 [[당뇨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장타력을 상실하면서 그는 타선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타 구단 투수들은 그를 타깃으로 두고 [[빈볼]], [[고의 사구]] 작전을 펼쳤고 그는 힘겹게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갔다. [[김원형]], [[오상민]], [[장재중]] 등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의 끝까지 함께하였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출<br /><br />장!![[타석|타<br /><br />석]]!![[타수|타<br /><br />수]]!![[득점 (야구)|득<br /><br />점]]!![[안타|안<br /><br />타]]!![[2루타|2<br />루<br />타]]!![[3루타|3<br />루<br />타]]!![[홈런|홈<br /><br />런]]!![[타점|타<br /><br />점]]!![[도루|도<br /><br />루]]!![[도루|도<br /><br />실]]!![[볼넷|볼<br /><br />넷]]!![[삼진|삼<br /><br />진]]!![[타율|타<br /><br />율]]!![[출루율|출<br />루<br />율]]!![[장타율|장<br />타<br />율]]!![[OPS|O<br />P<br />S]]!![[누타수|루<br /><br />타]]!![[병살타|병<br />살<br />타]]!![[몸에 맞는 볼|몸<br /><br />맞]]!![[희생 번트|희<br /><br />타]]!![[희생 플라이|희<br /><br />플]]!![[고의 사구|고<br /><br />4]]
- 추봉 (배우) . . . . 3회 일치
* 1969년 《지하실의 7인》
* 1969년 《내실》
* 1973년 《애인교실》
- 취사율 . . . . 3회 일치
'취사'는 밥을 짓는다는 뜻이므로, '취사율'이라고 쓰면 밥을 짓는 확률이 된다. 확실히 가끔 실패할 때도 있긴 하니까 확률을 따지는게 무의미하지는 않은걸까... ~~애초에 확률을 따질 정도로 밥을 못 짓는 밥솥이면 바꾸는게 맞는것 같지만~~ 정상적인 밥솥이라면 밥솥 보다는 본인이 잘못해서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 츠츠모타세 . . . . 3회 일치
1768년에 간행된 소화본(笑話本)[* 소화(笑話)는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유머 이야기 책이다.] 「카루구치하루노야마(軽口はるの山)」[* 카루구치는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의 제4권에 「츠츠모타세(筒もたせ)」라는 농담이 있다. 이는 짧은 이야기로서, 돈이 쪼들리는 남자가 친구들에게 잘 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츠츠모타세를 해보라는 말을 듣고, 아내를 설득하여 근처에 사는 젊은이를 유혹하게 하여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 「간통남 봤다(間男見つけた)」고 외치며 벽장에서 뒤쳐나오려고 했으나, 그만 [[말실수]]를 하여 「츠츠모타세, 봤다(筒もたせ、見つけた)」고 소리쳐버렸다는 농담이다.
남성이 개입하지 않고, 여성 자신이 [[1인 2역]]을 하여, 남성 자신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고 인터넷 연락으로만 위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데, 돈을 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성도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 여성은 돈을 받는 쪽이며,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적지 않으므로 외모가 그리 좋지 않은 여자도 돈을 쓰면서 까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려 할 가능성은 낮다.
- 카라스노 고교 . . . . 3회 일치
팀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득점력도 높은 편이지만 에러나 범실이 많다. 한때 [[우카이 케이신]]은 네코마 고교와 비교하면서 카라스노의 팀 스타일에 대해, '들쭉날쭉한 팀을 세터 카게야마가 압도적인 재능으로 잇는 팀'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짜여진 조직력을 자랑하는 라이벌 [[네코마 고교]]나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사실상 상극이어서, 카라스노는 이 두 학교들과 붙으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 코난 월드 . . . . 3회 일치
[[만화]] [[명탐정 코난]]의 세계관. 현실과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 작중의 치안은 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의 무능함을 보면 실제 살인율은 통상 일본의 10배 이상.
[[하이퍼보리아]]를 참조. 현실과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 쿄로충 . . . . 3회 일치
리얼층 그룹의 말단으로, 리얼충이 되는데 집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리얼충이 아니다.
항상 눈을 두리번 두리번(キョロキョロ, 쿄로쿄로)거리면서 자신이 소속될 그룹을 찾는다. 자신이 [[리얼충]] 그룹의 일원이라고 느끼면서 대학생활에 충실감을 느끼는 인간.
[[교실]], [[식당]] 등에서 자신의 지인이 있는지 항상 두리번 거리면서 같이 행동을 할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혼자서 학생 식당 등에서 밥을 먹는 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며, 그런 자신을 누군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데 강한 두려움과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 킹덤/507화 . . . . 3회 일치
* [[양단화]]는 이신이 추천한 인재가 뜻밖에 어린 걸 신경 쓴다. 사실 이들은 실제로도 어리다. 나이로는 부대에서 가장 막내. 그래도 이신은 솜씨만은 틀림없다며 믿음을 보여준다. 단지 딱 하나 불안한 점이 있다고 하는데.
그 뒤는 실로 창인의 독무대. 열미군이 성벽 위에 방패를 대도 소용이 없다. 화살이 들어갈 만한 틈만 있으면 그 사이로 적중시키는 신기를 선보인다.
- 킹덤/513화 . . . . 3회 일치
* 위의 봉명은 진이 실패할 것으로 내다보고 연합군이 소멸하길 기다려 진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 이원은 전쟁에 조예가 없는 탓에 단순히 "조가 함락 당하는가?" 라고 묻는데 와린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럼 진이 실패한다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와린은 그렇다고 답한다. 바뮤는 눈치없이 끼어들어서 "진이 한단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냐"고 묻는데 와린은 그의 머리통을 내려치면서 "한단이 아니다!"고 호통친다.
* 부하들 간의 설전이 지겨워졌는지 환의가 마론에게 자기가 아는건 한 가지 뿐이니 그걸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그는 사실 백로 밑에서 부장 생활을 할 때부터 왕전과 알던 사이다. 그래서 딱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 킹덤/519화 . . . . 3회 일치
>실은 여기가 제일 꽝이었나 본데요...?
* 왕전이 머리 속의 반상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마침내 진군 전원이 도착했다. 왕전은 곧바로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구상을 실현코자 한다.
그에 비해 진군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배치. 총 전력 8만 8천을 중앙와 우익에 몰아넣고 좌익에는 고작 5천을 배정했다. 우선 중앙에 5만 8천 병력에 왕전 자신과 [[마광]], 그리고 비신대의 이신과 강외를 배치. 우익은 옥봉대에 병력을 추가해 총 2만 5천. 왕분과 [[아광]]이 있다. 문제는 좌익. 병력 5천으로 사실상 낙화대 단독 배치다.
- 킹덤/531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정해진 승부는 뒤바뀌지 않았다. 마광의 혼신의 칼날보다도 빠르게, 이목이 내리친 칼이 마광의 목과 팔을 단칼에 잘랐다. 기수군을 몰아가는데 골몰하던 진군은 저희 대장의 목이 굴러디는 걸 보지 못했다. 반면 언덕에 있던 기수와 그 부관들, 조군 병사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 믿기지 않기로는 목이 떨어진 당사자 못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관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기수를 돌아보았다. 그도 눈 앞의 광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리라 알고 있었는데도.
* 진군에 마침내 마광이 죽었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조군은 현실을 인정하는 환호성이 퍼져나갔다. 기수는 이쪽을 향해 포권을 하고 말을 돌리는 이목을, 조나라의 삼대천을 보며 그 역량에 감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을 할 차례다. 기수가 기름처럼 끓기 시작한 병력에 불을 질렀다. 전부대, 전병력을 향해 조군 총대장 삼대천 이목이 직접 적장의 목을 쳤음을 선언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전령을 통해 모든 하급부대에 급파했다. 마광의 목이 떨어졌다. 그 이상의 지시는 필요가 없었다. 위축을 거듭하던 군대가 단숨에 살아났다. 반면 진군은 대혼란. 마광이 죽었다는 말과 거짓선동이란 말이 뒤섞였다. 최전방은 마광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백 배 기세로 돌격하는 조군을 상대하면서 후방의 진위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록 조군이 외치는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는 구호는 섬뜩했다.
몽념은 조군이 떠드는 말들을 전부 거짓정보라고 단정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만큼 난데없는 소식이었지만 조군의 사기가 이상하게 올라간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몽념은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지 섬뜩하기만했다.
- 타오파이파이 . . . . 3회 일치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살인청부업자. [[학선인]]의 동생으로 무술의 고수. 세계 최고의 살인청부업자이며, 대단한 실력자이다.
* [[천진반]] - 본래 타오파이파이를 존경해서 살인청부업자가 되려고 했다. 손오공이 자신이 타오파이파이를 이겼다고 말하자, 천진반은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정도. 하지만 학선류에 실망하면서 존경심이 퇴색하게 되며, 천하제일무도회에서 만났을 때는 타오파이파이의 비열한 모습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3회 일치
이 무렵 [[세이와 겐지]]의 시조 미나모토노 츠네모토가 무사시국에 부임한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상을 시작했는데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
- 태영호 . . . . 3회 일치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태영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상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태영호 영사의 둘째 아들은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팬으로, 누적시간이 368시간에 달하였다. 차남이 쓴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 사실 북한을 까는 [[밈]]의 일종이다.].
- 토리코/361화 . . . . 3회 일치
'''* 스타쥰과 토리코는 사실 이란성 쌍둥이다!'''
* 어나더를 먹은 스타쥰은 그 사실을 기억해내지만 토리코는 모르고 있다
* 토리코의 구루메세포의 악마는 '''"오거"''' 온화한 성격이지만 화가나면 아무도 손쓸수 없는 괴물로 실력은 '''역사상 1.2위를 다툰다고 함.''' 발달된 후각이 특징
- 토리코/373화 . . . . 3회 일치
* 아이마루가 GOD를 목표로 하게 된 것은 사실 식욕 때문.
* 아이마루는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세계의 진실이다.
* 그것은 우주에 떠도는 매우 희소한 물질로 절대로 부패하지 않아 "골든 메테리얼"로도 불린다. 사실 네오의 기지는 원래 우주선인데 이 우주선도 골든 메테리얼 제질.
- 토리코/378화 . . . . 3회 일치
* 아이마루는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식욕"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 그는 열심히 기술을 연마하다 새벽2시 쯤 돼서 쉬러 가는데, 다른 조리실에서 누군가 밤늦도록 조리에 몰두하고 있다.
* 그의 모습을 보고 재충된 오오타케는 코마츠에게 감사하며 기분으로 다시 조리실로 돌아간다.
- 토리코/389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실제론 자신도 모르는 강력한 식운의 가호가 있었다.
* 코마츠는 사실 어떤 식혼의 도움을 받았다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바로 어나더를 조리할 때 나타났던 플로제의 식혼.
* 플로제의 설명과 브란치가 왜 아카시아의 모습이 변했는지 미심쩍어하는걸 보면 아카시아는 사실 네오에게 잠식 당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 토리코/394화 . . . . 3회 일치
* 토리코가 먹었던 네오의 고기는 사실 네오 자신의 고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완상"이란 고대의 매머드 종류의 고기 인 것이였다.
* 네오가 뿜어내는 식재는 우주까지 뿜어져 나간다. 막대한 양의 블루 유니버스의 식재들도 섞여 있어서 토리코 안의 청귀가 기뻐하며 날뛴다. 토리코는 그 중에서 어떤 식재의 냄새를 감지하는데, 그것은 바로 "감초"라는 별칭을 가진 "엔드 매머드"라는 고대의 생물이었다. 토리코가 맡았던 네오의 고기 냄새는 사실 이 매머드의 것이었고 간간히 뜯어먹던 네오의 고기 또한 이 엔드 매머드의 것.
왜 토리코만 세 마리의 악마가 들어있었는지도 설명 되지 않았다. 사실 구르메 악마에 대한 떡밥은 거의 해결된게 없는데 사천왕들 조차 토리코의 적귀 외엔 제대로 각성한 악마가 없고 특히 코마츠의 경우는 구르메 세포가 활성화된 걸로 묘사됐지만 결국 지나가는 떡밥에 지나지 않았다.
- 토리코/395화 . . . . 3회 일치
* 두 번째 요리는 "수프" 센츄리 스프. 아이스헬에서 죽을 고생을 해 손에 넣은 식재다. 당시 토리코와 동행했던 멤버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그때 구르메 쇼윈도의 붕괴를 막지 못하고 끝내 센츄리 스프는 실전되지만 마지막 한 방울을 마신 코마츠가 천부적인 재능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미도라도 감탄했을 정도의 식재로 인간계의 재료지만 구르메계의 주민들도 만족스럽게 먹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요리. 바게트 대신 함께 나간 약선떡도 에코김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유다는 사수가 침공했을 당시 코마츠의 천부적인 재능에 놀랐던 일을 회상한다.
* 네 번째 "고기요리", 엔드 매머드(완상)의 스테이크. 사실상 네오의 고기라고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네오도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최종보스인 네오의 고기"라고 해설하자 제브라가 옆에 앉은 네오에게 "너보고 최종보스랜다"라고 놀린다. 네오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스테이크엔 라이브베아라가 제공했던 메테오 갈릭이 토핑. 고명으로 고대의 식보 보석고기와 가라라 악어 고기가 올라갔다. 이 또한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한 고기요리의 총집성 같은 것. 코마츠는 특히 가라라 악어를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스타준은 보석고기를 맛보며 리갈 매머드 안에서 토리코에게 패하고 "나도 언젠간 먹고 싶었다"고 말하던 일을 떠올리고 미소짓는다.
사천왕 중 코코와 제브라는 아직도 풀코스를 완성 못했는데 별다른 언급이 없다. 사실 남은 떡밥이 너무 많아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신기할게 없다.
- 토리코/396화 . . . . 3회 일치
*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토리코. 1화에서 처럼 메뚜기를 미끼로 삼고 있다. 코마츠가 도착하며 오오타케의 고아원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다 사과한다. 코마츠는 날씨가 매우 좋다며 태양도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말하는데, 토리코가 그 말을 듣고 구르메 일식의 진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 이런 소식을 들은 토리코는 자기 내면에 남은 두 악마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선 "가장 끝의 땅"이라는, 미식의 원류와도 같은 곳을 알려준다. 미식의 신이라 부를 민족이 살던 곳으로 이곳에서 식욕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구루메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킨데 139억년 전의 "구르메 빅뱅"이다.
이 가족들의 색이 각 우주의 색이 된 것으로 아버지가 흑, 어머니가 백, 장남이 적, 차남이 녹, 막내가 청색이다. 코마츠는 아카시아의 가족들가 닮았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아버지인 아카시아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네오는 "검정" 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플로제는 "백색"이었을 거라고 추론. 그런 코마츠의 말을 듣자 토리코도 그럼 이치류 회장은 적색이고 지로는 녹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추측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의 손자인 텟페이의 머리는 녹색인데, 그게 격세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도라가 청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듯하다고 말하고 참고로 자신의 세 번째 악마는 백색이라고 첨언한다.
- 토죠 노조미 . . . . 3회 일치
하지만 작화나 등장 매체에 따라 여신과 돼지를 넘나드는데, Snow Halation에서 등장한 여신머리는 그녀에게 명실공히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애니메이션의 작붕과 풍만한 바스트 덕에 돼지로 인식되는 안습함을 보여준다.
요즘에는 아야세 에리랑 엮는 노조에리가 우세하지만 '''정통성은 노조니코에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노조에리는 쥿키가 애니화하면서 만든 커플링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3회 일치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백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덴노를 드높이고 오랑캐를 내몰자고 외치며 도쿠가와 막부에 반기를 든 세력. 실제 역사에서는 이들이 승리해 [[일본 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진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3회 일치
=== 핵 실험 ===
우방국의 신형 핵무기를 트로피코 영해에서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대가로 $10,000를 받지만 환경주의자의 존경심이 영원히 하락한다.
가정집 욕실을 포함한 모든 구역과 모든 사람들을 감시망 아래 둔다. 치안이 증가하며 범죄자가 발생하지 않지만 자유도가 감소한다.
- 페어리 테일/487화 . . . . 3회 일치
브랜디쉬의 교섭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한데...
* 가질은 무모하게 블러드맨을 공격하다 실패한다.
* 예고됐던 중대발표는 소울 이터로 유명한 오오쿠보 아츠시의 신작 "염염의 소방대"와 콜라보 이벤트 소식이 함께 실렸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3회 일치
문득 그의 시선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끝에, 때마침 오거스트를 쳐다보고 있던 메이비스가 있다. 엄청난 세월을 건너 눈이 마주친 모자.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건 오거스트 자신 뿐이다. 어머니를 알아본 오거스트의 눈빛이 흔들리고, 급기야 눈물 같은 한 줄기가 마력의 흐름을 따라 허공으로 올라간다.
* 공간을 태워버릴 것 같았던 마력이 갑자기 사라진다. 아르스 마기아가 멈춘 것이다. 방금 그것이 자신의 아이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메이비스. 마력이 부족했거나 길다트 덕분에 실패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녀는 다시 길드를 향해,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과 합류하러 달려간다.
메이비스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츠의 진실을 아는 것도 추측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츠는 반드시 제레프를 이길 것이고 제레프는 자신의 손으로 없앨 거라고 예견한다. 그리고 그때가 됐을 때 나츠를 구할 수 있는건 여기 있는 세 사람, 동료들의 힘이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3회 일치
그녀의 직감이 맞았다. 흑마도사, 이젠 백마도사인 [[제레프 드래그닐]]이 범인이다. 이런 사실을 안나가 알 수는 없었지만.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을 거야.
보일 리가 없는, 보여서는 안 되는 시간의 틈새가 확연히 드러났다. 아크놀로기아도 봤다. 뭔지는 모르지만 꺼림직한 그 구멍을 경계하는게 분명하다. 이러면 그를 접촉 시킬 수가 없다. 작전은 실패.
- 페어리 테일/540화 . . . . 3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이 불려온 이질적인 공간.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흉흉한 기운의 남자. 나츠가 [[아크놀로기아]]와 대면했다. 나츠는 곧 그 남자가 풍기는 기운으로 그의 실체가 마룡 아크놀로기아라는 걸 간파한다.
* 현실세계에서 웬디를 빼앗아간 아크놀로기아의 거체는 방향을 돌려 매그놀리아로 향한다. [[엘자 스칼렛]]가 분통을 터뜨리나 손쓸 수단이 없다. 그때 다시 하늘이 갈라지면서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던 [[안나 하트필리아]]와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떨어진다. [[제니 리아라이트]]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에게 헤엄쳐간다. 이치야는 자신도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어리둥절해하지만 기뻐하는 블루 페가수스 멤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엘자의 얼굴이 잠시 실망한 빛이 스쳤지만 곧 지워진다. 다시 강인한 얼굴로 돌아온 엘자는 매그놀리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츠 일행을 믿지만 현세의 아크놀로기아는 매그놀리아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도 할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헤엄칠 필요는 없었다. [[메스트 그라이더]]가 엘자의 위치를 찾아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3회 일치
수송기 제일 뒷부분 구석에 숨어들어간 상태로 시작한다. 빠르게 가면을 쓰고 뛰쳐나와 용병들을 해치우자. 패널을 조작해 수송기 뒷문을 열면 머키 용병들이 막혀있던 곳을 열고 나타난다. 용병들을 쏴죽이며 그대로 직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용병들이 빼곡한 객실이 나온다. 이 객실을 돌파하면 처음 시작했던 곳의 2층이 나오는데 2층에 있는 조작 장치를 건드려서 돈을 사출시키자. 이후 플레이어들도 낙하산 상자에서 낙하산을 하나씩 집은 다음 수송기 뒷문으로 뛰어내린다. 낙하산 없이 뛰어내렸다가는 바로 철장행이니 주의. 착지하고 나면 낙하산은 필요 없으니 내다버리자.
돈을 수송기에서 투하했으니 이제 회수할 차례. 돈이 실린 팔레트 세개를 찾아 신호탄을 터뜨려야 한다. 팔레트는 밑의 보기 중 세곳에 떨어져 있다. 팔레트 세개 중 하나는 착지시의 충격으로 산산이 흩어졌으니 주변에서 돈뭉치를 주워서 복구해야 한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3회 일치
패닉룸 하이스트 초반에 상대하게 되는 적. 패닉룸 하이스트가 실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놈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먼 곳에서 겁나 아픈 한방을 먹이는 저격수. 맞는 즉시 아머가 다 깎여나가니 맞으면 무조건 엄폐하자. 붉은색 레이저포인터를 사용하므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 실드
- 폴리스 . . . . 3회 일치
농촌 지역은 코라(Chora)라고 불린다. 영토 내에 예속된 촌락(Kome)이 있는 경우도 있다. 폴리으스는 도시와 농촌이 한 단위로 연결되어, 시민들은 농촌에 경제 기반을 두고 자급자족(Autarkeia)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폴리스는 완전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여 외국과의 상업거래가 필요했으나, 자급자족은 하나의 이상으로 여겨졌다.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상실하여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풍계리 . . . . 3회 일치
'''북한의 핵실험장이 위치한다.'''
2006년 부터 2016년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쳐서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설사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이 지역 주변의 [[탈북자]]들 역시 방사능 피폭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북한 당국이 방사능 피해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은 탓에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야 자신이 피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 피수영 . . . . 3회 일치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1년간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피수영은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대한민국의 신생아 치료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수영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미네소타 대학교]] 외과대학 소아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과장,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96년 대한민국의 신생아학회를 탄생시킨 실질적인 주역으로, 신생아 진료 분야를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켰으며, 대한신생아학회 및 대한주산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8년 10월 24일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서울아산병원 피수영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서울아산병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http://www.whosaeng.com/sub_read.html?uid=23675 서울아산병원, 피수영 교수 정년 기념 심포지엄], 《후생일보》, 2008년 10월 24일</ref>
- 하수빈 . . . . 3회 일치
그동안은 음악 프로듀서, 조형미술, 해외건축 디자인, 패션 컬렉션, 문학 등 다채로운 예술 장르에서 그 역량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천부적으로 섬세한 감성은 그녀를 다시 음악으로 선회하게 만들었고, 다시 음악적 창작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었다. 무에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음악가에게도 가장 순수한 세계어는 바로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어느덧 그녀는 음악, 문학, 건축, 디자인, 사진 등 종합예술의 세계로 좀 더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고있다.
• 예민, Tommy Page, 심상원, 김형석 등의 뮤지션이 참여된 하수빈의 데뷰 앨범으로, 데뷰곡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예민의 발라드곡〈더 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곡〈NoNoNoNoNo〉, Tommy Page의 곡 〈I'm Falling In Love〉이다. I'm Falling In Love은 하수빈이 17세에 미국 POP Singersongwriter 토미페이지 Tommy Page로부터 아시아 스타 첫 예로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Lisa:리사> 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특히 발라드〈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은 하수빈이 17세에 만든 자작곡으로 정규앨범에 실은 첫 타이틀이다.
가끔 꿈을 잃은 상실감, 그 정서적 충만의 부재가 올 때, 다시 신비감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아름다운 천사의 시... 이제 음악, 건축 조형, 디자인, 문학... 에 이르기까지...
- 하야시 선생님 . . . . 3회 일치
하야시 키미카즈(林公一)라는 닉네임으로, 『Dr 하야시의 마음과 뇌의 상담실(Dr林のこころと脳の相談室)』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일단 이러한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하야시 키미카즈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동명의 산부인과 의사는 실존이 확인) 물론 사이트의 운영자가 실제 정신과 의사가 아닐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3회 일치
강간범, 조직폭력배, 연쇄살인범 같은 악질 흉악 범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을 뜻한다. 매우 해괴해보이는 심리지만 의외로 많은 실제 사례가 있어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드러날 때마다 사회문제가 되지만 이제는 워낙 자주 나오니 그러려니(…) 한다.
* 근대적인 연쇄살인범에 적용된 예로는 테드 번디가 있다. 테드 번디는 멀끔하게 생긴 외모, 괜찮은 스펙, 뛰어난 언변에다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그루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쇼를 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결혼을 하였다.
* 일반적으로는 전혀 인기가 없었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남성이라도,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이 사실이 보도되면 엄청난 팬레터를 받는 기묘한 일도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옥중결혼]]을 올리고, 배우자가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3회 일치
기본적으로 진중한 성격이나, 말을 생각하고 하는 편이 아니라서 우시와카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 속을 긁는 때가 있다.[* 봄 배구 선발전 직전 화장실에서 만난 오이카와에게 "너에겐 고교 마지막 대회겠네 건투를 빈다."라고 말한다. 빈정이 상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전국대회 갈거니까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받아치자. "? 전국에 갈 수 있는 건 한 팀인데.(우리 팀이 나가는데 너희가 어떻게...?)"라고 말하며 또 다시 속을 긁어댄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왈 "비꼬려고 말하는게 아니라서 더 열받아...."] 쉽게 말해서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언더독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눈새]]다. 이런 성향은 우연히 만난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오이카와를 평가하며 은연 중에 드러나는데 '''"우수한 모종에는 그에 알맞은 토양이 있으며, 메마른 땅에서는 훌륭한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며 ~~농부?~~콘크리트 출신 두명을 자극했었다.
카라스노 동네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아저씨들만 잔뜩 있을 것 같지만 젊은 사람도 꽤 있다. 대부분이 [[카라스노 고교]]의 졸업생. [wkik:"우카이 케이신" 우카이]가 만든 팀이기도 하다. 동네 팀 치고는 실력이 좋다.
본명 불명.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OB로 주전당시 배번은 히나타와 같은 10번이었다. 봄의 고교 배구 전국 대회에서 미야기 현 대표로 활약했으며 해당 경기는 주인공 [[히나타 쇼요]]가 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나카 사에코와는 같은 학년이었고 츠키시마 아키테루보다는 한 학년 아래인 점에서 나이는 1권 기준 21세. 작은 신체(170cm 안팍)에 비해 엄청난 점프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대단한 박력과 카리스마를 가져[* 타나카 사에코의 회상으로는 컨디션 난조로 연습 때 교체 되었는데, 락커룸 관물함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의 눈매와 포스가 엄청나서 좀 놀던 언니로 추정되는 사에코마저 움찔할 정도.] 에이스로서의 자부심과 실력으로 팀과 동료의 사기를 북돋으며 카라스노 배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다만 현재까지 작중 직접적으로 묘사된 일이 적어서 베일에 싸여 있다.
- 하이큐/210화 . . . . 3회 일치
* 그냥 돌려보내면 될 일인데 굳이 남긴데다 사실 작은 선수에겐 관심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
* 내친 김에 공도 못 만지는건 "자업자득"이라며 "볼보이나 실컷해라"고 비꼰다.
* 감독 사무실에선 또 히나타를 가지고 말이 나오는데 와시죠 감독은 "무대뽀인 젊은이를 싫어하는건 아니다"라며 의외의 말을 한다.
- 하이큐/218화 . . . . 3회 일치
* 히나타는 여전히 볼보이지만 착실하게 참석 중.
* 츠키시마가 토스를 올리는데 높이가 어정쩡해서 반격에 실패한다.
* 고시키가 대놓고 허접하다고 갈구는데 츠키시마는 실책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반박도 못한다.
- 하이큐/233화 . . . . 3회 일치
츠바키하라 측에선 이들이 시라토리자와를 꺾고 올라왔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주장인 [[에치고 사키에]]는 "시라토리자와랑 붙는게 나았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에치고는 경기 내용상 저들이 시라토리자와를 압도한 것도 아니며 세상엔 "우연"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바꾼다. 마루야마는 좀 팔랑귀인지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우시와카랑 안 붙게 돼서 럭키"라고 태세전환한다. 사실 주장인 에치고는 "이긴건 이긴 것"이니 만큼 카라스노의 실력을 얕보지 않는다. 단지 "작년의 반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격려한 것이다.
* 평소같지 않은 실수를 해버린 카게야마. 그러나 크게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히나타에게 사과하며 "수정할게"라고 단백하게 코멘트한다. 썩소를 짓는 히나타.
- 하이큐/234화 . . . . 3회 일치
중계석에선 카게야마가 이렇게 실수를 연발하는건 처음이라고 코멘트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최종 워밍업에서 [[히나타 쇼요]]와 맞춰보지 못한게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아쉬워한다.
* 야마구치는 전국대회 레벨이 되면, 자신은 서버 이외에는 활용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 서버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는 그걸 위해서 이 "첫공"을 수백 번도 넘게 시뮬레이션했다.
* 카라스노가 따라붙으면서 점수차는 더 벌어지지는 않지만 좁혀지지도 않는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그 점을 우려한다.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에게 세트를 올려 공격에 성공, 이제 그럭저럭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때 히나타가 코트 인. 들어오자마자 치고 싶어 안달난 눈빛을 보낸다. 사와무라는 그들을 보며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겐 "실수하는게 무섭다는 감각 자체가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 하이큐/235화 . . . . 3회 일치
* 스코어는 13대15. [[츠키시마 케이]]가 서브를 준비한다. 카라스노 벤치에선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우카이 케이신]] 코치에게 굳이 마이너스 템포를 보여줄 필요는 없었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카이 코치는 "보여주는게 중요"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괴짜 속공의 등장으로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변했고 카라스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관중석에서 보고있던 카라스노 출신자들은 사와무라의 실력이 올라갔다며 감격한다.
벤치의 타케다 고문은 그 실력과 열의에 비해 카게야마가 부각되지 않았었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 하이큐/237화 . . . . 3회 일치
* 관중석의 카라스노 졸업생들은 [[타나카 류노스케]]나 [[아즈마네 아사히]] 또한 성장했음을 실감한다.
사실 츠키시마가 딱히 토스를를 잘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올리는 토스는 확연이 달라졌는데 스기우라는 "약간의 어색함과 최대한의 정성"이라 표현한다. 합숙에서 [[코가네가와 켄지]]에게 잔뜩 쓴소리를 들은 탓인지 높고 깔끔한 세트가 올라온다. 아즈마네는 "왠지 감동적"이라 여기며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러나 츠바키하라 쪽에선 블록 3장으로 덤비는데.
한편 히나타는 수비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자꾸 몸통으로 공을 받아서 관중석에선 "몸으로 받지 말고 손으로 받아라"고 웃음거리가 된다. 본인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데 사와무라는 전에 "야생의 감"으로 공을 따라가던 것과 달리 상대의 플레이를 보고 공이 올 곳을 예상해서 움직인 점을 좋게 평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조차도 "경쟁심을 발동시킨" 얼굴로 히나타를 주시한다.
- 하이큐/243화 . . . . 3회 일치
* 카라스노는 도시락을 먹으며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관전한다. 네코마의 상대는 코치현의 키요카와 고교. 3학년 WS 야마자키 료지가 에이스를 맡고 있다. 신장 183cm의 스파이커. 상당히 활약하며 네코마의 블록을 공략하고 있다. 아즈마네와 스기와라가 굉장하다고 평할 정도의 기량이지만, 사실 봄고 대회까지 오면 굉장하지 않은 팀도, 굉장하지 않은 선수도 없다.
* 네코마는 만만히 물러서는 팀이 아니다.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를 집요하게 방어하며 랠리로 이어간다. 네코마 측에선 결정적인 공격이 나오지 않지만 팀 전원이 끈질기게 수비에 나서고 키요카와 측은 야마자키에게 공격 패턴이 몰리는 상황이 되자 야마자키의 체력도 한계를 보인다. 결국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는 라인 밖으로 나가며 실점한다. 아즈마네는 그 철저한 수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괴로워한다.
* 문제는 엉뚱한데서 시작된다. [[아카아시 케이지]]와 팀원들은 공격이 실패한 직후 보쿠토의 표정이 급속도로 썩는걸 발견한다. 풀죽음 모드 발동. 그를 잘 아는 아카아시가 보기에도 너무 빠른 타이밍에 발동한 것이다.
- 하이큐/251화 . . . . 3회 일치
중계석은 양측 세터 대결로 흘러가는 흐름을 즐거워하는 듯 하다. 확실히 양팀 세터 간의 신경전은 두드러진다.
카게야마의 서브 때 그랬듯,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석은 떠들썩하게 박자를 맞춘다. 큰 북과 각종 타악기를 이용한 빠른 템포의 연주. 그런데 이 연주 때문인지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관중들도 템포에 맞춰서 박수와 구호를 연호한다. 이것은 육상 경기 같은데서 선수가 객석의 응원을 유도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문제는 그건 선수가 자기 컨디션을 위해 유도하는 거지만, 이번 적측이 카라스노의 템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하는 행동.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관객의 호의를 끌어내는 척하며 실제론 방해행동을 하고 있다.
이게 효과가 있는 건지 타나카의 서브는 네트에 걸려 실패.
- 하이큐/252화 . . . . 3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이나리자키의 더블 퀵을 알아차리고 좋은 위치를 선점하나 리시브에서 실부, 발로 받는 실수를 연출한다.
사실 늦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시마다는 약속시간보다 늦어서 아침부터 술이라도 마시고 있나 했는데, 사에코는 길을 헤맸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 하이큐/254화 . . . . 3회 일치
* 카라스노 아즈마네의 서브. 위치에 선 아즈마네는 이전에 우카이 코치가 알려준 요령을 되새긴다. 사실 연습 때는 그도 좋은 서브를 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서 컨트롤이 좋지 않다. 그런 사정을 들은 우카이 코치는 주먹을 꾹 쥐었다 펼치는 근이완법을 조언한다. 이런 동작을 반복하는 것으로 쓸데없는 힘을 빼낼 수 있다. 수영선수들도 어깨를 추켜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하는데 마찬가지 원리.
그런데, 우카이 코치의 말을 비웃듯 미야 형제의 두 번째 마이너스 템포가 꽂힌다. 이번에도 우측에서 [[츠키시마 케이]], [[타나카 류노스케]]의 블록을 완벽하게 따돌리며 작렬. 아즈마네와 니시노야가 리시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중계석도 확실히 "카라스노의 1학년 콤비에 못지 않은 속도"라고 격찬.
- 하이큐/259화 . . . . 3회 일치
* 로테이션이 돌아 다시 [[츠키시마 케이]]가 들어오고 니시노야가 나간다. 히나타의 서브 차례. 지금 히나타는 의욕이 최고일 뿐 아니라 묘한 자신감이 넘친다. 사실 블록이나 리시브에 비해서 서브는 훨씬 별로다. [[스가와라 코시]]는 그저 서브를 치려고 기합이 들어간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딱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1학년 선발 합숙 이후 히나타의 리시브는 뭔가 변했다. 거기에 방금 전 블록과 리시브 성공이 히나타의 기세를 올린 원동력일 것이다.
히나타의 의욕은 아깝지만 아무리 우카이 코치라도 여기서 서브를 맡길 정도로 실험적이진 않았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서버로 기용된다. 히나타는 눈물을 삼키며 교대한다. 스가와라는 "지금이라면 잘 될 듯한 분위기"라며 야마구치를 응원한다.
* 야마구치는 서브 위치로 향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모든게 평소대로다. 지금 걷는 보폭, 볼 핸들링. 문제없다. 목표는 에이스.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제, 츠바키하라 전에서 했던대로 "리셋할 시점"을 갖는 것. 야마구치는 눈을 들어 어제 리셋할 시점으로 정했던 비상등을 바라본다. 그런데... 가려져 있다. 워밍업 때만 해도 분명히 보였던 그 표시가 깃발로 가려졌다. 야마구치는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려 하고 다른 물건을 표지로 "리셋" 하려고 하지만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 귓가를 쟁쟁하게 채우는 양진영의 응원 소리. 소음들. 리셋에 실패한 채로, 플레이 시간이 다가온다.
- 한국영 . . . . 3회 일치
|청소년 클럽=[[숭실대학교]]
* [[숭실대학교]] 중퇴<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ctg=news&mod=read&office_id=452&article_id=0000000305 혼신의 태클엔 한국영의 인생이 담겨 있다]</ref>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201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알가라파 S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한태균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4년]] [[4월 16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한화 이글스|한화]] 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3년]] [[5월 1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롯데]] 전 구원
'''한태균'''(韓太均, [[1971년]] [[3월 22일]] ~ )는 [[KBO 리그]] 전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1994년]] [[4월 16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한화]]를 상태로 첫 무대의 경기에서 등판하여 당시 [[KBS 1TV]]에서 중계방송(캐스터 정도영,해설 故 [[하일성]])되며, [[2003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함신익 . . . . 3회 일치
미국을 중심으로 에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와 예일 교향악단 음악 감독, 폴란드의 실레시아 오페라단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2001년~2006년까지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2014년 현재, 혁신적인 재원 지원 정책 및 경영 방침을 근간으로 한 함신익의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를 창단 후 창단연주회를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였다.
2010년 10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상임 함신익과 KBS 교향악단의 연주는 New York Times로부터 “존경 받을 만한 연주” 라는 평론을 받았다. 영국의 The Financial Times 는 "확실한 자부심과 확실한 헌신, 열정과 뛰어난 정교함이 어울린 음악" 으로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카네기 홀 연주를 평가하였다.
- 함인섭 . . . . 3회 일치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 효자3동 17-1 [[춘천의료원]] 병실에서 만성 폐렴으로 병사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기독교]] [[장로]]로도 활약하였다.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그는 재산을 마련하지 못해 자기 집이 없었고, 일부 제자들과 교직원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그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 이복 삼촌 : [[함병춘]] (咸秉春,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 외교담당 특보
- 함화진 . . . . 3회 일치
[[대한제국 고종|고종]] 21년인 1884년에 대대로 왕실의 악사를 지낸 [[양근 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함화진(咸華鎭)이었다. 함화진의 집안은 세습적인 악사 가문으로 증조부 함윤옥은 [[조선 순조|순조]]와 [[조선 헌종|헌종]] 때 악사였고, 할아버지 함제홍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로 불렸다. 큰아버지 함재홍은 젓대, 아버지 [[함재운]]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한편 [[1912년]]부터 조선정악전습소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했고, [[193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 실기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고 [[처용무]]를 재현하는 등 국악 전통의 복구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일제 패망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이왕직아악부가 사라지고 함화진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이 결성되었다. 대한국악원은 아악 전통을 고수하던 구 이왕직아악부와는 달리 창악, 기악, 창극, 무용, 농악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음악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 대한국악원이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계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참여파를 형성하면서, 이 단체를 이끈 함화진은 [[남로당]] 불법화와 [[좌익]] 세력 색출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려 피검되었다.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3회 일치
챕터 19에서 재등장. 가면쓴 사람들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던건 이들이었다. 이들은 국수주의자로, 러시아[* 배경이 1989년 이므로 아직 소련일 때.]와 미국의 외교관계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러시아 마피아들을 습격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있던 것. 이 사실은 퍼즐을 모으고 맞춰야만 드러나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들은 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 허용 . . . . 3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4년 한국프로야구|2004년]] [[9월 21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현대]] 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4년 한국프로야구|2004년]] [[9월 21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현대]] 전
2004년 9월 21일 잠실 현대전 5회 초구 타격 아웃
- 허용석 . . . . 3회 일치
* 1994 ~ 1995 :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 재무·건교·정통담당관
* 2006.06 ~ 2008.03 :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 현재현 . . . . 3회 일치
== 경영실적 ==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태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 현제명 . . . . 3회 일치
대구 대남국민학교와 [[계성고등학교|계성학교]]를 다녔고, 대구에 있는 제일교회에 들어가 교회 성가대에 입대하여 음악단원이 되었다. 이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음악 교육을 받았고 1923년에 졸업한 후 [[전라북도]] [[전주시|전주]]에서 신흥학교의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음악가협회를 해체하고 이후에도 시국대응전선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에도 가입하면서 친일 행위를 하였던 전적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특히 친일 찬양적인 성향의 '''[[후지산]]을 바라보며'''에 작곡자로 개입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희망의 나라로'''를 작곡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친일 행적을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친일인명사전]]의 인명부에도 현제명이라는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게다가 [[창씨개명]]에도 적극 동참해서 '''구로야마 즈미아키(玄山濟明)'''으로 [[개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이노래는 1931년에 작곡 되었고, 친일로 변질했을때는 1937년이다.
- 호준석 . . . . 3회 일치
* [[YTN]] 보도본부 앵커실 부장
* [[2018년 3월]] ~ : [[YTN]] 기획조정실 실장
- 홍효의 . . . . 3회 일치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09 시즌 마무리훈련에도 참가해 [[선동열]] 감독이 칭찬했었지만, 막상 본 시즌에 들어가보니… 21경기 등판해 47⅓이닝 1승 3패 '''72사사구''' 38실점 평균자책 6.08을 기록했다.
다량의 사사구를 허용한 것은 투구 밸런스 실종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시즌 전 인터뷰에서 본인이 고3 때 발가락부상 이후로 투구 밸런스를 잃었다고 얘기했었다. 어쨌든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가 결정되었다.
2013년 팀에 복귀, 신고선수가 아니라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군복무 전과 달리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다. 5월 18일 LG 2군전에서 시즌 처음 선발로 등판했지만 1⅓이닝 동안 5실점을 하면서 강판되었고, 팀도 5대22로 대패했다. 결국 부진한 성적 탓인지 5월 이후로는 나오지 못했다.
- 황석하 . . . . 3회 일치
* 엑시터대학교 대학원 연극학과 (MFA)연기실기석사
* 《[[회사원 (영화)|회사원]]》 (2012년) - 임 실장 역
* 《[[신의 퀴즈 3]]》 (2012년, OCN) -의무 실장 역
- 황선필(1939년) . . . . 3회 일치
| 경력 = 국무총리비서실 공보비서관<br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br />[[문화방송]] 사장
* 국무총리비서실 공보비서관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 황옥 (1885년) . . . . 3회 일치
'''황옥'''(黃鈺, 1885년 ~ ?)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이다. 서울 출신으로 일본 경찰에서 [[경부]](경감급)라는 중간간부 직위까지 승진하였다.<ref>진송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459138 '친일파일까, 독립운동가일까' 실제 의열단원 수기로 본 '밀정' 황옥]. SBS. 2016년 9월 30일.</ref>
1923년 [[김상옥 (1890년)|김상옥]]이 일으킨 [[종로경찰서 투폭사건]] 이후에 사건 관련자를 색출한다는 구실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서 [[톈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만났고,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수령, 김시현, 김재진, [[권동산]] 등과 함께 물건을 [[단둥]], [[신의주]]를 거쳐 [[경성]]까지 밀수했다.
의열단은 황옥, 김시현 등이 밀반입시킨 무기류를 통해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 등을 동시에 테러하는 제2차 국내 거사를 준비했지만 김재진이 밀고하여 실패했다. 김재진은 재판 이후 흔적이 증발하는데, [[유석현 (1900년)|유석현]]은 1983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회고록에서 김재진은 가명이고 [[권태일]]이 본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김원봉, [[김지섭]] 등 소수만 탈출했고 황옥, 김시현, [[김진기]], [[조동근]], [[홍종우]], [[홍종무]], 유석현 등은 1923년 3월 15일에 체포당한다.
- 히나마츠리 . . . . 3회 일치
[[일본]]에서 여자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날. 양력 3월 3일에 실시한다. 과거에는 음력 3월 3일에 실시했다. 지방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히나마츠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헤이안 시대에는 인형 놀이로서 행해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에도 시대에 장식물과 놀이로서의 의미 이외에, 인형이 대역이 되어 재액을 대신 받아낸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포함되었다. 에도 시대에 일본 전국에 널리 퍼진 풍속이 되었다.
- 히노쿠니 . . . . 3회 일치
《[[일본서기]]》에서는 케이코우 덴노(景行天皇)의 배가 밤에 항해하다가 정박하기 어려움을 겪었을 때, 멀리서 불의 빛이 보여서 무사히 뭍에 다항ㅆ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지역 야스시로 아카타[*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이전의 황실 직할지.](八代県)인 토요무라(豊村)를 히노쿠니(火の国)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히젠국풍토기(肥前国風土記)》에서는 히노키미(肥君)[* 火君이라고도 쓴다. 히노쿠니의 [[호족]] 군주. 고대 일본은 각 지역에 키미(君)라는 군주가 있고, 이들의 수장으로서 야마토 황실의 오오키미(大王,대왕)이 있는 구조였다.]의 타케오쿠미노미코토(健緒組,タケオクミノミコト)가 [[츠치구모]](土蜘蛛)를 정벌할 때, 시라누이(不知火)가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불의 나라(히노쿠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히노쿠니는 히젠국(肥前国)과 히고국(肥後国)으로 분국되었는데, 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서기 696년[* 지토우 덴노(持統天皇) 10년)]의 기록에서 히고국(肥後国)이라는 명칭이 나타나므로, 텐무 덴노(天武天皇)나 지토우 덴노 시기에 2개의 나라로 분국된 것으로 여겨진다.
- 1만 시간의 법칙 . . . . 2회 일치
== 현실 ==
미국 미시간 주립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력이 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게임은 26%, 음악은 21%, 스포츠는 18%라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공부로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533053 (기사)]]
- 3월의 라이온/119화 . . . . 2회 일치
* 사실 가정사 쪽으로도 불륜 문제에 직면해 위기에 처한 라이도는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안간힘 쓴다.
* 사실 게임 자체는 도바시의 압도승. 라이도가 준비한 수는 초장부터 의도대로 풀리지 않거나 철저히 파훼당한다.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2회 일치
* 미스미 타츠유키와 요코미조 오쿠야스는 날씨가 더우니 대국이 일찍 끝나면 맥주나 마시러 가자는 둥 실없는 토크를 한다.
* 키리야마는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나메리카와는 실전에선 쓰지 않던 수까지 꺼내며 예상을 깨부순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2회 일치
* 그저 가족같기만 했던 키리야마가 실은 나름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위치도 있었다.
* 그런데 화장실에 간다던 나메리카와는 장지문 사이로 키리야마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눈치챈 키리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서 주의를 당한다.--결국 어린애네--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2회 일치
* 아카리가 팔을 드러내는 옷을 입은 탓에 팔에 희미하게 붉은 손자국이 난게 보인다.
* 키리야마 레이까지 와서 보고 있다. "대실망했다"고 토로하는데.
- ATM . . . . 2회 일치
[[은행]]이나 [[편의점]] 등지에 배치되어있는 기계. 예금, 출금, 송금, 그외 등등을 할 수 있는 유용한 기계다. 기본적으로 은행이 담당직원이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이며, 사실상 직원을 대체하기에 서비스 제공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버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식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2회 일치
연구는 강대국들이 유리하다. 강대국(특히 독일, 영국, 미국)의 연구진이 우수한데다가, 공업력도 좋아 많은 기술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반면 약소국 연구진은 레벨도 별로고 공업력도 딸리기 때문. 솔직히 이 게임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기에 약소국이 여러모로 불리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모든 연구를 하는건 무리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 싶은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게임 끝날 때 까지 안 쓸 것 같은 연구의 경우에는 적당히 하고 내다 버리는게 권장된다.
제트엔진, 로켓, 원자폭탄과 같은 당시 기준으로 실험적인 분야를 다루는 연구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연구를 완료한 후, 해당 비밀병기 연구가 해금되는 이벤트를 봐야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이런 이유로 팬들에게 강등은 우승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전은 한시적으로나마 [[슈퍼매치]]를 뛰어넘는 라이벌전이 탄생하게 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2회 일치
실제 경기 양상도 광주가 동점골을 먹고 전반을 종료했음에도 분위기를 쇄신하여 연달아 2골을 넣으면서 플레이오프 3연승이라는 분위기를 탐과 동시에 2골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창원축구센터 원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경남은 지난 원정에서 원정에서 한골을 넣긴 했지만 2골차 패배를 했기 때문에 최소한 2:0 이상으로 승리해야지만 잔류를 할 수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아깝게 골을 놓쳤던 송수영이 65분경에 골을 터뜨리면서 1골만 따라가면 바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실점이후 5분만에 김호남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잔류의 꿈이 멀어지게 되었다.
- K리그 챌린지 . . . . 2회 일치
게다가 K2리그로 출범했던 당시에는 리그의 운영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아니라 한국실업축구연맹으로 봐야 하며, 이 두 연맹은 상하위적 조직이 아니다. 또한 챌린지가 발족하였음에도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까지 미뤄 보면 이 둘간의 관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LDK . . . . 2회 일치
* L은 Living(거실)
3LDK는 방이 3개에 거실, 식당, 부엌이 있는 주택. 2LDK는 방이 2개인 것을 뜻한다.
- NEC 코퍼레이션 . . . . 2회 일치
[[PC-9801]] 등 PC-9800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했다. 개인용 컴퓨터 산업은 레노버에 매각하면서 사실상 접었다.
사실 이 회사는 NEC그룹 내에서 [[씹덕]]들이 쫓겨나서 격리수용당한 회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 NTX . . . . 2회 일치
* 메모 : 메모를 쓰는 곳. 창작과 관련하지 않아도 된다. 소량의 모니위키 문법이 적용된다. 현재는 사실상 정전.
* 창작 : 창작 관련 논의를 하는 게시판...이지만 사실상 옛날에 있었던 창작 위키용 위키게시판 취급. 창작 위키가 사라진 지금은 정전.
- USS 피닉스 (CL-46) . . . . 2회 일치
1944년 10월 20일에는 [[필리핀]]에 상륙하는 미군을 지원해 해안포격을 실시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수리가오 해전]]에 참가, 일본군 전함 [[IJN 후소|후소]]에게 포탄을 먹였다. 이후 레이테 만 입구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민도로]] 섬을 공격하는 동안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영국의 ~~찌라시~~황색 언론 [[더 선]]은 헤네랄 벨그라노의 피격 사실을 전할때 1면 헤드라인에 "'''잡았다!''': 우리 친구들이 포함을 격침시키고 순양함을 구멍냄"[* GOTCHA!: Our lads sink gunboat and hole cruiser]라고 쓰는 패기를 보였다. 이외에도 더 선은 포클랜드 전쟁 동안 "'''뒈져라 군사정부놈들'''"[* STICK IT UP YOUR JUNTA] 등의 부적절한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 강우영 . . . . 2회 일치
제1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1950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구지검,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61년 법무부 검찰과 과장을 하다가 1961년 서울고검 검사, 1962년 부산지검 부장검사, 1966년 전주지검 차장검사 1968년 서울지검 부장검사 1970년 부산지검 차장검사를 하였으며 1971년에 서울지검 영등포지청장이 되었다. 지청장 임기를 마친 이듬해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전주지검 검사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을 하는 등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와 검찰 주요 요직을 거쳤다. [[전두환]] 등 신군부 집단에 의해 권력이 장악된 1980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2대 서울지검장을 하고 1981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으로 재직중인 1981년 4월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기 5년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대법관에 재직중이던 1984년 7월 제6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대법관 퇴임이후인 1987년에는 대한공증협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개성 발현 2~3세대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구시대의 악습.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끼리 결혼시켜 더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결혼이다. 사실상 인간 품종 개량이라 봐도 무방한 것. 개성 사회의 씁쓸한 부분이며 현 시대에서는 상술한 대로 구시대의 악습이라 인식되는 듯 하다. 그런데 극중에서 한 히어로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실행했다.
- 거푸집 . . . . 2회 일치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이 화학세계 1999년 7월호에 투고한 내용에 따르면, 활석 거푸집은 열전도율이 뛰어나며, 진흙이나 사암 거푸집과는 달리 가스 구멍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고, 단단하여 잘 망가지지 않으므로 오래 쓸 수있어서 좋다고 한다.[http://www.kcsnet.or.kr/main/k_chemstory/k_c_story_read.htm?qpage=k_c_story_main&uid=11&cat=2 참조]
[[콘크리트]]로 건축물을 만들 때 외벽의 형태를 만드는 나무틀도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며, 똑같이 거푸집이라고 부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 . . . 2회 일치
그러나 집안에서 드러나는 실체는 답이 없는 [[건어물녀]]. 오타쿠 취미에 매진하며 일말의 아가씨스러움도 없다.
타치바나 실핀포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9화 . . . . 2회 일치
* 히카리는 집보기는 뭘하는 거냐고 묻는데, 사실 우마루는 놀고 있을 뿐, 딱히 집보기 같은건 하지 않는다.
* 사실 요리래봐야 타이헤이가 미리 준비한 스튜 재료를 끓이는 것 뿐.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2회 일치
* 선물은 그만 둘까 하다가 타이헤이의 실망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역시 선물을 하려고 고민한다.
* 에비나는 손수 만든 장갑을 꺼내서 건네기만 하면 좋겠다며 부끄러워하는데, 우마루는 그제서야 실수한 것을 깨닫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8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카나우는 요리를 못해서 실패. 대신 "하얗고 얼음이 들어간 라면"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 카나우는 눈물이 핑 돌며 감동하는데 히카리는 사실 오빠(타이헤이)네 집에 다녀왔다는 것, 그리고 언니를 위해 타이헤이가 요리를 가르쳐줄 거라는 것을 말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2회 일치
* 변태 같은걸 마주치는게 걱정이라고 하는데, 사실 키리에가 봄바 보다 강해서 하나마나한 걱정이다.
* 모토바 남매도 비현실 남매의 영역으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다른 장르 오타쿠인 우마루와는 온도차가 여실하다.
* 키리에는 사실 엄청나게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고백하고 끝없는 덕심을 어필한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2회 일치
SS. 럭키가 떠그타운에 정박하려는 무렵, 얼굴에 물린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SS. 럭키에 올라가 선교의 선원들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객실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선교의 선원들이 몰살당하는 소리를 들은 카놀리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닫고 권총을 꺼내든다.
금주법으로 인해 밀주업자들이 활개를 치게 되자 정부는 이들을 막기 위한 약물을 만드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부는 이 계획을 포기했고, 이로인해 연구를 진행하던 연구원은 실업자가 된다. 이 때 프랭키가 연구원에게 접근해 약물 한 갤런만 주면 유명하게 해주겠다고 꼬셨던 것. 이후 프랭키는 그 약물을 이용해 세인트 패트릭 데이에 술을 마신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연구원은 자길 데리고 떠그타운으로 가면 모든 걸 고칠 수 있을거라며 카놀리를 설득하려 하지만, 카놀리는 군대가 떠그타운을 통째로 날려버리려 하니 고칠 이유도 없고, 네가 만든 약물 맛이나 직접 체험하게 해주겠다며 박사를 약물통 안에 처박고 프랭키를 잡으러 간다.
- 경관 . . . . 2회 일치
앞 뒤의 기사가 호응하여 이어진다면, "위군의 시신까지 한꺼번에 경관에 묻어버렸다."는 사실은 등애가 더욱 큰 경관을 만들어 자신의 전공을 과도하게 부풀리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게 된다. 열전의 문학성에 비추어보면, 등애의 자만을 보여 주는 일화로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 뒤의 기사가 호응하여 이어진다면, "위군의 시신까지 한꺼번에 경관에 묻어버렸다."는 사실은 등애가 더욱 큰 경관을 만들어 자신의 전공을 과도하게 부풀리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게 된다. 열전의 문학성에 비추어보면, 등애의 자만을 보여 주는 일화로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고인범 . . . . 2회 일치
180cm 훤칠한 키에 흔히 등장할때마다 백발머리 또는 은발머리이다.[* 단 사극은 제외][* 사실 카리스마 이미지와 부합하여 은발과 백발은 트레이드 마크이자 상징이다. 근데 새치염색하면 사람들은 그를 못 알아본다고...]
* 2016년 MBC 주말드라마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 - 방광진 회장
- 고종(조선) . . . . 2회 일치
친정 초기에는 박규수 같은 통상개화파를 주로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한편으로는, 대원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들을 중용하기도 했다.[* 흔히 중전 민씨([[명성황후]])덕에 여흥 민씨가 네임드화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원군파를 견제하기 위해 고종이 직접 중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때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고 박규수 등의 개화파를 중용해 개방을 서두른 걸 보면 기본적으로 전근대 군주로서의 능력은 있었던 듯.
그럴 때 운요호 사건이 터지는데 사실 이 과정에서 신미양요 때 멀쩡했던 영종도가 맥없이 당했다고 고종을 까는 건 조금 부당하다. 이미 대원군이 당백전이나 청전으로 재정상태가 개판이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던 것(...). 아무튼 박규수같은 개화파들은 개방을 할 좋은 기회라 여겼고 이에 고종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 곤조야키 . . . . 2회 일치
* 트위터에서 실수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남성기에 해버렸다(…)는 사람이 있다.[[https://togetter.com/li/979577 (참조)]]
- 곽승준 . . . . 2회 일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 인수위원을 지내며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실(현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비서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 등을 지냈다.
- 광주 FC . . . . 2회 일치
일단 종합운동장으로 활용하는 건, 사용처를 바꾸기 위해 또 추가로 목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안건은 사실상 폐기가 되고, 프로축구단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가장 유력했던 방법은 경기장을 짓기 위해 당시 금호건설을 포함한 지역기업에 축구단 창단을 종용하는 일이었으나 이 역시 1년 운영비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게 되어 전남 드래곤즈를 광주에 공동연고지로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까지도 최종적으로 좌절된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규성 진씨 . . . . 2회 일치
진나라는 민공 월(湣公 越) 시대에 초혜왕(楚惠王)에게 멸망당한다. 진나라 공실에서 많은 성씨가 파생된다.
전완 이후로 전씨는 제나라에 자리를 잡고 점차 제나라의 유력 씨족이 되었으며, 마침내 태공망의 후손인 강성(姜姓) 여씨(呂氏) 왕조를 단절시키고 제나라의 군주가 된다. 제왕 건은 다시 진씨로 복성하며, 제나라 왕실에서 왕씨가 일부 갈라져 나온다.
- 그린 애로우 . . . . 2회 일치
배트맨과 유사점을 보이는 캐릭터. 초능력이 없고, 전투실력이 뛰어나며, 특이한 장비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체인 인물은 이름 있는 부자. 심지어 이전의 그린 애로우는 배트맨의 박쥐 동굴을 의식한 듯한 기지와 배트모빌을 의식한 듯한 애로우카라는 자동차가 있었다.
코스튬 컬러링은 이름에 어울리게 녹색이 주력. 무기인 활과 화살도 녹색이다. 이러한 녹색 이미지에서 유명한 궁수인 로빗 훗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과거 버전 중에는 로빗 훗과 많이 비슷하다.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 . . 2회 일치
애니메이션, 코믹스, 게임에 실사화도 되었다.
== 실사영화 ==
- 김근 (고려) . . . . 2회 일치
'''김근'''(金覲,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신라]]왕실의 후예이다. [[김부일]], [[김부필 (고려)|김부필]], [[김부식]](金富軾), [[김부의 (고려)|김부의]]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돈중]], [[김돈시]]의 할아버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경상북도]] 출신.
본관은 경주로 역사가 김부식의 아버지이다. 신라 왕실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경주]] 주장(州長)에 임명되었던 위영(魏英)이고 아버지는 원충(元冲)이다. 그의 생애 초기나 가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아들 4형제가 중앙관료로 진출할 때까지는 경주에서 생활했다 한다.
- 김대진 (야구인)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김만제 . . . . 2회 일치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역시 서강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던 전임 [[남덕우]], 후임 [[이승윤(정치인)|이승윤]] 경제 부총리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종인]] 등과 더불어 서강 학파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82년까지 재임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장 퇴임 후 잠시 [[한미은행]]장을 지내다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였다. 그의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은 소위 3저(低)[* 낮은 물가, 금리, 석유가격을 뜻한다.]로 대표되는 경제 호황기로 수출 증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국내외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후임 [[노태우]] 정부의 출범 후, 이 때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이 문제가 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 김명신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4월 1일]]<br/>[[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한화 이글스|한화]]전 구원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문집 . . . . 2회 일치
|저널 = 실천문학
|제목=실록 친일파|날짜=1991-02-01
- 김민수 (1991년)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김석원 (금융인) . . . . 2회 일치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 이재국•국제금융국에서 근무하였고, 재정경제부 중소금융과장, 금융•부동산실명단 총괄반장, 보험제도과장 등을 거쳐, 일본 대장성에 파견 연구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재정경제부]] 본부국장, 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소장, 미국 미시간대(금융연구센터)의 Visiting Scholar로서 활동하였으며,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금융감독위 및 [[금융감독원]] 합동대변인,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용준 (1904년) . . . . 2회 일치
|issue=제16호}}</ref> [[성혜랑]]과 김용준은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1967년]] 김용준이 [[김일성]]의 사진이 들어 있는 신문을 그대로 밖에 버린 사실이 드러나 큰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자결했다는 것이다. [[성혜랑]]의 증언 외에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김윤동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7월 23일]]<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구원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일엽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귀국 이후 수술을 반복하여 재활하였고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복무하던 중에 [[KBO 리그]] 복귀 유예 기간 규정이 지나 [[대한민국]]에서 활동이 가능해졌고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후 [[2007년]] [[1월 4일]]에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0278662 롯데, 마이너 리그 출신 김일엽과 계약] - 뉴시스</ref> 하였으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군에는 [[2008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2승 1패 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2009년]]에는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 7.36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KIA]]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하여 강판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210116 ‘데뷔 첫 그랜드 슬램’ 김현수 “만루포 처음이야!”], 《동아일보》 [[2009년]] [[6월 21일]]</ref> [[2012년]]에는 1군 1경기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량 실점하여 평균자책 40.50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 김정호 (1949년) . . . . 2회 일치
* 1976년 : 농수산부 종합기획실 사무관
* 2001년 : 농림부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 김종훈 (1952년) . . . . 2회 일치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남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영세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새누리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4.11 총선거를 앞두고 홍사덕, 김종훈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며 트위터 계정폭파를 신종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하고, "검찰은 트위터 계정폭파 범죄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ref>[http://news1.kr/articles/608133 새누리 "김종훈 트위터 폭파는 조직적 테러"] 《뉴스1》 2012년 3월 28일 차윤주 기자</ref> 그러나 "트위터 계정폭파란 존재하지 않으며,<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745518&ctg=1200 트위터 본사 "계정폭파?...이용규정 위반으로 정지는 된다"] 《중앙일보》 2012년 3월 30일</ref> 오히려 사용자가 반복된 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이용규정 위반할 경우 정지된다"는 트위터 본사 측 반박<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30800080 트위터 측 “새누리당, 반복 글 보내 정지된 것” 반박] 《서울신문》 2012년 3월 30일</ref> 으로 새누리당 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329031607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새누리당, 새 됐네"] 《프레시안》 2012년 3월 29일 이명선 기자</ref><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4981 보수지 신봉하던 새누리, '국제적 대망신' 자초] 《뷰스앤뉴스》 2012년 3월 29일</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5874.html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당했다더니…“국제적 망신살”] 《한겨레》 2012년 3월 29일</ref>
- 김지훈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1998년 단편영화 《온실》로 제2회 [[세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며, 제46회 [[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였다.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전라도]] 사투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였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0227432 김지훈 감독 "대구출신이라 3년 간 전라도 사투리 연구"] 세계일보. 2007년 05월 17일</ref> [[2011년]] [[8월]] 개봉한 한국 최초 3D 블록버스터인 《[[7광구]]》를 제작하였다. <ref>{{뉴스 인용|제목 = 김지훈: 영화정보-씨네21|url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6724|출판사 = 씨네21|확인날짜=2011-05-19}}</ref>
* 《온실》 - 연출, 각본 (1997년)
- 김홍미 . . . . 2회 일치
[[1599년]](선조 31) 다시 [[청송군|청송]][[부사]](靑松府使)로 부임했다가 [[1601년]](선조 34년) 봄에 병환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상주군|상주]]로 되돌아갔다. [[1602년]](선조 35) [[여주군|여주]][[목사]]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강릉시|강릉]][[부사]]로 임명되자 와병중인데도 부임하였다. [[1605년]] 강릉부사로 재직 중 큰 비가 내려 백성이 많은 수재(水災) 재난을 당하였다. 당시 그는 병이 들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수재로 죽은 자의 조문과, 수재로 재산을 잃거나 굶주린 자의 진휼(賑恤)과 구제에 힘써 직무에 충실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 선조실록
- 까마귀 . . . . 2회 일치
검은 [[비둘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둘기]]보다 몸집이 크다. 실제로 보면 상당히 위협적.
서양 문화에서는 왠지 [[죽음]]의 상징 같은 취급,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실제로 약간 무섭다(…).
- 꾸짖지 않는 육아 . . . . 2회 일치
* 사실 오기 나오키는 부모의 훈육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분노하지 않고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훈육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실제 본인의 강연에서는 '화내지 않고' 훈육을 하라고 권장하고 있다.[[https://mamanoko.jp/articles/12138 참조]]--제목이 사기--
- 나가 . . . . 2회 일치
이들은 22세 이상의 성인 여성들이 중심인 가문으로 뭉치는데, 이 성인 여성들중 한명을 가주로 한다. 작중에선 가주에 대한 투쟁은 반쯤 전쟁수준으로 묘사되는데,[* 현실의 작위계승 관련을 생각해보면 쉬울듯.] 나이와 딸이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인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듯 하다.
이들은 22세가 되는해에 '심장적출'이란 의식을 가지는데, 일종의 성인식으로, 심장을 말그대로 '빼서' 심장탑에 보관하는 식이다. 이상태의 나가는 사실상 불사로, 목이 잘려도 어느정도의 시간과 영양공급만 있으면 목이 다시 붙는듯. 심장을 뽑지 않은 나가는 '비에나가'라 부르는데, 이들은 말그대로 '가짜 나가'취급을 받는다. 만약 어쩌다 사정이 생겨 심장을 뽑지 못했을경우엔, 여성은 그 다음해에 심장적출이 벌어지는때까지 가문에서 보호해주지만, 남성은 무조건 끔살이라는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2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04. '''백열! 각자의 실력'''
* 토코야미 후미카게는 기존 필살기를 좀 더 실용적으로 다듬어서 사용, 상대를 노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2회 일치
* 이들에 실망하게 된 요아라시는 이들 부자만큼은 히어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한동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접어놓고 극복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실은 그에 대한 "혐오"를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2회 일치
* [[아이자와 쇼타]]는 그가 명실상부한 "넘버1에 가까운 남자"이라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단 몇 초만에 A반 인원 대부분이 K.O당한다.
* 웅영고 재학생 중에서도 최강으로 불리는 "빅3"의 등장. 그 존재에 관해서는 A반에도 소문이 전해져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건 대부분 처음이다. [[카미나리 덴키]]는 여학생을 보고 "예쁘지만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론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2회 일치
다 듣고 났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실제로 흘렸다. 다음날 키리시마는 새 진로희망 조사서를 받았다. 거기엔 깨끗하게 웅영고 지망을 적어넣었다. 이제는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보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정말이었다. 각오가 섰다.
*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는 어제 괴한을 만났던 여학생들을 찾아나섰다. 그녀들을 찾아낸 키리시마는 "그때 둘을 보고도 쫄아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아무 것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사과했다. 허리가 90도로 꺾어지는 정중한 사과였다. 사실 사과를 받는 쪽에서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두 여학생은 괜찮다고, 보통 무서운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입할 수 있는 미나가 굉장한 경우다. 마침 미나도 그 옆에 있었다. 그녀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지만 묘한 인상을 주는 키리시마를 눈여겨 보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2회 일치
* 이리나카를 규탄하기는 토가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자신도 이리나카 덕에 무사히 빠져나와 놓고는 말이다. 그녀는 모처럼 협력해주고 있는데 야쿠자 측이 너무 불성실하다고 투덜거렸다. 트와이스는 토가를 구원의 여신처럼 바라보며 칭송하고 사귀자고 치근덕거렸다. 토가가 그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슬픈 심정을 헤아려주었다. 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빌런 연합에 소개한 탓에 [[마그네]]를 죽게 했다고 누구보다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핫사이카이에 협조해주고 있는데, 정작 협조대상은 그걸 전혀 몰라주고 있지 않은가?
시가라키는 맨 얼굴인 채로 아까 하려던 설명을 이어갔다. 시에핫사이카이, 오버홀은 빌런 연합의 기동력을 깎으면서 연합의 유용한 인재들을 회유하려는 속셈이다. 바깥으로 끌어내 구슬려서 정식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장기말로 만들려는 수작. 저쪽은 처음부터 이쪽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시가라키도 마찬가지였다. 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시가라키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2회 일치
* 네모토의 개성은 "진실쟁이". 전직 사기꾼으로 그의 개성은 상대방의 본심을 강제로 끌어내며 때론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진실까지 끌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2회 일치
*[[오버홀]]의 계획. 그것은 에리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제품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뿌렸던 샘플은 명중후 1, 2일 만에 자연회복되는 결함품이었다. 에리의 몸에서 떨어진 "인자"는 곧 효과를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효과를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을까? 많은 연구와 실험. 투자와 희생을 거쳐서 오버홀은 마침내 꿈을 실현했다. 개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완성품. 하지만 쿠로노는 생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 달을 투자해서 겨우 다섯 발. 최악의 생산성. 오버홀은 지금까지는 아마츄어 수준의 설비였지만 사업이 시작되면 걸맞는 환경을 갖추고 채산성도 맞출 수 있을 거라 장담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2회 일치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 그때 [[토오가타 밀리오]]가 간호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병실로 들어선다. 밀리오는 자신도 중상인 것도 잊고 나이트아이에게 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나이트아이는 그저 "그릇"으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밀리오가 자신을 믿고 존경해주면서 차츰 자신의 긍지로 변해갔다며 유언을 남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2회 일치
* 이이다는 왜 자신이 폭주할 때 말려준 두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하려는 거냐며 힐난하는데 미도리야가 반박하려 하자 그를 때리며 "네가 쓰러져 있는 모습에서 형이 떠올랐다"며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어떻게 되겠냐며, 자신의 걱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냐고 묻는다
* 사실 "교전하지 않고 바쿠고를 구한다"는 목적은 궤변이나 다름없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2회 일치
* 올마이트는 "5년 전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며 올 포 원에게 달려든다.
* 워프능력은 맘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사실 5km 가량 떨어진 거리의 다수를 마음대로 이동시키는건 거의 제한이 없는 거나 다름이 없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2회 일치
* 올 포 원은 시무라 나나를 일커러 "이상만 앞설 뿐 실력이 되지 않았던 여자"라고 모욕한다.
* 시민들은 그 빼빼마른 몰골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올 포 원은 "정의의 상징"의 실상이 발각됐다며 즐거워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확실하게 올마이트를 죽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최대 최고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합성해 일격을 가하겠다고 선언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보고 젊은 시절 자신을 닮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비슷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2회 일치
* "이즈쿠 소년에게 제 모든 것을 쏟을 수 있게 해주실 순 없으신가요! 이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키고 키우겠습니다."
|| 이즈쿠 소년에게 제 모든 것을 쏟을 수 있게 해주실 순 없으신가요
- 낭만 주먹 . . . . 2회 일치
사실, 애초에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들이 낭만주먹이었다는 것 자체가 허구로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시기의 조직폭력배는 [[칼]]이나 [[도끼]]는 물론, [[권총]]이나 [[폭탄]] 같은 화기 까지 동원할 정도로 과격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야인시대]]에도 묘사된 심영 습격사건 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이 무렵 치안 상황이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깡패들이 흉기를 써서 사람을 위협하거나 폭력하는 사건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또 몸을 사리게 된 성인 조폭과는 달리 새롭게 성장하는 청소년 불량배들은 이러한 불문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흉기를 휘두르면서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태촌, 조양은 등은 이렇게 성장한 '신세대 조폭'이었던 것이며, 소위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몸을 사리는 시기는 고작 한 세대도 가지 못한 일시적인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네마와시 . . . . 2회 일치
* 사전교섭 : 협상, 회의 같은 것을 수행하기 전에, 미리 사전 교섭을 진행해두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미리 협상이나 회의에 나올 사람들에게 교섭을 하여, 실제 협상이나 회의를 원할하게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 협상, 회의의 사전교섭에서 나온 말로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작활동. 어떤 갈등관계가 예상될 때 주변에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미리 퍼트리거나, 사실을 미리 알려두는 작업이다.
- 노예 . . . . 2회 일치
같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금기시 되었으나, [[유럽]] 대륙에는 암암리에 사실상 노예인 [[농노]]가 존재했다. 근대 시기에 들어서 [[영국]], [[프랑스]] 등은 [[노예제|노예 제도]]를 철폐했지만 [[식민지]]에서는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현재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라서 노예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상 노예 상태에 있거나, 관습적으로 여겨지는 노예는 세계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암암리에 [[섬노예]]라는게 있다.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2회 일치
실제 광경을 상상해보면 살짝 무섭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사안의 실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본래는, 잘못을 깨닫고 미혹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 뉴 워리어즈 . . . . 2회 일치
[[DC 코믹스]]의 [[틴 타이탄스]]처럼 10대 영웅들의 팀인데 실제 틴 타이탄즈의 대박이 뉴 워리어즈 탄생에 영향을 줬다. 10대 히어로 팀이기에 [[어벤저스]]와 달리 젊은 히어로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지구의 [[노바]]도 뉴 워리어즈의 오리지널 멤버였다.
* 실루엣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2회 일치
문제는 이 능력을 지닌 것과는 달리 실제 전투는 니나가 하는게 아니라 그녀의 시녀 페가수스(리젤)가 싸워야 한다는 점. 배틀에 돌입하면 니나는 플레이어가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단순히 '지켜본다'라는 입장을 취하며 전투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페가수스는 능력치가 흑기사나 엘프에 비해 별달리 특별할 게 없는 수준.
그러나 만약 적이 실수로라도 니나에게 공격을 성공하게 되는 순간 입장을 180도 바꿔서 갑자기 적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니나의 특성을 이용해서 배틀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 니세코이/221화 . . . . 2회 일치
[[니세코이]] 221화. '''진실'''
밝혀지는 그날의 진실
- 니세코이/229화 . . . . 2회 일치
* 사실 이치죠네 파벌은 딱히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자경단 수준의 활동만 하고 있었다.
* 후우는 폴라랑 똑같은 말을 한다고 하는데, 폴라는 대학원을 거쳐 연구실에 들어갔다.
- 니쿠쟈가 . . . . 2회 일치
예를 들어, 1902년 쓰여지고, 1917년 개정된 『가정일본요리법(家庭日本料理法)』(오오쿠라 서점大倉書店)이라는 책에 「쇠고기 떡국(牛肉の雑煮)」라는 요리가 실려 있는데, 이름은 달라도 요리법이 니쿠쟈가와 다르지 않다.
마이즈루 니쿠쟈가 축제 실행 위원회(まいづる肉じゃがまつり実行委員会 )
- 다크 유니버스 . . . . 2회 일치
[[미이라(2017년 영화)|미이라]]가 2017년에 개봉했다. 늑대인간을 다룬 울프맨도 각본을 준비 중이라 하며 투명인간도 리메이크 소식을 밝혔다. 좀 더 진행되는 것을 봐야 알 터이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길맨, 반 헬싱도 영화화될 듯. 다만 미이라의 실패 이후, 계획이 취소되었다가 다시 재게되는 등 진행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상황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예정된 상황. 현재 투명인간이 나온 상황이다.
* 사실 유니버설의 고전 괴물 콜라보는 이 다크 유니버스가 처음이 아니다. 1943년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Frankenstein Meets the Wolf Man>이 나왔으며 휴 잭맨 주연 영화 <반 헬싱>은 흡혈귀에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한 스크린에 등장한다. 다만 배경 세계 연계는 아니었다.
- 닥터 시바나 . . . . 2회 일치
캐릭터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표본격. 안경, 대머리, 작은 키, 실험복 등 만화에서 나올법한 미치광이 과학자의 디자인이며 이러한 캐릭터 답게 슈퍼파워 없이 [[과학]]기술을 악용해 샤잠과 싸운다.
블랙 아담이 사라진 후에는 아담이 락 오브 이터니티의 문을 연 곳으로 향하는데 안에 들어가려 해도 보이지 않는 장멱 탓에 그러지를 못했다. 과학은 자기 가족을 구하는데 실패했으니 이젠 마법이라며 들여보내달라 하고, 그런 그에게 방 안에 봉인되어있던 미스터 마인드가 말을 걸어온다.
- 단두대 . . . . 2회 일치
단두대를 이용한 참수 처형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프랑스 혁명]] 시기 지롱드 파 20명은 고작 38분 만에 처단할 수 있었다. 이 신속한 처형은 공포 정치를 더욱 격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전통적인 참수형의 경우 현실적으로 한 명의 사형집행인으로는 하루 5명 이상의 처형도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참수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고, 또한 단두대에 의한 처형도 사라져 현재 세계에서 남아있는 실물 길로틴은 단 2대 뿐이다.
- 대라신선 . . . . 2회 일치
신선이라는 만큼 일단 상당히 위대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애매한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언급만 되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언급되는 걸 보면 나와봤자 별로 도움은 안될 것 같다.
- 대한민국 . . . . 2회 일치
일단은 반도국가지만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라고 주장하는 무장집단]]이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다.
2016년 10월, 대통령과 [[최순실|모 무속인]] 간의 커넥션이 발견되었다.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2회 일치
D&D 클래식 룰과 미스타라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횡스크롤 게임으로 만들었던 전작 [[던전스 & 드래곤스: 타워 오브 둠]]의 후속작이다. 전작에 비해 확실하게 나아진 밸런스와 늘어난 직업군, 마법, 특수 스킬을 구현함으로써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다.
기본적인 조작은 4버튼+1버튼. 공격(A), 점프(J), 선택(S), 사용(U)에다가 3~4인플레이시 장비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스타트버튼까지 필요하다. 간혹 일부 오락실에서는 기기의 문제로 4버튼밖에 없는 경우엔 점프나 선택버튼을 스타트버튼과 같이 연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 독이 든 성배 . . . . 2회 일치
* 대한민국 축구감독(…) 등 성공하면 엄청난 찬사를 받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욕설을 얻어먹는 자리에 주로 사용된다. 막장을 달리는 [[프로 스포츠]] 팀의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에도 이런 표현이 사용된다.
* 물론 실제로 이런 짓을 사용한다면 범죄행위. 또한 가톨릭 교리로서는 성혈을 오염시키는 행위이므로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이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2회 일치
* 냉혈동물(Cold-Blooded) : 변온동물(endotherms)이라고도 한다. 내부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기능이 없고, 대신 주변 환경에서 열을 얻는다.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이 있다. 냉혈동물은 의미를 곧바로 연결하면 '차가운 피를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체온에 변동이 있으므로 몇몇 동물은 인간 이상으로 체온이 치솟기도 한다.
온혈동물은 열을 생성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거의 모든 음식물을 열로 소모하고 있어, 포유류와 조류는 같은 무게의 냉혈 동물보다 훨씬 많은 음식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신체의 표면적에 비례하여 열이 손실되므로, 질량 대비 표면적이 적어진다.
- 드래곤볼 . . . . 2회 일치
원작에서는 오공이 나메크별에 탓던 것만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치치가 나메크별에 가겠다며 2호기를 제조하게 했으나 추락하여 실패, 3호기까지 만들게 한다. 3호기는 Z애니 107화에서 베지터가 타고 우주여행을 떠난다.
* 75화 : 개구리가 된 기뉴가 드래곤볼을 하나 가져가려 하지만, 개구리라 힘이 너무 약해서 실패. 드래곤볼을 지키고 있던 손오반에게 들키고 나서 도망친다. 이후 분홍색 암컷 개구리(…)에게 쫓겨다닌다. 포룽가가 나타났을 때 포룽가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키스마크)을 보아 당한듯?
- 디도(성우) . . . . 2회 일치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대원 재더빙판에서 [[치바 마모루|턱시도 가면]] 역을 맡게 되었다. 사실상 첫 주역 데뷔작이지만 '''평가가 좋지 않았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더 정진하겠다는 ~~[[대인배]]~~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하트 캐치 프리큐어!]]에서 [[최종보스]]인 [[듄(하트 캐치 프리큐어!)|듄]]을 연기할 때 캐릭터성을 잘 살리지 못한 반면 쿠루미 류노스케([[쿠루미 에리카]] 아빠), [[묘도인 사츠키]]([[묘도인 이츠키]] 오빠)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감안하면 과묵한 캐릭터와는 다소 상성이 안 맞는 듯.[* 반대로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의 [[제라싯트]]나 [[가면라이더 W]]의 [[마쿠라 슌]] 같은 [[개그 캐릭터]]에는 강점이 있다는 평. 목소리 특색은 부드러운 미남톤인데, 디도 본인이 워낙 밝고 개성있는 역에서 강점을 보이니 진지한 캐릭터보다는 밝은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듯 하다.] 하지만 3기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S]]에서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여전히 원판 성우인 [[후루야 토오루]]에 비하면 아쉽다, [[김일(성우)|김일]]이 더 낫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진지한 배역보다 밝고 가벼운 배역을 더 잘 소화하는 듯. 그리고 의외로 발성이 좋아 [[잔크로우|열혈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걸 보면 과거의 [[최재호(성우)|최재호]]와는 반대로 소리지르는 연기엔 강하나 진지하고 과묵한 배역엔 약한 것 같다.]
다만 턱시도 가면은 본인이 노력해서 매 시리즈마다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현재는 어느 정도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 톤이 내향적인 캐릭터마냥 다소 힘이 빠지고 여려지는 문제점은 끝까지 개선되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이지현(성우)|이지현]]의 완전히 안정된 [[츠키노 우사기|세일러문]] 연기에 비하면 호평이 덜하다. 이지현의 경우 밝은 소녀 캐릭터에 특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완전히 안정된 세일러문 연기는 [[최덕희|추억 보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혼연일체 수준이었다.]과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트 캐치 프리큐어!]]의 [[묘도인 사츠키]][* 이 쪽은 병약 속성이라서 여린 톤의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보면 차분한 캐릭터 중에서도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보다는 여리고 내향적인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사실 이는 디도 본인이 진지한 캐릭터에 완전히 적합한 성우가 되었다기보다 비록 디도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레온(턱시도 가면)의 캐릭터성이 상대적으로 디도가 맡기에 적합하게 바뀌어간 게 크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1기|1기]]의 레온은 쿨시크한 성격과 장난기가 공존하는 캐릭터였는데 디도는 비슷한 시기에 맡은 듄 또한 혹평을 들은 것처럼 쿨시크한 캐릭터에서 좋은 평을 들은 적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1기에서 디도의 레온 연기는 장난기만 살아있고 쿨시크함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느낌이라서 대차게 까였다. 그러다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2기]]를 기점으로 점차 레온의 성격이 부드럽게 바뀌어가고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3기]] 이후로는 개그로 망가지는 일도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디도가 소화하기에 편한 캐릭터성이 되었던 것. 부드럽고 온화하거나 소심한 캐릭터 내지는 밝고 활발한 개그캐릭터에 특화된 디도의 입장에선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한 캐릭터성도 어디까지나 1기 때에 비해 그럴 뿐이지 기본적으로 레온은 시종일관 온화한 캐릭터도, 시종일관 코믹스러운 캐릭터도 아니고 1기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지라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가 KBS판 성우인 [[김일(성우)|김일]]처럼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 톤이 되어야 하는데 다소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된 건 아쉬운 부분. 김일이 1기에서의 쿨시크한 레온과 2, 3기 이후로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하는 레온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더해진다.] 그 이후로 비슷한 캐릭터는 [[키즈 CSI 과학수사대]]의 [[키즈 CSI 과학수사대/등장인물#s-3.1|고진]]을 한번 더 맡았는데 1기 때의 레온 연기에 비하면 평가는 나았지만[* 하지만 디도가 진지한 배역을 맡을 때마다 나오는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그렇게까지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레온과 고진 이후로는 진지한 배역에 많이 캐스팅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후에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맡은 [[이고르(가면라이더 고스트)|이고르]]의 경우 처음에는 나름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28화를 기점으로 점차 개그형 악역으로 변해갔으니[* 애초에 이고르를 연기한 배우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도 중후한 카리스마 악역보다는 가볍고 얍삽한 3류 악역에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특촬물을 포함한 외화 더빙의 특성상 담당 배우의 외모까지 고려한 캐스팅을 해야 했으니 가벼운 인상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에 맞춰 가벼운 배역에 특화된 디도가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까지도 더빙 업계에서는 그를 진지한 배역에 그다지 적합한 성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라오우 . . . . 2회 일치
생전에는 공포의 패왕이자 최종보스 역할이었지만, 사후 2부에서는 왠지 이상화 되어 영웅적인 풍모가 돋보인다. 다만 공포에 의한 지배는 '필요악'적으로 묘사되는 등 왠지 모르게 악행을 설정으로 둘러치고 실드치는 느낌도 있어서 묘하다.
실제 키는 2미터 남짓인 듯 하지만 가끔 거의 4,5미터에서 10미터 이상은 되보이는 [[거인]]으로 그려지기도. 주먹 하나가 사람보다 더 크게 그려질 때도 있다.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2회 일치
약 147만 리터 가량의 맥주가 일제히 폭발하여 해일처럼 주변을 덮친 이 사건으로 9명이 사망하고 2채의 가옥이 파손되었는데, 사망자 유형을 살펴 보면 1명은 무너진 건물에 압사, 유아 2명을 비롯한 7명은 지하실에 유입된 맥주 때문에 [[익사]](당시 지하실엔 양조장 직원의 가족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맥주에 휩쓸린 사람들 중 1명이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2회 일치
2006년 [[허밍 어반 스테레오]] 2집의 객원보컬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인디 밴드 아키버드의 1집 《All Allowed》로 데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4&aid=0000130133 '핫'한 레이디제인! 그녀가 궁금하다.], 《스포츠경향》, 2010년 11월 8일</ref> 300 대 1의 경쟁률을 극복하고 발굴되고 나서 2009년 아키버드에서 탈퇴했다. 동년 [[홍대 (지명)|홍대]] 유명 실력파 밴드 [[티라미스 (음악 그룹)|티라미스]]의 멤버로 디지털 싱글 ‘슈팅스타’를 발매하였다. 이때 홍대에서의 많은 활동으로 ‘홍대여신’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2010년 10월 첫 솔로앨범 《이별 뭐 별거야》를 발표하였다. 인디 밴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2&aid=0002197578 '홍대여신' 레이디제인, 솔로 데뷔 선언], 《세계일보》, 2010년 10월 27일</ref> 2011년 11월 미니앨범 《Jane, another Jane》을 발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복고풍의 경쾌한 댄스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 前 남자친구인 [[사이먼 도미닉]]과 ‘여섯시 반’을 발매했으며, 이어 8월에 [[닥터심슨]]과 ‘Clinic 12.5%’를 합작, 발매하였다. 2013년 1월 9일 ‘Hello’의 발매에 이어 2월 15일 [[원써겐]]과 ‘New Story Part 5’의 발매, 9월 5일에는 싱글 음원 ‘일기 (Diary)’를 발매하였다.
- 로빈 . . . . 2회 일치
[[배트맨]]의 [[사이드킥]]. [[알프레드 페니워스]]와 함께 배트맨의 오랜 동료다. 초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이 가장 유명한 로빈이며 배트맨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 10대 히어로 팀인 [[틴 타이탄스]]에서도 주요 캐릭터다. 그러다보니 현 시점에서는 배트맨의 사이드킥만이 아닌 별도의 히어로 캐릭터이기도 하다.
[[초능력]] 없이 뛰어난 전투실력과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서 싸운다.
- 롬팩 . . . . 2회 일치
그러나 이 방법은 기술적인 한계로 회로의 접속에 문제가 생기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건전지의 전력이 약해는 등의 원인으로, 저장된 데이터가 소실하거나, 게임팩의 세이브 기능을 쓸 수 없게 되는 문제도 흔히 발생할 정도로 안정성이 좋지 않았다.
* 세가 새턴 : 새턴은 구조적으로 롬팩만으로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발매된 소프트웨어는 없지만.
- 류원기 . . . . 2회 일치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된 윤길자의 남편으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검사와 의사에게 뇌물을 수수하는 등 담합 및 횡령 등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유호윤|제목=‘여대생 청부살해범’ 남편에 징역 4년 6개월 구형|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783485|날짜=2014-01-04|확인날짜=2016-02-11|뉴스=KBS}}</ref> 1심 재판부에서 횡령 형의만 적용받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서재근|제목=法, '여대생 청부살해' 영남제분 회장 징역 2년 실형 선고(1보)|url=http://news.tf.co.kr/read/economy/1312481.htm|날짜=2014-02-07|확인날짜=2016-02-11|뉴스=더팩트}}</ref> 2014년 2월 바로 상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여대생 청부살인’ 주치의·남편 모두 항소 네티즌 “뻔뻔의 극치.. 무기징역도 아까워”|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2|날짜=2014-02-11|확인날짜=2016-02-11|뉴스=go발뉴스}}</ref> 구치소에 수감된 채 2심 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선고 공판에 출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여대생 청부살해’ 남편 영남제분 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주치의는 벌금형|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0/2014103002297.html|날짜=2014-10-30|확인날짜=2016-02-11|뉴스=조선일보}}</ref>
- 리얼리즘 FPS . . . . 2회 일치
[[1인칭 슈팅 게임]]의 중 특정 분류를 부르는 명칭 중 하나. 다른 FPS들에 비해 비교적 사실성을 추구한 부류다.
* 리얼해야 하니 현실의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다. SF나 판타지를 리얼하다고 할수는 없지 않는가.
- 마기/294화 . . . . 2회 일치
* 홍명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하지만 사실 홍패도 알고 있었다.
* 홍명은 머리를 깎아버려서 그런지 멀끔해진데다 태도가 성실해졌다.
- 마기/301화 . . . . 2회 일치
* 교섭이 성사된 분위기 속에 황제국으로 돌아온 알리바바는 무엇보다 큰 결실은 연홍옥에게 "무엇보다 큰 결실은 자기 나라를 자기 손으로 지켜냈다는 자신감"이라며 격려한다
- 마기/302화 . . . . 2회 일치
* 사실 황제국의 처지는 일본의 처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상식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 마기/312화 . . . . 2회 일치
* 알 사멘은 포기하지 않지만 모든 종류의 마법이 실패한다.
* 현재 백영은 겉보기엔 변화가 없지만 실제론 완전히 다른 인체로 치환된 상태. 루프는 그 안에 잠들어 있다.
- 마기/317화 . . . . 2회 일치
* 히나호호는 임챠크의 왕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신드바드가 왕으로서 전국민을 통합할 수 있었던걸 대단하다고 실감하고 있다.
* 요즘은 "손주가 크는게 유일한 낙"이라며 둘은 어느덧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 마기/324화 . . . . 2회 일치
* 우고는 자신에겐 시간이 너무 많았다며, 연구 끝에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신드바드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는 미지수. 루프로 완전히 돌아간 걸로 보였는데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상에서 다윗이 한 것처럼 그에게 접근해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성궁을 탈취할 생각인 듯 한데 "고지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로 보아 이미 방법은 연구를 끝낸 듯.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그와 다윗이 성궁에 있기 때문에, 실제론 그들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우고가 한 것처럼 보다 상위의 신으로 위상을 바꾸는 방식으로 우고를 처리하려 할 것으로 예상.
- 마기/325화 . . . . 2회 일치
*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글씨가 더럽다"고 팩트를 던지는데. 행방불명됐던 쥬다르다. 갑자기 돌아왔다 싶었는데 홍옥을 보자마자 할망구라고 부르질 않나 화장이 옅어졌다고 하지 않나 실례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알리바바가 반가움 반 황당함 반으로 언제 돌아왔냐고 묻는데, 사실 돌아오긴 백룡하고 같이 전날밤에 돌아왔다. 그런데도 어디 처박혀있었는지 얼굴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 마기/330화 . . . . 2회 일치
한편 커플링에 민감한 팬덤에선 나름 만족하는 부분도 있는데 샤를르칸X야무라이하가 실현, 스파르토스X피스티도 실현. 신드바드가 루프를 조작한 영향인지 갑자기 커플이 탄생했다.
- 마기/339화 . . . . 2회 일치
* 백룡은 자신의 황제로서 힘을 누님 홍옥에게 넘겼다고 말한다. 분명 자신은 패배한 황제지만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재건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실제로 백룡은 현실에서도 홍옥에게 황제자리를 넘기고 홍옥은 그 힘을 바탕으로 황제국을 되살렸으니 그다운 선택이다.
- 마기/346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자신이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마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 일라에 대한 이야기도 잊고 "다윗의 확신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알리바바의 말대로 다윗은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고 성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그걸 막기 위해 되살아난 건데, 정작 그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다윗이 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긴 커녕 회유당해 하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는 김에 [[우고(마기)|우고]]와 일곱 진들 조차도 그의 편이 되어버린 것도 다시금 강조한다. 신드바드는 새삼 그동안 성궁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그가 생각에 빠진 한 편 아르바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일 일라, "그 분"의 힘을 되찾기는 커녕 자신의 힘 조차 잃고 말았고 이제는 그 분의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그녀는 문득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깨달은 그녀는 지금껏 실감하지 못했던 적막감에 빠져든다.
- 마기/348화 . . . . 2회 일치
* 그의 "대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순간적으로 연결하는 마법이었다. 이론적으론 일 일라가 있는 차원 조차 현세로 연결할 수 있고, 알리바바 자신이 실증했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말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파르테비아의 고층건물처럼 높은 건물을 1층부터 꼭대기까지 주파하는 식이다.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층 그 자체"를 없앨 수 있으니까. 각 층의 천장이 없어지면 맨 꼭대기에 있던 존재 조차 "같은 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은 층에 있게 되면 누가 누구의 운명을 쥐고 있는건 불가능하다. 신드바드의 방법은 "거대한 힘"이 필요한 반면, 알리바바의 방법은 적은 힘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실로 명쾌한 해답. 알라딘도, 알리바바를 무시했던 아르바도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신드바드도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는데.
- 마기/351화 . . . . 2회 일치
* 다윗은 신드바드가 자신의 신이라 믿었지만 그가 자신의 계획을 중지시키자 실망하고 "역시 그는 나의 포석에 불과했다"며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신드바드의 변절에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멈춰선 자는 돌맹이나 다름 없고 "나아가는 자"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 말한다.
- 마기/352화 . . . . 2회 일치
* 다윗이 직접 알라딘을 내리친다. 알라딘이 공간을 비틀어 튕겨내지만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틈이 생긴다. 다윗이 알라딘의 빈틈으로 공격을 날리며 자신의 확신은 실현되며 운명을 볼 수 있는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특이점이라고 외치는데, 그 순간 다윗의 신체가 갈라지면서 신드바드가 나타난다.
다윗은 그렇게 둘 순 없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이쪽에서 할 말이라며 이제야 "사치스러운 미래"가 손에 들어올 것 같다고 한다. 알라딘의 뜻도 같다.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이 실현가능한 미래가 눈 앞에 있다.
- 마블 코믹스 . . . . 2회 일치
국내에서도 [[캡콤]] 등의 게임을 통해 이전부터 인지도가 있었으며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등 캐릭터들이 실사영화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만들어지면서 더 큰 인지도를 지니게 되었다.
미국 만화 회사이기에 내놓는 만화들도 영어 실력이 필요하나 몇몇 만화들이 번역되어 국내에도 정발되었다. '시크릿 워'가 그런 경우.
- 마왕이 나타났다 . . . . 2회 일치
* 창세기전 1,2 : 실버 애로우와 다크 아머의 대결로 시작하더니, 베라모드의 정체와 신들의 음모가 밝혀지고 나서 전반부는 거의 없던 걸로 되고 마왕 엔딩으로 돌진한다.
*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 처음에는 정치-전쟁물 운운하는 전개가 되더나, 루카비가 나타나고 급속도로 마왕 엔딩으로 돌진한다. 사자 전쟁이란 대체. 다만 이는 철저히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실드쳐줄 여지는 있다.
- 마치킨 . . . . 2회 일치
일반적으로 마치킨은 돈을 빌릴 때 특별히 사용처 제한이 없지만, 그 만큼 금리가 높다. 사무실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대출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며, 상환 할 때는 사무실에 직접 현금을 가져가거나 계좌이체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맥닐의 법칙 . . . . 2회 일치
이러한 현상이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대항해시대]]이다. 수천년 동안 교류가 거의 없던 구대륙 유라시아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생물학적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유럽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선전했고, 원주민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타락한 생활을 한 데 따른 징벌이라고 주장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신이 질병 앞에 무력하고 가호를 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치자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 맨불 . . . . 2회 일치
괴력을 지닌 빌런. 원래 잡범이었는데 미스터 클라인이 특별한 혈청을 얻고, 이 혈청을 실험해볼 사람을 납치차려는 목적에 몇명의 범죄자들과 같이 고용되었으나 [[데어데블]]이 이를 저지. 결국 클라인이 그에게 강제로 혈청을 주사하면서 지금의 황소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버린 것이 데어데블 책임이라며 몇번이고 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 모레아 전제국 . . . . 2회 일치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상교통이 단절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영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영토가 사실상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식으로 고작 한 줄 남짓 언급되는 등.
- 몰맨 . . . . 2회 일치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무술]] 실력도 뛰어난데다 [[무기]]가 내장된 특수한 [[지팡이]]를 다룬다. 그리고 다수의 [[몰로이드]](Moloids)와 [[괴물]]들을 부하로 두고 있다. 시력은 지하 세계를 탐험하다 손상되어서 항상 고글을 착용. 다만 귀가 밝다.
[[지구공동설]]을 믿고 [[몬스터 아일랜드]]의 [[동굴]]로 내려가 지하 세계를 발견했으며 그곳의 몰로이드와 괴물들을 부하로 만들어 지상을 침공했다. 그러다 판타스틱 포와 충돌해 실패.
- 무협/용어 . . . . 2회 일치
* 본녀 : 본좌의 여성판. 사실 본좌를 여성이 쓰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
* 무복(武服) : 무림인(武林人)이 입는 옷을 무복이라 부른다. 하지만 독자적인 조어에 가까우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다. 본래 중국에는 특별히 무술인을 위한 복장이 있는게 아니었으며 일반인이 입는 것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소림사의 경우 특유한 무승복(武僧服)이 있거나, 도가 문파의 경우 도복(道服)을 입지만 종교에 관련된 복장이지 무술을 위한 복장이 아니다.
- 문맹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순히 읽고 쓰는 게 아닌 어떠한 문장 내용을 읽고 뜻을 파악하는 '실질문맹률'이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OECD와 캐나다 통계청에서 만든 IALS(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번역하여 2001년에 조사한 결과. (다른 OECD 국가는 1994년 ~ 1998년 사이에 조사.)]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2회 일치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이 일본 전국 무사들의 동경을 받아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봉급을 확실하게 쳐줬기 때문'''이다(…). 전투에 나섰지만, 조정에서 공적인 전쟁이 아닌 '사투'[* 사적인 싸움.]로 처리하여 무사들이 은상을 받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하치만 타로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종군한 무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은상을 지급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가 하치만 타로가 후세에도 명성을 얻게 된 원인이며, 겐지 씨족이 무사의 동량으로 여겨지게 된 기원이다.
- 미도리야 이즈쿠 . . . . 2회 일치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를 동경하는 소년. 초능력이 일상화되어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라 불리고, 만화 속에서나 나오던 히어로가 현실의 직업이 된 세계에서 소수가 된 무개성이다. 비록 무개성인데다 작은 체구에 소심해도 착한데다 위기를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등 히어로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세상은 박하게 대하고, 일단은 소꿉친구라 할 수 있는 [[바쿠고 카츠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보통.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최고의 영웅이자 어려서부터 동경해온 히어로인 [[올마이트]]와 만나 히어로의 길을 걷게 된다.
* 어려서부터 언젠가 히어로가 됐을 때를 대비해 개성 보유자들을 관찰해와서 그런지 분석 실력이 우수하다. 그러다보니 필기도 자주 한다.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2회 일치
샐비지선에서 일하는 노동자. 2등 시민이 되려하며 자기 등급 점수를 10점 깍은 샐비지선 리더인 파치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품성에 문제가 있는 인물인 것이 실수를 저질러서 큰 피해가 났는데 파치는 등급 점수를 깍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관대한 처분에 적반하장격으로 굴어서 루카가 한마디 할 정도. 이후 몬스리에게 파치가 라오 박사라는 것을 밀고하나 이외에는 딱히 이용가치가 없다보니 몬스리가 정보만 듣고 가버리면서 무시되었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루카에 의해 사고로 크레인에 깔려 사망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코난을 키워온 노인. 이름이 안나와서 본명은 불명이다. 과거 지구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한 일행의 일원이며 코난의 부모와는 동료였다. 라나가 떠내려오고, 그런 라나를 쫓아 몬스리 일행이 나타난 것이 계기가 되어 치명상을 입어 사망했다. 나이는 64세.
- 민도 . . . . 2회 일치
기원은 '이거다'라고 볼 만큼 확실하게 사용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친일문학가인 김동인의 글에서도 민도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의외로 잘 안쓰는 단어지만 확실하게 과거에는 쓴 적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이 민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의미의 "계몽"과 상통되는 의미로 쓰였다. 이후의 자료에서는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문명수준'을 뜻하는 말로 나오지만, 최근의 인터넷 자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21세기에서 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로 돌아온 느낌으로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2회 일치
* Resident Evil Degeneration (2008)[* 동명의 영화를 베이스로 만든 [[iOS]] 게임이다. 팬이라도 돈이 아까울 듯한 사실상 망조게임.]
게임 내용은 부도덕한 거대 기업 [[엄브렐러]]가 몰래 개발하던, '생물체를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괴물로 변이시키는' 바이러스 병기가 유출되어 사람은 물론 벌레까지 감염되어, 게임 배경이 [[좀비]]와 별 희한한 괴물들로 득실대는 막장이 된 와중에 용감하고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들(경찰 관계자인 경우가 많다.)이 각종 화기를 능숙하게 휘둘러 온갖 몬스터를 처치한 후 탈출하는 것이다.
- 바키도/109화 . . . . 2회 일치
* 애도를 되찾은 무사시는 실전에 앞서 연습하는 시간을 가진다.
* 무사시는 마네킹도 단숨에 베어버리면서 실력을 과시한다.
- 바키도/115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실제 무사시의 기술은 잡는 정도도 아니고 날개만 잡아서 떼어내는 것.
* 만화 상황이 거의 초현실적이다.
- 바키도/123화 . . . . 2회 일치
* 전의도 식욕도 상실한 피클은 무사시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인다.
*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피클.
- 바키도/130화 . . . . 2회 일치
* 격투장은 정적 속에서 베었다는 하나의 사실만이 메아리친다.
* 무사시는 얼굴의 상처를 만지며 "화려하게 벴지만 그게 실마리가 됐다"고 중얼거린다.
- 바키도/133화 . . . . 2회 일치
정작 승자인 모토베의 의견은 다르다. 그렇게되기까지 "몇 번이나 베어졌던가"라고 씁쓸하게 술회한다. 무사시가 한마 유지로와 겨루던 때부터, 그는 몇 번이나 무사시의 무검에 베어졌던 바였다. 무사시는 그런건 그저 "통보"일 뿐이라며 실제 베는 것관 다르다고 단언한다.
* 모토베가 이번엔 "그럼 손대중 한걸 말한 참이냐"고 말한다. 자신이 적일 수는 있어도 "강적"이진 않았다고 말이다. 실제로 무사시의 검은 모토베의 방어구를 아득히 능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게다가 피클에게 한 것처럼 "귀퉁이"를 베어내는 방법도 쓸 수 있었다. 그는 일부러 손대중을 하며 상대의 숨통을 끊지 않은 것이다. 대답이 없는 무사시에게 모토베가 "다 들켰다"고 지적한다.
- 박녹주 . . . . 2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이처럼 판소리, 그 가운데에도 흥보가 전승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스토킹 상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대가 시대였고 김유정이 훗날 소설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한동안 짝사랑으로 포장되었으나, 사실 김유정의 행동거지는 악질 스토커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박녹주가 자신의 마음을 안 받아준단 이유로 그녀에게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박녹주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납치하려고도 들었다.[* 심지어 명목상이지만 박녹주는 그때 유부녀였다.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저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박녹주는 김유정이라면 질색을 했다. 특히 김유정 때문에 박녹주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한 행동은 사랑을 핑계로 극심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김유정에게 동정심이 없진 않았는지 김유정의 친구인 안회남이 김유정이 죽고 난 뒤 오히려 자신더러 김유정을 죽인 살인자라며 매도하는 안회남에게 그때 손 한번 잡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거라고 동정했다고 한다. 스토커에 시달리다 못해 그의 친구마저 되려 자신을 매도하려 했음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대인배다.
- 박보생 . . . . 2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경력}}}''' ||<(> 김천시청 기획실장[br]김천시청 행정지원국장[br]김천시청 사회사업국장[br]김천과학대학 책임연구위원[br]국제배드민턴연맹 한국대표단장[br]김천시체육회 회장[br]제18~20대 경상북도 김천시장[br]전국혁신도시지구 협의회 회장 ||
김천농림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천시청에서 기획실장, 행정지원국장, 사회산업국장, [[경부고속철도]] 김천역 유치 행정지원단장, 예술단 부단장, 인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 박순석 . . . . 2회 일치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전시원호대책중앙위원회에서 피난민 구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원내부총무, 경상북도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참의원]] 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61년 [[3.15 부정선거]] 연루를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 박승욱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박승임 . . . . 2회 일치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 [[이량]] 등이 제거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간 박승임은 이후 병조 참지와 승정원 동부승지를 거쳐 진주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고을의 부로(父老)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향약을 실시하며 백성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1568년(선조 1) 병으로 사직,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으나 1568년 특명으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절단의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1574년(선조 7) 경주 부윤으로 발령되었고 이후 1577년(선조 10) 강화 부사, 1578년(선조 11) 여주 목사 등으로 부임했다. 지방관을 역임하는 동안, 박승임은 세금을 가벼이 하고 진휼을 실시하여 민폐를 제거하였다. 한편 [[김안국|모재 김안국]] 제향한 기천서원(沂川書院)을 건립하는 등 민생의 안정과 교화의 보급에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 이때 어사(御史)로 파견된 정이주(鄭以周)는 그의 치적을 조사하여 박승임의 치적이 가장 뛰어나다는 ‘치행제일(治行第一)’이라는 보고서를 올렸고, 선조는 박승임의 공로를 치하하여 특별히 옷을 하사하였다. 이듬해 박승임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려 하자 백성들은 그가 가는 길을 막고서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였다고 한다.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비고
- 박승호(정치인) . . . . 2회 일치
용인대학교 졸업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기 공채로 입사하여 [[노태우]] 조직위원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김영삼]] 정부 때 관선 [[봉화군]]수를 지냈다. 이후 내무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경상북도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 박옥수 . . . . 2회 일치
기쁜소식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딕 욕은 2010년 9월 30일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교회에는 성직제도가 없어야 된다고 그들(故[[유병언]], [[이요한]], [[박옥수]])에게도 가르쳤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6월 2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진○○(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측 변호사는 박씨가 딕욕 선교사에게 안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박씨는 4월 20일 수백억 원의 주식을 사기로 판매했다는 혐의로 전주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현재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다.) 진○○ 측 변호사는 미국의 딕욕 선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딕욕 선교사가 박씨에게 목사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답해왔다며 박씨는 가짜 목사라고 밝혔다. [[http://hdjongkyo.co.kr/news/view.html?section=22&category=1007&no=14622|기사 전문]].
- 박칠용 . . . . 2회 일치
* [[2015년]] [[MBN]]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 각종 단역
* [[2016년]] [[TV조선]] 《[[이것은 실화다]]》 ... 각종 단역
- 박태준 (작곡가) . . . . 2회 일치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남(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태준 가곡집〉 등이 있다.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박홍우 . . . . 2회 일치
*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의 기준, 헌법재판의 이론과 실제: 금랑 김철수 교수 화갑기념논문집, 박영사 (1993)
* 공판중심주의적 심리진행 방법, 재판자료 제104집 : 바람직한 민·형사소송 실무운영방안, 법원도서관 (2004)
- 박희광 . . . . 2회 일치
1924년 보민회 이용구와 대표적인 친일파인 일진회 최정규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박희광은 1924년6월7일 상해임시정부(김구 선생)의 지령으로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봉천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이날 저녁 대서관(大西關)에서 군자금을 탈취하고, 금정관(金井館)에서 다시 군자금 300엔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일본, 중국 경찰과 총격전끝에 현장에서 김병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광추는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 반지닦이 . . . . 2회 일치
영화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면 한번 웃고 넘어갈 퀄리티였으나 사실 영화부터가 병맛이며 사실 나올 때부터 망작취급 받았다. 덕분에 이 오역 자막은 한국의 DC 코믹스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망한 영화에는 'OO닦이'라는 별명이 붙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 발달장애 . . . . 2회 일치
선천적인 [[뇌]] 기능의 장애가 원인으로, 유아기에 발달이 지연되는 것을 뜻한다. 정신장애, 지적장애가 함꼐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발달장애를 주위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해나 잘못된 대응을 반복하는 경우. 자신감을 상실하여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이 될 수 있다.
- 방이설화 . . . . 2회 일치
신라시대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 방이는 가난하여 구걸을 했지만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종자를 구걸했는데, 동생은 성격이 심술궃어서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방이는 그걸 모르고 누에와 씨앗을 열심히 가꿨는데, 누에알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난 누에 한 마리가 소처럼 커졌으며, 질투가 난 동생은 누에를 죽였는데 사방에서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만들어줘서 방이은 큰 부자가 됐다.
종자에서 이삭이 하나만 났는데, 새 한 마리가 이삭을 물고 달아나서 방이가 새를 쫓아 산 속에 들어갔다. 거기서 방이는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금방망이를 꺼내서 돌을 두드려 바라는 대로 음식을 꺼내는걸 보게 된다. 방이는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놓고 간 금방망이를 주워가서 돌아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된다.
- 배재준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4월 26일]]<br>[[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구원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 배트걸 . . . . 2회 일치
초능력은 없으며 뛰어난 전투실력과 장비를 활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물론 실사 시리즈에서도 등장.
- 배트맨 . . . . 2회 일치
초능력은 없다. 그러나 뛰어난 전투실력과 머리, 막대한 재산이 기반이 된 배트모빌과 같은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해서 싸운다.
== 실사영화 ==
- 백상원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백이소 . . . . 2회 일치
고려 때 [[박경순]](朴慶純) 일당의 난을 진압한 [[청도]] 호장 [[백계영]](白桂英)의 후손인 선략장군(宣略將軍) [[백희]](白熹)의 둘째 아들로 [[경주부]] 서면 부산촌(富山村) 출신이다. 풍채가 크고 힘이 출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선조25) 6월 [[경주]]지역 의병장으로 경주부윤 [[윤인함]], 판관 [[박의장]]과 함께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다. 노모와 아내를 산 속에 피신시킨 후 산에서 내려와 가복들을 이끌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무찔렀다. [[1594년]]([[선조]] 27)에는 갑오별시 병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봉사에 특제되었다.<ref>《[[부암실기]]》</ref>
* 부암실기(傅巖實記), 백수장(白受章)
- 백진희 . . . . 2회 일치
| rowspan="2" | [[다나슈리 카툰|타나실리]]
<!--실제로는 2008년이지만 영화가 2009년 개봉해 2009년부터 활동하였다..-->
- 베타보레 . . . . 2회 일치
사실 한국 오덕계에서 흔히 쓰는 [[메가데레]]는 실제 일본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말.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홀딱 빠졌다는 표현을 할 때는 베타보레를 쓴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2회 일치
2월 29일에는 일본 국회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桜里) 민주당 의원이 이 블로그에 대해서 거론했으나, [[아베 신조]] 총리는 "익명인 이상 실제로 진실인지, 내가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으며, 의원석에서는 "누가 (블로그에) 쓴거야", "(질문자는) 제대로 (쓴) 본인을 내놔."라는 야유가 날아왔다고 한다.
- 보통국가 . . . . 2회 일치
우익들이 말하는 '보통국가'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준이다. 현재 [[국제연합]] 체계의 '보통국가'는 일본의 평화헌법과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만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평화헌법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 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실 내용상으로는 별 차이 없다. 따라서 현재 체계에서 딱히 일본이 다른 나라들보다 국제적 권리에 있어서 더 강한 제약을 받는 것은 '''전혀 없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2회 일치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 브로포스 . . . . 2회 일치
브로들을 조종해 체크포인트를 통과하고, 보스를 때려잡아서 지역을 해방시킨다. 만약 조종하고 있던 브로가 죽으면 다른 브로로 교체된다. 남은 목숨이 없다면 임무 실패.
지역을 해방시키기 위해 확보해야할 곳. 깃대의 모양을 하고있으며 확보시키면 성조기가 계양된다. 브로가 사망할 시 새로 투입되는 브로는 마지막으로 확보한 체크포인트에 투하된다. 무전탑 모양을 한 체크포인트도 있는데, 이 체크포인트는 임무 실패후 다시 시작할 때 사용되는 체크포인트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2회 일치
* 드디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의 팀이 시합. 그런데 세 번재 멤버는 곧 죽을 것 같은 관상의 묘한 아저씨였다.
* 노엘도 아무 생각없이 공격조를 자원한건 아닌데, 그녀가 치고나가면 반드시 솔리드가 쫓아올 거라는 계산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
- 블랙 클로버/132화 . . . . 2회 일치
* I팀과 P팀의 사실상 결승전. [[노엘 실버]]와 [[엔 링가드]]는 I팀의 두 명이 공격해 오자 자군의 크리스탈을 수비한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공격을 맡아 돌격. I팀은 [[릴 부아모르티에]]가 크리스탈을 수비하자 유노와 격돌한다.
- 블랙 클로버/54화 . . . . 2회 일치
아스타는 백야의 마안 포로가 잡힌 지하실로 인도된다.
* 한편 마법제가 심문을 마쳤다고 단장들을 심문실로 모이게 하는데
- 블랙 클로버/60화 . . . . 2회 일치
* 대신관은 경악하고 야미는 "저 멍청이들(검은 폭우단원) 실력이 계급대로라면 말이야."라고 너스레를 떤다.
* 각 단원별로 실력발휘를 해야 하니 각각의 특기와 마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걸로 예상된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2회 일치
* 사실 쫓기고 있던 고슈는 그레이가 변신한 거였다.
* 적의 넝쿨 마법이 풀리면서 고슈와 그레이도 풀려나는데, 챠미는 아직도 진짜 고기가 있는줄 알고 있다가 마법이 풀리면서 대실망한다.
- 블랙 클로버/73화 . . . . 2회 일치
* 카호노와 키아토도 회복 중. 키아토는 노엘 실버에게 반해버린다.
* 노엘 실버는 카호노와 키아토를 문병하러 왔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2회 일치
* 야미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 방법으로 실적을 보여라"라고 말하며 "당신이 했던 말"이라 말한다.
* 그 말을 들은 마법제는 흐뭇해하며 아스타에게 또 하나의 실적을 쌓았고 한 걸음 마법제게 다가갔다고 칭찬한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2회 일치
* 사실 깐깐해 보이는 쪽이 리더 같은데, 진형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지시했음에도 무시하고 돌격한 것.
* 사실 챠미는 그냥 유노랑 만나고 싶어서 떡밥을 문 것이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얼마 후. 리히트가 살던 마을은 "인간"의 습격을 받는다. 이곳은 본래 인간들이 모르는 땅이었고 유일하게 "그 인간"만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리히트의 동족들은 그가 배신했다고 원망하며 죽어간다. 그를 친구라 불렀던 리히트도 절망적인 얼굴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바라본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절규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이 모습은 절망의 베토가 회상하던 그 장면과 같다.
* 개안한 파나는 샐러맨더의 화염 마법에 더해 얼음마법과 바람의 마법까지 사용한다. 샐러맨더는 더욱 크고 강력하게 진화했고 열풍 공격으로 실이 타버려서 바네사가 아스타의 움직임을 지원하지 못한다. 결국 핀랄의 공간마법으로 회수. 바네사는 말도 안 되는 파워업이라고 작작 좀하라고 빈정댄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2회 일치
* 파나는 남아있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직도 저만한 힘이 있다며 경악하고 아스타는 마지막 설득까지 실패하자 실망한다. 바로 그 모습을 젤 일행이 발견한다. 이들은 아스타만이 아니라 정령마법 구사자가 있는걸 보고 곧바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린다. 마침 라드로스도 그들을 턱 밑까지 추격한 상태.
- 블랙 클로버/93화 . . . . 2회 일치
* 마르스는 아스타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우기 전후로 많은 강자들을 상대했지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또한 신기한 인물이기도 한데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상대 조차 설득하고 도우려 하는 인물은 클로버 왕국에서도 아스타 정도였다. 끝없는 이타심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아스타야 말로 "진정한 기사"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소용돌이치던 마력의 열기가 좌우로 갈라지며 흩어진다. 샐러맨더의 마력이 사라지자 [[노엘 실버]]는 그들이 해냈다고 흥분한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2회 일치
* 마르스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다며 자책한다. 파나는 그의 탓도 아니고 이젠 이렇게 만났지 않냐고 말하고 마르스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커플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화제를 좋아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와 [[핀랄 룰러케이트]]가 격하게 반응하는데, 특히 저런 소꿉친구도 드라마틱한 썸씽도 없는 핀랄은 피눈물을 흘린다. [[노엘 실버]]도 괜히 "나는 전혀 부럽지 않다"며 아스타를 두들겨팬다.
그때 젤과 아스타가 동시에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젤은 급격히 증가하는 마력을, 아스타는 미심쩍은 기를 숲에서 느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하기도 전에, 숲으로부터 마법공격이 쏟아진다. 젤은 뒤늦게나마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외쳐보지만 폭격처럼 쏟아지는 마법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 블리치/675화 . . . . 2회 일치
* 이건 사실상 폭주 상태로 정신 상태도 고양이처럼 변한다
* 사실 만해이거니 생각했는데 순홍의 바레에이션이었다.--얜 참백도가 없는 건가?--
- 블리치/677화 . . . . 2회 일치
* 우라하라 키스케의 만해는 "고쳐 만드는 능력". 일정한 영역 안에서 무엇이든 고치거나 갈라진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아스킨의 몸을 순식간에 갈라버렸고 자신의 상처는 순식간에 고쳤다. 마치 실로 봉합한 듯한 모양.
* 사실 팬들이 염원했던건 할리벨 쪽이었을 텐데...--능욕루트인지 아닌지--
- 블리치/686화 . . . . 2회 일치
* 토시로는 "배려가 간파당했다"고 비꼰다. 사실 뱌쿠야도 딱히 숨길 작정은 아니었다.
* 사실 제라르가 유하바하나 하쉬발트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 블리치/696화 . . . . 2회 일치
* 아이젠은 올마이티라 해도 경화수월로 간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사실이었다.
* 그런데 이 모습은 사실 유하바하가 이미 봤던 장면.
- 블리치/698화 . . . . 2회 일치
* 유하바하는 10년 전 이치고가 베었을 때 죽었고 생과 사를 경계없이 만들려고 했던 것이 실패해 아쉽다며 숨을 거뒀다.
* 중대발표의 정체는 실사화 발표. 후속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 비지란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Illegals - . . . . 2회 일치
거구의 남성. 이름에 어울리게 두 손에 넉클을 끼고 있다. 통상적인 히어로와 달리 면허 없이 활동하는 무면허 히어로이나 실력은 확실해서 [[아이자와 쇼타]]와 싸울 정도다. 한편 아이자와와 싸우면서 '''무개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개성을 폭주시키는 약물을 쫓고 있다.
- 빈스 맥마흔 . . . . 2회 일치
사실 그는 [[게이]]였다. 특히 덩치크고 근육이 많은 근육맨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게이로서, 이것이 그가 레슬링 산업에 빠진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었는데 이는 그가 보수적인 [[공화당]]의 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빈스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진실이다.
- 산바람 . . . . 2회 일치
입선 이전에는 [[미얄 시리즈]]에 나오는 [[말뚝이(미얄 시리즈)|말뚝이]] 탈을 실제로 만들어 사인회에 난입한 전적도 있는듯.
*《붉은 송곳니》
- 세미스텔스 . . . . 2회 일치
[[스텔스 기술]]이 부분적으로 적용된 [[전투기]] 등 군용 항공기를 뜻하는 단어. 엄밀하게 어떤 기종이 세미 스텔스라고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항공 역학과 전투 만이 아니라 [[RCS]]를 줄이기 위한 스텔스 기술을 어느 정도 적용하려는 노력이 들어간 전투기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사실 스텔스 기술과는 달리 뭔가 명확한 의도가 있는 엄밀한 의미라고는 볼 수 없고, "완전 스텔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스텔스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군용기 마케팅적인 용도의 단어에 가깝다.
세미스텔스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밀덕들은, 결국 실전 상황에서는 다양한 무장을 하면서 RCS가 늘어나고 결국 스텔스기보다는 비스텔스기와 별 차이 없는 RCS 밖에 나오지 않게 되므로, 세미스텔스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세미스텔스 옹호론자들은 그래도 큰 돈 들여서 여러 회사들이 만든 것이니까, 쓸모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런 주장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도박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스텔스만은 못해도 세미스텔스 역시 상당한 전술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 세조 . . . . 2회 일치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한명회]] 등을 비롯한 모사나 왈패들을 모으며 정국 불안을 주시하다 동생 [[안평대군]] 일파가 정변을 꾀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쳐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참살하고 궁을 장악하여 실권을 잡는다(계유정난). 그 후 반 수양대군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단종을 협박하여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재위 기간동안 민생을 돌보는 정치를 했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의 치세에 일어난 각종 옥사나 반란(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은 조선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고, 또한 이러한 변란의 여파로 인해 세종 조에 개척한 북방 영토 중 일부(4군 지역)를 관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정통성이 완벽했던 조카를 상대로 찬탈했다는 사실은 정치와 관계없던 민초들에게도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여 세조와 관계된 야사나 민담은 좋은 게 없을 정도이다.
- 손병조 . . . . 2회 일치
* 1994년 : 대통령비서실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파견근무
* 2000년 : 관세청 기획관리관 기획예산담당관실 기획예산 담당
- 송종호 (1956년) . . . . 2회 일치
* 2008.03 ~ 2010 :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중소기업비서관
- 송호창 (1967년) . . . . 2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1-10-9}}
* [[2012년]] [[9월 27일]] [[문화일보]]의 '송 의원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캠프로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기사에 대해 그의 보좌진이 문화일보 기자에게 약 20분 동안 [[안철수]] 캠프로 갈 생각이 없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했으나 [[10월 9일]] 그는 [[안철수]] 캠프 합류 공식선언.<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2701033623236004안철수, ‘새 정치 하자’ 전문가 의기투합… ‘실험적 리더십'] 문화일보 2012-09-27</ref><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01101070723236002 “安캠프 안간다”던 송호창…] 문화일보 2012-10-11</ref>
- 슈퍼걸(드라마)/1시즌 1화 . . . . 2회 일치
카라는 윈을 옥상으로 불러내서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윈은 카라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는 건 줄 오해했다가 사실을 고백해도 믿지 않는다. 카라가 투신했다가 날아올라 보이자 겨우 믿는다.
한편 사실 비행기 추락은 외계인 범죄자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외계인 발톡스는 "장군"의 도착에 대비하라는 지령을 받고, 특히 카라의 어머니 알루라에게 원한이 있어 카라에게 격렬한 증오심을 드러낸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2회 일치
카라와 그랜트는 라이브 와이어의 공격에서 도망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경비실에 가라고 하며 피신시킨다. 라이브와이어가 그랜트를 공격하려 하자 카라는 슈퍼걸이 되어 나타난다. 카라는 그랜트를 도망치게 하고 라이브와이어와 대결한다. 라이브와이어는 엘리베이터를 추락시키는데 카라가 날아가서 구출한다.
카라는 대결중에 위기에 몰렸다가 봉인 장비를 사용하려고 하지만 라이브와이어가 눈치채서 실패한다. 라이브와이어는 카라를 죽이려고 격렬한 전격을 퍼붓는데, 그랜트가 나타나서 레슬리를 설득한다. 그 떄를 노려서 카라는 지하에 있던 수도관을 완력으로 뜯어서 라이브와이어에게 뿌리고, 라이브와이어는 물에 닿자 전력이 방전당하여 쓰러지고 만다.
- 슈퍼맨 . . . . 2회 일치
* 붉은 태양
== 실사영화 ==
- 슈퍼머슬봄버 . . . . 2회 일치
그러나 레슬링게임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해보면 나름대로 꽤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대쉬와 로프 반동을 이용한 스피디한 공방은 이 게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백미.
현재는 오락실에서 찾아볼수 없어서 대전이 불가능하지만 넷플은 가능하다.
- 스트레인지리얼 . . . . 2회 일치
가상 세계이니만큼 [[미국]], [[러시아]], [[독일]], [[스페인]] 같은 실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오시아, 유크토바니아, 벨카, 사핀 같은 이에 대응되는 국가가 존재한다.
과학이 현실 세계에 비해 발달해있다. 1995년에 [[레이저]] 병기가 전술 레이저 체계(Tactical Laser System, TLS)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였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2회 일치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가 패배하고, 프랑코 독재정부가 세워지자 스페인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한 제2공화국의 주요 인사들이 국외로 탈출하여 세워진 [[망명정부]].
1945년, 유럽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의 길을 걸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보게 되자 공화파 망명자들은 굉장히 기뻐하였는데, 연합국의 승리에 따라서 프랑코 정부가 무너지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시즘 세력에 점령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해방되었고, 나치 독일과 동맹하던 파시즘 정권은 패망하는 나치 독일과 함께 붕괴하였다. 스페인과 같은 처지가 되었던 망명정부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동유럽 지역은 소련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공산화 된 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지속했고,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게릴라가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귀환하지 못했다.
- 식극의 소마/154화 . . . . 2회 일치
* 아리스는 "최첨단 요리 연구회"의 부장이었고 부실을 유지하기 위해 쿠로키바 료에게 식극을 시킨다.
* 원래 최첨단 연구회는 따로 있었는데, 중학생 시절 아리스가 "부실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식극해서 빼앗았다.
- 식극의 소마/161화 . . . . 2회 일치
* 에이시는 엄청난 빠르기로 지시를 내리는데, 이미 시노미야의 가게에서 실전으로 훈련된 소마는 그 지시가 다 내려지기도 전에 척척 일을 해낸다
* 수업이 끝나고 에이시는 소마의 실력을 칭찬하는데, 소마는 무심결에 센트럴을 도와버렸다면서 당황한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2회 일치
* 소마는 "실력차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하며 담담하게 넘긴다. 그러자 할 말이 없어진 에리나.
* 사실 어린애한테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계속 먹였으니 아동학대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노답 집구석--
- 식극의 소마/172화 . . . . 2회 일치
* 센트럴측은 아자미가 직접 나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을 세뇌시킨다.--[[암살교실]]에서 써먹은 전개 같은데--
* 사실 시험 좀 망쳤다고 퇴학시키면 교육청에서 난리가 날 일이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2회 일치
* 시험관은 입으로는 현실을 부정하지만 혀는 정직해서 그 놀라운 맛에 굴복하고 만다.
* 사실 보통 조리사 시험도 주어진 레시피를 그대로 조리하는 거니까, 결국 아자미가 하는 짓은 평범한 조리학원 하나 만드는 것.
- 식극의 소마/175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는 객실에서 과외수업 준비 중.
* 잡목림을 빠져나가자 객실에서도 멋진 밤하늘이 보인다.
- 식극의 소마/177화 . . . . 2회 일치
* 학생들이 에리나에게 고마워하는 걸 보고 에리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지 실력이 아니라고 비난하는데
* 에리나는 자신은 감자의 특성에 대해 가르쳤을 뿐, 그걸로 합격을 따낸건 이들의 실력이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80화 . . . . 2회 일치
* 도지마는 자신은 중립이라고 말하지만 시오미 세미나가 학원 안에 존재하지 않는건 사실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 그때 조리실 바깥에서 기묘한 민머리 군단이 향신료를 가지고 난입한다.
- 식극의 소마/183화 . . . . 2회 일치
* 그럼에도 그런 냄새가 나게 된다면 그건 "요리사의 실력 문제"일 거라고 하는데.
* 사실 오미자는 합숙 기간 중에 배운 식재였다.
- 식극의 소마/184화 . . . . 2회 일치
* 하야마 아키라는 "시오미 준을 위해서"라고 했던 말을 실언이라고 철회한다.
* 하야마 아키라는 "시오미 준을 위해서"란 말을 했지만 유키히라 소마가 추궁하자 실언이었다고 철회한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2회 일치
* 실라와 베르타는 먹기도 전에 향기만으로 매혹된다.
* 마침내 시식에 들어가는데 그 맛에 압도당해 실라와 베르타는 분석하는 것도 잠시 잊는다.
- 식극의 소마/191화 . . . . 2회 일치
* 시오미 준은 사실 도지마 긴의 주선으로 대결을 관전 중이었다. 시오미는 하야마의 따귀를 때리며 꾸짖는다.
* 어쨌든 시오미는 자신의 결론을 말한다. 그녀가 원하는건 연구실이나 기재 따위가 아니다. 그보단 아키라가 진심으로 자기 요리를 즐기며 또래 친구들과 자신을 갈고 닦아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소마도 끼어들어서 "센트럴이든 뭐든 아직 난 너랑 연찬하고 싶다. 자기 요리를 그만두는건 용납할 수 없다"고 거든다. 도지마는 선발시합 때 소마, 하야마, 쿠로키바 료가 아웅다웅하며 의견을 나누던 모습을 떠올린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2회 일치
* 소마는 우리에 갇힌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운이 없냐"고 원망을 듣는다. 하지만 소마가 신경 쓰는건 네네 쪽. "내가 일식만 하는 요리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같은 소리를 해놓고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탓에 상당히 민망해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재료준비는 착실하게 하고 있다.
* 넋을 놓고 솜씨를 지켜보던 반역자들은 그게 곧 소마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참담한 현실을 떠올린다. 애초에 정공법으로 이기는건 바라지도 않고 변화구를 던져서 별난 걸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이제 소마가 어떤 소바를 만들지가 관건이다.
- 식극의 소마/235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 해서 심사에 오른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는 대호평. 이스트와르는 "역사에 남을 맛"이란 전에 없는 극찬을 남겼고 안은 "이렇게까지 아티초크를 들이부운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마음에 들어한다. [[유키히라 소마]]도 안의 배려로 맛을 보는데 크림소스의 감칠맛이 아티초크의 쓴맛과 어울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로스트비프의 농후한 맛을 잘 감싸고 있다. 육즙이 아주 묵직한 인상을 주면서도 한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질리지 않는 맛. 고기요리임에도 채소 특유의 쓴맛과 감칠맛이 돋보이는 요리다. 안은 이것도 에이잔의 실력이며 아티초크를 넣음으로써 요리에 쓸데없는 단맛을 없앤 덕이라고 설명한다.
* 소마는 그것도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 느낀다. 에이잔이 시나린 성분을 노리고 아티초크를 대량으로 썼지만, 그 경우 자기 요리의 맛도 무너지는게 당연지사. 하지만 에이잔의 요리는 완벽한 맛을 연출하고 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잇시키 사토시]]는 그 점에 대해서 "경험치"라고 추측한다. 에이잔의 전공분야는 "프로듀스". 많은 식당을 프로듀스하면서 경쟁업체의 "맛"을 "지우는" 수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쌓인 경험치가 식극에서도 발휘됐을 거라는 것. 실제로 [[나키리 아자미]]가 에이잔을 등용한 것도 그런 점을 높이사서였다.
- 신적강하 . . . . 2회 일치
사실 신적강하가 이루어진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본 황실의 재정난'''(…)이다. 황족은 방치해두면 자연적으로 번식(…)하면서 그 숫자가 지속적으로 불어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혈통이 먼 황족이라고 해도 황족으로서 품위 유지를 위해서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해줘야 하는데 이런 황족의 숫자가 불어나면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2회 일치
2011년 12월 중과실 치사 및 해안법 위반 혐의로 아내와 친구 6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판결에서는 발안자였던 아내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인정하고, 아내의 부모가 1030만엔을 지불하며, 나머지 3100만엔은 부모와 친구 6인이 연대하여 지불하게 했다. 다만 친구들도 구두 변론에서 부부가 장난을 치다가 함께 떨어졌다는 증언을 하여, 남편도 구멍의 존재를 인식하고 스스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남편의 과실도 40%로 인정했다.
- 실즈 . . . . 2회 일치
일본의 학생운동 단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自由と民主主義のための学生緊急行動)을 뜻하는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의 약자에서 따왔다. 단체 스펠링은 다르지만 일본어 발음은 영어 실즈(SHIELDS)와 비슷하여 영어로 '방패'와 연관을 지어서 지은 이름으로 추측된다.
* 어벤저스에 나오는 특수조직 실즈와는 무관하다.
- 심판 . . . . 2회 일치
[[스포츠]]에서 경기의 과정을 진행하는 사람. 득점과 실점을 판정하고, 선수들의 [[반칙]] 여부와 그에 대한 제재를 판단한다. 뭐 아무튼 중요하다.
* 스포츠 게임에서는 심판은 사실 장식물일 뿐이고, 규칙은 내부적으로 컴퓨터가 판단을 내리고 있다.
- 심학봉 . . . . 2회 일치
이후 이공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허청]]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거쳤다.
- 아기발도 . . . . 2회 일치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는 "보기에는 나이가 겨우 15, 6세 되었는데, 골격과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며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 아니키 . . . . 2회 일치
* 니키(ニキ) : 파생 용어. [[2채널]]의 뭐든지 실황(なんJ)판에서 사용한 용어로서, 카네모토 토모아키에서 따와서 한신에 입단한 선수들 가운데 실력파 선수에게 썻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존재감 있는 인물에게 경의, 애착 등을 담아 「○○니키(ニキ)」라고 부르게 되었다.
- 아돌프 히틀러 . . . . 2회 일치
1923년, 히틀러는 [[뮌헨]]에서 정권 장악을 위해 [[맥주 홀 폭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하였고, 그 결과 히틀러는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는 자서전(?)인 [[나의 투쟁]]을 집필했다.
고환이 하나 뿐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 바람.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2회 일치
잔 다르크의 군기는 실물은 현존하지 않으며, 현대 프랑스에서는 '표준 도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도안은 순차적으로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잔 다르크의 군기는 개념은 있지만 특정한 실물은 아니고 유물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http://saint-joan-of-arc.com/banner.htm (참조)]] [[http://www.stjoan-center.com/j-cc/ (참조)]]
- 아스팔트 우파 . . . . 2회 일치
이 단어는 제도정치권의 보수 정당들과, 재야 정치단체의 차별화를 노리고 나타났다. 소위 '아스팔트 우파'들은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과 타협하고 투쟁정신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이들을 '웰빙 보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을 아스팔트 우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제도권 정당에 소속된 특정 정치인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스팔트 우파'를 자칭하는 단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주로 조직되고 나타나게 되었다. 주로 사안에 따라서 정부나,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시위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적인 단체로 위장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정계의 압박에 따라서 [[전경련]] 등에서 지원을 받는 등, 이면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의 지원과 지시를 받고 있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0656.html (참조)]]
- 아카짱가에리 . . . . 2회 일치
* 유치원, 보육원에 들어가거나, 화장실 훈련을 한다.
* 화장실 훈련 중에 아기 기저귀를 하고 싶어한다.
- 아키즈키 리츠코 . . . . 2회 일치
* 사실 리츠코가 전업 프로듀서로 나온건 2와 애니마스 뿐. 하지만 2차 창작에서는 대부분 전업 프로듀서다. 왜일까 원포올에서 복귀했음에도 복귀를 그리는 작품이 드물다.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상식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남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태다. 디어리 스타즈가 상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태.
- 악당 . . . . 2회 일치
현실에서는 '악당'보다 훨씬 심한 표현들이 있고 현재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생겨날(…) 것이기에 잘 쓰이지 않고, 창작물 쪽에서 주로 '''악역'''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주제파악을 못하는 유형. 본인이나 남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악당의 약점은 모조리 사라질 것이기에, 소악당이든 초악당이든 오만한 구석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이 매우 적을 경우 '방심'이라고 하지 오만하다고 하진 않으니 참고.
- 애니멀-베지터블-미네랄맨 . . . . 2회 일치
신체를 [[동물]], [[식물]], [[광물]]로 변화시킬수 있다. 그런데 이게 몸 전체나 한번에 하나씩이라던가 하는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동시에 이렇게 된다. 그러다보니 실로 괴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특징. 거대화도 가능.
[[둠 패트롤]]에서 첫등장한 빌런. 실험 도중 화학통에 빠지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원래 치프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대.
- 야리만 . . . . 2회 일치
'야리(やり)'는 확실한 어원은 불명. 「하고 싶어한다(やりたがる)」나 「하고 싶다(やりたい)」에서 파생되었다거나, 야리테(やり手, 수완가, 실력자, 뚜쟁이(やりてばば)의 준말)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 양키 . . . . 2회 일치
영어 Yankee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영어 English나 프랑스어 Anglais에서 와전된 말로 영국계 식민지 사람들을 부르던 것이 퍼졌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 시대의 스타일을 가리켜서 “클래식 양키”라고 부른다. 만화 등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고전적인 양키 불량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1990년대에 이미 보기 드물게 된 스타일로서, 불량 청소년들의 패션은 1990년대에는 컬러갱 스타일, 2000년대에는 힙합 패션 등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다만 일부 지방도시에는 아직도 이런 스타일이 남아 있다는 괴담(?)도 있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2회 일치
상대방이 근접 공격을 걸어올 때, 상대방의 머리 위에 붉은 삼각형이 뜨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막기가 가능하다는 뜻[* 삼각형이 안 떠도 공격을 막을 수는 있다.]으로, 반격키(PC 기준 보통 설정 "E")를 눌러 막을 수 있다. 이렇게 공격을 막고 난 후에는 몇가지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애국자의 반역에 맞서 영국을 지지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식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영국령으로 남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 역적 . . . . 2회 일치
전근대 시절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영국 . . . . 2회 일치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네 국가가 연합한 연합 국가이다. 실질적으로는 잉글랜드가 다 해먹는 것 같지만.
19세기 초 [[청나라]]에 [[아편]]을 팔다가 몰수&추방 당한 자국 상인들을 위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사실 아편 몰수는 명분이었고 시장 개방이 목표였다.
- 영국 요리 . . . . 2회 일치
노르만 족의 침략 이후 영국 요리는 노르만 족의 교류를 통하여 프랑스에 전파되었다. 한 때 영국의 플랜태저넷 왕조가 지배하였던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은 영국 요리가 전파되어 요리 문화가 크게 번성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왕실로 흘러들어가서 오늘날 [[프랑스 요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절 내내 영국 요리는 당대 유럽 최고의 요리로 명성을 떨쳤다.
넷상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악평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영국 요리에 대한 여러 유럽 나라들의 잘못된 험담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작 영국에서 여행한 사람들은 영국 요리에 극찬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을 여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편견에 영향을 받아 이를 반박하여, 영국 요리의 평가는 넷 상에서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 오다 노부나가 . . . . 2회 일치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 극적인 모습이나, 인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남아 있어 현대까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창작물에서도 이미지가 극적이라 무슨 마왕 같은 걸로 나오는 빈도가 매우 높다.
- 오이다시베야 . . . . 2회 일치
기업 측에서 직원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명하여 해고하면 고소당하여 패소당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해고하고 싶은 직원을 특정 부서로 이동시켜서, 잡일이나 단순 작업 같은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을 명령하여 사실상 자진 퇴직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후지코 A. 후지오]]의 단편만화에서 '영업부'에서 '자료실'이라 불리는 한직으로 쫓겨난 남자의 고뇌가 묘사되어 있다.
- 오토메 . . . . 2회 일치
[[일본어]]로 [[소녀]] 혹은 [[처녀]]를 뜻한다.--을녀-- 처녀(処女)라고 쓰고 오토메라고 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확실하게 처녀라는 뜻이다.
『[[만연집]]』에서는 미혼 여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만연집이 쓰여졌던 [[헤이안 시대]]의 [[일본 귀족]]들은 1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조혼]] 사회였으므로, 이 시대의 미혼 여성 역시 대략 10대 초반 정도로 정말 어린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 나이를 지나면 [[노처녀]] 취급이었으니까.
- 올마이트 . . . . 2회 일치
이렇듯 완벽한 히어로 그 자체이나 사실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과거 강적과의 싸움에서 극심한 부상을 입은 나머지 거구의 근육질 체격은 몇시간만 유지할 수 있고, 대부분은 삐쩍 마른 몸집이 되는 것. 은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빌런에 대한 억제력이 되는 입장이기에 미루고 있다. 그의 특유의 표정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도 있지만 마음 속에서 들끓는 중압감과 공포심에서 달아나기 위함이다. 이러한 판에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소년과 만나게 되고, 그를 후계자 삼아 자기가 가진 힘인 [[원 포 올]]을 물려주게 된다. 동시에 그의 스승이 되어 그를 단련시키게 된다.
- 왕자 . . . . 2회 일치
왕의 아들. 보통은 정실 소생이나 후궁 소생을 가리지 않고 분류하지만, 문화적으로 적서(嫡庶) 구분이 강한 경우에는 정실 소생만을 왕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2회 일치
사실 사람을 겁 줄 뿐. 실제로 해를 입힐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한다.
- 요코타 메구미 . . . . 2회 일치
1977년 11월 니가타 현의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실종됐다.
2002년 김정일은 북한-일본간의 정상회담에서 납북 사실을 인정했다.
- 욕창 . . . . 2회 일치
피부의 혈류가 줄어들거나 멈추면, 피부가 가장 바깥쪽 표피부터 죽어가게 된다. 죽은 피부 조직이 터져서 상처가 생겨 [[궤양]]이 발생한다. 가려움과 통증을 동반하지만 신경이 둔해졌거나 마비된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붉게 염증이 생기다가, 피부가 손실되어 표피가 떨어지거나 물집이 잡힌다. 다음 단계에서는 피부 전층이 손상되어 [[피하지방]]에 도달하고, 최종저으로 그 아래에 있는 [[근육]], [[힘줄]], [[뼈]]까지 노출된다.
[[영양실조]] 역시 욕창의 원인이 되는데, 쿠션이 될 수 있는 [[지방]] 층이 줄어들고, 영양이 부족해서 피부의 재생 기능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 우동균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우메보시 . . . . 2회 일치
[[일본]]의 매실장아찌. 일본에서는 흔한 [[반찬]]이다.
[[매실]]을 말려서 차조기의 입을 넣고, [[소금]]에 절여서 만든다.
- 우찬양 . . . . 2회 일치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은 [[정태욱]], 이상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K리그 클래식 20라운드 서울전에서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강상우를 대신해서 시즌 2번째 선발출장을 했다. 그러나 공수 양면에서 모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성인무대의 쓴맛을 톡톡히 봤다. 특히 이상호가 중앙으로 내려올 때 그대로 끌려갔는데 이는 결국 실점의 발단이 되는 주세종의 크로스로 연결되었다.
- 워터보딩 . . . . 2회 일치
미 법무부가 CIA에 적어보낸 메모에서는 한번에 40초 이상 하는걸 금지했다. 실제로는 30분간 워터보딩을 지속한 경우도 있다고한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10/story_n_6298652.html|헌팅턴포스트 - (CIA 고문 보고서) 마침내 드러난 잔혹한 고문실태]]
- 원피스/818화 . . . . 2회 일치
* 니코 로빈이 포네그리프의 해석을 마치자 네코마무시는 이 '''붉은 포네그리프는 "로드 포네그리프"이며 "라프텔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거'''라고 밝힌다.
* 네코마무시는 탁본을 쓰면 된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편하게 풀리지 않을게 뻔한 일이다.
- 원피스/820화 . . . . 2회 일치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는 사실 해적왕의 선원이었음이 밝혀진다.
*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도 사실 해적왕의 배에 탔었다.'''
- 원피스/824화 . . . . 2회 일치
* 빅맘은 상디의 요리실력을 높이 사고 있는데, 정작 상디는 '''"이 손은 동료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며 정색한다.
* 사실 훼이크일 수도 있고 본전력은 온존했을지도 모른다.
- 원피스/825화 . . . . 2회 일치
* 한편 루피의 실책으로 식량을 날려먹은 써니호 일행은 아사직전.
* 어떻게 봐도 스릴러바크의 로라같은 얼굴이 나타나는데, 그쪽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상디도 닮았다고만 생각하는걸 보면 확실히 본인인지는 아직 미지수.
- 원피스/830화 . . . . 2회 일치
* 플라리네는 "확실히 산하에서 빠지려던 녀석들은 전부 죽었다"라고 말하는데...
* 사실 조우의 두 왕이 로드 포네그리프를 루피에게 보여준 것이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 원피스/833화 . . . . 2회 일치
* 상디는 전력을 실은 "프왈르 아 프리르"를 시동한다.
* 저지는 그 말이 맞으며 빅맘과 손을 잡으면 확실한 목표가 된다고 말한다.
- 원피스/844화 . . . . 2회 일치
* 오랜만의 재회에도 뜻밖의 폭언과 폭행으로 나오는 상디. 몽키 D. 루피는 동료의 돌변에 영문을 몰라한다. 하지만 상디는 태연한 태도로 "날 정말로 생각한다면 왜 맞이하러 왔냐"고 폭언을 내뱉는다. 그는 영세한 밀집모자 해적단 보다 빅맘 해적단이 훨씬 믿을만하고 루피가 해적왕이 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미는 무슨 장난이냐고 말하다가 진지한 상디의 표정에 말문이 막힌다. 루피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날 속여온 거냐"고 묻는데 상디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 "체감"시켜 준다며 디아블잠브의 자세를 취한다.
우솝과 결별했던 에니에스로비편하곤 전혀 다른 전개가 아니냐고 까이기도 하는데 당시엔 메리호의 처우를 놓고 루피 자신도 심란했던 시기이며 2년 후인 현재에 비해서 미숙한 시절이기도 했다. 게다가 사실 루피 본인은 당연히 우솝과 화해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부선장인 조로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던 부분도 크다.
- 원피스/845화 . . . . 2회 일치
* 빈스모크 형제들은 루피는 끝장이라고 장담한다. 지나치며 보니 그 군단의 면면들은 확실히 막강한 인물들 뿐이다. 처리꾼 "보빙", 귀부인 "아망도", 서사 "몽도르" 등 업계의 유명인들이 총출동. 이들의 총합 현상금은 가늠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상디는 끝까지 기다리겠다던 루피의 말을 떠올린다. 형제들은 "저 군단을 보면 달아나지 않을 리 없다"고 낄낄대지만 상디는 그렇지 않다는걸 알고 있다.
* 하지만 그녀는 곧 실언이었다고 하며 그는 이토록 고민하고 있는데 정략결혼 따윈 당연히 지옥일 거라며 쓸데없이 참견해서 미안하다고 또 사과한다. 하지만 상디는 그녀의 발언에 감동한 듯하다.
- 원피스/861화 . . . . 2회 일치
*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푸딩은 역겨움을 참아가며 귀여운 신부를 연기하는데, [[상디]]는 연기인줄 알면서도 홀랑 넘어가고 만다.
* [[상디]]와 푸딩은 9층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쳤다. 상디는 아직까지는 "좋은 신랑"을 연기해야 한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결혼하지 않을 셈으로 이 섬에 왔는데 이렇게 둘만 있게 돼서 꿈만 같다고 말한다. 진상이 밝혀진 줄 모르는 푸딩은 "좋은 신부" 연기에 한층 박차를 가한다. 그녀는 귀여운 척하며 그 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냐고 애교를 떤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답이 없는 변태신사인 상디는 뻔히 알면서도 홀라당 넘어가서 심장이 멈출 뻔 한다.
- 원피스/862화 . . . . 2회 일치
* 거대한 몸집의 주례가 신랑신부를 나란히 앞에두고 식을 거행한다. 그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혹은 부유하거나 가난할 때나 함께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과 신실을 다하겠음을 맹세하냐고 묻는다. 그동안 고기의 힘으로 겨우 일어난 루피가 자기 때문에 늦은 주제에 "서둘러라!"며 일행을 닥달한다. 징베를 비롯한 밀집모자일당은 니트로가 끄는 수레에 타고 작전장소로 달려간다.
일을 크게 키워버린 카타쿠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빅맘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묻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예측 못했던 사태"가 전부다. 그도 손을 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샬롯가문의 형제들은 작전은 실패했고 상디가 쓰러지지 않은 걸 보고 이대로 작전을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한다. 카타쿠리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며 낭패한 기색이다.
- 원피스/863화 . . . . 2회 일치
* 이러한 사실들은 세계신문사 사장 [[모간즈]]에게 그대로 노출, 곧바로 기사화된다.
* 모든 이의 주의가 분산된 동안, 한 사람은 착실히 목표에 접근하고 있었다. [[브룩]]은 루피를 닮은 허수아비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더 카르멜의 사진에 접근, 망치로 두들겨서 두동강 내버린다.
- 원피스/867화 . . . . 2회 일치
*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지만 "성모" 카르멜과 "양의 집"의 명성은 조금도 흠집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엘바프에서 일으킨 "기적" 때문인지 "어떤 문제아라도 양의 집에 가면 성모의 기적으로 갱생하여 좋은 양부모를 만난다"는 신화적인 평판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판의 이면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
* 시간은 계속 흘러, 링링이 여섯 살 생일을 맞는다. 양의 집 마당에서 생일잔치가 열렸다. 카르멜과 양의 집 아이들은 생일케이크로 셈라를 쌓아 만든 크로캉붓슈를 선물한다. 링링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감사한다. 친구들의 생일 축하를 받으며 정말로 좋아하는 셈라를 마음껏 먹는 링링. 뒷면에 시커먼 현실이 닥치고 있었지만 어쨌든 최고로 행복한 생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생일을 기점으로, 아이들을 팔아넘기는 악마, 카르멜이 사라지게 된다.
- 원피스/886화 . . . . 2회 일치
* 텅 빈 바다를 가로질러 써니호도 어느새 카카오섬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작전 돌입으로 분주한데 문득 [[캐럿(원피스)|캐럿]]이 [[쵸파]]에게 뜬금없는 걸 묻는다. 오늘 밤 만월이 되지 않느냐고. 한편 빅맘 [[샬롯 링링]]에게서 도망친 [[몽키 D. 루피]]는 어느 민가에 숨어있다. 붙잡혀있는 [[샬롯 브륄레]]는 도망치고 싶으면 카카오섬으로 가면 될거 아니냐고 묻는데 루피는 다시 한 번 [[샬롯 카타쿠리]]와 승부를 낼 작정이다. 그의 견문색 패기도 패기인 이상 장기전으로 가면 소모될 거란 것. 하지만 루피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만으론 충분한 전략이 못된다. 그는 [[실버즈 레일리]]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패기는 실전의 극한 상황에서 더욱 개화하며 더 강한 적과 싸울 수록 루피도 강해질 거란 것. 루피는 자신에게도 "가까운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중얼거리는데 브륄레는 허세부리지 말라고 일침한다. 루피는 그 말을 듣고 "전력을 내는 카타쿠리에게 이기고 싶다"고 승부욕을 드러낸다.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2회 일치
1개월 뒤, 원한해결사는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한 의뢰인 마츠지리 신이치를 불러낸다. 아직 잔금 450만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의뢰인은 동생을 스토커로 꾸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냐며 자신은 돈을 줄 수 없다고 잡아떼지만, 원한해결사는 의뢰를 받았을 때의 대화 녹음과 마츠지리 신이치 사장이 경리부장일 때 빼돌린 뒷돈기록도 발견했다고 말한다. 당황하는 마츠지리 신이치에게 원한해결사는 이미 주간지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려놨다고 통보하고, 주저앉은 사장을 뒤로 하고 떠난다.
* 원한해결사의 '사무실'이 처음으로 나온다. 바깥에는 흥신소 간판이 붙어 있고, 번호를 붙인 다수의 핸드폰을 쓰고 있다.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2회 일치
World in Conflict.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실시간전술게임.
맵 중간 중간에 위치한 흰색 원. 유닛을 보내 점령하고 진지를 구축할 수 있다. 아군이 점령한 전략 거점은 녹색으로, 적군이 점령한 전략 거점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2회 일치
* 공격능력: 실레일러 미사일(미국)/AT-4 스피곳 미사일(소련)/HESH탄(NATO) - 차량과 전차에게 강력한 대전차 미사일이나 점착유탄을 발사한다.
미국은 M163 VADS, 소련은 ZSU-23-4 실카, NATO는 독일군 게파드. 기관포로 무장한 자주대공포.
- 위서 . . . . 2회 일치
* 위서(緯書) : [[한나라]] 시대 [[유교]]의 서적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한 책. 소위 말하는 [[도참]]이다. 경서(經書)에서 냩실을 뜻하는 경에 대응하여 씨실을 뜻하는 위(緯)를 붙였다. 본래 위서는 유교 경전의 주석,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한나라 시대에는 유교에 신비주의 요소가 많아지면서 유교 경전을 일종의 [[예언]]으로서 해석한 책으로 변질되었다. 전한-후한 시기에 널리 연구되었으며 [[도참]] 사상에 이용되었다. [[광무제]]는 후한의 건국 명분으로 이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폐해도 많아서, [[왕망]]이나 [[원술]] 같은 인물이 왕조를 세우는데 악용하기도 했다. [[서진]]에서는 사회 혼란을 염려하여 위서를 연구하거나 배우는 것을 금지하여 이후로 위서의 영향력은 사라졌다.
- 유미(가수) . . . . 2회 일치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영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영]]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영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학창 시절 별명이 '고음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노래에 자신이 있었고, 당시 어린 나이에 [[충주시]]에서 열린 규모 있는 가요제에서 우승할 정도로 노래 실력도 탁월하였다. 감정 표현도 훌륭하여 특히 슬픈 발라드 노래가 인상적이다.
- 유승옥 . . . . 2회 일치
2015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고, 게임 [[철권 7]] 런칭쇼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신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와 유명해졌다. --하지만 신캐 반응이 썰렁해서 묻혔다.[* 실제로 그녀의 소속사 사이트를 가보면 다른건 다 기록되있어도 철권 런칭에대한건 나와있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철권 7 이벤트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플레이 당시 유승옥이 선택한 캐릭터는 홍보할 때 코스프레했던 캐릭터인 카타리나였고, 대전 상대는 한국의 여성 철권 고수로 유명한 카니스 (본명 양이섭)의 [[스티브 폭스]].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 유재한 (1955년) . . . . 2회 일치
*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 실장(2006년 ~ 2007년 2월)
- 유카타 . . . . 2회 일치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의 일종. 실내복 겸 여름에 야간 외출을 할 때 입는 옷으로서 홀옷이다.
[[에도 시대]] 이후에는 나체로 입욕하게 되면서, 목욕을 한 뒤에 입는 [[면]]으로 만든 홀옷을 유카타(浴衣)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실내복이었지만, 점차 [[여름]]에 야간 등에 외출을 할 때도 입게 되었다.
- 은혼/583화 . . . . 2회 일치
* 퇴각하기 전, 우츠로는 우미보즈에게 "몇 백년 만에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종말 전의 여흥"이라며 조만간 "그쪽"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
* 본체였던 우츠로 자체는 확실하게 죽은 듯 하니 결국 우미보즈의 예견도 맞긴 했다.
- 은혼/595화 . . . . 2회 일치
* 그는 최후의 순간에 실은 쇼요의 제자들처럼 되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다카스기는 그의 시체를 거둔다.
* 루머처럼 돌던 실사화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 은혼/612화 . . . . 2회 일치
* 진선조도 지상군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전령이 준비가 끝났다고 알리자 곤도 이사오가 움직인다. 이들은 지상군 병력이 가부키쵸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 쭉 늘어진 병력의 허리를 끊어 분단시키고자 한다. 곤도는 자신이 신호하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이후는 1인당 200명 씩만 베어버리면 되는 심플한 작전. 곤도가 200명만 베면 보너스를 준다고 하자 오키타 소고가 "그럼 1000명을 베면 부장자리는 내것"이라고 말한다. 왠일인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생각해두겠다"고 쿨하게 반응한다. 대원들은 오키타다 부장이 되는 날엔 세계가 멸망하는거 아니냐고 드립을 치고 야마자키 사가루는 어차피 망할거 그 편이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곤도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냐면서, 자신도 사실 그런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 실은 다츠마 일행과 헤어진 직후 어떤 사고가 생겼던 것. 생각보다 긴 시간 다츠마와 연락이 두절되자 가츠라는 언제든 역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때 부하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적전함을 보고 놀라는데, 가츠라는 본함은 스텔스 함이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촌구석 사무라이. 스텔스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하들은 정말 안 보이는 거냐고 미심쩍어하는데 가츠라가 투명해지는 그런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설명하던 즈라 조차 방향이 이상해져서, 전함은 투명해져도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며, 우주공간에 둥둥 떠있는 걸로 보이는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유일하게 정상인인 엘리자베스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번엔 가츠라가 "우리도 투명해진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내용물은 완전 노출되는게 아닌가"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 은혼/615화 . . . . 2회 일치
>... 아니 확실히 지구가 망하기 전에 제일 쩌는 Z코스를 하고 싶다고 하긴 했지만...
>주민놈들이 지키는 마을이라고 방심한 건가. 확실히 총이 없으면 싸우지도 못하는 병사들보다는 기골이 있어 보이는군.
- 은혼/622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지로쵸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신라부대는 속절없이 박살나기 시작한다.
* [[시무라 타에]] 구출에 실패하고 함께 건물 밑으로 떨어지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들. 하지만 건물 사이에 쳐져 있던 그물망에 걸려 위험을 면한다. 긴토키가 영문을 모르는 채로 주위를 살피니 건물 안에서 야쿠자들과 어떤 소녀가 그물이 걸린 줄을 당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녀는 "집 보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
- 은혼/632화 . . . . 2회 일치
반사이는 그 허풍이 실현된다면 이 목숨을 그 허풍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다.
>어느 쪽도 귀병대라는 사실도.
- 은혼/638화 . . . . 2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를 두려워하는 해방군. 그 최후의 발악을 저지하기 위해 [[진선조]]를 이끌고 싸우는 [[곤도 이사오]]. 그러나 한 밤 중의 결전은 수상한 땅울림으로 중지된다. 해방군은 히노카구츠치가 발사된 거라고 여겨 전의를 상실하나 곤도는 막연히나마 그런게 아님을 직감한다. 땅울임은 어느덧 지진으로 바뀌고 진선조가 싸우던 바닥까지 갈라진다. 곤도는 서둘러 대원들을 대피시키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현실에 부딪힌 소요 공주가 조용히 풀죽어 있을 때, 사다하루는 그녀의 머리를 핥아주었다. 사다하루 나름의 위로였다. 그러나 소요 공주가 눈물을 거두고 뒤돌아봤을 땐 이미 사다하루가 없었다. 그는 어느 새 지옥도가 펼쳐진 에도로, "이누가미"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 은혼/640화 . . . . 2회 일치
* 과거 헨페이타는 세상의 괴리에 실망해 공직도 삶도 포기하려 한 적이 있지만 신스케의 "넌 단지 포기를 잘할 뿐"이란 비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 신스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많은 시체를 쌓아왔고 그걸 디딤돌로 삼은 건 사실이지만 마지막 시체는 단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이 그 약속을 지켜야하듯 반사이도 지켜야할 약속이 있다. 신스케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 그러니 자신이 시체가 될 때까지 반사이는 살아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부축한다.
- 은혼/642화 . . . . 2회 일치
* 시간이 걸렸지만 [[한카이]]가 제 몫을 다했다. 그는 최후의 임무를 실행하러 가는 [[다케치 헨페이타]]에게 성공 보고를 한다. 이제 헨페이타가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 장치를 파괴하면 한동안 히노카구츠치가 멈출 것이다. 그들이 거기까지 도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 지금 헨페이타 일행의 몸을 실은 소형정은 해방군 함대의 집중 공격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메노토리후네 내부에서 분전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랬다. 설사 해방군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든 쓰러져 죽을 지 모르는 몸이었다. 이제 오른팔 밖에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잘도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불굴의 자세는 [[다카스기 신스케]] 때문이다. 그가 아직 아무 것도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믿듯 그도 동료들의 임무완수와 생환을 믿으며 중추 시스템을 향해 달렸다.
- 은혼/646화 . . . . 2회 일치
* 죽음을 불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로 돌격했던 [[다케치 헨페이타]]. 그러나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살아남고 말았다. 내친 김에 아메노토리후네의 내부에 내려선 다케치와 부하들 앞에 바라지도 않았던 배웅자가 있었다. 전 하루사메 삼흉성 [[사루가쿠]]. 부하들과 함께 건재한 모습이었다. 넉살좋게 다케치 일행의 특공이 실패했으니 수훈은 자신들 몫이라고 말하며 나타났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바토우]]의 목숨을 앗아간 그 폭발. 사루가쿠는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다. 살아남은 그는 그대로 숨어있기 보단 작전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다케치 측의 통신을 엿들었다.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 파괴. 다케치의 예상과 달리 그건 폭발 한두 번으로 어쩔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루가쿠 부대가 내부에서 그 장비를 한 발 먼저 파괴했고 그래서 다케치 일행의 특공은 불발로 끝날 수 있었다.
* 쉬운 말이라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려운 법. 다케치의 말은 구상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하고 무너져 가는 해방군 모선의 잔해 속에서 생존한 병력을 모으고 다시 싸우게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한카이도 그것을 지적했다. 병력이 얼마나 남았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싸울 기력이 있을지.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폭발에 삼켜지는 통로를 뚫고.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곧 두 갈래로 나눠 각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 은혼/648화 . . . . 2회 일치
어디까지였을까? 어디까지가 계획이고 어디까지가 은폐였을까? 그의 형도 형수도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자신까지도. 이제 길고 긴 도주의 나날이 버티고 있었다. 초연의 황자는 전장에 미치지 않았다. 도피처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고통과 함께 살 강함이 없었다. 아내의 강함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오직 전장에서만 그게 가능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그녀의 강함도, 그녀로부터 달아나는 자신의 약함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를 잃었다는 고통까지 잊을 수 있었다. 얼마나 좋은 도피처인가?
그 다음 노부노부는 누구든 도울 수 있는 자라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돕도록 하고 해방군 모선의 추락을 최대한 저지하도록 지시했다. 엔쇼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노부노부를 바라봤고 자신이 싸웠던 영웅들을 바라봤으며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같은 눈이었다. 그의 아내를 닮은 눈.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눈. 엔쇼는 그런 눈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같은 눈을 한 남자들에게 이길 가능성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인정했다.
- 음모론 . . . . 2회 일치
* 미국은 외계인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이를 비밀로 하고,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을 요원을 보내 제거하고 있다.
* 천안함은 이스라엘 모사드 잠수함과의 충돌로 침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 의식 높은 계 . . . . 2회 일치
* 자신이 능력 있는 사람이며, 자기계발에 노력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내는데 골몰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분위기일 뿐이지, 실제로는 대단한 노력도 하지 않고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다.
* 출처 불확실한 자기개발서에서 읽은 이야기 같은 것을 자주 이야기 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일처럼 말하기도 한다.
- 의천도룡기(영화) . . . . 2회 일치
주요 무공은 구양신공, 건곤대나이. 그리고 태극권. 원작에서 마냥 착하기만 한 장무기와는 달리 다소 뻔뻔스럽고 악랄한 느낌이 있다. 사실상 '''성격이 거의 정 반대'''라고 봐도 좋다.
원작에서도 찌질캐였지만, 영화에서는 더욱 형편없는 찌질캐로 전락. 주지약과 공모하여 장무기를 속여넘기겨 놀리고, 제자들을 시켜서 구타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장무기가 절벽에 떨어졌는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조민, 현명이로와 협력하여 장삼봉을 암습했다가 실패하고, 현명이로가 장무기에게 패해서 조민이 물러간 뒤에는 무당산에 남겨진다. 장무기가 죽이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빈다. 장무기는 송원교 사숙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주는데, 송청서는 "고맙다 무기야 고맙다"하면서 비굴하게 웃으면서 거듭해서 절을 해대는 비참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원작과는 달리 죽지 않지만 그 대신에 찌질도가 미친듯이 늘어났다.
- 이강철 (1947년) . . . . 2회 일치
*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광훈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년 만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켜 한국의 4:1 승리에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FC U-19챔피언십)한국, 이란 꺾고 4강 진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4822065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2-11-12}} }}</ref>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이라크와의 8강전에서는 후반 5분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왔으나 실축해 한국의 4강 진출이 실패되었다 .<ref>{{뉴스 인용 |제목=(U-20 월드컵) 빛나는 용병술, 이광훈 천금 동점골...현재 2-2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2001848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3-07-08}} }}</ref>
- 이금서 . . . . 2회 일치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이금서는 [[고려]]조정에 처음 출사하였다 한다. 또한 [[고려 태조|태조]] 때 [[고려]]의 삼한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런데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일명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와 혼인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서 태어난 [[경순왕]] 3녀 김씨가 이금서와 혼인할 연령이 되려면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이후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태어난 이금서의 아들들이 활약할 연령이 되려면 15여 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금서의 아들들이 [[경순왕]]의 [[고려]] 귀부 이전에 활약했다는 기록들은 이러한 사실과 30여 년 이상의 연대상 오차가 생기게 된다.
== 가계<ref>이금현의 가계는 [[경주 이씨]] 족보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2남과 3남의 순서 및 실존에 대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다.</ref> ==
- 이동훈 (1996년)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이방원 . . . . 2회 일치
[[이성계]]의 5남. 이성계 일파를 숙청하려던 정몽주를 참살하는 등 조선 개국에도 일조했으나, 이성계가 이복동생인 막내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 하자 다른 동복형제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방석과 방번,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뒷배였던 정도전 등을 참살하여 실권을 장악한다(1차 왕자의 난). 그 후 조사의의 난이나 2차 왕자의 난 등의 도전을 제압한 뒤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고려 시절에 과거에도 급제한 등 문재(文材)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훗날 백전노장이던 부친의 군대를 친정하여 제압할 정도로 군사적 재능도 있던 나름 먼치킨으로, 정치적으로 노회한 운영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민씨의 일족이나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진력하였으나, 숙청 대상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 지나친 옥사는 자제하였으며 또한 사관이나 대간의 역할을 긍정하여 균형추를 맞추는 부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민생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개국 초부터 피바람 불었던 조선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 이상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0년]] [[5월 19일]] <br />[[대구시민야구장|대구]] 대 LG 전 (DH2)<br />1이닝 6타자 2피안타 1피홈런 0볼넷 0탈삼진 2실점 1자책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4년]] [[7월 8일]]<br />[[마산야구장|마산]] 대 두산 전<br />1이닝 3타자 1피안타 0피홈런 0볼넷 0탈삼진 0실점 0자책점
- 이상훈 (1987년) . . . . 2회 일치
!연도!!팀명!!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실!!볼넷!!사구!!삼진!!병살!!실책
- 이선민 (1988년) . . . . 2회 일치
| 학력 = [[숭실대학교]] 졸업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구미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숭실대학교 동문]]
- 이영세 (1947년) . . . . 2회 일치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영욱 (1980년) . . . . 2회 일치
그가 데뷔 첫 승을 거둔 경기는 [[2005년]] [[5월 29일]]의 [[두산 베어스|두산]]전인데, 첫 승을 따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회말에 선발 [[헤수스 산체스]]가 1/3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자 1회부터 그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고 3회말에 상대 타자 [[장원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에 [[장원진]]이 그를 구타하면서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4회초 공격에서 1:5로 뒤지던 [[SK 와이번스]]는 무려 6득점하면서 그에게 프로 데뷔 첫 승을 안겨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11178 SK 조범현 감독, "두산 장원진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 조이뉴스24</ref>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예린 (1974년) . . . . 2회 일치
| 학력 = [[명지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사
* [[명지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사
- 이윤열 . . . . 2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3-2-6}}
이윤열은 [[2012년]] [[6월 20일]] 자신의 팀인 컴플렉시티 게이밍 홈페이지에 은퇴 사실을 알렸다. 사유는 현재 병역문제와 개인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은퇴하는것으로 밝혀졌으며 [[2012년]] [[7월 3일]] tving 스타리그 2012 레전드매치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 이은수(육군) . . . . 2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약력}}}''' ||<(>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br][[고등군사법원]] 법원장[br][[육군본부]] 법무실장(육군 준장)[br]고등검찰부장[br]보통군사법원장[br][[군법무관]] 임관[br][[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 이인성 (화가) . . . . 2회 일치
[[이인성]] 화백은 향토색 짙은 풍경화로 조선의 [[고갱]]이라고도 불린다 풍경과 인물을 결합한 구상화를 최초로 그린 화가로 경주의 산곡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적토가 그대로 드러난 흙바닥, 원색적인 색채가 사용됨과 동시에 하늘의 푸른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대지의 붉은 색체는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을 준다.
- 이장영 . . . . 2회 일치
*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 실장
- 이재율 (1993년)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이정우 (1950년) . . . . 2회 일치
|직책 =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 이종혁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2017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8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이주호 (1961년) . . . . 2회 일치
* 2008년 2월 ~ 2008년 6월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지찬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이챠이챠 . . . . 2회 일치
남녀가 서로 희롱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뜻한다. 는실난실, 농탕 등으로 번역.
- 이홍기(군인) . . . . 2회 일치
-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비서관: 소장
- 이희근 (1929년) . . . . 2회 일치
* 1955년 공군 소령 진급 1개월만에 공군본부 감찰감실 작전장교 보임(1955년 7월).
* 1955년 공군본부 감찰감실 작전장교 보임 3개월만에 공군 제10전투비행전단 제104훈련비행대대 예하 항공전투기편대장 보임(1955년 10월).
- 이희성 (1988년)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7월 25일]] <br /> [[잠실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 인조 . . . . 2회 일치
인조는 [[조선]]의 16대 왕이다. [[인조반정]]을 통해 집권했으며, 명과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비판하면서 존명배금(명을 따르고 후금을 배척한다)를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명이 후금보다 여러모로 딸리는 상황이었기에 애매한 외교정책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170화 . . . . 2회 일치
* 고우서 vs 에스카노르, 같은 구도였지만 사실 에스카노르는 처음부터 고우서를 다치게할 생각이 없었다.
* 십계는 난데없이 떡실신 당했다.--최종보스가 리타이어라니--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2회 일치
* 디안느가 허둥지둥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킹이 이곳은 3000년 전의 [[브리타니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이 있던 시대엔 여신족이 실체를 가지는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은 마신족과 전쟁으로 힘을 잃어 실체를 보일 수 없다. 풍경도 그들이 아는 브리타니아와 전혀 다른데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동자가 십계인 지금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빛이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2회 일치
사실이라면 대단한 얘기지만 엘리자베스는 울쩍한 모습이고 멜리오다스만이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것 같다.
네로바스타는 [[일곱개의 대죄/187화|던젤의 몸을 통해 나타났던 여신족]]. 등장 당시에도 고위 여신족이었고 성전 시기에도 사대천사의 직속 부관격으로 보이는데 거만하기만 하지 실력은 개뿔도 없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2회 일치
* 작전이 실패하자 [[뤼드셀]]은 텔레파시로 [[네로바스타]]를 불러낸다. 어서 천계에서 증원을 요청하고 "마엘"을 불러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이미 정신지배가 걸린 네로바스타는 그 명령을 실행하지 못한다. 뤼드셀이 거듭해서 텔레파시를 보내자 [[고우셀]]이 걸어놨던 지배가 풀리며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2회 일치
* 난데없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 앞에 나타난 십계 무욕의 [[고서]]. 그러나 이 시대 사람이 아니고 그가 마신족 출신인 것도 몰랐던 둘은 그를 무욕의 고서가 아니라 일곱개의 대죄 멤버였던 고서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정은 고서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고서가 아니다"라는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고서. 할리퀸은 확실히는 몰라도 자기가 아는 고서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고서는 "내가 모르는 날 알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흥미를 보인다.
할리퀸은 그건 성전시대 일이 아니라 3천년뒤 현대의 일이라고 설명해주지만 고서가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상황이 꼬인다. 고서는 요정왕과 거인왕을 만난건 지금이 처음이라고 말하는데,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결국 진실을 밝히게 된다. 할리퀸은 자신들이 진자 거인왕, 요정왕이 아닌, 그들의 몸을 빌린 존재이며 3000년 뒤 미래에서 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믿을지 말지는 그에게 맡기는데, 고서는 뜻밖에도 "재밌다"고 엄청나게 흥미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2회 일치
* "대죄가 다시금 집결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디안느와 할리퀸이 뚝 떨어지면서 예언이 실현된다.
* 할리퀸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금방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곧 "200년 전"이 가리키는 것이 그녀가 기억을 잃어 버린 유년 시절을 뜻한다는걸 깨닫는다. 그건 디안느가 잃었던 기억을 모두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십계 [[고서]]가 그녀에게 준 사과와 선물, 그것이 그녀의 기억이었다. 지금껏 고서를 원망하고 있던 할리퀸은 그런 사실에 생각에 잠긴다. 고서에 의해 기억을 잃고, 다시 찾게 된 디안느는 고서를 옹호한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또 할리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할리퀸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답하고 오히려 지금까진 너무 못되게 굴었던 거 같다고 자책한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2회 일치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상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디안느가 그 말에 환호한다. 할리퀸이 어리둥절해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준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 윤회, 기억의 상실 등. 신나게 떠들어대자 멀린이 "입조심해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디안느는 움찔하지만 진짜 너무한건 멜리오다스라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무시했던 태도를 질책한다. 그때까지 말이 없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 . . 2회 일치
사실 대부분의 단어가 그냥 치면 나온다. 구글을 애용하자.
동의어를 실어두는 사이트. 이쪽은 동의어를 찾아주기 때문에 의미 만이 아니라 그 말의 뉘양스를 아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 임각수 . . . . 2회 일치
1980년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하였다. 이후 [[강원도청]], [[이북 5도청]],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농지법]] 위반 등 여러 비리로 2016년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 임기영 . . . . 2회 일치
| 제목 = [카스포인트] '완봉승' 임기영, 한화 상대로 16이닝 1실점 '호투'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임신균 . . . . 2회 일치
임신을 한 사람에게 접근하면, 자신도 임신을 하기 쉬워진다는 속설을 뜻한다. 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속설상으로는 '균'이라기보다는 '기운'에 가까운 이미지로 여겨진다.
'메루카리'라는 인터넷 프리마켓 사이트에서 여성이 임신하기 쉬워지는 "임신균"이 붙어있다고 주장하며, '임신미(妊娠米)'를 고가에 판매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마이니치 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출품한 사람은 실제로 임신한 경험도 없으며 판매하는 임신미는 제품명에 써있는 용량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전문가는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을 모독하는 사기 행위"라고 단언하였다.[[https://mainichi.jp/articles/20170502/k00/00m/040/105000c (참조)]][[http://archive.is/vrWZ4 (아카이브)]]
- 임현준 . . . . 2회 일치
[[대구고등학교]] 시절에는 [[1루수]]로 주로 활동했지만 제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당시 선수가 부족하여 깜짝 선발로 등판하였다. 경기에서 6⅓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북일고등학교]]를 상대로 승리하여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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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시키로우 . . . . 2회 일치
감금된 대상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시는 유교 윤리가 확립되어 하극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영주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도 없었다. 가신들은 간언을 하다가 안 되면 부적절한 영주를 붙잡아 자시키로우에 몇달간 가둔 다음 선정을 베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도 영주의 행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강제로 은거를 시켜서 축출하게 되는 것이다.
- 장문규 . . . . 2회 일치
* 《[[제보자 (영화)|제보자]]》 (2014년) - 대합실 남자 2 역
* 《[[패밀리 (시트콤)|패밀리]]》 (2012년, KBS2) - 미용실원장 역
- 장항준 . . . . 2회 일치
*[[2004년]] [[6월 23일]] - [[실베스터 스탤론]] 편
*[[2004년]] [[8월 11일]] - [[피비 케이츠]]와 [[브룩 실즈]] 편
- 전라북도/인물 . . . . 2회 일치
부안군 - [[강금원]] [[김형인(코미디언)|김형인]] [[방실이(가수)|방실이]] [[임현성]] [[지수원]] [[하태웅(가수)|하태웅]]
- 전상렬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전성군 (1488년) . . . . 2회 일치
[[1488년]](성종 19) [[7월 21일]] 사후 [[여양군]]에 추증된 여양정 이자겸(呂陽正 李子謙)과 훈도(訓導) 김기(金耆)의 딸 광산김씨<ref>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령대군]] 보의 차남 [[보성군]] 이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율원군]] 이종(栗元君 李終)이다. 그의 생일은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정사룡]](鄭士龍)이 쓴 그의 묘비문에 그의 생일이 [[7월 21일]]이라고 언급되면서 알려졌다.<ref name="heomyong">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조부 [[율원군]]은 적개공신이었다.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남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영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 전재국 . . . . 2회 일치
|기타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출신 <br/>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행정학]] 박사 출신 <br/> [[군인]], [[출판|출판인]], [[기업가]] <br/> 삼육대학교 초빙교수 <br/> 동국대학교 특임강사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삼육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완산 전씨]]
- 전종화 . . . . 2회 일치
!년도 !!팀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수 !!타점 !!득점 !!도루 !!도루 실패 !!4사구 !!삼진 !!병살타 !!실책
- 전형도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전혜진(1970) . . . . 2회 일치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식 예배로 4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2회 일치
* 애초에 블랙팬텀의 세뇌에 걸린 자는 자신이 배신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 효부가 보기에도 카시와기가 바벨의 실세. 키리츠보는 후지코에 치이고 카시와기에게도 치인다.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2회 일치
* 츠보미가 블랙팬텀의 세뇌에 당한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됐다.
* 마기가 남들 앞에선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필살기를 공개했다. 확실히 탄소섬유로 만든 드릴은 강력하겠지만 꼬라지가 저래서야...
- 절대가련 칠드런/442화 . . . . 2회 일치
* 사실 미나모토 일행은 연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 후지코 레벨의 에스퍼가 간단히 세뇌될 정도라면 사실상 저항할 수 있는 에스퍼는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2회 일치
* 사실 적은 힙노 능력자. 텔레포터인 척하면서 아군을 교란한 것이다.
* 자객은 뒤늦게 수류탄을 꺼내며 저항하려 하나 시호가 온갖 살벌한 무기를 꺼내면서 갈아마실 기세다.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2회 일치
* 마기는 기동전이 특기인 소령이 좁은 실내로 유인하는걸 보고 함정이 있다고 짐작.
* 사실상 효부도 감염. 저항은 하는 것 같지만 시간 문제라고 하는데다 본인도 푸는 방법을 모르니 이대로 감염돼 버릴 가능성이 크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2회 일치
* 정부군의 헬기인데 사실 조종하는 것은 "블랙 팬텀"
* 효부는 세일즈 상의 경쟁자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나라의 내전도 블랙 팬텀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2회 일치
* 실제로 효부는 자신은 "과거보다 현재를 소중히하는 사람은 못 된다"고 인정하고 있다.
* 사실 이들은 "어떤 기관"에 매수된 첩자들이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2회 일치
* 그녀가 효부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와중에도 도망치지 못한다면 확실히 먹히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
* 통한의 실책을 한 후지코에게 누군가의 잔류사념이 나타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2회 일치
* 이후 효부와 마기는 계획을 실행하고 효부는 마기에게 "길을 잃으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와라"라고 답해준다.
* 현장의 상황을 보고 열받은 키리츠보 타이조. 나라에 "레벨7"이 없는걸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언제쯤이나 레벨7이 태어나겠냐며 태어나기만 하면 보물처럼 예뻐해주겠다고 사무치는 말투로 외친다. 이때부터 국장의 레벨7 사랑이 시작된 듯.[* 사실 그 당시 레벨7이 존재하긴 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이거나 태아 상태였을 뿐. 아카시 카오루가 생후 2일,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는 아직 모친 뱃속에 있던(각각 5개월과 3개월 째) 태아 상태였다.]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2회 일치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태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효부일행은 언터쳐블 엠프렌스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론 큰 피해는 없이 끝났지만 이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크다. 특히 요우는 마기가 모미지를 공격한 일로 이를 간다. 한편 치료 중인 모미지는 설득실패를 자기탓으로 돌린다. 효부는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지만 내심 최악의 상황이라 여긴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길리엄과 싸우는건 불가능하다. 효부는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2회 일치
사카키 슈지는 미나모토와 타니자키 이치로가 외부에서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사이 관측소에 남아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그가 우회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동안 미나모토와 타니자키가 인근 도시에 잠입해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가는 계획인데.
* 바보같은 동행 덕에 고생 중인 미나모토. 그런데 뜻밖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된 건지 더 하운드의 야도리키 아키라와 이누카미 하츠네가 미나모토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미나모토는 헛것을 보는게 아닌가 의심하는데 아키라는 분명 현실이고 자기들만 온게 아니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2회 일치
* 정신오염된 특무 에스퍼 5인은 전투 헬기로 옮겨갔고 [[바렛 실버]]는 카오루가 염동력을 잃은 지금을 노려 저격에 들어가는데.
* 도주한 [[블랙 팬텀]]의 특무 에스퍼들은 전투헬기를 타고 상공으로 이동했다. 팀과 [[바렛 실버]], [[우메가에 나오미]],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 전원 탑승.
- 절연금 . . . . 2회 일치
엄밀하게 따지면 절연금이라 할 수 없는 경우라도, 언론 등에서 사실상 관계청산을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경우, 비유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예시.
>AOL이 Netscape의 역사에 사실상 막을 내리다, 200만 달러의 「절연금(手切れ金)」으로 Mozilla를 해산
- 정기성 . . . . 2회 일치
* 《[[실미도 (영화)|실미도]]》 (2003년) - 원희 담당 기간병 동진 역
- 정동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6월 2일]]<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구원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정만조 . . . . 2회 일치
[[1929년]] 관제 친일 유림 조직인 [[경학원]]의 대제학을 지냈고, 국사 편찬 업무에 발탁되어 일본의 시각에서 역사를 적는 데 일조했다. [[1921년]]부터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일본 측의 시각에서 《조선사》를 집필하였고,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의 편찬에도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
- 정명환 . . . . 2회 일치
* 1987년 MBC 《[[푸른 교실]]》
* 2005년 MBC 《[[제5공화국 (드라마)|제5공화국]]》 ... [[신민당]]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 [[김덕룡]] 역
- 정몽헌 . . . . 2회 일치
[[2003년]] [[8월 4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했으나 타살 의혹이 있다.<ref>{{뉴스 인용
* 할머니 : 한성실
- 정상교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수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정성곤 . . . . 2회 일치
그러던 중 [[2016년]] [[8월 25일]] 토종 선발투수진이 부진해 공백이 생기자 다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으로 희망을 보이는 듯했으나 그 다음 경기부터는 다시 부진했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 정세진 . . . . 2회 일치
|1997~||[[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아나운서
|2018.04 ~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 정수성 (야구인) . . . . 2회 일치
2016 시즌을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 [[SK 와이번스]]로 자리를 옮겼다.
!연도 !!소속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삼진 !!볼넷 !!사구 !!병살 !!실책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 정종철 . . . . 2회 일치
| 종교 =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ref>[[강연 100]](2013.8.11)방송분에서 어릴적꿈이 목사였다고 언급을 한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의 저서에도 나타나 있다.</ref><ref>[https://news.v.daum.net/v/20061031154809467?f=o 개그맨 정종철씨 간증,"볼품없는 저도 남 웃기는 능력 있잖아요"], 국민일보</ref>
그는 [[경상북도]] [[포항시]] 정 씨에서 출생하였고 [[부산광역시]] [[영도구]] 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한정식 요리·중화 요리·일식 요리 자격증을 취득 보유한 그는 월 260만원을 받으며 냉면집 주방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정종철은 TV에 나온 [[심현섭]]을 보고 자신은 심현섭보다 더 재주가 많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디션을 치렀으며 한번에 KBS 공채 15기 개그맨이 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개그콘서트]]에서 '옥동자'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못생긴 얼굴'이라는 컨셉으로 전자 오락실 게임 소리 등 각종 효과음을 흉내 내어 큰 인기를 끌었다.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2회 일치
법무부장관 퇴임 후인 198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을 설립하였다. 1990년부터 1993년 초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장|장]]을 역임하였다.
- 주먹 . . . . 2회 일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무기…지만 사실 위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리 신뢰할 만한 친구가 못된다(…). 인간 끼리의 싸움에서는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지만. 왠지 [[여성]]들은 주먹보다 [[할퀴기]]라는 선입견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주먹도 많이 쓰는 것 같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2회 일치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줌 밖에 안 되는 대만 밖에 영토가 없는 중화민국과 중국 전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애초에 압도적인 존재감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든 나라들이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미 영국, 프랑스 등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상태였다.
- 지훈(TRCNG) . . . . 2회 일치
드라마 [[영광의 재인]], [[다섯 손가락]], TV소설 [[삼생이]], [[여왕의 교실(MBC)|여왕의 교실]][* 멤버 [[지성(TRCNG)|지성]]과 함께 출연했다. 여담으로 [[SF9]]의 [[찬희(SF9)|찬희]]도 출연했는데, 친분이 있을지는 미지수.], [[사랑은 노래를 타고]], [[닥터 이방인]] 등에 출연했다.
- 질렸다 . . . . 2회 일치
>또, 붉은 문자로 쓰면 효과가 오른다든가 위험하다던가…
* 육망성 한 가운데 질렸다(飽きた)고 쓴다. 붉은 글씨로 쓰면 효과가 크다.
- 차광렬 . . . . 2회 일치
*1998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산부인과학교실 교환교수
*1997.02 ~ 1997.12 제1대 차의과학대학교 (구: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총장,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의학과 산부인과학교실 교수
- 차금봉 . . . . 2회 일치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같은해 3월 [[김명식 (1890년)|김명식]]·[[오상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상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운동 단체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시키기 위해 힘썼다.<ref name="역대"/>
- 차르 . . . . 2회 일치
그리하여 후기의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칭호화 되어, 공동 황제나 차기 황제(사실상 [[황태자]])가 사용하는 제2위 칭호가 되었다. '카이사르' 칭호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가부장제'의 부자상속에 따라서 계승하는 상속자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황제권'을 세습하게 될 차기 황제의 칭호로서 적합한 것이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로마 황제들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카이사르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 칭호는 점차 위상이 하락하였다. 이는 고대세계의 가부장제에 따른 상속 계승보다, 종교적 권위가 중요하게 된 비잔티움 시대의 사회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의 부칭으로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ōr)를 제정하면서 제3위격의 칭호가 되었고, 데스포테스(Despotēs,[[전제공]])가 지정되면서 제4위격까지 떨어졌다. 황제가 보유하는 칭호의 위격순은 바실레우스->데스포테스->세바스토크라토르->카이사르 순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격식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의 칭호로 여겨졌다.
- 차일목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창작:왕국 . . . . 2회 일치
남부에서는 가끔씩 모래폭풍이 불어 재산 및 인명 피해를 입히기도한다. 이를 예측하기 위해 "폭풍 감시원"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모래폭풍을 관측해 방향, 규모, 속도 등등을 무전으로 보고하는 직업이다. 정부는 이들을 영웅으로 선전하지만, 실제 대우는 좋지 못한 편이다.
헌법에서는 왕국을 입헌군주국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국왕에게 군대 지휘권, 총리 임명권, 국회 해산권 등이 부여되어 있는 등 완벽한 입헌군주국은 아니다. 해외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나 국내의 왕실에 대한 지지율은 상당히 높으므로 별 상관은 없다.
- 창작:좀비탈출/0 . . . . 2회 일치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을 무렵 두 사람이 있는, 그렇게 추정하는 지역이 '''위험구역'''으로 선포되는 뉴스를 봤다. 정부는 이 일대를 통제할 것이고 더이상의 '''사태 확산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은 착실하게 진군해서 그날 저녁 때쯤부터 우리 동네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커튼도 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주로 체리필터였고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끄지 않았다. 나는 조명도 끈 상태에서 혼자 지냈다. 공복과 수면의 사이클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가 열어줘야 했을 사람들이 아니었기만을 빈다.
스피커는 전기가 나가면서 함께 꺼졌다. 그 시점에선 수도는 살아있었지만 전화나 라디오는 먹통이었다. 바로 그때서야 무슨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바깥을 보고 싶어졌다. 나는 별다른 조심성도 없이 거실로 나가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유리창 창살에 달라붙어 있던 그…….
- 창작:좀비탈출/4-0 . . . . 2회 일치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다 말고 바닥에 쏟아부웠다.
비현실적으로 리얼한 죽음의 예감.
- 창작:좀비탈출/4-1 . . . . 2회 일치
유일한 문제는, 사실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당장 생각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거기가 '''음지'''라는 거다. 그건 내 연구상으로는 아주아주아주 위험한 지역이란 얘기다.
내가 자주보는 녀석 중엔 토트넘이 있다.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녀석'''. 일주일이면 적어도 4,5일은 마당에서 볼 수 있다. 발이 느리고 둔한 녀석이니까 보이지 않을 때도 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얘기겠지. 그래, 예를 들면 거실창문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 뒷마당.
- 창작:좀비탈출/4-1-1 . . . . 2회 일치
마당이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나왔지만 심장이 요동치는걸 진정시킬 수가 없다. 나는 라마즈 호흡법에 실패하는 산모처럼 엇박자로 헉헉거렸다.
정확히 한 발짝 앞. 나는 다가가기를 멈추고 손을 들어오렸다. 무기를 양손에 쥐었다. 눈은 감고 싶었지만 오히려 부릅 떴다. 마지막까지 정확하게 봐야해. 그래야 빗나가지 않아. 나는 체중을 손끝에 실어서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 창작:좀비탈출/4-1-2 . . . . 2회 일치
마당이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나왔지만 심장이 요동치는걸 진정시킬 수가 없다. 나는 라마즈 호흡법에 실패하는 산모처럼 엇박자로 헉헉거렸다.
나는 뒷마당으로 돌아가기 전에 안에서 보이지 않던 사각을 주의깊게 살폈다. 사실 뒷마당으로 후다닥 움직일 용기는 아직도 없다. 눈으로라도 안전을 확인하며 한 발씩 나가야지.
- 창작:좀비탈출/5-2 . . . . 2회 일치
현관이 보이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문 뒤로 돌아가 체중을 실어서 문을 밀어붙였다.
문은 끄떡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집합신호처럼 놈들을 끌어들였다. 처음엔 담장에 막혀 있던 녀석들이 앞사람을 밟고 넘오오기 시작했다. 물론 토트넘처럼 운동신경 좋은 녀석은 거의 없었다. 처음엔 어설프게 담장에 걸쳐 있다 떨어지거나 창살에 걸려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떨어진 녀석이 쌓이니 발판 구실을 했다. 얼마 안 가 제법 상태가 깨끗한 녀석들이 넘어오게 되면서 이젠 만원 상태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2회 일치
내부에서 고갈된 자원은 외부에서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어제의 모험이 나에게 지나친 개척자 정신을 부여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경솔하게 또 한 번의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분명 어제 확인한 사실만으로도 마당까지 나가는 것 정도는 위험할게 없다는걸 확인했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건 그 마당도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나서기 전에 확실한 무기가 하나도 없다는게 못내 아쉽다. 나는 궁여지책으로 아령을 다시 꺼냈다. 무게감 하나만큼은 쩔어주는 녀석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나는 못입게 된 티셔츠를 길게 찢어서 아령에 묶었다. 말하자면 임시 철퇴인 셈이다. 어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꼭 한 방에 죽여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무거운 물건으로 쳐서 날려 보낼 수 있다면, 지가 죽지는 않는다 쳐도 어떻게 되겠는가? 접골이라도 해서 일어날 건가?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2회 일치
녀석은 물기 보다는 잡아뜯는 타입이었다. 양손 합쳐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안 남은 손이 내 목을 조르려 든다. 나는 바닥에 둔 아령을 집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쓰러지며 녀석의 손목을 잡앗다. 썩은 돼지고기같은 질척한 감촉이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쓰러진 내 위로 썩어가는 얼굴이 덮친다. 녀석은 확실히 공부를 잘 했을 것이다. 손에 맥아리가 없는걸 보니 연필보다 무거운걸 들고 다녔을 법하지 않다. 그래서 그럴까? 녀석의 팔꿈치가 기묘하게 비틀어지며 퍼석 끊어져 버린다. 녀석이 쓰러지면서 허연 이빨이 내 목덜미로 떨어진다.
나는 비명을 지를 기회도 없었다. 이 허접해 보이는 녀석이 무는 힘 만큼은 확실했다. 기도가 뻥 뚫리면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의식이…… 멀어진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2회 일치
둔탁한 소리와 손에서 접시가 깨지는 듯한, 유리창을 부순 듯한 섬뜩한 촉감이 괴롭힌다. 정수리 한 복판. 언젠가 Tv에서 명인이 도자기를 깨뜨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갈라진 살갗 사이로 보이는 두개골이 도자기처럼 하얗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도자기 안의 검붉은 내용물이 튀기면서 손과 팔에, 그리고 얼굴까지 더럽혔다. 하나님 저게 입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비록 '''좀비가 득실대는 동네에 처박아 버렸지만'''.
- 챔피언스 오브 앵거 . . . . 2회 일치
사실 이 챔피언스 오브 앵거는 [[마블 코믹스]]의 [[어벤저스]] 패러디. 멤버들도 마블 히어로들의 패러디다. 적대 집단인 익스트리미스트도 마블 빌런들의 패러디.
* Jack B. Quick - [[퀵실버]] 패러디. 캡틴 스피드라고도 한다. 본명 Harry Christos. 초고속능력.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2회 일치
머리색붉은색
술을 굉장히 좋아하며 임무가 없을땐 거의 술을 입에 달다시피하고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간이 3배정도 튼튼하다고 병원에서 들었으니 3배는 더 마셔도된다는 괴악한 논리를 펼치고있다. 술뿐만이 아니라 홍차도 주로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이미 다른 발할라 요원이나 관계자들은 주당으로인식하고있으나 본인은 사실이니 신경쓰지않는 모양이다(...)
- 총기 . . . . 2회 일치
총기는 [[탄환]]을 발사할 때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하는데, 폐쇄된 관에서 화약이 폭발하면 폭발적인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대량의 가스가 갈 곳을 잃고 고압으로 압축되는 상황이 된다. 이 때 약실이 충분히 튼튼하지 않거나 뭔가 결함이 있다면 약실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여 발사자가 오히려 [[끔살]]당한다. 정상적인 총기에서는 오직 탄환이 있는 곳만이 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므로 연소가스의 압력은 탄환을 밀어내게 되며, 탄환은 초고속으로 총신을 따라서 튕겨나가서 총신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된다. 이렇게 발사과정을 거쳐서 날아오는 탄환은 인간의 신경으로는 포착하거나 반응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명중한다면 대개 '''그대로 죽는 수 밖에 없다.'''
- 최공웅 . . . . 2회 일치
*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5년 5월 18일에 내연의 남편을 살해하여 1심에서 징역12년이 선고된 신압찻집 여주인에 대해 "범인으로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정황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5년 5월 18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2월 5일에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유세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기도하고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1971년 7월 26일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 "재판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2월 5일자</ref> 3월 4일에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법정모욕 등으로 1,2심 군법회의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이 선고됐다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미 폐지된 [[긴급조치]] 면소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파기환송된 [[강신옥]]에게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자유로운 방어권 행사없이 형식적인 변론만 인정한다면 사법권읜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며 "공개재판에서 변론은 재판 방해를 하려는 폭력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040032921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3-0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05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3월 4일자]</ref> 5월 27일에 내란 예비죄 피고인인 [[박형규]] 목사에게 "10여명의 선동만으로 국가 전복을 우려한다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다"며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2700329211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5-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12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5월 27일자]</ref> 5월 31일에 1974년 세검정 동굴에서 북한방송을 듣고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 대해 "똑똑한 학생이 왜 나쁜 짓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선고받은 박규신 피고인에게 대법원에서 파기된지 13년만에 반공법위반 무죄, 긴급조치 위반은 면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3100289107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31&officeId=00028&pageNo=7&printNo=14&publishType=00010 한겨레 1988년 5월 31일자]</ref>
- 최광식 . . . . 2회 일치
==== 부실강의 논란 ====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구려재단 상임이사로 재직시 입길에 올랐던 부실 강의를 지적했다. 후보자는 2005년 1학기부터 2007년 2학기까지의 당시 학생들이 매기는 강의평가에서도 낙제점(F)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최동 . . . . 2회 일치
귀국 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21년]]에 졸업했다. 모교의 [[해부학]]교실 조교로 일하다가 [[중국]] [[북경협화의과 대학]]과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1929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931년]]부터 3년 동안은 학교 재단이사를 겸직하기도 했다. 강의 과목은 [[기생충학]]과 [[병리학]]이었으며, 다시 일본 [[도호쿠 제국대학]] [[법의학]]교실에서 [[1936년]]에 [[법의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 최동익 . . . . 2회 일치
*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 (대학원)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의 정치인]][[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시각 장애 정치인]][[분류:경주 최씨]][[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
- 최선 (정치인) . . . . 2회 일치
'''최선'''(崔善, [[1974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에서 태어났으며 [[서경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시 강북구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2005년 어린이집 [[꿀꿀이죽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2006년 5월 31일 기초의회선거의 강북구 구의원에 출마하여 당선하였으며 이후 '보육조례개정안'제정 활동등을 하였다. 최근 강북구 의회의 의정비 인상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에는 강북구청장이 공공근로 인력을 동원하여 부인 땅을 경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MBC 뉴스데스크 등 언론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서울시 강북구 기초 의회는 총 14명의 구의원을 위한 2007년 의정활동비를 3천284만원에서 5천495만원으로 67%인상하였다. 이때 반대의 압력과 강북구청정의 재의 요청에 따라 월 10만을 삭감하고 인상안을 기권1, 찬성11표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선은 이를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못하였으며 과도한 금액이라고 주장하고 1월치 의정비 중 인상분을 구청에 반납하였다. 하지만 구청은 수령할 이유가 없다고 수납을 거부하였으며 민주노동당은 이 인상분을 [[법무법인공탁]]처리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2008년 2월 5일 서울시 강북구 의회의 의장 윤영석및 다른 의원들은 의정비 인상이 정당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하고 MBC 라디오등의 인터뷰에서 동료의원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로 임시회 본의회를 열어 최선 의원을 징계하기 위한 윤리특별위 구성결의안을 처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반대의견이 거세어 회의는 무산되었다. 최선은 과다하다는 이유로 서울시 강북구의 재정자립도가 30%이며 서울의 25개 자치구중 22번째로 하위권임을 들고 있다.
- 최세창 . . . . 2회 일치
[[1980년]] [[5월 20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했으며 나중에 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대한민국 국방부]]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다.<ref>{{뉴스 인용
- 최수진 (무용가) . . . . 2회 일치
|학력 = [[서울예술고등학교]] <br />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학사]]
*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학사
- 최수진 (성우) . . . . 2회 일치
* [[실험쇼 진짜? 진짜!]] ([[MBC]])
* [[브룩 쉴즈의 사하라]] ([[MBC]]) 데일/Dale ([[브룩 실즈]]/Brooke Shields)
- 최우석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장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3라운드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중간계투로 등판했고, [[2012년]] [[5월 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는 [[오승환]]을 상대로 대타 타석에 들어선 적도 있었으나, 3루수 앞 땅볼로 아웃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9&article_id=0002708974 ‘완벽부활’ 오승환, 2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 - 매일경제</ref>
당시 방송인 [[변서은]]과 사귀고 있었는데, [[2012년]] 8월에 결별하였고 이후 2군에서 불성실함을 이유로 [[2012년]] [[8월 31일]] [[한화 이글스]]에서 임의탈퇴 공시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28122 변서은과 결별 최우석, 8월 31일 임의탈퇴] - MK스포츠</ref>
- 최인영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1년]] [[9월 22일]] <br /> [[잠실야구장|잠실]]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 최재우 . . . . 2회 일치
7세 때 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 모굴 스키에 입문하였다. [[서울유현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에 캐나다 블랙콤에서 열린 스피릿 시리즈 하프파이프 경기와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 1위를 했고, 같은 해에 실버스타 스키장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모굴 1위, 듀얼 모굴 2위를 기록했다. [[2007년]]에 캐나다 사이프러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청소년 모굴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으며, 2009년 1월 31일에 대한민국 대표로 발탁되어 [[일본]]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6위를 기록하였다. 2월에도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부문 20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2009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부문에서 26위, 듀얼 모굴 부문에서 22위를 기록하였다. 그 해 8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 참가하여 21일에 진행된 모굴 경기에서는 35위, 다음 날에 열린 경기에서는 13위에 올랐다.
2014년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8위에 올랐으며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2월 10일에는 소치 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부문에 출전하여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결승에 올랐다. 이후 결승 2차전에서 첫 번째 공중 회전을 하고 착지한 뒤 내려오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고 코스에서 이탈하여 실격 처리되었다.
- 최정호 (성우) . . . . 2회 일치
*[[마법전사 라이너]]([[KBS]]) - 루실
'''[[라디오 독서실]] ([[KBS 2라디오]])'''
- 최한경 . . . . 2회 일치
이듬해 1994년 리빌딩 중이라 어수선했던 시기에 그야말로 갑툭튀, 151km/h까지 나오는 강속구를 앞세워 삼성의 뒷문을 책임지며 6승 7패 9세이브 평균자책 3.28을 기록했다. 팀은 정규시즌 5위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노장 정리 등 본격적인 리빌딩이 시작된 한편, 150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최한경은 큰 기대를 받았다.
1997년에는 어깨부상을 당했고, 1999년 타자 전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방출 후 [[LG 트윈스]]에서 다시 타자로 1군 복귀를 시도했으나 1년만에 방출되며 은퇴했다.
- 추자현 . . . . 2회 일치
* [[2009년]] 《[[실종 (영화)|실종]]》 ... 현정 역
- 카미마치 . . . . 2회 일치
하지만 이는 인터넷 상의 기록으로 범죄행위가 적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위장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성관계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러한 전문 사이트도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가짜 이용자가 많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칼렉시트 . . . . 2회 일치
캘리포니아는 전통적으로 [[리버럴]] 가치를 추종하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IT 산업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 산업이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대표할만한 지적, 경제적, 문화적 성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민자가 많고 인종적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반 트럼프 시위와 동시에 칼렉시트를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실제로 연방 탈퇴 선언을 노리는 'Yes California'라는 웹사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 캡콤 . . . . 2회 일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록맨 시리즈]] 등 유명한 게임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회사이며 국내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오락실에 가봤다면 한번쯤은 캡콤 로고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만큼 다수의 게임을 만들었다. 다만 현재는 캡콤의 게임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은 오너의 관심사는 와인이며 게임은 그냥 돈 나오는 지갑 취급이다.-- 까는 사람들은 '개껌'이라고 부른다.
- 캡틴 울트라 . . . . 2회 일치
원래 배관공으로 돈을 못낸 심리학자 노인에게 자신의 흡연습관을 최면으로 치료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심리학자는 사실 외계인이었고, 최면을 통해 잠재된 초능력을 각성해 슈퍼히어로 캡틴 울트라가 되었다. 그러나 [[불]]에 관한 공포증 탓에 불을 보면 기절하게 되었다.
[[판타스틱 포]] 애니메이션에서 잠시 등장. 능력을 잃고 인간으로 돌아온 씽을 대신한 멤버로 지원한 히어로들 중 한명인데 상당한 실력을 보였으나 휴먼토치가 엄지척을 하면서 엄지에서 나온 불을 보고는 바로 기절해버렸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2회 일치
하지만 로마노프는 다른 생각을 품고있었다. 대서양에서 소련군 함선이 질주하는게 목격되었으며, 미국이 소련에 심어둔 첩보원들은 실종되거나 KGB 요원들과 함께 일하는게 목격되었다. 미국은 로마노프 근처에서 보이던 유리라는 남자가 미국의 첩보망을 와해시킨 장본인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북미방공사령부가 소련군의 대부대를 감지한다. 소련군 함대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오고 있었으며 소련의 지상군은 멕시코를 통해 북상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에대한 보복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유리가 미사일 사일로 장교를 세뇌시키며 실패한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와 같은 미국 땅에 소련군이 상륙하기 시작한다.
- 케모 . . . . 2회 일치
거대한 몸집을 지닌 괴물인데 사실은 화학물질을 담는데 쓰이는 플라스틱 통이었다. 만든 사람은 괴짜 과학자인 램지 노튼. 인간형체의 거대한 통으로 내부에 대량의 화학물질을 담아왔고, 그것의 영향으로 현재의 괴물이 된 것.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된 케모는 날뛰다가 [[메탈멘]]에게 제압되었다.
[[New 52]]에서는 메탈멘 관련 에피소드에서 등장. 누군가 매그너스 박사의 눈을 피해 프로토타입 리스폰스미터를 화악약품이 담긴 금속 통에 실험이라며 넣었고, 그것이 케모가 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으나 메탈멘의 희생으로 어떻게든 되었다.
- 코미디언(왓치맨) . . . . 2회 일치
인성이 쓰레기다. 1940년의 미닛멘 회의 이후 실크 스펙터를 [[강간]]하려하다가 후디드 저스티스에게 저지되었다. 이 일로 미닛멘에서 추방되었으나 그후로도 자신이 임신한 현지처를 버리려다가 공격당하자[* 깨진 병으로 얼굴을 그어버렸다. 이로인해 코미디언의 오른쪽 입가에는 웃는 것 같은 흉터가 남았다.] 그녀를 쏴죽이는 등 개망나니 짓을 벌여왔다.
사실 그가 해왔던 망나니짓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패러디였다. 이는 로어셰크와 닥터 맨해튼의 독백에서 암시된다.
- 키드르 . . . . 2회 일치
이슬람 신화에서는 이스칸다르(알렉산더 대왕)과 연관지어지기도 한다. 키드르는 이스칸다르와 함께 어둠의 땅으로 생명의 물을 찾는 모험을 떠나며, 이 이야기에서 이스칸다르는 찾지 못하고 실패하지만 키드르는 생명의 물을 얻어 불로불사를 얻게 된다.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에 따르면, [[독소전쟁|대조국전쟁]] 전야 키드르가 [[스탈린]](!)의 꿈에 나타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면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스탈린은 부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몇백개의 모스크를 다시 열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독일의 침공에 국내의 이슬람이 동조할 것을 우려하여 이슬람 탄압을 완화시켰다.]
- 킹덤/506화 . . . . 2회 일치
* [[산민족]]은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성문 근처까지 접근해 기병 중 일부를 처치했으나 성문 안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실패.
* 양단화는 공략지점을 찾았고 오가족의 엄호 속에 바지오 부대를 성벽에 올린다고 한다. 신도 바지오만 돌입하면 이긴거나 다름 없다고 맞장구 친다. 문제는 엄호할 인원이다. 오가족만으론 부족. 양단화는 비신대에 실력좋은 궁병이 있냐고 묻는다. 신은 웃으며 "무지막지한 놈들"이 있다고 답하는데. 그 "무지막지한 놈들", [[창인]]과 [[창염]] 형제는 얼어붙다시피한 신병들 사이에서 대기하고 있다.
- 킹덤/508화 . . . . 2회 일치
* 성벽 위를 순식간에 정리한 산민족들은 파죽지세로 성벽 아래로 치닫는다. 바지오는 "지다족"에게 지시해서 성문의 개폐장치를 찾게 한다. 지다족은 후각이 매우 발달한 민족으로 후각을 동원해 숨겨져 있던 개폐장치를 찾아낸다. 성벽 아래 지하실에 있었다. 평범한 바닥으로 위장돼 있었지만 지다족의 후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입구가 열리자 열미병들이 뒤늦게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주위를 산민족이 호위하고 있었다. 지다족은 곧바로 개폐장치를 확보한다. 양단화는 이 개폐장치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지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지다족은 어려움 없이 성문을 연다.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순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 킹덤/526화 . . . . 2회 일치
* 왕분이 그정도로 당황할 장수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창을 쳐내는 순간, 마남자가 그때를 노렸다. 그의 손이 왕분의 팔을 낚아챘다. 예상 밖의 실책. 반양이 경악하고 왕분 또한 당황한 기색이다.
* 마남자는 왕분을 붙잡은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 육중한 무게에 왕분이 말에서 끌어내려졌다. 마남자는 왕분의 몸 위로 덮치며 떨어지는 힘을 실어 머리를 내리쳤다. 간발의 차. 왕분이 고개를 뺐다. 그러나 창을 놓친 데다 마남자의 밑에 깔렸다.
- 타쿠마 마모루 . . . . 2회 일치
1981년 11월에는 [[항공자위대]]에 입대했다. 파일럿을 지망했으나, [[정비]] 업무로 돌려졌기 때문에 제대하였다. 이 때부터 [[육법전서]] 등의 법률 서적을 구입하고 있었다. 1983년 3월에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운송업을 시작하였으나 실패, 부동산 회사에 취직한다. 이 무렵 모친에게도 심한 폭력을 당하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친과 둘이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1984년 11월, 부동산회사 업무 중 관리하던 오사카 시내의 아파트에, 수금을 빌미로 하여 여성의 집에 들어가서 폭행하고 [[강간]]을 저질렀다. 체포를 당하지 않으려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하여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오사카 지검에서는 성격 이상이 있으나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있다고 진단하여 기소하였다. 그리고 1986년 7월 31일,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으로 실형 판결을 받고 나라 소년 교도소에 들어간다. 1989년 8월에 교도소를 나왔다.
- 탁석산 . . . . 2회 일치
탁석산은 1956년 서울 태생이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자연계열에 입학했으나 1년 후 자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 부전공으로 택한 철학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철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흄의 인과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KAIST]] 등에서 강의를 했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사상연구소 박사 후 연수과정을 마쳤다. 주로 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왔는데, <흄의 두 원인 정의의 완전성과 양립가능성> <흄의 초기 단편과 《대화》에서의 악의 문제> <툴리의 인과실재론 비판> <흄의 합리론 비판과 그 역사적 원천>등의 논문을 썼으며, 최근에 『열린지성』에 『언어분석철학의 종언과 한국철학』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등이 있다.<ref>[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laf?authorid=1000033701 교보문서 저자 정보]</ref>
현대 한국 사회, 글쓰기, 직업 등을 주제로 소위 "생활철학"을 다룬 책을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의 철학은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앞의 세가지를 아우르는 방법론이자, 나중에는 그 세 가지를 지배하게 된 '실용주의'다.<ref>{{뉴스 인용|제목=<사람들> 생활철학서 낸 철학자 탁석산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359884|날짜=2008-11-11|뉴스=연합뉴스}}</ref>
- 탈북자 망명정부 . . . . 2회 일치
2016년 일부 [[탈북자]] 단체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망명정부]]. 가칭 '북조선자유민주망명정부'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초에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 설립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 북한은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어, 망명정부는 이해와 동정은 구할 수 있어도 정통성과 정당성을 인정받거나 실질적인 외교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 탐라국 여왕 . . . . 2회 일치
* 탐라국 여왕과 최영의 대결은, 실제 역사에서 최영이 고려말에 제주도에서 진압한 [[목호의 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기록을 보면 실제로 제주도에는 탱자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사 조정철이 1812년 선조에게 본도의 성터에 해자를 파고 탱자나무로 둘러쌋으므로, 고려 때부터 탱자성(枳城)이라 불렸는데, 근래에 성곽이 붕괴되고 탱자나무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1749년 비변사 등록에 보면, 강화유수 원경하가 영조에게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자면서, "고려의 최영이 탐라국을 격파하지 못한 것은 그 가려진 지책(枳柵,탱자나무 목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 태학 . . . . 2회 일치
[[유교]] 경전에서는 고대에 이미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기]]에는 순 임금이 상상(上庠)이라는 --상상력이 증진될듯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하며, [[주나라]] 천자는 벽옹(辟雍)이라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들을 국학(國學), 태학(太學), 대학(大學)으로 총칭했다.
태학의 규모는 점차 발전, 확대되었는데, 태학이 생겨난 당초에는 학생 50여명에 불과했으나 후한 시대에는 무려 3만명에 달하게 됐으며, 학교 건물은 240채,1850실을 갖추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태학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려는 의식도 높아서, 후한말기에 태학은 [[청류파]]의 거점이 되어 외척과 환관 등 부패한 중앙 정치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 토리코(토리코) . . . . 2회 일치
[[미식가(토리코)|미식가]]이며, 젊은 나이임에도 업계의 [[카리스마]]라 불리는 거물이다. 그만큼 굉장한 실력을 가진 강자. 요리사 [[코마츠]]와 콤비가 되어 다양한 모험을 한다.
큰 체구에 거친 이미지이고, 확실히 그런 면모가 있으나 근본은 선량한 사람인데다 상냥함까지 가지고 있다.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식사 목적이 아닌한 살상을 자제하는지라 그 굉장한 힘을 쓰지 않고 상황을 해결했다.
- 토리코/364화 . . . . 2회 일치
* 이것이 아사루디의 몸을 써서 낼 수 있는 최대 위력의 기술로, 돈슬라임 자신도 죽겠지만 네오를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사용한다
* 사실 돈슬라임은 '''현세로 오기 전에 이치류의 식혼과 만났었다'''. 그는 부활을 강권하지만 이치류는 "죽은 자는 되살아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한다
- 토리코/369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GOD는 이 행성의 최상위 포식자. "구르메 일식에 의한 종의 대멸종"은 사실 허구였고, 구르메 일식 때 올라온 GOD가 보이는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 따라서 GOD의 실체란 "수백년 만에 한 번 지구의 생명을 수확하러 올라오는 괴물"이었다.
- 토리코/376화 . . . . 2회 일치
* 네오는 손실된 부위를 재생하며 냉정을 되찾는 듯 보인다.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카시아와 블루 니트로, 죠아는 팔왕을 엄청나게 깔보고 있다.--현실은 개털리는 입장--
- 토리코/379화 . . . . 2회 일치
* 사천왕은 생명활동은 이미 끊어졌고 실낱같은 식욕만 붙들고 있다.
* 아톰은 식물 따위에 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매우 위험해서 휴면 상태에 들어가려고 한다.
- 토리코/381화 . . . . 2회 일치
* 실패해서 둘 다 네오에게 먹힐 경우 둘 모두 부활할 수 없지만 센터라도 자신이 죽여놓으면 부활해 임무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
* 미도라의 부활. 사실 삼제자 중 유일하게 죽지 않았고 단지 봉인만 됐기 때문에 풀려난다는 설이 많았다. 하지만 자력으로 금관두를 박살낸데다 구르메 식운까지 훔쳐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는 듯
- 토리코/385화 . . . . 2회 일치
* 죠아는 미도라에게 공격을 부었지만 모두 실패. 오히려 모든 식운을 스타쥰과 전투에서 쏟아부어 바닥난다.
* 그러나 토리코가 아카시아를 후려치며 실패. 죠아는 최후의 저항까지 무위로 돌아가며 그대로 소멸한다.
- 토리코/386화 . . . . 2회 일치
* 스타준이 "내가 찾아다니던 식재는 식운"이라던 발언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실제로 식운을 "식재"로 취급해서 섭취. 스타준이 등장하면서 "지금 나는 식운이 있다"고 한걸 보면 죠아의 식운을 흡수한 걸로 볼 수 있다.
* 토리코는 현재의 아카시아가 난타를 가해도 죽지 않을 정도이니 확실히 강해진 셈.
- 토리코/387화 . . . . 2회 일치
* 스타준은 최후를 직감하고 숨겨뒀던 진실을 밝힌다.
* 토리코는 충격적인 진실을 듣고 쉽게 믿지 못한다.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2회 일치
플레이어는 포탑을 건설해 적군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적군의 목표는 장난감 상자로, 장난감 상자에 20명의 적이 들어가거나 보스가 들어가면 실패한다. 반대로, 적의 모든 공세를 막아냈다면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날아가며 적 보병과 장갑차를 투하하는 적. 투하하는 위치는 붉은색 연막으로 표시된다. 장난감 상자를 노리지는 않지만 격추시킬수는 있기 때문에 격추시켜서 자금 확보용으로 쓸 수 있다. 적 유닛을 투하하기 전까지는 체력이 뻥튀기되어 잘 안죽는다.
- 토탈워: 쇼군 2 . . . . 2회 일치
자동 전투는 양측 군대의 전투력을 비교해 양측의 피해와 승패여부를 결정한다. 수동 전투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이 진행된다. 전력차가 압도적이라 이길게 뻔한 전투에서는 자동 전투를, 비슷하거나 약간 밀려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전투에서는 수동 전투를 하는게 좋다. 전력차가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열심히 짱돌을 굴려보자.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별로 좋은 결과는 못 내겠지만.
만약 한 가문의 군대가 다른 가문의 성을 공격하면 포위가 시작된다. 포위당한 가문은 그 성에서 부대를 추가적으로 모집하거나 병력 손실을 보충받을 수 없게 되지만 포위당한 성의 주둔군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포위를 건 가문은 성 안의 식량이 떨어질 때 까지 버틸 것인지, 아니면 직접 공격해 점령할 것인지, 정 안되겠으면 포위를 풀고 후퇴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직접 공격하는 선택지는 자동 전투와 수동 전투 두가지가 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2회 일치
실제 역사에서는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백호대 병사 20명이 불타는 와카마츠 성을 보고 성이 함락되었다고 판단, 할복하여 19명이 사망한 "백호대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 고수(Stand and Fight): 토글 기능. 장군 호위대 전부가 말에서 내려 부대를 지휘한다. 고수 상태로 있는 동안 장군 호위대 주변 아군 부대의 근접 공격력, 장전 실력, 사기가 크게 상승한다. 고수 상태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 통합실조증 . . . . 2회 일치
[[일본]]에서 망상이나 환각이 주가 되는 정신질환을 가리키는 명칭. 통실(統失)이라고 줄여부른다.
과거에는 정신분열병(精神分裂病)이라는 명칭을 썻다. 통합실조증으로 변경되었다.
- 특촬물 . . . . 2회 일치
하나 알아 둘 것이, 특촬물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어로물이기 때문에 만화와 같은 카테고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 각주에서 언급한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도 그렇고 [[이글루스]]에서도 특촬 포스팅은 대개 [[애니메이션 밸리]]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 등, 유독 애니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 두 장르를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특촬물을 특수 촬영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 특촬물은 엄연히 '''실사이자 드라마'''이다. 특촬물 더빙도 외화 더빙에 해당된다.
- 페어리 테일/484화 . . . . 2회 일치
* 길드는 믿을 수 없다고 믿겠다로 의견이 나뉘는데, 이때 루시는 "믿겠다"를 선택, 사실상 의견이 모아진다.
* 브랜디쉬의 제안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만화의 특성상 성사될리 없는 제안.
- 페어리 테일/485화 . . . . 2회 일치
- 가질 레드폭스. 동료들을 책형해서 굴욕을 준 블러드맨을 매달아버리며.--사실 잊고 싶은 흑역사를 자극해서 빡친 거--
* 전향하기 이전 얘기지만 사실 가질도 레디 맥거딘을 매달아 놓고 능욕한 전적이 있으니 남얘기할 처지는 아니다.--노답 vs 노답--
- 페어리 테일/486화 . . . . 2회 일치
* 아이린이 제레프와 다른 꿍꿍이가 있는건 기정사실로 보인다. 아크놀로기아를 이용하려는 것 같은데?
* 크림 소르시엘이 도착했지만 아이린이 고작 부하들을 보내서 상대시키는 걸 보면 저 둘의 실력이 굉장한 듯?
- 페어리 테일/501화 . . . . 2회 일치
* 루시에게 원한이 없는건 사실이고 그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 귀찮아졌으니 끝을 내고 싶다고 말한다.
* 루시가 쓰러지자 나츠는 억지로라도 일어서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2회 일치
스팅은 그걸 사실이라 쳐도 본래 사람의 냄새는 형제든 부자든 다 다르다 말한다. 실제로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도 서로 냄새가 다른데, 유독 라케이드는 나츠와 같은 냄새라며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자 라케이드는 "나츠도 어떤 의미론 제레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빛의 참격을 날린다. 하지만 "하얀 것"이 먹이인 스팅에겐 간식거리가 날아오는 거나 다름 없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웬디는 곧 아이린의 몸도 마력도 능숙하게 다룬다. 그녀는 아이린 본체의 마력이 굉장하다면서 이걸 포기하고 자신의 몸에 들어간건 실수라고 단언한다. 웬디는 곧 강력한 마력이 담긴 마법탄을 날린다. 마법탄은 놀라운 속도와 위력으로 아이린에게 날아간다. 아무리 웬디의 마력 잠재력이 높아도 역시 아이린 본체에 따를 수는 없었다. 웬디의 몸에 있는 아이린은 그 마력탄을 받아내는 것도 버거워한다. 반면 웬디는 마법탄으로 압박을 가하며 다른 한 손으론 분리 인챈트 마법까지 실행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2회 일치
* [[엘자 스칼렛]]은 조금 떨어져서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제라르 페르난데스]]가 그런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안나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자신도 확신이 없다면서도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그녀의 작전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엘자는 "믿기는 한다"고 대답한다.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제랄은 그런 점을 그녀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여기는데, 정말로 그녀가 전적으로 안나를 믿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 그러나 아크놀로기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간의 틈새를 지나쳐 크리스티나호를 덮친다. 회피기동 때문에 속도가 떨어진 크리스티나호는 간단하게 아크놀로기아에게 잡힌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안나다. 그녀는 이럴리가 없다며 시간의 틈새를 조작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린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 페어리 테일/532화 . . . . 2회 일치
페어리 하트가 빠져나가면서 메이비스는 기력과 의식을 잃어간다. 그녀는 실낯같은 의식을 붙잡고 제레프를 만류하는데 사용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만난" 이 세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애원하지만 제레프는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페어리 하트를 적출하며 방출되던 빛이 사라진다. 제레프는 정신을 잃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걸로 이 세계에 남은 미련은 전부 정리했다고 말한다.
표지는 사실상 공식 커플들 투샷.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2회 일치
수송 트럭을 찾아내면 호스트가 가지고 있는 톱으로 트럭 짐칸 문을 따야한다. 톱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한번에 한대씩 밖에 딸 수 없다. 문을 다 땄다면 트럭 짐칸에 실린 금고를 꺼낸 후, 다른 트럭을 찾아가서 따면 된다.
>캘리포니아 남부 대부분을 파괴한 지진이 발생한 직후, 고속도로에 버려진 두대의 운송 트럭이 수송품을 도난당했다. 해당 트럭들은 코왈스키 & 허치라는 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구간 운송 회사의 소유였다. 해당 회사는 러시아인 사업가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지만, 수사를 진행하기 전에 회사 사무실이 전소되었으며 모든 기록은 파괴되었다.
- 편의치적 . . . . 2회 일치
편의치적선의 실질 소유국에서는 세수 감소, 선원 고용 축소, 노동조건 압박 등이 일어나며, 국제적으로는 해난, 해양 오염 확대, 선원 고용의 불안정화 등의 문제가 있다. 개발 도상국은 해운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국제노동기구나 국제해사기구 등에서는 국제적인 규제를 발표하고 협약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는 편의치적국 근절을 위한 토의를 하였으나 폐기는 좌초되었다.
|| 실질보유국 || 보유비(톤수) ||
- 포켓몬 . . . . 2회 일치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설정이 제대로 짜여지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코끼리 같은 현실의 동물이 도감에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애니메이션판도 마찬가지라서 수족관에 포켓몬이 아닌 현실의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 프릭쇼 . . . . 2회 일치
시간이 흐르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향상됨에 따라서, 점차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이런 프릭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인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들이라고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보여주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제제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 플래시(DC 코믹스) . . . . 2회 일치
속도 히어로의 대표주자. 유명 [[슈퍼히어로]]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으로 대표되는 트리니티처럼 DC에서 큰 인지도를 지닌 히어로이며 실사 드라마도 만들어져 이전에 국내에서도 방영했다.
== 실사화 ==
- 핀 팡 품 . . . . 2회 일치
거대한 몸집 탓에 그냥 괴수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파충류]]형 [[외계인]]으로 종족은 Makluan/Axonn-Karr. [[노바]] 군단에도 같은 종족 출신이 있다. 그래도 마블의 괴수 캐릭터들 중 하나이긴 하다.
드래곤 모습이나 실제로는 외계인이란 점에서 [[벤10 시리즈]]의 용형 외계인과 비슷하나 그쪽과는 목적이나 입장이 다르다.
- 핑커톤 . . . . 2회 일치
1892년, [[카네기 철강]] 소유 제철소인 홈스티드 제철소의 노조가 [[파업]]하자 진압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10여명의 노동자와 3명의 핑커톤 직원이 사망하였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주방위군]]이 동원되고나서야 홈스티드 파업을 진압할 수 있었다. 핑커톤은 홈스티드 파업 외에도 여러 파업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였다.
[[하드보일드]] 명작 소설 [[몰타의 매]]를 쓴 [[대실 해밋]]은 핑커톤에서 일한 적이 있다.
- 하이큐/208화 . . . . 2회 일치
* 사실 히나타가 한 행동은 대형사고급이다.
* 만화의 시점에서는 히나타도 충분히 합숙에 불려질 만 하지만, 사실 카게야마가 없으면 바로 교체될 정도로 다른 맴버에 비해 부족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있으며 밸런스 또한 나쁘고 선수로서 완성도가 높은건 카게야마나 츠키시마이므로 불공평한 처사는 아니다.
- 하이큐/209화 . . . . 2회 일치
* 사실 이번 합숙에는 히나타를 합류시키는 것도 검토는 했던 모양이지만 최종적으론 기각 됐었다.
* 사실 히나타는 전일본 유스에 난입하려고 했던 듯.
- 하이큐/213화 . . . . 2회 일치
* 우시지마는 "히나타는 없는 기회를 만들러 왔고 선택받지 못한게 현실."이라고 냉정하게 발언한다.
* 히나타는 실제 시합을 이미지 메이킹하면서 공을 받는다.
- 하이큐/214화 . . . . 2회 일치
* 연습 때는 누가 칠지, 어떻게 칠지 대략 알 수 있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페이크가 섞이고 누가 칠지도 마지막까지 모른다.
* 그래서 스플릿 스텝이 과연 실전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 하이큐/219화 . . . . 2회 일치
* 자신의 세트업이 실로 뛰어나기 때문에 "이것조차 치지 못하면 정말 못하는 거다", 즉 "너가 잘해서 친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것. 위에서 코치진이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 미야는 말 그대로라며 "성실하고 솔직해서 착하다"는 말을 한다.
- 하이큐/222화 . . . . 2회 일치
* 모두 다테 측의 뛰어난 블록에 주목하지만, 사실 카게야마는 "처음부터 그걸 뚫으려고" 했었다.
* 공은 아슬아슬하게 넘기지만 순식간에 둘이나 따라붙은 데다 확실히 블록의 손에 닿는다.
- 하이큐/223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후쿠타치가 "주심에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압박을 가해 기를 꺾어 버리자"는 음흉한 작전을 지시하자 급실망.
* 아즈마네의 경우 역시 공격 중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실수였는데 지나치게 몰아세운 경우다.
- 하이큐/226화 . . . . 2회 일치
* 우카이 코치는 확실히 괴짜콤비의 속공은 대단하며 만능에 가깝다고 격찬한다.
* 그때 야치 히토카가 한 마디 거드는데, 사실 우카이 잇케 감독은 저 둘의 진정한 활용법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
- 하이큐/227화 . . . . 2회 일치
* 2회차 서브는 실패, 스코어는 19 대 17. 서브권은 다시 다테에게 넘어간다.
* 그런데 아즈마네는 공격에 실패하고도 무섭거나 위축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 하이큐/245화 . . . . 2회 일치
카게야마의 묘사처럼 "동", 하고 뛰어 오른 호시우미가 상대측 블록의 위에서 스파이크를 꽂아넣는다. 야마구치는 그 점이 대단하다며 혹시 잡지 같은데 실린 적은 없냐고 묻는다. 옆에 있던 카게야마는 그가 취재받는걸 싫어해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해준다. 히나타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 호시우미의 동료는 이쯤에서 인터뷰를 끊는다. 그는 호시우미 대신 "말이 꼬인 것 같다. 죄송하다"고 기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호시우미에겐 "칭찬하는 사람은 사심없이 칭찬하는 거고 실제로 너 자신이 불리한 것도 자각하고 있고 그런데도 활약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거다. 넌 자의식 과잉이다"라고 속사포로 제재를 가한다. 동료가 호시우미를 달랑달랑 들어올리며 사과드리라고 하자 호시우미가 싫어하면서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면서 상황은 종료된다.
- 하이큐/256화 . . . . 2회 일치
* TO 종료. 아즈마네의 2회차 서브. 그러나 물리적인 흐름이 끊긴 탓에 감을 잃어 버렸다. 네트에 걸리는 공. 스코어는 18 대 16으로 다시 2점차. 추격세가 주춤한다. 한참 기세를 올리던 카라스노 응원단에서 실망한 한숨이 막 터지려고 하는데, [[타나카 사에코]]가 한 발 먼저 "한숨 금지"를 선언하면서 풀죽음을 방지한다.
츠키시마가 짜증내기 딱 좋은 높이까지 올라가는 공. 그래도 기어이 거기에 닿는다. 블록하러 온 스나가 "시라토리자와 때 보다 완전 높다"가 실감한다. 블록을 위에서 뚫어버리는 스파이크. 카라스노의 깔끔한 득점.
- 하이큐/258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는 오사무가 자신의 블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그동안 겪었던 "꺼림직한 블록"을 돌이켜보며 실마리를 찾는다.
* 스코어는 20 대 19. 1점 차를 유지했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 TO를 전후로 명백히 기세가 꺾였다. 이런데다 이나리자키의 사령탑은 채찍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츠무가 오사무의 플레이에 트집을 잡았다. "꾀를 부린다"는 것. 방금 전 아츠무의 눈에 걸린게 그거였다. 오사무가 "일단 미끼할게요" 식의 불성실하게 들어왔다. 오사무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고 "전력으로 뛰면 어떻게 끝까지 뛰냐"고 투덜댄다. 그러다 아츠무는 "치면 들어간다"며 일단 전력을 다하라고 질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작은 블록"이 두렵냐는 것.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오사무. 그런데 이 논쟁은 뜻밖의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 하이큐/271화 . . . . 2회 일치
* [[스나 린타로]]의 비기, 블록을 통과하는 듯한 스파이크의 비결은 상대 블록을 "조종"하는 특기 덕이었다. 린타로는 스파이크 시 타점의 가로 폭이 넓어 보통 선수의 약 두 배 정도가 된다. 이는 스파이크를 상반신 전체를 활용해 때리는 기술 덕. 팔의 움직임만 보고 블로킹을 하면 블로커가 "분명 맞게 블록했는데 통과해버렸다"고 착각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이나리자키 고교]]의 팬이었고, 스나 린타로 개인의 팬이었던 노인 관객은 일행에게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 [[미야 아츠무]]는 여전히 [[니시노야 유]]를 노리고 서브. 하지만 그것도 4회차에서 미스를 범하며 아웃된다. 그런데 완전히 승부욕에 불타던 니시노야는 오히려 그걸 아까워한다. 스코어 17 대 8. 이번엔 [[카라스노 고교]]의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가 서브한다. 서브는 [[마지로 아란]]에게, 마지로가 리시브에 실패하며 득점으로 이어진다. 아즈마네의 서브 에이스. 곧바로 이어지는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마지로를 정확히 노렸다. 이번엔 마지로의 리시브 성공. 공은 아츠무에게. 좌측에서 [[미야 오사무]]가 뛰어오른다. 그러나 이는 연막. [[츠키시마 케이]]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중앙에서 한 박자 늦게 달려나오는 린타로를 놓치지 않았다.
- 하일권 . . . . 2회 일치
2007년 스포츠 조선에 연재된 만화이다. 14년 전 딸과 헤어진 전직 조폭 두목이 자기의 아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인의 유언으로 집에 같이 살면서 딸을 돌보라는 말에 두목은 조폭 일에 손을 떼고 아버지의 친구라는 설정으로 딸과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8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의 하일권의 첫 작품이지만, 사실 졸업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 호구가 어느 날 인간의 기본적인 인격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로봇 시보레의 짝궁이 되어 펼쳐지는 만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목에 대해 궁금해 하였으나, 제목 3단합체김창남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후기에 밝혔다. 2009년 <3단합체 김창남>의 판권이 영국 제작사 페브러리 필름즈에 팔리게 되었다.
- 하주석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하준영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6월 16일]]<br>[[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구원
스프링 캠프에 합류했으며, 시범 경기에도 중간 계투로 등판하였다. [[2018년]] [[6월 16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 한국진 . . . . 2회 일치
* 《[[돌연변이 (영화)|돌연변이]]》 (2015년) - 화장실남 역
* 《[[실종느와르 M]]》 (OCN, 2015년)
- 한승조 . . . . 2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11-1-18}}
{{불확실}}
- 한승택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한승혁 (1993년) . . . . 2회 일치
그가 안 좋은 투구를 해서 대량 실점을 하게 되면 핵폭탄이 터진다고 하여 '한승핵터'이라고 불린다.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한요한 . . . . 2회 일치
*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 (졸업)
*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 (학사)
- 한준희 . . . . 2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한창수 . . . . 2회 일치
외교 관계 쪽 관직을 맡으며 [[일본]]에 드나들면서 친일 세력과 가까워진 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 일제의 신임을 받아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대한제국 순종|순종]] 등 왕실을 전담하는 [[이왕직 장관]]도 역임했다.
|제목=`마지막 황실 … ` 사진전 서울대 박물관서 열려
- 한혁수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함대 컬렉션 . . . . 2회 일치
한국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게임"이라며 혐오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몇몇 웹사이트에서는 칸코레에 대한 언급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매체 특성상 실제로 우익 성향을 가진 이들이 동인 활동에 많이 참여한다. 에로 동인지의 경우 심지어 '위안함'(위안부) 같은 민감한 단어도 사용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 허준영 . . . . 2회 일치
* 2003.2 ~ 2004.1 :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치안비서관
- 현재윤 . . . . 2회 일치
트레이드 후 1군에 복귀했으며, [[2013년]] 데뷔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7월 9일]] 잠실 NC전에서 [[찰스 쉬렉|찰리]]의 투구를 맞고 왼 손목 골절상을 당해 올스타전 출전권을 [[김태군 (야구 선수)|김태군]]에게 넘겼고, 주전포수는 [[KIA 타이거즈]] 포수 [[차일목]]이 나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4&article_id=0002930096 NC 김태군, 현재윤 부상으로 올스타전 합류] - 파이낸셜뉴스</ref> 이후 고질적인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2014년]] [[12월 2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300457 LG 포수 현재윤 ‘현역 은퇴’] - 스포츠동아</ref>
* 2008년 10월 20일 잠실구장 PS 4차전 두산 전 : 프로 데뷔 포스트 시즌 첫 선발 출장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2회 일치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이러한 가혹한 형벌도 사대부 계층에게 까지 미쳤는데, 공자의 제자 [[자로]]가 살해당하고 육젖이 되버린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개념은 [[법가]]에서는 비판의 대상이었는데 유가를 비판하고 [[법가]]를 내세운 [[진나라]]에서는 [[상앙]], [[이사]] 같은 재상들 역시 [[요참]] 같은 혹형에 처해졌다.
- 호민관 . . . . 2회 일치
[[평민]] 집회에서 선출된다. 그 권한은 평민 집회에 법률 안을 상정하거나, 법률 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 등이다. 또한 '신체불가침권'을 지닌다. 군사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매우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관직이지만 실질적으로 [[원로원]]의 견제나 현실적 한계 때문에 로마 역사 내내 호민관의 권한 행사는 크게 제약된 경우가 많았다.
- 홍병주 . . . . 2회 일치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홍병주와 [[홍영주]]는 모두 [[교리]] [[교사]]로 임명되었고,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열의와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비신자를 가르치며 병자들을 돌보는 것과 자선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므로,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그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복하였고, 그들에게 여러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 홍승목 . . . . 2회 일치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영]], [[민영기 (1858년)|민영기]]가 [[박제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 [[제국실업회]]
- 홍은철 . . . . 2회 일치
* [[1978년]] ~ [[1985년]]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1985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동문]]
- 홍준표 (1949년) . . . . 2회 일치
* 2004년 연세대학교 기획실 실장
- 홍창선 . . . . 2회 일치
*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 응용역학 박사.
[[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
- 화식 화장실 . . . . 2회 일치
화장실의 일종.
[[분류:화장실]]
- 화표 . . . . 2회 일치
[[중국 공산당]]의 간부로서, 2012년 권력 투쟁에 패배하고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가 [[다롄]] 시 시장으로 있을 때 세운 화표이다. 보시라이는 1993년 부터 2001년 까지 다롄에서 부시장, 시장을 지냈는데, 1997년 부터 4년에 걸쳐서 완성된 다롄의 싱하이광장은 베이징의 천안문광장보다도 넓은 면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광장의 중심에 화표가 건설되었는데, 높이가 19.97미터로 천안문 광장의 화표보다 2배 가량 높다. 또 베이징의 화표에는 용이 1마리만 새겨져 있으나, 다롄 화표는 9마리의 용을 새겨서 더욱 화려하였다.
그러나 이 화표는 결국 2012년 보시라이가 실각하고 체포되어, 부패와 범죄로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면서 [[설레발]]로 끝나고 말았다. 게다가 2016년 8월 5일, 베이징 신경보(新京報)에서는 네티즌들의 소식을 인용하여 보시라이가 건설한 화표가 밤새 철거당했다는 소식을 알려, 보시라이의 꿈처럼 그가 세운 --설레발-- 화표 역시 소멸하여 보시라이의 야망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 황경태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황교충 . . . . 2회 일치
황교충은 2006년 [[한양대학교]]에 다닐 당시 춘계대학연맹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우수 골키퍼 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양대, 숭실대 꺾고 2006 춘계연맹전 정상 등극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39&aid=0000003295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6-4-17}} }}</ref> 이러한 활약으로 2007년에는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정기전에 뛸 대표 골키퍼로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제4회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25일 안양 개최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578214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7-3-19}} }}</ref>
[[2010 김지혁 선수의 군입대로 인한 공백을 메꾸기 위해 K리그 드래프트|2010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포항 스틸러스]]에 지명되어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황교충·김다솔 등 골키퍼 대폭 보강 |url=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61164&news_area=060&news_divide=06002&news_local=10&effect=4 |출판사=경북일보 |date={{날짜한글화|2009-11-18}} }}</ref> 2010년 10월 9일,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진호 결승골’ 포항, 광주 누르고 5경기 만에 승리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1009163719§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0-9}} }}</ref>
- 황두성 . . . . 2회 일치
[[2009년]] 시즌에는 처음에 마무리 [[투수]]로 보직으로 활동하다가 구위 난조로 잠시 2군에 잠시 갔었다. 그 후 시즌 중반에 선발 보직으로 활약하여 3.51 방어율에 40게임 등판, 8승 3패 9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하고 있다가 재활에 실패했고 무릎 부상까지 겹쳐 1군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1년]] [[11월 25일]]에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방출되자마자 곧 은퇴하고 자신이 처음 지명받았던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코치로 옮겼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1316335552729 황두성, 삼성에서 지도자로 변신…잔류군 코치 계약] - 아시아경제</ref>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하였다.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리 !!패전 !!세이브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황수범 . . . . 2회 일치
[[2011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5월 18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7년]] [[9월 2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첫 선발 승을 기록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1046010&rrf=nv '데뷔 첫 승' 황수범 "너무 오래 걸린 것 같다"] - 조이뉴스24</ref>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황용식 . . . . 2회 일치
* 1982 :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 정무행정관<ref name="사전"/>
- 황정립 . . . . 2회 일치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수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 황찬호 . . . . 2회 일치
* 《[[장영실 (드라마)|장영실]]》 (KBS1, 2016년) – 무산 역
- 회맹 . . . . 2회 일치
춘추시대의 회맹은 제나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682년 가을, 송나라의 권신 남궁장만南宮長萬이 송 민공緡公을 시해, 대부 구목仇牧과 태자 화독華督을 살해했다. 기원전 681년 3월, 제 환공은 주 왕실의 허가를 얻어 북행北杏(지금의 산동성 동아현)에서 제후들을 모았으며, 송나라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 모인 제후들 가운데서는 송 환공이 '공작'으로 가장 작위가 높았으나, 제 환공이 '후작'이었음에도 가장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제 환공이 맹주가 되었다.
- 후예 . . . . 2회 일치
== 현실 ==
* 별 볼일 없는 인물도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사실 유명한 사람의 후손인 경우가 흔히 있다.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1회 일치
사고 당시 다리 아래에는 가로 10미터, 세로 2미터, 깊이 15미터의 공간에 작업자 10명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작업 중이었으며, 2명은 상부에서 일을 하고, 부상자 2명은 현장 바깥 사무실 근처에 있었다.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1회 일치
* 미스미는 부담스러워하며 옆 반상에만 신경쓰면 자기가 대국하는 타나카씨에게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 A-10 선더볼트 . . . . 1회 일치
1960년대 미 공군이 근접항공지원용 공격기를 공모했을 당시 [[페어차일드|페어차일드 리퍼블릭]]사가 내놓은 모델이 채택, A-10 선더볼트가 되었다. 1972년 첫 비행을 벌였고 1975년 실전 배치 되었다고.
- AFC 회원 랭킹 . . . . 1회 일치
여기에서 말하는 점수와 순위를 통해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축구협회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서아시아 계열과 동아시아 계열간의 우위를 명백히 나타낼 수는 없다.
- DC 확장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애로우버스]]라 불리는 드라마 유니버스와는 '''연계되지 않으며''' 또 다른 드라마인 [[파워리스]]도 배경 세계가 연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슈퍼맨이 지구에 오기 이전 시기의 크립톤 행성이 배경이라는 드라마 크립톤도 배경 세계가 공유되는지 확실하지 않다.
- Europa Universalis 4 . . . . 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식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영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1회 일치
난이도는 상당히 쉽다. 실제역사대로라면 조선이 남만주를 먹는 즉시 명나라에서 견제가 들어오겠지만 이게임에서는 그런게 없다보니(...) 초반애 훈춘(hunchun)이나 헤투 알라(Hetu Ala)정복 미션을 받고 남만주를 먹고난뒤, 지린에 클레임을 걸고 먹어둬서 지린노드를 장악하면 된다. 다만, 예전에는 조선과 명에 역사적 친구 보정이 있어서 명과 동맹을 걸고 편하게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집어삼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보정이 삭제되어 명과의 관계도를 미리미리 올려둬서 침공의 가능성을 줄여둬야 할것이다. 결국 조선의 난이도는 명이 얼마나 빨리 갈라지느냐에 있다. 명이 초반에 천명이 터져서 조각조각 갈라진다면 게임은 굉장히 쉬워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고달픈 난이도가 될것이다.
- Europa Universalis 4/동구권 . . . . 1회 일치
하필이면 여기가 오스만제국의 확장방향에 그대로 걸려서(...)플레이어는 실제 역사대로 여길잡을경우 유럽의 방파제역할을 그대로 떠맡아야 될 가능성이 매매우 높다.
- FastSearchMacro . . . . 1회 일치
FastSearch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wiki_indexer.pl은 하루에 한번정도 실행시켜야 하며, 5천여 페이지에서 약 5분여 동안의 시간이 걸린다. 이것을 php로 간단히 바꾸어 보니 약 7분여 소요.
- GHQ . . . . 1회 일치
GHQ는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로서, '총사령부'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군]]--[[연합군]][* 소수의 영연방군이 참가하였으나, 대부분은 미군이었으므로 사실상 미군.]이 [[일본]]에 --[[막부]]--[[군정]]을 펼치기 위하여 설치한 사령부를 뜻한다. [[맥아더]]를사령관으로 하였으며, GHQ에서 지시하는 점령정책이 일본 정부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1945년에 설치되어, 1952년에 강화조약이 맺어지면서 폐지되었다.
- IsbnMap . . . . 1회 일치
IsbmMacro에서 사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ISBN을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 JOY축제 . . . . 1회 일치
2003년 5월 18일, JOY 라는 여성은 남편 HIDE와 동생 부부와 함께 [[술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때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갔으며, 아이들은 술집 안을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그걸 가게의 어떤 사람이 "부모의 훈육이 나쁘다."고 발언하고, 딸이 그 사실을 JOY와 HIDE 부부에게 말하자 분노한 HIDE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점원들을 추궁하고, 색출해내서 점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음 가게 점장에게도 소리를 쳤다…라는 내용의 일기를 올렸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부산은 1차전의 패배 때문에 반드시 2골 이상을 넣어야지만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반면에, 수원FC는 1차전(홈)에서 1골을 넣었기 때문에 역으로 1골만 넣어도 3실점 이상 먹이지만 않는다면 승격이 눈앞에 있던 상황.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1회 일치
안산은 2014시즌에 광주를 상대로 패배 자체가 없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규정을 생각하면 무승부만 되어도 안산의 진출이 확실했는데 광주의 돌풍이 매서웠다. 여름과 후반 20분경에 교체되어 들어간 파비오가 2골 1어시스트로 3골을 모두 기여함으로써 안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도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 NDK . . . . 1회 일치
[[아스키 아트]]의 일종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의 실패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인다.
- QTE . . . . 1회 일치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는 메인 스토리 중간중간에 QTE가 들어있다. 실패할 경우 위험한 경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죽음의 감각"을 강제로 발동시킨다.
- T.O. 모로우 . . . . 1회 일치
[[프로페서 아이보]]와 함께 안드로이드인 [[투모로우 우먼]]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 투모로우 우먼을 이용해 [[저스티스 리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회 일치
본명은 토마스 알렉산더 스콧(Thomas Alexander Scott).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사장. 밴더빌트의 라이벌이자 카네기의 스승격 쯤 되는 사람.
- This is the Police . . . . 1회 일치
마피아 두목.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다니는 나이에 비해 트렌디한 노인 같지만 실은 굉장히 잔인한 사람. 어떤 무기상들이 샌드의 허가 없이 프리버그에서 사업을 벌이자 그 무기상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죄다 죽여버렸다고 한다. 켄드릭이 도망친/끔살당한 이후 보이드를 협박해. 켄드릭이 하던 일을 대신 하게한다.
- UserPreferences . . . . 1회 일치
'''[[GetText(logout)]]'''을 누르면 쿠키가 지워지고, '''[[Gettext(Login)]]'''을 하시면 쿠키가 사용되며, 다른 곳에서도 같은 설정을 유지하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공공의 PC에서 [필명]이 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GetText(Logout)]]'''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 . . . 1회 일치
전투나 보급 부족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면, 해당 사상자는 해당 연대가 나온 POP에서 보충된다. 보충이 진행되는 동안은 해당 부대의 아이콘이 노란색으로 빛난다. 만약 해당 POP의 인구수가 연대를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면 붉은색으로 빛나게 된다.
- Victoria II/정당 . . . . 1회 일치
실제 역사상 해당 사상을 가진-혹은 그렇게 개발자들이 생각한-정치 세력이 있었다면 정당으로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클론 정당으로 튀어나온다.
- Y2K 버그 . . . . 1회 일치
== 실제 상황 ==
- 가공의 도시 . . . . 1회 일치
== 현실 세계 ==
- 가면부부 . . . . 1회 일치
부부나 가족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이미 불륜, 외도를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덮어놓고 있는 경우도 있다.
- 가석방 . . . . 1회 일치
가석방은 형기가 종료되어 풀려나는 석방과는 다르다. 가석방 일에서 형기종료일까지 기간 동안은 관할경찰서나 보호관찰소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된다. 가석방자는 이 떄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은 취소, 혹은 실효된다.--[[한군두|한감두]]-- 물론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하며 당연히 저지른 범죄는 가석방 중에 저지른 것이므로 매우 질이 좋지 않게 본다.
- 감정없는 존재 . . . . 1회 일치
== 현실 ==
- 강대식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2017년 2월 [[윤순영]]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청장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하였다.
- 강동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위치한 강동진베이스볼 (야구교실) 을 운영중에 있다.
- 강세정 . . . . 1회 일치
|2008||MBC||[[환상의 짝꿍 사랑의 교실]]||진행||
- 강재형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1987년]] : [[MBC 아나운서실]] 아나운서
- 개밥 . . . . 1회 일치
사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영양 밸런스나 염분 측면에서 개의 몸에 그리 좋지 않아, 장기적으로는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 거유 . . . . 1회 일치
마쓰자카 키미코는 당시 공칭 110.7cm(실제로는 90cm)라는 가슴으로 [[일반인]]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며, 거유라는 단어가 일본 문화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 건담 동물원 . . . . 1회 일치
>반대측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써있는 오락실 벽보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2화 . . . . 1회 일치
* 이렇게 만든 책을 집모드 우마루(코마루)에게 보여주는데 실제 재본된 책수준이라 놀라게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3화 . . . . 1회 일치
* 사실 키리에는 자책하지만 고등학생 신분으로 상업작가로 발탁되는 경우는 희귀한다. 그런데 우마루가 변호해줬다곤 해도 명함을 받게 됐으니 엄청난 재능.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1회 일치
* 카나우의 위기와는 별개로 요리교실은 착착 진행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 겠다고 하는데.
- 검은방 시리즈 . . . . 1회 일치
류태현의 애인. 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의 일로 인해 검은방 1편에서 감금당한다. 검은방 1편 이후 실어증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게된다.
- 게임 소설 . . . . 1회 일치
거의 대부분의 게임 소설이 실제로 해보면 미묘할 듯한 애매한 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다.
- 고다이고 덴노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고대사 이후로는 덴노가 직접 나서서 정치에 개입한 몇 안되는 사례이다. 후지와라 씨에 의한 섭관 정치, 상황에 의한 인세이 정치, [[막부]]의 통치 등으로 덴노가 직접 나설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 하지만 그 성과가 실로 비참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후 덴노들은 찌그러져 사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 고릴라 보스 . . . . 1회 일치
갱스터. 가스실에서 사망했으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뒀는데 그 내용은 자기 뇌를 [[고릴라]]에게 이식하는 것. 이렇게 해서 고릴라의 몸을 얻었다.
- 고무장갑 . . . . 1회 일치
[[문자]] 그대로 [[고무]]를 써서 만든 장갑. [[설거지]]와 [[김장]] 등 일상 생활에 쓰는 빨강 고무장갑과 실험 및 의료에 사용되는 고무장갑이 있다.
- 고산케 . . . . 1회 일치
고산케의 조상은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쇼군]]의 지위를 계승한 본가와는 별도로 세개의 번에 따로따로 봉해져서 각자 [[다이묘]](대영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산케는 도쿠가와 본가의 혈통이 단절되면 본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혈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8대에서 14대 까지는 키슈 도쿠가와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 고전을 읽는 사이트 . . . . 1회 일치
조선왕조실록
- 곰둘라 . . . . 1회 일치
마블의 [[괴물]] 캐릭터인 거대 [[미이라]]. 사실은 [[외계인]]이며 지구 정복을 위해 와서 이집트에 살고 있었으나 인간에게 패했다.
- 공주님 안기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상 이 자세로 상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남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상태가 되지 않는다.
- 공후백자남 . . . . 1회 일치
춘추시대에는 위(衛), 진(晋), 제(齊) 역시 공을 칭하게 되었다. 제나라는 태공망의 후손으로, 태공망이 [[삼감의 난]]을 진압한 공적으로 공에 필적하는 권한을 얻었으며, 위나라는 [[주유왕]](周幽王)이 살해되었을 때, 이 복수를 하였기 때문에 공작의 지위를 얻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공'을 칭하는 것은 당대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공을 칭하는 것은 일종의 참칭이었으나 주 왕실의 권위가 저하한 춘추시대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 곽결호 . . . . 1회 일치
* 2001년 : 환경부 기획관리실장
- 곽성문 . . . . 1회 일치
* MBC 보도국 TV편집2부 차장, 라디오뉴스부 부장, TV편집2부 부장직대, 사회2부 부장직대, 국제팀 팀장, 편집팀 팀장,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뉴스데스크편집부 부장, 보도국 부국장, 스포츠국 국장
- 곽월 . . . . 1회 일치
[[1574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나갔다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했다. [[1576년]] 다시 [[의주]][[목사]]로 나갔다가 그 뒤 [[호조참의]]를 거쳐 [[1578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冬至使)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동지사]]로 파견되었을 때 [[명나라]] 황제로부터 붉은 비단, 금안(金鞍), 쌍연(雙硯)벼루, 화병(畵屛), 시서(詩書) 등을 특별 선물로 받기도 했다.
- 구미시 . . . . 1회 일치
흥선 대원군의 명으로 1872년에 만들어진 지방 지도의 선산읍성 일대 부분으로, 붉은 원 안에 구미역(九尾驛)이라고 적혀 있다.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펀드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대상국에서 반감을 초래하여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며,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 권민중 . . . . 1회 일치
신장은 170cm이고 체중은 51kg인 그녀는 [[영화]]감상과 [[골프]]와 [[수영(스포츠)|수영]]에 취미가 있고 한국 무용과 재즈 댄스, [[발레]]와 [[청소|실내 청소]]와 [[노래]]에 특기가 있으며 [[1996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한국일보'로 입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 권은희 (1959년) . . . . 1회 일치
* 1984년 1월 ~ 1985년 12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데이터통신실 연구원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1회 일치
그로브 스트리트 패밀리즈의 단원. OG록(OG Loc)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래퍼]]가 되고 싶어하지만 실력은 영 아니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지역 . . . . 1회 일치
주인공인 칼 존슨의 고향이자 처음 활동하게 되는 곳. 현실의 [[로스 앤젤레스]]를 모티브로 했다.
- 그린 랜턴 . . . . 1회 일치
DC의 인기 히어로다보니 실사 영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 근육경련 . . . . 1회 일치
* 수분 상실 : 설사, 땀을 흘렸을 때 쥐가 난다.
- 기동전사 건담 . . . . 1회 일치
그러한 반면에 건담은 TV판 40화 이상 혹은 극장판 3편이라는 장기 작품을 사실상 단 세가지 무기만 가지고 밀도 있는 액션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기의 숫자는 줄었지만 오히려 액션은 훨씬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졌다.
- 기은세 . . . . 1회 일치
* [[2009년]] 키네틱플로우 - 현실에 2% 부족한 연인들에게
- 길은혜 . . . . 1회 일치
* [[2011년]] 《[[마마 (2011년 영화)|마마]]》 ... 응급실 간호사 2 역
- 김경식 (희극인) . . . . 1회 일치
* KBS2 《[[두뇌쇼! 진실감정단]]》
- 김대륙 . . . . 1회 일치
6월 10일 [[kt wiz|kt]]전에서 7회 최준석의 대주자로 출전했으나 주루사를 당해 1대 7에서 도망가는데 실패했다. [[롯데시네마(롯데 자이언츠)|그리고]]…
- 김동한 (1919년) . . . . 1회 일치
[[1978년]]부터는 결핵환자 요양시설을 설립, 경영하였다. 그의 세례명은 '''가롤로'''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 태생으로 [[추기경]] [[김수환]]의 넷째 형이었다.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光山)]]이며 [[대구광역시]] 출신.
- 김동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민수 (1992년) . . . . 1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김민아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2011년]] : [[MBC 라이프]] 《[[실험쇼 천재적인 생활]]》
- 김봉수(1953) . . . . 1회 일치
다만 "현실 정치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제20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김상엽 (야구인) . . . . 1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김상희 (가수) . . . . 1회 일치
1999년에는 아들의 병역비리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42800209123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4-28&officeId=00020&pageNo=23&printNo=24181&publishType=00010 돈으로 때운 국방의무] "1999년 4월 28일 동아일보 참조"</ref> <ref>[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90427023100525 <초점> `有錢免除' 병역면제 비리 실태] "1999년 4월 27일 연합뉴스 참조"</ref>
- 김석형 (역사학자) . . . . 1회 일치
김석형은 1963년에 발표한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66년에 발표한 《초기조일관계사》라는 저서에서 칠지도가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바쳤다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오히려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삼국분국설은 현재 많은 부분이 수정되거나 파기되었지만, 백제 왕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학설은 남북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유물의 상감 기법 등으로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되며 가지가 실제로는 7개가 아닌 6개라는 등 칠지도를 《[[일본서기]]》의 내용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 김수학 (법조인) . . . . 1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5년 9월 18일에 [[대한민국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를 "돈을 주고 공천을 받았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수 차례 유포한 김천시장 박팔용에 대해 "특별한 전과가 없어 벌금형을 선고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ref>동아일보 1995년 9월 19일자</ref>
- 김영준(1941) . . . . 1회 일치
국립체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체국]]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1969년 [[사법시험]](제10회)에 합격하였고 [[학생군사교육단|ROTC]] 제2기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여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전역하였다. 전역 이후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 김우동 . . . . 1회 일치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해당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동석]]이 재검표 소송을 제기하여 재검표 결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102400209103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8-10-24&officeId=00020&pageNo=3&printNo=11159&publishType=00010|당락이 뒤바뀌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 김유현 . . . . 1회 일치
'''김유현'''([[1987년]] [[1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배우 김유현은 2015년 6월 7일 대구에서 9살연상 일반인 사업가(건설회사 부사장)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분간은 신혼생활에 충실할 예정이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7050100050700003393&servicedate=20150704 김유현 결혼, 9살 연상 건설회사 부사장과…'전우치' 등서 청순연기]]</ref>
- 김인철 . . . . 1회 일치
*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인 [[김성근]] 감독과는 1991~92년 삼성 1군에서, 2000년 삼성 2군에서 함께한 바 있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복귀하면서 15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는데,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일은 많아졌지만 팀 성적 향상에 확신을 갖고 본인 포함 전 스태프들이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31220|해당 기사]]
- 김장섭 . . . . 1회 일치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상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상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김정재 . . . . 1회 일치
계파로는 범 [[친박]]계로 분류된다. 실제로 탄핵 표결에서 [[전희경]]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 김지훈(배우) . . . . 1회 일치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상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남주역을 맡았다. 인조반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반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태를 합친다면 반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 김취경전 . . . . 1회 일치
김형국 일가에서는 선애의 시비 채향이 선애가 야반도주하자 안씨를 무서워하여, 어사 서윤택(徐潤擇)에게 집안의 흉사를 고발한다. 서윤택은 김형국과 안씨를 국문하고 취경 남매를 모함한 윤도익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윤도익은 흉계를 꾸며 서윤택은 반대당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과 유배를 당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이 진실을 간파하여 서윤택은 복직되었다.
- 김태한 . . . . 1회 일치
!연도!!소속!!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승률!!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삼진!!실점!!자책점
- 김태환(1943) . . . . 1회 일치
[[새누리당]]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를 두고 살생부가 현실이 되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당연히~~ 후보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새누리당 [[장석춘]] 후보에게 밀려 떨어졌다.
- 김형태(정치인) . . . . 1회 일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허나 선거 기간부터 과거 [[제수]]씨 [[성폭행]] 미수 의혹으로 곤욕을 치뤘다. 이후 조카에게 사과하는 녹취록이 유포되어서 큰 망신을 당했다. 동생의 아내와 외도를 한 [[라이언 긱스]]를 빗대 '포항긱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하여 당선 직후 출당되어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공직선거법]]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169&yy=2013|위반]]으로 2013년 7월 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 [[2001년]] [[MBC]] 금요 드라마 《[[우리집 (드라마)|우리집]]》 ... 강태실 역
- 나다카 타츠오 . . . . 1회 일치
* 객실 승무원 여성과 교제한 적이 여러번 있다.
- 나비야 꽃이야 . . . . 1회 일치
확실한 기원은 없지만 가장 오래된 용래는 [[마쿠라노소시]]에 있다. 비슷한 시기에 [[겐지모노가타리]]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헤이안 시대에는 관용적으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1회 일치
* 게다가 가장 큰 장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아이디어든 일단 만들어 놓고 보는 과감함.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1회 일치
* 지로 쿄카, 야오요로즈 모모, 쇼지 메조, 아스이 츠유는 이미 통과. 대기실에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1회 일치
* 대기실 사방의 벽이 열리며 학생들이 일제히 현장으로 급파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1회 일치
미도리야는 임시면허는 꼭 실력 순으로 딴게 아니라고 위로하려 하지만 바쿠고는 닥치고 들으라며 폭언한다. 아무튼 그는 계속 기분이 나쁜 상태였고 짜증스러웠는데 얼마 전 "대사건"을 통해서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회 일치
진심으로 싸울 것을 다짐하는 [[미도리야 이즈쿠]]. 그와 동시에 묘한 것을 깨닫는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그들이지만, 사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1회 일치
생각이 정리됐는지 바쿠고는 한숨을 쉬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더 있냐고 묻는다. 올마이트는 솔직하게 교장과 리커버리 걸, 그리고 학생 중에선 바쿠고만이 그걸 안다고 알려준다. 바쿠고는 그가 숨기려한 이상 미도리야와 달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며 이 날의 사건이 정리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1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는 우연찮은 기회에 시에핫사이카이의 부하를 "예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가 핫사이카이 저택 지하의 비밀 시설에서 "에리쨩"과 접촉하는 모습이 확인,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이 예지에서는 지하시설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입구부터 에리쨩이 감금됨 방까지 이르는 "최단 루트"는 확보되었고, 작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1회 일치
* 크로노는 실제로 당했었지만 전투 중 오버홀이 몰래 크로노를 치료해놨다. 바로 눈을 뜨진 못했지만 오버홀의 외침을 듣고 깨어나 공격한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8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는 "적의 목표는 [[바쿠고 카츠키|바쿠고]]"란 사실을 전파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0화 . . . . 1회 일치
* 처음에는 커터칼로 찔러서 피를 내려고 하지만, 사실 등에 매고 있는 가방 같은데 달린 튜브로 피를 빼낼 수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1회 일치
* 결국 바쿠고 탈환에 실패한 미도리야는 울부짖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1회 일치
[[바쿠고 카즈키]]를 빼앗긴 A반은 소수의 인원이 바쿠고 탈환 작전을 실행하기로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1회 일치
* "선생"의 정체가 "올 포 원"임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7화 . . . . 1회 일치
* 한편 빌런연합의 아지트에서는 여전히 바쿠고와 대치하고 있다. 어떻게든 큰걸 한 방 터뜨리고 도망치려고 하지만 [[쿠로기리]]의 [[워프]] 능력이 거슬려서 실행을 못하고 있다.
- 나체의 마하 . . . . 1회 일치
[[마누엘 고도이]]가 실각된 이후에 고도이의 재산이 몰수되면서 나체의 마하도 발견되었는데 이 그림 때문에 고야는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신임 국왕 [[페르난도 7세]]가 고야를 총애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 때 똑같이 고도이가 소장하고 있던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역시 몰수당했는데, 같은 누드화라도 옆에 [[천사]]를 그려놓고 [[여신]]을 그린 그림이라 괜찮았다고 한다(…).
- 남봉진 . . . . 1회 일치
*사위 : 지정석 (화광실업 대표)
- 넌센스 . . . . 1회 일치
한국에서는 보통 '헛소리다'라는 말을 젊잖게 돌려서 할 때 사용한다. '그 말은 헛소리다'보다 ;그 말은 넌센스다'가 좀 더 젊잖고 세련되게 느껴지며 후자는 싸움이 날 가능성이 조금 적다. 물론, 실제로는 똑같은 뜻이다.
- 네드 켈리 . . . . 1회 일치
1887년 10월, 경찰은 켈리 갱을 체포하기 위해 무장한 경찰관 네명을 보냈다. 하지만 캘리 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경찰 팀이 야영지를 차린 스트링이바크 크리크(Stringybark Creek)를 습격했다. 이들은 경찰관들을 습격해 세명[* 로니건 순경(Constable Lonigan), 스캔론 순경(Constable Scanlon), 케네디 경사(Sergeant Kennedy).]을 살해하고 한명[* 매킨타이어 순경(Constabel McIntyre).]을 붙잡았다. 이후 켈리 갱은 호주의 [[은행강도|은행을 털었다]]. 1889년 2월에 네드 켈리에게 걸린 현상금은 8,000 파운드로 올라갔지만 켈리 갱은 잡히지 않았다. 켈리 갱이 최후를 맞은건 1880년 6월이 되어서였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가족 히어로라는 점에서 [[판타스틱 포]]를 연상케하는데 의도한 것인지 주연인 짐 파웰을 맡은 마이클 치클리스는 판타스틱 포 실사영화에 출연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것인지 국내에서 방송할 때도 제목이 '판타스틱 패밀리'. 방송사인 ABC도 [[마블 코믹스]]와 연관이 있다. 이외에도 가족 히어로라는 공통점 탓에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떠오르게 한다.
- 노동기준감독서 . . . . 1회 일치
어디까지나 명확한 노동법 위반에 대하여 움직이는 기관으로서, 노동기준법에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명확하지 않으면 실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노동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은 노동기준감독서의 관할이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조건 이나 법적판단이 미묘한 문제에서는 [[상담]]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 노루토끼 . . . . 1회 일치
보통은 보이지 않지만, 인게임 계절 이벤트인 '가을 축제'에서 굳이 맥주를 마실 필요 없이 어떤 술이든 취하도록 마시면 이벤트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매일 보고 싶다면 이벤트 중에 수행 가능한 일일 퀘스트를 통해 애완동물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꼭 얻어보도록 하자.
- 노무리쉬어 . . . . 1회 일치
* 캐릭터 디자인의 경우, [[지퍼]]와 실버 액세서리가 많이 붙어 있으며 흑색 기조, 현대적인 패션이 많다.
- 노영하 . . . . 1회 일치
* [[1972년]] 제17기 [[국수전]] 준우승(대 윤기현)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70600209208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2-07-06&officeId=00020&pageNo=8&printNo=15617&publishType=00020 盧永夏四(노영하사)단 國手戰(국수전)서 河燦錫四(하찬석사)단 꺾어 河四(하사)단 重大(중대)한 失着(실착)] 동아일보 8면 1972년 7월 6일 확인</ref>
- 노재헌 . . . . 1회 일치
*1991년-1993년 국회의장실 국제담당비서관
- 농가 . . . . 1회 일치
농가(農家) 전체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고, 농업 종사자 이외에도, 사고・행동 양식이 그렇다면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민 전체를 싸잡아서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니세코이/215화 . . . . 1회 일치
* 사실 대부분의 독자는 이치죠 어머니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 니세코이/217화 . . . . 1회 일치
* 이치죠는 사실 그때 약속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
- 니세코이/219화 . . . . 1회 일치
* 마리카는 사실 10년 전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 니세코이/222화 . . . . 1회 일치
* 치토게는 포기한 척했지만 사실이 드러나자 "역시 내가 아니잖아"라고 자신은 가짜일 뿐이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 니세코이/223화 . . . . 1회 일치
츠구미의 진실도 밝혀진다.
- 니세코이/227화 . . . . 1회 일치
* 자신이 10년 동안 오노데라를 좋아한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달리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말한다.
- 니시키노미하타 . . . . 1회 일치
붉은 [[비단]]에, 일월을 금은으로 자수하거나, 그린 깃발을 뜻한다. [[가마쿠라 시대]] 이래, [[일본]]에서는 조적(朝敵)을 토벌하러 갈 때 쓰는 관군(官軍)의 깃발로 쓰였다. 금기(錦旗,킨키)라고도 한다.
- 니트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수입되어 실업자, 프리터도 아닌 인간에게 쓰이게 되었다.
- 니트로글리세린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묘하게 자주 테러범이나 악당이 사용하는 폭약으로 나온다. 사실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하지만 너무 민감해서 사용하기 불편한 화약일 뿐이고, 결국 폭발력 자체는 다이너마이트하고 별 차이도 없으니 생 니트로글리세린을 그대로 쓰는 것은 '''그냥 쓰기 불편한 화약'''(…)을 그대로 쓰는 것 뿐이지만 그 화끈함에 미디어에서 이상하게 이런데서 자주 주목받는 존재.
- 담배 . . . . 1회 일치
기분 전환 등의 효과가 있지만 그 댓가로 건강을 해친다. 일단 [[발암]] 물질로 분류되어 [[암]]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 우선 담배 연기의 주 성분인 타르부터가 몸에 매우 해로운 물질인데다 그 외에도 담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첨가한 첨가물들이 더욱 더 몸에 해롭게 작용하고, 미량이지만 방사성 물질도 들어가 있다. 거기에다 의존성도 있어서 담배를 일단 피게 되면 끊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대중매체에서 유명인이 담배를 멋들어지게 피우거나 하는 장면을 보고 영향을 받아 흉내내 보는 사람도 종종 있다. ~~현실은 연기 때문에 민폐이고, 담배 피우면서 목에 끓어오르는 가래 때문에 주변에 가래를 퉤퉤 뱉어서 또 민폐~~
- 대중흑기 . . . . 1회 일치
[[가마쿠라 시대]]에 겐지 일족이 각지에 정착하여 여러 분가로 분할되면서, 백기 역시 그대로 쓰이지 않고 분리된다. 대중흑기는 백기의 바탕에다가 검은 실선을 그려서 만들어진 닛타 가문의 표식이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회 일치
* 대학팀: 서울숭실대, 강원한라대, 서울연세대, 강원상지대, 대전한남대, 충북건국대, 충북청주대,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실제로 사모아로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면 상당히 고난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 당시 일본은 [[GHQ]]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망명을 시도했다면 망명정부 설치 지시는 이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십만명 정도 규모의 망명정부는 결국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백제 시즌 2--
- 데모데모닷데 . . . . 1회 일치
2채널에서는 주로 가정, 육아 판에서 사용한다. 현실에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짜증난다고 하거나, 스레드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이 이런 발언을 반복하여 뭐하러 상담하러 왔냐고 욕을 먹기도 한다.
- 도게자 . . . . 1회 일치
본래 고대로부터 일본에서 귀인이 통행할 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인사를 했는데 여기에서 도게자가 유례하였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된 풍속이었다. [[다이카 개신]]에서 궤례를 폐지하고 중국식 입례를 도입하는 칙령을 내렸으나,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도짓코 . . . . 1회 일치
덜렁거리고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
- 독친 . . . . 1회 일치
세상의 잔인하고 가혹한 현실을 가르치기 위하여 아이에게 엄격하게 대한다고 주장한다.
- 돈부리 . . . . 1회 일치
물건을 돈부리 그릇에 담을 때의 의성어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여겨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 디텍티브 침프 . . . . 1회 일치
[[스펙터]]와 싸우기 위해 결성된 섀도팩트에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으나 뛰어난 탐정기술과 천재 전술가로서의 실력을 보여주서서 블랙 앨리스와 나이트셰이드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몇몇 계획을 세웠다.
- 딴따라 . . . . 1회 일치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후반 까지도 연예인에게 [[저작권]], [[초상권]] 등의 권리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았고 연예계는 [[조폭]]이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벌고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3D]] 업중에 가까웠다. 결국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플 수 박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인식이 부모님 세대에게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고 보면 된다.
- 똥 . . . . 1회 일치
사람들의 인식은 더러운 것. 실제로도 더럽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회 일치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의 시카고, 갱단이 운영하던 비밀 술집에서 연주자로 일하던 조와 제리는 경찰이 습격한 술집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다. 체포는 면했지만 실업자가 된 이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갱단 보스 스패츠가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을 밀고한 다른 갱단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조와 제리 또한 스패츠 일당에게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 라데츠 . . . . 1회 일치
손오공에게 [[사이어인]]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오공은 어린 시절 머리를 부딪치고 기억을 잃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라데츠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라데츠는 손오공에게 동료로 들어오라고 강요하며, 손오공이 거부하자 손오반을 납치해간 다음 지구인을 죽여서 쌓아놓으라고 요구하고 떠난다. 하지만 오공은 라데츠의 사악한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껴 받아들이지 않는다.
- 라이트노벨 . . . . 1회 일치
문학의 한 장르로, 말 그대로 가볍게 읽고 즐기는 것이 목적인 소비지향적인 [[소설]]을 뜻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라이트노벨은 몰라도 최근에는 주로 오타쿠들이 소비하는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장르의 특성상 러브코메디나 또는 전쟁물 등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내용들이 자주 보인다. 2000년대 중반~2010년대에는 국산 라이트노벨도 만들어졌으나 인기 저하 및 웹소설의 부흥으로 사실상 멸망했다고 보고 있으며, 여전히 시장에선 일본산 라이트노벨의 영향력이 크다. 또한, 작품들 중 인기있는 라이트노벨의 경우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1회 일치
주축군이 공격, 연합군이 방어인 맵. 시가지다. 최초의 두 포인트는 시가지가 아니지만 광속으로 돌파되니 사실상 시가지. 연합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중간의 강과 마지막 포인트인 레닌 광장. 주축군 측은 4호 전차를 사용할 수 있다.
- 레드맨 . . . . 1회 일치
* 레드 애로우: 붉은 [[창]]. 원래는 [[펜]] 정도 크기지만 사용할때는 레드맨 목 언저리까지 오는 크기로 늘어난다.
- 레어 . . . . 1회 일치
실제로는 상위등급인 '영웅'이나 '전설'이 있기 때문에 진짜 아무 가치도 없는 노등급 잡템보다 간신히 나은 수준이다.
- 레이나 검랑전설 . . . . 1회 일치
[[켄류]]는 왠지 로봇이라기보다는 파워드 슈츠에 가까운 디자인이 되었다. [[바이캄프]]는 디자인 자체는 거대하고 위압적이라서 괜찮은 편이지만, 3편에서 어둠의 바이캄프로 소환되었다가 켄류도 아닌 그냥 검랑만 든 레이나에게 졌다.[* 사실 이 때 레이나가 검랑을 들면서 일단 '변신 비스무리한 연출'이 있긴 있고, 이 작품의 켄류는 로봇이 아니라 파워드슈츠 같은 것이므로 일단 켄류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을듯.]
- 레킹 크루 . . . . 1회 일치
[[천재]] [[과학자]]. 현역 시절 당시에는 [[브루스 배너]]([[헐크]])도 만들지 못한 소형 감마 폭탄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였다. 감마방사선 분야에서의 뛰어남 덕분에 '검은 브루스 배너'라고도 불릴 정도. 그러나 리치먼드 기업에 의해 모든 발명품과 연구 자료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겼고, 기업에 항의했으나 쫓겨났다. 그 뒤에 폭탄을 훔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시기에 레커와 만나서 캠프,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으며 이후 레커의 마법의 쇠 지렛대에 의해 초인이 되었다.
- 렉스 더 원더독 . . . . 1회 일치
[[래시]]처럼 머리좋은 개 캐릭터로 추리를 통해 주인을 위기에서 구했고 말타기, 작은 [[기구]] 운행, 밧줄이나 덩굴 오르기가 가능하다. 전투실력도 지니고 있으며 젊음의 샘에 빠진 뒤로는 불로가 되었다.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대머리]]인데 사실 처음에는 대머리가 아니었으나 스케치 미스가 일어나고, 이게 반응이 좋아서 대머리가 되었다.(...)
- 로켓레드 . . . . 1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제네레이션 로스트에서 등장한 새로운 로켓레드. [[부스터 골드]] 일행에 합류한 상태이며 사용하는 갑옷은 다른 로켓레드 갑옷과 다르게 각지지 않은편에 흰색이 베이스가 아닌 이름대로 붉은색이 베이스다. 어째 개그 캐릭터다(...)
- 롤러 슈즈 . . . . 1회 일치
실내나 공공장소에서 미끄러지다가 부주의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 루시우스 폭스 . . . . 1회 일치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CEO. 뛰어난 기업가이며 그 실력은 전설이라 불릴 정도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활동을 위한 수련을 하던 시기에 웨인 기업을 맡아 무너지는 회사를 살려냈으며 덕분에 브루스의 배트맨 활동에 필요한 자금도 유지되었다. 알프레드가 배트맨 활동을 포함한 브루스 웨인의 생활을 돕는다면 루시우스 본인은 브루스에게 필요한 자금을 돕는 포지션.
- 리모콘 . . . . 1회 일치
잘 실종된다.
- 릴가민 . . . . 1회 일치
1편과 4편의 배경도 릴가민 왕국으로 보는 리뷰가 많지만, 사실 1편과 4편은 명확하게 '릴가민'이라고 언급된 바가 없다. 오히려 1편과 4편의 배경 스토리는 릴가민 왕국의 역사와는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 하지만 릴가민이라고 언급하는 자료도 가끔 있어서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상태. 어느 쪽이던 명확한 것은 없어서, 한데 묶는 '1도설'과 별도의 나라라는 '2도설'로 나누어지고 있다.
- 마기/298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사를르칸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 뢰엠은 황제국이었지만, 그 황제는 의회에서 선출해 와서 실질적인 공화정 체제였다. 최근 완전한 왕정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
- 마기/304화 . . . . 1회 일치
* [[마기/299화]]에선 연백룡으로 추정되는 실루엣도 알라딘과 함께 있었는데, 이번 화에선 연백룡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마기/307화 . . . . 1회 일치
* 전공이 다른 탓이겠지만, 쥬다르의 전송마법진 실력이 뛰어나다는걸 알 수 있다.
- 마기/311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는 솔로몬의 지혜를 달라고 하지만 알라딘은 당연히 거절하고 아르바가 실력행사로 들어간다.
- 마기/313화 . . . . 1회 일치
* 알 사멘과 마찬가지로 작은 인형에 깃들어 있는데, 모든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마기/318화 . . . . 1회 일치
* 홍옥은 내전 이후 신드바드를 원망하고 황이 처한 현실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던 것을 극복했다.
- 마기/320화 . . . . 1회 일치
* 아르바와 알사멘이 모은 마고이로 의식을 진행할 경우 확률은 100분의 1. 게다가 실패하면 그도 아르바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마기/323화 . . . . 1회 일치
* 우고가 너무 강해 보여서 우고가 사실은 흑막이고 최종보스가 되는게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 마기/327화 . . . . 1회 일치
너무 일변한 태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절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상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상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 마기/331화 . . . . 1회 일치
*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되었음을 실감한 알리바바. 신드바드와 싸움을 결단한다.
- 마기/333화 . . . . 1회 일치
쥬다르는 그가 너무 자신만만한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데 [[연백룡]]은 알라딘은 구세계(알마트란)과 신세계의 마법을 전부 통달했으니 현재 실력은 그 솔로몬 왕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불만스러운 듯 하지만 한 마디도 반박을 못한다.
- 마기/334화 . . . . 1회 일치
사실 네르바가 반란을 도모한건 쥬다르의 충동질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알리바바가 뢰엠에 갔을 때 [[티토스 알렉키우스]]가 한 말도 있다. 원래 부추기기 쉬운 도련님이라 누가 선동한거 같다는 이야기. 그게 쥬다르의 작품이었다.
- 마기/336화 . . . . 1회 일치
* 이러는 사이 아르바가 지닌 모래시계는 착실히 시간이 가고 있다. 아르바는 이러다 해가 지겠다며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떨어지면 세상이 루프로 환원된다고 경고한다.
- 마기/337화 . . . . 1회 일치
* 사실 그는 유년기의 신드바드가 자신과 비슷하게 "다른 인생을 살았더라면"이라 고민했을 거라고 간파하고 이해해준다.
- 마더콘 . . . . 1회 일치
1화에서 길에 넘어져서 손가락을 다친 후유히코를 보고 (시)어머니 역인 에츠코(悦子, 배역 노기와 요우코野際陽子)가 '다친 손가락을 순간적으로 입에 물고 빨아주는 애드립'을 실행. 그것이 반응이 좋아서 계속 마더콘 전개가 증폭되었다고 하는 뒷 이야기가 있다.(...)
- 마철준 . . . . 1회 일치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포항제철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03년 경희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모 프로 팀과 입단 계약을 조율하였으나 협상이 뜻밖에 결렬되어 미아 신세가 되고 말았고 그렇게 방황하다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여 K2리거로 실업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 마터니티 포토 . . . . 1회 일치
* 안정성과 배가 부풀어오른 모습을 확실하게 남기고자 하여, 추천하는 시기는 임신 28주에서 36주 정도.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1회 일치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을 공산주의의 주구로 모함하고 다니며 개판을 치다 급기야는 미국 군부까지 공산주의 세력으로 모는 병크를 터뜨렸고, 전쟁영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카시 의원을 버리고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등 매카시를 정치적으로 거세[* 탄핵소추안 자체는 통과되지 않았으나, 명예를 존중하는 상원에서는 탄핵소추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증 당한 것과 같다.]해 버렸다. 위의 발언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종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발언.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전편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으로 삶이 망가진 [[뉴욕]] 형사 맥스 페인이 살인 용의자인 지인 [[모나 색스]]와 함께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편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편의 간략한 스토리를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그런데 사실상 전편 스포일러.
- 맥스 페인 시리즈 . . . . 1회 일치
스토리 중간중간 실제 사진을 이용한 [[그래픽 노블]]을 삽입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3편에서 묘사 방법을 바꿨기 때문.
- 맥시 제우스 . . . . 1회 일치
[[그리스 신화]]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를 제우스라 생각하게된 사업가. 번개 무기를 사용하여 고담을 공격하려다 배트맨에게 패하고 붙잡혀 [[아캄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반응이 가관인 것이 갇혀있는 빌런들을 보고는 [[헤르메스]]([[조커(DC 코믹스|조커]]), [[야누스]]([[투페이스]]), [[데메테르]]([[포이즌 아이비]]) 등 그리스 신화의 신들로 보고 자기 방에 오고나서는 자신이 [[올림푸스]]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배트맨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를 [[하데스]]라 불렀다. 여러모로 미친 놈들이 많이 나오는 시리즈지만 독보적으로 현실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미쳤다.
- 머라이온 . . . . 1회 일치
싱가포르의 상징이지만 별로 크거나 한 것은 아니라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기로 이름이 높다.
- 머슬봄버 . . . . 1회 일치
[[캡콤]]에서 만든 프로레슬링 게임. 실존 인물이나 단체가 아닌 캡콤의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다만 모티브 정도는 있다.] 이중에는 파이널 파이트의 캐릭터인 마이크 해거도 있다.
- 머신맨 . . . . 1회 일치
로봇 군인을 원한 [[미군]]의 극비계획에서 탄생한 로봇. 올리버 브로드허스트 박사의 지휘로 51대의 실험 로봇들이 프로그래밍되었고 X-51은 이 로봇들 중 하나였다. 에이블 스택 박사는 로봇이 사람처럼 생각할수 있다면 위협이 될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안전은 무시하고 로봇 중 하나인 X-51을 데려가 아들처럼 교육시켰으며 로봇에게 인간같은 모습을 준비해줬다. 그리고 로봇에게 머신맨이라는 이름을 줬다.
- 멀티플맨 . . . . 1회 일치
[[엑스멘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는데 어째 범죄자로 [[매그니토]]의 부하가 된다. 그러나 뭔가 활약은 없고, 후에 미끼로 나오고는 더 이상 출연이 없다.
- 메시아 컴플렉스 . . . . 1회 일치
실제 정신병리적 사례로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등이 있다.
- 메일빙 . . . . 1회 일치
택배와는 달리 일반 우편물과 비슷하게 화물 추적이나 등록 등이 엄밀하게 진행되지는 않으며, 이 때문에 분실이나 배달 지연 등의 위험이 약간 높다.
- 명탐정 코난 . . . . 1회 일치
=== 실사 ===
- 명탐정 코난 에피소드 "ONE" 작아진 명탐정 . . . . 1회 일치
* 신이치가 어린 아이의 모습이 되었을 때의 충격 사실
- 모나 색스 . . . . 1회 일치
이후 맥스가 실수로라도 리사를 죽이는걸 막기 위해 약 탄 위스키를 줘서 기절시키고는 펀치넬로 저택으로 향한다. 하지만 펀치넬로를 죽이지는 못하고 붙잡혀버린다. 펀치넬로는 그녀를 천천히 처리하기 위해 자택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뒀지만, 모나는 펀치넬로의 부하들을 죽이고 뒷문으로 탈출한다.
- 모닝구 무스메 . . . . 1회 일치
* 『모닝구 무스메』라는 이름은 가볍게 많이 먹을 수 있는 '모닝 셋트'에서 따온 것이다. 1997년 9월 8일 후지TV분장실에서 층쿠가 붙였다고 한다.
- 모메사 . . . . 1회 일치
폭언이나 실언, 싸움을 부추기는 유치한 사람으로서, 모메사란 주로 특정한 스레드에 눌러앉아서 싸움을 부추기면서 혼자 즐기는 인물이다. 스레드의 분위기가 나빠지게 되므로 대개 기피당한다.
- 목꺾기 . . . . 1회 일치
실제로 하려면 팔 힘이 매우 좋아야 할 것이다.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1회 일치
쿠로자와 아유무의 형. 청년 실업가.
- 무신 . . . . 1회 일치
武의 신. 군신(軍神), 전신(戰神), 투신(鬪神)과 이미지가 겹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군신, 전신은 무신보다는 지휘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며, 투신은 무신보다 더 거친 느낌이 있다. 묘하게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지는 '신'보다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장수, 격투가를 지칭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 문연주 . . . . 1회 일치
* [[2016년]] 2016 KOCIA 전국 노래교실 회원의 날 시상식 10대 가수상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 1983년 1월에 국내에 '미래소년 쿤타-버뮤다 5000년'이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왔는데 많은 의미에서 미래소년 코난을 참고한 것이 보인다. 심지어 성우 배치까지. 좀 웃기는건 중반부부터 [[거대로봇물]]이 된다. 실제 포스터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쿤타가 원시소년이므로 모션 트레이싱 하는 방식이다.) 일단 이 미래소년 쿤타는 과거 한희작 원작의 '신세계 소년 디노'의 애니화인데 이 디노와는 많이 다른 내용이다. 신세계 소년 디노의 내용은 주인공 디노는 이로 물어서 쇠사슬을 끊을 정도로 무는 힘이 센 원시소년이며 인공지능 로봇과 손잡고 다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디노가 대항한다는 이야기다.
- 미스터 피어 . . . . 1회 일치
본명 졸탄 드라고. 원래 밀납인형 박물관 경영자였으나 자신의 화학지식으로 인형들을 생명체로 만들어서 부하로 삼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포가스를 얻었다. 공포가스를 이용해 옥스, 일을 부하로 삼아 펠로우쉽 오브 피어라 칭하며 활동을 시작, 그러나 데어데블에게 패했다. 최초의 미스터 피어이나 두번째 미스터 피어은 스타 색슨의 손에 죽었다.
- 미스터 하이드 . . . . 1회 일치
원래 뛰어난 의학자였으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실제 이야기라 믿으면서 일이 꼬였다. 재보는 [[인간]] 본성의 짐승 같은 면을 해방시키는 화학 공식을 발견하는 연구에 몰두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고용주들에게서 갈취했고, 이걸 안 도널드 블레이크는 그의 고용을 거절했다. 그리고 분노한 그는 도널드 블레이크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연구에 몰두해 몇 달 뒤, 연구에 성공했다. 특수약품을 만든 재보는 이 약품을 써서 사악함과 괴력을 지닌 미스터 하이드가 되었고 자신을 진정한 악의 의인화라 믿으며 도널드 블레이크를 자신의 첫 번재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도널드 블레이크는 [[토르]]의 인간 모습.(...)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1회 일치
'''심각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제 영화 완성도도 안 좋은 의미에서 심각하다'''. 다음 영화의 스토리나 설정에 방해가 될법한 요소가 있는지 상관없이 영화의 수준이 처참하다.
- 미저리 . . . . 1회 일치
폴을 구조한 것은 애니 윌크스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폴 셸던과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이던 그녀는 폴을 발견해 자신이 추종하던 그 작가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데려온다. 전직 간호사였던 애니는 폴을 간호하면서 자신이 미저리와 폴 셸던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녀는 폴의 가방에서 발견한 새로운 소설의 원고를 읽어보지만 재미가 덜하고 언어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때려 치고 자신이 산 신작 "미저리의 아이"나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말까지 전부 읽는다.
- 바-로- . . . . 1회 일치
* [[에도가와 코난]]. 이 말을 자주 쓰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쓰지는 않지만 트레이드 마크 취급.
- 바실리우스 1세 . . . . 1회 일치
#redirect 바실레이오스 1세
- 바코드 머리 . . . . 1회 일치
대머리에 검은 실선으로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상품에 붙어 있는 [[바코드]]와 같다고 하여 바코드 대머리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 바키 시리즈 . . . . 1회 일치
[[그래플러 바키]]로 시작하여 정기적으로 제목을 바꾸면서 연속되는 시리즈. 일단 장르는 비교적 현실성이 강한 이종격투기 만화…였지만 점점 갈수록 너무 황당한 전개가 튀어나와서 막장이 되어가고 있다.
- 바키도/104화 . . . . 1회 일치
* 알버트 박사는 팔목이 부러진 것 보다도 "날붙이도 없는 무사시에게 베어졌다"는 선명한 감각 때문에 망연자실하다.
- 바키도/107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가뿐히 떨쳐내고 "결과를 두려와 말라"고 하는데, 알버트는 그 절대적인 가치관 차이를 실감하고 항의할 의욕도 잃어 버린다.
- 바키도/110화 . . . . 1회 일치
* 가이아는 그 최강이라는 무사시가 쉽게 뒤를 내준 것을 놓고 "실망"이라고 표현한다.
- 바키도/111화 . . . . 1회 일치
* 가이아는 자위대원으로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역전의 군인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 바키도/119화 . . . . 1회 일치
* 지켜보던 인물들은 이것이야 말로 현대검술엔 없는 실전검술이라며 감탄한다.
- 바키도/121화 . . . . 1회 일치
* 사실상 공격이 먹히지 않는 상황인데도, 무사시는 "마음껏 벨 수 있겠다"며 좋아한다.
- 바키도/124화 . . . . 1회 일치
그럴 때 문득... 무를 잊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 바키도/125화 . . . . 1회 일치
* 이름난 강자들이 모두 모토베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 바키도/134화 . . . . 1회 일치
* 그때 병실문이 열리며 닥터 쿠레하가 들어온다. 밖에서 듣고 있었는지 모토베가 거명한 것 중에 자기도 있어 한시름 놨다고 농담을 던진다. 그는 마침 무사시에 대해 중요한 소식을 가져왔는데, 무슨 일인지 그가 TV에 나오고 있다는데.
- 바키도/140화 . . . . 1회 일치
* 좌우간 그 뒤에도 "포획"은 계속된다. 그러나 건장한 경찰 여섯이 한 꺼번에 덤비는 것도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분명 단단히 포위한 채 사방에서 달려들었는데, 막상 상대하게 되면 아군이 시야를 가리고 장애물이 되어 접근할 수 없고 무사시와 대면하게 되면 언제나 1대1. 오오츠카는 자신이 본 사실과 그들의 증언을 모두 전하며 그것이 당대에서 말하던 "병법"이라고 말한다. 이제 경시청에선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데.
- 바키도/141화 . . . . 1회 일치
모토베는 병석에서 "우리는 모두와 이어져 있다"는 말을 했다. 현대인은 모두 누군가와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사시는 어떨까? 바키는 이제가 돼서의 그의 지적이 얼마나 타당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실감한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사시의 고독".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쥔다.
- 박근영 (야구인) . . . . 1회 일치
[[2013년]] [[6월 15일]] [[넥센 히어로즈]] 대 [[LG 트윈스]] 경기에선 5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아웃이 되어야 하는데 세이프로 판정하여 해당 타석을 포함하여 넥센이 8실점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야구 위원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를 2군 심판으로 강등하였다.
- 박남현 . . . . 1회 일치
* 《[[소풍가는 여자]]》 (2004년, SBS) - 나이트 실장 역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법관 임용 심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하자, 사법부의 부당한 처사를 언론에 호소했고 마침내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들끓는 여론에 힘입어 1983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서 법조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대구와 마산지방법원에서의 판사생활을 거쳐 1988년 대구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 박재현 (야구인) . . . . 1회 일치
'''박재현'''(朴宰賢<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4년]] [[2월 8일]] ~ )은 전 [[한국 실업 야구]]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1루 주루코치이다.
- 박정호 . . . . 1회 일치
*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
- 박주아(1942년) . . . . 1회 일치
'''박주아'''(<small>본명</small>: '''박경자''', [[1942년]] [[9월 20일]] ~ [[2011년]] [[5월 16일]])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62년]]에 [[한국방송공사|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신우암 초기 판정을 받고 [[2011년]] [[4월 17일]] 수술한 후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 [[5월 14일]] 급작스런 다발성 장기 부전에 빠져 투병하다가 16일 오전 향년 68세로 별세했다.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박진주 . . . . 1회 일치
| 《[[웹툰히어로 툰드라쇼|웹툰히어로 툰드라쇼 시즌 2]] - 조선왕조실톡 시즌2》
- 박현정 (배우) . . . . 1회 일치
* 《사랑이 꽃피는 교실》 (KBS1, 1995년)
- 방공기구 . . . . 1회 일치
방공기구가 목표물 인근에 떠있으면, 전투기는 이를 피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므로 적 전투기를 방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언듯 생각하면 풍선 따위로 전투기를 막는 것이 황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 조종사는 상당히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 배빵 . . . . 1회 일치
실제로는 내부 장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하지 말자. 살인으로 경찰서간다.
- 배상면 . . . . 1회 일치
* 《과실 및 약용식물을 이용한 가양주 만들기》(홍선천, 배상면)
- 배성룡 . . . . 1회 일치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상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 백결 선생 . . . . 1회 일치
《[[삼국사기]]》에는 가문의 이력을 알수가 없다고 나와 있으나 《[[부도지]]》,《영해 박씨 족보》 등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박문량'''(朴文良)이며, 414년(실성마립간 13)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제상]]의 아들이며, [[자비왕]] 때 [[경주시|금성]]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고 한다.
- 백낙청 . . . . 1회 일치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 백남순 (1929년) . . . . 1회 일치
[[2006년]]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상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상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백남억 . . . . 1회 일치
그 후 1971년 6월 김종필이 [[국무총리]]가 된 후에 [[실미도 사건]], [[광주대단지사건]] 등이 일어나자, 야당인 신민당과 협조하여 친김종필계였던 오치성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장관의 해임안 가결을 주도하였다. 야당과 손잡고 박정희가 직접 임명한 장관 해임에 찬성하는 항명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10.2 항명 파동]] 참조.
- 베를린 보병여단 . . . . 1회 일치
[[냉전]] 시기 [[영국군]]에 존재하던 부대. 사실 "베를린 보병여단"은 냉전이 끝날 때의 부대명이었고, 그 전에는 "베를린 야전군"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 벨트스크롤 게임 . . . . 1회 일치
버튼은 주로 2개, [[점프]]와 [[공격]]에 할당한다. 또 [[점프]]와 [[공격]]을 동시에 누르는 것으로, 일종의 필살 공격을 쓸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90년대 오락실에서 탈출기라든가 필살기, 발악기 등으로 부르는 공격이 그것.]
- 보루토/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나루토는 보루토의 손을 붙들고 과학닌구를 쓴 사실에 대해 추궁한다.
- 보루토/7화 . . . . 1회 일치
쵸쥬로는 킨츠키가 "덩치가 큰 주제에 잽싸다"고 하는데 확실히 속도 면에서 킨츠키의 우위. 재빠른 검술로 순식간에 쵸쥬로를 궁지에 빠뜨린다. 도끼로 히라메카레이를 쳐내고 왼쪽 어깨를 베어내는데, 킨츠키는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유인책에 지나지 않았다. 땅 속에서 쿠로츠치가 등장, 회심의 붕권을 먹인다.
- 보증 . . . . 1회 일치
일부에서는 보증 제도를 파괴하고자 보증 제도에 대하여 나쁜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양 사회의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서구금융자본의 음모라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현실에서는 보증을 서주는 사람을 생각하여, 보증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돈을 갚기 위하여 노력하기 마련이고, 보증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증 반대론은 극소수의 예외 사례를 과장하여 말하는 것일 뿐이다.
- 보쿠걸/100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당연히 남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실행하지 못한다.
- 보쿠걸/105화 . . . . 1회 일치
* 사실 로키가 끌려간 거 자체도 훼이크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 보쿠걸/106화 . . . . 1회 일치
* 원래 언제든 남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걸 타케루 때문에 포기했으니 "책임져줘야 한다"고 말한다.
- 보쿠걸/107화 . . . . 1회 일치
* 야마다 나나타로는 다이카와 타마코와 함께 수상한 사진부를 만들어서 매번 교무실 호출 중
- 보쿠걸/96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타케루가 사진을 찍어간다고 하자 기뻐하다가 남에게 줄 사진이란걸 알고 실망한다
- 분류:전라북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임실군 출신 인물]]
- 불심자 . . . . 1회 일치
불심(不審)이란 확실하지 않아, 수상스럽게 느껴지는 점이 있는 상황을 뜻한다. 방범 분야에서 말하는 불심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을 뜻한다.
- 브라이아크 라오 . . . . 1회 일치
한편 코난과 라나가 샐비지선에서 '파치(パッチ)'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 파치가 라오였다. 인더스트리아측의 꿍꿍이를 눈치채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이후 탈출하다 탑승한 비행정이 격추당했고, 그 탓에 생긴 부상에 의해 얼굴이 다른 얼굴이 된 것. 이후 정체를 위장한 체 살고 있다가 라나와 재회한 것이다. 처음에는 코난과 라나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었던 일. 이후 정체가 들통나면서 플라잉 머신을 타고 도주한다. 그러나 지각 변동 탓에 이대로 있으면 인더스트리아가 바닷속에 가라앉을 판이라 이를 알려주러 인더스트리아에 가서 최고위원회와 대화를 나누나 이때 레프카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잡히게 된다. 이후 오랜 전기고문을 당한 탓에 몸이 망가져버려 라나의 텔레파시가 없으면 보통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라다 덕분에 어느 정도는 세상을 봤지만. 최후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결하고, 탈출선에 탑승해 최후를 맞이한다.
- 브로포스/브로 . . . . 1회 일치
브로델 워커가 신호탄을 던진 곳으로 [[성조기|붉은색, 흰색, 파랑색]]의 사선이 그어진 후, 그걸 따라 포탄이 날아온다. 신호탄 근처의 적은 겁에 질린다.
- 블랙 클로버/115화 . . . . 1회 일치
* 패배가 확실시 됐을 때 [[잭스 류그너]]의 함정이 발동, A팀 세 사람의 최강마법이 그대로 반사되어 전세를 역전시킨다.
- 블랙 클로버/125화 . . . . 1회 일치
* 이런 이야기를 들은 네르슈는 경기 중 전력을 다해 싸웠던 아스타와 매그너의 모습을 떠올리며 "확실히 아름다웠다"고 인정하게 된다.
- 블랙 클로버/50화 . . . . 1회 일치
* 야미의 어둠 마법은 리히트의 빛 마법의 천적 속성이지만 속도가 매우 느려 실전성이 낮다. 야미는 그걸 무기에 씌어 씀으로써 보완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1회 일치
* 이들의 마도서에 있는 세 잎 클로버는 성실, 희망, 사랑에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 태만, 절망, 증오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1회 일치
* 사실 락은 매그너를 완전 얕보고 있었는데, 매그너가 장차 위협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걸 간파하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던 것.
- 블랙 클로버/71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부러진 두 팔을 실로 응급처치해 최대한 움직일 수 있게 서포트한다.
- 블랙 클로버/72화 . . . . 1회 일치
* 노엘 실버는 베토에게서 마력이 끊어짐을 확인하고 드디어 이겼다고 환호한다.
- 블랙 클로버/76화 . . . . 1회 일치
* 랜길스는 공간마법을 사용하는 걸로 보아 해저신전편에서 언급된 핀랄의 동생이 확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1회 일치
* 브로코스는 벤전스와 실력 차이도 있는데다 하필이면 세계수 마법 사용자. 적토 마법인 브로코스에겐 압도적인 상성이다.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둠스데이(DC 코믹스)|둠스데이]]가 나타났을 때에 다른 히어로들과 같이 대항했다.--당연히 도움은 안됐다.--[* 사실 상대가 둠즈데이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때 함께 싸우던 히어로들도 어쩌지 못했다.]
- 블루 마블 . . . . 1회 일치
한국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해병 출신에 뛰어난 과학자다. 연구하다가 실수로 반물질을 만들어서 네거티브 존에 빠지게 되었고, 그 안의 네거티브 존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슈퍼맨]]과 비슷한 능력에 [[반물질|반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조작할 수 있고, 일반적인 상태의 센트리에게 어느정도 대항하는 초음속의 스피드와 93,000톤 가량의 물체를 감당해내는 힘, [[센트리]]를 지구 밖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초인. 같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하이페리온(마블 코믹스)|히페리온]], 센트리처럼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 블리치/676화 . . . . 1회 일치
* 우라하라는 아스킨이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라고 보는데 실제로 아스킨은 "유하바하 가 삼계를 부수고 만드려는 세계를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로 움직이고 있다. 아스킨은 "너도 같은 타입"이라며 회유하려 하는데 우라하라는 "과학자라면 직접 만들어서 본다"며 거절한다
- 블리치/687화 . . . . 1회 일치
* 사실 하쉬발트는 그런 것에 흥미가 없을 테고, 자신이 하쉬발트를 유하바하에게 가지 못하게 시간이나 끈다는 것도 알 텐데, 왜 얼른 마무리 짓고 유하바하에게 가지 않는지 묻는다.
- 블리치/692화 . . . . 1회 일치
* 이치고가 모든 힘을 상실한건 이것으로 3번째.--그만해--
- 블리치/693화 . . . . 1회 일치
* 헐리웃에서 실사화가 발표되었다.
- 블리치/694화 . . . . 1회 일치
* 아이젠과 대결 중인 유하바하. 그런데 이치고와 렌지가 뒷치기를 가하다 실패한다.
- 비둘기 . . . . 1회 일치
도시의 풍요로워진 삶으로 인해 몸이 비대해진 비둘기들을 부르는 명칭. 비둘기보다는 마치 [[닭]] 같다고 해서 닭둘기라고 한다. 언론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1년도에 나온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5&aid=0000050038|이 기사]로 보이며, 언론에서 신조어를 소개하는 것은 당연히 처음 등장했을 시기에 비해서는 늦을 수 밖에 없으니 2000년대 들어서 내지는 1990년대 말쯤에는 이러한 신조어를 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렇게 몸이 비대해진 비둘기들은 나는 것보다 걷는 것을 선호한다. 어떻게든 날게 해보려고 달려들어도 10초 이상 날지 않는다. 사실 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날고 싶어도 진짜 못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빅 사이언스 액션 . . . . 1회 일치
정신 능력, 에너지, 방어력 등. 거구의 남성 모습이자 실제로는 젊은 여성이다. JLA #26 (February 1, 1999)에 첫등장.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빌리 블랭크스 . . . . 1회 일치
1955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출생.
- 사택 . . . . 1회 일치
하지만 2005년에 회계기준이 바뀌어서, 자산가치가 하락한 부동산은 장부에 시가를 공개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사택의 노후화로 인한 자산이 손실이 반영되었다. 이 때문에 보유하던 사택을 매각하고 임대형태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었다.
- 사회 . . . . 1회 일치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어쨰서인지(…) 서로간에 특정한 이해관계나 안면조차도 없는 일반인들의 광범위한 상호작용까지도 소사이어티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의미로 확장되었는데, 이러한 의미의 소사이어티는 사실상 본래 뜻과는 거의 아무 상관도 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애덤 스미스는 왜 이상한 용도로 단어를 썻는지 모르겠다.
- 섀도우문 . . . . 1회 일치
가면라이더 블랙 RX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섀도우문이 "지옥에서 돌아왔다!"면서 다시 등장. 바위에 깔려 있다가 어떻게 빠져 나왔으나, [[기억상실]]이 되어 노부히코로서의 기억을 잃고 블랙 RX를 가로막는 강적으로 활약한다.
- 서거정 . . . . 1회 일치
*** 측실 : 이영근(李寧根)의 딸
- 서든어택 2/캐릭터 . . . . 1회 일치
* 실시간 타격 데미지 확인.
- 서상돈 . . . . 1회 일치
1851년 [[경북]] [[김천시]]에서 출생한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대구시]]로 몸을 피한 뒤 정착하였다. 대구에서 몇몇 천주교인의 도움으로 보부상을 시작한 그는 대구에서 손꼽히는 거상이 되었다.
- 서영무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 서영종 . . . . 1회 일치
{{불확실|낡음}}
- 서용주 . . . . 1회 일치
8월 23일에 [[김선빈]]과 [[최희섭]]이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윤완주]]와 함께 1군에 콜업,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80944|기사]] 그리고 8월 25일 목동 넥센전에서 9회초 [[이용규]]의 대주자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박기남]]의 적시타로 2루까지 진루하였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 서울특별시/인물 . . . . 1회 일치
* [[최순실]] - 마포구
- 서정돈 . . . . 1회 일치
* 1990년 6월 ~ 1993년 6월 :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 서정윤 . . . . 1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 선원 . . . . 1회 일치
[[세일러복]]을 입고있다는 이미지가 있다만 이미지와 현실은 상당히 다르다.
- 성현아 . . . . 1회 일치
대기업 이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모델 일을 하였고 [[1994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예선대회에서 진, 본선에서 미에 당선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성현아, `사업실패` `가족의 죽음` 굴곡진 과거사| 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119403| 출판사= 스포츠월드| 저자= 류일한| 쪽= | 날짜= 2017-05-05| 확인날짜= }}</ref>
- 세컨드 오피니언 . . . . 1회 일치
병원을 바꾸거나, 의사를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고, 결과적으로 의사를 바꾸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의사에 따라서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존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의사가 있어, 기존 주치의와 환자의 관계에 지장이 올 수 있다.
- 센터 시험 . . . . 1회 일치
[[일본]]의 대학입시시험.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독립행정법인 대학입시센터의 주관으로 실시한다.
- 소년보도 . . . . 1회 일치
비행을 저질렀거나, 혹은 비행에 빠질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를 방지하는 활동이다. 보도의 원인은 범죄 행위, [[가출]]이나 무단외박, [[음주]], [[흡연]], 유흥가 배회 같은 비행이나 범죄를 접할 우려가 높은 행동에 대해서 실시한다.
- 소명(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전실업전문대학 동문]]
- 소벌도리 . . . . 1회 일치
[[일연]]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고허촌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연합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47848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기원전 69년]]에 6부의 촌장들이 모여 덕(德)이 있는 자를 찾아 왕으로 삼고 수도를 정해 나라를 열 것을 결의하였는데 나정(蘿井)에서 이상한 기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붉은 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박혁거세]]이며,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사로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사기]]》는 나정에서 알과 혁거세를 처음 발견하여 양육한 것이 소벌공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허촌은 [[신라 유리왕|유리왕]] 때 사량부(沙梁部)로 개칭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의 조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손광업 . . . . 1회 일치
* 《실연남녀》 (2007년) - 이재수 역
- 솔롱고스 . . . . 1회 일치
기원이 확실하지 않은 단어인데, 몇가지 설이 있다.
- 송남헌 . . . . 1회 일치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의 패망”을 알리는 [[단파방송 밀청 사건|경성방송국 라디오 단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이후 [[한민당]]에 참여하였으나 [[1946년]] 이후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고 [[김규식]]의 비서가 되었다. 이후 [[좌우합작위원회]]활동과 민족자주연맹 각주인 [[김규식]] 박사의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알렉스는 호위를 명목으로 맥스웰 곁에 붙어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맥스웰이 연구소에서 폭탄이 발견되고, 맥스웰은 해체를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오히려 카운트가 더 빨리 돌아간다. 알렉스가 전화를 해오자 카라는 윈에게 카터를 돌보는걸 맡기고 알렉스에게 날아간다. 폭탄을 가지고 날아간 카라는 상공에서 폭발시킨 다음 충격을 받고 바다에 떨어진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회 일치
알렉스는 젬을 상대하러 나가려 하는데, 행크가 돌아와서 알렉스는 상황실에 있으라고 하고 젬을 상대하러 혼자서 다시 떠난다.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1회 일치
Blymm라고도 한다. [[슈퍼걸]]을 이용했으나 실패.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1회 일치
가상매체에서의 격투가 그렇듯 현실적인 격투보다는 가상매체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이 일은 크나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부는 혼수상태에 빠진 알렉스의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깨어난 알렉스에게 정부의 편을 들 것을 권하며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오디오를 선물한다. 기자들이 병실로 몰려들어와 정부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알렉스의 사진을 찍는 와중, 알렉스는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독백한다.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1회 일치
적군의 최고급 에이스와 일기토를 벌이는 임무. 1명만을 골라서 보내야 한다.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과 같은 실존 에이스를 상대하게 된다.
- 시치고산 . . . . 1회 일치
시치고산의 기원은 1681년 11월 15일에 [[에도 막부]] 5 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 아들 도쿠마츠(徳松 )의3 살 축하를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으나, 이는 확실한 것은 아니다.
- 식극의 소마/156화 . . . . 1회 일치
* 소마도 쿠스노키의 실력을 인정하고 쿠로키바는 조용히 자신의 요리만을 보고 있다
- 식극의 소마/159화 . . . . 1회 일치
* 쿠로키바는 실습기간에 카레요리점에서 수련했는데 이때 향신료 배합을 철저하게 배운다.
- 식극의 소마/162화 . . . . 1회 일치
* 츠카사는 거듭 소마를 설득하려하지만 소마는 "내 요리는 먹어본 적도 없지 않냐. 내 실력이 더 좋은 어떻게 할 거냐"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64화 . . . . 1회 일치
* 사실 소마를 가르친 시노미야는 소마를 "내가 인정한 얼마 안 되는 요리인"이라며 엄청나게 고평가
- 식극의 소마/166화 . . . . 1회 일치
소마는 선전하고도 츠카사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 패한다.
- 식극의 소마/171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난데없이 "내가 하는 말을 실행해라"며 이것저것 시키는 통에 또 "맛있다"는 말은 듣지 못한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1회 일치
* 게다가 특정인물의 합격을 조작하는 혐의가 있으므로 한없이 실형선고에 가깝다.
- 식극의 소마/178화 . . . . 1회 일치
* 사실 에리나는 과거에도 몇 번 홋카이도에 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나키리 가문의 후계자로서 비지니스 차원에서 왔던 것.
- 식극의 소마/179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린도를 상대로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다른 십걸이 올 거라는데.
- 식극의 소마/181화 . . . . 1회 일치
* 갑자기 나타나 조리실을 점거한 쿠가 일당.
- 식극의 소마/197화 . . . . 1회 일치
* [[사이바 죠이치로]]가 고3이 되던 해, 쿄쿠세이 기숙사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도지마 긴]]은 마침내 십걸 1석에 올라 인품과 실무능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나키리 아자미|아자미]]는 1학년인데도 3석에 오른 재능과 가을 선발 우승 경력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그리고 아직 중학생이었던 [[시오미 준]]은 어린 나이에도 연구자로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 해외에서도 파견을 부탁할 정도의 인재였다. 다만 항상 요리책만 끼고 다니느라 겉으로 보기엔 엇나간 [[부녀자]] 모양이었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실마리를 찾아내고,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하는데.
- 식극의 소마/204화 . . . . 1회 일치
* 만족스럽게 상황을 지켜보던 아자미는 들떠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며 말한다. 에리나는 당연히 센트럴 측의 선수라는 것. 소마가 반발하자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라고 받아친다. 원래 십걸의 10석인 그녀는 센트럴의 일원이니 여기서 싸우는게 당연하지 않냐는 논리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1회 일치
센자에몬은 죠이치로의 좌절이 그 자신에게 손실이 될지 어떨지 정하는건 결국 죠이치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도지마가 맛보는 좌절 또한 도지마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린 문제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1회 일치
* 다시 특설회장. 카와시마는 반역자를 구토물에 비유하며 그들의 등장을 알린다. 마침내 등장하는 소마측 요리사들. 소마와 에리나,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 [[미마사카 스바루]], [[잇시키 사토시]], [[쿠가 테루노리]], [[메기시마 토스케]]. 이상의 8인이다. 현재 비센트럴 생존자 중에선 최고로 신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인데다 잇시키, 쿠가, 메기시마는 전십걸 출신. 격으로는 상대측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 식극의 소마/215화 . . . . 1회 일치
어쨌든 절찬이 쏟아지자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는 잇시키를 쓰러뜨리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아왔으니 당연한 결과라 자평한다.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09-3-13}}
- 신동호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해피실버 고향은 지금|고향은 지금]]》
- 신은정 . . . . 1회 일치
* [[2004년]] [[MBC]] 법정드라마 《[[실화극장 죄와 벌]]》 ... 검사 역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만주군 복무만으로도 이미 '일제 부역'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가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그 항일조직들을 소탕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부대인 [[간도 특설대]] 간부였고, 그것도 창설 멤버였다는 점이다.[* 신현준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다름아닌 만주군 동기생이자, 훗날 그의 후임으로 제2대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김석범의 저작 <만주국군지>다.] 해병대의 창설 지휘관이자 초대 사령관이 간도 특설대의 창설 간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사실은 해병대의 흑역사일수밖에 없다.
- 신형철 . . . . 1회 일치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
- 싱가포르 고릴라 유령 . . . . 1회 일치
* 7척은 약 2미터 정도이다. 실제 고릴라의 키는 수컷은 평균 170~180, 암컷은 150cm 정도.
- 아동수당 . . . . 1회 일치
[[일본]]의 복지정책의 하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국가에서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 물론 부모가 받아가서 양육 등에 쓰라는 목적이다. 2000년대 초에 민주당 정권에서 추진되어 실행되었으나, 이후 일반 가정에서 저소득 가정 대상으로 범위가 축소되었다.
- 아마조 . . . . 1회 일치
능력은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능력. 즉, 슈퍼맨이 적이라도 그의 힘을 써서 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원더우먼의 진실의 올가미처럼 도구를 복제할 수도 있고, 배트맨같이 초능력 없이 싸우는 스타일일지라도 그 기술을 재현할 수 있는 판이라 쉬운 상대가 아니다.
- 아밀라아제 . . . . 1회 일치
~~확실히 아밀라아劑는 절대 아니다~~
- 아웃 오브 안중 . . . . 1회 일치
기원을 따져보면 원래는 1980년대 일본에서 쓰던 대학생들의 속어에서 비롯된다. 논할 가치가 없다는 ろんがい(=논외)를 보다 강조해서 말하기 위해 영어와 섞어 쓴 게 그 시초다. 하지만 워낙에 일부에서만 사용하던 용어였기 때문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사어가 되었는데... 이걸 [[시게노 슈이치]]가 연재했던 [[만화]] [[이니셜 D]]의 애니메이션 판에서 등장인물인 [[이와키 세이지]]가 쓰면서 재조명 된다.
- 아웃워드 작전 . . . . 1회 일치
== 실행 ==
- 아워맨 . . . . 1회 일치
평범한 인간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약을 개발하는데 몰두했는데 결국 약이 만들어져 "미러클로"라고 이름 붙이고 스스로에게 투여해 1시간 동안 초능력이 생기는 힘을 얻었다.[* 이후 곡예사 복장을 얻었는데 이 옷은 그대로 그의 코스튬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잘 나갔는데.... 동물 실험에 쓴 동물들을 보고 미러클로가 엄청난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걸 무시하고 활동을 계속했다. 덕분에 후에 고생좀 했다.
- 아이네이아스 . . . . 1회 일치
한편, 카르타고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디도 공주'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비중있게 실려 있는데, 이는 시기상 '포에니 전쟁'이라는 크나큰 전쟁을 치른 상대인 카르타고와의 관계를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아이언맨 . . . . 1회 일치
21세기 초반 최고의 인기 히어로 가운데 하나로, 국내에서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 실사 영화 시리즈 등이 흥행하면서 인지도를 얻었다.
- 아테지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자의 음차 표기와 비슷하지만 일본어의 아테지는 좀 더 복잡하다. 일본어는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 있어, 음독은 한자의 '음' 자체를 읽고, 훈독은 한자를 고유어 뜻 표기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음독으로는 오음(呉音), 한음(漢音), 당음(唐音)이 있어 이 역시 종류가 다양하다. 아테지에서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테지가 아니면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 악마성 . . . . 1회 일치
* 많은 시리즈에서 엔딩에서는 어김없이 무너져 내리는 [[부실공사]]의 진수를 보여준다(…).
- 안동준 . . . . 1회 일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초에 이승만 정권 때의 행적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안평대군 . . . . 1회 일치
단종실록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인물인데, 뇌물 받고 관직을 올려줬다느니, 문종의 복상 기간에 술과 고기를 먹고 잔치를 벌였다느니, 기생하고 놀아났다느니, 조강지처를 저버렸다느니 하는 온갖 추문이 써 있다.
- 알프레드 우든 . . . . 1회 일치
맥스가 BB를 죽인 직후 근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네 적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지금 당장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와라"라고 전한다. 아스가르드 빌딩으로 온 맥스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과 함께 있는 우든을 목격한다. 그는 진범은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인 니콜 혼이라는걸 알려주며 혼을 제거하면 모든 책임을 져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 직후 혼의 부하들이 맥스와 이너 서클 회원들이 있는 방을 습격한다. 맥스는 그때 그가 죽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죽은척을 했을 뿐이었다. 맥스가 CCTV로 본 그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은걸 보고 좋아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다른 이너 서클 회원들이 죽어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랬던 것. 이를 본 맥스는 우든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판단, 혼이 우든에게 협박용으로 보냈던 캔디 던과의 섹스 테이프를 보험삼아 슬쩍했다.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 . 1회 일치
[[배트맨]] 시리즈의 캐릭터. 배트맨의 정체인 [[브루스 웨인]]의 [[집사]]이며 어려서부터 부모 대신 그를 돌봐온 사실상의 양부이기도 하다. 본인도 브루스를 아들처럼 아낀다.
- 암 . . . . 1회 일치
암은 사실상 다세포 동물과 함께 시작된 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히드라와 같은 원시적인 다세포 동물조차도 암과 유사한 질병을 앓는 경우가 있다.
- 압박면접 . . . . 1회 일치
압박 면접은 압박을 당했을 때 지원자의 반응을 보고, [[정신력]]과 순발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업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상사에게 혼나거나 고객의 클레임을 받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압박면접을 실시한다.
- 애로우버스 . . . . 1회 일치
* [[빅센]][* 웹 애니메이션. 이후 캐릭터 '빅센'은 실사 드라마에서도 등장.]
- 야규 무네노리 . . . . 1회 일치
* 도요토미 가문의 군대가 농성하던 오사카 성의 싸움에서 적군의 결사적인 기습으로 히데타다의 본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실전에서 검술을 보여 적들을 베고 히데타다를 보호했다고 한다.
- 야명주 . . . . 1회 일치
그런데 현실에서 이러한 물건을 본다면 [[방사능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접근하지 말자.
- 야차원숭이 . . . . 1회 일치
그래플러 바키 3부 최대 토너먼트 편에서는 야차원숭이 Jr.가 출전. 한마 유지로에게 복수전을 노리지만, 실패.
- 얀챠 . . . . 1회 일치
기원은 확실하지 않은데, 아이가 말하는걸 듣지 않을 때 「싫어(嫌じゃ,이야쟈)」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변하여 「얀챠(やんちゃ)」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 양예나 . . . . 1회 일치
* 한 살 아래 동생인 멤버 [[이진솔]]과 친한 듯하다. 실제로 유튜브에 들어가면 이진솔을 챙겨주거나 진솔과 투닥거리는 영상들이 있다. ~~같이 헬륨 가스를 마시기도 한다~~ 또한 APRIL 멤버 중 가장 친동생 삼고 싶은 멤버로 이진솔을 꼽았다. 스킨십하는게 좋다며. --[[이진솔]]이가 완강하게 거부(?)한건 덤--
- 양일환 . . . . 1회 일치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1회 일치
과거부터 존재했던 비밀조직. 템플기사단과는 천년 전 부터 치고박는 사이였으나 지금은 템플기사단에게 확연히 밀리는 상황. 그 상황에서도 애니머스를 빼내거나 앱스테르고에 잡힌 피실험자를 구출하기는 했다. 세계를 멸망시킬 대규모 태양열 폭풍을 막기 위해 먼저 온 자들의 유적에 도착.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데스몬드 조상의 기억을 탐색한다.
- 엉클 샘 . . . . 1회 일치
기원은 미극 민담에 등장하는 브라더 조너선(Brother Jonathan)과 양키 두들을 합친 것이라 한다. 뉴욕의 샘(새뮤얼) 그라고 윌슨이라는 고기납품업자가 [[쇠고기]] [[통조림]]에 United States 라는 뜻으로 U.S. 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했던 것을 납품고기를 검사하던 부대 감독관이 U.S → Uncle Sam으로 알아서 엉클 샘이라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반대로 납품업자가 자기 별명인 엉클 샘의 이니셜인 U.S.를 찍어 보낸 것을 감독관이 United States인 줄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엉클 샘에 대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도 실린 이야기다.]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1회 일치
TAC 네임 엣지. 국적불명기와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훈련생. 쥬넷은 그녀의 비행 실력에 감탄하지만 바틀렛은 그렇게 날다간 죽는다며 못마땅해한다.
- 엔포서스 . . . . 1회 일치
본명 Willard Harrison. 첫등장은 Machine Man #16 (August 1980). 금속 장갑을 착용. 권투 실력이 뛰어나다.
- 연하장 . . . . 1회 일치
우편제도가 등장하자 우정국에서 연하장을 발매하게 되었다. 최초의 연하장은 1900년에 발매되었으며, 전통의상을 걸친 우정국 관리들의 모습을 컬러 인쇄하고, '신년을 맞이하여 한국 황실과 우정국의 임직원들은 여러분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염재욱 . . . . 1회 일치
* [[1999년]] sifac 패션페스티발 솔로공연-잠실체육관-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1909년, 도쿄제국대학 의과대학 졸업. 산부인과 교실에 들어간다.
- 오늘만 산다 . . . . 1회 일치
* [[중국]] 동진 시기에 역술가가 반란을 일으킨 대장군 [[왕돈]]에게 불려가서, 점을 치게 되었는데 당당하게 '실패한다'는 점괘를 내놓고, 왕돈이 "너는 그럼 얼마나 살겠냐?"고 위협하자 "오늘까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물론 역술가는 왕돈에게 살해당했다. 오늘만 사는 사람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니요메 . . . . 1회 일치
* 실록 오니요메 일기(実録鬼嫁日記)라는 [[블로그]]가 있었으며, 드라마화도 되었다.
- 오봉 . . . . 1회 일치
「쇼로다나(精霊棚-제사단)」: 제단을 차려서 오이에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발을 달아서 말처럼 만들고, 가지는 소처럼 만들어 공양을 한다. 영혼은 말에, 짐은 소에 실어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 오석락 . . . . 1회 일치
법률과 수필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던 오석락은 광림교회에서 함께 다니던 법조인들이 모여 애중회를 만들었으며, 1984년 12월 12일에 변호사 사무소가 있던 명지빌딩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명우회를 결성하여 봉사활동을 했다.
- 오석산 . . . . 1회 일치
불로장수, 건강증진에 효험이 있는 약이라고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복용하면 발얼을 하여, 열을 발신시키기 위해서 돌아다니며 '행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먹어서 열을 식히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를 한식산(寒食散)이라고 했다.
- 오승희 . . . . 1회 일치
| 레이블 = 후지티비 분장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1회 일치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오츠보네 . . . . 1회 일치
본래 궁중이나 에도 시대의 오오쿠(일본 쇼군을 위한 후궁)등에서 츠보(局, 개인실)이 주워진 여관(女官)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오츠보네는 당시 후궁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상당히 지위 있는 계급이었다.
- 오픈베타 . . . . 1회 일치
일단 형식적으로는 미완성된 게임을 열어놓고 테스트 하는 것이지만, 업데이트가 지속되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사실상 오픈베타=서비스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와일드캣 . . . . 1회 일치
드라마 [[스몰빌]]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짧게 등장. 이후 드라마 [[애로우]]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카메오 수준인 [[스몰빌(드라마)|스몰빌]]과 달리 확실하게 등장한다. 다만 코스튬은 코믹스와 차이가 많다. 큐트한 고양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일반적인 검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주인공 올리버가 '애로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약하며 악당과 싸우던 가면의 영웅이었으나, 애로우가 등장하기 전에 은퇴한 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이드킥'이었던 자가 악당이 되면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 줄거리로 등장한다.
- 왝더독 . . . . 1회 일치
스캔들을 덮을 만한 각본을 짜기 위해 브린이 찾아간 [[영화 제작자]]. 사실상 진주인공. 스탭롤에서도 맨 위에 나온다.
- 요괴:니코니코니 . . . . 1회 일치
일설로는 니코니코니란 '''"일본은 위대하다~"'''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 요괴:트위터 . . . . 1회 일치
트위터라는 이 요조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이를 흉내내어 여러 곳에 퍼트린다. 이 새는 남의 말을 몰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는데, 그 말이 평범한 것이면 상관없으나, 문제가 있는 말이면 큰 낭패를 겪게 된다. 트위터가 곁에 있는걸 깜빡하거나 모르고 혼잣말로 실언을 하여, 크나큰 낭패를 겪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트위터를 불행을 퍼트리는 흉조라고 부르며 두려워 한다.
- 우라센케 . . . . 1회 일치
[[센노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찰을 빚어 [[할복]]한 뒤, 리큐의 양자 쇼우안(少庵)은 교토에서 재흥을 허락받아 후신안(不審庵) 같은 리큐와 연고가 있는 다실을 재건했다. 또한 불교에 들어가 있던 아들 소우탄(宗旦)을 [[환속]]시켜서 가문을 이어받게 하고 다도를 보급하는 것을 맡겼다. 소우탄은 도쿠가와 가문 등에 자식들을 다두(茶頭)로서 임관시켜 가문을 부흥시켰으며, 소우탄의 자식 대에 센 가문은 셋으로 갈라진다.
- 우메즈 카즈오 . . . . 1회 일치
* 표류교실
- 우의형 . . . . 1회 일치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4년 5월 17일에 [[상문고등학교]] 교장으로부터 1500만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국립교육평가원장 박병용에게 "유죄는 인정되나 큰 과오없이 30년간 공직생활에 충실했다"며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15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4년 5월 18일자</ref> 1994년 6월 10일에 상무대 사업과 관련하여 공사대금 189억여원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된 청우종합건설 전 회장 조기현에게 [[특가법]] 횡령, 사기죄 등을 적용해 징역5년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4년 6월 11일자</ref> 6월 14일에 접착테이프로 암달러상의 입을 막고 금품을 빼앗으려다 전치2주 상처를 입혀 구속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4년 6월 15일자</ref> 7월 15일에 [[범청학련]] 결성식에서 인공기를 게양하여 구속된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영하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2년 자격정지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4년 7월 16일자</ref>
- 우키시마 . . . . 1회 일치
* [[늪]]의 수면에 떠있는, 섬 같은 것으로서, 실제로는 물풀, 물이끼, [[이탄]] 같은 것의 덩어리이다. 위에는 식물이 자란다.
- 울트라 시리즈 . . . . 1회 일치
실사 [[드라마]]이나 [[애니메이션]]도 나왔고, [[게임]]도 다수 나왔다.
- 원피스/816화 . . . . 1회 일치
* '''밍크족과 라이조는 사실 동료였다.'''
- 원피스/821화 . . . . 1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즈니샤가 보는 것을 똑같이 볼 수 있다.''' 잭이 공격하는 걸 보고 모모노스케는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 원피스/828화 . . . . 1회 일치
* 열매를 쓰는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뭔가 이능력을 사용한다.
- 원피스/829화 . . . . 1회 일치
* 쵸파와 캐롯은 다음엔 어떤 섬이 나올까 기대하지만 상륙하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한다.
- 원피스/837화 . . . . 1회 일치
* 브륄레는 초신성의 키드, 아푸, 벳지, 우르지 등이 빅맘의 영토를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 원피스/838화 . . . . 1회 일치
* 루피는 가짜가 피까지 토했었다고 하는데, 그건 크래커의 장인정신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냥 잼.
- 원피스/866화 . . . . 1회 일치
* 링링이 양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설립한지 37년 째가 되던 해였다. 이때 마더 카르멜의 나이는 80세. 카르멜은 링링을 받아들이며 "부모님은 곧 오실테니 여기서 함께 기다리자"고 안심시킨다. 양의 집에 사는 아이들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한다. 마더 카르멜이 공약했던 대로 이곳엔 다양다종한 종족의 고아들이 모여있었다. 신분과 처지도 그랬는데 카르멜을 안고 있는 왕관을 쓴 아이는 어느 나라의 왕족이지만 폭동으로 내몰려 여기까지 흘러왔다. 선글라스를 낀 뚱뚱한 아이는 부모가 빈곤한 나머지 노예로 팔려갈 뻔했던 과거가 있다. 이외에도 부모 손으로 벅차다 여겨졌던 문제아들이 대부분이다.
- 원피스/880화 . . . . 1회 일치
* [[샬롯 브륄레]]는 써니호와 연결된 또다른 거울을 발견하고 습격하려 한다. [[몽키 D. 루피]]가 그 거울을 깨뜨리려 하지만 [[샬롯 카타쿠리]]의 방해로 실패. 루피는 깨뜨렸던 거울의 파편을 발견하고 그걸로 [[나미(원피스)|나미]]에게 "써니호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부숴라"는 지시를 내린다. 루피는 이제 곧 적들이 다시 몰려가기 시작할 거라 경고하고 그렇게 되면 혼자서는 막을 수 없으니 적의 침입을 막고 자신이 카타쿠리와 결전에 집중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원피스/883화 . . . . 1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는 [[몽키 D. 루피]]가 기어4를 쓰기 전에 제압해버린다. 그런데 숨통을 끊지 않고 "티타임이 지체됐다"고 투덜거리며 다과를 대령하게 한다. 떡으로 만든 집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카타쿠리. 사실 위엄있는 척 하고 있지만 빅맘 [[샬롯 링링]] 못지 않게 과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
- 원피스/887화 . . . . 1회 일치
* 벳지는 [[상디]]에게 케이크를 건네라고 말하고 상디는 그의 작전에 따른다. [[샬롯 오븐]]이 배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능력으로 바닷물의 온도를 올린다. 열이 가해지자 초콜릿이 녹고 크림도 흐물흐물해지는데 그때 파운드가 난입해 오븐을 방해한다.
- 원한해결사무소/1화 . . . . 1회 일치
사실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한 것은 형사의 아내였다. 형사는 경찰관이면서도 집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최악의 남자로서, 도박을 좋아하고 생활비를 안 주고 애들 교육비에도 손을 대는 등. 죽어 마땅한 남자였기 때문에 5천만엔을 주고 원한해결사에게 살해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리고 1억엔의 보상보험을 들어놨기 때문에 이미 보상은 받았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1회 일치
의뢰인 가족은 원한해결사에게 사실을 듣고 미노리카와란 사람이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원한해결사는 미노리카와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원한해결사에게 설득을 받고, 보험을 들어서 가족에게 전하는 대신 '죽어주는 역'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의뢰인 부부는 '악마'라고 경악한다.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1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만남계 사이트]]를 이용하다는 척 하면서 마사토 이치로에게 접근한다. 마침 돈이 궁하던 그는 쉽게 접근했다가 약을 먹고 기절한다. 깨어난 마사토는 야쿠자 사무실[* 유한회사 '이타우에 무역坂上貿易'이라고 써있다.]에 버려져 있었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1회 일치
토사쿠라는 반론 기사를 실으려고 하지만, 편집장은 '퇴사할 인간'의 기획을 왜 채택해야 하나며 토사쿠라를 제지한다. 원조 OL 버스터즈의 취재비는 26만이었으나, 토사쿠라가 영수증을 위조해서 21만을 지불하고 26만으로 영수증을 고쳤던 것, 그리하여 무려 70만엔이나 횡령을 했던 것이다. 본래는 징계면직이지만 편집장은 본인이 퇴직하는 대신 횡령 건은 추궁하지 않겠다고 하며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 원한해결사무소/7화 . . . . 1회 일치
길거리에 뛰쳐나온 키지마는 죽어가면서 원한해결사에게 왜 야쿠자가 뒤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냐고 묻지만, 원한해결사는 애초에 키지마에게 접근한 것 자체가 키지마가 살해한 자매의 유족에게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마랳주지 않고, '하루에 2건'을 '사고사'로 처리했다고 중얼거리며 떠난다.
- 월경전 증후군 . . . . 1회 일치
월경에 따른 호르몬 등의 신체변화 때문에 월경 주기에 수반하여, 월경 2주일 내지 1주일 전부터 일어나서, 월경이 개시하는 것과 함께 소실하는, 일련의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나타내는 증후군.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1회 일치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 반대! 대학생행동'은 오후 5시, 소녀상 테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소녀상 테러를 사주한 배후를 철저히 수사해 진실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위저드리 6 . . . . 1회 일치
* 마을과 던전을 오가던 과거작들과는 달리, 통채로 던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실상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 . . . 1회 일치
* 도쿄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오사카의 이름을 쓰지 않지만, 사실 치바에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 유령의 집 . . . . 1회 일치
대개 놀이동산 마다 하나 정도 있으며, 전문적으로 이것만 만들어둔 전문 어트랙션도 있다. 교실 하나 정도를 사용해서 간이판으로 만드는 경우도.
- 유로달러 . . . . 1회 일치
1986년, [[영국]]은 금융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대규모 금융개방정책을 실시했으며 달러 시장의 중심지가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자산동결을 우려하여 서유럽에 달러 자산을 보관하였다. 이를 '유로뱅크'라고 한다. 이렇게 유로달러의 기세가 강해지자 미국은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찾기 위하여 뉴욕의 국제금융시장을 강화하였다.
- 유병수 . . . . 1회 일치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유열 (가수) . . . . 1회 일치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이사
- 유지태 . . . . 1회 일치
|1999||SBS||[[TV영화 러브스토리]] - 유실물||윤석||
- 유태웅(탤런트) . . . . 1회 일치
|| [[2007년]] || [[KBS2]]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시티]][br]기억상실증에[br]걸린 저승사자 || 웨딩 매니저 || ||
- 유한식 . . . . 1회 일치
연기군지역에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이 되면서 [[2012년]] 총선과 같이 실시되는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에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통합당]] [[이춘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새누리당에 속하게 된다.
- 육미당기 . . . . 1회 일치
신라국 태자 김소선(金簫仙)은 부왕의 병을 고치려고 남해의 [[보타산]](普陀山)으로 가서 [[죽순]]을 구해 오다가, 이복형 세징(世徵)에게 습격당해 죽순을 빼앗기고 [[실명]]하여 섬에 떠내려간다.
- 윤덕홍 . . . . 1회 일치
또한 윤덕홍은 2014년 4월 말까지도 새정치민주연합 경북도당 공천관리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예비후보 등록 시점까지 실질적으로는 당원으로서 활동하였으며, 국회 교육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교육감 선거 후보 조건으로 당적 1년 미보유 조항을 없애 달라", "최근 당적을 지난해 4월로 소급해 말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02838 윤덕홍은 시한폭탄] 뉴데일리 2014년 5월 13일</ref>
- 윤태동 . . . . 1회 일치
[[충주시]]가 윤태동의 생가를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의 생가에 정부가 돈을 쓴다는 논란이 일었다.[[https://archive.is/VRcc0|#]].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에 위치한 이 [[한옥]]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윤양계(윤태동의 조부)가 1873년 지은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돼 지금까지 3억원 이상의 관리 비용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 담당자는 인물과는 무관하게 건축양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지정됐을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 윤흔 . . . . 1회 일치
첫 부인은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의 손자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일찍 상처하고, 뒤에 스승 [[이이]], [[성혼]]과 동문수학한 [[신응시]]의 딸 영산신씨(靈山申氏)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재취 부인 영산신씨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처 전주이씨에게서 1남 1녀를 두니 아들 윤취지(尹就之)와 유시경(柳時慶)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또한 첩실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니, 서자 윤태지(尹泰之)는 관상감 직장(觀象監直長)을 지냈고, 서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유지만(柳之蔓)과 결혼하였다.
- 은혼/574화 . . . . 1회 일치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상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순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은혼/575화 . . . . 1회 일치
* 우츠로는 제자들의 실수는 역시 스승이 바로잡아야겠다며 직접 출격할 준비를 한다.
- 은혼/582화 . . . . 1회 일치
현실
- 은혼/585화 . . . . 1회 일치
* 그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무엇도 잃은 적이 없고, 단지 쫄아서 도망치고 있었단 사실을.
- 은혼/586화 . . . . 1회 일치
* 우미보즈는 "너희 사이에 더이상 벽은 없다"며 둘이 동등한 실력으로 겨루고 있다고 평한다.
- 은혼/591화 . . . . 1회 일치
* 이 함정으로 구번대가 전멸하고 우츠로 추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 은혼/603화 . . . . 1회 일치
* 둘이 실갱이 하는 사이 모모치가 당구 모모치 랏파가 나타난다.
- 은혼/604화 . . . . 1회 일치
* 예상보다 평범한 헌정짤. 사실 은혼은 이전에도 코치카메 헌정 에피소드로 눈좀편을 만든 전적이 있어서 퉁치는 모양이다.
- 은혼/606화 . . . . 1회 일치
* 흡연과 지방을 끊은 히지카타는 건강해지고 오키타는 만족해서 강해지는 착실한 구조의 파워업이다.
- 은혼/608화 . . . . 1회 일치
* 곤도는 "멸망을 주말까지 막아보겠다는 거냐"며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지만 실현시켜서 자지러지게 웃어보자고 외친다.
- 은혼/610화 . . . . 1회 일치
* 본래 천인의 기술을 해석해 만든 것으로 설사 해방군의 병기라도 예외는 없으며 겐카이 영감은 "전장은 죽창을 들고 다니던 시절로 회귀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다. 다만 일시적으로 벌을 살포하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고 실질적으론 이 나라 전역을 커버할 정도의 규모로, 그것도 장시간 동안 유지해야 해방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히 이 에도에서 활동했던 모든 기계들까지 파괴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겐카이 영감이 작전 시작 전에 타마에게 이야기하길 "인간이 살기 위해 너희를 버리는 것"이라 표현한다.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 [[사이고 토쿠모리]]는 여전히 분전 중. 이들이 생각보다 잘 버티자 해방군은 병력을 분산시켜 가부키쵸의 모든 문을 공격하기로 한다. 이렇게 되면 병력이 열세인 가부키쵸 방위군도 병력을 나눠야 하므로 방어벽이 얇아지는 것이다. 수에 의존한 전략이지만 현시점에선 가장 확실하고 치명적인 전략.
- 은혼/620화 . . . . 1회 일치
츠쿠요는 설마 여자를 바보취급하는 걸로 화내게 될 줄 몰랐다며 타에가 한 말 그대로 자신도 결국 여자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츠쿠요는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결국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자각했다며 사실 자신은 이 전장에 설 자격이 없다고 자조한다.
- 은혼/621화 . . . . 1회 일치
* 이런 개판의 와중에 마조돼지로 전락했던 [[코제니가타 헤이지]]까지 멀쩡한 척 안경을 쓰고 나타나 "남자들은 모두 가랑이에 바이러스 포를 가지고 있는 박사들"이라고 개드립을 친다. 그는 자신을 데려가 이종교배 실험을 시켜달라는, 취지가 장난 아니게 빗나간 요구를 해댄다. 하지만 왠지 쿄시로가 "당신들이 가면 지구인의 이미지만 나빠지니 내가 가서 천 명을 꼬셔오겠다"는 드립을 치면서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다.
- 은혼/625화 . . . . 1회 일치
그는 신의 뿔 따윈 얼마든지 내어주겠다며 그들이 황야로 만들어온 별과 꺾어온 생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키니가 싸우기 위해 태어나 살아가듯, 그들이 꺾어버린 생명들 또한 무언가를 위해 피었을 생명일 거라며 그런 사실을 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고 말한다.
- 은혼/633화 . . . . 1회 일치
* 다츠마는 그들이 우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환영한다. 적어도 그만은 신스케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가츠라는 겁먹고 우주 구석탱이에서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한테 베이고 싶어서 돌아왔냐고 험악한 말을 한다. 신스케가 돌격을 멈추지 않으며 "해방군 말고 네놈들이랑 먼저 한 판 해도 상관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어차피 온 우주와 거하게 한 판 해야 할 참이니까. 가츠라는 그 뒤를 따르며 나라를 뺏은 다음엔 우주를 뺏을 심산이냐며 그놈의 허풍은 우주에 나와서도 못 고쳤다고 비꼰다. 다츠마가 따라와 "이참에 그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끼어든다. 해방군한테 몰살 당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 은혼/636화 . . . . 1회 일치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남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상황. 이 한심한 작태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 은혼/637화 . . . . 1회 일치
[[사카타 긴토키]] 도착. [[시무라 신파치]]도 도착. 확실히 이쪽과도 재대결 플래그를 꽂아놨었다.
- 은혼/641화 . . . . 1회 일치
>그대는 영웅이 아니란 사실을.
- 이경영(1958) . . . . 1회 일치
* MBC [[실화극장 죄와벌]] <죽음의 포즈> 편 - [[죽음을 연출한 사진]]의 범인 이동식 역[* 단 여기서는 한동수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 (2003년)
- 이경희 (1880년) . . . . 1회 일치
실력을 양성하는 길만이 조국의 독립을 앞당긴다는 신념으로 고향으로 내려와 [[대구]] [[협성학교]](協成學校)의 교사가 되었으며 [[안동 협동학교]](協同學校)의 [[교사]]를 겸임하여, [[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안동 협동학교에도 출강하며 교편을 잡고 교육구국에 힘썼다. 이 무렵 그는 [[유교]] [[성리학]]에서 [[대종교]]로 개종하였다.
- 이국철 . . . . 1회 일치
2011년 9월, [[신재민]] 전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그동안 수십억 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ref>《시사저널》(2011.09.21),[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092 <단독>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에게 수십억 원대 금품 줬다” ]</ref> 민주당 국회의원 [[박지원]]은 회장 이국철에게서 전 차관 [[신재민]]이 대선 전후 [[미국|아메리카합중국]] 출장 시 현지 법인카드를 사용한 내역을 가지고 있고 다른 여권 실세에게 돈을 주었다는 주장을 들었다고 밝혔다.<ref>《손석희의 시선집중》(2011.09.27), [http://www.imbc.com/broad/radio/fm/look/notice/?list_id=5667955 " 이국철 게이트 터지나"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터뷰]</ref>
- 이근직 . . . . 1회 일치
[[8.15 광복]] 이후에도 1949년까지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서울특별시청]]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 제2국장, 1952년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부터 1957년 9월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경상북도지사 재임 중이던 1957년 8월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났다. 1957년 9월부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장관|장관]]을 지내다가 1958년 6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자유당]] 당무위원으로 있다가 1959년 3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임 중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구속 기소되었다.
- 이동찬(기업인) . . . . 1회 일치
스포츠에도 관심이 있었던지 1971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실업농구연맹 회장, 1980년부터 198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이득을 준 배신자를 처단하기 . . . . 1회 일치
실제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가 있어왔던, 문학작품, 역사의 [[클리셰]].
- 이름뿐인 관리직 . . . . 1회 일치
[[일본]]의 노동법에서 관리직은 잔업수당 등의 할증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을 악용하여, 직함만 관리직으로 하고 실제로는 임금 등을 지불하지 않는 직원.
- 이만섭 . . . . 1회 일치
* 《의회외교실록》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4년]] [[6월 9일]], 포항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주의 [[알아인 FC|알아인]] 이적을 발표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그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총 95억 원 정도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총액 95억원' 이명주 알아인 이적, K리그 이적사 다시 썼다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406100100083460005726&servicedate=20140609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4-06-9}} }}</ref> 7월 '알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또한 9월 30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2014|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 (리야드)|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ACL) ‘이명주 선제골’ 불구 알아인 결승 좌절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11083 |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4-10-1}} }}</ref> 한편 정규리그에서는 12월에 열린 10, 11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13라운드 [[샤르자 스포츠 클럽|샤르자]]와의 경기에서는 정규리그 첫 골을 성공시켰다. [[2015년 AFC 아시안컵|아시안컵]] 이후 복귀한 14라운드 [[알샤바브 (두바이)|알샤바브]]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알아인 FC|알아인]]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2014-15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 이민호(1969) . . . . 1회 일치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병후 . . . . 1회 일치
부산민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2년 5월 17일 부산은행 대표가 청구한 약속어음금 반환소송에서 이자에 대한 이자 청구는 이자제한법에 따라서 무효라고 하면서 원금에 대한 이자만 더해 지급하도록 했으며<ref>경향신문 1972년 5월 18일자</ref>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73년 5월 31일 혼인 당사자가 동성동본이라고 하더라도 신고서에 '혼인 당사자는 각각 시조를 달리함'이란 사실만 기재하면 구체적인 입증 소명자료가 없더라도 혼인신고를 받아줘야 한다"고 하여 동성동본 금혼을 규정한 민법을 무력화했다.<ref>동아일보 1973년 6월1일자</ref>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0년]] [[6월 11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구원
- 이상정 (1897년) . . . . 1회 일치
| 배우자 = 한문이(초취), [[권기옥]](재혼)<ref>[[권기옥]]과의 재혼은 사실상 중혼이다.</ref>
- 이상휘 . . . . 1회 일치
[[2009년]] 3월에 [[이명박정부]]로부터 [[청와대]] 춘추관 관장 및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친이|친이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포항 북 지역구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박계]]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후 [[2014년]]에는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아 [[동작구 갑]]으로 출마했지만 국정원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는 [[이정현(정치인)|이정현]] 대표에 의해 새누리당 원외대변인으로 임명되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대변인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했다.
- 이성계 . . . . 1회 일치
그러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전처 소생의 아들들을 외면하고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고 하여 그들의 불만을 사서, 결국 그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이방원(후의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방번, 정도전 등을 참살하고 이성계를 상왕으로 만들어 실권을 탈취한다.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옛 근거지인 함경도 지역에서 조사의 등과 결탁해 군대를 거병하고 태종을 공격하였으나(조사의의 난) 태종의 친정군에 패배한다. 그 후에는 완전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사냥 등으로 소일하다 서거.
- 이신학 . . . . 1회 일치
* 대구광역시 비상실업대책위원회 대책위원
- 이영 (1492년) . . . . 1회 일치
묘는 [[안동군]] [[도산면]] 감산(甘山, [[북고산]](北高山)) 후곡 대평(大坪) 유좌(酉坐)에 있다. 후일 기록이 실전되었다가 뒤늦게 찾게되어 문소 김홍락(聞韶 金鴻洛)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 이영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Retire/Hitter.aspx?playerId=74650 이영수] - KBO 기록실
- 이영훈 (경제학자) . . . . 1회 일치
}}</ref> 그러나 이영훈은 이후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며 사과를 한 바 있다.
- 이원재(공무원) . . . . 1회 일치
|| '''약력''' ||<(>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실 국토교통비서관[br]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br]주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 [br]국토해양부 주택정책관[br]국토해양부 토지정책관 ||
- 이장경 . . . . 1회 일치
[[이백년]]의 아들이자 손자 [[이인기]]는 평양부 부윤이었고, 고손자(아들 이백년의 증손)는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자 [[고려]] 멸망 이후 두문불출한 절신 [[이숭인]]이었다.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자 이장경의 고손자인 이제(李濟)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되어 조선 왕실과도 인척관계가 되었다.
- 이장훈(배우) . . . . 1회 일치
드림: 평범하였고 있던 청소년 시기를 거쳐 검정고시를 통해 어간을기 틀카 이장훈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가수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한다.
- 이전환 . . . . 1회 일치
* 재정경제부 세제실 근무
- 이정훈 (1963년) . . . . 1회 일치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출<br /><br />장!![[타석|타<br /><br />석]]!![[타수|타<br /><br />수]]!![[득점 (야구)|득<br /><br />점]]!![[안타|안<br /><br />타]]!![[2루타|2<br />루<br />타]]!![[3루타|3<br />루<br />타]]!![[홈런|홈<br /><br />런]]!![[타점|타<br /><br />점]]!![[도루|도<br /><br />루]]!![[도루|도<br /><br />실]]!![[볼넷|볼<br /><br />넷]]!![[삼진|삼<br /><br />진]]!![[타율|타<br /><br />율]]!![[출루율|출<br />루<br />율]]!![[장타율|장<br />타<br />율]]!![[OPS|O<br />P<br />S]]!![[누타수|루<br /><br />타]]!![[병살타|병<br />살<br />타]]!![[몸에 맞는 볼|몸<br /><br />맞]]!![[희생 번트|희<br /><br />타]]!![[희생 플라이|희<br /><br />플]]!![[고의 사구|고<br /><br />4]]
- 이종혁 (배우) . . . . 1회 일치
* [[2010년]] [[KBS2]] 미니시리즈 《[[도망자 플랜 B]]》 - 영사실 통역사, 황철호 역 (특별출연)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 지우의 아찔한 실험 生쇼 《mgoon》
- 이차강간 . . . . 1회 일치
* 언론의 보도. 피해자에게 피해를 상기시키고, 주변에 피해 사실이 알려지게 만들어서 고통을 줄 수 있다.
- 이차영 . . . . 1회 일치
충북대학교 졸업 후 [[충청북도청]]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괴산군 부군수,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비서실장]] 등을 지내고 2017년 명예퇴임하였다. 명예퇴직 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였다.
- 이태현(씨름) . . . . 1회 일치
하지만 2006년 9월에 있던 [[PRIDE]] 데뷔전에서 [[브라질]]의 히카르두 모라예스에게 1라운드 8분 8초만에 TKO패를 당했다.(얼굴에 싸커킥 '짝!') 1년 후 10월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K-1]] 히어로즈 대회에서 일본의 야마모토 요시히사를 1회 TKO로 꺾어 데뷔 첫 승을 거뒀지만 2008년에 네덜란드의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1라운드 36초만에 KO패를 당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종합격투기에서 거둔 전적은 1승 2패. 이태현의 타고난 힘으로 상대를 테이크 다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결국 타격부분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었던게 실패의 요인이었다.
- 이판석 . . . . 1회 일치
1960년 주사보(현 [[7급 공무원]])로 공무원 경력을 시작하였다. 관선 [[춘천시]]장, 관선 [[마산]]시장을 거쳐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재정국장, 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등을 지냈다.
- 이한응 (1849년) . . . . 1회 일치
[[1870년]](고종 7년) 봄 무과(武科)에 급제, 영의정 [[김병학]](金炳學)의 건의로 특별히 가설 내승(內乘)에 임명되었다.<ref name="dager1">고종실록 7권, 1870년(고종 7년, 개국 479년) 5월 20일 을유 1번째기사, 조선 개국(開國) 479년 문희묘, 의소묘, 육상궁, 연호궁, 선희궁에 전배하다</ref> [[김병학]]은 '(故) 충장공(忠壯公) 이복남(李福男)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절개와 의리에 대해서는 열성조(列聖朝)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보답하는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봉사손(奉祀孫)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마땅히 조정에서 뜻을 보여주는 거조(擧措)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종전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선전관(宣傳官)과 내승(內乘) 중에 가설(加設)하여 단부(單付)한 전례(前例)가 이미 많았다'며 그에게도 선전관이나 내승을 가설하여 임명해줄 것을 청하였다.<ref name="dager1"/>
- 이현우 (가수) . . . . 1회 일치
그는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1988년 [[미국]] [[뉴욕주]] [[뉴욕 시티]]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로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89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에 잠깐 놀러 왔다가 당시 [[가수]] [[강수지]]의 소속사 매니저의 소개를 받고 1990년 10월에 실험적인 [[테크노 팝|테크노]] [[댄스 팝]] [[대중음악|음악]] 장르 곡인 데뷔곡 《꿈》이 수록된 《12 Inch Dance Version》이라는 싱글 [[음반]]으로 첫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1집 [[음반]] 《Black Rainbow》로 정식 데뷔하였다.
- 이효린 . . . . 1회 일치
순흥 재향지에 의하면 수식(水息) 석람(石嵐) 동쪽 산 아래 두 시냇물 사이에 정자 아양루(峨洋樓)를 지었으나 뒷날 소실되었다 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에서 매장되었다.
- 인교진 . . . . 1회 일치
* 2016년 [[KBS2]] 월화드라마 《[[우리집에 사는 남자]]》 ... 응급실 의사 역
- 인천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영실]] - 강화군
- 인터넷 카페 . . . . 1회 일치
* [[샤워]]나 [[담요]]를 제공하여, 실질적으로 숙박업소로 이용할 수 있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1회 일치
* 악몽 속의 멀린은 "내일이 없는 자와 함께 길을 걸을 순 없어. 왜냐면 네 저주는 절대 풀 수 없으니까. 강대한 저주는 이윽고 그 몸을 전부 침식하겠지. 너는 결국 내 실험 재료일 뿐인 존재.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 없이 고독하게 죽어라 에스카노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갈란은 결국 리타이어한게 확실시.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엿보는게 취미냐고 비꼬는데 그저 자신의 충실한 "눈"이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이전과 같은 상태로 보였지만 팬덤의 예상대로 전과는 조금 다른 인격으로 부활했다. 어느 정도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살의를 담은 공격을 가하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1회 일치
* 즐거운 것도 잠시. 게라이드를 비롯한 모든 이가 위화감을 눈치챈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즐겁게 춤을 춰놓고 기억이 왜곡된 듯 방금 전까지 뭘하고 있었는지, 왜 춤을 췄던 건지도 잊고 있다. 그저 아주 즐겁게 춤을 췄다는 느낌만이 있다. 그러다 오슬로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할리퀸과 디안느가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 당황하며 이들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트로나는 게라이드에게 뭔가 눈치챈게 없다고 묻는데 게라이드의 상태도 이상하다. 마트로나의 물음에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답이 없다.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1회 일치
* 그러자 드롤이 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것만 보고 공격이 먹혀들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 드롤은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그의 춤이 계속되자 어느 순간 디안느의 마력이 지워지고 대지를 조종할 수 없게 된다. 어느새 접근한 드롤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혹평하며 다시 한 번 장타를 날린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회 일치
* 빛이 거치고 맑은 하늘이 나타난다. 장소가 보지 못했던 풍경으로 바뀌었다. 할리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어선다. 아직도 뭘 당한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디안느가 곁에 없다. 할리퀸은 무엇보다 그걸 가장 걱정한다. 서둘러 그녀를 찾는데 자신의 머리카락이 붉은 색으로 변해있다. 게다가 눈에 익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날개. 설마설마 하며 물웅덩이에 얼굴을 비춰보니 그의 몸은 그로키시니아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시간도 없다. 어디선가 디안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회 일치
* [[메라스큐라]]는 [[데리엘]] 일행과 떨어져 고서 쪽으로 합류했다. 메라스큐라는 문을 보며 여신족의 악취미라고 빈정거린다. 고서는 인질 구출 작전의 성패에 대해 묻는데 메라스큐라가 함정이었다고 알린다. 고서는 세세한 질문은 접어두고 직접 메라스큐라의 기억을 읽어서 십계의 대군이 전멸하고 사대천사와 십계들이 대치하고 있는걸 알게 된다. 메라스큐라는 기억 좀 읽지 말라고 짜증을 낸다. 고서는 메라스큐라에게 뤼드셀이 현장으로 간 사실을 알려주며 전황이 어렵게 됐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본래 마계에서만 존재하며 마신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전설 상의 존재다. 그 실체는 일곱 개 이상의 심장을 가진 마신이 자신의 여섯 심장을 바치고 계약을 맺어 본성을 드러낸 형태다. 전투력이 최소 5만이 되지 않으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자폭과도 같은 기술이다. 갈란은 십계 두 명이 인듀라화를 결심하게 만들 만큼 뤼드셀이 강한 거라며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1회 일치
* 자신의 진정한 힘을 해방한 엘리자베스는 인듀라를 향해 거대한 빛의 화살을 쏘아보낸다. 화살은 둘을 꿰뚫으며 날아간다. 이 힘은 어둠의 힘을 몰아내는 주문으로 뤼드셀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인듀라에게 확실히 타격을 준다. 뤼드셀은 무가치한 십계 따위를 구하는게 제정신으로 할 짓이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십계를 죽여야 여신족에게, 아니 모든 종족에게 위협이 줄어들고 성전의 종결에 다가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킹과 디안느는 그런 모습을 보며 뤼드셀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1회 일치
*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치뤄진 격전이 막을 내린다.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의 인간형상으로 돌아와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혼신을 다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너무 지쳐서 두 십계의 상태도 확인하지 못한다. [[멜리오다스]]가 대신 그 둘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하며 감사를 표한다.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실신, 멜리오다스가 보호한다.
- 일곱개의 대죄/번외편 . . . . 1회 일치
* 사실 크라켄과 거대화 생물들이 날뛰는걸 처리하는 임무였다. 성공수당을 혼자 챙기려다 걸리는 멜리오다스.
- 일본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 대화재 . . . . 1회 일치
화재의 시작은 라면 가게 주인의 실수였다. 오전 10시 30분 쯤, 72세의 라면가게 주인이 개점 전에 난로에 불을 붙이고, 냄비를 올려둔 채로 깜빡 잊고 잠시 집에 돌아갔는데, 돌아왔더니 이미 불길이 환풍기 높이까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주인은 물을 뿌려서 진화를 시도했으나 불길이 사그러들지 않아 정육점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 일장청 호삼랑 . . . . 1회 일치
호삼랑의 별명 '일장청'의 의미는 현재는 확실하지 않다. 당시 흔히 쓰이던 관용구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 임페라토르 . . . . 1회 일치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성립하면서 군단편성권과 같은 군권을 자신에게 독점시켜 황제는 유일한 '임페라토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구멍이 있었는데, 내전기의 로마 전통에 따라서 병사들은 자신의 지휘관을 [[투표]]로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단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지휘관은 언제든지 '임페라토르'로 승격될 수 있었다.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얻게 된 사령관은 사실상 '잠정 황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 [[원로원]]의 동의를 얻으면 진짜 황제가 될 수 있다. 평시에 황제(현임 임페라토르)의 권위가 높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는 정치적 혼란기에는 언제든지 제국 각지에서 임페라토르가 난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는 로마 제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내전과 군인 황제들의 지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임혁주 . . . . 1회 일치
* 《세종대왕》 ... [[장영실]] 역(주연)
- 자본통제 . . . . 1회 일치
그러나 한 국가의 능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통제는 실패하면 자본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 장범준 . . . . 1회 일치
* 제44회 [[전국 학생 미술 실기대회]] 최우수상
- 장진용 . . . . 1회 일치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 저변교 . . . . 1회 일치
진학을 목적으로 하여 실적을 얻는 학교인 진학교와는 반대로 저변교는 그 자체가 ‘되도록이면 진학하고 싶지 않은 학교’로 취급받는다. 일단 교육환경이 나빠서, 학생들이 대부분 학력이 없어서(고등학생인데 분수 계산을 하지 못한다 등) 교육의 질이 해당 단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낮다. 물론 비행청소년이 넘쳐나고, 심지어 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다보니 취업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이유가 있다.
- 전근표 . . . . 1회 일치
!년도 !!팀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도루<br />실패 !!4사구 !!삼진 !!병살타 !!희생타 !!장타율
- 전기밥솥 . . . . 1회 일치
쌀을 씻어서 넣어놓고 버튼을 누르지 않는 실수가 자주 일어난다.
- 전기의자 . . . . 1회 일치
[[코끼리]] 한마리도 이런 식으로 처형된 사례가 있다. 톱시(Topsy)라는 이름의 코끼리였는데 [[사육사]]를 죽여버린 사고를 친 것. 그 결과 6,600 볼트 전류로 사형당했다. [[https://youtu.be/NoKi4coyFw0|유튜브 동영상-충격적일 수도 있음.]] 위의 최초의 인간 사형집행과 함께 잔인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이와는 별개로 사보타주를 통해 교류를 밀던 웨스팅하우스를 파산시키기는 했으나 교류의 보급을 막는 데에는 실패했다.
- 전덕기 . . . . 1회 일치
[[1906년]] 상동감리교회에서 설립한 [[공옥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1907년에 교감 [[이회영]], 교사 이동녕 등과 함께 신민회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이준 (1859년)|이준]]과 상동감리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헤이그 거사 계획]]을 성사시켰다. 역시 같은 해, 감리교 연회(年會)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상동감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 전동휠 . . . . 1회 일치
가격도 세그웨이의 천만원대에 비하면 현실적이다.
- 전라북도 . . . . 1회 일치
[[임실군]]''' || 任實郡 || 13,910 || 30,708 || 597.15
- 전명운 . . . . 1회 일치
이곳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대한제국]]의 외부 고문을 맡고 있던 [[더럼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귀국하여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영하고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자, 이 사실에 매우 격분하였다. 스티븐스의 망언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공립협회는 [[대동보국회]]와 공동으로 항의를 위한 4인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스티븐스는 대표들의 항의에도 극언을 계속하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 전민제 . . . . 1회 일치
* 1954년 조선석유 총무실장
- 전병조 . . . . 1회 일치
*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 전상우 (1953년) . . . . 1회 일치
* 1998.11 ~ 2000.01 : 특허청 기획관리관실 기획관리관
- 전인환 . . . . 1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 전정희 (배우) . . . . 1회 일치
*2009~ 한국 방송 실연자협회 자문위원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1회 일치
* 테오도르는 조직이 실패한 클론 칠드런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넣는다고 보스를 추궁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1회 일치
미나모토의 부재로 의욕을 상실한 칠드런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이것은 환영이고 실체는 배후로 돌아가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1회 일치
* 이러한 사실은 판도라의 동료들도 알고 있는데 시로 마기, 카노 모미지, 후지우라 요우도 알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1회 일치
* 신생아실에서 카오루와 만난 효부.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1회 일치
효부는 사실 진작부터 후지코의 주변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방치하면 정권의 하수인들이 몰려들거라고 판단, 미끼로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는 [[츠보미 후지코]]가 이런 상황을 예측 못했을리 없다고 보는데 실제로 바벨 내부는 텔레포트만 방해되고 있는 등 수상한 점이 많다.
- 접대 . . . . 1회 일치
스포츠 등을 활용하는 접대에서는 을 측이 실력상으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어도 상대인 갑에게 맞춰주면서 적당히 져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
- 정겨운 . . . . 1회 일치
| [[실종: 사라진아내]]
- 정기선 . . . . 1회 일치
* 2015년 ~ 2016년 : [[현대중공업]] 기획실 상무
- 정다정 . . . . 1회 일치
이광낙(<small>인터넷 아이디:</small> Lv7.벌레)은 2012년 9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24인용 군용 텐트 혼자 치기(T24 소셜 페스티벌 또는 T24 행사)를 성공시켜 화제가 된 인물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혼자서 24인용 군용텐트 칠수 있을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910/49262459/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1 = 박상훈 | 저자2 = 김진우 | 저자3 = 윤상호|쪽 = |날짜 = 2012-09-10|확인날짜 = 2012-10-27}}</ref> 그는 당시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SLR클럽]]에서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자 “되는데요”라고 답글을 단 바 있는데, 이 말은 그가 텐트를 실제로 혼자 칠 수 있음을 보이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ref>{{뉴스 인용 |제목 = 유행어가 되리 시즌 2 - 제 14장│되는데요. .|url =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a_id=2012091021072828319|출판사 = 10asia|저자 = 최지은|쪽 = |날짜 = 2012-09-11|확인날짜 = 2012-10-27}}</ref>
- 정다흰 . . . . 1회 일치
2015년 4월 19일 KT 2군과의 퓨쳐스리그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무실점으로 퓨쳐스리그 첫승을 기록하였다.
- 정대석 . . . . 1회 일치
정대석은 전통적 기반위에 현재의 감성을 입혀 새로이 재구성하여 거문고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연주자다. 출중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고하게 기품을 유지해 온 거문고를 일반 계층에게 전파시키는데 기여해온 바 크다. 그는 거문고와 더불어 연주자 및 창작자로서의 삶을 일관하여 온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국악인이다. 정대석은 일찍이 거문고의 창작음악에 몰두하여 많은 거문고 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곡들은 거문고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거문고연주자 정대석은 이런 관점에서 면면히 자기완성을 의지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악인으로서의 자태를 유지해온 예술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서울악회 동인, 거문고연구회 동보악회 대표이다. 2003년 KBS국악대상 대상 및 현악상과 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3/11/20070311000979.html 거문고 명인 정대석씨 ''非음대'' 첫 서울음대] 교수세계일보(2007.03.12)</ref>
- 정도복 (고려) . . . . 1회 일치
그러나 다시 유배되는데 태종실록 태종 13년(1413) 7월 12일조에, “사헌부에서 2품 이상으로서 외방(外方)에 있는 자의 죄를 청하는 계청(啓請)에, “2품은 외방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법이 있습니다. 검교(檢校) 한성 윤(漢城尹) 손가흥(孫可興)·박상경(朴尙絅)·박후식(朴厚植)·고도관(高都琯)·윤사혁(尹思奕)·최함(崔咸)·여극해(呂克諧)·정도복(鄭道復)·전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 정과(鄭過) 등은 항상 외방에 거주하니 심히 미편합니다. 청컨대, 고신(告身)을 거두고 다른 도(道)에 이치(移置)하소서.”라고 비난하였다.
- 정력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인간의 기력이나 활동력 전반을 이르는 말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남성의 성적 능력을 이르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거기 당신, 당신, 당신 말이지!!~~
- 정몽근 . . . . 1회 일치
* 할머니 : 한성실
- 정몽원 . . . . 1회 일치
*할어머니 : 한성실(韓成實)
- 정무식(정치인) . . . . 1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며 [[육군정보학교]] [[교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중앙정보부]]에서 대구[[대공분실]]장, 제3국장, 정보부장 특별보좌역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 정미남 . . . . 1회 일치
* 2007년 《[[해부학 교실]]》 ... 사창가 사내 역
- 정범균 . . . . 1회 일치
* 어때요 OOO 확실하게 배웠죠?(사마귀 유치원)
- 정선 (화가) . . . . 1회 일치
18세기 조선 화단을 이끌었던 [[강세황]]은 겸재 정선이 실제 경치를 잘 그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ref name="강세황평">{{서적 인용|저자=변영섭|제목=1월의 문화인물 미술인 강세황|출판사=문화체육부·한국문화예술진흥원|연도=1995|쪽=15}}</ref> 그러나 강세황은 진경을 그릴 때는 각 장면에서 알맞은 화법을 찾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ref name="강세황평"/>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정선의 산수화를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 정시제 고등학교 . . . . 1회 일치
일본의 학제. 주로 직업과 학업을 양립하는 사람을 위하여, 야간부, 혹은 주간부(오전부/오후부) 등으로 나눠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
- 정재호 (1930년) . . . . 1회 일치
* 제8대 국회의장 비서실장
- 정진호(1956) . . . . 1회 일치
|| '''생년월일''' || [[1956년]] [[6월 23일]][* [[최순실]]과 생년월일이 일치한다.] ||
- 정혜선(배우) . . . . 1회 일치
|| 김혜자/강효실[br](1978) || → ||<#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영옥(배우)|김영옥]][br]'''(1979)''' || → || 김민자[br](1980) ||
- 정홍준 . . . . 1회 일치
!연도!!소속!!평균 자책!!경기!!승리!!패전!!세이브 !!이닝 !!피안타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제3의 로마 . . . . 1회 일치
사실 독일 제국이 제3이면 [[나치 독일]]은 '제4제국'이 되어야 하지만, 서로마를 떼어버리고 [[독일인]]만 기준으로 해서 신성로마제국, 독일 제국, 나치 독일로 해서 제3제국임을 주장한다.--[[바이마르 공화국]]의 눈물-- '제4'는 아무래도 뭔가 애매하게 느껴지나보다.
- 존 딜린저 . . . . 1회 일치
밤 10시 30분. 영화를 보고 난 딜린저는 두 여자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선다. 극장 문 앞에 서있던 멜빈 퍼비스(Melvin Purvis) 특별 수사관이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이 딜린저에게 접근했다.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은 딜린저는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골목길로 도망갔지만 그곳에는 FBI 요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세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딜린저는 그대로 쓰러졌다. 20분 후, "공공의 적" 존 딜린저가 알렉시안 브라더즈 병원(Aliexian Brothers Hospital)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 존 왕 . . . . 1회 일치
[[리처드 1세]]의 동생이다. 실정을 거듭하고 통치력이 쇠퇴하여 귀족 세력에게 밀리게 되었고, 결국 [[마그나 카르타]]를 체결한 업적(?)이 있다.
- 존 헨리 . . . . 1회 일치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중년 이후에 그 간 무리한 탓에 건강이 손상되어 고통을 받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서, 80년대, 셔먼 제임스라는 청년 연구가가 소작농 출신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의 사례를 기초로 하여 “존 헨리 척도”를 제안했다. 이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는 등의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http://newspeppermint.com/2017/01/31/john-henryism/ 참조]])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는 흑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던 현상인데, 기계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이야기 속의 존 헨리처럼 존 헨리이즘은 현실과 싸우다가 스스로 피폐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주다영 . . . . 1회 일치
* [[2010년]] [[KBS2]] 수목드라마 《[[추노]]》 ... 은실 역
- 주아브 . . . . 1회 일치
이들은 붉은색의 통 큰 바지와 푸른색 조끼 등 "동양풍"의 복장을 입었다.
- 주장환 . . . . 1회 일치
'''주장환'''(1957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신문기자, [[소설가]]이다.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중소기업사랑 청소년글짓기 공모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장애인예술대상 문학부문 심사위원, 충효예실천운동 본부 상임위원,부총재 [[731부대]] 한국인 희생자 진상규명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극동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하버드대학 Literati China 과정 수료. 월간조선 객원기자
- 주토피아 . . . . 1회 일치
[[인간]]의 도시전설을 쫓아서 주인공들은 주토피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을 목격하게 되는데.
- 죽는다 죽는다 사기 . . . . 1회 일치
* 창작물에서 확실하게 캐릭터가 사망하는 연출이나 언급이 있었지만 보였지만, 죽지 않았던 경우. 특히 이런 것이 반복되는 캐릭터.
- 죽으면 부처님 . . . . 1회 일치
이는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서 "일본에서는 죽으면 부처님. 그러니까 A급 전범 합사도 용인된다."는 식으로, 외국의 비판을 '문화적 차이'라고 실드치고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우익 논객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은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비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문화차별적 주장도 곁들여진다.
- 중화소바 . . . . 1회 일치
본래 [[밀가루]]면을 사용한 [[국수]]를 일본에서는 '중화소바'라고 불렀다. 그런데 [[치킨]]라멘이 히트하면서 라멘이라는 명칭이 퍼져서 정착하게 된다. 그래서 라멘과 중화소바라는 명칭이 병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이다.
- 지렁이 . . . . 1회 일치
평소에는 땅 속에서 살지만 [[비]]가 오면 밖으로 나와 꿈틀거린다. 이는 숨구멍이 부족해 숨을 쉬려고 이러는거다. 이러다가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다시 땅을 파고들어가는데 실수로 타이밍을 놓치면 못 들어가고 말라 죽는다.
- 지소 . . . . 1회 일치
* 실제로 이런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다.([[https://myoji-yurai.net/searchResult.htm?myojiKanji=%E6%B1%A0%E6%B2%BC (참조)]])
- 진격의 거인/83화 . . . . 1회 일치
* 쟝이 이 사실을 언급한 것인데 한지는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 진격의 거인/99화 . . . . 1회 일치
* [[빌리 타이버]]는 대중들을 상대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거인대전을 끝낸 주역은 타이버가도 마레인도 아닌 "프리츠 왕" 그 자신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반역자는 "엘런 예거"임을 폭로한다.
- 진격의 거인/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그리샤의 진실 ====
- 진종채 . . . . 1회 일치
[[1975년]] [[국군기무사령부/사령관|육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1977년]] 육군보안사령부를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 개편하였다. 그런데 [[1977년]] 대대장 월북 사건을 납북이라고 거짓 보고하였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에 파견된 [[김기춘]] [[검사(법조인)|검사]]에 의해 국군보안사령부의 정보처가 폐지되는 등의 국군보안사령부 축소안이 실행되었다. 또한 본인이 권력지향형 인물이 아니어서 보안사 권력 확장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 차내 피난생활 . . . . 1회 일치
차내 피난생활에 대비하여 궁극의 방재용품(…)으로서 [[캠핑카]]를 추천하는 의견도 있다. 캠핑카는 쉽게 거주지를 확보할 수 있고, 난방, 조명, 샤워, 화장실 등을 쉽게 구비해둘 수 있다. 또 여차하면 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차희식 . . . . 1회 일치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정책을 시행하여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고, 간척공사를 비롯해 송충이 잡는데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노동 착취가 심하였다. 또한 1907년 염업조사를 실시하여 한국인 제염업자의 경영 기반을 해체시켰는데 이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경제적 기반이었던 염업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일제의 수탈정책은 다른 지역보다 소작농의 비율이 높고 여건이 열악한 이 지역민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의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1980년대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 간단하게 설명하면, [[가라테]] 3단의 [[영국인]]이 오해로 사람을 과실치사 해버린 사건이다.
- 착각남 . . . . 1회 일치
‘착각’을 뜻하는 칸치가이(勘違い)와 과거에 남성명으로 자주 쓰던 ~스케(助)를 합쳐서 ‘착각하는 남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1501년-1561년) 등 실제로 과거에 쓰이던 인명이기도 하다.
- 창작:6피트 계획 . . . . 1회 일치
* 신 -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음
- 창작:Project NA . . . . 1회 일치
* 물건의 주된 목적 외의 초현실적 능력이나 효과를 보이는 오파츠도 주의.
- 창작:말퓨스 스토리 . . . . 1회 일치
타치바나 가문 : 타치바나 이즈미의 가문이며, 당주는 타치바나 이즈미 본인이다. 다만 츠키노 가문에게 상당한 내적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이즈미의 명령이라면 언제든지 실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 창작:좀비탈출/1 . . . . 1회 일치
메모지에 간단히 부모님 앞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거실에 놔뒀다. 과연 저것을 누가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창작:좀비탈출/2-1 . . . . 1회 일치
옆집 현관 주변을 뒤져봤다. 말라죽은 꽃 화분 아래에 현관 열쇠가 있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옆집 거실로 들어갔다.
- 창작:좀비탈출/3-2 . . . . 1회 일치
솔직히 학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사건이 이렇게 까지 커지진 않았을 때부터 이미 동네 분위기는 상당히 어수선 했기 때문에 나는 일치감치 학교도 빼먹고 있었다. 좀비들의 출현은 처음에는 '한밤중에 아이를 습격해서 물어뜯는 괴한'이니, '길거리에서 습격해오는 취객'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소문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치안 사정에 불안감을 느끼던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4-1-2-2 . . . . 1회 일치
정확히 한 발짝 앞. 나는 다가가기를 멈추고 손을 들어오렸다. 무기를 양손에 쥐었다. 눈은 감고 싶었지만 오히려 부릅 떴다. 마지막까지 정확하게 봐야해. 그래야 빗나가지 않아. 나는 체중을 손끝에 실어서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 창작:좀비탈출/5-1-1 . . . . 1회 일치
어짜피 생각이 없는 놈들이니까, 자신들의 동료(?)가 죽거나 죽을 지경이라면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동물의 왕국에 보면 자주 나오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이 토트넘을 미끼로 써서 좀비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시험해 보고 싶진 않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나았다.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1회 일치
* 촉각 - 감각 자체는 있을 것 같다. 실험해보진 못했지만.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1회 일치
그때 푹 자지 않았더라면 와트니가 하던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봐둘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안다. 별점 테러를 하려다 보면 영화 내용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보드 정도는 읽어봐야 하니까. 그때는, 예를 들어서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이야기를 "무슨 화성에서 농사나 짓고 있어? 전원일기냐?"같은 멘트를(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단 상스러웠다) 쓰기 위해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충 마션의 스토리와 와트니의 업적은 숙지하고 있다.
- 채기영 . . . . 1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5월 10일]]<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 채상병 . . . . 1회 일치
|연도||소속||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타||3타||홈런||루타||타점||도루||희비||볼넷||사구||삼진||병살||실책
- 채현국 . . . . 1회 일치
실재 언론인 임재경은 2008년 한겨레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 채형석 . . . . 1회 일치
[[2002년]] 1월부터 [[애경그룹]] 부회장이 되었고,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구조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따내며 [[제주항공]]으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1|날짜=2016-01-12|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 천운영 . . . . 1회 일치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은 이후 ‘원색의 고통과 절규로 점철된 사실화’로 상징되는 천운영식 소설을 직조하는 중요한 글쓰기의 도구가 되었다.<ref>{{웹 인용|ur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4061610471&code=900308&fid=|제목=바늘로 우리를 자극하다|출판사=경향신문|저자=심진경|날짜=2007-04-06|확인날짜=2010-10-18}}</ref>
- 천장호 . . . . 1회 일치
최근 조무성 전 광운학원 이사장의 자녀 조○○씨 이사 추대를 반대하는 광운대 학생과 동문들 시위로 진통을 겪고 있는 광운대가 최근 실시한 교수평의회 소속 전임교수(전임교수 331명 중 313명 응답) 대상 '천장호 총장의 사퇴여부에 대한 찬반'에 대한 설문에서 60.1%가 사퇴해야한다고 밝혔다.
- 천호진 . . . . 1회 일치
|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사실 원래 악역이었으나 이후 장기연재가 되면서 카네다 박사라는 캐릭터가 만들어 지고, 쇼타로가 아버지인 카네다 박사에게서 물려받은 로봇이 되었다.
- 최계훈 . . . . 1회 일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교인 [[인천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고, [[2011년]] [[LG 트윈스]]의 [[투수]] 코치로 돌아왔으나, 그 해 [[LG 트윈스]]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박종훈 (1959년)|박종훈]] 감독이 사임했을 때 동반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야인으로 지냈다.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자유한국당]] [[이철우(1955)|이철우]] 의원이 경북도지사 출마로 국회의원을 사퇴하게 되자, 해당 지역구인 [[경상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도전했다. 당초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도전을 시도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관계로 자유한국당 [[송언석]] 후보와 맞붙게 되는데, 이로 인해 민주당 및 진보 지지자들의 기권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민주당 도의원 후보의 암묵적인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자유한국당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친여무소속 취급을 받았다.
- 최동석 . . . . 1회 일치
| 소속 =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 최동환 . . . . 1회 일치
!연도!!팀명!!평균자책점!!경기!!완투!!완봉!!승!!패!!세!!홀!!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 최석민 . . . . 1회 일치
[[한성부]]의 출신이며 본적은 [[경성부]] 북부(北部) 이동(泥洞)이다. 의정부와 내각의 관리로 일하다가 지방의 군수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최석민은 관제 정비와 지방 제도, 세금 분야 등의 실무 전문가로 점차 고위직에 올랐다.
- 최성관 (1925년) . . . . 1회 일치
* [[7호실 손님]] (1978년)
- 최성국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4년 현재 최성국은 어느 한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7월 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남성이 6년만에 기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mk.co.kr/newsRead.php?no=537548&year=2016|제목=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남성 6년만에 기소|확인날짜=2016-08-08}}</ref> 그와 동시에 2016년 7월 징계가 끝나는것과 관련하여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연맹은 아직 영구제명에 대해 경감의사가 없는것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75935|제목=복귀 타진 최성국…축구계 "현실성 없는 일"|확인날짜=2016-08-08}}</ref>
- 최성원 (배우) . . . . 1회 일치
* [[2012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국회의원 정치성 실종사건》 ... 고금하 역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반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순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 최수범 . . . . 1회 일치
[[2007년]] [[10월 13일]]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고, [[삼성전자 칸]]의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 최승환 . . . . 1회 일치
[[2011년]] [[11월 22일]] 처음 실시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1회 일치
'''최윤정'''(1974년~)은 [[미누파탈]]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1974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사랑과 성공, 진실, 마지막 전쟁, 가을에 만난 남자, 베스트 극장, 인어아가씨, 앞집여자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영화]] [[선생 김봉두]]에도 출연하였고, LG텔레콤, [[P&G]], PCCW, 여성가족부 등의 [[CF]] 모델로도 활동하였다. [[2013년]] [[최정아]]와 함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미누파탈]]을 설립하였다.
- 최진순 . . . . 1회 일치
[[2005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이직해 [[2016년]] 9월 현재 편집국 기자로 재직 중이며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기조협의회 포털팀(TFT) 등 신문업계 기구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블로그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을 운영 중이다. [[2013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강의 과목은 온라인저널리즘, 디지털스토리텔링, 블로그저널리즘 등이다.
- 최창흡 . . . . 1회 일치
최창흡은 [[1786년]] 경에 [[한양]]에 있는 한 [[중인]] 신분의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3살일 때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주교]]의 [[교리]] 수업을 시작했지만, [[세례]]는 받지 않았다. [[박해]]로 인해, 그는 교우들과 멀어진 이래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815년]]에 그는 한 천주교 공동체에 입회하여 교리를 다시 배웠다. 그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신유년의 박해]] 동안에, 그의 집안은 파산하였다. 그러한 곤궁한 상황 속에서, 그는 [[손소벽]]과 결혼하였고,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 중 아홉 명은 어릴때 운명을 달리했다. [[1821년]]에, [[조선]]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최창흡은 그 무렵에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지켰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을 때, 최창흡은 가장 독실한 신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젊어서 저지른 [[죄]]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속죄하고 제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을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 최혁 (1992년 3월) . . . . 1회 일치
* 《[[내성적인 보스]]》 (tvN, 2017년) - 화장실 남자 3 역
- 최호중 (배우) . . . . 1회 일치
* 《[[잡아야 산다]]》 (2016년) - 강 실장 역
- 최휘영 . . . . 1회 일치
*[[2003년]] [[1월]] NHN(주) [[네이버]]본부 기획실장
- 춘추 . . . . 1회 일치
『[[맹자]]』에서는 "공자가 노의 춘추를 고쳐써서 춘추경(春秋)을 만들고, 거기에 의(義)를 담았다"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이, 전국시대의 유학자들은 유학자들은 공자가 춘추에 작은 표현(미언微言)으로 큰 뜻(대의大義)을 담는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실천했다고 여기게 된다. 이 춘추경에 담긴 뜻을 '춘추대의'라고 하며, 이를 풀이함으로서 춘추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공자의 뜻을 해석해내는 '춘추학(春秋學)'이 나타나게 된다.
- 충완 . . . . 1회 일치
| 학력 = [[백석예술대학]] [[실용음악과]]
- 츤데레 . . . . 1회 일치
겉으로는 상대에게 퉁명스럽거나 또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호의를 보이는 태도. 서브컬쳐나 문학 작품에서 먼 옛날부터 쓰여온 설정 중 하나이다.
- 칫빠이 . . . . 1회 일치
치이사나(小さな,작은) 옷빠이(おっぱい,가슴) 혹은 칫쨔나(ちっちゃな,자그만한) 옷빠이(おっぱい,가슴)를 줄인 것이다. --사실은 치하야(千早) 옷빠이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 카네다 쇼타로 . . . . 1회 일치
철인 28호를 조종하는 소년 [[탐정]]. 쾌활하고 기민한 행동력과 어른을 압도하는 추리, 발상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철인을 조종하기 이전부터 소년 탐정으로서 명성을 날려왔다. 경시청에도 출입하며 수사에 협력할 정도. 뛰어난 사격실력에 자동차 운전, 제트 전투기 탑승, 헬기 조종 및 잠수 작업 등도 해낸다. 철인 28호를 얻은 후부터 철인과 함께 사건을 해쳐나간다. 집은 서양식 저택으로 혼자서 생활. 부친은 [[카네다 박사]]이며 중요한 동료로는 [[오오츠카 서장]], [[시키시마 박사]]가 있다.
- 카케오치 . . . . 1회 일치
실종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주로 신분 격차나 차별 등으로) 결혼이 허락되지 않은 남녀가 눈이 은밀하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 카타와 . . . . 1회 일치
몸에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느 쪽이 어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회 일치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 캡콤 스포츠 클럽 . . . . 1회 일치
또한 [[타임릴리즈]] 방식을 채용해[*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타임릴리즈가 아니다. 코인이 1997개 들어가면 해금되는 방식. 성공하면 타이틀 화면에 멜로디와 강아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보스[* 스타(축구), 골든 USA(농구), 멜로디(테니스).]들도 선택이 가능해진다. 보스들의 성능은 그야말로 최강.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1회 일치
* 사실상 어벤저스의 공중분해.
- 캬바쿠라 . . . . 1회 일치
캬바쿠라에서는 법률적으로 가개 내에서 손님과 아가씨의 접촉은 금지되며 원칙적으로 접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반(同伴)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점외 데이트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한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회 일치
* 네이비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1회 일치
* [[밀리터리]] 스타일의 게임이지만, 사실적인 밀리터리 게임과는 거리가 있고 1990년대 다운 SF적인 요소와 다소 쌈마이스러운 황당함이 겸비된 것이 특징. 예를 들어 타이베리움 사가에서는 로봇이 등장한다던가. 다만 대놓고 SF인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 비하면 '''비교적''' 밀리터리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 커피 젤리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커피 젤리에 관한 최초 자료는 1914년 4월 3일 [[요미우리 신문]]이며, 가사나 생활을 다루는 '가정' 면에서 커피 젤리의 레시피가 실렸다.
- 컬트 종교 . . . . 1회 일치
* 주술적인 의례를 실천한다
- 켄시로 . . . . 1회 일치
캐릭터 모티브는 [[브루스 리]]. [[실베스터 스탤론]] 등.
- 켄카킥 . . . . 1회 일치
동작 자체는 특별한 것은 없고, 비교적 평범한 [[앞차기]]이다. 선 채로 신체를 굽히거나 하지 않고, 한쪽 발에다가 체중을 실어서 정면으로 걷어차는데, 거칠고 무자비한 느낌을 주는 동작이라 야쿠자 킥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 하다.
- 코노나가레 주의 . . . . 1회 일치
분쟁을 방지하고 평온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며, 때로는 [[문제]]가 될 사항도 [[은폐]]하여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노력한다. 좋게 말하면 평화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책임전가, 문제회피, 현실도피에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1회 일치
1943년 2월 20일, 독일 해군 총사령관 [[칼 되니츠]]는 일본에서 전쟁물자를 가져오는 선박들의 손실이 크니 이탈리아의 대형 잠수함을 수송용으로 개장해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이탈리아는 이를 독일 잠수함 7척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 그렇게 개장된 잠수함 중에는 코만단테 카펠리니도 있었다
- 코스트코 . . . . 1회 일치
* [[회원제]]를 실행하고 있어, 기초 구매력을 갖춘 회원에게 저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 콘도 마코토 . . . . 1회 일치
2002년 『성인병의 진실(成人病の真実)』 출판
- 콜 오브 듀티 . . . . 1회 일치
플레이어가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게 진행 방향 외의 지역은 지뢰를 깔아뒀다. 이 구역에 들어가면 "틱"하는 소리가 난 후 지뢰가 폭발해서 죽는다. 그리고 뜨는 "지뢰밭에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붉은색과 하얀색의 경고 표시를 조심하세요!"는 덤. 가끔씩 인공지능들도 여기 들어가서 죽는다. 보통 스크립트로 들어가게 만든 경우.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스킬 . . . . 1회 일치
각 스킬 트리는 두개의 리볼버 실린더 모양으로 되어있다. 아 설명 안해. 나중에 사진 추가할래.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1회 일치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 콩고(소설) . . . . 1회 일치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태였다.
- 콩조림 . . . . 1회 일치
주로 영국식 요리, 특히 영국식 아침 식사(Full English breakfast)에 많이 곁들여지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색 소스에 졸여진 콩조림이 바로 베이크드 빈즈다. 설탕이나 시럽이 첨가된 토마토 소스에 콩을 넣고 졸이면 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탓에 주로 통조림에 든 베이크드 빈즈를 사용하기도 한다.
- 쿠와바라 쿠와바라 . . . . 1회 일치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가 [[다자이후]]에 좌천되고 실의에 빠져 죽었을 때, 각지에서 낙뢰가 있었는데 그의 영지에 있는 쿠와바라라는 마을에는 한 번도 번개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낙뢰를 피하는 주문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 쿠죠 죠린 . . . . 1회 일치
* [[CLAMP]]는 죠죠 동인 활동에서 [[죠타로|쿠죠 죠타로]]×[[카쿄인 노리아키|카쿄인]]을 밀고 있었기 때문에, 죠린의 등장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원고를 쉬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스톤 프리]]가 선글라스를 끼고 실로 변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죠타로와 카쿄인은 마음으로 이어졌다!"고 믿고 회복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쿨 비즈 . . . . 1회 일치
쿨 비즈란, 여름 실내 온도를 28도로 설정하여 [[냉방]]을 억제하여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한편, 28도의 온도에서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름에는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활동하자는 비즈니스 모델 제안이다.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실제로 예수가 태어난 날은 아니라고 한다.
- 크림 전쟁 . . . . 1회 일치
영국의 나이팅게일이 이 전쟁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간호 체계를 세우고 실행하여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후세의 연구에 의해 그녀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면모 등도 같이 재평가받게 되었다.)
- 클로로 . . . . 1회 일치
--얼굴을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매 컷마다 얼굴이 바뀐다.-- 장기등장 캐릭터임에도 헌터 헌터에서 가장 작화가 불안정한 캐릭터 가운데 하나. 거의 매 컷마다 얼굴이 바뀐다고 해도 좋다.--사실 이게 진짜 능력.--
- 키라키라 네임 . . . . 1회 일치
* 키라키라 네임 : 키라키라 네임(キラキラネーム, 키라키라=반짝반짝)은 DQN네임과 같은 뜻이다. DQN네임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이름을 붙인 부모에 대한 비하적인 의미는 들어있지 않고, 특이한 이름이라는 뜻에 가깝지만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공 보도에서 DQN네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이 같은 이름을 부모를 일률적으로 DQN으로 비하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러한 대체 용어를 사용한다.
- 키레이고토 . . . . 1회 일치
신체가 더러워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깨끗한 일이라는 의미. 여기에서 파생하여, 내용이나 현실성은 부족해도 겉치레만은 좋은, 이상주의적인 발언이나 행동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 키이치 보우겐 . . . . 1회 일치
분노한 키이치 보우겐은 여동생의 남편 단카이(湛海)를 보내서 요시츠네를 추격하게 하지만, 육도삼략의 무공을 습득한 요시츠네는 단카이를 죽이고 만다. 요시츠네에게 배반당한 보우겐의 막내딸은 실의에 빠져서 슬퍼하다 죽게 되고, 키이치 보우겐은 비탄에 빠졌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그 단순한게 어려운 점. 둘은 양단화가 공성전을 이해 못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단화는 알겠다며 "우리가 성벽을 오를 테니 문이 열리면 비신대가 돌입해라"고 선심쓰듯 말한다. 사실 이들의 백병전 능력은 검증됐지만 공성전 경험에 대해서는 둘 모두 확신이 없었다.
- 킹덤/521화 . . . . 1회 일치
* 기수가 생각대로 병력을 펼쳤을 때 지평수를 까맣게 메우는 또다른 병력이 등장한다. 기수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는 주해평야의 결전이 한두 군단의 격돌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 눈 앞에 5천 병력이 있다 해서 그게 적의 전모가 아님을 잊고 있었다.
- 킹덤/523화 . . . . 1회 일치
* 그에 대해서는 마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아룡은 전 삼대천인 [[인상여]] 장군의 측근. 중앙군의 [[요운]]과 더불어 오랜 세월 왕도권의 질서를 지켜온 숨은 강자였다. 마남자의 입에서 인상여의 이름이 나오자 악영도 그를 달리본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조아룡은 전 삼대천 [[염파(킹덤)|염파]]의 사천왕 [[윤호(킹덤)|윤호]], [[개자방]]과 동렬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굳이 여기서 서열과 실적을 논한다면 악영은 이들 틈에 낄만한 인물이 못 됐던 것이다.
- 킹덤/524화 . . . . 1회 일치
>실은 계속 이 마남자의 분뇌의 철퇴를 먹여주고 싶었지.
- 킹덤/525화 . . . . 1회 일치
*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이상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상은 자기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상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상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남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반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상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총대장 왕전의 명으로 양단화군에 조력하러 온 [[벽(킹덤)|벽]]은 감탄이라기 보단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만의 병력을 증원으로 끌고 왔으나 양단화의 산민족은 5만의 병력으로 적의 9만 병력을 철통같이 막아내고 있었다. 이는 전황이 전면전으로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병전에서, 기마전에서, 난전에서. 어떤 전장에서든 산민족 병사의 위용은 눈부셨다. 자신이 힘이 되지 못하는걸 알고 벽이 씁쓸해하자 옆에 있던 "톳지"라는 산민족 간부가 산민족말로 "평지의 장군이 괜히 왔다"며 조롱했다. 벽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양단화는 알아들었다. 그에게 놀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 양단화는 벽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현재 전황이 산민족에 유리한건 사실이나, 적의 움직임은 수상하기 그지없다. 전술이 너무 단조로운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벽과 그 병력에겐 이 돌발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갖춰두라는 것이었다. 벽이 기꺼이 그 임무를 받았다.
- 킹덤/532화 . . . . 1회 일치
* 이목 추격에 실패한 비신대는 다시 말머리를 돌려 좌익의 싸움으로 뛰어드는데.
- 킹덤/533화 . . . . 1회 일치
* [[마광]]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진군 좌익의 사기는 크게 꺾인다. 그러나 낙화대의 [[몽념(킹덤)|몽념]]은 상황을 타개하고 조장 [[기수(킹덤)|기수]]를 확실히 제거할 묘안을 들고 나오는데. 그 핵심 역할은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과 자신의 부하 "육주"에게 맡기는데. 몽념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자 주인을 잃은 마광군은 몽념을 중심으로 군세를 정돈해 협조에 나선다.
- 타바사 . . . . 1회 일치
[[SVC Chaos]]에서는 기본기와 대공기가 매우 부실하지만 공대공 최강의 비둘기, 잡기거리가 매우 길면서 엄청난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커맨드 잡기, 맞으면 머리가 깨질듯한 심리전을 걸 수 있는 재밍 고스트, 그리고 맞으면 죽었다고 복창해야하는 익시드까지 가지고 [[가일]]과 함께 레귤러 캐릭터 최강자를 차지하고 있다.
- 타카하타 유우타 . . . . 1회 일치
2016년 8월 23일, 군마현 마에바시(群馬県 前橋)의 시내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에서 여성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8월 23일 오전 2시에서 2시 30분 경, 비즈니스 호텔의 객실에서 여성 직원의 손발을 누르고 강간하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부상을 입힌 혐의였다.
- 태보 . . . . 1회 일치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사용하여, 에어로빅처럼 음악에 맞춰 춤추듯이 움직이고 동작을 반복하여 트레이닝을 한다. 태권도와 복싱의 동작을 쓰기 때문에 운동만이 아니라 [[호신술]]로도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동작만 연습하는 것이고 실제 대련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무술로서의 성격은 희박하다.--대신 빌딩은 파괴할 수 있다.--
- 태의경 . . . . 1회 일치
'''태의경'''(太義卿, [[1966년]] [[7월 20일]] ~ )은 [[한국방송공사]] 아나운서실에 속해 있는 [[아나운서]]이다.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을 수료하였다.
- 털이 난 정도 . . . . 1회 일치
아주 약간 나은 수준. 조금 나을지도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르지 않은 수준. 거의 같은 정도. 이런 뜻의 표현이다.
- 템포라 . . . . 1회 일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061554011&code=970100|경향신문 - 미·영 정보기구 ‘암호 무력화’ 기술 개발, 인터넷·스마트폰 정보 실시간 훔쳐봤다(한글)]]
- 토리코/359화 . . . . 1회 일치
* 돈 슬라임은 네오에게 "네가 최고의 숙주를 얻었다 믿냐"고 비아냥 거리며 이치류의 사상과 추억을 말한다. 그러자 네오 안에 있던 아카시아가 나타나 "그런 부분은 나약함일 뿐이며, 자신은 이치류에게 운명을 부여했지만 나약해서 실패했고 신이 택한건 자신이다"며 조롱한다.
- 토리코/365화 . . . . 1회 일치
* 블루 니트로는 팔왕이나 네오에는 못 미쳐도 이 세계 정점에 달한 실력자들이란게 통설이었는데, 100% 상태도 아닌 지로에게 완전히 박살나면서 완전히 체면을 구겼다.
- 토리코/366화 . . . . 1회 일치
* 설명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 갑자기 지로를 묶는다.
- 토리코/368화 . . . . 1회 일치
* 사실 죠아가 퍼뜨린 균은 자기 자신도 버틸 수 없는 강력한 독성물질이지만 정작 죠아에겐 통하지 않고 있다.
- 토리코/370화 . . . . 1회 일치
* 지지는 조리법을 미처 알려주지 못하고 죽었지만, 사실 코마츠가 있는 한 식재의 목소리로 어떻게든 할 것이다
- 토리코/377화 . . . . 1회 일치
* 게다가 네오가 가는 곳마다 팔왕이 튀어나와서 인실좆의 쓴맛을 보여주고 있다.
- 토리코/382화 . . . . 1회 일치
* 센터를 먹은 직후의 상태로 볼때 500년 전 아카시아는 풀코스를 다 먹는데 실패했던 걸로 보인다.
- 토리코/388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아는 토리코가 진실을 알아챘다고 생각한다.
- 토리코/390화 . . . . 1회 일치
인간계 지키는 세츠노 할멈은 지구가 붕괴되면.. 아마 그 실드가 없어진지 오래이므로 죽었다고 볼 수 있다.
- 토리코/391화 . . . . 1회 일치
일설엔 돈슬라임도 먹혔으니 영혼세계에서 이치류와 합류, 이치류+돈슬라임의 파워로 현실세계로 복귀한다는 추측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1회 일치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1598년 8월 18일, 62세 나이로 사망한다.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1회 일치
1979년에서 82년 까지 훈련생의 사망, 행방불명 사건이 잇다라 교장 이하 15명이 체포, 형사 재판이 벌어지며 이를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라고 한다. 토츠카 교장은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며, 2006년에 출소하여 학교에 복귀하고 운영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1회 일치
>행운은 조수로 넘실거린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1회 일치
>확실하게 발을 딛지 않고 검으로 찌른다면 잘못될 것이다.
- 통일주체국민회의 . . . . 1회 일치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 선거에서 거수기 이외의 거의 아무런 역할도 없는, 사실상 [[무직]] 명예직이다. 딱히 '''아무것도 안 하는 거나 다름없는 집단'''을 3천명이나 뽑는데 엄청난 선거비를 소모하고, 게다가 이 위원들이 세비는 없지만 소정의 활동비까지 받았다는걸 생각하면, 상당히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 자체가 '''거대한 낭비'''라는게 모순.
- 특이한 세금 . . . . 1회 일치
* 스포츠 스타세 : 40개 이상의 주. 소득세의 일종으로서, 도시나 주를 방문한 사람이 해당 지역에서 수익활동을 했을 경우 그 소득세의 관할권을 주장하는 법률이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행정능력의 한계 때문에 한 경기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스포츠 스타들만 피해를 본다. 1991년 [[시카고 불스]]가 [[LA 레이커스]]를 NBA 파이널에서 꺽고나서, 캘리포니아 주에서 졸렬하게 보복성으로 제정했다(…). 그리고 이 졸렬함을 여러 주들이 앞다퉈서 따라하게 됐다.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티나는 해외 팬이 많다. 그녀는 21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 접하면서 성장했었다. 2004년 한국에서 "설레임"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일절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 한달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는24위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녀의 음악적으로 묘한 매력과 놀라운 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러브 콜을 여러 번 제의 받았었다. 리키마틴, 켈리클락슨의 프로듀서인 Suren과 함께 2008 C U 2nite 타이틀"Catch me” 앨범을 미국에서 제작 하였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했었다. C U 2nite 앨범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 역시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는 도중 티나는 EDM 전설이며 보컬 겸 그래미수상 경험이 있는 유명 프로듀서 Kevin Irving에게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케빈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인 Dr Dre, Beyonce, 50cent. Pink, Janet Jackson과 같은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해왔었다. 케빈 프 로듀서는 티나의 재능을 보고 영어 앨범을 제작 했고, 대표 곡” Come Mr. DJ”를 작업했다. 케빈은 티나에게 마돈나한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며 극찬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면 2014년 귀국했고 트로트 장르로 변경 2016년 7월20일 콩 앨범 발표하고 현재 활동 중이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 1편에서는 사슬에 묶인 채로 앞에 있는 [[TNT]]에 의해 폭사.[* [[마이크 해거]]가 타면서 짧아지고 있는 도화선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필사적으로 훅훅 입바람을 부는 모습이 미묘하게 웃음(...)을 유발시킨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짓을 당했다간..~~]
- 파일 드라이버 . . . . 1회 일치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같은 기술은 이 때문에 언듯 보기에는 정수리를 바닥에 내리찧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허벅지로 상대방의 머리를 잡아서 바닥에 부딯치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
- 패드립 . . . . 1회 일치
현실이건 인터넷이건 상대와의 관계를 화끈하게 파탄낼 수 있는 행위다. 당사자나 목격자에게 교양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으니 주의.
- 퍼니셔 . . . . 1회 일치
군인 출신이라 전투실력이 뛰어나고, [[기관총]] 등 총화기를 능숙하게 다룬다.
- 퍼키 팻의 전성시대 . . . . 1회 일치
하지만 새로운 세대인 아이들은 이러한 어른들의 롤플레잉 게임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현실에서 사냥을 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 페어리 테일/482화 . . . . 1회 일치
* 엘자는 결국 쿄우카에게 묶이고 쿄우카는 지하 고문실의 일을 들먹이며 도발한다.
- 페어리 테일/483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나츠가 풀어준 브랜디쉬가 정보를 제공하는데, 사실 오거스트 외에도 스프리건12중 최강으로 불리는 자는 또 있다.
- 페어리 테일/489화 . . . . 1회 일치
* 아이린이 사용하는 마법 "유니버스 원"은 세계 재구축 마법이란 설명이 붙어 있어서 일종의 현실개변능력일 것으로 추정 중.
- 페어리 테일/490화 . . . . 1회 일치
* 세계재구축 마법이라는 설명 때문에 아예 현실조작 능력인것처럼 인식됐지만 그정도는 아니었고 대륙 수준의 재구축 마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긴 하지만.
- 페어리 테일/491화 . . . . 1회 일치
* 물론 국왕은 "어떤 모습이든 나의 딸"이라며 당연하다고 하는데, 그러자 실망했는지 "재미없다"고 투덜거린다.
- 페어리 테일/492화 . . . . 1회 일치
* 하이네와 줄리엣은 사실 두 자루의 검이었다. 아이린의 하이인첸터 능력으로 인간 모습을 하고 있던 것.
- 페어리 테일/494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사실 브랜디쉬는 디마리아에 비하면 포로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게다가 반쯤은 페어리 테일의 협력자.
- 페어리 테일/497화 . . . . 1회 일치
* "너는 사실 어떤 자냐"라며 그의 정체를 암시하는 아이린. 나인하르트는 주저하면서도 눈이 검게 물들어 있다.
- 페어리 테일/499화 . . . . 1회 일치
* 잉벨은 이미 END의 진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1회 일치
* 그레이는 구조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잉벨을 끄러뜨려도 쥬비아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방을 뛰쳐나가 제레프를 찾으며 폭주한다. 그리고 END의 진실을 알게 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마주치고 마는데.
- 페어리 테일/505화 . . . . 1회 일치
* 페어리 로는 사실 자신의 생명을 깎아서 사용하는 마법. 적의 수에 따라 더 많은 생명력을 필요로 한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1회 일치
라케이드의 어머니는 메이비스 버밀리온으로 추정 중. 사실 오거스트가 중얼거릴 때 메이비스가 나와서 거의 확정이다. 팬덤에서는 제레프를 진정한 흑마도사라며 까고 있다.--라케이드의 마법이 메이비스한테 통하는게 다 이유가 있었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나츠의 마음 속 세계에서 언급된 "안나"라는 여성의 떡밥이 강화 중. 안나는 아이린과 멸룡마도사의 진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최후까지 이그닐과 협력했던 것으로 보이고 또 루시와 관련된 인물로 보이는 등, 새로운 떡밥의 여왕으로 떠오르고 있다.
- 페어리 테일/516화 . . . . 1회 일치
* 한편 현세대 멸룡마도사가 용화를 극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린은 자신에게 마법을 건 베르세리온은 전장에서 죽었고 자신은 그 원한을 갚기 위해 싸웠었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1회 일치
* 사실 아이린은 갓 태어난 딸이 귀여워 인챈트를 포기하기로 했으나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워 엘자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인간"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정하자 두 싹은 자연히 소멸하고 나츠는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시간의 틈새는 귤 정도 사이즈의 구멍이다. 그래서 평소엔 볼 수가 없지만 실수로 만지기라도 하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고 한다.
- 페어리 테일/533화 . . . . 1회 일치
* [[오거스트]]와 격전 이후 대성당 부근에 있던 [[길다트 클라이브]]와 [[카나 알베로나]]는 방금 전 길드쪽에서 시작돼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골몰한다. 그것은 [[제레프 드래그닐]]이 페어리 하트를 습득, 백마도사 제레프로 각성한 여파였지만 둘이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 페어리 테일/535화 . . . . 1회 일치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악마의 문자를 다룰 수 있는 인간은 얼마 없으니까. 다루더라도 그 인간은 침식 당해 어둠에 빠진다. 그렇지만 나츠가 저렇게 일어났다는 것은... 제레프는 눈 앞의 사실을 인정하기로 한다. 나츠의 부활은 "그야말로 기적의 부활"이라며 다음은 없고 개변자의 목숨이 사라질 거라고 경고한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1회 일치
* 시간의 틈새가 있는 바다 위. 추락한 크리스티나호가 침몰해가고 있다.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을 비롯한 탑승자들은 모두 탈출에 성공. 생존자들은 크리스티나의 폭발을 우려해 배에서 최대한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이 안전할 수 있었던 건 [[제라르 페르난데스]]가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지만,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으려던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크놀로기아의 손에 잡혀 으스러지는 제랄.
- 페어리 테일/537화 . . . . 1회 일치
>사실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그녀의 충고가 제랄이 놓치고 있던 사실을 환기시켰다. 엘자는 그녀의 말에 보태서 당부했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1회 일치
* 시간의 마력이 더해진 아크놀로기아의 힘은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키고 남을 만했다. 무서운 위력이 실린 마법의 빛이 바다를 가로질러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 난사는 끝날 줄 모른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1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를 하루지온으로 유인해 약점을 공략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본능적인 직감인지 이쪽의 계산을 간파한 건진 모르지만 아크놀로기아는 항구가 보이자 마자 선수를 쳐서 정박해 있던 모든 배를 박살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접촉시켜 멀미를 유발하는 방법을 쓸 수가 없다. 페어리 스피어 발동 작전은 이대로 실패하는 걸까? 그때 [[그레이 풀버스터]]가 작전 속행을 주장하며 항구로 뛰어간다. 자신과 [[리온 바스티아]]가 힘을 합쳐 얼음조형마법을 쓰면 분명 큰 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들과 [[쥬비아 록서]]까지 가세해 얼음의 배를 만드는 작업이 개시된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베인 . . . . 1회 일치
>토이어 전시실로 간다. 이번에 노릴 것은 새로나온 고성능 스포츠카다. 그것들을 끌고 나오자. 차에 기스가 나면 안되니 조용히 행동하자.
- 페이퍼 컴퍼니 . . . . 1회 일치
* 등기가 되어 있어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사업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 [[회사]]를 뜻하는 '[[일본]]식 영어'다. 영어로 이러한 회사는 껍데기 기업(shell corporation), 더미 회사(dummy company), 우편함 회사(mailbox company)라고 불린다. 주로 조세 회피 및 [[탈세]]를 목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법체계가 다른 제3국 국적으로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 평론을 쉽게 쓰는 법 . . . . 1회 일치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무작정 가정하고 이야기 한다. 사실 많은 작가는 영향을 받아서 썼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딱히 영향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입증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딱히 영향 안 받았다고 해도 입증하기는 어려우므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관련신화가 켈트이기 때문에 카드사용에 제약이 좀 있다. 켈트신화는 북유럽 신화나 헤브라이 신화에 비해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카드가 있는 게 아니라서 한방에 역전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 또한 정령력을 충전할 수 있는 카드 역시 켈트 신화에는 없기 때문에 엘프는 이런 면에서 신화보정이 약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배틀 이외의 상황에서는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표민수 . . . . 1회 일치
* [[2000년]] 경실련 시청자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 《[[바보같은 사랑]]》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1회 일치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 프레샤 . . . . 1회 일치
* 보통은 뉴타입의 특수기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기동전사 Z건담]]에서 묘사한 프레샤가 가장 강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는 프레샤는 올드타입도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뭔가 전장에서 식별 가능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프레샤라 봐도 무방할 듯.
- 프로토스 . . . . 1회 일치
유닛과 건물을 포함해 배리어를 써서 사실상 체력이 2중이라 할 수 있다. 저그와 같은 재생능력은 없으나 배리어의 경우 회복할 수 있다.
- 프리덤 파이터즈 . . . . 1회 일치
* [[퀵실버]](Quicksilver)
- 하리테 . . . . 1회 일치
언듯 보면 웃기게 보이기도 하지만, 스모 선수의 체중이 실려 있어 위력은 매우 강하다고 한다.
- 하이큐/211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는 자괴감에 빠져서 공구실에 쌓인 매트더미에 고개를 처박는다.--타조냐--
- 하이큐/212화 . . . . 1회 일치
* 해야할게 많다는건 히나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조급하게 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언제나 정답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건 "최선을 탐색하는 것".
- 하이큐/221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체중을 엄지 발가락 아래"에 실으라는 것.
- 하이큐/242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뛰오른다. 또다시 속공일까? 츠바키하라에겐 네트 앞에서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쇼요가 뛰어오르는 걸 보고 블록 세 명이 동시에 따라온다. 하지만 그것은 페이크. 진짜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즈마네였다. 아즈마네가 솟아오르고 츠바키하라는 패배를 직감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쐐기같은 스파이크.
- 하이큐/255화 . . . . 1회 일치
* 관람 중인 [[호시우미 코라이]]가 방금 플레이는 요행이 아니고 정확하게 "보고" 플레이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 플레이로 우카이 코치도 안심했다. 그도 미야 형제의 괴짜 속공을 크게 우려하진 않았지만, 선수들의 멘탈에 대해서는 조금은 우려했던 바였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괜찮다"고 했던건 허세가 아니었다. 그는 최선의 토스를 올릴 뿐이고 이후의 일까진 자기가 어쩔 수 없다는걸 확실히 체득했다. 옛날의 카게야마라면 그것까지 자기가 해결하려고 안달을 부렸을 거라고, 우카이 코치는 생각했다.
- 하이큐/270화 . . . . 1회 일치
* [[미야 아츠무]]는 [[니시노야 유]]를 확실히 강한 상대로 인정했기에 노리고 있다.
- 하재숙 . . . . 1회 일치
* [[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2016) - 조 작가(특별출연)
- 하지영 . . . . 1회 일치
*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과학실험 사이펀]]》 - 사회자
- 한가인 . . . . 1회 일치
|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ref>{{뉴스 인용 |제목 =‘획기적인 쇼’ 한가인 “태어날 때부터 예뻤다”…노래실력도 우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257174|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예나 |날짜 = 2012-10-27 |확인날짜 =2018-04-17 }}</ref>
- 한길로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2005년]]《[[마파도]]》(코미디, 모험 / 제작부),《[[싸움의 기술]]》(코미디, 액션 / 제작실장)
- 한동근 . . . . 1회 일치
[[2018년]] [[8월 30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덕여자고등학교 인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이 드러났다.<ref>{{뉴스 인용 |저자=황미영 |제목=[단독] 가수 한동근, 음주운전 적발…오늘(5일) 조사 |url=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421&aid=0003572860 |뉴스=뉴스1 |출판사= |위치= |날짜=2018-09-05 |확인날짜=2018-09-05}}</ref>
- 한동욱 . . . . 1회 일치
이후 우승자 징크스로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한동욱은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3]]에서 다시 4강에 올랐다. 비록 [[이윤열]](당시 팬택)에게 패퇴하며 결승 진출엔 실패했지만, 준결승 3경기(리버스 템플)에서 보여준 믿기 힘든 역전승은 한동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속도전의 진수였다.
- 한비야 . . . . 1회 일치
|확인날짜 = 2013-09-09}}</ref> 했다. 이밖에도 서울랜드에 마련된 세계시민교육관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실시하고 있으며 2012년, 이 세계시민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ref>{{웹 인용
- 한성식 . . . . 1회 일치
*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 마 실장 역
- 한성호 . . . . 1회 일치
|종교 = [[개신교]]([[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61993 유재석 FNC와 전속계약, FNC 뜻은?…한성호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ref>
- 한승엽 (1985년) . . . . 1회 일치
2003년 SouL(현 STX SouL)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으며 아마추어 시절 강력한 프로토스 실력을 소유한 선수였으나 프로로 와서는 테란으로 전향하였다.
- 한영이 . . . . 1회 일치
한영이는 이른 나이에 한 [[양반]] 집안의 권 [[진사]]라는 남성의 후처로 들어갔다. 권 진사는 중년에 들어 [[천주교]]에 입교 하였는데, [[임종]] 직전에 비상 [[세례]]를 받았고, 부인에게 입교하여 영원히 신자로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영이는 딸과 함께 입교하였고, 매우 가난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며 독실한 삶을 살았다.
- 한용덕 . . . . 1회 일치
!년도 !!팀 !!평균자책 !!경기수 !!승 !!패 !!세 !!홀드 !!완투 !!완봉 !!이닝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 한유주 . . . . 1회 일치
[[2003년]] 단편소설 〈달로〉로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제3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2009년 제42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등에서 강의했다.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도서출판 [[울리포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 한지우(배우) . . . . 1회 일치
2011년, [[문화방송|MBC]] [[주말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드라마)]]에서 금란이의 [[무개념|개념없는]] 여동생 미란이로 출연하며 많은 욕을 먹었다. 짜증을 유발하는 악역 특성상, 배우의 실명까지 거론되며 여러가지로 까였다.
- 한행 . . . . 1회 일치
* 칸게이고(寒稽古) : 무도에서 겨울에 수행을 하는 것. 유도나 검도 등의 일본 무도에서 관습적으로 행한다. 기술 향상 보다는 정신력 단련에 중점을 둔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운동생리학적으로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 할머니가 기른 아이는 세푼싸다 . . . . 1회 일치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를 기를 떄 응석을 받아주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로 기른 아이는 응석받이로 자라서 커서도 제 구실을 못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 함중아 . . . . 1회 일치
*1981년 12월 함중아와 양키스 《국제선 대합실 / 콧날이 찡긋》
- 해양군 . . . . 1회 일치
| 자녀 = 슬하 1남 3녀(모두 요절) <br /> 양자 [[이인 (종실)|이인]](李仁)
- 허남성 . . . . 1회 일치
*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 [[국회의원 정치성 실종사건]]》 (2012년, KBS2) - 승우 역
- 허범욱 . . . . 1회 일치
*2014년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타이틀 제작
- 허쉬 . . . . 1회 일치
[[펜실베이니아]]에 [[http://www.hersheypark.com/|허쉬파크]]라는 놀이공원을 가지고 있다.
- 허안나 . . . . 1회 일치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코리아]] 《마이 펫 TV》- 실제 반려동물이자 고양이 흰돌이와 함께 인터뷰 출연
- 허협 . . . . 1회 일치
허협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4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는 것과 등이 전부이다. 그는 [[훈련도감]]의 [[병사 (군인)|병사]]였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 헐크 . . . . 1회 일치
엄청난 [[괴력]]과 생명력을 지닌 녹색 [[거인]]이며 그 정체는 브루스 배너의 다른 모습이다. 배너 박사는 보통 사람이었으나 감마선 실험에 의해 분노하면 거대한 녹색 괴물 헐크가 되는 것.
- 헤타레 . . . . 1회 일치
본래 연예인 대기실에서 쓰이던 말로서,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연애인을 뜻하며 한자로 헤타레(屁垂れ)라고 썻다. 오줌싸개(小便垂れ)와 비슷하게 아직 어린애라는 의미가 강했다.
- 헥사밀리온 . . . . 1회 일치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 요새 역할을 했으며, 당대 최대급의 성벽이었으나 결국 오스만의 공세에 무너지고 모레아는 초토화 되어버린다. 헥사밀리온의 돌파로 비잔티움 제국에서 그나마 가장 부유하고 번영하던 영토 모레아[*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사실상 오스만 영토 한 가운데 놓인 위요지가 되어버려, 도시 기능의 쇠퇴가 현저했던 것으로 보인다.]가 박살나면서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은 초읽기로 다가온다.
- 현덕 . . . . 1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현동완 . . . . 1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 현재덕 . . . . 1회 일치
광복 후 좌익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동맹]]의 아동미술분과와 [[동지사아동원]]에 가담했다. 동지사아동원에서는 필명이 박두루미인 [[박인범 (작가)|박인범]]과 함께 어린이들 대상의 구연 동화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기간 중 현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월북했으며, 서울에는 부인과 딸을 남겨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아동문학가로 일했다는 사실만 단편적으로 전해졌을 뿐, 활동상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 혐저 . . . . 1회 일치
이런 사고방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2채널 등의 익명 인터넷 커뮤니티이 이른바 [[현실]]에서 외면받는 사람들, [[루저]] 문화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 호시즈나 . . . . 1회 일치
남태평양 지역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별]] 모양의 [[모래]]. 사실 모래가 아니라, 유공충(有孔虫)이라는 원생동물의 골격이 [[파도]]에 밀려와서 [[퇴적]]된 것이다. 크기는 1밀리미터 미만으로 아주 작지만 자세히 보면 별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혼모노 . . . . 1회 일치
실은 '혼자 모니터 보는 노총각'이란 의미다.
- 홍금주 . . . . 1회 일치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태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남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 홍나영 . . . . 1회 일치
**〈불편한 진실〉
- 홍상수 . . . . 1회 일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캘리포니아예술공예대학]](California College of Art and Crafts)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으며, [[시카고 예술학교|시카고예술대학교]](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연출한 단편 실험영화로 《개미 보는 여인》이 있다<ref name='kmdb' />. 에릭 로메르,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세잔|폴 세잔]]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 홍서범 . . . . 1회 일치
* 홍서범 4집 (앗! 나의 실수)(1998)
- 홍성유 . . . . 1회 일치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 홍세화 . . . . 1회 일치
그 해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백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 홍양호 (1955년) . . . . 1회 일치
* 통일부 기획관리실장
- 홍연아 . . . . 1회 일치
* 무료공부방 안산열린교실 대표
- 홍영현 . . . . 1회 일치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 !!패 !!세 !!홀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실점 !!자책점
- 홍유경 . . . . 1회 일치
'''홍유경'''([[1994년]] [[9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전 멤버이다. [[대한민국]]의 중견 철강 제조업체인 [[DSR제강]] 창업주였던 홍순모의 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으나<ref name=hongyk>{{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1000억대 재력가의 딸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9/2012020902006.html | 저자=한상혁 기자 | 출판사=조선일보 | 날짜=2012-02-09 | 보존url=http://archive.is/CFdQ | 보존날짜=2012-07-23 }}</ref> [[2013년]] 4월 학업 문제로 [[에이핑크]]에서 탈퇴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탈퇴..에이큐브 측 "학업 전념" |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3042315233618713&type=1&outlink=1 | 출판사=스타뉴스 | 저자=윤상근 기자 | 날짜=2013-04-23 | 보존url=http://archive.is/OkU7D | 보존날짜=2013-05-01 }}</ref>
- 홍정욱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성공회대학교 교수]][[분류:서울압구정초등학교 동문]][[분류:압구정중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홍준표]][[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홍해성 . . . . 1회 일치
[[1930년]]에 귀국하여 [[윤백남]], [[박승희 (1901년)|박승희]], [[김을한]] 등이 동인으로 포함된 극단 경성소극장을 창립했으나, 재정 문제 때문에 무산되어 이번에는 최승일, [[홍노작]], [[박희수]] 등과 함께 신흥극장을 창립했다. 신흥극장의 창립작은 경향파적인 작품인 《목단등기》였는데, 이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고 신흥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홍해성의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 홍헌표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광복 후 [[미군정]]에서 관료로 발탁되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과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에서 내무부 차관, 체신부 장관 등을 지냈다. 체신부 장관으로 재임했을 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으나,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 홍혜경 . . . . 1회 일치
{{사실 여부 의심|날짜=2009-11-28}}
- 화염병 . . . . 1회 일치
2016년 1월 8일, 위안부 합의에 불만을 품은 승려가 외교부에 화염병을 던지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08/0200000000AKR20160108105951004.HTML|연합뉴스 링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0/0200000000AKR20160310133000004.HTML|이후 집행유예를 받았다.]]
- 화이트워싱 . . . . 1회 일치
* 유색인종 배우의 역할을 조연으로 한정시켜, 유색인종에 대하여 사실상 직업차별이 된다.
- 확신범 . . . . 1회 일치
가끔 오해받고 잘못 쓰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범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 황병일(1960) . . . . 1회 일치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 무엇보다도 [[김상현(1980)|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 때 황붕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야구)|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
- 황보관 . . . . 1회 일치
브라질 월드컵 이후에는 [[이용수 (축구인)|이용수]]에게 기술위원장을 넘기고 현재는 기술교육실장으로 있다.
- 황성관 . . . . 1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단체)|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10월 3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 전
- 황연석 . . . . 1회 일치
[[2008년]] 대구와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고양 국민은행]]으로 이적하였으며 [[서울 유나이티드 FC|서울 유나이티드]]를 거쳐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 황의종 . . . . 1회 일치
[[1973년]]에 〈대금과 아쟁을 위한 실내악〉 제1번을 발표한 이래 많은 창작 국악을 작곡해 왔다. [[1984년]] [[5월 18일]]에 첫 작곡 발표회를 열었다. [[1992년]]에 첫 작곡집 음반을 낸 뒤, [[2001년]] 5집까지 발매했다.
- 황정미 . . . . 1회 일치
* [[1998년]] [[SBS]] 월화드라마 《[[은실이]]》
- 황종률 (정치인) . . . . 1회 일치
|직책 = [[대한민국 무임소장관실|무임소 장관]]
- 후카다 쿄코 . . . . 1회 일치
* [[2009년]] 실사영화판 『[[얏타맨]](ヤッターマン)』에서 [[도론죠]] 역을 맡았다.
- 휴전 . . . . 1회 일치
사실 휴전→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60년 넘게 휴전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히토는 [[사람]]. -모도키(-擬き)는 비슷하게 만든 가짜라는 뜻이다. 따라서 히토모도키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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